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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3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동아일보]

1.4차 산업혁명의 ‘가상현실 플랫폼’ 선점할 수 있나

산업 간 융합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지는 4차 산업혁명 시기,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을 선언했다.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6’ 개막을 앞두고 21일(현지 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컨벤션센터에서 그는 “가상현실(VR)은 가장 사회적인(Social) 플랫폼이며, 차세대 플랫폼”이라고 했다. 10년 전에는 사람들이 자기 경험을 문자로 공유했고 최근엔 이미지로 기록했지만 이제는 모두 함께 있는 것 같은 VR로 경험을 나누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플랫폼은 우리말로 승강장이다. 각지로 가는 교통수단과 승객이 모이면서 쇼핑과 광고뿐 아니라 개인과 기업을 연결하는 종합 비즈니스 광장으로 진화하는 추세다. 1∼3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이 각각 증기기관, 전기, 컴퓨터 같은 단일 기술이나 상품이었다면 4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은 기술과 제품이 자발적으로 집결되는 공간, 즉 플랫폼이 될 것으로 보인다. VR 플랫폼에선 게임은 물론이고 원격의료, 원격탐사, 제품 설계 등 무궁무진한 비즈니스가 교류될 수 있다.

한국의 수출은 지난해 7.9% 감소 쇼크를 겪은 데 이어 올 1월 18.5%, 2월 1∼20일만 17.3%의 감소세를 보이면서 수출 부진이 만성화하고 있다. 수출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해온 삼성전자는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이날 삼성전자의 ‘갤럭시S7’ 공개 행사장에 나온 저커버그는 작년 말 태어난 딸 맥스의 걸음마를 360도 VR로 촬영한다며 “삼성의 모바일 하드웨어와 페이스북 VR 소프트웨어를 결합하면 세계 최고 VR 플랫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신성장동력도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하면 세계시장에서의 선점은 어려울 수 있다.

정부의 수출대책은 PC 시대인 2000년대 초반 수준이다. 기업 규제를 단두대에 올리고, 전통적 제품 생산에 쏠린 인력을 줄이는 대신 글로벌 시장과 소통하는 인력을 늘리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고통이 따르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넓고 자유로운 플랫폼에 먼저 발을 내딛지 못한다.

2.공천룰도 선거구도 없는 총선 면접, 새누리당 뻔뻔하다

새누리당이 어제까지 사흘간 수도권 공천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봤다. 19대 총선 때는 현역의원 예우 차원에서 면접을 서류심사로 대체했다. 그러나 이번엔 상향식 공천제가 채택돼 현역도 전원 면접 대상에 포함시켰다. 현역도 당헌 당규상의 자격에 미달할 경우 경선 탈락은 당연하다. 

문제는 일의 선후다. 공천 면접을 실시하려면 먼저 공천룰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어야 하는데 새누리당은 그렇지 못하다. 시한폭탄을 실은 채 질주하는 기차와 다를 바 없다. 위험천만한 상황인데도 지도부와 공천관리위는 미봉인 상태로 둔 채 외면하고 있다. 보다 못한 김태호 최고위원이 어제 공천 일정을 잠정 중단하고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등이 긴급 회동해 공천룰부터 분명하게 정하자고 제안했으나 아무도 들은 척하지 않았다. 

비박(비박근혜)계와 친박(친박근혜)계를 각각 대표하는 김 대표와 이 위원장은 전략공천이나 다름없는 우선추천지역 제도를 두고 이미 격하게 충돌한 적이 있다. 이 위원장이 광역시도별 1∼3개 우선추천지역 선정 방침을 밝힌 것을 두고서다. 이후 잠잠하다가 이 위원장이 면접 과정에서 “야당이 아주 센 지역은 특징이 있는 킬러를 찾아야 한다” “보물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몇 명 찾은 것 같다”고 흘리면서 2차 충돌이 일어날 조짐이다. 경선 후보들 간의 합의 불발 시 당헌 당규상의 ‘당원 30%, 국민 70%’ 여론조사 대신 ‘국민 100%’ 여론조사로의 대체 여부도 논란거리다. 대표최고위원실 백보드판에 ‘개혁 새누리당’이라고 씌어 있는데 김 대표는 이걸 빼라고 지시하는 것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새누리당이 상향식 공천제를 채택한 것은 정치와 정당, 선거개혁 차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도입 전에 세부적인 사안까지 꼼꼼하게 규칙을 정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골치 아픈 문제는 일단 미루고 보자는 심보에서 이를 기피해 왔다. 심지어 선거구 획정까지도 쟁점 법안들과 연계시키며 처리를 지연시켰다. 세부 공천룰이 미정이고, 기존 선거구는 불법인 상태에서 공천 작업을 진행 중이니 꼴불견이 따로 없다. 무책임하고 뻔뻔하다. 집권 여당의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3.북-미 평화협정 논의, 한미공조 위험 신호 아닌가

미국이 북한의 4차 핵실험 며칠 전인 작년 말 북-미 간 평화협정에 대해 비밀리에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21일(현지 시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먼저 해야 6·25전쟁을 공식 종식하기 위한 논의를 할 수 있다는 기존의 전제조건을 포기하고 비핵화를 포함해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며 북한은 이를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은 “먼저 논의를 제안한 것은 북한”이라고 밝혀 보도 내용을 사실상 시인했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17일 ‘비핵화-평화협정 동시 협상’을 제의한 바 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우선이라며 일축했지만 미국이 이미 뒤로는 북한에 동시 협상을 제안했다는 것은 중대한 입장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외교부가 어제 왕 부장의 23∼25일 방미를 발표하며 “중국이 제안한 비핵화-평화체제 전환 논의를 병행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심상치 않다. 어제 한국 외교부가 “한미는 북한과의 어떠한 대화에서도 비핵화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밝힌 해명이 공허해 보일 정도다. 

비공식적 논의라지만 북-미 간 논의가 오갔다는 것도 몰랐던 게 아니냐는 의혹에 정부는 터무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정부가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를 감도 잡지 못했다면 더 위험하다. 일각에선 작년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 등 중국 경사 외교의 후폭풍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미중(美中)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는 나라’라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자랑만 믿고 있다가 중국에 뺨맞은 데 이어 미국에도 뒤통수를 맞은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한반도 평화협정이란 북한이 1974년 미국 의회에 “남조선에 있는 외국 군대는 일체 무기를 가지고 철거해야 한다”며 조-미(朝-美)평화협정을 제안한 이래 끊임없이 요구해온 사안이다. 한국을 배제하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을 쓰면서 북한이 미국과 대등한 핵보유국 자격으로 협상하자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협정으로 보장한다는 데 무엇이 문제냐며 국내서도 동조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평화협정의 핵심은 유엔사 해체와 북-미 수교다. 북의 주장대로 평화협정을 먼저, 또는 비핵화와 동시에 체결한다면 한국은 북핵을 그대로 머리에 인 채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지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에 대한 강한 제재를 끌어내기 위해 어느 때보다 물샐틈없는 한미공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협의하는 마당에 정부는 미국에 긴밀한 대북 공조를 요구해야 마땅하다. 안보 위기도 위기지만 외교당국의 위기가 국민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데일리]


​4.너도나도 창업 치킨집 '속빈 강정'이라니

국내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전세계 맥도날드 매장 수보다 많은 3만 6000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 산하기관인 공정거래조정원이 공개한 프랜차이즈 비교정보 자료에 따른 숫자다. 먹고살기 위해 가게를 차린다며 너도나도 치킨집을 선택한 결과다. 재래시장의 통닭가게를 합친다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나게 된다.

이처럼 치킨집이 많아진 것은 누구라도 한 번쯤 해볼 만한 사업이라는 유혹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치킨집 운영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대부분 프랜차이즈 치킨집의 경우 1년 매출액이 2억원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도 집계된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여유롭지가 않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져가는 돈에다 이것지것 비용을 빼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별로 없어 ‘속 빈 강정’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처음 문을 여는 데 들어가는 가맹비만 해도 1000만원이 넘는 데다 인테리어 비용도 적잖게 들어가기 마련이다. 여기에 다달이 재료비·로열티·광고판촉비 등을 떼고 나면 가맹점주가 가져가는 금액은 매출의 35%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서도 임대료와 인건비까지 제하게 되면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돈은 불과 몇푼이라고 한다.

요즘 대표적인 생계형 창업에 속하는 게 치킨집이다.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직장을 떠난 월급쟁이들이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쉽게 문을 열 수 있는 업종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침체 상황에서 창업하는 경우가 급증한 결과 국내 시장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이러다 보니 치킨 가맹점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창업 3년 안에 40%가 문을 닫는다는 현상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자영업자들이 위기에 내몰리면 자칫 국가경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 이들이 가게를 열기 위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려 쓴 대출금은 지난해 6월말 현재 1인당 2억원에 이른다. 그 빚이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관계당국은 생계형 창업자들을 위한 현실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다. 치킨집 등 일부 업종에 치우치지 않도록 재취업 프로그램과 일자리 나누기, 기업과의 상생전략도 고민해야 한다.


5.박 대통령의 ‘레임덕’ 없기를 바라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모레로 취임 3주년을 맞는다. 특별한 행사보다는 쟁점법안 처리와 북한의 추가도발 방지 등 현안에 몰두한다는 게 청와대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어떤 형식으로든 국민에게 그동안의 국정 성과를 설명하면서 남은 과제의 완수를 강조하고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5년 단임인 대통령제에서 집권 4년차는 ‘레임덕’이 본격화되는 시기다. 전례가 그러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레임덕이 없는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원활한 국정 추진을 위해서도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자면 총체적 난맥에 빠져 있는 경제·개혁·안보의 새판짜기에 성공하느냐가 관건이다.


경제는 그야말로 악재투성이다. 성장의 견인차인 수출은 세계 경기침체에 저유가까지 겹쳐 1년 넘게 하강곡선이고, 그랜드세일과 개별소비세 인하 등의 내수진작책도 별무신통이다. 내실부터 다지겠다며 사활을 걸다시피 한 4대 구조개혁은 정치권 다툼에 발이 묶여 요지부동이다. 이른바 ‘박근혜표 중점 법안’ 18개 중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을 빼곤 모두 제자리걸음이다. 그나마 후한 평가를 받던 외교·안보 분야도 북한 핵·미사일 도발이 초래한 한반도 안팎의 신(新)냉전 기류로 휘청대고 있다.

하나같이 해법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난제들이다. 인사 난맥과 세월호 참사, 비선실세 문건 의혹,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등의 돌발 악재로 국정 추진에 막대한 애로를 겪어 온 박 대통령으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수렁에 빠져버린 국회를 겨냥해 박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들었는데도 약발은 먹히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국정 운영의 판을 새롭게 짜려면 무엇보다 국론 단합이 선결과제다. 국론 단합은 진정 어린 소통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난주의 국회 연설 같은 ‘소통 행보’가 요긴하다.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여야 대표 회동이 연례행사 수준에 그쳐선 곤란하다. 미국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이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것도 남북전쟁으로 갈라진 국론을 단합시킨 공로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2년 후 청와대를 떠날 때 국론 단합의 표상으로 국민에게 기억되기 바란다.


[서울신문]

6.직장어린이집 확충은 저출산 정책의 요체

5세 미만의 어린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의 가장 큰 고민은 뭐니 뭐니 해도 아이 보육일 것이다. 자녀가 어릴수록 더욱 절실하다. 직업을 가진 여성들은 어린이집이 있는 회사를 꿈의 직장으로 꼽고 있다. 자녀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으면 직장을 그만둘 처지에 맞닥뜨리는 게 현실이다. 직장을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일과 가정을 함께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정책이 4월부터 시행되는 영유아보육법상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다. 그런데 법 시행까지 40일도 남지 않은 현재 직장어린이집의 설치율은 50%대에 불과하다. 2014년 4월 정책이 확정된 점을 고려하면 기업들의 미온적인 자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직장어린이집을 반드시 설치해야 할 사업장은 상시 근로자 500명 이상, 또는 상시 여성 근로자 300명 이상인 1204곳이다. 하지만 2014년 12월 기준으로 의무 대상 기업 가운데 실제 설치한 곳은 52.7%, 다른 어린이집과 위탁계약을 체결한 곳은 7.7%에 그쳤다. 보육수당을 지급하는 기업은 14.5%였다. 지난해까지 직원에게 보육수당을 주면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간주됐지만 올해부터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미이행 기업은 늘어날 게 뻔하다.

직장어린이집의 설치는 2011년 이후 15년째 출산율 1.3명 미만인 초저출산율을 높이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이행하지 않으면 1년에 2회까지 한 차례에 1억원, 연간 최대 2억원의 강제이행금을 부과하도록 못박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볼멘소리가 만만찮다. 제도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공간 확보가 쉽지 않은 데다 비용 부담도 크고, 수요 예측도 어렵다는 것이다. 주변에 주유소와 유흥시설이 없어야 하는 등 설치 기준도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것이다. 법의 잣대만 들이대기에는 일리 있는 주장이다.

직장어린이집은 출산율과 여성 고용률을 높일 수 있는 제도다. 기업 입장에서는 근로자의 애사심과 노동의욕 고취를 통해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전제는 기업들의 과감한 인식 전환과 자발적인 참여다. 그렇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정부는 강력하게 추진하되 기업들에 대한 세제나 금융혜택 등의 적극적이고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장기 투자로 여길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대상 기업의 범위도 늘릴 수 있다.


7.공직 유연근무제 국민 편의 우선 고려를

인사혁신처가 그제 내놓은 ‘공무원 근무혁신 지침’은 업무 집중도와 효율성, 생산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어영부영 일해도 정년까지 일자리가 보장돼 ‘철밥통’ 소리까지 듣는 공직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민간에서 활용되는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특히 이번 지침에 따라 주당 40시간 범위에서 근무일과 시간을 자율 조정해 하루 12시간씩 사흘을 집중 근무하고, 하루는 4시간만 일하는 주 3.5일 근무도 가능해진다는 점에 눈길이 쏠린다. 봉급생활자들이 꿈꾸는 ‘월화수목일일일’이 공직사회에서 현실화되는 셈이다.

이번 지침의 저간에는 2200시간이 넘는 공무원의 연간 근로시간을 2018년까지 1900시간대로 낮춰 ‘일과 휴식이 조화를 이루는 근무문화’를 조성하겠다는 거창한 청사진이 담겨 있다. 연간 초과 근무시간 총량을 예산처럼 설정해 부서별로 나눠 주고, 공무원 각자의 초과근무 사용량을 월별로 관리토록 해 되도록 초과 근무를 줄이면서 대신 근무시간 중의 사적인 전화, 불필요한 인터넷 검색, 다른 부서 방문 등을 자제토록 해 업무 집중도와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일해야 할 시간에 놀고, 쉬어야 할 시간에 일하는 비효율적 근무 방식은 당연히 고쳐야만 한다.

하지만 과연 공직사회의 현실을 고려했는지 궁금하다. 혁신처는 민원업무 담당자가 유연근무제를 활용하거나 연가를 사용할 때는 공백이 없도록 대체 근무자를 세우도록 했다고 밝혔지만 지금도 많은 민원 창구에는 ‘옆 창구를 이용하라’는 팻말이 붙어 창구마다 북새통인 게 현실이다. 이미 반 토막 난 민원 창구가 유연근무제 시행으로 더 없어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이유다. 공무원은 국민들의 혈세로 월급을 받는 공복이다. 또한 공무원들의 정년을 헌법에 보장한 이유는 그만큼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국민에게 피해를 줘서야 되겠는가.

게다가 집중근무제와 유연근무제 등은 근로 감독이 엄격한 민간 부문에서도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 근로와 휴식을 정확히 계량하고, 성과를 공정하게 평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지침이 오히려 일부 나태한 공무원들의 ‘쉬는 시간’만 늘려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 공공인력의 정보처리 경쟁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직사회의 생산성 향상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일과 휴식의 조화 못지않게 역량 강화와 근태 및 성과의 철저한 관리가 병행돼야 한다.


[중앙일보]

8.관광 한국 부활 위해 관광청 설치해야

한때 한류붐으로 각광받던 한국 관광이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환골탈태의 개혁이 불가피해졌다. 지난해 한국에 온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보다 100만 명 가까이 줄었다. 6.8%나 감소한 것이다. 반면 일본은 1년 전에 비해 47% 늘어난 1974만 명을 유치했다. 일본인도 평생 가기 어려운 산간오지에도 외국인들이 북적인다. 엔저(低) 효과를 앞세운 아베 정부의 적극적인 유치로 한국에서 관광객을 무더기로 빼앗아갔다.

한국 관광은 한류붐이 한창이던 2008년 이래 몇 년 전까지 일본을 압도했다. 한·일 관계가 냉랭해지기 전까지 한류 스타를 보기 위해 날아온 중년 여성들을 비롯, 한국에는 일본 관광객이 넘쳤다. 하지만 이제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외교 문제와 먹고사는 문제를 분리하지 못한 채 반일 감정을 앞세운 탓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국적을 따지지 않고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린다. 한국인도 일본 관광을 온다면 대환영이다. 자국민 직원 일색이었던 일본식 전통 여관 ‘료칸(旅館)’마저 금기를 깨고 한국인 종업원을 잇따라 채용하고 있다.

이런 정신 자세도 문제지만 정부의 관광정책에도 새 바람이 불어야 한다. 관광 대국들은 모두 관광 전담 정부기관을 두고 있다. 하와이관광청, 캐나다관광청, 뉴질랜드관광청 등이 대표적이다. 관광청이 없던 일본 역시 2008년 관광객 유치에서 한국에 뒤지자 그해 관광청을 신설했다. 그 이후 7년 만인 지난해 결국 한국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면세점 정책에서도 한국은 일본에 밀리고 있다. 한국은 롯데·신라 등 대기업 중심의 면세점 체제다. 또 사전면세 방식이어서 세금을 미리 감면받고 물건을 살 수 있어 편리하긴 하다. 하지만 갈수록 늘어난 관광객이 대도시뿐 아니라 전국 각지로 퍼지면서 이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일본은 2만9000곳에 이르는 개인사업자가 즉시 환급이 가능한 사후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덕에 어디서든 면세품을 살 수 있다.

관광은 미래의 먹거리 산업이다. 일본은 이를 먼저 간파하고 아베 총리가 직접 지휘하고 있다. 한국에 앞서 저성장을 경험한 일본은 제조업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관광산업 육성이 절실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관광산업은 가만히 앉아서 국내로 고객을 불러들이는 공해 없는 산업이다.

한국에도 중국인 관광객 유커(遊客)와 동남아 관광객을 유인할 요소는 얼마든지 있다. 일본에선 눈을 관광상품화해 산간오지까지 외국인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한국에도 태백산·한라산은 물론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강원도 산간에도 강설량이 풍부하다. 이를 한류상품과 연결하면 훌륭한 관광상품이 된다.

전체적으로 우리의 관광정책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전문기관이 활약하는 외국과는 달리 우리는 문화체육관광부 내 1개 국이 관광정책을 맡고 있다. 이래서는 정부 내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한국도 관광청을 즉각 신설해 신속한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다.


9.내부순환로 폐쇄 사태를 시민 안전 개선 계기로

서울 내부순환로 중 성북구 길음램프에서 성동구 성동분기점까지 7.5㎞ 구간이 22일 0시부터 약 한 달 동안 전면 폐쇄에 들어갔다. 하루 약 10만 명이 이용하는 교통 ‘혈맥’이 막힌 것은 정릉천 고가도로 케이블 20개 중 1개가 끊어지고 나머지도 부식되는 등 안전 결함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미 이날 하루 종일 인근 지역이 혼잡을 겪은 것을 시작으로 임시 보완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 구간이 지나는 서울 동북 지역의 교통 정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시는 케이블 손상이 지난 17일 해빙기 안전 점검에서 드러났다고 밝혔다. 문제점을 미리 찾고 긴급 교통 통제를 결정한 것은 시민 안전을 위한 합리적 판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달 전인 지난해 12월 정기 점검 때는 멀쩡한 것으로 보고됐던 케이블에서 갑자기 결함이 발견된 것은 석연치 않다. 서울시는 문제의 케이블이 노후화에 따른 부식으로 끊어졌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지난해 12월의 정기점검이 부실했거나 그 사이에 다른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거대 교통시설물의 안전에 대해 시민들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시민 불안을 해소하려면 서울시가 내부순환도로 전체 구간을 정밀 조사해 안전을 확인해야 한다. 철제가 들어간 구조물은 온도에 따라 부피나 형태가 변화할 수 있으며, 해빙 과정에서 균열 등 다양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에 따라 내부순환로는 물론이고 주요 교량과 터널 등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교통시설물에 대한 해빙기 안전 점검을 꼼꼼하게 진행해야 한다. 설계와 시공, 유지 보수 전반에 걸쳐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필요하면 다양한 전문가 집단과 시민대표를 참여시키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시민 안전만큼 절실한 행정 과제는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시설물 수리·점검 기간 동안 교통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도 행정력을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 서울지방경찰청과 원활한 소통체계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도 인근에 갈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성숙한 공동체 정신을 발휘할 때다.


[매일경제]

10. MWC서 모바일시대 새 지평 연 삼성·LG전자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6'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지난 21일 스마트폰 신제품 '갤럭시S7'과 'G5'를 각각 공개하고 승부수를 던졌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해온 LG는 삼성보다 5시간 빨리 전략폰을 공개하며 선제공격에 나섰고 삼성은 카메라, 방수 기능 등을 대폭 개선한 스마트폰과 가상현실(VR) 기기로 맞섰다. 대한민국의 2개 대표 기업이 MWC에서 한판 대결을 펼치며 모바일 시대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준 것은 실로 반가운 일이다.

삼성전자는 360도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해 VR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360도 카메라 '기어 360'을 공개하며 새로운 생태계 조성을 주도했다. 언팩 행사의 주제 '한계를 넘어서(Beyond Barriers)'처럼 VR이라는 차세대 먹거리로 영역을 확장하고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는 페이스북의 자회사 오큘러스와 기어VR을 개발한 인연으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를 무대 위로 깜짝 등장시키기도 했다. LG전자는 스마트폰에 장착할 수 있는 카메라 손잡이와 사운드를 내는 특수 모듈 등 주변 기기 8종을 'G5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는데 그동안 스마트폰 시장에 존재하지 않았던 '하드웨어 생태계'라는 점에서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더 이상의 혁신은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지난해 한 자릿수 성장에 그치는 등 정체를 보여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삼성과 LG가 보여준 기존 스마트폰의 한계를 뛰어넘는 차세대 스마트폰은 혁신이라 부를 만하다. 외신들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스마트폰에서 VR로 영향력을 확장한 삼성전자에 대해 CNBC는 "삼성이 이제 마켓을 만들고 혁신을 끌어가고 있다"고 호평했다. 중국 화웨이는 휴대성과 노트북의 작업성을 갖춘 '메이트 북'을 공개하며 나름의 혁신을 보여줬다.

'모바일이 모든 것'이라는 이번 MWC의 주제가 보여주듯 모바일이 대세인 이 시대는 스마트폰을 넘어 다양한 제품과 콘텐츠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모바일 기술을 앞서 개발하고 선도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삼성과 LG는 글로벌 시장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퍼스트 무버로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한국일보]쿠바 '천혜의 군항' 관타나모 미국에 임대하다

1903년 2월 23일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관타나모 임대 계약서에 서명했다. 당시 쿠바 대통령이던 토마스 에스트라다 팔마는 일주일 전 관타나모 만 할양에 관한 ‘쿠바-미국 협정’에 먼저 서명했다. 협정은, 만의 주권은 쿠바에게 있지만 사법ㆍ통제권은 미국에 있고, 급탄과 연료 공급기지 설치 이외의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후속 협정문에서 양국은 임대료를 매년 2,000달러로 정하고 “양국이 협정 내용의 변경ㆍ폐기에 합의할 때까지 유효하다”고 명시했다. 임대료는 1934년 5월 4,085달러로 인상됐지만, 59년 혁명 이후 쿠바는 임대료 수령을 거부한 채 협정 파기를 요구해왔다.

쿠바는 16세기 이후 줄곧 스페인 식민지였다. 1868년 시작된 독립전쟁(제1차)은 10년간 이어졌고, 79년의 2차 전쟁, 95년 3차 전쟁이 발발했다. “쿠바 거주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미 군함 ‘USS메인’호가 아바나로 급파된 건 전쟁 막바지였던 1898년 1월이었다. 2월 정박 중이던 메인호가 폭발, 미 해군 260여 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난다. 미국은 진상조사 결과 스페인 소행이라며(2009년 공개된 미의회 도서관 자료에 따르면 당시 조사단은 엔진 불씨가 화약고에 튀어 일어난 연쇄 폭발을 원인이라 밝혔다) 4월 전쟁을 선포했다. 쿠바 독립전쟁은 이후 미국-스페인 전쟁이 됐고, 미국은 석 달 만에 승리했다. 패전국 스페인은 필리핀과 괌, 푸에르토리코, 쿠바를 미국에 넘겼다. 미 군정청은 쿠바의 독립공화국 수립(1902년 5월 20일)을 허용하는 대신 쿠바와 미국 본토 방어를 위한 군사기지 할양을 요구했고, 이듬해 관타나모 임대 협정이 체결됐다.


쿠바 동쪽 끝 관타나모는 카리브해의 허리케인이 미치지 않는 천혜의 군항이다. 160㎢ 면적에 미 해병대와 군속, 가족 등 약 3,000명이 상시 거주하며, 27km 접경을 두고 쿠바와 대치 중이다. 2001년 9ㆍ11 이후 현지에 포로수용소가 지어졌고, 2002년 아프간 탈레반 포로들이 처음 수용된 이래 테러 용의자 등이 미국의 법망 바깥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에 노출된 채 최대 800여 명까지 수감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통령 선거 때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공약했고, 점진적으로 수용자 수를 줄여왔지만 아직 수용소가 사라진 건 아니다. 2015년 7월 미국과 쿠바는 반세기만의 국교 정상화를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관타나모 임대 협정 갱신ㆍ폐기 언급은 아직 없다.


2.[동아일보][2030 세상]슬픈 배달의 역사

어린 시절 우리 집 자가용은 시티100 오토바이였다. 아버지는 매일 이 오토바이에 의지해 새벽을 뚫고 출근을 하셨다. 이따금 아버지 등에 매달려 오토바이를 탔는데, 참 크고 따뜻했다. 하지만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아버지는 한사코 나를 오토바이에 태우지 않으려고 하셨다. 위험하다는 이유였는데 아버지의 말은 옳았다. 최근 보도를 보니 2010년부터 5년 동안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는 청소년 2554명이 다쳤고 53명이 숨졌다고 한다. 그나마 산재보험으로 확인된 사고인데 배달대행 청소년의 98%는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고가 아마 더 많지 않을까.

중학생 때 내 짝은 2년 유급한 형이었다. 그 형은 “빠라바라바라밤” 하는 경적 소리가 요란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배달 일을 했다. 다른 아이들은 그 형을 무서워했지만 나는 형 집에 놀러간 적도 있다. 어머니가 안 계시고 아버지는 알코올의존증 환자였다. 그 형은 “별로 ‘가오’는 안 살지만 동생 때문에라도 내가 벌어야 해”라며 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겨울방학 때 형은 오토바이로 빙판길에서 속도를 내다 넘어져 결국 다리를 절뚝거리게 되었다.

배달 아르바이트 청소년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중고교생 3명 중 1명은 아르바이트를 경험하고 이 중 30%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생계가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청소년들 일자리가 청장년들로 옮겨가고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인 상황이다 보니 배달처럼 그나마 수입이 나은 일에 대한 수요는 꾸준하다. 청소년 노동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한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저 같은 경우는 배달을 안 하면 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사람들은 청소년이 오토바이 타는 걸 보면 쟤네들은 다 폭주족 같은 애들이라고 생각해요. 어쩔 수 없이 하는 건데 주변에서 그렇게 바라보면 기분이 되게 나쁘죠.”

고등학교 시절 종례시간의 기억도 떠오른다. 담임선생님이 다른 반 학생의 사망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는 30분 배달제로 유명했던 피자집 배달원이었는데 시간에 쫓겨 차로를 가로지르다 마주 오던 차량에 치였다고 했다. 선생님은 “너네 오토바이 타지 마라. 공부나 열심히 해야지 괜히 돈 벌고 싶어서 깝죽거리다 죽어봐야 너네 손해야”라고 소름 끼치는 으름장을 놓았다. 그 친구가 왜 시간에 쫓겼는지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이후 30분 배달제는 수많은 배달원의 죽음이 잇따른 뒤에야 2011년 폐지됐다. 

하지만 여전히 신속배달 신화 뒤에는 청소년들의 신음이 들린다. 배달 중 교통사고는 무리하게 운전하거나 교통법규를 어길 때 잘 발생하는데, 특히 배달 제한시간이 있거나 건당 추가 수당을 받는 경우 그런 일이 잦다는 연구가 나왔다.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를 찾아보니 여전히 30분 배달제의 피자집은 건당 400원의 배달 수당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배달원을 구하고 있었다. 설문 조사에서는 배달을 빨리하라고 재촉을 받은 경험이 청소년 배달원 사이에서 63%에 이르렀다. 또 배달대행의 경우 배달이 늦어져 주문이 취소되면 음식값을 배달원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한다. 이러니 목숨을 걸고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주말 저녁 평소 막히지 않던 대로에 차가 길게 줄을 지어 있었다. 이 시간에 웬 차가 이렇게 막히나 싶었는데, 한 아이가 교차로 한가운데 널브러져 있었다. 헬멧 사이로 앳된 얼굴이 보이는 아이의 상반신은 반쯤 돌아간 채 미동조차 없었다. 옆으로 배달 오토바이가 넘어져 있고 여러 식당에서 받았는지 다양한 음식들이 쏟아져 나와 김을 내며 조용히 식어가고 있었다. 

배달이 조금만 늦어도 분노하고 목숨 값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일이 흔한 우리 사회에서, 배달 일을 하는 청소년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슬픈 배달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3.[동아일보][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수치로 어림잡는 가치 계산법

1783년 프랑스 미술계에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성 일색의 왕립 미술아카데미가 여성 회원 3명을 선발했지요. 미술가로 장래가 보장되는 순간입니다. 이런 이유로 절대 권위의 미술기관 발탁 절차는 준비가 버겁고,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오늘날 대학 입시처럼요. 

아델라이드 라비유기아르(1749∼1803)는 신입 여성 셋 중 하나였습니다. 서른넷에 화가로 공식 인정을 받은 후 초상화로 두각을 나타냈지요. 색감은 풍성했고, 마무리는 섬세했습니다. 왕족과 귀족 초상화가로 명성을 쌓아갈 즈음은 계몽과 변혁의 시기였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했습니다. 하지만 미술가의 삶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예술의 기조를 맞춰 나갔거든요. 혁명기 화가의 그림에서 구체제 인사들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대신 혁명가가 화폭에 등장했습니다. 혁명 이후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높은 시대의 파고를 현실에서 넘으며 예술적 평판을 안정적으로 유지했습니다. 

‘두 제자와 함께 있는 자화상’에 그녀가 있습니다. 미술도구를 든 순간을 선택했군요. 차림은 깃털 모자를 갖춘 새틴 드레스입니다. 작업 의자도 값비싸 보입니다. 실제로 이런 과한 차림으로 호사스러운 공간에서 작업했던 걸까요.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넉넉한 재정 상태와 환상적 작업 조건만은 사실이었습니다. 부유한 남편과 일찍 이혼했지만 재정적 곤궁함은 없었습니다. 사설 미술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삶의 윤택함을 이어갔어요. 남성 위주의 전시 관행을 비판했던 그녀였습니다. 여성 미술가의 전시 기회 확대를 요구하기도 했지요. 특히 여성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았답니다. 단순한 화가를 넘어 힘 있는 미술계 인사로 자신을 과시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화가의 자화상에는 등장인물이 둘 더 있습니다. 스승과 그의 예술에 존경과 찬사를 보내는 제자들입니다. 

추운 계절의 끝에서 고교들의 대입 결과를 접할 기회가 잦습니다. 합격자 수가 해당 학교의 진가처럼 비칩니다. 이런 통계들에 그림 속 들러리 제자들을 겹쳐 봅니다. 라비유기아르는 당대 미술 지형에서 의의와 한계를 동시에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두 명의 제자는 스승의 존재와 가치를 부각시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화가의 복합적 맥락 평가를 위한 절대적 기준은 될 수 없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수학과 거리가 멀었던 탓일까요. 합격자 수치로 교육의 가치를 어림잡는 세상의 계산법이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4.[서울신문][길섶에서] 할머니의 유모차/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강원도 바닷가 마을에서 산책을 하다가 어르신 네댓 분과 마주쳤다. 그런데 한결같이 유모차를 밀고 오는 것 아닌가. 할머니들은 마을 노인회관에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어울려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밥도 같이 해 먹고, 소일거리라도 생기면 용돈을 마련할 수도 있으니 아침이면 출근하듯이 노인회관으로 향하신단다.

시골 할머니들에게 유모차는 여러 가지로 유용해 보였다. 평생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한 탓에 허리가 굽고, 무릎도 상해서 이젠 무언가에 의지해서 걸어야 하는데 보행 보조차는 값이 너무 비싸다. 유모차는 훌륭한 대안인 셈이다. 지팡이에는 짐을 실을 수 없지만 유모차에는 물건도 실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할머니의 유모차 안에는 손수건, 간식거리 등이 들어 있었다. 의외의 물건도 있었다. 벽돌 석 장. 벽돌을 아기라고 생각할 리는 없다. 유모차를 용도 변경해서 사용하다 보니 울퉁불퉁한 길에서 뒤집히기 일쑤여서 아기 대신 벽돌을 실어 무게중심을 잡아 주는 것일게다. 할머니들 나름의 생활의 지혜라고 할 수 있지만 보기에 참 쓸쓸했다. 노인 복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그늘을 보는 것 같아서였다.


5.[중앙일보][분수대] 가우디가 보여준 모바일의 미래

바르셀로나는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의 도시다. 그의 사후 100주기인 2026년 완공 예정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비롯해 구엘 공원, 그리고 카사 밀라에 이르기까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가우디의 흔적을 좇느라 1년 내내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가우디가 바르셀로나를 먹여살린다는 말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당대엔 그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오죽하면 바르셀로나 건축학교 졸업식에서 교장이 가우디에게 졸업장을 주면서 “천재인지 미치광이인지는 시간이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을까.

그가 미치광이 소리까지 들은 건 기존 건축의 어법을 파괴한 혁신적 스타일 때문이었다. 가우디 이전의 건축은 직선, 그리고 대칭이 절대적인 공식이었다. 하지만 가우디는 기울어진 둥근 선이 끊임없이 이어진 건축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현존하는 최고 건축가로 손꼽히는 프랭크 게리나 노먼 포스터 등이 “가우디는 과거에도 혁신이었고, 현재도 혁신이고, 미래에도 혁신”이라고 입을 모아 경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바르셀로나에 와보면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라며 신을 닮고 싶어 했던 가우디의 혁신가적인 면모를 절로 느끼게 된다. “신은 서두르지 않는다”며 처음부터 사후 공사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 그가 남긴 걸작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의 첨단 돔형 건축물 아그바르 타워(바르셀로나 수도국 건물)처럼 가우디로부터 영감을 받은 수많은 건축물이 혁신가 가우디의 위대함을 잘 드러낸다. 진정한 혁신이란 그저 말잔치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이렇게 미래에도 살아 숨쉬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니 말이다.

가우디의 숨결이 짙게 배어 있는 바르셀로나에선 매년 이맘때 모바일 혁신의 경연장인 세계 최대의 모바일 축제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가 열린다. 22~25일 열리는 MWC 2016에선 ‘모바일이 전부다(Mobile is Everything)’라는 주제로 모바일 혁신 기술이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21일 막바지 준비가 한창인 ‘피라 그란 비아’ 전시관들을 미리 둘러보면서 모바일이 변화시킬 미래에 대해 상상해 봤다. 신을 닮으려 했던 가우디의 도시에서 미래를 창조함으로써 신의 영역에 다가서고 있는 모바일 혁신 기술의 경연을 보는 게 왠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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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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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2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카지노 입지선정 경제논리 따라야

정부가 이르면 이번 주 안으로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사업자 2곳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제7차 투자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이 사업은 카지노는 물론 호텔과 쇼핑몰, 컨벤션과 레저스포츠시설 등을 집적시켜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에 견줄 국제관광단지를 건설하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큰 만큼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유치 경쟁이 뜨겁다.

문제는 심사의 공정성 문제로 뒤탈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사업 응모자 6곳 중 자본금 5000만 달러 선납 등 자격 요건을 충족한 곳은 인천 영종도 미단시티의 ‘임페리얼 퍼시픽’과 인천국제공항 국제업무지구의 ‘모히건 선·KCC’ 등 2곳 뿐이다. 경남 진해의 ‘BY월드’는 사전납입 기한을 넘긴 지난해 12월 자금을 끌어들여 막판 경쟁에 뛰어들었고 다른 지역 사업자들은 대부분 투자확약서 제출에 그쳤다고 한다.

그런데도 문체부는 모레로 예정된 최종 프레젠테이션에 자격 요건을 충족한 인천의 2곳과 함께 하자가 있는 4곳도 참여하도록 했다고 한다.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로 사업자를 선정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즉, 인천은 이미 영종도에 파라다이스와 리포&시저스가 복합리조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인천 이외의 다른 지역을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성을 무시하고 정치논리로 접근할 경우 기대했던 효과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 카지노 기반 복합리조트의 성패는 집적화와 대형화, 접근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인천은 이미 2곳이 추진 중이어서 집적화에 유리하다. 인천공항과 인천항이 있어 외국 관광객의 접근성도 뛰어나다. 경제성이 떨어지고 자격 요건도 모자란 곳을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선정해서는 곤란하다.

카지노 기반 복합리조트를 건설하는 목적은 외국 관광객, 특히 유커를 보다 많이 끌어들여 내수를 살리고 지역 및 국가경제를 활성화하자는 데 있다. 당연히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효율적으로 유치할 수 있는지와 함께 카지노 운영계획, 투자의 실천 가능성 등 경제논리 위주로 심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지역균형발전 논리는 그 다음이다.

2.여야 공천작업에 정치 미래 좌우된다

여야 정당이 4·13 총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당내 공천작업에 들어갔다. 각 지역구에서 상대 정당의 후보들과 맞붙을 공식 후보를 선출하는 작업이다. 전체 선거과정에서 본다면 예선전에 불과하지만 본선을 통과해 앞으로 4년간 우리 정치무대를 이끌어갈 주인공들이 결국 이들 가운데서 배출된다는 점에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과정이다. 각당의 입장에서도 선거에서 이기려면 제대로 된 후보를 선정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역 의원과 정치 신인을 가리지 않고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일꾼을 가려내는 일이다. 단순히 당내 지도부와의 인연이나 사회적 인지도로만 후보를 내세워서는 정치가 계속 겉돌 수밖에 없다. 국내 정치사에서 벌써 19대 국회까지 이르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도 정치 현실은 별로 나아진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진흙탕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이다.

각당마다 나름대로 특별한 사정이 있으리라는 점도 충분히 이해한다. 관심을 끄는 것은 친박과 비박 간의 공천 다툼이 격렬해지고 있는 새누리당의 향배다. 전략공천 범위를 둘러싸고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사이의 신경전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더민주당도 ‘현역의원 20% 컷오프’ 방침을 확정함에 따라 당내 긴장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국민의당에서도 호남 물갈이가 관심의 초점이다.

물론 아직 선거구 획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천작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는 현재 여건이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선거가 불과 50일 앞으로 다가옴으로써 더 미룰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여야가 조만간 선거구 획정을 타결지을 것이라니 지켜보고자 한다. 그러나 초유의 위헌 사태까지 초래하면서 여태껏 선거구 획정작업을 끝내지 못한 정치적 책임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총선으로 구성되는 20대 국회는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당장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정세가 초미의 해결 과제다. 무엇보다 북한 핵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타개책 마련에 중지를 모아가야 한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하다. 가슴에 금배지나 달고 거들먹거리려는 사람은 공천에서부터 배제돼야 한다.

[동아일보]

3.강성 노조들 연대투쟁과 특권, 안 먹히는 날 곧 온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19일 현대자동차가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를 상대로 노조 간부 숙소용인 서울 용산구의 아파트 2채와 회사 소유 자동차 13대를 돌려 달라고 낸 소송에서 회사 손을 들어줬다. 노조는 과거 회사와 합의에 따라 이들 아파트와 자동차를 지원받았다. 이런 관행은 2010년 7월 노조 지원비를 금지한 개정 노조법이 시행되면서 불법이 됐으나 노조 측은 반환을 거부했다.

재판부는 금속노조가 차량 제조업체 스카니아코리아를 상대로 밀린 노조 지원비를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서도 같은 취지로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스카니아코리아 노사는 단체협약에 의해 노조 지원비로 연간 2040만 원, 노조 지회장과 수석부지회장에게 각각 월 60만 원과 50만 원을 활동비로 지급했으나 이 역시 개정 노조법으로 불법이 됐다.

노동법과 정면 배치되는 노사합의나 협약은 효력이 없다. 그럼에도 노조가 아파트와 자동차의 반환을 거부하고 노조 활동 지원비를 내놓으라는 것은 소송에서 패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억지를 부린 것이다. 금속노조는 민노총 산하 산별노조다. 지난해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불법 시위의 대부분은 민노총이 주도했다. 민노총이란 조직은 회사 안에서나 밖에서나 법을 무시하는 게 체질이 돼버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민노총의 정치 투쟁이나 불법 파업 강행에 환멸을 느끼는 기업노조가 적지 않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금속노조를 탈퇴해 기업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판결을 받은 자동차 부품업체인 발레오전장은 그런 기업노조 중 하나다. 대기업 노조에서도 탈퇴까지는 아니더라도 민노총의 지시가 먹히지 않는 조짐이 보인다. 금속노조 산하 금호타이어지회는 어제 금속노조의 임금피크제 거부 지시에도 불구하고 회사 측과 단체협약을 통해 임금피크제에 합의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혁 4법은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있다. 야권은 노동법 개혁에 반대하는 민노총과 한국노총의 눈치를 보고 있다. 양대 노총의 태도는 실업난에 시달리는 노동 현장의 요구와 괴리됐다. 양대 노총에 소속되지 않은 ‘제3지대’ 노조가 이미 확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노총은 민노총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양대 노총이 계속 개혁에 반대해 저항만 하고 있으면 언젠가 존립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4.박 대통령 남은 임기 2년… 취임식 때의 초심을 돌아보라

“저는 국민의 생명과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그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2월 25일 취임사에서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이뤄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며 국민에게 한 다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사태를 미리 예견한 듯하다. 임기 초중반에 세월호 침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도처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았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갈수록 고도화하고 있어 국가 안보는 바람 앞의 촛불 같다.

25일이면 박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는다. 대망의 꿈을 안고 대통령직을 수행한 지 3년이 되지만 취임사에서 국민에게 약속한 그 어느 것도 아직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위기는 도전을 낳고, 도전은 새로운 변화를 촉발시키는 법이다.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할 때 국정 지지율도 높은 편이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접어들려면 아직 1년 이상 시간이 남았다. 박 대통령이 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국민행복 시대의 초석을 놓을 기회는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우위에 있는 국가안보 위기의 관리다. 박 대통령은 16일 국회 연설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대북정책의 폐기를 선언했다. 인센티브를 통한 북한 변화 유도에서 압박을 통한 북의 변화 촉진으로 전환한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저지가 박근혜 정부의 절체절명의 과제다. 궁지에 몰린 김정은 정권의 예측 불가능한 도발에도 대처해야 하지만 우리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제사회 및 주변 강대국들과의 ‘안보외교’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지금의 외교안보팀이 과연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정책과 대응방식이 달라졌다면 그 일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도 교체해 결기를 보여주고 긴장감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 당시 ‘474(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 달러)’ 정책을 야심 차게 제시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달성이 어렵게 됐다. 물론 세계경제 침체 같은 외부 환경 탓이 컸다. 하지만 박 대통령도 적합한 경제정책을 폈는지, 야당과 국민을 상대로 설득과 소통의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안보와 마찬가지로 경제도 3년 전과는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고 있다. 개혁으로 경제체질 자체를 바꾸어야 하고, 재정 금융 실물 환율 부채 등 어떤 부문에서도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총선을 앞둔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누리당 경선이든 본선이든 선거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을 지켜주는 것은 국민이지 ‘친박’이 아니다. 취임 3주년을 사흘 남겨둔 오늘, 박 대통령은 취임사를 다시 읽어보면서 취임식 때의 초심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5.민간은 주 3.5일 야근, 공무원은 주 3.5일 근무 장려

인사혁신처는 주당 40시간 범위에서 근무일, 시간을 자율 조정하는 유연근무제로 주 3.5일만 근무하는 것도 가능한 ‘공무원 근무혁신지침’을 어제 발표했다. 매주 수요일 가족사랑의 날엔 초과근무명령을 금지하고, 월간 초과근무 총량을 정하는 ‘자기주도 근무시간제’, 연가사용계획을 정해 원할 때 쓸 수 있도록 ‘계획연가제’도 도입됐다. 연간 2200시간이 넘는 공무원 1인당 근로시간을 2018년까지 1900시간대로 낮추겠다는 목표다. 

비효율적 근무방식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대민(對民) 업무의 특성상 공무원이 일을 한꺼번에 몰아 하는 유연근무제가 민원인에게 어떤 불편을 줄 수 있는지도 검토했는지 궁금하다. 

지난주 한국개발연구원 이주호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가 정보처리 능력을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 민간 분야 인력에 비해 공공인력의 경쟁력은 떨어지는데 임금은 25%나 더 받았다. 민간 대비 공공부문 임금의 수준도 조사 대상 23개국 중 두 번째로 높았다. 최근 잡코리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야근일수는 주5일 근무 기준으로 평균 3.5일, ‘칼퇴근’은 평균 1.5일에 불과했다. 근무시간에 비해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공무원은 주 3.5일제 ‘당근’을 내밀 것이 아니라 ‘저성과자 해고지침’을 적용해야 마땅하다.

인사처는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척결과 ‘철밥통 수술’을 위한 주무 부처로 출범했다. 삼성 출신 이근면 처장을 발탁한 것도 팔이 안으로 굽는 공직사회 문화에서 탈피해 대담한 혁신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복들이 ‘더 편하고 더 적은’ 시간 근무하는 방안을 고민할 때가 아니다. 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공정한 평가를 통해 공직사회를 쇄신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서울신문]

6.노조 선택권 근로자에게 돌려준 대법 판결

근로자가 원한다면 상급단체를 탈퇴해 기업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9일 금속노조 발레오전장 지회의 기업노조 전환 총회 결의를 무효로 해달라며 금속노조 위원장 등이 낸 소송에서 대법관 8대5 의견으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최종 확정될 경우 그동안 산별 노조 중심으로 진행된 우리의 노동운동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판결이다.

이번 사건은 근로자 단결 선택의 자유와 산별노조의 조직 보호라는 가치가 정면충돌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2010년 당시 프랑스 발레오그룹의 한국 제조공장인 발레오전장은 경비 업무를 외주에 맡기는 문제로 금속노조가 파업을 결정해 장기 분규를 겪었다. 회사가 존폐의 기로에 놓이면서 조합원 601명 가운데 550명(91.5%)이 참석해 536명(97.5%)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금속노조 탈퇴와 기업별 노조 전환을 결의하면서 법정 공방으로 6년이라는 긴 시간을 끌었던 사건이다.

이번 판결은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돼 있다. 사용자 측이 산별 노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섭권이 약한 기업별 노조로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노조 내부 갈등을 부추길 가능성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발레오전장 사태 역시 강경 투쟁을 주도했던 기존 노조의 파괴 공작에 사측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노조 조직 형태 선택에서 노동자의 자주적 의사 결정이 산별노조 조직 유지의 필요성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대법원 판결의 의미는 존중될 필요가 있다.

노조가 구성원이자 목적인 근로자들의 의사를 우선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근로자들의 결사와 노조 설립의 자유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장 근로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상부 조직의 이해관계가 우선하는 현행 노동운동 방식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번 판결이 현행 산별노조 체제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기존의 불합리를 개선하고 개별노조의 권익을 보호하는 측면도 크다. 복수노조가 허용된 상황에서 상급노조의 가입과 탈퇴의 권한 역시 현장 근로자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번 판결이 극단적인 정치투쟁을 지양하고 시대 흐름에 부합한 새로운 노동운동으로 가는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7.성동격서식 北테러, 국지 도발에 대비해야

북한이 그제 백령도 인근 장산곶서 해안포 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다행히 포탄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오진 않았다. 하지만 주말을 즐기던 국민들은 한때 과거 북측의 연평도 포격 도발을 상기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을 게다. 어제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북한군의 쌍방기동훈련을 직접 지휘하고, 공군 비행훈련을 참관했다. 이런 북한의 심상찮은 동향은 뭘 말하나. 4차 핵실험에 이은 탄도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에 직면한 북한이 아닌가. 김정은 정권이 우리의 의표를 찌르는 모종의 도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보고 사전에 철저히 대비할 때다.

최근 한동안 공식 석상에 나오지 않던 김정은이었다. 그러나 스텔스 전투기 F22 등 미국의 전략적 자산이 한반도에 속속 전개되면서 꼭꼭 숨었다는 국내외 보도가 잇따르자 어제 보란 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외무성이 어제 최근 발효된 미국의 대북 제재 법안에 대해 “가소로운 짓”이라고 했지만, 전례 없이 강력한 국제 제재 움직임을 의식하고 있다는 역설적 방증이다. 이는 김정은 정권이 제재 흐름의 물꼬를 돌리려 대남 공작을 펼 징후일 수도 있다. 북 외무성은 국제 제재에 맞서 경제와 핵개발 병진노선을 “더욱 높이 추켜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이 비대칭 전력인 핵개발에 올인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재래식 전면전을 벌일 능력이 없음을 자인하는 격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성동격서(聲東擊西)식 도발 가능성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북한이 서해 등지에서 국지 도발을 일으키려는 척하면서 후방에서 테러를 자행하거나, 그 반대로 나올 개연성에 빈틈없이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보 당국은 북한 정찰총국이 북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렸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는 소식이다. 2010년에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2011년에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를 독침으로 암살하려던 간첩이 검거된 전례에 비춰 볼 때 이를 흘려들어선 안 될 법하다.

더군다나 지난 연말 의문사한 김양건 통일선전부장의 뒤를 이은 김영철이 누구인가. 정찰총국장 시절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은 물론 휴전선 목함 지뢰 도발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강경파 대남 공작 전문가다. 북핵 포기를 이끌어 낼 대북 제재나 유사시 북의 대량살상무기에 맞설 방어체계 구축 등 중장기 전략 못잖게 발등의 불일 수 있는, 테러 도발에 미리 대비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대규모 한·미 연합 훈련을 앞두고 있어 북측이 도발 원점이 드러나는 국지 도발보다 사이버 테러를 자행할 개연성이 크다는 추론도 나온다. 사이버전에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누차 강조했듯이 국회가 한시바삐 테러방지법을 처리해 범국가적 대응 시스템을 완비해야 할 이유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국가정보원의 월권을 우려해 극력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다. 권한 남용 소지에는 국회의 감독 기능을 강화하는 대안을 마련하되 세계 각국의 사례처럼 테러 대응의 중심축 역할은 정보기관이 맡는 게 옳다고 본다.

8.총선 연기 불상사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서 20대 총선 연기론까지 나오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최근 “23일이 지나면 총선이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했다. 24일부터 재외국민 선거인 명부 작성에 들어가려면 전날에는 선거구 획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여야는 느긋하기만 하다. 새누리당은 선거구 획정안을 다른 쟁점 법안과 같이 처리하자는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그럴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 17대와 19대 총선 때도 선거를 불과 37일, 44일 앞두고 선거구 획정안이 극적으로 처리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선거법 자체가 이슈였지만 지금은 쟁점 법안 처리와 연계돼 선거구 획정안이 볼모로 잡혀 있는 상황이다. 선거구 획정 문제와 북한인권법은 큰 틀에서 여야 간에 합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여야가 마음만 먹으면 법안 처리를 할 수 있는데도 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여야 간 견해차가 큰 것은 테러방지법이라 할 수 있다. 야당이 국가정보원의 정보수집권 부여에 반대하고 있어서다. 국내 정치 정보 수집에서 피해 의식이 있는 야당으로서는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안보·경제 위기가 엄중한 시기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식으로 테러방지법 처리를 머뭇대는 것을 보면 야당의 수권능력에 의구심을 갖게 할 뿐이다. 그러면서 선거구 획정안을 먼저 처리하자는 것은 결국 다른 쟁점 법안 처리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야당의 ‘먹튀’가 걱정된다고 새누리당 역시 집권 여당으로서의 책무를 미뤄서는 안 된다. 다른 법안과의 연계 처리 운운하며 국정의 발목을 잡던 야당의 꼼수를 여당이 해서야 되겠는가. 민생 법안만큼이나 20대 국회의원들을 뽑기 위한 첫출발인 선거구 획정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유권자들도 자신의 지역구 등 선거구 변화에 관심이 많다. 유권자인 국민들에게 검증도 받지 않고 후다닥 선거법을 처리하는 것도 문제인데 이마저도 여야가 차일피일 미루고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다.

양당 원내지도부는 오늘 회동을 하고 법안 처리 협상을 재개한다고 한다. 벌써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걱정스럽다. 새누리당은 오는 29일 선거구 획정안 등을 일괄 처리한다고 하지만 더민주는 2월에 처리해도 된다는 입장이다. 이러니 총선이 한 달 연기 될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화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여당이 다소 양보하는 한이 있더라도 총선 연기라는 파국은 막아야 한다.

[중앙일보]

9.영국의 EU 탈퇴 가능성, 강 건너 불 아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Brexit) 가능성이 가시화돼 비상한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20일(현지시간) EU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6월 23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브렉시트 움직임에 놀란 EU 정상들이 전날 이주민에 대한 복지 혜택 중단 등 캐머런 총리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지만 국민투표를 막지 못했다. 현재 영국 여론은 찬반 간 우세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혼전이라 브렉시트의 현실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브렉시트는 머나먼 곳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도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우선 영국이 탈퇴하면 한·영 간 교역이 타격을 입는다. 영국이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대상에서 빠지는 탓이다. 지난해 대(對)EU 수출액은 480억 달러로, 이 중 15.2%인 73억 달러어치가 영국에 갔다.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한국산 제품들이 관세 혜택을 못 받게 돼 타격이 불가피하다.

관세뿐만 아니라 EU 경제의 위축 역시 우리 기업에 큰 짐이 된다. 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의 EU 탈퇴(그렉시트) 가능성이 제기됐던 지난해 한 경제연구소는 그리스가 빠지면 한국의 대EU 수출은 7.3%포인트 줄 걸로 분석했다. 영국의 경제 규모는 그리스의 10배 이상이다. 브렉시트의 충격이 그렉시트와는 비할 수 없이 클 것이란 점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브렉시트로 세계 정세가 급변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간 영국은 EU의 공동외교정책에 발맞춰 힘을 보태 왔다. 영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활약하며 국제무대에서 여전히 상당한 발언권을 지니고 있다. 이런 나라가 EU에서 빠지면 우리의 전통적 우방인 EU의 대외정책도 흔들릴 게 틀림없다.

우리에겐 여러모로 영국의 EU 잔류가 유리하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영국인들을 상대로 EU 잔류를 직접 호소할 계획이라 한다. 파급력이 큰 사안인 만큼 우리 역시 영국 잔류를 지지한다는 뜻을 조심스레 알리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10.환율 변동성 위험수위 `코리아 리스크` 증폭 경계해야

지난주 말 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가 한때 달러당 1240원에 육박하며 5년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4년6개월 만에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올 들어 달러 대비 원화값은 한 달 보름여 만에 5.3%나 떨어졌다. 하루 동안 12원이나 널뛰는 등 변동성도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확산되는 가운데 북한의 대남 테러 위협 등 남북 간 긴장 고조가 외국인들의 불안 심리에 불을 댕겼다. 작년 6월부터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순매도가 이어지고 있고 올 들어서는 채권시장에서도 외국인 매도 우위가 지속되는 등 앞다퉈 우리나라를 빠져나가는 추세라 걱정스럽다. 

원화가치 하락이 수출과 물가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다. 지난 1월 수출이 -18.5%라는 충격적인 감소세를 보인 데 이어 2월에도 열흘 동안 20.3%나 급감하고 있는 판국에 그나마 원화값 하락으로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교역이 감소하고 각국의 보호무역 조치가 강화되면서 통화가치 하락에 따른 수출 개선 효과는 갈수록 미미해지고 있다. 오히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주식·채권투자 자금 이탈→원화가치 하락→주식·채권시장 하락→외국인 자금 추가 이탈→원화가치 추가 하락'의 악순환 고리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주식·채권·외환시장이 동시다발적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외환당국이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섣불리 외환보유액을 풀 수도 없고, 시장 개입도 극도로 조심스럽다. 미국이 환율조작국에 제재를 가하는 BHC법안의 발효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타깃이 되기 십상이다. 은행·기업 할 것 없이 수익성이 악화되고 부실기업 정리, 노동개혁은 하세월이니 외국인들이 원화를 팔아치우는 게 당연하다. 금융당국이 기업 구조조정을 하나씩 성사시키는 모습을 실제로 보여줌으로써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고 경제의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는 것만이 근본 해법이다. 외환당국은 지역통화기금 및 주변국과의 통화 스왑(국가 간의 통화 교환)으로 외환 안전판을 든든히 하면서 외환시장에 대한 밀착 감시를 통해 추세적 흐름뿐만 아니라 변동성 관리에 집중하기 바란다.

주요 신문칼럼

1.[동아일보][이영광의 시의 눈]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반칠환(1963∼ )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 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시를 읽자니, 안톤 슈나크의 서정적인 산문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중국 작가 주쯔칭의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한다. 슈나크는 작고 희미한 것도, 멀고 오래된 것도, 크고 오만한 것도 다 슬프다 했지. 주쯔칭의 글엔, 살기 위해 아버지는 난징으로, 아들은 베이징으로 기약 없이 헤어져야 하는 쓸쓸한 플랫폼이 나온다. 술술 읽어 나가기가 어려웠었다. 슬프기도 쓸쓸하기도 한 이 짧은 시에도, 일상의 무감각한 시간을 날카롭게 정지시키는 순간이 들어 있다.

뛰어다녀도 모자랄 판에 화자는 자꾸 한눈을 판다. 그의 걸음을 붙드는 건 작고 보잘것없어서 사는 데는 별 쓸모가 없는 그런 존재들이다. 크고 힘센 것들의 뒤편 후미진 곳에, 숨은 듯 버려진 듯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 이들의 약함과 아름다움과 처연함에 붙잡혀 멈춰 서고 마는 이 사람은 거의 시인 자신 같다. 그러면서 그는 시를 쓰게 되었고, 그러다가 번듯한 직장 하나 얻지 못했고, 그래서 늙은 어머니의 애잔한 근심이 되었겠지.

하지만 그의 눈에는, 씀바귀 꽃과 제비들과 노점 할머니와 고향의 어머니가 전혀 다르지 않다. 한 식구다. 그러므로 약하고 소외된 것들을 만나면 대책 없이 또 피가 따뜻해지는 이 사람은, 세상의 온갖 경쟁에서 뒤처진다 해도 멈추지 않을 수가 없다. 그를 멈추게 한 그 힘이, 바로 그를 다시 걷게 하고, 살게 해주는 힘이니까. 허겁지겁 달리던 나는 문득 생각한다. 날 달리게 하는 힘이 과연, 언젠가는 날 멈추게도 살게도 해주는 따뜻한 힘인 걸까. 봄이 오면 소개하려고 아껴두었던 시를 영하의 날씨에 내보인다. 봄날의 온기를 미리 꾸어 와, 이곳저곳 좀 덥혀야 할 것 같으니까.

2.[중앙일보][취재일기]여성 정치, 사람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남자는 (우선추천) 안 돼요. 남자들이 (공천) 받으려면 성전환수술 하는 게 유리할 겁니다”

지난 17일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입에서 ‘성전환수술’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여성·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를 당선시키기 위해선 시·도마다 1~3곳의 우선추천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과거의 전략공천과 비슷한 개념인 우선추천 대상자를 놓고 새누리당의 친박·비박 간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다. 우선추천을 확대 적용하는 데 반대하는 김무성 대표 측은 “‘여성·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에 대한 우선추천 규정의 취지는 인정하지만 이 위원장 말처럼 인원을 할당해 인위적으로 내려꽂는 방식은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친박·비박 간 갈등이 해소돼 ‘정치적 소수자를 배려하는 우선추천’에 김 대표와 이 위원장이 합의한다 해도 진짜 고민이 남아 있다. 제일 중요한 ‘사람’이 없어서다.

새누리당이 16일 마감한 공천 신청자 현황을 보면 여성은 822명 중 78명(9.5%)에 불과하다. 전체 246개 지역구 중 183곳(74.4%)엔 아예 여성 후보가 없다. 강원·전북·전남·제주·울산·세종·광주엔 1명도 없다. 서울(25명)·경기(24명)·부산(11명) 등 당선 가능성이 큰 지역에만 몰려 있다. 그만큼 여성이 본선에 출마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결국 우선추천 제도를 통해 여성을 늘리려면 인재 영입이나 다른 지역 후보를 돌려막기 하지 않곤 불가능하다.

사정은 야당이라고 나을 게 없다. ‘남초(男超)’가 심각하다. 더불어민주당의 여성 공천 신청자는 379명 중 35명(9.2%)이다.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서는 국민의당조차 영입 인사 49명 가운데 여성은 2명(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 교수, 강연재 변호사)뿐이다.

이쯤 되면 여야 여성 의원들이 부르짖는 ‘지역구 30%를 여성으로 공천하라’는 주장도 공허하다. 당 지도부뿐 아니라 당 안팎의 여성계조차 후보 발굴에 손 놓고 있어서다. 새누리당은 여성·청년·신인 후보에 각 10%(여성 신인 20%), 더민주는 최대 25% 가산 방침을 내놨다. 그러나 후보가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다. 이러다 보니 여성계에선 “현역 의원이 없는 분구 지역에 여야가 여성 후보를 공천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실제 서울 강남 분구 예정 지역엔 전·현직 여성 비례대표 의원들이 몰리고 있다.

과거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성 당선자 비율은 17대 13%, 18대 13.7%, 19대 15.7%로 답보상태다. 그나마 지역구 당선자는 10명, 14명, 19명으로 10%도 안됐다. 20대 총선은 여성들의 ‘유리천장’을 깨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3.[중앙일보][노트북을 열며]개성공단의 퇴로는 열어 놨으면 개

성공단이 죽었다. 경협을 넘어 평화를 생산하려던 곳이다. 다시 살리려면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북한은 지난 11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에서 “개성공단의 파탄이 우리의 핵무력 강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어리석은 일”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에 질세라 지난 16일 국회에서 한 국정연설에 “개성공단의 중단은 우리가 국제사회와 함께 취해 나갈 제반 조치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못박았다. 남북한의 ‘강 대 강’ 대결로 개성공단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그렇게 되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금강산 관광 중단과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으로 추억이 돼 버린다.

한국의 개성공단 중단에 이어 미국과 일본도 독자적인 대북제재법을 각각 발표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사이버 공격능력 향상, 북한 지도층 사치품 구입 등에 사용할 수 있는 달러를 구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아울러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도 제재한다. 일본은 북한 국적자·선박의 일본 입국 금지, 대북 송금 원칙적 금지 등을 채택했다.

그런데 일본의 대북제재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대북 송금의 경우 인도적 목적이면 10만 엔(약 109만원) 이하, 북한으로 현금을 반입할 경우도 10만 엔 이하는 가능하다고 했다. 적은 액수지만 문을 닫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또한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는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관방 부장관은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계속 협상할 용의가 있으며 문은 닫혀 있지 않다”고 말했다. 가토 가쓰노부 납치문제 담당상도 “일본은 (납치 문제 재조사와 제재 일부 완화에 합의한) 스톡홀름 합의를 파기할 생각이 없다. 대화를 계속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본은 한·미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면서도 대화의 끈을 단절하지 않았다. 아베 정권의 공약인 ‘납치문제 완전 해결’이 비록 장기화될지언정 기다리겠다는 의지다. 일본은 북한의 제4차 핵실험으로 촉발된 작금의 위기 국면이 진정되면 한·미·일 가운데 북한과 가장 먼저 대화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 것이다.

남북관계에 큰 위기가 올 때마다 10여 년 전에 통일부 차관을 역임한 분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북한을 몰아치더라도 퇴로를 열어 줘야 한다. 그것은 북한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미·중이 한국을 무시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손자병법』 군쟁(軍爭)편에 나오는 말을 한반도에 적용한 말이다. 위사필궐(圍師必闕) 궁구물박(窮寇勿迫). 적군을 포위할 때는 반드시 퇴로를 열어줘야 궁지에 몰린 적군이 결사적으로 항전하지 않는다. 일본이 『손자병법』의 지혜를 활용하고 있다. 대북 정책은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감정에 치우친 즉흥적인 결정보다 냉정한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매경이코노미][성제환의 ‘르네상스 예술 여행’] (25)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메디치 가문의 예배당 ‘성구실’ 영묘 주인을 밝히지 않은 까닭은…

“미켈란젤로, 드디어 내가 주문한 예배당 건축을 끝냈구려! 어떻게 지어졌는지 보고 싶네. 최소한 상상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해주게.”

사생아로 메디치 가문에서 두 번째로 교황의 자리에 오른 ‘클레멘스 7세’가 선조들의 시신을 안장할 예배당을 완성한 미켈란젤로에게 보낸 감사 편지다. 

‘위대한 로렌초’가 사망하고 얼마 안 돼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서 급작스럽게 추방당하는 바람에 메디치가 자손들은 로렌초의 영묘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한때 ‘조국의 수호자’로 칭송받았던 위대한 로렌초가 사후에는 이렇게 천대받을 줄 누가 알았으랴. 교황은 임시로 모셔진 위대한 로렌초와 자신의 아버지 시신을 한 예배당에 모시기로 결정했다. 이어 예기치 못하게 피렌체를 다스리던 형과 조카가 사망하자 이들의 시신 또한 함께 안장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원래 계획은 불가피하게 여러 번 수정됐고 심지어 미켈란젤로가 “교황님, 나는 당신의 종이 아닙니다”라고 불평할 정도로 메디치 가문과 미켈란젤로의 불편한 관계가 지속됐다. 우여곡절 끝에 미켈란젤로는 이 예배당을 메디치 선조들의 영묘 조각상으로 장식했고 그렇게 오늘날 ‘(신)성구실’이라 불리는 걸작이 탄생한다.


이곳 입구에 들어서면, 양쪽 벽면에 얼굴만으로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장군 형상으로 조각된 두 개의 대리석 입상(立像)이 있고 바로 아래 나체로 조각된 여자와 근육질의 남자가 비스듬히 누운 포즈로 조각돼 있다. 완성품이라기보다는, 미완성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칠게 조각된 것이 특징이다. 

후대 미술사가들은 비스듬히 누운 형상으로 제작된 조각상을 ‘밤과 낮, 그리고 황혼과 새벽’으로 이름 짓고,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미켈란젤로는 왜 누구를 기리는 영묘인지 알 수 없도록 영묘를 제작했을까? 르네상스 시대 귀족이나 고위 성직자의 영묘를 제작할 땐 형상을 생전의 모습과 유사하게 묘사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우리나라도 비석을 세울 때 후손들이 알아보기 쉽도록 이름을 반드시 새겨 넣는다. 미켈란젤로가 메디치 가문의 영묘를 조각하면서 특정인을 위한 영묘를 상징하는 표식을 명확히 남기지 않은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당대 최고 조각가로 교황의 영묘(말썽 많던 교황 율리우스 2세)까지 제작한 경험이 있었던 미켈란젤로다.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다듬은 대리석에만 열중하면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은 더욱 미궁에 빠지고 만다. 필자는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 복귀해 다시 권력을 잡아가던 당시 상황을 곁들여 작품 감상을 해보려 한다. 의외로 쉽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메디치 가문은 추방당한 지 18년이 지난 1512년, 추기경이었던 위대한 로렌초의 둘째 아들(후에 교황 레오 10세) 덕분에 피렌체로 복귀할 수 있었다. 메디치 가문이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지만 마키아벨리와 같은 공화주의자 때문에 피렌체 민심은 메디치 가문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메디치 가문을 더욱 난처하게 한 것은 메디치 은행이 파산해 빈털터리가 됐다는 점이다. 한때 막대한 부와 유럽 군주와의 친분 등으로 피렌체를 보호해주던, 과거의 메디치 가문이 아니었다. 단지 피렌체 시민들은 교황의 후원이 있으면 다른 국가가 피렌체 영토를 침범하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메디치 가문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다시 피렌체 권력을 장악한 메디치 가문은, 조심스럽게 특정 지도자를 우상화하기보다 시민 공동체를 우선시하던 마키아벨리 시대의 공화정 전통을 그대로 따랐다(적어도 초창기에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메디치 가문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교황 레오 10세는 동생을 교황군 사령관으로 임명했고, 철부지 조카는 스스로 피렌체 시민군 사령관이라 칭했다. 또 교황은 이들을 교황이 지배하는 도시의 군주(공작이란 칭호)로 임명했다. 이렇게 종교 권력의 힘으로 교황은 물론이고 친지들까지 모두 귀족 반열에 오르게 된다. 미켈란젤로가 메디치 가문의 영묘를 제작할 때 메디치 가문은 상인 가문에서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됐지만, 피렌체에서는 공화정을 염원하는 시민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았다. 피렌체는 자신을 드러내려는 메디치 가문과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시민들의 상반된 입장이 공존하는 분위기였다. 

메디치 가문의 주문을 받은 미켈란젤로는 상인에서 귀족으로 격상한 메디치 가문의 위상과 특정 개인의 우상화를 자제하는 상반된 분위기를 작품에 그대로 반영해야만 했다. 당시만 해도 귀족 가문은 영묘를 제작할 때 얼굴 형상이 드러나는 조각상을 제작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부자라 해도 상인들은 얼굴의 형상이 들어간 거대한 조각상을 영묘로 제작할 수 없었다. ‘국부’로 추앙받던 ‘코시모’도 조각상 없이 교회 바닥에 ‘국부’라고 새겨진 평판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교황의 권력으로 귀족 반열에 오른 메디치 후손들은 얼굴 형상을 묘사한 거대한 조각상 영묘를 제작할 수 있게 됐다. 미켈란젤로는 메디치 가문 후손들의 영묘를 대리석으로 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특정 개인을 드러내는 것을 꺼린 공화정 체제 전통을 따라 영묘에 조각된 얼굴은 영묘의 주인과 전혀 관련이 없는 형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조각상에 묘사된 상징물을 보고 영묘 주인을 분간해내는 수밖에 없다(사진ⓛ). 

먼저 장군 복장을 하고 모자를 쓰지 않은 형상으로 조각된 영묘는 교황의 동생으로 당시 교황청 군대 사령관을 지냈던 ‘줄리아노’다. 미켈란젤로는 공식적으로 군대 사령관을 지낸 인물임을 상징하기 위해 장군의 손에 지휘관을 상징하는 바통을 살며시 쥐어줬다. 그러나 교황 승인 없이 스스로 피렌체 시민군 사령관이 된 조카 로렌초의 영묘에는 장군 모자만 씌워놓고 바통은 살짝 빼놨다. 피렌체 시민이 이 철부지를 지휘관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섬세한 상징물을 조각해놓는 방식으로 영묘의 주인을 드러내는 조심스러운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럼 위대한 로렌초는 어디에 있을까.

위대한 로렌초의 영묘가 장군 형상을 한 후손 영묘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제작됐을 법한데, 어디를 둘러봐도 찾기가 쉽지 않다(현재 위대한 로렌초 영묘라고 새겨져 있는 문구는 후에 추가됐다). 위대한 로렌초의 시신은 사제들이 미사를 행하는 제대의 맞은편 벽면에 위치한 직사각형 대리석 석관에 안치돼 있다(사진②). 후손들은 교황의 권력으로 장군이 되고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됐기 때문에 전통에 따라 얼굴이 조각된 영묘로 추앙받을 수 있었지만, 아무리 위대한 로렌초라도 평민이었기 때문에 얼굴의 형상이 조각된 영묘를 가질 수 없었다. 

미켈란젤로는 두 벽면에 조각된 후손들 조각상이 위대한 로렌초의 시신이 안장된 석관을 바라보는 구도로 조각함으로써 이 예배당 주인이 위대한 로렌초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표시했다. 

미켈란젤로가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에 메디치 가문의 위상은 예전만큼 견고하지 못했다. 공화주의자로부터 시기도 많이 받았다. 메디치 가문을 위해 일하던 미켈란젤로는 피살 위협 때문에 수도원 지하에 6개월간 숨어 지낸 적도 있다. 

이런 미켈란젤로의 신중한 성품 때문에,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후에도 메디치 가문의 영묘임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은 이 대리석 조각품만은 훼손당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가 오늘날까지도 미켈란젤로의 천재적인 재능을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된 것 아닐까.


5.[머니투데이]지상에서 천국처럼, '산위의 마을'의 반소비 오프 운동

산위의 마을은 자연과 어울려 생태 농업을 하는 무소유 신앙공동체다. 박 신부는 1998년부터 준비해 2004년 마을을 만들고 2006년 입촌했다. 입촌할 때는 서울에서 단양까지 한발 한발 걸어서 갔다. '걸어서 천국까지' 길 위의 피정을 한 셈이다. 내 이웃 중에도 비슷한 분이 있다. 화천 토고미마을에 터를 잡고 서울에서 먼 길을 걸어와 손수 집을 짓는다. 나는 이 분에게서 박 신부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박 신부에게 산위의 마을은 무분별한 소비와 소유로부터 탈출하려는 '노아의 방주'다. 지상에서 천국처럼 살기 위한 영혼의 보금자리다. 그는 "우리의 영혼은 소비문화의 악령에 사로잡혀 묘지 주변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소비문화가 우리의 삶을 가장 완전하게 지배하고 조종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기술문명의 아바타로 살아가는 듯하다"고 한다. 공감!

산위의 마을은 돈이 아예 필요 없는 생활 시스템을 만들어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하는 反소비 운동 중의 하나가 '오프(off) 운동'이다. 예컨대 '쇼핑 오프'는 쇼핑을 안 하고 사는 것이다. 이런 오프가 여럿이다. TV 오프, 액세서리 오프, 메이크업 오프, 신용카드 오프, 승용차 오프, 휴대폰 오프…….

"'오프 운동'에는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없애버리는 100퍼센트 오프의 멤버도 있고, 다섯 개의 신용카드를 하나로 줄이거나 아예 안 쓰거나,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소형차로 바꾸는 사람도 있다. 자유로운 동조다. 하지만 최소 한두 가지는 실천하는 것이 예수살이 운동의 기본 조건이다. 가장 잘되는 운동은 텔레비전과 쇼핑 오프이고, 가장 안 되는 것이 휴대폰 오프이다."

나는 어떤가? 나에게도 많은 '오프'가 필요하다. 나 또한 만족을 모르고 끝없이 더더더를 외치는 욕망의 화신 아니던가. 밤낮 없이 사고 쟁이고 버리는 소비중독자 아니던가.

박 신부는 박 노해 시인의 형이다. 둘을 본 적은 없지만 형제는 닮았다. 둘 다 뜨거운 가슴으로 세상을 품고 세상을 바꾸려 한다. 둘 다 혁명가다. 운동가다. 형은 영성으로, 동생은 감성으로 말하지만 결코 말에 그치지 않는다. 앞서고 맞선다. 부딪치고 부순다. 실행하고 실현한다. 머리와 몸과 발이 따로 놀지 않는다. 형은 '작은 것'을, 동생은 '큰 것'을 외치지만 절대 혼자 가지 않는다. 여럿이 함께 간다.

작은 나를 넘어 여럿이 함께 가는 것, 그것이 공동체다. 형제는 이런 공동체에 헌신한다. 우리를 통해 더 큰 것을 이루고 더 큰 나를 만나는 일에 자신을 던진다. 형제는 공동체주의자다.

나는 어떤가? 나는 아니다. 형제와 반대다. 나는 혼자 한다. 혼자 간다. 혼자 논다. 혼자 누린다. 내 마음에는 공동체가 없다. 나는 여럿을 힘들어 한다. 함께 하는 걸 어려워한다. 좀처럼 뜻을 합치지 않는다. 힘을 보태지 않는다. 어려움을 나누지 않는다. 결실을 공유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 챙기는 개인주의자다. 나만 위하는 이기주의자다. 내 편만 우기는 분리주의자다. 나는 당신과 내가 다르지 않고, 우리가 모두가 하나라는 진실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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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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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9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문화·예술계의 풍성한 결실 축하하며

우리 공연예술인들의 활약을 격려하고 축하하는 ‘이데일리 문화대상’이 올해로 3회째를 맞았다. 경제문화종합미디어인 이데일리와 이데일리TV가 ‘예술을 통한 가치창조’라는 깃발 아래 문화·예술의 창달을 위해 이끌어가는 행사다. 해를 거듭하면서 결실이 풍성해지고 있다는 점에 나름대로 보람을 느낀다. 오늘 저녁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시상식과 갈라콘서트의 화려한 무대에서도 그런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돌아보면 지난 한 해도 우리 문화·예술계는 어려운 시기를 지나왔다. 가뜩이나 경제 불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뜻하지 않게 메르스라는 복병까지 들이닥침으로써 공연장 분위기도 한동안 썰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공연예술계는 결코 위축되지 않았다. 서로 다독이고 위로하면서 활력을 불어넣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창작의 열기가 뜨거웠던 점도 돋보인다.

이미 우리의 문화·예술은 세계무대를 향해 ‘K컬처’라는 커다란 장르를 형성하면서 성큼 걸음을 내딛고 있는 중이다. 한때의 유행이나 관심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를 떨쳐내고 각국 팬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 기반도 탄탄해지는 추세다. 연극과 클래식 부문을 비롯해 오늘 시상식 무대에 오르게 되는 무용, 국악·전통, 뮤지컬, 콘서트 등 각 부문별 주인공들에게 찬사를 돌리는 이유다.

물론 우리의 문화·예술을 좀 더 발전시키는 데는 아직도 갖가지 장벽이 가로놓여 있는 게 사실이다. 공연을 즐기는 연령대가 청소년 위주에서 장년층으로까지 확대되고는 있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공연장도 모자란 편이다. 문화·예술인들의 열악한 생계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최근 들어 정부 지원이 확대되고 있어 다행이지만 앞으로도 더욱 적극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문화·예술의 발전은 국민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결코 소홀해서는 안 된다. 해외에서 ‘코리아 브랜드’를 높이는 데도 필수적이다. 오늘 저녁의 한바탕 축하 무대는 그런 의지를 다지는 자리가 될 것이다. 내년에는 더욱 알찬 결실을 기대하며, 어려운 여건에서도 지난 1년 동안의 무대를 빛낸 모든 문화·예술인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2.골프 대중화하려면 세금부터 내려라

문화체육관광부가 그제 박근혜 대통령 주재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스포츠산업 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골프 대중화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회원제 골프장의 대중제 전환 요건을 회원 100% 동의에서 80% 이상 동의로 완화하는 동시에 값싼 자금을 지원하고, 대중골프장의 캐디·카트 선택제 확대로 요금을 낮춘다는 게 그 내용이다. 골프가 부유층에게만 해당하는 귀족 스포츠라고 눈총받는 현실에서 일단 반길 만하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전국의 회원제 골프장 130여 곳이 조속한 시일 내에 대중제로 전환할 것이란 문체부 전망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지금은 회원 몇 명만 반대해도 대중제 전환이 불가능하므로 요건 완화가 어느 정도 유인책은 되겠지만 회비 반납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어 쉽지 않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회원제 골프장을 이용하는 요금은 평일에도 25만원 안팎이고, 대중제는 이보다 5만~10만원 싸지만 오히려 회원제보다 비싼 곳도 없지는 않다. 이런 판국에 캐디·카트 이용 선택제로 5만원 정도 깎아 준다고 해서 골프 대중화가 앞당겨지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투자 활성화의 일환으로 내놨지만 골프 대중화는 내수확대 차원에서도 요긴하다. 대한골프협회에 따르면 2014년 113만명이 외국에 가서 골프를 치느라 3조원을 넘게 썼다. 이들이 국내에서 골프를 쳤다면 내수 진작에도 한몫 단단히 했을 게다. 중국과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으로 많이 나가지만 요새는 일본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호텔에서 먹고 자면서 골프를 실컷 즐겨도 하루 10만원이 채 안 드니 국내 골프장들은 경쟁이 안 된다.

국내 스포츠산업의 38%를 차지하는 골프의 대중화는 해묵은 과제다. 작년에도 프레지던츠컵대회 국내 개최를 계기로 박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골프 활성화를 지시했으나 그 뒤론 꿩 구워 먹은 소식이다. 요금이 너무 비싼 데다 몇 억원짜리 회원권이 있어도 부킹이 쉽지 않고 그나마 공직자들에겐 금기시돼 있는 현실에서 골프 대중화는 공염불일 뿐이다. 진정으로 골프 대중화를 추진할 작정이라면 세금을 왕창 내려 요금 부담을 줄이고 골프에 대한 부정적 인식부터 고치는 게 먼저다.

[동아일보]

3.은행 CD금리 담합 논란, 금융官治당국이 책임져야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달 초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 산정 기준인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를 담합한 혐의가 있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2012년 7월 조사에 착수한 지 3년 7개월 만이다. 공정위는 4, 5월 전체회의에서 제재 여부를 확정할 방침이지만 금융소비자원은 이미 피해자가 500만 명에 이르고 피해액이 4조 원 이상이라는 분석까지 내놨다. 영국 미국 스위스 금융당국이 2012년 바클레이스 UBS 등 글로벌 은행에 대해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기준금리) 담합을 이유로 100억 달러(약 12조3000억 원)의 천문학적 벌금을 매긴 것처럼 ‘한국판 리보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번 사안의 쟁점은 2011년 12월∼2012년 7월 시중금리가 0.29%포인트 하락한 반면 CD금리 하락 폭은 0.01%포인트에 그친 배경이다. 공정위는 6개 은행 담당자들이 모여서 CD금리를 담합했다고 본 반면 은행들은 당국의 ‘행정지도’에 따라 CD 발행량을 줄이다 보니 금리가 움직이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한다. 

공정위의 최종 결론을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담합으로 확정될 경우 금융당국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기검사를 하면서 담합을 몰랐다면 검사체계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알고도 눈감아준 것이라면 불법을 방조한 것이 된다. 현재 ‘억울한 은행들’은 제재가 확정되면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내겠다고 벼르는 상태다. 

금융당국으로서는 행정지도가 담합 논란의 빌미였으니 곤혹스러울지 모른다. 금리 발행량을 줄이라는 관치(官治)가 없었다면 담합의 싹은 애초 자라지 않았을 것이다. 이참에 금융당국은 증거가 남지 않도록 전화로 행정지도하는 구태를 버리기 바란다. 만일 담합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침묵을 지킬 게 아니라 입장을 밝혀 시장 불안을 덜어줘야 한다. 그러나 담합이 인정될 경우에 대비해 은행 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대출자 손실을 보상하는 대책을 마련해둬야 충격을 줄일 수 있다.

4.안철수 설익은 안보의식에 黨 정체성 우왕좌왕하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어제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민이 원하는 것은 한반도의 안정이며 점진적인 통일”이라며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도 (북한과의)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반도의 급격한 변화와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재앙”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북한 궤멸론’을 싸잡아 비판해 좌우 이념에 구애되지 않는 안보·통일론을 강조했다.

그러나 북핵 대처 방안으로 안 대표가 제시한 ‘우리 군의 독자적 전략무기방어체제의 조속한 구축’을 보면 국방부는 2022년까지 킬체인(Kill Chain·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가 있을 때 30분 안에 선제 타격하는 체제)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킬체인을 뚫고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시스템) 체계 구축 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안 대표는 “해마다 수십조 원의 막대한 국방비를 쓰면서도 왜 독자적 방어체제를 구축하지 못하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예산을 추가 편성해서라도 방어체제 구축 시기를 한시라도 앞당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독자적 방어체제는 엄청난 예산만으로도 안 되고 기술이 있어야 한다. 예산만 있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다. 

그가 언급한 ‘독자적 방어체제’가 미국에 의존하지도 않고 중국을 자극하지도 않는 체제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안 대표의 ‘안보 멘토’인 경남대 교수 출신의 김근식 통일위원장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해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로 편입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KAMD는 10∼30km의 낮은 고도에서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하층 방어체계여서 구축이 돼도 30km 이상 고(高)고도에서 북한 미사일을 방어할 수 없다.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가 검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안 대표가 “사드 배치는 공론화를 통해 국민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안보에 대해 분명한 의식이나 소신이 없거나, 좌우 눈치를 보느라 입장 표명을 기피하는 태도로 보인다. 

안 대표는 개성공단 중단 조치에 대해서도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햇볕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한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고, 개성공단의 산파 역할을 했던 정동영 전 의원을 어제 입당시켰다. 안 대표의 안보의식은 설익었고 호남 표를 놓치지 않으려 안보노선은 우왕좌왕 좌충우돌이니 국민의당 정체성이 점점 알 수 없게 돼 가는 것이다.

[서울신문]

5.北 테러 우려에 더 절실해진 테러방지법

북한이 본격적 대남 테러를 감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최근 이를 위한 역량 결집을 지시했으며, 대남·해외공작 총괄기구인 정찰총국이 앞장서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면서다. 그제 ‘긴급 안보상황 점검 당정 협의회’에서 대응책까지 논의했다니 ‘양치기 소년’의 외침쯤으로 치부할 일은 아닐 듯싶다. 북이 4차 핵실험에 이은 탄도미사일 발사로 유례없이 강력한 국제 제재에 직면하고 있는 터라 돌출적 테러로 맞설 개연성을 누가 부인하겠나. 정보 당국이 잘 대비해야겠지만, 온 국민도 경각심을 가질 때다.

그제 당정 협의회에서는 북측이 정부 인사나 반북 활동가 등에 대한 위해나 납치를 기도하거나, 다중이용 및 국가 기간 시설이 테러 타깃이 될 가능성이 논의됐다고 한다. 북의 ‘전과’를 보면 그저 기우라고 보기도 어렵다. 북이 황장엽씨 암살을 기도한 일뿐만 아니라 몇 년 전 인천·김포공항 이착륙 민간 항공기들에 대한 위성위치정보시스템(GPS) 전파 교란을 감행한 사실을 상기해 보라. 특히 청와대나 금융기관에 디도스 공격을 기도한 전력도 있다.

전문가들은 미군의 전략 무기가 대거 한반도에 전개되고 있는 지금 북한이 국지적 군사 도발을 감행할 소지는 적다고 본다. 도발 원점이 드러나지 않는 사이버 테러나 후방을 교란하려 할 공산이 외려 크다는 뜻이다. 김정은 정권은 5월 7차 노동당 대회에서 핵무장을 최대의 치적으로 내세울 태세다.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인한 체제 위기를 해소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차원에서 대남 테러로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더욱이 지난해 이슬람국가(IS)에 의한 파리 테러 이후 국경을 초월한 테러가 빈발하고 있다. 그러나 초국적 테러를 막기 위한 국제 공조 차원에서도 요긴한 테러방지법이 국회에서 15년째 표류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국정원에 테러 정보 수집권을 주면 인권 침해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면서다. 그러면서 이를 총리실이나 국민안전처에 줘야 한다는 대안 같지 않은 대안을 내놓고 있다. 국정원조차 사이버 테러 등에 대해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있는 판에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부처에 맡긴다니 될 말인가.

거듭 강조하지만 북한이 테러를 저지를 것이란 첩보를 정부는 물론 정치권이 흘려들어서는 안 될 때다. 여야는 테러를 근원적으로 차단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가능성을 줄이려면 테러방지법이 충분조건이 아니라 최소한의 필요조건임을 유념하기 바란다.

6.공유경제, 신성장 이끌 마중물 돼야

정부가 그제 위기를 맞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투자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다. 연구개발(R&D) 특구 조성과 스포츠산업 규모 확대, 대학의 해외 캠퍼스 설치 허용 및 건강관리 서비스 육성이 포함됐다. 모두 의미 있는 대책이지만, 특히 공유경제를 신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안이 눈길을 끈다. 공유경제는 자산이나 지식, 서비스 등을 다른 사람과 나눠 쓰는 신개념 경제다. 숙박 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앤비’나 모바일 기반의 콜택시 ‘우버’가 대표적이다. 공유경제 산업은 이미 세계적으로 연 80%씩 성장하는 메가트렌드 시장이다. 에어비앤비는 2008년 설립돼 191개국에서 200만개의 객실을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세계 공유경제 시장 규모는 2010년 8억 5000만 달러에서 2014년 100억 달러로 급성장했고, 2025년엔 3000억 달러를 넘으리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가 이제라도 공유경제 산업을 육성하기로 한 것은 다행스럽다. 철강이나 조선, 전자 등 기존 주력 산업이 한계에 부딪혀 성장판이 닫히려는 시점에서 공유경제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성공의 관건은 공유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를 얼마나 과감하고 효율적으로 정비하느냐에 달렸다. 우버나 에어비앤비는 미국 등 선진국에선 이미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사업 모델로 주목받았다. 반면 한국에선 이런 서비스가 대부분 불법이었다. 차량이나 숙박 공유 같은 서비스를 품어 줄 업종 구분 규정이 없어 사업자 등록 자체가 어려웠다. 앞으로 각 분야에서 공유경제 개념을 차용한 서비스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에서 걸림돌이 될 만한 규제는 과감한 손질이 필요해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신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는 일단 모두 물에 빠트린 뒤 꼭 살려 낼 것만 살리도록 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은 매우 고무적이다. 비단 공유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산업에서도 금지 규정이 없으면 모두 가능한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용자의 안전과 개인정보 보호, 사회질서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만 남기면 된다. 기존 사업자들과의 이해충돌을 최소화하는 것도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숙박 공유 서비스는 당장 호텔이나 민박 사업자들에게 큰 위협이 된다. 차량 공유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자동차 운전 대리업 또는 택시업계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업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유 민박업을 우선 부산·강원·제주 지역에만 도입하고, 내년에 전국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은 이런 점에서 적절해 보인다.

공유경제는 아직 낯설지만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도입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규제에 익숙한 행정관청이나 공무원들이 반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새로운 시장 진입과 성장에 따르는 성장통이라고 본다. 낡은 규제들은 역대 정부가 그토록 손보려고 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공유경제 도입이 규제 시스템을 바로잡는 모멘텀이 되기를 기대한다.

7.고질적 체육계 비리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나

대한체육회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의 칼날에 대한수영연맹이 걸렸다. 연맹 관계자들의 공금 횡령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검찰은 연맹의 고위 간부 등을 국가보조금 유용 혐의로 체포했다. 수영 발전에 쓰라고 준 보조금 수십억원을 사적인 용도로 빼돌리다 덜미가 잡혔다. 이 단체가 불투명한 국가보조금 운영으로 지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연맹이 관리하는 수영 시설을 선수 훈련에 쓰는 것처럼 서류를 꾸민 뒤 간부가 운영하는 사설 클럽 강습소로 활용하다 발각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체육계 비리는 잊힐 새도 없이 꼬리를 문다. 어지간한 비리에는 무감각해졌을 정도다. 검찰이 작정하고 들여다보고 있는 수영연맹만 해도 그렇다. 이번엔 보조금 횡령 비리가 걸렸다지만 비단 그 문제뿐이겠으며 어디 그곳만 그럴까 싶은 의구심이 먼저 든다. 안타깝게도 체육계를 보는 일반적인 인식이 그런 지경이다.

체육계의 고질적 비리가 손을 쓰기 어려울 만큼 심각하다는 경고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현 정부는 스포츠계 4대 악을 뿌리 뽑겠다며 출범 초기부터 장담을 거듭했다. 승부 조작과 편파 판정, 폭력, 입시 비리, 조직 사유화 등을 체육계의 고질병으로 간주하고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찰이 상시 합동으로 수사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 거창한 구호와 제스처에 비한다면 여전히 성과는 미미하다.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귀화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파벌주의를 지목하며 비리 근절을 촉구했지만 달라진 게 뭔가. 빙상, 유도 등 어느 한 곳 뿌리깊은 파벌이나 조직 사유화 폐단이 줄었다는 평가가 들리지 않는다. 주무 부처인 문체부는 구조적인 체육 비리의 사슬을 끊어 보려는 의지가 있기나 한 것인지 궁금하다.

수영연맹 의혹만 짚을 게 아니라 검찰은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 훈련비 횡령 등 비위가 드러나 문체부의 보조금 지원이 중단된 대한사격연맹, 대한승마협회 등도 집중 점검 대상에 들어야 할 것이다. 때만 되면 비리로 불거지는 보조금 집행과 운용 문제도 딱하다. 관리 체계를 전면 재수술할 일이다. 징벌 규정을 몇 배 강화해 스포츠계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도록 다잡아야 한다. 정부의 비상한 관리 대책과 지속적인 감독이 전제되지 않고서야 체육계의 신뢰 회복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중앙일보]

8.친박 욕심 지나친 새누리 공천 갈등

요즘 새누리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천(公薦) 갈등은 공당임을 자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상식적인 데다 파벌 간 권력탐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정글의 싸움터 같다. 어제도 새누리당 최고위에서 김무성 당 대표가 “공천관리위가 잘못 굴러가고 있다. 공천룰을 벗어나면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자 서청원 최고위원이 “공천위의 독립을 보장해야 한다. 김 대표의 용납하지 않겠다는 말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얼굴을 붉혔다. 원유철 원내대표, 김태호·이인제 최고위원 등 이른바 친박 세력은 서 최고위원 편에 서서 김 대표를 압박했다.

최고위가 이렇게 볼썽 사나운 장면을 연출한 것은 친박의 입김으로 자리에 오른 이한구 공천위원장의 최근 발언 내용 때문이다. 그는 17개 시·도별로 1~3개 우선추천지역을 선정해 단일 후보를 공천하겠다고 말했다. 현역 의원의 20% 규모다. 이 위원장의 주장은 개혁공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지만 그동안 김무성 대표가 큰 틀에서 새누리당 공천 정신으로 확립해 온 국민공천제를 근본에서 허무는 무리한 발상이다.

물갈이 개혁공천이냐 상향식 국민공천이냐는 1년반 전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김 대표가 계파 간의 협상과 타협을 통해 큰 틀에서 정리해 온 사안이다. 1인 보스에게 충성, 파벌 이익에 봉사, 실권자에게 줄서기 등의 폐해를 낳은 전략공천을 폐지하는 대신 여성·장애인 같은 정치적 약자에게 우선권을 주거나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지역을 보완하는 우선추천·단수추천 공천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당헌 103조). 우선추천지역제 등은 전략공천을 폐지했을 때 현역 의원의 기득권이 과도하게 보호되는 측면을 막기 위해 채택됐다. 따라서 공천위는 무소불위의 공천 전권을 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당에서 이뤄졌던 ‘큰 틀의 합의’의 연장선상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내면 된다.

이한구 위원장은 이런 흐름을 외면한 채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적용했던 ‘현역 의원 무조건 20% 탈락’이라는 4년 전 추억의 레코드를 다시 틀려고 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위원장은 공천위 나머지 10인 위원과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자신의 구상을 독단적으로 발표해 내부 항의를 받아 사과까지 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이한구 위원장과 그 뒤편의 친박 세력이 ‘사실상 전략공천론’을 계속 주장하는 건 비신사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고 당을 패권적인 파벌정치의 늪으로 빠뜨리는 탐욕으로 비칠 수 있다. 김무성 대표의 “사천(私薦)을 없애려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친박이) 미운 놈 쳐내고 자기 사람 심으려 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전혀 엉뚱한 것만은 아니다. 김 대표도 평소 주어진 정당한 권한을 사용해 공천 진행을 물 흐르듯 관리하지 못하다 감정을 폭발시키는 방식으로 파열음의 주인공이 되는 건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김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비박과 친박 세력은 절차를 지키고 탐욕을 자제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 공천을 해도 승리할 수 있다는 오만, 유권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방자함이 집권세력 사이에 떠도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9.‘표현의 자유’에 상처 남긴 부산영화제

정치 외압 논란을 빚어 온 부산국제영화제가 새로운 사태를 맞았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시장이 당연직으로 맡는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민간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영화제의 독립성을 천명하는 취지에서 조직위원장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서 시장은 26일 임기가 만료되는 이용관 공동집행위원장을 재위촉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영화제의 두 축인 조직위원장과 집행위원장이 함께 물러나는 상황이 됐다.

이로써 부산영화제 논란은 일단 봉합되는 모양새다. 부산시와 영화제는 2014년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놓고 갈등을 빚어 왔다. 상영 중지를 요청하는 부산시의 요구를 이용관 위원장이 거부하자 부산시는 지난해 11월 이 위원장을 협찬 중개수수료 허위 집행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정치 보복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외 영화인 100여 명이 최근 영화제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오기도 했다. 서 시장의 이날 선언은 그간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특단의 조치로 보인다.

그럼에도 부산영화제는 큰 상처를 안게 됐다. 20회 행사를 치르며 아시아 대표 영화도시로 성장한 부산의 이미지에 오점을 남겼다. 지구촌 영화의 오늘을 보여 주는 문화축제에 정치가 개입했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매해 20만 명이 다녀가는 부산영화제는 그간 부산을 넘어 아시아 영화를 세계로 소개하는 창구 역할을 해 왔다. 광주비엔날레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문화행사로 커 왔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을 지켜온 덕분이었다.

앞으로 8개월 남은 올해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야 할 숙제도 있다. 현재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를 강수연 위원장 단독체제로 갈지, 아니면 이용관 후임 집행위원장을 선임할지 결정되지 않았다. 민간 조직위원장을 뽑으려면 정관도 개정해야 한다. 영화제 측도 정관 개정 없는 조직위원장 사퇴만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번 무너진 성을 다시 쌓기는 이렇게 어렵다.

10.현대차 신사옥 일대 한국판 롯폰기힐스로 만들라

서울 삼성동 옛 한국전력 일대를 일본의 롯폰기힐스 같은 국제복합지구로 개발하는 청사진이 17일 나왔다. 서울시와 현대차에 따르면 이곳에는 105층짜리 현대차 신사옥과 업무시설 외에 6성급 호텔과 대규모 공연, 컨벤션,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는 현대차그룹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가 들어선다.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메인 타워의 104층과 105층에는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같은 전망대를 조성해 관광객도 유치할 계획이다. 내년 착공에 들어가 2021년 완공되면 한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하니 기대가 크다.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서울시는 용적률을 법정 최대치(800%)에 근접하는 799.13%까지 허용했고, 현대차는 이에 화답해 1조7491억원이라는 큰돈을 공공기여금으로 내놓았다. 한때 공공기여금 사용처를 놓고 갈등을 빚었지만 다행스럽게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 자금은 영동대로 지하 공간 통합환승센터 등 교통 기반시설 확충과 잠실 주경기장 정비, 한강과 탄천 환경 개선 등에 투입되는데 복합지구와 인프라스트럭처 공사가 진행되면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시행정학회는 건설과 인허가 기간 중에만 12조5000억원의 생산유발과 7만9000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준공 후 운영에 들어가면 경제 효과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내수 침체로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단비가 아닐 수 없다.

2003년 완공된 롯폰기힐스는 54층짜리 모리타워에 입주한 기업과 호텔, 방송사, 주거시설, 고급 음식점과 판매시설, 공연장과 예술 공원, 컨벤션센터가 어우러져 도쿄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각종 이벤트가 열리고 관광 명소로 인기를 끌면서 매일 수십만 명이 방문한다. 낙후된 저소득층 주거시설을 재개발해 엄청난 경제 효과를 보는 모범 사례에 속한다. 

서울시와 현대차는 이런 롯폰기힐스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다만 공사 중 안전사고나 교통 정체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이런 점도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착공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연합뉴스]타이거 우즈, 현대차 손잡고 리비에라 '악연' 끊을까

19일부터 나흘 동안 열리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노던트러스트오픈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와 각별한 인연이다.우즈가 난생처음 출전한 PGA 투어대회가 노던트러스트오픈이다. 

우즈는 16살 고교생이던 1992년 이 대회에 초청 선수로 출전했다. 그때 대회 이름은 닛산로스앤젤레스 오픈이었다. 1926년 창설된 이 대회는 초창기에는 로스앤젤레스 지역 여러 골프장에서 열렸다.로스앤젤레스 컨트리클럽, 엘카바예로 컨트리클럽, 윌셔 컨트리클럽, 리비에라 컨트리클럽, 힐크레스트 컨트리클럽, 그리피스파크 골프코스, 폭스힐스 컨트리클럽, 잉글우드 컨트리클럽, 랜초파크 골프코스, 브룩사이드 골프코스 등에서 이 대회가 열렸다.

그러다 1973년부터 리비에라 컨트리클럽이 대회를 도맡아 치르고 있다. 다만 리비에라 컨트리클럽이 PGA챔피언십을 개최한 1983년과 시니어 US오픈을 유치한 1998년 등 두차례는 다른 곳에서 열렸다.로스앤젤레스 샌타모니카 계곡 센셋대로 서쪽 끝 자락에 자리 잡은 리비에라 컨트리클럽은 '서부의 오거스타'로 불린다.코스 수준 뿐 아니라 엄격한 회원제라는 점에서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과 닮은꼴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자란 우즈는 이 대회가 열린 웬만한 코스는 대부분 익숙하다. 특히 시립 골프장인 그리피스파크, 랜초파크, 브룩사이드 등은 주니어 시절 우즈가 안방처럼 드나들었던 곳이다.고등학교 1학년이던 우즈가 이 대회에 초청받은 것도 로스앤젤레스 토박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대회를 주관하던 로스앤젤레스 지역 상공인과 유지들이 로스앤젤레스가 낳은 골프 천재 소년에게 PGA투어 대회를 경험해볼 기회를 준 것이다.비록 1라운드 72타에 이어 2라운드 75타를 쳐 컷 탈락했지만 우즈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우즈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이듬해에도 닛산 로스앤젤레스 오픈에 초청받아 각별한 인연을 쌓았다.하지만 우즈와 이 대회의 인연은 악몽으로 변했다.1996년 프로로 전향한 우즈는 9년 연속이 대회에 출전했다. 하지만 그는 한번도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우즈가 3차례 이상 출전하고도 우승하지 못한 대회로는 유일하다. 준우승 두번을 포함해 톱10 입상이 세번이니 보통 선수라면 그럭저럭 괜찮다고 받아들일 성적이지만 골프 황제의 위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구나 '고향'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우승을 못하니 우즈로서는 복장이 터질 일이었다. 우즈가 청소년 시절을 보낸 집은 리비에라 컨트리클럽에서 불과 60㎞ 거리다.1998년에는 연장전에서 져 우승을 눈앞에서 놓쳤다. 우즈는 평생 15번 연장전에서 딱 두번밖에 진 적이 없다. 전문가들은 리비에라 컨트리클럽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리비에라 컨트리클럽은 그린이 유난히 까다롭다. 우즈는 리비에라 컨트리클럽 그린에서 애를 먹었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의 유리알 그린도 정복한 우즈지만 리비에라 그린에서는 쩔쩔맸다.

발렌시아 컨트리클럽에서 열렸던 1998년 대회를 빼고 리비에라 컨트리클럽에서 치른 7차례 대회에서 우즈는 1999년 대회 말고는 매 대회 3퍼트를 기록했다. 7차례 대회에서 3퍼트를 하고도 우승한 선수는 없었다.우즈는 7차례 대회에서 그린 적중 때 홀당 평균 퍼트 개수를 1.7개 아래로 떨어트린 것은 딱 한차례뿐이다. 하지만 우승자 가운데 평균 퍼트 개수가 1.7개를 넘긴 선수는 2명에 불과하다.

대개 퍼트 개수가 많아지는 이유는 먼거리 퍼팅이 많기 때문이지만 우즈는 리비에라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대회에서 대개 가장 홀에서 가깝게 볼을 올리는 선수였다. 타수는 대부분 그린에서 까먹었다.운도 따르지 않았다. 리비에라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즈의 평균 타수는 69.39타였다. 우승하고도 남을 스코어였지만 해마다 펄펄 난 선수가 따로 있었다.

2006년 대회에서 우즈는 2라운드를 마치고 감기에 걸렸다며 기권했다. 우즈는 이후 이 대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9년 연속 출전한 대회에 10년 동안 발길을 끊었다.우즈 측은 "일정이 맞지 않아서"라는 이유를 댔지만 다들 우승 못한 화풀이라고 해석하고 있다.대회 주최 측은 해마다 '고향 사람' 우즈에게 출전을 간청했지만 우즈는 외면했다.우즈와 리비에라 컨트리클럽의 악연은 그러나 이제 풀릴 조짐이다.

AP 통신에 따르면 타이거 우즈 재단은 내년부터 이 대회에서 '모종의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이 대회는 내년부터 금융회사 노던 트러스트가 손을 떼고 현대자동차가 타이틀스폰서를 맡는다. 현대차는 2017년부터 10년 동안 이 대회 타이틀스폰서를 맡기로 계약했다.아직 대회 명칭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현대'가 포함된다. 대회 타이틀스폰서가 바뀌는 과정에서 타이거 우즈 재단이 대회 운영에 참여하는 방안이 부상했다.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PGA투어 대회가 우즈 없이 치러지는 데 대해 지역 주민의 아쉬움은 컸다. 

타이거 우즈 재단은 로스앤젤레스 근교 도시 애너하임에 본부가 있다. 타이거 우즈 골프 레슨 센터도 옆에 있다. 현대차 미국 법인 본사와 지척이다.이런 저런 인연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우즈의 대회 운영 참여가 급물살을 탔다.현대차 미국 법인 관계자는 "우즈가 대회 운영에 참여한다면 대회의 격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어쩌면 내년 이맘때 리비에라 컨트리클럽은 우즈의 출현으로 술렁일지도 모른다.


2.[이데일리][목면칼럼]어떻게 안전문화를 정착시킬 것인가?

필자가 지난 1년 동안 만났던 분들 대부분은 우리나라가 안전하게 되려면 무엇보다도 ‘안전문화정착’이 중요하다고 강조 했다. 막연한 주장에서부터 나름대로의 해법까지 제시하신 분도 있었다. 그만큼 우리사회 안전을 향한 열정이 높은 분들이 많다는 증거다. 이러한 국민들의 여망을 정책으로 담아내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나라 안전문화 운동 실태에 대한 보고를 받아보았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면서 추진된 내용이 눈에 띄었다. 민관 합동으로 안전문화운동추진협의회가 구성되었으며 적극적인 홍보도 있었다. 특히 국민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일명‘쓰리고(3 Go) 막줄지’라는 구호가 인상적이었다.‘재난은 막고, 사고는 줄이고, 안전은 지키고’를 줄인 말이다.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이 물씬 풍기는 좋은 구호였다. 

하지만, 안전문화를 실질적으로 정착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따라서 정부 안전정책을 총괄하는 국민안전처의 입장에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국민들의 동참을 요청하고자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 구성원 각자가 안전수칙을 지키고자 하는 생각을 내면화 하고 생활 속에서 실현되는 상태를 이룰 수 있을까에 착안한 대안이다.

‘안전에 관한 교육·점검·신고’라는 세 가지 실천 강령이다. 안전의 중요성과 안전 수칙을 알려 주는 교육, 생활 주변의 위험 요소가 있는지 살펴보는 점검, 위험요소를 당국에 알려 해소하라고 요구 하는 신고를 실천하자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민간 전문가가 합동으로 41만개의 위험 우려 시설을 일제 점검하는 국가안전대진단(2.15~4.30)을 통하여 위험요인을 점검하는 붐을 조성하고 있다. 

아울러 국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한 위험요소를 ‘안전신문고’(www.safepeople.go.kr)로 신고하는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고자 한다. 안전신문고 앱(App) 출시 1년 만에 86만건이 다운로드 되었고, 8만건 정도 안전 위해요소가 신고 되어 7만 8000건이 처리되었다. 300건의 사소한 사고의 징후가 있고 난 이후에 대형 사고가 발생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7만 8000건의 신고를 처리한 결과 약 260건의 대형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였다는 성과를 얻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전 교육의 경우 국민안전처가 총괄을 하고 교육부, 복지부, 고용부, 국토부와 경찰청 등 관계부처가 협업을 하여 ‘생애주기별 안전교육 지도’를 마련했다. 영·유아기, 청소년기, 성인기, 노년기 별로 노출 빈도가 높은 위험 요소를 제시하고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동영상·웹툰·인포그래픽 등 교육 자료를 제공하기로 했다. 나아가 안전교육 강사 및 안전체험시설 등의 정보까지 망라하는 ‘안전교육 홈페이지’를 구축하여 국민들에게 안전교육 관련 각종 정보를 원스톱으로 전달할 계획이다.

현재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는‘교육·점검·신고’라는 수단을 활용한 안전문화 운동 계획을 수립 중이다. 지역 실정에 맞는 계획이 수립되고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우리사회가 보다 더 안전해 질 것으로 믿는다. 이러한 안전문화운동에 민간기업도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주민인 김안전씨가 가족과 함께 주말여행을 할 때 접하게 되는 교통수단이나 이용할 시설에 대한 안전수칙을 ‘안전교육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알 수 있고, 완벽하게 점검된 시설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정부와 지자체, 기업과 국민들이 함께하면 조기에 실현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3.[동아일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속구룡사시편

속구룡사시편 ―오세영(1942∼ )

한 철을 치악에서 보냈더니라.
눈 덮인 멧부리를 치어다보며
그리운 이 생각 않고 살았더니라.
빈 가지에 홀로 앉아
하늘 문 엿보는 산 까치같이,

한 철을 구룡에서 보냈더니라.
대웅전 추녀 끝을 치어다보며
미운 이 생각 않고 살았더니라.
흰 구름 서 너 짐 머리에 이고
바람 길 엿보는 풍경같이,

그렇게 한 철을 보냈더니라.
이마에 찬 산 그늘 품고,
가슴에 찬 산 자락 품고
산 두릅 속눈 트는 겨울 한 철을
깨어진 기와처럼 살았더니라. 

‘술과 마약 등을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이것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중독의 정의이다. 그러나 술과 마약 말고도 우리가 중독돼 있는 것은 매우, 의외로 많다. 스마트폰에 중독돼 있고, 인터넷에 중독돼 있고, 게임에 중독돼 있고, 일에 중독돼 있다. 중독된 나머지 충혈된 눈과 과열된 뇌를 발견하면 더럭 겁이 난다. 그럴 때 읽는 시가 있다. 오세영의 ‘속구룡사시편’. 이 작품은 맑고 차가워서 뜨거운 눈과 뇌를 식혀 준다. 나를 얽어매고 있는 자발적이며 타율적인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시인은 겨울 내내 구룡사에 머물렀다. 눈 덮인 산사에서 시인은 마음의 질긴 생각들을 하나씩 끊어내는, 마음 비우기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그리운 이를 그리워하지 않기를 연습하고, 다음에는 미운 이를 미워하지 않기를 연습했다. 마치 자신이 까치가 된 듯했다는 1연과 풍경이 된 듯했다는 2연은 절묘한 반복과 대구를 이루기 때문에, 독자들은 읽을 때의 리듬감까지 얻게 된다. 1연과 2연이 겨우내 시인이 겪은 변화를 보여준다면, 3연은 그 결과물에 집중하고 있다. 이마에는 그리운 이 대신, 가슴에는 미운 이 대신 차가운 산을 품게 되었다. 그러니 구룡사에 들어갈 때의 시인과 나올 때의 시인은 분명 같고도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저렇게 한 철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 비워내기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시에 의하면 추운 겨울의 산사는 그에 가장 적당한 때와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산사에 갈 수 없지만 추운 겨울이 끝나기 전에 연습의 시도는 해볼 일이다. 겨울이 지나면 과열된 이마를 식혀 주던 찬바람이 아쉬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겨울의 끝에 가장 잘 어울린다.


4.[동아일보][열린 시선]심리부검에 응하는 유족에 따뜻한 손을

2014년 우리는 1만3836명의 생명을 자살로 잃었다. 고인에게 4명의 가족과 2명의 가장 친한 친지가 있었다면, 매년 유가족과 친지만 8만 명이 넘는다. 10년이면 80만 명이 감내해야 하는 충격이다. 유족들은 ‘나는 왜 막지 못했나?’ ‘도대체 왜?’라는 끝없는 물음과 함께 죄책감, 분노, 주변의 시선과 편견에 시달린다. 

이런 현실에서 지난해 유가족 151명이 침묵을 깨고 전문가를 찾아 고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전했다. 너무 망설여져 문 앞에서 한참 헤매기도 한 유가족들은 심리부검 면담에서 때로는 아팠지만 온전히 고인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다수가 면담 후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였다고 답해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심리부검은 용어조차 낯설다. 보건복지부는 2013년 중앙심리부검센터를 설립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보건사회복지사 등 센터의 전문가들은 전국의 유가족을 찾아갔다. 심리부검은 유가족을 만나 고인의 삶과 사망 원인을 체계적으로 조사하며 건강한 애도를 돕는 면담이다. 이를 통한 기록은 다른 사람들에게 예방할 길을 보여 준다. 한때 우리만큼 자살률이 높았던 핀란드는 10년 만에 그 비율을 절반 이하로 낮췄다. 국가 차원에서 심리부검 전수 조사와 예방 정책을 실행했기 때문이다.

중앙심리부검센터는 최근 121명의 분석 결과를 보고했다. 사망자의 93.4%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경고 신호를 보냈으나 유가족의 19%만이 이를 인식했다. 사망 당시 88%가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이 있었으나 15%만이 꾸준히 치료를 받고 있었다. 40%는 음주 상태였고 25%는 음주 문제를 겪고 있었다. 수많은 스트레스로 그들은 남몰래 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든 위험을 인지하고 알리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한국자살예방협회와 함께 ‘보고 듣고 말하기’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최근 3년간 16만 명이 이수했지만 더욱 확산돼야 한다. 복지 서비스가 있어도 절망에 더해진 우울증은 가능한 도움마저 포기하게 만든다. 위기에 처한 이들을 지원할 정책과 현장의 권한이 확대돼야 한다. 정신 질환 치료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개선책이 필요하다. 

유가족에 대한 지원책 마련도 절실하다. 선진국의 자살 예방 정책은 유가족 지원에 핵심적 우선순위를 둔다. 우리나라에선 심리부검이나 자조 모임에 참여하는 유가족은 아직 턱없이 적다. 침묵을 깨고 세상에 목소리를 낸 이들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줄이는 데 보탬이 되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들의 아름답고 용기 있는 행동에 우리 사회가 감사하며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기를 기대한다.


5.[중앙일보][분수대] 2년 후 오늘

2018년 2월 19일 당신이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지 상상해본다. 우선, 장소는 강원도라고 가정하자. 사방이 눈이고, 신나는 함성이 가득하다. 세계 최고 기량의 스노보드 선수들이 화려한 프리스타일 점프를 뽐낸다. 전날엔 시속 140㎞로 가파른 활강로를 질주하는 알파인 스키 선수들을 보며 심장이 쫄깃해졌다. 예상치 못한 ‘대박 사건’도 있다. 피겨 스케이팅의 전설 김연아 선수를 우연히 마주쳐 사진을 찍은 거다. 아, 물론 고민은 있다. 저녁식사로 강원도의 명물 콧등치기 국수를 먹을지, 해풍을 맞아 구수한 황태 정식을 먹을지다. 인생, 이 정도면 아름답지 않은가. 여긴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현장이다.

이런 상상은 그러나 지난달까지만 해도 현실적으로 사치에 가까웠다. 2018년 2월 9일 개막해 25일까지 이어지는 평창 겨울올림픽이 꼭 2년 후로 다가왔건만 경기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여부 자체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2011년 유치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조사한 평창 유치 지지율이 93%에 달했던 걸 상기하면 씁쓸하다. 경쟁 도시였던 독일 뮌헨은 61%, 프랑스 안시는 51%에 불과한 지지율을 보였다. 유치전에서 만난 독일·프랑스 관계자들이 “결과 조작 아니냐”는 질투 어린 농담을 했을 정도다.

문제는 유치 후에 있었다. 재정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부터 유치 후 확 식어버린 국민 관심, 그로 인한 스폰서 유치 실적 부진 등 평창 올림픽이 보인 문제는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 종합세트처럼 보였다. 그리고 많은 문제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공정률은 65%, 스폰서십 유치 실적은 목표 대비 59%에 불과하다.

그래도 다행히 고비는 넘겼다. 지난 6~7일 정선에서 열린 첫 테스트 이벤트인 2016 국제스키연맹(FIS) 스키 월드컵 대회를 무사히 치르면서다. 평창의 첫 모의고사 격이던 이 대회를 두고 IOC의 구닐라 린드버그 평창 담당 조정위원장은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무작정 좋아할 일은 아니다. 익명을 요청한 IOC 측 관계자에 의하면 “기대가 워낙 낮았던 것도 있다”고 했다. 첫 테스트 이벤트 역시 개최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곤돌라 공사에서 국제규격이 맞지 않는 부분이 발견돼 조양호 평창 조직위원장이 전용기까지 타고 가면서 국제기구 관계자들을 설득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93%라는 지지율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선 신발끈을 더 조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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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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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8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금융노조 성과주의 반대 설득력 없다

금융권이 성과주의 도입을 둘러싸고 몸살을 앓고 있다. 금융 공기업 9곳에 이어 민간 금융사들도 성과주의 도입을 선언하자 노조가 크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등 34개 금융기관의 사용자단체인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최근 현행 호봉제 중심인 임금체계를 성과 중심의 성과연봉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정부 지침대로 결과를 정해놓고 합의하자는 방식엔 협상하지 않겠다”며 총력 투쟁을 예고했다. 갈등 양상이 심상치 않다.

노조의 반발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금융위원회가 ‘성과주의 문화 확산’ 방침을 발표한 지 며칠 만에 민간에서도 도입하겠다고 나선 건 누가 봐도 당국의 압력을 받은 모양새다. 게다가 전체 공공기관은 물론 금융 공기업의 성과주의도 방침만 있을 뿐 아직 발도 떼기 전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국이 민간의 임금체계 변화를 밀어붙이려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며 금융권 자율성 확대에도 배치된다는 점에서 관치 논란이 불거지는 건 당연하다. “왜 우리가 먼저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설득력은 없다. 금융권은 공기업, 민간부문 가릴 것 없이 ‘신의 직장’으로 불릴 만큼 높은 보수를 받으면서도 생산성은 낮은 분야로 인식돼 왔다. 능력과 무관하게 일정 기간만 지나면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 탓이다. 7개 시중은행의 직원 1인당 평균 생산성은 2004년 1.91에서 2014년 0.63으로 3분의1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1인당 평균 임금은 같은 기간 5620만원에서 7928만원으로 되레 올랐다. 금융 공기업은 더욱 심하다.

이 같은 불합리한 임금구조에서 금융개혁을 말하는 건 공염불이다. 수익성 악화와 인터넷 전문은행 등장 등 갈수록 어려워지는 금융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능력에 따른 공정한 임금체계 도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노조가 ‘밥 그릇 챙기기’에 매달려 비효율을 외면하고 성과주의 도입을 무력화하려는 건 온당치 않다.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은 당국의 압력 여부를 떠나서도 자발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깨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혁신에 금융노조도 적극 동참하길 바란다.

2.이제는 북한 지도부가 답할 차례다 

세계 최강의 전력을 인정받고 있는 미국의 F-22 스텔스 전투기 4대가 어제 한반도 상공에 긴급 출동했다. 일본 가데나(嘉手納) 기지에서 발진한 이들 전투기 편대는 우리 공군의 F-15K 4대와 함께 저공비행을 하며 위용을 과시했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물론 추가 도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한미 양국의 강력한 경고다. 

주지하다시피 F-22 전투기는 뛰어난 스텔스 성능 덕분에 레이더망을 뚫고 적진 깊숙이 침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북한 지역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핵심 시설을 타격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여차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집무 공간도 폭격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그제는 미해군의 핵추진 잠수함 노스캐롤라이나호가 부산항에 입항함으로써 전략무기의 입체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도 속도를 내는 중이다. 사흘 전 열린 유엔 안보리 공개토의 과정에서도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인권침해를 비판하는 이사국들의 발언이 쏟아졌다. 북한을 경유한 선박에 대해 유엔 회원국들의 항구에 입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과 북한의 외화조달 창구인 해외파견 근로자들을 제재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동참 여부에 관계없이 북한 압박을 위한 충분한 제재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북한 지도부의 선택이다. 핵무기 개발을 즉각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떳떳하게 처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주민들 대부분이 헐벗고 굶주리는 가운데서도 핵개발에 매달리는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수용소에서 고문과 구타에 시달리는 정치범들도 10만명 안팎에 이른다.

더욱이 김정은은 자신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장성택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한 데 이어 최근 리영길 군참모총장까지 처형했다. 정권 유지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김정은은 자신의 방식대로 “주체혁명 위업의 최후승리를 반드시 이룩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핵무기 개발을 포기토록 하는 수준에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체제 붕괴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명백히 깨닫도록 해야 한다. 북한 지도부의 현명한 선택만이 해결책이다.

3.북핵 이슈에 경제 묻혀선 안 돼

우리 경제는 중국의 경기 둔화를 비롯한 글로벌 악재의 영향을 한꺼번에 받으면서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계 증시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가파른 낙폭을 보인 가운데 한국의 1월 수출 실적은 지난해보다 18.5%나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북한의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도발에 따라 정부는 대응의 우선순위를 한동안 경제보다 안보에 둘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이라는 말로밖에는 표현되지 않는 형국이다. 경쟁국에는 없는 ‘안보 리스크’를 추가로 떠안을 수밖에 없는 것은 분단 국가로서는 피할 수 없는 약점이다. 그럴수록 위기를 극복하려면 국민과 정부, 정치권이 힘을 합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정치권은 딴판으로만 돌아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그제 국회 연설은 북핵 대응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이 사실이다. 스스로 천명한 대북 정책 기조의 유보를 감수하면서 북한 정권의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더불어 개성공단 중단 조치의 배경을 국민에게 설명하면서 새로운 대북 정책 기조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의미도 있었다. 실제로 개성공단 중단에 따른 직접 이해 당사자인 입주기업 비상대책위원회는 연설 이후 “손실 발생에 따른 정부 차원의 별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대통령 설명에 크게 기대한다”면서 비상총회를 취소하고 정부와 보조를 맞추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자칫 정부의 새로운 대북 정책 기조에 뜻을 같이하지 않는 국민이 없어야 한다는 국회 연설의 의도는 상당 부분 충족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대통령이 경제활성화의 불쏘시개가 될 쟁점 법안의 지체 없는 처리를 당부하는 것으로 국회 연설을 마무리한 것은 국정의 무게중심을 다시 경제 살리기로 옮기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부 야당의 인식은 여전히 보편적 기대와 거리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는 어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대통령은 개성공단을 전격적으로 폐쇄하고 사드 배치를 추진하면서 남북 관계를 근본적인 위기 상황에 빠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조치는 ‘분단 쪽박’을 남기는 것”이라고도 말했다고 한다. ‘취업 절벽 세대’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쟁점 법안 문제에도 “토끼몰이식 ‘입법 사냥’에 응할 수 없다”거나 “‘좋은 법’은 통과시키고 ‘나쁜 법’은 저지하고 ‘이상한 법’은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고 했다니 수긍하기 어렵다.

국민과 정부, 정치권은 지금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명제에는 한결같이 동의한다. 하지만 경제를 살리는 해법을 둘러싼 여야의 소모적 갈등은 북핵 위기에도 불구하고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안보 이슈가 가중되며 증폭되고 있는 양상이다.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안보 이슈를 4월 총선에 활용하겠다는 생각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당장 버려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과 더민주 지도부는 오늘 만나 담판을 지을 것이라고 한다. 자신들의 이해가 걸린 총선 선거구 획정에만 합의하고 쟁점 법안 처리에는 진전을 보지 못한다면 국민적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4.인천항도 밀입국자에게 뚫렸다니 

인천공항에 이어 인천항도 지난달 외국인 선원에 의해 뚫렸다. 이제는 항만까지 밀입국자들의 통로로 전락하고 있다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항만도 공항과 마찬가지로 국경이나 다름없는 국가의 관문이다. 그렇기에 그 어느 곳보다 철통같은 보안이 필요한 곳이다. 그런데 선원들이 이웃집 담 넘어가듯 보안 울타리를 넘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항만의 보안관리 강화가 시급하다.

인천항만공사에 따르면 중국인 선원이 지난달 17일 인천항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보안 울타리를 넘어 달아났다고 한다. 앞서 6일 베트남 선원도 인천항을 통해 보안 철조망을 자르고 밀입국했다. 인천공항과 인천항이 뚫린 과정을 보면 너무나 흡사하다. 공항의 밀입국자처럼 베트남 선원도 선장이 “선원이 사라졌다”는 신고가 있기 전까지 우리 당국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보안 관리를 하는 이들의 기강해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보안 철조망이 잘려도 어떤 제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보안 철조망이 훼손되거나 월담을 할 경우 경고음이 울려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아예 이런 침입감지센서 자체가 없다고 한다. 요즘 일반 가정에서도 도둑이 침입하면 소리가 나는 보안 시스템을 많이 이용한다. 그런데 국경을 지키는 항만에서 여느 평범한 가정보다 보안 관리가 허술하게 이뤄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인천항뿐이 아니다. 부산 감천항에서도 지난해 11월 베트남 선원 2명이 바다에 뛰어들어 도주했다가 경찰에 잡히는 등 지난해만 15명이 이곳을 통해 밀입국을 시도했다고 한다. 제주도의 애월항, 성산포항도 밀입국자들의 주요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항만은 바다를 끼고 있고 구역이 너무 넓기에 공항보다 보안 관리가 취약할 수 있다. 그렇기에 더 보안에 각별히 신경 쓰지 않으면 언제든 무방비로 밀입국자들이 들이닥칠 수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국가 안보에 엄중해야 하는 시기다. 당국은 밀입국 선원들에게서 다행히 대공 용의점을 찾지 못했다지만 안심할 일은 아니다. 북한이 바다를 통해, 아니면 외국인 선원을 가장해 항만을 뚫고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정부는 테러방지법의 국회 처리를 연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그런 주문에 앞서 공항, 항만과 같은 국가 주요 시설의 고장 난 보안 관리 시스템부터 재정비해야 한다.

5.사드에 ‘군사적 대응’ 하겠다는 중국

한국과 미국이 북핵 위기 대응책으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중국의 반대와 간섭이 금도를 넘어서고 있다. 그제 서울에서 열린 한·중 차관급 전략대화에서 장예쑤이(張業遂) 중국 외교부 상무부부장은 “관련 측(한·미)이 신중하게 행동하기를 바란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공식 의제가 아니었는데도 중국 측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특히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는 ‘군사적 대응’ 경고까지 내놨다. 한국에 사드가 배치되면 중국은 동북 지역 군사력을 증강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환구시보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내놓기는 하지만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로서 중국 정부 입장을 앞장서서 대변해 왔다. 그런 신문이 논평을 통해 “한국은 국가로서의 독립성을 잃고 대국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바둑돌이 될 것”이라며 사드 배치 이후의 시나리오를 들먹이며 우리를 겁박했다. 너무 지나쳤다. 우리가 사드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국가 안보가 심각한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접국의 이런 위기는 아랑곳없이 중국은 오히려 군사대응 운운하며 자국 이익만 챙기겠다는 것인가.

한·미 양국이 이미 여러 차례 장담했듯이 사드 배치의 본질은 전적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일 뿐 결코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중국은 귀를 막고 무조건 반대만 외치고 있다. 미국과의 패권 경쟁과 연결해 자국의 전략적 이익만 앞세우는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핵 불용,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위권 차원에서 논의하는 사드 배치에 극렬하게 반대하기에 앞서 북핵 저지 국제 공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북핵 위협만 사라지면 사드 배치는 필요치도 않다.

한·미 양국도 사드 배치 문제로 갈등을 키워 강력한 대북 공조체제 구축에 장애를 자초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제 국회 연설에서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를 거론하면서 “중국·러시아와의 연대도 중시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할 만큼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강력한 제재는 중국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우려에 대해 우리 역시 상당한 배려를 하는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중국의 반대를 무시하거나 사드 배치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앞서 다양한 전략적 대화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설득해야만 한다.

[동아일보]

6.공천룰 놓고 계파전쟁 與, 안보위기 남의 나라 일인가

새누리당의 계파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그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시도별로 최대 3곳을 4·13총선의 우선추천지역으로 하겠다고 공표한 것이 발단이다. 김무성 대표는 공천 룰을 벗어났다며 즉각 발표 자체를 무효로 돌린 데 이어 어제는 “선거에서 지는 한이 있어도, 선거를 안 하는 한이 있어도 이한구 안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김 대표가 “국민에게 수백 번 약속한 국민공천제는 절대 흔들릴 수 없는 최고의 가치”라며 의원총회에서 막을 태세를 보이자 이 위원장은 “대표가 공천 개입을 하려면 공천관리위 해산하라”며 맞섰다. 

이 위원장 주장대로라면 전국 17∼51개 지역구에서 사실상 전략공천이 이뤄진다. 우선추천제가 필요하면 당헌·당규에 따라 공천 신청자들의 경쟁력이 현저히 낮은 지역이나 여성 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 배려자에게만 하면 될 일이다. 공천관리위 내에서도 합의되지 않은 사안을 위원장이 불쑥 발표하니까 ‘친박 대리인’ 소리를 듣는 것이다. 친박이 대통령 눈 밖에 난 현역 의원들을 ‘저성과자’로 찍어 탈락시키려고 우선추천제를 강조한다는 얘기도 파다하다. 

여당 내부의 충돌을 지켜보는 국민은 어이없고 답답하다. 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북한 김정은에게 ‘핵 포기냐, 체제 붕괴냐’의 양자택일을 하라고 요구한 날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맞서 미군 핵잠수함 노스캐롤라이나함의 동해 훈련 참가와 최첨단 F-22A 스텔스 전투기 도착 등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마치 안보는 대통령과 정부, 미군에 맡겼으니 나는 모르겠다는 무책임한 모습이다. 

야당이 둘로 갈라져 총선 승리는 떼놓은 당상이라는 오만함이 아니라면 여당이 계파 싸움에 골몰할 수 없을 것이다. 집권 여당 내부부터 분열돼 있는데 박 대통령이 “우리 내부를 분열시키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말을 국민이 귀담아듣겠는가.

7.대통령 주재 ‘무투회의’ 열고도 무역·투자 줄어드는 이유

정부는 어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어 서울 양재·우면 일대를 ‘기업 R&D 집적단지’로 조성하는 등의 투자활성화대책을 내놓았다. 내년 하반기부터 일반인이 숙박료를 받고 최대 120일간 자기 집을 관광객에게 에어비앤비(Airbnb)처럼 빌려줄 수 있도록 숙박업법을 제정키로 했다. ‘공유경제’ 모델을 근간으로 한 서비스업을 육성해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기존 산업구조를 재편하려는 취지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신산업과 관련해 모든 규제를 물에 빠뜨려놓고 꼭 살릴 규제만 살려두도록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안 되는 것 빼고 다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취지는 좋지만 회의 때마다 규제완화를 한 보따리씩 쏟아내고도 정작 성과가 미진했던 점을 감안하면 당장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 

업계에서 ‘무투회의’라고 줄여 부르는 이 회의는 2013년 5월 1일 첫 회의 이후 이번이 9번째다. 이 속에서 나온 투자활성화대책을 포함해 기획재정부가 최근 3년 동안 내놓은 굵직한 투자대책만 40개가 넘는다. 경제정책방향, 대통령 업무보고, 각종 이슈별 대응방안, 규제개혁방안 등이 백화점식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도 지난해 교역액은 2013년보다 1000억 달러 이상 줄었고, 국내 기계 수주액은 2014년에 다소 늘다 작년 다시 감소했다. 작년까지 8차례 무투회의에서 프로젝트성 규제 31개를 풀어 54조 원어치의 투자를 유도했다는 정부의 자화자찬이 무색할 지경이다. 

지난달 청년 실업률은 9.5%로 1월 기준으로 16년 만에 가장 높았다. 근본적인 청년고용대책은 기업에 활기가 돌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 연구개발(R&D) 투자와 함께 설비투자를 동시에 촉진하려면 수도권 공장 신·증설도 허용하는 본질적 규제 혁파를 해야 한다. 한국식 에어비앤비도 서울 홍익대 앞은 외국인 상대 에어비앤비 천지인데 부산 강원 제주 지역에만 시범 실시한다는 것은 변죽만 울리는 일이다.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있고, 수도권에 기업 투자 수요가 가장 많은 점을 감안하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 같은 정공법을 외면한 무투회의는 1970년대식 ‘대통령 앞 보고 행사’일 뿐이다.

[중앙일보]

8.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포기 이후의 전략이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은 정권을 강력 압박하는 봉쇄 정책으로 대북 전략을 전면 수정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한 전환은 국제사회의 우려와 규탄에 맞서 핵과 미사일 도발을 강행한 북한의 책임이다.

박 대통령은 그제 특별연설에서 “북한 정권이 핵개발로는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강력하고 실효적인 조치들을 취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국제사회와 함께 취해 나갈 제반 조치의 시작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한편으론 수긍이 가면서도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한·미·일 3국 간 협력도 강화하고 중국·러시아와의 연대도 중시해 나갈 것”이라는 대통령 발언이 원론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5자 간의 확고한 공감대”가 존재한다고는 하나 각론과 우선순위에서는 각국이 현저한 견해 차이를 드러내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행동으로 이끌어낼지의 전략과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나오고, 한·미·일 3국이 독자제재를 더한다 해도 중국과 러시아, 특히 중국의 적극적 참여 없이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그런데도 미국은 중국을 설득하는 대신 동중국해 문제 등에 대해 압박만 거듭하고 있다. 중국 또한 대북 제재보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의 한반도 배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무엇보다 자국 이익이 최우선인 국제사회 질서가 그런 것이다.

이런 엄혹한 현실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감성적 접근이다. 중국이 소극적이라 해서 서운한 감정만 드러내고 막무가내로 성의 표현만 요구해서는 애써 쌓아놓은 신뢰 자산만 잃을 뿐이다. 이슈에 따라 협력할 것은 협력을 강화하고 설득할 것은 끊임없이 설득해 최대한의 성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위험천만한 여당 지도부의 핵무장론에 대해 대통령이 연설에서 이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하지 않은 것도 아쉽다. 여당 원내대표가 핵무장을 거론해 미국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오히려 미 행정부와 의회의 합리적 의심만 사서 한·미 동맹에 균열만 초래할 뿐이다.

이렇게 원칙 없는 접근 태도를 바탕에 깔고 한·미 공조, 한·중 연대를 운운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우리 외교안보팀이 그러한 논리에 절대로 휘둘려서는 안 된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촉발한 개성공단 임금의 핵개발비 전용 논란에서 보듯 확고한 비전과 실천능력 없이 상황논리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외교안보팀의 모습도 자격미달이다.

지금은 대북 정책이 180도 바뀐,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중차대한 시점이다. 특히 대통령이 북한의 ‘체제 붕괴’까지 언급한 만큼 새로운 도발까지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정원, 외교·통일부 등 외교안보팀은 빈틈없는 소통과 공조로 확고한 안보태세를 확립하는 것은 물론 한반도 상황을 우리 목표대로 이끌어가도록 주변국을 설득하는 외교 노력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매일경제]

9.국민연금 CIO 인사잡음 실적만이 해소책이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CIO)에 강면욱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임명된 것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인선을 4개월 가까이 끌었으면서도 결국 정권 실세의 낙하산 인사가 낙점됐다는 평가 때문이다. 국민연금 CIO는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507조원에 달하는 기금 운용을 책임질 사람이다. 기금을 불려 국민 노후생활을 풍요롭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본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할 임무도 있으니 엄정한 선발은 필수다.

강 본부장은 국민투자신탁에 입사해 국제 업무를 맡았고 외국계 자산운용사에서 경험을 쌓았다. 운용사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으니 전문성을 갖춘 인사로 볼 수 있다. 문형표 공단 이사장과의 의사소통도 무난할 것으로 보여 최광 전 이사장과 홍완선 전 본부장이 갈등으로 동반 사퇴한 것과 같은 불상사가 재발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실제 운용 경험이 없었던 데다 대표를 맡았던 운용사들이 국민연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았기 때문이다. 운용사 대표 시절 수익률도 저조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그가 대표로 있었던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메리츠자산운용 누적 수익률은 -1.45%였다. 운용사 전체 평균 수익률 10.22%에 비해 11%포인트나 낮았다. 국민연금 순수 기금운용 수익률은 지난해 연초 대비 10월까지 4.24%로 떨어졌는데 그가 이를 개선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강 본부장은 대구·경북 출신으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의 대구 계성고, 성균관대 1년 후배다. 이런 인연 때문에 국민연금 CIO 후보로 거론됐을 때부터 '정권 실세'가 밀고 있다는 꼬리표가 붙었다. 다른 후보들은 능력이 뛰어나도 들러리에 불과할 것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전임 본부장도 정권과 가깝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강 본부장 역시 똑같은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 CIO는 수익률을 높여 기금의 고갈 속도를 늦추고 운용본부체제 개편 등 수많은 난제를 풀어야 한다. 강 본부장이 낙하산 인사 논란을 불식시키려면 운용의 독립성을 지키면서 수익률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10.공유경제 키우겠다는 정부, 더욱 속도 내라

정부가 공유경제 활성화를 위해 '공유 민박업'을 신설하고 거주 중인 주택을 숙박서비스에 제공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먼저 부산, 강원, 제주에 도입하고 이후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차량공유 서비스도 차량공유 업체가 실시간으로 면허정보를 조회해 운전 부적격자를 가려낼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이제 첫걸음을 내디딘 수준에 불과하지만 정부가 규제 대상이었던 공유경제를 제도권으로 흡수해 육성하기로 입장을 바꾼 것은 반길 일이다. 숙박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앤비'는 숙박업 등록을 안 했다는 이유로 불법 판결을 받았고, 차량예약 서비스인 '우버'도 택시업자들의 반발로 중단되는 등 공유경제는 한국에서 단속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자원의 활용도를 높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공유경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되고 있다. 창업한 지 5년 된 우버의 기업 가치는 680억달러(포브스 분석)로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를 넘어섰다. 에어비앤비도 255억달러로 최대 호텔체인 힐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기존 주력 산업의 성장판은 닫히고, 새로운 산업은 싹트지 못해 한계상황에 봉착해 있는 한국도 공유경제에서 사업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 때문에 새로운 성장엔진인 공유경제를 규제로 억누른다면 기업들은 이 분야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한국개발연구원 조사 결과 경제전문가 94%가 공유경제의 확산이 사회에 이득이 된다고 예측한 만큼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 속도를 더 낼 수 있게 해야 한다. 전통 산업과 혁신 산업이 충돌할 때 성장통은 따르게 마련이다. 정부는 기존 사업자들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공유경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조율해야 한다. 또한 공유경제 확대가 비정규직 형태의 계약관계를 늘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돌씨를 불리며

집에서 콩나물과 숙주나물을 길러 먹는 이야기를 하다가 ‘돌씨’를 알게 되었다. 살림의 고수인 시댁 형님은 “하루 이틀이 지나도 물에 붇지 않는 콩이 있는데 시골 사람들은 그것을 똘씨(돌씨)라고 부른다”며 돌처럼 단단한 콩을 기어이 싹트게 만든 이야기를 했다.

지난주 형님이 숙주나물을 기르려고 녹두를 꺼내보니 반은 돌씨더라는 것. 반이나 버리자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그래, 혹시 오래 놓아두면 언젠간 붇지 않을까’라는 심정으로 돌씨까지 몽땅 물에 넣었다고 한다. 역시 정상적인 녹두 씨는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 붇기 시작했다. 이때 붇지 않는 것은 골라내 버려야 한다. 불은 것과 같이 두면 썩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버리지 않고 다른 그릇에 옮겨 계속 불리니 나흘 후 그중 반 정도가 불었다는 것이다.

“그때 문득 깨달았어.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주면 돌씨도 결국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고집스럽게 마음을 닫아버린 사람도 기다려주면 열릴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구나. 그런 생각으로 바라보니까 나흘이 지나도 끄떡없는 돌씨가 안쓰럽더라고. 얼마나 굳었으면 풀리지 못하고 저렇게 있는 걸까.”

수십 년을 교육현장에 있었던 형님인지라 그 말이 남다르게 들려왔다. 남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 하여 내쳐졌을 돌씨들. 그들도 참고 기다려주면 위대한 싹을 틔울지도 모르는데 끝까지 부드럽게 품어주지 못하고 너무 일찍 포기한 것은 아닐까. 내면에 상처가 똘똘 뭉쳐 쉽게 말랑말랑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련만.

끝까지 꼼짝 않고 남아 있는 돌씨를 며칠 더 기다려보려고 한다는 형님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 돌씨들이 더이상 고집부리지 말기를, 아무리 기다려주어도 발아하지 못하여 이름 그대로 돌이 되어버린 씨앗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내일이면 눈이 비가 된다는 우수(雨水)다. 이제부터는 ‘우수 뒤 얼음같이’ 슬슬 녹고 풀려서 싹이 트고 꽃을 피우는 봄이 올 것이다. 아니, 절기상 봄은 와 있다. 음력에서는 정월을 봄의 절기에 넣는다고 하니 말이다. 다만 봄은 소리 없이 다가왔지만 아직 웅크리고 있는 겨울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고 있는 중일 것이다. 올봄에는 부디 늦된 것들까지 모두 싹을 틔운다면 얼마나 세상이 환해질까. 그런 찬란한 봄을 기다려본다.

2.[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한국의 호킹들

“셀러브리티로 살면서 가장 힘든 점은 어딜 가든 나를 알아본다는 점이다. 선글라스와 가발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아이돌이 아니라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유머 섞인 푸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얼굴은 숨겨도 휠체어까지 감출 방법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의 인기를 증명하듯 2004년 BBC 드라마 ‘호킹’에 이어 재작년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란 할리우드 영화도 나왔다.

서울대 이상묵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린다. 2006년 미국에서 차량 전복사고로 전신이 마비됐지만 참담한 절망과 신체적 한계를 극복한 점에서 호킹과 닮았다. 그제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 행사에서 그가 남긴 희망의 메시지가 화제다. “소크라테스는 인간다운 삶이란 좋은 집에서 잘 태어나 부유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던지는 시련과 고난을 맞으며 꿋꿋이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장애를 통해 이 같은 삶의 조건을 채울 수 있게 됐다는 데 만족합니다.”

이날 주인공들은 숨쉬기조차 어려운 장애를 이겨내고 대학에 들어간 신입생 5명과 졸업생 4명이다. 이 교수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장애가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지만 꿈과 희망마저 구속하지는 못한다”며 “불편하지만 장애로 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들려주었다. 실제로 그는 휠체어에 묶인 몸이 되면서 의미 있는 삶,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됐다고 했다. 그의 긍정 마인드를 보면서 친구들은 “사고 날 때 머리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부분을 다친 것 같다”고 농담할 정도다.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호킹은 말했다. “인간의 노력엔 어떤 한계도 없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린 뭔가 할 수 있고 이룰 수 있다. 생명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 생후 8개월 혹은 4세 때 찾아온 시련과 고통에도 ‘자기 앞의 생’에서 전력투구하고 있는 한국의 젊은 호킹들이 바로 산 증거이다. 그들 앞에선 신체 건강한 청춘의 ‘헬조선’ ‘금수저 흙수저’ 타령이 공허하게만 들릴 것 같다.

3.[동아일보][@뉴스룸/조종엽]'만약 내가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전혀 꽃처럼 아름답지 않은’ 대학생활이 등장하는 화제 드라마 ‘치즈 인더 트랩’(tvN)의 한 장면. 수업 중 손민수(윤지원)가 과제 발표를 하자 같은 과 홍설(김고은)은 “본인이 작성한 것 맞나. 내가 오타도 수정 안 하고 보고서 판매 사이트에 올린 것과 같다”며 교수와 학생들 앞에서 면박을 준다. 아동판 ‘레미제라블’에서 읽은 장발장과 은촛대의 감동을 간직하고 있는 기자는 ‘홍설이 수업이 끝난 뒤 민수를 찾아가 자복할 기회를 주면 어땠을까’ 하는 아름다운 생각이 들었다.

대학 때부터 표절을 장려하자는 뜻이 아니다. 청년들 사이의 관계가 그만큼 팍팍해졌다는 얘기다. 공부 안 한 친구를 위해 친구들이 합심해 시험 때 ‘커닝’을 돕는 1980년대 TV 드라마의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드라마 가지고 너무 호들갑떨지 말라고? 15일 ‘사회적 웰빙의 새로운 모색’이라는 학술대회(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주최)에서 나온 ‘한국 사회정신건강에 관한 조사’ 결과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한국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경제, 정서, 가사 지원을 누구에게 요청하느냐는 물음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는 답이 2004년보다 대체로 늘었는데 특히 20대에서 급증했다. 가족보다 친구, 동료, 이웃의 지원이 더 약화됐다는 결과도 나왔다.

청년들이 취업에 전념하느라 친구 관계도 소홀해지고, 고시원 옥탑 반지하에서 혼자 사는 이들이 늘면서 고립이 심화됐다는 뜻이다. ‘연결돼야 건강하다’(구혜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 등)는 제목의 이 발표문은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사람은 풍부한 사람에 비해 긍정적인 정서, 고통에서 회복하는 탄력성 등 정신건강이 나빴다고 밝혔다.

다음 발표문 ‘비교할수록 괴롭다’(양준용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원)를 보면 더 우울해진다. 연령이 낮을수록 자신과 주변의 처지를 많이 비교했다. 그렇다고 꼭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구소득이 적으면 비교 스트레스가 컸다.

취업 못한 서민 청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판이다. 혼자 알바와 공부만 하며 지내자니 정신건강에 나쁘고, 동창회 등에 나가 가까운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비교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지난해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58개 국가 중 47위.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건강수명이 낮은 남미 국가들보다도 지수가 낮았던 것은 ‘사회적 지지’가 이처럼 취약한 탓이 컸다. 고독은 원할 때 즐겨야 달콤한 것. 불가항력적 고독은 처절할 뿐이다.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같은 연구에서 정당, 시민단체, 취미 문화 모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동하는 일은 비교 스트레스를 늘리지 않고 공동체 의식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들이 ‘청년당’이라도 만들어 여의도에 진출하면 뭔가 달라질까.

4.[중앙일보][이정재의 시시각각]왕이 ·차오량·쑹훙빙의 중국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홍문연(鴻門宴)의 칼춤을 말했을 때 내 머릿속엔 한 사람이 떠올랐다. 차오량(喬良) 준장. 중국 국방대학 교수이자 내로라하는 군사전략가다.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열 살에 『손자병법』을 탐독했다는 그는 ‘군사학의 천재’로 불린다. 그가 1999년 왕샹쑤이(王湘穗)와 쓴 『초한전(超限戰·Unrestricted War)』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군사이론’이란 평을 받기도 했다. 그는 여기서 “모든 것이 전쟁의 수단이 되며 모든 영역이 전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 테러, 첩보·외교, 금융이나 미디어도 유력한 싸움 수단이란 것이다. 일본은 2010년 센카쿠 열도의 중국 어선 충돌 사건을 이런 초한전의 전략에 따라 치밀하게 전개된 도발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 차오량의 지난해 강연 하나를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이 얼마 전 소개했다. 골자는 이렇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위협은 군사적인 게 아니라 금융이다. 미국은 달러 강약 조절을 통해 타국의 부를 송두리째 뺏어왔다. 미국의 달러 패권으로부터 중국의 경제를 지키는 게 중국 군의 사활적 과제다. 중국 주변에서 (군사·분쟁) 위기가 일어나 국제 자본이 중국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아닌가. 10년쯤 전으로 거슬러 가보자. 그때 중국엔 쑹훙빙(宋鴻兵)의 『화폐전쟁』이 떴다. 수백만 부가 팔렸고 전 세계 30여 개국에 번역됐다. 서방 자본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낱낱이 파헤쳤다. 중국이 진짜 대비해야 할 것은 미국 자본의 공습이라는 게 골자였다. 사실과 음모론을 적절히 배합해 읽는 재미가 쏠쏠했던 때문일까. 한국의 식자들에게도 꽤 읽혔다.

그걸로 그만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후 쑹훙빙류가 수십·수백 권 쏟아졌다. 내 책꽂이에도 어림잡아 20여 권이 있다. 『기축통화 전쟁의 시작』 『자본전쟁』 『화폐전쟁, 진실과 미래』 『G2전쟁』… . 제목과 저자, 시기만 다를 뿐 대동소이다. 관변학자들은 물론 국영방송 편집부까지 동원됐다. 이때 중국은 굴기의 나라였다. G2란 말이 등장했고, 곧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 생산·소비·수출 같은 실물은 시간 문제다. 걸림돌은 금융이다. 금융만 되면 미국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전통·인맥·네트워크가 실력인 금융은 폐쇄·단절의 대륙 중국이 결코 일거에 흉내 내거나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 바로 공포이기도 했다. ‘언제든 미국의 경제 핵무기 금융에 당해 나라 경제가 쑥대밭이 될 수 있다’. 이런 공포가 중국 지도부에 스멀스멀 퍼졌다. 어느 틈에 중국에서 정치·경제·안보는 이음동의어가 됐다. 그것이 미국에 대한 것이라면 특히.

이런 공포심이 과민 반응하다 보니 터져 나온 게 지난해 주가 폭락 때 주식거래 정지며 무차별 외환 개입 같은 초(超)시장적 정책이다. 조지 소로스의 위안화 공격에 “가만두지 않겠다”며 환구시보가 원색 비난한 것, 중앙은행 총재가 “투기 세력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직격탄을 날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미 대륙에선 통화전쟁이 시작됐다. 하루 1000억 달러의 공방이 매일 벌어진다. 3조 달러의 외환보유액으로도 감당 못할 수 있다. 문을 닫아 걸어도 소용없다. 홍콩 증시를 통해 연결돼 있는 데다 13억이 1인당 5만 달러씩 들고나갈 수 있다. 이렇게 유출된 돈이 지난해에만 약 1조 달러다.

그러고 보니 왕이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에 보이는 알레르기 반응을 이해는 하겠다. 그렇다고 홍문연의 칼춤에 빗대 한국마저 미국의 졸개 취급한 건 큰 잘못이다. 대국답지 못하다. 그런 중국이 밉고 서운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대비해야 한다. 속 좁은 중국이 화풀이할 수 있다. 유커가 줄어들 수 있으며 이유 없이 반도체나 배터리 수출이 막힐 수 있다. 이래저래 중국으로 먹고사는 일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 용의 등에 올라타지 않으면 어차피 한국의 미래는 없다. 건드리면 주인도 물어 죽인다는 역린(逆鱗)은 놔두고 용을 다루는 지혜를 익혀야 할 때다. 중국이란 용의 눈에는 정치·경제·안보가 이음동의어다.

5.[중앙일보][취재일기]근로자 현실 이해 못한 경총 회장

기자도 근로자다. 종종 야근을 하고, 때로 휴일 근무도 한다. 연차휴가를 다 쓰지 못해 수당으로 받는 해도 있다. ‘근로자’인 기자는 지난 15일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의 신년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날 박 회장은 연장 근무와 연차휴가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근로자들이 50% 더 주는 임금을 받으려고 연장 근로를 선택하고 있지 않습니까. 연차휴가도 다 쓰지 않고 수당으로 받길 원하고요.”

그는 “연장 근로 수당 할증률을 국제노동기구(ILO) 권고 수준인 25%로 낮춰야 한다. 또 쓰지 않은 연차휴가는 금전 보상을 금지하는 등 장시간 근로를 조장하는 제도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단의 질문이 쏟아졌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원치 않아도 야근할 일이 생긴다. 연차휴가를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게 우리나라 근로 현실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박 회장은 “장시간 근로는 사용자가 강요한 게 아니라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택한 것”이라며 “연차휴가를 다 쓰면 직장에서 눈치 보인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노조가 투쟁해야 할 대상”이라고 답했다. 이어 “초과근무를 없애고 연차휴가를 다 쓰면 청년 고용률이 2% 늘어난다”며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한 푼 더 뜯어내려 할 게 아니라 아들·조카의 취업 기회를 뺏으면서 누리는 것을 50%만 양보하려는 고민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박 회장의 발언을 두고 인터넷 게시판이 들끓었다. 관련 기사엔 “이런저런 이유로 연장 근로 수당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도 많다. 자발적으로 야근하는 직원이 몇이나 될까” “한국 경영자들의 입장이 박 회장과 같은지 되묻고 싶다. 오후 6시 칼퇴근하고 연차휴가 3주 다 쓰면 저성과자로 몰려서 회사에서 잘린다”와 같은 댓글도 많았다.

근로자가 뿔난 건 박 회장의 진단이 현실과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574명을 설문한 결과(중복응답) 응답자는 야근 이유로 ‘과도한 업무량’(55%)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업무 특성’(29%) ‘야근을 조장하는 회사 분위기’(22%) 순이었다. 2012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설문 에서 근로자는 연차휴가를 다 못 쓰는 이유로 ‘눈치 주는 회사 분위기’(42%)를 가장 많이 꼽았고, ‘과도한 업무’(18%)가 뒤를 이었다. ‘연차 보상비’는 12%였다.

사용자 측을 대표하는 박 회장으로선 노동개혁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란 점을 설득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근로자의 공감을 이끌어 낼 탄탄한 논리로 뒷받침하고 신중하게 발언했어야 했다. “근로자 희생을 강요하는 ‘일방통행’ 식 노동개혁을 밀어붙인다”는 오점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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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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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북핵 사태에 국론분열은 옳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국회 국정연설을 통해 개성공단 폐쇄조치 이후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음모론 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내비쳤다. 이번 사태가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인해 초래됐는데도 북한 정권을 탓하기보다 정부의 대응조치에 먼저 불만을 표시하려는 분위기 때문이다. “우리 내부로 칼끝을 돌리고, 내부를 분열시키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게 박 대통령의 호소다.

박 대통령의 걱정이 아니라도 요즘 북한 문제와 관련해 불거지고 있는 갖가지 주장들 가운데는 적정 수준을 넘어선 듯한 내용이 적지 않다. 개성공단 가동을 중지시킨 이유가 총선 득표용으로 써먹기 위한 것이라는 북풍론이 대표적인 사례다. 심지어 “북한과 전쟁을 하려는 것이냐”라는 시비조의 논란도 제기된다. 한껏 무력을 과시하고 있는 북한 정권 앞에서 스스로 적전분열에 이른 양상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상황대로 이어진다면 북한이 핵미사일을 정식으로 실전 배치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더욱 두려움과 공포의 늪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 틀림없다. 당장 북한에 대해 가능한 모든 제재가 취해져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난날 북한을 포용한다는 차원에서 햇볕정책이 실시되기도 했으나 북한의 핵보유를 막는 데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북한의 핵무기 문제는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에 밀접히 관련돼 있는데다 남북통일에도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여야의 정치적 입장은 물론 보수·진보의 차이를 떠나 서로 보조를 맞춰가며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얘기다. 이미 북한이 핵실험을 시작하던 단계에서 첫 단추가 잘못 끼어졌지만 이제부터라도 단호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우리가 긍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 간 마찰과 갈등이 생기더라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 정권은 우리의 호의를 노려 핵개발 야욕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제는 북한의 계략에 끌려 다녀서는 곤란하다. 북한에 대해서도 더 이상 핵에 매달리다간 생존할 수 없으며 오히려 체제 붕괴를 앞당길 뿐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해야 할 것이다.

2.쟁점법안 지키려다 선거도 못 치른다면

헌정 사상 초유의 ‘선거구 실종’ 사태 속에 어제 새누리당이 4·13 총선의 지역구 출마후보자 공천 신청을 마감했다. 하지만 오늘부터 실시하려던 공천관리위원회의 공천신청자 면접 심사는 미뤄졌다. 선거구가 미처 획정되지 않은 터에 당내 경선을 진행했다간 법적인 문제가 도질 수 있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 때문이다.

명색이 집권당으로서 선거구도 획정하지 않은 채 공천 신청부터 마감하는 황당한 사태는 유권자를 우습게 보는 여야의 합작품이다. 새누리당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우여곡절 끝에 국회의원 정원을 현행 300명으로 유지하되 지역구를 246석에서 253석으로 늘리고 비례대표는 54석에서 47석으로 줄이기로 합의를 이뤘다. 남은 절차는 합의안을 선거구획정위원회에 넘기는 것뿐이다.

그러나 쟁점 법안에 다시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여당이 노동 4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북한인권법, 테러방지법을 선거법과 연계 처리하려다 야당의 반발에 부딪친 것이다. 여야 원내대표는 그제 국회의장이 주선한 회담에서도 서로 기존 입장을 녹음기처럼 되뇌었을 뿐이다. 이러다간 총선을 제때에 못 치를지도 모른다는 국회의장의 걱정이 엄살로만 들리지 않는 국면이다.

그런데도 “선거는 반드시 치르게 돼 있다”고 큰소리치는 여당의 안일한 상황 인식은 실망을 넘어 짜증스럽기조차 하다. “총선에 앞서 민생안정과 일자리 창출 법안을 처리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며 내세우는 의무감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국회선진화법을 빌미로 중무장하고 정부와 여당이 하려는 일이라면 한사코 반대하는 야당의 속성을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단 말인가.

이제 총선이 두 달도 안 남았다. 선거구 획정을 더 이상 미루는 것이야말로 집권당의 도리가 아니다. 다음 달 중순까지 경선을 마무리하려는 당내 일정의 차질은 차치하고라도 정치 신인들의 기회를 박탈하고 유권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짓은 당장 접어야 한다. 선거구부터 획정한 뒤 남은 19대 임기에 쟁점법안 처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18대 국회 막바지에 국회선진화법을 밀어붙인 죄과를 참회하고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를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총선 전략을 택하는 게 순리다.

[동아일보]

3.北 김정은에 박 대통령 최후통첩 “핵 포기냐, 체제붕괴냐”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 포기를 위해 강력한 압박의 봉쇄 정책을 펴겠다고 대북(對北) 정책의 전면 전환을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어제 국회 연설에서 “기존의 방식과 선의로는 북한 정권의 핵 개발 의지를 결코 꺾을 수 없다”면서 “지금부터 정부는 북한 정권이 핵 개발로는 생존할 수 없으며, 오히려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스스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보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조치들을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체제 붕괴’를 처음 언급함으로써 김정은이 체제 붕괴 대신 핵 포기를 선택할 때까지 국제사회와 함께 제재에 나서겠다고 최후통첩을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지적대로 우리 정부는 1998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부터 현재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까지 북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상생의 남북관계 구축을 위해 교류와 ‘퍼주기식 지원’의 포용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북한은 이에 대해 ‘핵과 미사일로 대답’했다. 박 대통령 언급대로 “이대로 변함없이 시간이 흘러간다면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은 핵 미사일을 실전 배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박 대통령은 “이제는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근본적인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대북 패러다임의 전환을 천명했다. 그 전에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대북 정책 실패를 보다 진솔하게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더 많은 국민의 마음을 얻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북한을 변화시킬 해답으로 제시한 것도 개성공단의 중단과 한미동맹, 한미일 3국 간의 협력과 중국 및 러시아와의 연대를 통한 대북 제재 정도다. 그러나 중국은 압박에 반대하고 있고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박 대통령의 희망은 배신당했다. 그런데도 현재의 외교안보팀이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내 박 대통령의 새로운 대북 압박 정책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는 우려스럽다.

우리가 주도한 대북 제반 조치의 시작인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대해 박 대통령은 “우리가 지급한 달러 대부분이 노동당 지도부에 전달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결과적으로 북한 정권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사실상 지원하는 상황이 지속되게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핵과 미사일 개발로의 전용을 밝혀줄 자금의 꼬리표라도 찾은 것처럼 큰소리쳤다가 “우려가 있다고 말한 것”이라고 물러선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때일수록 정직성과 투명성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 대통령은 남남(南南) 갈등, 북풍 의혹, 내부 분열에 대한 우려도 표시했다. 안보는 국가의 존망과 직결된 것으로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가치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안보 위기 앞에서는 여와 야,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고, 국가 안보와 국민 안위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설에서 국민의 가슴을 울릴 만한 감동은 없었다. 국민과 국회의 단합된 힘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박 대통령의 말처럼 “북한의 의도를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유능한 외교안보팀을 새롭게 구성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글로벌 안보 어젠다로 부각할 수 있는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 대통령부터 정파적 이해관계를 초월해 소통과 협력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연설 전 여야 지도부와 고작 25분가량 만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무조건 나를 믿고 따라 달라는 식의 ‘일방통행 리더십’으로는 국가적 난관을 헤쳐 나가기 어렵다.

4.韓銀, 글로벌 통화전쟁에서 살아남을 전략 세우고 있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어제 2월 정례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1.5%로 동결했다. 수출 부진과 미국 및 유로존의 미약한 경기회복세,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 등을 고려한 8개월 연속 금리수준 유지다. 그 대신 한은은 중소기업을 위해 시중은행에 연 0.5∼1.0%의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금융중개지원대출’ 규모를 9조 원 더 늘리는 단기 정책카드를 꺼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기준금리 조정을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2016년 통화신용정책 운영 방향’에서 “통화정책의 완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기조와 대비되는 발언이다. 최근 일본에서 보듯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펴고도 국고채로 돈이 잠겨드는 예외적 상황에서 통화정책을 어느 한 방향으로 몰고 가기 어렵게 됐음을 뜻한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는 통화전쟁으로 달려가는 추세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 근린궁핍화 정책의 재연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제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3월 추가 경기부양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어제 긴급좌담회에서 “외환보유액 3673억 달러로는 부족하고 4000억 달러 이상으로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은이 섣불리 움직이면 투기자본의 타깃이 될 수도 있다. 7명의 금통위원들은 책상머리에서 일어나 국내외 금융현장과의 소통에 나서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단기외채를 장기외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신중한 물밑 작업을 통해 미국 일본과 통화스와프를 재개하는 ‘한미일 통화 삼각동맹’을 구축해 통화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5.실손보험료 ‘인상 폭탄’, 당국은 담합 여부 조사하라

보험사들이 지난달 31일 실손보험료를 20∼44.8%나 대폭 올렸다. 실손보험은 입원이나 통원 치료비의 대부분을 보상해주는 상품이어서 국민건강보험만으로는 불안한 국민의 62%(3150만 명)가 가입해 있는 ‘제2의 건강보험’이다. 인상된 보험료는 일단 신규 가입자에게만 적용되지만 기존 가입자도 1∼5년 주기로 갱신하므로 ‘보험료 폭탄’을 피할 수 없다. 

보험사들은 보험료 수입 대비 보험금 지급 비율인 손해율이 평균 124.2%나 돼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금융위원회가 작년 10월 보험료 규제를 줄이기 무섭게 보험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날 대폭 인상을 발표했다. 이번 인상으로 5대 손보사의 올해 순이익이 평균 202억 원 늘어난다. 당국은 담합 여부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

일부 병원에서 비싼 과잉진료를 하면서 보험료 인상 요인을 키운 것도 사실이다. 가입자들도 자기 부담이 아니어서 의료 과소비를 즐긴 측면이 있다. 병원과 가입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에 선의의 가입자들만 피해를 보는 셈이다. 병원과 보험 가입자가 짜고 보험금을 과다 청구하는 행위를 근절하려면 심사와 단속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 하나만으로 충분하도록 보장률을 높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보험료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료를 그냥 둔 채 보장률만 높이면 가뜩이나 취약한 건강보험 재정구조는 악화될 우려가 있다. 금융당국이 민간 보험사의 보험료율을 일일이 간섭하는 관치행정으로 돌아갈 순 없지만 이번 인상률이 경영 상황과 비교해 지나치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자동차보험처럼 보험금 청구를 많이 한 가입자와 그렇지 않은 가입자의 인상률 차등 적용 방안도 도입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6.소모적 갈등 멈추고 대북 제재 초당적 대처해야

어제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등 그간의 대북 정책을 사실상 유보하면서 통일·안보 정책의 대전환을 천명했다. 즉 “이대로 변화 없이 시간이 흘러간다면, 브레이크 없이 폭주 중인 김정은 정권이 핵미사일을 실전 배치하게 될 것”이라는 절박한 인식과 함께 북핵 포기를 끌어내는 노력에 정치권의 협조를 요청하면서다. 우리는 현시점에서 대북 정책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다만 정부가 이제 ‘가 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되는 만큼 어느 때보다 야권이나 국민과의 소통으로 초당적·범국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믿는다.

북한의 핵무장은 발등의 불인 상황이다. 김정은 정권이 새해 벽두에 4차 핵실험을 한 뒤 국제 제재가 논의되는 와중에 탄도미사일 실험까지 감행하면서다. 우리나 미국 등 국제사회가 경제적 인센티브를 쥐여 주면서 적당히 압박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가 철저히 어그러진 셈이다. 그런 만큼 종전과 다른 특단의 정책이 절실한 건 불문가지다. 굳이 “기존의 방식과 선의로는 북한 정권의 핵개발 의지를 꺾을 수 없고, 북한의 핵 능력만 고도화시킨다”는 대통령의 언급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압력을 뿌리치고 핵무기를 실전 배치하는 날 한반도에 사는 구성원 모두의 안위가 벼랑 끝에 서게 된다. 이런 악몽의 시나리오를 막는 데 여와 야, 보수와 진보가 따로일 순 없다. 초당적 대북 제재에 미온적인 야권의 자세가 아쉬운 이유다. 어제 박 대통령이 개성공단 중단 배경을 설명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모두 부정 일변도로 평가하면서 북한 핵 포기를 이끌 어떤 대안도 내놓지 않았기에 하는 말이다.

물론 핵무장론 등 정부·여당의 설익은 북핵 대응책에 대해 야당으로서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 또 개성공단 임금이 북의 핵개발 자금으로 전용된 증거가 있다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 자칫 우리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했다는 논리로 연결된다는 점을 지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야권이 개성공단 임금이 북한 지도부로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해선 곤란한 일이다. 야당이 집권한 참여정부 시절 개성공단 임금의 대종이 북한 노동당으로 들어갔다는 당시 산업자원부 공문이 국감 자료로 나돌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북풍’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야권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올 들어 핵실험 등으로 연이어 메가톤급 북풍을 일으킨 것은 우리 정부가 아니라 북한임을 모르는 국민이 어디 있겠나.

7.대형마트, 폭리 챙기며 상생 외쳐 대나

대형마트들이 중소업체를 상대로 폭리를 취하는 거래 행태는 여전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대형마트들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292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부 제품군의 마진율은 최고 55%나 됐다. 동네 곳곳에 들어선 대형마트들이 마진율 높기로 소문난 백화점보다 더 많은 폭리를 챙기고 있다는 뜻이다. 중기중앙회가 지난달 조사한 백화점 입점 업체의 최고 수수료율은 평균 30%대로, 가장 높은 곳이 롯데백화점(39%)이었다. 마진율이란 판매가와 납품가의 차액이 판매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다. 서민들의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는 대형마트들이 이런 부당이익을 챙기고 있다면 크게 잘못된 일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업체별 평균 마진율은 롯데마트(33.2%), 홈플러스(27.8%), 이마트(18.2%), 하나로마트(11.9%) 순이었다. 일부 품목의 마진율은 하나로마트(55.0%)가 가장 높았고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마트가 뒤를 이었다. 마진율이 높을수록 대형마트가 챙기는 이익은 당연히 커진다. 일부 제품은 가격의 절반이 넘는 돈을 납품업체가 마트에 갖다 바치는 셈이다.

납품하는 중소업체들을 상대로 한 마트들의 갑질은 도가 지나치다. 판촉과 할인 행사의 부담액을 업체에 떠넘기고 재계약할 때마다 마진율을 올리는 것은 다반사다. 업체들은 물류비용 분담까지 강요당한다고 토로한다. 이러니 대기업 유통업체들이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는 비난을 듣는 것이다.

마트 납품 업체의 상당수는 중소기업들이다. 그중에는 당장 납품을 포기하면 도산을 감수해야 하는 영세 업체도 적지 않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업체들에게서 과도한 이익을 챙기는 불공정 행위가 근절돼야 하는 까닭이다. 내수 시장을 더 확장하기 어려워진 대형마트들이 납품 업체들을 쥐어짜면 그 피해는 결국 소비자한테로 돌아온다. 수수료 폭탄을 맞은 납품 업체가 살아남으려면 그만큼 제품 가격을 올리는 도리밖에 없다.

대형마트들의 갑질 관행을 두고 보면서 중소기업 상생을 외치는 것은 헛말일 뿐이다. 유통업체들이 번번이 과징금 철퇴를 맞으면서도 고약한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 것은 처벌 수위가 만만한 탓이다. 표준계약서를 보급해 공정거래를 유도하고, 계약 횡포 사례가 적발되면 몇 배 더 많은 과징금을 물리는 등 강력히 다스려야 한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전쟁광 히틀러가 이끈 독일의 침공이 임박했는데도 유화론으로 발목을 잡는 인사들에게 이렇게 일갈했다. 즉 “악어에게 먹이를 주면서 자기를 맨 나중에 잡아먹기를 바라는 사람”이라고. 거듭 강조하지만 북 세습정권이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지렛대로 우리 국민을 인질 삼아 체제 유지를 꾀하려는 속내가 명백해졌다. 이런 불편한 진실에 직면하고도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며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프레임으로 대북 제재 자체를 반대하는 여론몰이만 할 것인가. 지금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 데 국론을 모을 때다.

8.너무 앞서간 與 원내대표의 핵무장론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그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핵무장론을 공식 제기했다. 원 원내대표는 “자위권 차원에서 평화의 핵과 미사일로 대응하는 것을 포함해 생존 전략을 고민할 때”라면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도 진지하게 검토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던 핵무장론과는 차원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집권 여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공론화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에도 폭주를 계속하고 있다. 우리 측이 개성공단의 가동을 중단하자 공단 인원 추방과 함께 자산동결이라는 맞불을 놓았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지난 13일 “(장거리 미사일을) 더 많이 쏘아 올려야 한다”고 떠벌렸다. 미국·일본 등의 제재를 포함해 국제적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천둥벌거숭이와 같은 북한의 행보에 원 원내대표도 분노와 아쉬움이 크지 않겠는가. 그러나 자위적 억제 수단이라는 조건부 핵무장론이라 해도 무책임하다.

“비 올 때마다 우산을 빌려 쓸 수는 없다”는 원 원내대표의 발언이 그럴듯할 수도 있다. 비상사태 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권리를 인정한다는 조항을 들어 핵무장론에 동조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문제는 핵무장의 당위성만 있을 뿐 거센 역풍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이 핵개발을 표방하는 순간 한·미 동맹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2004년 우리가 극소량의 우라늄 농축에 나섰을 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단행했을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 또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파탄 지경에 이를 게 뻔하다. 일본, 대만 등 주변국의 핵무장 여론을 부추겨 동북아의 핵 도미노를 촉발할 위험성도 아주 크다. 미국의 전술 핵무기 재배치 주장도 1992년 선언한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어긋나는 탓에 사실상 현실성이 없다.

핵무장론은 자칫 북핵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생산적인 논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핵무장론이 강할수록 국제사회에 북한의 제재를 촉구하는 명분이 약해질 수 있어서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핵무장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바삐 진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도 핵무장론이 정치권에서 계속 나온다면 총선을 겨냥한 안보 포퓰리즘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대북 정책의 전면적인 전환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핵무장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중앙일보]

9.학교 밖 아이들의 잇단 비극…보호 그물망 다시 짜라

아이들이 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반인륜적 사건이 뒤늦게 밝혀지고 있다. 올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다. 지난해 12월 부모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탈출한 인천 11세 소녀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가 부랴부랴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드러난 일들이다. 부천의 초등생 자녀 시신 훼손, 목사 아버지의 여중생 딸 시신 방치에 이어 엊그제는 경남 고성 40대 주부의 딸 암매장 사건이 4년여 만에 밝혀졌다. 생모인 박씨는 2011년 10월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서 당시 일곱 살이던 딸이 매를 맞고 숨지자 시신을 야산에 묻었다고 자백했다. 아파트에서 같이 생활하던 집주인 등 어른 3명이 암매장을 도왔다니 말문이 막힌다.

 이 사건 역시 경찰과 교육 당국은 그간 깜깜이었다. 실종 아동의 생사도 파악 못하다 둘째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내지 않은 박씨를 아동복지법 위반혐의로 구속 수사하는 과정에서 밝혀냈다. 일련의 비극은 구멍 난 정부·학교·사회의 청소년 보호망과 이웃에 무관심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부모 자격조차 없는 이들의 엽기적 행각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인천 소녀 등 네 명 모두 학교 밖 청소년이었다. 그렇지만 정부·교육청·학교·지자체·이웃의 보호망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이런 학교 밖 청소년이 37만 명에 이른다. 정부는 이 중 20만 명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3년마다 실태조사를 하고 청소년 지원센터 확충 등 범정부 대책을 시행 중이라지만 그물망을 더 촘촘히 짜야 한다. 그 시작이 전면 조사다. 3년마다 샘플조사를 할 게 아니라 당장 미취학 아동을 포함한 20만 명의 추적 조사를 통해 소재부터 파악해야 한다.

학교 밖 청소년 본인의 동의 없이도 학교장이 의무적으로 해당 정보를 교육 당국과 경찰·지자체 등에 통보해 공유하도록 법적 장치도 서둘러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보다는 아이들의 안전 확보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사회의 관심도 절실하다. 이웃 아이가 학대를 받거나 장기간 보이지 않을 땐 ‘내 자식’처럼 나설 필요가 있다.

[매일신문]

10.저조한 혁신도시 효과, 실태 파악과 해결책 필요하다

대구경북 혁신도시가 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인구 증가와 세수 증대, 지역 인재 채용 등 효과가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 이전에 속도가 붙으면서 타지역의 경우 인구 유입 등 효과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대구경북은 전국 혁신도시 가운데 그 성과가 바닥권이다. 왜 대구경북 혁신도시만 유독 성과가 낮은지, 어떤 걸림돌이 있는지 짚어보고 해결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혁신도시로 본사를 옮긴 공공기관은 전체 115개 가운데 100개 기관이다. 2030년까지 이전을 모두 완료한다는 계획이지만 사실상 마무리 단계다. 이전이 가속화하면서 각 혁신도시마다 인구가 늘고 지방 세수도 큰 폭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혁신도시 주민 수는 10만4천여 명(계획 대비 38%)이 늘고 지방세 수입도 2.8배 증가한 7천442억원이었다. 지역 인재 채용률도 2013년 5%에서 지난해 13.3%로 늘었다.

하지만 대구경북의 상황은 타지역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2만2천 명의 인구 증가를 예상한 대구는 5천922명 느는데 그쳐 계획 대비 27%에 머물렀다. 70~80% 심지어 100%를 넘어선 부산과 비교하면 매우 낮다. 

지방세 수입 증가는 더욱 초라하다. 지난해 지방 세수 증가는 대구가 384억원, 경북은 319억원에 그쳤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옮긴 부산은 4천억원 넘게 늘었고, 광주전남도 850억원에 이르렀다. 지역 인재 채용률도 경북은 한 자릿수(9.7%)에 머물러 20~30%를 차지한 타 혁신도시와 비교하면 한참 낮다. 

지역 혁신도시의 낮은 이전 효과에 대해 각 지자체는 먼저 차질이 빚어진 이유와 미비점 등 실태를 잘 분석해야 한다. 각 공공기관의 특성과 규모 등을 감안하더라도 대구경북의 이전 효과가 낮은 것은 그만큼 준비가 덜 됐다는 소리다. 계획이 잘못됐다면 현실에 맞게 수정하고 주변 인프라 정비 등 정주 여건을 높여 인구 유입 등에 보탬이 되도록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긴 안목에서 공공기관들이 지역과 더불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더욱 관심을 갖고 상생의 기틀을 마련해나가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주간경향][편집실에서]샌더스가 만드는 희망의 길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탓으로 가라앉았던 설 연휴 분위기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던진 것은 미국 대선 관련 소식이었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이자 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는 9일(현지시간) 치러진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큰 표 차이(21.7%포인트)로 이겼다. 0.3%포인트 차의 아이오와 코커스 석패를 만회하고 대선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승리였다. 물론 몇 시간 후 한국 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맞불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발표하는 바람에 분위기는 다시 가라앉았지만 말이다.

샌더스의 압승이 예견된 까닭에 내 관심사는 그 뒤에 나온 뉴스였다. 거기서 샌더스 바람이 돌풍에 그치지 않고 태풍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의 근거를 봤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거자금 모금 관련 소식이었다. 샌더스 캠프 측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가 끝난 직후부터 18시간 동안 520만 달러를 모금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모금액은 지난 1월 샌더스 모금액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샌더스가 지난 1월에 모은 선거자금은 2000만 달러가 조금 넘었다. 그 덕분에 한 달 기준으로 처음 클린턴(1500만 달러)을 제치는 기염을 토했다. 선거자금 모금액의 급격한 증가 소식은 샌더스에게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승리보다도 값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샌더스 돌풍을 지켜보면서 그 기세가 시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감출 수 없었다. 역대 대선 승리의 해법이 돈이었기 때문이다. 클린턴이 월스트리트의 큰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데 비해 비주류인 샌더스는 ‘풀뿌리’에 의존하고 있다. 과거 대선에서 돈 부족으로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소멸한 사례가 여럿 있다. 2008년 대선의 공화당 경선 후보 마이크 허커비 경우가 그랬다. 그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대선후보가 된 존 매케인(4위)을 누르고 1위에 올랐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선거자금 부족 때문에 그해 3월 중도 포기를 선언해야 했다. 샌더스는 달랐다. 그의 캠프는 프라이머리 직전에 홈페이지를 선거자금 모금 촉구 사이트로 바꿨다. 그만큼 선거자금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승리한 그는 지지자들에게 당당했다. “난 오늘 밤과 내일 뉴욕에서 선거자금을 모을 예정이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에는 가지 않겠다.”

선거자금 모금액 하나로 희망을 말하기에는 이르다. 샌더스 앞에는 시험대가 많다. 향후 진퇴를 가늠할 ‘슈퍼 화요일’도 그 가운데 하나다. 올해 슈퍼 화요일은 버락 오바마가 당선된 2008년과는 다르다. 그해 슈퍼 화요일에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 지명권을 가진 대의원의 52%를 뽑았다. 847명을 얻은 오바마가 834명에 그친 클린턴 후보보다 대선후보에 한 발 앞서나갔다. 올해 슈퍼 화요일은 3개(3월 1일과 15일, 6월 7일)로 나눠진 데다 뽑는 대의원 수도 전체의 절반을 넘지 않는다. 결국은 버틸 힘이 필요하다. 바로 선거자금이다.

중국 사상가 루쉰은 “희망이란 땅 위의 길과 같다”고 했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지만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길이 되듯 희망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샌더스가 희망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2.[동아일보][횡설수설/이진]김밥의 자존심

일본은 도시락(벤토)의 나라로 불린다. 여행을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도시락을 만나기도 한다. 예쁘게 꾸미기도 잘해서 젓가락을 대기가 미안할 정도다. 그래서 눈으로 먼저 먹고 입으로 먹는다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일본 편의점에서는 한국 돈 1만 원 정도면 푸짐하고도 다채로운 도시락을 고를 수 있다. 2000∼3000원대 도시락도 많다. 모양과 맛도 그렇지만 믿음도 가서 삼각김밥만으로 성찬을 즐길 수도 있다. 

▷국내에서도 편의점 삼각김밥은 없어서는 안 될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중고교생들의 단골 메뉴로 학원가 편의점에서 특히 잘 팔린다. 중국에도 편의점에 가면 도시락과 삼각김밥이 꽤 진열돼 있다. 입맛을 잃은 관광객들이 반가운 마음에 편의점 삼각김밥을 선택할 때도 있다. 삼각김밥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우리 돈 2000∼3000원이면 충분하다. 

▷대학진학 설명회에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괜찮은 외식조리학과를 못 간다”며 “수준이 떨어지는 조리학과를 나오면 ‘천국’밖에 갈 곳이 없다”고 말한 강사가 있었다. 천국이라니? 고개를 갸웃하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강사는 말했다. “김밥천국요.” 조크로 한 말이겠지만 김밥처럼 값에 비해 맛과 영양에 손색이 없는 간편식도 드물다. 보통 한 줄에 1500원부터 시작하는 김밥집을 너무나 좋아하는 한 외국인은 “햄버거같이 세계인의 패스트푸드가 될 수 있다”고 할 정도다. 1000원 김밥 전문점을 운영한 업주가 “원가는 400원”이라고 공개한 것을 보면 상인에게도 효자상품인 모양이다.

▷설 연휴 한국을 찾았던 20대 중국인이 서울 동대문 노점에서 김밥 한 줄을 1만 원에 샀다며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고발했다. 노점 주인이 중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씌웠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2000∼3000원 정도 할 김밥을 1만 원에 팔았으니 주인은 한몫 잡았다고 좋아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바가지 상술이 쌓이면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들이 한국 이미지를 좋게 가질 리 없다. 김밥 상인들도 자존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3.[중앙일보][취재일기]누리과정 예산에 발목 잡힌 장애인 고용

고용노동부와 전국 시·도 교육청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놓고 맞붙었다. 지난달 12일 고용부가 제출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게 발단이 됐다. 개정안은 전체 근로자의 3%(민간 2.7%, 신규 채용 인원 6%)를 장애인으로 채워야 하는 의무고용률을 국가·지방자치단체로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전체 공공행정기관 중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못 지키는 곳은 교육청(1.58%, 2014년 말 기준)이 거의 유일하다. 이 비율을 지키지 못하면 채용하지 못한 장애인 근로자 1인당 75만7000~126만270원의 고용부담금을 내야 한다. 고용부는 전체 공공행정기관이 내야 할 장애인 고용부담금은 595억원이며, 이 중 전국 시·도교육청은 544억원(91.4%)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산한다.

그러자 교육청은 “교원 채용의 현실을 무시한 일방적 조치”라고 반발했다. 초등학교 교원은 교육대학 재학생 중 임용고시에 합격한 사람만을 뽑는데 애초에 장애인 학생 수가 적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채울 수 없다는 얘기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특별전형을 통해 장애인 교원 선발을 늘리고 있고, 신규 채용 때도 6%를 채용한다고 공고하지만 학생 수가 적어 고용부의 요구를 맞추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학생 수를 공시하지 않은 경인교대 제2 캠퍼스와 제주교육대학을 제외한 10개 교대의 장애인 학생 수 비율은 1.37%(2015년 말 기준)다. 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 문제로 정부와 마찰을 빚자 고용부가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앞세워 교육청을 압박하고 나선 게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부는 펄쩍 뛰고 있다. 국가·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솔선수범해 지켜도 모자랄 판에 이를 누리과정 예산과 결부시키는 건 음모론이라고 반박한다. 더욱이 고용부는 이 문제를 2014년부터 교육부와 논의해 왔다. 고용부 관계자는 “논의는 오래 전부터 이뤄져 왔으나 부처 간 협의가 늘어지다 보니 (누리과정 예산 문제와) 시기가 겹쳤을 뿐”이라며 “그동안 대책 마련에 소홀했던 교육청이 이제 와 현실론을 앞세우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더욱이 고용부는 장애인 교원 채용의 어려움을 감안해 시행시기도 2020년까지 4년 유예를 한 만큼 교육청이 장애인 교원 채용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측이 팽팽히 맞서는 바람에 정작 피해는 장애인에게 돌아가게 생겼다. 5월 국회에 이 문제가 상정되더라도 정치쟁점화할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참외밭에서 신발끈 고쳐 맨 고용부의 불통 행정은 문제다. 그러나 장애인 고용을 늘릴 근본대책은 외면한 채 누리과정 예산 탓만 하고 있는 교육청도 책임 있는 모습으로 보이진 않는다.

4.[중앙일보][분수대]청년 대표 맞습니까?

새누리당 예비후보(경기도 화성을) 조은비씨는 1990년생으로 만 25세다. 총선 예비 주자 중 최연소자인 그는 경기도 수원시에서 꽃집을 운영해왔다. 인터넷에는 그의 총선 관련 인터뷰 동영상 세 개가 있다. 합하면 총 16분49초 분량이다. 그 안에 ‘청년’이라는 표현이 열여섯 차례 등장한다. 1분에 한 번꼴이다. 자신을 ‘청년 대표’라고 일컫는 대목이 세 곳 있다. ‘젊은이의 대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김을동 새누리당 최고위원, 남경필 경기지사,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찍은 ‘인증샷’들이 있다.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과는 팔짱을 끼고 촬영했다. 페이스북에는 그가 동년배들과 어울리며 청년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모습의 사진은 없다. 여행지 등에서 자신의 맵시를 자랑하는 듯한 포즈로 찍은 것은 수십 장이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청년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여러 번 말한다. 청년들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실업이라고 했다. 그런데 인터뷰나 페이스북에 그 원인을 진단하거나 나름의 완화 방법을 제시하는 말이나 글은 없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는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대답을 못했다. 네티즌의 비난이 쏟아지자 답을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서울 성북갑) 유병훈씨는 1989년생으로 만 26세다. 이 당이 지난 3일 소개한 ‘2030 청년 후보’ 열두 명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그는 “취업준비생 생활을 1년 했는데 취업이 안 돼 세상을 바꾸려고 나섰다”고 정치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했다.

유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고교(경복고) 선배 기업인들(그는 ‘인맥’이라고 표현했다)에게 ‘후원을 부탁드리는’ 편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편지봉투를 찍은 사진을 함께 올려놓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수신자로 적혀 있다. 삼양그룹·현대백화점·한진그룹·아세아그룹의 회장실이 수신처인 봉투도 있다. 그는 총선 후원금 목표액이 4000만원이라고 했다. 학연에 의지해 정치 자금을 모으려는 모습이 기성 정치인들을 쏙 빼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대놓고 공개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청년들은 과연 이들을 자신들의 대표로 인정할까. 안타깝게도 미국 젊은이들이 자신들을 대변한다며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75세 대선 주자 버니 샌더스가 이들보다 더 청년다워 보인다. 나이가 정신의 젊음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5.[매일신문][매일춘추]전통과 근대로의 여행

전통이라는 단어에는 고루함과 옛것이라는 느낌이 묻어난다. 전통의 단절은 옛것이 아닌 새것을 취한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전통은 다음과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게 한다. 향수, 그리움, 가을, 토속미, 귀향, 농촌, 수확 등이다. 색조는 나무색, 황토색, 짙은 회색 등이다. 소리는 목탁소리, 징소리, 헛기침소리, 시냇물소리, 다듬이소리 등이다. 이 같은 단어들의 분위기를 몽땅 아우르는 명사가 불현듯 생각났다. ‘전통 한옥’이다.

최근 ‘복고’ 열기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전통’을 좇는 트렌드와 함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전통 한옥이 중심에 있다. 현재 대구경북의 지자체는 다양한 형태의 한옥지원사업을 펼치며 붐 조성을 꾀하고 있다. 특히 대구 중구는 전국적인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 대구 중구청의 ‘근대로의 여행’이라는 기획 테마는 대구 중구에 있는 전통 한옥을 되살리는 작업에서 첫 삽을 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중구 계산동과 구암서원 일대 한옥 집단시설구역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과 입지 조건이 매우 유사하다. 도심 중심지에 한옥들이 자리 잡고 있고,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재급 건물 양식들을 두루 갖춘 것 등이다.

그동안 대구를 대표해 자랑할 만한 문화 요소가 2% 부족한 듯했지만, 최근 중구의 전통 한옥 보존 및 정비 노력은 이를 불식시키고 있다. 전통 한옥이 밀집한 구암서원 일대를 서울의 북촌과 전주의 한옥마을처럼 파격적으로 재단장한다면 근대로의 여행길이 한결 풍성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이곳의 특징은 과거, 현재, 미래를 짧은 반경의 공간에서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대구 중구 남산동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태일 생가터도 주목된다. 이곳도 가령 대구시와 중구청이 전국적인 공모 등을 통해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불어넣어 전통 한옥들과 함께 ‘근대로 안내하는’ 장소로 만든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통 한옥이 밀집한 곳에다 계산성당, 3`1만세운동길, 이상화 고택, 그리고 전태일 생가터 조성사업까지 더해진다면, 대구 도심 중심부에 전통을 테마로 하는 요소들이 빼곡히 채워지는, 국내 최고의 문화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어서다. 더불어 전국의 수천만 노동자들이 꾸준히 전태일 생가터를 방문하며 성지처럼 여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만약 전태일 생가터를 복원한다면 이곳도 고증을 거쳐 전통에 근거한 건축양식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인근 근대골목과 조화를 이루며 큰 시너지 효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조성된 전통 복고 붐을 제대로 활용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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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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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6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동아일보]

1.개성공단 ‘발언 논란’ 통일부장관 자격 없다

개성공단에 지급된 달러 중 70%가 핵·미사일 개발 등에 쓰였다며 “관련 자료를 정부가 갖고 있다”고 했던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어제 국회에서 자신의 발언을 뒤집었다. 홍 장관은 “증거를 대라”는 야당 의원들의 요구에 “여러 경로를 통해서 (알아)보니 자금의 70%가 당 서기실과 당 39호실로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우려가 있다’고 말한 것”이라며 “자금이 흘러들어간 증거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와전된 부분이 있다”고 국민께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통일부 대변인은 “정부는 다양한 경로로 추적했고 분석해왔다”고 12일과 14일 홍 장관의 ‘자료 발언’을 뒷받침했다. 그 뒤 몇 시간도 안 돼 장관이 말을 바꾼 것이다. 안보 위기라는 이 비상한 시국에 주무 장관의 어이없는 행보는 한심함을 넘어 분노까지 일게 한다. 

애초부터 “자료가 있다”는 홍 장관의 말 자체가 경솔했다. 북한 노동당 서기실이나 39호실을 압수수색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자료라고 해야 증언에 의존한 정황증거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 해도 장관이 쉽게 거론해서는 안 될 보안 사안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에 ‘돈줄 끊기’라는 명분과 논리가 필요했다면 자료 운운하지 않고도 그동안 제기된 의혹만으로도 얼마든지 대(對)국민 설득이 가능했을 것이다. 

정부가 2015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에 낸 보고서에 ‘개성공단 자금의 핵·미사일 전용(轉用) 가능성이 없다’고 했던 사안이어서 홍 장관이 발언 수위를 낮췄다는 시각도 있다. 어떤 경위라 해도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가 정교한 전략 없이 이뤄졌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홍 장관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2.“전쟁하자는 거냐”는 문재인, 왜 北에는 못 따지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4일 페이스북에 “정부가 국민을 이렇게 불안하게 해도 되는 것인가. 진짜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인지,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과 국민을 안중에 두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글을 올렸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맞서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한 것을 두고 전쟁 의도 운운한 것은 인과관계(因果關係)를 잘못 파악한 것이다.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까지 끌어들여 ‘국민 불안’ 운운한 것은 선동의 냄새까지 풍긴다.

정은혜 더민주당 부대변인이 13일 트위터에 “새누리당은…나라를 팔아도 찍어줄 40%가 있기 때문에 그들과 약간의 지지자만 모으면 된다. 대한민국을 반으로 자를 수 있는 이슈로 나누고 국민들을 싸우게 만든다”는 막말을 올린 것도 충격적이다. 정 부대변인이 언급한 ‘40%’는 박 대통령 고정 지지층을 의미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조치가 ‘나라를 판 행위’라도 된다는 말인가. 어떻게 대통령 지지자들을 그런 황당한 비유로 매도할 수 있는가.

북의 도발로 국가안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 대처하려는 대통령의 자위적 조치를 두고 ‘전쟁’ 운운하는 것은 제1야당 대통령후보였던 사람이 할 말이 아니다. 문 전 대표는 핵과 미사일 개발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북을 비판하고 김정은을 향해 한 번이라도 “전쟁하자는 거냐”고 따져본 적이 있는가.

문 전 대표는 어제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에서도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어리석은 국가전략”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비난했다. 북에는 할 말도 못 하면서 우리 정부에만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중앙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에 54.8%가 “지지한다”고 했다. 매일경제신문이 2030세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80.2%가 ‘개성공단 폐쇄는 북한 책임’이라고 했다. 제1야당이 이런 국민의 안보의식도 제대로 읽지 못하니 ‘안보불안 정당’에 ‘운동권 식의 정치’를 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문 전 대표가 연일 정부에 대해 강경 비판 발언을 쏟아내는 까닭도 궁금하다. 당내 친노 세력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닌가.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국민의당을 의식해 야권의 핵심 지지층을 자기네 쪽으로 결집시키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더민주당은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한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정부가 5·24 대북 제재 조치를 취하자 ‘전쟁이냐, 평화냐’는 구호를 내세워 재미를 본 적이 있다. 더민주당이나 문 전 대표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안보를 ‘정치게임’의 수단으로 이용해 북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3.사드가 중국에 ‘칼춤’이면 북핵은 寶劍인가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검토를 두고 ‘항장무검 의재패공(項莊舞劍 意在沛公)’이라는 고사성어로 비판했다. 초나라 항우의 사촌인 항장이 연회에서 칼춤을 춘 이유가 패공(유방)을 죽이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유방(중국)을 겨누는 항우(미국) 측의 칼춤’으로 보고 있고, 한국을 미국 뜻에 따라 움직이는 항장쯤으로 낮춰 본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왕 부장은 12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와 함께 북핵 문제의 3원칙을 ‘한반도 비핵화, 군사적 해결 반대, 중국의 안보이익 훼손 불용’이라고 강조했다. 사드 배치에 대해 “X밴드 레이더 범위가 한반도 방위 수요를 크게 넘어 아시아 대륙 한복판으로 침투해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에 직접적인 해를 준다”면서 한 말이다. 그가 북의 4차 핵실험 직후인 지난달 8일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와 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원칙을 견지한다”며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빠져선 안 된다”고 했던 데서 세 번째를 슬쩍 바꿨다. 북의 핵 포기보다 중국의 안보 이익이 더 중요하고, 사드는 이에 배치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왕 부장은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서도 “북측이든 남측이든 스스로 만들어도, 가져와 배치해도 안 된다”는 말로 한국의 핵개발이나 전술핵 도입에도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북의 핵과 미사일 도발로 촉발된 한반도 위기의 본질을 호도하는 발언이다. 중국에 사드가 ‘칼춤’이면 북핵은 지켜야 할 보검(寶劍)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한국 정부가 사드 도입을 검토하는 것은 북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자위적 조치다. 그런데도 어제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까지 “관련국이 한반도 문제를 이용해 중국의 국가 안전 이익을 훼손하는 데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중국이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 매몰돼 자국의 전략적 이해만 따지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오늘 서울에서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가 2년 8개월 만에 열린다. 중국 측이 사드 문제를 거론한다면 한국은 안보 주권 차원에서 당당히 반박해야 할 것이다. 항우와 유방은 천하통일의 대업을 놓고 힘을 겨뤘지만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세계 평화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이다. 핵과 미사일의 칼춤은 북한이 추고 있다. 중국이 이를 외면한다면 사면초가(四面楚歌) 속에 자멸한 항우가 될 수도 있다.

[이데일리]

4.공기업 성과연봉제 왜 머뭇거리나

업무 성과에 따라 연봉이 책정되는 이른바 ‘성과연봉제’가 민간 분야에서 시대적 추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말 그대로 업무 성과가 좋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월급을 더 받는 방식이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냉혹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사람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려 조직 경쟁력과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공직사회도 이러한 경쟁체제 도입에 예외가 될 수 없다. 책임회피주의, 보신주의, 무사안일주의 등 흔히 공직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복지부동’은 서둘러 타파해야 하는 암적인 요소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공직사회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뒤처짐으로써 ‘철밥통’이라는 소리가 더이상 나오지 않기 위해서라도 성과연봉제는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해법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취지에 걸맞게 정부도 올해 상반기까지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확대한다는 방침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말뿐이다. 정부 권고안을 수용한 곳이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지난달 말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116곳에 성과연봉제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권고안을 제시했지만 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기관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성과연봉제 확대는 공공기관 체질 개선의 출발점이라며 권고안을 제시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 영이 서지 않는 모양새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우리 공공기관의 업무 생산성은 민간기업의 70~80%에 그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처럼 낮은 생산성은 국가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공공기관 노조가 발목을 잡아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자신들의 밥그릇이 작아진다며 제도 도입을 뿌리치는 자체가 잘못이다.

성과연봉제가 결실을 맺으려면 온정주의를 타파하고 객관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공정하고 엄격한 평가방식을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 일부 공공기관에서 관례적으로 벌어졌던 성과급 평등 재분배와 같은 폐습이 재연돼서는 안 될 것이다.

5.금통위의 책임성 높일 수 있을까

앞으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운영 방식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한다. 금융시장과 소통을 확대하고 통화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점에서 일단 기대와 환영의 뜻을 밝힌다. 그동안 역할의 막중함에 비해 존재감이 떨어졌던 데다 금통위원 개개인의 책임성이 부각되지 못했던 운영 과정의 느슨한 관행을 바로잡는 과정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금통위원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좀더 확보될 필요가 있다. 지금껏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소수의견이 나오더라도 익명으로 처리됐던 관행이 문제라는 얘기다. 통화정책이 국가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만큼 금통위원들의 발언 내용이 그대로 공개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는 회의 녹취록이 실명으로 공개될 것이라 하니 추이를 유심히 지켜보게 된다.

시장 변동성을 따라잡으려는 노력도 따라야 한다. 최근 들어 글로벌 경제는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에 의해 갈수록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경제의 급락과 미국 금리인상 유보 움직임 외에도 국제유가 동향이 심상치 않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마이너스 금리까지 예고된 상태다. 각국 증시가 사소한 소문에도 요동치는 것이 그런 결과다. 금통위가 시장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려 해도 문제이긴 하지만 너무 거리를 두려는 자세도 옳지는 않다.

다른 하나는 통화정책의 기본 목적에 관한 것이다. 법적인 규정에 따라 물가 및 금융안정 위주로 운영돼야 한다는 기존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은행에 독립성을 부여한 것은 정부 정책을 견제하라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이끌어갈 수 있는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하라는 데 비중이 두어져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주열 총재를 비롯해 금통위원 각자의 임무가 그만큼 무겁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금통위원들의 면모부터 일신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시장과 적극 교감하려는 자세다. 통화 현상에 대한 시각 차이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교과서의 이론적 틀에만 얽매이지 말고 시장 흐름을 주의깊게 바라보는 자세가 요구된다. 오는 4월 한꺼번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4명의 금통위원 후임자들이 과연 어떤 인물들로 채워질지 지켜보는 이유다.

[서울신문]

6.아동학대 엄중 처벌하되 보호망도 촘촘히 짜야

‘천인공노할 사건’을 저지른 사람을 우리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 짐승과 같은 마음을 가졌다’는 의미로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고 한다. 그런데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짐승보다 못한 사람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하다. 경남 고성경찰서는 어제 큰딸을 죽여 암매장하고, 작은딸은 학교에 보내지 않고 방임한 엄마 박모씨를 아동복지법 혐의로 구속했다. 아버지와 계모의 학대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가스 배관을 타고 세상으로 나온 11살 소녀 사건 이후 진행되고 있는 장기 결석아동 전수조사를 통해 드러났다고 한다.

아동학대는 대부분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반인륜적 행위다. 그런데 이러한 아동학대 사례가 잊을 만하면 불거지고 있다. 지난 3일에는 경기도 부천에서 목사인 아버지가 딸을 때려 숨지게 하고 1년 동안 시신을 방치했고, 이에 앞서 역시 부천에서 30대 부부가 7살 아동의 시신을 훼손해 냉동 보관한 사실이 드러났다. 구속된 엄마 박씨는 오래전 큰딸(당시 7살)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야산에 유기했고, 이 과정에 박씨의 친구들도 가담했다고 한다. 아동학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온정주의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다.

문제는 핵가족화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아동학대 문제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아동학대를 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과 재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더 촘촘한 아동 보호망이 구축돼야 한다. 아동학대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웃의 고발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동학대와 훈육의 경계선이 모호하지만 훈육도 지나치면 아동학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동학대 신고 전화는 112로 통합 운영되고 있다. 지금처럼 학교와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기관이 실시하는 장기 결석아동 전수조사는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실시했으면 한다.

아울러 경제적인 어려움과 질병으로 친권자가 한시적으로 아동을 돌보지 못하는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럴 때 아동을 돌볼 수 있는 시설을 확충하면 비극적인 상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시설의 보호를 받고 있는 아동들이 적절한 보호를 받고 있는지, 또 다른 차별은 없는지에 대한 지도·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이들 아동에 대한 재교육 및 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아동학대 신고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본다.

[서울신문]

7.박 대통령 국회 연설 국민 단합 계기로

개성공단 가동 중단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두고 국론 분열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의 남남 갈등이 재연되는 분위기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야기된 국가 안보 위협 사태에 직면해 이념 대립의 극심한 국론 분열을 보이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반복된 도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우리의 단호하고 냉정한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대한민국 국가 안보에 중대 위협이 된 상황에서 강력하고도 실효적인 대북 제재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번 사태로 4·13 총선에 악영향을 우려하는 야권의 반발은 이해할 수 있지만 북풍(北風) 논란을 확산시키는 것은 국민들의 눈에 전형적인 정치공세로 비치고 있다. 대북 제재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의견이 제시될 수는 있지만 거듭된 도발과 위협 속에서 우리 스스로 분열의 늪에 빠져드는 것은 북한의 의도에 말려드는 꼴이다.

대북 정책의 전면 전환에 따라 남북한 긴장이 고조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국민적 의지를 결집하는 것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북한의 잇단 도발 사태와 관련해 국회 연설에 나서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글로벌 경제위기에다 북한 리스크까지 겹친 복합 위기 속에서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민 단합을 호소하면서 국민 불안과 동요를 막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그럼에도 국가 통치권자로서 박 대통령은 야당의 문제 제기에 귀를 기울이고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안보 문제에서 초당적 대처는 국민적 요구임이 틀림없지만 국정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는 야당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국론 분열을 막고 공동의 목표로 이끄는 것 역시 대통령의 의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외적인 위기관리 역시 중요한 고비에 와 있다. 사드 배치 결정에 따라 중국의 반발은 점점 거세지고 있고 중국의 경제 보복 가능성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국가 안보 차원에서 결정된 우리의 군사적 판단을 타국의 국가 이익에 맞춰 변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국, 러시아와 사드 배치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지만 그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오늘 예정된 한·중 외교차관 전략 대화에서도 우리의 강력한 대북 의지를 전달할 필요는 있지만, 주변국들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도 비용부터 발생할 위험성과 문제점 등을 처음부터 투명하게 공개해 흑색선전이나 무분별한 대립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북핵·미사일 문제는 결코 단시간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한·미·일 협력 기조를 통해 강력한 대북 억지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한반도에 몰아칠 다양한 변수들에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단호하고 냉철한 상황 관리로 국민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는 동시에 비장한 각오로 최적의 전략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중앙일보]

8.능동적인 공항안전관리 체계

건강이 질병의 부재 상태이듯 안전은 사고의 부재 상태다. 안전이란 어떠한 사고도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대비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안전관리 체계는 위험을 유발할 인적 요인과 조직적 요인을 모두 찾아내 ‘능동적으로’ 관리하고 경영해야 한다. 인천공항의 경우 인적 요인 면에서 수익 창출보다 안전문화를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전문 경영자가 임명돼야 한다. 이를 위해 보안 관련 정규직 비율을 높이고 인력을 확보한 뒤 공항보안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조직적 요인 면에서는 안전 및 위험관리의 의사 결정과 실행 절차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범정부적 관련 기관의 협조를 컨트롤할 수 있는 권한자가 제 역할을 해야 하고, 공항공사 내에서는 각 실무자가 왜곡 없는 보고 체계를 보장받아야 하며, 관리자는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85%의 비정규직 외주업체 직원이 보안 실무를 담당하고 15%의 정규직원이 실무책임자인 구조에서는 소통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매일경제]

9.원유철 `핵 보유론` 안보외교 혼선불러선 안된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개성공단,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한반도 비핵화 원칙 등에 관한 정부와 여당 태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국민이 어리둥절할 정도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5일 국회 연설에서 급기야 "북한 핵과 미사일에 맞서 이제 우리도 자위권 차원에서 평화의 핵과 미사일로 대응하는 것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북한의 거듭된 도발로 분노한 국민 정서에 이런 주장이 부합되는 측면이 없는 건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국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데 찬성한 국민이 67.7%에 이르렀을 만큼 국민은 지금 격앙돼 있다. 정치권이 이런 정서를 파고들려고 할 수 있지만 여당 원내대표라면 한반도 비핵화를 줄곧 천명해온 우리 정부 방침과 엇갈리는 의견을 표명했을 때 초래할 혼란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일이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핵 보유 주장에 대해 "정부 입장에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곧바로 부인했는데 그럴수록 정부와 여당 내 혼선으로 비칠 뿐이다. 그러잖아도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이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전략을 크게 수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중국과는 한반도에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이미 노골적인 갈등을 노출하고 있다. 한·중 우호 관계가 역대 최상이라던 정부 설명과는 딴판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항우와 유방의 고사까지 인용해가며 한반도 사드 배치가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북한 핵무기 위협이 증폭되는 현실에서 우리가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국민 생존과 직결되는 국방 문제는 주변국 눈치를 볼 사안도 아니다. 대북 제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온 중국을 상대로 우리가 느끼는 안보 위협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실질적인 대북 제재에 동참하도록 압박도 병행해야 한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 남북 대화, 북핵 해결을 위한 중국과의 협력 등 그동안 유지해온 원칙들이 너무 급작스럽게 바뀐다면 주변국뿐 아니라 우리 국민도 혼란을 느낄 일이다. 

다음달 22~25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리는 보아오포럼에 황교안 국무총리가 불참을 검토하는 것만 해도 그렇다.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회의는 아니지만 북한 핵실험 이후 중국 태도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차원이라면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에게는 지금 안보 위기뿐아니라 글로벌 경제위기도 엄습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시기에 우리 수출의 약 25%를 의존하는 최대 교역국가인 중국을 상대로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노골적으로 갈등을 표출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칫 대북 제재라는 실리도 얻지 못하면서 갈등만 키우지 않도록 안보외교의 장기적인 원칙과 중심을 냉정하게 견지해나가야 할 것이다.

10.늪에 빠진 한국 수출 세계 1등 제품 발굴이 해법

한국 기업의 주력 품목들이 세계 시장에서 점점 경쟁력을 잃고 있어 수출전선에 비상등이 켜졌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들어 10일까지 수출액은 87억52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1%나 감소했다. 올해 들어 누적 수출액도 20.3% 줄었다. 이런 추세라면 지난해 1월 이후 14개월 연속 수출이 역주행하게 된다. 충격적 사실은 스마트폰 같은 주력 제품마저도 성장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어제 발표한 1월 정보통신기술(ICT) 수출 실적을 보면 휴대폰이 7.3% 줄어든 것을 비롯해 반도체 등 전 품목이 부진하며 지난해 동기 대비 17.8% 감소했다. 

수출 주력 제품의 경쟁력 하락은 이미 예상됐다. 한국무역협회가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의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품목을 조사했더니 총 64개로 전년에 비해 한 단계 떨어진 13위를 기록했다. 1위인 중국(1610개)의 20분의 1도 안 되고 독일(700개)과 미국(553개)에 비해서도 격차가 컸다.

수출 부진이 세계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위축과 저유가 등 외부 환경 탓도 있지만 주력 품목들의 경쟁력 하락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 근본 원인이다. 수출이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철강이나 반도체와 같이 중간재 수출 비중을 줄이면서 화장품, 생활용품 등 소비재와 부가가치가 높은 기술집약적 제품군을 확대해 세계 1등 상품을 끊임없이 발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수출 기업들의 사업 재편이 필수적이다. 지난 4일 원샷법(기업활력제고특별법)도 통과됐으니 기업들은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을 서둘러 글로벌 1등 제품 개발에 나서야 할 것이다.

요 신문칼럼

1.[동아일보][오늘과 내일/정경준]범죄는 고양이처럼 온다

#1. 고백하건대 나는 툭하면 과속, 신호 위반을 한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도로에서 빨간불에 걸리면 단속 카메라가 있는지 살펴보고 액셀을 밟는다. 뻥 뚫린 길을 달릴 땐 똑똑한 내비게이션을 믿고 스피드를 즐긴다. 그래도 지금까지 딱지를 떼인 건 고작 두어 번이다. 물론 난폭운전을 할 때 마음이 편치는 않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데 곧이곧대로 법을 지키는 건 왠지 융통성 없고 고지식한 것 같다는 느낌이 앞선다. 교차로 황색 신호에서 다들 속도 높여 꼬리를 물고 건너는데 나만 정지하면 추돌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며 스스로 합리화도 한다.

이런 나는 이제 언제라도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12일부터 시행된 개정 도로교통법이 난폭운전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범칙금 딱지를 받는 데 그치지 않는 것이다. 경찰은 15일부터 다음 달 말까지 집중단속에 나선다. 과속이나 신호 위반, 중앙선 침범 같은 다소 무거운 위법 외에 급제동, 안전거리 미확보, 소음 발생 등 ‘사소한’ 것까지도 단속 대상이다. 둘 이상을 연달아 하거나 하나라도 지속·반복하면 최대 500만 원의 벌금, 1년까지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2. 서울대 대학원까지 나온 창창한 30대가 서울 강남과 경기 성남시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택배 물건을 훔치다 경찰에 딱 걸렸다. 560여 차례에 걸쳐 1억 원어치를 훔친 혐의로 이달 초 구속된 그의 여죄(餘罪)는 수백 건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경회사 연구원으로 일하다 2014년 말 퇴사한 뒤 이렇다 할 일자리를 찾지 못했던 그는 지난해 설 연휴 때 서울 잠실 자신의 집 주변에서 누군가의 현관에 놓인 선물세트를 보고 충동적으로 슬쩍했다. 다행히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 한 번이 두 번이 됐고, 활동무대도 넓어졌다. 훔친 물건을 자급자족하는 데서 더 나아가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려 짭짤한 수입을 챙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안 뒤로는 택배상자에 붙은 의뢰서를 보고 비싸고 수요가 많은 물건을 골라 훔치는 대담함도 보였다.

#3. 골프만큼 독특한 운동도 없다. 야구나 축구, 농구처럼 심판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부정(不正)의 유혹에 넘어가기 십상이다. 공이 깊은 러프에 파묻혔을 때, 벙커에 빠졌는데 높은 턱이 가로막고 있을 때, 숲 속에서 큰 나무가 스윙을 방해할 때 많은 골퍼들은 먼저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악마가 속삭인다. “뭐 어때? 조금만, 아주 조금만 공을 옮겨. 그게 무슨 큰 허물이야?”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내 친구는 이런 유혹에 굴복해 상습적으로 동반자를 속인다. 지적이라도 할라치면 “프로도 아닌데 우리끼리 왜 그래?”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두주불사(斗酒不辭)형이면서도 라운딩 전날에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을 정도로 골프를 사랑하는 그 친구를 필드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사라졌다.

정직과 사소한 잘못 사이에는 작은 ‘문턱’이 있다. 넘어도 될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이다. 여기서 양심을 도외시하고 문턱을 한번 넘어서면 용감해진다. 도덕의식은 희박해지고 ‘이왕 이렇게 된 것’이라는 태도가 생긴다(‘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댄 애리얼리). 부정은 전염성도 강하다. 차량 없는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인내심이 약한 한 명이 먼저 무단횡단을 감행하면 우르르 뒤따르는 모습은 흔한 광경이다.

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라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면 개인이나 사회나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된다. 최근 잇따라 불거진 자녀 학대, 시신 훼손 사건도 처음에는 별 죄책감 없이 단순한 손찌검에서 비롯됐다. 범죄는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온다.

2.[동아일보][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새로움과 미완성의 차이

인상주의 미술은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인상, 해돋이’에서 출발했습니다. 배가 정박한 항구에 태양이 떠오르는 그림입니다. 예술에 뜻을 같이하는 미술가들이 단체명도 정하지 않은 채 1874년에 치른 전시 출품작이었습니다. 

동트는 항구를 그리기 위해 화가는 우선 밑칠을 했습니다. 따스한 회색으로 캔버스 표면을 덮었지요. 그 다음 붉은색, 푸른색으로 일출과 함께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세상을 표현했습니다. 매우 빠르게 화면을 채워 나갔던 모양입니다. 바탕칠이 내비칩니다. 크레인, 건물의 윤곽도 모호합니다. 과거와는 다른 풍경화였지요. 변함없는 풍광을 꼼꼼히 그릴 의도는 없었거든요. 해가 솟구치는 순간의 인상을 화폭에 잡아둘 생각이었지요. 태양이 어둠을 밀어내는 찰나의 세상은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바로 그런 순간의 변화를 미술로 붙잡고 싶었어요. 그러니 붓질이 거칠고, 대담해질 수밖에요. 

새로움은 늘 논란거리입니다. 외부 세계를 변화의 연속으로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완성한 그림은 미완성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재능 없는 화가의 서툰 객기쯤으로 여겨졌습니다. 해돋이인지, 해넘이인지조차 불분명하다고 꼬투리를 잡혔지요.

“일출이 분명하다.” 지난해 미국 천체물리학 연구진이 이렇게 밝혔습니다. 그림을 그린 곳과 때를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림의 제작 장소는 르아브르의 호텔 3층 객실이랍니다. 해가 뜨고, 지는 항구 도시의 전경이 창밖으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라지요. 제작 시점은 1872년 어느 한 날이 아니라 11월 13일이랍니다. 그것도 일출 시간인 7시 35분에 맞추어 그려졌다는군요. 해돋이 명당이 인상주의 대표작의 산실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정말 황홀해!” 멋진 일출을 본 모네가 짧은 감탄사를 남기고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면 미술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인상주의 미술도 새로운 이름을 가졌겠지요. “퍽 인상적이군!” 혁신적 표현에 쏟아진 조롱을 인상주의는 예술의 정체성으로 수용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과의 만남 그 자체만은 아닙니다. 그것을 통한 성장과 실천이 소중합니다. 올 한 해는 어디서 해돋이를 구경할지보다 어떻게 해맞이를 겪을지를 궁리해 볼 참입니다. 일출의 명소 대신 일상의 일출에서 도전적인 전환점, 의미 있는 반환점을 모색할까 합니다.


3.[중앙일보][글로벌아이]이방인 기자에게까지 부탁하는 '버니' 젊은이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밤 아이오와주 디모인 시내의 그랜드뷰 대학.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아이오와주 코커스를 하루 앞둔 마지막 유세장이다. 이미 2000여 명으로 가득 찬 유세장 바깥까지 샌더스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버니’ 지지 피켓을 들고 있던 여성 토니 어너(33)는 “뉴욕에 사는데 일주일 휴가를 내서 왔다”며 “버니가 유일한 대선 후보”라고 단언했다. 토니는 “나는 사회복지사인데 어렵게 사는 분이 정말 많다”며 “공정한 사회, 기회가 균등한 사회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취재진 출입구로 향하자 어느샌가 어너가 다가와 “당신 일행처럼 꾸며 취재진 출입구로 함께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일반인 출입구는 입장 인원 초과로 이미 봉쇄됐기 때문이다. 마음이 약해져 어너를 데리고 취재진 출입구로 들어가는데 이게 웬일인가. 어너의 뒤로 ‘버니’ 피켓을 든 장대 같은 장정 5명이 줄줄이 따라왔다. 얼렁뚱땅 유세장 안으로 함께 입장하며 아차 싶었다. “이 친구들이 샌더스 지지자인 것처럼 가장해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어쩌나”라는 후회가 몰려 왔다. 다행히도 이들은 진짜 지지자들이었다. 일행 중 한 청년이 내 팔을 잡은 뒤 연신 “고맙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아이오와 주민들이 아니었다. 그러니 투표권도 없다. 하지만 ‘버니’를 돕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 이곳까지 온 것이다. 그 전날 디모인의 샌더스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닐 살레스-그리핀(28)도 시카고에서 작은 웹 디자인 업체를 운영하다 잠시 문을 닫고 아이오와로 왔다.

 샌더스 열풍의 동력은 이 같은 젊은 세대의 참여다. 이들이 하는 얘기의 공통점은 “워싱턴 정치는 오염됐고 현실과 멀어졌다”는 분노다. 힐러리 클린턴으로 대표되는 기성 정치인에 대한 거부다. 그렇다면 ‘버니’ 환호의 이면엔 워싱턴 정치의 한계가 숨어 있다.

샌더스 열풍은 우리가 금과옥조로 여겼던 미국의 의회정치가 사실은 민심을 모두 품지 못하며 누군가를 정치 바깥으로 밀어낸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오죽했으면 자칭 ‘사회주의자’ 샌더스가 민주당 대세였던 클린턴을 뉴햄프셔주 경선에서 이기는 상황까지 왔을까. 샌더스 현상은 트럼프 현상과 더불어 워싱턴 정치의 위기를 보여주는 실례일지 모른다.


4.[서울신문][데스크 시각]소비자가 원하는 '콜버스' 막아선 안된다/김성수 경제정책부장

“소비자는 선택권이 많아지면 더 이익 아닌가요. 소비자들이 외면하면 그땐 망하는 거구요. 그게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잖아요.”


콜버스를 운영하는 박병종(30) 콜버스랩 대표는 최근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콜버스는 휴대전화 앱으로 심야(밤 10시~새벽 4시)에 버스를 불러서 목적지까지 가는 신종 사업이다. 박 대표는 경제지 기자로 3년간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과 정보기술(IT) 기사를 쓰다가 직접 창업에 나섰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손님들을 전세버스로 한데 모아 이동시키는 아이디어는 윷놀이할 때 말을 함께 업어서 가는 것을 보고 착안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부터 서울 강남구·서초구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재는 무료지만 이달 중 유료로 바꾼다. 그래도 택시값의 절반이다. 택시업계는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불법 서비스라는 비난이다. 이달 초엔 일간지 1면에 항의 광고도 냈다. 다음달 대규모 시위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두 손을 들어 환영한다. 버스도 지하철도 다 끊긴 추운 겨울 새벽에 승차 거부를 당했거나 ‘예약’ 표시등만 켜 놓고 손님을 야멸차게 외면하며 쌩쌩 달리던 택시에 분개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콜버스는 심야 시간에 택시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 때문에 등장했다. 개인택시는 밤에 잘 안 나오고, 회사택시는 운전기사가 모자란다. 야간에 일하는 택시기사는 이런 상황에서 손님을 골라 태운다. 심야에 택시 잡기는 더 힘들어진다. 이런 현실적인 수요가 신사업을 이끌어 냈다.

새로운 사업자가 시장에 뛰어들면 언제나 그렇지만 기존 사업자(택시)와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될 수 있다. 갈등을 조정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콜버스도 서울시가 합법성에 대한 법률 의뢰를 국토교통부에 했다. 다음달 중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국토부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현 정부의 규제완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도 될 수 있어서다.

과거처럼 정부가 강한 규제를 통해 기업을 이끌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정부는 기업 하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치어리더’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도 소비자들의 기대와 예측을 벗어나면 곤란하다. 소비자들이 서비스를 원하고 있고 그 방향이 틀리지 않다면 정부가 막으면 안 된다. 섣부른 규제를 하려 들면 되레 혼란만 더 커진다.

이번 경우도 시민들의 편의성을 첫 번째 잣대로 놓고 문제를 풀어 가면 된다. 심야에 택시 잡기가 힘들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서비스가 나왔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공무원의 인식도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정부가 ‘규제프리존’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기업들은 달라진 걸 체감하지 못한다. 대기업들조차 정부의 규제가 신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신생 기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개념이 모호한 ‘창조경제’를 외쳐 봐야 구두선에 그칠 뿐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콜버스 사업과 관련해 “특정 기업에 대한 합법화가 아니라 시민들이 승차 거부로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인 만큼 새로운 사업 형태를 포함해 야간 사각지대의 시민 불편을 해소하는 방안을 다음달 중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를 우선하는 결정을 내릴 것임을 시사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택시업계와의 상생 방안을 이끌어 내는 과제는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5.[서울신문][씨줄날줄] 美 대법관의 색깔 논쟁/최광숙 논설위원

미국 인사청문회 역사상 연방 대법관 후보자 로버트 보크의 청문회만큼 떠들썩한 적은 없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7년 7월 연방 항소법원 판사이던 그를 대법관 후보로 지명하자 에드워드 케네디 민주당 상원의원은 그날 즉각 “미국 대법원에는 그를 위한 좌석이 없다”고 반대 성명을 냈다.

당시 아칸소주 주지사이던 빌 클린턴 대통령도 자신의 스승인 그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다. 흑인 인종차별을 금지한 민권법에 반대하는 등 보크의 강한 보수적인 성향과 독선 등이 문제가 된 것이다. 후보자 개인의 윤리, 능력뿐만 아니라 정치, 이념도 따지고 든 것이 이때부터다. 결국 그는 4개월 만인 10월 상원의 혹독한 검증 과정을 통과하지 못해 낙마했다.

미국 대법관의 영향력은 크다. 종신직인 데다 중요한 정부 정책이 연방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행정부 인사와는 달리 사법부 인사를 대상으로 한 인사청문회는 큰 논란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하지만 보크 지명 건을 계기로 아무리 개인적으로 유능해도 이념적으로 극단적인 후보자는 인준 통과가 어려워졌다.

보크의 후임으로 레이건 대통령은 앤토닌 스칼리아 판사를 지명했다. 그 역시 보수적이었지만 보크와 달리 이념성을 입증할 만한 발언이나 글이 없었다. 덕분에 그는 야당의 칼날을 피해 무사히 인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대법관이 된 이후 낙태와 동성애, 소수자 우대 정책 반대 등 보수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판결과 발언을 통해 보수층의 대부로 자리 잡았다. ‘오바마케어’ 반대 등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에도 제동을 걸었다.

스칼리아의 정치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난 것은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간에 플로리다주에서 재검표 소동이 벌어지면서 법정 공방이 빚어졌을 때다. 그는 플로리다의 재검표를 중단시켜 놓고는 법이 요구하는 날까지 검표를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부시의 손을 들어 줬다. ‘법원이 대통령을 결정했다’는 비난을 받게 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그다.

최근 그가 사망하면서 차기 대법관 임명 문제가 정가에서 쟁점으로 부상했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 보수 5명, 진보 4명으로 균형을 유지하던 대법관의 이념 지형이 그의 사망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곧 후임자를 지명할 뜻을 밝혔지만 공화당 측은 선거가 있는 해에는 대법관을 임명하지 않는다는 ‘서먼드 룰’을 근거로 퇴임할 대통령의 대법관 지명을 반대하고 있다. 보크 사건을 교훈 삼아 오바마는 정치색 논쟁이 적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계 대법관을 지명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온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우리도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 사법부 고위 인사들의 인준을 놓고 대통령의 ‘코드 인사’ 논란을 빚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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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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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2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동아일보]

1.美 역대 최강 대북제재법안에 야당은 느끼는 게 없나

미국 상원이 10일(현지 시간) 역대 대북(對北) 제재 법안 중 가장 강력한 ‘2016 북한 제재와 정책강화 법안’을 참석 의원 96명 전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 사이버 공격, 지도층의 사치품 구입에 쓸 수 있는 달러 등 김정은의 통치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개인과 단체를 제재할 수 있는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을 둔 것이 핵심이다. 

북한만을 겨냥한 첫 제재법안이 될 이 법안은 이란 핵 동결을 이끌어낸 포괄적대(對)이란제재법이나 이란핵무장방지법처럼 강력한 강제성을 띤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이란제재법에 따라 2012년 이란과 거래한 중국의 국영석유무역회사에 미국 수출면허 금지 등의 제재를 내림으로써 중국을 압박해 이란 제재에 동참시킨 바 있다. 북한 제재법안도 행정부에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어 미국의 의지에 따라서는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이나 은행 제재가 가능하다. 관건은 미국이 중국과 외교 마찰을 각오하고 북핵 해결에 강하게 나서느냐다. 

표결에 앞서 26명의 의원이 7시간 동안 북을 성토하고 강력한 대북대응을 강조한 것은 고무적이다. 대통령선거 공화당 경선 후보인 마코 루비오 의원과 테드 크루즈 의원은 잠시 유세를 중단한 채 표결에 참여했다. 민주당 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의원도 표결엔 불참했지만 법안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는 등 미 의회는 선거보다 안보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 정부는 이제 북한이 이란처럼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미국과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그러나 한국의 국회는 북을 비난하는 결의안만 채택했을 뿐 북한인권법안을 11년째 묶어놓고, 테러방지법은 언제 처리할지 기약 없는 상태다. 오히려 정부의 대북 제재가 4월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북풍(北風) 카드’인지를 놓고 여야 간에 민망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북을 뼈저리게 응징할 방법을 찾기는커녕 서로 손가락질하는 이 나라 정치권을 세계가 어떻게 보겠는가.

2.북핵 해결을 위한 안보 위기, 박 대통령이 국론 모아야

북한이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 하루 만에 개성공단 폐쇄와 남북 간 연락 채널 전면 중단을 밝혔다. 북은 어제 오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통해 “개성공업지구를 파탄시켜 우리의 핵무력 강화와 위성 발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라며 개성공단 폐쇄 및 군사통제구역 선포, 17시(한국 시간 오후 5시 반)까지 남측 인원 추방, 모든 자산 전면 동결, 서해 군통신선 및 연락관 직통전화 폐쇄 등을 발표했다. 

북의 반발이 기습적이기는 하지만 예상됐던 일이다. 개성공단에 체류하고 있던 우리 측 인원 전원이 어젯밤까지 무사히 귀환한 것이 다행스럽다. 이로써 남북 간의 대화 창구가 완전히 끊기게 된 상황은 안타깝지만 북의 대응이 강경한 것은 그만큼 개성공단 중단의 타격이 컸다는 의미다. 

북이 개성공단에서 유입된 현금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썼다는 우리 정부의 발표에 대해 “초보적인 셈세기도 할 줄 모르는 황당무계한 궤변”이라고 주장한 것은 가소롭기 짝이 없다. 북이 마약·무기 밀매, 해외 근로자 임금 착취 등으로 김정은 통치자금을 조달하고 대량살상무기까지 개발한 것을 국제사회가 뻔히 안다. 북이 개성공단의 재개를 원한다면 핵을 포기하고 대화와 교류협력의 장으로 나오면 될 것이다. 

북이 이를 거부할 경우 남북관계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북에 대한 일방적인 퍼주기가 결국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 돌아온 것을 고려하면 지금의 한반도 안보 위기는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진통이고 언젠가는 거쳐야 할 불가피한 과정으로 봐야 한다. 문제는 북이 개성공단을 중단시킨 대가를 몸서리치게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한 대로 긴장의 수위를 더욱 고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핵과 미사일에 쏠린 국제사회의 이목을 남북 간의 충돌로 돌리기 위해서라도 북은 대규모 도발은 아니어도 후방 침투나 테러, 사이버 공격 등 은밀하고 추적이 쉽지 않은 도발을 할 개연성이 높다. 만반의 대비가 필요하다.

예측 불가능의 김정은이 핵 개발을 계속하는 한, 우리는 한 가닥 말총으로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다모클레스의 칼’ 아래 앉아 있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까지의 외교적 노력은 실패했고 더는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면,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도록 제재와 압박을 가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에 강력한 압박을 하지 않으면서 유엔 안보리에 강력한 압박을 주문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북은 성명에서 ‘남조선 인민들이 격분에 넘쳐 규탄하듯이’라고 남남(南南)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검토,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등 정부가 나라의 명운을 걸고 북핵 해결을 위해 꺼내든 대북 제재 조치에 국력을 결집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와 국민이 하나 되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국민과 여야 대표에게 현재의 안보 상황을 소상히 알리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야당도 당리당략을 떠나 도울 것은 도와야 한다. 우리가 일치단결해 안보 위기를 넘길 것인지, 잠시 발끈하다 집안싸움 때문에 제풀에 꺾일 것인지에 한반도의 장래가 달려있다.

[이데일리]

3.북한에서 벌어지는 공포정치 흔적들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 처형설로 북한 체제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그제 리 총참모장이 ‘종파분자 및 비리’ 혐의로 이달 초 전격 처형됐다고 한다. 사실로 확인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고모부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까지 처형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허튼소리만은 아닌 듯하다.

이로써 김 위원장 집권 4년 남짓에 총참모장 4명 중 3명이 숙청·처형됐다. 총참모장은 총정치국장과 인민무력부장 다음의 군 서열 3위로, 우리로 치면 합참의장 격이다. 작년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김 위원장의 연설 도중 졸은 데다 말대꾸한 ‘반역죄’로 재판 절차도 없이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됐다. 권력의 수뇌부조차 김 위원장 눈 밖에 나면 한낱 파리 목숨인 북한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들이다.

김 위원장 치하에서 처형된 간부가 벌써 100명 이상에 이른다. 일각에선 36년 만에 열리는 오는 5월의 노동당 7차 대회를 고위직 숙청의 분수령으로 점치지만 김 위원장의 ‘공포통치’가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때일수록 냉철한 정세 판단이 요긴하다. 공포통치가 군부에 대한 불신 때문인지, 내부 권력다툼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 어린 김 위원장의 자격지심 때문인지부터 가려야 정확한 처방을 내릴 수가 있다.

지나치게 잦은 군 수뇌부 교체야말로 김 위원장이 군부를 장악하지 못한 증좌라는 얘기도 그럴듯하나 온건파인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작년 말 석연찮은 교통사고로 죽은 것만 봐도 권력다툼이 한창이란 논리가 더 일리가 있어 보인다. 강경파가 득세해도 그렇지만 “아버지가 못해낸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김 위원장의 소영웅주의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예측하기 힘들다. 최근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된다.

최근 북한 상층부가 동요하고 있고 실제 탈북을 감행하는 경우도 늘어났다는 사실은 공포통치의 종막이 멀지 않았다는 신호탄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고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우리부터 단합해야 한다. 적전분열은 북의 섣부른 도발을 부추길 뿐이다.

4.글로벌 금융불안 맞설 카드 있는가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금리인상 속도를 늦추겠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옐런 의장은 그제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강하게 나타나면 금리를 올리겠지만 경기 흐름이 실망스럽다면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금리 추가 인상을 기정사실화해 왔던 입장에서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 언급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 양상이 미국에 있어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 흐름의 난기류가 중국의 위안화 가치 하락에서 비롯됐지만 미국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연준이 지난해 12월 기준금리를 7년 만에 0.25% 포인트 올리면서 자금이 미국으로 몰리는 과정에서 신흥국의 금융불안을 야기했지만 그 자체가 미국 경제에도 위협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이 기준금리를 또 올린다면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채질하는 셈이다.

아시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내 증시가 설 연휴로 휴장하는 사이 일본 닛케이지수가 폭락한 것이 하나의 사례다. 닛케이평균주가 지수는 지난 9일과 10일 연속 폭락함으로써 장중 한때 1만60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1년 4개월 만의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엔화 가치는 달러당 114.63엔을 기록하는 등 1년새 최고 수준이다.

일본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등 부양카드를 꺼냈지만 주식은 폭락하고 엔화는 강세를 보이는 기묘한 형국이다. 그나마 어제는 일본 증시가 건국기념일 휴장으로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홍콩H지수가 5% 넘게 폭락하고 코스피지수도 3% 가까이 떨어지는 등 아시아 금융시장이 시계 제로의 안갯속이다.

한국도 글로벌 금융 불안을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니다. 중국발 경기부진으로 위기를 맞은 가운데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고 있다. 일본 등 해외경제의 악재도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중이다. 다음주로 예정된 금통위를 앞두고 이주열 한은총재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경제위기 속에서 글로벌 금융시장 변화에 따른 총제적인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신문]

5.북 도발, 테러방지법 통과로 대비를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을 제재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범국민적·초당적 대처가 긴요한 시점이다. 국회도 이런 여론을 좇아 그제 본회의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 규탄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도 영 미덥지 않다. 이후 여야가 딴소리하고 있어서다. 어떻게든 북한의 핵미사일 실전 배치를 막아야 한다는 대의를 인정한다면 정치권도 소이(小異)에 휘둘리지 말고 대동(大同)의 자세를 보여주기를 당부한다.

김정은 정권은 우리 정부나 국제사회가 지원을 하든, 제재를 하든 핵무장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기세다. 북측이 지난날 핵실험을 강행한 후 유엔 안보리가 제재 방안을 조율하는 중인 며칠 전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지 않았나. 개성공단 가동으로 알토란 같은 달러를 챙기면서도 핵·경제 병진노선을 포기하지 않았던 김정은이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 등 독자 제재에 나섰다 해서 태도를 바꿀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예기치 않은 국지적 도발이나 대남 테러로 맞대응할 개연성이 농후하다고 봐야 한다.

이런 까닭에 일차적으로 철저한 군사적 대비 태세가 긴요하다. 북의 도발 기미를 사전에 탐지해 응징할 역량을 충분히 갖춰 놔야 한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건 북측이 테러를 자행할 틈을 주지 않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핵 문제뿐만 아니라 북한 정권의 주민 인권 유린이나 대남 테러에 대해서도 한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야당 일각의 태도는 실망스럽다. 기권한 5명이나 불출석자를 빼면 만장일치에 가까운 243명이 찬성해 ‘북 미사일 규탄 결의안’을 처리해 놓고 갈지자걸음을 하고 있어서다. 어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공위성 아니냐”며 북한을 역성드는가 하면 국민의당은 개성공단 중단에 대해 “자해” 운운하는 논평을 했다가 수정하기도 했다.

이래서야 가뜩이나 생명의 존엄성과 인권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둔감한 김정은 정권의 테러 도발 유혹을 끊어내겠나. 미 상원은 어제 역대 최강의 대북 제재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대로라면 북한과 거래를 하는 제3자도 제재를 할 수 있어 미국 기업도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국회는 ‘맹물 결의안’ 하나 내놓고 할 일을 다했다고 할 건가. 지금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국민의 안전과 북한 주민의 인권이지 북 지도부의 심기가 아니다. 미사일 규탄 결의가 진심이라면 여야는 계류 중인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을 속히 처리해야 할 것이다.

6.北 개성공단 폐쇄, 기업 피해 최소화해야

북측이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조치에 맞서 초강경 맞불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북측은 어제 개성공단의 우리 측 자산을 전면 동결하고, 우리 측 인원을 전원 추방했다. 아울러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한편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해 버렸다. 남북 간 강대강 대결 국면에서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과 근로자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갈 수밖에 없게 됐다. 철수를 준비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듯 빈손으로 쫓겨났으니 걱정이 이만저만 크지 않을 것이다. 물건 및 설비를 반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은 북측의 ‘몽니’에 울분을 삭이기가 쉽지 않다.

입주 기업들이 입게 될 피해와 관련, 정부는 ‘개성공단 기업 종합지원센터’를 설치해 입주 기업들을 지원하고, 11개 부처 차관급 인사들로 합동대책반을 꾸려 구체적인 피해보상 등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는 남북협력기금 대출원리금 상환 유예 및 특별대출, 경협보험금 지급, 운전자금 지원, 신용보증기금 특례보증 등 2013년 4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 당시의 지원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제발 입주 기업인과 근로자들의 입장에서 지원책을 세워달라는 것이다.

입주 기업 대부분은 해외나 국내에 대체공장 없이 개성에만 공장을 둔 영세업체들로 알려졌다. 이들에게 공장 가동 중단과 폐쇄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납기를 못 맞춰 거래처는 모두 끊기고 말 것이다. 당장 인력 구조조정이 시작될 테고, 도산 기업이 속출할 수도 있다. 수천명의 근로자와 그 가족들이 엄동설한에 거리로 나앉을 판이다. 북측의 핵·미사일 개발 중단을 전제로 우리 측이 취한 조치인 만큼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고, 실제 북측이 폐쇄를 선포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2013년 가동 중단 사태와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번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를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행해진 행정적 행위”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판단’ ‘행정적 행위’라는 대목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침해된 기업 활동과 손실에 대해서는 정부가 전적으로 보전해 주는 게 맞는 것이다. 입주를 독려할 때와는 달리 피해 보전은 생색만 낸다면 이후 누가 정부 시책에 호응하겠는가. 물건이나 설비, 자산 등 계량할 수 있는 손실 외에 거래처 단절 등 앞으로 발생할 예상 손실 등도 충실하게 반영해야 할 것이다. 입주기업들이 등을 돌린다면 대북 제재 효과 또한 반감될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는 사실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올인하는 북측을 제재할 수 있는 우리 측 ‘카드’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일견 예상됐던 조치이기도 하다. 북측이 폐쇄 조치로 맞대응함에 따라 이젠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됐다. 우리 내부의 단합된 의지를 보여줘 이번 조치의 효과를 극대화해야만 한다.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남남갈등 양상으로 치달아선 북측만 웃음 짓게 할 뿐이다. 정부·여당은 더 설득하고, 야권은 자제하며, 국민은 인내함으로써 혼연일체가 돼 북측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때이다.

7.비현실적 저출산 정책으로 ‘인구 절벽’ 못 막아

성인 97.5%가 정부의 저출산 정책을 못 미더워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사실상 거의 모든 국민들이 정부 정책이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의미다. 정부가 지난 10여년간 80조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했지만 합계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1.2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국민 불신이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그제 발표한 ‘저출산·고령화 대응 국민 인식 및 욕구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면 정부의 저출산 정책에 대해 응답자의 2.5%만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38.5%는 정부가 ‘예산 등의 한계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35.6%는 ‘일부 영역만 노력해 가시적 효과가 나는 데 역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결과는 그동안 정부가 항목만 늘려 찔끔 도와주는 백화점식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연 8조원 정도의 저출산 예산도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으로 ‘지원 수준 등이 현실과 맞지 않았다’는 응답이 30.9%로 가장 많았다. ‘가짓수는 많지만 내게 해당하는 정책은 없다’는 반응도 25.2%나 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기혼자들은 추가 출산을 하지 않는 이유로 48.8%가 ‘자녀를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들어서’라고 말했다. 뒤집어 보면 양육비 부담만 없으면 아이를 더 낳겠다는 뜻이다. 정부가 보육과 교육,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정책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스웨덴과 프랑스가 본보기다. 스웨덴은 1990년대 이후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보육 인프라 확보에 투자하고 있다. 어린이집, 종일 유치원, 가정 탁아 중 선택해 아이를 맡길 수 있고 급식을 포함해 모든 비용을 전혀 부담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선 임신에서 출산, 교육 전 과정에 현금이 지원된다. 두 나라 모두 출산휴가도 충분히 준다. 그 결과 스웨덴은 출산율이 1998년 1.5명에서 2014년 1.91명으로, 프랑스는 1994년 1.66명에서 2014년 2.08명으로 높아졌다.

정부는 올해를 정점으로 생산 가능 인구가 줄기 시작해 2050년이면 1000만명 이상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는 셈이다. 정부는 부모가 아이를 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워준다는 각오로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인구절벽’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중앙일보]

8.증시·원자재값 급락, 경제 운용의 틀 재점검해야

설 연휴가 지나고 문을 연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몸살을 앓고 있다. 어제 코스피지수는 3% 가까이 하락해 3년8개월여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코스닥도 5% 가까이 떨어졌다. 춘절 연휴를 끝낸 홍콩 항셍지수는 4.92% 급락했고, 일본 닛케이225지수도 이틀간 8% 빠졌다. 유럽과 미국 증시도 설 연휴기간 내내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일본·홍콩·독일 증시는 올 들어서만 이미 20% 이상 하락 중이다.

 추락하는 건 글로벌 금융시장만이 아니다. 실물 경기를 반영하는 원자재값과 각종 지표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난달 말 일시적으로 배럴당 30달러 선을 회복했던 국제유가는 다시 20달러 중반으로 하락했다. 해운 운임을 나타내는 발틱해운지수(BDI)는 사상 처음으로 300 이하로 내려가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절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외환시장의 출렁임도 심상치 않다. 일본 엔화는 마이너스 금리가 발표된 지난달 29일 달러당 121.39엔까지 떨어졌다가 지난 9일 114.21엔으로 급반등했다. 강세를 지속하던 달러가 약세 조짐을 보이고 위안화 가치도 중국 정부의 입맛에 따라 예측 불허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원-달러 환율의 하루 변동 폭은 7원90전으로 지난해 평균보다 1원30전 컸다. 금리·환율·주가·유가 등 경제를 좌우하는 4대 가격 변수가 일제히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이 변수들이 단기간에 진정되거나 예측했던 방향과 속도로 움직여 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경제 운용계획을 총체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내다본 올해 성장률은 3.1%, 물가상승률은 1.4%다. 여기엔 유가가 배럴당 40달러 선을 유지하고 중국 성장률이 6% 중반을 지킬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가정이 다 깨질 수 있는 상황이다. 비상시를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을 포함해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원유와 원자재시장에 이어 홍콩 외환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핫머니에 대한 대비책도 구체적으로 마련할 때가 됐다.

[매일경제]

9.한국 GDP대비 R&D 1위인데 성과 이렇게 미미해서야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은 4.2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위로 집계됐다. 투자총액으로 보면 중국의 5분의 1밖에 안 되지만, 경제 규모 대비 R&D 비중은 2위 이스라엘(4.11%), 3위 일본(3.58%)을 앞질렀다. 삼성전자의 R&D 투자총액는 전 세계 기업 중 2위를 차지했다. 기술 혁신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1980년대(GDP 대비 1%)보다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올해 국가 R&D 예산도 19조1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1% 늘었다.

문제는 R&D 투자 증가가 질적 성과를 견인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과학기술 논문(SCI) 한 편당 피인용 횟수는 세계 32위에 머물렀고, A급 특허 비중은 되레 낮아지는 추세다. 기술 수출액에서 도입액을 뺀 기술무역수지도 2013년 기준 51억9300만달러 적자라고 하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력에 비해 엄청난 R&D 투자를 하고도 효율성이 이렇게 떨어지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R&D 투자가 제품 개발과 제조업에 집중되고 기초연구에는 미미하게 투입되는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서울대 공과대학이 "끈질기고 탁월한 연구로 만루 홈런을 쳐야 하는데 번트(단기 성과와 논문 수 채우기)로 1루에 진출하는 데 만족했다"고 통렬히 반성한 것처럼 양적 성과에 급급해 질적 성과를 등한시하는 것도 문제다. 특히 정부의 R&D 자금이 나눠먹기식으로 방만하게 운영되는데 이를 감시할 수 있는 체제가 미흡했던 것도 연구의 질이 떨어진 원인이다. 

제대로 된 R&D 투자가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은 한미약품이 증명한 바 있다. 지난해 5조원대 신약 기술을 수출한 한미약품은 지난 15년간 R&D에 9000억원을 투자했고 2014년에는 매출의 20%를 R&D에 쏟아부었다. 기초·원천기술에 대한 R&D 투자를 늘리되 정부 R&D 투자의 경우 성과물의 70% 이상이 사업화 예산 부족으로 사장되지 않도록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매일신문]

10.행정력과 기업체 동참 절실한 남성 육아휴직

강은희 여성가족부장관이 올해 신년 업무 보고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가정 양립 문화 조성과 여성고용촉진정책을 중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가족친화인증기업 확대를 통해 아버지가 육아휴직을 편히 쓰도록 하는 기업문화로 바꿔가거나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에 따른 불이익 해소정책 추진 등은 바로 이를 위한 뒷받침이다.

여성기업인 출신인 강 장관의 의지와 정책 방향은 공감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여성 취업 증가와 저출산 고령화 추세를 맞아 여성`고용정책에서 반드시 반영돼야 할 현안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가정 양립을 위한 기업문화 정착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만만찮다. 이는 일`가정 양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육아휴직에 대한 통계를 보면 더욱 그렇다. 특히 대구의 통계치는 더욱 나빠 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육아휴직자 수는 8만7천339명으로 2014년 7만6천833명보다 14% 늘었다.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2015년 4천872명으로 전년 3천421명에 비해 42% 증가했다. 지역별로 보면 정부 정책과 제도의 혜택이 고르지 못함이 자명하다. 8대 광역시 가운데 대구의 지난해 육아휴직자 수는 2천412명으로 서울(4만351명), 부산(3천994명), 대전(3천232명), 인천(2천499명)에 이어 5위였다. 대구의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전년(69명)보다 늘어난 101명으로 서울(2천164명), 대전(201명), 부산(144명), 인천(118명) 뒤를 이었다. 

육아휴직제는 정부가 일`가정 양립을 위해 도입, 시행 중인 제도다. 하지만 통계처럼 지역적인 편차가 많은 게 현실이다. 대구의 이용이 낮은 것은 영세 중소기업이 많고 기업체의 소극적인 참여, 보수적인 분위기 등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역 중소기업 경우, 휴직제로 인한 대체인력 충원의 어려움이 큰 만큼 당국의 정책적인 배려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강 장관이 ‘대체인력 파견 뱅크’ 설립 같은 방안을 제시한 까닭도 여기 있다. 따라서 정부의 일`가정 양립 정책의 고른 수혜를 위한 세심한 정책 마련과 함께 기업체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행정력이 필요하다.

주요 신문칼럼

1.[한국일보]찰스 다윈 탄생…진화론 창사자 말년엔 지렁이도 연구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연구ㆍ저술 환경을 부러워하는 학자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돈 잘 버는 의사였고, 외가는 도자기로 유명한 웨지우드 가문이었다. 그 자신도 재테크의 귀재여서, 철도주식 투자로 ‘종의 기원’ 인세 수입 못지 않은 큰 부를 얻었다. 그의 집중력과 끈기가 ‘병적으로’ 뛰어났다는 말도 있다. 2009년 한 정신의학자는 다윈이 아스퍼거증후군(자폐성 장애)의 전형적인 증상을 지니고 있었다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가 ‘종의 기원’과 ‘비글호 항해기’ 외에도 방대한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데는 그런 저런 배경과 조건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다윈은 심지어 ‘지렁이의 활동을 통한 식물 재배 토양의 형성’이라는 책도 썼다. 그는 말년까지 다른 걱정 없이 오직 연구에 골몰했다. 

‘지렁이…’는 다윈이 숨지기 6개월 전인 1881년 10월 출간한 그의 마지막 책이다. 하버드대 과학사 교수 재닛 브라운(JanetBrowne)은 다윈 평전 ‘나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이경아 옮김, 김영사)에서 다윈이 책 원고를 출판인(존 머리)에게 전하면서 쭈뼛대며 했다는 말을 전한다. “제가 오랫동안 큰 관심을 가지고 매달린 연구 주제입니다. 솔직히 사람들이 이 주제에 관심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절 봐서 출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책 서문에도 그는 “이 책의 주제가 시시해 보일 수도 있다”고 썼다고 한다. 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를 논하던 그가 지렁이라니…, 하던 이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브라운은 “하지만 시시해 보이는 모습 뒤에 숨겨진 원리는 ‘미미한 힘과 그 힘이 축적되어 나온 결과’였다”(책 789쪽)고 썼다. 한마디로 그게 진화였다. 

말년의 그는 몸의 노쇠도 연구를 통해 잊곤 했다고 한다. 아들 레너드 다윈은 그 즈음, 노을 저녁 산책길에 다윈이 했다는 말을 전한다. “만약 다시 한 번 이 세상에 살게 된다면 매일 시 몇 줄을 꼭 읽을 거다. 그리고 ‘정신이 이렇게 썩지 않기를’바라셨다.”

다윈은 1809년 2월 12일 태어나 73년을 살고 1882년 4월 19일 별세했다. 사인은‘협심증으로 인한 실신’이었다. 심장이 힘을 잃어가던 마지막 순간까지 부럽게도, 그의 정신은 살아 있었던 듯하다. 그가 아내(에마 웨지우드)에게 남긴 유언은 “나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소. 당신이 얼마나 훌륭한 아내였는지 기억해요”였다.

2.[매일경제][CEO 심리학]좀처럼 뜻이 안맞는 직원…같이 밥부터 먹어보세요

강연이나 방송에서 가끔 필자가 이런 농담을 한다. "한국 사회에는 4대 인맥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학연, 지연, 혈연…." 여기까지는 청중이 다 아는 내용이다. 그런데 나머지 하나는 무엇일까?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다리시는 분들께 필자가 '흡연'이라고 말씀드리면 좌중은 폭소를 터뜨린다. 그러고는 꽤 많은 분들이 이것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고 뼈 있는 말임을 이내 깨달으신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런 일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항을 위해 열띤 회의를 하고 있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잠시 회의를 중단하고 휴식을 취한다. 당연히 회의 참석자들 중 애연가들께서는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올 것이다. 

그런데 다시 시작된 회의에서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온 사람들이 갑자기 결론에 도달하고 이후에 회의 내용이 급진전된다. 이런 사례들을 많이 보셨을 것이다. 그래서 "정작 회의 중에는 그런 말 없다가 잠시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자기들끼리 중요한 이야기를 다 한다"는 불평이나 푸념을 비흡연자들께서 많이 하신다. 오죽하면 어떤 분들께서는 담배는 피우지 않아도 사람들이 담배 피우러 나갈 때 꼭 따라 나가신다고도 하실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단순히 제한된 흡연 장소로 내몰린 애연가들끼리의 우스운 동질감 때문일까? 당연히 그 때문만은 아니다. 그래서 이 현상을 좀 더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보면 흡연과 같은 건강에 해로운 습관이 아닌 사소해 보이는 행위를 통해 소통과 논의의 진행을 훨씬 더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당연히 이 시대의 리더들께 중요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일을 위한 회의나 논의는 말, 즉 언어를 통해서 이뤄진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언어적 활동이 신체적 활동을 공유하면 더 촉진된다는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같은 동작은 같은 생각과 그 생각이 만들어내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 동작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연구를 네덜란드의 심리학자인 민규안 추(Mingyuan Chu) 교수와 영국 심리학자 소타로 키타(Sotaro Kita) 교수가 최근에 발표했다. 이들은 아주 사소한 동작들을 사람들에게 같이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특정한 방향을 가리키거나 머그컵을 만지작거리는 행동들이다. 이렇게 지극히 사소한 행동들을 같이 하게 되면 사람들 사이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관찰된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대화할 때 그 사람 의견에 동의하면서 점점 같은 결론에 도달할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단순히 "동의합니다" 혹은 "찬성이요"라고 무미건조하게 반응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더한다. 예를 들어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 '응' '오'와 같은 짧은 말들이 동반된다. 전자는 제스처에 해당하고 후자는 감탄사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사소한 동작을 같이 하게 되면 제스처와 감탄사 역시 동질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 쉬워지거나 합의를 하기 용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자, 이제 담배를 피우러 나간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무언가 작당을 해서 같은 결론에 도달하거나 중요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이유가 담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사소한 동작들을 같이 함으로써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제스처와 감탄사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더 쉽고 원만하게 의견을 주고받고 조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굳이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사소한 동작들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가벼운 체조는 굉장히 그나마 상식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에 더 좋은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예를 하나 들자면 밥을 같이 먹는 것이다. 식사라는 절차는 흡연보다도 훨씬 더 많은 동작들을 공유할 수 있게 한다. 같이 밥 먹고 난 뒤 회의가 더 잘되는 이유에 관한 심리학 연구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에 관한 좋은 이유가 하나 추가되는 순간이다.

3.[동아일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나무가 나에게

나무가 나에게 ― 이해인(1945∼ )

아파도
아프다고
소리치지 않고
슬퍼도
슬프다고
눈물 흘리지 않고
그렇게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견디는 그만큼
내가 서 있는 세월이
행복했습니다
내가 힘들면 힘들수록
사람들은 나더러
더 멋지다고
더 아름답다고
말해주네요

하늘을 잘 보려고
땅 깊이 뿌리 내리는
내 침묵의 언어는
너무 순해서
흙이 된 감사입니다
하늘을 사랑해서
사람이 늘 그리운
나의 기도는
너무 순결해서
소금이 된 고독입니다

사람들은 왜 이해인 수녀를 좋아할까. 왜 그의 시를 좋아할까. 간단하다. 맑고 깨끗해서다.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그의 시는 위안을 선사해 준다. 특정 종교를 떠나 기도하는 사람의 언어는, 간절한 사람들의 마음을 도닥여 준다. 힘들고 지칠 때, 무기력하고 답답할 때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힐링’의 키워드가 시대의 이슈가 되기 훨씬 전부터 그의 삶과 시는 사람들에게 힐링의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수도자도 사람이다. 그라고 왜 힘들지 않겠는가.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강한 것만은 아니다. 사람이니까 그도 아프다. ‘나무가 나에게’는 바로 그, 아픔에 대한 시인의 고백을 담고 있다. 많이 아팠지만, 많이 참았다고 말한다. 나무가 울지 않고 깊이 뿌리 내리는 것처럼 시인 역시 그렇게 살아 왔다고 한다. 이때의 뿌리란 인내와 사랑과 감사다. 나아가 그 뿌리는 언어이고 기도이며 시다. 무엇도 쉽게 태어나지는 않는 법. 이제는 이해인 수녀가, 단순하면서도 담백한 그의 시가 왜 좋을 수 있는지를 참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4.[동아일보][광화문에서/이동영]삼성이 신입 공채 없애면

벌써 다음 달이면 대기업 신입사원 공채가 시작된다. 절대 다수는 ‘유능한 당신과 함께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뜻 모를 낙방 통지서를 받아야 한다. 경쟁률은 100 대 1이 넘고 온갖 스펙이 필요하다지만 대기업에 취직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2015년 대기업 대졸 초임 연봉이 4075만 원, 중소기업 초임은 2450만 원이다. 한국 대기업(300인 이상)의 신입사원 연봉이 일본 대기업(1000명 이상)보다 1만 달러(약 1200만 원) 이상 많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고 이보다 훨씬 높은 기업에는 수만에서 10만 명에 이르는 지원자가 몰려든다. 

기업 규모가 아무리 커도 이렇게 많은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살펴 됨됨이와 능력, 잠재력까지 잘 파악하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방대에서 어학실력을 쌓고 해외 봉사도 했고, 기업 실무 경험 쌓은 내용까지 학원 다녀가며 자기소개서에 써 봐도 그저 지방대 혹은 삼류대라는 딱지 때문에 내 지원서가 휴지통으로 직행하는 건 아닌지 의문을 갖는다는 말이다. 용케 면접까지 올라갔지만 서너 개 질문에 답했을 뿐인데 회사 측이 나를 얼마나 잘 평가했을지, 수많은 응시자가 ‘걱정+의심’을 했을 법하다. 물론 이런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기업에서도 나름대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능력보단 학벌이나 집안 배경이 당락을 좌우한다는 대중의 막연한 의심까지 거두진 못한다. 물론 매출 단위가 큰 대기업에서 경험이나 실적 없는 신입을 뽑으려니 학벌과 배경이 생산성으로 연결될 것 같은 편견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부의 재촉에, 의심의 눈초리까지 받는 대기업에선 정작 신입사원을 뽑는 데 부담이 적지 않다. 여러 대기업 임원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대답이었다. “신입 공채요? 경영논리로만 보면 안 뽑는 게 정상이죠. 그런데 왜 뽑냐고요? 허허, 이건 나라가 시키는 복지정책이잖아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17개 대기업 총수에게 “신규 채용에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이윤 추구가 목표인 기업은 어떤 사람을 언제 얼마나 뽑는 게 좋은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냥 놔두면 ‘딱 필요한’ 만큼 채용한 뒤 더 큰 이익을 창출해 나라 전체에 흘려보낼지 모른다.

중소기업에선 능력을 떠나 와주었으면 하는 수준의 청년까지 재수 삼수 하더라도 대기업에만 가려 하기 때문에 언제나 인력난에 허덕인다고 하소연한다. 요약해 보면 청년층은 학벌 말고 능력만으로 대기업 입사가 결정되길 희망한다. 경영 논리로만 보면 대기업에 신입 공채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아니다. 중소기업은 충분한 인력이 공급되길 바란다.

이런 현실이라면 신입 공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삼성을 시작으로 각 대기업은 눈치 보기 사회공헌성 신입 공채를 그만두거나 대폭 축소하면 어떨까. 그 대신 3년 혹은 그 이상 중소기업 근무나 창업 경력을 가진 청년 중 성과를 낸 사람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하루빨리 전환해야 한다. 대기업은 뜻하지 않은 사회공헌 대신 경쟁력을 키워 수익을 높일 수 있고 중소기업은 인력난이란 고질병에서 벗어날 기회를 갖는다. 명문대 출신이나 고스펙 청년층에서 불만이 나올 수 있지만 절대 다수는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대기업이 경력 위주로 채용 방식을 바꾸면 당장은 커다란 사회적 복지가 사라지는 것 같겠지만 장기적으론 학벌이 아니라 능력 위주로 사회가 재편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효과와 함께 가슴 답답해지는 온갖 ‘수저 논란’을 적어도 채용시장에선 듣지 않아도 되지 않겠나.

5.[서울신문][길섶에서] 아버지의 손맛2/서동철 논설위원

경기 파주에 10년 넘게 사는 동안 헤이리마을이 유명세를 타고 명품 아울렛이 잇따라 들어섰다.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음식점이 생겨나면서 호기심도 발동했다. 하지만, 전국 공통의 맛일 뿐 다시 가고 싶은 집은 많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오래된 단골집으로 향하게 마련이다. 문산 너머 막국수집 주인 영감님은 겨울이면 문을 닫아걸고 날이 풀릴 때까지 영업을 하지 않았다. 설 연휴 직전, 지난해 겨울에는 뜻밖에 문을 열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찾아갔지만 다시 휴업이었다.

문을 열었던 지난해 1월에도 막국수 맛은 시원치 않았다. 주방을 들여다보니 영감님 대신 아들만 보여 ‘아버지 손맛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모양이군’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다시 겨울 장사를 접은 것도 ‘무르익지 않은 아들의 솜씨’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설 연휴 뒤끝 문을 열었다기에 찾았지만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오후 6시 30분 영업을 종료한다’는 푯말만 내걸려 있었다. 너무 일찍 문을 닫는 것이 불만스러우면서도 영감님 기력이 달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문득 ‘새해에는 세상의 모든 아들이 분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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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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