728x90
반응형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이완구 전 국무총리 검찰 출석 조사

■ 강기훈 씨 24년 만에 무죄

■ 정부 국가재정전략회의 개최와 무상보육 예산 마련 문제

■ 김정은 공포정치와 도발 대비의 필요성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이완구 전 국무총리 검찰 출석 조사

 

[한국일보 사설-20150515금] 착잡한 심정으로 보는 이 전 총리의 검찰 출두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마침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성완종 리스트 연루 의혹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17일 만이다.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총리로서 불과 2개월 전 대국민 담화까지 발표하며 서슬 퍼렇게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했던 이 전 총리다. 그런 그가 비리의혹에 휩싸인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청 포토 라인에 선 모습을 보고 많은 국민들은 착잡하고도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 전 총리는 역대 총리 43명 중 14번째로 검찰 조사를 받는 전직 총리가 됐다. 어떤 사유에서든 총리 출신이 비리혐의로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헌정사의 불행이다. 더욱이 이 전 총리는 성 전 경남기업회장으로부터 불법 선거자금을 받은 의혹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만큼 사실상 ‘현직 소환’의 의미가 있다. 국민들에게 주는 충격과 배신감이 한층 더 클 수밖에 없다.

 

이 전 총리는 이날 검찰 조사실로 들어가기에 앞서 취재진에게 “이 세상에 진실을 이기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결연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물론 유무죄 여부는 검찰 조사와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이 전 총리가 받고 있는 혐의는 2013년 4월 충남 부여ㆍ청양 재보궐 선거 기간 성 전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 현금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성 전 회장이 직접 선거사무소를 방문해 현금을 전달했다는 정황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이 전 총리는 당시 성 전 회장을 단둘이 만난 사실 자체부터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감에 찬 이 전 총리의 ‘진실’ 강조는 불편하다. 핵심 혐의의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그는 그 동안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잦은 말 바꾸기와 과도한 부인으로 국민들의 불신을 키운 게 사실이다. 성 전 회장과의 관계만 해도 처음엔 개인적 친분이 없다거나 전혀 친하지 않다고 했다가 동석한 사진들이 다수 공개되고, 두 사람이 빈번하게 만났다는 증언이 잇따르자 자주 접촉하고 의견도 나눈 사이였음 마지못해 시인했다. 그의 ‘진실’이 곧이곧대로의 진정성보다는 핵심 의혹 제기자의 사망으로 수사의 불가피한 한계를 판단한 발언으로 들리는 이유다.

 

당시 이 전 총리가 만약 성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도 말한 것도 국민들의 불신을 키운 오버였다. 결백을 강조하려는 과장 어법이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협박으로 받아들였다. 어쨌든 이제 공은 검찰에 넘어가 있다. 검찰이 어떤 정치적 고려 없이 증거와 정황에 입각한 철저한 조사로 진실을 가려 냄으로써, 이 전 총리에 대한 수사가 더 이상 이런 비극적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는 정치문화 개선의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5금] 아직도 창피함을 모르는 이완구 전 총리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한테서 3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취임 후 부패척결의 기치를 높이 내걸었던 내각의 총책임자가 부패 혐의 피의자로 전락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선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씁쓸하다. 아직 후임자도 없는 ‘총리 공백’ 상태임을 고려하면 사실상 현직 총리의 검찰 출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전 총리는 이날 “이 세상에 진실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가 ‘진실’ 운운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것은 금품 전달자인 성 전 회장이 이미 고인이 된 상태에서는 검찰도 혐의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으리라는 계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나타난 각종 정황증거나 이 전 총리의 언행을 보면 오히려 ‘진실’은 돈을 받은 쪽에 가까워 보인다.

 

우선 이 전 총리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계속 거짓말을 했다. ‘성 전 회장과 친하지 않다’는 해명과 달리 1년 동안 수백 차례나 전화통화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2013년 재선거 때 성 전 회장이 부여 선거사무실로 찾아가 돈을 전달했다’는 성 전 회장 측근들의 진술에 대해 이 전 총리는 ‘단독 면담’ 사실 자체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으나, 두 사람이 단독으로 만나는 광경을 본 사람들이 잇따라 나타났다.

 

게다가 이 전 총리는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전에 만난 지인들에게 직접 16차례나 전화를 걸어 대화 내용을 캐묻는가 하면, 전직 운전기사를 비롯해 선거 캠프 인사들을 상대로 조직적인 회유와 말맞추기를 시도한 정황도 드러났다. 돈을 받지 않았으면 굳이 회유 공작을 펼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이런 증거인멸 시도는 이 전 총리의 혐의를 입증하는 강력한 정황증거가 아닐 수 없다.

 

검찰도 그동안 성 전 회장의 수행비서와 이 전 총리의 운전기사 등 관련자들의 증언을 폭넓게 수집하고 관련 기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얼마나 정교하고 치밀하게 이 전 총리의 금품수수 혐의를 입증할지 주목된다. 여기에 덧붙여, 이 전 총리에 대한 형사처벌 수위 결정에서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증거인멸 문제다. 증거인멸은 구속영장 청구의 중요한 사유인데, 핵심 증인들을 상대로 한 이 전 총리 쪽의 회유와 거짓증언 유도 등이 한두 건이 아니다. 검찰이 이 전 총리 수사를 통해 ‘이 세상에 진실을 이기는 것이 없음’을 확실히 보여주기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5금] 檢, 이완구 전 총리 봐주기식 수사 안 된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어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3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17일 만이다.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위치인 총리에서 졸지에 검은돈을 받은 비리 혐의 피의자 신세로 전락한 현실은 그 자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겠지만 국민들에게도 큰 충격을 던져 줬다.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온 사건인 만큼 검찰은 한 줌 의혹도 없이 사실 여부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야만 할 것이다.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 인터뷰를 통해 이 전 총리를 ‘사정대상 1호’라고 지목한 바 있다. 그는 충남 부여·청양 재선거에 출마한 이 전 총리의 부여 선거사무소를 2013년 4월 4일 직접 찾아가 3000만원을 건넸다고 폭로했다. 수사의 얼개는 상당 부분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그동안 성 전 회장 및 이 전 총리 측근들 조사를 통해 당시 두 사람의 행적을 집중적으로 파악했고, 성 전 회장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와 진술들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성 전 회장 운전기사 등은 “당시 성 전 회장이 미리 현금을 준비해 갔고, 이 전 총리와 독대했다”며 돈이 건네졌을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반면 이 전 총리는 어제 검찰에 출두하면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며 국민들께 사과하면서도 “이 세상에 진실을 이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자신의 결백을 다시 한번 주장했다. 앞서 그는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며 배수진을 쳤고, 이임식에서도 결백을 주장하고 떠났다. 하지만 해명 과정에서 여러 차례 말을 바꾼 데다 그의 주장과 달리 성 전 회장과의 친분을 방증해 주는 동영상 등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이미 그의 변명은 신뢰를 잃었다.

 

이 전 총리를 수사하는 검찰 특별수사팀의 사명은 하나다. 엄정하고도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그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것이다. 행여 거물급 여권 정치인이자 전직 총리라는 부담감을 갖고 수사를 미진하게 한다면 오히려 역풍만 맞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자칫 이번 소환조사가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지 않도록 수사기법을 총동원하길 바란다. 현실적으로 돈을 건네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는 결정적인 진술이 없어 수사에 큰 장애가 있다는 점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렇다 해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앞으로 남은 수사를 위해서도 이 전 총리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길 바란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이제 두 번째의 큰 강을 건너고 있을 뿐이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 전 총리 외에 리스트에 거명된 나머지 6명에 대한 수사의 성패는 홍 지사와 이 전 총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나마 증거와 진술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이 두 사람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나머지 인사들 수사는 하나 마나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의 특별검사 도입 요구가 거세지고, 결국 검찰은 또다시 ‘정치검찰’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특별수사팀의 선전을 기대한다.

 

 

■ 강기훈 씨 24년 만에 무죄

 

[한국일보 사설-20150515금] ‘유서대필’ 24년 만의 무죄, 검찰 사법부 사과해야

 

‘한국판 드레퓌스’로 불려온 강기훈씨가 유서대필 사건에서 24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대법원은 어제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강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강씨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동료였던 김기설씨가 1991년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했을 때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돼 옥살이를 했다.

 

대법원은 사건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작성한 필적 감정서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국과수 감정인이 혼자 유서를 감정해놓고도 4명의 감정인이 공동심의했다고 위증한 점, 평소 김씨 필체의 특징이 유서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며 강씨 필체와는 전혀 다른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당시 국과수 감정 결과는 신빙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죄의 결정적 근거가 됐다. 국과수 자체가 애초 속필체인 유서와 김씨의 정자체 글씨를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가 검찰의 재감정 요청에 응하는 등 의문이 제기됐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가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애썼더라면 권력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만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유서 대필 사건의 진실이 뒤늦게나마 밝혀진 것은 다행스럽지만 검찰과 사법부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은 발생 때부터 뜨거운 논란을 빚었다. 공권력의 폭력에 항의해 분신 사건이 잇따르자 검찰이 정치적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조작한 것이라는 주장이 거셌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되면서 운동권은 ‘목적을 위해 생명까지도 수단으로 삼는 비도덕적 집단’으로 매도됐다. 강씨는 “천인공노할 범죄자”로 낙인 찍혔고 숨진 김씨의 명예도 땅에 떨어졌다.

 

역사의 물길을 바로잡은 건 사법부가 아니라 2007년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이었다. 과거사위는 필적 감정을 통해 유서대필은 없었다고 결론짓고 사법부에 재심을 권고했다. 하지만 검찰과 법원은 잘못을 신속히 바로 잡으려 하지 않았다. 재심 과정에서 검찰은 끝까지 강씨의 유죄를 주장했고 서울고법의 무죄 선고 이후에도 상고를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강씨의 재심 청구 후 무죄 확정까지는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강씨는 이 사건으로 3년2개월을 복역하고 출소한 뒤 생활고에 시달리다 간암을 얻어 투병 중이다. 그러나 검찰은 물론 사법부도 자성이나 사과를 않고 있다. 어제 대법원도 판결에서 별다른 의견 표명을 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킨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 검찰과 사법부는 뼈아픈 반성이 있어야 한다. 시민사회와 언론도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거나 잘못을 걸러내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렸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5금] ‘강기훈 무죄’ 앞에 왜 사과는 없는가

 

진실은 결국 승리했다. 유서를 대필해 동료의 자살을 방조했다는 참혹한 누명을 쓰고 24년간의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던 강기훈씨가 14일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1991년의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이 공안세력의 광풍으로 조작된 사건임이 마침내 확인된 것이다. 진작에 그랬어야 했지만, 이제 이 사건은 ‘유서대필 사건’이 아니라 ‘유서대필 조작 사건’으로 기록돼야 한다.

 

진실은 승리했지만 반성과 사과는 끝내 없었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과 경찰, 법원 등의 국가기관은 진실을 조작하고 오랫동안 은폐하는 데 한몸이었다. 1991년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마치 주문에 맞추려 한 듯 무리한 과정을 거쳐 자살한 김기설씨의 필체와 유서 필체가 다르다는 억지 감정을 내놓았다. 감정의 원칙도, 합당한 절차도 무시된 결과였다. 이를 앞세워 검찰은 강압수사로 자백을 강요하고 피의자의 반론권을 보장하지 않은 위헌적 증거를 엮어 강씨를 자살을 방조한 파렴치범으로 몰았다. 민주화운동 세력이 사람 목숨을 수단으로 삼는 비인간적인 집단이라는 매도도 이어졌다. 법원은 눈에 뻔한 거짓을 외면한 채 강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수십년의 세월이 걸려 진실을 밝혀냈지만, 검찰과 법원은 잘못을 인정하는 데 인색했다. 진실 조작을 드러내는 증거를 찾아 2008년 재심을 청구했지만, 대법원은 재심을 결정하기까지 3년 넘게 머뭇거렸고 서울고법 재심 재판부의 무죄 선고에 대해서도 1년 넘게 확정을 미뤘다. 24년 동안 한 인간을 병마에 몰아넣을 정도로 고통을 주고 괴롭힌 것을 사과하거나 위로하지도 않았고, 정의의 실현을 지연시킨 데 대해서도 반성하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면, 지금의 대법원은 비겁하기 그지없다.

 

검찰은 더하다. 검찰은 재심이 개시된 뒤에도 강씨가 새로운 증거조작을 하고 있다고 억지를 부렸다. 검찰은 이번 사건 말고도 지난 수십년 동안의 숱한 진실 조작과 사건 왜곡에 대해 단 한번도 반성하고 사과한 일이 없다. 이런 검찰은 공익의 대변자도, 신뢰를 받는 온전한 사법기구일 수도 없다. 진실 왜곡에 일조한 대가로 출세를 했다고 한들 역사 앞에 죄인으로 기록되는 것은 면할 수 없다.

 

강기훈씨의 무죄 확정은 100여년 전 드레퓌스 사건이 프랑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진실을 왜곡하려는 힘에 고통받는 이들도 희망을 얻을 수 있기 바란다.

 

 

[경향신문 사설-20150515그] 강기훈씨 무죄 확정, 사과 한마디 없는 가해자들

스물일곱의 젊은이가 쉰을 넘어 초로에 접어들었다. 홍안이던 얼굴에는 병색이 깃들었다. 한 인간의 영혼이 송두리째 짓밟히고, 양심이 무참하게 모욕당했다. 길고 끈질긴 투쟁 끝에 진실을 되찾았다고 하나, 잃어버린 그의 인생은 누가 되돌려줄 건가. ‘사필귀정’이란 말로 치환하기엔 모진 세월이 안타깝다.

 

‘한국판 드레퓌스’로 불려온 강기훈씨가 ‘유서대필 사건’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1991년 분신자살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간부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작성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기소된 지 24년 만이다. 대법원은 어제 강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유죄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필적 감정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제는 강씨의 변호사가 지적했듯 ‘유서대필 사건’이 아니라 ‘유서대필 조작사건’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불의한 권력이 빚어낸 오욕의 과거사를 사법부가 바로잡은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재심 권고에 따라 강씨가 재심을 청구한 게 2008년이다. 서울고법이 2009년 9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하자 검찰은 곧바로 대법원에 항고했다. 대법원은 재심 개시를 확정하기까지 또 3년여를 흘려보냈다. 검찰은 재심 과정에서도 강씨의 유죄를 주장했고, 지난해 2월 서울고법이 무죄를 선고한 뒤에는 상고를 강행했다. 그사이 강씨는 간암 수술을 받고 힘겨운 투병생활을 해왔다. 국가폭력의 피해자인 강씨에게 검찰과 법원이 ‘2차 가해’를 저지른 격이다.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강씨의 무죄가 확정됐는데도 어느 한 사람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991년 당시 수사검사들은 “시대에 따라 증거가치에 대한 평가 기준이 다르다”며 궤변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유서대필이 24년 전에는 ‘사실’이었으나 시간이 흘러 ‘사실’이 아닌 쪽으로 변했다는 말인가.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이 이토록 들어맞기도 어려울 터이다. 대법원 역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한다”고만 했을 뿐 잘못된 판결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최고 법원의 품격이 이 정도라니 참담하다.

 

역사를 왜곡하고 한 시민의 삶을 무너뜨린 조작극에 대해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는 이제라도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실체를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검찰과 법원을 비롯해 관련 기관·인사들이 자성하고 사과해야 함은 물론이다.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국가폭력이란 괴물이 언젠가 다시 살아나 또 다른 시민의 삶을 파괴할지 모른다.

 

 

■ 정부 국가재정전략회의 개최와 무상보육 예산 마련 문제

 

[서울신문 사설-20150515금] 대선 공약인 무상보육을 왜 교육청에 떠넘기나

 

정부가 엊그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어 누리과정(만 3~5세 교육 프로그램) 예산을 의무지출 경비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예산을 편성하는 문제를 놓고 매년 정부와 시·도교육청 사이에 갈등을 빚고 있는 누리예산을 교육청이 부담하도록 법(시행령)으로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를 지키지 않으면 이듬해 예산 편성 때 불이익을 주겠다고도 했다. 교육감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도 재정 형편이 어려운데 교육청 예산의 10%가량을 어린이집 무상보육을 위한 예산으로 무조건 편성하라고 한다면 재정이 파탄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올해 누리과정에 필요한 전체 예산은 3조 9000억원 정도다. 이 가운데 1조 8000억원가량의 예산이 부족한데 정부가 목적예비비로 5064억원을 지원하기로 했고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1조원의 지방채를 발행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3000억원쯤 모자란다. 누리예산부터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한다면 부족할 일이야 없지만 학교 시설 보수와 같은 다른 분야의 예산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런 방안을 들고나온 것은 물론 세수 감소에 따른 국가 재정의 악화 때문이다. 재정이 어려울 때는 국가나 지방이나 다 같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3~5세 무상보육은 ‘유아교육 국가완전책임제’를 선언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국가 또는 박 대통령에게 공약 실현의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또한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돕는다는 취지의 무상보육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투자로서 지방정부보다 중앙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게 맞다.

 

그런 것을 이제 와서 교육청이 알아서 하라고 법을 동원하는 것은 누가 봐도 국가의 책임 회피가 아닐 수 없다. 지방자치의 근본 정신을 훼손하는 중앙정부의 권한 남용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재정 여건은 고려하지 않고 선거에 이기기 위해 무상복지를 남발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기초연금이나 무상급식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고 지금도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국민에게 한 약속은 책임지고 이행해야 한다. 낭비를 줄이고 세입을 늘리려는 노력을 더 기울여 재정을 확보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그래도 예산이 모자라고, 그렇다고 증세도 어렵다면 차라리 경제 여건이 나아질 때까지 무상보육을 중단하거나 축소하자고 국민을 설득하는 게 솔직한 자세다.

 

 

[중앙일보 사설-20150515금] 재정 개혁, 정부 혼자 외치면 뭐하나

 

박근혜 정부의 세 번째 국가재정전략회의 역시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 정부·지방·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까지 포함한 전방위적인 재정 개혁을 통해 재정 건전성 강화와 경제 살리기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게 중심은 아무래도 재정 건전성에 맞춰졌다.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 등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복지 비용과 4년째 대규모 ‘펑크’가 불가피한 국세 수입이 재정 운용의 틀을 크게 좁혀놓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처음으로 2060년까지 장기 재정 전망을 내놓기로 한 것도 그래서다. 어제 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거듭 주문한 것처럼 국가 재정지출의 효율성 제고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는 실천이다.

 

  당장 올해 경기 상황부터 만만치 않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경기 악화 상황이 오면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검토할 수 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경제 살리기 바빠 곳간 돌볼 여력이 없는 정부로선 재정 운용을 적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나랏빚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럴 때 쓰려고 재정이 있는 것이니 여기까지는 국민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그러나 공무원 노후를 보장하거나 불요불급한 복지, 엉뚱한 이가 타먹는 보조금 같은 데 국가 재정이 새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 된다. 지금처럼 재정이 빠듯하고 부채가 급증하는 상황에선 더더욱 용납하기 어렵다. 정부가 지난달 밝힌 국가결산 자료에 따르면 공무원과 군인연금 충당 부채를 합한 넓은 의미의 국가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1211조2000억원이었다. 전년에 비해 93조원이 늘었는데, 그 가운데 절반이 넘는 47조3000억원이 공무원과 군인연금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생긴 것이었다. 공무원연금 같은 큰 누수 요인을 놔두고 아무리 재정 개혁을 외쳐본들 ‘언 발에 오줌 싸기’일 뿐이란 얘기다.

 

  박근혜 정부는 첫해에 21조원, 지난해엔 29조5000억원의 재정 적자를 냈다. 남은 3년을 낙관적으로 계산해도 현 정부 임기 중 140조원 안팎의 적자를 내게 된다. 2018년엔 국가 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넘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나라 곳간을 사수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당장 공무원연금부터 더 과감한 개혁에 나서야 한다.

 

  문제는 복지 수요가 분출하는데다 이에 편승한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갈수록 활개를 칠텐데 정부가 과연 이를 막아내고 개혁을 이뤄낼 수 있겠느냐는 거다. 재원 대책 없이는 세출 확대도 하지 않는다는 ‘페이고(Pay-Go)’법이 국회에 제출된 지 3년째다. 말로는 의원마다 “국가 재정을 위해 꼭 필요한 법”이라면서도 제대로 논의 한 번 없이 지금껏 국회 운영위에 처박아 놓고 있는 게 우리 국회의 현실이다. 그런 정치권이 내년 총선에서 죽기살기 식으로 예산 흔들기에 나설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한 푼이라도 엉뚱한 곳에 새지 않도록 지금부터 단단히 조여야 한다.

 

 

■ 김정은 공포정치와 도발 대비의 필요성

 

[중앙일보 사설-20150515금] 김정은 공포정치의 끝은 어디인가

북한 내 군(軍) 서열 2위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지난달 30일 숙청돼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고 어제 국가정보원이 밝혔다. 숙청 이유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대한 ‘불충(不忠)’과 ‘불경(不敬)’이라고 한다. 평양 순안구역 소재 강건군관학교에서 수백 명이 참관한 가운데 일반 소총이 아닌 고사총으로 총살됐다는 첩보도 입수했다고 국정원은 국회와 언론에 공개했다.

 

현영철은 김 위원장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지시를 수차례 불이행하거나 이행에 태만했으며, 김 위원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조는 등 ‘유일영도체계 10대 원칙’의 일부를 위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2013년 12월 북한 체제의 2인자이자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국가전복 음모죄로 전격 처형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로부터 1년5개월 만에 군 서열 2위인 현직 인민무력부장을 문명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잔인하게 처형한 게 사실이라면 ‘피의 공포’로 유지되는 것이 김정은 체제의 맨 얼굴임을 만천하에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꼴이다. 북한에서는 올 들어서만 차관급인 임업성 부상과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 등 15명의 고위직이 처형되는 등 김 위원장 집권 이후 3년 동안 70여 명의 고위간부가 총살된 것으로 국정원은 파악하고 있다.

 

  공포정치는 독재자의 전형적인 통치 수법이다. 정통성이 취약하거나 권력 기반이 확고하지 않을수록 충격과 공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김 위원장은 2011년 말 부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서른 살도 채 안 된 나이에 권력을 승계했다. 가차없는 처벌에 의존하는 통치 행태는 여전히 체제가 불안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현영철 처형설과 관련한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여 년간 북한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을 종합해 보면 김 위원장이 공포정치를 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피는 피를 부르기 마련이다. 공포정치의 끝은 자멸(自滅)임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바다. 김정은 체제의 앞날을 속단하긴 이르지만 비상한 경각심을 갖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5금] 北 내부불안 덮기 위한 도발 가능성 대비해야

 

북한이 그제 서해 백령도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 이례적으로 야간 포 사격을 했다. 북측은 전화통지문으로 13∼15일 사흘간 연평도와 백령도 인근에서 해상 사격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우리 측의 자제 요구에도 불구하고 무력 시위를 강행한 것도 심각한 일이지만,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공개 처형 등으로 북한 내부가 불안정해진 터라 더욱 예의 주시해야 할 사태가 아닐 수 없다.

 

‘폐쇄 회로’에 갇힌 듯한 북한 정권의 진로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국가정보원의 발표대로 군부 2인자인 현영철이 처형됐다면 북 세습정권의 불가측성은 더 커졌다고 봐야 한다. ‘공포정치’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장악력이 커진 것처럼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체제 불안 요인의 싹을 틔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당·정·군 경력 없이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은 내외부에 걸쳐 고립무원의 처지다. 경제 여건도 최악이지만 과거 혈맹인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못 받고 있다. 친중파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데 이어 전승기념일을 앞두고 러시아를 방문했던 현영철마저 처형했다면 북·러 관계도 더 삐걱거릴 공산이 크다. 그럴수록 그는 공포정치에 기댈 소지가 크다. 하지만 당장엔 잔혹한 처형과 숙청을 피하려고 당·정·군 간부들이 숨죽이겠지만, 극단적 공포정치는 임계점을 넘으면 폭발할 수밖에 없다.

 

어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민 원내대표는 현영철 처형설과 관련해 “북한 급변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맞는 얘기다. 다만 그런 장기적 준비는 기본일 뿐이다. 더 시급한 건 북한이 내부 불안을 밖으로 투사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일이다. 북측이 내부 결속을 다지려고 국지적 대남 도발이나 남북 간 긴장을 조성하는 구태를 보일 것에 대비하란 얘기다. 그런 맥락에서 북측은 최근 심상찮은 조짐을 보였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이나 개성공단 북 근로자 태업이 그 징후다. 심지어 그들 마음대로 그은 해상분계선을 ‘침범’하는 남측 함정을 조준 타격하겠다고 위협하더니 청와대로 전통문을 보내 “용기가 있다면 도전해 보라”고 도발하기도 했다.

 

우리측의 과민 반응도 금물이다. “도발 시 원점을 타격하겠다”며 말만 앞세우는 게 능사는 아니다. 북측이 서해 등 남북 접촉 면에서 제한적 도발을 감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확실한 준비 태세를 보여 줘야 한다. 한·미 공조는 물론 중·일·러 등과도 긴밀한 감시 체제를 가동해 북한 권력의 불안정이 야기할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할 때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515금] 방산비리 막으랬더니, 기무사의 잇단 자체 비리

 

국군기무사령부 전현직 간부가 군 전략물자인 탄창을 밀수출한 사실이 드러나 그제 경찰에 구속됐다. 전 기무사 소령 이모씨는 현역 기무사 양모 소령, 군수품 판매업자 노모씨와 손잡고 탄창 3만여개를 자동차 오일 필터로 위장, 레바논의 밀매업자에게 밀수출해 3억6,000만원을 챙겼다. 이씨는 과거 우리 군의 주력 소총인 M16에서부터 북한군이 사용하는 AK-47소총 탄창까지 밀매대상의 종류를 가리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거래 상대인 밀매업자를 2007년 레바논 평화유지군 활동 중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넘어간 탄창은 미국이 테러단체로 지목한 중동의 무장세력이 사들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쯤 되면 스파이 영화의 한 장면이 현실화한 느낌마저 든다.

 

기무사 간부가 군 물자나 관련 자료를 외부로 빼돌리다가 적발된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정부 합동수사단은 지난 달 22일 군사기밀 자료를 빼돌려 무기중개업체 일광공영 이규태 회장에게 넘긴 기무사 3급 대우 서기관을, 이달 초에는 4급 군무원을 군형법상 군사기밀 누설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기밀을 건넬 때마다 50만원씩 20차례에 걸쳐 1,000만원을 받았다. 이들이 전한 기밀은 군국의 전력증강, 작전운용 계획 등 2,3급 비밀 등 141건이라고 하니 국가기밀이 한 건당 7만원의 푼돈에 거래된 셈이다.

 

기무사는 군사보안에서 방위산업 보안감사, 컨설팅, 군사기밀 유출세력 색출, 대간첩 및 대테러업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세력을 감시하고 색출하는 것이 주 업무다. 북한을 둘러싼 안보, 이슬람국가(IS) 등 테러집단의 동향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마당에 기무사의 역할은 더욱 중대하다. 역할이 중대한 만큼 전군을 포괄 관리 감독하는 무소불위의 권한도 주어져 있다. 그런데 국가안보를 위해 부여한 막강한 권한을 업자들과 짜고 물자를 빼돌리고, 국가 기밀을 팔아 넘기는 일에 썼으니 그야말로 고양이에 생선가게를 맡긴 셈이다.

 

기무사는 지난 달 연일 터지는 방산비리의 대책 일환으로 단 한차례라도 비리나 규정 위반으로 적발되는 군인은 즉각 전역조치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본부 요원을 30% 줄여 외부 활동요원으로 전환하는 방침도 내놓았다. 하지만 스스로가 잔뜩 곪아있는 판국에 남 얘기처럼 한 것부터 어울리지 않는다. 차제에 기무사의 과도한 권한, 폐쇄적인 업무 등 원천적으로 비리 소지가 큰 조직문화와 체질을 바꾸는 방안부터 검토돼야 한다. 필요하면 정부차원에서 외부감사 시스템 적용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는 조직은 결국 외부에서 손 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5금] 불씨 되살려야 할 공무원연금·국민연금 개혁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안에 담긴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를 둘러싼 여야 대치 정국이 길어지고 있다. 원내대표 주례회동마저 끊어질 만큼 여야 사이에 골이 깊게 파였다. 사태가 이런 지경까지 온 데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파기한 청와대와 여당의 책임이 크다. 특히 ‘월권’, ‘세금폭탄론’ 운운하며 여야 합의를 무시한 청와대의 태도가 결정적이다.

그 러나 이들 연금 개혁을 무작정 미룰 수도 없다. 여야는 이달 초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 과정에서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사회적 기구) 구성에 뜻을 함께했다. 공적연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현행 국민연금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모처럼 형성됐는데도 정치적인 힘겨루기에 밀려 기회를 날리는 것은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꼴이다.

 

국민연금 개혁 방향에 대해선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이해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보장 정도(급여)와 부담 규모(보험료율) 사이에 이중적 인식도 엿보인다. 연금 사각지대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웃도는 상황에서, 이들에겐 국민연금 개혁 논의 자체가 ‘남의 일’처럼 여겨질 수 있다. 안정적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 세대의 불신감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본디 세대협약의 성격이 강하다. 서구 나라들이 몇 세대에 걸쳐 제도를 운영하면서 쌓인 신뢰를 자양분 삼아 개혁 논의를 진행해온 데 반해, 우리는 채 신뢰가 쌓이기도 전에 개혁 작업에 나서야 하는 처지다. 그만큼 목소리도 제각각이고 해답을 찾기가 지난하다. 그러나 머리를 맞대면 길은 있기 마련이다. 소득대체율 일괄 인상 이외에도 저소득층 기초연금 강화나 계층간 보험료율 차등화 등 다층적 해법이 얼마든지 열려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중요한 게 사회적 합의 과정이다.

 

여야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연금 개혁 논의의 불씨를 되살려야 한다. 이미 합의한 사회적 기구부터 출범시키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작고 쉬운 것부터 합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양한 변수의 장기추계치를 반영하는 국민연금 모형은 극소수 전문가가 아니면 알기 힘들다. 여야가 서로 엇갈리는 데이터의 객관성부터 공동으로 검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한겨레>가 창간 27돌을 맞아 진행한 국민 설문조사에서 ‘국민연금 보장 수준과 적정 보험료 논의를 위한 사회적 기구의 필요성’에 대해 응답자의 84.2%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여야는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5금] 일요일 영업 금지 푸는 프랑스, 의무휴업 강제하는 한국

 

프랑스가 일요일 영업을 법으로 금지한 것은 1906년이었다. 노동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였다. 경쟁국인 영국이 1994년에 규제를 풀었지만 프랑스는 큰 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프랑스가 최근 속전속결로 이 규제를 풀었다. 지난 2월17일 정부가 하원 승인을 생략한 채 ‘상점 일요일 영업법안’을 공표하고 상원으로 넘기자 엊그제 상원은 이 법안을 전격 통과시킨 것이다. 새 법에 따라 지방정부가 연간 최대 5일 허가할 수 있었던 일요영업은 연 12일로 늘어나게 됐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와 생제르맹 지구 등 국제관광지구는 일요일 영업을 연중 할 수 있게 됐다.

 

프랑스가 110년 가까이 지켜오던 일요일 영업금지 규제를 혁파한 것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다. 당연히 거부감과 반대가 많았다. 또 이를 위해 리더십과 용기가 필요했다. 마뉘엘 발스 총리는 법안을 공표하면서 “이 법안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이라며 “이때문에 부결 위험을 피하기 위해 직접 정부법안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프랑스 헌법은 정부가 긴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경우, 총리 발표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고 의회는 내각 불신임안 제출로 대응할 수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경제장관은 반대 세력으로부터 살해 협박까지 받았지만 법안을 밀어붙였다.

 

포퓰리즘에 빠져 조금이라도 더 표가 나올 곳 같으면 눈치 살피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 정부, 정치권과 너무 비교되는 사태 전개다. 동네상권과 전통시장을 살리겠다고 대형마트 격주 일요일 휴무를 의무화한 일련의 사례를 보라. 결국 소비가 위축돼 자영업자와 시장상인들은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중이다. 또 대형마트에 입점해 있는 상인과 종업원도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다. 거기다 맞벌이로 주말에나 겨우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마트를 가던 고객들의 불편함에는 누구 하나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라 성장과 발전을 위한 일이면 신념을 갖고 밀어붙이는 관료와 정치인이 너무나 부족하다. 수입할 수도 없고.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5금] 국회는 왜 페이고법 3년째 뭉개고 있나

 

법을 많이 찍어내기로 세계 1등인 우리 국회가 ‘페이고(pay-go) 법안’에 대해서는 수년째 무관심이다. 매년 대규모 세수부족이 반복되고 포퓰리즘 경쟁에 따른 복지지출도 눈덩이처럼 커져가지만 재정의 건전성에는 오불관언이다. 엊그제 ‘2015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또 한 번 페이고법 조기 처리를 촉구한 배경이다. 대통령의 호소가 처음도 아니다. 예산을 편성하거나 새 법을 만들 때 반드시 재원조달 대책도 세우자는 페이고 원칙에 대해 1년 전 같은 회의에서도 대통령의 강한 역설이 있었다.

 

대통령은 재정지출을 야기하면서도 재원대책은 없는 마구잡이식 의원입법을 겨냥했다. 정부입법은 이미 국가재정법에 따라 재원조달 방안 제출이 의무화돼 있다. 정부는 2014년도분부터 예산편성에도 이 원칙을 적용해왔다. 하지만 의원입법은 국회 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서만 붙이면 된다. 그나마도 ‘기술적으로 추계가 어려운 경우’ 미첨부 사유서를 내면 그만이다. 지난해 4분기의 의원입법안 중 재정소요가 수반되는 257건의 83%(213건)가 비용추계서도 안 냈다.

 

19대 국회가 시작된 2012년부터 의원입법에도 페이고 원칙을 적용하자는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다. 하지만 입법권의 과잉제한이라는 이유로 3년째 그대로다. 정작 과잉은 의원들의 입법권이다. 19대의 의원입법은 1만3517건으로 역대 최대였던 18대 국회 4년치(1만3913건)만큼 된다. 페이고 원칙을 외면하다 보니 예산차원에서 보면 무책임한 법안이 부지기수다. 국가유공자예우법 개정안은 수급대상을 늘려 매년 516억원이 더 필요해진다. 월남전 참전자까지 포함하면 연간 1조4000억원이 들어간다. 과학기술인공제회법 개정안은 기술료 중 일부를 이 공제회로 돌려 세입이 914억원 줄게 된다. 도로법 개정안은 지자체 몫 신설·유지비용 5000억원을 국가부담으로 돌렸다. 의원입법으로 연평균 82조원의 예산이 더 들어간다는 조사(2013년)도 있다.

 

국민연금 지급률 50% 인상안도 같은 맥락이다. 돈 버는 사람 따로,인기만 좇아 마구 쓰는 사람 따로다. 졸속입법, 퍼주기 만능, 국회독재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국회의 무책임을 개탄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5금] 현대차 노조, 해외생산 막기 전에 생산성부터 높여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국내는 물론 해외 생산량까지 노사 합의로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올해 임단협에 넣겠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지금은 국내 생산량에 대해서만 합의제를 운영해왔는데 이를 해외 사업장에까지 확대하자는 것이다. 통상임금 확대 요구에 이어 국내외 생산량 조절까지 노조가 그야말로 회사 경영을 맡겠다는 얘기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며 명백한 경영권 침해다. 현대차의 국내생산 비중이 지난해 37.9%에서 2020년 28%까지 떨어질 것이고 이렇게 되면 고용이 불안해진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든 해외생산을 막고 국내 공장 신·증설을 요구하겠다는 시도다. 하지만 해외생산이 늘게 된 원인 제공자가 바로 노조라는 것을 정말 모른다는 말인가.

 

현대차 국내 공장의 생산성은 대당 투입시간, 편성 효율 등에서 중국 미국 등 다른 해외공장과 아예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동차 한 대 생산에 걸리는 시간은 국내에선 27.8시간이다. 미국(14.8시간) 체코(15.7시간)보다 두 배나 길다. 게다가 툭하면 파업이고,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는 고용세습까지 판친다. 그런데도 생산직 연봉이 1인당 1억원에 육박한다. 누가 경영자라도 국내생산은 줄이고 인건비 적고 생산성 높은 해외생산은 늘리려 할 것이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자동차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더구나 현대차의 내수시장 점유율은 최근 40% 안팎으로 떨어졌다. 미국시장 점유율도 2011년 5.1%에서 지난해 4.4%까지 추락했다. 현대차가 미국 2공장, 인도·브라질 공장의 신·증설을 검토 중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노조는 부당한 경영간섭 전에 자신들의 기득권부터 내려놓는 게 순서다. 해외생산 증가로 일자리가 걱정된다면 세계 꼴찌 수준인 국내 공장 생산성부터 끌어올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회사 경영이나 공장의 미래는 어떻게 되든 당장의 몫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식으로는 공멸만 있을 뿐이다. 현대차 노조는 기득권 노조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정말 이런 노조가 다른 나라에 또 있는가.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5금]] 꽉 막힌 한일관계, 경제교류마저 멈춰선 안된다

 

한국과 일본 경제인들이 양국 간 경제교류 확대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13~14일 열린 '한일경제인회의' 일정을 마무리한 뒤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서다. 양국 경제인들은 우리나라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경제계 차원에서 함께 지원하기로 했다. 금융·통신 부문에서의 정보공유 등 다양한 협력방안까지 제시됐다.

 

하지만 공동성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교 이후 50년간 이룬 양국 간 경제협력 성과가 미래 50년에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사 문제로 냉각된 양국 관계와는 별개로 경제 분야의 협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럴수록 협력을 더 강화해나가야 한다는 게 양국 경제인의 충심어린 권고다.

지금 한일관계는 출구가 보이지 않을 만큼 악화한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이 "수교 이후 50년간 양국 교역규모가 400배 증가하는 등 비약적 성장을 해왔지만 최근 감소 추세를 보여 안타깝다"고 할 정도다. 실제로 한일 교역액은 2011년 역대 최대인 1,080억달러를 기록한 후 3년째 감소세다. 올 1·4분기 교역규모도 184억달러로 전년동기의 214억달러에서 14%나 줄었다. 세계경제 침체와 엔저 현상이 주원인이라지만 과거사에 발목이 잡힌 양국관계 악화의 영향도 작지 않다. 국민들 사이에 혐한·혐일정서가 확산되는 실정이니 경제교류까지 삐걱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협력 확대를 외치는 양국 경제인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그동안 한일 경제는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경쟁과 협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해왔다. 경제 분야는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서로 협력해나가는 게 맞다. 특히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양국 기업 간 제휴·협력은 불가피하다. 서로의 장점을 토대로 자원개발이나 의료 분야에서 해외 공동 비즈니스를 찾는 등 신성장동력을 모색할 분야는 많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5금] 무엇이 청년들을 생계형 창업에만 매달리게 하나

 

미래세대인 청년들이 실패가 두려워 생계형 창업에만 매달린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30세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창업희망 분야를 물었더니 외식·소매 등 일반서비스업이 절반 수준에 달한 반면 첨단기술이나 제조업 같은 혁신형 창업에 뛰어들겠다는 청년들은 극소수에 머물렀다.

 

청년세대가 과감히 신사업에 도전하기보다 커피전문점 같은 안정적 창업을 선호한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중장년층이 앞다퉈 생계형 창업에 뛰어들어 레드오션으로 전락한 터에 청년들마저 가세한다면 자영업 몰락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도 폐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생계형 창업은 10명 중 7명이 5년 안에 망하지만 혁신형 창업은 생존율이 50%를 넘고 부가가치 창출 효과도 크게 마련이다. 이런데도 정부가 창업훈련을 명분으로 대학 교정에서 커피·치킨을 파는 푸드트럭이나 장려하고 있으니 학생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까 싶다. 청년들은 창업의 최대 걸림돌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꼽았으며 창업공간이 부족하다는 호소도 많은 편이다. 금융당국이 벤처기업의 연대보증을 금지하겠다고 했지만 한번 부도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재기가 어려운 현실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에는 왜 마크 저커버그 같은 청년창업자가 없냐며 젊은이들을 탓하기보다 이를 유도할 투자환경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무엇보다 창업자금을 손쉽게 조달하고 도전했다 실패하더라도 쉽게 재기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하루빨리 갖춰야 한다. 정책자금 또한 지금처럼 사업성이 검증된 분야에만 집중하지 말고 고위험 벤처사업에도 자연스럽게 돈이 흘러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창업 초기 단계에 지원되는 엔젤펀드가 활성화되도록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전국의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명실상부한 신생기업의 보금자리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청년창업의 열기를 제대로 살려 창조경제의 선순환구조를 이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5금] 5조 혈세 걸린 론스타 소송 내용 하나도 몰라서야

 

우리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맞붙는 투자자국가소송(ISD)이 1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시작된다. 이 소송은 우리 정부와 외국인 투자가 사이에 벌어지는 첫 ISD로 소송액만도 무려 5조원대로 알려졌다. 자칫 결과가 잘못 나올 경우 모든 국민이 10만원씩 내야 배상금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다. 국민에게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국민은 소송 내용을 알고 싶고 또 당연히 알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내용은 소송이 15일 워싱턴에서 열린다는 사실뿐이다. 정부는 이 사안에 대해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3월 인사청문회 때 심리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비공개로 진행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소송전략 차원에서 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수는 있다. 우리의 대응전략 등을 굳이 상대방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공개해도 될 내용까지 비밀에 부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국민은 당장 이번 소송이 열리는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도 알지 못한다. 전문가 참관도 불가능하다. 제출자료는 물론 증언도 비공개다. 심지어 재판부의 결정 내용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최소한 소송 상대방이 소송을 제기한 이유가 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1조3,834억원에 사들였다가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3조9,157억원을 받고 넘겨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론스타가 소송을 제기한 것은 2007년 HSBC에 외환은행을 매각하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했을 때 우리 정부가 매각 승인을 지연시켜 더 큰 매각차익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는데 이게 맞는 말인가. 그렇다면 소송액이 이렇게 클 이유가 없지 않을까. 정부의 비밀주의 때문에 항간에서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가능한 범위에서나마 소송 내용을 공개해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20150515금] 예비군 아들까지 걱정해야 하는 한국 부모들

 

어제 발생한 예비군 훈련장 총기난사 사건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군부대 총기 사고보다 더 가슴을 놀라게 만든다. 우선 사상 처음 벌어진 예비군 훈련장 총기난사 사건이라는 점이 그렇다. 여기에다 군대라는 특수하고 폐쇄적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빚어진 게 아니라 그런 힘든 의무를 무사히 잘 마친 젊은이가 자행한 어처구니없는 참사라서 더욱 그렇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군부대 총기난사보다 예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충격을 쉬이 사라지지 않게 한다.

 

  국방부는 올 3월부터 예비전력 정예화를 위해 예비군 훈련을 자율 참여적 훈련체계로 바꿨다. 과거의 수동적인 시간 때우기식 훈련에서 벗어나 성과에 따른 조기퇴소제를 도입해 예비군들의 적극적 훈련 참여를 유도한 것은 꼭 필요한 조치였다. 하지만 강화된 훈련만큼 관리·감독도 강화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번 사건의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실탄 사격 훈련은 예비군 동원훈련의 핵심이다. 제대 후에는 경험하기 어려우므로 훈련을 통해 실전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군기가 바짝 든 현역군인과 다른 만큼 예비군의 실탄사격 훈련은 사고 예방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요원의 통제도 철저해야 하지만 구조적인 안전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사고가 난 사격훈련장은 소총 고정장치가 있었지만 소총을 사대에 제대로 고정시키지 않았다. 원칙만 지켰어도 실탄을 지급받자마자 뒤로 돌아 방아쇠를 당기는 일은 가능하지 않았다.

 

  게다가 범인은 현역 시절 이미 관심병사로 군 당국의 관리를 받았었다. 그렇다고 예비군 훈련을 못할 것은 없겠지만 다른 훈련은 몰라도 실탄 사격만큼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통제를 했어야 했다.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가슴을 졸이는 부모들의 걱정이 제대 후로까지 연장되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다시 한번 어이없는 총기난사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국방부는 한 점 의혹 없도록 사건 전모를 투명하고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특별기고/홍세화(장발장은행 대표)-20150515금] 다시 5월에, 빛고을의 새로운 도전에 부쳐

 

일찍이 윤한봉 형이 5·18 정신으로 정식화한 항쟁정신과 대동정신은 지금 우리에게, 특히 광주에게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이 정신에 비추어 광주는 지금까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출범조차 하지 못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박근혜 정권 실세들에겐 접근하지 못한 성완종 메모 관련 검찰 수사, 미-일 간 신밀월 체제 아래 총체적 위기를 맞은 한국 외교,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참담하게 모욕한 박상옥 대법관 인준, 청와대와 친박세력에 의한 공무원연금 타협안 파기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의 정치-사회-경제-외교-법조의 어느 부문도 총체적 난맥상이라는 말을 피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를 언제 끝낼 수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 더 우려되는데 시민들에게 좌절과 체념을 안겨줌으로써 탈정치화로 나아가게 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희극적인가, 비극적인가, 국회 의석 130석을 가진 야당은 막말 파동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수구언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언론조차도 왜곡된 대의민주주의 아래 스펙터클로 남은 정치를 강화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변화의 주체와 동력의 가능성을 예의 주시해 찾아내 시민사회에 알리고 북돋움으로써 그것을 실현시키려는 의지를 가진 기자와 언론인들은 드물고 동정보고자들이 그들을 대신하고 있는 탓이 크다. 동정보고자들이 현실정치인들의 동정을 보고하는 것을 자신의 책무로 알고 그런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은 불가능으로 마감된다. 막말 파동을 비판한다고 언론이 크게 보도하지만 그 주인공들이 시민사회로부터 비난받는 것보다 훨씬 더 크게 그들이 정치의 주인공인 양 부각되는 게 스펙터클 정치의 작동 방식이다. 비판언론조차 기득권 정치의 매트릭스에 갇힐 위험이 여기에 있는데, 가령 구시대의 ‘동교동계’가 아직도 호남 지분을 주장하는 데에는 물러날 때에 물러날 줄 모르는 그들의

염치없는 노욕도 문제지만 이와 같은 스펙터클 정치의 매트릭스에 갇힌 언론의 방조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권이 국정의 온갖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승리하는 요인에서도 이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나에겐 최근 <한겨레>에서 읽은 기사 중에 서울특별시가 지방정부 최초로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세웠으며 이 노동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중고등학생은 물론 공무원의 ‘노동교육’을 대폭 강화한다는 뉴스가 가장 의미 있게 다가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김종진 연구위원이 ‘왜냐면’에 기고한 기사였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지만 초중고 과정에서 두루 배우는 ‘사회’ 교과목에서 자본주의에 관해, 노동자의 정체성에 관해, 노동운동의 역사에 관해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 이 시대의 강력한 지배이념인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 ‘일하기 좋은 나라’로 맞받아칠 줄 아는 노동자상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 기사에 끌렸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5월7일 전남대에서 열린 광주시 사회통합지원센터의 개소식에 개인적으로 참석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 사회통합지원센터는 민선 6기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의 사회통합 정책에 담긴 “사회협약을 통한 광주형 일자리 창출 모델 구축”을 위한 실무적 지원을 하게 된다. 광주시의회의 조례와 공식적인 공모 절차를 거쳐 전남대 산학협력단에 위탁된 이 센터는 독일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통한 상생과 협력 모델 등을 연구해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를 펴낸 바 있는 전남대 철학과의 김상봉 교수가 자원하여 센터장을 맡았다. 그는 개소식에서 자신의 포부를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회를 지속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가는 경제적 양극화가 다른 무엇보다 기업과 자본권력의 전횡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과거 군부독재를 해체하고 민주화를 이루었던 것처럼 경제의 영역에서도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의 원리를 확립함으로써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의 경제를 실현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한 사회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갈등상황을 상생과 통합의 원리에 입각하여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보다 성숙한 민주적 의사결정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 역시 민주화를 앞장서서 이끌었던 광주가 떠맡아야 할 명예로운 사명일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광역지자체의 사회통합지원센터를 소개하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사회변화의 주체와 동력 형성과 그것의 구체적 실현에 대한 평소 관심에 5월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이 결합되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니까 35년 전 5월, 프랑스의 공영 텔레비전은 열흘 동안 톱뉴스로 광주의 항쟁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군부의 잔혹한 진압 광경은 그곳의 시청자들에게 이렇게 묻게 했다. “광주 사람들은 이교도들인가, 소수민족인가?” 이 날카로운 물음은 동시대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는 차별과 억압의 땅, 변방에서 시작된다고 했던가. 이 말이 현실이 되기를 자기암시처럼 기대하고 있다는 점도 부인하지 않겠다.

 

일찍이 윤한봉 형이 5·18 정신으로 정식화한 항쟁정신과 대동정신은 지금 우리에게, 특히 광주에게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항쟁정신이 물리력을 가진 국가권력의 불의와 폭압에 맞선 민중의 투쟁정신을 말한다면, 대동정신은 오늘 자본에 의해 부추겨진 우리 내면의 욕망을 성찰하고 자본권력에 맞설 수 있도록 공동의 가치와 관계를 확장하여 더불어 인간답게 살겠다는 정신이라고 하겠다. 이 정신에 비추어 광주는 지금까지 다른 지역에 비해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노사간 상생과 협력의 전제는 노동자 사이의 연대에 있으며 협상력도 그 힘에 비례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구호는 한국 땅에서 무너진 지 오래다. 자본권력은 노동을 ‘포섭된 자’와 ‘배제된 자’로 분리하여 서로 적대하게 함으로써 통제를 용이하게 하고 있다. 주인보다 마름이 더 밉다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고,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자신들의 고용 안정을 위한 완충지대로 인식하게 되었다. 최근에 <노동여지도>-노동운동가들은 물론 지역활동가들의 일독을 권한다-를 펴낸 박점규는 “흑백필름 시절 모두 같이 ‘공돌이’였던 울산의 노동자는 이제 중대형 아파트에 살며 그랜저를 모는 ‘직영계급’, 소형 임대주택에서 아반떼를 타는 ‘하청계급’, 이 공장 저 공장 떠돌아다니는 ‘알바계급’으로 나뉘었다”고 말한다. 광주의 노동 분할이 울산처럼 노골적이진 않겠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하는 모범적인 노동조합으로 꼽히는 군산의 상용차 공장 타타대우를 배워야 할 것이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동조합 집행부는 수년 동안 조합원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는 의지를 보여 왔다. 노동자 연대를 위한 정신적 자산이 될 것이다.

 

지자체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에 있어서도 광주광역시는 서울특별시에 뒤떨어지며 기초단체에서도 경기도 성남과 부천에 뒤떨어진다. 전국 7개 지하철공사 중 광주도시철도공사의 간접고용 비율이 가장 높다. 어느 노동운동가는 자동차 100만대 밸리와 관련된 일자리는 현대기아 자본과 중앙정부의 판단과 영향이 작용하지만 광주도시철도공사의 19개역 중 민간에 위탁된 17개 역의 비정규직 역무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광주시의 의지만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의사이며 시민운동가 출신인 윤장현 광주시장에게 요청한 셈이다. 결국 광주시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관건이다. 김상봉 센터장은 이렇게 말한다. “몇 발짝을 가더라도 제가 움직인 발자국이 그다음, 다음다음 분들이 가는 ‘먼 걸음’을 위한 튼튼한 디딤돌이 되겠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강인식(사회부문 기자)-20150515금] 당신의 안전은 이관 중입니다

 

40대 직장인 A는 소시민적으로 살았다. 십 수년간 월급쟁이로 살다 보니 부동적이고 수동적이고, 사회 돌아가는 데 관심이 없다. 정치에 대해선 기대-실망-환멸-냉소를 거쳐 무관심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생각을 바꿨다. ‘내 아이가 살려면 사회가 변해야 하고 그러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다짐도 했다. 국가안전처의 ‘안전신문고 앱’도 스마트폰에 깔았다.

 

  몇 달 전이다. 출근하다 빌딩에 환풍 장치가 아슬아슬하게 달려 있는 걸 봤다. 돌풍이 불면 그냥 떨어질 것 같았다. 대로변이라 큰 사고가 날 수 있겠다 싶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신문고 앱에 올렸다. 깨알같이 ‘관련 규정이 필요해 보임’이라는 의견까지 달았다. 뿌듯하기도 했고, 이런 건 처음이라 두근거리기도 했다. 소시민이 아니라 시민으로 살려고 했으나 소심함까지 어쩔 순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안전처로부터 문자가 왔다. ‘귀하의 신문고 사항은 서울시 해당 구청으로 이관됐습니다.’

 

 며칠 뒤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저희가 건물주에게 환풍 장치를 잘 설치하라고 하면 될까요?” “아, 그게요. 관련 규정은 없는 건가요.” “규정이요? 저희 소관이 아닌데요.”

 

  그런 대화가 오간 뒤 문자가 왔다. ‘귀하의 사항은 국가안전처로 이관됐습니다.’ ‘안전처가 문제를 해결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아닌 것 같았다. 며칠 뒤 또 문자가 왔다. ‘귀하의 신문고 사항은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됐습니다.’ 아, 전자제품과 관련돼 그런가.

 

  그리고 얼마간 소식이 없다, 또 문자가 왔다. ‘귀하의 사항은 국토교통부로 이관됐습니다.’ 국토교통부? 스마트폰으로 뭐하는 곳인지 검색해봤다. 아, 건물·도로와 관련된 거라 그리로 간 건가. 뭔가 알아보려던 차에 상사가 일을 시켰다. 지시 사항을 해결하고 나니 업무 보고가 시작됐고 그러다 몇 달이 훅 가버렸다. 소소한 개인사가 이어지면서 주말도 바빴다. 그리고 A는 소시민적이게도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마도 안전처는 일을 잘 처리하기 위해 ‘적확한 관할’을 찾아 헤맸을 것이다. 다들 성실하게 일했을 거고 정해진 과정을 밟았을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시민 A가 소시민 A로 되돌아간 건 아쉬운 대목이다. 안전처도 자발적 시민을 하나 잃었다. 공적인 일을 처리할 땐 두 개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관료의 시계’와 ‘시민의 시계’. 두 시계가 똑같이 흐르는 것이 정부의 목표겠으나 두 시계는 때론 거꾸로 흐르고 때론 전혀 다른 속도로 흐른다. A와 안전처의 사례처럼.

 

 

[경향신문 칼럼-여적/이기환(논설위원)-20150515금] 양봉음위(陽奉陰違)

“한 가지 마음이면 백 임금도 섬길 수 있지만, 100가지 마음이면 한 임금도 섬길 수 없다”는 옛말이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한결같은 충심을 발휘하기 쉬운가. 그러니 구밀복검(口蜜腹劍)·표리부동(表裏不同)·소리장도(笑裏藏刀)·양봉음위(陽奉陰違)와 같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고사성어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변함없는 충심을 발휘한다 해도 한번 삐끗하면 하루아침에 멸문의 화를 당하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한비자가 “용(군주)을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지만, 역린(逆鱗·목줄기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죽임을 당한다”(<사기> ‘노자한비열전’)고 했을까. 한비자는 춘추시대 위 영공의 총애를 받던 미자하의 예를 든다. 미자하가 예뻐보일 때는 임금의 수레를 몰고 다녀도, 자기가 먹던 복숭아를 임금에게 바쳐도 ‘충성심의 발로’라는 칭찬을 듣는다. 하지만 총애가 식어버리자 군주(위 영공)는 과거의 일(수레·복숭아)들을 ‘불경죄’라 하면서 미자하를 죽였다. 조선 태종의 처남이자 세자(양녕대군)의 외삼촌인 민씨 형제는 어떤가. 공신가문이기도 했던 민씨의 4형제(민무구·무질·무회·무휼)는 자결을 명 받고 죽는다. 이유가 어처구니없었다. 태종이 양녕대군에게 양위의 뜻을 밝히자 민씨 형제의 ‘얼굴에 기쁜 빛이 보였다(喜形于色)’는 것이었다. 외척의 발호를 막겠다는 태종의 ‘양위 쇼’에 걸려든 것이다. 민씨 형제는 “저도 제 얼굴빛을 모르는데 전하가 어찌 아시느냐”고 펄쩍펄쩍 뛰었지만 때는 늦었다.

 

이렇게 왕조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어이없고, 끔찍한 일들이 북한 땅에서 벌어지고 있단다. 건성건성 박수를 치고, 졸았다는 이유로 한때의 충신(장성택·현영철)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숙청대상자들에게 붙인 죄목은 ‘양봉음위’, 즉 ‘앞에서 받드는 척하면서 속으로 해를 가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조선조 태종은 민씨 형제의 죽음만은 막아보겠다고 나름 애쓴 흔적이 있다. “빨리 죽이라”는 신료들의 아우성 속에서 4형제를 다 죽일 때까지 8년7개월을 끌었으니 말이다. 북한은 조선왕조보다 못한 것이다. 제발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문소영(논설위원)-20150515금] 국어 실력

당나라에서 관리를 등용할 때 인물 평가의 기준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다. 이 신언서판의 기준은 21세기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특히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을 중요시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시대에는 말과 글이 중요하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유머를 섞어 감각적으로 문장을 쓰는 사람들이 인기다. 몇 줄의 글들도 쌓이면 그럭저럭 한 인간의 총체적 실체에 접근하게 한다.

 

‘보그 병신체’가 있다. 세계적인 패션 잡지인 ‘보그’에 비속어인 ‘병신’을 붙인 신조어다. 한글로 썼지만, 사실은 영어랑 다를 바가 없는 국적 불명의 문장으로 문해력이 떨어진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사이드 쉐입을 고려해서 플랜을 플렉서블하게 레벨을 풍성하게~” 하는 식의 대사들이 그것이다. 한글로 고쳐 표현할 수가 없다. “아티스틱한 감성을 바탕으로 꾸띄르적인 디테일을 넣어 페미닌함을 세력되고 아트적인 느낌으로 표현한다”는 문구는 또 어떤가. 이를 “작가의 감성으로 맞춤복 같은 섬세한 장식으로 여성성을 세련되고 예술적으로 표현했다”라고 우리말로 고쳐도 어색하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패션·미용 잡지들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 잡지를 모방했던 만큼 ‘보그 병신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언어 사대주의’가 아닌가 싶은데, 무분별한 영어 조기교육이나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 부재를 탓하기도 한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은 섬뜩하거나 살벌한 표현으로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규제개혁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는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하겠다”거나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 암 덩어리”, “한 번 물면 살점이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 진돗개 정신”과 같은 발언들이다.

 

올 초부터 대통령의 발언들 중에는 문장이 어색하거나 조리가 맞지 않는 대목들이 두드러진다. “퉁퉁 불은 국수를 먹게 된 경제가 불쌍하다”를 시작으로, 최근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을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이 알려졌다. 즉석 연설은 주어와 종결어미가 잘 맞지 않기는 한다. 하지만 이런 발언이 잦다면 받아 적는 장관들은 어떻게 대통령의 뜻을 파악해 일을 할까 걱정이 됐다. 지난 남미 순방 중에 교포들과의 자리에서도 “도전을 극복하고”라고 표현해 당혹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말실수가 됐구나 싶었다.

 

리콴유 장례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이 조문록에 영어로 ‘his loss’라 표현한 것을 두고 영어 문법 실력이 대단하다는 칭송들이 자자했다. 영어·중국어·프랑스어 등 외국어 연설 능력도 자랑이겠으나, 토론회 등에서 상대를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 만큼 국어 실력도 훌륭해야 하지 않겠나. 말은 소통의 도구이자 의식의 집인데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515금] 참기름과 들기름

 

‘참깨 들깨 노는데 아주까리 못 놀까.’ 별 어중이 떠중이들이 다 하는 일에 어엿한 내가 어찌 못 끼겠는가 하는 속담이다. 참깨와 들깨는 생김새가 아주까리보다 훨씬 작지만 식물기름의 제왕이다. 기껏해야 윤활유나 머릿기름으로 쓰이는 아주까리가 덩치만 믿고 까불다 그 맛과 향기에 치여 꽁무니를 빼기 딱 좋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을 위해 굳이 설명하자면 참깨에서 짠 것이 참기름, 들깨에서 짠 것이 들기름(들깨기름)이다. 두 기름 모두 혈관 건강에 이로운 불포화지방으로 구성돼 있다. 참기름에는 불포화지방 중에서도 오메가6 지방의 일종인 리놀레산이 많다. 천연 항산화제인 세사몰, 세사몰린 등이 포함돼 있어 의약품과 화장품의 보습제로도 쓴다.

 

들기름에는 오메가3 지방의 하나인 리놀렌산이 많이 들어 있다. 리놀렌산은 체내에서 등푸른 생선에 많은 EPA나 DHA로 바뀌어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고지혈증 심장병을 예방한다. 피부를 곱게 하는 기능이 있다고 해서 옛날부터 혼기를 앞둔 딸에게 많이 먹였다고 한다. 요즘 웰빙 식용유로 인기를 모으는 것도 이런 연유다.

 

보관하는 데에는 참기름이 유리하다. 실온에서 오래 저장할 수 있고 참기름으로 조리한 음식도 잘 변하지 않는다. 기름 속의 항산화 성분이 산화를 막아 주기 때문이다. 반면 들기름은 공기 중에 내놓으면 빠르게 산화해 과산화 지질로 변한다. 그래서 들기름을 발라 구운 김은 빨리 먹는 게 좋다. 들기름 원료인 들깨는 대부분 충청, 호남, 영남 지역에서 주로 나지만 요즘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들기름의 주성분인 오메가3가 치매예방 등에 효과가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덕분이다.

 

해외에서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올해 1~4월 들기름 수출액은 268만1000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2만3000달러)보다 약 20배 늘었다. 일본 수출액은 2만7000달러에서 257만1000달러로 100배 가까이 뛰었다. 농식품 전체 수출이 0.6%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규모다. 일본 TV 프로그램이 우리 들기름 성분을 소개한 뒤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한국 들기름은 2008년 처음 일본 수출길에 오른 이후 대형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일본은 들기름 생산기반이 취약해 우리 들기름을 많이 수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툭하면 가짜 참기름 관련 뉴스로 참깨 농가들을 우울하게 했는데, 모처럼 들기름 수출이 활기를 띤다는 소식을 들으니 반갑다. 괜스레 입에 침도 고인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로터리/백기승(한국인터넷진흥원장)-20150515금] 인터넷 기본법부터 다시 세워야

 

'기강이 잡혀 있다'에서 '기강(紀綱)'은 벼리'기(紀)'와 벼리'강(綱)'이 결합된 단어다. 규율이나 법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벼리'는 무엇인가. '벼리'는 그물의 위쪽 코를 꿰는 굵은 줄로 그물을 바로 지탱하는 구실을 한다. 고기를 가뒀더라도 '벼리'가 풀리면 얽을 수가 없어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치게 된다. 그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우연인지 몰라도 인터넷을 연결하는 정보통신망의 '망(網)'과 벼리를 뜻하는 '강(綱)'은 의미가 유사하다. 정보통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그물로 이어진 초연결사회에도 견고한 규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초연결사회의 기강을 잡아주고 지탱해줄 '벼리'는 무엇일까.

 

우리는 공통 인터넷 규범체계를 충분히 논의하지 못한 채 그때그때 필요한 법령만을 제개정해왔다. 그 결과 법률이 정보통신기술(ICT) 환경 변화를 반영하지 못해 제도적 공백이 발생했다. 또 융합이 핵심인 ICT 산업에서 개별 법령들이 중복규제로 작용하며 신산업 창출의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의료법과 은행법 등 관련 법제도 미비로 인해 제한적인 서비스만 가능한 ICT 융합형 헬스케어, 핀테크(fintech) 분야가 그 대표적 예이다.

 

그동안 정부 차원의 개선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규제 개선 노력을 해 간편결제 서비스가 출현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 개선책은 부분적인 개편에만 국한됐다. 새로운 ICT 융합서비스가 출현할 경우 규제 중복, 제도적 공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여전하다. 미래 인터넷 환경에 맞는 새로운 '벼리'를 세우지 못해 ICT 산업진흥이라는 대어(大漁)를 가둬 놓고도 건져 올리기가 쉽지 않다. 제대로 된 '벼리'가 서지 않는다면 ICT 기술로 이뤄낸 산업·문화·안전 등 이로운 사회시스템이 온전히 기능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지금이라도 과거의 두서없던 규범체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ICT 환경에 맞춰 인터넷 규범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산업 분야별로 흩어져 있는 법률을 아우르는 기본 틀을 세우고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기존 산업과 신산업 간 충돌이 발생하는 관련 법과 제도를 조정·정비하는 입법적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예컨대 ICT 신기술의 발전과 신산업의 육성을 통해 창출되는 새로운 미래 먹거리들이 그물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인터넷 기본법' 같은 새로운 '벼리'를 세우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새롭게 고려되는 인터넷 기본규범은 그동안 구태적 인터넷 규제로 발생했던 갈등, 부처 간 불협화음, 그리고 신구(新舊) 질서 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을 담아야 한다. 또 우리 ICT 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기준과 원칙을 글로벌 수준에 맞추려는 고민이 수반돼야 한다. 이러한 기본규범에 사회적 합의와 공감이 바탕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인터넷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지금이야말로 인터넷이라는 그물의 '벼리'를 살피고 기강을 바로 세울 때다. 이를 통해 인터넷 공간을 자유롭고 경쟁력 있는 미래의 터전이자 경제 활성화의 중심으로 가꿔야 한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