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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영수회담으로 정국안정 실마리 찾도록

야 정치권이 정국 수습을 위한 협상에 돌입한다니 불행 중 다행이다. 국정 붕괴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다만 여야 합의가 요원하다는 게 문제다.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두 번째 대국민 사과에서 수용의사를 밝힌 만큼 큰 이견이 없어 보이나 영수회담은 야당이 ‘대통령의 2선 후퇴’ 등을 조건으로 내걸어 난항이 예상된다. 박 대통령이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 임명동의안을 국회로 보내면 수습은커녕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게 뻔하다.

박 대통령의 거듭된 사과로도 성이 안 풀린 민심은 지난 주말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시위로 표출됐다. 전국에서 들고일어나는 양상이 8년 전 광우병 사태를 빼닮았다. 그때는 근거 없는 괴담이 나돌았다면 지금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범국민적 분노가 배경이란 점이 다르다. 이번 주말에는 시위를 더 확대하겠다는 주최 측의 예고로 미뤄 보건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소지가 농후하다.

이 대목에서 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최순실 사태가 아무리 정권의 잘못이라지만 야당이 국난 위기를 ‘나 몰라라’ 구경만 해선 안 된다. 나아가 현 국면을 대선까지 끌고 가 재미 보려는 당리당략적 접근은 수권능력을 입증할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첫 현직 대통령 수사도 감수하겠다고 나선 마당에 야당도 뭔가 내놔야 한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새 총리를 지명하면서 야당과 사전 협의하는 절차를 빠뜨렸고, 대국민 사과에서도 총리의 역할 등을 직접 거론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나 그렇다고 야당이 반대일변도로만 나갈 일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출신으로 최근 국민의당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모시려던 당사자가 김 내정자 아닌가. 보수계도 국정교과서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에 반대하는 김 내정자가 마뜩치 않지만 일단 지금의 난국을 타개하자는 취지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이라 여겨진다.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어제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 퇴진까지 주장했다. 하지만 1년 4개월이나 남은 임기를 ‘식물 대통령’으로 지내라는 2선 후퇴 요구는 최순실 사태와 관련한 박 대통령의 혐의가 확인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여야는 일단 영수회담부터 열어 수습책을 내놓는 게 먼저다.

2. 기업들도 반성하고 정경유착 끊어야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어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안 전 수석이 비선실세인 최순실씨와 공모해 53개 대기업으로 하여금 미르·K스포츠재단에 모두 774억원의 기금을 출연하도록 강요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민간 비선실세가 짝짜꿍이 돼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을 갈취했다는 얘기다.

두 재단의 모금뿐 아니다. 경영권 분쟁 속에 검찰 내사를 받고 있던 롯데에 70억원, SK에 80억원 등 약점이 있는 기업에게는 돈을 더 뜯어내려 했다고 한다. 심지어 돈을 적게 냈다고 불이익을 주었다는 의혹까지 불거진다. 한진 조양호 회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직에서 물러난 것도, 한진해운이 채권단 지원 중단으로 법정관리에 이른 것도 한진이 미르재단에 10억원만 내고 K스포츠재단에는 기부를 거부해 이들의 눈밖에 난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부도덕한 정권의 추악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기업들은 “정권에 밉보이지 않으려면 기금 출연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며 자신들이 피해자의 입장임을 하소연한다. 이해할 측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검은 돈’을 주고 반대급부로 특혜를 챙기려 한 사실 또한 엄연하다는 점을 지나칠 수 없다. 부영 이중근 회장이 K스포츠재단과 70억원 지원 문제를 논의할 당시 동석한 안 전 수석에게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했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롯데는 검찰 수사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비선실세에게 손을 대려 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삼성도 재단 기금 204억원 외에 승마 유망주 육성을 명분으로 최씨 측에 35억원을 더 얹어 주었다고 한다. 정권의 눈치를 살펴가며 이득을 보려 했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에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정경유착은 정치를 부패하게 만들고 건전한 기업 활동을 가로막아 나라 경제 전체를 흔들리게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근절해야 할 적폐다. 정치도 변해야 하고 기업도 반성해야 한다. 권력에 기대어 이권이나 특혜를 얻으려는 구태를 버리고 ‘정도 경영’, ‘투명 경영’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이참에 검은 거래를 완전히 끊어야 한다.

[서울신문]

3. 촛불 민심, 국민 저항으로 바뀔 수 있다

난 구름 인파가 도심을 메웠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함성이 전국을 뒤덮었다. 지난 주말 서울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열린 2차 촛불집회에는 부모 손을 붙잡은 어린이부터 교복 입은 중고생,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까지 세대를 초월한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몰려나와 너나 할 것 없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서울 광화문광장~세종대로를 가득 메운 20만명(주최측 추산)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참가자가 30만명에 이른다.

그 많은 시민들이 이심전심으로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박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 그리고 박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이 저지른 국정 농단 행태를 주권자인 국민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누가 등 떠밀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모여 그 엄청난 분노감을 표출한 것이다.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조차 대거 촛불을 들고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게 만든 것은 박 대통령 자신이다. 박 대통령이 이 같은 촛불 민심을 똑바로 읽지 못한다면 훨씬 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시민들의 함성은 굳건하게 가로쳐진 경찰 차벽을 넘어 청와대 관저까지 퍼져 나갔을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광화문 일대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니 광화문광장~세종대로에 시민들이 만들어 낸 거대한 촛불을 박 대통령이 착잡한 표정으로 직접 지켜봤을 수도 있다. 그 순간 박 대통령은 깊은 반성과 함께 책임을 통감했길 바란다. 연이은 대국민 사과에도 불구하고 성남 민심이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더 거세지는 것은 사과의 진정성 등이 엿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못을 인정했으면 과감하게 권한 등을 내려놔야 하는데도 그러지 않았다. 5% 지지율로 무엇을 더 도모할 수 있단 말인가.

시민들은 그제 한결 성숙된 시민의식을 보여 줬다. 엄청난 인파가 몰렸지만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처리하고, 경찰과의 충돌도 적극적으로 자제했다. 큰 사고 없이 대규모 촛불집회가 평화적으로 마무리됐다. 12일 열리는 국민총궐기 역시 평화롭게 진행돼야만 한다는 점을 주최 측과 경찰 측에 당부한다. 시민들의 분노심이 증폭돼 폭발하면 어떤 불상사가 초래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향후 행보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부디 촛불 민심을 직시해 현명한 판단을 내려 주길 바란다.

지금 박 대통령과 정부,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모두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박 대통령도 이런 현실을 반영해 야당과의 협의를 강조했을 것이다. 검찰 조사와 특검까지 수용한 마당에 야 3당 모두 반대하는 김병준 총리 후보자 내정을 철회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권한 이양을 분명하게 밝혔다지만 이미 ‘김병준 카드’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볼 수 있다. 총리 지명을 철회하고, 조속히 야당대표들과의 영수회담을 열어 거국중립내각을 포함한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4. 새누리 지도부, 당원 버림 받을 작정했나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이 국정 마비로 치닫고 있음에도 새누리당은 혼돈 그 자체다. 이정현 대표의 사퇴를 둘러싼 당내 분열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이 불거지면서 시작된 현 지도부에 대한 퇴진 압력은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당내 내홍이 거세지면서 결국 정진석 원내대표가 나서 “당이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며 이 대표의 동반 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최순실 국정 농단이 악화되면서 새누리당 전국 17개 시·도당 사무실 등으로 탈당 절차와 관련한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당의 최대 지지 기반인 핵심 당원들 사이에서는 당 이탈 기류가 심상치 않다. 민심 이반의 흐름과 같다. 새누리당은 창당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고 위기의 근원은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국정의 한 축인 새누리당 지도부의 책임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친위세력으로 국정 운영의 핵심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이 대표와 친박 지도부가 그동안 박 대통령의 국정 파행을 견제하라는 당 안팎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맹목적으로 감싸는 ‘호위무사’ 역을 자처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5%로 추락하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 수사를 받을 지경이 됐다는 것 자체가 당 지도부로서의 자격 상실이다.

그럼에도 이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난국 사태를 수습해야 하니 지도부에서 물러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다. 당권을 내려놓으면 친박 전체가 비박계에 의해 폐족(廢族)으로 몰릴 것이라는 위기의식에서다 또 최악으로 치닫는 국민적 분노가 어느 정도 누그러질 시점을 따지는 듯싶다. 지난 4일 밤 열린 의원총회에서 비박계뿐만 아니라 일부 친박계 의원들이 가세한 퇴진 압력에도 꿋꿋하게 침묵으로 버틴 이유일 것이다.

이 대표는 청와대 정무·홍보 수석을 지내며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보좌한 데다 여당 대표가 된 이후에도 박 대통령의 의중을 앞장서 행동으로 옮긴 만큼 작금의 국정 문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태 수습의 첫걸음은 새누리당 지도부가 국정의 한 축으로서 공동 책임을 지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집권당으로서 국민 여론을 수용해 사퇴 결단을 내리고 거당적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는 것이 수순이다.

[동아일보]

5. “다른 사람이 나라 이끌어도 한미동맹 영속적” 알린 미국

조시 어니스트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4일 한미동맹에 대해 “강력한 동맹의 특징은 다른 인물들이 그 나라들을 이끌 때도 영속적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에 그대로 있기를 원하는지, 거리를 두고자 하는지 묻자 답한 것이다. 외교부는 6일 “양국 국내 정세에 무관하게 한미동맹이 굳건하다는 점을 확인하는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이 ‘박 대통령 이후’에도 대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박 대통령이 하야 요구를 받는 사태가 한미동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국이 예의 주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은 1987년 6월 항쟁 때 군부의 개입을 공개 경고할 만큼 민주화 과정에서 역할을 했다. 2007년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박 대통령과 최태민의 관계에 대해 “박의 인격 형성기 동안 몸과 마음을 완벽하게 컨트롤했고 그의 자녀들은 그 결과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루머가 파다하다”고 본국에 보고한 적도 있다.

최순실 게이트는 외교 안보 분야에도 부정적 여파를 미치기 시작했다. 북의 9월 9일 5차 핵실험 이후 어제로 57일이 됐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 결의안을 채택하지 못했다. 중국이 더 소극적으로 바뀌면서 4차 핵실험 때 57일 만에 안보리 결의 2270호를 채택한 것보다 일정이 더 지연되는 상황이다. 연내 일본에서 개최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도 불투명해졌다. 일본에선 한국의 정치 상황 때문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과연 체결될 수 있을지 우려한다. 북이 한국의 정치 위기를 틈타 추가 도발을 할 개연성도 없지 않다.

국방·외교·안보 관련 부서는 최순실 게이트 와중에 안보 위기가 외교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비상한 각오를 다져야 한다. ‘대통령 리스크’에도 강력한 한미동맹이 계속되듯이 대한민국 외교·안보정책의 일관성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대내외에 천명할 필요가 있다.

6. 檢, 우병우의 ‘최순실 국정농단’ 연루 파헤칠 결기 있는가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이 어제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 대구고검장)에 소환됐다. 아들의 의병 보직 특혜에 개입한 직권 남용과 가족회사 ‘정강’의 돈을 개인적으로 쓴 횡령 혐의로 8월 18일 이석수 당시 특별감찰관이 검찰에 수사 의뢰한 지 근 석 달 만이다. 그 사이 비선 실세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검찰은 우 수석에 대한 수사와 최 씨 수사를 우 수석에게 보고하다 지난달 30일 민정수석이 교체된 뒤에야 소환해 포토라인에 세웠다.

우 전 수석은 ‘최순실 사태에 대해 전 민정수석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오늘 검찰에서 물어보시는 대로 성실하게 조사받겠다”고 답했다. 검찰은 최순실 국정 농단에 우 전 수석이 어디까지 연루돼 있는지 철저히 파헤쳐야만 한다. 이 전 특감이 우 전 수석을 감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청와대는 “‘우병우 죽이기’의 본질은 임기 후반기 식물정부를 만들겠다는 의도”라며 맹공했다.

돌이켜보면 청와대가 왜 그리 우 전 수석을 싸고돌았는지 알겠다. 우 전 수석이야말로 최순실 사태의 전말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가 민정수석실 비서관이 된 시점은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물러난 직후인 2014년 5월이다.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과 안보, 인사 등 온갖 기밀 자료들이 최 씨에게 건네진 시기와 겹친다. 그가 민정비서관으로서 감시 기능을 제대로 했다면 최순실 국정 농단도 중단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해 말 정윤회 씨 국정 개입 사건이 불거지자 그는 이를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으로 둔갑시켰고, 말끔히 처리한 공로를 인정받아 작년 1월 민정수석의 감투를 꿰찼다.

당시 모든 것을 밝혀내지 못해 최 씨의 국정 농단이 계속되게 만든 검찰은 막중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아무리 우 전 수석이 검찰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다고 해도 대한민국 검찰이 비선 실세 부부의 국정 농단을 청와대 ‘가이드라인’대로 수사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단 말인가. 현재 최 씨를 둘러싼 수사도 우 전 수석의 시나리오대로라는 얘기가 항간에 나돈다. 검찰이 이런 그를 최순실 게이트 수사 대상에서 제쳐놓고 개인 비리만 묻고 만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일보]

7. 미 대선 결과가 가져올 정책 변화에 능동 대처해야

미국 대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접전을 벌이고 있다. 이번 대선은 후유증이 클 것이고, 우리나라에는 외교안보와 경제 등에 작지 않은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두 후보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대북 압박 강도를 높여 한반도 정세가 출렁거릴 것이다.

보호무역 정책으로 세계 교역환경을 악화시켜 우리 경제의 주름살도 늘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 검토, 방위비 분담금 증액,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을 공언해온 트럼프가 당선되면 정책 불확실성까지 커진다. ‘트럼프 리스크’라는 말이 나오는 실정이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발등의 불이다. 북한 5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가 두 달가량 논의만 거듭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등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한·미 군 당국은 최근 북한 일부 지역에서 무수단 미사일을 탑재한 이동식 발사차량(TEL)을 포착하고 관련 동향을 감시하고 있다. 북한 도발은 미 대통령 당선자가 대북 정책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대외 리스크가 커졌지만 우리나라 국정은 극도로 혼란스럽다. 미국 등 각국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국 정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시 어니스트 미 백악관 대변인은 그제 ‘최순실 게이트’ 관련 질문을 받고 “강력한 동맹의 특징은 다른 인물들이 그 나라들을 이끌 때조차도 영속적이라는 점”이라고 했다. 우리 외교부는 “양국 국내 정세와 무관하게 한·미동맹이 굳건하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국내 리더십 실종이 대외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치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외교안보·경제 관련 부처들이 기민하게 움직여야 할 때다. 미국의 정책 변화에 대비해 사전 모니터링을 철저히 하면서 적절한 시점에 대외정책을 수정·보완할 준비를 해야 한다. 당장에는 기존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 상황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게 최상의 방책이다.

8. 박 대통령 촛불 민심 직시해 2선 후퇴 결단을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에 분노한 2차 촛불집회가 지난 주말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서울에서만 주최 측 추산 20만명(경찰 추산 4만5000명)이 도심에 집결했고 박근혜 대통령 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에서도 시위가 잇따랐다. 지역에선 10만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광화문광장에 모인 촛불집회 인원은 작년 11월 1차 민중총궐기 집회 이후 최대 규모다. 교복 차림 청소년, 어린 자녀를 데려온 부모, 종교인, 학자 등 다양한 계층의 시민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박근혜 하야” “못살겠다 갈아엎자” 등 격한 구호와 발언이 내내 이어졌다. 이들은 종로, 을지로 등을 행진하며 오후 9시쯤 집회를 마쳤다.

지난 4일 박 대통령이 사과 담화를 발표했으나 민심은 되레 나빠졌다.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은 어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민들의 준엄한 뜻을 매우 무겁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심정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박 대통령의 사과 담화에도 민심의 촛불을 환하게 밝힌 건 안이한 시국 인식 탓이다. 권한 위임, ‘2선 후퇴’는 언급하지 않고 “국민들께서 맡겨주신 책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국정을 계속 이끌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병준 총리 내정자 일방적 지명, 진정성 없는 개인 반성문에서 ‘진심’이 읽히지 않는다. 한 비서실장은 정치권과의 모든 협의 채널을 가동해 박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회동을 추진할 예정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를 직접 찾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추가 조치 없이는 회동 가능성은 희박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어제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국회 추천 총리 지명 등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으면 박 대통령과의 회동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정권 퇴진 운동도 예고했다. 민주당은 12일 독자적인 대규모 장외투쟁을 검토하고 있다. 이날 서울에서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잡혀 있다. 그때까지 박 대통령의 입장 변화가 없으면 야권과 시민단체가 연계해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폭발할 것임이 자명하다. 이대로 가면 헌정 중단 사태를 피하고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은 투철한 애국심을 자부해왔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진 뒤 그 애국심도 믿음을 잃었다. 대통령의 잘못된 국정 운영 때문에 나라가 위기에 빠졌다. 국정 공백의 부작용이 가시화하고 있다. 안보·외교 국익 손상이 무엇보다 우려된다. 역대 대통령이 항상 챙겨온 에이펙(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2주 앞으로 다가왔으나 참석 여부가 불투명하다. 박 대통령이 구국 차원에서 2선 후퇴를 조속히 결단해야 하는 이유다. 청와대는 “긴장감 속에서 후속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참모진이 대통령 결단을 돕도록 직언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2선 후퇴해 모든 걸 내려놓는 것이 국정 수습의 물꼬를 트는 길이다. 탈당과 국회와의 협의를 통한 총리 인선 등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서둘러야 한다. 박 대통령이 1·2차 사과 때처럼 타이밍을 놓치면 국정 수습은 정말 어려워질 수 있다. TK(대구·경북) 핵심 당원조차 탈당하고 있다니 5% 지지율은 더 떨어져 통치불능에 빠지게 된다. 박 대통령이 결단하면 야권도 더 이상 조건을 달지 말고 협력해야 한다.

[매일경제]

9. 위기의 전경련, 순수 정책 연구기관으로 거듭나라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을 주도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존립 위기에 직면해 있다. 무용론, 해체론이 빗발치고 있는 가운데 회원사들조차 전경련이 정치권의 '수금 기구'로 전락한 현 상황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본지 조사 결과 40대 그룹 91%가 "전경련의 자금 모집이 부적절했다"고 응답했고, 92%가 가장 시급한 조치로 '전경련의 역할 재규정 및 조직 변화'를 꼽았다.

1961년 자유시장경제 창달을 목표로 설립된 전경련은 재계 입장을 대변하고 반기업 정서 완화, 규제 철폐에 나서는 등 경제성장기에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한 해 수백억 원을 써도 외부 감독·감사를 받지 않는 허술한 운영체계와 상근부회장 중심의 사무국 권력 비대화로 되레 회원사에 군림하는 조직으로 변질됐다. 이념단체 자금 지원, 정권 프로젝트의 갹출 창구로 전락했고 올해 초 '어버이연합 게이트'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주요 그룹 회장들이 전경련 회장 자리를 고사해 허창수 회장이 5년째 맡고 있을 정도로 위상이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다.

모두 전경련이 자초한 결과다. 사무국의 전횡을 견제할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회장단이 방관하면서 조직을 혁신할 결단을 내리지 못한 탓이다. 과거 개발시대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실책이다.

회원사들은 전경련의 위기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지만 해체에 대해서는 82%가 반대했다. 55년의 역사를 이어온 경제단체의 해체는 분명 사회적 손실이다. 기업과 정부의 연결고리는 대한상공회의소에 맡기고 전경련은 순수 정책 연구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의 '헤리티지재단'이 롤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과 통합하고 지원 기관인 자유경제원과 연계하면 한국 경제의 방향을 제시하는 싱크탱크로 변신할 수 있다. 본지는 사설(10월 14일자)을 통해 이번 사태와 전경련의 앞날에 대해 허 회장이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했지만 그는 아직 침묵하고 있다. 여론이 들끓고 있다. 허 회장은 궁지에 몰린 전경련의 환골탈태와 역할 재정립에 대한 밑그림을 조속히 내놓기 바란다.

[매일신문]

10. 비정규직 640만명 시대, 해소책 마련 더 미룰 수 없다

국내 비정규직 근로자 수가 올해 640만 명 선을 넘어섰다. 지난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는 모두 644만4천 명으로 10년 새 약 100만 명이 늘었다. 비정규직의 급증은 근로조건 악화에 따른 가계소득 감소와 노인 빈곤 등 사회문제의 주 원인이라는 점에서 양질의 일자리 대책 등 정부의 고용정책 전환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임금 근로자 1천960만 명 중 644만4천 명(32.8%)이 비정규직 신분이다.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이 더 빠르게 늘고 특히 60세 이상 고령층의 비정규직 비중이 22.8%로 10년 새 두 배로 뛰었다. 이는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양적, 질적 측면 모두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청년 일자리난도 심각한 문제지만 ‘반퇴 세대=비정규직’ 공식은 사회 양극화 등 많은 문제점을 낳는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올해 8월 기준 60세 이상 비정규직은 모두 146만8천 명으로 2006년의 61만1천 명과 비교하면 2.4배 늘었다. 50대 비정규직도 138만2천 명(21.5%)으로 60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20∼40대 비정규직이 모두 감소한 것에 비하면 좋은 대조를 이룬다. 결국 중장년층 비정규직 증가가 전체 비정규직 증가를 견인했다는 뜻이다.

비정규직은 중장년층에 보다 많은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지난 10년간 50, 60대의 고용률이 각각 5.2%와 2.7% 높아졌다. 하지만 우리의 노인 빈곤율(47.2%)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사실은 경비나 청소, 가사도우미 등 단순 업무에 쏠린 비정규직 일자리가 부른 결과라는 점에서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에서 노령층 일자리 관련 예산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노인 일자리 5만 개 확대를 위한 ‘기업연계형 일자리’ 계획과 정규직 전환 촉진을 위한 지원금 대상 확대 방침도 내놓았다. 그러나 고령층에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세부 정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정부는 노인 비정규직 문제를 전체 비정규직 문제 해소를 위한 선결 과제로 인식해 정책 초점을 맞추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여성칼럼]부모는 선택할 수 없지만 '나'는 선택할 수 있어요

최근 제 메일함으로 날아온 두 여성의 사연이 저를 울컥하게 만들었습니다. 부모님의 사채, 이혼 문제로 방황하고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여고생. 자신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처절하게 노력해도 되지 않는데 부모님 잘 만나 '아무 노력 없이' 행복하게 사는 금수저 친구를 보며 자괴감을 느끼는 자신이 싫다는 20대 여성. 둘 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가난, 알콜중독 아버지, 불화로 인한 방황 끝에 뒤늦게 마음을 잡고 혼자 독학해 서울로 대학을 와서도 가족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수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저였으니까요. 많은 기억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대궐 같은 집에서 과외를 마치고 돌아온 곰팡이 가득한 반지하 단칸방, 아르바이트를 잘리고 오는 길에 생활비 좀 더 보내달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한참을 서럽게 울었던 순간, 면접을 앞두고 80만원짜리 정장을 아무렇지 않게 사는 대학친구를 보며 느꼈던 박탈감 ….

당시의 제게 부모님은 존재 자체만으로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오죽하면 꿈목록을 썼을 때 1순위가 한국을 떠나는 것이었을까요. 그렇게 저는 해외로 떠났고 거기서 자유롭게 많은 꿈에 도전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저는 다시 부모님 곁으로 와 있었습니다. 내 집 마련에 앞서 부모님 집 마련을 먼저 했고 부모님 노후대책을 위해 미친 듯이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노력해서 먹고 살 만해졌지만 끝없이 싸우고 신세한탄을 하는 부모님을 보며 화가 치밀었고 나 자신이 불쌍해 울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도 없이 고민하고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깨달은 것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모는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존재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는 우리에게 우주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들이 우리를 돌봐주지 않으면 우리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죠. 성인이 되기까지 우리는 그들의 절대적인 영향 하에 있습니다. 그들의 세계가 곧 나의 세계인 셈이지요.

부모는 자식에게 두가지 유산을 남겨줍니다. 첫 번째는 경제적 유산이죠. 건물을 주는 부모도 있지만 빚을 물려주는 부모도 있습니다. (다행히 빚은 상속포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도, 부모님을 부양하기 위해 내 삶을 포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스무 살이 넘으면 나의 삶과 부모의 삶은 분리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마치 신체와 마음의 일부가 부모에게 묶여 있는 것처럼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게 되지요.

부모가 줄 수 있는 정말 중요한 것은 정신적 유산입니다. 우리는 20년 동안 부모와 함께 살면서 그들과 비슷한 세계관과 감정의 지형을 형성해 나갑니다. 성숙한 부모에게 사랑받으며 자랐다면 정서적으로 안정적이고 건강한 사람으로 클 확률이 높지요. 반면에 자식을 자신과 분리시키지 못하고 조종하는 부모, 술이나 도박에 중독된 부모, 아이를 신체적, 언어적, 성적으로 학대하는 부모, 아이에게 어른 역할을 기대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면 아이는 자기 스스로에 대해, 또 세상에 대해 건강한 생각을 갖기 힘듭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완벽한 인간도, 완벽한 부모도 없기에 우리 모두에겐 어린 시절의 상처와 결핍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심한 경우 무의식에 남은 트라우마가 우리의 발목을 계속 붙잡습니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과도하게 무리를 하고, 타인에게 애정을 갈구하고, 내가 당한 것처럼 내 아이를 학대하는 등 익숙한 고통과 다시 만나게 되기도 하지요. 나이가 50,60살이 되고, 부모가 세상을 떠났어도, 우리 스스로 그들의 부정적인 정신적 유산을 끊어내지 않으면 평생 그 자리를 맴돌게 됩니다.

2.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名지휘자 변신한 거장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Vladimir Ashkenazy, 1937년~). 현존하는 최고 피아니스트며 지휘자로서도 가장 분주한 음악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아슈케나지의 피아노 연주는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맛이 있다. 누구 하나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 그가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군림하는 이유다.

2년 전 스위스 이탈리안 오케스트라(OSI)를 이끌고 클라리네티스트인 아들 보브카 아슈케나지와 함께 내한한 바 있던 아슈케나지. 루빈스타인, 호로비츠로 꼽히는 20세기를 풍미했던 1세대 피아노 거장들이 떠나고 없는 지금, 현존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불린다. 피아니스트면서 지휘자로 변신한 대표적인 케이스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명지휘자 중엔 피아니스트 출신이 많다. 피아니스트 출신 지휘자들은 대부분 활동의 토대가 어느 정도 확보된 이후 거의 피아노를 떠나곤 했다. 아슈케나지는 다르다. 피아노와 지휘 모두 성실히 이어가면서 양립에 성공했다.

모스크바 서쪽 볼가강 연안의 공업도시 고리키에서 태어난 아슈케나지는 6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이듬해 학생 오케스트라와 하이든의 협주곡을 연주해 남다른 재능을 인정받았다. 특히 모스크바 음악원에 재학 중이던 1955년에 바르샤바에서 개최된 쇼팽 콩쿠르에 소련 대표로 참가해 2위에 입상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56년에는 브뤼셀의 엘리자베스 여왕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한 2년 후인 1962년에 열린 제2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공동 우승함으로써 일약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초창기엔 리히테르나 길렐스의 뒤를 잇는 소련의 대표적인 젊은 피아니스트로 꼽혀왔다. 하지만 현재 그의 국적은 아일랜드다. 소련(현 러시아)인으로 있는 한 연주자로서 활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소련 정부의 간섭과 통제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아일랜드 태생인 부인 국적을 따라 1963년 아일랜드 시민권을 취득하고 5년간 아일랜드에 거주하기도 했다.

독주자로 활동하면서 실내악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아슈케나지는 이작 펄만, 린 하렐(Lynn Harrell) 등 연주자와 함께 활동했다. 지휘자로서 겸업에 나선 것은 1975년. 아일랜드에서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녹음하면서 지휘를 시작했고, 콘서트에서 정식으로 지휘대에 선 것은 1977년 런던에서다. 이후 40여년 동안 체코 필하모닉, 도쿄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손가락 관절염으로 무대 위 피아노 연주를 중단하고 휴식기에 들어갔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이를 극복하고 다시 돌아온 아슈케나지. 그의 피아노 연주는 선명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을 띠는 음색으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피아노 음악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이라도 그가 연주하는 베토벤이나, 쇼팽, 라흐마니노프를 대부분 들어봤을 터. 비록 고령이지만 좀 더 오랜 기간 무대 위에 남아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길 새삼 빌어본다.

3. [이데일리][데스크칼럼] 배신의 시대…'문화'는 죄가 없다

차마 셀 수도 없는 이들이 한꺼번에 바보가 됐다. 과하다 싶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예산규모도 그랬지만 거창한 명칭이 아무나 접근해선 안 되는 일이라고 선을 긋는 듯했다. 뒤늦게 이런 소리가 얼마나 우스운지 잘 안다. 한 줄 변명이 허락된다면, 다리 놓고 도로 닦는 국가기간산업쯤으로 문화를 여기게 했으니 토 달 여지가 별로 없었다. 문화융성이라 쓰고 문화재건사업으로 읽으라는 데야.

그 일에 팔을 걷어붙였던 문화체육관광부가 이제 앞장서 팔다리를 잘라내기로 했다. 지난 4일 국회 교문위에 제출한 ‘문제사업 예산조정안’은 최순실·차은택 관련 의혹이 있는 사업을 알아서 자진삭제하겠다는 것이았다. 42개 항목의 3570억원이 의심스러운데 이중 당장 19개 항목 731억(20.5%)을 삭감하겠다는 것. 가장 큰 덩어리는 차은택이 초대 본부장을 맡은 문체부 산하 문화창조융합본부에서 진두지휘한 ‘문화창조융합벨트’다.

도대체 문화창조융합벨트가 뭔가. 지난해 2월 출범한 문화창조융합벨트는 크게 6개 거점사업으로 돼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조성한 ‘문화창조융합센터’, 중구 청계천로에 들어선 ‘문화창조벤처단지’와 ‘문화창조아카데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체조경기장을 리모델링하는 K-팝아레나’, 경복궁 옆 대한항공 부지에 세울 ‘K-익스피어런스’, 경기 고양시 대화동의 ‘K-컬처밸리’. 이들이 둥글게 띠를 이어 ‘선순환생태계’를 이룬다는 거대계획이었다. 한마디로 현 정부가 국정기조로 밀고 있는 문화융성의 밑그림인 셈이다.

하나만도 버거운 사업이 6개나 줄줄이 진행 혹은 대기 중이었다. 비용은 또 어떤가. 지난해 말 문화창조융합벨트에 책정한 올해 예산은 2800억원. 이중 정부예산이 1325억원, 복합콘텐츠펀드가 1385억원이었다. 이것이 올해로 넘어오면서 3000억원이 넘는 돈보따리로 부풀었다.

솔직히 이대로만 됐다면. 무엇보다 젊은 창작인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요지였으니. 문화콘텐츠와 관련한 기획(융합센터)-제작(벤처단지)-인재육성(아카데미)-구현·소비(컬처밸리·아레나·익스피리언스)를 한 덩어리로 관리·지원한다는 거였으니. 가령 문화창조벤처단지에는 출범 당시 13대 1의 경쟁률을 뚫은 평균 36세의 창작인이 모였다. 박칼린 킥뮤지컬아카데미 예술감독,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등을 교수진으로 띄운 문화창조아카데미는 40명 모집에 158명이 지원할 만했다.

그런데 이 모두가 하룻밤 새 지독한 악몽이 됐다. 예산삭감은 사전포석일 뿐 해체수순을 밟을 거란 전망이 대세다. 이제야 ‘빛 좋은 개살구’였다는 비난도 쏟아진다. 93개 입주사로 야심차게 발을 뗀 문화창조벤처단지가 알고 보니 절반은 비었다는 둥, 호텔 대신 한국문화체험공간으로 꾸리겠다던 K-익스피리언스는 발표 이후 착공은커녕 투자계획도 못 세웠다는 둥.

지난해 전업예술인 10명 중 7명은 한 달 소득 100만원을 넘기지 못했다. 그중 4명은 50만원 미만이고. 200만원 이상을 버는 고소득(?)층은 10명 중 1명꼴이었다. 어느 특정 부문만도 아니다. 미술·연극·음악·영화·문학 등이 고르게 힘들었다. ‘기운차게 일어나거나 대단히 번성한다’는 뜻의 융성. 그렇게 융성할 문화가 따로 있었던 건가. 무협지의 한 장면도 아니고 ‘비선실세’의 칼을 맞고 맥없이 부러질 융성이었다니. 풀뿌리 문화예술인 앞에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렇다고 문화융성을 기어이 버리고 갈 건가. 옥석 가리기는 지금부터다. 문화창조융합벨트가 문화융성의 전부가 아니니까. 설령 그 안에 속한 사업이라도 문화계의 뜨거운 동력이 될 수 있다면 과감히 품고 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문화’는 죄가 없다.

4. [매일신문][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미르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미르’일 것이다. 이 말은 ‘용’(龍)의 순우리말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최세진이 쓴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龍’자를 ‘미르 룡’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용은 상상의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발상지 모두에서 나타나며 민간 신앙에서도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특이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용은 중국 문명, 불교, 민간 신앙이 혼재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먼저 임금의 얼굴을 ‘용안’, 임금이 앉는 의자를 ‘용상’이라고 하는 것처럼 왕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불교에서는 천룡팔부(天龍八部)의 하나로 불법의 수호자로 여겨지고, 문무왕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나라의 수호자로 의미가 확장되기도 한다.

민간 신앙에서는 주로 물과 관련된 신이나 용왕으로 불리고 있다. 초등학교 때 소풍 날 꼭 비가 오는 이유에 대해 학교 지을 때 못을 메웠는데 그 못의 용이 노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비가 오지 않아 기우제를 지낼 때에는 다섯 방향의 용왕의 그림을 그려 놓고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민간에서 용을 그릴 때 다섯 가지 색으로 그렸는데, 민간 신앙에서 용은 다섯이라는 숫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수로부인을 납치하는 악당의 모습이기도 하고, 활을 잘 쏘는 거타지에게 도움을 받는 약한 존재로 나오기도 한다. 안개로 조화를 부려 왕의 앞길을 막기도 하는데(처용랑 망해사), 어쨌든 이 경우들 모두 물과 관련이 된다.

‘미르’라는 말이 ‘용’과 함께 쓰일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에서 용이라는 말이 들어오기 전에 우리 민족에게 이미 그러한 개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자가 들어 온 후에도 백성들 사이에서는 계속 썼던 말로 추정이 된다. 우리 민족이 생각하는 용이 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미’가 물을 뜻하는 옛말이었기 때문에 용을 왜 ‘미르’라고 불렀는지에 대한 약간의 단서를 얻을 수도 있다.

‘미르’의 또 다른 어원으로는 ‘미륵’(彌勒)을 들 수 있다. ‘彌勒’은 재림 예수처럼 백성들을 구제할 미래불을 뜻하는 범어 마이트리야(Maitreya)를 중국말로 음차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한자음으로는 ‘미륵’이지만 원래 중국 발음이 ‘미르’였다는 것이나, 미륵불이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한다는 것을 보면 ‘미르’가 ‘미륵’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신라 말의 궁예가 미륵을 자처한 것은 유명한 일이고, 고려 말 우왕 때에도 경도의 여승과 무적이라는 종이 미륵을 자처하며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켰었다. 이 외에도 세상이 어지럽고, 백성들이 어디 하나 마음 둘 곳이 없을 때는 꼭 미륵을 자처하는 사기꾼들이 나타났었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러시아혁명

1917년 러시아의 부르주아 혁명-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발발 시점에 따라 2월-10월 혁명으로 구분해온 것은 당시 러시아 역법(曆法), 즉 율리우스력에 근거한 것이다. 현행 그레고리력은 교황 그레고리아 13세에 의해 1582년 채택됐지만, 프로테스탄트와 정교회 국가들은 종교ㆍ권력적인 이유로 율리우스력을 고수했고, 특히 러시아는 혁명 직후인 1918년 1월 31일에야 그레고리력을 채택했다. 그래서 2월 첫 날은 2월 14일, 러시아 혁명은 현행 역법으로는 각각 3월-11월 혁명이다.

1917년 11월 7일(구력 10월 25일) 새벽 2시 볼세비키 혁명군(적위대)이 부르주아 임시정부 거점이던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을 함락, 오전 10시 소비에트 정권 수립을 선언했다. 20세기 최대의 사건인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혁명 정부가 99년 전 오늘 탄생했다.

혁명 이후의 러시아, 스탈린 체제의 소비에트 연방공화국과 그 이후의 이념적ㆍ정치적 타락과 실패는 혁명 직후부터 약 5년 간 이어진 백군과의 내전에 큰 책임이 있다. 1차대전 연합국을 중심으로 혁명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ㆍ경제적 견제가 극심했고, 경제는 혁명 전과 다를 바 없거나 오히려 더 악화했다. 볼세비키 정권은 이념의 실천보다 체제 안정과 보위, 이후로는 권력 쟁탈과 유지가 우선이었다.

민주주의도, 프롤레타리아 일당독재도 그 과정에서 실종됐다. 반대파 탄압을 위한 비밀경찰제를 비롯한 억압적 공포정치는 냉전과 함께 80년대 말까지 지속됐다. 군비에 쏟아야 할 자원 비중도 서방과 비교할 수 없이 컸다. 교조적 사회주의자 중에는 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 인류의 사회주의 실험은 단 한 번도 이뤄지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있다.

보수 언론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곤 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진보(?) 정치’를 두고도 비슷하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념 시비와 탄핵 등 집권 초기부터 시작된 보수 언론과 기득권 세력의 포화에 책임의 큰 몫을 돌리는 논리. 하지만 혁명 이후의 반혁명이 역사의 상수이듯, 두 정부의 실패와 퇴행을 보수의 견제 탓으로 돌리는 건 무의미하다. 그건 무능과 타락 탓이었다. 얼마나 무능했고 여전히 무능한지, 그들의 오늘이 잘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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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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