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3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국민의 정치 혐오증만 키운 '꼼수 공천'
4·13 총선에 나설 국회의원 후보를 가리는 각 정당의 공천을 바라보면서 정치적 회의감만 쌓여가고 있다. 대부분 국민들의 감정이 비슷할 것이라 여겨진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국민과 국가는 안중에도 없고 계파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온갖 변칙과 편법, 속임수, 무원칙이 뒤범벅을 이룬 ‘꼼수 공천’으로 전락한 결과다. 이쯤 되면 가히 역대 최악의 공천으로 깎아내려도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처음엔 새누리당의 ‘공천 학살’과 더불어민주당의 친노(親盧) 배제로 시끄럽더니 이젠 공천 심사나 경선으로 기껏 걸러낸 후보를 다시 살려 주거나 다른 지역구로 빼돌리는 돌려막기식 ‘재활용 공천’이 횡행한다. 여당은 한때 특정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는 황당한 편법도 불사하려 했고, 제1야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셀프 공천’과 당무 거부로 막판까지 요동쳤다. 두 당의 공천 과정을 살벌한 패권정치라며 싸잡아 매도하던 국민의당은 공천 불복으로 최고위원회의가 난장판이 되고 김종현 선거관리위원장이 사퇴하는 홍역을 겪었다.
선거구 획정이 5달이나 미뤄진 탓에 공천이 예년보다 훨씬 늦게 시작됐건만 각 당이 저마다 내홍에 휩싸이는 바람에 후보등록 마감을 불과 이틀 앞두고도 전체 그림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비례대표 공천 역시 기대할 게 별로 없어 보인다. 그제 하루 동안 후보를 추가 공모한 새누리당이나, 김 대표의 ‘멋대로 공천’에 당내외 비난이 빗발친 더민주나, 당선권 배치로 잡음이 인 국민의당이나 원칙 없고 투명하지 않기로는 한결같다.
‘꼼수 공천’을 거쳐 국회에 진출하는 인물은 국민보다 공천장을 준 권력자에게 충성하느라 국민의 정치 혐오증만 키울 게 뻔하다. 백해무익한 꼼수 정치가 더 이상 이 땅에서 활개치지 못하게 하려면 유권자의 자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번 총선은 후보가 누구인지, 정강과 공약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투표하는 ‘깜감이 선거’가 되기 십상이나 그럴수록 유권자가 영악해져야 한다. 누가 권력에 줄서는 아첨꾼이고, 누가 국리민복을 향상시킬 공복인지 가려낼 혜안을 갖추기 위해 후보의 정치행적과 성향, 공약 등을 열심히 공부하고 나서 투표하는 게 민주시민의 의무다.
2. 미국과 쿠바의 정상회담을 바라보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해 그제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 정상회담이 88년 만에 성사됐다는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지리적으로 바로 코앞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적대관계로 일관해 왔던 두 나라가 새로운 협력관계로 전환해 나가는 출발점이다. 양국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역내 질서에서 과거 냉전시대의 갈등과 마찰이 해소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그동안 쿠바 경제를 압박했던 미 의회의 금수조치 해제와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반환 등의 문제는 앞으로 단계적으로 해결돼야 할 과제다. 쿠바의 정치 민주화 및 인권문제에 있어서도 서로의 견해 차이는 여전했다. 그러나 이처럼 두 정상이 서로 마주앉아 2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진전이다.
양국은 이날 정상회담을 계기로 인적 교류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의 정상화 조치를 발표했다. 과학·보건·농업·기후변화·에너지 등의 분야가 여기에 망라돼 있다. 이미 양국 간에 무역은 재개됐고 여행 규제도 풀린 상태다.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 공용어인 스페인어로 트위터에 우호적인 글을 올렸으며, 현지의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에 깜짝 출연한 데서도 미국 정부의 높은 관심과 기대를 느끼게 된다.
쿠바로서는 그동안 공연히 벽을 쌓았던 셈이다. 미국 정부가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려고 은밀히 시도한 것도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탓이었다. 그 결과 쿠바가 카리브해의 낙원으로 불리던 위치에서 경제는 피폐해졌고, 국민들의 생활은 고달파질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으로도 감시의 눈길이 살벌했다. 쿠바 국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각배에 의지해 줄지어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했던 이유다.
쿠바의 문호가 열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북한의 처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가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상황에서도 유독 핵개발에 매달려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북한은 그제도 동해상으로 5발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달만 해도 벌써 4번째 이어지는 무력시위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쿠바 지도자들의 정치적 결단에서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
[동아일보]
3. 前법무장관·검찰총장까지 법 어기고 사외이사 맡다니
3월 대기업 주주총회 결과 김성호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과 송광수 김준규 전 검찰총장 등 검찰 고위직 출신의 변호사 10여 명이 변호사법을 어기고 사외이사를 맡은 사실이 드러났다. 변호사법 38조 2항은 영리법인의 이사가 되려는 변호사는 소속 지방변호사회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돼 있다. 장관, 총장까지 지내고 변호사로 고액 보수를 받는 이들이 ‘전관 보은’이나 대기업의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는 눈총을 피하기 위해 변호사회 허가를 안 받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2013년부터 삼성전자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송광호 전 총장은 재임 중 삼성그룹의 편법 경영권 승계 및 비자금 수사를 지휘한 바 있다. 김준규 전 총장도 특혜 대출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된 NH농협금융지주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김성호 전 장관은 그룹 총수가 사법처리 돼 재판을 받고 있는 CJ 사외이사이고, 이귀남 전 장관은 기아자동차 사외이사다. 그런 법이 있는지 몰랐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법률전문가답지 않은 군색한 변명이다.
변호사법에 영리법인 사외이사로 취업할 경우 겸직 허가를 받게 한 이유가 있다. 법원이나 검찰 재직 중 재판 혹은 수사한 기업에 취업하는 이익 충돌을 막기 위해서다. 변호사가 대기업의 사외이사를 맡는 것도 사기업에 고용되는 것인 만큼 변호사법이 규정한 직무상의 독립에 반(反)하지 않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기업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변호사들의 적법성 여부를 전수 조사할 방침이라고 한다. 2013년에도 허가를 받지 않고 사외이사로 취업했던 전직 고위직 변호사가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은 사례가 있다. 변호사회가 솜방망이 징계를 하니 불법 겸직 사례가 계속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징계 처벌 수위를 높여서라도 법조계에 만연한 전관예우 성격의 불법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
[서울신문]
4. 지카 감염자 첫 발생, 제2 메르스 사태 안되게
세계를 소두증(小頭症) 공포로 몰아넣은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가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했다는 소식이다. 지난달 브라질을 방문한 남성이 1차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질병관리본부는 설명했다. 지카 바이러스는 일상에서 사람 사이에 감염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혈이나 성 접촉으로 전파가 이루어질 수는 있지만, 감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지카 바이러스가 악명을 떨치고 있다고 해서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해도 소두증은 감염된 임신부로부터 태어난 신생아에게서 나타나는 만큼 임신 중이거나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여성과 그 가족이라면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한 사람의 감염자 발생이 사회적 불안감 확산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질병관리본부는 바이러스 차단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지카 바이러스는 중남미에서 시작돼 북미와 유럽, 아시아까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나라에서도 중남미를 여행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올해 하계 올림픽은 지카 바이러스 전파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다. 선수와 임원, 보도진을 비롯해 반드시 가야 하는 인원부터 적은 숫자가 아니다. 4년 만에 돌아오는 지구촌 축제인 만큼 응원단을 포함한 관광객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카 바이러스는 이집트숲모기가 사람에게 전파하니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감염자 역시 브라질 현지에서 모기 기피제를 쓰고 긴 옷을 입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앞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귀국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방역 및 의료 체계는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서 보듯 외래 감염증에 크게 취약한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카 바이러스가 호흡기로 순식간에 전염되는 메르스와는 성격이 다른데도 감염자 발생 소식에 긴장이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의 감염증 대응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질병관리본부는 올해 본부장이 차관급으로 격상되고 역학조사관도 증원이 추진되는 등 조직과 인력의 확충이 이루어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카 바이러스 차단 대책만큼은 제대로 세워 메르스 사태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새로운 체계의 효율성을 증명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국민의 걱정을 덜어 주는 정부 조직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5. 명분도 실리도 잃은 새누리 유승민 의원 처분
새누리당은 어젯밤 늦게까지 ‘뜨거운 감자’인 유승민 의원 공천 여부를 놓고 산고를 겪었다. 총선 후보 등록(24∼25일)을 코앞에 두고 공천관리위원회와 최고위원회가 결정을 떠넘기는 핑퐁 게임을 벌이면서다. 유 의원이 탈당해야만 총선에 나갈 수 있는 시점인 23일 밤 12시를 하루 앞둔 시점까지 꼴사나운 갈등 양상을 표출한 셈이다. 역대 어느 집권당에서도 볼 수 없었던 황망한 풍속도다. 이런 여당의 난맥상이 국정 누수로 이어진다면 피해자는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여권 수뇌부는 이제라도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는 계파 시각의 소이(小異)를 버리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공천 갈등을 수습하기 바란다.
총선 후보 등록을 이틀 앞두고도 유 의원의 자진 하차 결단만 기다리던 공관위와 최고위가 온 종일 갑론을박을 벌였다는 건 뭘 말하나. 그만큼 당내 리더십이 허물어졌다는 뜻이다. 사실 집권당 원내대표로서 유 의원의 처신에 분명히 문제는 있었다. 국회 상임위에서 “청와대 얼라들…”이라고 한, 치기 어린 표현은 그렇다 치자.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박근혜 대통령을 공개 비판한 것은 여당 원내 사령탑으로서 금도를 벗어난 처신이었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증세 없는 복지’라는 당론을 바꾸려면 당·청 간 이견을 해소하는 절차를 먼저 밟아야 했다는 점에서다.
그렇다 하더라도 원내대표직을 이미 사퇴한 유 의원을 공천에서도 배제하려고 한 것은 협량한 친박 계파적 시각일 듯싶다.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할 민주 공당에서 말이다. 백번 양보해 유 의원의 정체성이 현 여당과는 도저히 함께 갈 수 없을 정도라고 봤다면 공관위가 애초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이한구 공관위원장이 그럴 자신이 없었다면 유 의원이 일찌감치 경선에서 당원들의 심판을 받게 해야 옳았다. 그럼에도 ‘폭탄 돌리기’하듯 시간만 끌다가 총선 선거 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새누리당은 치명적 타격을 입은 형국이다. 서울 강남권과 대구에서 경선에 임한 이른바 ‘진박 후보’들이 비박계 후보에게 줄줄이 고배를 든 게 그 징조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름으로써 이제 유 의원에게 공천을 주든 말든 집권당으로서 이미 명분도, 실리도 잃은 꼴이 아닌가.
어제까지의 새누리당 공천에서 지역 선거구 중 절반이 경선으로 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무성 대표의 상향식 공천 취지가 어느 정도 구현됐다고 당내에선 보는 모양이다. 하지만 상향식 공천이 지고지선의 정치 개혁일 순 없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것은 말은 그럴듯하지만 선거를 두 번 치르자는 얘기다. 게다가 여야의 경선 과정에서 현역 의원들에게만 유리한 프레임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여권은 상향식 공천의 근간을 지키면서 친박 측이 제기한 전략 공천을 조화시키는 데 실패한 대목을 뼈아프게 복기해야 한다. 유승민 공천 여부를 비롯한 당내 공천 이견을 민주적 절차로 수렴하지 못한 한계를 자성해야 할 것이다. 혹여 역시 계파 패권주의의 덫에 걸린 야당의 지리멸렬한 분열상에 기대 총선을 치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6. 더민주 비례대표 내홍, '봉숭아 학당' 따로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후보 선정을 둘러싼 내홍이 가까스로 봉합되는 분위기다. 당 중앙위원회의 비례대표 후보 명단 거부에 반발해 그제부터 서울 구기동 자택에 칩거했던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어제 비대위에 참석함으로써 일단 당무에 복귀했다. 이번 파동은 그제 비대위가 제안한 후보자 명단에 당 중앙위원회가 반발해 순위 투표를 보류한 것이 발단이 됐다. 특히 김종인 대표가 비례대표 후보에 포함된 것과 순번을 2번으로 한 것이 문제가 됐다. 여기에 대해 김 대표가 “그따위로 대접하는 정당에서 일할 생각 추호도 없다”며 당무를 거부하자 중앙위는 다시 그에게 그를 포함한 4명의 후보 순위 결정권을 넘겼다. ‘셀프 공천’이라며 김 대표를 강하게 몰아붙이던 세력들이 하루 만에 납작 엎드린 모양새다. 문재인 전 대표까지 급거 상경해 김 대표 복귀를 설득했다.
김 대표의 벼랑 끝 버티기에 중앙위가 물러선 것은 당장 총선 후보 등록을 이틀 앞둔 상황에서 당내 분란을 안정시키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또 김 대표와 당내 친노계 주류 세력 간 다툼 양상으로 비쳐 선거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한 것 같다. 결국 중앙위는 어제 새벽까지 진행된 회의에서 김 대표가 안정권에 전략공천할 수 있는 몫으로 4명을 안배하기로 했다. 사실상 김 대표의 ‘셀프 공천’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 표절 의혹을 받아 온 박경미 홍익대 수학과 교수와 최운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김성수 당 대변인 등도 안정권에 배치했다. 박 교수는 비대위가 비례대표 1번을 부여했던 인물이다.
중앙위가 물러섬으로써 비례대표 후보를 둘러싼 내분은 일단 수습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자신을 비례대표 2번에 넣은 김 대표의 도덕성과 당헌을 무시하고 비례대표 후보들을 A, B, C 3개 그룹으로 분류해 순위 투표를 무력화하려 했던 점은 언제든 살아날 수 있는 불씨다. 비례대표제는 국회에서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대변하기 위한 제도다. 지역구 선거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더민주의 당헌 102조에는 비례대표 우선순위를 정함에 있어 여성, 노인, 장애인, 직능, 다문화 등의 전문가를 고르게 안분하라고 돼 있다. 비대위가 제안한 후보 명단은 이런 취지에 충분히 부합하지 못했다. 당원들이 그제 국회에서 당헌·당규에 의거한 비례대표 선정을 주장하는 피켓 시위를 벌인 이유다. 이번 비례대표 파동은 많은 야당 지지자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총선 후에라도 당 차원에서 자신을 향한 비판적 숙고가 필요한 대목이다.
[중앙일보]
7. 용서할 수 없는 악의 테러, 지상군 투입 검토하라
지난해 11월 130명의 사망자를 낸 파리 테러의 악몽이 가시기도 전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또다시 연쇄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최소 34명의 희생자를 낸 이번 테러도 인류의 존엄성에 대한 공격이고 도전이다.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파리 테러의 주범 살라 압데슬람이 불과 4일 전 이곳에서 붙잡힌데다 테러범이 아랍어로 소리쳤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이슬람국가(IS)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 종교적 탄압이든 영토분쟁이든, 어떠한 이유에서건 무고한 시민에 대한 무차별 테러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는 추악한 이번 테러 역시 인류의 이름으로 규탄한다.
누가 진범이든 이번 테러는 무척 충격적이다. 압데슬람의 체포로 브뤼셀에서의 보복 테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폭탄 공격이 이뤄졌다는 건 그만큼 테러리스트의 능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의미다.
파리 테러 이후 국제사회는 테러 방지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 왔다. 하지만 이번 일로 별 효력이 없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서방세계의 소탕작전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는 도리어 늘었다. 터키에서는 최소 27명이 숨진 지난 13일의 차량 테러를 비롯, 최근 8개월간 6번의 자살폭발이 일어나 210명이나 희생됐다.
게다가 중동의 테러단체에 가담했다 유럽으로 숨어든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만 2000명 이상이라고 한다. 여기에 자생적 테러리스트까지 합치면 위험인물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조차 힘들다.
그런데도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는 선택적 폭격에만 의존할 뿐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못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이라크·시리아를 넘어 리비아로까지 번진 악의 세력이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국제사회는 유엔을 중심으로 하든, 아니면 미국·영국·프랑스 등 주요국들끼리 합심해 본격적인 지상군 투입 등을 검토해야 한다.
지난 2월 IS는 한국인 20명을 살해 대상으로 지목한 바 있다. 우리 역시 IS의 테러가 언제라도 터질 수 있다는 경각심 속에서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될 일이다.
[매일경제]
8. 무원칙·무감동 공천, 20대 국회가 걱정이다
4·13총선 후보등록이 24~25일로 다가온 가운데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공천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친박·비박, 친노·비노 진영으로 나뉘어 사생결단식 권력싸움을 벌이다 보니 원칙도, 감동도 없는 공천이었고 납득하기도, 승복하기도 힘든 공천이었다.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그보다 못한 20대 국회가 탄생하게 될 것이란 걱정이 크다.
정치혁신을 위한 국회의원 물갈이 요구는 외면당했다. 새누리당은 4년 전 현역의원 46%를 교체했으나 이번에는 불출마·경선 탈락을 합쳐도 물갈이 비율이 40%에 미달한다. 더민주당도 33%로 4년 전보다 낮아졌다. 유승민 의원 공천 여부를 새누리당이 후보등록 이틀 전까지 결정하지 못한 사실에서 보듯 당헌·당규는 무시됐고 계파 공천, 보복 공천, 돌려막기 공천이 횡행했다.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는 제쳐둔 채 국회의원을 계파이익에 따라 줄세우는 이런 공천이 20대 국회에서 어떤 후유증을 낳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예비후보 간 경선이 확산된 것은 새로운 변화라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여러 과제를 확인했다. 새누리당에서 경선을 거쳐 후보가 결정된 선거구는 17대 때 23곳, 18대 때 0곳, 19대 때 44곳에 불과했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전체 141개 선거구에서 경선으로 후보가 결정됐다. 국민 뜻을 반영하려는 노력이라고 평가할 수 있으나 무원칙한 공천 배제에 이어 중복조사·불법행위와 관련한 탄원서가 90개 선거구에서 접수될 정도로 준비 부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새누리당 부산지역 현역의원 16명이 100% 공천을 받는 유례없는 일도 벌어진 것은 현역의원들이 상향식 공천에서 그만큼 유리하기 때문인데 정치신인을 배려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비례대표 공천에도 감동은 고사하고 권력싸움만 넘칠 뿐이다. 더민주당은 비례대표 명단 발표 뒤 김종인 대표가 사퇴소동을 빚을 정도다. 공천 갈등이 이 지경이니 총선 공약은 안중에도 없다. 더구나 앞으로도 야권 선거연대, 무소속 이합집산 등의 고비가 남아 있어 유권자들은 더 힘든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20대 국회 탄생을 막아야 하는 무거운 책무는 국민들이 떠안은 상태다.
9. '한국형 블프' 정착하려면 신뢰부터 얻어라
정부 주도로 지난해 처음 열린 대규모 할인 이벤트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와 민간 주도 쇼핑행사 케이세일데이가 올해부터는 하나로 합쳐진다고 한다. 개최 시점을 중국인 관광객이 대거 한국을 찾도록 그들 국경절 연휴 기간인 10월 초로 하고 통합 행사 이름도 새로 짓는다니 소위 꽃단장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추진 계획을 미리 세우고 널리 알려 관련 업체에 충분한 준비기간을 줌으로써 참여 폭을 대폭 확대하겠다는데, 내실도 있고 명성도 얻도록 만들어 미국 블랙프라이데이나 중국 광군제 못지않은 쇼핑 축제로 재탄생했으면 한다.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는 지난해 10월 초 2주일간 백화점, 온라인쇼핑 등 92개 업체와 200개 전통시장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됐다. 케이세일데이는 민간 주도로 103개 업체와 500개 전통시장, 371개 중소 제조업체가 참여해 11월 20일부터 12월 15일까지 26일간 진행됐다. 하지만 급조된 관제 행사였을 뿐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쇼핑객 눈길을 끌 만한 할인 제품도 부족했고 뒷말만 무성했다. 할인율 최대 70%라는 광고가 내걸렸지만 실은 맹탕이었다. 두 행사에 참여한 중소기업들은 두 곳 가운데 하나꼴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측에서 판매수수료 조정이나 감면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불평만 가득했다.
원조인 미국에서는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가 연말정산 전에 재고 떨이를 위한 파격 세일에서 시작됐다.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니 땡처리식으로 90% 넘는 할인율도 가능했다. 업체들이 평소에 할인을 남발하거나 미리 가격을 올려놓았다가 깎아주는 식으로는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기 어렵다. 실제 파격적 할인도 해주고 다양한 상품을 살 수 있도록 해 10월을 기다리게 하는 신비주의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 등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다면 한류 콘텐츠를 접목한 문화 행사를 함께 마련해 단순한 쇼핑 행사를 넘어 한국을 알리고 물건도 싸게 살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보기 바란다. 인위적으로 소비를 살리겠다거나 내수를 진작한다는 정책적 목표에 매달리다 보면 다시 관제 행사로 돌아갈 수 있다. 정부는 판만 만들어주고 가능한 한 시장과 업체들에 맡겨 소비자에게 선택을 받도록 하는 게 맞다.
[세계일보]
10. 검찰 고위직 출신들 준법의식 이 정도 였다니
대한민국에서 검사만큼 좋은 직업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현직에서는 어느 국가기관보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기소독점주의에 따라 피의자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고위 공직자, 대기업 총수, 심지어 전직 대통령까지 불러서 추궁할 수 있다. 퇴직 후에는 정년 없는 변호사로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다. 변호사 수 증가로 경쟁이 치열하다는 건 엄살이다. 그래도 골프나 여행을 즐길 정도의 수입은 올린다. 그러다가 정치권이나 정부 요직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그 욕심은 끝이 없다.
이번에는 검찰 고위직 출신의 변호사 10여명이 법을 어긴 채 주요 기업에서 사외이사를 맡았다가 들통났다. 변호사로서 영리법인 이사가 되려면 소속 지방변호사회 허가를 받도록 한 변호사법을 위반해 징계를 받게 됐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변호사들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고검장, 지검장 등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이다.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지만 검찰 재임 중 수사를 지휘한 기업의 사외이사로 선임된 사례도 있다. 검찰에서 30년 가까이 법을 집행했으면서 “법을 몰랐다”고 해명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 정도 준법의식으로 검찰을 지휘했단 말인가.
설령 실무에서 다룰 일이 없어 해당 법 조문을 몰랐다고 해도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외이사제도는 기업이 전문적인 지식이나 풍부한 경험을 가진 외부 인사한테 폭넓게 자문하기 위한 제도다. 그런데도 검찰 고위간부 출신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이유는 삼척동자라도 안다. 그들이 지닌 법률 지식이 아니라 인맥을 사는 것이라는 걸. 법률 자문이라면 사내 변호사나 법무팀, 대형 로펌을 활용하면 그만이다. 검찰 고위간부 출신에게 사외이사 감투를 씌워주는 건 검찰과 연결고리를 만들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서울변호사회는 해당 변호사들을 이달 중 조사위원회에 회부해 징계신청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한다.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차제에 대기업 사외이사제도가 전관예우 통로로 활용되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검사들의 자성과 의식변화가 필요하다.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는 밑바닥이다. 이제 검사로서의 자존심은 지키되 특권의식은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존경할 만한 검찰 출신 원로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국일보]라플라스의 악마
아인슈타인(1879~1955)이 상대성이론으로 뒤엉킨 시공간을 내보이기 이전, 그러니까 19세기 말의 물리학은 늙은 학문이었다. 뉴턴(1643~1727)의 법칙이 우주 만유(萬有)의 것들을 지배하던 시기, 시간과 공간이 따로 인간의 직관과 평면적 좌표, 유클리드의 세계 안에서 안정적으로 포착돼 있던 시기였다. 과장하자면 당시 학자들에게 물리학은 이미 아는 법칙들을 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가능하다면 경험적으로 검증하고 설명하는 일만 남았다고 여겼다. 사실 그것도 19세기 말 경에는 거의 완성된 단계였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 1749~1827)도 고전물리학의 질서를 수학적으로 규명한 학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천재로 알려진 그는 16세에 대학에 입학해 19세에 석학 달랑베르의 제자가 됐고, 22세에 파리군사학교 교단에서 엘리트들을 가르쳤고, 24세에 이미 프랑스과학아카데미 회원이었다. 그는 고전 역학의 유체 운동과 지구의 모양, 블랙홀 등을 수학적으로 설명했고, 전자기학의 전위와 천문학의 중력 퍼텐셜(단위 질량 입자의 중력위치에너지)을 계산하는 데 쓰이는 ‘라플라스 방정식’ 등을 고안했다.
그가 ‘확률에 대한 철학적 시론(1825)’(조재근 역, 지식을 만드는 사람들)을 발표한 건 숨지기 이태 전이었다. 모든 변수를 파악하고 계산하고 통제할 수만 있다면 완벽한 예측도 가능하다는 가설이 거기 등장한다. “자연을 움직이는 모든 힘과 자연을 이루는 모든 존재들의 각 상황을 한 순간에 파악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게다가 그의 지적 능력은 이 정도 데이터를 충분히 분석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자. 그렇다면 그는 우주에서 가장 큰 것의 운동과 가장 가벼운 원자의 운동을 하나의 식 속에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불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며,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가 그의 눈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 가상의 존재를 19세기 이후의 인류는 ‘라플라스의 악마’라 불렀다. 신이 아니라 ‘악마’인 까닭은 그것이 과학의 산물, 인간 이성의 창조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둑 챔프 이세돌 구단과의 대국에서 승리한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에서, 악마의 희미한 그림자를 본 이들도 있다. 그걸 의식한 듯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누가 이기든 인류의 승리”라고 했다. 그리고, 달가워하든 않든, 슈미트가 말한 ‘인류의 승리’는 더 빈번하게, 더 압도적인 양상으로 인류를 놀라게 할 것이다. 인공지능에 ‘인공의식’이 결합해 ‘딥러닝’하며 상황을 봐서 ‘의도적으로’ 한 판쯤 져주기도 하는 ‘베타고’가 등장할 수도 있다. AI의 진화를 어떻게 통제하고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 궁리해야 한다고도 한다. 어쩌면 인류는 그 해답도 새로운 AI에게서 구해야 할지 모른다.
267년 전 오늘(3월 23일) 라플라스가 태어났다.
2. [동아일보][한옥에 살다]농가 한옥이 독특한 카페로
1. 순임 씨는 3년 전, 23년 동안 버려두었던 평택의 시골집을 크게 고쳤다. 올해 65세인 남편과 5남매가 나고 자랐고 시부모님께서 세상 떠날 때까지 생활하신 곳이다. 오랫동안 비워 둬 벽체가 무너지고 지붕은 내려앉아 말이 아니었다. 안채에서만 서까래 34개에 기둥뿌리 2개가 썩어 있었다. 다행히 한옥은 상한 부분만 도려낸 후 잇고 덧대어 고치는 것이 가능하다. 처마가 짧아 비가 들이치는 문제도 서까래 끝을 덧대는 방식으로 해결했고 단열에도 신경 썼다. 부엌을 입식으로 고치면서 장작 때는 아궁이도 하나 남겼다. 이 집에서 그녀는 생애 처음 농사를 지었다. 수확한 쌀이며 고구마를 주변과 나누는 즐거움도 누리는 중이다. 지난가을엔 부뚜막에 무쇠 솥을 걸고 메주를 쑤었다.
2. 인천의 아파트에 살던 서현 씨는 5년 전 강화의 농가 한옥을 사들였다. 7년간 비어 있던 집이다. 더 이상 아파트에 살기 싫었기에, 어려서부터 그냥 좋았던 한옥을 찾아다니던 차였다. 원형을 살려서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헐고 새로 짓기보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드는 일이기에 “미쳤다”고 주변에서 난리였지만 현장에 텐트를 치고 작업을 챙겼다. 안방과 부엌을 합쳐 화장실 갖춘 넓은 안방을 확보했다. 헛간을 부엌으로 바꾸고 넓은 식탁을 놓으니 모두들 “카페 같다”며 좋아했다. 집을 고치고 나니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불 때는 방에서 뜨끈하게 지지고 싶어서,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차 한잔 마시고 싶어서. 그녀는 “생활이 자연과 밀착하니 이제야 내 인생을 사는 것 같다”며 즐거워한다.
3.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인 나지막한 언덕 위에 카페가 있을 줄은 몰랐다. 하얀 벽체에 붉은 지중해식 기와가 멋지게 어우러진 집이다. 온통 흰색인 내부는 벽체며 문과 창이 일률적이지 않아 자유롭다. 공간에 이끌려 자꾸 안으로 들어가다 갑자기 눈이 확 뜨인다. 천장에 원형 그대로 드러난 서까래가 보인다. 아, 이 집이 원래 초가였구나! 제멋대로 굽고 휜 서까래의 조형미는 하얀 벽과 천장을 바탕 삼아 더욱 극적이다. 남편이 태어나 자란 초가를 어떻게 잘 살릴까 고민하던 부부는 함께 좋아하는 커피를 떠올렸다. 부인이 디자인하고 남편이 실행하면서 고쳐 나갔다. 카페로는 동떨어진 위치인데도 커피 맛과 함께 집이 풍기는 독특한 매력이 상당한 입소문을 타고 있다.
1970년대 초만 해도 농촌 서민들의 주택은 대개 초가였다. 초가는 기와집과 달리 지붕이 가벼우므로 부재가 굵지 않아도 된다. 가까운 산에서 적당히 굽고 휜 나무를 베어 도끼나 자귀로 투덕투덕 껍질만 벗겨 쓴다. 지붕은 농사지어 생산한 벼를 떨어낸 부산물로 겨울 농한기에 만드니 농촌 주택으로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짚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듯하다. 그러나 썩기도 쉬워서 1, 2년마다 이엉을 갈아야 할 뿐 아니라 벌레도 꼬인다. 경제개발기 이런 집들은 불량 주택으로 취급돼 헐려 나갔다. 그 와중에 붉고 푸른 슬레이트 기와나 함석지붕을 얹고 살아남기도 했고 그것을 오늘날 농가 한옥이라 부르고 있다.
예전에는 농촌에서 집을 지을 때, 동네 목수의 지휘 아래 품앗이를 했다. 그러니 “우리 마을은 해 떨어지면 서풍이 불어∼”, “우리 아들이 키가 커서 방이 더 높아야 것는디∼” 하는 식으로, 지역의 환경과 사는 사람의 필요에 맞춰 집을 지었다. 그래서 집은 지역과 시대의 삶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역사 문화 자산이다. 자유로워 아름다운 목구조, 시간의 켜가 풍기는 아우라는 환산 불가능한 가치다.
한국인들의 의식이 변화하고 있다. ‘가치’에 대한 인식과 지향이 뚜렷해지면서 일상에서 구체적인 욕구와 취향을 누리고 싶어 한다. 팔기 위한 집보다 살기 위한 집으로, 획일적인 공간보다 개성 있는 나만의 공간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우선순위가 건강, 개성, 자연과의 교감이다. 거기에 꾸준히 높아지는 전통에 대한 관심이 맞물려 농가 한옥이 지난날 잔뜩 붙이고 있던 군더더기들을 떨어버리고 현대인이 생활 가능한 공간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귀농인의 살림집으로, 작업장으로, 분위기 있는 카페로.
3. [동아일보][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좋은 백성 만들기
4월에 관아에 질병이 돌아 밖에 나가 지낸 일이 있었다. 이웃집에 고양이가 있었는데 늘 사람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릇을 뒤져 무슨 음식이든 훔쳐갔다. 고기를 매달아 놓으면 어금니를 갈고 주둥이를 벌름거리며 펄쩍 뛰어서는 기어이 잡아채서 먹었다. 노복들이 골치 아파하며 몽둥이로 쫓고 개를 풀어 물게 하고 덫을 놓아 잡고 밧줄로 묶어놓고 채찍으로 때리는 등 실컷 괴롭힌 뒤 놓아주었지만 고양이의 도둑질은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노복들이 서로 의논하였다. “이 고양이가 그렇게 고통을 받고 다 죽게 되어도 하는 짓이 여전하니, 이는 필시 배가 고파 그러는 것이다. 앞으로 이놈에게 먹을 것을 주면서 하는 짓을 보는 게 좋겠다.”
마침내 밥을 조금 덜어 고양이에게 주었다. 고양이는 아침저녁으로 와서 먹이를 먹었다. 그러더니 이때부터 마음을 고치고 습관을 바꿔서 비록 음식이나 어육(魚肉)이 앞에 있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입맛 한 번 다시지 않았다. 사람과 친해져서 고개를 숙이며 매일같이 와서 길들여지니 노복들도 고양이를 사랑하여 더욱 잘 길러주었다.
제주(濟州)에서 통판(通判) 벼슬을 하던 남구명(南九明·1661∼1719) 선생의 ‘고양이 이야기(猫說)’입니다. 대책 없던 도둑고양이가 길들이고 보니 그렇게 착할 수 없더라, 그렇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바로 안정적인 생계 대책이더라 하는 이야기. 이러니저러니 해도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살게 만드는 사람이 좋은 정치인입니다. 그리고 덕분에 우리도 좋은 백성이 되고 싶습니다.
제주도에는 본래 도적이 없어 밤에 문도 닫지 않고 나그네도 들판에서 잤다. 풍속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 가뭄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니 인심이 크게 변하여 도적이 벌 떼처럼 일어나서 소와 말, 곡식이며 옷감을 죄다 훔쳐갔다.
내가 이를 보고 알게 되었으니, 배부르면 양민이요 배고프면 도적이 될 뿐이다(飽則民, 飢則盜耳). 누군들 좋아서 도적이 되고 싶겠는가. 속담에 ‘3일 동안 먹지 못하고 도적이 되지 않을 사람은 드물다(三日不食, 鮮不爲盜)’라 하였으니 참으로 맞는 말이다. 아, 누군들 떳떳한 덕이 없고 염치가 없겠는가마는, 굶주리다 보니 본성을 잃어 살아서는 강도요 죽어서는 흉한 귀신이 된다. 비록 행실을 고쳐 착하게 살아 다시 태평성세의 백성이 되고자 하여도 될 수 있겠는가.
4. [서울신문][씨줄날줄] ‘엄마표’ 학원 광고/황수정 논설위원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있는 장면이다. 지난 1월 이준식 교육부 장관과 학원총연합회 관계자들의 만남. 학원 대표들을 장관은 정부서울청사로 초대했다. 자유학기제 전면 실시를 앞두고 학원들이 특강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니 오죽 답답했을까. 간담회 형식을 빌렸다지만 만남의 내용은 교육부의 통사정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유학기제를 왜곡하는 과장 광고,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마케팅을 자제해 달라는 당부였다. 자유학기제를 안착시켜야 하니까 학원들이 제발 좀 알아서 도와 달라는, 백기 투항
정책의 무기력을 꼬집는 우스개로 “정책 있으면 대책 있다”는 말이 있다. 그 어떤 정책에도 ‘대책’으로 스스로 진화하는 곳이 대한민국 학원가다. 그들의 발빠른 대응력을 당할 재간이 없는 정책이 몇 수 접어 달라고 매달렸지만 달라진 건 없다. 장관의 초대까지 받고서도 학원가가 성의를 보인다는 소문은 들리지 않는다. 학원들은 여전히 자유학기제 집중 특강 중이다. 장관은 스타일만 구겼다.
학원들의 자신감은 근거가 분명하다. 그들의 ‘빽’은 학부모다. 정책 변화가 있을 때마다 학원가를 먼저 탐색하는 쪽은 학부모들이다. 새 정책을 마냥 믿고 따라가기 불안해 안절부절못하는 엄마들.
이번에는 학원들의 나쁜 광고가 도마에 올랐다. ‘○○고 2학년 김○○ 강제 퇴원 확정: 규정에 의거에 경고 2회를 받아 퇴원 조치됐음을 공지합니다. 사유: 언제까지 시간이 없다고 할래? 변명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고 정신 차려라!’
경기도 신도시 한 학원의 실제 게시물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 한 달간 전국 10개 학원가를 점검한 결과다. 학생의 이름과 소속 학교가 완전 공개된 것은 물론이다. 악담과 조롱 수준의 경고에 신상 정보를 있는 대로 노출하는 것이 예사다. 공포 마케팅도 대세다. ‘마녀 스쿨’이라는 간판에 ‘목숨 건 강의, 공포의 관리’, ‘1분 지각하면 집으로 보내고 세 번 결석하면 퇴원’ 등의 문구를 광고판에 버젓이 새겼다.
교육도 인권도 안중에 없는 비정한 학원 광고들이 뭇매를 맞는다. 요즘 아이들에겐 학교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원이다. 도망칠 데 없는 사면초가의 공간이다. 극도의 성적 줄세우기, 경쟁 제일주의에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담가 놓는 것은 섬뜩한 일이다. 학생 인권 침해 광고를 처벌하도록 학원법을 고치라는 목소리가 높다.
딱한 것은, 세상의 상식과 대한민국 엄마들의 속마음이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1분만 늦어도 벌칙을 주고, 5분만 늦어도 문자 메시지를 보내 주고, 미주알고주알 성적을 까발리는 ‘망신 충격요법’에 먼저 안달 난 쪽은 엄마들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학부모들일까. 아니, 공교육을 믿지 못하게 망쳐 놓은 교육정책 탓일까. 헛바퀴만 돌아가는 답답한 이야기다.
5. [중앙일보][The New York Times] 동식물 멸종을 막을 글로벌 해법은
1940년 여름. 당시 열한 살이던 나는 워싱턴DC의 저소득층 아파트에서 살았다. 조금만 걸으면 국립 동물원에 갈 수 있었고 삼림이 우거진 록크릭 공원도 지척에 있었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내며 동물들을 구경했고 나비를 잡기도 했다. 그러면서 끝없이 눈앞에 펼쳐지는 다양한 생명의 세계를 꿈꿨다.
76년 뒤인 지금도 나는 그 꿈을 간직하고 있다. 생물 다양성은 퍼 올릴수록 물이 많아지는 ‘마법의 우물’과도 같다. 그런데 내 오랜 꿈이 위험에 처했다. 우리는 환경오염과 물 부족, 경작지 소실 같은 기후변화 문제만 걱정했다. 반면 생물종 보존에 대해선 간과해왔다. 이는 엄청난 전략적 실수다. 지구의 생명환경을 구하면 물리적·비생명 환경도 구할 수 있다. 서로가 의존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우리가 물리적 환경만 신경 쓰면 결국 둘 다 잃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지구에 살아 있는 유기체 중 알려진 종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자. 이 분야에서 인류의 지식은 한심할 정도로 적다. 지금까지 약 200만 종이 발견돼 라틴어 학명을 받았다. 그러나 박테리아나 세균류 미생물을 빼더라도 적어도 1000만 종 넘는 생물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6만3000종이 발견된 척추동물과 27만 종이 발견된 화훼 식물을 제외하면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이들 생명체는 자연의 근간을 이루며 지구를 꾸려가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이들을 포함해 지구 전체의 생물 다양성 지도를 만드는 작업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다. 과학자들이 생물 다양성을 밝혀내는 속도는 말도 안 될 만큼 느리다. 매년 발견되는 새로운 종의 숫자는 1만8000개에 불과하다. 이런 속도로 연구가 이어지면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종 전체를 보여주는 지도는 23세기에 가야 완성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전 세계 생물 멸종률을 언급해야겠다. 화석과 유전학 연구로 얻은 정보들을 바탕해 계산한 연간 생명 멸종률은 수백만 년 전 인류가 지구에 출현하기 전의 멸종률보다 1000배 이상 높다.
생물 멸종이 가장 흔한 지역은 열대지방 나라들이다. 특히 열대우림 섬 지대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1895~2006년 사이 57개 생물종이 멸종했다. 토종 민물고기들도 다수 멸종됐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한 멸종률은 인류의 등장 이전과 비교했을 때 900배 가까이 높다.
당황한 미국은 전 세계적 차원의 자연보호 운동에 나섰다. 그 결과 자연 위기에 대한 인류의 인식이 제고되고 생물종 보존에 도움이 되는 연구가 다수 나왔다. 이런 노력으로 생물의 멸종 속도가 다소 늦춰졌다. 하지만 멸종으로의 행진이 완전히 멈춰지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인류의 생물종 보존 노력은 전 세계 척추동물의 20%에 해당하는 멸종 위기종에 집중돼 왔다. 그 덕분에 이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21세기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음울하다. 글로벌 자연보호 운동은 교통사고 부상자를 치료하는 응급실 외과 의사에 불과하다. 환자의 출혈을 절반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며 축하할 수 있지만, 그 환자는 다음 날 아침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다음 세대가 육지와 해양, 대기의 생태계가 평형을 이루게끔 만드는 기막힌 기술을 고안해내지 못하는 한 우리의 아름다운 자연 세계는 영영 사라져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 인류가 바로 지금 생물종 보존을 위해 확실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이유다.
생물종 절멸 사태를 막을 합리적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아프리카에서 발원한 인류가 다른 대륙으로 퍼져 나가기 전의 수준으로 생물 멸종률을 낮추는 것이다. 인류가 지구를 야금야금 장악하면서 다른 생명체들은 서식지를 빼앗겼다. 이것이 생물 다양성 손실의 가장 큰 이유다. 인류는 지금까지 구상했던 수준보다 훨씬 더 많은 자연 서식지를 보존해야 한다. 땅 욕심에 눈이 멀어 다른 생명체의 터전을 뺏는 일을 중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지구의 생태계가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멸종률을 낮출 수 있다.
아직까지 살아남은 생물종의 90%를 구하려면 육지 15%, 바다 3%로 규정된 현재의 자연보호 구역을 획기적으로 늘려 육지·바다 각각 50% 수준으로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방안이다. 나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주장해온 대로 전 세계 곳곳에서 상대적으로 원시 자연의 모습을 지켜온 지역들을 선택하면 육지와 바다 면적의 절반을 보존할 수 있다. 그곳에 살아온 원주민들은 전통적 생활 방식을 유지하게 해주면 된다. 이런 방식의 자연 보존은 미국 정부가 국립·주립 공원을 지정하는 과정에서 실시한 테스트를 통해 효과가 입증된 바 있다.
인류와 다른 생물종의 지속적 공존을 겨냥한 이 같은 조치는 우리 모두를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할 과제다.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이 조치가 성공하면 인류는 엄청난 혜택을 얻게 된다. 옛날 동물원을 즐겨 찾던 한 소년이 꾸던 꿈은 지속될 가치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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