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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3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국민의 정치 혐오증만 키운 '꼼수 공천'​

4·13 총선에 나설 국회의원 후보를 가리는 각 정당의 공천을 바라보면서 정치적 회의감만 쌓여가고 있다. 대부분 국민들의 감정이 비슷할 것이라 여겨진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국민과 국가는 안중에도 없고 계파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온갖 변칙과 편법, 속임수, 무원칙이 뒤범벅을 이룬 ‘꼼수 공천’으로 전락한 결과다. 이쯤 되면 가히 역대 최악의 공천으로 깎아내려도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처음엔 새누리당의 ‘공천 학살’과 더불어민주당의 친노(親盧) 배제로 시끄럽더니 이젠 공천 심사나 경선으로 기껏 걸러낸 후보를 다시 살려 주거나 다른 지역구로 빼돌리는 돌려막기식 ‘재활용 공천’이 횡행한다. 여당은 한때 특정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는 황당한 편법도 불사하려 했고, 제1야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셀프 공천’과 당무 거부로 막판까지 요동쳤다. 두 당의 공천 과정을 살벌한 패권정치라며 싸잡아 매도하던 국민의당은 공천 불복으로 최고위원회의가 난장판이 되고 김종현 선거관리위원장이 사퇴하는 홍역을 겪었다.

선거구 획정이 5달이나 미뤄진 탓에 공천이 예년보다 훨씬 늦게 시작됐건만 각 당이 저마다 내홍에 휩싸이는 바람에 후보등록 마감을 불과 이틀 앞두고도 전체 그림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비례대표 공천 역시 기대할 게 별로 없어 보인다. 그제 하루 동안 후보를 추가 공모한 새누리당이나, 김 대표의 ‘멋대로 공천’에 당내외 비난이 빗발친 더민주나, 당선권 배치로 잡음이 인 국민의당이나 원칙 없고 투명하지 않기로는 한결같다.

‘꼼수 공천’을 거쳐 국회에 진출하는 인물은 국민보다 공천장을 준 권력자에게 충성하느라 국민의 정치 혐오증만 키울 게 뻔하다. 백해무익한 꼼수 정치가 더 이상 이 땅에서 활개치지 못하게 하려면 유권자의 자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번 총선은 후보가 누구인지, 정강과 공약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투표하는 ‘깜감이 선거’가 되기 십상이나 그럴수록 유권자가 영악해져야 한다. 누가 권력에 줄서는 아첨꾼이고, 누가 국리민복을 향상시킬 공복인지 가려낼 혜안을 갖추기 위해 후보의 정치행적과 성향, 공약 등을 열심히 공부하고 나서 투표하는 게 민주시민의 의무다.

2. 미국과 쿠바의 정상회담을 바라보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해 그제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 정상회담이 88년 만에 성사됐다는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지리적으로 바로 코앞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적대관계로 일관해 왔던 두 나라가 새로운 협력관계로 전환해 나가는 출발점이다. 양국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역내 질서에서 과거 냉전시대의 갈등과 마찰이 해소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그동안 쿠바 경제를 압박했던 미 의회의 금수조치 해제와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반환 등의 문제는 앞으로 단계적으로 해결돼야 할 과제다. 쿠바의 정치 민주화 및 인권문제에 있어서도 서로의 견해 차이는 여전했다. 그러나 이처럼 두 정상이 서로 마주앉아 2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진전이다.

양국은 이날 정상회담을 계기로 인적 교류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의 정상화 조치를 발표했다. 과학·보건·농업·기후변화·에너지 등의 분야가 여기에 망라돼 있다. 이미 양국 간에 무역은 재개됐고 여행 규제도 풀린 상태다.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 공용어인 스페인어로 트위터에 우호적인 글을 올렸으며, 현지의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에 깜짝 출연한 데서도 미국 정부의 높은 관심과 기대를 느끼게 된다.

쿠바로서는 그동안 공연히 벽을 쌓았던 셈이다. 미국 정부가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려고 은밀히 시도한 것도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탓이었다. 그 결과 쿠바가 카리브해의 낙원으로 불리던 위치에서 경제는 피폐해졌고, 국민들의 생활은 고달파질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으로도 감시의 눈길이 살벌했다. 쿠바 국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각배에 의지해 줄지어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했던 이유다.

쿠바의 문호가 열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북한의 처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가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상황에서도 유독 핵개발에 매달려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북한은 그제도 동해상으로 5발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달만 해도 벌써 4번째 이어지는 무력시위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쿠바 지도자들의 정치적 결단에서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

[동아일보]

3. 前법무장관·검찰총장까지 법 어기고 사외이사 맡다니

3월 대기업 주주총회 결과 김성호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과 송광수 김준규 전 검찰총장 등 검찰 고위직 출신의 변호사 10여 명이 변호사법을 어기고 사외이사를 맡은 사실이 드러났다. 변호사법 38조 2항은 영리법인의 이사가 되려는 변호사는 소속 지방변호사회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돼 있다. 장관, 총장까지 지내고 변호사로 고액 보수를 받는 이들이 ‘전관 보은’이나 대기업의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는 눈총을 피하기 위해 변호사회 허가를 안 받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2013년부터 삼성전자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송광호 전 총장은 재임 중 삼성그룹의 편법 경영권 승계 및 비자금 수사를 지휘한 바 있다. 김준규 전 총장도 특혜 대출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된 NH농협금융지주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김성호 전 장관은 그룹 총수가 사법처리 돼 재판을 받고 있는 CJ 사외이사이고, 이귀남 전 장관은 기아자동차 사외이사다. 그런 법이 있는지 몰랐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법률전문가답지 않은 군색한 변명이다. 

변호사법에 영리법인 사외이사로 취업할 경우 겸직 허가를 받게 한 이유가 있다. 법원이나 검찰 재직 중 재판 혹은 수사한 기업에 취업하는 이익 충돌을 막기 위해서다. 변호사가 대기업의 사외이사를 맡는 것도 사기업에 고용되는 것인 만큼 변호사법이 규정한 직무상의 독립에 반(反)하지 않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기업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변호사들의 적법성 여부를 전수 조사할 방침이라고 한다. 2013년에도 허가를 받지 않고 사외이사로 취업했던 전직 고위직 변호사가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은 사례가 있다. 변호사회가 솜방망이 징계를 하니 불법 겸직 사례가 계속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징계 처벌 수위를 높여서라도 법조계에 만연한 전관예우 성격의 불법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

[서울신문]

4. 지카 감염자 첫 발생, 제2 메르스 사태 안되게

세계를 소두증(小頭症) 공포로 몰아넣은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가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했다는 소식이다. 지난달 브라질을 방문한 남성이 1차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질병관리본부는 설명했다. 지카 바이러스는 일상에서 사람 사이에 감염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혈이나 성 접촉으로 전파가 이루어질 수는 있지만, 감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지카 바이러스가 악명을 떨치고 있다고 해서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해도 소두증은 감염된 임신부로부터 태어난 신생아에게서 나타나는 만큼 임신 중이거나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여성과 그 가족이라면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한 사람의 감염자 발생이 사회적 불안감 확산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질병관리본부는 바이러스 차단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지카 바이러스는 중남미에서 시작돼 북미와 유럽, 아시아까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나라에서도 중남미를 여행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올해 하계 올림픽은 지카 바이러스 전파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다. 선수와 임원, 보도진을 비롯해 반드시 가야 하는 인원부터 적은 숫자가 아니다. 4년 만에 돌아오는 지구촌 축제인 만큼 응원단을 포함한 관광객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카 바이러스는 이집트숲모기가 사람에게 전파하니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감염자 역시 브라질 현지에서 모기 기피제를 쓰고 긴 옷을 입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앞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귀국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방역 및 의료 체계는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서 보듯 외래 감염증에 크게 취약한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카 바이러스가 호흡기로 순식간에 전염되는 메르스와는 성격이 다른데도 감염자 발생 소식에 긴장이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의 감염증 대응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질병관리본부는 올해 본부장이 차관급으로 격상되고 역학조사관도 증원이 추진되는 등 조직과 인력의 확충이 이루어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카 바이러스 차단 대책만큼은 제대로 세워 메르스 사태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새로운 체계의 효율성을 증명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국민의 걱정을 덜어 주는 정부 조직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5. 명분도 실리도 잃은 새누리 유승민 의원 처분

새누리당은 어젯밤 늦게까지 ‘뜨거운 감자’인 유승민 의원 공천 여부를 놓고 산고를 겪었다. 총선 후보 등록(24∼25일)을 코앞에 두고 공천관리위원회와 최고위원회가 결정을 떠넘기는 핑퐁 게임을 벌이면서다. 유 의원이 탈당해야만 총선에 나갈 수 있는 시점인 23일 밤 12시를 하루 앞둔 시점까지 꼴사나운 갈등 양상을 표출한 셈이다. 역대 어느 집권당에서도 볼 수 없었던 황망한 풍속도다. 이런 여당의 난맥상이 국정 누수로 이어진다면 피해자는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여권 수뇌부는 이제라도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는 계파 시각의 소이(小異)를 버리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공천 갈등을 수습하기 바란다.

총선 후보 등록을 이틀 앞두고도 유 의원의 자진 하차 결단만 기다리던 공관위와 최고위가 온 종일 갑론을박을 벌였다는 건 뭘 말하나. 그만큼 당내 리더십이 허물어졌다는 뜻이다. 사실 집권당 원내대표로서 유 의원의 처신에 분명히 문제는 있었다. 국회 상임위에서 “청와대 얼라들…”이라고 한, 치기 어린 표현은 그렇다 치자.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박근혜 대통령을 공개 비판한 것은 여당 원내 사령탑으로서 금도를 벗어난 처신이었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증세 없는 복지’라는 당론을 바꾸려면 당·청 간 이견을 해소하는 절차를 먼저 밟아야 했다는 점에서다.

그렇다 하더라도 원내대표직을 이미 사퇴한 유 의원을 공천에서도 배제하려고 한 것은 협량한 친박 계파적 시각일 듯싶다.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할 민주 공당에서 말이다. 백번 양보해 유 의원의 정체성이 현 여당과는 도저히 함께 갈 수 없을 정도라고 봤다면 공관위가 애초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이한구 공관위원장이 그럴 자신이 없었다면 유 의원이 일찌감치 경선에서 당원들의 심판을 받게 해야 옳았다. 그럼에도 ‘폭탄 돌리기’하듯 시간만 끌다가 총선 선거 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새누리당은 치명적 타격을 입은 형국이다. 서울 강남권과 대구에서 경선에 임한 이른바 ‘진박 후보’들이 비박계 후보에게 줄줄이 고배를 든 게 그 징조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름으로써 이제 유 의원에게 공천을 주든 말든 집권당으로서 이미 명분도, 실리도 잃은 꼴이 아닌가.

어제까지의 새누리당 공천에서 지역 선거구 중 절반이 경선으로 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무성 대표의 상향식 공천 취지가 어느 정도 구현됐다고 당내에선 보는 모양이다. 하지만 상향식 공천이 지고지선의 정치 개혁일 순 없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것은 말은 그럴듯하지만 선거를 두 번 치르자는 얘기다. 게다가 여야의 경선 과정에서 현역 의원들에게만 유리한 프레임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여권은 상향식 공천의 근간을 지키면서 친박 측이 제기한 전략 공천을 조화시키는 데 실패한 대목을 뼈아프게 복기해야 한다. 유승민 공천 여부를 비롯한 당내 공천 이견을 민주적 절차로 수렴하지 못한 한계를 자성해야 할 것이다. 혹여 역시 계파 패권주의의 덫에 걸린 야당의 지리멸렬한 분열상에 기대 총선을 치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6. 더민주 비례대표 내홍, '봉숭아 학당' 따로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후보 선정을 둘러싼 내홍이 가까스로 봉합되는 분위기다. 당 중앙위원회의 비례대표 후보 명단 거부에 반발해 그제부터 서울 구기동 자택에 칩거했던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어제 비대위에 참석함으로써 일단 당무에 복귀했다. 이번 파동은 그제 비대위가 제안한 후보자 명단에 당 중앙위원회가 반발해 순위 투표를 보류한 것이 발단이 됐다. 특히 김종인 대표가 비례대표 후보에 포함된 것과 순번을 2번으로 한 것이 문제가 됐다. 여기에 대해 김 대표가 “그따위로 대접하는 정당에서 일할 생각 추호도 없다”며 당무를 거부하자 중앙위는 다시 그에게 그를 포함한 4명의 후보 순위 결정권을 넘겼다. ‘셀프 공천’이라며 김 대표를 강하게 몰아붙이던 세력들이 하루 만에 납작 엎드린 모양새다. 문재인 전 대표까지 급거 상경해 김 대표 복귀를 설득했다.

김 대표의 벼랑 끝 버티기에 중앙위가 물러선 것은 당장 총선 후보 등록을 이틀 앞둔 상황에서 당내 분란을 안정시키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또 김 대표와 당내 친노계 주류 세력 간 다툼 양상으로 비쳐 선거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한 것 같다. 결국 중앙위는 어제 새벽까지 진행된 회의에서 김 대표가 안정권에 전략공천할 수 있는 몫으로 4명을 안배하기로 했다. 사실상 김 대표의 ‘셀프 공천’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 표절 의혹을 받아 온 박경미 홍익대 수학과 교수와 최운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김성수 당 대변인 등도 안정권에 배치했다. 박 교수는 비대위가 비례대표 1번을 부여했던 인물이다.

중앙위가 물러섬으로써 비례대표 후보를 둘러싼 내분은 일단 수습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자신을 비례대표 2번에 넣은 김 대표의 도덕성과 당헌을 무시하고 비례대표 후보들을 A, B, C 3개 그룹으로 분류해 순위 투표를 무력화하려 했던 점은 언제든 살아날 수 있는 불씨다. 비례대표제는 국회에서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대변하기 위한 제도다. 지역구 선거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더민주의 당헌 102조에는 비례대표 우선순위를 정함에 있어 여성, 노인, 장애인, 직능, 다문화 등의 전문가를 고르게 안분하라고 돼 있다. 비대위가 제안한 후보 명단은 이런 취지에 충분히 부합하지 못했다. 당원들이 그제 국회에서 당헌·당규에 의거한 비례대표 선정을 주장하는 피켓 시위를 벌인 이유다. 이번 비례대표 파동은 많은 야당 지지자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총선 후에라도 당 차원에서 자신을 향한 비판적 숙고가 필요한 대목이다.

[중앙일보]

7. 용서할 수 없는 악의 테러, 지상군 투입 검토하라

지난해 11월 130명의 사망자를 낸 파리 테러의 악몽이 가시기도 전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또다시 연쇄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최소 34명의 희생자를 낸 이번 테러도 인류의 존엄성에 대한 공격이고 도전이다.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파리 테러의 주범 살라 압데슬람이 불과 4일 전 이곳에서 붙잡힌데다 테러범이 아랍어로 소리쳤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이슬람국가(IS)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 종교적 탄압이든 영토분쟁이든, 어떠한 이유에서건 무고한 시민에 대한 무차별 테러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는 추악한 이번 테러 역시 인류의 이름으로 규탄한다.


누가 진범이든 이번 테러는 무척 충격적이다. 압데슬람의 체포로 브뤼셀에서의 보복 테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폭탄 공격이 이뤄졌다는 건 그만큼 테러리스트의 능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의미다.

파리 테러 이후 국제사회는 테러 방지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 왔다. 하지만 이번 일로 별 효력이 없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서방세계의 소탕작전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는 도리어 늘었다. 터키에서는 최소 27명이 숨진 지난 13일의 차량 테러를 비롯, 최근 8개월간 6번의 자살폭발이 일어나 210명이나 희생됐다.

게다가 중동의 테러단체에 가담했다 유럽으로 숨어든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만 2000명 이상이라고 한다. 여기에 자생적 테러리스트까지 합치면 위험인물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조차 힘들다.

그런데도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는 선택적 폭격에만 의존할 뿐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못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이라크·시리아를 넘어 리비아로까지 번진 악의 세력이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국제사회는 유엔을 중심으로 하든, 아니면 미국·영국·프랑스 등 주요국들끼리 합심해 본격적인 지상군 투입 등을 검토해야 한다.

지난 2월 IS는 한국인 20명을 살해 대상으로 지목한 바 있다. 우리 역시 IS의 테러가 언제라도 터질 수 있다는 경각심 속에서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될 일이다.

[매일경제]

8. 무원칙·무감동 공천, 20대 국회가 걱정이다

4·13총선 후보등록이 24~25일로 다가온 가운데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공천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친박·비박, 친노·비노 진영으로 나뉘어 사생결단식 권력싸움을 벌이다 보니 원칙도, 감동도 없는 공천이었고 납득하기도, 승복하기도 힘든 공천이었다.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그보다 못한 20대 국회가 탄생하게 될 것이란 걱정이 크다.

정치혁신을 위한 국회의원 물갈이 요구는 외면당했다. 새누리당은 4년 전 현역의원 46%를 교체했으나 이번에는 불출마·경선 탈락을 합쳐도 물갈이 비율이 40%에 미달한다. 더민주당도 33%로 4년 전보다 낮아졌다. 유승민 의원 공천 여부를 새누리당이 후보등록 이틀 전까지 결정하지 못한 사실에서 보듯 당헌·당규는 무시됐고 계파 공천, 보복 공천, 돌려막기 공천이 횡행했다.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는 제쳐둔 채 국회의원을 계파이익에 따라 줄세우는 이런 공천이 20대 국회에서 어떤 후유증을 낳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예비후보 간 경선이 확산된 것은 새로운 변화라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여러 과제를 확인했다. 새누리당에서 경선을 거쳐 후보가 결정된 선거구는 17대 때 23곳, 18대 때 0곳, 19대 때 44곳에 불과했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전체 141개 선거구에서 경선으로 후보가 결정됐다. 국민 뜻을 반영하려는 노력이라고 평가할 수 있으나 무원칙한 공천 배제에 이어 중복조사·불법행위와 관련한 탄원서가 90개 선거구에서 접수될 정도로 준비 부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새누리당 부산지역 현역의원 16명이 100% 공천을 받는 유례없는 일도 벌어진 것은 현역의원들이 상향식 공천에서 그만큼 유리하기 때문인데 정치신인을 배려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비례대표 공천에도 감동은 고사하고 권력싸움만 넘칠 뿐이다. 더민주당은 비례대표 명단 발표 뒤 김종인 대표가 사퇴소동을 빚을 정도다. 공천 갈등이 이 지경이니 총선 공약은 안중에도 없다. 더구나 앞으로도 야권 선거연대, 무소속 이합집산 등의 고비가 남아 있어 유권자들은 더 힘든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20대 국회 탄생을 막아야 하는 무거운 책무는 국민들이 떠안은 상태다.

9. '한국형 블프' 정착하려면 신뢰부터 얻어라

정부 주도로 지난해 처음 열린 대규모 할인 이벤트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와 민간 주도 쇼핑행사 케이세일데이가 올해부터는 하나로 합쳐진다고 한다. 개최 시점을 중국인 관광객이 대거 한국을 찾도록 그들 국경절 연휴 기간인 10월 초로 하고 통합 행사 이름도 새로 짓는다니 소위 꽃단장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추진 계획을 미리 세우고 널리 알려 관련 업체에 충분한 준비기간을 줌으로써 참여 폭을 대폭 확대하겠다는데, 내실도 있고 명성도 얻도록 만들어 미국 블랙프라이데이나 중국 광군제 못지않은 쇼핑 축제로 재탄생했으면 한다.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는 지난해 10월 초 2주일간 백화점, 온라인쇼핑 등 92개 업체와 200개 전통시장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됐다. 케이세일데이는 민간 주도로 103개 업체와 500개 전통시장, 371개 중소 제조업체가 참여해 11월 20일부터 12월 15일까지 26일간 진행됐다. 하지만 급조된 관제 행사였을 뿐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쇼핑객 눈길을 끌 만한 할인 제품도 부족했고 뒷말만 무성했다. 할인율 최대 70%라는 광고가 내걸렸지만 실은 맹탕이었다. 두 행사에 참여한 중소기업들은 두 곳 가운데 하나꼴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측에서 판매수수료 조정이나 감면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불평만 가득했다.

원조인 미국에서는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가 연말정산 전에 재고 떨이를 위한 파격 세일에서 시작됐다.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니 땡처리식으로 90% 넘는 할인율도 가능했다. 업체들이 평소에 할인을 남발하거나 미리 가격을 올려놓았다가 깎아주는 식으로는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기 어렵다. 실제 파격적 할인도 해주고 다양한 상품을 살 수 있도록 해 10월을 기다리게 하는 신비주의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 등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다면 한류 콘텐츠를 접목한 문화 행사를 함께 마련해 단순한 쇼핑 행사를 넘어 한국을 알리고 물건도 싸게 살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보기 바란다. 인위적으로 소비를 살리겠다거나 내수를 진작한다는 정책적 목표에 매달리다 보면 다시 관제 행사로 돌아갈 수 있다. 정부는 판만 만들어주고 가능한 한 시장과 업체들에 맡겨 소비자에게 선택을 받도록 하는 게 맞다.

[세계일보]

10. 검찰 고위직 출신들 준법의식 이 정도 였다니

대한민국에서 검사만큼 좋은 직업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현직에서는 어느 국가기관보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기소독점주의에 따라 피의자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고위 공직자, 대기업 총수, 심지어 전직 대통령까지 불러서 추궁할 수 있다. 퇴직 후에는 정년 없는 변호사로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다. 변호사 수 증가로 경쟁이 치열하다는 건 엄살이다. 그래도 골프나 여행을 즐길 정도의 수입은 올린다. 그러다가 정치권이나 정부 요직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그 욕심은 끝이 없다.

이번에는 검찰 고위직 출신의 변호사 10여명이 법을 어긴 채 주요 기업에서 사외이사를 맡았다가 들통났다. 변호사로서 영리법인 이사가 되려면 소속 지방변호사회 허가를 받도록 한 변호사법을 위반해 징계를 받게 됐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변호사들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고검장, 지검장 등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이다.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지만 검찰 재임 중 수사를 지휘한 기업의 사외이사로 선임된 사례도 있다. 검찰에서 30년 가까이 법을 집행했으면서 “법을 몰랐다”고 해명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 정도 준법의식으로 검찰을 지휘했단 말인가.

설령 실무에서 다룰 일이 없어 해당 법 조문을 몰랐다고 해도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외이사제도는 기업이 전문적인 지식이나 풍부한 경험을 가진 외부 인사한테 폭넓게 자문하기 위한 제도다. 그런데도 검찰 고위간부 출신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이유는 삼척동자라도 안다. 그들이 지닌 법률 지식이 아니라 인맥을 사는 것이라는 걸. 법률 자문이라면 사내 변호사나 법무팀, 대형 로펌을 활용하면 그만이다. 검찰 고위간부 출신에게 사외이사 감투를 씌워주는 건 검찰과 연결고리를 만들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서울변호사회는 해당 변호사들을 이달 중 조사위원회에 회부해 징계신청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한다.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차제에 대기업 사외이사제도가 전관예우 통로로 활용되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검사들의 자성과 의식변화가 필요하다.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는 밑바닥이다. 이제 검사로서의 자존심은 지키되 특권의식은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존경할 만한 검찰 출신 원로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국일보]라플라스의 악마

아인슈타인(1879~1955)이 상대성이론으로 뒤엉킨 시공간을 내보이기 이전, 그러니까 19세기 말의 물리학은 늙은 학문이었다. 뉴턴(1643~1727)의 법칙이 우주 만유(萬有)의 것들을 지배하던 시기, 시간과 공간이 따로 인간의 직관과 평면적 좌표, 유클리드의 세계 안에서 안정적으로 포착돼 있던 시기였다. 과장하자면 당시 학자들에게 물리학은 이미 아는 법칙들을 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가능하다면 경험적으로 검증하고 설명하는 일만 남았다고 여겼다. 사실 그것도 19세기 말 경에는 거의 완성된 단계였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 1749~1827)도 고전물리학의 질서를 수학적으로 규명한 학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천재로 알려진 그는 16세에 대학에 입학해 19세에 석학 달랑베르의 제자가 됐고, 22세에 파리군사학교 교단에서 엘리트들을 가르쳤고, 24세에 이미 프랑스과학아카데미 회원이었다. 그는 고전 역학의 유체 운동과 지구의 모양, 블랙홀 등을 수학적으로 설명했고, 전자기학의 전위와 천문학의 중력 퍼텐셜(단위 질량 입자의 중력위치에너지)을 계산하는 데 쓰이는 ‘라플라스 방정식’ 등을 고안했다. 

그가 ‘확률에 대한 철학적 시론(1825)’(조재근 역, 지식을 만드는 사람들)을 발표한 건 숨지기 이태 전이었다. 모든 변수를 파악하고 계산하고 통제할 수만 있다면 완벽한 예측도 가능하다는 가설이 거기 등장한다. “자연을 움직이는 모든 힘과 자연을 이루는 모든 존재들의 각 상황을 한 순간에 파악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게다가 그의 지적 능력은 이 정도 데이터를 충분히 분석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자. 그렇다면 그는 우주에서 가장 큰 것의 운동과 가장 가벼운 원자의 운동을 하나의 식 속에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불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며,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가 그의 눈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 가상의 존재를 19세기 이후의 인류는 ‘라플라스의 악마’라 불렀다. 신이 아니라 ‘악마’인 까닭은 그것이 과학의 산물, 인간 이성의 창조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둑 챔프 이세돌 구단과의 대국에서 승리한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에서, 악마의 희미한 그림자를 본 이들도 있다. 그걸 의식한 듯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누가 이기든 인류의 승리”라고 했다. 그리고, 달가워하든 않든, 슈미트가 말한 ‘인류의 승리’는 더 빈번하게, 더 압도적인 양상으로 인류를 놀라게 할 것이다. 인공지능에 ‘인공의식’이 결합해 ‘딥러닝’하며 상황을 봐서 ‘의도적으로’ 한 판쯤 져주기도 하는 ‘베타고’가 등장할 수도 있다. AI의 진화를 어떻게 통제하고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 궁리해야 한다고도 한다. 어쩌면 인류는 그 해답도 새로운 AI에게서 구해야 할지 모른다. 

267년 전 오늘(3월 23일) 라플라스가 태어났다.

2. [동아일보][한옥에 살다]농가 한옥이 독특한 카페로

1. 순임 씨는 3년 전, 23년 동안 버려두었던 평택의 시골집을 크게 고쳤다. 올해 65세인 남편과 5남매가 나고 자랐고 시부모님께서 세상 떠날 때까지 생활하신 곳이다. 오랫동안 비워 둬 벽체가 무너지고 지붕은 내려앉아 말이 아니었다. 안채에서만 서까래 34개에 기둥뿌리 2개가 썩어 있었다. 다행히 한옥은 상한 부분만 도려낸 후 잇고 덧대어 고치는 것이 가능하다. 처마가 짧아 비가 들이치는 문제도 서까래 끝을 덧대는 방식으로 해결했고 단열에도 신경 썼다. 부엌을 입식으로 고치면서 장작 때는 아궁이도 하나 남겼다. 이 집에서 그녀는 생애 처음 농사를 지었다. 수확한 쌀이며 고구마를 주변과 나누는 즐거움도 누리는 중이다. 지난가을엔 부뚜막에 무쇠 솥을 걸고 메주를 쑤었다.

2. 인천의 아파트에 살던 서현 씨는 5년 전 강화의 농가 한옥을 사들였다. 7년간 비어 있던 집이다. 더 이상 아파트에 살기 싫었기에, 어려서부터 그냥 좋았던 한옥을 찾아다니던 차였다. 원형을 살려서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헐고 새로 짓기보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드는 일이기에 “미쳤다”고 주변에서 난리였지만 현장에 텐트를 치고 작업을 챙겼다. 안방과 부엌을 합쳐 화장실 갖춘 넓은 안방을 확보했다. 헛간을 부엌으로 바꾸고 넓은 식탁을 놓으니 모두들 “카페 같다”며 좋아했다. 집을 고치고 나니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불 때는 방에서 뜨끈하게 지지고 싶어서,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차 한잔 마시고 싶어서. 그녀는 “생활이 자연과 밀착하니 이제야 내 인생을 사는 것 같다”며 즐거워한다.

3.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인 나지막한 언덕 위에 카페가 있을 줄은 몰랐다. 하얀 벽체에 붉은 지중해식 기와가 멋지게 어우러진 집이다. 온통 흰색인 내부는 벽체며 문과 창이 일률적이지 않아 자유롭다. 공간에 이끌려 자꾸 안으로 들어가다 갑자기 눈이 확 뜨인다. 천장에 원형 그대로 드러난 서까래가 보인다. 아, 이 집이 원래 초가였구나! 제멋대로 굽고 휜 서까래의 조형미는 하얀 벽과 천장을 바탕 삼아 더욱 극적이다. 남편이 태어나 자란 초가를 어떻게 잘 살릴까 고민하던 부부는 함께 좋아하는 커피를 떠올렸다. 부인이 디자인하고 남편이 실행하면서 고쳐 나갔다. 카페로는 동떨어진 위치인데도 커피 맛과 함께 집이 풍기는 독특한 매력이 상당한 입소문을 타고 있다.

1970년대 초만 해도 농촌 서민들의 주택은 대개 초가였다. 초가는 기와집과 달리 지붕이 가벼우므로 부재가 굵지 않아도 된다. 가까운 산에서 적당히 굽고 휜 나무를 베어 도끼나 자귀로 투덕투덕 껍질만 벗겨 쓴다. 지붕은 농사지어 생산한 벼를 떨어낸 부산물로 겨울 농한기에 만드니 농촌 주택으로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짚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듯하다. 그러나 썩기도 쉬워서 1, 2년마다 이엉을 갈아야 할 뿐 아니라 벌레도 꼬인다. 경제개발기 이런 집들은 불량 주택으로 취급돼 헐려 나갔다. 그 와중에 붉고 푸른 슬레이트 기와나 함석지붕을 얹고 살아남기도 했고 그것을 오늘날 농가 한옥이라 부르고 있다.

예전에는 농촌에서 집을 지을 때, 동네 목수의 지휘 아래 품앗이를 했다. 그러니 “우리 마을은 해 떨어지면 서풍이 불어∼”, “우리 아들이 키가 커서 방이 더 높아야 것는디∼” 하는 식으로, 지역의 환경과 사는 사람의 필요에 맞춰 집을 지었다. 그래서 집은 지역과 시대의 삶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역사 문화 자산이다. 자유로워 아름다운 목구조, 시간의 켜가 풍기는 아우라는 환산 불가능한 가치다.

한국인들의 의식이 변화하고 있다. ‘가치’에 대한 인식과 지향이 뚜렷해지면서 일상에서 구체적인 욕구와 취향을 누리고 싶어 한다. 팔기 위한 집보다 살기 위한 집으로, 획일적인 공간보다 개성 있는 나만의 공간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우선순위가 건강, 개성, 자연과의 교감이다. 거기에 꾸준히 높아지는 전통에 대한 관심이 맞물려 농가 한옥이 지난날 잔뜩 붙이고 있던 군더더기들을 떨어버리고 현대인이 생활 가능한 공간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귀농인의 살림집으로, 작업장으로, 분위기 있는 카페로.

3. [동아일보][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좋은 백성 만들기

4월에 관아에 질병이 돌아 밖에 나가 지낸 일이 있었다. 이웃집에 고양이가 있었는데 늘 사람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릇을 뒤져 무슨 음식이든 훔쳐갔다. 고기를 매달아 놓으면 어금니를 갈고 주둥이를 벌름거리며 펄쩍 뛰어서는 기어이 잡아채서 먹었다. 노복들이 골치 아파하며 몽둥이로 쫓고 개를 풀어 물게 하고 덫을 놓아 잡고 밧줄로 묶어놓고 채찍으로 때리는 등 실컷 괴롭힌 뒤 놓아주었지만 고양이의 도둑질은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노복들이 서로 의논하였다. “이 고양이가 그렇게 고통을 받고 다 죽게 되어도 하는 짓이 여전하니, 이는 필시 배가 고파 그러는 것이다. 앞으로 이놈에게 먹을 것을 주면서 하는 짓을 보는 게 좋겠다.” 

마침내 밥을 조금 덜어 고양이에게 주었다. 고양이는 아침저녁으로 와서 먹이를 먹었다. 그러더니 이때부터 마음을 고치고 습관을 바꿔서 비록 음식이나 어육(魚肉)이 앞에 있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입맛 한 번 다시지 않았다. 사람과 친해져서 고개를 숙이며 매일같이 와서 길들여지니 노복들도 고양이를 사랑하여 더욱 잘 길러주었다. 

제주(濟州)에서 통판(通判) 벼슬을 하던 남구명(南九明·1661∼1719) 선생의 ‘고양이 이야기(猫說)’입니다. 대책 없던 도둑고양이가 길들이고 보니 그렇게 착할 수 없더라, 그렇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바로 안정적인 생계 대책이더라 하는 이야기. 이러니저러니 해도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살게 만드는 사람이 좋은 정치인입니다. 그리고 덕분에 우리도 좋은 백성이 되고 싶습니다.

제주도에는 본래 도적이 없어 밤에 문도 닫지 않고 나그네도 들판에서 잤다. 풍속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 가뭄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니 인심이 크게 변하여 도적이 벌 떼처럼 일어나서 소와 말, 곡식이며 옷감을 죄다 훔쳐갔다.

내가 이를 보고 알게 되었으니, 배부르면 양민이요 배고프면 도적이 될 뿐이다(飽則民, 飢則盜耳). 누군들 좋아서 도적이 되고 싶겠는가. 속담에 ‘3일 동안 먹지 못하고 도적이 되지 않을 사람은 드물다(三日不食, 鮮不爲盜)’라 하였으니 참으로 맞는 말이다. 아, 누군들 떳떳한 덕이 없고 염치가 없겠는가마는, 굶주리다 보니 본성을 잃어 살아서는 강도요 죽어서는 흉한 귀신이 된다. 비록 행실을 고쳐 착하게 살아 다시 태평성세의 백성이 되고자 하여도 될 수 있겠는가.

4. [서울신문][씨줄날줄] ‘엄마표’ 학원 광고/황수정 논설위원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있는 장면이다. 지난 1월 이준식 교육부 장관과 학원총연합회 관계자들의 만남. 학원 대표들을 장관은 정부서울청사로 초대했다. 자유학기제 전면 실시를 앞두고 학원들이 특강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니 오죽 답답했을까. 간담회 형식을 빌렸다지만 만남의 내용은 교육부의 통사정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유학기제를 왜곡하는 과장 광고,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마케팅을 자제해 달라는 당부였다. 자유학기제를 안착시켜야 하니까 학원들이 제발 좀 알아서 도와 달라는, 백기 투항



정책의 무기력을 꼬집는 우스개로 “정책 있으면 대책 있다”는 말이 있다. 그 어떤 정책에도 ‘대책’으로 스스로 진화하는 곳이 대한민국 학원가다. 그들의 발빠른 대응력을 당할 재간이 없는 정책이 몇 수 접어 달라고 매달렸지만 달라진 건 없다. 장관의 초대까지 받고서도 학원가가 성의를 보인다는 소문은 들리지 않는다. 학원들은 여전히 자유학기제 집중 특강 중이다. 장관은 스타일만 구겼다.


학원들의 자신감은 근거가 분명하다. 그들의 ‘빽’은 학부모다. 정책 변화가 있을 때마다 학원가를 먼저 탐색하는 쪽은 학부모들이다. 새 정책을 마냥 믿고 따라가기 불안해 안절부절못하는 엄마들.


이번에는 학원들의 나쁜 광고가 도마에 올랐다. ‘○○고 2학년 김○○ 강제 퇴원 확정: 규정에 의거에 경고 2회를 받아 퇴원 조치됐음을 공지합니다. 사유: 언제까지 시간이 없다고 할래? 변명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고 정신 차려라!’


경기도 신도시 한 학원의 실제 게시물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 한 달간 전국 10개 학원가를 점검한 결과다. 학생의 이름과 소속 학교가 완전 공개된 것은 물론이다. 악담과 조롱 수준의 경고에 신상 정보를 있는 대로 노출하는 것이 예사다. 공포 마케팅도 대세다. ‘마녀 스쿨’이라는 간판에 ‘목숨 건 강의, 공포의 관리’, ‘1분 지각하면 집으로 보내고 세 번 결석하면 퇴원’ 등의 문구를 광고판에 버젓이 새겼다.


교육도 인권도 안중에 없는 비정한 학원 광고들이 뭇매를 맞는다. 요즘 아이들에겐 학교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원이다. 도망칠 데 없는 사면초가의 공간이다. 극도의 성적 줄세우기, 경쟁 제일주의에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담가 놓는 것은 섬뜩한 일이다. 학생 인권 침해 광고를 처벌하도록 학원법을 고치라는 목소리가 높다.

딱한 것은, 세상의 상식과 대한민국 엄마들의 속마음이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1분만 늦어도 벌칙을 주고, 5분만 늦어도 문자 메시지를 보내 주고, 미주알고주알 성적을 까발리는 ‘망신 충격요법’에 먼저 안달 난 쪽은 엄마들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학부모들일까. 아니, 공교육을 믿지 못하게 망쳐 놓은 교육정책 탓일까. 헛바퀴만 돌아가는 답답한 이야기다.

5. [중앙일보][The New York Times] 동식물 멸종을 막을 글로벌 해법은

1940년 여름. 당시 열한 살이던 나는 워싱턴DC의 저소득층 아파트에서 살았다. 조금만 걸으면 국립 동물원에 갈 수 있었고 삼림이 우거진 록크릭 공원도 지척에 있었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내며 동물들을 구경했고 나비를 잡기도 했다. 그러면서 끝없이 눈앞에 펼쳐지는 다양한 생명의 세계를 꿈꿨다.

76년 뒤인 지금도 나는 그 꿈을 간직하고 있다. 생물 다양성은 퍼 올릴수록 물이 많아지는 ‘마법의 우물’과도 같다. 그런데 내 오랜 꿈이 위험에 처했다. 우리는 환경오염과 물 부족, 경작지 소실 같은 기후변화 문제만 걱정했다. 반면 생물종 보존에 대해선 간과해왔다. 이는 엄청난 전략적 실수다. 지구의 생명환경을 구하면 물리적·비생명 환경도 구할 수 있다. 서로가 의존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우리가 물리적 환경만 신경 쓰면 결국 둘 다 잃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지구에 살아 있는 유기체 중 알려진 종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자. 이 분야에서 인류의 지식은 한심할 정도로 적다. 지금까지 약 200만 종이 발견돼 라틴어 학명을 받았다. 그러나 박테리아나 세균류 미생물을 빼더라도 적어도 1000만 종 넘는 생물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6만3000종이 발견된 척추동물과 27만 종이 발견된 화훼 식물을 제외하면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이들 생명체는 자연의 근간을 이루며 지구를 꾸려가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이들을 포함해 지구 전체의 생물 다양성 지도를 만드는 작업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다. 과학자들이 생물 다양성을 밝혀내는 속도는 말도 안 될 만큼 느리다. 매년 발견되는 새로운 종의 숫자는 1만8000개에 불과하다. 이런 속도로 연구가 이어지면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종 전체를 보여주는 지도는 23세기에 가야 완성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전 세계 생물 멸종률을 언급해야겠다. 화석과 유전학 연구로 얻은 정보들을 바탕해 계산한 연간 생명 멸종률은 수백만 년 전 인류가 지구에 출현하기 전의 멸종률보다 1000배 이상 높다.

생물 멸종이 가장 흔한 지역은 열대지방 나라들이다. 특히 열대우림 섬 지대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1895~2006년 사이 57개 생물종이 멸종했다. 토종 민물고기들도 다수 멸종됐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한 멸종률은 인류의 등장 이전과 비교했을 때 900배 가까이 높다.


당황한 미국은 전 세계적 차원의 자연보호 운동에 나섰다. 그 결과 자연 위기에 대한 인류의 인식이 제고되고 생물종 보존에 도움이 되는 연구가 다수 나왔다. 이런 노력으로 생물의 멸종 속도가 다소 늦춰졌다. 하지만 멸종으로의 행진이 완전히 멈춰지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인류의 생물종 보존 노력은 전 세계 척추동물의 20%에 해당하는 멸종 위기종에 집중돼 왔다. 그 덕분에 이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21세기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음울하다. 글로벌 자연보호 운동은 교통사고 부상자를 치료하는 응급실 외과 의사에 불과하다. 환자의 출혈을 절반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며 축하할 수 있지만, 그 환자는 다음 날 아침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다음 세대가 육지와 해양, 대기의 생태계가 평형을 이루게끔 만드는 기막힌 기술을 고안해내지 못하는 한 우리의 아름다운 자연 세계는 영영 사라져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 인류가 바로 지금 생물종 보존을 위해 확실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이유다.

생물종 절멸 사태를 막을 합리적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아프리카에서 발원한 인류가 다른 대륙으로 퍼져 나가기 전의 수준으로 생물 멸종률을 낮추는 것이다. 인류가 지구를 야금야금 장악하면서 다른 생명체들은 서식지를 빼앗겼다. 이것이 생물 다양성 손실의 가장 큰 이유다. 인류는 지금까지 구상했던 수준보다 훨씬 더 많은 자연 서식지를 보존해야 한다. 땅 욕심에 눈이 멀어 다른 생명체의 터전을 뺏는 일을 중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지구의 생태계가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멸종률을 낮출 수 있다.

아직까지 살아남은 생물종의 90%를 구하려면 육지 15%, 바다 3%로 규정된 현재의 자연보호 구역을 획기적으로 늘려 육지·바다 각각 50% 수준으로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방안이다. 나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주장해온 대로 전 세계 곳곳에서 상대적으로 원시 자연의 모습을 지켜온 지역들을 선택하면 육지와 바다 면적의 절반을 보존할 수 있다. 그곳에 살아온 원주민들은 전통적 생활 방식을 유지하게 해주면 된다. 이런 방식의 자연 보존은 미국 정부가 국립·주립 공원을 지정하는 과정에서 실시한 테스트를 통해 효과가 입증된 바 있다.

인류와 다른 생물종의 지속적 공존을 겨냥한 이 같은 조치는 우리 모두를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할 과제다.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이 조치가 성공하면 인류는 엄청난 혜택을 얻게 된다. 옛날 동물원을 즐겨 찾던 한 소년이 꾸던 꿈은 지속될 가치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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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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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2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동아일보]

1. 김종인에 반발한 친노, 더민주 주인이 누군지 보여줬다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어제 김종인 대표 없이 회의를 열어 김 대표의 비례 순번을 2번에서 14번으로 조정했다. 또 비례대표를 당선 가능성에 따라 A, B, C그룹으로 구분한 데 대한 당 중앙위원회의 반발을 받아들여 그룹별 칸막이를 없애고 35명의 명단을 추려냈다. 어제 종일 당무를 거부했던 김 대표는 비대위의 결정을 듣고 “14번 못 받는다”며 거부 의사를 밝혀 당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에 빠졌다. 

김 대표는 비례대표 칸막이가 당헌 위반이라는 전날 중앙위의 반발에 “자기들 정체성에 안 맞는다는 게 문제의 핵심인데 자꾸 딴소리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맞는 얘기다. 비례대표 갈등의 본질은 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권력투쟁이다. 비례대표 당선권에 친노(친노무현) 운동권 출신을 대거 공천했던 19대와 달리 이번에는 각계 전문가들을 포진시킨 것이 중앙위 시각에는 당 정체성을 해친 일로 보였을 것이다. 

1월 말 더민주당에 입성한 김 대표가 지금까지 안보는 ‘우클릭’하고, 경제를 총선 화두로 삼는 한편, 이해찬 의원을 비롯한 골수 친노를 쳐냄으로써 수권 정당의 면모를 갖추는 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그는 총선 때까지만 문재인 전 대표를 대신하는 ‘바지사장’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내가 전권을 갖고 있는데 그들(친노)이 뭘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반면 김 대표의 비례대표 공천을 놓고 반기를 든 중앙위는 기초단체장과 현역 의원 중심으로 구성된 당의 주류 세력이다. 문재인 전 대표의 ‘혁신 공천안’을 전폭 지지했던 범친노이기도 하다. 이들이 비례대표 명단에서 총선 이후 5월 전당대회에서 손잡고 당권투쟁에 나서야 할 자파 세력이 빠져 있자 칼을 빼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김 대표도 안이하게 대처한 측면이 있다. 만일 김 대표가 처음부터 자신을 비례대표 14번 정도로 배정했어도 주류세력이 ‘때는 왔다’는 식으로 벌 떼처럼 달려들었을까. 사정(司正)의 칼을 휘두르는 자는 사심(私心)을 보여 약점을 잡히면 안 된다. 지역구 공천도 끝나고 새누리당 막장 공천으로 한숨을 돌리게 되자 그를 토사구팽(토死狗烹)하려는 친노 운동권 본색이 성급하게 드러난 셈이다. 

어제 문 전 대표가 일부 비대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든 김 대표를 설득해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은 이 당의 실질적 오너가 누구인지 똑똑히 보여준다. 비대위가 비례대표 그룹별 칸막이를 없애고 35명을 추리는 과정에 문 전 대표 측이 간여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결국 친노 운동권 세력을 비례대표의 이름으로 다시 더민주당에, 국회에 진출시키겠다는 의도다. 더민주가 다시 과거 같은 친노 운동권 당으로 돌아간다면 지금까지 김종인의 ‘개혁’에 박수쳤던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2. 서울지하철 첫 노동이사 도입한 박원순 속뜻은 뭔가

내년 1월 출범할 서울지하철통합공사에 공기업 최초로 노동이사제가 도입된다. 서울메트로(지하철 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지하철 5∼8호선)의 통합을 추진 중인 노사정대표단은 이사회에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노동이사제를 조례와 정관에 명시하기로 잠정합의했다. 두 공사 노조가 25∼29일 투표에서 승인하면 31일 노사정대표단이 노동이사의 수와 경영협의회 구성을 확정할 예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지하철의 막대한 적자를 줄이기 위해 재작년 말부터 통합에 착수했다. 두 공사는 당시 총 40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냈고 누적부채도 4조6000억 원에 이른다. 노후시설 교체 자금 1조6000억 원을 조달할 방안도 없다. 그런데도 박 시장은 이미 노조에 “인위적으로 인력을 줄이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노동이사제 도입도 보장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노동이사제를 저성과자 해고 등을 막는 수단으로 홍보한다. 이래서야 서울지하철의 방만 경영을 수술하고 적자폭을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동이사제는 1970년대 독일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일부 도입됐다. 노조 대표가 아니라 노조가 추천하는 외부 전문가들이 참석해 감시 기능에 집중한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의사결정만 더디게 하고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한다는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 박 시장이 얼마나 신중한 검토 끝에 결정했는지 궁금하다. 더욱이 우리 지하철 노조는 1987년 노조 결성 이후 거의 해마다 빠짐없이 분규와 파업을 일삼았다. ‘통합 공룡 노조’가 파업에 나서면 시민의 발이 묶일 우려가 크다.

조합원이 노동이사가 될 수 있는지는 노동조합법과 충돌 가능성이 있어 고용노동부의 유권해석을 받아야 한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유럽과 한국은 노조 운영시스템이 다르다”며 부정적이다. 진보좌파 계열에서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박 시장은 노동이사제를 산하 19개 공기업으로 확산하려고 한다. 서울시 산하 공기업을 이용해 노동계의 우군을 확보하려는 ‘대권 프로젝트’라는 의심을 받을 소지가 있다. 박 시장은 당당하게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3. 88년 만의 美대통령 쿠바 방문, 北 김정은 보고 있나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88년 만에 쿠바를 국빈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간)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미국의 대(對)쿠바 금수(禁輸) 조치 해제 등 2014년 국교 정상화 선언 이후의 양국 관계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바나 미 대사관에서의 연설에서 “쿠바 국민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라고 말했듯이 이번 방문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訪中)과 비교되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미주 대륙의 유일한 고립 국가였던 쿠바가 당장 정치적 개혁을 하지는 않는다 해도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은 쿠바에 개혁 개방의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 분명하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카스트로 독재 정권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는 더 이상 미국의 목적이 아니라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방문 마지막 날인 22일 쿠바 국민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쿠바의 미래는 쿠바 국민에게 달려 있고, 이를 위해 인권과 자유 확대가 절실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에게도 이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는 국제사회에서 이란 베트남 미얀마에 개입해 ‘게임 체인저’로 역할을 한 미국이 쿠바와의 적대 관계를 해소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남의 일 같지 않다. 지금은 한반도 평화협정을 두고 중국과 북한이 물밑에서 이해득실을 따지며 교감하는 움직임도 감지되는 상황이다. 김정은 집단이 대화 테이블로 나온다면 미국은 김정은 정권의 교체가 아니라 북-미 수교를 고려하는 단계로 나아갈지도 모른다. 

물론 핵 위협을 계속하는 북한은 핵이 없는 쿠바와 다르다. 미국과 쿠바는 소규모 무역거래도 하고 있고 미국에는 쿠바계 이민자 180만 명이 거주한다. 북한의 형제국을 자처하는 쿠바마저 안보가 아니라 경제, 고립이 아닌 개방을 택한 엄중한 현실을 북의 김정은은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한반도 문제 해결은 미국도, 북한도 아닌 한국이 주도해야 할 일이다. 정부는 쿠바 사례를 주시하면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교한 전략과 시나리오를 마련해야 한다.

[이데일리]

4. 집토끼 다 몰아내고 선거 치를텐가

4·13 총선에 즈음한 여야의 ‘막가파’ 공천 놀음에 유권자들이 기존의 지지 정당을 대거 이탈할 조짐이 엿보인다. 이런 경향은 새누리당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느낌이다. 마구잡이 친박(親朴)계 밀어주기로 ‘사천’(私薦), ‘박천’(朴薦) 등의 신조어를 양산하느라 전통적 지지층조차 상당수가 당을 등지는 것도 모르는 듯한 눈치다.

새누리당의 경우 무엇보다 이한구 공직자후보추천관리위원장의 독선이 문제다. 비박(非朴)계를 무더기로 탈락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원내대표까지 지낸 3선의 유승민 의원에게 ‘정체성’을 들이대며 자진 탈당으로 몰아가는 고압적 태도에 대한 반발이 여간 거세지 않다. 그런데도 당 일각에선 “며칠만 더 끌면 무소속 출마마저 어렵다”는 해명까지 곁들이며 해당 지역구를 무공천으로 방치하자는 황당한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집권당의 ‘공천 학살’은 원칙도 없고 정의도 사라졌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제19대 국회 출석률 상위 10명 가운데 4명을 다음 국회에서 볼 수 없게 된 마당에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심판론’은 공허하기 그지없다. 청와대 조윤선 전 정무수석과 윤두현 전 홍보수석을 비롯한 친박계가 새누리당 표밭에서 치러진 당내 경선에서 줄줄이 고배를 든 것도 여간 쑥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여론의 눈치를 살피느라 의도적으로 탈락시켰다면 더 문제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약과다. 낙천자들의 탈당 사태에 이어 전통적 지지층까지 등을 돌리는 형국이다. 새누리당이 유 의원을 낙천시키면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응답이 10명 중 3명꼴에 이른 여론조사도 있다. 물론 의석을 내주든 말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새누리당이 책임질 문제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셀프 공천’으로 내홍에 휩싸인 더불어민주당도 사정은 오십보백보다. 유권자들이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는 얘기다.

집토끼 다 놓친 다음에 산토끼 잡겠다고 부산떨어 봐야 부질없는 일이다. 국민을 우습게 알고 대한민국을 정치 후진국으로 주저앉히는 공천 장난질이 더 이상 되풀이돼선 안 된다. 정치권은 이제라도 무엇이 진짜 국민을 위하는 길인지 진지하게 자문해 봐야 한다. 지금 이뤄지는 공천이 민의를 대변하는 것인지부터 따져보길 바란다.

5. KF-X 사업, 벌써 '호갱' 신세가 되었는가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사업이 시작부터 꼬이는 모습이다. 전투기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진을 놓고 외국의 방위산업체들이 핵심기술 이전 약속을 번복하는가 하면 일부 업체는 최신형 엔진이 아닌 구닥다리 제품을 제안하는 얌체짓을 벌이고 있다. 지금껏 우리가 방위산업 거래에서 국제적으로 얼마나 호구를 잡혔기에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해할 만하다.

KF-X 개발 주관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차세대 전투기에 적용할 엔진 사업에 유럽업체 유로제트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입찰제안서를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이들 업체들이 자기들의 편의에 따라 말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유로제트는 당초 한국에 핵심기술을 모두 이전할 것처럼 홍보하다가 입찰 제안서에는 기술이전 비중을 60% 정도로 낮춰 써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GE도 전투기 엔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최신 세라믹복합소재(CMC) 기술을 개발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정작 KF-X 엔진으로는 1990년에 개발된 구형 엔진을 제시해 구설수에 올랐다. 응찰업체들이 당초 약속과는 달리 제멋대로 꼼수를 부린다면 책임있는 태도가 아니다.

KF-X는 총 사업비로 17조원에 달하는 혈세를 쏟아붓는 중차대한 방위산업이다. 개발 일정이 길게 잡혀 있는 것도 그런 때문이다. 16년 뒤인 2032년에야 전투기가 공군에 배치될 예정이다. 따라서 응찰업체가 핵심기술 이전에 미온적이거나 이미 퇴물 상태에 이른 구닥다리 엔진을 장착해서는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게 된다. GE의 제안처럼 1990년 개발된 엔진을 장착하게 된다면 40년이 훨씬 지난 엔진을 장착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고도 ‘차세대 전투기’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정작 필요한 첨단기술을 제대로 이전받지 못한다면 국제 무기시장에서 ‘호갱’ 이라는 놀림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

세계 무기시장은 지역분쟁 감소로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무기 수출국은 수입국에 금융과 기술지원을 하는 등 판로 확대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한국에 엉터리로 무기를 팔아먹으려 드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방위사업청은 유로제트나 GE로부터 명확한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서울신문]

6. 비판 여론 듣고야 비례 후보·순서 바꾼 野

더불어민주당이 김종인 대표의 비례대표 순번을 2번과 14번을 남겨두고 김대표의 판단에 맡기는 선에서 봉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공천 갈등으로 어제 당무를 거부한 김 대표가 14번으로 조정한 비대위안을 거부해 중앙위의 중재안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표면적인 당내 갈등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김 대표가 자신을 2번으로 셀프 공천한 것이고, 또 하나는 비례대표 순번은 중앙위에서 투표로 결정해야 하는데 이를 비대위가 3등급으로 나눠 칸막이를 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판 여론은 자체 공천과 부적절한 후보 공천에 모아졌다.

김 대표는 당 안팎의 여론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셀프 공천이라는 비판을 인격 모독으로 받아들였다. 비례대표 순번 결정 방식에 대한 비판도 코드 인사를 하겠다는 것이냐며 반발했다. 김 대표의 주장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셀프 공천과 부적절한 인사에 대한 비판까지도 무시하는 것은 국민 정서를 잘못 읽어도 한참 잘못 읽었다. 또한 아무리 비대위가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해도 당헌이 정한 절차를 어기는 것은 당원과 유권자를 무시하는 일이다. 그나마 비대위가 김 대표의 순위를 당선 가능성이 불투명한 14번으로 돌리고 비위 혐의가 있는 박종헌 전 공군참모총장을 후보에서 제외해 여론에 귀를 기울인 것은 다행스럽다. 또한 당헌을 수용해 비대위에서 순번을 정하는 것을 3명정도로 최소화하고 나머지 순번은 중앙위의 투표로 정하기로 한 것도 정상적인 절차에 복귀한 것이다.

더민주의 비례대표 공천에 비난이 쏟아진 것은 원칙과 절차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개혁 노선에 박수를 보낸 국민과 당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2순위로 올린 셀프 공천은 기대를 무너뜨리고 실망감만 안겼다. 비대위가 뒤늦게 셀프 공천 등의 문제점을 개선한 것은 잘했지만 여전히 김대표가 결정을 미루고 있는 데다 더민주 비례대표 후보들의 면면도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논문 표절 시비가 있는 박경미 후보를 1번으로 그대로 둔 것도 그렇다.

특히 여러 이익단체 중에서 서울시의사협회장인 김숙희 후보를 공천한 것은 쉬 동의하기 어렵다. 의료계에는 원격진료 등 민감한 현안들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 의료계의 한 축인 의사협회의 대표를 공천한 것은 야당의 정체성이나 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다. 한의사협회나 간호사협회 등 보건의료단체들의 반발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센 것도 그런 이유로 보인다. 야당으로서는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대변하며 정부 정책을 견제할 사람을 의원으로 뽑아야 한다.


7. 與, ‘진박’ 후보 역풍으로 드러난 민심 읽어야

새누리당의 총선 경선에서 ‘박심’(朴心), ‘진박(眞朴) 마케팅’이 외려 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주말과 어제 발표된 새누리당 지역구 여론조사 경선 결과 친박계 후보들이 줄줄이 탈락했다. 그것도 새누리당 텃밭인 서울 강남과 대구·경북에서 ’진박’ 후보들이 맥을 못 춘 것이어서 민심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청와대와 내각 등에서 일한 이들이 빨간 점퍼를 입고 한자리에서 사진까지 찍으며 대통령이 선택한 ‘진실한 사람’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지만 민심은 이들을 덮어 놓고 찍어 주지는 않았다. 친박들은 비박을 솎아 낼 생각이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 셈이다.

서울 서초갑에서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유승민 의원 측근인 이혜훈 전 의원에게 아깝게 고배를 마셨다. 서초을에서도 친박 현역인 강석훈 의원이 박성중 전 서초구청장에게 패하는 이변이 속출했다. 친박인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도 중·성동을에서 지상욱 후보에게 패했다. 이들 지역에서 친박의 고전은 수도권 민심의 풍향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아픈 대목이다.

특히 친박들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대구·경북 지역에서의 친박 성적표도 시원찮다. 친박이라고 다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윤두현(대구 서구)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은 경선에서 유승민계와 김무성계 현역 의원들에게 밀렸다. 정치 신인으로 현역 의원보다 불리한 점이 작용했겠지만 과거처럼 대통령과 가까운 이들이라고 무턱대고 밀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낸 김재원 의원이 경북 상주·군위·청송·의성에서 김종태 의원에게 진 것도 인구가 많은 상주 출신인 김종태 의원이 유리한 지역구도임을 고려해도 친박 책사로 불리던 김재원 의원의 고배는 친박 내에서조차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권의 지지 기반에서 ‘진박’ 후보들이 무너진 것은 무엇보다 공천 과정에서 보여 준 친박계의 ‘무소불위’ 행태 때문이다. 사실 공천권을 놓고 주류와 비주류 간의 공천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대 총선마다 되풀이된 정치권의 고질병이다. 하지만 이번은 좀 다르다. 그래도 과거 주류, 비주류 간의 갈등이 비교적 수면 아래에서 일어나고 어느 정도 정치 명분과 원칙, 기준을 갖고 양측 간의 조율 끝에 공천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드러내 놓고 싸우면서 ‘배신자’와 ‘진실한 사람’ 가려내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또 공천의 마지막 칼날은 당 정체성 등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결국 대통령의 눈 밖에 난 ‘유승민 찍어 내기’에 있다는 점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친박들을 외면한 경선 결과를 여권 지도부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야당심판론’을 외친 여권이 야당을 심판하기도 전에 먼저 국민들로부터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승민 의원 공천과 비례대표 의원 공천도 민심에 역행한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자명하다. 깊은 자성으로 궤도 수정을 하지 않는다면 수도권 참패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한때 180석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과반은커녕 여차하면 ‘여소야대’까지 되지 않으란 법이 없다.

8. 北, 오바마의 역사적 쿠바 방문에서 느끼는 게 없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88년 만에 처음으로 쿠바 땅을 밟았다. 1928년 1월 캘빈 쿨리지 대통령 이후 첫 쿠바 국빈 방문이다. 역대 두 번째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흘간의 방문 중 첫 일정인 미국 대사관 직원과의 만남 자리에서 “역사적인 방문이자 역사적인 기회”라고 밝혔다. 미국 측에서 보면 지리적으로 145㎞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쿠바는 지금껏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아메리카 대륙에 남아 있던 냉전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따라서 상징적이고 의미 있는 역사로 충분히 기록될 만하다. 미국과 쿠바의 새로운 출발이자 도전인 까닭에 환영하는 이유다.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은 1972년 2월 닉슨 당시 대통령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에 견줄 만하다. ‘죽의 장막’에 둘러싸였던 중국이 개방으로 나아갈 계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번 방문은 2014년 12월 미국과 쿠바가 53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를 선언한 지 1년 3개월 만에 이뤄졌다. 미국으로서는 1959년 1월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정부를 세우고 쿠바 내 미국의 자산을 몰수하면서 1961년 단절했던 외교 관계의 실질적인 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당시 밝힌 “북한·이란·쿠바 등 불량국가의 지도자들과도 만날 수 있다”는 공약의 실천인 것이다. 임기 마지막 해에 쌓은 또 하나의 외교 치적이다.

쿠바는 빗장을 풀었다. 중국이 장막을 거뒀듯 미국과의 경제 교류와 함께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따져 보면 이상보다 현실에 무게를 둔 실용주의 노선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2011년부터 점진적으로 배급제를 축소하고 자영업을 확대하는 등 시장경제로의 부분적인 개혁·개방 조치를 취해 왔다. 쿠바의 경제성장과 활성화라는 새로운 바람의 세기를 지켜볼 만하다.

문제는 핵개발에 몰두하며 고립을 자초하는 북한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4차 핵실험 이후 유엔의 강력한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잇단 도발로 대응하고 있다. 지구상에 개방을 거부하고 문을 닫은 곳은 북한뿐이다. 북한은 비슷한 길을 걸었던 쿠바가 결국 왜 문을 열고 개혁의 길을 선택했는지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그러지 않고 핵에 매달려 주민의 삶을 돌보지 않고 내팽개친다면 언젠가는 파멸할 수밖에 없다.

[매일경제]

9. 미래 일자리전쟁 승자 되려면 교육 확 바꿔야

'미래 직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히 풀면 향후 5년간 일자리 135만개를 창출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본지와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규제만 철폐해도 빅데이터, 스마트홈, 바이오 의약 등에서 일자리를 대거 만들어 낼 수 있다. 다소 뒤처져 있는 미래형 자동차, 드론, 지능형 로봇 등 ICT융합 제조부문은 특별법으로 육성할 경우 12만5000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한다.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미래 직업 보고서'도 로봇과 인공지능 발달로 2020년까지 일자리 710만개가 사라지고 이전에 없던 일자리 200만개가 생겨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5년간 510만개의 일자리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청년실업 대란에 처한 우리에게 큰 충격이다. 

과거 산업사이클이 바뀔 때마다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렸듯 로봇과 인공지능 등이 주도할 4차 산업혁명에서 승자가 되는 국가는 새 일자리를 대거 챙길 수 있는 반면 낙오하면 다른 국가에 빼앗길 수밖에 없다. '알파고 쇼크'는 4차 산업혁명의 서막에 불과하다. 미국, 영국 등은 승기를 잡기 위해 AI, 로봇 등에 천문학적인 돈을 퍼붓고 있다. 이들 국가와 경쟁하려면 먼저 규제를 걷어내 기업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드론산업이 중국에 뒤처진 것만 해도 가시거리, 무게, 조종 자격증 등 각종 규제로 옥좼기 때문이다.

알파고 시대에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교육내용과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교육개혁이다. WEF는 올해 초등학교 입학생의 65%가 현재 존재하는 않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드론 조종사, 에코 컨설턴트, 디지털 장의사 등 새로운 일을 하며 살게 된다는 얘기다. 정해진 답만 달달 외우고, 국영수만 들고파는 현재의 교육으로는 인공지능 시대에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새로운 직업을 찾게 하려면 기존의 질서를 비판하고 창의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고력 훈련이 필요하다. 5세부터 코딩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미국, 영국처럼 우리도 국영수에서 벗어나 코딩에 비중을 둬야 한다. 또한 결국 인공지능, 로봇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것은 인간인 만큼 과학기술이 미래 인류에 위협이 되지 않으려면 윤리 교육, 인성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

10. 노동개혁 4대 실천과제, 임금·단체협상 반영하길

올해 정년 60세 시대 개막과 더불어 임금·단체협상이 곧 시작될 예정인데 어느 때보다 험난한 협상이 예상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해 1.6% 임금 인상안을 내놓았으나 올해는 국내외 경영여건 악화와 정년 60세 연장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아예 임금동결을 회원사에 권고했다. 한국노총은 지난해보다 높아진 7.9%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으니 그 간격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여기에 노동개혁 법안들은 국회에 계류된 채 한 발짝도 진전이 없고 4월 총선이 치러지는 과정에서 노동시장 개혁방향을 둘러싼 갈등만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고용노동부가 20일 이런 개혁의 정체 상태에서 현장실천 4대 핵심과제를 발표했다. 근로소득 상위 10%의 임금인상 자제를 통한 청년고용 확대,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 공정한 인사관리 확산, 청년·비정규직 근로자 보호 등이 그것이다. 이 과제들은 정년 60세 연장과정에서 법률에 추진원칙이 명시됐거나 노사정 합의에 그 기본방향이 반영됐던 내용들이다. 이제 청년실업률이 외환위기 후 최고치인 12.5%까지 치솟은 상태에서 노사 상생은 물론 노노 상생을 위해서도 긴요한 일들이다. 

올해 정년 60세가 적용되는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 중에서도 80%는 아직 능력·성과와 무관하게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임금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임금피크제 도입률은 이들 기업 중 27.2%에 그치고 전체 사업장으로 확대하면 도입률은 12.1%에 불과하다. 그 결과 근로자 상위 10% 임금수준이 하위 10%와 비교하면 4.6배에 이르는 상황이다. 고소득층 임금인상 자제와 임금체계 개편은 노동자 간 갈등을 막기 위해서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경영계는 열정페이라는 미명 아래 청년들의 노동력을 부당하게 사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노동계도 부당한 해고·징계를 막기 위해 감시·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일자리를 유지·확대하기 위한 임금체계 개편에는 전향적인 자세로 협조해야 한다. 국민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조선·해운 등 구조조정이 필요한 산업일수록 이번 임단협에서 노사가 더 적극적으로 임금체계 개편에 나서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동아일보][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물밥(水飯)

효종 5년(1654년) 2월 10일, 정언 이상진이 영의정 정태화와 병조판서 원두표를 탄핵한다. 병조판서가 술상과 기생, 음악을 준비하여 상급자인 영의정의 집에서 한바탕 놀았다는 것이다. 상소문 중에 세종대왕 당시 영의정 황희와 호조판서 김종서의 ‘물에 만 밥’, 수반(水飯) 접대가 등장한다. 김종서가 황희에게 물에 만 밥을 준비하여 접대(?)하려 했더니, 황희가 김종서를 뜰아래 세워놓고 “아첨하려 한다”고 꾸짖었다는 내용이다. 

‘수반’은 밥상 차리기 귀찮을 때, 밥 먹기 번거로울 때 후루룩 먹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물밥’은 정식식사는 아니다. 간편식이다. 간단한 음식이지만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수반은 때로는 정치적인 음식이다. 성종 1년(1470년) 5월 29일 ‘조선왕조실록’에 수반이 나타난다. 성종이 “가뭄이 심하니 낮수라를 수반으로만 올리라”고 명한 내용이다. 조선왕조 때에는 가뭄 홍수 등 천재지변이 있을 경우 국왕이 음식을 줄였다. 이틀 후인 6월 1일 원로대신들이 수반을 멈출 것을 청한다. 내용이 상당히 길다. “근래 가뭄으로 인하여 감선(減膳)한 지가 오래되었다. 낮에 또 수반을 올리게 하시니 예전에도 이렇게 한 적은 없었다.” 성종이 답한다. “세종대왕 때에는 풍년이라도 수반을 올리게 했다. 지금 수반을 먹는 게 무슨 잘못이겠는가?” 노(老)대신들도 지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비위(脾胃)는 찬 것을 싫어하므로, 수반이 비위를 상할까 염려된다. 보통 사람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지존(至尊)이겠습니까?” 성종이 까칠하게 응답한다. “경(卿)의 말과 같다면 늘 건식(乾食·마른 음식)을 올려야 하겠는가?” 

한 달 남짓 후인 7월 8일에도 또 수반을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 노대신과 승지가 “요즘 비가 흡족해서 곡식이 잘 익으니 식사를 제대로 하셔야 한다”고 아뢴다. 재미있는 것은 성종의 태도다. 끝까지 수반을 고집한다. “감선하는 것은 가뭄 때문이 아니다. 낮에 수반을 먹는 것은 더운 날씨 때문이다.”

성종은 열세 살에 왕위에 올랐다. 예상치 못했던 왕위계승이었다. 왕은 어렸고 대신들은 노회했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공이 큰 대신들도 많았다. 노대신들이 국가의 업무를 관장하였다. 왕은 원상회의의 결과를 확인하는 역할만 맡았다. 성종의 즉위를 주도한 이들도 바로 원상들이었다. 게다가 수렴청정 체제였다. 어린 왕은 스트레스가 심했다. 입맛이 없으면 늘 수반을 찾았다. 성종의 수반은 정치적인 투정, 저항일 수도 있다. 한의사들은 성종이 스트레스가 심해서 몸속에 열이 많았고 따라서 수반, 물에 만 밥을 찾았다고 말한다. 

광해군 역시 울화병으로 수반을 먹었던 경우다. 인조는 반정으로 실각한 광해군을 강화도로 보냈다. 인조 6년(1628년) 2월, 광해군에 대한 근황이다. “삼시 끼니에 물에 만 밥을 한두 숟가락 뜨는 데 불과할 뿐이고 기력이 쇠진하여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 지경이다.” 물에 만 밥은 속이 타는 사람들이 먹었던 것이다. 

인조 역시 몸이 아플 때 수반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인조 9년(1631년) 1월의 ‘승정원일기’에는 인조가 인후염 등으로 고생하는 내용이 자주 나타난다. 30일에는 신하들의 낮 문안을 받고 “(몸 상태가) 아침과 같다. 수반을 조금 먹었다”고 말한다. 

정조에게 수반은 효도의 상징이다. 수원 화성 언저리(지금의 화성시)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모셨던 정조는 묘에 다녀오던 날 시를 남겼다. ‘비석 뒤에서 수반을 먹고 더디 더디 출발한다’고. 아버지를 떠나기 아쉬워하는 아들의 효성이 엿보인다.

2. [동아일보][동아광장/권영민]‘부모 되기 교육’이 필요하다

최근 보도된 ‘원영이 사건’을 보면서 대부분의 부모들이 크게 분노하고 있다. 자신이 낳아 키우는 아이를 죽이고 이를 은폐하려 했던 끔찍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는 것에 모두 걱정을 한다. 가정에서 자녀를 보호하고 잘 키워야 하는 부모들이 남모르게 어린 자녀를 학대하면서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니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최근 5년 동안 아동 학대 사건이 다섯 배 이상 증가했다는 보도 내용도 놀랍다. 특히 그 가해자가 대부분 부모였다는 사실을 함께 접하면서 피폐해가는 우리 사회와 허물어져 가는 가족 문제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녀 학대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찾고 있다. 가족 구성원 사이의 불화와 갈등이 언제나 첫째로 손꼽힌다. 자녀 양육에 대한 부모들의 그릇된 태도를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어떤 경우에는 부모의 정서적 욕구 불만이나 알코올 중독 등이 자녀 학대로 이어진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보다 먼저 따져보아야 할 근본 문제는 부모로서의 책무에 대한 무지(無知)와 방기(放棄)가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부모가 되어 자기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어디에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소중한 기쁨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어린아이가 잘 자라나도록 보호하고 양육해야 하는 부모로서의 의무가 뒤따른다. 어린 생명이 자라서 올바른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돌봐야 하는 것은 부모가 맡아야 하는 사회적 책임에 해당한다. 이 책임을 망각하면 아이는 아이대로 방치되어 문제아가 되고, 부모는 부모대로 고달픈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아이를 낳아 키우기가 힘들고 올바른 부모 노릇 하기가 정말 어려운 것이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부모가 되려는 성인들을 상대로 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러 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이른바 ‘부모 되기 교육(parenting education)’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이 교육 과정은 이수자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다. 아이를 갖기 위해 준비하는 젊은 부부들은 대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 태아의 건강과 임산 과정에 대한 올바른 지식, 출산에 따른 법적 제도적 지원 절차, 유아의 성장과 발달 과정에 따른 육아 지식, 아동의 질병과 건강 문제 등을 단계별로 강의한다. 참가자들은 이 프로그램의 내용에 따라 부모로서의 역할과 그 책무를 익혀 나간다. 그리고 단계별로 과정을 이수하면 일정한 점수를 취득한다. 

여기서 얻은 점수를 가지고 유아에게 필요한 기저귀, 우유 등은 물론 각종 유아용품과 교환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미국의 초보 부모들은 임신 초기부터 야간이나 주말에도 진행되는 이 교육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새롭고 유익한 정보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생명을 키워야 하는 자기 책임을 깊이 깨닫고 사회적 유대감도 키워 나가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부모의 책임과 역할을 가정 안에만 묶어 두어서는 안 된다. 바람직한 ‘부모 되기’ 교육을 사회보육제도와 연계하여 정착시키고 이를 확산시켜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한 가정 안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혈육이 생겨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부모라는 지위는 대부분의 경우 별다른 준비가 없어도 아이를 갖게 되면 쉽게 얻는다. 아이를 낳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도 별로 없고 그 책임도 알지 못하면서 엄마 아빠가 된다는 말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을 제대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 부모가 되는 것의 의미와 사회적 책임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만 한다. 자기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부모가 어찌 그 자녀를 건전하게 키울 수 있겠는가.

수반은 곤궁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조선 중기 문신 성이성은 1645년, 청나라 사행(使行)에 서장관으로 참석한다. 청나라에서 돌아오는 길, 사신단은 퍽 힘들었다. ‘새벽 5시에 길을 떠난다. 강가 벌판에서 아침을 먹었다. 병이 있어 며칠째 식사를 못하는 이들이 많다. 조기를 몇 마리 사서 수반을 차린다’는 내용이다.

3. [중앙일보][분수대] 20대를 놓아주자

한 명문 사립대학 교수에게서 들은 얘기다. 공대의 어느 교수 연구실 앞에서 학생과 엄마가 같이 무릎을 꿇고 있더란다.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싶어 슬쩍 그 교수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단다. 답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에 문제가 있으니 성적을 고쳐달라”며 찾아온 엄마의 요구를 거절하자마자 엄마가 아들과 함께 느닷없이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다. 무릎까지 꿇는 건 좀 도가 지나치지만 성적 고쳐달라고 찾아오는 ‘헬리콥터 맘’이나 ‘헬리콥터 대디’는 꽤 많다고 다른 교수들도 입을 모은다.

이 사연을 전해준 교수는 “오죽하면”이라며, 엄마가 딱하다고 했다. 나는 그 학생이, 아니 ‘엄마주도학습’으로 커왔을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딱했다. 인생 진로를 가를 수도 있는 중요한 수업의 성적 관리를 왜 진작에 제대로 안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20대를 훌쩍 넘긴 나이의 자식 대학 성적표를 보고 한걸음에 학교에 달려와 교수 앞에 무릎을 꿇는 엄마라니.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어엿한 성인인 20대 자식을 마치 밥까지 떠먹여 주는 듯한 부모들의 과보호야말로 오히려 자기 자식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회를 뺏는다는 걸 모르는 걸까. 20대 나이에 스스로 해야 할 최소한의 경험조차 이렇게 박탈하면 사회에 나가 제대로 된 역할을 기대할 수 없기에 하는 말이다.

원래 20대가 이렇게 보호받아야 할 미숙한 나이인가 하고 잠시 생각해봤다. 그건 아닌 것 같다. 1968년 건축가 김수근(1931~86) 아래서 서울 여의도 개발을 주도한 팀의 평균연령이 27세였다. 팀 일원이었던 건축가 김석철은 당시 25세에 불과했다. 물론 당시는 전후 급격한 산업화가 이뤄지던 시기라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지식이나 기술을 갖고 있는 기성세대가 드물었고, 그 덕분에 젊은 층에게 기회가 많이 돌아가기도 했다. 다들 천재 소리 듣던 인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꼭 천재가 아니더라도 집에서나 집 밖에서나 20대를 어른 대접 해줬고, 20대는 그 시대와 나이에 맞게 주어진 일을 훌륭히 해냈다. 그렇게 쌓은 경험으로 나이를 먹어 더 큰일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20대는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나이를 먹어간다. 취업난이다 뭐다 해서 사회에서 기회를 못 얻는 건 또 다른 얘기다. 집에서부터 지금이라도 20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부모들이 손을 놓아주는 게 우선이 아닐까.

4. [동아일보][횡설수설/송평인]프랑스 파리의 K북

2014년 프랑스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정해졌을 때 일이다. 한국인 입양아 출신인 당시 플뢰르 펠르랭 프랑스 문화장관은 카날플뤼스 방송과의 인터뷰 도중 “모디아노의 소설 가운데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펠르랭 장관은 모디아노의 소설을 하나도 읽은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장관으로 일한 지난 2년간 너무 바빠 독서를 못했다”고 말했다가 문화장관이란 사람이 책도 안 읽는다고 해서 오랫동안 구설수에 올랐다. 

프랑스 파리에는 동네서점이 아직도 남아있다. 파리 15구는 한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다. 그곳 콩방시옹 거리의 ‘르 디방(LeDivan)’이란 서점에 갔을 때 인상 깊었던 것은 서점 사서들이 신간을 직접 읽고 소감을 짧게 손으로 적은 쪽지를 신간에 꽂아놓는다는 사실이었다. 서양의 서점은 독서클럽으로 시작했다. 우리의 짧은 근대사에는 독서클럽이란 부분이 생략돼 있다. 그래서 서점을 책을 파는 곳으로만 여기지 책에 대한 느낌을 주고받는 곳으로는 여기지 않는다.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한 ‘2016 파리 도서전’이 17일부터 파리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열려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그제 막을 내렸다. 공식 개막 전날인 16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전시장을 방문해 3시간 가까이 머물면서 작가, 출판인들과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마뉘엘 발스 총리도 찾았다. 주무장관인 오드레 아줄레 문화장관은 두 번이나 왔다. 서울국제도서전에는 대통령은커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근 영국 최고의 맨부커상 후보에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한강이 올랐다. 한강은 파리 도서전에서도 가장 주목받은 한국 작가였다. 우리나라 김종덕 문체부 장관에게 한강의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를 읽어봤느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하다. 미국 시사문예지 ‘뉴요커’가 올 1월 “한국인은 책도 안 읽으면서 노벨문학상을 원한다”고 지적했을 때 정말 뜨끔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읽지 않으면 파리의 K북도 없고 세계의 K북도 없다.

5. [동아일보][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견디는 인간, 아름다운 존재

‘가장 아름다운 인간은 고요한 존재이다.’ 18세기 독일의 미술사학자 빙켈만이 말했습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 참된 아름다움과 고요함을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특히 ‘라오콘 군상’을 보라 권했지요.

조각은 기원전 1세기경 제작되었습니다. 인체를 다룬 미술이 사실성을 더하던 때였습니다. 생생한 표정과 격렬한 동작으로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고자 했답니다. 이런 시대의 특징이 잘 드러난 조각은 한 사람 솜씨가 아니었습니다. 하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도로스의 합작품이었지요. 이 조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506년이었어요. 땅속에 묻혀 있다 발견되었거든요. 감탄을 자아낼 만큼 예술성이 뛰어났습니다.

조각 정중앙 인물이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입니다. “그리스 군대가 숨은 목마의 트로이 성 진입은 위험하다.” 트로이의 미래를 위해 조언했지요. 이런 행동이 트로이 함락을 원했던 바다 신의 심기를 거슬렀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은 너그러운 편은 아닙니다. 특히 신의 위엄에 도전한 인간에게 가혹했지요. 분노한 포세이돈은 라오콘과 두 아들에게 죽음의 형벌을 내렸습니다.

조각은 신의 저주를 사실적으로 전합니다. 동시에 이에 맞서는 인간의 정신력도 주목하게 합니다. 바다 독뱀의 공격에 라오콘 부자는 꼼짝할 수 없습니다. 참담한 순간이지만 절망의 흐느낌은 없습니다. 극한의 상황이지만 투혼은 계속됩니다. 이들이 지닌 유일하고 강력한 무기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의지일 것입니다. 그 모습이 그리스 사람들이 꿈꾸던 이상적 인간을 닮았습니다. 고대인들은 고통을 견디고, 품격을 지키고, 운명에 도전하는 인간을 으뜸으로 여겼지요. 그리스 미술의 정수로 평가되는 ‘라오콘 군상’이 실감나게 품은 것은 시대의 열망이었습니다. 이상적인 인간의 위대함이었습니다.

세기의 바둑 대국 소식에 인공지능과 겨룰 인간의 심적 부담감만 염려되었습니다. 우연히 네 번째 대국이 시작될 무렵 소위 ‘인간 대표’를 보았습니다. 세 번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을 잡는 침착함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실로 고요했습니다. ‘어쩌면 그리스 미술이 갈망했던 인간의 아름다움, 빙켈만이 말했던 존재의 고요함이 이런 것일지 모르겠다.’ 그날 밤 전해 들은 승전보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이 주인공인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이 현실 세계에도 고요해서 아름다운 존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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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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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1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한국경제]

1. 중국발 국채 리스크에도 경각심 가져야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한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가 됐다는 소식(한경 3월18일자 A5면)이다.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중국이 보유한 한국 국채와 통화안정증권 등 상장 채권 규모는 모두 17조5090억원으로 미국(14조3900억원)을 3조원 이상 앞섰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국 국채 보유 규모는 2013년 12조5090억원에서 지난해 말 17조4280억원으로 늘었다. 반면 미국은 올 들어 공격적으로 채권을 매도, 2월 한 달간 3조6580억원어치를 팔며 보유 비중(14.9%)에서 처음으로 중국(18.1%)에 뒤졌다.

중국 경제의 불안상을 고려하면 이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중국이 자국 사정으로 보유 국채를 갑자기 대량 매도하면 그 쇼크가 곧바로 한국으로 파급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집중적인 채권 매도는 가격 하락과 전반적인 금리 상승 압력으로 이어진다. 미국 국채 최대 보유국이기도 한 중국은 미국에조차 보유채권을 일시에 대량으로 팔 수 있다는 위협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마침 글로벌 채권 시장이 요동치고 있어 우려를 더한다. 한 달여간 상승세를 지속해온 글로벌 국채 수익률은 지난주 갑자기 하락세로 반전했다. 당분간 통화 완화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미국 중앙은행(Fed) 발표에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 Fed는 지난주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올해 금리 인상 횟수를 2회로 제안, 글로벌 채권 수익률을 일제히 끌어내렸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지난 주말 연 1.871%까지 떨어졌고,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연 0.839%를 기록하며 3월2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 국채 수익률도 급락했다. 10년물은 한때 연 -0.09%까지 떨어지며 사상 최저치를 경신, 일본의 기준금리(연 -0.10%)보다 더 낮아졌다. 국내 국고채 수익률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채권시장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중국의 돌발 상황이 한국 채권시장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중국발(發) 채권 리스크에도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2.  자기 집 찾아간 김종인·강봉균의 경우와…

4·13 총선 후보등록(24~25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에선 유독 여야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이 많아 눈길을 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캠프의 핵심이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자신을 더민주의 비례 2번에 ‘셀프 배치’하고 선거대책위원장도 맡을 예정이다. 비례대표로만 5선째다. 이에 새누리당은 강봉균 전 민주당 의원을 선대위원장에 내정하고 비례 순번도 부여해 김 대표에 맞불을 놓을 태세다. 서로 반대진영으로 옮겨 총선을 지휘하게 됐다.

김종인과 강봉균의 사례를 보면 이제야 자신의 길을 제대로 찾았다는 평가를 줄 수도 있다. 김 대표는 “경제민주화는 시대정신이고 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하면 영원히 못한다”는 지론을 가졌다. 김 대표가 새누리에 몸담았던 게 더 이상한 일이다. 강 전 의원은 야당이면서도 선별적 복지와 성장 정책을 주장해왔다. 오히려 새누리쪽과 코드가 더 잘 맞는다. 김대중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호남 출신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옮겼을 것이다. ‘원조 진박(眞朴)’이라는 진영 의원이 더민주에 입당한 것도 자연스런 귀결이다.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야당 주장대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연계를 반대했으면서 여태 새누리 당적을 유지한 게 더 이상했다.

하지만 새누리나 더민주의 공천을 받은 어떤 인물들은 여전히 그 당에 남아 있는 게 미스터리로 느껴진다. 당의 정강정책이나 이념보다 지역구도에 의한 당선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경제기본법을 대표발의하고, 법인세 인상도 주장하던 유승민 의원은 경제관에선 더민주에 훨씬 가깝다.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을 주도하며 당론과 반대입장에 섰던 김세연, 이혜훈 등이 새누리 공천을 고집한 것도 의아하다. 더민주의 김진표 전 의원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그동안 여야 정당들은 수시로 당명을 바꾸고 당색(黨色)까지 정반대로 내걸면서 유권자를 현혹해온 게 사실이다. 이제라도 각자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에 맞는 정당으로 옮겨가는 게 차라리 다행스럽다.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빌려 입고 국민을 기만하는 얄팍한 처세는 그만둬야 한다.

[서울신문]

3. 정치불신 키우는 이합집산의 혼돈 총선 

새누리당 공천에서 배제된 진영(서울 용산) 의원이 어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앞서 더민주에서 컷오프된 정호준(서울 중·성동을) 의원 등은 국민의당으로 말을 갈아탔다. 야당 소속으로 적진인 부산에서 내리 3선한 조경태(부산 사하을) 의원은 올 초 일찌감치 새누리당에 둥지를 틀었다. 지금 더민주를 이끌고 있는 김종인 비상대책위대표나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에 내정된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도 각각 원래의 진영을 이탈해 새 꿈을 꾸고 있다. 각 당의 공천 배제 또는 경선 탈락 정치인들이 많아 ‘환승’ 행렬은 총선 이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치인들의 오락가락 행보야 과거 총선에서도 익히 봐 왔던 터라 그 자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이런 어지러운 이합집산의 혼돈 총선이 국민들의 정치혐오, 정치불신 풍조를 더욱 부채질하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다. 어제까지 붉은색 점퍼를 입고 선거운동을 하던 인사가 오늘은 갑자기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나타나거나, 탈당파들을 비난하다가 갑자기 패권주의 타도를 외치는데 혼란스럽지 않을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한 석이 아쉽더라도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 인사들까지 거두는 여야 3당은 지지자들의 뜻을 묻기나 했는지 궁금하다.

‘원조 친박’으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에 이어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진 의원은 더민주 입당변(辯)을 통해 “특정인 지시로 움직이는 파당”이라며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면서 “권위주의에 맞서는 민주정치, 서민을 위한 민생정치, 통합의 정치를 이룩하는 데 마지막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자신이 추구한 ‘초심의 정치’였다면 새누리당에서 3선을 하고 현 정부에서 장관까지 지내는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그렇게 새누리당과 맞지 않았다면 왜 미리 결심하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

정당의 정체성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자 지지자들에 대한 약속이다. 아무리 정치가 최선이 아닌 차악이라고 하더라도 조변석개하며 국민을 우롱해선 안 되는 이유다. 사실상 보수정당 일색인 우리 정치 현실에서 정치인들의 당적 이동이 무얼 그리 대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엄연히 각 당의 정강정책이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도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구체적인 복지정책 각론만 해도 더민주는 복지 확대를, 새누리당은 복지 조정을 내세우고 있지 않는가. 게다가 총선을 전후한 당적 이동은 ‘사욕 채우기’ 의혹을 사기에도 충분하다.

이번 총선은 수십 년 만에 다당 구도가 재현된 데다 각 당 공히 크고 작은 공천파동을 겪었고, 그 결과로 무소속과 당적 이동 후보가 속출하는 등 큰 혼돈 속에서 치러지게 됐다. 유승민 의원 파동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당의 책임이 크다. 19대 국회의 무능에 진저리를 친 국민들은 20대 국회만큼은 본연의 자리를 찾길 학수고대했지만 이합집산의 혼돈 총선을 지켜보자면 실망과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계파갈등과 권력투쟁에 매몰돼 있는 정치권에 과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국민들의 시름이 더욱더 커져만 가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4. 면세점 추가 허가 서두를 일인가

정부가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를 추가로 내주는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면세점 전쟁이 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특히 지난 16일 정부가 공청회를 연 이후 관련 업체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서면서 논란이 뜨거워졌다. 지난해 5년 특허 기간 만료로 신규 입찰에 참여했다가 탈락한 SK네트웍스와 롯데면세점은 신규 허가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면세 시장에 새로 진입하려는 현대백화점도 마찬가지다. 반면 신규 사업권을 따낸 SM면세점 등 5개 사업자들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신규 허가를 주장하는 측은 관광산업 활성화와 고용 유발 효과를 내세운다. 공청회에서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늘고 있는 만큼 주요 방문지를 중심으로 신규 특허를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며 추가 쪽에 힘을 싣는 목소리가 만만찮았다. 신규 허가를 받은 사업자들은 지나친 경쟁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신규 사업자가 사업 기반을 갖추기도 전에 또 다른 신규 특허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논리다. 특히 탈락한 면세점들이 다시 특허를 받아 영업을 계속하게 되면 신규 진입 사업자들의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논란은 근본적으로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2012년 관세법을 개정하면서 면세점 특허 기간을 5년으로 제한함에 따라 면세점 운영에 대한 시장 불확실성이 커졌다. 그로 인해 면세점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롯데와 SK도 5년 특허 규정에 걸려 탈락했다. 공청회에서도 이런 문제점이 짚어졌다. 5년 특허 기간이 만료됐을 때 신규 진입을 원하는 다른 업체들과 똑같은 자격으로 다시 입찰과 심사를 거치도록 하는 원칙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사업자에게 결격 사유가 없다면 입찰 없이 최소 한 차례 이상 특허 갱신을 허용하는 방안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

다만 개정된 법에 의해 결정된 신규 사업자들이 한창 개점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급하게 추가 허가를 내주는 조치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영업에 들어가면 시장 상황을 지켜보면서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서두를 경우 자칫 지난해 탈락한 사업자들을 구제해 주려는 것 아니냐는 특혜 의혹에 휘말릴 수도 있다. 꼼꼼한 시장분석을 통해 어떤 방안이 관광산업 발전과 면세업계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지 깊이 따져 보기 바란다.

5. 전수조사와 강력 처벌, 아동학대 예방 해법이다

도대체 아동학대 범죄의 끝은 어디인가 싶다. 계모의 학대로 욕실에 갇혀 숨진 평택 원영이 사건의 충격이 여전한데, 청주에서 또 아동학대 범행이 드러났다. 5년 전 친모의 가혹 행위로 숨진 네 살배기 여아는 계부의 손에 암매장됐다. 지난해 말 부모의 학대를 못 견뎌 집을 탈출한 인천 11세 맨발 소녀가 아니었다면 이런 끔찍한 사건들은 영원히 묻혔을 것이다. 인천 소녀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장기 결석 및 미취학 아동을 전수조사하고 있는 중이다.

올해 새 학기 입학 대상자인데도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초등·중학생은 19명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 부모들까지도 모두 행방불명이라는 사실이다. 얼마나 끔찍한 일이 더 드러날지 숨죽이고 지켜보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아동학대의 심각성이 이 정도일 줄은 누구도 몰랐다. 인터넷에서는 “학대로 숨지고도 실종 처리된 아동이 얼마나 많았을지 모른다”는 개탄이 쏟아지고 있다. 건강검진이나 예방접종 기록이 전무한 취학 전 영유아도 809명이나 된다고 한다. 최소한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방치됐을 수 있다는 의심이 드는 사안이다. 당국과 경찰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철저히 학대 정황을 살펴야 할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정부는 관련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앞으로는 이틀 이상 학생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도 학교는 곧바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 학업 부적응을 이유로 취학하지 않는 학생을 따로 관리하는 기구도 각 교육청에 두기로 했다. 당장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 경찰과 손잡고 무단결석 학생 전담기구와 신고 핫라인을 만들어 안전망을 짰다.

범정부 대책을 바탕으로 교육 당국과 지방자치단체가 뜻을 모은다면 아동학대 예방 효과가 있으리라 기대된다. 걱정인 것은 이런 대응이 보여 주기 반짝 행정으로 끝날까 하는 점이다. 당국의 감독과 독려가 지속돼야 교육 현장과 지역사회의 관심도 후퇴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아동학대 판정 사례는 전년보다 무려 17%나 늘었다. 울산·칠곡 계모 학대 사건에 온 나라가 경악했으면서도 이런 추세인 것은 솜방망이 처벌 탓도 크다. 굶기고 때려서 아이를 숨지게 해도 번번이 과실치사죄가 적용되는 물렁하기 짝이 없는 판결로는 예방 효과를 낼 수 없다는 비판이 높다. 명백한 우발 사고가 아니라면 처벌 수위를 크게 높여야만 실질적인 경고 장치가 될 수 있다. 아동학대 범죄의 양형 기준을 손봐서 이를 홍보하는 것도 정부 당국이 서둘러야 할 일이다.

[동아일보]

6. 구조조정 앞선 일본, 한국조선업 빅3 무너뜨렸다

세계 조선(造船) 시장 3강이었던 우리 조선 3사가 일본 기업에 3위를 내줬다. 20일 분석기관(영국 클라크슨)에 따르면 2월 말 수주잔량 기준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그룹이 각각 1, 2위였지만 3위였던 삼성중공업그룹이 일본 이마바리조선그룹에 밀렸다. 일본은 이미 2015년 1월 월 단위 수주량에서 세계 1위를 탈환한 바 있다. 6년 8개월 만의 일이다. 한국 조선사들이 침몰하는 사이 일본이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세계시장 점유율이 10%에도 못 미치던 일본 조선의 부활은 엔 약세에 힘입은 바 크지만 착실한 구조조정과 기술개발을 멈추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한 이유다. 2014년 IHI마린유나이티드와 유니버설조선이 합병해 세계 4위 저팬마린유나이티드(JMC)를 탄생시켰고 이마바리조선과 미쓰비시중공업은 LNG 선박 부문만 떼내 LNG 전문 조선소를 세웠다. 일본 내 최대인 이마바리조선이 18년 만에 독 확장 공사를 재개한 까닭이 있다. 일반 상선이면 무엇이든 대응할 수 있는 ‘선박 백화점’ 구축을 목표로 선박용 프로펠러 1위 같은 중소업체와도 손을 잡는 기술개발에 앞장서기 위해서다. 바다 오염물질 배출 규제가 엄격해지는 추세를 반영해 친환경 선박 개발에도 발 빠르게 나섰다. 일본 정부도 통폐합 회사에 선박 가격의 80%까지 단 1% 이자율로 지원하는 파격 지원으로 응답했다.

일본을 앞질렀다고 환호하던 우리 조선업은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은 국내 초유인 영업 손실 5조 원을 넘겼다. 당기 순손실(5조1424억 원)도 외환 위기 때 기아자동차에 이은 두 번째 규모다. 국민혈세가 4조 원 넘게 투입됐지만 사상 초유의 엄청난 부실에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총선 바람까지 불어 구조조정마저 무한정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 올 1분기 수주도 사실상 ‘제로(0)’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5, 6년 전만 해도 국내 3사는 전 세계 시장의 70%를 장악했으나 30%(중국 40%, 일본 30%)대로 추락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10위권 내 중국 업체가 3곳이나 돼 중국의 조선 빅3 진입도 곧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 산업은 자동차 반도체와 함께 한국의 주력 산업이다. 수출 비중도 높지만 고용 창출도 10억 원당 10명으로 자동차(8.8명)와 반도체(3.8명)보다 훨씬 높다. 한국 조선업이 ‘최악의 겨울나기’를 끝내고 봄을 맞으려면 극심한 ‘엔고’ 속에서도 뼈아픈 노력으로 체질 개선에 성공한 일본을 본받아야 한다.

[이데일리]

7. SKT-CJ헬로비전 합병 논란 잠재우려면

이동통신업체 SK텔레콤의 케이블 방송회사 CJ헬로비전 인수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SKT와 CJ헬로비전은 최근 주주총회를 열어 합병을 승인했지만 관련 업계는 물론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양사 합병에 반대하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 업계의 합병 반대 움직임은 이동통신시장 1위 사업자 SKT가 알뜰폰 및 케이블TV 1위 업체 CJ헬로비전을 인수하면 방송시장도 이동통신 시장처럼 SKT의 지배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국책연구기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최근 발표한 ‘2015년도 통신시장 경쟁상황평가 보고서’에도 이같은 우려가 고스란히 담겼다. 이동전화를 포함한 결합상품 시장에서 SKT와 SK브로드밴드 등의 점유율은 51.1%로 KT,LG유플러스 등 경쟁업체를 합친 것 보다 높다. 쉽게 말하면 SKT와 SK브로드밴드가 제공하는 이동통신, 인터넷TV(IPTV), 초고속 인터넷 등의 시장점유율이 절반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SKT가 케이블TV까지 결합해 판매한다면 유·무선 시장 지배력이 한 회사에 집중되는 독과점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다 하겠다. 

SKT는 CJ헬로비전을 인수해 통신과 미디어를 융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미디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성장전략을 밝혔다. SKT는 또 미국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동영상 실시간 전송)업체 넷플릭스가 지난 1월 한국시장에 진출하는 등 글로벌 업체의 한국 공략이 본격화된 데 따른 대응책의 하나라고 강조한다. 규모의 경제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합병 논리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SKT가 CJ헬로비전 인수로 시장지배력이 커지면 공정한 경쟁이 훼손되고 가격 인상과 서비스 품질 하락으로 이어져 피해가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제 공은 공정거래위원회로 넘어갔다. 합병을 심사중인 공정위는 SKT가 2001년 신세기이동통신과 2008년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하며 내세운 글로벌 경쟁력이 제대로 확보됐는 지에 대해서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중앙일보]

8. 김정은, 오바마의 쿠바 방문에서 교훈 찾기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역사적인 쿠바 방문에 나섰다. 이번 방문은 1972년 ‘죽의 장막’을 걷어냈던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버금갈 정도의 뜻깊은 일이다. 오바마의 쿠바행은 진작 조종이 울린 공산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종말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중국의 도약은 닉슨 방문 이후 이뤄진 미·중 국교 정상화에 힘입은 바 컸다.

44년 전에 그랬듯 이번 방문 역시 쿠바의 개방화와 경제 발전에 불을 붙일 게 틀림없다. 실제로 하루 10편 남짓했던 미국~쿠바 간 여객기가 조만간 110편 이상으로 늘고 아바나를 찾는 미 여행객도 지난해 15만 명에서 연간 150만 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경제 제재 이후 50년 넘게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던 쿠바로서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오바마로서도 이번 방문은 더없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대선 운동 때 “북한·이란·쿠바 등 불량국가 지도자들과 조건 없이 만나겠다”며 이들 나라와의 관계 개선을 공약했었다. 따라서 이번 방문을 통해 북한을 뺀 나머지 두 나라와의 관계 개선을 이뤄냈다는 치적을 과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이번 방문을 계기로 쿠바식 화해 모델에서 중대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북한과 쿠바는 옛소련을 중심으로 한 형제국으로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그간의 행보는 판이했다. 북한이 핵무장의 길을 걸은 것과는 달리 카스트로 정권은 심각한 전력난에도 불구하고 원전마저 짓지 않는 철저한 비핵화 노선을 택했다. 미국 코앞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다간 정권이 남아나지 않을 거란 현실 인식이 작용한 거다. 북한은 쿠바 역사가 증명하듯 핵 없이도 얼마든지 체제를 지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는 이란과 쿠바 문제를 풀어냄으로써 여유가 생긴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력을 북한 문제 해결에 돌리도록 애써야 한다. 자칫하면 미국 대선판에 휩쓸려 올해 말까지 한반도 문제가 잊혀질 수도 있다. 우리가 주도하지 않으면 한반도 평화는 결코 성취할 수 없음을 잊어선 안 된다.
 

[매일경제]

9. 포용력·절제 잃은 정치 국민에 부끄럽지 않나

4·13 총선 공천과정에서 여야가 극도의 계파 갈등 속에 무원칙·무절제한 행태로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비박계 의원들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킨 결과 이들이 연이어 탈당·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나선 데 이어 친박계에 대한 여론 역풍까지 감지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국정 추진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새누리당 공천에서 배제된 진영 의원은 17일 탈당한 데 이어 20일에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진 의원은 박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에 이어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원조 친박'이다. 그가 박 대통령 임기 중에 야당으로 옮긴 건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기에 앞서 타협·포용·절제가 사라진 새누리당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유승민 의원과 가까운 사이로 이번 공천에서 탈락한 권은희 의원도 대구 북구갑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기 위해 20일 탈당했다. 비박계 의원들이 탈당하는 다른 한편에서 친박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김재원 의원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예비후보 간 경선에서 탈락했다. 친박계 인물에 대한 여론의 역풍 아니냐는 해석까지 제기되고 있으니 총선 이후 국정 추진력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극심한 계파 갈등 속에 부산에서 3선을 해온 조경태 의원은 새누리당으로 옮겼다. 위기 수습을 위해 영입된 김종인 더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는 20일 자신을 비례대표 2번으로 '셀프 전략공천'하는 강수를 뒀다. 그동안 여당을 향한 투쟁과 대치에 무게를 둬온 야당에 김종인·진영 등이 합류하면서 대화와 타협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위기관리 역할에 충실하기를 바라는 더민주당 기존 핵심들과 정책·체질 변화에 채찍질을 가하려는 영입세력이 충돌한다면 총선 이후에도 정치권 혼란은 피하기 힘들다. 조속한 국정 안정보다 자신의 생존과 계파 이익에만 관심을 쏟는 정치판이다.

10. 빚에 짓눌린 한계가구 적극적인 채무조정을

지난해 전체 가구 중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고 원리금상환액이 가처분소득의 40%를 웃도는 한계가구는 14.8%(158만3000가구)에 이르렀다. 한계가구는 3년 새 25만8000가구나 늘어났다. 이들 가구가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쓰는 돈은 평균적으로 가처분소득의 104%에 달한다. 빚을 더 내지 않으면 원리금을 갚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소규모 자영업자를 포함한 가계 부문 금융부채는 작년 말 이미 14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가계 부문 순처분가능소득의 1.7배 규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통계 확보가 가능한 23개국 가계의 부채가 가처분소득의 1.3배 수준이므로 우리나라 가계는 지나치게 무거운 빚에 짓눌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원리금 상환에 허덕이는 가구는 소비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계가구 중 73%는 소비를 줄이겠다고 답했다.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 된 가계빚의 뇌관을 제거하는 일은 치밀하고 신속해야 한다. 정부는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고정금리와 원리금 분할상환 대출로 유도하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년 전 정부가 분할상환·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높이려 도입한 안심전환대출은 실행분 31조원 중 79%가 신용등급 1~3등급에 돌아갔다. 정작 부채 구조조정이 가장 시급한 계층에는 혜택이 돌아가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한계가구 중 소득하위 계층, 자영업자, 60대 이상 고령자 가구, 자기 집을 가진 '하우스 푸어' 비중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 정밀타격식 채무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주택 수요와 공급을 안정적으로 조절하고 주택연금의 문호를 대폭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계빚에 대한 근원대책은 소득을 늘려 부채상환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금융당국뿐만 아니라 재정·통화·주택·고용·복지정책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입체적인 가계부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신동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 영국에서 생겨난 커리 ‘치킨티카마살라’…인도와 영국의 음식문화가 합쳐져 탄생

카레를 생각하면 어릴 적 어머니의 주방에서 들려오던 맛있는 소리들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기분 좋은 콧노래 소리와 함께 탁탁탁 리드미컬하게 들려오던 행복한 도맛소리! 어린 필자는 주방으로 달려가 감자와 사과, 당근을 볶다 카레가루를 개어 붓던 어머니 모습을 지켜보며 군침을 삼키곤 했다. 

어린 시절 돈가스와 함께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 카레였는데 사춘기가 지나면서 지루해졌다고 할까. 카레와 차츰 멀어져갔다. 한참 뒤 일본에 유학을 갔을 때 카레가 다시 좋아졌다. 평범한 우리 카레와는 다른 맛, 치킨티카마살라(chicken tikka masala) 덕분이었다. 

일본 도쿄의 작고 예쁜 마을, 마치야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우연히 인도 사람과 일본 사람이 함께하는 카레전문점을 발견하고 (사실 그다지 당기지는 않았지만) 공부 삼아 전통 인도 카레를 맛보러 갔다. 메뉴판을 읽는데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으며 특히 여성에게 인기 만점인 치킨티카마살라’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어떤 맛일까 궁금해 주문했다. 한입 먹는 순간 ‘오홋’, 동서양이 오묘하게 섞인 퓨전요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뒤 영국으로 짧은 유학을 떠났다. 영어를 배우러 간 것이 아니라 유럽의 음식이 궁금해서 찾아간 터였다. 그런데 막상 지내보니 영국인이 대중적으로 즐기는 음식은 피시앤드칩스, 매시트 포테이토에 피시파이, 미트파이 같은 것들에 불과했다. 얼마나 단순하고 맛이 없던지. 음식 값이 대체적으로 굉장히 비싼 데 비해 질이 형편없어 실망감이 컸다. 

그때 지인을 통해 유명한 카레전문점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의 카레집 메뉴판에서 읽었던, 영국에서 제일 인기가 많다는 치킨티카마살라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곳을 찾아가 다른 메뉴는 보지도 않고 곧바로 치킨티카마살라를 주문했다.  눈으로 보는 비주얼은 별로였지만 풍기는 향이 예사롭지 않았다. 맛을 보니 ‘정말 대박’. 일본에서 먹던 치킨티카마살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카레 특유의 향신료 맛과 산미, 풍미 등 3박자를 완벽하게 갖췄다고 할까. ‘그래서 영국 사람들이 이 음식을 그렇게 사랑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그릇을 싹 비웠다. 

일본에 ‘나메로’라는 음식이 있다. 전갱이와 대파, 생강, 미소 등을 함께 다져서 먹는 음식인데 그 음식이 너무 맛있기에 접시까지 핥아 먹는다고 해서, 일본어로 핥는다는 뜻의 이름 ‘나메로’가 붙었다고 한다. 필자가 그날 먹은 치킨티카마살라도 옆에 손님만 없었더라면 접시까지 싹싹 핥아 먹지 않았을까 싶다. 

음식은 그 나라의 문화까지 달라 보이게 한다. 이전까지 필자는 영국 하면 절대강국 또는 딱딱한 영국식 영어를 떠올렸다. 그러나 치킨티카마살라를 먹는 순간만큼은, 영국이 부드럽고 여유 있는 나라로 느껴졌다.

인도의 커리가 영국으로 전해진 것은 1772년 무렵,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시기였단다. 당시 초대 인도 벵골 총독이었던 워런 헤이스팅스가 인도의 혼합 향신료(mixture of spices)인 마살라와 쌀을 영국으로 갖고 간 것이 시초였다. 인도에서 먹던 커리 맛을 잊지 못한 영국인들이 귀국 후에도 커리를 즐기면서 인도의 커리는 영국 사람들 식탁에 자주 오르게 됐다. 처음에는 일부 상류층만 커리를 즐겼지만 일정한 비율로 조합해 만든 커리파우더가 생산되면서 일반 가정에도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커리파우더만 있으면 매번 가루로 갈 필요가 없어 누구나 편하고 손쉽게 커리 맛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먹는 영국의 커리는 오랜 시간 조리법의 변형을 거쳐 영국인 입맛에 맞게 변화된 것이다. 춥고 어두운 영국으로 건너온 커리는 인도의 것보다 좀 더 기름지고 녹진해졌다. 인도의 가벼운 코코넛밀크 대신 버터와 크림을 넣었기 때문일 것이다. 

치킨티카마살라도 인도의 커리 요리기는 하지만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영국 사람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음식이다. 치킨티카마살라는 1960년대 영국의 인도 요리점에서 태어났다. 인도 음식 ‘치킨티카(chicken tikka)’가 영국인이 먹기에 퍼석해 따로 커리소스를 주문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부드러운 커리소스에 인도식 케밥 치킨티카를 넣은 치킨티카마살라는 별로 맵지 않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덜 매운 노란 커리’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마크니(makhani)나 코르마(korma)보다는 좀 더 맵고 색이 진한 편이다. 

영국인은 요리에 토마토를 즐겨 쓴다. 그래서 커리를 만들 때도 토마토퓌레를 넣어 달착지근한 맛을 냈다. 향이 강한 커리를 잘 먹지 못하는 영국인들은 설탕과 요구르트를 넣어 매운맛을 순화시켰다. 여기에 인도의 전통 화덕인 탄두르에서 구워 불맛을 제대로 입혀낸 닭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 넣고 보글보글 한 번 더 끓여낸 것이 바로 치킨티카마살라다. 이렇게 인도와 영국의 문화가 더해져 하나의 훌륭한 요리가 완성됐다.

2.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베르디 ‘팔스타프’…“세상 만사는 희극” 해피엔딩 오페라

‘오페라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한마디로 콕 정리해서 얘기해달라는 요구도 적지 않다. 그럴 때 하는 대답은 기실 별게 없다. ‘사람 사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음악으로 풀어놓은 것’이란 답변을 가장 많이 하는 편이다. 

주세페 베르디. 이탈리아 오페라를 꽃피운 주역인 그는 평생을 오페라 작곡에 매진했다.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리골레토’ ‘나부코’ ‘오텔로’ ‘일 트로바토레’ 등. 오늘날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르고 있는 그의 오페라들이다. 베르디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던 것 같다. 평생 28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던 그가 80세 나이에 또 새로운 오페라 작곡에 매달린 것을 보면.

바로 1893년 작 ‘팔스타프(Falstaff)’다. 베르디는 이미 6년 전 그가 존경하던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오페라화한 ‘오텔로’를 마지막으로 모든 작곡에서 손을 떼고 노년의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오텔로’의 대본을 쓰며 작업을 같이한 아리고 보이토(A. Boito)가 내민 것이 셰익스피어 ‘헨리 4세’ 1, 2부와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을 대본화한 ‘팔스타프’였다. 

전 3막의 오페라 ‘팔스타프’는 한때 고지식하고 성실한 삶을 살았지만, 나이 들면서 술고래에 호색한으로 변모한 팔스타프의 이야기다. 제자이자 친구기도 한 왕자가 왕으로 즉위한 뒤 옛 친구이자 스승인 자신을 불러주리라 기대하지만 왕자가 찾지 않자 낙심한 팔스타프. 돈까지 궁해지자 부유한 유부녀를 유혹해 궁지를 벗어나려는 계획을 세운다. 마을의 부유한 알리체와 메그 페이지에게 똑같은 내용의 연애편지를 보내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자신이 유혹의 손길을 뻗치기만 하면 그 어떤 여자도 넘어오게 되리라는 팔스타프의 망상. 결국 마을의 여인들을 화나게 한 연애편지 공략은 팔스타프가 큰 망신을 당하면서 끝이 난다. 베르디는 이 오페라를 1막의 9중창을 포함해 아카펠라, 푸가 등 섬세한 음악적 어법으로 펼쳐 보인다. 그에 더해 섬세한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위트가 결합하면서 베르디 사상 최초에 가까운 해피엔딩 오페라가 만들어졌다.

팔스타프를 통해 베르디는 그가 평생 그려온 비극 오페라에서 벗어난다. 또 ‘인생은 곧 희극’이라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한다. 전혀 베르디답지 않지만 또 베르디기에 가능한, 깊은 통찰이다. 오페라 속에서 그는 주인공 팔스타프의 입을 통해 ‘명예가 밥 먹여주나(L'Onore!)’라고 신랄히 외치는가 하면 피날레 부분에서 전 출연진이 함께 모여 ‘세상 모든 일은 희극이야(Tutto nelmondo e burla)’라며 유쾌하게 입을 모은다. 전 인생을 통해 꼭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던 해피엔딩의 오페라를 베르디는 그렇게 완성했다.

알파고의 바둑 실력을 보면서 충격적이기보다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인공지능에 의해 무엇이 얼마나 파괴될 것인가. 음악은 또 어찌 될까 하는 걱정도. 그러나 베르디가 전하는 오페라 속 합창은 그렇게 쉽게 망가지는 것은 없으리라는 믿음도 들게 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분발한다 해도 살아 있는 사람의 그 복잡다단한 영역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단 말인가.

3. [매경이코노미][HEALTH] 구취 대명사, 잇몸 내려앉는 ‘치주염’…잘못된 양치 습관·흡연·음주가 主敵

치아 건강은 ‘오복(五福)’ 가운데서도 으뜸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한 치아를 타고났다고 해도 잘못된 양치 습관을 지속하면 치주질환의 발병을 막을 수 없다.

입속 세균을 제대로 청소하지 못해 생기는 치주염은 치아 건강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만성 치주질환이다. 잇몸 염증이 심해져 뼈 부위로 옮겨가면서 뼈가 녹아내리고 주변 잇몸이 함께 주저앉는다. 

치주염의 대표 증상은 잇몸 부위 출혈, 욱신욱신한 통증과 함께 구취가 나는 것이다. 흔히 ‘우리하다(몹시 아리거나 또는 욱신욱신하다)’고 표현하는데 점차 악화되면서 고름이 나오고 더 심해지면 치아가 흔들리게 된다.

치주염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은 입속 세균이다. 구강 내에는 2억여마리의 세균이 산다. 플라크라고 하는 이 세균 덩어리는 음식 찌꺼기와 함께 치아 구석구석 끼이게 되며, 침과 함께 섞여 치석을 형성한다.

차재국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치주과 교수는 “치석은 마치 세균의 집과 같다. 치석이 없는 치아는 매끄러워서 세균이 잘 번식하지 못하지만 치석이 있으면 세균이 잘 붙는다. 몸의 면역력이 떨어진 틈을 타 세균이 활성화되면서 잇몸의 염증을 일으키고 뼈까지 파고들어가면 치주염으로 발전한다. 치주염은 우리 몸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마다 급격히 악화되는 계단식 증상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치주염 치료는 염증의 깊은 정도에 따라 3단계로 나뉜다. 치석을 제거해주는 스케일링이 1단계다. 스케일링만으로 안 될 때는 잇몸 치료를 한다. 잇몸 안에도 치석이 생기기 때문에 잇몸과 치아 사이에 뾰족한 기구를 넣어 긁어낸다. 더 증상이 심할 때는 잇몸을 열어젖혀 안쪽을 청소한 후 꿰매는 잇몸 수술에 들어간다. 이마저 안 되면 결국 치아를 뽑아야 한다.

치주염은 특히 당뇨나 류머티즘 질환, 심혈관질환 등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등 타 질환과 상관관계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치주염 예방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차 교수는 “구강 세균에 감염돼 잇몸 조직과 잇몸 뼈에 염증이 생기는 만성 치주염을 앓게 되면 몸 전체가 세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뚜렷한 근거나 기전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입은 우리 몸의 기관 중 바깥과 직접 연결되는 뻥 뚫린 통로다 보니 세균 번식 가능성도 높고, 우리 몸 곳곳으로 연결되기도 쉽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치주염 예방의 시작은 올바른 양치 습관이다. 치간칫솔이나 치실을 사용하는 것은 기본. 가글링까지 해주면 가장 좋다. 치주염 환자의 경우 치간칫솔 사용이 꼭 필요하다. 올바른 양치법은 가로가 아닌 세로 방향으로 3분 이상 이를 닦는 것. 치주염 환자는 특별히 변형바스법이란 양치 방법이 권장된다. 이와 잇몸 사이에 45도 각도로 칫솔을 대고 칫솔모의 일부가 이와 잇몸 사이로 들어가게 해서 닦아주는 방식이다. 주기적인 스케일링도 필요하다. 이상적인 주기는 6개월에 한 번. 치주염이 생겼다면 1년에 3~4회가 권장된다. 스케일링을 받은 후 이가 시린 경우가 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증상이다. 치아에서 치석이 제거된 부분이 외부 자극에 적응하기까지 일정 시간이 필요해서다.

차 교수는 “치주염은 완치의 개념이 없다. 당뇨병처럼 꾸준히 계속해서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라면서 “특히 치주염 환자에게 음주와 흡연은 치명적”이라고 강조했다.

4. [머니투데이][박종면 칼럼] 오늘은 나, 내일은 너

모든 사람은 죽는다. 혼자서 죽는다. 예외가 없다. 그래서 라틴어 ‘호디에 미히, 크라스 티비’(HODIE MIHI CRAS TIBI)는 진리다. 직역하면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뜻이다. 오늘은 내가 여기 공동묘지에 죽어 누워 있지만 내일은 당신 차례라는 의미다.
이 명쾌한 명제를 수용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삶에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대개는 이런저런 이유로 진실과 직면하는 걸 꺼린다.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나오는 인물처럼 우리는 죽음을 직시하는 게 너무 두려워 자신이 죽을 운명이란 사실을 잊고 살려고 애쓴다. 이건 잘못이다. 

어떤 마을에서 누군가 죽으면 교회의 종이 울리곤 했다. 오늘도 종이 울려 누가 죽었는지 알아보려고 심부름하는 아이를 보내려다 문득 깨닫는다. 종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 울리는 것이란 사실을. 인간이 발전하는 것은 아무리 보잘것 없는 일이라도 그것을 나와 연관짓는 각성 내지 깨달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

#올 1월 열린 다보스포럼은 주요 국가에서 앞으로 5년 동안 500만개의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되고 올해 초등학교 입학생의 65%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때만 해도 우리는 반신반의했다. 의례적으로 하는 얘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계 최고 바둑고수가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과 바둑시합을 한다고 했을 때도 그랬다. 인공지능과 대결하는 이세돌 9단도 그렇게 말했지만 대부분 당연히 사람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현주소는 예상보다 훨씬 대단했고, 훨씬 높은 곳에 있었다.

인공지능이 먼 미래 일이 아니라 지금 바로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바둑고수는 그 앞에서 투혼을 보여줬고 처절하게 싸웠지만 그게 끝이었다. 인공지능에 오늘은 이세돌이 패배했지만 내일은 내가 패할 것이다. 교회의 종소리는 이세돌이 아니라 나를 위해 울리는 것임을 각성해야 한다. 세상은 상상을 초월해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죽음의 가능성이 욕망을 자극하고 죽음이 있어 삶이 소중한 것처럼 인공지능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이다. 알파고의 승리는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인공지능 혁명의 신호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던진 화두는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급변하는 환경에 맞게 근본적으로 판을 다시 짜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나라도 기업도 개인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요즘 재계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나 시내면세점 사업권 확대문제도 마찬가지다.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이 성사되면 시장독점으로 인한 요금인상이나 콘텐츠시장 황폐화 등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방송과 통신의 경계가 급속히 허물어지고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거대기업의 국내 진출이 임박했음을 감안하면 합병에 따른 이런 부작용들은 오히려 지엽적일 수 있다. 

시내면세점 사업권 확대도 정책의 일관성 상실이나 신라 신세계 한화 두산 등 5개사의 피해와 같은 여러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한 해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1000만명 넘고 관광산업의 중요성이 날이 갈수록 부각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지금과 같은 규제일변도의 면세점 정책은 더 이상 곤란하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다.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그래도 용기를 내 받아들여야 한다.

5. [한국일보]미군 최초의 흑인 지휘관 플리퍼

헨리 오시언 플리퍼(Henry Ossian Flipper, 1856~1940)는 미국 최초의 흑인 육군사관학교 졸업생이다. 1877년 소위로 임관한 뒤 소대를 이끈 첫 흑인 지휘관이기도 하다. 그의 복무 기간은 5년에 그쳤다. 부대장 등이 그에게 누명을 씌워 불명예 제대시켰기 때문이다. 그가 오명은 벗은 것은 100년 뒤였고, 1999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그 일에 대해 미국 정부를 대표해 사과했다.

플리퍼는 조지아주 토머스빌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의 주인은 폰더(Ponder)라는 부유한 노예상인이었다.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났고, 그 해 12월 수정헌법 13조(노예제와 형벌 외 강제노역 금지)가 발효됐으니 태어날 무렵에는 그도 노예였다. 

헌법의 기운이 남부의 혈관으로 스미는 데는 물론 꽤 긴 시일이 걸렸지만, 플리퍼는 용케 애틀란타 대학에 입학했고, 1학년 때 주 하원의원 추천으로 웨스트포인트에 입교했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의 흑인 전투 공적을 기려 웨스트포인트는 종전 이듬해부터 흑인 생도의 입교를 허용했지만 졸업한 이는 없었다. 흑인 장교가 백인 병사를 지휘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과 차별이 당시 교관과 생도들 사이에 있었다. 그의 졸업은 그 자체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임관과 동시에 제10기병대에 배속된 그는 서부 텍사스 인디언 전투에 투입돼 적잖은 전과를 올렸고, 그 해 10월 소대장이 됐다. ‘버팔로 솔저(흑인 곱슬머리를 버팔로 털에 빗댄 말)’라 불리던 흑인 소대였지만, 그는 미군 역사상 최초의 흑인 지휘관이었다.

부대장이던 니콜라스 놀런 대위는 그를 차별 없이 대했다고 한다. 부대 내 차별 역시 심각했다. 놀런의 딸과 친구처럼 지낸 점을 ‘부적절한 행실’로 투서, 모욕적인 조사를 받게 하기도 했다. 부대장이 바뀐 뒤 병참 부서로 전출된 플리퍼는 1881년 7월 부대 운영자금 2,000달러가 빈다는 사실을 안 뒤 즉각 보고하지 않은 죄목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동료 장교들이 그를 내쫓기 위해 조작한 일이었고 돈은 나흘 뒤 회수됐지만, 재판부는 82년 6월 그를 불명예 전역시켰다. 전역 후 그는 기술자로, 정치인 보좌관으로 일했다.

1976년 그의 후손들과 지지자들이 재조사를 청원, 신원(伸寃) 작업이 시작됐다. 클린턴이 사과하기까지 그로부터 23년이 걸렸다. 99년 웨스트포인트에는 플리퍼의 흉상이 섰고, 이후 매년 “난관을 딛고 기율과 리더십을 발휘한” 졸업생에게 ‘헨리 플리퍼’상을 수여하고 있다. 그는 1856년 3월 21일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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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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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8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막가파 공천'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든 여야 공천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분통과 냉소로 요약된다. 말끝마다 국민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이 막상 하는 짓거리를 보면 국민이 손톱만큼이라도 안중에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보수 집권당에서 4년마다 벌어지는 ‘공천 학살극’이나 현 정부를 독재로 몰아붙이는 진보 야당에서 자행되는 ‘독재 공천’이나 목불인견(目不忍見)이긴 매한가지다.

정당이 선거에 나설 후보를 공정한 절차에 따라 추천하는 게 공천이지만 현실은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계파 이기주의가 난무할 뿐이다. 여론과 인지도, 의정활동 등의 원칙이나 기준도 작동하지 않고 투명성은 더더욱 찾기 힘들다. 권력자나 그 하수인들이 자기들 입맛대로 칼질하고 국민의 선택을 강요하는 권력의지만 판치니 “누가 누구를 물갈이한단 말이냐”는 볼멘소리가 쏟아질 만도 하다.

이처럼 자의적인 막가파식으로 이뤄지는 공천은 후폭풍이 거세기 마련이다. 패자가 결과 승복과 함께 승자를 축하하고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먼 나라 일이고 당을 뛰쳐나가 무소속이나 다른 당 후보로 나서서 여태 몸담았던 당을 공격하는 게 관행화되다시피 됐다. 여기에 대해선 유권자들도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2. 한국은 얼마나 행복한 나라일까

지금 우리 사회는 국민들이 느끼기에 과연 얼마나 살기 좋은 환경일까. 한국이 세계 각국 가운데 행복지수가 58위로 나타났다는 소식에 새삼스럽게 던지는 질문이다. 유엔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세계 행복 보고서’에 나타난 순위다. 행복지수라는 표현대로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얼마나 행복을 느끼고 있느냐 하는 만족도를 보여주고 있다.

일단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이 전년 보고서에서 47위에 올랐다가 올해는 더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1년 사이에 행복의 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뜻일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이 주관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경제적 여력과 건강수명, 사회 분위기 등의 지표를 통해 측정한 결과다. 정부와 기업의 투명성이나 어려운 처지에 닥쳤을 때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있는지도 평가 항목에 포함됐다고 한다.

이러한 평가 항목을 떠나서도 우리가 날마다 겪는 사회는 짜증나고, 불안하고, 심드렁하다. 밝고, 유쾌하고, 웃음을 주는 일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는 불만을 더 많이 느끼는 게 솔직한 현실이다. 경제불황에 청년실업, 전셋값 폭등, 가정폭력, 보복운전 등 신문 활자로 전달되는 요즘의 사회 분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살기가 팍팍하다고 해서 정치인들에게 하소연할 처지도 못 된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조사된 덴마크나 그 뒤를 잇는 스위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등의 사례에서 배울 것은 없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꼭 경제적인 요소만은 아닐 것이다. 경제적인 요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근면하고 검소한 태도로 생활의 여력을 키워가는 노력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남을 위해 배려하고 도우려는 마음가짐이 아쉬울 때도 적지 않다.

우리의 사회 여건도 과거에 비해서는 상당히 살기 좋아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면서 빈부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는 데다 능력은 있어도 연줄이 없으면 흙수저를 면치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급속한 노령화로 미래에 대한 불안도 가중되는 상황이다. 자식들에게 이런 사회를 물려줘야 할 것인가. 내년에는 행복지수 순위가 더 떨어지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동아일보]

3. 새누리 공천 內戰, 김무성은 ‘보여주기 리더십’밖에 없나

새누리당이 어제 김무성 대표의 거부로 정식 최고위원회의를 열지 못했다. 대신 서청원 이인제 김태호 최고위원과 원유철 원내대표, 김정훈 정책위의장 등 친박(친박근혜)계 지도부만이 간담회 형식의 최고위를 열었을 뿐이다. 청와대 일각에선 ‘김 대표와 같이 가기 어렵다’는 막말까지 나온다. 공천관리위 외부 위원들이 전날 김 대표의 ‘공천 비판’ 기자회견을 문제 삼아 회의를 보이콧하는 바람에 공관위도 중단됐다. 친박 지도부가 사과를 요구했으나 김 대표는 단칼에 거부했다. 비박계 의원 일부는 친박계에 맞서기 위해 의원총회를 추진하고 있다. 당이 두 동강 날 듯하다.

내전(內戰)을 방불케 하는 사태의 1차 책임은 이한구 공관위원장에게 있다. 당헌 당규의 상향식 공천 원칙을 무시하고 예외적으로 적용해야 할 단수와 우선추천을 원칙이나 되는 것처럼 밀어붙였다. 이 위원장은 친박을 뒤에 업고 친이명박계와 유승민계 위주로 탈락시키고, 친박계와 진박(진짜 친박) 예비후보를 대거 공천했다. 과거 2008년과 2012년 총선의 친박과 친이 학살 때도 이 정도로 명분 없이 하진 않았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표라도 독립기구인 공관위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재의를 요청하려면 정식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런데도 그는 일방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어 비공개 최고위 회의 내용을 공개하고 공관위 결정에 불만을 토로했다. 분란을 일으키려는 언론 플레이나 다름없다. 최고위를 멋대로 연기한 것도 독단이다.

상향식 공천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공언한 김 대표가 공관위의 독주에 문제를 제기하려면 친박계 김태환 의원이 1차 컷오프됐을 때 시작했어야 한다. 서상기 주호영 권은희 홍지만 의원이 2차 컷오프됐을 때도 김 대표는 잠자코 있었다. 이후 친이계와 비박계가 우수수 탈락하자 뒤늦게 이의를 제기했다. 그 와중에도 권성동 김성태 김학용 박민식 등 김 대표 측 의원들은 살아남았다. 김 대표가 비박계 학살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다는 ‘쇼’를 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김 대표는 2014년 10월 ‘개헌봇물론’ 발언부터 최근 살생부 논란까지 몇 차례 박 대통령과 친박에 맞서다 30시간도 못 돼 물러서곤 했다. ‘30시간 법칙’이란 말이 그 바람에 생겼고,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비판까지 자초했다. 대통령과의 친소 관계에 따라 이뤄지는 듯한 여당 공천에 국민은 크게 실망했다. 대통령과 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한 것이 그 방증이다. 이런 상태라면 선거 뒤 집권당이 국정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심각한 난맥상을 해결하지 못하면 김 대표는 더는 “정치생명을 걸겠다”라는 말도 못하게 될 것이다.

4. 인공지능 산업에 1조 투자한다고 ‘숙제 검사’는 말아야

미래창조과학부가 어제 인공지능(AI) 등 지능정보산업 분야에 올해부터 5년 동안 1조 원을 투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KT, 네이버 등 6개 대기업이 30억 원씩 총 180억 원을 출자해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설립하면 재정에서 지원하는 방식이다. 지능정보기술이란 AI 개발 소프트웨어(SW)로 대표되는 ‘지능’에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등 ‘정보’를 결합한 개념을 말한다. 

하지만 정부가 1조 원 지원 방침을 밝히면서 “조기에 성과를 내도록 뒷받침하겠다”고 사족을 단 대목에선 뒷맛이 개운치 않다. 예산을 지원한 뒤 감사를 통해 해마다 일정 성과를 독려하는 방식은 사회간접자본(SOC)이나 제조업이면 몰라도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AI산업에는 어울리지 않는 ‘숙제 검사’다. 경쟁이 기본인 민간기업으로부터 돈을 걷어 공동 연구소를 만드는 방식도 관료주의 냄새가 난다. 

정부가 AI산업의 방향을 미리 정한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미래부는 지능정보산업의 핵심 분야를 ‘플래그십(주력 제품) 프로젝트’로 지칭하고 2019년까지 지식 축적 분야의 기술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정부가 깃발을 들며 ‘나를 따르라’고 하는, 1970년대 맨땅에 헤딩하듯 급조한 중화학공업 육성책을 연상시킨다. 정부 주도 개발시대의 추억에 젖은 관료가 AI산업의 밑그림을 성급하게 그리고 재촉할 일이 아니다.

AI산업은 자동차, 조선처럼 다른 나라 제품을 모방하면서 점차 기술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게 아니라 무(無)에서 무궁무진한 유(有)를 창조하는 분야다. 성패는 오직 추리력, 상상력에 달렸고 일단 선점하면 그걸로 승부는 끝이다. 게임의 열쇠는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다. 캐나다고등연구원은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의 말만 듣고 10년 동안 1000만 달러를 기계학습 분야에 투자했고 힌턴 교수는 ‘딥러닝’ 개념으로 AI 시대를 열었다. 

정부 예산으로 전문 인력의 저변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 만들 지능정보기술연구소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핵심 인력을 유치하는 것이 급선무다. 특히 연구소장에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전문가를 영입해 전권(全權)을 주고 관료들은 손을 떼야 한다.

[서울신문]

5. 北 인권문제 국제사회에서 공론화 주도할 때

어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북한 정권의 자금줄을 전방위로 차단하는 제재 조치들을 담은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북과 거래하는 제3국의 개인·기업·은행을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등 포괄적 금지 조항이 포함됐다. 특히 북한의 해외 노동자 송출을 금지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서 새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려는 시점에 나온 ‘인권 카드’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은 이미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 규명과 처벌 문제를 다룰 ‘전문가 그룹’ 설립을 권고하는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다. 북 인권 문제를 비핵화를 견인하는 수단으로만 바라볼 일은 아닐 게다. 우리는 이를 북한 주민들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인류 보편적 잣대로 다룰 때라고 본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어제 최근 북한이 여성 근로자들을 중국에 대거 파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2270호에 해외 근로자 파견 금지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점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의 인권 침해를 제재하는 조항을 넣은 행정명령을 발동한 것은 이런 빈틈을 메우려는 수순이다. 그러나 이는 김정은 정권의 자금줄을 죄는 차원 이상의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본다. 북한이 국외로 송출한 노동자들이 ‘노예 노동’으로 간주될 정도로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 아닌가. 중동 지역 북한 노동자들이 “월급의 70∼80%를 북한 당국에 상납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검열단에 뇌물까지 줘야 한다”는 RFA 보도 내용이 그 방증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간 북 인권 문제에 대해 제3자인 국제사회에 비해 미온적이었다. 유엔은 미국이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다음해인 2005년부터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해 왔지만, 우리 국회는 발의한 지 11년 만에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을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북 주민들이 당하는 인권 유린을 외면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다. 북 내부에서 벌어진 공개 처형이나 강제 수용소 감금 등을 못 막은 것은 고사하고 배를 곯다 국경을 넘으려던 탈북자들이 가혹한 처벌을 받는 것조차 방치해 왔으니 말이다.

매년 5000만 달러 수준인 유엔의 대북 인도적 지원도 제재 국면에선 늘어나기 어렵다. 북 주민들의 극심한 생활고를 덜려면 김정은 정권이 속히 핵·미사일 개발을 관둬야 할 근거다. 그럼에도 그제 서세평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 대사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우리 공화국 인민들은 날마다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다”고 인권 침해 사실을 부인했다. 잠꼬대 같은 소리지만, 북 인권을 논의하는 국제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던 북측이 다시 나타난 사실 자체가 이 문제가 김정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임을 말한다. 통독 전 서독이 그랬듯이 인권 문제 제기는 늘 주민의 삶보다 체제 유지가 우선인 전체주의 정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명분 있는 비대칭 무기다. 지구상 최악이라는 북 인권 문제를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앞장서 공론화해야 한다.

6. 중앙박물관 소장 유물 체계적으로 조사하라

약탈당한 것으로 알았던 지광국사현묘탑의 사자상이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었다는 어제 서울신문 보도는 허탈감을 느끼게 한다. 어떤 유물이 어디에 있는지 문화재 당국조차 알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국보 제101호 지광국사현묘탑은 고려시대 고승인 지광국사 해린의 승탑이다. 애초 강원 원주 법천사터에 있었지만 일본으로 반출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마당에 자리잡았다. 팔각원당형이 승탑의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화려하게 장식한 사각의 독특한 형태로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이렇듯 중요한 문화재마저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었으니 문화재 행정의 문제가 크다.

중앙박물관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사자상의 존재를 확인해 보존 처리를 거쳤고, 지난해에는 학술지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논문을 실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자상의 일제강점기 반출설(說)’이 학계에서 기정사실화되다시피 했던 마당에 그 존재를 확인하고도 공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오랫동안 수장고에 수많은 유물을 쌓아 놓고 있으면서도 기초적인 관리 카드마저 작성하지 않은 일종의 직무 유기를 숨기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또 이 같은 사실을 중앙박물관으로부터 통보받고도 인터넷 홈페이지의 ‘문화재 검색’ 코너에 슬며시 내용만 고쳐 놓은 문화재청도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문화재청은 6·25 전쟁 때 파괴된 것을 어설프게 복원한 지금의 지광국사현묘탑을 조만간 해체해 정밀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한편으로 지광국사현묘탑의 사자상이 알려진 것과 다르게 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었다는 소식은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앙박물관이 어떤 박물관인가. 광복 70년이 넘도록 국가 대표 박물관조차 유물 소장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국립박물관의 유물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품위 있는 선진 문화 국가로 대접받기를 원한다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은 모두 30만점에 이른다고 한다. 유물 조사에는 많은 인력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정부도 중앙박물관의 인력 확충에 인색하면 안 된다. 유물 정리는 꼭 정규직이 아니라도 좋을 것이다. 청년 실업 시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안이기도 하다.

7. 인문학 지원이 도리어 죽이는 꼴 안 돼야

인문학 발전 계획을 잘 세운 대학들에 교육부가 예산을 지원한다. 지난해 예고했던 ‘대학 인문역량 강화 사업’(코어 사업)이다. 어제 교육부는 사업 기준에 부합한 프로그램을 제출한 대학 16곳을 우선 선정해 발표했다. 해당 대학은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 7곳과 지방대 9곳이다. 선정된 대학들에는 앞으로 3년간 해마다 600억원의 예산을 나눠 주기로 했다. 참여 규모와 사업 계획에 따라 매년 12억~37억원의 목돈을 차등 지원한다.

이 사업은 대학 인문 분야 교육 프로그램에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최초의 정책이다. 인문학의 위상을 살리되 사회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인문학 교육 모델을 제시한 대학들을 밀어 주겠다는 것이다. 시대적 요구에 맞게 특화된 인문학 교육을 확대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전공 계열에 상관없이 학생들이 다양한 인문 교육을 받게 할 수 있다면 고사 위기의 인문학을 살리는 특단의 처방일 수 있다. 문제는 예산 잿밥에만 관심 있는 대학들과 그럴싸한 사업 계획에 정부가 헛돈을 쓰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인문학을 살리자고 내놓은 정책이 순수 학문의 뿌리를 말리는 꼴이 될까 걱정이 많다.

냉정히 따져 코어 사업은 태생적 한계를 안은 정책이다. 지난해 정부는 대학 이공계 강화를 목표로 ‘프라임 사업’을 추진했다. 이공계 학과 위주로 입학 정원을 조정하게 유도하는 대학 구조조정 사업이다. 안 그래도 위축된 인문계 학과들이 설 땅이 없어진다는 비판에 보완책으로 서둘러 나온 것이 코어 사업이다. 그러니 웬만한 대학들은 덩치가 큰 프라임 사업에 사활을 걸어왔다. 산업 수요를 고려해 구조조정을 잘하면 최대 300억원의 뭉칫돈을 주겠다는데 마다할 대학이 있을 리 없다. 교육부의 눈에 드는 사업 계획서를 만들겠다고 대학들이 지난 몇 달 동안 컨설팅 업체에만 매달렸다는 탄식이 들린다.

이런 마당이니 더 걱정이다. 정부가 제시한 코어 사업의 핵심 모델은 기존의 인문학과 프로그램을 사회 수요가 많은 학과와 융복합하는 것이다. 무게중심이 인문학에서 취업에 유리한 학과 쪽으로 옮겨 갈 수밖에 없다. “돈 되는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을 짜라”는 또 다른 신호로 읽힐 우려가 작지 않다. 신호를 따라오는 순서대로 상금을 나눠 주는 얕은 정책이어서는 인문학을 돌볼 수 없다. 계획과 달리 부실 운영을 하지는 않는지 앞으로 현장의 만족도까지 두루 챙겨 평가해야 한다. 실질적인 감독 의지가 뒤따라야 정책의 취지를 꾸준히 살려 나갈 수 있다.

[매일경제]

8. 규제프리존 성공하려면 부처 칸막이 먼저 없애라

정부와 새누리당은 어제 규제프리존특별법 제정을 위한 당정 협의회를 열어 이달 중에 입법화하고 5월부터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규제프리존은 전국 14개 시도에 총 27개 지역전략사업을 선정해 집중 육성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사업을 추진할 때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모두 철폐하고, 관련 법안이 없는 신산업에 대해서는 '그레이존'을 설정해 30일 안에 확인되지 않으면 규제가 없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방안도 담고 있다. 전략사업에는 드론과 자율주행자동차, 사물인터넷 등 신성장 산업이 포함돼 있어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 묘안이라는 점에서 조속한 도입이 절실하다. 새누리당은 "규제 개혁을 통한 경제살리기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는 만큼 야당과 함께 공동 발의하도록 하겠다"며 강한 추진 의지를 보였다. 

정부와 여당이 규제프리존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앞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사업 협의 과정에서 카지노 허가 확대와 연구용 난자 기증 등 수십 개 사업에 대해 해당 부처가 반대 의견을 내면서 도입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시작하기도 전에 부처 장벽에 가로막히면 규제프리존 도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야당을 설득해 여야 공동 발의로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공표했지만 일부 사업에 대해 야당이 반대하고 있어 입법화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야당은 규제프리존특별법의 일부 내용이 의료와 관광 분야 규제를 지나치게 완화할 수 있고 골목상권을 죽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당의 이런 의심을 불식시키지 못하면 규제프리존 도입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전략사업을 주도하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참여도 규제프리존 성패를 좌우한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해당 지자체는 철폐돼야 할 규제를 발굴하고 신산업 육성을 위해 중앙정부와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 규제프리존 도입은 각종 규제로 발전하지 못하는 신성장 사업을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수준까지 키우는 데 꼭 필요한 정책이다. 경제 성장이 정체되고 청년실업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비상시국이니만큼 규제개혁을 통한 경제살리기에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

9. 與 공천 자중지란이 국정 최대 걸림돌이 된 현실

새누리당의 친박·비박계 간 공천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김무성 대표가 17일 비박계 대거 탈락 공천안 추인을 거부하며 최고위원회의를 취소하자 친박(親朴)계 최고위원들이 따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하는 등 지도부가 아예 두 쪽으로 쪼개진 양상이다. 어제는 외부 공천관리위원들이 김 대표 사과를 요구하며 공관위 회의를 보이콧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상향식 공천만 외치다 현역 물갈이, 인재 영입, 국민 경선 어느 것 하나 해내지 못한 김 대표도 문제지만 기준도, 원칙도 없이 오로지 계파와 충성도만 따져 막무가내식 공천을 강행한 이한구 공관위원장과 친박계의 막가파식 행보도 끝을 모를 지경이다. 당 대표를 향해 "죽여버려" "바보 같은 소리" 등 막말이 난무하고 최고위원들끼리도 하극상이 횡행한다. 공천 탈락 의원들은 저마다 탈당, 무소속 출마를 공언하고 있으니 명색이 집권여당이 사분오열, 모래알 분위기다. 김 대표는 최종 공천 명단에 대표 도장을 찍지 않는 옥새 투쟁까지 각오하고 있다고 하고 청와대와 친박 주류들 역시 "김 대표와 같이 갈 수 없다" 며 일전불사 태세라고 하니 나라도, 국민도 안중에 없는 듯하다. 어제 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53.2%로 치솟고, 새누리당 지지율은 40.7%까지 떨어지는 등 당·정·청이 동반 추락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하든 새누리당의 70% 이상을 자기 사람들로 채우겠다는 친박계의 패권주의는 비례대표 선정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대선캠프 출신들은 물론 전·현직 관료, 공기관 수장들까지 직(職)을 내던지고 배지 앞에 달려드는 형국이다. 막말 파문으로 공천 배제된 윤상현 의원 지역구의 재공모를 미루는 것 역시 꼼수 중의 꼼수다. 새누리당 친박계 내에서는 악화되는 국민 여론에도 불구하고 "어중간한 170석보다는 친박으로 똘똘 뭉친 150석이 낫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도 150석을 자신하니 이 또한 오만의 극치다. 망국법으로 지탄받아온 국회선진화법은 고칠 생각도 없고 당권·대권만 챙기겠다는 의미다. 북한 핵 도발, 사상 최고 청년실업률 등 국가 안보·경제위기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데 집권여당이 패권 싸움에 여념이 없으니 나라의 앞날이 캄캄하다.

10. 美 북한 외화벌이 차단, 中·러 협력 끌어내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6일 발동한 대북 제재 행정명령은 김정은 정권의 자금줄을 전방위로 차단하는 조치여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난 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안을 보완하는 이번 행정명령에는 북한의 국외 노동자 송출을 금지하는 내용이 처음으로 포함됐다. 또한 광물 거래, 인권침해, 사이버 안보, 검열, 대북 수출·투자에 대한 포괄적 금지 조항과 함께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개인이나 기업, 은행을 제재할 수 있는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조항도 들어 있다.

이는 미국 정부가 김정은 정권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한 거듭된 도발에 대해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하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조치로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40여 개국에 10만명 가까운 노동자를 파견해 외화를 벌어온 김정은 정권은 실질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북한 노동자 송출 금지는 당초 유엔 안보리 제재안 작성 때 거론됐으나 중·러와 타협하는 과정에서 빠졌는데 미국 정부가 이번에 빈틈을 메운 것이다. 

미국 정부가 어느 때보다 강력한 대북 제재 조치를 발동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북한이 결국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하려면 더욱 치밀하고 효과적인 국제 공조가 필수적이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중단한 것도 북한 정권의 돈줄을 죄어 압박 강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과 러시아도 안보리 결의 이행을 위한 조치를 하나둘 취해 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북·중 접경지역에서는 중국 기업이 여전히 북한산 철광석을 반입한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북한 광물 거래 제한에 대해 중국은 민생 목적이거나 대량살상무기와 무관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는 내용을 관철시켰다. 러시아는 나진항을 통해 수출되는 러시아산 광물은 제재 영향을 받지 않도록 했다. 이는 자칫 북한 돈줄 차단에 큰 구멍이 될 수도 있다. 추가 핵실험을 공언하는 북한을 강력히 응징하려면 중국과 러시아가 한·미의 대북 제재에 적극 협력하면서 자국의 제재 조치에 어떤 빈틈도 없도록 보완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뉴시스][리뷰]홍광호, 귀를 호강시키는 위로의 목소리…뮤지컬 '빨래'

홍광호(33)의 달콤한 목소리가 삶의 묵은 때를 빨래하듯 씻겨냈다. 16일 오후 4시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1관 뮤지컬 '빨래'에서 벌어진 마법 같은 순간이다. 풍성하고 고급스런 홍광호의 목소리는 '꿀성대'로 통한다. 꿈결에 들려오는 듯하다. 귀가 호강하는 동시에 위로를 받는다. 

홍광호는 '맨 오브 라만차' '지킬 앤 하이드' '노트르담 드 파리' '데스노트' 등 대극장 라이선스 뮤지컬을 통해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2014년 영국 런던에서 개막한 '미스 사이공' 25주년 기념 뉴 프로덕션의 베트남장교 '투이' 역을 맡아 '2014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월드닷컴 어워즈' 조연 남자배우상, '제15회 왓츠 온 스테이지' 최고조연상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인정 받았다.

'빨래'는 250석짜리 소극장 창작뮤지컬이다. 홍광호는 앞서 2009년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 오른 '빨래'에서 몽골 이주노동자 '솔롱고' 역으로 호평 받았다. 당시 홍광호가 부른 솔롱고 넘버 '참 예뻐요'도 인기를 누렸다. 이후 자신의 콘서트에서도 이 곡을 자주 불렀다. '빨래'에 애정을 놓지 않던 그는 바쁜 스케줄과 높은 몸값에도 7년 만에 돌아왔다. 

4월 공연 티켓 13회차가 오픈 동시에 2분, 3월 공연 티켓 12회차가 3분 만에 매진됐다. 평일 낮 공연임에도 이날 역시 객석은 가득 찼다. 

대극장에서 공연 전체를 서서히 덮어가며 웅장하게 녹아냈던 홍광호의 목소리는 소극장에서 서서히 번져갔다. 서울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솔롱고와 서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나영' 등 서민들의 팍팍한 인생살이는 관객들에게 저릿저릿 다가온다. 

홍광호의 스타성을 확인하는 순간들로 공연장은 터질 듯했다. 초반 솔롱고의 솔로곡 '안녕'을 부르고 2층 무대에서 씨익 웃는 장면은 관객들의 환호를 자아냈다. 잔잔한 하모니카 연주는객석을 위한 보너스였다. 나영이를 지켜보며 부르는 '참 예뻐요'에서 다른 등장인물들의 동작은 멈춰 있고 솔롱고만 홀로 노래를 부르는데, 실제 시간도 멈춘 듯했다. 

홍광호의 연기력은 한층 탄탄해져있었다. 특히 서점에서 불법해고를 당한 선배를 위해 사장인 '빵'에게 대든 뒤 술을 먹고 취한 나영이 솔롱고의 집주인과 싸움이 붙었을 때가 정점이다. 나영이를 보호하면서 대신 맞는 모습에 객석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능수능란함도 늘었다. 2막 초반 일종의 보너스 장면으로 홍광호가 베스트셀러 소설 '빨래하는 남자'의 작가로 변해, 나영이가 일하는 서점에서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선글라스를 낀 채 건들거리며 사인해주는 모습에 관객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망가진 모습에서도 홍광호는 품위를 잃지 않는 태연함을 보였다.

홍광호는 이처럼 존재감을 발휘했지만 튀지 않는 묘를 발휘한다. '빨래'는 앙상블의 뮤지컬이다. 솔롱고와 나영 외에 반신불수 딸을 돌보는 주인할매, 동대문에서 여자 옷을 파는 과부 등 서민들이 어우러지며 위로를 받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빨래'를 함께 하며 쌓인 때와 그 속의 아픔까지 씻어버린다. 

솔로 넘버에서 오롯이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지만 앙상블에서는 다른 7명의 배우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다. 홍광호는 이처럼 능수능란하게 힘을 조절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이를 통해 새삼 '빨래'가 좋은 작품이라는 걸 환기시킨다. 그가 이 작품에 애정을 갖고 있는 이유다. 홍광호가 '홍롱고'인 이유다. 

지난해 6월 10주년 특별공연을 선보인 '빨래'는 11년차에 들어서도 이 시대에 없어진 것으로 보이는 감성과 정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스타배우와 작은 소극장 뮤지컬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는 모범사례가 됐다. 

이번 시즌에서는 어쿠스틱 기타, 퍼커션, 첼로 등 라이브 밴드가 함께 한다. 18차 프로덕션으로 지난 10일 개막했다. 내년 2월26일까지 동양예술극장 1관. 홍광호는 4월24일이 마지막 출연 회차다. 

2. [프레시안]환경운동가의 카페? 변절하든가 망하든가!

최근 나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생겨나기도 하고, 가장 많이 망하기도 한다는 카페 사업에 뛰어들었다. 10년을 환경, 기후 변화, 에너지만 고민하던 활동가이자 연구원인 내가, 커피를 사기만 했지 팔아본 적도 없던 내가, 장사의 영역으로 넘어오니 에너지 문제는 아주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요즘 느끼는 것이 장사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한다는 것이다.

가계는 주차장이 넓어서 차를 가지고 오기 편해야하고, 낮은 건물이라도 엘리베이터가 있어 오르내리는 수고를 덜어줘야 한다. 상점 안은 인버터 냉난방기가 설치되어 있어 비효율적이지만 냉난방기를 시야에서 가려준다. 마지막으로 설치는 되어 있지만 잘 쓰이지는 않는 비데가 화장실에 설치되어 있어야 손님들이 기본적으로 괜찮은 곳이라고 인지한다고 한다. 이것이 내가 처음 배운 장사의 영역에서 에너지를 대하는 자세다.

적정 온도를 이야기하고, 인버터 냉난방기의 비효율성을 이야기해왔던 내가 이런 첫 경험을 통해 내면의 갈등이 시작될 즈음 또 다른 충격을 받게 됐다. 왜냐하면 상업용 전기제품의 전력 소비는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스무디나 주스를 만드는 블렌더는 상업용이 1.3킬로와트 정도는 넘어줘야 쓸 만하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영업용 커피머신은 4킬로와트가 상시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일반 가정의 계약 전력이 3킬로와트인 것을 감안하면 커피 머신 하나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영업용 제품에는 에너지 효율 등급이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가정용처럼 눈으로 바로 확인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마음먹고 한 걸음 한 걸음 장사의 영역으로 들어설수록 나는 에너지나 기후 변화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너무나 당연한 소리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의 질문을 던지고 싶다. 무엇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하는 걸까? 의식 없는 사업자의 문제인걸까? 그것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문제인걸까? 아니면 이것을 방치한 제도의 문제인 걸까?

아직은 먼 이야기, 탈핵과 에너지 전환

암묵적으로 우리가 더 많은 에너지를 쓰도록 강요받고 강요하는 것은 한국의 중앙 집중식 에너지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맹점일 것이다.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는 시스템, 그래서 내가 장사를 하면서 더 효과적으로 에너지를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수입과 지출로 나가는 에너지 비용으로만 대변되는 시스템 그래서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수익만 나면 그만인 것이 된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는 여름철 문을 열고 냉방을 하는 것으로 에너지의 과소비를 막고 있다. 매년 전국적으로 에너지 컨설턴트들이 육성되고 이들은 전반적인 에너지 컨설팅뿐 아니라 여름철 문을 열고 냉방을 하는 영업점을 단속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그런데 무언가 아쉽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 벌금이나 불이익을 주는 네거티브한 방식밖에 없는 것일까?

지난 3월 11일은 후쿠시마 사고 5주기다. 근 5년 동안 탈핵과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에 대해 많이 떠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 같다. 먹고사는 문제는 정부가 이야기하는 신, 재생 에너지를 통한 산업의 육성과 일자리 창출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시민들이 일상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떠들던 그곳에 시민들은 얼마나 있었는 고민해본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금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떠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3.  [동아일보][횡설수설/이진]편지의 힘

5년 전 일본 미야기(宮城) 현의 한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오이카와 리나 양(당시 12세)은 선생님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봉투 겉면에는 ‘엄마가 리나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누구에게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다오. … 네가 숙녀가 되고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 가족 모두 너를 도와가며 함께 힘을 모을게. … 리나의 웃는 얼굴과 말에 언제나 힘을 얻는단다. 고마워.’ 하지만 힘이 되어주겠다던 엄마는 곁에 있지 않았다. 20일 전 동일본 대지진이 일으킨 지진해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마치 하늘나라에서 보낸 듯한 이 편지는 학교 측이 학부모들에게 졸업하는 자녀에게 써달라고 2월 말에 부탁해 동일본 대지진이 나기 전에 받아놓았다. 교사들은 진흙탕으로 변해버린 교무실을 일주일간 필사적으로 뒤져 편지 보관함을 찾아냈다. 진흙으로 엉망이 된 봉투를 뜯어 편지를 읽는 딸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교생이 되었을 리나 양에게 이 편지는 세상을 뜬 엄마 대신 늘 곁에 있을 것이다. 

▷일본 이와테(巖手) 현의 한 언덕에는 ‘표류 포스트 3·11’이라는 우체통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지진해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생존자들이 보낸 편지들이 이 우체통으로 모여든다. 이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아카가와 우지 씨는 재작년 빨간 우체통을 설치했다. 카페를 찾는 이들이 사연을 읽고 눈가를 훔친다. 편지는 떠난 자와 남은 자를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된다. 서로의 마음이 전달된다는 희망이 싹트고 생활의 버팀목으로 기능한다. 전남 진도의 팽목항에도 ‘하늘나라 우체통’이 있다.

▷‘언제나 경기에 함께할 테니 정진하라. 내가 가르쳐준 것을 잊지 말라.’ 봅슬레이 세계 최강자가 된 원윤종-서영우가 이 구절에 눈물을 쏟았다. 그제 한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두 사람은 암으로 숨진 맬컴 데니스 로이드 코치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 같은 당신 덕분이었다며 ‘존경하고 사랑한다’로 편지를 끝냈다. 좌절하지 않겠다, 평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약속은 살아남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4. [동아일보][@뉴스룸/노지현]“방금 그 손님, 제 점수는요”

요즘 개인택시 회사택시 할 것 없이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쓰는 택시가 부쩍 늘었다. 스마트폰 덕분에 이용객과 택시기사 간에 편리한 점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큰길까지 나가서 택시를 잡아야 했지만 이제는 손님이 서 있는 곳까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찾아 들어온다. 몸이 불편한 노인도 바깥출입이 수월해졌다. 콜 호출 전에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입력하기 때문에 택시기사들도 이용객을 선택할 수 있다. 택시를 잡고 “○○ 가요?”라고 물어야 하는 이용객의 수고로움도 덜고 기사 역시 “거기 지금 못 가요”라고 말해야 되는 번거로움을 덜었다.

그런데 한 택시기사는 “몇 번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써보니 20, 30대 여자 손님은 피하고 싶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여자들은 호출하기를 누르고 화장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보통 근처에 있는 기사가 배정을 받아 오기 때문에 호출하기 버튼을 누른 후 2, 3분이면 손님 집 앞에 도착한다. 하도 사람이 안 나와 전화를 걸었을 때 “지금 나가요” 하면 그로부터 5분 정도 걸리고 “조금만 기다리세요” 하면 10분 이상을 기다리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전화 너머로 머리 말리는 드라이어 소리가 들리는데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면 기사들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나온 손님에게 “왜 이리 늦었느냐”고 기사가 항의하기도 어려웠다. 이용객은 방금 탄 택시의 기사를 별점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 성희롱은 단번에 퇴출. 불친절도 누적이 되면 택시기사에게 불이익이 간다. 별점이 낮은 기사일수록 콜을 적게 보내거나 늦게 보낸다. 지금까지는 택시를 잡은 후 차내가 담배냄새로 가득 차 있어도 참고 목적지까지 가야 했지만 이제는 “냄새 때문에 불쾌감을 느꼈다”는 의견도 보낼 수 있다. 일종의 점수 매기기다.

그러나 택시들도 최근 대등한 무기를 받았다. 고객 점수 매기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실컷 손님이 서 있다는 장소까지 갔더니 손님은 사라졌다. 택시가 오는 사이 손님이 근처의 눈에 띄는 다른 택시를 타고 가버리는 경우가 기사들이 갖는 가장 큰 불만이었다. 신뢰가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술 먹고 토한 뒤 수고비도 없이 내려버린다든지, 장시간 기사를 대기시키는 이용객 역시 낮은 별점을 받을 것이다. 서로서로 점수를 매기고 있는 셈이다. 

‘다시는 이 손님 받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 계속 쌓이면 그 이용객은 다음에 아무리 호출하기를 눌러도 택시가 잘 오지 않는다.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택시들도 공유해서 기피하기 때문. 요즘 이상하게 택시가 배정이 안 됐다면 스스로 한 번 고민해봄 직하다.

이쯤에서 엉뚱한 상상도 해볼 수 있다. 인공지능(AI)이 발달하면 서비스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를 종합적으로 수집, 판단해 ‘좋은 사람’부터 ‘나쁜 사람’까지 다섯 개짜리 별표로 구분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가 ‘진상’ 손님이나 ‘진상’ 주인을 쉽게 피할 수 있지 않을까.

5. [동아일보][광화문에서/박중현]비혼시대의 축의금

책상 한 귀퉁이에 청첩장이 쌓이기 시작했다. 결혼 시즌이 왔다는 뜻이다. 한 장 한 장이 청구서다. 5만 원권이 처음 나온 2009년에 느꼈던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7년 새 축의금 최저 금액이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훌쩍 뛰었다. 5만 원짜리를 두고 굳이 1만 원짜리 3장을 봉투에 넣는 건 “당신과 안 친해”라고 대놓고 내색하는 일 같아 마음이 켕겨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개인들이 5만 원권을 보유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조금 용도였다.

지출 증가가 걱정되긴 하지만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3포 세대’면서 결혼에 골인하는 청년들이 기특하단 생각도 든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겐 부모 세대부터 투자해온 결혼 축의금을 회수하는 것조차 쉽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비혼 선언’을 하고 친구들로부터 축의금을 돌려받으려는 젊은이들까지 나온다.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며 그동안 낸 축의금을 내놓으란 요구다.

경조금은 폐쇄적 농경사회에서 만들어진 상호부조 시스템이다. 이탈이 적고 이웃의 숟가락 수까지 꿰고 사는 마을 공동체 내에서 쌀, 포목 등 현물로 낸 축의금은 시간이 지나도 손실 없이 고스란히 돌아올 공산이 컸다. 하지만 6·25전쟁, 급격한 도시화로 이동성이 커지고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이런 틀이 깨졌다.

화폐로 내는 축의금에는 인플레이션 문제도 생긴다. 시대가 변해도 축의금은 면피성, 보통, 적극적 축의금의 3개 등급이 유지된다. ‘1-2-3’ ‘2-3-5’ ‘3-5-10’ ‘5-10-20’ 비율이 반복되는 게 특징이다. 1990년대 초반 1만, 2만, 3만 원,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2만, 3만, 5만 원, 2000년대 중반 이후 3만, 5만, 10만 원이던 축의금은 현재 5만, 10만, 20만 원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10여 년 만에 최저 등급의 면피성 축의금이 66.7%나 올랐다.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시대에 보기 힘든 인상률이다. 호텔 결혼식 등으로 일반 물가보다 가파르게 오른 결혼 비용이 반영된 탓이다.

대상이 한정된 부의와 달리 축의금은 계산이 어렵다. 집집마다 자녀 수가 달라서다. 이런 이유로 과거에 어른들은 다른 집 ‘개혼(開婚)’, 즉 형제 중 첫 번째 결혼 때 축의금을 제일 많이 냈다. 두 번째에는 개혼의 70∼80%, 세 번째에는 50% 정도로 금액을 낮추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혼, 재혼이 빠르게 늘면서 셈법이 난해해졌다. 다른 집 자녀가 재혼할 때 초혼 때와 같은 축의금을 내야 할지, 줄인다면 얼마나 적게 내야 할지 마땅한 기준이 없다. 

반대로 자녀의 결혼이 늦어지거나, 아예 결혼하지 않는 자녀가 있을 경우 부모들은 축의금을 회수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모든 변수를 고려해 장기간 축의금 손익을 맞추려면 알파고의 계산 능력이 필요할 지경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몇몇 선진국들처럼 동성결혼까지 허용된다면 일이 더 복잡해진다. 최근 외신에는 일본IBM이 동성 파트너가 있다고 신고한 사원에게 회사 차원의 결혼 축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청년들의 비혼 선언을 두고 “결혼이 장난이냐”며 눈살 찌푸릴 어르신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높아진 결혼의 허들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장기간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는 게 부당하다고 느끼는 청년들의 선택은 그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그래서 내 주위에 비혼을 선언하는 젊은이가 있으면 불평 없이 축의금을 낼 생각이다. 결혼조차 힘겨운 사회를 만든 기성세대로서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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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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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7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끝내 송사에 휘말린 정명훈 마에스트로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끝내 명예스럽지 못한 송사에 휘말리게 됐다.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로부터 위자료 손해배상 소송과 함께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당한 것이다. 그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박 전 대표의 성희롱과 폭언 의혹을 사실처럼 표현한 것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모든 문제를 떠나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마에스트로가 이처럼 불미스런 사건의 당사자가 됐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번 민형사 소송은 서울시향 직원들에 의해 제기됐던 박 전 대표의 성추행 의혹이 경찰 수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난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당하고만 있던 박 전 대표가 수사가 마무리되면서 반격에 나섰다는 얘기다. 해당 직원들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으며, 처음 의혹이 제기되자 이를 사실로 확인됐다고 발표한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 3명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소송이 청구됐다고 한다.

이번 사태가 서울시향의 운영과 콘서트를 각각 책임지고 있던 박 전 대표와 정 전 감독 사이의 미묘한 감정 대립에서 비롯됐다는 자체가 겸연쩍은 일이다. 피해자의 입장이던 박 전 대표는 사태의 배후에 정 전 감독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 전 감독이 규정에 어긋난 회계처리를 해 왔고, 이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게 되면서 불편을 느꼈던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느 쪽을 두둔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껏 일련의 사태가 진행되면서 정 전 감독이 자신에 대한 문제 제기에는 아무런 해명도 없이 박 전 대표의 ‘인권 유린’에만 공격의 초점을 맞췄던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난 연말 서울시향을 떠나면서도 단원들에게 “전임 대표 때문에 직원들이 박해를 당했다”는 편지를 남겼다. 지금의 송사가 제기된 것이 그런 결과다.

예술은 예술의 논리로 풀어가는 게 합당하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습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시민단체 고발에 의해 경찰이 정 전 감독에 대한 업무비 횡령 여부를 추가 확인 중에 있으며, 이메일을 통해 서울시향 실무에 부당하게 개입해온 정황이 드러난 그의 부인은 기소중지 상태다. 예술로 풀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것 같다. 옳고 그른 것이 검찰과 법원에서 최종 가려지길 바란다.

2. 의사·변호사 속득탈루 발본색원해야

신용카드와 함께 현금영수증 발급이 의무화된 게 2010년부터다. 그러나 의사와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 상당수가 여전히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세금을 안 내려고 소득을 숨기려는 의도라고 밖에는 달리 생각하기 어렵다. 파렴치한 범죄행위인 동시에 봉급생활자 등 성실 납세자들과의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공평과세와 조세정의 차원에서도 엄벌해야 마땅하다.

국세청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들이 지난해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아 적발돼 물린 과태료가 11억 5000만원이었다. 전체 액수로는 크지 않지만 2010년(8600만원)에 비해 무려 13배 이상 늘어났다는 사실이 심각하다. 2014년(8억8300만원) 보다도 30% 증가했다. 건당 평균 과태료도 165만원으로 나타났다. 소득을 감추려는 불법행위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수법은 대체로 일정하다. 고객들에게 대금 지급을 현금으로 하도록 유도하고는 차명계좌로 입금받는 방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간이영수증을 써주거나 일부 액수에 대해서만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준다고도 한다. 특히 의사들에 있어서는 “현금으로 결제할 경우 수술비를 깎아준다”고 조건을 내걸고 현금영수증을 발행하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적발된 사례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라는 점이다. 현금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데다 일일이 현장을 쫓아다니며 적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 전문직 자영업자 270명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 소득적출률이 33%였다. 100만원을 벌면 67만원만 소득으로 신고하고 33만원은 숨겼다는 것이다. 이로 미뤄 세금 탈루 규모가 엄청날 것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소득 탈루는 국가의 세수 누수뿐 아니라 지하경제의 온상이 된다. 공평과세의 원칙을 무너뜨려 계층 간 위화감을 키우기도 한다. 국세청은 현금영수증 미발행 사업체에 대해서는 즉각 세무조사에 착수하는 등 보다 철저하게 세원을 관리해야 할 것이다. 현금영수증 미발급액의 50%를 물리도록 돼있는 과태료를 높이는 등 처벌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고소득자들의 탈루 소득을 끝까지 찾아내겠다는 각오로 발본색원해야 한다.

[서울신문]

3. 혼돈 정국에서 더 중요해진 유권자의 판단력

여야의 공천 작업이 마무리돼 가고 있지만 이번 총선 정국은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하다. 총선을 준비하면서 공천과 낙천으로 예비후보들의 희비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느 정도의 잡음과 혼돈 또한 ‘성장통’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객관적인 여론조사 결과든 계량화된 경쟁력 평가든 최소한 공천 기준만 명확하다면 사실 걱정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누가 봐도 부족한 사람인데 ‘진박’이라는 이유로 공천장을 거머쥐고, 이유도 댈 수 없는 정무적 판단으로 핵심 ‘친노’에게 낙천장을 내민 여야의 이번 공천은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공천은 능력과 인품을 갖춘 인재를 뽑아 유권자들에게 선택해 달라고 요청하는 정당의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현역 의원이라 해서 프리미엄을 누릴 수 없고, 특정 계파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아서도 안 된다. 새누리당의 ‘3·15 공천 결과’를 이른바 ‘비박 학살’로까지 부르며 비판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찍힌 유승민 의원과 가까운 인사들이나 친이계의 수장 격인 이재오 의원, 기초연금 항명 파동의 진영 의원 등을 모두 배제하고, 그 자리를 진박 인사들로 채운 것은 사실상 ‘박심(朴心) 공천’과 마찬가지다.

유 의원의 사활 여부가 새누리당 공천의 화룡점정이 되겠지만 이미 클라이맥스는 넘어섰다. 새누리당은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지 않는 사람은 도덕성이나 경쟁력에 문제가 없더라도 함께 걸어갈 수 없다는 점을 이번 공천에서 분명히 보여 줬다. 정치권에서는 벌써 총선 이후 친박 핵심 A의원이 당대표, B의원이 국회의장에 올라 박 대통령 임기 후반기 당과 국회를 장악하려 한다는 시나리오까지 돌고 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국회 및 정치개혁과 무관한 사당(私黨) 정치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던져 준다. 민심을 제대로 읽었는지 묻고 싶다.

당장 여당의 총선 전망에도 빨간불이 켜지고 있지 않은가. 실제 낙천 당사자들이 보복 정치라며 반발하고, 유권자들 또한 수긍하지 못하면서 탈락자들의 무소속 출마가 봇물을 이룰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실장 출신인 임태희 전 의원은 이미 새누리당의 사당화를 비판하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새누리당 낙천자들 사이에서는 ‘비박 무소속 연대’ 움직임도 엿보인다고 한다. 친노 좌장 이해찬 의원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낙천자들도 대거 무소속 출마를 준비 중이라고 하니 일여다야 구도와 함께 그 어느 때보다 혼돈의 총선이 될 것 같다.

유권자들로선 이래저래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후죽순처럼 늘어선 후보들 가운데 능력과 인품을 겸비한 인재를 고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공천 논리가 100% 잘못됐다고 볼 수도 없고, 양당의 낙천자들을 흡수하겠다는 국민의당의 태도를 비난만 하기도 힘들다. 무소속 출마자들 가운데 감춰진 보석이 있을 수도 있다. 유권자가 눈을 떠야 한다. 상향식 공천과 한참 먼 여야의 공천 파행, 특히 새누리당의 공천 독선은 결국 표로써 심판할 수밖에 없다. 더는 국민을 우습게 알지 못하도록 똑똑한 한 표를 행사해 혼돈을 바로잡아야 한다.

4. 실업률 역대 최고 12.5%, 슬픈 청년

청년실업률이 지난달엔 12.5%로 16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았던 지난해 같은 달의 청년실업률 11.1%보다도 1년 만에 1.4% 포인트나 높아졌다. 그동안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지만 청년층의 취업 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어제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동향’에서 눈에 띄는 것은 청년실업률의 2개월 연속 최고 기록 행진이다. 2월 전체 실업률도 4.9%로 2010년 2월 이후 가장 높았지만 청년실업률이 그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청년층의 취업난이 더욱 악화되고 고용시장의 질도 더 나빠지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늘어난 청년층 취업자 중 아르바이트, 인턴, 비정규직 등이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다. 청년 취업자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나 임시직 등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그만둬야 하는 곳을 첫 직장으로 잡은 청년 비중이 40%에 육박하고 있고 그나마 1년 이하의 계약직도 19.5%에 이른다. 정부는 청년 취업난 해결을 위해 다각적인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노동시장에서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청년층의 ‘고용 절벽’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일깨워야 한다.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청년 고용 대책은 숫자 채우기 등에만 급급한 보여 주기식이라는 비판도 많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앞다퉈 내놓는 대책들도 사탕발림성 공약이 대부분이다. 일자리 부족이나 취업난이 특정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청년층이 미래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에너지를 활용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현 정부 들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쏟아부은 천문학적인 예산이 제대로 집행됐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전망도 좋지 않다. 정부와 민간 연구소들은 올해 신규 취업자 수가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대로 두고만 보다가는 청년 취업난은 더욱 악화되고 노동시장의 질도 나빠진다는 것이다. 정부의 청년층 일자리 창출 정책이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만큼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 일자리 나누기, 창업과 고용 지원, 노동시장 경직성 완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다음달 청년·여성 고용 대책을 발표한다고 한다.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 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5. 심각한 소득 양극화 언제까지 두고만 볼텐가

우리나라의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 가까이 벌어들이는 등 소득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어제 공개된 국제통화기금(IMF)의 ‘아시아의 불평등 분석’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소득 양극화 수준은 아시아 최고에 이르렀으며, 이런 현상이 사회적 계층 이동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기준 45%에 이르렀다.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아시아 국가 22개국 중 가장 높다. 한국에 이어 싱가포르가 42%, 일본이 41%로 뒤를 이었고, 뉴질랜드 32%, 호주 31%, 말레이시아 22% 순이었다. 특히 우리의 불평등 심화 속도는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빠르다. 1995년 29%에서 18년 사이에 16% 포인트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아시아 국가 전체의 평균이 1~2% 포인트 늘어난 데 비하면 불평등 심화 속도는 압도적이다. 한국의 소득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은 5% 포인트 늘어난 12%로 싱가포르에 이어 2위였다.

보고서는 소득 상위계층의 소득 점유율이 높아지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중기적으로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소득 하위계층의 점유율이 높아지면 고성장의 동인이 된다고 덧붙였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면 성장 속도가 지체되고, 지속성도 떨어진다는 의미다. IMF의 이번 분석은 경기 부양과 기업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춘 우리의 경제 정책을 뒤돌아 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소비층의 다수를 차지하는 하위 90%의 소득을 늘리지 않고서는 경제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독일경제연구소(DIW)는 경기 부양과 디플레 방지를 위한 유럽중앙은행의 강력한 양적완화적 통화정책이 증권, 부동산 등을 보유한 고소득층의 주머니만 불려 오히려 빈부격차를 확대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얼마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서도 한국 사회가 역동성을 살려 경제 발전과 사회 통합을 이루기 위해선 소득 불평등 해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소득 불평등은 학력과 직업의 대물림 현상으로 이어져 사회적 이동을 어렵게 하고, 이는 빈곤의 고착화, 경제성장 지체로 진행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적 어려움이 꼭 소득 불평등 심화 때문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소득 양극화가 우리 경제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사회 통합을 방해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소득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

[동아일보]

6. 총선을 '대통령 선거'로 끌고 가는 이유가 궁금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부산을 찾았다. ‘3·15 비박(비박근혜) 학살’이란 오명을 덮어쓴 새누리당 7차 공천 발표 바로 다음 날이고, 선거 불공정 논란을 빚은 대구 방문 엿새 만이다. 청와대는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 1주년에 맞춰 이뤄진 것”이라며 선거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찾은 사하사랑채 노인복지관에는 지역구에서 공천 경쟁을 벌이는 친박(친박근혜) 허남식 전 부산시장이 모습을 보였다. 창조경제센터가 있는 해운대갑과 그 옆 기장군에도 진박(진짜 친박) 예비후보들이 경선에 나선 상황이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대통령이 굳이 지방을 찾는 것은 공정성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아도 시중에는 ‘이번 총선은 박근혜 선거’라느니, ‘공천이 아니라 박천(朴薦)’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박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박힌 인사들이 사실상 모조리 컷오프(공천 배제)됐기 때문에 ‘보복 정치’라는 말도 나온다. 2008년 18대 공천에서 친박 인사들이 대거 공천에 탈락했을 때 당시 박 대통령은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는 말로 국민의 정서를 자극했다. 그 뒤 상당수가 살아 돌아왔고, 19대 총선에서 친이(친이명박)계에 보복도 했으며,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이제는 그 보복을 끊어야 했다. 그런데도 ‘진박 마케팅’이라는 비판까지 들으며 지방 방문을 계속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박 대통령이 4·13총선에 매달리는 것이 후반기 국정 운영의 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는 설명도 있다. 그러려면 야당의 협조는 물론이고 여권 전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더 얻어야 하는데 정치 보복 공천으로 분열의 골이 깊게 파여서야 어떻게 국정에 협력을 이끌어낼지 걱정이다. 

그렇게 밀어준 진박 또는 친박 후보들이 언제까지 충성을 바칠지도 모를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7대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지지를 호소했다가 탄핵소추까지 당했다. 그 역풍으로 당선된 운동권 출신 ‘탄돌이’ 의원들로부터 임기 말 철저히 배신당한 것을 박 대통령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대통령이 총선에 집착하는 것이 집권 후반기의 레임덕(권력누수) 방지를 넘어서 퇴임 후 정치 세력화를 겨냥하는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이번 지방 행차는 TK(대구경북)에 이은 PK(부산경남) 방문이라 지지기반인 영남의 세력화에 나선 것 아니냐는 설도 무성하다. 대통령이 사심 없이 국정을 운영하면 여당은 물론이고 국민도 대통령의 편이 된다. 그런데도 굳이 총선 개입 논란을 자초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국민의 정치 수준이 훨씬 높다는 것을 대통령부터 깨달았으면 한다.

7. 역대 최고 청년실업이 공무원시험 탓이라는 정부

지난달 15∼29세 청년실업률이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1999년 6월 이후 최고 수준인 12.5%를 기록했다고 통계청이 어제 발표했다. 해마다 졸업시즌인 2월의 청년실업률이 높긴 했지만 전달보다 3%포인트 치솟은 실업률은 예사롭지 않다. 전체 실업률은 4.9%로 2010년 2월 이후 6년 만의 최고치다. 이런 추세라면 정부는 올해 고용률 66.3%, 신규 일자리 35만 개 창출 목표치를 일찌감치 수정해야 할지 모른다.

고용노동부는 청년실업률 증가가 1월 말 공무원 9급 공채 원서를 낸 인원이 예년보다 3만 명 이상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험 준비만 하면 사실상 백수라도 실업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원서를 내면 구직활동으로 간주되는 바람에 실업자 수가 늘었다는 수박 겉핥기 식 진단이다. ‘공시’에 청년이 몰리는 것은 괜찮은 일자리가 민간 부문에 없다는 구조적 문제인데도 일시적 현상으로 우기는 정부의 시각이 걱정스럽다. 

한국의 고용시장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대졸자 가운데 일을 하지 않고 교육도 받지 않는 니트(NEET)족 비율이 24.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 아르바이트생, 취업준비생 등 사실상 실업자를 포함한 체감 실업률은 공식 실업률(4.9%)의 2배를 웃도는 12.3%다. 20년 전 일본처럼 청년실업률이 10년 이상 상승하는 장기침체기에 우리도 빠져 있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정부는 21일로 예정했던 청년·여성 일자리 대책 발표를 4월 말로 연기했다. 총선을 앞두고 준비해온 청년 구직수당제도가 포퓰리즘으로 비판받을 것을 우려한 일보 후퇴다. 남은 기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신산업의 세상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대책을 만들기를 바란다. 어제 국무조정실이 내놓은 규제 정비 계획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산업 투자위원회’ ‘규제 최소성의 원칙’ 같은 용어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화려한 명칭의 기구와 현학적인 구호의 이면에서 관료들은 집요하게 새 규제를 만들어낸다. 장고에 들어간 고용대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규제의 판을 갈아엎는 혁신적 구상이 나와야 한다.

8. 親文 살린 野 김종인, ‘잃어버린 8년’ 심판할 자격 있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어제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이번 총선은 ‘새누리당 정권의 잃어버린 8년’을 심판하는 선거”라고 규정했다. 4년 전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공약(公約)에 관여했던 그가 정부여당의 공약(空約)을 비판하며 ‘경제 심판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제 킹메이커 노릇은 더 이상 안 할 것”이라고 밝힌 김 대표가 스스로 킹이 되겠다고 나설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듣기에 따라선 새누리당을 심판하고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하려면 자신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대체로 총선은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띠는데 이번 총선은 좀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도 “정치권에서 진정으로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를 고민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야당 심판론을 재차 강조했다.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꼽히는 김 대표로서는 이런 프레임을 새누리당 심판론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마침 어제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3년 현재 45%로 아시아 국가 중 최대라는 ‘아시아 불평등 분석’ 보고서를 내놓았다. 김 대표가 2017년 대선의 시대정신을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라고 진단한 것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만능열쇠’인 양 강조하는 김 대표의 발언에는 전폭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경제 살리기가 절실한 상황에서 더민주당은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들을 악(惡)인 것처럼 국회 통과를 가로막았다. 김 대표도 열흘 전 민주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노조가 사회 문제에 집착하면 근로자 권익 보호는 소외된다”고 지적했지만 노조가 반대하는 노동개혁 4법 처리에는 협조하지 않고 있다. 

한국 경제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정치라는 말이 있다.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정치 문제를 해결하려면 야당의 정치 행태도 반드시 뜯어고쳐야 한다. 김 대표가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를 청산한다며 ‘개혁 공천’을 했다지만 친문(친문재인) 의원들은 대부분 공천 관문을 통과했다. 과연 김 대표가 총선 전에 더민주당의 DNA와 정강 정책까지 바꿔 놓을 수 있는가. 친노와 체질이 다르지 않은 친문세력을 이끌고 새누리당의 8년을 심판할 자격이 있는지 김 대표는 돌아보기 바란다.

[매일경제]

9. 기준도 원칙도 없는 공천학살, 유권자를 뭘로 보나

새누리당이 253개 지역구 중 250개 지역에 대해 후보 공천 작업을 마무리한 가운데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공천 원칙과 공정성을 놓고 또 충돌했다. 15일 공천에서 이재오·안상수·주호영·진영·조해진 의원 등을 대거 탈락시킨 데 따른 갈등이다. 지난 4년 동안 의정활동 평가는 제쳐두고 친이계·친유승민계라는 이유로 이들을 대거 탈락시킨 마당에 굳이 유승민 하나만 두고 여론 눈치를 보는 것도 어쭙잖다. 

이번 새누리당 공천 과정은 대한민국 정치 후진성의 결정판이다. 2008년 친이계의 공천 학살, 2012년 친박계의 보복 공천 학살에 이어 올해는 친박계의 전횡이 극에 달했다. 제 아무리 분탕질을 쳐도 다수당, 집권당 위치를 유지하는 데다 주요 선거마다 연전연승이니 안하무인, 오만함이 하늘을 찌른다. 

비례대표조차 인재 영입은커녕 박근혜 대선캠프 인사들의 나눠먹기 장(場)으로 변질됐다. 예의도, 염치도, 최소한의 정치 도의도 찾아볼 수 없다. 

파벌정치의 원흉인 공천 제도 개혁 논의는 이번에도 수포로 돌아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상향식 공천을 밀어붙였지만 그 자신 계파 싸움의 한복판에 선 데다 선거구 획정 지연, 당원 명부·여론조사 허점 등으로 인해 결국 현역에게만 유리한 결과가 됐다. 새누리당 공천 결과 현역 157명 중 26명만 탈락해 현역 물갈이 비율이 16.5%에 그친 것이 그 증거다. 19대 국회 전면 물갈이를 원하는 국민 여론과 크게 동떨어진 결과다. 

한국 정치의 수준을 지적할 때 흔히 "경제는 이류, 행정은 삼류, 정치는 사류"라는 표현이 자주 거론되는데 현재 우리 정치는 '사류'에도 머물지 못하고 '오류'로 퇴보한 느낌이다.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국회로 기록된 것은 여당의 무능함과 야당의 국정 발목 잡기가 결합한 탓이었다. 집권 여당이 이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이나 사죄도 없이 방약무인 구태 공천을 자행했으니 유권자들의 냉엄한 심판이 곧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10. 생산성 없는 '야근 공화국' 이제 벗어날 때다

한국 기업이 상습적인 야근과 상명하복 업무 지시 등 후진적인 기업문화로 골병이 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국내 기업 100개사 임직원 4만명을 대상으로 '조직 건강도(OHI)'를 조사한 결과 국내 기업 77%가 글로벌 기업 평균보다 약체인 것으로 평가됐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피처폰급인 기업 운영 소프트웨어를 스마트폰급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했는데 백번 옳은 얘기다.

한국의 조직문화가 전근대적이란 지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상사의 지시에 'No'를 못하는 불통 문화, 비합리적 평가 시스템 등 구태의 뿌리는 깊다. 최악의 기업문화는 '습관화된 야근'이다. 한국 직장인은 주5일 중 평균 2.3일 야근을 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농업적 근면성을 직원 평가의 바로미터로 삼으면서 '야근=성실'이라는 악습이 자리 잡았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상사 눈치가 보여 휴가도 제대로 못 가는 문화에서 생산성이 오르고 창의성이 나올 리 없다. 한국인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57시간으로 세계 3위다. 하지만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13년 OECD 34개국 중 25위에 머무르고 있다. 대한상의 조사에서도 상습적 야근자의 업무생산성(45%)이 일반 직장인(57%)보다 떨어지는 '야근의 역설'이 확인됐다. 

불필요한 야근은 저출산 문제와도 관련이 깊다. 장시간 근로 탓에 일·가정 양립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CEO가 확실한 의지를 갖고 구태를 수술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알파고 쇼크에서 목도했듯 창의적인 기업이 미래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시대다. 구글, 애플 등은 직원들의 창의성을 북돋우는 기업문화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도 과거의 낡은 조직엔진을 새로운 것으로 바꿔 끼우지 않으면 안된다. '야근 공화국'의 굴레를 벗어나 '칼퇴'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권영석의 통일시대> 알파고 만들어 김정은과 맞붙게 하자

그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다. 강해도 너무 강하다. 세계 바둑 최강자 이세돌 9단을 단숨에 무찔렀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위협하는 바람에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 답답하고 암울했다. 그런데 구원 투수가 등장한 것이다. 어떤 위기가 닥쳐도 꿈쩍 않는 기계다운 냉철함, 치밀한 수 읽기와 강한 전투력. 그 정도면 북한 김정은도 무릎을 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알파고가 절실해진 것은 기존의 대북정책이 쓸모없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곧 소형화된 핵무기를 발사할 시험을 한다고 한다. 남한을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는 실전 배치 단계라고 한다. 안보 위기 국면이다. 나라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기존 대북정책은 완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시대와 상황이 변하면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햇볕정책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물 건너갔다. 이제 원점에서 대북정책의 틀을 새로 짜야 할 때다.

이번엔 지속가능한 대북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폐기되는 정책은 너무 소모적이다. 한번 만들어 놓으면 스스로 끊임없이 진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한과의 대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무쌍한 게임이다. 북한에 맞서 최적의 수를 찾아내고 그 수를 놓았을 때 승률을 빅데이터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절대 자기 입맛에만 맞는 정책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 알파고 같은 대북정책에 특화한 인공지능 시스템을 만들어 둬야 하는 이유다.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는 이대로 간다면 시한부 인생이다. 이 통준위를 대북정책의 알파고로 한번 키워보자. 그러자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통준위 조직과 기능을 완전 개편해야 한다. 통일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여당측 대표와 야당측 대표를 부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 그래야 대북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통준위 위원 임명과 대북정책 입안도 변증법에 기반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찬성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보수가 있으면 진보가 있다. 정반합을 하고 또 정반합을 하는 과정을 거듭하며 의사결정을 한다면 그런 대북정책은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통준위 시스템을 알파고처럼 만들자는 것은 모든 자원을 무한정으로 사용해 어떤 게임에도 지지 않는 묘수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한 묘수는 통일특사에게 맡겨 실행에 옮기면 된다. 이왕이면 고려 시대 서희 같은 외교관을 특사로 맞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탁월한 협상력을 갖춘 특사는 전쟁도 없이 통일을 앞당기는 능력이 있다. 그런 특사를 발탁해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을 설득하고 남북 평화통일을 이룩해 보자.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던가. 냉전 시대가 끝난 게 언젠데 아직도 지구 상 마지막 분단국으로 남아 힘자랑만 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이제 우리도 미지의 통일 시스템에 본격 도전해야 할 때가 왔다. 

2. [서울신문] [문화마당] 당신은 소설을 열심히 읽었습니까/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아침. 도쿄 지하철 마루노우치선, 히비야선, 지요다선의 다섯 개 차량에서 신경가스계 독가스가 살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지하철에 타고 있던 시민들은 눈이 멀거나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켰고 부상자는 5000여명에 달했다. 인간의 중추신경계를 손상시키는 이것의 정식 명칭은 ‘사린’이며 나치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개발한 맹독 가스로 알려져 있다.

아사하라 쇼코는 1955년 3월 2일 구마모토현 야쓰시로에서 태어났다. 소작으로 겨우 집안을 건사하던 부모가 일곱 번째로 낳은 자식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눈에 이상이 있었는데 자라면서 거의 보이지 않게 돼 구마모토 현립 맹인학교에 다녀야 했다. 아사하라와 같은 처지의 학생들이 많았고 그중에는 미나마타의 수은 중독이 원인인 경우도 있었다. 야쓰시로에서 미나미타까지는 차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으며 같은 바다에 면해 있다.

하지만 아사하라의 형이 아사하라를 미나마타병 환자로 관청에 신고했을 때 돌아온 것은 아사하라를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소문과 괴롭힘”이었다. 후지와라 신야는 ‘황천의 개’에 이렇게 적었다. “미나마타의 질소 공장은 패전 후 국가 재건에 앞장선 선봉이었다. 그 국가적 산업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미나마타 앞바다에 수은을 방류했다. 중앙정부는 냉혹하게도 국가 재흥에는 다소간의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아사하라가 고향을 떠나 도쿄에 머물며 옴진리교를 설립한 것은 1984년이었다. 10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1만여명에 가까운 이들이 모였다. 변호사와 생화학자, 의사, 과학자, 심지어 정부 관료와 경찰의 수도 상당수에 달했다. 이른바 사회 엘리트층인 그들을 향해 아사하라는 핵전쟁을 예언하고 옴진리교의 신자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최첨단 무기와 독가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반론은 허용되지 않았다. 교단 내부에서 아사하라의 예언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은 조용히 제거됐다. 교단의 활동에 항의한 인근 주민들에게는 테러가 가해졌다. 문제는 살인과 납치, 폭력이 자행됐음에도 경찰 당국은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옴진리교에 대한 경찰 내부의 움직임이 교단에 소속된 경찰 간부에 의해 시시각각 보고될 정도였다. 1995년의 대참사가 벌어진 그 순간까지도 사린에 대한 방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문학 수업을 맡고 있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뉴스를 접하고 일본으로 돌아가 책을 쓸 결심을 한다. 그는 피해자 140명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언더그라운드’라는 제목의 르포르타주를 출간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허무하게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주된 이유로 “무방비 상태의 정치가와 경직된 관료 시스템”을 들었다. 한편으로 사건에 가담한 신자들과 인터뷰할 때는 공통 질문 하나를 던진다.

“당신은 소설을 열심히 읽었습니까?”라는 것이었다. 철학이나 종교, 과학 서적을 탐독해 온 신자들 대부분이 소설에는 흥미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그들의 대답을 종합해 하루키는 “아사하라가 내세운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픽션이었다. 그러나 픽션에 익숙하지 않은 신자들은 아사하라가 제시한 픽션을 사실과 뒤죽박죽 섞어 고스란히 받아들였다”고 진단했다. 일리가 있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소설을 읽지 않게 되는 것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일지 모른다. 하긴 읽지 않는 것이 어디 소설뿐이겠냐만.

3. [동아일보][@뉴스룸/박재명]화장지는 변기에

지난해 초 기자는 동아일보의 2015년 연중 기획 시리즈인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에 참여했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 총 250회에 걸쳐 연재한 장기 기획물이었던 만큼 독자를 비롯해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들, 사회 각계각층의 명사들로부터 다양한 아이디어를 받았다.

그때 두 건 이상의 개선 제안이 나왔지만 쓰지 못한 아이템이 하나 있다. 바로 ‘화장실 휴지통’ 문제다. 한 편집국 기자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가장 놀라는 문화가 바로 뚜껑 없는 휴지통”이라며 “변기 옆 휴지통이 악취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외국 근무를 오래한 고위공무원 역시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혐오문화 중 하나가 화장실 휴지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아이템은 지면에 실리지 않았다. 아침에 독자들이 읽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 화장실 휴지통이 화장실 관리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찮게 제기됐다.

하지만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구글 검색창에서 ‘한국 화장실(Korean Toilet)’을 검색하면 더러운 한국 화장실 사진만 등장한다. 대부분 변기 옆에 파란색 뚜껑 없는 휴지통이 놓여 있는 사진이다. 한국인이 자주 찾는 일본 오사카(大阪)의 한 화장실에는 한글로 “부탁! 사용 후 화장지는 변기에 넣어 흘려보내 주세요”라는 종이까지 붙었다.

화장지를 그냥 변기에 흘려버리면 배수 문제가 생긴다고 아는 사람이 많다. 화장지 제조사인 유한킴벌리에 물어 보니 “화장실에서 쓰는 소위 두루마리 화장지는 ‘화장실용 화장지’라는 별도 품명으로 판매한다”며 “20초 만에 물에 풀어지는 만큼 변기에 흘려버려도 배관 막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변기 옆에 왜 휴지통을 놓을까. 기자가 자주 찾는 서울 중구 일대의 사무실 4곳의 화장실을 조사해 보니 2곳에 변기 옆 휴지통이 있었다. 환경미화원 아주머니에게 휴지통을 유지하는 이유를 묻자 “휴지통이 없으면 더 귀찮아진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각종 위생용품과 스타킹, 물티슈 등을 변기에 버려 배관이 자주 막히는 문제 때문에 휴지통을 없앴다가 다시 만든 곳도 있었다.

한국에 첫 화장실용 화장지가 선보인 것은 1971년. 그 이전까지는 신문지나 공책 등 다양한 종이를 화장실에서 썼다. 당연히 휴지통에 모아 버려야 했다. 그때의 습관이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유한킴벌리가 2013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용한 화장지를 변기에 바로 흘려버리는 비율은 응답자의 51%에 그쳤다.

그동안 우리가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익숙해진 표어가 바로 ‘휴지는 휴지통에’다. 사람들은 으레 뒤처리를 끝낸 화장지를 휴지로 생각해 휴지통에 버렸다. “화장실에 휴지통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사람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시민들의 고정관념을 바꿔야 할 때다. 최근 남미 지역에서도 변기 옆 휴지통 없애기 캠페인이 시작됐다고 한다. ‘화장지는 변기에,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정도의 표어를 화장실마다 부착하는 건 어떨까. 중요한 볼일을 보면서 휴지통에서 흘러나오는 타인의 냄새를 맡는 문화는 이제 바꿀 때가 됐다.

4.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매듭

택배로 물건을 받는 일이 잦다. 대부분은 사무적인 일이지만 가끔은 정이 듬뿍 담긴 상자를 받기도 한다. 시골에서 참기름을 짰다, 갓김치를 담갔다, 땅콩이 정말 고소하니 먹어보라며 요거조거 골고루 넣은 상자를 받을 때가 있다. 그런데 국물이 샐까, 병이 깨질세라 염려하여 얼마나 단단히 포장하고 묶었는지 칼과 가위로 싹둑거리고 난도질을 하는 한바탕 실랑이를 벌여야 할 경우가 있다. 

고마운 마음이야 이를 데가 없지만 포장을 뜯느라 한참 진땀을 빼고 나면 ‘뭘 이렇게까지 칭칭 동여맸을까’ 생각했는데 장흥진 시인의 ‘매듭’이란 시를 읽으며 숙연해졌다.

시인도 어머니가 보낸 택배를 받는다. 칭칭 동여맨 상자를 보며 난감해하자 시인의 아이가 칼을 건넨다. 상자 속엔 가을걷이한 곡식과 채소가 들어 있을 터. 하나라도 더 보내려다 보니 상자가 닫히지 않자 어머니는 꾹꾹 눌러가며 가로세로 수십 번 비닐 끈으로 동여매신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뭉툭한 손이 떠올라 시인은 차마 단칼에 잘라내지 못한다. 

‘힘이 들수록 오래 기도하시던 어머니처럼/무릎을 꿇고/밤이 이슥해지도록 상자의 매듭과 대결한다/이는 어쩌면 굽이진 어머니의 길로 들어가/아득히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시인도 어렸을 적엔 평생 지름길을 모르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시인은 ‘지름길을 지향하는 칼’을 버리고 차근차근 어머니의 매듭을 풀어내면서 이음매 없이 길고 부드러운 어머니의 길을 본다고 썼다. 나는 이 대목에서 비로소 딸이 어머니를 이해하고 일치가 되는 감동을 느꼈다.

지난 일요일에는 봄맞이 겸사겸사 엄마 산소에 다녀왔다. 나도 예전에는 평생 지름길을 모르는 엄마에게 화를 냈다. 그리고 단칼에 베어내지 못하는 속 좋은 엄마가 못마땅해서 “그러면 남들이 우습게 본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는 “냅둬라. 괜찮다”라면서 빙그레 웃고 말아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엄마 버전으로 가고 있는 나를 본다. 나도 딸에게 “괜찮아. 돌아서 가도 결국은 다 도착하게 되어 있어”라는 당치 않은(?) 말을 한다. 세상의 매듭을 푸는 방법이 칼로 싹둑 자르는 것만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다 보면 비로소 보이는 길이 있다. 진정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풀리지 않을 매듭이 어디 있을까. 

5. [중앙일보][새미 라샤드의 비정상의 눈] 한국어만의 특징, 얼마나 알고 있나

전 세계 언어는 7000~8000개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유엔의 공식 언어는 중국어·영어·스페인어·아랍어·러시아어·프랑스어밖에 없다. 이 여섯 가지만 전 세계 지도자들이 만나는 유엔에서 의사소통 수단이다. 유엔에서 회의나 연설을 할 때는 이 언어를 사용하고, 능통한 언어가 없으면 유엔에서 통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한국어의 위치는 어디일까? 최근 국립국어원이 공개한 정보에 따르면 한국어는 사용자 숫자에서 세계 13위를 차지한다. 사용자가 7720만 명에 이른다. 남북한은 물론 중국·일본·러시아·태국·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한국어를 처음 접한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어보다 한글이 더 매력적이었다.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인 선생님들은 한국어가 아니라 한글의 우수성을 주로 칭찬한 때문인 듯하다. 심지어 한글과 한국어를 혼동해 한국어가 과학적이어서 위대하고 우수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어떤 언어도 과학적일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글이 과학적이라고 자랑하는 대학생에게 과학적인 부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보라고 주문하면 당황하기 일쑤다. 한글이나 한국어의 특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더듬거리는 분이 적지 않다. 모든 한국 사람이 언어 전문가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한국어에 대한 기본적인 언어학 지식은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실 한국어는 아름답고 개성이 뚜렷하다. 한국인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한국어만큼 요긴한 것은 없을 것이다. 어떤 외국어로도 ‘알콩달콩’ ‘깡충깡충’ 등 한국인만의 특별한 심리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의 특징이 무엇이냐 물으면 ‘빨리빨리’ ‘한복’ ‘추석’ 등 여러 가지를 꼽으면서도 ‘한국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한글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교육은 많이 받지만 한국어에 관심을 두는 교육은 소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글날도 있고 한글 패션쇼도 있지만 ‘한국어를 기념하는 날’은 없지 않은가. 한국어를 잘 쓰는 교육보다 외국어 학습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풍조도 한 이유가 아닐까.

한글만큼 한국어의 중요성이나 특징을 제대로 알려주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어가 전 세계에 더욱 널리 퍼져나가려면 본고장에서 제대로 대접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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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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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6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이런 ‘깜깜이 총선’으로 국회 개혁 하겠나

모든 선거가 그렇지만 다가오는 4·13 총선의 정치적 의미는 자못 크다. 우선 박근혜 정부 임기가 2년밖에 남지 낳은 시점에서 ‘정부 심판론’과 ‘야당 심판론’이 맞선 형국이다. 지금의 어려운 나라 형편이 실정 탓이냐, 아니면 국정 발목잡기 탓이냐가 총선으로 판가름 난다. 제19대 국회의 ‘사상 최악의 식물국회’란 오명을 떨치고 ‘민의의 전당’으로 거듭나느냐도 총선에 달렸다.

그러나 여야 정치권의 행태는 국민의 여망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무엇보다 선거가 코앞인데도 지역구마다 후보는 누구고, 공약은 무엇인지 모르는 ‘깜깜이 선거’가 문제다. 선거구 획정이 법정시한을 무려 5개월이나 넘기더니 이번엔 각 당의 공천이 진통을 거듭하는 바람에 지역구 후보 상당수가 정해지지 않았고 비례대표 후보는 아직 손도 못 댔다.

파벌정치의 원흉인 공천제도 개혁 논의는 이번에도 수포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정치 지도자들이 입만 열면 국민을 앞세우지만 실은 자기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내세우려고 사생결단하기 때문이다. 집권당에서 자행된 2008년 친이(親李)계의 ‘공천 학살’과 2012년 친박(親朴)계의 ‘보복공천 학살’이 좋은 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공천 혁명’을 내세워 밀어붙인 상향식 공천도 ‘친박’과 ‘비박’의 계파 싸움에 맥없이 밀려나는 모양새다.

야당도 매한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은 ‘친노’(親盧)가 ‘친문’(親文)으로 명패만 바꿔 달았다는 비판 속에 친노의 좌장 이해찬 의원이 공천 탈락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는 등 후폭풍이 거센데다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국민의당은 아직도 야권연대 여부를 놓고 정치공학적 계산이 한창이다.

공천 과정에서 제시된 다선, 고령, 정체성 등의 물갈이 명분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정체성 같은 모호한 잣대도 그렇지만 나름대로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다선이나 나이 때문에 안 된다니 어처구니없다. 이른바 ‘386’을 국정 전반에 대거 내세웠다가 나라 망친 지 얼마나 됐다고 고령을 탓한단 말인가. 정치권이 못하면 나라의 주인인 유권자가 직접 나서야 한다. 국회를 꼭 개혁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로 진짜 선량을 가려내는 혜안을 유권자들 스스로 갖추는 수밖에 없다.

2. 대학 과학연구 풍토부터 바꿔야 한다

서울대를 비롯해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 대표적인 이공계 5개 대학이 정부의 연구업적 평가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급변하는 세계의 연구 추세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라 한다. 외국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이 사람의 두뇌를 능가할 만큼의 연구 실적이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현실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기도 하다.

과학 분야에서 외국과의 연구 격차는 이번 이세돌 선수와 5번기 대국을 진행한 알파고의 사례에서 뚜렷이 확인된다. 비록 구글 등 일부 회사의 실적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연구 격차가 벌어져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당장 뒤쫓아 가더라도 단시일 내에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다간 산업 분야에서도 뒤처지기 마련이다. 결국 우리 기업들이 값비싸게 로열티를 주고 기술을 빌려써야 하는 처지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연구과제 수행의 성공 여부를 판정할 때 앞으로는 그 주제가 모험적이고 도전적이냐의 여부부터 제대로 따질 필요가 있다는 게 이들 대학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동안의 평가가 연구 논문이 몇 편인가 하는 식으로 단기 실적을 따졌다면 앞으로는 그 내용 위주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당사자들이 뒤늦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 아쉬울 뿐이다.

물론 연구자들 본인에게도 문제점은 없지 않다. 교수들 스스로 연구비와 단기 업적만을 쫓아 가시적으로 성과를 내기 쉬운 분야에 매달려 왔던 측면은 없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정량적 평가 기준도 연구는 젖혀놓고 팔짱만 낀 채 놀고먹으려는 사례를 막으려는 조치였다. 요즘도 남의 논문을 베끼거나 심지어 제자 논문에 이름을 슬쩍 끼워넣는 경우가 적잖게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과학 연구가 제대로 성과를 내려면 앞으로는 서로 바뀌어야 한다. 해마다 노벨상 타령이 이어지고 있지만 노벨상에 근접한 연구자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대학 연구에 관여하는 교육부·미래창조과학부·산업통상자원부 등의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대학 당국과 교수들 모두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알파고는 우리에게 귀중한 각성을 깨우쳐준 셈이다.

[동아일보]

3. 조종사의 안전책임 가볍게 여기는 대한항공 회장님

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13일 대한항공 김모 부기장의 페이스북 글에 ‘개가 웃어요’ 운운하는 댓글을 달아 구설에 올랐다. 김 부기장은 최근 비행 전 브리핑을 고의로 오래 끌고 비행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박모 기장이 파면되자 페이스북에 조종사가 비행 전에 해야 하는 일을 상세히 적었다. ‘한 달에 100시간도 일하지 않으면서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말도 있지만 조종사들 하는 일이 많다는 내용이다. 이에 조 회장이 ‘조종사가 GO NO GO(갈지, 말지)만 결정하면 되는데 힘들다고요? 자동차 운전보다 더 쉬운 ‘AUTO PILOT’(자동항법장치)로 가는데. 비상시에만 조종사가 필요하죠. 과시가 심하네요. 개가 웃어요’라는 반박 글을 붙인 것이다.

현재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인 1, 2노조는 임금 인상을 내걸고 준법투쟁을 벌이고 있다. 1인당 평균 1억4000만 원의 연봉을 받는 조종사들이 규정에 어긋난다며 비행을 거부하고 페이스북에 업무가 과중하다는 글을 올린다. 조 회장이 얼마나 화가 났으면 댓글을 수정하면서 ‘개가 웃어요’ 구절을 넣었을까 싶다. 그렇더라도 그의 댓글은 재계 9위 그룹 회장으로서 품위를 잃었다. 이 댓글에서 재작년 12월 ‘땅콩회항’으로 불리는 딸 조현아 전 부사장의 ‘갑질’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많게는 500명이 넘는 승객이 탑승하는 여객기는 자동항법장치로 날지만 이를 작동하고 점검하는 일은 조종사 책임이다. 자동항법장치는 조종사를 돕는 보조 장치에 불과하다. 조종사 일이 뭐가 힘드냐 식의 글은 항공사 최고경영자로서 비행 안전을 소홀히 여긴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귀족 노조’로 불리는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경영진의 임금 상승률이 37%라며 그만큼 연봉을 올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회사 일반 직원 노조가 “절박한 생존권 요구가 아니다”는 성명을 낼 만큼 공감을 얻지 못하는 투쟁이다. 조 회장의 처신도 문제지만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역시 국내 다른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도 헤아리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4. 5차 핵실험 지시한 김정은의 막가파식 위협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5차 핵실험과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장거리 로켓 발사 준비를 지시하는 등 핵 위협 수위를 갈수록 높이고 있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 보유 의지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으로 읽힌다. 강공책을 선택함으로써 제재에 따른 내부 동요를 막고 체제 결속을 다지기 위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어제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탄두로켓 전투부(미사일 탄두 부분) 첨두의 대기권 재진입 모의실험을 현지 지도하는 자리에서 “빠른 시일 안에 핵탄두 폭발 실험과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탄도 로켓 시험발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몇몇 군사 대국들만이 보유한 대기권 재돌입 기술을 자력자강의 힘으로 당당히 확보했다”며 장거리 탄도 미사일 기술이 완성 단계에 있음을 강조했다. 따라서 대북 제재가 지속될 경우 실제로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오는 5월 제7차 당대회 전 성능이 개선된 증폭핵분열탄으로 제5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일에도 신형 방사포 시험 사격을 지도하면서 “핵탄두들을 임의의 순간에 쏠 수 있게 항시 준비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11일에는 “새로 제작한 핵탄두의 위력 판정을 위한 핵폭발 시험을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본격 이행된 이후 핵 위협 수위를 점점 높여 가고 있는 셈이다. 즉 제재에 굴복해 핵을 포기하는 대신 핵 군사력을 국제사회에 과시함으로써 향후 핵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1월 4차 핵실험에 이은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의 상황을 되짚어 보면 북한의 이런 막가파식 위협과 도발이 먹힐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4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가 제재 움직임을 보이자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로 응수했다. 그러나 이는 국제사회의 제재 수위만 높였다. 추가 도발은 오히려 북한 스스로 극한상황으로 몰아 자멸의 시기만 앞당길 뿐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제재를 풀어 줄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엄청난 착각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어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북한이 무리한 도발을 계속하면서 변화의 길로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멸의 길을 걷는 길이 될 것”이라고 거듭 경고하지 않았는가. 북한이 제재에서 벗어나려면 핵 보유 망상을 버리는 길밖에 없다. 그게 북한 지도부는 물론 고통을 겪는 주민들이 사는 길이다.

5. 다문화 인구 100만인데 여전한 제노포비아

2020년이면 우리나라 다문화 가족 인구가 100만명을 넘어선다. 현실이 이런데도 우리의 외국인 기피증(제노포비아)은 여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가족부가 전국의 성인 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다문화 수용성 지수는 100만점 기준에 53.95점이 나왔다. 4년 전 조사치(51.17점)보다 약간 개선되긴 했으나 이주민을 터부시하는 인식은 변함없이 높았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인식에 비해서도 크게 열악하다. 구체적인 질문에도 외국인 기피증은 확인됐다.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답한 사람은 10명 중 3명꼴이었다. 이민자에게 개방적인 스웨덴에 비하면 10배 가까이나 높다.

결혼 이민자, 그 배우자와 자녀를 포함한 국내 다문화 가족 인구는 지난해 82만명이었다. 2011년 66만명에서 4년 만에 24%나 늘었다. 다문화 인구만 4년쯤 뒤면 100만명이 넘을 전망이다. 이주 노동자와 불법 체류자까지 합하면 국내 거주 외국인은 이미 200만명이 넘는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다문화 사회에 부정적인 국민 인식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 고령화에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싫건 좋건 외국인 노동자들은 여러 취약점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한다. 불청객이 아니라 그들이 없으면 공장이 멈춘다고 해도 엄살이 아니다. 편견도 그렇거니와 출신국과 인종에 따라 차별하는 이중 잣대가 더 견디기 어렵다고 이주 노동자들은 절망한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이방인에게 개방적인 시민 의식은 절대 조건이다. 내년부터는 15~64세의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든다는 경고가 나온다. 노동력 부족이 코앞에 닥친 냉엄한 현실이다. 최근 정부는 사회적 장벽으로 학업과 취업이 막힌 다문화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 인식이 받쳐 주지 못한다면 헛수고다.

정부가 다문화 지원 정책을 수립한 지가 벌써 10년, 다문화 가족 지원법을 제정한 지도 8년이다. 이주민들을 단순 노동력이나 보충해 주는 역할자로 인식하는 정책부터 변화가 앞서야 한다. 외국인 전문인력이 유입되지 않고 한국 국적 취득자 수도 몇 년째 정체 상태다. 그들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우리 사회의 당당하고 절실한 구성원이다. 정부의 지속적인 정책 배려와 홍보 교육이 국민 인식을 바꾸는 최고의 처방일 것이다.

6. 與 비박계 무더기 컷오프 후폭풍 감당하겠나

새누리당 4·13총선 공천심사가 막바지로 접어들었지만 계파 갈등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 같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어제 비박(비박근혜)계 5선인 이재오 의원,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진영 의원 등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그러나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유승민 의원에 대해서는 또다시 컷오프를 보류했다. 김희국·류성걸 등 대구의 현역 의원은 또 공천에서 빠졌다. 대구 물갈이론을 앞세워 비박계 의원들을 대거 공천 탈락시킨다는 시나리오가 사실상 현실화됐다. 다만 비박계의 거센 반발을 의식해 유 의원에 대해서는 막판까지 고심하는 모양새다.

친박과 비박 간의 앙금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적지 않은 대구 현역 의원들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조치는 투명한 원칙과 기준을 통해 공천권을 행사하겠다는 공천관리위의 의지를 퇴색시켰다는 평가가 많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그제 예고 없이 세 가지 공천 배제 기준을 발표한 것은 누가 봐도 석연치 않다. ‘국회의원으로서 품위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 ‘당 정체성과 관련해 심하게 적합하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 ‘상대적으로 편한 지역에서 다선 의원의 혜택을 즐긴 사람’ 등 세 가지 원칙이 그것이다. 당 안팎에서는 즉각 ‘윤상현·유승민 의원을 동시에 처리하려는 꼼수’라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이 위원장도 한때 유 의원의 공천 배제를 강하게 주장하다 주위의 반대에 밀려 보류하는 선에서 컷오프를 미뤘다는 후문이다.

공천관리위가 어제 김무성 당 대표에 대해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막말 파문을 일으킨 윤상현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조치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사필귀정이다. 술에 취해서라고 해명했지만 집권당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윤 의원의 행위를 봐줄 경우, 공천 원칙을 제대로 적용할 수 없어서다. 하지만 윤 의원을 희생양 삼아 친박계가 눈엣가시로 여기는 유 의원을 동시에 공천에서 제외시키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유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발언 등으로 박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인’으로 비판받았다. 원내 사령탑으로 복지국가의 비전과 방법론을 소신껏 제시했다지만 청와대의 국정 철학과 맞지 않았다. 이후 알다시피 원내대표에서 물러났다. 이런 유 의원을 퇴출시키려는 움직임 자체가 새누리당이 건전한 보수 세력이 아니라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 물론 공천관리위의 속내도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유 의원이 원내대표 시절 국회 지도자로서 행한 언행을 당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는 건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여태까지 명확한 심사 기준을 공개도 하지 않다가 불쑥 공천 배제 기준을 발표하면서까지 유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킨다면 그 후폭풍은 선거판 전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당 정체성이 문제라면 여론조사 경선에 참여시켜 당원과 유권자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 순리다. 새누리당은 이제라도 계파 갈등을 접고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을 통해 유권자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공천을 해야 한다. 계파 챙기기에 급급한 비상식적 공천은 당원과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매일경제]

7. 한국서 열린 `세기의 대국` AI 연구 기폭제 되길

아름다운 승부였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바둑 대결'은 4승1패 알파고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최종 승자는 알파고지만 이세돌은 인공지능(AI)에 맞서 인간의 투지와 바둑의 낭만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세 번을 내리 지고도 포기하지 않고 알파고의 약점을 공략해 값진 승리를 얻어냈는가 하면 마지막 5국에서 패배했지만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진한 감동을 안겼다. 특히 이세돌은 5국에서 불리함을 자청하고 흑돌을 잡는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도전과 희망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는 결코 진 것이 아니다.

이번 대국의 최대 수혜자가 구글이라면 두 번째 수혜자는 바로 대국이 벌어진 대한민국이다. 인간의 직관까지 흉내 내는 AI의 괴력에 경악하고 좌절했지만 온 국민이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을 생생히 지켜보고 온몸으로 체험한 것은 큰 축복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AI 기술 개발을 서두르지 않고는 미래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는 경각심을 갖게 된 것도 소득이 아닐 수 없다. 구글의 AI 빅쇼가 서울 한복판에서 열리지 않았다면 미국 영국 등의 AI 기술을 탐색하고 우리의 열악한 수준을 돌아볼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 AI 시장 규모는 지난해 1270억달러에서 내년 1650억달러로 14%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비하면 한국 AI 시장은 내년 6조4000억원으로 추정돼 황무지 수준이다. AI 특허 수도 전체의 3%로 미국의 20분의 1밖에 안 되는 참혹한 상황이다. 정부는 AI산업 육성을 위해 매년 38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는데 미국(30억달러), 일본(1000억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AI 붐이 일자 미래창조과학부가 전담 조직을 만든다며 분주한데 정부 주도로 하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민간에 맡겨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꽃을 피운 신산업들은 관치로 성장한 것이 아니다. 구글의 자율자동차가 330만㎞ 시범주행을 할 때 우리 기업들이 겨우 시동을 거는 것은 부처 간 교통정리가 안 되는 중구난방 정책과 꽉 막힌 규제 때문이었다. AI산업 성장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은 규제를 허물어 신산업이 싹틀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본격적인 AI 시대에 대비해 AI의 기술적 오류, 윤리적 문제뿐 아니라 일자리 소멸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

8. 대기업 국내 유턴 파격 지원해 일자리 창출해야

LG전자가 대기업 중에 처음으로 멕시코와 중국에 있는 생산기지를 국내로 옮기는 리쇼어링에 나서기로 한 것은 고용 창출 측면에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LG전자는 연산 30만대 규모의 멕시코 몬테레이 세탁기 공장을 6월부터 창원으로 이전하고, 중국 생산기지도 순차적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이 인건비는 높지만 생산성이 높은 데다 원화값 하락으로 수출 채산성을 맞출 수 있고, 컨테이너선 운반 비용도 낮아져 리쇼어링으로 인한 비용이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는 점이 고려됐다.

해외 공장의 국내 유턴은 고용 창출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장려할 만한 일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내수 불황으로 기업 채용이 점점 줄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기업들의 리쇼어링은 고용 절벽을 해소하는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은 해외 생산기지를 국내로 이전하는 기업에 파격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세금 감면은 물론 공장 이전 비용까지 지원한다. 이에 포드는 18조원을 미국 본토에 투자해 수천 개 일자리를 만들었고, 일본에서는 혼다와 파나소닉 등이 리쇼어링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한국도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을 2013년 8월 제정해 법인세와 소득세, 자본재 수입에 대한 관세를 최대 100% 감면하는 등 지원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까지 국내로 복귀한 기업은 76개에 불과했다. 이 중 대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그 이유는 세금 감면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유턴 이후에도 동일 업종을 유지해야 하고 수도권 공장 설립을 막는 등 규제가 많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해외 공장을 완전히 청산해야 하는 조건까지 붙는다.

정부는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기업 리쇼어링 지원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국내로 유턴한 기업들이 우수 인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수도권에 공장을 세우는 것을 과감하게 허용하고, 대기업에 대한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 세금 감면뿐만 아니라 공장 이전 비용까지 지원하는 미국 등 선진국 정책을 적극 벤치마킹해 더 많은 기업들이 해외 공장을 국내로 이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는 침체된 내수를 살리고, 일자리도 창출하는 묘수이기도 하다.

[헤럴드경제]

9.  대주주 CEO가 기업문화 혁신 전면에 나서라

우리 기업의 조직 건강도가 너무 허약하다. 열에 일곱, 여덟(77%)은 평균 이하 체력이고, 다섯 이상(52%)이 중병을 앓고 있다. 권위주의적 상명하복식 업무지시와 상습적 야근, 비효율적인 회의, 지나치게 잦고 형식적인 보고 등이 기업 건강을 갉아먹는 요인이라고 한다. 그만큼 기업문화가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이란 얘기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글로벌 컨설팅 전문업체인 매킨지와 9개월간 국내 기업 100개사와 임직원 4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문화 종합보고서 내용이 그렇다. 리더십, 조율과 통제, 역량, 책임소재 등 9개 영역 37개 항목에 걸쳐 평가해 글로벌 기업 1800개와 비교 분석한 것이라 실제 상황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상태가 훨씬 심각하다. 특히 습관화된 야근과 상명하복식 업무지시는 기업 경쟁력 제고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건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한국의 직장인들은 일주일에 평균 2.3일 야근을 한다. 하루 걸러 한번은 야근을 하는 셈이다. 이러니 직장인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요원한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다고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매일 1시간 40분 가량 더 일한 직장인의 생산성(45%)이 그렇지 않은 사람(57%)보다 오히려 낮았다. 

상사가 불합리한 지시를 해도 ‘노(NO)’ 또는 ‘왜(WHY)라고 말하지 못하고 무조건 복종하는 ‘불통’도 문제다. 이런 조직문화에서 경쟁력과 창의력을 요구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얻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한국 기업의 임원실은 장례식장 같다”는 말이 나올까. 

구시대적 기업문화는 생산성만 떨어뜨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영국의 딥마인드가 알파고를 만들어 낸 원천도 따지고보면 자유분방한 기업문화다. 질식할 것같은 한국의 기업문화속에서 이런 창의력의 싹을 틔울 인재가 남아날 리 없다. 야근과 휴일 출근을 밥 먹듯 하면 결국 지역 소비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낡고 병든 기업문화를 확 뜯어 고치는 일이 그만큼 시급하다는 것이다. 대한상의 보고서가 좋은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 기업문화를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최고경영자(CEO), 특히 대주주 CEO가 마음을 먹으면 못할 것도 없다. 기업문화를 혁신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결국 낙오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부터 느껴야 한다. 기업 문화가 건강해야 가정은 물론 국가와 사회도 건강해진다.

[중앙일보]

10. ‘진박 마케팅’ 현실로 드러난 새누리당 공천

새누리당의 3·15 공천 결과 현역 의원 9명이 탈락했다. 친이계 좌장인 5선 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진영(3선)·조해진(재선)·이종훈(초선) 의원 등 친이·비박계 의원이 대다수다. 대구에선 친유승민계 김희국(중-남)·류성걸(동갑) 의원이 고배를 마셨다. 이미 공천에서 탈락한 권은희·홍지만 의원과 조해진·이종훈 의원 모두 유 의원과 친한 관계인 만큼 유승민계가 사실상 초토화된 셈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류성걸 의원 지역구엔 ‘진박’ 정종섭 후보가 단수 공천됐고 김희국 의원 지역구에도 ‘진박’ 곽상도 후보가 경선 기회를 잡았다. 또 다른 ‘진박’ 추경호 후보도 이종진 의원이 불출마한 달성에서 단수 공천을 거머쥐었다. 반면 이날 공천에서 배제된 친박계는 김무성 대표에게 폭언을 퍼부어 물의를 일으킨 윤상현 의원이 유일하다. 설로만 떠돌던 ‘진박 마케팅’ 시나리오가 현실로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정당 공천의 핵심은 능력과 인품을 갖춘 인재를 뽑는 것이다. 현역 의원이 그런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거나 지역구에서 지지를 얻지 못하면 물갈이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3·15 공천 결과는 그런 기준에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특히 대구에서 낙천 당한 두 의원은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진박 후보들을 앞섰거나 적어도 뒤지지 않는 수치를 기록해왔다. 경선으로 공천을 결정할 경우 진박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약할 것을 우려해 뚜렷한 이유 없이 현역을 탈락시키고 진박 후보를 전략공천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제 새누리당 공천의 초점은 유승민 의원, 한 사람만 남았다. 친박계는 유 의원의 원내대표 시절 발언이 당의 정체성에 부적합했다는 이유로 공천 배제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유 의원은 그 때문에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나는 엄벌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난 것이지 의원직 재도전 기회까지 막는 건 민주주의에 앞서 상식에 어긋난다고 할 수밖에 없다. 만약 새누리당이 윤상현 의원의 낙천을 명분 삼아 국민이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유 의원 공천 배제를 강행한다면 여론의 거센 반발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헤럴드경제][프리즘] 한의사는 동의보감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허준의 동의보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의사 A씨와의 대화 한토막이다. 황당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명의로 꼽히는 허준과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친 동의보감을, 그것도 한의사가 좋아하지 않는다니…

내막은 A씨가 최근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논란과 관련해 울분을 토하면서 드러났다. 의사들이 “X-레이나 초음파 기기가 동의보감 어디에 나오느냐”며 말끝마다 동의보감을 들먹여서 그렇다는 거다. 의사들은 첨단의료기술을 맘껏 누리면서 한의사는 동의보감에 나오는 대로만 진료를 하라는 얘긴데 괘변이다. 한옥에 산다고 세탁기, 냉장고, 가스렌지를 들이지 말라는 격이다.

의사와 한의사 간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은 어쩌면 ‘밥그릇싸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본다는 사실이다. 장보러 가다가 손목을 접질려 한의원을 찾은 가정주부 A씨는 X-레이를 찍기위해 아픈 몸으로 정형외과를 왕복해야 하고, 그 와중에 안써도 될 병원 초진진찰료 1만4000원까지 덤터기를 썼다. 퇴근길에 발목을 삐끗해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은 외근직 영업사원 B씨는 사후 병가처리를 하려다보니 회사에 거짓말을 한 모양새가 돼 당혹스럽다. 회사에 제출한 X-레이 사진상 발목은 멀쩡한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침치료로 상태가 호전된 후 따로 병원에 가서 찍어야했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현행 의료법에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다. 때문에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지침을 내려줘야 한다. 하지만 국민건강과 직결된 문제인데도 복지부는 소극적으로 일관하며 세월만 허송했다. 2014년 12월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규제 개선을 위한 지침을 만들겠다고 밝혀놓고도 1년을 훌쩍 넘긴채 아무런 조치가 없다. 이로 인해 한의사가 특정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사법부의 판단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 되풀이 된다.

한의사가 X-레이나 초음파 같은 의료기기를 활용하는 것은 정확한 진료와 국민불편 해소를 위한 일이기도하지만 한의학의 과학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의료기기사용 제한이 없는 중국의 중의학은 객관적 진단과 예후 관찰이 가능하다. 이런게 원동력이 돼서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세계 전통의약시장은 2050년 60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의학육성계획만 발표하고 강건너 불구경인 우리와 달리, 중국정부는 중의약의 세계화를 위해 예산을 집중투입하고 있다.

더이상 방관할 때가 아니다. 자꾸 실현가능성이 요원한 ‘양한방 일원화’라는 방패 뒤로 숨은 채 그때까지 국민에게 불편을 강요해선 안된다. 오직 어느 쪽이 국민건강에 보탬이 되고 국가 전체적으로 더 이익이 되느냐를 기준으로, 국민의 불편을 신속하게 해소하는 쪽으로 움직이면 될 일이다. 그게 복지부의 존재이유 아닌가.

2. [한국일보][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당장 듣고 싶은 말

등단 직전, 선배에게 습작시를 건네줬었다. 선배는 줄줄이 빨간 펜을 그어댔다. 내뱉는 말도 지청구 일색이었다. 버럭 자존심이 상했지만 계속 듣고 있자니 내 시에 대한 의견이 아닌, 자기 살아온 얘기가 더 많았다. 뜬금없었으나 시에 대한 품평보다 그 얘기들에 더 공감이 갔다. 그러면서 살짝 마음이 풀렸다. 얼마 후, 그 시들을 한 글자도 고치지 않은 채 그대로 투고해 당선이 됐다. 선배의 의견을 수긍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내 선에서 손대고 반영할 수 있는 맥락이 아니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선배의 ‘고견’은 이후 다른 방식으로 잔향을 남기면서 오래 영향을 끼쳤다. 당시,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말이 무엇인지 선배는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일부러 그 말을 아낀 것 아니었을까. 이편에서 미리 듣고 싶은 답과 나누고 싶은 감정을 암시하면 할수록 상대가 제시할 수 있는 답은 더 미뤄지고 에둘러진다는 법칙을 그때 깨달았다. 당장 듣고 싶은 말, 한시적인 위안으로 잠깐이나마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는 말의 효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더 깊숙이 채워줄 수 없는 것이라면 스스로 상처와 결락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게 더 근본적인 애정의 조언일 것이다. 누군가 답을 달라는 말에 나도 선배처럼 응대했었다. 매도나 무시라 여겼는지 모르겠다. 고백컨대, 너무 답을 주고 싶어 그랬던 거라고 이제는 말해야겠다.

3. [한국일보]경구피임약의 재료를 합성한 미라몬테스

1951년 10월 15일 멕시코의 신텍스(Syntex)라는 제약회사에서 경구용 활성 황체호르몬 노르에티스테론(norethisterone)이 합성됐다. 그 호르몬을 주성분으로 최초의 먹는 피임약 ‘에노비드’가 미국서 시판된 건 9년 뒤였다. 

저 연구의 리더가 지난해 별세한 ‘경구피임약의 아버지’ 칼 제라시(Carl Djerassi, 1923~2015)다. 그는 멕시코 출신 화학자 루이스 미라몬테스(Luis Miramontes, 1925~2004)와 신텍스의 책임자 조지 로젠크란츠(1916~)와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노르에티스테론을 실제로 합성한 이는 미라몬테스였고, 셋은 공동으로 물질특허를 등록했다. 제라시는 부신피질호르몬 코르티손 합성 등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였고 존경 받을 만한 여러 활동을 했지만, 경구피임약에 관한 한 그가 과한 영광을 누렸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3월 16일은 미라몬테스의 생일이다. 

먹는 피임약은 인류사 특히 여성의 삶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 전 주된 피임법은 체외사정 콘돔 자연주기법 페서리 등이었다. 체외사정과 콘돔은 남성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한 피임법이고, 페서리는 시술이 번거롭고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기독교가 유일하게 허락한 자연주기법은 ‘바티칸 룰렛’이라 불릴 만큼 실패율이 높았다. 여성들은 심지어 레몬즙을 묻힌 스펀지를 질에 삽입하기도 했다. 

먹는 피임약도 물론 부작용은 있다. 구토증상 소화불량 체중증가 월경불순 등. 페미니스트들이 초기 경구피임약을 경계한 것도 모성 건강 때문이었다. 피임이 여성 책임처럼 인식돼 양육 등에서 남성에게 면죄부를 주는 역작용도 우려됐다고 한다. 물론, 피임 실패와 낙태 후유증이 모성 건강에 미친 영향이 더 컸다. 

당시의 국가가 여성들 못지않게 경구피임약에 환호했다. 서기 원년 세계 인구가 2배로 느는 데 1500년이 걸렸다. 다시 2배가 되는 데는 300년이 걸렸고, 130년 뒤 또 2배가 됐다. 1930년 세계 인구는 20억 명이었지만, 2000년에는 65억 명이었다. 20세기 중반의 서구 사회는 경구피임약을 멜서스의 어두운 예언에서 벗어날 구명 줄이라 여겼다.(지구 차원에서 보자면 멜서스 전망은 아직 유효하다.) 

한국은 60년대 산아제한ㆍ가족계획이라는 국가 사업 덕에 먹는 피임약의 수혜를 선진적으로 누린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서구와 달리, 국가가 임신권을 통제한 사례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경구피임약을 가장 뜨겁게 반긴 건 68혁명의 주체들이었다. 그들에게 경구피임약은 성 해방의 상징이었다.

 4. [동아일보][이기호의 짧은 소설]나의 폭풍 다이어트 돌입기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사랑스러운 동생 슬기에게.

이렇게 가끔 늦은 시간까지 혼자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가족 생각이 많이 납니다. 될 수 있는 한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사실 가족 생각을 하면 허기가 더 많이 지거든요. 그러면 또 잠들기도 어렵고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지기도 합니다. 내가 지금 무슨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이 이어지다 보면 당장에라도 짐을 싸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버스 한 번 타면 삼십 분 만에 도착하는 나의 집, 아늑한 침대가 있고, 손때 묻은 피아노가 있고, 또 냉장고 한편 냉동 삼겹살과 군만두와 콜라와 조각 피자가 소박한 모습으로 쌓여 있는 집.

사실 좀 전, 침대에 눕기 전 마지막으로 체중계에 한 번 올라갔다가 많이 시무룩해졌습니다. 아마 제가 지금 이렇게 센티멘털해진 이유도 그 때문이겠죠. 저녁도 고구마로 때우고, 스쿼트와 윗몸일으키기도 땀 날 때까지 했는데, 그랬는데도 몸무게는 92kg입니다. 그러니까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집까지 나와 혼자 자취를 시작한 지도 60일이 지났는데, 몸무게는 겨우 0.5kg 줄어든 겁니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제가 목표로 삼은 75kg까지는 5년 하고도 8개월이 더 걸린다는 계산이 나오네요. 후…. 곰도 마늘을 100일만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데, 왜 나는 고구마를 5년 8개월 동안이나 먹어야 하는 것일까, 고구마 먹는 게 무슨 주택청약 붓는 것도 아니고…. 이참에 저녁을 고구마에서 마늘로 바꿔볼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우울해진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제가 단순하게 몸매 때문에, 연애라도 한 번 해볼 마음으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고 생각하고 계시겠지만…. 사실, 제 나름대로 상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제가 장남으로 태어나 다른 남자들과 다르게,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유치원에 취직한 데에는 다 그만한 신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신념이라는 말이 좀 거창하다면, 그냥 적성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네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90kg이 넘었지만, 몸무게와 상관없이 아이들을 돌보는 게 좋았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했습니다(물론 그건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태어난 우리 막내 슬기 탓도 있었죠). 그래서 남들이 뭐라 하든 유아교육과를 선택했고, 이렇게 바라던 대로 임용고시를 거쳐 유치원 교사가 되었습니다. 조금 뚱뚱하다는 것이, 남자라는 것이, 내 꿈을 향해 나아가는 데 전혀 방해되지 않았습니다. 유치원엔 정말 남자 교사로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았거든요. 힘을 쓸 일도 많고, 에너지도 많이 필요하고…. 그래서 어쩌면 더 보람 같은 것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게 다 아이들 때문에 생긴 상처입니다. 아이들이, 그러니까 제가 달래주려고 안아준 아이들이, 제 가슴을 손으로 계속 조물락 만지는 거까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뭐, 아이들이 엄마 생각도 나고,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자기 앞으로 나온 간식이 사라졌을 때, 같은 반 친구 생일잔치에 나온 바나나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졌을 때, 그때마다 모두 짠 것처럼 저를 바라보던 그 눈길을, 방귀 냄새가 날 때마다 저를 돌아다보던 그 순진한 산새반 아이들의 눈길을, 신념이나 적성만으로 이겨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아기 돼지 삼형제 책을 읽어주면 저를 빤히 바라보는 그 눈길 때문에, 책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저 자신이 한심스럽고 창피했습니다. 진짜 신념이 있다면 살부터 빼자, 자꾸 아이들이 미워지기 전에 다이어트를 하자, 그렇게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 어머니. 자꾸 제 자취방에 찾아오셔서 얼굴이 핼쑥해졌다, 핏기가 하나 없다, 고구마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 안 찐다,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마음이 약해져서 한 개 먹으려고 했던 고구마를 세 개 네 개씩 먹게 됩니다. 아이들도 이미 겉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 내리는 세상입니다. 제 신념과 적성을 위해서 저를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론 해남고구마 말고요, 그냥 평범한 고구마를 보내주세요. 이러다간 정말 해남고구마, 제가 다 먹어버리고 말 거 같습니다. 밤은 이미 깊었지만, 허기가 져 잠이 오지 않네요. 아버지 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아들 올림.

5. [동아일보][내 생각은]책을 읽읍시다 이왕이면 사서 읽읍시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 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은 성인 비율은 65.3%라고 한다. 교과서, 참고서, 잡지, 만화책 등이 아닌 단행본을 1년에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은 성인 10명 중 7명이 채 안된다는 얘기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소식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소식이 나는 우울하다. 책을 팔아 생계를 꾸리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책을 안 읽는다’는 것보다 ‘책이 안 팔린다’는 소식이 더 우울하다. 

자료를 찾아보니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도서구입비가 1만6000원이란다. 전년 대비 2000원 정도 떨어진 수준이다. 여기엔 참고서, 문제집 등도 포함돼 있을 테니 일반 도서를 구입하는 데 지출한 비용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서점에서조차 책을 안 사도 수십 명이 맘 놓고 독서할 수 있는 책상을 들여놨다. 그저 ‘읽지 않는 것’만 걱정하니 ‘읽어만 줘도’ 고마워해야 하는 상황이다.

출판도 엄연한 산업이고 책도 상품이다. 팔리지 않고 사주지 않으면 작가는 더 좋은 원고를 쓰기 어렵다. 출판사도 다양한 신간 출판에 모험을 거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살 만한 책이 없어 독서를 안 한다’는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읍소하고 싶다. “책을 읽읍시다. 이왕이면 사서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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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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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6일 수요일 한국일보사설/한겨레신문사설/동아일보사설

 



[한국일보사설-160316수] 적신호 켜진 기업 조직문화, 구태 벗어나야

 

국내 기업의 조직문화에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에 상명하복식 업무지시, 상습야근, 비생산적 회의, 불합리한 평가방식 등으로 불통과 비효율, 불합리 등이 횡행하면서 조직의 건전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지난해 6월부터 9개월 간 국내 기업 100개사의 임직원 4만 명을 조사해 이 같은 내용의 ‘기업문화 종합진단 보고서’를 발표했다.

 

진단에는 맥킨지의 조직건강도(OHI·Organizational Health Index) 분석기법이 활용됐다. 리더십, 조율ㆍ통제, 역량, 책임소재 등 9개 영역의 37개 세부항목을 평가 점수화해 글로벌 기업 1,800개사와 비교한 방식이다. 조사대상 100개사 중 최하위 수준 52개사를 포함해 77개사의 조직건강에 의문이 제기됐다. 중견기업은 91.3%가 하위수준으로 평가됐다. 진단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취약점은 리더십, 조율과 통제, 역량, 외부지향성에 있었다. 세부적으로는 상습야근과 주먹구구식 일 처리, 과도한 보고, 소통 없는 일방적 업무지시 등이 나쁜 점수를 받았다.

우리 기업은 제조혁신을 통해 앞서 나가는 해외기업을 따라잡는 전통적 성공 방정식에는 익숙하지만, 지식과 창의력 리더십 등을 발휘해 급변하는 시장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글로벌 기업의 역량을 따라잡기에는 힘이 달린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 주된 원인은 후진적 기업문화일 가능성이 드러난 셈이다. 상사의 불합리한 지시에도 임원 앞에서 정자세로 서서 불명확하고 불합리한 리더의 업무지시에 ‘왜(Why)’라고 묻거나 ‘아니(No)’라고 거부하지 못하고 무조건 따르는 상명하복의 불통문화가 단적인 예로 제시됐다. 또 “한국 기업의 임원실은 마치 엄숙한 장례식장 같다”는 국내 기업 외국인 임원의 지적은 뼈아프다. 이래서야 창의력이 싹틀 토대가 없다. 유교적 전통에 덧붙여 오랜 권위주의 통치에 따른 군사문화에 기업문화가 접목된 것이 배경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말대로 ‘피처폰’에 머물고 있는 기업문화를 스마트폰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때가 왔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구시대적 기업문화로는 생존과 성장이 어렵다. 아울러 기업문화의 획기적 개선에는 결국 기업 최고경영자의 인식과 의지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과 종업원을 사유물 취급하는 구시대적 사고방식, 재벌 2ㆍ3세가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르는 세습경영으로는 난관을 타개할 수 없다. 한 기업과 경제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 오너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후진적 황제경영 방식을 고집할 때가 아니다.

 


 

[한국일보사설-160316수] 국민 우롱하는 여당의 유승민 공천 배제 분란

 

새누리당 공천 갈등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오만과 독선이 느껴진다. 총선 공천이 기본적으로 정당 내부의 일이라고 하나 상식과 민주주의 원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작금 여당에서 벌어지는 일은 국민의 상식과 민주적 원리를 짓밟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기치 아래 오랜 기간 당내 토론을 거쳐 마련된 공천 원칙과 기준들이 무시된 대신 독단이 횡행하고 있다.

 

새누리당 공관위는 15일에도 유승민(대구 동을) 의원 공천 배제를 놓고 진통을 거듭하다 16일로 또 한번 결정을 미뤘다. 전날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현역의원 공천 배제 기준의 하나로 “당 정체성과 맞지 않는 행동은 한 사람”을 제시했다. 명백히 유 의원을 겨냥한 기준이다. 대구지역 권은희 홍지만 김희국 류성걸 의원, 이종훈(경기 성남분당갑) 조해진(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의원 등 유 의원과 친한 의원들을 대거 탈락시킨 것도 유 의원의 수족 자르기로 보인다. 눈밖에 벗어났다고 철저하게 유 의원을 배제하려는 권력의 집착에 소름이 돋는다.

유 의원의 정체성 논란은 지난해 4월 당시 원내대표로서 한 국회교섭단체 연설에서 비롯됐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대목이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청와대와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3개월 후 유 의원은 국회법 파동 속에 박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 낙인이 찍혀 원내대표직에서 밀려났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호흡을 맞춰 입법활동과 국정의 조화를 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철학은 접어두고 무조건 대통령의 뜻에 맞추라는 것은 3권 분립을 규정한 헌법 원리에 어긋난다.

정당이 노선과 정체성을 중심으로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다양성을 보일 때 더 많은 국민을 대표하고, 그만큼 외연확장 가능성도 커진다. 그런데 새누리당 공관위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는 현역의원들은 모조리 털어내려고 작심한 듯하다. 5선의 비주류 중진 이재오(서울 은평을) 의원과 복지부장관 시절 박 대통령과 마찰을 빚은 진영(서울 용산ㆍ3선) 의원을 탈락시킨 것도 충격이다. 공천 칼 바람의 선두에선 이한구 공관위원장이‘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인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최근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 이 위원장과 현기환 청와대정무수석의 비밀회동설, 윤상현 의원 욕설 녹취록 파문 등은 권력 핵심부가 공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윤 의원의 공천 배제만으로 그런 무리수와 비정상적 행태가 가려질 수는 없다.

 

 

 

[한국일보사설-160316수] 성큼 다가온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하자

 

세계의 이목을 끈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의 역사적 대결이 끝났다. 알파고는 마지막 다섯 번째 대국에서 인류 대표 이 9단을 불계승으로 물리쳤다.

 

4 대 1 완승이다. 그래도 이 9단이 1승을 거둬 알파고의 기능적 한계를 확인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첫 판에서 이미 인공지능(AI)의 엄청난 위력이 확인된 만큼 그 뒤의 승패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었다. 설령 이 9단이 4승1패 내지 3승2패로 승리를 거뒀더라도, AI의 발전 속도로 볼 때 알파고의 궁극적 승리는 예견된 수순이었던 셈이다.

 

이제 인류의 관심은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AI 기술이 삶에 침투한, 미래 사회의 모습에 쏠리고 있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AI가 발전하면 인간이 더 똑똑해지고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그럼에도 알파고의 승리를 목도한 많은 사람들이 기계시대의 도래와 인류의 종말을 떠올리는 게 사실이다. 정보기술(IT) 혁명으로 수많은 직업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 미국 노동력의 8.2%가 신기술과 연관된 새 일자리로 옮겼으나, 2000년대에는 그 비율이 0.5%로 축소됐다. AI 같은 첨단기술일수록 관련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속도가 늦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실제 콜센터 등 단순 업무는 물론 날씨예보 주식투자 의료 법률 언론 등 전문영역까지 AI에 잠식당하고 있다. 올해 초 다보스포럼에선 향후 5년 내 700만 개의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왔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거대 자본이 AI에 기반한 로봇 사물인터넷 등 융합기술을 장악할 경우 1 대 99가 아닌 1대 999의 세계가 열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 북한과 같은 세력이 AI 기술을 탑재한 군사용 로봇을 대량인명살상 목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인류는 그 동안 다이나마이트, 원자력, 로켓 등의 신기술이 인류 문명을 파괴하는 대재앙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스티븐 호킹 교수가 “인류는 100년 내 AI에 의해 끝장이 날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를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렇다고 AI 시대의 도래를 무조건 거부할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기술의 진보를 통해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킨 사례도 많다. 산업혁명을 잘 관리한 영국 등이 그런 예에 속한다. AI 혁명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가 됐다. 이제 인류가 어떻게 AI를 통제하면서 행복한 사회시스템을 갖추느냐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도 AI 기술을 제어할 국제협약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한겨레신문사설-160316수] ‘알파고 이후’의 과제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펼친 다섯 차례 대국이 모두 끝났다. 지난 일주일 사이 우리들은 인간의 직관과 추론 능력을 쏙 빼닮은 알파고의 위력에 충격을 금치 못했고, 동시에 포기를 모르는 투혼으로 알파고를 한 차례 무릎 꿇린 인간의 의지에 희열을 맛보기도 했다.

 

눈앞에서 지켜본 인공지능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과잉 열풍도, 과잉 불안도 모두 적절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인공지능은 위협적이었으되, 아직은 한계 또한 분명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토대로 기계학습(머신러닝) 방식을 따르다 보니, 스스로 학습한 적이 없는 돌발상황과 맞닥뜨렸을 땐 어이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바둑과 같은 두뇌게임이 아니라 무인자동차나 의료 등 일상생활 분야에 곧장 적용됐더라면 치명적 피해를 입혔을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의 앞길이 아직은 꽤 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알파고와 함께한 일주일은 우리의 부족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줬다. 아프지만 값진 시간이라 할 만하다. 인공지능 분야란 첨단 과학기술이 한데 집약된 대표적인 융복합의 영역이자 자연과학·인문학·공학·의학 등을 두루 아우르는 연구개발 능력의 결정판이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가는 인내의 시간과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창의적 사고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쉽사리 넘보기도 따라가기도 힘들다. 떠들썩한 세기의 대결이 결국 구글의 잔치로 끝나버린 건, ‘구상’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모방과 실행에만 매달려온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해마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연구개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도 단기적 효과의 가능성 위주로 인적·물적 자원을 배분해온 ‘추격자’ 모델이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종합적인 인공지능 육성방안을 다음달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들이 참여하는 형태의 지능정보기술연구소 설립 움직임도 있다. 미래 인류 문명을 좌우할지도 모를 사업을 번갯불에 콩 볶듯 밀어붙이는 태도도 문제거니와, 정부가 결정하고 기업들은 무조건 따르도록 하는 행태는 여러모로 볼썽사납다. 창조경제 한답시고 전국 17곳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세워 사실상 기업에 할당하는 구닥다리 경제의 판박이가 아니고 무엇인가.

 

 

 

[한겨레신문사설-160316수] ‘핵 위협’ 강화하는 북한, 대북 경계심만 키울 뿐

 

북한이 미국 등을 겨냥해 핵 위협 수준을 부쩍 높이고 있다. 북쪽으로선 여러 목적이 있겠지만 결국 국제사회의 대북 경계심을 더 강화시킬 뿐이다. 북쪽은 이제라도 비핵화의 길을 선택해 국제사회와의 공존을 추구하길 바란다.

 

북쪽 관영언론이 15일 보도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체 기술을 자력으로 개발했다는 것으로, 며칠 전 주장한 핵탄두 소형화·다종화 기술과 결합할 경우 미국을 직접 공격할 역량을 갖추게 된다. 다른 하나는 ‘이른 시일 안에 핵탄두 폭발시험과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여러 종류의 탄도로켓 시험발사를 단행’하겠다는 것이다. 5차 핵실험에 대한 예고인 셈이다. 북쪽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면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버금가는 수준의 핵 기술을 확보한 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북쪽이 아직 핵탄두 소형화와 재진입체 기술 등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북쪽이 최근 핵 위협 수준을 높이는 의도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대한 반발과 내부 결속, 강화된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대응, 핵 능력의 기정사실화 등이 그것이다. 북쪽이 연이어 발표한 핵 관련 내용 가운데는 믿기 어려운 게 적지 않지만 적어도 북쪽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북쪽이 이런 태도를 고수하는 한 ‘위험한 나라’라는 국제사회의 인식은 더욱 커질 것이다. 각국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가 더 강화될 수도 있다. 이는 김정은 정권에게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

 

북쪽의 핵 능력 강화 주장은 국제사회의 기존 대북 접근 방식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북쪽이 오랜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 능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면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제재와 더불어 중국과 러시아가 강조하는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논의를 시도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는 대북 대응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공조를 유지·강화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특히 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만큼이나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정부는 대북 압박 일변도에서 벗어나 6자회담 재개로 향하는 동력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의 새로운 핵실험과 로켓 발사를 막고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한겨레신문사설-160316수] ‘개혁 보수’ 축출로 ‘꼴통 보수’ 자인하려는가

 

새누리당이 유승민 의원의 공천 배제(컷오프)에 대한 최종 결정을 계속 미루고 있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15일 저녁 유 의원의 공천 여부 발표를 보류하면서 “내부 의견 통일이 안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 의원들은 이날도 “새누리당 당헌에 어긋나는 대정부 질문을 했다”(박종희 사무2부총장), “당의 옷을 입고 엉뚱한 행동과 말로 민심을 호도했다”(홍문종 의원) 따위의 말로 공천 배제 분위기를 몰아갔다.

 

 친박 의원들이 유 의원 공천 배제의 이유로 내세운 것은 그의 ‘정체성’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새누리당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잘 보여준다. 유 의원에 대해 대다수 국민은 ‘건강한 보수’ ‘개혁 보수’ ‘유연한 보수’ 등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는 야당도 선뜻 나서지 못한 증세 문제를 공론화했고, 보수당의 금기라 할 재벌·대기업을 비판하면서 “새누리당은 가진 자, 기득권 세력의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중산층의 편에 서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개혁보수의 아이콘’인 유 의원을 찍어내려는 것은 새누리당 스스로 ‘수구 보수’ 내지는 ‘꼴통 보수’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유 의원이 ‘문고리 권력’의 과도한 국정 개입 문제를 지적하며 “청와대 얼라들”이란 말을 한 것을 공천 배제의 근거로 대는 것은 친박계의 정신 상태가 어떤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 새누리당 친박계의 행태를 보면 ‘꼴통 보수’라는 말도 과분해 보인다. 이들이 유 의원을 기어코 찍어내려는 진짜 이유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박 대통령이 유 의원을 향해 “배신의 정치”라는 저주를 퍼부었을 때부터 이들의 공천 작업 최종 목적지는 유 의원 축출이었다. 지금 친박계의 모습은 보스의 눈에서 벗어난 부하를 끝까지 쫓아가 숨통을 끊어놓는 뒷골목 조폭들이나 다를 바 없다. 잔인하고 냉혈하기 짝이 없는 보스, 그의 지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행동대원들이 득실대는 ‘조폭 집단’이야말로 지금의 새누리당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단어인지도 모른다.

 

 유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 파문으로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의 지엄한 가치는 여지없이 무너졌고, 나라는 민주공화국이 아닌 일인 지배 국가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동아일보사설-160316수] 이한구의 노골적 眞朴 살리기, 이번엔 ‘非朴학살’인가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어제 “김무성 죽여” 막말로 해당(害黨) 행위를 한 윤상현 의원의 컷오프(공천 배제)를 발표했다. ‘태풍의 눈’이던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은 새누리당 현역 의원 중 유일하게 공천 발표가 보류됐다. 유 의원을 컷오프하려는 이한구 위원장 등 친박(친박근혜)계 공관위원과 총선 역풍을 우려하는 위원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져 결국 최고위원회의 안건으로 올린다고 한다. 이렇게 논란이 커질 정도면 경선을 붙여 투명하게 처리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에 맞는다.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 곽상도 전 민정수석, 윤두현 전 홍보수석,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 등 대구의 ‘진박(眞朴·진실한 친박) 5인방’은 모두 단수 추천이나 경선을 치르게 됐다. 현역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알려졌던 이들이 모두 1차 관문을 통과한 데는 꼼수도 작용했다. 공관위가 그제 대구의 주호영(수성을) 서상기 의원(북을)을 컷오프하고 각각 여성과 장애인 우선추천 지역으로 정하자 진박과 경쟁했던 예비후보들이 이쪽으로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이 30일도 안 남은 가운데 진박을 살리기 위해 이루어지는 후보 재배치는 대구를 아무렇게나 주물럭거려도 되는 ‘영지(領地)’쯤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다.

 

‘유승민계 4인방’으로 알려진 대구의 김희국(중-남) 류성걸 의원(동갑)과 조해진(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이종훈 의원(경기 성남 분당갑) 등은 모두 컷오프됐다. 친박계가 주도했던 2012년 19대 공천 당시 친이(친이명박)계의 수장 격인 이재오 의원만 살려 두고 측근인 진수희, 권택기 유정현 전 의원 등 친이계를 대거 쳐냈던 일을 연상케 한다. 이번에는 유 의원의 자진 사퇴를 유도하려는 ‘유승민 고사(枯死) 작전’이란 말이 무성하다.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던 서울의 이재오(은평을) 진영 의원(용산) 등 비박(비박근혜)계 핵심 인사들도 모두 공천이 배제됐다. 시중에는 ‘한 번 찍은 사람은 반드시 잘라내는 박 대통령이 정말 무섭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박 대통령은 ‘친박 학살’로 불렸던 2008년 18대 공천 때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고 토로했다. 2012년 19대 공천에서 친박계가 ‘친이 학살’을 한 것은 정치적 보복이었다.

 

이번 20대 공천에서도 ‘비박 학살’ 자행이라는 오명을 짊어지는 것이 새누리당이나 박 대통령, 그리고 정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볼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 누구도 박 대통령에게 찍힐 경우 정치적 미래가 없다면 공천의 공정성 여부를 떠나 정치 혐오마저 불러일으킨다. 새누리당이 이러고도 국회 180석, 아니 과반수 의석을 노린다면 도둑놈 심보다.

 

 

 

[동아일보사설-160316수] 천정배, 또 “연대” 외칠 거면 차라리 국민의당 떠나라

 

더불어민주당과의 연대 필요성을 주장해온 국민의당 천정배 공동대표가 어제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와 회동한 뒤 “현재의 여러 여건상 당 차원의 수도권 연대는 여의치 않다”는 입장 발표문을 내놓았다. 안 대표와의 의견 교환에서 자신의 뜻을 밝혔으나 ‘여건상’ 수도권 연대가 여의치 않기 때문에 당무에 복귀한다는 것이다. 전날 천 대표는 안 대표와의 회동을 마지막으로 의견 조율을 시도하고 그 결과에 따라 행보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도부 갈등으로 창당 40여 일 만에 당이 깨질 위기까지 맞았던 국민의당으로서는 한숨을 돌리게 됐지만 이것으로 ‘연대 바람’이 잦아들 것으로 보긴 어렵다.

 

어제 비호남지역 야권 연대를 요구해온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광민회)가 “(안 대표의) 후보자 간의 야권 연대 허용 운운은 무책임한 선동이며 혹세무민”이라며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수도권 야권 연대에 대한 답을 주지 않으면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주장했다. 야권을 지지하는 이른바 진보적 단체의 이런 주장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국민의당은 2일 김종인 더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야권 통합을 제의했을 때부터 찬성파, 소극파, 반대파로 나뉘어 갈팡질팡했다. 4일 당론으로 ‘통합 거부’ ‘수도권 연대도 없다’고 결론 냈음에도 김한길 전 상임선대위원장과 천 대표는 다시 연대를 들고 나왔다. 안 대표가 “지역 후보들끼리 이기기 위한 단일화는 막을 수 없다”고 개인 차원의 야권 연대를 사실상 허용했음에도 천 대표나 김한길 의원은 당 대 당 연대를 주장했다. 당론을 깨고 후보를 나눠 먹자는 야합이며, 제3당이란 대의를 포기하자는 얘기다.

 

천 대표는 꼭 1년 전 4·29보궐선거를 앞두고 지금의 더민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기성 정당의 안팎에서 새판을 짜겠다”며 광주 서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해 당선됐다. 그 뒤 기득권 양당 구도의 극복을 창당 명분으로 내세운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이제 와서 ‘새누리당의 어부지리와 압승 저지’를 주장하며, 뛰쳐나왔던 더민주당과 연대를 하자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유리할 때는 탈당하고 불리할 때는 무조건 뭉쳐야 산다고 외친다면 제3당이란 영원히 실현 불가능하다. 천 대표가 만일 또다시 연대를 주장할 거면 차라리 당을 떠나는 게 낫다.

 

 

 

[동아일보사설-160316수] 조종사의 안전책임 가볍게 여기는 대한항공 회장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13일 대한항공 김모 부기장의 페이스북 글에 ‘개가 웃어요’ 운운하는 댓글을 달아 구설에 올랐다. 김 부기장은 최근 비행 전 브리핑을 고의로 오래 끌고 비행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박모 기장이 파면되자 페이스북에 조종사가 비행 전에 해야 하는 일을 상세히 적었다. ‘한 달에 100시간도 일하지 않으면서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말도 있지만 조종사들 하는 일이 많다는 내용이다. 이에 조 회장이 ‘조종사가 GO NO GO(갈지, 말지)만 결정하면 되는데 힘들다고요? 자동차 운전보다 더 쉬운 ‘AUTO PILOT’(자동항법장치)로 가는데. 비상시에만 조종사가 필요하죠. 과시가 심하네요. 개가 웃어요’라는 반박 글을 붙인 것이다.

 

현재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인 1, 2노조는 임금 인상을 내걸고 준법투쟁을 벌이고 있다. 1인당 평균 1억4000만 원의 연봉을 받는 조종사들이 규정에 어긋난다며 비행을 거부하고 페이스북에 업무가 과중하다는 글을 올린다. 조 회장이 얼마나 화가 났으면 댓글을 수정하면서 ‘개가 웃어요’ 구절을 넣었을까 싶다. 그렇더라도 그의 댓글은 재계 9위 그룹 회장으로서 품위를 잃었다. 이 댓글에서 재작년 12월 ‘땅콩회항’으로 불리는 딸 조현아 전 부사장의 ‘갑질’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많게는 500명이 넘는 승객이 탑승하는 여객기는 자동항법장치로 날지만 이를 작동하고 점검하는 일은 조종사 책임이다. 자동항법장치는 조종사를 돕는 보조 장치에 불과하다. 조종사 일이 뭐가 힘드냐 식의 글은 항공사 최고경영자로서 비행 안전을 소홀히 여긴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귀족 노조’로 불리는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경영진의 임금 상승률이 37%라며 그만큼 연봉을 올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회사 일반 직원 노조가 “절박한 생존권 요구가 아니다”는 성명을 낼 만큼 공감을 얻지 못하는 투쟁이다. 조 회장의 처신도 문제지만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역시 국내 다른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도 헤아리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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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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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5일 화요일 중앙일보사설/동아일보사설/조선일보사설

 


[중앙일보사설-160315유승민·윤상현 운명이 주목되는 이유

 

공천권은 정당이 행사하지만 선발과정이 투명하고 원칙과 기준이 반듯해야 하며 여론의 검증과 민심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어제 저녁 새누리당 공천관리위는 대구의 서상기·주호영·권은희·홍지만 등 현역 의원에 대해 공천배제 발표를 했다. 3선의 서·주 의원은 각각 친박·비박의 중진으로 새누리의 물갈이 폭이 야당에 비해 적다는 비판에 따라 공평하게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홍 의원은 초선으로 이른바 대표적인 유승민계로 꼽힌다.

 

이에 앞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이례적으로 긴급 브리핑을 자처해 현역 의원의 세 가지 탈락 기준을 제시했다첫째국회의원의 품위에 적합한가 둘째당 정체성에 적합한가 셋째상대적으로 편한 지역의 다선 의원들은 양보하는 게 낫지 않은가 등이다이한구 위원장의 발언은 공천 완료를 하루 앞두고 느닷없이 튀어 나왔다이 기준이 처음부터 제시됐다면 논란이 덜했을 것이다살생부 파동비공개 여론조사 유출윤상현 욕설·녹취 파문 등 비상식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숱한 파행과 무리수 끝에 나왔기에 특정인의 탈락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바로 나왔다국회의원 품위 적합성은 윤상현 의원을당 정체성 적합도는 유승민 의원을 겨냥했다는 게 합리적 추론일 것이다탈락 표적을 정해 놓고 발표시 반발과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날림으로 기준을 만들어 공표했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목표를 정해놓고 절차를 짜맞추는 기교(技巧공천이라고나 할까.

 

박근혜 대통령의 정무특보였던 윤상현 의원과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로 지목한 유승민 의원을 선거판에서 동시에 퇴장시켜 공천 평가에 물타기를 해보겠다는 의도가 읽힌다윤상현 의원의 욕설·녹취 파문은 비록 사석에서 취중에 한 언급이 불법녹취돼 공개됐다는 점에서 본인의 억울함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인간의 품위정당의 기강정치공작의 냄새 때문에 당이 공천을 줄 수 없는 사안이다반면 유승민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발언 등으로 박 대통령의 비판을 받긴 했으나 당의 중진이자 원내 지도자로서 복지국가의 비전과 방법론을 밝힌 것으로 봐야 한다집권당 소속 의회 지도자가 대통령의 철학과 정책을 허수아비처럼 구현하는 돌격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이제 국민 일반이 용납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따라서 유 의원이 원내대표 시절 국회 지도자로서 행한 언행을 당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는 건 다수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사실 이 문제는 가치(價値정치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책임정치론과 의회민주주의론의 시대적 논쟁으로 격상시킬 만하다유승민 의원의 당 정체성이 진정 문제라면 여론조사 경선에 참여시켜 당원·유권자의 판단을 구하는 게 순리이고 공정한 게임일 것이다유승민·윤상현 의원의 공천 문제는 서로 완전히 다른 케이스다두 사람의 운명이 친박과 비박의 정치적인 거래 대상으로 취급되는 건 한국 정치의 수치다집권당이 청와대의 꼭두각시라는 비난을 자초할 것이다. .

 

 

 

[중앙일보사설-160315더민주 이해찬 공천탈락여당은 반면교사 삼길

 

더불어민주당이 14일 친노 원로인 6선 현역 의원 이해찬 전 총리와 범친노(정세균)계 5선 이미경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이에 앞서 더민주는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와 함께 친노 원로 4인방으로 꼽혀온 문희상·유인태 의원도 낙천시켰다.

 

전해철·김경협 등 문재인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은 살아남아 친노의 완전한 퇴장이 이뤄졌다고 보긴 어렵다그러나 친노 중진 13명을 잇따라 탈락시킨 공천 결과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노무현 정부 이래 10년 넘게 야당을 주도하며 패권주의 논란을 일으킨 친노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친노도 처음엔 개혁세력으로 출발했다노무현 정부의 핵심이었던 이들은 부패정치 청산과 자주외교 등 당시로선 참신한 개혁 어젠다를 밀어붙였다그런 노력들엔 긍정적 측면이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하지만 운동권 출신 특유의 이념과잉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해 국민의 지지를 잃고 말았다친노가 주도한 열린우리당·민주당이 두 차례 대선과 재·보선에서 연전연패한 이유다그럼에도 친노는 특유의 결집력을 무기로 당권을 고수해 왔다비주류가 자신들을 비판하면 공천 욕심이란 한마디로 일축하기 일쑤였다.

 

그랬던 친노들이 김종인 비상체제가 들어서면서 한칼에 추풍낙엽 신세가 됐다김종인이 아니라 민심의 거센 파도 때문이다이해찬 의원은 공천심사 성적이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무적 판단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탈락했다그를 공천하면 친노 패권주의 청산을 바라는 국민들의 반발로 총선에서 참패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을 지도부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친노의 몰락은 운동권 정치인 대신 실질적 능력을 갖춘 전문가를 원하는 사회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민주화 운동 경력이 공천과 당직의 기준이 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여당도 친노의 몰락을 반면교사 삼아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천을 해야 한다그러지 않으면 또 다른 친노 세력으로 낙인찍혀 심판 당할 것이다. .

 

 

 

[조선일보사설-160315잡음만 컸지 참신한 맛 없는 與 공천이러고도 票 바라나

 

새누리당이 12~13일 75곳의 총선 후보 공천과 20개 지역 경선 결과를 발표했다강길부·박대동·이이재·길정우 의원 등 현역 5명이 컷오프에서 탈락했고경선에선 현역 2명이 떨어졌다공천관리위원회 파행 사태까지 불렀던 김무성 대표와 정두언·김용태 의원은 경선이나 단수 추천으로 공천이 결정됐다지난 몇 달간 막장 싸움으로 번진 친박(親朴)과 비박(非朴간 공천 내분이 4·13 총선을 불과 한 달후보 등록을 열흘 앞두고서야 겨우 봉합 국면으로 들어가는 모양새다.

 

이날 현재 현역 의원은 비례 포함 총 8명이 탈락했다하지만 상당수 현역은 단수 공천을 받거나 경선에서 이겼다앞으로 의외의 경선·공천 결과가 나올 수는 있지만현역 물갈이나 새 인물 영입 측면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이 정도 공천 결과를 보여주려고 지난 몇 달간 진흙탕 싸움을 벌여온 것이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장기 공천 파행의 뒤에 청와대의 의중이 작용한 것처럼 비친 것도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박근혜 대통령 스스로가 "진실한 사람들을 뽑아 달라"고 논란을 일으키더니 지난주엔 대구·경북 지역을 방문해 노골적으로 경선에 개입했으니 오해라고만 할 수도 없다최경환 의원 등 친박 핵심 인사들이 전국을 돌며 '진박(眞朴·진짜 친박마케팅'이라는 볼썽사나운 일을 한 것이나 이한구 위원장의 최근 행태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청와대·친박과 갈등을 빚은 유승민 의원과 비박 현역들의 지역구가 발표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여전한 분란거리로 남아 있다유 의원은 지역 여론조사에서 계속 1위지만 뚜렷한 이유도 없이 경선 지역으로 선정조차 하지 않았다유 의원과 가까운 다른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도 마찬가지다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6월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유 의원을 공격했기 때문일 것이다.이 불씨가 언제 다시 발화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새누리당에서 또다시 분란이 재연된다면 총선 결과는 뻔하다이런 여당에 어느 국민이 표를 주려 할 것인가이제 야당도 후보 연대를 추진하고 있으니 여당은 야 분열 구도 하에서는 무슨 일을 해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박 대통령도 앞으로 2년 가까이 남은 임기 동안 싫어도 여당의 도움을 받아야 경제·안보의 양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면 선거 후엔 당이 심각하게 분열해 서로를 증오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그렇게 되면 박 대통령은 도대체 누구 지원을 받아 경제·안보 위기에 대처할 수 있겠는가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민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스스로 각성해야 할 때다.

 

 

 

[조선일보사설-160315또 말 바꾸며 물러서기 시작하는 안철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3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총선에서 야권 연대는 없다면서도 "지역 후보들끼리 이기기 위한 협상은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원칙적인 언급이고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때는 아니다"고는 했지만 당 차원에서 야권 연대에 나서진 않더라도 각 지역 후보들 간의 단일화는 막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당 차원 연대나 후보 간 연대나 결과는 사실상 같은 것이다말장난이나 다름없다.

 

과거 사례에 비춰 보면 총선에서 저마다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조건 없이 단일화 합의를 이루는 것은 드물었다상당수 뒷거래가 있었다이번에도 야권 후보 간 연대가 정말 당 차원 조정 없이 이뤄진다면 금품이나 자리 약속과 같은 거래가 벌어질 개연성이 있다한때 새 정치를 내세웠던 사람들이 갈 길이 아니다.

 

두 정당이 당 차원에서 또는 특정 지역의 후보들끼리 정책 연대를 통한 선거 공조를 할 수는 있는 일이다그러나 우리 경우엔 이 연대가 순전히 당선을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어서 선거 후엔 연대는커녕 원수처럼 싸우기 일쑤였다더 심각한 것은 이제 단일화를 선거 전술로 써먹는 세력들이 국민 앞에 대놓고 거짓말을 한다는 점이다.

 

안 대표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야권 통합과 수도권 야권 연대에 대해 "광야에서 죽겠다"는 말까지 써가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수도권 연대에 대해서는 "원칙 없이 뭉치기만 해선 더 많은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그러다가 이제는 '지역 후보들끼리 하는 것은 못 막는다'고 슬그머니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국민의당은 지금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다안 대표 말이 바뀌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그러나 대선 후보직 사퇴 등 그동안의 안 대표의 정치적 실패는 중요한 고비마다 지금처럼 상황에 따라 흔들리며 처음 세운 뜻을 바꿨기 때문이었다이번에도 위기가 오자 결국 과거의 전철을 밟으려 한다그렇게 되면 국민의당이 내세워 많은 유권자가 호응했던 '3당의 가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것이다..

 

 

 

[조선일보사설-160315만능 계좌무리한 마케팅 막되 주부도 가입하게

 

오늘부터 시중은행과 증권사들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판매하기 시작한다. ISA는 예·적금펀드주가연계증권(ELS) 등 다양한 금융 상품을 한 계좌에 담아 운용하는 '만능 계좌'로 정부는 연수익 250만원까지 세금을 면제하고 그 이상 수익에는 9.9%의 낮은 세율을 적용한다저금리 상황에서 서민과 중산층에게 파격적인 세금 혜택을 주는 상품이 등장한 것은 일단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올해 10조원 넘게 팔릴 것으로 예상되는 ISA가 의도대로 서민과 중산층 재산 증식의 도우미 역할을 하려면 당장 보완할 점이 적지 않다우선 걱정은 금융 회사들이 과장되고 사실과 다른 정보를 내세우며 무리한 마케팅에 나서는 행태다시중은행과 증권사들은 이미 '완전 비과세' '손실 제로' '연 5% 약정수익률'처럼 자극적인 표현까지 동원하며 가입자 모으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금융 당국이 경고를 보내고 행정지도까지 했지만 과열 경쟁 우려는 가시지 않았다최근 2~3년 새 시중은행과 증권사들은 홍콩 주가지수에 연결된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을 "중국이 망하지 않는 한 손해가 안 난다"고 장담하며 37조원 넘게 팔았다가 상당수 소비자가 원금 손실을 보게 했다글로벌 위기 당시 중소기업들에 4조원 넘는 손실을 끼친 키코 사태도 따지고 보면 금융사들의 무리한 판매가 원인 중 하나였다금융 당국은 ISA 역시 잘못되면 손실이 날 수 있다는 사실부터 소비자들에게 금융사들이 제대로 알리게 해야 한다.

 

정부가 ISA의 가입 문턱을 지나치게 높인 것도 고쳐야 한다국내 ISA는 소득이 있는 근로자나 자영업자만 가입할 수 있고 주부나 은퇴자학생은 가입할 수 없다부모가 자녀들의 ISA 통장을 만들어줄 수 있는 일본이나, 16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 자격을 주는 영국에 비해 제한이 과하다게다가 보험수시 입출금 통장 같은 상품이 ISA에 포함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명실상부한 만능 계좌를 만들려면 금융사들의 무리한 판매는 막으면서 ISA의 가입 문턱은 낮추고 포함 상품은 늘려야 한다..

 

 

[동아일보사설-160315새누리 윤상현-유승민 맞교환 탈락이 공정한 공천인가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어제 오후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과 윤상현 의원(인천 남을지역구를 빼고 6차 공천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텃밭인 대구에서 권은희(북갑), 홍지만(달서갑), 서상기(북을), 주호영(수성을의원 등 현역 4명을 탈락시켰다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과 비교하면 우리의 공천은 개혁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밝혔듯이 이 정도의 현역 물갈이와 메시지로 국민에게 어떻게 표를 달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제 오전 이 위원장이 예고 없이 세 가지 공천 배제 기준을 뒤늦게 발표한 것도 혼란을 가중시켰다그는 국회의원으로서 품위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 ‘당 정체성과 관련해 심하게 적합하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 ‘상대적으로 편한 지역에서 다선 의원의 혜택을 즐긴 사람을 제시했다누가 봐도 첫째는 김무성 죽여” 막말 파문을 일으킨 윤상현둘째는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자로 낙인찍은 유승민셋째는 대구에서 3선을 한 주호영 서상기 의원 등을 연상케 하는 기준이다.

 

이 위원장의 돌출 발표에 윤상현과 유승민을 동시 처리하려는 꼼수라는 얘기가 당 안팎에 파다했다친박과 청와대의 의중을 대변하는 이 위원장은 유 의원의 공천 탈락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다른 공천위원들이 반발했다고 한다이에 친박계가 반드시 유 의원을 찍어내기 위해서 윤 의원을 희생양 카드처럼 내놓았을 수도 있다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윤 의원이 스스로 불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을 경우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대신박 대통령이 진실하지 않은 사람으로 지목한 유 의원은 반드시 쳐내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두 의원의 문제를 등가(等價)로 보고 맞교환하듯 공천에서 배제하는 것이 공정한지는 의문이다윤 의원은 당 대표를 공천으로 솎아내겠다는 막말을 함으로써 새누리당 공천의 신뢰도를 나락으로 추락시킨심각한 해당(害黨행위자다.

 

이에 비해 유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 박 대통령의 복지공약을 공개 비판하고 야당의 국회법 개정 요구를 수용하는 바람에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양심수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 대통령을 정면 비판해 자기 정치라는 비판을 들을 수는 있다하지만 미운털이 박혔다고 공천까지 탈락시킨다면 박 대통령의 옹졸함을 부각시켜 총선 전략으로는 마이너스가 될 공산이 크다.

 

 

 

[동아일보사설-160315친노좌장 이해찬 잘라낸 더민주 공천이 보다 낫다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친노(친노무현좌장인 6선의 이해찬 의원을 공천에서 떨어뜨렸다불출마를 권유했으나 거부하자 컷오프시킨 것이다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정무적 판단이라고 잘라 말했다이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 실세 총리를 지냈고 지금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김 대표가 친노 패권 청산과 운동권 정치 탈피를 공언하면서 친노 수장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더민주당에서 공천 탈락한 현역 의원 21명 중 13명이 친노다. 5선의 이미경과 문희상 의원, 3선의 유인태 의원과 재선의 정청래 의원 등 상징적’ 의미가 있는 친노가 대부분이지만 전해철 홍영표 이목희 등 문재인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이 건재한 것도 사실이다총선이 끝난 뒤 이들이 문 전 대표와 패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더민주당에서 통합 제안을 받았던 국민의당이 더민주당에서 친노 세력의 패권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며 이해찬 의원 공천 배제는 도마뱀 꼬리 자르기와 같다고 평가 절하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친노의 완전한 청산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김 대표가 악역을 맡아 이해찬 의원을 비롯해 친노를 중심으로 한 물갈이를 실제로 단행한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친노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대결과 투쟁 일변도의 독선적인 정치 행태를 보이기 일쑤였다지금도 독재타도 운동하듯이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경제와 국가안보를 위해 꼭 필요한 법안까지도 발목을 잡아 식물국회를 초래해 국민의 원성이 높았다.

 

당 일각에선 지지층 이탈을 우려하지만 선거구도 전체를 놓고 판단한 김 대표의 결단은 평가할 만하다뚜렷한 지향점도 없이 당내 계파 갈등만 요란하고 실제 물갈이 폭은 얼마 되지도 않는 새누리당의 공천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앞으로 공천 탈락자들의 저항과 반발이 거셀 것이다김 대표가 이런 반발에 굴복한다면 원칙이 허물어지고 개혁 명분도 실종될 우려가 크다비례대표에서 친노와 운동권을 공천하면 지금까지의 공천 개혁은 하나마나다안보와 경제 같은 전문성을 중시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사람 위주로 공천해 더민주당을 명실공히 유능한 경제정당안보정당으로 만들기 바란다그래야 한 달도 안 남은 총선은 물론이고 1년 9개월 뒤 대선에서도 민심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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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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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4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인공지능 한계 넘은 이세돌에게 박수를

‘인간 대표’인 이세돌 9단은 어제 진행된 알파고와의 4국에서 값진 승리를 거뒀다. 연속 세 차례의 쓰라린 패배를 맛본 뒤에 거둔 수확이다. 인공지능이 뛰어나긴 하지만 인간이 결코 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확인시켜 준 것이다. 비록 5번기에서는 이미 승부가 가려졌을망정 마지막까지 불타는 의지를 꺾지 않고 투혼을 불사른 결과다.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박수를 쳐야 하는 것은 승리를 거뒀다는 것보다는 매 대국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이세돌 선수의 의연한 모습이다. 피를 말리는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한 수, 한 수에 온힘을 쏟는 모습이야말로 세계 최고수로서의 자존심이다. 자신에게 쏠리는 세계의 눈길 때문에 중압감을 느끼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번 4국의 승리를 두고 인간의 완전한 승리라고 축배를 들기에는 이르다. 이세돌 선수가 나름대로 완벽을 기하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알파고의 완착이 몇 차례 이어진 덕분임을 무시할 수 없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듯이 사람이 만든 기계도 완전할 수 없다는 교훈을 깨우쳐주고 있는 셈이다. 무려 1202개의 중앙처리장치(CPU)가 알파고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다고 해도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세돌 선수가 어제 승리를 거둠으로써 그동안의 연패로 인한 마음고생을 어느 정도는 덜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더욱이 첫 대국에서부터 불계로 패배하면서 상대방을 처음부터 가볍게 봤던 자책감도 없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올해 서른세 살인 그가 열두 살에 프로로 입단한 이래 지금처럼 곤혹스런 경우에 맞닥뜨린 적이 일찍이 있었을까. 일각에서 ‘불공정 게임’이라는 주장이 제기될 만큼 알파고는 최정예 선수로서의 기량으로 이세돌을 압박했던 것이다.

이제 알파고와의 남은 대국도 내일의 한 판이 마지막이다. 인공지능과의 싸움이 결국 인간의 패배로 끝나는 것이어서 서운하기는 하지만 이세돌 선수의 바둑은 새롭게 발돋움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내일 대국에서도 최대의 기량을 남김없이 발휘함으로써 인류 대표로서 손색없는 자긍심을 빛내주길 바란다. 마지막까지 바둑판을 응시하며 의연한 모습을 지켜주기를 기대한다.

[동아일보]

2. 숭숭뚫린 아동학대 방지 메뉴얼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계모가 “길에다 버렸다”던 ‘평택 실종 아동’ 원영이가 그제 주검으로 돌아왔다. 계모는 평소 원영이가 소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때리고 굶기며 학대를 일삼다가 지난해 11월부터는 아이를 차가운 욕실에 가뒀다고 한다. 지난달 1일에도 아이에게 표백제와 찬물을 뿌려댄 계모는 다음 날 죽음을 확인하고 열흘간 시신을 베란다에 방치하다 암매장했다. 어린 자녀에게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 것인지 통탄스럽다. 

원영이의 죽은 한이나마 풀어줄 수 있었던 것은 아이가 입학할 예정이었던 학교에서 발 빠르게 경찰에 신고를 한 덕분이었다. 교육부가 지난달 발표한 매뉴얼에 따르면 초등학교는 입학식 다음 날까지 미취학 아동 현황을 파악하고, 입학식 5일 이내에 소재가 파악되지 않으면 즉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학교가 주민센터에서 넘겨받은 취학 명부에는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만 있어 보호자의 연락처를 알 수 없다. 학교가 요청해도 주민센터가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자료 제공을 거부하면 알아낼 방법도 없다.

교육부는 매뉴얼을 발표하면서 부처 간 협조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했지만 개학 이후 열흘이 지나도록 달라진 게 없다. 일부 교육청에선 아직까지 미취학 현황을 집계하지 않는 등 늑장이다. 이래서야 아동학대에 대한 여론이 들끓고, 정부가 대책을 내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정부의 한가한 업무 대응 때문에 어디선가 희생당하는 또 다른 원영이가 나오면 어쩔 셈인가.

원영이는 계모의 학대로 사망했지만 아동학대의 80%는 친부모에 의해 이뤄진다. 원영이 남매는 계모의 학대를 피해 3개월간 평택 지역아동센터의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친부가 친권을 앞세워 남매를 데려간 뒤에는 아동센터도 손을 쓸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2013년 울산 초등생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특례법이 개정됐다지만 아동센터의 예산 인력 권한이 뒷받침돼야 할일을 다할 수 있다. 그런데도 2016년도 아동학대 예산안(185억6200만 원)은 2015년도보다 26.5% 삭감됐으니 제2, 제3의 원영이를 막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3. ‘靑 공천개입설’ 파문 일으킨 윤상현 스스로 물러나야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어제 오후 늦게 김무성 대표 지역구(부산 중-영도)의 경선을 확정 발표했다. 당내에선 공천개입설 관련 막말 파문을 일으킨 윤상현 의원과 김 대표의 공천 여부가 동시에 발표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으나 윤 의원은 제외된 
것이다. 김 대표와 함께 ‘살생부 논란’을 촉발한 정두언(서울 서대문을) 김용태 의원(서울 양천을)의 공천이 확정됐고, 친박인 서청원 이인제 김을동 최고위원의 경선도 모두 확정됐다. 

문제는 “김무성 죽여버려” 욕설 녹취록 파문을 일으킨 윤 의원의 거취다. 이 위원장이 공관위에서 10일 만장일치로 결정됐고 최고위 추인까지 났던 김 대표 공천 심사 결과 발표를 지연시킨 것도 윤 의원 처리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이 위원장과 현기환 대통령정무수석의 극비 회동설이 나오면서 ‘보이지 않는 손’이 새누리당 공천 작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윤 의원의 파문을 최소화해 당을 파국에서 구하겠다는 이 위원장의 충정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친박(친박근혜)계의 지원으로 공천관리위원회를 맡았다. 그가 박근혜 대통령 임기 후반기의 총리 자리를 욕심내 지나치게 청와대의 눈치를 보면서 청와대와 친박의 구상대로 공천 발표를 끌고 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 위원장이 공정한 공천 관리를 미루는 사이 새누리당의 수도권 출마자 사이에서는 “19대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보다 심각하다” “윤상현의 말 한마디에 1000표씩 떨어져 나갔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삼권분립을 흔든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정무특보를 맡아 총애를 받아온 윤 의원이다. 그가 당 대표를 공천에서 떨어뜨리겠다는 취중 발언을 하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공천을 받으면 당의 기강이 무너질 일이다.

새누리당 윤리위원회는 당의 명예를 실추해 국민의 신뢰를 추락시킨 행위를 해당(害黨)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당이 윤 의원을 윤리위에 회부해 누가 공천에 개입했는가를 낱낱이 조사하고 만천하에 알리는 사태를 피하려면 윤 의원 스스로 거취를 정리하는 수밖에 없다. 윤 의원 파문의 정리가 늦어질수록 총선 구도는 ‘청와대 대(對) 반(反)청와대’로 흐르게 되고 박 대통령의 레임덕도 앞당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신문]

4. “뉴욕에 수소탄 쏠 수 있다”는 北의 속내 뭔가

북한의 핵 위협이 점입가경이다. 어제 한 핵 과학자가 선전매체 기고에서 “우리 수소탄이 미국 뉴욕 맨해튼에 떨어지면 온 도시가 잿더미가 될 것”이라며 미국까지 겨냥했다. 부산·포항이 북의 단거리 미사일 타격권임을 알리는 ‘전략군 화력 타격계획’이란 지도를 공개한 연상선상의 협박이다. 최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육·해·공과 수중에서 핵을 쏠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북측이 위협 수위를 한껏 끌어올리는 배경을 진행 중인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으로만 보긴 어렵다. 결국엔 국제사회의 여하한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 보유를 하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어제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존 C 스테니스호가 부산에 입항했다. 한·미 연합훈련인 키리졸브(KR)·독수리(FE) 연습 기간에 ‘떠다니는 군사기지’를 북한의 코앞에 들이민 격이다.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인 셈이다. 어찌 보면 한·미가 이처럼 확고한 방위 의지를 보이자 김정은 정권이 수사적 차원에서 막가파식 표현을 동원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와 국제사회의 유례없이 강력한 대북 제재가 먹혀들어 김정은 세습체제의 위기감과 불안정성이 커졌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위협에 대해 과민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북한의 비핵화 유도를 위해 제재의 길을 선택한 만큼 현시점에서는 빈틈없는 국제 공조가 관건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가 발동 중인 터에 북한의 핵 공갈 수위가 높다고 해서 비핵화 의지가 약화돼선 안 될 말이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 이어 어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비핵화 우선’을 언급한 것은 그래서 다행스럽다. 중국이 주장한 비핵화 및 평화체제 병행 추진과 관련해 한·미 간 온도 차가 있다는 ‘오해’를 해소했다는 점에서다. 북측이 핵 공갈 대신 핵 포기를 선택해야 할 이유다.

다만 북핵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김정은의 ‘핵탄두 경량화’ 완성 및 실전 배치 선언이 당장엔 허장성세일지 모르나, 그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까지 간과하지 말라는 뜻이다.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차장도 “북 노동신문에 실린 원형 물체를 실제 핵탄두로 볼 순 없지만 소형화를 위한 연구개발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했지 않은가. 안보 문제에 관한 한 최악을 상정해 대비하는 것이 최선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5. 정책·비전 없고 싸움판에 빠진 최악 총

4·13 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야 모두 당의 집권 비전과 제대로 된 정책도 제시하지 못한 채 공천 과정에서 이전투구에 빠져들고 있다. 여야가 선거구 획정을 놓고 정치공학적인 이해득실을 따지다가 이달 초에 겨우 선거구획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당의 집권 비전과 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모습보다는 여야 모두 생존을 위한 계파 싸움에 매몰돼 있는 양상이다.

공천과정에서 집권 여당의 위상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집권당으로서 안정된 국정운영을 위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공천과정에 돌입한 이후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계 간 계파 갈등이 권력투쟁의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양대 계파가 유리한 공천룰을 확정하고, 자기 계파를 공천하기 위한 힘겨루기를 벌이는 과정에서 낯 뜨거운 ‘공천 살생부’와 ‘윤상현 의원 막말 파문’ 등이 터지면서 집권당으로서 부끄러운 모습을 국민들에게 여과 없이 보여줬다. 국가 안보와 경제 위기 속에서 정치 개혁, 국가 발전을 위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집권당의 본분을 잊어버린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야권 역시 수권정당으로서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연대·통합 논쟁에 빠져 감정싸움까지 치닫고 있지만 정작 야권의 비전과 정책 제시는 소홀히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제민주화를 바탕으로 한 ‘더불어 성장론’을, 국민의 당은 사회 격차 해소를 위한 ‘공정성장론’을 각각 주요 정책으로 제시한 이후 야권 통합 논란 속에 세부 내용조차 확정하지 못한 실정이다. 거대 담론만 있고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지리멸렬한 야권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이다. 제3세력으로 기대를 모았던 국민의당은 야권연대를 거부하는 안 공동대표와 야권연대를 주장하는 천정배 공동대표와 김한길 의원이 대립하면서 분당 위기에 처했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내놓고 있는 정책 공약도 과거 무상시리즈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 경제가 침체국면에 접어든 시점에서 여야 정당들이 생산적 정책으로 국가의 미래비전 제시에 주력해야 할 텐데 당장 눈앞의 선거 승리에 급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의 유턴기업 지원 확대나 더민주의 ‘셰어하우스형 임대주택’, 국민의당의 ‘컴백홈법’ 등이 대표적이다. 공약 실행에 소요되는 재원 조달 방안은 크게 고려하지 않고 표심을 유혹하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다. 총선 공약이 국가와 국민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은커녕 특정 지역과 집단의 이익만 대변한다면 또 다른 부작용과 후폭풍을 낳을 건 누가 봐도 뻔하다.

20대 국회를 구성하는 4·13 총선은 지역과 국가 발전을 위한 미래 비전과 정책으로 당당하게 경쟁해야 한다. 올바른 공천을 통해 국민들의 여망인 정치 개혁을 실현하고 국가 경제를 살리는 지혜가 도출돼야 한다. 공천 과정에서 옥석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지금처럼 사탕발림식 재탕 삼탕식 공약으로 표심을 유혹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정치권이 끝내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결국 유권자가 총선에서 표로 심판할 수밖에 없다.

6. 원영이 숨지게 한 부모 살인죄로 처벌해야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줄로만 알았던 일곱 살 신원영군이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애초 부모가 길에 버린 것으로 알고 신 군을 수색해 왔던 경찰은 그제 경기도 평택의 한 야산에서 원영이의 시신을 찾아냈다고 한다. 제발 살아 돌아오길 기도했던 국민들의 한 가닥 희망은 이제 충격과 분노로 바뀌고 있다. 숨지기 전 원영이가 오랫동안 차디찬 욕실에 갇혀 찬물과 락스 세례를 받는 등 끔찍한 학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영하 12도의 엄동설한에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옷을 발가벗겨 찬물을 퍼붓고 욕실에 감금했다면 누가 봐도 살인행위나 다름없다. 건장한 어른들도 몇 시간 견디지 못할 환경에 20시간이나 울부짖는 아이를 방치해 결국 숨지게 했다면 더더욱 그렇다. 경찰이 오랜 폭행과 찬물 세례로 인한 저체온증, 오랫동안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한 영양실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원영군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소견을 바탕으로 계모와 친부에게 살인죄 적용을 검토하는 이유다.

이런 반인륜적이고도 악질적인 범죄는 살인죄로 처벌하는 것이 옳다. 더구나 이들은 아이가 죽은 후에도 “원영이 밥 잘 먹고 양치질도 했다”는 등 거짓문자를 서로 주고받고 원영이의 책가방을 구입하는 등 범죄 은폐 시도까지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원영이가 불행하게 짧은 인생을 마감한 데 대해 우리 사회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3년 전에 아동보호기관과 경찰도 학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기 전이라 아동 학대를 신고해도 부모가 “내가 키우겠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아이를 격리할 수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이를 아동보호망의 사각지대로 내몬 것은 문명사회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맨발로 탈출한 인천의 16㎏ 소녀, 냉동상태로 발견된 부천 초등학생, 미라 여중생 등 아동학대의 끔찍한 사례들이 잊을 만하면 불거지고 있다. 아동학대 문제를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바라보고 당국은 물론 지역사회에서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이런 불행한 일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아이는 마을이 키운다’는 말이 있듯이 이웃과 학교 등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촘촘하게 연결해 앞으로 제2의 원영이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매일경제]

7. 만능통장 ISA 불완전판매 철저히 막아야

'만능통장'으로 일컬어지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오늘부터 은행, 증권사 등 33개 금융회사에서 일제히 판매에 들어간다. 예·적금, 주가연계증권(ELS)과 주식·채권형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 여러 상품을 한 바구니에 담아 운용하는 방식이다. 투자 이익 200만~250만원까지 비과세되고, 한도를 초과하는 이익에 대해서는 기존 15.4%보다 낮은 9.9%로 분리과세되는 등 혜택이 많다. 해외 분산 투자할 경우 연 6% 수익도 가능하다고 하니 금리 1% 시대에 매력적인 상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는 투자 상품이란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가입자가 스스로 상품을 고르는 신탁형이 있는 반면 금융회사가 자산을 구성하고 운용하는 일임형 상품도 있으니 성향에 맞게 따져보고 가입해야 한다. 

특히 금융당국은 ISA에 한해 은행에도 투자일임형 상품 판매를 허용하기로 했는데 전문인력이 태부족이어서 우려가 적지 않다. 현재 '파생상품 투자권유 자문인력' 자격증을 갖춘 은행 직원은 약 3만8000명으로 전체 직원의 3분의 1도 안된다. ISA 판매를 앞두고 은행원들이 벼락치기로 공부해서 자격증시험에 응시했다고 하니 과연 그들의 운용 능력을 믿어도 될지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회사들은 자동차, 해외여행권 등 고가의 경품을 내걸고 과열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과열 경쟁은 불완전판매라는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이다.

무엇보다도 소비자들은 원금이 깨질 수도 있다는 점, 5년 가입해야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등 상품에 대해 제대로 알고 가입해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 하락으로 대거 손실이 난 ELS처럼 될 수 있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연 0.1~1.0%의 수수료가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선 안된다. 금융당국도 ISA 열풍이 2007년 달아올랐다가 금세 식어버린 펀드 열풍처럼 되지 않게 하려면 불완전판매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8. 한국 사회갈등 치유할 행동계획 내놓아라

한국 사회가 계층·이념·노사·지역·세대 간 갈등 심화로 분노 사회를 넘어 원한 사회로 치닫는 데 대한 걱정이 크다. 국민대통합위원회 '한국형 사회 갈등 실태 진단' 보고서를 토대로 매일경제가 지난 11일까지 10차례 연재한 '내부 갈등에 무너지는 한국 사회' 기획기사에도 각계의 뜨거운 관심이 표출됐다.

이번 보고서는 한국 사회 갈등의 특징으로 불안을 넘어선 강박, 경쟁을 넘어선 고투, 피로를 넘어선 탈진, 좌절을 넘어선 포기, 격차를 넘어선 단절, 불만을 넘어선 원한, 불신을 넘어선 반감, 갈등을 넘어선 단죄 등 8가지를 진단했다. 우리 사회가 경쟁이나 불안·불만 단계를 뛰어넘어 포기·단절 등 극단적인 갈등 상태로 빠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 자살률은 12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에 올라 있고 매년 법원에 접수되는 소송사건이 650만건에 이를 정도로 고소·고발이 난무한다. 층간소음·주차분쟁 등 생활 주변 문제에서부터 역사교과서 국정화,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 편성, 노동개혁 입법 등 사회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소통과 타협보다 폭력과 투쟁이 앞서니 답답하다. 

한국이 선진국 관문이라 불리는 OECD에 가입한 지 올해로 20년인데 우리 사회 갈등 수준은 OECD 회원국 중 종교 분쟁을 겪는 터키에 이어 두 번째로 심각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런 갈등으로 국가 정책 결정과 진행이 차질을 빚으면서 연간 경제적 손실도 최대 24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 화합과 상생을 위해 2013년 국민대통합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으로 발족했고 이제 우리 사회 갈등 수준을 직시하게 된 것은 갈등 해결의 출발점이라 할 만하다. 이번 보고서는 우리 사회 갈등의 가장 심각한 원인으로 빈부 격차를 꼽고 근무시간을 지금보다 대폭 단축한 '반정규직' 신설과 빈곤층·소외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보강을 제시했다. 새로운 형태의 성찰적 시민운동, 교육개혁도 제시했는데 아직은 너무 추상적이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대책들이다.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정부, 정치권, 교육계, 경제계,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이 각자 행동 방향과 역할을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분야별 액션플랜과 로드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매일신문]

9. 대구시, 동대구역 주변 교통 대책 있나

동대구복합환승센터가 완공되는 올해 말부터 대구 동구`수성구 일대는 최악의 교통난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 도로는 그대로인데, 좁은 지역에 동대구역은 물론이고 고속버스`시외버스터미널에 백화점, 영화관, 호텔, 오피스텔, 유흥가까지 한꺼번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구시에 여러 차례 환승센터 완공 전에 특단의 교통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해온 이유다.

또 다른 문제는 동대구역 주변에 수천 가구의 아파트 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교통난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는 점이다. 동구청에 따르면 동대구역 주변의 주택재건축`도시환경정비사업의 결과로 착공에 들어간 아파트가 2곳, 1천695가구이고 시공사를 선정한 아파트가 4곳, 3천200가구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들 아파트 상당수는 환승센터 시행사인 신세계가 최근 작성한 교통영향평가에도 반영돼 있지 않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무려 5천 가구에 가까운 아파트가 교통영향평가에서 제외돼 있으니, 기존의 교통영향평가를 그대로 믿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이들 아파트의 가구 수는 교통영향평가에 반영된 개발계획(아파트 1천106가구, 오피스텔 및 호텔 1천717실)의 2배가 넘을 정도로 많다.

이들 아파트의 입지도 정체가 심할 것으로 보이는 교차로 인근에 몰려 있어 우려를 더해준다. 착공한 아파트 2곳은 각각 공고네거리 및 신천네거리에 인접해 있고, 시공사를 선정한 2곳은 파티마삼거리와 동대구역네거리 인근이다. 교차로 혼잡과 차량 지`정체가 상습화될 수밖에 없다. 

동대구역 주변 교통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악화될 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대구시도 환승센터 교통영향평가 분석보다 교통량이 많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구시로선 환승센터 주변 교통대책도 세우기 힘든 마당에 동대구역 주변의 교통대책까지 마련해야 하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제대로 된 방안이 없을 경우에는 동대구역 주변과 동구`수성구 일대는 만성적인 교통대란 지역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대구시는 특단의 교통대책을 세워 시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10. 아파트 관리비 비리, 제도`감시망 보완으로 뿌리 뽑아야

부가 지난해 전국 공동주택에 대한 외부회계감사를 실시한 결과 대구는 회계 부적합률이 4.1%, 경북은 8.2%로 낮게 나타났다. 국토부와 지자체 등 정부합동 부패척결추진단이 발표한 공동주택 회계감사에서 대구는 제주(2.7%), 울산(4.0%) 다음으로 부적합률이 낮았다. 경북은 도 단위에서 경남(5.3%)에 이어 부적합률이 낮아 지역 공동주택 대다수가 회계기준에 맞게 관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택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난해부터 300가구 이상 공동주택은 외부회계감사 등 관리비 진단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주민 3분의 2가 동의해 회계감사 대상에서 빠진 공동주택 54곳을 제외하고 대구는 542곳 중 514곳, 경북은 382곳 가운데 355곳이 최근 감사를 마쳤다. 

하지만 부적합률이 말해주듯 일부 아파트는 여전히 회계처리 기준을 어기고 관리비를 집행해 문제의 소지가 크다. 이런 엉터리 회계는 그만큼 비리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전국 8천319곳 가운데 19.4%가 회계처리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도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한 예로 경기도의 한 아파트는 관리소장이 공동 전기료를 과다하게 걷어 수천만원을 횡령했다가 적발됐고, 공사업체 선정 과정에서 입주자대표가 입찰서류를 위조해 특정 업체를 밀어주고 뒷돈을 받은 사례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국토부`한국감정원 등이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을 만들어 관리비 내용과 집행 실태를 단지 간 비교하고 감시하도록 유도해왔다. 관리비가 적정한지, 어떻게 쓰이는지 주민이 무관심하다면 비리 근절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주민의 힘만으로 상시 감시와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비리가 고질적이라는 의미다. 

정부는 관련 법규와 현행 관리업무 감시 시스템에 허점은 없는지 재점검해야 한다. 공동주택 관련 시스템을 일원화하고 회계감사 결과를 지자체에 제출`보고하도록 법 조항도 개정해야 한다. 감사를 방해하거나 허위 자료를 낸 관리업체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주민과 지자체, 정부 등 이중 삼중의 감시망이 아니고서는 관리비 비리를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서평] 우리 아이들 | 금수저-흙수저 ‘기회격차’ 극복하려면

“가장 친한 친구가 그의 머리에 총을 두 번이나 쐈어요. 함께 자란 친구인데.”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의 산타아나 지역에 사는 라틴계 여성 소피아(21)가 말한다. 산타아나 주민들은 가난과 폭력의 거리에 살고 있다. 이곳에는 29개 갱단이 활개 치고 있다.

“아이에게 천박하고 더러운 쥐새끼 같은 놈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 아이는 실제로 그런 놈이 될 거예요.”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황폐한 흑인 빈민가에서 자란 일라이저(24)의 말이다. 어머니는 비행을 일삼는 그에게 자주 가슴에 못을 박는 저주를 퍼부었다.

로버트 D. 퍼트넘 하버드대 공공정책학 교수의 ‘우리 아이들-빈부격차는 어떻게 미래 세대를 파괴하는가(Our Kids-TheAmerican Dream in Crisis)’에 나오는 이야기다. 퍼트넘은 15년 전 베스트셀러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에서 미국의 공동체가 갈수록 시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신작에서는 아메리칸드림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를 고발한다.

퍼트넘은 자신이 고등학교를 다닌 오하이오주 포트클린턴 이야기부터 꺼낸다. 1950년대 이 도시는 아메리칸드림을 구현할 수 있는 곳이었다. 부잣집과 가난한 집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심지어 데이트도 했다. 가난을 영원한 족쇄로 여기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고향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이제 이 도시의 부자와 빈자들 간 계급 격차는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난다. 해안도로 왼쪽은 아동 빈곤율이 1%에 불과하지만 맞은편은 51%에 이른다. 사람들은 길 건너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더 이상 같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물론 서로 결혼도 하지 않는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미국의 계급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대졸자 가구 재산은 47% 늘었지만 고졸 이하 가구 재산은 17% 줄어들었다. 오늘날에는 가난하지만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이 대학에 가는 경우(29%)보다 부유하지만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학사모를 쓰는 경우(30%)가 더 많다.

고학력 전문직 부모들은 자녀를 키울 때 한 해 16만6000가지의 격려하는 말을 한다. 의욕을 꺾는 말은 3만6000가지에 그친다. 복지 수혜자 부모의 경우 격려는 2만6000가지에 그치는 반면 의욕을 꺾는 말은 5만7000가지나 내뱉는다.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 그 자체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미국인들은 유럽 사람들에 비해 결과적인 불평등을 그다지 염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회의 평등까지 무너지는 건 용납하기 어렵다. 미국인 95%는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기회의 평등은 아메리칸드림의 핵심이다.

미국인들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불평등이 한 세대 안에서 생기는 불평등보다 나쁘다고 믿는다. 기회의 격차는 재능의 낭비를 초래해 사회 전체에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낳는다. 부자들만 목소리를 내는 민주주의는 정치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 

아메리칸드림 핵심인 기회의 평등 무너져

가난의 대물림 막을 수 있는 행동에 나서야 


퍼트넘은 특권이 부여되지 않은 아이들의 곤궁함에 대해 우리가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회 전체가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예컨대 아이들이 초기 뇌 발달의 결정적 시기인 유년기에 가난의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정부가 약간의 특별 현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있다. 아이가 태어난 첫해에 일을 하도록 요구하는 복지정책은 피해야 한다. 교사들이 틈만 나면 부자동네 학교로 떠나려 하지 않도록 가난한 지역 교사에게 2년 동안 2만달러를 추가 지급할 수도 있다. 

왜 그래야 하는가? 이 물음에 퍼트넘은 이렇게 답한다.

“가난한 아이들은 우리에게 속해 있으며 우리 역시 그들에게 속해 있다. 그들은 우리 아이들이다.”

2.[머니투데이] '달팽이 크림', 중국서 대박난 이유는? 

불황의 시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가성비’(가격대비 성능비)다. 장기 불황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 뚜렷해지고 중산층이 감소하면서 가성비는 더욱 중요한 소비자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을 검색하며 가성비를 따져보는 것은 익숙한 모습이 됐다.

‘가성비’는 IT업종, 외식업, 화장품 등 업계를 막론하고 ‘핫 키워드'(Hot Keyword)로 자리매김했다. 가성비가 높은 제품은 누구에게나 환영 받는다. 대륙의 실수, 샤오미 역시 가성비가 뛰어난 제품으로 전 세계 소비자들의 마음을 훔쳤다.

주요 기업들의 전략도 브랜드 중심에서 가성비 중심으로 선회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갤럭시J7를, LG전자는 LG클래스를 출시했다. LG유플러스가 단독 출시한 ‘화웨이 Y6’는 출시 한 달 만에 2만대나 팔렸다. 중저가 휴대폰 판매 비중은 2014년 3분기 21%였지만 지난해에는 전체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요즘 외식업계에서 인기 있는 1만2900원짜리 한식뷔페, 2인분에 1만9800원짜리 스테이크전문점, 5000원짜리 순대국밥, 저가 생맥주전문점, 1500~2000원짜리 생과일 주스 등도 모두 가격 대비 품질 경쟁력을 높인 가성비로 성공한 아이템이다. 빽다방이 인기를 끌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가성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태원 유명 레스토랑, 만원대 최고급 프랑스 요리…왜?'에서 1만원대 최고급 프랑스 요리를 파는 오레노의 비결을 소개한 바 있는데, 오레노 역시 탁월한 가성비로 성공했다.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한불화장품 계열사인 잇츠스킨은 달팽이 점액을 넣은 피부 보습 화장품(일명 ‘달팽이 크림’)으로 중국에서 대히트를 쳤는데 이유는 가성비 때문이다. 2014년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이용자들 사이에 가성비가 입소문이 나면서, 그 해 중국을 중심으로 달팽이 크림 매출이 전년 대비 7배 이상 급증했다. 2015년 총매출은 3096억원으로 전년보다 28% 성장했다. 지난달에는 세계 최대 면세점 업체인 DFS의 12개 매장에도 입점했다.

가성비가 좋은 아이템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기를 끌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가성비에 대한 이야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렉서스는 프리미엄 자동차 중에서 상대적으로 등급이 낮은 차종의 가격대에, 벤츠, BMW 등 등급이 높은 차종의 품질을 갖춰 시장 진입 1년 만에 벤츠, BMW 등이 장악했던 고급 자동차 시장을 30% 이상 잠식했다. 이렇게 가성비를 높임으로써 차별화와 비용우위를 동시에 추구한 전략을 ‘가치혁신전략’이라고 한다.

스와치 역시 75달러 수준의 세이코, 시티즌 등이 서로 차별화하기 위해 각종 기능 추가 경쟁을 벌일 때, 시계를 ‘패션 액세서리’로 정의하고 가격을 40달러로 낮춰 고객들이 시계 하나 값으로 액세서리 2개를 살 수 있게 만들었다. 스와치는 ‘패션 액세서리’라는 차별화와 ‘40달러’라는 비용우위를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1970년대 후반부터 붕괴 위기에 몰렸던 스위스 시계 산업을 부흥시켰다.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가치혁신으로 성공한 상품들이 많다. 여성들이 하나쯤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코치백도 마찬가지다. 대중(mass)과 명품(prestige product)을 조합한 매스티지(masstige) 상품인 코치백은 가격은 명품에 비해 싸지만, 품질 면에서는 명품에 근접한 상품이다.

최근 각광받는 비행기 ‘프리미엄 이코노미'(Premium Economy) 클래스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일반석보다 40% 정도 넓은 공간과 차별화된 음식을 제공하지만 가격은 비즈니스석의 60~70% 수준으로 차별화와 비용우위를 동시에 추구했다. 실제로 에어프랑스, 싱가포르항공 등 세계 유수 항공사들은 프리미엄 이코노미 클래스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소비자의 프리미엄 니즈를 합리적인 가격에 충족시키는 이러한 ‘프리미엄 이코노미형 제품’은 단지 항공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걸쳐 거대한 트렌드로 번져가고 있다.

창업자 입장에서도 지출 면에서 투자비, 운영비 등은 줄이고 매출 상승 장치가 있는 가성비가 높은 업종에 주목해야 한다. 당분간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 흐름은 지속될 전망이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란 의미다. SK플래닛 광고부문은 2014년 11월 내놓은 ‘빅데이터 트렌드 보고서’에서 “경기 침체 장기화로 ‘실속과 실리’를 따지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으며 △충동적 과시를 벗어난 실리 추구 소비 △적극적이고 능동적 소비 △윤리적 소비 등 세 가지 소비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마이클 포터는 ‘차별화’와 ‘비용우위’ 가운데 하나를 명확히 추구하지 않고 어중간하면 궁지에 몰리고 수익을 창출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가성비를 높여 차별화와 비용우위를 동시에 이뤄내 ‘제대로 어중간’하면 성공할 수 있다. ‘제대로 어중간하다’는 의미는 차별화도 되어 있고, 고객 입장에서 지불할 만한 가격으로, 결론적으로 고객 가치를 혁신했음을 의미한다.

중요한 건 항상 고객 가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스와치의 ‘패션 액세서리’도, ‘40달러’도 모두 고객이 원하는 가치로부터 나온 것이다. 가치혁신을 하려면 고객에게 가치가 적은 요소들을 줄여 가격 거품을 빼야 한다. 스와치의 경우 금속이나 가죽 대신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내부 디자인을 단순화했으며 부품도 150개에서 51개로 줄이고 나사 대신 초음파 봉합 방법을 채택해 경쟁사보다 비용을 30%나 절감함으로써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고객은 싸다고 무조건 지갑을 열지 않는다. ‘적절한 가격과 품질의 교집합’을 공략하는 것이 가치혁신전략의 핵심 포인트다. 또 가성비 시대에는 마케팅 포인트를 기존과 다르게 가져가야 한다. 실제 구매해야 할 이유를 찾아내 가장 효율적인 채널로 전달하지 못하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3.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슈베르트가 선물한 봄노래…‘봄에’ ‘들어라 종달새’ ‘봄의 찬가’

한해의 시작은 1월이지만 가끔 진정한 시작은 3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요즘 같은 때, 이제는 누가 뭐래도 자신 있게 ‘봄’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3월에 들어서면 말이다. 물론 아직 일교차가 심하고 겨울옷을 집어넣어야 할지 고민되긴 하지만. 그래도 3월은 봄을 맞이하는 시작점이다. 

일생이 겨울이었던 것만 같은 작곡가가 있다. 프란츠 슈베르트. 오늘날 ‘예술가곡의 황제’ ‘낭만파 음악의 선구자’로 불리며 위대한 음악가 반열에 올라 있지만, 생전에는 단 한 번도 주목 받지 못했다. 베토벤을 존경했고, 후대인이 사랑하는 주옥같은 가곡을 무수히 남겼지만 그는 말할 수 없이 가난했다. 생활은 늘 궁핍했고 밥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다. 슈베르트가 ‘사실상 굶어 죽었다’고 강조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빈 시립중앙묘지 32-A’. 30살로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가 잠들어 있는 구역이다. 생전 그토록 존경했고, 장례식에서 관을 운구하며 ‘죽어서 그의 곁에 묻히고 싶다’고 했던 베토벤이 그의 옆에 묻혀 있다. 모차르트의 기념비도 서 있고,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브람스도 함께 잠들어 있으니 외롭지는 않겠지만.

겨우 30여년의 삶을 살다 갔지만 슈베르트에게도 분명 청춘이 있었을 것이고, 봄 또한 있었을 터. 그가 남긴 수많은 봄노래들, ‘봄에’ ‘봄의 찬가’ ‘들어라, 들어라! 종달새를’ 등이 이를 증명한다. 모두 슈베르트가 20대 시절 작곡했다. 

- 내가 한 마리 새라면 그곳 목장의 언덕에서 머물 텐데 작은 나뭇가지들 위에. 그리고 노래할 텐데 그녀에 대한 달콤한 노래를 -

- 온 세상이 매일 점점 아름다워져 어떤 모습을 나타낼지 모르겠다. 끊임없이 꽃이 피어나고 멀리 깊은 골짜기에도 꽃이 피어난다. 가난한 마음이 고통을 잊는다. 모든 것이 새로워지리라 -

한 마리 새라면 그녀를 위한 달콤한 사랑 노래를 부르고, 매일 아름다워져 가는 세상 속에서 모든 것이 새로워질 것이란 믿음을 가졌던 20대 청년 슈베르트는 이렇게 노래했다. 슈베르트 가곡 특유의 미풍이 살랑거리는 듯 피아노의 선율에 얹힌 부드럽고 따스한 노래가 그대로 ‘봄의 향기’가 돼 마음을 흔든다. 그에게도 막 물오른 인디언그린 같은 파릇한 꿈이 있었고, 생생한 기운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한편 가슴이 아파지면서.

그렇게 한때는 자기 인생의 봄날을 노래했던 그가 생의 마지막 앞에서는 그 ‘봄’을 잃어버렸음을 고백한다. 연가곡 ‘겨울 나그네’. 전체 24곡 중 제11곡인 ‘봄의 꿈’ 속에서 그는 실연의 슬픔 가운데 연인의 마을을 떠나 추운 겨울 여행길에 접어든 모습을 노래했다. 따스함이 펼쳐질 것만 같은 이 아름다운 봄날에 절망의 봄꿈을 꿨던 희대의 작곡가. 모쪼록 하늘에서는 안식하기를! 후대 사람들이 그가 남긴 선율에서 위안받고 행복하니 그것으로 위로가 되길 바랄 뿐이다.

4. [동아일보][특파원 칼럼/전승훈]누가 프랑스 교육이 평등하다고 했나

지난해 10월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만나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일반고 전성시대’라는 구호를 내걸었던 조 교육감은 취임 직후 일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을 취소해 논란이 일었다.

이에 교육부가 제동을 걸었고 조 교육감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흐지부지됐다. 그는 “일반고를 부흥시킬 방안을 내놓기에 앞서 자사고부터 없애려 한 것은 성급했던 것 같다”고 인정했다.

대부분 ‘진보 교육감’이 평준화 교육, 대학 서열화 폐지를 거론할 때는 프랑스가 모범 사례로 거론된다. 조 교육감도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 프랑스의 공립학교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두 아이를 키워 보니 프랑스가 ‘평준화 교육’을 지향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해마다 이맘때면 프랑스 교육부는 바칼로레아(대학수학능력시험) 합격률 등을 기준으로 평가한 전국 고교의 서열 순위를 발표한다. 지난달 16일에도 2015년 전국 4300개 고등학교(공사립 일반고, 직업고 포함)를 각 도별로 1등부터 꼴찌까지 매긴 리스트를 내놨다. 올해 순위에서 프랑스 최고 명문 고교인 ‘루이 르그랑’과 ‘앙리 4세’가 공동 2위에 올랐고, 파리 15구의 사립고교 ‘자닌 마뉘엘’이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프랑스에서는 사립고교는 물론 공립고교도 평준화가 아니다. 학군마다 있는 1, 2개의 명문고가 우수 학생을 선발한다. ‘루이 르그랑’은 프랑스 전역에서 최고 학생을 선발한다. 대부분의 고교에 우열반이 편성돼 있고 매년 성적 미달 학생의 10%는 유급된다.

등록금이 없는 파리의 국공립 대학은 1부터 13까지 숫자가 매겨져 있다. 바칼로레아만 합격하면 집 근처 대학에 갈 수 있기 때문에 프랑스 대학은 서열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프랑스에는 일반 대학 위에 ‘그랑제콜(Grandes ´Ecoles)’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하나 더 있다. 전국 상위 5%의 수재들만 입학할 수 있는 명문대다.

에콜폴리테크니크(이공계), 국립행정학교(ENA), 고등상업학교(HEC·상경계) 등의 그랑제콜에 입학하려면 고교 졸업 후에도 보통 2년간의 준비반(프레파)을 거쳐야 한다. 프레파 학생들은 밤낮없이 공부하느라 빛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두더지’로 불린다. 1시간에 100유로(약 14만 원)짜리 고액 과외도 받는다. 프랑스에 사교육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누구든 돈이 없어도 대학까지 공짜로 공부할 수 있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을 통해 키워내는 소수 엘리트 교육도 함께 존재한다. 그랑제콜 졸업생은 초봉이 일반 대학 졸업생의 2, 3배나 되고 프랑스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프랑스 학부모들이 명문고나 그랑제콜에 대해 질투하거나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뛰어난 인재라면 특혜를 줄 테니 이 나라를 먹여 살리는 데 이바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프랑스인들의 사고다. 

지난해 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선고유예를 받은 조 교육감이 최근 ‘일반고 전성시대’ 2라운드에 시동을 걸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달 24일 발표한 고교체계개편 보고서에서 “자사고뿐 아니라 외국어고, 국제고까지 일반고에 통합시키겠다”고 밝혔다. 일반고를 명문고로 키울 방안도 없이 잘나가는 학교부터 끌어내리고 보자는 그의 전략은 하나도 바뀐 게 없다.

5.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 정약용과 상추쌈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공직자의 청렴을 누누이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청렴은 검소한 생활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여 자식들에게 항상 검소한 생활 태도를 권면하였는데, 특히 음식과 의복에 대해 자주 언급하였습니다.

그는 1810년 강진의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훈계의 글을 지어 보냅니다. 글 속에서 “속이는 것은 모두 죄악이지만, 세상에 오직 하나 속일 것이 있으니 바로 자신의 입이다”라는 경구와 함께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해 줍니다.

“금년 여름 내가 다산(茶山)에 있을 때 하루는 상추로 쌈을 싸서 먹고 있었다. 마침 곁에서 보던 손님이 ‘쌈을 싸서 먹는 것이 상추를 절여서 먹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까’라고 묻기에, 이것은 나의 입을 속이는 방법일세”라고 대답하였다.

의식이 풍요로운 현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음식은 연명할 정도만 먹으면 되고 궁핍을 이겨 내기 위해서는 입조차 속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너무 극단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글을 통해 물질적인 향락보다는 정신적인 안락이 중요하다는 다산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고, 아울러 고난의 유배 생활을 지혜롭게 대처하였던 그의 해학(諧謔)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약용(丁若鏞·1762∼1836)

조선 후기의 실학자·문신. 자는 미용(美庸), 호는 다산, 당호는 여유당, 본관은 나주. 문장과 경학에 뛰어났고 실학은 물론 서학도 받아들였다. 정조의 지극한 신임을 얻어 경세의 뜻을 폈으나 정조가 죽은 뒤 옥사에 연좌되어 오래도록 유배 생활을 하였고 만년에는 귀향하여 저술로 여생을 보냈다. 벼슬은 진주 목사를 지냈다. ‘모시강의’, ‘논어고금주’,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심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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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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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1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동아일보]

1TK 방문한 박 대통령, ‘眞朴 마케팅’ 역풍 두렵지 않나

박근혜 대통령이 결국 대구를 방문했다. 어제 오전 대구지역 3곳의 행사에 참석했고, 오후엔 경북 안동에서 열린 경상북도 신청사 개청식에 참석했다. 청와대는 “도청 개청식 참석은 당연한 것이고 대구 방문은 경제와 문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했지만 그 설명을 믿을 사람은 없다. 신청사 개청식도 당초 총선 뒤인 5월 초에서 앞당겨졌다는 뒷말이 나온다. 게다가 개청식 일정에 맞춰 대구 방문 스케줄은 급히 끼워 넣은 듯하다. 대구 방문지 세 곳 중 두 곳의 진박(진짜 친박) 예비후보들이 유승민 의원계 현역들에게 도전장을 냈다.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을 총괄하는 2차관이 대구 방문에 동행한 것도 진박 후보들의 공약을 지원하려는 인상을 풍긴다. 

박 대통령의 대구 행사엔 현역 의원과 예비후보 같은 정치인들은 일절 참석하지 않았다. 선거나 정치 관련 발언도 없었다. 선거법 위반 논란을 피하려는 뜻일 게다. 그러나 총선을 불과 34일 앞두고 대구를 방문한 것 자체가 자제해야 할 정치 행위다. 박 대통령은 작년 9월 대구를 방문하면서 지역의 여당 국회의원을 한 명도 부르지 않아 유 의원을 비롯해 TK(대구경북) 비박계 의원들을 물갈이하려는 의도라는 논란을 촉발시켰다. 이후 6명의 진박 후보가 대구에서 출사표를 냈다. 친박 중진들까지 진박 마케팅에 발 벗고 나섰으나 오히려 역풍이 불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고 볼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에선 영남권 3선 이상 현역 의원 교체론이 파다하다. 친박을 희생양 삼아 비박까지 왕창 쳐낸다는 소문이다. 더구나 대통령정무특보였던 윤상현 의원의 ‘김무성 대표 욕설 녹취록’ 파문으로 여권 전체가 벌집 쑤신 듯 난리다. 이런 상황이라면 박 대통령이 예정된 행사라도 취소하는 게 옳았다. 그런데도 대구 방문을 강행한 것은 ‘내 사람’ 심기에 꽂혀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과 같다. 9일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현기환 대통령정무수석을 극비리에 만났다는 채널A 방송 보도가 나왔다. 친박과 비박 간 공천 갈등의 중심에 권력의 생리에 민감한 박 대통령이 있다는 의구심이 나올 만하다. 그러나 선거에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면 되레 민심의 역풍을 맞았던 게 역사의 교훈이다. 

박 대통령이 대구를 방문한 시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북한의 동해상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박 대통령은 선거에서 정치적 중립을 의심받을 일을 삼가고 안보와 경제에 몰입하기 바란다.

2. 건드리면 툭 터지는 전국의 아파트 관리비 회계 비리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이 전국 300가구 이상 8319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실시한 첫 외부회계감사에서 19.4%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1% 안팎인 상장기업의 회계처리 부실비율과 비교하면 20배나 높을 만큼 회계 관리가 엉망이다. 이와 별도로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아파트 입주민의 민원이 제기된 429개 단지를 대상으로 합동감사를 한 결과 무려 72%의 비위(非違)나 부적절 사례를 적발했다. 

국민의 70%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나라에서 아파트 관리비 비리가 전국 곳곳에 만연해 있다. 남의 일이 아니라며 공분(公憤)을 느끼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월세처럼 매달 내는 아파트 관리비는 미루면 연체료를 물어야 한다. 이렇게 받은 돈을 아파트 5곳 중 한 곳에서 아파트 관리소장이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동(棟) 대표가 주머닛돈처럼 썼다는 얘기다. 충남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은 2011∼2014년 개인계좌로 16차례에 걸쳐 3억7000만 원을 이체했다. 이런 식으로 빼돌린 것으로 보이는 돈이 20억 원이다. 경찰청이 작년 11월부터 벌인 공동주택 관리비리 특별단속에서 입건된 153명 중 입주자 대표가 41.4%, 관리소장 35.3%, 동 대표 7.1%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정부의 아파트단지 회계감사는 2014년 배우 김부선 씨가 ‘난방비리’ 이의를 제기하면서 여론이 들끓어 시작됐다. 지금까지 아파트 관리비 문제는 사적인 영역의 자율을 보장해주는 차원에서 관리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앞으로는 주택법에 근거해 매년 외부회계 감사를 강제하기로 했다. 감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법을 개정해서라도 감사결과를 지자체에 제출토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아파트 주민도 관리소장이나 입주자 대표들이 딴마음을 먹을 수 없도록 주인의식을 갖고 감시에 나서야 한다. 한국감정원이 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을 통해 감사결과와 관리비 내용을 확인한 뒤 미심쩍은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을 요구해야 한다. 관리소장이나 입주자 대표 명의로 개설된 아파트 관리비 통장을 주민들이 수시로 확인하는 것도 비리를 감시해 사전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3. 김종인 개혁, 이해찬 빼놓고 '친노 패권'청산 어림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발표한 44개 지역 공천 결과에서 정청래 의원을 포함해 최규성 강동원 부좌현 윤후덕 의원이 탈락했다. 정청래 의원은 막말, 강동원 의원은 위헌정당인 통합진보당 출신, 윤후덕 의원은 딸 취업 청탁, 최규성 부좌현 의원은 경쟁력이 열세라는 이유다. “당선 가능성이 제1의 기준이었다”고 밝힌 김종인 대표의 첫 현역 의원 물갈이다. 

친노(친노무현)의 대변인처럼 대포를 쏘아댄 정 의원의 컷오프가 발표되자 그의 지지자들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어제 더민주당 홈페이지가 한때 다운됐다. 그러나 김 대표가 친노 패권주의를 쳐내겠다고 거듭 큰소리친 것에 비하면 정청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원식 이상호 이인영 의원, 송영길 전 의원 등 운동권 출신들과 최민희 배재정 박남춘 의원과 백원우 전 의원 등 친노 정치인은 단수 공천을 받았다. 

현역 의원 50명의 심사 결과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국민의당이 ‘친노·패권·무능 86그룹’으로 지목해 표적공천 대상으로 꼽은 이해찬 이목희 정청래 김경협 전해철 의원 중 정 의원만 탈락했다. 당내 비노(비노무현) 진영을 ‘세작(간첩)’이라고 말해 당직 자격정지 2개월을 받았던 김경협 의원은 무사히 경선을 치를 수 있게 됐다. 비서관 월급 상납 논란을 빚은 이목희 정책위의장, 성완종 특별사면 때 대통령민정비서관이었던 전해철 의원의 심사 결과는 아직 발표 전이다.

친노 세력의 좌장인 이해찬 의원은 정밀심사 대상에 오르지 않아 컷오프에서 아예 빠졌다. 이 의원은 문재인 전 대표가 정치로 나오기 전까지 자타가 공인하는 친노 좌장이었고, 수감 중인 한명숙 전 의원, 배우 문성근 씨와 함께 친노를 당의 최대 세력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는 백낙청 함세웅 씨를 비롯한 진보좌파 원로와 함께 원탁회의의 일원으로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추진해 종북(從北)세력을 국회에 진출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의원을 빼놓고 대한민국 정치의 발목을 잡았던 친노 패권주의 청산은 어불성설이다. 당의 쇄신은 정치를 왜곡시켜 온 친노와 운동권 세력을 얼마나 배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지 않으면 총선이 끝난 뒤 더민주당은 전투력이 강한 친노 세력의 발호로 개혁은커녕 치열한 권력투쟁의 내홍에 빠져들 것이다. 김 대표가 도마뱀 꼬리 자르듯 개혁의 시늉만 하고 민심을 얻기를 바란다면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이데일리]

4. 활짝 열린 이란 하늘길서 높이 날려면

그동안 꽉 막혀 있던 한국과 이란의 직항 하늘길이 다시 열리게 됐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국토교통부에 테헤란 노선 국제항공운수권을 신청했다고 하니, 조만간 적절한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운항허가가 내려지면 대한항공 화물기가 1976년 이란으로 한 차례 운항한 지 40년 만에 국적 항공사가 직항로를 통해 이란 정기노선을 운항하게 되는 셈이다.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해제되면서 수십년 동안 닫혀 있던 이란의 하늘길이 뚫리게 된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경제적인 차원에서는 더욱 박수칠 만하다. 빗장이 풀린 이란이 중동의 거대 수출시장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더욱이 이란은 세계 자연자원 매장량에서 원유는 4위, 천연가스 2위, 구리 2위에 달하는 자원 부국이다. 인구가 8000만명에 육박하는데도 1인당 소득이 5000달러에 지나지 않아 향후 개발 수요가 적지 않다. ‘제2의 중동 특수’를 노리는 국내 기업들로서는 이란을 중동 진출의 허브로 삼을 필요가 있으며, 양국 간 항공노선이 이러한 경제 교류를 뒷받침해 줄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경쟁국들보다 앞서 이란시장을 선점하려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이란 제재 해제 이후 외국 정상으로는 가장 먼저 이란 땅을 밟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연내에 이란을 방문할 예정이라지만 우리는 ‘기회의 땅’인 이란을 공략하는 데 한발 뒤처진 상황이다.

다시 열리는 이란 직항노선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 호재임이 틀림없다. 정부로서는 이란 항공노선을 놓고 항공사들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정책과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운수권 배분 규정상 주5회 이하 신규노선은 1개 항공사에 몰아주도록 돼있는 현재 관행도 손질할 필요가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테헤란 직항노선을 놓고 볼썽스럽게 싸우는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국내 건설업체들이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과당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해오지 않았는가. 새로 열리는 중동의 거대 시장에서 항공사들이 웅비할 수 있도록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

5. 동네서점 살리려면 책읽기 운동부터

동네책방들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격년으로 발간하는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전국의 순수 서점이 2013년 말 1625곳에서 2015년 말 1559곳으로 66곳(4.1%)이 줄었다고 한다. 정점을 찍었던 1996년의 5378곳에 비하면 10곳 중 무려 7곳 넘게 폐업했다는 얘기다. 그나마 127곳이 사라진 2011~2013년보다는 감소세가 둔화된 게 위안거리다.

문구류와 북카페를 겸하는 일반서점은 작년 말 2116개로, 2년 전보다 215개(9.2%) 감소했다. 문을 닫은 일반서점 10곳 중 9곳은 전용면적 165㎡ 미만의 소규모다. 전체의 절반을 훨씬 넘는 1178곳이 서울과 6대 광역시로 몰려 있는 지역 편중도 심각한 문제다. 인천 옹진, 경북 영양·울릉·청송·봉화, 전남 신안 등 6개 지역은 서점이 하나도 없고, 단 하나뿐인 ‘서점 멸종 예정지역’도 43개 지역에 이른다.

이쯤 되면 지방에선 일부러 대도시까지 행차하지 않으면 책 사기도 힘들다는 얘기다. 꼭 필요한 책이야 인터넷 주문으로 구입하면 되지만 책방에 들러 이것저것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는 ‘호사’는 포기해야 한다. 지역의 문화거점이라 할 수 있는 동네책방이 인터넷 서점과 대형서점에 밀려 사라지도록 방치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일부 지역에서 인문학 강연회, 작가와의 만남, 작은 음악회를 비롯한 각종 세미나와 독서클럽 등의 다양한 변신을 통해 ‘문화사랑방’으로 거듭나고 협동조합을 구성해 경쟁력을 키우는 책방들이 늘어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최근의 서점 감소세 둔화가 도서정가제를 비롯한 지역 서점 육성책 덕분이라는 분석은 정부 당국의 정책 지원이 왜 필요한지를 웅변으로 말해준다.

그러나 진정으로 책방을 살리고자 한다면 ‘책 읽는 사회’가 선결과제다. 대한민국은 ‘책 안 읽는 나라’로 정평이 나 있다. 국제조사기관인 NOP월드의 2005년 조사에서 한국 국민은 주당 독서시간이 평균 3시간 6분으로 조사대상 30개국 중 꼴찌였다. 부모의 학력과 재산에 상관없이 양극화를 극복하는 최상의 사다리인 책읽기를 즐기는 국민이 될 때 비로소 나라에 미래가 열리는 법이다.

[서울신문]

6. 야권은 '현역 물갈이'하는데 새누리는 뭘 하나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현역의원 5명을 추가로 공천에서 배제했다. 이번 ‘2차 컷오프’에는 친노 386 운동권 그룹 내에서도 강경파로 꼽혀온 재선의 정청래 의원과 역시 친노로 분류되는 초선의 윤후덕 의원이 포함됐다. 정 의원은 문재인 대표 체제였던 지난해 5월 당시 주승용 최고위원을 상대로 “공갈치지 말라”고 막말해 물의를 빚었고, 윤 의원은 로스쿨 출신 딸을 대기업에 취업시키려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특정 계파를 떠나 자질 논란에 휩싸였던 두 의원의 공천 배제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더민주에서는 지금까지 15명의 현역 국회의원이 공천에서 배제됐고, 5명은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중진 등 추가 탈락자들이 나올 가능성도 크다. ‘현역 물갈이’가 현실화된 셈이다.

국민의당도 그제 초선 임내현 의원의 공천 배제 사실을 밝혔다. 당 소속 현역의원이 19명에 불과한 국민의당으로서는 한 명의 의원도 아쉬운 상황이지만 준엄하게 현역 물갈이를 요구하는 민심을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두 야당의 현역 컷오프 기준에 대해서는 물론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더민주의 경우, 상대적으로 친노보다는 비노나 중립성향 인사들이 불이익을 받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2차 컷오프 대상자 중 한 명으로 고 김근태 전 상임의원계인 최규성 의원이 “재심을 청구하겠다”며 불복 방침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회를 협상보다는 투쟁의 장처럼 여긴 많은 ‘운동권 의원’들이 버젓이 살아남은 데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국민의당조차 “친노 패권주의 청산과는 거리가 멀다”고 혹평했다.

양적으로 미흡하고 질적으로 낮다 해도 야권이 현역 물갈이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여당인 새누리당은 혹독하게 반성해야만 한다. 역대 최악인 19대 국회에 실망한 국민들은 비효율 국회의 주역이었던 현역 의원들의 무더기 공천 배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더민주가 15명의 현역 의원을 내치는 동안 새누리는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달랑 친박계 3선 김태환 의원 한 명만 생색내듯 컷오프하지 않았는가. 그동안 살생부가 돌고 사전 여론조사가 유출됐는가 하면 친박계 핵심 윤상현 의원의 “김무성 죽여” 막말까지, 새누리는 그야말로 계파 갈등의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책임 있는 여당이라면 공천 갈등을 끝내고 야권을 뛰어넘는 과감한 현역 물갈이에 나서야만 한다.

7. 마지막 남북 연결고리마저 끊은 北 자해행위

어제 북한은 우리 정부의 독자적 대북 제재에 맞서 북에 있는 모든 남측 자산을 ‘청산’하겠다고 선언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남 사이의 경제협력 및 교류사업과 관련한 모든 합의들을 무효로 선포한다”면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이후 연일 대남 위협 수위를 끌어올리던 북측이 자해성 강수를 둔 것이다. 그제 ‘핵탄두를 경량화했다’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던 북측은 어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이로써 핵 포기를 할 의사도, 국제사회의 그물망 제재를 피할 길도 없는 김정은 정권의 딜레마가 드러났다면 우리도 장단기 대응 매뉴얼을 재점검할 때다.

북측이 날마다 대남 위협 강도를 높이는 배경이 뭐겠나. 조평통은 우리의 대북 제재 조치에 대해 “아무 데도 소용 없는 물건짝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이는 우리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예상 밖의 큰 위력을 보이고 있는 데 따른 역설적 반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안보리 결의 이후 북측 내부의 장마당 물가가 들썩이고 일부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지 않은가. 지난 5년간 1% 수준의 경제성장률로 근근이 버티던 북한 경제가 혈맹인 중국의 강도 높은 대북 제재 가세로 한번 더 곤두박질치면서다. 이에 따른 내부 동요를 막는 차원에서 북측이 무력시위 카드를 잇달아 빼들고 있는 셈이다.

북 조평통은 어제 “남조선괴뢰패당이 일방적으로 개성공업지구 가동을 전면중단했다”면서 공단 내 남측 기업 및 정부 자산을 임의로 활용하겠다고 예고했다. 석탄과 철광석 등 최대 수출 품목이 유엔 제재 리스트에 오르자 개성공단 내 의류 제조시설을 가동해 벌충하려는 속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김정은 체제가 정상궤도로 돌아갈 잔도(棧道)마저 끊는 자충수일 게다. 금강산관광 중단 이후 북측은 우리 시설을 활용해 제3국 관광객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실패했다. 북측은 공단 내 남측 재산 강탈은 남북관계가 풀렸을 때 남측의 협력을 얻을 길마저 끊는 자해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북측의 막가는 행보는 아직은 내부 결속에 큰 방점이 찍혀 있는 듯하다. 5월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이렇다 할 업적이 없는 김정은의 고육책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갈수록 거칠어지는 북의 핵위협을 과소평가할 이유도 없다. 안보 위협에는 그 가능성이 1%라 하더라도 100%의 확신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경구를 떠올릴 때다. 그래야 북한의 사이버 테러나 국지 도발 소지도 외려 줄어들 것이다.

북한이 체제 위기 속에서 악수(惡手)를 연발하고 있다면 정교한 입체적 대응이 중요하다. 물론 김정은 정권을 겨냥한 빈틈없는 제재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다. 다만 제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비핵화를 이끌 수단이 아닌가. 그런 맥락에서 정부가 북한에 결핵약을 보내겠다는 유진벨재단의 요청을 긍정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우리는 북한을 변화시키려면 제재와는 별개로 북 주민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은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부는 북측이 퇴로를 찾도록 하는 차원에서 다자 회담 개최 시점도 미리 고민해야 할 것이다.

8. ‘공존’과 ‘경고’ 메시지 함께 던진 AI의 승리

공상과학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인공지능(AI)이 결코 인간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었다. 세계 최정상급 프로 기사인 이세돌 9단이 그제 구글의 AI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첫 대국에 이어 어제도 패하면서 허를 찔렸다. 기계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절대영역으로 의심치 않았던 것이 바둑이다. 그것이 기계에 무너진 것은 인류 문명사적 사건이다. 구글은 “달에 착륙했다”고 승리를 자축했지만 전 세계는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술의 가치가 인간의 가치를 압도했다는 비관론도 높다. “으스스하다”는 소감이 쏟아진다. 이 9단과 알파고는 오는 15일까지 세 차례의 대국을 남겨 뒀다. 최종 성적이 어떻든 AI의 현주소는 이미 확인됐다.

알파고의 승리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컴퓨터가 인간의 통찰력과 직관만은 따라잡을 수 없다는 통념부터 깼다. 인간 뇌의 신경망 구조를 본떠 설계된 알파고는 사람의 직관까지 흉내 냈다. 인간이라면 평생 엄두도 못 낼 학습량을 단 몇 주 만에 소화하고 급속 진화했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은 앞으로 의료 등 다양한 분야로 활용 범위를 넓히겠다고 한다. AI의 현실과 미래를 냉정하게 짚고 예측할 때가 우리에게도 온 것이다.

정보기술(IT) 강국인 우리나라는 AI 분야에서는 미국 등 선진국에 한참 뒤져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을 앞세운 미국한테는 말할 것도 없다. 영국, 독일, 일본 심지어 중국의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지적을 아프게 새겨들어야 한다. 세계적인 IT기업들이 AI 연구와 상용화에 팔을 걷어붙인 지 오래다. 금융, 의료 분야를 넘어 자율주행 자동차, 무인 항공기, 개인 비서 서비스까지 등장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우리 기업이나 정부는 AI의 가능성을 제대로 주목하는 움직임이 없다. 독자적 연구로 내놓은 성과물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세계 시장이 IT에서 AI 무대 쪽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진단을 냉엄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시대적 대세에 합류할 수 있도록 지원책 마련에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다.

세계경제포럼이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AI라고 예견한 것이 불과 두 달 전이다. AI의 급성장은 우리에게 위협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영역까지 파고든 판이니 인력 대체에 따른 대량실업 사태에 대비하는 일도 시급하다. 인류의 가치가 공격받지 않도록 AI 혁명에 다각도로 대처하는 것은 새로운 숙제다. 어떻게 통제하고 활용하는지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매일경제]

9. 정부는 면세점 시장 그만 흔들고 규제 걷어내라

정부가 면세점 특허 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은 면세점제도 개선안을 이달 말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기획재정부 등이 참여한 '면세점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는 16일 공청회를 거쳐 개선안을 확정할 방침인데 추가 신규 면세점 허용설이 솔솔 흘러나오면서 정부의 '갈 지(之) 자 정책'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년 시한부 면세점 특허제도'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리면서 잘 굴러가던 국내 면세점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든 대표적인 입법 실패 사례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면세점 재승인 심사를 통해 2곳을 교체한 후 후폭풍은 생각보다 컸다. 각각 6월과 5월 폐점을 앞두고 있는 롯데 월드타워점과 SK워커힐점은 확장공사에 쏟아부은 수천억 원을 다 날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반면 지난해 말 새롭게 문을 연 '갤러리아 면세점 63'과 'HDC 신라면세점'의 매출은 기대 이하다. 5년짜리 사업권이 약점으로 작용하면서 명품 유치에 애를 먹고 있으니 매출이 단박에 올라갈 리가 없다. 지난해 매출이 6100억원이었던 롯데 월드타워점은 방을 빼야 하고, 신규 면세점 매출은 죽을 쑤고 있으니 악수도 이런 악수가 없다. 무디리포트가 "한국 정부가 자기 발에 총을 쏜 셈"이라고 비판했는데 어이없는 실업 사태나 공중으로 날아간 투자금 등을 볼 때 딱 그런 꼴이다.

서울 시내면세점 추가 허용설에 대해 관세청은 어제 결정된 바 없다고 발을 뺐지만 시장은 술렁거리고 있다. 롯데와 SK는 기사회생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고, 특허권을 따낸 신세계와 두산은 시장 과열을 우려하며 반대 의사를 내비치는 등 시장은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부는 오락가락할 게 아니라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정부의 개선안은 과거처럼 10년으로 돌아가자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혼란을 부추겨놓고 기계적으로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 TF는 요건만 맞으면 모두 허용해주는 이른바 '등록제' 도입안에 대해서는 사실상 백지화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면세점 시장의 특허를 좌지우지하는 특권부터 내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채점표 등 모든 것이 비공개로 진행되는 특허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등은 시내면세점의 경우 요건만 맞추면 자율적으로 사업할 수 있는 등록제를 채택하고 있다. 몸집을 불리고 있는 중국 일본과의 글로벌 전쟁에서 국내 면세점이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진입 장벽을 낮춰 무한경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10. 현역 물갈이 `시늉`만 하면서 국민 우롱하는 정치권

더불어민주당이 10일 친노 86그룹 강경파로 꼽혀온 서울 마포을의 정청래 의원(재선)을 포함해 현역 의원 5명을 공천배제했다. 정청래 의원은 "공갈치지 마라" "유대인의 히틀러 묘소 참배" 등 막말 정치로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국회 품위를 손상시킨 책임이 크다. 로스쿨 출신 딸 취업청탁 논란의 윤후덕 의원, 대선 불복 발언으로 논란이 된 강동원 의원 등도 공천에서 배제됐다. 1차 컷오프 11명을 합쳐 지난달 24일 기준(재적 108명) 18.5%의 현역이 탈락한 셈이다. 하지만 친노 핵심인 이해찬(6선)·전해철 의원, 보좌관 월급 상납 논란의 이목희 의원은 아직 평가가 나오지 않았고 운동권 출신인 우상호·이인영 의원, 임종석·송영길 전 의원은 모두 살아남았다.김종인 대표가 호언장담했던 '친노 패권주의·운동권 정당 청산'은 온데간데없다. 국민의당은 "친노·486 성골 인사들의 친노 패권주의가 확대 재생산된 공천"이라고 혹평했는데 국민 일반의 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새누리당도 이날 31개 지역구 공천 및 경선 명단을 발표했다. 현역 의원 탈락은 한 명도 없었다. 김무성 대표를 지목해 "죽여버려"란 막말을 쏟아낸 윤상현 의원조차 당내 친박계가 감싸고돌면서 대충 넘어가자는 분위기다. 친노 패권주의 운동권 체질만 문제가 아니라 국민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 안하무인 친박 패권주의가 더 한심하고 괘씸하다.

19대 국회는 5개월간의 국회 공전, 국회선진화법 악용, 자동 폐기 법안 1만건 등 역대 최악의 기록을 쏟아냈다. 그 어느 때보다 현역 물갈이 여론이 비등한 이유다. 그런데도 여야는 상향식 공천, 20% 컷오프 등 혁신 시늉만 했을 뿐 현역 물갈이 비율은 턱없이 낮다. 2012년 19대 공천에서 현역 교체 비율은 새누리당 41.7%, 민주통합당 27.0%였다. 결과는 새누리당의 단독 과반 확보, 민주통합당의 참패였다. 이번 총선의 승패는 여야를 막론하고 막말·부패 의원은 물론 세비값 못하는 다선·중진들을 얼마나 과감하게 쳐내느냐가 판가름할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경제][드라마로 보는 노동법] 태후. 송혜교는 우르크에 안가도 되지 말입니다.

시청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여주인공 송혜교(강모연 역)는 혜성병원의 의사이다. 병원 이사장은 여주인공인 송혜교를 호텔 스위트룸으로 불러 하룻밤을 같이 보내자는 제안을 하고, 송혜교가 이를 거절하자, 전쟁 중인 우르크에 의료봉사단으로 전보명령을 한다. 송혜교는 우르크에서 남자 주인공인 송중기(유시진 역)를 만나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는게 5회까지의 내용이다.

남여주인공의 달달한 러브스토리 때문에 여주인공의 인사상 부당함은 부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에서 잘나가는 의사였던 여주인공이 이사장 때문에 먼 이국땅으로 전보되는 것이 만일 실제라면, 쉽게 수용될 수 일이 아니다. 드라마의 달달함을 빼고, 법률적으로 들여다보면, 이사장은 직장내 성희롱과 부당 전보로 관련법을 여러 가지 위반한 사용자이다.

1. 직장내 성희롱한 이사장. 처벌받을 수 있다.

이사장은 병원 직원인 여주인공에게 성적 언동으로 성적 수치심을 들게 했고, 개인적인 요구가 거절되자 인사상 전보조치를 내려 근무조건을 악화시켰으니, 이는 남녀고용및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직장내 성희롱에 해당된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2조는 사업주, 상급자, 근로자의 직장내 성희롱을 금지하고, 특히 사업주가 직장내 성희롱을 하면 1천 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사장도 사업주에 해당하므로 1천 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가 가능하다고 보여진다. 이외에도 사업주는 성희롱의 피해자에게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여야 한다.

2. 우르크 간 송혜교는 부당전보.

또한, 여주인공의 근무지가 서울에서 우르크로 변경되는 것은 노동법상 ‘전보’ 조치에 해당한다. 전보조치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어야 하고, 이건에서는 병원의 업무상의 필요성 보다는 이사장의 개인적 감정에 기인한 보복조치이기 때문에 부당 전보에 해당한다. 따라서 병원은 우르크 전보처분을 취소하고 원직에 복직 조치하여야 하며, 만일 전보처분으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이에 대해 배상하여야 한다. 즉, 여주인공 송혜교는 우르크에서 근무하지 않고, 서울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는 것이다. 덧붙여,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는 사업주가 직장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에 불리한 조치를 하는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므로 부당전보로 인하여 병원 이사장은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드라마처럼 여자 주인공이 우르크에 가지 않았으면 남자주인공과 러브스토리는 없다. 필자의 직업이 노무사이다 보니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이러한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다. 오늘밤 남녀 주인공이 우르크에서 어떠한 사랑을 키워 나갈지 6회를 기다려 본다.

2. [매일신문][소리와 울림] 귀향(鬼鄕), 전과 후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 '귀향'이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개봉 10일 만에 200만 명을 돌파했다. '귀향'은 감독이 사비를 털고 부족한 재원을 시민 후원으로 채우면서 14년 만에 완성한 영화다. 애초에 상업적으로 기획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흥행 돌풍 자체가 또 다른 화제다. 이 추세를 유지한다면 '귀향'은 조만간 '국민 영화'의 지위에 오를 것 같다. 궁금증이 생겼다. 사람들은 왜 이 영화에 열광할까? 

위안부 실화라는 소재 자체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긴장된 마음으로 영화관을 찾았다. 애초에 세련된 극영화를 기대하진 않았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으로 영화를 봤다. 신파조의 격렬한 감정 분출이 부담스러웠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었을 현실은 더 했을 것이란 생각에 양해가 됐다. 어쨌거나, 나는 이 영화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을 얻었다. 지금까지 익히 사진으로 보고 글로 읽어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눈으로 확인하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다! 나는 그들의 존재와 고통을 알고 있었지만 진정으로 공감하고 이해하진 못했다. 영화는 이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주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으로 올라오는 후원 시민 7만5천여 명의 명단을 보면서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막연한 의무감이 밀려왔다.

사실 그동안 위안부의 존재는 늘 우리 곁을 풍문처럼 떠돌았다. 누구나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았다. 역대 어느 정권도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2005년 3`1절 기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하라며 강력하게 항의한 것이 전부이다. 시민들도 미온적이긴 마찬가지였다. 20년 넘게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수요집회가 열렸지만 참여자는 소수였다. 현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세계적인 이슈로 20여 개국 60여 도시에서 수만 명이 참여하는 연대집회로 발전했지만, 이는 오로지 위안부 피해자 당사자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을 비롯한 소수 활동가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위안부 피해자를 자기의 문제로 껴안은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귀향'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동정받아야 할 '그들'이 아니라 위로받아야 할 '우리'로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제목이 귀향(歸鄕)이 아니라 귀향(鬼鄕)인 까닭은 종전 후 살아 돌아온 피해자뿐만 아니라, 죽어서 돌아오지 못한 피해자까지 껴안자는 뜻으로 읽힌다. 그건 위안부 피해자 전체를 정당한 우리 역사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자는 권유일 터이다. 나는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영화 '귀향'이 한국 시민사회가 위안부 피해자를 껴안는 새로운 전기가 될지, 껄끄러운 사회적 문제를 영화 관람이라는 의사행위로 흘려보내는 일회용 소비로 그칠지는 두고 봐야 안다. 관건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

위안부 문제를 일본군이 우리 소녀들을 집단 강간한 사건으로 해석하면 위안부 피해자는 또 다른 가부장적 민족주의 담론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이 시각으로 위안부 문제를 보면 일본에 대한 분노를 증폭시켜 민족주의 정서를 동원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정작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온전한 수용은 어려워진다. 낡은 정조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깊은 위로와 후원이 필요한 그들을 멸시와 냉대의 속마음으로 대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위안부 문제는 제국주의 열강의 약소국에 대한 국가 간의 폭력과, 남성이 여성에 가하는 가부장적 폭력이 중첩된 문제다. 이 시각으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볼 때만 위안부 피해자들은 부당한 국가폭력의 희생자로 회복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다. 한국 시민사회에서 이런 사회적 인정이 자리 잡아 집단적 힘을 발휘할 때, 가해당사자인 일본의 공식사과와 법적 배상도 앞당겨질 것이다.

3. [이데일리][허영섭 칼럼] 알파고, 바둑판에 뛰어든 도깨비

마치 도깨비에 홀렸다고나 할까. 바둑 최고수인 이세돌과 알파고가 맞붙은 ‘세기의 대국’ 5번기 2국이 끝난 지금의 얼떨떨한 기분이 바로 그것이다. 밤새 붙잡고 씨름을 했으나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는 옛날이야기 속의 그 도깨비 말이다. 알파고를 직접 상대하고 있는 이세돌의 심정은 더할지도 모른다.

내리 두 판을 졌으니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적어도 첫 판만큼은 이길 것이라는 게 바둑계의 장담이었다. 알파고가 뛰어난 인공지능이긴 하지만 바둑에 있어서만큼은 아직 10년 이상 뒤져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조차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이제 앞으로 남은 세 판에서 이세돌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관심사가 되어 버렸다.

변화무쌍한 수읽기에서 순간적인 직관과 감각이 요구되는 것이 바둑의 영역이다. 상상력도 필요하다. 경우의 수가 무한하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울타리까지 컴퓨터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인공지능도 인간이 만들었으므로 어느 쪽이 이기든 인간의 승리”라는 찬사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체스와는 또 다르다. 체스의 착점이 64개에 그치는 반면 바둑에서는 361개에 이른다. 그만큼 복잡하고도 오묘한 게 바둑이다. 바둑이 3000년 이상 전해 내려오면서 인간이 만든 최고의 ‘두뇌 오락’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1997년 IBM의 슈퍼컴퓨터 ‘디퍼블루’가 체스 세계 챔피언이던 카스파로프를 꺾었을 때와 충격의 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알파고가 교과서적인 정석에 능할 뿐이라는 생각 자체가 오산이었다. 최적의 착점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앞을 내다보는 착점은 어려울 것이라고 낮춰 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응수 타진이나 흔들기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확률적으로 계량화하기 어려운 부분에서도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기존 기보를 흉내내는 차원이 아니다.

비록 컴퓨터일망정 사람의 두뇌처럼 신경망 구조로 작동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나름대로 판단력과 직관력까지 갖추고 있음을 말해준다. 기존 데이터를 시행착오로 걸러내면서 새로운 전략을 찾아낸다는 것이니, 스스로 진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셈이다. 바둑에서 이세돌을 쩔쩔매게 만들 정도가 됐다면 과거 수천만년에 걸친 인류의 진화 단계를 훌쩍 건너뛰고 있다고도 여겨진다.

바둑의 영역만은 아니다. 이미 특정 기능을 대신해 주는 인공지능 로봇들이 우리 주변에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물론 국내에서도 거의 상용화 단계까지 이른 무인자동차가 대표적인 사례다. 각종 센서와 고성능 GPS시스템을 갖추고 자기가 알아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자율주행 자동차다. 혼자서 농지를 경작하는 트랙터도 최근 일본에서 선보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예술 분야에도 버젓이 발을 디밀고 있다. 구글의 인공지능 ‘딥드림’은 추상화를 그리고 예일대가 개발한 인공지능 ‘쿨리타’는 음계를 조합해 척척 작곡까지 해낸다. 이와 더불어 빅데이터를 이용한 인공지능 기술이 의료 분야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것도 새삼스럽게 볼 일만은 아니다.

이젠 이러한 인공지능이 인간 사회에 널리 파고들 경우 우리 생활이 과연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걱정해야 하는 단계다. 공상과학영화인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스카이넷 만큼은 아니라도 최소한 사람들이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빈부의 양극화가 더욱 극심해질 것이라는 것만큼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그런 불행한 현실이 다가오지 않게 미리 대처하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다. 그래야만 알파고가 이번 시합에서 최종 승리하더라도 진정한 인류의 승리라고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라는 현대판 도깨비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진화해갈지 지켜볼 일이다.

4. [동아일보][하숙 톡톡]오늘도 타향 학생들 부대끼며 추억을 쌓는다

“밥상에서 장난치던 남녀, 부부가 되기도”
《 ‘응답하라 1994’ 속 식탁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하숙생들의 얼굴이 비칩니다. 그들의 일상과 성장 스토리에 많은 시청자가 공감했지요. 하숙은 누군가 나를 위해 해준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입니다. 따뜻한 밥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팍팍했던 하루를 위로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요. 그런 생활을 끝내고 고된 세상살이를 거친 뒤에도 하숙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숙생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

내가 하숙을 하는 이유
“스무 살 자취 생활에 대한 환상이 잔뜩 있었죠. 매일 인테리어용 가구를 사들이고 친구들 불러서 집에서 파티를 열었어요. 친구들은 놀다 가면 끝이지만 전 다음 날 너무 힘들었어요.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 그릇들도 부담스럽고, 분리수거도 번거로웠죠. 점점 친구들과는 밖에서 만나고 밥도 밖에서 먹고 들어왔어요. 몸이 많이 상했어요. 안 되겠다 싶어 올해부턴 하숙을 시작했죠. 생활이 규칙적으로 바뀌고 식사도 제때 하게 되니 몸이 회복되고 있는 것 같아요.”―대학생 김모 씨(21) 

“서울이 집인데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게 됐어요. 기숙사 추첨에 떨어지고 자취를 하고 싶었지만 아빠가 엄하신 편이라 하숙을 하게 됐죠. 처음엔 모든 게 낯설었어요. 사투리를 한 번에 못 알아들어서 몇 번씩 되묻곤 했죠. 어느 날 하숙집 언니들이 작은 파티를 열어 저를 환영해줬어요. 그 언니들 덕분에 점점 대구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같이 자고, 같이 먹는다는 게 유대감을 주더라고요.” ―대학생 박모 씨(20)

“집이 서울인데도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느라 작년부터 하숙을 시작했어요. 학교까지 걸어서 10분이라 통학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요. 하숙은 시험만을 위해 집중하는 사람에겐 최적의 시스템이에요. 오늘 해먹을 반찬이나 공과금 납부 같은 사소한 일엔 신경 안 써도 되니까요. 고충이 있긴 했죠. 하숙집 아주머니의 두 살배기 손자가 자주 놀러 왔거든요. 처음엔 귀여웠지만 벽 밖에서 들려오는 까르륵 웃는 소리와 울음소리 등이 신경 쓰여서 견딜 수 없을 때가 있었어요.” ―취업준비생 류모 씨(23)

“시어머니가 ‘니 음식 진짜 맛있다’고 칭찬해 주셔서 1995년에 하숙을 시작했어요. 하숙생들과 정 나누는 게 좋습니다. 우리 집에 한번 들어오면 3년씩은 살아요. 첫 보너스를 탄 날 선물을 사서 서울에서 대구까지 내려온 학생도 있어요. 지금도 제 생일엔 전국에 퍼져 있는 우리 집 출신 하숙생이 다들 모입니다. 부모님들도 감자, 밤, 귤 등 고향의 음식을 보내 주시지요. 방학 때 집에 돌아간 아들이 ‘엄마 밥보다 하숙집 밥이 맛있다’고 했다며 토라진 어머니도 있습니다. 진심이 아니면 사람을 대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그걸 귀신같이 압니다. 늘 꿀과 매실청을 준비해 놔요. 술 먹고 속 쓰린 학생들에게 ‘일찍 댕기라’고 잔소리하는 대신 ‘꿀물 한잔 무라’ 하지요.” ―대구 북구 조정희 씨(62)

추억을 만드는 생활

“92학번입니다. 당시 하숙비가 26만 원이었습니다. 친구 여동생의 수학 과외를 해주고 한 달에 30만 원 받았어요. 그때는 한 학기 등록금이 60만 원, 학생식당 백반이 700원, 지하철 1구간 요금이 200원 정도였습니다. 하숙집 형들과 전공 이외의 모든 것을 공유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에요. 거실에는 기타, 노래책 같은 게 늘 놓여 있었어요. 금요일만 되면 도서관 앞 공터에서 시위를 했고 이념 서적도 읽었습니다. 미팅에서 만난 여학생과 서로 학보도 부쳐주고 음악회도 가고 그랬지요. 그 여학생이 롤케이크를 사서 하숙집에도 종종 놀러 왔어요. 형들은 넙죽넙죽 케이크를 입에 넣으면서 ‘너희 언제 결혼하니’라며 짓궂게 놀렸지요. 아직도 형들을 종종 만납니다. 다들 배 둘레를 걱정하고 자기 삶과 가족에 치여 살지만 만나면 금세 그때의 기개나 분위기가 되살아나서 얼큰하게 취하곤 합니다.” ―변리사 홍모 씨(44)

“건국대 행정학과 87학번입니다. 집이 제주도라서 2년간 하숙을 했어요. 3학년 하숙 때 주인아주머니는 전라도 분이셨고, 4학년 하숙 때 아주머니는 경상도 분이셨지요. 꼭 어떤 분이 음식을 더 잘하셨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음식은 두 분 다 잘하셨어요. 친구들을 데려가도, 서귀포에서 올라온 막냇동생을 하루 재워도 싫은 내색 없이 웃으며 푸짐한 아침을 차려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하숙’이란 단어를 들으면 젊은 날의 추억과 함께 따뜻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감귤 농사를 하는 문형천 씨(49)

“25년째 여성 전용 하숙을 하고 있어요. 우리 학생들이 밥이 정갈하고 담백하다는 말을 많이 해줍니다. 그 덕에 흐트러지지 않고 식사 준비를 해요. 지금 서른다섯 살인 손자가 초등학생 때부터 온 가족이 열심히 도와서 하숙을 꾸려왔지요.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에 우리 집 학생이 대기업에 입사하고 고시에 합격하면 대견하지요. 날이 어두워지면 남편이 직접 현관문에 불을 밝혀 놓아요. 학생들 안전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H하숙 주인 한부용 씨(79)

“21년째 하숙을 하고 있어요. 2층은 여학생, 3층은 남학생이 써요. 2002년 월드컵 즈음이었던 거 같아요. 아침에 학생들 국을 떠주다 보니 마주 앉은 여학생이랑 남학생이 장난을 치고 있었어요. 분위기가 훈훈했어요. 몇 년 전 두 명이 예쁜 과일바구니를 들고 찾아왔어요. 앳된 얼굴이 겹친다 싶었는데 둘이 글쎄 부부라는 거예요. 그 말을 들으니 그날 아침 기억이 슬슬 나더라고요. 그 둘은 우리 하숙집에서 처음 만나서 캠퍼스 커플로 거의 8년을 사귀다 결혼했대요.” ―B하숙 주인 김왕희 씨(68)

원룸형 외국인 전용도 등장
“자취를 하면 밥을 챙겨 먹기 힘들고 하숙을 하면 독립적인 공간 확보가 어렵죠. 그 절충으로 원룸형 하숙에 들어온 지 2년 반 됐어요. 각 방에 화장실, 냉장고, 에어컨이 있어요. 밥은 1층에서 먹을 수 있고요. 원룸형 하숙은 기본적으로 평소엔 자기 공간에서 생활을 하는 구조예요. 다른 학생들은 밥 먹을 때나 간혹 마주칠 뿐이죠. 각자 시간표도 다르고 아르바이트 때문에 일과도 다르다 보니 전통적인 하숙과는 다른 이런 형태의 하숙도 나타나는 것 같아요.” ―대학생 김광현 씨(25)

“10년 전엔 유럽이나 미국 학생들이 많았어요. 요즘엔 인도 러시아 태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공부를 하러 와요. 토스터, 커피메이커, 전자레인지, 시리얼, 우유와 달걀을 비치해 놨어요. 저녁은 한국식으로 김치찌개나 생선구이를 먹고요. 영어는 안 써요. 한국에 공부하러 왔으니 한국어를 사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처음 하숙비 독촉을 할 때에는 노크하기 전 문고리를 잡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한참 망설였어요. 요즘엔 ‘하숙비 밀렸어요’ 하고 바로 말해요.” ―C하숙 주인 윤경자 씨(60)

“방학을 통해 ‘집구하기 A TO Z’ 같은 상담과 교육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어요. 자취나 하숙이나 사실 집을 보는 기준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청년들을 위해 계약 전 단열, 방음, 방충 등을 함께 살펴주는 동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경험도 적고 예산도 충분하지 않다 보니 모를 수 있는 부분이 많거든요. 주거상담사 양성 과정도 마련해놓고 있는데 기수당 서른 명 정도가 수료해요.” ―민달팽이 유니온 주거사업국장 최지희 씨(26)

“서울대의 경우 학생 정원에 비해 기숙사 수용률은 11%밖에 되질 않아요. 나머지 89%는 자취든 하숙이든 살기 위한 방을 구해야 하는 거지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의 하우스’라는 주거 실험에 돌입하게 됐어요. 보증금과 월세를 함께 사는 사람과 나눠서 내고 욕실, 주방 등은 함께, 방은 각자 쓰는 방식이에요. 2월 말까지 총 56명의 입주자가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았어요. 이런 실험들이 점점 실제적인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서울대 총학생회 주거복지팀장 안혜린 씨(31)

5. [동아일보][지금 SNS에서는]다 지나갈 일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런 고민들도 다 별것 아닌 게 되겠지….’

서랍을 정리하다 발견한 학창 시절 일기장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더군요. 입시에 대한 압박감, 친한 친구와의 말다툼…. 당시 고민이라 하면 이런 사소한 것들이었지요. 10년이 지난 지금, 고민의 내용은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걱정들은 바람대로 정말 ‘별것 아닌’ 일이 됐지요. 당시엔 꽤나 심각했던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오늘을 사는 10대들도 예전의 저와 비슷해 보입니다. 지난 한 주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 ‘네이트 판 톡톡’에 ‘10대 이야기 베스트 톡’으로 꼽힌 게시 글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여기 고민 말해 봐. 반 년 뒤에 답글 달아 줄게’라는 제목이었습니다.

‘내가 답글 달았을 때는 고민이 싹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때 댓글 보면서 ‘맞아 이런 고민이 있었지ㅋㅋㅋ 쓸데없는 고민이었네’ 하고 웃어넘기길 바라면서! 댓글로 고민 말해 봐 여름방학쯤에 답글 달아 줄게.’

글쓴이는 자신의 고민도 덧붙입니다. ‘난 새 학기 친구랑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이고 내신 관리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돼. 너네는??’

기다렸다는 듯 주렁주렁 댓글이 달렸습니다. ‘반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고 지금 상설 동아리 지원서 넣는 거 붙었으면 좋겠다. 중간고사 잘 보고’, ‘같은 반에 좋아하는 애 있는데 6개월 뒤엔 잘 만날 수 있을까’, ‘독서실에서 독학하는 재수생인데 사람을 못 만나서 너무 외롭다. 9개월 뒤에는 친구들이랑 다 같이 웃고 싶다!!’

이 글엔 댓글이 3700건 넘게 달렸습니다. 작성자가 댓글을 6개월 뒤에 달아 주기로 한 만큼, 댓글을 단 사람들끼리 대화를 주고받았지요. ‘사람들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안 받았으면 좋겠어’, ‘동아리는 꼭 붙길 바라’, ‘중간고사 파이팅!’

이 시기 학생들로부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고민들, 그에 대한 조언들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10대를 지나온 어른들이 이들의 고민을 사소하게만 치부한다면, 그야말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꼴’일 겁니다. 친구와의 관계가, 자꾸만 떨어지는 내신 등급이, 좋아하는 학우의 마음을 얻고 싶은 그 간절함이 지금 10대들에겐 너무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죠. 그 시절 저 또한 그랬듯이 말입니다.

고민은 많지만 막상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요즘, 온라인은 고민 상담 창구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차마 말하기 부끄러운 그런 사소한 고민들을 익명의 공간에선 편하게 얘기할 수 있죠. 상담 전용 페이스북 페이지, 카카오톡 익명 상담 모임방 등이 활성화되는 이유입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딱히 해결책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고 위로받고 싶을 뿐입니다. ‘다 지나갈 일들’이라며.

누리꾼들의 고민을 읽다 보니 최근 방영된 MBC 무한도전 ‘나쁜 기억 지우개’ 편이 떠올랐습니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서울 노량진과 광화문 등지에 ‘나쁜 기억을 지워 드립니다’라고 쓰인 푸른 천막을 쳐 놓고 사람들을 기다렸습니다. 그곳에서 잊고 싶은 기억을 종이에 쓴 다음 지우개로 지워 보는 시간을 가졌죠. 천막을 찾은 사람들 대부분은 ‘지우고 싶은 기억이 뭐냐’라고 물었을 때 선뜻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현재의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오랜 취업 준비로 인한 불안감,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등을 꺼냈죠. 나쁜 기억은 다시 떠올리기 싫어 기억의 저편에 묻어 두었기 때문에, 곧장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사실 지금의 고민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면, 그 일이 더 나쁘게 진행돼 훗날 안 좋은 기억으로 남겨질 수 있습니다. 방송이 나간 뒤 한동안 SNS에선 ‘내가 지우고 싶은 기억은 무엇인가’는 물론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힘든가’를 돌아보는 글들이 여럿 올라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도 모른 채 살아가던 이들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이들을 보며 공감하고, 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거죠.

여하튼 지금 안고 있는 고민들, 너무 심각해하지 않길 바랍니다. 먼 훗날엔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넘길 일이겠죠. 이 또한 다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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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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