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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경향신문]
1. 부당한 치킨 가격 인상 철회, 공정위가 돌아왔다
소비자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치킨 가격 인상을 전격 철회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후 첫 행보로 공정위가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주 사이의 불공정 계약 관계 등을 조사한다는 뉴스가 전해진 지 반나절 만의 일이다. 반가운 소식이다.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의 존재 이유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지난 5월 치킨 프랜차이즈 BBQ는 인건비 상승 등에 따라 가맹점들이 가격 인상을 요구해 10가지 제품 가격을 올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격 인상 직후 가맹점에 광고비 분담 명목으로 마리당 550원씩 거둬들이겠다고 통보했다. 말로는 가맹점 요구에 의해 가격을 올리고 가격 인상분 모두를 가맹점에 줄 것처럼 했지만, 실제로는 본사가 상당액을 챙겨간 것이다.
BBQ는 지난 5일에도 20여 품목의 가격을 올렸다. 가격 인상은 가맹점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다. 소비자는 치킨 소비를 줄이는 선택이라도 할 수 있지만 가맹점은 매출 급감으로 당장 경영난에 몰릴 수 있다.
이 같은 갑질은 치킨 프랜차이즈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피자헛 가맹점들은 본사가 근거 없이 부과한 ‘어드민피’(구매·마케팅·영업지원 명목으로 받는 가맹금)로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본죽’을 운영하는 본아이에프는 소고기 장조림 등 식자재를 특허받았다고 속여 가맹점에 공급한 사실이 적발됐다. ‘죠스떡볶이’를 운영하는 죠스푸드도 본사 부담 점포 리뉴얼 비용을 가맹점에 떠넘기다 시정명령 등을 받았다.
외식 프랜차이즈가 ‘자영업자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 같은 본사의 갑질 때문이다. 자영업 경험이 없는 퇴직 직장인들이 주로 뛰어드는 외식 프랜차이즈는 2015년 폐업한 사업자 수가 1만3241명으로 하루 평균 36명에 이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공정위는 무기력했다. ‘공정’이 빠진 ‘경쟁 당국’으로서 최소한의 업무만 해왔다. 그러다보니 시장의 경쟁 촉진과 무관한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나 프랜차이즈 본사 횡포 등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우리 사회가 공정위에 요구하는 것은 경제·사회적 약자를 보호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대기업의 독과점이나 재벌 총수 자제들의 불법 승계 등을 막는 업무는 물론이요, 경제적 약자인 ‘을’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에도 최선을 다해주기를 기대한다.
[매일경제]
2. 부채의식 안고 임명된 강경화 장관 실력 보여주는 길밖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임명했다. 지난달 21일 후보자로 지명된 지 28일 만이다. 문 대통령은 "외무고시 중심의 폐쇄적인 외교부 조직문화를 크게 바꿔놓을 필요가 있다"며 임명을 강행했다. 지난 1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장관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이고 최종 판단은 국민의 몫"이라며 정면돌파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 다음달 초 G20 정상회의 등이 예정돼 있는 만큼 외교부 장관 임명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판단이다. 하지만 야 3당이 강력 반발하고 있어 국정이 꼬일 가능성도 크다. 자유한국당은 "강경화 임명을 강행한 것은 대통령의 독선"이라고 밝혔고, 국민의당도 "국회와의 협치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강 장관은 딸의 위장전입, 봉천동 주택 세금 탈루, 박사학위 논문 표절, 배우자 거제도 땅 투기 등 문 대통령의 5대 인사 배제 원칙 중 4개 부문에서 의혹이 제기된 데다 그런 흠결을 덮을 만한 실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야당의 반대 이유였다. 문 대통령이 강 장관을 임명하면서 5대 인사 배제 원칙이 비현실적인 목표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야당의 양해를 구하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강 장관은 유엔에서 활약한 다자외교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북핵 문제와 동북아 주변 4강 외교에서는 경험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야당의 우려처럼 지금 대한민국의 외교 안보 상황은 간단치 않다. 사드 문제를 둘러싸고 한미 간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데다 북한과의 대화에서도 우리는 북 비핵화·대화 병행, 미국은 선 비핵화, 후 대화로 엇박자가 나고 있다. 그런 만큼 새 외교수장의 역할은 너무도 막중하다. 특히 열흘 앞으로 다가온 한미 정상회담은 강 장관에게 시험대가 될 것이다.
강 장관은 새 정부에 부담을 주며 임명된 만큼 국민에게 부채의식을 갖고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가장 뜨거운 이슈인 북핵·사드 문제를 파열음 없이 조율하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의 위태로운 관계를 풀 창의적 해법도 내놓아야 한다. 14년 만에 임명된 비고시 출신 장관인 만큼 외교부의 순혈주의를 혁파하고 외교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아야 할 것이다. 탁월한 실력과 전문성으로 자신의 임명에 반대했던 이들의 판단이 틀렸음을 입증하기 바란다.
[이데일리]
3. 강경화 외교부장관 임명 이후의 과제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강경화 외교부장관에 대해 임명장을 수여했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한·미 정상회담의 원활한 준비를 위해서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이번 회담이 양국 정상 교체 이후 처음 열리는 것으로, 최근 대북정책 및 사드 배치 문제를 둘러싼 양국 마찰이 자꾸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무 장관의 임명을 더 이상 늦추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사정을 십분 이해한다.
이로 인해 향후 정국 흐름에서 더욱 거세질 야권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하느냐가 시급한 과제다. 당분간 협치 분위기를 기대하기 어렵게 됨으로써 후속 인사청문회와 일자리 추경 등 새 정부의 중점추진 정책들이 자칫 난관에 부딪칠 소지가 커진 것이다. 정부 각료를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며, 이번 강 장관 임명이 법 절차에 따른 것이기는 하더라도 야권의 의사를 무시해서는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 장관 임명에 앞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한 자체가 정치적 타협의 중요성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새 정부 들어 내각과 청와대에서 중책을 맡거나 아직 후보자 상태인 사람들 가운데서도 음주운전이나 논문 표절 등 흠결이 드러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이미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자가 자질 문제에 부딪쳐 자진 사퇴하는 등 인사검증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청와대가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 청와대가 임종석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인사추천위원회를 본격 가동하기로 했다니, 부적격 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 단계에서 관심은 새로 임명된 강 장관이 자신의 역량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외교부장관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스스로 증명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현재 여건상 미국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과의 당면 현안도 간단치가 않다. 위안부합의 재협상 문제나 사드 보복 문제가 그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중차대한 임무를 맡았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야권도 반대할 때와 찬성할 때를 구분하려는 지혜와 아량이 중요하다. 발목잡기식의 무조건 반대는 곤란하다. 정략적 관점보다는 국가적 관점을 앞세워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4. 康 장관 임명 강행으로 협치의 문 닫혀선 안 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어제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았다. 후보에 지명된 지 28일 만이다. 문 대통령은 강 장관의 인사청문 보고서를 재송부 기한까지 국회가 채택하지 않자 임명을 강행했다.
휴일에도 임명을 밀어붙인 것은 청와대가 그만큼 외교 현안의 급박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미 첫 정상회담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자유무역협정(FTA), 주한미군 주둔비 인상 등 급히 꺼야 할 발등의 불이 여럿이다. 다음달 초에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도 열린다. 이런 중요 일정을 외교 수장 없이 치를 수는 없는 형편이다.
손익계산을 했겠지만 강 장관의 임명 강행으로 청와대는 또 납덩이를 짊어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을 밀어붙일 때와 대응 논리는 이번에도 같았다. 자질 논란의 흠집보다는 정책 역량을 중시하는 국민 눈높이에 부합한다면 문제 없다는 주장이다.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80%를 웃돌고 있다. 청와대로서는 여론이 든든한 ‘백’일 것이다. 그렇다고 눈앞의 현실은 외면하고 보고 싶은 것만 봐서는 곤란하다. 야당에서는 강 장관 임명 여부를 협치와 소통을 가름하는 마지노선이라고 청와대에 한두 번 으름장을 날린 게 아니었다. 당장 강 장관이 임명되자 야당은 청와대의 인사 실패를 공격하며 대응 수위를 높인다.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겠다는 분위기마저 내비치고 있으니 협치는커녕 급랭 정국은 불 보듯 빤하다.
그끄저께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자격 논란에 결국 자진 사퇴했다. 불법 혼인신고 전력을 청와대가 알고도 밀어붙였다는 의심이 깊다. 안 후보는 문 대통령이 직접 챙겼다고 소문났던 인사다. 그런 이가 어이없이 낙마했는데도 청와대는 사과는 고사하고 변명 한마디가 없다. 이쯤 되면 인사 참사라는 혹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지 여론은 분별력도 없다고 청와대가 얕잡아 보는 건 아닌지 의문스럽다. 위험천만한 오산이다. 안 후보의 갑작스런 사퇴에 어안이 벙벙한데, 일언반구 없이 청와대의 강 장관 임명식은 화기애애해 보였다. 그런 ‘마이웨이’가 국민 눈에 곱게만 비칠지 돌아보길 바란다.
협치의 시동도 걸기 전에 정국이 꼬여만 가서는 안 된다. 할 일은 태산인데 인사로 발목 잡힌 청와대의 심정이 오죽 답답할지 이해는 된다. 그렇더라도 일방 독주는 해법이 아니다. 우리에게 독주 정치의 트라우마가 크다는 사실은 문 대통령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당장 김상곤 교육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인사도 자질 논란에 안갯속이다. 야당의 정치 공세를 운운하기 전에 청와대가 민정수석실의 인사 여과 장치부터 완전히 손봐야 한다. 협치의 발목을 잡는 훼방꾼은 적어도 지금은 야당이 아니라 구멍 뚫린 청와대 인사 검증 시스템이다.
5. '김상조식 개혁' 시동, 고질적 갑질부터 도려내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경제검찰’ 역할에 국민의 시선이 쏠린다. 공정위가 프랜차이즈 업계의 갑질 혐의에 대해 조사에 나선 데 이어 부동산 재벌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김상조식 재벌개혁’의 신호탄이 올려진 셈이다. 개혁 의지가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공정위가 어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혐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 자료의 허위 제출이다. 사실상 그룹 일가친척들이 운영하는 회사 여러 곳이 대기업집단에 편입되지 않도록 한 정황과 소유주를 차명 기재한 혐의 등을 포착한 것이다. 이는 위장 계열사 또는 친족기업에 일감 몰아주기를 막겠다는 김 위원장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계열사 24개를 거느린 부영이 재벌개혁의 첫 시범 케이스가 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정위는 앞서 김 위원장 취임 이틀 만인 지난 15일부터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인 BBQ의 지역사무소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다. 본사가 가맹점으로부터 광고비 분담 명목으로 판매수익의 일정 부분을 가져가기로 한 과정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갑의 횡포’를 따져 보겠다는 조사다. 김 위원장이 취임 때 밝힌 ‘을의 눈물 닦아 주기’가 구체화된 것이다.
공정위의 이 같은 움직임에 BBQ는 최근 두 차례 인상한 30여개의 제품값을 원상복구했다. 교촌치킨은 가격 인상 계획을 백지화했고 BHC는 이달 한 달 동안 판매가격을 내리기로 하는 등 업계 빅3가 일제히 공정위에 백기를 들었다. ‘국민간식’이라는 치킨 제품의 잇따른 가격 인상에 벙어리 냉가슴만 앓던 소비자들에게 공정위가 시원한 사이다를 제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연히 공정위의 다음 횡보에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공정위의 칼날이 모처럼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만큼 차제에 고질화된 업계의 갑질 행위를 모조리 도려내길 바란다. 납품업체에 대한 부당한 수수료 강요, 부당 반품 등의 갑질 관행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특정 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와 편법 승계 등 잘못된 부의 축적 관행과 경제력 오남용 행위 등도 철저히 가려내야 할 것이다. 재벌개혁은 멀리 있지 않다. 약자인 납품·하청업체와 소비자 등을 괴롭혀 제 잇속만 차리는 부당행위를 뿌리 뽑는 것이 바로 재벌개혁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중앙일보]
6. 혼준표의 무책임한 막말정치어디까지 가는가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어제 7·3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막말들을 쏟아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친박 패당정부에서 주사파 패당정부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며 “언론 기능은 지금 경영의 어려움 때문에 정상적 기능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극단적 발언마저 서슴지 않았다. “신문 갖다 바치고 방송 갖다 바치고 조카 구속시키고 겨우 얻은 자리가 청와대 특보 자리”라고 했다.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극언이다.
홍 전 지사는 교묘하게 주어(主語)를 생략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신문, 방송, 조카 구속, 특보라는 표현의 공통분모는 딱 하나밖에 없다. 바로 중앙일보와JTBC, 그리고 홍석현 전 회장이다. 모든 언론이 홍 전 지사의 막말을 보도하면서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을 겨냥해’라고 못 박은 것은 이 때문이다. 홍 전 지사는 근거 없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중앙일보와 홍 전 회장의 명예를 명백히 난도질했다.
우리는 편집권의 독립을 지키며 언론의 정도를 걸어왔다고 자부한다. 대선 때 가장 예민했던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북한에 대한 인권결의안 사전 문의 메모를 특종 보도한 곳이 중앙일보였다. 우리는 신문이나 방송을 갖다 바친 적이 없다. 홍 전 지사는 누가 어디에 신문과 방송을 갖다 바쳤는지 주어와 목적어부터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청와대 외교안보특보 건도 마찬가지다. 홍 전 회장은 미국 특사에서 귀국하던 지난달 21일 “처음 듣는 말이라 당혹스럽다”고 말한 뒤 고사의 뜻을 전했고 청와대도 이를 받아들였다. 여야의 여러 정치인들도 이를 알고 있다.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도 홍 전 지사의 극언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저렇게 막말 한다고 강한 야당이 되느냐” “품격 있는 보수로 가야 살길이 생기는데, 저런 막말로 가면 미래가 없다”…. 어떤 정치인이라도 타인의 명예를 난도질할 면죄부를 갖고 있지 않다. 홍 전 지사는 자신의 망언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검찰 출신의 정치인답게 자신의 발언에 법적 책임도 져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7. 대통령 對 야당, 너무 빨리 대결로 간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야당의 반대 속에 강경화 외교부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야 3당은 "국회와 국민을 무시한 폭거"라며 반발했다. 17개 부처 장관 가운데 아직도 12자리나 남아 있다. 3개 부처는 후보자 발표도 못 했다. 조각(組閣)도 갈 길이 멀지만 추경(追更)과 정부조직법 처리, 헌법재판소장 인준 표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야당을 향해 "선전포고라든지, 강행이라든지, 협치는 없다든지, 마치 대통령과 야당 간에 승부를, 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하는 것은 참으로 온당하지 못하다"고 했다. "국정이 안정된 시기와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시기의 인사(人事)는 많이 다르다"면서 한 말이다. 새 정부가 전(前)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출범했지만 '개혁'을 내세우기만 하면 부실(不實)·하자(瑕疵) 인사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이 법무장관 후보자 사퇴와 관련해 "(검찰 개혁) 목표 의식이 앞서다 보니 약간 검증이 안이해진 것 아닌가"라고 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국회와 국민의 지적을 아프게 받아들인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약간' 허술했다는 대통령 인식엔 동의할 수 없다.
대통령과 야당이 서로 비난을 주고받으면 정국은 경색된다. 새 정부 출범 두 달도 안 돼 너무 빨리 대결 국면이 벌어지려 한다. 모두 패자(敗者)가 되지만 결국 대통령의 피해가 더 크게 된다. 지금 사퇴한 법무장관 후보자 외에도 김상곤, 조대엽 후보자의 흠결은 맡을 직무와 직결돼 도저히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수준이다. 당사자든 임명권자든 매듭을 풀어야 한다.
[매일신문]
8. 공공기관 효율과 경쟁력, 이제 뭘로 평가 할까
공공기관 성과연봉제가 결국 폐기됐다. 기획재정부가 16일 ‘2016년도 공공기관 경영 평가 결과 및 후속 조치’를 발표하면서 공공기관 보수 체계를 성과연봉제 도입 이전으로 되돌리거나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다. 이로써 지난해 6월 전체 120개 공공기관이 도입한 성과연봉제가 시행 1년여 만에 없던 일이 됐다.
박근혜정부는 지난해 1월 공공기관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성과연봉제 적용을 선언했다. 상당수 공공기관이 노사 합의 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등 불과 5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제도 도입을 밀어붙였다. 이에 반발한 노조가 급기야 소송전을 벌이면서 ‘노조와 합의하지 않은 성과연봉제 도입은 무효’라는 법원 판결까지 나왔다.
성과연봉제 폐지로 이제 공공기관의 효율과 생산성, 임직원의 경쟁력 등 경영 성과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장치는 사실상 없다. 고작 정부가 매년 공기업(30개)과 준정부기관 등 120개 기관의 경영 실적을 따지는 ‘공공기관 경영 평가’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공공기관 임직원 임금을 결정할 때 경영 평가 결과를 반영하지만 변별력이 크게 떨어지는 등 신뢰할 만한 평가 수단으로 보기는 어렵다. 사실상 국가 경제에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공공 부문의 효율을 평가하고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소리다.
상당수 공공기관이 방만한 경영과 낮은 효율로 손가락질을 받아온 지 오래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경영으로 국민 세금만 축낸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성과연봉제 등 공공기관의 생산성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마저 이제 걷어 냈다. 앞으로 공공기관의 경영 효율과 재정 건전성 등에 국민의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공공기관 스스로 효율성을 높이고 임직원들이 알아서 경쟁력을 키워 나간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계속 부실 경영으로 국가 경제에 주름을 지우고 놀고먹는 집단으로 낙인찍힌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도 ‘신의 직장’ 소리가 계속 나온다면 국민 입에서 ‘적폐 청산’ 구호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런 불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공기관 개혁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
9. 고리원전 1호기 영구 정지…국내 원전 정책 분기점 맞았다
국내 첫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전 1호기의 가동이 19일 0시부로 영구 정지됐다. 가동 40년 만에 고리 1호기가 영구 정지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 정책에 큰 분기점을 맞게 됐고, 문재인 대통령의 19대 대선 공약인 탈(脫)원전 움직임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고리 1호기의 가동 영구 정지는 예정된 일이었다. 고리 1호기는 설계수명 30년을 넘겨 10년 연장돼 운영돼 오는 상황에서 잦은 고장을 일으켜 불안감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잘한 결정이지만 원전 폐로는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막대한 비용과 기술, 시간이 필요하고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등 난제가 첩첩이 쌓여 있다.
대형 상업 원자로 해체 경험이 전무한 우리나라로서는 원자로 해체 과정에서 어떠한 기술적 장벽에 직면할지, 또한 어떤 형태의 사회적 갈등이 분출될지 현재로서 예단키 어렵다. 비용도 문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 1호기 해체 비용으로 6천억여원을 적립해 놨다고 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추산한 해체 비용만 해도 1조원이 넘는다. 게다가 원전 해체 38개 핵심기술 가운데 11개를 보유하지 못하는 등 우리나라는 이 분야의 기술 자립이 안 돼 있는 상태다.
지금까지 확대일로에 있던 원전 산업의 축소도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이달 말 ‘월성 1호기 계속 운전 허가 효력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 대한 서울고등법원의 결정이 나올 것으로 예정돼 있지만, 새 정부의 대선 공약에 월성 1호기 폐쇄가 포함돼 있었던 만큼 법원 판단과 상관없이 월성 1호기 역시 고리 1호기의 뒤를 따라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원전의 잇따른 가동 정지로 당장 올여름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 정부는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가 생산하는 전력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아 전력 수급 계획에 지장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석탄화력발전소의 잇따른 폐쇄와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 완화에 따른 올여름 전력 수요 증가가 동시에 겹칠 경우에 대한 플랜도 세워놔야 한다. 아울러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도 서둘러야 한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한겨레]
10. 문정인 특보의 '대북 대화' 발언 논란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포함한 한-미 연합군사훈련 규모 축소를 미국과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상근 특보이므로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고 관찰한 것을 얘기하는 것”이라며 선을 그었고, 청와대도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특보’라는 그의 위치 때문에 미국이 직접 관련된 구체적 사안까지 언급한 이번 발언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문 특보의 발언은 16일(현지시각) 한국 동아시아재단과 미국 우드로윌슨센터가 워싱턴에서 연 세미나 및 특파원 간담회에서 나왔다. 그는 ‘전략자산 축소’의 경우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키리졸브연습과 독수리훈련에 포함된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등 전략무기를 하향조정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연계하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또다른 제안이라고도 소개했다.
그의 발언은 문 대통령이 최근 ‘6·15 남북공동선언 17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힌 데서 한걸음 나아가 ‘상응 대가’를 구체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반도 긴장국면을 대화국면으로 바꿔야 한다는 건 절박한 시대적 요청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제재와 압박 일변도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시키기는커녕 위기를 고조시켜 왔을 뿐이다. ‘비핵화’가 궁극적 목표임을 분명히 하되, 핵·미사일 활동 동결 및 폐기 등 구체적 중간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긴장 완화’라는 조건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국제적 규범을 지키는 최소한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그 전제다.
문 특보의 발언은 비핵화의 ‘프로세스적’ 측면을 강조해온 전문가들이 그동안 제안했던 여러 해법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야당들이 “북한의 압력에 대한 투항” “한-미 동맹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발언”이라며 총공세에 나서는 건 과한 반응이다. 다만 한-미 정상회담을 열흘 남짓 앞둔 시점에서 민감한 내용이 특보의 발언으로 표출되는 것은 신중한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지금은 ‘대화 기조’에 대한 국내외 공감을 형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요신문칼럼
1. [조선일보][기고] 로보캅이 낸 사고는 누가 책임지나?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가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로보캅(로봇 경찰)을 배치했다. 두바이 로보캅은 키 170㎝, 몸무게 100㎏ 정도로 바퀴를 이용해 자율주행을 하며, 영어와 아랍어, 러시아어, 중국어, 프랑스어 등 9개국 이상의 언어를 이해하고, 범인 얼굴 식별, 심리 상태 판독 등을 할 수 있다.
첫 임무는 도심 순찰과 터치스크린을 통해 관광 정보를 안내하는 것이지만, 내년부턴 범죄 정보를 수집하는 순찰 임무도 맡는다고 한다. 두바이는 2030년까지 경찰 25%를 로보캅으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한다. 4IR(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 로봇 시대의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일 것이다.
그런데 불미스러운 사고가 난다면 누구의 책임인가에 대한 법적, 정책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작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쇼핑몰에서 경비로봇이 16개월 아이를 공격한 사건이 있었다. 이런 사건이 있을 때, 경비로봇을 고용(?)한 쇼핑몰 책임인지, 경비로봇을 판매한 회사 책임인지, 아니면 로봇의 인공지능을 설계한 프로그램 회사 책임인지에 대한 법적 공방이 생길 수 있다.
우리의 생명 및 건강과 직결되는 의료의 경우에도 인공지능이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 또는 수술을 했는데 의료사고나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담당 의사와 병원, 로봇 판매 회사 중 누구 책임인지 불분명할 수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기업들은 기준을 수립하기가 매우 부담스럽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입법 및 정책적 문제로 귀결될 확률이 매우 높다. 4IR 시대엔 인공지능 기기의 오류나 오작동으로 인한 안전사고, 또는 해킹이나 기기 이용자의 실수 등으로 생각지도 못한 돌발 상황이 무수히 나타날 수 있다.
4IR 기술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속도 못지않게 중요한 게 방향성이다.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4IR 시대의 맞춤형 입법과 제도적인 체계를 세밀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차근차근 준비해나가야 한다. 새 정부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중심으로 정부 주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청사진을 밝힌 적이 있다. 사업 주체인 민간과 정책을 주관하는 정부가 협력해 체계적으로 4IR 시대에 적합한 정책과 입법 지원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2. [한국일보][삶과 문화] 침묵의 목적
일요일일 수밖에 없는 날씨였다. 아무리 심술궂은 신이라도 이런 햇빛과 이런 바람, 이런 하늘을 펼쳐 놓고, 사람들에게 일하러 나가라고 할 수는 없을 테니. 날씨 탓에 너무 긍정적이 되어 버렸나? 그럼에도 나는 혼자였다. 친구도 가족도 없이, 좋은 것은 날씨뿐. 14층 옥탑 방 창문을 열고, 빛으로 씻어낸 듯 선명해진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어디선가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고, 바람이 불어 왔으며, 창가에 매달아 놓은 대나무 풍경이 나지막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햇빛, 음 하나하나에 방점을 찍으며 종소리는 울려 퍼지고, 바람, 대나무 조각들은 가볍게 부딪히고, 그리고 고요. 이 모든 것의 배경인 고요. 불현듯 나는 깨달았다. 혼자가 아니었다면, 이 아름다움은 나에게 오지 않았으리라. 아쉬운 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보려고 애쓰다 생각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의미를 알아들으려 노력하지 말고, 사람들의 말소리를 종소리처럼, 바람소리처럼 들어볼까?
산 설고 물 설은 타국에서 한 달여를 머무르고 있으나, 낯선 이들의 언어는 날이 갈수록 나를 의기소침하게 했다. 넘을 수 없는 성벽은 높아만 갔고 건널 수 없는 해자는 깊어만 갔다. 호기심도 도전의식도 꺾이고, 머물고 있는 숙소는 또 하릴없이 편해서, 날이 갈수록 문밖으로 나갈 일이 막막했다. 그런데 그날 나는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냥 눈을 감고 듣기만 해보자. 그러면 의미에 가려져 있던 무엇이 들릴지도 모르지. ‘영리한 말 한스’가 되어 보는 거야.
백여 년 전 독일에는 사람 말을 알아듣고 날짜 계산까지 할 수 있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영리한 말 한스는 발굽으로 땅을 두드려 사람들이 낸 문제의 답을 알아맞히곤 했다. 학자들은 의심을 품고 실험을 거듭했고, 그 결과, 한스가 정말로 사람 말을 알아듣거나 숫자 계산을 하는 게 아님을 밝혀냈다. 한스는 질문하는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 몸의 긴장 상태 같은 것을 감지해 반응했을 뿐이라는 것. 믿거나 말거나 소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동네 카페로 들어가 구석자리에 앉는다. 젊은 어머니와 초등학생 아들이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를 먹고 있다. 서너 명의 중년 사내들이 모여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백포도주 한 잔을 앞에 놓고 홀로 앉아 있는 할머니도 눈에 띈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나는 눈을 감는다. 귀를 기울인다. 무엇이든 감지해보려 애쓴다.
신경이 쫑긋 곤두선다. 나를 향해 의아한 눈길들이 쏟아지는 것 같다. 아니야, 이게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젓는다. ‘영리한 말 한스’ 같은 건 잊어버리자. 의미를 알아들으려는 노력도, 단서를 감지하려는 노력도, 모두 그만 두자. 재미없다. 굳이 정답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주위가 소란해진다. 맥주를 마시고 있던 아저씨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서빙을 하던 웨이트리스가 손님 바지에 맥주를 쏟았나 보다. 연신 미안해하는 웨이트리스를 향해 아저씨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엎질러진 맥주를 분주히 닦다가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내며 웃음을 터뜨린다. 나도 모르게 따라 웃는다. 카페 안은 금세 시큼한 맥주 냄새로 가득 차고, 사람들은 다시 새처럼 지저귀기 시작한다. 나도 홀로 중얼거린다. 말이란 게 뭔데?
유창한 우리말로 내가 내뱉은 말들은 고작 변명이거나 해명 아니면 핑계였다. 허세와 험담과 인사치레였다. 새삼 코를 벌름거리며 맥주 냄새를 맡는다. 말을 안 하고 있으니 이렇게 좋다. 네가 좋아한다고 말해서 나도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고, 네가 싫어한다고 말해서 나도 싫어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도리 없이 침묵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좋음. 이제 그만 중얼거리고 갓 구운 빵처럼 신선한 맥주 냄새나 실컷 맡아야겠다.
3. [한국일보][해외석학 칼럼] 시진핑의 마르코 폴로 전략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베이징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 포럼을 주재했다. 포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29개국 정상과 100여개 국 1,200여 대표들이 참석했다. 시 주석은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을 “세기의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중국에서 유럽까지 또 동남아시아와 동아프리카로까지 확장한 사회기반(SOC) 조성에 1조 달러를 투자해 유라시아를 통합하려는 계획이다.
중국의 새로운 마셜 플랜이자 거대한 전략적 시도로 불린다. 일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포기해서 생긴 자리를 메우겠다는 중국의 작업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은 이 야심 찬 계획을 통해 저개발국에 절실한 고속도로, 철도, 송유망, 항구 및 발전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중국 기업의 유럽 항구와 철도 투자 확대를 유도할 수도 있다. ‘일대’는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고속도로와 철도 연결망을 포함하며, ‘일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해로와 항만을 의미한다. 마르코 폴로가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중국이 넘치는 자금으로 빈국을 지원하고 무역을 증진할 인프라를 창출한다면 사실상 세계 공공재를 제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동기가 순수한 것은 아니다. 중국의 대규모 외환 자산을 수익 낮은 미국 국채에서 고수익 인프라 투자로 조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로 인해 중국 상품을 팔 시장이 창출된다. 중국 철강ㆍ시멘트 회사들은 과잉 설비로 어려운 형편이고 이 투자로 중국 건설회사들은 이익을 볼 것이다.
그런데 일대일로 계획은 실제 투자보다 선전 효과를 노린 것일까.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의 일대일로 투자는 지난해 감소해 기업이 정부만큼 참여할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매주 화물로 가득 찬 5대의 기차가 충칭을 출발해 독일로 향하지만 화물을 가득 싣고 돌아오는 기차는 한 대뿐이다. 중국에서 유럽으로 육로 운송은 여전히 해상 운송보다 2배 비싸다.
일대일로 계획은 “불행하게도 방대한 정치적 비전에 비해 실용적인 투자 계획이 부족”하다고 이 신문은 지적한다. 게다가 여러 프로젝트들이 부채와 대출금 상환 불능으로 결국 ‘흰 코끼리’가 될 위험이 있다. 너무 많은 국경에 걸쳐 있는 사업들은 안보 갈등으로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 인도는 인도양에서 중국의 위상이 커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러시아 터키 이란 등은 중앙아시아에서 각각의 현안을 갖고 있다.
중국의 인상적인 구상은 오래된 지정학적 주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 1세기 전 영국 지리학자 핼포드 매킨더는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은 해상 권력과 주변부를 강조한 19세기 앨프리드 머핸 제독의 통찰을 오랫동안 선호했다. 제2차 대전이 끝날 때 조지 케넌은 소련을 봉쇄하기 위해 머핸 식으로 접근 했다. 그는 유라시아 대륙 양쪽 끝 일본, 서유럽 반도와 연합한다면 미국에 유리한 세계적 권력 균형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아시아를 소홀히 하는 미 국방부와 국무부는 지금도 이 노선을 따라 조직되어 있다.
인터넷 시대에 물리적인 거리는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지리는 여전히 중요하다. 19세기 지정학 갈등의 상당 부분은 무너진 오스만 제국 지역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 하는 ‘동양 문제’가 중심이었다. 베를린에서 바그다드까지 철도 계획은 강대국 간의 긴장을 불러 일으켰다.
일대일로 계획과 함께 중국은 매킨더와 마르코 폴로로 승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를 통과하는 육로는 터키, 이란 같은 옛 제국뿐 아니라 영국, 러시아까지 끌고 들어갔던 19세기 ‘거대한 게임’을 부활시킬 것이다. 동시에 인도양을 가로 지르는 해로는 인도와 잠재적인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은 머핸과 케넌 방식에 비중을 두고 있다. 아시아는 독자적인 세력 균형을 가지고 있으며 인도나 일본,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국을 해결책의 일부로 본다. 양국 간 무역 규모나 오가는 많은 학생만 보더라도 미국의 정책은 중국을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위대한 국가라는 비전에 매료되어 해양 이웃과 영토 분쟁을 벌이면 그들은 미국의 품 안으로 갈 수 있다. 중국의 진정한 문제는 ‘자기 봉쇄’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시대에도 중국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힘이다.
원칙적으로 미국은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을 환영해 마땅하다. 세계은행 총재를 지낸 로버트 졸릭은 부상하는 중국이 세계 공공재 공급에 기여한다면 미국은 중국이 ‘책임 있는 투자자’가 되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미국 기업이 일대일로 투자로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은 통화 안정, 기후 변화, 사이버 규칙, 반테러 같은 다양한 문제에 협력해 얻을 것이 많다. 중국은 일대일로 계획에 돈을 내고 지정학적 이익을 얻겠지만 그것이 일부 분석처럼 전략적인 전환점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 미국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더 어렵다.
4. [머니투데이][기고] 칼빈슨 호와 현대판 포함외교
포함외교라는 모순된 말보다 국제정치의 본질을 더 잘 나타내는 말은 없을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함대는 1827년 그리스에서 영국 채권자들의 돈을 받아다 주었고 1840년에는 중국에 영국 상인들의 아편도 팔게 해주었다. 1866년의 셔먼호 사건, 1871년의 신미양요, 1875년의 강화도 사건은 조선의 대외통상 개시와 개국으로 이어졌다.
제국주의 시대가 종식된 이후로 노골적인 포함외교는 사라졌으나 클라우제비츠의 말처럼 아직도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책의 연장에 불과하고 군사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경제력이 바로 외교력이다. 현대판 포함외교에는 포함이 아닌 칼빈슨호와 같은 항모와 토마호크 미사일이 동원된다. 칼빈슨호의 1년 운용비용은 약 4조원으로 북한의 1년 국방비와 같다. 지난 4월 미국이 시리아에 59기를 발사한 토마호크는 1기에 15억원이다.
국제질서의 핵심은 힘, 즉 강력이다. 주권국가들은 자국의 정책을 국제사회에 적용하거나 타국의 그러한 시도에 대응하는 데 힘을 사용하며 정책의 결정에 자국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의 존재와 크기를 반영한다. 그러나 힘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떤 강대국에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힘으로 형성된 정치적 상황을 법으로 변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여기서 국제법이 만들어진다. 국제법이 국가의 행동에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대국들에 국제법은 가성비가 매우 우수한 외교수단이다.
국제법 위반인 북핵 문제 해결의 한 방법으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동결하면 칼빈슨호 같은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의 축소를 생각해야 한다는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발언이 논란이다. 비핵화를 대화의 조건으로 하는 미국의 전통적 입장과 다르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북핵 문제처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국제사회의 가용한 모든 역량이 동원되어도 충분치 않다는 것이 이미 충분히 드러났다. 유엔에서의 대북 경제제재도 아직 그 효과가 미지수고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란은 미국의 경제제재를 1979년 이후 무려 40년이나 견디고 있다. 한때는 이란 개인여행객들이 이란이 터키에 석유를 수출하고 받은 금을 항공편을 통해 두바이로 운반하고 그 금을 두바이에서 영업 중인 8000개의 이란 기업이 매일 200편 이상의 선편으로 이란에 실어 나르기도 했다. 이렇게 제재 대상과의 관계에 더 비중을 두는 3국이 제재 효과를 감소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대북 경제제재의 실효성에 중국의 태도가 결정적인 것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전략적 자산의 전개를 미리 축소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일지 의문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동결을 미국의 전략자산 축소와 연계한다는 생각은 실종된 외교를 복원하기 위한 고육책일 수는 있지만 트럼프행정부의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미국 공화당은 로마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로 거슬러 올라가는 ‘힘을 통한 평화’를 1980년부터 지속적으로 채택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에도 포함되었다. 북핵은 1962년 쿠바위기 이후 처음으로 미국 본토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북핵 인정은 일본의 핵무장이라는 문제도 발생시킨다.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한국은 핵보유국들에 완전히 둘러싸이게 된다. 우리 세대는 우리나라가 ‘4대 열강에 둘러싸인 곳’이라고 학교에서 배우면서 자랐는데 기가 죽은 것이 사실이다. 북한의 끊임없는 전쟁위협을 겪으면서 어린 마음에 왜 하필이면 한국에 태어났나 하는 미욱한 생각들도 했고 ‘그런 말을 들으면 코리아는 슬픕니다’라는 공익광고까지 나왔다. 우리나라는 ‘핵보유국들에 둘러싸인 곳’이라고 배우면서 자라게 된다면 미래 세대는 지금 우리가 국사책을 보면서 느끼는 실망과 답답함을 넘어 선대에 분노하게 될 것이다.
5. [중앙일보][분수대] 시험과 망각곡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흐릿해진다. 외운 단어는 10분 후 42%, 한 시간 후 50%, 1일 후 67%, 한 달 후 80%를 까먹는다고 한다. ‘기억은 시간에 반비례한다’는 망각곡선(Forgetting Curve) 이론이다. 이를 주창한 독일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1850~1909)는 망각을 막으려면 반복학습이 중요하다고 했다.
시험은 망각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뇌가 바짝 긴장해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사투를 벌인다. 시험 공부는 복습의 연속이다. 복습은 ‘느림보 거북이’다. 고통스럽고 재미가 없다. 시험을 보지 않으면 학생들은 반복학습을 하지 않는다. 망각 속도도 빨라진다. 그런 상태가 고착화되면 실력이 평둔화(平鈍化)된다. 교육적으로 가장 경계하는 ‘시험 없는 편한 교실’의 역설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런 길을 가고 있다. 자율경쟁과 상대평가가 학교 간 줄 세우기와 교육 양극화를 불렀다며 시험 축소에 열심이다. 닷새 전 전국 중3과 고2가 치르는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번갯불에 콩 굽듯 없앤 게 신호탄이다. 국정기획자문위가 “시·도 간, 학교 간 등수 경쟁만 유발한다”며 폐지를 압박하자 교육부가 30분 만에 “예스”했다.
“전수 평가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줄어들고 실력이 향상됐다”며 이명박 정부 때부터 자화자찬했던 교육부였다. 성적 공개로 학교 간 선의의 경쟁이 벌어지고 공부가 뒤처지는 학교엔 예산을 지원해 효과도 봤다. 그런데 국정기획위 기세에 눌려 한마디도 못하고 전국 93만 명이 20일 치를 시험을 2만8000명(3%) 표집 평가로 확 축소한 거다. 배송이 끝난 시험지는 대부분 쓰레기가 될 처지다. 총 93억원을 썼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우리 학생들의 성적은 하락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년마다 실시하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 지난해 읽기·수학·과학 모두 3위 안에 들지 못했다. 2000년 이후 처음이다. 맞춤형 피드백 학습이 절실한데 정권이 바뀌자마자 거꾸로 가는 것이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중학교 중간·기말고사도 없애겠다고 한다. 공부량을 30% 줄인 ‘유토리(여유) 교육’의 실패를 인정하고 학력 신장에 나선 일본 등 선진국들과는 정반대다.
학생들의 시험 고통을 줄여 주는 건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대책도 없이 과속페달을 밟아야 할까. 학생 실력은 보수·진보정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미래다. 건강한 경쟁은 필요한데 답답한 노릇이다. 망각의 시계 바늘만 빨리 돌아가게 생겼다.
주요신문사설
[경향신문]
1. 부당한 치킨 가격 인상 철회, 공정위가 돌아왔다
소비자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치킨 가격 인상을 전격 철회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후 첫 행보로 공정위가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주 사이의 불공정 계약 관계 등을 조사한다는 뉴스가 전해진 지 반나절 만의 일이다. 반가운 소식이다.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의 존재 이유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지난 5월 치킨 프랜차이즈 BBQ는 인건비 상승 등에 따라 가맹점들이 가격 인상을 요구해 10가지 제품 가격을 올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격 인상 직후 가맹점에 광고비 분담 명목으로 마리당 550원씩 거둬들이겠다고 통보했다. 말로는 가맹점 요구에 의해 가격을 올리고 가격 인상분 모두를 가맹점에 줄 것처럼 했지만, 실제로는 본사가 상당액을 챙겨간 것이다.
BBQ는 지난 5일에도 20여 품목의 가격을 올렸다. 가격 인상은 가맹점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다. 소비자는 치킨 소비를 줄이는 선택이라도 할 수 있지만 가맹점은 매출 급감으로 당장 경영난에 몰릴 수 있다.
이 같은 갑질은 치킨 프랜차이즈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피자헛 가맹점들은 본사가 근거 없이 부과한 ‘어드민피’(구매·마케팅·영업지원 명목으로 받는 가맹금)로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본죽’을 운영하는 본아이에프는 소고기 장조림 등 식자재를 특허받았다고 속여 가맹점에 공급한 사실이 적발됐다. ‘죠스떡볶이’를 운영하는 죠스푸드도 본사 부담 점포 리뉴얼 비용을 가맹점에 떠넘기다 시정명령 등을 받았다.
외식 프랜차이즈가 ‘자영업자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 같은 본사의 갑질 때문이다. 자영업 경험이 없는 퇴직 직장인들이 주로 뛰어드는 외식 프랜차이즈는 2015년 폐업한 사업자 수가 1만3241명으로 하루 평균 36명에 이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공정위는 무기력했다. ‘공정’이 빠진 ‘경쟁 당국’으로서 최소한의 업무만 해왔다. 그러다보니 시장의 경쟁 촉진과 무관한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나 프랜차이즈 본사 횡포 등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우리 사회가 공정위에 요구하는 것은 경제·사회적 약자를 보호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대기업의 독과점이나 재벌 총수 자제들의 불법 승계 등을 막는 업무는 물론이요, 경제적 약자인 ‘을’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에도 최선을 다해주기를 기대한다.
[매일경제]
2. 부채의식 안고 임명된 강경화 장관 실력 보여주는 길밖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임명했다. 지난달 21일 후보자로 지명된 지 28일 만이다. 문 대통령은 "외무고시 중심의 폐쇄적인 외교부 조직문화를 크게 바꿔놓을 필요가 있다"며 임명을 강행했다. 지난 1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장관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이고 최종 판단은 국민의 몫"이라며 정면돌파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 다음달 초 G20 정상회의 등이 예정돼 있는 만큼 외교부 장관 임명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판단이다. 하지만 야 3당이 강력 반발하고 있어 국정이 꼬일 가능성도 크다. 자유한국당은 "강경화 임명을 강행한 것은 대통령의 독선"이라고 밝혔고, 국민의당도 "국회와의 협치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강 장관은 딸의 위장전입, 봉천동 주택 세금 탈루, 박사학위 논문 표절, 배우자 거제도 땅 투기 등 문 대통령의 5대 인사 배제 원칙 중 4개 부문에서 의혹이 제기된 데다 그런 흠결을 덮을 만한 실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야당의 반대 이유였다. 문 대통령이 강 장관을 임명하면서 5대 인사 배제 원칙이 비현실적인 목표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야당의 양해를 구하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강 장관은 유엔에서 활약한 다자외교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북핵 문제와 동북아 주변 4강 외교에서는 경험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야당의 우려처럼 지금 대한민국의 외교 안보 상황은 간단치 않다. 사드 문제를 둘러싸고 한미 간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데다 북한과의 대화에서도 우리는 북 비핵화·대화 병행, 미국은 선 비핵화, 후 대화로 엇박자가 나고 있다. 그런 만큼 새 외교수장의 역할은 너무도 막중하다. 특히 열흘 앞으로 다가온 한미 정상회담은 강 장관에게 시험대가 될 것이다.
강 장관은 새 정부에 부담을 주며 임명된 만큼 국민에게 부채의식을 갖고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가장 뜨거운 이슈인 북핵·사드 문제를 파열음 없이 조율하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의 위태로운 관계를 풀 창의적 해법도 내놓아야 한다. 14년 만에 임명된 비고시 출신 장관인 만큼 외교부의 순혈주의를 혁파하고 외교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아야 할 것이다. 탁월한 실력과 전문성으로 자신의 임명에 반대했던 이들의 판단이 틀렸음을 입증하기 바란다.
[이데일리]
3. 강경화 외교부장관 임명 이후의 과제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강경화 외교부장관에 대해 임명장을 수여했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한·미 정상회담의 원활한 준비를 위해서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이번 회담이 양국 정상 교체 이후 처음 열리는 것으로, 최근 대북정책 및 사드 배치 문제를 둘러싼 양국 마찰이 자꾸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무 장관의 임명을 더 이상 늦추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사정을 십분 이해한다.
이로 인해 향후 정국 흐름에서 더욱 거세질 야권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하느냐가 시급한 과제다. 당분간 협치 분위기를 기대하기 어렵게 됨으로써 후속 인사청문회와 일자리 추경 등 새 정부의 중점추진 정책들이 자칫 난관에 부딪칠 소지가 커진 것이다. 정부 각료를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며, 이번 강 장관 임명이 법 절차에 따른 것이기는 하더라도 야권의 의사를 무시해서는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 장관 임명에 앞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한 자체가 정치적 타협의 중요성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새 정부 들어 내각과 청와대에서 중책을 맡거나 아직 후보자 상태인 사람들 가운데서도 음주운전이나 논문 표절 등 흠결이 드러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이미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자가 자질 문제에 부딪쳐 자진 사퇴하는 등 인사검증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청와대가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 청와대가 임종석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인사추천위원회를 본격 가동하기로 했다니, 부적격 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 단계에서 관심은 새로 임명된 강 장관이 자신의 역량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외교부장관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스스로 증명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현재 여건상 미국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과의 당면 현안도 간단치가 않다. 위안부합의 재협상 문제나 사드 보복 문제가 그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중차대한 임무를 맡았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야권도 반대할 때와 찬성할 때를 구분하려는 지혜와 아량이 중요하다. 발목잡기식의 무조건 반대는 곤란하다. 정략적 관점보다는 국가적 관점을 앞세워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4. 康 장관 임명 강행으로 협치의 문 닫혀선 안 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어제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았다. 후보에 지명된 지 28일 만이다. 문 대통령은 강 장관의 인사청문 보고서를 재송부 기한까지 국회가 채택하지 않자 임명을 강행했다.
휴일에도 임명을 밀어붙인 것은 청와대가 그만큼 외교 현안의 급박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미 첫 정상회담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자유무역협정(FTA), 주한미군 주둔비 인상 등 급히 꺼야 할 발등의 불이 여럿이다. 다음달 초에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도 열린다. 이런 중요 일정을 외교 수장 없이 치를 수는 없는 형편이다.
손익계산을 했겠지만 강 장관의 임명 강행으로 청와대는 또 납덩이를 짊어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을 밀어붙일 때와 대응 논리는 이번에도 같았다. 자질 논란의 흠집보다는 정책 역량을 중시하는 국민 눈높이에 부합한다면 문제 없다는 주장이다.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80%를 웃돌고 있다. 청와대로서는 여론이 든든한 ‘백’일 것이다. 그렇다고 눈앞의 현실은 외면하고 보고 싶은 것만 봐서는 곤란하다. 야당에서는 강 장관 임명 여부를 협치와 소통을 가름하는 마지노선이라고 청와대에 한두 번 으름장을 날린 게 아니었다. 당장 강 장관이 임명되자 야당은 청와대의 인사 실패를 공격하며 대응 수위를 높인다.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겠다는 분위기마저 내비치고 있으니 협치는커녕 급랭 정국은 불 보듯 빤하다.
그끄저께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자격 논란에 결국 자진 사퇴했다. 불법 혼인신고 전력을 청와대가 알고도 밀어붙였다는 의심이 깊다. 안 후보는 문 대통령이 직접 챙겼다고 소문났던 인사다. 그런 이가 어이없이 낙마했는데도 청와대는 사과는 고사하고 변명 한마디가 없다. 이쯤 되면 인사 참사라는 혹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지 여론은 분별력도 없다고 청와대가 얕잡아 보는 건 아닌지 의문스럽다. 위험천만한 오산이다. 안 후보의 갑작스런 사퇴에 어안이 벙벙한데, 일언반구 없이 청와대의 강 장관 임명식은 화기애애해 보였다. 그런 ‘마이웨이’가 국민 눈에 곱게만 비칠지 돌아보길 바란다.
협치의 시동도 걸기 전에 정국이 꼬여만 가서는 안 된다. 할 일은 태산인데 인사로 발목 잡힌 청와대의 심정이 오죽 답답할지 이해는 된다. 그렇더라도 일방 독주는 해법이 아니다. 우리에게 독주 정치의 트라우마가 크다는 사실은 문 대통령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당장 김상곤 교육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인사도 자질 논란에 안갯속이다. 야당의 정치 공세를 운운하기 전에 청와대가 민정수석실의 인사 여과 장치부터 완전히 손봐야 한다. 협치의 발목을 잡는 훼방꾼은 적어도 지금은 야당이 아니라 구멍 뚫린 청와대 인사 검증 시스템이다.
5. '김상조식 개혁' 시동, 고질적 갑질부터 도려내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경제검찰’ 역할에 국민의 시선이 쏠린다. 공정위가 프랜차이즈 업계의 갑질 혐의에 대해 조사에 나선 데 이어 부동산 재벌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김상조식 재벌개혁’의 신호탄이 올려진 셈이다. 개혁 의지가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공정위가 어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혐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 자료의 허위 제출이다. 사실상 그룹 일가친척들이 운영하는 회사 여러 곳이 대기업집단에 편입되지 않도록 한 정황과 소유주를 차명 기재한 혐의 등을 포착한 것이다. 이는 위장 계열사 또는 친족기업에 일감 몰아주기를 막겠다는 김 위원장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계열사 24개를 거느린 부영이 재벌개혁의 첫 시범 케이스가 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정위는 앞서 김 위원장 취임 이틀 만인 지난 15일부터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인 BBQ의 지역사무소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다. 본사가 가맹점으로부터 광고비 분담 명목으로 판매수익의 일정 부분을 가져가기로 한 과정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갑의 횡포’를 따져 보겠다는 조사다. 김 위원장이 취임 때 밝힌 ‘을의 눈물 닦아 주기’가 구체화된 것이다.
공정위의 이 같은 움직임에 BBQ는 최근 두 차례 인상한 30여개의 제품값을 원상복구했다. 교촌치킨은 가격 인상 계획을 백지화했고 BHC는 이달 한 달 동안 판매가격을 내리기로 하는 등 업계 빅3가 일제히 공정위에 백기를 들었다. ‘국민간식’이라는 치킨 제품의 잇따른 가격 인상에 벙어리 냉가슴만 앓던 소비자들에게 공정위가 시원한 사이다를 제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연히 공정위의 다음 횡보에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공정위의 칼날이 모처럼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만큼 차제에 고질화된 업계의 갑질 행위를 모조리 도려내길 바란다. 납품업체에 대한 부당한 수수료 강요, 부당 반품 등의 갑질 관행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특정 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와 편법 승계 등 잘못된 부의 축적 관행과 경제력 오남용 행위 등도 철저히 가려내야 할 것이다. 재벌개혁은 멀리 있지 않다. 약자인 납품·하청업체와 소비자 등을 괴롭혀 제 잇속만 차리는 부당행위를 뿌리 뽑는 것이 바로 재벌개혁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중앙일보]
6. 혼준표의 무책임한 막말정치어디까지 가는가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어제 7·3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막말들을 쏟아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친박 패당정부에서 주사파 패당정부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며 “언론 기능은 지금 경영의 어려움 때문에 정상적 기능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극단적 발언마저 서슴지 않았다. “신문 갖다 바치고 방송 갖다 바치고 조카 구속시키고 겨우 얻은 자리가 청와대 특보 자리”라고 했다.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극언이다.
홍 전 지사는 교묘하게 주어(主語)를 생략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신문, 방송, 조카 구속, 특보라는 표현의 공통분모는 딱 하나밖에 없다. 바로 중앙일보와JTBC, 그리고 홍석현 전 회장이다. 모든 언론이 홍 전 지사의 막말을 보도하면서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을 겨냥해’라고 못 박은 것은 이 때문이다. 홍 전 지사는 근거 없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중앙일보와 홍 전 회장의 명예를 명백히 난도질했다.
우리는 편집권의 독립을 지키며 언론의 정도를 걸어왔다고 자부한다. 대선 때 가장 예민했던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북한에 대한 인권결의안 사전 문의 메모를 특종 보도한 곳이 중앙일보였다. 우리는 신문이나 방송을 갖다 바친 적이 없다. 홍 전 지사는 누가 어디에 신문과 방송을 갖다 바쳤는지 주어와 목적어부터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청와대 외교안보특보 건도 마찬가지다. 홍 전 회장은 미국 특사에서 귀국하던 지난달 21일 “처음 듣는 말이라 당혹스럽다”고 말한 뒤 고사의 뜻을 전했고 청와대도 이를 받아들였다. 여야의 여러 정치인들도 이를 알고 있다.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도 홍 전 지사의 극언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저렇게 막말 한다고 강한 야당이 되느냐” “품격 있는 보수로 가야 살길이 생기는데, 저런 막말로 가면 미래가 없다”…. 어떤 정치인이라도 타인의 명예를 난도질할 면죄부를 갖고 있지 않다. 홍 전 지사는 자신의 망언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검찰 출신의 정치인답게 자신의 발언에 법적 책임도 져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7. 대통령 對 야당, 너무 빨리 대결로 간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야당의 반대 속에 강경화 외교부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야 3당은 "국회와 국민을 무시한 폭거"라며 반발했다. 17개 부처 장관 가운데 아직도 12자리나 남아 있다. 3개 부처는 후보자 발표도 못 했다. 조각(組閣)도 갈 길이 멀지만 추경(追更)과 정부조직법 처리, 헌법재판소장 인준 표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야당을 향해 "선전포고라든지, 강행이라든지, 협치는 없다든지, 마치 대통령과 야당 간에 승부를, 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하는 것은 참으로 온당하지 못하다"고 했다. "국정이 안정된 시기와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시기의 인사(人事)는 많이 다르다"면서 한 말이다. 새 정부가 전(前)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출범했지만 '개혁'을 내세우기만 하면 부실(不實)·하자(瑕疵) 인사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이 법무장관 후보자 사퇴와 관련해 "(검찰 개혁) 목표 의식이 앞서다 보니 약간 검증이 안이해진 것 아닌가"라고 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국회와 국민의 지적을 아프게 받아들인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약간' 허술했다는 대통령 인식엔 동의할 수 없다.
대통령과 야당이 서로 비난을 주고받으면 정국은 경색된다. 새 정부 출범 두 달도 안 돼 너무 빨리 대결 국면이 벌어지려 한다. 모두 패자(敗者)가 되지만 결국 대통령의 피해가 더 크게 된다. 지금 사퇴한 법무장관 후보자 외에도 김상곤, 조대엽 후보자의 흠결은 맡을 직무와 직결돼 도저히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수준이다. 당사자든 임명권자든 매듭을 풀어야 한다.
[매일신문]
8. 공공기관 효율과 경쟁력, 이제 뭘로 평가 할까
공공기관 성과연봉제가 결국 폐기됐다. 기획재정부가 16일 ‘2016년도 공공기관 경영 평가 결과 및 후속 조치’를 발표하면서 공공기관 보수 체계를 성과연봉제 도입 이전으로 되돌리거나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다. 이로써 지난해 6월 전체 120개 공공기관이 도입한 성과연봉제가 시행 1년여 만에 없던 일이 됐다.
박근혜정부는 지난해 1월 공공기관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성과연봉제 적용을 선언했다. 상당수 공공기관이 노사 합의 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등 불과 5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제도 도입을 밀어붙였다. 이에 반발한 노조가 급기야 소송전을 벌이면서 ‘노조와 합의하지 않은 성과연봉제 도입은 무효’라는 법원 판결까지 나왔다.
성과연봉제 폐지로 이제 공공기관의 효율과 생산성, 임직원의 경쟁력 등 경영 성과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장치는 사실상 없다. 고작 정부가 매년 공기업(30개)과 준정부기관 등 120개 기관의 경영 실적을 따지는 ‘공공기관 경영 평가’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공공기관 임직원 임금을 결정할 때 경영 평가 결과를 반영하지만 변별력이 크게 떨어지는 등 신뢰할 만한 평가 수단으로 보기는 어렵다. 사실상 국가 경제에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공공 부문의 효율을 평가하고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소리다.
상당수 공공기관이 방만한 경영과 낮은 효율로 손가락질을 받아온 지 오래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경영으로 국민 세금만 축낸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성과연봉제 등 공공기관의 생산성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마저 이제 걷어 냈다. 앞으로 공공기관의 경영 효율과 재정 건전성 등에 국민의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공공기관 스스로 효율성을 높이고 임직원들이 알아서 경쟁력을 키워 나간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계속 부실 경영으로 국가 경제에 주름을 지우고 놀고먹는 집단으로 낙인찍힌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도 ‘신의 직장’ 소리가 계속 나온다면 국민 입에서 ‘적폐 청산’ 구호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런 불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공기관 개혁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
9. 고리원전 1호기 영구 정지…국내 원전 정책 분기점 맞았다
국내 첫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전 1호기의 가동이 19일 0시부로 영구 정지됐다. 가동 40년 만에 고리 1호기가 영구 정지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 정책에 큰 분기점을 맞게 됐고, 문재인 대통령의 19대 대선 공약인 탈(脫)원전 움직임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고리 1호기의 가동 영구 정지는 예정된 일이었다. 고리 1호기는 설계수명 30년을 넘겨 10년 연장돼 운영돼 오는 상황에서 잦은 고장을 일으켜 불안감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잘한 결정이지만 원전 폐로는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막대한 비용과 기술, 시간이 필요하고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등 난제가 첩첩이 쌓여 있다.
대형 상업 원자로 해체 경험이 전무한 우리나라로서는 원자로 해체 과정에서 어떠한 기술적 장벽에 직면할지, 또한 어떤 형태의 사회적 갈등이 분출될지 현재로서 예단키 어렵다. 비용도 문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 1호기 해체 비용으로 6천억여원을 적립해 놨다고 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추산한 해체 비용만 해도 1조원이 넘는다. 게다가 원전 해체 38개 핵심기술 가운데 11개를 보유하지 못하는 등 우리나라는 이 분야의 기술 자립이 안 돼 있는 상태다.
지금까지 확대일로에 있던 원전 산업의 축소도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이달 말 ‘월성 1호기 계속 운전 허가 효력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 대한 서울고등법원의 결정이 나올 것으로 예정돼 있지만, 새 정부의 대선 공약에 월성 1호기 폐쇄가 포함돼 있었던 만큼 법원 판단과 상관없이 월성 1호기 역시 고리 1호기의 뒤를 따라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원전의 잇따른 가동 정지로 당장 올여름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 정부는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가 생산하는 전력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아 전력 수급 계획에 지장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석탄화력발전소의 잇따른 폐쇄와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 완화에 따른 올여름 전력 수요 증가가 동시에 겹칠 경우에 대한 플랜도 세워놔야 한다. 아울러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도 서둘러야 한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한겨레]
10. 문정인 특보의 '대북 대화' 발언 논란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포함한 한-미 연합군사훈련 규모 축소를 미국과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상근 특보이므로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고 관찰한 것을 얘기하는 것”이라며 선을 그었고, 청와대도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특보’라는 그의 위치 때문에 미국이 직접 관련된 구체적 사안까지 언급한 이번 발언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문 특보의 발언은 16일(현지시각) 한국 동아시아재단과 미국 우드로윌슨센터가 워싱턴에서 연 세미나 및 특파원 간담회에서 나왔다. 그는 ‘전략자산 축소’의 경우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키리졸브연습과 독수리훈련에 포함된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등 전략무기를 하향조정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연계하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또다른 제안이라고도 소개했다.
그의 발언은 문 대통령이 최근 ‘6·15 남북공동선언 17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힌 데서 한걸음 나아가 ‘상응 대가’를 구체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반도 긴장국면을 대화국면으로 바꿔야 한다는 건 절박한 시대적 요청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제재와 압박 일변도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시키기는커녕 위기를 고조시켜 왔을 뿐이다. ‘비핵화’가 궁극적 목표임을 분명히 하되, 핵·미사일 활동 동결 및 폐기 등 구체적 중간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긴장 완화’라는 조건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국제적 규범을 지키는 최소한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그 전제다.
문 특보의 발언은 비핵화의 ‘프로세스적’ 측면을 강조해온 전문가들이 그동안 제안했던 여러 해법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야당들이 “북한의 압력에 대한 투항” “한-미 동맹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발언”이라며 총공세에 나서는 건 과한 반응이다. 다만 한-미 정상회담을 열흘 남짓 앞둔 시점에서 민감한 내용이 특보의 발언으로 표출되는 것은 신중한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지금은 ‘대화 기조’에 대한 국내외 공감을 형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요신문칼럼
1. [조선일보][기고] 로보캅이 낸 사고는 누가 책임지나?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가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로보캅(로봇 경찰)을 배치했다. 두바이 로보캅은 키 170㎝, 몸무게 100㎏ 정도로 바퀴를 이용해 자율주행을 하며, 영어와 아랍어, 러시아어, 중국어, 프랑스어 등 9개국 이상의 언어를 이해하고, 범인 얼굴 식별, 심리 상태 판독 등을 할 수 있다.
첫 임무는 도심 순찰과 터치스크린을 통해 관광 정보를 안내하는 것이지만, 내년부턴 범죄 정보를 수집하는 순찰 임무도 맡는다고 한다. 두바이는 2030년까지 경찰 25%를 로보캅으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한다. 4IR(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 로봇 시대의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일 것이다.
그런데 불미스러운 사고가 난다면 누구의 책임인가에 대한 법적, 정책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작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쇼핑몰에서 경비로봇이 16개월 아이를 공격한 사건이 있었다. 이런 사건이 있을 때, 경비로봇을 고용(?)한 쇼핑몰 책임인지, 경비로봇을 판매한 회사 책임인지, 아니면 로봇의 인공지능을 설계한 프로그램 회사 책임인지에 대한 법적 공방이 생길 수 있다.
우리의 생명 및 건강과 직결되는 의료의 경우에도 인공지능이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 또는 수술을 했는데 의료사고나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담당 의사와 병원, 로봇 판매 회사 중 누구 책임인지 불분명할 수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기업들은 기준을 수립하기가 매우 부담스럽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입법 및 정책적 문제로 귀결될 확률이 매우 높다. 4IR 시대엔 인공지능 기기의 오류나 오작동으로 인한 안전사고, 또는 해킹이나 기기 이용자의 실수 등으로 생각지도 못한 돌발 상황이 무수히 나타날 수 있다.
4IR 기술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속도 못지않게 중요한 게 방향성이다.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4IR 시대의 맞춤형 입법과 제도적인 체계를 세밀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차근차근 준비해나가야 한다. 새 정부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중심으로 정부 주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청사진을 밝힌 적이 있다. 사업 주체인 민간과 정책을 주관하는 정부가 협력해 체계적으로 4IR 시대에 적합한 정책과 입법 지원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2. [한국일보][삶과 문화] 침묵의 목적
일요일일 수밖에 없는 날씨였다. 아무리 심술궂은 신이라도 이런 햇빛과 이런 바람, 이런 하늘을 펼쳐 놓고, 사람들에게 일하러 나가라고 할 수는 없을 테니. 날씨 탓에 너무 긍정적이 되어 버렸나? 그럼에도 나는 혼자였다. 친구도 가족도 없이, 좋은 것은 날씨뿐. 14층 옥탑 방 창문을 열고, 빛으로 씻어낸 듯 선명해진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어디선가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고, 바람이 불어 왔으며, 창가에 매달아 놓은 대나무 풍경이 나지막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햇빛, 음 하나하나에 방점을 찍으며 종소리는 울려 퍼지고, 바람, 대나무 조각들은 가볍게 부딪히고, 그리고 고요. 이 모든 것의 배경인 고요. 불현듯 나는 깨달았다. 혼자가 아니었다면, 이 아름다움은 나에게 오지 않았으리라. 아쉬운 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보려고 애쓰다 생각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의미를 알아들으려 노력하지 말고, 사람들의 말소리를 종소리처럼, 바람소리처럼 들어볼까?
산 설고 물 설은 타국에서 한 달여를 머무르고 있으나, 낯선 이들의 언어는 날이 갈수록 나를 의기소침하게 했다. 넘을 수 없는 성벽은 높아만 갔고 건널 수 없는 해자는 깊어만 갔다. 호기심도 도전의식도 꺾이고, 머물고 있는 숙소는 또 하릴없이 편해서, 날이 갈수록 문밖으로 나갈 일이 막막했다. 그런데 그날 나는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냥 눈을 감고 듣기만 해보자. 그러면 의미에 가려져 있던 무엇이 들릴지도 모르지. ‘영리한 말 한스’가 되어 보는 거야.
백여 년 전 독일에는 사람 말을 알아듣고 날짜 계산까지 할 수 있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영리한 말 한스는 발굽으로 땅을 두드려 사람들이 낸 문제의 답을 알아맞히곤 했다. 학자들은 의심을 품고 실험을 거듭했고, 그 결과, 한스가 정말로 사람 말을 알아듣거나 숫자 계산을 하는 게 아님을 밝혀냈다. 한스는 질문하는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 몸의 긴장 상태 같은 것을 감지해 반응했을 뿐이라는 것. 믿거나 말거나 소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동네 카페로 들어가 구석자리에 앉는다. 젊은 어머니와 초등학생 아들이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를 먹고 있다. 서너 명의 중년 사내들이 모여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백포도주 한 잔을 앞에 놓고 홀로 앉아 있는 할머니도 눈에 띈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나는 눈을 감는다. 귀를 기울인다. 무엇이든 감지해보려 애쓴다.
신경이 쫑긋 곤두선다. 나를 향해 의아한 눈길들이 쏟아지는 것 같다. 아니야, 이게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젓는다. ‘영리한 말 한스’ 같은 건 잊어버리자. 의미를 알아들으려는 노력도, 단서를 감지하려는 노력도, 모두 그만 두자. 재미없다. 굳이 정답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주위가 소란해진다. 맥주를 마시고 있던 아저씨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서빙을 하던 웨이트리스가 손님 바지에 맥주를 쏟았나 보다. 연신 미안해하는 웨이트리스를 향해 아저씨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엎질러진 맥주를 분주히 닦다가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내며 웃음을 터뜨린다. 나도 모르게 따라 웃는다. 카페 안은 금세 시큼한 맥주 냄새로 가득 차고, 사람들은 다시 새처럼 지저귀기 시작한다. 나도 홀로 중얼거린다. 말이란 게 뭔데?
유창한 우리말로 내가 내뱉은 말들은 고작 변명이거나 해명 아니면 핑계였다. 허세와 험담과 인사치레였다. 새삼 코를 벌름거리며 맥주 냄새를 맡는다. 말을 안 하고 있으니 이렇게 좋다. 네가 좋아한다고 말해서 나도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고, 네가 싫어한다고 말해서 나도 싫어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도리 없이 침묵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좋음. 이제 그만 중얼거리고 갓 구운 빵처럼 신선한 맥주 냄새나 실컷 맡아야겠다.
3. [한국일보][해외석학 칼럼] 시진핑의 마르코 폴로 전략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베이징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 포럼을 주재했다. 포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29개국 정상과 100여개 국 1,200여 대표들이 참석했다. 시 주석은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을 “세기의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중국에서 유럽까지 또 동남아시아와 동아프리카로까지 확장한 사회기반(SOC) 조성에 1조 달러를 투자해 유라시아를 통합하려는 계획이다.
중국의 새로운 마셜 플랜이자 거대한 전략적 시도로 불린다. 일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포기해서 생긴 자리를 메우겠다는 중국의 작업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은 이 야심 찬 계획을 통해 저개발국에 절실한 고속도로, 철도, 송유망, 항구 및 발전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중국 기업의 유럽 항구와 철도 투자 확대를 유도할 수도 있다. ‘일대’는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고속도로와 철도 연결망을 포함하며, ‘일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해로와 항만을 의미한다. 마르코 폴로가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중국이 넘치는 자금으로 빈국을 지원하고 무역을 증진할 인프라를 창출한다면 사실상 세계 공공재를 제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동기가 순수한 것은 아니다. 중국의 대규모 외환 자산을 수익 낮은 미국 국채에서 고수익 인프라 투자로 조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로 인해 중국 상품을 팔 시장이 창출된다. 중국 철강ㆍ시멘트 회사들은 과잉 설비로 어려운 형편이고 이 투자로 중국 건설회사들은 이익을 볼 것이다.
그런데 일대일로 계획은 실제 투자보다 선전 효과를 노린 것일까.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의 일대일로 투자는 지난해 감소해 기업이 정부만큼 참여할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매주 화물로 가득 찬 5대의 기차가 충칭을 출발해 독일로 향하지만 화물을 가득 싣고 돌아오는 기차는 한 대뿐이다. 중국에서 유럽으로 육로 운송은 여전히 해상 운송보다 2배 비싸다.
일대일로 계획은 “불행하게도 방대한 정치적 비전에 비해 실용적인 투자 계획이 부족”하다고 이 신문은 지적한다. 게다가 여러 프로젝트들이 부채와 대출금 상환 불능으로 결국 ‘흰 코끼리’가 될 위험이 있다. 너무 많은 국경에 걸쳐 있는 사업들은 안보 갈등으로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 인도는 인도양에서 중국의 위상이 커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러시아 터키 이란 등은 중앙아시아에서 각각의 현안을 갖고 있다.
중국의 인상적인 구상은 오래된 지정학적 주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 1세기 전 영국 지리학자 핼포드 매킨더는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은 해상 권력과 주변부를 강조한 19세기 앨프리드 머핸 제독의 통찰을 오랫동안 선호했다. 제2차 대전이 끝날 때 조지 케넌은 소련을 봉쇄하기 위해 머핸 식으로 접근 했다. 그는 유라시아 대륙 양쪽 끝 일본, 서유럽 반도와 연합한다면 미국에 유리한 세계적 권력 균형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아시아를 소홀히 하는 미 국방부와 국무부는 지금도 이 노선을 따라 조직되어 있다.
인터넷 시대에 물리적인 거리는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지리는 여전히 중요하다. 19세기 지정학 갈등의 상당 부분은 무너진 오스만 제국 지역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 하는 ‘동양 문제’가 중심이었다. 베를린에서 바그다드까지 철도 계획은 강대국 간의 긴장을 불러 일으켰다.
일대일로 계획과 함께 중국은 매킨더와 마르코 폴로로 승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를 통과하는 육로는 터키, 이란 같은 옛 제국뿐 아니라 영국, 러시아까지 끌고 들어갔던 19세기 ‘거대한 게임’을 부활시킬 것이다. 동시에 인도양을 가로 지르는 해로는 인도와 잠재적인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은 머핸과 케넌 방식에 비중을 두고 있다. 아시아는 독자적인 세력 균형을 가지고 있으며 인도나 일본,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국을 해결책의 일부로 본다. 양국 간 무역 규모나 오가는 많은 학생만 보더라도 미국의 정책은 중국을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위대한 국가라는 비전에 매료되어 해양 이웃과 영토 분쟁을 벌이면 그들은 미국의 품 안으로 갈 수 있다. 중국의 진정한 문제는 ‘자기 봉쇄’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시대에도 중국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힘이다.
원칙적으로 미국은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을 환영해 마땅하다. 세계은행 총재를 지낸 로버트 졸릭은 부상하는 중국이 세계 공공재 공급에 기여한다면 미국은 중국이 ‘책임 있는 투자자’가 되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미국 기업이 일대일로 투자로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은 통화 안정, 기후 변화, 사이버 규칙, 반테러 같은 다양한 문제에 협력해 얻을 것이 많다. 중국은 일대일로 계획에 돈을 내고 지정학적 이익을 얻겠지만 그것이 일부 분석처럼 전략적인 전환점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 미국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더 어렵다.
4. [머니투데이][기고] 칼빈슨 호와 현대판 포함외교
포함외교라는 모순된 말보다 국제정치의 본질을 더 잘 나타내는 말은 없을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함대는 1827년 그리스에서 영국 채권자들의 돈을 받아다 주었고 1840년에는 중국에 영국 상인들의 아편도 팔게 해주었다. 1866년의 셔먼호 사건, 1871년의 신미양요, 1875년의 강화도 사건은 조선의 대외통상 개시와 개국으로 이어졌다.
제국주의 시대가 종식된 이후로 노골적인 포함외교는 사라졌으나 클라우제비츠의 말처럼 아직도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책의 연장에 불과하고 군사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경제력이 바로 외교력이다. 현대판 포함외교에는 포함이 아닌 칼빈슨호와 같은 항모와 토마호크 미사일이 동원된다. 칼빈슨호의 1년 운용비용은 약 4조원으로 북한의 1년 국방비와 같다. 지난 4월 미국이 시리아에 59기를 발사한 토마호크는 1기에 15억원이다.
국제질서의 핵심은 힘, 즉 강력이다. 주권국가들은 자국의 정책을 국제사회에 적용하거나 타국의 그러한 시도에 대응하는 데 힘을 사용하며 정책의 결정에 자국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의 존재와 크기를 반영한다. 그러나 힘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떤 강대국에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힘으로 형성된 정치적 상황을 법으로 변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여기서 국제법이 만들어진다. 국제법이 국가의 행동에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대국들에 국제법은 가성비가 매우 우수한 외교수단이다.
국제법 위반인 북핵 문제 해결의 한 방법으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동결하면 칼빈슨호 같은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의 축소를 생각해야 한다는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발언이 논란이다. 비핵화를 대화의 조건으로 하는 미국의 전통적 입장과 다르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북핵 문제처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국제사회의 가용한 모든 역량이 동원되어도 충분치 않다는 것이 이미 충분히 드러났다. 유엔에서의 대북 경제제재도 아직 그 효과가 미지수고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란은 미국의 경제제재를 1979년 이후 무려 40년이나 견디고 있다. 한때는 이란 개인여행객들이 이란이 터키에 석유를 수출하고 받은 금을 항공편을 통해 두바이로 운반하고 그 금을 두바이에서 영업 중인 8000개의 이란 기업이 매일 200편 이상의 선편으로 이란에 실어 나르기도 했다. 이렇게 제재 대상과의 관계에 더 비중을 두는 3국이 제재 효과를 감소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대북 경제제재의 실효성에 중국의 태도가 결정적인 것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전략적 자산의 전개를 미리 축소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일지 의문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동결을 미국의 전략자산 축소와 연계한다는 생각은 실종된 외교를 복원하기 위한 고육책일 수는 있지만 트럼프행정부의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미국 공화당은 로마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로 거슬러 올라가는 ‘힘을 통한 평화’를 1980년부터 지속적으로 채택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에도 포함되었다. 북핵은 1962년 쿠바위기 이후 처음으로 미국 본토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북핵 인정은 일본의 핵무장이라는 문제도 발생시킨다.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한국은 핵보유국들에 완전히 둘러싸이게 된다. 우리 세대는 우리나라가 ‘4대 열강에 둘러싸인 곳’이라고 학교에서 배우면서 자랐는데 기가 죽은 것이 사실이다. 북한의 끊임없는 전쟁위협을 겪으면서 어린 마음에 왜 하필이면 한국에 태어났나 하는 미욱한 생각들도 했고 ‘그런 말을 들으면 코리아는 슬픕니다’라는 공익광고까지 나왔다. 우리나라는 ‘핵보유국들에 둘러싸인 곳’이라고 배우면서 자라게 된다면 미래 세대는 지금 우리가 국사책을 보면서 느끼는 실망과 답답함을 넘어 선대에 분노하게 될 것이다.
5. [중앙일보][분수대] 시험과 망각곡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흐릿해진다. 외운 단어는 10분 후 42%, 한 시간 후 50%, 1일 후 67%, 한 달 후 80%를 까먹는다고 한다. ‘기억은 시간에 반비례한다’는 망각곡선(Forgetting Curve) 이론이다. 이를 주창한 독일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1850~1909)는 망각을 막으려면 반복학습이 중요하다고 했다.
시험은 망각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뇌가 바짝 긴장해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사투를 벌인다. 시험 공부는 복습의 연속이다. 복습은 ‘느림보 거북이’다. 고통스럽고 재미가 없다. 시험을 보지 않으면 학생들은 반복학습을 하지 않는다. 망각 속도도 빨라진다. 그런 상태가 고착화되면 실력이 평둔화(平鈍化)된다. 교육적으로 가장 경계하는 ‘시험 없는 편한 교실’의 역설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런 길을 가고 있다. 자율경쟁과 상대평가가 학교 간 줄 세우기와 교육 양극화를 불렀다며 시험 축소에 열심이다. 닷새 전 전국 중3과 고2가 치르는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번갯불에 콩 굽듯 없앤 게 신호탄이다. 국정기획자문위가 “시·도 간, 학교 간 등수 경쟁만 유발한다”며 폐지를 압박하자 교육부가 30분 만에 “예스”했다.
“전수 평가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줄어들고 실력이 향상됐다”며 이명박 정부 때부터 자화자찬했던 교육부였다. 성적 공개로 학교 간 선의의 경쟁이 벌어지고 공부가 뒤처지는 학교엔 예산을 지원해 효과도 봤다. 그런데 국정기획위 기세에 눌려 한마디도 못하고 전국 93만 명이 20일 치를 시험을 2만8000명(3%) 표집 평가로 확 축소한 거다. 배송이 끝난 시험지는 대부분 쓰레기가 될 처지다. 총 93억원을 썼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우리 학생들의 성적은 하락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년마다 실시하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 지난해 읽기·수학·과학 모두 3위 안에 들지 못했다. 2000년 이후 처음이다. 맞춤형 피드백 학습이 절실한데 정권이 바뀌자마자 거꾸로 가는 것이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중학교 중간·기말고사도 없애겠다고 한다. 공부량을 30% 줄인 ‘유토리(여유) 교육’의 실패를 인정하고 학력 신장에 나선 일본 등 선진국들과는 정반대다.
학생들의 시험 고통을 줄여 주는 건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대책도 없이 과속페달을 밟아야 할까. 학생 실력은 보수·진보정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미래다. 건강한 경쟁은 필요한데 답답한 노릇이다. 망각의 시계 바늘만 빨리 돌아가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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