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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31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반기문의 대권도전 언급이 남긴 과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내년의 대권도전 의사를 남긴 채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치고 어제 뉴욕으로 귀환했다. 지난 25일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관훈클럽 간담회를 통해 대권 의사를 표시한 데 이어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예방했는가 하면 전직 총리·장관들과 모임을 갖는 등 광폭 행보를 과시한 일정이었다. 그의 유엔 사무총장 임기 중 마지막으로 이뤄진 방한이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 만했다.


이제 관심사는 그의 대권도전 의사가 앞으로 정치권 지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여야의 반응이 엇갈리는 것은 당연하다. 여권에서도 친박계가 그를 대권 후보로 옹립하려는 음직임을 보여주는 반면 비박계는 시큰둥한 편이다. 야권의 분위기는 더하다. “반 사무총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이 시궁창에 버리는 이름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전 원내대표의 언급이 대표적이다.

물론 반 사무총장은 자신의 발언이 잘못 해석됐다며 과잉 추측을 경계하고 떠나갔다. 하지만 발언 수위가 과거와 훨씬 다르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미 그의 존재감은 내년 대선에서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작용하고 있다. 긴급 실시된 일부 여론조사에서도 그가 다른 여야 후보들을 제치고 우월한 차이로 앞서 나가는 모습이다. 정치참여 의사를 부인하는 자체가 하나의 제스처로 비쳐질 뿐이다. 


그가 지금껏 외교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유엔 사무총장에까지 올랐다는 점에서는 가히 독보적 위치라 할 만하다. 그의 다양한 경험을 국정에 적용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에 수긍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 정책도 갈수록 국제 문제에 연동되는 추세에 있다. 정치판에서 이전투구로 지내온 다른 잠재적 후보들보다 사고방식이 유연할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 정치는 단순히 바깥에서 관찰하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다. 더구나 반 사무총장이 유엔 임기를 마치려면 앞으로도 7개월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 반 사무총장이 스스로 운을 뗀 만큼 정치권의 후속 움직임이 가속화되겠지만 아직 본격적인 진용 갖추기는 금물이다. 지금으로서는 그가 앞으로 남은 임기를 제대로 마치도록 도와주는 것이 같은 국민으로서의 도리다.

2. 국책은행 뒷북 군기잡기 나선 감사원

감사원이 금융감독원을 비롯해 국책금융기관들을 대상으로 전방위 특별감사를 실시 중이라고 한다. 지난해 10월 대우조선해양의 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대상으로 한 차례 감사를 진행한 데다 이번에는 기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까지 추가해 최근 다시 감사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관행에 비춰 이례적인 일이다.


조선·해운 등 취약업종의 천문학적 부실에 대한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동시다발적 접근이 자칫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보신주의를 유발해 기업 구조조정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감사의 칼날을 휘두른다면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척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구조조정에 중요한 타이밍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가 기업금융 실태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실제 속내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대상으로 감사에 착수했던 것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부실 관리와 성동조선에 대한 지원 의혹을 가리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다시 비슷한 사안으로 6개월 만에 감사 대상에 올렸으니, 당사자들이 은근히 반발할 만도 하다.


아무리 취지가 정당하다고 해도 당사자들로서는 ‘표적감사’라거나 ‘중복감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눈길을 감사원 자체로 돌려본다면 ‘부실감사’라는 비난 여론을 피하기 어려운 것도 물론이다. 그때마다 감사를 통해 문제점의 징후를 밝혀냈다면 지금의 대량 부실 사태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감사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조선·해운 업종의 부실을 초래한 데 대한 금융감독원과 국책은행들의 책임은 반드시 가려야 한다. 그러나 감사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무려 4조 5000억원의 자금을 수혈하고도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간 STX조선해양이 구조조정 시기를 놓친 것도 정부와 채권단이 보신주의로 일관해 책임을 떠넘긴 결과라는 지적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감사원 감사는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먼저 끄고 난 다음에 실시해도 늦지 않다.

[서울신문]

3. 20대 국회 포퓰리즘 입법 경쟁으로 시작 할 텐가

20대 국회 임기가 어제부터 시작됐다. 성년을 맞이한 20대 국회에 국민이 부여한 책무는 4·13 총선을 통해 확인된 대화와 타협의 정치, 상생과 협치의 정치를 실현하라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이 있는 한 국회가 정치 쟁점에 매몰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19대 국회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여야 3당 지도부는 이 같은 국민의 요구에 부응이라도 하듯 이번 국회에서만큼은 상생의 국회가 되도록 하겠다고 한목소리로 다짐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총선 민의를 받들겠다”며 한껏 몸을 낮췄다. 정 대표는 “ 총선 민의를 받아들여 대화와 타협의 정치, 상생과 협치의 정신으로 일하는 국회, 생산적인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균형 잡힌 당·청 관계를 실천하겠다’는 의지도 거듭 피력했다. 원내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도 민생 정당의 면모를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정부와 여당을 향해 총선 민의인 경제정책 전환을 촉구하면서도 “정치 쟁점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국민과 약속한 민생에 충실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소속 의원들을 독려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도 “우리가 민생에 전념할 수 없도록 하는 방해와 꼼수가 있지만 우리는 민생에 대한 충실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민생을 강조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 역시 국회와 정부가 합심해 민생을 챙기자고 합창했다. 그는 20대 국회에서는 대결과 긴장에서 화해와 평화의 한반도로 전환, 각 분야의 격차해소, 증세 없는 복지 철회와 복지재원 사회적 합의, 안전사회를 위한 제도 정비 및 실천 감시, 부채 증가 속도 감소와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 창출 등을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야 지도부의 각오와 다짐만 보면 상생과 협치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게 한다. 그러나 20대 국회는 시작부터 ‘포퓰리즘’이라는 과거의 타성은 버리지 못했다. 20대 국회 1호 법안 제출을 놓고 여야 의원들이 벌인 경쟁은 좋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포퓰리즘’의 발로인 것만은 분명하다. 1호 법안을 접수시키기 위해 국회 의안과 의원접수센터에서 그제 오전부터 여야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이 정도는 애교로 치부할 수 있지만 야당이 추진할 법안들을 보면 인기영합적인 요소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총선에서 두 야당이 공약한 청년고용할당제는 대기업의 반대가 심하다. 나아가 더민주의 공약인 국민연금의 공적 투자를 확대하기 위한 국민연금법 개정안도 국민연금 부실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법안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여소야대의 힘만 믿고 법안을 처리한다면 협치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깨어질 것이다.


여야 정치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국회 원 구성부터 정해진 시일 내에 완료하는 것이다. 나아가 법안 처리 과정에서 정쟁법안과 민생법안을 분리 대응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쟁을 피할 수 있고, 여야 지도부가 공언한 대로 20대 국회가 민생을 위한 상생과 협치의 국회가 될 수 있다.

4. 반복되는 '안전문 사망', 서울메트로는 뭐했나

지난 주말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안전문) 사망 사고가 또 일어났다. 안전문 정비 작업을 하던 용역업체 직원이 열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어 숨진 것이다. 한 번 일어나는 것도 끔찍한 이런 후진적인 사고가 도대체 왜 잊힐 새도 없이 터지는지 어이가 없다. 답답함을 넘어 이제는 분노가 치민다. 숨진 외주업체 직원은 더군다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겨우 열아홉 살이다. 서울메트로는 똑같은 사고가 얼마나 더 터져야 정신을 차릴 것인지 대답을 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이 사고는 서울메트로의 허술한 관리 체계가 빚은 인재(人災)다. 숨진 정비업체 직원은 안전문 오작동 신고를 받고 혼자 점검에 나섰고, 선로에 내려간 지 2분 만에 변을 당했다. 작업 현장에서 ‘2인 1조’ 안전수칙을 어긴 것이 화근이었다. 용역업체 직원 6명이 49개 역의 안전문 장애 처리를 맡았다는데, 그런 작업 환경이라면 일일이 수칙을 지키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사고 당시 구의역에는 역무원이 3명 있었지만, 숨진 직원이 혼자 작업을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번 사고는 지난해 8월 강남역 사고와 판박이다. 혼자 작업하다 사망한 사고가 지난 4년간 3차례나 반복됐다. 그런데도 서울메트로는 용역업체 탓으로만 책임을 넘기는 분위기다. ‘지하철 역무원이 2인 1조 수리 현장을 반드시 점검한다’는 매뉴얼을 새로 만들었다고 장담했던 게 불과 9개월 전이다. 오죽했으면 “메트로 간부들이 안전문을 직접 수리해 보라”는 원성이 터지겠나. 위험천만한 작업을 싼값의 외주로 떠맡겼다면 후속 관리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공기업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이고 정의다. 정비 인력이 도착했다면 규정대로 역무원은 현장을 확인했어야 했다. 서울메트로는 오는 8월 용역업체를 자회사로 전환해 안전문 관리를 맡기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안전의식을 뿌리째 수술하지 않고서는 근본 해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부 관계 기관들이 합동조사단을 꾸려 정밀조사에 들어갔다. 서울메트로의 부실 관리 책임을 철저히 따져 물어야 한다. 이참에 정부가 할 일이 또 있다. 헐값에 용역을 따내 인건비를 줄이려 온갖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는 공공기관 외주 업체의 실태도 파악할 일이다. 적어도 정부 부처나 공기업에서라도 비인간적 근로 행태를 묵인하는 거래는 없어야 한다.

5. '홍만표 비리'의 본질은 탈세 아닌 전관예우다

검찰이 어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구명 로비 의혹과 관련해 핵심 인물 가운데 한 명인 검사장 출신인 홍만표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가 불거진 지 1개월여 만에 전직 부장판사인 최유정 변호사에 이어 사법 처리되는 두 번째 법조인이 됐다. 검찰이 내놓은 홍 변호사의 혐의는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탈세와 청탁 명목으로 수임료를 챙긴 변호사법 위반이다. 구속 기소된 최 변호사도 현재로선 변호사법 위반뿐이다. 홍 변호사와 최 변호사의 개인 비리에 맞춰진 것이다. 결국 우려했던 대로 검찰이 제 식구 챙기기에 급급해 신뢰 회복이라는 국민의 주문을 저버린 채 꼬리 자르기에 나선 것이나 다름없다.


정운호 게이트의 본질은 탈세도, 변호사법 위반도 아닌 전관예우의 실체 규명이다. 검찰에 따르면 홍 변호사는 지난해 8월 상습 도박 혐의로 수사를 받던 정 대표로부터 검찰 측에 청탁하겠다는 명목으로 3억원을 받았다. 또 정 대표 등 2명으로부터 지하철 매장 임대 사업과 관련해 서울메트로 측에 로비하겠다며 2억원을 챙겼다. 변호사법 위반에 적용된 혐의다. 홍 변호사는 2011년 9월 변호사 개업 이래 최근까지 소득을 줄이거나 신고하지 않는 방법으로 10억여원의 세금을 내지 않아 조세 포탈 혐의도 받고 있다. 홍 변호사의 범죄 내용은 간단 명료하다.


그러나 국민이 속 시원하게 알고 싶은 건 현직 검찰의 전관에 대한 예우이자 대접 의혹이다. 홍 변호사는 개업 이후 4년 동안 형사사건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무려 400건을 수임해 한 해에 100억원 가까운 수입을 올렸다. 정 대표의 상습 도박 사건을 맡아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받아 냈다. 검찰은 구속 기소된 정 대표의 1심 선고 형량이 가볍다는 이유로 항소하고도 오히려 구형량을 3년에서 6개월이나 줄였다. 또 정 대표의 보석 신청에 대해 재판부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무방하다는 ‘적의(適宜)처리’ 의견을 냈다. 전직의 영향력은 현직의 협조 없이는 발휘될 수 없는 탓에 검찰에 정색하고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수사가 홍 변호사의 개인 비리에 그칠 수는 없다. 최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홍 변호사가 미친 전관의 힘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국민은 법의 다른 잣대인 돈과 힘 앞에 좌절할 수밖에 없다. 검찰이 제 살을 도려내듯 전관과 현직의 고리를 끊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국민을 납득시켜야 하는 이유다. 그러지 않으면 외부적 개입, 즉 특별검사제에 의한 수사라는 파국을 피할 수 없다.

[동아일보]

6. 대우조선에 또 낙하산…'정피아' 언제까지 챙길 건가

구조조정 수술대에 오른 대우조선해양이 지난주 금요일 오후 4시 50분 조대환 법무법인 대오 고문 변호사를 사외이사에 선임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이었던 조 변호사에게 조선업이나 구조조정의 전문성은 전혀 없다. 지난해 새누리당 추천으로 세월호특별조사위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다 특조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데 대한 ‘보은 인사’로 보인다. 여론이 악화되자 어제 ‘조 변호사가 일신상의 사유로 스스로 물러나기로 했다’는 발표가 나왔으나 이대로 덮을 수 없는 문제다.


세월호 참사 직후 박 대통령은 관피아 척결을 국민 앞에 다짐한 바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13일 청와대 회동에서 이 약속을 상기시키며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로 경영위기가 초래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낙하산 인사는 없다면서도 검증을 거치므로 정치인이라고 기회를 차단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 관피아는 안 되고 정피아는 된다는 말인지 알 수 없지만 조 변호사도 검증을 거쳤다면 그런 검증은 하나 마나다. 공공기관도 모자라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까지 낙하산을 투하하다간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된 구조조정마저 실패할 공산이 크다.


특히 대우조선은 지난해 말 부채가 18조6000억 원, 부채비율이 무려 7308%인 부실공룡이다. 수년간 5조 원 이상의 적자를 감출 수 있었던 데는 대주주(KDB산업은행)의 전횡을 막지 못한 낙하산 사외이사들 책임도 컸다. 공적자금 투입으로 대우조선이 산업은행 자회사가 된 2000년 이후 사외이사 30명 중 18명(60%)을 정치인과 관료 출신이 차지했다. 2013년 대통령 방미 때 성추행 파문을 일으킨 윤창중 당시 청와대 대변인도 그중 하나다. 공적자금 수혈을 앞둔 대우조선에 또 정피아를 넣는 것은 세금 도적질과 다름이 없다.


올해 말까지 임기가 만료되는 공공기관장 자리가 80개가 넘는다. 공공기관도 모자라 국책은행이 대주주인 기업에도 전문성 없는 정피아를 내려 꽂는다면, 종국에는 인사가 경제까지 망쳤다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7. 박 대통령 순방 과잉보호하다 벌어진 우간다 해프닝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과의 군사협력 중단을 밝혔다는 청와대 발표를 우간다 정부 일각에서 부인했다 다시 인정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우간다 정부 부대변인은 29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 발표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며 “프로파간다(선전)”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우간다 외교장관이 “유엔 제재에 따라 북한과 협력을 중단한다”고 확인하자 부대변인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회견에선 “외교장관 언급이 정부 공식 발표”라고 번복했다.


현지 언론도 북과의 군사협력 중단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하지만 우간다 정부 부대변인의 발언이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한 데 따른 단순 착오인지는 분명치 않다. AK소총부터 미사일까지 온통 북한제 일색이고, 북의 군사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한 우간다가 북과의 오랜 군사 교류와 협력을 하루아침에 단절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오랜 세월 북의 맹방이었던 우간다가 북에 등을 돌리고 우리 손을 잡기로 한 것을 과잉 홍보하려다 박 대통령의 순방 성과를 깎아먹는 ‘진실 게임’ 공방까지 벌어지게 만든 꼴이다. 


북의 전통적인 우방 중 미얀마,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등도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는 김정은의 북에 거리를 두면서 북의 고립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최근 제7차 당 대회가 끝난 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아프리카 적도 기니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쿠바를 각각 방문한 것도 유엔의 대북제재에 따른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막아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마지막 보루 쿠바마저도 미국과 외교관계를 재수립하면서 대북관계의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을 굳이 낮춰볼 이유는 없지만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할 필요도 없다. 박 대통령이 북핵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진 일본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기회를 마다하고 아프리카 3개국과 프랑스 순방에 나선 것이 과연 현명한 판단이었는지 의문을 갖는 국민이 적지 않다.

[매일경제]

8. 한국 경제 악재 몰린 6월 고비 잘 넘겨야 한다

다음달 한국 경제는 나라 안팎에 도사리고 있는 엄청난 불확실성과 마주쳐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무엇보다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대내적으로는 지뢰밭과 같은 부실 기업 구조조정 관련 악재들을 넘어야 한다. 가뜩이나 활력이 떨어진 한국 경제가 이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하면 참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지난 27일 "몇 달 안에 기준금리를 올리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연준 고위 관계자들이 잇달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옐런 의장이 직접 이런 신호를 준 건 처음이다.


미국 실업률은 이미 완전고용 수준인 4.9%로 떨어진 것으로 보이며 성장률도 2분기에는 연율 2.5% 안팎으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로서는 연준이 6월 회의(14~15일) 또는 7월 회의(26~27일)에서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고 그 충격파를 줄일 대책을 세워야 한다.


다음달 연준 금리 결정 회의 직후인 23일에는 영국이 브렉시트 여부를 가를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아직은 근소하게 브렉시트 반대 여론이 우세하지만 판세가 뒤집힐 수도 있다. 설마 했던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금융시장은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다. 2년 전 1.7달러를 웃돌았던 파운드화 가치는 1.2달러까지 추락할 수도 있다. 세계적인 금융 허브인 런던이 움츠러들면 글로벌 자본 흐름도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우리가 이 같은 외부 충격을 흡수하면서 동시에 부실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 금리 인상과 브렉시트 같은 악재들이 잇달아 터져나오면서 국내외 금융시장을 뒤흔들면 구조조정도 그만큼 힘들어진다. 구조조정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재정과 통화 완화도 어려워진다.


그럴수록 재정·통화·금융당국이 가장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하며 시나리오별로 비상대응 계획(컨틴전시 플랜)을 가동해야 할 것이다. 6월은 한국 경제에 안팎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다. 정부와 기업 모두 어느 때보다 비상한 경각심을 갖고 이 고비를 슬기롭게 넘어야 한다.

9. 세 번째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서울메트로 각성해야

지난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 모씨가 전동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숨진 사건은 지난해 강남역 사고와 판박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사람이 사망한 사고는 2013년 1월(성수역), 2015년 8월(강남역)에 이어 세 번째다. 세 번 다 서울메트로가 운행을 담당하는 2호선 역사에서 발생한 것은 관리 체계에 구멍이 뚫리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망한 김씨는 용역업체 직원으로 고장 신고를 받고 출동해 홀로 작업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열차 기관사가 오작동을 발견해 관제사령에게 보고하면 전자운영실에서 용역업체에 알리는 시스템이어서 구의역 직원들은 스크린도어 이상조차 알지 못했다고 한다. 서울메트로 측은 김씨가 어떤 작업을 하러 왔는지, 2인1조의 작업수칙을 지켰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김씨가 전동차 운행을 중단시키지 않고, 혼자 작업을 한 이유는 밝혀야 할 부분이지만 용역업체의 매뉴얼 준수를 관리감독하지 않은 서울메트로 책임도 크다.


이번 사고는 안전매뉴얼을 무시하는 안전불감증과 서울메트로의 안일한 관리가 빚은 인재(人災)다. 서울메트로는 두 차례 사고 후 안전매뉴얼을 만들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또한 이 사건은 안전에 관한 핵심 업무를 용역업체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서울메트로는 비용 절감차원에서 1~4호선 스크린도어 보수 업무를 100% 아웃소싱하고 있다. 용역업체가 제대로 관리하면 문제가 없지만 정비 작업이 해당 역사에 통보도 되지 않고 진행되는 식이었으니 사고는 예견된 것이었다. 열악한 용역업체들이 비전문적 인력을 현장에 투입하다 보니 안전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김씨도 겨우 19세였다. 


서민의 발이라는 지하철 운영업체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안전관리를 외부에 맡기는 것은 무책임하다. 직영으로 스크린도어를 관리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는 오작동률이 훨씬 낮다. 서울메트로는 사고 발생 후 "오는 8월 스크린도어 유지관리를 맡을 자회사를 설립하겠다"며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서울메트로는 세 차례 판박이 사고에 대해 대오각성하고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부산일보]

10. 불복종 경고등 울린 신공항 용역, 공정성 확보가 관건

동남권 신공항 사전 타당성 용역 결과 발표가 다음 달로 다가왔지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입지 선정을 위한 평가 항목과 항목별 가중치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깜깜이 용역'이 막판까지 이어진 탓이다. 이러니 객관성과 합리성을 상실한 용역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다 전문가 자문회의와 대구·경북지역에서 감지된 최근의 이상기류는 자칫 동남권 신공항이 추락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고개를 들게 한다.


부산에서 '용역 불복 불가피론'이 급속하게 확산하는 것은 '깜깜이 용역'이 부른 당연한 결말이다. 가덕도신공항추진 범시민운동본부는 내달 2일 서면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어 신공항의 안전을 담보할 최소한의 평가 기준 마련을 정부에 요구하기로 했다. 이어 9일까지 정부의 명확한 입장 표명이 없으면 용역 결과 불복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겠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지역 국회의원들도 내달 8일 부산역광장에서 '가덕신공항 유치 비상대책본부'를 발족해 힘을 보태기로 했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키운 것은 용역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정부의 얕은꾀에서 나온 '깜깜이 용역'이 화근이 아닐 수 없다. 용역을 맡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은 최근의 전문가 자문회의에서도 평가 기준 가중치를 끝내 밝히지 않았다. 더욱이 2002년 김해공항 민항기 돗대산 충돌사고를 겪은 부산은 항공기 안전을 담보할 최소한의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대구·경북 지역에서 안전을 도외시한 '항공학적 검토'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것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부산을 비롯한 대구·경북·경남·울산의 5개 시·도가 지난해에 모여 용역 결과에 승복하기로 했지만 합리성과 객관성을 잃은 용역까지 승복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정부는 이참에 분명히 알아야 한다. 신공항 관련 의사결정 라인에 TK 인사들이 포진해 있어 공정성이 결여된 맞춤형 용역이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부산의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용역 기준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은 용역은 저 스스로의 가치를 이미 부정한 것과 마찬가지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윤고은의 참새방앗간> 사라지지 않는 연예계 음모론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어."(네이버 아이디 'joy1****')


"이걸 실수라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나?" (네이버 아이디 'phdr****')


지난 27일 KBS 2TV 가요 프로그램 '뮤직뱅크'에서 집계 오류로 1~2위 가수가 뒤바뀌는 일이 발생하자, 대다수 누리꾼은 "딱 걸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팬들이 '조작 의혹'을 재기한 지 사흘 뒤인 30일 KBS가 "담당자 실수"라며 이를 공식 사과했지만 논란과 의혹의 시선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번 사고로 두 걸그룹 트와이스와 AOA의 희비가 엇갈린 것을 중심으로, 조작 논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존치 여부 등이 도마 위에 올랐고, 많은 이야기와 '설'들이 파생됐다.


방송사의 가요 프로그램 순위, 각종 음원 사이트의 음원 판매 순위 등을 둘러싼 조작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의혹의 시선은 늘 제기됐지만, 관계자들은 언제나 "조작은 있을 수 없다"며 집계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렇게 한 번씩 '사고'가 터지면 누리꾼들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인다. 

마침(?) 현재 방송되고 있는 SBS TV 수목극 '딴따라'에서도 이같은 조작 이야기가 다뤄졌다. 


드라마는 신인 밴드를 키워나가는 과정의 힘겨움을 중심에 놓았지만, 그 과정에서 음원 순위 조작이 가요계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고 가수를 키우기 위해 무대 뒤에서는 온갖 더러운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있음을 조명한다. 


이같은 묘사가 단순히 드라마 속 이야기에 머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연예계를 둘러싼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방송사들의 연말 연기대상·연예대상 시상식은 물론이고, 대종상 등 각종 영화상 시상 결과도 심심치 않게 공정성 시비에 오른다. 


누가 봐도 대상감이 아닌 사람이 대상을 받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벌어지면 각종 의혹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특정 스타의 활동에 권력자들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해석'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의혹은 음모론으로 확대 증폭된다. 

특급 스타들의 열애설, 결혼설을 비롯해 마약사건, 도박사건 등이 터지는 '타이밍'을 둘러싸고 종종 음모론이 제기된다. 


권력을 가진 자와 기관이 숨기고 싶거나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 일을 덮기 위해 연예계 뉴스를 동원한다는 루머다.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이를 스토리에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지난해 배용준의 결혼 발표, 황정음-김용준의 결별 기사 등이 나왔을 때도 음모론이 나왔고, 이같은 현상을 일부 언론은 보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사에는 "이번에는 ○○ 사건을 덮으려는 것"이라는 댓글이 자동적으로 달린다.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이 순위집계 오류를 인정한 것은 이례적인 일임에도 '뮤직뱅크'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게 오히려 그간의 의혹을 더욱 부채질하는 양상이다. 


"대중들이 난리 안 쳤으면 그냥 은근슬쩍 넘어갔겠지"(lima****), "이번엔 도가 심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거다."('ghm3****') 등의 댓글이 신나게 달리고 있다. 


귀를 잡아당기는 음모론은 언제나 흥미롭고 짜릿하다. 그래서 사라지지 않는다. 

2. [뉴시스][정문재의 크로스로드]철도 재벌의 성과급

혁신은 파괴적이다. 관행과 통념을 깨트린다. 거센 반발과 저항을 유발한다. 고립을 자초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신념과 용기는 필수다. 


영국의 철도 재벌 토마스 브래시(Thomas Brassey)도 그랬다. 브래시는 19세기로는 파격적인 인사관리 정책을 도입했다. 그는 자신의 인사관리가 업종의 특성을 최대한 반영한 것이라고 믿었다. 


브래시는 187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세계 철도의 1/20을 건설했다. 영국은 물론 프랑스,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등 세계 곳곳에서 철도를 놓았다. 그는 철도뿐 아니라 상하수도, 항만 시설 등을 건설했다. 런던의 상하수도 시스템도 그의 작품이다. 


건설업이나 엔지니어링 사업의 수익성은 공기(工期)가 결정한다. 공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적자를 볼 가능성도 높아진다. 브래시는 공기 단축에 초점을 맞춰 성과 보상 제도를 운영했다. 


그는 철도 노동자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제공했다. 임금은 물론 숙식도 제공했다. 건설 현장에서는 도서관까지 운영했다. 임금으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허다한 상황이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브래시는 현장 책임자에게 전권을 부여했다. 권한을 위임하되 성과에 따라 보상을 달리했다. 공기를 단축하면 이익의 일부를 보너스로 지급했다. 물론 관리 부실로 공기가 늘어나면 벌금을 물렸다. 단, 예기치 못한 문제로 추가 비용이 발생하면 현장 감독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았다. 


차등 임금도 도입했다. 브래시는 생산성을 바탕으로 임금을 결정했다. 쿨리(인도 또는 중국 출신의 막노동꾼)보다는 영국인 숙련 노동자들에게 보다 많은 임금을 지급했다. 그는 "성과를 반영할 경우 영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히려 싸다"고 강조했다.


브래시는 다른 영국 기업인들로부터 정신병자 취급을 당했다. 노동자나 인사 관리에 대한 생각이 현격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유럽은 노동자 착취를 당연시했다. 


임금은 겨우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수준에 그쳤다. 노동자들은 게으르기 때문에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주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1851년 호황 때도 영국 노동자 가구의 52%는 절대 빈곤에 허덕였다. 


학자들조차 저임금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인구론의 저자 맬서스(Malthus)는 '임금기금설(wage fund theory)'을 들고나왔다. 사회 전체로 노동자들에게 지급할 수 있는 임금 총액은 고정됐다는 주장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입어 착취적 제도는 하나 둘씩 철폐됐다. 현물임금제(Truck System)도 사라졌고, 노동자가 고용계약을 어기면 감옥에 처넣는 주종법(Master and Servant Act)도 폐지됐다. 


고용 계약도 보다 탄력적으로 변화됐다. 임금지급 형태도 주급, 일급, 시간급으로 다변화되는 한편 성과급제도 확산됐다. 


카를 마르크스조차 성과급을 대세로 인정할 정도였다. 마르크스는 성과급은 자본주의에서 가장 적절한 임금방식이라고 평가했다. 마르크스는 성과급이 개인의 역량이나 개성에 더 큰 여지를 부여함으로써 노동자의 자유와 독립성을 강화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경쟁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을 놓고 노사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성과연봉제 도입은 불가피한 측면을 갖고 있다. 정년이 연장된 상황에서 호봉제 임금체계는 신규 고용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으로 지적된다. 


노동자의 생산성은 종형 곡선(bell curve)과 비슷하다. 재직 기간이 늘어날수록 생산성도 높아지다가 일정 시점부터는 오히려 떨어지기 시작한다. 반면 호봉제 임금은 재직 기간이 늘어날수록 증가하는 우상향(右上向) 직선 형태를 취한다. 


재직 기간이 일정 시점을 넘어서면 호봉제 임금체계는 성과와 보상간의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생산에 대한 기여도는 낮은 데도 그 이상의 보상을 얻게 된다. 이런 불균형은 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최대한 확보할 필요가 있다. 도입을 서두르다가 적절한 절차를 무시하면 성과연봉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를 압박하는 것 못지않게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노력이 아쉽다는 느낌이 든다. 

3. [동아일보][광화문에서/이동영]딸아, 이민 가거라

강남 화장실 살인사건 이후 많은 여성이 불안감과 분노에 사로잡혔다. 여성혐오 때문에 저지른 범죄라고 판단한 이유도 있겠지만 여성이 범죄를 유발한다고 억지 부리는 못난 남성이 적지 않게 나타났던 탓이다. 이 사회에 여성혐오 생각에 빠진 못난이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여성은 ‘언제 어디서든 당할 수 있다’는 범죄의 일상화가 두려운 판인데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모르는 여성혐오까지 신경 쓰며 살아야 할 판이다.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직장과 학교에서 생활한 뒤 병원을 찾거나 친구와 노래방에서 놀다가 귀가하는 하루 동안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은 어디인가. 아침마다 아이와 남편을 문 밖에서 배웅하고 가볍게 뒷산에 오르거나 마트에서 장을 보는 평범한 주부의 일상 역시 틈새를 노린 강력 범죄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극히 일부라곤 하지만 교사와 의사처럼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 그 신뢰를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평범한 뉴스가 되어 버렸다. 지하철 노래방 뒷산 마트는 흉악범이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는 주요 장소다. 배웅할 때 집에 숨어들어 주부를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완벽한 예방은 불가능하겠지만 지금처럼 물러터진 대응은 불안감을 더 키운다. 2014년 범죄 통계를 보면 강간살인, 강간상해, 친족 관계에 의한 강간, 장애인강간 등 온갖 강간은 5078건 발생해 5051건이 해결됐다. 하지만 경찰이 사건을 처리하면서 구속 기소 의견을 낸 송치 건수는 1113건에 불과했다. 누명 쓴 사례도 있겠고 구속이 능사도 아니다. 하지만 ‘혐의 없음’(1554건)이 구속 의견보다 많다는 통계를 보니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하며 수사하는 건지 의문이다. 수치심 혹은 특별한 관계 때문에 피해 여성은 제대로 진술하지 못하고, ‘동의했다’는 식의 반박에다 결정적 물증이 없어 경찰이 쉽게 손을 놓은 건 아닌지 다시 살펴봤으면 한다.


범죄 불안감만 이 땅의 딸들을 휘감고 있는 게 아니다.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으니 좀 나아지리라 믿었던 ‘유리천장’은 ‘방탄유리’가 돼 버리는 중이다. 현 정부 장관 중에선 여성가족부 강은희 장관이 유일한 여성이다. 다른 부처 모든 장관은 그 분야에서 어떤 여성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가 보다. 유리천장 지수가 4년 연속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꼴찌라고 발표되는데도 정부가 “능력 위주의 양성평등이 실현되는 중”이라고 반박을 왜 못 하는지 모르겠다.


동아일보는 국내 20대 그룹의 여성 임원 비율이 10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좋은 뉴스지만 두 배로 늘어 2.2%에 불과하다. 삼성은 2000명 중 58명(2.9%), 현대차그룹은 10명으로 0.9%다. 2014년 기준 페이스북은 여성 임원 비중이 25%, 트위터는 22%, 애플은 18%라고 한다.


그나마 낫다는 대기업이 이 정도이니 다른 규모의 기업이나 조직은 말할 것도 없을 듯하다. 여성이 육아를 전담해 회사에 소홀한 게 문제라면 남성도 아이를 키우게 하면 될 일이다. 1년 육아휴직 기간을 남편과 아내가 반씩 쓰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 있다.


범죄 불안감에 더해 바늘구멍 같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니 딸도 아빠도 속 뒤집힐 일이다. 오죽하면 “딸에게 ‘아예 이민 가 살아라’라고 말하겠다”는 아빠도 여럿 봤다. 이런저런 사정을 봤을 때 실행이 어려워 보이는 사람도 푸념하듯 이런 말을 던졌다. 그때마다 “그런 말 말아요. 좋아지고 있잖아요. 우리 딸들이 컸을 때면 살기 괜찮을 거예요”라고 말해줬어야 했는데 고개만 끄덕이고 입은 떼질 못했다.

4. [동아일보][이라의 한국 블로그]언 발에 짧은치마? 아직도 못말려

오후에 행사가 있어서 1시부터 나갈 준비를 한다. 옷장을 연다. 원피스에, 스커트에, 바지와 재킷…. 걸려 있는 옷은 많은데 막상 입고 나가려면 맞는 옷이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맞지 않는 옷이 점점 많아진다. 입고 싶은 옷과 숨기고 싶은 신체 부위가 여간해서는 서로 맞지 않는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한의사 한 분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이어트를 하면 빠져야 할 부위의 살이 아닌 다른 곳이 빠지고, 체중이 늘 때는 배부터 나온다”라고 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젊을 때는 한두 주쯤 오이와 토마토만 먹어가면서 거의 굶어 살을 빼면 다시 맵시 나는 옷들을 입을 수 있었는데, 여자들이 소위 ‘39세’라고 대답하는 시기가 되면서부터는 다이어트로 날씬하게 되는 게 쉽지 않고, 또 예쁘게 살이 빠지지도 않는다.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고 요가도 해본다. 매일같이 체중계 눈금을 확인해 봐도 눈금은 여전히 아래쪽으로는 움직일 생각이 없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운동도 점점 띄엄띄엄 하게 되고, 산책을 가야 할 시간에는 책상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본다. 


급기야 남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건다. 


“운동을 조금씩만 하고, 요가는 다시 하고, 군것질은 그만하자.”


“당신이 조금 더 살이 쪄도, 아니 아주 많이 쪄서 M타이어 광고에 나오는 ‘하얀 통통맨’이 되어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까지라도 똑같을 거야. 그런데 당신이 밖에 나갈 때 예쁜 옷 입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만만하게 외출할 수 있으면 좋겠어.” 


반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지나치게 친절한 권유다. 회사에서는 복잡한 일을 하는 것 같은데, 집에서는 굉장히 단순한 사람이다. 


날씬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여인네들의 열정은 한국이나 몽골이나 다 마찬가지다. 몽골에선 한국에서 봄꽃이 한창 피는 5월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도 하고 눈이 몇 차례씩 내리기도 한다. 춥고 바람이 불어도 일단 영하 30도를 오르락내리락하던 겨울이 조금이라도 고개를 숙이는 4, 5월이 되면 겨우내 억눌러 왔던 ‘스타일’이 중요해진다. 얇은 옷으로 추워서 죽더라도, 멋지게 입고 나가서 예쁜 ‘아가씨’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추위는 그 다음 생각할 문제다. 


어린 시절 같이 살던 할머니께서 “미녀는 (추운 날씨에도 얇고 짧은 옷을 입고 다니고 싶어서) 봄가을에 자주 얼어 죽는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면서 “옷을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라고 자주 충고하셨다. 그 말을 수천 번 듣고 자랐지만, 추운 봄가을 날씨에도 아름다움을 위해 밖에서 하루 종일 덜덜 떨며 동상이 걸리더라도 짧은 치마에 얇은 옷으로 치장하고 다니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면 모든 학생은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에 만나는 날인지라 교복을 특별히 더 신경 써서 예쁘게 입고 간다. 9월이면 추위가 시작돼 아침에 서리가 하얗게 내릴 때라 얇은 스타킹에 원피스 교복 하나만 입고 나가기는 꽤 추운 날씨다. 그래도 예쁘게 보이려면 그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겨울에 가장 고생한 것이 나의 귀다. 지금도 이해가 안 가지만, 옛날 몽골에서는 보온 귀마개라는 것이 없었다. 만들기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닐 테고, 지금은 있어도 옛날에는 없었던 물건이다. 털모자라도 쓰면 귀가 시리지는 않았을 텐데, 여학생들은 당시 앞머리를 위로 올려 세우는 헤어스타일이 유행이어서 머리가 눌릴까 봐 모자를 안 쓰고 손으로 귀를 감싸고 종종걸음으로 다녀야 했다. 


겨울에도 두껍고 따뜻한 털신보다는 얇은 가죽신을 신고 나간다. 학교가 끝나고 버스를 기다리는 10분 남짓한 시간에 발가락이 얼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아프다가 나중에는 점점 느낌이 없어지고 걸음걸이마저 이상해질 정도다. 집에 들어가면 발이 얼어 잔뜩 부어 있기 일쑤다. 


할머니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야단을 치시곤 했지만 지금은 그리운 기억들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오래된 옛날이야기를 한다고 신기하게 쳐다볼 만한 얘기다. 그렇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 온 아름다움을 향한 동경을 확인할 수 있는 기억이기도 하다.

5. [동아일보][@뉴스룸/김유영]산부인과라는 불편한 이름

중학생인 지인의 딸이 최근 동네 산부인과에 갔다. 하굣길이라 교복을 입고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흘끔거리는 시선을 줄곧 받아야 했다. 그는 “왜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산부인과는 결혼한 어른이나 가는 곳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럴 법하다.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출산할 ‘산(産)’과 결혼한 여성인 ‘부인(婦人)’이 합쳐진 산부인과는 ‘임신, 해산, 신생아, 부인병 따위를 다루는 의학 분야’로 정의되어 있었다. 


그런데 여성 질병은 부인만 걸리는 걸까. 여성들이 대체로 출산 관련 문제로 산부인과를 찾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산부인과에는 유방 관련 질병이나 생리불순, 여성 암 등 출산과 직접 관련이 없는 진료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엄밀히 말해 산부인과는 부인이 아니어도 가는 곳이고 가야 하는 곳이다. 어쩔 수 없이 혹은 어쩌다 보니 아이를 낳지 않거나(못하거나) 결혼을 안한(못한) 여성도 많다. 여자 청소년도 산부인과에 가야 할 일이 제법 생겼다. 


하지만 산부인과의 ‘심리적 문턱’이 높다 보니 여성이 산부인과에 가는 건 내과나 이비인후과, 정형외과에 갈 때와 좀 다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 미혼 여성의 82.4%는 ‘산부인과 방문이 꺼려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변엔 마흔이 되도록 산부인과의 문턱을 밟지 않은 미혼 여성도 꽤 있다.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청소년의 62.3%는 ‘산부인과에 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상 징후가 있어도 심각한 통증이 없다면 그냥 참거나 인터넷을 찾아본다는 사람도 상당수였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 특유의 보수성과 이중성의 영향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산부인과에 가면 성관계나 임신 낙태 등으로 온 것으로 여기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산부인과라는 고정관념이 주는 리스크는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자궁경부암만 하더라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30대 여성 암환자 7명 중 1명꼴로 걸리는 병이 됐다. 이 병은 예방할 수도 있다. 암이 되기 이전, 즉 전암(前癌) 단계가 7∼20년으로 조기에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병에 대비해 검진을 꼬박꼬박 받아야 하는 이유다. 


한때 대한산부인과학회를 중심으로 산부인과를 여성의학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내과 등 다른 과에서 진료과목이 겹치거나 여성 환자를 뺏길 걸 우려해 반대하는 데다 의료법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산부인과는 일제강점기 때 이름으로, 그대로 쓰기에는 세태가 많이 변했다. 지금은 국가가 만 11∼12세 여아들에게 자궁경부암 백신을 무료로 접종하는 시대다. 또 올해부터는 자궁경부암 무료 검진 대상 연령이 만 30세 이상에서 만 20세 이상으로 확대됐다. 부인만 산부인과에 간다고 하기엔 다양해진 삶의 형태만큼 방문자 층위도 다양해진 것은 물론이다. ‘부인이 아닌 여성’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진료받을 권리를 이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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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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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30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20대 국회 시작부터 싸움판 걱정된다

드디어 20대 국회가 오늘 4년 임기를 시작한다. 국민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지난 19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식물국회’로 지탄을 받았다. 때문에 20대 국회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협치로 민생을 살리라”는 총선 민심을 받들어 국민의 삶을 챙기는 생산적인 국회, 상생으로 희망을 주는 정치를 보여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정쟁과 당리당략의 구태에 젖은 정치판이 어디 쉽게 변하겠느냐는 불신이 여전한 것 또한 사실이다. 


조짐은 불길한 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이 굳게 약속했던 ‘협치’ 분위기가 자칫 물 건너 갈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된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에 이은 박 대통령의 ‘상시 청문회’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로 정국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20대 국회 벽두부터 국회법 재의결이라는 쟁점을 놓고 청와대와 야당, 또는 여야 간에 치열한 대립과 공방을 벌일 공산이 크다. 게다가 아직 원 구성 협상도 지지부진해 개원 일정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19대에 이어 20대 국회도 식물국회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행히 긍정적 신호가 없지는 않다. 야당이 정부의 거부권 행사에 강력 반발하면서도 민생·경제 문제에는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분리대응 기조를 명확히 한 것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상시 청문회법 문제에 매몰돼 산적한 민생 현안을 뒤로 미룰 수는 없다”며 “원 구성 협상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국회법 재의를 추진하겠지만 대화를 거부하고 국회를 멈추는 등의 무리수는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옳은 선택으로, 반가운 일이다.


지금 나라 안팎의 상황은 엄중하다. 경제는 어렵고 민초들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당장 기업 구조조정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청년실업, 노동 및 공공부문 개혁, 가계부채, 저성장 장기화 등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어 민생을 챙기는 일이 시급하다. 정치 공방으로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20대 국회가 모쪼록 조속히 원 구성을 마무리하고 민생에 힘 쏟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20대 들어서도 협치는커녕 다투는 모습부터 보인다면 국민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2. 무분별 연예인 홍보사 손볼 때가 됐다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의 연예인 홍보대사 기용에 대해 제동을 걸기로 했다. 홍보대사 위촉이 남발되는 바람에 예산 낭비가 심한 데다 기관장들이 외부 행사를 개최하면서 해당 연예인들을 자신의 들러리로 내세우는 등 꼴불견 추태가 적지 않다는 여론에 따른 조치다. 홍보대사를 내세웠다고 해서 정책 추진에 도움이 된다고도 보기 어렵다. 비록 늦어지긴 했지만 백번 잘한 결정이다. 


모델료부터가 문제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중앙정부와 공공기관이 연예인 홍보대사에 지급한 모델료가 70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금액의 많고 적고를 떠나 모두 예산에서 집행된다는 점에서 국민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모델료만이 아니다. 해당 연예인들이 영화에 출연하거나 공연을 할 때면 애꿎은 산하기관들을 움직여 입장권을 팔아주기도 한다. 민폐가 따로 없다.


부처별로 홍보대사를 기용하는 자체가 하나의 무분별한 경쟁이 돼버렸다. 국민통합 홍보대사에서부터 해외감염병예방 홍보대사에 심지어 복권위원회 홍보대사까지 위촉돼 있다. 지자체별로도 갖은 명목의 홍보대사가 즐비하다. 물론 어떤 분야에서는 홍보대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홍보대사로 기용해 세금을 축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해당 연예인들의 자질도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 멀쩡한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에 음주운전과 성폭행 혐의로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이 연예인의 세계다. 최소한의 지적 수준조차 모자란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놓고 ‘긴또깡’이라고 답변했대서가 아니라 어차피 틀린 답변이라 해도 ‘김두한’이라고 답변하는 게 상식적이다. 연예인들을 대통령이 참석하는 정부 행사에 내세울 때도 최소한의 검증이 필요한 이유다.


정부 부처는 민간기업과는 다르다. 민간기업 모델료도 원가에 포함돼 소비자에게 전가되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업들이 판단할 문제다. 꼭 홍보대사를 기용해야 한다면 모델료와 선발 기준을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 홍보대사 기용 효과에 대해서도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각 부처의 안일한 업무수행을 개혁해가는 첫걸음이다.

[서울신문]

3. 반기문, 정치보다는 유엔 사무총장 역할 다해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 중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반 총장은 지난 26일 전날 밤 제주에서의 대선 출마 시사 발언에 대해 “확대 해석됐다”며 수위 조절에 나서는 듯했다. 그러나 곧바로 김종필 전 총리를 비공개로 만나면서 정치 행보의 보폭을 더 넓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 연말 종료되는 사무총장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 국내 정치의 한복판에 서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반 총장은 그제 김 전 총리의 자택을 찾아 배석자 없이 30여분간 대화했다. 김 전 총리가 얼마 전 한 행사에서 “계기가 되면 반 총장을 만나 보고 싶다”고 한 데 대한 화답의 성격이라고 한다. 그러나 김 전 총리는 우리 정치사에서 충청권의 최대주주였던 인물이다. 누구든 ‘대망론’을 펼치기 위해선 그의 ‘승인’을 얻어야 할 만큼 큰 힘을 발휘했다. 반 총장이 대권 의지를 밝힌 데 이어 김 전 총리를 찾은 것은 ‘충청 대망론’에 불을 지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 전 총리도 20대 총선 이후 ‘충청 역할론’을 강조해 온 터라 이런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반 총장은 어제도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정치색 짙은 행보를 이어 갔다. 서애 류성룡 선생의 고택에서 김관용 경북지사,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 의장, 권영세 안동시장 등과 오찬을 함께 했다. 서애 선생은 임진왜란 전 이순신·권율 장군을 발탁하고 명나라 원군을 끌어들여 전쟁 극복에 헌신한 명재상이다. 반 총장이 잠재적 대권 후보로서 안보와 외교에 탁월했던 서애의 리더십을 자신의 이미지와 연결해 보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반 총장이 대권에 뜻을 두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 외교적 전문성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갖춘 지도자는 국가에 큰 강점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반 총장이 지금 국내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것은 누가 봐도 이른 감이 있다. 그는 아직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7개월의 임기를 남겨 두고 있다. 그동안 추진했던 사업들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등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시기다. 그는 얼마 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로부터 ‘역대 최악의 사무총장’이란 평가를 받았다. 평가의 공정성에 의심이 가긴 하지만, 정치에 성급히 발을 들여 총장의 역할에 소홀히 할 경우 이런 기사가 이어질 수도 있다. 한국인 사무총장이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을 우리 국민은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반 총장 자신과 국가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당분간 정치에 거리를 두었으면 한다.

4. 바빠서 조사 못 받겠다는 뻔뻔한 옥시 전 대표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핵심 책임자로 지목된 거라브 제인 전 옥시 대표가 검찰의 소환에 불응했다고 한다. 그는 2010년 5월부터 2년 동안 옥시 대표를 지내면서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 증거를 은폐하는 작업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구속된 서울대 교수에게 옥시에 유리한 실험 결과를 청탁하면서 거액을 건넨 최종 책임도 그에게 있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제인 전 대표는 현재 옥시의 영국 본사인 레킷벤키저의 아시아태평양 본부장으로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의 출석 요구에 변호인으로 하여금 거부 의사를 전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기업 윤리의 가장 황폐한 밑바닥을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음에 분노 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통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은 소환에 응하기 어렵다면서 제인 전 대표가 내세운 이유들이다. 그는 “업무상 바빠 한국 검찰의 조사에 응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제기되고 있는 의혹에는 “모두 소명할 수 있고 잘못한 게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대표가 되기 전인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옥시의 마케팅 책임자를 지내면서 문제 제품의 허위 광고와 판매에도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지난 4월 기준으로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사람은 1848명으로 사망자만 266명에 이른다. 피해가 엄청나지만 이런 수치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실제로 서울대 보건대학원은 모두 1100만명이 유해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것으로 분석했다. 옥시는 전체 제품의 70%를 생산했다. 그런데 어떻게 “바빠서…”라는 말이 나오는가.


제인 전 대표는 변호사에게 “아타 샤프달 대표의 사과 기자회견이나 존 리 전 대표의 검찰 소환 과정에서 피해자들과 물리적 충돌이 생기는 모습을 보니 겁나고 두렵다”는 말도 전했다고 한다.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소환에 불응하는 것은 잠시 고통을 모면하고자 평생토록 고통받는 길을 선택하는 것과 다름없다. 희생자와 그 가족에게 조금이라고 속죄할 마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지금 그의 행동은 뻔뻔한 행동을 저질러 놓고 “법대로 하자”고 외치는 파렴치범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렇게 나온다면 검찰도 어느 때보다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특별수사팀은 검찰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그를 소환해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5. 아찔한 사고에도 勞使 탓하는 대한항공 불안해 타겠나

27일 일본 하네다공항을 이륙하려던 대한항공 항공기의 왼쪽 엔진에서 불이 나 승객과 승무원 319명이 비상 탈출한 사고는 떠올릴수록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항공기는 활주로를 600m 정도 달리면서 속도를 올리던 중 엔진에서 불꽃과 연기가 나는 것을 발견해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700m를 더 달린 뒤 가까스로 멈췄다. 만약 항공기가 이륙결정 속도를 넘어섰다면 정지하려다 활주로를 이탈하는 대형 사고로 번질 뻔했다. 이륙한 뒤 불이 났다면 끔찍한 참사로 이어졌을지 모른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초기 조사 결과 문제의 엔진 뒤에서 회전 날개 수십 개가 파손된 것을 확인했다. 엔진에서 조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새가 엔진에 빨려 들어가는 ‘버드 스트라이크’ 가능성은 낮다고 한다. 사고 원인은 정비 부실, 엔진 결함 등 여러 가지로 추측된다. 정확한 원인은 비행기록장치(블랙박스) 해독과 사고 엔진을 분석한 뒤에나 나올 것이다.


최근 2년간 대한항공 항공기는 엔진 결함으로 5차례나 이륙 중단 또는 불시착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는 대한항공 정비예산이 2012년 9427억 원에서 2014년 8334억 원으로 1100억 원 가까이 줄었고 운항 횟수당 정비 시간도 같은 기간 8.3% 감소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항공은 이번 사고가 사내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인식해야 한다. 조종사 노조는 2월부터 쟁의에 돌입해 준법투쟁을 벌이고 있다. 노조 홈페이지에는 ‘하늘이 내리는 마지막 경고’라고 회사를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사고를 빌미로 회사에 손가락질하는 모습이 걱정스럽다. 회사는 원인 규명이 먼저라는 말뿐이다.


마침 사고가 난 27일은 일본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폐막한 날이다. 주요국 정상들 앞에서 대형 참사라도 났다면 얼굴을 못들 뻔했다. 항공사 경영은 이윤만 생각해도 되는 단순한 기업 경영의 차원을 넘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6. 노인 학대 급증하는 요양시설에도 CCTV 달아야

보건복지부가 27일 ‘국민안전 민관합동회의’에서 다음 달까지 노인요양시설의 인권실태를 사상 처음으로 전수 조사한다고 밝혔다.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요양시설 내 학대는 2005년 46건에서 지난해 251건으로 급증했다. 요양비용의 80%를 지원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2008년 도입된 뒤 노인요양시설은 2008년 1717곳에서 지난해 5083곳, 입소자는 5만6370명에서 13만1997명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그러나 함량 미달 시설도 난립하면서 인권의 사각지대가 돼가고 있다. 


충북의 요양시설에서는 다른 환자와 다퉜다고 노인을 1주일이나 쇠사슬에 묶어 감금했다. 서울의 한 노인요양원에서는 폐암 말기의 75세 할머니가 밤에 안 자고 돌아다닌다는 이유로 남성 요양보호사에게 맞아 등뼈가 부러졌다. 축축한 기저귀를 제때 갈아주지 않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폐식자재로 음식을 만든 사례도 적발됐다. 


겉으로 드러난 학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요양시설 종사자의 학대나 방임 행위가 발생해도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가 없으니 증거 확보가 어렵다. 정부는 입소자가 성인이란 이유로 사생활 침해를 우려한다. 그러나 치매 노인과 중증환자는 제대로 의사표현조차 할 수 없는 약자다. 인천 어린이집 폭행사건 같은 아동학대가 빈발했을 때도 CCTV 설치를 둘러싸고 찬반이 엇갈렸으나 ‘아이들 보호가 우선’이란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작년 영·유아보육법 개정으로 어린이집에 그랬던 것처럼 노인요양시설에도 CCTV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부당한 처우와 학대 받는 노인이 늘고 있는데 사회적 관심은 낮다. 고령화와 가족구조의 변화로 노인요양시설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정부는 공공 투자를 늘리고 양적 확대에 걸맞은 학대방지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CCTV 의무화와 함께 노인학대 처벌 수위를 높일 필요도 있다. 6월 15일은 유엔이 제정한 세계노인학대 인식의 날이다. 노인학대 방치는 결국 우리 모두를 미래의 피해자로 만드는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중앙일보]

7. 부실 조선사에 돈 퍼준 산은·수은 잘했다는 감독당국

뒤늦은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참괴스럽다. 전문성이 부족한 데다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했던 정부·채권단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조선업 불황이 가져온 수주절벽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그런 위험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지원을 거듭해 손실을 눈덩이처럼 키운 국책은행과, 그런 국책은행을 잘했다며 성과급 잔치를 벌이도록 한 정부의 깜깜이 평가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한때 세계 4위였던 STX조선해양의 사례를 보자. STX조선의 붕괴가 본격화한 것은 2013년이다. 이때라도 채권단은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으면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손실을 최소화해야 했다. 그런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거꾸로 갔다. 2013년 8월부터 STX에 4조5000억원을 추가 지원했다. 급기야 지난해 시중은행들은 일제히 발을 뺐지만 산은·수은은 끝까지 남아 지원을 계속했다. 핑계는 있다. 정치권이 지역경제 침체와 실업 대란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정부도 은근슬쩍 동조했다. 결과는 불문가지. 산은의 부채비율은 800%를 넘어섰고, 수은은 640%까지 치솟았다.


그런데도 금융위원회는 경영평가에서 산업은행에 2013·2014년 연속 A등급을 줬다. 산은 회장과 직원은 각각 100·90%의 성과상여금을 챙겼다. 금융위는 수은에도 2013년 A등급을 줬고 2014년엔 모뉴엘 사기 사태와 경남기업·성동조선해양 부실까지 겹쳤지만 B등급을 부여해 70%의 보너스를 챙기도록 했다. 덕분에 평균연봉이 산은은 9450만원, 수은은 9242만원으로 연구기관을 제외하면 전체 공공기관 중 3·4위다.


정부는 뒤늦게 산은·수은에 강력한 자구안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간 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서별관회의를 통해 부실 조선사에 대규모 자금지원을 결정한 것도 청와대 참모진과 장관들 아닌가. 한심한 국책은행도 문제지만 부실 감독을 방조하고 부추긴 정부·감독당국이야말로 진짜 문제다.

[매일경제]

8. EU까지 대북 제재 북한이 살길은 비핵화뿐이다

유럽연합(EU)이 지난 27일 북한과의 교역을 대폭 차단하는 내용의 독자적인 대북제재 조치를 내놓으면서 국제사회의 압박이 한층 강화됐다. EU는 대표적으로 북한 항공기와 선박의 EU 28개 회원국 영공 통과나 기착 및 기항을 금지했다. 항공기의 정기 취항노선은 아직 없으니 실제 효과보다 상징적 차원이라지만 선박 입항 금지는 북한의 운송 활동에 직접 타격을 줄 강력한 해운 제재다. 또 수입 금지 품목과 사치품 금수 품목을 대폭 확대했는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주변 권력층의 선호품 수입을 옥죄는 것이니 심리적 위축 효과도 클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도발 후 우리와 미국, 일본 등은 일찌감치 대북 제재에 나섰다. EU는 28개 회원국의 합의를 끌어내야 해 늦춰졌는데 이번 제재 발표는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이뤄졌다고 한다. 앞서 북한 권력층의 비자금 은닉처로 활용돼 왔다고 추정되는 스위스가 북측 자산 동결과 함께 25가지 사치품목 수출 금지 조치에 나섰고, 러시아까지 대북 금융거래를 제한하는 제재에 나섰을 정도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지난 3월 초 채택된 대북제재 결의 2270호의 이행 보고서 제출을 다음달 초 앞두고 국제사회 각국이 한층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으니 북한은 불장난 같은 도발에 톡톡한 대가를 치르면서 고립무원의 처지임을 실감할 것이다.


북한에 가해지는 국제사회 제재의 실질적인 결실은 논란 없이 완벽한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하지만 북한은 유엔 안보리 결의 채택 후에도 계속 다양한 미사일 발사를 시도하는 등 도발을 멈추지 않으며 계속 엇나가고 있을 뿐이다. 이달 초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는 핵 강국의 위상을 대내외에 선포하는가 하면 김정은에게 위원장이라는 공식 호칭을 부여하는 등 내부 결속에만 치중하며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번엔 중국조차 북한의 최대 외화수입원인 석탄과 철광 등 7대 광물 교역을 금지하는 제재에 나설 정도로 달라진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북한은 빨리 감지해야 한다. 버티다 고사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기 전에 북한 스스로 비핵화라는 현실적인 생존 방안을 향해 변화하는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9. 30일 개원 20대 국회 일자리법안부터 처리하라

20대 국회가 여소야대 3당 체제 아래 오늘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노동개혁법·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놓고 대립만 거듭하다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쓴 19대 국회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구도다. 20대 국회는 국회의장·부의장을 법정시한 내에 선출하는 등 19대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경제 성장 둔화로 취업난과 양극화가 심해지고 산업구조조정 필요성은 급박해지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요구와 복지시스템을 확충하라는 사회적 요구 사이에서 진영논리에 빠져들지 말고 균형과 중심을 잡아야 할 책무가 있다. '일자리가 곧 복지'라는 점에 착안한다면 해답을 찾지 못할 일도 아니다. 


정부가 일자리 69만개를 만들 수 있다며 국회에 제출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18대에 이어 19대 국회에서도 처리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됐다. 일자리를 37만개 이상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된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파견법 등 노동개혁 4개 법률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20대 국회 1호 법안을 놓고 여야가 서로 자신들의 정책 상징성을 부각하려는 가운데 새누리당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개혁 4법, 규제개혁특별법, 규제프리존특별법, 사이버테러방지법 등을 다시 제출할 것이라고 한다.


20대 국회는 어느 정당도 혼자 힘으로는 법률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 여소야대 3당 체제다. 법률안 제출이 생색내기에 그치지 않도록 하려면 일자리 창출 법안을 놓고 여야가 진지하게 대화·협력해야 하지만 정치 환경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상시 청문회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벌써부터 여야 사이에 날 선 공방이 오가고 있다. 


19대 국회를 식물국회로 만든 원흉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국회선진화법도 20대 국회에 여전히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헌법 개정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온 만큼 언제 개헌 논의가 다른 민생법안 논의를 삼켜버릴지 알 수 없다. 


4·13 총선에서 매서운 민심을 확인했는데도 협치에 대한 기대보다 지루한 대립이 또 되풀이될까 걱정이 커지고 있다. 민생법안 처리에 소극적인 정당은 2017년 대선에서 더 혹독한 심판을 받을 것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부산일보]

10. 성장률 세계 10위권 추락 한국경제 '기초 세력' 키워야

2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2.6%로 OECD 회원국 중 12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은 2006년(11위) 이후 10년 만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선진국 문턱도 넘어 보기 전에 우리 경제가 저성장 늪에 빠져 버린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순위만 하락한 것이 아니라 성장률의 절대 수준 자체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10년 전인 2006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5.2%로 OECD 회원국 평균(3.1%)에 비해 2.1%포인트(P) 높았다. 2000년대 후반까지는 꾸준히 2~4%P 차를 유지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줄곧 1%P대에 그치더니 지난해에는 사상 최저인 0.5%P까지 축소됐다. 최근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을 지난해와 같은 2.6%, 내년에는 2.7%로 전망하면서 OECD 회원국과의 갭은 더 줄어들 여지가 있다.


국가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성장률이 하락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잠재성장률이 빠르게 둔화하면서 성장 동력 자체를 잃어버린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지난 1월 한국은행은 2015~2018년 연평균 잠재성장률을 3.0~3.2%로 추산했다. 하지만 LG경제연구원은 최악의 경우 잠재성장률이 2016~2020년 연평균 2.5% 수준에 머물고, 2020년대에는 1%대까지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잠재성장률의 하락은 인구 고령화와 기업 투자 부진, 서비스산업의 생산성 정체 등 구조적 요인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경제 기초체력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고 노동투입 감소에 대응해 여성·고령층 노동자를 활용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와 함께 규제개혁을 가속화하고 R&D 투자 효율성 제고, 인적자본 증대, 중소기업 금융지원 개선 등의 대책도 필요해 보인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고통과 위험이 낳은 로맨스 스토리…금비 내리는 감옥서 다나에는 사랑했네

위험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기가 더 쉽다. 전쟁 중에 얼마나 전설적인 로맨스가 많았던가? 오죽했으면 전후 베이비붐 세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사랑은 이국적인 배경에서 더욱 잘 자란다. 색다른 분위기, 여행지, 낯선 곳, 또는 두려움 때문에 감각들이 고조될 때 사람은 신비주의자가 되고 엑스터시를 느끼며 사랑이라는 야릇한 감정에 휘말린다. 고통과 위험이 닥쳤을 때 로맨스를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왜일까. 위험이 일종의 ‘최음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 속 다나에(Danae)는 감방에 갇히는 위기 상황에서 본의 아니게 에로틱한 사건을 연출하게 된 기막힌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Akrisios)는 아가니페와 결혼해 딸 다나에를 낳았다. 다나에를 낳은 뒤 아가니페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했다. 신탁을 구해 보니 ‘아크리시오스에게는 아들이 없을 것이고 딸 다나에가 아들을 낳을 터인데 아크리시오스는 그 아이에게 죽을 운명’이라는 게 아닌가. 겁에 질린 아크리시오스는 너무도 사랑하는 딸인 다나에를 아무도 접근할 수 없도록 높은 탑에 위치한 청동 감옥에 가뒀다. 


젊은 나이에 빛도 들지 않는 감방에 갇히는 참으로 불운한 신세가 된 다나에! 그렇지만 인생은 그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는다.


그녀에게 한 가지 행운이 남아 있었으니, 바로 빼어난 미모였다. 청동 감옥 밖에서도 다나에의 미모에 대한 소문이 돌았고 제우스는 이 귀중한 정보를 흘려듣지 않았다. 제우스는 이 난공불락의 요새에 침투하기 위해 색다른 계획을 세웠다. 제우스가 누구던가. 완전 창조적인 발상과 변신의 귀재가 아니던가. 그는 마음먹으면 못하는 게 없었다. 특히 그 일이 아름다운 여자와 관련됐을 때의 변신 능력은 가히 따라올 자가 없었다. 제우스는 황금비로 변신해 청동 감옥의 틈을 파고들었고, 무사히 감옥에 침투한 뒤 그녀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품었다. 황금빛 빗줄기처럼 판타스틱한 분위기를 누가 마다할 수 있었겠나.


이들 사랑의 결실로 페르세우스(Perseus)가 탄생한다. 메두사의 목을 자른 그 유명한 영웅이다. 딸이 아들을 낳자 아크리시오스는 딸과 손자를 나무 궤짝에 넣어 바다에 던져버리도록 명령한다. 


그렇게 해 세리포스 섬에 다다른 모자는 어부 딕티스에게 구출되는데 그는 섬의 왕 폴리덱테스의 친형제였다. 왕은 아름다운 다나에에게 욕정을 품었으나 페르세우스 때문에 감히 다나에를 범할 수 없었다. 왕은 페르세우스를 제거하기 위해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강요했다. 메두사의 머리를 보는 사람은 돌처럼 뻣뻣하게 굳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우스의 아들인 페르세우스에겐 왕의 아들답게 특혜가 주어졌다.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도움으로 메두사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메두사를 처치한 페르세우스는 고국에 돌아와 본의 아니게 외할아버지 아크리시오스를 죽이게 된다. 결국 예언이 정확히 실현되고,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서양미술사에는 황금비로 다나에를 유혹하는 제우스를 그린 그림이 무수히 등장한다.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티치아노, 바로크 시대의 렘브란트,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와 그의 딸 아르테미지아 등 수많은 화가들은 앞다퉈 이 신화를 재해석해냈다. 그리스 신화의 이 소재가 특별히 예술가들의 관심을 끈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즉 비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은유기 때문일까? 


수많은 다나에 그림 중 특별히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이 있으니, 바로 클림트의 것이다. 클림트는 이전 선배 화가들의 다나에와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렸다. 대부분 화가는 높디높은 탑에 갇혀 비너스의 자세로 발가벗고 누워 있는 다나에를 그렸다. 통상 옆에는 날개 달린 천사, 즉 큐피트(에로스)를 함께 그린다. 그리스 신화를 모르면 딱 비너스와 큐피트로 착각하기 쉽다. 정작 다나에가 황금비를 직접 받아들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은 별로 없다. 시녀가 받거나, 큐피트와 함께 받거나, 아니면 창가 쪽에서 빛이 들어오면서 황금비가 내리는 정도다. 


클림트의 다나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구도와 형태, 분위기를 지녔다. 일단 여성의 몸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마치 태아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아 젖히고 잠을 자는 듯한 포즈다. 당시로서도 이런 구도의 조형법은 매우 낯선 것이었다. 머리를 풀어헤친 다나에는 잔뜩 웅크린 자세로 눈을 지그시 감고 황홀경에 빠져 있다. 오른손은 길고 뭉툭한 무언가를 쥐려 하는 듯하고, 왼손은 허벅지 사이 은밀한 곳으로 사라졌다. 클림트는 어찌하여 마치 귀접몽(꿈속에서 귀신과 성교하는 것)처럼 나른하고 몽환적인 상태의 다나에를 그렸을까.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클림트가 55세의 나이에 독감의 후유증인 뇌졸중으로 죽자 14건의 유자녀 양육비 청구소송이 벌어졌다. 대부분은 클림트와 관계가 있던 모델의 아이였는데, 그만큼 클림트는 모델과 각별히 정을 통하면서 지냈다. 모델 가족의 장례 비용을 대주는가 하면 집세를 대신 내주기도 했을 만큼. 모델들은 클림트를 아주 좋아했고, 언제나 그의 요구에 따라 관능적이다 못해 외설적인 포즈까지 취해줬다. 클림트 작업실에는 항상 벌거벗은 여러 모델이 상주해 있었고, 마치 누드 서커스장을 방불케 했다고 전해진다. 


다나에는 클림트가 사랑했던 여러 여성이 혼재해 있는 모습이다. 빨간 머리를 특별히 좋아했던 클림트답게 빨간 머리를 지닌 모델 미치 짐머만(클림트의 아들을 둘이나 낳았던)의 모습도 있다. 상류층 고객이자 한때 깊은 사랑을 나눴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는 사고로 장애를 입은 오른손까지 그렸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형상은 다나에의 허벅지와 그 안으로 쏟아져 내리는 황금비다. 비유컨대 황금비는 씨앗, 즉 왕의 정액이고, 튼실하고 굵은 허벅지는 그 씨앗이 뿌려지는 자양분이 풍부한 대지다. 그녀의 허벅지는 관능의 메타포요 다산의 상징이다. 잉태를 위한 생명력의 이미지를 허벅지와 황금비가 암시한다고나 할까. 마치 마리아의 수태처럼 황금빛 빗줄기는 신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은 단순한 도발이나 관능을 넘어선 생명력의 잉태에 관한 이미지로 거듭난다. 더군다나 ‘황금비’라는 모티프가 금은세공사 출신 가문에서 태어나 아르누보, 아르데코 문양과 색채를 사용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비엔나 분리파의 주창자였던 클림트에게는 거부할 수 없이 매혹적인 소재였을 것이다. 


의학에서는 이 신화에 근간해 ‘다나에 신드롬’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강간 사건을 다루다 보면, 단 한 번의 성교로 임신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상적인 배란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급작스럽게 배란이 일어나 임신이 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동물은 배란 형태가 각기 다르다. 야생토끼나 낙타 같은 동물은 수컷이 있어야만, 즉 수컷이 교미 동작을 취해야만 배란이 되고 평소에는 배란이 되지 않는다. 원숭이는 위협과 공포를 느껴야 비로소 배란이 된다. 그래서 수컷 원숭이는 교미 전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암컷이 안고 있는 새끼를 빼앗아 던지고 때려 새끼 원숭이가 소리를 지르게 하는 식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때 암컷 원숭이가 배란이 되면서 발정해 교미가 가능해진다. 이런 ‘공포배란 현상’이 인간에게도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바로 ‘다나에 신드롬’이다.


이처럼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까지 덧붙여져, 다나에 스토리는 한층 더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로 올라섰다. 당연히 화가들이 열광하며 달려들 수밖에.

2. [매경이코노미][신동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 1인 가구 급증에 인기 끄는 ‘샌드위치’…도박광 샌드위치 백작이 즐기던 간편식

1인가구 급증과 함께 간소하게 식사를 하려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샌드위치가 잘 팔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바쁜 현대인의 끼니를 간편하게 해결해주는 속성 음식이지만, 세계 최고 부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즐겨 찾는다. 


어릴 적 유난히 샌드위치를 좋아했다. 어머니께서 식빵에 달걀 프라이와 치즈 한 장 얹고 양배추 썬 것과 케첩을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시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꼬마가 되곤 했다. 그냥 딸기잼 듬뿍 바른 샌드위치 하나에 우유 한 잔 곁들이면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이른 아침 학원 앞 트럭에서 만들어주는 따끈한 샌드위치도 잊히지 않는다. 어쩌다 아침밥을 못 먹고 나왔을 때 이 샌드위치 하나면 속이 든든해지고 맘까지 푸근해졌다. 


두 장의 빵 사이에 속 재료만 끼워 넣으면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샌드위치. 그 시작은 18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샌드위치라는 이름은 영국의 샌드위치 백작에서 따왔다. 사실 샌드위치는 사람 이름이 아니다. 샌드위치 백작은 영국의 샌드위치 지방을 다스렸던 백작 작위의 영주를 가리킨다. 영국 남동부 항구 도시 중 샌드위치가 있는데 그곳에 샌드위치 백작이 살았다. 그가 만일 다른 도시의 백작이었다면 우리가 먹는 샌드위치도 아마 다른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샌드위치는 작은 도시지만 640년경에 샌드위치라는 도시에 관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영국 켄트주 영주였던 샌드위치가(家)의 4대 백작인 존 몬터규. 그는 식사를 마다하고 밤을 지새우며 놀음할 정도로 도박광이었다. 항상 트럼프 놀이에 열중하다 보니 식사할 시간이 아까웠다. 생각 끝에 하인을 시켜 로스트비프와 채소류를 빵 사이에 끼운 것을 만들게 해 옆에 놓고 먹으며 승부를 겨뤘다. 당시 이런 식사법은 상류 귀족층에서는 상상조차 힘든 광경이었다. 일반적으로 귀족은 격식을 차려 식사했다. 고기는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한입씩 썰어 먹는 것이 예의였다. 그에 비하면 샌드위치 방식의 음식은 너무나도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함께 게임을 하던 사람들이 보기에 샌드위치는 매우 간편해 보였다. 도박장에 있던 귀족들이 너도나도 이를 보고 따라했다. 샌드위치 백작이 만들어 먹는 것을 보고 따라했다고 해서 샌드위치로 불렸다. 


존 몬터규 샌드위치 백작은 방탕했던 조상이지만 아이러니하게 후대에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존 몬터규와 같은 이름을 쓰는 11대 샌드위치 백작은 런던에서 패스트푸드 체인인 ‘얼오브샌드위치(샌드위치 백작)’를 설립하고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샌드위치 백작이 정말 샌드위치를 만든 최초의 발명자일까? 샌드위치의 정의를 사각형으로 얇게 자른 식빵에 재료를 끼운 것으로 한정한다면 샌드위치 백작이 처음 고안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샌드위치와 비슷한 음식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반찬을 싸거나 끼워 먹을 수 있게 넓적하게 구운 빵은 여러 종류가 있었다. 얇게 썬 두 쪽의 빵 사이에 고기, 치즈 등 다른 재료들을 끼워서 먹는 방법은 고기와 빵을 먹기 시작한 것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됐다. 


시초는 고대 로마인으로 추정된다. 로마 시대에 검은 빵에 고기를 끼운 음식이 가벼운 식사 대용으로 애용됐다. 로마인들이 2000년 전에 먹기 시작했으며 유럽의 다른 지역에도 이와 비슷한 요리가 있었다. 로마뿐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이 같은 식습관이 널리 퍼져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전채요리로 ‘오픈 샌드위치(Open sandwich·빵 위에 여러 가지 음식을 올리고 그 위에 빵을 덮지 않는 것)’를 먹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서민이 아주 오래전부터 빵의 한쪽을 잘라 그 속에 재료를 넣어 먹었고 프랑스 농부들은 들판에서 일하다가 검고 두툼한 빵 조각 사이에 고기를 끼워 넣은 것을 먹었다.


영국에서 발달한 샌드위치는 1880년대 구한말,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100년이 훨씬 더 지난 요즘,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맛있는 샌드위치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또 옛날과는 다르게 해외에서 공부한 요리사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자기 개성에 맞는 샌드위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필자는 샌드위치의 본고장인 영국으로 유학 갈 당시까지 샌드위치가 영국 음식인지도 몰랐다. 현지인에게 영국 전통음식 중 맛있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더니 두 가지 요리를 알려줬다. ‘피시 앤 칩스’와 샌드위치였다. 샌드위치가 영국 음식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영국에서는 해피타임이라고 해서 점심시간이 끝난 후부터 2시간에서 4시간 정도 투플러스원이나 원플러스원을 하는 샌드위치 전문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당시 유학생인 필자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할인하는 시간대에 여러 종류의 샌드위치를 먹기 위해 하루에 4개씩 사먹었다. 


11대 샌드위치 백작은 ‘얼오브샌드위치’ 프랜차이즈로 성공


영국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샌드위치는 호밀빵에 토마토 닭가슴살 샐러드, 홀그레인 머스터드 그리고 마요네즈소스를 올려서 만든 것이었다. 빵의 감칠맛과 부드러운 닭가슴살, 신선한 샐러드에 마지막으로 느껴지는 머스터드의 풍미가 입안을 행복하게 했다.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샌드위치 형태 음식은 브라질의 ‘미스또 깽떼’다. 브라질 음식을 알고 싶어 브라질에 갔을 때, 여러 종류의 음식을 맛봤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미스또 깽떼였다. 


‘미스또’란 브라질 말로 ‘뜨거운 것을 섞은’이라는 뜻이다. 따끈한 빵에 데운 치즈와 볶은 베이컨을 섞어주는 음식이다. 철판에 치즈를 녹여 눈앞에서 잘라 빵에 담아주는데 보자마자 침이 고였다. 


프랑스에서 먹었던 눈물 젖은 샌드위치도 떠오른다. 여행의 부푼 꿈을 안고 프랑스에 도착해 즐거웠던 것도 잠시, 지갑을 소매치기 당해 빈털터리가 됐다. 비상금 약간을 제외하고는 돈이 없어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구경을 했다. 식사 시간이 돼 어디 싸고 맛있는 게 없나 하고 둘러보는데, 프랑스 노숙자들이 무엇인가 맛있게 만들어 먹는 모습을 봤다. 가까이 가보니 저렴한 바게트의 옆면을 갈라 참치 통조림같이 보이는 재료를 넣어 먹고 있었다. 시장기가 돌면서 얼마나 맛있어 보이던지, 바로 그 앞에 있는 빵가게에 들어가 바게트와 참치 통조림을 사서 요즘 말로 ‘폭풍 흡입’했다. 뭐 그 샌드위치가 특별히 맛있었겠는가! 처량한 그 상황에 맛없는 음식이란 없었을 테지.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의 아침은 된장국에 흰밥, 김치, 밑반찬이 기본이었다. 점점 간편하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호하는 추세다. 그중 하나가 샌드위치다. 필자는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지만, 한 번씩 와이프가 만들어주는 샌드위치는 정말 맛있게 먹곤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정성을 담아 만들어주는 음식이 역시 최고다.

3. [연합뉴스]<김종현의 풍진세상> 육식주의자의 변명

육식주의자들이 불편해졌다. 평소에 술술 넘어가던 육류가 요즘 좀 거북하게 느껴진다.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효과다. 이 소설에서 고기를 먹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할 폭력과 불통의 주체다.


세계의 역사와 현실이 약육강식의 무대가 된 것은 인류의 사냥 문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생고기 섭취가 사자나 호랑이, 하이에나 같은 잔인한 동물의 속성이라면 인간도 같은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전쟁과 약탈, 착취는 육식의 속성이다. 풀을 주식으로 하는 동물들은 대부분 양순하지 않은가.


오늘날 육식은 '환경 파괴'나 '동물 학대'와 동의어다. 인간에게 스테이크나 우유를 제공하기 위해 지구상엔 13억 마리의 소가 사육되고 있다. 소를 키우기 위해 해마다 아마존의 밀림이 경기도 면적만큼 줄어든다고 한다. 한국, 미국, 일본 등지에서 사육되는 소는 마리당 하루 10㎏, 연간 4t 정도의 옥수수 사료를 먹는다. 소가 지구상에서 1년에 먹어치우는 옥수수는 굶주리는 인구 20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이다. 


소와 돼지, 양, 닭 등의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놀랍게도 지구 전체 방출량의 18%에 달한다. 자동차의 13%를 훌쩍 넘는다. 가축의 성장 환경은 지옥 그 자체다. 소, 돼지, 닭은 사육되는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빵을 찍어내듯 규격화한 제품으로 생산된다. 치킨점에 공급되는 닭은 대부분 공장식 양계다.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비좁은 사육장에서 오직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항생제 등 각종 약품으로 범벅된 사료를 먹고 적당한 무게가 되면 도축장에서 생을 마감한다. 양식 어류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고기를 먹는 사람은 아무리 선행을 쌓아도 천당에 갈 생각을 접어야 한다. 참혹하게 사육되고 도살되는 가련한 생명들의 원성과 비명을 어찌할 것인가. 생산자와 유통업자, 소비자는 가축 학대의 공범이다. 기업형 동물 사육장에 한 번 가 보시라. 


그렇다고 한날한시에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육식을 끊기도 어려운 일이다. 20만 년의 호모 사피엔스 역사를 통해 고기에 대한 탐욕은 DNA에 내장됐다고 봐야 한다. 고단백 육류의 섭취는 생존 투쟁 그 자체였다. 지옥은 멀고 혀는 가깝다. 군침 도는 등심이나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치맥, 노릇노릇한 생선구이, 신선한 회와 어떻게 결별할 수 있단 말인가. 채식주의자들은 육식하지 않고도 근육질 몸매를 가꾸며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일반인이 막상 실천에 옮기긴 쉽지 않을 것 같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우유나 계란, 육류를 먹지 말도록 한다면 살인적 생존 경쟁에서 자식이 강건하길 바라는 부모들이 수긍할지 의문이다.


일부 학자들에 의하면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육식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뇌의 용적과 육식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유인원과 인류의 연결고리인 3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 용적은 약 500cc, 200만 년 전의 호모 에렉투스는 1천cc 안팎, 오늘날의 호모 사피엔스는 1천500cc 안팎으로 증가했다. 인류가 사냥을 시작한 이후 뇌의 용적이 비약적으로 커졌다. 


24시간 쉬지 않는 뇌는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인간이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25% 정도를 소비한다. 따라서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하는 인지혁명은 단백질이 풍부한 고칼로리의 육류를 섭취함으로써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인류는 많은 종이 지구상에 출현했지만,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외엔 모두 멸종했다. 풀과 과일로 연명했던 인류는 당연히 가장 먼저 사라졌다. 고도의 인지능력으로 탁월한 사냥과 채집, 싸움이 가능했던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다. 인류 문명과 육식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육류 섭취는 각종 질병과 비만의 원인이 되고 있다. 축산업이 환경 파괴의 주범이 됐다. 인간처럼 동물도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환경보호론자들의 채근이 아니어도 지구를 지속가능한 인류의 생활 공간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육류에 대한 욕망의 억제가 필수적이다. 육류 섭취를 줄이기 위한 범국민적 캠페인이 필요해 보인다. 그것이 우리의 산과 들, 바다와 호수 그리고 최종적으로 인간의 영혼을 정화할 길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채식주의자와 육식주의자가 불구대천의 원수가 아닌 이상 소통의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 갈등하고 배제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육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닭 가슴살을 먹지 않고 채소나 과일, 곡물만으로도 식스팩 복부 관리가 가능하도록 관련 식품이나 조리법 개발과 유통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요구된다.


소설에서처럼 채식주의자를 편견으로 대하고 고립무원으로 몰아넣는다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현실에서는 있을법하지 않지만, 소설의 주인공인 영혜의 부친처럼 결혼한 딸의 채식을 교정하기 위해 뺨을 갈기고 강제로 입에 고깃점을 쑤셔 넣는 폭력은 야만이다. 소설가 한강도 20대 후반 몇 년간 채식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저에게 고기를 먹이려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채식주의자가 음식 취향 때문에 기피 대상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4. [동아일보][최영해 국제부장의 글로벌 이슈&]딸바보는 가끔 주변 예상을 빗나가게 한다

“하버드에게. 


축하합니다. 나, 말리아 오바마는 2016년 가을부터 다닐 학교로 하버드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리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 좋은 시설을 갖춘 수많은 대학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는데 최종적으로 하버드대가 선정된 것에 대한 하버드의 성취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 나는 어떤 장학금도, 그리고 어떤 형태의 재정적인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나는 백만장자이고 미국 대통령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


―대통령의 딸 말리아 오바마”


미국의 한 유머사이트에서 조애나 브래들리라는 기자가 지난해 10월 5일 올린 말리아의 하버드대 입학통지서 내용이다. 하버드대가 합격생들에게 보내는 합격통지서 양식을 그대로 본떠 말리아 입장에서 대학에 보낸 가상의 편지다. 주객이 전도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고급 유머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이비리그(미국 동부의 명문대학)들이 서로 말리아에게 입학해 달라고 구애하는 상황에서 브래들리는 우스꽝스러운 개그 편지 기사를 선보여 배꼽을 잡게 했다. 그런데 그의 예측은 7개월 후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엄마 미셸 오바마가 “딸이 간판 보고 대학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이틴 잡지에서 공공연하게 인터뷰까지 했건만 말리아는 막판에 하버드대 간판을 선택했다. 오바마는 내색하지 않아도 엄마 말을 듣지 않은 말리아를 예뻐할 것 같다. 누가 뭐래도 최고 명문(prestigious) 대학이 하버드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다. 말리아의 SAT 점수와 GPA(학점)는 공개되지 않지만 엄마 아빠가 모두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온 덕을 꽤 본 것 같다. 여기에 현직 대통령 딸이라는 천문학적 프리미엄도 붙어 있으니 합격은 일찌감치 따 놓은 당상이었다.


말리아가 6월 졸업하는 학교는 워싱턴의 유명 사립학교 시드웰 프렌즈 고등학교(Sidwell Friends Upper School)다. 백악관에서 네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이 학교에 동생 사샤도 9학년(미국 고교 4년 중 1학년)에 다닌다. ‘워싱턴 사립학교의 하버드’로 불리는 이곳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쟁쟁한 정치인 자녀들이 많이 다니기로 유명하다. 조 바이든 부통령의 손자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딸, 앨 고어 부통령의 아들이 이 학교 출신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딸 첼시도 이 학교 졸업생이다. 1928년엔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秩父宮雍仁) 친왕의 비(妃) 세쓰코(勢津子) 여사가 졸업했다. 로널드 레이건의 부인 낸시 레이건은 부설 초등학교에 다녔다. 졸업생 중엔 유엔 주재 소련대사도 있다. 지구 온난화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2006년)을 감독한 데이비스 구겐하임도 이 학교 졸업생이다.


입학 사정은 성적 위주인데 퀘이커 교도들에겐 가산점을 준다. 이들은 ‘안으로부터의 빛’을 믿고 인디언과의 우호, 노예제도 반대, 전쟁 반대, 십일조 반대를 내세운다. 1960년 이후 ‘씨M의 소리’ 함석헌 선생은 퀘이커교 한국대표로 활동했다. 1883년 개교해 1956년까지는 백인들만 다녔지만 이후엔 흑백 차별이 철폐돼 지금은 47%가 비백인 소수 인종이다. 한 해 등록금이 3만9360달러, 책값 500∼700달러, 통학버스 1325달러를 합치면 연간 5000만 원이 든다.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1월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자신의 집이 있는 시카고로 가지 않고 월세를 구해 2년 반 동안 워싱턴에 머무르기로 한 것도 시드웰 프렌즈에 막내딸 사샤를 계속 다니게 하기 위해서다. 워싱턴포스트는 “힐러리 클린턴이 백악관에 들어가면 클린턴의 511m²(약 155평) 저택을 빌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추측 보도일 뿐이었다. 오바마는 “사샤가 고교 재학 중에 전학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우리 가족이 어디에 살지는 사샤에게 결정권이 있다”고 주변에 얘기할 정도로 막내딸을 끔찍이 여긴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오바마는 여섯 살 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이주해 4년을 보냈다. 딸에게는 그런 불편을 주지 않겠다는 아버지 심정을 이해할 만도 하다. 


퇴임한 대통령이 수도 워싱턴에 거주하는 것은 제28대 우드로 윌슨 대통령 이후 약 100년 만이다. 미 언론은 오바마 퇴임 후 거처로 뉴욕이나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하와이 등을 꼽았지만 모두 빗나갔다. 시카고대에 마련된 오바마재단에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연구 활동을 할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내년부터 오바마가 앤드루 공군기지 골프장과 메릴랜드의 명문 골프장인 콩그레셔널 컨트리클럽(전직 대통령에겐 공짜 회원권을 준다)을 거니는 모습이 낯설지 않을 것 같다. 워싱턴 인근 햄버거 가게에서 오바마 부부와 마주칠 수도 있다. 전학 걱정 없이 고교 생활을 하게 된 사샤는 하버드대 입학이 언니 말리아보다 더 쉬울지도 모른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중국 옛말이 딸바보 오바마에게 딱 어울린다.

​5. [머니투데이][박종면칼럼] 예술은 사기, 조영남도 사기

요즘 여론의 뭇매를 맞는 화가 겸 가수 조영남이 쓴 ‘현대인도 못알아 먹는 현대미술’이란 책에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얘기가 나온다. 이 책에서 조영남은 백남준이 생전에 “현대예술은 고등사기꾼 놀음”이라고 자주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예술은 사기”라는 백남준의 선언은 마치 오래전 조영남의 화투그림 대작 사건을 예상한 선지자의 예언 같다.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 이상이 말한 것처럼 조영남의 대작 사건은 명백히 사기다. 


평소 가깝게 지낸 무명의 전업화가가 그린 그림을 배달받아 그 위에 덧칠을 하고 사인을 한 다음 마치 자기작품인 것처럼 포장해 수백, 수천만 원을 받고 팔았다면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다. 


조영남은 논란이 불거지자 대작은 미술계의 관행이며 앤디 워홀이나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같은 대가들도 모두 조수를 데리고 작업을 한다는 식으로 해명했지만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어떻게 스스로를 앤디 워홀이나 데미안 허스트의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생각을 했을까. 조영남은 근본이 없는 작가다. 백남준의 예언대로 조영남은 고등 사기꾼 놀음을 해오다 탄로 나고 말았다.


그런데 사기꾼 놀음을 한 것이 조영남뿐인가. 백남준은 조영남이 사기꾼이라고 말한 게 아니라 현대예술이 사기놀음으로 흐를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조영남이 자신의 사기놀음을 현대미술의 대작 관행으로 변명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현대미술에서 대작은 보편적 현상이다. 작품에 혼을 불어넣으려고 붓질 하나에도 엄청나게 고민하고 정성을 들이면서 고독하게 작업에 몰입하는 창작자로서 미술가는 대중의 머릿속에나 있는 것이지 미술계의 현실은 아니다. 


데미안 허스트나 제프 쿤스 같은 세계적 거장이 아니더라도 국내에서도 이미 유명 작가들은 다수의 조수를 두고 고객들에게 ‘주문’받은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그야말로 스튜디오가 ‘공장’이 되고 유명화가는 ‘CEO 또는 관리자’가 된 것이다. 다만 이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조영남이 대작은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한 것은 팩트에 가깝다. 물론 유명 작가에 한해서 말이다.


현대미술이 사기놀음으로 흐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건 바로 상업주의다. 거대자본이 동원되고 재력을 갖춘 화랑과 화상이 등장하면서 사기놀음은 한층 고도화한다. 예술성이라든가 작품성 같은 것은 무시되고 돈이 된다고 하면 주문이 쏟아지며 작가는 공장의 기계처럼 작품을 찍어낸다. 평론가들과 언론매체는 거기에 온갖 찬사를 갖다 붙인다.


조영남의 화투그림 대작 사건도 그 연장선에 있다. 예술성이나 작품성보다 가수로 얻은 브랜드 하나로 그는 어느새 유명 화가가 됐고 큰돈까지 벌었다. 이게 조영남만의 잘못인가. 누가 조영남을 욕할 것인가.


“예술은 우리에게 고통을 보다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예술은 인간의 조건인 고난을 웅대하고 진지하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야 한다. 예술은 우리의 기울어진 자아가 적당한 균형을 잡도록 회복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미래 갤러리들은 고통과 소멸에 대한 우리의 불안이 머물 수 있는 위안의 집이 돼야 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작품이 조금 덜 필요해지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스위스 태생의 천재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영혼의 미술관’에서 ‘인간을 치유하는 예술’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인간에게 예술은 무엇이어야 하나. 조영남 대작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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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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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6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호통만 치는 국정감사식 청문회는 경계해야

상시 청문회를 둘러싼 여야 대치가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다. 정부가 이를 허용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위헌 여부를 법리적으로 검토하면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법안 거부권을 행사하면 정국을 뒤흔들 뇌관이 될 조짐이다. 야권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더민주도 거부권을 행사하겠다”(우상호 원내대표)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우리는 위헌 여부를 떠나 상시 청문회가 행정부의 정책 실패를 바로잡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다만 꼭 필요한 공직자나 관련 정책 전문가들만 불러 극히 실무적으로 진행하는 미 의회 청문회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정의 발목을 잡는 부작용을 없앨 다각적 보완책을 강구하는 데 여야가 합심하기를 당부한다.

어제 정의화 국회의장은 퇴임 회견에서 “과거 청문회에서 나타났던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해 청문회 활성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다’는 식의 주장”이라고 규정했다. 거부권 행사를 검토 중이라는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를 향한 비판이었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주장일 게다. 내각제가 아닌 다수 대통령중심제 국가가 청문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지적은 옳다. 다만 연중 상임위 청문회가 국정을 마비시킬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그의 말처럼 기우라고만 보기도 어렵다. 우리 국회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에서 이미 청문회 제도를 운용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불거진 온갖 구태를 국민들은 신물 나게 목도했지 않나.

정 의장도 이를 의식한 듯 “상임위 차원에서 현안 중심의 청문회가 활성화되면 20대 국회에서 국감을 폐지하는 법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19대 국회 수장으로서 무책임한 얘기다. 헌법에 정해진 국감을 없애는 건 또 다른 위헌 논란을 부를 소지가 있는 데다 법리상 선후 관계가 틀렸기 때문이다. 9월 정기국회 회기 중 30일간으로 정해진 국감을 연중 상임위 청문회 방식으로 전환하려면 하위법인 ‘국정감사 및 조사법’부터 고쳐야 했다.

상시 청문회가 위헌 시비에서 벗어나더라도 의원들의 ‘갑질’이 계속되면 다시 무용론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장·차관과 국·과장들까지 한 두름으로 종일 붙잡아 놓고 정책 현안과 관계없는 호통으로 길들이는 구태부터 없애야 한다. 익숙한 국감장 풍경처럼 기업인들을 불러 망신을 주거나, 출판기념회를 열어 수금하는 식의 부적절한 거래의 장으로 타락해서도 곤란하다. 청문회 제도의 남용 우려를 불식할 보완책 마련이 급선무임을 거듭 강조한다.

2. '화평법' 고쳐야 위해제품 전수조사 효과 볼 것

환경부가 시중 유통되는 살균제, 세정제 등에 어떤 살생물질(유해 생물을 제거하기 위해 첨가한 화학물질)이 들었는지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15종의 위해 우려 제품을 생산하는 3800여 업체들에서 생산품에 사용한 살생물질의 종류가 무엇인지 목록을 받는 작업을 다음달까지 진행한다. 이들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은 8000여개나 된다. ‘페브리즈’ 등 국민 불안이 큰 인기 제품들은 평가를 서둘러 올 하반기에 결과를 우선 공개하기로 했다. 내친김에 제품의 용기나 포장 등에 이용된 살생물제도 실태를 조사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환경부의 전수조사는 전례 없는 대규모 단속 작업이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말까지 국내 유통되는 생활화학제품들을 모조리 조사하게 된다. 그런 작업을 거치고 나면 아무 살생물 제품이나 마음 놓고 쓸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 현행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을 손보지 않는다면 전수조사는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공산이 크다. 이 법을 고치지 않고서는 제2, 제3의 옥시 사태가 또 터질 수 있으니 걱정인 것이다.

2013년 제정된 화평법은 지나치게 기업 편의를 봐준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1t 미만의 화학물질을 수입·제조·판매할 때는 독성시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도록 배려한 것이 법의 골자다. 연간 사용량이 300㎏ 정도였던 옥시 제품의 독성물질 PHMG는 관리망 밖에 있었던 셈이다.

시판되는 제품의 화학물질은 4만여개나 되는데도 정부의 관리망 안에 있는 것은 530종뿐이다. 이마저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화평법에 따라 제조사는 법이 정한 일부 유해물질 성분만 표시하면 된다. 이를 어긴들 1000만원쯤의 과태료만 물면 그만이다. 따지고 보면 유해물질 전수조사도 근본적으로 개운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법대로 하겠다고 우기는 업체라면 성분 자료를 끝까지 내놓지 않아도 받아 낼 방법이 없다.

이달 초 총리실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수습하는 컨트롤타워를 자임했다. 그러고도 범정부 차원에서 모색하는 후속 안전대책이 뭔지, 도무지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화평법은 온갖 우려와 반대를 무릅쓰고 대통령과 현 정부가 나서 밀어붙인 법이다. 기업 위축을 걱정하느라 국민 생명 안전에 뚫린 구멍을 알고도 방치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3. 새누리 의원들 계파 이름표부터 완전히 떼라

총선 참패 이후에도 계파 갈등으로 혼돈에 휩싸여 있던 새누리당이 비로소 정상화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집권 여당의 막중한 책무에 비춰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제 정진석 원내대표와 비박계 수장인 김무성 전 대표, 친박계 좌장인 최경환 의원은 3자 회동을 통해 단일성 집단지도체제 도입, 혁신비대위원장 외부 영입, 계파 청산 등 당 정상화 방안에 합의했다. 이로써 총선 후 확산일로로 치닫던 새누리당 내홍 사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시급히 당을 수습해 책임 있는 집권당의 역할과 기능을 회복하길 기대한다.

이번 합의가 그야말로 ‘완전체’는 아닌 만큼 넘어야 할 산이 산재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 전 대표와 최 의원 간의 이른바 당권·대권 밀약설이 나오는가 하면 밀실합의 등의 비판도 계파를 불문하고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직전 당 대표로서 자문에 응했을 뿐”이라며 ‘합의’라는 표현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조속히 혁신비대위를 구성해 현재의 집단지도체제를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 바꾸는 당헌 개정안을 마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지만 혁신비대위원장 영입부터 계파 간 합의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세 사람은 그제 회동에서 “계파 청산 방안을 마련해 조속히 시행한다”는 데에도 뜻을 같이했다고 한다. 양대 계파의 실력자들이 ‘계파 청산’을 시급한 과제로 인식할 만큼 계파 갈등은 새누리당을 지금의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은 주범이다.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도 새누리당은 계파 갈등을 거듭했고, 이로 인해 당무까지 마비됐다. 당의 공식 결정보다 계파의 이익이 앞서는 등 새누리당은 계파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댔다. 친박계와 비박계로 나뉘어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이다 못해 서로 “네가 떠나라”며 상대방을 극단적으로 배척했다.

이번 합의가 이행되기 위해서는 당선인 총회와 전국위원회 등을 거쳐야만 한다. 고비마다 양대 계파가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지난번 비박계 위주의 비대위·혁신위 구성에 친박계가 전국위 무산 등 실력 과시로 강하게 반발한 것과 마찬가지로 권한이 집중되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에는 비박계 쪽에서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계파를 청산하지 않는다면 어느 때고 내분이 재연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쇄신의 걸음을 떼기 위해서라도 계파 청산은 필수적이다. 새누리당은 사즉생 각오로 계파 청산에 매진해야만 한다.

새누리당은 특정 계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집권 여당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안보와 경제의 국가적 중첩 위기에 직면한 지금 계파 이익에 함몰돼 여당으로서의 책무를 망각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할 수 있다. 주류인 친박계가 주도적으로 나서고, 소속 의원 전원이 탈계파를 선언함으로써 새로운 각오를 보여 주길 바란다. 이번 합의가 또다시 계파 갈등으로 무산돼 쇄신과 담을 쌓는다면 국민들은 더이상 새누리당에 아무런 기대도 갖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소속 의원 전원이 계파 이름표를 떼어 내야만 한다.

[동아일보]

4. 구조조정 실패 STX조선, 4조 낭비한 책임자 누군가

STX조선해양 채권단이 STX조선의 정상화에 실패해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은 어제 수출입은행NH농협은행 등이 참석한 채권단 회의 후 “재실사 결과 추가자금을 지원하면서 자율협약을 지속할 경제적 명분과 실익이 없다”며 이달 말까지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STX가 법정관리 신청을 하더라도 법원이 수용하지 않아 청산될 가능성이 높다.

한때 세계 4위의 조선소였던 STX조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주 급감에도 무리한 확장에 고비용 구조를 감당하지 못해 2013년 4월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국책 및 시중은행 채권단은 이 회사에 4조5000억 원을 추가 지원했고, 그 이전의 채무까지 포함한 금융권 빚 총액은 5조9600억 원에 이른다. 구조조정 실패로 국책은행이 짊어진 손실은 사실상 국민 부담이다. 

조선업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론만 믿고는 과감히 부실을 떨어내는 대신 부실 기업을 연명시켜 온 채권은행, 이를 묵인하고 방조한 정부, STX조선을 살리라는 압력을 행사한 정치권 책임이 크다. 2012년 12월 26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STX조선 강덕수 회장 등 재계 총수들을 만난 자리에서 정리해고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특히 STX조선의 자율협약 신청 나흘 뒤 산은 회장에 취임한 ‘낙하산 인사’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는 STX조선 진해조선소를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을 만큼 무관심했다. 법적 책임은 더 따져봐야겠지만 대규모 부실에 책임 있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분명한 문책이 이뤄져야 한다. 불과 한 달 전 “STX조선 등 부실 중소형 조선사들의 법정관리 전환 여부를 하반기에 결정하겠다”던 금융 당국의 부실한 판단 능력도 걱정스럽다. 

금융 당국과 채권은행들은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와 성동조선 SPP조선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의 구조조정에서 STX조선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산업개편의 큰 그림과 경제논리에 입각해 살릴 기업과 퇴출시킬 기업을 가려내지 않으면 혈세만 낭비하는 일이 된다. 옥석(玉石)을 가리지 않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퍼주기를 계속하는 일은STX조선 하나로 끝내야 할 것이다.

5. 大法은 ‘몰래 변론’ 근절책 찾는데 검찰은 손놓고 있나

대법원이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정운호 전방위 로비 의혹과 관련해 구속된 것을 계기로 퇴직 예정자 윤리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정식 선임계를 낸 변호사가 판사실로 전화를 걸어 논의를 하는 것이 허용됐지만 앞으로는 변호사와 판사의 통화를 모두 녹음하거나, 법정 밖 판사와 변호사 간 전화 접촉을 아예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검찰 출신으로는 검사장이었던 홍만표 변호사가 이 사건에 깊숙이 연루돼 있다. 수임비리도 다양하지만 1조3000억 원대 투자 사기와 횡령 혐의로 기소된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부부를 이른바 ‘몰래 변론’한 혐의 등도 속속 포착됐다. 그러나 검찰은 법조비리 대책은 고사하고 홍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지 2주일이 지나도록 소환도 하지 않고 있다.

전화로 선처를 부탁하는 식의 몰래 변론은 기록이 남지 않아 전관(前官)예우를 감출 수 있고 수임료가 오간 정황을 숨겨 세금도 빼돌릴 수 있다. 변호사법은 몰래 변론을 금지하고 있으나 형사처벌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법조윤리위원회가 최근 전관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수임 내역 전수조사에 나섰지만 몰래 변론은 선임계를 내지 않아 적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고위직 검사 출신 변호사들에게 몰래 변론은 비법적(非法的) 특권이라고 불린다. 수사는 비공개가 원칙인 데다 무혐의 처분이나 영장 기각 등 법원에 넘어가기 전 재량권이 많아 수사 단계에서 어떤 거래가 오가는지 외부에서 알기도 힘들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장 출신 최교일 변호사와 서울북부지검장 출신 임권수 변호사도 몰래 변론을 했다가 2000만 원씩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홍 변호사는 2011년 검경 수사권 조정에 항의해 옷을 벗었다. 검찰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 왜 그토록 반대했는지 알 것 같다. 

그동안 검찰은 법원의 전관예우 방지 조치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검찰은 기소만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 수사에 대한 지휘권을 갖고 직접 수사를 할 수도 있다. 이런 구조가 법원보다 검찰의 비리 근절을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면 검찰 권한을 축소하는 법 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홍 변호사의 몰래 변론을 받아줌으로써 전관을 예우하고 탈세에 공모한 현직 판검사부터 샅샅이 찾아내 문책해야 한다.

6. 與, 혁신 없는 야합으론 ‘반기문 대망론’도 헛꿈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그제 김무성 전 대표와 최경환 의원을 함께 만나 계파 해체 선언 등 당 정상화 방안에 합의한 것을 두고 비판이 거세다. “3김 시대 같은 밀실 야합” “계파 수장들과 계파 청산을 도모한다는 것은 모순” “총선 참패 책임자들에게 셀프 면죄부를 줬다” 같은 비난이 쏟아졌다. 김 전 대표는 “합의가 아니고 직전 당 대표로서 자문에 응했을 뿐”이라고 서둘러 한발 빼는 ‘36시간의 법칙’까지 보였다. 

일리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이 대립하고 정 원내대표는 ‘낀박’ 신세인 판에 계파 수장급의 결단 없는 수습은 불가능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만남의 형식이 아니라 혁신의 내용이다. 혁신 비대위를 이끌 외부 인사를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처럼 강단과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데려올 수 있는지가 첫째 과제다. 혁신 비대위는 전당대회 준비 역할을 넘어 국민의 공감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획기적 쇄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실질적 계파 해체를 이뤄내는 것도 큰 과제다.

친박이 대선후보감으로 띄우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어제 제주에 도착해 5박 6일간 일본과 한국을 오가는 일정에 들어갔다. 4·13총선 참패로 여권 대선주자군이 지리멸렬한 데다 정계 개편론까지 나오면서 반 총장의 대선 출마를 의미하는 ‘반기문 대망론’이 여권에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여론조사 1, 2위를 지키고 있는 반 총장이라도 업지 않고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는 위기감 때문인지 충청권 정 원내대표 등 여권 인사들이 대거 제주까지 출동했다. 

그동안 대선 출마에 대해 확언도, 부인도 않던 반 총장은 어제 관훈포럼 초청 토론회에서 “내년 1월 1일이 되면 이제 한국 사람이 되니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그때 결심하고, 필요하면 여러분에게 조언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을 했으니 (국민의) 기대가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두겠다”는 말은 대선 출마 시사로 들린다.

여권에선 환호성이 나오겠지만 반기문 대망론도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높을 때나 실현 가능하다. 계파 갈등을 청산하지 못하고 쇄신에 실패해 국민에게 희망을 못 준다고 낙인찍힌다면 반 총장이 손잡을 까닭도 없고, 손잡은들 국민이 찍어줄 리 없다. 과거 박찬종 정몽준 고건 씨도 한때 여론의 지지가 높다고 계속 유지되지는 않았다. 새누리당이 스스로 국민에게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반기문 대망론은 한갓 헛꿈에 불과할 것이다.

[중앙일보]

7. 경유값 인상은 미봉책…미세먼지 종합대책 새로 짜라

국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미세먼지는 인내할 수도 방치할 수도 없는 수준에 달했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적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세우라”고 최근 국무회의에서 주문하고 나선 배경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어제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미세먼지 종합대책 회의를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머리를 맞대기도 전에 돌연 취소됐다. 부처 간 이견을 사전 조정하지 못하면서다.

파행은 예고돼 있었다. 환경부가 현재 휘발유값 대비 85%로 맞춰져 있는 경유값을 올리자는 방안부터 덜컥 내놓았는데,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여기에 제동을 건 것이다. 환경부는 경유값을 올리면 자동차 미세먼지의 70%를 차지하는 디젤차량의 운행을 억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단세포적으로 생각하면 맞는 얘기다.

하지만 미세먼지 종합대책의 카드로 경유값 인상부터 내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세먼지 해소 대책이 곁길로 샐 수 있어서다. 수시로 한반도를 회색빛으로 뒤덮는 미세먼지는 대기순환을 통해 중국에서 유입되는 부분이 상당하다. 그렇다면 미세먼지 대책은 이 부분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환경부가 2013년 미세먼지 종합대책을 마련해 한·중·일 환경장관회의를 열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국내 차원에서는 미세먼지뿐 아니라 산업시설과 발전소, 디젤차량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질소산화물을 줄이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무턱대고 경유값을 올리는 것은 ‘양날의 칼’이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최대 원인인 중국발 미세먼지 대책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경유값부터 올리면 물류비용 상승과 소비자물가 인상을 촉발할 수 있다. 정부가 보조금까지 줘가면서 디젤차 사용을 부추기더니 돌연 경유값을 올린다면 디젤차 운전자는 물론이고 봉고차 한 대 달랑 몰고 다니는 영세 자영업자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경유값은 산업 경쟁력과 관계가 밀접하다. 그래서 나라마다 산업구조에 따라 정책이 달라진다. 제조업 비중이 낮은 영국은 휘발유값 대비 경유값이 101%에 달한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디젤엔진이 질소산화물을 배출함에도 불구하고 휘발유값 대비 경유값이 한국과 같은 수준인 85%를 유지하고 있다. 그 대신 일본은 근본적인 대책을 통해 문제를 극복해 왔다. 대기오염 물질 배출을 차단하는 기술을 획기적으로 개발하고 환경감시 시스템을 철저하게 구축해 ‘클린 재팬’을 만들어 냈다. 일본이 산업시설 주변에 인공연못을 만들어 물고기를 키우는 것도 이런 자신감의 표출이다.

우리도 지속가능한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순위도 세심하게 조정해야 한다. 경유값 인상에 앞서 10년 이상 된 노후 디젤차부터 하루빨리 도태시키는 게 중요하다. 또 국내 디젤 상용차에 설치됐지만 유명무실해진 질소산화물 저감장치 감독을 강화하고 산업시설의 오염물질 배출 차단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경유값 인상을 성역으로 둘 이유는 없지만 대통령 보고를 위해 졸속 대책을 만들어선 부작용만 커질 뿐이다.

[매일경제]

8. 새누리당 친박-비박 '국정동반' 마지막 기회 살려라

새누리당이 혁신비상대책위원장 선임과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의 개편 방안 등을 놓고 다음주 초 의원총회를 열어 결론을 내리겠다고 한다. 4·13 총선 참패 이후 표류해온 새누리당이 24일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무성 전 대표, 최경환 의원 등 3자 회동을 계기로 다시 기로에 서 있는 모양새다. 오는 30일 20대 국회가 임기를 시작하는 마당에 여당의 지도부 공백 사태는 하루빨리 해소돼야 할 일이다. 

새누리당 3자 회동을 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다. 총선 패배를 책임져야 할 당사자들이 밀실 합의를 했다거나 계파를 오히려 부각시킨 행태라는 비판도 나온다. 또 김 전 대표는 단순히 자문에 응한 것일 뿐 당 정상화 방안에 합의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문하는 형식이든 주류·비주류 대표주자가 밑그림을 그리는 형식이든 중진들이 모여 당 정상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새누리당은 혁신위원장·비대위원 인선이 최근 불발하면서 구심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김무성·최경환 의원이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자숙한다지만 그것은 최소한 당 혁신을 위한 구심점이 마련된 이후의 일이다.

국정에 추진력을 얹지는 못할망정 국민에게 불안을 주지 않기 위해서도 여당이 조속히 쇄신을 위한 기본 틀을 갖춰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김무성·최경환 의원이 한목소리로 당 정상화 방안을 제시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도 시원찮을 판에 회동 결과를 놓고 서로 엇갈린 주장을 내놓는 듯한 모습은 유감이다. 

정 원내대표는 김 전 대표와 최 의원으로부터 혁신비대위원장 후보를 추천받아 이른 시일 내에 선임할 방침이라는데 더 이상의 파열음이 나오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정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 겸직, 혁신위원장·비대위원 인선에 실패하면서 궁지에 몰렸는데 그 실패를 경험 삼아 이번에야말로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한번 더 당 쇄신안이 처리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새누리당은 더 이상 여당으로서 국정 책임을 자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 국정 뒷받침을 위해서도 새누리당은 혁신비대위 구성과 당헌·당규 개정 과정에서 양보와 포용으로 하루빨리 지도부 공백을 메워야 한다.

[부산일보]

9. 새누리, '혁신비대위' 졔대로 꾸려야 그나마 희망 있다

새누리당이 정진석-김무성-최경환 '3자 회동'을 통해 수습의 계기를 마련했다.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회를 단일화한 '혁신비대위'를 구성하고 혁신비대위원장은 외부 인사를 영입하며, 대표 권한을 강화한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하는 것 등이 골자다. 회동의 한 당사자인 김 전 대표 측이 '3자 합의'가 아닌 '조언'이라며 한발 빼는 모양새지만, 정 원내대표가 다음 주 초에 의원총회 등 당의 공식 기구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논의키로 한 만큼 큰 틀에서는 정상화의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총선 패배 이후 40일 넘게 표류해 온 새누리당이 그간의 갈등과 파행을 수습하고 이제라도 정상화의 계기를 마련한 점은 다행스럽다. 이번 3자 회동을 두고 '밀실 합의'라거나, 계파 청산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계파정치에 매몰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세'가 나서야 문제가 해결되는 새누리당 계파정치의 실체와 구조적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20대 국회 개원이 코앞이지만 지금의 새누리당은 야당과의 원 구성 협상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한 상태다. 지금처럼 갈등을 계속하다가는 공멸이다. 이렇게라도 수습의 길을 모색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결국 관건은 앞으로 구성될 혁신비대위다. 혁신비대위원장 추천 등 혁신비대위 구성을 두고 또다시 계파 간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혁신비대위의 권한이나 활동 기간이 제한돼 전당대회 준비나 하는 '관리형'에 그치고 제대로 된 혁신안을 마련하고 실천하지 못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새로 구성될 혁신비대위마저 혁신을 외면하고 구태를 재현한다면 새누리당의 미래도 희망도 없다. 국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인사를 혁신비대위원장으로 선임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혁신안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총선 패배에 책임이 있는 세력이 반성 대신 당권 장악에만 몰두하는지를 국민은 주시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뼈를 깎는 혁신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10. 찬성 여론 높은 지방분권 개헌은 균형발전 장기 과제

지방분권에 관한 한 유럽 선진국들이 앞서가고 있다. 독일의 경우 재정 권한이 지방정부에 대폭 넘어가 있다. 독일의 도시들이 과거와 현재를 간직한 채 조화 속에 공존하는 건 재정을 지역 특성에 맞게 사용한 덕택이다. 지방자치 27년째인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분권이 아닌 중앙집중, 균형 발전이 아닌 특정지역 편중이 심해졌다. 이래서야 지방자치, 지방분권, 균형발전은 공염불이다. '지방분권 개헌' 요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분권 개헌을 바라는 시민들이 압도적인 다수임이 다시 입증됐다. 균형발전지방분권 부산시민사회연대, 부경대 부산발전연구소 등이 시민정책공방 사회여론센터에 의뢰한 설문조사에서다. 이 여론조사 대상은 부산지역 16개 구·군 700명이다. '20대 국회에서 지방분권 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매우 찬성' 30.1%, '약간 찬성' 40.3%로 집계됐다. 부산 시민 10명 중 7명이 지방분권 개헌을 바란다는 것이다. '지방분권 개헌'에 대한 홍보가 부족한 현실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편이다. 개헌을 한다면 언제가 바람직한가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32.1%가 201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꼽았다. 이어 2018년 6월 지방선거(24.1%), 2020년 4월 국회의원 선거(11.7%) 순이었다. 응답자들은 빠를수록 더 좋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누차에 걸쳐 분권개헌 실시를 주장해 왔다. 부산지역 학자와 시민단체도 줄기차게 분권개헌 운동을 벌였다. 이 같은 상황은 전국 지자체가 마찬가지다. 각 정당에서도 공약으로 채택한 지 오래다. 분권 운동가들은 개헌에 대한 부담감, 지방정부 재정이양에 대한 거부감 등을 가진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서 원인을 찾는다. 

이제 도시 간 경쟁 시대를 살고 있다. 도시는 나날이 변화하고 몸집도 늘었다. 선진국들은 분권을 통해 지방정부에 날개를 달아 주고 있다. 한국에선 20년 전의 옷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런 일이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나. 설문조사 결과가 가진 의미를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국일보]미스터리의 힘, 카스파 하우저

1828년 5월 26일, 바이에른 왕국 뉘른베르크에서 기이한 이야기 하나가 시작됐다. 카스파 하우저(Kaspar Hauser)라는 10대 소년 이야기다. 

허름한 농부 차림의 낯선 그가 저 날 거리에 나타났다. 언어를 익히지 못해 소통이 거의 불가능했고 정신연령도 낮고 몸놀림도 둔했다고 한다.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아이 아버지처럼 기병대가 되게 하든지 아니면 목을 매달라”는 편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쓴 사람의 신원은 물론 적혀 있지 않았다. 흔했을 떠돌이에게 주민들이, 나중엔 이웃 나라의 귀족들까지 왜 관심을 쏟았는지가 먼저 의문이다. 인근 마을 어디서도 그를 아는 이가 없었고, 봤다는 이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을 학교장이던 게오르그 다우머라는 이가 아이를 돌보며 꾸준히 말과 글을 가르쳐 확인한 바, 하우저는 늘 작은 독방에 감금된 채 누군가가 넣어주는 빵과 물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소년은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였지만, 죽음은 더 큰 미스터리를 낳았다. 1년여 뒤 그는 다우머의 집에서 괴한에게 습격 당해 큰 상처를 입었고, 총격을 모면한 적도 있었다. 1833년 12월 14일 그는 부모가 누군지 알려주겠다는 누군가의 편지를 받고 외출했다가 안스바흐 법원 정원에서 가슴에 칼을 맞고 사흘 뒤 숨졌다. 

그를 거짓말쟁이라 여긴 이들은 피습도 자작극이라 했지만, 다수는 1812년 태어나 3주 만에 숨진 것으로 알려진 바덴(Baden)의 대공 찰스의 사생아라 짐작했다고 한다. 나폴레옹 1세의 양녀인 대공비가 은밀히 가둬 키우다 버렸는데, 대공과 닮았다는 소문이 나자 부득이 자객을 보냈다는 설. 하지만 1996년 ‘슈피겔’은 전문 기관의 유전자 대조 분석 결과 대공가의 혈통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독일 뉘른베르크 인근 안스바흐(Ansbach) 공동묘지에는 하우저의 묘비가 서 있다. 라틴어 묘비에는 “여기 나이를 알 수 없는 카스파 하우저 묻히다. 생일처럼 죽음도 미스터리였다”고 적혔다. 미스터리의 예술적 힘일까. 그의 이야기는 톨스토이, 폴 오스터 등의 소설을 비롯한 수많은 문학과 음악, 드라마, 연극의 직간접적인 소재가 됐다. 

2. [서울신문][문화마당] 호루라기/최진영 소설가

스물한 살 때 일이다.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느 날 퇴근길 주택가에서 한 남자와 마주쳤다. 남자는 내 옆을 빠르게 스쳐 갔다. 좋지 않은 느낌에 뒤를 돌아봤다. 방금 스친 그 남자가 내 뒤에 서 있었다. 놀라서 얼어붙은 나를 등 뒤에서 꽉 안았다. 나는 주저앉으며 소리 질렀다. 길바닥을 구르며 발버둥쳤다. 남자는 내 몸을 더듬다가 달아났다. 반쯤 정신이 나간 채 집까지 달려가 문을 잠그고 더러워진 팔뚝에 얼굴을 묻으며 생각했다. ‘내가 여기로 들어오는 걸 그 남자가 봤으면 어떡하지?’

그다음 해에 있었던 일. 공중전화 부스에서 통화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시커먼 옷을 입은 남자가 나를 덥석 안았다. 사거리 대로변이었다. 해가 일찍 지는 겨울밤이었지만 9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스물여섯 살 때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밤 10시쯤이었다. 퇴근길에 자주 뒤를 돌아봤다. 지난 경험으로 생긴 버릇이었다. 인적이 드문 길에서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지 않는 것. 주변을 둘러보는 것. 낯선 남자와 나 둘뿐이면 재빨리 그 길을 벗어나는 것. 그날 역시 그랬다. 뒤를 돌아보자마자 남자가 달려들었다. 나는 발버둥치고 소리 질렀는데, 이번에는 비명만 지른 게 아니라 쌍욕을 하고 발길질을 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도망치는 남자를 쫓아가며 돌을 집어 던졌다.

이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하지만 나는 집 안에 틀어박히지 않았다. 외출하고 귀가했다.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마트에 들렀다. 밤길을 홀로 걸어야 한다면 그렇게 했다. 이십대 성인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자기보다 작고 어린 여자를 뒤에서 덮치기나 하는 남자들 때문에 나의 생활을 놓을 수는 없었다. 내 잘못이 아닌데 왜 숨어야 한단 말인가.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소식을 듣고 나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내게 달려들었던 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흉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여자 몸을 더듬자고 나를 덮친 게 아니라 여자를 죽이겠다는 결심으로 나를 쫓았다면?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짧은 문장은 바로 나의 마음이었다. 그렇다.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

내 경험을 듣고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지’, ‘밤에는 나다니질 말아야지’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말은 ‘여자인 네가 조심하지 않아서’라고 들렸다. 어떻게 얼마나 더 조심하란 말인가? 생활을 포기하란 말인가? 가스총이나 칼을 품고 다니란 뜻일까? 여자라는 이유로 그런 걸 품고 다녀야 하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모든 남자가 그렇진 않다’는 말도 마찬가지. 피해자에 대한 걱정보다 남자 일반에 대한 옹호가 앞서다니, 뭔가 이상하다. 범인은 여자를 골라 죽였다. 그런 남성이 존재하는 한 모든 여성은 잠재적 피해자다. 강력범죄 피해자 중 88.7%가 여성이라는 통계도 있다. 그러니 침묵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공감하고 연대해 그릇된 인식과 치안을 함께 고민하자는 것이다. 그런데도 ‘모든 남자가 그렇진 않다’며 불쾌감과 자기방어를 먼저 드러낸다면 그것은 ‘나만 아니면 돼’의 다른 표현 아닌가.

아버지는 알아서 조심하라는 충고 대신 내게 호루라기를 줬다. 자식에게 칼이나 망치를 건넬 수는 없으니, 호루라기는 당신이 줄 수 있는 최선의 무기였을 것이다. 호루라기 소리가 내 비명보다 작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호루라기를 쥐고 밤길을 걷는다. 아무것도 쥐지 않은 주먹보다는 호루라기라도 쥔 주먹이 더 강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에.

3. [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김여정의 신랑감 찾기

“내 딸과 결혼하는 사람에게 5억 홍콩달러(약 700억 원)를 주겠다.” 2012년 홍콩의 재벌 세실 차오가 당시 31세인 딸의 신랑감 구하기에 나서며 내건 조건이다. 전 세계 남자들이 귀를 쫑긋했지만 걸림돌이 있었다. 그의 딸은 레즈비언으로 앞서 프랑스에서 동성 결혼식을 올렸다는 점이다.

그래도 바람둥이로 소문난 아버지는 포기를 몰랐다. 2년 뒤 좋은 짝을 찾아주겠다는 일념 아래 ‘지참금’을 10억 홍콩달러로 올렸다. 참다못한 딸이 공개편지를 보냈다. 내용인즉, 서로의 애정 문제는 건드리지 말자는 제안이었다. 최근 북한에서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여동생 여정(28)의 배필을 찾으려 팔을 걷어붙였다는 소식이다. 그가 각별히 아끼는 것으로 알려진 여정은 서열과 직책 관계없이 사실상 2인자, 그런 여정의 남편감 조건은 무엇일까.

영국 대중지 ‘더 선’은 탈북자 말을 인용해 ‘김일성대 졸업, 키 178cm 이상, 준수한 외모, 인민군 복무 경력’ 등을 갖춘 3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누구도 ‘낙점’을 거부하지 못할 테니 평양판 막장 드라마가 진짜 현실이 될지 모르겠다. 재벌가나 권력층의 안하무인 딸과 결혼했다 본인은 물론이고 온 가족이 수난을 겪는 남자 주인공처럼 말이다. 백두혈통의 사생활이 베일에 가려진 만큼 확인된 건 없다. 최룡해 아들과 결혼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여정이 최룡해에게 반말을 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쑥 들어갔다. 얼마 전 방북한 일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미혼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도 아닌데 여정의 남편 존재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다만 결혼 여부에 계속 관심이 쏠렸음에도 정보당국이 줄곧 헛다리를 짚었다는 점이 꺼림칙하다. 작년 4월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에서 “(2015년) 5월 출산”이라며 출산예정일까지 못 박았는데 ‘여정=미혼’이 맞다면 망신살이 뻗쳤다. 톱스타 열애 폭로 기사로 알려진 연예매체보다 정보수집 능력이 떨어진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지경이다. 그나저나 북 최고존엄 지도자 여동생과 결혼하는 것은 과연 독일까 약일까.

4.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기다림

서울에서 장항선 완행열차를 타고 광천역에 내리면 역전 광장 한구석에 자전거를 세우고 기다리고 계셨다.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한 아들이 고향집으로 내려올 때마다 아버지는 늘 마중을 나오셨다. 벌써 50년 전 일이지만 그는 지금도 광천역에 내리면 자기도 모르게 사방을 둘러보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저만치 자전거를 세워놓고 기다리고 계실 것만 같아서다. 

한 시간 전부터 역에 나와 아들을 기다린 아버지는 그러나 집으로 가는 동안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막상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면 수줍어 말 못하는 총각처럼 오히려 무뚝뚝하게 아들의 짐만 자전거 짐칸에 싣고 앞장섰다. 그리고 아들이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날에는 바리바리 짐 보따리를 자전거 뒤에 가득 싣고 한 시간 전부터 또 휭 하니 광천역으로 나가셨다.

‘낯선 서울에서 몸조심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못된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고 세끼 밥 꼬박꼬박 잘 챙겨 먹어라. 넌 장남이니 우리 집의 기둥이다. 네가 잘되어야 네 동생들도 본받아 잘할 거 아니냐. 이 아버지는 너만 믿는다.’ 아마 아버지는 이런 말들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끝내 심중의 말을 꺼내지 않으셨다. 아버지와 아들은 침묵으로도 얼추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으니 말이란 어차피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는지 모른다.

간곡하고 정성스러운 아버지의 기대와 다르게 아들은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자리를 잡지 못하여 열댓 군데의 직장을 떠돌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역전에 나와 이제는 장성한 아들을 기다리셨고, 안타깝고 답답했으련만 이렇다 할 속내를 내보이지 않으셨다. 그냥 기다림이 전부였다.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반가운 소식을 기다릴 뿐 가타부타 참견을 하지 않았다.

아들 장사익은 40대 중반에 이르러 뒤늦게 소리꾼으로 데뷔했다. 열다섯에 상경하여 30년 만이었다. 그 이후 빠르게 정점을 향해 나아갈 때 아쉽게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의 기나긴 기다림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오랜 기다림이 끝났으니 마음 놓고 훌훌 떠나신 걸까.

갈팡질팡하거나 느린 걸음일지라도 기다려주는 사람만 있다면 끝까지 갈 수 있다. 걸음마를 배울 때 엄마가 팔을 벌려 기다리면 넘어져도 불끈 일어났듯이.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큰 격려는 변치 않는 기다림인지 모른다.

5. [동아일보][2030 세상/손수지]화나는 세상, 화내지 않고 살아갈 용기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주무시다 일어나서 갑자기 창문을 열어젖히는 일이 잦았다. 한겨울 바람이 쌩쌩 부는 창가에 앉아 한참이나 가슴을 두드린 후에야 다시 잠을 청하시곤 했다. 날씨도 추운데 왜 창문을 열어두느냐고 내가 투정하면 속에서 열불이 나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대답하셨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 마음속에 열불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는 여러 가지였다. 

돌아가신 지 몇십 년이 지난 시어머니의 고된 시집살이, 청상과부를 만들어버린 할아버지를 향한 원망, 말썽을 부리는 자식을 향한 걱정….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우울과 분노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누르고 또 눌러 화병이 생겼던 것 같다. 참고 견디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세대이니 할머니는 마음속 응어리를 제대로 꺼내 보지도 못한 채 한평생을 보내셨다. 

할머니와 반대로 화를 숨기지 않고, 마음껏 표출하는 사람도 있었다. 유년기를 보낸 동네에는 술만 먹으면 자신의 가족에게 해코지하는 이웃이 살았다. 말리는 사람에게도 행패를 부려 그 어른이 술을 많이 먹고 오는 날이면 온 동네가 공포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그 집 가족은 그분이 술이 깰 때까지 골목에 나와 기다리곤 했다. 무슨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웃 어른은 주기적으로 분노를 표현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사람처럼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질러댔다. 

화는 여러 형태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외할머니처럼 쌓이고 쌓여 바위처럼 단단해진 화 덩어리를 가진 안타까운 이들이 있다. 이웃 사람처럼 자신의 분노를 불티처럼 날려 사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폭탄 같은 분노를 남들 모르게 품고 있다 갑자기 큰 사건을 터뜨려 온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도 있다. 

내가 가진 분노나 미움의 모습은 제대로 볼 기회가 적었다. 어렸을 때는 크게 화를 낼 일이 없었다.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던 학창 시절에는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웠다. 학업과 입시는 힘든 일이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즐거운 시간으로 이겨낼 만했던 것 같다. 화가 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에 쌓아두거나 주변 사람에게 화풀이할 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남을 향한 분노나 미움이 내 속에서 자라고 있다고 느낀 것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일을 하다 마찰이라도 생기면 마음속에 화산이 폭발하는 듯 분노가 치밀었다. 선배든 후배든 갑을 관계로 만난 사람이든 내 의견을 다 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생각이 다르다 보니 가끔 다툼도 생겼다. 제대로 말도 못하고 며칠을 끙끙 앓은 적도 있다. 

그렇다고 언제나 화를 쌓아두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참는다고 참았는데도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혼자서 술을 마시고 억지로 잠을 청하기도 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화를 여과 없이 드러내거나 분노의 파편을 튀기며, 상처를 주는 못된 행동도 보였다. 

종일 인터넷을 끼고 살 수 있는 환경이다 보니 나와 먼 이야기에 분노를 터뜨리는 일도 많아졌다. 여러 이슈에 대해 나와 다른 타인의 의견을 여과 없이 접할 수 있다 보니 실체도 없는 대상에 화가 나는 일도 종종 생긴다. 나와 상관없는 일인데도 온라인에서 격한 다툼이 일어날 때면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기도 했다. 

내 속에 치미는 화가 언제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화를 제때 풀어내기 위해 만든 여러 취미가 이제는 생활의 활력소가 되었다. 불가능한 일을 해 보이겠다는 오기로 가능하게 만들어 능력의 한계치를 좀 더 확장하기도 했다. 집단의 분노 역시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잊혀지거나 억지로 묻어버린 사회 문제가 집단의 요구로 해결되는 일을 여러 번 보았다. 분노가 때로는 세상을 바꾸기도 했다. 화를 무조건 참고 가만히 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무엇 하나 경쟁이 아닌 것이 없다. 남이 쓰러지지 않으면 내가 쓰러지는 형국이니 모두의 마음속 분노가 들끓고 있음이 느껴진다. 어렵겠지만,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불의에는 용기를 내 함께 힘을 합치면 더 좋겠다. 좁아진 이해심의 방의 크기를 키워 배려와 약자를 존중하는 일, 나부터 시작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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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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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5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여혐' '남혐' 대결장으로 변한 추모현장

서울 강남 화장실 살인사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성한 추모 공간이 엉뚱하게 성대결의 장으로 번진 데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갈등의 극대화를 통해 자기만족을 채우려는 그릇된 욕심이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 추모 현장에서 ‘여혐(여성 혐오)’이니 ‘남혐(남성 혐오)’이니 하며 다투다니, 23살의 꽃다운 젊음을 생면부지의 범인에게 무참히 빼앗긴 피해자에게 부끄럽기만 하다.

범인은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기다리다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죽이는 ‘묻지마 범죄’를 저질렀다. 이에 대해 일부 누리꾼들이 남성은 범행대상에서 제외시킨 ‘여혐’이라고 주장했고, 다시 “남혐을 부추기지 말라”는 반격이 제기됐다. 논란은 ‘김치녀(김치+여성)’, ‘한남충(한국 남자+벌레)’ 등의 혐오 용어가 난무하며 확산되다가 급기야 추모 현장에서 몸싸움까지 빚어지기에 이르렀다. 추모정신을 망각한 추태가 아닐 수 없다.

정신이상자의 돌출행동을 사회 전체의 일반 현상으로 확대 해석해선 곤란하다. 범인이 어제 현장검증에서 심경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그냥 담담하다”고 태연자약하게 답변한 것만 봐도 온전한 정신 상태는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 성차별이 여전하며 여성을 범죄에서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크게 미흡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놓고 여혐이 만연한 탓으로 몰아가거나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듯 남혐을 규탄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갈등만 증폭시킬 뿐 문제 해결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오빠가 현장의 소동을 지켜보며 “죽은 사람과 관련도 없는 이들이 자기들만의 얘기를 하고 있다”며 절규한 것도 그래서일 게다.

우리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유일한 나라임을 자부하기에 앞서 여성과 아동,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턱없이 부족한 점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강남 한복판에 공용화장실이 버티고 있는 것도 선진사회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비상벨 설치 등 화장실 안전 확충을 포함해 여성들에 대한 배려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2. SK·CJ 인수합병 심사 왜 지연되나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심사가 계속 늦춰지고 있다. SK텔레콤이 지난해 12월 공정위에 기업결합 심사를 신청한 이래 벌써 6달 가까이 지나가는 중이다. 공정거래위가 과거 사례를 들어 지금의 심사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내세우는 자체가 문제다. 인수·합병 심사가 1년이 넘게 걸리기도 했던 과거의 일부 업무처리가 마치 정당했다고 내세우는 투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이 합치게 된다면 이동통신 및 케이블TV 업계에 막대한 파급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세심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더라도 기한은 지켜지는 게 옳다. 현행법에 120일의 기한을 정해놓은 취지가 그런 뜻이다. 기한이 늦춰졌던 과거 사례가 업무처리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이 올바른 것이 아니라면 제대로 잡아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인수·합병을 빨리 허가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조건에 맞지 않다면 맞지 않는 대로 처리하면 그뿐이다. 기업이 인수·합병을 시도하면서 나름대로 투자 계획이 있기 마련이며 시기를 놓칠수록 효과는 떨어지게 된다. 자칫 예상하지 못했던 역풍에 시달릴 수도 있다. 이번 경우에도 CJ헬로비전 소액주주들이 주가 상승 등을 이유로 들어 합병비율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진통이 이어지는 중이다.

문제는 공정위 심사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공정위를 통과해도 방송통신위원회의 사전승인 절차를 거쳐 미래창조과학부의 최종 승인이 떨어지기까지는 또 어느 만큼의 시일이 걸릴지 장담하기 어렵다. 더욱이 통합방송법 개정안이 다음 20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될 예정이어서 이들 두 회사의 인수합병 문제는 정치적으로도 논란을 피할 수가 없게 됐다.

중요한 것은 업무 처리에 임하는 공직자들의 기본 자세다. 아무리 위에서 규제개혁을 내세우고 절차를 간소화하도록 강조해도 밑에서 서류를 붙잡고 있다면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렵다. 직접적으로 이해관계에 있는 다른 통신사나 방송사, 시청자 단체들의 논란이 이어지는 만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지만 자꾸 날짜만 보낼 일은 아니다. 정부가 관련업계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불평만큼은 듣지 말아야 한다.

[서울신문]

3.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무고한 피해자 없게 하길

경찰이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계기로 정신질환자의 입원 등 관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그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를 발견하면 행정입원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행정입원은 경찰이 의사에게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요청하면 해당 의사가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진단과 보호를 신청하는 제도다. 다만 범죄 가능성이 의심된다는 전제에서다. 긴급 상황 발생 때 72시간 이내에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는 기존의 응급입원제 역시 활용하기로 했다.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닌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라는 결론의 틀에서 정신질환자가 대책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강 청장의 발언은 정신질환자의 인권침해 소지를 포함해 적잖은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고 있다. 또 범죄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의심되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판단 잣대도 문제다. 경찰은 정신질환자의 범죄 위험도를 측정하는 체크 리스트를 만들 계획이다. 그러나 정신질환은 한 가지 기준으로 판정할 수 없다는 게 의료계의 의견이다. 따라서 점검표에 의존해 입원을 결정하려는 경찰의 조치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자칫 오판하면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통념과는 달리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비정신질환자의 10분의1 수준이라는 통계도 있다.

강제 입원을 규정한 현행 정신보건법 제24조 제1항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청구된 상태다. 악용 사례가 잦은 탓이다. 부양 의무자나 후견인 등 보호 의무자 2명의 동의가 있고 정신과 전문의가 진단하면 정신질환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입원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법적 절차를 밟아도 인권침해를 낳는 판에 길거리에서 범죄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만을 콕 찍어 낼 수 있겠는가. 이번 사건 피의자도 조사 과정에서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범죄 우려의 구분이 쉽지 않다. 물론 실질적인 위험성을 가진 정신질환자의 격리는 마땅하다. 그렇다고 정신질환자에게 범죄자라는 편견의 굴레에 덧씌워서는 안 된다. 오히려 치료를 꺼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정신질환자도 도외시할 수 없겠지만 안전 위협 요인들을 더 철저히 파악해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야 한다. 빈틈없는 치안은 중요한 복지 정책이다.

4. 북한 비핵화 의제라면 회담 못할 이유 없다

그제 정부는 군사회담을 열자는 북한의 잇단 제안에 선을 그었다. 국방부가 북한 인민무력부가 보낸 전화통지문에 대한 답신을 통해 북측의 파상적 대화 공세에 진정성이 없음을 지적하면서다. 국방부는 한반도의 현 긴장 고조 상황은 북측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도발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면서 비핵화에 대한 북측의 입장 표명을 먼저 요구했다. 현시점에서 정부가 북측의 ‘위장평화 공세’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 자체는 당연하다고 본다. 다만 우리는 북한 비핵화 원칙을 지키면서도 남북 대화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 전략적 대북 접근도 주문하고자 한다.

최근 북한은 남북 군사당국 간 회담에 부쩍 몸이 단 모습이다. 북한 국방위원회가 공개 서한으로 제안한 데 이어 인민무력부가 실무접촉 시점을 5월 말∼6월 초로 잡아 그들 스스로 끊었던 군 통신선으로 전통문까지 보내왔다. 22일엔 조평통 원동연 서기국장이 회담 개최를 촉구하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북측이 일련의 파상적 대화 공세를 벌이는 의도는 뻔하다. 굳이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엊그제 언론 인터뷰에서 “핵개발 책임을 덮고 가려는 면피용”이라고 지적한 사실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얼마 전 스위스 정부가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안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북한 자산을 전면 동결하지 않았나. 스위스에 수십억 달러의 비자금을 숨겨 놓았다는 김정은 정권으로선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국제 제재의 소나기를 피하려는 북측의 불순한 의도가 읽히는 배경이다.

특히 북측은 조평통 담화로 “핵 포기 같은 부당한 전제조건 그만두고 대화에 나오라”고 요구했다.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김정은 정권에는 곤혹스러운 대북 전단이나 확성기 방송 중단 문제 등을 의제로 임하겠다는 심산을 드러낸 셈이다. 북측으로선 꽃놀이패를 던졌다고 착각할 만한 대목이다. 회담이 성사되면 소기의 목적을 이루고 안 되더라도 남북 긴장의 장기화를 불편해하는 일각의 정서를 겨냥해 남남 갈등을 조장하려는 속셈이라면 말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회담 제안이 먹혀들지 않으면 북·미 협상을 제안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핵 보유를 전제로 한 평화협정 협상에 응할 리는 없겠지만, 우리가 먼저 대화를 피할 까닭도 없다. 북한의 허황된 기도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비핵화나 북한 인권 문제 등을 의제로 공세적 역제의를 검토할 만하다고 본다. “두려워서 협상해서는 안 되지만 협상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경구를 상기할 때다.

5. 꼬이는 구조조정 정부 협업 체제로 풀어야

조선·해운 업계의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당정은 다음달 말까지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되면 고용유지 지원금은 물론 구직급여 특별 연장이나 재취업 훈련 등 행정과 재정이 다양한 형태로 구조조정을 지원할 수 있게 된다. 조선사 중소 협력업체들의 경영난을 덜기 위해 체납 세금과 4대 보험료 등의 징수를 유예하는 한편 조선산업의 메카인 경남 거제시의 불황 타개를 위해 관광산업 추진 등의 방안도 논의됐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아직도 구체적으로 확정된 안이 없는 상태다. 일각에서는 구조조정 자체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내년 대선과 맞물려 자연스레 표류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선·해운 업계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가닥을 잡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 정부에 책임이 있다. 한국은행에 재원 부담을 지우면서 구체적인 재정의 역할에 대해서는 아직 입을 다물고 있다.

정부가 구조조정에 필요한 총자금 규모를 결정하고 한국은행에 손을 벌리는 것이 상식임에도 처음부터 한은의 역할만을 강조해 왔다. 부실 기업 정리를 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대우조선 부실을 초래한 경영진의 책임을 묻지도 않고 부실 책임자인 산업은행은 물론 정부의 반성조차 없다. 대규모 구조조정에 국민의 세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산업과 기업 부실화를 가져온 책임을 묻고 혈세 낭비가 없었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에 그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어제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우리의 경제성장 전망치를 3.0%에서 2.6%로 0.4% 포인트 낮춰 잡으면서 우리 경제의 대내적 위협 요인으로 부실 기업 구조조정 지연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를 꼽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부실 기업 구조조정에 재정이 추가경정 예산 편성 등의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구조조정이 실패하면 내년 우리의 경제성장률이 더욱 둔화될 가능성을 적시한 것이다.

국책 연구소에서도 재정의 역할을 강조하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아직도 추가경정 예산안을 편성하는 대신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하는 방안에 골몰하고 있어 참으로 유감스럽다. 지금처럼 채권단을 앞세워 산업은행 뒤에서 조정하겠다는 것 자체가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다.

조선·해운 구조조정은 국가 경제 재편의 시금석이다. 단순 기업 개편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국가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정교한 실행 계획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해운·조선 분야의 구조조정은 정책금융기관이 오랫동안 개입해 왔기 때문에 정부가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물론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들이 명확한 책임 의식을 갖고 협업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동아일보]

6. 정권 입맛에 맞춘 감사원 감사로는 보육대란 해결 못한다

어제 감사원은 시도 교육청이 어린이집 보육료를 지원하도록 한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이 헌법과 상위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누리과정(3∼5세) 예산을 우선 편성하라고 교육청들에 통보했다. 교육재정 문제를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규정한 것은 위헌이고, 영유아보육법은 어린이집을 교육기관이라고 못 박지 않았는데 시행령으로 보육료를 부담하라는 것은 법 위반이라는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의 주장을 부정한 것이다. 

감사원은 법무법인 3곳과 한국공법학회 추천 교수 3명, 법률구조공단 등 7곳에 자문해 이런 결론을 냈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은 누리과정 예산을 전부 또는 일부 편성하지 않은 교육청 11곳 중 9곳은 돈도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행령이 위헌 또는 위법한지는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이 판단할 일이다. 감사원이 이 문제에까지 개입함으로써 보육대란 책임을 놓고 다투는 교육부와 교육청 사이에서 교육부 편을 든 ‘정치 감사’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실제로 감사원 발표 내용은 지금까지의 교육부 방침과 거의 같다. 교육감들이 “감사원은 법률을 해석하는 기관이 아니다. 누리과정 문제는 정부 책임”이라고 반발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를 3월 7일부터 4월 1일까지 진행했다. 보통 5, 6개월 걸리는 감사를 채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끝낸 것이다. 감사원은 2차 보육대란이 일어나기 전에,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때에 맞췄다고 해명하지만 교육청들은 이 역시 감사의 정치적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의심한다. 감사 결과를 통보했지만 교육감들이 거부하면 전혀 실효성이 없는데도 감사원이 헛심만 쓴 꼴이다.

2013년에도 감사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4대 강 사업을 주도했다며 사법처리를 검토했다고 밝혔다. 그보다 2년 전엔 4대 강 사업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작년 김영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총선 출마를 위해 새누리당에 입당하면서 “이제는 제가 (박근혜) 대통령께 보답할 차례”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했다. 감사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손바닥 뒤집기 식 감사로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상실했다. 이런 감사원을 내세워 교육청을 압박하는 식으로는 누리과정 보육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의 신뢰도만 떨어뜨릴 뿐이다.

[매일경제]

7. 2%대 저성장 고착화, 악순환 끊을 종합처방 내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2.6%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말 전망치(3.0%)를 0.4%포인트나 낮춰 잡은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2%대 저성장이 내년(2.7%)까지 3년 내리 이어지리라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현 정부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2.8%에 그친다. 지난 60여 년 동안 한국 경제가 이토록 오래 저성장의 늪에서 허우적거린 적은 없었다. 물론 세계 경제 전체가 가라앉고 있는 터라 한국 경제만 잘나갈 수는 없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성장 둔화는 한국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KDI 성장률 전망은 부실기업 구조조정 충격파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대규모 실업 사태로 소비와 투자가 급랭하면 성장률은 훨씬 더 떨어질 수 있다. 미국 금리 인상이 또 한 차례 신흥국 위기를 몰고 오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것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현 경제팀은 참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당장 소비와 투자 수요를 살릴 응급 처방을 쓰면서 중장기적으로 성장 활력을 높일 근본 수술을 함께 단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 경제팀은 전임 최경환 경제팀처럼 과감하게 재정과 통화정책 실탄을 쓸 형편이 못된다.

그럴수록 더욱 유연한 대응과 창의적 해법이 필요하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최대한 신속하게 부실을 도려내되, 출혈이 예상보다 심각할 경우 재정 확대와 통화 완화로 충격을 흡수해야 한다. 

재정은 상대적으로 효율이 떨어지는 부문에서 씀씀이를 줄여 성장잠재력을 키울 인프라스트럭처 건설에 집중 투자하는 지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통화정책은 국내 수요 상황과 글로벌 자본 흐름을 살피면서 시나리오별로 금리 인하나 통화량 확대, 한국은행 대출 중 가장 효과가 큰 정책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단기적으로 무리하게 성장률을 끌어올리려 하면 그 후유증도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 긴 호흡으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구조개혁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게 중요하다. 무엇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시장 개혁과 서비스산업 규제 개혁은 현 정부 임기 내에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다.

8. 日출산율 상승 `인구 1억` 최우선과제로 삼은 결과

일본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46명으로 1994년(1.5명) 이후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2005년 1.26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일본 출산율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놀랍다. 일본 정부는 "2013~2014년 경제 상황이 호전된 것이 출산율 개선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젊은이들이 출산을 결심하게 된 측면도 있지만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 주효했다. 일본은 우리보다 10년 앞선 1995년 저출산 정책을 시작했다. 지난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인구와 아베노믹스를 책임질 '1억 총활약 담당상'이라는 장관 자리를 신설하고 핵심 측근을 기용하는 등 국정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향후 50년 후에도 인구 1억명을 지켜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최근 발표된 '1억 총활약 사회' 로드맵을 보면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정부가 얼마나 고심했는지 느껴진다. 내년까지 50만명 규모의 보육시설을 확보하는 것을 비롯해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임금 상향(정규직의 80%) 등 종합 처방이 담겼다. 아베 총리가 "위기에 빠지기 전에 우리가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며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일본의 이 같은 움직임을 보면 15년째 초저출산(1.3명)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이 심히 걱정된다. 저출산은 미래에 재앙이 될 수 있는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항상 정책 후순위로 밀렸다. 정부는 지난해 말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 계획'을 확정했지만 삼포·오포세대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본이 지난 10년간 출산율을 0.2명 늘린 것을 보면 지난해 1.24명에서 5년 만에 1.5명으로 늘리겠다는 정부 계획 자체가 허황된 것이다.

인구절벽은 위기가 닥친 후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부가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정하고 역량을 쏟아부어도 될까 말까다.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문제인 만큼 출산 장관을 두든, 총리실에서 담당하든 보다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 인구위기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중앙일보]

9. 수익 나빠졌다고 수수료부터 올리는 은행들

은행들이 송금과 자동화기기 이용 요금 등 각종 수수료를 잇따라 올리고 있다. 시작은 야금야금 눈치보기 식이었다. 지난달 신한은행은 외화 송금 수수료의 일부만 인상했다. 곧 KEB하나은행이 뒤를 따랐다. 지난 13일부터 자동화기기를 이용한 타행 송금 수수료를 100~200원 올렸다. 씨티와 SC제일은행도 수수료를 올렸고, 우리은행은 인상을 검토 중이다.

시장에서 별말이 없는 듯하자 본격 인상이 시작됐다. KB국민은행은 다음달 1일부터 거의 모든 수수료를 일제히 큰 폭으로 올리기로 했다. 타행 송금 수수료는 최대 1500원(60%), 통장·증서 재발급이나 각종 증명서 발급 수수료는 1000원(50%)을 올리기로 했다. 명의 변경 수수료는 5000원(100%), 자동화기기 수수료도 다음달 20일부터 100~200원 올린다. 지금까지 수수료를 받지 않던 인터넷이나 모바일 해외 송금에도 수수료를 물리기로 했다.

은행들이 일제히 수수료 인상에 나선 것은 수익성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1%대의 초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예금과 대출 차이로 생기는 수익인 예대마진이 크게 줄었다. 감독 당국의 규제로 수수료가 5년째 동결돼 원가 부담이 커졌다는 것도 이유다.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16개 시중은행은 지난해 수수료로만 5조원 가까운 순익을 거뒀다. 그래 놓고 원가 부담 운운하는 건 낯 간지럽다. 차라리 수수료 인상으로 고객 호주머니 터는 게 가장 쉽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밝히는 게 나을 것이다.

수수료 인상은 은행 수익 개선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수익의 90%를 예대마진에만 의존하는 천수답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낮은 생산성과 평균 1억원에 육박하는 고임금 구조를 놔두고는 백약이 무효다. 은행들이 이런 자구 노력은 하지 않고 손쉬운 수수료 인상에 기대려고 하니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수수료 규제를 풀어준 감독 당국도 책임이 크다. 수수료 일제 인상이 타당한지, 담합 소지는 없는지, 원가를 투명하게 따져 과도한 인상을 막아야 할 것이다. 소비자는 봉이 아니다.

10. 살생물질 성분 공개도 의무화하라

환경부가 생활화학제품이 함유하고 있는 살생물질(미생물·곤충 등을 제거하는 화학물질)을 전수조사해 사용 실태를 점검하고 안전성 검증에 나서기로 했다. 올 상반기에 방향제·탈취제 등 15종의 위해(危害) 우려 제품을 제조·수입하는 8000여 기업으로부터 함유된 살생물질의 성분 등을 제출받아 하반기에 위해성 평가를 한다니 전에 없던 대규모 작업이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이제야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내년에는 살생물질이 들었지만 그동안 위해 우려 제품으로 관리되지 않았던 생활화학제품, 에어컨·공기청정기·항균필터 등 공산품과 전기용품, 사업장에서 이용되는 살생제품과 제품의 용기·포장 등의 살생물질까지 조사를 확대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전체 생활화학제품을 사각지대 없이 낱낱이 살피고 철저하게 검증해 안전성이 확보되지 못한 물질과 제품은 가차없이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살생물질을 포함한 생활화학제품 전체 성분의 정보공개도 의무화해야 한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위해성도 모른 채 생활화학제품을 사용해야 했다.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도 이런 허술한 제도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전체 성분 공개가 의무화되면 기업들은 사전에 자체적으로 엄격한 안전검증을 거쳐 제품을 출시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시민단체도 해당 성분과 관련한 최신 연구결과나 위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입수해 시중 판매제품을 적극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위해 화학제품은 발붙일 땅을 잃게 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생활화학제품 사전허가제도의 도입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EU)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이 제도는 안전성을 미리 입증한 제품만 시장에 낼 수 있도록 하는 엄격한 소비자 안전·건강 보호제도다. 이렇게 하면 기업들은 개발·제조·판매 단계마다 소비자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 순위에 둘 수밖에 없다. 앞으로 더 많은 소를 잃지 않으려면 정부는 이제라도 외양간을 고치는 심정으로 소비자 보호 종합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윤고은의 참새방앗간> 미안하지만, 부디 포기하지 마세요

"너 이제 어찌할 거야? 직업도 없고, 용돈 벌이도 못 하는 게 애를 어떻게 키울 거야?" 

"형, 내가 왜 직업이 없어. 나 영화감독이야."

시청률 30%를 넘는 KBS 2TV 주말극 '아이가 다섯'에 최근 등장한 대화다. 

한때는 촉망받는 기대주였으나 어느새 부모와 형에게 손 벌리며 살아온 지 오래인, 영화감독 이호태(심형탁 분)가 덜컥 여자친구(심이영)를 임신시키면서 그의 집안이 뒤집혔다. 

바닥을 찍는 출산율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지만 생활력이 없는 영화감독에게는 출산이 '대형사고'가 된다. 

시청률 5%를 넘긴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박완(고현정)은 소위 SKY대를 나와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지만 번역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소설을 쓰고 싶지만 전업 소설가로 나서기엔 당장 먹고 사는 게 문제가 된다.

'아이가 다섯'에서 이호태의 엄마(박혜숙)는 '개점휴업 영화감독'인 아들이 사고를 치자 "언젠가 호태가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 '그동안 고생하신 부모님께 이 영광을 돌린다'는 수상소감을 하겠지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안 되겠네요"라고 섣불리(?) 한탄한다. 

많은 사람이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소설을 읽으며 위안과 감동을 받지만, 예술가에게는 이 일이 치열한 생계이고 많은 것을 포기한 채 평생을 매달렸음에도 끝내 닿을 듯 닿지 않는 꿈으로 귀결돼 버리기도 한다.

지난 23일 폐막한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던 박찬욱 감독도,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김지운 감독도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는 일이 잘 안 풀려 가족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거나, 수입이 거의 없는 신세였다. 

'왕의 남자'로 1천만 관객을 모은 이준익 감독은 그 덕에 그간 영화 하면서 진 빚을 갚았다. 

예술의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이 세계에서도 역전과 반전, 드라마틱한 대기만성의 성공 스토리는 언제나 유효했고, 꼬리에 꼬리를 문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등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시인 최영미가 최근 "연간 소득이 1천300만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이 됐다"고 SNS에 밝혀 충격을 줬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책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소식이 들린다. "취직 잘되는 영문학과로 진학하라"는 부모의 바람을 뒤로하고 소신 있게 국문과를 택해 소설가의 길을 걸었다는 한강이다. 

지금은 영화 한 편에 5억원 넘게 받는 배우 황정민이 올 초 토크쇼에 나와 "나도 연극 할 당시 연봉 300만원 받고 행복하게 일했다"며 과거를 돌아봤다. 오늘도 여전히 '연봉 300만원'인 예술인들이 발에 채고 넘치지만, 이들의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가 다섯'의 이호태가, '디어 마이 프렌즈'의 박완이 꼭 성공하기를 응원한다. 현실은 팍팍할지라도 대중에게 꿈을 나눠주는 예술인들이 버텨주지 않으면 가뜩이나 삭막한 세상은 물기 하나 없이 메말라버리기 때문이다. 

남녀노소가 보는 드라마 속 예술인들도, 현실의 예술인들도 씩씩하게 오늘을 잘 버텨 아름다운 내일을 맞이하길 기대해본다.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려야 했고, 과자 한 봉지로 며칠을 연명해야 했지만 꿈을 놓치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문화를 향유한다. 

이렇게 말해 미안하지만, 부디 포기하지 마세요.

2. [한국일보]콤비어스 부부의 자살여행

캐나다 벤쿠버의 엘리자베스(베티)와 조지 콤비어스(Coumbias) 부부는 2007년 동반 자살을 결심했다. 심장병을 얻어 17년째 일을 못하고 툭하면 응급실 신세를 져온 남편 조지의 상태가 악화했다. 부부로 48년을 함께 산 35년생 동갑내기인 그들에겐 한날 한시에 죽자는 신혼의 약속이 목숨만큼 중요했다고 한다. 부부는 스위스 디그니타스로 ‘자살 여행’을 떠났다. 

문제는 베티였다. 죽고자 하는 의지와 결심은 확고했지만, 그는 디그니타스의 조력자살 서비스 대상자가 되기엔 더없이 건강했다. 법적ㆍ윤리적 문제로 상시적인 비난과 법적 분쟁에 시달려온 디그니타스로서는 운신의 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불가 결정을 내렸고, 부부는 캐나다로 되돌아가야 했다. 

존 자리츠키(John Zaritsky)라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그 과정을 촬영, 그 해 말 ‘자살 여행자들(the suicide tourists)’이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조력자살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허용 범위 등을 둘러싸고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됐고, 조력자살 찬성론자 진영 안에서도 찬ㆍ반 격론이 일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부부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 누구도 상관할 바 없는, 내 육신이고 내 결정이다. 아내도 동의했고, 가족도 동의했다. 우리는 50년을 함께 살았고, 함께 행복하게 죽기를 늘 원해왔다.”(조지 콤비어스)

“결혼한 그날부터 조지는 내 삶의 전부였다. 나는 두 딸을 사랑하지만, 그를 더 사랑한다. 그가 없는 삶을 내가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 없다.(…) 디그니타스에 대한 자료를 읽고 우리는 동반 자살보다 더 나은 길, 서로의 품에서 함께 죽을 수 있는 길을 알게 됐다.”(베티 콤비어스)

그 해 말 NPR 인터뷰에서 자리츠키 감독은 “죽을 권리의 한계를 극단까지 밀어붙여 보고 싶었다.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에게도 그 권리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궁극적인 질문을 사회에 던져보기 위해 촬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2년 뒤인 2009년 5월 25일 베티가 먼저 암으로 별세했다. 그들의 얄궂은 운명, 어긋나버린 신혼의 약속은 또 숱한 논란과 화제를 낳았다. 조지는 여전히 심장병을 지닌 채 살아 있다.

3.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자유를 누리기에 과분한 사람

재물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일까. 누구도 사람마다 필요로 하는 재물의 적정한 양을 객관적으로 가늠하기 어렵다. 대저 인간은 한정 없이 재물을 취득하고 오래 보유하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일 터. 문제는 재물을 취하고 쓰는 데 있어 어떤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한 가이다.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재물에 대한 사람들의 행태를 예시하면서 자유인에 어울리는 행동방식을 권면했다. 그는 재물의 낭비나 인색 모두 재물에 대한 지나침과 모자람의 양상으로 경계한다. 남에게 재물을 베푸는 일은 자유인다운 일이다. 그러나 주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주는 사람이나, 고통을 느끼면서 주는 사람은 자유인다운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유인이라면 그에 걸맞은 재물에 대한 덕성을 갖출 것을 요구했다. 그가 인정하는 ‘자유인다움’(eleutheriotes)이란 재물의 양이 아니라, 그 사람의 품성상태에 달려 있다. 그는 “마땅히 취해서는 안 되는 곳에서 마땅히 취해서는 안 되는 것을 크게 취하는 사람들을, 나쁜 사람, 혹은 불경한 사람, 혹은 부정의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유인다움을 유지하려면 우선 부끄러운 취득 탐욕을 버려야 한다는 강조다.

자유인은 재물을 잘 벌거나 잘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쓰는 사람이다. 재물은 무엇인가에 쓰일 때 효용이 발휘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재물의 낭비 못지않게 인색함을 부덕으로 여겼다. 그는 받는 데 있어 지나친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데 있어 부족한 것을 경계한다. 나아가 받지도 않고 주지도 않는 소극적 태도 역시 달갑지 않은 건 마찬가지.

이런 사람들은 모두 ‘자유인답지 못한 사람’(aneleutheros)에 속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특히 이런저런 뚜쟁이들, 고리대금업자들을 자유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로 보았다. 자유인이라면 부정한 재물을 취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에게 흔쾌한 마음으로 나눔을 행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의 공동체를 해치는 사람이 아니라,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사람들만이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본 것이다.

배금주의 풍조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재물을 올바르게 취득하고 제대로 쓸 줄 아는 진정한 자유인은 얼마나 될까. 상상을 초월하는 억대 로비 자금을 수수하는 이런저런 거간꾼들, 전관에 대한 당연한 예우로 여기며 거액의 수임료를 거리낌 없이 탐하는 변호사들, 나눔에 지나치게 인색한 사람들 모두 자유를 누리기에 과분한 사람들이다.

4. [서울신문][공희정 컬쳐 살롱]늦지 않았어요

누가 정해 놓았을까, 꽃이 피는 순서를. 어떻게 알았을까, 봄이 가면 여름이 와야 한다는 것을. 가끔은 오고 가는 것이 바뀌면 어떨까. 사람들은 기상이변이라 걱정하지만 순서가 흔들린 올봄이 한편으로는 지루했던 일상을 깨워 주는 듯했다. 한꺼번에 피어난 꽃은 매일매일을 황홀한 천국으로 만들어 주었고, 때 이른 폭염은 서둘러 여름을 준비하게 해 주었다. 습관처럼 해 오던 것에서 벗어나는 순간 의외의 기쁨과 지혜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배우 김영옥은 요즘 랩을 한다. 욕쟁이 할머니 연기를 했던 전력이 있긴 하지만 여든의 그녀가 쏟아내는 랩은 놀라웠다. 실력파 래퍼 딘딘, 주헌 등과 호흡을 맞춘 그녀는 래퍼가 된다는 것이 어쩌면 인생 마지막 도전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고 한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모험을 즐겼다. 스튜디오에서 시작한 랩은 젊은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강남의 클럽을 거쳐 대학 축제 무대까지 점령했다.

“연기가 내 몫, 연기가 내 솔, 연기를 위해서, 죽이고 살리지.” 보통 노래보다 10배나 어려웠다는 랩을 배워 노래하는 그녀는 20대의 열정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소리 질러.”, “같이 노래해.”, “놀아 놀아.” 손을 높이 올리며 군중을 향해 외치는 그녀의 얼굴은 빛났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노인이 되지만, 그 흐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인생의 관망자(觀望者)가 아니라 스스로 주인공이 돼 주어진 시간을 끝까지 이끌고 가는 것, 역시 주도적 삶은 아름다웠다. 여든 넘은 그녀의 도전을 주책이라며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랩은 그녀의 인생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래서 그녀의 도전이 멋있다.

‘황혼기 청춘들의 인생찬가’라는 부제가 붙은 어느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모두 예순이 넘었다. 그중 정아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나문희는 세계여행을 꿈꾸는 일흔둘의 엄마로 나온다. 시집오던 날부터 머리채 휘어잡으며 구박하던 시어머니와 옹졸한 짠돌이 남편, 길러 출가까지 시켜야 했던 여섯 명의 시동생과 시누이들. 딸 셋도 모두 결혼시켰는데 이번엔 친정엄마가 치매란다. 엄마의 요양원 비용을 벌기 위해 그녀는 오늘도 일을 한다.

식구들을 위한 오랜 희생이 벅찼지만 그녀를 지탱해 준 것은 자신만을 위한 꿈이었다. 멋진 자동차 타고 스카프 휘날리며 세계를 누비는 상상만으로도 그녀는 행복했다. 세계여행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고 시청하고, 관련 자료를 차곡차곡 모았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자동차 운전면허도 손에 쥐었다. 길 위에서 죽는다 해도 평생 소원했던 세계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살아온 의미는 충분했다.

사실 오랫동안 익숙해진 틀을 벗어난다는 것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그래서 노년의 도전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젊은 시절보다 현격히 떨어진 체력과 지력은 늘 스스로를 움츠러들게 하고, 나잇값 못한다고 할까봐 주변의 시선도 부담스럽다. 이런저런 이유로 주춤거리는 사이에 봄여름가을겨울은 순서대로 지나가고, 꽃들도 피었다 지길 수없이 반복한다. 그리고 꿈을 잊은 채 노인이 되어 간다.

그런데 요즘 텔레비전이 자꾸만 이들에게 말을 걸어온다. 늦지 않았다고. 자신의 꿈을 향해 한발 내디뎌 보라고. 그 멋진 일을 해낼 수 있다고.

5. [동아일보][횡설수설/정성희]환경부와 고등어

‘돈이 없는 사람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나는 또다시 바다를 가르네/…/가난한 그대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박사 가수 루시드 폴의 노래 ‘고등어’의 가사처럼 고등어는 서민이 즐기는 생선이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1980년대 가수 김창완은 냉장고 속 고등어를 보고 어머니의 사랑을 느꼈다며 ‘어머니와 고등어’를 불렀다.

고등어를 구울 때 미세먼지가 엄청나게 나온다는 연구 결과가 화제다. 꽉 막힌 부엌에서 고등어를 구울 때 나오는 초미세먼지(PM2.5) 수준이 ‘매우 나쁨’ 발령 기준의 27배나 된다는 것이다. 언론은 ‘고등어구이 주의보’라고 이름 붙였다. 구이는 그렇다지만 고등어조림이나 김치찌개는 어떤지 모르겠다. 삼겹살이든 계란프라이나 볶음밥이든 불과 씨름하는 요리를 할 때는 미세먼지가 나올 수밖에 없다. 포름알데히드, 휘발성 유기화합물, 블랙카본, 일산화탄소 등 조리 과정에서 나오는 여러 화학물질은 실내 공기오염의 주요 원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매년 700만 명이 공기오염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이 가운데 실내 오염으로 숨지는 사람이 430만 명(2012년)이다. 질소화합물, 오존, 꽃가루 같은 실외 오염원보다 먼지, 라돈, 알레르기 유발 물질 같은 실내 오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뜻밖에도 더 많다.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 중 80%를 실내에 있으므로 실내 오염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다행히 조리 때 나오는 오염물질은 단 15분만 환기하면 없앨 수 있다.

환경부가 고등어와 볶음밥 등 5개 음식 조리 과정에서 나오는 오염물질 조사를 한 시기가 지난해 5∼11월. 그런데 “미세먼지에 대해 환경부가 도대체 뭘 했느냐”는 여론이 들끓자 환경부는 갑자기 이 실험 결과와 함께 ‘주방 요리 시 실내 공기 관리 가이드’를 발표했다. 미세먼지 발생원이 중국발(發) 오염원이나 경유 차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해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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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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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4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문화일보]

1. 與小野大 정치권의 노조 편들기, 경제 근간 흔든다

정치권 지형이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재편된 이후 산업·기업 구조조정과 노동개혁 등 시급한 국정 과제가 흔들리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경제 정당’을 표방했던 여야가 포퓰리즘 악습을 재연하면서 구조개혁의 발목부터 잡는 양상이다. 노조 편들기 경쟁은 일파(一波)일 뿐이다.

23일 대우조선해양으로 몰려간 여야 수뇌부는 우려했던 대로 노조가 듣기 좋은 얘기만 늘어놓았다. 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노조의 동참과 고통 분담이 필수다. 그러나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에 대한 언급은 쏙 빼고 구체적인 실업대책,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에 당이 나설 것이라고 생색을 냈다. 본말과 선후를 바꾼 처신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우조선 노조에 한 말은 야당임을 고려하더라도 경제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그는 1만 명 이상 고용하는 업체는 근로자의 경영 감시 장치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김 대표가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관심을 가져온 노조의 경영 참여는 독일 특유의 노사 문화의 소산으로, 국내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잖아도 노조의 경영 참여를 요구해온 대우조선 노조로선 환호작약할 얘기 아닌가. 대규모 감원이 불가피한 구조조정에 노조를 끼워 넣는 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김 대표 스스로 ‘경제민주화의 최종 단계’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만큼 더 차분한 연구·토론이 필요한 주제라는 점에서, 김 대표 발언은 시점도 장소도 매우 부적절했다.

이미 노동계는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총력전에 나선 상황이다. 조선업체 노조들은 노사정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면서 내달 초 단체 시위도 계획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정부의 해고·취업규칙 등 2대 지침을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키로 하는 등 구조조정 작업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총선 전만 해도 노동계는 취약 업종의 구조조정이 얼마간 불가피하다는 분위기였으나 반전되는 양상이다. 노조와 야당이 합세하고, 여당은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박근혜정부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는 동력을 잃고 있다. 더민주가 성과연봉제 조사단을 꾸리는 등 정부를 압박하자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불법·탈법이 없게 하겠다”고 물러서고 말았다.

한국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한시가 바쁜 구조조정은 산으로 가는 양상이다. 노동개혁은 경제 체질을 바꾸기 위해 절실하지만 여대(與大) 국회에서도 해내지 못했다. 구조조정을 위해서도, 노동개혁을 위해서도 노조 기득권 개혁이 절실하다. 여야 할 것 없이 노조에 러브콜만 보내다간 구조개혁은 물 건너가고 한국경제의 근간도 흔들릴 것이다.

2. 朴정부, 난개발 우려 큰 ‘용산공원’ 全面 재조정해야

서울 용산구 미군기지 부지에 조성될 ‘용산공원’의 난개발(亂開發)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서울시가 24일 브리핑을 통해 “국토교통부 계획안(案)은 정부 부처들의 사업을 위한 ‘땅 나눠주기’식으로 진행돼 공원 훼손이 우려된다. 최초의 국가공원인 만큼 다양한 주체들의 의견을 듣고 만들어야 한다”고 밝힌 것이 가까운 예다. 국토부가 지난 4월 27일 발표한 ‘용산공원 개발 시설과 프로그램(콘텐츠) 선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전적으로 공감할 만하다.

미래창조과학부의 과학문화관, 문화체육관광부의 스포테인먼트센터와 어린이아트센터, 문화재청의 아리랑문화유산센터, 경찰청의 경찰박물관, 여성가족부의 여성사박물관, 국가보훈처의 호국보훈 상징 조형광장, 산림청의 나무상상놀이터 등 7개 부처에 산하 시설 한두 개씩을 짓게 한다는 식부터 어이없다. 그런 발상으론 시민의 휴식과 문화 활동 공간이면서 국가를 대표하는 공원을 제대로 만들긴커녕 서울 도심의 소중한 국유지 235만㎡를 난개발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게 할 뿐이다. 2014년 6월 3일 공포된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이 ‘대한민국에 반환되는 용산부지는 최대한 보전하고 용산공원은 민족성·역사성 및 문화성을 갖춘 국민의 여가 휴식 및 자연생태 공간 등으로 조성’하도록 ‘기본이념’으로 명시한 취지부터 거스르는 처사임은 물론이다. 

박근혜정부는 그 취지의 명실상부한 구현을 위해 현재 방안을 전면(全面) 재조정해야 한다. 해당 법률에 따라 장관이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장인 국토부는 6월로 예정했던 계획안 확정을 늦추고 의견을 더 수렴할 방침인 만큼, 국가공원 위상에 걸맞은 방안을 범정부 차원에서 다시 수립해야 한다.

3. 법원의 ‘징벌적 위자료’ 논의와 過猶不及 위험성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공분(公憤) 속에서 법원이 악의적 범죄에 대한 민사 책임을 더 엄중히 물어 위자료를 대폭 증액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대법원은 23일 적정 방안을 마련키로 하고, 7월 15~16일 ‘전국 민사법관포럼’ 의제로도 삼을 예정이다.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의 가해자에 대해 고의 정도와 범죄 후 정황, 재산까지 고려해 위자료를 징벌 차원으로 올리자는 취지다. 나아가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은 내달 27일 국회 입법조사처와 공동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심포지엄도 개최키로 했다고 한다.

국내의 위자료 액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게 법조 안팎의 공통된 지적이다. 법원은 범죄 피해자 위자료를 산정하면서 산업재해 내지 교통사고 위자료의 상한선을 원용해왔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억 원이 상한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도 이날 “형사 양형기준처럼 위자료 산정기준도 피해 발생 원인의 유형별로 차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징벌 차원의 위자료를 논의하면서 유의해야 할 점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대체 수단이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징벌적 손배 도입은 어디까지나 입법의 영역이다. 법원이 위자료 판례를 통해 징벌적 손배와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게 하겠다면 ‘우회 입법’으로서, 사법부의 월권이다. 현실적으로도 기업의 자유 수준을 초과해 과도한 책임을 물리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위험성도 있다.

징벌 차원의 위자료든 징벌적 배상이든, 법리적으로는 사전 규제와 사후 책임의 반비례가 핵심이다. 또 징벌적 손배는 현실을 고려할 때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다. 국회와 법원 모두 법리와 현실을 면밀하게 검토한 대안을 모색하기 바란다.

[헤럴드경제]

4.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인권침해 절대 없어야

‘강남역 여성살인’사건이 여성혐오 논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관련 대책을 둘러싼 의견이 분분하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정신질환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자는 행정입원 응급입원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로 본 것이다. 행정입원이란 범행 가능성이 의심되는 정신질환자를 경찰이 발견했을 때 정신과 전문의를 통해 지자체장에게 진단과 보호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다. 긴급상황시 72시간 이내에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는 응급입원 제도도 함께 활용하게 된다. 

하지만 강 청장의 발언은 논란의 소지가 적지않다. 정신질환자를 경찰이 현장에서 짧은 시간에 ‘범죄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판단한다는 자체가 무리다. 정신질환에 대한 판단은 까다롭고 인력과 비용도 막대하게 소요되는 전문적인 분야다. 의학계가 우려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칫 오판할 경우 무고한 시민이 극단의 인권침해를 당할 수 밖에 없다.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들도 경찰의 조치가 인권을 위협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정신질환자의 위험성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체크리스트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더 시간을 갖고 신중한 검토를 해야할 문제다. 

강 청장은 또 혐오범죄가 아니라고 단언하면서도 여성들의 불안감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데는 공감한다고 밝혔다. 혐오범죄로 보려면 ‘경향성’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범죄 숫자로만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경직된 판단으로 보인다. 범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여성이나 약자들을 위협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존재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도된다. 통계와 수치라는 잣대만으로는 잠재적 위험의 실체에 다가설 수 없다. 

이번 같은 범죄를 예방하고 줄이려면, 강제입원이나 이른바 ‘화장실법’같은 ‘1차원적인 대책’보다 안심하고 함께 사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정신질환자들도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이번 사건 피의자는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였으며 수 개월전부터 약물치료를 끊었다고 한다. 조현병은 국내에 50만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실제 치료를 받는 환자는 20%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시각 때문에 환자들이 치료를 꺼리는 것이다. 아울러 여성들이 가정, 사회, 지역 등에서 위협을 받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보호와 배려가 필요하다. 이번 사건이 그런 변화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5. 일본 출산율 21년만에 최고, 우린 그동안 뭐했나

지난해 일본의 합계출산율이 1.46명으로 21년(1994년 1.50명)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후생성 발표가 주목할 만하다. 일본의 출산율이 올라가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가 늘어나는 데는 경기회복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는 “2013/2014년간 일본 경제가 좋았던 게 출산율 개선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일본의 국민총소득은 2013년 2분기 이후 3년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면 출산율이 올라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나 일본의 출산율 회복은 경제적 이유와 함께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 일본은 이미 우리보다 10년 앞선 1995년 저출산 정책을 시작했다. 극도의 경기 침체기인 2005년 한 때 1.26명까지 떨어지긴 했지만 꾸준한 정책 추진 덕에 이 만큼이라도 출산율을 끌어올린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출산율이 적어도 1.8은 돼야 한다며 정책의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며칠 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발표한 ‘일본 1억 총활약 플랜’이 그 좋은 예다. 보육시설 확보 등의 출산 유인책으로 50년 후에도 인구 1억명을 유지한다는 게 기본 전략이다. 저출산 문제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올려놓은 아베 총리는 지난해 9월 ‘1억 총활약상’이란 장관급 직제를 만들어 인구문제를 전담케할 정도로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위기에 빠지기 전에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일본의 저출산 극복 전략은 15년째 초(超)저출산(1.3 이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물론 우리 정부도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출산의 심각성을 절감하며 정부 차원의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에서 3차 기본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자리와 주거 등 젊은이들의 결혼과 출산 지원 대책들이 거의 망라돼 있다. 정책적으로는 일본보다 못할 게 없다. 돈도 10년간 80조원 이상 들이는 등 쓸만큼 썼다. 

그런데도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지속성과 실천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책을 책임지고 챙기는 데가 없는 것이다. 해당 부처 중간 간부와 직원 몇명이 담당하는 수준이니 장관급이 관장하는 일본과 비교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도 전담 조직 신설을 적극 검토할 때가 됐다. 국가의 미래가 걸린 사안인 만큼 정치권의 초당적 대처도 필요하다. 나라 지킬 병사 수급도 어려워지는 등 저출산의 재앙은 점차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아시아경제]

6. 은행 수익악화, 수수료 인상이 답인가

은행권 수수료 인상대열에 KB국민은행도 가세했다. 은행들은 다투어 송금과 예금, 자동화기기와 외환 등 주요 수수료를 인상하거나 새로운 수수료를 도입하고 있다. 은행들은 물가인상 등을 감안한 현실화라고 주장하지만 저금리에 따른 예대마진(예금과 대출금리 차익) 축소 등으로 나빠진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한 조치다. 고객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오르는 수수료 종류가 많은 데다 폭도 크기 때문이다. 저금리 기조가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은행권은 손쉬운 수수료수입에 의존하기보다는 경영효율화와 고품질 서비스의 개발 등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경영의 정도다. 

국민은행은 내달 1일부터 송금, 예금, 자동화기기, 외환 등 주요 수수료를 일제히 인상한다고 밝혔다. 타행송금 수수료가 최대 1500원(60%) 오르고 통장ㆍ증서 재발급 수수료 등은 1000원(50%), 명의변경수수료는 5000원(100%)이 각각 인상된다. 자동화기기 수수료도 내달 20일부터 100~200원 오른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13일부터 자동화기기를 이용한 타행 이체 수수료를 100~200원 올렸고 신한은행도 지난달 외화 송금 수수료 체계를 변경하면서 일부를 인상했다.

은행들이 수수료 인상에 나서는 것은 수익성 악화 때문이다. 저금리 장기화로 주수익원인 예대마진이 지난해 1.97%포인트로 떨어졌다. 이를 메우기 위해 비이자 수익 확대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 표적이 수수료다. 지난해 이자수익은 33조5000억원으로 정점에 도달한 2011년(33조5000억원)에 비해 14% 이상 줄었다. 계좌이동제와 ISA 경쟁으로 각종 수수료 면제가 늘어난 것도 타격을 가했다. 수수료 인상이 고객들의 큰 저항 없이 쉽게 수익을 늘릴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지난해 16개 시중은행은 전년보다 8% 늘어난 4조9465억여원의 수수료 순익을 거뒀다. 

은행들은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수수료 인상이 아니라 '현실화', '정상화'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새로운 서비스 개발이 거의 없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옹색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은행권이 1%대의 쥐꼬리 이자를 주면서도 수수료를 대폭 인상하는 것은 소비자를 봉으로 여겨 경영손실을 전가하는 행위다. 

수수료 인상은 은행의 수익 악화를 해결하는 정답이 아니다. 직원 5명 중 1명꼴로 억대 연봉자인 고임금 구조, 국내영업에만 치중하는 우물 안 개구리식 경영, 이자수익이 총수익의 90%를 웃도는 기형적 수익구조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수수료 수입에 기대는 후진적 금융을 벗어나기 어렵다. 

[서울신문]

7. 홍만표 비리 현직 유착 박히는게 핵심이다

검찰이 이르면 이번 주 중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를 소환해 관련 의혹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한다.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정운호씨의 구명 로비 의혹과 관련,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와 법조 브로커 이모씨에 이어 홍 변호사까지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수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검찰은 이미 홍 변호사가 지난 5년간 맡은 사건의 의뢰인들을 상대로 수임료 규모 등을 샅샅이 확인하고 있다고 하니 그의 소환은 사법 처리를 위한 최종 단계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수사 진행 상황으로 봐서는 변호사법 위반이나 세금 탈루 혐의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이라는 ‘전관’ 배경을 이용해 천문학적인 수임료 수입을 올리고, 세금까지 탈루했다면 반드시 엄한 처벌이 따라야 할 것이다.

정씨는 검·경 수사 단계에서 홍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다. 해외 원정도박 혐의에 대해서는 특히 검찰에서 두 차례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나중에 기소될 당시에는 뻔하게 드러났던 회사 돈 횡령 혐의 등에 대해 면죄부를 움켜쥐었다. 고교 동문인 브로커 이씨를 통해 사건을 수임한 홍 변호사가 ‘전관예우’를 이용해 검찰 내 현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서는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고 검찰 안팎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나중에 정씨가 홍 변호사에게 거액을 쥐여 준 것도 영향력을 행사해 준 데 대한 ‘답례’의 가능성이 농후하다. 검찰 수사가 홍 변호사 단죄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처분이 나오기까지 홍 변호사와 현관들 간의 비밀 거래가 있었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만 한다.

범법 행위에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는 것은 법치사회의 기본 원칙이다. 현관들과 결탁한 ‘전관 변호사’를 이용해 범법자가 면죄부를 받는 일이 다반사라면 그 누구도 법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수사는 법치사회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도 성역이나 한계를 미리 정해 둬서는 안 된다.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해 현직에 대한 수사를 대충 마무리한다면 검찰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전관인 최 변호사와의 유착 의혹이 제기된 현직들에 대해서도 같은 차원에서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검찰은 모든 의혹을 있는 그대로 밝힌다는 각오로 이번 수사를 진행하길 바란다.

8. 대우조선 노조 찾은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발언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이 임박한 가운데 여야 지도부가 어제 일제히 경남 거제시를 방문했다. 이날 오후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추도식 참여에 앞서 인근 조선소를 찾음으로써 민생 행보 의지를 보여 주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정치권이 우리 경제의 화두인 조선업계 구조조정에 관심을 보인 것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이날 행보는 외려 구조조정 진행을 더디게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각각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노동조합, 경영진, 협력업체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정 원내대표는 노조와의 간담회에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 대책이 구체적으로 병행돼야 한다. 정부가 신속하게 시행토록 저희 당이 챙기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도 “구조조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근로자들의 생활안정”이라고 했다. 여야가 이처럼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을 챙기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대규모 구조조정은 대량실업과 지역사회의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제 지역에서는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2만명 이상의 실업자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실직자들의 어려움을 최소화할 다양한 대책이 마련돼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매우 시급한 상황에서 정치권의 이 같은 행보가 과연 적절했는지는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조선 3사는 지난주 조직 축소와 인력 감축 등을 뼈대로 한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구안을 모두 제출했다. 이에 따라 이번 주부터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문제는 이들 회사가 채권단의 압박에 쫓겨 노조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고 자구안을 마련한 점이다. 인력 감축 과정에서 노조가 거세게 반발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오늘 임단협을 시작하는 현대중 노조는 사측의 희망퇴직 단행 움직임에 대해 강력 투쟁을 선언한 상태다. 이미 임단협을 시작한 대우조선 노조도 “구조조정과 관련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총력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앞으로 구조조정의 핵심은 노조 설득이 될 전망이다. 이런 시점에 정치 지도자들이 노조를 방문해 벌인 달콤한 말의 잔치는 오히려 구조조정에 혼선만 준다고 본다.

조선 3사의 자구안을 놓고 노사 충돌이 예고된 가운데 채권단은 자구안이 일부 미흡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산업은행은 삼성중공업의 자구안을 ‘느슨하다’고 평가해 보완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대우조선의 자구안에 대한 주채권은행의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구조조정이 아직도 첩첩산중인 셈이다.

이 같은 구조조정의 시급성을 고려한다면 정치권은 오히려 기업과 대주주는 물론 노조에까지 고통 분담을 독려하는 쓴소리를 할 필요가 있다. 경영자들에게는 평소 노동 4법 통과가 필요하다는 친기업적인 발언을 하고, 노조를 방문해선 일자리를 보장하는 듯한 이중적 행보를 하는 것은 구조조정을 지체시킬 뿐이다. 조선·해운업계의 구조조정은 정치공학이 아니라 경제공학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9. 개발경험 전수 뛰어넘는 대아프리카 외교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1~2015년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상위 10개 국가 가운데 7개가 아프리카 국가였다. 에티오피아가 8.1%로 선두를 달렸고, 모잠비크가 7.7%, 탄자니아가 7.2%, 콩고와 가나가 각각 7.0%, 잠비아가 6.9%, 나이지리아가 6.8%로 뒤를 이었다. 가파른 경제성장은 당연히 구성원들의 의지에 힘입었지만, 세계 각국의 다양한 경제 원조가 상당한 힘이 됐다. 특히 중국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중국이 2001년 2억 달러를 들여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아프리카연합(AU) 건물을 지어 기증한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중국은 일찍부터 도로와 건물 등 각종 인프라를 제공했고, 그 과실을 이제 본격 수확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지난해 교역량은 전체의 34%를 대(對)중국 무역이 차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부터 동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한다.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가 대상국이다. 한국 대통령이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는 것은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케냐를 방문하는 것은 1982년 전두환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우간다는 우리 대통령이 방문한 기록이 없다. 박 대통령은 세 나라 순방에서 그동안 전개한 아프리카 외교에 상생 협력과 문화 교류를 추가한 대(對)아프리카 정책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단기간에 산업국가로 변신한 한국은 아프리카 각국의 중요한 발전 모델이었다. 우리도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개발 경험을 전수하면서 교류 협력의 폭을 넓혀 왔다. 하지만 원조 차원에 머물렀을 뿐 자원 부국이자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상품 시장인 아프리카와 본격적인 경제 협력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박 대통령의 동아프리카 순방은 그런 점에서 시의적절하다.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에는 대기업 14개사를 비롯해 모두 166개사가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한다는 소식이다. 적지 않은 수출 기업이 한계에 봉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프리카 시장에 대한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과감하고도 지속적인 투자의 결과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지역 국가들은 북한과 전통적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북핵 문제의 공조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아디스아바바의 AU 본부에서 상생 협력의 정책 비전을 담은 특별 연설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중국이 기증한 건물에서 중국과는 다른 한국의 역할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뚜렷하게 각인시키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이데일리]

10. 한국기업 노골적 차별하는 중국 정책

중국이 삼성SDI LG화학 등 중국진출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 대해 불공정한 규칙을 적용키로 했다고 한다. 국내 기업들이 주로 생산하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과 신(新)에너지자동차 핵심부품을 제조하는 공장에 대한 외국기업 참여지분을 50% 이하로 제한한 것이 그러한 사례다.

따라서 전기자동차용 배터리의 경우 중국 당국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으려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외국기업 지분을 50% 이하로 낮춰야만 한다. 자국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중국의 꼼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스플레이와 반도체에 이어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까지 딴지 걸기 식의 불공정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시장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이유다.

중국의 ‘불공정한 게임’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은 2009년만 해도 중국 검색시장에서 33.2%의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했지만 인터넷 검열 규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듬해 퇴출되고 말았다. 그 사이 중국 검색엔진 바이두(百度)와 동영상 스트리밍사이트 유쿠(優酷) 등이 급속한 성장가도를 달려 왔다.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도 구글 신세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3월 ‘중국제조 2025’라는 제조업 혁신계획을 마련해 반도체, 로봇 등과 함께 배터리를 키우겠다는 전략을 밝힌 바 있다. 기술수준과 가격 경쟁력이 뒤떨어진 중국업체들이 세계 일류업체들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정부 지원’과 ‘규제’라는 두 칼을 휘두르며 자국기업 지원에 나선 것이다.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인 비야디(BYD)와 CATL이 글로벌 주력업체로 성큼 올라선 것이 이에 힘입은 결과다.

중국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맞서 우리도 정부와 기업들이 손잡고 공동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NCM 배터리 보조금 지급 중단에 대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중국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 등 제3의 유망시장으로 눈길을 돌려야 할 것이다. 중국 외 다른 시장으로 투자를 분산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 격언을 새겨들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신문][씨줄날줄] 우공이산/강동형 논설위원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중국의 ‘열자’라는 책 탕문편(하나라 탕왕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이야기)에 이 이야기가 있다. 중국 허베이성 지저우와 허난성 허양 사이에 태행산과 북산이라는 큰 산이 있었다. 산 아래 나이가 아흔인 우공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산이 가로막아 멀리 돌아다니는 게 불편해 어느 날 두 산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아내가 반대하는데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보다 못한 식구들이 돌과 흙을 발해에 버리기로 하고 일을 시작하자 이웃도 돕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은 더뎠고 단 한번도 발해에 흙을 버리지 못했다. 이때 지수라는 사람이 “풀 한 포기 뽑지 못할 늙은이가 산을 옮기다니 참으로 어리석도다”라고 한탄했다. 그러자 우공은 “당신이 답답하다. 내 대에는 안 되겠지만 자자손손 이어 가면 안 될 것이 없다”고 대답하자 지수가 말문이 막혔다고 하다. 이에 천신(天神)이 감복해 두 아들을 내려보내 산을 메어다 옮겨 놓게 했다는 이야기다. 산을 옮겨 바다에 이른다는 ‘이산도해’(移山倒海)도 이 고사에서 유래했다.

일흔셋의 나이에 변호사에서 물리학자가 된 강봉수 전 서울중앙지법원장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우공이산’이 생각났다. 남이 보기엔 우둔해 보이지만 한 가지 일에 매진해 꿈을 이룬 강 변호사의 이야기가 살아 있는 우공이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판사 시절 판결문 쉽게 쓰기 운동을 펼치고 아내와 봉사활동도 많이 했다고 한다. 7년 전 유학길에 올랐다. 애초 계획했던 5년보다는 2년이 길어졌지만 마침내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논문 제목이다. ‘초전화된 전자파와 이를 응용한 입자 가속기’라고 한다. 인문학도로서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 제목이다. 그의 포부는 현대 물리학의 가장 뜨거운 분야인 양자중력 연구라고 하니 분명히 우공이 시작한 아흔 살 이전에 뭔가를 이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의 꿈이 이뤄지길 소망한다.

강 변호사 기사를 읽으면서 생각난 또 한 사람은 어제 7주기를 맞은, ‘바보’라는 별명을 가진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별명이 바보인 것은 지역감정을 없애 보겠다며 야당의 불모지에서 무모한 도전을 거듭한 데서 붙여진 것이다.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추도식에는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고 한다. 그곳에 모인 정치인 중에 ‘바보 노무현’을 진심으로 추도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어떤 이에게는 극복의 대상이고, 어떤 이에게는 혐오의 대상이다. 하지만 우공이산의 정신만은 모두에게 계승됐으면 한다. 국민은 물론이고 정치인 중에서도 이정현 의원이나 김부겸 당선자처럼 더 많은 ‘바보’가 나올 날을 기다려 본다.


2. [동아일보][챈들러의 한국 블로그]파티 같은 한국 야구

뜨거운 여름이 되면 고소한 땅콩 냄새,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잔디구장, 배트에 공이 맞는 타격 소리가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한다. 나는 다섯 살 때 아버지에게 처음 야구를 배우기 시작해서 대학을 다닐 때까지 야구선수로 활동했다. 또 가족과 함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응원하러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야구장에 갔다. 성인이 되어 야구장에서 즐겨 마셨던 맥주와 핫도그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한국 생활 초반엔 미국 야구를 가장 그리워했다. 그러나 그 그리움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야구장을 방문한 이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한국에 도착한 지 몇 달 후, 친구의 초대로 한화 이글스의 경기를 보러 가게 됐다. 잠실구장에 들어가는 순간 파티장에 온 것 같았다. 목이 쉴 정도로 쉼 없이 응원하는 치어리더부터, 나오는 선수마다 다양하게 부르는 응원가까지 이렇게 역동적인 응원 문화는 처음 접해 봤다. 몇 시간 동안 함께 응원을 하다 보니 어느새 모든 관중과 오래된 친구가 된 느낌이 들었다. 어느덧 한국의 야구 문화는 자기가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것을 뛰어넘어 스트레스를 푸는 공간, 문화생활을 하는 공간으로 발전했다. 직장 동료끼리 퇴근 후 야구장에서 치맥을 먹기도 하고 커플마다 셀카를 찍으며 야구장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한국 야구 경기는 지루할 틈이 없다. 중간에 진행하는 이벤트도 볼거리 중 하나이기에 이닝 사이에 화장실을 가는 것보다 오히려 경기 도중에 빨리 갔다 와야 한다. 경기 중엔 관중 앞에 서 있는 응원단장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마치 지휘자처럼 수많은 관중을 지휘하고 이끌어 다 같이 한마음, 한목소리가 되게 만들어 준다. 

여러 경기를 관람하며 살펴본 결과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응원 문화는 정말 독특하고 열정적이었던 것 같다. 응원봉 대신 신문지를 찢어 흔들고 머리에 주황색 봉투를 쓰면서 ‘부산 갈매기’를 부르는 모습은 미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렇기에 그 충격과 감동은 더 크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한화 이글스 팬들의 상징은 ‘인내’라고 들었다. 크게 져도 항상 웃으면서 끝까지 응원하는 팬들이 많다고 한다. 처음에 인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는 영어 단어가 없어서 그 의미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경기를 몇 년간 보면서 그 의미를 서서히 깨달았다. 

응원 방법도 다르고 팬의 특징도 팀마다 다르지만 그 열정은 다 똑같다.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아무리 지고 있어도 언제든지 역전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열정적으로 끝까지 “최-강-한-화”라고 응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한국 야구도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외국인 용병 선수들을 늘리고 있고 연봉 제한선도 폐지했다. 지속적으로 그 수를 늘린다면 미국처럼 반 이상의 선수들이 외국인 용병들로 채워질 가능성도 있다. 또한 응원 문화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 야구장은 외부 음식, 음료 반입이 금지돼 있다. 그래서 그 안에서 1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만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안전과 위생 때문에 한국도 소주와 캔 맥주 반입에서부터 최근에 생맥주를 파는 ‘맥주보이’를 잠시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변화와 제약이 많아지면 한국 야구만의 경기력, 열정적이고 독특한 야구 문화에 부작용이 생길 것 같아 우려된다. 

한국 야구는 선수들의 실력과 경기력도 훌륭하지만 응원하는 팬들과 그 문화 또한 대단한 것 같다. 앞으로 이렇게 한국만의 경기력과 독특한 문화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여름을 생각하면 땅콩과 핫도그 대신 마른 오징어와 치맥이 먼저 떠오른다.

3. [동아일보][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20>피고 지는 꽃의 나날들

얀 브뤼헐(1568∼1625)은 꽃 정물화의 대가입니다. 하나의 정물화에 100여 종의 꽃을 그렸지요.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생김과 자태가 빛나지 않는 꽃이 없습니다. 당대인들은 이런 화가를 ‘꽃 브뤼헐’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럽에서 식물은 의학적 효용의 관점에서 주목되었습니다. 16세기 식물학이 의학에서 분리되면서 식물 자체로 관심 대상이 바뀌었지요. 이 무렵 꽃이 독자적인 미술 소재로 다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화가는 초기 꽃 정물화의 전형을 만든 선구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도자기 화병에 담긴 꽃다발’은 작은 식물원을 방불케 합니다. 그림에는 백합과 아이리스를 비롯해 튤립 작약 수레국화 장미 붓꽃 물망초 수선화 백합 카네이션 등 각양각색의 꽃들이 등장합니다. 다채로운 것은 꽃의 크기와 빛깔만이 아닙니다. 만개 시기도 제각각입니다. 꽃에 무지해서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화가는 꽃에 관한 지식이 해박했지요. 직접 정원을 돌보고, 관찰을 쉬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없는 꽃을 상상으로 그리기를 경계하며 사실에 바탕을 둔 꽃 정물화를 고수했습니다. 

그림 속 개화 시기가 다른 꽃들은 의미가 특별합니다. 피고 지는 꽃은 덧없는 삶을 상징합니다. 사계절 꽃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삶의 상징이라니 화병도 각별한 뜻이 있겠군요. 꽃병은 순환하는 삶이 펼쳐지는 물과 땅, 불과 해가 어우러진 우주를 은유했습니다. 그림 속 도자기 화병 앞면 좌우에 바다의 신과 풍작의 신을 그려 넣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아마 화병 뒷면은 불의 신과 태양의 신이 차지하고 있겠지요. 절정의 순간 꽃이 가득한 화가의 그림은 소멸의 사건을 호출합니다.

성년의 날이었던 지난주 월요일은 애도의 날이기도 했습니다. 학기 중 급작스레 타계한 교수님의 추도식이 학교에서 이른 아침 거행되었지요. 추모식이 끝나자 교내에 설치된 분향소로 향하는 국화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루 종일 갓 스무 살이 된 젊음들에게 장미 축하도 계속되었습니다. 여기에 휴일이어서 하루 늦게 도착한 스승의 날 카네이션 바구니까지 손에 들려 있던 때문일까요. 하얀 꽃송이와 붉은 꽃다발이 한데 뒤섞여 물결치는 세상이 거대한 꽃 정물화 같았습니다. 지금 나는 무슨 빛깔, 어떤 삶의 계절을 통과하고 있을까. 추모객들 손에 조심스레 들린 작별의 꽃과 청춘들 가슴에 벅차게 안긴 설렘의 꽃 사이에서 문득 궁금했습니다. 

4. [동아일보][광화문에서/이진영]敵의 아이를 가진 소녀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웃 마을 언니 집에 가는 길에 납치된 이후의 생활은 입에 담기도 싫었다. 그저 무사히 집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했다. 하지만 납치범들 손에서 풀려나 집에 왔을 때 소녀는 싸늘한 시선들과 마주쳤다. 그제야 달거리가 멈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한 나이지리아 루카이야 양(13)의 이야기다. 이 나라에선 극단주의 무장반군 보코하람(Boko Haram)과 정부군의 대립이 8년째 계속되면서 여성들의 인권 유린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코하람은 ‘서구식 교육은 죄악’이라는 뜻이다. 인구의 절반은 기독교도, 절반은 이슬람교도인 이 나라에 이슬람 신정(神政)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2009년부터 마구잡이 테러를 자행해왔다. 특히 어린 여자아이들을 끌고 가 자살폭탄 테러에 이용하거나 ‘결혼’이라는 이름 아래 성폭행했다. 유엔아동기금에 따르면 2012년 이래 보코하람에 납치된 여성은 약 2000명. 최근엔 정부군의 소탕 작전이 성공해 납치됐던 소녀들의 기적 같은 생환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기쁨의 귀향은 절망의 시작이다. 전쟁 피해자들은 아군과 또 다른 무언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적군과 함께 살다 온 여성은 적군만큼 위험한 존재로 간주된다. 부모들은 “딸을 포기하라”는 협박을, 정부는 “평생 여자애들을 가둬놓으라”는 압력을, 성폭행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개들 속의 하이에나’라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보코하람의 여자’라는 낙인은 조선시대 전쟁 피해자들인 환향녀(還鄕女)를 떠올리게 한다. 역사학자들은 속환녀(贖還女)라고 부른다. 병자호란을 기록한 인조실록엔 “오랑캐에게 정조를 잃은 며느리에게 조상 제사를 받들게 할 수는 없다”며 이혼을 요구하는 시아버지 얘기가 나온다. 반대로 딸이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왔는데도 사위가 새 장가를 들려고 한다며 이를 막아달라는 친정아버지의 사연도 있다. 당시 좌의정 최명길은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왔다는 이유로 이혼을 허락해선 안 된다고 했다가 “나라의 풍속을 무너뜨린 자”로 역사에 기록됐다(인조실록 36권). 인조는 마을마다 ‘회절강(回節江)’을 지정해 몸을 씻는 여인들은 받아주라는 명을 내렸다. 하지만 적잖은 속환녀들은 그 이후로도 이혼당하고 버림받았다. 

이제는 환향녀도, 속환녀도 입에 올릴 일이 없다. 그렇다고 부당한 낙인찍기가 사라진 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에서 착공식을 마치고도 마포구 성미산 자락으로 쫓겨나 건립된 이유는 일본이 반대해서가 아니다. 일부 단체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 훼손”이라며 들고일어났기 때문이다.

보코하람에 납치된 소녀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우리 딸을 돌려 달라’(#BringBackOur Girls)는 해시태그 캠페인에 동참했던 이들은 이제 소녀들의 ‘슬픈 귀향’에 분노하고 있다. 2012년 5월 문을 연 후 4주년을 맞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문제를 넘어 이름 그대로 전시 성폭력이라는 보편적 여성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공간으로 진화하면 어떨까. 전쟁의 만행뿐 아니라 전쟁에서 소녀를, 국민을 지켜내지 못한 이들이 오히려 적군과 함께 그 희생자를 혐오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그 뒤에 숨어버리는 비겁함을 일깨우는 곳 말이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놓듯 지은 건물은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서 여전히 횡행하는 피해 여성에 대한 낙인찍기 관행을 역설적으로 선명히 드러내줄 것이다.

5. [동아일보][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막창과 곱창

양구이나 양곱창구이를 양(羊)고기를 구워 먹는 것으로 안 적은 없는지. 한자어 양(羊)에 이끌려서인데 그렇지 않다. 여기서 ‘양’은 소의 위(胃) 가운데 하나를 말한다. 

소는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이어서 위가 4개다. 첫 번째 위는 ‘혹위’ ‘반추위’, 두 번째는 ‘벌집위’, 세 번째는 ‘천엽(千葉)’ ‘처녑’ ‘겹주름위’ ‘중판위’, 네 번째 위는 ‘추위’ ‘주름위’라고 한다. 보통 익히지 않고 날로 기름장에 찍어 먹는 처녑, 천엽 등 익숙한 낱말도 있지만 대부분 생소하다. 그런데 가만, 정작 입길에 자주 오르는 ‘막창’은 보이지 않는다.

많은 이가 막창을 ‘마지막 창자’라고 생각해 ‘소의 대장’으로 알지만 막창은 ‘소의 네 번째 위’다. ‘홍창’이라고도 한다. 

또 있다. 사전은 ‘양’을 ‘소의 위(胃)를 고기로 이르는 말’이라고 뭉뚱그려 놓았지만 언중은 첫 번째 위를 가리키는 말로 쓴다. 처녑과 천엽의 언어세력을 인정해 복수표준어로 삼은 것처럼 막창과 홍창도 표준어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아 참, 대구 사람들이 즐겨 먹는 ‘돼지 막창’은 엄밀히 말하면 ‘돼지 밥통’으로 불러야 한다. 돼지는 위가 하나뿐이니.

곱창은 소의 작은창자(小腸)를 말한다. 북한에서는 ‘곱밸’ ‘곱창’ 둘 다 쓴다. 곱창의 ‘창’이 중국어 ‘장(腸)’에서 왔고 곱밸의 ‘밸’은 창자를 뜻하므로 둘의 의미는 같다. 비위에 거슬려 아니꼬울 때 흔히들 쓰는 ‘밸(배알)이 꼴리다’의 밸이 바로 그것. 밸은 속어로 남아 있는 고유어다.

소의 작은창자가 꼬불꼬불하다 보니 곱창을 ‘굽은 창자’ ‘곱은창자’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곱은창자가 줄어들어 곱창이 된 것으로 본 것. 과연 그럴까. 소의 큰창자(大腸) 역시 꼬불꼬불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 사전은 ‘곱은창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곱창의 ‘곱’은 뭘까. ‘부스럼에 끼는 고름 모양의 이물질’이나 ‘지방 또는 그것이 엉겨 굳어진 것’이다. 눈곱 발곱 손곱이나 곱창전골 등에서 ‘곱’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양껏 드세요’ ‘양에 차다’라고 할 때의 양은 어떻게 표기할까. 위가 꽉 차도록 많이 먹으라는 뜻이므로 ‘위(胃)’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한자어 양(量)에 밀려났다. 사람의 배를 채우면서 소 위인 양을 쓴다는 게 마뜩잖아 그런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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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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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3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여·야·정, 역지사지로 민생 살릴 혜안 고민하길

여·야·정 민생현안점검회의가 지난 20일 개최됐다. 회의 결과를 놓고 ‘성과가 없었다’는 회의적인 시각과 ‘첫 술에 배 부르겠느냐’는 기대감 등 두 가지 기류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제1차 여·야·정 민생회의가 갖는 상징성이다. 그동안 여야 정치권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각자 주장을 되풀이해왔다. 국가적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상대의 생각을 듣기 시작했다는 점은 누가 뭐라 해도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날 회의에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현안들이 의제에 올랐다. 먼저 정부를 대표해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여야 정책위의장들에게 수출 부진과 청년실업률 상승, 일자리 창출의 어려움, 민생 현안 등을 설명할 기회를 가졌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과 20대 국회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신산업육성을 위한 규제완화에 대해서도 이해를 구했다. 이에 여·야·정은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재정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업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려면 추경 외에도 정부에서 요구하는 한국형 양적완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야당은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재정지출 확대에 방점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의 규모를 가늠할 수 없는 야당 입장에서는 양적완화에 선뜻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이해하고 합의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성과연봉제에 대해서는 노사합의로 추진한다는 원칙만 재확인했다. 노사합의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노조의 반대가 뻔한 상황에서 노사합의 원칙만 확인한 것은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야당도 비효율의 대명사로 지탄을 받고 있고, 국민 다수가 원하는 공기업 임직원의 성과연봉제 도입 원칙에는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야당 측이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누리과정 예산 문제도 협치의 중요한 가늠자 중의 하나다. 여야 3당이 한목소리로 중앙정부가 좀 더 재정적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올 예산의 시·도 간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3당이 한목소리를 낸 사안인 만큼 정부가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여·야·정 민생회의가 협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상시청문회법’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상시청문회법은 민생에 비해 중요도가 낮고, 성격도 다르다. 민생은 방법론에서는 차이가 있을 뿐 여야가 따로일 수가 없다. 민생을 챙기는 일만큼이라도 역지사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공기업 성과연봉제 도입에는 야당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 반대로 누리과정 예산편성에서는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여·야·정 민생회의를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열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자주 만나다 보면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 민생 문제만큼은 여·야·정이 진영의 늪에서 빠져나와 협치의 정치를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2. ‘강남역 여성 살인’ 자발적 추모 함의 읽어야

서울 강남역 근처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 사건이 사회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된 20대 여성을 추모하는 움직임이 연일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난 17일 경찰은 정신병력이 있는 남성의 ‘묻지마 살인’으로 인식했다. 그런 것이 다음날 한 네티즌이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여성 혐오 살인에 경종을 울리자고 제안하면서 삽시간에 공감대를 넓혔다.

범인은 경찰 조사에서 평소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왔다고 말했다. 범행 동기를 여성혐오증으로 몰아가는 시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여성을 공격 대상으로 특정했다는 의심은 추가 조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화장실에 숨어 있던 범인은 6명의 남성이 오간 뒤 처음 나타난 여성에게 범행을 저질렀다.

강남역 부근의 추모 열기는 전국의 도시로 번지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추모 카페가 만들어지고 오프라인에서는 촛불 문화제 등이 잇따라 계획되고 있다. 특정 단체나 구심체 없이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시민운동을 주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단순히 흘려 넘길 현상이 아니다. 우리 사회 여성들의 폭력에 대한 불안감이 얼마나 컸는지, 억압된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단적으로 웅변하는 메시지로 읽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공포는 일상적이며, 이번 사건은 그 공포가 현실이 된 것”이라고 여성들은 울분을 섞어 자조한다.

여성폭력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걱정해야 하는 정황들은 도처에서 확인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만 보더라도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의 피해자는 여성이 84%를 차지한다. 된장녀, 김치녀 같은 여성 혐오 묘사가 흔한 데다 이런 표현에 공감한다는 남성은 응답자의 절반을 넘었다. 사회 분위기를 무비판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남자 청소년들은 한술 더 떠 67%나 된다니 걱정스럽다.

여성 대상의 폭력과 범죄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절실하다. 오죽했으면 여성혐오 범죄는 법을 고쳐서라도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겠는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얼음판을 걷게 하는 세상은 야만사회다. 내 딸, 내 누이일 수 있는 여성들이 왜 이 무더위에 인터넷 사발통문을 돌려 거리집회에 나서려는지 헤아려야 한다. 며칠 뒤 발표한다는 범정부 여성 안전 종합대책도 졸속 땜질 처방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3. 北 대화 공세 앞서 의미 있는 변화 보이라

7차 당 대회 이후 북한의 대화 공세가 집요하게 펼쳐지고 있다. 북한 당국은 지난 20일 국방위원회 공개서한을 통해 군사 대화를 제의한 데 이어 21일에는 김기남 당 중앙위 부위원장 명의로 군사 대화 실무접촉을 제안하는 등 대화 공세를 이어 가고 있다.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을 전쟁 연습으로 비난하면서 적대행위의 전면 중단을 촉구하면서 남북 간 군사 대화를 제의한 것이다. 이틀간 계속된 북한의 대화 공세에 대해 우리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최우선 돼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이 ‘핵보유국’을 자처하고 비핵화를 거부한 상태에서 남북 군사회담을 제의하는 행태는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공식 평가인 것이다.

북한의 대화 제의를 분석해 보면 늘 다목적인 노림수가 있다. 유연한 대화 제스처 뒤에는 한반도 긴장의 이유가 자신들에게 있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내세워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해 가려는 꼼수가 숨어 있다. 대화를 제의할 때마다 어김없이 이어지는 남남 갈등을 고려한 흔적도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핵보유국임을 선언한 이후 군사 대화를 하자는 것은 핵보유국을 기정사실화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북한이 7차 당 대회에서 주장했던 ‘세계의 비핵화’ 역시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핵무기 소형화와 다양화를 추진하는 북한으로서 시간 벌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이런 맥락이다.

북한의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스위스까지 북한의 핵 포기를 촉구하면서 대북제재에 참여할 정도로 북한의 고립은 심화되고 있다. 북한은 틈만 나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도발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진정성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북한은 국제사회에 적대행위 중지를 요구하기에 앞서 핵실험 중단 선언 등 의미 있는 변화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럼에도 북한의 대화 공세에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공화당)나 힐러리 클린턴(민주당) 등 미국의 유력 대선 후보들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와 함께 당선 이후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중국 역시 비핵화와 평화협정 문제를 함께 논의하자는 입장이라 미 대선 이후 국제사회 기류가 급전환될 수도 있다. 당분간은 국제사회와 함께 유엔 대북 제재 국면을 유지해야 하지만 향후 상황 변화에 따른 다양한 출구 전략도 세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동아일보]

4. '성과급 노사합의'약속한 경제부총리, 공공개혁 포기했나

여야정이 20일 첫 민생경제현안점검회의에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에 대해 지난해 9월 ‘직무·숙련을 기준으로 해 노사 자율로 추진한다’고 한 노사정 대타협 원칙을 따르고 노사 합의로 진행키로 했다. 정부가 성과주의를 강제한다는 야당의 지적에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불법과 탈법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17일 국무회의에서 “공공개혁을 위해 성과연봉제 도입을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유 부총리였다. 지난달 대통령과 여야 원내지도부 회동 성과로 첫발을 내디딘 ‘여야정 협의체’가 공공개혁을 후퇴시킨 꼴이다.

금융공기업들은 이달 들어 직원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해 동의서를 받고 이사회에서 성과주의 안건을 통과시키고 있다. 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등 5곳이 성과급을 도입했고 이번 주에는 나머지 4개 금융공기업이 같은 방식으로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유 부총리가 느슨해지는 공공개혁의 속성을 감안해 두 야당에 선제적 개혁을 설득하기는커녕 개혁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린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2014년 기준 공공기관 전체 연봉은 6349만 원으로 전체 임금근로자 소득 상위 10%에 가깝다. 전체 임금근로자 평균 연봉(3240만 원)의 2배나 되고, 산업은행 예탁결제원 같은 9개 금융공기업의 평균 연봉은 무려 8883만 원이다. 더구나 공공부문에 도입하려는 성과연봉제는 기본급은 그대로 둔 채 수당에만 차등을 두는 등 ‘무늬만 성과주의’다. 비정규직은 월 137만 원을 받는 마당에 여야정이 생산성 낮은 공공부문의 기득권 사수를 돕겠다는 것은 다수 국민을 외면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노동개혁의 대상인 공공노조를 협상 테이블에 모셔놓고 일일이 재가를 받는 개혁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는 “그리스가 위기에 빠진 주요 이유는 개혁에 대한 일부 정치권의 반대 때문”이라고 했다. 공공개혁이 실패한다면 민간개혁을 유도할 명분도 없어질 것이다.

5. 불편 감수해야 초미세먼지 잡는다

최근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 연구진이 공동으로 발표한 2015년도 공기 질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180개 국가 중 173위였다. 2014년에 171위였으니 두 계단 더 내려간 셈이다. 그러나 이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공기 질 순위를 매기는 기준이 매번 달라 객관성 유지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 가중치를 반영해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나 국가의 공기 질이 나쁘도록 설정되어 있다는 점도 그렇다. 지상 관측 자료가 아니라 정확도가 낮은 인공위성으로 추정한 대기오염도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정부가 수도권에서 미세먼지(PM10)를 관측하기 시작한 1990년대 말 이후, 최근 몇 년간의 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낮다. 2000년대 초반 서울의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m³당 70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으로 최악의 상황이었고, 이후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미세먼지 저감 정책에 힘입어 2010년 이후에는 50μg 이하로 낮아졌다. 하루 평균 100μg 이상인 날도 2000년대 초반에는 40일이었지만 2010년 이후에는 10∼20일 정도였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공기 질이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는지 반문하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미세먼지 농도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보다 두 배 이상이다. 현재 미세먼지 양의 절반으로 줄여야 선진국 수준에 이른다는 얘기다. 중국에서 넘어오는 미세먼지 양이 전체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기 때문에 정부는 중국 내 미세먼지 감축을 적극 요구해야 한다. 중국 미세먼지의 피해가 어떤지 객관적으로 산정한 결과를 하루빨리 발표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서 그간 유지해 온 정부의 정책 방향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현재 상황에서 미세먼지보다 더 심각한 것은 초미세먼지이기 때문이다. 지름 1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인 미세먼지의 4분의 1 크기인 초미세먼지(지름 2.5μm)는 우리 건강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 최근 10여 년 동안 미세먼지는 크게 줄었지만, 초미세먼지는 상대적으로 적게 감소한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에서도 최근에야 초미세먼지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관측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관측 자료가 없기 때문에 얼마나 감소했고, 정책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모르는 실정이다.

초미세먼지는 자연 상태에서는 발생하지 못할 만큼 크기가 작다. 중국 사막에서 날아오는 황사는 초미세먼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초미세먼지는 인위적인 요인, 즉 자동차 배기가스나 공장 굴뚝을 통해 공기 중으로 배출된다. 자동차의 경유 엔진을 통해서 배출되는 양은 휘발유 엔진의 10배 이상으로 많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를 경악하게 한 폴크스바겐과 닛산의 배출가스 조작을 사전에 알지 못했던 정부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렇게 정부가 미처 자동차 배출가스 조작을 모르고 있는 사이에 엄청난 양의 초미세먼지가 공기 중에 뿜어져 나왔다. 초미세먼지는 앞으로도 적절한 규제책이 나올 때까지 계속 뿜어져 나올 것이다.

깨끗한 물은 사 먹어야 하듯이 깨끗한 공기도 공짜로 얻을 수 없다. 사회적인 합의를 이루는 선에서 적절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불편함이 있더라도 참아야 한다. 초미세먼지를 줄이려면 경유 차 가격을 올리는 방안을 동원해서라도 경유 차 사용을 자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현재의 대기 환경을 감안한다면 이젠 화력발전소를 증설해선 안 된다. 질소산화물(NOx)과 황산화물(SOx) 등 대기오염 물질을 내뿜고 있는데도 환경부의 오염배출원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는 중소형 공장도 주시해야 한다. 수도권에 있는 이 공장들의 대기오염 물질만 제대로 관리해도 대기의 질이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데일리]

6. 1년 맞은 메르스 사태 교훈 벌써 잊었나

우리 사회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됐다. 지난해 5월 20일 바레인에서 입국한 50대 한국인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시작된 메르스 쇼크는 보건당국과 의료계의 대처 미흡으로 일상 생활을 공황 상태로 내몰았다. 보건당국이 지난해 12월 23일 메르스 종식을 공식 선언할 때까지 217일 동안 감염자 186명 가운데 38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고 1만6000여명이 격리됐다. 또한 메르스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여행·모임·행사가 줄줄이 취소돼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은 자그마치 30조원에 달했다. 

메르스 파문은 단순한 질병으로 그치지 않았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우리 방역체계의 허술한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에 맞서는 컨트롤타워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골든타임을 놓쳐 사태를 악화시키는 낭패를 당했다.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는 메르스 사태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국가 방역체계 개편안’을 내놓았다. 질병관리본부장을 1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하고 역학조사관을 늘리며 감염병전문병원을 지정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으로 전염병이 창궐할 때 신속하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며 현장에서 지휘를 하기 힘든 구조다. 또한 감염병 전문병원은 설립 계획만 잡혀있을 뿐 구체적인 일정도 없다. 이런 식이라면 정부 방역체계 개편은 실질적 효력을 갖기에는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최근 ‘정부가 다른 감염병 발생에 대응할 준비를 잘하고 있느냐’는 설문조사에 73.8%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은 우리 방역체계 현주소를 보여주는 초라한 성적표다. 최근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확산되고 있는 지카바이러스는 국내 방역 시스템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험대다. 메르스 사태처럼 정부가 넋 놓고 있다가는 ‘제2의 메르스’ 재앙을 초래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 방역당국은 지카바이러스 창궐에 맞서는 시스템 점검과 대응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중앙일보]

7. 정신질환자 관리 사각지대가 강남역 참극을 불렀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벌어진 20대 여성 피살사건에 대해 경찰은 22일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로 규정했다. 여성 혐오에 따른 증오범죄라는 일부 지적도 있었지만 서울지방경찰청이 프로파일러 5명을 투입해 조사한 결과 김씨의 조현병(정신분열증)이 범죄 이유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씨는 이미 2003~2007년 피해망상 증세를 보였으며 2008년 조현병 진단을 받은 뒤 모두 6차례에 걸쳐 19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치료를 중단한 채 거리를 방황하다 증세가 악화되면서 이런 비극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사건은 범죄 가능성이 있는 일부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준다. 정신질환자는 국가와 사회가 치료해주고 관리해 사회 복귀를 도와야 할 대상이다. 치료받는 정신질환자는 결코 위험하지 않으며 범죄율이 오히려 일반인보다 더 낮다는 보건의료 통계는 이 같은 관리체계의 강화가 왜 필요한지를 잘 말해준다.

이런 어이없는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정신질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고 있는지, 거리를 배회하며 증세가 악화한 사람은 없는지 제대로 관리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현재 224개에 이르는 지방자치단체 건강증진센터에서 정신질환자들이 입원·치료·퇴원할 때 본인 동의서를 받아 실시하고 있는 사례 관리를 더욱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건강증진센터에 전담직원을 배치해 업무에 몰입하게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의학적으로 고위험군으로 판단되는 환자에 대해서는 집중 전담제도 등 더욱 촘촘하고 치밀한 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명령제를 더욱 엄격하고 실효성 있게 적용할 필요도 있다. 물론 인권침해 소지를 없애기 위해 투명하게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위험 행동의 가능성이 크거나 문제가 반복되는 경우에는 당국이 더욱 과감하게 개입하는 쪽으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정신질환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낙인찍는 일이다. 하지만 정신질환자들을 사회가 백안시하면 치료나 관리 받는 것을 꺼리게 되고 이럴 경우 증세가 더욱 악화돼 극단적인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사회가 이들을 따뜻하게 껴안아야 더욱 안전한 사회가 이뤄질 수 있다.

남녀 화장실을 분리하고, 우범지역 환경을 개선하는 등 범죄예방을 위한 사회 환경 조성도 절실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방치해온 이런 문제점들을 적극 개선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야말로 억울한 희생자의 넋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일일 것이다.

[매일경제]

8. 첫 발 뗀 민생 협치 일자리 창출부터 성과 내라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20일 여야 3당 정책위의장들과 함께한 첫 민생경제현안점검회의에서 어려운 경제 여건을 설명하며 "일자리 창출 여력이 안되는 상황이라는 말씀을 솔직히 드린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 둔화로 수출 부문이 직격탄을 맞고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어 고용 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취업자는 작년 같은 달보다 25만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 1년 새 15세 이상 인구가 42만명 증가한 것을 생각하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더욱이 청년층 실업률(10.9%)은 4월 기준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날 회의는 여소야대 정국의 민생 협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지도부의 청와대 회동에서 합의한 대로 여·야·정이 민생 현안을 놓고 머리를 맞댄 것이다. 예상대로 첫 회의에서 정부와 여야는 뚜렷한 견해차를 드러냈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부실기업 구조조정 재원, 누리과정 예산 부담 주체에 대한 각 당의 입장을 조율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 정부가 추진하던 정책에 제동이 걸리거나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질 수도 있다. 

박근혜정부는 65%대에 그치고 있는 고용률을 70%로 끌어올리는 것을 가장 중요한 국정 목표로 내세웠다. 그런데 현 정부 경제정책 사령탑이 '일자리 창출 여력이 부족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만큼 정치권의 협조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사실 고용절벽에 대한 우려는 유 부총리가 완곡하게 내비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당장 조선업 '빅3' 구조조정 과정에서만 6000명 이상의 인력 감축이 이뤄질 것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어제 "이대로 두면 청년실업자가 조만간 150만~160만명에 이를 것"이라며 20대 국회의 노동개혁 입법 처리를 호소한 것도 그 때문이다. 

모든 민생 현안은 결국 일자리 문제로 귀착된다. 그러므로 민생 협치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일자리 창출이 돼야 한다. 여·야·정은 마냥 시간을 끌지 말고 구조조정 충격을 흡수하면서 신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을 내놔야 한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확실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민생경제 협의체는 정치적 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9. 반복되는 ELS 손실, 판매 전에 위험성 충분히 알렸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또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매일경제신문과 에프앤가이드가 2011년부터 이달 19일까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5개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한 공모 ELS 현황을 분석한 결과 5년간 1조2300억원이 발행됐는데 이 중 3200억원가량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1500억원은 아직 상환 전이라 최종 손실액이 4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니 큰일이다. 조선과 해운은 전망이 좋지 않아 투자에 신중했어야 했는데 고수익에 현혹되는 바람에 이런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ELS와 기타 파생결합증권(DLS) 투자로 원금 손실이 발생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4년에는 자동차와 화학, 정유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에 베팅했던 투자자들이 100억원대 손실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저유가 충격으로 원유 DLS에서 1000억원이 넘는 원금 손실이 생겼다.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가 급락하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투자자들이 타격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손실이 잦은데도 돈이 몰리는 이유는 저금리 시대를 맞아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는 탓도 있지만 신중하지 못한 투자자와 수익에만 급급한 금융기관의 책임도 무겁다. 

파생결합증권은 특정 종목을 자산으로 하는 유형은 물론이고 지수 연동같이 상대적으로 손실 가능성이 낮은 것이라 할지라도 태생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투자 상품이다. 원금 보장형이 있기는 하지만 은행 예금 같은 보호 장치가 전혀 없다. 발행사인 증권사나 은행이 파산하면 원리금을 고스란히 날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금융기관들은 적지 않은 수수료를 챙기려고 고수익에 목마른 투자자들을 상대로 판매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반복되는 파생결합증권의 투자 손실을 막으려면 금융당국이 불완전판매 감시를 더욱 강화해야 하겠지만 금융기관들도 수익에만 너무 욕심내지 말고 판매하기 전에 위험성을 충분히 알려야 한다. 고수익만 생각하고 파생결합증권의 원금 손실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투자자에게는 아예 판매하지 말아야 한다.

10. 검찰, 홍만표 전관예우·몰래변론 의혹 확실히 밝혀야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전방위 로비의 핵심으로 꼽혀온 브로커 이 모씨가 검찰에 체포되면서 '정운호 게이트' 수사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부당 수임료 수수 및 탈세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와 고교 선후배 사이로 정 대표에게 홍 변호사를 소개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정 대표와 홍 변호사의 연결 고리인 만큼 철저히 수사해 그동안 불거진 의혹의 실체를 밝혀내야 할 것이다.

홍 변호사를 둘러싼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는 정 대표의 마카오 300억원대 원정 도박 혐의에 대한 두 차례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아냈을 뿐 아니라 검찰이 지난해 마닐라 100억원대 도박으로 정 대표를 기소했을 때도 회사 돈 횡령 혐의 적용을 막아 수사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홍 변호사는 그동안 "정 대표에게 받은 수임료는 1억5000만원이 전부"라며 전관 의혹을 부인해왔지만 검찰은 최근 정 대표로부터 "3억원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뿐만 아니라 2012년 대검 중수부가 수사한 솔로몬저축은행 사건을 맡아 선임계도 내지 않고 수임료 3억5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2014년 반도체장비 제조업체 참엔지니어링 한 모 회장 횡령·배임 고발 사건 때도 선임계 없이 '몰래 변론'하고 세금을 안 낸 정황이 드러났다. '몰래 변론'은 법조계의 고질적인 병폐인데 들켜도 과태료만 부과하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검찰이 홍 변호사 소환조사에 뜸을 들이고 있으니 '제 식구 감싸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검찰은 최근 홍 변호사의 부동산 관련 업체를 압수수색하는 등 탈세 의혹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브로커 이씨가 체포된 만큼 그의 입을 통해 홍 변호사의 전관 로비 혐의를 입증해내야 할 것이다. 전관예우 의혹이 핵심인 이 사건을 탈세 의혹만 밝히고 끝낸다면 비난 여론이 비등할 것이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걷어내려면 검찰은 국민 앞에 한 점 의혹도 남기지 말고 속속들이 밝혀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경영칼럼]일부러 고객 편가르는 양국화 마케팅이 뜬다

팝스타 마돈나는 “애지중지하는 딸을 위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지만 ‘마마이트’ 샌드위치를 한입만 먹어보라는 부탁은 끝내 들어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마마이트를 먹는 것은 최악의 악몽이라고도 덧붙였다. 마마이트는 갈색의 진득거리는 이스트 추출액. 주로 토스트에 발라먹는 용도로 사용된다. 우중충한 색과 독특한 향, 짠맛 때문에 먹기 어려운 도전적인 음식의 대명사기도 하다. 마돈나처럼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녀의 딸처럼 열렬히 지지하는 광팬도 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마마이트는 ‘Love it or Hate it’이란 캠페인으로 유명하다.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통해 팬들에게는 마마이트로 샌드위치를 천국과 같이 만드는 방법을, 혐오 고객들에게는 샌드위치를 망치는 방법을 알려준다. 2010년 ‘마마이트 XO소스’를 출시할 때는 팬 고객 30명을 초대해 마마이트 향 칵테일과 함께 즐기는 이벤트를 벌였다. 당시 홈페이지에는 5만4000명의 방문객이 모였고 페이스북은 30만 이상의 페이지뷰를 기록했다. 팬들의 기대 속에 출시된 신제품은 매장에 전시되자마자 매진되는 성과를 이뤘다.

마마이트의 전략은 열성 고객과 혐오 고객을 정면으로 대립시키는 전형적인 ‘양극화 마케팅’이다. 대부분의 기업이 숨기거나 외면하는 브랜드 혐오 고객을 오히려 주인공으로 만드는 게 핵심이다. 

양극화 마케팅은 편가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 즉 ‘집단 극화 현상(group polarization)’을 활용한다. 집단 극화란 처음에는 개개인의 생각이나 선호도에 큰 차이가 없어도 대립구도가 설정되면 의견이 극명하게 갈라지는 경향을 의미한다. 또 집단 소속감이 발휘돼 자신의 집단에 더 강한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반감 고객의 공격 덕분에 열성 고객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셈이다.

직접적인 대립은 아니더라도 특정 소비자 집단을 의도적으로 배제해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하고 핵심 고객의 지지를 얻을 수도 있다. 

영국에서 사이다는 원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맥주 대신 마시는 술, 얼음 없이 마시는 알코올 음료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2006년 여름, 사이다 제조업체 매그너스(Magners)는 ‘얼음과 함께 즐기는 시원한 음료’라는 캠페인을 펼쳤는데 이후 판매가 급증하는 성공을 거뒀다. 전형적인 사이다 고객이 아닌 전문직 젊은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낸 덕분이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경쟁 업체 스트롱보우(Strong bow)는 고민에 빠졌지만, 매그너스를 뒤쫓아 젊은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수순을 밟지 않기로 했다. 스트롱보우는 시장 확장 기회를 놓치더라도 핵심 고객층에 더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2009년에는 고된 하루 일을 끝낸 노동자들이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사들을 향해 ‘점잖은 은행가들은 꺼져!’라고 외치는 ‘HardEarned’ 광고를 내보냈다. 결과는 성공적. 고소득층이나 젊은이에게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전통적인 사이다 고객 사이에서는 인기가 급증했다. 브랜드를 지지하는 고객과 꺼리는 고객의 비중이 모두 높아져 양극화는 심해졌지만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입지를 다질 수 있게 됐다. 2009년 사이다 시장이 6% 성장하는 속에서 스트롱보우는 23%의 매출 증가세를 기록했다.

무조건 팬 고객만을 양성하기보다 제품과 브랜드를 꺼리는 부정적인 고객들의 심리와 행태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때로는 양극화를 강조하는 모험을 감행해야 할 때도 있다. 소비자 취향이 다양해지고 개성이 뚜렷해지는 시대에 ‘호불호 고객’을 대립시키는 양극화 마케팅은 시도해볼 만한 전략이다.

2. [매경이코노미][서평] 틀리지 않는 법 | 세상 겉모습 안에 숨은 ‘구조’를 보라

조던 엘렌버그의 ‘틀리지 않는 법(How Not to Be Wrong)’은 수학적 사고의 힘을 보여주는 책이다. 수학 신동으로 자라 교수(위스콘신주립대)가 된 그는 수학이 ‘다른 수단을 동원한 상식의 연장’이며 ‘혼란스러운 세상의 외피 안에 숨은 구조를 보여주는 투시 안경’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라진 총알구멍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흥미로운 수학의 세계로 이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공군은 전투기에 갑옷을 입히기로 했다. 총알에 맞아도 격추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 하지만 골치 아픈 문제가 있었다. 기체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하면서 희생을 최소화하려면 어느 부분을 보강하는 게 최선일까.

공군은 귀환한 전투기에 뚫린 총알구멍의 분포를 살펴본 후 통계연구그룹(SRG)에서 일하던 수학자 아브라함 발드에게 물었다. 구멍이 집중된 곳에 철갑을 둘러야 할 것 같은데 정확히 어디에 얼마나 더 둘러야 할지.

발드의 답은 뜻밖이었다.

“갑옷은 구멍이 많이 난 곳에 두르면 안 됩니다. 구멍이 없는 곳, 엔진에 둘러야 합니다.”

발드는 장성들이 보지 못한 걸 봤다. 살아 돌아온 전투기만 보면서 총알구멍 위치와 생존율을 따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엔진에 구멍이 뚫린 전투기는 돌아오지 못한다. 귀환한 전투기들은 전투기 전체에서 무작위로 추출된 표본이 아니었다. 

특정 시점에 살아남은 펀드들만 보면서 수익률을 계산할 때도 이와 같은 생존 편향의 문제가 생긴다. 이미 도태된 펀드의 낮은 수익률은 계산에서 빠지기 때문이다.

엘렌버그는 정치 논쟁에서 횡행하는 선형적 사고의 맹점도 보여준다. 미국에서 오바마 정부의 건강보험개혁법을 놓고 논쟁이 한창일 때 한 보수 논객이 이렇게 썼다.

‘스웨덴 사람들이 스스로 실수에서 배운 바가 있어 이제는 정부 크기를 줄이려 애쓰는 마당에 왜 미국 정치인들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려는가.’

정부 크기와 국가 번영도 간에 선형적 관계가 있으며 큰 정부는 무조건 나쁘다는 논리다. 하지만 정부가 지나치게 작거나 너무 클 때는 국가 번영도가 낮아도 그 중간의 적당한 지점에서는 번영도가 매우 높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미국은 좀 더 스웨덴 쪽으로, 스웨덴은 좀 더 미국 쪽으로 다가가야 할지도 모른다. 이념 지형에서 우리가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는 현재 우리가 어느 지점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살아남은 펀드 수익률만 보는 생존 편향 문제

정부는 작을수록 좋다는 선형적 사고 버려야

잘못된 과학적 추론에 관한 지적도 날카롭다. 2009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인간 뇌기능매핑협회에서 한 신경과학자가 죽은 물고기의 독심술을 보여줬다. 죽은 연어의 뇌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기기로 찍으면서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보여줬더니 그 물고기가 사람의 감정을 놀랍도록 정확히 알아맞히더라는 것.

하지만 이는 치밀하게 계산된 농담이었다. fMRI 영상은 복셀이라는 수만 개의 작은 조각으로 나뉘는데 그중 어느 하나라도 사람의 표정과 잘 부합하는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 연구자는 그에 흥분해 나머지 복셀들은 무시한 채 물고기가 사람 마음을 읽는다고 결론짓는다. 발생 확률이 낮은 사건도 실제로는 늘 벌어진다는 진리를 무시한 것이다.

수학의 교훈은 단순하다. 세상에는 수학적 사고로 꿰뚫어 볼 수 있는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일부나마 그것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어지러운 세상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선형적 사고에서 벗어나 좋은 것이 더 많다고 해서 항상 더 좋아지진 않음을 이해할 때,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도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면 자주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때 우리는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3. [동아일보][김희균 기자의 교육&공감]엄마 수학능력 평가

5년 전 방영된 EBS의 다큐멘터리 ‘마더 쇼크’를 보면 한국과 미국의 엄마를 비교하는 실험이 나온다. 실험실에서 어린아이에게 뒤죽박죽된 낱글자를 조합해 단어를 완성하도록 하고, 엄마는 옆에서 지켜보게 한다.

한국 엄마들은 아이가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자 옆에서 단어를 말해주거나 순서를 어떻게 바꾸라고 알려주는 등 수시로 개입한다. 반면 미국 엄마들은 아이가 엉뚱한 단어를 만들어도 그저 지켜볼 뿐, 끝까지 문제 풀이를 도와주지 않는다.

실험이 끝난 뒤 인터뷰에서 한국 엄마들은 이렇게 말했다. “(문제를 풀지 못하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빨리 하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가르쳐주고 아이가 맞혔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반면 미국 엄마들은 “늘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둔다”, “매번 방법을 알려주면 혼자 하는 방법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엄마들이 성취의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시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지난주 일선 초중고교에 ‘과제형 수행평가를 지양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을 보며 문득 이 실험이 떠올랐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교육부가 지난달부터 학교생활기록부에 수행평가 비중을 확대하도록 하자 당장 현장에서는 학부모 부담이 커진다는 불만이 나왔다. 특히 교사가 과제를 내주고 학생들이 이를 집에서 해결해 제출하도록 하는 ‘과제형’ 수행평가의 경우 사실상 ‘엄마 평가’라는 비판을 샀다.

과제형 수행평가로 인한 엄마들의 대표적인 골칫거리는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점. 수행평가를 위해 악기는 물론이고 줄넘기까지 과외를 받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 지인은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미술 수행평가 결과를 보고 당장 미술학원에 보냈다고 전했다. 아이는 ‘우주에서 하고 싶은 것을 그려 오라’는 수행평가에 검은 공간을 둥둥 떠다니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우주인을 그려 제출했다. 그러나 학교 인근 미술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미국 스페이스X사가 최근 개발한 우주 로켓을 그리거나, 태양계의 행성과 궤도를 자세히 그려놓고 이를 연구하는 우주인의 모습을 그려 제출했다. 교실 뒤에 전시된 아이들의 그림은 실력 차이가 아니라 사교육 격차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현실적 지표인 셈이다.

사교육이 고착화된 이런 구조적인 문제와 별개로 엄마의 과도한 개입이 수행평가에서 부작용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한 기자는 초등 4학년 자녀가 ‘신선한 과일을 골라보고 기록하라’는 과제를 받아 오자 마트에 가서 사과와 배를 고르고 사진을 찍어 제출했다. 하지만 일부 엄마들이 당도(Brix) 측정기를 사서 시장과 마트 과일의 당도 비교, 수입 국가별 신선도 비교, 제철과일과 하우스과일의 차이 등을 프레젠테이션(PPT) 파일로 만들어 제출했다는 후문을 듣고 주눅이 들었다고 한다.

수행평가는 ‘창의성을 높이고 실생활 문제 해결력을 높인다’는 취지로 1999년 도입됐다. 그리고 주입식 교육을 벗어나 창의적인 교육을 하자는 뜻에서 올해부터 확대됐다. 취지는 참으로 좋다. 하지만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초등학교는 엄마가 다니는 학교”, “초등 성적표는 엄마 성적표”라는 말이 유행한 지 오래다. 엄마와 사교육의 손길이 없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들, 그리고 부작용을 더욱 키우는 일부 엄마의 과도한 개입이 수행평가를 괴물로 만들고 있다.

단기적인 해법은 학교에서 해결하는 ‘수업 과정형’ 수행평가를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이상으로 늘리는 것이다. 과제 부담을 집으로 돌리지 말고, 대부분 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부가 ‘과제형을 지양하라’는 정도로 약하게 얘기해서야 과제형 수행평가가 확 줄어들 거라 기대하긴 어렵다. 

보다 근본적인 해법은 엄마들 스스로 자녀의 수행평가에 대한 개입을 줄여야 한다. ‘잘된 결과물’에 집착하지 말고 자녀 스스로 방법을 찾고 학습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켜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당장의 결과물이 초라해 보여 엄마의 조바심이 커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자란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더 잘 알게 될 테고 그래서 자신이 진로를 설계해 잘 찾아갈 테고, 어느 조직에서든 좀 더 나은 창의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엄마 손을 빌리지 않은 덕분에 기발한 그림이 나왔을지 모른다. 혹은 모든 과일을 맛보겠다는 도전 정신이 커졌거나 과일 소믈리에 혹은 과일 감별 전문가라는 새로운 직업을 찾아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엄마들이여, 혹시나 나의 적극성이 아이의 잠재력을 짓밟고 있지는 않은지 같이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여기에 누가 봐도 엄마의 손을 탄 ‘우수작’은 교실 뒤에 전시하지 않는 문화를 교사가 만들어 주면 금상첨화일 테고. 

4. [동아일보][박윤석의 시간여행]신문 연재와 본격 소설의 탄생

한국 소설이 번역되어 외국에서 상을 받고, 다른 언어권의 독자를 활발하게 만나는 세상이 차츰 열리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불과 수년 전까지도 한국의 소설은 엄밀히 말하자면 국내용이었다. 더욱 거슬러 현대 한국 문학의 기원에 해당하는 한 세기 전으로 올라가면 근대 한국의 소설은 외래품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효시 격으로 이광수가 ‘무정’을 내놓은 것이 99년 전의 일이다. 매일신보에 연재된 그 장편소설은 그의 출세작이자 한국 근대소설의 본격적인 막을 여는 작품이 되었다. 1920년 봄부터 한국인이 주인 되어 운영하는 신문들이 생겨나면서 문인들의 발표 창구와 활동 폭은 비약적으로 넓어지기 시작했다. 열악한 출판 여건과 부침 심한 잡지 풍토에서 신문 연재는 장편소설의 생산과 소비를 가능케 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작가와 신문과 독자는 소설이라는 연결고리 속에 함께 성장했다. 1920년대와 30년대 문화 풍토의 핵심이라 할 만한 것이 신문 연재 장편소설이었다.

동아일보의 첫 연재소설은 1920년 창간호부터 실린 민태원의 ‘부평초’였다. “나는 아홉 살이 되도록 어머니가 계신 줄로 알았다”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프랑스 소설 ‘집 없는 아이’를 번안한 것이었다. 아직 문인의 층은 얇고 창작의 기반은 부실한 때여서 민태원 같은 일단의 ‘문인기자’들이 1인 2역을 수행하는 시절이었다. 당시의 분위기를 대변하듯 시인 겸 기자인 김형원은 문학을 보는 세간의 오래된 시선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문학은 고린내 나는 학문이요 문학자는 실생활에서 제외된 인생이다. 문학은 사회를 문약(文弱)에 빠지게만 할 뿐 활기를 주지 못한다. 꾀죄죄한 선비의 소일거리이지 적극적 건설적인 학문은 아니다.”(동아일보 1920년 4월 20일자)

1922년도의 연재작인 나도향의 ‘환희’에서부터 비로소 창작소설이었다. 이광수의 두 번째 장편소설 이후 4년의 공백을 깨는 본격 장편의 출현이었다. 초기작이라 다소 미숙한 구석은 있었지만 모던한 안석주의 삽화까지 처음으로 곁들여져 독자의 시선을 붙잡았다.

“어린 도향의 내면적 변화는 시시각각으로 달라집니다. 미숙한 과일과 같이 나날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내놓기가 부끄러울 만치 푸른 기운이 들고 풋냄새가 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완숙한 것으로 만족한 웃음을 웃는 것이 아니라 미숙한 작품인 것을 안다는 것으로 나의 마음을 위로하려 합니다.”(동아일보 1922년 11월 21일자)

스무 살에 이 장편 연재로 일약 신인에서 문단의 기수로 떠오른 나도향은 연재 첫 회에 붙인 작가의 변에서 그러한 심경을 밝혔다.

그렇게 독점적 대중 매체인 신문을 타고 본격 소설의 시대가 열렸다. 다음 해 1923년 여름에 연재된 염상섭의 ‘해바라기’는 신여성 예술가 나혜석을 모델로 한 작품이어서 여러모로 대중적 관심을 모았다. 이례적으로 1면에 배치되었다. 이어 그해부터 춘원 이광수가 오랜 침묵을 깨고 동아일보를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후 10년간 그는 13편의 소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 문학적 전성기를 구가했다.

어느덧 신춘문예도 생겨났고 그렇게 문학의 시대는 힘을 받으며 상승 가도를 이어갔다. 앞에서 언급한 문인기자 김형원은 같은 글에서 세인의 통념과 다른 자신의 문학관을 이렇게 덧붙였다.

“문학은 사회를 향해 위안을 주고 경종과 각성을 준다. 하지만 문학이 어떠한 무엇을 제공함이 아니라, 사회 곧 독자가 스스로 문학에서 자기의 구하고 싶은 바를 구하는 것이다. 문학은 태양이다. 금강석이다. 우리는 그 불을, 그 빛을 각자의 욕구대로 역량대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이 스스로 우리에게 갖다 바치지는 않는다. 문학의 특질이 그러하다.”

환란과 궁핍의 시대에도 그렇게 뚜렷하던 소설의 존재감은 이제 문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한 사회 속에 집 없는 아이처럼 보이기에 이르렀다. 문학이 불필요할 만큼 완숙하고 풍요한 사회로 올라선 것일까. 아니면 문학을 떠올릴 여지조차 없이 미숙하고 황폐한 정신세계로 퇴행한 것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독서율 꼴찌라는 나라에서 세계적 문학상의 수상작이 나오는 소설 같은 현실이다.

5. [중앙일보][노트북을 열며]생사 걸린 화장실 혁명

이달 초 중국 저장(浙江)성 사오싱(紹興)을 여행하던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들렀다. 소변기 앞에 서니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변기) 앞으로 작은 한 걸음 다가서면 문명사회의 큰 걸음을 내디딘다(向前一小步 文明一大步)’는 내용이었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상임대표 표혜령)가 국내 화장실에 보급해온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를 떠올리게 했다. 10여 년 전 네이멍구(內蒙古)를 여행할 때 변소 수준의 화장실 때문에 ‘대략난감’ 했는데 최근 중국에 ‘화장실 혁명’이 진행 중이라 인상적이었다.

한국 화장실 혁명의 대표적 주역은 고인이 된 심재덕 전 수원시장이다. 그는 1999년 10월 한국화장실협회를 설립하고 수원의 공공화장실을 세계적 모범 사례로 만들었다. 2007년에는 세계화장실협회(WTA)를 설립해 초대 회장을 맡았다. 살던 집을 허물고 양변기처럼 생긴 해우재(解憂齋)를 지었다. 2009년 전립샘암으로 별세하자 유족이 해우재를 기부했고 수원시가 ‘화장실 문화 전시관’으로 개방해 명소가 됐다. 염태영 수원시장이 WTA 3대 회장을 맡아 아시아·아프리카에 화장실을 지어주고 있다. 박수받을 일이다.

그러나 국내 화장실 혁명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호텔급 화장실과 후진적 남녀공용 화장실이 뒤섞여 있어 ‘화장실 양극화’가 심각하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역(서초구 관할) 10번 출구 쪽 노래방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살인 사건을 봐도 그렇다. 경찰은 22일 여성혐오 범죄가 아닌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살인’이라고 발표했지만 남녀 공용화장실이 범죄의 무대를 제공한 사실은 분명하다. 남녀 공용화장실의 폐쇄가 시급한 이유다.

현행 공중화장실 관련법은 2006년 11월 9일 이후 신축된 연면적 2000㎡ 이상 상가, 3000㎡ 이상 업무시설에만 남녀 화장실 구분 설치를 명시하고 있다. 현행법이 화장실을 범죄 사각지대로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공간이 부족하면 우선 1, 2층을 남녀로 구분해 사용하자. 근본적 대책도 필요하다. 유동인구가 몰리는 지역에 공용주차장을 많이 짓듯 자치단체들이 남녀 분리 공중화장실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휘발성 강한 문제는 또 있다. 3월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가 성전환자(트랜스젠더)는 출생증명서에 기록된 성별에 따라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도록 법안을 제정하면서 ‘화장실 성소수자 차별’ 논란이 불붙었다. 그 불이 한반도에도 상륙할 기세다. 사회적 갈등으로 폭발하기 전에 대책을 궁리해야 할 문제다.

‘미스터 토일릿(Mr. Toilet)’으로 불렸던 심재덕 전 시장은 생전에 “26억 명이 화장실 없이 생활하고 연간 200만 명이 수인성 전염병으로 사망한다. 화장실은 인류의 생명을 지키는 성소(聖所)”라고 역설했다. 원초적 근심이 쌓이면 분노가 된다. 모두의 근심을 풀어주고 생명을 살리는 해우소(解憂所)가 될 때까지 화장실 혁명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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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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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9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가습기 살균제, 어느 제품을 믿어야 하나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비단 옥시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의 가습기 살균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청업체인 용마산업이 별도의 매뉴얼도 없이 자체 제조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이 회사 관계자들을 소환해 제품의 제조·판매에 관해 살펴보는 과정에서 이 같은 정황을 파악했다고 한다. 두 회사가 가습기 살균제 제조 경험이 전무한 용마산업에 제조를 의뢰한 경위는 물론 부실한 제품을 안전성 검사도 없이 유통시킨 과정을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검찰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2004년, 롯데마트는 2006년 각각 용마산업에 옥시 제품을 모델로 가습기 살균제 제조를 맡겼다. 하지만 용마산업이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원료 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사용하면서 인체 유해성 여부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두 회사의 제품을 사용한 끝에 28명이 목숨을 잃는 등 60여명이 피해를 입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안전성을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들 두 회사의 부실제조 정황이 드러난 것을 계기로 애경산업과 이마트, GS리테일 등이 판매한 제품을 둘러싼 유해성 여부도 밝혀야 한다. 환경단체에 따르면 2001년부터 판매된 애경의 ‘가습기 메이트’로 발생한 피해자도 적지 않다. 이마트의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나 GS리테일의 제품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습기 살균제 사고의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해 모든 유통업체로 수사를 확대하는 게 옳다. 피해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 확산에는 정부의 책임도 작지 않다. 유독물질의 인허가 및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은 물론 피해가 확인된 뒤에도 늑장 대처로 사태를 키웠다. 2006년 첫 어린이 사망자가 보고됐으나 5년이 지난 2011년에야 역학조사에 착수했다. PHMG를 유해물질로 지정한 것도 2014년이다. 유해 화학물질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사태를 10년도 넘게 방치한 꼴이다. 명백한 직무유기다. 특별법 제정이나 국정조사, 청문회 등을 통해 책임 소재를 명백하게 가려야 한다.

2. 박 대통령 탈당이 마지막 선택이다

새누리당의 당내 주도권을 둘러싼 ‘친박’, ‘비박’ 간의 내홍이 갈수록 가관이다. 수습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4·13 총선 참패에 따른 비대위 체제 전환과 혁신위 활동으로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는 계획이 무산됨으로써 지도부 공백이 이어지는 중이다. 새누리당을 응징한 유권자들이 보기에는 가소로울 뿐이다. 칩거에 들어간 정진석 원내대표조차 “집권 여당에서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며 허탈한 심경을 숨기지 않는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드러난 당내 갈등이 드디어 곪아터진 것이다. 지난 3일 정 원내대표를 선출하면서 겨우 진정 국면에 접어드는가 싶었으나 그게 아니었다. 친박계가 상임전국위와 전국위원회를 보이콧하는 방법으로 비대위에 대한 거부감을 명백히 드러냈다. 비대위원 내정자들이 김무성 전 대표나 유승민 의원과 가까운 비박계 일색이라는 게 주된 이유다. 이를테면, 친박계에 의한 친위 쿠데타인 셈이다.

이런 식이라면 설사 갈등이 조만간 봉합된다 해도 새누리당의 원활한 운영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임기 후반기에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도 험난해질 수밖에 없다. 여당의 내분이 이어지는 처지라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야당과 합의된 협치 약속도 이미 무너졌다고밖에 간주하기 어렵다. 당내에서조차 화합을 이루지 못하면서 야당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친박계가 나름대로 후속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해결 방안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비박계도 팔짱만 끼고 있을 태세는 아니다. 지난 총선을 거치면서 이미 갈등 수위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마당이다. 당내에서 자꾸만 티격태격할 게 아니라 차라리 갈라서는 게 옳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떳떳한 도리다. 공허한 명분으로 같은 뿌리임을 내세운다는 자체가 자기 기만일 뿐이다.

새누리당의 분당 여부를 떠나 박 대통령 스스로도 결정을 내릴 단계에 이르렀다. 임기를 마치기까지 새누리당과 과연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 하는 문제다. 탈당이 하나의 대안이다. 여소야대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여당이 국정을 특별히 지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새누리당이 다수당이었을 때도 국정 추진이 원만하지는 않았다. 결국 박 대통령의 마지막 선택에 달린 문제다.

[서울신문]

3. 생활용품 유해성 검사 속도 더 내라

가습기 살균제 파동으로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믿고 써도 되는 제품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으니 불안감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런 가운데 환경부는 그제 생활용품 7개 제품에 사용금지 물질이 들었다며 시장에서 퇴출하기로 했다. 즐겨 써 온 생활용품들에 독성이 있었다니 아찔할 뿐이다.

신발무균정이라는 탈취제품에서는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인 PHMG가 검출됐다. 옥시 파동이 터진 게 언제인데, 문제의 유해 성분이 포함된 제품이 어떻게 시중에 버젓이 유통될 수 있었는지 황당하다. 게다가 PHMG는 산업통상자원부가 3년 전 탈취제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필코스캠이란 업체가 만든 에어컨 살균 탈취제에 든 TCE도 10년 전 환경부가 취급 금지한 유해 물질이다.

이러니 국민들이 불안을 떨칠 수 없는 것이다. 정부 당국만 믿고 있다가는 어떤 낭패를 볼지 모른다는 인식이 심각하다. 최근에는 탈취제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페브리즈가 안전성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이에 대한 환경부의 대응 태도에는 문제가 많다. 유해 물질이 미량 들었다고 인정할 뿐 사용 여부에 대한 지침이 없다. 앞으로 독성실험을 하겠으니 사용 적합성은 소비자가 알아서 판단하라는 식이다. 터진 구멍만 메우겠다는 소극적인 태도로는 국민 공포증을 잠재울 수 없다. 환경부는 지난 1월에 퇴출 제품 7개의 유해성을 이미 확인했다. 적발하고도 넉 달이나 알리지 않았다니 소비자들은 분통이 터진다.

시판 제품에 든 화학물질 4만여개 중 정부가 관리하는 것은 530종뿐이다. 이마저도 화학물질등록평가법에 따라 제조사는 일부 유해 물질 성분만 표시하면 된다. 기업 규제를 줄여 주는 것도 좋지만 국민 안전이 뒷전이라면 시급히 손볼 제도다. 생활화학제품을 전수조사하겠다는 정부 방침도 이런 사정을 알고 보면 알맹이가 없는 얘기다. 제조사가 성분을 자발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이상 유해성 여부를 속시원히 가릴 방법이 없다.

인력과 예산을 긴급히 늘려서라도 시중 제품들의 유해성 검사에 속도를 내야 한다. 시판 제품이 8000개가 넘는데 한 해 고작 300여개를 조사하겠다는 환경부의 발상은 너무 안이하다. 조사와 결과 공개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판매량이 많은 인기 제품들을 우선 검사하고, 퇴출 제품만 밝힐 게 아니라 검사를 마친 안전한 상품의 이름도 공개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도와야 한다. 책임 있는 소비자 보호 행정을 하겠다면 그래야 한다.

4. '주식 대박' 진경준 사표 수리 말고 수사해야

진경준 검사장의 120억 ‘주식 대박’ 의혹을 조사해 온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법무부에 징계를 요구했다. 진 검사장이 2005년 넥슨의 비상장된 주식 1만주의 매입 대금 출처를 사실과 다르게 소명했다는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돈(4억 2500만원)으로 주식을 샀다고 주장했다가 다른 사람의 돈이 흘러 들어간 정황이 포착되자 “처가에서 빌렸다”고 말을 바꿨다고 한다. 그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주식 자금에 대한 거짓 해명까지 드러난 만큼 검찰의 수사는 불가피하다.

공직자윤리위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검찰 고위 간부의 주식 대박 의혹 사건을 한 달여 넘게 조사를 하더니만 고작 ‘말 바꾸기’ 하나만 밝혀냈다니 허탈하기만 하다. 만약 진 검사장이 주식 매입 과정이 떳떳했더라면 자금 출처에 대해 처음부터 처가에서 빌렸다고 했으면 될 일을 자신의 돈이라고 거짓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고 보일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그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은 그의 말 바꾸기만이 아니다. 검사라는 직위를 이용한 직무 대가성 주식 매매가 이뤄졌는지와 넥슨의 미공개 내부 정보를 통해 부당 이득을 얻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을 갖고 있다. 서민들은 평생 만져 보지도 못할 백억원대의 돈을 고위 공직자가 손쉽게 벌었는데도 이를 유야무야 덮을 일은 아니다.

공직자윤리위가 돈 출처도 못 밝히고 조사를 마무리했으니 이제 공은 법무부와 검찰로 넘어갔다. 진 검사장에 대한 여러 의혹에도 혹 법무부가 가벼운 징계를 내려 사표를 수리할 생각은 아예 접어야 한다. 더구나 진 검사장은 김현웅 장관 인사청문회 준비단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런 만큼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이 더 필요한 상황인데도 그의 사표를 덥석 받아들인다면 법무부는 앞으로 ‘법과 원칙’이라는 말 자체를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한다.

가뜩이나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지낸 홍만표 변호사가 정윤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도박사건 수사·재판 로비에 연루된 의혹이 불거져 검찰 고위 간부들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국민적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따갑다. 검찰이 남의 과오에는 가혹하면서 내 식구 과오에는 관용을 베푼다면 검찰 역시 ‘공정·엄정 수사’ 같은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이들 두 사람의 수사에 검찰의 명운을 걸어라.

[동아일보]

5. 검찰, 홍만표-진경준 수사 뭉개다간 특검 맞는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를 둘러싼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근무 당시 수사하던 솔로몬저축은행 사건을 후배 변호사에게 소개하고 3억5000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나왔다. 퇴임 후 1년간의 수임 금지 기간을 지키는 흉내는 냈지만 변호사로서 법으로 금지된 사건 브로커 역할을 한 것이다. 그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원정 도박 사건을 소개받은 것도 고교 후배인 브로커를 통해서였고, 브로커에게 3억 원을 건넸다는 진술이 나왔다.

홍 변호사는 정 대표 사건에서 두 차례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아냈을 뿐 아니라 한 기독교방송사 회장의 횡령 사건을 4억5000만 원에 수임하고 역시 무혐의 처분을 받아냈다. 전관(前官) 예우는 현관(現官)의 도움 없인 불가능하다. 검찰은 홍 변호사의 압수수색을 1주일 이상 미적거렸다. 그의 소환조사가 늦어지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제 식구 감싸기 정도가 아니라 검찰이 뭔가 구린 구석이 있어서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진경준 검사장의 126억 원대 넥슨 주식 대박 의혹을 조사해온 공직자윤리위원회는 법무부에 그의 징계를 요구했다. 진 검사장이 2005년 넥슨 비상장 주식 1만 주를 사들인 매입 대금을 자기 돈이라고 했다가 처가에서 빌린 돈이라고 말을 바꿨다는 게 이유다. 법무부 징계 절차가 진행되면 가벼운 징계를 받고 사표가 수리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처가에서 빌린 돈이라면 구태여 말을 바꾸며 숨길 이유가 없다. 검찰은 그동안 공직자윤리위 조사를 핑계로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수사에 나서 그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는지, 넥슨과 ‘스폰서 관계’는 없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형사정책연구원의 작년 형사사법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검찰은 경찰 법원 교도소에 이어 꼴찌를 기록했다. 전·현직 두 검사장의 비리 의혹이 점점 불어나면서 검찰의 신뢰도가 더 추락하고 있다. 전관의 거액 수임이 홍 변호사만의 일인지도 의문이다.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하면서 정 대표 무혐의 처분 때의 서울중앙지검장이 김수남 검찰총장이었다느니, 김현웅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준비단장이 진 검사장이었다느니 하는 얘기까지 나온다.

전관예우의 여지는 수사 비밀을 보장받고 기소독점권을 가진 검찰이 법원보다 더 클 수 있다. 검찰이 이번 의혹을 계속 뭉개다가는 야당이 과반을 차지한 20대 국회에서 특검이 발동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6. '교직원 퍼주기'하려고 서울대 법인화했는가

서울대가 2011년 국립대에서 법인화된 뒤 공기업 뺨치는 방만 경영을 해온 것이 감사원의 감사 결과 드러났다. 사기를 높인다며 교원들에게 ‘교육연구장려금’으로 1인당 1000만 원, 직원들에게는 복지비로 1인당 평균 500만 원을 지급하면서 242억 원을 썼다. 법적 근거도 없는 초과근무수당 60억 원과 자녀학비수당 18억 원을 노사 합의로 추가 지급하는가 하면 2013년 교육부가 폐지한 교육지원비를 계속 지급하고 작년엔 아예 기본급에 넣었다. 

지성의 상징으로 통하는 서울대 교수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도 속속 드러났다. 교수 6명이 총장 허가 없이 기업의 사외이사를 겸직했지만 대학은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한 교수는 겸직허가 신청이 반려됐는데도 겸직을 맡아 1억8080만 원을 챙겼고 다른 교수는 신청조차 하지 않고 벤처기업 대표이사를 맡아 3524만 원의 급여를 받았다. 직무와 관련된 연구 내용을 개인 명의로 특허출원한 교수도 있다. 

교육부가 해마다 출연금을 확대해 2012년 3409억 원에서 2015년 4373억 원까지 늘어났지만 회계 관리는 엉망이었다. 의과대학 등 13개 단과대학은 학칙을 어기고 부학장 25명을 추가 임명해 월 최대 100만 원의 보직수당을 지급했다. 28개 소속 기관은 자체 수입 중 308억 원의 세입 처리를 누락하고 4개 기관은 이 중 134억 원을 운영비로 썼다. 이번에 감사원 감사에서 덜미가 잡히지 않았으면 서울대는 국민 세금으로 방만 경영을 계속했을 것이다. 교육부가 관리감독 책임을 다하지 못한 탓도 크다.

서울대 법인화 취지는 인사와 재정에 자율성을 줄 테니 세계적 명문대로 도약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높이라는 취지였다. 최근 영국의 교육전문지(THE)가 발표한 ‘세계대학 평판순위’에서 서울대는 45위로 일본 도쿄대 12위, 중국 칭화대 18위에 비해 크게 뒤진다. 자율권을 남용해 나눠 먹기식 경영을 했으니 경쟁력이 오를 리 없다. 주먹구구식 운영에 대한 내부통제시스템을 강화하고 교수의 윤리의식을 재점검함으로써 명실공히 선두 대학에 걸맞은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7. 5·18 민주화 운동, 통합의 장으로 만들어야

어제 광주 운정동의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식’이 반쪽 행사로 진행된 것은 국가적인 불행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행사에 3년 연속 불참했다. 여야 대표들이 목청껏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 황교안 국무총리와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입을 굳게 닫고 자리에 서서 태극기만 흔드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노래가 시작되자 퇴장한 보수단체 회원들도 마찬가지다. 국가 행사의 주무인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이 노래의 제창을 불허했다는 이유로 기념식장에 앉지도 못하고 쫓겨난 일도 답답하기만 하다.

더 큰 문제는 행사가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부여하는 장이 되기는커녕 ‘노래 논란’의 싸움터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5·18의 의미와 그 정신의 계승이 뒷전이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1980년 5월의 광주 민주화운동은 국가 폭력에 맞선 반독재 투쟁이다. 고통 속에서 피로 쓴 5월의 역사에는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시대적 열망이 오롯이 담겨 있다. 고귀한 정신과 희생이 1987년 6월의 민주항쟁으로 이어져 대한민국은 지금의 헌법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를 통해 그토록 갈망하던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광주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역사다. 5·18 민주화운동이 국가행사로 열리고 광주의 넋들이 묻힌 묘역이 국립 민주묘지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이 지금처럼 꼬이게 된 데는 정부의 불통이 원인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해 온 야권 인사들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어떤 방식으로 부르느냐를 놓고 매년 논란을 벌이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영령 앞에서 5·18 정신을 진심으로 되새겨야 한다. 국민과 사회를 하나로 묶어 낼 통합의 리더십을 ‘광주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이젠 5·18을 정치에서 풀어 주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로 승화시킬 방법을 찾을 때다.

[매일경제]

8. 규제 개혁에 소극적인 부처·공무원 대폭 줄여라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제5차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사물인터넷(IoT)·드론·자율차·바이오 등 신산업 관련 규제를 대폭 풀기로 했다. 드론 관련 산업 허용, IoT 전용 전국망 구축, 자율주행 차량 전국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박 대통령이 다섯 차례나 규제개혁 회의를 주재하고 '암덩어리·원수'라며 규제 혁파를 외쳤지만 국민들 체감은 쉽지 않다. 와인은 택배로 보내지 말라든가, 중국 관광객들이 치맥파티를 못하게 한다든가, 야구경기장에서 맥주를 팔면 안 된다는 등 엉뚱한 생활 속 규제들과 맞닥뜨리는 탓이다.

역대 정부마다 규제 개혁을 외치는데도 규제총량은 매년 2.5~5.7%씩 늘어난다. 회의 때마다 몇 백개씩 없애도 등록 규제만 여전히 1만건을 웃돈다. 이날 회의를 앞두고 구글이 지도 서비스 규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관광 한국을 외치면서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구글맵을 쓸 수 없어 깜깜이 여행을 다니는 게 현실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조차 "한국의 규제는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며 이 때문에 한국 경제도, 기업가정신도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규제 혁파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지와 진정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독촉을 하면 부처가 마지못해 제일 만만한 규제 몇 개씩 골라 내놓는 식이어서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글로벌 산업과 기술은 빛의 속도로 변하는데 공무원들의 갑(甲)질, 보신주의, 면피주의는 되레 더 심해지고 있다.

공무원들의 능동적 책임행정이 없다보니 가습기 살균제, 경유 차 같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분야는 오히려 구멍이 뻥뻥 뚫리기 일쑤다. 정부는 신산업 규제를 푼다는데 정작 국회에서는 서비스발전법, 빅데이터법 처리가 무산되는 등 엇박자도 심각하다. 규제개혁의 왕도는 단 하나다.

규제개혁에 소극적인 장차관과 공무원들을 아예 배제하는 것이다. 각 부처 내 과(課)와 국(局)을 통폐합하고 공무원 수를 줄이는 한편 정부 조직을 대폭 슬림화하는 것이 답이다. 규제를 하고 싶어도 꼭 필요하고 절실한 규제 아니면 엄두도 못 낼 만큼 조직과 사람이 줄어야 한다.

9. 170일 끈 SKT-CJ헬로비전 합병심사 빨리 결론내야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이 지난해 12월 1일 기업결합신고서를 제출한 지 170일이 흘렀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여전히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3월 22일 "심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하더니 지난 12일에는"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며 결론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경쟁사인 KT LG유플러스가 총력 저지에 나선 데다 지상파 방송사, 야당 등이 반대하면서 공정위가 무작정 결론을 미루고 있는 모양새다. 본래 심사는 120일 이내에 진행돼야 하는데 공정위 측은 "자료 보정기간을 빼면 120일이 지나지 않았다"는 궁색한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주무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가 공정위 의견을 듣고, 방송통신위원회의 사전 동의를 받아 최종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미래부도 공정위에서 의견이 넘어오지 않았다며 입을 다물고 있다. 양사의 합병이 국내 이동통신미디어 시장을 뒤흔드는 빅딜이기는 하지만 해당 부처들이 모르쇠로 일관하며 질질 끌 일인지 묻고 싶다. 납득할 만한 사유도 없이 심사가 늦어지고 있으니 공정위가 여소야대로 바뀐 정치지형 변화나 이해관계자의 외압에 휘둘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도는 것 아닌가.

시간이 흐를수록 이해당사자들의 여론전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SK텔레콤은 성장 절벽에 직면한 방송통신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산업구조개편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경쟁사들은 이통시장 절대강자인 SK텔레콤의 지배력이 초고속인터넷·유료방송시장으로 옮겨갈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문제는 기약 없는 심사 지연이 해당 기업들의 신사업 구상에 막대한 차질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CJ는 콘텐츠 강화에 그룹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방송플랫폼 매각을 결정한 것이고, SK는 성장세가 꺾인 통신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유료방송시장 진출을 선언한 것이다. 독과점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이런 흐름은 최근 정부의 정책기조인 자발적·선제적 산업 구조조정과 다르지 않다.

이통사와 케이블TV의 합병은 전례 없는 일이었으니 미래부가 고심하는 게 이해는 간다. 하지만 갈피를 못 잡고 시간만 끄는 것은 책임 회피다. 어떤 결론을 내리든 후폭풍은 생길 수밖에 없다. 합병 승인이든 불허든 원칙에 입각해 결론을 내리면 된다. 명확한 기준 제시와 조속한 결정으로 시장의 혼란을 걷어내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10. 신문세대가 과학자를 희망하지 않는 우울한 현실

과학기술인을 장래 희망으로 꼽은 초등학생이 2%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5년 전만 해도 과학자·기술자를 꿈꾸는 초등학생이 가장 많았는데 격세지감이다. 어린이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과학기술 경쟁력 악화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발명의 날인 19일을 앞두고 매일경제신문과 발명진흥회가 서울 지역 초등학생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더니 과학자·발명가·엔지니어 등 과학기술인이 되겠다는 초등학생은 2.6%에 불과했다. 1981년 과학자를 꿈꾸는 초·중등학생이 21%로 가장 많았고 1990년에도 25%로 1위였다. 이번 설문에서는 가수·배우 등 연예인을 희망하는 초등학생이 가장 많았고 교사·의료인·요리사가 그 뒤를 이었다.

한류·한식·건강 등으로 관심 분야가 다양화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첨단기술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초과학이 탄탄하지 않으면 결국 산업 경쟁력도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말 30개 업종의 협회·단체에 경쟁력을 물어보니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응답이 30%였고 1~3년 내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응답도 50%였다. 이처럼 기술 경쟁이 절박하게 진행되고 있는데도 미래 세대가 과학자를 꿈꾸지 않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과학자를 홀대하는 탓이다.

미래창조과학부에서도 기획재정부와 정보통신부 출신이 장차관, 실장급 간부의 주류를 차지하고 과학기술부 출신은 뒷전이다. 특허 중 80%는 법인 소유로 출원되고 연구 성과를 보상해주는 기업은 절반도 안 된다. 여기에 이공계 병역특례마저 폐지할 것이라니 앞날이 캄캄하다. 과학입국을 위한 전면적인 인식 전환과 재점검이 필요한 때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윤고은의 참새방앗간> 한강과 박찬욱…한류는 계속 흐른다

'태양의 후예'로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엑소와 빅뱅만 있는 게 아니어서 반갑다. 

바통은 소설과 영화가 이어받았다. 한류는 계속 흐른다. 

세계 문단이 한강에 갈채를 보내고, 세계 영화계가 박찬욱의 신작에 관심을 보이는 덕에 계절의 여왕 5월이 더욱 화사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일본에서 발원하고 일본이 주도한 '혐한' 바람으로 치명상을 입고, 중국에서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각종 규제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한류지만 새로운 물길은 계속 개척되고 보태진다. 

혹자는 문화는 스포츠와 다르다며, 세계적인 권위의 상을 받기 위해 목을 맨 한국의 분위기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어찌 됐든 기분 좋은 일이고 어깨가 뿌듯해지는 일이다. 

꼭 14년 전인 지난 2002년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것이다. 베를린, 베니스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고, 그중에서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첫 수상(장편 경쟁부문)이었다. 

당시 각각 67세, 73세, 65세였던 한국 영화계의 '원로 삼총사'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는 한국 영화계의 숙원을 달성한 것에 벅차했고, 이들의 '쾌거'에는 찬사와 박수가 쏟아졌다. 

그에 앞서 2년 전 '춘향뎐'을 들고 처음으로 칸 레드카펫을 밟았다가 수상에서는 고배를 마셨던 이들 삼총사는 한국 영화계를 위해 꼭 칸의 장벽을 넘어서겠다는 각오를 다져왔다. 

이들 노장의 '투혼'으로 물꼬가 트이자 이후 한류는 칸으로 술술 흘러들어 갔다.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로 2004년 심사위원대상, '박쥐'로 2009년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배우 전도연은 2007년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2010년 이창동 감독이 '시'로 각본상을 받았고, 홍상수 감독이 '하하하'(2010), 김기덕 감독이 '아리랑'(2011)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2연패 했다.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로 5년 만에 다시 칸에서 낭보를 전해올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세계인의 영화 축제에서 당당히 경쟁하는 것만으로도 한류 영화의 브랜드값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칸으로부터의 반가운 소식을 기다리는 와중에 소설가 한강이 먼저 '대형 사고'를 쳤다.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맨부커상을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세종대왕도 맨부커상 상금 일부를 마땅히 가져갈 만하다"며 한국어가 어떤 언어인지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영국 BBC의 보도까지 나오는 등 한국문학과 한국, 한국어에 대한 주의 환기가 '자동적'으로 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번역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며 문학한류를 위한 다양한 제언이 쏟아지는 등 모처럼 문학계가 활기를 띤다.

드라마와 K팝에 국한되지 않고 영화에 이어 문학까지 가세하니 한류의 수량이 풍성해졌다. 더 많고 다양한 물줄기가 트여서 어느 때고 마르지 않고 거침없이 흐르는 한류를 기대해본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 대작(代作) 논란/강동형 논설위원

글이나 노랫말의 표절처럼 회화에서는 위작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표절과 위작은 범죄 행위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는 아직도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하고 원점을 맴돌고 있다. 그림을 모방하는 것은 그림에 입문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그림을 베끼면서 색감이나 구도를 자연스럽게 터득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창작 세계를 구축하지 못한 작가 중 일부는 위작을 만들거나, 그림을 대신 그려 주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화단에는 대작(代作) 논란이 뜨겁다. 한 무명 화가가 7년 동안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씨의 화투 그림 300여점을 그려 줬다며 조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조씨는 “논란이 일어난 데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300여점은 터무니없고 조수가 대신 작업을 하는 것은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화단의 반응은 엇갈린다. 한 화단 관계자는 “유명세를 이용해 화단을 농단했다”고 비판하면서도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화단에서 쉬쉬한 것은 사실이지만 잘못된 관행이라는 의견이다.

미술평론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대체로 순수 미술 분야에서는 대작의 관행도 없고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현대 회화의 조류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설치 미술이나 팝아트 같은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분야에서는 허용될 수 있다고 한다.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도 실제로 실크 스크린 복제 등은 대행을 시켰다는 것이다. 웹툰에서는 이런 관행이 일반화돼 있다. 이런 경우도 문제는 콘셉트(개념)는 작가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미학을 전공한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핵심은 콘셉트다. 작품의 콘셉트를 누가 제공했느냐다. 그것을 제공한 사람이 조영남이라면 별 문제 없는 것이고, 그 콘셉트마저 다른 이가 제공한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렇다면 문제는 조씨의 그림을 팝아트 형식의 현대미술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도 대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떳떳하게 밝히고 그에 걸맞은 작품값을 받았다면 면죄부를 줄 수도 있겠지만 조씨는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작품에 일관성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소비자 기만행위가 아닐 수 없다.

조씨의 행위는 일부 전문가들의 눈에는 관행일 수 있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도 순수하게 보이지 않는다. 작품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판화처럼 찍어 내 비싼 가격을 받고 판매하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유럽에서 활동했던 유명 작가의 작품이 예년만 못하다고 한다. 대작 소문이 난 탓이다. 화단에서는 연예인이라는 유명세를 이용해 대작을 양산하는 사례가 조씨 외에도 몇 명 더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도 ‘조영남 스캔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3.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썰렁해도 좋다

“엄마, 웃지 마. 절대 웃으면 안 돼.”

남매는 서로 내 입을 막으며 웃지 말 것을 주문하곤 했다. 누나는 남동생이 이른바 썰렁 개그를 남발하는 것은 아무 말에나 잘 웃어주는 엄마 탓이라는 거였다. 그래서 동생이 우스운 이야기를 시작할 눈치를 보이면 천방지축 남동생의 입막음은 어려우니 엄마부터 단속하는 거였다. 그러나 누나가 싫어할수록 더 짓궂게 썰렁해지는 아들의 행동이 귀여워서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웃고 만다.

한편 “엄마, 이 얘기 진짜 웃겨”라며 딸이 말을 꺼낼라 치면 이번에는 아들이 달려와서 나를 웃지 못하게 막는다. 누나의 저런 개그에 웃어주면 친구들에게 ‘왕따’당하기 쉽다는 능청까지 곁들인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또 웃고 만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에서 썰렁 개그를 가능케 만드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서로 재미없다고 깎아내리면서도 경쟁적으로 터뜨리던 남매의 썰렁 개그도 아이들이 자라면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덩달아 나도 아이들과 함께 웃는 일이 줄어들었다. 아이들이 어느새 웃음에서 자꾸 멀어지는 어른의 세계로 접어든 것이다.

아이들은 하루에 삼사백 번 웃지만 어른은 고작 열다섯 번 내지 스무 번 웃는다는 통계가 있다. 어른이 되면서 웃음이 20분의 1로 준다는 것이다. 구글의 ‘혁신과 창의성 프로그램’ 총괄 매니저인 프레데리크 페르트는 “다섯 살 어린이는 하루에 98% 창의적인 일을 하고 65개의 질문을 하며 166번 웃는다. 그러나 마흔네 살의 어른은 창의적인 일이 2%에 불과하며 하루에 6개의 질문을 하고 11번 웃는다”고 말한다. 창의성과 호기심과 웃음이 서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얼른 봐도 그 셋의 공통점은 말랑말랑함, 유연성인 것 같다.

지난주에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맞춤형 유머가 화제가 되었다. 비록 아직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색하긴 했지만 그동안 상대에 대해 경직되고 날을 세우던 모습만 봐왔던 터라 조금 썰렁하다고 해서 굳이 우리가 웃음에 인색할 이유가 있겠는가. 웃음 끝에서 ‘혹시’ 하는 우리 정치에 대한 희망을 다시 가져보기도 했다.

웃음이 건강과 행복을 불러온다고 하여 하루에 5분 정도 거울을 보며 억지로라도 크게 웃으라고 한다. 또한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해진다는 말도 있다. 그러니 썰렁 개그여도 좋다. 이제부터는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4. [동아일보][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곡성’ 사용설명서

11일 개봉해 흥행 1위를 달리는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처럼 사람들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도 드물다. “악취미로 가득한 미친 영화”란 악평부터 “한국 오컬트(심령) 영화의 기념비적 작품”이란 찬사까지. 공통적인 반응 하나는 “뭔가 심오한 듯한데, 몹시 모호하다”는 것이다.

시골 마을에 낯선 일본인(구니무라 준)이 나타난 뒤 가족 살해의 엽기적 사건이 줄을 잇는다. 경찰은 야생버섯을 잘못 먹어 벌어진 일이라는 결론을 내리지만, 마을에는 “일본인 때문이다. 그는 악마다”라는 소문이 퍼진다. 경찰 종구(곽도원)는 자신의 딸마저 악령에 사로잡힌 듯 보이자 무속인 일광(황정민)을 불러들이는 한편 낯선 일본인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어떤가. 줄거리만 보아선 장르적으로 딱 떨어지는 반전과 결말을 갖춘 미스터리 구조인 것만 같다. 하지만 인간의 합리적 사고와 기대가 오히려 이 영화의 이야기를 미궁에 빠뜨려 버리는 ‘역살’(영화 속 황정민의 표현)이 되어 돌아온다. ‘읽으려’ 하지 말라. ‘받아들이려’ 하라. 비로소 그때 이 영화는 속살을 드러낸다.

자, 그럼 지금부터 단 한 개의 질문과 답변을 통해 상업 영화의 굉장한 성취인 ‘곡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드린다.

Q. 미칠 듯이 궁금합니다. 황정민이 결국 악마였던 건가요? 흰옷 입은 여인 무명(천우희)은 수호신이었던 건가요? 일본인은 악마인가요?

A. 악마 아니면 천사, 이렇게 일도양단하여 정답을 고르려는 자체가 잘못된 출발점입니다. 왜 꼭 답이 있고, 그것도 꼭 하나라고 생각하나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바보 같은 질문을 받으면 왜 엄마 혹은 아빠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나요. “둘 다 싫어” 또는 “그 질문을 하는 엄마는 내가 좋아, 동생이 좋아?”란 답변이 될 수 없나요.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생각의 과정을 통해 답을 찾으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곡성’의 이야기는 마치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치밀하게 직조된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사실 각각의 에피소드는 파편처럼 존재할 뿐입니다. 그래서 논리적 인과관계를 찾아내려 하면 할수록 난해해질 수밖에 없지요. 자, 이럴 땐 이런 생각을 해볼까요. 우리가 컴퓨터 모니터에 여러 개의 창을 띄워놓고 동시에 작업을 하는 경우를 말이지요.

지금 나는 회사에 제출할 매출분석 자료를 작성하는 동시에 ‘야동’을 보고 있습니다. 또한 모니터 오른쪽 귀퉁이엔 메신저를 띄워놓은 채 오늘 학교에서 토하고 조퇴한 중학생 딸을 걱정하는 내용을 아내와 주고받고 있지요. 자, 매출 자료와 야동과 메신저, 이 셋을 한 줄로 세우면 논리적으로 이어지지 않지요? 인과관계도 성립하지 않고요. 하지만 각각은 모두 ‘21세기형 융합인재’인 나의 진면목들입니다. 삶이 본디 불완전하고 부조리한데, 어찌 논리적으로 정리되고 재단될 수 있단 말인가요. 

‘곡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황정민, 천우희, 일본인 등은 마치 모니터 속 여러 창처럼 각기 존재할 뿐입니다. 황정민과 천우희의 관계, 천우희와 일본인의 관계, 황정민과 일본인의 관계는 마치 얽히고설켜 있는 듯 편집돼 있지만, 알고 보면 이런저런 미혹된 말들을 쏟아내며 주인공(곽도원)의 마음을 시험해보는 장난꾼들에 불과합니다.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가리려 들지 말고, 이들이 쏟아내는 말들에 주목해보세요. 놀랍게도 “너는 내가 뭐라고 생각하는데?” “그놈 말 믿지 말아” “그놈 사람 아니야. 귀신이야” “귀신인 줄 알았는데 귀신이 아니야”처럼 질문하거나,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종류의 대사들을 한결같이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결국 이들은 단 하나의 인물일 수도 있고, 어쩌면 모두 독버섯에 중독된 마을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환각일 수도 있습니다.

캐릭터들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곡성’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직접 본 것이 아니면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이것만 염두에 두면, 모든 장면이 갑작스레 이해됩니다. 이런 간단하고도 심오한 메시지가 함축된 대사가 바로 정체불명 일본인의 다음과 같은 마지막 대사입니다. “나는…, 나다.” 그렇습니다. 악마로 보면 악마이고, 천사로 보면 천사입니다. 아니, 악마도 천사도 아닙니다. 그는 그일 뿐입니다. 산을 산으로 보지 못하고, 물을 물로 보지 못한 채 지독하게 의심하고 의심하다 영혼을 갉아먹으며 죽어가는 것이 인간의 존재인 것입니다.

아, 그럼 이렇게 있어 보이는 해석을 용감하게 해대는 저는 ‘곡성’을 200% 이해했을까요? 의심하지 마세요. 믿으세요. 불신이 바로 지옥이고 악마입니다. 

5. [중앙일보][마크 테토의 비정상의 눈] 한국문화를 알리는 디지털 인간문화재

몇 주 전 소셜 미디어를 검색하다 경이로운 영상을 발견했다. 인터넷 디자이너로 일하는 고효주씨의 동영상이었다. 여의도공원에서 롱보드를 타고 다니는 영상과 귀에 쏙쏙 들어오는 오디오 트랙이 매력적이었다. 롱보드도, 고효주도 잘 모르지만 그 동영상에 완전히 매료돼 열 번은 본 것 같다.

정말로 좋아하는 것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기쁨, 자신에게 완벽히 어울리는 것을 할 때의 희열, 영상은 이 모든 것을 아름다운 여의도의 풍광을 배경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인터넷의 반응도 뜨거웠다. 이 동영상은 전 세계적으로 공유됐고 시청 횟수는 수십만 회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나를 흥분시킨 것은 이제 한국 디지털 미디어와 문화가 수출되는 새 시대가 왔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정성하라는 기타 신동이 전 세계의 유튜브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지만 일회성 사건이었을 뿐 하나의 트렌드를 이룬 것은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누군가가 한국이 전 세계에 수출하는 주요 대중문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서슴지 않고 K팝이나 K드라마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고효주나 정성하와 같이 인터넷을 통해 활동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이 등장해 경계를 넘고 낡은 틀을 허물고 있 다. 참으로 흥분되는 일이다. 이들은 전례 없는 세계적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이는 전 세계 시청자들이 이들이 창조하는 디지털이나 영상 콘텐트의 새로운 형식에 접근하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과거 유튜브에는 한국 콘텐트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사용하는 한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상황이 바뀌고 있다. 유튜브에서 한국인들의 활동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콘텐트 창작자인 스콧 김과 크리스천 유는 ‘왓 더 파인애플(What The Pineapple)’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한국 친구들의 생활을 한층 일상적인 영어 및 한국어 포맷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이들의 뮤직 레이블인 디피알(DPR) 역시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스타일의 한국 음악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하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이 콘텐트들은 자신감 있게 장벽을 무너뜨리며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새로운 세대의 한국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다. 또한 그런 콘텐트 창작자들에 대한 재평가도 이뤄질 것이다. 이들에 대한 우리의 사고가 확장돼 고효주와 같은 독립적인 뉴미디어 창작자도 ‘인간문화재’가 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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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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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8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문화일보]

1. 親朴의 비대위 저지 행패, ‘용팔이 사건’보다 더 나쁘다

새누리당이 총선 참패를 수습하기 위해 구성키로 한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회가 17일 친박(親朴)의 조직적인 당무 방해로 인해 무산됐다. 전국위원회는 전당대회의 위임을 받아 당헌 개정안 등 가장 중요한 당무를 결정하는 최고 의사 결정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를 집단의 힘으로 무산시킴으로써 당 지도부 구성과 당무 진행을 훼방 놓은 것이다. 회의 시작 하루 전만 해도 참석한다던 상당수 인사들이 갑자기 불참을 통보하거나 전화를 꺼버린 것을 보면 친박 핵심의 조직적 불참 지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친박 핵심이라는 인사들이 상당수 불참했다.

전국위원들에게 조직적으로 불참을 종용, 정진석 비대위와 김용태 혁신위원장 체제 출범을 무산시킨 것은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도발이다. 과거 1970~80년대 계파 싸움 때 정상적 표(票) 대결로 가기도 전에 물리력을 동원해 행사장을 난장판으로 만든 ‘각목 전당대회’의 현대판이다. 각목만 들지 않았지 자신들의 뜻과 맞지 않는다고 1987년 4월 통일민주당 창당을 방해하기 위해 협잡한 구악(舊惡) 정치의 표본으로 불리는 ‘용팔이 사건’보다 더 죄질이 나쁘다. 당시엔 외부 세력이 개입한 것이지만, 이번엔 내부 세력인 친박이 대 놓고 가장 중요한 당무의 진행을 막았기 때문이다.

비대위와 혁신위 구성을 반대하거나 불만을 표현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하고 표결로 결론을 내는 것이 기본이다. 한 해 수백억 원을 국고에서 지원받는 공당(公黨)의 주류 세력이 ‘협박’으로 비치는 불참 종용 전화를 돌리는 것은 통상적인 계파 갈등을 넘어 구시대의 공작 정치 냄새마저 풍긴다. 친박은 지난 총선 때 ‘진박(眞朴) 인증’ 같은 온갖 해괴한 방법으로 선거 운동을 벌이는 바람에 제2당 추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뒤 ‘계파 해체’ 운운했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 패권주의만 더 노골화됐다. 내부에서 자폭 테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일을 누가 지시하고 실행했는지 밝혀 당헌·당규에 따라 엄중히 처분한다면 새누리당의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공계 병역 특례 폐지, 代案과 함께 점진 추진해야

대한민국에서 병역 특례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원론적으로 없애는 것이 당연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17일 내놓은 방안 중에 이공계 특례 문제가 특히 그렇다. 국방부는 현역 입대 대상자 감소로 특례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차제에 산업기능요원·전문연구요원 등과 같은 대체복무는 물론, 의무경찰·해양경찰·의무소방 등 전환복무도 없애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역 군인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 못지않게 시급한 다른 국가 과제가 있다는 데 문제의 복잡성이 있다.

이공계 병역 특례는 언젠가는 없어져야 한다. 이를 악용한 비리도 적지 않다. 그런데 세계 주요국들이 과학인력 유치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해외에 머무는 한국인 이공계 박사가 계속 늘고 있다. 병역 특례마저 폐지되면 두뇌 유출 사태도 우려된다. 이는 국가경쟁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들의 애국심을 탓하거나, 반대로 애국심에만 기댈 수는 없다. 국가 차원에서 매년 입영 대상 과학인력 수천 명이 소총을 들고 있는 것이 나은지, 기술 개발에 나서는 것이 좋은지 선택해야 한다. 중소기업 연구인력 확보 문제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2023년까지 전면 폐지하겠다는 국방부 구상은 그 방향은 옳지만, 현실적으로 더 많은 것을 고려하고 속도도 늦출 필요가 있다. 특히, 폐지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이공계 인력 양성을 위한 합당한 대안(代案)과 함께 점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 범 정부 차원에서 창조적 방안을 내놔야 한다. 이스라엘 ‘탈피오트(talpiot)’를 벤치마킹해 2014년 도입한 과학기술전문사관 제도는 좋은 사례다. 현대전의 성격 변화로 군도 사이버 분야 등 전문인력이 대거 필요하다. 이들이 경력 단절 없이 복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확대해야 한다. 병역 특례 혜택을 보고 있는 중소·벤처 기업의 고급 인력 문제 역시 실효성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

3. 홍만표·진경준 수사에 檢察 명운 걸렸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드러난 홍만표·진경준 두 전·현직 검사장과 관련된 의혹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논란과 관련된 자금의 규모까지 모두 100억 원대여서 더욱 그렇다. 어느 정도 진실을 밝혀내느냐에 검찰(檢察) 신뢰가 결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법치의 신뢰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 두 사례는 그 상징성과 세간의 관심으로 인해 검찰의 명운(命運)이 걸려 있다고 할 정도다. 김현웅 법무장관과 김수남 검찰총장의 어깨가 무겁다.

대검 기획조정부장(검사장)을 지낸 홍만표 변호사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도박 사건 수사·재판 로비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2011년 개업 이후 수임 사건 전반의 변호사법 위반 및 축재 의혹이 동반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10일 홍 변호사 사무실·자택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피의자 소환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현직 검사장인 진경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도 100억 원대 주식 대박 의혹에 싸인 채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17일 자금 출처 거짓 소명을 들어 징계를 요청했다. 또, 투기자본감시센터는 12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죄) 혐의로 고발했고,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수사 중이다.

검찰의 수사 의지는 한동안 미덥지 않았다. 홍 변호사 압수수색만 해도 3일 최유정 변호사 사무실 등 10여 곳 동시다발 수색 이후 1주일 걸렸다. 게다가 정 피고인의 또 다른 도박 사건이 홍 변호사 영향력으로 무혐의 처분될 당시의 서울중앙지검장이 김수남 현 총장이라는 사실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진 본부장 사건도 법무부는 미봉하려는 자세를 보여왔다. 진 본부장이 지난달 2일 제출한 사표를 수리하려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진상 규명 지시 이후 일단 물러섰다. 진 본부장은 김현웅 장관 인사청문회 준비단장이었다. 검찰은 이런 눈총까지 직시하고 명명백백하게 파헤쳐야 할 것이다. 전관예우는 현관(現官)범죄라는 인식도 잊지 말기 바란다.

[헤럴드경제]

4. 저출산 고령화 문제? 비빌 언덕 만든 후 요구해야

원인을 모르는 병은 무섭다. 오진도 큰 문제다. 하지만 가장 안타깝고 한심스러운 것은, 원인이 명확한데 제대로 치료를 하지 못하는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수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가장 심각한 것 중 하나는 젊은이들의 결혼 및 출산기피로 인한 저출산-고령화 현상이다.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피부로 느낄 만큼 진행속도는 가파르다. 수십년래, 그보다 가까운 미래에 국가의 기반이 흔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결혼해서 아이를 낳자’는 정부의 하소연은 공염불이 되어버렸다. 원인은 명확하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살아갈 자신이 없다. 대한민국 사회라는 울타리는 그들이 결혼과 출산을 꿈꾸기에 턱없이 허술하다.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15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국민의식조사’를 살펴보면 간단히 알 수 있다.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는 답이 45.4%였다. 결혼하겠느냐는 질문에도 ‘결혼할 생각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는 답변이 14.7%, ‘생각조차 안했다’가 12%다. 2014년에 비해 3~5% 가량 늘어난 수치다. 결혼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는 배우자에 얽매이기 싫어서(27.7%), 결혼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22.6%)라고 답했다. 육아와 가사에 대한 부담때문이라는 견해도 많았다. 집을 장만하고, 결혼비용을 마련한다는 것도 엄청난 일인데, 아이를 낳아도 믿고 맡길 보육시설도 부족하고 비용도 만만찮다. 무슨 염치로 이들에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라고 권한단 말인가. 당연히 이들이 정부지원을 바라는 것도 주거문제가 1위(43.2%), 고용문제(청년실업, 비정규직 등)가 2위(38.7%)였다. 이것이 해결되기 전에는 미혼남녀들이 결혼과 출산이라는 무모한 도전을 할리가 없다. 저출산이 이대로 이어지면 2017년 생산가능인구 감소, 2018년 고령사회 진입, 2019년 인구감소가 될 것이라고 한다.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가 저출산-고령화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지난 10년간 저출산대책에 80조원, 고령화대책에 57조원 등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었다. 상황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헛돈을 쓴 셈이다. 중구난방 190개 사업을 벌이지 말고, 대책과 지원이 시급한 취업, 주거, 육아 문제에 집중했어야 했다. 하지만 손 놓아선 안된다. 어떻게든 방도를 찾아야한다. 집값을 잡든, 취업을 늘리든 그들에게 뭐라도 비빌 언덕을 마련해주고 해결을 기대해야한다.

5. 실손보험 제도개편은만 건강의 미래다

손의료보험 제도개편을 위한 태스크포스(TF)가 18일 첫 회의를 가졌다.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가 손을 맞잡고 보험산업의 최대 현안인 실손보험의 문제점 개선에 나선 것이다. 두 기관의 책임자가 종전의 국장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된 것은 환영할 만하다. 이번 TF의 과제가 얼마나 엄중한지를 잘 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실손의료보험은 공적 의료보험의 부족 부분을 채울 목적으로 지난 2009년 출발했다.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부분(본인부담금 포함)을 대비하니 인기도 높아 5년만에 가입자가 3000만명을 넘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제2의 국민건강보험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가입자와 보험사, 병원과 심지어 건강보험공단까지 이해관계자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기형아가 됐다.

실손보험의 손해율은 130%에 이른다. 상품 설계 당시의 과도한 보장때문이다. 지난해만 보험료를 27%나 올렸지만 언발에 오줌누기다. 제 눈을 제가 찌른 셈이니 남 탓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보험료를 계속 올릴 수도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뿐이다. 가입자들도 불만이긴 마찬가지다.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면서도 정작 보험금을 청구해 받는 가입자는 20%정도에 불과하다. 5명중 4명은 남 좋은 일만 시킨다. 그 넘치는 돈은 다 병원으로 간다. 실제로 보험사에서 병원에 지급한 실손의료보험금 중 비급여 의료비의 비중이 70%에 이른다. 

실손보험은 의료기술엔 양날의 칼이다. 신기술 적용과 과잉진료의 촉매로 작용한다. 신기술은 대부분 건강보험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실손보험에서 대신 받을 수 있으니 병원에선 꿩먹고 알먹기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955개 비급여 진료항목의 병원별 가격 차이가 평균 7.5배, 최대 17.5배(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에 이른다. 과도한 의료쇼핑이 나오는 이유다. 일종의 모럴해저드다. 

결국 가입자, 보험사, 의료계 간 이해관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실손보험은 과잉진료→과다청구→보험사 경영 악화→보험료 인상의 악순환을 계속하는 기형아가 된 것이다. 이대로 둬서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바로잡는 수술이 시급하다.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의 실손보험TF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자기부담금 제도의 개편, 과도한 의료쇼핑 억제, 병ㆍ의원들의 진료비 코드 표준화, 치료비 비교공시 사이트의 개설 등 갖가지 방안들이 쏟아진다. TF에서 올해 말까지 결정하는 정책방향이 향후 건강보험제도의 미래를 결정하는 관건임을 잊지말아야 한다.

[이데일리]

6.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축한다

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의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작품 ‘채식주의자’가 이 상의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뽑힌 것이다. 지난 3월 후보의 한 명으로 처음 이름을 올렸을 때부터 수상 가능성이 기대되던 터였다. 맨부커상이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는 점에서도 함께 축하할 만한 일이다.

이번 수상으로 그동안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 문학이 세계무대로 발돋움하게 됐다는 사실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자 한다. 터키의 노벨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을 비롯한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는 점에서도 한국 문학의 위상을 새롭게 평가받은 셈이다. 그동안 잠재적 후보군에만 머물렀던 노벨문학상을 향해서도 도약의 발판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문학계 내부로 눈길을 돌려본다면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도전적 창작의식을 자극할 수 있게 된 것이 커다란 수확이다. 순수 문학에 대한 기대와 열정이 그것이다. 인터넷의 범람으로 문학이 갈수록 세속화되고 작가 의식은 추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 있던 마당이다. 인간과 우리 사회의 근원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우리 문단의 치열한 작가 의식이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문학에서 번역이 차지하는 중요성이다. 이번 수상작을 번역해 해외에 처음 소개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한강과 함께 공동 수상자로 호명된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음악이나 미술, 무용 등 다른 분야와는 달리 문학 작품은 다른 언어로 번역돼야만 의미 전달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역할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이번 수상에 따라 문학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점도 하나의 기대 사항이다. 독자들이 시나 소설에 눈길을 주지 않는 상황이라면 문학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인들이 자기네 작품도 제대로 읽지 않으면서 노벨문학상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외국 언론의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그것은 출판사들의 얄팍한 장삿속과도 다르다. 인간의 존재 가치를 따지려는 자기성찰이 그 토양이다.

7. OECD의 경고 정치권에는 안 들리는가

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이 2.7%로 추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작년 11월(3.1%)에 비해 0.4% 포인트, 작년 6월(3.6%)보다는 0.9% 포인트나 깎인 수준이다. OECD의 지적은 우리 경제에 대한 경고음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해법을 내놔야 할 정치는 실종되다시피 한 상태여서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야 정치권이 여전히 귀를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은행(2.8%)을 비롯해 국제통화기금(2.7%), 아시아개발은행(2.6%) 등 국내외 경제예측기관들이 우리의 성장 전망을 줄줄이 2%대로 낮췄다. 2.6%에 그쳤던 작년의 저성장 추세가 올해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올 1분기 성장률은 0.4%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 프랑스(0.5%)에도 뒤졌다. 내년이라고 크게 나아질 조짐도 안 보인다. OECD의 예상으론 3%에 턱걸이하는 것도 감지덕지다.

OECD는 중국과 신흥국의 경기 부진에 따른 수출회복 지연에 고령화와 생산성 정체 등이 겹치면서 저성장이 촉발됐다고 분석했다. 미국 금리인상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가능성 등의 대외 악재가 즐비한 가운데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조선과 해운을 비롯해 건설, 유화, 철강 등 주력 업종의 대대적 구조조정이 본격 궤도에 오를 참이어서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OECD는 적극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과 규제 철폐, 노동 개혁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우리 정부도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과연 누가 총대를 메느냐가 문제다. 재정 확대든, 양적 완화든, 노동 개혁이든 어느 하나도 정치권의 동의가 없으면 추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의 핵심 관계자들이 정책을 조율하는 당·정·청 회의는 100일 넘도록 깜깜 무소식이다, ‘사상 최악의 국회’로 낙인찍힌 19대 국회에 유종의 미를 기대하기도 힘든데다 국민이 4·13 총선을 통해 여소야대 3당 체제에 엄명한 협치(協治)마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느냐 합창하느냐에 발목이 잡혀 초장부터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시간이 문제다. 지금 때를 놓치면 모든 게 만사휴의다. 하지만 여당부터 내부 싸움질만 하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서울신문]

8. 새누리 계파 갈등, 당 와해도 불사할 텐가

새누리당의 고질적 계파 갈등이 도지면서 혁신의 발목이 잡혔다. 어제 열릴 예정이었던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 회의 자체가 친박(친박근혜)계의 조직적 보이콧으로 무산됐다. 상임전국위는 50명의 위원 중 절반 이상이 참석해야 하나 친박계 위원들이 비박계 중심의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장 선출에 반발하며 대거 불참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총선 참패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한 비대위와 혁신위 출범이 무기한 연기됐다.

상임전국위 무산 직후 혁신위원장으로 내정됐던 김용태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정당 민주주의는 죽었다”고 선언한 뒤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당내에서는 새누리당이 “망조의 길로 간다”, “계파 망령이 되살아났다”며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총선 한 달이 지났지만 참패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새누리당은 비대위와 혁신위조차도 구성하지 못할 정도로 공당의 기능은 정지됐다. 이런 상황이면 7월쯤으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식물 집권당으로 표류할 가능성도 커지는 형국이다. 그동안 비대위 구성과 당내 혁신을 주도할 혁신위원장 선임 등의 문제로 갑론을박해 오던 새누리당이 이번 회의 무산으로 계파 간 이전투구 양상을 여과 없이 노출하면서 국민들의 실망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조차 차 버린 꼴이다.

상임전국위 파행은 그제 당내 주류인 친박계 의원 20명이 비대위원진 구성과 혁신위원장 내정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예고됐다. 친박계든 비박계든 수적 우위를 앞세워 공당의 결정 사안을 번복시키려는 행동은 전형적인 패거리 정치에 불과하다. 당내 주류를 형성한 친박계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비박계 중심의 비대위 출범을 고의적으로 무산시키면서 7월 전당대회까지 현 체제를 끌고 가 당권을 거머쥐겠다는 계산이다. 전국위가 정족수 미달이란 초유의 사태로 당의 중대 사안을 결정하지 못할 정도로 집권 여당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총선 참패의 원인인 고질적인 계파 정치가 되살아나면서 국민들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 새누리당은 계파 간 권력투쟁으로 환부가 썩어 들어갈 정도로 중증 환자나 다름없다. 환부를 도려내고 체질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정녕 당의 미래는 없다. 총선에서 표출된 민심은 집권 여당의 구조와 체질을 혁신하라는 메시지였다. 국민의 뜻을 거부하는 정당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동아일보]

9. 환경부 명예 걸고 닛산車 ‘디젤 게이트’ 입증할 수 있나

일본 닛산자동차가 어제 한국 닛산의 경유차 ‘캐시카이’의 배출가스가 조작됐다는 환경부 발표를 전면 부인했다. 캐시카이 실내 인증시험 때는 발암물질인 질소산화물을 적게 뿜도록 한 반면 실제 도로를 달릴 때는 많이 배출토록 조작했다는 전날 환경부 발표가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어떠한 차량에도 불법적인 조작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차량 주행 시 엔진 주변 온도가 올라가면 부품을 보호하기 위해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멈추도록 설정한다. 환경부는 시동을 건 뒤 20분이 지나 엔진 주변 온도가 35도 이상이 될 때 저감장치를 바로 세우도록 한 닛산의 설계가 ‘조작’이라고 봤다. 반면 닛산 측은 유럽연합(EU)에서는 몇 도부터 저감장치를 멈춰야 한다는 기준이 없다고 주장했다. 닛산이건 옥시레킷벤키저건, 외국에서 제품 결함이 발견되면 납작 엎드려 사태를 수습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에선 부인하고 항의부터 하는 모양새가 곱지는 않다. 

정부가 빌미를 준 측면이 있다. 한국닛산은 지난해 10월 캐시카이에 대한 자가 인증 결과를 환경부에 보고하면서 35도가 되면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멈춘다는 사실을 이미 공개했다. 그때는 그냥 넘어간 환경부가 미세먼지와 대기오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뒤늦게 문제 삼았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더구나 현재 규정은 실내 배출가스 검사만 통과하면 되고, 내년 9월 새 시행규칙이 도입돼야 도로 주행 시 배출량을 따져 제재가 가능하다. 닛산은 환경부 도로 검사에서만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20.8배 검출됐다. 정부가 급한 마음에 아직 시행하지 않은 기준에 따라 배출량을 문제 삼는다면 국제적 망신을 살 우려가 있다. 

작년 9월 폴크스바겐 경유차가 배출가스를 조작한 ‘디젤 게이트’ 이후 이번 닛산 적발은 세계에서 두 번째다. 환경부가 가습기 살균제 파문으로 국민 건강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자 일본 경유차의 배출가스 조작을 섣부르게 단정했다면 한국의 명예가 훼손될 수도 있다. 글로벌 기업이 한국을 우습게 볼 빌미만 준 채 닛산 문제를 흐지부지 끝낼 경우 환경부는 간판을 내릴 것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10. 유해화학물질 위협 못 벗어나면 미래도 없다

환경부가 탈취제·세정제 등 생활화학제품 7개에 대해 지난 1월 판매 중단과 회수 조치를 취했던 사실을 17일 뒤늦게 공개했다. 탈취제 중에는 사용 금지된 PHMG란 물질을 사용한 것도 있었고, 유해물질 농도가 기준치를 크게 초과한 것도 있었다.PHMG는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돼 수많은 희생자를 낸 물질인데 버젓이 사용됐다. 이번 발표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제품 속에 위험한 화학물질이 도사리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고가 없었더라면 자칫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고를 지켜보면서 시민 의식도 달라지고 있다. 화학제품의 성분을 하나하나 확인하기도 하고, ‘친환경’이라고 적힌 제품만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재앙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정부와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기업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제품의 구체적인 성분을 감추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인 공개를 통해 사고를 예방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인체와 자연 생태계에 해를 끼치지 않는 물질로 대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환경부를 비롯한 정부 각 부처도 생활화학제품 속의 유해물질에 시민이 노출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이미 위험성이 밝혀진 물질은 적극적으로 제한·금지물질로 지정해 나가는 한편, 독성이 알려지지 않은 물질은 독성을 평가하고 그에 합당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껍데기만 남았다고 지적받고 있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도 실질적인 보호막이 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 아울러 학용품·장난감 등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유해물질이 검출되는 경우 판매 중지와 제품 회수 명령으로 그칠 게 아니라 해당 업체의 영업정지 등 강화된 행정처분을 내리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국내 신생아 열 명 중 하나(10.3%)가 선천성 이상을 갖고 태어났다. 유해물질 탓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저출산·고령화를 걱정하는 우리 사회가 화학물질 위협에서 못 벗어난다면 미래도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헤럴드경제][현장에서] 아트테이너 조영남의 代作 스캔들

가수 겸 화가로 활동해 온 이른바 ‘아트테이너’ 조영남의 ‘대작(代作)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특히 “미술계 관행”이라는 조씨의 해명이 화근이 됐다. 

대중은 “정말 조수가 대신 그림을 그려주기도 하느냐”며 허탈해 하고, 미술계는 “조수를 두는 건 문제되지 않으나 작업태도가 문제”라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검찰은 사기 혐의에 가능성을 두고 조사 중이다. 회화, 영상, 설치 등으로 영역이 확장된 현대미술에서 조수를 쓰는 건 흔한 일이다. 그림이 잘 팔릴수록, 설치 작품 사이즈가 클수록 조수의 숫자는 늘어난다. 심지어 대작이 콘셉트인 작가도 있다. 

조씨가 미술계를 비롯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그의 그림이 ‘고작’ 화투패를 그린 것이라는 점, 그런데도 불구하고 잘 팔렸다는 점, 그것이 연예인 프리미엄 때문이라는 점, 그런데 알고 보니 대작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가 대단히 호감형 연예인이 아니라는 점도 있다. 여기에 감히(?) 아트테이너가 ‘관행’을 운운한 점도 미술계의 공분을 샀다. 

그러나 미술 작품의 가치는 ‘사는 사람’이 결정한다. 사는 사람이 지갑을 열고 그림을 소장하는 순간 작품의 가치가 매겨진다.

조씨의 그림을 사는 사람이 있었다는 건 누군가에겐 어떤 의미로든 소장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화투패 따위의 그림이든, 작가가 유명한 연예인이기 때문이든.

또한 전업 미술가 그 누구도 조수의 도움을 받았다고 굳이 먼저 말하지 않는다. 물어보면 밝히는 정도다. 컬렉터들 역시 조수를 썼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컬렉션에서 중요한 기준이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미 그 정도는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곱씹어 볼 문제다. 과연 예술가는 관행과 도의적 책임 사이에서 얼마만큼 떳떳한지. 작품과 제품 사이에서 영혼을 팔지는 않았는지. 조영남이 아닌 그 어떤 전업작가라도 말이다. 

어쨌거나 사법당국은 칼을 빼들었다.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대작으로 인한 피해는 무엇인지 법으로 가려내는 게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2. [한국일보]​[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창 밖 풍경

나지막한 축대 위에 있는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온 다음 해인 2001년 봄. 축대를 무너뜨릴 기세로 한 그루의 나무가 창 밖에서 솟아올랐다. 가지를 쭉쭉 뻗어 25평 되는 앞집 지붕을 다 덮는 데는 한 계절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나치게 왕성한 식물의 기운은 무서울 만큼 음산했다. 그 기세로 뿌리가 축대를 파고들면 집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나는 생각 끝에 나무를 베어버렸다. 뿌리만 남은 나무는 다시 거침없이 자랐고, 더욱 음산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온 한 이웃이 뿌리에 맹독을 넣어 나무를 독살해 주었다. 몇 년 전부터 나무가 죽은 자리에서 뽕나무가 자라고 있다. 나무 한 그루를 독살하며 체르노빌과 홀로코스트까지 떠올렸던 내 머릿속에서는 ‘정화’라는 단어가 반딧불이처럼 떠다녔다. 그쯤에서 나는 나무를 독살했다는 찜찜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뽕나무는 맞은편에서 우리 집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차단해 주기 때문에 나는 커튼을 활활 걷고 창문을 열어 날마다 밖을 내다본다. 뽕나무 가지마다 열린 푸른빛의 오디는 곧 붉은빛을 띨 것처럼 보인다. 붉은빛이 짙어져 검게 반들거리면 밤에도 창문을 열어놓고 자야 할 만큼 기온이 상승할 것이다. 그때는 약간의 불안감과 긴장감을 느끼며 자느라 꿈이 많아지고, 자고 나도 피로감을 느낄 것이다. 그 전에 밀린 일을 좀 해놓아야 한다.

3. [머니투데이][우보세] "김치가 얼어요" 김치냉장고 업체에 문의하니

작년에 구입한 우리집 냉장고에는 김치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구입 당시 판매사원은 이 제품이 정식 김치냉장고는 아니지만 온도 조절 버튼만 조작하면 김치를 최적의 온도에서 보관할 수 있다고 했다. 사은품으로 김치를 담을 용기도 줬다. 덕분에 기존에 썼던 구형 김치냉장고는 집에서 나갔다. 

그런데 김치가 자꾸 언다. 해당 서비스센터에 문의을 해 보니 '일반 냉장고이니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고객님, 담부터는 김치를 좀 더 짜게 담가보세요. 간이 싱거워서 얼었을 수 있습니다"라며 '생활의 지혜'도 덤으로 알려줬다. 

해당 모델이 출시될 당시 업체의 보도자료를 찾아보면 김치까지 최적의 온도에서 보관할 수 있다고 명기돼 있다. 입맛이 썼다. 전자업계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앞으로 가전제품 출시 기사 작성 시 더욱 꼼꼼하게 내용을 챙겨야 겠다고 다짐했다. 

일반 소비자들은 기업, 특히 대기업이나 해외 유명 기업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유명한 기업은 고객을 속일 리 없다'는 막연한 믿음은 그동안 마케팅 용어로 '브랜드 로열티'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지속돼 왔다. 

높은 가격을 감수하고라도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선택하는 것은 이같은 '신뢰'에 대한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행위다. 

그런데 최근 일부 기업들은 이같은 '룰'을 깨뜨리고 있다. 

A씨는 3년 전 한 업체의 디젤 승용차를 구입했다. 당시 그 브랜드에 높은 신뢰감을 느꼈다. 그동안 수십 년간 신뢰할 만한 차량을 만들어 온 세계적인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디젤 엔진을 경험해 보지 못해 주저했다. 하지만 '디젤이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은 옛 이야기'라는 회사측 설명에 마음이 움직였다. 연비가 좋고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광고 문구에 앞서 염두에 뒀던 가솔린 모델 대신 디젤 차량을 골랐다. 비용도 물론 더 내야 했다. 

요즘 그는 마음이 불편하다. 그토록 자랑했던 '클린 디젤'이 업체가 지어낸 '허구'였다는 사실에 화가 치솟는다. 이 업체는 디젤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로 판매가 급감하자, '파격 할인'이라는 카드로 위기를 돌파하는 중이다. 중고차 가격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이 업체는 기존 고객들에게 아무런 보상 계획도 내놓지 않았다. 

B씨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다룬 언론 보도를 보면 몸서리가 쳐진다. 

그는 첫 아이 출산 후 방에 가습기를 새로 들여놨다. 바쁜 직장 생활 때문에 육아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퇴근 후 '가습기 물당번'을 맡았다. 마트에서 우연히 가습기 살균제를 접한 그는 '인체에 무해하다'는 문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시장에서 널리 알려진 브랜드인만큼 의심은 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그는 가습기 물을 채울때면 뚜껑 한 컵 분량의 가습기 살균제를 넣었다. 배우자에게도 살균제 넣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을 정도다. 이후 이사 과정에서 제품이 사라졌고, 자연스레 사용도 중단됐다. 결과적으로 천만다행이었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사회를 위해서라도 외부로부터 전달받은 '팩트'를 다시 한번 의심하고 따져봐야 하는 '불신의 시대'가 왔다. 신뢰는 사회 구성원 일부의 일탈로 깨진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나쁜 기업'들의 거짓말에 철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4. [주간경향][선대인의 눈]한국 고령세대는 왜 가난한가

일반적으로 우리는 노후 연령대로 접어들면 소득이 줄어 가난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는 최근 이 같은 통념과는 크게 다른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65세 이상 고령세대의 소득 비율이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OECD회원국 전체의 고령세대 평균 소득이 2000년대 중반에는 65세 이하 소득의 82.4%였다. 그런데 2012년에는 86.8%로 상승했다. 심지어 스페인이나 프랑스와 같은 유럽국가들은 고령층 인구의 소득이 비고령층보다 오히려 더 높아졌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이들 국가의 젊은층 소득수준이 정체됐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OECD 국가들에서 고령층 소득이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흐름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정반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어느 나라보다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노후빈곤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세대의 빈곤율은 2012년 기준 49.6%로, OECD 국가들 가운데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OECD 평균인 12.4%에 비해 4배나 높은 수준이다. 상황이 악화되는 추세라는 점에서 더 문제가 된다. 한국 고령세대의 소득비율은 2000년대 중반 67%에서 2012년에는 오히려 60.1%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 같은 추세는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2월 말에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2014년 기간 중 가구주 연령이 ‘39세 이하’와 ‘40~59세’인 가구들에서는 소득분위가 상승한 비율이 높았던 반면, ‘60세 이상’ 가구는 하락한 비율이 높았다.

한국의 고령세대가 이처럼 가난한 주된 이유는 한국과 다른 선진국 노인 인구의 소득 원천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고령세대의 소득은 연금과 같은 공공이전 소득과 근로소득, 자본소득이 각각 3분의 1가량씩 차지한다. 일본은 공공이전 소득의 비중이 48%로 미국보다 좀 더 높고, 핀란드와 같은 복지국가는 80%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핀란드가 노인 빈곤율이 낮은 것은 이처럼 공공이전 소득이 높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복지와 연금제도가 취약하다 보니 공공이전 소득 비중이 16%에 불과하며, 근로소득이 63%를 차지한다. 근로소득이라도 많으면 다행이다. 50대 초·중반에 정규직에서 쫓겨나다시피 퇴직한 뒤에는 영세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60대 이상 고령노동자의 3분의 2가 비정규직이다. 국내 고령인구는 노후에 편히 쉬기는커녕 저임금노동에 시달리며 부족한 노후생활비를 벌고 있는 것이다.

큰 틀에서 보자면 핀란드는 복지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서 공공이전 소득으로 노후 소득을 얻고, 미국은 주식 투자 등에서 나오는 배당과 이자, 자본 차익 등 자본소득이 노후에 큰 기여를 한다. 일본도 핀란드만큼은 아니어도 공공이전 소득에 상당 부분 기댈 수 있다. 한국은 이도 저도 빈약해서 부족한 소득을 대부분 저임금 고령 노동으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할 일이 많다. 복지를 확충하며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연금제도를 손질하고, 미국의 퇴직연금제도인 401K처럼 가계의 금융자산 증식을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일 등이다. 그전에 가계가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부채덩어리인 부동산을 다이어트하고, 과도한 사교육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그렇게 마련한 현금자산으로 현명하게 저축하거나 투자한다면 안정된 노후를 훨씬 더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5. [프레시안]<채식주의자>는 어떻게 세계를 홀렸나?

어제(5월 17일), 한국 문학은 작은 문턱 하나를 넘어섰습니다. 데보라 스미스가 영어로 번역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창비 펴냄)가 선정 위원 만장일치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은 것입니다. 이 상은 영국에서, 아니 영연방을 포함하는 영어권 국가 전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 번역상입니다.

오르한 파무크, 옌렌커 등 최종 후보에 함께 오른 작가들 면면에서 선명히 보이듯이, 그해 영국에서 번역해 출간된 비영어권 작가의 작품 중에서 문학적으로 가장 훌륭한 작품에 수상의 영예를 안습니다. 따라서 <채식주의자>의 수상은 단지 한 작가의 경사를 넘어서, 한국 문학의 미래(또는 국제화)에 문학적으로 중요한 시사점을 남겼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문학어로서 한국어의 가능성이 타자를 통해 확인되었다는 점입니다. 근대 이후 문학이란 대개 민족어로 하는 것인 만큼, 사실 타자의 인정 따위는 별로 관계없을지 모릅니다. 한국어를 쓰는 사람끼리 쓰고 읽고 충분히 즐기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나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한국 문학이 처한 불리한 상황이 선연하게 들어옵니다.

문학의 중요한 기반을 이루는 출판 산업의 세계화에 따라 국경의 장벽이 낮아져서 해외 문학의 국내 독서 시장 진입이 쉬워지고, 그에 따라 번역의 가속화가 진행되는 중이니까요. 게다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양질의 편집자와 번역자가 출판 시장에 풍부하게 공급됨으로써 이제는 우리말로 읽어도 말맛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 질 높은 해외 문학이 한국 문학을 포위한 형국입니다. 문학 독자 자체가 굳이 한국 문학 쪽으로 눈 돌리지 않아도 되는 '바리케이드 효과'가 생겨난 것입니다.

더욱이 영화나 음반 산업이 이미 보여주었듯이, <해리 포터> 이래로 <트와일라잇>, <헝거 게임>이 차례대로 그러했듯이, 전 세계 동시 출간을 통한 블록버스터 전략이 조만간 세계 출판 산업의 세계 표준으로 자리 잡으려는 중입니다. 주로 청소년 소설 분야에 속하는 이러한 작품들은 판타지 같은 초현실적 배경을 바탕으로 작품에 다문화 가치를 담는 쪽으로 진화함으로써 문화적 장벽마저 뛰어넘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문학 출판 시장 역시 유례없는 경쟁에 노출되면서 과거의 성세를 잃고 위축을 거듭하는 중이었습니다.

한강은 이른 나이에 시인으로 데뷔했지만, 주로 2000년대 들어 소설 창작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폭력과 자유'라는 작품 세계가 선명해지고, 서사를 다루는 솜씨가 물에 오르기 시작했으므로 2000년대 작가라고 불러야 할 듯합니다. 여러 화자들이 이어지는 한 사건을 복층의 화술로 서술하는 한강의 서사 전략은 그다지 대중적이지는 않았지만, 항상 문학 애호가들을 매혹해 왔습니다.

한국 소설이 가장 공들여 진화시킨 장르인 단편이나 중편의 미학을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장편의 서사를 다룰 수 있는 중요한 방법적 진전이었습니다. 수상작인 <채식주의자>에서도, 한강 소설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될 <소년이 온다>에서도 같은 종류의 화법이 시도된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합니다.

문체의 정묘함에서든, 사건의 기이함에서든 '극단의 서술 미학'을 추구하는 한국의 단편이 한 개인의 운명을 다루는 장편의 호흡을 끌어안기 위하여 기묘하게 진화한 한국 소설의 한 정수가 거기에 있으니까요. (아직은 해외에서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지만, 성석제, 김영하, 김연수 등의 작품에는 전혀 다른 미학적 자질이 있지요.)

한강의 소설이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은 것은 한국 문학이 이룩한 미학적 자산의 한 부분이 세계 문학의 유산으로 편입된 것을 뜻합니다. 비로소 해외 문학의 공세에 맞설 만한 좋은 무기 하나를 발견한 느낌입니다. '폭력과 자유의 대립' 같은 인류 전체의 주제들을 자기 고유의 화법으로 발화함으로써 인간성의 고양을 이룩한 작품들은 언제든 세계문학의 죽백에 이름을 올릴 수 있으리라는 것이지요.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잔혹한 작품입니다. 세 편의 연작 소설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인 영혜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를 벗고 한 그루 나무로 되는 격렬한 변신 과정을 보여 줍니다. 피를 내고 살을 찢는 폭력에 질식된 육체는 거기에 적응하는 대신 힘차게 자유를 갈망합니다.

처음에 영혜의 선택은 일체의 고기를 거부하는 채식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남편의 몰이해와 아버지의 학대가 중첩되고, 형부에 의한 성적 착취까지 발생하면서 기어이 거식의 실천을 통한 '식물 되기'로까지 이어집니다. 영혼을 닦달하고 육체를 침탈해 지배하려는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영혜는 "내장을 다 퇴화"시켜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사는 식물적 신체를 이룩해 갑니다. "답답해서, 가슴이 조여서 견딜 수 없"는 억압적 세계를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추방해 버립니다.

육체가 깡말라 붕괴되면서 오히려 정신은 해방을 향해 달려가는 그 과정은 밀도 높은 미학적 긴장과 함께 마음에 신화적 울림을 만들어 냅니다. 영혜의 남편, 형부, 언니가 차례로 나와서 그녀의 변신 과정을 나누어 기술하는 특이한 서술 방식, 간결하고 정확하며 강렬한 문장으로 단단히 서사를 짜고 이미지를 응축함으로써, 산문적으로는 죽음이지만 시적으로는 불멸인 식물-인간으로 영혜를 살려내는 작가의 솜씨는 가히 천의무봉입니다. 어릴 때부터 반복되는 가부장적 폭력, 거식증과 같은 초현대적 소재, 여성이 나무로 변하는 신화적 이미지의 재현 등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채식주의자>는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끔찍한 낯섦(uncanny)'을 하나의 독특성으로 창조해 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고유한 화법을 정교하고 아름다운 영어로 옮겨 문학적 성취를 분명히 나누어 가져야 할 이 소설의 번역자 데보라를 주목하고 싶습니다. 어찌 보면 <채식주의자>의 수상은 한국어를 공부한 지 불과 일곱 해밖에 되지 않은 아직 20대 청년의 자발적 결단이 이루어 낸 성과일 수도 있습니다.

데보라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런던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익히기 전까지 한국 문학과 아무 인연이 없었습니다. 한국어를 공부한 후 좋은 작품을 고르다가 한강의 작품을 만났고, 한강의 작품을 번역하려고 더 열심히 한국어를 익혔습니다. 물론 그녀의 번역을 지원한 대산문화재단(그리고 한국문학번역원)의 공로를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이 지점은 문학어로서 한국어의 미래를 더욱 밝게 합니다. 하나의 성공은 흔히 또 다른 도전을 낳으니까요. 앞으로 몰려들 한국 문학의 자발적 연구자 및 번역자들을 체계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의 마련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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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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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7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공기 질 173위' 대한민국, 숨쉬기가 두렵다

우리나라의 공기 질이 전 세계 180개국 중 최하위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어제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 연구진이 발표한 ‘환경성과지수 2016’에 나오는 수치다. 미세먼지와 황사, 이산화탄소 등으로 인해 뿌연 하늘이 지속되면서 공기 오염이 심상치 않은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공기 질 부문에서 100점 만점에 45.51점을 받았다. 전체 조사 대상 180개국 중 173위다. 특히 공기 질의 세부 조사 항목 중 초미세먼지 노출 정도는 33.6점으로 174위였다. 이산화탄소 배출도 48.47점으로 170위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2012년과 2014년 발표에서 43위로 중상위권이었으나 2년 만에 순위가 뚝 떨어졌다. 그동안 우리의 환경정책과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전문가들은 공기 질 악화에 대해 탄소 저감과 환경개선 노력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우리 전력 생산의 40%는 온실가스 주범으로 지목되는 석탄을 연료로 하는 화력발전이 담당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감사원은 얼마 전 충남 지역 화력발전소의 대기오염 기여율이 수도권 미세먼지 중 최고 21%, 초미세먼지 28%에 이른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발전 연료를 석탄에서 오염물질을 적게 배출하는 천연가스 등으로 시급히 바꿔 나가야 할 이유다. 또한 비록 경제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을 점차 늘려 나가야 한다.

미세먼지의 주범 질소산화물을 내뿜는 경유차 관리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환경부가 현재 국내에서 시판 중인 경유차 20차종을 조사한 결과 19개 차종이 실내인증기준을 초과했다. 한국닛산의 캐시카이는 기준치의 20배, 르노삼성의 QM3는 17배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번 조사는 유로6 기준에 맞춰 최근 출시된 경유차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심각성을 더한다. 현재 경유 차량의 질소산화물 인증은 제조회사가 차량 판매에 앞서 받는다. 실제 주행할 때 질소산화물을 얼마나 내뿜는지는 따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형태로든 경유차가 주행 때 배출가스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

현재 정부는 석탄발전소 증설을 계획하고, 경유 택시를 매년 1만대씩 보급하겠다고 밝히는 등 오히려 공기 질을 악화시킬 정책을 세워 놓고 있다. 아직도 오염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호미로 막을 구멍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를 맞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2. 19대 국회 민생법안 결자해지해 오명 씻어야

19대 국회가 오는 19일 본회의를 끝으로 사실상 막을 내린다. 그제 새누리당 김도읍,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국민의당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번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처리할 법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그런 다짐이 공허하게만 들린다. 3당이 이날 “무쟁점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는 하나 기껏 100여건에 불과해 19대 국회에 계류돼 있던 1만여건의 법안이 자동 폐기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노동개혁 4법 등 해묵은 쟁점 법안들과 함께 전국 시도지사들이 입법을 촉구했던 ‘규제프리존특별법’ 등 민생 안건들이 덩달아 사장될 판이다. 여야는 추가 협상으로 각종 민생 법안들만이라도 이번 회기에 처리해 역대 최악이란 19대 국회의 오명을 씻기 바란다.

19대 국회는 의원 1명당 연간 6억여원의 예산도 모자라 국회 운영비를 물 쓰듯이 사용해 왔다. 예컨대 평창동계특위는 딱 한번 ‘21분 회의’를 했지만, 4400여만원의 지원을 챙겨서 나눠 쓰는가 하면 각종 상임위마다 외유성 출장을 가는 명목으로 혈세를 펑펑 썼다. 심지어 여야의 일부 상임위원장들이 특수활동비를 부인에게 생활비로 주거나, 아들 유학 자금으로 유용한 사실이 들통나 망신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야 간 무한 정쟁에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의 덫에 걸려 법안 처리율은 역대 어느 국회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이 낮았다. 도덕적 해이에다 가성비마저 바닥 수준인 19대 국회는 국민의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런 19대 국회의 행태가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는 순간까지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통탄할 일이다. 지난번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지도부 간 청와대 회동에서 이른바 ‘협치’의 물꼬가 트이는가 했다. 하지만 주요 쟁점 법안을 놓고 여전히 평행선 대치다. 3당은 총론에서 청년 일자리 창출 법안을 최우선 처리하기로 합의해 놓고도 서비스산업발전법과 청년고용촉진법 등 각론에서는 딴소리다. 의원들 스스로 쌈짓돈처럼 쓰던 특수활동비의 내역을 공개하는 법안을 발의해 놓고는 슬그머니 자동 폐기를 기다리는 것을 보면 쓴웃음이 날 지경이다.

이처럼 후진적인 국회의 모습이 20대 국회로 이어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여야 3당이 4·13 총선 민의를 받들어 대화와 협력으로 새로운 의정상을 정립하기로 했다면 굳이 이를 20대 국회까지 미룰 까닭이 뭔가. 20대 국회에서 19대 때는 없던 감춰 둔 요술 방망이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여야 3당이 당장 이번 임시국회에서 협치를 실천해야 할 이유다.

19대 국회가 각종 민생 현안을 포함해 1만건의 법안을 이대로 팽개친 채 끝내 야반도주하듯 해산할 것인가. 이 경우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게 될 것은 불문가지다. 19대 국회는 해묵은 숙제를 가급적 임기 내에 결자해지하도록 해야 한다. 여야는 최소한 규제프리존특별법이나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각종 민생 및 경제활성화 법안들에 관한 한 이견을 절충하는 마지막 성의를 보여 주기를 당부한다.

3. 생활 화학제품 유해성 심사 강화하라

전 세계적으로 화학물질의 종류는 모두 10만여종이나 되며 우리나라에서만 4만 4000여종의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있다. 매년 400여종이 새롭게 출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화학물질 관리에 관한 한 걸음마 단계다. 언제든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은 유해 화학물질 사건이 재발할 여지가 있다. 화학물질 사고는 터졌다 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2012년 구미에서 발생한 불소 누출 사건이 화학물질 자체의 위험성을 경고한 사건이었다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 부실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 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화학물질 관련법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이 있다. 지난해부터 시행되고 있다. 화관법은 불소 누출 사고 이후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 유출 사고를 내면 해당 사업장 매출의 최대 5%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화평법은 유럽에서 시행하고 있는 리치(REACH) 규칙을 본떠 유해 물질의 등록·평가·허가·제한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시행에 들어갔지만 법제화 과정에서 업체의 반발에 밀려 누더기법이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화학물질의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 확인된 만큼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유럽처럼 화학물질에 대한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방치됐던 기존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부터 시작하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첩경이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는 정부보다 업체에서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정보 제출 범위를 더 구체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주방용품이나 소독제, 세제 등 각종 생활 화학제품에 대한 안전성 확보가 급하다. 벌써 주부들 사이에선 생활 화학제품에 대한 공포증이 번지고 있다고 한다. 이 제품들에 대한 정보도 제한적이고, 정보가 있더라도 유해 여부는 알 수도 없어 소비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화평법으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유해 여부를 검증하는 법규부터 가다듬기 바란다. 먼저 국회에 계류 중인 생활 화학제품의 모든 성분을 공개하도록 한 법안부터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예방할 수 있다.

[동아일보]

4. 5·18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을 왜 보훈처장이 결정하나

국가보훈처가 어제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기념곡 지정을 불허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합창단이 합창하고, 원하는 사람은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참석자들의 ‘자율 의사’를 존중한다는 설명이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의 회동에서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요청했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당장 협치의 정신을 깼다며 박승춘 보훈처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도 보훈처에 재고를 요청했다. 대체 왜 보훈처장이 이 문제의 결정권을 쥐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은 작년 3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기념곡 지정을 요구했을 때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반대하는 분도 계시고 찬성하는 분도 계시기 때문에 국가적 행사에서 또 다른 갈등이 생길 우려가 있다. 기념곡을 제정한 예도 없다”는 대통령의 설명은 어제 보훈처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올해 회동에서 박 대통령은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보훈처에 지시하겠다”며 태도 변화를 보였다. 야당의 기대를 잔뜩 키워놓고 사흘 뒤 보훈처가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제창 불허’한다니 사달이 난 것이다. 

보훈처는 반대 이유로 이 노래가 북한이 5·18을 소재로 만든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는 점 등을 들었다. 우파 일각에선 이 노래의 ‘임’이 김일성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국민은 먹고사는 일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노래를 놓고 왜 해마다 5월만 되면 소모적인 논쟁으로 국가적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350년 전 효종의 어머니 조대비의 복상(服喪)을 1년으로 할지, 3년으로 할지를 놓고 벌어진 기나긴 당파싸움이 연상될 정도다. 어제 우상호 더민주당 원내대표는 “이 정권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여야 협치를 위한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고 압박까지 했다. 5·18 노래 문제로 모처럼 조성된 협치의 분위기가 깨져선 안 될 일이다. 

올 2월 북의 장거리미사일 도발 직후 박 대통령은 진보와 보수의 해법이 달랐던 개성공단에 대해 폐쇄 결정을 내렸다. 조대비 복상을 놓고 벌어진 1차 예송논쟁도 당시 임금인 현종이 나서 끝장을 냈다.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백악관 책상에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팻말을 올려놓은 바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놓고 갈등을 더 키우지 않으려면 보훈처에 결정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결정하고 국민에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5. 사드든, 美 MD체계든 北위협 맞설 모든 수단 확보해야

한국과 미국 일본이 미 하와이 해상에서 다음 달 말 사상 첫 탄도미사일 경보훈련을 실시한다. 미국이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로 가정한 항공기를 띄우면 한미일 이지스함이 이 궤적을 탐지하고 미국의 육상 중개소를 경유해 공유하는 훈련이다. 국방부는 어제 “한국이 미국과 일본의 아시아 미사일방어(MD) 체계에 사실상 참가하게 됐다”는 일본 아사히신문 보도에 대해 “MD참여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정부로서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주한미군 배치를 놓고 중국 러시아가 강력히 반발하는 상황에서 이번 훈련이 한미일 3각 MD 구축의 일환으로 비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MD 체계는 남북 화해 분위기를 저해한다고 판단한 이래 한국은 미국의 MD 체계에 참가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무방비로 있을 수만은 없다. 미국과 일본은 탄도미사일에 대한 직격파괴 능력을 갖춘 패트리엇 PAC-3 미사일과 이지스함의 SM-3 미사일을 구비하고 있다. 한국은 2023년까지 ‘킬 체인’과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 중심의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지만 그때도 다층 방어체계는 갖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만에 하나, 북이 1t의 핵무기를 탑재한 사거리 1000km의 노동미사일을 함경북도에서 발사할 경우 서울까지 비행시간은 11분 15초다. 시뮬레이션 결과 패트리엇 PAC-3 미사일로는 12∼15km 고도에서 1초, 사드로는 40∼150km 고도에서 45초, 이지스함의 SM-3 미사일로는 70∼500km 고도에서 288초간 요격 기회가 있을 뿐이다. SM-3 미사일이 없는 우리로선 미일과 공동 대응을 강화할 현실적 필요가 있다.

어제 북은 “우리의 핵 보유와 북-남 관계는 사실상 아무런 연관도 없다”는 정부·정당·단체 성명을 내놨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어가며 미일의 MD 체계 편입 훈련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벌일 만큼 우리의 안보 상황은 한가하지 않다. 사드 도입이나 MD 편입보다 더 한 강력한 자위적 수단도 필요하다면 당연히 확보해야 한다.

6. 靑 안종범·강석훈 경제 투톱, 전권 쥐고 구조조정하라

15일 발표된 청와대 비서실 인사에서 안종범 경제수석이 정책조정수석으로 옮기고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은 경제수석에 임명됐다. 2007년 대선 때부터 ‘박근혜표’ 경제정책을 제안했고 박근혜 정부 출범 때는 청와대에서 창조경제와 공공 노동 등 4대 개혁의 뼈대를 세운 ‘대통령의 가정교사’들이 경제 컨트롤타워로 컴백한 셈이다. 

지난 총선이 민생경제 실패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지적한 김현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은 두 수석의 인사에 “국민 심판에 부응한 것이냐”고 정면 비판했다. 마침 어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한국 경제 보고서’는 3년 전에 비해 나아지지 않은 경제 현실을 드러낸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종전의 전망치보다 낮은 2.7%로 전망된다. 친박(친박근혜) 경제팀이 구조조정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나라 경제가 수렁 속으로 깊이 빠져들 수도 있다.

OECD는 “한국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이행하면 10년 내 GDP가 추가로 3%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2014년 청와대가 내놓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4대 개혁에 내수 진작, 수출 회복, 서민 지원을 망라한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정책 백화점에 불과하다. 정부는 근본 과제는 외면하고 추경과 경기부양 등 단기대책에 치중했고 그 결과가 역대 최고치로 치솟은 가계부채, 국가부채, 청년실업률이다. OECD가 3개년 계획의 잠재력 운운하면서도 실적 평가를 유보한 것은 성과가 시원찮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 경제가 당면한 핵심 과제는 기업 구조조정이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구조조정을 주관하지만 책임지기 싫어하는 관료들이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힐 것으로 기대하긴 힘들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부실기업 사이에 ‘내년 대선까지 버티면 어차피 다 살아날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다니 환부 수술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청와대는 거시경제, 금융 전문가인 강 수석의 합류를 계기로 구조조정의 전시(戰時) 사령부가 돼야 한다. 국책은행에 구조조정용 실탄 충전, 살릴 기업과 포기할 기업의 선별, 좀비기업 퇴출 후 실업 대책 등 구조조정을 책임지고 속도전에 나서야 한다. 강 수석은 범정부회의를 주관하고 안 수석은 국회와 소통하며, 골든타임을 놓치면 나라 경제가 끝장난다는 각오로 전권(全權)을 쥐고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이데일리]

7. 기업 구조조정 앞서 나가는 일본·중국

본 철강기업 중에서 최대규모인 신일철주금과 4위인 닛신제강이 지난주말 전격 합병안을 발표했다. 신일철주금이 닛신제강 보유 지분을 기존 8.3%에서 51%로 늘리며 경영권을 인수한 것이다. 전 세계 철강 생산량 2위인 신일철주금이 이번 인수로 룩셈부르크에 본부를 둔 세계 1위 아르셀로 미탈을 바싹 뒤쫓는 발판을 마련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공급과잉 업종에 있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러한 구조조정 움직임은 중국 철강업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 최대 철강업체인 허베이철강이 제강설비를 내년까지 연간 502만t, 제철설비는 앞으로 2년간 연간 260만t씩 각각 줄이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더 나아가 중국 최대 철강 생산지인 허베이성(省)은 이번 생산량 감축을 계기로 향후 5년간 성내 철강기업 가운데 60%를 폐업 또는 구조조정하겠다는 혁신안을 내놔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처럼 일본과 중국 철강업체들이 과감한 구조조정안을 앞다퉈 내놓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철강수요가 크게 줄어들게 되자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한 자구책이기 때문이다. 생산이 넘쳐 나는데도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자칫 철강업계가 공멸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로서는 일본·중국의 산업재편 움직임에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구조조정은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우거나 인력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 경쟁력을 강화한 점이 두드러진다. 일본은 조선업이 1990년대 초까지 세계 1위였지만 이후 한국과 중국의 추격을 받아 3위로 떨어지는 수모를 당한 바 있다. 일본으로서는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다시 세계 정상에 우뚝 서기 위한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빈사상태에 이른 국내 조선·해운 분야는 이러한 사례를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부실업체는 더 늦기 전에 구조조정의 수술대에 올려 곪은 부위를 도려내야 한다. 다른 업종에 있어서도 한계기업의 처리는 마찬가지다. 때를 놓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일본과 중국이 뛰고 있는데 우리만 미적거리다가는 국제무대에서 낙오자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매일경제]

8. 공기질 최하위권 불명예 미세먼지 대책 시급하다

우리나라 공기질이 전 세계 180개국 중에 최하위권인 173위라는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의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두 대학 공동연구진이 어제 발표한 '환경성과지수 2016'에 따르면 한국은 공기질 부문에서 100점 만점에 겨우 45.51점을 받았다. 더 심각한 사실은 세부 조사 항목 중에 건강에 치명적인 초미세먼지와 이산화질소가 각각 174위와 꼴찌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공기질을 악화시킨 요인은 화력발전과 공장 등 많지만 미세먼지의 주범인 질소산화물을 대량으로 배출하는 경유차가 가장 큰 문제다.

환경부가 국내외 20개 경유차를 조사한 결과 19개 차종이 실제 주행 때 질소산화물을 과다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주행시험에서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실내인증기준의 10.8~20.8배에 달했던 것이다. 인증기준의 20.8배에 달한 한국닛산의 캐시카이는 배출가스 양을 불법으로 조작하는 임의설정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한 것과 유사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환경부는 한국닛산에 과징금과 리콜 명령, 검찰 고발을 한다고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경유차는 휘발유차에 비해 유지비가 적게 들고 출력과 연비가 좋아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폭스바겐이 '클린디젤'이라는 개념으로 마케팅하면서 2005년 565만대에서 현재 878만대로 증가해 전체 자동차시장에서 비중이 42%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폭스바겐과 한국닛산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경유차가 '클린디젤'을 장착한 친환경차라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오히려 미세먼지 등 대기 오염 물질을 대량으로 배출하는 공장과 다름없었다. 

경유차로 인한 공기질 악화를 막으려면 종합적인 관리와 대책이 시급하다. 대형 트럭과 버스, 승합차, 레저용차량(RV) 등 경유차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비중을 낮추면서 친환경 차량 보급에 속도를 내야 한다. 노후 경유차 운행을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환경부 등 관련 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전담팀을 구성해 근본 해결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9. 구조개혁 속도 내라는 OECD 충고 새겨들어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어제 내놓은 '한국 경제 보고서'는 성장 활력이 크게 떨어진 우리 경제를 위한 종합처방전이다. 우리가 구조적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개혁을 추진해야 할지 조목조목 일러주고 있다. OECD는 한국 경제가 짧은 시간에 세계 11위로 뛰어올랐지만 지금은 인구 고령화, 생산성 정체, 수출 부진으로 활력을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1990년까지만 해도 9%를 웃돌던 잠재성장률은 이제 3%대로 떨어졌다. 이대로 가면 2030년대 이후에는 1%대로 떨어질 것이다. 과감한 혁신과 구조개혁으로 생산성을 올리는 것만이 성장 궤도에 재진입할 수 있는 길이다.

OECD는 무엇보다 규제개혁을 가속화하라고 주문했다. 한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상품·서비스 시장 규제가 많고 무역·투자 장벽이 높아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규제 품질을 높이려면 의원 발의 법안에 대한 규제영향평가를 의무화하고, 이를 기초로 규제비용총량제를 실시해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보증, 투자 방식을 뜯어고쳐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OECD는 또한 노동시장 이중 구조 해소를 위해 정규직 고용 보호를 완화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보험과 교육훈련을 확대하라고 권고했다. 비정규직 시간당 임금이 정규직보다 38% 낮은 극심한 이중 구조가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고령층 노동력 활용을 늘리려면 임금피크제 도입을 가속화하고 평생학습 투자를 늘려야 한다. OECD 평균의 4배(49%)에 이르는 노인빈곤율을 낮추려면 기초연금을 최저소득계층 노인들에게 집중 지원하고 장기적으로 국민연금 포괄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이 같은 OECD의 충고는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와 저성장 충격을 경험한 나라들의 지혜를 모은 것이다. 내년 말까지 박근혜정부 개혁과제를 마무리해야 할 경제팀은 물론 대선을 앞두고 한국 경제의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야 할 여야 정치권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들이다.

[부산일보]

10. 은행 수수료 줄인상, 소비자 보호책 필요하다

국내 은행권의 예금과 대출금리(예대금리) 차이가 2008년 이후 처음으로 1%포인트대로 내려갔다고 한다.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권의 원화 예대금리 차는 1.97%포인트로 집계됐다. 줄곧 3%포인트대를 유지했던 예대금리 차는 세계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2.99%포인트로 떨어진 이후 드디어 1%포인트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은행권의 원화 대출금리는 평균 연 3.62%로, 1999년 이후 처음으로 3%대에 진입했다. 원화 예수금 평균 이자율도 지난해 1.65%를 기록, 사상 처음으로 1%대로 추락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지난해 3월 사상 처음 1%대(1.75%)에 진입한 게 대출금리를 끌어내린 요인이 됐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 예대금리 차(예대마진)가 줄어든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은행권이 예대마진에서 생긴 수익의 공백을 각종 수수료로 벌충하고 있다는 점이다. KEB하나은행은 자동화기기(ATM) 타 은행 이체 수수료를 내달 13일부터 800원에서 900원으로 인상할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올 2월 같은 수수료를 1천 원으로 올린 바 있다. 한국씨티은행도 기존 수수료 면제 혜택을 없애고 다른 은행과 마찬가지로 수수료를 받고 있다. 

은행들은 수수료 인상 외에 예·적금 상품의 수신금리도 앞다퉈 낮추고 있다. 금융 소비자들은 수수료 부담이 커졌을 뿐만 아니라 예금금리가 낮아져 이중의 손해를 감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소비자만 봉이냐'는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은행들이 예대마진이 떨어질 때마다 수수료 인상에 혈안이 되는 것은 기형적 수익구조 탓이 크다. 대부분 선진국 은행들의 경우 총수익에서 이자 수익이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지 않는 반면 국내 은행들은 이자 수익이 90%를 상회한다. 수익구조가 단순하다 보니 손쉽게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 수수료 인상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는 금융 안정이란 명목하에 은행권에 대한 과잉보호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 보호는 물론 글로벌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과감한 정책 변화를 시도해야 할 때이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현경숙 칼럼> 돈을 주든가 몸으로 때우든가

2003년 8월 프랑스에서 반세기 만에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내습해 1만5천여 명이 숨졌다. 사망자의 70%가량이 75세 이상 고령자였고, 파리에서만 노인 900여 명이 숨졌다. 박애의 나라에서 힘없는 노인이 몰사한 것은 프랑스인 자신과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거동이 힘든 노인들은 돌보는 이 없이 침대에 누워있다가 폭염에 속절없이 스러졌다. 기후가 온화한 프랑스 주택에는 당시 에어컨이 거의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요즘 홀로 사는 노인이 어려운 생계와 고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발적 감옥행'을 선택한다고 한다. 지난해 일본에서 발생한 좀도둑 범죄의 35%가 60세 이상 노인에 의한 것이었는데 노인들이 물건이 탐나서가 아니라 감옥에 가려고 일부러 범죄를 저질렀다고 한다. 감옥에서는 최소한 숙식과 건강 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 고령화로 비상이 걸렸다. 기대수명은 청동기 시대부터 1900년까지 4천500년 동안 27년 증가했는데 1900년 47세였던 기대수명이 2013년 70대 후반으로 늘어났다. 2040년 고령화율은 2010년에 비해 선진국이 1.4~1.6배, 개도국은 1.4~3.0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40년의 고령화율이 2010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하는 나라는 한국(2.9배), 브라질(2.6배), 중국(2.6배), 인도(2.0배) 등이다. 노인빈곤으로 의학 발달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으로 변질할 조짐이다.

한국은 고령화 그늘이 특히 심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은 몇 년째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약 50%로, 압도적 1위다. 2명 중 1명이 빈곤층이란 말이다. 노인 자살률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다. 한국은 2014년 70세 이상 노인 10만 명당 116.2명이 자살로 사망했고 이는 최소 5.8명에서 최대 42.3명인 다른 나라의 노인 자살률에 비해 최대 20배에 이른다. 가족, 이웃과 단절된 채 외롭게 죽음을 맞는 노인 고독사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속초에서 노부부가 '우리는 가족이 없습니다.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주세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사망했는데, 숨진 뒤 6개월 뒤에 발견됐다.

인류사에 가장 위대한 발명이 가정, 민주주의, 시장이라고 한다. 기술 발달과 경제 성장으로 민주주의와 시장은 번창하는데 가정은 해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혼, 미혼, 비혼이 늘어 1~2인 가정이 증가하고 있다. 올해 1인 가구는 500만 이상이다. 1인 가구는 자가 주택률이 낮고 빈곤 수준은 높으며, 주거환경이 열악한 경우가 많다. 1인 가구 증가는 노인 부양을 더 어렵게 만든다. 가족 해체는 부모 부양을 둘러싼 소송으로 이어져 부모를 모시는 문제까지 법원에 가져가는 것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에 따르면 OECD 국가를 대상으로 부모와 자녀의 만남 횟수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경우 이 만남을 일어나게 하는 거의 유일한 변수가 부모의 소득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가 손주의 양육을 맡아주어야 했다. 노인이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는 돈을 주든가 몸으로 때워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모에 대한 부양의식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노부모 부양을 자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견해는 2006년 60.7%에서 2012년 28.7%로 감소했다.

막대한 노인 부양 비용이 가족 관계를 위협하는 것도 사실이다. 영국은 장기 병구완 및 지원 서비스 비용이 2010년 국내총생산(GDP)의 2.2%에서 2050년에는 4.3%로 높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OECD는 증가하는 노인 돌봄 비용을 충당하느라 3배나 높은 세금 인상, 노동 기간 연장, 상속재산 감소 등이 예상된다며 가속되는 가족 해체로 노인이 '사회적 짐'으로 치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 어버이날에는 경기침체로 카네이션꽃조차 잘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젊은이조차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서 '노후 절벽'은 '고려장'(高麗葬)을 떠올리게 할지 모르겠다. 고려장은 나머지 식구들이 먹고살기 위해 늙은 부모를 산에 버렸다고 하는 장례 풍습이다. 그러나 고려장은 옛날이야기에 등장할 뿐 실재하지는 않았다. '고려'라는 명칭 때문에 고려 시대에 있었던 것처럼 잘못 알려진 것이지 그 풍습이 실제 존재했다는 역사적 자료나 고고학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제개발 시대에 산업화의 역군이었고, 우골탑을 쌓아올렸던 한국 노인들은 이제 후회한다. 땅 팔고 소 팔아 대학 공부시킨 월급쟁이 아들은 부모를 부양하기 역부족이고 땅 팔지 않은 이웃은 땅값 상승으로 떼돈 번 것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에게 손 내밀 때가 제일 부끄럽다"는 노인들은 말이 없다. 남에게 의존하는 것도 싫거니와 노후 빈곤이나 질병을 자신 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에서 노인은 오랫동안 가정과 사회에서 존경받았고 훌륭한 역할을 했다. 사람의 평가가 경제적 능력에 의해 좌우되고, 빈곤이 개인의 무능력에서 비롯된다는 사고가 지배적인 현대산업사회 들어 노인은 약자로 전락했다. 그러나 오늘날 빈곤은 전적으로 개인 탓으로 돌릴 수 없다. 경제, 복지 정책의 영향을 받는다. 가령 정년을 법으로 규제하지 않는다면, 일자리 정책이 청년에 집중되지 않는다면 노인이 지금처럼 가난하겠는가. 선진국에는 노인 권리 운동이 활발하다. 우리 사회의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정부와 정치권은 노인에게도 온당한 몫의 사회적 부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 세 명 중 1명, 나아가 두 명 중 1명이 노인이 되는 세상이 오는데 이들을 '없는 존재'처럼 외면하면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까. 노인은 어제의 젊은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청년의 내일이다. 늙어서 가난하고 외롭고, 자살하고 고독사해야 한다면 젊어서 열심히 사는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고려 시대에도 없었던 고려장을 인류 사상 가장 풍요한 시대인 현대에서 한다면 문명은 탐욕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루게릭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는 미국 노교수 모리 슈워츠의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을 담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Tuesdays with Morrie)에는 이 책의 저자이자 모리의 제자인 미치 앨봄이 모리의 '볼일'을 돕는 장면이 나온다.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미치에게 의지하는 모리에게는 노화에 대한 비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미치는 그의 뒤를 닦아주면서 지저분하다고 생각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다. 이 책은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연극으로 공연되고, 영화로도 제작됐는데 모리는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2. [머니투데이] 저 놈의 잡초 땜에 죽겠다고요?

읽고 쓰고 걷고, 읽고 쓰고 걷고…. 요즘엔 이러고 산다. 주로 아침에 쓰고, 저녁에 걷고, 그밖에는 읽는다. 내 삶은 복잡하지 않다. 산골에 와서 꼭 하고 싶은 일만 남겼더니 결국은 읽고 쓰고 걷기다. 이 세 가지만 남고 나머지 일들은 떨어져 나간다. 나의 일상은 읽고 쓰고 걷는 삼박자로 돌아간다. 무시로 다른 일들이 끼어들지만 내 리듬이 있으니 변박도 즐겁다.

나에게서 가장 먼저 떨어져 나간 일은 텃밭이다. 마당 한 켠에 열 평 남짓한 텃밭이 있다. 여기에 상추도 심고, 오이·고추·가지·토마토도 심고, 감자와 땅콩도 심고 기른다. 하지만 이 일은 일찍이 동생 손에 넘어갔다. "시골에서 텃밭도 가꾸고 참 좋으시겠어요?" 누군가 이렇게 물으면 나는 엉거주춤하다. 그게 참, 내가 씨 뿌리고, 물주고, 잡초 뽑으면서 가꾼 밭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텃밭 일이 싫은 건 아니다. 읽고 쓰고 걷는 게 더 좋을 뿐이다.

다음으로 떨어져 나간 일은 서울 마실이다. 한 달에 한 번쯤 가곤 했는데 갈수록 뜸해진다. 한때는 이런저런 이유와 약속을 만드는 쪽이었지만 지금은 없애는 쪽이다. 그만큼 복잡하게 엮이는 인간관계가 줄고 이해관계가 걷힌다. 대신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아진다. 시나브로 조용해진다.

마당 일도 많이 줄었다. 잔디를 깔고 여기저기 나무를 심었더니 마땅히 더 심을 자리가 없다. 나무는 스스로 자란다. 꽃들은 알아서 핀다. 잡초는 대충 뽑는다. 웃자라 나에게 들킨 애들만 뽑힌다. 아래 마당 쪽 비탈은 벌써 풀과 넝쿨이 무성하게 엉겼다. 어쩌랴. 재들은 재들대로 한 철 즐기다 가겠지! 내 눈엔 이 정도면 됐다.

하지만 다른 분들 눈에는 영 아닌가 보다. 이웃집들은 확실히 다르다. 갓 이발한 듯 잔디가 가지런하고 울긋불긋 꽃들이 모여 있다. 잡초는 어디 갔나. 집주인은 오늘도 '풀과의 전쟁'에 여념이 없다. 전면적인 총력전이다. 그래서 즐거우면 좋으련만 표정은 영 아닌 듯싶다. 주인은 오늘도 잡초를 노려보며 하소연한다.

-이웃 : 저놈의 잡초 땜에 내가 죽어.
= 나 : 죽으면 안 되죠.
- 이웃 : 그러면 어떡해?
= 나 : 뽑으면 잡초도 죽고 나도 죽고, 안 뽑으면 잡초도 살고 나도 살죠.
-이웃 : …….

그러니까 나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게으르다. 손꼽히는 한량이다. 위험한 백수다. 나만 노는 게 아니라 이웃까지 물들이려 한다. 길지 않은 인생인데 잡초 따위에 몸을 놀리지 맙시다. 마음 없는 일에 마음 들볶지 맙시다. 꼭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신나게 삽시다. 더 늙기 전에 많이 놉시다. 대충 이런 얘기로 유혹을 하는데 애석하게도 효과가 없다. 아직 물든 분이 없다. 다들 너무 부지런하고, 너무 일이 많다.

3. [동아일보][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 헤어짐, 그 이후에 남겨진 것들

에곤 실레(1890∼1918)는 오스트리아의 화가입니다. 분출하는 생의 에너지와 배회하는 죽음의 공포를 관능적으로 표현했지요.

스물여덟, 짧은 생을 살다 간 화가는 100여 점의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자화상 속 화가는 자기 과시적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자기 변호적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벌거벗은 몸으로 쾌락을 좇기도 하고, 경계의 시선으로 욕망을 응시하기도 합니다. 화가는 성적 욕망과 운명의 비극 사이에서 서성였습니다. 아버지와 형제들을 잃은 청소년기 이후의 일이었지요.

1910년 화가는 예술의 도시 빈을 떠났습니다. 조용히 머물 곳을 찾아 이주했지만 정착은 쉽지 않았습니다. 자유분방한 사생활과 외설적인 그림이 문제였지요. 이웃들은 낯선 이방인을 추방하려 했고, 어린 소녀 유괴 혐의로 고소까지 했어요. 의혹과 혐의가 끊이지 않는 삶과 미술이었습니다. 그런 화가 곁을 예술의 뮤즈이자 삶의 동반자가 지켰지요. 화가의 스승이었던 클림트의 모델이었던 발리 노이칠이었어요. 열일곱 살 모델과 스물두 살 화가가 만나 4년간 열정을 나누었습니다. 사랑은 1915년 끝이 났습니다. 화가가 다른 여성과 결혼을 했거든요. 

떠난 사람은 화가입니다. 하지만 사랑에 버림받은 쪽도 화가였지요. 결혼 후에도 관계를 지속하려는 이기적 계획을 옛 애인이 거절한 것이었어요. ‘죽음과 소녀’는 두 사람이 결별한 해 제작된 그림입니다. 이별의 당사자들을 이렇게 형상화했군요. 음산한 공간에서 남녀가 절망의 포옹을 나눕니다. 서로의 등과 어깨를 감싸 안으려 앙상한 두 팔과 뼈마디 굵은 손을 뻗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기묘하게 불편해 보입니다. 사랑의 격정은 지나고, 관계의 마지막 절차만 남은 까닭일까요.

사랑이 끝난 뒤 남겨진 물건들을 소개하는 이색 전시가 제주에서 펼쳐지고 있답니다. 전시 기획은 2006년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문을 연 실연박물관에서 맡았다지요. 사별한 남편이 몰았던 자동차부터 사랑과 맞바꾼 트로피까지 전시품들이 결별의 이유만큼 다양하기도 합니다. 만남과 헤어짐의 어려움이 어느 때보다 구체적으로 토로되는 지금, 산산이 조각난 관계의 물증들만큼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말을 건넬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요. 연인과 헤어진 화가가 남긴 상실과 연민의 그림이 그 어떤 연애의 기술보다 노골적으로 관계의 속살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4. [동아일보][림펜스의 한국 블로그]한국 영화제의 색다른 여운과 뒤풀이

얼마 전 어린이날 오랜만에 전주국제영화제(JIFF)에 갔다. 영화 상영을 하지 않을 땐 햇볕 아래서 산책을 하며 자유 시간을 보냈다. 재미있는 영화와 더불어 전주 시내의 매력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기에 행복했다. 

‘한국식 영화제’는 내게 특별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한국식이라고 이름 붙이는 이유는 한국 영화제 특유의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인들도 영화 애호가이고 영화 관련 행사를 많이 연다. 벨기에 브뤼셀도 서울처럼 매년 수십 개의 다양한 영화제가 열린다. 그런데 한국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영화제 특유의 분위기, 그러니까 ‘영화제 문화’까지는 없는 것 같다.

한국의 ‘영화제 문화’를 부산에서 처음 경험했다. 2005년 10월, 한국에서 보낸 첫 가을 어느 주말에 아무런 계획 없이 내 친구 문수와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가게 됐다. 그날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주말이 된 날이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었기 때문에 우린 영화표를 미처 예매하지 못했고, 매진되지 않은 영화가 별로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중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 봤다. 그 영화는 이만희 감독의 ‘원점’이었다. 1967년 작품 속 설악산 풍경을 보니 제법 신기했다. 

영화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상영이 끝나고 난 뒤 맛본 영화제 분위기였다. 새벽까지 신나는 해운대 골목을 영화제 방문객들과 뒤섞여 마음껏 누볐다. 영화제 분위기에 잔뜩 도취된 것만 같았다. 오후엔 해수욕도 했고 일몰 시간엔 해변에 앉아 맥주 몇 캔을 마시며 가벼운 마음으로 순간을 강렬하게 즐겼다. 물론 날씨가 맑아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건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었다. 

벨기에에서 체험했던 영화제와 달리 그날 부산영화제에서는 영화관의 경계를 뛰어넘는 어떤 ‘정신’을 느꼈다. 영어로 vibe(분위기, 느낌)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부산에서는 영화제의 여운이 길거리에서도 느껴진다. 내가 베니스나 칸 영화제 같은 대규모 유럽 영화 축제에 가본 적이 없어 비교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지만, 부산영화제는 영화 관계자나 영화 마니아뿐만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실제 관람객 수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참가할 수 있는 종합적인 대중 축제같이 느껴졌다. 반면에 브뤼셀 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평소보다 좀 더 시끄럽고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건 영화관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다름이다.

2006년 봄에 방문한 전주영화제에서도 이런 영화제 고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전주영화제는 부산영화제보다 ‘인디 영화’ 위주로 상영했다. 웬만한 영화관에서는 보기가 거의 불가능한 영화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그때 본 영화 중 나는 무당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가장 인상 깊었다. 그 외에도 수십 편의 국내외 단편 영화를 봤다. 전주영화제는 세계관을 넓혀주는 다양한 영화들을 분별 있게 선정해 영화제 기간 한 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줬고, 그 점이 참 고마웠다. 

그해 가을 한국에 놀러왔던 벨기에 친구 3명을 데리고 부산영화제에 또 갔다. 그때는 여러 영화를 예매해 놓고 오전부터 열심히 관람했다. 밤에는 부산 이곳저곳에서 놀다가 해운대 모래 위에 옷을 전부 벗어 놓고는 영화제 뒤풀이라도 하는 듯 ‘자정의 해수욕’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7년 봄, 일시적인 실업 상태에 있었던 나는 JIFF 사무국에 지원해 초청팀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JIFF 지기’로 활동한 그 열흘은 아주 좋은 경험이었고, 그때부터 온갖 영화제에 관심이 생겼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지금까지 7번을 갔고, JIFF는 올해로 5번째다. 

얼핏 기억을 되살려보면 ‘영화제 바이러스’에 걸린 이후 가본 영화축제는 서울독립영화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국제여성영화제, 이반영화제, 환경영화제, 부산국제단편영화제 등이다. 그런데 그 많은 영화제 중 부끄럽게도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다. 아직 한국을 떠날 때는 아닌 것 같다.

5. [동아일보][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염치 불고하고

요즘 아이들이 한자를 모르다 보니 우리말을 외국어처럼 외운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하긴 자신의 이름조차 한자로 쓸 줄 모르는 아이들이 많으니 그럴 성싶다. 여러 가지 속뜻을 담고 있는 뜻글자인 한자어는 어른들에게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한자어의 뜻을 지레짐작으로 쓰는 경우가 적잖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 쓰는 상투어 ‘염치 불구하고’도 그중 하나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염치(廉恥)’다. 염우(廉隅)라고도 한다. 언중은 발음하기 쉬워선지 염치 뒤에 따르는 동사로 ‘불구(不拘)하다’를 즐겨 쓴다. 불구하다는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염치 불구하고’는 ‘염치 따위는 생각지 않고 제멋대로’란 뜻이 되어 버린다. 의도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뜻이 되어버리니 이상하지 않은가. 

바른 표현은 ‘염치 불고하다’다. ‘불고(不顧)하다’는 ‘돌아보지 아니하다’란 의미이니 ‘염치 불고하고’는 ‘염치를 차리지 못하고’라는 뜻. ‘체면 불구하고’란 말 역시 ‘체면 불고하고’가 옳다.

‘산증인’과 ‘향년(享年)’도 가려 써야 할 말이다. 산증인은 ‘어떤 분야의 역사 따위를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 낱말, 반드시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써야 한다. 부고(訃告) 기사 등에서 가끔 ‘언론계의 산증인’ 식으로 살아생전 업적을 기리는데 얼토당토않다. 이와 반대로 죽은 사람에게만 쓸 수 있는 표현이 향년이다. 향년은 ‘한평생 살아 누린 나이’란 뜻이니 산 사람에게 쓰면 그런 실례가 없다. 

‘터울’과 ‘역임(歷任)’도 잘못 쓰기 쉽다. 터울은 ‘한 어머니의 먼저 낳은 아이와 다음에 낳은 아이의 나이 차이’다. 그러니 어머니가 같은 형제와 자매, 남매 사이에만 쓸 수 있는 말이다. 이복(異腹) 형제자매에게조차 써선 안 된다.

누군가 새로운 직위에 오르면 으레 등장하는 낱말이 ‘역임(歷任)’이다. ‘여러 직위를 두루 거쳐 지냈다’는 뜻이다. ‘여러’라는 조건에서 알 수 있듯이 달랑 한 직위를 언급하고는 ‘역임했다’고 하면 안 된다. ‘사회부장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로 써야 옳다. 이런 잘못을 애당초 피하는 방법? ‘거쳤다’나 ‘지냈다’ 등으로 쓰면 된다. 부드럽고 무엇보다 뜻이 명확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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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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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6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한강 하구는 중국의 어업전세 구역인가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양태가 갈수록 도를 넘어서고 있다. 그동안 주로 연평도 근해에서 조업하던 중국 어선들이 지난해부터는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강화도 부근 한강 하구까지 침입해 조업을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간헐적으로 몇 척씩 슬며시 침범하더니 꽃게잡이가 본격 시작된 지난달부터는 20~30척 규모로 늘어나 거의 매일 출몰한다고 한다. 마치 제집 안방을 드나드는 격이다.

문제는 우리 해군과 해경이 이 같은 불법조업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해당 지역이 유엔군사령부가 관할하는 중립지대로 우리 군이나 단속반이 자유롭게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해안과 가까워 북한 공격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 점도 하나의 요인이다. 이 때문에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을 지켜만 보며 중국어로 ‘경고 방송’을 하는 것이 고작이라고 한다.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규모가 늘어나면서 우리 연근해 어장을 휘젓고 있다. 우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침입해 조업하려고 틈을 노리는 중국 어선이 줄잡아 3000척 안팎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저인망식 싹쓸이로 치어까지 남획해 어족 자원을 고갈시키는 것은 물론 낫과 쇠꼬챙이로 무장하고 우리 해경의 단속에 완강히 저항하는 등 갈수록 흉포화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특히 연평도는 사실상 중국 어선의 조업장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올해 인천 앞바다에서 잡은 꽃게는 17만여t으로 지난해에 비해 80%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이 그만큼 기승을 부린다는 얘기다. 이런 마당에 한강 하구까지 침입한 중국 어선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안 될 말이다.

영토와 해양주권 수호는 물론 우리 어민과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서라도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중국 정부에 자국 어선의 NLL 해역 및 EEZ, 한강 하구 불법 침범을 막아줄 것을 강하게 촉구하는 한편 유엔사에 퇴거 및 나포 등 단속을 강화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할 필요가 있다. 불법조업으로 재미붙인 어선들을 엄하게 처벌하는 등 중국 어선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도록 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해야 한다.

2. 청와대 비서실 개편, 협치로 나아가야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비서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일부 보좌진에 대해 개편을 단행했다. 전임 이병기 실장이 지난 4·13 총선 패배로 인한 청와대 분위기 쇄신을 위해 사표를 제출한 데 따른 조치이면서도 앞으로 여소야대 정국에서 새로운 협치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여야 사이에 새로운 대화관계가 형성되면서 청와대 내부의 인적 구조도 바뀔 필요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행정 전문가로 꼽히는 이원종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장을 신임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사실에서도 박 대통령의 의중이 어느 정도 엿보인다. 정치적 협상력보다는 관리형 인물이 필요한 국면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이 신임 실장은 서울시장과 충북지사를 민선·관선으로 3차례나 지냈으면서도 그렇게 정치색을 드러낸 편은 아니었다. 원만한 성격과 처신으로 청와대 비서진을 통솔하는 것은 물론 여야관계에도 중재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중요한 것은 신임 이 실장이 박 대통령에게 얼마나 직언을 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청와대 내부에서 소통이 이뤄지지 못한다면 내각 및 여야 관계에서도 원활한 소통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자신이 여야 정치인들이나 언론사 관계자들과의 폭넓은 의견교환을 다짐하고는 있으나 혹시 민의를 놓친 부분이 생긴다면 소신껏 직언이 필요하다. 그것이 비서실장의 역할이다.

그렇다고 청와대나 내각의 인물 교체가 이번 개편으로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지난 주말 박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대표의 회동에서 거론됐듯이 정무장관직이 새로 신설될 것인지도 주목된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법안의 원만한 국회 처리를 위해서도 전담 대화창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얘기가 나온 만큼 조속한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후속 조치가 따라야 할 것이다.

여소야대 정국에 맞춰 청와대가 스스로 변화의 모습을 보이는 만큼 야권에서도 이에 호응하는 협치의 응답이 있어야만 한다. 세부 방안에서는 아직 3당 간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겠으나 민생경제를 살리는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시간을 낭비해서는 곤란하다. 이미 조선·해운 분야의 구조조정 여파가 밀려오고 있다. 협치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바란다.

[서울신문]

3. 구조조정 속도 내려면 결국 국회가 협력해야

정부와 한국은행은 당면한 기업 구조조정에 나서야 하는 주체다. 이들은 여전히 ‘골든타임’이 지나가면 먹구름이 몰려올 수밖에 없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고한다. 하지만 입으로만 ‘속도와 타이밍’을 외칠 뿐 서두르는 기색 없이 한가하게만 보인다. 구조조정 재원 마련을 위한 관계 기관 협의체가 첫 회의를 한 것이 지난 4일이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은 당시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 필요성에 뜻을 모았다고 했지만 벌써 열흘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각 주체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놓고 설왕설래만 했을 뿐이다. 각 주체가 효율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찾기보다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정부가 몸을 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웬만하면 국회는 피해 가고 싶다는 뜻이 곳곳에서 읽힌다.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지 못한 것은 국책은행 자본 확충 방안을 놓고 정부와 한은이 엇갈린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실기업 구제에 재정을 투입하려면 시급성에 비춰 절차가 복잡한 만큼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처음부터 주장했다. 한은은 한은대로 국책은행에 대한 자금 지원은 회수가 쉽지 않은 출자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며 맞서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 한은은 출자 대신 시중은행의 채권을 담보로 대출해 주는 은행자본확충펀드 방식을 제시했다. 이리저리 돌려서 이야기한 꼴이지만 결국 정부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이 귀찮고, 한은은 손실 책임을 떠안고 싶지 않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어떤 방식이든 돈은 결국 같은 곳간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만큼 곳간 주인인 국민들이 보기에는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한은 사이에 국책은행 자본 확충 방안으로 자본확충펀드에 대해 상당 부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2009년 은행자본확충펀드의 변형 모델로 한은이 대출해 준 돈으로 펀드를 만들면 이 펀드가 은행에 출자해 자기자본비율을 높여 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부와 한은 사이에서는 여전히 줄다리기가 한창이라고 한다. 한은이 대출금에 대한 담보나 정부의 지급보증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반대하고 있다. 지급보증은 재정이 투입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데다 지급보증을 하려면 국회의 동의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정부는 골치 아픈 국회를 피해 가려 고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원내지도부는 경제부총리와 3당 정책위의장이 만나는 민생·경제 현안 점검회의를 조속히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각종 현안이 적지 않다지만 구조조정보다 시급한 과제는 없다고 본다. 소통의 통로도 마련된 만큼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이제부터라도 국회에 대한 정공법을 펴야 할 것이다. ‘국회는 피해 가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권도 왜 정부가 국회를 기피 대상으로만 생각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경제부총리와 3당 정책위의장의 첫 번째 민생·경제 점검회의에서 구조조정의 해법에 합의하는 협치(協治)의 구체적 모습이 제시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꿈인가.

4. '셀프 개혁'으로 로스쿨 바로 설 수 있겠나

로스쿨협의회가 지난 13일 입시 공정성 확보 방안을 내놨다. 학생 신상 정보를 알 수 없도록 블라인드 면접을 도입하고 자기소개서에 집안 배경을 쓰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요지다. 최근 교육부의 로스쿨 입시 실태조사 결과 불공정 사례들이 드러난 데 따른 조치다.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이후 음서제 특혜 의혹은 끊일 새가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와중에도 로스쿨협의회는 내부 개혁에 꿈쩍 않고 버텼다. 그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로스쿨 스스로가 모처럼 환부에 칼을 들이댄 자구책이다.

로스쿨 운영 방식에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국민들 눈에는 그래도 한참 멀었다. 공정성 시비를 근본적으로 없애겠다는 의지를 읽기 어렵다. 블라인드 면접 금지와 자기소개서 단속 정도는 일반 기업체와 대학 입시에서조차 뿌리내린 장치다. 여론의 화살이 집중적으로 쏠린 상처만 마지못해 봉합하고 넘어가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사법시험 존치 논의와 별개로 로스쿨 폐지론이 고개 든 마당이다. 그런데도 심각한 구멍으로 드러난 부분만 손질하고 넘어가겠다는 발상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불공정 특혜의 여지가 많은 정성평가 비중을 대폭 줄이라는 요구가 거센데도 기존의 선발 방식을 고수하려는 뜻을 이해할 수 없다. 정량평가에서의 변별력이 지금처럼 계속 낮으면 면접 등 정성평가로 합격을 가려야 하니 특혜 시비가 줄지 않을 것은 뻔하다.

대학과 법조계에는 “로스쿨 제도의 최대 수혜자는 로스쿨 교수”라는 말이 돈다. 교수들의 정성평가 재량이 과도한 탓이다. 로스쿨 교수진은 예전의 법학과 교수들과 전직 법조인들이다. 법조 인맥을 타고 실력자 자녀의 로스쿨 입학 청탁이 기승을 부린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굳어져 있다. 의심과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지켜야 할 기득권이 있지 않다면 로스쿨협의회는 국민 기대치보다 더 큰 폭의 체질 개혁에 스스로 앞장서야 한다.

로스쿨의 입시제도 개혁이 흐지부지 넘어가면 교육부도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등 떠밀려 간신히 로스쿨 3년치 입시만 조사한 데다 그나마 적발된 부정 사례들조차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거세다. “교육부가 현대판 음서제를 당당히 커밍아웃시켰다”는 비난마저 연일 높다. 엄중한 국민 시선을 안다면 교육부는 로스쿨의 셀프 개혁에 결코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안 된다.

5. 소통과 경제에 방점 찍은 靑 인적 쇄신 

박근혜 대통령이 4·13 총선 한달여 만인 어제 비서실장과 경제수석, 정책조정수석을 교체하는 청와대 개편을 단행했다. 신임 비서실장에는 이원종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장을 임명했고, 경제수석에는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을 기용했다. 전임 안종범 경제수석은 정책조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청와대 개편은 시기만 불투명했을 뿐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는 점에서 크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이번 총선 민심은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에 대한 불만과 변화 요구도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만큼 참모진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신임 비서실장은 정통 행정 관료 출신이면서도 민선 충북도지사를 연임했다. ‘행정의 달인’이지만 정치적 감각 또한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는 ‘소통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집권 후반기에 직면한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치권과도 말이 통할 수 있는 이 신임 비서실장을 발탁한 데는 국정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이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위스콘신대’ 동문인 강 수석과 안 수석은 새누리당의 각종 경제정책 추진 과정에서 호흡을 맞춰 왔다. ‘경제통’ 중심의 청와대 참모진을 통해 4대 개혁과 경제활성화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청와대 개편 소식이 반가운 것은 비록 전면적인 인적 쇄신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박 대통령의 ‘화답의 정치’가 확인됐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박 대통령은 편집국장·보도국장 간담회를 통해 시중의 민심을 전격 청취했고, 지난주에는 여야 원내 지도부와의 회동을 통해 협치(協治)의 기대감을 한껏 높여 줬다. 이제 석달에 한 번씩 여야 대표와의 정례 회동을 통해 각종 현안에 대한 정치적 조율에도 나서게 됐다. 청와대 개편을 포함해 이 모든 것은 ‘독불장군식 국정 운영’과 ‘불통의 리더십’은 더이상 안 된다는 국민적 요구에 대한 화답인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새 진용을 갖춘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여야 정치권 및 국민들과 진정으로 소통, 조율하면서 경제와 안보의 중첩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협치 드라마를 펼쳐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박 대통령은 여야정 민생경제현안점검회의 개최와 안보 정보의 공유 확대 등을 선제적으로 야당 측에 제안하지 않았는가. 중요한 국정 현안을 세간의 ‘기브 앤드 테이크’ 관행처럼 야당 측과 주고받을 수는 없는 것이지만 서로 역지사지하면서 배려·공감하지 않는다면 협치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새 참모진의 책임이 막중하다.

[동아일보]

6. '타락한 공무원의 도시'라는 오명 뒤집어 쓴 세종시

세종시 공무원들의 아파트 분양권 불법전매 의혹에 이어 양도세를 줄이기 위한 다운계약서 의심사례가 대거 발견됐다. 세종시에 따르면 세종시 중심 상권에 위치한 아파트 중 일부의 전매금지 기간이 지난해 9월 풀린 뒤 매분기 7∼8건에 불과하던 다운계약 의심사례가 지난해 4분기 155건으로 급증했고 올 1월에도 95건이 발생했다. 

대전지검은 최근 세종시 부동산중개사무소 6곳을 압수수색해 불법전매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세종시 아파트를 분양받은 중앙부처 공무원 9900명 가운데 실제 입주자는 지난해 말 6198명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운계약은 국세청 조사 대상이지만 세종시 이전 대상 기관들을 관리·감독해야 할 국무총리실과 탈세를 적발해야 할 국세청 소속 공무원 분양자의 전매 비율도 각각 5.7%와 4.2%로 드러났다. 국세청 직원이 다수 포함된 만큼 검찰이 수사하는 것이 옳다. 

정부는 세종시로 옮기는 공무원들에게 분양아파트 전체의 70%(2014년부터는 50%)를 우선 분양했다. 입주 초기부터 분양권 프리미엄이 5000만 원을 넘었고 2014년 이후 더 높아졌다. 입주 전 다른 부처로 인사발령이 나 아파트를 전매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공무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 거주 의사가 없는데도 시세차익을 챙기려고 특별공급을 받은 양심불량 공무원들도 상당수로 추정된다. 

아파트 분양에서 입주까진 통상 3년 정도 걸린다. 세종시 출범 초기 전매금지를 1년으로 한 것 자체가 전매로 잇속을 챙길 여지를 정부가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전매 특혜를 비판하는 여론이 일자 뒤늦게 정부는 2014년 3월부터 전매금지 기간을 3년으로 늘렸다. 일부 공무원들이 이 기간 중 불법 전매로 시세차익을 챙기고 전매금지가 풀리면 다운계약서를 작성해 세금을 빼먹었다면 이 정부와 관련 공무원의 도덕성이 얼마나 땅에 떨어졌는지 짐작이 간다.

7. 현정은 一家가 사익 편취한 현대그룹에 혈세 퍼줄 텐가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이 대주주가 총수 친족들인 회사를 부당 지원한 혐의가 적발돼 현대증권 현대로지스틱스 등 4개 계열사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명령과 함께 12억85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대기업 총수 일가(一家)의 사익 편취와 일감 몰아주기를 징벌하기 위해 마련된 관련법이 처음으로 적용된 사례다. 

현대증권은 작년 2월부터 올 3월까지 제록스와 직거래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데도 굳이 HST를 중간에 끼워 수수료 4억6000만 원을 챙기게 했다. HST는 현 회장의 여동생 지선 씨 부부가 지분 90%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로지스틱스도 2012년 5월부터 3년간 지선 씨 남편 변찬중 씨와 두 아들이 100% 지분을 보유한 쓰리비에 부당하게 56억 원이 넘는 매출 특혜를 제공했다.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이 좌초 위기인 와중에 현대그룹 총수 일가를 부당 지원하기 위해 비리를 저질렀다니 말문이 막힌다. 

4개 계열사 임직원들이 “부당 지원은 우리가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해 총수 일가는 처벌 대상에서 일단 제외됐다. 실무 임직원만 책임지고 ‘도마뱀 꼬리’를 자른 듯한 의혹을 지울 수 없다.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가려야 한다. 총수 일가의 친족 회사를 총수 몰래 지원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런 과잉충성 풍토가 기업에 만연한 것인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글로벌 해운업계의 판도를 좌우할 해운동맹(얼라이언스) 재편 과정에서 한진해운은 3번째 동맹인 ‘더 얼라이언스’에 합류했지만 현대상선은 배제됐다. 9월까지 추가 협상 기회가 있지만 구조조정과 용선료(傭船料)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현대상선은 불가피하게 난파선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위기에서 총수 일가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까지 벌어진다면 천문학적인 세금을 부도덕한 기업에 투입해도 되는지 회의감만 커질 수밖에 없다.

[매일경제]

8. 전관예우 추악한 먹이사슬 이번엔 반드시 끊어라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원정 도박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법조 비리 의혹은 마치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 있다. 캐면 캘수록 새로운 의혹이 불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의혹의 핵심은 판사와 검사 출신 변호인들이 법조계의 뿌리 깊은 전관예우 관행을 이용해 현직 판·검사들을 상대로 부당한 변론 활동을 했느냐 하는 데 있다.

부장판사 출신으로 정씨 변호를 맡아 50억원의 수임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최유정 변호사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이 돈이 어디에서 나와 어떻게 쓰였는지 끝까지 추적하면 부당 로비 의혹이 사실인지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최 변호사는 이와 별개로 투자 사기 혐의로 기소된 이숨투자자문 대표 송 모씨의 변호인으로 수임료 50억원을 챙겼다고 한다. 검찰은 송씨의 경우 여러 건의 동종 전과로 무거운 형이 예상되는데도 최 변호사가 재판부 선처를 받아내겠다며 거액의 수임료를 챙긴 것은 아닌지 캐고 있다.

검찰은 또한 검사장 출신인 홍만표 변호사를 곧 소환해 그가 정운호 씨 수사 단계에서 두 차례 무혐의 처분을 받아낼 때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사할 예정이다. 이름난 특별수사통으로서 검찰의 '최고 검객'으로 꼽혔던 그가 전관으로서 수사 과정에 부당한 영향을 미쳤는지 밝히려는 것이다. 홍 변호사는 2013년 한 해에만 91억원 넘는 소득을 올려 전관예우 의혹이 집중되는 인물이다. 수임료 액수를 놓고 그와 정씨의 말이 엇갈리고 있어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보통사람들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단 두 건의 수임으로 100억원을 챙기고,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한 해 91억원의 소득을 올렸다면 어떤 식으로든 전관예우 덕을 보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검찰은 자칫 사법 체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단숨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이번 사건을 철저히 파헤쳐 단 한 점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전관예우는 법치주의를 병들게 하는 끈질긴 독버섯이다. 그동안 이 어처구니없는 악습을 막기 위해 이런저런 제도가 도입됐지만 그 뿌리는 뽑히지 않고 있다. 이참에 입법, 사법, 행정부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추악한 전관예우의 먹이사슬을 반드시 끊어야 한다.

9. 현대상선 용선료 협상 국익 차원서 최선 다해야

글로벌 해운동맹에서 배제된 현대상선의 운명이 오는 20일 보고를 앞둔 용선료 인하 협상 결과에 따라 갈리게 됐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지난달 26일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에서 "해운업계 구조조정의 핵심 포인트는 용선료 협상이며, 이 협상이 안 되면 이후 과정이 무의미해진다"고 밝힌 바 있다. 용선료 협상을 원만하게 끝내는 것이 벼랑 끝에 몰린 현대상선이 살 수 있는 마지막 동아줄인 것이다.

현대상선은 그동안 해외 선사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하며 진행했던 용선료 협상을 시각이 촉박한 만큼 다수의 선사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담판을 벌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 선사들이 눈치를 보느라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어 고육지책으로 고려하고 있는 카드다. 해외 선사들의 요청이 있으면 금융당국과 채권단도 협상에 참여할 것이라고 하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용선료 협상에서 현대상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면 채무 재조정이 이뤄지고, 글로벌 해운동맹에 추가로 합류하는 데 청신호가 켜진다. 반면 협상이 결렬되면 정상적인 구조조정 절차가 불가능해져 법정관리로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해운업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기간산업이라는 점에서 용선료 협상은 국익 차원에서 중요한 문제다. 국내 해운업체들은 그동안 글로벌 해운동맹에 참여하면서 우리 수출 기업들의 안정적인 물류에 기여했다. 외국 해운선사들로부터 국내 중소 선사를 보호하는 역할도 했다. 중국과 일본 등 다른 나라들도 해운업에 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국익을 강조한다고 해서 현대상선 등 국민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는 해운업체에 면죄부를 주라는 것은 아니다. 현대상선은 거액의 용선료 때문에 매년 수천억 원의 적자를 내면서도 구조조정을 미루는 바람에 부실을 키웠다. 이미 부채가 5조원에 육박했고, 부채비율도 2000%가 넘어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일단 용선료 협상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현대상선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 용선료 협상과 채무 재조정에도 불구하고 현대상선이 해운동맹에서 탈락하는 최악의 경우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부산일보]

10. '돈 안 되는 수술'거부한다는 서면 메디컬 스트리트

'공든 탑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고 했다. 하찮아 보이는 작은 일을 수수방관하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는 속담이다. 수성하는 게 명성을 쌓아 올려 나가기보다 되레 어렵다는 뜻도 말 속에 담겼다. 늘 조심하여 지속적으로 공을 들여 나가지 않으면 시쳇말로 '한 방에 훅 간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는 게다. 이렇게 조심 또 조심을 일깨우는 것은 최근 들어 서면 메디컬 스트리트(SMS)를 둘러싸고 심상치 않은 조짐들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조짐 중 제일 악성은 소위 '돈 안 되는 수술'을 기피한다는 진료 거부 행위다. 코가 벽에 부딪쳐 휘어지는 바람에 교정 및 미용 치료를 받으려 병원을 찾은 환자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진료 거부를 당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적은 비용이 드는 수술은 할 수 없다"고 했다는데 이게 의사가 할 수 있는 말인가. 그뿐만 아니라 최근 일본인 여고생이 자신의 동의 없이 수술 전후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한 성형외과 원장을 고발한 사건이 일어난 것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서면 메디컬 스트리트의 일부 성형외과들이 '미용 성형'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정작 더 중요한 '재건 성형'은 나 몰라라 한다는 최근의 풍문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낮은 수익성, 경험 부족, 부실한 진료 시설 등을 이유로 '돈 안 되는' 재건 성형은 뒷전인 채 '돈 되는' 미용 성형에만 눈독을 들이는 것은 의료인의 본분을 망각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재건 성형 없이 미용 성형이 가당키나 한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의료관광은 부산시가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대표적인 산업이며, 그 중심에 서면 메디컬 스트리트가 서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욱이 부산시, 부산진구, 부산관광공사가 컨소시엄을 통해 응모한 '부산 SMS 메디·뷰티 힐링여행'이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의 '글로컬 관광상품 육성사업'에 선정된 터이다. SMS를 둘러싼 최근의 나쁜 풍문들은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뿐이다. 의료계의 자정 노력이 우선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당국의 강력한 관리 감독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신동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 3대 진미 중 한 가지 ‘트러플(송로버섯)’…프랑스 루이 14세가 즐겼던 ‘신의 선물’

최고의 요리는 최고의 식재료에서 나온다. 어떤 요리 비법이나 특별한 조리도구도 최고의 식재료를 따라가진 못한다. 

흔히 세계 3대 진미 하면 푸아그라와 캐비어, 트러플(Truffle)을 꼽는다. 이 중에서도 프랑스나 이탈리아 사람들은 한국의 산삼과 비교될 정도로 트러플을 귀하게 여긴다. 우리말로는 송로(松露)버섯이라고 부르지만 실제 소나무와는 전혀 상관없다. 

트러플은 특이하게도 돌멩이나 흙덩이처럼 생겨서 육안으로는 쉽게 구분이 가지 않는다. 일반 버섯과 달리 떡갈나무나 헤이즐넛나무 아래, 땅 밑 30㎝, 깊게는 1m 아래에서 자란다. 먹기 적당한 크기로 자라기까지는 7년 정도 걸리는데, 인간의 오감으로는 발견이 어려워 채취하기가 굉장히 까다롭다. 아직까지 인공재배가 전혀 되지 않고 희소성이 높아 유럽에서는 ‘땅속의 다이아몬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전에는 페로몬 성분에 민감한 돼지에게 냄새를 맡게 해 땅속에서 트러플을 찾게 했지만 트러플을 좋아하는 돼지의 식욕 때문에 요즘은 주로 훈련된 개를 이용한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트러플 채취자들은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개들과 함께 자신이 알고 있는 떡갈나무 숲 속으로 들어간다. 주로 개의 후각이 예민해지는 밤늦은 시간, 다른 사람이 모르게 혼자 이동한다. 숲 속에 풀어놓은 개들이 트러플 향을 맡고 떡갈나무 아래를 앞발로 파기 시작하면 이때부터 채취자가 나서서 겉면이 상하지 않게 손과 붓을 이용해 부드럽게 채취한다.

트러플은 호두알만 한 것부터 자그마한 사과 정도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2007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무려 15㎏이나 나가는 큰 화이트 트러플이 발견됐다. 당시 무려 3억 이상의 고가에 판매됐는데, 필자는 그 기사를 접했을 때 당장 그 경매장에 가서 구경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마 평생 그 정도의 트러플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트러플은 워낙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재료인데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나지 않아 전량을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주방에서는 금고에 따로 보관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지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트러플이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한 작가는 “나(송로버섯)를 맛보면 신을 사랑하게 된다”고 표현할 정도로 트러플의 맛을 극찬했다. 로마제국 때부터 식용해온 트러플은 프랑스 루이 14세가 즐겼던 버섯으로도 유명하다. 맛만 놓고 보면 담백하고 고소한데, 사실 맛보다는 그 향이 특별해서 귀한 가치를 인정받는다. 

트러플은 깊은 숲 속의 향기와 신선한 땅 내음을 농후하게 지니고 있다. 얼마나 향이 깊고 강한지 아주 적은 양만으로도 음식 전체의 맛을 좌우한다. 모두 30여종이 있는데 그중 프랑스 페리고르산 검은 트러플(Tuber Melanosporum)과 이탈리아 피에몬트 지방의 흰색 트러플(Tuber Magnatum)을 최고로 친다. 

프랑스 검은 트러플은 오믈렛이나 리소토(risotto) 등에 사용되는데, 물에 끓여 보관해도 향기를 잃지 않는다. 반면 날것이라야 제 맛을 내는 이탈리아 흰 트러플(실제는 엷은 갈색을 띰)은 샐러드를 만들거나 전용 기구로 아주 얇게 썰어 음식 위에 뿌려 먹는다. 트러플을 넣어 먹을 요리는 그 맛이 단순한 것일수록 좋다. 그래야만 고유의 맛과 함께 요리 자체의 맛도 더욱 살아나기 때문이다. 

중세 프랑스의 음식 문화는 1533년 이탈리아의 메디치가(Medici家) 출신인 카트린느 드 메디치가 프랑스 앙리 2세와 정략결혼을 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로 인해 찬란하게 꽃피운 이탈리아의 화려한 음식문화가 이 결혼식을 통해 프랑스에 전해졌다. 그중 하나로 메디치 가문은 이제까지 프랑스인들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트러플을 소개했다. 처음에 흙이 묻은 검은색 돌덩어리라고 생각했던 프랑스인들은 트러플로 만들어낸 음식을 먹고 난 뒤 그 빼어난 맛에 깜짝 놀랐다. 이후 급속도로 프랑스 음식에 퍼져나가 오늘날에는 프랑스 사람들이 더욱 애용하는 식재료가 됐다.

학창 시절, 트러플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그 향기와 맛이 무척 궁금했다. 호기심에 처음으로 트러플을 접해본 건 트러플 오일로 향을 낸 음식이었다. 신선한 트러플을 맛보기에는 당시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트러플 오일은 최상급 오일에 트러플을 넣어 향을 낸 것으로 훨씬 부담 없이 트러플 향을 즐길 수 있다. 파스타나 리소토 등에 몇 방울만 떨어뜨려도 풍미가 한껏 살아난다. 

▶식감은 생밤을 슬라이스한 느낌, 풍미와 향은 가히 최고

생트러플은 일본 유학 시절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처음으로 맛봤다. 당시 그 집 식사 금액이 15만원이었는데,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모아 한 달 전에 예약하고 혼자 갔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혼자 밥 먹는 게 일상적이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혼자 식사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혼자 가서라도 그 레스토랑에서 최고의 코스 요리와 좋은 서비스, 와인 등을 즐기며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다. 물론 혼자 레스토랑에 가면 싫어하는 직원도 있다. 혼자 가나 2명이 가나 일이 똑같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혼자 잘 다녔다.

넓은 테이블에 앉아 인테리어를 구경하면서 이 집 서비스가 어떤지, 다른 테이블에는 어떤 요리가 나오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에피타이저, 생선 요리 등 음식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있던 찰나에 푸아그라가 나왔는데 그 위에 블랙 트러플이 올려져 있었다. 세계 3대 진미인 푸아그라와 트러플을 동시에 맛보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푸아그라의 진농한 맛와 무거운 보디감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거기에 트러플이 푸아그라의 감칠맛을 은근히 감싸며 풍미를 한층 더 끌어올려줬다. 음미할수록 “이것이 바로 트러플이구나” 하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트러플만 맛보면 식감은 생밤을 슬라이스한 느낌에 트러플 오일 향이 더해진 느낌이었다. 역시 음식은 맛보다 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 순간이었다.

트러플은 소화를 돕고 손발이 저리고 힘이 없는 사람에게 좋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에도 이런 트러플만큼 훌륭한 버섯들이 많다. 특히 상황버섯이나 송이버섯은 훌륭한 맛과 향을 갖고 있다. 효능 또한 인정받고 있으니 꼭 트러플을 먹지 못한다고 해서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비싼 돈을 주더라도 한 번쯤 트러플을 경험해보길 적극 추천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누리는 삶의 행복에 젖어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은가! 

지금은 한국에서도 프랑스 요리뿐 아니라 다양한 요리에서 트러플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김대천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압구정동의 ‘톡톡’에서 스페셜 행사를 진행했을 때 먹어본 트러플은 환상이었다. 스테이크 위에 블랙 트러플을 듬뿍 올려주는데 얼마나 맛있던지! 그 비싼 재료를 원가 따지지 않고 손님에게 넘치도록 주고 싶어 하는 ‘셰프의 넉넉한 마음’이 전해져서 고마웠다. 

굳이 트러플이 아니더라도 한국에서도 트러플 못지않은 좋은 재료들을 찾고 알려 손님에게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어쩔 수 없다. 요리사란.

2. [매경이코노미][HEALTH] 마른형 비만 낳는 ‘근감소증’ 뭐길래-걷기·계단 오르내리기…다리 근력 키워라

최근 뼈의 노화를 말해주는 골다공증뿐 아니라 근육의 노화를 뜻하는 ‘근감소증’이 이슈로 떠올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야위어 보이거나 적정해 보이는 체형인데도 검사를 해보면 근육량이 평균치보다 낮은 ‘마른형 비만’ 역시 근육 감소와 관련 있다.

근감소증(Sarcopenia)은 그리스어에서 기원한 근육(muscle)이란 뜻의 ‘sarco’와 줄었다는 의미의 ‘penia’가 합쳐진 단어다. 근육 감소는 다른 말로 하면 ‘노쇠’다. 노쇠의 가장 큰 특징은 기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 몸의 관절을 붙들고 있는 근육이 튼튼하지 못하다 보니 그에 따른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김경철 차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앉았다 일어설 때 한 번에 일어나기 힘들거나, 잘 뛰지 못하는 것, 혹은 쉽게 지치고 만성 피로를 느끼는 등의 에너지 저하 상태 모두 노쇠의 증상”이라면서 “골 감소가 그 자체로 질환은 아니지만 골다공증 예방 차원에서 치료가 필요한 것처럼 근감소증 역시 2차적인 질환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노화와 함께 우리 몸의 근육량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근육량이 선천적으로 적거나, 근육 운동이 부족하다든지 식습관이 잘못 형성돼 근육 감소의 속도가 빠른 경우는 문제가 된다. 

근감소증은 각종 신체 기능의 감소, 장애를 일으키고 낙상 또는 그로 인한 사망 위험성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뇌졸중, 심장병, 치매 등 노인성 질병의 발병으로도 이어진다. 김 교수는 “꼭 노인뿐 아니라 나이를 불문하고 30~40대에도 근감소증을 보일 수 있다. 평소 걸어다는 것이 힘들고 에너지가 저하된 상태가 지속된다면 근육 감소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근감소증 진단은 체지방검사를 통해 근육량을 체크함으로써 손쉽게 가능하다. 자신의 근육량이 평균 수치보다 어느 정도 낮은지 등을 따져 판단한다.

아직까지 근육 감소를 치료할 약은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식습관, 생활습관을 통한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단백질이 풍부한 식단을 유지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근육 운동을 자주 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 교수는 “자체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체지방을 줄이고 근력을 늘리는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서 만성 피로가 크게 개선되는 결과를 봤다”고 말한다.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무작정 굶는 경우가 많은데, 탄수화물 공급이 안 되면 일차적으로 근육에서 필요한 영양분이 먼저 빠져나간다. 지방은 그대로 있고 근육만 줄어드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게 김 교수의 조언이다. 

근육을 강화시켜주는 대표적인 운동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근육 저항 무산소 운동이 꼽힌다. 아령이나 운동기구 등을 활용해 근육을 수축시키고, 중간에 잠시 정지해 근육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운동을 말한다. 특별히 몸속 근육의 4분의 1이 몰려 있는 허벅지와 엉덩이 부분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이 필수적이다. 근감소증을 겪는 고령자에게는 낙상을 예방할 수 있는 다리 근력운동과 평형 기능 향상 운동이 필요하다. 걷기(유산소 운동), 의자에서 앉았다 일어서기, 계단 오르내리기가 권장된다. 5층 이하 건물은 계단을 이용하고, 팔·다리·어깨·배·등·옆구리 근력운동과 함께 목·어깨·허리·옆구리·허벅지 앞·허벅지 뒤·종아리 스트레칭을 생활화하면 좋다.

3. [동아일보][횡설수설/이진]옷차림과 커뮤니케이션

대화 때 인상이 말로 전달된다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의 이미지가 각인될 때 말의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7%인 반면 청각 요소는 38%, 시각 요인은 55%나 된다. 칭찬을 늘어놓아도 몸짓이나 복장이 상대의 마음을 파고들지 못하면 비(非)호감을 주게 된다. 1971년 ‘조용한 메시지’에서 앨버트 머레이비언은 이런 내용을 설파했다. 그의 이름을 따 ‘머레이비언의 법칙’으로 통한다.

제7차 노동당 대회 폐막 후 첫 현지 지도에서 김정은이 양복을 입었다. 인민복이 아니라 양복을 입고 시찰한 건 처음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김일성 시대의 향수를 떠올려 권위를 강화하려는 ‘패션 정치’인 셈이다. 아쿠아스큐텀 같은 영국 명품을 즐겨 입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옷을 잘 입는 것은 국가가 나에게 부여한 아주 중요한 임무”라며 옷차림이 백 마디 말보다 더 나은 ‘정치 소통’임을 강조했다. 

영국의 한 컨설팅 기업은 안내담당으로 채용한 27세 여성이 하이힐 대신 단화를 고집하자 출근 첫날 바로 해고했다. 신발도 마음대로 신지 못하게 하나… 항변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로펌에 근무하는 변호사는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긴팔 와이셔츠에 넥타이가 필수다. 때와 장소와 경우에 맞는 옷이 따로 있고, 규율이 엄격한 직장에 다니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정장 차림으로 권위의 차별화를 꾀한다. 옷을 못 입는 쪽보다 잘 입는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경향을 보이는 건 동서양이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여야 3당 원내대표를 만났을 때 분홍색 재킷을 입었다. 굳은 의지를 내비치기 위해 종종 입던 카키색 ‘전투복’과 달리 부드러움과 따스함을 풍겼다. 협치를 염두에 두고 야당 지도부에 열린 마음을 보여주려 한 듯하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새누리의 빨강과 더민주의 파랑이 교차하는 넥타이로 협력 의사를 내비쳤다. 옷차림만으로도 소통의 문턱을 한결 낮출 수 있긴 하다. 그러나 옷차림보다는 결국 진심이라야 벽을 넘어 통하고 다른 사람을 움직인다.

4. [중앙일보][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아메리칸 아이돌, 안녕히

엄마들은 노래의 위대함을 안다. 쇠심줄같이 말 안 듣던 아이도 노래에는 반응을 한다. 말에 멜로디·리듬을 약간만 섞으면 눈을 크게 뜨고 잠깐이라도 귀를 기울인다. 사람이 노래를 좋아하는 건 본능이다. 노래할 줄 아는 건 사람의 강력한 무기다.

노래하는 목소리는 모든 악기의 꿈이다. 피아니스트들은 뚝뚝 끊어져 있는 건반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이 건반들을 연주하면서 부드럽게 잇는 게 숙제다. 딱 사람 목소리처럼 만들면 된다. 또 바이올린·첼로 연주자에게 ‘사람 목소리같이 들렸다’는 말은 최고의 찬사다.

한 지휘자는 내게 “오페라 지휘야말로 가장 좋은 지휘 연습이었다”고 했다. 오케스트라가 추구하는 음악의 원리가 노래 속에 다 들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세계적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중 상당수가 오페라로 경력을 시작했다. 사람 목소리, 노래가 이렇게 대단하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노래를 안 하게 됐을까. 목소리라는 눈부신 명기(名器) 하나씩 품은 사람들이 왜 자신의 노래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닫힌 방에서만 노래를 할까.

리 노래 실력이 그 정도로 형편없진 않다. 캐나다 심리학자 로라 커디의 실험을 보자. 자신을 음치라고 밝힌 사람 100명을 데려다 정교한 검사를 했더니 진짜 음치는 두 명이었다(『음악 본능』, 크리스토프 드뢰서). 또 과학자들은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의 뇌가 음악을 본능적으로 처리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사실, 보통 사람들의 노래 실력에 대한 찬사는 ‘아메리칸 아이돌’ 때문에 한 거다. 2002년부터 미국 폭스TV에서 방영한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전 세계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가 된 건 노래를 기차게 잘하는 참가자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폐지된 정도가 아니라 망했다. 제작사는 빚 4억2000만 달러에 짓눌려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한다.

이 프로그램의 초라한 폐지엔 의미가 있다.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시들해진 인기도 예사롭지 않다. 이 프로그램들은 보통 사람들의 노래에 대한 기준을 너무 높여놨다. 알고 보면 나름의 방식으로 모두 잘 노래하는데 말이다. 그동안 수고한 ‘아메리칸 아이돌’에 이제 안녕을 고하며, 평범한 사람들의 그저 그런 노래가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 맞이를 준비해본다. 스스로 음치인 줄 아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보석 같은 노래를 들을 시간이다.

5. [서울신문][김일수 樂山樂水] 가정의 달에 생각나는 것

나뭇잎이 푸르른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와 어버이를 생각하는 절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5월은 가정의 달이라 일컬어지기에 지극히 합당하다. 왜 여기에 부부의 날과 같은 절기가 빠져 있는지 조금은 아쉽다. 오늘날 이혼은 급증하고, 혼외정사는 간통죄가 더이상 범죄가 아닌 상황에서 언제 범람할지 모르는 위험한 형편이다. 헌법재판소가 오랜 도덕과 양심, 법률에 새겨진 간통 금기를 최근 들어 자유라는 이름으로 걷어 낸 뒤 간통은 이제 형법상의 범죄가 아니라는 인식을 넘어 양심과 도덕에 반하는 죄라는 인식마저 훌훌 날려 보낸 것이다. 이젠 각자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 된 것이다.

우리네 가족과 가정은 지금 평안한가. 그렇지 않아 보인다. 헌법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는 ‘성적 지향’을 인권목록화한 뒤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경우에 따라 처벌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유엔인권기구의 압력 탓이라고도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남미, 유럽 여러 나라들의 새로운 가정법제들이 무슨 유행처럼 점점 이를 강하게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성적 취향을 혐오하는 문제가 새로운 처벌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안전해 보이던 혼인과 가족, 가정의 개념이 일대 혼란의 파고 앞에 직면해 있다. 마치 인간을 ‘연고자 없는 개체’처럼 상정해 놓고 개인의 자유 앞에 일체의 도덕률이나 종교적 계명은 말할 것도 없이 가정, 민족, 국가로부터 어떤 구속적인 의무도 인정하지 않는 사상이 여기에 깔려 있다. 도덕적 허무주의, 가치무정부주의, 자유지상주의, 무신론적 실존주의 등이 혼인, 가족, 가정에 대한 전통적인 도덕관념을 배격하고 유일한 준거점은 공존자 상호 간의 의사 합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회계약의 가설을 최상위의 정당성의 기준으로 끌어들여 결혼도 사회계약의 일환으로, 가정도 역시 사회계약의 산물로 본다. 이들 제도가 단지 사회계약의 일종에 불과하다면 계약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지 해약할 수 있는 자유 또한 부여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기로 결혼과 가족, 가정의 성격은 제도·전통·문화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들 성격은 공통적으로 결혼, 가족, 가정이 결코 우연성의 산물처럼 주기적으로 변하거나 개인의 취향대로 해체하고 변형시킬 수 있는 성질의 인간관계가 아니라 한번 형성된 제도적 틀을 확고히 하고 유지 발전시키려는 사회적 의지에 의해 질서 잡힌 인간관계임을 말해 준다. 문화와 전통, 윤리와 종교규범도 이 같은 지속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들 제도에 내포된 정신적 의미에 신성성과 존엄성과 같은 부가적 성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런 정신적 의미는 현대사회에서 다소 퇴색했지만 그 근본의 질서적인 내용까지 변질된 것은 아니다. 헌법이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기초로 성립할 혼인, 가족생활의 보장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한 것도 이런 의미다.

일찍이 헤겔도 혼인에 감정적 계기가 포함돼 있어 혼인이 동요, 해소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았다. 하지만 국가의 입법 단계에서 이 가능성을 최대한 저지해 인륜의 법이 임의대로 침범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오늘날 동성 간에도 사랑의 염과 합의에 의하기만 하면 결혼과 가족공동체의 형성이 가능하다는 해괴한 신개인주의가 우리의 문턱까지 밀고 들어와 있다. ‘개인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하자’는 이 간교한 사상은 소리 없이 인류 공동체를 자멸로 이끌고 갈 사탄의 전략이나 다름없다.

만약 이런 전략이 이 땅에서 머지않은 장래에 성공한다면 출산의 고통과 즐거움, 모성애나 부성애, 효도 같은 언어를 까맣게 잊고 살 날도 곧 다가올 것이다. 어미의 품을 모르는 아이들, 아버지의 무게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이상한 동거 형태의 가족에서 사회 속으로 뛰어들 날도 곧 오리라. 게다가 정상적인 혼인과 가족, 가정의 규범이 무너지도록 방치한다면 짐승보다 문란한 혼거나 군집 형태의 가족 등장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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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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