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4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산업은행은 어떻게 복마전이 되었을까
검찰이 강만수 전 산업은행 회장과 대우조선 과거 경영진과의 유착 고리를 포착하고 본격 수사에 나섰다. 대우조선의 경영비리 및 부정 회계에 이어 대주주인 산업은행 비호 의혹으로까지 수사 범위가 확대되는 분위기다. 검찰이 강 전 회장을 출국금지시키고 자택과 사무실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실시했다니 혐의가 상당 부분 드러난 게 아니냐는 판단이다.
강 전 회장이 전임 MB(이명박 대통령) 정부의 실세였다는 점에서 검찰 칼날이 MB정부 핵심 인사들로 향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그가 MB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 경제분과 간사를 거쳐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내는 등 ‘MB의 경제 책사’로 불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단순히 넘겨짚는 추측만은 아니다. 비리가 있었다면 정치적 계산을 떠나서도 철저한 수사가 마땅하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역시 산업은행장을 지낸 민유성 씨가 동시에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민간단체로부터 고발된 배임혐의 사건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간단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의 재임 시절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특정인에게 시가보다 싼값에 넘겼고 매수자는 이를 다시 매각해 막대한 매수차익을 올렸다니, 명확한 사실 관계 확인이 필요하다.
과거에도 산업은행 전직 수장들이 줄줄이 검찰 수사 및 조사를 받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근영 총재가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특검수사를 받았으며 정건용·김창록 총재도 조사 대상에 올랐었다. 홍기택 전 회장도 청와대 서별관회의 관련 발언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도중하차 등으로 구설수에 휘말려 있다. 산업은행 조직문화에 결정적인 흠결이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정치적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문제다.
현 이동걸 회장 체제에서도 지난날 운영기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대우건설 사장 선임과정에서의 혼선이 하나의 사례다. 대우조선 경영비리와 관련해 그토록 질책을 받고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탓이다. 산업은행은 지금 새로운 도약의 발판 마련을 위해 분위기 혁신을 꾀하는 중이다. 말로만 얼렁뚱땅 혁신을 외치는 모양새가 돼서는 곤란하다.
2. 국민들 지갑 털어 곳간 채우는 건강보험
최근 연속 흑자로 적립금이 쌓이고 있는데도 보건 당국이 건강보험료를 필요 이상 거둠으로써 국민 부담을 가중시켜 온 것으로 드러났다. 병·의원과 약국 등에 지급하는 의료수가를 지나치게 높여 책정하는 등 지출 규모를 부풀리는 얄팍한 수를 썼다고 한다. 건강보험 곳간을 채우려고 꼼수를 동원해 국민 호주머니를 턴 셈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어제 발표한 ‘2014회계연도 결산’ 보고서 분석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건보 재정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흑자를 기록하며 지난해 말 기준 누적적립금이 17조원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은 해마다 건보료를 올렸다. 인상 폭이 1.6~5.9%로 나타났다. 건보료율이 2011년 5.64%(보수월액 기준)에서 2016년 6.12%로 오른 것이 그 결과다.
방법 자체가 고약하다. 병·의원에 지출하는 요양급여비 등을 과다 추계해 지출예상 총액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수법을 썼다니,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친 것이나 다름없다. 거두지 않아도 될 돈을 거둬 수익을 남겼다는 얘기다. 국민들은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생활이 쪼들리는 판국에 건강보험공단은 속 편하게 돈을 거둔 것이다.
보건 당국은 급속한 고령화 대비 및 건보 보장성 확대를 위해 보험료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전혀 일리 없는 얘기는 아니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허위청구 등 과오·낭비·남용·부정으로 인한 건보재정의 누수 규모가 4조 8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부정·부당 청구로 줄줄 새나가는 보험급여만 막아도 보험료 인상 없이 충분히 흑자 기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급증 요인을 감안할 때 적립금을 쌓아두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장부상의 숫자 놀음으로 국민 호주머니를 털 일은 아니다. 온갖 구멍으로 허투루 빠져나가는 돈부터 막는 게 먼저다. 집을 3채 이상 소유하면서도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이 68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반면 퇴직·실직자의 경우 지역보험에 편입됨으로써 직장에 근무할 때보다 훨씬 많은 보험료가 청구돼 민원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현행 건보료 체계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는 작업도 서둘러야 할 일이다.
[서울신문]
3. 北 또 미사일 도발, 사드 국론 통일 시급하다
북한이 어제 황해도 은율군 일대에서 노동미사일로 추정되는 탄도탄 두 발을 쐈다고 한다. 지난달 19일 노동미사일 두 발과 스커드 미사일 한 발을 발사한 이후 15일 만의 도발이다. 이번에 쏘아 올린 미사일 가운데 한 발은 발사 직후 폭발했고, 다른 한 발은 한반도를 가로질러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 국민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지만 미사일 발사로 주변국에 강력한 타격 능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은 부수 목적일 뿐이다. 북한이 결정적으로 노리는 것은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우리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확대 재생산해 국론 분열로 몰아가는 데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일본의 EEZ에 떨어뜨린 미사일의 비행거리는 1000㎞ 안팎에 이르렀다고 한다. 동해안의 강원도나 함경도에서 발사한다면 사실상 일본 대부분 지역이 사정권이다. 북한이 최대 사거리가 1300㎞를 넘는 것으로 알려진 노동미사일을 실전 배치한 것은 1999년이다. 북한은 당시 노동미사일을 10곳 남짓한 전국의 발사 기지에 분산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7년이 지나는 동안 명중률을 비롯한 노동미사일의 성능은 크게 향상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 굳이 황해도 기지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것에도 명백한 의도가 엿보인다. 남한 내 어디라도 노동미사일의 사정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상의 협박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사드 배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오랜 고심과 철저한 검토를 거쳐 내린 결정임에도 갈등이 멈추지 않아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배치 예정 지역인 경북 성주 주민들의 반발이 그치지 않는데다 사회적 갈등도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통합을 이야기해도 시원치 않을 정치권 인사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틈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것은 북한의 상투적인 대남 전술전략이다. 이 시점의 미사일 발사는 그 갈등의 간극을 극대화하겠다는 의도일 수밖에 없다.
노동미사일은 사정거리가 짧다고 해도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무기다. 미국 본토 공격까지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도 핵탄두를 실을 수 있다. 그래도 노동미사일은 이미 배치된 패트리엇 미사일로도 일부 요격이 가능하다. 하지만 훨씬 더 높은 고도로 날아오는 장거리 미사일은 어림도 없다. 배치 예정 지역 주민의 현실적 걱정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기에 앞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에 맞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대안부터 내놓아야 할 것이다. ‘남남갈등’은 결국 미사일로 되돌아올 뿐이라는 사실을 북한은 이번에도 확인시켜 주지 않았나.
4. ‘인지기능 장애’ 교통사고 막을 대책 없나
지난달 31일 발생한 부산 해운대 교통사고의 운전자는 평소 뇌전증(간질)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발작 증세를 일으켜 24명의 사상자를 낸 것이다. 지난해 뇌전증 진단을 받은 문제의 운전자는 사고 당일 처방약을 먹지 않았다. 통제 불능의 대형 사고를 낼 수 있는 이런 환자가 어떻게 버젓이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는지 허술한 운전면허 제도가 새삼 여론의 도마에 올라 있다. 어이없는 사고는 그 다음날 전북 익산에서도 있었다. 당뇨병을 앓는 운전자가 저혈당 쇼크로 의식을 잃는 바람에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자칫 대형 인명피해 사고가 될 뻔했던 것이다.
해운대 교통사고 운전자는 뇌전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환자였는데도 지난달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무사히 통과했다. 운전 중 발작 가능성이 있어 정밀 심사가 필요했음에도 간단한 신체검사만 받고 1종 보통면허를 갱신할 수 있었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정신질환자, 뇌전증,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알코올 중독자 등은 운전면허를 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6개월 이상 입원 환자가 아니고서는 도로교통공단이 부적격자를 파악할 수가 없으니 문제다. 선진국의 제도와 비교하자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미국, 일본에서는 뇌전증, 당뇨병 등은 운전면허 취소 사유다. 비교적 흔한 질병인 당뇨병 환자만 해도 유럽은 5년마다 의료진의 소견서를 제출하도록 강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치매로 6개월 이상 입원이나 치료를 받아야만 수시 적성검사를 받도록 관리하는 정도다.
이런 사정을 알고 보면 도로 위는 시한폭탄이 내장된 위험지대인 셈이다. 교통안전을 위해 운전 부적격자를 가려내는 규제 방안 마련이 하루가 급하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청은 뇌전증 환자의 운전면허 갱신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우선 운전면허 수시 적성검사 대상을 확대하겠다는데, 현행 검사 자체가 지나치게 부실해 실질적인 효력이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벌써부터 고개를 든다. 최근 4년간 수시 적성검사를 받은 운전자 중 실제로 면허가 취소된 사람은 2.2%에 불과했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이 걸린 문제인 만큼 ‘눈 가리고 아웅’식의 형식적 처방은 있을 수 없다. 당장 수시 적성검사부터 강화해야 한다.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건강보험 자료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일이다.
5. 강만수 수사, ‘하명·표적’ 의혹 자초 안 돼
대우조선해양 부실 경영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명박(MB) 정부의 실세인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으로 향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의 최대주주로 재무책임자(CFO)를 파견하는 등 회사 경영을 실질적으로 감독하는 역할을 해왔다. 때문에 산은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미 예정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산은의 옛 수장까지 부실 감독도 모자라 대우조선 임원과 일감 몰아주기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그야말로 직원과 임원, 감독기관까지 의혹에 휩싸인 ‘비리 백화점’의 양상을 띠고 있다.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은 그제 강 전 은행장의 서울 대치동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또 강 전 은행장 지인들이 운영하는 지방의 중소건설업체 W사와 B사 등 두 곳도 압수수색했다. 강 전 은행장은 대우조선 경영진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지인의 업체에 투자를 하도록 하거나 일감을 몰아주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강 전 은행장이 재직하던 시기는 이미 구속 기소된 남상태· 고재호 전 대우조선 사장과 겹친다. 그래서인지 의혹을 산 비위 형태가 남 전 사장과 닮은꼴이다. 그의 지인이 대표로 있는 W사는 대우조선으로부터 수십억원의 하도급을 수주했고, 지인들이 대주주로 있는 B사 역시 대우조선 자회사인 부산국제물류로부터 지분투자를 받는 등 수십억원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구속된 남 전 사장은 자신의 대학동창이 운영하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20억여원대의 이익을 취하고 수출계약을 추진하면서 미화 46만 달러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강 전 은행장이 일감을 몰아주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고 금품 수수 등의 정황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강 전 은행장에 대해 드러난 의혹뿐만 아니라 분식회계를 묵인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강 전 은행장이 MB 정권의 실세였다는 점에서 하명·표적 수사라는 의혹도 제기되는 게 사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검찰은 강 전 은행장은 물론 정·관계 인사들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를 해야 한다. 대우조선에는 그동안 7조원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혈세가 투입됐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대우조선을 ‘비리 백화점’으로 만든 부실 경영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이 주장한 청와대 서별관회의의 진상도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하명·표적 수사라는 비난을 피하고 사실상 실패로 끝난 포스코 수사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다.
[동아일보]
6. 청년수당 강행한 박원순, 속 보이는 대선행보 그만두라
서울시가 어제 청년활동지원비 50만 원씩을 현금으로 2831명에게 지급했다. 취업 의지가 있는 저소득층 청년에게 6개월까지 월 50만 원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보건복지부는 즉시 중지 명령을 내렸다. 지방자치단체는 복지사업을 신설할 경우 복지부와 협의해야 하고 복지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조정 절차를 밟도록 사회보장기본법에 명시돼 있다. 서울시는 조정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서울시는 복지부의 시정 명령을 무시하고 복지부가 직권 취소하면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청년취업난은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으로 국가 차원에서 대처해야 할 문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청년취업활동 지원을 위해 6개월간 60만 원씩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박 시장이 청년활동지원비 사업이 꼭 필요하다고 여긴다면 더민주당을 통한 국회 차원의 논의로 전국적 시행을 추진하는 것이 바른 순서다. 서울시가 중앙정부에 맞서 투쟁하듯 강행하니 박 시장은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는 것이다.
경기 성남에서도 이재명 시장이 가구 소득수준을 불문하고 1년에 100만 원씩 나눠주는 청년수당을 강행해 복지부와 갈등을 빚었다. 경기도의 제소로 성남시 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전국에서 성남시는 기초시군 중, 서울시는 광역시도 중 가장 부자다. 정부교부금을 받지 않고 있으니 정부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다른 지자체는 하고 싶어도 역부족인 사업을 강행해 중앙정부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참 볼썽사납다. 재정 여건이 열악한 지자체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고려해야 한다.
청년활동지원비로 돈을 받는 청년들이야 당장 공돈이 들어오니까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채용과 연계가 부족해 돈을 들인 만큼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박 시장이 성과도 불투명할뿐더러 위법으로 판결이 날 수 있는 사업을 강행한 것은 내년 대선 출마를 겨냥한 포퓰리즘 조치로 볼 수밖에 없다. 차라리 청년수당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보는 것이 대권을 꿈꾸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다.
[매일경제]
7. `부동산 과열` 우려하는 금통위원 경고 새겨들어야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들이 서울 일부 지역 부동산시장 과열과 이에 따른 가계부채 부실화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지난달 14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통위원 4명은 수도권 재건축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과 급증하고 있는 집단대출이 실거래 가격 하락, 분양권 포기 등으로 부실화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금통위원들이 부동산시장 과열을 경고한 것은 지난 6월 기준금리 인하 후 멈추지 않은 가계대출 증가세 탓으로 보인다. 6월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4조8000억원 늘어 6월 말 잔액이 사상 처음 500조원을 넘어섰다. 금리 인하가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기업 투자로 연결되기보다 부동산시장만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니 금통위원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저금리로 갈 곳을 찾지 못한 돈이 부동산시장으로 쏠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수기로 꼽히는 7월에도 6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4조2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올해 5월부터 대출심사를 강화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전국으로 확대했고, 7월부터 분양가 9억원 이상 아파트 중도금 집단대출 규제도 시행했지만 약발이 안 먹히고 있는 것이다.
강남 재건축시장의 과열 양상은 계속되고 있다. 강남구 개포주공3단지 재건축 조합은 3.3㎡당 4310만원의 고분양가를 책정하는 바람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보증거부로 제동을 거는 일까지 벌어졌다. 강남 압구정동 아파트도 지난 5월 말 통합재건축 정비계획 수립이 알려지면서 두 달 새 가구당 3억~4억원 뛰었다고 한다. 집단대출을 규제하자 풍선 효과로 비강남권 분양시장도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로 펄펄 끓고 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송파 등 강남 일부에서는 역전세난이 벌어지고 있고, 미분양 주택도 증가하는 등 소화불량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공급물량 과잉으로 외환위기 때처럼 집값과 전세금이 떨어지면서 역전세난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저금리가 키운 부동산 버블 붕괴로 가계부채가 부실화하면 한국 경제는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국토교통부는 금통위원들의 경고를 허투루 듣지 말고 부동산시장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으로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8. 유가 급락이 한국 경제에 미칠 충격에 대비를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9월 인도분 가격은 지난 2일 배럴당 40달러 선 아래로 떨어졌다. 두 달 새 20% 넘게 떨어져 본격적인 약세장에 진입한 것이다. 원유 가격은 2014년 여름까지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았지만 그 후 공급과잉이 심해지면서 가파르게 떨어졌다. 올해 2월에는 26달러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글로벌 저성장 탓에 원유 수급 불균형은 금세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지금 선진국들이 비축해둔 석유는 30억배럴이 넘는다. 이는 67일 동안 쓸 수 있는 양이다. 미국 내 재고만 5억배럴로 지난 5년 평균보다 1억배럴 많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산유국들은 더 열심히 원유를 퍼올리고 있다. 현재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의 산유량은 작년 말 사상 최고치(하루 3300만배럴)에 가까운 수준이다. 생산성 향상으로 셰일 오일 손익분기점이 40달러로 떨어지면 원유 공급은 더욱 탄력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국제 유가는 달러로 표시되므로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 유가는 오를 법하지만 지금은 달러가 약세인데도 유가가 떨어지고 있다. 이는 그만큼 글로벌 원유 수요가 부진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유가 하락은 세계 경제의 맥박이 그만큼 느려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렇다면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로서도 유가 하락을 반길 수만은 없다. 1980년대 말처럼 저유가가 한국 경제에 큰 축복이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저유가가 세계적인 수요 부진에 따른 것일 때는 수출 시장은 되레 쪼그라들고 국내적으로도 유가 하락에 따른 실질 소득 증가가 소비와 투자 활성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5년 전 한 해 1000억달러에 이르렀던 원유 수입액은 저유가 덕분에 그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조선과 유화, 해외 건설과 플랜트 수출은 저유가 탓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작년 석유제품 수출은 37%나 줄었고 유화 수출도 21% 감소했다. 우리의 황금 시장인 중동 지역 수출은 올해 들어 20% 안팎 감소를 기록하고 있다.
산유국 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질 수도 있다. 한국 경제가 유가 하락 충격으로 저성장의 늪에 더 깊이 빠져들지 않도록 체계적인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중앙일보]
9. 소통 부재가 빚은 이대 사태 되풀이돼선 안 된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어제 직장인 대상 ‘평생교육 단과대’ 신설 계획을 철회했다. 지난달 28일부터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설립 반대 농성을 벌인 지 6일 만이다. 학생들도 농성을 풀고 곧 학업에 복귀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교육부와 대학사회는 막중한 책무성을 되돌아봐야 한다. 학생들의 반대로 교육부 재정사업을 폐기한 첫 대학이 나왔고, 17년 만에 대학가에 공권력이 투입된 오점을 남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 정책의 맹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교육부가 대학 구조개혁을 명분으로 연간 2조원이 넘는 재정지원을 미끼로 대학을 뒤흔들다 역풍을 맞은 것이다. 고졸 직장인과 30세 이상의 경력 단절 여성 등에게 4년제 대학 문을 열어주는 평생교육 단과대도 그중 하나다. 1년간 10곳에 30억원씩 대주는 것으로 취지는 좋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선취업 후진학 제도 활성화’ 발언 직후 급조된 게 문제다. 당장 단과대를 신설 해 내년 3월 개강해야 하는 일정인데도 지난달 이화여대 등 4곳을 추가 선정해 밀어붙였다. 대통령 임기 내 ‘완수’ 구설이 퍼진 연유다.
그 과정에서 이화여대에서 일이 터졌다. 이 대학은 올해 대학인문역량강화(CORE)와 산업 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PRIME) 사업에도 뽑혀 3년간 250억원을 확보했다. 그런데 구성원과의 협의 없이 평생단과대도 만들려다 갈등을 겪은 것이다.
당연히 최 총장과 대학본부의 책임이 크다. 기존과 유사하거나 직업교육 같은 전공을 내놔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 특히 교수들에게는 이런 계획을 며칠 전에야 알렸다고 한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명문대가 돈에 홀려 ‘학위장사’를 하려 한다는 비난을 자초한 셈이다. 학생들도 반성해야 한다. 대화보다는 물리적 행동을 택해 ‘순혈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게 됐다.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대학 개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일방통행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이번 사태가 보여줬다. 교육부와 대학사회가 깊이 되새겨야 할 교훈이다.
[세계일보]
10. 중국의 갑작스러운 비자발급 제한, 사드 보복인가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상용비자 발급받기가 까다로워졌다고 한다. 중국을 사업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에게 발급하는 상용비자 신청 때 중국쪽 기업의 초청장을 반드시 첨부하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중국 외교부 산하 여행사의 초청장으로도 상용비자를 발급해 왔다.
중국비자센터는 “여행사 초청장은 편법이니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원칙대로 하겠다는 뜻이다. 엄격히 따지자면 지금까지의 관행이 비정상이었다. 중국 외교부 산하에는 사실상 국영인 2곳의 여행사가 있다. 그중 한 곳만 중국비자센터와 변칙적으로 손을 잡고 초청장을 발급해 왔다. 다른 한 곳은 늘 불만을 지녀왔다고 한다. 이들 여행사 간 알력 때문에 비자발급을 제한하게 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비자발급 제한 사태를 무심코 넘길 수가 없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결정에 중국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을 상황임을 감안할 때 보복조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게 사실이라면 한·중관계를 악화시키는 졸렬한 행태다.
중국은 최근 도를 넘는 사드 압박을 이어오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달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고압적 태도로 “사드가 끝내 배치될 경우 한반도 정세와 중·한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차분한 논조를 이어온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도 어제 사설에서 “한국 정책결정자가 독단적으로 자국의 안위와 미국의 사드를 한데 옭아매 역내 안정이 깨지고 주변국 안보이익에 손해를 끼쳤다”고 성토했다. 중국 광전총국이 각 지역 방송국에 대해 한류스타 프로그램이나 한국 TV의 쇼의 판권을 당분간 승인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도 잇따랐다.
이 같은 일련의 행태는 ‘G2 중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다. 특히 비자발급 제한이 사드 압박 차원에서 이루어진 조치라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국격을 스스로 훼손하는 사려 깊지 못한 행위임을 깨달아야 한다.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킬 최소한의 자위 수단이다. 북한은 어제도 보란듯이 노동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것은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중국은 사드를 탓하기에 앞서 사드 배치 원인을 제공한 북의 핵·미사일 도발 억제에 나서야 한다. 중국 정부는 역지사지해 한국의 입장을 깊이 헤아리기 바란다.
주요 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일터삶터] 밥값 내는 사람
밥값에 관한 고민은 스무 살, 대학생이 된 첫날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어리바리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쏘다니다 2학년 선배를 마주쳤던 그때. 꾸벅 인사를 하니, 그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점심 누구랑 먹었어?" 했다. 나는 옆에 있던 친구를 가리키며 "얘랑 먹었어요" 했는데, 선배가 화들짝 놀라는 거다. "첫날부터 네 돈 주고 먹었단 말이니?"
그럼 누구 돈으로 먹는다는 것인지 잠시 생각하고 있는데, 캠퍼스의 개나리들이 바르르 흔들리도록 선배가 한참을, 으하하하, 웃었다. 그러곤 몹시 귀엽다는 듯, 가볍게 꿀밤을 주는 시늉을 하며 "신입생은 처음 한 달은 돈 주고 밥 사 먹는 거 아니야. 선배들 따라다니면서 얻어먹어야지" 했다.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아이처럼 얼어붙은 내게 "난 1학년 내내 돈 주고 밥 먹은 기억이 없는걸!" 하고 덧붙이며.
물론, 선배들에게 살갑게 굴어 친분을 쌓고 학교생활도 배우란 뜻이었을 거다. 그러나 고지식하고 주변머리 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나는, 그날 이후 점심시간마다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학생식당 앞을 맴돌다 아는 선배가 지나가면 대뜸 밥 사 달라고 하란 말인가? 전날 밤에 미리 문자를 보내서 내일 밥 사 주시겠냐고 물어봐야 하나? 넉살 좋은 친구한테 은근히 묻어갈까? 그나저나 선배들도 똑같은 학생인데 돈이 맨날 어디서 나오나?'
3학년쯤 되자 그렇게 속이 편할 수가 없었다. 선배들이 점심 사 주는 '명랑하고 살가운' 후배가 되려 애쓸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학생회관에서 라면 한 그릇 후루룩 먹고 나와도,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 한 조각으로 끼니를 때워도 좋았다.
지금도 '혼밥'을 즐기고, 여럿이 함께 먹을 때는 더치페이가 좋다. 그러나 알다시피, 사람 수대로 나눠 밥값을 지불하는 건 어쩐지 야박하다고 여기는 문화가 있으므로, 얻어먹을 때도 있고 살 때도 있다. '아직은' 얻어먹는 상황이 많은데 '아직도' 그게 편치는 않다. 나이 많은 사람이 내는 문화도 잘 설득되지 않는다. 나이 많다고 돈도 많나. 돈이 많으면 많이 얻어먹어도 되나. 급기야, 저분이 나보다 월급은 많겠지만 딸린 식구가 몇인데, 맞벌이하고 애도 없는 내가 사실상 형편이 나은 것 아닌가, 뭐 이런 걱정까지 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스무 살 그때처럼.
그러니 나는 오늘도 '완벽한 더치페이의 세상'을 꿈꾼다. 고지식한 이들이 밥값 때문에 머리를 싸맬 필요가 없는, 단순하고 한갓진 곳. 그곳은 결코 야박하지 않다. 각자 내는 게 당연해지면 남이 사는 밥은 더욱 특별해진다. 우르르 몰려가서 '낼 만한' 사람이 엉겁결에 계산하고, 한 시간만 지나면 식후커피와 함께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식사가 오히려 야박하지 않나. 물론 완벽한 더치페이의 세상에서도 누구 하나가 밥값을 낼 수 있다. 축하나 감사를 위해 맛있는 음식이 필요한 때다. 대접하는 이와 대접받는 이 모두 함께 추억할, '가끔' 있어 귀한 자리. 식사는 선물 같고, 대화는 축제 같은 자리.
그런 세상에서는, 내 돈 주고 밥 먹을 일이 없다는 건 좀 기괴한 일이 될 것이다. 자랑이 아니라. 상상만 해도 평화롭지 않은가, 인기도 없고 주변머리도 없는 '소심인'들이여.
2. [연합뉴스]<추왕훈의 데자뷔> 민낯이 어때서'
길 막고 영어시험·우편함에 개똥…영국의 인종차별 민낯', '은폐, 허위보고, 묵살, 거짓해명의 연속…부산경찰의 민낯', '고립된 섬 불안한 여교사들…섬 성폭행 부끄러운 민낯', '전관로비·거액수임료…법조계 민낯 드러낸 정운호-변호사 공방'
최근 몇 달간 보도된 일부 언론 기사들의 제목이다. 하나같이 '민낯'이라는 말을 '부끄럽고 잘못된 본래의 모습'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굳이 비슷한 말을 찾자면 '치부(恥部)' 정도를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이는 사전적인 뜻과는 거리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민낯'에 대해 단순하게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라고 기술할 뿐이다.
기사 데이터베이스를 찾아보면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민낯'이라는 말은 거의 사전적인 뜻으로만 쓰였고 사용 빈도도 높지 않았다. 비유적으로 쓰인다 해도 '있는 그대로 모습'이라는 뜻이었지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위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은 부정적인 비유는 2012~2013년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민낯'이 '숨겨야 할 부끄러운 얼굴'이라면 '떳떳이 남에게 드러낼 수 있는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 '민낯'의 반대, 즉 '화장한 얼굴'이어야 비유의 대칭이 맞는다. 화장 안 한 얼굴이 이토록 부끄러운 존재가 돼 버린 것은 여성에게 화장이 당연시되는 풍조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느덧 한국에서 성인 여성은 외출할 때는 으레 화장을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됐다.
화장하는 연령은 점점 어려져 이제 중·고교생이라면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상당수 중·고교는 여학생의 화장을 금지하는 교칙이 있지만, 워낙 화장하는 학생이 많아 '꼴불견'일 정도로 진한 화장이 아니면 묵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지난해 초록어린이재단이 초등학교 4~6학년 여학생 123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 가까운 55명(45%)이 "화장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식품의약품 안전처는 '제대로 된 화장품 사용법'을 소개한다는 취지로 '소중한 내 피부를 위한 똑똑한 화장품 사용법'이라는 책자를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배포해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거의 전 연령대에 걸쳐 화장은 보편화하고 있지만, 문제는 부작용이다. 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 유적에서 화장품 용기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조개껍데기가 발견됐을 정도로 화장의 역사는 유구하다. 과거에는 수은이나 납, 비소와 같은 독성 물질을 원료로 만든 화장품이 많아 이를 사용한 여인들이 심각한 피부질환을 앓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초상화에 남아 있는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창백한 얼굴은 납 성분이 들어간 '베니스분'을 두껍게 바른 덕분이었다. 그 때문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망가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더 진하게 화장을 해야 했고 말년에는 납중독으로 인해 피부가 거무죽죽해지고 치아까지 상한 데다 신경증의 징후까지 보인 것으로 알려진다.
안전 규제가 엄격해진 요즘에는 유해 물질이 포함된 화장품으로 인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다수의 화장품에는 각종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이 포함돼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피부가 연약하고 피지의 분비가 활발한 어린이와 청소년은 화장품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하고 있다.
성인 여성의 경우에도 원래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진한 화장은 피부 건강은 차치하고라도 보기에도 부담되는 측면이 있다. '민낯'을 장려하는 차원에서라도 이 말을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민낯'을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잘못된 일도 아니다.
3.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한여름을 이기는 콩국수
콩은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 널리 재배되어 한민족 식생활과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주요 먹을거리다.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인 데다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해 우리 민족 건강의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이익은 ‘성호사설’ 만물문 편에서 “곡식의 역할이 사람을 살리는 데 있다면 곡식 가운데 콩의 효능이 가장 크다”고 했다. 이는 ‘숙맥’이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콩을 ‘숙’(菽), 보리를 ‘맥’(麥)이라 하는데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사람을 ‘숙맥’이라 한다. 쌀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곡식인 콩과 보리조차 구별 못 한다는 의미다.
이 콩을 가장 쉽고 맛있게 먹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많은 이들이 여름철에 즐기는 콩국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콩국수는) 콩을 갈아 만든 콩국에 국수를 삶아 말아 먹는 음식이다. 콩의 단백질과 지방질을 그대로 살릴 수 있으므로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에 몸을 보할 수 있는 음식이다”라고 설명한다. 콩국수는 한여름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 주는 전통의 서민 먹을거리다. 만들기가 그리 까다롭지도 않고 특별한 비법도 없어 보통 집에서 맛깔나게 즐길 수 있는 국민 음식이다.
그래도 좀더 호사를 하려면 조금만 발품을 팔면 된다. 이맘때 점심시간에 서울 여의도백화점 지하에 가면 진풍경이 벌어진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줄을 굽이굽이 서서 기다린다. 12시쯤 가면 20~30분 대기는 기본이다. 이곳이 ‘진주집’이다. 매일 새벽 주방에서는 가족들만 모여 콩국을 만든다. 강원도 일대의 콩을 직접 구매해 수작업으로 일일이 선별한다.
진주가 고향인 사장의 안주인은 사망했으나 비법은 전수되고 있다는 것인데, 명문대 출신 두 아들 부부까지 음식점 경영에 동참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 걸쭉하고 구수한 콩국물에 쫄깃한 면발을 자랑하는 콩국수에는 면과 국물 외에는 아무런 고명이 없다. 콩국물은 씹어 먹어도 될 정도이고. 매콤한 겉절이가 곁들여진다.
또 다른 프리미엄 콩국수를 선보이는 곳이 서울 서소문 소재 ‘진주회관’이다. 진주집과는 인척 간으로 모 재벌회장 등 유명 인사들이 즐겨 찾았다고 한다. 콩국수의 특징이나 맛은 여의도 집과 비슷하나, 익은 김치를 내놓는 것이 또 다른 맛이다.
을지로4가에 있는 ‘강산옥’은 숨어 있는 작은 맛집이다. 계절에 따라 콩비지찌개와 콩국수 가운데 하나만 하는데 6~8월에는 콩국수다. 콩과 검정깨로 만든 콩국은 ‘예술’이고, 면은 소면을 쓴다. 주인아주머니와 딸이 운영하는 ‘진심’ 가족식당으로, 사람을 쓰면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게 확장도 마다한다. 몇 개 안 되는 테이블에 앉으면 주문을 안 해도 음식이 나온다. 메뉴가 하나뿐이니까.
한여름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 주는 콩국수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솔푸드로서 손색이 없다. ‘진한 콩국 vs 연한 콩국’, ‘순수 콩국 vs 깨와 땅콩을 가미한 콩국’, ‘쫄깃한 면 vs 소면 vs 메밀면’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조합으로 훌륭한 콩국수 메뉴를 선보이는 곳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4. [중앙일보][시론] 테러리스트라고 모두 사이코패스일까
테러의 시대다. 1995년 165명에 불과하던 테러 관련 사망자는 2014년 3만2685명으로 무려 200배나 증가했다. 게다가 최근의 주요 테러는 불특정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예고 없이 가해지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테러의 건수와 규모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사전예방이 대단히 어렵고 테러범과의 협상도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테러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 민족 독립 등을 목적으로 한 무장투쟁이 어느 정도 정당성을 인정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배후세력이 불분명한 ‘외로운 늑대’형의 테러범이 늘고 있고, 그 목표도 무고한 일반인을 향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테러범이 단지 사이코패스와 같은 정신이상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정신이상자들을 미리 감시해 사전에 테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인류학자 스콧 아트란은 대부분의 테러범들이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들을 끔찍한 범죄자로 만든 것은 개인적인 정신병리가 아니었다. 실제로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일반인보다 상당히 낮다. 보통 사람들, 즉 집단의 가치와 규율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테러를 저지른다. 정신장애인이나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사이코패스가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진화적으로 인간은 자기 집단을 외부 집단보다 더 우월하게 여기는 경향, 소위 ‘내(內)집단 선호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집단 간 상호 폄하와 갈등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내집단 선호와 외집단 배척이 도를 넘어 상대방을 파괴하거나 말살하려는 수준으로 악화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외부 집단을 극도로 증오하게 되는 것은 IS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의 메시지 때문이 아니다. 테러리스트가 테러의 대상을 혐오하는 것은 자신들이 이미 혐오당하고 있거나 혹은 최소한 그렇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IS의 반인권적인 만행에도 불구하고 서구 사회의 수많은 젊은이가 자발적으로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프랑스 인류학자 도니아 부자의 연구에 의하면 IS에 포섭된 소녀의 70% 이상이 어린 시절 학대받은 과거가 있었다. 학대받은 여성에게 니캅(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리는 천) 뒤에 숨어서 평생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는 것이다. 또한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소총을 든 강인한 남편도 보장한다. 실제로 IS의 자발적 동조자 상당수는 경제적·인종적· 종교적으로 멸시받는 젊은 미혼자들이다. 이처럼 IS는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주목한다. 그들에게 정서적 소속감을 선사하고 삶의 숭고한 목적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혐오는 혐오를 먹고 자란다. 테러가 일어나면 즉시 중동계 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따가워진다. 미국의 어떤 정치인은 난민을 모조리 추방하고 중동계 이민자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양한 사상과 종교·인종·민족으로 구성된 자유로운 공간이 사라질 위기다. 회색지대가 사라지면 ‘우리들’과 ‘그들’의 경계가 더 날카로워진다. 우리는 IS의 끔찍한 범죄에 경악하지만 사실 그들을 점점 강하게 만드는 것은 소수 집단에 대한 주류 사회의 혐오와 배척이다. IS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러한 주류 사회의 과잉대응이다. 집단 간의 담장이 높게 쳐지고 소수자에 대한 통제가 강화될수록 IS에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무차별적 테러를 관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더 큰 증오로 갚아준다는 것도 해답은 아니다. 그런데 테러 연구에서 잘 알려진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기혼자가 자살테러범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프랑스 니스 테러의 범인도 이혼남이었다. 실제로 테러단체에 세뇌된 사람을 위한 정신치료 프로그램에서는 가족과의 정서적 연결고리 복원에 주력한다. 건강한 가정을 가진 사람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즉 사회는 젊은이에게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살테러를 하면 영원히 천국에서 처녀 72명의 시중을 받을 것이라는 IS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혐오 논란을 보면 우려스러운 점이 적지 않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촉발된 여성 혐오 논란은 애꿎게도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만 양산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200만 명을 넘었지만 외국인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 인터넷에는 온갖 사회적 편견과 증오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남성과 여성이, 일반인과 장애인이, 한국인과 외국인이, 청년과 노인이, 갑과 을이 서로 혐오하고 배척하고 있다. 안정된 미래를 약속해 주지 못하는 팍팍한 현실이 극단적인 혐오의 문화가 자라는 토양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에 만연한 증오와 편견을 극복하고 우리 사회가 다양성이 인정받는 자유로운 회색지대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미래는 열려 있다.
5. [매일신문][매일춘추] 포구의 새벽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통통거리는 발동기 소리가 작은 어촌마을을 흔들었다. 창문을 살짝 열어젖히고 고개를 내밀었다.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미풍이 얼굴을 감쌌다. 하늘에는 낮게 뜬 초승달이 심술궂게 바다 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열이 쏟아지던 대낮의 고요와 평온, 잔잔한 파도는 없었다. 작은 고깃배 한 척이 축구장만 한 포구에 조심스레 접근 중이었다.
몇몇 아낙들이 쪼그리고 앉아 뱃머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수십 년간 육지에서 살아온 필자에겐 낯설고 서정적인 풍경이다. 발걸음을 재촉해 포구로 갔다. 배 옆구리가 콘크리트벽에 비스듬히 부딪치자 늙은 어부가 네모난 플라스틱 상자 세 개를 아낙들에게 건넸다. 두 곳에는 숨을 거둔 청어들이 있었고, 한 곳에서는 새끼 문어 한 마리가 꾸물거리고 있었다.
비릿한 생선냄새가 콧구멍을 지나 텅 빈 위장 속까지 스며들었다. 메스꺼웠다. 거칠고 정직한 삶의 현장에 내 육체가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부끄러웠다. 잠깐 고개를 먼바다 쪽으로 돌렸다. 등대는 없었다. 짙은 어둠을 헤치고 작은 고깃배 한 척이 또 미끄러져 들어왔다. 늙은 어부와 아낙들의 움직임, 어획량은 비슷했다. 문어 대신 소라와 물가자미가 담긴 상자만 달랐다.
이 작은 포구엔 TV 화면에 가끔 등장하는 만선의 기쁨이나 소란은 없었다. 힘든 노동 뒤의 허무한 귀가를 보는 듯했다. 방금 배에서 내린 그물 손질에 여념 없는 한 아낙 곁으로 걸어갔다. 낯선 자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엔 검은 주름들이 깊게 패어 있었다. 칠순을 훌쩍 넘긴 할머니 같았다. 꾹 다문 입술엔 노년의 체념과 여유가 묻어났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다시 바다로 나가는 고깃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비좁은 선상에는 손질한 통발이 수북했다. 수평선 위로 붉은빛이 넓게 피어올랐다. 일출 직전이었다. 1시간쯤 물거품을 뿜어내던 발동기소리가 잦아들었다. 늙은 어부는 허연 부표를 갈고리로 낚아챈 뒤 수면 위로 떠오르는 통발을 하나씩 건져 올렸다. 대부분 텅 비어 있었다.
“요즘은 바다 밑도 황무지나 마찬가질세…. 이젠 배질(조업)도 못해 먹게 됐어!"
몇몇 통발 속에 갇힌 시커먼 성게와 회색빛 소라를 쳐다보는 필자에겐 절망의 아우성으로 들렸다. 하지만 도시인의 권태롭고 상냥한 목소리와는 달리 진솔하고 묵직했다. 2시간여 바다 노동을 끝낸 배가 천천히 포구로 향했다. 휘청거리며 육지에 발을 디딘 필자에게 방금 건져 올린 큼직한 소라들을 골라 비닐봉지에 담아 주었다. 극구 사양했지만 안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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