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3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동아일보]
1.4차 산업혁명의 ‘가상현실 플랫폼’ 선점할 수 있나
산업 간 융합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지는 4차 산업혁명 시기,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을 선언했다.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6’ 개막을 앞두고 21일(현지 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컨벤션센터에서 그는 “가상현실(VR)은 가장 사회적인(Social) 플랫폼이며, 차세대 플랫폼”이라고 했다. 10년 전에는 사람들이 자기 경험을 문자로 공유했고 최근엔 이미지로 기록했지만 이제는 모두 함께 있는 것 같은 VR로 경험을 나누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플랫폼은 우리말로 승강장이다. 각지로 가는 교통수단과 승객이 모이면서 쇼핑과 광고뿐 아니라 개인과 기업을 연결하는 종합 비즈니스 광장으로 진화하는 추세다. 1∼3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이 각각 증기기관, 전기, 컴퓨터 같은 단일 기술이나 상품이었다면 4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은 기술과 제품이 자발적으로 집결되는 공간, 즉 플랫폼이 될 것으로 보인다. VR 플랫폼에선 게임은 물론이고 원격의료, 원격탐사, 제품 설계 등 무궁무진한 비즈니스가 교류될 수 있다.
한국의 수출은 지난해 7.9% 감소 쇼크를 겪은 데 이어 올 1월 18.5%, 2월 1∼20일만 17.3%의 감소세를 보이면서 수출 부진이 만성화하고 있다. 수출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해온 삼성전자는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이날 삼성전자의 ‘갤럭시S7’ 공개 행사장에 나온 저커버그는 작년 말 태어난 딸 맥스의 걸음마를 360도 VR로 촬영한다며 “삼성의 모바일 하드웨어와 페이스북 VR 소프트웨어를 결합하면 세계 최고 VR 플랫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신성장동력도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하면 세계시장에서의 선점은 어려울 수 있다.
정부의 수출대책은 PC 시대인 2000년대 초반 수준이다. 기업 규제를 단두대에 올리고, 전통적 제품 생산에 쏠린 인력을 줄이는 대신 글로벌 시장과 소통하는 인력을 늘리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고통이 따르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넓고 자유로운 플랫폼에 먼저 발을 내딛지 못한다.
2.공천룰도 선거구도 없는 총선 면접, 새누리당 뻔뻔하다
새누리당이 어제까지 사흘간 수도권 공천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봤다. 19대 총선 때는 현역의원 예우 차원에서 면접을 서류심사로 대체했다. 그러나 이번엔 상향식 공천제가 채택돼 현역도 전원 면접 대상에 포함시켰다. 현역도 당헌 당규상의 자격에 미달할 경우 경선 탈락은 당연하다.
문제는 일의 선후다. 공천 면접을 실시하려면 먼저 공천룰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어야 하는데 새누리당은 그렇지 못하다. 시한폭탄을 실은 채 질주하는 기차와 다를 바 없다. 위험천만한 상황인데도 지도부와 공천관리위는 미봉인 상태로 둔 채 외면하고 있다. 보다 못한 김태호 최고위원이 어제 공천 일정을 잠정 중단하고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등이 긴급 회동해 공천룰부터 분명하게 정하자고 제안했으나 아무도 들은 척하지 않았다.
비박(비박근혜)계와 친박(친박근혜)계를 각각 대표하는 김 대표와 이 위원장은 전략공천이나 다름없는 우선추천지역 제도를 두고 이미 격하게 충돌한 적이 있다. 이 위원장이 광역시도별 1∼3개 우선추천지역 선정 방침을 밝힌 것을 두고서다. 이후 잠잠하다가 이 위원장이 면접 과정에서 “야당이 아주 센 지역은 특징이 있는 킬러를 찾아야 한다” “보물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몇 명 찾은 것 같다”고 흘리면서 2차 충돌이 일어날 조짐이다. 경선 후보들 간의 합의 불발 시 당헌 당규상의 ‘당원 30%, 국민 70%’ 여론조사 대신 ‘국민 100%’ 여론조사로의 대체 여부도 논란거리다. 대표최고위원실 백보드판에 ‘개혁 새누리당’이라고 씌어 있는데 김 대표는 이걸 빼라고 지시하는 것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새누리당이 상향식 공천제를 채택한 것은 정치와 정당, 선거개혁 차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도입 전에 세부적인 사안까지 꼼꼼하게 규칙을 정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골치 아픈 문제는 일단 미루고 보자는 심보에서 이를 기피해 왔다. 심지어 선거구 획정까지도 쟁점 법안들과 연계시키며 처리를 지연시켰다. 세부 공천룰이 미정이고, 기존 선거구는 불법인 상태에서 공천 작업을 진행 중이니 꼴불견이 따로 없다. 무책임하고 뻔뻔하다. 집권 여당의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3.북-미 평화협정 논의, 한미공조 위험 신호 아닌가
미국이 북한의 4차 핵실험 며칠 전인 작년 말 북-미 간 평화협정에 대해 비밀리에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21일(현지 시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먼저 해야 6·25전쟁을 공식 종식하기 위한 논의를 할 수 있다는 기존의 전제조건을 포기하고 비핵화를 포함해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며 북한은 이를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은 “먼저 논의를 제안한 것은 북한”이라고 밝혀 보도 내용을 사실상 시인했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17일 ‘비핵화-평화협정 동시 협상’을 제의한 바 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우선이라며 일축했지만 미국이 이미 뒤로는 북한에 동시 협상을 제안했다는 것은 중대한 입장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외교부가 어제 왕 부장의 23∼25일 방미를 발표하며 “중국이 제안한 비핵화-평화체제 전환 논의를 병행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심상치 않다. 어제 한국 외교부가 “한미는 북한과의 어떠한 대화에서도 비핵화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밝힌 해명이 공허해 보일 정도다.
비공식적 논의라지만 북-미 간 논의가 오갔다는 것도 몰랐던 게 아니냐는 의혹에 정부는 터무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정부가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를 감도 잡지 못했다면 더 위험하다. 일각에선 작년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 등 중국 경사 외교의 후폭풍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미중(美中)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는 나라’라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자랑만 믿고 있다가 중국에 뺨맞은 데 이어 미국에도 뒤통수를 맞은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한반도 평화협정이란 북한이 1974년 미국 의회에 “남조선에 있는 외국 군대는 일체 무기를 가지고 철거해야 한다”며 조-미(朝-美)평화협정을 제안한 이래 끊임없이 요구해온 사안이다. 한국을 배제하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을 쓰면서 북한이 미국과 대등한 핵보유국 자격으로 협상하자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협정으로 보장한다는 데 무엇이 문제냐며 국내서도 동조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평화협정의 핵심은 유엔사 해체와 북-미 수교다. 북의 주장대로 평화협정을 먼저, 또는 비핵화와 동시에 체결한다면 한국은 북핵을 그대로 머리에 인 채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지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에 대한 강한 제재를 끌어내기 위해 어느 때보다 물샐틈없는 한미공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협의하는 마당에 정부는 미국에 긴밀한 대북 공조를 요구해야 마땅하다. 안보 위기도 위기지만 외교당국의 위기가 국민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데일리]
4.너도나도 창업 치킨집 '속빈 강정'이라니
국내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전세계 맥도날드 매장 수보다 많은 3만 6000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 산하기관인 공정거래조정원이 공개한 프랜차이즈 비교정보 자료에 따른 숫자다. 먹고살기 위해 가게를 차린다며 너도나도 치킨집을 선택한 결과다. 재래시장의 통닭가게를 합친다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나게 된다.
이처럼 치킨집이 많아진 것은 누구라도 한 번쯤 해볼 만한 사업이라는 유혹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치킨집 운영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대부분 프랜차이즈 치킨집의 경우 1년 매출액이 2억원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도 집계된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여유롭지가 않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져가는 돈에다 이것지것 비용을 빼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별로 없어 ‘속 빈 강정’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처음 문을 여는 데 들어가는 가맹비만 해도 1000만원이 넘는 데다 인테리어 비용도 적잖게 들어가기 마련이다. 여기에 다달이 재료비·로열티·광고판촉비 등을 떼고 나면 가맹점주가 가져가는 금액은 매출의 35%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서도 임대료와 인건비까지 제하게 되면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돈은 불과 몇푼이라고 한다.
요즘 대표적인 생계형 창업에 속하는 게 치킨집이다.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직장을 떠난 월급쟁이들이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쉽게 문을 열 수 있는 업종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침체 상황에서 창업하는 경우가 급증한 결과 국내 시장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이러다 보니 치킨 가맹점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창업 3년 안에 40%가 문을 닫는다는 현상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자영업자들이 위기에 내몰리면 자칫 국가경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 이들이 가게를 열기 위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려 쓴 대출금은 지난해 6월말 현재 1인당 2억원에 이른다. 그 빚이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관계당국은 생계형 창업자들을 위한 현실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다. 치킨집 등 일부 업종에 치우치지 않도록 재취업 프로그램과 일자리 나누기, 기업과의 상생전략도 고민해야 한다.
5.박 대통령의 ‘레임덕’ 없기를 바라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모레로 취임 3주년을 맞는다. 특별한 행사보다는 쟁점법안 처리와 북한의 추가도발 방지 등 현안에 몰두한다는 게 청와대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어떤 형식으로든 국민에게 그동안의 국정 성과를 설명하면서 남은 과제의 완수를 강조하고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5년 단임인 대통령제에서 집권 4년차는 ‘레임덕’이 본격화되는 시기다. 전례가 그러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레임덕이 없는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원활한 국정 추진을 위해서도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자면 총체적 난맥에 빠져 있는 경제·개혁·안보의 새판짜기에 성공하느냐가 관건이다.
경제는 그야말로 악재투성이다. 성장의 견인차인 수출은 세계 경기침체에 저유가까지 겹쳐 1년 넘게 하강곡선이고, 그랜드세일과 개별소비세 인하 등의 내수진작책도 별무신통이다. 내실부터 다지겠다며 사활을 걸다시피 한 4대 구조개혁은 정치권 다툼에 발이 묶여 요지부동이다. 이른바 ‘박근혜표 중점 법안’ 18개 중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을 빼곤 모두 제자리걸음이다. 그나마 후한 평가를 받던 외교·안보 분야도 북한 핵·미사일 도발이 초래한 한반도 안팎의 신(新)냉전 기류로 휘청대고 있다.
하나같이 해법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난제들이다. 인사 난맥과 세월호 참사, 비선실세 문건 의혹,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등의 돌발 악재로 국정 추진에 막대한 애로를 겪어 온 박 대통령으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수렁에 빠져버린 국회를 겨냥해 박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들었는데도 약발은 먹히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국정 운영의 판을 새롭게 짜려면 무엇보다 국론 단합이 선결과제다. 국론 단합은 진정 어린 소통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난주의 국회 연설 같은 ‘소통 행보’가 요긴하다.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여야 대표 회동이 연례행사 수준에 그쳐선 곤란하다. 미국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이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것도 남북전쟁으로 갈라진 국론을 단합시킨 공로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2년 후 청와대를 떠날 때 국론 단합의 표상으로 국민에게 기억되기 바란다.
[서울신문]
6.직장어린이집 확충은 저출산 정책의 요체
5세 미만의 어린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의 가장 큰 고민은 뭐니 뭐니 해도 아이 보육일 것이다. 자녀가 어릴수록 더욱 절실하다. 직업을 가진 여성들은 어린이집이 있는 회사를 꿈의 직장으로 꼽고 있다. 자녀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으면 직장을 그만둘 처지에 맞닥뜨리는 게 현실이다. 직장을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일과 가정을 함께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정책이 4월부터 시행되는 영유아보육법상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다. 그런데 법 시행까지 40일도 남지 않은 현재 직장어린이집의 설치율은 50%대에 불과하다. 2014년 4월 정책이 확정된 점을 고려하면 기업들의 미온적인 자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직장어린이집을 반드시 설치해야 할 사업장은 상시 근로자 500명 이상, 또는 상시 여성 근로자 300명 이상인 1204곳이다. 하지만 2014년 12월 기준으로 의무 대상 기업 가운데 실제 설치한 곳은 52.7%, 다른 어린이집과 위탁계약을 체결한 곳은 7.7%에 그쳤다. 보육수당을 지급하는 기업은 14.5%였다. 지난해까지 직원에게 보육수당을 주면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간주됐지만 올해부터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미이행 기업은 늘어날 게 뻔하다.
직장어린이집의 설치는 2011년 이후 15년째 출산율 1.3명 미만인 초저출산율을 높이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이행하지 않으면 1년에 2회까지 한 차례에 1억원, 연간 최대 2억원의 강제이행금을 부과하도록 못박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볼멘소리가 만만찮다. 제도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공간 확보가 쉽지 않은 데다 비용 부담도 크고, 수요 예측도 어렵다는 것이다. 주변에 주유소와 유흥시설이 없어야 하는 등 설치 기준도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것이다. 법의 잣대만 들이대기에는 일리 있는 주장이다.
직장어린이집은 출산율과 여성 고용률을 높일 수 있는 제도다. 기업 입장에서는 근로자의 애사심과 노동의욕 고취를 통해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전제는 기업들의 과감한 인식 전환과 자발적인 참여다. 그렇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정부는 강력하게 추진하되 기업들에 대한 세제나 금융혜택 등의 적극적이고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장기 투자로 여길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대상 기업의 범위도 늘릴 수 있다.
7.공직 유연근무제 국민 편의 우선 고려를
인사혁신처가 그제 내놓은 ‘공무원 근무혁신 지침’은 업무 집중도와 효율성, 생산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어영부영 일해도 정년까지 일자리가 보장돼 ‘철밥통’ 소리까지 듣는 공직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민간에서 활용되는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특히 이번 지침에 따라 주당 40시간 범위에서 근무일과 시간을 자율 조정해 하루 12시간씩 사흘을 집중 근무하고, 하루는 4시간만 일하는 주 3.5일 근무도 가능해진다는 점에 눈길이 쏠린다. 봉급생활자들이 꿈꾸는 ‘월화수목일일일’이 공직사회에서 현실화되는 셈이다.
이번 지침의 저간에는 2200시간이 넘는 공무원의 연간 근로시간을 2018년까지 1900시간대로 낮춰 ‘일과 휴식이 조화를 이루는 근무문화’를 조성하겠다는 거창한 청사진이 담겨 있다. 연간 초과 근무시간 총량을 예산처럼 설정해 부서별로 나눠 주고, 공무원 각자의 초과근무 사용량을 월별로 관리토록 해 되도록 초과 근무를 줄이면서 대신 근무시간 중의 사적인 전화, 불필요한 인터넷 검색, 다른 부서 방문 등을 자제토록 해 업무 집중도와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일해야 할 시간에 놀고, 쉬어야 할 시간에 일하는 비효율적 근무 방식은 당연히 고쳐야만 한다.
하지만 과연 공직사회의 현실을 고려했는지 궁금하다. 혁신처는 민원업무 담당자가 유연근무제를 활용하거나 연가를 사용할 때는 공백이 없도록 대체 근무자를 세우도록 했다고 밝혔지만 지금도 많은 민원 창구에는 ‘옆 창구를 이용하라’는 팻말이 붙어 창구마다 북새통인 게 현실이다. 이미 반 토막 난 민원 창구가 유연근무제 시행으로 더 없어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이유다. 공무원은 국민들의 혈세로 월급을 받는 공복이다. 또한 공무원들의 정년을 헌법에 보장한 이유는 그만큼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국민에게 피해를 줘서야 되겠는가.
게다가 집중근무제와 유연근무제 등은 근로 감독이 엄격한 민간 부문에서도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 근로와 휴식을 정확히 계량하고, 성과를 공정하게 평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지침이 오히려 일부 나태한 공무원들의 ‘쉬는 시간’만 늘려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 공공인력의 정보처리 경쟁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직사회의 생산성 향상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일과 휴식의 조화 못지않게 역량 강화와 근태 및 성과의 철저한 관리가 병행돼야 한다.
[중앙일보]
8.관광 한국 부활 위해 관광청 설치해야
한때 한류붐으로 각광받던 한국 관광이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환골탈태의 개혁이 불가피해졌다. 지난해 한국에 온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보다 100만 명 가까이 줄었다. 6.8%나 감소한 것이다. 반면 일본은 1년 전에 비해 47% 늘어난 1974만 명을 유치했다. 일본인도 평생 가기 어려운 산간오지에도 외국인들이 북적인다. 엔저(低) 효과를 앞세운 아베 정부의 적극적인 유치로 한국에서 관광객을 무더기로 빼앗아갔다.
한국 관광은 한류붐이 한창이던 2008년 이래 몇 년 전까지 일본을 압도했다. 한·일 관계가 냉랭해지기 전까지 한류 스타를 보기 위해 날아온 중년 여성들을 비롯, 한국에는 일본 관광객이 넘쳤다. 하지만 이제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외교 문제와 먹고사는 문제를 분리하지 못한 채 반일 감정을 앞세운 탓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국적을 따지지 않고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린다. 한국인도 일본 관광을 온다면 대환영이다. 자국민 직원 일색이었던 일본식 전통 여관 ‘료칸(旅館)’마저 금기를 깨고 한국인 종업원을 잇따라 채용하고 있다.
이런 정신 자세도 문제지만 정부의 관광정책에도 새 바람이 불어야 한다. 관광 대국들은 모두 관광 전담 정부기관을 두고 있다. 하와이관광청, 캐나다관광청, 뉴질랜드관광청 등이 대표적이다. 관광청이 없던 일본 역시 2008년 관광객 유치에서 한국에 뒤지자 그해 관광청을 신설했다. 그 이후 7년 만인 지난해 결국 한국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면세점 정책에서도 한국은 일본에 밀리고 있다. 한국은 롯데·신라 등 대기업 중심의 면세점 체제다. 또 사전면세 방식이어서 세금을 미리 감면받고 물건을 살 수 있어 편리하긴 하다. 하지만 갈수록 늘어난 관광객이 대도시뿐 아니라 전국 각지로 퍼지면서 이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일본은 2만9000곳에 이르는 개인사업자가 즉시 환급이 가능한 사후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덕에 어디서든 면세품을 살 수 있다.
관광은 미래의 먹거리 산업이다. 일본은 이를 먼저 간파하고 아베 총리가 직접 지휘하고 있다. 한국에 앞서 저성장을 경험한 일본은 제조업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관광산업 육성이 절실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관광산업은 가만히 앉아서 국내로 고객을 불러들이는 공해 없는 산업이다.
한국에도 중국인 관광객 유커(遊客)와 동남아 관광객을 유인할 요소는 얼마든지 있다. 일본에선 눈을 관광상품화해 산간오지까지 외국인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한국에도 태백산·한라산은 물론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강원도 산간에도 강설량이 풍부하다. 이를 한류상품과 연결하면 훌륭한 관광상품이 된다.
전체적으로 우리의 관광정책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전문기관이 활약하는 외국과는 달리 우리는 문화체육관광부 내 1개 국이 관광정책을 맡고 있다. 이래서는 정부 내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한국도 관광청을 즉각 신설해 신속한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다.
9.내부순환로 폐쇄 사태를 시민 안전 개선 계기로
서울 내부순환로 중 성북구 길음램프에서 성동구 성동분기점까지 7.5㎞ 구간이 22일 0시부터 약 한 달 동안 전면 폐쇄에 들어갔다. 하루 약 10만 명이 이용하는 교통 ‘혈맥’이 막힌 것은 정릉천 고가도로 케이블 20개 중 1개가 끊어지고 나머지도 부식되는 등 안전 결함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미 이날 하루 종일 인근 지역이 혼잡을 겪은 것을 시작으로 임시 보완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 구간이 지나는 서울 동북 지역의 교통 정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시는 케이블 손상이 지난 17일 해빙기 안전 점검에서 드러났다고 밝혔다. 문제점을 미리 찾고 긴급 교통 통제를 결정한 것은 시민 안전을 위한 합리적 판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달 전인 지난해 12월 정기 점검 때는 멀쩡한 것으로 보고됐던 케이블에서 갑자기 결함이 발견된 것은 석연치 않다. 서울시는 문제의 케이블이 노후화에 따른 부식으로 끊어졌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지난해 12월의 정기점검이 부실했거나 그 사이에 다른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거대 교통시설물의 안전에 대해 시민들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시민 불안을 해소하려면 서울시가 내부순환도로 전체 구간을 정밀 조사해 안전을 확인해야 한다. 철제가 들어간 구조물은 온도에 따라 부피나 형태가 변화할 수 있으며, 해빙 과정에서 균열 등 다양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에 따라 내부순환로는 물론이고 주요 교량과 터널 등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교통시설물에 대한 해빙기 안전 점검을 꼼꼼하게 진행해야 한다. 설계와 시공, 유지 보수 전반에 걸쳐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필요하면 다양한 전문가 집단과 시민대표를 참여시키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시민 안전만큼 절실한 행정 과제는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시설물 수리·점검 기간 동안 교통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도 행정력을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 서울지방경찰청과 원활한 소통체계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도 인근에 갈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성숙한 공동체 정신을 발휘할 때다.
[매일경제]
10. MWC서 모바일시대 새 지평 연 삼성·LG전자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6'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지난 21일 스마트폰 신제품 '갤럭시S7'과 'G5'를 각각 공개하고 승부수를 던졌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해온 LG는 삼성보다 5시간 빨리 전략폰을 공개하며 선제공격에 나섰고 삼성은 카메라, 방수 기능 등을 대폭 개선한 스마트폰과 가상현실(VR) 기기로 맞섰다. 대한민국의 2개 대표 기업이 MWC에서 한판 대결을 펼치며 모바일 시대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준 것은 실로 반가운 일이다.
삼성전자는 360도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해 VR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360도 카메라 '기어 360'을 공개하며 새로운 생태계 조성을 주도했다. 언팩 행사의 주제 '한계를 넘어서(Beyond Barriers)'처럼 VR이라는 차세대 먹거리로 영역을 확장하고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는 페이스북의 자회사 오큘러스와 기어VR을 개발한 인연으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를 무대 위로 깜짝 등장시키기도 했다. LG전자는 스마트폰에 장착할 수 있는 카메라 손잡이와 사운드를 내는 특수 모듈 등 주변 기기 8종을 'G5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는데 그동안 스마트폰 시장에 존재하지 않았던 '하드웨어 생태계'라는 점에서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더 이상의 혁신은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지난해 한 자릿수 성장에 그치는 등 정체를 보여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삼성과 LG가 보여준 기존 스마트폰의 한계를 뛰어넘는 차세대 스마트폰은 혁신이라 부를 만하다. 외신들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스마트폰에서 VR로 영향력을 확장한 삼성전자에 대해 CNBC는 "삼성이 이제 마켓을 만들고 혁신을 끌어가고 있다"고 호평했다. 중국 화웨이는 휴대성과 노트북의 작업성을 갖춘 '메이트 북'을 공개하며 나름의 혁신을 보여줬다.
'모바일이 모든 것'이라는 이번 MWC의 주제가 보여주듯 모바일이 대세인 이 시대는 스마트폰을 넘어 다양한 제품과 콘텐츠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모바일 기술을 앞서 개발하고 선도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삼성과 LG는 글로벌 시장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퍼스트 무버로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한국일보]쿠바 '천혜의 군항' 관타나모 미국에 임대하다
1903년 2월 23일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관타나모 임대 계약서에 서명했다. 당시 쿠바 대통령이던 토마스 에스트라다 팔마는 일주일 전 관타나모 만 할양에 관한 ‘쿠바-미국 협정’에 먼저 서명했다. 협정은, 만의 주권은 쿠바에게 있지만 사법ㆍ통제권은 미국에 있고, 급탄과 연료 공급기지 설치 이외의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후속 협정문에서 양국은 임대료를 매년 2,000달러로 정하고 “양국이 협정 내용의 변경ㆍ폐기에 합의할 때까지 유효하다”고 명시했다. 임대료는 1934년 5월 4,085달러로 인상됐지만, 59년 혁명 이후 쿠바는 임대료 수령을 거부한 채 협정 파기를 요구해왔다.
쿠바는 16세기 이후 줄곧 스페인 식민지였다. 1868년 시작된 독립전쟁(제1차)은 10년간 이어졌고, 79년의 2차 전쟁, 95년 3차 전쟁이 발발했다. “쿠바 거주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미 군함 ‘USS메인’호가 아바나로 급파된 건 전쟁 막바지였던 1898년 1월이었다. 2월 정박 중이던 메인호가 폭발, 미 해군 260여 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난다. 미국은 진상조사 결과 스페인 소행이라며(2009년 공개된 미의회 도서관 자료에 따르면 당시 조사단은 엔진 불씨가 화약고에 튀어 일어난 연쇄 폭발을 원인이라 밝혔다) 4월 전쟁을 선포했다. 쿠바 독립전쟁은 이후 미국-스페인 전쟁이 됐고, 미국은 석 달 만에 승리했다. 패전국 스페인은 필리핀과 괌, 푸에르토리코, 쿠바를 미국에 넘겼다. 미 군정청은 쿠바의 독립공화국 수립(1902년 5월 20일)을 허용하는 대신 쿠바와 미국 본토 방어를 위한 군사기지 할양을 요구했고, 이듬해 관타나모 임대 협정이 체결됐다.
쿠바 동쪽 끝 관타나모는 카리브해의 허리케인이 미치지 않는 천혜의 군항이다. 160㎢ 면적에 미 해병대와 군속, 가족 등 약 3,000명이 상시 거주하며, 27km 접경을 두고 쿠바와 대치 중이다. 2001년 9ㆍ11 이후 현지에 포로수용소가 지어졌고, 2002년 아프간 탈레반 포로들이 처음 수용된 이래 테러 용의자 등이 미국의 법망 바깥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에 노출된 채 최대 800여 명까지 수감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통령 선거 때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공약했고, 점진적으로 수용자 수를 줄여왔지만 아직 수용소가 사라진 건 아니다. 2015년 7월 미국과 쿠바는 반세기만의 국교 정상화를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관타나모 임대 협정 갱신ㆍ폐기 언급은 아직 없다.
2.[동아일보][2030 세상]슬픈 배달의 역사
어린 시절 우리 집 자가용은 시티100 오토바이였다. 아버지는 매일 이 오토바이에 의지해 새벽을 뚫고 출근을 하셨다. 이따금 아버지 등에 매달려 오토바이를 탔는데, 참 크고 따뜻했다. 하지만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아버지는 한사코 나를 오토바이에 태우지 않으려고 하셨다. 위험하다는 이유였는데 아버지의 말은 옳았다. 최근 보도를 보니 2010년부터 5년 동안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는 청소년 2554명이 다쳤고 53명이 숨졌다고 한다. 그나마 산재보험으로 확인된 사고인데 배달대행 청소년의 98%는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고가 아마 더 많지 않을까.
중학생 때 내 짝은 2년 유급한 형이었다. 그 형은 “빠라바라바라밤” 하는 경적 소리가 요란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배달 일을 했다. 다른 아이들은 그 형을 무서워했지만 나는 형 집에 놀러간 적도 있다. 어머니가 안 계시고 아버지는 알코올의존증 환자였다. 그 형은 “별로 ‘가오’는 안 살지만 동생 때문에라도 내가 벌어야 해”라며 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겨울방학 때 형은 오토바이로 빙판길에서 속도를 내다 넘어져 결국 다리를 절뚝거리게 되었다.
배달 아르바이트 청소년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중고교생 3명 중 1명은 아르바이트를 경험하고 이 중 30%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생계가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청소년들 일자리가 청장년들로 옮겨가고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인 상황이다 보니 배달처럼 그나마 수입이 나은 일에 대한 수요는 꾸준하다. 청소년 노동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한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저 같은 경우는 배달을 안 하면 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사람들은 청소년이 오토바이 타는 걸 보면 쟤네들은 다 폭주족 같은 애들이라고 생각해요. 어쩔 수 없이 하는 건데 주변에서 그렇게 바라보면 기분이 되게 나쁘죠.”
고등학교 시절 종례시간의 기억도 떠오른다. 담임선생님이 다른 반 학생의 사망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는 30분 배달제로 유명했던 피자집 배달원이었는데 시간에 쫓겨 차로를 가로지르다 마주 오던 차량에 치였다고 했다. 선생님은 “너네 오토바이 타지 마라. 공부나 열심히 해야지 괜히 돈 벌고 싶어서 깝죽거리다 죽어봐야 너네 손해야”라고 소름 끼치는 으름장을 놓았다. 그 친구가 왜 시간에 쫓겼는지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이후 30분 배달제는 수많은 배달원의 죽음이 잇따른 뒤에야 2011년 폐지됐다.
하지만 여전히 신속배달 신화 뒤에는 청소년들의 신음이 들린다. 배달 중 교통사고는 무리하게 운전하거나 교통법규를 어길 때 잘 발생하는데, 특히 배달 제한시간이 있거나 건당 추가 수당을 받는 경우 그런 일이 잦다는 연구가 나왔다.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를 찾아보니 여전히 30분 배달제의 피자집은 건당 400원의 배달 수당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배달원을 구하고 있었다. 설문 조사에서는 배달을 빨리하라고 재촉을 받은 경험이 청소년 배달원 사이에서 63%에 이르렀다. 또 배달대행의 경우 배달이 늦어져 주문이 취소되면 음식값을 배달원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한다. 이러니 목숨을 걸고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주말 저녁 평소 막히지 않던 대로에 차가 길게 줄을 지어 있었다. 이 시간에 웬 차가 이렇게 막히나 싶었는데, 한 아이가 교차로 한가운데 널브러져 있었다. 헬멧 사이로 앳된 얼굴이 보이는 아이의 상반신은 반쯤 돌아간 채 미동조차 없었다. 옆으로 배달 오토바이가 넘어져 있고 여러 식당에서 받았는지 다양한 음식들이 쏟아져 나와 김을 내며 조용히 식어가고 있었다.
배달이 조금만 늦어도 분노하고 목숨 값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일이 흔한 우리 사회에서, 배달 일을 하는 청소년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슬픈 배달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3.[동아일보][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수치로 어림잡는 가치 계산법
1783년 프랑스 미술계에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성 일색의 왕립 미술아카데미가 여성 회원 3명을 선발했지요. 미술가로 장래가 보장되는 순간입니다. 이런 이유로 절대 권위의 미술기관 발탁 절차는 준비가 버겁고,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오늘날 대학 입시처럼요.
아델라이드 라비유기아르(1749∼1803)는 신입 여성 셋 중 하나였습니다. 서른넷에 화가로 공식 인정을 받은 후 초상화로 두각을 나타냈지요. 색감은 풍성했고, 마무리는 섬세했습니다. 왕족과 귀족 초상화가로 명성을 쌓아갈 즈음은 계몽과 변혁의 시기였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했습니다. 하지만 미술가의 삶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예술의 기조를 맞춰 나갔거든요. 혁명기 화가의 그림에서 구체제 인사들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대신 혁명가가 화폭에 등장했습니다. 혁명 이후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높은 시대의 파고를 현실에서 넘으며 예술적 평판을 안정적으로 유지했습니다.
‘두 제자와 함께 있는 자화상’에 그녀가 있습니다. 미술도구를 든 순간을 선택했군요. 차림은 깃털 모자를 갖춘 새틴 드레스입니다. 작업 의자도 값비싸 보입니다. 실제로 이런 과한 차림으로 호사스러운 공간에서 작업했던 걸까요.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넉넉한 재정 상태와 환상적 작업 조건만은 사실이었습니다. 부유한 남편과 일찍 이혼했지만 재정적 곤궁함은 없었습니다. 사설 미술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삶의 윤택함을 이어갔어요. 남성 위주의 전시 관행을 비판했던 그녀였습니다. 여성 미술가의 전시 기회 확대를 요구하기도 했지요. 특히 여성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았답니다. 단순한 화가를 넘어 힘 있는 미술계 인사로 자신을 과시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화가의 자화상에는 등장인물이 둘 더 있습니다. 스승과 그의 예술에 존경과 찬사를 보내는 제자들입니다.
추운 계절의 끝에서 고교들의 대입 결과를 접할 기회가 잦습니다. 합격자 수가 해당 학교의 진가처럼 비칩니다. 이런 통계들에 그림 속 들러리 제자들을 겹쳐 봅니다. 라비유기아르는 당대 미술 지형에서 의의와 한계를 동시에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두 명의 제자는 스승의 존재와 가치를 부각시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화가의 복합적 맥락 평가를 위한 절대적 기준은 될 수 없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수학과 거리가 멀었던 탓일까요. 합격자 수치로 교육의 가치를 어림잡는 세상의 계산법이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4.[서울신문][길섶에서] 할머니의 유모차/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강원도 바닷가 마을에서 산책을 하다가 어르신 네댓 분과 마주쳤다. 그런데 한결같이 유모차를 밀고 오는 것 아닌가. 할머니들은 마을 노인회관에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어울려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밥도 같이 해 먹고, 소일거리라도 생기면 용돈을 마련할 수도 있으니 아침이면 출근하듯이 노인회관으로 향하신단다.
시골 할머니들에게 유모차는 여러 가지로 유용해 보였다. 평생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한 탓에 허리가 굽고, 무릎도 상해서 이젠 무언가에 의지해서 걸어야 하는데 보행 보조차는 값이 너무 비싸다. 유모차는 훌륭한 대안인 셈이다. 지팡이에는 짐을 실을 수 없지만 유모차에는 물건도 실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할머니의 유모차 안에는 손수건, 간식거리 등이 들어 있었다. 의외의 물건도 있었다. 벽돌 석 장. 벽돌을 아기라고 생각할 리는 없다. 유모차를 용도 변경해서 사용하다 보니 울퉁불퉁한 길에서 뒤집히기 일쑤여서 아기 대신 벽돌을 실어 무게중심을 잡아 주는 것일게다. 할머니들 나름의 생활의 지혜라고 할 수 있지만 보기에 참 쓸쓸했다. 노인 복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그늘을 보는 것 같아서였다.
5.[중앙일보][분수대] 가우디가 보여준 모바일의 미래
바르셀로나는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의 도시다. 그의 사후 100주기인 2026년 완공 예정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비롯해 구엘 공원, 그리고 카사 밀라에 이르기까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가우디의 흔적을 좇느라 1년 내내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가우디가 바르셀로나를 먹여살린다는 말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당대엔 그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오죽하면 바르셀로나 건축학교 졸업식에서 교장이 가우디에게 졸업장을 주면서 “천재인지 미치광이인지는 시간이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을까.
그가 미치광이 소리까지 들은 건 기존 건축의 어법을 파괴한 혁신적 스타일 때문이었다. 가우디 이전의 건축은 직선, 그리고 대칭이 절대적인 공식이었다. 하지만 가우디는 기울어진 둥근 선이 끊임없이 이어진 건축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현존하는 최고 건축가로 손꼽히는 프랭크 게리나 노먼 포스터 등이 “가우디는 과거에도 혁신이었고, 현재도 혁신이고, 미래에도 혁신”이라고 입을 모아 경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바르셀로나에 와보면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라며 신을 닮고 싶어 했던 가우디의 혁신가적인 면모를 절로 느끼게 된다. “신은 서두르지 않는다”며 처음부터 사후 공사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 그가 남긴 걸작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의 첨단 돔형 건축물 아그바르 타워(바르셀로나 수도국 건물)처럼 가우디로부터 영감을 받은 수많은 건축물이 혁신가 가우디의 위대함을 잘 드러낸다. 진정한 혁신이란 그저 말잔치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이렇게 미래에도 살아 숨쉬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니 말이다.
가우디의 숨결이 짙게 배어 있는 바르셀로나에선 매년 이맘때 모바일 혁신의 경연장인 세계 최대의 모바일 축제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가 열린다. 22~25일 열리는 MWC 2016에선 ‘모바일이 전부다(Mobile is Everything)’라는 주제로 모바일 혁신 기술이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21일 막바지 준비가 한창인 ‘피라 그란 비아’ 전시관들을 미리 둘러보면서 모바일이 변화시킬 미래에 대해 상상해 봤다. 신을 닮으려 했던 가우디의 도시에서 미래를 창조함으로써 신의 영역에 다가서고 있는 모바일 혁신 기술의 경연을 보는 게 왠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출처] 2016년 2월 23일 속기·칼럼 자료|작성자 넷스쿨영등포속기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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