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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4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與野, 특권 폐지 자문기구 놓고 시간 끌어선 안 된다

20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국회의원 특권’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딸, 동생, 오빠를 의원실과 후원회에 데려다 놓고 국민 혈세로 월급까지 챙겨 준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행태에 국민은 분노했다. 게다가 그런 특권·갑질 의원이 한둘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여야 지도부가 여론의 질타에 한껏 자세를 낮춘 가운데 각 당은 경쟁적으로 ‘특권 내려놓기’ 방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지난주 국회의장 직속의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자문기구 설치 등에 합의한 것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특권 내려놓기 자문기구는 최대한 신속하게 가동돼야 한다. 급한 불만 피할 요량으로 선언부터 해 놓고 차일피일 미루다가는 결국 빈손에 그쳤던 과거의 숱한 ‘정치개혁특위’를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만큼은 국민이 특권 내려놓기 여부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왜 자문기구로 규정했느냐”며 특권 내려놓기 의지 자체에 의혹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문기구는 ‘조언’만 할 뿐 강제할 수 없지 않은가. 따라서 여야 정치권은 자문기구가 내놓는 특권 내려놓기 종합 방안을 전적으로 수용한다는 공동의 입장을 먼저 밝혀 의지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

헌법에 규정된 불체포 특권과 면책 특권을 비롯해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각종 특권과 특혜는 사실 소신 있게 정부를 견제하면서 삼권분립을 실현해야 한다는 대명제에서 비롯됐다. 상당한 액수의 세비를 지급하고, 보좌진 채용을 자율에 맡기는 한편 각종 특급 예우를 해 주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의정 활동을 하라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그렇게 주어진 신성한 특권과 특혜를 오만하게 남용하면서 그것을 반납하라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했다. ‘전직 대통령 은닉 비자금’을 캐내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면책 특권마저도 위태로운 지경이다.

이제 국회의원들에게 주어졌던 이런 모든 특권과 특혜가 자문기구의 ‘도마’에 오르게 된다. 국민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는 자문기구는 정치인의 참여를 최소화하고 일반 시민과 외부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돼야 한다. 그래야만 특권을 넘어선 월권, 관행이라는 이유로 남아 있는 구태, 눈감고 서로서로 묵인해 준 악습까지 확실하게 청산할 수 있다. 국회에 이미 제출돼 있는 각종 특권 내려놓기 법안 등도 원점에서 재검토해 법안 속에 숨겨진 또 다른 특권이 있다면 찾아내 없애야 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엄청난 세비를 받아 가면서도 택시비와 밥값까지 꼬박꼬박 챙기고,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국회 회의에 참석했다고 하루에 3만원씩 호주머니에 넣는 국회의원은 민의를 대변하는 참된 의원이라고 할 수 없다. 비리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체포동의안을 자동 폐기시키는 ‘동지의식’을 국민은 원치 않는다. 국회법과 국회의원수당법 등을 개정하고, 윤리 법규를 새로 제정해 국회의원의 품격을 강제로라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없듯이 자율에 맡기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자문기구 가동에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2. ‘안전지대 없음’ 재확인한 IS 방글라데시 테러

이슬람국가(IS) 등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무차별 테러가 전 세계인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과거엔 중동과 유럽의 특정 국가들을 향했던 공격이 아시아권까지 확산되면서 안전지대가 사라지고 있다. 공포심을 극대화 하기위해 무고한 민간인을 겨냥하는 ‘소프트 타깃’ 테러라는 점에서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지난 1일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IS를 추종하는 무장 괴한들이 한 레스토랑에 침입해 인질 테러를 자행했다. 이탈리아인 9명과 일본인 7명을 포함한 외국인 18명과 방글라데시인 2명 등 20명이 희생됐다. 괴한들은 인질들에게 이슬람 경전인 쿠란을 암송케 해 제대로 외우지 못하면 흉기로 고문하고 살해했다고 한다. 그 흉포함에 치가 떨릴 지경이다. 이번 테러는 IS가 저질러 온 수많은 테러의 연장선상에 있다. 올해만 해도 40명 이상이 숨진 터키 이스탄불 국제공항의 연쇄 자폭테러, 50명이 살해된 미국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 난사 사건, 32명이 숨진 브뤼셀 연쇄 테러 등이 발생했다. 모두 IS가 주도했거나, IS를 추종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저질렀다.

우리를 긴장케 하는 것은 테러가 점차 아시아 지역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다카 테러는 지난 1월 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자행된 테러와 비슷하다. 당시 IS를 추종하는 테러범들은 자살 폭탄을 터뜨리고 총격을 가해 민간인 4명을 살해했다. 그때도 외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를 공격했다. 지난해 8월에는 태국 방콕 도심의 관광명소가 폭탄 테러 공격을 받아 외국인 등 20명이 숨졌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서방 정보 당국자들은 다카 테러가 이라크·시리아에서의 IS 거점 약화와 연결돼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서방의 공격으로 점령지를 잃으면서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로 테러 지역을 확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번 테러가 전 세계에서 IS 추종 세력의 급증을 입증했다는 보도까지 나온다. 우리나라도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방증하는 것이다.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IS 추종 세력이 한국에만 없다고 보장하기도 어렵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총기나 폭탄 등 무기 관리가 엄격해 무장 괴한들이 대형 테러를 자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외국인이 많거나 사람이 몰리는 밀집 지역은 테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보안대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면밀한 테러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등 선제적이고 철저한 대비만이 테러를 막을 수 있다.

3. 일당 400만원 전재용 노역, 유치일 제한 없애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와 처남 이창석씨가 노역장에 유치됐다. 탈세 혐의로 40억원씩의 벌금을 선고받고서도 이를 끝내 납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역장 유치는 구치소에 갇혀 벌금만큼을 몸으로 때우게 하는 처벌 방식이다. 이들이 노역으로 갚게 될 하루 일당은 400만원이다.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를 상정해 법원이 미리 판결한 액수이지만, 일반 상식으로는 도무지 수긍하기 어렵다. ‘귀족 노역’이라는 비난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27억원을 탈세한 공범으로 기소된 두 사람은 지난해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원칙적으로 판결 후 30일 안에 벌금을 내야 하는데도 지난달까지 분납할 수 있게 배려됐다. 노역으로 벌금을 때우겠다고 버티는 이들의 하루 노동 가치가 과연 400만원이 되는지 황당하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14억 6000만원 수준이다. 보통 사람들의 노역 일당은 고작 5만~10만원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더 힘든 노역을 하는 것도 아니다. 봉투 접기나 제초 작업 같은 일로 시간 때우기 일쑤인 데다 그마저 외부 비공개가 원칙이다. 사실상 노역장은 민간 위탁이 많아 세월만 보낸다 한들 제재 방안도 없다. 수십억원의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죄질이 좀 무거운가. 몸값을 보통 사람보다 80배나 높게 우대해 줘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재작년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원 ‘황제 노역’에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법원 맘대로였던 노역 셈법에 여론이 들끓자 법원은 등떠밀려 환형유치 제도를 손봤다. 벌금액 1억~5억원은 300일 이상, 5억~50억원은 500일 이상, 50억원 이상은 1000일 이상을 유치 기간으로 정했다. 형법에 규정한 노역 유치일은 아무리 길어도 3년을 넘지 못한다. 이러니 벌금액이 높아지면 일당 수천만원짜리 황당한 노역이 여전히 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벌금 미납에 따른 처벌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벌금액을 제대로 환수하고 범죄 재발을 막을 수 있으려면 법제도의 구멍을 막아야 한다. 허점이 빤한데도 방치하는 일은 용납될 수 없다. 못 내겠다고 버티는 벌금형의 십중팔구는 횡령이나 세금포탈 등 고의성 악질 범죄다. 벌금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최장 3년으로 제한된 노역 유치일을 무기한으로 바꿔야 한다. 위법의 대가는 누구나 똑같이 치르게 하는 법 정의를 세워야 사법부의 신뢰도 회복된다.

[동아일보]

4. 국회 체포동의안, 자동 상정으로 바꿔라

국회의원들의 가족 보좌진 채용에서 비롯된 특권 남용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서영교 의원을 중징계하기로 했지만 막상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당윤리심판원은 당 지도부나 본인이 결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알려져 쇄신 의지가 멀어져 가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최근 의원 보좌진이 줄줄이 면직된 이후에도 일부 의원은 해명에 급급하다.

국회의원들의 특권 남용 사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상당히 광범위하다. 그들 스스로도 이 문제를 인식해 이번 20대 국회에서는 여야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법안을 제안하고 있다. 국회의장도 여야 3당 원내대표와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관련 의장 자문기구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이 터질 때마다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했지만 한 번도 실천하거나 법제화한 적이 없다. 사실 그동안 국회는 개원 직후 그리고 총선 직전에 특권 축소 법안을 내놓았지만 모두 폐기되곤 했다.

국회의원들의 특권 남용은 시대착오적이며 국민의 눈높이에 전혀 맞지 않는다. 독재시절의 보호막이었던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은 오늘날 뇌물이나 횡령 같은 범법 행위를 감싸거나 무책임한 인기몰이 막말과 명예훼손 행태를 조장하는 특권으로 변질되었다. 국회의원의 친인척 채용 문제는 법규정이 없다 할지라도 정실(情實) 인사의 표본이며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므로 용납할 수 없는 부조리다. 의원들의 ‘갑질’은 국민의 상식 수준을 넘어섰다. 보좌진의 월급을 후원금으로 갈취하는 행위, 출판기념회에서 책값 이상의 찬조금을 받는 행위, 민원을 빙자한 인사 개입과 후원금 요구 등 국민의 대표라는 지위를 이용해 특별한 대우를 받고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행위는 정상적인 의정 활동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또 상습적으로 회의에 불참하면서 회의 수당을 챙기는 등 일하지 않으면서 세비를 꼬박 챙기는 행태는 국민의 정치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제 자명한 것은 특권 내려놓기 국회 개혁이며 이것은 제도와 사람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우선 오·남용되는 특권을 제한하기 위해 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이 72시간 내에 표결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되던 것을 오히려 자동 상정되도록 하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막말과 모독은 적절한 법적 제재를 받도록 각각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을 제한 축소해야 한다. 친인척 보좌진 채용, 비리와 갑질, 무책임한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서 보다 명확히 법적, 제도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국회법과 윤리위원회 규정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사실 제도 개혁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사람의 개혁이다. 법과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법의 약점이나 편법을 이용한다면 제도 개혁은 ‘도로아미타불’이다. 19대 국회에서 윤리위원회에 36건의 징계안이 회부됐으나 단 한 건도 처리되지 않았다. 친인척 보좌진 채용 금지법을 만들면 의원들끼리 서로 교차 거래하여 친인척을 고용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모든 친인척을 배제시킨다면 이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 결국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의 품격과 문화가 달라져야 개혁에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사회적 도덕적 규범이 악습과 편법 그리고 부조리를 배척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하며 국회의원이 이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국민은 민주화 30년을 맞이하면서 변화해 오고 있는데 국회의원들은 민주화 이전의 특권에 안주하고 있다. 국민은 소통과 섬김의 리더십을 원하고 있는데 국회의원들은 독선과 자만에 빠져 있다. 그들이 공룡처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사멸하는 운명은 피해 가길 바란다.

[세계일보]

5. 국가·민족 자원 팔아 연명하는 북한 지도부

북한이 올해 3000만달러(약 340억원)를 받는 조건으로 어업 조업권을 중국에 넘겼다고 국가정보원이 밝혔다. 국정원이 지난주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북한은 평년보다 3배나 많은 1500척 규모의 어업 조업권을 중국 측에 팔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로 해외 수출 길이 막히자 북한이 달러 확보를 위해 갖가지 고육책을 동원한 것이다.

중국 어선들이 서해 해상과 군사 중립 수역인 한강 하구에까지 나타나 불법 조업을 일삼았던 것도 북측이 어업권을 내준 영향이 크다. 북한 어장에 거점을 두고 남측 해역을 호시탐탐 노렸다. 사실 북한은 어선, 기름 부족 등으로 수년 전부터 중국에 어업권을 팔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북한 수산사업소와 군부가 개입돼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수산업 관련 시설을 자주 방문해 수산업 발전을 강조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 어장이 중국 측에 팔리는 내막을 모르고 있거나, 알고도 그런다면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을 호도하는 처사다.

북한은 이미 주요 지하 광물자원 개발권을 중국 측과 거래했다. 중국 철강 기업에 아시아 최대 노천철광석 매장지인 무산철광 50년 개발권을 팔았다가 2년여 만에 계약을 무산시킨 경우도 있다. 민간연구기관인 북한자원연구소는 북한이 무연탄 등 주요 광물을 사실상 북한 시장을 독점하는 중국에 헐값에 팔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북한 지하자원의 경제 가치는 10조달러(약 1경1700조원)로 남한 지하자원의 20배에 이른다. 북한 전문가들은 통일에 대비해 북측의 무분별한 자원 개발·투자 거래에 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북한이 지하 자원은 물론 바다 자원까지 내다파는 이유는 김정은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다. 국제적 고립 속에 핵· 미사일 개발 자금과 정권 유지 비용을 대기 위해 북한 지도부가 달러 벌이에 혈안이 된 것이다. 북·중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북한 문화재 거래가 심심치 않다는 소문이 돈 지도 오래다. 그 사이 북한 주민들의 삶만 피폐해지고 있다. 오죽했으면 유엔이 북한의 석탄 수출 등을 전면 중단시키자 북한 주민들이 겨울 땔감 값이 떨어지겠다며 반겼겠나. 최소한의 민생조차 해결 못하는 정권은 존립할 수 없다. 김정은 정권이 핵을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6. 황총리 미세먼지 대책 총대 메야

정부가 논란이 돼온 미세먼지 파문에 대한 실천방안을 내놨다. 정부는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환경차 보급에 3조원을 비롯해 충전인프라 구축에 7600억원, 노후 경유차 폐차 지원에 1800억원을 투입하기로 하는 등 2020년까지 약 5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확보할 방침이다. 지난달 3일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개략적인 정책 방향을 담은 종합 특별대책을 공개한 이후 한 달 만에 후속 실행계획을 내놓은 셈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미세먼지와의 전쟁’을 치를 채비를 갖춘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정부 방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지난달 종합 특별대책 발표 때 세부안을 한 달 안에 선보이겠다는 계획에 맞추려다 보니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준비했다는 느낌을 준다. 미세먼지 대책에 따른 부문별 사업 일정과 소요 예산을 제시한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친환경차 보급과 충전인프라 구축 방안은 딱히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미세먼지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대책은 석탄 화력발전소를 감축하는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30년 이상 노후화한 화력발전소 폐기안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신규 화력발전소 상당수가 이미 건설중 인점을 감안하면 석탄 화력발전소를 당장 줄이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오히려 정부가 이번 기회에 현재 화력발전 중심의 국가 에너지 정책 패러다임을 바꿀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는 게 순리가 아니었겠는가. 

미세먼지 대책을 총괄할 뚜렷한 콘트롤타워가 정부에 없다는 점도 총체적인 난맥상이다. 정부가 실천방안 발표를 앞두고 반나절 동안 ‘발표 예정→무기한 연기→발표 재결정’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관련부처 간 이견으로 세부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행정 난맥으로는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이 자칫 ‘공염불’에 그칠 수도 있다. 

정부는 이번 미세먼지 대책이 차질이 없도록 관련부처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실천방안을 정밀조율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황교안 국무총리가 책임지고 컨트롤타워를 구축해 미세먼지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기 바란다.

[중앙일보]

7. ‘검사 자살’ 조사, 시대착오적 검찰 문화 걷어내야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남부지검 김모(33) 검사가 상사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다는 의혹에 대해 대검찰청이 조사에 착수했다. 의혹이 갈수록 확산되면서 직접 진상을 밝히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제(2일) 대검은 “김수남 검찰총장의 지시로 현재 대검 감찰본부가 남부지검 사건을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유족의 탄원 내용을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대검은 “해당 지검에서 조사해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란 원론적 입장만 밝혀왔다. 하지만 지난 1일 사법연수원 동기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하는 등 파장이 커지자 ‘직접 조사’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김 검사의 유서는 업무 스트레스에 대한 압박감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김 검사가 소속된 부의 김모 부장검사가 폭언과 폭행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김 검사가 “(부장검사가) 술에 취해서 나보고 잘하라고 때린다” “자살하고 싶다”는 등의 카톡 메시지를 지인들에게 보낸 사실이 보도됐다. 김 검사 유족은 청와대와 대검에 탄원서를 제출해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정확한 진상이 가려지려면 대검 조사를 지켜봐야 한다. 김 검사가 남긴 메시지와 정황만 있는 상태에서 김 부장검사의 폭언 등이 자살 원인이라고 예단하긴 어렵다. 다만 검찰 내부의 경직된 문화가 김 검사 자살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 수사의 효율성·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검사동일체’ 원칙이 윗사람들을 위해 적용될 경우 업무는 물론이고 사적인 생활에까지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시대착오적 행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검의 뒤늦은 조사 자체가 검찰의 조직 문화가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 시대 변화에 얼마나 둔감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대검은 철저히 조사한 뒤 그 결과를 있는 그대로 김 검사 가족과 시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나아가 검찰 조직에 내재된 억압적 문화를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를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할 것이다.

8. 엉터리 경영평가가 부른 산은·수은 성과급 파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전·현직 일부 임원이 2015년 경영실적 평가 결과에 따라 받기로 한 성과급을 반납하기로 했다. 조선·해운사 부실을 방치해 12조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국민에게 부담시킨 당사자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데 대한 거센 비난 여론 때문이다. 지난해 근무했던 전·현직 행장들은 연봉의 30%인 5500만~5700만원을 반납한다. 임원과 직원도 각각 기본 연봉의 55%, 월급의 110%를 받을 예정이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평가 자체가 적절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번 경영평가에서 두 은행은 나란히 C등급을 받았다. 1년 전엔 산은이 A등급, 수은이 B등급을 받았다. 그전에도 최상위 등급인 S등급 아니면 A등급이었다. 이 시기는 대우조선 등 이들이 관리하고 있던 조선·해운사들의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던 때다. 국책은행들은 여기에 적절히 대처하기는커녕 알아채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최고 등급을 받았다면 경영평가 자체가 엉터리였다고 봐야 한다.

금융위원회의 해명이 이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금융위는 두 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을 제대로 못했지만 창조경제와 일자리 창출 지원 실적이 양호해 C등급을 줬다고 했다. 국책은행의 본래 역할보다 정권의 역점사업을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었다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 때에도 자원외교나 녹색금융 지원이 중요한 평가 항목이었다. 애초부터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공공기관 평가는 이미 ‘평가를 위한 평가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존에 해오던 사업이 정부의 역점사업 지원책으로 둔갑해 평가 테이블에 오른다. 녹색금융이 창조금융으로 바뀌는 식이다. 평가단에 연줄을 대고, 위원이 될 가능성이 큰 교수에게 컨설팅을 의뢰하는 로비도 치열하다. 공공기관의 효율성 제고라는 본래 목적은 퇴색하고 일부 관변 학자들의 놀이터가 됐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다. 국민 상식과 눈높이에 벗어나는 결과가 나온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매일경제]

9. 브렉시트發 돈 풀기로 불붙은 환율전쟁 만반 대비를

세계 경제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혼돈에 빠져든 가운데 이젠 각국 중앙은행이 경쟁적 돈 풀기에 나서면서 뜨거운 환율전쟁을 치를 조짐이다. 

진원지인 영국 중앙은행이 파운드화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통화정책 완화를 강하게 시사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1일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를 0.28% 절하한 데 이어 추가 절하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브렉시트 후 급격한 엔화 강세에 고심하는 일본도 이를 진정시키려는 조치에 가세할 태세다. 덴마크와 스위스 중앙은행은 통화 약세를 이끌려고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했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페소화 가치 급락 후 기준금리를 바로 인상했다. 대만 중앙은행은 수출경쟁력 제고를 위해 기준금리를 낮췄다.

선진국과 신흥국이 너도나도 환율전쟁에 선제적으로 나서는 건 브렉시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달 30일 유럽연합(EU)의 신용도를 기존 AA+에서 AA로 낮췄다. EU체제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 조치로 보인다. 

하반기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려던 미국도 나 홀로 통화긴축을 강행하기 힘들어졌으니 불확실성만 더 커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시장 안정을 위해 각국이 공조에 나섰으나 이번엔 경쟁적인 자국 통화가치 절하로 제 살길을 찾으려는 모습이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국가 간 경쟁적 통화절하는 세계 경제를 공멸에 빠뜨릴 것"이라며 중앙은행의 정책공조를 강조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국내 금융시장은 브렉시트 직후 닥쳤던 충격에서 벗어나 거의 평상 분위기를 회복한 모습이다. 지난 주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이 브렉시트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각국의 경쟁적인 환율전쟁에서 우리만 당하고 있지 않으려면 다른 국가의 완화 기조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특정한 방향으로 통화가치를 묶는 데 주력하는 것보다 환율 변동성을 줄이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금융시장에 들어와 있는 외국자금이 갑자기 나가는 사태를 막기 위한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한다. 금융회사와 기업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외화 유동성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다른 나라 중앙은행과 통화스왑을 가능한 한 많이 확대하고 통화가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국제 공조를 끌어내는 데도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10. 삐걱거리는 자유학기제 취지 제대로 살리려면

올해부터 전국 중학교에서 전면 시행에 들어간 자유학기제가 부실운영으로 곳곳에서 삐걱거리고 있다. 진로체험 프로그램 선택을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지역사회 연계형 프로그램의 경우 교육의 질이 담보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또한 서울 강남·북 등 지역에 따라 프로그램의 질과 양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등 자유학기제에서조차 '교육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하니 걱정이다.

자유학기제는 박근혜정부의 핵심공약으로 중학생들이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오전에는 토론·실습 등 학생 참여형으로 교과수업을 실시하고, 오후에는 예체능, 동아리 활동 등으로 운영 중이다. 시험과 경쟁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의 숨통을 터주고 다양한 체험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프로그램 내용이 부실하고 지역별·학교별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다면 꿈과 끼는커녕 비교육적인 영향만 줄 뿐이다. 

우리가 벤치마킹한 아일랜드(전환학년제)의 경우 프로그램을 꾸릴 전담 코디네이터를 학교마다 배치하고 있지만 우리는 일반교사가 진행하고 있고 인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공약이행을 위해 3년 만에 서둘러 전면 확대하면서 부작용이 터져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직업체험의 경우 의사 검사 등 전문직 학부모들이 많고, 자치구 내에 방문할 만한 기업이나 연구기관 등이 많은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간 격차가 너무 크니 이를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자유학기제로 '학습공백'을 우려하는 학부모들이 많고 사교육업체는 선행학습 호기라고 부추기고 있는데 이렇게 허술하게 운영되면 사교육업체만 판치게 된다.

교육부는 자유학기제 운영에 있어 일선 학교의 애로가 무엇인지 귀 기울여 듣고 운영지침 개선에 나서야 한다. 지역사회의 협조, 지역 간 불균형 문제, 프로그램 내용, 교내 준비 인원 등을 대대적으로 점검해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경제]‘아침 전쟁’ 벌이는 미국 패스트푸드 업계

매출 부진의 늪에 빠졌던 미국 대표 패스트푸드 체인인 맥도널드가 슬럼프 탈출에 성공했다. 구원 투수는 바로 '하루 종일 판매하는 아침메뉴(all day breakfast)'.

5~6달러 미만으로 따뜻한 아침 한 끼를 든든하게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맥도널드 아침메뉴는 원래 오전에만 반짝 판매됐다. 하지만 고객의 높은 수요를 반영, 지난해 10월부터 판매 시간을 하루 종일로 연장한 것이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지난해 4분기 미국 내 동일점포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5.7% 증가했다. 지난 2013년 3분기 이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며 내리막길을 걸어온 맥도널드가 아침메뉴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올 1분기에도 5.4%의 매출성장률로 맥모닝 파워를 재확인했다. 언론에서는 '맥머핀의 마법'이라며 맥도날드의 과감한 결정(?)을 추켜세웠다.

요식업계에서 아침메뉴는 상대적으로 마진이 적은데다가 점심과 저녁식사 시간대로 판매를 연장할 경우, 효율적인 주방운영이 어렵다는 이유에서 외면 받아왔다. 하지만 미국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 외식선호도가 변화하면서 아침메뉴는 업계의 '게임 체인저'로 떠올랐다. 

지난해 전국요식업협회(NRA)가 발표한 요식업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가운데 7명은 식당에서 온종일 아침메뉴를 사먹을 수 있길 원했다. 또 미국 주 소비층으로 급부상한 밀레니얼세대는 저녁시간에 먹을 수 있는 아침메뉴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인들의 바쁜 라이프 스타일과 주머니 얇아진 이들의 저렴한 아침메뉴 선호도가 수요 증가의 이유로 꼽힌다.

맥도널드의 성적표를 통해 아침메뉴가 매출신장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패스트푸드 체인들도 변화에 동참했다. 더 이상 아침메뉴 개발과 마케팅에 투자를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버거킹은 올해 초부터 판매가 부진했던 아침메뉴를 퇴출시키고, 새로운 메뉴들을 내놓고 있다. 타코벨은 1달러 아침메뉴를 선보였고, 서브웨이는 5월 한 달간 오전 9시까지 샌드위치를 하나사면 하나 더 주는 프로모션을 시작했다. 지난해 대장균과 노로바이러스 감염으로 홍역을 치른 멕시칸 패스트푸드 체인 치폴레도 초리조(반건조 소시지) 부리토 아침메뉴로 소비자들의 발길을 돌려보겠다는 생각이다. 

패스트푸드 업체 간 아침전쟁이 치열해 지면서 어떤 기발한 메뉴와 마케팅이 등장할지 기대된다. 바쁜 출근길, 아침메뉴 선택이 다양해진 건 소비자들에게 일단 반가운 소식이다.

2. [한국일보]도쿄 로즈

일본은 2차 대전 남태평양 전선 연합군 병사들을 겨냥, 영어방송을 송출했다. 심리전의 일부였고, 당연히 진행자 멘트는 철저히 검열 받았을 것이다. 여성 진행자들은 노래 사이사이 꾸민 목소리로 향수를 자극하고, 회유나 조롱도 하고, 죽음의 공포도 부추겼을 것이다. 군인들은 그들을 ‘도쿄 로즈(Tokyo Rose)’라 불렀다. 그 중에 아이바 토구리 다퀴노(Iva Toguri d’Aquino)가 있었다.

그는 1916년 7월 4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윙 음악을 좋아하며 일요일마다 교회를 다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이민자 부모는 그에게 집에서도 영어만 쓰게 했다고 한다. 1941년 그가 도쿄의 이모를 방문한 것은 UCLA 졸업선물 같은 거였다. 진주만 공습(12월) 직전이었다.

일본은 적성국적자 다퀴노에게 국적포기와 제국충성서약을 요구했고, 거부하는 그의 전시 식량배급권을 박탈했다. 살자고 찾은 일이 영어 단파방송 대본 타이피스트였다. 얼마 뒤 ‘제로 아워스 Zero Hours’란 영어 음악방송 진행도 맡는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3년간 그는 월급 150엔(약 7달러)를 받으며 ‘앤 Ann’이라는 가명으로 그 방송을 진행했다. 코스타리카 출신 남자와 결혼해 아이도 낳았다. 

전후 그는 부역 혐의으로 체포돼 FBI와 미육군방첩대의 수사를 받으며 약 1년간 수감됐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그 와중에 아이는 숨졌고, 48년 9월 다시 ‘반역’ 혐의로 미국으로 이송되는 바람에 남편과도 생이별했다. 적개심이 팽배해있던 때였고, 그는 조국을 배반한 ‘마녀’였다. 10년 형을 선고 받은 그는 6년 2개월을 복역한 뒤 56년 가석방됐다. 

신원(伸寃)이 시작된 건 인권운동이 활발하던 70년대 이후였다. 언론 취재 등을 통해 재판 기간 상당수 증언- “악의적 방송 멘트가 그의 목소리였다”- 이 FBI의 협박에 의해 조작된 사실이 드러났다. 어쩔 수 없이 방송에 협력했던 연합군 포로들에게 그가 먹을 걸 구해준 일도 확인됐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그를 사면하고 시민권을 다시 부여한 것은 1977년이었다. 2006년 1월 미국 2차대전참전용사회는 그에게 무슨 시민상(Edward J. Herlihy Citizenship Award)도 수여했다. 그는 상을 탄 해 9월 별세했다.

3. [동아일보]표정훈의 호모부커스]옥중 독서

“음식은 걱정 없어요. 다만 책이나 좀 있으면 하는데.” 1928년 겨울 중국 뤼순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단재 신채호가 면회 온 이관용(1894∼1933)에게 한 말이다. 단재는 H G 웰스의 ‘세계문화사’와 ‘에스페란토 문전(文典)’ 차입을 부탁하면서 육당 최남선에게 말했던 백호 윤휴의 ‘윤백호집’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중근 의사의 말도 절로 떠오른다. 

백범 김구가 ‘백범일지’에서 수감 생활을 회고하며 말했다.

“아침에 도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하는 격으로, 내 죽을 날이 당할 때까지 글이나 실컷 보리라 하고 손에서 책을 놓을 사이 없이 열심히 글을 읽었다. 감리서 직원들이 종종 와서 내가 신서적에 열심 하는 것을 보고는 매우 좋아하는 빛을 보였다.”

우남 이승만은 1899년부터 1904년까지 5년 7개월간 긴 옥살이를 하면서 선교사들이 차입해 준 책을 바탕으로 이 땅에서 최초라 할 옥중 도서실을 열었다. 스스로도 공부하기 위해서였지만 문맹과 무학자가 다수인 수감자들을 독서를 통해 깨우치려는 옥중 계몽운동이기도 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0년 수감 중 이희호 여사에게 도서 차입을 부탁하거나 가족에게 권하는 책을 적은 서신을 자주 보냈다. 18번째 서신에서 차입을 부탁한 책들 중 일부는 앙드레 모루아의 ‘미국사’, 야스퍼스의 ‘니체와 기독교’, 한스 켈젠의 ‘민주주의와 철학 종교 경제’, 중국 역사서 ‘십팔사략’,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이다. 역사, 철학, 문학, 사회과학에 걸친 폭넓은 지적 관심을 엿볼 수 있다.

독서는 수감 생활의 고통도 잠시나마 잊게 하는 효능을 지녔나 보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사회운동가 버트런드 러셀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8년 반전(反戰) 선동 혐의로 체포되어 6개월간 복역했다. 그는 수감 중 리턴 스트레이치의 ‘빅토리아 시대의 명사(名士)들’을 읽다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감방이 떠나갈 듯 웃었다. 간수가 러셀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곳이 처벌을 받는 곳임을 잊지 마시오.”

책을 읽지 않는 핑계는 넘쳐난다. “진정 책을 읽고 싶다면 사막에서나 사람의 왕래가 잦은 거리에서도 할 수 있고, 나무꾼이나 목동이 되어서도 할 수 있다. 뜻이 없다면 조용한 시골이나 신선이 사는 섬이라 할지라도 책읽기에 적당치 않을 것이다.” 청나라 증국번(曾國藩)의 말과 옥중 독서인들의 진실한 뜻이 핑계를 무색하게 만든다.

4. [매일경제]뭔가 특별한 호주식 신제품 발표회

신제품을 발표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언제나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이자 도전이다. 특히 많은 경쟁자들이 있는 치열한 시장에서 핵심 신제품 발표회는 마케팅 담당자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는 중요한 행사일 수 밖에 없다. 잘 진행되어 고객들의 좋은 호응을 가져온 행사는 좋은 기삿거리가 되기도 하여 신제품의 성공에 큰 기여를 할 수도 있다. 

호주에도 물론 신제품 발표회가 자주 열린다. 기고자는 지난 5월 10일 화요일 저녁 한 호주기업으로부터 신제품 발표회 초대를 받아 다녀올 일이 있었다. 발표회의 주인공이 되는 제품은 한때 카메라시장을 호령했던 왕년의 챔피언 Pentax사의 최초의Full size sensor를 장착한 K-1이란 제품이었다. 

시드니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시드니 국제여객선 터미널에서 열린 발표회는 예상처럼 많은 고객들과 전문잡지사 기자들, 그리고 주최측인 Pentax 호주 수입사 및 제조사인 일본 Ricoh Pentax사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이뤄졌다.


필자는 한국에서도 관련 제품 발표회에 수차례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호주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좀 달랐다. 제품의 이미지와 컨셉에 관한 화려한 프리젠테이션으로 치장되는 한국의 발표회와는 달리, 시제품을 여러 대 가져다 놓고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했으며 장시간의 프리젠테이션은 없었고 발표회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모델들도 제품 홍보사진을 연출하는 대신 참석자들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같이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신제품 그 자체가 부각되기 보다는 같은 브랜드의 제품을 사용하는 충성 고객들과의 축제분위기가 강했다. 

대미를 장식한 것은, 신제품이 처음 소개되는 발표회임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인 할인가를 적용해 제품을 행사장에서 판매하는 시간이었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와인, 그리고 아름다운 모델들과 사진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고객들은 지금껏 경험했던 보수적인 호주 소비자의 일반적인 모습을 벗어던지고 수천달러에 달하는 고가의 카메라를 사기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다.

다소 엄숙한 분위기속에서 펼쳐지며, 화려하지만 정작 제품을 실제로 만져보거나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기회는 별로 없었던 한국의 발표회와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였다. 한편으로는 실리를 추구하는 현지문화가 잘 드러난 재미있는 발표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필자는 충동적으로 지갑을 열지는 않았지만 아마 한잔의 와인이 더 들어갔더라면 어쩌면 지금 한손에는 신형카메라, 다른 손에는 카드명세서를 들고 있을지 모른다.


5. [동아일보][톡톡 경제]“유아인 옷 68만원” 즐거운 나눔, 사내 경매

‘유아인 발렌티노 슈트, 구매가 245만 원, 경매 시작가 24만 원.’

지난달 20일 LG유플러스 사내 포털 사이트에 빨간 체크무늬 슈트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올라왔습니다. LG유플러스 전속 광고 모델인 배우 유아인 씨가 촬영 당시 입었던 옷이 경매에 나온 것입니다.

경매 마감일이던 24일. 이 매물은 LG유플러스 관악로직영점 이민진 점장(25)의 차지가 됐습니다. 첫 댓글로 26만 원을 써냈지만 가격이 뛰어 최종 낙찰가는 68만 원이었습니다.

“연예인 옷을 입어볼 일이 없는데 이런 기회가 생겨 신기합니다. 그리고 아직 불우이웃돕기에 큰돈을 내본 적이 없는데, 제가 낸 돈이 좋은 일에 쓰인다고 해서 더 기쁘고요.” 이 점장의 말입니다.

이 경매는 LG유플러스가 매년 여는 사내 자선경매 행사입니다. 임원들의 개인 소장품이나 광고 모델 연예인들의 촬영 의상 등이 매물로 나오고, ‘최고가 댓글’을 써낸 임직원에게 낙찰되는 방식입니다.

본사 강당에 임직원이 아기 용품이나 책, 스포츠 용품 등을 내놓고 동네 주민들과 함께 사고파는 바자회도 같이 열립니다.

유아인의 땀이 배어 있을 체크무늬 슈트를 탐내는 분이 많았지만 이 슈트의 낙찰가는 2위였습니다. 1위는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이 사내 자선경매에 처음 참여하며 내놓은 드론이었습니다. DJI의 ‘팬텀 3 프로페셔널’이라는 모델로 최소 130만 원에 팔리는 제품이라고 하는데, 홈단말기술팀 이용근 사원(28)이 95만 원에 가져갔습니다. 걸그룹 트와이스의 쯔위가 입었던 발망 재킷(53만 원)도 낙찰가 상위를 차지했습니다.

올해 경매와 바자회 수익금은 2200만 원입니다. 이달 중 경기 광주시에 있는 중증장애청소년 학교인 ‘한사랑학교’에 전달될 예정입니다. 올해 행사에 개인 애장품 4점(드론, 넥타이, 가죽부츠, 박지성 선수 사인 티셔츠)을 내놨던 권 부회장은 “임직원 모두가 관심을 갖고 즐겁게 참여한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며 “앞으로도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 즐거워할 수 있는 사회공헌활동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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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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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서별관회의, 기록 남기지 않는 이유 뭔가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바람에 국민의 근심을 자아내고 있다. 이번엔 청와대 서별관회의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우조선해양 지원 방안을 논의한 회의 기록과 자료를 내놓으라”는 국회와 “그릇된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행정부가 팽팽히 맞섰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그제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의 업무보고 도중 이 문제로 두 차례나 정회 소동을 빚었으나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한 상태다.

서별관회의는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청와대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한국은행 총재 등이 청와대 서(西)별관에 모여 주요 경제 현안을 다루는 비공식 회의다. 어떤 식으로든 부처 간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회의의 운영 자체에 대해 시비를 걸자는 얘기는 아니다. 이미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도입된 이래 노무현 정부에서 사실상 정례화된 회의체다.

문제는 회의 내용을 어디까지 공개하느냐다. 대우조선에 4조 2000억원의 자금 지원을 결정한 회의 기록과 자료를 제출하라는 야당의 요구에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속기록이나 발언록은 존재하지 않고 관련자료 공개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거부했다. 채택되지도 않은 자료가 공개되면 시장에 혼란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이 한국의 조선업 구조조정에 대해 시장왜곡 문제를 제기한 상황이므로 더더욱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는 임 위원장의 배경설명에도 충분히 수긍한다.

그러나 아무리 비공식 회의라지만 기록이 없다는 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밥 먹고 커피나 마시며 잡담하는 자리라면 모르되 그처럼 중요한 국사를 다루면서 기록조차 없다니, 책임 소재를 남기지 않겠다는 뜻인가. 장관급 인사가 국회의원들 앞에서 “기록이 없다”고 천연덕스럽게 답변하고 회의 날짜와 참석자, 안건 등 기밀이 아닌 자료라도 공개하라는 여야의 요구를 ‘선례’ 운운하며 일축한 것은 행정부에 만연한 국회 경시 풍조의 단면을 보는 듯해 씁쓰레하다.

‘입법권력 폭주’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것은 사실이나 국정을 행정부의 전유물로 여기는 듯한 태도 역시 마뜩찮다. 엄혹한 대내외 도전을 극복하려면 국회와 정부가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사사건건 충돌하느라 국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 몫으로 돌아올 뿐이다.

2. 국회의원 특권포기 움직임을 주시한다

국회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가 점차 가시화하는 분위기다. 어제는 새누리당이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되고도 72시간 동안 표결하지 못할 경우 자동 폐기되는 현행 규정을 없애도록 국회법을 개정키로 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가족 보좌관’ 사태와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의 사퇴까지 초래한 국민의당 리베이트 사건으로 국민의 눈총이 쏠린 결과다.

불체포특권은 그동안 줄곧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의원들이 심각한 비리를 저지르고도 ‘방탄국회’에 의존해 구속을 회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국회가 의원들의 비리를 감싼 꼴이다. 그러나 회기 중이라도 범죄 혐의가 있는 의원은 법원 영장실질심사에 자진 출석하도록 의무화하고 출석을 거부할 경우 국회 윤리위원회에서 징계토록 추진하겠다니, 추이를 지켜보고자 한다.

이번 제20대 국회는 임기를 시작한 지 불과 한 달밖에 안 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취약점을 드러냈다. 더욱이 ‘깨끗한 정치’를 표방했던 국민의당에서도 총선 홍보물 리베이트 사건으로 왕주현 사무부총장이 구속되고 박선숙·김수민 의원까지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것은 유감이다. 의혹이 불거지던 초동 단계에서 어물쩍 넘어가려다 결국 지도부에까지 불똥이 튄 상태다. 더불어민주당도 서 의원에 대해 자진탈당을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새누리당도 비난만 할 형편은 아니다. 박인숙 의원을 비롯해 이완영·박대출·강석진 등 소속 의원들이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채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자기에게도 똑같은 흠집이 있으면서 상대방만 헐뜯은 모양새다. 8촌 이내의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채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당 차원의 대책이 서둘러 제시된 것도 이에 대한 비난을 의식한 탓일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세비 삭감 문제다. 지난 선거운동 과정에서나 당선이 확정된 뒤 세비 50% 반납, 금융기관 신탁 등 여러 방안을 내놓고도 막상 임기가 시작해서는 월 880만원씩 받는 세비로도 모자라다며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결국 그런 핑계를 들어 세비를 동결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듯하다. 돈 봉투만은 내놓지 못하겠다는 투다. 이래서는 반쪽 개혁에 그칠 수밖에 없다.

[서울신문]

3. 주먹밥보다 못한 대전 봉산초등학교 급식

그제 SNS에 올라온 학교급식 사진들이 학부모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전 서구 신갈마로 봉산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올린 사진 속 식판에는 도저히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한 끼 식사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부실한 음식이 담겨 있다. 한 줌 우동을 주식으로 한 식판에는 반찬으로 꼬치 한 개와 단무지 한 조각이 놓였고, 후식인 듯한 수박 한 조각이 곁들여졌을 뿐이다. 또 다른 사진 속 음식은 푸석한 볶음밥과 멀건 국물 등이 전부다. 사진을 본 학부모들은 “교도소 음식도 저 정도는 아니다”라거나 “제 자식이라면 저런 음식을 내주겠느냐”며 사실로 드러날 경우 관련자들을 엄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전시 교육 당국은 엄정한 진상조사를 통해 주먹밥보다 못한 부실 덩어리 급식 경위를 명백히 밝혀야만 할 것이다.

심신 양면에서 급격하게 성장하는 아동과 청소년 시기에는 균형 있는 영양 공급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등 영양을 골고루 충분히 고려해 최소한 ‘1식 3찬’ 이상의 균형 잡힌 식단을 마련한 뒤 위생적인 조리를 통해 아이들에게 제공돼야 한다. 과거 새벽부터 정성스럽게 자식들의 도시락을 준비하던 우리 어머니들의 애틋한 심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제 학교가 그 역할을 맡은 만큼 부모들이 믿을 수 있게끔은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해당 학교에서는 급식을 거부하고 도시락을 싸 주는 학부모들까지 있다니 그만큼 학교와 교육 당국을 믿지 못한다는 얘기다. 부실 급식은 이번에 문제 된 학교만의 일도 아니다.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튀어나온다.

현재 중학교까지는 무상으로, 고등학교는 급식비를 받고 급식을 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략 초등학생은 1인당 한 끼 3000여원, 중학생은 1인당 4000여원 정도의 급식비가 책정된다고 한다.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주먹밥보다 못한 부실 급식을 해야 할 만큼 금액이 적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책정된 급식비가 중간에서 줄줄 새지 않고서야 어떻게 단무지 조각의 부실 덩어리 급식이 이뤄질 수 있겠는가. 부실 급식 문제가 빈발하는데도 그때마다 어물쩍 넘어가는 교육 당국의 무책임한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 당국은 부실하고 비위생적인 불량 급식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차제에 학교급식 전반에 대한 획기적 개선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4. ‘셀프 대관식’ 김정은 도발 망상 키우진 않을까

북한 김정은이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버리고 ‘국무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새 직위에 올랐다. 그제 최고인민위원회에서 기존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국방위를 국무위원회로 확대 개편하면서 모자를 바꿔 쓴 것이다. 지난 5월 노동당 대회에서는 당 제1위원장이란 명칭 대신 당 위원장이란 감투를 썼던 그다. 김정은이 3대 세습체제의 완결을 대내외에 선포한 셈이다. 하지만 북한의 정상 국가화를 뜻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외려 무소불위의 권력을 장악한 그가 앞으로 개혁과 개방에 소극적으로 나올 개연성이 짙어졌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의 삶에도, 평화통일로 가야 할 남북 관계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제 김정은이 확고한 1인 체제를 구축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가 김일성의 직책인 주석직과 김정일의 국방위원장직을 ‘영구결번’으로 남겨 놓고 새 감투를 잇달아 쓴 배경이 뭐겠나. 선대의 후광에서 벗어나 그의 시대가 열렸음을 과시하려는 의도다. ‘노동당 위원장’ 직으로 당을 틀어쥔 뒤에 국무위원장이란 간판 아래 경제·외교와 국방·통일 등 국정 전반을 완전히 장악했음을 각인시킨 셈이다. 그제 조선중앙TV에 비친 최고인민회의 주석단에서 조는 그의 모습은 상징적이다. 지난해 회의석상에서 졸았다는 이유로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한 그였다. 북 권부에서 그에게 ‘직언’할 인사가 더는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의 당·정·군 친정체제 구축이 북한 주민들에게 축복일 수는 없다. 최근 열린 북한 경제 세미나에서 한 전문가는 “북한 경제는 성장하면서 붕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암시장인 장마당이 성장하면서 주민들이 생계를 꾸려 가고 있지만, 배급 체계가 와해한 지 오래라고 한다. 이처럼 무너진 경제를 다시 세우려면 북한은 핵 개발을 포기하고 외부 세계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는 거꾸로 가고 있다. 북 외무성은 어제 “핵 억제력 강화 조치를 연속적으로 취해 나가겠다”며 핵·경제 병진노선 사수 입장을 천명했다.

국무위원회라는 유일 독재용 기구가 있다고 중장기적으로 세습체제가 공고화될 것인가. ‘인민 생활’의 획기적 향상이 없는 한 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박봉주 북한 총리는 최고인민회의에서 구체적 생산 목표도 없는, 공허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해 한계를 자인했다. 북한 정권은 ‘개혁 울렁증’이나 개방을 거부하는 ‘자폐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미래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5. ‘국민 눈높이’로 의원 보좌관 채용 개혁해야

젊은 세대의 취업을 늘리는 것은 이 시대가 당면한 최대의 과제다. 청년 취업률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미래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용 절벽이 결혼 기피를 낳고, 다시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의 노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다. 취업 인구가 노령 인구를 경제적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단계가 되면 그렇지 않아도 부실한 복지는 아예 파산 단계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우리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라도 취업률을 끌어올리는 데 힘을 보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누구도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마이동풍(馬耳東風)인 사람들이 있다. 한마디로 ‘쇠 귀에 경 읽기’다. 청년 취업을 비롯한 우리 사회 당면 과제를 앞장서서 해결해도 시원치 않을 국회의원들이다.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이 사자성어에 등장한 말이나 소에게 오히려 미안할 뿐이다. 많은 취업 희망자들은 입사지원서를 낸 뒤 면접시험을 치를 기회만 잡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낙방의 고배를 마셔도 ‘내가 모자란 탓’이라며 신발끈을 고쳐 매곤 한다. 아무리 취업의 문이 좁아도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아예 기회조차 특권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봉쇄된다면 얘기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국회의원이 주도하는 ‘채용 비리’에 내포된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가족 채용’이 대표하는 의원들의 ‘일자리 갑질’이 심각한 반발을 부르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단순히 의원이 가족 한 사람을 보좌관으로 채용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국민 전체에 주어져야 할 취업 기회 자체가 국회의원에 의해 원천적으로 봉쇄된 것을 참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을 ‘국민의 대변자’라고 얼마 전 바로 내 손으로 뽑았다니 허탈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에서 시작된 ‘채용 비리’ 논란은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과 더민주 안호영 의원으로도 번졌다. 이들의 구체적인 ‘일자리 갑질’ 행태는 다시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 결국 더민주는 어제 서 의원에 대한 중징계를 결정했다. 제명이나 당원 자격 정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서 의원에게는 보좌진에게 후원금을 받은 혐의도 추가됐다. 더민주 당무감사원장은 “질책이 많다. 국민이 말씀하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국민이 분노하는 진짜 이유는 아직도 모르는 듯하다. 그저 여론에 밀린 정치적 결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뒤늦은 대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은 ‘8촌 이내 친인척 보좌진 채용 금지법’을 제정하겠다며 나섰다. 더민주는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보좌진의 친인척 채용과 차명 채용, 근무 없는 봉급 수령과 월급 쪼개기 등 금지 사항을 전했다. 여야 교섭단체 3당이 공동으로 방지 대책을 마련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한결같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처신’을 강조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다만 8촌까지 범위를 정한 것은 너무 과하다. 4~5촌만 해도 충분하다. 정치권은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물론 국민의 가슴 깊은 곳 아픔까지도 헤아렸으면 한다.

[동아일보]

6. 7500억 조선업 특별고용지원, 1년 뒤엔 어쩔 텐가

정부가 어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3’를 제외한 7900개 조선 관련 업체를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했다. 특별고용지원업종제도는 대규모 해고에 대비하기 위해 고용노동부 고시로 지난해 말 도입된 뒤 이번에 처음 적용되는 것이다. 경영난에 빠진 기업이 유휴 인력을 해고하는 대신 휴업이나 휴직을 시키면 정부가 주는 고용유지지원금 한도를 하루 4만3000원에서 6만 원으로 증액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고용보험료의 240%를 지급하는 중소기업 훈련비 지원 한도도 300%로 인상된다. 이달부터 내년 6월까지 1년 동안 총 7500억 원의 재정이 투입되는 파격적 지원책이다.

특별고용지원업종제도가 당장 일자리를 잃는 충격을 줄이는 쿠션 역할은 할 수 있다. 문제는 1년 뒤 휴업 또는 휴직을 끝낼 때면 조선업 경기가 되살아나 복직을 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독일 정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이 고용을 유지하도록 휴업수당을 지원한 데는 경기가 되살아나면 경쟁력 있는 독일 산업계에 숙련 인력이 꼭 필요하다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한국의 수주 점유율은 2011년 40.2%에서 올해 5.4%로 폭락했다. 경쟁력을 상실한 산업에 세금 퍼주어 명목상의 고용을 유지하는 것은 모르핀 처방일 뿐이다. 

재취업을 위한 직업훈련이 확실하면 또 모른다. 실업급여 수령 기간 내 취업하는 경우는 10명 중 3명도 안 된다. 박근혜 정부가 자부하는 취업 성공 패키지도 직업훈련을 받은 업종에 취업하는 경우는 34%에 불과했다. 조리사 교육을 많이 받지만 취업은 사무직에 하는 식으로는 혈세만 아깝다. 내년 6월 말 지원이 끊기면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란 말인가. 

정부는 대형 3사의 경우 수주 물량이 많아서 고용 유지 여력이 있다는 분석에 따라 이번 지원에서 제외했다. 그렇다면 대형 3사 노조가 ‘파업을 안 할 경우’라고 해도 향후 지원 대상에 넣어 국민 부담만 늘릴 이유가 없다. 그제 “정부가 낙관적인 전망을 갖고 임기가 끝날 때까지 (조선 및 해운업을) 연명시키려는 인상을 준다”고 한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의 지적을 아프게 새겨야 할 것이다. 

스웨덴 남부 항구 도시 말뫼는 2002년 코쿰스 조선소 크레인을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아 ‘말뫼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친환경 뉴타운 건설과 식품산업 육성으로 되살아났다. 복합건설업인 조선업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숙련된 기술인력에다 이종(異種) 산업을 융합해 4차 산업으로 키우는 발상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가 경쟁력 있는 조선사만 살리고 ‘포스트 조선업’으로 무엇을 키울지 고민하는 대신 1년만 넘길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 답답하다.

[중앙일보]

7. 아이들 볼모로 한 무상보육 싸움 끝내라

어린이집과 야당의 반발을 샀던 맞춤형 보육이 오늘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된다.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0~2세 75만 명이 대상이다. 맞벌이 가구는 하루 12시간의 종일반을, 그렇지 않은 가구는 하루 6시간의 맞춤반을 이용하는 제도다. 2012년 3월 도입할 때 맞벌이와 외벌이에 상관없이 온종일 돌봐주던 것을 선별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 “저출산 극복을 위한 일·가정 양립 확대를 위해 맞춤형 보육을 보완했다”고 밝혔다. 핵심은 종일반 기준 완화와 수입 보장이다. 종일반 이용 다자녀 기준을 3자녀에서 2자녀로 완화해 외벌이 가정에도 개방한다는 것이다. 또 20% 삭감설로 어린이집의 집단 반발을 샀던 맞춤반 기본 보육료는 깎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지난해보다 6% 인상해 보육 교사들의 처우 개선에 활용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수입이 줄어든다며 툭 하면 집단 휴업 엄포를 일삼는 어린이집 눈치를 보며 후퇴한 것이다.

어린이집 반응은 단체별로 다르지만 일단 혼란은 수습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또 다른 시한폭탄이 기다리고 있다. 앞서 벌어진 누리과정(만 3~5세 130만 명 무상보육)을 둘러싼 정부와 각 지방교육청 간의 예산 ‘핑퐁’이 해결되지 않아서다. 정부가 책임지라며 예산 편성을 거부한 일부 지역에선 어린이집이 또 가세해 2차 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아이들을 볼모로 한 이런 반목을 추방하지 못하면 결코 초저출산국(출산율 1.3명 이하)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실상이 그렇다. 올 1~4월 신생아 수가 14만7900명으로 역대 최저를 찍었고, 내년부터는 14세 이하 인구가 65세 이상보다 적어진다. 인구절벽이 코앞인 것이다.

저출산을 극복하려면 안심 보육이 가장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도 엊그제 인천의 사업 현장을 찾아 “출산·육아·보육으로 인한 여성들의 경력단절이 절대 있어선 안 된다”고 보육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연간 10조원을 쏟아붓고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잇속만 챙기려는 어린이집과 표만 곁눈질하는 정치권, 원칙 없이 휘둘리는 정부 3자의 공동 책임이다.

무엇보다 어린이집에 대한 근본 대책이 시급하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무상 시리즈’를 쏟아내 돈벌이에 나선 어린이집이 급증했다. 전국적으로 4만1551곳이 있는데 이 중 국공립은 6.6%(2749곳)에 불과하다. 동네 ‘빅 마우스’인 원장들에게 정치권이 부화뇌동하고 압도적인 숫자에 정부가 휘둘리는 이유다. 지금 엄마들의 분노와 불신은 임계점에 있다. 원장들부터 자성하고 신뢰 회복에 나서기를 바란다. 정부는 무상보육의 관리와 재정 주체를 명확히 하고, 국공립 확충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특히 어린이집의 집단행동을 엄단하고 보육 질이 부실한 곳은 퇴출시켜야 한다. 정치권의 책임은 더 막중하다. 지난해 말 여야 합의로 예산까지 통과시킨 맞춤형 보육을 야당이 뒷다리 잡아 일을 키운 게 아닌가. 말로만 초당적 협력을 외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라.

8. 김정은 시대 권력 구조 완성 … 우리의 숙제

북한이 엊그제 최고인민회의에서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 “국가 주권의 최고정책적 지도기관”인 국무위원회를 신설하고 김정은을 국무위원장으로 추대함으로써 김정은 시대의 권력 구조를 완성했다. 지난 5월 노동당대회에서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된 데 이어 김정은이 당과 국가기구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1인 체제를 확고히 다진 것이다.

국무위원회는 기존 최고권력기구였던 국방위원회를 확대 개편한 것으로, 군을 대표하는 황병서 총정치국장, 당을 대표하는 최용해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내각을 대표하는 박봉주 총리가 부위원장으로 모두 참여하고 있다. 연이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통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군사뿐 아니라 경제와 대남·대외 정책 등을 모두 직접 챙기겠다는 김정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분야별로 임명된 8명의 국무위원 가운데 외교 분야에만 2명(이수용·이용호)을 포진시킨 것은 북한이 스스로 핵 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고 국제사회를 향한 외교 공세를 강화하겠다는 포석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점은 기존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의 외곽 조직에 불과했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정식 국가기구로 승격한 것이다. 북한 역시 이에 의미를 부여해 어제자 노동신문 7면에 통단 톱기사로 보도하며 “통일 번영의 휘황한 미래를 열어 나가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을 강력하게 조직, 전개해 나가기 위하여”라고 해설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이미 연석회의나 민족적 대화합을 거론하며 내세우고 있는 대남 평화·대화 공세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북한의 전통적 통일전선 전략 차원의 유화 전략일지라도 이로 인해 우리 사회 내부에서 “비핵화 없이는 대화 없다”는 정부의 입장을 계속 유지하는 게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무조건 거부가 아닌 좀 더 치밀한 논리를 개발해 대응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또한 지금 같은 경직된 태도를 넘어 핵과 당국 대화, 남북 경협·교류 등을 분리해 대응하는 보다 공세적인 전략적 접근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9. 한·미 FTA 흔드는 트럼프의 무책임한 선동

미국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무역정책 공약을 통해 보호주의 노선을 공식화했다.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주 모네센에서 한 연설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민주당 정부가 추진한 무역정책들을 실패로 규정하고,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를 바로잡기 위한 7대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외교정책에 이어 무역정책에서도 신(新)고립주의 노선을 천명한 것이다.

특히 그는 한·미 FTA를 정조준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밀어붙인 한·미 FTA의 여파로 대한(對韓) 무역적자가 두 배로 늘고, 미국 내 일자리 10만 개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재협상을 통해 한·미 FTA를 대폭 손질하거나 철폐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2012년 3월 한·미 FTA가 발효된 이후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2012년 152억 달러에서 지난해 258억 달러로 확대됐다. 하지만 무역수지는 환율, 경기, 수요, 비교우위 등 복합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를 무시하고FTA 탓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대선후보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단순무식한 발상이다.

그의 주장이 터무니 없다는 것은 어제 미 상무부 산하 무역위원회(ITC)가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입증된다. 무역으로 인한 산업 피해를 평가하는 독립기구인 ITC는 ‘무역협정의 경제적 영향’이란 보고서에서 지금까지 한·미 FTA가 미국에 48억~53억 달러의 수출증대 효과를 가져왔고, 특히 지난해에는 158억 달러의 상품수지 개선 효과를 발휘했다고 밝혔다. 한·미 FTA가 없었다면 지난해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 폭은 416억 달러로 훨씬 더 커졌을 것이란 의미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엉터리 정보로 민심을 왜곡하는 포퓰리즘이 어떤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인 브렉시트는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표를 얻을 목적으로 양국의 이익에 기여하고 있는 한·미 FTA에 애꿎은 화살을 날리는 트럼프의 무책임한 선동을 미국인들은 냉정하게 표로 심판해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10. 불합리한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하루가 급하다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건강보험료 공청회를 열고 소득 중심의 건보료 부과 개편안을 발표했다. 현행 제도가 불공정하고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았던 터라 국민적 관심이 높았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입자 종합소득을 객관적으로 평가한 뒤 직장과 지역 구분 없이 동일한 기준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건보료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직장과 지역 가입자가 전혀 다른 기준에 따라 보험료를 부담한다는 것이다. 직장 가입자는 종합소득이 연간 7200만원을 넘지 않으면 임금 소득만을 기준으로 건보료를 내고, 지역 가입자는 주택과 자동차 등 보유 재산을 근거로 건보료를 책정한다. 그러다 보니 퇴직이나 실직으로 직장을 나온 뒤 소득이 줄었는데도 보험료가 2~3배 뛰어 '건보료 폭탄'을 맞는 가입자가 한둘이 아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직장을 나온 지역 가입자 10명 중 6명은 건보료가 올랐고, 늘어난 부담액도 평균 3배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 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재하면 보험료를 면제해 주는 제도 역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김종대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퇴임 직전인 2014년 "생활고로 동반자살을 했던 '송파 세 모녀'는 전월세가 재산으로 간주돼 월 5만원 넘게 건보료를 냈지만 나는 연간 수천만 원의 연금 소득이 있는데도 직장 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로 등록하면 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낸다"며 제도의 맹점을 지적한 바 있다. 건강보험 피부양자가 지난해 6월 기준으로 2000만명이 넘어섰고, 퇴직 후 보험료를 덜 내려고 위장 취업해 적발된 사람이 최근 5년간 8600여 명에 달했다고 하니 어떤 식으로든 손을 봐야 한다.

건보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뿐만 아니라 정부와 여당도 개편의 필요성에는 동의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하려 했으나 고소득자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백지화했는데 이제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충분한 논의와 여론 수렴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사안이니만큼 시한을 정해놓고 과감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동아일보][@뉴스룸/이세형]아프리카의 ‘한국 워너비’들

‘헬조선’ 안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밖에선 한국을 부러워하고 따라하려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특히 아프리카 개발도상국들 사이에 ‘한국 워너비(Wannabe·닮고 싶어 하는) 현상’은 뚜렷하다. 

이 나라들은 경제·산업은 물론이고 건강보험, 환경오염 물질 관리, 교통인프라 구축 등 보건과 환경 분야에서도 한국을 벤치마킹하고 싶어 한다. 자국의 미래를 책임질 엘리트 공무원을 한국에서 교육받게 하려는 나라도 많다. 이들에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이겨내고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이뤄낸 한국은 롤모델인 동시에 지식과 노하우를 알려줄 수 있는 족집게 과외 교사나 다름없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방문을 계기로 닻을 올린 ‘코리아 에이드(Korea Aid)’도 개도국과 국제기구들의 적잖은 관심을 받고 있다. 코리아 에이드는 한국의 사실상 첫 번째 아프리카 공적개발원조(ODA)사업이다. 

기자는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 직전 에티오피아와 우간다를 다녀왔다. 세계은행이 주도하는 한국형 녹색 ODA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코리아 에이드에 대한 현지 공무원과 국제기구 관계자들의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낙후지역을 찾아가 보건(이동검진 차량), 음식(푸드 트럭), 문화(문화·영상트럭) 서비스를 제공하는 코리아 에이드의 방향에 대해선 신선한 시도라는 평가가 많았다. 이동검진 차량을 통해 여성 건강, 특히 소녀들의 건강을 관리할 것이란 계획에도 후한 점수를 줬다.

하지만 차량을 이용해 낙후지역을 돌아다니는 ODA는 효과가 제한적인 보여주기식 이벤트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조업 육성에 적극적인 에티오피아의 공무원들과 국제기구 관계자들은 “우리는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과학기술 관련 내용이 코리아 에이드에 포함되지 않은 게 아쉽다는 얘기였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의 과학기술 육성 노하우를 배우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이 나라 이공계 최고 명문대인 아다마과학기술대(ASTU)와 아디스아바바과학기술원(AAiT)의 총장이 모두 한국인이다. 두 대학은 공공연히 ‘아프리카의 KAIST’를 표방한다. 우간다에서 만난 공무원들은 “인하대 아태물류학과는 얼마나 인기가 있느냐”며 학과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한국의 과거와 현재의 경제정책과 과학기술 성장 과정을 잘 아는 원로 교수들이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의 ODA는 북미, 유럽, 중국에 비해 규모가 작고 역사도 짧다. 한정된 자원으로 효과를 내려면 세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앞으로 진행될 코리아 에이드 사업에선 수혜국들이 무엇에 목말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한 다음에 이들의 갈증을 해소해 줘야 한다. 코리아 에이드란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한국 워너비’도 더욱 많아지는 길이다.


 2. [중앙일보][취재일기] 불량급식 면피에 급급한 대전교육청

“아이들이 늘 배고프다고 해서 매번 혼을 냈는데 급식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죠.” “급식 맛이 없다고 하면 엄마가 주는 것보다 좋다며 타일러 학교에 보내기도 했는데….”

30일 대전 봉산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온 글이다. 배가 아프거나 배가 고프다고 호소하는 아이들에게 꾀병이라고, 밥 좀 그만 먹으라고 꾸중했던 부모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내용도 있었다. 친환경 급식이라고 믿었던 학부모들은 식단을 보고 어이가 없어 화를 내지도 못했다. 1년 넘게 이런 급식을 먹은 아이에게 미안해서였다.

학부모들이 공개한 식단을 보면 불어터진 우동에 단무지 한 쪽, 수박 한 조각이 전부였다. 어떤 날은 두부부침 한 개와 깍두기 2개가 반찬으로 나왔다.

급식실의 위생상태는 더 엉망이었다. 식탁과 배식대에서 기준치를 수십 배나 초과하는 세균이 검출됐다. 배가 아프거나 장염에 걸린 아이들이 속출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학교 측은 “집에서 먹은 것 때문”이라며 학부모에게 잘못을 돌렸다. 한 1학년 학부모는 “입학 4개월 만에 장염으로 네 번 결석, 세 번 조퇴했다. 너무 아파서 양호실에 갔다는 아들이 거짓말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울먹였다.


맛없는 급식을 먹으면서 아이들은 인격모독도 당해야 했다. 먹고 싶지 않아도 먹어야 했고 더 먹으려면 “주는 대로 먹어”라는 핀잔만 들었다. 수박 한 조각이 더 먹고 싶었던 1학년 아이는 담임교사의 손을 붙잡고 가서야 겨우 한 개를 더 얻어먹을 수 있었다.

학부모들은 지난해 4월부터 이런 문제를 알고 학교 측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관리·감독기관인 대전시교육청과 대전서부교육지원청, 해당 학교는 “우리가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며 1년 넘도록 책임을 떠넘겼다. 교육 당국이 책임 회피에 급급한 동안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봉산초 교장과 교사들도 급식 관리가 부실한 사실을 인정했다.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뒤늦게나마 대전시교육청은 봉산초를 특별감사하기로 했다. 교육청을 믿을 수 없다는 학부모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번 감사에 학부모 대표가 참관한다. 봉산초의 급식 문제는 단순히 실태 파악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식재료 구매 내역, 수입·지출 현황, 아이들에 대한 인격모독 등을 샅샅이 조사해야 한다.

학생들이 양질의 급식을 먹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3. [한국일보][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매듭이 풀릴 때

같은 골목에 사는 한 노인과 나는 처음부터 잘 지내지 못했다. 나보다 조금 늦게 이사 온 그는 낡은 오토바이를 늘 우리 집 대문 앞에 세워 공회전시키곤 했는데, 그게 사단이 되었다. 온 집안이 매연으로 매캐하던 어느 날, 나는 오토바이를 좀 옮겨달라고 부탁해야만 했다. 그는 ‘감히 내게!’ 하는 거친 태도를 보였는데,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의 노여움은 복리의 이자처럼 불어났다. 가끔 찾아오는 동네의 작은 개를 위해 우리 대문 앞에 놓아두는 작은 물그릇까지도 그는 그냥 보지 못하고 깨거나 밟아버렸다. 그런 사람과 같은 골목에 살며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괴로움은 한마디로 ‘리얼’했다. 이삼 층 높이로 있는 앞집의 기와가 골목으로 쏟아진 위험천만했던 지난 봄날. 아무것도 모르고 그 아래를 지나다니는 그를 계속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조심하라는 말을 하기 위해 내가 불러 세웠을 때, 그는 땡감을 씹은 표정으로 거만하게 돌아섰다. 그걸 보는 내 기분도 떫었다. 나는 애써 태연하게 기와를 가리키며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자 누런빛을 띤 그의 눈이 왕귤처럼 커졌다. 그리고 오늘 아침, 그가 우리 집 대문을 두드렸다. 그의 손에는 막 화단에서 따온 풋고추 몇 개가 들려 있었다. 무농약, 친환경 재배, 육질 등등의 단어를 입에 올리는 그의 체구는 평소처럼 거대해 보이지 않았다. 말투도 믿기 힘들 만큼 부드러웠다.


4. [연합뉴스]<최재석의 동행> 긴 병에 효자 없다

아픈 부모를 지켜보는 자식의 마음은 다 같을 것이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으니 더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 병상에 누운 노모는 연신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손을 꼭 잡아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구순을 넘긴 어머니가 낙상으로 한 달째 입원 중이다. 좀체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다. 차라리 안 보면 나으려나. 주말에 어머니를 보고 오면 한 며칠은 영 일이 손에 안 잡힌다. 대학병원에서는 오래 입원을 못 한다고 한다. 상처가 아물고 원기를 되찾아 퇴원하더라도 당장 어디로 모셔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6남매가 이 문제로 갈등이나 불화를 겪지 않으란 법도 없다. 

어머니 바로 아래 이모도 몇 년째 요양병원에 있다. 입원하기 전 어머니는 집에 가지 못하고 오랫동안 병원에 있는 당신 동생을 무척 안타까워했다. 속속들이 모르지만 이모를 집에 모실 수 없는 나름대로 가족의 사정이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거동이 어려운 환자를 집에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 수발하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오죽하면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까지 나왔으랴. 막상 우리 가족에게도 이 문제가 닥쳤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 남녀 평균수명은 82.4세, 건강수명은 65.4세다. 건강수명은 일생 중 질병이나 부상으로 고통받는 때를 제외한 기간을 말한다.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가 클수록 그만큼 노인 환자가 증가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진료비 증가 속도는 가파르다. 2014년에는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의 36.3%를 차지했다는 건강보험공단 통계가 있다. 2060년에는 노인 의료비가 최대 337조 원까지 늘어 올해 국가 예산 규모(386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세브란스병원 김창오 노년내과 교수가 건강보험공단을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90대 이상 수술 환자는 1만4천200명에 달한다. 2004년의 4.1배로 늘었다고 한다. 병원에서도 의료기술이 발달해 나이가 많아도 환자가 정정하면 수술을 권한다. 100세가 넘은 환자가 수술받은 사례도 심심찮게 보고된다.

문제는 갈수록 늘어나는 노인 환자를 누가 돌보느냐다. 노인 간병 문제는 어느 가정에나 닥칠 수 있다. 핵가족화와 여성의 경제활동 증대 등으로 노인장기 요양 문제를 개인이나 가정에 전적으로 맡기기 어려운 세상이다. 설령 사정이 되는 집이 있다 해도 중병환자 간병을 배우자의 '도리'나 자식의 '효심'에만 의존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우리나라에도 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됐다.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곤란한 65세 이상 노인은 물론, 치매와 뇌혈관성 질환 및 파킨슨병 등 노인성 질환을 앓는 65세 미만도 대상이 된다. 요양 등급에 따라 재가급여, 시설급여, 특별현금급여 등으로 서비스가 나뉜다. 노인 환자 문제를 비로소 국가, 사회적 책무로 인식한 결과다.


이런 제도에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다. 일부 노인요양시설에서 자행되는 학대와 관련된 언론 보도가 나올 때마다 가족들은 불안과 자책감에 시달린다. 그렇다고 환자를 당장 집에 모실 수도 없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집에서 혼자 지내다 변을 당하는 일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의 일이다. 지난 23일 오후 8시께 강원도 횡성군에 사는 '부모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걱정된다'는 A(43) 씨의 신고가 112에 접수됐다. 경찰이 A 씨의 부모가 사는 연립주택에 가보니 A 씨의 어머니(76)는 천장을 바라본 채 숨져 있었고, 그 옆에 아버지(77)는 말을 전혀 하지 못한 채 겨우 눈만 뜨고 있었다. A 씨의 어머니는 저혈압 등 지병이 있었고 아버지는 혼자 거동이 힘든 상태였다고 한다. 더욱이 A 씨가 이달 14일부터 나흘간 부모와 함께 지내다 상경한 직후 벌어진 변고라니 자식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가족(부모, 자녀, 배우자, 배우자의 부모)이 질병, 사고, 노령으로 인해 돌봄이 필요할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가족 돌봄휴직제도'라는 게 있다. 연 90일을 사용할 수 있으며 한번 사용 때 최소 30일 이상을 사용해야 한다. 다만 사업주가 이 휴직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는 사유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가족 돌봄휴직이 정상적인 사업 운영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이를 사업주가 증명하는 경우는 휴직이 안 된다. 허용 여부에 대한 사업주의 재량권이 너무 크다. 실제로도 이런 휴직을 했다는 직장인을 주위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우리보다 앞서 노인 문제가 닥친 일본 정부는 간병휴직 요건을 완화하는 추세다. 내년부터 조부모나 형제 간병을 위한 휴직의 요건인 동거 및 부양의무를 없애기로 했다. 현재 간병휴직은 자녀나 부모, 배우자 이외에도 조부모와 형제를 위한 경우도 인정되는데, 조부모와 형제는 함께 살며 부양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노인 환자 문제에 국가와 사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5. [서울신문][기고] 안전은 산소와 같다/이영순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진짜 사나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있다. 화생방 훈련이다. 출연자들은 훈련 과정에서 호흡 곤란과 따가움 등으로 고통받는다. 화생방 훈련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공기의 소중함이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는 주로 질소와 산소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산소가 약 21%를 차지한다. 산소가 거의 없는 공간에서는 순간적으로 실신하게 되고, 5분 이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여름철 특별히 산소가 부족한 공간이 있다. 맨홀이나 정화조 같은 밀폐된 작업 공간이다. 이들 밀폐 공간은 여름철이 되면 기온 상승에 따라 미생물 번식이 늘고, 장마나 집중호우로 철재 시설물이 산화하면서 산소 결핍 장소가 된다.

불활성 가스로 채워 놓은 설비도 주의가 필요한 공간이다. 반도체 설비 같은 곳은 질소와 같은 불활성 가스를 채워 놓는다. 제품 보호를 위해 외부 공기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장소에 호흡용 보호장비 없이 들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안타깝게도 최근 질식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경북 고령의 제지 공장에서는 근로자 1명이 탱크 안에서 청소를 하던 중 유해 가스에 중독돼 쓰러졌다. 이를 본 동료 근로자 2명이 쓰러진 근로자를 구하러 아무런 장비 없이 탱크 안으로 들어갔다가 역시 쓰러졌다. 이 사고로 2명이 목숨을 잃고 1명이 중태에 빠졌다. 경기도 용인에서는 지하 맨홀에서 유량 측정 작업을 하던 근로자 2명이 유독 가스에 질식했다.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일터에서 92명이 질식 재해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마다 20명 가까이가 소중한 생명을 잃은 셈이다.

안전보건공단에서는 질식재해 위험 경보를 발령하고 작업 현장 매뉴얼 보급, 산소농도 측정기와 공기호흡기 등의 안전장비도 무상으로 대여한다. 하지만 사고를 예방하려면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일하는 사업주나 협력업체 그리고 작업 근로자가 위험 정보를 서로 공유해야 한다. 공유된 정보를 바탕으로 안전대책을 마련하고 안전수칙대로 작업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

불볕더위와 높은 불쾌지수로 몸과 마음의 긴장이 늦춰지기 쉬운 7월이다. 7월 첫째 주 월요일은 산업안전보건의 날이고, 7월 첫째 주는 산업안전보건 강조 주간이다. 범국민적으로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안전의 중요성을 확산시키기 위해 정부가 정했다. 올해로 49회째를 맞는 산업안전보건 강조 주간 행사가 오는 4일부터 5일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다. ‘함께하는 안전보건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기념식과 전시회, 안전보건의 최신 동향과 신기술을 살펴볼 수 있는 세미나, 발표대회, 사회 저명 인사의 안전특강, 안전연극 등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된다.

산소가 인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소인 것처럼 안전은 행복한 삶을 위한 기본 조건이다. 7월 산업안전보건 강조 주간이 일터와 우리 사회에 신선한 안전보건 바람을 불어넣는 기회가 되길 희망한다. 안전한 일터, 건강한 근로자, 행복한 대한민국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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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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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30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중앙일보]

1. '저출산 극복' 위한 초당적 협력을 환영한다

국회의 초당적 모임인 ‘어젠다 2050’이 29일 창립총회에서 저출산 극복 의지를 다진 것은 고무적이다. 이 모임은 교육·복지·고용·조세·행정 등 각 분야 미래 입법 과제를 연구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김종인·나경원·유승민·김성식·김세연 등 여야 거물급 정치인들이 참여한 창립총회의 화두는 단연 ‘저출산 극복’이었다.

“인구가 정상적인 구조가 안 되면 현존하는 모든 제도가 자기 기능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할 수밖에 없다”는 김종인 더민주 대표의 지적대로 저출산 극복은 여야가 따로 없는 시대적 과제다. “국회가 할 일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의 말대로 이제는 저출산 극복에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20대 국회가 나서 저출산 극복을 정권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장기간 지속돼야 하는 국회와 정부의 초당적 정책으로 선언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저출산 극복에서 지도자들의 위기 의식 부족이 문제로 꼽혀온 게 사실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저출산 위기 극복을 외치지만 정작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챙기는 우선 정책 목록에도 저출산 극복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부도 위기의식이 부족하다고 비판 받기는 마찬가지다.

일본의 적극적인 대처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직접 나서서 ‘인구 1억 유지’를 정책 최우선순위에 올려놓았다. 아베 총리는 저출산과 고령화 극복을 위한 정책을 책임질 ‘1억 총활약상’이라는 장관직을 만들고 직접 챙기고 있다.

정부가 뛰지 않으면 국회라도 나서서 다그쳐야 한다. 초당적으로 국회 저출산특위를 가동해 출산과 육아, 일·가정 양립, 보육 등을 근본적으로 지원할 다양한 입법과 예산지원 활동을 벌여야 한다. 매년 국회 차원의 ‘저출산 극복 백서’를 내놓고 국민에게 평가 받을 필요가 있다. 정당 차원에서도 매년 예산의 일정 부분 이상을 인구 유지를 위해 쓰는 등의 획기적인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 20대 국회의 분발을 촉구한다.

[이데일리]

2. 평창올림픽은 ‘돈 먹는 하마’인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사업 예산을 6000억원 더 늘려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고 한다. 이희범 조직위원장이 “정부부처와 공기업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증액을 건의했고, 박 대통령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다. 현재 책정된 2조 2000억원의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대회 준비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조치라고 한다.

그러나 대회를 잘 치르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예산이 자꾸 늘어나게 돼서는 후유증을 피해가기 어렵다는 게 우선의 걱정이다. 아무리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다 해도 결과적으로 빚더미 잔치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겉으로 남는 듯 보여도 속으로 밑지는 장사라면 굳이 애써 매달릴 필요가 없다. 평창올림픽 예산은 고속철 건설 등 기반시설 예산까지 포함하면 이미 14조원 규모로 확대된 상태다.

대회를 꼼꼼하게 준비할수록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예산이 더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더구나 기존 예산은 201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제출했을 당시 규모로서 이후 종목이 새로 추가되는 등 많은 변수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결국 조만간 제4차 재정계획 수립을 앞두고 이러한 변동 요인을 적용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 조직위원회의 설명이다.

그동안 조직위원회와 강원도는 재정부담 완화를 위한 분산 개최 방안을 뿌리치면서까지 성공적인 대회 준비를 호언해 왔다. 그러고도 지금에 와서 슬그머니 손을 내미는 것은 염치가 없는 일이다. 일부 경기장 건설 계획이 혼선을 빚으면서 예산이 쓸데없이 추가로 들어간 것도 문제다. 이러다간 자칫 정부 예산이 울며 겨자 먹기로 평창올림픽의 볼모로 잡힐 가능성이 다분하다. 시민단체들까지 나서서 불필요한 예산 집행에 대해 반발하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국제대회를 치르면서 가장 중요하게 감안해야 하는 것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과도하게 비용을 들여가며 무리하게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국위 선양을 위해 모든 관심을 기울였던 88서울올림픽이나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와도 다르다. 이제는 ‘코리아’가 세계 속에 우뚝 선 만큼 외형적인 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내실을 갖춰나가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3. 소비자 깔보는 폭스바겐 퇴출시켜야

폭스바겐이 그제 미국에서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에게 147억 달러(약 17조 4000억원)의 보상금을 물기로 했다고 한다. 당초 알려진 102억 달러를 크게 웃도는 금액으로, 미국 소비자 집단소송 합의액 중 가장 큰 규모다. 하지만 폭스바겐은 같은 배출가스 조작 차종을 판매한 한국에서는 보상에 대해 일언반구가 없다. 보상은 고사하고 리콜계획도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다. 한국 정부와 소비자를 깔보지 않고서야 감히 있을 수 없는 안하무인 행태다.

문제의 불법조작 차량은 국내에서도 12만 5000대가 팔렸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미국은 1990년대부터 임의설정(배출가스 조작) 금지규정이 있었지만 한국은 2012년 1월에야 시행됐고 해당 차종은 그 이전에 정부 인증을 받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위법 사실이 없으니 보상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환경부의 리콜 요구도 7개월째 깔아뭉개고 있다. 미국에서는 잘못을 시인하고 거액의 보상금을 물기로 하는 등 굽실거리면서 한국에서는 나 몰라라 하는 꼴이다.

허술하게 대응해 온 정부 탓이 크다. 환경부는 2011년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실을 적발하고도 당시 규제 법규가 없다는 이유로 늑장 대처했다. 리콜이 일정 시한 내에 이뤄지지 않는데도 제재하지 않고 있는 점도 그렇다. 소비자들도 문제다. 지난해 배출가스 조작 파문으로 판매량이 줄어들게 되자 폭스바겐이 꺼내든 것은 리콜이나 보상이 아닌 60개월 무이자 할부 및 현금할인 카드였다. 그러자 판매량이 예전 수준을 회복했다. 한국 소비자를 만만하게 볼 만하다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폭스바겐은 최근 디젤차에 이어 휘발유차인 골프 1.4TSI도 배출가스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임원 한 명이 검찰에 구속됐다. 독일 본사가 배출가스 조작을 직접 지시하고 한국법인은 이를 은폐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우롱한 파렴치한 범죄가 아닐 수 없다. 다시는 한국 시장을 얕보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철저한 수사로 응분의 처벌을 내리는 한편 미국과 같은 규모로 피해 보상을 하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다. 집단 불매운동으로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것도 본때를 보이는 방법이다.

[서울신문]

4. ‘경찰관 여고생 성관계’ 경찰청장 책임 못 면해

뒤늦게 드러난 부산 학교전담경찰관들의 여고생 성관계 사건에 부모들은 식은땀이 난다. 딸을 키우는 부모라면 대문 밖으로 아이를 내보내는 일 자체가 모험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학교폭력을 예방하라고 학교에 투입된 경찰관이 몹쓸 짓을 한 것도 기가 막힌데, 이를 덮으려 쉬쉬한 경찰 조직의 후안무치에 분노가 치솟는다. 늦었지만 대충 넘어가지 못할 일이다. 문제 경찰관이 근무한 연제경찰서의 서장 대기 발령 정도로 꼬리 자를 사안이 결코 아니다.

이번 사건은 지난주 전직 경찰 간부가 페이스북에 고발하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덮였을 수 있다. 사태가 확산되자 부산지방경찰청은 몰랐던 일이라면서 조사에 나섰다. 이미 지난달 초 아동보호기관에서 사실을 전달받았으면서 시치미를 뗀 것이다. 경찰청도 일찌거니 알고도 뭉갠 정황이 역력하다.

경찰이 본연의 임무를 팽개쳤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경찰관은 음주운전으로 걸려도 윗선까지 즉각 보고되는 것이 상식이다. 하물며 이런 위중한 사건이 보고 계통을 밟지 않고 문제 경찰관들의 사표만 받고 조용히 마무리됐다는 말을 믿을 사람은 없다. 이상식 부산경찰청장은 그제 때늦은 사과를 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나 있는지 의문스럽다. 뒷북 수습에 나섰으면서 “(본인의) 사퇴를 염두에 둘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니 할 말이 없다. 입에 담기 어려운 사건이 관할 지역에서 두 건이나 동시에 터졌는데, 치안 책임자가 책임 회피 발언을 거리낌 없이 했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경찰 간부의 인식 수준이 이런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어제 국회 업무보고에서 등 떠밀린 대책을 내놓았다. 해당 경찰관들에 대한 의원면직 발령을 취소해 퇴직금을 환수하고 책임자들을 징계하겠다는 것이다. 악화 여론에 몰리자 어쩔 수 없이 수습에 나서는 것이 경찰청장의 역할인지 딱할 뿐이다. 경찰 안팎에서는 임기를 두 달 남긴 강 청장이 사건을 묵인했다는 설왕설래가 나도는 판이다. 경찰관들의 처벌만으로 털고 넘어가겠다면 오산이다. 철저한 조사로 책임 소재부터 명백히 가려야 한다. 조직적 은폐 의혹을 벗지 못한다면 부산경찰청장, 강 청장은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학교폭력전담관 제도가 제대로 이름값을 하고 있는지 전면 재검토하는 작업도 하루가 급하다. 학부모들이 안심할 수 있는 보완 대책을 내놓지 않고서는 불신 덩어리의 천덕꾸러기 제도가 될 뿐이다.

5. 망신 자초한 홍기택 휴직, 후속대처 잘하길
산업은행 회장을 지낸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가 지난 27일부터 돌연 6개월 휴직에 들어간 사실이 드러났다. 홍 부총재는 최근 일신상의 이유로 AIIB 이사회에 구두로 휴직을 알린 데다 지난 25일 AIIB 첫 총회에도 불참했다. 개인 사정으로 휴직할 수는 있지만 홍 부총재의 경우에는 맞지 않는다. 홍 부총재를 둘러싼 현 상황에 비춰 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더욱이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총회에 참석했다가 진리췬 AIIB 총재에게서 들었다니 국제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AIIB는 올 1월 중국 주도 아래 아시아 국가들의 인프라 건설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출범한 국제금융기구다. 미국과 일본의 영향력이 큰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에 대응할 목적으로 설립된 탓에 우리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살피며 어렵사리 참여했다. 우리나라의 분담금은 37억 달러로 57개 회원국 중 중국·인도·러시아·독일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다. 그런데 홍 부총재는AIIB의 최고위험관리자(CRO)라는 막중한 직책을 맡고도 정부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휴직해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홍 부총재는 박근혜 정권 인수위원 출신으로 정부 출범과 함께 산은 회장에 오른 ‘낙하산’ 인사다. 회장을 맡는 동안 조선·해운업 등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미루다 결국 위기를 맞았다는 책임론의 휩싸여 있다. 대우조선의 1조 5000억원 분식회계를 묵인해 주고 4조 2000억원을 신규 지원했다. 대우조선 임직원에게 877억원의 부당 격려금 지급을 허락하는 등 관리 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게 감사원의 감사 결과다. 홍 부총재는 얼마 전 언론 인터뷰에서 “들러리 신세”라며 대우조선 지원의 결정을 청와대와 금융위원회에 떠넘겼다. 무책임의 전형이다.

홍 부총재의 부적절한 처신은 인사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는 산은 회장 임기 만료를 두 달 앞둔 지난 2월 AIIB 부총재로 영전했다. 당시 감사원의 봐주기 감사에다 정권 실세들의 밀어주기가 크게 작용했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적임자가 아니었던 만큼 추천한 사람들의 책임도 만만찮다. 정부는 후임 인선을 서둘러야 한다. 막대한 부담금을 내면서 다른 나라에 부총재 자리를 뺏긴다면 국가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AIIB 부총재에 정치적 고려가 아닌 전문성 있는 인사를 엄선해 더이상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6. 20대 국회 자체 예산부터 다이어트해야 한다

4·13 총선 결과에 따라 3당 체제로 출발한 20대 국회가 초반부터 구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국민의당은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던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가 어제 동반 사퇴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서영교 의원의 ‘일가족 채용’ 논란으로 어수선하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총선에서 참패해 의정 주도권을 잃은 터라 의원 특권 내려놓기 등 국회 개혁은 요원해 보인다. 이런 판국에 20대 국회가 시작부터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비상설특별위원회 신설을 무더기로 남발하면서다. 특권은 내려놓고 민생을 받드는 협치를 하겠다더니 정반대로 가는 형국이다. 여야는 이제부터라도 새 정치를 하겠다던 초심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 때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하지만 20대 국회는 벌써 싹수가 노란 정도를 넘어섰다. 초반부터 독과(毒果)를 주렁주렁 매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야권이 연루된 두 가지 비리 의혹은 이를 여하히 처리하느냐가 20대 국회의 개혁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만일 두 야당이 이를 적당히 눙치고 가려 한다면 신악이 구악을 뺨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이번에 리베이트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당 안·천 두 대표가 사퇴하고, 서 의원 파문에 대해 더민주 김종인 대표가 중징계를 벼르고 있다니 결자해지 여부를 지켜보려고 한다.

문제는 20대 국회의 퇴행이 더 구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악의 국회라던 19대 국회의 악폐 중 하나로 ‘묻지마 특위 구성’이 꼽혔었다. 그런데도 그끄저께 여야는 무려 7개의 비상설 국회 특위를 신설하는 데 합의했다. 즉 민생경제·미래일자리·정치발전·지방분권·규제개혁·평창동계올림픽·남북관계 특위 등이다. 백번 양보해 국가 대사를 다루는 평창특위와 정치발전특위는 필요하다고 치더라도 나머지는 기존 상임위나 소위를 통해 얼마든지 현안을 다룰 수 있어 옥상옥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처럼 여야가 ‘셀프 일자리 창출’에 야합한 배경이 뭐겠나. 상임위원장직을 배정받지 못한 다선 의원들에게 막대한 특수활동비를 받는 특위 위원장 감투를 씌워 주고 특위 위원들은 회의 수당을 챙길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기라고 여겼을 법하다.

이러니 총 33개의 비상설 특위가 대부분 헛바퀴를 돌렸던 19대 국회의 악몽이 떠오르는 것이다. 더욱이 이미 강화도에 휴가철에나 쓰는 연수원이 있는 국회가 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강원도 고성에 제2 연수원을 짓고 있단다. 국민이 명령한 정치 개혁은 않고 특권 챙기기에 몰입하는 꼴이다. 입법부가 이렇게 집단 모럴 해저드에 빠져 있으니 세비 880만원이 너무 적다고 투덜대는 초선 의원까지 나왔지 않겠나. 가뜩이나 조선·해운·철강 등 주력 산업이 구조조정의 칼날 위에 선 데다 브렉시트로 인한 국제경제의 불확실성까지 추가되면서 민생 경제는 그야말로 중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마당에 여야가 합작해 견제 장치 부재를 틈타 입법부 예산을 마구 탕진한다면 상처 난 민심에 소금을 뿌리는 일임을 깨닫기 바란다.

[동아일보]

7. 150억 원 쓰고 고작 1건 조사 마친 세월호 특조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 1년 반 동안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한다며 150억 원의 예산을 쓰고도 231개 조사 채택 항목 중 겨우 1건의 보고서를 올렸다. 오늘로 세월호 특별법이 정한 활동 종료 시한을 맞는데도 특조위는 법을 무시하고 활동을 계속하겠다며 하반기 예산으로 104억 원을 청구했다. 

이탈리아 콩코르디아호 사고와 미국 9·11테러 조사 등 국내에서 충분히 자료를 구할 수 있어 굳이 해외에 갈 필요가 없는 내용을 알아보겠다고 해외출장 계획을 짰다. 그리고 정부 부처 차관급 이상에게 부여되는 비즈니스 항공권의 요금을 출장자 전원의 수만큼 청구했다. 이런 조직에 시간과 예산을 더 준들 무슨 조사를 하고 의미 있는 성과를 내겠는가.

세월호 특별법 부칙에 나온 특조위의 활동 개시일은 2015년 1월 1일이다. 활동 기간은 1년이 원칙이고 6개월 연장이 가능하다. 연장까지 계산해도 6월 말이 시한이다. 그러나 세월호 특조위는 조직 구성을 마친 날이 지난해 8월 4일이므로 이날부터 1년 반을 계산해 내년 2월 3일 활동이 종료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조위가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의 월급을 아예 수령하지 않았으면 모르되 이미 수령해 놓고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야권에서는 세월호 특별법을 고쳐 특조위 활동 기간을 6개월 연장하려고 한다. 필요한 조치인지는 의문이지만 법을 고쳐 활동 기간을 연장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긴 어렵다. 정부는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도 세월호 인양이 남은 만큼 7월 이후에도 그 전에 할 수 없었던 선체조사 활동, 종합보고서 작성은 보장할 방침이다. 그런데도 특조위는 막무가내로 비용을 부풀린 예산안을 올렸다. 특조위가 초법적인 기구나 된다는 말인가. 

가라앉는 세월호에서 어른들의 구조를 철석같이 믿고 서로를 격려하던 어린 학생들을 떠올리면 2년 2개월이 지난 지금도 누구나 가슴이 먹먹해질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진정으로 숙연한 마음을 가졌다면 이런 식으로 특조위를 운영해선 안 된다. 이런 특조위라면 당장 오늘부로 접는 게 낫다.

[중앙일보]

8. 안철수 사퇴, 정치권 자정의 계기 삼아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천정배 공동대표가 29일 리베이트 사건의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하기로 했다. 원내 3당이자 제2야당인 국민의당은 창당 다섯 달 만에 선장을 잃고 표류하는 난파선 신세가 됐다. 거대 여야의 독과점 정치에 식상한 표심을 파고들어 4·13 총선에서 원내 2위(26.7%)의 지지율과 38석의 의석을 확보한 성과에 비춰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총선 뒤 두 달도 못 돼 터진 리베이트 사건은 국민의당이 새 정치는커녕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보다 오히려 심하게 구태정치의 관행에 찌들어 있음을 드러냈다. 안 대표는 올 초 국민의당을 창당하면서 “부패 비리로 의원직을 상실하면 해당 정당은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할 수 없도록 하고, 비례대표는 승계를 금지해야 한다”는 등 강도 높은 무관용 원칙을 강조했다. 이에 공감한 유권자들이 표를 몰아준 덕에 국민의당은 총선에서 약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안 대표는 막상 자신의 측근들이 비리의혹에 연루되자 침묵으로 일관하고, 당 차원의 진상조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넘어갔다. 리베이트 파문 당사자인 박선숙·김수민 의원에 대해 ‘기소될 경우 당원권 정지’ 결정을 한 게 전부다. 3억여원을 수수한 혐의로 당 핵심 간부인 왕주현 전 사무부총장이 구속된 상황의 심각성에 비춰보면 너무나 안이한 대응이다. 사태의 책임이 박선숙·김수민·왕주현 3인에게만 있다고 여기는 국민은 없다. 온정주의에 빠져 이들의 일탈을 막지 않고 오히려 감싼 안 대표가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만큼 안 대표의 자진사퇴는 불가피했다. 안 대표가 물러난 만큼 박·김 의원도 사법 조치와 별개로 정치적 책임을 인정하고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옳다. ‘새 정치’를 내세워 재미를 본 당이라면 가혹하다고 할 정도의 자정(自淨)을 통해 진짜 새 정치가 뭔지 보여줄 의무가 있다.

새누리당과 더민주도 안 대표의 사퇴를 반면교사 삼아 강도 높은 개혁에 나서야 한다. 더민주는 ‘갑질 비리 종합판’이란 비난을 받아온 서영교 의원에 대해 엄정한 감사를 통해 진상을 명백히 밝히고, 상응한 처분을 내려야 한다. 서 의원 본인이 자진 사퇴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의원직 정지’ 수준의 솜방망이 징계로 넘어가려 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도 5촌 조카·동서를 의원실에 취직시킨 박인숙 의원을 비롯해 친인척 채용·보좌진 갑질 사례를 샅샅이 찾아내 일벌백계해야 할 것이다.

안 대표의 사퇴는 20대 국회에서는 과거 ‘관행’이라며 넘어갔던 정치권의 비리와 구태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시대적 환경이 조성됐음을 보여준다. 이번 국회 들어 의원 특권 포기 법률안이 앞다퉈 발의되고, 정세균 국회의장이 불체포 특권 내려놓기를 약속한 건 의원들 스스로도 그런 흐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걸 인정한 것이다. 여야는 국민의당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의 뿌리 깊은 비리관행을 척결하고, 국회가 높아진 민도에 걸맞게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9. 내수진작 위한 `공휴일 특정 요일 지정` 추진해볼 만

정부가 내수 활성화를 위해 현재 날짜 중심으로 운영되는 공휴일 체계를 요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공휴일 제도 전반을 개선하기 위해 하반기 중 연구용역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휴일제도는 내수와 직결되는 만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옳다. 현행 날짜 위주의 공휴일은 주중에 휴일이 낄 때가 많아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고 주말과 겹칠 경우 국민 휴식권이 보장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일부 공휴일을 특정 월요일로 옮겨 사흘 연휴를 만드는 '해피 먼데이' 제도 등이 검토 대상이라고 한다.

미국은 독립기념일(7월 4일), 크리스마스(12월 25일) 등 일부 공휴일을 제외하고 노동절(9월 첫째 월요일), 추수감사절(11월 넷째 목요일부터 나흘간) 등은 특정 요일로 지정하고 있다. 유통업체들은 이때 대대적인 판촉행사를 벌여 소비를 활성화한다. 일본도 내수 촉진을 위해 2000년대 이후 성년의 날, 바다의 날 등 4개 공휴일을 특정 월요일로 변경했다.

물론 우리나라 공휴일은 3·1절, 광복절처럼 날짜에 의미를 두고 지정한 경우가 많아 특정 요일로 변경하면 기념일의 의미가 훼손될 수 있다. 하지만 어린이날, 현충일, 한글날, 개천절 등은 '○째 ○요일'로 조정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샌드위치 근무일'의 비효율을 줄이고,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하는 풍토를 조성해 기업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토~월요일, 금~일요일 등 사흘 연휴가 생기면 여행, 소비 등 내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 

지난달 어린이날과 주말인 7~8일 사이 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결과 백화점 매출은 16%, 고궁 입장객은 70% 증가해 내수 진작 효과를 톡톡히 봤다. 내수 침체를 고려하면 휴일제 개선뿐 아니라 여름휴가 일정 분산 등도 시도해볼 만하다. 

또 공휴일이 주말과 겹치면 하루를 더 쉬게 하는 대체휴일제도도 함께 보완해야 한다. 2014년 도입된 대체휴일제는 공무원의 휴일에 관한 규정으로 일반 근로자에게는 강제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설날, 추석, 어린이날로 한정해 한계가 있다. 다만 공휴일 합리화 정책이 내수 진작은커녕 해외여행객만 늘리는 역효과를 거두지 않으려면 국내 관광 활성화 등 철저한 계획이 마련돼야 한다.

[세계일보]

10. 의원 특권 내려놓기, ‘서영교 방지법’부터 처리하라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쓴 의원들이 속출하면서 이번에야말로 갑질 행태를 근절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가족채용’ 물의를 일으킨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이어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이 의원실 5급 비서관에 5촌 조카를 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자신의 당원협의회 사무실에서 회계를 맡던 동서를 인턴 직원으로 채용했다. 박 의원은 어제 공식 사과하며 두 사람을 면직 처리했다. 안호영 더민주 의원도 6촌 동생을 비서관으로 기용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알게 모르게 끼리끼리 누려온 특권 관행이 새삼 확인된 것이다.

새누리당은 혁신비대위 회의를 통해 소속 의원의 8촌 이내 친인척 보좌진 채용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파렴치한 행위’로 기소된 당원에 대해선 입건 즉시 당 윤리위에 회부하도록 윤리규정을 강화했다. 보좌진 급여의 용도 외 사용도 불허된다. 김희옥 비대위원장과 정진석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 전원에게 공문을 보내 비대위 결정의 조속한 이행을 당부했다. “비정상적 관행이 드러나면 당 차원의 강력한 징계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새누리당이 그동안 더민주 비난에 열을 올린 건 누워서 침 뱉은 꼴이 됐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같은 잣대로 새누리당 이군현 의원이나 박인숙 의원의 문제를 처리해 달라”고 압박했다. 이 의원은 보좌진 월급을 빼돌려 정치자금으로 사용한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의원 갑질에 대한 공분과 불만이 고조되는 만큼 야당도 여당을 따라갈 가능성이 작지 않다. 문제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다.

친인척 보좌진 채용을 금지하는 법안은 17대 국회 때부터 빠지지 않고 제출됐다. 17대 노현송 열린우리당, 18대 강명순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19대에는 박남춘·배재정 더민주,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안 세 건이 제출됐다. 그러나 19대까지 모두 상임위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안 된 채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20대에는 백혜련 더민주 의원이 친인척 보좌진 채용 시 국회에 신고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19대에서 요란만 떨다 공수표로 끝난 의원 특권 내려놓기는 20대가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서영교 방지법’ 처리가 그 첫걸음이다. 여야가 입으로만 하는 국회 개혁엔 신물이 난다.

주요 신문칼럼

 

1. [우리를 신문][문화마당]살인하지 말라/김재원 KBS 아나운서

죽음은 무척 불편한 단어다. 인류 모두가 결국은 맞이하는 삶의 마무리라는 당연성에 비하면 그 불편함은 너무 크다. 어느 작가의 말대로 수용이냐, 명심이냐, 억압이냐에 따라 그 수위는 달라진다. 그래도 언제인지 모르고, 어떻게 올지 모르고, 그 이후를 모르기 때문에 느끼는 두려움은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단언컨대 없는 이는 없다. 나의 할아버지는 내가 세 살 때, 할머니는 그다음 해에 돌아가셨다. 물론 기억이 없다. 어머니는 내가 열세 살 때 돌아가셨다. 아파트 8층에서 곤돌라에 매달려 내려오던 어머니의 관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버지는 내가 서른세 살 때 돌아가셨다. 그때 비로소 형제 없는 나는 고아가 됐다. 물론 아내와 아들은 있다. ‘가족’이라는 단어와 ‘죽음’이라는 단어는 상관없는 듯 보여도 서로 어우러지면 묘한 슬픔을 가져온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부모의 죽음을 경험한 나는 철이 일찍 들었을 수도, 인생을 먼저 알았을 수도 있다.


지난달 ‘가족의 죽음’을 다룬 영화와 책을 같은 날 봤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이다. 그날 나는 참 불편했다. 영화는 귀신 들린 딸을 살리려는 부성애를, 책은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은 아들을 지키려는 모성애가 바탕이다. 영화는 딸이 귀신의 힘으로 식구를 죽이고, 책은 아들이 포식자란 유전자의 힘으로 가족을 죽인다. 영화는 악마의 존재를 빌미로 혼란에 빠뜨리고 책은 유전자의 비밀을 핑계로 의문에 빠뜨린다. 두 작품은 “왜 하필 내 아이가?”란 대사를 공유한다. 작가가 악을 편든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여러 논란을 차치하고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사건이 영화나 책 속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로 스며들어 뉴스에서도 펼쳐진다는 것이다. 어떤 시사 프로그램은 매주 살인의 방정식을 자세히 풀어낸다. 물론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숱한 살인을 저질러 왔다. 하지만 살인은 신도, 법도, 도덕조차도 인간에게 부여한 적이 없는 권리다. 오로지 작가들만 자신이 신으로 있는 영화, 드라마, 책에서 주인공에게 살인의 권리를 부여한다. 물론 고전에서도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에 자기 아이를 살해하는 엄마가 등장하고,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도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다. 현대의 작가들만 탓할 일은 아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나쁜 친구와 놀지 말라는 이유는 오로지 그의 나쁜 행동이 자연스럽게 여겨질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가족이든 타인이든 살인은 절대로 안 됨에도 불구하고 여러 장르의 예술에서 개연성과 핍진성을 높이다 보니 현실에도 자연스레 스며들어 우리는 그 공포에 둔감해졌다. 오히려 독자와 관객은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 ‘곡성’에서 느끼는 강한 흥분도, 혹은 심각한 불편함도 관객의 무의식에서는 살인이 원인이다.

여전히 적잖은 독자가 정유정 작가는 왜 이 책을 썼을까 궁금해하고, 많은 관객이 나홍진 감독은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의아해한다. 예방주사로 여겨 달라는 작가의 말도, 영화는 영화로 봐 달라는 감독의 말도 미덥지만은 않다. 만 명에게 예방주사가 됐다 해도 한 명에게 교과서가 됐다면 그 주사는 의미 없다. 백만 명이 재밌는 영화로 봤다 해도 현실에 반영하는 우매한 관객 한 명이 있다면 그 재미는 끔찍해진다. 작가들이여, 제발 살인하지 말라. 적어도 가족은 죽이지 말자. TV 드라마에서 흡연 장면이 없어진 지 오랜데, 왜 살인 장면은 사라지지 않을까? 흡연은 따라할까 걱정하면서 살인은 절대 따라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2.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즐거운 동행

내 집처럼 편안하게 들락거리던 음식점에 갔더니 주인이 반색을 한다. 6월 28일에 문을 닫게 되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사동의 한옥에서 14년 동안 ‘해인’이라는 한식집을 운영한 그녀는 “결정하고 나니 홀가분하다”며 “다만 더이상 좋은 분들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사무실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주인이 교양 있고 음식도 정갈하여 수시로 들락거린 터라 내 마음도 허전했다.

아무리 10년 넘게 주인과 손님 이상의 교감을 나누었어도 앞으로 따로 만날 일이 없으니 ‘정말 모든 것에는 끝이 있구나’라고 생각한 순간 쓸쓸했다. 그런데 그녀가 선물이라며 된장이 가득 담긴 커다란 유리 항아리를 내밀었다. 유난히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맛있게 끓이는 비법까지 일러주었다. 그러나 식당의 맛을 내기는 어려울 테고 아마 오래도록 그 맛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누구와 어떤 형태로든 이별은 항상 섭섭하다. 그렇지만 세상일에 끝이 없다면 말 그대로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과 고달픔을 감내해야 하니 한편으로 마지막이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오늘로써 3년 6개월, 181회에 이른 ‘따뜻한 동행’이 독자들과 작별한다. 이 또한 아쉬움이 남지만 한편으로는 무사히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는 점에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내가 직접 경험했거나 주변 사람이 겪은 따뜻한 이야기를 아주 쉽게 쓰겠다는 기준을 세웠다. 그런데 쓰다 보니 긍정적인 이야기만 한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즐겁고 훈훈한 이야기만 내놓기가 미안할 정도로 현실은 너무 각박하고 황폐하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비를 맞는 사람에게 우산을 주는 것보다 그 비를 흠뻑 같이 맞아주는 게 더 위로가 된다는 것, 손쉽게 말하는 희망이 자칫 절망에 빠진 사람을 오히려 더 절망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것이 늘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인사로 ‘희망’을 다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절망을 헤치고 나올 길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목요일마다 즐겁게 동행해준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박노해 시인의 시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3. [중앙일보][마크 테토의 비정상의 눈] 버스킹에서 느끼는 삶의 여유와 행복

여름이 오면 많은 변화가 생긴다. 부산 해운대와 광안리 곳곳에는 파라솔이 등장한다. 서울 한강공원은 텐트와 자전거로 가득 찬다. 가장 반가운 변화는 버스커들의 재등장이다. 아직 주목도, 인정도 받지 못하는 아마추어 음악인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곡을 연주한다. 따뜻한 여름밤의 공기에 아름다움과 감성의 색을 입혀 주는 일이다. 한국에선 아직 흔하지 않다. 하지만 청계천이나 홍익대·대학로 같은 대학 주변, 해운대나 광안리 같은 멋진 곳에 가면 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젊음이란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고 순수한 즐거움을 되찾아 준다.

아마추어 음악가의 야외 공연인 ‘버스킹’은 여러 도시에 존재하지만 세계적 중심지는 미국 뉴욕이다. 센트럴파크, 워싱턴 스퀘어파크, 유니언 스퀘어 같은 광장이나 공원에선 버스커들의 연주를 즐길 수 있다. 이들은 보도나 길모퉁이에서 연주한다. 지하철역과 전동차 안에서도 만날 수 있다.


사실 지하철 공연을 원하는 버스커는 아주 많다. 매년 시 교통 당국이 주최하는 오디션에서 뽑힌 사람들만 공연할 수 있다.버스커는 뉴욕시민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뉴욕도 서울만큼 바쁜 도시다. 정식 음악 공연을 볼 여유가 없는 편이다. 하지만 서류가방을 꼭 붙든 채 바쁘게 움직이는 변호사라도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역에서 공연하는 버스커를 모른 체할 수는 없다. 버스커들은 우리를 멈추게 하고, 음악에 귀 기울이게 한다. 주변에는 관광객이 춤을 추고, 어느 젊은 커플과 학생들은 손뼉을 치고 있을 것이다. 정장 차림의 몇몇 회사원은 리듬에 맞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고, 어떤 노인은 조용히 미소 짓고 있을 것이다. 나이와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모두가 버스킹을 즐긴다. 걱정과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버스커의 음악을 들으며 우리가 인간임을 확인한다.

얼마 전 고마움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 정장 차림으로 일터에서 집으로 바쁘게 돌아오다 안국동 풍문여고 뒤편 나무들이 늘어선 곳에서 기타를 치는 버스커 앞을 지나가게 됐다. 빠듯한 일정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여러 일을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오랜만에 발걸음을 멈추고 음악을 들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그분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버스커들을 더 많이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거리를 지나는 더 많은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버스커들의 음악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4. [동아일보][2030 세상/제충만]아이를 때리지 마세요

나는 아이들의 권리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아이들의 권리에 민감하고 인권의식이 투철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30여 년을 되돌아보면 내가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동권리나 인권을 배운 적도 없고, 사실 관심도 없었다. ‘아이들은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다.

영국 어학연수 때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자주 보았는데 우리나라보다 장애인이 태어나는 비율이 높아서 그런가 보다 싶어 검색까지 해봤다. 나중에야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이 잘되어서 그렇다는 걸 알고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른다. 이쪽 업계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이라는 걸 알게 돼서 면접 전날 벼락치기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 

이런 사람이 아이들의 권리를 지키겠다고 앉아 있으니 매일매일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신입 직원일 때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서도 조목조목 따지려고 달려들던 내 모습이 떠오를 때면 지금도 얼굴을 꽁꽁 싸매고 싶다. 나 스스로도 수긍이 가야 일에 제대로 몰입할 수 있는 성격 탓에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씨름했던 문제가 바로 체벌이다. 내가 일하는 단체에서는 체벌을 아이들에게 가하는 폭력으로 보고 근절 활동을 해오고 있었는데 나부터가 당시에는 체벌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인지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내 생각은 확 바뀌었다. 

체벌 근절 캠페인 과정에서 만난 한 아버지는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서 크게 싸우고 난 뒤 홧김에 처음으로 손찌검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이렇게 해야 교육이 되겠지’라는 심정이었지만 그 이후로 딸과의 대화가 사라져 며칠을 괴로워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용기를 내어 딸에게 “진심으로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때린 일을 사과했는데 놀라운 사실은 이후 딸의 태도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거다. 나는 딸을 바꾼 것은 손찌검이 아니라 아버지의 진심 어린 사과였다는 것을 대화 가운데 느낄 수 있었다. 내 어린 시절 경험도 매를 통해 배운 것은 없고, 부모님의 애달픈 마음과 눈물이 날 바꿨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한 어머니는 자신이 어릴 적에는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일이 익숙한 풍경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부단한 여성운동의 결과 지금은 맞는 여성이 많이 줄었다며 “아이들이 잘못하면 어른에게 맞는 모습이 지금은 자연스럽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먼 훗날에는 무척 낯선 풍경이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아이는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에 모든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날이 오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아이들의 권리에 민감하지 못하던 나도 여러 사람을 만나고, 좋은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생각이 바뀌어서 그런지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사람과 동물 사이에 위치하는 부모의 소유물 정도로 대한다는 것을 요즘 들어 더 자주 느낀다. 육아예능을 보며 아이들을 강아지 보듯 귀여워만 한다거나, 카페에서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부모가 때려서라도 좀 조용히 시켜야 한다거나, 다 내쫓아 버리자는 이야기가 어딘가 무척 불편하다. 아이가 어른보다 분명 몸집이 작고 연약하지만 아이도 온전한 사람으로 누려야 할 권리까지 작은 것은 아닐 텐데, 아이의 작은 몸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숨어 있다는 걸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난 아직 멀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방향은 좀 바뀐 거 같다. 바뀐 방향으로 뚜벅뚜벅 걷다 보면 어딘가 도달해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방향을 바꾸게 된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함께, 더 멀리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5. [중앙보일][분수대] 일송정 푸른 솔

“와, 여기는 바람부터 다르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요.” 지난 28일 오후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졌다. 산정(山頂)에 오른 대학생들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중국 지린(吉林)성 룽징(龍井)시가 한 아름에 들어오는 일송정(一松亭)에서다. 정자 아래로 초록 벌판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나도 모르게 가곡 ‘선구자’의 첫 대목을 불러젖혔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혜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일송정은 옌볜(延邊)을 찾은 한국인들의 필답 코스 중 하나다. 조국을 잃고 먹을 것을 찾아 간도(間島)로 건너온 조상들의 땀이 서려 있고,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애국지사들의 피가 맺힌 곳이다. 그 한스러운 세월을 품어 온 혜란강 줄기가 푸른 들판을 굽이굽이 적시고 있었다. 그 역사의 한복판을 대학생 40명과 함께 올랐다. 독립기념관이 주최한 ‘2016 대학생 독립운동 유적지 답사’ 코스의 일부였다.

비금산 정상 일송정에서 내려다본 룽징시는 고즈넉했다. 100여 년 전의 설움과 고통은 먼 옛날의 일처럼 보였다. 거리의 간판에는 한글이 쓰여 있고, 지나가는 많은 이가 우리말을 쓰고 있었다. 현재 룽징시 인구 26만 명 가운데 60%가 조선족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아픔이 켜켜이 쌓여 있다. 룽징 주변 옌지(延吉)와 허룽(和龍) 일대에선 일본군을 섬멸한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빛난 승리도 있었지만 이후 불어닥친 일제의 보복과 학살로 수많은 조선인이 쓰러져 간 비극의 현장이었다.

만감이 뒤섞였다. 그럼에도 룽징은 또 다른 도전으로 다가왔다. 혜란강과 이웃한 드넓은 평야가 그걸 입증했다. 중국 청나라 수립 후 200여 년간 방치됐던 지역을 기름진 논으로 뒤바꾼 주인공이 바로 조선인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처음 알았다. 우리 아버지·어머니들은 강가 습지의 나무 뿌리를 일일이 캐 가며 옥토를 일궈냈다. 시인 윤동주가 공부한 명동학교 등 많은 학교를 세우며 미래도 기약했다.

일송정 푸른 솔이 묻는 듯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고. 답사에 참여했던 대학생 하나가 입을 열었다. “헬조선, 헬조선 했는데 진짜 헬조선이 이곳에 있었네요. 우리의 숙제는 결국 통일이겠죠. 그게 독립투사들에 대한 응답일 테고요.” 1908년 명동학교를 설립한 김약연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라고. 한 세기 전만큼이나 여전히 앞이 캄캄한 시대, 그럴 때일수록 선구자는 용기를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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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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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8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퇴직자 85%가 대기업·로펌에 간 공정위

공정거래위원회 퇴직자가 대기업이나 대형 로펌에 재취업하는 부작용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오죽했으면 ‘공피아’(공정위 마피아)란 말이 따로 있겠나. 공정위 고위직의 대기업 재취업이 갈수록 더 공고해지고 있다니 예삿일이 아니다. 그렇게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는데도 퇴직자들의 대기업·로펌행이 기승을 부린다는 조사 결과는 난감할 정도다. 최근 5년간 공정위 4급 이상 고위직 퇴직자 중 재취업자 85%가 대기업이나 로펌에 몸담았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이 공직자윤리위원회 취업 심사 현황을 파악한 결과다.

재취업자 20명 중 13명은 삼성카드, 기아자동차, 현대건설 등 대기업으로 옮겼다. 4명은 김앤장, 태평양, 광장, 바른 등 국내 최대 로펌에 합류했다. 대기업의 위법 행위를 감시하던 사람들이 퇴직한 뒤 안면을 싹 바꿔 기업의 방패막이로 둔갑한 셈이다. 대기업들이 ‘자문’, ‘고문’, ‘위원’ 같은 한가한 직함을 달아 주고도 그들에게 고액 연봉을 안기는 셈법은 빤하다. 공정위 전관들이 친정에 입김을 발휘해 주면 어마어마한 과징금 감면 혜택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뭉칫돈이 걸린 대기업 과징금 소송을 도맡는 로펌 쪽에서도 공정위 전관들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근년 들어 공정위의 과징금 패소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패소해 기업에 되돌려 준 돈은 2012년 111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3126억원으로 30배 가까이 뛰었다. 눈을 의심하게 하는 이런 현상이 공피아와 무관하다고는 누구도 보기 어렵다. 재취업한 전관들이 활약할 여지를 주려고 공정위가 알아서 거품 낀 과징금을 매긴다는 소문이 나돌 판이다.

법조계 전관예우가 고질이지만 공피아도 그 못지않게 심각하다. 가격 담합, 허위 광고 등 흔한 사례들에서 보듯 대기업 불공정 행위는 민간 소비자들의 불이익으로 돌아온다. 그런 점에서 기업의 면죄부를 챙겨 주는 뒷거래는 두고 볼 수 없는 사회악이다.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구멍 난 제도가 공피아의 극성을 방관한다는 비판이 크다. 공직자윤리법이 고위직 공무원의 퇴직 후 재취업 범위를 제한한다지만 그래 봤자다. 공직자윤리위의 승인을 받으면 취업이 가능한 예외 조항이 있는 한 눈 가리고 아웅일 수 있다. 예외 조항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지적이 계속 들린다. 행정자치부는 말 많고 탈 많은 예외 조항을 손보겠다는 의지가 왜 없는지 궁금하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의심을 더 받아야 하겠나.

2. 대한민국호 복합위기, 민관 하나 돼 헤쳐나가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 후폭풍이 전 세계에 휘몰아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는 양상이다. 브렉시트로 대표되는 반(反)세계화 흐름이 확산된다면 그나마 수출 덕에 근근이 버티고 있는 우리 경제에는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거세질 게 분명해 보이는 신고립주의 바람은 북한의 핵·미사일에서 비롯된 우리의 안보 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다. 브렉시트는 그렇잖아도 경제와 안보의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는 우리 앞에서 터진 초대형 ‘뇌관’이라고 볼 수도 있다. 국민과 정부, 정치권이 하나 돼 비상한 각오로 맞서야 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제 더 머뭇거리고 물러날 곳이 없다”며 현재의 복합 위기 상황을 엄중하게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모든 역량을 총결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기는 필요 이상으로 과장해서도 안 되지만 축소하거나 도외시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지난주 검은 금요일 하루에만 전 세계 증시에서 시가총액 3000조원이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 증시에서도 47조원이 증발했다. 세계 경제성장률 하락도 불가피해졌다. 우리도 올해 성장률을 2%대 초반으로 낮춰 잡아야 할 상황이다.

브렉시트는 예전의 금융위기와 달리 그 충격은 실물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브렉시트의 근저에 뻗쳐 있는 반세계화와 신고립주의 기운이 국제 질서의 대변화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로서는 미국의 관심이 아시아에서 다시 유럽으로 기울어 국제사회의 북핵 대응 구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한반도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두 차례나 공동으로 밝힌 것도 신냉전 구도 회귀로 읽혀 꺼림칙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북한의 핵·미사일은 물론 수공(水攻)까지 걱정해야 하는 안팎곱사등이 처지다.

브렉시트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부작용인 극심한 양극화에 분노한 대중들의 반란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통합과 개방으로 인한 혜택이 일부 엘리트층에게만 돌아갈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서민들이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일자리 상실 등으로 점점 더 분노하다 결국 폭발했다는 것이다. 양극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는 우리의 고민 또한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서민들의 박탈감이 어떻게 폭발할지 모른다. 포퓰리즘을 경계하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해법을 도출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총결집해야 한다.

건국 이후 숱한 위기가 닥쳐왔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탁월한 ‘극복 유전자’를 발휘해 슬기롭게 빠져나왔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경제·안보 복합 위기는 과거의 엄청난 격변의 위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국민과 정부, 정치권이 하나 돼 헤쳐 나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위기의 실체를 가감 없이 설명하고, 정치권은 당략 아닌 국익만 생각하며, 국민은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뒷받침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모두 함께 비상한 각오로 이 위기에 맞서야 한다.

3. 리베이트 의혹 국민의당 사과로 끝낼 일 아니다

선거비용 리베이트 의혹에 연루된 국민의당 박선숙 의원이 어제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박 의원은 4·13 총선 당시 사무총장이자 회계 책임자였다.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왕주현 사무부총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도 있었다. 총선 당시 홍보위원장이던 김수민 의원은 앞서 지난 23일 조사를 받았다. 깨끗한 정치로 기존 정치권에 새바람을 불어넣겠다며 출범한 국민의당이다. 그렇게 약속하고 당선된 국회의원을 비롯해 당 간부들이 줄줄이 검찰 출입을 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것만으로도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안철수 대표는 어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송구스럽고, 결과에 따라 엄정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세 번째로 사과했다. 하지만 이미 ‘말로 때울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는 것이 국민 정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의혹의 당사자들을 검찰에 고발한 이후 국민의당 대응 태도는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서둘러 꾸려진 진상조사단은 진상을 밝히기는커녕 “국민의당으로 돈이 유입된 흔적이 없다”는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오히려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오죽하면 “진상조사단이 솔직히 밝히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면 의혹이 더 커지지 않았을 수 있었다”는 불만이 당 내부에서 나왔을까. 애초 “사실이 아니라고 보고받았다”던 안 대표는 결국 지난 20일 두 번째 사과에서 “검찰 수사 결과 문제가 있을 시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당헌당규에 따라 엄정하고 단호하게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히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잘못된 관행은 스스로 바로잡는다’는 새 정치의 의지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었다.

국민의당 선거비용 리베이트 의혹은 총선 공천 과정의 의혹으로 번진 지 오래다. 정치적 근거지라고 할 수 있는 호남 지역 지지율도 급락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상황이 악화되고 나서야 당 내부에서 ‘선제적인 정치적 책임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늦었지만 국민의당은 이제라도 검찰의 ‘정치적 판단’에 자신의 명운을 거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선 리베이트 의혹의 실체를 가감 없이 공개하기 바란다. 공천 신청도 하지 않은 서른 살의 김 의원을 비례대표 상위 순번에 배정한 이유도 밝혀야 할 것이다. 당연히 재발 방지책을 제도화해야 한다. 사과는 그런 다음에 해야 국민이 진정성을 믿어 주지 않겠는가.

[동아일보]

4. 여학생에게 몹쓸 짓한 스쿨폴리스, 강신명 경찰청장은 몰랐나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도입된 스쿨폴리스(학교 전담 경찰관) 2명이 자신들이 보호를 맡은 부산의 여고생과 성관계를 맺고, 학교가 이를 경찰에 알리자 사직해 퇴직금까지 챙긴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그것도 한 전직 경찰 간부가 24일 자신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경찰인권센터’에 “부산 사하경찰서와 연제경찰서에 근무하는 젊은 경찰관이 여학생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은밀하게 사표를 제출했다”고 올리는 바람에 알려졌다. 부산의 두 경찰서는 이미 일신상의 사유인 것처럼 처리해 두 경찰관의 사표를 수리했다니 페이스북 고발이 없었다면 끝까지 은폐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뒤늦게 감찰에 나선 부산지방경찰청은 두 경찰서가 보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런 주요 사안을 경찰서 담당 계장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경찰서장이 보고를 받았다면 당연히 이상식 부산경찰청장을 거쳐 강신명 경찰청장에게까지 보고됐어야 할 민감한 사안이다. 페이스북 고발에는 “성범죄를 묵살하고 은폐한 강신명 경찰청장과 이상식 부산경찰청장을 파면하고 형사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들어 있다. 동아일보가 최근 현직 경찰 100명에게 물은 결과 강 청장이 잘한 일은 8월 말로 예정된 임기를 무사히 마친 것뿐이라는 평이 가장 많았다. 강 청장이 자신의 임기 말에 돌출한 민감한 성범죄 사건의 파장을 우려해 은폐하려 한 것은 아닌지 경찰 외부에서 특별 감사에 착수해 진상을 가려야 할 것이다.

경찰은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불량식품 등 ‘4대 악’을 척결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시책에 따라 열심히 뛰고 있다고 홍보해 왔다. 그 이면에서 학생들을 학교폭력으로부터 보호하라고 배치한 스쿨폴리스가 오히려 학생들을 성범죄의 희생자로 만들었다. 학부모들이 믿고 자식을 맡긴 경찰관의 인면수심(人面獸心)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사직한 경찰관에게 여죄는 없는지 재조사해 형사 처벌하는 것은 물론 퇴직금도 회수해야 한다. 다른 학교 스쿨폴리스에 유사한 범죄가 있는지도 차제에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5. 외교안보 분야에도 먹구름 몰고온 브렉시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미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사일방어(MD) 강화를 거론하면서 “이는 중국 러시아를 포함해 지역 국가들의 전략적 안전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브렉시트’ 직후 회동한 중-러 정상이 한목소리로 미국을 견제하고 나선 것은 만만치 않은 파장을 예고한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안보 협력에 차질을 빚을 국제 정세의 일대 변화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 정책에도 간단치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는 25일 사설에서 브렉시트가 “아시아에서 동맹 구축에 집중해온 오바마 대통령에게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미국이 다시 유럽과의 동맹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합의를 모색하는 길을 찾지 못하면 서방 주도의 국제 질서에 도전해온 중국과 러시아가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U와의 관계 유지가 발등의 불이 된 만큼 미국이 북핵이나 남중국해 문제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현안을 우선순위의 뒷전에 둘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설마 하던 유럽발(發) 경제위기와 EU와의 동맹 균열이라는 복합 위기가 현실화한 만큼 미국으로선 정책의 재조정이 불가피하다.

1993년 출범한 EU는 솅겐 조약에 따라 역내 국경을 없애고, 유로화로의 통화동맹으로 회원국 수를 늘려 왔다. 하지만 경제난의 심화로 EU 가입 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대폭 줄었다.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2013년 말 러시아로부터 대규모 원조를 받게 되면서 우크라이나가 EU 가입 협정을 해제한 것이 원인이었다. 경제와 민주주의 확산, 안보가 맞물려 돌아가는 현실에서 경제가 삐걱거리면 외교 안보에도 깊은 주름이 질 수밖에 없다. 영국이 브렉시트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도, 그로 인해 세계 경제와 외교 안보에 동시 충격파가 밀려와도 당장 뾰족한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미국은 직면해 있다.

눈을 국내로 돌리면 박근혜 대통령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낮은 단계의 경제시장 통합을 거쳐 높은 단계의 정치통합을 이룬 EU를 모델로 삼았다. 브렉시트로 인해 협력은커녕 미국의 관심이 유럽으로 쏠리는 틈을 타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의 수위를 높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북을 두둔하는 최악의 상황이 우려되고 있다. 북핵은 우리에겐 국가의 명운이 달린 근본 과제지만 주변 강대국들에겐 패권 다툼용 카드 중 하나일 뿐이다. 북의 김정은도 브렉시트로 당혹해하는 미국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지 모른다. 브렉시트의 경제적 측면만 주시하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박 대통령부터 비상한 각오로 대처해야 한다. 

[중앙일보]

6. 김종인·안철수가 '20대 특권국회'를 막으려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의원 갑질’ ‘뒷돈 요구’ ‘국고 횡령’ 의혹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입만 열면 약자 보호, 정의 실현에 기득권 혁파를 외치던 이들 제1, 2 야당의 이중적이거나 위선적인 행태가 역겹다. 학생회장에 민주화 운동권 출신이라는 더민주의 서영교(중랑갑) 의원은 딸과 친동생, 오빠와 남편을 모조리 의원실이나 지역위원회 자리에 앉혀 국민 혈세를 오순도순 나눠 먹는 가족애를 과시했다. 자신들이 내야 할 광고용역 대금을 하도급 업체로 하여금 대납케 하는가 하면 허위 영수증까지 작성해 선거보전금을 빼먹은 혐의를 받고 있는 국민의당은 박선숙 의원이 검찰에 출두했다.

양파 껍질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문제가 드러나자 양당 대표는 뒤늦게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는 “사회 양극화와 청년실업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국민의 감정이 불공정 특권이나 우월의식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서영교 의원 문제는 당무감사를 통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송구스럽고 결과에 따라 엄정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세 번째 사과를 했다.

김 대표가 지적한 국회의원의 특권과 우월의식은 20대 국회가 초장에 반드시 뿌리 뽑고 가야 할 독초다. 이 독초는 특히 정의와 민주화를 자기의 정치 자산으로 삼는 친노·친문 운동권 정치인들에게서 번성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들은 그런 게 없다고 우기고 있으니 세상이 웃을 일이다. 국민의당도 격차사회 해소, 공정경제를 추구한다면서 관행이라는 이유를 들이대며 하도급 업체들한테 갑질 행태를 벌이는 불감증을 도려내야 한다.

이를 위해 양당은 서영교·박선숙·김수민 의원에게 최소한 출당, 당적 박탈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자기들끼리 봐주기를 하다 두 야당 전체가 국민 분노에 날아갈 수가 있다. 두 야당의 일벌백계는 집권세력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확보해 수권정당 이미지를 높여줄 수 있다. 19대 국회 때처럼 또다시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김종인·안철수 대표는 이제 첫 장을 연 20대 국회를 특권 의회로 타락시킨 책임을 고스란히 지게 될 것이다.

7. 세월호 이후에 공피아가 더 극성부리는 나라

공정거래위원회의 고질적인 ‘전관예우’가 다시 한 번 확인됐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위에서 제출받은 ‘2012~2016년 공직자윤리위 취업 심사 통과자 현황’에 따르면 공정위의 4급 이상 퇴직자 중 재취업을 신청한 20명 가운데 17명이 대기업·대형 로펌에 들어갔다. 이들 대기업과 로펌은 공직자윤리법에 규정된 ‘퇴직 후 3년간 취업 제한’ 기관이다. 그러나 이들은 공윤위의 승인을 거치면 취업이 가능하다는 예외 조항을 활용해 재취업했다.

공정위 전관들의 로펌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6대 로펌에 재직 중인 공정위 출신만 40명이 넘는다. 공정위 부위원장을 지낸 7명 중 6명이 로펌에 소속돼 사회의 눈총을 샀던 일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관피아’ 척결을 다짐했고 국회는 공직자윤리법을 고쳐 취업 제한을 강화했다. 그런데도 이번에 재취업한 17명 중 16명이 세월호 참사 이후에 공윤위의 심사를 통과했다. 20명 전원이 퇴직 1년 이내 재취업했으며 1개월 만에 재취업한 사례도 있다. 신속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공피아(공정위+마피아)가 수그러들긴커녕 더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과 로펌이 공정위 출신을 선호하는 이유는 뻔하다. 대기업 불공정 행위의 방패막이로 쓰겠다는 것이다.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위는 각종 담합을 적발하고 거액의 과징금을 물린다. 라면값·4대강 담합 등엔 수천억원대의 과징금을 매겼다. 잘못 걸리면 기업이 휘청거릴 정도다. 과징금을 과도하게 물렸다가 소송에 져 되돌려 준 돈이 2011년엔 111억원이었지만 지난해엔 3126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를 두고 ‘전관 역할’을 배려해 공정위가 기업 과징금을 부풀린다는 해괴한 소문까지 나돌 정도다.

이런 커넥션을 방치해선 나라의 미래가 없다. 현재 비공개인 공윤위의 심사를 공개하고, 전직의 청탁을 받아주는 현직들까지 강도 높게 처벌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필요하면 취업 제한 퇴직공무원 범위를 더 확대하고 예외 조항 적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매일경제]

8. 브렉시트로 글로벌 통화전쟁 격화될 위험 크다

지난 주말 브렉시트 패닉으로 폭락했던 각국 증시는 이번주 들어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외환시장은 여전히 매우 불안정한 모습이다. 무엇보다 파운드화 폭락이 각국 통화 가치의 경쟁적 평가 절하를 촉발하면서 글로벌 통화전쟁이 다시 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가장 다급해진 나라는 일본이다. 브렉시트는 엔저를 핵심 전략으로 삼는 아베노믹스를 송두리째 무너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어제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일본은행에 충분한 자금 공급을 요청했다. 엔화값이 달러당 95엔대로 오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미국의 묵인이 없더라도 엔고 저지를 위한 일방적인 시장 개입에 나서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은 어제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를 0.9% 떨어트렸다. 작년 8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통화 가치를 절하한 것이다. 파운드화가 떨어질수록 브렉시트로 타격을 받을 유럽 통화 가치도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며 이는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달러와 엔화 가치 상승 압력을 더욱 키울 것이다. 이 경우 일본은행은 더욱 공격적인 돈 풀기에 나설 것이다. 연내 한두 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했던 미국 연준은 브렉시트 충격파에 따라 되레 금리를 내리려 할지도 모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각국은 시장 안정을 위한 적극적인 공조에 나섰다. 하지만 고립주의 바람이 거센 지금은 보호무역과 통화 가치의 경쟁적 평가 절하로 각자도생의 길을 걸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가뜩이나 수출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엔저 공습이 멎었다고 결코 안심할 때가 아니다. 

당분간 원화 가치는 일정한 방향성을 갖지 못한 채 널뛰기를 계속할 수 있다. 그럴수록 환율 변동성을 줄이는 일이 긴요하다. 외국인들이 국내 시장에서 갑자기 발을 빼지 않도록 투자자 신뢰 제고에 힘쓰면서 은행과 기업의 외화유동성 관리를 강화해야 할 때다. 중앙은행 간 통화스왑을 확대하고  

9. 해도 너무한 대우조선 회계사기, 경영진 엄벌하라

검찰 조사 결과,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대표가 재임 중이던 2012년부터 3년간 5조4000억원의 분식회계가 벌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원이 밝혀낸 2013~2014년 분식회계 액수 1조5000억원보다 4조원 더 많다. 놀라운 것은 회계 조작이 경영진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성과급을 타내기 위해 예정원가를 줄이고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산업은행이 정한 목표 실적에 꿰맞췄다. 목표 실적이 나올 때까지 회계프로그램에 넣어 시뮬레이션까지 해봤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 회계 조작을 통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고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팔았으니 '분식회계'가 아닌 '회계사기'라고 부를 만하다. 

검찰은 어제 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장을 배임수재 등 개인 비리 혐의로 소환해 조사 중인데 남 전 사장 재임기간까지 조사하면 분식회계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남 전 사장은 친구 회사를 사업 파트너로 끌어들여 일감을 몰아주고 뒷돈을 챙기는 등 회삿돈 120억원을 부당하게 빼낸 혐의를 받고 있다. 

얼마 전 40대 차장급 직원이 8년간 회삿돈 180억원을 빼돌려 외제차, 명품시계 등을 사는 데 쓴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더니 경영진들은 한술 더 뜬 셈이다. 윗물부터 아랫물까지 모조리 썩었으니 회사가 거덜나는 게 당연하다. 2000년 이후 대우조선에 7조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됐지만 부채비율 7300%, 영업적자 5조5000억원의 부실기업이 된 것은 경영진, 직원 할 것 없이 회삿돈을 빼먹은 탓이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나 몰라라 한 산업은행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수사해야 한다. 회계를 조작하고 성과급 잔치를 벌인 경영진들은 도덕적 해이 수준이 아니라 금융범죄를 저지른 것인 만큼 엄벌해야 한다. 결국 거짓 회계를 믿고 주식을 산 투자자들만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됐다. 이들을 구제할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도는 2005년 도입됐지만 기업 타격을 우려해 허가 3심, 본안 3심 등 절차를 까다롭게 하다 보니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차제에 경직적으로 운영되는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10. 국민 실망시킨 야당의 일탈, 준엄하게 심판해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27일 나란히 국민에게 머리를 숙였다. 김 대표는 가족 채용 논란을 빚고 있는 서영교 의원과 관련해 "진심으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안 대표도 2억원대 리베이트 의혹 사건과 관련해 박선숙 의원이 이날 검찰에 출석하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송구스럽다"고 했다. 

그동안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와 사회 양극화 해소를 앞장서 주장해왔기에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은 더 크다. 더구나 서 의원 의혹은 총선 당시 이미 제기됐음에도 더민주 지도부가 공천을 줬다. 2014년 자신의 딸을 국회의원실에 5개월간 유급 인턴으로 채용하는 등 '가족 채용' 논란을 야기한 서 의원에 대해 당 차원에서 면죄부를 줬던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의당도 그에 못지않다. 총선 홍보비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리베이트를 받은 의혹으로 박선숙 당시 사무총장, 왕주현 사무부총장, 김수민 의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고발됐다. 지난 9일 압수수색과 더불어 수사가 본격화했는데도 "당에 리베이트 자금이 흘러들어오지 않았다"며 꼬리 자르기에 급급했다. 당 차원에서 진상을 조사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다가 비난이 쏟아지자 그제서야 안 대표가 세 차례 사과를 했다.

야당이 4·13총선에서 여소야대 구도를 만들며 승리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새누리당 공천 갈등에 따른 어부지리 성격이 강했다. 상대방 잘못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비난을 퍼붓다가도 제 식구는 감싸기로 일관한다면 민심은 곧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보좌진 채용 기준 등에 대해 대책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미 19대 국회에서도 그런 대책은 여야 구분 없이 수차례 발표됐다. 국회의원이 배우자나 4촌 이내 친인척을 보좌 직원으로 채용할 수 없도록 하는 법률안도 여러 번 제출됐지만 통과시키지 않았을 뿐이다. 

또다시 사탕발림으로 곤경을 모면하려 하다간 더민주와 국민의당 모두 민심 이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앞장서서 해당 의원들을 징계한 후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동아일보][동아광장/권영민]헌책의 향기

지금은 서울 시내에 예스러운 헌책방이 대부분 사라졌다. 전통의 인사동 거리에도 통문관(通文館) 하나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1980년대 초까지도 청계천변에 헌책방들이 성업 중이었다. 종로5가를 가로지르던 대학천변에서부터 동대문 평화상가로 이어지는 청계천변의 헌책방들은 도심의 작은 도서관 역할까지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동대문시장 일대가 패션을 중심으로 하는 옷가게로 바뀌면서 그 많던 헌책방들이 모두 밀려나 버렸다. 신촌로터리에서 마포 쪽으로 빠지는 길가에도 헌책방이 많았고, 돈암동 일대에도 헌책방이 여럿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취조차 확인할 수 없다. 동네의 작은 신간서점도 장사가 안 되어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요즘 형편이니 이런 헌책방이 여태 살아남아 있기를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책에 관한 이야기라면 당연히 헌책방과 헌책이어야 제격이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새 책의 첫 장을 넘길 때 가슴에 느껴지는 서늘함은 늘 기분 좋다. 하지만 이보다 더 소중한 기쁨은 헌책방에서 구한 낡은 책 한 권에서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꼭 가지고 싶었던 귀한 책을 우연히 들른 헌책방에서 값싸게 구했을 때 그 기쁨은 어디에도 견줄 수가 없다. 헌책은 누군가가 사용한 뒤에 내버린 것이지만 흘러간 시간의 내음이 거기서 묻어난다. 나는 이 독특한 헌책의 냄새가 그리 싫지 않다. 그 내음 속에는 책을 처음 샀던 사람의 이야기까지 함께 담겨 있기 마련이다. 

책의 속표지에는 대개 책을 산 사람이 써넣은 이름이 적혀 있다. 어떤 책에는 날짜와 책방 이름까지 적어 놓은 경우도 있다. 그리고 ‘새로운 각오로!’라든지, ‘나의 청춘을 위해!’라고 적어 넣은 짧은 문구가 그 책을 샀을 때의 결심도 드러내어 준다. ‘사랑하는 ○○에게’라는 서툰 펜글씨는 아련한 연애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책장의 행간에 수없이 그어진 밑줄로 보아 이 책의 소유자가 얼마나 열독(熱讀)을 했었는지를 헤아릴 수도 있다. 이런 자잘한 내용들이 말하자면 책의 향취를 더해주고 ‘책의 문화’까지도 가르친다.

내가 청계천변 헌책방 거리를 처음 찾았던 것은 대학생 시절이다. 벌써 반백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는 교복을 입고 가방을 든 학생들이 늘 넘쳤다. 나는 학교 강의가 일찍 끝난 날이면 이 헌책방 거리를 돌아다녔다. 반드시 내가 찾아야 하는 책을 처음부터 정해 놓을 필요는 없었다. 어쩌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귀한 책을 엉뚱한 책방의 책무더기 속에서 찾아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나의 헌책방 순례는 언제나 하릴없이 이루어지는 도심의 한가로운 산책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후 이 가벼운 나들이가 사실상 끝이 났다. 학교와 멀어지면서 나다니기가 어려워진 것도 이유였지만 그 무렵부터 청계천변의 헌책방에는 광복 이전에 출판된 책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전문적인 수집가들이 등장하면서 가격도 엄청나게 뛰었다. 

내 서가에는 옛날 청계천 헌책방에서 샀던 책들이 몇 권 꽂혀 있다. 이광수의 ‘무정’이 그중의 하나다. 비록 초판본은 아니지만 회동서관에서 나온 이 책은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다. 표지까지 온전한 것이 자랑스럽다. 염상섭이 고려공사에서 펴낸 소설 ‘만세전’의 초판본(1924년)도 있다. 우연하게 얻은 정지용의 시집 ‘백록담’ 초판본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책이 되었다. 근래 고서 경매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팔린 시집들이 심심치 않게 화제가 되곤 한다.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이나 백석의 시집 ‘사슴’은 그 당시 헌책방에서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책들이다.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최근에 복각본조차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니 놀랍다. 

옛것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런 변화야말로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서울의 대학가 어디에서도 변변한 헌책방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 도쿄의 간다(神田) 고서점 거리가 여전히 최고의 관광지로 손꼽히고 있다는 사실이 부럽다.


2. [동아일보][이라의 한국 블로그]한국의 몸살과 스트레스를 느끼기까지

한국 사람들은 찜질방에 들어가 땀을 흘리면서도 “시원하다”고 표현한다. 이걸 알아듣는 데 2, 3년쯤 걸렸다. 이보다 더 어려웠던 말은 ‘몸살’이었다. 한국에 와서 1년쯤 지나 이사를 하면서 들은 얘기다. 이삿짐센터에서 오신 아주머니가 “입주청소는 직접 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시켜야 한다”고 했다. 안 그러면 며칠 몸살이 난다고 하면서. 

“몸살? 몸살이 뭐예요?”

“아, 모르시나? 몸에 무리가 가서 며칠 쑤시고 아픈 거지.”

“너무 피곤하면 하루 이틀 쉬면 되지, 왜 몸이 쑤시고 아파요?” 

몸살이라는 단어를 처음 듣고 남편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열심히 설명하는데, 여전히 피곤한 것과 몸살의 차이가 이해가 안 갔다. 내가 살던 나라 몽골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병명이다. 게다가 30대 초반의 젊은 사람이 이해하기에 쉬운 증상도 물론 아니었다. 옛날에 몽골 어르신들이 몸이 불편하다고 하시던 게 이런 증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몸살보다 더 어려웠던 말은 외래어 ‘스트레스(stress)’였다. 한국에선 주변 사람들한테서, 그리고 병원에서 의사한테서도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사람이 살면서 힘들 때도 있고, 기쁠 때도 심심할 때도, 또 때로는 슬플 때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한국에선 인생이란 이름의 여행에서 당연히 겪는 조금의 힘듦, 피할 수 없는 작은 슬픔, 개인차가 있지만 각자가 느끼는 작고 큰 노여움 같은 감정들을 요즘은 ‘스트레스’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하는가 보다 싶었다. 몽골에서 온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한국에 오기 전에는 이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들 한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는 거의 전 국민이 완전 고용된 상태였고, 삶에도 변화가 거의 없었다. 정부가 존재하는 한 굶어 죽을 위험도 거의 없었고,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들 간의 생활수준 차이 또한 그리 크지 않았다. 어쩌면 빈부의 차이가 꽤 있었지만, 인터넷도 없고 민영 신문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일반 국민이 그걸 느끼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래도 무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학생들이 아침에 학교에 가면 다들 복도에 모여 “정직하게 살고, 공부 열심히 하고, 나라에 애국하고, 이웃을 도와주고” 등의 구호를 다 같이 외운 다음에야 수업을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살던 곳의 몽골 여름방학 숙제라는 것은 흔히 ‘서거르(풀) 씨 2kg, 땅다람쥐 가죽 10장, 가축용 건초 두 묶음’을 모아오라는 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변에 흔하던 그 서거르풀 씨를 다 모아선 어디에 썼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다람쥐 가죽은 어디에 쓰려고 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다람쥐를 잡으러 가면 일단 양동이에 물을 담아 가서 땅에 난 다람쥐 굴 입구에 물을 부어선 다람쥐가 튀어나오게 하거나, 소똥을 모아 태워선 그 연기를 굴에 불어 넣곤 했다. 이런 학교생활을 하면 한국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스트레스’라는 개념이 형성될 수 없다. 

이 얘기를 하면, 남편은 옆에서 자기네들도 ‘국민교육헌장’이란 걸 아침마다 외워야 조례가 끝나고 수업을 시작했다고 하면서 웃는다. 요즘의 한국 중고교 학생들이 옛 국민교육헌장을 모르듯이 지금의 몽골 학생들에게 ‘땅다람쥐 숙제’는 칭기즈칸 때의 옛날 얘기쯤으로 들릴 것이다. 

한국에 와서 처음 해본 자원봉사, 지방의회 활동, 사회단체 활동, 그리고 고3 학부모 생활을 거치면서 이제 스트레스가 뭔지 설명할 수 있다. 어쩌면 ‘아주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몸살, 이것도 마흔 줄에 접어들며 체감했다. 학교 과제인 연구보고서를 쓰느라 늦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아들이 방에 들어가면서 주스 한 컵을 슬며시 놓고 간다. 땅다람쥐 숙제를 하려고 온 들판을 쏘다니던 때도 즐거운 시절이고, 사회주의 시절은 요즘의 치열한 경쟁과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시절이었겠지. 하지만 지금의 바쁜 생활과 스트레스, 그리고 가끔씩 겪는 몸살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고 해볼 만한 생활이 아닐까. 아들의 주스 한 컵에 너무 감동을 받은 것일까.


3. [동아일보][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올레길,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제주도 ‘올레길’, 강릉 ‘바우길’, 제천 ‘자드락길’. 둔덕길에 선 나무와 오솔길에 핀 야생초가 걷는 이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산책길들이다. 이름도 대부분 고유어와 사투리다. 그래서 신선하다.

‘둘레’는 ‘사물의 테두리나 바깥 언저리’를 뜻하고, ‘자드락’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이다. 둘 다 고유어다. 그런가 하면 ‘올레’는 ‘골목’의 제주 사투리고, ‘바우’는 ‘바위’의 강원도 사투리다. 이 중 둘레길과 올레길은 많은 이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표제어로 삼는 문제를 검토할 때도 됐다.

고속도로를 가다 보면 도로의 가장자리에 고장 난 차를 세워 두거나 경찰차 등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길이 있다. ‘갓길’이다. 오랫동안 써오던 ‘노견(路肩)’이라는 일본식 한자어를 우리말로 다듬은 것이다. 휴게소를 쉼터로 쓰는 것도 마찬가지.

정재도 선생(전 한글학회 명예이사)은 생전에 노견을 ‘길섶’과 ‘길턱’ 같은, 기존에 있던 우리말로 고쳤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노견은 ‘길의 가’이고, 갓길은 ‘가의 길’이니 노견을 대신할 말로는 ‘길의 가장자리’를 뜻하는 길섶이 더 적합하다는 것. 선생은 무엇보다 갓길 때문에 길섶과 길턱이라는 우리말이 입길에서 멀어지지 않을까 염려했다. 

길의 세계에도 정겹고 재미난 낱말이 많다. ‘빨리빨리’와 ‘느림의 미학’을 연상시키는 지름길과 에움길이 있다. 질러가는 길보다 돌아가는 길에 별명이 많다. 에움길은 우회로인데 돌길, 돌림길, 두름길 등도 같은 뜻이다. ‘고샅’은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말한다.

크고 넓은 길보다 좁고 어려운 길에 관한 표현이 더 많은 것도 흥미롭다. 고생길 뒤안길 가시밭길 등이 그렇다. 아마도 인생살이가 힘들어서일 듯싶다. ‘뚝방길’은 입길에는 오르내리지만 사전에는 없다. 신문에서 본 ‘뚝방길에서의 밀어(密語)’를 표준어인 ‘둑길에서의 밀어’로 고친다면? 말맛과 정겨움이 뚝 떨어진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기로 했다. 이 길이냐 저 길이냐의 갈림길에서, 남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은 여전히 유효할 것인가. 세계는 지금, 가보지 않은 길 앞에 서 있다. 영국의 선택이 공동체를 향해 달려온 인류 역사의 내리막길이 되지 않으면 좋으련만….


4. [중앙일보][삶의 향기] 어느 키다리 아줌마의 반성문

‘미스터(Mr.) 신예리,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일곱 살이고요. 장차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에요….’ 10년 전 꼬마 소녀 시마오가 내게 보낸 첫 편지다. 구호단체가 후원 아동으로 맺어준 지 몇 달 만에야 드디어 소식을 전해 온 거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답장을 썼다. ‘안녕, 시마오. 앞으로 네가 무얼 좋아하는지, 무얼 잘하는지 시시콜콜 내게 알려 주렴. 근데 참, 난 여자란다. 미스터가 아니라 미즈(Ms.)로 불러 줄래?’

여성의 절반 이상이 문맹인 나라 모잠비크, 거기다 인터넷도 전화도 없는 시골 마을에 사는 소녀로선 ‘키다리 아저씨’는 몰라도 ‘키다리 아줌마’는 상상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매달 월급 통장에서 꼬박꼬박 이체되는 3만원. 얼마 안 되는 그 돈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꿈을 이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신바람이 났다.

하지만 이런 기쁨은 2년 전 시마오의 마지막 편지로 산산조각 나 버렸다. “미즈 신예리,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됐어요. 사정이 좀 생겨서요….” 청천벽력 같은 통보에 마음을 바꾸도록 설득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학을 잘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그래서 장차 좋은 선생님이 될 게 분명한 꿈나무가 아쉽게도 꿈을 지레 접어버린 거다.

얼마 후 국제 구호 전문가 한비야씨를 만난 김에 그때 내가 느낀 크나큰 실망감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아마 초경이 시작됐기 때문일 거예요. 아프리카에선 생리대를 구하기 어려워 학교를 많이들 그만둬요.” 망치로 머리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시마오가 끝내 말 못한 속사정이 그런 일일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명색이 남자도 아닌 여자라면서, 8년이나 인연을 이어 온 아이한테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조차 못돼 준 게 한없이 부끄러웠다. 알고 보니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서만 수백만 명의 소녀가 생리 때문에 학교를 자주 빠지거나 아예 다니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그곳 아이들에게 이른 결혼과 임신, 그로 인한 가난이 두고두고 대물림되는 이유였다.

생리대 고민이 남의 나라 일이 아님을 알게 된 건 최근이다. 충격적인 ‘깔창 생리대’ 사연에 가슴이 미어졌다. 이후 지자체와 정부, 국회까지 앞다퉈 저소득층 소녀들을 위한 생리대 지원에 나선 걸 보면 다들 같은 심정인 모양이다. 평소 이들이 청년수당이니 무상보육이니 다른 복지 이슈를 놓고 밑도 끝도 없이 싸우는 걸 생각하면 퍽이나 이례적인 일이다. 아프리카도 아닌 한국 땅에서 적어도 생리대 정도의 복지는 꼭 필요하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었나 보다.

생리대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낸 불평등은 요즘 지구촌 최대의 화두다. 국가 간 불평등이 전염병과 난민, 테러를 일으키고 국가 내 불평등은 갈등과 범죄를 양산하는 게 우리가 처한 불편한 진실이다. 석학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해외 원조나 자선이 더 이상 고결한 이타적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다(『나와 세계』). “부유한 국가와 부유한 집단이 지금까지 살던 대로 편히 살고 싶어 행하는 이기적 행위”라는 거다. 중요한 건 이기심을 발휘하는 방법이다.

말라리아 해법만 해도 그렇다. 해마다 아프리카 어린이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는데도 백신 개발이 지지부진하자 스타들이 나섰다. 2005년 다보스포럼에서 여배우 샤론 스톤, 가수 보노 등이 앞장서 살충 처리된 모기장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원조 분야의 핫 아이템으로 떠오른 모기장을 너나없이 공짜로 나눠주자 엉뚱하게도 고기 잡는 그물로, 신부 결혼식 베일로 암시장에 나오더라나. 이후 한 구호단체가 고심 끝에 푼돈을 받고 팔았더니 오히려 제 돈 주고 산 모기장은 모기 막는 본래 용도로 쓰더란다. 원조도, 복지도 선의(善意) 못지 않게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단 얘기다.

무지 탓에 시마오를 떠나보낸 뒤 내가 새롭게 후원의 연을 맺은 아이는 인도네시아 소녀 에바리스티. 올해 여덟 살이다. 몇 년 후 이 아이에겐 절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다. 적은 돈 달랑 보내준 걸로 내 몫의 이기적 노력을 다했다는 착각에 빠지진 않을 게다. 생리대와 테러는 결코 별개의 문제가 아니기에.


5. [이데일리][목멱칼럼] SNS의 틈새, 우리 사회 희망인가 취향공동체인가

할아버지, 할머니, 어린 자녀 둘. 거적을 깔고 덮고 자는 듯 누워있는 그들의 숨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피붙이를 넷이나 죽게 만든 건 아이들의 엄마다. 흉년이 계속되어 굶어 죽게 되자 버려진 생선 내장을 주워서 가족들에게 먹였다. 그런데 그게 하필이면 복어 내장이 있었던 거다. 가족들을 위해 자신은 입에 대지도 않은 통에 혼자만 살아남았다. 

최근 방송된 MBC 주말드라마 ‘옥중화’의 한 장면이다. 백성은 먹을 게 없지만 임금 외삼촌의 첩 정난정(박주미 분)의 생일 잔치는 열흘 동안 계속된다. 전옥서(감옥) 다모인 옥녀(진세연 분)는 “아주 작은 거라도 싸울 수 있는 건 싸워볼거예요”라며 정난정의 쌀을 빼돌릴 대범한 계획을 세워 성공한다. 

작은 싸움, 작은 틈이 커다란 둑도 무너뜨릴 수 있음을 우리는 잘안다. 하지만 옥녀가 살던 조선시대에는 작은 틈이 거의 없었다. 감옥에서 태어나고 자란 옥녀는 감옥에서 툭 하면 사기를 치는 전우치나 괴짜처럼 보이는 이지함, 소매치기나 하는 천둥 등을 만나면서 틈새를 만들어낸다. 

오늘날 굳건한 사회 규범의 틈새는 온라인 네트워크,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주로 만들어내는 듯 보인다. 오프라인에서는 만나기 힘든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며 미디어에서 접하지 못한 이야기까지 활발히 소통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지난달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인상하기로 발표한 뒤 생리대 가격이 비싸 온갖 방법으로 버텨야 했던 저소득층 청소년들이 SNS에 사연을 올렸다. 미처 말하지 못했던 사연들이 네트워크 공간을 타고 확산되자 유한킴벌리는 인상안을 철회하고 서울시, 인천시 등 생리대 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저소득층의 식량 주거 문제에 생리가 기본적인 인권으로 새롭게 공론화됐다. 만약 SNS가 없었다면 아마 여성들이 울며겨자먹기로 오른 가격의 생리대를 구매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SNS가 이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약자를 보호하는 이상향은 아니다. SNS를 운영하는 기업들 역시 이윤추구가 중요한 덕목일 수 밖에 없다. SNS회사들은 끊임없이 이용자를 분석하고 알고리즘을 개발해 이용자 개인의 취향에 꼭 맞는 ‘맞춤옷’을 선사한다. 예컨대 세계 최대 SNS 페이스북상에서 다양한 논조의 언론사와 친구를 맺더라도 자주 읽고 ‘좋아요’를 누르는 언론사가 주로 타임라인에 보여진다. 페이스북이 이용자 취향을 철저히 분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취향에 따른 개인화(personalization)의 특징은 SNS 이용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이용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평소 성향을 강화해주게 한다.

SNS가 다양한 정보 교류의 장(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견해와 비슷한 책이나 정보만을 찾아 자신의 취향 안에 갇혀 버리고 마는 이른바 ‘반향실 효과’(echo-chamber effect)가 나타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반향실이란 벽을 만들어 소리가 퍼지지 않고 되돌아오도록 만든 방이다. 에코(메아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안에서만 돌아다니는 것이다. 사회학에서는 반향실 내 음향처럼 소셜네트워크 안에서 같은 정보와 아이디어가 돌고 돌며 강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제 SNS는 더 이상 여행 다녀온 사진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사진만 올리는 곳이 아니다. SNS를 통해 보다 폭넓은 세상을 만날지, 다른 의견에 귀를 닫고 나의 취향만 감상할 지는 이용자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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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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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7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벌써 시작된 20대 국회 '막장 드라마'

제20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연달아 드러나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부적절한 처신을 바라보며 또다시 좌절감을 느낀다. 잘못된 정치를 바꿔보자고 유권자들마다 한 표를 행사한 것이지만 결국 그렇고 그런 사람들 중에서 선택한 셈이다. 유권자들이 우롱당한 것이다. 이런 인물들로는 국회의원의 기득권 포기는 애당초 물 건너 간데다 민생국회에 대한 기대도 한풀 꺾일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더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경우는 점입가경이다. 지난 19대 국회 시절 자신의 딸과 남동생, 오빠를 의원실 보좌진으로 줄줄이 채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석사학위 논문 표절시비까지 불거진 데다 보좌진 월급에서 후원금을 받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여기에 변호사인 남편을 고위 판검사들과의 회식 자리에 합석시키기도 했다니, 그야말로 ‘가족 돌보미’ 종합세트다.


더민주당이 뒤늦게 서 의원에 대해 자체 감찰에 착수했다지만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지 미리부터 의문이다. “모든 의혹에 대해 신속하고 엄정하게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으나 논란이 확산되면서 당쪽으로 쏠리는 화살을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더민주당이 지난 총선 공천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미리 파악하고도 서 의원을 그냥 공천했다는 지적이 사실이라면 공동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총선 홍보물 리베이트 사건으로 수사대상에 오른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도 마찬가지다. 형사적 혐의 여부를 떠나 이미 청년 대표라는 참신한 이미지를 구겨 버렸다. 이와 관련해 왕주현 사무부총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며, 오늘 박선숙 의원이 검찰에 소환될 예정이니만큼 귀추가 주목된다. 거래업체로부터 뒷돈을 받고도 업계의 관행이라고 내세우면서 ‘깨끗한 정치’를 들먹이는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20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여야 정당마다 서로 잘해 보겠다며 의욕을 내비치고 있다. 교섭단체 대표들이 각 당의 포부를 밝힌 일장 연설도 있었다. 하지만 거창한 국정 담론을 꺼내기에 앞서 자기 눈에 틀어박힌 대들보를 제거하는 게 먼저다. 속셈으로는 자기들 이해관계에 생각이 쏠려 있으면서 말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떠들어대는 행태에 신물이 난다.

2. 유일호 경제팀, 위기 헤쳐갈 수 있을까브

렉시트(Brexit)의 후폭풍이 심각하다. 영국 국민투표 결과 유럽연합(EU) 탈퇴로 결정됨으로써 영국은 물론 독일, 일본, 미국 등 세계 주요국의 증시가 곤두박질친 데다 달러와 엔화 가치가 급등하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우리 시장에도 직격탄이 떨어졌다. 브렉시트가 현실화한 지난 금요일 코스피·코스닥이 급락함으로써 단숨에 47조원 이상의 시가총액이 증발하고 말았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9.7원이나 치솟았다. 상승폭이 4년 9개월 만에 가장 컸다는 점에서 충격의 강도를 짐작하게 된다.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조선·해운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실업 우려 등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미칠 브렉시트의 충격은 가늠하기 힘들다. 당장은 요동치고 있는 금융시장 안정이 급선무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급격한 자본유출의 우려가 커졌다. 영국, EU와의 교역 비중이 크지 않다지만 실물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조선·해운업계 구조조정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정부도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연일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큰 만큼 필요할 경우 ’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가용수단을 모두 동원해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응한다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금융 변동성을 24시간 모니터링하는가 하면 실물경제 상황점검반도 가동된다. 금융당국은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견고해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대응해 나갈 수 있다”며 지나친 불안을 경계했다.


하지만 왠지 미덥지 못하다. 유일호 경제팀은 그동안 무얼 했는지 모른다고 할 만큼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저성장 고착화 우려에도 재정 조기 집행이나 자동차세 인하 연장 같은 미봉책으로 대처했을 뿐 경기부양을 위한 근본 방안은 없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혼란이 가중되면서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비판이 빗발치자 뒤늦게 공식 회의체를 신설했을 정도다.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이젠 달라져야 한다. 경기 활성화 대책과 일자리 창출, 구조조정과 규제개혁, 추경편성 등 브렉시트 충격을 넘어 우리 경제를 되살릴 실효성 있는 종합 처방을 내놔야 한다. 정부가 내일 발표할 예정인 올해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방향이 그 첫 번째 답안지인 셈이다.

[서울신문]

3. 김영란법 규제 대상서 농산물 빼기 전 의원 넣길

오는 9월 시행될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서 농축수산물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 농축수산 관련 업계에 이어 정부와 한국은행에서도 “김영란법이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정치권도 팔을 걷어붙이는 분위기다. 여야의 농어촌 지역 의원들이 최근 법 개정을 적극 추진하면서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 층인 농어촌을 살려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김영란법을 고치려면 차제에 이 법의 규율 대상에서 빠진 국회의원들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본다.


최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경제동향 간담회에서 “김영란법이 분명히 민간소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총재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과 함께 김영란법을 하반기 경제 불안요인으로 꼽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출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내수를 살려야 하는데 자칫 이 법이 내수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직격탄을 입을 농어촌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이 농축수산물을 규제 대상에서 빼자고 나서는 것은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화훼농가 등 농축수산업계로서는 생사가 달린 문제인 까닭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의 취지도 무시하기 어렵다. 부정부패의 사슬을 끊기 위해 마련된 법을 시행도 하기 전에 이런저런 이유로 고치는 데 부정적 의견도 없지 않다. 그렇기에 농축수산업계의 고통은 줄이면서 법의 대의도 살리려면 현재 5만원인 선물의 상한선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회가 굳이 이 시점에 김영란법을 손보겠다면 이참에 이 법의 규율 대상에서 빠진 국회의원들부터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당초 김영란법의 원안은 부정청탁 금지, 금품수수 금지, 이해충돌 방지 등 세 영역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의원들은 부정청탁의 경우 국회의원의 민원 전달은 예외로 한다는 억지 조항을 만들어 법의 심판대에서 쏙 빠져나갔지 않았나. 특히 이해충돌 방지 부분은 아예 넣지도 않은 게 문제다. 최근 가족을 보좌진 등으로 채용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갑질’에서 보았듯이 국회의원들이 지위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일이 툭 하면 불거지고 있는데 이 부분을 외면한 것은 법 제정 취지에 정면 위배된다. 시행에 앞서 김영란법을 보다 정교하게 보완하는 작업은 필요하다.

4. 아이들 볼모로 한 사립 유치원 집단 휴원 안돼

맞춤형 보육 시행을 앞두고 어린이집이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가운데 사립 유치원이 국공립 유치원과의 형평성을 요구하며 집단 휴원을 예고해 보육 대란이 우려된다. 정부는 집단 휴원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강력한 행정 처분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아이를 볼모로 한 집단행동 대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당부한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어제 전국 3500여개 사립유치원이 오는 30일 일제히 휴원하고, 서울광장에서 ‘전국 학부모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미 상당수 유치원에서는 일주일 전부터 가정 통신문을 통해 원생 부모들에게 휴원을 통보하고 집회 참석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유치원 수는 4200여개로 사립 유치원이 전체의 83.3%를 차지한다. 이들은 국공립 유치원과의 형평성을 거론하며 정부에 추가 재정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사립 유치원과 국공립 유치원의 형평성 문제는 정부와 자치단체의 지원으로 국공립 유치원의 교육 환경이 크게 개선되면서 불거졌다. 국공립 유치원 수가 턱없이 부족해 생긴 현상이다. 서울 지역 국공립 유치원의 원생 모집 경쟁률은 10대1은 기본이고 높게는 26대1을 기록하기도 했다. 유치원 추첨일에는 복수지원을 해서라도 국공립 유치원에 아이를 넣기 위해 온 가족이 동원되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부모들이 부담하는 한 달 유치원비가 국공립은 1만원 안팎이지만 사립 유치원은 월평균 22만원 선이다. 여기에 각종 활동비 등 추가 비용을 감안하면 사립 유치원 이용 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국공립 유치원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립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는 차별 대우를 받고 있어 유아 교육의 평등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유치원연합회의 주장이 일정 부분 설득력을 얻는 까닭이다. 여기에 맞춤형 보육이 시행되면 사립 유치원 수입도 민간 어린이집처럼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감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국공립 유치원과 동등한 지원을 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울러 국공립 유치원 증설을 중단하고 그 비용으로 사립 유치원을 지원해 달라는 것도 명분이 없긴 매한가지다. 휴원 등 집단행동에 나서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결국 아이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어떤 집단행동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는 민간 어린이집도 마찬가지다.

[동아일보]

5. 싸게 산 외제차도, 부당 투자이득도 판사에겐 뇌물이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서 고가의 외제 레인지로버 중고차를 시세보다 싼 가격에 사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부장판사의 딸은 화장품 업체 네이처리퍼블릭이 후원하는 미인대회에서 입상했다. 정 전 대표가 해외 원정 도박 사건에 연루되기 전 일이다. 하지만 1심에서 실형을 받은 정 전 대표는 이 부장판사에게 항소심 재판부 로비를 부탁한 바 있다. 공사(公私)가 엄정해야 할 법관으로서 참으로 부적절한 처신이다.


정운호 게이트 수사에서 정 전 대표가 검찰과 법원 인맥을 통해 로비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김모 수사관은 정 전 대표 측 브로커에게서 2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서울고검 박모 검사는 직접 1억 원을 받은 혐의가 있지만 뇌출혈로 입원해 소환이 연기됐다. L 부장판사는 당초 정 전 대표 항소심 사건을 배당받은 줄 모르고 그의 브로커와 저녁식사를 한 뒤 재배당을 요청한 사실이 드러나 결국 사표를 냈다. 법원 검찰의 낯뜨거운 치부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2008년 한 사채업자에게 주식 투자금 명목으로 9000여만 원을 건넨 뒤 2억 원을 받은 사실이 적발돼 올 2월 사직했다. 이 부장판사는 고교 선배인 사채업자로부터 투자를 권유받고 한 시계 제조업체의 실권주를 4만 주 인수해 2배 넘는 수익을 올렸다. 대법원은 사채업자에게 돈을 맡긴 판사에 대해서는 “부적절한 처신”이라면서도 “법 위반 사안은 없다”며 징계 없이 옷을 벗겼다. 정 전 대표의 외제 중고차를 헐값에 인수한 부장판사는 어떻게 처리할지 지켜볼 일이다.


수원지방법원 최민호 판사가 명동 사채왕에게서 수억 원을 받아 현직에서 구속된 충격적 사건이 일어난 것이 지난해다. 이후 대법원은 법관 비위를 감사할 외부위원 중심의 감사위원회까지 만들었으나 달라진 게 무언지 모르겠다. 법관들이 청렴의무를 소홀히 하고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이익이나 챙기면 사법부의 신뢰, 재판의 신뢰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6. 국민의당 비례공천 의혹, 안철수 대표가 밝히라

4·13총선 당시 국민의당 사무총장이자 회계 책임자이던 박선숙 의원이 오늘 오전 선거비용 리베이트 수수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불려가 조사받는다. 24일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왕주현 사무부총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도 열린다. 선거 당시 홍보위원장으로 비례대표 7번을 받아 금배지를 단 김수민 의원은 23일 조사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창당선언문에서 “부패에 단호한 정당을 만들겠다”며 ‘클린당’을 표방했던 이 당이 ‘더티당’으로 변질된 모양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8일 국민의당 비례대표 공보 인쇄업체 등에 2억3820만 원의 리베이트를 요구하고 허위 보전청구 및 회계보고를 한 혐의로 박, 김 의원과 왕 부총장 등 5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튿날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사실이 아니라고 보고받았다”고 했으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김 의원은 검찰에 출두하면서 “왕 부총장이 인쇄업체 등과 허위계약을 하고 돈을 받으라고 지시했다”고 고백했다. 왕 부총장은 인쇄업체가 리베이트로 준 돈까지 선거비용인 것처럼 꾸며 선관위에 3억 원의 허위 보전청구를 하고 1억 원을 돌려받은 혐의(사기)도 받고 있다. 이쯤 되면 심각한 범죄행위다.


안 대표는 그동안 의혹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는커녕 여론에 밀려 10일과 20일 두 차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출당(黜黨) 등 단호한 대처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에는 “스스로 납득하고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관련자들을 감쌌다. 최측근인 박 의원이 검찰에 소환되고 총선 회계실무를 총괄한 사무부총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만큼 보다 분명한 사과와 재발방지책을 내놓아야 한다. 사전에 어느 선까지 보고받았는지도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 당이 제3당이 된 것은 유권자가 ‘새 정치’를 표방한 국민의당을 기득권 구태(舊態) 정당의 대안세력으로 봐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 비용을 갖고 장난치고도 이를 뭉개는 것은 기존의 정당을 찜 쪄 먹는 구태다. 안 대표는 공천 신청도 하지 않은 서른 살의 김 의원을 면접도 않고 당선 안정권에 배정한 데 대해서도 “전체 다 조사하고 투명하게 말씀드릴 것”이라고 했으나 아직 말뿐이다. 오늘 소환되는 실세 박 의원은 비례대표 선정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안 대표가 3당으로 키워준 국민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면 ‘비례대표 공천 의혹’부터 약속대로 규명해야 한다.

[중앙일보]

7. ‘비리 종합판’ 서영교, 의원직 사퇴가 답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갑질 비리의 종합판’ 의혹을 받아 온 서영교 의원에 대해 뒤늦게 감사에 착수했다. 서 의원의 비리 의혹은 친딸을 의원실 인턴으로 쓴 사실이 드러나며 처음 불거졌다.


이어 친동생과 친오빠를 각각 5급 비서관과 후원회 회계책임자로 채용한 사실이 밝혀졌고, 국정감사를 받는 법조 간부들과의 회식자리에 변호사 남편을 합석시킨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해 4급 보좌관에게서 매월 100만원씩 총 500만원을 후원금 명목으로 받고, 표절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땄다는 의혹도 더해졌다. 딸의 로스쿨 입학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심까지 꼬리를 물었다. ‘을(乙)지로 위원회’ 소속으로 여당·대기업의 비리·갑질을 누구보다 강하게 규탄해 온 서 의원이라 국민의 배신감은 더욱 깊었다.


더 한심한 건 서 의원의 비리가 줄줄이 드러났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해 온 더민주 지도부다. 누구 하나 서 의원을 꾸짖거나 국민에게 사과한 사람이 없다. 버티던 서 의원이 비난여론에 밀려 사과성명을 내고 법사위원 직을 사퇴하자 마지못해 감사에 들어갔을 뿐이다.


그동안 더민주가 비리 의혹에 휩싸인 소속 의원들을 감사한 결과를 보면 “시효가 지났다”며 넘어가거나 솜방망이 징계에 그친 게 대부분이다. 더민주 박완주 원내수석부대표가 서 의원에게 “그냥 무시, 무대응하세요”란 메시지를 보낸 것만 봐도 이 당의 ‘제 식구 감싸기’ 병이 얼마나 중증인지 알 수 있다.


당이 4·13 총선 공천 과정에서 서 의원의 비리를 알았음에도 넘어갔다는 의혹마저 나온다. 더민주의 감사만으로 서 의원이 죄과에 합당한 처분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서 의원 본인의 결단이 필요하다. 입으로는 정의와 서민을 외치면서 뒤로는 식구들 잇속 챙기기에 급급했다면 의원 자격이 없다. 잘못을 진실로 인정한다면 “사려 깊지 못했다”는 어정쩡한 한마디로 넘어갈 게 아니라 의원직을 사퇴하는 게 정답이다. 여야 지도부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소속 의원 전원의 주변을 철저히 조사해 친인척 채용이나 보좌진 갑질을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다.

8. 에어컨 기사 죽음 부른 위험의 외주화

빌라 3층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점검하던 40대 기사가 추락해 숨졌다. 안전장구도 갖추지 않은 채 위험한 작업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지난달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일어난 김모(19)군의 죽음과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 기사인 진모(42)씨는 지난 23일 오후 서울 월계동의 한 빌라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점검하다 8m 아래로 떨어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진씨는 건물 외벽에 매달려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헬멧 등 안전장구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진씨 개인의 과실이 아니라 시간에 쫓기며 일해야 하는 열악한 근무여건에 있었다. 진씨가 속한 하청업체 수리 기사는 한 달 동안 60건 이상을 수리하면 받는 기본급 130만원에 추가 수리 1건당 수당을 받아왔다. 많이 수리할수록 많이 버는 데다 ‘빠른 시간에 소비자 수리 요청을 처리하라’는 독촉도 심하다고 한다.


이름과 나이, 사고 현장, 업무 내용 등을 지우면 월급 144만원을 받으며 쉴 새 없이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구의역 김군 사건과 그대로 겹쳐진다. 에어컨 기사 진씨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열어볼 겨를도 없이 하루 14시간씩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후에도 계속해서 ‘외근 미결이 위험 수위’ ‘늦은 시간까지 1건이라도 절대적으로 처리’ 등 신속한 작업을 압박하는 문자가 왔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는 근로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 등에서 일할 경우 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하청업체 직원들이 일하는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위험 업무의 외주화가 또다시 죽음을 부른 것이다.


사람의 생명보다 비용과 속도를 우선시하는 시스템이 계속되는 한 지하철이든 빌라든 안전한 산업현장은 없다. 에어컨 기사의 안타까운 사망사고는 지난해 7월 경기도 안산시에서도 있었다. 위험한 업무들이 외주업체에 무책임하게 맡겨지는 일이 더 이상 되풀이돼선 안 된다. 국회는 생명·안전 관련 업무를 외주화 대상에서 제외하는 입법 작업에 즉각 나서야 할 것이다.

[세계일보]

9. 잿밥 타령 지방의원들, ‘미 주의회 박봉’ 똑똑히 보라

미국 메인주의 지사 부인이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엊그제 해산물 레스토랑에 첫 출근을 했다. 앤 르페이지 여사는 “돈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털어놓았다. 메인주지사의 연봉은 7만달러에 불과하다. 지난해 평균 환율로 계산할 때 약 7900만원이다. 미 주지사의 평균 연봉은 13만달러에 이르지만 10만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가 태반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출신지인 아칸소주는 8만7759달러, 콜로라도주는 9만달러다.


주지사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주 의원은 그야말로 박봉이다. 연봉이 4만~7만달러인 주가 수두룩하다. 뉴저지 주의회 의원의 평균 연봉은 4만9000달러다. 뉴저지주의 중산층 평균 소득 7만1919달러의 68%에 지나지 않는다. 공직에 앉아 돈벌 생각을 하지 않는 미국 사회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미 공직사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이유를 알 만하다.


우리나라는 전혀 다르다. 잿밥에만 눈이 어둡다. 선출직 공직자의 경우 시도 때도 없이 세비와 의정비 인상을 외친다.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는 엊그제 의정활동비를 2배 이상 인상해 달라는 건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광역의원은 150만원에서 380만원으로, 기초의원은 110만원에서 285만원으로 인상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의정활동비 외에 연간 수천만원의 월정 수당을 따로 받는다. 이들의 주장이 관철된다면 월정 수당을 합한 의정비는 광역의원의 경우 억대에 육박하게 된다. 경기도 의원은 9081만원, 서울시는 9010만원, 인천시는 8711만원으로 불어난다. 그런 돈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17개 광역시·도의원이 지난 3년간 발의한 조례는 연 평균 1건에 불과했다. 할 일은 하지 않고 미 주의원을 압도하는 억대 연봉을 챙기겠다니 될 법한 소리가 아니다. 그들의 눈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과 구조조정 한파에 신음하는 직장인들이 보이지 않는가. 그런 최소한의 정치 감각조차 없다면 차라리 정치를 접는 게 낫다.


박봉에도 부지런한 의정활동으로 민주정치를 떠받치는 미 주의원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들이 연봉 타령이나 했다면 미국 민주정치는 꽃을 피우지 못했을 터다. 지방의원들은 잿밥 타령을 하기 전에 지금 받는 의정비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부터 깊이 자문해 보기 바란다.

10. 경찰관·여고생 성관계 알고도 감추기 급급한 경찰

부산에서 학교전담 경찰관 두 명이 상담 대상인 여고생과 성관계를 맺은 충격적인 사실이 터졌다. 한 경찰서의 김모 경장은 지난 4일 자신이 관리하던 고교 1학년 여학생과 방과 후에 차 안에서 성관계를 했다. 그는 이 학생이 자주 결석을 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자 여러 차례 상담하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또 다른 경찰서의 정모 경장은 지난달 말 청소년 상담 관련 기관에서 여고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내용의 통보를 받았다.


더 놀라운 일은 해당 경찰서들이 이들 비위 경찰관을 사표만 받고 은폐했다는 점이다. 경찰서는 여고생이 김 경장과의 성관계를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소문이 퍼지자 아무런 징계도 없이 사표를 수리했다. 정 경장에 대해서도 사표만 수리한 채 진상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두 경찰관의 비위는 전직 경찰 간부가 SNS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전파하면서 일파만파로 번졌다. 온라인에선 상급기관인 부산경찰청이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학교전담 경찰관은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2012년 전국적으로 도입됐다. 학교폭력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한 강연을 하고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을 상담해 적응력을 키워 주는 역할을 한다. 교육부가 학교전담 경찰관 제도가 학교폭력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며 확대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적도 있다. 그러나 허점이 많다. 경찰관 한 명이 평균적으로 초·중·고 12∼16개 학교를 담당하고 남·녀 구분 없이 상담한다. 상담소가 없는 학교가 많다 보니 문구점이나 차량에서 상담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번에 불미스러운 일도 경찰관의 차 안에서 이뤄졌다. 


학교전담 경찰관이 여고생들과 성관계를 했다는 것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성착취를 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찰관과 학생 간에 음성적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확인된 셈이다. 어느 단계에서 보고되지 않고 은폐 시도가 이뤄졌는지 진상을 가려야 한다. 이번 사건을 폭로한 전직 경찰관은 “여학생들과의 문제는 부산경찰청에 국한된 게 아니라 전국적이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주장대로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점검하고 근무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도 뒷짐만 지고 있을 게 아니라 폭력예방이라는 이름 아래 학생 인권 침해가 없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동아일보][박윤석의 시간여행]경남도청 이전도 외국인이 결정했다

얼마 전 신공항을 어디다 두느냐로 큰 분란이 있었지만, 90여 년 전에는 도청을 어디에 두느냐로 영남에서 큰 갈등을 빚은 일이 있다. 그때는 부산이냐, 진주냐로 충돌했다. 부산이 경남의 한 도시이던 시절 얘기다. 


‘경상남도 도청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기는 일로 진주 사람들은 극력으로 당국에 반대 운동을 하는 중이다.’(동아일보 1920년 4월 21일자)


도청의 이전 결정이 조만간 발표되리라는 보도가 처음 나온 4월 8일 이후 들끓는 진주의 민심을 전하는 기사다. 경남의 중심이라는 전통적 자부심에 더해 생활의 편의와 경제적 이해득실이 걸린 문제라 인화성이 매우 강했다. 1920년대 전반 5년을 휩쓸게 되는 갈등의 서막이었다.


‘도청 이전이 부산으로 내정되었다는 소문에 진주 시민들은 크게 놀라 인심이 소란한 가운데 상점 문을 굳게 닫고 시민대회를 열고 여론이 격렬하다. 대회를 언제까지든 계속하여 도청 이전을 중단시키려 운동 중이다.’(4월 13일자)


경남도지사는 기자의 확인 요청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도청이 진주에 있든 부산에 있든 이해는 상반되기 마련이니까, 내 자신의 희망은 말하지 않겠소. 도청이 진주에 있으면 경남의 중심 지점이어서 행정상 가장 편리하다는 말도 일리가 있으나, 기찻길에서 3백 리나 떨어진 불편한 곳에 도청을 두는 것은 도의 행정 처리상 심히 불편하오.’(4월 21일자)


마산∼진주 철도가 아직 연결되기 전이었다. 일본인 도지사는 덧붙여 말하기를, ‘진주는 조선인이 많이 살고 부산은 일본인이 많이 사니까 일본 사람 편의만 위하여 이전한다고 진주 시민들은 말하나 이는 감정으로 나오는 말이요, 사실상 도의 사무 처리상 그러한 것’이라 했다.


진주 시민들은 ‘도청 이전 방지 동맹’을 결성했다. 시민 대표 8명이 총독부로 올라가 상경 투쟁을 벌였다. 


그로부터 1년 후. 평안북도 도청은 의주에서 신의주로 이전이 결정되어 청사 신축에 들어갔다. 함경북도 도청은 새로이 떠오른 요충지 나남으로 이전이 완료되었다. 동아일보의 매일 고정 칼럼 ‘횡설수설’은 이렇게 물었다. ‘경의선상에 있는 사리원에서는 도로공사가 한창인데, 황해도청을 해주로부터 사리원으로 옮길 준비라 한다. 이번에는 해주 시민이 반대 운동을 개시할 순서인가.’(1921년 6월 6일자) 


이후 경남도청 이전 논란은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으나 1924년 연말 도청 이전이 전격 발표되었다. 이전 설이 처음 보도된 지 4년 8개월 만에 확정 발표가 나온 것이다. 부산을 중심으로 인근 군에서는 찬성하는 여론이고, 진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 경남에서는 크게 분개하여 연일 격렬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호외까지 발행한 신문기사의 제목이 그 분위기를 전해준다. ‘도청 이전 문제로 전장처럼 변한 진주 일대의 살기’ ‘운동단체 결사시위, 공직자 연대 사직’….


반대 측은 다시 상경 투쟁에 나섰다. 조선인 5명과 일본인 6명 등 지역 유지들로 이루어진 대표단은 총독부 면담에서 다음과 같이 진정했다. ‘대다수가 조선 사람인 진주 및 인근 14군의 130만 도민 의사를 무시하고, 일본 사람이 다수인 부산 및 인근 5군의 50만 명을 위하여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은 식민정책 철저 실행 외에 별다른 이유가 없다.’


부산 인근의 5개 군은 동래 울산 양산 김해 밀양이었다. 모두 한마음으로 부산 유치를 환영했다. 1924년은 그렇게 가고 그 다음 해 3월에 도청 이전 작업이 벌어졌다. 도청 직원 391명, 가족까지 1400여 명에 달하는 일본인 조선인의 집단 이주였다. 진주로서는 도청을 빼앗김으로 해서 도시의 세가 기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도청도 주민의 뜻과 무관하게 외국인의 판단에 따라 이전이 결정됐다.


2. [동아일보][표정훈의 호모부커스]독서와 등산

중국 청나라의 기효람(紀曉嵐·1724∼1805)은 독서의 즐거움을 이렇게 읊었다. ‘책 읽는 것, 마치 산에서 노니는 듯, 눈길 닿는 곳 즐겁지 않은 것 없어라. 바위와 골짜기 거니는 것, 어찌 힘들다 하리오. 안개와 노을이 씻어주며 또한 깨우쳐주니 이내 가슴 시원해라. 사립문 종일 닫고 나직이 소리 내어 책 읽는 뜻이 여기 있다네.’


목은 이색이 말한다. ‘글 읽기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아서 깊고 얕음이 모두 스스로 깨쳐 얻음에 달려 있다.’ 퇴계 이황이 비유한다. ‘산을 유람하는 것이 책 읽는 것과 같구나. 낮은 데서부터 공력을 다할 것이며 깊이를 얻는 것도 자신에게 달렸어라.’ 한강 정구(1543∼1620)가 거든다. ‘독서는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아서 두루 돌아다녀도 그 뜻을 모르는 이가 있으니, 산수(山水)의 정취를 알아야 유람했다 할 수 있으리.’


이상은 모두 제목이나 구절에 ‘독서는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는 뜻의 독서여유산(讀書如游山)이라는 표현이 있는 한시(漢詩)들이다. 조운도(1718∼1796)의 ‘유청량산기(遊淸凉山記)’도 독서를 말한다. ‘산을 언뜻 보고 놀다 지나가기를 욕심내거나 힘들여 오르다 지치면 빼어난 경치를 구경할 수 없거늘, 내가 예전 읽었던 책은 이 산을 처음 볼 때와 마찬가지였으니 산을 유람하는 것이 독서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을 오르며 깨치듯 책 읽으며 스스로 깨치라는 이색의 조언. 낮은 데서 차근차근 정성껏 밟아 오르는 착실한 독서로 높고 깊은 지혜에 스스로 도달하라는 이황의 격려. 이것저것 섭렵하는 데 치중하기보단 책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주력하라는 정구의 권고. 책 읽을 때 건성으로 지나가지도 진을 빼며 힘들이지도 말라는 조운도의 안내. 선인(先人)들이 책 읽으며 산 오르며 깨달은 독서의 지혜다.


우리나라에서 작년 한 해 책 한 권 이상을 읽은 사람의 비율, 즉 연평균 독서율은 성인의 경우 65.3%로 1994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저 수준이었다. 1인당 독서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최하위권이며 유엔 193개 회원국 중 160위권이라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이상 산을 찾는 등산 인구는 2000여만 명으로 추정된다.


옛 선비들의 ‘독서여유산’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취미란에 가장 흔하게 적어 넣곤 하는 것이 독서와 등산 아니던가. ‘한 달에 한 권 이상 책을 읽는 독서 인구 2000여만 명’에 이르러 요산요서(樂山樂書)하는 미래를 꿈꿔 본다.


3. [동아일보][김희균 기자의 교육&공감]퇴보하는 수학능력 평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994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처음 도입됐다. 기존의 학력고사가 암기식, 주입식, 단답형 교육을 만든다는 지적에 따라 통합교과적 소재로 사고력을 측정하고자 도입된 것이 바로 수능이다. 교과서를 얼마나 달달 외웠느냐가 아니라, 대학 교육을 받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평가한다는 점에서 학력(學力)이 아닌 수학능력(修學能力)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93년 1월 10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국립교육평가원(당시 수능 주관 기관)이 설명한 수능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 수준에 머물지 않고 자료의 해석, 원리의 응용, 현상이나 사실에 대한 논리적 분석과 판단 등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를 출제한다.’


‘고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게 출제하되, 문항의 소재나 지문 등에 교과서 이외의 것을 활용할 수도 있다.’


수능 2년 차인 나로서는 당시 이런 설명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사회탐구 영역에서는 암기한 배경 지식이 없더라도 문제에 제시된 도표나 지도를 해석하면 풀 수 있는 신유형이 등장했다. 언어 영역에서는 교과서 이외의 지문이 많이 출제돼 평소 문제집 대신 문학전집이나 시집을 끼고 살던 친구들이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물론 교과서를 성실히 외워도 시험을 준비하기 어렵다는 불만과 우려도 있었다. 이에 대해 국립교육평가원은 오히려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지금까지의 암기 위주 학습 방법으로 대비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시험의 기대효과다. 고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수능을 들여다보면 과연 당시 대대적인 투자와 연구를 감수하고 새로운 대입시험을 도입한 취지가 살아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그 사이 수능은 평가 영역과 방식 등이 많이 바뀌었다. 도입 첫해에는 1년에 두 번 실시했으나 두 시험 간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면서 이듬해부터는 1년에 한 번만 실시하게 됐다. 1997학년도에는 만점이 200점에서 400점으로 배가 됐고, 1999학년도에는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를 선택과목제로 바꾸면서 표준점수제도가 도입됐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면 실행 결과를 반영해 오류를 바로잡고 더 나은 체계를 만드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앞서 언급한 변화들도 생소한 제도를 더 잘 만들어보기 위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EBS 연계 정책만큼은 후퇴한 정책이다. 수능이라는 제도 자체를 잘 만들어보겠다는 본질적인 목표가 아니라, 사교육을 줄여보겠다는 부수적인 목표가 우선 작용한 탓에 부작용이 생겼다. 이명박 정부는 수능에 EBS를 연계한 이후 대형 인터넷 강의 업체들의 매출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정책 목표를 달성했다고 기뻐했다. 2011학년도부터는 수능과 EBS의 연계율을 무려 70%로 확대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이제 학생들은 ‘수능 공부=EBS 교재 암기’라고 생각한다. 고3은 물론이고 1, 2학년 교실에서조차 교과서는 EBS 교재에 떠밀려 쫓겨났다. 


수능 난이도를 따질 때도 문항의 질은 중요치 않다. EBS 교재의 흔적이 얼마나 나왔느냐가 학생들의 체감 난이도를 가른다. 6월 수능 모의평가에서도 보듯 학생들은 EBS 교재 밖에서 지문이 많이 나오면 일단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EBS 연계율이 70%에 달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문제 풀기가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있다. 출제진 입장에서는 나머지 30%에서 변별력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일부 문항을 지나치게 꼬고 비튼다는 지적이 나온다. 2년간 육아휴직을 하고 올해 복직한 한 고교 국어 교사는 “예전에는 수능 문제지를 슥 훑어보면 대부분 답이 바로 나오고 난이도도 가늠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6월 모의평가 문항을 보니 풀기가 쉽지 않더라”면서 “EBS 교재 외의 지문들을 보면 고교생 수준에서는 너무 어렵거나 쓸데없이 긴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문제은행 방식인 미국 수능(SAT)과 달리 우리나라 수능은 매년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새로 출제하는 이유에 대해 교육 당국은 “우리나라의 과도한 입시열을 감안하면 문제은행 방식으로 운영할 경우 수험생들이 기출 문제를 몽땅 외워 버리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한다. 그러나 EBS 연계가 누적되면서 사실상 EBS 자체가 거대한 문제은행이 돼 버렸다.


이쯤에서 다시 1993년 국립교육평가원의 설명으로 되돌아가 보자.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다. 먼저 ‘문항의 소재나 지문 등에서 교과서 이외의 것을 활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는 맞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교과서 이외의 것’이라는 것이 다양하고 창의적인 소재가 아닌 EBS로 획일화됐을 뿐이다. ‘암기 위주의 학습 방법으로 대비하기 어렵다는 것’은 틀렸다. 오히려 교과서만 못한 EBS 교재 암기에 매달리게 됐을 뿐이다.


4. [중앙일보]​[분수대] 아닌 건 아닌 거다

“엄마, 이 문제 좀 풀어봐.” 기말고사를 앞둔 아들이 학교 영어 기출문제를 하나 던진다. 보기 좋게 틀렸다. 이번엔 국어 기출문제. 또 틀렸다. 아들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나 틀린 거, 다 틀렸네.”


실력 없는 사람이 연장 탓하고 공부 못하는 사람이 문제 탓한다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한국 학교 시험은 실력 가늠용보다 오답 유도 기능이 더 크다”는 주변 엄마들의 불만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한 문제였다. 난이도 조절을 위해 틀리라고 낸 문제임이 분명했다. 숱하게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반복해서 푼 공부 열심히 한 아이들만 맞힐 수 있는 문제라는 얘기다. 그걸 알면서도 대체 왜 이런 문제의 정답을 맞히자고 아이들이 밤잠 안 자며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검색 하나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끄집어 쓸 수 있는 ‘구글 노잉’의 시대가 열리면서 단순 지식보다 사고력이 훨씬 중요한 덕목이 됐다. 그럼에도 단순무식한 암기나 출제자 의도를 파악하는 문제풀이 요령 습득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평소 생각해왔다. 기본 소양을 쌓고 공부하는 자세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생각이 달라졌다. 틀리라고 덫을 쳐놓은 문제의 정답 맞히기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이건 교육이 아니라 그저 괴롭히기라고 말이다. 상대평가인 내신등급 조절을 해야 하는 중·고교 교사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교육을 왜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면 답은 나온다.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런데도 부모는 어쩔 수 없다며 장단을 맞추고, 그 바람에 아이들만 죽어난다.


이런 식으로 계속 교육을 하면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의 말대로 ‘체념하고 요구하는 자’만 양산할 수밖에 없다. 무조건 기존 사회를 재생산하도록 강요받은 만큼 과거보다 여건이 나빠지면 스스로 노력하기보다 국가 시스템에만 요구하고,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좌절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에 열광하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현실화한, 일자리를 위협받는 성난 저소득층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멀리 미국·영국까지 갈 것도 없다. 내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교육이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닐까. 이 말을 하는 와중에도 한국의 교육 시스템 탓을 하면서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냐고 핑계를 대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데 말이다.


5. [중앙일보][강찬수의 에코 사이언스] 제비꽃의 ‘자식 사랑’

아파트 화단의 나무 그늘 아래 풀잎이 무성하다. 자세히 보니 꽃이 없어서 그렇지 제비꽃이 분명하다. 가냘프게만 보였던 봄의 제비꽃보다 훨씬 크고 무성한 짙은 녹색의 잎을 피우고 있었다. 이른 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생활사(life cycle)가 완성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름에도 계속 자랄 줄이야. 씨앗을 맺은 뒤에도 계속 성장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화단을 지날 때마다 궁금해져 이런저런 자료를 뒤적였다.


답은 폐쇄화(閉鎖花)였다. 꽃받침이나 꽃잎이 열리지 않은 채 자체적으로 꽃가루받이와 수정을 해서 씨앗을 만드는 게 폐쇄화란다. 건강한 후손을 보려면 다른 개체로부터 꽃가루를 받아들여 수정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혼자서 끙끙거리며 씨앗을 만들어내는 데는 속사정이 있을 법도 하다.


폐쇄화는 제비꽃·괭이밥 같은 종류 외에도 다양한 식물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보통 건조하거나 온도가 낮을 때, 빛이 부족할 때 폐쇄화로 씨앗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폐쇄화는 식물이 악조건 속에서도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고안한 방법인 셈이다.


봄에 곤충을 불러들이는 개화수정(開花受精)으로 한 차례 씨앗을 만들어 퍼뜨렸는데도 제비꽃이 다시 폐화수정(閉花受精)에 나서는 걸 보면 여름·가을을 흘려보내기 아쉬운 모양이다. 봄에 다른 꽃보다 먼저 꽃을 피웠을 땐 곤충을 불러들이기 쉽지만 다들 화려한 꽃을 피우는 한여름에는 작은 제비꽃이 경쟁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한 해결책이 폐쇄화일 수도 있겠다.


제비꽃이 번식을 위해 애쓰는 모습은 또 있다. 씨앗을 싸고 있는 꼬투리가 익으면 세 조각으로 벌어지고, 씨앗은 멀리 튕겨 나간다. 씨앗에는 ‘엘라이오솜’이란 게 붙어 있다. 단백질과 지방 덩어리다. 개미가 제비꽃 씨앗을 물어다가 개미 유충에게 주면, 유충은 엘라이오솜만 먹고 씨앗을 남긴다. 개미가 남은 씨앗을 개미집 밖에 내다버리면 씨앗은 멀리 퍼진다. 개미와 제비꽃은 이렇게 공생한다.


2011년 브라질에서는 제 스스로 씨앗을 땅에 심는 식물이 발견돼 화제가 됐다. 스피겔리아 제누플렉사란 이름의 이 식물은 키가 2.5㎝에 불과한데, 씨앗이 맺히면 가지를 조심스럽게 땅 위로 내려 부드러운 이끼 속에 씨앗을 묻어둔다.


이 같은 식물의 노력은 저출산과 아동학대로 고민하는 우리 사회와 묘하게 대비된다. 제비꽃의 다른 이름은 ‘오랑캐꽃’이지만 애틋한 자식 사랑만큼은 오랑캐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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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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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3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우려되는 '맞춤형 보육' 집단 움직임

내달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가도록 예정된 ‘맞춤형 보육’ 방안을 놓고 어린이집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이다. 일부 어린이집이 오늘부터 이틀 간 집단 휴원에 들어가며 그 사이 정부가 개선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순차적으로 폐업 수순을 밟기로 했다는 것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동참에 대한 목소리가 크다는 점에서 단순한 엄포로 들리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경영상의 문제다. 정부가 맞춤형 보육 실시를 전제로 보육료를 6% 올려준다고 약속했지만 그것으로는 모자라다는 얘기다. 그동안 5년째 보육료가 동결되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양상이다. 이번 맞춤형 보육을 받는 유아들에 대한 보육료 지원을 20% 삭감하겠다는 방침도 그리 마땅치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정상 운영이 어려워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맞춤형 보육 방안은 지금 우리 상황에서 가장 무난한 선택이다. 2살 이하의 유아를 대상으로 종일반(12시간)을 운영하되 그렇지 않으면 맞춤반(6시간)으로 돌린다는 것이니, 각 가정의 맞벌이나 홀벌이 사정에 따라 보육 시간을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정부 지원예산이 375억원 줄어든다고 하지만 보육료 인상으로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지난해보다 1440억원 늘어나게 된다.

문제는 이에 대한 정부의 설득 노력이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일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가 ‘육아선진화 포럼’을 개최했지만 일방적인 홍보로 빈축을 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맞춤형 보육 방안이 진일보한 대책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방법으로는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어렵다. 그러고도 어린이집의 집단 움직임에 대해 ‘법에 따른 엄정 대처’ 방안만 내세워서는 곤란하다.


여야 정치권도 가급적 이 문제에 대해 공감대를 이뤄나갈 필요가 있다. 제도 시행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얘기로 갈라져서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일단 예정대로 시행하면서 점차적으로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어린이집에 대해서도 진정성 있는 대안을 내놓고 설득하는 것이 먼저다. 복지부가 어린이집 단체들과 물밑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니 타협점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2. 세계가 영국의 선택을 주목한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오늘 영국 전역에서 실시된다. 그동안 잔류 운동을 벌여 왔던 조 콕스 하원의원이 괴한에게 살해된 지난 16일 이후 잔류론이 상승세라지만 여전히 탈퇴 여론도 만만치 않아 예측불허의 상황이라고 한다. 영국이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자 EU 핵심축이라는 점에서 투표 결과에 따라 세계 경제가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영국민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EU 탈퇴 여부에 전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파운드화 급락은 물론 물가폭등, 일자리 축소 등 영국 경제에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9년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5.5%가 축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U의 향배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EU 경제의 17%, 인구의 13%를 차지하고 있는 영국의 EU 탈퇴는 다른 회원국의 연쇄 이탈로 이어져 EU 붕괴를 부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세계 금융시장과 경제에 몰고 올 엄청난 충격과 혼란이 걱정이다.

국제사회는 이 같은 혼란을 우려해 잔류를 호소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브렉시트는 매우 부정적인 경제 여파를 가져올 수 있다”며 잔류 지지 의사를 밝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등 국제기구 수장들과 크리스토퍼 피사리데스 교수 등 10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도 탈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독일 BMW를 포함한 글로벌 기업들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유럽의 미래와 글로벌 경제의 안정을 위해 영국민의 ‘현명한 판단’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탈퇴로 결론이 나더라도 영국과 EU 수출비중이 10.5%로 낮아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게 정부 분석이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브렉시트 여부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증폭될 수 있다”며 경제·금융상황에 계속 경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급격한 자본 유출 가능성 등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면밀한 대응책이 마련돼야 한다. 브렉시트가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서울신문]

3. 北 무수단 미사일 집착 말고 주민 생계 돌보라

북한이 어제 오전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중거리 탄도미사일 ‘무수단’ 두 발을 발사했다. 군 당국은 먼저 발사된 미사일은 150㎞를 날아가 공중폭발했으며 나중에 발사된 미사일은 각도를 높여 쏘아 400㎞를 날아간 뒤 동해상에 낙하한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은 지난 4월 중순 이후 지난달 말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모두 실패한 바 있다. 결국 여섯 번째 만에 상당한 기술적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고 군 당국은 밝혔다. 일본 전역과 태평양 괌 미군기지까지 사정권에 둔 무수단 미사일의 위협이 차츰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3월 “빠른 시일 안에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탄도 로켓 실험 발사를 단행하라”고 지시한 바 있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어제 발사 장면도 직접 참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무수단 미사일에 병적으로 집착해 왔다. 강력한 제재 국면에서도 김정은이 끊임없이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는 것은 대내외적으로 중거리 핵무기 운반 능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유사시 한반도로 전개되는 미군 증원 전력에 대한 타격 능력을 보여 주려는 목적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함께 운용한다면 상당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미사일 발사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발사 행위를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니만큼 강력히 규탄하는 동시에 국제사회가 일치단결해 대북 제재 강도를 한층 더 높여야만 할 것이다. 최근 북한은 여러 차례 대화를 제의한 데 이어 중국 베이징에 대표단을 보내 반관반민 성격의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에도 참여하고 있지만 이번 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유화 제스처가 기만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셈이다. 다소 느슨해지는 감이 없지 않았던 제재 고삐를 더욱 죄어야만 한다.


제재가 계속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삶은 한층 피폐해지고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엘리트층인 해외 식당 종업원들이 연쇄적으로 집단탈출을 하고 있겠는가. 그런데도 김정은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미사일 도발에만 집착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무수단 미사일 한 발을 발사하는 데 2000만 달러가 투입된다는 추정에 비춰 보면 북한은 최근 두 달간 무려 1억 2000만 달러를 쓸데없이 허공에 날려 보낸 셈이다. 그 돈이면 북한 주민들의 두 달치 식량을 수입하고도 남는다고도 한다. 김정은이 정녕 북한 지도자라면 주민들의 생계부터 돌보는 게 도리다.

4. 김해공항 허브공항으로 거듭나게 힘 모아야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로 나뉘어 영남권 광역자치단체 간 지역 대결 양상을 띠던 신공항 유치전이 제3의 길로 출로를 찾았다. 용역을 맡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 측이 경제성·안전성·환경성 등을 망라한 전체 평점에서 가장 앞섰다며 김해공항 확장안에 손을 들어 주면서다. 결과적으로 보면 다행스러운 결말이다. 지역 갈등이 폭발하는 최악의 상황은 면해서다. 그러나 부산·대구 지역의 여야 정치인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등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청와대는 물론 여야 정치권이 이번 사태를 성급하게 대형 국책사업을 공약으로 내건 전비(前非)를 자성하고 앞으로 이를 자제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영남권 신공항이 김해공항을 대폭 확장하는 방식으로 낙착되기까지 무려 10여년을 표류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신공항 검토 지시를 한 뒤 이명박 후보가 2007년 대선에서 약속했다가 집권 후에 부산 대 대구·경북·경남·울산으로 민심이 갈리자 백지화했다. 2012년 대선에선 박근혜·문재인 두 여야 후보가 경쟁적으로 공약으로 내걸었다. 꼴뚜기가 뛰면 망둥이도 뛰듯 영남권 단체장과 여야 의원들도 수시로 신공항 약속을 남발했지 않았나. 이로 인해 높아진 지역민들의 기댓값이 야기한 갈등과 국정 혼선은 비용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는 신공항 건설과 같은 가장 전문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안을 정치 논리로 접근한 탓이다. 즉 표심에 휘둘려 대국을 보지 못한 결과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유사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는 게 옳다. 그런 맥락에서 청와대가 김해공항 대폭 확장이 곧 신공항이라는 논리로 공약 번복 논란에서 벗어나려 하는 건 옹색해 보인다. 외려 공약 불이행을 사과하면서 경제성도 없고 국민 통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밀양 또는 가덕도 신공항을 포기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당당하게 국민을 설득하는 게 정공법일 것이다. 김해공항 확장안의 합리성에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불이행 책임을 남 얘기하듯 하는 더불어민주당 일각의 태도도 가관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대선·총선에서 연거푸 공약으로 내걸었고, 최근 가덕도 방문 이벤트까지 벌인 터라 자가당착인 까닭이다. 여든 야든 신공항 문제로 더는 지역 정서에 불을 붙이거나 다시 대선 공약화할 생각일랑 꿈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다행히 이번에 외국 용역업체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듯 김해공항 확장안을 선택했다. 이로써 최대 6조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다만 어제 황교안 총리가 “영남권 거점 신공항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지만, 이는 활주로를 추가하고 공항 터미널을 신축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김해와 영남권 주요 도시 간 교통망을 확충하고 여객·화물 수요를 김해공항으로 집중시킬 후속 조치가 긴요하다. 김해공항이 동남권 허브공항으로 자리 잡으려면 중앙정부나 부산뿐만 아니라 영남권 자치단체가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 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영남 지역 단체장들이나 정치인들이 속히 소지역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 대승적으로 손을 잡기를 당부한다.

5. 투기 바람 못 잡으면 경제에 치명상 줄 수 있다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그제 분양권 불법거래 실태 점검에 나섰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과 위례신도시, 하남 미사 등 수도권 3곳과 부산 1곳의 아파트 모델하우스, 공인중개사무소 등을 대상으로 다운계약과 불법전매, 시세 차익을 노린 떴다방, 청약통장 거래 등을 집중 단속했다. 지난해 말부터 ‘미친 재건축’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부동산시장이 국지적으로 과열된 가운데 각종 탈·불법까지 판치자 팔짱을 끼고 있던 정부가 뒤늦게 개입을 시작한 것이다. 올 1~5월까지 아파트 분양권 거래는 5만 4187건에 17조원을 넘어섰다. 분양권에 붙은 전체 프리미엄, 즉 웃돈은 7923억원으로 건당 평균 1460만원이 얹혀져 거래됐다. 서울에서는 평균 2645만원, 경기에서는 1952만원의 웃돈이 붙었다. 말 그대로 투기다.


평균 분양가도 치솟고 있다. 강남구 개포주공 3단지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가는 3.3㎡당 평균 4500만원 선이지만 일부 평형은 5000만원을 넘어섰다. 주상복합이 아닌 일반 아파트로는 역대 최고 분양가다. 자고 나면 1000만원씩 뛴 말이 빈말이 아니다. 여유 자금이 있는 웬만한 중산층도 넘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런데도 물량이 달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서울시의 ‘2016 서울 서베이 도시정책지표 조사’ 결과에 비춰 보면 딴 세상 얘기일 수밖에 없다. 조사에 따르면 30대 서울시민의 88%가 전·월세를 살고 있다. 10명 중 9명꼴이다. 게다가 전체 시민의 전·월세 평균이 58.9%로 자기 주택보다 높다. 최근 분양 시장은 도무지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


과열 책임은 정부에 있다. 집값을 띄워 경기를 살리겠다며 무차별적으로 규제를 풀어서다. 전매 제한을 완화한 데다 분양가 상한제도 폐지했다. 빚을 내 집을 사도록 가계대출 규제도 크게 낮췄다. 1%대의 최저금리도 한몫했다. 시중에 풀린 유동자금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부동산으로 몰리는 형국이다.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방치했다가는 부동산시장 자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서둘러 집단대출 규제를 비롯해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떴다방 등 거래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는 당연히 엄단해야 한다. 물론 부동산 전체 경기를 냉각시켜서는 안 된다. 하지만 투기 바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거품이 꺼질 때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동아일보]

6. 참으로 부족한 박 대통령의 ‘갈등관리 리더십’

영남권 신공항 무산에 대해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이 어제 오전 “김해공항 확장은 사실상 신공항으로, 동남권 신공항이 김해공항 신공항이 되는 것”이라며 “(대선) 공약 파기가 아니라 어려운 문제이지만 약속을 지켰다”고 주장했다.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연구용역을 맡은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항공 안전과 경제성 등을 종합 판단해 김해공항 확장을 최적의 대안으로 발표한 데 대해서는 본보 역시 ‘합리적 결정’으로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약속을 지켰다”는 청와대 발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철석같이 믿었을 영남 주민들의 실망과 분노를 손톱만큼도 배려하지 않은 면피성 궤변이다. 


박 대통령도 어제 오후 신공항 결정 과정을 언급하며 “이렇게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 대해 관련 당사자들의 합의와 전문기관의 의견 존중, 정부의 지원이 잘 조화된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갈등 전문가의 논평을 듣는 듯하다. 이해관계와 가치가 엇갈린 공공 갈등의 경우 합리적 토론과 숙고(熟考)를 통한 합의, 그리고 승복으로 풀어내느냐가 민주주의 수준을 말해준다. 그러나 신공항 문제는 박 대통령 자신이 촉발시킨 사안이다. 국민과 공감하지 못하는 이런 발언으로 영남권의 들끓는 민심과 정치권의 반발을 가라앉힐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정이 나온 바로 다음 날인 2011년 3월 31일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라 유감스럽다”며 “(향후 대선 공약으로) 동남권 신공항은 계속 추진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음 날인 4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공약을 지킬 수 없어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까지 했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부산 시민 여러분께서 바라는 신공항 반드시 건설할 것”이라고 외쳤던 박 대통령이 이제 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김해 신공항’ 운운하는 것은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먼 ‘갈등관리 리더십’이다. 


박 대통령에게서 배운 듯 서병수 부산시장은 민자(民資)를 유치해서라도 가덕도에 공항을 짓겠다고 나섰다. 대구 유일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부겸 의원은 대구 최고(最古)의 신문이 1면을 백지로 내면서 항변할 만큼 국민이 농락당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 혈세로 생색내기에 재미 들인 정치인들의 비용 개념을 무시한 포퓰리즘 발상이다. ADPi의 결론을 검증하겠다는 지방자치단체들의 행태도 사회적 불신만 증폭시킬 뿐이다. 지금도 고추 말리는 데나 쓰는 지방 공항이 많은 현실을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묻고 싶다. 


이명박 정부 때 나왔던 김해공항 확장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진작 받아들였더라면 7년간의 국력 낭비와 갈등 비용은 치르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신기루 같은 신공항 공약으로 날을 지새우지 않으려면 대통령부터 정치권, 단체장들까지 모두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선거 때마다 부도가 뻔한 공약의 남발을 방지하고 국책사업의 표류도 막을 수 있다.

7. 기재부가 세금감면 실태 밝힌 뒤 법인세 개편 논의하라

정부가 외국인투자기업에 폭넓은 세금감면 혜택을 줬지만 일자리 창출 효과는 적고 국내기업이 받는 역(逆)차별이 컸다고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어제 공청회에서 발표했다. 대기업이 공익법인에 출연할 때 법인세를 깎아주는 제도는 조세 회피나 변칙적 부(富)의 세습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매년 이맘때 열리는 세법 공청회는 기획재정부가 세법 개정안에 담을 주요 내용을 미리 제시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올해는 외투기업과 공익법인에 대한 법인세 감면을 손질하는 세법 개정을 추진할 모양이다. 하지만 법인세 개편작업이 부분적인 땜질에만 그친다면 연간 세수 40조 원이 넘는 법인세의 근간이 정치 논리에 휘둘릴 수 있다.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더불어민주당은 과세표준(세금부과 기준금액) 500억 원 초과인 대기업에 대해 현행 22%의 법인세율을 25%로 높이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어제 국회 연설에서 “중부담-중복지로 가야 한다”며 조세부담 조정을 제안했다. 그러나 조세재정연구원은 법인세율을 1%포인트 올리면 경제성장률이 최대 1.13%포인트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새누리당은 “경기 회복의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자는 모순”이라며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문제는 정치권에서 표가 필요할 때마다 선심성 감면제도를 도입하는 바람에 혜택이 어디에 얼마나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받는 세금지원 효과를 분석해야 하지만 현실은 ‘깜깜이’다. 2014년 기준 법인세 평균 실효세율만 해도 기재부(17.2%), 국회예산정책처(14.2%), 안 대표(순이익 5000억 원 이상 16%, 5000억 원 이하 18%)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연구개발(R&D) 촉진, 고용 창출, 기부 유도정책 등 몇몇 감면 항목만 고친다면 자칫 중소기업 R&D가 타격받거나 대기업 고용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 


모든 정보를 틀어쥔 기재부에서 230개에 이르는 비과세·감면 항목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실제 세 부담을 얼마나 줄여주는지 분석해 공개해야 한다. 이 토대 위에서 공정하면서도 경쟁력도 살리는 세제 개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중앙일보]

8. ‘양극화 해소’ 입 모은 여야, 실천으로 보여라

어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연설을 마지막으로 20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마무리됐다. 여야 주요 3당 대표 모두 양극화를 가장 큰 문제로 꼽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 대표는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면 우리 공동체의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며 “소수가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 공공은 민간에 대한, 재벌 대기업은 하청업체에 대한, 기성세대는 미래세대에 대한 기득권을 각각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더 가진 기업과 근로자가 양보하는 중향(中向) 평준화를 지향하자”고 제안했다. 상위 1%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과 재벌들의 불법·편법적인 행위를 규제해 분배의 형평성을 높이자는 주장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경제민주화와 포용적 성장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 등) 거대 경제세력이 나라 전체를 지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의회에서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극화 해결책으로 보수가 분배를, 진보가 성장을 거론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양극화는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좀먹는 중병이 된 지 오래다.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19세 비정규직 김모군이 열차에 치어 숨졌다. 사상 처음으로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 임금의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계와 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공과 민간, 원청과 하청 간의 양극화가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교육을 통해 대물림되는 추세도 뚜렷하다. 헬조선과 금수저·흙수저 논란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국민의 90%가 노력해도 잘살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이 상징하는 극단주의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보여주는 고립주의가 대한민국에서도 발호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지금까지 정치권은 양극화를 국가가 아닌 정파의 시각에서 바라봐 왔다. 새누리당은 귀족 노조를 공격하며 대기업을 감쌌고, 야당은 재벌 비판으로 반사이익을 노렸다. 보수와 진보가 각각 성장과 분배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양극화 현상의 단면만을 골라 자신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형성하려 했을 뿐이다. 진영논리의 포로가 된 것이다.


3당 대표의 연설은 이런 정치권이 바뀌는 계기가 돼야 한다. 중도 성향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적 제스처로 끝나서는 안 된다. 말이 아닌 실천을 통해 국가적 문제를 고칠 능력이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입증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새누리당이 대기업을, 야당이 노조를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민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양극화를 해결할 리더십을 갈구하고 있다. 각 정당이 이런 요구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내년 대선 결과가 좌우될 것이다.

9. 미세먼지 공포 WHO 탓하는 윤성규 장관 사퇴하라

국민은 올 상반기 내내 생활환경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건강에 치명적인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미세먼지 공포에 시달렸고, 정부가 ‘클린 차’라고 한 경유차는 폴크스바겐 등의 사기극임이 밝혀져 큰 충격을 받았다. 10여 년 만에 실상이 드러난 ‘안방의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국민의 마음을 더 아리게 했다. 모두 엉성한 정책이 화근이었다.


3대 이슈의 책임자는 환경부 윤성규 장관이다. 그런데 윤 장관은 국민 정서와는 거꾸로 “법령이 미비했다” “기업의 문제다”는 식으로 에두르면서 사과도 않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왔다. 엊그제 그의 출입기자 간담회 발언은 “과연 장관 자격이 있나” 싶을 정도다. 윤 장관은 “유례없는 삼각파도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마치 버뮤다 해협인가 싶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 정부 최장수(40개월) 장관인 그에게 일련의 현안이 큰 파고였다는 뜻일 것이다.


고충은 이해하지만 미세먼지에 대한 그의 인식엔 아연할 따름이다. 기자들이 “대책에 국민 공감대가 떨어진다”고 묻자 “일부 의사들은 ‘건강한 사람은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더라. WHO가 발암물질이라고 너무 주장해서 심각성이 커졌다”며 WHO를 원망했다는 것이다. 그러곤 “(미세먼지 증가가) 일시적 현상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어쨌든’ 줄여 나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윤 장관의 발언은 극히 무책임하고 부적절하다. WHO가 2012년과 2014년 디젤차 매연과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것은 담배 연기나 석면처럼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물질이라고 판단해서다. 그 후 각국이 미세먼지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인데 윤 장관이 엉뚱하게 WHO 탓을 한 셈이다. ‘어쨌든’ ‘일시적’이란 말도 부적절하다. 올 1~5월 서울의 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당 57㎍으로 환경부 연평균 기준치(50㎍)를 넘어섰다. 일시적이지도, 어물쩍 대처할 일도 아닌 심각한 사태 아닌가. 능력도,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하는 윤 장관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대통령이 경질하든 스스로 물러나든 결단이 필요하다.

[매일경제]

10. 최운열 의원의 `리디노미네이션` 주장 적극 검토해야

화폐 액면단위를 변경하는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이 야당에서 제기됐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경제민주화 태스크포스 팀장은 21일 디플레이션 걱정이 없는 지금이 적기라며 리디노미네이션을 주장하고 나섰다. 예를 들면 1만원을 100원 또는 10원으로 화폐단위를 변경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0환을 1원으로 변경한 1962년 화폐개혁 이후 54년째 화폐단위가 고정돼 있다. 그사이 국민총소득(GNI)은 4000배 이상 불어났고 1인당 국민소득도 2000배 이상 증가하다보니 여러 가지 부조화가 생겼다. 이제 1달러당 환율이 1000 이상인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뿐이다. 사회적 비용도 만만찮다. 조(兆)를 넘어서 경(京)이라는 숫자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국내 파생금융상품 거래는 이미 2002년 1경원을 넘어섰고 총금융자산, 국민순자산도 1경원을 웃돈다. 화폐단위가 불편해지다 보니 커피점에서 4500원짜리 메뉴를 4.5로 표시하는 자구책이 등장했을 정도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면 재무·회계·금융업무가 효율화되는 반면 화폐를 재발행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또 1만원권을 10원으로 변경하면 상품가격이 싸진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 때문에 물가상승 우려도 있다. 2003년 한국은행이 화폐단위 변경을 추진하다가 중단한 까닭도 그 당시 부동산을 비롯한 물가상승 움직임 때문이었다. 그런데 올해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8%로 한국은행 물가안정목표인 2%를 크게 밑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걸림돌이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리디노미네이션으로 기존 화폐를 새 화폐로 바꾸는 과정에서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아직 리디노미네이션 주장은 최운열 의원의 개인적 소신일 뿐 더민주가 당론으로 채택한 건 아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중앙은행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고 국민적 합의나 공감대가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경제규모 확대나 물가 안정 등 여건을 감안할 때 이제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무작정 미뤄선 안 된다. 국민 불편을 해소하고 경제효율을 높이는 차원에서 여야와 한은이 리디노미네이션을 본격 검토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신문][문화마당] 어른이 되어야 할 시간/최진영 소설가

어린 시절에는 스무 살만 넘으면 어른인 줄 알았다. 스무 살이 지난 후 ‘어른은 스스로 벌어 먹고사는 사람’이라고 다시 정의 내렸다. 하지만 직장을 가지고 스스로 벌어먹게 된 다음에도 나는 어른이 된 것 같지 않았다. 생년월일로 따지면 분명 성인이지만 성인과 어른은 다른 말 같았고 스스로 어른이라 자부하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워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말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럼 신부님이나 수녀님, 스님들은 절대 어른이 될 수 없단 말이에요?

사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만은 청소년처럼 살고 싶었다. 주위 어른들의 엇비슷한 신념은 고루해 보였고 돈과 성공을 강조하는 판에 박힌 조언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직업이나 월급을 잣대로 나의 쓸모를 판단하는 말들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21세기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에 재빨리 적응하고 세상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는 것이 성장이고 성숙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어른이 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려고 애쓰는 대신 아이가 어른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품는 여러 의문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나는 어른이 되지 않겠다던 자신에게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지 그제야 깨달았다. 사회에 만연한 이기심과 무책임, 물신주의와 성공지상주의에 매몰된 어른을 부정하고 싶었다면 ‘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해선 안 되었다. ‘그런 어른은 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어야 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처럼 어른들의 속물적인 가치관을 불평하면서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하는 어른이 될 것’이라는 꿈이라도 가져야 했다.


세월호에는 많은 어른이 있었다. 어떤 어른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주었고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배에 머물렀다. 어떤 어른은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자마자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진해서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어떤 어른은 300명이 넘는 생명이 사라지는 것보다 자신의 밥줄과 지위가 사라지는 것을 더 두려워했다. 어떤 어른에게 생명은 숫자이고 권력은 자신만의 것. 그리고 어떤 어른들은 이제 이 모든 것을 지겨워하고 있다.


세월호 민간 잠수사 김관홍씨의 자살 소식을 듣고 나는 다시 죄책감에 빠졌다.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자마자 생업을 포기하고 수색 작업에 자원해 차가운 바닷속에서 25구의 시신을 수습한 사람이 어째서 스스로 죽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 “나는 국민이기 때문에 달려간 거고 내 직업이, 내가 가진 기술이 그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 것일 뿐 애국자나 영웅이 아니다”라고 말하던 그를 죽음이란 절망에 빠트린 것은 이 사회의 이기적이고 뻔뻔하고 무책임한 어른들이다. 세월호 탑승객 304명을 희생자로 만들어 버린 그 어른들.


어른이라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역할과 지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 공동체 사회에서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걱정하고 보호해야 하며 타인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사회 구성원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성인이 되기까지 살아온 세월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어른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되는 것이다. 점점 나빠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좋은 어른이 돼야 한다. 미루고 있을 수만은 없다.

2.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꼴찌에게 희망을

엊그제 시골에 사는 쌍둥이 엄마가 하소연을 해왔다.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쌍둥이 아들이 1학기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왔는데, 둘의 평균점수를 합쳐도 60점이 안 된다면서 ‘꼴찌들에게도 희망이 있을까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덧붙인 말은, 원래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표는 앉아서 보지 말고 누워서 봐야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에서 느슨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중학교의 성적표를 받아 보면 놀라 뒤로 넘어가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날 우연찮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 나는 즉시 답을 보냈다. ‘○○ 선생님 알지요? 어제 그분 만났는데 중학생 손자가 이번에 꼴찌를 했대요. 그분이 어렸을 때는 꼴찌 하는 친구들의 엄마 아버지는 무슨 낙으로 살까, 그런 생각을 했다는데 막상 손자가 꼴찌를 하니 어라, 그냥 귀엽기만 하더라는 거예요.’ 그러자 금세 답이 왔다. ‘맞아요, 귀엽긴 해요. 그런데 제가 공부 못하는 자녀를 둔 죄인 같아요. 그렇지만 선생님 손자도 꼴찌라니 완전 반전이에요. 크하하하.’


이렇게 해서 우리의 대화는 유쾌하게 끝을 맺었다. 공부는 못해도 꿈은 야무져서 쌍둥이 중 큰애는 프로게이머, 작은애는 KTX 기관사라고 한다기에 “공부 못해도 인성은 좋으니 기다려 봐요”라고 말했다. ○○ 선생도 손자에게 “야 인마, 너 공부는 꼴찌여도 친구들보다 잘하는 거 하나는 있어야지. 운동을 잘하든 악기를 잘하든 노래를 잘하든, 알았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손자가 꼴찌를 해도 그저 귀엽기만 한 것은 대책 없는 할아버지의 사랑에서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 나이에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창회에 나가 보면 공부 잘하던 극소수는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시험으로 정해지는 자리에 가 있지만 나머지는 정말 예측 불허다. 오히려 공부에 주눅 들었지만 저마다의 숨은 장점을 살려서 더 크게 성공하여 즐겁게 살고 있는 친구가 한둘이 아님을 보게 된다.


최근 더욱 다양해진 직업군 중에서 성적으로 차지할 수 있는 직업은 매우 한정적이다. 더구나 꼴찌에게는 이제 올라갈 희망만 남아 있지 않은가. 우리의 인생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부모가 해야 할 중요한 몫이다. 꼴찌에게도 얼마든지 기회와 희망이 있을 테니 말이다.

3. [동아일보][@뉴스룸/김유영]21세기의 소작농들

‘보증금 3억 원, 월세 3000만 원.’


회사 근처 빈 점포의 외벽에 이런 문구가 나붙었다. 커피집이 있던 자리였다. 단순 계산해 커피 한 잔에 5000원으로 치면 하루 200잔을 팔아야 임대료가 빠진다. 인건비 등을 건지고 이윤까지 남기려면 대체 커피 몇 잔을 팔아야 하는 걸까. 임대료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곱셈과 덧셈을 하자니 머릿속이 새삼 아득해졌다.


대도시의 웬만한 지역에선 ‘임대료 리스크’가 일상화됐다. 저금리 시대에 믿을 만한 건 역시 임대료인 걸까. 한 지인은 맥줏집을 하면서 월 170만 원을 내던 임차료를 월 250만 원으로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이달 기준금리 인하로 건물주의 기대 수익률이 낮아졌는데 부동산 시장은 오히려 이런 흐름과 거꾸로 간다”고 하소연했다. 


심지어 세입자인 자영업자가 다시 세를 놓는 경우도 있다. 생활용품 판매업자인 A 씨는 서울 강북에서 월 500만 원의 임차료를 낸다. 그는 이 돈을 바로 옆 옷 가게 주인에게 준다. 옷가게 주인이 불황으로 장사가 안 되자 자신의 가게를 쪼개 A 씨를 세입자로 받아들였다. 목돈이 부족한 A 씨는 보증금을 내지 않는 대신 월세를 시가의 2배가량 낸다. 임대료를 깔고 들어온다 해서 ‘깔세’로 불리는 전대차(轉貸借) 계약이다. 그는 “인건비 건지기도 힘들다”며 “목청 터져라 물건 팔아 남는 돈의 대부분을 임차료로 바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자영업자는 지주에게 땅을 빌려 사용료를 내는 소작농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지대(地代·rent)는 공급 제한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과점적 이익이다. 땅과 건물이 한정되어 있으니 지주는 노동이나 자본을 추가 투입하지 않아도 비교적 쉽게 이윤을 얻는다. 돈이 넉넉하다면 힘들게 일하기보단 건물주가 되는 게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문제는 월급쟁이 상당수가 ‘잠재적인 치킨집 사장님’이라는 점, 그래서 은퇴 후 자영업에 뛰어드는 이들이 과도한 임대료와 갑작스러운 임대료 인상 리스크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외교관 출신으로 강남에서 우동집을 운영하는 신상목 씨는 “근로 계약에서 낮은 임금을 막기 위한 최저임금제가 필요한 것처럼 임대차 계약에서 지나친 소득 이전을 막기 위한 규범이 필요하다”며 “임차인이 영업의 지속을 보장받기 위해 건물주에 대항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닐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영업 대책에 대한 논의는 10년 넘게 이어져 왔지만 그간 동네 사장님들의 사정이 딱히 나아졌다는 소식을 접해보지 못했다. 노후 보장이 미비한 사회안전망 탓일까. 좋은 일자리를 못 낳는 불임(不姙)형 산업구조 탓일까. 생산성이 낮은 데다 판박이형 창업을 되풀이하는 문화 탓일까. 어디부터 꼬인 건지 모르겠다. 다만 자영업에서 임대료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빈곤한 사장님’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어느새 회사 인근 점포에 또 다른 커피점이 들어섰다. 페인트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가게에서, 달뜬 표정의 새 사장님이 월 3000만 원의 임차료를 감당하려면 커피 몇 잔을 팔아야 할까. 다시 셈해본다.

4. [중앙일보][제임스 후퍼의 비정상의 눈] 브렉시트 여부 결정 결혼처럼 타협 필요

영국 국민은 오늘 국민투표장에서 유럽연합(EU) 잔류냐, 탈퇴냐를 결정한다. 국경을 넘어 글로벌 사회에 영향을 미칠 결정이다. 이번 투표는 EU가 그간 사회·경제 통합으로 평화를 유지하고 번영과 행복을 가져왔는가에 대한 최종 평가 성격이다. 탈퇴를 결정하면 EU의 약점을 만천하에 드러낸 채 불확실성과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다. 다른 회원국들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게 된다. 영국은 정말 탈퇴할까.


EU는 마치 혼인 관계와도 같다. 제 운명을 다른 이에게 맡기고 꿈과 이상을 상대에게 맞춰야 한다. 하지만 서로 상대를 지지해줌으로써 얻는 보상이 막대하다. 수입 증가와 경제적 안정, 신변 안전, 구매력 증가, 업무 분담, 재난 상황에서 서로 버팀목 역할을 하는 것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혼자일 때보다 함께일 때 더 많은 이점이 생긴다. 서로 다른 문화·종족·생각들이 한데 섞이면서 끈끈한 유대감이 생기고 창의력이 샘솟는다. 결혼도 부부가 조화를 이루면 각자에게 사랑과 자신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EU 탄생 때 꿈꾸던 이상향이 바로 이것이다. 어떤 결혼이든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마련이다.


하지만 결혼이든 EU든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지속적인 노력과 타협이 있어야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다. 모든 것이 머릿속 상상대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것이란 보장도 없다. 관계가 늘 공평하지도 않다. 한쪽이 병을 앓아 회복 시간이 필요하거나 투자나 후원이 더 필요할 때도 있게 마련이다.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이런 장애물들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만큼 헌신하고 서로 지지하겠다는 서약 아래 모두를 위해 나은 미래를 조금씩 일궈가는 것이다.

결혼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혼’은 최후의 선택이 돼야 한다. 물론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도 있다. 한쪽이 이기적으로 굴며 힘을 남용하고 조종하며 비협조적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EU는 이 정도는 아닌 것 같다. 통합 방향이나 정책·규정·재정 등에 대한 회원국 간 의견 충돌 정도야 전 세계 모든 결혼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필요한 것은 타협을 위한 대화와 협상이지 이혼 요구가 아니다.


오늘 영국은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영국은 물론 EU의 미래가 이 ‘결혼 생활’이 구원될지에 달렸다. 화살 하나를 부러뜨리기는 쉽지만 여러 개는 한번에 꺾을 수 없다. 연합의 힘이라는 것이 그런 게 아닐까? 나는 EU 안에서 계속 지지고 볶는 데 한 표를 던진다.

5. [중앙일보][분수대] 해우소와 화장실

며칠 전 집에 있는 변기가 막혔다. 아내가 계란 껍데기를 잘못 넣은 탓이다. 퇴근 직후 아파트 관리실에 달려가 ‘뚫어뻥’을 구해 문제를 해결했다. 속이 시원해졌다. 무엇이든 인간은 막히면 곤란하다. 몸이 아프고 심할 경우 병이 난다. 배설의 문제는 특히 그렇다. 자연스러운 순환이 핵심이다. 어디 신체뿐이랴. 사회도, 정치도, 경제도 “소통, 소통”을 외치는 이유다.


해우소(解憂所)라고 했다. 근심을 푸는 곳, 절간의 화장실을 가리킨다. 지금이야 여느 사찰을 가도 쉽게 만나는, 마치 보통명사처럼 굳어진 단어 같지만 그 역사는 길지 않다. 근대 한국 불교의 고승이었던 경봉(1892~1982) 스님이 6·25전쟁 직후 만든 말로 전해진다. 스님은 통도사 극락선원의 소변 보는 곳에 휴급소(休急所), 큰일 보는 데에 해우소라는 팻말을 붙여놓았다고 한다. 지금 돌아봐도 빼어난 언어감각이다.


그 해우소가 요즘 ‘적우소(績憂所)’가 된 모양새다. 한류스타 박유천의 잇따른 성폭행 논란 때문이다. 사건이 모두 화장실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일었다. 박씨와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들이 맞고소를 하고 경찰이 대규모 수사팀을 꾸릴 만큼 파문이 커졌다. 스타라는 이름값과 화장실이라는 묘한 공간이 겹치며 온갖 억측과 루머가 쏟아졌다.


사실 화장실도 20세기 후반의 산물이다. 뒷간·측간·잿간 등으로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 변소를 거쳐 1970~80년대 아파트 문화가 확산되면서 정착된 말이다. 화장실 문화라는 말도 생겼다. 최근에는 으리으리한 욕조, 번쩍이는 변기 등 부와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처럼 격상되기도 했다. 일례로 지난달 초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공중화장실에 황금변기 ‘아메리카’를 설치해 눈길을 끌었다. 남과 다른 나를 보여주려는 현대인의 ‘과시적 소비’에 대한 일침이었다.


‘박유천 사태’도 그런 휘청거리는 시대의 한 단면이다. 돈과 폭력, 성과 뒷거래의 연결고리가 볼썽사납다. 거기에 춤을 추는 대중의 선망과 질시도 구린내 난다. 해우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마디씩 보태는 수좌·신도들에게 경봉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 다급한 마음 쉬어 가고, 근심 걱정 버리라고 한 말이야. 그게 자신을 찾고 도를 닦는 거야.” 우리들 중생이야 도와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더는 출렁대지 않았으면 한다. 수사 결과를 차분히 기다려보자. 그게 우리의 속을 뚫어주는 화장실의 진면목을 되찾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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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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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2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신공항 계획

영남권 신공항 건설 문제가 결국 김해공항으로 귀결되었다. 공항을 다른 곳에 새로 만들기보다는 기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이 최적의 대안이라는 게 타당성 연구용역을 수행해 온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어제 발표한 최종 결론이다. 김해공항의 활주로와 터미널 등 주요 시설을 대폭 신설하고 공항 접근 교통망도 함께 개선하는 방법으로 늘어나는 항공 수요에 원활히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신공항을 추진한다는 발상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치밀하게 따져보고 얘기를 꺼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계산에서 서둘러 계획이 시작된 탓이다. 그동안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으로 나뉘어 신공항 유치를 강력 주장하던 주변지역 주민들이 공연히 헛심을 쓴 꼴이라고 생각하니 허탈하기만 하다. 용역결과 발표를 앞두고 양측의 치열한 마찰로 인한 사회적인 비용도 결코 작지 않았다.

이처럼 영남권이 서로 갈라져 불필요하게 대립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부가 이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국토교통부는 신공항 계획이 처음 제시됐을 때부터의 추진 과정을 명확히 공개하고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없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아무리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신공항 건설을 내걸었다고 해도 현실적 판단 없이 무작정 쫓아간 것은 잘못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결정은 지역이기주의를 앞세운 우리 정치권과 무책임 행정에 대한 경종이나 다름없다. 김해공항이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최선의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서로 나눠먹기식의 선심성 계획이 발동했던 것은 아닌지 묻고자 한다. 신공항 건설에 10조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는 점에서도 보통 일은 아니다. 현재 지방공항 가운데 상당수가 운영적자에 시달리는 것이 주먹구구 결과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번 결과에 승복하고 소모적인 논란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 인사들부터 감정적인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 신공항 건설 무산에 따라 상실감에 빠진 주민들을 공연히 자극하려 들어서는 곤란하다. 서로 대립했던 주민들끼리도 서로 웃으며 조속히 손을 맞잡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이번 제시된 방안을 토대로 김해공항 확장·보완 작업도 차질없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2. 공수부대 '학살부대' 딱지 온당치 않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또다시 야권의 표적으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이 그제 박 처장 해임촉구결의안을 공동 발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6·25 기념행사로 기획된 광주 시가행진에 제11공수특전단을 동원하려 했다는 이유에서다. 야권은 지난달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기념식 제창이 불허되자 박 처장 해임촉구결의안을 내기로 합의한 바 있다.


논란이 일자 보훈처는 광주 향토부대인 31사단 150명과 11공수특전단 50명의 동원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6·25 발발 66주년을 맞아 참전유공자와 군인, 시민, 학생 등이 참여하는 ‘호국보훈 한마음 퍼레이드’가 전국 주요 도시에서 펼쳐지지만 광주에선 군인이 행진 대열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한참 어색해진 모양새다.


야3당의 입장은 단호하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공수부대원들을 광주 거리에 풀어놓겠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며 날을 세웠고, 국민의당 소속인 박주선 국회부의장은 “왜 광주시민을 자극하는 행동만 하는지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정미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도 박 처장 해임과 광주시민에 대한 사죄를 촉구했다. 일부 언론과 누리꾼들도 공수부대는 ‘학살부대’라며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3년 전에는 아무 탈 없이 치른 행사가 이번에는 왜 문제가 되는지 도대체 영문을 이해하기 힘들다. 당시 공수부대의 특공무술 시범 등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며 행사를 더 확대해 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는 보훈처의 설명을 듣고 보면 더더욱 그렇다.


‘학살부대’라는 것도 가당찮다. 공수부대는 우리 군의 자랑스러운 전력이다. 훈련이 강도 높기로 이름난 데다 자부심을 갖고 자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5·18 때의 만행은 결코 용서할 수 없으나 그 책임은 당시 못된 정치군인들에게 돌리는 게 옳다. 우리의 핵심 전력에 ‘학살부대’라는 험악한 딱지를 붙여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수부대원 중에는 광주 출신 젊은이들도 없지 않을 텐데 그들도 학살부대원이란 말인가. 불철주야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공수부대 장병들의 사기를 꺾는 자충수는 어리석은 국민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서울신문]

3. 정부도 민변도 탈북자 신변 보호에 소홀했다

중국 내 북한 식당에 근무하다 지난 4월 탈북한 여종업원 12명이 자유 의사로 한국을 택한 것인지를 가리는 심리가 어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비공개로 열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신청한 인신보호구제심사 청구를 법원이 수용해서다.


민변은 국정원이 이들 여성 탈북자를 지나치게 외부와 차단하는 등 수용·관리 방식이 비정상적인 점을 내세워 이들의 진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총선이 임박한 가운데 국정원이 이들의 탈북 사실을 전격 공개해 ‘기획 탈북’이 아니냐는 의혹이 깔려 있는 듯하다. 국정원은 이후 민변의 탈북자 접견 신청과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연구자들의 면담 요청을 모두 불허한 상태다. 또 지금까지 고위급이 아닌 탈북자들의 경우 통상적으로 조사 뒤 하나원에 보내 남한 정착 교육을 하던 것과 달리 여종업원들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그대로 남겨 두기로 한 것도 의심을 사고 있다. 정부 당국은 이에 대해 공식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익명의 당국자에 의해 “북한의 선전공세 등을 고려해 신변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언급이 나오는 정도다.


국정원의 탈북자 공개와 이후 관리 방식은 분명히 전과 달라 보인다. 총선 닷새 전 공개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들의 신상을 먼저 공개한 점이 특히 그렇다. 신상이 노출된 뒤 북한은 그들의 동료와 가족들을 내세워 남측에 의한 ‘납치극’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국정원이 오히려 탈북자 가족들의 신변 안전을 위협한 셈이 됐다. 한데 이제 와서 가족 신변 안전을 이유로 접촉을 차단하니 의혹만 더 커지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필요한 정보는 공개함으로써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어렵더라도 민변이나 통일연구원의 접견이나 면담도 허용할 필요가 있다.


민변의 법적 대응은 더 이해하기 어렵다. 탈북 경위나 이후의 관리 상황이 이상해 보인다고 이를 법정에서 따지는 것은 무리다. 탈북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여종업원들은 법정 진술 자체가 고통스러울 수 있다. 민변은 친북 인사들을 통해 북한 탈북자 가족들의 위임장을 받아 인신보호구제 심사를 신청했다고 한다. 납득하기 어렵다. 북한 체제하에서 작성된 위임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정부 당국과 민변 모두 탈북자들의 신변 보호를 최우선에 두고 탈북 관련 의혹을 해소할 방안을 고민해 보기 바란다.

4. 통화 스무 번에 전관예우 없다니, 특검으로 밝혀라

혹시나 했던 검찰의 홍만표 수사가 역시나로 끝날 기미다.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를 구속 기소하면서 경찰이 밝힌 수사 결과는 허탈하기 짝이 없다. 검찰 고위층을 상대로 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구명 로비는 실패했다는 결론이다. 홍 변호사의 구속영장 청구 시점과 공소사실이 달라진 것도 없다. 탈세액이 고작 5억원 늘어났을 뿐이다. 검찰의 수사 내용을 요약하자면 홍 변호사에게 전관(前官) 특혜를 챙겨 준 현직 검사는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홍 변호사가 스스로 자신의 이름값을 앞세워 의뢰인들을 현혹했을 뿐 로비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얘기다.


쓴 입맛이 다셔지는 수사 결과다. 정운호 게이트에서 전관의 입김이 전방위로 통했을 정황은 곳곳에서 여실했다. 정 대표의 도박 혐의에 검찰은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정 대표가 100억원대 해외 원정 도박빚을 갚느라 회삿돈을 횡령한 부분도 공소사실에서 빠졌다. 정 대표의 보석신청 때도 법원이 적절히 판단하라며 호의적 의견을 제시한 것도 검찰이다. 윗선의 신호를 받지 않고서는 상식으로 납득되지 않는 의혹들이다.


검찰 발표를 곧이곧대로 듣자면 우리 사법부는 전관예우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싶다. 홍 변호사는 지난해 당시 원정 도박 수사의 책임자이던 최윤수 3차장 검사를 두 번이나 만났고 20여 차례 통화했다. 관련 수사관을 접촉하기까지 했다. 전관 변호사가 수억원의 로비 자금을 받아 백방으로 애썼으나 현관들이 싸늘하게 거절해 실패했다고 설명하지만, 검찰도 속으로는 낯이 부끄러울 것이다. 외형상 검찰 지휘부가 구속 수사를 밀어붙였다고 로비가 먹히지 않았다는 논리는 그야말로 옹색하다. 300억원대 해외원정 상습 도박자의 형량이 터무니없이 줄었다면 누가 봐도 명백히 ‘성공한 로비’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겨서는 애초에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연루 의혹을 받는 최 차장검사는 서면 조사, 박성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수사 대상에서조차 제외했다. 검찰은 전관과 현관(現官)의 불법 커넥션을 들춰 스스로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 자체가 없었다.


이번 사건에서 온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대목은 일개 전관 변호사의 일탈이 아니라 고질적인 현관 유착 비리다. 국민 신뢰는 바닥을 기거나 말거나 제 식구 감싸기 수사에 인이 박인 검찰에는 더 기대할 것이 없다. 국회가 지체 없이 특검 카드를 뽑아야 하는 이유다.

[중앙일보]

5. 수능 '족집게' 강사 전면 조사할 필요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모평) 문제 유출의 파장이 간단찮다. 경찰이 어제 문제 유출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한 학원 강사 이모(48)씨와 현직 교사들의 검은 커넥션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어서다. 수능 ‘족집게’를 내세운 유명 강사의 뒷거래 유혹에 현직 교사들이 그대로 넘어갔다는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국어 시험 문제 사전 유출 당사자로 지목된 이씨는 이른바 ‘일타강사(과목 매출 1등 스타강사)’ 출신이다. 그간 ‘적중률 마케팅’을 통해 인기를 끌었는데 알고 보니 도덕 불감증에 빠진 교사들이 뒤에 있었던 것이다.


이씨는 “특정 작품이 나온다고 콕 집어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모평 검토위원인 송모 교사가 또 다른 박모 교사에게 출제 내용을 알려줬고, 박 교사(구속)가 이를 이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이씨와 교사들의 은밀한 거래도 드러났다. 수년 전부터 교사들이 출제한 국어 문제를 넘겨받아 자신의 강의 교재에 실은 뒤 3억원을 건넸다는 것이다.


이 같은 강사들의 문제 사들이기는 학원가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수능이나 모평 출제 참여 가능성이 큰 교사나 EBS 교재 저자에게 문항당 최고 10만원까지 준다고 한다. 출제교사 풀이 적은 데다 EBS·수능 연계율이 70%나 돼 이들의 출제 패턴이 수능에 반영될 확률이 높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몇 문제만 적중해도 단번에 족집게로 알려져 돈방석에 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1993년 수능 시행 이후 그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6·9월 모평과 교육청의 연합학력평가 , 수능을 치르는 과정에서 족집게들의 몸값만 치솟았다. 그래도 교육부는 의심도 않고 관리·감독에 손을 놓았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참에 족집게 강사나 일타강사의 실태를 전면 조사할 필요가 있다. 사전 정보 없이 실력만으로 예상 문제를 콕 짚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이번 사건이 보여주지 않았는가. 교사들의 윤리의식도 요구된다. 교사가 흔들리면 절대 공교육이 강해질 수 없다.

[매일경제]

6. 한국 배터리·한류 방송 막는 중국의 비관세장벽

LG화학, 삼성SDI 등 국내 전기차용 배터리생산업체들이 중국 정부의 인증을 따내지 못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중국 정부가 배터리업체 난립을 막기 위해 만든 '모범규준' 4차 인증 심사에서 31개 업체가 통과했지만 국내 업체들은 몇 개 조항을 충족시키지 못해 탈락했다. 미인증 업체에는 2018년 1월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업체들은 그 이전에 인증을 따내야 한다. 중국 측은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석연치 않다.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한국 기업을 견제하는 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어 우려감이 고조되고 있다. 올해 초에도 보조금 대상 전기버스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중국 업체가 생산하는 리튬인산철(LFP) 방식만 허가하고, 한국 기업의 삼원계 배터리는 배제하기로 해 차별 논란이 일었다. BMW, 제너럴모터스 등이 삼원계를 쓰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자국 기업 밀어주기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은 해외 드라마의 온라인 편성을 제한한 데 이어 위성방송국 황금시간대에 외국 판권을 수입해 리메이크한 프로그램 방영도 규제하기로 했다. 한류 드라마와 한국 방송포맷 수출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미다. 


또한 화장품 위생감독 조례를 수정해 까다로운 심사기준을 적용하는가 하면 특정 품목에 강제성 인증제도 마크 부착 요구, 조제분유 관련 규제 강화 등 비관세장벽을 갈수록 높게 쌓고 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수출 호조가 예상됐지만 국내 기업들의 애로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업들이 이런 첩첩규제를 넘기 위해서는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정부는 무역질서를 어지럽히는 중국의 비관세장벽에 대해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비관세장벽을 해소하지 못하면 늪에 빠진 대중 수출은 헤어나오기 힘들다.

7. 김종인의 `포용적 성장` 교각살우의 愚는 피해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재벌개혁을 통한 경제민주화와 기본소득제 도입 등 '포용적 성장'을 집권 전략으로 제시했다.


김 대표는"재벌개혁을 하지 않고는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거대 경제세력이 나라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의회가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기업 이사회의 의사결정 구조 개혁,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기본소득제 도입, 기초연금 30만원으로 인상, 최저임금 인상, 대기업 감세 폐지 등을 제시했다.


전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이어 김 대표까지 양극화 해소를 화두로 들고나온 것은 그만큼 민심이 흉흉하다는 뜻이다. 소득·노동·부동산·교육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상위 10%가 부(富)와 양질의 일자리, 교육 기회의 절반을 가져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해법이다. 의회가 국정의 중심이 되겠다는 자세는 좋으나 자칫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선명성 경쟁, 포퓰리즘으로 치달을 경우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기 십상이다. 재벌을 양극화 주범, 사회의 공적으로만 몰아붙이는 것도 곤란하다. 일자리를 만들고 수출을 하고 글로벌 경제전쟁의 선두에 서는 것은 대기업일 수밖에 없다. 김 대표가 말하는 재벌개혁이 재벌 죽이기가 아니라 기업 본연의 역동성과 혁신·도전정신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과거 공정, 동반, 상생의 이름으로 행해졌던 경제민주화 조치들이 되레 시장을 죽이고 경제활동을 억압하는 독이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경제 성장 없이 기초연금, 최저임금 인상 재원이 나올 리 없다. 양극화 해소와 사회 대통합을 위해서는 재벌개혁 못지않게 귀족노조 설득, 노동개혁도 시급하다. 균형 잡힌 시각, 정교한 정책 설계, 철저한 실용주의만이 포용적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

[동아일보]

8. '김해 확장'으로 되돌아간 영남권 신공항, 합리적 결정이다

영남권 신공항 건설에 대한 사전타당성 연구용역을 진행해온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과 국토교통부가 지금의 김해공항 확장이 최적의 대안이라고 어제 발표했다. ADPi는 “옵션 2개(밀양, 가덕도)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제로’에서 새로 시작했다”며 “가덕도, 밀양을 포함한 영남권 후보지 35곳을 놓고 항공 안전과 경제성, 접근성,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부산 가덕도나 경남 밀양 중 한 곳을 택해 영남권 신공항을 건설한다는 정부 계획은 취소됐다. 하지만 ‘김해공항 리모델링’을 분명한 대안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완전 백지화가 아니다. 국토부도 단순한 김해공항 확장이 아니라 ‘김해 신공항’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17일 본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김해의 공군기지를 한적한 여수공항으로 옮기고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임에도 상식과 이성이 발붙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이 옳았음이 이번 ADPi 용역 결과를 통해 드러났다. 밀양이 고향이고 부산에서 대학을 다닌 천 이사장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내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전문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김해공항 확장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는 얘기는 정치적 이유로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 이전부터 나왔던 얘기다. 2013년 한국공항공사도 김해공항 확장을 유효한 대안으로 제시했으나 신공항 사업을 백지화하려는 정부의 물타기 전략이라며 무시됐다. 일반적으로 가덕도는 접근성, 밀양은 안전성과 환경 문제 등이 지적된다. 2011년 신공항 입지평가위원회에서도 밀양과 가덕도가 모두 기준 평점에 미달해 백지화됐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곁에 두고 2006년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명박-박근혜 정부까지 무려 10년간 영남권이 둘로 갈려 지역 갈등과 분열을 키우고 국력을 낭비한 것이 안타깝다.


이번 결정이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권의 텃밭인 영남권이 분열되는 것을 우려한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결과라는 일각의 해석도 나온다. 그동안 신공항 문제를 놓고 부산과 대구-경북-경남-울산에서 과열 경쟁이 벌어졌지만 이제는 지역 이익보다 국가의 미래와 발전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공항 10년 논란’과 함께 앞으로는 선거 때마다 표를 얻기 위해 정치권이 국책사업을 지역 이기주의에 이용하는 포퓰리즘 관행도 종식시켜야 할 것이다. 행정수도, 혁신도시, 첨단의료복합단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건설 논란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지역과 정서가 찢어지는 후유증을 겪을 만큼 겪었다. 내년 대선주자들은 국책사업을 절대 선거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선언부터 해야 할 것이다.

9. “전관예우 없이 年100억” 검찰발표 특검으로 검증하라 

검찰이 어제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를 구속 기소하면서 홍 변호사의 ‘현관(現官) 로비’는 실패였다고 결론 내렸다. 홍 변호사의 혐의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원정도박 사건을 맡아 검찰에 구명 로비 명목 등으로 5억 원을 받고, 선임계 없이 62건의 형사사건을 ‘몰래 변론’해 세금 15억여 원을 탈루했다는 것 정도다.


홍 변호사가 접촉한 정운호 사건 수사 책임자 중에는 최윤수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현 국가정보원 2차장)도 있다. 지난해 두 차례 만나고 20여 차례 시도한 끝에 6차례 전화 통화를 하면서 홍 변호사가 ‘선처 부탁’을 했으나 거절당했고 ‘엄정 수사’ 방침만 전해 들은 것으로 검찰은 결론지었다. 그러나 수사책임자와 피의자 변호의 이런 접촉 자체가 특권이고 전관예우(前官禮遇)다.


현직 검사들과의 ‘관계’ 없이 홍 변호사가 한 해 100억 원 가까운 수임을 하는 것이 가능할 리 없다. 정운호 사건만 해도 검찰에서 두 차례 무혐의 처분을 받고, 기소 때 횡령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항소심에서의 구형량이 1심보다 6개월 줄고, 보석을 재판부 의지에 일임한 ‘적의(適宜)처리’ 같은 상식에 반하는 처분이 꼬리를 물었다. 현직 검사에 대한 검찰 조사가 서면으로 또는 ‘적절한 방법’으로 확인됐다고 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제 식구 감싸기요, 면죄부 주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판에 ‘실패한 로비’라는 검찰 결론에 누가 수긍할지 모르겠다.


검찰은 당초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특임검사에게 수사를 맡길 것을 검토했으나 어차피 국회에서 특별검사가 거론될 것으로 예상해 포기했다고 한다. 특검이 다시 수사해야 그나마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10. 改憲특위, 국회만이 아닌 汎국민적 기구로 만들어야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21일 국회 원내 교섭단체 연설에서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현행 헌법의 문제점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 '승자 독식 권력 구조' 등을 들었다. 그는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아야 한다며 상법 등 법 개정에도 당장 착수하겠다고 했다.

 

김 대표의 제안은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13일 20대 국회 개원사(開院辭)에서 개헌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국회에 개헌특위를 구성한다는 것은 국회가 국민들을 향해 헌법 개정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정치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김 대표의 이 제안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민의당도 아직 입장 정리가 되지는 않았지만 개헌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편이다. 현행 헌법을 만든 1987년 이후 처음으로 국회에 개헌특위가 구성될 가능성이 조금씩이나마 커지는 상황이다. 만약 특위를 구성해 개헌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경우 내년 대선이 새 헌법에 따라 치러지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절반을 훨씬 넘는 국민이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들이 구시대적 대결 정치에 질릴 만큼 질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중임제냐, 내각제나 이원정부제냐 같은 권력 구조 문제에만 관심이 국한되어 있을 뿐 바로 이 시점에 개헌이 왜 필요한지, 개헌을 한다면 얼마나 광범위한 내용이 되어야 할지 같은 '개헌의 본질'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금 개헌 논의에 들어간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현행 헌법 아래의 29년을 총결산하는 작업이 앞서야 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민족사적 작업이라는 생각도 있어야 한다.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 기본권이나 복지·환경, 경제 양극화 등에 대한 전 사회적 논의도 필수적이다. 그래야 국민 다수가 환영하는 가운데 개헌을 끝내고 미래로 향할 수 있는 에너지도 얻게 될 것이다.

 

그러자면 개헌을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다양한 국민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가운데 범국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시간적 여유도 충분히 둬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정치인들의 전유물처럼 진행되면 정작 개헌에 이르지도 못하고 아까운 기회만 낭비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특히 다음 대선에서 권력을 쥐려는 사람들의 흥정과 거래가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겨레][유레카]로봇의 얼굴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화 <천지창조>에서 신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신에게 사람 몸과 눈코입의 쓸모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고대 서양인들은 신의 모습을 사람처럼 생각했다. <성서> 창세기와 그리스 신화는 신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미국의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은 인간 정신이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로봇을 ‘마음의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신학자들이 신의 모습을 고민했다면 로봇설계자들은 로봇에 어떠한 생김새를 줄지 고민 중이다. 1970년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섬뜩함의 계곡’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로봇의 모습이 사람과 가까워질수록 친밀도 증가를 경험하다가 어느 순간 섬뜩함을 느끼며 친밀도가 추락하는 골짜기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시판에 들어간 감정인식 인간형 로봇 ‘페퍼’는 커다란 눈과 귀가 있지만, 사람과는 다르게 디자인됐다. 사람이 유사성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귀엽고 친근한 표정을 짓는다. 미국 나이트스코프가 만든 케이5(K5)는 달걀처럼 생긴 경비용 로봇이다. 이 로봇이 쇼핑센터 등에 배치돼 사람들을 접촉하자, 신기하고 귀엽다고 달려드는 사람들의 손길에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문제가 생겼다.


섬뜩함과 두려움을 피해 로봇을 온순하게 디자인한 결과의 부산물이다. 2014년 일본 오사카의 쇼핑몰에 로봇이 나타나자 아이들이 로봇을 때리고 발로 차는 로봇 학대 현상이 보고됐다. 2015년 차량을 얻어 탈 수 있도록 운전자와 소통기능을 갖춘 히치하이크 로봇 히치봇은 캐나다 횡단에 성공한 뒤 미국 횡단에 나섰다가 금세 머리와 팔이 잘린 채 발견됐다. 로봇과의 공생이 가시화하면서, 어떤 생김새와 기능을 부여해야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가 과제가 됐다.


2. [서울신문][공희정 컬쳐 살롱]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이 되면 저절로 세상 이치를 깨닫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 보니 그렇지 않았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을 넘어도 삶은 언제나 낯설게 다가왔다. 그 낯섦 앞에서 뻘쭘해지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이 시대 청춘들은 사회가 정해 놓은 퇴장 시기에 다가선 어른들을 꼰대라 부르며 쉰 떡 취급을 한다. 하기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엉덩이에 뿔 난 존재가 청춘들이었으니 그들의 말장난은 뽑히지 않은 뿔 때문인 듯도 하지만, 하여간 우린 어쩌다 어른이 됐을까.


사전적 의미의 어른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다 자랐다는 것의 기준이 애매하긴 하지만 사회적 통념상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을 이루면 비로소 어른이 됐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일가를 이루지 못했다면 어른의 범주에 끼워 주지 않았다. 그건 다양한 입장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면 그녀는 딸이면서 며느리이고, 엄마이면서 딸이 된다. 아이를 품에 안고 보니 자신에게 엄격했던 엄마의 마음도 이해되고, 시부모님 모시고 살다 보니 바쁘고 힘들다며 전화 한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던 친정엄마 생각에 시부모님에게 향하는 마음이 더 애뜻해지기도 한다. 역지사지의 힘은 상대를 배려하는 지혜를 솟아나게 했다.


그런데 어른들은 지혜만 쌓아 가는 줄 알았더니 고집도 함께 쌓아 갔다. 자꾸만 자신의 생각대로 타인의 삶을 지적하고,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유일한 기준인 양 주장을 앞세운다.


쉽사리 타협점이 보이지 않으면 그때부턴 “내가 살아 봐서 안다”는 이유로 빗장 풀린 간섭이 시작된다. 마치 처음부터 세상이 어른들의 것이었던 것처럼. 그래서 부모 자식 간 생각의 차이를 짚어 보는 방송 프로그램까지 생겼나 보다.


금쪽같은 내 자식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한탄하는 부모와 한없이 커 보이던 부모님이 왜 이렇게 시시해 보이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십대들이 주인공이다.


웃으며 등장해 사연을 이야기하다 보면 금세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진다. 집이었다면 이미 여러 번 고성이 오갔을 것이다. 집안을 촬영하는 관찰 카메라를 보면서도 처음엔 내 자신보다 눈에 거슬리는 상대방의 행동만 보였다. 시간이 지나고 전문가들의 조언이 오가며 서서히 자신이 보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되자 슬슬 상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며 아이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걸어가야 할 자기의 길을 둘러보게 됐다.


사실 어른들도 처음 살아 보는 삶의 순간순간이 벅차다. 어른이니까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아야 한다. 해야 하는 일들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지만 빠뜨리고 잊어버리고, 실수 연발이라 창피하기도 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안 풀릴 때는 아이처럼 두 다리 버둥거리며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어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지혜로움은 놓친 버스처럼 꼭 한 템포 늦게 찾아와 자신의 미련함을 탓하게 만들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은 삶,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인생이 더이상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는 건 어려운가 보다. 아름답지 않은 인생의 민낯을 보듬고 살아가야 하니까.


3. [머니투데이][우보세] 1토막에 1만6000원 '제주도 갈치'

세계자연유산이 모여있는 제주도는 내국인에게도 설레는 외국 휴양지 같은 자랑스러운 우리 땅이다. 지난주 취재차 다시 방문했다. 음식점을 찾기 위해 블로그 등을 뒤졌더니 여러 군데서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이 자료만 보면 ‘안 가면 안 될 것 같은 의무감’이 무겁게 다가왔다. 그중 A음식점을 찾아 방문하기로 했다.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갈치구이 가격이 1만 6000원. “(좀 비싸긴 하지만 관광지니까) 한 마리 시켜보지”하고 주문하려던 순간, 그 가격은 한 마리가 아닌 한 토막이었다.


‘얼마나 크길래’하며 오기 반으로 주문하자, 이번엔 공기 밥은 가격에서 제외된다는 말이 돌아왔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음식값이 왜 이리 비싸냐”고 하소연했다. 제주도 갈치가 요즘 어획량이 지난해에 비해 반으로 줄어 가격이 치솟은 데다, 1인당 제공되는 갈치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을 만큼 희귀해졌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래도, 1토막에…” 했더니, 그는 “그건 좀 비싸다”며 “보통 (같은 크기) 5토막에 5만 원 정도가 관광 음식점에서 받는 금액”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순간 머릿속에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말한 “김밥 한 줄에 1만 원”이 스치며 갈치도 그런 종류의 바가지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김밥은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일 수 있는데, 갈치는 구이일 뿐인데도 가격 차이가 크게 날 수 있는지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다가왔다.


제주도에서 갈치는 마리 당이 아닌, kg당으로 팔린다. 외지인이 싸게 갈치를 먹겠다고 수산시장에서 무게를 잰 뒤 정당한 가격을 치러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사례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한 관광객은 “2kg어치 갈치를 샀는데, 알고 보니 무게를 잴 때 바구니 밑에 600g짜리 납이 있었다”며 “항의를 해도 ‘원래 그런 것’이라는 그쪽 분위기에 되레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제주도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관광객이 SNS에 올라간 ‘맛집’만 따라가다 보니, 다른 음식점들이 다들 고사 직전”이라며 “극과 극의 가격이 낳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고 혀를 찼다.


문제는 갈치 가격이 아니다. 관광지라는 ‘특수’에 기대어 가격 편차가 심해지는 극심한 환경이 또 다른 갈등 구조의 사회를 잉태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관광객이 적어 ‘폐허’로 평가받던 제주도가 관광지로 인기를 끌자, 외지인의 돈이 물밀 듯이 밀려들면서 주민 간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는 것이다.


서귀포시에서 만난 한 제주도 도민은 “한 달에 이주민이 1000명 정도 내려오는데, 옆 사람 보지 않고 건물 올리는 데만 열중하면서 콩가루 도시가 된 기분”이라며 “관광지 개발도 중요하지만 인정도 중요한 것 아니냐”고 씁쓸해했다.


관광지는 돈을 벌겠다는 공급자와 돈을 쓰겠다는 수요자의 대칭성이 중요하다. ‘버는 것’이 목표의 전부가 되는 관광지는 추한 관광의 상징으로 남을 뿐이다.

4. [동아일보][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조언에 사로잡힌 육아

모처럼 한가한 토요일, 윤재와 아빠는 각각 한 손에 장난감 로봇을 들고 놀고 있다. 아빠의 로봇은 악당, 윤재의 로봇은 지구특공대. 윤재의 로봇이 아빠의 로봇을 공격하는 것 같더니, 아빠의 로봇 팔이 떨어져 나갔다. 아빠는 “각오해라”라며 윤재의 로봇을 온몸으로 부딪쳐 박살내버렸다. 화가 난 윤재는 아빠를 닥치는 대로 발로 찼다. 아빠는 잠시 생각했다. ‘친구 같은 아빠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참아야 하는 거야? 같이 때려야 하는 거야?’ 


영주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가계부를 쓰고 있다. 이번 달 교육비가 무려 3배나 초과했다. 전집을 안 샀으면…, 특별학습을 신청하지 않았으면…, 논술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잠시 후회가 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내가 이 돈 아까워하면 안 되지. 무릇 부모는 아이를 잘 가르쳐야 하는 거니까.’ 


민철이가 동생을 때렸다. 엄마가 왜 때렸는지를 물었다. 아끼는 조립식 장난감을 동생이 망가뜨렸다고 한다. 엄마는 민철이가 그 장난감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기에, 동생을 때린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차마 민철이를 혼내지 못했다. “그래, 그랬구나. 민철이가 많이 속상했구나”만 되뇌었다. 엄마의 머릿속에는 어제 TV에서 본 전문가의 말이 맴돌고 있었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육아는 너무 많은 명제에 사로잡혀 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혹은 아이를 잘 키워낸 유명인들이 ‘이렇게 키워라, 저렇게 키워라’라는 명제를 쏟아놓는다. 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 좋은 말들이 육아를 더 힘들게 하기도 한다. 더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육아 명제는 너무나 짧다. 중요한 내용이 압축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 구절만 보아서는 아무리 좋은 명제도 구체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명제의 ‘단어’에만 집착하여 잘못된 방식으로 적용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친구 같은 아빠’는 아빠들이 워낙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친구처럼 친밀한 시간을 되도록 많이 보내라는 뜻이다. 아이에게 부모의 사랑에 대한 깊은 믿음과 단단한 신뢰를 갖게 하기 위해서다. 친구처럼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다. ‘잘 가르쳐야 한다’는 명제도 무조건 빨리 많이 가르치는 것이 좋다는 얘기가 아니다. 여기서 가르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어떤 능력, 수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도덕이나 인성과 관련이 깊다. ‘아이 마음 읽어주기’는 아이의 생각, 마음, 감정 등을 수긍해주고 존중해주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수긍은 하되, 잘못된 행동은 안 되는 거라고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 따라서 모든 상황에서 최우선은 아니다. 아이가 위험할 때, 옳고 그른 것을 가르쳐줄 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할 때는 훈육이 먼저고, 마음 읽기가 나중이다. 마음 읽기는 아이의 역성을 들어주기가 아니다. 


‘좋은 부모’라는 말도 그렇다. 도대체 좋은 부모란 무엇일까? 너무나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이다. ‘좋은’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육아의 모든 것에 ‘좋은’을 적용하려고 들면 과잉 육아를 하기 쉽다. 당연히 육아가 버겁고 힘들어진다. 쉽게 화나고 자주 불안해진다.


육아 명제를 따르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명제로 인해 오히려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내 육아에 적용하기에 앞서 ‘내 육아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기간은 최소 20년이다. 그 긴 여정 동안 아이를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도와줄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 고민 속에는 나는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아이가 어떻게 자라기를 바라는가,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도 포함될 것이다.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나의 육아에 대한 기본적인 지침, 기준, 개념들이 정리된다. 그것이 쌓이면 가치관이나 철학도 생길 것이다. 명제는 그 이후에 내 삶에 적용해야 한다.


앞으로도 육아 명제들은 계속 나올 것이다. 광고 카피처럼 바로 따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자극적인 것도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내 육아의 철학은 무엇인가’부터 생각하자. 없다면 그것부터 고민해야 한다. 육아 명제는 ‘어떻게’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왜’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나의 육아에 또 하나의 화두를 던져주는 것이다. ‘이런 명제가 왜 나왔을까. 나의 육아에 더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뭘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하면, 명제의 좋은 점만 나의 가치관에 녹아들어 나의 가치관이 확장될 것이다. 더불어 어떤 육아 명제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이를 키우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5. [중앙일보][노트북을 열며]어느 연극 제작자의 죽음

뜻밖이었다. 지난달 말 극단 ‘적도’의 홍기유(46)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말이다. 딴 사람이라면 ‘이 바닥 워낙 힘드니깐…’이라며 솔직히 한 귀로 흘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고인은 꽤 잘나가는 프로듀서였다. 한때 ‘연극열전’을 기획해 대학로에 새바람을 일으켰고, ‘웃음의 대학’ 등 히트작도 몇 개 갖고 있었다. 연극인이라면 다들 오태석(연출가)이나 윤석화(배우)만을 떠올릴 때 엄연히 제작자도 있으며 “연극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다”는 걸 입증해 오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자살하다니,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죽기 나흘 전에도 같이 술 마셨어요. 평소처럼 껄껄댔는데 내 참….” 눈치 못 챈 지인들은 죄책감마저 든 듯싶었다. 손상원 정동극장장은 “힘들어도 티 낼 사람이 아니다. 자존심이 세다”고 했다. 겉으론 태연한 척했을지 몰라도 물려받은 땅을 대부분 저당잡히고, 빚마저 계속 쌓이면서 속으론 새까맣게 탄 모양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어떡하든 자기 돈으로 꾸려가던 그도 막판엔 “투자 좀 해 달라”고 몇 명에게 애원했다는 후문이다. 그마저 거절당하면서 무력감에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다.


연극이 가난하다는 걸 누가 모르랴. 하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까. 기획자 S는 “‘옥탑방 고양이’ 같은 롱런 레퍼토리를 내놓지 못하면 무조건 쪽박”이라고 일갈했다. 제작자 H는 “어쩌다 하나 터져봤자 1, 2억 번다. 나머지는 다 적자니 결국 작품을 할수록 빚이 늘어난다”고 했다. “아니 쇼 비즈니스 하면서 빚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누군 100억원 채무 있어도 잘만 버티던데. 아니면 나 몰라라 하면서 파산을 하든지. 홍기유는 너무 깔끔해.” 애도인지 한탄인지 모를 소리를 하는 이도 있었다.


대학로 제작자가 헉헉대는 것과 달리 연극계의 전반적 풍경은 의외로 평온하다. 아니 상차림만 보면 더 풍성하다. 국·공립단체가 연극을 자체 제작하기 때문이다. 명동예술극장(국립극단)을 필두로 남산예술센터가 뒤를 잇더니 최근엔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서울시극단)까지 적극적이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이들 공공기관이 일일이 수익성까지 따지진 않을 터. 상대적으로 넉넉한 예산 덕에 좋은 연출가와 배우도 모이게 마련이다. 넓은 의미의 연극 지원이다. 그런데 그 지원이 오히려 민간 제작자를 옥죄고 있으니 ‘지원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공공에 비해 규모·자본력이 떨어진 민간 극단은 자연히 박리다매 전략을 취하게 된다. 대학로에 1만원 이하 저가 연극이 범람하는 이유다. 공공은 고급으로 가는데, 민간은 덤핑으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하여 홍기유의 죽음은 연극의 양극화가 잉태한 불행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또한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웰메이드 상업 연극의 종언을 목도하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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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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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1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검사 1억' 이어 '판사 10억', 확산되는 법조 비리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방위 로비에서 비롯된 법조 비리 수사가 급기야 현직 부장급 검사와 부장판사 등 현관(現官)으로 확대되고 있다. 감사원, 경찰 등도 연루된 정황이 잇따라 제기됨에 따라 ‘게이트’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의 브로커로 활동했던 이동찬씨가 검거됨으로써 전관(前官)을 넘어 현관의 비리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 가는 형국이다. 전관예우는 현관의 도움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검찰의 현관 수사는 당연한 수순이다.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검찰은 정 대표가 2010년 지하철 입점 로비와 관련한 감사원의 서울메트로 감사를 무마하기 위해 부장급 박모 검사에게 전달해 달라며 지인 최모씨에게 수표 1억원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최씨는 수표를 현찰로 바꿔 박 검사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박 검사는 최근 뇌출혈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다. 수사 선상에 박 검사와 함께 박 검사의 고교 선배인 감사원 고위 간부 김모씨가 오른 이유다. 또 다른 현직 이모 검사는 정 대표의 도박 관련 정보를 정 대표에게 알려 줬다는 의혹 때문에 조사를 받았다. 구속 기소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와 고교 동문인 이 검사는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연과 지연이 얽힌 이 검사의 의혹에 대한 규명은 검찰의 몫이다.


현직 판사에 대한 수사도 활기를 띨 것 같다. 검찰은 브로커 이씨가 송창수 이숨투자자문 대표로부터 모 판사의 로비 명목으로 10억원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해 사실관계를 캐고 있다. 송 대표는 인베스트 사기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받았다가 1심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감형돼 풀려났다.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선고이기에 풀어야 할 대목이다. 최 변호사가 수임료 50억원에 선임계를 낸 사건이다. 또 정 대표의 항소심과 관련, 브로커와 저녁 식사를 한 사실이 드러나 사임한 부장판사도 조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찰의 수사는 지금껏 제 식구를 감싸려는 듯한 미온적인 태도 탓에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 검찰은 스스로 썩은 환부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단호한 각오를 다지고 수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 현관 수사는 한 치의 의혹이 없도록 있는 그대로 엄격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전관과 현관의 고질적인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까닭이다. 현관의 몸통, 지휘 계통에 주목하고 있다. 법조 비리 척결 차원에서다. 그래야 법 앞에 평등이라는 법치주의의 실현에도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2. 서로 역지사지 않으면 여야 협치 갈 길 멀다 

20대 국회가 어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시작으로 본격 가동됐다. 경제 침체와 불확실한 안보 상황 등 복합 위기 속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했다. 그러나 국회가 산적한 국가적 난제들을 제대로 풀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용렬하기 짝이 없는 친박·비박 갈등으로 총선에서 참패한 여당의 자중지란이 여전한 데다 말로는 협치를 다짐해 온 야권도 실제로는 여권 길들이기 공세를 펼 조짐을 보이면서다. 여든 야든 때 이른 대선 세몰이보다 민생을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음에도 19대 국회는 여야 간 무한 대치로 입법 마비 상태였다. 그런데도 국민은 지난 4·13 총선에서 어느 정당에도 과반수 의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흑백 논리에 매몰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양당 정치를 퇴출하고 국민의당을 포함한 여소야대의 3당 구도를 정립했다. 이는 합리적 토론과 절충으로 선진적인 ‘숙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라는 국민의 명령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야도 민생을 위한 협치를 한목소리로 강조하면서 이런 민심에 부응하는가 했다.


그러나 원 구성 후 여야의 행태를 보면 그런 다짐이 자칫 구두선으로 끝날 참이다. 무엇보다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의 칩거와 복귀 등 계파 갈등에 발목이 잡힌 듯한 여당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면 ‘식물국회’가 아예 뉴노멀이 될 판이다. 과반수 의석을 가졌던 19대 국회에서도 국회선진화법의 벽에 막혔던 터에 이제 소수 여당이 친박과 비박으로 갈려 소모전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국정의 무한 책임을 진 여당이라면 스스로 국정 동력을 소진하지 말아야 한다. 여당은 경위야 어떠하든 유승민·윤상현 의원 등에 대한 일괄 복당을 허용한 혁신비대위의 결정을 존중하는 선에서 내홍을 수습해야 할 것이다.


식물국회의 일상화를 막으려면 야권의 책임도 무겁다. 더민주 출신인 정세균 국회의장은 개원사에서 개헌론의 불을 지폈다. 하지만 야 3당 의석을 다 합쳐도 개헌선인 3분의2에 못 미치지 않나. 20대 국회에서는 여야가 협의하지 않으면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20대 국회 벽두부터 벌어지고 있는 청문회 개최 공방이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정의당을 포함한 야 3당은 가습기 살균제, 어버이연합 사태, 정운호 법조비리 사건, 백남기 농민 중상 사건 등 4대 청문회에 합의한 데 이어 대우해양조선 부실화와 관련한 청문회도 추가할 기세다. 그러자 정치 공세로 변질될 것을 우려한 여당이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들을 겨냥한 ‘구의역 참사’ 청문회 개최로 맞불을 놓고 있다. 하지만 가습기 사건을 제외하곤 대부분 검경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사안이라 상임위에서 거르지 않고 청문회부터 여는 것은 생산적 국회와는 거리가 멀다. 혹여 대선을 앞둔 이슈 선점 경쟁만 가열되면 민생을 위한 협치는 물 건너가고 만다. 20대 국회가 초장부터 무차별 폭로전이나 정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여야의 공동 책임임을 유념할 때다.

3. IS 국내 테러 위협 가벼이 넘겨선 안 돼

국가정보원은 그제 “ISIL(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 IS의 다른 이름)이 주한 미군 공군시설과 국민을 대상으로 자생적 동조 세력들에게 테러를 선동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2월 국내의 언론 보도 스크랩 업체를 해킹해 20명의 신상 정보를 털었으며, 이들 중 국내 복지단체 직원의 신상을 공개하기도 했다고 한다. ISIL은 지난해 11월에도 우리나라를 IS에 맞선 ‘십자군 동맹군’ 60개국에 포함한 뒤 테러 대상국으로 선동해 왔다.


IS는 최근 미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리비아·시리아군의 반격으로 그들의 본거지를 빼앗기는 등 세력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생적 테러를 선동, 이를 추종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 행위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총기 난사 사건도 IS를 추종하는 은둔형 외톨이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시리아와 예멘에서 발생한 연쇄 테러 사건도 맥을 같이한다. 아울러 영국 정보기관이 아시아 지역에서 테러가 발생할 것이라는 첩보를 정보기관에 통보까지 했다.


우리 국민에게까지 파고든 IS의 위협은 섬뜩하다. 우리나라도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그러므로 이번 위협을 그저 위협에 그칠 뿐이라고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국민을 테러에서 보호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국가의 의무다. 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예방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내 IS 동조 세력의 동향도 상시 파악하며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기 바란다. 테러 대상으로 지목된 사람과 단체를 보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최우선적인 일이다. 그런데도 신상이 공개된 복지단체 직원에 대한 보호 업무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니 책임 있는 국가 기관이라고 할 수 있겠나.


다행히 테러방지법이 지난 19대 국회에서 통과돼 지난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테러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며 정치권도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테러방지법에 따라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 기관은 테러를 막기 위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논란이 많던 테러방지법이 어렵게나마 국회의 문턱을 넘은 것은 IS뿐 아니라 북한의 테러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데 잘못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일 게다. 법을 남용하는 것도 경계해야겠지만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작은 허점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동아일보]

4. ‘미친 재건축’에 ‘떴다방’ 판쳐도 국토부는 주시만 하나

아파트 분양권 거래액이 1∼5월에만 17조 원을 넘어섰다. 분양권에 붙은 웃돈(프리미엄)만 8000억 원이다. 총 거래 건수 5만4187건으로 나누면 한 건당 평균 1464만 원의 웃돈이 붙은 셈이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갈 곳을 잃은 부동자금이 수도권의 아파트 분양으로 쏠려서다. 강남구(8384만 원) 송파구(7781만 원) 등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 중심으로 분양권 프리미엄이 치솟아 ‘미친 전셋값’에 이어 ‘미친 재건축’이란 말이 나돈다. 그런데도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주말 “이상 과열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단계적인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미온적 논평만 내놨다.


수도권 민간택지나 전국 공공택지에서 분양된 아파트는 계약 후 6개월∼1년 동안 분양권을 거래할 수 없다. ‘불법 거래 처벌’이라는 주택법을 비웃는 듯 아파트 청약 당첨자가 발표되는 당일 밤 모델하우스 인근에는 ‘떴다방’들이 불야성을 이룬다. 투기세력이 정부의 단속 의지를 비웃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법 거래는 분양계약자 이름을 그대로 둔 채 전매제한 해제 시점에 분양권을 매수인에게 넘기기로 공증을 한 상태에서 이뤄진다. 양도소득세를 줄이기 위해 실거래가보다 낮춰 신고하는 ‘다운계약’은 보통이다. 


불법 전매의 밑바닥에는 정부가 ‘부동산 거품’이 터질 것을 두려워하는 한 절대 단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음습한 공감대가 깔려 있다. 정부가 세종시 공무원들의 불법 전매도 처벌하지 않는 판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더 강력한 단속을 하는 것도 명분이 서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대출규제 대상에서 분양아파트에 대한 중도금 대출을 제외하면서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갑자기 모든 대출을 죄는 식으로 급선회한다면 물 온도를 적절히 맞추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샤워실의 바보’가 되고 말 것이다. 지역별 시차를 두고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적용 대상에 중도금 집단대출을 점진적으로 포함시키는 정책 조정이 시급하다. 돈과 시간이 있는 사람들만 분양권 불법 거래에 골몰하는 모습을 보며 대다수 국민은 침체된 주택시장에서 분노하고 있다.

5. 北대리인처럼 탈북자들 납치인지 따지는 民辯

4월 초 중국 내 북한식당인 류경식당을 집단 탈출해 국내 입국한 12명의 여종업원이 자유의사로 한국을 택한 것인지, 북한 주장대로 국가정보원의 납치인지를 가리는 심리가 오늘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신청한 인신 보호 구제 심사 청구를 법원이 수용했다지만 탈북자들의 입국 경위를 법정에서 따지는 것은 초유의 일이다. 


국정원은 ‘탈북 여종업원들이 북에 남겨둔 가족에 대한 걱정 때문에 공개 장소에 나서기를 원치 않는다’며 변호인을 대신 법정에 내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한국행을 결정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경우 가족들이 ‘반역자 가족’으로 몰릴 수 있다는 점에서 민변의 소송은 적절하지 않다. 정신병원도 아니고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한국사회 적응 훈련을 하고 있는 탈북자들이 인신 보호 구제의 대상인지도 의문이다.


북 당국은 ‘남측의 납치’라고 주장하며 가족들을 내세워 탈북 여성들과의 대면 및 송환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류경식당의 동료 여종업원 7명은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이 남한 당국의 지시하에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이들은 함께 탈북하려다 막판에 포기한 사람들이다. 류경식당 종업원들 중 북으로 돌아간 이들도 있다는 것이야말로 국정원이 집단 탈북자들을 강제로 데리고 오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도 민변은 탈북 종업원들의 접견을 국정원에 요구하다 거부당했다며 마치 북의 대리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해외 친북 인사들을 통해 북에 있는 이들의 가족 위임장을 근거로 인신 보호 구제 심사를 신청했다. 자유의사에 따라 보호를 요청한 북한 이탈 주민은 변호인 접견 대상이 아니고, 합동신문 과정에 있는 탈북자를 변호인이 접견한 전례도 없다. 


류경식당 집단 탈북자들에 대해 국정원이 비밀주의로 일관해 불필요한 의혹을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국회 정보위원회도 이미 이들의 자유의사를 확인했다. 민변이 납북자들의 가족을 위해서도 이렇게 발 벗고 나선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6. 박 대통령, ‘죽은 신공항’ 대선공약서 살려낸 책임 통감해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어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영남권 신공항에 대해 “인천공항에 이어 세계적 국제공항으로 건설돼야 한다”며 지역 갈등을 부추기는 시도지사들에게 자제를 당부했다. 그러나 서병수 부산시장은 정 원내대표의 연설이 끝나기가 무섭게 “발표가 임박한 신공항 입지평가 용역이 특정 지역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면서 부산 가덕도에 신공항을 유치하지 못하면 시장직을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지도부의 말발이 먹히지 않는 새누리당의 현주소다.


서 시장은 “이변이 일어나면 승복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시민 불복종 운동까지 지휘할 태세다. 가덕도 유치를 주장하는 부산과 경남 밀양 유치를 촉구하는 대구·경북·울산·경남의 5개 시도 광역단체장은 지난해 이미 입지평가 용역 결과가 나올 때까지 유치 경쟁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 바 있다. 서 시장의 사퇴 운운은 명백한 합의 위반이다.


이에 질세라 대구·경북·울산·경남 4개 단체장도 지난달 부산의 ‘합의 파기’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5개 지역은 과거부터 새누리당 ‘텃밭’ 지역이고 단체장 모두 여당 소속이다.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으로 나뉘어 지긋지긋한 계파 투쟁을 벌이는 새누리당이 소속 대통령이 내걸었던 대선 공약 정책을 두고도 둘로 쪼개질 듯 막장드라마를 연출한다.


서 시장은 가덕도에 신공항 유치가 결정되면 대구·경북에 지역공항을 건설하자는 제안을 ‘상생안’이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신공항 문제가 또다시 주고받기 식으로 해결되는 나쁜 선례를 남겨선 안 된다. 그러지 않아도 여객은 없고 세금만 잡아먹는 공항들이 전국에 많이 있다. 영남권 공항은 가덕도든 밀양이든 하나를 선정해 인천공항 다음가는 허브공항으로 키워야 한다. 여객과 정부 지원이 분산되면 어느 곳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신공항 문제가 이토록 국가 갈등의 주요 현안으로 커진 것은 박 대통령 책임이 작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지역 갈등이 불거지자 2011년 대국민 사과까지 하며 백지화했다. 그러나 이듬해 대선에서 박근혜, 문재인 후보 모두 표심 잡기에 급급해 건설을 약속하면서 신공항 건설 문제가 되살아났다. 


박 대통령은 “정치적인 고려 없이 국제 기준에 맞춰 누구나 수긍할 수 있게 정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당장 친박인 서 시장부터 불복 운운하고 있다. 대선 때 철석같이 약속했다가 문제가 곪아 터지도록 사실상 방치하고, 총선 직전 진박(진실한 친박) 후보들이 “대통령 선물” 운운해도 방조했다. 박 대통령은 신공항 입지 발표가 나기 전에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당내 분란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데일리]

7. 현대차, 특허 사냥꾼의 먹잇감 되나

현대·기아차가 미국 특허전문회사들에 의해 잇따라 소송전에 휘말리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어댑티브 헤드램프 테크놀로지스(AHT)는 지난해 7월 자사가 개발한 헤드램프 기술을 현대·기아차가 도용했다며 델라웨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기아차는 2012년에도 하이브리드 특허 침해로 피소돼 지난해 12월 미국 특허전문업체 파이스(PAICE)와 300억원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분쟁을 마무리했다. 한숨 돌리는가 했더니 또다시 특허침해 소송 위기를 맞은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특허소송 위기를 알리는 전주곡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른바 ‘특허 사냥꾼’들은 그동안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을 주된 먹잇감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자동차와 IT기술 융합이 가속화하면서 이젠 소송 대상이 자동차 업계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한국지식재산보호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외 특허관리 전문회사의 기술특허 소송 가운데 현대·기아차를 상대로 한 소송이 42건(현대차 26건·기아차 16건)으로, 완성차 회사 중 포드(44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특허 사냥꾼이 현대·기아차를 노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군침을 흘릴만한 먹잇감이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5월 현재 미국 시장점유율이 8.7%를 넘어섰다. 겉으로는 내로라하는 자동차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특허소송 배경인 원천기술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특히 전장 부품은 물론 요즘 자동차업계 화두인 친환경·스마트로 넘어오면 기술 경쟁력이 더욱 떨어진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한 치 양보 없는 소송전에서 확인됐듯이 기술 특허는 회사의 운명을 좌우한다. 특허전쟁에서 이기려면 원천기술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대·기아차도 예외는 아니다. 경쟁업체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한편 원천기술을 얻기 위한 노력을 펼쳐야 한다.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최강국이다. 스마트카 기반도 결국 ICT다. ICT 업계에서 스마트카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을 찾아 적극 지원하고 성과를 공유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점입가경인 글로벌 특허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혁신만이 정답이다.

[매일경제]

8. 한국 양극화 해소, 노동시장 개혁서 해답 찾아라

20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노동·복지구조 개혁을 강조했다. 20대 국회가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를 제시한 만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도 책임 있는 자세로 이런 민생 문제에 대한 해답부터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정 원내대표는 "우리 노동시장이 정규직 일자리를 과보호하면서 비정규직 처우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평균 임금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기업의 75%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53%로 떨어졌다. 또 비정규직의 평균 월급은 정규직의 43%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소득 상위 10%의 평균 소득은 2013년 하위 10%의 10.1배에 달했다. 이런 소득 불평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정 원내대표는 정규직·비정규직, 원도급·하도급, 대기업·중소기업 노동자가 각각 어떤 일을 하고 얼마를 받아가는지 표시하는 '일자리 생태계 지도'를 그리자고 제안했는데 이 또한 옳은 방향이다. 비정규직·중소기업·여성 근로자 등 노동시장 약자에 대한 실태 파악부터 정치적 고려 없이 정확하게 이뤄져야 할 일이다. 정 원내대표는 모든 노동자를 한꺼번에 대기업 정규직처럼 대우하는 '상향 평준화'는 어려운 만큼 기득권을 양보하면서 '중향 평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파견근로자보호법 등 노동개혁 4법도 국회가 이른 시일 내에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인 방향이면서 시급하게 달성해야 할 과제들을 정확하게 짚었다. 다만 정 원내대표는 이런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노사정 3자 간 사회적 대타협을 제안했는데 소모적인 방안으로 들린다.


노사정위원회는 2014년 9월 노동시장 구조개선특위를 설치한 뒤 모든 개혁 방안들을 놓고 토론하고 또 토론한 상태다. 심지어 노사정 대타협안까지 발표했으나 임금체계 개편, 근로자 파견 범위 등 구체적인 사안에 이르면 기득권에 막혀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했다. 또다시 노사정 대타협에 맡겨본들 갈등만 확인하고 시간만 허비할 뿐이다. 이제는 국회가 책임지고 전면에 나서서 노동개혁을 이뤄야 한다. 노동개혁 4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도 책임 있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9. 갈 곳 잃은 돈 1000兆 생산적 투자로 물꼬 터야

한국은행 기준금리와 시중 실세금리가 사상 최저로 떨어지면서 갈 곳을 잃고 떠도는 돈이 크게 늘고 있다. 현금과 요구불 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머니마켓펀드(MMF) 설정액을 비롯한 단기 대기성 자금은 모두 10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540조원)의 2배 가까운 수준이다. 같은 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40% 남짓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매우 급격한 증가세다. 


이제 수시입출식 예금 금리는 0.01%까지 떨어졌다.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도 1% 아래로 떨어져 물가 상승과 세금을 고려한 실질 이자는 마이너스다. 사정이 이러니 시중 자금은 언제든 갈아탈 수 있는 단기 금융상품이나 투기적 거래에 몰릴 수밖에 없다. 기준금리 인하 후 일주일 새 5대 은행 예수금이 10조원이나 늘어난 것이나 아파트 분양권 웃돈을 노린 단타 거래가 과열로 치닫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 같은 초저금리에도 민간 소비와 설비 투자는 살아나지 않고 실물 경기와 괴리된 머니게임으로 자산시장의 거품만 일어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이미 위험한 수준에 이른 단기 부동자금이 생산적인 부문의 장기 투자로 흘러가도록 물꼬를 잘 터줘야 한다. 


무엇보다 3200조원 가까운 금융자산을 보유한 가계가 단기 고수익을 노린 투기에 휩쓸리지 않고 장기적으로 중간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투자상품을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 지금처럼 주가연계증권(ELS)과 같은 파생상품에 100조원이 몰리고 아파트 분양권 단타족이 급증하는 것은 그만큼 믿을 만한 중위험·중수익 상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좀비기업들을 신속히 정리해 상장기업에 대한 투자자 신뢰를 높이고 벤처기업을 키우는 크라우드펀딩을 활성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이나 가계는 미래 불확실성이 클수록 투자를 꺼리게 되므로 정권 교체기 주요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10. 서해 남북 어민 수산물 공동판매 제안 전향적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수역에서 남북한 어민의 수산물 공동 판매를 추진하자는 유정복 인천시장 제안에 눈길이 쏠린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어족 자원을 보호하면서 연평도 어민의 생업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목적 카드다. 북한 어민들이 잡은 수산물을 연평도 어민들이 저렴하게 사들여 대신 팔게 되면 남측 어민들에게는 물량 확보를 해결해주고, 북한 어민들은 판로 확보로 조업에 더 적극 나서 남북이 공동으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막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유 시장도 말했듯이 당장 실현되기는 어렵겠지만 성사되기만 한다면 민간 협력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으로 남북 화해의 접점이 될 수도 있다.


중국 어선의 서해 NLL 수역 불법 조업은 최근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한강 하구 수역에서 우리 군과 해경 그리고 유엔군사령부로 구성된 민정경찰이 대대적인 중국 어선 퇴거 작전을 벌이며 단속에 나선 효과가 서해 연평도 인근까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우리 어선들이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 2척을 나포해 연평도로 끌고 와 해경에 넘긴 사건 후 정부는 뭐하고 있느냐는 비난 여론에 단속의 고삐를 조인 점도 작용했다. 


남북 간에는 2007년 10·4남북공동선언에 서해 NLL 해역에 서해공동어로구역 지정을 약속한 바 있다. 남북 어민의 공동 조업을 허용하자는 합의였지만 이후 남북 관계 경색으로 흐지부지됐다. 이와 관련해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4일 중국 어선 불법 조업 방지 대책으로 남북공동어로수역 설치를 주장하고 나섰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공동어로구역이 어렵다면 남북 간에 조업 규칙이라도 합의해 수산물을 거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자고 가세했다. 유 시장은 국회를 방문해 이번 방안을 설명하고 통일부와 해양수산부에도 정식으로 건의하겠다는데 관련 부처와 청와대가 귀담아듣고 실행 방안을 강구해보기를 촉구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경제][무언설태]아무리 자식이 짐이라지만...

​자식도 버릴 수 있는 인스턴트 시대인가요? 프랑스 남성이 한국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살배기 아들을 공원에 버렸다가 인천 경찰서에 구속됐습니다. 이 프랑스인은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한국인 여성과 동거하다 아이를 낳았으나 지난해 결별했답니다. 이후 프랑스에서 홀로 아들을 키우던 그는 아이를 친엄마에게 맡기려 했으나 거절당하자 공원 벤치에 버렸다고 합니다. 현대사회 젊은 남녀의 생명관이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일본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모의고사에서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를 불법점령하고 있는 나라를 택하라”는 4지 선다형 문제가 등장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습니다. 통신은 “역사적 경위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용어 암기를 우선시하게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지식인과 학부모들에게서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네요. 그나저나 똑똑한 일본 어린이라면 정답을 일본으로 골랐겠죠.


“아버지 돌 떨어져유∼.” 한국신용평가가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등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렸군요. 대우조선은 BB+에서 BB로, 현대중공업도 A+에서 A로 각각 내렸습니다. 등급 강등의 이유로 대우조선해양은 경영정상화의 불확실성이 증대된 점이, 현대중공업은 수주부진 장기화 우려를 들었답니다. 이중 우리가 몰랐던 내용이 하나라도 있었나요? 뒷북치는 데는 신용평가사 만한 곳이 없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전관예우를 차단하겠다며 판검사 출신인사에 대해 퇴직 이후 아예 변호사 개업을 금지하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우선 검사장·고등부장 이상의 고위직은 변호사 활동을 못하게 하되 현직 판검사의 정원을 70세로 크게 늘려 최대한 공직에서 일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직 변호사들은 신규 경쟁자가 들어오지 않으니 좋고, 검찰은 정년이 대폭 늘어나니 역시 머리 좋은 법조인들입니다.

2. [매일경제]고통과 위로의 영화 '우리들'

예상치 못하게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감상한 이유가 컸다. 나는 괜히 포스터를 원망했다. 눈물에 대한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두 소녀를 에워싼 고운 빛깔의 봉숭아꽃, 그리고 녹잎들. 햇살을 받아 투명함까지, 빛과 색들은 영화에 아픔일랑 없을 것이라 예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는 아팠다. 다분히 현실적이었고 그래서 공감도가 컸다. 가정(환경)에서의 차이, 거기에서부터 기인되는 아이 개인의 의식, 집단 따돌림, 기타 가정과 사회의 문제들. '우리들'은 초등학생 여아들의 집단 따돌림을 주 소재로 다루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도처에서 널려있는 '사회적' 문제들을 알알이 짚어낸다.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친구들에게 선한(어쩌면 굴복) 자세를 취한다. 


성인인 지금에서야 인간관계에 있어 본인 의지대로 대상을 선택하고 나름대로의 처세를 취하겠지만 학창시절에는 다르다. 공부를 잘 하고, 이성친구와의 교제가 원활한 것 보다 동성 친구 간의 원활한 관계가 가장 중요했다. 좋은 교우관계를 갖는 건 권력을 쥐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나 할까. 친구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힘 있는' 친구들을 우리는 '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선'은 친구가 없다. 즉, 학교에서 힘이 없다. 그녀의 학교생활을 무기력하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거기에 친구들의 눈치까지 봐야 할 신세다. 영화의 첫 신(scene)에서 쉴새 없이 눈치를 보는 선의 표정은 선의 학교생활 전반을 압축한다. 그런 그녀에게 힘이 되어 줄 친구 한 명이 등장한다. 바로 '지아'라는 친구다. 친구가 없는 선과 새 친구가 없는 지아는 그렇게 친구가 된다. 선과 지아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나가며 가까이 지내지만, 결핍은 소녀들 개인의 내면에 또 다른 응어리로 자리잡는다. 경제력이 약한 선은 갖고 싶은 걸 살 수 있고 학원을 다닐 수 있는 지아에게 열등감을, 지아는 선 모녀의 단란한 모습에 부러움과 시샘을 느낀다. 두 소녀는 상황과 심경의 곡절로 인해 관계의 변화를 맞는다.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두 소녀의 가정사와 선과 지아를 따돌리던 '보라'의 사정도 보여준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고민과 상처가 있다. 결국 영화 ‘우리들’은 이 문제를 꼬집어 낸다. 우리가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선과 지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고민과 아픔이 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안고 있는 고통들은 관계라는 치료제를 통해 치유되어야 할 것들이다. 선의 동생 '윤'은 덩치가 큰 친구와 노느라 표면적 상처를 얻지만 마음의 상처는 받지 않는 천진한 어린이다. "그럼 언제 놀아? 친구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친구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나 그냥 놀고 싶은데!"라는 대사에서 우리 모두는 움찔했을 것이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사회적 의식, 개인의 의지보다 타인의 시선으로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피동적인 우리들을 반성하게 만드는 대사다.


영화를 보며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를 둘러싼 관계(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선이 처한 환경이 나의 어린 시절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해서, 그녀가 감내해야 할 고통의 정도를 잘 알아서, 뜨거운 눈물이 나온 것도 있다. 영화 '우리들'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된 시기에 이르기까지의 성장 통을 모두 담아낸다. 그 안에는 공감과 연민, 고통과 슬픔 모두가 존재한다. 게다가 감초 역을 톡톡히 해내는 '윤'은 귀여운 매력으로 감상자들에게 웃음까지 선사한다.


'나의 우리들(관계)'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우리들'. 개인과 사회문제 모두를 아우르는 이 영화는 알찬 작품이다. 어떤 장면 하나 버릴 것 없는 영화, 미사여구 없이도 아름다운 눈물을 쏟게 만드는 영화다. 상처 하나 없는 사람 없듯 위로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 또한 없다. 아픔의 조각들이 물들어 있는 듯 보이지만, 따듯한 시선이 배어있는 '우리들'은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본다면 더욱 좋을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3. [동아일보][광화문에서/김갑식]좋은 관객? 나쁜관객?

“프랑스 공연을 마치고 왔는데 가장 크게 느낀 게 뭔가요?”


“‘좋은 관객’을 보고 왔다는 겁니다.”


지난달 김승업 충무아트센터 사장과 안호상 국립극장장과의 점심 모임이 있었다. 마침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공연 뒤 첫 대면이라 자연스럽게 화제가 그쪽으로 옮아갔다.


안 극장장의 대답은 의외였다. 20년을 훌쩍 넘긴 ‘기자 짬밥’으로 예측한 답변은 공연 성과였다. 아니면 프랑스 공연장의 시설이나 요즘 파리 공연계 분위기 정도였다.


공연 장소인 테아트르 드 라빌은 현대 무용의 거장 피나 바우슈나 머스 커닝햄의 정기공연이나 화제작들이 오르는 곳이다. 관객의 호불호가 분명해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연 도중 퇴장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들이 의자에서 불쑥 일어나면서 생기는 소리는 공연자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고 한다.


좋은 관객에 대한 안 극장장의 설명은 이렇다. “창극은 대부분 처음 본 공연일 텐데도 관객 1000여 명이 금세 웃으며 작품에 빠졌다. 공연장 측에서 우리 작품을 선택한 이유와 배경을 잘 이해하고 있는 관객들이었다.”


동석한 김 사장은 공연장과 관객의 관계를 동반자라고 정의했다. “공연장도 음식점처럼 자주 찾는 ‘단골손님’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벗’이 될 수 있는 관객들이 좋은 관객이죠.” 그는 몇 년 전 김해문화의전당 사장 재직 시절 뮤지컬 ‘미스 사이공’ 때 만난 그 벗들을 잊지 못했다. 부산에서 가깝지 않은 거리임에도 공연장을 찾은 일행은 이곳에서 작은 모임을 진행하면서 “큰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2주 전 국립극장에서 열린 ‘음악이 있는 생큐 파티’도 좋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행사였다. 국립극장 패키지 티켓을 구입한 관객 50명을 상대로 공연장 로비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국립창극단과 국립무용단 등 상주 단체의 예술감독과 주역들이 참석해 관객들과 격의 없는 대화도 나눴다. 주요 공연의 장단점과 주역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너무 잘 알고 있어 기쁘면서도 부담이 느껴져 ‘무서웠다’는 게 안 극장장의 말이다.


요즘 베스트셀러 순위에선 ‘채식주의자’(한강)와 ‘종의 기원’(정유정)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독자들이 한동안 국내 소설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종의 기원’ 출간 뒤 얼마 되지 않아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이 발표됐다. 정 작가가 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 묻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이 책을 출간한 은행나무 측 설명은 다르다. 맨부커상의 화제성에 밀려 순위는 내려왔지만 절대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두 작품이 ‘쌍끌이’로 출판 시장을 이끌면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긍정의 도미노’ 현상이다.


작품과 관객, 또는 독자와의 관계에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의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다. 좋은 작품이 있어야 좋은 관객들이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작품이 좀 모자라도 인내하고 격려하는 좋은 관객이 있어야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반대의 경우 꽤 명확하다. 작품 탓, 관객(독자) 탓으로는 문화와 그 사회의 수준을 높일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 한국 영화는 한동안 볼 게 없다는 비난에 시달렸고, 최근까지 한국 소설도 그랬다.


좋은 관객이든 나쁜 관객이든 관객은 있어야 한다. 그 계기가 무엇이든 한번 찾아온 손님을 단골손님, 나아가 벗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4. [동아일보][챈들러의 한국 블로그]美 총기만큼 불안한 韓 안전불감증

“혹시 미국 집에 총을 갖고 있어요?” 


한국인 친구들이 내 미국 생활에 대해 궁금해할 때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총기에 노출돼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나 또한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댁에 가면 항상 문 위에 소총이 걸린 걸 보았고, 지금도 동네 스포츠용품 가게에만 가도 거의 모든 유형의 총을 등록해 구입할 수 있다. 경찰도 소총, 권총 등으로 항상 무장하고 다니기 때문에 그들을 때때로 두려워하게 된다. 


미국은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나라이지만 사회 안전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올랜도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은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보여 줬다. 그러나 미국인의 총기 소유는 헌법에도 있는 국민의 기본 권리이기 때문에 규제가 쉽지 않다. 총기 소유는 이제 미국인들에겐 삶의 일부분이 됐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언제든 폭력적이고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지금은 총기 소지에 엄격한 한국 생활에 어느덧 익숙해진 것 같다. 물론 한국에서도 위험한 사건 사고가 가끔 일어난다. 이번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은 정말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보며 이렇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쉽게 총기를 소유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더 큰 사고가 일어났을지 생각해 봤다. 


한국에선 그래도 일반인들의 총기 소유가 금지돼 있어 미국보다 항상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콘서트나 클럽 등 사람이 많은 곳에 가도 총기 난사와 같은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밤늦게 길거리를 다녀도 습격당할 걱정을 안 할 것이다. 미국에 비해 한국에선 경찰을 그만큼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 같다. 미국도 한국처럼 총기 소유를 엄격하게 관리하면 올랜도 총기 난사 사건과 같은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은 총기 사건에 대한 문제가 없는 대신 다른 유형의 안전 문제를 갖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는 ‘안전 불감증’에 대한 문제가 자주 떠오른다. 한국에서 오래 지내면서 나 또한 안전 불감증 상황을 많이 목격한다. 학교 근처 골목길의 횡단보도 신호등이 파란불이어도 그냥 지나가는 택시를 자주 보게 되고, 길거리에 있는 소화전 바로 앞에 주차하는 차도 많다. 또 집 뒤에 있는 공사장에서 헬멧을 쓰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하루는 공연장을 갔는데 비상구 앞에 상자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런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더 큰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세월호와 판교 공연장 사고는 한국의 안전 의식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대형 사고라고 생각한다. 안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관계자들뿐 아니라 시민들의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 때문에 최근까지도 이런 사고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만 같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처음에 가장 어색했던 것은 ‘빨리빨리’ 문화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더 빨리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가끔은 안전이 뒷전으로 간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제는 이 ‘빨리빨리’ 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구의역 스크린도어(안전문) 사고가 났을 당시 나는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있었다. 당시 지하철은 한 정거장에 10분씩 멈춰 있었다. 그때 나는 무슨 일이 생긴지도 모른 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과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에 불편했고, 약속 시간에 늦어 불안했다. 그랬던 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물론 한국은 미국처럼 총기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안전 조치와 의식의 문제는 여러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한국은 산업과 기술의 빠른 발전 덕에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안전 문화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성장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미국의 안전 의식이 굉장히 높다는 말은 아니다. 미국은 단지 총기 소유로 인한 위험 요소가 많기 때문에, 그 위험을 항상 의식하면서 산다. 


한국도 경제적, 사회적으로 발전한 만큼 위험 요소들은 곳곳에서 점점 더 생겨날 것이다. 안전 의식을 중요시하며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관리해 나간다면 조금 더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 싶다.

5. [동아일보][한옥에 살다/박선주]화려한 자태보다 존재의 이유를 보니…

한옥을 공부한다고 시작한 지가 30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 처음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꽤 긴 시간들이 3배속으로 돌린 무성영화 필름의 잔영처럼 눈앞을 지나간다. 그중에 어떤 놈을 골라 한옥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볼까? 섬을 돌아다니며 길섶에서 우연히 만났던 ‘방-정지(부엌)’ 달랑 두 칸의 오두막집부터 너른 마당에 몇 개씩 채를 거느린 고래등 같은 기와집까지 제 나름의 시간과 삶을 품은 우리의 집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고민스러웠다.


전통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우리가 예전부터 살았던 집, 먹었던 음식, 입었던 옷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사실 그것들이 우리에게 오기보다는 우리가 그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그러나 그 방법과 초점에서 바른 길을 걷지 못한다면 전통을 지키는 일은 도리어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무엇이 정답인지를 알 수 없는 시간이 지금이 아닌가 싶다. 북촌 한옥마을을 찾아 그것을 전통한옥이라 배우고, 치마저고리면 한복인 것처럼 어디에도 없던 옷을 한복이라 입고 궁궐을 찾는 이들처럼 말이다.


몇 해 전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에 야외전시장을 꾸미면서 한옥이 들어갈 자리를 비워 두었다. 넓지 않은 크기지만 그 위치가 박물관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누구나 지나는 길이라 매우 중요한 입지였다. 그곳에 집을 짓기로 했다. 땅의 크기에 맞는 신축이 거론되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 중 적당한 것을 그대로 지어 보자고 했다. 그게 뭔 의미가 있을까? 영혼 없는 복제에 불과한 것인데…. 사람의 이야기가 함께 있는 집을 찾아다녔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순한 기원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2010년 3월 경북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서 오촌댁을 만났다. 금방이라도 땅속으로 들어갈 듯한 그를 보는 순간, ‘아, 이거면 되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험했던 집이 왜 그리도 맘에 들었던지.


뜻을 이해해 준 집안의 결정으로 오촌댁은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되어 영덕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박물관 마당으로 이건(移建)되었다. 공사 기간 중 집의 나이를 알 수 있는 상량이 적힌 부재와 명문기와까지 나와 집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실물까지 접하는 호사를 누렸다.


오촌댁은 그렇게 부활하게 되었다. 경북 영덕에서 1848년에 태어나 162년 동안 그 자리에서 영양 남씨 일가의 생활을 고스란히 담아 왔고 땅속으로 스러져 갈 운명 직전에 자신의 몸체를 그대로 지니고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집을 이루고 있는 작은 부재는 물론이고 남겨져 있던 소소한 살림살이까지 모두 함께 가져왔다. 집에는 삶이 녹아 있고, 그 삶의 기록들은 그곳에 거주했던 가족들이 사용했던 물건에 그대로 묻어 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버릴 수가 없었다.


한옥이 좋아 찾아다니는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집을 보면 그저 집의 외관에 감탄하며 그 자태를 감상하기에 바쁘다. 나도 초보 시절에는 당연히 그랬다. 발품을 팔아 찾아간 집 앞에서 그들이 내뿜는 모습에 일단 매료되어 그냥 찬사의 눈길을 주고 오기 바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집이 거기 있는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라도 마루 끝에 앉아 집이 바라보는 같은 풍광을 눈에 넣는다. “나 여기 이런 게 좋아 앉아 있어요”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집은 우리가 보기 좋아 거기 있는 게 아니라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좋기에 터를 잡은 것이다. 집은 객관적인 사물로 여기기엔 그 속에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생명체라는 이야기다. 집과 같은 입장에서 앞에 펼쳐진 산과 내를 볼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우리 한옥이 지닌 의미에 동화되어 함께 느낄 수 있다.


집은 분명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하늘, 땅과 교감하면서 성장한다. 사람처럼 외형적인 성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단단하고 야무진 완성체가 되어 간다. 특히 한옥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래서 지금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에 앉아 있는 오촌댁은 이제 완전히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박물관을 찾는 많은 이들을 건강한 모습으로 맞이하고 있다. 마치 예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언제 보아도 듬직하고 대견해서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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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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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0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제주공항은 중국 항공사들의 안방인가

제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어나면서 제주∼중국 노선의 항공 수요도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수요 증가에 따른 이득의 대부분은 중국 항공사가 가져가고 국내 항공사는 낮은 점유율에 허덕이고 있다. 제주와 중국을 오가는 하늘길을 사실상 중국 항공기들이 독차지하면서 제주 공항이 마치 중국 항공사들의 안방이 돼버린 듯한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주∼중국 항공편은 현재 25개 노선에 주 350편이다. 이 가운데 20개 노선 304편이 중국 항공사 몫이다. 국내 항공사는 5개 노선 46편에 불과하다. 노선의 80%, 항공편의 86.9%를 중국 항공사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용객도 중국 항공기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2012년 28.1%에서 2013년 52.3%, 2014년 76.8%, 2015년에는 83.8%로 급증 추세다.


근시안적인 정책 탓이다. 제주도는 1998년 외환위기 직후 관광 활성화를 명분으로 ‘일방향 항공자유화 제도’를 시행했다. 우리 정부의 운수권 허가 없이도 외국 항공사가 제주 공항에 자유롭게 취항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제주를 찾은 중국인이 1998년 1만 5000명에서 2014년 286만명으로 늘어난 것이 그 결과다.

문제는 갈수록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식이라면 관광객이 늘어난다고 박수만 칠 일도 아니다. 우리의 일방향 자유화 조치로 인해 중국 항공사는 자유롭게 제주 공항에 취항할 수 있지만 국내 항공사가 중국에 운항하려면 중국 정부의 운수권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중국이 좀처럼 노선 개설을 허가하지 않고 있어 국내 항공사는 수년째 발목이 잡혀 있다. 중국 어선들이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안 우리 영해에 드나들며 마구 고기를 잡아가는 것이 불법이라면 제주 항공노선에 대해서는 갖다 바친 꼴이나 다름없다. 


이제는 불평등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양국 간 전면 쌍방향 자유화 제도를 채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아니라면 제주~중국 노선만이라도 한국~산둥, 한국~하이난다오 노선처럼 쌍방향 자유화를 시행하도록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2025년 개항 예정인 제주 신공항도 중국 항공사들에게 고스란히 넘어갈 수밖에 없다.

[서울신문]

2. 성의없고 턱없이 미흡한 옥시 보상안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최대 가해 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가 피해자들에게 보상안을 제시했다.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접어든 시점에서 책임 업체의 보상안까지 나왔으니 옥시 파동은 마무리 단계를 밟는 모양새다. 옥시는 지난 주말 피해자들과의 비공개 만남에서 사망자나 상해 피해자에게 최대 1억 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1·2등급 판정 피해자에게는 1억원 이상을 제시했다. 옥시가 보상액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처음이다.


옥시 파동은 세계적으로도 유사 사례를 찾기 힘든 어처구니없는 소비자 집단 사망 피해 사건이다. 오죽했으면 온 국민이 생활용품 공포증을 앓고 있겠는가. 그런 사안의 중대함을 따질 때 옥시의 사태 인식은 너무 안이해서 허탈할 정도다. 교통 사고나 산업재해 사고의 사망 위자료 기준액보다는 그래도 높게 책정했다며 선심을 쓰는 듯한 입장이다. 사망 사고가 일어난 지 5년이나 지나 검찰 수사를 앞두고서야 영혼 없는 사과를 하더니 이제 와 기껏 불의의 사고들에 갖다 댈 일인가. 이 사건은 불가항력의 돌발 사고가 아니라 부도덕한 기업이 조직적·지속적으로 소비자들의 피해를 외면하고 은폐한 결과다.


소나기만 피하겠다는 얕은 계산으로 일관하는 옥시의 몰염치에 분통이 터진다. 그런 마당에 우리 사법부의 물러 터진 처벌 의지도 납득할 수가 없다. 옥시의 영국 본사를 건드리지 않고 어물쩍 눈감으려는 수세적인 자세가 답답할 뿐이다. 핵심 책임자인 존 리 전 옥시 대표의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한 탓에 옥시 본사와 다른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는 더 어려워졌다. 검찰은 이달 말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가뜩이나 늑장 수사를 시작했던 검찰이 고작 이 정도 선에서 수사를 매듭짓겠다는 발상이라면 손가락질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국민 생명을 우습게 본 해외 기업은 정신이 번쩍 들게 단죄해야 한다. 옥시의 해외 책임자들이 검찰 소환을 거부하고 뭉개는 상황은 모멸감마저 느껴진다. 해외 기업들이 유독 한국 소비자들을 만만하게 보는 이유가 멀리 있지 않다. 국가적 손해를 봐도 제대로 항의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는 우리 정부의 ‘새가슴’ 대처와 늑장 부실 조사, 솜방망이 처벌 탓이다. 검찰은 옥시 본사와 책임자들의 과오가 명백히 가려질 때까지 기왕에 잡은 칼을 내려놓지 않아야 할 것이다.

3. 추경 서두르되 두루뭉술한 편성·집행 안된다

추가경정예산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조선·해운 업계의 구조조정이 임박해 대량 실직의 조짐이 보이면서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엊그제 연구기관장 간담회에서 “추경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4월 기자 간담회에서 “추경이 필요하다고 속단할 수 없다”고 한 데서 추경 편성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도 그제 “추경 편성에 한 발짝 다가갔다”며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했다. 지난달 “추경 요건에 맞지 않는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인 것과 대비된다.


최근 경제 상황을 보면 추경 편성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선 지난해 소폭 개선됐던 고용 여건이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기준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만여명 증가한 2645만명이다. 지난 2월과 4월에도 취업자 증가가 20만명대에 머물러 지난해 평균 34만명에서 크게 떨어졌다. 고용과 직결되는 수출과 소비도 부진하다. 올 1분기 수출액은 1156억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3% 이상 감소했다. 같은 분기 민간 소비도 전기 대비 0.2% 줄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일자리의 근간인 수출과 내수 모두 좋지 않은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청년 실업률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해운·조선 업계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올 하반기 재난적 수준의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경제계에선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올해 경제성장률 3.1% 달성을 위해선 20조원대 추경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8조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다행히 지난 4월까지 국세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조원 넘게 더 걷히는 등 추경 재원 조달 여건은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추경은 내용 못지않게 시기가 중요하다. 경기 활성화와 실업 대책으로서 효과를 내려면 늦어도 8~9월에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7월 초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돼야 한다.


지금까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추경이 편성되면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에 주로 투입됐다. 고용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SOC 분야 사업은 고용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청년 인턴 같은 청년 일자리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런 정책은 일시적인 고용 수치 개선엔 도움이 되지만 지속성이 떨어진다. 유 부총리도 얼마 전 올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과 관련해 “구조 개혁에 박차를 가해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추경 편성에 대한 바람직한 방향이다.


따라서 추경이 편성된다면 단순히 일자리 개수만 늘리는 데 쓰여선 안 될 것이다. 수치적인 성과가 낮아도 경제 활력을 높이거나 지속적인 노동이 가능한 부문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신성장 동력이 될 사업에 쓰일 양질의 일자리 창출, 보육이나 노인 돌보기 같은 안정적 일자리를 보장하는 복지 서비스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그만큼 정교하고 치밀한 추경 편성과 집행이 필요하다. 아르바이트나 일용직 등 비정규직 일자리는 아무리 늘어나도 경제 활력만 떨어뜨린다. 정부가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4. 與 중진·원로 뒷방서 나와 수습 힘써야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탈당파들의 복당 승인 과정을 둘러싼 새누리당 내홍 사태가 어제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과 정진석 원내대표의 만남을 계기로 일단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김 위원장이 정 원내대표의 요청을 받아들여 칩거 사흘 만인 20일 당무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권성동 사무총장은 교체하기로 했다. 민생 등 산적한 현안을 제쳐 둔 채 집안싸움에만 골몰해 국민을 크게 실망시킨 새누리당은 하루속히 혼돈에서 벗어나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여당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친박계와 비박계 모두 자숙·자중해야만 한다.


총선 참패 이후에도 계속되는 계파 갈등은 새누리당에 내재된 위기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 준다. 친박계와 비박계 모두 내심 “결국 갈라설 것”이라는 극단적 결심을 굳히지 않고서야 이렇듯 사생결단 싸우겠는가. 김 위원장은 어제 정 원내대표를 만나 작심한 듯 새누리당의 실상을 비판했다. 애당심은커녕 동지애도 없고, 신뢰·윤리·기강조차 무너져 내린 엉망진창 상태라는 것이다.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갈라서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뜻 아니고 무엇인가. 당의 혁신을 위해 외부에서 모셔 온 김 위원장의 진단을 내부 구성원들은 뼈아프게 반성해야만 한다.


이번 사태가 진정된다 해도 계파 정치를 청산하지 않는 한 새누리당 위기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동지애도 없는 상황에서 언제라도 계파 갈등은 재연될 수 있다. 특히 당 대표를 뽑는 8월 전당대회는 ‘예고된 전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자칫하다가는 진짜 당이 쪼개지는 파국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진즉 20대 국회가 개원했지만 진흙탕 집안싸움에만 매몰돼 국정을 팽개치고 있는 여당에 국민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당내 화합과 혁신도 못 하면서 어떻게 국민 통합과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단 말인가.


새누리당에는 복당 의원 2명을 제외하고도 4선 이상 중진 의원이 19명이나 된다. 한때 지도부를 맡았던 원로들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번 사태 과정에서 이들 중진과 원로들의 중재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소장 강경파들의 격한 전투적 언어만 난무했다. 중진들은 당내 세력 판도의 주판알을 튕기며 뒷방에 숨었고, 원로들은 당내 역학 구도에서 뒷전으로 밀려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래선 안 된다. 중진과 원로, 특히 계파를 이끄는 최경환·김무성 의원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당을 수습해야 한다. 언제까지 국민이 집권 여당의 지겨운 집안싸움을 지켜봐야 한단 말인가.

[동아일보]

5. 개헌을 위한 몇가지 기준

20대 국회의 개원과 더불어 개헌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1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주도하던 원포인트 개헌이 정당 대표들과의 약속에 따라 제18대 국회로 미뤄진 이래 개헌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숙제였다.


그동안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형성되었지만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 범위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기 때문에 개헌이 과연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개헌의 필요성을 직시해야 한다. 


평균수명이 5년에도 미치지 못하던 과거 헌법들에 비해 현행 헌법은 근 30년에 이르는 압도적인 최장수 헌법이지만, 그로 인해 현실과 맞지 않게 된 부분도 적지 않다. 또한 대통령의 임기 문제나 권력구조 문제 이외에도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해서도 손보아야 할 것이 적지 않다. 


예컨대 3공화국 당시 위헌으로 결정되었던 것을 유신헌법에서 헌법 규정으로 만들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국가배상청구권의 제한에 관한 제29조 제2항의 문제는 반드시 손질해야 할 조항이며, 그 밖에도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정보 인권 조항의 필요성, 글로벌 시대에 맞는 외국인의 인권 보장 등 인권 보장의 현실화와 관련하여 논의되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물론 개헌의 중심 화두는 여전히 국가조직일 것이다. 특히 대통령제를 유지할 것인지,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개편할 것인지에 따라 헌법 질서 전반에 미치는 파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각각의 주장이 그 나름의 논거를 가지고 있으나, 향후 개헌의 준비 과정에서는 몇 가지 기준이 먼저 설정될 필요가 있다.


첫째, 30년 만의 개헌이기 때문에 차후에도 30년이 지나야 개헌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 세대에 한 번 있는 개헌이므로 이 기회에 바꿀 수 있는 것은 모두 바꾼다는 생각보다는 합의가 가능한 것, 개헌이 꼭 필요한 것부터 단계적으로 바꾸도록 해야 하며 필요에 따라 차기 개헌은 언제라도 가능하다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둘째, 같은 맥락에서 이념적 갈등이 극심한 사항은 개헌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예컨대 보수와 진보 사이에 갈등이 첨예한 영토 조항 문제나 경제 조항 문제를 개헌 대상에 포함시킬 경우에는 여타 조항들에 대한 합의조차 흔들리게 될 우려가 크다.


셋째, 개헌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것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엄밀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통일에 대한 대비는 전자에 해당할 것이지만, 권력구조의 개편은―비록 전자와 무관하지 않지만―후자에 해당한다. 전자는 중장기 과제로 볼 수 있는 것이지만, 후자는 당장의 성공 조건을 따져야 한다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양자의 구별이 중요한 것이다.


예컨대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은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통일 이후의 사회 통합에 유리할 수 있고, 그런 맥락에서 우리도 통일헌법의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로 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장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그 성공 조건, 즉 국회와 국회의원들에 대한 신뢰, 정당에 대한 신뢰를 더 높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개헌의 필요성은 명백하다. 그러나 개헌을 통해 동상이몽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만일 개헌을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이용하려 들면, 지난해 말에 선거구 재획정 시한을 앞두고 여야가 서로 다른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하던 경우처럼, 개헌이 지연되면서 모두에게 상처만을 남기게 될 수 있다. 개헌은 개헌의 본질에 맞게 진행되어야 하며,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가운데 헌법의 이념과 원리가 올바르게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겨레]

6. 9월이면 북한이 무릎 꿇는다는 막연한 대북전략

정부가 오는 9월까지 북한과 어떤 형태의 대화나 교류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정부 고위 관계자가 19일 밝혔다. 이런 방침은 범정부 차원의 내부 검토를 거친 뒤 결정된 것이라고 한다. 이 고위 관계자는 그때쯤이면 북한이 견디지 못하고 태도를 바꿀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9월이면 북한 핵실험 이후 안보리 제재 결의 2270호가 나온 지 6개월 되는 시점이다. 6개월 정도 대북 압박·제재를 하면 정말로 북한 핵 문제를 포함해 모든 것을 우리 정부 뜻대로 풀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인데, 적이 걱정스럽다.


정부 고위 관계자의 이런 발언은 박근혜 정부가 그동안 보여온 대북 기조와 일치한다. 그동안 정부가 보여온 것은 ‘대화 배제, 대북 압박’을 통해 북한의 굴복을 끌어내겠다는 전략이었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은 아프리카까지 가서 북한 봉쇄 작전을 폈다. 1970년대식 대결 외교가 되돌아온 듯했다. 윤병세 외교장관도 쿠바·러시아·불가리아 등 북한의 전통적 우방국들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북한 고립화 외교를 펼치고 있다. 박 대통령은 13일 국회 개원 연설에서도 “비핵화 없는 대화 제의는 국면전환을 위한 기만일 뿐”이라고 북한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면서 “성급히 북한과 대화를 위한 대화에 나서서 모처럼 형성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모멘텀을 놓친다면 북한 비핵화의 길은 더욱 멀어질 뿐”이라고 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압박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압박 전략이 실효를 거둘지는 매우 의문이다. 6개월 동안 물샐틈없이 압박하면 북한이 무릎 꿇고 나올 것이라는 것은 우리 정부의 희망 사항일 뿐 현실적인 정세 판단에 따른 전망이라고 할 수 없다. 지난 경험을 보면, 북한은 대화의 길이 막히고 대북 압박이 커질 때마다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쏘는 식으로 더 거세게 반발해 왔다. 북한 핵 문제는 대북 압박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현실적인 방안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국제적 공조를 긴밀하게 펴되, 동시에 북한과의 다각적인 대화의 장을 마련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 길을 찾는 것이다. 대화 없는 압박은 반발만 불러올 뿐이고 그 결과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이 아닌 악화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막연한 소망에 의지해 대북 압박에 모든 것을 걸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중앙일보]

7. 청와대, 조속히 당·청 관계 회복 나서라

유승민 의원 복당 결정으로 격화됐던 새누리당의 내분이 19일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의 회동으로 봉합 수순에 들어갔다. “복당 표결 과정이 강압적이었다”며 사흘째 칩거해온 김 비대위원장은 이날 정 원내대표가 찾아와 사과의 뜻을 밝히자 “진정성이 있다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출범한 지 겨우 한 달인 집권당 지도부가 간신히 붕괴 위기를 넘긴 것이다. 이제 김 위원장이 속히 업무에 복귀해 당을 정상화하는 일이 남았다.


유 의원 복당 표결 과정이 다소 격앙된 분위기 속에 진행된 측면은 있다. 그러나 그의 복당은 4·13 총선에서 나타난 호된 민심을 받들기 위해 비대위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였다. 새누리당 참패의 핵심 원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눈 밖에 난 정치인을 강제로 쫓아내 유권자의 선택권을 배제하려던 데 있기 때문이다. 출범 2주일 동안 허송세월만 해온 비대위가 늦게나마 유 의원의 복당을 결정한 건 모처럼 할 일을 한 것이다.


당의 주류인 친박들은 이런 당헌·당규에 따른 비대위의 복당 결정에 극력 반발하며 뒤집기를 시도했다. 복당 논의 과정을 주재하고 표결 결정에 찬성한 김 위원장마저 뒤늦게 표결 분위기를 문제 삼아 당무를 거부했다. 청와대도 복당 결정 당일인 16일 잡혀 있었던 고위 당·정·청 회의를 전격 취소했다. 총선 두 달 만에 처음 열리기로 돼 있던 이 회의에선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과 부실기업 구조조정 등 긴급한 현안들이 논의될 예정이었다. 이런 중요한 회의를 일방적으로 취소한 건 복당 결정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려는 의도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


청와대와 친박이 앞으로도 민심 대신 대통령의 뜻과 계파 이익을 앞세우는 행태를 버리지 못한다면 당내 갈등은 언제든 다시 폭발할 개연성이 크다. 이는 당·정·청 조율 기능 마비와 국정 공백으로 이어져 민생에 큰 피해를 안길 것이다. 당장 사흘 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결정하는 브렉시트 투표에 따라 금융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


또 신공항 선정을 놓고 원수처럼 갈라진 영남권 민심을 다독여야 하는 등 나라 안팎에 현안이 쌓여 있다. 집권세력이 내분이나 벌일 때가 아니다. 청와대는 김 위원장이 당무에 복귀하는 대로 조속히 당·정·청 회의를 열고, 정 원내수석과 유기적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해결책은 박 대통령의 태도 변화다. 유 의원의 복당을 비롯해 자신의 뜻에 역행하는 당의 행태가 야속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총선에서 확인된 민의에 부응하기 위한 집권당의 불가피한 자구책이다. 대통령 임기가 1년8개월 남은 상황에서 당이 내년 대선을 겨냥해 청와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통령은 당의 엇박자를 비판만 할 게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유 의원 등 국정 현안을 놓고 청와대와 의견을 달리하는 여당 의원들을 ‘배신자’로 낙인찍는 대신 당의 외연 확장을 위한 ‘자산’으로 포용하는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8. ‘정운호 게이트’ 현관 비리 의혹의 몸통 밝혀야

검찰이 현직 검사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1억원의 금품을 받은 단서를 잡고 조사 중이다.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의 브로커로 활동했던 이동찬씨도 검거했다. 이에 따라 판검사 출신 전관(前官)을 넘어 현관(現官) 비리 의혹의 몸통이 드러날지 주목되고 있다.


검찰은 현직 검찰 간부 박모 검사와 정 대표 사이에서 돈 심부름을 한 것으로 지목된 A씨를 긴급 체포해 조사했다. 정 대표는 최근 검찰에서 “2010년 박 검사에게 전달해달라며 A씨에게 1억원을 줬다”고 진술했다. 네이처리퍼블릭의 서울메트로 입점 과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무마하기 위해 청탁성 자금을 건네도록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박 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사실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다. 또 브로커 이동찬씨가 검거되면서 ‘정운호 게이트’ 핵심 인물들의 신병이 모두 확보됐다. 이씨는 최 변호사가 맡았던 정 대표 사건, 송창수 전 이숨투자자문 대표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인물이다.


지금까지 현관 관련 의혹에 대한 수사는 답보 상태를 면치 못했다. 박 검사 조사로 현관 수사의 물꼬를 트게 됐지만 곁가지에 불과하며, 이제 시작일 뿐이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와 관련된 부분은 아직 뚜껑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해외 원정 도박 사건으로 수사받던 정 대표가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받고 ▶3차 수사 후 도박 혐의 기소 때 횡령 혐의가 빠지고 ▶정 대표 측의 보석 요청에 검찰이 ‘재판부가 알아서 해달라’고 한 과정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최 변호사가 수사·재판 과정에서 검찰과 법원에 어떤 로비를 벌였는지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고리들이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한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와도 시민들을 납득시키기는 힘들 것이다.


검찰은 현재 대우조선해양과 롯데그룹을 대상으로 전방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 수사가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검찰 자신의 손부터 살펴야 한다. 검찰은 검사장 출신이 한 해 100억원을 벌고, 어떻게 123채의 오피스텔 쇼핑이 가능했느냐는 국민의 물음에 응답할 의무가 있다.

[매일경제]

9. 휘발유차량도 조작한 폭스바겐, 퇴출까지 고려해야

독일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및 사기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한때 세계 1위 자동차업체였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만적이고 퇴행적이다.


엊그제 검찰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골프 1.4 TSI 차량이 국립환경과학원의 배출가스 인증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자 전자제어장치(ECU) 소프트웨어를 두 차례나 조작해 불법 판매해 왔다고 한다. 이 같은 배출가스 조작은 독일 본사가 직접 지시했으며, 폭스바겐 한국법인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본사 지시에 따라 질소산화물 배출 수치를 조작하고 소프트웨어를 교체할 경우 별도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국내 법까지도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골프 1.4 TSI는 지난해 3월부터 국내에서 총 1567대가 팔렸고 배출가스 조작 경유차량 12만5000대가 지금도 돌아다니는 점을 감안하면 폭스바겐으로 인한 우리 국민의 직간접적인 피해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더욱 괘씸한 것은 폭스바겐의 안하무인 행태다. 폭스바겐은 경유차 배출가스 조작이 밝혀진 후 취해진 환경부의 리콜 요구를 7개월째 뭉개고 있다. 2011년에도 에어컨을 켜면 배출가스 기준치를 초과한다는 사실이 적발돼 리콜 요구를 받았으나 이 역시 강제 리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회장이 직접 나서 조작 사실을 시인하고 배상금이나 세금을 부담하기로 했으나 한국 정부와 소비자는 철저하게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금이라도 정부의 명예를 걸고 폭스바겐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대로 대응해야 한다. 폭스바겐이 국내 인증 절차를 기만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향후 폭스바겐 차량에 대해서는 일일이 자동차 한 대 한 대 철저하게 인증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실제 도로 주행 시 배출가스에 대해서도 기습점검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조금이라도 위법 사실이 밝혀지면 즉시 수입 판매를 중지시키는 것이 옳다. 소비자들도 리콜 요구, 환불 요구, 민사배상 소송 등 자력 구제를 적극 강구할 필요가 있다. 환경부가 대체 언제까지 국민 건강과 소비자 피해는 내팽개치고 통상마찰 핑계만 댈 건지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10. 전·현직 검찰 비위 사건 롯데 수사에 묻히면 안된다

전직 검사장인 홍만표 변호사와 부장판사 출신인 최유정 변호사 구속으로 이어진 '정운호 게이트'의 핵심 브로커 이동찬 씨가 지난 18일 체포되면서 전·현직 법조인 비위 의혹 사건이 다시 여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검찰은 현직 검사가 수사 상황을 누설하고 2010년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1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도 포착하는 등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운호 게이트'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인 진경준 검사장의 넥슨 주식 대박 사건과 더불어 세간에 주목을 받고 있는 사건이다. 두 건 모두 수사 결과에 따라 법조계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높다.


하지만 롯데그룹과 대우조선해양 등 대기업 비리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 사정이 시작되면서 두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전·현직 검사장 수사에 부담을 느껴 의도적으로 파급력이 큰 사건을 들고나온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홍 변호사의 전관로비 의혹이나 진 검사장의 넥슨 주식 특혜 시비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있어 여론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기업 비리 수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검찰은 롯데나 대우조선에 대한 수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의심을 해소하려면 한 점 의혹도 없이 진실을 밝혀야 한다.


현재 홍 변호사는 탈세 등 일부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금품로비 등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변론권 행사의 적절한 범위를 넘어선 적이 없다"며 극구 부인하고 있다. 진 검사장 사건 역시 직위를 이용한 편의 제공이나 뇌물수수, 차명주식 여부, 자금 출처에 대해 말을 바꾼 이유 등 궁금한 점이 많다. 이에 대해 검찰은 명확하게 밝힐 책임이 있다. 전·현직 법조인 비위 사건이 롯데나 대우조선 수사에 묻혀서는 곤란하다. 질질 시간을 끌다가 진실을 규명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된다면 국민적인 저항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검찰은 명심해야 한다. 두 사건에 검찰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요 신문칼럼

1. [머니투데이]그 일 안 하면 안 돼요?

누구나 언제나 무언가를 한다. 나 또한 언제나 무언가를 한다. 그것이 주로 '읽거나 쓰거나 걷거나'다. 이 일은 내가 좋아하는 놀이다. 나를 느끼고 즐기고 꽃 피우는 노래다. 나에게 다가가고 나를 펼치는 춤이다. 나에겐 읽고 쓰고 걷기가 1순위다. 다른 일은 2, 3 순위다.


읽고 쓸 때는 머리가 일을 한다. 에너지가 위로 오른다. 걸을 때는 몸이 일을 한다. 에너지가 아래로 내려간다. 이로써 머리와 몸은 균형을 맞춘다. 한참 읽고 쓰면 몸이 걷자고 한다. 한참 걸으면 머리가 읽고 쓰자고 한다. 나는 이 리듬이 좋다. 머리와 몸이 어울려 돌아가는 삼박자가 즐겁다. 왈츠처럼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당신은 어떤가? 밤낮으로 일에 쫓기는 분에게 묻는다.


- 그 일 안 하면 안 돼요?

= 안 돼.

- 안 하면 어떻게 되요?

= 할 일이 없어.

- 할 일이 없으면 좋잖아요.

= 그럼 심심해서 못살아.

- 그럼 좋아하는 일을 하시죠.

= 그게 뭔데?


이 분은 은퇴한 뒤에도 바쁘다. 돈이 없는 건 아닌데 어떻게든 일을 벌이고 돈을 벌려고 한다. 하지만 이 분에게 삶은 지루하다. 무료하다. 일을 거두면 지루함만 남는다. 무료함만 남는다. 은퇴 전이라고 별로 다르지 않다. 직장은 좋아서 다니는 게 아니다. 일은 재미로 하는 게 아니다. 내키지 않는 일에 시달리고 집에 와서 퍼진다. TV를 켜고 뒹군다. 집사람은 잔소리만 한다. 아들은 컴퓨터만 두드린다. 딸은 스마트 폰만 만지작거린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아들과 딸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받는 스트레스를 시시한 오락으로 푼다. 영화 보고, 쇼핑하고, 수다 떨고, 먹고 마시고, 꾸미고……. 어쨌든 심심할 틈이 없다. 내면의 나를 대면할 겨를도 없다. 


지금껏 나는 이러고 산 게 아닐까? 시답잖은 일에 마음 쓰면서 휩쓸려 다닌 게 아닐까? 단 한 번도 내 안의 바다에 잠기지 못한 채. 넓고 푸른 바다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깊고 고요한 바다에서 평화롭지 못한 채. 파도처럼 철썩이고 출렁이면서. 서로 부대끼고 밀고 밀치고 아우성치고 부서지면서.


누구나 언제나 무언가를 한다고 다 똑같은 건 아니다. 나와 일의 관계에 따라 일의 질이 달라진다. 삶의 향기가 바뀐다. 같은 일이라도 내 안에서 우러나면 놀이다. 노래다. 춤이다. 나를 드러내는 예술이다. 나를 이루는 성취다. 그렇지 않으면 짐이다. 노동이다. 투쟁이다. 나를 옥죄는 억압이다. 나를 파는 장사다. 나는 어떤가? 내 일은 놀이인가? 노동인가?

2. [동아일보][특파원 칼럼/전승훈]“내 증오를 선물하지 않겠다”

지난주 프랑스 대표팀이 출전하는 ‘유로 2016’ 축구 경기가 있는 날 파리 에펠탑 인근의 ‘팬 존’을 찾아갔다. 8만 명이 한꺼번에 모여 응원할 수 있는 샹드마르스 광장 입구는 경계가 삼엄했다. 무장 경찰로부터 몸수색을 2, 3차례 받은 뒤 팬 존에 들어서니 한 손에 맥주를 든 응원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이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겁이 나게 마련이지만 역시 프랑스인들은 어떤 위험에도 노는 것은 절대 포기할 수 없나 보다.


요즘 파리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경찰이 아닐까. 파리 테러 이후 국가 비상경계 태세 아래에서 파업과 시위, 훌리건 난동까지 하루도 쉴 날이 없다. 노동법 반대 시위가 과격해지면서 경찰 ‘증오’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5월에는 경찰관이 탑승한 경찰차가 화염병에 불탔다. 시위 현장에선 ‘모든 이가 경찰을 증오한다’는 등 경찰 혐오 구호가 난무한다.


다음 달 초 3년간의 파리 특파원 생활을 마친다. 파리 테러, 브뤼셀 테러, 이집트 폭탄 테러, 시리아 난민캠프, 그리스 재정 위기 현장을 다니며 종군기자 같은 생활을 했다. 유럽은 5년 전 프랑스로 연수 왔을 때의 평화로움과는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다. 제3세계에서 벌어지던 야만적인 테러가 이제 유럽 한복판에서 일어난다.


북한에서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할 때마다 프랑스인들은 내게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날까 봐 불안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내가 “적어도 한국에서는 카페에 앉아 있다가 총을 맞는 일은 없다. 파리가 더 불안하다”고 말하면 프랑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지난주 발생한 사건들은 과연 이곳이 민주주의와 이성이 빛나던 유럽이 맞나 싶을 정도다. 프랑스에서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충성을 맹세한 테러리스트가 경찰관 부부 자택에 침입해 세 살배기 아들이 보는 앞에서 아빠와 엄마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앞두고 여성 정치인이 대낮에 총격을 받고 숨지기도 했다.


도대체 얼마나 큰 증오가 쌓여 있기에 이렇게 인간성을 저버린 끔찍한 일들이 발생하는 걸까. 증오 범죄란 인종, 피부색, 민족, 종교, 성(性) 정체성,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무차별 폭력이다. 시리아 내전 5년의 증오로 IS가 탄생했다.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고, 유럽이 문을 걸어 잠그는 과정에서 브렉시트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청년 실업, 부의 불평등에 대한 증오도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007년 한국계 미국인 조승희가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총기 난사를 한 다음 날 나는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있었다. 당시 한국인이란 이유로 입국이 거절당할까 봐 불안에 떨었지만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올랜도 테러 사건 이후 “테러범 출신 국가의 이민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작지 않았다.


트럼프의 방식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특정 국가에 ‘이민 금지’ 딱지를 붙이는 일은 증오를 더 키울 뿐이다. 지난해 파리 테러 당시 아내를 잃은 앙투안 레리는 “그들은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빼앗아 갔지만 나는 그들에게 내 분노를 선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한 16일 사망한 영국의 조 콕스 하원의원의 남편도 “모두 힘을 합쳐 내 아내를 죽인 증오와 맞서 싸워 달라”고 호소했다. 두 사람의 차분하고 이성적인 대응은 유럽의 문명사회를 지킬 마지막 희망이다.

3. [중앙일보][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100엔짜리 인생이라 해도

직업, 없다. 남자친구, 없다. 꿈? 물론 없다. 16일 개봉한 일본 영화 ‘백엔의 사랑’(사진)의 주인공 이치코(안도 사쿠라)는 전문대를 졸업한 후 일자리 찾을 생각도 없이 도시락 가게를 하는 엄마에게 기대 살아가는 서른두 살의 여자다. 헝클어진 머리에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화가 난 표정으로 어기적어기적 걷는다. 열심히 하는 일이라고는 초등학생 조카와의 게임뿐. 자신에게 관심 없는 세상과 그런 세상에 구애하지 않겠다는 포기가 만들어낸 기운 빠지는 인생을 살던 이치코. 어느 날 이혼해 집에 돌아온 여동생과 머리채를 뜯으며 싸우다 홧김에 집을 뛰쳐나온다.


어쩔 수 없이 독립했으나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100엔(약 1100원)짜리 물품들을 판매하는 잡화점에서 심야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100엔 100엔 100엔 생활, 싸요 싸요 뭐든 싸요!”라는 노래가 늘 흘러나오는 곳. 그러다 잡화점에서 바나나를 사는 복싱선수 카노(아라이 히로후미)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를 보기 위해 체육관을 찾았다가 ‘다이어트하러 왔느냐’는 관장의 오해로 복싱을 시작하게 된다는 내용.

여기까지 보고 나면 ‘알 만하다’ 싶다. 한심하게 살던 청춘이 새로운 꿈과 사랑을 만나 성공을 향해 달린다는 내용이겠거니. 하지만 영화는 단순하지 않다. 이치코의 멋들어진 성공담 대신, 100엔 숍을 찾아오는 ‘100엔짜리’ 인생들을 그리는 데 공을 들인다. 하루 18시간씩 일하다 우울증에 걸린 점장,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훔쳐 가는 할머니, 있는 힘껏 노력한 적도 없으면서 포기는 빨랐던 한물간 복서…. 그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한 번쯤은 이겨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이치코의 변화를 담담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감동의 포인트는 이치코의 변화하는 눈빛이다. 복싱을 시작한 이치코가 밤낮없이 줄넘기를 하고, 계단을 뛰어오르고, 매대 사이에서 끊임없이 섀도 복싱을 할 때 보는 이의 마음도 덩달아 뜨거워진다. 내 것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삶에 처음으로 애착을 갖게 된 순간, 열정을 쏟아부어 노력하고 싶은 대상을 발견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반짝이는 눈빛. 남들에겐 100엔짜리로 보이는 인생이라 해도, 나에겐 이것밖에 없으니 최선을 다해 싸워보겠다, 이런 결심의 순간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외면과 내면의 변화를 실감 나게 연기한 배우 안도 사쿠라의 공이 크다. 안도는 이 영화로 올해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4. [서울신문][오늘의 눈] 태양의 서커스와 공시생/윤창수 사회2부 기자

천막 지붕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은 꽃, 동물 등 온갖 무늬를 만들어 낸다. 뱀으로 분장한 소년은 머리와 무릎을 붙이고 꼬아 마치 진짜 뱀으로 환생한 듯하다. 조금 전까지 무대 바닥에 있던 수영장이 배우가 뛰어들자 사라져 버린다.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공연 중인 태양의 서커스의 신작 ‘루지아’다.


태양의 서커스는 1982년 거리공연을 하던 캐나다 예술가들이 만든 문화기업이다. 퀘벡은 영어가 공용어인 캐나다에서 프랑스어를 쓰며 아직도 분리 독립운동이 계속되는 등 고유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런 문화적 힘이 캐나다 퀘벡 지역을 세계 사회적경제의 3대 메카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태양의 서커스는 중국 푸싱그룹과 미국 자본에 팔린 상태지만, 캐나다인들은 여전히 퀘벡의 문화적 전통이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런 기대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라 토후’다.


우리나라 난지도와 같은 쓰레기 매립지 위에 태양의 서커스 본사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라 토후는 이익이 아니라 인간을 생각하는 사회적경제인 비영리단체로 퀘벡을 아트 서커스 도시로 키우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긴 곳이다. 쓰레기장에서 나온 재활용품으로 극장 건물을 세우고, 자퇴생과 같은 취약계층에게 서커스를 비롯한 예술을 가르치며, 자체 축제로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1인당 연간 4500만원에 이르는 퀘벡주 총생산(GDP)의 7%를 라 토후와 같은 사회적경제가 차지하고 있다. 퀘벡에서 사회적경제 운동이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퀘벡의 사회적 운동가들은 주로 이민 여성이었던 근로자의 인권운동 ‘빵과 장미’를 성공시키는 등 약자와 소수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90년대 활동했던 운동가들의 자녀가 성장해 지금의 사회적경제를 이끌고 있다. 캐나다 사회적경제 협의체인 샹티에의 낸시 님탄은 “1980년대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는 우리보다 훨씬 독립적이고 첨단 기술로 무장돼 있다”며 “젊은이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사회적경제가 더욱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의 대학생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학생주택을 건설하고 식당, 금융업, 도시농업, 정보기술(IT)업 등에 진출하고 있다.


라 토후의 서커스학교 졸업 공연으로 인체를 통해 물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퀘벡 젊은이들을 보면서 노량진에서 시험 공부에 매달리는 30만~40만명에 이르는 공시생이 떠올랐다. 공무원은 사회에 봉사하는 보람된 직업이지만, 공무원이 되려고 청춘을 몇 년 동안 영어 단어 외우는 데 쏟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사회적경제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과 비교하면 더욱 안타깝다.


“겨울이 너무 춥고 기니까.” 태양의 서커스와 같은 거리공연이 발달한 이유를 물은 기자에게 던진 라 토후 감독의 대답이다. 아주 간단한 이유로 재능 발현 기회를 찾은 캐나다 청춘처럼 한국의 젊은이들도 창의성을 발휘할 다양한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5. [매경이코노미][HEALTH] 80세 이상 4명 중 1명…치매 원인과 예방법-생선·채소 먹는 ‘333수칙’ 뇌건강 지켜

우리나라 80세 이상 노인의 4명 중 1명이 앓고 있다는 치매. 60세 이후 5년이 지날 때마다 치매 발병 위험은 2배씩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치매는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인지 능력에 장애가 생겨 독립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 상태를 뜻한다. 한번 진행되기 시작하면 새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치매가 생긴 후에 일어난 일은 기억하지 못해도 그 이전의 것은 정상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이유다.


뇌 기능을 떨어뜨려 치매의 원인이 되는 질환은 무수히 많으며, 그중 85% 정도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알츠하이머다. 알츠하이머는 베타아밀로이드(beta-amyloid)라고 부르는 나쁜 단백질이 과도하게 축적돼 신경세포를 죽이는 병이다. 김기웅 중앙치매센터장은 “공장의 제조 공정에서 한 번씩 불량품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 몸속 단백질 대사 과정에서도 한 번씩 실수가 생겨 나쁜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면역 체계가 이런 단백질을 청소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축적되면서 뇌세포를 공격해 죽이게 되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알츠하이머 외에도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생기는 치매, 알코올성, 외상성 치매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치매의 최고 위험 요인은 연령이다. 고령화 진행으로 치매 발병률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두 번째 위험 요인은 학습 등 두뇌 활동의 부족이다. 교육을 적게 받은 사람일수록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 김 센터장은 “신경세포가 죽는 알츠하이머병을 생각하면 쉽다”면서 “학력이 높고 두뇌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신경세포 간에 다양한 회로가 형성된다. 그러다 보면 신경세포 중 하나가 죽어도 다른 통로가 많기 때문에 영향을 덜 받는다. 반면 교육을 많이 받지 않고 두뇌를 많이 쓰지 않을 경우 신경세포의 길이 단조롭기 때문에 세포 손상이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위험 인자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만성 대사성 질환과 우울증이다. 대사성 질환은 혈액순환에 문제를 일으켜 혈관성 치매, 알츠하이머성 치매 위험을 높인다. 당뇨, 고지혈증은 치매 유병률을 1.5~2배가량 높인다고 알려졌다. 우울증 역시 치매 위험을 높인다.


그다음은 잘못된 식습관이다. 김 센터장은 “무조건 몸에 좋은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좋은 게 아니다. 충분한 비타민과 함께 신경세포 재생에 도움이 되는 불포화지방산이 포함된 식단을 규칙적으로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 특히 뇌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는 녹황색 야채와 등푸른 생선이 꼽힌다”고 설명했다.


김기웅 센터장은 이 같은 위험 요인을 알고 대비하는 것이 치매 발병 위험을 줄이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는 333수칙도 있다. 3가지(운동·식사·독서)를 권하고, 3가지(절주·금연·뇌손상 예방)를 금하고 3가지(건강검진·소통·치매 조기 발견)를 챙기는 것이다. 또 치매상담콜센터(1899-9988)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김 센터장은 “치매 진단을 받은 후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완치약은 없지만 약물을 통해 증상을 조절하고 진행을 늦출 수 있다. 다만 치매 예방에 좋다며 검증되지 않은 주사나 약물을 고가에 파는 경우가 있는데, 병원의 공식 처방제 외에는 주의해야 한다.” 김 센터장의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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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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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7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미국 금리인상 유보, 일단 한숨 돌렸으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15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0.25%∼0.5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제로금리 시대’ 마감 선언에 따라 금리를 인상하리라던 당초 예상을 비켜간 것이다. “고용시장 개선 속도 지체에 따라 일자리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게 연준의 금리 동결 배경이다. 미국의 경제 사정이 금리 인상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처지라는 뜻이다.


미국 경제는 잠시 호전되는 듯했으나 난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성장이 후퇴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연준이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를 3개월 전의 2.2%에서 2%로 하향 조정한 것이 그런 결과다. 세계은행도 최근 세계경제전망 수정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올해 예상 성장률을 종전의 2.7%에서 1.9%로 크게 낮춘 바 있다. 이런 여건이라면 당장 금리를 올리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브렉시트’라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오는 23일 실시되는 영국 국민투표에서 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될 경우 기존의 세계 경제 질서가 무너지는 등 전대미문의 파급효과가 따를 것으로 우려된다. 따라서 연준으로서는 브렉시트 여부가 결정되기 전에 금리를 올림으로써 이중으로 불확실성을 키우지 않겠다는 의지가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 금리 인상이 유보됨으로써 일단 안도의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때까지 시간적 여유를 벌게 된 것이다. 미국 금리가 인상된다면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행이 미국 경제 동향을 내다보고 지난 9일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한 선제적 조치에 대해 새삼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미국의 금리인상 움직임이 꺾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브렉시트 투표가 부결되고 자체 고용시장 지표가 개선된다면 내달이라도 인상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이 하나의 변수가 되겠지만 금리가 한 차례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경우에 대해서도 대비가 필요하다. 특히 브렉시트는 우리 경제에도 블랙홀이다. 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한 치의 차질없이 위기를 극복해가야 할 것이다.

2. 내년 대선에서 개헌 공약 걸도록 하자

개헌이 갑작스레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한쪽에서 “개헌은 시대적 과제”라고 목청을 높이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서민들은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무슨 개헌 타령이나”며 핀잔이다. 다만 여느 사안과는 달리 개헌 찬반론이 여야와 보수·진보의 진영 논리를 떠나 전선이 어지럽게 형성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과 노선을 같이 하는 친박(親朴)계조차 내부 의견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제20대 국회 개원 연설에 이어 어제 취임 기자간담회에서도 “개헌은 이제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며 개헌론을 폈다. 그가 ‘개헌 전도사’로 알려진 우윤근 전 의원을 국회사무총장으로 임명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정 의장이 운을 떼자 여야 중진들이 가세하면서 개헌론에 힘이 붙고 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청와대 측은 “개헌에 대한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개헌=블랙홀’ 공식을 수정할 뜻이 없다는 뜻이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비롯해 경제 난국 타개에 국력을 집중해야 하는 터에 개헌 논의가 모든 정치 및 경제 현안을 빨아들이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도 지금은 권력구조를 따지기보다 경제 살리기에 주력할 때라며 개헌 논의에 반대한다.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채택한 ‘1987년 체제’의 시효가 끝났다는 데 대해서는 대체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분위기다. 여기저기서 솟구치는 개헌 논의를 ‘블랙홀’이라며 덮기엔 한계가 있다. 문제는 시기다. 우 사무총장은 늦어도 내년 4월까지는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대선을 새 헌법으로 치른다는 전제에서다. 그러자면 연말까지는 개헌안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개헌론자들끼리도 이원집정제니, 대통령 중임제니 하며 동상이몽인 마당에 반대파까지 설득해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서두르다가는 자칫 그르치기 마련이다. 이런 맥락에서 내년 대선 때 주요 후보들이 저마다의 개헌안을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 몇몇 정치인들이 권력구조를 멋대로 바꿔 가며 ‘그들만의 리그’를 계속하게 놔둬선 안 된다.

[서울신문]

3. 공공기관 개혁 강도 더 높여야 한다

정부가 어제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2015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결과를 심의·의결했다. 116개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 A(우수) 등급의 성적표를 받은 공공기관은 20개(17.2%)로 2014년에 비해 5개 늘었고 E(아주 미흡) 등급 공공기관은 6개에서 4개로 줄었지만 D(미흡) 등급 공공기관은 9개로 동일했다.


지난해 전체 공공기관의 부채는 490조 5000억원으로 2014년(507조 2000억원)보다 16조 7000억원 감소했다. 공공기관 부채 비율이 191%를 기록해 처음으로 200% 밑으로 떨어졌다. 기획재정부는 “적극적인 부채 관리 노력의 결과로 공공기관의 재무건전성이 크게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의 부채가 주는 등 일부 경영 실적도 나아진 측면은 평가받을 만하다. 정부는 지속적인 공공 개혁의 성과라고 밝히면서 경영평가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문제점도 적지 않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335개 공공기관 수장의 지난해 업무추진비 집행 금액이 56억 6082만원으로 전년보다 3.8% 늘었다. 2014년에 전년보다 10% 이상 줄였던 업무추진비를 슬그머니 올린 것이다. 경영실적이 나빠져도 업무추진비를 대폭 늘린 기관들의 행태를 보면 과연 개혁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부채 비율 감소가 재무건전성에 도움이 되지만 경영의 건전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특히 공공기관들이 정부의 경영평가를 의식해 수치를 꿰맞추는 보여 주기식도 없애야 할 관행이다. 공공기관 스스로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이 중요한 이유다.


공공기관의 철밥통을 깨자는 성과연봉제 도입도 지지부진이다. 업무성과에 따라 급여를 차등화해 공공기관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다. 노조는 업무평가의 공정성을 의심하고 있지만 변화의 물꼬를 튼 뒤 점진적으로 합리적 방안을 찾으면 된다. 무턱대고 반대하는 것은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밖에 안 된다.


공공기관 개혁을 부르짖는 정부와 정치권의 이율배반적 행태도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올해 상임감사·감사위원에 대한 평가에서 우수등급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4·13 총선 이후 공공기관 감사 등의 자리에 여당 출신 인사들이 잇따라 내려오고 있다. 낙하산 인사의 근절이 바로 공공기관 개혁의 출발점일 수 있다.

4. 대우조선 부실 방치한 산은 책임 엄중히 물어야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경영에는 산업은행의 부실 감독과 무능력이 결정적 뒷받침이 됐다. 대우조선의 주채권은행이자 최대 주주인 산은이 대우조선의 방만 경영을 방치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확인됐다. 한마디로 기가 막힌다. 기업의 재무 상태를 미리 점검하는 장치가 있는데도 산은이 손 놓고 있어 준 덕에 대우조선은 1조 5000억원의 분식회계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사정을 보면 대우조선이 지금까지 굴러온 것도 신기하다.


막대한 분식회계로 영업이익을 뻥튀기한 대우조선은 임직원들에게 마구잡이로 성과급을 돌렸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급여를 깎아도 모자랄 판국에 눈먼 돈인 양 마구 써댄 것이다. 영업손실이 3조원을 넘었던 지난해 임직원 격려금으로 877억원을 퍼쓰는데도 산은은 전혀 제동을 걸지 않았다. 이뿐이 아니다. 조선업과 아무 관련도 없는 자회사를 문어발식으로 세우고 인수하는데도 산은은 못 본 척했다. 감독은커녕 출자 회사들에 경영관리단을 파견해 대주주랍시고 가당찮은 갑질까지 일삼았다. 그런 신선놀음을 할 시간에 최소한의 감독 역할만 했더라도 대우조선의 부실은 단속할 수 있었다.


무책임한 기업 관리가 통했던 배경은 간단하다. 전문 경영을 하려야 할 능력이 없는 권력 낙하산 인사들이 산은의 요직을 꿰찬 관행부터 명백한 한계다. 애초에 전문성을 요구받지도 않은 낙하산들이 굳이 낯 붉혀 가며 관리 기업의 부실을 감독하고 책임 경영에 땀을 뺄 이유가 없다. 대우조선의 차장급 직원 하나가 8년간 회삿돈 180억원을 빼돌려 초호화 생활을 하다 구속됐다. 무한 방임하는 감독 기관 밑에서 눈먼 돈 빼먹는 파렴치가 없기를 바란다면 그게 오히려 비상식적이다.


지난해 5조원의 적자를 낸 대우조선에 밀어넣은 혈세가 7조원이다. 방만 경영을 계속한 부실 기업을 왜 국민 혈세로 살려야 하는지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비판이 괜히 쏟아지는 게 아니다. 제 역할을 못 하는 산은을 정책 금융기관으로 계속 대접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늑장 면피 감사로 비난을 자초한 감사원은 전·현직 산은 행장 등에 대한 솜방망이 징계만 요구했다. 이 와중에 대우조선 노조는 파업까지 결의했으니 차라리 파산시키라는 성토가 커진다. 정부가 총체적 부실 덩어리를 어떻게 수술하는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난파선에서 흥청망청 혈세 잔치판을 벌인 대우조선과 그런 행태를 눈감아 준 산은 경영진부터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5. 신공항, 집단 세 과시로 선정에 영향 미쳐선 안 돼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이 임박했다. 타당성 검토 용역을 맡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막바지 심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는 그제 “신공항 부지 선정 결과 발표 때 선정 방식과 이유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탈락 지역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데 대한 설명 차원이라고는 하나 이미 입지를 내정해 놓고 그에 대한 해명을 준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특히 경남·경북·대구·울산 등 4개 광역단체장들이 힘을 과시하듯 일제히 ‘계획했던 신공항 입지 발표를 약속대로 반드시 이행하라’고 언론에 광고까지 내 이 같은 심증을 뒷받침하고 있다.


영남권에선 신공항 입지 문제를 놓고 10여년째 ‘밀양 대 가덕도’ 구도로 갈등을 빚어 왔다. 이 때문에 이미 5년 전 백지화된 전례가 있다. 그렇다고 갈등 수위가 그때보다 낮아진 것도 아니다. 현재 영남권과 정치권이 들썩이는 모양을 보면 오히려 그때보다 폭발의 잠재성이 더 커진 듯싶다. 정치권의 개입은 불씨를 더 키우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물론 일부 국회의원들까지 신공항 유치에 실패할 경우 불복하겠다는 뜻을 내비칠 정도다. 전문가들은 지금껏 오로지 경제 논리에 의해 입지가 선정돼야 하며, 어느 쪽이든 심사 결과에 승복할 것을 촉구해 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신공항 유치를 위한 궐기대회에서 실패할 경우 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피켓까지 등장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하다.


정부는 신공항 입지 발표 때 선정 방식과 이유에 대해 상세히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해명이 나오든 유치에 실패한 쪽을 이해시키긴 어려울 것 같다. 지금의 상황이 5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당시 김황식 총리는 담화문에서 “가덕도와 밀양 모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운영상 상당한 장애가 있으며, 공항 규모에 비해 건설비가 과다하다”고 백지화 배경을 설명했다. 무엇보다 지역 갈등 유발에 대한 우려가 컸다.


당시 밀양과 가덕도는 19가지 세부 항목 평가 결과 100점 만점에 각각 39.9점, 38.3점을 받았다.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제성에서 각각 12.5점과 12.2점을 받았다. 두 지역 모두 상당히 낮은 점수였다. 따라서 이번엔 양쪽 모두 사업비를 대폭 줄이는 등 경제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었다고 한다. 제안서를 보면 부산시는 5년 전 9조 8000억원이던 사업비를 5조 9000억원으로, 밀양은 10조 3000억원에서 4조 6000억원으로 낮췄다. 밀양의 경우 기존에 27개의 산을 깎아야 했던 것을 항공학적 기술을 적용해 4개만 깎아도 장애물을 피할 수 있도록 해 비용을 줄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가덕도 측은 안전을 문제 삼고 있다.


현재로선 선정 방식을 크게 바꾸지 않는 한 어느 쪽도 눈에 띄는 우세를 보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5년 전 백지화의 주된 원인이었던 환경 훼손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지역 갈등은 오히려 더 심화될 조짐을 보인다. 벌써부터 정권 심판, 불공정, 음모 같은 극단적 어휘들이 춤추고 있다. 아무리 필요한 시설이라도 그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크면 없느니만 못할 수 있다. 신공항이 극심한 국론 분열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냉정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6. 무작정 시작한 보편복지 무상보육, '구조조정'해야 옳다

보편적 무상보육을 7월부터 선별적 무상보육으로 바꾸는 ‘맞춤형 보육’ 제도가 야당과 일부 어린이집의 반대로 흔들리고 있다. 취업 여성들이 0∼2세 아이를 맡길 곳이 부족하다는 여론에 따라 하루 12시간 이용 가능한 어린이집 종일반을 취업여성 위주로 운영하고, 전업주부와 육아 휴직자의 자녀들은 하루 6시간 맡기도록 구조조정을 한 것이 맞춤형 보육이다. 하지만 정부 지원이 줄어든다며 반발하는 어린이집 원장들이 내주부터 집단 휴원을 예고해 일하는 엄마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아무리 선진 복지국가라 해도 전업주부 아이들을 종일, 무상으로 돌보는 나라는 없다. 일본과 프랑스는 맞벌이가 아니면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없고, 영국 독일 스웨덴은 전업주부의 어린이집 이용시간에 제한을 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출발부터 엄마의 취업 여부에 관계없이 모두 종일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도록 잘못 설계하는 바람에 어린이집에선 자녀를 빨리 데려가는 전업주부만을 선호해 정작 보육이 절박한 취업 주부가 불이익을 당하는 구조였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전업주부의 종일반 이용을 제한하고 절감된 예산을 보육교사 처우 개선 등 보육의 질 향상에 쓰도록 정책을 바꾼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이런 취지에 공감한 야당도 지난해 9월 맞춤형 보육에 동의했고, 전년도 대비 1083억 원 증액된 보육 예산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시행을 불과 2주일을 앞두고 돌연 “맞춤형 보육 도입으로 피해를 볼 사람이 발생할 것이 눈에 보이는데 그냥 있을 순 없다”고 나선 것은 야당의 발목 잡기 고질병을 드러낸 것 같아 실망스럽다. 맞춤형 보육 도입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있다면 어린이집 원장들일 것이다. 정치권이 이들의 ‘조직적’ 반발에 휘둘려 정작 일하는 엄마들의 고통을 외면해선 안 될 일이다. 맞춤형 보육으로의 전환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복지가 제공돼야 한다는 점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봐야 한다.

7. 유승민 복당 안된다는 친박, 총선참패 이전과 뭐가 다른가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어제 20대 총선 과정에서 탈당해 무소속 당선된 7명을 일괄 복당시키기로 했다. 비대위는 이미 복당을 신청한 유승민 강길부 윤상현 안상수 의원 등 4명의 복당을 무기명 투표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은 126석으로, 원내 제1당의 자리를 되찾았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가관이다. 유 의원 복당 결정에 반발한 일부 강경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이 “비대위 쿠데타”라고 반발했고, 김희옥 비대위원장은 “거취를 고민하겠다”며 오늘 예정된 고위 당정청 회의 참석까지 취소했다. 김 위원장이 사퇴하면 비대위는 마비된다. 새누리당 막장 드라마의 끝은 어디인가.


김 위원장이 거취 고민을 말한 정확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당 안팎에선 청와대와 친박계의 집중적인 압력 때문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탈당 의원 복당 문제는 새 지도부가 출범할 때까지 당 지도부 역할을 맡은 비대위의 전결 사항이다. 복당 결정에 절차적 하자도 없다. 만약 청와대와 친박이 유 의원 복당 결정을 힘으로 찍어 누르려고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정당 민주주의에 반하는 패거리 정치다. 한 달 전 정진석 원내대표의 혁신위원장 선정과 비대위 구성을 친박이 좌초시킨 것 이상의 패권주의 행태다.


정치 경험이 없는 김 위원장은 처음부터 적격이 아니라는 관측이 많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혁신해야 한다” “계파 활동으로 통합을 해치는 구성원은 제명하겠다”고 했으나 과연 그런 다짐을 관철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친박은 자신들이 인정한 김 위원장 체제마저 마음에 안 든다고 갈아 치울 태세다. ‘당의 주인은 우리다. 누구든 도전하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식의 패권의식은 정상적인 공당(公黨)에선 있을 수 없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배신자’로 낙인찍힌 유 의원을 당에서 쫓아내는 과정은 졸렬했다. 민심이 떠나서 총선에서 참패한 주요 원인이 된 것이 당연하다. 청와대와 친박이 총선 참패라는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위상이 졸아들었는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복당 결정까지 무산시키려 한다면 친박 패권주의에 넌더리 난 국민의 인내를 다시 한번 시험하는 일이다. 민심이 떠나간 당은 결국 존속 기반이 사라진다.

8. 세계경제 넘어 세계정치 흐름 뒤바꿀 브렉시트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를 23일(현지 시간) 실시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5일 기준금리를 현행 0.25∼0.50%로 동결하기로 결정한 뒤 재닛 옐런 의장은 “기준금리 동결의 한 요인이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라고 밝혔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어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하면서 “우리나라는 영국과의 무역 금융 연계가 낮아 상대적으로 브렉시트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금융시장을 뒤흔들 수 있을 뿐 아니라 국제정치의 흐름까지 바꿀 수 있는 브렉시트의 영향을 영국과의 무역 문제 정도로만 보는 것은 협소한 시각이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한 뒤 EU와 새로 자유무역협정(FTA)도 맺지 못할 경우 2030년까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2.2%까지 손실이 예상된다. EU도 역내 시장 규모가 축소되면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영국과 EU의 경제적 손실에 따라 파운드화와 유로화 가치가 요동치면 국제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몰고 올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경제적 손실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방과 통합을 추구하던 자유시장경제적 흐름이 꺾일 경우 발생할 국제정치의 변화를 더 크게 우려하고 있다.


미국 올랜도에서 발생한 이슬람국가(IS) 추종자의 테러 이후 영국의 브렉시트 지지 여론이 반대를 앞지르는 역전극이 벌어졌다. EU의 이민 정책으로 테러리스트들이 유입될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외국인에게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피해의식도 팽배해 있다. 국민투표 결과가 브렉시트 쪽으로 나온다면 주류 정치권과 경제사회적 기득권 계층에 대한 ‘대중의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공화당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주류 세력의 반대를 뒤엎고 대선 후보로 결정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과 영국같이 개방을 선도했던 나라가 고립주의, 국수주의의 길로 가는 것이 세계가 가장 우려하는 일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작년 총선에서 보수당 내 반(反)EU 세력을 달래고 같은 우파 성향인 독립당의 약진을 막기 위해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공약했다. 그 덕에 총선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자승자박이 됐다. 정치적 목적으로 내건 포퓰리즘 외교 공약이 자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어떤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반미(反美)면 어때”를 외쳤던 노무현 대통령 시절 한미 관계가 왜곡된 적이 있다. 외교든, 경제든, 복지든 표만 노리고 국익은 도외시하는 포퓰리즘은 결국 감당하기 어려운 대가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브렉시트는 경제 그 이상이다.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통합과 협력을 지향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성장했다.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서는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당연시했던 정신적 물적 토대가 바뀔 수도 있다. 미리 내다보고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앙일보]

9. 전관 비리를 '변호사 처신 탓'으로 돌린 대법원 대책

대법원이 전관(前官)예우 논란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다. 연고관계에 따라 변호사를 선임하려는 시도를 차단하고 법정 밖에서의 변론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과연 이런 대책으로 전관 비리 의혹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제 대법원은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재판부와의 연고관계를 내세워 수임료 10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데 대해 사법부 차원의 대책을 밝혔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은 대법원에서 하루라도 함께 근무한 대법관에겐 배당하지 않고 법정 밖 변론과 전화 변론, 몰래 변론 등 부적절한 의견 전달 금지를 대법원 규칙으로 명문화하기로 했다. 가칭 ‘부당변론신고센터’도 개설하겠다고 했다. 요약하면 법원 외부의 불순한 접근을 차단하겠다는 얘기다.


이번 대책은 대법원의 안이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대법원은 “사태의 근본 원인은 법관과의 연고관계를 사건 수임의 도구로 악용해온 일부 변호사의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사법부 역시 이러한 행태가 가능하도록 틈을 보인 측면은 없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전관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근본 원인은 ‘일부 변호사의 부적절한 처신’이 아니라 재판의 불투명성과 폐쇄성에 있다.


법정에 제출된 증거와 진술을 토대로 실체적 진실이 가려지고 법리적 문제가 정리된다면 의뢰인들이 굳이 판사 출신 변호사의 인적 네트워크를 돈으로 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다 보니 ‘전관’ ‘연고’를 앞세운 변호사와 브로커들의 영업 마케팅에 말려드는 것 아닌가. 책임을 내부(재판)가 아닌 외부(변호사 처신)로 돌리는 이번 대책은 법원이 얼마나 국민과 동떨어진 집단사고에 갇혀 있는지 말해주는 것이다.


그간 법조 비리가 터질 때마다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대책의 틈새를 비집고 새로운 유형의 비리들이 고개를 들곤 했다. 대법원이 재판에 대한 근본적 반성 없이 미봉책으로 넘어가려고 한다면 사법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

10. 성폭행 피해자 신상털기, 반인륜 범죄다

일부 삐뚤어진 네티즌이 전남 신안군에서 발생했던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신상털기’를 시도하다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의 회원 등 네티즌 5명은 신안군 성폭행 사건 피해자의 정보를 캐서 인터넷에 올리려다 엉뚱한 사람의 사진을 올리는 바람에 피해를 안겨준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됐다.


피해자가 기간제 교사라는 잘못된 이야기를 접한 이들은 사건이 발생한 초등학교 홈페이지에서 A교사의 사진을 찾아 인터넷에 올렸다. 하지만 이들이 신상 정보를 공개한 인물은 피해자가 아니었다. 뒤늦게 자신의 사진이 성폭행 피해자로 지목돼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음을 알게 된 A교사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네티즌 5명에 대한 고소장을 직접 경찰에 제출했다. 그는 이 일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다가 최근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하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성폭행 사건은 전 국민을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은 흉악 범죄다. 그런 사건의 피해자 신상 정보를 캐서 인터넷에 올리려고 한 것 자체가 성폭행 못지않은 비윤리적이고 반인륜적이며 파렴치한 중범죄다. 극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피해자를 돕지는 못할망정 이런 시도를 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희롱한 망나니 짓이다. 그릇된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 엉뚱한 사람을 피해자로 둔갑시킨 것도 마찬가지다. 사명감을 가지고 벽지에서 일하는 교사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간적 어려움을 안겨줬다.


당국은 이번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고 강력하게 단죄해 사회적 경종을 울려야 한다. 일벌백계 차원에서 법이 허용하는 가장 강력한 처벌을 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올린 비인간적인 정보를 보고 킬킬거리며 ‘좋아요’ 등을 누른 네티즌에게도 책임을 물릴 방안을 찾아야 한다.


사람을 노리개 삼는 이런 비인간적인 사이버 범죄의 재발을 막으려면 정부는 물론 네티즌 차원의 대책도 필요하다. 인터넷에서 단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벌이는 이러한 일탈 행동을 근절하려면 사이버 공간의 자율적인 자정 기능부터 강화해야 한다. 인터넷 자정 시민운동을 기대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최재석의 동행> "사장님, 나빠요"

2000년대 초반 KBS2의 예능프로그램 '폭소클럽'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어눌한 한국어를 흉내 낸 코너가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외국인노동자 '블랑카'로 분한 개그맨 정철규 씨의 "사장님, 나빠요"라는 대사는 당시 꽤 유행했다. 블랑카 코너가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풍자적으로 잘 그렸다는 점에서 공감이 컸다.


10여 년이 지나 이 인기 개그 코너를 다시 떠오르게 한 일이 있었다. 경남 창녕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등 외국인노동자 4명이 이달 9일 건축업자로부터 밀린 임금 440만 원을 모두 동전으로 받았다고 한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이들을 고용했던 건축업자는 자루에 담아온 100원짜리 동전 1만7천505개와 500원짜리 동전 5천297개를 컨테이너 사무실 바닥에 쏟아 뒤섞이도록 한 뒤 '가져가라'고 했다.

외국인노동자 4명은 지난달 중순부터 이 건설현장에서 급여를 주급으로 받기로 하고 일했다. 그런데 한 달 가까이 임금을 받지 못하자 현장에 출근하지 않았고 이에 화가 난 건축업자가 밀린 돈을 동전으로 지급했다는 것이다. 동전을 받은 노동자들은 합숙소인 원룸에서 밤새 100원짜리와 500원짜리로 나눴고, 다음날 단골 슈퍼마켓 주인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후 슈퍼마켓 직원과 함께 동전을 차에 싣고 농협과 은행 등을 찾았으나 '동전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번번이 환전을 거절당했다. 창원시에 있는 한국은행 경남본부를 찾아가서야 겨우 지폐로 바꿀 수 있었다고 하니 그들이 느꼈을 인간적 모멸감이 어느 정도였겠는가.


요즘 외국인노동자는 전국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이 많아졌다. 2015년 10월 통계청의 '외국인 고용조사' 발표에 따르면 그해 5월 기준으로 외국인 국내 취업자가 93만8천여 명이다. 연평균 10%의 증가세를 고려하면 현재 100만 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고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외국인노동자와 이주민들이 여전히 많다고 한다. 외국인노동자가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일각의 주장도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는 게 이주노동자권익옹호단체들의 설명이다. 경기도 광주의 한국이주노동재단 이사장인 안대환(56) 목사가 지난달 말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우리 산업 현장의 현실을 잘 말해준다.


"1970∼80년대 지금 청년들의 바로 윗세대가 손가락이 잘려가며 하던 일을 이제 파키스탄이나 몽골의 노동자들이 대신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고도화돼 자동차나 휴대전화 제조업이 주력이라 해도 부품을 만드는 절삭가공이나 사출금형 등의 작업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청년들은 선반이나 밀링머신, 프레스 등의 위험한 기계는 다루려고 하지도 않지요."

지금은 바야흐로 '외국인 200만 명 시대'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194만3천여 명이다. 2000년 49만 명이었던 외국인이 불과 15년 만에 4배로 늘어났다. '단일 민족'을 고집하던 한국이 여러 나라 출신 외국인과 함께 사는 '글로벌 국가'로 변모한 것이다. 외국인과 이웃하는 광경이 더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주민을 바라보는 인식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격차가 크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9∼10월 전국의 성인 4천 명과 청소년 3천640명을 대상으로 '국민 다문화 수용성 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노동자와 이민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31.8%였다. 스웨덴(3.5%), 호주(10.6%), 미국(13.7%)과는 아직 큰 차이를 보였다.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노동자는 힘든 노동이 필요한 중소기업과 농촌에서 지금도 부족한 일손을 메우고 있다. 그들이 우리 사회가 지탱하고 발전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는 사회 구성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저출산의 늪에서 오랫동안 못 벗어나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판에 우리나라에서 일하겠다고 찾아온 외국인에게 멸시와 차별이 있어서 되겠는가.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걷다가 생김새나 피부색이 우리와 다른 그들을 우연히 마주쳤을 때 왠지 주위를 경계하는 듯한 행동이나 눈빛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면 외면하지 말고 조용히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봐주자. 같은 세상을 사는 한국인의 사랑을 느낄 것이다. 사실 먹고 살게 부족했던 우리 아버지 세대의 많은 사람이 외국으로 건너가 온갖 설움을 견디며 '노동자' 생활을 한 것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가짜 손가락 수당/최광숙 논설위원

007 영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1971년)에는 제임스 본드가 보안문을 통과하기 위해 가짜 지문을 엄지손가락에 붙여 지문인식기를 무사히 통과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은 보안을 위해 지문뿐만 아니라 목소리, 손의 혈관, 얼굴 등을 활용한 다양한 생체인증 기술이 발달했지만 당시만 해도 그것은 ‘최첨단 기술’이었다.


공직사회에도 가짜 지문이 등장했다.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다. 공무원들이 야근 수당 등을 타 내기 위해서다. 지난해 말 해임된 경북의 소방공무원 2명은 초과근무 수당을 챙기기 위해 ‘가짜 손가락’을 만들었다가 적발됐다. 이들은 미술을 전공한 부하 직원의 도움을 받아 실리콘으로 손가락 본을 뜬 뒤 부하 직원들에게 맡겨 야근을 한 것처럼 지문인식기에 체크를 하도록 했다고 한다. 개당 20만원을 주고 가짜 손가락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실리콘 손가락 덕분에 이들은 연간 200만~400만원의 수당을 챙겼다.


사실 공무원들이 출퇴근 시간 조작으로 수당을 챙기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0년 전만 해도 지방자치단체의 서무 담당 공무원의 주요 일과 가운데 하나가 그 일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부서원들의 수당을 모아서 부서 회식비 등으로 썼을 정도로 조직 차원에서 이뤄졌다. 오랜 관행이다 보니 초과근무 수당을 챙기는 것을 문제 삼는 이들이 없었다.


정보기술( IT)이 발달한 이후에는 컴퓨터에 출퇴근 시간을 입력하거나 카드 인식기로 체크를 했다. 그런데도 다른 동료 직원들을 대신해 체크해 주는 등 공무원 야근 수당 조작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10여년 전 도입된 것이 지문인식기다. 본인만 체크를 할 수 있어 수당 비리가 사라질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나쁜 버릇은 쉬 고치기 어려운 법이다. 2014년 충북도청 한 직원은 음주 교통사고를 낸 뒤 경찰 조사를 끝내고 귀가하는 도중 잠시 사무실에 들러 지문인식기에 지문을 찍었다가 들통이 났다. 회식을 하거나 외국어 공부를 하러 학원에 다녀온 뒤 사무실에 돌아가 지문을 찍고 가는 경우는 다반사다. 심지어 귀가했다가 슬리퍼에 운동복 차림으로 지문을 찍으러 갔다가 걸린 공무원도 있다.


2014년 공무원 초과근무 수당이 연 2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밤늦도록 일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이런 식으로 수당을 훔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부가 공무원 초과근무 수당 문제 개선을 위해 ‘초과근무 총량관리제’를 도입한 것도 그래서다. 일부 지자체 등에서는 지문인식기보다 한 차원 높은 정맥인식기로 교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수당 타 먹기에 관한 한 우리 공무원들의 ‘창의성’을 감안한다면 그것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고질적인 수당 비리를 근절하려면 무엇보다 공무원의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 수당 비리는 분명 세금 도둑질이자 범죄다.

3. [동아일보][지금 SNS에서는]카톡방 언어성폭력을 보며

14일 오후 11시경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보다가 대학 후배가 올린 사진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고려대 남학생 8명이 1년 넘게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여자 동기와 선후배들의 실명을 언급하며 성희롱 대화를 나눈 이른바 ‘고대생 카톡방 언어 성폭력 사건’을 고발하는 대자보 사진이었습니다. 


부끄러운 학창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중학교 3학년 도덕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성(性)을 주제로 한 조별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제가 속한 조는 남학생들로만 구성돼 있었습니다. ‘나에게 이성이란’ 질문에 한 친구가 ‘욕망의 대상’이라고 썼고 저를 포함한 나머지는 이걸 보고 키득거렸습니다. 마침 그때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습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끝난 뒤에도 다들 조별 과제물에 적은 문제의 표현을 지워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 과제물이 교탁 위에 올려져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수업을 하러 들어온 국어 선생님은 그 과제물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조의 과제물을 본 순간 선생님의 표정은 일그러졌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와.” 


그날 우리는 호되게 맞았습니다. 그리고 한 주 동안 수업을 듣지 못했습니다. 학생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매일 반성문을 써야 했거든요. 교실에 돌아간 첫날 담임선생님은 “잘못 가르쳤다”며 매를 들었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여성 인권과 성 평등을 주제로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감상문을 써 내야 했습니다. 


고대생 카톡방 성폭력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다음 날인 15일 가해 학생들은 캠퍼스 곳곳에 대자보 형식의 사과문을 붙였습니다. 이들은 ‘언어 성폭력에 관련된 혐의를 모두 인정합니다. 형사처벌을 포함한 징계 역시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사과했습니다. 


이들이 나눈 대화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저속한 표현이 많았습니다. 단체방에 있던 한 학생이 문제 제기를 했는데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들 중 한 명은 학교 양성평등센터 자원봉사자였고 다른 한 명은 페미니즘학회 회원이었습니다.


누리꾼들은 이들을 향해 ‘역겹다’, ‘추악하다’며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사과문에 대해서도 진실성이 없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카톡 단체방에서 나눈 대화도 모욕죄로 처벌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만약 이들이 법정에 가더라도 초범이기 때문에 그 처벌은 벌금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사례에 비춰 봤을 때 징계도 그리 무겁지 않을 테고요. 성인이 되어서도 고쳐지지 않은 비뚤어진 사고방식이 이 정도로 고쳐질 수 있을까요. 이들은 사과문에서 ‘평생 반성하며 살겠다’고 했지만 그 말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건 저 뿐일까요.

4. [중앙일보][마음산책]성인이 된 아이는 놓아주고 친구를 챙기세요

출가할 당시만 하더라도 스님이 되면 본인의 깨달음을 위해 수행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보살심을 발휘해서 중생 구제를 하더라도 우선은 내가 깨달은 후에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절에 있다 보면 실상은 절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절을 찾는 신도님께서 갑자기 힘든 일이 생겨 많이 괴로워하시는데 그분을 모른 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차라도 함께 나누면서 힘든 상황을 따뜻하게 들어주고 위로의 한마디라도 해드리면, 비록 문제를 해결해드리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조금은 홀가분해하신다. 어떻게 보면 심리상담가가 없던 그 옛날에는 종교인들이 바로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 내게 힘든 심정을 토로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와 부모 사이 관계에서 비롯한 문제가 가장 많았던 것 같다.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가 말을 듣지 않거나 아니면 지금 힘든 아이 상황을 보는 것이 괴롭고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의 지나친 간섭이나 기대, 아니면 반대로 무관심으로 인한 상처 때문에 아파한다.


예를 들면 서른이 넘은 아이가 결혼을 하려고 하지 않아 걱정이라고 하시는 분이 유독 많다. 부모 입장에선 아이가 미혼으로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부모 역할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기만 하다. 마치 미완성인 그림을 보는 듯한 심정이신 것 같다.

더불어 결혼 말고도 부모님들은 아이의 직장 문제로 또 고민하신다. 요즘 워낙 취업이 힘들다 보니 몇 년째 취업 공부만 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고 능력이 크게 없는 부모 처지가 미안하기까지 하다. 올해도 취직 시험에 떨어진 아이를 보면서 그만 공부하게 하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1년 더 지켜봐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기껏 어렵게 입사해서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신 분들은 갑자기 아이가 직장을 때려치우고 장사를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또 고민하신다. 장사 밑천이 없으니 부모 도움이 필요한데 노후를 위해 준비해둔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아이를 도와주는 것이 맞는지, 그냥 없다고 하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아이 문제로 상담하시는 부모님을 만날 때마다 나도 함께 깊은 고민에 빠진다. 획기적인 문제 해결은 어렵지만 그분의 어려움을 함께 공감해드리고 지금 현재 상황을 좀 더 수용하면서 안정을 찾으시도록 몇 마디 해드려야만 할 것 같아서다.


예를 들면 미혼 자녀 때문에 걱정이라는 분께는 이렇게 말씀드린다. “저는 아이가 결혼을 안 한 것이 꼭 불행이라거나 미완성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전 세계 그렇게 많은 신부님, 수녀님, 스님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데도 그분들은 본인 인생이 미완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서두르다 보니 배우자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한 결혼 때문에 자신의 삶이 싱글 때보다 불행해졌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식의 직장 문제로 고민하시는 분들께는 또 이런 이야기를 해드린다. “공무원 시험이나 각종 고시 같은 시험 준비를 하는 자녀가 작년에 이어 이번 시험에서도 떨어졌는데 본인은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고 한다면 아이에게 다짐을 받으세요. 딱 1년만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고 만약 내년에도 떨어지면 깨끗하게 단념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요. 그리고 직업의 종류는 3만 가지나 되는데 너무 하나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은 그리 지혜로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실제로 꿈의 직장에 취직이 된 사람들 가운데도 상당수가 1~2년 안에 이직을 꿈꾸는 경우가 아주 많으니까요. 그냥 생각으로 직장을 고르는 것과 실제로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노후 준비 자금으로 자녀를 도와주는 것이 맞는지를 물어보시는 분께는 이렇게 말씀드린다. “우리나라 노년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위라고 합니다. 노년이 찾아왔을 때 자식들이 부모가 해준 것만큼 다시 해주면 참 좋겠지만 실상은 본인들 살기도 힘들고 바쁘기 때문에 그것이 쉽지가 않아요. 재산이 있으면 또 자식들 간에 다툼이 생길 수 있어 심리적으로 힘든 노년을 맞는 분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요. 그래서 성인이 된 자식은 본인의 삶을 살도록 좀 놓아주고 나 자신과 배우자, 친구들을 좀 더 챙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특히 은퇴 후 내 마음을 살찌울 공부를 한다던가 여러 친구들과 운동이나 취미, 종교, 봉사활동 등을 주기적으로 하면서 밥을 같이 먹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은퇴 후 20~30년을 더 사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 삶의 중심을 너무 자식으로만 두지 말고 나 자신과 배우자, 그리고 특히 친구들과 함께하는 충만한 삶으로 설계하세요.”

5. [중앙일보][시선 2035] 편의점과 숟가락

퇴근길에 종종 집 근처 편의점을 찾는다. 맞벌이 부부다 보니 밥솥은 텅 비어 있고, 녹초가 된 몸으로 밥을 해먹기엔 엄두가 안 나서다. 편의점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라면과 삼각김밥, 햄버거로 손이 간다. 복학생 시절인 8년 전 자취를 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 나 혼자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항상 20대 대학생, 30대 직장인 등이 편의점 자리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3만 곳이 넘는 편의점 수만큼이나 이곳 음식은 젊은 층에게 일상이 됐다. 배문경 충북대 교수에 따르면 주 2회 이상 편의점 식품으로 끼니를 때운다는 대학생은 절반을 넘었다(52.2%). 하지만 맛 때문에 편의점 식품을 먹진 않았다.


대부분 쉽게 살 수 있고 시간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돈 없고 집밥과 거리가 먼 자취생들이 단골이다. 혼자 원룸에 살고 있는 친구는 “편의점 식품이 몸에 안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래도 혼자서 5000원, 1만원짜리 밥을 먹긴 부담스러우니 선택지는 편의점뿐”이라고 말했다.


직장에 나간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맛을 음미할 여유도 없이 허겁지겁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해 한 취업사이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이 실제로 점심을 먹는 시간은 20분 미만이 53.2%였다. 빡빡한 점심시간 규정과 쌓여 있는 업무 속에 부랴부랴 식당 문을 나서는 셈이다. 그마저도 평균 6000~7000원인 점심값을 줄여보려고 싼 곳을 찾아다니기 일쑤다. 회사원 친구는 “바쁘면 샌드위치나 김밥으로 때우는 경우도 많다. 아침은 굶고 점심을 부실하게 먹으니 도리어 저녁·야식을 많이 먹게 된다”고 푸념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말을 농담처럼 나누던 시절은 흘러가고 오직 생존을 위해 먹는 세상이 된 걸까. 천천히 밥알을 꼭꼭 씹어 가며 점심을 먹거나, 집에서 손수 만든 반찬과 국으로 저녁을 해결하는 건 ‘로망’이 된 지 오래다. 1식4찬을 갖춘 1000원짜리 대학교 학생식당 밥, 영양소를 다 갖췄다는 편의점 웰빙 도시락이 그나마 대안이 될 뿐이다. 값싼 편의점 식품에, 짧은 점심시간에 시달리는 20~30대는 갈수록 늘어 간다.


지난달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사고를 당한 19세 김씨도 마찬가지다. 고교생 티를 막 벗은 그의 가방 속 사진이 공개되자 모두의 시선은 같은 곳에 머물렀다. 손때 묻은 공구들 사이의 사발면과 나무젓가락, 그리고 쇠숟가락. 특히 컵라면과 숟가락은 비정규직 청년의 아픔을 대변하는 상징이 됐다. 정해진 수리 시간을 맞추기 바쁘지만 어떻게든 밥 한 숟갈 뜨고 싶었을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문득 김군과 함께 스크린도어 정비업체에 입사했다는 또래 비정규직 직원 16명의 가방 속도 궁금해졌다. 여러분은 식사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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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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