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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4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산업은행은 어떻게 복마전이 되었을까

검찰이 강만수 전 산업은행 회장과 대우조선 과거 경영진과의 유착 고리를 포착하고 본격 수사에 나섰다. 대우조선의 경영비리 및 부정 회계에 이어 대주주인 산업은행 비호 의혹으로까지 수사 범위가 확대되는 분위기다. 검찰이 강 전 회장을 출국금지시키고 자택과 사무실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실시했다니 혐의가 상당 부분 드러난 게 아니냐는 판단이다.

강 전 회장이 전임 MB(이명박 대통령) 정부의 실세였다는 점에서 검찰 칼날이 MB정부 핵심 인사들로 향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그가 MB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 경제분과 간사를 거쳐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내는 등 ‘MB의 경제 책사’로 불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단순히 넘겨짚는 추측만은 아니다. 비리가 있었다면 정치적 계산을 떠나서도 철저한 수사가 마땅하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역시 산업은행장을 지낸 민유성 씨가 동시에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민간단체로부터 고발된 배임혐의 사건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간단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의 재임 시절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특정인에게 시가보다 싼값에 넘겼고 매수자는 이를 다시 매각해 막대한 매수차익을 올렸다니, 명확한 사실 관계 확인이 필요하다.

과거에도 산업은행 전직 수장들이 줄줄이 검찰 수사 및 조사를 받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근영 총재가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특검수사를 받았으며 정건용·김창록 총재도 조사 대상에 올랐었다. 홍기택 전 회장도 청와대 서별관회의 관련 발언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도중하차 등으로 구설수에 휘말려 있다. 산업은행 조직문화에 결정적인 흠결이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정치적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문제다.

현 이동걸 회장 체제에서도 지난날 운영기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대우건설 사장 선임과정에서의 혼선이 하나의 사례다. 대우조선 경영비리와 관련해 그토록 질책을 받고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탓이다. 산업은행은 지금 새로운 도약의 발판 마련을 위해 분위기 혁신을 꾀하는 중이다. 말로만 얼렁뚱땅 혁신을 외치는 모양새가 돼서는 곤란하다.

2. 국민들 지갑 털어 곳간 채우는 건강보험

최근 연속 흑자로 적립금이 쌓이고 있는데도 보건 당국이 건강보험료를 필요 이상 거둠으로써 국민 부담을 가중시켜 온 것으로 드러났다. 병·의원과 약국 등에 지급하는 의료수가를 지나치게 높여 책정하는 등 지출 규모를 부풀리는 얄팍한 수를 썼다고 한다. 건강보험 곳간을 채우려고 꼼수를 동원해 국민 호주머니를 턴 셈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어제 발표한 ‘2014회계연도 결산’ 보고서 분석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건보 재정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흑자를 기록하며 지난해 말 기준 누적적립금이 17조원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은 해마다 건보료를 올렸다. 인상 폭이 1.6~5.9%로 나타났다. 건보료율이 2011년 5.64%(보수월액 기준)에서 2016년 6.12%로 오른 것이 그 결과다.

방법 자체가 고약하다. 병·의원에 지출하는 요양급여비 등을 과다 추계해 지출예상 총액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수법을 썼다니,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친 것이나 다름없다. 거두지 않아도 될 돈을 거둬 수익을 남겼다는 얘기다. 국민들은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생활이 쪼들리는 판국에 건강보험공단은 속 편하게 돈을 거둔 것이다.

보건 당국은 급속한 고령화 대비 및 건보 보장성 확대를 위해 보험료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전혀 일리 없는 얘기는 아니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허위청구 등 과오·낭비·남용·부정으로 인한 건보재정의 누수 규모가 4조 8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부정·부당 청구로 줄줄 새나가는 보험급여만 막아도 보험료 인상 없이 충분히 흑자 기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급증 요인을 감안할 때 적립금을 쌓아두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장부상의 숫자 놀음으로 국민 호주머니를 털 일은 아니다. 온갖 구멍으로 허투루 빠져나가는 돈부터 막는 게 먼저다. 집을 3채 이상 소유하면서도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이 68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반면 퇴직·실직자의 경우 지역보험에 편입됨으로써 직장에 근무할 때보다 훨씬 많은 보험료가 청구돼 민원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현행 건보료 체계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는 작업도 서둘러야 할 일이다.

[서울신문]

3. 北 또 미사일 도발, 사드 국론 통일 시급하다

북한이 어제 황해도 은율군 일대에서 노동미사일로 추정되는 탄도탄 두 발을 쐈다고 한다. 지난달 19일 노동미사일 두 발과 스커드 미사일 한 발을 발사한 이후 15일 만의 도발이다. 이번에 쏘아 올린 미사일 가운데 한 발은 발사 직후 폭발했고, 다른 한 발은 한반도를 가로질러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 국민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지만 미사일 발사로 주변국에 강력한 타격 능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은 부수 목적일 뿐이다. 북한이 결정적으로 노리는 것은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우리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확대 재생산해 국론 분열로 몰아가는 데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일본의 EEZ에 떨어뜨린 미사일의 비행거리는 1000㎞ 안팎에 이르렀다고 한다. 동해안의 강원도나 함경도에서 발사한다면 사실상 일본 대부분 지역이 사정권이다. 북한이 최대 사거리가 1300㎞를 넘는 것으로 알려진 노동미사일을 실전 배치한 것은 1999년이다. 북한은 당시 노동미사일을 10곳 남짓한 전국의 발사 기지에 분산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7년이 지나는 동안 명중률을 비롯한 노동미사일의 성능은 크게 향상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 굳이 황해도 기지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것에도 명백한 의도가 엿보인다. 남한 내 어디라도 노동미사일의 사정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상의 협박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사드 배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오랜 고심과 철저한 검토를 거쳐 내린 결정임에도 갈등이 멈추지 않아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배치 예정 지역인 경북 성주 주민들의 반발이 그치지 않는데다 사회적 갈등도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통합을 이야기해도 시원치 않을 정치권 인사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틈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것은 북한의 상투적인 대남 전술전략이다. 이 시점의 미사일 발사는 그 갈등의 간극을 극대화하겠다는 의도일 수밖에 없다.

노동미사일은 사정거리가 짧다고 해도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무기다. 미국 본토 공격까지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도 핵탄두를 실을 수 있다. 그래도 노동미사일은 이미 배치된 패트리엇 미사일로도 일부 요격이 가능하다. 하지만 훨씬 더 높은 고도로 날아오는 장거리 미사일은 어림도 없다. 배치 예정 지역 주민의 현실적 걱정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기에 앞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에 맞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대안부터 내놓아야 할 것이다. ‘남남갈등’은 결국 미사일로 되돌아올 뿐이라는 사실을 북한은 이번에도 확인시켜 주지 않았나.

4. ‘인지기능 장애’ 교통사고 막을 대책 없나

지난달 31일 발생한 부산 해운대 교통사고의 운전자는 평소 뇌전증(간질)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발작 증세를 일으켜 24명의 사상자를 낸 것이다. 지난해 뇌전증 진단을 받은 문제의 운전자는 사고 당일 처방약을 먹지 않았다. 통제 불능의 대형 사고를 낼 수 있는 이런 환자가 어떻게 버젓이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는지 허술한 운전면허 제도가 새삼 여론의 도마에 올라 있다. 어이없는 사고는 그 다음날 전북 익산에서도 있었다. 당뇨병을 앓는 운전자가 저혈당 쇼크로 의식을 잃는 바람에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자칫 대형 인명피해 사고가 될 뻔했던 것이다.

해운대 교통사고 운전자는 뇌전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환자였는데도 지난달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무사히 통과했다. 운전 중 발작 가능성이 있어 정밀 심사가 필요했음에도 간단한 신체검사만 받고 1종 보통면허를 갱신할 수 있었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정신질환자, 뇌전증,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알코올 중독자 등은 운전면허를 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6개월 이상 입원 환자가 아니고서는 도로교통공단이 부적격자를 파악할 수가 없으니 문제다. 선진국의 제도와 비교하자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미국, 일본에서는 뇌전증, 당뇨병 등은 운전면허 취소 사유다. 비교적 흔한 질병인 당뇨병 환자만 해도 유럽은 5년마다 의료진의 소견서를 제출하도록 강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치매로 6개월 이상 입원이나 치료를 받아야만 수시 적성검사를 받도록 관리하는 정도다.

이런 사정을 알고 보면 도로 위는 시한폭탄이 내장된 위험지대인 셈이다. 교통안전을 위해 운전 부적격자를 가려내는 규제 방안 마련이 하루가 급하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청은 뇌전증 환자의 운전면허 갱신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우선 운전면허 수시 적성검사 대상을 확대하겠다는데, 현행 검사 자체가 지나치게 부실해 실질적인 효력이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벌써부터 고개를 든다. 최근 4년간 수시 적성검사를 받은 운전자 중 실제로 면허가 취소된 사람은 2.2%에 불과했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이 걸린 문제인 만큼 ‘눈 가리고 아웅’식의 형식적 처방은 있을 수 없다. 당장 수시 적성검사부터 강화해야 한다.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건강보험 자료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일이다.

5. 강만수 수사, ‘하명·표적’ 의혹 자초 안 돼

대우조선해양 부실 경영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명박(MB) 정부의 실세인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으로 향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의 최대주주로 재무책임자(CFO)를 파견하는 등 회사 경영을 실질적으로 감독하는 역할을 해왔다. 때문에 산은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미 예정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산은의 옛 수장까지 부실 감독도 모자라 대우조선 임원과 일감 몰아주기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그야말로 직원과 임원, 감독기관까지 의혹에 휩싸인 ‘비리 백화점’의 양상을 띠고 있다.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은 그제 강 전 은행장의 서울 대치동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또 강 전 은행장 지인들이 운영하는 지방의 중소건설업체 W사와 B사 등 두 곳도 압수수색했다. 강 전 은행장은 대우조선 경영진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지인의 업체에 투자를 하도록 하거나 일감을 몰아주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강 전 은행장이 재직하던 시기는 이미 구속 기소된 남상태· 고재호 전 대우조선 사장과 겹친다. 그래서인지 의혹을 산 비위 형태가 남 전 사장과 닮은꼴이다. 그의 지인이 대표로 있는 W사는 대우조선으로부터 수십억원의 하도급을 수주했고, 지인들이 대주주로 있는 B사 역시 대우조선 자회사인 부산국제물류로부터 지분투자를 받는 등 수십억원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구속된 남 전 사장은 자신의 대학동창이 운영하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20억여원대의 이익을 취하고 수출계약을 추진하면서 미화 46만 달러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강 전 은행장이 일감을 몰아주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고 금품 수수 등의 정황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강 전 은행장에 대해 드러난 의혹뿐만 아니라 분식회계를 묵인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강 전 은행장이 MB 정권의 실세였다는 점에서 하명·표적 수사라는 의혹도 제기되는 게 사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검찰은 강 전 은행장은 물론 정·관계 인사들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를 해야 한다. 대우조선에는 그동안 7조원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혈세가 투입됐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대우조선을 ‘비리 백화점’으로 만든 부실 경영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이 주장한 청와대 서별관회의의 진상도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하명·표적 수사라는 비난을 피하고 사실상 실패로 끝난 포스코 수사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다.

[동아일보]

6. 청년수당 강행한 박원순, 속 보이는 대선행보 그만두라

서울시가 어제 청년활동지원비 50만 원씩을 현금으로 2831명에게 지급했다. 취업 의지가 있는 저소득층 청년에게 6개월까지 월 50만 원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보건복지부는 즉시 중지 명령을 내렸다. 지방자치단체는 복지사업을 신설할 경우 복지부와 협의해야 하고 복지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조정 절차를 밟도록 사회보장기본법에 명시돼 있다. 서울시는 조정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서울시는 복지부의 시정 명령을 무시하고 복지부가 직권 취소하면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청년취업난은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으로 국가 차원에서 대처해야 할 문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청년취업활동 지원을 위해 6개월간 60만 원씩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박 시장이 청년활동지원비 사업이 꼭 필요하다고 여긴다면 더민주당을 통한 국회 차원의 논의로 전국적 시행을 추진하는 것이 바른 순서다. 서울시가 중앙정부에 맞서 투쟁하듯 강행하니 박 시장은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는 것이다.

경기 성남에서도 이재명 시장이 가구 소득수준을 불문하고 1년에 100만 원씩 나눠주는 청년수당을 강행해 복지부와 갈등을 빚었다. 경기도의 제소로 성남시 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전국에서 성남시는 기초시군 중, 서울시는 광역시도 중 가장 부자다. 정부교부금을 받지 않고 있으니 정부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다른 지자체는 하고 싶어도 역부족인 사업을 강행해 중앙정부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참 볼썽사납다. 재정 여건이 열악한 지자체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고려해야 한다. 

청년활동지원비로 돈을 받는 청년들이야 당장 공돈이 들어오니까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채용과 연계가 부족해 돈을 들인 만큼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박 시장이 성과도 불투명할뿐더러 위법으로 판결이 날 수 있는 사업을 강행한 것은 내년 대선 출마를 겨냥한 포퓰리즘 조치로 볼 수밖에 없다. 차라리 청년수당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보는 것이 대권을 꿈꾸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다.

[매일경제]

7. `부동산 과열` 우려하는 금통위원 경고 새겨들어야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들이 서울 일부 지역 부동산시장 과열과 이에 따른 가계부채 부실화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지난달 14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통위원 4명은 수도권 재건축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과 급증하고 있는 집단대출이 실거래 가격 하락, 분양권 포기 등으로 부실화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금통위원들이 부동산시장 과열을 경고한 것은 지난 6월 기준금리 인하 후 멈추지 않은 가계대출 증가세 탓으로 보인다. 6월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4조8000억원 늘어 6월 말 잔액이 사상 처음 500조원을 넘어섰다. 금리 인하가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기업 투자로 연결되기보다 부동산시장만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니 금통위원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저금리로 갈 곳을 찾지 못한 돈이 부동산시장으로 쏠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수기로 꼽히는 7월에도 6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4조2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올해 5월부터 대출심사를 강화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전국으로 확대했고, 7월부터 분양가 9억원 이상 아파트 중도금 집단대출 규제도 시행했지만 약발이 안 먹히고 있는 것이다.

강남 재건축시장의 과열 양상은 계속되고 있다. 강남구 개포주공3단지 재건축 조합은 3.3㎡당 4310만원의 고분양가를 책정하는 바람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보증거부로 제동을 거는 일까지 벌어졌다. 강남 압구정동 아파트도 지난 5월 말 통합재건축 정비계획 수립이 알려지면서 두 달 새 가구당 3억~4억원 뛰었다고 한다. 집단대출을 규제하자 풍선 효과로 비강남권 분양시장도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로 펄펄 끓고 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송파 등 강남 일부에서는 역전세난이 벌어지고 있고, 미분양 주택도 증가하는 등 소화불량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공급물량 과잉으로 외환위기 때처럼 집값과 전세금이 떨어지면서 역전세난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저금리가 키운 부동산 버블 붕괴로 가계부채가 부실화하면 한국 경제는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국토교통부는 금통위원들의 경고를 허투루 듣지 말고 부동산시장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으로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8. 유가 급락이 한국 경제에 미칠 충격에 대비를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9월 인도분 가격은 지난 2일 배럴당 40달러 선 아래로 떨어졌다. 두 달 새 20% 넘게 떨어져 본격적인 약세장에 진입한 것이다. 원유 가격은 2014년 여름까지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았지만 그 후 공급과잉이 심해지면서 가파르게 떨어졌다. 올해 2월에는 26달러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글로벌 저성장 탓에 원유 수급 불균형은 금세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지금 선진국들이 비축해둔 석유는 30억배럴이 넘는다. 이는 67일 동안 쓸 수 있는 양이다. 미국 내 재고만 5억배럴로 지난 5년 평균보다 1억배럴 많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산유국들은 더 열심히 원유를 퍼올리고 있다. 현재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의 산유량은 작년 말 사상 최고치(하루 3300만배럴)에 가까운 수준이다. 생산성 향상으로 셰일 오일 손익분기점이 40달러로 떨어지면 원유 공급은 더욱 탄력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국제 유가는 달러로 표시되므로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 유가는 오를 법하지만 지금은 달러가 약세인데도 유가가 떨어지고 있다. 이는 그만큼 글로벌 원유 수요가 부진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유가 하락은 세계 경제의 맥박이 그만큼 느려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렇다면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로서도 유가 하락을 반길 수만은 없다. 1980년대 말처럼 저유가가 한국 경제에 큰 축복이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저유가가 세계적인 수요 부진에 따른 것일 때는 수출 시장은 되레 쪼그라들고 국내적으로도 유가 하락에 따른 실질 소득 증가가 소비와 투자 활성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5년 전 한 해 1000억달러에 이르렀던 원유 수입액은 저유가 덕분에 그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조선과 유화, 해외 건설과 플랜트 수출은 저유가 탓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작년 석유제품 수출은 37%나 줄었고 유화 수출도 21% 감소했다. 우리의 황금 시장인 중동 지역 수출은 올해 들어 20% 안팎 감소를 기록하고 있다.

산유국 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질 수도 있다. 한국 경제가 유가 하락 충격으로 저성장의 늪에 더 깊이 빠져들지 않도록 체계적인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중앙일보]

9. 소통 부재가 빚은 이대 사태 되풀이돼선 안 된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어제 직장인 대상 ‘평생교육 단과대’ 신설 계획을 철회했다. 지난달 28일부터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설립 반대 농성을 벌인 지 6일 만이다. 학생들도 농성을 풀고 곧 학업에 복귀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교육부와 대학사회는 막중한 책무성을 되돌아봐야 한다. 학생들의 반대로 교육부 재정사업을 폐기한 첫 대학이 나왔고, 17년 만에 대학가에 공권력이 투입된 오점을 남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 정책의 맹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교육부가 대학 구조개혁을 명분으로 연간 2조원이 넘는 재정지원을 미끼로 대학을 뒤흔들다 역풍을 맞은 것이다. 고졸 직장인과 30세 이상의 경력 단절 여성 등에게 4년제 대학 문을 열어주는 평생교육 단과대도 그중 하나다. 1년간 10곳에 30억원씩 대주는 것으로 취지는 좋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선취업 후진학 제도 활성화’ 발언 직후 급조된 게 문제다. 당장 단과대를 신설 해 내년 3월 개강해야 하는 일정인데도 지난달 이화여대 등 4곳을 추가 선정해 밀어붙였다. 대통령 임기 내 ‘완수’ 구설이 퍼진 연유다.

그 과정에서 이화여대에서 일이 터졌다. 이 대학은 올해 대학인문역량강화(CORE)와 산업 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PRIME) 사업에도 뽑혀 3년간 250억원을 확보했다. 그런데 구성원과의 협의 없이 평생단과대도 만들려다 갈등을 겪은 것이다.

당연히 최 총장과 대학본부의 책임이 크다. 기존과 유사하거나 직업교육 같은 전공을 내놔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 특히 교수들에게는 이런 계획을 며칠 전에야 알렸다고 한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명문대가 돈에 홀려 ‘학위장사’를 하려 한다는 비난을 자초한 셈이다. 학생들도 반성해야 한다. 대화보다는 물리적 행동을 택해 ‘순혈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게 됐다.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대학 개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일방통행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이번 사태가 보여줬다. 교육부와 대학사회가 깊이 되새겨야 할 교훈이다.

[세계일보]

10. 중국의 갑작스러운 비자발급 제한, 사드 보복인가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상용비자 발급받기가 까다로워졌다고 한다. 중국을 사업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에게 발급하는 상용비자 신청 때 중국쪽 기업의 초청장을 반드시 첨부하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중국 외교부 산하 여행사의 초청장으로도 상용비자를 발급해 왔다.

중국비자센터는 “여행사 초청장은 편법이니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원칙대로 하겠다는 뜻이다. 엄격히 따지자면 지금까지의 관행이 비정상이었다. 중국 외교부 산하에는 사실상 국영인 2곳의 여행사가 있다. 그중 한 곳만 중국비자센터와 변칙적으로 손을 잡고 초청장을 발급해 왔다. 다른 한 곳은 늘 불만을 지녀왔다고 한다. 이들 여행사 간 알력 때문에 비자발급을 제한하게 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비자발급 제한 사태를 무심코 넘길 수가 없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결정에 중국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을 상황임을 감안할 때 보복조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게 사실이라면 한·중관계를 악화시키는 졸렬한 행태다.

중국은 최근 도를 넘는 사드 압박을 이어오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달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고압적 태도로 “사드가 끝내 배치될 경우 한반도 정세와 중·한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차분한 논조를 이어온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도 어제 사설에서 “한국 정책결정자가 독단적으로 자국의 안위와 미국의 사드를 한데 옭아매 역내 안정이 깨지고 주변국 안보이익에 손해를 끼쳤다”고 성토했다. 중국 광전총국이 각 지역 방송국에 대해 한류스타 프로그램이나 한국 TV의 쇼의 판권을 당분간 승인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도 잇따랐다.

이 같은 일련의 행태는 ‘G2 중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다. 특히 비자발급 제한이 사드 압박 차원에서 이루어진 조치라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국격을 스스로 훼손하는 사려 깊지 못한 행위임을 깨달아야 한다.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킬 최소한의 자위 수단이다. 북한은 어제도 보란듯이 노동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것은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중국은 사드를 탓하기에 앞서 사드 배치 원인을 제공한 북의 핵·미사일 도발 억제에 나서야 한다. 중국 정부는 역지사지해 한국의 입장을 깊이 헤아리기 바란다.



주요 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일터삶터] 밥값 내는 사람

밥값에 관한 고민은 스무 살, 대학생이 된 첫날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어리바리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쏘다니다 2학년 선배를 마주쳤던 그때. 꾸벅 인사를 하니, 그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점심 누구랑 먹었어?" 했다. 나는 옆에 있던 친구를 가리키며 "얘랑 먹었어요" 했는데, 선배가 화들짝 놀라는 거다. "첫날부터 네 돈 주고 먹었단 말이니?"

그럼 누구 돈으로 먹는다는 것인지 잠시 생각하고 있는데, 캠퍼스의 개나리들이 바르르 흔들리도록 선배가 한참을, 으하하하, 웃었다. 그러곤 몹시 귀엽다는 듯, 가볍게 꿀밤을 주는 시늉을 하며 "신입생은 처음 한 달은 돈 주고 밥 사 먹는 거 아니야. 선배들 따라다니면서 얻어먹어야지" 했다.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아이처럼 얼어붙은 내게 "난 1학년 내내 돈 주고 밥 먹은 기억이 없는걸!" 하고 덧붙이며. 

물론, 선배들에게 살갑게 굴어 친분을 쌓고 학교생활도 배우란 뜻이었을 거다. 그러나 고지식하고 주변머리 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나는, 그날 이후 점심시간마다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학생식당 앞을 맴돌다 아는 선배가 지나가면 대뜸 밥 사 달라고 하란 말인가? 전날 밤에 미리 문자를 보내서 내일 밥 사 주시겠냐고 물어봐야 하나? 넉살 좋은 친구한테 은근히 묻어갈까? 그나저나 선배들도 똑같은 학생인데 돈이 맨날 어디서 나오나?'

3학년쯤 되자 그렇게 속이 편할 수가 없었다. 선배들이 점심 사 주는 '명랑하고 살가운' 후배가 되려 애쓸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학생회관에서 라면 한 그릇 후루룩 먹고 나와도,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 한 조각으로 끼니를 때워도 좋았다. 

지금도 '혼밥'을 즐기고, 여럿이 함께 먹을 때는 더치페이가 좋다. 그러나 알다시피, 사람 수대로 나눠 밥값을 지불하는 건 어쩐지 야박하다고 여기는 문화가 있으므로, 얻어먹을 때도 있고 살 때도 있다. '아직은' 얻어먹는 상황이 많은데 '아직도' 그게 편치는 않다. 나이 많은 사람이 내는 문화도 잘 설득되지 않는다. 나이 많다고 돈도 많나. 돈이 많으면 많이 얻어먹어도 되나. 급기야, 저분이 나보다 월급은 많겠지만 딸린 식구가 몇인데, 맞벌이하고 애도 없는 내가 사실상 형편이 나은 것 아닌가, 뭐 이런 걱정까지 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스무 살 그때처럼. 

그러니 나는 오늘도 '완벽한 더치페이의 세상'을 꿈꾼다. 고지식한 이들이 밥값 때문에 머리를 싸맬 필요가 없는, 단순하고 한갓진 곳. 그곳은 결코 야박하지 않다. 각자 내는 게 당연해지면 남이 사는 밥은 더욱 특별해진다. 우르르 몰려가서 '낼 만한' 사람이 엉겁결에 계산하고, 한 시간만 지나면 식후커피와 함께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식사가 오히려 야박하지 않나. 물론 완벽한 더치페이의 세상에서도 누구 하나가 밥값을 낼 수 있다. 축하나 감사를 위해 맛있는 음식이 필요한 때다. 대접하는 이와 대접받는 이 모두 함께 추억할, '가끔' 있어 귀한 자리. 식사는 선물 같고, 대화는 축제 같은 자리.

그런 세상에서는, 내 돈 주고 밥 먹을 일이 없다는 건 좀 기괴한 일이 될 것이다. 자랑이 아니라. 상상만 해도 평화롭지 않은가, 인기도 없고 주변머리도 없는 '소심인'들이여. 


2. [연합뉴스]<추왕훈의 데자뷔> 민낯이 어때서'

길 막고 영어시험·우편함에 개똥…영국의 인종차별 민낯', '은폐, 허위보고, 묵살, 거짓해명의 연속…부산경찰의 민낯', '고립된 섬 불안한 여교사들…섬 성폭행 부끄러운 민낯', '전관로비·거액수임료…법조계 민낯 드러낸 정운호-변호사 공방'

최근 몇 달간 보도된 일부 언론 기사들의 제목이다. 하나같이 '민낯'이라는 말을 '부끄럽고 잘못된 본래의 모습'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굳이 비슷한 말을 찾자면 '치부(恥部)' 정도를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이는 사전적인 뜻과는 거리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민낯'에 대해 단순하게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라고 기술할 뿐이다. 

기사 데이터베이스를 찾아보면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민낯'이라는 말은 거의 사전적인 뜻으로만 쓰였고 사용 빈도도 높지 않았다. 비유적으로 쓰인다 해도 '있는 그대로 모습'이라는 뜻이었지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위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은 부정적인 비유는 2012~2013년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민낯'이 '숨겨야 할 부끄러운 얼굴'이라면 '떳떳이 남에게 드러낼 수 있는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 '민낯'의 반대, 즉 '화장한 얼굴'이어야 비유의 대칭이 맞는다. 화장 안 한 얼굴이 이토록 부끄러운 존재가 돼 버린 것은 여성에게 화장이 당연시되는 풍조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느덧 한국에서 성인 여성은 외출할 때는 으레 화장을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됐다. 

화장하는 연령은 점점 어려져 이제 중·고교생이라면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상당수 중·고교는 여학생의 화장을 금지하는 교칙이 있지만, 워낙 화장하는 학생이 많아 '꼴불견'일 정도로 진한 화장이 아니면 묵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지난해 초록어린이재단이 초등학교 4~6학년 여학생 123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 가까운 55명(45%)이 "화장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식품의약품 안전처는 '제대로 된 화장품 사용법'을 소개한다는 취지로 '소중한 내 피부를 위한 똑똑한 화장품 사용법'이라는 책자를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배포해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거의 전 연령대에 걸쳐 화장은 보편화하고 있지만, 문제는 부작용이다. 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 유적에서 화장품 용기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조개껍데기가 발견됐을 정도로 화장의 역사는 유구하다. 과거에는 수은이나 납, 비소와 같은 독성 물질을 원료로 만든 화장품이 많아 이를 사용한 여인들이 심각한 피부질환을 앓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초상화에 남아 있는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창백한 얼굴은 납 성분이 들어간 '베니스분'을 두껍게 바른 덕분이었다. 그 때문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망가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더 진하게 화장을 해야 했고 말년에는 납중독으로 인해 피부가 거무죽죽해지고 치아까지 상한 데다 신경증의 징후까지 보인 것으로 알려진다.

안전 규제가 엄격해진 요즘에는 유해 물질이 포함된 화장품으로 인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다수의 화장품에는 각종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이 포함돼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피부가 연약하고 피지의 분비가 활발한 어린이와 청소년은 화장품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하고 있다.

성인 여성의 경우에도 원래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진한 화장은 피부 건강은 차치하고라도 보기에도 부담되는 측면이 있다. '민낯'을 장려하는 차원에서라도 이 말을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민낯'을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잘못된 일도 아니다.


3.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한여름을 이기는 콩국수

콩은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 널리 재배되어 한민족 식생활과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주요 먹을거리다.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인 데다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해 우리 민족 건강의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이익은 ‘성호사설’ 만물문 편에서 “곡식의 역할이 사람을 살리는 데 있다면 곡식 가운데 콩의 효능이 가장 크다”고 했다. 이는 ‘숙맥’이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콩을 ‘숙’(菽), 보리를 ‘맥’(麥)이라 하는데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사람을 ‘숙맥’이라 한다. 쌀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곡식인 콩과 보리조차 구별 못 한다는 의미다.

이 콩을 가장 쉽고 맛있게 먹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많은 이들이 여름철에 즐기는 콩국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콩국수는) 콩을 갈아 만든 콩국에 국수를 삶아 말아 먹는 음식이다. 콩의 단백질과 지방질을 그대로 살릴 수 있으므로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에 몸을 보할 수 있는 음식이다”라고 설명한다. 콩국수는 한여름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 주는 전통의 서민 먹을거리다. 만들기가 그리 까다롭지도 않고 특별한 비법도 없어 보통 집에서 맛깔나게 즐길 수 있는 국민 음식이다.


그래도 좀더 호사를 하려면 조금만 발품을 팔면 된다. 이맘때 점심시간에 서울 여의도백화점 지하에 가면 진풍경이 벌어진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줄을 굽이굽이 서서 기다린다. 12시쯤 가면 20~30분 대기는 기본이다. 이곳이 ‘진주집’이다. 매일 새벽 주방에서는 가족들만 모여 콩국을 만든다. 강원도 일대의 콩을 직접 구매해 수작업으로 일일이 선별한다.

진주가 고향인 사장의 안주인은 사망했으나 비법은 전수되고 있다는 것인데, 명문대 출신 두 아들 부부까지 음식점 경영에 동참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 걸쭉하고 구수한 콩국물에 쫄깃한 면발을 자랑하는 콩국수에는 면과 국물 외에는 아무런 고명이 없다. 콩국물은 씹어 먹어도 될 정도이고. 매콤한 겉절이가 곁들여진다.

또 다른 프리미엄 콩국수를 선보이는 곳이 서울 서소문 소재 ‘진주회관’이다. 진주집과는 인척 간으로 모 재벌회장 등 유명 인사들이 즐겨 찾았다고 한다. 콩국수의 특징이나 맛은 여의도 집과 비슷하나, 익은 김치를 내놓는 것이 또 다른 맛이다.

을지로4가에 있는 ‘강산옥’은 숨어 있는 작은 맛집이다. 계절에 따라 콩비지찌개와 콩국수 가운데 하나만 하는데 6~8월에는 콩국수다. 콩과 검정깨로 만든 콩국은 ‘예술’이고, 면은 소면을 쓴다. 주인아주머니와 딸이 운영하는 ‘진심’ 가족식당으로, 사람을 쓰면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게 확장도 마다한다. 몇 개 안 되는 테이블에 앉으면 주문을 안 해도 음식이 나온다. 메뉴가 하나뿐이니까.

한여름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 주는 콩국수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솔푸드로서 손색이 없다. ‘진한 콩국 vs 연한 콩국’, ‘순수 콩국 vs 깨와 땅콩을 가미한 콩국’, ‘쫄깃한 면 vs 소면 vs 메밀면’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조합으로 훌륭한 콩국수 메뉴를 선보이는 곳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4. [중앙일보][시론] 테러리스트라고 모두 사이코패스일까

테러의 시대다. 1995년 165명에 불과하던 테러 관련 사망자는 2014년 3만2685명으로 무려 200배나 증가했다. 게다가 최근의 주요 테러는 불특정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예고 없이 가해지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테러의 건수와 규모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사전예방이 대단히 어렵고 테러범과의 협상도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테러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 민족 독립 등을 목적으로 한 무장투쟁이 어느 정도 정당성을 인정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배후세력이 불분명한 ‘외로운 늑대’형의 테러범이 늘고 있고, 그 목표도 무고한 일반인을 향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테러범이 단지 사이코패스와 같은 정신이상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정신이상자들을 미리 감시해 사전에 테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인류학자 스콧 아트란은 대부분의 테러범들이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들을 끔찍한 범죄자로 만든 것은 개인적인 정신병리가 아니었다. 실제로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일반인보다 상당히 낮다. 보통 사람들, 즉 집단의 가치와 규율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테러를 저지른다. 정신장애인이나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사이코패스가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진화적으로 인간은 자기 집단을 외부 집단보다 더 우월하게 여기는 경향, 소위 ‘내(內)집단 선호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집단 간 상호 폄하와 갈등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내집단 선호와 외집단 배척이 도를 넘어 상대방을 파괴하거나 말살하려는 수준으로 악화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외부 집단을 극도로 증오하게 되는 것은 IS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의 메시지 때문이 아니다. 테러리스트가 테러의 대상을 혐오하는 것은 자신들이 이미 혐오당하고 있거나 혹은 최소한 그렇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IS의 반인권적인 만행에도 불구하고 서구 사회의 수많은 젊은이가 자발적으로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프랑스 인류학자 도니아 부자의 연구에 의하면 IS에 포섭된 소녀의 70% 이상이 어린 시절 학대받은 과거가 있었다. 학대받은 여성에게 니캅(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리는 천) 뒤에 숨어서 평생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는 것이다. 또한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소총을 든 강인한 남편도 보장한다. 실제로 IS의 자발적 동조자 상당수는 경제적·인종적· 종교적으로 멸시받는 젊은 미혼자들이다. 이처럼 IS는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주목한다. 그들에게 정서적 소속감을 선사하고 삶의 숭고한 목적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혐오는 혐오를 먹고 자란다. 테러가 일어나면 즉시 중동계 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따가워진다. 미국의 어떤 정치인은 난민을 모조리 추방하고 중동계 이민자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양한 사상과 종교·인종·민족으로 구성된 자유로운 공간이 사라질 위기다. 회색지대가 사라지면 ‘우리들’과 ‘그들’의 경계가 더 날카로워진다. 우리는 IS의 끔찍한 범죄에 경악하지만 사실 그들을 점점 강하게 만드는 것은 소수 집단에 대한 주류 사회의 혐오와 배척이다. IS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러한 주류 사회의 과잉대응이다. 집단 간의 담장이 높게 쳐지고 소수자에 대한 통제가 강화될수록 IS에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무차별적 테러를 관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더 큰 증오로 갚아준다는 것도 해답은 아니다. 그런데 테러 연구에서 잘 알려진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기혼자가 자살테러범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프랑스 니스 테러의 범인도 이혼남이었다. 실제로 테러단체에 세뇌된 사람을 위한 정신치료 프로그램에서는 가족과의 정서적 연결고리 복원에 주력한다. 건강한 가정을 가진 사람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즉 사회는 젊은이에게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살테러를 하면 영원히 천국에서 처녀 72명의 시중을 받을 것이라는 IS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혐오 논란을 보면 우려스러운 점이 적지 않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촉발된 여성 혐오 논란은 애꿎게도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만 양산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200만 명을 넘었지만 외국인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 인터넷에는 온갖 사회적 편견과 증오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남성과 여성이, 일반인과 장애인이, 한국인과 외국인이, 청년과 노인이, 갑과 을이 서로 혐오하고 배척하고 있다. 안정된 미래를 약속해 주지 못하는 팍팍한 현실이 극단적인 혐오의 문화가 자라는 토양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에 만연한 증오와 편견을 극복하고 우리 사회가 다양성이 인정받는 자유로운 회색지대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미래는 열려 있다.


5. [매일신문][매일춘추] 포구의 새벽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통통거리는 발동기 소리가 작은 어촌마을을 흔들었다. 창문을 살짝 열어젖히고 고개를 내밀었다.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미풍이 얼굴을 감쌌다. 하늘에는 낮게 뜬 초승달이 심술궂게 바다 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열이 쏟아지던 대낮의 고요와 평온, 잔잔한 파도는 없었다. 작은 고깃배 한 척이 축구장만 한 포구에 조심스레 접근 중이었다. 

몇몇 아낙들이 쪼그리고 앉아 뱃머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수십 년간 육지에서 살아온 필자에겐 낯설고 서정적인 풍경이다. 발걸음을 재촉해 포구로 갔다. 배 옆구리가 콘크리트벽에 비스듬히 부딪치자 늙은 어부가 네모난 플라스틱 상자 세 개를 아낙들에게 건넸다. 두 곳에는 숨을 거둔 청어들이 있었고, 한 곳에서는 새끼 문어 한 마리가 꾸물거리고 있었다.

비릿한 생선냄새가 콧구멍을 지나 텅 빈 위장 속까지 스며들었다. 메스꺼웠다. 거칠고 정직한 삶의 현장에 내 육체가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부끄러웠다. 잠깐 고개를 먼바다 쪽으로 돌렸다. 등대는 없었다. 짙은 어둠을 헤치고 작은 고깃배 한 척이 또 미끄러져 들어왔다. 늙은 어부와 아낙들의 움직임, 어획량은 비슷했다. 문어 대신 소라와 물가자미가 담긴 상자만 달랐다.

이 작은 포구엔 TV 화면에 가끔 등장하는 만선의 기쁨이나 소란은 없었다. 힘든 노동 뒤의 허무한 귀가를 보는 듯했다. 방금 배에서 내린 그물 손질에 여념 없는 한 아낙 곁으로 걸어갔다. 낯선 자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엔 검은 주름들이 깊게 패어 있었다. 칠순을 훌쩍 넘긴 할머니 같았다. 꾹 다문 입술엔 노년의 체념과 여유가 묻어났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다시 바다로 나가는 고깃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비좁은 선상에는 손질한 통발이 수북했다. 수평선 위로 붉은빛이 넓게 피어올랐다. 일출 직전이었다. 1시간쯤 물거품을 뿜어내던 발동기소리가 잦아들었다. 늙은 어부는 허연 부표를 갈고리로 낚아챈 뒤 수면 위로 떠오르는 통발을 하나씩 건져 올렸다. 대부분 텅 비어 있었다.

“요즘은 바다 밑도 황무지나 마찬가질세…. 이젠 배질(조업)도 못해 먹게 됐어!" 

몇몇 통발 속에 갇힌 시커먼 성게와 회색빛 소라를 쳐다보는 필자에겐 절망의 아우성으로 들렸다. 하지만 도시인의 권태롭고 상냥한 목소리와는 달리 진솔하고 묵직했다. 2시간여 바다 노동을 끝낸 배가 천천히 포구로 향했다. 휘청거리며 육지에 발을 디딘 필자에게 방금 건져 올린 큼직한 소라들을 골라 비닐봉지에 담아 주었다. 극구 사양했지만 안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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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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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3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이화여대 사태, 최경희 총장이 키웠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계획을 둘러싸고 빚어진 이화여대 학내 사태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학교 측의 요청으로 경찰 병력이 투입된 데 대한 반발심까지 작용한 결과다. 학생들의 본관 점거농성이 어제 엿새째 이어진 가운데 졸업생과 학부모들까지 시위에 가담하는 양상이다. 일부 졸업생들은 학교 정문 앞에 졸업장 사본을 붙여놓고 졸업장 반납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갈등이 확대된 데는 학교 측의 책임이 크다.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계획을 추진하면서 폭넓은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교수들에게조차 며칠 전에야 이런 계획이 이메일로 전해졌다고 한다. 단과대학 신설규정 마련을 위한 절차상 더 이상 감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최경희 총장이 본부 보직교수들 위주로 계획을 추진해 왔다는 얘기다.

직장인이나 사회인을 위한 재교육 계획이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요즘처럼 실생활에 적용되는 지식·기술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는 상황에서 평생교육의 필요성은 거듭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평생대학원을 통해 비슷한 전공과정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데 굳이 단과대학까지 만들어야 하느냐 하는 점에는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졸업장 장사’를 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 만도 하다.

사태의 배경에는 재정지원을 앞세워 학교 운영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교육부도 무관할 수 없다. 이번 평생교육 계획도 교육부의 지원사업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이화여대는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계획으로 교육부 선정 대상에 포함됨으로써 올해 30억원을 지원받는다고 한다. 학생들의 집단 반발로 최 총장이 “관련된 향후 일정을 모두 중단하고 널리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으나 계획을 완전 철회한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학생들에게도 잘못이 없지 않다.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처리하는 본관을 점거·폐쇄했다는 자체가 옳지 않다. 시위 대열에 외부세력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이제 사태는 미래라이프 설립철회 차원을 넘어 최 총장에 대한 퇴진요구로까지 번지고 있다. 그러나 서로 한발씩 물러날 필요가 있다. 대학이 지성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만큼 이번 사태도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2. 불가역적 ‘위안부 합의’ 기껏 이 정도인가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합의가 지금도 유효한가. 위안부 합의가 가까스로 타결된 지난 연말 이래 줄곧 제기되는 의문이다. 일본이 자꾸 딴소리를 하는 탓이다. 지난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재단’ 출범으로 양국의 위안부 합의 이행이 본격 국면에 들어섰는데도 소녀상 철거 요구 및 재단출연금의 배상금 성격 부인 등 일본의 망발은 갈수록 노골화하는 양상이다.

급기야 일본 집권 자민당 3인자인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정조회장까지 망발에 가세했다. 그는 최근 TV대담에서 “소녀상은 ‘일본군이 20만명의 젊은 여성을 강제 연행해 성노예로 삼았다’는 잘못된 인식의 상징”이라는 황당한 역사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양국이 합의를 제대로 지켜야 한다”면서 한국 측의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마치 소녀상 철거가 양국 합의사항인 것처럼 포장하는 농간까지 부렸다.

‘소녀상’은 물론 ‘이전’, ‘철거’ 등의 용어는 합의문 어디에도 없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서술돼 있을 뿐이다.

이나다는 출연금 10억엔이 ‘미래지향적’ 용도로 쓰여야 한다고도 했다. 이 역시 합의문에 없는 내용이다. “위안부의 명예·존엄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에 쓴다”가 전부다. 딱히 못 박지는 않았지만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사죄·반성, 일본 정부예산 투입에 비춰볼 때 사실상의 배상금으로 해석된다. 출연금을 오롯이 피해자들에게 쓰려고 재단운영비까지 떠안은 우리 정부의 순수한 노력을 짓밟는 망언에 분노가 치민다.

아베 총리가 ‘첫 여성 총리감’으로 꼽는 이나다의 이런 인식에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일본 측 시각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일본 정·관계 인사들은 여전히 역사 왜곡을 거듭하며 ‘불가역적 합의’를 무색케 하고 있다. 생존해 있는 피해자 할머니 본인들을 포함해 국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은 터에 일본의 방약무인 태도를 더 이상 좌시해선 안 된다. 최악의 경우 합의 파기도 불사한다는 각오로 본때를 보여야만 한다. 우리 정부의 단호한 태도가 필요하다.

[서울신문]

3. ‘인증 취소’ 폭스바겐, 소비자 두려워해야

요즘에도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과 배출가스 실험인증서 조작이 발생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과 자회사 아우디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소비자를 우롱한 파렴치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환경부는 어제 배출가스 인증서를 허위로 작성해 2009년 7월 25일 이후 판매한 폭스바겐 32개 차종, 80개 모델 8만 3000대를 인증 취소하고 국내 판매를 중지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인증 실험을 하지 않고 차량을 판매한 폭스바겐에 과징금 178억원을 부과했다. 지난해 11월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해 인증이 취소된 12만 6000대를 포함하면 2007년부터 폭스바겐이 국내에 판매한 30만 700대 가운데 68%인 20만 9000대가 인증이 취소되고 판매가 정지됐다. 국내 최대 규모의 자동차 스캔들인 동시에 폭스바겐의 불명예가 아닐 수 없다.

배출가스 시험성적서 위조는 독일에서 인증받은 아우디 A6의 시험성적을 아우디 A7인 것처럼 속여 제출하는 등의 수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폭스바겐이 우리 정부와 소비자를 우습게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디젤차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사건이 터지자 미국에서는 17조원을 배상하겠다고 납작 엎드린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100억원의 사회공헌기금을 내놓겠다고 밝혀 공분을 샀다. 지난해 환경부가 12만여대에 대해 리콜 조치를 내리자 세 차례나 부실한 리콜 계획서를 제출한 것도 모자라 “법을 어긴 적이 없다”며 고압적인 자세까지 보였다.

우리나라 환경 관련법이 국내 기업을 육성한다는 이유로 허술한 건 사실이지만 조작은 엄연히 성격이 다르고 명백한 범죄행위다. 환경부는 지난달 28일부터 차종당 과징금 상한액이 1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늘어난 개정 법률을 적용하면 최고 680억원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폭스바겐 측이 지난달 25일부터 32개 차종에 대해 판매 중단 조치를 취한 점을 고려해 과징금 상한액 10억원을 적용했다고 한다.

폭스바겐은 그러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증서가 조작된 건 사실이나 배출 기준은 적합하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폭스바겐 측이 결정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과징금 상한액을 10억원이 아닌 100억원을 적용하는 방안도 적극 따져 봐야 할 것이다. 나아가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인 ‘옥시사태’에서 보듯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에 직면할 수 있음도 깨닫게 해 줄 필요가 있다.

4. 이해충돌 방지 조항 살리기 아직 늦지 않다

지난주 헌법재판소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합헌 결정 이후 정치권에서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그제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 조항을 담은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도 그런 징후다. 이 개정안이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등 원내 1, 2당 지도부가 최근 헌재의 합헌 결정에 따라 현행 김영란법을 고수하겠다고 밝힌 이후에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김영란법의 원래 이름인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을 되찾겠다는 데 어느 국민이 반대하겠는가. 우리는 여야가 의지만 있다면 법 시행 전에 공직 부패를 뿌리 뽑으려는 김영란법의 본뜻을 온전히 되살릴 방도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각계에서 김영란법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여전히 교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청렴도를 혁명적으로 제고할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의 이면에 소비를 얼어붙게 해 경제를 위축시킬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드리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김영란법의) 기본 정신은 단단하게 지켜 나가면서도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게 정부에 주어진 중요한 책무”라고 강조한 데서도 읽히는 기류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투명 사회를 실현해야 한다는 원칙론과 내수 경기가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론 사이에서 고민의 일단을 표시했다는 점에서다.

정치권에서 불거지고 있는 김영란법 개정 내지 보완 움직임은 그런 맥락에서 십분 이해가 간다. 이를테면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시행령을 개정해 법 적용 대상에서 농축수산물을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지 않았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농축수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해 식사비와 선물 상한액을 3만·5만원에서 5만·10만원으로 높이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런 논의들이 이뤄져야 할 필요성을 인정한다. 다만 시행령을 고쳐 경제에 미칠 부정적 파장을 최소화하는 노력과 더불어 현행 김영란법의 허술한 구멍을 메우는 보완 입법을 병행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반쪽 김영란법’을 정상화하는 차원에서 이해충돌 방지 조항을 포함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해충돌이 공직자가 사적 이해관계 때문에 공정한 직무를 하기 어려운 상황을 가리킨다면 이를 방지하지 못한 채 공직사회의 투명성 확보가 가능하겠는가. 다만 9월 28일 시행이 예정된 마당에 김영란법을 개정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에도 일리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게다. 하지만 여야가 김영란법의 본래 취지를 최대한 살리는 데 의기투합한다면 방법을 왜 못 찾겠나. 국민권익위가 마련 중인 이해충돌방지법을 별도로 처리하는 것도 대안이다. 국회는 친족을 보좌관이나 인턴으로 채용해 물의를 빚은 서영교 의원 파동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기 바란다.

[동아일보]

5. 국민과 괴리된 대통령 현실 인식, ‘보고서’만 본 탓인가

취임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할 때마다 인적 쇄신 방안을 내놨다. 박 대통령의 휴가 뒤 첫 국무회의가 비상한 관심을 모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안보·경제·국론분열의 복합 위기에 ‘민중은 개돼지’라는 고위 공직자의 망언, 공직 기강 해이,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논란까지 겹쳐 조각(組閣) 수준의 전면 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어제 박 대통령은 우 수석의 거취나 정국 수습용 개각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않고 “우리 경제 회복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해 국민을 실망시켰다.

박 대통령은 “2분기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2%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에 근접하는 수준을 기록했다”며 소비-투자-고용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된 것은 ‘매우 희망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그제 2400여 개 제조업체 중 절반이 “지금 수익원은 사양화 단계”라고 답한 대한상공회의소 조사 결과나 디플레이션 우려가 나오는 것과는 딴판의 현실 인식이다. 대통령은 추가경정예산안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당부하기 위해 장밋빛 경제전망을 말했을지 모르나 4·13총선 전에 국회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책상을 쳤던 ‘야당 책임론’을 또 시작한 느낌이다. 

국민의 삶과 괴리된 인식을 대통령이 갖게 된 것이 경제 부처에서 비서실을 통해 올라오는 보고서에 매몰된 때문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경기 성남시 판교 창조경제 밸리 방문 사례를 들면서 “창조경제 활성화로 창업 벤처 붐이 본격화됐다”고 했지만 동의할 경제 전문가가 있을까. 참모들이 일부 ‘잘나가는’ 현장 중심으로 대통령 행차 일정을 짜서 전체적 상황을 모르게 하는 것은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일이다. 수출이 7월까지 19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음에도 ‘일시적 현상’이라고 설명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어떻게 청와대 보고서를 써 올릴지는 안 봐도 훤하다.

박 대통령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사드 배치에 대해 “저도 가슴 시릴 만큼 아프게 부모님을 잃었다”며 ‘감성 언어’로 사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작금의 국론 분열상이 벌어지기 전에 군통수권자로서 좀 더 선제적, 적극적으로 대(對)국민 설득에 나섰다면 대통령 지적처럼 ‘괴담과 유언비어로 안보의 근간마저 위태롭게 흔들리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추경도 타이밍이 늦으면 효과가 반감되듯, 대통령의 설득도 실기(失期)하면 울림이 없다. 대통령은 “국회의원과 단체장도 직접 만나겠다”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성주 방문이나 성주 주민들의 청와대 초청을 통해 호소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이 어제 우 수석 거취에 입을 다문 것은 여론에 귀를 닫고 ‘일방통행 식 국정 운영’을 계속하겠다는 통보로 들린다. 우 수석은 진경준 검사장 검증 실패만으로도 문책 대상이다. 설령 개각을 한다 해도 우 수석의 인사 검증은 신뢰하기 힘든 상황이됐다. 박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민심을 도외시한 채 ‘마이 웨이’로 일관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말을 연상케 한다. 국민은 박 대통령이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바라지 않는다.

[매일경제]

6. 수출 회복 찬물 끼얹는 원화 강세 예의주시해야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출이 19개월째 뒷걸음질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화마저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우리 경제에 더 깊은 주름살이 생길까 우려된다. 

그제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13개월 만에 달러당 1100원대로 올랐다. 어제는 단기간 상승에 따른 조정이 이뤄지면서 1110원으로 회복됐지만 당분간 오름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주말 발표된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잠정치가 전분기 대비 1.2%(연율 기준)로 시장 전망치를 크게 밑돌면서 금리 인상이 지연될 것이란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6월 경상수지가 121억6000만달러로 52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연일 주식을 사들이고 있는 것도 원화 강세를 점치는 이유다. 브렉시트 여파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다가 다시 약세로 돌아서는 등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정부와 기업은 이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원화 강세는 물가 안정에 도움을 주는 등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글로벌 수요 부진과 저유가에 따른 저물가, 수출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요즘에는 부정적 측면이 강하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 기업들은 수출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7월 수출도 410억45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2%나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원화 강세로 채산성이 떨어지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조업일수 등 일시적 요인을 제거한 하루 평균 감소율이 -1.6%로 올해 들어 최소치를 기록했고, 이달 이후 수출이 다시 증가세로 전환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원화 강세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문제는 이를 막기 위한 수단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했다가는 환율조작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위험이 있고 지난달 1.25%로 인하한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리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금융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환율이 요동칠 때를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을 세워놓을 필요가 있다. 수출기업들도 품질과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는 등 환율 급변동을 극복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7. 관영매체 동원해 사드 막말 나선 中의 무례한 행태

박근혜 대통령이 2일 국무회의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는 국가와 국민의 안위가 달린 문제로 바꿀 수도 없는 문제"라고 못 박고 나선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 탑재 탄도미사일의 성능을 끊임없이 고도화시키고 있는 상황인데도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그치지 않고 있어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라고 호소했는데 갈수록 도를 더해가는 중국의 사드 반발, 거듭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 속에서 언제까지 자중지란을 계속해야 하는지 국민도 답답한 심정이다. 

박 대통령이 직접 지역 국회의원과 단체장들을 만나 설득하겠다고 했는데 서둘러야 한다. 내분을 빨리 수습하고 사드 보복을 가시화한 중국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관영매체를 총동원해 협박성 사드 여론몰이에 나섰다. 인민일보는 1일 사설을 통해 "한국이 미국의 앞잡이를 자처한 것" "한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사드 배치 결정은) 악과(惡果·나쁜 열매)를 스스로 먹는 결과"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21세기 상호평등과 호혜원칙에 입각한 정상적 국가 간에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표현들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외교적 무례와 고압적 언사를 일삼아 국민적 공분을 자아낸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중국은 평상시에는 G2로서의 위상과 책무를 앞세우다가도 자국의 이익이 걸린 문제만 나오면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일방적인 자기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종주국 행세를 지켜보는 아시아 다른 국가들의 심기 또한 편할 리 없다.

중국은 한국산 철강제품 반덤핑 판정, 화장품 검역 강화, 지방단체 교류 중단, 한국 드라마 방송 금지까지 사드를 빌미로 한 경제보복을 본격화하고 있다. 우리 수출 시장의 26%를 차지하는 중국이 이런 식의 몽니를 계속 부린다면 경제적 손실은 물론 국민적 반감도 커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정부가 6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쌓아온 시진핑 주석과의 붕우(朋友·오랜 친구) 관계 역시 위태로워질 수 있다. 한·중이 지혜로운 해법을 모색해야겠지만 그 전에 중국의 도를 넘은 외교적 무례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해야 한다.

8. 유해물질 500t 바다에 버린 공기업 엄벌해야

공기업인 한국동서발전의 울산화력본부가 지난 5년간 유해물질인 디메틸폴리실록산 500t과 폐유를 바다에 방류하다가 적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디메틸폴리실록산은 호흡기 자극, 태아의 생식 능력 손상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다. 이 회사는 물과 기름이 혼합된 폐유를 바다에 몰래 버리기 위해 유수분리조 안에 잠수펌프까지 설치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폐유는 별도 공간에 저장했다가 폐기물 처리업체에 위탁해 처리해야 하는데 이를 위반한 것이다.

공기업이 5년 동안 상습적으로 해상 환경을 파괴하는 불법 행위를 해온 것은 결코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어민들이 바다에서 악취가 심하게 나고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해 울산 해양경비안전서가 조사에 나선 것이니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바다에 유해물질을 쏟아내는 것은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주변 어민들의 생업에 큰 타격을 미칠 뿐 아니라 인명에도 해를 끼칠 수 있는 범죄 행위다.

디메틸폴리실록산은 냉각수의 거품을 제거하는 실리콘계 소포제로 해양환경관리법상 배출 제한물질로 분류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동서발전 측은 이 물질은 허용 농도 등 세부 기준이 없어 타 발전소도 사용했고, 논란이 있어 2015년 8월부터 다른 물질로 변경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물질은 농도 제한 없이 배출이 금지된 물질이라는 것이 해경 측 설명이다. 잠수펌프 설치도 위법인데 태풍으로 폐유가 넘쳐 해양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업 이익을 위해 조직적으로 벌인 일이라면 부도덕한 것이고 부주의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드러낸 사건이어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울산 해경은 업무 담당자 2명을 입건해 조사 중인데 유해물질 방류가 실무자 선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닌 만큼 윗선의 방조나 묵인이 있었는지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다. 임직원들까지 수사를 확대해야 할 뿐 아니라 조직적으로 오염물질을 배출한 것이라면 엄벌해야 한다. 

공기업이 유해물질을 바다에 콸콸 쏟아내고 있으니 민간기업의 도덕불감증은 더 최악일 수 있다. 해경은 대대적인 수사를 통해 해양 오염 범죄를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매일신문]

9. 9월 시행 김영란법, 고치려 들기보다 새로운 기회 삼아야

9월 28일 예정인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 속에 이를 기회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한도 이상의 값비싼 선물이나 고가 식단이 아니더라도 경쟁력을 갖춘 상품과 식단 개발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법 시행의 근본 취지가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청렴사회 구현인데다 법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 높아 적응을 위한 모두의 변신 노력은 피할 수 없고 바람직스럽다.

우선 법이 시행되면 5만원이 넘는 선물은 주고받을 수 없다. 추석을 앞두고 벌써 농수산물을 생산 판매하는 농어민이나 관련 업계가 그 이하의 실속형 중저가 선물 준비를 서두르는 까닭이다. 비교적 비싸지 않은 농수산물이나 이를 가공하는 식품업계의 적응 노력이 특히 돋보인다. 이들은 특정 축산물 분야와는 달리 법을 어기지 않는 선물용 상품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분석한다. 

경북 안동의 한 특산품 생산업체는 판매 중인 5만원이 넘는 상품의 포장 내용을 조정해 팔 계획이고, 충남 보령의 김 생산공장은 대부분 5만원을 밑도는 상품을 준비 중이다. 경기도에서는 여러 특산물을 골고루 섞은 선물상품을 개발하되 가격도 5만원 이하로 맞추고 있다. 전북의 특산물 생산업체는 비교적 중저가의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오히려 법 시행에 따른 특수까지도 기대하고 있다. 

3만원 이상의 식사가 금지되는 식당가의 변신도 시작됐다. 소위 ‘영란세트’라 불리는 식단 마련과 같은 자구책으로 손님을 끄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어서다. 식당가의 변화는 당연하다. 농수산물 업계의 자구노력처럼 이는 법의 조기 정착을 위해서 올바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당장 눈앞의 타격은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제도 정착과 부패 없는 사회라는 법 실현의 값어치는 헤아릴 수 없다.

썩지 않은 건강한 사회는 국민의 꿈이다. 헌재가 우리 사회의 부패 관행을 끊어야 한다는 의지로 합헌 결정을 내린 것도 그래서다. 2일 대통령의 “법 시행으로 우리 경제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성장 잠재력도 개선될 수 있다”는 강조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젠 제도 정착에 모두 나설 때다.

10. ‘미래차 산업 도시’ 대구시 의지와 추진 속도에 달렸다

대구시가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형자동차 산업을 핵심 신산업으로 키우기 위한 전략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미래차 관련 기술 개발과 실용화 추세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어서다. 시가 그동안 지역 경제를 떠받쳐온 노동집약적인 자동차부품 산업에서 첨단 미래형자동차 산업으로 구조 개편을 서두르는 것도 미래차가 대구의 새 성장동력이자 미래 먹거리를 좌우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 대구시는 ‘전기차 생산도시’ ‘자율주행차 허브도시’를 목표로 미래차 산업 중장기 계획 수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첫 출발점으로 지난 2월 C오토 기획추진단을 발족했다. 추진단이 최근 중간보고 형태로 공개한 로드맵에서 대구가 급변하는 미래차 산업을 어떻게 선도하고 준비할 것인지 등 많은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계획에 따르면 시는 3단계에 걸쳐 전기차`자율주행차 산업을 집중 육성한다. 1단계로 2020년까지 전기차 생산기반 구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2단계 2030년까지 자율주행 스마트도시 구축과 전기차 20만 대 생산을 목표로 잡았다. 2030년 이후 3단계는 전기차`자율차 등 미래형 이동체를 대구의 신산업으로 굳힌다는 구상이다. 

미래형자동차 산업은 얼마만큼 빠른 시간 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인프라 구축과 기업 유치에 성공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구글`바이두 등 세계적인 IT 기업과 벤츠`도요타 등 글로벌 메이커들이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기술 확보와 시장 선점 경쟁을 벌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ABI 리서치는 전 세계 자율주행차 연간 판매량이 2024년 110만 대에서 2035년 4천200만 대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경쟁에서 대구가 살아남으려면 미래차 산업 육성에 대한 명확한 좌표 설정과 함께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이 선결 과제다. 가능성만 믿고 어설픈 전략으로 시간을 끈다면 실패는 기정사실이다. 지금부터라도 차별화된 기술 확보와 관련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야 한다. 만약 기대와 달리 추진 의지가 약하거나 기술기업 유치 등 역량 결집에서 실패한다면 ‘미래차 산업 도시, 대구’는 실현 불가능한 꿈에 불과하다.



주요 신문칼럼


1. [이데일리][목멱칼럼]대중음악계 신구(新舊) 갈등 심상치 않다

대중음악계가 신·구세력 간의 갈등으로 양분될 위기에 처했다. 실세 음악제작자나 매니저로 떠오르고 있는 이른바 신진세력들이 현행 집행부를 이끌고 있는 구세력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세럭화에 나섰다. 어느 집단에서나 있을 법한 신구세력 간의 갈등이다. 하지만 이번 대중음악계의 갈등은 방송사와 대형기획사와의 역학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그 파장이 만만치 않으리라고 예상한다.

대중음악 제작자의 친목과 권익보호를 목적으로 설립한 공인 단체는 사단법인 한국연예제작자협회(회장 김영진)가 유일하다. 그러나 최근 젊은 제작자를 중심으로 한 대중음악 매니저들이 현행 협회와는 다른 새로운 단체를 만들겠다며 열심히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가 인가하는 가칭 사단법인 한국연예매니저연합회이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는 문광부 산하 단체이지만 새 연합회는 서울시 산하 단체로 탄생할 예정이어서 확대하여 해석하면 정치적 의미도 부여할 만하다. 

새로운 단체 구성을 주도하는 세력은 64년생 이후 제작자와 매니저들이다. 가장 왕성한 제작과 매니지먼트를 펼치고 있는 이른바 ‘여의도 실세’들이다. 이들은 단체 설립 명분으로 현재의 집행부가 대중음악계를 위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과 불신을 내세우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음악제작 환경이 나날이 달라지고 있는데 협회가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업계의 선배, 또는 구세력에 대한 반기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앞으로 활동 표적은 방송사나 대형기획사로 향해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방송사의 줄 세우기, 대형기획사 소속 연예인들의 방송 독점 같은 비합리적인 행태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방송사 줄 세우기란 두 가지로 보인다. 쇼프로그램의 생방송 엔딩 무대에 그날의 출연진을 모두 올라오도록 하는 것과 쇼프로그램 PD와 매니저가 정례적으로 갖는 페이스 미팅이다. 순서를 끝낸 모든 출연진이 엔딩무대를 위해 오랫동안 기다리며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게 줄 세우기의 표본이란 것이다. 또한 페이스 미팅을 위해 방송사 사무실 공간에서 수십 명의 매니저들이 줄서서 기다리게 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갑을 관계의 상징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방송사의 입장도 이해할 만하다. 엔딩무대는 연출을 위한 하나의 장치이며, 정례적인 페이스 미팅은 PD나 매니저들의 효율적인 시간관리를 위해 요일이나 시간을 정해놓은 것일 뿐이며, 별도의 공간 확보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새로운 단체 구성원이 더욱 심각하게 바로 보는 것은 대형기획사 소속 연예인들의 방송 독점 현상이다. 이는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대형기획사와 방송사의 밀착관계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출연 카르텔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보인다. 시장의 원리와 정면배치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신진세럭들은 이러한 문제를 비롯해 크고 작은 현안에 대해 현행 집행부가 실제 제작자들이나 매니저들의 고충을 외면한 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새로운 단체 구성을 역설한다. ‘거대공룡’에 비유되는 방송사와 대형기획사에 대한 개별적 대응이 쉽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대안 협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재 소장파 실세 기획자나 매니저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현행 집행부는 하나의 협회 안에서 함께 현안을 풀어나가자고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소장파들의 입장은 강경하다. 2000년대 초반에도 몇몇 젊은 제작자들이 모여 젊은제작자연대라는 명칭을 내걸고 꿈틀대다 기존 세력의 압력에 눌려 공식화하지 못한 적이 있다. 이번 신진 소장파 매니저들의 움직임은 그때와 다른 것 같다. 나름대로 킬러콘텐츠를 가진 실세 제작자들이 주도하고 있고 기존 공인 단체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워낙 골 깊게 쌓여간 탓이다. 응집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지만, 그 기세가 자신들의 이익이 아닌 우리 대중음악계에 긍정적인 바람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2. [이데일리][목멱칼럼] '부산행'과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

‘응답하라’ 시리즈로 유명한 신원호 PD는 최근 한 행사에서 ‘응답하라 1988’을 만들게 된 동기를 털어놨다. 신원호 PD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하나는 지난 2014년 세상을 떠난 가수 신해철이고 다른 하나는 304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 간 세월호 참사다. 

졸지에 고인이 된 신해철 때문에 한참을 울었다는 신원호 PD는 그 누구에게나 남아 있는 기억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응답하라’ 시리즈를 다시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는 그가 ‘응답하라1988’에서 따뜻한 가족 이야기를 다루고 싶은 동기가 됐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너무나 큰 생채기를 남긴 사건을 위로하고 달래기 위한 일종의 의무감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최근 개봉한 영화 ‘부산행’을 보면서 떠오르는 게 세월호 참사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고속철도 KTX는 마치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를 그대로 닮았다. 좀비들은 서로 물고 뜯으며 마치 물밀 듯이 객차에서 객차로 넘어온다. 그 장면에서 좀비들은 정말 객실로 쏟아져 들어온 바닷물처럼 가득 채워지며 공포감을 준다. 그런데 정작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객실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기심이다. 영화에서 고속버스 회사 상무 용석(김의성)은 그 이기심의 결정판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저 편에서 좀비들을 뚫고 이쪽 객실로 넘어오려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을 자신이 살겠다고 막아 세운다. 그리고 그렇게 힘겹게 살아온 그들을 마치 보균자나 되는 듯 다른 칸으로 내쫓아버린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봤던 끔찍한 장면들이 떠오른다. 자기만 살려는 이들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리는 무고한 생명들은 ‘부산행’이라는 영화가 가진 공포의 실체다. 오로지 서민들만 다른 서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좀비는 무서운 존재라기보다는 서민을 대변하는 듯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닮았다. 함께 우루루 몰려다니고 오로지 타인을 물겠다는 본능만 남아있는 좀비들은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오히려 슬픈 존재처럼 처연하게 다가온다. 

부산행은 좀비 장르라는 틀을 가져왔지만 우리 현대사의 많은 장면들을 그 안에 압축해 넣고 있다. ‘오 필승 코리아’의 전화벨 소리에 달려가는 좀비들은 2002년 월드컵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고 시민들을 지켜줘야 할 군인들이 좀비가 돼 시민을 공격하는 장면은 광주민주화운동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결정판은 앞서 얘기했듯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가 차지하고 있다. 위기관리 능력이 없는 콘트롤 시스템을 이 영화에서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부산행의 이러한 구도는 우리 재난 영화에서 낯선 게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한강변에 출몰하는 괴물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내세워 우리네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 바 있다. ‘괴물’에서 정부가 사람들을 구하기보다는 격리시키는데 더 힘을 쏟다보니 괴물과 싸우는 건 결국 가족을 잃은 서민들이다. 김성수 감독의 영화 ‘감기’에는 감염된 이들을 종합운동장에 산처럼 쌓아놓고 살처분 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으며 많은 이들은 이 영화가 주는 공포를 떠올렸다. 

응답하라1988의 가족과 부산행의 공포 그리고 세월호 참사는 그렇게 얽혀 있다. 저게 사실일까 믿기 힘든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지만 국민을 보호해야할 정부는 이기적인 선택으로 국민을 죽음으로 내몬다. 그러다보니 믿을 건 결국 가족뿐이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믿기 힘든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게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3. [서울신문][씨줄날줄] 최남선·이광수 문학상/박홍환 논설위원

육당(六堂) 최남선과 춘원(春園) 이광수. 동시대의 또 다른 걸출한 인물 벽초(碧初) 홍명희와 함께 일제강점기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렸던 한국 근대 문학사의 양대 거두다. 두 사람 모두 문인이면서 사상가였고, 문화운동가인 동시에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씻을 수 없는 친일의 오점도 함께 남겼다.


한국의 현대 시는 각 7행씩 6연으로 구성된 육당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1917년 벽두부터 6개월간 매일신보에 연재한 춘원의 장편소설 ‘무정’은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자 연애소설로 문단사에 기록돼 있다.

10대 청소년기 일본 유학 시절부터 교류한 육당과 춘원은 ‘소년회’ 활동과 최초의 근대적 종합 잡지로 꼽히는 ‘소년’ 창간 등을 통해 암울했던 우리 민족의 각성을 위한 신문화운동을 주도했다. 이들이 창간한 ‘소년’ ‘청춘’ 등은 민중 계몽의 도구이자 문학 발전의 토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독자들은 육당의 논문과 춘원의 글을 통해 시대정신을 깨우쳤다.

육당과 춘원은 독립운동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3·1독립선언서를 대표 집필한 육당은 2년8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일본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을 주도한 춘원은 곧바로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춘원은 독립신문을 창간해 사장 겸 편집국장, 주필로서 임정의 선전활동을 담당했다.

역사가 여기까지였다면 두 사람에 대한 인물평은 긍정 일변도로 마무리될 것이다. 하지만 육당과 춘원은 긴 일제 암흑기를 견디지 못하고 변절의 길을 택했다. 독립운동가보다는 학자이기를 원했던 육당은 조선총독부가 식민사관 유포를 위해 설립한 조선사편수회 편수위원으로 참여했는가 하면 각종 신문 등에 내선일체 등 친일 칼럼을 기고했다.

임정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귀국한 춘원은 ‘민족개조론’을 통해 식민지 통치에 타협적인 입장을 내보이더니 이름까지 가야마 미쓰로로 바꿔 버렸다. 육당과 춘원은 태평양전쟁 시기에 학도병 지원을 독려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 행각을 벌였다. 1943년 11월 24일 일본 도쿄 메이지대학에 모인 1000여명의 조선인 유학생들을 상대로 두 사람은 황국(皇國)을 위해 목숨을 버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육당과 춘원이 친일 행각을 벌인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상을 감안해야 한다는 동정론도 적지 않다. 한국문인협회는 “친일 행각과 문학적 성과는 별개”라며 내년부터 최남선·이광수 문학상을 시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소식을 전해들은 일부 문인들은 “친일 문학상을 만드냐”며 반발하고 있다. 진보적 문인단체인 한국작가회의도 조만간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문학사의 ‘문제적 인물’인 육당과 춘원이 또다시 문단을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4.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 어떻게 살 것인가

누구나 한번은 이 세상에 왔다가 떠나간다. 그러면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 소크라테스(BC 470~399)는 인간이 죽으면 육체는 사라지지만 그의 혼은 불멸한다고 믿었다. 플라톤(BC 427~347)의 대화편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독약을 마시고 죽기 직전, 제자들과 영혼 불멸과 사후 세계에 대해 나눈 대화를 전해 주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늘 육체의 욕망에 휘둘리는 감각적 삶보다 이런 것들에 초연할 수 있는 이성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철학자의 혼은 이성을 따르고 언제나 이성과 함께함으로써, 그리고 의견의 대상이 아닌 참되고 신적인 것을 정관하고 양식으로 삼음으로써 (쾌락과 고통에 얽매이는) 감정들에 초연해야 한다고 믿네.”

소크라테스가 평소 혼을 강조했지만, 혼이 불멸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제자들도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특히 심미아스 같은 이는 혼은 항상 몸과 함께하며 이 둘의 조화가 이루어질 때 각각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혼은 일종의 조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육신이 죽으면 혼 역시 소멸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혼은 사람의 형태와 몸속으로 들어오기 전에 존재”하며, 혼이 들어 있기에 몸이 살아 있는 것이므로 죽음은 단지 육신과 혼을 분리시키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육신의 죽음 이후에도 혼은 저승으로 여행을 떠나 심판자에 의해 죗값을 치르거나 응분의 보답을 받아 각자 적절한 곳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이 육체와 혼을 함께 소멸시키는지, 아니면 혼만 홀로 남아 새로운 모험의 길을 떠나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이는 과학적 검증의 문제를 넘어 신학적 믿음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혼이 불멸한다면 결국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로 귀착된다.

“만약 죽음이 모든 것으로부터의 도피라면 죽음은 악인들에게는 횡재겠지. 그들은 죽음으로써 혼과 함께 몸과 자신들의 악행에서도 해방될 테니까. 그러나 혼이 죽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 지금, 혼이 악행에서 도피하거나 구원받을 길은 달리 아무것도 없네. 최대한 선량해지고 지혜로워지는 것 말고는.” 소크라테스가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미덕과 지혜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응답이다.

“만약 혼이 죽지 않는다면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이 시간뿐만 아니라 모든 시간을 위해 혼을 보살펴야 하며, 만약 누가 혼을 소홀히 하면 무서운 위험에 빠지게 되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네.” 소크라테스는 죽음 앞에 담담했다. 혼의 불멸을 믿은 그는 죽음은 삶의 종결이 아니라 지혜로 갈고닦은 맑은 영혼의 ‘고상한 모험’의 출발이라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5. [동아일보][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아이들 꿈에 직업이 빠져도 좋다

얼마 전 상담을 받던 중학교 2학년 아이에게 꿈을 물었다. 아이는 꿈이 없다고 했다. 기록을 보니,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이의 꿈은 과학자였다. “너 어릴 때는 꿈이 과학자였잖아. 왜 꿈이 없어졌어?”라고 했더니, 아이는 “저, 공부 못해요. 성적이 너무 나빠요”라고 대답했다. 많은 아이가 이렇다. 

다수의 아이가 꿈 때문에 무기력하다. 나는 이런 아이들에게 “꿈은 직업이 아니다”라고 조언한다. 꿈을 직업으로 여기면 너무 일찍 한계에 부딪힌다. 아이들이 꿈이라고 말하는 소위 좋은 직업은 대부분 공부를 아주 잘해야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직업은 아이는 너무 하고 싶지만, 부모가 “너 그거 해서는 제대로 먹고살지도 못해”라고 겁을 준다. 얼마 전 한 설문조사에서 요즘 아이들의 장래희망으로 떠오르는 직업 하나가 건물 임대업자라는 말을 들었다. 건물 임대업자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무궁무진한 꿈을 꿀 수 있는 나이에, 아이들이 너무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것만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직업은 꿈이 아니다. 아이에게 ‘꿈 혹은 장래희망’을 물으면서 ‘직업’을 답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지금 미래의 직업을 결정하라는 것은 꿈을 꾸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이 없다. 게다가 아이가 자라서 본격적으로 일하게 될 20년 후에는 지금의 직업도 절반은 더 사라질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직업을 꿈으로 갖게 하지 말았으면 한다. 아이의 꿈이 궁금하다면, 아이들조차 이미 꿈을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으므로, “네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할 것 같으니?” 내지는 “네가 어떤 일을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라고 물어줬으면 좋겠다. 

나는 꿈이 없다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사람이 꼭 뭔가 대단한 인물이 돼야 하는 것은 아니야. 누구나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이 될 필요는 없어. 그들은 5000년에 한두 명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이야. 꿈이라는 것은 내가 보람 있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 그 일이 속한 영역 정도까지만 생각해 두면 되는 거야. 특정 직업을 정해야 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자신이 잘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찾아보게 한다. 잘하는 것, 재미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아이도 있다. 이때는 사소한 것부터 생각해 보게 한다. 인사를 잘하는 것, 친구와 잘 노는 것, 만화책을 읽는 것도 다 잘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다. 스스로 잘한다고 느끼지 못하거나 주위에서 발견을 못 하는 것뿐이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을 재미있어 하는 아이에게는 ‘끌어주고 지도하는 영역’이 맞을 수 있다. 그 안에 존재할 수 있는 직업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블록을 조립해서 완성한 후 굉장히 뿌듯해하는 아이에게는 ‘무언가를 혼자 차곡차곡 완성하는 영역’이 적당할 수 있다. 아이가 자신에게 맞는 꿈을 잘 찾아가도록 돕기 위해서는 부모 또한 어릴 때부터 아이의 특징을 잘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도 매일매일이 힘들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것도, 놀고 싶어도 참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밀린 숙제를 하는 것도, 친구 사이에서 살아남는 것도, 끊임없이 잔소리를 듣는 것도 무척 힘들다. 이 힘듦을 잘 버티기 위해서는 꿈이 있어야 한다. 꿈은 인생의 나침반과 등대다. 

아이가 꿈을 찾는 것을 도울 때는 반드시 과녁의 정중앙에 자신을 두게 해야 한다. ‘나는 어떤 장단점이 있는가’ ‘어떤 일을 할 때 비교적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가’ ‘어떤 일은 유독 좀 싫고 힘들어하는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꿈을 찾는 과정은 나를 파악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에 대한 이해가 끝났다면 이타적인 것을 좀 고려해야 한다. 나와 친한 사람, 가까운 사람에게는 내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내가 속한 이웃 내지는 사회, 국가,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본다. 꿈에는 이타적인 면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진다.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는 것만으로는 꿈을 이뤄가는 어려운 과정을 견뎌내기가 어렵다. 기여란 엄청난 것이 아니다. 음식점을 하면서 좋은 식재료를 써서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것도 기여다.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세상을 원대하게 바라보며 자기 자신을 발달시켜 나가게 된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꿈이란 것은 늘 우회의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부모들도 지금의 삶이 100% 만족스럽진 않아도 유사한 일을 하면서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살고 있지 않은가? 꿈은 인생에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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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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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김영란법, 시행 이후가 더 중요하다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이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적용과 관련한 혼선이 크게 진정된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우리 사회 건강의 척도가 아직 밑바닥까지 추락한 것은 아니라는 증좌이기 때문이다. 농·수·축산물 예외 인정과 식사·선물·경조사비 상한선 규정 등 조정할 문제가 일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일단 ‘시행 후 보완’으로 대세가 굳어지는 분위기다.

최대 논란거리인 국회의원 포함 여부도 대충 정리된 듯하다. 국회의원도 엄연히 공무원이므로 식사(3만원)·선물(5만원)·경조사비(10만원) 상한선을 똑같이 적용받게 된다. 더 나아가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수수는 직무연관성과 상관없이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게 국민권익위원회의 판단이다. 의원들이 국민 대표라는 점에서 국민고충 전달 차원의 청탁은 허용하되 공익 목적이 아닌 개인적 차원의 사사로운 청탁은 처벌받는 게 마땅하다.

다만 법안의 원래 내용에서 이해충돌 부분이 사라진 건 문제다. 공직자가 자기 가족을 관련기관에 채용하거나 본인 또는 가족이 관련기관과 납품계약 등을 맺지 못하도록 한 규정이 살아 있었다면 최근 논란이 된 국회의원의 자녀 보좌관 채용은 원천 봉쇄됐을 것이다. “국회의원만 쏙 빠졌다”는 따가운 눈총에서 벗어나려면 국회 스스로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시행 이후다. 다른 현행법에 부정청탁 처벌 규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땅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더 이상 방치했다간 선진사회 진입이 요원하다는 절박한 차원에서 만들어진 게 김영란법이다. 그러나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얕은 편법과 술책들이 벌써부터 온라인, 오프라인을 뒤덮고 있어 걱정이다.

접대 식사비가 3만원은 안 되고 2만 9000원까지는 괜찮다는 인식은 김영란법에 대한 모독이다. 공무원, 기자, 교사 할 것 없이 공짜로 얻어먹는 것을 당연시하며 ‘갑질’하지 말라는 입법취지를 무색케 해선 안 된다. 국회의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선물과 경조사비도 상한선만 안 건드리면 문제없다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청렴사회를 반드시 이룩하겠다는 전 국민의 정신무장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혁명’으로 평가되는 김영란법도 기존 규제법의 하나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2. '불황형 흑자행진' 어디서 멈출 것인가

우리 경상수지 흑자가 지난 6월 120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어제 발표한 국제수지 자료에 따르면 6월 중 경상수지 흑자가 121억 7000만달러로 나타났다. 이로써 2012년 3월 이후 52개월 연속 경상수지가 흑자 행진을 거듭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게 박수칠 만한 일은 아니다. 수출 실적이 좋아서 경상수지 흑자가 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출과 수입이 함께 감소하는 가운데 수입이 수출보다 더 많이 줄어든 결과다. ‘불황형 흑자’라는 얘기다. 6월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4% 줄어든 반면 수입은 10.1%로 더 많이 줄어든 게 그 배경이다.

가뜩이나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교역국들의 경기 둔화로 수출이 주춤한 가운데 내수 부진으로 원자재 등 수입이 더 감소한 것이다. 이로써 19개월 연속 수출 감소라는 달갑지 않은 신기록도 함께 세우게 됐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수출시장 전선이 하반기에도 그렇게 밝지 않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브렉시트에 따른 파장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상쇄할 만한 회복 기미가 거의 엿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경상수지 흑자 행진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도 곱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배포한 ‘대외부문 평가보고서’(ESR)에서 우리 경상수지 흑자가 과도하다고 지적한 것이 그것이다. 그나마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라는 무역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더구나 미국이 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목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여차하면 순식간에 무역 보복을 당할 수 있는 경계선에 놓여 있는 처지다. 그렇다고 우리 입장을 마땅히 호소할 데도 없다.

결국 내수 부진에 따른 불황형 흑자 기조를 깨기 위해서는 산업 고도화와 구조조정이 절실하다. 조선·해운업종은 물론 건설·화학·철강 등 취약 분야에 대한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고 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조속히 강구해야 한다. 내수 활성화를 위해 하반기 예산과 추경을 적극적으로 푸는 조치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 공허한 경상수지 성적표가 그것을 말해준다.

[서울신문]

3. 檢 알맹이 없는 ‘셀프 개혁’이라면 시작도 말라

지난주 진경준씨가 현직 검사장으로는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구속됐다. 검찰로서는 ‘참극’이었다. 그러자 검찰은 부랴부랴 국민 눈높이에 맞는 개혁을 하겠다고 나섰다. 걸어다닌 비리 종합백화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진 검사장 사건으로 검찰은 낯을 들 수 없는 지경이다. 검사장 출신인 홍만표 변호사의 법조 비리, 검사 자살 사건, 전직 검사인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싼 의혹까지 줄줄이 겹쳤으니 검찰의 속이 얼마나 답답할지 빤하다. 개혁 선언을 하지 않고 하루도 더 버틸 수 없던 상황이다.

대검찰청은 검찰개혁추진단을 꾸리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개혁 과제로 내건 것은 청렴문화 확산, 바람직한 조직문화 조성, 검사실 업무 합리화, 바르고 효율적인 검찰제도 정립 등이다. ‘셀프 개혁’을 하겠다고 검찰이 밝힌 내용들에서는 그러나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알맹이 없이 두루뭉술한 구두 선언으로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것 아닌지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검찰 울타리 밖의 우려와 내부의 긴장감 사이에는 온도 차가 너무 많이 나는 듯하다. 이번에도 별 기대를 품기 어렵겠다고 지레 혀를 차게 되는 까닭이다.

검찰의 셀프 개혁은 식상할 만큼 식상했다.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 2013년 검사와 피의자의 성관계 사건이 터졌을 때에도 검찰 개혁을 부르짖었다. 셀프 개혁 카드를 꺼낸 검찰은 한번도 속 시원한 결과물을 보여 주지 않았다. 대검찰청 감찰본부장에 외부 인사를 임명하겠다고 장담하더니 결국 자기 식구인 검사 출신을 심었다. 기소독점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기소배심제 도입을 약속하고서도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번번이 그런 식이었으니 검찰의 자정 선언을 귓등으로 듣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진 검사장의 다채로운 뇌물수수 비리는 자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음을 입증한 셈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당장 진경준 사건만 놓고도 검찰은 내부를 찌르는 비장한 개혁의 변죽도 울리지 않았다. 온 국민의 시선이 쏠린 현안이건만 조직의 치부는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게 숨겼다. 최근의 비리들은 검찰 내부에서 부정과 비리를 감싸 준 덕분에 괴물로 자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에도 검찰이 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으려면 개혁의 본질을 비켜 가지 말아야 한다. 또 면피로 끝낼 요량이라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여론이 왜 이토록 뜨겁게 지지하는지 그 의미를 새겨 보면 해답이 나온다.

4. 北 해킹에 뚫린 외교·안보 부처의 허술한 보안

국방부·외교부·통일부 등 외교·안보 부처 일부 공무원들의 이메일 계정 비밀번호가 북한 해킹 조직에 넘어갔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해커들이 개설한 피싱 사이트에 아무런 의심 없이 접속해 스스로 비밀번호를 입력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북한 해킹 조직의 먹잇감이 된 피해자들이 대부분 북한 관련 업무 종사자들이라는 점에서 타깃을 정해 놓고 개인정보를 훔치는 스피어피싱 공격을 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이 국가 기밀 자료가 포함돼 있을지 모르는 이들의 이메일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소름이 돋는다. 무엇보다도 피해자 중에는 국장급 이상 고위 공무원과 현역 군인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는데 이런 허술한 보안 의식으로 어떻게 북한의 집요한 사이버 공격을 제대로 막아 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

북한 해킹 조직은 외교·안보 부처 공무원과 방위산업체 임직원, 북한 관련 연구소 교수 등 90여명의 이메일 계정을 노렸다. 올 1월부터 총 27개의 피싱 사이트를 개설, 외교부와 방산업체·대학교·각종 포털업체 사이트 보안 담당자를 사칭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비밀번호가 유출됐으니 확인바란다”는 내용의 이메일에 속아 피싱 사이트의 비밀번호 변경 창에 직접 비밀번호를 입력한 피해자가 56명에 이른다. 북한 해킹 조직은 2014년에도 한국수력원자력 해킹 당시 비슷한 수법을 이용한 바 있다. 누구보다 철저한 보안 의식을 갖추고 북한 해킹 시도에 대비해야 할 외교·안보 부처 인사들이 아무런 경각심 없이 비슷한 수법에 당했다니 해당 부처와 피해 당사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빈센트 브룩스 주한 미군사령관이 강하게 우려했을 정도로 북한의 사이버 전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찰총국 산하 121국이 직접 해킹을 주관하고 있다. 6000여명에 이르는 북한의 ‘사이버 전사’들은 외교·안보 부처 공무원의 이메일이나 스마트폰 해킹을 시도하는 것은 물론 국민 생활과 밀접한 보건·금융·산업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까지 서슴지 않는다. 최근에는 인터넷 쇼핑몰을 해킹해 회원 정보를 빼돌린 뒤 돈을 달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북한의 대규모 해킹 시도 소식을 들을 때마다 국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외교·안보 부처 공무원들조차 이토록 보안 의식이 희박하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범정부적 차원의 북한 해킹 대책 수립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5. 성주 사드 민심 수렴하되 갈등 조장 말아야

원내 제3당인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어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포대 배치가 예정된 경북 성주군을 방문했다. 국회 교섭단체 중 유일하게 사드 반대 당론을 확정한 국민의당 의원들이 민심이 들끓는 현장에 대거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찬반 논란이 비등하는 현안에 대해 민심 수렴은 필수이겠지만, 대안 없이 갈등만 조장해서도 곤란할 게다. 우리는 공동체의 운명을 책임진 정치인이라면 북한 핵·미사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드 배치가 불가피해진 측면과 지역민의 피해 의식을 균형 있게 살펴야 한다고 본다. 정당이 국가적 이슈가 된 사안에 대해 현장의 생생한 여론을 듣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정치꾼’이 아니라 ‘정치인’이라면 사회적 갈등을 대치가 아닌 대화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대의민주주의의 요체다.

그럼에도 국민의당 박 위원장은 이날 현장 방문에 앞서 “오늘을 계기로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공언했다. 마침 성주에서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군민들이 촛불집회를 준비하는 시기에 나온 발언이었다. 그렇다면 정부와 지역민들이 참여하는 안전 협의체 등을 통해 대화를 통한 해법을 찾아야 할 시점에 잘못된 신호를 준 형국이 아닌가.

성주 군민들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고 있는 것은 일견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 위험이 애초 우려와는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지역민들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면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더라도 일종의 혐오시설을 정부가 사전에 일언반구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배치한 것 자체가 불만일 게다.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에서 그런 여론을 전달하고 정부를 견제하는 건 정당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하지만 혹여 원내 야당인 국민의당이 사드 촛불집회를 기웃거릴 요량은 꿈에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입법 독재’가 거론될 정도인 여소야대 국회에서 과거 군사정부 때와 같은 장외투쟁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한다고 착각하지는 말라는 뜻이다.

물론 국가 안보를 위해 사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우세하다고 하더라도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잖은 게 사실이다. 정당이 중·러와의 군사·경제적 마찰에 대한 우려나, 특히 우리 지역에는 배치할 수 없다는 주장을 마냥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예컨대 고준위 방폐장 설치 등 꼭 필요한 국가적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정당들이 결정권을 매번 지역민에게 떠넘기고 책임을 회피할 것인가. 사드 문제는 지역 민심을 최대한 수렴해 국회에서 치열하게 토론해 결론을 내고, 정히 이에 불복하는 정당은 “우리 당이 집권하면 사드 기지를 없애겠다”고 공약하고 대선에서 당당하게 국민의 심판을 구하는 게 옳다고 본다.


[매일경제]

6. 서둘러야 할 부적격자의 운전면허 통제와 관리

지난달 31일 부산 해운대 도심 교차로에서 광란의 질주로 17명의 사상자를 낸 승용차 운전자 김 모씨가 뇌질환에다 심장 협심증 환자로 순간 발작을 일으켰을 수 있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그는 정기적으로 약을 먹지 않으면 가끔씩 정신을 잃는 경우가 있다는데도 통제되지 않은 채 버젓이 운전을 하다가 참사를 냈다. 

운전자는 사고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병원이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한다. 더욱이 2013년 이후 낸 교통사고 중에 운전 중 보행로를 타고 올라가는 비정상적인 사고마저 있었다니 어떻게 계속 운전면허를 유지했는지 의문이다. 우리 사회에 이렇게 큰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도 방치됐음을 생각하면 답답하다 못해 분통까지 터질 지경이다.

이번 사고는 뇌질환이나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의 운전면허 취득과 관리가 사실상 무방비 상태가 아닌지 우려하게 만든다. 차량을 보행로로 몰고 올라가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낸 김씨의 전력을 볼 때 뇌전증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경찰 측 견해다. 뇌전증은 경련을 일으키고 의식장애를 일으키는 발작 증상으로 운전면허시험 응시 결격 사유다. 

김씨는 1993년 운전면허를 취득한 뒤 그동안 두 차례 적성검사를 받고 면허를 갱신했으나 뇌질환 검증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한다. 현행 규정에 정신질환이나 뇌전증 환자는 운전면허시험에 응시할 수 없도록 돼 있지만 당사자가 병력을 밝히지 않으면 넘어갈 수밖에 없다. 10년마다 실시하는 적성검사도 시력이나 청력 등 간단한 검사만 할 뿐이라 뇌질환 등을 걸러내지 못하니 유명무실하다.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정신질환이나 뇌질환 환자의 운전을 엄격하게 통제 관리하려면 운전면허 취득과 갱신 단계에서 심사를 철저하게 하도록 관련 규정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독일에서는 개인 병력을 운전면허 발급기관과 병원이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결격 사유에 해당하면 정밀 감정해 부적격자를 가려내고 있다니 참고할 만하다. 

인지나 대응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고령자들도 운전면허 갱신 기간을 10년에서 5년 단위로 줄였지만 더 단축하고, 연령대 차별 없이 실시하는 적성검사를 나이별 맞춤형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7. 野, 부자 증세 전에 면세자 축소부터 말하라

야당이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종합소득세 과세표준(소득 총액에서 공제액을 뺀 금액) 5억원 초과 구간을 새로 만들어 40%대 세율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현행 세법은 과표 1억5000만원 초과분에 대해 38%의 최고세율을 매기고 있는데 초고소득자에 대해서는 그보다 무거운 세금을 물리자는 것이다. 정부는 고소득자 세금 부담을 일방적으로 늘리는 데 반대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에 비해 소득세 부담이 적은 편이다. 2014년 소득세 세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013년 8.8%)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전체 세수 중 소득세 비중도 16%대에 그쳐 24%대인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그러나 세 부담은 소수의 고소득자에 집중된다. 2014년 종합소득세 과표 5억원 초과자는 전체 신고자의 0.3%인 1만8000여 명이었는데 이들이 전체 소득의 15% 남짓을 차지하고 전체 세액의 33%(6조9000억원)를 부담했다. 근로소득세의 경우 과표 8800만원 초과자가 전체의 1.6%인 27만여 명인데 이들이 전체 소득의 10% 가까이 차지하고 전체 세액의 40%(10조3000억원)를 냈다.

하지만 전체 납세대상자 중 48%(802만명)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근소세 면세자 비율은 2005년 48%에서 2013년 32%로 꾸준히 낮아지다 연말정산 파동에 따른 땜질 처방 탓에 다시 급증했다. 우리나라처럼 근로소득세 원천징수제를 운영하는 일본의 면세자 비율이 16~18%로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세제 개편의 기본 방향은 가능한 한 넓은 세원과 낮은 세율을 추구하면서 세수 증대와 공평 과세를 균형 있게 도모하는 것이 돼야 한다. 야당은 소수의 고소득자에게만 세 부담을 늘리는 안을 무작정 밀어붙일 게 아니라 그 전에 먼저 지나치게 높은 면세자 비율을 대폭 낮춰 국민개세(國民皆稅)의 원칙이 실현되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인기영합적인 발상으로 세제의 기본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8. 신뢰 갉아먹는 은행 ISA `수익률 뻥튀기` 막아야

IBK기업은행이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수익률을 부풀려 공시했다가 신뢰 손상을 자초하고 있다. 은행권은 올해 4월부터 판매에 나선 ISA의 수익률을 지난달 28일 처음으로 공시했다. 매일경제는 그중 기업은행 일임형 ISA 수익률이 부풀려진 사실을 지적했고 기업은행은 '금융투자협회 공시 기준을 잘못 해석한 결과'라며 오류를 인정했다. 

기업은행은 당초 은행권 일임형 ISA 가운데 최고 수익률을 낸 것으로 공시했던 '고위험스마트 모델포트폴리오(MP)'의 수익률을 2.05%에서 0.84%로 수정했다. 첫 수익률 공시에서 노출된 이런 오류가 은행권 일임형 ISA에 대한 신뢰를 전반적으로 훼손할 것이라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ISA는 하나의 통장으로 예·적금은 물론 주식·펀드·파생상품에도 투자할 수 있는 통합계좌로 매년 2000만원씩 5년 동안 1억원에 대해 비과세 또는 분리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근로자·농어민·자영업자의 재산 형성을 돕기 위해 올해 초 도입됐지만 원금손실이 가능한 상품이라는 사실 때문에 일임형 ISA를 은행권에 허용할지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일임투자 경험이 없는 은행 직원들이 무턱대고 판매실적을 올렸다가 고객에게 손실이 발생하거나 예상보다 수익률이 낮으면 은행 신뢰만 손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첫 수익률 공시에서 뻥튀기 논란이 빚어진 것은 이런 걱정이 기우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기업은행은 '3개월에 적어도 1회 이상 MP를 재조정하고 이를 투자자들에게 고지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ISA 약관도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의혹을 받고 있다. 

이미 은행권은 ISA 판매 초기 직원 1인당 판매목표를 할당하는 구태의연한 영업 방식으로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은행권에서 판매한 일임형 ISA 계좌 수는 증권사를 크게 웃돌지만 수익률은 전반적으로 저조해 애당초 은행권에 이 상품을 허용한 것이 옳았냐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ISA가 은행권 신뢰를 더 실추시키지 않도록 은행들이 영업직원 전문성 강화와 자산관리 시스템 구축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금융감독원도 은행·증권사의 ISA 운영·판매에 대해 수시로 실태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동아일보]

9. 19개월째 수출 줄어도 정부는 위기의식 없는가

7월 수출이 10.2% 줄어들면서 한국의 수출이 월간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최장인 19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줄어드는 불황형 구조가 굳어져 6월 경상수지 흑자는 반갑지 않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경상수지 흑자에 따른 원화가치 상승으로 수출 경쟁력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의 덫에 걸린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전년에 비해 조업일수가 1.5일(6.6%) 줄어들고 선박 수출이 감소하는 등 ‘일시적 요인’ 탓”이라며 “8월 이후 플러스로 돌아설 것”이라고 밝힌 것은 안이한 설명이다. 지난달에도 “하루 평균 수출액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회복 모멘텀을 만들어 가는 것으로 보인다”며 하반기 회복을 기대했다. 결국 위기의식을 못 느낀다는 얘기다. 

최근 중국의 산업구조가 고도화하는 흐름에서 가장 큰 패배자는 한국이라고 지적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보도는 뼈아플 정도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중간재를 중국은 이제 자체 생산하고 있다. 한국이 놓친 선박 수출은 이미 중국에 돌아갔다. 휴대전화나 첨단 TV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에서도 중국은 한국을 추월하거나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 지 오래다. “가계부채와 노동인구 감소, 그리고 정부의 의미 있는 대응 부족 때문에 한국은 앞으로도 10년은 연 2% 이상의 경제성장이 어려울 것”이라고 이 신문은 내다봤다. 

그런데도 정부는 근본적 문제 해결에 달려들기는커녕 1년 7개월 남은 현 정부의 실적에만 관심을 두고 백화점식 단기 대책만 쏟아내고 있다. 민관합동 수출대책회의 때 거론되는 방안이라고는 세제 지원, 수출금융과 종합상사 확대, 자유무역협정 활용 같은 구태의연한 지정곡뿐이다. 지금은 선진국뿐 아니라 신흥국까지 보호무역주의에 동참해 ‘수출한국’의 목을 조를 태세다. 정부가 6월 강조했던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 재편’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관료들부터 일시적 모면만 하면 된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연합뉴스]

10. 이화여대 학내 갈등 대화로 풀어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사학 이화여자대학교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 단과대학의 설립 문제를 두고 심각한 내홍에 빠져들었다. 교육부 지원사업인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학생들은 지난달 28일부터 대학 본관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고 있다. 농성 사흘째였던 지난달 30일에는 학교 측의 요청으로 1천600여 명이나 되는 경찰 병력이 투입돼 '감금'됐다고 주장한 교수와 교직원 등 5명을 '구출'하기도 했다. 경찰 병력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농성이 수그러들기는커녕 1일에는 참가 학생 수가 더욱 늘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학생들 가운데 '감금 행위 주동자들'을 가려내 이른 시일 안에 사법처리하겠다고 밝혀 이 사태가 형사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커졌다.

갈등의 발단이 된 미래라이프대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했다가 뒤늦게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이나 성인이 된 뒤 대학에 다니려는 사람들을 위한 단과대학이다. 미디어 콘텐츠를 기획·제작하는 뉴미디어산업전공과 건강·영양·패션을 다루는 웰니스산업전공 등의 과정을 운영하며 정원은 150여 명이다. 지난 5월 교육부의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에 참여해 선정된 이화여대는 9월부터 학생을 모집해 2017학년부터 4년제 학위과정을 운영할 예정이다.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에 관해 학교 측과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학생들은 "교육부로부터 30억 원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졸속으로 추진된 사업"이라면서 "기존 학생들은 물론 미래라이프 대학의 학생들도 수준 이하의 교육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학교 측은 "입학을 철저하고 투명하게 관리하고 양질의 교육과정을 준비해 자질과 능력을 갖춘 졸업생을 배출할 계획"이라며 "고등교육을 받을 능력을 갖춘 고졸 직장인에게 진학의 길을 열어주자는 취지를 학생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미래라이프대학의 설립과 관련한 일정을 중단할 뜻을 밝히고 학생들에게 "본관 점거 농성을 중단하고 바로 대화에 임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최 총장은 학생과의 대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점거농성 해제를 든 반면에 학생들은 최 총장이 농성장으로 와 면담하기를 바라고 있어 양측의 입장은 계속 평행선을 이루는 모양새다. 학교 당국이 진작 학생, 교수, 동문 등 학내 구성원들의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을 벌였더라면 지금과 같은 극심한 갈등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학교 측이 밝힌 대로 사회에 진출한 여성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명분 자체가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학은 군대나 사기업과 같이 지도자가 결정을 하면 구성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뒤를 따르는 조직과는 의사결정의 방식이 달라야 한다. 

학생들의 대응 역시 문제가 있다. 학교 측에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교 설립자의 동상을 훼손하고 농성 중 교수와 교직원의 자유를 억압하는 반지성적 행위까지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총장이 문제가 된 평생교육 단과대학의 설립 일정을 중단하겠다고 밝히면서까지 대화의 손길을 내밀었는데도 강경한 주장을 고수하면서 농성을 풀지 않고 있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학교 당국과 학생들은 이제부터라도 현안에 대해 진지하게 토의해 합의를 도출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경찰도 학내 문제에 섣불리 개입해 사태를 격화하는 것보다는 학내 구성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감금' 혐의에 대한 형사적 처리는 모두의 흥분이 가라앉고 사태 해결의 가닥이 잡힌 후에 본격 착수한다고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양희창의 에세이 산책] 일주일 휴대폰 없이 살아보기

“전화 안 받으셔서 완전 잠수 타신 줄 알았어요.” “감옥가신 줄 알았어요. 해외도피 하실 분은 아니고, 하하.” “왜 문자를 씹지, 나한테 화났나 생각하다 휴대폰을 분실했을 것 같아서 통쾌했어요. 맨날 나보고 덜렁거린다고 핀잔줬잖아요.” “세상하고 담쌓고 살 것 아니면 휴대폰은 켜 놓고 다니셔야죠.”

겨우 일주일 휴대폰을 꺼 놓았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온갖 추측으로 나는 사람이 아닌 무엇이 되어 있었다. 네트워크 체제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이 세상에 살지만 완전히 단절된 존재, 서서히 멀어져가는 존재가 된 것이다. 겨우 일주일만 어떤 정보도 보지 않고 어떤 문자나 메시지도 받지 않고 생활해 본 것뿐인데.

첫날은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 전화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다니고 책도 읽고 해방된 느낌이었다. 둘째 날이 되니 ‘혹시 중요한 전화가 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친구 어머님이 위독하다고 하셨는데 염려되기도 하고, 다음 주 강의 때문에 원고 달라고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을까, 약간 불안해지기도 하였다. 

셋째 날은 한 번만 문자를 보고 다시 꺼야 할지 망설여졌다. 청년학교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혹시 사고라도 치지는 않았는지 온갖 상상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성주 사는 후배는 사드 반대 데모에 가서 다치지는 않았는지, 북에서 엄포 아닌 실제 국지전을 감행하는 건 아닌지, 평소에는 전혀 없던 애국심마저 생기는 거였다. 

넷째 날이 되니 아, 내가 사이보그였구나, 기계와 유기체의 통합으로 살아왔구나 하는 자각이 든다. 기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 안경 빼면 뵈는 게 없고 핸드폰 없이는 소통도 못하고 길도 못 찾는 무능한 존재, 내가 스마트폰을 사용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스마트폰에 의해서 내 삶이 길들여지고 좌우되는, 오히려 인간이 기계의 부분 같은 오싹함이 드는 거였다.

인류의 조상이신 ‘오선생님’(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래 꾸준히 인간은 진화를 거듭해 왔는데 알고 보니 인간이 기계를 만들었지만 기계가 다시 인간을 진화시키고, 조금 진화된 인간이 발전된 기계를 만들어 그 발전된 기계에 의해 또다시 인간은 진화되고 결국 기계와 인간은 같이 ‘공진화’한 거라는 학자의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셨군요. 일하셔야죠.” 그래, 스마트폰이 있어야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를 남길 수 있구나. 

하지만 일주일 동안 별일 없었고 가끔은 영혼의 접속을 어디에 해야 할지 깨닫기 위해 휴대폰과 이별하는 시간을 꼭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깊게 한 일주일이었다.


2. [서울신문][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영화 코어에서 인터스텔라까지

불볕더위와 열대야로 밤낮없이 뜨거운 날이다. 더운 날씨에는 사람들이 영화관을 많이 찾아 영화업계도 앞다퉈 대작을 쏟아내고 있다. SF는 영화계에서 사랑하는 주제 중 하나다. 지구과학에서 특히 주목하는 작품들이 있는데 2003년 개봉한 ‘코어’라는 작품이다. 미국 정부가 비밀리에 개발한 무기가 가동되면서 지구 내부에 액체로 이루어진 외핵의 운동이 멈춘다.


그에 따라 지구자기장이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지구상 생명체가 절멸할 위기에 처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6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팀을 만들어 지구 내부로 들어가 운동을 멈춘 외핵에 핵폭탄을 터트려 정상적으로 움직이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지구과학을 주제로 다룬 것도 흥미롭지만, 지구 내부로의 여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장면들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지구 내부의 사실적 묘사를 위해 영화 제작 과정에 많은 지구과학자가 자문단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지구 내부 가장 안쪽에 자리잡은 코어(핵)는 철과 니켈을 주 구성성분으로 하며 내부 압력이 매우 높다. 이곳에는 지구 생성과 함께 많은 에너지원이 쌓여 있고 높은 열이 끊임없이 방출되고 있다. 고온, 고압 환경 때문에 액체 상태인 외핵과 고체 상태인 내핵이 분리되어 공존하고 있다. 액체 상태인 외핵은 지구 생명체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구 내부의 열과 지구 자전으로 외핵 내에서는 끊임없이 액체 철의 유체 운동이 발생하고, 그 결과 지구는 거대한 막대자석의 성질을 가지고, 지구를 감싸는 거대한 자기장을 형성한다. 이 자기장은 우주에서 날아오는 태양풍을 차단해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지구가 생성된 지 45억년 동안 외핵은 꾸준히 운동하며 생명이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것이다. 언젠가 지구 내부의 열 에너지원이 바닥나고 내부가 식어 외핵이 고체 상태로 변하면 지구는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외핵은 지구의 자전 속도도 조절한다. 행성은 생성 초기 빠른 회전으로 행성의 모양을 만들고 고유의 자전 속도를 유지한다. 지구는 외핵이 액체로 되어 있어 내핵과 지구 표면이 분리된 채 각기 다른 자전 속도로 회전한다는 것이 밝혀져 과학계에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구 내부의 이해는 다른 외계 행성의 환경과 성장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최근 우주 선진국들은 다양한 외계 행성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외계 행성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인터스텔라’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이해는 우주의 신비를 푸는 열쇠다. 영화들에서 등장하는 지구와 다른 행성의 다양한 정보와 지식은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의 호기심과 노력의 결과물이다. 일부 발견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기초과학 분야의 발전은 지난한 시간과의 싸움이며, 시간과 연구 역량 투입에 비해 당장의 경제적 효과와 국가적 이득을 창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꾸준한 지원과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이 2014년 4.29%로 세계 1위, 절대 금액 면에서도 세계 6위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연구개발 투자 총액이 19조원을 넘어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원천 기술개발이나 거대 과학기술에 해당하지 않는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소홀하다. 기초과학 연구를 통해 알아낸 지식과 정보가 당장의 먹거리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과 정보는 인류의 원초적 호기심을 푸는 열쇠를 제공할 뿐 아니라, 인류가 갑작스레 당면할지 모르는 생존의 문제를 푸는 데 가장 중요한 기초 정보가 될 수 있다.


3. [동아일보][광화문에서/이원홍]올림픽 엽기 사건

올림픽에서는 엽기적인 사건도 많이 발생했다. 더 좋은 성적을 올리려고 속임수를 쓰다 일어난 사건이 많았다. 

1960년 로마 올림픽 근대5종 단체전 경기에서였다. 근대5종은 수영 승마 펜싱 사격 크로스컨트리(육상)를 함께 치르는 종목이다. 튀니지 대표팀과 상대하던 선수들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펜싱 경기에 나선 튀니지 선수들의 경기가 너무 똑같았던 것이다. 알고 보니 튀니지 대표팀 선수 3명 중 1명이 다른 2명을 대신해 경기를 했다. 펜싱 경기에는 마스크를 쓰고 나서는 점을 이용했다.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들켰고 실격 처리됐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여자 1600m 계주에 나설 예정이던 푸에르토리코의 마델리네 데 헤수스는 대회 도중 부상으로 경기를 하기 힘들어졌다. 그러자 자신을 응원하러 온 쌍둥이 자매를 몰래 경기에 내보냈다. 푸에르토리코 여자 대표팀은 결선에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코치가 상황을 알아채고 사태가 커지기 전에 팀을 결선에서 철수시켰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여자 높이뛰기에 출전했던 독일의 도라 라트옌은 4위를 한 뒤 2년 뒤에는 세계기록도 세웠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였다. ‘그녀’를 수상하게 여긴 동료들로 인해 그의 정체가 밝혀졌고 기록은 삭제됐다.

경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해 벌어진 사건도 많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태권도 80kg 초과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쿠바의 앙헬 발로디아 마토스가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에게 킥을 날려 쓰러뜨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 외적인 이유로 올림픽을 이용하려 한 사건도 있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마라톤 선두를 달리던 브라질의 반데를레이 리마가 결승점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37km 지점에서 닐 호런이라는 괴한의 습격을 받아 쓰러졌다. 호런은 “세상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 다 같이 춤을 추자”고 주장해 왔다.


호런은 춤이야말로 사람들을 평화로 이끌 수 있다며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자신과 함께 춤을 추자고 했다. 호런은 올림픽 이전에도 시속 250km가 넘는 자동차 경주장에 뛰어들어 비슷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호런 자신은 세계 평화를 위한 절박한 심정으로 이런 사건을 일으켰지만 자신의 주장을 위해 올림픽을 방해했다. 리마는 결국 3위에 그쳤고 브라질은 금메달을 도둑맞았다며 분노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오늘의 올림픽이 마주한 현실에 비하면 과거의 이런 사건들은 어쩌면 소극(笑劇)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성적과 명예에 대한 욕망은 자매를 대신 출전시키거나 다른 선수를 대리 출전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러시아의 예에서처럼 국가가 개입하는 대규모 도핑 사태로 번졌다.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신선한 피를 새로 수혈받거나 금지된 약물을 복용하는 기괴한 행위들이 적발되고 있다. 

춤으로 세계 평화를 이끌어내자는 주장은 돌이켜 보면 낭만적으로까지 느껴진다.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은 대규모 테러의 공포 아래 놓여 있다. 테러는 합리적인 소통을 거부한 채 일방적인 메시지만을 강요하는 가장 야만적인 형태의 폭력이다. 

올림픽에 대한 다양한 위협은 역설적으로 올림픽의 광대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은 “올림픽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위한 행동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올림픽 참가자는 성실성과 도덕성, 그리고 타락한 욕망의 유혹을 물리칠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런 요소들은 경기장 밖에서도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이런 점에서 참가자들은 모두 미래를 위한 전사들이기도 하다. 6일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개막한다. 당당히 싸우고 돌아오라.


4. [동아일보][야마구치의 한국 블로그]한국에 ‘이모’들이 많은 까닭

지난달 22일부터 28일까지 구로 국제어린이영화제가 서울 구로구에서 열렸다. 일본 영화 ‘사랑이 꽃피는 가족’이 본선에 진출했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계속 거론되고 있는 ‘지방창생’(지방 부흥)의 일환으로 시즈오카 현 미시마 시민 약 1만 명이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영화다. 일본 전통가옥도 촬영 장소로 제공받고, 많은 일반 시민이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인구가 지방에서 도시로 이동하고 지방은 고령자만 남아 쇠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골을 부흥시키자는 운동이 국가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 영화도 제작 과정을 통해 고향에 대한 애착심을 증폭시키고 고향 자연의 아름다움, 전통문화를 지키려고 하는 마음을 모으는 효과를 얻었다. 

일본의 축제는 마을을 결속시키는 원동력이었다. 지역별로 특색 있는 음악과 춤, 의상으로 1년 동안 축제 준비를 한다. 지금도 지역별로 축제를 이어가고 있는데, 가마를 짊어질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는 바람에 축제가 없어지는 지역도 있다고 한다.

영화는 가족이 아니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가족을 이루게 됐는데 부부가 “가족이라는 게 무엇일까”라는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 열매가 열리고 씨가 땅에 떨어지는 과정을 가족의 모습으로 비유했다. 또 옛날 서당 같은 곳에서 함께 배웠던 동무들도 가족으로 생각한다는 대사도 나온다. 뜻을 함께하여 같이 가는 사람들도 가족이라고 말했는데 이 개념은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정착되어 있다. 

나의 일본어 제자는 나에게 이모를 여러 명 소개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사람은 친척이 많은 사람인가 봐’라고 생각했다. 식당에 가도 이모가 있고 그냥 이모가 있고 아는 이모가 있고 나중에야 친척이 아님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 만나자마자 나이를 물어보는 사람이 많은데, 상대가 위인지 아래인지를 알아야 경어를 쓸 것인지, 편하게 대할 것인지 태도를 정할 수 있기에 그런 것 같다.

만나자마자 ‘형, 동생, 언니, 누나’라고 정하는 것도 특유한 일이다. 일본이나 유럽 쪽은 나이를 묻지 않는다. 여성에게는 결혼했는지 물어보는 것도 조심스러워 본인이 말할 때까지 물어보지 않고 지내는 일도 많다. 10년 전 알게 된 동업자가 결혼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물어보지 않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들끼리 전철에서 옆 좌석에 앉자마자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 신기했다. 계단 앞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서 있을 때 젊은 남자가 들어다 주는 것도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대가족주의라는 큰 사회 통념이 있다. 연세가 드신 분을 부모처럼 대하고 남의 집 자녀를 내 자녀처럼 보살피는 등 마음이 넓고 따뜻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서울시나 구에서 마을 공동체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일본의 ‘지방창생’과 통하는 것을 느낀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서 아이들을 돌보기가 어려운 가정은 마을에서 함께 밥도 먹여 주고 공부도 가르쳐 주고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부모도 안심하고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고 자녀들도 방치되지 않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되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공동체 모두가 가족처럼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정신적 교육적으로 지원해 주는 체제가 되면 범죄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부모가 열심히 일해도 아이들을 정서적 교육적으로 돌봐 주는 역할을 못 하면 자녀들은 공부도 못 하고 좋은 직장도 못 구하고 환경은 악순환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말로 마을공동체 결속이 필요한 때다. 연세가 드신 분을 자신의 조부모, 부모처럼 생각하고 어느 아이들에게도 자식처럼 잘해 주고 마을 전체가 한 가족처럼 필요한 역할을 서로 해줄 때 한국 사회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퇴직한 교사, 예술가, 상담사들이 재능기부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례를 많이 봐 왔다. 모든 지역에서 꾸준히 이뤄졌으면 한다. 

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 할 청소년들이 바르게 자라고 각자의 재능을 계발하고 사회에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스승의 역할을 더불어 해줄 수 있는 사회 기구가 필요하다. 한국의 대가족주의가 한국뿐만 아니라 국가, 인종의 벽을 넘는 가치관으로 온 세계에 확산되면 좋겠다.


5. [중앙일보][삶의 향기] 세상의 꼰대들과 결별하는 방법

순대·곱창·돼지 껍데기·닭발·산낙지·번데기…. 생각만 해도 침이 절로 고이는 ‘소울 푸드(Soul Food)’ 목록이냐고? 아니다. 얼마 전 모 신문에 실린 일명 ‘아재 테스트’다. 30여 종의 음식을 나열하곤 그중 먹을 수 있는 것들의 개수를 세어 보란다. 내 경우 딱 한 가지가 아리송했다. 새끼보. 암퇘지의 자궁 부위를 일컫는다는데 경험이 일천해서인지 아직 접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머진 다 먹는다고 답하니 어이없게도 나더러 ‘뼛속까지 아재’란다.

편식하지 않는 건전한 식습관을 가졌을 뿐인데 다짜고짜 아재로 낙인찍다니. 울컥 억울한 생각이 들어 인터넷을 뒤져봤다. 요즘 뜨는 가요나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ㅇㄱㄹㅇ(이건 레알)’ 따위 유행어를 얼마나 아는지 묻는 비슷비슷한 판별법이 난무한다. 입맛이 아니라 노래나 말을 잣대로 자가 진단을 해 봐도 결과는 거기서 거기. 이쯤 되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래, 기를 쓰고 아닌 척했지만 실은 아재 맞다”고.

그래도 아재는 양반이다. 연식이 좀 오래돼 감이 떨어진다는 것뿐 심각한 비호감의 대상까진 아니다. 청년들 입장에선 자기들과는 다른, 그래서 배려가 필요한 ‘옛날 사람’ 정도랄까. 문제는 꼰대다. 단지 나이만 많은 게 아니라 그 많은 나이를 흡사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시대착오적 족속을 칭하니 말이다. 젊은 세대에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불통의 대명사다. ‘설마 난 아니겠지’ 하면서도 내친김에 시중에 나도는 ‘꼰대 테스트’까지 도전해 봤다.

‘"내가 너희만 할 땐~”이란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누굴 만나면 대뜸 나이부터 물어본 뒤 어리면 말을 놓는다/"솔직하게 말하라”고 해 놓곤 막상 후배가 그렇게 하면 기분이 상한다/회의 때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자”고 한 뒤 결국 먼저 답을 제시한다…’

이 리스트를 보며 가슴이 뜨끔한 건 과연 나뿐일까. 그나마 판정 결과가 ‘꼰대 경보 발령’에 그친 게 불행 중 다행이다. 아직은 만회할 여지가 남아 있단 소리니까. 할 수 없는 건 빼고, 급한 대로 할 수 있는 것부터 고쳐 보기로 했다. 우선 “내가 너희만 할 땐~”으로 시작하는 잔소리라도 줄여 볼까 한다. “난 신입 때 소주 한 잔도 못 마셨는데 선배들이 주는 대로 다 받아마시다가 주량을 두 병까지 늘렸잖아.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는 거야” “칼퇴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옛날엔 야근한 뒤에도 ‘집에 잠깐 다녀오겠습니다’하고 겨우 갔거든”… 1988년이면 모를까 2016년엔 폭력이 될 수도 있는 얘기들 말이다.

‘권력간격지수(Power Distance Index)’란 말, 혹시 들어 보셨는지? 네덜란드 사회학자 기어트 홉스테드가 만들었는데 특정 집단이 권위나 위계질서를 얼마나 중히 여기는지를 나타낸다. “직원들이 상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데도 무서워서 말하지 못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나” “나이 많은 사람이 두려움의 대상인가” 등의 질문을 던져 측정했다고 한다. 다들 짐작할 수 있듯 한국은 이 지수가 높은 축에 속하는 나라다. 그런데 이 지수가 절대 높으면 안 되는 대표적 조직이 바로 항공사다. 조종사들 간의 원활한 소통 부족이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비단 항공사뿐일까. 어디든 젊은이들은 입을 다물고 기성세대만 목소리를 높이는 조직의 미래가 밝을 턱이 없다(얼마 전 멀쩡한 검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검찰 조직만 봐도 뻔하지 않나). 더욱이 기상천외한 상품과 서비스를 속속 내놓지 않고는 삼성이 아니라 삼성 할아버지라도 살아남기 힘든 시대다. 요즘 기업마다 창의력을 높인다며 앞다퉈 조직 문화 바꾸기에 나선 건 그래서다. 오랜 세월 수직적인 질서에 안주해 온 꼰대들로선 무시무시한 퇴출 위기를 맞은 셈이다. 좋든 싫든 청년 세대와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만이 살길이다. 어떻게 하면 되냐고? 앞서 소개한 꼰대 테스트 속에 답이 있지 않나 싶다. 상대가 듣기 싫은 말 안 하고, 하고 싶은 말 들어 주란 얘기다.

이도 저도 힘들면 틈나는 대로 아재개그라도 날려 보시라. “항상 미안한 동물은? 오소리” “새우가 출연하는 사극은? 대하사극” “가장 야한 채소는? 버섯”… 소통을 위해 이 정도까지 망가질 수 있다면 비웃음을 살망정 적어도 꼰대 소리는 면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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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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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책임지는 리더십 없었다’ 지적한 메르스 백서

정부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종식 선언을 한 지 1년여 만에 메르스 백서를 내놓았다. 모두 476쪽 분량의 백서가 나온 까닭은 간단하다. 메르스 사태의 원인을 분석하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배경을 따져 교훈을 얻고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백서는 중앙정부의 대응 조직과 협력 체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짚었다. 60대 남성이 첫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도 전염성이 낮다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은 정부의 오판은 지금 돌아봐도 안타깝고 답답하다. 8일 뒤에나 대책본부를 만들었던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에 반성의 초점이 모아졌다. 한국보건사회원구원이 설문한 관계자 291명의 절반 이상은 정부의 미흡한 대응을 문제라고 꼽았다.

위기 과정에서의 정부 소통력 부족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뻔히 방역망이 뚫렸는데도 정부는 메르스 환자가 다녀간 병원을 합당한 이유도 없이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 탓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각종 괴담과 유언비어가 퍼졌던 혼란에 정부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보의 불투명성과 비밀주의로 정부가 스스로 신뢰도를 치명적으로 떨어뜨렸다는 지적은 누가 봐도 맞는 말이다. 이질적인 집단이 대책본부를 꾸린 탓에 일사불란한 업무 조정이 애초에 쉽지 않았다는 지적도 아프게 새겨야 한다.

백서의 목소리는 한마디로 집약된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느라 책임지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설문 응답자의 76%가 지휘관리 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메르스 대응의 정부 컨트롤타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불요불급한 보고를 요구했으면서도 보고 체계가 명확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결코 메르스 사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관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정보 소통에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는 국민 불신을 배가시켰다. 정부가 앞으로의 위기 상황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정부의 반성을 토대로 제2의 메르스 사태를 예방하자는 것이 백서 발간의 취지다. 그런데도 일선 의료기관의 응급실 감염 예방 태도는 언제 위기가 있었냐는 듯 안이해지고 있으니 걱정스럽다. 방문객 출입 통제 등 권고 수칙 이행률이 최근 몇 달 새 큰 폭으로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의료 현장과 시민의 자세가 함께 변하지 않고서는 백서가 백 권이 나온들 헛일이다.

2. 국회의원 ‘김영란법’ 예외 고수, 저항 두렵지 않나

‘김영란법’ 합헌 결정 이후 후폭풍이 거세다. 법 적용 대상에서 국회의원을 사실상 뺀 데 대한 논란은 더 커졌다. 법 시행 전으로 접대를 당기려는 갖가지 꼴불견 행태들이 춤을 춘다. 주무 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서둘러 시행령을 법제 심사에 넘겼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 등 일부 부처들이 강력 반발하면서 식사와 선물, 경조사비 상한액인 이른바 ‘3·5·10룰’이 온전히 시행될지는 미지수다.

국민들은 부정청탁과 관련해 국회의원을 예외로 하는 조항을 김영란법에 둔 점에 대해 몹시 의아해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민원인들의 청탁이 잦은 대표적인 공직자이기 때문이다. 민간인인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에까지 엄정한 잣대를 들이댄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국회의원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의원들은 요지부동이다.

한 언론사가 김영란법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 소속 여야 의원 24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응답자 19명 중 10명이 예외 조항을 없애는 데 반대했다. 6명만이 법 개정에 찬성했다. 반면 시민단체와 변호사, 상급노조도 적용 대상에 넣어야 하느냐는 질문엔 10명이 찬성했다. 공공성이 높은 직군이라는 것이다. 공공성 측면에서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보다 더 강한 직업은 없다. 양심이고 논리고 다 팽개치면서 법 위에 군림하려는 몰염치가 놀랍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허수아비로 여기지 않는다면 이럴 수 없다고 본다.

김영란법이 합헌 결정을 받긴 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권익위는 헌재 결정 하루 만인 지난 29일 법제처에 김영란법 시행령에 대한 법제심사 요청서를 보냈다고 그제 밝혔다. 시행령은 법제처 심사와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그러나 농식품부 등이 식사·선물 금액 기준 조정을 위해 시행령을 정부입법정책협의회에 상정할 것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럴 경우 3·5·10룰이 국무조정실의 조정으로 바뀔 수도 있다. 시행이 며칠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혼란이 극심해질까 우려된다.

권익위는 물론 검찰, 경찰은 김영란법 시행 전후 혼란이 빚어지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권익위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직종별 매뉴얼을 제작해 다음달 발간할 예정이다. 다만 농식품부 등 타 부처의 요구대로 선물 등의 상한액이 조정될 경우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청탁 금지 기준의 핵심인 ‘업무 관련성’에 애매한 경우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경찰의 자의적 판단을 줄이기 위해 촘촘하면서도 분명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엄밀한 수사 원칙도 세워야 한다. 수사 착수나 처벌이 상황에 따라 들쑥날쑥하면 표적 수사나 공정성 논란이 일 수 있다. 벌써 김영란법이 검찰의 힘만 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반부패법이 공정성을 의심받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김영란법을 외면하는 정치권과 법을 집행할 행정·수사 당국이 항상 새겨야 할 대목이다.

3. 여야 대표 선거, 큰 그림은커녕 黨 절박감조차 없다

원내 제1, 2당인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예상치 못했던 참패를 당했고, 야당 맏형인 더민주는 전통의 텃밭인 호남을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에 내주는 치욕을 맛봤다. 돌아선 민심을 하루속히 되돌리지 못하는 한 새누리당은 정권 재창출 희망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더민주가 총선 때의 ‘1석 승리’에 안주한다면 정권 교체는 일장춘몽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두 당 앞에 놓인 진땀 나는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양당의 대표 선거에서는 그런 절박감이 읽히지 않는다.

이정현·이주영·한선교·정병국·주호영 후보 등 범친박 3명과 비박 2명 간의 5파전으로 확정된 새누리당의 대표 경선은 계파싸움으로 일관하고 있다. TV 토론에서도 총선 패배 책임 공방에만 몰입했을 뿐 국민적 공감대를 자극할 정책이나 비전은 내놓지 못했다. 계파 실력자들이 뒤로 빠진 채 고만고만한 후보들끼리 ‘대리전’을 치르고 있으니 애당초 흥행은 언감생심이다. 원내대표라도 지낸 후보가 한 명도 없어 ‘사무총장급 대표 선거’라는 조롱까지 나오고 있지 않은가. 이런 식이라면 누가 되더라도 당내 리더십조차 제대로 세우기 어려울 지경이다.

추미애·송영길·김상곤·이종걸 후보가 나선 더민주의 대표 경선은 대여(對與) 선명성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후보들은 지난 대선의 공정성을 재론하거나 박근혜 정권을 과격하게 성토하고 나섰다. 정권 교체를 노리는 수권정당임을 확인시켜 줄 정책이나 비전 경쟁은 실종됐다. 이 후보를 제외한 3명의 후보가 ‘이래문’(이래도 저래도 문재인)으로 차별이 안 되니 전통적 야권 지지층에 호소하기 위해 청와대 및 여당과 각을 세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당 내부에서조차 ‘도로 운동권당’이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겠는가.

이번에 선출되는 두 당의 차기 대표들은 대선 구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내년 대선에서 자당 후보를 반드시 당선시켜야만 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게 된다. 탁월한 리더십으로 국민을 감동시킬 만한 정책과 비전을 개발해 제시함으로써 대선 후보를 더욱 빛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두 당의 대표 후보들에게서는 그런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하다못해 내년 대선을 어떤 전략으로 치를지에 대한 절박한 고민도 엿볼 수 없다. 정권 재창출이든 정권 교체든 선택은 당원이 아닌 국민이 한다. 두 당의 대표 후보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만 한다.

[동아일보]

4. 조계종, 푸른 눈 현각 스님의 비판 뼈아프게 새겨야

미국 하버드대 출신 ‘푸른 눈의 수행자’ 현각 스님이 조계종을 비판하며 개혁을 촉구했다. 현재 그리스에 머물고 있는 그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달 중 마지막 한국 방문 계획을 밝히고 “앞으로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만 활동하겠다”고 적었다. 현각 스님은 “(조계종 승려로) 25년 살아보니 외국인 스님들은 오로지 조계종의 데커레이션(장식)”이라며 “한국의 선불교를, 누구나 자기 본래의 성품을 볼 수 있는 열린 그 자리를 그냥 기복 종교로 항복시켰다”고 비판했다.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인 현각 스님은 미국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조계종 화계사 숭산 스님을 만나 1992년 출가했다. 숭산 스님은 약 50명의 외국인 지식인을 출가시켰고 그중에서도 현각은 가장 잘 알려진 스님이다. “내 전생이 한국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 사랑이 남달랐던 현각 스님이 한국의 조계종에 대해 돈으로 복을 사는 기복신앙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해 불교계 안팎에 충격이 크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발언이 조계종에 대한 결별 선언으로 해석되자 어제 한 언론에 영문 e메일을 보내 “조계종을 떠난다고 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조계종의 교육은 달마의 가르침과 기술에 대한 독특하고 귀중한 그릇”이라면서도 “불행히도 정치와 돈과 극단적으로 완고한 민족주의 때문에 현재 조계종의 방향은 그 기술을 세계에 전하는 귀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며 한국 승려와 불자들의 개혁을 촉구했다.

현각 스님의 불만은 그가 원장을 맡았던 화계사 국제선원(외국인행자교육원)이 3월 문을 닫은 것과도 관련이 있다. 조계종은 “외국인행자교육원을 폐쇄하고 은사 스님이 직접 가르치는 교육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조계종의 낡은 관행에 반발하는 외국인 승려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조계종 지도부 사이의 알력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조계종은 현각 스님이 던진 ‘기복=$, 슬픈 일’이란 표현을 죽비소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조계종 역사에 처음 등장한 외국인 승려의 비판을 낡은 관행 개선의 계기로 삼지 못하면 조계종은 세계화는 고사하고 우물 안 개구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

5. 꼼수로 출자회사 늘린 公기관… ‘공공개혁’은 헛소리였나

공공기관들이 박근혜 정부 들어 자회사를 149개나 설립해 방만 경영으로 부실을 키운 사실이 드러났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어제 발표한 ‘공공기관 출자회사 운영 실태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들이 정부와 사전협의 의무를 어기고 무분별하게 출자회사를 세워 매년 적자가 쌓이는데도 정부는 아예 감독을 하지 않고 있다. 이들 출자회사에 은밀하게 재취업한 퇴직 임직원들이 지난 5년간 213명이나 될 정도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들의 낮은 생산성과 비효율적 경영, 과도한 임금 및 복지 등 도덕적 해이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선진국에선 국영기업 민영화 등 공공개혁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데 노무현 정부 5년간 공공기관이 260개에서 305개로 되레 늘었다. 2009년 공기업 총부채가 213조 원으로 사상 처음 200조 원을 넘어서자 정부는 공공기관 출자회사의 48%(131개) 정리 방안까지 발표했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지 않아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출자회사가 모기업 방만 경영을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번 평가 결과 74개 공공기관이 소유한 출자회사가 560개로 2009년 말(330개)보다 230개나 늘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수치상으로 신설된 출자회사는 302곳이지만 그나마 일부가 통폐합 또는 매각됐다. 한국가스공사는 ‘해외 진출’을 명분으로 2010년 725만 달러(약 81억 원)를 들여 우즈베키스탄 압축천연가스(CNG) 충전소를 세웠으나 최근 5년 동안 적자를 내고 있다.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2015년 설립한 공영홈쇼핑은 그해 190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내 중소기업유통센터의 손실로 고스란히 옮겨진 형편이다.

이처럼 출자회사가 난립하고, 상당수는 경영부실로 적자가 나는데도 정부 부처나 국회는 제동을 걸지 않고 있다. 현행 공공기관 체제가 관료, 정치인, 공공기관 임직원의 이익이 한데 엮인 거대한 카르텔 구조인 까닭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부채 감축, 임금피크제 도입 등 과거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공공기관들이 완료해 가고 있다”며 공공기관장들을 칭찬했다. 공공기관들이 출자회사를 통해 뒤로 부실을 쌓아둔 실정을 알고도 칭찬한 것인지 궁금하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주말 강원 평창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최고경영자 하계포럼에서 “노동개혁이 가장 중요한데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경직된 노동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었겠지만 정작 공공개혁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현실에는 눈을 감고 있다. 출자회사로 비대화를 꾀하는 공공기관 감시의 사각지대를 없애지 않고는 공공개혁의 진의를 의심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데일리]

6. 항공기 대형참사 터져야 정신 차리려나 

국적 항공사들의 항공기 사고가 최근 빈발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지난 29일 일본 나리타에서 출발해 제주공항에 착륙하던 대한항공기의 앞바퀴 타이어가 활주로에서 완전히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항공기가 활주로를 벗어나거나 전복되지 않아 승객과 승무원 157명 중 다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자칫 인명 피해를 동반한 대형 참사로 이어졌을지도 모를 아찔한 순간이었다. 

걱정은 올해 들어 국적 항공사들의 고장이나 사고가 잦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항공은 불과 두 달 전인 지난 5월에도 일본 하네다공항을 이륙하려던 항공기의 왼쪽 엔진에서 불이 나 탑승자 319명이 비상 탈출하는 사고를 냈다. 올해 1월에는 김포에서 상하이를 향해 이륙했던 아시아나 항공기가 이륙 후 바퀴가 접히지 않는 바람에 회항하는 소동을 빚었다. 이래서야 어디 항공기를 마음 놓고 탈 수 있겠는가. 

저비용 항공사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진에어 여객기가 운항 중 유압시스템 이상으로 일본 간사이공항에 긴급 착륙하는 사고가 있었다. 진에어는 1월에도 필리핀 세부에서 부산으로 오는 여객기의 출입문을 제대로 닫지 않고 이륙했다 회항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엔 김포를 떠난 제주항공 여객기가 기내 압력조절장치 이상으로 급강하해 비상착륙했다. 불길한 조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국이다. 

잦은 항공기 사고를 가벼이 넘겨선 안 된다.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방심할 일이 결코 아니다. 대형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또는 우연히 발생하는 게 아니다. 이전에 작은 기체 결함 등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나타난다는 ‘하인리히 법칙’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항공 당국과 항공사 모두 항공기 안전관리에 구멍이 뚫려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사고 원인을 명확하게 밝혀 비슷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한항공에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모든 항공사들의 안전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해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 번 일깨울 필요가 있다. 항공사들은 스스로 항공기 정비와 운항체계, 안전의식에 허점은 없는지 살펴야 함은 물론이다. 빈발하는 사고가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미리미리 경계해야 한다.

7. 세제개편안 '생색내기' 논란 벗어나려면

정부가 최근 내놓은 올해 세제개편안은 침체 국면에 빠진 한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를 내비쳐 높이 평가할 만하다. 서민과 중산층의 세금 부담은 줄이고 기업이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과세 평형성을 높이고 안정적인 세입기반을 확보해 국가경제 성장동력을 확충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정부 방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둘째·셋째의 출생·입양 세액공제액 확대가 대표적인 예다. 정부는 자녀가 1명 있는 근로소득자가 둘째를 출산하면 현행 30만원인 출생·입양 세액공제액을 50만원으로, 셋째 아이를 낳으면 70만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치솟는 육아비용은 차치하더라도 출생이 일생에 한 번뿐인 점을 감안할 때 세액공제를 몇십만원 더 받겠다고 아이를 더 낳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소득세 과세 체계에 드러난 문제점을 그대로 둔 점도 보완해야 할 대목이다. 2014년 근로소득세 납세 대상자 1669만명 가운데 거의 절반인 802만명이 세금을 한 푼도 안 내 면세자 비율이 48.1%에 달한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데에는 정부가 2013년 세액공제를 도입할 때 면세자 기준을 과도하게 낮춰 기존 납세자 상당수가 면세자로 처리된 데 따른 결과다. 세금을 내지 않는 근로자가 전체 납세대상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것은 조세 원칙은 물론 헌법에 명시된 국민개세주의(皆稅主義)를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경제가 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복지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재정건전성을 나타내는 관리재정수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비율이 2.4%나 됐다. 관리재정수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재정의 적자 기조가 자칫 고착화할 위험마저 보이고 있다. 정부가 조세 형평의 원칙을 엄수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국민개세주의에 입각해 세원을 넓히고 공평 과세를 통해 세수를 증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급증하는 복지 수요에 발맞춰 조세 부담을 조절하는 균형자 역할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매일경제]

8. 어린이 안전사고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적용해야

지난달 29일 전남 광주에서 네 살 어린이가 유치원 통학버스에 7시간 넘게 갇혀 있다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이는 최고 35.3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 냉방 장치가 꺼진 버스에 방치됐다. 5년 전에도 경남 함양에서 폭염 속에 7시간 동안 어린이집 차 안에 갇혀 있던 다섯 살 난 어린이가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지난달 광주에서는 차 안에서 혼자 잠들어 있던 여자 아이가 2시간 만에 발견되기도 했다. 

한여름 바깥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가면 차 안 온도는 90도를 넘는다. 아이 혼자 차 안에 방치하는 것은 살인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어른들의 안전불감증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으니 참으로 큰일이다.

어린이 안전 지침이 없는 것도 아니다. 4년 전부터 어린이 등·하원 시간 기록, 통학버스 운영자와 운전자에 대한 안전교육이 의무화됐다. 어린이들이 통학버스에 방치되지 않도록 맨 뒷자리까지 반드시 확인하도록 교본에도 나와 있다. 문제는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인솔 교사는 내부를 제대로 둘러보지 않았고 유치원에서는 출석 체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어린이 10만명당 3명 정도가 각종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최근 5년간 차 안 방치 등 통학 차량 사고로 숨진 어린이만 40명이다. 반복되는 어린이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충격요법이 필요하다. 현행법상 어린이를 차 안에 방치할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금고나 20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지만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다. 앞으로는 고의성이 없더라도 처벌 강도를 높여야 한다. 

전국 민간 어린이집은 3만7000곳이 넘는다. 영세하다는 이유로 외주업체에 통학버스 운행을 맡기거나 인솔 교사를 배치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안전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상시 점검하고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해 안전에 소홀한 어린이 시설은 과감하게 퇴출시켜야 한다.

[중앙일보]

9. 대화와 타협보다 물리적 충돌로 치달은 이화여대

교내 갈등에 경찰까지 끌어들인 이화여대 사태는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 이성적 대화보다 거친 물리력을 앞세우는 반지성적 문제해결 방식으로 치달아 착잡함을 느끼게 한다. 이번 갈등은 학교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 단과대학 신설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교육부가 지원하는 ‘미래라이프대학 사업’에 이대가 추진 대학으로 선정되면서 단과대 신설에 나선 것이다. 추가 정원을 뽑아 기존 입학 정원은 유지하면서 직장인들의 라이프 사이클에 맞는 학사일정이 진행되는 단과대다. 이런 평생교육 단과대학은 고등교육의 기회 확대와 평생교육 사이클을 만든다는 국가 교육이념에 부합하는 모델이다.

문제는 이런 단과대 소식에 학생들이 ‘돈벌이’ ‘학위 장사’로 반응할 정도로 대학과 학생 간의 신뢰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총학생회는 이번 사업이 교육부에서 30억원을 지원받는다는 점에서 학교가 돈벌이를 위해 설립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표명했다. 학생들이 질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고, 학교는 교육의 질을 높이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한데 국내 명문사학이 학생들로부터 교육의 질을 의심받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건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학교 스스로 반성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학교와 학생의 반지성적 문제 해결 방식이다. 학생들은 대화와 타협의 노력과 사회적 공기로서 대학의 역할이나 미래형 대학의 갈 길이라는 비전에 대한 고민보다 물리력을 앞세운 점거농성 방식을 택했다. 이에 맞서 총장은 경찰을 불러들였다. 대학 내에 공권력을 끌어들이는 것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도 보기 드문 일이었다. 명분도 변명도 찾기 어려운 행위다. 이로써 이대 사태는 ‘이화여대’라는 브랜드 가치를 믿고 지성적 대화로 문제 해결에 이르는 모습을 기대하는 국민을 실망시키며 새로운 갈등 국면으로 증폭되고 있다. 나름 명분이 있는 사업을 둘러싸고도 소통보다 물리적 충돌로 치닫는 명문사학의 모습에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다.


10. ‘음주운전 경찰청장' 검증 제대로 한 건가

이철성 경찰청장 내정자가 23년 전 음주운전으로 처벌 받은 사실이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그가 경찰 간부 지위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진경준 검사장 사건으로 공직자들의 도덕성이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경찰청장 인사 검증이 부실하게 이뤄졌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내정자는 강원경찰청에 근무하던 1993년 음주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를 내 벌금 100만원의 처분을 받았다. 당시 그는 휴무일 점심시간에 직원들과 술을 마신 뒤 개인 차량을 운전하다 사고를 냈다고 한다. 그는 또 2005년 부인 명의로 강원도 횡성군의 대지를 매입해 2층짜리 건물을 신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내정자 가족이 이곳에 주민등록을 둔 적이 없다”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이 내정자가 정선경찰서장 재직 중 얻은 개발 정보로 부동산을 샀다는 것이다.

이 내정자는 “23년 전의 일이지만 경찰공무원으로서 음주운전을 한 데 대해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부적절한 처신에 거듭 사죄드린다”고 했다. 부동산 의혹의 경우 추후 청문회에서 사실 여부가 가려지겠지만 음주운전은 그 자체만으로 경찰청장 자격을 문제 삼을 수 있는 사안이다. 음주운전 단속을 하는 경찰의 총수가 음주운전 사고로 벌금형을 받았던 전력이 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82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해 89년 간부후보생 시험을 거쳐 경찰 간부의 길을 걸어온 이 내정자가 음주운전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 몰랐을 리 없지 않은가.

이 내정자 논란을 계기로 고위직 인사 검증을 맡고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진 검사장 인사 검증 실패에 처가 부동산 거래 의혹까지 불거진 우 수석이 이 내정자를 제대로 검증했는지 의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휴가 중이던 지난달 28일 경찰청장 내정 발표를 하면서 당분간 우 수석 체제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런 부실 검증 논란을 대체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겨레][김곡의 똑똑똑] 터치

만진다는 것, 즉 터치는 소통, 접속, 인지 따위의 현학적인 개념들로는 참으로 다 설명해내기가 어려운 말이다. 그딴 말들로 다 설명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터치에는 여전히 해명되지 않은 어떤 신비한 잉여작용들이 남는다. 개인적인 사례 중 으뜸은, 얼마 전 밥을 먹다가 마침 앓고 있던 충치를 반찬이 건드리는 바람에 까무러쳤던 경우다(깍두기가 충치의 협곡과 정확히 도킹되어 고통은 끝장이었다). 정말이지 차라리 죽고 싶은 고통이었다. 아내가 와서 슬며시 안아주고, 그로 인해 고통이 꼬리를 내리기 전까진. 또 하나의 부끄러운 사례는 담배를 끊었던 2년 전이다. 담배를 끊으니 입도 심심하고 손가락도 심심하고 해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아무 모서리나 만지던 해괴망측한 버릇이 생겼다. 만짐의 공핍을 정말 만짐으로 채우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 아내의 포옹이 내 충치의 반란을 누그러뜨렸던 바로 그 신비로운 방식처럼?

물론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충치의 고통을 정말로 제거한 것은 다음날 당신이 찾아간 치과 의사 선생님의 정밀한 과학이고, 무엇보다도 모서리나 만지던 일시적인 버릇은 다시 담배를 피우면서 사라질 심리적 증상이었을 것이란 반론들이 그것이다. 맞는 말이나, 반만 맞는다. 왜냐하면 충치의 고통을 영원히 제거한 것도 의사 선생님의 ‘터치’였으며, 모서리 촉각을 흡연에 다시 투항하게 한 것도 역시 니코틴과 폐의 ‘터치’였을 테니까 말이다. 터치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도, 그리고 서로에 대해 승리하고 패배하고 승복하고 다시 개기는 것도 터치끼리다.

난 터치의 이 신비한 힘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과학자들은 호르몬과 신경물질의 변화일 뿐이라고, 심리학자들은 생체자극을 통한 환영 같은 심리적 변화일 뿐이라고 대답하면 속은 편하시겠지만. 하지만 그들 역시 반만 옳다면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치는 우리의 삶에서 정말로 작동하는 실재임을 잊고 있기 때문이리라.

터치의 힘은 단지 호르몬도, 단지 심리도 아니라, 그 둘 중간쯤 어딘가를 가로지르는 놈, 다름 아닌 몸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몸은 우리가 생을 살아내며 자주 잊곤 하는 요소지만(특히 한국처럼 몸을 ‘은따’시키는 유교적 질서 아래에선), 실상 몸은 소통의 중심이고 모든 자극과 신호들의 중앙교환국이다. 몸은 진정한 지식의 저장폴더다. 그렇다면 터치는 진정한 지식의 산출이다. 가장 진정한 지식이란 감각과 그 변화의 패턴, 즉 정서에 다름 아니다. 고통스러워하던 나를 어루만지던 나의 아내가 나에게 준 것은, 단지 신경물질도 심리적 환영도 아니다. 그것은 어떤 지식이었고, 진정 내 몸을 해결하는 지식이었다. 사실 모든 소통의 근원은 터치다. 왜냐하면 모든 발신자와 수신자의 원형은 몸이기 때문이다. 원격으로도 익명으로도 소통하는 디지털 시대에 웬 몸 타령, 터치 타령이냐고? 사실 디지털의 ‘digit’도 손가락을 뜻한다. 디지털도 손가락 터치에서 온 놈이다.

마지막 변론을 ‘터치의 귀환’으로 대신하련다. 요새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다. 그것 역시 터치를 잃기 쉬운 이 시대에 맛이야말로 가장 공감되는 터치이기 때문이리라. 터치가 돌아오고 있다. 물론 이 터치를, 터치할 수 없는 티브이 스크린으로 대리하고 있음은 슬픈 일이다. 충치가 다 나았다. 아내와 함께 외식하러 나가련다. 진짜 터치를 위해. (깍두기 콜.)


2. [매일경제]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드라마 ‘태풍이 지나가고’

늘 개봉 전부터 필자를 설레게 만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 신작 ‘태풍이 지나가고’ 역시 기다림의 대상이었다. 개봉 전 먼저 만나본 영화. '역시나' 좋았다.

궁극적으로 '사랑'을 말해오는 감독은,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가족애'를 풀어낸다. 사실 그는 늘 '가족애'를 말해왔다.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 늘 탐구해왔다. 그와 동시에 '죽음'에 대한 성찰도 꾸준히 해왔다. 이번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두 요소 모두 들어있다.

특히, 2013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이후에 발표된 세 작품은 '가족'의 탐구에 집중을 가한다. 2015년에 발표한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그랬고, ‘태풍이 지나가고’도 마찬가지다. 감독의 전작들이 늘 그래왔으나 특히 최근 세 작품들을 보면,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 흩어져 있다. 심지어 구성원들은 '가족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의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혈연 이상의 끈끈한 가족애를 발휘한다. 여기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휴머니즘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휴머니즘. 이것이 감독의 인기 비결이다.

‘태풍이 지나가고’의 료타네 가족들 역시 흩어져있다. 명작가를 꿈꾸는 사설탐정인 료타는, 부인과 헤어진 상태다. 아들과는 한 달에 한 번 만난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지난 결혼생활에 후회와 그리움이 가득한 료타. 그는 전 부인과 아들의 일상을 엿보기까지 한다. 태풍이 휘몰아치려는 날, 료타네 가족은 료타의 어머니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과연 이들의 관계는 회복될 수 있을까?

영화는, 가족의 부재와 상실을 통해 '현재에 충실할 것'을 강조한다. 료타는 가족 관계 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그다지 원만하지 않다. 이는 료타를 둘러싼 모든 생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소홀했던 그는 살아생전 아버지의 생활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누나와의 관계도 석연치 않다. 아직 철 들 날이 머나먼 듯 보이는 료타. 그는 태풍을 맞고, 그것을 지나 보낸 이후 무언가 '깨닫게' 된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로 그 메시지! '있을 때 잘 하자'는 메시지는 우리 모두다 익히 '들어와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앎을 실천에 옮기는 데는 한없이 서툴다. 마치 료타처럼 말이다. 우리는 사랑했던 이를 잃고 난 후에야 후회한다. 곁에 있을 때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한들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사랑했던 연인이 재회하고 이혼했던 부부가 재결합하기도 경우는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죽음'에 이르렀다면, 어떠한 수를 쓰더라도 후회를 메울 수 없다. 죽음은 이별의 극단적인 상황이다. 그래서 '현재의 소중함'을 전달하는 책이나 영화 등에서는 늘 죽음이라는 소재가 동반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좋은 '삶'을 위한 동기부여에는 죽음이 뒤따른다. 죽음을 염두에 둔다면, 현재에 충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료타는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을 잃었다. 뒤이어 또 다른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도 이별할 날이 올 것이다. 삶의 중요한 메시지를 깨달은 그와 우리는 이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태풍은 타격이 큰 천재지변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많은 것들을 앗아간다. 죽음, 관계의 상실은 태풍 후에 남겨진 슬픈 결과들이다. 물론, 태풍 이후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것들을 잃기 전에 그것들을 꽉 잡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있을 때 잘 하자, 후회하지 말고'. 이 가르침을 전해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3. [동아일보][표정훈의 호모부커스]여행과 독서

“제게 진짜 여행은 독서입니다. 연주 여행을 하도 많이 하니까 제게 여행이란 일처럼 다가오기 마련이죠.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도 무덤덤하게 몸만 이곳저곳 다닐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책을 읽으면 그게 더 진실한 여행처럼 느껴집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말이다. 김영란 전 대법관도 여행 독서에 일가견이 있다.

“여행 갈 때면 책을 무척 신중하게 고릅니다. 짐도 싸기 전부터 어떤 책을 갖고 갈 건지, 그 책이 3박 4일짜리 여행에 적합한지 1박 2일짜리 여행에 적합한지 고민합니다. 가지고 간 책을 여행 도중에 다 읽어버리면 금단 증상이 나타나니까요.”(‘책읽기의 쓸모’)

소설책 갖고 여행 떠나는 서양 풍습이 우리 땅에 들어온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이효석의 장편 ‘화분’(1939년)에 나온다. ‘피곤은 했어도 긴 날이어서 초저녁부터 침실로 들어가기도 멋쩍은 판에 객실에 불을 켜놓고 이곳저곳에 앉아 소설책에 정신을 팔기 시작했다. 다 각각 몇 권씩의 소설책들을 지니고 왔던 것이 다행이어서….’

여행 중 독서, 특히 열차 안 독서는 무료함을 달래는 데 제격이다. 북한이라고 예외는 아닌가 보다. 2013년 자유아시아방송에 소개된 한 북한 주민의 말이다. “무산행 열차가 며칠 연착됐지만 차 안에서 소설책 보면서 심심치 않게 돌아왔어요. 평양역에서부터 소설책 배낭을 가지고 오른 한 여성이 외쳤어요. ‘책 보고 싶은 사람은 다 모이시오!’ 열차가 자주 연착되자 책대여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바야흐로 휴가 여행의 절정기다. 작년에 모 호텔 예약 사이트가 사람들이 여행 중 호텔 침대에서 하는 행동을 조사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9%가 책을 읽는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전 세계 여행객들 중 가장 낮은 비율이다. 하위권은 멕시코 25%, 홍콩 27%였으며 스웨덴이 60%로 1위를 차지했고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순이었다. 한국인 여행객 대다수는 호텔에서 TV 시청이나 웹서핑을 즐긴다고 답했다.

“책 만 권을 읽어 신령스러운 경지와 비로소 통할 수 있고, 만 리를 여행하여 마침내 세상사를 제대로 따질 수 있으리.” 중국 북송시대 소동파의 말이다. 조선의 서거정(1420∼1488)도 독서와 여행을 함께 강조한다. “만 권 책을 읽어 근본을 튼튼히 하고, 세상을 유람하여 실천 능력을 기른 뒤에 비로소 큰일을 할 수 있다.” 갖고 가는 물건이 아니라 함께 가는 친구, 여행의 반려 책 한 권을 챙기자.


4. [동아일보][횡설수설/한기흥]태극기 아래 첫 금메달

‘처음’이란 말은 두근거림과 설렘을 동반한다. 오랜 염원을 이룬 ‘집단의 기억’ 속에서라면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해진다. “1976년 8월 1일 오전 10시 양정모 선수의 늠름한 목줄기에 금메달의 영광이 드리워지고 사상 처음으로 애국가가 장엄하게 세계만방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몬트리올 하늘에 휘날리자 모두는 제어할 수 없는 감격에 북받쳐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건국 후 첫 올림픽 금메달 소식을 전한 40년 전 본보 8월 2일자 1면 톱기사는 흥분 그 자체였다. 

‘게임의 룰’이 역시 중요했다. 양정모는 마지막 경기에서 몽골의 오이도프에게 8-10으로 졌다. 하지만 결승 리그에 오른 선수 3명이 맞대결해 벌점 적은 선수가 우승하는 시스템 덕에 금메달을 땄다. 양정모는 벌점 3점, 오이도프는 4점, 미국의 존 데이비스는 5점.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은 일장기를 달았으니 몬트리올 쾌보에 온 나라에 난리가 날 만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또 다른 양정모를 육성할 한국체육대학교 설립을 지시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엔 금메달은 ‘순도 1000분의 925 이상’의 순은으로 만들고 6g 이상의 순금으로 도금하게 돼 있다. 리우데자네이루 여름올림픽 금메달도 494g의 은에 6g의 금박을 씌운 것으로 원가는 70만 원 정도. 실제 성분은 금, 은메달이 큰 차이 없으니 진짜 금인지 확인하려고 깨물어 보는 선수들이 허탈할까. 흘린 땀에 따라 달라지는 메달의 의미는 단순한 금전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데….

리우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단은 금메달 10개 이상, 종합 순위 10위 이내가 목표다. 그간 여름올림픽에서 거둔 메달은 금 81개, 은 82개, 동 80개. 남의 잔치인 올림픽에서 우린 언제나 금메달을 따보나 마냥 부러워했던 시절을 되돌아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양정모의 고향 부산 동광동 40계단 앞에선 금메달 획득 40주년 행사가 오늘 열린다. 그가 이를 악물고 뛰어 오르내린 그곳에서 국민의 환희가 영글었다.


5. [동아일보][박윤석의 시간여행]화재도 일으켰던 폭염, 그 끝에 태풍도 몰려와

삼복더위가 절정으로 치닫는 8월 5일이었다. 열기 후끈한 서울의 초저녁에 정체 모를 악취가 진동했다. 서울의 낮 기온은 36.7도까지 올라 10년 이래 최고를 기록한 날이었다. 1929년이었다. 

10년 전의 최고기온이란 1919년 8월 1일에 관측된 37.5도를 말한다. 3·1운동 투옥자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서대문형무소의 감방 속에서는 똥통이 끓는다고 작가 심훈이 술회한 기미년 8월의 그 폭염. 

1929년의 서울 시가에 퍼진 고약한 냄새의 정체는 유황이었다. 그 진원은 동쪽 광희문 밖 신당리로 밝혀졌다. 거기 경성부청 수도과 분실창고에 보관 중인 화공 약품들이 폭발하면서 누출된 가스였다. 수도 가설 공사에 쓰이는 유황과 초산 등 유독물질이 연일 치솟는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린 것이었다.


저녁 7시. 창고 한 곳에서 불꽃이 일어나면서 바로 지붕이 터져나가고 불길이 건물 전체를 휩쌌다. 경성 전역의 소방대가 출동하여 겨우 불을 껐을 때는 창고 한 채가 전소되고 또 한 채를 반쯤 태운 뒤였다. 그 1시간 반 동안 맹독성 기체가 서울을 뒤덮은 것이었다.

‘작열하는 햇발은 땅덩어리를 태워버리려는 듯이 뜨거워 실내의 유황이 자연 발화하여 더운 세상에 더운 화재를 일으키고, 병원마다 일사병 환자가 넘치고, 구루마를 끌던 말과 소가 더위를 먹고 여기저기 자빠지는 등 참극이 연출되었다. 오는 13일이 말복이니 장차 얼마나 더 더우려는가.’(동아일보 1929년 8월 7일자)

20여 일간의 가뭄으로 전국의 농작물은 초토화된 상태였다. 천수답은 이미 마른 지 오래고 저수지마저 일부 바닥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이 모양으로 5, 6일만 가뭄이 더 계속되면 전국의 농작물은 거의 전멸”이라고 총독부 농무과장은 걱정했다. 경상남도의 피해가 특히 심하다고 했다.

‘벌겋게 단 화로같이 뜨거운 세상에서 다만 바라는 것은 비.’ ‘앞으로도 언제나 비가 올는지 알지 못한다.’

이러한 기사 제목들 사이로 경성측후소 관계자의 말이 실렸다.

“동해에 자리를 잡고 있는 고기압은 아직도 움직일 생각도 없는 모양이오. 얼마 전 양자강 방면으로부터 온 저기압은 동북으로 진행하는 중이므로 북조선에는 약간 희망이 있을 뿐이오. 남조선은 여전히 개어 있어 언제나 비가 올는지 알 수가 없소.”(8월 7일자) 

그리고 열흘쯤 지나 희소식이 들려왔다. 멀리 남태평양으로부터 태풍이 일어 장차 한반도로 접근할 것이라는 예보였다. 

‘지난 7일 필리핀 북부 루손 섬에서 생겨난 태풍은 8일 대만 서남 해상에 나타나 11일 대만을 횡단하면서 돌연 방향을 고쳐 북서로 나아가 14일에는 중국 상해의 동남쪽 항주에 접근해 거기서 어름어름하고 있었다. 온 조선이 낙망도 하고 한편으로 기대도 하고 있었는데 15일 아침 태풍은 결연히 그곳을 떠나 조선쪽인 동북으로 출발을 했다고 한다.’(8월 16일자)

태풍은 무섭지만 가뭄과 더위가 더 무서운 것이었다. 태풍 예보는 이어진다.

‘지금은 한 시간에 10킬로 내지 15킬로의 더딘 걸음이나 한 번 바다 위로 나오면 매우 빠를 것이고 더욱이 몽고 방면의 고기압으로 이 태풍은 꼭 조선에 올 것이 틀림없다는데, 그때가 되면 강한 동풍이 불고 큰비가 내려서 넉넉히 장기간의 가뭄 피해를 걷어낼 수 있으며 더위도 끝낼 것이라.’ 

늘 그렇듯 이번에도 폭염 뒤에 태풍과 홍수 피해가 또 잇따를 것이다. 87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연의 순리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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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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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9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김영란법 합헌’, 진통 겪을 준비 됐는가

헌법재판소가 어제 공직자들의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등을 금지한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사립학교 관계자와 언론인을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조항 등을 놓고 형평성 논란이 제기돼 왔으나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최종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교육과 언론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들 분야의 부패는 파급효과가 커서 피해가 광범위하고 장기적”이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 근거다.

이번 결정은 오는 9월 28일 법 시행을 앞두고 혼선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2년 김영란법 제정안이 발표된 이래 그 내용을 두고 각계의 논란이 지속돼 왔다. 지난해 3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시행령은 이미 규제개혁위원회를 통과했고 법제처 심사와 차관회의, 그리고 국무회의 의결 절차만을 남겨놓은 단계다. 

김영란법은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막아 우리 사회를 맑고 깨끗하게 만들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공직자들에 대한 식사대접이 3만원 한도로 제한되며, 선물과 경조사비도 각각 5만원, 10만원 범위에서만 허용된다. 접대문화가 완전히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립학교 관계자나 언론인들까지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배경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법 시행을 불과 2달밖에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전반적인 경제위축 가능성을 미리부터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농·축·수산업 분야에 대한 타격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우려된다. 관공서 주변의 한정식집 가운데서는 진작 문을 닫아버린 경우도 없지 않다. 삼성을 비롯해 현대자동차·SK·LG 등 주요 그룹사 임원들이 법 시행 이후의 골프 약속을 모두 취소하는 등 파장이 확대될 조짐이다.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진통이다.

이번 합헌 결정이 내려지긴 했지만 재판관들의 위헌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는 점도 충분히 감안돼야 한다. 사립학교 관계자와 언론인을 포함시키는 게 불가피했다면 변호사·의사·회계사 등 영향력이 큰 다른 직종도 포함시키는 게 상식적이다. 더욱이 당초 법안에 포함됐다가 슬그머니 사라진 이해충돌 조항도 어떤 식으로든 되살릴 필요가 있다. 법을 세련되게 다듬어야 하는 과제가 다시 국회로 넘겨진 셈이다.

2. '추경 쪽박'까지 깨트려선 곤란하다

추가경정예산이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에 대한 정치권의 이견으로 옴짝달싹 못하는 형국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난 26일 국회에 제출된 11조원 규모의 ‘구조조정·일자리 추경안’을 다음달 12일 본회의에서 처리하자는 입장이나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누리과정 예산 대안부터 내놔야 한다며 추경 심사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추경을 편성할 정도라면 상황이 꽤 다급하다는 얘기다. 우리 경제는 2년 내리 2%대 저성장이 확실시되고 청년실업은 사상 최고로 치솟는 등 형편이 여간 어렵지 않다. 수출은 18개월째 감소세이고 내수도 부진한 터에 조선·해운업 구조조정까지 겹쳤으니 상황 악화는 불 보듯 뻔하다. 우려하던 브렉시트 후유증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으며 몇달 뒤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보호무역주의 대폭 강화가 예상되는 등 대외 여건도 매우 비우호적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추경도 시기를 놓치면 기대한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국회 시정연설(황교안 국무총리 대독)에서 “추경은 그 속성상 빠른 시일 내에 신속히 집행돼야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고 강조한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도 더민주가 구조조정이나 일자리와 전혀 별개인 누리과정을 추경과 연계하고 나선 것은 ‘정책 끼워팔기’란 고질병이 또 도진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집권 경험도 있는 더민주가 이런 후진 행태에 젖어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한 현실론적 접근으로 과시했던 수권정당의 면모가 다시금 빛을 잃는 모양새다. 추경 대가로 ‘서별관회의’를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 대상에 포함시키는 전과를 올려놓고 이제 와서 박 대통령에게 “추경이 왜 필요한지 제대로 된 설명조차 내놓지 못했다”며 딴죽 거는 것은 정치 도의에도 어긋난다.

그러고도 누리과정 예산을 반영하면 추경안을 통과시켜 주겠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자기모순이 아니다. 야당이 경제 발목잡기로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유도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집권능력을 위축시키는 부메랑 효과가 커진다는 역설을 명심해야 한다. 가뜩이나 경기에 불씨를 지피기에는 규모가 크게 모자란 것으로 간주되는 추경이 시기마저 놓쳐선 안 된다.

[서울신문]

3. 절실한 세수증대 기대 충족 못한 세법 개정안

정부가 어제 ‘2016년 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일자리 창출을 겨냥해 신성장 산업과 서비스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강화하고 서민·중산층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세법 개정안의 방향에 대해 “경제활력 제고 및 민생 안정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주요 내용을 보면 근로자의 신용카드·체크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 제도가 2019년까지 3년 연장되지만 연봉 1억 2000만원 초과 고소득자는 내년부터 소득공제 한도가 축소된다. 근로장려금 지급액이 10% 인상되고, 월세 세액공제율은 10%에서 12%로 상향 조정되는 등 정부가 밝힌 취지에 부합되도록 애쓴 흔적이 적지 않다. 미래형 자동차와 지능정보 등 11대 신산업 기술을 중심으로 연구기술(R&D) 세액공제 제도를 전면 개편한 것이나 신성장산업 투자 세액 공제를 확대한 것은 미래 먹거리 산업을 겨냥한 것이다. 이런 내용의 세법 개정안은 다음달 18일까지 입법 예고한 뒤 8월 말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오는 9월 2일 정기국회에 넘겨질 예정이다.

이번 세법 개정안에 따른 세수 증대 효과는 연간 3171억원이다. 지난해 세법 개정안의 세수 증대 효과(6000억원)의 2분의1에 불과하다. 증세도 아닌, 감세도 아닌 어정쩡한 세법 개정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올해 세법 개정안에서 3대 세목인 소득세와 법인세, 부가가치세의 세율은 건드리지 않았다. 올해 예산안 기준 소득세 세입은 60조 8000억원, 법인세는 46조원, 부가세는 58조1000억원 등으로 전체 내국세(186조 9000억원)의 88%를 차지한다. 최상목 기재부 1차관은 “우리 경제 여건을 고려할 때 세율 체계를 조정할 적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재정은 인구구조 변화, 저성장 기조, 복지 지출의 급격한 증가 등 과거 경험해 보지 못한 질적·구조적 변화에 직면해 있다. 특히 소득의 양극화 등 빈부격차의 모순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도 입만 열면 빈부격차 해소를 강조하고 있지만 소득분배 기능 강화 차원에서 이번 세법 개정안이 다소 미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더민주는 소득세 최고세율을 50%까지 높이는 법안을 냈고, 여권도 자본이득세 강화 등 소득세 확대 방안을 거론한 상황이다. 앞으로 국회 논의에서 소득의 양극화를 완화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세법이 보강돼야 한다.

4. 외국인 300만 시대 다문화 국가에 대비해야

우리 사회는 단일민족, 단일문화 국가에서 언어와 문화를 달리하는 다민족, 다문화 국가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회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문화 지체, 이른바 아노미 현상이 발생해 개인 또는 사회 차원에서 다양한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폭증하는 갈등으로 엄청난 비용을 치르기 전에 300만 다문화 국가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법무부는 그제 지난달 말 기준으로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가 200만 1828명을 기록해 전체 인구의 3.9%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외국인 증가율 8%를 고려해 2021년이면 외국인 수가 300만명을 돌파, 전체 인구의 5.82%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5.7%를 웃도는 수치다. 법무부가 밝힌 외국인 통계에는 국제결혼으로 입국한 뒤 국적을 취득한 11만여명은 포함되지 않았다. 실질적인 외국인 숫자는 통계치보다 많은 셈이다. 유엔에서는 우리의 낮은 출산율을 고려해 2050년이면 외국인 숫자가 전체 인구의 21%를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문화 국가에 걸맞은 대비책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외국인이라고 부르는 ‘다문화 이주자’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 장기 체류 외국인, 국제결혼 이주자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외국인 비율이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누가 뭐래도 사회 갈등이다. 최근 유럽 여러 나라가 겪고 있는 사회 갈등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갈등을 줄이려면 먼저 정부 차원에서 사회통합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다문화 이주자 정책은 기본적인 언어교육 등 이주자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분야에 제한돼 있다. 이제부터는 국민을 상대로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인종과 언어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의식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다문화 이주자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아울러 첨단과학 분야 등의 우수한 인재를 유치, 다문화 이주자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문화 사회에서 요구되는 덕목 중 하나는 차이를 인정하고 편견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이중 언어의 장점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는 과거 화교들에게 가했던 차별정책의 부작용을 잘 알고 있다. 주거·고용·보건 등 모든 분야에서 동등한 대우를 해야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

5. 부패 뿌리 뽑자는데 왜 국회의원만 봐줘야 하나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으로 9월 28일부터 시행될 ‘김영란법’은 공직자와 정치인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자는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법에 따르면 공직자와 배우자는 한번에 100만원, 1년에 300만원 넘는 금품(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는다.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처벌하고 연좌제적 성격이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지만 워낙 뿌리 깊은 공직사회 부패를 발본색원하려면 다소 무리한 법 시행에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금품·향응 수수, 부정 청탁의 소지가 가장 큰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들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점이다. 당초 정부 초안엔 예외 규정이 없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신설됐다. 또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의 자녀·친척 취업 청탁을 막기 위한 ‘이해충돌 방지 조항’도 빠져 있다. 국회의원들이 정작 자신들의 청탁과 민원엔 눈을 감아 허수아비 법안을 만든 것이다. 지난해 시행에 들어간 독일 반부패법이 국회의원의 뇌물 수수 범위를 대폭 확대한 것과 정반대다.

공직 부패를 뿌리 뽑자는 법의 취지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특히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170여 개국 중 10년째 40위 안팎에 머물러 있다. 많은 국민이 김영란법에 다소 무리한 측면이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고질적 부패를 뿌리 뽑기 위한 필요성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공인 중의 공인인 국회의원의 청탁과 민원에 예외를 인정한다면 알맹이가 쑥 빠진 부실 입법이다. 이런 누더기 법안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공직 부패를 어떻게 청소할 수 있겠는가.

김영란법이 반부패법의 효과를 거두려면 시행 전 당초 취지대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회의원 등의 민원 전달을 부정 청탁의 예외로 둔 조항을 삭제하고 국회의원·고위 공직자의 가족 취업 청탁을 막기 위한 이해충돌 방지 조항을 되살려야 한다. 그게 글로벌 기준이다. 겪고 나서 개정하겠다는 건 무책임하다. 국민에게 떳떳한 김영란법을 시행 전에 내놓는 게 20대 국회의 첫 임무다.

[매일경제]

​6. 제 살 도려낸 검찰, 이젠 상명하복문화 바꿀 차례

인격 모독적인 언행으로 후배 검사를 자살에 이르게 한 책임을 물어 검찰이 김대현 서울고검 부장검사 해임을 법무부에 청구했다. 검사 파면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 형이 선고됐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해임은 최고수위 징계다. 후배에 대한 폭언·폭행을 이유로 검사 해임을 청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검찰이 이번 일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 김홍영 서울남부지검 검사는 지난 5월 "병원에 갈 시간도 없다"며 업무에 중압감을 토로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대검찰청 감찰본부가 김 부장검사와 함께 근무한 검사·수사관·공익 법무관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최근 2년 5개월 동안 이뤄진 17건의 비위행위가 드러났다. 김 부장검사는 결혼식장에서 독방을 마련하지 못했다거나 식당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도 후배 검사에게 모욕적 언행을 가했다. 김홍영 검사가 친구들에게 '자살충동이 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직접적인 이유로 보인다. 김 검사의 유가족이 형사고소를 검토한다니 그 법적 책임도 앞으로 가려나갈 일이다. 

검찰 발등에 떨어진 과제는 바람직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2004년 검찰청법에서 검사동일체 원칙을 삭제했음에도 상명하복으로 움직이는 수직적 문화가 검찰에 팽배하다. 이런 시대착오적 문화에서는 '결격 상사'를 걸러낼 수도 없고 사법정의를 실현하기도 힘들다. 수평적 조직문화로 나아가게끔 검찰이 하루빨리 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7. 투자·일자리 늘릴 세제 개혁 더 큰 그림을 그려라

정부가 어제 내놓은 세제 개편안은 한마디로 '투자와 일자리는 늘리고 서민·중산층 부담은 줄이는' 것이다. 정부는 특히 신성장 산업 연구개발과 시설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려주고, 술집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서비스업체가 세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며, 고용 창출 중소기업에 세금을 더 많이 깎아주기로 했다. 또한 일하는 저소득층과 아이를 둘 이상 낳는 맞벌이 가구, 월세를 사는 서민에 대한 지원을 늘리기로 했다. 

지금처럼 투자와 일자리가 말라붙고 있는 때는 세금을 깎아줘서라도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을 일깨우고 근로자의 일하려는 의욕을 북돋워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정도 세제 유인만으로는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선진국 문턱을 넘기도 전에 조로 현상을 보이는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미세조정 수준의 세제 개편에 머무를 게 아니라 보다 큰 그림을 갖고 세제의 틀을 바꿔나가는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올해 세제 개편에는 그런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정부 임기 말이 다가오고 대선을 앞둔 여야의 생각이 크게 엇갈려 큰 틀을 바꾸는 세제 개혁이 말처럼 쉽지 않음은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넓은 세원과 낮은 세율, 세수 증대와 공평 과세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근로소득세 납세 대상자의 절반인 800만명이 세금을 한 푼도 안 내고,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는 각종 조세 감면 제도 정비가 늦어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 복지 수요와 조세 부담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도 시급하다.

[매일신문]

8. 여름철 시민 짜증 더하는 악취, 근본 대책 세워라

매년 이맘때면 대구 곳곳에서 악취 소동이 되풀이되고 있다. 찜통더위에 가뜩이나 짜증이 나는데 원인 모를 악취까지 더해져 시민들의 원성이 높다. 두통은 물론이고, 목의 통증과 피부병을 호소하는 시민도 적지 않다. 더욱이 대구시에 접수되는 악취 민원이 해마다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할 때다.

대구에서 악취 민원이 가장 많은 곳은 서구, 달서구, 북구 순이다. 서구는 염색산단, 북부하수처리장, 위생처리장 같은 악취의 원인이 되는 시설이 밀집해 있다. 달서구는 성서공단 인근에서 악취 민원이 많고, 북구는 서구와 붙어 있어 악취 피해를 입고 있다. 

염색산단과 인접한 서구 지역에서는 1만여 가구, 2만여 명이 1년 내내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 염색산단에는 130여 개의 염색업체가 공장을 가동하면서 심한 악취를 뿜어낸다. 대다수 영세한 업체여서 환경오염 방지 시설이 허술하고 악취 문제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이다. 이곳 주민들은 대구시에 숱하게 민원을 제기했지만, 해결 기미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대구시와 구`군청이 악취 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나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군청이 민원에 따라 현장 점검을 나가더라도, 악취 원인이나 악취 배출 업체를 찾지도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구에서 지금까지 악취로 인해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가 한 건도 없다는 것은 당국의 무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염색산단 앞 도로변에 서 있기만 해도 악취가 코를 찌르는데, 배출 업체를 파악하지도 못하거나 기준치 이하라고 판정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대구시와 구`군청은 매년 반복되는 악취 문제를 더는 내버려 둬선 안 된다. 단속이 어렵고 피해 범위가 광범위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시민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이른 시간 내에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대구시는 업체와의 자율 협약으로 악취를 줄이겠다고 공언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배출업체를 엄하게 단속하고 방지시설을 갖추게 하는 강단 있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더 이상 시민들이 악취와 함께 여름을 보내게 해서는 안 된다.

9. 정부 간섭 자초한 지방의회, 뼈아픈 자정이 필요하다

행정자치부가 27일 전국 17개 시`도에 지방의회 의원의 배지 제작 가격을 국회의원 배지(3만5천원) 이하로 할 것을 권고하는 공문을 보냈다. 행자부의 이 같은 조치는 전국의 지방의회 의원 배지 제작 값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일부 지방의회에서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만들어 나눠준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아울러 배지를 잃어버려 다시 제작해 배부할 때는 의원이 돈을 주고 사도록 권고했다. 지방의원 배지 제작에 관한 한 분명한 안내선을 제시한 셈이다.

정부의 이 같은 권고 공문은 지방의회 의원의 수준과 품격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잘 드러낸 한 사례에 불과할 뿐이다. 부끄러운 우리 지방의회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오죽했으면 행자부가 권고문을 통해 지방의원 배지 제작과 관련, ‘일반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는 정도의 가격으로 제작해야 한다’면서 사례로 국회의원 배지 가격까지 제시하면서 그 이하로 만들 것을 권고했겠는가. 권고지만 24K순금으로 배지나 만들며 나랏돈을 함부로 헛되이 없애지 말라는 엄중함이 배인 사실상의 간섭이나 다름없다.

이번 정부의 권고는 충분히 납득하고도 남음이 있다. 실제로 경북의 시`군의회 의원 배지 제작 가격을 보면 더욱 그렇다. 청송군의회는 경북에서 가장 비싼 46만3천원에 만들었다. 이 밖에도 봉화군의회를 비롯해 상당수 시`군 의회에서는 20만~40만원대의 값비싼 의원 배지를 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분실에 대비해 아예 금배지 형틀까지 미리 사놓기도 했다. 이런 사정은 경북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님이 틀림없다. 정부가 전국 시`도에 같은 공문을 보낸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일 것이다. 

이번 정부의 간섭은 지방의회에 대한 불신이 빚은 일이다. 지방자치의 자율성 침해로 볼 수 있지만 지방의회가 자초한 일이다. 그러잖아도 지방의회는 폐지 논란에 휩싸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방의원의 각종 비리와 부패, 호화 관광과 같은 의회 운영상의 문제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폐지 30년 만인 1991년 부활된 지방자치가 되레 뒷걸음질이라는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다. 지방의원의 남다른 자정(自淨)과 각오가 필요할 때다.

[중앙일보]

10. ‘넓은 세원-낮은 세율’의 원칙 언제 세울 건가

기획재정부가 어제 발표한 2016년 세법개정안은 경제 활력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신산업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고, 서민·중산층 부담은 줄이겠다는 기본 방향을 세웠다. 이런 방향 아래 성장동력을 확충하고 과세 형평성을 높여 안정적 세입 기반을 확보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생색내기가 적지 않다. 둘째·셋째의 출생·입양 세액공제액 확대가 대표적이다. 현재 30만원에서 각각 50만·70만원으로 늘리기로 했지만 일생에 한 번뿐인 일이란 점에서 이 정도로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더 중대한 결함은 소득세 과세 체계의 근본 모순을 그대로 덮어뒀다는 점이다. 연말정산을 한 근로자 1669만 명 중 802만 명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2014년 면세자 비율이 48.1%에 달하기 때문이다. 회사원 둘 중 한 명이 소득이 있는데도 세금을 안 낸다는 얘기다.

이런 모순은 2013년 세액공제 도입 때 정부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면세자 기준을 과도하게 낮추면서 기존 납세자 상당수가 면세자로 빠져나간 데 따른 부작용이다. 소득이 낮으니 세금을 안 내면 어떻겠느냐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소득이 있으면 1000원이라도 세금을 부담해야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의 보편적 원칙이 실현된다. 그래야 고소득자의 탈세 유혹을 막고 부유층에 대한 과세도 정당해져 결과적으로 나라의 재정이 튼튼해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느 나라나 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20% 안팎에 그친다. 일본은 15.8%, 독일 19.8%, 캐나다 22.6%다. 미국은 32.9%로 높은 편이지만 한국은 여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정부는 이런 불균형을 즉각 시정해 32.4%였던 2013년 수준으로 면세자 비율을 낮춰야 한다. 면세자와 이들을 앞세운 정치권 일각의 반발이 두려워 비정상을 방치한다면 세제에 뚫린 구멍이 재정을 흔들게 된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란 기본 원칙이 흔들리면 정부의 공평 과세 구호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주요 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윤제림의 행인일기] 그 여름날의 심학규씨

일주일에 한번씩 작은 라디오 방송국엘 갑니다. 지하철을 삼십분쯤 타고 가서 다시 삼십분쯤 걸어갑니다. 어느새 기억 저편으로 썩 물러나 앉은 '올드 브랜드'들에 관해 이야기하며 연관된 시를 읽는 시간입니다.
지난주엔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하다가 '심청가' 한 대목을 낭독했습니다. 심봉사가 황성잔치에 가는 여정이지요. 뺑덕 어미는 다른 남정네와 눈이 맞아 줄행랑을 치고 심봉사 혼자 뙤약볕 속을 걸어가다가 물소리 반겨 듣고, 목욕을 하는 광경입니다.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오뉴월 염천에 몸은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속에선 천불이 날 지경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심봉사 좋아라, '얼씨구 절씨구. 저런 물에 가 목욕을 허면 서러운 마음도 잊힐 테요, 깨끗한 정신이 돌아올 테니, 어찌 아니 좋을손가?' 상하의복을 벗어놓고 물에 가 풍덩 들어서며, '에, 시원허고 장히 좋네.' 물 한 주먹 덥벅 쥐어 양치질도 퀄퀄 허고, 물 한 주먹 덥벅 쥐어 가슴도 훨훨 씻어보면, '에, 시원허고 상쾌허다. 삼각산 올라선들 이에 더 시원허며, 동해수를 다 마신들 이에서 더 시원허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툼벙툼벙 장히 좋네."(한애순 창)

생각만 해도 시원해집니다. 어떤 음료, 어느 빙과(氷菓)가 저 심봉사가 만난 계곡물만 할까요. 그러나 청량감도 아주 잠시. 심봉사는 금세 또 허망하고 슬퍼집니다. 목욕을 하는 동안, 어느 도적놈이 옷가지를 홀랑 집어 가버린 것입니다. 심봉사는 또 열이 오릅니다. 다시 비난과 증오의 불길이 활활 타오릅니다.
누가 심봉사의 불을 끄나 안타까워 할 때, 고마운 이가 나타납니다. 이 고을 무릉 태수입니다. 실성한 사람처럼 알몸으로 행차를 막아서는 심봉사에게 태수는 연유를 묻습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그가 선뜻 의복을 내어 줍니다. 
심봉사는 백배 감사하고 다시 길을 갑니다. 가다가 그늘에 앉아 쉬고 있자니, 동네 부인네들이 와서 방아를 찧어달라고 청을 합니다. 방아타령을 하면서 한바탕 일을 하고, 술과 밥을 얻어먹습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알바'를 한 셈인데, 일값을 제대로 받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심봉사는 황성 땅을 밟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늘 황후가 된 심청이가 야속합니다. 이런 궁금증 때문입니다. "왜 심황후는 황주 관아에 영을 내려 부친 심학규 씨를 모셔 올리지 않았을까? 아니면, 왜 직접 도화동으로 행차하여 부녀상봉을 하지 않았을까?"
물론, 저는 지금 판소리 사설에서 이야기의 합리성이나 리얼리티를 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폭염 속 심봉사의 처지가 너무나 딱해서 이야기의 구성까지 원망스러운 것입니다. 자신의 말 한마디로 황금수레를 탈 수도 있는 신분의 아버지가 저토록 생고생을 하게 한 심황후에 대한 불만이지요.
가만가만 짚어보면, 심청가 후반부의 염량세태(炎凉世態)가 지금 우리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심학규 씨의 여름을 더욱 혹독하게 만든 일들과 오늘 우리를 더욱 열불 나게 만드는 사건들이 잘도 포개집니다.
딸 팔아 '전곡(錢穀)'이나 좀 만진다는 걸 알고 심봉사를 속여넘긴 여자. 남의 여자를 꾀어 줄행랑을 친 사내. 아내도 잃고 외로이 길을 가는 불쌍한 홀아비. 빈털터리 맹인의 옷을 들고 간 도둑. 알몸으로 땡볕 속을 걸어간 노인. 앞 못 보고 물정 모르는 행인을 아주 헐값에 부려먹은 방앗간 여인들 …. 요즘 우리가 보고 듣는 뉴스의 주인공들과 얼마나 닮았습니까.


그러나, 심청가 속의 못된 사람들은 그리 오래지않아 자취를 감췄을 것입니다. 옷을 잃은 심봉사에게 무릉 태수가 보여주는 행동이 그런 심증(心證)을 단단히 굳혀줍니다. 그는 심봉사를 위해 이렇게 명령합니다. 가마꾼에게 이르되, '너는 수건을 써도 상관없으니 갓과 망건을 벗어서 심봉사에게 줘라' 합니다. 수노(首奴)한테는 여비는 물론, 담배와 담뱃대까지 챙겨줄 것을 당부합니다.(정권진 창)
내친 김에, 멋대로 상상해보고 싶어집니다. 심청이 아니 심황후의 나라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그런 시절이었기에 황후의 아버지가 황성까지 걸어오게 되었을 것입니다. 황후는 아마도, 사사로운 일로 나라 전체를 수고롭고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심황후가 궁금했던 것은 아버지의 일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부친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나라 안에 얼마나 되는지, 그들 모두를 위로할 수 있는 법은 없는지.' 사람을 불러 묻고, 천자께 청을 했겠지요. 이윽고, 황후의 마음씀씀이에 탄복하며 천자가 하교(下敎)했을 것입니다. "황성에 맹인잔치를 베풀라."
심봉사와 나라 안의 모든 맹인들이 일시에 눈을 뜨게 된 내력을 판소리에서는 부처님 도술(道術)이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송천자(宋天子)와 심황후 그리고 무릉태수처럼 '백성의 값을 아는 사람들의 은공'으로 믿고 싶어집니다.


2. [동아일보][@뉴스룸/손효림]책장 속 학벌 사회

‘아, 서울대학교’라는 책이 있었다. 서울대 합격 수기집으로, 1990년대 중고교생들 사이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모의고사 후 OX 노트를 어떻게 정리했는지, 하루 4시간 이상 자지 않고 일과를 짰던 방식 등 세세한 공부법을 담은 책을 돌려가면서 읽었다. 서울대에 갈 수 있는 성적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았다. 욕망을 대놓고 자극한 고색창연한(?) 제목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아이도 있었다. 서울대에만 합격하면 인생의 비단길이 펼쳐질 거라는 굳건한 믿음이 팽배했던 분위기였기에. 

막노동을 하며 공부해 서울대 법학과에 수석입학한 장승수 씨(현 변호사)가 쓴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는 전국을 강타했다. 그토록 어려운 환경에서도 서울대, 그것도 법대를 갈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 그의 삶에 독자들은 열광했다. 섹시한 제목은 ‘○○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각종 패러디를 낳았다. 

홍정욱 전 국회의원(현 헤럴드 회장)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과정을 담은 ‘7막 7장’은 국내 명문대에 쏠려 있던 시선이 해외 명문대로 옮겨가고 있던 당시 변화상을 반영했다. 인생의 여러 단계가 한참 남았다는 의미에서 문장마다 마침표 없이 쓴 이 책은 아이비리그를 꿈꾸게 만들었다. 

입시제도는 갈수록 복잡해졌다. 고학력의 학부모조차 대입 전형표를 해석해 내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화제를 모은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엄마들의 입시전략’은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서는 정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이 명문대 합격에 필수적인 3요소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던 때였다. 

요즘에는 아주 ‘핫한’ 입시 전략책이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어려운 환경이나 부진한 성적을 딛고 명문대에 합격한 저자들이 쓴 ‘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 ‘미쳐야 공부다’ 등이 주목받고 있지만 모두가 알 만할 정도는 아닌 듯하다.

왜일까. 대학 서열화를 비판하며 활동했던 시민단체인 ‘학벌 없는 사회’가 올해 3월 자진해산한 건 학벌의 위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 단체는 학벌보다는 자본의 힘이 훨씬 강력해졌다며 해산 이유를 설명했다. 명문대에 가려면 자본이 필요하고, 자본 없이 학벌만으로는 안정된 삶을 보장받기 힘든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나와도 흙수저는 영원히 흙수저’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머니를 탈탈 털어 아이의 사교육에 쏟아붓는 부모가 적지 않다. “명문대 나와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알아. 그래도 안정적으로 살 확률이 조금은 높아지지 않을까?” 초등학생 자녀를 둔 친구의 말이다. 반면 사교육 시킬 돈을 모아 아이가 컸을 때 가게를 사는 데 보태주는 게 더 낫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부모도 봤다. 점점 작아지는 명문대 졸업장의 힘은 세월의 흔적이 쌓인 책장 속에서 그렇게 확인할 수 있었다.


3. [매일신문][기고] 자녀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신 학부모께

7월 14일 자 매일신문에 참 반가운 기고 글이 실렸다. 아동문학가이면서 고1, 초6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의 글을 읽고, 참 멋진 학부모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학부모역량개발센터 교육에 참여하는 멋진 학부모님들을 여러분 만나 뵈었는데, 그런 학부모님 중의 한 분이라 느낀다. 부모가 학부모가 되면 두 가지 역할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배움을 꾸준히 실천해 오는 것, 바로 대구학부모교육이 꿈꾸는 학부모의 모습이다.

2008년부터 학부모교육에 참가해 온 남지민 님이 기고 글에서 소상하게 설명해주신 대로, 대구학부모교육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기본과정과 학부모역량개발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심화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교에선 연간 10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드리고 올해부터는 학부모교육 이력관리시스템(일명 ‘자녀사랑마일리지’)을 구축해 학부모가 무슨 교육을, 어디서, 얼마나 받았는지 센터 홈페이지나 모바일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자녀사랑마일리지는 현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야구 경기 관람 입장료 할인 및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입회비 면제 등의 혜택을 주고 있으며, 향후 사용처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구학부모교육은 참여 학부모들의 의지, 학부모교육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한 수준 높은 강사진, 학교 담당자들의 헌신과 노력이 성패를 좌우한다. 대구학부모들의 자녀교육 열의는 매우 높고, 또한 이제 학부모들은 ‘귀명창’까지 되어 더욱 수준 높은 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센터는 강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강사 선발`연수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담당교사들의 업무를 조금이라도 줄여 드리기 위해서 업무 매뉴얼을 개발하고, 학부모코디도 배치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반복적 교육 문제를 해결하고자 학부모교육과정과 교재를 개편하기도 했다. 

요즘 우리 센터의 고민은 학부모교육을 운영하는 학교가 참여하는 학부모의 수에 연연하지 않고, 학부모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참여형 교육’으로 전환을 시도, ‘코칭형`상담형’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근 학교를 묶어 교육을 진행하는 형태는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다. 2012년까지 3년간 거점학교를 지정해 운영해 본 결과, 학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다니지 않는 학교의 교육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일 년에 서너 번이라도 가서 교육과 상담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학부모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는 평생교육은 현재 대구시로 사업이 이관되어 대구교육청 예산으로 운영하기 어렵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자율적 조직인 학부모회에서 이런 형태의 자발적 교육과 학교 참여는 지금도 활발히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도 교육부 공모에서 선발된 16개 학교에 200만원씩을 지원,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를 돕고 있다. 앞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더욱 확대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다.

이 글을 쓰는 내내 행복을 느낀다. 학부모교육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든든함이 한결 어깨를 가볍게 한다, 학부모교육의 내일을 설계하고 함께 손잡고 같이 가줄 분들이 계시다는 믿음이 마음을 환히 밝혀 준다. 학부모교육에 관심과 참여를 아끼지 않고 있는 많은 학부모들께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고 싶다. 

“고맙습니다. 더 노력하고 연구하겠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걸어가겠습니다.”


4. [서울신문][씨줄날줄] 조선통신사 배 복원/박홍기 논설위원

통신사(通信使)는 조선시대 왕이 일본에 파견한 공식 외교사절이다. ‘믿음으로 통한다’는 통신은 외교의 다른 말이다. 통신사가 처음 일본 교토에 있던 막부(幕府)에 갔다 온 것은 1429년 세종 11년의 일이다. 1590년 선조 23년 일본의 침략 의도를 살피려고 갔던 사절도 통신사다. 통신정사 황윤길은 “내침에 대비해야”, 부사 김성일은 “그런 정상은 발견하지 못해”라고 보고했다. 정반대다. 선조는 김성일의 견해를 채택했다. 그 결과 임진왜란(1592~1598)이라는 전란을 치렀다.


외교 단절은 쉽지 않다. 이해관계와 맞물려서다. 조선도 그랬다. 철천지원수 같은 일본과 모든 교류를 끊고 싶었지만 결코 단절이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일본이 먼저 국교 회복을 요구했다. 임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가 죽자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가 체제 구축을 위해서다. 대륙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조선이 필요했다. 조선도 일본의 정세를 파악해야 했다.

국교 회복에는 대의명분이 있어야 했다. 사명대사가 적을 정탐하는 사절(探敵使)로 일본을 찾아 도쿠가와를 만났다. 전쟁을 다시 일으키지 않고 조선인을 돌려보내겠다는 뜻을 확인했다. 조선은 일본의 국서(國書)와 임란 때 왕릉을 파헤친 범인(犯陵賊)의 인도도 요구했다. 결국 국서가 진짜인지, 범릉적이 진범인지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지만 약속이 이행되자 교류 재개를 결단했다.

임란이 끝난 지 10년째 되던 1607년 선조 40년 통신사가 다시 일본 땅을 밟았다. 한·일 양국이 요즘 말하는 조선통신사의 시작이다. 이후 1811년 순조 11년까지 200년 남짓 12차례에 걸쳐 통신사절단이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은 조선에 일본 국왕사(國王使)라는 사절을 보냈다. 통신사절단은 초기에 국정 탐색에 역점을 두다 1636년 인조 14년부터는 막부 쇼군(將軍)의 즉위나 그의 후계자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로 바뀌었다. 선린 우호·문화 교류 사절단의 성격을 띠었다.

조선통신사는 한양에서 일본 수도 에도(현 도쿄)까지 왕복하는 데 1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규모는 대략 400~500명이었다. 부산에서 길이 34m, 너비 9.5m, 높이 3m에다 바닥이 평탄한 구조의 평저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넜다. 쓰시마(對馬)번에서는 1500명 정도가 호위에 나섰다. 내륙에 닿은 뒤 다시 배를 타거나 걸었다. 멀고 먼 여정이었다. 그러나 행렬은 장관이었다. 한·일 양국이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다. 통신사절단이 끊기고 100년이 지나 조선은 일본에 강제 병합됐다. 다시 105년이나 지난 현재도 일본의 그릇된 역사 인식 탓에 관계는 매끄럽지 못하다. 문화재청이 2018년까지 통신사절단이 탄 배를 원형대로 복원하기로 했다. 제작될 배가 한·일 양국의 얽힌 매듭을 푸는 매개체가 되길 기대한다.


5. [한국일보]국제 호랑이의 날

7월 29일은 ‘국제 호랑이의 날’이다. 지구에 남은 가장 거대한 고양이과 맹수인 호랑이를 멸종 위기에서 구하자는 취지로 201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호랑이 정상회담’에서 저 날을 정했다. 

회담에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중국 국무원 총리 원자바오 등 야생호랑이 서식지 13개국 정상(대표)을 비롯, 월드뱅크 의장 로버트 죌릭, 월드뱅크와 세계자연기금(WWF) 스미소니언 위원회 등이 2008년 출범시킨 ‘글로벌 타이거 이니셔티브(GTI)’ 등 국제환경단체가 참석했다. 그들은 2022년까지 야생 호랑이 개체 수를 2배 늘리자는 데 합의했다. GTI 등에 따르면 한 세기 전 약 1만 마리에 달하던 지구의 야생 호랑이는 2010년 3,200마리로 격감했다. 

호랑이 보호의 관건은 서식지 보존과 밀렵 근절이다. 러시아와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의 서식지 개발을 최대한 억제하고, 최대 밀렵지로 꼽히는 인도 당국의 밀렵 감시와 최대 소비처인 중국의 호랑이 제품 밀수ㆍ유통 단속이 주요 관심사다. 효능이 미심쩍은 약제와 천박한 사치재의 재료로 쓰이는 밀렵된 호랑이는 한 마리당 약 2만5,000~5만 달러(2010년 기준)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정상회담은 총 3억2,900만 달러의 재원을 마련해 호랑이 한 마리당 약 10만 달러의 자금을 투입, 개체 보호ㆍ확대 계획을 추진키로 했다. 

지난 4월 WWF는 지구의 야생호랑이가 약 5년 새 3,890마리로 증가, 지난 세기 내내 이어져 온 격감 추세가 비로소 반전됐다고 발표했다. 야생호랑이의 최대 서식처인 인도의 환경당국은 2015년 1월, 보호활동을 전개한 이래 1,411마리에서 2,226마리로 개체수가 급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갑자기 늘어난 포식자로 인해 인도의 생태계가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서울대 수의대 이항 교수는 2000년대 초부터 독자적으로 ‘한국호랑이’의 복원 계획을 진행 중인 학자다. 그는 러시아와 중국 등 아시아 극동지역에 서식하는 400~500마리의 통칭 ‘아무르 호랑이’와 1920년대 남한서 멸종한 한국호랑이의 유전자적 차이가 없다는 점을 들어, 한국 호랑이는 멸종되지 않았고 상황이 개선돼 연해주의 호랑이가 늘어나면 국경을 넘어 한반도로 돌아올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주장해왔다. 물론 그의 목적도 한국호랑이 자체가 아니라 호랑이도 살 수 있는 자연생태계의 복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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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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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8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신생아 없는 ‘100세 사회’ 재앙이다

젊은이들은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상황에서 100세 이상 인구는 늘어나는 등 고령화 추세가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월 출생아 수는 3만 4400명으로 1년 전보다 5.8% 줄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0년 이래 5월 기준으로는 최저치다. 혼인 건수도 지난해 동기 대비 8.6% 줄어든 2만 5500건으로, 역시 2000년 이래 가장 적었다. 젊은이들이 적령기에 이르러서도 결혼도 늦추고 아이도 낳지 않는다는 얘기다.

반면 지난해 11월 기준 만 100세 이상 고령자는 3159명으로, 2010년보다 72.2%(1324명) 증가했다. 2005년 961명에서 10년 사이 3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인구 10만명당 100세 이상 인구는 2005년 2.0명에서 2010년 3.8명, 지난해 6.6명으로 급증세다. 신생아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데도 기존 장년층은 점차 늙어가는 기형적인 인구구조의 고착화가 아닌가 걱정이 크다.

건강한 장수 사회는 축복이다. 하지만 서로 출산을 기피하는 상황에서의 고령화는 국가적으로 재앙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주요 노동력인 15∼64세 인구 비중이 감소하는 등 이미 인구절벽에 도달해 있다. 노동력 감소로 인한 잠재성장률 하락, 노인인구 부양비용 증가 등의 위기가 현실로 닥칠 날이 결코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미덥지 못하다. 2005년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하고 지난 10년간 152조원을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올 상반기 합계출산율 추산치가 1.2명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 단적인 예다. 되레 뒷걸음치는 셈이다. 올해부터 5년간 200조원을 들여 2020년에는 합계출산율을 1.5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가 공허하게 들리는 까닭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극복은 국가의 미래와 직결돼 있는 만큼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해 인구 1억명을 지키자는 의미의 ‘1억 총활약상’이라는 장관직을 신설하는 등 저출산·고령화 극복에 총력을 쏟고 있다. 우리도 1년에 한두 차례 회의에 그치는 허울뿐인 위원회 중심 체제에서 탈피해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부 부처 신설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2.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계획 차질 없도록

정부가 원전에서 배출되는 사용후 핵연료 영구처분시설 부지를 2028년까지 선정한다는 내용의 기본계획을 내놓았지만 벌써부터 원전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처분시설이 건설되기까지 사용후 핵연료를 잠정적으로 원전 구내에 저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혹시 처분시설 건립계획이 차질을 빚게 된다면 임시저장 시설이 그대로 영구시설로 고착될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을 것이다. 최근 산업부 주최의 공청회가 주민 반발로 무산된 데서도 이러한 우려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원전마다 사용후 핵연료를 수조에 넣어 저장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것부터가 문제다. 월성원전은 2019년에, 한빛·고리원전은 2024년으로 포화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그 뒤로도 한울원전(2037년)과 신월성원전(2038년) 등이 꼬리를 잇게 된다. 결코 강 건너 불처럼 한가하게 바라볼 수 없는 처지다.

역대 정부가 이런 점을 뻔히 내다보고도 미리 저장시설 건립계획을 마련하지 못한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다. 1980년대부터 간헐적으로 변죽만 울리다가 지역여론에 부딪혀 슬그머니 넘어가곤 했다. 주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다음 정부로 계속 책임을 떠넘겨 온 측면이 다분하다. 정부의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현 정부도 최근 황교안 국무총리 책임하에 기본계획을 확정했지만 계획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는 쉽게 장담하기 어렵다.

사용후 핵연료는 고준위 폐기물이라는 점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 저장시설이 마련되지 않으면 원전 구내에 쌓아둘 수밖에 없고 그러고도 넘치면 결국 주택가 골목길로까지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계획에 따르더라도 부지선정에만 12년이 걸리고 이후 중간저장시설을 거쳐 영구처분시설을 건설하는 데까지 줄잡아 30년 정도가 걸린다는 점에서도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획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 하는 점이다. 사용후 핵연료 처분장이 필수적으로 마련돼야 하지만 일방적인 강행은 금물이다. 주민 반발을 초래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물론 주민 설득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책임이 정부의 몫일 수밖에 없다. 계획이 차질을 빚어서는 곤란하다.

[서울신문]

3. 집안 잔치 하느라 미 대선 의원외교 외면하나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며칠 전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확정한 공화당 전당대회에 이어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민주당 전당대회장도 후끈 달아올랐다. 그런데도 여당인 새누리당은 관례적으로 보내던 대표단을 이번엔 파견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세연 의원이 유일하게 자비로 지난 20일 공화당 대회를 참관했을 뿐이다. 미 정가의 아웃사이더인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국의 대외 정책이 격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시점에 외유가 아닌 진짜 ‘의원외교’를 펼칠 기회를 스스로 박찼다면 집권당으로서 중대한 직무유기일 것이다.

개인 자격으로 공화당 대회를 참관한 김 의원은 “한·미 동맹 약화와 보호무역 강화에 대한 (우리의) 준비가 절실함을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다. 본지에 기고한 참관기를 통해서다. 특히 인터뷰에서 “바닥 민심을 보니 트럼프가 당선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더욱 아쉬운 노릇이다. 여야 정당들이 소위 ‘트럼피즘’의 진면목을 살펴보고 그의 참모진과 네트워크를 만들 무대를 외면했다면 말이다. 혹여 트럼프가 집권하면 한국은 그가 표방한 보호무역주의와 고립주의 외교 정책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김대중 정부 때도 공화당으로 정권 교체가 되더라도 미국의 대북 정책이 불변일 것으로 마음을 놓았다가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사사건건 부딪쳤지 않았나.

얼마 전 공화당이 정강에서 북한을 ‘김씨 일가의 노예국가’로 규정하자 민주당도 그제 ‘가학적 독재자가 통치하는 가장 억압적 정권’으로 적시하는 정강을 발표했다. 이런 정책 동조 현상의 이면에 깃든 함의는 현장에서만 감지할 수 있는 일이다. 두 당의 정치 이벤트에 무관심해선 안 될 까닭이다. 더욱이 트럼피즘은 그의 당선 여부를 떠나 이미 미국의 대외 정책에 투영되기 시작했다. 그제 발표된 민주당의 정강·정책을 보라. 힐러리 후보 역시 보호무역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지 않았나.

그럼에도 28일(현지시간) 막을 내릴 미 민주당 전당대회장에마저 새누리당 참관인이 결국 한 명도 없다면? 다음달 전당대회를 앞둔 여당이 집안 잔치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게다. 트럼프가 내건 ‘미국 우선주의’라는 모토에 이미 미 여론이 출렁거리고 있다면 힐러리가 이기더라도 차기 미 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변화가 불가피할 게다. 정부는 물론 여야 정당들이 미국 사회 저류의 변화 기미를 읽고 유사시 국익을 극대화할 대화 채널을 확보하는 적극적 노력을 기울일 때다.

4. 北 5차 핵실험 위협만 받고 끝난 ARF

2016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그제 가시적인 외교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우리나라는 이번 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 북한에 우호적인 회원국들에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외교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패권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나라가 설 자리는 없었다. 지난해에 이어 의장성명에 회원국들이 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도발을 우려하고,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 체면치레를 했다. 중국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사드 배치에 반감을 드러냈고, 미국은 사드 문제에서 한 걸음 물러선 모습이었다. 북한은 사드 배치 결정으로 벌어진 한·중 관계의 틈을 비집고 핵실험의 정당성을 선전하며 고립에서 탈피하려 안간힘을 썼다.

ARF의 최대 관심사인 의장성명은 폐막 하루가 지나서야 채택됐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영해 분쟁 등 현안들을 놓고 회원국의 입장이 첨예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남중국해 영해 문제를, 중국이 사드 배치 문제를 이슈화하면서 두 패권국에 끼인 우리나라는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우리는 남중국해 이슈에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중립을 지켰다. 그런데도 중국과 러시아는 의장성명 초안에 사드 배치 관련 내용을 포함하려 해 이에 대응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한다. 안일한 대응으로 혹을 떼려다 되레 혹을 붙인 격이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리용수 북한 외무상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라오스에 입국한 뒤 리 외상에게 친밀감을 과시했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는 사드 배치에 따른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윤 장관의 발언 중에 손사래를 치거나 턱을 괴는 등 비신사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 24일 라오스에 도착한 직후 윤 장관을 만나 “최근 한국의 행위는 양국의 상호 신뢰의 기초에 해를 끼쳤다”며 사드 배치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윤 장관은 “국가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자위적 방어 조치”라고 설득했으나 그는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ARF에서 보았듯이 외교 무대에서 사드에 관한 한 중국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중국의 비협조는 북한이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을 감행해도 무력적인 방법 외에는 효과적인 대북 제재 수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북한이 중국을 믿고 5차 핵실험을 감행하면 한반도의 위기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외교적으로 더욱 정교한 전략과 지혜가 요구된다. 중국이 남중국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사드 문제를 의도적으로 이용했다는 낙관론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사드 외교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방어용 사드 배치가 외교 무대에서 우리에게 걸림돌로 작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5. 신부 살해 IS 세계인의 이름으로 규탄한다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전사를 자처하는 무장 괴한이 그제 프랑스 소도시의 성당에 침입해 신부를 살해했다. 괴한들은 미사를 집전하고 있던 84세 노()사제를 무릎 꿇리고 목을 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2명의 괴한은 성당 뒷문으로 들어가 자크 아멜 주임 신부와 수녀 2명, 신도 2명을 인질로 잡았고,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신도 한 사람도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세계 도처에서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 IS 테러는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것이 예사였다. 잦은 테러에 둔감해졌다고 그저 한 사람이 목숨을 잃은 사건으로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성당에 침입한 IS 세력의 신부 살해는 또 다른 종교 전쟁을 불러일으킬 도화선이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역사가 깊은 유럽은 이번 사건으로 반(反)IS 연대를 더욱 공고히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사국인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당장 IS에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면서 “우리뿐 아니라 독일 등 다른 나라도 같은 처지에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IS가 ‘십자군 동맹’으로 지칭하는 유럽 국가들이 테러에 겁을 먹기는커녕 더욱 굳게 결속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그런 점에서 IS는 테러로 잃은 것만 있을 뿐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좋다. 프랑스 이상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았을 교황청이 사실상의 종교전쟁으로 비화할 것을 우려해 절제된 성명을 낸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IS는 이번 테러가 유럽과 미주의 가톨릭과 기독교 국가의 국민뿐 아니라 종교를 불문하고 양식 있는 모든 세계인의 공분을 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아가 통제 불능 상태의 테러가 결국은 자신들의 종말을 재촉할 뿐이라는 사실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사건을 포함해 IS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상당수 테러는 철부지 추종자들의 소행이다. IS는 그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광신(狂信) 집단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이제 문명 세계로 복귀할 마지막 기회마저 사라지고 있음을 모르는가.

[동아일보]

6. ‘인격 학대’ 부장검사와 ‘갑질’ 금수저에 뿔난 사람 많다

대검찰청 감찰위원회는 두 달 전 목숨을 끊은 서울남부지검 김홍영 검사에게 폭언 및 폭행을 한 김대현 부장검사가 법무부와 남부지검에 근무한 2년 5개월 동안 검사들과 공익법무관, 직원들에게 인격을 모독하는 욕설과 행동을 17건이나 자행했다고 어제 밝혔다. 김 검사를 불러 술시중을 들게 했고 등이나 어깨를 여러 차례 때렸으며 결혼식장에서 술 마실 방을 구해오지 못하자 폭언한 것도 사실로 드러났다. 감찰위는 그에게 최고 수위 징계인 해임을 법무부에 청구하고 남부지검장에겐 검찰총장이 서면 경고하도록 했다. 

정병하 감찰본부장은 김 부장검사가 김 검사의 등이나 어깨를 여러 차례 때린 것은 ‘잘해 보라’는 경고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릇된 지도 방법이 문제이고 자기 행동이 상대방에게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미처 깨닫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폭언이나 폭행이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려는 것으로 들린다. 유족은 물론이고 동료, 친구들이 이 발표를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김 검사의 유족은 김 부장검사를 형사고소할 것을 검토키로 했다.

김 부장검사의 난폭한 언행에 분노한 많은 직장인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자기 일처럼 동병상련의 공감을 표했다. 인성에 결함이 있는 직장 상사의 ‘인격 살인’에 가까운 언행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달 중순에는 경찰에서 부하 직원을 괴롭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한 경감이 파면됐다. 김 부장검사 같은 ‘결격 상사’를 걸러내지 못한다면 남부지검에서와 같은 일이 재발할 수밖에 없다. 강압적인 리더는 조직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존재라는 점을 최고경영자들이 새겨야 한다.

‘운전기사 갑질 매뉴얼’로 비난받은 현대비앤지스틸 정일선 사장은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최근 3년간 운전기사를 12명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 기사들은 평균 석 달간 법정근로시간보다 4시간 긴 평균 주 56시간 일했다. 숨 막히는 매뉴얼에 들볶이다 길이 막히면 욕설과 구타를 일삼는 사람 밑에서 오래 버티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정 사장은 현대가(家) 3세의 ‘금수저’로 높은 자리에 올랐다. 눈물 젖은 빵도 풍파도 겪지 않고 성장한 사람의 비뚤어진 품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마구 대하면 조직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결국 부메랑처럼 상처만 안기게 될 뿐이다.

7. 일자리 해외로 쫓아낸 수도권 규제 당장 수술해야

2009년 이후 5년 동안 수도권 규제 때문에 투자를 철회한 기업 중 공장을 지방으로 옮긴 기업은 9개인 반면 해외로 나간 기업은 28개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6일 개최한 ‘수도권 규제 세미나’에서 나온 내용이다. 이 기간 62개 기업이 공장 신·증설 투자 시기를 놓쳐 3조3329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고 일자리 1만2059개가 날아갔다. 1982년 도입한 수도권 규제가 기업과 일자리를 해외로 몰아내는 부작용만 드러낸 셈이다.

수도권정비계획법 국토기본법 등에 명시된 중복 규제로 한국은 기업 하기 힘든 나라로 낙인찍혔다.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무허가 공장이 난립하면서 환경오염이 되레 심해지는 예상치 못한 사태도 생기고 있다. 정부는 수도권을 옥죄면 지방 일자리가 늘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기업들이 공장입지를 중시하는 현실을 헤아리지 못한 탁상행정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는 ‘수도권, 비수도권을 구분하지 않는 기능적 접근’을 규제 완화의 해법으로 내놓았다. 수도권만 골라 규제를 철폐하면 지방이 반대할 것이니 수혜지역의 티가 나지 않도록 하는 우회 전략인 셈이다. 규제 기요틴 과제 추진, 산업단지 인허가 규제 완화, 규제프리존 도입 추진이 모두 이런 기조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크게 실망스럽다. 최근 상황은 변죽만 울리는 규제 완화만으로는 일자리와 성장의 두 토끼를 모두 놓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 입증했다.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은 수도권 규제가 풀리면 지방경제가 손해를 볼 것이라고 우려한다. 지역 간 편차를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다. 조선 철강 자동차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은 항구 인근의 지방에 적합하므로 규제프리존 등 특화산업 선정 시 지원하는 것이 타당하다. 중앙의 인허가권을 지자체로 넘겨 지방을 달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인 시대를 맞고 있다. 영국 프랑스 일본이 수도권 문호를 개방하며 기업 유치에 매진하는 흐름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은 뒷걸음만 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경기 양주)이 최근 야당 의원으로서 10년 만에 수도권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규제 완화를 추진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수도권 정책을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여야정이 머리를 맞대 공장 신증설 규제부터 완화하고 이에 따른 과실을 지방과 나누는 방안도 찾아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8. 탈북 여성 성매매 방치하면 한반도 미래가 없다

탈북(脫北) 여성의 상당수가 불법 티켓다방에서 성매매를 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본지의 어제 보도(16면)는 우리 사회의 탈북민 지원정책이 겉돌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들이 성매매라는 상황에까지 몰리는 것은 한국 입국 후 받는 취업교육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까닭이다.

지난달 현재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 수는 2만9543명으로 그중 70%가 넘는 2만896명이 여성이다. 이들 중 거의 90%에 가까운 여성이 중졸 이하의 학력에다 북한에서 무직 또는 일용직 근로자 같이 특별한 기술이 없는 비숙련 인력이다. 그러다 보니 식당이나 공장에서 일하며 월 150만원 이하의 낮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 절반에 달한다. 게다가 이들 중 많은 수는 탈북 때 생긴 빚을 갚거나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을 해야 하는 처지여서 돈을 좀 더 벌 수 있는 성매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모든 탈북민에게 만족스러운 일자리를 찾아주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각종 탈북민 정착과 취업·창업 지원 프로그램도 존재한다. 하지만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리 온 통일’이라 일컬어지는 탈북민 지원은 통일 한반도의 안정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이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통일은 한순간에 일어날 수 있지만 남북한 주민의 완전한 통합은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통일된 지 30년이 다 돼가는 독일도 동·서독 주민 간의 화학적 통합이 완성됐다고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탈북민들은 남북이 하나가 되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테스트 베드(시험공간)’다. 어떻게 해야 이들을 민주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시킬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한민족의 통합을 위한 저력이 된다. 예산에 한계가 있는 정부 차원을 넘어 관심을 갖는 민간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그들과 탈북민을 잘 연결시킬 수 있는 방법을 더욱 고민해야 한다. 탈북자 5명 중 1명이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 현실로는 한반도 미래가 암울하다.

[매일경제]

9. 신한은행 자율 출퇴근, 기업 전반으로 확산되길

신한은행이 재택 근무, 자율 출퇴근제 등을 도입해 25일부터 근무 형태를 혁신하기로 했다. 은행권에서 처음 도입하는 이런 근무 형태는 출퇴근 교통 체증에 따른 고충을 덜고 워킹맘의 일·가정 양립을 도운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다.

신한은행은 상품·디자인 개발 등 은행 전산망을 사용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직원들에게 재택 근무를 허용하기로 했다. 전체 직원의 46%인 6500명이 그 대상이다. 또 자율 출퇴근제를 신청하면 하루 9시간 근무한다는 전제 아래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 강남과 용인 죽전, 서울역 부근 등 3곳에는 스마트워킹센터를 만들어 시간이나 복장에 제한받지 않고 생활패턴에 맞춰 편안하게 일하도록 했다. 자녀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출근해야 하는 맞벌이 부부, 틈틈이 공부하며 일하는 직원 등이 이런 유연한 근무제도를 이용해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자율 출퇴근제를 도입한 기업 비율이 미국은 81%, 유럽은 66%에 달하는 것도 직원들의 만족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이 이달 말부터 직원 66%를 대상으로 재택 근무를 확대시행하는 등 3대 대형 은행이 모두 재택 근무를 도입하기로 확정한 상태다. 이에 비해 국내 기업에서는 자율 출퇴근제 도입률이 고작 12.7%에 불과하다. 상사나 동료 눈치를 봐야 하는 보수적이고 경직된 기업문화 탓이 크다. 아무리 제도가 훌륭해도 여기저기 눈치 보느라 활용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만큼 이런 보수적인 기업문화부터 타파해나가야 할 일이다. 

은행권 지점 통폐합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유휴인력을 해소하려는 방편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신한은행은 본인이 신청하는 경우에만 허용하는 근무제도이고 전체 근무시간에 변동이 없기 때문에 급여에도 영향이 없다고 강조한다.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이런 점을 잘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유연한 근무'가 '유연한 급여체계'와 병행하는 것이 옳은 만큼 경직적인 호봉제를 성과급제로 바꿔나가는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

10. 일본서 발생한 충격적 증오범죄, 남의 일 아니다

일본에서 20대 남성이 장애인 수용시설에 침입해 45명에게 칼부림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19명이 죽고 26명이 다쳤는데도 범인은 "장애인 따위는 사라져야 한다"며 반성하는 기미조차 없었다고 하니 끔찍하다. 전후 최악의 증오범죄라는 점에서 일본 사회가 큰 충격을 받았는데 우리도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 소득·계층 양극화 등 양국 간에 유사한 점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슬람국가(IS) 테러가 전 세계를 위협하는 가운데 주요 선진국마다 경기침체, 실업, 양극화 등에 따른 차별과 편견, 분열을 극복하는 문제가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은 증오의 뿌리를 본인이 속한 공동체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은 만큼 사회 통합이 테러의 근본 해결책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증오범죄는 사회 빈곤층이나 소외 계층이 평소 쌓아뒀던 억울함·분노·원망 등을 불특정 다수한테 무작위로 폭발시키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10월 충남 아산 30대 여성 납치·살해 사건, 지난 2월 인천국제공항 가짜 폭발물 설치 사건 등은 우리 사회에도 증오범죄가 본격 발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 사회는 왕따, 갑질, 폭언·폭행 등 분노가 일상화된 사회다. 장기 불황, 취업난, 대량 해고 등으로 인한 피해 심리와 적개심이 증오범죄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가뜩이나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사회통합 지표가 꼴찌다. 어려울 때 기댈 사람 하나 없을 만큼 사회관계망이 헐거워져 있다는 얘기다. 증오범죄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소외계층에 대한 복지 체계 재정비, 정신보건 정책 등을 보다 촘촘하게 다시 짜야 한다. 인권 교육 강화,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재무장, 기부 등 공동체 회복 노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번에 일본도 장애인 시설이 범죄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는데 국내에 우후죽순 생겨난 요양원, 장애시설, 복지시설 등도 마찬가지다. 시설 운영 실태, 방호 체계 등에 대한 일제 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국민메뉴가 된 함흥냉면

함흥냉면은 감자가 많이 나는 함경도 지방에서 유래한 음식이다. 감자녹말을 주원료로 해서 쫄깃하고 질긴 면을 만들어 매운 양념으로 비비고 가자미회 등을 양념으로 무쳐 고명으로 얹어 먹는 음식이다. 원래 이름은 냉면이 아니고 ‘농마(녹말 사투리) 국수’였다. 지금은 감자녹말 대신 고구마녹말을 쓰고 가자미 대신 홍어회 등을 고명으로 쓰는 집이 많다.


함흥냉면 마니아들은 그 질긴 면발에도 불구하고 절대 가위를 대지 않는다. 면발이 대접에서 젓가락을 거쳐 입속 너머까지 이어져야 제맛이란다. 매운 양념맛과 어우러지는 구수하고 뜨거운 육수가 함흥냉면의 동반자다.

함흥냉면 원조 동네로는 피란민들이 많이 살았던 서울 중구 오장동을 꼽을 수 있다. 1953년 이곳에 자리잡은 ‘흥남집’은 필자하고 동갑내기다. 고구마전분에 매운 홍어회 또는 간자미회를 쓴다. 비빔냉면은 매운 양념을 비벼서 내오나, 회냉면은 면에 양념을 하지 않고 매운 양념과 참기름, 설탕 등을 취향대로 더해 먹는다.

흥남 출신인 창업자의 손녀딸인 현재 주인에 얽힌 일화가 있다. 바로 모자상 화폐다. 모자상 화폐는 1962년 5월 16일 발행되었으나 화폐개혁으로 단 25일간 유통된 최단명 화폐다. 통상 화폐에는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 지폐에는 그야말로 ‘보통사람’인 한복 입은 여인과 어린 아들이 등장한다.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다. 그 여인은 당시 조폐공사에 다니다 결혼으로 퇴직한 뒤 조폐공사 도안실장이 덕수궁으로 나오라고 해서 사진을 찍었고 그것이 화폐도안으로 이어졌다. 이 모자가 바로 흥남집 여사장과 그 아들이다.

오장동에서는 흥남집과 함께 ‘오장동 함흥냉면’ 그리고 지금은 평택으로 이전한 ‘신창면옥’이 함흥냉면 트로이카로 오랫동안 이름을 날렸다. 다른 지역에서도 맛과 명성을 자랑하는 집들이 도처에 있다. 1967년 개업한 ‘영등포 함흥냉면’은 고명을 간자미로 하고 있다. 영등포 일대에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명동 골목에 자리잡은 ‘명동 함흥면옥’도 오랜 단골들이 많은 집이다.


정통 함흥냉면은 아니나 특유의 불타는 매운맛을 자랑하는 냉면이 숭인동 ‘깃대봉 냉면’이다. 원래 창신동에 있다가 지금 자리로 옮겼는데 창신동 시절 깃대봉이 있는 집에서 장사를 해 그렇게 불린다. 매운 정도별로 매운 맛, 보통 맛, 덜 매운 맛, 안 매운 맛, 거의 안 매운 맛, 하얀 맛 등 6단계가 있다. 보통 맛도 보통 매운 게 아니니 신중히 주문해야 한다. 이북 피란민들이 많이 살았던 부산, 속초 등에도 역사가 오랜 이름난 집들이 적지 않다.

그렇게 전국 곳곳에 퍼져 있는 내공 있는 집들이 전통을 이어 가고, 새롭게 역사를 써내려 간 결과 함흥냉면은 이제 전국 음식이 되었다. 6·25 대전란 후 피란민들의 향수를 달래는 음식에서 출발했으나 특유의 매콤한 맛과 쫄깃한 식감이 미식가는 물론 일반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더 나아가 중독 현상까지 일으키면서 어느덧 한국인 대다수가 사랑하는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함흥냉면은 한민족 현대사의 작은 한 단면을 보여 주는 음식이 아닐까 한다.


2. [동아일보][2030 세상/우지희]식당 아줌마 ‘진심’ 밥상에 마음 훈훈

어떤 식당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메뉴판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돈만 내면 남들처럼 똑같이 먹을 수 있는 요리 말고 식당 주인이 특별히 그 손님을 위해 만들어 주는 음식이 진짜라는 뜻이다. 붙임성 좋은 평소 성격 덕분인지 단골 가게 주인들의 너그러운 마음 씀씀이 덕분인지, 종종 식당에서 이런 ‘특별식’을 얻어먹곤 한다.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나온 홍게라면과 포장마차에서 나온 감자전이 그랬다. 두말할 것 없이 그 집의 어떤 대표 메뉴보다 맛있었다. 

최근 집 앞에 새로 가게를 낸 백반집이 있다. 하얀 간판에 명조체로 가게 이름 두 글자만 반듯하게 적어놓은 것이 마음에 들어 처음 들렀는데, 거기서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주인 아줌마께서 내 옆에 혼자 밥을 먹던 또 다른 남자 손님 테이블에만 자꾸 다른 반찬을 더 놓아 주시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온 뜨내기손님이라 이렇게 대하고 저 남자 손님은 단골이라 융숭한 대접을 한다고 봤지만 추가로 놓인 반찬들이 특별식이 아니어서 궁금해졌다. 

“저번에 보니 익은 김치를 더 잘 먹더라” 하시며 김치보시기를 하나 더 놓으시곤 “아차차, 멸치 조린 것도 있어” 하시며 절반이나 비운 밥공기 옆에 그걸 갖다 주시더니, 급기야 밥숟갈을 놓으려는데 “내 정신 좀 봐, 들기름 발라 새로 구운 김 준다는 게” 하시며 다 먹은 밥상에 결국 김을 내어 오셨다. 처음엔 조카나 아들쯤 되나 했는데 대화를 들어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아 도대체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가 싶어 자꾸만 눈길이 갔다. 

“이러시면 제가 죄송해서 못 와요 이제.” 남자 손님의 반응을 보니 점점 더 두 사람의 관계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그 남자분이 정확히 밥값만 지불하고 떠난 후 괜히 슬쩍 주인장에게 떼를 써 보았다. “저도 멸치조림 주시면 안 될까요?” 

주인아줌마는 빙긋이 웃으시며 반찬 그릇을 내미셨다. 곧이어 “좋아하는 반찬 있어요? 금방 되는 거면 해줄게” 하고 덧붙이셨다. 나 역시 식사를 거의 마쳐갈 즈음이라 정중히 사양했다. 그 대신 이 희한한 상황에 대해 더 여쭈어 보았다. 

주인아줌마는 평생을 집에서 살림만 하던 ‘솥뚜껑 운전사’였는데 최근에 기회가 닿아 생전 처음으로 장사라는 걸 하시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백반집을 열고 보니 장사라는 것이 만만치 않으셨단다. “음식 팔아 떼돈 번다는 이야기는 옛말”이라며 몸은 고되고 수지는 맞지 않아 후회도 많이 하셨다고 담담히 고백하셨다. 그러다가 당신 나름의 장사 철학을 세우셨는데 바로 ‘한 끼 잘 때우고 가는 식당’이었다고 한다. 

한 테이블이라도 손님을 더 받으려고 아등바등하다 보니 음식은 소홀해지고 위생도 문제가 생겨 걱정이 시작되었고, 그 와중에 ‘혼밥’하러(혼자 밥 먹으러) 오는 젊은 사람들이 마치 타국에 있는 당신의 아들처럼 짠한 마음이 드셨다고 했다. 그런 생각이 점점 깊어지자 얼마를 벌든 기쁘게 밥을 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누가 오든 ‘끼니를 잘 때웠다’고 말할 수 있는 식당을 만들겠노라 결심하신 것이다.

그러고 나선 수저는 꼭 끓는 물에 세 번 삶아서 마른 행주로 닦아 집에서 살림을 살 듯 가게를 정돈했고, 콩자반을 좋아하는 손님에겐 꼭 그것을 내어 드리는 고집을 부렸으며, 밥 같은 밥은 여기서 먹는 게 전부일 젊은이들에겐 대단한 요리는 아니지만 밑반찬 하나라도 더 해주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식당을 운영하자 자연스레 입소문이 나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생겼다. 하지만 굳이 다 손님으로 받지 않고 능력이 되는 만큼만 팔고 나머지 사람들은 돌려보내신다고 한다. 그래야 지금의 이 마음으로 오랫동안 장사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란다.

밥숟갈을 놓고 한참 동안 식당 주인아줌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타입의 특별식을 목격하며, 약간이나마 인생이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 한 끼를 잘 때울 수 있는 공간이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든든해졌다. 

주인아줌마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철학을 가지고 진심으로 대하면 스스로뿐만 아니라 상대도 행복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괜찮은 밥집이, 동네가, 사회가, 나라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꿈에 잠시나마 마음이 부풀었다.


3. [중앙일보][알베르토 몬디의 비정상의 눈] 한국영화의 숨은 매력…세계의 문을 두들겨라

지난 몇 년간 한국 문화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탈리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 문화권에서 K팝·한국드라마 같은 한류 콘텐트를 소비·경험하는 사람은 한정적인 것 같다. 예를 들어 K팝을 좋아하는 사람은 주로 10대 청소년이거나 과거 동아시아 문화권의 콘텐트를 소비하던 사람들인 경우가 적지 않다. 한류 콘텐트는 매력적이지만 남녀노소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통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한류 콘텐트보다 한국 영화가 오히려 그런 잠재력이 더 있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에선 1990년대부터 한국 영화가 인기였다. 그 어떤 한류스타보다 김기덕이나 박찬욱 같은 한국 감독이 더 유명하다. 나는 뭘 봐도 다 비슷한 고예산 할리우드 영화보다 신선하면서 특색 있고 수준 높은 한국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좋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한국 영화가 더 많이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은 조금 부족해 보인다. 내가 본 문제점은 첫째, 영화관들이 관객수만 의식한 탓인지 인기 할리우드 영화 위주로 상영해 다양한 작품을 보기 힘들다. 특히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은 지역은 물론 서울에도 거의 없다. 둘째, 수준 높고 잘 찍은 영화라도 대중성이 약하면 성공하기 힘들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 같은 데 가면 뛰어난 인디영화를 많이 접할 수 있지만 일반인들은 볼 기회가 거의 없다. 한국 영화가 세계적 콘텐트가 되려면 예술영화 상영관을 늘려 관객이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국제적으로도 예술영화를 좋아하는 유럽·남미를 겨냥해 적극적으로 한국 영화를 알리면 한류가 아직 강하지 않은 지역에서 한국 문화를 알릴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넷플릭스(Netflix)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을 활용하면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한국의 신인 감독과 그 작품들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다. 기회가 되면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처럼 넷플릭스의 지원을 받아 작품을 제작할 수도 있겠다.

2003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선 한국 영화만 상영하는 ‘한국영화제(www.koreafilmfest.com)’가 처음 열려 올해로 13년째를 맞고 있다. 밀라노에서도 매주 한국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 생겼다. 배우 문소리씨가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았다. 이렇듯 관심을 갖고 성원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많기 때문에 한국 영화의 미래는 밝다고 본다. 나도 팬으로서 계속 응원하고 싶다.


4. [동아일보][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영등포공원 담금솥과 맥주의 역사

일본 삿포로 도심엔 ‘삿포로 팩토리’가 있다. 1876년 세운 삿포로 맥주공장을 교외로 이전하고 1993년 공장 건물 일부와 굴뚝을 살려 생활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흉물 같았던 공장 굴뚝은 삿포로를 상징하는 명물이 되었고 삿포로 시민과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1876년이면,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맥주가 들어온 해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맥주 마시는 사람이 늘어났고, 1933년 우리나라에도 맥주 회사가 생겼다. 그해 대일본맥주가 조선맥주를 세웠고, 기린맥주는 서울 영등포에 맥주공장을 짓고 소화기린맥주를 설립했다. 조선맥주는 하이트맥주로, 소화기린맥주는 동양맥주 오비맥주로 이어졌다. 

서울 영등포역 바로 옆 영등포공원은 오비맥주의 공장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 가면 커다란 담금솥이 있다. 오비맥주 공장에서 맥아와 홉을 끓이는 데 사용했던 대형 솥을 공원에 전시해 놓은 것이다. 1933년 솥을 만들어 1996년까지 사용했으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제조용기인 셈이다. 나사가 몇 개 빠지고 약간 찌그러지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오비맥주 영등포공장이 1997년 경기 이천으로 이전하자 서울시는 이곳을 공원으로 조성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 맥주공장의 터라고 하기엔 썰렁하기 짝이 없다. 맥주공장의 다른 흔적들은 온데간데없고 담금솥 하나만 공원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열차를 타고 영등포를 지날 때 늘 차창 밖으로 스쳐갔던 맥주공장의 풍경. 우리 일상의 음식문화 가운데 하나로 굳건히 자리 잡은 맥주. 그 역사를 영등포 공장 터에서 제대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공장 건물도 몇 개 남겨 놓고, 여기에 기념관과 박물관도 꾸미고 이런저런 맥주 체험공간도 마련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맥주공장의 굴뚝 한두 개도 살려 놓았다면, 지금 멋진 풍경이 되었을 텐데. 1997년 이천으로 공장을 옮길 때 공장의 굴뚝을 남겨 놓으려 했지만 안전상의 문제로 철거했다고 한다. 안전도 안전이지만 사실은 우리의 인식 부족, 의지 부족이 더 큰 문제였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흔적을 너무 쉽게 없애고 훼손해 왔다. 영등포공원에서 만나는 담금솥 하나로는 우리 맥주의 역사를 제대로 체감할 수 없다. 담금솥은 그래서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삿포로 팩토리가 부러운 까닭이다.


5. [매일신문][목요일의 생각] 알파고, 포켓몬 고, 그리고?

올 3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로 전 세계의 관심이 우리나라로 집중됐었다. 인간과 인공지능(AI) 간의 바둑 대결은 단순한 바둑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바꿔놓을 미래를 미리 경험하게 했다는 측면에서 큰 화두를 던졌다. 두려움이 낙관을 압도했지만, 덕분에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깨닫게 하는 등 얼마를 줘도 아깝지 않을 ‘미래에 대한 비전’을 얻었던 것이다.

또 이 세기의 대국은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의 위기인가 기회인가, 포스트 휴먼의 정의는 무엇인가 등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엄청나게 뿌렸다. 우리 정부는 1조원이 넘는 돈을 AI 연구에 투자한다는 내용이 골자인 AI 육성책까지 내놓기도 했다.

알파’고’가 떠나고 4개월 뒤, 또 다른 ‘고’가 나타났다. 이번엔 스마트폰 게임인 ‘포켓몬 고’다. 포케몬 고는 증강현실기술(AR)을 이용해 거리 곳곳에 나타난 작은 몬스터를 스마트폰 화면에서 포획해 훈련시키고 서로 싸움도 벌이는 게임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서비스 지역이 아니지만 속초, 울릉도 등의 일부 지역에선 몬스터 포획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낸 사람들이 너나없이 속초 등지로 몰려들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한 지인은 자녀들과 함께 올여름 휴가지를 속초로 정했단다. 아이들이 스마트폰 게임인 ‘포켓몬 고’를 해야 한다고 하도 졸라대서 온 가족이 함께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속초행 여행 상품이 최근 일주일 새 2배 이상 판매율을 기록하자, 속초시는 아예 ‘포케몬 고 전략`지원사령부’를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사령부는 게임 트레이너와 관광객에게 필요한 정보 및 편의를 제공하고, 게임으로 인한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잘 만든 게임 하나가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갖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게임 강국임을 자처하는 우리는 왜 이런 게임을 만들지 못했느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린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충분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매번 우리는 뒷북만 친다. 한두 번이 아닌 것 같다. 왜 그럴까?

우리만의 강점을 살려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하고, 외국 흐름을 따라가는 경향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한 저명한 과학잡지가 떠오른다.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의 얘기다. 네이처 6월호에서는 “한국은 연구의 필요성을 가슴으로 깨달으려 하기보다는 돈으로 승부를 보려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 경직된 문화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포케몬 고의 열풍으로 한국 토종 캐릭터 뽀로로가 등장하는 ‘뽀로로 고’(가칭)의 출시 얘기가 들린다. 뽀로로 고 제작사 측은 “뽀로로 고는 재미 중심의 포케몬 고와 다르게 교육적인 요소에 집중할 것”이라며 차별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내용이 어찌 됐든 포케몬 고의 아류작일 뿐이다. 다음번 ‘고’ 시리즈에서는 한국만의, 한국에서 스타트하는 ‘고’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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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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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7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학교 이름만 돈 주고 빌려온 제주국제학교

제주 영어교육도시에 잇달아 들어서는 국제학교에 대해 주민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제주주민자치연대가 최근 도의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국제학교에 관심을 두기보다 공교육을 튼튼히 하는 계획부터 세우라”고 촉구했다고 한다. 국제학교가 당초 취지를 벗어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의 반발이다.

내년 9월 개교 예정으로 현재 건설공사가 진행 중인 ‘세인트 존스베리 아카데미 제주’(SJA Jeju) 설립을 둘러싸고 뒷말이 무성한 것도 주민들의 반발 배경이다. 10만 2000㎡ 부지에 건립되는 SJA제주는 실내수영장과 체육관, 극장 등 최고의 시설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외국 학교의 이름만 빌려왔다는 사실부터가 취약점이다. 미국 SJA 본교의 교육과정에 따라 운영된다고 하지만 졸업하더라도 본교 학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버몬트에 위치한 본교가 미국 30대 대통령인 캘빈 쿨리지를 배출한 명문 사립학교인 것은 틀림없지만 SJA제주는 본교와 로열티 계약에 의해 학교 이름과 일부 교육과정만 빌려온 관계이기 때문이다. 현재 운영 중인 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 제주(NLCS Jeju)와 브랭섬홀 아시아(BHA)가 국제학력 인증을 갖춘 것과도 대비된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의 자회사로서 학교운영법인인 해울이 SJA제주 설립을 추진해 온 과정부터가 졸속이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원래 외국학교들의 제안요청서를 평가한 뒤 심사를 거쳐 선발하는 공개모집 방식이 원칙이지만 SJA는 순서가 바뀌었다. 제주교육청의 보완 요구를 무시한 채 착공식이 이뤄진 것도 의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 납득할 만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더욱이 해울은 현재 자본잠식 상태로 방만경영에 대한 질타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를 관할하는 국토교통부가 사전에 이런 점을 몰랐을 리도 만무하다. 그런데도 최근 착공식에 참석한 고위 관계자는 “이번 SJA의 진출로 제주 영어교육도시가 국내 영어교육의 중심이자 동북아 교육 허브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칭송했다. 진행과정을 몰랐다면 무책임이고, 알고도 그렇게 말했다면 국민을 오도한 것이다. 제주 국제학교 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2. 우병우 특별감찰 시늉에 그쳐선 안 된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특별감찰 착수는 이번 사건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뜻한다. 대통령직속 특별감찰관의 존립 의의가 처음으로 시험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3월 특별감찰관법 국회 통과에 이어 작년 3월 이석수 변호사를 초대 특별감찰관에 임명했다.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비리를 근절하겠다는 대선 당시의 공약에 따른 것이다.

우 수석에 대한 감찰은 진경준 검사장 인사검증 소홀과 아들의 유기준 의원실 인턴채용 및 의경보직 청탁에 집중될 것이라 한다. 최근 집중 거론되고 있는 처가의 가족회사 재산 축소신고도 함께 포함될 것으로 전해진다. 이 특별감찰관은 어제 감찰 착수시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난 주말”이라면서 “법에서 정한 대로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감찰은 한 달 동안 실시되며 필요할 경우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한 달씩 연장된다.

우 수석 관련 의혹이 양파껍질 까듯이 연이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번 감찰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는 엇갈린다. 여권은 “일단 감찰 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인 반면 야권은 ‘시간끌기용’, ‘세탁용’이라며 비난 일색이다.

야당이 그동안 정부를 무리하게 몰아붙인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야당 주장에 일리가 있어 보인다. ‘현직 비리’ 규정에 따라 우 수석 처가와 넥슨의 수상한 1300억원대 부동산 거래가 감찰 대상에서 배제된 자체가 문제다. 이 사안은 진 검사장 인사부실 검증과 직결되는 만큼 진상규명이 필수다. 특별감찰관이 대통령 측근들에 대한 상시 감찰로 비리를 예방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야 ‘뒷북 감찰’이냐는 비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은 이번 사건에 경악을 넘어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특별감찰관은 철저한 감찰로 제도 도입의 취지를 살리고 의혹을 떨쳐내야 한다. 야권이 벌써부터 국정조사와 대정부질의를 예고하며 잔뜩 벼르고 있고 여당도 예전처럼 감싸기 일변도로 나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도 명심할 일이다. 우 수석은 더 이상 대통령 치마폭에 숨지 말고 자연인 신분으로 떳떳하게 조사받는 게 바람직하다. 진정한 대통령 측근이라면 대통령과 정권에 짐이 되는 처세는 피해야 한다.

[서울신문]

3. 고용난 해소에 새 길 튼 한수원의 인력 수출

극심한 경기 침체와 조선업계의 구조조정 등으로 고용대란이 가시화한 가운데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1조원대의 운영 용역 수출을 성사시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 20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건설 중인 한국형 원전 4기에 대한 운영지원 계약을 체결했다고 그제 밝혔다. 우리나라가 부품 생산이나 건설 공사가 아닌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기 위한 인력을 수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해소 기미가 보이지 않는 취업·실업 대란의 와중에 한수원의 인력 수출 계약은 그야말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계약에 따르면 한수원은 내년 5월부터 2030년까지 해마다 평균 210명, 총 3000여명의 운전원과 운영요원 등 전문인력을 파견하게 된다. 모든 비용은 UAE 원자력공사가 부담한다. 본 계약 6억 달러(약 6800억원)와 주택, 교육 등 간접비 지원 3억 2000만 달러(약 3600억원) 등 총 9억 2000만 달러(약 1조 400억원) 규모다.

지금 우리 경제는 갈수록 악화하는 고용 환경에서 일자리 하나가 아쉬운 형편이다. 통계청이 최근 내놓은 고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제조업 취업자 수 증가 폭이 1만 5000명에 그쳐 2013년 8월 이후 가장 적었다. 6월 청년실업률은 10.3%를 기록하면서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취업준비생 10명 중 4명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형국에서 한수원의 대규모 인력 수출은 가뭄에 단비다. 특히 일자리 가뭄을 겪고 있는 국내를 벗어나 해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낸 점은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고용대란 타개를 위한 새 길을 텄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설 운영이나 관리 인력은 한시적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건설 분야 등의 인력과 달리 시설이 가동되는 한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UAE는 현재 건설 중인 4기의 원전 이외에 추가로 4기를 발주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운영 인력을 더 충원할 가능성이 크다.

꼭 원전 분야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엔 각 분야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적지 않다. 정부와 기업들이 모두 해외 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번 한수원의 계약도 양국 정부, 특히 양국 정상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한수원이 새로운 길을 튼 만큼 다른 분야에서도 제2, 제3의 인력 수출 계약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4. 사드 배치 늦더라도 성주 제3후보지 검토하길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어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예정 지역인 경북 성주군을 방문했다. 그는 현지 주민 간담회에서 “성주군민·경북도·미군·새누리당과 대화의 주체들이 모두 참여하는 성주 안전협의체를 구성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만시지탄이나 집권 여당이 군 당국을 포함한 정부와 지자체 간 대화의 가교역을 맡기로 했다니 다행이다. 부디 건설적 대화를 통해 국가적 안보 과제와 나름의 이유가 있는 성난 지역 민심 사이에서 최적의 접점이 찾아지기를 기대한다.

한·미 양국이 주한 미군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끄저께 저녁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린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윤병세 외교장관을 만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신뢰 훼손” 운운하는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이런 반응의 연장선상에서 중국의 경제 보복 가능성도 제기된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상황에서 대놓고 보복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우리 경제가 티 안 나고 속으로 멍들게 제재를 기도할 순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어제 관영 CCTV로 ‘중국판 사드’ 격인 ‘훙치19’ 미사일의 요격 성공 장면을 공개했다. 중국의 이런 이율배반적 행태야말로 주한 미군 사드 배치가 불가피함을 역설적으로 입증한다.

더욱이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은 실전 배치를 코앞에 둘 정도로 고도화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제시해 달라”고 했지만, 사드 배치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고육책인 셈이다. 그러나 지역민들 입장에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일 수 있다. 군 당국이 사드를 성주군 성산리의 방공기지에 배치하기로 하면서 인구가 희소한 농촌 지역임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가뜩이나 개발에서 소외된 곳에 기피시설을 들여놓겠다고 하니 주민들의 상실감만 커진 형국이다.

정부는 사드 도입을 먼저 결정하고 톱다운 방식으로 배치 지역을 발표했지만, 지방자치의 성숙을 기대했다면 순서를 바꿨어야 했다. 국가 안보를 위해 짐을 떠맡는 주민들에게 안전에는 큰 문제는 없더라도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약속하며 미리 양해를 구해야 했다는 것이다. 사실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에 대한 우려는 과장됐을 수도 있다. 성주보다 좁은 면적에 4배나 많은 인구가 밀집된 괌에 사드 배치 이후 건강 민원이 별반 제기되지 않았다니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라도 정부·여당이 지역 민심에 더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와 경북도가 인구가 더 적은 염속산과 까치산 등 성주 내 제3후보지를 놓고 협상을 벌였다고 한다. 설령 작전 효용성이나 비용 측면에서 적합하지 않아 보이더라도 일도양단으로 폐기할 게 아니라 한·미 양국이 정밀 조사를 하는 등 주민들에게 끝까지 성의를 보여 주기 바란다.

[동아일보]

5. 3개 분기 연속 0%대 성장, 勞철밥통만 지키다간 거덜 난다

올해 2분기(4∼6월) 한국 경제가 직전 분기 대비 0.7% 성장하는 데 그쳤다고 한국은행이 어제 밝혔다. 지난해 4분기 이후 3개 분기 연속으로 0%대 성장률이다. 국민의 실질구매력을 나타내는 국내총소득(GDI) 성장률은 ―0.4%로 2011년 1분기(―0.3%) 이후 5년 3개월 만에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수출 부진을 타개할 뾰족한 수단이 없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저성장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글로벌 경기 부진에 따른 수출 감소 여파로 국내 기업의 설비투자가 위축되고 민간 소비가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와 임시공휴일 효과가 없었다면 2분기 성장률은 더 부진했을 것이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2%에서 2.8%로 이미 낮췄다. “추가경정예산이 없다면 성장률은 2.5% 안팎”이라는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예측은 재정의 도움 없이 저성장 극복이 힘들다는 의미다.

경제성장률 하락세는 경제의 기본 실력인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2%대 중후반인 잠재성장률이 2020년대에 이르면 1%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암울하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이 문제”라고 했지만 노동생산성 하락, 설비투자 부진, 경제 전체의 효율성 하락이 겹친 총체적 난국이다. 중국 스마트폰 판매량이 삼성전자와 애플의 판매량을 추월했다. 그런데도 대기업과 공기업 노조는 철밥통 지키기에만 골몰한다. 덩달아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만 늘었다. 한국이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의 빙하기를 겪을 수 있다는 전망이 기우만은 아니다.

지금 유럽에서는 우파 정권인 영국 독일 스페인뿐 아니라 좌파가 집권한 이탈리아 프랑스조차 고용의 유연화를 뼈대로 노동혁신에 나섰다. 반면 한국은 노동과 산업구조 개혁이라는 정답을 손에 들고도 주춤거리며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일할 수 있는 인구를 늘리고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개혁은 고통 분담을 수반하기 때문에 대중적 인기를 끌긴 힘들다. 그래도 정부가 최우선 순위에 두고 실천하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을 나중엔 가래로도 못 막게 된다.

[중앙일보]

6. ARF서 드러난 한국 외교의 무기력증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열린 2016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및 관련 회의가 사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어제 폐막됐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27개국 외교 수장이 총출동하는 ARF는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은 물론이고 남북한이 참여하는 이 지역의 유일한 다자안보 협의체라는 점에서 매년 주목을 받아 왔다. 특히 올해는 남중국해 분쟁을 둘러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국 배치 결정으로 역내 갈등이 고조된 시점에 열려 더욱 관심을 모았다.

ARF에서 북핵은 늘 주요 이슈였다.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놓고 남북한은 치열한 외교전을 벌여 왔다. 이번 회의에서 한국은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시험발사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對北) 제재 기조를 굳건히 유지하고, 추가 도발 가능성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발신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했다. 하지만 중국이 한·미의 사드 배치 결정에 거세게 반발하고, 그 틈새를 노려 북한이 적극적 외교 공세에 나서면서 대북 공조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ARF 논의 결과를 담은 의장성명에 사드 배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주장마저 제기됐다.

견고한 대북 압박 대오(隊伍) 유지가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에 서둘러 사드 배치를 결정해 공표한 탓도 있지만 그 불가피성과 당위성을 보다 당당하고 조리 있게 설명하고, 납득시키지 못하는 한국 외교의 무능에도 문제가 있다. 북핵 문제에 관한 한 누가 보더라도 명분은 우리 쪽에 있다. 북한의 무모하고 위험한 핵 개발을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막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위적 차원에서 사드 배치를 결정한 것 아닌가.

그럼에도 한국은 의장성명에 사드 배치에 관한 언급이 포함되느냐 마느냐는 문제로 막판까지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핵 문제에 관한 창의적이고 대담한 아이디어로 다자 간 논의의 장(場)을 주도하며 끌고 갈 수 있을 텐데도 오히려 끌려다니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7. 1030만 명 정보 유출, 2차 피해는 최대한 막아야

온라인 쇼핑몰 인터파크에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일어났다. 제대로 정보를 관리하고 보호할 능력도 없는 기업들이 왜 그렇게 개인정보 수집에 안달을 했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경찰은 지난 5월 초 인터파크 전체 회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1030만 명의 이름, 아이디, e메일, 주소,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빼 가는 해킹 사건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인터파크 측은 지난 11일 해커 조직이 30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요구한 뒤에야 해킹 사실을 파악했다. 해커 조직은 인터파크 직원들에게 악성 코드를 심은 e메일을 보낸 뒤 회사 데이터베이스(DB)에 침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터파크 측은 공지문을 통해 “고객 정보를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주민번호와 금융정보 등은 유출되지 않았고, 비밀번호는 암호화돼 있어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출된 개인정보가 거래될 경우 보이스피싱 등 고객들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2014년 KB국민·NH농협 등의 회원 정보가 1억 건 이상 유출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주소와 여행 스케줄이 함께 유출됐다면 휴가철 빈집털이 등 오프라인 범죄에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인터파크는 사건 파악 후 열흘 이상이 지난 25일에야 피해 사실을 공지했다. “2차 피해 가능성이 적고, 경찰이 수사 협조를 요청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지만 사후 처리 과정에서 고객들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또 정보 유출 사건 이후 회원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이용 약관을 변경해 고지한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일고 있다. 뒤늦게 조사에 나선 정부 역시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비밀번호 변경 등을 당부하는 데 그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정보는 생명과 재산에 직결된 문제다. 정부와 기업들은 정보 유출의 근본적 원인을 규명해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2차 피해도 최대한 막아야 한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조차 고치지 못하는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가.

[매일경제]

8. `규제 양산` 의원입법, 국회 차원 별도 심사기구 구성을

20대 국회 들어 무분별 의원입법의 폐해가 한층 심화될 조짐이다. 20대 국회 개원(5월 30일) 후 두 달여 만에 무려 1008건의 의원입법안이 발의됐다. 의원들 간에 보여주기식 입법 경쟁이 과열되면서 문구 하나, 비율 하나 살짝 바꾼 재탕 삼탕 입법이 판을 치고 있다. 부실·졸속도 문제지만 더 큰 폐해는 의원입법이 온갖 규제의 산실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1008건 중 259건이 규제 신설 법안이라는 게 국무조정실 분석이다.

국회가 국민안전 등 규제가 꼭 필요한 분야는 뒷북 입법으로 일관하면서 지역 민원이나 이해관계집단을 의식한 포퓰리즘식 규제 법안은 별도 여과 장치도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쏟아내고 있으니 참 큰일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물류시설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물류단지에 백화점 대형마트 복합쇼핑몰 등의 신규 입점을 금지하는 이 법은 국내 면세점 사업을 일대 혼란에 빠뜨리고 국제 경쟁력까지 떨어뜨린 '홍종학법' 2탄이 될 공산이 크다. 우원식 더민주 의원이 내놓은 '중소기업·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 특별법'도 마찬가지다. 2006년 폐지된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를 부활시키자는 반(反)시장적 법안이다. 19대 국회 사례를 분석해 보면 의원입법의 가결률은 10%도 채 안 된다. 의원입법의 태반은 세(勢) 과시용 또는 기업 길들이기용이라는 얘기다. 

폭주하는 의원입법에 제동을 걸어야 할 때다. 국회 스스로 자정(自淨)에 나서야 한다. 정부입법은 규제영향 보고서, 부처 규제영향 분석,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등 삼중장치를 거치지만 의원입법은 견제장치가 전무하다. 김종석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 자체 규제영향 평가기구 도입을 주장했는데 귀담아들을 만하다. 의원입법도 법안 발의 단계에서 규제 사전 검토서를 첨부하고 소관 상임위에서 규제영향 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의원입법을 남발하는 이유는 의정활동 평가가 법안 건수 중심의 정량평가 위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부실 날림 법안 수백 개보다 제대로 된 법안 하나를 더 높이 평가하는 정성평가가 하루빨리 정착돼야 한다.

[매일신문]

9. 경북 ‘착한가게’ 급증세가 보여준 성숙한 공동체 인식

계속된 불경기에도 경북도 내 ‘착한가게’ 가입자 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온정의 손길을 내미는 지역 중소 자영업자가 매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지역 사회복지기관을 중심으로 최근 활발하게 펼쳐온 착한가게 캠페인의 영향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지역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어려운 이들과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겠다는 사회적 인식과 가치가 크게 높아진 때문이다. 

착한가게는 중소 규모 자영업 종사자 가운데 매출액 중 일정액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이들을 일컫는 이름이다. 어렵게 번 돈을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고 또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한 가게들이다. 무엇보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과 광역시와 비교하면 경제 규모가 크지 않은 현실에서 소규모 영업장을 가진 경북지역 자영업자의 공동체 인식만큼은 훨씬 성숙하고 두텁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2012년까지 경북의 착한가게는 195개였다. 그러다 2013년부터 매년 300곳 이상 늘어나 올해 7월 현재 1천450곳이 됐다. 전국 착한가게 1만5천900여 곳의 9.1%를 차지한다. 대략 전국의 착한가게 열 곳 중 한 곳이 경북에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영업 종사자 중 착한가게 가입자 비율(0.36%)을 봐도 경북은 전국에서 가장 높다. 타 시도와 비교해 2, 3배 높은 수치다. 

착한가게가 출연한 기부금도 꾸준히 늘고 있다. 올 들어 경북의 착한가게들은 모두 1억9천여만원을 모금했다. 이 액수는 2013년 한 해 착한가게 기부금(1억6천여만원)을 뛰어넘는 모금액이다. 2014년 2억4천200여만원, 지난해에는 3억1천800여만원이 모였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는 처음으로 4억원을 넘길 전망이다. 

국가 경제와 서민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는 현실에서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니라 내 주변의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사랑의 실천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이자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다. 이런 ‘해피 바이러스’가 가까운 대구는 물론 전국 각지로 널리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10. 사드 배치를 강압할 수 없다는 정진석 원내대표의 인식은 옳다

정부가 지금까지 성주의 사드 배치를 일방적으로 추진해온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주민과 대화하고 설득하려는 노력보다는,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과 당위성만을 내세워 왔다. 정부`여당은 사드의 성주 배치에 찬성하면 국익(國益)을 위한 것이고, 배치에 반대하면 국익을 저해하는 행동이라는 식의 논리를 설파해왔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6일 성주를 방문해 그나마 성주 군민들이 경청할 만한 발언을 했다. 그는 “성주 군민과의 공감대 없이는 사드 배치가 실현되기 매우 어렵지 않겠나”라고 했다. 정 원내대표는 “성주 군민`경북도`미군`새누리당 등 대화의 주체들이 모두 참여하는 성주안전협의체를 구성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원내대표의 제안은 주민의 의사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옳다.

사실 정 원내대표의 제안은 성주에 대해 상황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원론적인 수준의 수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문제는 지금까지 정부 관계자에게서 이런 수준의 제안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신선해 보이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하면서 정부가 당연하게 해야 할 조치인데도, 여당 원내대표의 입에서 이런 제안을 듣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따름이다.

정 원내대표의 발언은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전제로 한 것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여당의 강압적인 자세에 비해서는 훨씬 유연하고 전향적인 태도임이 분명하다. 정 원내대표의 말이 아니더라도, 주민이 강하게 반대하는 이상 사드 배치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정 원내대표는 배치 시기가 늦춰지더라도 주민의 설득과 이해를 먼저 구하겠다고도 했는데, 상당히 바람직한 모습이다.

이런 정 원내대표의 제안에 대해 사드 배치 철회 투쟁위원회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투쟁위는 정부와 대화 창구를 만들어 소통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하니 정 원내대표의 방문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 같다. 앞으로 정부`여당과 주민이 대립이 아닌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 행복한 삶의 조건

인간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바란다. 그런데 무엇이 행복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이 저마다 다르니 사람마다 느끼는 행복감의 수준도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재산, 권력, 명예, 사랑, 건강 등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은 많다. 동서고금의 숱한 현인들은 행복한 삶의 물음에 끊임없이 몰두했다. 로마의 철학자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BC 106~43)도 ‘투스쿨룸 대화’에서 행복의 요건에 대한 담론을 펼쳤다.

풍족한 재산으로 쾌락과 안락한 생활을 즐기며, 유형무형의 권위로 남을 굴복시키는 힘을 누리고, 승리의 명예와 드높은 명성을 떨치는 것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키케로는 이러한 모든 일을 거의 무가치한 일로 치부하고 자연의 본성만을 탐구하며 사물을 관조하고 인식하는 일을 앞세우는 이들, 이른바 지혜를 탐구하는 철학자들의 삶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운명의 힘을 누구에게나 닥칠 법한 인간 만사를 참아 낼 수 있는 것으로 여겨, 이로부터 아무런 두려움도 고민도 얻지 않으며, 어떤 것도 탐하지 않으며, 영혼의 헛된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이 사람이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키케로는 영혼의 모든 격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언제나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덕을 성취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결국 철학하는 삶이 좋은 삶을 만든다는 의미다. 행복을 추구하는 데 덕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속세의 온갖 달콤한 욕망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는 덕을 갖추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물며 철학이 부재한 오늘날에 있어서랴. 그럼에도 우리는 소크라테스(BC 470~399)의 말에서 보다 쉽게 현실적인 행복한 삶의 조건을 찾을 수 있다. 키케로가 플라톤(BC 427~347)의 대화편 ‘메넥세노스’에서 한 소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한 대목을 주목하자.

“행복한 삶을 가져다주는 적합한 모든 것들이 자기 자신 안에 있고 다른 사람들의 행운과 불행에 기대지 않으며 타인의 사건들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가장 행복하게 사는 이치가 마련된 것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절제하는 사람이고 용감한 사람이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는 모든 희망을 늘 자신 안에서 찾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성공한 자들에게 으레 던져지기 쉬운 시샘과 질투를 경계하고 자족(自足)의 인생관을 강조했다. 키케로가 강조한 소크라테스적 행복관의 요체는 자족과 절제다. 행불행은 남이 아니라 자신에게 달렸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나오는 ‘행유부득(行有不得) 반구저기(反求諸己)’와도 상통한다. 행복의 비결이 여기에 있지 않은가.


2. [동아일보][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내 삶의 전환점 찾기

나에게 어떤 선택권이 있는지 우리는 종종 모르고 삶을 살아간다. 우리에게는 돈과 시간이라는 선택이 있다. 하나는 보다 넓은 집과 좋은 차를 가지고 비싼 외식을 할 수 있는 돈이다. 또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이다. 이 선택권은 우리에게 딜레마를 안겨주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시간의 자유를 넓히려면 연봉이라는 돈은 줄어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직장인은 이러한 선택권을 생각할 겨를 없이 보다 높은 연봉과 직책을 주는 쪽의 삶을 살아간다.

최근 직장생활을 하다가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낸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날 기회가 있었다. 강의모 작가가 25명을 인터뷰하여 쓴 책 ‘땡큐,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의 북 콘서트에서 공동 사회를 보게 되면서 실제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이들을 만나 보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다. 이들에게 터닝 포인트란 돈에서 시간의 자유로 이동하는 삶이라는 점이다. 

‘바라봄 사진관’ 나종민 대표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누구나 알 만한 세계적 기업의 영업담당 전무를 거쳐 외국계 정보기술(IT) 기업의 지사장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고, 결국 사표를 내게 된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평소 좋아하던 사진을 찍는 데 쓰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장애인들이 사진을 찍고 싶어도 눈치가 보여 사진관에 가지 못한다는 점을 알게 된 뒤로 사진관 운영 방침을 일반인이 유료로 사진을 의뢰하면 소외된 이웃을 위해 무료 사진 촬영을 해주는 원 플러스 원 방식으로 정하게 된다. 영리 사업으로 시작했던 사진관을 비영리로 전환했고, 현재 그의 뜻에 동참하여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는 사람이 200여 명에 이른다.

또 한 명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서울 은평구에서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윤성근 씨였다. 보통 헌책방 주인이라면 할아버지일 것 같지만 그는 컴퓨터 전공에 IT 회사를 다니던 청년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좋아했던 종로서적의 폐업에 충격을 받고 책 관련 사업을 시작한 그는 자신이 직접 읽어보고 좋아하게 된 헌책만을 판다. 북 콘서트에서 그가 “직장 다닐 때와는 달리 헌책방을 하면서 좋은 점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도 된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나는 솔직히 움찔했다. 직장생활하면서 고객이나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과장하거나 거짓말을 해왔던 내 경험이 탄로 난 것 같아서였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곳에 시간을 쓰는 자유를 선택하기 위해 삶에서 돈이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는 선택을 했다. 공통점은 이들 모두 현재 만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 가는 직장인은 소수다. 왜 그럴까. 베스트셀러 ‘설득의 심리학’을 보면 사회적 증거의 법칙이란 것이 나온다. 사람들은 자신이 해답을 갖고 있지 않을 때 주변을 살피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하게 되고, 다수의 사람이 하는 방식을 따라가는 심리적 성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1000만 관객’ 영화나 ‘100만 부가 팔린’ 책을 왠지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칙의 부작용도 있다는 생각을 어느 날 문득 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승진을 하고, 50대 근처에서 직장을 나오면, 퇴직금으로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 직장인의 삶이기 때문에 우리는 해답이 없는 삶을 남과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삶이 만족스럽다면 다행이지만, 남과 비슷하게 살아가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선택권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정말 재능이 있고 좋아할 일을 할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강 작가는 삶의 터닝 포인트를 만든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나서 쓴 에필로그에서 이들의 공통점을 상대적인 가치보다 자신만의 절대가치를 찾는 것으로 보았다.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회의가 든다면 나에게 어떤 카드가 있는지를 다시 살펴보자. 내가 정말 좋아하고,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해도 오랫동안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강 작가의 결론처럼 “누구에게나 인생은 열린 결말이다”.


3. [중앙일보][시론] 학교 급식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

최근 대전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부실한 학교급식 사진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학교급식 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면 언제나 교육청이 나서 해당 학교에 대한 감사를 하고 학교 현장의 누군가를 징계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학교급식의 구조적인 문제는 외면한 채 급식현장의 관리책임을 물어 부분적인 상처만 도려내고 봉합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차제에 학교급식과 관련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접근과 대책이 요구된다.

학생들의 급식비는 해마다 인상되는데 왜 급식의 질은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 학교급식과 관련해 끊임없이 제기되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분노에 찬 질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고 명료하다. 대다수 학교들의 급식비 인상이 단지 물가 인상률만을 반영한 것이기에 급식의 질은 항상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부끄러운 이유가 또 존재한다. 급식비 가운데 30% 정도가 급식 종사원들의 인건비와 식당 운영비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해당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무상급식이 이뤄지는 초등학교와는 달리 학생들의 급식비만으로 자체 운영을 하는 중·고교의 경우는 급식 종사자들의 인건비와 식당 운영비를 모두 급식비로 충당해야 한다. 그래서 학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고등학교의 경우 한 끼에 4000원 내외의 급식비를 받아 인건비와 식당 운영비 30%를 떼고 나면 실제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식사는 2800원짜리가 되고 만다. 단순 논리로 2800원짜리 식사를 학생들이 4000원을 내고 사먹는 형국이다.


그러니 학부모나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이럴 바엔 차라리 학교급식 대신 햄버거 가게로 달려가는 편이 낫겠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학생들이 낸 급식비에서 빠져나가는 인건비 내역을 보면 분통을 넘어 기가 막힐 노릇이다. 급식 종사자들의 급여는 물론 10여 가지가 넘는 각종 수당이 학생들이 낸 급식비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위험수당, 교통보조비, 시간외 수당은 기본이고 장기근무 가산금, 자격증 가산금, 기술정보수당, 가족수당, 명절 휴가비, 맞춤형 복지비, 연차수당, 퇴직연금이나 퇴직금, 그리고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급식 종사자의 경우 그네들의 학자금조차도 학생들이 낸 급식비에서 떼 주어야 한다.

게다가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지역의 학교들은 종전 월 2만원씩 지급하던 영양사 자격증 수당을 8만3500원으로 인상해 주고, 설 명절과 추석에 지급하는 명절 휴가비를 연 40만원에서 70만원으로 올려주라는 교육청 공문이 얼마 전 날아들었다. 향후 어떤 항목에 얼마만큼의 인상 통지가 또 날아들지 모르는 일이다. 급식비는 학생들이 내는데 급여를 포함한 각종 수당의 인상지침은 교육청이 내린다. 이 또한 기이한(?) 구조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학교급식 종사자들의 실질 급여가 높은 것도 아니다. 아니, 하는 일에 비해 너무 적다는 표현이 맞다. 그 이유는 학교가 급식 종사자를 선발할 때 고등학생 자녀가 없는 사람, 자격증 수당이 나가지 않고, 장기근속 수당이 붙지 않는 무경험자를 일정 기간 계약직으로 선호하는 경향 때문이기도 하다. 학교급식의 질 관리만큼이나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예산 관리다 보니 인건비 절약의 문제가 역기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영양사와 조리 종사원 간의 실질 임금격차와 보이지 않는 갈등이 촉발되고 이와 같은 갈등이 급식의 조리과정과 배식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결국 매년 되풀이되는 학교급식의 논란을 잠재우고,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질 좋고 맛있는 급식 제공을 위한 핵심 과제는 우리 사회가 급식 종사원들의 인건비 문제를 해결해 주는 데 있다.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학교급식 문제만 잘 해결해 주어도 장차 이들이 건강한 군인, 건강한 직장인, 그리고 100세 시대 우리 사회가 부담해야 할 노후 건강보험료를 줄이는 긍정적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 학생들에게 정부나 지자체가 급식비 지원은 못해 줄지언정, 언제까지 우리는 학생들의 급식비를 빼내어 학교식당을 운영해야만 하는 것인가.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실현하겠다던 선거공약은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학생들의 급식 문제만이라도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부실대학 구조조정에 퍼주고 있다는 600억원의 교육예산, 지난해 목표치를 2조2000억원이나 초과해 거둬들였다는 세수(稅收)의 얼마라도 초·중·고교의 급식을 개선하는 데 쓰게 된다면 더 이상 푸석한 볶음밥에 단무지 쪼가리가 놓인 학교급식 사진은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값싸고 질 좋은 학교급식의 혜택을 누리는 독일에서는 학생들이 맛있는 급식을 먹기 위해 학교 가는 걸 좋아할 정도라고 한다. 이에 비해 우리의 학교 급식은 걸핏하면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형편없는 실정이다. 언제까지 한국이 학교급식 후진 국가로 남아야 하는 것인가.


4. [서울신문][씨줄날줄] 달라이 라마 효과/오일만 논설위원

국제무역에서 ‘달라이 라마 효과’라는 용어가 있다. 티베트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달라이 라마를 만나면 그 국가는 중국에 경제 보복을 당한다는 뜻이다. 독일 괴팅겐대학의 안드레아스 폭스와 닐스 헨드릭 클란 교수가 ‘국제무역에서의 달라이 라마 효과’라는 연구를 통해 제기한 학설이다.


시진핑 주석의 전임자인 후진타오 시대 달라이 라마를 만나면 해당국의 대(對)중국 수출은 무조건 감소했다. 구체적으로 장관급 각료의 경우 무역 감소폭은 8.5%였고 대통령급이 만나면 16.9%로 대폭 줄어들었다. 두 교수가 159개국의 사례를 통해 조사한 결과다.

2008년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달라이 라마와 만난 일이 있었다. 중국은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중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진행됐던 에어버스 항공기 150대 구매 협정을 무산시켰다.

프랑스 외무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과 티베트가 중국 영토의 통합된 일부분이라는 것을 재확인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실상 백기 투항이었다.

달라이 라마 효과는 중국의 핵심 이익과 관련이 깊다. 핵심 이익에 대한 정의는 다소 모호하지만 후진타오 정권 시절 당시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상세한 설명을 했다. 2000년 제1차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통해서다.

그는 사회주의 체제 유지와 국가 안보와 영토·주권 수호, 경제·사회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발전을 중국의 3대 핵심 이익으로 제시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대만 문제)과 티베트·위구르 분리독립, 서구식 다당제 반대, 남중국해 및 센카쿠 영토 분쟁 등이 해당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95주년 기념식에서 “그 어떤 외국도 우리가 핵심 이익으로 거래할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2010년 노벨상위원회가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자 중국은 노르웨이 연어 수입을 금지했고 2010년 9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이 격화될 당시 일본이 중국 어선의 선장과 선원을 억류하자 즉각 희토류 수출을 중단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대구 치맥페스티벌에 참가하기로 했던 중국 칭다오시가 불참을 통보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의 경제 보복이 아니냐는 보도가 적지 않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날 선 공세도 예사롭지 않다.

중국 정부는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핵심 이익이라고 단언하지 않았지만 시 주석은 이미 ‘전략적 안보 이익을 훼손했다’고 규정했다. 중국이 국제 시선 때문에 대놓고 경제 보복을 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카드를 갖고 우리를 흔들 가능성은 크다.


5. [서울신문][문성일의 盞소리]최저임금 올라 힘드시죠?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7.3% 오른 시간당 6470원으로 확정됐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정한 이번 인상률은 최근 10년간 연평균 인상률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이번 결정으로 올해 월 기준(209시간) 126만270원인 최저임금이 내년엔 135만2230원이 됩니다. 20대 국회 4년간 이같은 인상률이 이어질 경우 2020년엔 시간당 최저임금이 7993원, 월 기준 167만537원이 되는데요. 연봉으로 환산하면 2004만6444원이 됩니다. 이중 소득세(근로·지방)와 국민연금, 건강·고용보험료 등 8.7% 가량을 뗍니다.

노동계는 ‘최악의 인상률’이라며 반발했고 경영계는 ‘불황속에 높은 인상률’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정치권 반응도 엇갈려 당초 시급 1만원을 공약했던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포용정치에 배치된다”며 유감을 표한 반면, 여권은 “경제상황 고려해 속도 조절 필요하다”고 논평했습니다.

좀 더 들여다 볼까요. 경영계는 이번 결정과 관련, “영세·중소기업의 부담이 한층 가중되고 지불능력 한계를 벗어난 소상공인들이 범법자로 내몰리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밝혔습니다.

다소 과격하고 극단적인 비유를 했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비정규직 중심의 최저임금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영세기업이나 도·소매, 서비스업 등 생업 업종의 자영업자들이 더욱 어렵게 될 것이란 예상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다른 측면에서 살펴볼까요. 아르바이트생과 같은 최저임금 근로자 고용이 많은 프랜차이즈 편의점의 경우 전체 매출대비 영업이익은 대략 25% 정도입니다. 이를 점주와 대기업 가맹본부가 통상 6.5대 3.5 정도의 비율로 나눕니다.

이때 편의점 운영 비용의 절대치인 임대료와 알바생 고용은 점주가 책임져야 합니다. 여기에 가맹본부가 일부 보전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전기료, 공과금, 카드수수료까지 점주가 대체로 부담합니다.

지역이나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 모두를 감안하면 점주가 실제 가져가는 돈은 당초 이익금의 10~20%에 그치는 곳이 상당하다는 게 관련 종사자들의 설명입니다.

대기업 가맹본부가 최저수익보장으로 제시하는 500만원을 벌어도 점주에게 돌아가는 몫은 50만~100만원에 불과한 셈입니다. 경우에 따라선 적자를 면치 못하는 편의점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편의점 점주의 계약 파트너인 가맹본부 상황은 어떨까요? 가맹본부는 점주에겐 절대 ‘갑’입니다. 운영과정에서 손실을 견디지 못한 점주가 폐점을 요구하면 시설 인테리어 잔존가, 중도해지 위약금, 일시 지원금 반납 및 철거 비용 등의 명목으로 수천만원씩의 위약금을 받아갑니다.

2014년까지만 해도 연간 영업이익률이 1~3%대를 오갔던 편의점 업계 1,2위(점포수 기준) CU와 GS25의 경우 지난해 나란히 4%대의 영업이익을 올렸습니다. 30% 안팎에 달하는 매출 증가세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합니다. 일부는 이 과정에서 점주 등을 위한 판매관리비를 줄이기도 했습니다.

이들 대기업 가맹본부는 이렇게 벌어들인 이익금 가운데 각각 1000억원 이상을 유보금으로 쌓았고 골프장 인수를 비롯해 각 계열사 지원에 사용했습니다. 배당금도 40~100% 늘려 벌어들인 돈의 상당액이 오너 일가의 호주머니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이런 대기업 가맹본부들이 알바생의 시급을 올리는 최저임금 인상을 우려합니다. 알바생들의 월급을 지급하는 점주들이 더 힘들어질 수 있음을 걱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맹본부들이 진심으로 점주들을 걱정해 준다면 고통분담 차원에서 최저임금 인상분에 대한 보전책을 고민해 주는 것은 어떨까요. 점주나 소비자 고통까지 감안하면 편의점에 보내는 물건값이나 마구 올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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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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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6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여야 당권 경쟁, 계파 초월 리더십 보여주길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당권 경쟁 열기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한여름 무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원내 제1, 2당인 양당은 각각 다음달 9일과 27일 치러지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를 비롯한 차기 지도부를 선출한다. 두 당의 새 지도부는 총선 이후 흐트러진 당 조직을 재정비하는 것 이상의 막중한 역할을 맡게 된다. 특히 차기 당 대표는 내년 대선을 주재해야 하기 때문에 ‘미래 권력’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두 당의 당권 주자들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계파 이익에 매몰돼 당권 경쟁을 벌이는 이유일 것이다.

친박계 좌장과 핵심인 서청원 의원과 최경환 의원이 출마하지 않기로 한 새누리당에서는 현재까지 이주영·정병국·주호영·한선교·김용태·이정현 의원 6명이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여기에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친박계 주류인 홍문종 의원도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 의원이 출마한다면 “당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친박계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질적인 계파 정치로의 복귀 움직임도 감지된다. 서 의원은 27일 친박계 의원 중심의 대규모 만찬 회동을 주재한다. 비주류인 김무성 전 대표는 비박계 후보 지지를 공언했다.

추미애·송영길 의원과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 등 더민주 당권 주자 3인의 ‘문심(文心·문재인 전 대표의 마음) 바라기’도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다. 송 의원과 김 전 위원장은 그제 출마 선언을 한 뒤 곧바로 경남 김해로 갔다. 김해을 지역 대의원 개편 대회가 열린 김경수 의원 사무실을 추 의원까지 당권 주자 3인이 모두 방문했다. 문 전 대표를 염두에 둔 행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인의 후보 모두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를 면담했거나 예방할 예정이다. 추 의원은 친문 후보를 자임하기까지 했다. 친노·친문 당이냐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전당대회를 통해 뽑힌 공당(公黨)의 대표는 당내 정치, 계파 정치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집권 여당이나 수권 정당의 대표라면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과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등 독자적이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 줘야 한다. 특정 계파의 표심에 기대 당선된 당 대표가 계파의 목소리에 휘둘리고, 계파 이익에 앞장설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원내 제1, 2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당권 경쟁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당권 주자들은 이제라도 계파를 초월한 리더십 경쟁을 보여 주길 바란다. 양당 주류 계파 또한 자중해야 한다.

2. 中 ‘사드 중단’ 아니라 ‘북핵 중단’ 압박해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사드의 주한 미군 배치 결정에 정색을 하고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제 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국 측의 행위는 양국 상호 신뢰의 기초에 해를 끼쳤다”면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교적 수사를 최대한 걷어 낸 이례적으로 직설적인 표현이다. 그러면서 “한국 측이 어떤 실질적 행동을 취할지에 대해 들어 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뜯어 보면 ‘이렇게 강력하게 요구하는데도 사드 배치를 강행하려 하느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본다. 어느 때보다 강력한 압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편치 않은 심정을 아주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지만, 실제로 외교 무대에서 몽니를 부리고 나섰다니 유감스러운 것은 오히려 우리다.

중국이 사드 배치에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은 선후 관계에 혼돈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사드는 북한이 핵무기와 이 가공할 무기를 실어 나를 미사일을 개발하고 우리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데 따른 자위권적 조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중국은 원인 제공자인 북한에는 강력한 제재를 말로만 강조할 뿐 미지근하게 대응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여기에 왕이 부장은 ARF 참석차 라오스로 가는 길에 보란 듯이 베이징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같은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비엔티안에서도 두 사람은 같은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이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수도 있음을 암시하려는 의도겠지만, 중국이 추구하는 대국적 외교 행보와는 거리가 멀다.

중국은 북한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만큼 모든 분야에서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높다. 중국이 대북 제재라는 국제사회의 대의(大義)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북한은 더더욱 관영매체와 대외선전매체를 총동원해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한 단체가 엊그제 내놓았다는 ‘성주에 사드가 배치되면 군 주민의 절반 이상이 밀집돼 있는 읍지구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 안전과 생계에 엄중한 위험이 조성된다’는 내용의 성명은 기가 막힐 뿐이다. 북한의 관변 단체에 핵·미사일과 사드 배치의 선후 관계를 되물을 이유는 물론 없다. 하지만 중국이 외교 채널로 북한 관변단체 수준의 억지 논리를 국제무대에서 내세우는 것은 안쓰럽다.

ARF에는 어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기사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합류했다. 연초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이후 6자회담 당사국 외교 수장이 모인 것은 처음이다. 생산적인 자리가 되려면 중국은 물론 러시아도 문제의 본질인 북핵을 외면하고 사드라는 변죽만 울려서는 안 될 것이다. ARF는 사드 배치가 아닌 북한에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게 만드는 자리가 돼야 한다. 누구라도 우리 국민의 생존이 달린 사드 문제를 21세기 신냉전의 도화선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3. ‘보호무역 강화’ 대비 필요한 美 대선 이후

어제부터 나흘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리고 있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된다. 지난주엔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선출됐다. 이제 관심은 두 후보의 경제 공약이 우리나라와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에 모아진다. 두 후보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보호무역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는 강한 보호무역 색채를 드러내 왔다. 그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많은 나라와의 끔찍한 무역협정(FTA)을 완전히 재협상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특히 한·미 FTA에 대해 “클린턴이 일자리를 죽이는 한국과의 무역협정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지지했다”고 비난했다. 그제는 NBC에 출연해 “세계무역기구(WTO)를 탈퇴하겠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미국 기업이 국외로 공장을 옮겨 생산한 제품을 미국에 팔 때 고율의 세금을 물리겠다”는 그에게 방송 진행자가 “WTO에 제소당할 것”이라고 지적하자 내놓은 답변이다.

심각한 것은 본선 승리 가능성이 높은 클린턴까지 보호무역 기조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클린턴은 개방론자였지만 대선 출마 후 보호무역주의자로 급선회하고 있다. 그는 이미 지난해 말 “자유무역협정이 시장 접근성이나 수출 증대 차원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TPP에 반대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재협상을 주장한다. 환율조작국에 대한 응징을 다짐하기도 했다.

미국이 보호무역을 강화하면 중국이나 멕시코 등이 보복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무역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 브렉시트발 반(反)세계화 움직임까지 겹쳐 세계 경제가 급격히 가라앉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내총생산(GDP) 중 수출 비중이 50%가 넘는 한국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당장 한·미 FTA 재협상 요구 시 대응책 마련이 급하게 됐다. 또한 지금부터라도 경제 정책의 기조를 내수산업 개발 및 확장에 둠으로써 대외 의존도를 줄여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4. 규제투성이 의원입법 방치해 경제 성장판 닫을 건가

20대 국회가 개원한 뒤 이달 15일까지 의원들이 발의한 경제 및 사회 관련 규제 법안이 259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안 한 건당 여러 건의 규제가 포함되는 점을 감안하면 의원입법 규제의 총수는 700건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올 상반기 675개의 규제를 개선 또는 폐지하기로 했는데 정치권은 두 달도 채 안 돼 정부가 없애려는 것보다 많은 규제를 신설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규제 법안들이 동시다발로 쏟아지게 되면 규제 폭포 같은 상황이 되지 않을지 기업들이 많이 걱정한다”고 전한 경제계의 우려를 소홀히 들어서는 안 된다.

야당 의원 발의 법안 중에는 기업 경쟁력에 타격을 주고 글로벌 기준에도 맞지 않는 과잉·졸속 규제가 수두룩하다. 일정 규모 이상의 대기업이 매년 정원의 3∼5%씩 청년 미취업자를 의무 고용하도록 하는 청년고용 촉진 특별법 개정안은 기업 인사권의 본질과 채용의 수요공급 원칙을 뿌리째 흔들 소지가 크다. 모회사 주식 1% 이상을 가진 주주가 자회사나 손자회사 경영권에 간섭할 수 있도록 한 상법 개정안은 해외 투기자본의 국내 기업 경영권 공략에 악용될 우려를 낳고 있다. 1985년 도입했다가 통상마찰 우려 때문에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폐지한 중소기업 고유 업종 지정제도를 사실상 부활하자는 시대착오적인 법안까지 발의했다.

롯데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처럼 일부 기업의 불법, 탈법 행위는 엄벌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이 국민의 반(反)재벌 정서에 영합하거나 이를 부추기며 기업을 옥죄는 규제 포퓰리즘 법안을 쏟아내면 경제의 성장판을 닫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의원입법 규제를 정부가 반대해도 입법 권력을 거야(巨野)가 장악한 여소야대 국회에서 이런 법안이 다수 통과되면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를 추락시켜 일자리를 줄이는 악순환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규제 영향 분석, 부처의 자체 심사,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같은 다단계 절차를 거치는 정부입법과 달리 의원입법은 객관적인 타당성 검토를 거치지 않아 부작용이 많은 법안이 양산될 위험이 훨씬 높다. 규제를 신설 또는 강화하는 의원입법은 타당성과 부작용에 대한 사전 검증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조속히 국회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5. 친박도 사퇴 압박한 우병우, 이젠 대통령 부담 덜어줄 때다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에 당 대표 후보로 출마한 친박(친박근혜) 이정현 의원은 어제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거취에 대해 “서민 처지에서 1300억 원이 넘는 거래에 부정이 있었든 없었든, 상상할 수 없는 액수에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당황한다”며 “문제점이 있다면 어떻게 버틸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그만둬야죠”라고 했다. 친박 원로 서청원 의원의 핵심 측근 이우현 의원도 “우 수석이 공직생활을 하면서 문제점이 있으면 대통령께 부담을 주지 말고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가세했다. ‘문제점이 있다면’이라는 단서는 달았지만 친박에서 나온 ‘우병우 사퇴론’은 박근혜 정부 레임덕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본란에서 여러 번 지적한 대로 우 수석 사퇴의 당위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현직 검사장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한 진경준 검사장 부실 검증과 비호 의혹만으로도 물러나기에 충분한 사유다. 줄줄이 드러난 처가 부동산 거래 및 부인의 경기 화성시 농지매입 투기·대리경작 의혹, 처제의 위조여권 사용 국적 이탈과 가족 소유 회사의 횡령·배임 의혹, 변호사 시절 변론한 회사에 대한 검찰의 공판 관리 부실까지 공직자 검증을 통과할 수 없는 사안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민정수석 자신이 ‘의혹 백화점’으로 검증 자격을 잃은 터에 향후 개각에서 검증의 칼을 휘두른다면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역대 정권에서 보듯, 대통령의 레임덕은 여당이 반기(反旗)를 들면서 봇물 터지듯 분출된다. 박 대통령은 비박계에 이어 친박에서 ‘우병우 사퇴론’이 터져 나온 것을 결코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이번 주 휴가를 끝낸 뒤 ‘휴가 구상’에 따라 개각을 비롯한 정국 수습을 해나가려 해도 인사의 핵심 걸림돌인 우 수석을 놔두곤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대통령이 민심에 맞서 우 수석을 계속 끼고 가려다간 여당에서 탈당 요구까지 나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치달을 수도 있다.

우 수석은 박 대통령이 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기 바란다”고 말한 데 고무됐을지 모르나 청와대는 ‘우 수석 얘기가 아니다’라고 바로 다음 날 선을 그은 바 있다. 그가 자리에 연연해 레임덕을 가중시킨다면 중책을 맡기고 누구보다 신임해온 대통령에 대한 도리도 아닐 것이다.

[이데일리]

6. 정부 R&D 사업 30~40년은 내다봐야

지난해 연구개발(R&D)에 투입된 정부 예산이 모두 18조 87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 부처와 출연연구소, 대학부설 연구소 및 중소기업 등이 수행한 5만 4400여개 국책 과제에 집행된 예산이다. 2014년(17조 6400억원)보다 7.0% 증가한 규모라고 한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어제 발표한 ‘2015년 국가연구개발사업 보고서’의 내용이다.

전체 예산이 늘기도 했지만 세부 항목별로도 전년보다 개선된 점이 돋보인다. 연구 책임자는 3만 4145명으로 3.8% 늘었으며, 책임자 1인당 연구비도 3.4% 증가한 평균 4억 4000만원으로 나타났다. 신진연구자의 경우에도 1인당 1억 6100만원의 연구비가 배당된 것으로 조사됐다. R&D 투자에 대한 정부의 의지만큼은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에 비해 실적이 초라하다는 게 문제다. 공공부문의 연구 성과가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적용되기에는 아직도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R&D를 수행하는 정부 출연연구소나 대학, 기업 간의 장벽이 높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들 연구기관 사이에 인적 교류가 이뤄지기 어렵고 결국 자기들만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게 됨으로써 초래되는 결과다. R&D에 헛돈만 들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우리 R&D 체제에 국제적 네트워크가 미흡하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국내에서 수행된 R&D 사업 가운데 외국 자금지원을 받은 사업은 0.7%에 불과했다. 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임은 물론이다. 이런 사정이니 국제 공동저술 및 공동특허 실적도 저조할 수밖에 없다. R&D 투자가 산업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에서 실력을 발휘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지금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R&D 정책이 수시로 바뀐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R&D 사업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식이어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특히 기초연구 분야에 매달리려면 5~10년으로도 부족하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지난 주말 대한상의 주최 제주포럼에서 비슷한 우려를 표명했다. “30~40년 뒤에 결과가 나올 만한 R&D 시업은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이냐” 하는 걱정이다.

[매일경제]

7. 하나은행 `연공서열 파괴` 금융경쟁력에 청신호되길

KEB하나은행이 지난달 옛 외환은행과 전산통합을 완료한 데 이어 24일에는 창사 이래 최대인 1000여 명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통합은행 사기 진작을 위해 전체 직원 6.6%를 승진시킨 과감한 인사만큼이나 주목되는 것은 성과주의 인사 방식이다. 직원별 영업실적을 따지는 데 그치지 않고 손님에게 높은 수익률을 올려준 직원을 발탁해 승진시켰는데 이런 승진 기준은 하나은행이 처음 도입했다. 우리 금융권에 성과주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함영주 하나은행장은 지난해 9월 통합은행 출범 당시 현장중시, 영업제일주의, 성과주의 정착을 약속했는데 이번 인사는 그 약속 이행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옛 외환은행에서 2003년 고졸 계약직 텔러로 입행했던 어느 직원은 2012년 정규직으로 전환한 지 1년5개월 만에 탁월한 영업성과로 이번 인사에서 대리로 특별승진했다. 국내 금융산업은 아직 90% 이상 호봉제를 적용하고 있는데 이런 임금체계에서는 저성과자를 가리기도 힘들고 동기 부여도 되지 않는다. 합병 후 10여 년이 흘러도 여전히 출신 성분을 따지며 티격태격하는 과거 은행 합병 사례에서 보듯 보신주의와 파벌싸움을 부를 뿐이다.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출신 은행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실적과 능력만을 기준으로 승진시키는 하나은행 인사는 통합은행의 '화학적 결합'을 위해 필수적인 디딤돌이라 할 만하다.

하나은행은 지난 1월에도 뛰어난 영업성과를 거둔 행원급 직원 6명에게 마케팅 영웅이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특별승진시켜 금융권에 새바람을 불러왔다. 신한·우리·기업은행 등이 잇따라 성과가 우수한 직원을 특별승진시키거나 유사한 제도 도입을 검토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갈 길은 아직 멀다. 우리 금융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성과중심 인사체계에 이어 호봉제를 뛰어넘는 성과연봉제로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금융노조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막겠다며 오는 9월 총파업까지 예고해놓고 있는데 지금의 임금·호봉 체계로는 은행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금융노조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일단 반대부터 외치기보다는 새로운 성과주의 시도에 적응부터 해야 할 것이다.

8. 환경부 `에어컨 항균필터` 인체 위해성 빨리 밝혀라

일부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항균필터에서 독성물질인 옥틸이소티아졸론(OIT)이 공기 중으로 방출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OIT는 가습기 살균제 독성물질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유사한 물질이다. 가습기 살균제 파동을 겪은 소비자들에게 여름철 필수품인 가정용·차량용 에어컨과 공기청정기에서 유독물질이 뿜어지고 있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환경부가 OIT 항균필터가 위해 염려가 있다며 회수 권고 조치를 내렸고, 제조업체들이 교체에 나섰지만 소비자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22일 환경부가 홈페이지에 올린 'OIT 함유 항균필터가 사용된 기기명' 글의 조회 수는 어제까지 17만건을 넘어섰고 일부 소비자는 정부도, 업체도 못 믿겠다며 아예 에어컨을 쓰지 않겠다고 할 정도다. 

항균필터가 사용된 제품이 공개되는 과정에서도 환경부의 미숙한 대응으로 한바탕 혼란을 초래했다. 지난 20일 필터 모델명만 공개해 원성을 사더니 이틀 후 제품 모델명 공개에서도 오류가 발생해 소비자와 제조사 간에 마찰이 빚어졌다. 

이 같은 사태가 터진 것은 환경부가 2014년 OIT를 유독물질로 지정해 놓고도 이물질이 사용된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항균필터를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이 제품은 전기 콘센트를 꽂는 전기용품이어서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으로 여겼고, 산업부는 항균필터는 관리 대상이 아니라고 떠넘기면서 관리에서 쏙 빠진 것이다. 차량용 에어컨과 공기청정기에 사용된 항균필터에서 유독물질이 함유됐다는 지난달 언론 보도 이후에야 위해성 평가를 벌였으니 황당할 따름이다. 문제의 항균필터는 모두 3M에서 제조했다. 코팅을 잘하면 OIT가 방출되지 않는다는 3M 측 말만 믿고 실험 없이 시장에 공급하도록 했다니 이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소비자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환경부가 항균필터가 위해 염려가 크다고만 설명하고, 인체 위해성 정도를 밝히지 않아서다. 환경부는 OIT의 실제 인체 흡입량 등에 관해 전문가들과 추가로 논의할 예정이라는데 이른 시일 내에 공개해야 한다.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질질 끌다가 참사를 초래한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교훈 삼아 서둘러야 한다.

[중앙일보]

9. 미국의 한국제품 때리기, 위험수위다

미국이 한국 제품에 줄줄이 반덤핑 관세를 물리겠다고 나섰다. 미 상무부는 지난 22일 한국산 내연강판에 고율(38~65%)의 반덤핑·상계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이에 앞서 미 무역위원회(ITC)는 21일 한국 철강제품에 많게는 48%의 반덤핑관세를 매겼다. 20일에는 중국에서 만들어 미국에 수출한 삼성·LG 세탁기에도 50~111%의 반덤핑 예비관세를 부과했다. 한국의 직접 수출은 물론 중국을 통한 우회 수출까지 가로막는 전방위 관세 장벽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크게 보면 미국의 한국 때리기는 미·중 통상전쟁의 전초전 성격이 짙다. 한국산 세탁기의 대미 수출은 지난해 5400만 달러로 미미하다. 그런데도 한국산 세탁기를 물고 늘어지는 건 중국산 세탁기와의 본격 전쟁에 앞서 한국산을 먼저 손보겠다는 의도로 봐야 한다. 한국산 철강에 물린 관세도 중국산에 미국이 사상 최대(451~522%)의 관세를 물린 것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이 많다.

문제는 미·중 싸움에 한국만 피곤하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통상 압력은 갈수록 거세질 전망이다. 대선 레이스를 앞두고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물론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까지 경쟁하듯 보호주의 공약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로 중국의 경제 보복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럴수록 정부와 산업계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우선 국제 공조를 통해 보호주의 기조 완화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 엊그제 중국 청두에서 열렸던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는 ‘모든 형태의 보호주의를 배격한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이런 목소리를 더 크고 분명하게 내도록 한국이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 산업계는 장기적으로 중국 생산기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워싱턴 정가에 안테나를 더 깊고 넓게 꽂아야 한다. 사전 조율과 설득이 먼저지만 부당한 권리침해에는 국제기구 제소 등을 통해 당당히 맞서야 함은 물론이다.

10. 초당적 ‘비정규직 차별개선’은 시대정신이다

국회가 비정규직 차별 개선을 위해 포럼을 만들기로 했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 최근 국회에서 ‘비정규직 차별개선 포럼’을 출범시키겠다고 밝히면서 탄력이 붙고 있다. 김 의원은 “비정규직 확산이 저출산을 가속화하는 근본 원인 중의 하나”라며 포럼 출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포럼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할 만큼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주로 대기업과 경영자 편에서 입법 활동을 해 온 새누리당 소속 의원이 나서 차별 해소에 앞장서는 것부터 이례적이다. 더구나 이 포럼에는 김무성·유승민·나경원 같은 여당 중진은 물론이고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김성식 국민의당 의원 같은 야당 국회의원까지 50여 명이 참여한다. 대립과 갈등의 아이콘처럼 된 국회의원이 초당적 자세로 뜻을 모으기로 했다는 얘기다. 이는 국회가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이념과 정파를 초월한 시대정신이자 국가적 공동 과제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각에서는 특정 국회의원의 세 불리기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진정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이미 여야 주요 3당 대표는 20대 국회 원내교섭단체 연설에서 중향(中向) 평준화나 포용적 성장이란 용어로 양극화 해소의 필요성을 공감했다. 비정규직 차별 개선 포럼은 이제 구체적인 실천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보면 된다.

이제 심각성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외환위기 이후 고착화된 비정규직은 소득 양극화의 근원으로 꼽힌다. 현재 비정규직은 670만 명으로 1930만 임금근로자의 32.5%에 이른다. 그간 정부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황은 그대로다. 2007년 7월 비정규직 보호법(‘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시행해 비정규직 고용 남발을 억제하고 나섰지만 정규직과의 이중구조를 개선하지 못했다. 문제는 임금·근로기간 같은 고용 차별은 개인의 불이익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취업난 끝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면 저임금을 받고 2년마다 다시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보면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 결혼이 늦어지고, 이는 다시 저출산·저성장으로 이어진다. 최근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은 대기업 정규직의 35%에 그친다. 이러니 초혼 연령이 최근 20년 사이 5세나 높아지고, 출산율은 1.24로 일본의 1.46보다 낮다. 이는 성장 동력의 저하를 의미한다. ‘3포’ ‘7포’와 함께 헬조선과 흙수저 얘기가 계속 나와선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던 미국·영국도 경쟁적으로 양극화 해소에 나서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 미 민주당은 정강에 “민주당원은 요즘 소득과 부의 극단적인 불평등이 미국 국민과 우리의 경제에 나쁘다고 본다”고 적시했다.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역시 양극화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작용했다. 국회는 비정규직 차별개선 포럼을 통해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양극화가 촉발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 주기 바란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영친왕 정략결혼 100년 잔혹사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6년 8월 3일 아침. 일본 육군사관학교 생도이던 조선의 왕세제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 1897∼1970)은 휴가지 별장에서 도쿄아사히(東京朝日)신문을 집어 들었다가 자신의 약혼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란다. 상대는 일본 황족 나시모토노미야(梨本宮)의 딸 마사코(方子, 1901∼1989)였다. 이 보도는 조선총독부가 발행하는 매일신보(每日申報)에도 같은 날 똑같이 실렸다. 이방자 여사(마사코)도 훗날 자서전에서 "신문을 보고 내 약혼 사실을 알았다"고 술회했다. 매일신보가 도쿄발로 보도한 것을 보면 고종(1852∼1919)과 순종(1874∼1926)도 영친왕의 약혼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고종은 3남 4녀를 두었다. 이 가운데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자녀는 순종, 의친왕(義親王) 강(堈)(1877∼1955), 영친왕 은, 덕혜옹주(1912∼1989) 3남 1녀였다. 순종은 명성황후 민씨, 의친왕은 상궁 장씨, 영친왕은 후궁 엄씨, 덕혜옹주는 궁녀 양귀인에게서 태어났다. 적통인 순종은 슬하에 자녀가 없어 1907년 8월 황제로 즉위할 때 이은을 황태제로 책봉했다. 20살이나 많은 이강을 제치고 이은이 뒤를 잇게 된 것은 정비 명성황후가 세상을 뜬 상황에서 이은의 생모가 최고 서열인 데다 수완이 뛰어났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이강의 생모 장상궁도 이미 죽고 없었다. 그러나 영친왕은 황제가 될 수 없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과 함께 조선 황실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황태제이던 이은은 왕세제로, 고종 태황제와 순종 황제도 각각 이태왕(李太王)과 이왕(李王)으로 격하됐다. 영친왕은 그에 앞서 황태제로 책봉된 지 넉 달 만에 10살의 나이로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건너갔다. 영친왕이 귀족학교 가쿠슈인(學習院) 중등과를 거쳐 육사에 입학, 철저한 일본식 교육을 받고 황족의 딸과 정략결혼을 하게 된 것은 일제 식민통치 정책의 일환이었다. 

당시 고종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대한제국을 멸망시킨 일본의 황녀를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경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도쿄의 영친왕 저택에는 연일 투서와 협박 전화가 날아들었다.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발행된 독립신문은 영친왕에게 '구녀(仇女·원수의 여자)를 취한 금수(禽獸)'라고 질타했다. 4년 뒤인 1920년 4월 28일 열린 결혼식에서는 비록 불발에 그쳤지만 도쿄 유학생이 신부가 탄 마차에 사제폭탄을 던지기도 했다. 영친왕과 이방자 부부는 이듬해 아들 진(晉)을 낳았다가 1922년 첫 방한 때 '독살 의혹' 속에 생후 9개월 된 아들을 잃는다. 그로부터 10년 뒤 아들 구(玖, 1931∼2005)를 얻는다.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도 정략결혼의 희생양이었지만 이 둘의 결혼을 쓸쓸히 지켜보는 비운의 여인이 또 한 명 있었다. 1907년 황태제비로 간택돼 결혼할 날만 기다리고 있던 민갑완(1897∼1968)이었다. 그는 영친왕과 이방자의 결혼이 결정되자 1918년 초 금반지를 비롯한 패물을 도로 빼앗기고 파혼을 당했다. 그의 부친인 민영돈은 그해 안으로 딸을 출가시키겠다는 서약서까지 써야 했으나, 민갑완은 황태제의 정혼녀라는 자존심을 지킨 채 숱한 청혼을 뿌리치고 죽는 날까지 홀로 살았다.


조선 황실의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종의 늦둥이로 태어난 영친왕의 이복동생 덕혜옹주도 재한 일본인이 다니던 일출소학교를 졸업하고 13살이던 1925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가 가쿠슈인에 입학했다. 한일 양국의 따가운 눈길을 피하고자 공부에만 전념했던 영친왕과 달리 덕혜옹주는 이복오빠 순종과 생모 양귀인의 잇따른 죽음, 일본인들의 핍박 속에 신경쇠약 증세를 보인다. 덕혜옹주 역시 일제의 명령에 따라 쓰시마(對馬)의 백작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1931년 5월 8일 결혼했다. 당시 신랑의 얼굴을 삭제한 채 실은 조선일보의 결혼식 사진이 분노한 식민지 백성의 민심을 잘 말해준다. 덕혜옹주는 이듬해 딸 정혜를 낳았으나 죽는 날까지 조현병에 시달렸다. 1955년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이듬해 딸이 유서를 써놓고 실종되는 아픔도 겪었다. 덕혜옹주의 비극적 삶은 연극·TV드라마·소설로 선보였으며, 영화로도 꾸며져 영친왕의 약혼 발표가 신문에 실린 지 꼬박 100년 뒤인 오는 8월 3일 개봉된다.

일의대수(一衣帶水)란 비유가 낯설지 않을 만큼 한국과 일본은 선사시대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삼국유사에도 연오랑세오녀의 전설이 수록돼 있고, 가야인과 백제인은 일본의 고대문화를 꽃피웠다. 백제 왕실과 일본 천황가가 혈연으로 연결됐다는 사실은 일본 아키히토(明仁) 천황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국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강제로 이뤄진 조선과 일본 황실의 결혼은 당사자들의 불행에만 그치지 않았다. 거의 모든 식민지 백성이 모멸감과 열패감에 치를 떨었고, 한일융화(韓日融和)라는 미명과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허울 아래 수탈과 착취에 시달려야 했다.

1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는 전제군주도 없고 귀족도 없어 예전과 같은 정략적 국제결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경의 장벽 완화와 교류의 증가 속에 국제결혼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가 남긴 교훈을 망각한다면 또다시 강대국의 의도에 따라 민족의 장래가 결정되고 국민의 운명이 손안의 공깃돌 신세가 된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2. [머니투데이]낙하산 타고 온 그들 때문에 엄마는 셋째를 낳을 수 없다

“아버지, 어머니를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그리고 어머니, 셋째를 꼭 낳아주세요. 저는 전혀 배고프지 않습니다. 저는 먹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울다 지쳐 잠든 동생을 업은 채 아홉 살의 장남은 그렇게 외쳤다. 수년 간의 기근을 견디다 못해 먹는 입 하나 줄일 요량으로 뱃속의 아기와 연못에 뛰어들었다 겨우 살아난 어미였다. 세찬 북풍이 부는 연못가에서 아비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영화 ‘철도원’의 원작자이자 타고난 이야기꾼인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의 역작 ‘칼에 지다’는 1860년대 한 시골의 말단 사무라이와 그 가족의 기구한 일생을 그리고 있다. 말이야 번지르르한 사무라이지, 한 달에 쌀 두 말 정도 월급으로 받는, 지금으로 치자면 ‘비정규직 알바’정도쯤 됐을까. 흉년이라도 들라치면 네 식구가 입에 풀칠도 못하기 일쑤였다. 

아내가 제 목숨을 끊으려 했던 다음날, 이 사무라이는 자신이 모셨던 주인과 고향을 등지고 큰 도시로 떠난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윗사람들이 떠드는 대의 따위는 없었다. 제 식구를 먹여 살리고, 나아가 백성을 잘 살게 하는 것, 그것이 그가 가진 유일한 일생의 대의이자 명분이었다.

그는 문무를 겸비한, 올곧은 사내였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 당시 신분제에 얽혀 능력과 인품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저 벼슬아치들의 ‘사석(捨石)’일 뿐이었다. 말 그대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먹는’ 시절의 희생양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생각해보면 별반 달라진 게 없지 않은가. 사람들 사이에‘수저 계급론’은 대유행이고, 공직자 입에서‘99% 개돼지’라는 X소리마저 튀어 나왔다. 전관예우나 ‘정피아’, ‘관피아’라는 말도 지겨울 정도로 낯이 익다. 

최근 대우건설 사장 자리에 ‘낙하산 인사’ 설이 돌고 있다. 유력 정치인이 누구를 밀고 있네,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이 뜻을 받들어 장고에 들어갔네 어쩌네 하는 내용이다.

실상 우리나라에서 낙하산의 역사는 길고 깊다. 조선시대 대표적 낙하산 인사는 임진왜란을 전후해 수군 요직에 번갈아 앉은 원균이다. 1591년 전라좌수사에 임명됐다가 성과가 없어 탄핵됐던 원균은 단 1년만에 경상우수사에 임명됐다. 개인 역량이 아닌, 간신 정치의 힘이었다. 나라를 망하게 하려면 뭔들 뭣하랴.

낙하산 인사의 도도한 흐름은 군부독재 시절 꽃을 피우더니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낙하산에도 일정한 공식이 있는데 어떤 자리는 정권 창출 기여자, 의원 선거 낙선자, 공천 낙마자 등이 가는 자리, 즉 ‘정피아’의 몫이다. 또 어떤 자리들은 고위 공직자들이 가 있는 ‘관피아’의 차지로 아예 정해져 있기도 하다. 정치권에 줄을 댄 자거나 유력 정치인의 친인척, 말하자면 ‘빽’좋은 자들이 가는 자리도 마련돼 있다.

지난 4월 전 경찰청장과 전 국회의원은 한국전력 감사위원으로 선임돼 논란이 됐다. 이어 5월엔 대통령 경호실 출신이 금융 공기업에 사뿐히 내려가 앉았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자리에 낙하산으로 가 있던 전 산업은행 회장이란 사람은 6개월 만에 중도하차해 국제적 망신을 사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은 낙하산 부대들이 지난 16년간 방만 경영을 하면서 부실 덩어리가 돼 버렸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별다른 역할도 없이 억대 연봉과 차량을 지원받은 자문역 및 고문이 60명에 달한단다. 이루 열거하기도 힘든 낙하산들이 위 아래 할 것 없이 각계 각층에서 펼쳐진다. 이러니 낙하산 금지법을 만들자는 여론마저 나오고 있다. 

낙하산의 폐해 또한 일일이 나열하기 힘든데, 정작 능력 있는 인재에게 돌아갈 기회가 박탈된다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생각해보라. 밤늦도록 일하는 우리 시대 가장들이 그 낙하산들로 인해 여전히 비정규직을 맴돌고 있고, 승진을 물먹으며, 몸 담던 직장이 망해 더 이상 월급봉투를 가져올 수 없다는 사실을. 

이 마당에 우리 어머니들이 셋째를, 아니 둘째, 첫째를 낳을 수 있겠는가.


3. [동아일보][김상욱 교수의 과학 에세이]덥다는 것의 의미

요즘 너무 덥다. 매년 되풀이되는 일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쉽사리 적응되는 것도 아니다. 분명 내년 이맘때에도 더울 거다. 덥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 비가 오면 더위가 한풀 꺾이는 것으로부터 햇빛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겨울에도 해가 뜬다. 햇빛은 지금 이 순간 지구의 여러 곳에 도달한다. 내가 오늘 아침 보는 태양은 남반구의 호주에서도 보인다. 하지만 그곳은 지금 겨울이다. 결국 더위는 햇빛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을 받은 물질에서 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지표면이 햇빛을 흡수하여 더워졌다는 뜻이다. 뙤약볕 아래 10분만 있으면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지구에 내리꽂히는 햇빛은 거의 평행하다. 하지만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위도에 따라 지표가 햇빛을 받는 각도가 다르다. 이 때문에 적도는 덥고 극지방은 춥다. 우리가 사는 중위도 지역은 햇빛을 받는 각도가 계절에 따라 다르다. 여름에 지구가 태양에 가까워진다는 사람도 있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지구의 공전궤도가 타원 모양이지만 거의 원에 가까운 타원이다. 더구나 태양과 지구의 거리만으로 계절이 정해진다면 북반구가 여름일 때 남반구도 여름이어야 한다.

여름에는 적도에 이웃한 북쪽지역이 뜨거워진다.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이면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기포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물의 대류만으로 열을 전달하기 힘들어지면 기포라는 특급우편으로 온도차를 해소하는 거다. 뜨거운 적도 근방과 차가운 극지방 사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태풍이라 부른다. 따라서 태풍은 여름이 끝나갈 때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지표가 흡수한 햇빛의 양과 관련된다.

햇빛을 흡수하면 왜 뜨거워질까. 우리는 이제 열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맞닥뜨린 거다. 18세기 과학자들은 ‘칼로릭’이라는 입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입자가 많으면 뜨겁고 없으면 차가워진다. 그럴듯한 이론이다. 그럼 햇빛을 흡수하면 칼로릭이 생긴다는 말일까? 물체를 문지르면 열이 발생한다. 마찰열이다. 그렇다면 물체를 계속 문지르면 칼로릭이 무한히 생산된다는 말인데, 뭔가 이상하다. 그래서 럼퍼드 백작은 열의 본질이 운동이라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다. 열이 운동이라면 그 주체는 누구인가?

과학에서는 연이어 몇 번 질문을 하면 대개 미궁에 빠진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운동의 주체는 ‘원자’다. 원자의 존재가 입증된 것이 20세기 와서니까 당시 과학자들이 답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다.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다. 돌멩이도 예외는 아니다. 돌멩이를 낙하시키면 돌멩이를 이루는 원자가 모두 한꺼번에 움직인다. 열이 원자들의 운동이라면 낙하하는 돌멩이는 뜨거워지는 걸까? 그렇다면 KTX에 탄 사람도 뜨거워져야 한다. 그 사람의 몸을 이루는 원자들이 함께 운동하고 있으니까. 물론, 경험적으로 볼 때 이건 말도 안 된다.

뜨거운 물체의 경우 그 물체를 이루는 원자들이 더 격렬하게 운동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온도에 기여하는 운동은 ‘무작위적인’ 운동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연봉을 조사하여 분포를 구하면 평균과 표준편차를 알 수 있다. 표준편차는 분포의 폭과 관련된다. 이것은 자료가 평균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즉 얼마나 무작위인지를 나타낸다. 다시KTX에 탄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 사람의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의 속도는 빨라진다. 이것은 원자 속도분포의 평균값이 커지는 것과 같다. 하지만 온도를 결정하는 것은 평균이 아니라 표준편차다. 평균이 크다고 표준편차도 큰 것은 아니다.

혹자는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물질적 풍요는 분명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하지만 부를 분배하는 것, 즉 분포의 표준편차를 줄이는 것은 또 다른 이슈다. 온도는 표준편차가 결정한다. 우리가 아무리 부의 평균을 높이더라도 표준편차를 줄이지 못하면 사회는 뜨거워진다는 말이다.


4. [중앙일보][삶의 향기] 진솔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들

우리 사회에서 ‘순박’ ‘정직’ ‘진솔’이란 낱말이 왠지 사치스러운 어휘로 멀어져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런 상황에서 빌리 브란트(1913~92) 서독 총리가 남긴 일화가 생각난다.

1970년 12월 7일 서독 총리가 폴란드를 국빈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바르샤바에 있는 게토 봉기(Ghetto 蜂起·1943)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비를 찾아가 헌화를 마친 브란트 총리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이른바 ‘바르샤바의 무릎 꿇기(Kniefall vonWarschau)’라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런데 추모 행사를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브란트 총리와 같은 차를 타고 이동하던 폴란드 동승자가 갑자기 브란트의 목을 감싸 안고는 울음을 터뜨렸다는 비화가 전해 온다. 사과의 진정성이 그만큼 감동적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이후 왜 무릎을 꿇었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이 잇따르자 브란트 총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입니다.” 바로 다른 나라도 아닌 독일의 오랜 숙적이자 큰 피해를 입은 폴란드가 자국의 수도에 빌리 브란트 광장을 조성해 그의 진솔하고 용감한 행동을 기리는 이유다. 한 정치가의 진솔함이 두 나라 사이의 오랜 원망과 갈등을 화해의 장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95년 4월 말 필자가 독일 베를린에 머물 때였다. 투숙한 호텔방의 TV를 켜자 때마침 독일연방국회의사당에서 거행하는 종전 50주년 기념행사를 중계하고 있었다. 5월 8일이 제2차 세계대전 종식일인데, 그보다 며칠 앞서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리타 쥐스무트 독일연방공화국 국회의장이 첫 연사로 등단해 개회사를 겸한 연설을 했다. 그는 나치 독일이 일으킨 2차대전으로 많은 무고한 희생자가 생겨났음을 참회하는 내용으로 운을 띄우고는 바르토셰프스키(W. Bartoszewski) 폴란드 외교장관을 그 자리의 특별 연사로 초청한 이유를 언급했다.

요컨대 나치 독일이 이웃 나라 폴란드 국경을 침략함으로써 대전의 비극이 시작되었고, 바르토셰프스키 장관이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증인이기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국회의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의 과제와 의무는 바로 젊은 세대에게 한 시대의 기억을 계속 전하면서 한때는 반대자이고 적이었더라도 파트너와 친구가 되어 유럽의 통일과 발전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독일인은 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결코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속죄의 발걸음 속에서도 화합을 추구하는 독일의 전향적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뒤이어 연단에 오른 폴란드 외교장관은 “1939년 9월 1일 독일 제3제국이 폴란드를 침략하면서 유럽 역사상 가장 잔악한 전쟁이 시작되었고 45년 5월 8일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종지부를 찍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년8개월8일 동안 계속된 전쟁 당시 폴란드가 주권을 되찾기 위해 연합군과 함께 육지와 하늘과 바다에서 피를 흘리며 싸웠음을 부각시켰다(폴란드 국민 60만 명이 정규군으로 참전하고 10만 명이 지하 저항 운동에 가담했다).

아울러 폴란드 외교장관은 전쟁으로 인한 피해도 낱낱이 고발했다(나치 독일 점령 아래 수백만 명의 유대인과 폴란드인이 회생되고 강제 이주와 강제 노동을 했으며 영토의 5분의 1이 축소됐다). 그러고는 “과거를 청산한다는 것은 많은 경우 용감한 행위”라고 말하며 브란트 총리가 70년 12월 바르샤바의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은 “경외스럽고 역사적인 용기의 표현”이라고 하며 울먹였다.

한 진솔한 사죄가 얼마나 긴 생명력을 지니는지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정직’ ‘순박’ ‘진솔’이란 낱말의 진정성이 사라져 가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5. [중앙일보][분수대] 쉑쉑버거와 ‘느림의 미학’

28년 기자생활 동안 인상적인 일 중 하나가 미국 맥도날드 연구소 취재였다. 이 회사 초청으로 시카고 부근 연구소를 찾은 건 8년 전. 연구소에 도착하니 입구에 아무 표시도 없었다. “기밀 유지를 위해 간판을 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뭐 그리 대단한 비밀이 있다고.”

하지만 내부를 둘러본 뒤 하찮게 여긴 자신이 부끄러웠다. 신제품 및 조리기구 개발에 상상 이상의 자금과 노력이 투여되고 있음을 본 탓이었다. 연구소의 최대 관심은 조리시간 단축이었다. 한 연구원이 새 조리기구를 소개하며 “감자튀김에 소금 뿌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맥도날드의 성공 비결은 ‘맛’이 아닌 ‘신속함’에 있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맥도날드에는 ‘90초 룰’이 존재했다. 90초 내에 주문을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그랬던 게 5~6년 전부터는 60초로 줄었다. 컴퓨터 단말기 보급으로 처리 시간을 확 단축할 수 있었다. 결국 맥도날드 못지않게 맛난 업체는 적지 않지만 여기만큼 균질한 햄버거를, 1분도 안 돼 내놓는 경쟁자는 없었던 거다.

그렇다면 패스트푸드에서는 신속함만이 절대선인가. 꼭 그런 건 아닐 거다. 지난 22일 한국 1호점을 연 ‘쉐이크쉑 버거(일명 쉑쉑버거)’의 흥행몰이는 속도가 전부가 아님을 보여준다. 햄버거 하나 먹자고 1500명이 뙤약볕에서 3시간 이상 기다린 사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2002년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시작해 단시간에 성공한 쉑쉑버거의 인기 비결을 두고 미 언론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항생제를 먹이지 않는 쇠고기, 독특한 소스 사용 등 여러 분석이 나왔지만 ‘길게 늘어선 줄’도 주요 이유로 꼽혔다. 2~3시간씩 기다리는 상황이 인기 이유라는 얘기다.

적잖은 소비자들은 톡특한 상품을 위해 기다림으로써 만족을 얻는다고 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게 되면 자신이 특별한 취향의 소유자임을 남에게 과시하는 동시에 자신에게 자기암시도 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아울러 쉑쉑버거 현상은 신속함 이상으로는 삶의 질을 중시하는 ‘느리게 살기’의 가치에 사람들이 눈뜨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속도만을 맹신한 나머지 필요한 절차마저 생략했다간 졸속이 될 수밖에 없다. 졸속 논란을 빚고 있는 사드의 성주 배치, 추경 편성 모두 신속함만을 중시해 온 잘못된 습관의 결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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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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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5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누가 검찰 권력에 재갈 물릴 것인가

검사장 출신인 홍만표 변호사와 진경준 검사장이 비리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검찰을 전면 개혁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홍 전 검사장은 전관예우를 이용해 수임료 소득을 올리고 탈세까지 했다. 진 검사장은 넥슨으로부터 받은 4억여원으로 비상장 주식을 사고팔아 120억원을 챙겼다. 일반인들은 넘볼 수 없는 특혜성 범죄다. 우 수석도 1300억원대 처가의 강남 땅 매각 성사, 의경 아들 ‘꽃보직’ 배정 등 온갖 추문에 휘말려 있다.

김현웅 법무장관과 김수남 검찰총장은 현직 검사장이 구속되자 “부끄럽고 참담할 따름”이라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인사검증 및 감찰활동 강화, 비리 제보 시스템 활성화 등 내부 자정기능 강화에 초점을 맞춘 개혁안도 내놨다. 하지만 미덥지 못하다. 2010년 ‘스폰서 검사’와 ‘벤츠 검사’ 논란, 2012년 부장검사 뇌물사건이 터졌을 때도 검찰은 환골탈태를 다짐하고 강력한 감찰체계 구축 등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근본 개혁에 대한 고민 없이 파장 축소와 소나기 피하는 데만 급급했던 탓이다.

검찰 스스로의 자정 노력은 한계를 드러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검찰 조직 전반에 고질적인 부패와 비리의 사슬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철저하고 투명하게 검증해야 할 때다. 그러나 정치권의 눈치나 보는 고위 간부에, 상명하달식 문화에 젖은 수직적 구조에서 대증요법 차원을 넘어 환부를 제대로 도려낼 수술 의지나 능력이 발현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더 늦어지기 전에 인사검증과 감찰을 독립기관에 맡기는 등 외부로부터의 개혁에 나설 필요가 있다.

정치권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검찰 조직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별도 기구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을 논의하는 중이다. 상설특검이나 특별감찰관 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중복이라는 비판도 있고 검찰의 기소독점주의가 허물어진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내부 자정 기능에 한계를 드러낸 검찰의 자업자득이다. 어떤 방안이 됐든, 부패 고리를 끊어낼 특단의 검찰 개혁방안이 마련되기 바란다. 검찰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빠를수록 좋다.

2. 유일호 부총리도 우려 표명한 김영란법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오는 9월 시행을 앞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 대해 “정말 걱정이 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더욱이 그 영향력이 농·축·수산업 등 특정 산업에 집중된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제정책 운용의 책임을 맡은 입장에서 일반 경제활동을 광범위하게 제약하는 초유의 법률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영란법의 당위성 자체를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릇된 기업 접대문화를 바로 잡으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만 해도 기업들이 법인카드로 결제한 접대비가 10조원으로, 최근 8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룸살롱 등 유흥업소에서 지출된 금액도 1조원을 넘었다고 한다. 국세청이 집계한 규모가 이렇다면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흥청망청 뿌리는 접대비로 경제가 굴러간다면 올바른 행태는 아니다.

이 법이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식사접대의 상한액을 3만원으로 설정한 것이 그런 취지다.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까지로 제한돼 있다. 국민권익위도 최근 이러한 내용의 시행령안을 원안대로 확정했다. 관련업계에서 반발하는 한우와 화훼 등 특정 품목에도 예외를 두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를 거쳐 국무회의 의결로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문제는 이 법이 민간 영역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공직자들의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입법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논의 과정에서 이해충돌 방지 조항은 빠져 버렸고 언론과 교육 영역이 공공성을 지닌다는 이유로 규제 대상에 포함되기에 이르렀다. 변호사나 의사, 회계사 등 공공성이 큰 다른 민간 분야가 제외된 것과도 형평성이 어긋난다.

최근 공직사회의 비리 의혹이 연달아 드러나고 있듯이 갈수록 은밀해지는 공직부패를 근절해야 한다는 점에는 대체적인 공감대가 이뤄져 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형평성 문제나 후유증에 대해서도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결국 마지막 남은 관문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여부다. 조만간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는 헌재 결정에 기대를 걸고자 한다.

[서울신문]

3. 위기 때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한국인

한국인의 삶이 팍팍하고 외롭다는 통계가 나왔다. 한국인들은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하거나 의지할 가족과 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한 사람의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로 나타났다. 국회입법처가OECD의 ‘사회통합지표’에 관한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는 ‘사회적 관계’ 부문에서 10점 만점 중 0.2점을 받았다. 사회적 관계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상호 지지 정도를 나타내는 정도다.

사회적 관계에서 우리나라가 스위스, 덴마크 등 복지 선진국보다 낮은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터키, 칠레, 멕시코 등 우리보다 못살고 정치적으로도 불안한 나라보다 낮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적 관계는 개인의 삶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공동체적 연대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번 통계를 소홀히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사회구성원 간 느슨한 연결고리는 세대갈등을 일으키고, 나아가 사회통합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OECD가 최근 발표한 올해 ‘더 나은 삶 지수’에서도 우리나라는 34개국 회원국을 포함한 조사대상 38개국 가운데 하위권인 28위에 그쳤다. 소득, 건강, 삶의 만족 등 삶의 질을 나타내는 지수에서도 우리는 낙제점을 받은 것이다. 더 문제는 우리의 순위가 해마다 떨어지는 추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어디 이뿐인가. 한국인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 기록까지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3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해 전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다. 그런데 왜 한국인들의 삶의 질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가. 아무리 나라가 부유해도 국민 개개인의 삶이 피팍하다면 우리의 미래가 밝을 수 없다. 국가의 경쟁력도 국민의 건강한 삶, 만족하는 삶에서 시작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나만 잘살면 된다는 성공 강박증에 사로잡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등한시했다. 장애인, 여성, 비정규직 등에 대해 따뜻한 관심은커녕 보이지 않는 차별이 사회 곳곳에 깔려 있다. 고위 공직자의 입에서 ‘99% 개·돼지’ 발언이 나올 정도로 우리 사회의 양극화, 소득불평등이 심각하다. 그러니 국민의 상대적 외로움과 박탈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려워도 손 내밀 곳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작은 바람에도 무너지는 ‘모래성’이 될 수 있다. 사회 연대를 높이는 등 사회통합을 위한 전향적인 정책이 시급한 때다.

4. 사드·북핵 창조적 해법 발휘해야 할 ARF 외교

어제부터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역내 다자협의체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중국과 핵과 탄도미사일 도발을 일삼는 북한, 아시아에서 힘의 우위를 유지하려는 미국 등 6자회담국 외교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치열한 외교전에 돌입했다. 우리 정부는 이번 회의를 통해 북핵·미사일 도발을 규탄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의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최근 폐막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의 모멘텀을 이어 간다는 구상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출국에 앞서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문제, 남중국해 문제, 테러 문제 같은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논의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드와 남중국해 문제로 더 복잡해진 정세와 이번 ARF 의장국이 북한과 중국에 가까운 라오스라는 점에서 녹록한 상황은 아니다. 윤 장관은 아세안 각국을 포함해 25일 한·미, 한·일 회담을 갖지만 한·중 외교장관 회담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사드 배치와 관련, 양국의 불편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한은 사드 배치를 통해 다소 소원해진 한·중 관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갖은 책략에 골몰할 것이다. 핵보유국 지위 확보를 위해 이런 외교·안보적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한·미 대 중·러, 또는 한·중 간 갈등 구도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한국 외교는 사드 배치와 남중국해 분쟁, 북핵 문제가 중첩적으로 얽히면서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 북한을 압박함으로써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한다는 외교·안보 전략이 심각한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군사 주권과 자위권 차원에서 결정한 사드 배치는 중국과 러시아의 격한 반발은 물론 고립된 북한의 입지만 강화시키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심혈을 기울여 구축한 유엔 대북 제재망이 허물어질 위기에 처해 있고 냉랭했던 북·중 관계에 복원의 에너지를 불어넣은 꼴이 된 것이다. 우리는 이번 외교무대를 통해 북핵 저지와 함께 사드 배치가 북핵을 겨냥한 전략적 조치임을 중국에 이해시키면서 지속적인 한·중 협력을 추진해 나가도록 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한반도에 서서히 닥쳐오는 신냉전 구도가 정착되지 않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국익을 창출할 수 있는 창조적 외교 해법을 이번 ARF 외교 무대에서 도출해야 한다.

[동아일보]

5. 넥슨 김정주는 왜 검찰 뒤를 봐줘야 했나

22일 2차로 소환돼 검찰 조사를 받은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 대표가 창업 이후 연루된 검찰 고소 건이 30여 건에 이르고 수사 결과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2002년 연구비 업무상 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고소당했을 때 무혐의 처분을 내린 수사검사는 진경준 검사장의 대학 동기였다. 2006년 ‘바다 이야기’ 수사 때 넥슨은 프로그램을 만든 회사에 수억 원을 투자했지만 아예 수사도 받지 않았다. 2010년 게임업체 엔도어즈를 인수할 때는 회사 주식을 1만분의 1로 줄이는 과정에서 손해 본 주주들이 김 대표를 고발했고 이듬해 메이플스토리 회원 1320만 명의 정보가 유출됐을 때도 수사를 받았지만 역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기간에 진 검사장은 법무부와 대검찰청에서 근무했다. 

김 대표는 최근까지 진 검사장 본인과 가족은 물론 지인들과 함께 간 해외여행 비용까지 부담한 의혹도 받고 있다. 김 대표가 진 검사장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 이유와 어떤 대가가 오갔는지 검찰은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사행성이 강한 게임업계 특성상 넥슨이 다른 검찰 간부에게도 보험을 들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처가의 부동산 거래에 대한 의혹도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잔금 지급을 1년여 미뤄주면서 소유권 분쟁이 있던 땅을 구입하기로 계약한 이유와 9개월 만에 30억 원가량 손해까지 보면서 매각한 정황이 여전히 석연치 않다. 넥슨 측은 매입대금(1326억 원)이 한 해 매출의 10%를 넘는 엄청난 액수였는데도 오너인 김 대표가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만 되풀이한다. 애초 김 대표는 “개인거래여서 아는 게 없다”(3월) 했다가 “돈을 빌려줬다가 다 받았다”(6월) “공짜로 줬지만 대가는 없었다”(7월)는 식으로 진 검사장에 대해서도 계속 말을 바꿨다. 기업 뒤에 숨어 발뺌하는 행태는 악덕 기업주를 뺨친다. 

매출 2조 원에 걸맞지 않게 넥슨은 1인 경영체제를 여전히 고수한다. 지주회사 NXC는 특수관계인 지분이 90%를 넘는다. 일본 넥슨과 복잡하게 얽힌 소유구조도 불투명해 김 대표 등 극소수만 회사의 경영을 알 수 있는 구조다. 검찰은 김 대표의 탈법경영에 대해서도 메스를 들이대 벤처 신화에 숨은 기업 비리를 엄정하게 다스려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6. 이제 항균필터에도 독성물질…국민은 불안하다

‘가습기 살균제’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국민의 가슴을 덜컹 내려앉게 하는 일이 또 벌어졌다.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에 장착된 항균필터가 독성물질인 옥틸이소티아졸론(OIT)을 내뿜는다는 것이다. OIT는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물질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유사한 물질이다. 피부나 눈의 손상을 일으켜 선진국에서는 사용을 엄격히 규제한다.

하지만 환경부는 2014년 OIT를 유독물질로 지정하고도 이 물질이 함유된 필터의 유해성을 조사하지 않았다. 국정조사 중인 가습기 살균제 파문에 이어 미세먼지를 엉뚱하게 고등어 탓으로 돌리는 등 환경부의 총체적인 행정난맥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 22일 ‘OIT필터’가 장착된 국내 판매 가정용 에어컨 33개와 공기청정기 51개의 모델명을 공개했다. 이틀 전OIT가 함유된 항균필터명을 밝혔다가 영어 용어가 난수표 같다는 비난이 빗발치자 이틀 만에 허겁지겁 제품명을 공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환경부는 국내에 유통되지 않은 필터 모델까지 밝혔다가 정정하는 소동을 벌였다. 자동차용 에어컨 항균필터를 놓고도 혼선을 빚었다. 처음엔 OIT가 들어간 모델이 3개라고 발표했다가 이틀 만에 12개로 바꿨다. 충분한 검증·분석도 없이 소나기만 피하려 허둥대는 졸속행정이 부른 참화다.

독성이 든 문제의 항균필터는 모두 한국쓰리엠(3M) 제품이다. 삼성·LG·쿠쿠·위니아·청호나이스·프렉코 등 6개 업체 제품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가정·사무실·학교·군대까지 광범위하게 공급된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이 국민 건강을 잡는 흉기가 됐지만 환경부는 ‘깜깜이’였던 것이다. 환경부는 업체에 자진 수거 조치를 하겠다고 했지만 찜통더위에 국민의 불안감은 계속 커지고 있다.

특히 3M 측이 한국에서만 OIT 항균필터를 생산·판매한 것에 대한 공분이 거세다. 배기가스 조작사기를 친 폴크스바겐처럼 한국 소비자들을 ‘봉’으로 여긴 게 아니냐는 비난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쏟아지고 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집단 피해 소송과 불매운동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제2의 옥시 사태’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려면 정부의 신뢰회복이 중요하다. 항균필터에 대한 전수조사와 함께 피해신고센터를 가동하고, 조기에 모든 제품을 회수토록 강력한 행정조치를 해야 한다. 3M이 우리나라에만 필터를 공급하게 된 경위와 과정, 유해성 검증 결과도 국민에게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법령 정비도 시급하다.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항균필터에 대한 규정과 안전기준을 마련하고, 생활화학물질에 대한 종합 관리·감독 대책 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무능 ·무사안일의 극치가 드러난 윤성규 환경부 장관부터 경질하고 조직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이대로 두면 환경부는 국민의 건강을 지킬 수 없다.

7. 테러와 광기 뒤섞인 뮌헨 총기 난사 사건

‘정치적·종교적 신념을 과시하거나 실현할 목적으로 폭력을 사용해 다중을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는 행위’가 테러의 사전적 정의다.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인 알카에다나 시리아와 이라크의 급진 수니파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가 각지에서 저지르고 있는 무차별 살상 행위가 전형적인 테러다. 지난 주말 독일 뮌헨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은 이 점에서 전통적인 테러와는 구별된다.

뮌헨 도심에서 총기를 난사해 9명을 숨지게 하고, 20여 명을 다치게 한 이 사건은 우울증 병력을 지닌 18세 이란계 독일인 학생의 단독범행으로 밝혀졌다. 범인은 5년 전 노르웨이를 충격에 빠뜨렸던 신(新)나치주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대량 총기 학살 사건에 심취했다고 한다. 이런 유의 사이코패스형 범죄는 테러와 유사한 형태를 띠면서도 범행 동기는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예방과 단속은 테러보다 오히려 어려울 수 있다. 테러를 모방한 개인의 광란적 일탈 범죄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전통적 테러와 개인의 광기가 뒤섞이면서 안전지대 없는 세상이 됐다.

지난 14일 프랑스 남부의 해변도시 니스에서 일어난 트럭 테러도 IS와는 무관한 사건으로 드러났다. 튀니지계 프랑스인의 소행이란 점에서 종교적, 인종적 배경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은 되지만 배후가 있는 조직적인 테러는 아니었다. 지난 18일 독일 바이에른주 통근열차에서 아프가니스탄계 17세 난민 소년이 도끼를 휘둘러 5명을 부상케 한 사건도 일반적 의미의 테러와는 거리가 있다.

최근 유럽에서 일어난 일련의 테러 사건은 개인의 정신적 일탈이 다중을 향한 극단적 폭력으로 표출됐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가정과 학교, 조직에서 소외된 젊은이들의 좌절과 분노가 개인적 광기와 결합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특히 우려스럽다.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 경제적 격차에 대한 젊은이들의 좌절감을 보듬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분노 조절 장애로 생기는 ‘묻지마 폭력’ 사건이 그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문제다.

8. 부산·울산, 원인 모를 가스 냄새보다 두려운 괴담 확산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현상은 불안감을 낳는다. 여기에 당국의 안이하고 무능한 대응은 불필요한 공포와 괴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21일 부산 지역 해안가와 23일 울산 남구 지역에 악취를 풍기는 가스 냄새가 퍼진 후 확산되는 괴담은 전형적으로 이 같은 양상을 보여준다. 당국은 첫 사건이 발발한 지 닷새째이지만 여전히 원인의 단서조차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괴담이 확산되고 있다. 지진의 전조 현상이라거나 최근 논란을 빚은 주한미군의 ‘주피터 프로젝트(생화학 무기 방어시스템)’로 인한 냄새라는 소문이 가장 광범위한 축에 든다. 여기에 북한이 바이러스를 유포했다는 식의 믿거나 말거나식 루머도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양산되고 있다. 또 부산과 울산 지역의 석유화학 공장들과 인근 해안의 선박들이 비가 온다는 예보에 따라 미리 화학오염물질을 방류했다가 비가 오지 않아 냄새가 퍼졌다는 식의 확인되지 않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다.

가스 냄새는 진정됐지만 괴담은 진정되지 않는다. 이는 당국의 대처능력에 대한 불신감 때문일 수 있다. 부산시는 가스 냄새 신고접수 후 비슷한 시각에 광안대교를 통과한 화학물질 탱크로리 4대를 쫓아가 조사하는가 하면 광안대교 도색작업 중 페인트 냄새가 날린 것이라는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벌어진 일을 놓고 지엽적 원인 분석에 매달렸다. 또 부산시는 상황이 종료된 21일 오후 10시30분에야 가스 냄새를 파악하고 있다는 문자를 시민들에게 보내 늑장대응에 대한 질타를 받았다. 울산도 소방차를 출동시켜 가스 농도를 측정하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 정작 원인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5년 전 남양주에서도 알 수 없는 굉음이 들려 ‘북한이 땅굴을 파고 있다’는 등의 괴담이 돌았다. 정밀조사를 통해 한 빌라의 보일러 문제 때문으로 밝혀내고 이를 고쳐 굉음이 사라진 후에야 괴담이 수그러들었다. 요즘처럼 민심이 흉흉한 때에 괴담은 더욱 민심을 이반시킬 수 있다. 괴담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부산·울산시 등 당국은 과학적이고 신빙성 있는 원인 규명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9. 소비자 안전 외면 이케아 엄격한 잣대로 조사하라

정부가 국내에서 판매되는 서랍장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6명의 유아 사망 사고를 일으킨 이케아 '말름 서랍장'이 국내에서는 리콜되지 않고 팔리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와 비난 목소리가 거세지자 뒤늦게 행동에 나선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어제 "국내 유통 중인 수입·국산 서랍장의 안전성 조사를 신속히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전형적인 뒷북 행정이지만 이왕 하기로 했으니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이케아 서랍장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안전성 문제가 확인되면 법에 따라 전량 수거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2014년 12월 광명점을 오픈하며 국내에 진출한 이케아는 가구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연간 3000억원이 넘는 매출에 방문객 수도 700만명에 육박한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에 대한 태도는 낙제 수준이다. 서랍장 사건만 하더라도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3600만개를 즉시 리콜하기로 했고, 중국에서도 소비자들이 반발하자 170만개의 서랍장에 대한 리콜 결정을 내렸다. 반면 한국에서는 10만개 정도가 팔렸는데 원하는 고객에게만 환불해주는 것에 그쳤다. 그나마도 소극적으로 대응해 적지 않은 소비자들은 여전히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케아는 이미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른 바 있다. 배송과 설치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항의를 받는가 하면 동일 제품을 국내에서만 비싸게 판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국 소비자를 무시하는 외국계 기업은 이케아뿐만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옥시를 비롯해 배출가스를 조작한 폭스바겐, 최근엔 독성물질인 옥틸이소티아졸론(OIT) 항균필터로 논란이 되고 있는 3M도 한국 소비자에 대해서만 유독 안하무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너무 약한 소비자 보호 규정과 정부의 안이한 대응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소비자 안전을 위협하는 외국기업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로 다스리고, 소비자 보호 관련 법과 규정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10. 민노총 총파업·각종 시위로 얼룩진 주말 서울 도심

주말 서울 도심이 대규모 집회와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도심 곳곳이 차단되면서 퇴근길 시민들은 극심한 교통 혼잡을 겪은 것은 물론이다. 지난 22일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서울 여의도와 강남,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일방적 구조조정 중단을 촉구하는 총파업 투쟁대회를 개최했다. 현대·기아차 노조를 주축으로 한 완성차 업계 노조원 1만여 명을 비롯해 8만2000여 명(경찰 추산)이 도심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23일에는 사드배치반대전국대책회의, 전국학생연합 등이 재벌 책임 강화와 사드 배치 반대를 내걸고 시가행진·연좌농성 등을 벌였다. 국민소득 3만달러를 내다보는 시대에 아직도 집회·시위·농성처럼 다수 시민들에게 불편과 불안을 주는 퇴행적 행태가 반복되니 답답하고 딱하다. 

최근 한국 제조업을 덮친 먹구름은 대기업노조가 파업과 시위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 조선·해운뿐만 아니라 화학·철강 등 어느 업종이나 당면한 운명이고 헤쳐나가야 할 파고다. 경영진과 노조가 머리를 맞대고 고통을 감내하며 해법을 찾지 않으면 공멸뿐이다. 대기업 노조는 지난 20여 년간 제조업 호황 속에서 일반 노동자들의 2~3배에 달하는 고임금과 최고 수준의 복지를 누렸다. 2009년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사태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적자 기업에서 노사대립과 파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한 해 5조원 적자에 7조원 공적자금을 투입받고도 파업에 나선 대우조선해양 노조에 대해 정성립 사장이 "파업을 하면 빨리 회사 문을 닫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는데 맞는 말이다. 기업 없이는 노조도, 일자리도 없다. 안보와 경제 동시 위기 상황에서 자기만 손해를 보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은 국민 다수의 동의를 얻기는커녕 상황을 더욱 위태롭게 할 뿐이다. 어떻게 하면 기업도 살고 노동자도 살고 나라 경제도 살릴지, 대기업 노조가 먼저 해법을 제시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동아일보][특파원 칼럼/서영아]‘인간 아키히토’에 대한 단상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생전 퇴위’ 뜻을 비쳤다는 소식으로 일본 열도는 지난주 내내 들썩였다. 1989년 즉위한 아키히토 일왕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좋은 기억이 있다. 2004년 가을 일본 연수 중에 보게 된 뉴스의 한 장면 때문이다. 왕실이 매년 봄가을 주최하는 원유회(가든파티)에서 도쿄도교육위원인 요네나가 구니오(米長邦雄) 씨가 “일본 전국 학교에서 국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제창하게 하는 게 제 임무”라고 자랑스레 말하자 일왕은 “강제로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당황한 요네나가 씨는 “그럼요, 훌륭한 말씀 감사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일본 국가 ‘기미가요’는 ‘천황의 시대가 영원할 것’을 기리는 내용이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교육 현장에서는 사실상 금기시되다 1999년 국기국가법이 제정된 후 국가 제창을 강요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도쿄도교육위원회는 2003년 국가를 부를 때 기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직원을 징계 처분하는 등 우경화의 선봉에 섰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강제로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일왕의 발언은 당시 일본 내에서 미묘한 파장을 낳았다. 우경화 흐름에 반(反)하는 발언이요, 정치에 관여하지 않아온 전후(戰後)의 전통에도 어긋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논조로 알려진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정치적인 화제를 끄집어낸 요네나가 씨가 문제”라며 “천황이 그 자리에서 그저 ‘수고 많다’는 인사로 대화를 끝냈다면 우파에서는 천황의 승인을 얻었다고 주장할 테니 이를 막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썼다.

일왕은 아사히신문 애독자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어느 모로 보나 최근 일본의 보수우경화의 흐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운신 폭이 크지 않지만 그의 메시지에는 전쟁에 대한 반성과 평화를 지향하는 노력이 담겨 있다.

지난해 전후 70년을 맞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모호한’ 사죄 담화를 내놓은 것에 비해 그는 ‘깊은 반성’을 언급했다. 사이판, 팔라우, 필리핀 등 태평양전쟁 피해지를 노구(老軀)를 이끌고 찾아다니며 전몰자 위령의 행보를 이어왔다. 올해 구마모토 지진 피해지를 방문할 때 보도된 것처럼 이재민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손을 맞잡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역사연구가인 한도 가즈토시(半藤一利)는 “‘천황은 국민통합의 상징’이라는 헌법 1조와 ‘전쟁 포기’를 규정한 9조를 동시에 구현하기 위해 평생 애써 왔다”고 말했다.

생전 퇴위 의향이 보도된 후 일본에서는 그의 의중에 대해 백가쟁명(百家爭鳴)식 해석이 나온다. 그가 일본의 국왕이 어떤 존재인지 재점검하길 원한다는 해석이 많은 반면, 상징적 존재에 불과한 일왕이 왕실전범(왕실 제도와 구성 등을 정한 전범) 개정이 필요한 퇴위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호헌파인 천황이 헌법 개정 논의를 막기 위해 왕실전범 개정 논의를 끄집어냈다’는 말까지 들린다. 실제로 일본 사회의 관심사는 개헌에서 왕실로 급격히 옮아갔고, 헌법 개정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던 가을 국회 헌법심사회에서 왕실전범 개정 문제도 함께 다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어느 경우든 한계 속에서도 자신에게 부여된 소명을 다하기 위해 애쓰는 ‘인간 아키히토’의 진정성은 제대로 알아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일왕은 한국 방문을 원했고 한국에 대해 여러 차례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하지만 역사의 응어리가 워낙 큰 한일관계에서 그런 날이 쉽게 다가올 것 같지는 않다. 그가 퇴위를 거론했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그 아쉬움이 떠올랐다.


2. [중앙일보][강찬수의 에코 사이언스] 뜨끈뜨끈한 생수 한 컵

서울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9일 오후.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옥외 주차장 아스팔트 노면 위에 온도계를 올려놓았더니 금방 50도까지 눈금이 올라갔다. 아스팔트 위에 놓아 뒀던 2L짜리 페트병 속의 생수는 온도가 41도였다. 물을 손등에 부었더니 뜨끈뜨끈했다.

요즘 동네 마트나 편의점 앞, 가판대 앞에서는 생수병을 수북이 쌓아놓은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뜨거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 햇빛도 가리지 않고 쌓아놓은 경우도 적지 않다. 직사광선에 노출된 생수는 온도가 30~40도까지 올라간다. 마시는 데 문제는 없을까.

만일 생수가 세균에 오염됐다면 세균이 번식할 수도 있다. 세균이 자라기 딱 좋은 온도이기 때문이다. 먹던 생수를 뜨거운 자동차 안에 뒀다가 마시는 건 금물이다.

2014년 미국 플로리다대 연구팀은 페트병에 든 생수로 실험을 했다. 일주일간 4도에 보관한 결과 물 1L 속의 비스페놀A 양은 0.26~18.7ng(나노그램, 1ng=10억 분의 1g)이었다. 반면 25도에서는 0.62~22.6ng, 70도에서는 2.89~38.9ng이 검출됐다.

안티몬(Sb)은 4도에서 1.88~8.32ng, 25도에서는 2.1~18.4ng, 70도에서는 20.3~2604ng으로 측정됐다. 생수를 높은 온도에 오래 보관하면 페트병에서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유해물질이 녹아 나온다는 것이 플로리다대 연구팀 논문의 결론이다.


비스페놀A는 플라스틱을 말랑말랑하게 해 모양을 만들기 쉽게 해주는 가소제로 사용된다. 간이나 뇌 기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알려져 201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는 유아용 젖병이나 아동용 컵에는 사용을 금지했다. 안티몬은 백색 광택이 나는 금속인데 세계보건기구(WHO)가 발암성 물질로 분류했다.

생수병을 햇빛에 노출시켰다고 유해물질이 당장 몸에 해로운 수준까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생수를 한두 번 마신다고 문제가 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가울 리 없다. 최근 얼음정수기에서 중금속인 니켈이 검출됐다는 사실에, 공기청정기 필터에서 유해물질인 옥틸이소티아졸론(OTI)이 방출되고 있다는 것에 분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더 깨끗한 것을 원해 돈을 들였는데, 오히려 유해물질에 노출됐다는 데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다.

뜨끈한 생수가 사라지도록 하는 건 어렵지 않다. 역지사지(易地思之)다. 내가 마실 물이라면 길바닥에 그렇게 내놓겠느냐 하고 스스로 물어보면 된다.


3. [뉴시스][리뷰]넬라판타지아 '영롱한 목소리' 폭염도 녹였다

"아~, 아~, 아~." 웅장함이 인상적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테마곡 '더 팬텀 오브 디 오페라'의 하이라이트. 

영국 출신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56)이 한 단계씩 음을 높이며 절정으로 나아가자 24일 저녁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내 열기는 바깥 폭염보다 뜨거워졌다. 3000여 관객은 단숨에 환호성을 터트렸고, 일부 관객은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기립 박수를 보냈다. 

3년 만에 다섯 번째 내한공연한 브라이트만은 어느새 5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에도 영롱한 목소리를 뽐냈다. 아시아 투어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부른 글로벌 히트넘버 '넬라 판타지아'로 시작한 이날 무대는 몽환과 환상이 점철된 공연이었다. 

70년대 전성기를 구가한 록 그룹 '캔사스(Kansas)'의 대표곡으로 잔잔한 기타와 세상을 달관한 듯한 뉘앙스가 인상적인 '더스트 인 더 윈드(Dust In The Wind)'도 그녀의 목소리를 입으면 꿈결 같은 서정성이 더해졌다. 

60인조 프라임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사라 브라이트만의 밴드가 함께 들려준 연주는 브라이트만의 목소리에 웅장함을 제대로 입혔다. 

오페라, 뮤지컬 넘버, 팝을 넘나드는 팝페라 가수들이 성악가와 특히 다른 점은 음향증폭장치인 마이크를 쓴다는 점이다. 브라이트만의 목소리를 듣는 내내 마이크 없이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음향증폭장치가 세밀하게 담지 못하는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의 여운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1부 마지막에 들려준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 '네순 도르마'에서는 성악가 못지 않은 성량을 자랑한 동시에 부드러움도 뽐냈다. 브라이트만이 보첼리와 불러 유명한 '타임 투 세이 굿바이'를 2부 마지막에 들려줬는데, 팬들의 환호에 진심으로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 만큼 2시간여동안 팬들을 사로잡은 그녀다. 

앙코르 첫곡으로 들려준 '바르샤바 협주곡'에서는 마이크 대신 지휘봉을 들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이벤트도 선보였다. 이날 메인 테너로 나선 마리오 프랑골리스 등 게스트 가수들과 함께 부른 앙코르 두 번째 곡 '러닝'의 격렬함과 웅장함은 화룡점정이었다. 관객들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브라이트만을 연호했다. 

브라이트만은 26일 대구 엑스코·27일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 체조경기장으로 투어를 이어간다.


4. [머니투데이][기자수첩]하인리히 법칙과 '역전세난'이 주는 경고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발생하고 있다.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대출을 받아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기도 한다. 
일시적 현상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그간 정부가 쏟아낸 부동산시장 활성화 정책의 후유증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입주 물량 급증으로 역전세난이 발생한 2004년, 2008년과 비교하기도 한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송파구 아파트 전세가격은 전달 대비 0.05% 하락했다. 서울 25개 구 가운데 전셋값이 유일하게 하락한 지역이다. 실제 송파구 소재 A아파트 전용면적 82㎡ 전셋값은 올초 3억8000만원에서 6월 현재 3억6750만원으로 떨어졌다.

역전세난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다. 우선 많은 아파트가 일시에 공급돼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되면서 발생한다. 경기 침체도 이유로 꼽힌다. 경기가 전반적으로 악화되면서 주거지 이동 수요가 감소, 전세 수요가 줄어든다는 것. 

연말부터 전국적으로 입주물량이 쏟아질 예정인 데다 경기 불확실성도 확대될 수 있어 역전세난은 서울 강남권에만 머물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역전세난이 발생, 기존 전세보증금보다 시세가 하락할 경우 집주인들은 은행 대출이나 매매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급매 물량이 늘어나면 집값 하락 우려도 커진다. 

반면 세입자의 경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새 아파트 입주 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입주율이 저조한 불 꺼진 아파트가 속출할 수도 있다. 결국 공급 과잉이 부메랑이 돼 집주인, 세입자 모두가 피해를 보는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정부는 올 초까지 공급 과잉 문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섣부른 대응이 부동산 시장에 찬물을 끼얹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지금은 입장을 바꿨다. 공급에 인위적으로 개입하기보다 건설업계 스스로 판단해 물량을 조절하기 바란다고 선을 긋긴 했지만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주택분양이 계속 이뤄진다면 2~3년 이후에는 공급과잉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앞서 수많은 작은 징후들이 발생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은 어떤 상황에서든 오류 등을 신속히 발견·대처해야 한다는 의미와 함께 초기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지금의 역전세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부가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할 때다.


5. [서울신문][자치광장] ‘6000년 선사 마을’ 품은 서울/이해식 서울 강동구청장

최근 ‘마을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 서울의 마을은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마을의 흔적이 생생한 서울 암사동 유적에 주목해야 한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처음 드러난 암사동 유적은 여러 차례 발굴조사 결과 선사시대부터 약 40기의 집터가 발견되었다. 현재까지 발굴된 가장 큰 규모이다. 주요 유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빗살무늬토기’가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전체를 삼등분하여 각기 다른 문양을 그려 넣었는데 손톱무늬, 무지개무늬, 문살무늬, 생선뼈무늬 등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양을 뽐내고 있다. 토기 외에도 수렵과 어로 활동을 짐작하게 하는 그물추와 갈판, 갈돌, 돌화살촉, 돌도끼, 긁개, 탄화된 도토리 등도 있다.

신석기 시대인의 생활상을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약탈과 전쟁의 도구들 없이 오로지 생활도구들만이 발굴됐다는 사실에서 그 시대가 얼마나 평화로웠을까를 짐작해볼 수 있다.

올해 4월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지원으로 재개된 암사동 유적 발굴조사에서는 신석기시대 유구뿐 아니라 옥으로 만든 장신구가 처음으로 출토되었다. 매우 질이 좋은 연옥에다 형태도 정교해서 당시의 미적 수준이 우리의 일반적 인식을 훌쩍 뛰어넘는다.

양양 오산리 유적을 세계 고고학 사전에 올리고 암사동 유적 발굴에도 참여한 바 있는 세라 넬슨은 2002년 ‘영혼의 새’라는 장편소설을 썼다. 한국의 신석기 유적이 배경인 이 소설은 당시 사회가 모계 사회의 종교 공동체였음을 가정하고 있는데, 다양한 생활도구들이 제사의식에 쓰였고 미적인 도구들이 동원되었음을 표현하고 있다. 암사동 유적에서 옥 장신구가 발견된 것은 이 대목에 비추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적에서 발굴된 유구와 유물들로 우리가 신석기 시대인의 생활상을 모두 알 수는 없다. 좀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추가적인 발굴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우리의 과제는 상상력을 좀더 발휘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강동구는 암사동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더 흥미로운 문화·예술적인 성과를 축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올해 10월 어김없이 선사문화축제가 암사동 유적지에서 열린다. 특별히 ‘서울 암사동 유적’의 학술적인 가치 조명을 위한 국제학술회의도 열린다. 고령임에도 넬슨도 온다고 한다. 광대한 상상력의 원천이 잠재된 축제와 학술회의에 많은 분의 참석을 기대한다.

이런 노력으로 서울을 600년 도시에서 한성백제의 2000년을, 더 나아가 선사유적의 6000년을 품은 도시로 부를 수 있는 날을 함께 만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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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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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2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청와대 내부 위기관리 능력 이 정도였나

청와대 주변이 시끄럽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비리 의혹에 연루되고도 권력 뒤에 숨어 버티거나 호가호위하는 일이 잇따르며 벌써부터 정권말기 현상을 연출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청와대는 오불관언이라는 듯 한가한 논평이나 내놓으며 레임덕을 재촉하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은 어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여기 계신 여러분도 소명의 시간까지 비난을 피해가지 마시고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언론으로부터 갖가지 의혹을 받고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힘을 실어준 언급으로 해석된다. 정연국 대변인도 그제 출입기자들에게 우 수석의 비리 의혹에 대해 “본인이 사실무근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정 대변인은 현기환 전 정무수석의 총선 공천개입 논란에 대해서도 “현 전 수석의 발언은 개인이 한 말”이라고 일축했다.

우 수석은 진경준 검사장 인사 부실검증에서부터 처가 땅 거래 알선과 아들의 의경 꽃보직 등 양파껍질 까듯 의혹을 쏟아낸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기자회견에서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검찰이) 부르면 가야지만 (가서 할 말은) ‘모른다’ ‘아니다’밖에 없다”고 밝혔다. 검찰이 현직 민정수석을 소환하기도 거북한 터에 모르쇠로 일관하겠다고 미리 못 박았으니 수사 결과는 보나마나다. 권력의 오만이 진하게 풍기는 대목이다.

현 전 수석은 현직이던 지난 1월 서청원 의원과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려는 김성회 전 의원을 회유하면서 “나에게 하는 약속은 대통령에게 하는 약속”이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말대로라면 박 대통령이 당의 공천에 개입했다는 것이고, 사실이 아니라면 그가 대통령을 팔아 농간을 부렸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박 대통령이 실제로 공천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의 월권을 엄중히 꾸짖고 선관위에 진상 규명을 의뢰해야 마땅하다.

사드 배치 논란이나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중도 퇴진에 따른 나라 망신 등 청와대가 책임을 회피한 현안은 이밖에도 수두룩하다. 청와대는 이제 박 대통령의 ‘아름다운 퇴장’을 생각할 때다. ‘대통령 흔들기’ 따위의 진부한 핑계는 더 이상 안 통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국정을 책임진다는 각오를 다지고 호가호위하는 무리들을 결연히 잘라내는 게 급선무다.

2. 자꾸 벌어지는 대기업·중소기업 임금격차

기업 간 임금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차이는 연간 3181만원으로 2014년(2955만원)보다 226만원 더 벌어졌다. 대기업 정규직 평균 연봉이 6544만원으로, 중소기업(3363만원)에 비해 2배나 많게 나타난 것이다. 그 차이가 자꾸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우려스럽다.

이러한 임금 격차가 소득 양극화로 고스란히 이어진다는 점이 문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공개한 ‘아시아 불평등 보고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IMF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국내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5%에 이르렀다. IMF가 조사 대상으로 삼은 아시아 22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10% 부자들이 전체 소득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으니 소득 양극화가 커질 수밖에 없다. 소득 양극화가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적 추세임에 틀림없지만 우리의 ‘부(富)의 쏠림현상’은 매우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우리의 소득 양극화 진행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빠르다는 점도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IMF가 1995년 우리의 양극화 현황을 조사할 당시만 해도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에 그쳤다. 그런데 불과 18년 만에 비중이 16% 포인트나 늘었다. 그 사이 다른 아시아 국가 전체 평균이 1~2%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친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소득 양극화 현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양극화가 지속된다면 경제성장을 갉아먹기 마련이다. 소득 감소로 중산층이 붕괴되면 구매력이 급감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만성적인 내수부진과 장기 경기위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를 소득 양극화 치료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일부 대기업 노조들은 임금을 더 올려달라며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귀족 노조’라는 비난을 들을 만도 하다. 소득 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불안은 자칫 사회 근간을 뒤흔드는 뇌관이 될 수도 있다. 정부도 유망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고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소득 불균형 개선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서울신문]

3. ‘포용적 성장’ 추세 정착되게 세제 개편해야

내년에 적용될 세법 등 세제 개편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새누리당과 정부가 어제 오전 당정 협의회를 열어 조세 체계를 고용친화적으로 개편하기로 큰 틀에서 의견을 모으면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6년 세법 개정안은 경제 활력을 제고하고 민생 안정을 지원하는 데 역점을 두고 마련했다”고 언급했다. 작금의 취업난이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에 따른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을 고려했을 때 이런 큰 방향에 대해 누가 토를 달겠나. 다만, 당정은 갈수록 커지는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해소에 유의하기를 당부한다. 사회적 양극화를 누그러뜨리는 ‘포용적 성장’이 추세로 자리 잡도록 세제 개편으로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며칠 전 고액의 평균 연봉을 받는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노조가 동시 파업에 나서 국민의 눈총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른바 ‘귀족 노조’ 소속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10%도 안 된다. 그런데도 지난해 대기업 정규직의 평균 연봉은 6544만원인 데 비해 중소기업 정규직 평균 연봉은 3363만원에 불과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어제 내놓은 ‘2015년도 소득분위별 근로자 연봉 분석’ 보고서에 적시된 자료다. 특히 연봉이 2000만원에도 못 미치는 근로자도 535만명에 달했다. 물론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아예 비교 대상에서도 빠졌다. 이러니 우리 사회의 소득 양극화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음은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다.

어제 당정 협의회에서 새누리당 측은 저출산 문제와 해운업계 고용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정부에 요구했다. 장기 불황으로 구조조정 홍역을 치르고 있는 해운업체가 운항을 않을 때는 법인세를 감면하고, 둘째 아이 출산 때 근로자 세액공제를 확대해 달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세제 개편 항목의 필요성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소득 양극화의 심각성을 간과하는 듯한 느낌도 지우기 어렵다.

대·중소기업 간, 그리고 정규·비정규직 간 소득 격차를 방치하면 사회 안정을 해치는 것은 물론 결국엔 우리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대·중소기업 간 하도급 구조 등으로 인해 고용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들이 자생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이다. 산업·금융 정책뿐만 아니라 세제 지원을 통해 우량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할 이유다. 당·정은 한국 경제가 당면한 위기가 고용 불안뿐만 아니라 심화되고 있는 소득 격차임을 직시하고 알맹이 있는 세제 개편안을 내놓기 바란다.

4. 가습기 이어 또 독성물질 검출된 공기청정기

우려가 현실이 됐다. 미세먼지를 줄이겠다고 가정에 들여놓은 공기청정기와 모든 자동차에 부착된 에어컨 필터에서 유독물질이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습기 살균제 파동에 이어 항균 필터에도 독성물질이 함유됐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환경부는 그제 공기청정기와 차량 에어컨에 사용하는 항균 필터에 대한 실험에서 인체에 해로운 옥틸이소티아졸론(OIT)이 방출되는 것을 확인하고, 유통 중인 항균 필터를 전량 수거하기로 했다. OIT는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돼 문제가 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유사한 물질로 환경부가 2014년 유독물질로 지정했다. 놀라운 것은 이 물질이 함유된 필터를 사용한 공기청정기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코웨이, LG, 삼성, 쿠쿠, 위니아, 프렉코, 청호나이스 등 유명 7개 회사 제품들이라는 점이다.

자동차 에어컨에 사용하는 현대모비스가 판매한 필터와 두원에서 판매한 필터에서도 이 물질이 검출됐다. OIT가 함유된 항균 필터 88개 모델 가운데 두원 제품 1개를 제외하고 87개 제품을 3M이 생산했다고 한다. 3M은 그동안 OIT가 배출되지 않거나 아주 소량이어서 인체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환경부 실험 결과는 달랐다. 특히 2000년 말부터 우리나라에서만OIT가 포함된 항균 필터를 개발,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기청정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필터에 인체에 해로운 물질을 넣었다는 것은 납득이 안 되는 대목이다.

환경부 조사 결과 대부분의 필터는 사용 시간이 늘수록 OIT 함량은 줄어들었으며, 인체에 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닌 미량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모비스가 판매한 일부 항균 필터 모델과 쿠쿠 공기청정기에 사용된 일부 항균 필터 모델에서는 인체에 해로운 수준의 OIT가 배출됐다. 정부는 국민 건강을 위해 유통 중인 항균 필터 수거에 나섰지만 정작 어느 회사 공기청정기와 어떤 차종에 항균 필터가 사용됐는지는 밝히지 않아 소비자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기업 눈치를 보느라 국민의 건강과 알권리는 뒷전인 ‘소극 행정’이 아닐 수 없다.

항균 필터를 사용한 공기청정기와 차종도 밝혀야 한다. 아울러 피해 사례가 있는지 정부 차원에서 조사해야 할 것이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제품들도 지속적으로 인체 유해 여부를 조사하기 바란다.

5. 우 수석, 국정에 누 안 되게 직 내려놓는게 순리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관련해 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우 수석은 처가와 넥슨의 부동산 거래 관여 및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몰래 변론’ 의혹 등을 강력히 부인했다. 아들의 군 복무 특혜 의혹에 대해선 ‘아들 문제까지 거론돼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우 수석으로선 진경준 검사장의 비리 의혹 불똥이 자신에게 튄 것이 억울할 수도 있다. 정황만 가지고 그가 큰 비리라도 저지른 양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날 ‘이런 문제를 가지고 공직자가 관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우 수석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우선 그의 말 바꾸기가 하나씩 들통나고 있다. 그는 넥슨이 처가의 땅을 사 줬다는 첫 보도 직후 ‘매매에 전혀 관여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틀 만에 ‘계약하는 자리에 갔지만 장모님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였다’고 말을 바꿨다. 이젠 우 수석과 장모, 딸, 넥슨 관계자 4명만 방에 들어가 계약서를 썼다는 주장이 계약에 관여했던 사람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몰래 변론’ 의혹도 마찬가지다. 탈세 등의 혐의로 이미 구속된 홍만표 변호사와 동업하며 선임계 없이 변론했다는 의혹에 대해 처음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2013년 다단계 유사 수신업체 관련 사건을 공동 변론하고 수임료 5000만원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보도가 나오자 ‘그거 딱 한 건 했다’고 뒤로 물러섰다.

거짓말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그가 진 검사장을 통해 부동산 매각을 부탁했거나, 진 검사장이 다리를 놔 줬다는 의혹을 그저 근거 없는 소설로 치부하기는 어려워졌다. 다단계 업체에 대한 ‘몰래 변론’을 시인한 마당에 정 전 대표와 브로커 이민희씨를 전혀 모른다는 해명도 신뢰하기 어려워졌다. 우 수석은 이미 모든 언론으로부터 표적이 된 처지다. 각종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고 있다. 처가 부동산 매매 때 다운계약서 작성, 가족 명의의 80억원대 부동산 투자회사 보유, 부인과 자매들의 화성시 농지 불법 보유 등의 의혹이 불거진 상태다.

우 수석이 결백만 내세워 사퇴를 거부하기엔 상황이 심각하다. 북한 핵 문제 대응과 경제 살리기에 매진해야 하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그의 사퇴 없이 검찰 수사가 제대로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민정수석은 검찰을 비롯한 정부 고위직 인사를 위한 검증을 하는 자리다. 검찰 인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이번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라인이 우 수석과 학연·지연으로 얽혀 있다고 한다. 아무리 소신 있는 검사도 자신의 앞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현직 선배를 엄정하게 수사하기는 어렵다. ‘셀프 수사’란 비웃음을 살 수도 있다. 정말 결백하다면 직을 내려놓고 당당히 수사를 받는 게 순리다.

[중앙일보]

6. 아이들 인성교육, 범국민 프로젝트로 실천하자

지난해 7월 21일 시행된 ‘인성교육진흥법’이 첫돌을 맞았다. 2012년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대구 중학생 사건과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시민을 육성하기 위해 2014년 말 제정된 법이다. 국회·교육부·여성가족부 등 11개 기관이 ‘휴마트 인성교육 캠페인’을 벌이고 국민이 공감하면서 여야 의원들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초·중·고교 인성교육을 의무화한 세계 최초의 법이란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인성교육법의 핵심 가치는 예·효·정직·책임·존중·배려·소통·협동 등 8가지다. 이를 통해 입시·성적 경쟁에 짓눌려 피폐해진 아이들의 정서를 살리고 건전한 가치관을 심어줘 책임감·배려심·자존감이 충만한 공동체 시민의식을 키워주자는 것이다.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의 잇따른 막말, 재벌가 자손들의 갑질, 120억원 ‘주식 대박’ 진경준 사태 등을 접한 국민은 올바른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막말과 극단적 우월·이기주의, 품격 훼손도 전인교육 결핍에 근본적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일보가 인성교육법의 1년 시행 성과를 보니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한국교총에 의뢰해 교사 804명에게 물어보니 32%가 법이 제정·시행 중인 사실조차 몰랐다. 인성교육을 하랬더니 두발 단속만 하는 학교도 있었다. 게다가 교사의 절반가량은 ‘인성교육 5개년 종합계획’에 깜깜이였다. 교사들이 이 정도니 일반 시민들은 과연 어떻겠는가. 정치인과 정부가 법 제정 생색만 낸 탓이 크다. 이대로라면 학교폭력·집단 왕따·성추행·교사폭행 같은 불미스러운 일을 결코 줄일 수 없다.

인성교육진흥법이 겉돈 1차 책임은 교육 당국에 있다. 이 법은 정부가 내놓은 5개년 계획에 따라 교육부 장관과 시·도교육감이 시행계획을 마련해 매년 추진 성과와 활동 평가를 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내놨어야 할 종합계획이 올해 2월에 나오자 새 학기 준비에 분주했던 일선 학교가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누리과정 등을 둘러싼 교육부와 교육감들의 대립으로 시행계획을 세운 곳이 거의 없었다. 관련 예산도 빈약하다. 올해 겨우 5억원 을 책정하더니 내년엔 3억6000만원으로 줄어든다. 말만 앞세웠던 게 아닌지 묻고 싶다.

인성교육이 실효를 거두려면 우리 모두 나서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나서야 한다’는 말처럼 가정·학교·사회·정부가 동참하는 국가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 법에 앞서 실천이 중요한 것이다. 우선 교육부가 모델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단순한 교실 안 도덕·윤리교육 대신 체험을 통해 몸으로 익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자유학기제를 통한 체험도 그 방법이다. 교육청과 학교도 나서자. 특히 친(親)전교조 교육감들은 정부에 대립각만 세우지 말고 교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적극 동참하기 바란다. 당연히 ‘밥상머리’ 교육 등 가정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야 인성교육이 범국민 프로젝트로 뿌리내릴 수 있다.

[매일경제]

7. 경부간선도로 지하화 교통·환경 문제 풀 묘안이다

경부간선도로 한남IC와 양재IC 약 6㎞ 구간을 지하화하는 계획안이 나왔다. 한국도시설계학회 주최로 지난 20일 열린 '경부간선도로 지하화, 비전과 전략' 세미나를 통해 발표됐는데 요지는 이 구간 지하 40m에 왕복 12차로 복층 고속도로를, 지하 10m에 왕복 8차로 완행도로를, 지상에 4차로를 만들고, 지상 IC 인근에는 연구개발(R&D)과 예술문화시설 등 고밀도 복합지구로, 지상 도로에는 축구장 84개 규모의 공원을 조성한다는 내용이다. 

이 구간은 평소 교통 정체가 극심하고 소음과 대기오염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많아 환경 개선이 시급했는데 이를 해결할 묘안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서초구가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이 구간의 지하화에 찬성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87%에 달했다고 하니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경부간선도로 지하화는 환경과 교통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도시 공간 구조를 재생하고 정체된 경제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외국에서는 교통 정체를 해결하고 도심 환경 개선을 위해 도로를 지하화한 사례가 적지 않다. 미국 보스턴시가 1991년 공사에 들어가 2007년 말 완공한 '빅디그(Big Dig)'가 대표적이다. 빅디그는 도심에서 외곽으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를 지하화하고, 지상에는 대형 공원과 녹지를 조성했다는 점에서 경부간선도로 지하화 계획안과 유사하다. 스페인 마드리드 M30도 정체 구간을 지하도로로 만들고 지상에 하천공원과 산책로, 자전거길 등 친환경 녹지를 조성한 벤치마킹 사례로 꼽힌다. 다만 공사 중 또는 완공 후 사고가 났고, 공사비가 당초 예상보다 크게 늘어났다는 점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경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이 실행되려면 서울시의 역할이 중요하다. 세미나에서 제시된 설계안을 토대로 사업 타당성 조사를 서울시가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실행 계획을 확정해 공사에 들어가면 정부와 협력해 대상 지역의 부동산 가격 급등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국토 공간 재편과 신성장 동력 확보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8. 벤처 3만개 시대 창업생태계 선순환 끌어내길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개설 1년을 맞은 판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해 국내 창업·벤처 생태계가 활성화되고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혁신적인 창업가들의 모습이 고무적이라고 격려했다. 2014년 9월부터 작년 7월까지 전국 17개 광역시도에 순차적으로 들어선 창조경제혁신센터는 1년 새 2543개 기업을 지원해 2596억원의 투자유치 성과를 거둔 것으로 집계됐다. 혁신센터에서 지원한 우수 보육기업 40개가 이달 말 미국 LA에서 열리는 글로벌 로드쇼에도 참가해 기업설명회(IR)에 나설 정도로 안착했다. 전국 혁신센터들은 스타트업 육성과 중소기업 혁신의 전진기지로서 역할을 해 올 6월 현재까지 1063개의 창업기업을 육성했고, 1120명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6400여 명에게는 맞춤형 교육훈련을 시켰다니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의 이 같은 지원에 힘입어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도 2015년 말 기준 국내 벤처기업 수가 마침내 3만개를 돌파했다. 대학에서의 창업 동아리도 2013년 1800여 개에서 2년 만에 4070개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엔젤투자나 크라우드펀딩 등을 통한 신규 벤처 투자 금액도 지난해 말 기준 2조858억원까지 늘어 벤처 창업 환경이 여러모로 호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IT기업들의 클러스터로 자리를 잡고 있는 판교밸리에는 현재 1121개 기업이 들어서 총 70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경기도는 판교밸리를 첨단기업 1600개, 고급인력 10만명이 일하는 단지로 확대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벤처기업들에 바람직한 창업 생태계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데 용이한 투자 유치와 인력 조달일 것이다. 초기 투자금 확보라는 첫 관문을 넘어야 하고, 창업 후 부닥치는 규제도 뛰어넘어야 한다. 대기업들의 견제도 버텨내야 한다. 국가 전체로는 선순환 구조의 창업 생태계 조성과 플랫폼 구축을 뛰어넘어 외연을 확장해 가야 한다. 기왕 구축한 전국의 혁신센터를 창업 인큐베이터로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역별 특화 분야를 최대한 살려 시너지를 극대화할 필요도 있다. 아울러 벤처 창업을 촉진하려면 시행착오와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9. 대우건설 사장 하나 뽑는데도 파행 거듭 이유 뭔가

대우건설 사장 선임을 둘러싼 파행과 잡음이 도를 넘었다. 대우건설 사장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는 당초 현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과 이훈복 전무를 상대로 지난달 10일 최종 면접을 실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면접 당일 돌연 사장 선임 절차를 중단한 뒤 외부인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공모기간도 늘리는 등 온갖 무리수 끝에 재공모를 진행했다. 지난 20일에는 최종 후보로 압축된 조응수 전 대우건설 부사장과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을 상대로 최종 면접을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이 역시 불발됐다. 규정과 절차가 오락가락할 뿐만 아니라 납득하기 어려운 의사결정 장애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사추위는 허울일 뿐 자기 사람을 내려보내기 위한 권력 실세들 간의 힘겨루기가 파행의 근원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대우건설의 모회사는 지분 50.75%를 갖고 있는 산업은행이다. 사추위원 5명 중에 산은 임원이 2명이나 참석한다. 산은이 정치권 외압에 따라 특정인을 사장에 앉히려고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동걸 산은 회장 자신도 정치권의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장급 인사는 산은이 아닌 외부에서 내정한다는 설 아닌 설이 끊임없이 나돈다.

그렇다 보니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는 국민적 시각은 더욱 싸늘할 수밖에 없다. 산은의 또 다른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이 공적자금 7조원의 '세금 귀신'으로 전락한 게 엊그제다. 정권마다 반복된 낙하산 폐해가 결정적이었다. 많은 논란 속에 산은 회장에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로 나간 홍기택 씨가 한국 몫 부총재직만 날려버린 채 나라 망신을 시킨 것도 낙하산의 후유증이다. 그런데 또다시 낙하산 패악이라니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자기 사람만 심겠다는 후안무치 아닌가.

대우건설은 시공능력 평가 3위의 한국의 대표 건설회사다. 해외 매출 비중도 40%에 달한다. 국제적인 식견 없이 정치권 인맥만 쌓은 인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다. 산은은 법과 규정, 절차에 따라 원칙대로 사장 선임 과정을 다시 밟으라. 기업은 물론 국가경제까지 거덜내는 낙하산 폐해는 이제 끊어야 한다.

[세계일보]

10. 해도 너무한 검찰 비리… 언제까지 개혁 미룰 셈인가

날마다 터져나오는 검사 관련 비위 보도를 보면 도대체 우리가 우러러보던 법치 확립의 첨병인가 싶다. 검찰 출신으로 사정기관 총책인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법 위에서 노는 듯하다. 우 수석의 부인 이모씨는 경기도 화성에 밭을 소유하고 있지만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있다. 과거 고위공직자 후보들은 가족의 농지법 위반 때문에 사퇴했는데 우 수석에게는 예외이다. 그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다. 처가 부동산 매매를 둘러싼 의혹이 제기됐을 때 “매매에 전혀 관여한 바 없다”고 했다가 이틀 만에 “계약서 작성 당일 장모를 위로하러 갔다”고 말을 바꾸었다. 또 공인중개사를 통한 정상적인 거래라고 주장했는데 관할구청에는 당사자 거래로 신고돼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멀쩡하다. 

진경준 검사장은 상식 이하의 방식으로 치부했다. 넥슨에서 4억여원을 뜯어내 비상장 주식을 사고팔아서 120억여원을 벌었다. 고급 승용차도 받아냈다.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탈세를 조사하다가 내사종결 처리한 대가로 그의 처남은 청소용역업체를 차려서 한진계열사로부터 134억원어치 일감을 받았다. 진 검사장이 거짓말을 하는 동안 법무부와 검찰은 우 수석의 말을 좇아서 개인문제라며 비호했다. 정상적인 국가 조직이 아니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는 전관예우를 받으며 로비하고 탈세했다. 서울 남부지검에서는 상사의 모욕을 받은 검사가 자살했다. 그가 당한 언어폭력 및 인격모독 증거가 SNS 문자메시지로 남아 있는데도 적당히 넘어가려 하고 있다.

내부만 썩은 게 아니다. 이 정부 내내 수사권·기소권을 마구 휘둘렀다. 정권 초기에 검찰은 KT 이석채 전 회장을 샅샅이 뒤져 기소했으나 지난해 무죄판결이 나왔다. KT&G 민영진 전 사장에 대한 수사에서도 검찰이 완패했다. 법치 확립에 쓰라는 칼을 보복용으로 잘못 쓴 탓이다. 온갖 퇴행적인 행태가 반복되는데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입맛대로 수사하거나 중단할 수 있고 기소도 저울질할 수 있다. 

도둑을 잡으라고 맡긴 칼이 용도에 맞지 않게 쓰이면 회수하는 게 순리다. 정치권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을 논의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검찰의 권한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 법무부도 검찰 출신이 장악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검찰 개혁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추왕훈의 데자뷔> 포켓몬의 아버지 타지리 사토시

증강현실(AR) 스마트폰 게임 포켓몬 고가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이후 한국에서는 "우리는 왜 포켓몬 고와 같은 상품을 만들지 못하나"라는 한탄과 자조의 목소리가 높다. 포켓몬 고 인기의 바탕인 포켓몬스터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면 그에 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20년 전 포켓몬스터 게임을 개발한 타지리 사토시(田尻智)는 어린 시절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빠져 사는 '오타쿠'(어떤 분야에 빠져들어 몰두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일본말)였다. 1965년 도쿄(東京) 인근 마치다 시(市)에서 태어난 타지리는 곤충 채집이 취미여서 친구들 사이에서 불리는 별명이 '곤충 박사'였다고 한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마치다는 시골 마을이어서 타지리는 산과 들을 쏘다니며 곤충이나 올챙이, 물고기를 잡으며 시간을 보냈다. 포켓몬 마스터가 되기 위해 집을 떠나는 포켓몬스터의 주인공 지우의 꿈에는 타지리의 어린 시절이 투영돼 있다. 포켓몬스터 일본판에서는 지우의 이름이 다름 아닌 사토시다.

타지리는 곤충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공부는 그리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마치다에 개발 붐이 일면서 곤충을 잡으러 다니는 것도 어려워졌다. 타지리는 대신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같은 오락실 게임에 빠져들었다. 타지리는 게임을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게임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분해를 해보는가 하면 게임기 업체의 아이디어 공모에 참가하기도 하면서 점점 더 오타쿠가 돼 갔다. 자폐증과 비슷한 증상의 아스퍼거장애를 앓은 것도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한 이유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닛산자동차 판매사원이었던 아버지와 주부였던 어머니는 이런 타지리가 못마땅했다. 아버지는 타지리를 도쿄전력에 취직시키려고 했지만 타지리는 말을 듣지 않았고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뒤 전문대에 입학했다.


전자공학과 컴퓨터 사이언스가 전공이었던 타지리는 '게임 프리크'라는 잡지를 만드는 데 더 열중했다. 비록 손으로 쓴 '기사'를 복사해 스테이플로 찍어 만든 어설픈 잡지였지만 잘 나갈 때는 한편을 1만 권이나 팔았을 정도로 꽤 인기를 끌었다. 이 잡지를 보게 된 만화가 스기모리 겐((杉森建)이 연락해 온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이 평생의 동지가 된 것은 가외의 소득이었다. 당시 인기를 끌던 모든 게임을 분석하고 평가하던 두 사람은 "제대로 된 게임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1989년 '게임 프리크'는 게임 개발업체로 변신했고 이듬해 두 사람은 닌텐도의 후원을 받아 포켓몬 게임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그러나 작업은 쉽지 않았다. 게임 개발에 6년이나 걸리면서 생활비가 부족해진 타지리는 아버지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1996년 마침내 완성된 포켓몬 게임의 초기 판매실적은 좋지 않았고 큰 기대를 모으지도 못했다. 당시만 해도CD롬으로 작동되는 컴퓨터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이 부상하던 때여서 콘솔 게임기의 시대는 갔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피카츄와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가 전 세계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미디어의 형식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데뷔작 '포켓몬 레드·블루'는 일본에서 1천만 개 이상 팔렸고 전 세계적으로 2천364만 개의 판매고를 올린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타지리는 이후에도 계속된 포켓몬 시리즈의 제작에 참여했다.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2억8천만 개의 게임 타이틀, 10개 언어로 된 215억 장의 카드, 17편의 영화 등의 매출을 통해 지난해까지 모두 577억 달러(약 65조7천8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쯤 해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에서는 타지리와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없는가. 포켓몬스터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1999년 말 타지리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과 포켓몬스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도시화로 인해 지금의 어린이들이 곤충을 잡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게임을 만들었다. 포켓몬스터에는 비디오 게임이나 TV에서 본 울트라맨과 캡슐 괴물과 같은 내 어린 시절의 경험이 하나로 녹아들어 있다."

한국이라고 해서 게임과 TV, 만화에 빠진 오타쿠들이 없을 리 없다. 타지리의 부모가 그랬듯 일본의 부모들도 이런 자식들을 야단치면서 공부나 하라고 닦달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차이는 한국의 오타쿠들은 대부분 억지로 대학에 진학해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기 위해 애를 쓰는 반면에 일본에서는 타지리처럼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한국보다는 훨씬 더 많다는 점이다. 타지리 뿐만 아니라 그의 동료 스기모리 겐이나 일본 게임업계의 대부이자 타지리의 멘토인 미야모토 시게루(宮本茂) 등 한때의 오타쿠들이 일본 게임의 성공 신화를 쓴 주역이 돼 있다. 게임에 빠져 공부는 뒷전인 당신의 자녀를 그냥 내버려 두시라. 그것이 '뻔한' 정부 대책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콘텐츠산업 진흥책이 될 수 있다. 어차피 대학에 진학해 봐야 대졸 학력에 걸맞은 일자리는 그중 10%에게 돌아갈까 말까다.


2. [머니투데이][기고]"이번 여름휴가땐 승마를 즐겨보자"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선진국에서 승마는 대중화된 레저 스포츠로 각광 받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프랑스에서 정기적으로 승마를 즐기는 인구는 전체 인구의 3%인 220만명, 시장규모는 9200억원에 이른다. 독일은 전체 인구의 1.5%인 124만명이 정기적으로 승마를 즐기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승마인구는 약 4만명 정도이며, 경제규모는 1000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국민소득 증가 등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승마 대중화가 점점 자리 잡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현장 수요 증가 및 정부의 정책적 지원 등에 힘입어 승마시설은 2012년 293개에서 2014년 457개로 늘어났고, 관련 일자리도 같은 기간 1만 8000명에서 2만 4000명으로 확대되는 한편, 관광과 연계된 승마 프로그램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히 보는 관광에서 벗어나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여행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해변과 산길에서 승마를 즐기며 색다른 휴가를 보낼 수 있는 곳도 많이 있다. 

수도권의 대표적인 여름 휴가지로 유명한 경기도 양평은 승마체험이 입소문을 통해 인기를 얻으며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이곳에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청소년 수련시설과 연계한 승마캠프를 운영중이다. 승마체험, 수영, 캠핑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체험승마 비용은 1인당 4만원 정도이다.

경기도 포천의 승마시설도 매력적인 관광지다. 포천의 대표 승마시설은 농촌관광과 연계하여 관광농원과 캠핑을 연계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1인당 5만원 정도면 말사육, 승마체험, 캠핑 등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어 가족단위 이용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와 같은 승마시설은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데, 위치한 장소와 가격정보를 제공하는 승마포털 사이트인 호스피아(www.horsepia.com)를 활용하면 승마체험을 보다 편리하게 이용 가능하다.

승마는 도시민들에게 색다른 경험과 추억을 제공하는 건전한 레저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개방화·고령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유망산업이기도 하다. 실제 말산업은 1·2·3차 산업이 융복합된 대표적인 6차산업 모델로서 농가에 새로운 소득원으로 부상했다.

승마 활성화에 따라 현재 9000두 수준인 승용마 공급이 더욱 늘어나게 되고, 승마와 관련된 의류,장구류 등 용품 제조업도 활성화 되며, 관광 및 승마를 활용한 재활훈련, 청소년 교육 등 서비스 제공도 확대될 수 있다. 

이렇듯 말산업은 저성장시대에 우리 경제에 새로운 성장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농식품부는 이를 위해 말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2011년 ‘말산업육성법’을 제정하고, 2012년에는 ‘제1차 말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말산업 인프라를 확충한 바 있다. 

이에 더해 말산업이 시장수요에 맞게 성장할 수 있도록 기승자 보험 도입, 전문 인력 육성 및 전문 승용마 확보, 유소년 승마 활성화 등의 내용을 담은 ‘제2차 말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을 올해 말까지 수립하여 승마산업이 체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과제를 발굴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국민들에게 건전한 레저 스포츠를 제공하고, 농업·농촌에 새로운 소득원을 제공하는 승마를 보다 많은 국민들이 이용하여 말산업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마음을 담아 이번 여름 휴가는 가까운 승마시설을 찾아 농축산물 전시 관람, 말사육·승마 체험, 캠핑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한 폭의 가족 추억을 만들 것을 국민들께 권해 본다.


3. [동아일보][광화문에서/전승훈]‘뽀로로GO’를 만든다고?

올해 ‘알파고’에 이어 ‘포켓몬고’ 게임 열풍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3월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세기의 바둑 대결을 벌였을 때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담론이 팽배했다. 머지않아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불안에 식욕까지 없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현실과 게임을 접속한 ‘포켓몬고’ 열풍은 즐겁기 그지없다. ‘증강현실(AR)’ 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가득 찬 분위기다. 

무엇보다 포켓몬고는 게이머들을 은둔의 골방에서 해방시켰다. 몬스터를 잡고, 부화시키려면 하루에 몇 km씩 걸어 다녀야 하기 때문에 ‘피트니스 게임’으로 불린다.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외신 보도도 들린다. 한 게이머는 “어머니가 20년 동안 내가 밖에서 노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셨는데, 포켓몬고는 이걸 하루 만에 해냈다”며 놀라워했다. 

포켓몬고는 관광산업도 크게 바꾸고 있다. 포켓몬고를 즐길 수 있는 속초, 울릉도는 지역경제가 들썩일 정도다. 독도에서도 한국인이 첫 포켓몬 체육관을 개설했다는 인증샷이 올라왔다. 영화 ‘반지의 제왕’ ‘아바타’의 촬영지로 유명한 뉴질랜드는 호빗 마을에서 피카추 잡기, 눈 덮인 산에서 아이스몬 잡기를 관광상품으로 내놓았다. 

게임은 수학, 물리학, 전자공학, 심리학, 사회학 등 각종 학문과 신화, 스토리 등의 콘텐츠가 결합된 상업적인 예술작품이다. 구글맵에 몬스터를 뿌려 하루아침에 전 세계를 사냥터로 만들어버린 포켓몬고야말로 창조경제의 모범 사례다. 

그러나 포켓몬고가 히트하자 국내에서는 “우리는 왜 ‘한국형 포켓몬고’를 먼저 만들지 못했느냐”는 질타가 거세다. 알파고가 충격을 던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와 미래창조과학부는 ‘한국형 알파고’를 만든다며 AI 육성 예산안을 부랴부랴 만들더니, 이번에도 국산 캐릭터를 이용한 ‘뽀로로고’ 개발 계획이 발표됐다. 문화체육관광부도 게임산업을 진흥시키겠다며 청소년의 심야시간 게임 제한을 4년 만에 풀겠다고 나섰다.

이처럼 우리는 늘 유행에 따라 구호만 앞선다. 정부는 최근 국가 브랜드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를 발표했다. 그러나 ‘다이내믹 코리아’ ‘코리아 스파클링’ ‘창조경제’ ‘하이 서울’ ‘I·Seoul·U’까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브랜드가 난무해 혼란을 가중시킨다. 마치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와 같은 정권 슬로건처럼 여겨진다. 이러니 국내 최대 굴지의 게임회사인 넥슨이 창조적 게임 개발보다는 권력에 줄을 대는 게임에만 골몰하지 않았을까.

한국도 AIAR, 가상현실(VR) 기술이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포켓몬과 같은 ‘킬러 콘텐츠’의 부족이다. 강력한 콘텐츠는 장기간의 지식재산권(IP) 육성에서 나온다. 비디오 게임으로도 성공한 적이 없는 뽀로로 캐릭터를 서둘러 AR 게임으로 내놓았다가는 졸속 복제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패스트 팔로어’ 전략과 조급하게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 

유럽에서도 이번 주말 포켓몬고의 공식 서비스를 앞두고 프랑스 파리 에펠탑,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과 같은 관광 명소, 박물관 등지에서 포획한 포켓몬 인증샷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판, 영국판 포켓몬고’를 만들자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우리도 포켓몬고가 나오면 그냥 즐기자. 지루한 자책은 이제 그만, 설익은 ‘한국형 포켓몬고’도 더 이상 필요 없다.


4. [중앙일보][분수대] ‘퍼스트 맨’을 영접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남성분들께 묻는다. 여자친구 또는 부인이 “대통령이 될 거야. 아니, 당신 말고 내가. 그러니 도와줘”라고 선언한다면?

기꺼이 부인을 외조, 아니 내조할 수 있을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필립 메이는 그렇게 했다. 영국 사상 두 번째 여성 총리가 된 테리사 메이의 남편 얘기다. 필립 역시 학생 시절엔 정치인을 꿈꿨다고 한다. 옥스퍼드 대학생 중에서도 엘리트만 모인다는 옥스퍼드 유니언 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했을 정도로 야심도 컸다.

테리사는 10대 소녀 시절부터 “내 꿈은 이 나라의 총리야”라고 했던 인물. 필립은 금융계로 진출했고 부인을 물심양면 지원했다. 지난 13일 부인의 바로 뒤에서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에 발을 들이는 필립의 표정은 온화하면서도 우아했다. ‘잘난 부인에게 기가 눌린 못난 남편’이라는 이미지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과는 안드로메다 은하만큼이나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참, 멋졌다.

기자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다.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가 아닌 퍼스트 맨(First Man)을 맞이한 영국도 들썩였다. 필립 메이가 부인의 취임식 날 착용한 구두와 양복을 두고 미러·메트로와 같은 영국 매체들은 “섹시하다”는 표현을 동원해 찬사를 쏟아냈다. “취임식의 주인공은 총리가 아니라 그의 남편이었다”는 헤드라인도 나왔다.

‘퍼스트 맨’은 한국 밖에선 이미 일종의 트렌드가 된 듯하다. 11월 미국 대선에서도 여성 후보가 유력하다. 우리는 어떤가. 필립 메이와 같은 케이스가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 성공을 일군 여성들은 싱글인 경우가 많지 않나. 학력·연봉은 물론 신장까지 남자가 여자보다 높아야 한다는 ‘3고(高)’ 원칙은 여전히 알게 모르게 굳건하다(참고로 필립은 구두를 신은 테리사 메이 총리보다 키다 더 작다. 그래도 멋지다).

그런데 이건 비단 남성들만 꽉 막힌 건 아닌 거 같다. 남편 혹은 남자친구 직업을 묻는데 “응, 주부야. 살림하느라 얼마나 바쁜데”라며 싱긋 웃을 수 있는 대한민국 여성은 과연 몇이나 될까.

남성과 여성 모두 딱딱히 굳은 고정관념의 감옥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암탉이 울어서 잘되는 집안이 나오고, 해외 순방 중인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 공군 1호기 트랩을 내려오는 부군이 두루마기 한복 패션을 세계에 선보일 수 있는 날이 올 것 아닌가.


5. [동아일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여름밤여름밤 ― 이준관(1949∼ )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여름밤은 뜬눈으로 지새우자
아들아, 내가 이야기를 하마
무릎 사이에 얼굴을 꼭 끼고 가까이 오라
하늘의 저 많은 별들이
우리들을 그냥 잠들도록 놓아주지 않는구나
나뭇잎에 진 한낮의 태양이
회중전등을 켜고 우리들의 추억을
깜짝깜짝 깨워놓는구나
아들아, 세상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많은
너는 밤새 물어라
저 별들이 아름다운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아들아, 가까이 오라
(…)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짧은 여름밤이 다 가기 전에(그래,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뜬눈으로
눈이 빨개지도록 아름다움을 보자.

올여름,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에 바로 이준관 시인의 시가 적혀 있다. 처음에 많은 행인들은 이 낯선 시인이 누굴까 궁금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의 다른 작품을 더 찾아 읽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시인의 ‘구부러진 길’만큼이나 좋은, 또 다른 시를 준비했다. 제목이 ‘여름밤’이라 오늘, 내일, 모레 언제 읽어도 좋을 작품이다.

이 시는 행복하고 찬란하다. ‘아들아, 이리 오너라. 세상은 참 아름답단다. 너에게 그것을 보여주마.’ 이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눈은 반짝이고, 볼은 생기 있으며, 목소리는 낭랑하다. 어찌나 아름다운 세상을 씩씩하게 찬미하는지, 읽으면 저절로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런데 혹시라도 이 시를 읽고 난 누군가가, 본인에게는 저런 여유가 없으며 세상은 아름답지 않았다고 속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인은 아주 평범하게 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평생 시만 써온 분이다. 그는 좋은 옷도, 좋은 차도, 좋은 집도 없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행복한 마음과 선한 눈과 다정한 미소가 있다. 시인도 세상과 돈에 상처 받는다. 그렇지만 그는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세상을 믿고, 시를 믿고, 사람의 선한 마음을 믿는다. 나는 이 시인보다 어리고 맑은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그런 시인이 ‘세상은 너무나도 아름답구나’라고 말하니 오늘 밤에는 없던 별도 보일 것만 같다. 

평생 믿어온 사람이 노래하고 있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이 여름밤을 아름답다고 믿어보자. 잠시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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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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