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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황교안 권한대행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대권구도가 요동치면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보수의 대안으로 급부상하는 모양새다. 가뜩이나 ‘최순실 게이트’로 여권에 불리하게 돌아가던 대권 판도가 야권으로의 쏠림이 가속화하면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독주가 굳어질 공산이 커졌다. 말하자면, 반 전 총장의 중도 사퇴로 구심력이 크게 떨어진 보수층의 위기의식이 ‘황교안 대안론’의 배경인 셈이다.
그제 반 전 총장의 전격 사퇴발표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황 권한대행이 문 전 대표에 이어 2위로 뛰어오른 것도 그래서다. 유승민 의원도 반사이익을 누린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새누리당은 반색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보수·중도를 아우르려는 반 전 총장 영입에 회의적이던 차에 그의 지지층 상당수가 황 권한대행에게 돌아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인명진 비대위원장도 “당연히 우리 당 후보가 됐으면 좋겠다”며 노골적인 추파를 던졌다.
야권이 진작부터 황 권한대행 견제에 안간힘을 쓴 것도 그의 잠재력을 간파했던 때문일 것이다. 전례에도 없는 권한대행의 국회 대정부질문 출석을 강요하고,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라는 생뚱맞은 호칭을 떠안겼다. 대권도전 의사가 없다는데도 출마 여부를 줄기차게 캐물은 것만 봐도 그에 대한 알레르기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된다. 반 전 총장 영입에 공을 들이던 바른정당도 ‘권한대행의 대행체제 초래’ 운운하며 황 권한대행의 정치적 행보를 경계하기에 바쁜 모습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라고 대선에 나가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탄핵심판이 인용된다면 대선이 보궐선거로 치러지게 되므로 황 권한대행은 대선 30일 전까지만 옷을 벗으면 된다. 그가 출마하면 헌법에 따라 경제부총리가 대행직을 승계한다. 정치권이 뭐라든 유권자가 원하면 그만이다. 때로는 본인의 의지도 접어야 하는 게 정치다. 최순실 사태 책임분담론 등의 비판도 전적으로 본인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다만 탄핵심판이 아직 진행 중인 만큼 섣부른 언행은 금물이다. 무엇보다 “심판이 선수로 뛰는 격”이란 구설에 오르지 않도록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에 매진하는 게 요긴하다. 황 권한대행이 정치권을 기웃거려도 될 만큼 지금의 나라꼴이 한가하지 않다는 엄중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2. 국내 첫 인터넷은행의 순항 기대한다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인 K뱅크가 어제부터 실거래 운영 점검에 나섰다고 한다. 내부적으로 금융결제원의 금융공동망과 연결해 계좌 개설, 여·수신 상품 가입 등 거래업무 테스트를 시작한 것이다. 서비스와 보안성 등을 최종 점검하는 ‘베타 테스트’ 점검이다. K뱅크는 점검이 끝나는 대로 이달 말께 정상 영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소비자들의 편의 증진과 금융산업 혁신이라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설립 취지를 살려 순항하기를 기대한다.
인터넷전문은행은 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을 통한 ‘무(無)점포 비(非)대면’ 거래가 특징이다. 기존 은행과 달리 사실상 점포 없이 인터넷과 모바일, ATM 등 전자매체로 영업이 이뤄지게 된다. 지점과 창구 직원이 없으니 인건비와 부동산 비용 등을 줄일 수 있다. 절감한 비용으로 각종 수수료는 낮추고 예금금리는 높여 소비자 혜택을 늘린다는 장점을 지닌다.
은행산업의 경쟁을 촉발하는 ‘메기’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정보통신기술과 융합된 간편 결제 및 송금, 모바일 자산관리 등 창의적이고 특화된 서비스로 은행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금융 혁신과 핀테크 생태계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선발주자인 K뱅크가 순조롭게 정착해야 하는 이유다.
인터넷전문은행은 미래 성장동력이자 핀테크 산업의 총아로 불린다. 미국(1995년)과 일본 (2000년) 등이 일찌감치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 온 배경이다. 미국의 경우 현재 20개 이상이 성업 중이며, 일본도 8개사가 연평균 30%의 성장률을 기록 중이라고 한다. 중국도 텐센트와 알리바바 등이 설립한 위뱅크, 마이뱅크 등 5개가 하루가 다르게 영역을 확대하는 추세다.
우리는 K뱅크에 이어 카카오뱅크가 상반기 출범 예정으로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다. 시작이 늦은 만큼 조기에 안착하려면 대규모 자본 확충과 투자 등 적극적 육성이 절실하다. 하지만 주력 주주인KT(K뱅크)와 카카오(카카오뱅크)가 비금융 주력기업으로 의결권 있는 지분을 4%밖에 가질 수 없는 ‘은산(銀産) 분리제도’가 걸림돌이라고 한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순조로운 정착을 위해 족쇄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
[매일신문]
3. 안희정의 ‘합리적 진보’, 가능성을 넘어 실현을 기대한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합리적 진보’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안 지사는 2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뒤 기자간담회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 교체를 향해 도전하겠다”고 했다. 의미는 분명하다. ‘투쟁의 시대’와의 결별이자 ‘화합과 미래로의 전진’이다.
그는 “젊은 시절 화염병과 짱돌을 들고 많이 싸워봤고, 30년 정당인으로서 비타협적 투쟁도 무수히 해봤다. 그러나 투쟁으로 풀리지 않는 현실을 목격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과거를 갖고 싸우는 정치로는 미래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 제 확고한 의지”라고 말했다. 진영 논리에 매여 있는 야권의 다른 대선주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유연하고 합리적인 접근 방식이다.
이런 접근 방식은 다른 중요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노동시장 유연화는 보수와 진보가 합의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대해서도 여러 번 말을 바꾼 문재인 전 대표와 달리 처음부터 “이미 결정된 사안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대선주자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포퓰리즘 공약에 대해서도 “국민은 공짜밥을 원하지 않는다”며 거부한다. 군 복무 단축 공약도 “표를 의식하는 정책 공약으로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없다”고 비판한다.
민주당 ‘진영’에서 보자면 모두 거꾸로 가도 한참 거꾸로 가는 ‘소신’이다. 대선 본선은커녕 경선에서 떨어지려고 작정했다는 소리까지 나올 만하다. 안 지사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길이 “전통적인 여야 지지 기반으로부터 버림받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의 길”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점이 안 지사를 다른 대선주자들보다 더 돋보이게 한다. 자기 진영에서 버림받을 수 있음에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용기는 국가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래야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모두를 아우르는 정치적 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 지역 간, 세대 간,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이 임계점으로 치닫는 우리의 현실은 이런 덕목을 더욱 필요로 한다. 안 지사에게서 그런 덕목을 갖춘 지도자 출현의 희망을 본다.
4. 취지는 좋은데 불법 양산하는 ‘세림이법’, 보완책 서둘러라
취지는 좋지만 현실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지거나 부작용을 빚는 법이 있다. 지난달 29일 전면 시행된 속칭 ‘세림이법’(개정 도로교통법)이 그렇다. 어린이 통학 차량의 동승 보호자 탑승을 의무화한 세림이법이 시행됐지만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일이 허다하며 이해 당사자인 학원 업계는 벌써부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세림이법은 지난 2013년 충북 청주에서 당시 3살이던 김세림 양이 통학 차량에 치여 숨진 사건이 계기가 되어 개정된 도로교통법이다. 통학용 차량 신고, 동승 보호자 필수 탑승과 통학 차량 운전자`교사 교육 확대 등이 골자이다. 세림이법은 지난 2015년 1월 29일 첫 시행됐지만, 15인승 이하 승합차를 운용하는 소규모 학원의 경우 2년의 유예기간을 줘 지난달부터 전면 확대 시행됐다.
이 법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동승 보호자 필수 탑승 조항이다. 이제 학원들은 13세 이하 아동이 타는 통학 차량을 운행할 때는 운전자 외에 보호자를 탑승시켜야 하지만 인력을 고용할 형편이 안 된다는 이유로 가족을 동승 보호자로 태우거나 아예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규정 위반으로 단속되더라도 과태료 20만원 처분을 받는 것이 전부여서, 사람을 쓰느니 과태료를 물겠다는 기류마저 학원 업계에서 형성되고 있다. 심지어는 골치 아픈 통학 차량을 없애고 자가용으로 학생들을 실어나르는 학원들도 일부 생겨나고 있어 이 법이 도리어 아동들을 안전 사각지대로 몰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아동들의 안전을 돈 문제로만 결부시키는 학원 업주들의 인식에도 문제가 있지만, 현실 적용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이 2년 유예기간 동안 수립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세림이법은 또 하나의 탁상행정 사례로 꼽힐 만하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가 추진하는 대안은 벤치마킹할 만하다. 경기도는 만 60세 이상 어르신이 통학 차량 안전지도사로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연계사업을 추진키로 했는데, 교통안전도 확보하고 노인 일자리도 창출한다는 점에서 도랑치고 가재도 잡는 격이다. 정부와 지자체, 교육 당국은 세림이법 시행에 따른 후속 보완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서울신문]
5. 美 의회서 공론화된 북한 선제타격론
미국 의회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이 공론화한 것은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탄핵 소추입네, 조기 대선입네 하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둔감해진 것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발족과 더불어 미국의 대북 위기감은 시시각각 긴장도를 더하고 있다. 미국 상원은 지난달 31일 이례적으로 북핵 청문회를 열었다.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조차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다는 방증으로 봐야 할 것이다.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은 “북한의 위협은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라면서 “미국이 발사대에 있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선제 공격할 준비를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비록 반문의 형태이긴 했지만, 명백히 대북 선제타격론을 들고 나섰다.
대북 선제 타격은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영변에 있는 핵시설을 선제적으로 파괴한다는 빌 클린턴 미 행정부의 계획이었다. 뒤늦게 알아챈 김영삼 정부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 남한의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점을 들어 미국을 설득해 중단시켰다.
당시 미군이 행한 모의실험으로는 개전 24시간 안에 군인 20만명을 포함해 수도권 중심으로 150만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전쟁 1주일을 넘어서면 약 500만명의 사상자가 나온다고 하는데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런 실험 결과를 미국이 모를 리 없겠지만 한국으로서는 선제타격론이 미국에서 구체화하지 않도록 미국 전략자산의 상시 배치가 더 효율적임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 정책을 담당하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이 모두 대북 강경파라는 점이다. 어제 트럼프 행정부의 각료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매티스 국방장관만 해도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대북 선제타격론에 대해 “어떤 것도 논의 대상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가능성을 열어 뒀다.
오늘 열리는 한·미 국방장관의 의제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의 인식 공유와 한국과 미국의 강력한 대응 의지가 될 것이라고 한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굳건한 한·미 군사동맹을 확인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미국에서 일고 있는 선제타격론의 진의에 대해 매티스 장관의 의중을 떠봐야 할 것이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의 이지용 교수는 어제 발표한 보고서에서 실행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해법으로 선제적 타격론을 제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 경우 중국과 북한의 강력한 반발과 함께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지적처럼 북한·북핵 문제는 남북 관계를 통해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관리해야 할 영역이다. 이 같은 인식과 함께 선제 타격이 불러올 한반도의 비극적 참화는 다시는 있어서 안 될 일임을 미 행정부와 의회에 각인시켜야 하겠다.
6. 혼돈의 대선, 표심만 노리는 이합집산 안 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대선 구도는 다시 혼돈으로 치닫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대세론 확산에 주력하고 있고, 다른 여야 후보들은 반문(反文·반문재인) 세력 결집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형국이다. 반 전 총장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제3지대론이나 빅텐트론은 주춤하고 있지만 세 확산을 위한 목적의 이합집산 움직임은 더욱 거세지는 조짐이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번 대선도 시간에 쫓겨 알맹이 없는 선거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국민이 많아지고 있다. 선거공학적 이합집산이나 짝짓기식 세 불리기 경쟁은 결국 한국의 정치문화를 후퇴시키고 선진국을 향해 가는 동력마저 차단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대선이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고 치유하기 어려운 분열로 몰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직면한 모순과 굴곡들이 쟁점이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논쟁과 해법이 제시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동안 대선 주자들이 중구난방식으로 발표한 정책과 공약의 질도 문제가 많다. 우선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정책들도 눈에 보인다. 화두로 던지는 양극화 문제나 중산층 복원, 재벌 개혁과 복지 확대 등의 내용을 보면 2012년 대선 당시와 거의 같다. 한마디로 재탕 삼탕식 공약이 쏟아지는 느낌이다.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설익은 공약도 이미 봇물을 이루고 있다. 서울대·수능 폐지, 재벌 해체, 모병제 도입 등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성장론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책 공약으로 포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드러난 국정 운영의 문제점들을 개혁하자는 것이 국민의 열망이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어 이합집산의 정치쇼를 벌이는 것에 국민은 더이상 속지 않는다. 국민의 가슴에 와 닿는 대한민국 적폐 청산과 새로운 국가 개혁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대선에서는 저급한 인기몰이식 경쟁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를 질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시대정신이자 국민의 간절한 바람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평화적 촛불시위를 통해 부정한 권력을 끌어내릴 정도로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은 성숙해 있다. 대선 주자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대목이다.
[조선일보]
7. 구조조정커녕 세금으로 부실大 연명시킨 엉터리 행정
2015년 교육부 평가에서 D등급을 받은 26개 대학의 2016년 예산 지원이 전년보다 오히려 더 늘었다. 지난해 이들 대학에 들어간 나랏돈은 2729억원으로 전년도 2520억원보다 209억원이 많다. 26개 대학 가운데 16곳이 부실대 판정을 받은 후 예산 지원을 더 받았다고 한다.
정부는 대학들을 A~E 다섯 단계로 평가해 최하위 D·E등급에 대해선 정부 재정 지원 사업 참여를 박탈한다고 2014년 발표했다. 부실 대학을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부실 판정을 해도 타 부처나 지자체에서 예산 지원을 한 경우가 많았다. 부처 간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교육부는 타 부처에 '부실대 재정 지원을 자제해달라'는 협조문을 보낸 게 다였다. 그나마 지자체에는 공문조차 보내지 않았다. 교육부 스스로도 부실대에 세금을 퍼줬다. 3~5년에 걸쳐 추진된 재정 사업의 경우 중간에 부실 판정을 받더라도 예산 지원을 계속했다. 이런 식으로 2014년부터 2년간 D등급 받은 대학에 들어간 국민 세금이 600억원이다.
저출산 여파가 곧 대학으로 몰아친다. 2023학년에는 대학 정원에서 무려 11만명이 모자랄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 있다간 상당수 대학이 도산해 학생들만 피해를 입는다. 그 전에 구조조정을 하자고 해놓고 실제로는 엉터리 행정을 편 것이다. 부실 대학들이 국민 세금으로 연명한 사이 우리 대학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더 떨어졌다.
최근 몇 년간 중하위권 대학에서는 경쟁적으로 교육부 퇴직 관료들을 보직교수로 영입했다. 이 퇴직 관료들이 부실 대학에 세금을 끌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부실 대학들은 세금을 끌어올 수 있으면 교육부 아닌 다른 부처 관료들도 데려간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하려면 정부부터 배제해야 한다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다.
8. 美 국방장관 첫 방문국이 한국이 된 의미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어제 방한해 황교안 총리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을 만났다. 오늘은 한민구 국방장관과 회담한다. 미국의 새 대통령 취임 2주 만에 국방장관이 전 세계 국가 중에서 한국을 가장 먼저 방문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새겨봐야 한다.
일단 매티스 장관은 트럼프 임기 초반에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을 현장에서 평가하고 이에 대응할 한·미 연합 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서울을 첫 방문지로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 초기에 일어났던 북한의 도발이 재현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2009년 3월 미국 여기자 두 명 억류, 4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 5월 핵실험으로 오바마 정부를 뒤흔들었다.
미국 새 정부는 오바마 정부와는 다른 대북 접근법을 모색할 가능성도 크다. 그 가능성 중에 군사적 선택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열린 미 상원 외교위원회 북한 청문회에서 이런 분위기가 나타났다. 이 청문회에서 미 상원의원들은 "북한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 "김정은을 암살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냐" 는 등 군사적 함의를 가진 이례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미국은 한국의 비상한 정치 상황도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조만간 등장할지 모를 한국의 새 정부가 사드 등 한·미 동맹 의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심각한 문제다. 매티스 장관 방한에 맞춰 일레인 번 전(前) 미 국방부 부차관보가 "우리가 동맹국 중 누구를 걱정하는지, 동맹국은 무엇을 할 것인지 등을 놓고 재평가해야 한다"고 한 것은 곱씹어봐야 할 언급이다. 매티스 장관은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사드는 오로지 방어 시스템으로 한·미가 사드 배치를 논의하는 것은 북한의 도발 위협 때문"이라고 했다.
한·미 간에는 내년 중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예정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 한국의 분담금이 부족하다는 언급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이임한 리퍼트 전 주한 미 대사는 "한국인들은 절대로 '무임승차자'가 아니다"며 평택 기지의 건설 비용 중 "96%를 한국이 부담하고 있다"고 했다.
한·미와 같은 혈맹 사이에도 돈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다만 이 문제가 필요 이상으로 부각되는 것은 양측 모두 피해야 한다. 다행히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후에는 한국에 부정적 언급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비상한 시기에 한·미 동맹에 요구되는 것 역시 지혜와 현명함일 것이다.
[매일경제]
9. 2월국회 재벌개혁만 거론말고 노동개혁 진전시켜야
2월 임시국회가 야권의 경제민주화법 '떨이처리' 국회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실상 대선 전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이번 국회에서 한번에 털고 가자는 전략인 듯한데 그렇게 쉽게 처리할 법안들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이번 국회에서 처리할 개혁입법을 지난달 일찌감치 선정했다. 여기에는 상법개정안 등 재벌개혁 목적의 법안들이 공통적으로 포함됐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재벌개혁은 정치·경제 권력의 부정한 결탁과 국민 피해를 막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며 소액주주 권리보호를 위한 전자투표제와 집중투표제 도입·감사위원의 독립성 확보·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을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 통과를 역설했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전경련 해체도 주장했다.
상법개정안에 대해서는 그 부작용을 염려하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 왔다. 보유한 주식 수에 뽑아야 할 이사 수를 곱한 수만큼 의결권을 주고 이를 한곳에 몰아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집중투표제의 경우 소액주주 보호가 명분이지만 실제는 외국계 자본의 이사회 장악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그룹 지주회사 지분을 1% 이상 확보하면 전체 자회사를 상대로 경영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외국계 펀드의 악의적 소송에 무방비 노출될 위험이 있다.
현재 국회 야당 의석은 3분의 2가 넘기 때문에 야당이 뜻을 모으면 상법개정안 등의 통과는 매우 유력한 상황이다. 이미 바른정당은 민주당 등과 협의해 이들 법안을 처리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일자리 창출을 위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정부가 읍소해온 노동개혁 4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파견법)은 이번 국회에서도 통과가 불투명해 보인다.
새누리당은 파견법을 제외한 나머지 3법이라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대선을 앞두고 노동계 눈치를 봐야 할 야당이 과연 협조할지 알 수 없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법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금 국회 상황을 보면 소수파인 여당은 실력이 안 되고 다수파인 야당은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그 와중에 시류영합형 법안은 별 고민 없이 통과되고 국가 경제에 숨통을 틔워야 할 '응급 법안'들은 기약 없이 밀려날 판이다. 그 후유증을 누가 감당할지 걱정이다.
10. 반기문 테마주 폭락, 코미디 같은 주식시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이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1일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반기문 테마주들이 급전직하하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다른 대선 주자 관련주도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종목은 특정 대선 주자와 무관하다는 공시까지 했는데도 테마주로 분류돼 주가가 널뛰기하고 있다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이러다가는 관련 기업은 물론 회사의 가치를 보고 주식을 산 투자자들도 피해를 입을까 걱정이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 테마주가 들썩거리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년 전인 1997년 15대 대선에서 본격 등장해 선거가 있을 때마다 문제가 됐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청권 수도이전 공약으로 이 지역에 연고가 있는 기업들이 주목을 받았고,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운하 건설 공약에 따라 건설주들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2010년 지방선거와 18대 대선, 19대와 20대 총선 때도 유력 후보를 중심으로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정치 테마주는 증시를 투전방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감시와 투자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대부분의 정치 테마주는 기업의 사업 내용과 실적 등 본질가치에 근거하기보다 뜬소문에 따라 급등락한다. 이를 이용해 시세조종세력 등 투기꾼은 한몫 챙기려하고 개인들은 투자금을 날리기 십상이다.
이는 한국거래소가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정치 테마주 16개 종목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본질가치와 관계없이 대선 후보의 학연과 지연 등 풍문으로 주가가 단기적으로 올랐다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개인투자자 10명 중 7명 이상이 손실을 본 것이다.
정치 테마주가 근절되지 않는 원인은 단기간에 큰돈을 벌려는 투자자 책임도 있지만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작전세력 탓이 큰 만큼 이들에 대한 집중 감시가 중요하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9일부터 정치 테마주 특별조사반 운영에 들어갔는데 이상 급등 종목이나 징후가 발견되면 즉시 조사에 착수하고 시장에 알려야 한다. 투자자들도 작전세력의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냉철한 투자 자세가 필요하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윤제림의 행인일기 30] 새우소녀 이야기
휴게소에서 우동을 먹고 있는데, 문득 한 소녀가 생각났습니다. 뜬금없이 떠올랐습니다. 저와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만난 적도 없는 여자애입니다. 가까이 모시는 어른께 들은 이야기의 주인공일 뿐입니다. 어른께서 팔십이 넘으셨으니 그녀도 그럴 것입니다.
무엇이 그녀를 생각나게 했을까요. 우동에 든 새우튀김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만치에 놓인 TV 뉴스화면에 비치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삼척동자도 아는 일을 끝끝내 '모른다' 하고, 증거가 즐비한데 한사코 '아니다' 우기는 이들 말입니다.
어른께 들은 이야기. "부산 피난 시절이었어. 그녀는 포장마차로 생계를 꾸리는 소녀가장이었지. 많은 남학생들이 흘끔대며 지나다닐 만큼 예뻤어. 어느 날, 그 애한테 새우튀김 하나를 사먹게 되었지. 그런데 맛이 영 수상쩍더라고. 재료가 신선하질 않았던 거야.
입에 넣었던 튀김을 뱉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지. '야, 이거 상했잖아!' 잔뜩 인상을 쓰고 눈을 부라리면서. 그 애는 겁에 질려 말도 못하고 오들오들 떨기만 하더군. 나는 더 기세등등해져서 언성을 높였지. '상한 것 맞지? 이런 걸 어떻게 팔 생각을 한 거야.'
이쯤 되면, 그 시절 음식장사들은 대개들 이렇게 나왔지. '무슨 소리요? 여태 아무 일 없었는데. 돈 안 받을 테니 썩 가시오.' 그런데 얘는 고개도 못 들고, 그저 좌불안석이야. 눈망울엔 눈물이 그렁그렁 열리고. 내 말이 옳다는 거지. 잘못을 안다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순순히 인정하더군. '네 …'
기어들어가는 소리였지만, 발음은 또렷했어. 그런데 이상하지. 오히려 내가 당혹스러워지더군. 금세 물렁물렁해졌어. 한껏 치밀었던 분노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라고. 탁자라도 내려치려고 움켜쥐었던 주먹은 스르르 풀리고. 여태껏 살아오면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대신하는 한 마디를 들은 적이 없어.
'맞아요, 새우는 상했어요.'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요.'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이해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 한 글자가 그렇게 많은 말들을 품고 있었던 거지. 말의 힘? 아니야. 그것은 '진실의 힘', '고백의 힘'이지.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어. 순순히 튀김 값을 내고 슬그머니 뒷걸음쳐 나왔지.
그게 끝이야. 그 뒤로는 포장마차도 여학생도 볼 수가 없었어. 어쩌면 내가 그 애를 볼 용기가 없었는지도 몰라. 한동안 그 길로 다니질 않았으니까. 요즘도 가끔 그 얼굴 그 표정이 떠올라. '새우소녀'. 이름도 성도 모르니까, 그냥 내가 그렇게 지어서 부르는 거야. 에이, 싱거운 이야기 또 했군."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실 때, 이 분의 표정은 결코 싱겁지 않습니다. 느릿하지만 묵직한 어조(語調)에서 아련한 향수가 느껴지고, 첫사랑에 대한 미련처럼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그래서 모종의 호기심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쩌면 소설 '소나기' 같은 '기-승-전-결'이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새우소녀가 '네 …!'라고 말하는 대목은 영화의 한 장면을 닮았습니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평화로 바꾸는 돌연한 반전(反轉)의 '컷'입니다. 이쪽이 아무리 감정을 증폭시켜보아야 저쪽은 아무런 응전(應戰)의 의사가 없다는 표시입니다. 조건 없는 투항입니다. 단두대에, 죄인 스스로 목을 들이미는 형국입니다.
물론 그렇게 잘못을 인정했다고 해서 상한 새우가 신선한 상태로 되돌려지진 않습니다. 그러나 손님의 상한 마음은 어느 정도 돌아섭니다. 호되게 물리려던 죄(罪)값에서 얼마쯤은 에누리를 하게 됩니다. 형편없이 후려치려던 사람값도 아주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은 면하게 합니다.
이 사람 역시 누군가의 자식이고 부모임을 생각하게 되면 더 그렇습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요즘 우리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도 자식 눈치는 보더군요. 어떤 어미는 수의(囚衣) 입은 모습을 아들이 볼까 전전긍긍한다고 들었습니다. 더 큰 죄인 한 사람은 딸 얘기만 나오면 눈물부터 흘린다는 기사도 읽었습니다.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당신들 자식의 눈만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TV만 켜면 나오는 당신들 얼굴을 온 나라 아이들이 보고 있다. 당신들의 거짓말은 이 땅의 모든 아이들 여린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 당신들이 '예'라고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거짓말 하는 어른들의 나라가 되고 있다."
죽는 날까지 반성과 회한(悔恨)이 많았을 사람, 춘원 이광수(李光洙)의 문장 하나가 의미심장하게 떠오릅니다. "나의 가장 심각한 '참회(懺悔)'는 어린 자식이 아픈 것을 볼 때에 온다." 당신들이 이제라도 '새우소녀'처럼 '예'라고 말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당신의 아이가 더 아파하고,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더 아파지기 전에.
할머니가 되었을 '새우소녀'도 그 한 마디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네 …."
2. [경향신문][먹거리 공화국] 황혼의 밥상
어린 우리들을 한 달에 한 번 괴롭히는 일이 있었으니 학교에서 폐품 모으는 날이었다. 바닥에 바짝 붙어 먼지를 마시며 밥을 버는 부모님은 신문을 보시지 않았다. 게다가 학교에 폐품을 갖다 내야 할 형제가 많으니 어쩔 수 없이 엄마가 큰맘 먹고 청량음료 한 병씩 사주고 그 빈 병이라도 갖다 내라셨다.
공중전화기 부스에서 전화번호부 뜯어오지 말라는 학교 가정통신문도 기억난다. ‘88 꿈나무’인 우리더러 21세기를 책임지라더니 그 꿈나무들을 넝마주이로 내몰던 시절이었다.
이제 그 꿈나무들은 출근길에 아파트 재활용 코너에 간단하게 폐품을 던진다. 이제 넝마주이가 사라졌는가. 그것도 아니다. 폐지를 주워 한 끼를 버느라 노구를 움직이며 새벽부터 길거리를 헤매는 노인들이 2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폐지 가격 중에서 가장 높게 쳐주는 것은 신문지이고 그다음엔 골판지다. 1㎏당 각각 100원, 80원가량. 노인 한 명이 거머쥘 수 있는 폐품의 양이 적어 하루 5000원의 소득을 올리는 일도 쉽지 않다.
우리 동네 한 식당은 폐지를 일부러 내놓는데, 폐지를 걷으러 온 할머니께 믹스커피 한 잔도 꼭 드린다. 그 믹스커피 한 잔은 기호식품이 아니라 할머니의 점심 한 끼다. 식당에서 밥을 한 끼 그냥 드리려 하지만 끝내 거절하신다. 믹스커피 딱 한잔은 할머니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서울 모처의 경로당 내에서 이루어지는 식사를 관찰하고 기록한 소준철·이민재의 ‘빈곤한 도시노인과 지역 내 자원의 흐름’이란 연구 발표를 들었다. 연구자들이 찍어온 경로당 밥상 사진은 스산하기 이를 데 없다. 밥과 김치, 계란찜(이제 계란 값도 올랐는데), 동태찌개가 차려진 날이다. 그날은 동태 중간 토막을 차지하는 것 때문에 할머니들 마음이 서로 상한 날이기도 했다. 반찬이 부족하니 밥양은 성인 남성들이 먹는 양을 웃돈다. 사과 한 개도 정확히 등분한다. 갈등의 요인이 되곤 해서다.
지자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경로당에 지원하는 쌀은 읍·면·동의 경우 1년에 120㎏에서 140㎏ 정도. 연구자들이 관찰한 경로당엔 평균 30명의 노인들이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필자의 아버지가 다니는 인천의 한 경로당에서도 30명 정도의 노인들이 점심을 드신다. 30명 기준으로 하루에 소비되는 쌀이 1.6㎏ 정도. 그러니 저 정도 지원받는 쌀로는 100끼니 정도를 겨우 채운다.
나머지 부족분은 각자 노력으로 메워야 한다. 종교시설에 가서 한 끼를 때우기도 하고 경로당 임원들이 주민센터에 쌀과 김치 지원을 요청하기도 하면서 가급적 모든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자신의 한 끼이자 공동의 식사를 해결하느라 분주하다.
한국에는 650만명의 노인들이 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중위소득에 못 미치는 빈곤 상태다. 여성노인의 빈곤 비율은 더 높다. 그나마 경로당에 가서 스산한 밥상이라도 받을 수 있는 노인들은 사정이 낫다고 해야 할지. 한 달에 3000~5000원 하는 경로당 회비도 버거워 발길을 끊는 노인들도 많다. 당장 급한 것이 집세이니 오늘도 폐지를 그러모으며 믹스커피로 한 끼를 넘기는 노인(할머니일 확률이 더 높다)들이 곳곳에 넘쳐난다.
이 추운 겨울, 저 어르신들의 저녁 밥상에 동태 한 토막이라도 올라갔는지 안부를 묻기조차 면구스럽다. 왜 하필 경로당의 경은 ‘공경할 경(敬)’자인지. 이 겨울 온기 있는 밥상은 누가 받고 있는가. 소년과 청춘, 그리고 황혼의 밥상마저도 차다.
3. [경향신문][문화중독자의 야간비행] 문화전쟁의 종착역
여기는 미국 워싱턴. 국회 사무실로 우편물이 날아든다. 그 속에는 도널드 와일드먼(DonaldWildmon)이라는 근본주의 목사의 분노에 찬 글이 실려 있었다. 때는 1989년 4월5일. 이른바 ‘문화전쟁(Culture War)’이라 불리는 극우 정치가와 예술가의 한판승부가 벌어진 것이다. 청와대발 예술인 블랙리스트 파동이 한창인 지금, 미국발 문화전쟁 사건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전쟁의 주인공은 뉴욕에서 태어난 안드레 세라뇨(Andres Serrano)란 사진작가다.
그는 1965년 출범한 미국 문화예술지원기관(NEA)에서 책정한 예산 지원하에 전시회를 열던 중이었다. 시비의 근원은 종교, 죽음, 섹스를 주제로 다루는 안드레 세라뇨의 작가정신이었다. ‘오줌 속의 예수(Piss Christ)’라 불리는 사진은 작가의 오줌, 정액, 피가 섞인 통에 빠진 십자가를 표현한 작품이다.
이를 기독교에 대한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하는 종교인의 일갈은 미국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공화당원들의 좋은 요릿감이 된다. 그들은 서둘러 ‘헬름스 수정조항(Helm’s Amendment)’이라는 악법을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서 NEA의 예술지원 기준을 강화하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섹스와 종교에 대한 불경, 동성애 등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명 ‘예술가 탄압법’은 예술가와 자유주의자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 사건은 결국 헌법 수정조항 제1조인 언론, 집회, 청원의 자유, 즉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예술가 집단의 판정승으로 끝난다. 여기서 예를 들어 보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섹스에 대한 불경이라고 못박는다면 인간의 나체를 소재로 한 수많은 걸작들이 화형식을 치러야만 할 것이다. 제임스 헌터(James Hunter)는 저서를 통해 이러한 현상을 ‘냉전시대보다 더 심각한 문화전쟁의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예술의 생명은 누가 뭐라 해도 표현의 자유가 최우선이다. 1950년대 이후 동구권으로부터 문화후진국이라 손가락질을 받았던 미국은 늘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패권주의를 신봉하는 타락한 파란 눈의 정치인들에게 예술가란 눈엣가시와 다름없는 존재였다. 따라서 민심을 조장하려는 권력자의 의중을 간파한 예술가들의 일상은 그리 자유롭지 못했다. 미국 예술후원기관이 프랑스보다 무려 40년이나 늦게 만들어진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모든 예술작품이 사회정치적 이슈를 담을 필요는 없다. 이 또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역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일그러진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예술혼을 탄압하는 사회는 후진국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21세기판 예술가 탄압의 증거인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명단만 존재할 뿐 이를 지시, 작성, 보고한 자가 없다던 혐의자들의 주장이 모두 허구였다는 특검의 발표가 새해 벽두를 장식했다. 통쾌하기보다는 안타까운 기류가 시야를 어지럽힌다. 한국발 문화전쟁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지원은 고사하고 창작자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려는 정부의 태도가 출발역이라면, 모든 창작자가 마음껏 상상력을 표출하는 공정사회가 종착역일 것이다.
예술가란 정치적 자기검열의 틀에 갇히는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유리벽 같은 존재다. 예술가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그곳은 뇌사상태에 빠진 권력자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와 다를 바 없다. 천국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예술과 삶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공간. 그곳을 우리는 천국이라 부른다. 예술다운 예술이 존재하는 참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야간비행을 시작한다.
4. [서울신문][데스크 시각] ‘속초 유학파’의 서울 광화문 포켓몬고 체험기
‘쥬피썬더.’ CP 1239. SS급 포켓몬. 특성 10만V 전기. 출신 대한민국 강원도 속초시. 탄생 2016년 7월 27일.
내 휴대전화에 CP 랭킹 1위를 장식한 포켓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다. CP는 공격력·방어력·체력 등의 총합이다. 쥬피썬더는 포켓몬 ‘이브이’의 진화체다. 얼마 전 ‘체육관’에서 다른 포켓몬들과 전투를 시켜 보니 ‘매우 효과적인 공격’을 했다. 이브이를 총애하다 보니 CP 랭킹 2위도 쥬피썬더이다.SS급보다는 능력이 덜한 A급 이브이가 진화했다.
CP 1226이다. 랭킹 2위 쥬피썬더 출신지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다. 2017년 2월 1일 포켓볼 보급소 격인 포켓스톱이 20~30m마다 깔린 ‘천국’ 서울 광화문에서 잡아 진화시켰다. 오늘 출근길에 포켓몬 500마리를 잡았다는 축하 메달도 받았다.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랭킹 1위와 2위 쥬피썬더는 탄생 시점에 7개월의 공백이 있다. 출신 지역도 속초와 서울로 서로 다르다. 이런 차이는 포켓몬고의 한국 정식 출시가 올 1월 말에 된 탓이다. 지도 반출 문제로 게임 출시를 못 한다더니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고 해명해 사실 어리둥절하다.
포켓몬고 게임과 관련해 이른바 ‘속초 유학파’로 불린다. 지난해 여름휴가 때 속초에서 포켓몬고 게임을 했다는 의미다. 당시 속초는 재밌었다. 포켓몬고 게임이 증강현실(AR) 게임이라고 했으나, 오히려 현실이 가상현실(VR)에 발목 잡혀 있는 것 같았다. 이 게임은 걸어다녀야 하는 탓에 승용차에 탑승했을 땐 보행자처럼 GPS를 속이려고 운전 속도를 줄인다.
운전자들은 갑자기 출현한 포켓몬을 잡으려고 급브레이크를 잡기도 했다. 그때 속초에서는 서울·경기 등 타 지역에서 온듯한 승용차들이 천천히 달리다가 급브레이크를 잡는 일이 적지 않았지만, 경적을 울리고 화를 내기보다는 속내를 서로 이해한 듯 웃어넘겼다.
또 속초의 ‘포켓몬고 성지’에서는 배터리팩을 휴대전화에 연결한 젊은이들이 신주 모시듯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들고 좀비처럼 어슬렁거렸다. 게임에 동참하지 않았더라면 ‘뭐하는 거냐’며 손가락질했을지도 모르겠다. 1박2일 속초 여행에서 ‘팀 미스티’ 소속으로 레벨 13으로 돌아왔다.
7개월 만에 다시 포켓몬을 잡고 CP값이 낮은 포켓몬을 ‘박사에게 보내’ 사탕으로 갈아서 1·2단계 진화시키는 과정에서 상당한 시행착오를 발견했다. 진화 사탕 50개·100개를 써 진화시켜 놓았더니 “좀처럼 활약이 어려워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체육관에서 전투를 벌이면 쉽게 진다는 의미다. 그 이유를 모르다가 최근 알았다. 포켓몬들의 능력을 분석하는 아이브이고(IV GO)를 최근 설치한 덕분이다.
CP값이 높은 포켓몬을 포켓볼 십여 개나 낭비하면서도 잡아도, 근본이 틀렸으면 별 볼일 없는 포켓몬인 거다. 아이브이고는 포켓몬 개체를 SS-S-A-B-C-D로 평가했다. SS급이 가장 전투력이 좋고 진화에도 유리하다. 포켓몬마다 CP값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내재적 가치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진화시킨 나의 쥬피썬더가 SS급인 것은 그저 행운이었다.
게임조차도 엄격하게 내재적 가치를 평가한다. 겉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흔히 사람을 평가할 때 번드르르한 겉만 평가하기 쉽다. 경력이 어떠냐, 외모가 어떠냐, 집안이 어떠냐 등등. 그래서 ‘꽃길’만 걸었던 인물에게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곤 한다. 그러나 꽃길만 걸은 인물이 그 꽃길을 조성한 평범한 사람들의 성실과 노력은 잊었다면 그 인물은 원래 큰 인물이 아닐지 모른다. “내가 잘나서 출세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영 별로인 거다.
5. [매일경제]{매경춘추] 사투리의 힘
부산에서 태어나 스무 살까지 살았던 나는 당연히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이후로 서울에서 더 오래 살았지만, 대학 졸업 직전에 아나운서가 되면서 의식적으로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아무리 표준어를 구사해도 내 말에서 고향의 억양이 미묘하게 배어나온다는 것을 나는 안다. 특히 내 고향 사람들은 어김없이 내가 그쪽 사람임을 알아본다.
나 또한 연기자든 아나운서든 경상도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경북 쪽인지 경남 쪽인지, 유년시절만 잠깐 살았는지 성년에도 살았는지까지 얼추 맞히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완벽하게 사투리를 쓴다. 그들에게는 어차피 어색하게 들릴 낯간지러운 표준말을 버리고 속시원하게 고향 말을 쓰는 게 즐겁고 후련하니까.
얼마 전에는 그 즐거움과 후련함을 방송에서도 맛보았다. 이제는 아나운서가 아니라 소설가로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내 작품 일부분을 낭송할 때 주인공의 대사를 사투리 그대로 읽었던 것이다. 고향의 말을 쓰는 내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전국에 생방송되는 건 생각보다 짜릿한 일이었다. 비로소 가면을 쓰지 않은 진짜 목소리로 말하는 느낌이었달까.
그 무렵 여고 졸업 30주년 행사에서 옛 친구들을 만나 허물없이 얘기하며 공감했던 경험은 또 어떠했던가. 각자 그동안 살아온 세월을 털어놓다가 누군가 툭 던진 "산다고 욕봤다!"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졌던 우리. 사투리라는 훌륭한 도구를 통해 우리는 직관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함께 웃었다. 그리고 뒤늦게 참석한 국민학교 동창회에서도 전설처럼 아득해진 추억 속에 어색하게 마주한 남자 동창들과 진한 사투리로 말을 하기 시작하자 단숨에 지난 세월을 뛰어넘는 마법 같은 경험을 했다. 군더더기 없이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
행복이란 결국 자기 만족이므로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행복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편안할 때,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해질 때, 그때 내가 어떤 말을 쓰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은 스스로를 이해하는 하나의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또다시 고향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황교안 권한대행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대권구도가 요동치면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보수의 대안으로 급부상하는 모양새다. 가뜩이나 ‘최순실 게이트’로 여권에 불리하게 돌아가던 대권 판도가 야권으로의 쏠림이 가속화하면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독주가 굳어질 공산이 커졌다. 말하자면, 반 전 총장의 중도 사퇴로 구심력이 크게 떨어진 보수층의 위기의식이 ‘황교안 대안론’의 배경인 셈이다.
그제 반 전 총장의 전격 사퇴발표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황 권한대행이 문 전 대표에 이어 2위로 뛰어오른 것도 그래서다. 유승민 의원도 반사이익을 누린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새누리당은 반색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보수·중도를 아우르려는 반 전 총장 영입에 회의적이던 차에 그의 지지층 상당수가 황 권한대행에게 돌아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인명진 비대위원장도 “당연히 우리 당 후보가 됐으면 좋겠다”며 노골적인 추파를 던졌다.
야권이 진작부터 황 권한대행 견제에 안간힘을 쓴 것도 그의 잠재력을 간파했던 때문일 것이다. 전례에도 없는 권한대행의 국회 대정부질문 출석을 강요하고,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라는 생뚱맞은 호칭을 떠안겼다. 대권도전 의사가 없다는데도 출마 여부를 줄기차게 캐물은 것만 봐도 그에 대한 알레르기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된다. 반 전 총장 영입에 공을 들이던 바른정당도 ‘권한대행의 대행체제 초래’ 운운하며 황 권한대행의 정치적 행보를 경계하기에 바쁜 모습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라고 대선에 나가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탄핵심판이 인용된다면 대선이 보궐선거로 치러지게 되므로 황 권한대행은 대선 30일 전까지만 옷을 벗으면 된다. 그가 출마하면 헌법에 따라 경제부총리가 대행직을 승계한다. 정치권이 뭐라든 유권자가 원하면 그만이다. 때로는 본인의 의지도 접어야 하는 게 정치다. 최순실 사태 책임분담론 등의 비판도 전적으로 본인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다만 탄핵심판이 아직 진행 중인 만큼 섣부른 언행은 금물이다. 무엇보다 “심판이 선수로 뛰는 격”이란 구설에 오르지 않도록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에 매진하는 게 요긴하다. 황 권한대행이 정치권을 기웃거려도 될 만큼 지금의 나라꼴이 한가하지 않다는 엄중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2. 국내 첫 인터넷은행의 순항 기대한다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인 K뱅크가 어제부터 실거래 운영 점검에 나섰다고 한다. 내부적으로 금융결제원의 금융공동망과 연결해 계좌 개설, 여·수신 상품 가입 등 거래업무 테스트를 시작한 것이다. 서비스와 보안성 등을 최종 점검하는 ‘베타 테스트’ 점검이다. K뱅크는 점검이 끝나는 대로 이달 말께 정상 영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소비자들의 편의 증진과 금융산업 혁신이라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설립 취지를 살려 순항하기를 기대한다.
인터넷전문은행은 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을 통한 ‘무(無)점포 비(非)대면’ 거래가 특징이다. 기존 은행과 달리 사실상 점포 없이 인터넷과 모바일, ATM 등 전자매체로 영업이 이뤄지게 된다. 지점과 창구 직원이 없으니 인건비와 부동산 비용 등을 줄일 수 있다. 절감한 비용으로 각종 수수료는 낮추고 예금금리는 높여 소비자 혜택을 늘린다는 장점을 지닌다.
은행산업의 경쟁을 촉발하는 ‘메기’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정보통신기술과 융합된 간편 결제 및 송금, 모바일 자산관리 등 창의적이고 특화된 서비스로 은행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금융 혁신과 핀테크 생태계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선발주자인 K뱅크가 순조롭게 정착해야 하는 이유다.
인터넷전문은행은 미래 성장동력이자 핀테크 산업의 총아로 불린다. 미국(1995년)과 일본 (2000년) 등이 일찌감치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 온 배경이다. 미국의 경우 현재 20개 이상이 성업 중이며, 일본도 8개사가 연평균 30%의 성장률을 기록 중이라고 한다. 중국도 텐센트와 알리바바 등이 설립한 위뱅크, 마이뱅크 등 5개가 하루가 다르게 영역을 확대하는 추세다.
우리는 K뱅크에 이어 카카오뱅크가 상반기 출범 예정으로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다. 시작이 늦은 만큼 조기에 안착하려면 대규모 자본 확충과 투자 등 적극적 육성이 절실하다. 하지만 주력 주주인KT(K뱅크)와 카카오(카카오뱅크)가 비금융 주력기업으로 의결권 있는 지분을 4%밖에 가질 수 없는 ‘은산(銀産) 분리제도’가 걸림돌이라고 한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순조로운 정착을 위해 족쇄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
[매일신문]
3. 안희정의 ‘합리적 진보’, 가능성을 넘어 실현을 기대한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합리적 진보’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안 지사는 2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뒤 기자간담회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 교체를 향해 도전하겠다”고 했다. 의미는 분명하다. ‘투쟁의 시대’와의 결별이자 ‘화합과 미래로의 전진’이다.
그는 “젊은 시절 화염병과 짱돌을 들고 많이 싸워봤고, 30년 정당인으로서 비타협적 투쟁도 무수히 해봤다. 그러나 투쟁으로 풀리지 않는 현실을 목격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과거를 갖고 싸우는 정치로는 미래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 제 확고한 의지”라고 말했다. 진영 논리에 매여 있는 야권의 다른 대선주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유연하고 합리적인 접근 방식이다.
이런 접근 방식은 다른 중요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노동시장 유연화는 보수와 진보가 합의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대해서도 여러 번 말을 바꾼 문재인 전 대표와 달리 처음부터 “이미 결정된 사안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대선주자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포퓰리즘 공약에 대해서도 “국민은 공짜밥을 원하지 않는다”며 거부한다. 군 복무 단축 공약도 “표를 의식하는 정책 공약으로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없다”고 비판한다.
민주당 ‘진영’에서 보자면 모두 거꾸로 가도 한참 거꾸로 가는 ‘소신’이다. 대선 본선은커녕 경선에서 떨어지려고 작정했다는 소리까지 나올 만하다. 안 지사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길이 “전통적인 여야 지지 기반으로부터 버림받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의 길”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점이 안 지사를 다른 대선주자들보다 더 돋보이게 한다. 자기 진영에서 버림받을 수 있음에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용기는 국가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래야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모두를 아우르는 정치적 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 지역 간, 세대 간,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이 임계점으로 치닫는 우리의 현실은 이런 덕목을 더욱 필요로 한다. 안 지사에게서 그런 덕목을 갖춘 지도자 출현의 희망을 본다.
4. 취지는 좋은데 불법 양산하는 ‘세림이법’, 보완책 서둘러라
취지는 좋지만 현실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지거나 부작용을 빚는 법이 있다. 지난달 29일 전면 시행된 속칭 ‘세림이법’(개정 도로교통법)이 그렇다. 어린이 통학 차량의 동승 보호자 탑승을 의무화한 세림이법이 시행됐지만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일이 허다하며 이해 당사자인 학원 업계는 벌써부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세림이법은 지난 2013년 충북 청주에서 당시 3살이던 김세림 양이 통학 차량에 치여 숨진 사건이 계기가 되어 개정된 도로교통법이다. 통학용 차량 신고, 동승 보호자 필수 탑승과 통학 차량 운전자`교사 교육 확대 등이 골자이다. 세림이법은 지난 2015년 1월 29일 첫 시행됐지만, 15인승 이하 승합차를 운용하는 소규모 학원의 경우 2년의 유예기간을 줘 지난달부터 전면 확대 시행됐다.
이 법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동승 보호자 필수 탑승 조항이다. 이제 학원들은 13세 이하 아동이 타는 통학 차량을 운행할 때는 운전자 외에 보호자를 탑승시켜야 하지만 인력을 고용할 형편이 안 된다는 이유로 가족을 동승 보호자로 태우거나 아예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규정 위반으로 단속되더라도 과태료 20만원 처분을 받는 것이 전부여서, 사람을 쓰느니 과태료를 물겠다는 기류마저 학원 업계에서 형성되고 있다. 심지어는 골치 아픈 통학 차량을 없애고 자가용으로 학생들을 실어나르는 학원들도 일부 생겨나고 있어 이 법이 도리어 아동들을 안전 사각지대로 몰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아동들의 안전을 돈 문제로만 결부시키는 학원 업주들의 인식에도 문제가 있지만, 현실 적용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이 2년 유예기간 동안 수립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세림이법은 또 하나의 탁상행정 사례로 꼽힐 만하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가 추진하는 대안은 벤치마킹할 만하다. 경기도는 만 60세 이상 어르신이 통학 차량 안전지도사로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연계사업을 추진키로 했는데, 교통안전도 확보하고 노인 일자리도 창출한다는 점에서 도랑치고 가재도 잡는 격이다. 정부와 지자체, 교육 당국은 세림이법 시행에 따른 후속 보완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서울신문]
5. 美 의회서 공론화된 북한 선제타격론
미국 의회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이 공론화한 것은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탄핵 소추입네, 조기 대선입네 하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둔감해진 것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발족과 더불어 미국의 대북 위기감은 시시각각 긴장도를 더하고 있다. 미국 상원은 지난달 31일 이례적으로 북핵 청문회를 열었다.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조차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다는 방증으로 봐야 할 것이다.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은 “북한의 위협은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라면서 “미국이 발사대에 있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선제 공격할 준비를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비록 반문의 형태이긴 했지만, 명백히 대북 선제타격론을 들고 나섰다.
대북 선제 타격은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영변에 있는 핵시설을 선제적으로 파괴한다는 빌 클린턴 미 행정부의 계획이었다. 뒤늦게 알아챈 김영삼 정부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 남한의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점을 들어 미국을 설득해 중단시켰다.
당시 미군이 행한 모의실험으로는 개전 24시간 안에 군인 20만명을 포함해 수도권 중심으로 150만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전쟁 1주일을 넘어서면 약 500만명의 사상자가 나온다고 하는데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런 실험 결과를 미국이 모를 리 없겠지만 한국으로서는 선제타격론이 미국에서 구체화하지 않도록 미국 전략자산의 상시 배치가 더 효율적임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 정책을 담당하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이 모두 대북 강경파라는 점이다. 어제 트럼프 행정부의 각료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매티스 국방장관만 해도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대북 선제타격론에 대해 “어떤 것도 논의 대상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가능성을 열어 뒀다.
오늘 열리는 한·미 국방장관의 의제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의 인식 공유와 한국과 미국의 강력한 대응 의지가 될 것이라고 한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굳건한 한·미 군사동맹을 확인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미국에서 일고 있는 선제타격론의 진의에 대해 매티스 장관의 의중을 떠봐야 할 것이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의 이지용 교수는 어제 발표한 보고서에서 실행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해법으로 선제적 타격론을 제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 경우 중국과 북한의 강력한 반발과 함께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지적처럼 북한·북핵 문제는 남북 관계를 통해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관리해야 할 영역이다. 이 같은 인식과 함께 선제 타격이 불러올 한반도의 비극적 참화는 다시는 있어서 안 될 일임을 미 행정부와 의회에 각인시켜야 하겠다.
6. 혼돈의 대선, 표심만 노리는 이합집산 안 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대선 구도는 다시 혼돈으로 치닫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대세론 확산에 주력하고 있고, 다른 여야 후보들은 반문(反文·반문재인) 세력 결집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형국이다. 반 전 총장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제3지대론이나 빅텐트론은 주춤하고 있지만 세 확산을 위한 목적의 이합집산 움직임은 더욱 거세지는 조짐이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번 대선도 시간에 쫓겨 알맹이 없는 선거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국민이 많아지고 있다. 선거공학적 이합집산이나 짝짓기식 세 불리기 경쟁은 결국 한국의 정치문화를 후퇴시키고 선진국을 향해 가는 동력마저 차단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대선이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고 치유하기 어려운 분열로 몰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직면한 모순과 굴곡들이 쟁점이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논쟁과 해법이 제시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동안 대선 주자들이 중구난방식으로 발표한 정책과 공약의 질도 문제가 많다. 우선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정책들도 눈에 보인다. 화두로 던지는 양극화 문제나 중산층 복원, 재벌 개혁과 복지 확대 등의 내용을 보면 2012년 대선 당시와 거의 같다. 한마디로 재탕 삼탕식 공약이 쏟아지는 느낌이다.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설익은 공약도 이미 봇물을 이루고 있다. 서울대·수능 폐지, 재벌 해체, 모병제 도입 등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성장론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책 공약으로 포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드러난 국정 운영의 문제점들을 개혁하자는 것이 국민의 열망이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어 이합집산의 정치쇼를 벌이는 것에 국민은 더이상 속지 않는다. 국민의 가슴에 와 닿는 대한민국 적폐 청산과 새로운 국가 개혁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대선에서는 저급한 인기몰이식 경쟁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를 질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시대정신이자 국민의 간절한 바람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평화적 촛불시위를 통해 부정한 권력을 끌어내릴 정도로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은 성숙해 있다. 대선 주자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대목이다.
[조선일보]
7. 구조조정커녕 세금으로 부실大 연명시킨 엉터리 행정
2015년 교육부 평가에서 D등급을 받은 26개 대학의 2016년 예산 지원이 전년보다 오히려 더 늘었다. 지난해 이들 대학에 들어간 나랏돈은 2729억원으로 전년도 2520억원보다 209억원이 많다. 26개 대학 가운데 16곳이 부실대 판정을 받은 후 예산 지원을 더 받았다고 한다.
정부는 대학들을 A~E 다섯 단계로 평가해 최하위 D·E등급에 대해선 정부 재정 지원 사업 참여를 박탈한다고 2014년 발표했다. 부실 대학을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부실 판정을 해도 타 부처나 지자체에서 예산 지원을 한 경우가 많았다. 부처 간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교육부는 타 부처에 '부실대 재정 지원을 자제해달라'는 협조문을 보낸 게 다였다. 그나마 지자체에는 공문조차 보내지 않았다. 교육부 스스로도 부실대에 세금을 퍼줬다. 3~5년에 걸쳐 추진된 재정 사업의 경우 중간에 부실 판정을 받더라도 예산 지원을 계속했다. 이런 식으로 2014년부터 2년간 D등급 받은 대학에 들어간 국민 세금이 600억원이다.
저출산 여파가 곧 대학으로 몰아친다. 2023학년에는 대학 정원에서 무려 11만명이 모자랄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 있다간 상당수 대학이 도산해 학생들만 피해를 입는다. 그 전에 구조조정을 하자고 해놓고 실제로는 엉터리 행정을 편 것이다. 부실 대학들이 국민 세금으로 연명한 사이 우리 대학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더 떨어졌다.
최근 몇 년간 중하위권 대학에서는 경쟁적으로 교육부 퇴직 관료들을 보직교수로 영입했다. 이 퇴직 관료들이 부실 대학에 세금을 끌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부실 대학들은 세금을 끌어올 수 있으면 교육부 아닌 다른 부처 관료들도 데려간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하려면 정부부터 배제해야 한다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다.
8. 美 국방장관 첫 방문국이 한국이 된 의미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어제 방한해 황교안 총리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을 만났다. 오늘은 한민구 국방장관과 회담한다. 미국의 새 대통령 취임 2주 만에 국방장관이 전 세계 국가 중에서 한국을 가장 먼저 방문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새겨봐야 한다.
일단 매티스 장관은 트럼프 임기 초반에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을 현장에서 평가하고 이에 대응할 한·미 연합 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서울을 첫 방문지로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 초기에 일어났던 북한의 도발이 재현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2009년 3월 미국 여기자 두 명 억류, 4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 5월 핵실험으로 오바마 정부를 뒤흔들었다.
미국 새 정부는 오바마 정부와는 다른 대북 접근법을 모색할 가능성도 크다. 그 가능성 중에 군사적 선택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열린 미 상원 외교위원회 북한 청문회에서 이런 분위기가 나타났다. 이 청문회에서 미 상원의원들은 "북한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 "김정은을 암살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냐" 는 등 군사적 함의를 가진 이례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미국은 한국의 비상한 정치 상황도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조만간 등장할지 모를 한국의 새 정부가 사드 등 한·미 동맹 의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심각한 문제다. 매티스 장관 방한에 맞춰 일레인 번 전(前) 미 국방부 부차관보가 "우리가 동맹국 중 누구를 걱정하는지, 동맹국은 무엇을 할 것인지 등을 놓고 재평가해야 한다"고 한 것은 곱씹어봐야 할 언급이다. 매티스 장관은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사드는 오로지 방어 시스템으로 한·미가 사드 배치를 논의하는 것은 북한의 도발 위협 때문"이라고 했다.
한·미 간에는 내년 중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예정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 한국의 분담금이 부족하다는 언급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이임한 리퍼트 전 주한 미 대사는 "한국인들은 절대로 '무임승차자'가 아니다"며 평택 기지의 건설 비용 중 "96%를 한국이 부담하고 있다"고 했다.
한·미와 같은 혈맹 사이에도 돈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다만 이 문제가 필요 이상으로 부각되는 것은 양측 모두 피해야 한다. 다행히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후에는 한국에 부정적 언급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비상한 시기에 한·미 동맹에 요구되는 것 역시 지혜와 현명함일 것이다.
[매일경제]
9. 2월국회 재벌개혁만 거론말고 노동개혁 진전시켜야
2월 임시국회가 야권의 경제민주화법 '떨이처리' 국회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실상 대선 전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이번 국회에서 한번에 털고 가자는 전략인 듯한데 그렇게 쉽게 처리할 법안들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이번 국회에서 처리할 개혁입법을 지난달 일찌감치 선정했다. 여기에는 상법개정안 등 재벌개혁 목적의 법안들이 공통적으로 포함됐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재벌개혁은 정치·경제 권력의 부정한 결탁과 국민 피해를 막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며 소액주주 권리보호를 위한 전자투표제와 집중투표제 도입·감사위원의 독립성 확보·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을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 통과를 역설했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전경련 해체도 주장했다.
상법개정안에 대해서는 그 부작용을 염려하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 왔다. 보유한 주식 수에 뽑아야 할 이사 수를 곱한 수만큼 의결권을 주고 이를 한곳에 몰아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집중투표제의 경우 소액주주 보호가 명분이지만 실제는 외국계 자본의 이사회 장악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그룹 지주회사 지분을 1% 이상 확보하면 전체 자회사를 상대로 경영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외국계 펀드의 악의적 소송에 무방비 노출될 위험이 있다.
현재 국회 야당 의석은 3분의 2가 넘기 때문에 야당이 뜻을 모으면 상법개정안 등의 통과는 매우 유력한 상황이다. 이미 바른정당은 민주당 등과 협의해 이들 법안을 처리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일자리 창출을 위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정부가 읍소해온 노동개혁 4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파견법)은 이번 국회에서도 통과가 불투명해 보인다.
새누리당은 파견법을 제외한 나머지 3법이라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대선을 앞두고 노동계 눈치를 봐야 할 야당이 과연 협조할지 알 수 없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법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금 국회 상황을 보면 소수파인 여당은 실력이 안 되고 다수파인 야당은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그 와중에 시류영합형 법안은 별 고민 없이 통과되고 국가 경제에 숨통을 틔워야 할 '응급 법안'들은 기약 없이 밀려날 판이다. 그 후유증을 누가 감당할지 걱정이다.
10. 반기문 테마주 폭락, 코미디 같은 주식시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이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1일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반기문 테마주들이 급전직하하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다른 대선 주자 관련주도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종목은 특정 대선 주자와 무관하다는 공시까지 했는데도 테마주로 분류돼 주가가 널뛰기하고 있다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이러다가는 관련 기업은 물론 회사의 가치를 보고 주식을 산 투자자들도 피해를 입을까 걱정이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 테마주가 들썩거리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년 전인 1997년 15대 대선에서 본격 등장해 선거가 있을 때마다 문제가 됐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청권 수도이전 공약으로 이 지역에 연고가 있는 기업들이 주목을 받았고,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운하 건설 공약에 따라 건설주들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2010년 지방선거와 18대 대선, 19대와 20대 총선 때도 유력 후보를 중심으로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정치 테마주는 증시를 투전방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감시와 투자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대부분의 정치 테마주는 기업의 사업 내용과 실적 등 본질가치에 근거하기보다 뜬소문에 따라 급등락한다. 이를 이용해 시세조종세력 등 투기꾼은 한몫 챙기려하고 개인들은 투자금을 날리기 십상이다.
이는 한국거래소가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정치 테마주 16개 종목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본질가치와 관계없이 대선 후보의 학연과 지연 등 풍문으로 주가가 단기적으로 올랐다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개인투자자 10명 중 7명 이상이 손실을 본 것이다.
정치 테마주가 근절되지 않는 원인은 단기간에 큰돈을 벌려는 투자자 책임도 있지만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작전세력 탓이 큰 만큼 이들에 대한 집중 감시가 중요하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9일부터 정치 테마주 특별조사반 운영에 들어갔는데 이상 급등 종목이나 징후가 발견되면 즉시 조사에 착수하고 시장에 알려야 한다. 투자자들도 작전세력의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냉철한 투자 자세가 필요하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윤제림의 행인일기 30] 새우소녀 이야기
휴게소에서 우동을 먹고 있는데, 문득 한 소녀가 생각났습니다. 뜬금없이 떠올랐습니다. 저와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만난 적도 없는 여자애입니다. 가까이 모시는 어른께 들은 이야기의 주인공일 뿐입니다. 어른께서 팔십이 넘으셨으니 그녀도 그럴 것입니다.
무엇이 그녀를 생각나게 했을까요. 우동에 든 새우튀김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만치에 놓인 TV 뉴스화면에 비치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삼척동자도 아는 일을 끝끝내 '모른다' 하고, 증거가 즐비한데 한사코 '아니다' 우기는 이들 말입니다.
어른께 들은 이야기. "부산 피난 시절이었어. 그녀는 포장마차로 생계를 꾸리는 소녀가장이었지. 많은 남학생들이 흘끔대며 지나다닐 만큼 예뻤어. 어느 날, 그 애한테 새우튀김 하나를 사먹게 되었지. 그런데 맛이 영 수상쩍더라고. 재료가 신선하질 않았던 거야.
입에 넣었던 튀김을 뱉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지. '야, 이거 상했잖아!' 잔뜩 인상을 쓰고 눈을 부라리면서. 그 애는 겁에 질려 말도 못하고 오들오들 떨기만 하더군. 나는 더 기세등등해져서 언성을 높였지. '상한 것 맞지? 이런 걸 어떻게 팔 생각을 한 거야.'
이쯤 되면, 그 시절 음식장사들은 대개들 이렇게 나왔지. '무슨 소리요? 여태 아무 일 없었는데. 돈 안 받을 테니 썩 가시오.' 그런데 얘는 고개도 못 들고, 그저 좌불안석이야. 눈망울엔 눈물이 그렁그렁 열리고. 내 말이 옳다는 거지. 잘못을 안다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순순히 인정하더군. '네 …'
기어들어가는 소리였지만, 발음은 또렷했어. 그런데 이상하지. 오히려 내가 당혹스러워지더군. 금세 물렁물렁해졌어. 한껏 치밀었던 분노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라고. 탁자라도 내려치려고 움켜쥐었던 주먹은 스르르 풀리고. 여태껏 살아오면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대신하는 한 마디를 들은 적이 없어.
'맞아요, 새우는 상했어요.'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요.'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이해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 한 글자가 그렇게 많은 말들을 품고 있었던 거지. 말의 힘? 아니야. 그것은 '진실의 힘', '고백의 힘'이지.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어. 순순히 튀김 값을 내고 슬그머니 뒷걸음쳐 나왔지.
그게 끝이야. 그 뒤로는 포장마차도 여학생도 볼 수가 없었어. 어쩌면 내가 그 애를 볼 용기가 없었는지도 몰라. 한동안 그 길로 다니질 않았으니까. 요즘도 가끔 그 얼굴 그 표정이 떠올라. '새우소녀'. 이름도 성도 모르니까, 그냥 내가 그렇게 지어서 부르는 거야. 에이, 싱거운 이야기 또 했군."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실 때, 이 분의 표정은 결코 싱겁지 않습니다. 느릿하지만 묵직한 어조(語調)에서 아련한 향수가 느껴지고, 첫사랑에 대한 미련처럼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그래서 모종의 호기심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쩌면 소설 '소나기' 같은 '기-승-전-결'이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새우소녀가 '네 …!'라고 말하는 대목은 영화의 한 장면을 닮았습니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평화로 바꾸는 돌연한 반전(反轉)의 '컷'입니다. 이쪽이 아무리 감정을 증폭시켜보아야 저쪽은 아무런 응전(應戰)의 의사가 없다는 표시입니다. 조건 없는 투항입니다. 단두대에, 죄인 스스로 목을 들이미는 형국입니다.
물론 그렇게 잘못을 인정했다고 해서 상한 새우가 신선한 상태로 되돌려지진 않습니다. 그러나 손님의 상한 마음은 어느 정도 돌아섭니다. 호되게 물리려던 죄(罪)값에서 얼마쯤은 에누리를 하게 됩니다. 형편없이 후려치려던 사람값도 아주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은 면하게 합니다.
이 사람 역시 누군가의 자식이고 부모임을 생각하게 되면 더 그렇습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요즘 우리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도 자식 눈치는 보더군요. 어떤 어미는 수의(囚衣) 입은 모습을 아들이 볼까 전전긍긍한다고 들었습니다. 더 큰 죄인 한 사람은 딸 얘기만 나오면 눈물부터 흘린다는 기사도 읽었습니다.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당신들 자식의 눈만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TV만 켜면 나오는 당신들 얼굴을 온 나라 아이들이 보고 있다. 당신들의 거짓말은 이 땅의 모든 아이들 여린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 당신들이 '예'라고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거짓말 하는 어른들의 나라가 되고 있다."
죽는 날까지 반성과 회한(悔恨)이 많았을 사람, 춘원 이광수(李光洙)의 문장 하나가 의미심장하게 떠오릅니다. "나의 가장 심각한 '참회(懺悔)'는 어린 자식이 아픈 것을 볼 때에 온다." 당신들이 이제라도 '새우소녀'처럼 '예'라고 말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당신의 아이가 더 아파하고,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더 아파지기 전에.
할머니가 되었을 '새우소녀'도 그 한 마디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네 …."
2. [경향신문][먹거리 공화국] 황혼의 밥상
어린 우리들을 한 달에 한 번 괴롭히는 일이 있었으니 학교에서 폐품 모으는 날이었다. 바닥에 바짝 붙어 먼지를 마시며 밥을 버는 부모님은 신문을 보시지 않았다. 게다가 학교에 폐품을 갖다 내야 할 형제가 많으니 어쩔 수 없이 엄마가 큰맘 먹고 청량음료 한 병씩 사주고 그 빈 병이라도 갖다 내라셨다.
공중전화기 부스에서 전화번호부 뜯어오지 말라는 학교 가정통신문도 기억난다. ‘88 꿈나무’인 우리더러 21세기를 책임지라더니 그 꿈나무들을 넝마주이로 내몰던 시절이었다.
이제 그 꿈나무들은 출근길에 아파트 재활용 코너에 간단하게 폐품을 던진다. 이제 넝마주이가 사라졌는가. 그것도 아니다. 폐지를 주워 한 끼를 버느라 노구를 움직이며 새벽부터 길거리를 헤매는 노인들이 2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폐지 가격 중에서 가장 높게 쳐주는 것은 신문지이고 그다음엔 골판지다. 1㎏당 각각 100원, 80원가량. 노인 한 명이 거머쥘 수 있는 폐품의 양이 적어 하루 5000원의 소득을 올리는 일도 쉽지 않다.
우리 동네 한 식당은 폐지를 일부러 내놓는데, 폐지를 걷으러 온 할머니께 믹스커피 한 잔도 꼭 드린다. 그 믹스커피 한 잔은 기호식품이 아니라 할머니의 점심 한 끼다. 식당에서 밥을 한 끼 그냥 드리려 하지만 끝내 거절하신다. 믹스커피 딱 한잔은 할머니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서울 모처의 경로당 내에서 이루어지는 식사를 관찰하고 기록한 소준철·이민재의 ‘빈곤한 도시노인과 지역 내 자원의 흐름’이란 연구 발표를 들었다. 연구자들이 찍어온 경로당 밥상 사진은 스산하기 이를 데 없다. 밥과 김치, 계란찜(이제 계란 값도 올랐는데), 동태찌개가 차려진 날이다. 그날은 동태 중간 토막을 차지하는 것 때문에 할머니들 마음이 서로 상한 날이기도 했다. 반찬이 부족하니 밥양은 성인 남성들이 먹는 양을 웃돈다. 사과 한 개도 정확히 등분한다. 갈등의 요인이 되곤 해서다.
지자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경로당에 지원하는 쌀은 읍·면·동의 경우 1년에 120㎏에서 140㎏ 정도. 연구자들이 관찰한 경로당엔 평균 30명의 노인들이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필자의 아버지가 다니는 인천의 한 경로당에서도 30명 정도의 노인들이 점심을 드신다. 30명 기준으로 하루에 소비되는 쌀이 1.6㎏ 정도. 그러니 저 정도 지원받는 쌀로는 100끼니 정도를 겨우 채운다.
나머지 부족분은 각자 노력으로 메워야 한다. 종교시설에 가서 한 끼를 때우기도 하고 경로당 임원들이 주민센터에 쌀과 김치 지원을 요청하기도 하면서 가급적 모든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자신의 한 끼이자 공동의 식사를 해결하느라 분주하다.
한국에는 650만명의 노인들이 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중위소득에 못 미치는 빈곤 상태다. 여성노인의 빈곤 비율은 더 높다. 그나마 경로당에 가서 스산한 밥상이라도 받을 수 있는 노인들은 사정이 낫다고 해야 할지. 한 달에 3000~5000원 하는 경로당 회비도 버거워 발길을 끊는 노인들도 많다. 당장 급한 것이 집세이니 오늘도 폐지를 그러모으며 믹스커피로 한 끼를 넘기는 노인(할머니일 확률이 더 높다)들이 곳곳에 넘쳐난다.
이 추운 겨울, 저 어르신들의 저녁 밥상에 동태 한 토막이라도 올라갔는지 안부를 묻기조차 면구스럽다. 왜 하필 경로당의 경은 ‘공경할 경(敬)’자인지. 이 겨울 온기 있는 밥상은 누가 받고 있는가. 소년과 청춘, 그리고 황혼의 밥상마저도 차다.
3. [경향신문][문화중독자의 야간비행] 문화전쟁의 종착역
여기는 미국 워싱턴. 국회 사무실로 우편물이 날아든다. 그 속에는 도널드 와일드먼(DonaldWildmon)이라는 근본주의 목사의 분노에 찬 글이 실려 있었다. 때는 1989년 4월5일. 이른바 ‘문화전쟁(Culture War)’이라 불리는 극우 정치가와 예술가의 한판승부가 벌어진 것이다. 청와대발 예술인 블랙리스트 파동이 한창인 지금, 미국발 문화전쟁 사건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전쟁의 주인공은 뉴욕에서 태어난 안드레 세라뇨(Andres Serrano)란 사진작가다.
그는 1965년 출범한 미국 문화예술지원기관(NEA)에서 책정한 예산 지원하에 전시회를 열던 중이었다. 시비의 근원은 종교, 죽음, 섹스를 주제로 다루는 안드레 세라뇨의 작가정신이었다. ‘오줌 속의 예수(Piss Christ)’라 불리는 사진은 작가의 오줌, 정액, 피가 섞인 통에 빠진 십자가를 표현한 작품이다.
이를 기독교에 대한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하는 종교인의 일갈은 미국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공화당원들의 좋은 요릿감이 된다. 그들은 서둘러 ‘헬름스 수정조항(Helm’s Amendment)’이라는 악법을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서 NEA의 예술지원 기준을 강화하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섹스와 종교에 대한 불경, 동성애 등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명 ‘예술가 탄압법’은 예술가와 자유주의자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 사건은 결국 헌법 수정조항 제1조인 언론, 집회, 청원의 자유, 즉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예술가 집단의 판정승으로 끝난다. 여기서 예를 들어 보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섹스에 대한 불경이라고 못박는다면 인간의 나체를 소재로 한 수많은 걸작들이 화형식을 치러야만 할 것이다. 제임스 헌터(James Hunter)는 저서를 통해 이러한 현상을 ‘냉전시대보다 더 심각한 문화전쟁의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예술의 생명은 누가 뭐라 해도 표현의 자유가 최우선이다. 1950년대 이후 동구권으로부터 문화후진국이라 손가락질을 받았던 미국은 늘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패권주의를 신봉하는 타락한 파란 눈의 정치인들에게 예술가란 눈엣가시와 다름없는 존재였다. 따라서 민심을 조장하려는 권력자의 의중을 간파한 예술가들의 일상은 그리 자유롭지 못했다. 미국 예술후원기관이 프랑스보다 무려 40년이나 늦게 만들어진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모든 예술작품이 사회정치적 이슈를 담을 필요는 없다. 이 또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역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일그러진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예술혼을 탄압하는 사회는 후진국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21세기판 예술가 탄압의 증거인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명단만 존재할 뿐 이를 지시, 작성, 보고한 자가 없다던 혐의자들의 주장이 모두 허구였다는 특검의 발표가 새해 벽두를 장식했다. 통쾌하기보다는 안타까운 기류가 시야를 어지럽힌다. 한국발 문화전쟁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지원은 고사하고 창작자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려는 정부의 태도가 출발역이라면, 모든 창작자가 마음껏 상상력을 표출하는 공정사회가 종착역일 것이다.
예술가란 정치적 자기검열의 틀에 갇히는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유리벽 같은 존재다. 예술가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그곳은 뇌사상태에 빠진 권력자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와 다를 바 없다. 천국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예술과 삶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공간. 그곳을 우리는 천국이라 부른다. 예술다운 예술이 존재하는 참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야간비행을 시작한다.
4. [서울신문][데스크 시각] ‘속초 유학파’의 서울 광화문 포켓몬고 체험기
‘쥬피썬더.’ CP 1239. SS급 포켓몬. 특성 10만V 전기. 출신 대한민국 강원도 속초시. 탄생 2016년 7월 27일.
내 휴대전화에 CP 랭킹 1위를 장식한 포켓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다. CP는 공격력·방어력·체력 등의 총합이다. 쥬피썬더는 포켓몬 ‘이브이’의 진화체다. 얼마 전 ‘체육관’에서 다른 포켓몬들과 전투를 시켜 보니 ‘매우 효과적인 공격’을 했다. 이브이를 총애하다 보니 CP 랭킹 2위도 쥬피썬더이다.SS급보다는 능력이 덜한 A급 이브이가 진화했다.
CP 1226이다. 랭킹 2위 쥬피썬더 출신지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다. 2017년 2월 1일 포켓볼 보급소 격인 포켓스톱이 20~30m마다 깔린 ‘천국’ 서울 광화문에서 잡아 진화시켰다. 오늘 출근길에 포켓몬 500마리를 잡았다는 축하 메달도 받았다.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랭킹 1위와 2위 쥬피썬더는 탄생 시점에 7개월의 공백이 있다. 출신 지역도 속초와 서울로 서로 다르다. 이런 차이는 포켓몬고의 한국 정식 출시가 올 1월 말에 된 탓이다. 지도 반출 문제로 게임 출시를 못 한다더니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고 해명해 사실 어리둥절하다.
포켓몬고 게임과 관련해 이른바 ‘속초 유학파’로 불린다. 지난해 여름휴가 때 속초에서 포켓몬고 게임을 했다는 의미다. 당시 속초는 재밌었다. 포켓몬고 게임이 증강현실(AR) 게임이라고 했으나, 오히려 현실이 가상현실(VR)에 발목 잡혀 있는 것 같았다. 이 게임은 걸어다녀야 하는 탓에 승용차에 탑승했을 땐 보행자처럼 GPS를 속이려고 운전 속도를 줄인다.
운전자들은 갑자기 출현한 포켓몬을 잡으려고 급브레이크를 잡기도 했다. 그때 속초에서는 서울·경기 등 타 지역에서 온듯한 승용차들이 천천히 달리다가 급브레이크를 잡는 일이 적지 않았지만, 경적을 울리고 화를 내기보다는 속내를 서로 이해한 듯 웃어넘겼다.
또 속초의 ‘포켓몬고 성지’에서는 배터리팩을 휴대전화에 연결한 젊은이들이 신주 모시듯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들고 좀비처럼 어슬렁거렸다. 게임에 동참하지 않았더라면 ‘뭐하는 거냐’며 손가락질했을지도 모르겠다. 1박2일 속초 여행에서 ‘팀 미스티’ 소속으로 레벨 13으로 돌아왔다.
7개월 만에 다시 포켓몬을 잡고 CP값이 낮은 포켓몬을 ‘박사에게 보내’ 사탕으로 갈아서 1·2단계 진화시키는 과정에서 상당한 시행착오를 발견했다. 진화 사탕 50개·100개를 써 진화시켜 놓았더니 “좀처럼 활약이 어려워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체육관에서 전투를 벌이면 쉽게 진다는 의미다. 그 이유를 모르다가 최근 알았다. 포켓몬들의 능력을 분석하는 아이브이고(IV GO)를 최근 설치한 덕분이다.
CP값이 높은 포켓몬을 포켓볼 십여 개나 낭비하면서도 잡아도, 근본이 틀렸으면 별 볼일 없는 포켓몬인 거다. 아이브이고는 포켓몬 개체를 SS-S-A-B-C-D로 평가했다. SS급이 가장 전투력이 좋고 진화에도 유리하다. 포켓몬마다 CP값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내재적 가치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진화시킨 나의 쥬피썬더가 SS급인 것은 그저 행운이었다.
게임조차도 엄격하게 내재적 가치를 평가한다. 겉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흔히 사람을 평가할 때 번드르르한 겉만 평가하기 쉽다. 경력이 어떠냐, 외모가 어떠냐, 집안이 어떠냐 등등. 그래서 ‘꽃길’만 걸었던 인물에게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곤 한다. 그러나 꽃길만 걸은 인물이 그 꽃길을 조성한 평범한 사람들의 성실과 노력은 잊었다면 그 인물은 원래 큰 인물이 아닐지 모른다. “내가 잘나서 출세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영 별로인 거다.
5. [매일경제]{매경춘추] 사투리의 힘
부산에서 태어나 스무 살까지 살았던 나는 당연히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이후로 서울에서 더 오래 살았지만, 대학 졸업 직전에 아나운서가 되면서 의식적으로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아무리 표준어를 구사해도 내 말에서 고향의 억양이 미묘하게 배어나온다는 것을 나는 안다. 특히 내 고향 사람들은 어김없이 내가 그쪽 사람임을 알아본다.
나 또한 연기자든 아나운서든 경상도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경북 쪽인지 경남 쪽인지, 유년시절만 잠깐 살았는지 성년에도 살았는지까지 얼추 맞히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완벽하게 사투리를 쓴다. 그들에게는 어차피 어색하게 들릴 낯간지러운 표준말을 버리고 속시원하게 고향 말을 쓰는 게 즐겁고 후련하니까.
얼마 전에는 그 즐거움과 후련함을 방송에서도 맛보았다. 이제는 아나운서가 아니라 소설가로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내 작품 일부분을 낭송할 때 주인공의 대사를 사투리 그대로 읽었던 것이다. 고향의 말을 쓰는 내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전국에 생방송되는 건 생각보다 짜릿한 일이었다. 비로소 가면을 쓰지 않은 진짜 목소리로 말하는 느낌이었달까.
그 무렵 여고 졸업 30주년 행사에서 옛 친구들을 만나 허물없이 얘기하며 공감했던 경험은 또 어떠했던가. 각자 그동안 살아온 세월을 털어놓다가 누군가 툭 던진 "산다고 욕봤다!"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졌던 우리. 사투리라는 훌륭한 도구를 통해 우리는 직관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함께 웃었다. 그리고 뒤늦게 참석한 국민학교 동창회에서도 전설처럼 아득해진 추억 속에 어색하게 마주한 남자 동창들과 진한 사투리로 말을 하기 시작하자 단숨에 지난 세월을 뛰어넘는 마법 같은 경험을 했다. 군더더기 없이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
행복이란 결국 자기 만족이므로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행복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편안할 때,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해질 때, 그때 내가 어떤 말을 쓰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은 스스로를 이해하는 하나의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또다시 고향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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