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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이 와중에 ‘쪽지예산’ 잔치 벌인 여야 실세들
그제 국회 본회의에서 400조 5000억원에 달하는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됐다.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기면서 ‘슈퍼예산’ 시대가 열린 것이다. 씁쓸한 점은 심의 막판에 여야 실세를 포함한 국회의원들의 민원성 지역구 예산인 ‘쪽지예산’이 대거 편성됐다는 사실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따르면 증감액 심사 과정에서 내년 예산은 5조 1424억원 증액됐다. 이 중 수천억원이 의원들이 밀어넣은 쪽지예산일 것으로 추정된다. 수백만명의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는 와중에 정치인들은 자기 지역구 민원만 챙겼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올해는 이른바 ‘최순실 예산’이 최대 4000억원 가까이 삭감되면서 쪽지예산은 예년보다 더 늘었다. 삭감분이 지역구 민원 예산 증액분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순천대 체육관 리모델링과 순천만 보수공사, 하수도 개선공사 등에 18억원을 막판에 끼워 넣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공주박물관 수장고 건립, 지역구 내 도로 건설 예산 등에 18억원을 증액시켰다. 친박 실세인 최경환 의원은 경북 경산의 무선전력사업 연구예산 10억원, 장제원 의원은 부산 사상공단 재생예산 80억원을 챙겼다.
야당에서도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구 수성구 노후공단 재생사업 예산 60억원을, 같은 당 위성곤 의원이 서귀포 크루즈항 예산 40억원을 더 편성토록 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백지화됐던 전남해양수산과학원 목포지원 신축예산 10억원을 만들어 냈다. 최순실 사태로 예산이 대폭 깎인 교육문화위 예산은 상당 부분이 강릉원주대, 목포해양대 등 대학들로 흘러 들어갔다. 해당 지역구 의원들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쪽지예산은 의원들이 지역구 관련 예산을 쪽지로 해당 부처나 동료 의원에게 부탁하는 예산이다. 미국에서도 논란이 거세다. 부정청탁금지법(청탁금지법) 위반 소지도 있다. 지난달엔 기획재정부가 청탁금지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의원들은 지역구 사업이란 공익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정식 심의를 거치지 않은 졸속 편성한 예산이어서 낭비 요소가 크다. 게다가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이 올스톱 위기에 처해 있다. 내우외환으로 경제는 고사 직전이다. 한 푼이라도 아껴 꺼진 경제 동력을 살리는 데 써야 한다. 경제야 어찌 되든 자기 지역 민원만 챙기는 것은 국회의원의 도리가 아니다.
2. 특검, 법치 바로 세우겠다는 초심 잃지 않기를
지금 국민의 관심을 가장 뜨겁게 받는 사람은 박영수 특별검사일 것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을 파헤칠 박 특검은 임명된 즉시 “좌고우면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했다. 그 첫 일성을 국민들은 외우고 있다. 박 특검의 분명한 수사 방침에도 기대가 크다. 박근혜 대통령을 반드시 직접 대면조사하고, 박 대통령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한 검찰과 달리 뇌물죄를 밝히는 쪽으로 수사력을 모으겠다고 선언했다. 빠듯한 특검 수사 일정을 하루라도 앞당기겠다는 박 특검의 의지도 사뭇 결연해 보인다. 특검보가 임명되면 당장 수사팀을 가동하겠다고 하니 며칠 안에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될 듯하다.
특검의 성패는 박 대통령 대면 조사를 통한 뇌물수수 혐의 적용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한 진실 규명도 결코 이에 밀리지 않을 중대 쟁점이다. 박 특검은 국민이 가장 큰 의혹으로 제기하는 문제인 만큼 철저한 수사로 의혹을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당연한 일이다. 세월호 7시간은 단순히 박 대통령의 사생활 문제가 아니다.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한 비선 정치로 국민을 도탄에 빠트린, 참담한 실정(失政)의 문제다.
온 국민이 특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과 기대를 모아 주는 이유는 하나다. 검찰이 들추지 않았거나 못했던 의혹을 샅샅이 뒤져 실체적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 주길 바랄 뿐이다. 그런 맥락에서 검찰이 끝내 건드리지 않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국정 농단도 풀어야 할 숙제다. 박 대통령과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을 묵인한 의혹이 짙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마찬가지다. 파견 검사 선발 과정에서부터 ‘우병우 라인’을 철두철미하게 걸러 내 공평무사한 수사 결과물을 내놓아야만 할 것이다.
이 모든 국민적 요구를 충족시키기란 결코 쉬울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은 3차 대국민 담화에서 또 한번 자신의 혐의들을 전면 부인했다. 특검 성공의 전제 조건은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할 확고한 증거 확보다. 검찰 수사를 거부한 박 대통령이 만에 하나 또다시 조사를 회피한다면 강제 수사를 불사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번 특검 수사는 헌정 사상 열두 번째다. 주말마다 수백만명의 국민이 촛불로 진실 규명을 외치는 특검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전대미문의 이 부끄러운 국정 혼돈을 벗어나 국민 가슴에 평정을 되돌려 줄 특명을 특검이 짊어졌다. 그뿐인가. 만신창이로 허물어진 법치를 추슬러 세우는 시대적 사명도 특검의 몫이다.
[이데일리]
3. 박 대통령, 국가 미래가 걱정되지 않는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운명의 일주일’이 다가왔다. 야3당이 공동 발의한 탄핵소추안이 오는 9일 국회 표결을 앞둔 가운데 새누리당 비박계가 결성한 비상시국위원회도 어제 탄핵 가세 방침을 천명했다. ‘탄핵 정국’에서 주도권을 쥔 비박계가 당초 내세웠던 ‘내년 4월 퇴진’ 협상 카드를 철회한 채 ‘탄핵열차’에 동승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열차는 이미 종착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상태다.
지난주 제3차 대국민 담화로 국회에 떠넘긴 공을 다시 넘겨받은 박 대통령 앞에 놓인 선택지는 오직 탄핵과 퇴진 두 가지뿐이다.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에 관여했든, 아니면 본인 해명대로 주변 관리를 잘못한 탓이든 막중한 책임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또다시 변명이나 교묘한 술수로 판세 반전을 노렸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그제 청와대 앞 100m까지 다가가 ‘즉각 퇴진’을 외친 촛불 민심뿐만 아니라 사태의 추이를 근심어린 눈초리로 지켜보는 ‘말없는 다수’의 가혹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망각해선 안 된다.
정치권이 이미 정치를 포기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야권이 비박계의 반대를 묵살하고 세월호 사건까지 탄핵안에 포함시킨 것은 실제 탄핵 의사는 없이 보여주기식 정치쇼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좋고, 설령 부결돼도 책임을 비박계에 뒤집어씌우면 그만이다. 대한민국호(號)가 좌초하든 말든, 국민이 도탄에 빠지든 말든 저마다 정략적 이익을 극대화하기에 급급한 ‘소인배 정치’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국민이 박 대통령의 선택을 주시하는 것도 그래서다.
정치 입문 이후 단 한 번도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박 대통령으로선 억울할지도 모르겠으나 변명만 늘어놓는 대통령을 봐야 하는 국민의 고통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국정 붕괴와 경제 추락에 대한 경고가 나라 안팎에서 잇따르는데도 미적대기만 한다면 나라가 어찌 되겠는가. 지금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자마자 “전선은요?”라고 물으며 본인보다 나라 걱정을 앞세웠던 37년 전의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 국가의 앞날만 생각하고 이제라도 올바른 결단을 내리는 것만이 ‘정치인 박근혜’가 자신을 믿었던 국민에게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다. 조속한 결단을 기대한다.
[매일신문]
4. 연례화한 AI 피해, 이제 선제적 대응책 나와야
신종 AI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신종 H5N6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를 막기 위해 강력한 방역 조치를 취하고 있다지만 역부족이다. 지난 10월 첫 바이러스 검출 후 한 달여 만에 전국의 닭 오리농장 101곳이 감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살처분된 닭과 오리가 이미 300만 마리를 넘어섰다.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 능력에 구멍이 뚫렸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게 됐다.
3일 경북 영주의 한 닭 부화장이 AI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의 한 양계장에서 종란 10만8천 개를 반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종란이 반출된 양계장은 경기도 동물위생시험소 검사 결과 양성반응이 나온 곳이다. 옮겨 다녀서는 안 될 AI 발생 농장의 종란이 도 경계를 넘나든 것이다. 뒤늦게 이를 안 경북도는 해당 부화장에 대해 폐쇄 조치를 취하고 반입한 종란을 폐기했다지만 자칫 경북도의 AI 청정 지역 지위가 흔들릴 뻔했다.
AI는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발생 일수도 길어지고 발생 시군도 확대되고 있다. 겨울철이 아닌 여름철에 발생한 사례도 나왔다. 2014년 발생한 H5N8형은 거의 2년 동안 간헐적으로 발병하며 축산 농가를 울렸다. 이번 H5N6형 AI 역시 피해 정도나 확산 속도로 미뤄 지난 피해를 능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정부는 AI가 확산되자 철새를 탓하고 있다. AI 이동 경로가 철새 이동 경로란 점을 강조하고, H5N6 바이러스가 신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발생 농가 가금류 살처분과 주변 소독, 차량 이동 제한 등 조치를 취하는 것이 고작이다.
AI 피해가 해마다 발생한다면 정부는 선제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존 발생 지역 따라다니기식 대응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AI 바이러스에 대한 감시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조기 경보를 위해 철새 이동 경로에 있는 나라에 가서 연구하고 협력해야 한다. AI 진단과 처방에 걸리는 시간도 최대한 당겨야 한다. 일단 발생하면 즉각 과감한 살처분과 철저한 이동 제한 조치는 기본이다. 사후 조치식 당국 대응은 늦을뿐더러 피해 방지에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5. 시민 성원과 시장 화합이 서문시장 재건의 첫걸음
서문시장 화재로 인해 지역 서민 경제에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빠른 시장 정상화를 위한 노력과 시장 구성원들의 화합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아직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이번 화재 피해 규모가 1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당장 직격탄을 맞은 시장 상인들뿐 아니라 거래 도소매업 등 지역 경기 위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지역 경기 침체의 우려를 뛰어넘고 위기 극복에 힘을 모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우선 백화점 등 지역 유통가는 최대 성수기인 연말임에도 어려움을 함께한다는 취지로 조용한 연말 분위기 조성을 다짐했다. 같은 어려운 처지이지만 서문시장 야시장 상인들도 당분간 영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는 물론 지역 기관단체 지원과 성원도 본격화하고 있다. 국민안전처는 2일 재난안전 특별교부세 35억원을 대구시에 긴급 지원했다. 원인 조사가 끝나는 대로 4지구 건물 철거 등 앞으로 시장 재건을 위한 계획이 속속 구체화될 전망이다. 여기에 시장 부활을 위한 지역 기업과 금융권, 종교계 등 각급 기관단체들이 앞다퉈 성금 모금과 지원을 약속하며 큰 힘을 보태고 있다. 그만큼 서문시장의 빠른 정상화를 바라는 시민의 희망과 기대가 높다는 말이다.
이런 성원에 힘입어 시장 구성원들도 하루빨리 충격에서 벗어나 재활의 용기를 내야 한다. 빠른 복구를 통해 서문시장 본래의 활기찬 모습을 되찾는 것은 두말이 필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시장 구성원이 시장 재건에 한마음이 되는 일이다. 상인들이 화합하고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야말로 시장 정상화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만약 시장에 생계를 걸고 함께 땀을 쏟아온 상인들이 반목하고 분열한다면 재건은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화재를 지켜본 대구 시민의 낙심과 좌절감 또한 상인들 못지않게 크다. 따라서 상인들은 자신의 터전을 본래의 활기찬 모습으로 되돌려놓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250만 시민의 협력과 성원도 커지기 마련이다. 불행한 사고는 이제 접어두고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시장 복구에 총력을 모아야 할 때다.
[동아일보]
6. 임박한 공공기관 인사, 이제는 낙하산 접어라
1일 마감된 한국예탁결제원 신임 사장 공모에 후보 7명이 지원했다. 유재훈 전 사장이 지난달 2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으로 자리를 옮긴 지 1개월 만이다. 기술보증기금도 차기 이사장 선정을 위한 공모 신청을 1일부터 20일까지 받는다. 은행권에선 기업 우리 하나 신한은행 등 은행장과 신한금융 농협금융 등 금융지주사 회장 인선 작업이 이달부터 내년 3월경까지 이어진다.
정부는 공공금융기관과 민간은행을 가리지 않고 인사에 개입해 낙하산을 내려보내 왔다. 최근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가 드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권위를 잃으면서 친박(친박근혜)계 등 특정 인사를 점찍기는 어려울 것이다. 각 기관의 임원추천위원회를 거쳐 주무 부처 장관이 최종 후보를 정하는 규정된 절차에 따라 인선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정상적 낙하산 인사가 제자리를 찾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최근 금융기관장 하마평에 관피아가 많이 거론되는 것은 친박계 낙하산이 내려가기 어렵게 된 틈을 관료집단이 비집고 들어오려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질서 있는 퇴진’을 명분으로 내년 4월까지 임기를 보장받을 경우 국가인권위원회, 경찰청, 국민대통합위원회 인사에 이어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달에만 한국마사회(4일), 한국도로공사(9일), 한국언론진흥재단(25일) 등 비금융 분야 공공기관장의 임기가 줄줄이 끝난다. 주무 부처 장관은 유명무실했던 내부 임원추천위를 정비해 리더십과 업무 능력을 겸비한 최고의 전문가를 인선해야 한다. 낙하산 인사로 공공성을 훼손한 정부가 뒤늦게나마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바란다.
[매일경제]
7. 국정조사 청문회 기업총수 망신주기로 흘러선 안된다
6일 열리는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9개 그룹 총수가 증인으로 출석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총수들이 한꺼번에 청문회에 불려나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해외에서는 진풍경이라고 희화화해 보도할지도 모른다.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청문회는 종료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아마도 '하세월 대기'하는 총수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정몽구(79), 손경식 회장(77) 등은 고령에다 건강이 좋지 않아 구급차까지 대기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과정에 의혹이 있다면 해소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검찰 조사에서 '피해자'로 적시됐고 구체적인 혐의가 나오지 않은 기업 회장까지 증언대에 무더기로 세우는 것은 불합리하다. 국민연금의 그룹 합병 찬성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 총수 사면 문제가 걸린 CJ·한화, 면세점 대가성 의혹이 있는 롯데와 SK 등이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청문회라는 산을 넘어도 특검이 대통령의 제3자 뇌물죄 입증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연결 고리가 되는 기업 총수들은 다시 불려가게 될 가능성도 높다.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정치인들이 의혹 규명보다 총수들을 망신 주거나 호통치면서 청문회를 자신들의 쇼맨십 발휘 자리로 만들 가능성이다. 과거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구태가 반복되지 않았던가. 자칫 말실수로 꼬투리를 잡히면 존경받는 기업인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추락할 수도 있어 재계의 불안은 크다. 그러다 보니 각 기업 총수들이 예상 질문에 답변을 해보는 '리허설'이 한창이라고 한다. 연말 인사를 단행하고 내년 투자계획을 세워야 할 시기에 기업들이 청문회 도상훈련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니 실로 답답한 노릇이다.
TV로 생중계되는 청문회는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에 엄청난 리스크다. 기업 총수가 정치인들에게 공격받고 훈계받는 장면이 해외로 나갈 경우 해당 기업의 신인도와 브랜드 이미지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기업 총수들의 청문회 출석에 대해 최근 "이는 경제 심리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진상 규명이지, 기업 총수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게 아니다. 면박 주기 청문회는 국익 훼손과 경제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위 위원들은 국정 혼란 속에서도 경제가 돌아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경향신문]
8. 2년7개월 만에 청와대 앞 집회 연 세월호 유족의 눈물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100m 앞까지 다가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세월호 사건 진실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구호도 외쳤다. 지난 3일 열린 6차 촛불집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가족들의 청와대 앞 시위는 사건 발생 이후 처음이다. 이날 전국에서 촛불을 든 230만 시민이 유가족들의 든든한 원군이었다.
전명선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그동안 한번도 못 온 곳인데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가족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에 답변 한번도 없다. 그에 대한 사과, 꼭 받아내겠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그동안 박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며 광화문 일대에서 수백일간 농성을 하고 집회를 열었지만 경찰에 가로막혔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 무성의와 외면으로 일관했다. 박 대통령은 참사 당시 진도 팽목항을 찾아가 유가족들 앞에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해내겠다며 눈물을 흘렸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유가족이 원하면 언제든지 면담을 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말뿐이었다. 사건 발생 한 달 뒤인 2014년 5월16일 유가족 대표와의 면담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후로는 오히려 유가족들을 사회적으로 따돌림하는 일에 골몰했고 세월호특별법과 특별조사위원회도 무력하게 만들었다. 유가족들의 마지막 바람이라 할 수 있는 세월호 선체 인양은 언제 이뤄질지 기약도 없다.
세월호 사건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불가분의 관계다. 게이트 정점에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의혹이 있다. 전 국민이 TV 생중계로 배가 가라앉는 장면을 보고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출근도 않고 숙소인 관저에서 시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참모들도 공범이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이 짧게는 3분, 평균 20분 간격으로 쉼없이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그랬다는 박 대통령은 7시간 만에 나타나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하는 뚱딴지같은 말을 했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첩을 보면 김 전 실장은 ‘대리기사 폭행’ 건에 검찰의 엄정 수사를 주문하는 등 유가족과 야당 의원을 범죄자로 내몰아 상황의 반전을 꾀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박 대통령의 7시간 의혹도 수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판단이다. 유가족들의 한과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해소하지 못하는 수사는 의미가 없다.
[서울신문]
9. 산은·수은 자금지원 축소, 정책금융 한계 보여줬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정책자금 규모가 내년에 줄어들 모양이다. 4일 서울경제신문에 따르면 산은과 수은의 내년 자금 지원액은 각각 57조원과 67조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보다 각각 4조원과 8조원 줄어든 것으로 이로써 양대 정책금융기관 자금 공급 규모는 2년 연속 감소하게 됐다. 자금 지원에 나서려 해도 원하는 기업이 없었던 탓이 컸다. 조선·해양 등 주력 산업의 침체와 경기 부진으로 지원을 받아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정책자금의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다. 경제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하던 예전과는 한참 동떨어진 모양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추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경제에 온기가 돌아야 기업 자금 수요가 늘어날 텐데 현실은 영 딴판이다. 안으로는 정국혼란·대선 등에 따른 정치 불확실성과 내수 부진이 걸림돌이고 밖으로는 보호무역주의라는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2%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게다가 정책자금의 주요 수요처인 제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낮아지는 반면 서비스와 정보기술(IT), 바이오 산업 등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산업 지형이 바뀌는데 정책금융은 제자리니 약발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책금융의 한계가 명확하다면 지원의 기본 틀을 바꿔야 한다. 먼저 정책자금 지원 대상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전통 제조업에서 서비스·혁신 산업으로 이동한 만큼 정책자금의 무게중심도 이에 걸맞게 변화해야 한다. 지원 방식도 자금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과 혁신문화 도입 등 기업의 체질 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중소기업 지원의 경우 필요하다면 벤처캐피털과 연계하는 것도 검토해봄 직하다. 기업에 지원금만 주고 내 할 일 끝났다는 식의 사고를 버리지 않고서는 정책자금의 딜레마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국민일보]
10. 중국 사드 보복, 경제적 피해 대응책 시급하다
우리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보복이 최근 극심해지고 있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대놓고 제재하고 있다. 이미 한국행 유커(관광객) 20% 축소를 지시한 데 이어 한국 드라마 등 프로그램 방영과 한국 연예인의 광고 출연 금지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지난달 말부터 롯데그룹의 중국 매장과 사업장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소방점검과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 롯데가 경북 성주골프장을 사드 배치 부지로 제공한 데 따른 보복 성격이 짙다. 이외에도 자동차,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원료 분야의 한국 기업을 견제하는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 식품과 화장품에 대해서는 통관 거부 등의 방식으로 실질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
중국의 대응이 이처럼 전방위적으로 단행되면서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확산되고 있다. 중국은 우리 수출의 26.1%, 수입의 20.7%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다. 대중 무역흑자는 연간 600억 달러에 이른다. 그만큼 한국 경제에는 치명적이다.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대안 모색이 극히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나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우리의 입장을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설명해야겠다.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서 북한 핵의 위험성만 강조했지 중국의 우려는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스포츠, 예술 등 비경제 분야의 민간 교류를 확대하는 노력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지나치게 부당한 조치라고 생각되면 당당하게 항의하는 한편 사안에 따라서는 국제기구에 제소하는 방안 등도 배제하지 않아야겠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고 시장 다변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크리스티안 짐머만 | 폴란드 출신 완벽연주 ‘현대의 쇼팽’
폴란드 출신 크리스티안 짐머만(KrystianZimerman, 1956년~)은 1975년 제9회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불과 19세의 나이로 우승하면서 세계 피아노 음악계에 등장했다. 할리나 체르니 스테판스카, 아담 하라시에비치에 이어 3번째로 쇼팽의 조국 폴란드 출신 우승자였다. 폴란드 피아니스트라는 것은 세계 음악계에서 ‘쇼팽의 직계’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짐머만은 쇼팽 음악에 있어서 최고의 해설자로 꼽히는 데다가 수려한 외모까지 생전의 쇼팽을 연상시켜 ‘현대의 쇼팽’으로 불리는 피아니스트다.
짐머만은 한국과 지난해 유난히 친밀해졌다. 한국의 첫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 때문이다. 지난해 열린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한국 음악팬에겐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선에 오른 조성진 때문. 조성진의 결선 연주가 끝나자마자 심사위원 크리스티안 짐머만은 당시 현장에 있던 정경화에게 문자를 이렇게 보냈다.
“대체 이 친구가 누구야? 금메달이네!(This isgold!).”
이후 짐머만은 조성진을 알아본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한국인에게 각인됐다. 정경화와 짐머만은 절친한 사이다. 둘 다 최고의 연주자며 또 완벽주의자.
그런데 짐머만이 좀 더 심하긴 한 것 같다. 일화가 있다.
레스피기 바이올린 소나타를 녹음하던 당시 짐머만이 완벽한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피아노의 위치를 10번이나 넘게 바꾸는 바람에 정경화도 두 손 두 발 들었다는 것.
짐머만은 완성도 높은 연주를 위해 연간 연주 횟수를 50회 이내로 제한하는 엄격한 자기 관리를 하고 있다. 50회 연주도 실내악단과 마스터 클래스(Master Classes)를 모두 합친 것이다. 또한 자신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직접 갖고 다니며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다. 짐머만은 이에 더해 화물차에 피아노를 싣고 직접 운전하기도 하고, 분해된 피아노를 조립·조율까지 손수 해내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다.
그러다 보니 비극적인 일도 있었다. 미국 카네기홀 연주를 위해 JFK공항에 입국했던 짐머만은 그의 피아노에서 화학물질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미 교통안전청 TSA로부터 피아노가 파괴되는 끔찍한 일을 당한다. 피아노에 쓰인 접착제가 냄새 원인으로 판명됐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 이후 짐머만은 피아노를 분해해 갖고 다니면서 직접 조립과 조율을 했다.
음반 녹음 또한 완벽주의 때문에 짐머만은 잘 안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의 ‘은둔형 피아니스트 미켈란젤리’와 맞먹는 급. 음반을 내기로 마음먹으면 최대 8년이나 걸릴 정도로 완벽을 추구한 후 내놓는 탓에 그의 음반은 불세출의 명반으로 자리 잡았다.
피아니스트와 음악팬들은 그의 연주와 음반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 선명한 터치와 적절한 페달 사용으로 감각적인 음향과 완벽한 기술의 조화를 이루는 짐머만의 연주 모습은 피아니스트에겐 교본처럼 통한다. 쇼팽도 그가 ‘현대의 쇼팽’으로 불리는 것에 엄지를 척 들었을 것 같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편애도 범죄라니까
굳이 진화론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생물은 늘 환경에 맞도록 변화하고 달라져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무는 나무대로, 곤충은 곤충대로, 물고기는 물고기대로, 새는 새대로 좀 더 안전해지기 위하여, 그 나름 편안해지기 위하여, 나아가 험난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서서히 또 조금씩 몸을 바꾸어온 것이다. 보다 나은 유전자를 얻기 위하여 움직인다는 점은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종자 개량’을 해보겠다면서 큰 키나 마른 체형 혹은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이성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숱하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혈통의 개량 또한 엄연히 진화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태어남과 죽음이 반복되는 동안 취향과 기호라는 유전자가 대물림되었다. 사람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든 기울어지도록 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언제나 더 좋거나 더 싫은 것이 있어왔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바람직한 일이다. 더 좋은 것은 발전 혹은 확장시키고, 더 싫은 것은 극복 혹은 인내하면서,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해 나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감정이 사람에 대한 차별이라는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상황은 비극으로 길을 튼다. 특히 여러 명의 자녀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부모의 차별은 그럴듯하게 포장된 갖은 명분을 뒤집어쓰고 자행된다는 점에서 아주 그악한 범죄라 하겠다. 게다가 당하는 입장에서는 항거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고통도 밑천이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것은 진실이어서, 얼마간의 고통은 독감 백신처럼 사람의 면역력을 키운다. 그래서 차별 속에서도 꽤 건강한 아이가 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적정량을 초과했을 때 나타난다. 과한 백신은 사람을 실제로 환자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양이 과한지 아닌지는 각자의 신체가 증명한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같은 양의 비를 맞아도 유난히 녹이 잘 스는 물질이 존재하듯이, 감정에도 개별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니 편애에 대한 핑계로 드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겠느냐’는 식의 말은 명백한 위선이다. 모든 손가락을 동일하다고 간주하는 것부터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똑같은 압력을 가해 손가락을 입으로 물어뜯으면 어떤 손가락은 말짱하지만, 어떤 손가락은 멍이 들고, 어떤 손가락에서는 피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한쪽으로 쏠리는 마음을 멈추지 못하겠거든 가식이라도 부려야 할 것이다. 명배우도 울고 갈 만큼의 연기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쩌겠는가, 그렇게라도 해야지. 손가락 하나를 잘라 내버릴 작정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제발 편애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3. [서울신문][씨줄날줄] 전곡선사박물관/서동철 논설위원
경기 연천 전곡리는 한탄강이 한바탕 크게 휘돌아 나가며 만들어 놓은 땅의 넓은 터에 자리 잡고 있다. 낙동강이 감싸고 도는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풍광이 수려해 전곡의 한탄강은 일찍부터 유원지로 개발됐다. 지금도 강변은 오토캠프장으로 인기가 높다.
전곡은 구석기 문화에 얽힌 스토리가 많다. 유적 발견 과정부터가 드라마다. 전곡에서 멀지 않은 동두천에 주둔한 미군 2사단의 그레그 보웬 하사는 1978년 1월 어느 날 여자친구와 한탄강변을 산책하다 숯이 되어 버린 목재 조각을 발견한다.
인디애나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다 입대한 보웬은 여자친구를 달래 가며 한 시간 이상이나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고 한다. 혼자 일종의 지표조사를 한 것이다. 결국 그는 주먹도끼 3점, 가로날도끼 2점, 긁개 1점을 찾아냈다. 그는 프랑스 보르도대학의 구석기 고고학 권위자 프랑수아 보르드 교수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보르드 교수는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다면 의심할 것 없는 아슐리안 문화의 석기”라고 답장을 했다. 아프리카와 유럽에서만 쓰여진 것으로 여겨지던 주먹도끼가 전곡리에서 발견됐다는 것은 동아시아 구석기 문화도 같은 수준으로 발전해 있었음을 증명한다.
서울대 박물관을 중심으로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소, 각 대학 박물관이 대거 참여한 대규모 조사단은 1979년부터 1992년까지 모두 10차례 이상 발굴조사를 벌여 5000점 남짓한 구석기 유물을 찾아냈다. 전곡리 구석기 유물은 1981년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 선사·원사 고고학회에서 공식으로 인정을 받았다.
연천 전곡리 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된 것은 1979년으로 면적은 77만 8296㎡이다. 문화유산 보호 역사에 드물게 신속한 사적 지정 결정이 이루어졌고, 보호 면적 또한 매우 넓다. 발굴조사를 주도하면서 박물관 건립을 꿈꿨던 김원룡 서울대 고고학과 교수는 1993년 세상을 떠났다. 유언은 “시신을 화장해 전곡리 유적에 뿌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의 꿈은 2011년 전국선사박물관 개관으로 현실화됐다.
경기도 산하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전곡선사박물관의 올해 관람객은 17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교육적 효과가 큰 데다 흥미로운 콘텐츠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반드시 찾아야 하는 박물관으로 벌써부터 자리 잡았다. 전곡선사박물관은 분명 ‘경기 북부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럴수록 구석기 고고학 교과서를 다시 쓰게 만든 유적에 자리 잡은 박물관이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쉽다. 최근에는 도지사들의 ‘경기 문화 사랑’도 갈수록 식어 가고 있다. 전곡선사박물관 역시 ‘세계적인 선사 박물관’의 비전은커녕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 세계적으로 각광받을 몇 안 되는 경기 문화의 하나라는 사실을 모르는지 묻고 싶을 뿐이다.
4. [동아일보][표정훈의 호모부커스]독서 계획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맹세하여 시경, 서경, 예기, 춘추전을 차례로 3년 동안 습득하기로 하였다.’ 보물 제1411호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 새겨진 내용의 일부다. 신라 진흥왕 또는 진평왕 때 화랑으로 추정되는 두 젊은이가 학문을 닦아 나라를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했다. 3년 동안 경서 4종을 습득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임신서기석은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독서계획이자 독서문화유산이다.
어떤 책들을 어떤 순서로 얼마 동안 읽겠다는 게 독서계획의 기본이다. 주자(朱子·1130∼1200)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순으로 사서(四書)를 읽을 것을 강조했다. 성혼(成渾·1535∼1598)은 손아래 동서 강종경이 세상을 떠난 뒤 자신이 맡아 기른 강종경의 아들 강진승에게 권면하였다. “책을 읽을 때에는 엄밀히 과정(課程)을 정하여 익숙히 읽고 정밀하게 생각하며 간절하게 체득하라.”
미국의 작가이자 비평가 클리프턴 패디먼은 18∼81세 독자를 염두에 두고 ‘평생독서계획’(이종인 옮김)을 펴냈다. 패디먼은 고전 명저를 중심으로 저자 133명의 책을 소개, 논평하면서 독서와 삶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들을 읽는다는 것은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는 것, 자신의 경력을 쌓는 것, 가정을 꾸리는 것 등과 대등한 행위다. 이 책들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길동무이다.’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친 근대 중국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1873∼1929)는 청년들을 위한 독서계획으로 ‘독서분월과정(讀書分月課程)’을 만들었다(‘중국고전학입문’·이계주 옮김). 아침에는 유교 경서, 낮에는 사상, 저녁에는 역사, 밤에는 문학을 읽도록 짜인 빡빡한 계획이다. 량치차오는 서양 학문을 배우러 유학 떠날 학생들이 이를 통하여 중국의 전통 교양을 철저히 익히기를 바랐다.
‘평소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하여 새해 설계에 반드시 독서를 먼저 꼽아 놓고도 제대로 실천해본 적이 거의 없다.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책방에 가서 읽을 만한 책을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해서 읽으려는 의욕을 한층 북돋아 볼까 한다.’
1959년 1월 8일자 동아일보 독자투고란에서 한 주부가 밝힌 결심이다. 읽을 만한 책도 훨씬 더 많아지고 그런 책을 찾아내기도 무척 편리해진 요즘이다. 새해면 늦다. 바야흐로 한 해의 독서생활을 돌이켜보고 새로운 계획을 짤 때다.
5. [중앙일보][비즈 칼럼] 미래는 감성의 시대, 여성벤처에 길 있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가상현실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얼마 전 우린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AI의 논리적 문제 해결능력을 보았다. 이어 9월엔 소니 컴퓨터과학연구소의 인공지능이 두 곡의 음악을 작곡해 유튜브에 발표했다.
인간의 지적인 능력이나 노동력 심지어 예술적 창작력까지 위협받고 있다. 이 두려운 시대에 미래학자들은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핵심 키워드로 ‘여성’을 꼽고 있다. 상대방의 생각과 감성을 읽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고도의 지능을 가진 기계문명에 대응할 중요한 자산으로 생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1986년 월스트리트 저널은 여성이 고위직 승진에 있어 보이지 않는 사회 전반의 성적 차별을 지칭하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란 용어를 탄생시켰다. 30년이 지난 지금, 올해 발표된 유리천장 지수에서 대한민국은 100점 만점에 25점, OECD 조사국 29개국 중 29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것도 4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에 있어 대한민국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새로운 반란이 시작되고 있다. 젊고 유능한 여성 인재들이 기존 조직에 굳건하게 자리한 유리천장을 뚫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벤처 창업에 몰려들고 있다. 불과 10년 전인 2007년 여성벤처기업은 501개사로 전체 벤처기업의 3.5%에 지나지 않았으나 지난해 말 2566개사로, 8.2%의 의미 있는 신장을 이루었다. 음식·숙박, 도소매 분야에 60% 이상이 포진되고 있는 통상의 여성창업 모델에서, 제조업 70%, 정보처리·소프트웨어 12%라는 전문적이고 기술 중심형 분야로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우수 인재들의 벤처행 또한 올해 들어 눈에 띈다. 중소기업청의 ‘선도벤처연계 창업지원사업’ 여성신청자의 28.5%가 석·박사 인재들이고 매해 고학력자들의 참여는 가속화하고 있다.
여성벤처협회가 운영하고 있는 ‘1인 창조기업비즈니스센터’의 입주 CEO중 40%도 석·박사, 해외 대학 출신이다. 여성 스타트업의 경우 증가추세는 올 들어 눈부실 정도다. 여성벤처협회 내에 스타트업 모임인 청년미래위원회 경우, 20여 명으로 시작한 모임이 올 한 해를 보내며 이미 100명을 넘어섰다.
이제 기존의 추격형 경제 성장 모델은 한계에 부딪혔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벤처에 있다. 또한 기계문명의 시대를 제어할 유일한 힘인 감성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이런 시대적 변혁기에 감성·소통·공감 능력이 뛰어난 역량 있는 여성 인재들의 창업 도전을 독려하고 이들의 노력을 지원하는 환경 조성에 함께 힘을 모을 때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여성벤처인들의 창업 도전과 그들이 이루어 나갈 꿈의 결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견인할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이 와중에 ‘쪽지예산’ 잔치 벌인 여야 실세들
그제 국회 본회의에서 400조 5000억원에 달하는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됐다.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기면서 ‘슈퍼예산’ 시대가 열린 것이다. 씁쓸한 점은 심의 막판에 여야 실세를 포함한 국회의원들의 민원성 지역구 예산인 ‘쪽지예산’이 대거 편성됐다는 사실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따르면 증감액 심사 과정에서 내년 예산은 5조 1424억원 증액됐다. 이 중 수천억원이 의원들이 밀어넣은 쪽지예산일 것으로 추정된다. 수백만명의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는 와중에 정치인들은 자기 지역구 민원만 챙겼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올해는 이른바 ‘최순실 예산’이 최대 4000억원 가까이 삭감되면서 쪽지예산은 예년보다 더 늘었다. 삭감분이 지역구 민원 예산 증액분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순천대 체육관 리모델링과 순천만 보수공사, 하수도 개선공사 등에 18억원을 막판에 끼워 넣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공주박물관 수장고 건립, 지역구 내 도로 건설 예산 등에 18억원을 증액시켰다. 친박 실세인 최경환 의원은 경북 경산의 무선전력사업 연구예산 10억원, 장제원 의원은 부산 사상공단 재생예산 80억원을 챙겼다.
야당에서도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구 수성구 노후공단 재생사업 예산 60억원을, 같은 당 위성곤 의원이 서귀포 크루즈항 예산 40억원을 더 편성토록 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백지화됐던 전남해양수산과학원 목포지원 신축예산 10억원을 만들어 냈다. 최순실 사태로 예산이 대폭 깎인 교육문화위 예산은 상당 부분이 강릉원주대, 목포해양대 등 대학들로 흘러 들어갔다. 해당 지역구 의원들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쪽지예산은 의원들이 지역구 관련 예산을 쪽지로 해당 부처나 동료 의원에게 부탁하는 예산이다. 미국에서도 논란이 거세다. 부정청탁금지법(청탁금지법) 위반 소지도 있다. 지난달엔 기획재정부가 청탁금지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의원들은 지역구 사업이란 공익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정식 심의를 거치지 않은 졸속 편성한 예산이어서 낭비 요소가 크다. 게다가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이 올스톱 위기에 처해 있다. 내우외환으로 경제는 고사 직전이다. 한 푼이라도 아껴 꺼진 경제 동력을 살리는 데 써야 한다. 경제야 어찌 되든 자기 지역 민원만 챙기는 것은 국회의원의 도리가 아니다.
2. 특검, 법치 바로 세우겠다는 초심 잃지 않기를
지금 국민의 관심을 가장 뜨겁게 받는 사람은 박영수 특별검사일 것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을 파헤칠 박 특검은 임명된 즉시 “좌고우면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했다. 그 첫 일성을 국민들은 외우고 있다. 박 특검의 분명한 수사 방침에도 기대가 크다. 박근혜 대통령을 반드시 직접 대면조사하고, 박 대통령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한 검찰과 달리 뇌물죄를 밝히는 쪽으로 수사력을 모으겠다고 선언했다. 빠듯한 특검 수사 일정을 하루라도 앞당기겠다는 박 특검의 의지도 사뭇 결연해 보인다. 특검보가 임명되면 당장 수사팀을 가동하겠다고 하니 며칠 안에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될 듯하다.
특검의 성패는 박 대통령 대면 조사를 통한 뇌물수수 혐의 적용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한 진실 규명도 결코 이에 밀리지 않을 중대 쟁점이다. 박 특검은 국민이 가장 큰 의혹으로 제기하는 문제인 만큼 철저한 수사로 의혹을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당연한 일이다. 세월호 7시간은 단순히 박 대통령의 사생활 문제가 아니다.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한 비선 정치로 국민을 도탄에 빠트린, 참담한 실정(失政)의 문제다.
온 국민이 특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과 기대를 모아 주는 이유는 하나다. 검찰이 들추지 않았거나 못했던 의혹을 샅샅이 뒤져 실체적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 주길 바랄 뿐이다. 그런 맥락에서 검찰이 끝내 건드리지 않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국정 농단도 풀어야 할 숙제다. 박 대통령과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을 묵인한 의혹이 짙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마찬가지다. 파견 검사 선발 과정에서부터 ‘우병우 라인’을 철두철미하게 걸러 내 공평무사한 수사 결과물을 내놓아야만 할 것이다.
이 모든 국민적 요구를 충족시키기란 결코 쉬울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은 3차 대국민 담화에서 또 한번 자신의 혐의들을 전면 부인했다. 특검 성공의 전제 조건은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할 확고한 증거 확보다. 검찰 수사를 거부한 박 대통령이 만에 하나 또다시 조사를 회피한다면 강제 수사를 불사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번 특검 수사는 헌정 사상 열두 번째다. 주말마다 수백만명의 국민이 촛불로 진실 규명을 외치는 특검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전대미문의 이 부끄러운 국정 혼돈을 벗어나 국민 가슴에 평정을 되돌려 줄 특명을 특검이 짊어졌다. 그뿐인가. 만신창이로 허물어진 법치를 추슬러 세우는 시대적 사명도 특검의 몫이다.
[이데일리]
3. 박 대통령, 국가 미래가 걱정되지 않는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운명의 일주일’이 다가왔다. 야3당이 공동 발의한 탄핵소추안이 오는 9일 국회 표결을 앞둔 가운데 새누리당 비박계가 결성한 비상시국위원회도 어제 탄핵 가세 방침을 천명했다. ‘탄핵 정국’에서 주도권을 쥔 비박계가 당초 내세웠던 ‘내년 4월 퇴진’ 협상 카드를 철회한 채 ‘탄핵열차’에 동승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열차는 이미 종착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상태다.
지난주 제3차 대국민 담화로 국회에 떠넘긴 공을 다시 넘겨받은 박 대통령 앞에 놓인 선택지는 오직 탄핵과 퇴진 두 가지뿐이다.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에 관여했든, 아니면 본인 해명대로 주변 관리를 잘못한 탓이든 막중한 책임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또다시 변명이나 교묘한 술수로 판세 반전을 노렸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그제 청와대 앞 100m까지 다가가 ‘즉각 퇴진’을 외친 촛불 민심뿐만 아니라 사태의 추이를 근심어린 눈초리로 지켜보는 ‘말없는 다수’의 가혹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망각해선 안 된다.
정치권이 이미 정치를 포기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야권이 비박계의 반대를 묵살하고 세월호 사건까지 탄핵안에 포함시킨 것은 실제 탄핵 의사는 없이 보여주기식 정치쇼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좋고, 설령 부결돼도 책임을 비박계에 뒤집어씌우면 그만이다. 대한민국호(號)가 좌초하든 말든, 국민이 도탄에 빠지든 말든 저마다 정략적 이익을 극대화하기에 급급한 ‘소인배 정치’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국민이 박 대통령의 선택을 주시하는 것도 그래서다.
정치 입문 이후 단 한 번도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박 대통령으로선 억울할지도 모르겠으나 변명만 늘어놓는 대통령을 봐야 하는 국민의 고통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국정 붕괴와 경제 추락에 대한 경고가 나라 안팎에서 잇따르는데도 미적대기만 한다면 나라가 어찌 되겠는가. 지금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자마자 “전선은요?”라고 물으며 본인보다 나라 걱정을 앞세웠던 37년 전의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 국가의 앞날만 생각하고 이제라도 올바른 결단을 내리는 것만이 ‘정치인 박근혜’가 자신을 믿었던 국민에게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다. 조속한 결단을 기대한다.
[매일신문]
4. 연례화한 AI 피해, 이제 선제적 대응책 나와야
신종 AI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신종 H5N6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를 막기 위해 강력한 방역 조치를 취하고 있다지만 역부족이다. 지난 10월 첫 바이러스 검출 후 한 달여 만에 전국의 닭 오리농장 101곳이 감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살처분된 닭과 오리가 이미 300만 마리를 넘어섰다.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 능력에 구멍이 뚫렸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게 됐다.
3일 경북 영주의 한 닭 부화장이 AI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의 한 양계장에서 종란 10만8천 개를 반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종란이 반출된 양계장은 경기도 동물위생시험소 검사 결과 양성반응이 나온 곳이다. 옮겨 다녀서는 안 될 AI 발생 농장의 종란이 도 경계를 넘나든 것이다. 뒤늦게 이를 안 경북도는 해당 부화장에 대해 폐쇄 조치를 취하고 반입한 종란을 폐기했다지만 자칫 경북도의 AI 청정 지역 지위가 흔들릴 뻔했다.
AI는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발생 일수도 길어지고 발생 시군도 확대되고 있다. 겨울철이 아닌 여름철에 발생한 사례도 나왔다. 2014년 발생한 H5N8형은 거의 2년 동안 간헐적으로 발병하며 축산 농가를 울렸다. 이번 H5N6형 AI 역시 피해 정도나 확산 속도로 미뤄 지난 피해를 능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정부는 AI가 확산되자 철새를 탓하고 있다. AI 이동 경로가 철새 이동 경로란 점을 강조하고, H5N6 바이러스가 신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발생 농가 가금류 살처분과 주변 소독, 차량 이동 제한 등 조치를 취하는 것이 고작이다.
AI 피해가 해마다 발생한다면 정부는 선제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존 발생 지역 따라다니기식 대응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AI 바이러스에 대한 감시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조기 경보를 위해 철새 이동 경로에 있는 나라에 가서 연구하고 협력해야 한다. AI 진단과 처방에 걸리는 시간도 최대한 당겨야 한다. 일단 발생하면 즉각 과감한 살처분과 철저한 이동 제한 조치는 기본이다. 사후 조치식 당국 대응은 늦을뿐더러 피해 방지에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5. 시민 성원과 시장 화합이 서문시장 재건의 첫걸음
서문시장 화재로 인해 지역 서민 경제에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빠른 시장 정상화를 위한 노력과 시장 구성원들의 화합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아직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이번 화재 피해 규모가 1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당장 직격탄을 맞은 시장 상인들뿐 아니라 거래 도소매업 등 지역 경기 위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지역 경기 침체의 우려를 뛰어넘고 위기 극복에 힘을 모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우선 백화점 등 지역 유통가는 최대 성수기인 연말임에도 어려움을 함께한다는 취지로 조용한 연말 분위기 조성을 다짐했다. 같은 어려운 처지이지만 서문시장 야시장 상인들도 당분간 영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는 물론 지역 기관단체 지원과 성원도 본격화하고 있다. 국민안전처는 2일 재난안전 특별교부세 35억원을 대구시에 긴급 지원했다. 원인 조사가 끝나는 대로 4지구 건물 철거 등 앞으로 시장 재건을 위한 계획이 속속 구체화될 전망이다. 여기에 시장 부활을 위한 지역 기업과 금융권, 종교계 등 각급 기관단체들이 앞다퉈 성금 모금과 지원을 약속하며 큰 힘을 보태고 있다. 그만큼 서문시장의 빠른 정상화를 바라는 시민의 희망과 기대가 높다는 말이다.
이런 성원에 힘입어 시장 구성원들도 하루빨리 충격에서 벗어나 재활의 용기를 내야 한다. 빠른 복구를 통해 서문시장 본래의 활기찬 모습을 되찾는 것은 두말이 필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시장 구성원이 시장 재건에 한마음이 되는 일이다. 상인들이 화합하고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야말로 시장 정상화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만약 시장에 생계를 걸고 함께 땀을 쏟아온 상인들이 반목하고 분열한다면 재건은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화재를 지켜본 대구 시민의 낙심과 좌절감 또한 상인들 못지않게 크다. 따라서 상인들은 자신의 터전을 본래의 활기찬 모습으로 되돌려놓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250만 시민의 협력과 성원도 커지기 마련이다. 불행한 사고는 이제 접어두고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시장 복구에 총력을 모아야 할 때다.
[동아일보]
6. 임박한 공공기관 인사, 이제는 낙하산 접어라
1일 마감된 한국예탁결제원 신임 사장 공모에 후보 7명이 지원했다. 유재훈 전 사장이 지난달 2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으로 자리를 옮긴 지 1개월 만이다. 기술보증기금도 차기 이사장 선정을 위한 공모 신청을 1일부터 20일까지 받는다. 은행권에선 기업 우리 하나 신한은행 등 은행장과 신한금융 농협금융 등 금융지주사 회장 인선 작업이 이달부터 내년 3월경까지 이어진다.
정부는 공공금융기관과 민간은행을 가리지 않고 인사에 개입해 낙하산을 내려보내 왔다. 최근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가 드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권위를 잃으면서 친박(친박근혜)계 등 특정 인사를 점찍기는 어려울 것이다. 각 기관의 임원추천위원회를 거쳐 주무 부처 장관이 최종 후보를 정하는 규정된 절차에 따라 인선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정상적 낙하산 인사가 제자리를 찾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최근 금융기관장 하마평에 관피아가 많이 거론되는 것은 친박계 낙하산이 내려가기 어렵게 된 틈을 관료집단이 비집고 들어오려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질서 있는 퇴진’을 명분으로 내년 4월까지 임기를 보장받을 경우 국가인권위원회, 경찰청, 국민대통합위원회 인사에 이어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달에만 한국마사회(4일), 한국도로공사(9일), 한국언론진흥재단(25일) 등 비금융 분야 공공기관장의 임기가 줄줄이 끝난다. 주무 부처 장관은 유명무실했던 내부 임원추천위를 정비해 리더십과 업무 능력을 겸비한 최고의 전문가를 인선해야 한다. 낙하산 인사로 공공성을 훼손한 정부가 뒤늦게나마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바란다.
[매일경제]
7. 국정조사 청문회 기업총수 망신주기로 흘러선 안된다
6일 열리는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9개 그룹 총수가 증인으로 출석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총수들이 한꺼번에 청문회에 불려나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해외에서는 진풍경이라고 희화화해 보도할지도 모른다.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청문회는 종료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아마도 '하세월 대기'하는 총수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정몽구(79), 손경식 회장(77) 등은 고령에다 건강이 좋지 않아 구급차까지 대기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과정에 의혹이 있다면 해소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검찰 조사에서 '피해자'로 적시됐고 구체적인 혐의가 나오지 않은 기업 회장까지 증언대에 무더기로 세우는 것은 불합리하다. 국민연금의 그룹 합병 찬성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 총수 사면 문제가 걸린 CJ·한화, 면세점 대가성 의혹이 있는 롯데와 SK 등이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청문회라는 산을 넘어도 특검이 대통령의 제3자 뇌물죄 입증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연결 고리가 되는 기업 총수들은 다시 불려가게 될 가능성도 높다.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정치인들이 의혹 규명보다 총수들을 망신 주거나 호통치면서 청문회를 자신들의 쇼맨십 발휘 자리로 만들 가능성이다. 과거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구태가 반복되지 않았던가. 자칫 말실수로 꼬투리를 잡히면 존경받는 기업인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추락할 수도 있어 재계의 불안은 크다. 그러다 보니 각 기업 총수들이 예상 질문에 답변을 해보는 '리허설'이 한창이라고 한다. 연말 인사를 단행하고 내년 투자계획을 세워야 할 시기에 기업들이 청문회 도상훈련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니 실로 답답한 노릇이다.
TV로 생중계되는 청문회는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에 엄청난 리스크다. 기업 총수가 정치인들에게 공격받고 훈계받는 장면이 해외로 나갈 경우 해당 기업의 신인도와 브랜드 이미지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기업 총수들의 청문회 출석에 대해 최근 "이는 경제 심리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진상 규명이지, 기업 총수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게 아니다. 면박 주기 청문회는 국익 훼손과 경제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위 위원들은 국정 혼란 속에서도 경제가 돌아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경향신문]
8. 2년7개월 만에 청와대 앞 집회 연 세월호 유족의 눈물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100m 앞까지 다가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세월호 사건 진실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구호도 외쳤다. 지난 3일 열린 6차 촛불집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가족들의 청와대 앞 시위는 사건 발생 이후 처음이다. 이날 전국에서 촛불을 든 230만 시민이 유가족들의 든든한 원군이었다.
전명선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그동안 한번도 못 온 곳인데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가족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에 답변 한번도 없다. 그에 대한 사과, 꼭 받아내겠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그동안 박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며 광화문 일대에서 수백일간 농성을 하고 집회를 열었지만 경찰에 가로막혔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 무성의와 외면으로 일관했다. 박 대통령은 참사 당시 진도 팽목항을 찾아가 유가족들 앞에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해내겠다며 눈물을 흘렸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유가족이 원하면 언제든지 면담을 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말뿐이었다. 사건 발생 한 달 뒤인 2014년 5월16일 유가족 대표와의 면담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후로는 오히려 유가족들을 사회적으로 따돌림하는 일에 골몰했고 세월호특별법과 특별조사위원회도 무력하게 만들었다. 유가족들의 마지막 바람이라 할 수 있는 세월호 선체 인양은 언제 이뤄질지 기약도 없다.
세월호 사건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불가분의 관계다. 게이트 정점에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의혹이 있다. 전 국민이 TV 생중계로 배가 가라앉는 장면을 보고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출근도 않고 숙소인 관저에서 시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참모들도 공범이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이 짧게는 3분, 평균 20분 간격으로 쉼없이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그랬다는 박 대통령은 7시간 만에 나타나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하는 뚱딴지같은 말을 했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첩을 보면 김 전 실장은 ‘대리기사 폭행’ 건에 검찰의 엄정 수사를 주문하는 등 유가족과 야당 의원을 범죄자로 내몰아 상황의 반전을 꾀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박 대통령의 7시간 의혹도 수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판단이다. 유가족들의 한과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해소하지 못하는 수사는 의미가 없다.
[서울신문]
9. 산은·수은 자금지원 축소, 정책금융 한계 보여줬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정책자금 규모가 내년에 줄어들 모양이다. 4일 서울경제신문에 따르면 산은과 수은의 내년 자금 지원액은 각각 57조원과 67조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보다 각각 4조원과 8조원 줄어든 것으로 이로써 양대 정책금융기관 자금 공급 규모는 2년 연속 감소하게 됐다. 자금 지원에 나서려 해도 원하는 기업이 없었던 탓이 컸다. 조선·해양 등 주력 산업의 침체와 경기 부진으로 지원을 받아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정책자금의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다. 경제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하던 예전과는 한참 동떨어진 모양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추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경제에 온기가 돌아야 기업 자금 수요가 늘어날 텐데 현실은 영 딴판이다. 안으로는 정국혼란·대선 등에 따른 정치 불확실성과 내수 부진이 걸림돌이고 밖으로는 보호무역주의라는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2%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게다가 정책자금의 주요 수요처인 제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낮아지는 반면 서비스와 정보기술(IT), 바이오 산업 등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산업 지형이 바뀌는데 정책금융은 제자리니 약발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책금융의 한계가 명확하다면 지원의 기본 틀을 바꿔야 한다. 먼저 정책자금 지원 대상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전통 제조업에서 서비스·혁신 산업으로 이동한 만큼 정책자금의 무게중심도 이에 걸맞게 변화해야 한다. 지원 방식도 자금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과 혁신문화 도입 등 기업의 체질 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중소기업 지원의 경우 필요하다면 벤처캐피털과 연계하는 것도 검토해봄 직하다. 기업에 지원금만 주고 내 할 일 끝났다는 식의 사고를 버리지 않고서는 정책자금의 딜레마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국민일보]
10. 중국 사드 보복, 경제적 피해 대응책 시급하다
우리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보복이 최근 극심해지고 있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대놓고 제재하고 있다. 이미 한국행 유커(관광객) 20% 축소를 지시한 데 이어 한국 드라마 등 프로그램 방영과 한국 연예인의 광고 출연 금지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지난달 말부터 롯데그룹의 중국 매장과 사업장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소방점검과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 롯데가 경북 성주골프장을 사드 배치 부지로 제공한 데 따른 보복 성격이 짙다. 이외에도 자동차,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원료 분야의 한국 기업을 견제하는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 식품과 화장품에 대해서는 통관 거부 등의 방식으로 실질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
중국의 대응이 이처럼 전방위적으로 단행되면서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확산되고 있다. 중국은 우리 수출의 26.1%, 수입의 20.7%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다. 대중 무역흑자는 연간 600억 달러에 이른다. 그만큼 한국 경제에는 치명적이다.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대안 모색이 극히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나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우리의 입장을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설명해야겠다.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서 북한 핵의 위험성만 강조했지 중국의 우려는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스포츠, 예술 등 비경제 분야의 민간 교류를 확대하는 노력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지나치게 부당한 조치라고 생각되면 당당하게 항의하는 한편 사안에 따라서는 국제기구에 제소하는 방안 등도 배제하지 않아야겠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고 시장 다변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크리스티안 짐머만 | 폴란드 출신 완벽연주 ‘현대의 쇼팽’
폴란드 출신 크리스티안 짐머만(KrystianZimerman, 1956년~)은 1975년 제9회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불과 19세의 나이로 우승하면서 세계 피아노 음악계에 등장했다. 할리나 체르니 스테판스카, 아담 하라시에비치에 이어 3번째로 쇼팽의 조국 폴란드 출신 우승자였다. 폴란드 피아니스트라는 것은 세계 음악계에서 ‘쇼팽의 직계’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짐머만은 쇼팽 음악에 있어서 최고의 해설자로 꼽히는 데다가 수려한 외모까지 생전의 쇼팽을 연상시켜 ‘현대의 쇼팽’으로 불리는 피아니스트다.
짐머만은 한국과 지난해 유난히 친밀해졌다. 한국의 첫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 때문이다. 지난해 열린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한국 음악팬에겐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선에 오른 조성진 때문. 조성진의 결선 연주가 끝나자마자 심사위원 크리스티안 짐머만은 당시 현장에 있던 정경화에게 문자를 이렇게 보냈다.
“대체 이 친구가 누구야? 금메달이네!(This isgold!).”
이후 짐머만은 조성진을 알아본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한국인에게 각인됐다. 정경화와 짐머만은 절친한 사이다. 둘 다 최고의 연주자며 또 완벽주의자.
그런데 짐머만이 좀 더 심하긴 한 것 같다. 일화가 있다.
레스피기 바이올린 소나타를 녹음하던 당시 짐머만이 완벽한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피아노의 위치를 10번이나 넘게 바꾸는 바람에 정경화도 두 손 두 발 들었다는 것.
짐머만은 완성도 높은 연주를 위해 연간 연주 횟수를 50회 이내로 제한하는 엄격한 자기 관리를 하고 있다. 50회 연주도 실내악단과 마스터 클래스(Master Classes)를 모두 합친 것이다. 또한 자신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직접 갖고 다니며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다. 짐머만은 이에 더해 화물차에 피아노를 싣고 직접 운전하기도 하고, 분해된 피아노를 조립·조율까지 손수 해내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다.
그러다 보니 비극적인 일도 있었다. 미국 카네기홀 연주를 위해 JFK공항에 입국했던 짐머만은 그의 피아노에서 화학물질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미 교통안전청 TSA로부터 피아노가 파괴되는 끔찍한 일을 당한다. 피아노에 쓰인 접착제가 냄새 원인으로 판명됐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 이후 짐머만은 피아노를 분해해 갖고 다니면서 직접 조립과 조율을 했다.
음반 녹음 또한 완벽주의 때문에 짐머만은 잘 안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의 ‘은둔형 피아니스트 미켈란젤리’와 맞먹는 급. 음반을 내기로 마음먹으면 최대 8년이나 걸릴 정도로 완벽을 추구한 후 내놓는 탓에 그의 음반은 불세출의 명반으로 자리 잡았다.
피아니스트와 음악팬들은 그의 연주와 음반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 선명한 터치와 적절한 페달 사용으로 감각적인 음향과 완벽한 기술의 조화를 이루는 짐머만의 연주 모습은 피아니스트에겐 교본처럼 통한다. 쇼팽도 그가 ‘현대의 쇼팽’으로 불리는 것에 엄지를 척 들었을 것 같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편애도 범죄라니까
굳이 진화론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생물은 늘 환경에 맞도록 변화하고 달라져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무는 나무대로, 곤충은 곤충대로, 물고기는 물고기대로, 새는 새대로 좀 더 안전해지기 위하여, 그 나름 편안해지기 위하여, 나아가 험난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서서히 또 조금씩 몸을 바꾸어온 것이다. 보다 나은 유전자를 얻기 위하여 움직인다는 점은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종자 개량’을 해보겠다면서 큰 키나 마른 체형 혹은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이성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숱하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혈통의 개량 또한 엄연히 진화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태어남과 죽음이 반복되는 동안 취향과 기호라는 유전자가 대물림되었다. 사람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든 기울어지도록 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언제나 더 좋거나 더 싫은 것이 있어왔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바람직한 일이다. 더 좋은 것은 발전 혹은 확장시키고, 더 싫은 것은 극복 혹은 인내하면서,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해 나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감정이 사람에 대한 차별이라는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상황은 비극으로 길을 튼다. 특히 여러 명의 자녀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부모의 차별은 그럴듯하게 포장된 갖은 명분을 뒤집어쓰고 자행된다는 점에서 아주 그악한 범죄라 하겠다. 게다가 당하는 입장에서는 항거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고통도 밑천이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것은 진실이어서, 얼마간의 고통은 독감 백신처럼 사람의 면역력을 키운다. 그래서 차별 속에서도 꽤 건강한 아이가 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적정량을 초과했을 때 나타난다. 과한 백신은 사람을 실제로 환자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양이 과한지 아닌지는 각자의 신체가 증명한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같은 양의 비를 맞아도 유난히 녹이 잘 스는 물질이 존재하듯이, 감정에도 개별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니 편애에 대한 핑계로 드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겠느냐’는 식의 말은 명백한 위선이다. 모든 손가락을 동일하다고 간주하는 것부터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똑같은 압력을 가해 손가락을 입으로 물어뜯으면 어떤 손가락은 말짱하지만, 어떤 손가락은 멍이 들고, 어떤 손가락에서는 피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한쪽으로 쏠리는 마음을 멈추지 못하겠거든 가식이라도 부려야 할 것이다. 명배우도 울고 갈 만큼의 연기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쩌겠는가, 그렇게라도 해야지. 손가락 하나를 잘라 내버릴 작정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제발 편애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3. [서울신문][씨줄날줄] 전곡선사박물관/서동철 논설위원
경기 연천 전곡리는 한탄강이 한바탕 크게 휘돌아 나가며 만들어 놓은 땅의 넓은 터에 자리 잡고 있다. 낙동강이 감싸고 도는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풍광이 수려해 전곡의 한탄강은 일찍부터 유원지로 개발됐다. 지금도 강변은 오토캠프장으로 인기가 높다.
전곡은 구석기 문화에 얽힌 스토리가 많다. 유적 발견 과정부터가 드라마다. 전곡에서 멀지 않은 동두천에 주둔한 미군 2사단의 그레그 보웬 하사는 1978년 1월 어느 날 여자친구와 한탄강변을 산책하다 숯이 되어 버린 목재 조각을 발견한다.
인디애나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다 입대한 보웬은 여자친구를 달래 가며 한 시간 이상이나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고 한다. 혼자 일종의 지표조사를 한 것이다. 결국 그는 주먹도끼 3점, 가로날도끼 2점, 긁개 1점을 찾아냈다. 그는 프랑스 보르도대학의 구석기 고고학 권위자 프랑수아 보르드 교수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보르드 교수는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다면 의심할 것 없는 아슐리안 문화의 석기”라고 답장을 했다. 아프리카와 유럽에서만 쓰여진 것으로 여겨지던 주먹도끼가 전곡리에서 발견됐다는 것은 동아시아 구석기 문화도 같은 수준으로 발전해 있었음을 증명한다.
서울대 박물관을 중심으로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소, 각 대학 박물관이 대거 참여한 대규모 조사단은 1979년부터 1992년까지 모두 10차례 이상 발굴조사를 벌여 5000점 남짓한 구석기 유물을 찾아냈다. 전곡리 구석기 유물은 1981년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 선사·원사 고고학회에서 공식으로 인정을 받았다.
연천 전곡리 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된 것은 1979년으로 면적은 77만 8296㎡이다. 문화유산 보호 역사에 드물게 신속한 사적 지정 결정이 이루어졌고, 보호 면적 또한 매우 넓다. 발굴조사를 주도하면서 박물관 건립을 꿈꿨던 김원룡 서울대 고고학과 교수는 1993년 세상을 떠났다. 유언은 “시신을 화장해 전곡리 유적에 뿌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의 꿈은 2011년 전국선사박물관 개관으로 현실화됐다.
경기도 산하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전곡선사박물관의 올해 관람객은 17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교육적 효과가 큰 데다 흥미로운 콘텐츠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반드시 찾아야 하는 박물관으로 벌써부터 자리 잡았다. 전곡선사박물관은 분명 ‘경기 북부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럴수록 구석기 고고학 교과서를 다시 쓰게 만든 유적에 자리 잡은 박물관이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쉽다. 최근에는 도지사들의 ‘경기 문화 사랑’도 갈수록 식어 가고 있다. 전곡선사박물관 역시 ‘세계적인 선사 박물관’의 비전은커녕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 세계적으로 각광받을 몇 안 되는 경기 문화의 하나라는 사실을 모르는지 묻고 싶을 뿐이다.
4. [동아일보][표정훈의 호모부커스]독서 계획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맹세하여 시경, 서경, 예기, 춘추전을 차례로 3년 동안 습득하기로 하였다.’ 보물 제1411호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 새겨진 내용의 일부다. 신라 진흥왕 또는 진평왕 때 화랑으로 추정되는 두 젊은이가 학문을 닦아 나라를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했다. 3년 동안 경서 4종을 습득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임신서기석은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독서계획이자 독서문화유산이다.
어떤 책들을 어떤 순서로 얼마 동안 읽겠다는 게 독서계획의 기본이다. 주자(朱子·1130∼1200)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순으로 사서(四書)를 읽을 것을 강조했다. 성혼(成渾·1535∼1598)은 손아래 동서 강종경이 세상을 떠난 뒤 자신이 맡아 기른 강종경의 아들 강진승에게 권면하였다. “책을 읽을 때에는 엄밀히 과정(課程)을 정하여 익숙히 읽고 정밀하게 생각하며 간절하게 체득하라.”
미국의 작가이자 비평가 클리프턴 패디먼은 18∼81세 독자를 염두에 두고 ‘평생독서계획’(이종인 옮김)을 펴냈다. 패디먼은 고전 명저를 중심으로 저자 133명의 책을 소개, 논평하면서 독서와 삶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들을 읽는다는 것은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는 것, 자신의 경력을 쌓는 것, 가정을 꾸리는 것 등과 대등한 행위다. 이 책들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길동무이다.’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친 근대 중국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1873∼1929)는 청년들을 위한 독서계획으로 ‘독서분월과정(讀書分月課程)’을 만들었다(‘중국고전학입문’·이계주 옮김). 아침에는 유교 경서, 낮에는 사상, 저녁에는 역사, 밤에는 문학을 읽도록 짜인 빡빡한 계획이다. 량치차오는 서양 학문을 배우러 유학 떠날 학생들이 이를 통하여 중국의 전통 교양을 철저히 익히기를 바랐다.
‘평소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하여 새해 설계에 반드시 독서를 먼저 꼽아 놓고도 제대로 실천해본 적이 거의 없다.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책방에 가서 읽을 만한 책을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해서 읽으려는 의욕을 한층 북돋아 볼까 한다.’
1959년 1월 8일자 동아일보 독자투고란에서 한 주부가 밝힌 결심이다. 읽을 만한 책도 훨씬 더 많아지고 그런 책을 찾아내기도 무척 편리해진 요즘이다. 새해면 늦다. 바야흐로 한 해의 독서생활을 돌이켜보고 새로운 계획을 짤 때다.
5. [중앙일보][비즈 칼럼] 미래는 감성의 시대, 여성벤처에 길 있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가상현실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얼마 전 우린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AI의 논리적 문제 해결능력을 보았다. 이어 9월엔 소니 컴퓨터과학연구소의 인공지능이 두 곡의 음악을 작곡해 유튜브에 발표했다.
인간의 지적인 능력이나 노동력 심지어 예술적 창작력까지 위협받고 있다. 이 두려운 시대에 미래학자들은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핵심 키워드로 ‘여성’을 꼽고 있다. 상대방의 생각과 감성을 읽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고도의 지능을 가진 기계문명에 대응할 중요한 자산으로 생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1986년 월스트리트 저널은 여성이 고위직 승진에 있어 보이지 않는 사회 전반의 성적 차별을 지칭하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란 용어를 탄생시켰다. 30년이 지난 지금, 올해 발표된 유리천장 지수에서 대한민국은 100점 만점에 25점, OECD 조사국 29개국 중 29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것도 4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에 있어 대한민국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새로운 반란이 시작되고 있다. 젊고 유능한 여성 인재들이 기존 조직에 굳건하게 자리한 유리천장을 뚫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벤처 창업에 몰려들고 있다. 불과 10년 전인 2007년 여성벤처기업은 501개사로 전체 벤처기업의 3.5%에 지나지 않았으나 지난해 말 2566개사로, 8.2%의 의미 있는 신장을 이루었다. 음식·숙박, 도소매 분야에 60% 이상이 포진되고 있는 통상의 여성창업 모델에서, 제조업 70%, 정보처리·소프트웨어 12%라는 전문적이고 기술 중심형 분야로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우수 인재들의 벤처행 또한 올해 들어 눈에 띈다. 중소기업청의 ‘선도벤처연계 창업지원사업’ 여성신청자의 28.5%가 석·박사 인재들이고 매해 고학력자들의 참여는 가속화하고 있다.
여성벤처협회가 운영하고 있는 ‘1인 창조기업비즈니스센터’의 입주 CEO중 40%도 석·박사, 해외 대학 출신이다. 여성 스타트업의 경우 증가추세는 올 들어 눈부실 정도다. 여성벤처협회 내에 스타트업 모임인 청년미래위원회 경우, 20여 명으로 시작한 모임이 올 한 해를 보내며 이미 100명을 넘어섰다.
이제 기존의 추격형 경제 성장 모델은 한계에 부딪혔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벤처에 있다. 또한 기계문명의 시대를 제어할 유일한 힘인 감성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이런 시대적 변혁기에 감성·소통·공감 능력이 뛰어난 역량 있는 여성 인재들의 창업 도전을 독려하고 이들의 노력을 지원하는 환경 조성에 함께 힘을 모을 때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여성벤처인들의 창업 도전과 그들이 이루어 나갈 꿈의 결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견인할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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