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주요 이슈
■ 정부의 민간 주택임대업 활성화 방안
■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 박근혜 대통령, 대통령 특보단 신설 의사 표명
■ 6개 경제 부처 신년 업무보고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정부의 민간 주택임대업 활성화 방안
[한국일보 사설-20150114수] 임대주택 육성엔 세입자 지원책 맞물려야
정부의 민간 주택임대업 활성화 방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제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 경제부처 합동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발표된 ‘기업형 임대사업 육성방안’을 통해서다. 골자는 대형 건설사 등에게 적절한 수익을 보장해줌으로써 중산층까지 들어가 살 만한 양질의 기업형 보증부 월세 임대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론 기업형 임대사업자에게 민간 분양주택 수준의 8년짜리 임대주택을 공급하도록 하되, 연 5%의 임대료(보증금 포함) 인상을 허용하고 각종 택지, 기금, 세제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임대주택 사업에 적극 나서게 한다는 얘기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육성방안의 목표를 주거안정으로 내세웠다. 집의 개념이 소유에서 거주로 변화하고, 전세의 월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서민뿐 아니라 중산층의 주거불안도 가중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했다고 한다. 주거안정 대상을 중산층까지 넓혀 품질 좋은 임대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한 정책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육성방안에는 온통 임대주택 공급자, 즉 향후 주택임대업에 뛰어들 기업에 대한 각종 지원책은 풍성한 반면, 정작 임대료 급상승으로 주거부담에 시달리게 된 전월세 가구에 대한 지원책은 전혀 없다는 게 문제다.
육성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8년 이상 장기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기업형 임대사업자에게 공공택지를 할인 공급하고, 그린벨트 및 도시정비사업 용지 등도 임대용지로 활용토록 할 계획이다. 또한 임대사업자에 대한 가구당 융자한도를 올려주고, 현행 2.7~3.5%인 금리도 2~3%로 인하해준다. 아울러 사업자에게 임대기간과 면적 별로 취득세ㆍ소득세ㆍ법인세ㆍ양도세 등에서 세율 인하 및 감면 확대 등의 혜택을 주기로 했다. 정부는 임대료 인상만은 연 5% 내에서 제한하겠다고 했지만, 그것마저도 뒤집어 보면 임대 8년차엔 최초의 134%까지 인상을 허용한다는 계산이어서 임차인에겐 부담이 되는 조건이다.
육성방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당장 봄부터 닥칠 전월세난을 완화하는 효과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육성방안에서 연 5%의 인상을 서둘러 공인함으로써 임대료 인상 도미노를 부추긴 면도 없지 않다. 아울러 박근혜 정부가 출범 후 집값 지지를 위한 대책으로 월세 전환을 적극 유도하면서 급등해버린 서민의 주거부담을 완화할 대책도 전무하다. 현재 세입자 지원책으론 월 임대료의 10%에 대한 세액공제밖에 없다.
양질의 임대주택을 아무리 많이 공급해도 장기적으로 전월세 임대료가 오르고, 기업에만 이익이 돌아가는 정책이라면 정당치 못하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육성책과는 별도로, 서민 주거비용 부담 및 불안을 완화할 장기 금융ㆍ세제 지원 및 전월세전환율 하향조정 등의 대책을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 그제 출범한 국회 ‘서민주거복지특별위원회’도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정책에 끌려만 갈 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무주택 서민의 입장에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114수]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 없는 기업형 임대주택
정부가 대대적인 민간 주택임대사업 육성 계획을 내놨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정부 6개 부처는 13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새해 업무보고에서, 기업형 임대사업자를 지원하는 특별법을 제정해 임대기간 8년 이상의 민간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중산층 주거 안정 방안이라고 하지만 미덥지 않을뿐더러 실효성도 의심스럽다. 오히려 건설사 등 부동산업계의 숨통을 터주기 위한 경기 활성화 방안으로 보는 게 어울릴 듯하다.
기업형 임대사업은 300채 이상의 새 임대주택을 건설하거나 100채 이상 기존 주택을 매입해 8년 이상 장기임대하는 것이다. 특별법으로 입지와 금융, 세제 등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혜택을 줘서 민간 기업의 사업 참여를 적극 유도하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국토교통부는 민간 사업자에게 연 5~6%의 투자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춰주겠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하면 자금력이 있는 기업이 나서 한꺼번에 많은 물량의 장기임대주택을 공급할 가능성은 있다. 또한 당장 집을 살 능력이 없는 중산층은 주거 선택 폭도 좀더 넓어질 수 있다.
문제는 민간 주택임대사업이 활성화되더라도 전체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비 부담이 줄어든다는 보장이 없다는 데 있다. 전셋값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가운데 전세의 월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서민뿐 아니라 중산층의 주거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장기 집값 전망이 불투명한데다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 등에 따른 구조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주택 수요자의 구매력에 견줘 지나치게 높은 집값 수준도 문제다.
이런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소하지 않는 채 품질 좋은 민간 임대주택 공급을 늘려봐야 중산층 주거비 부담은 줄어들기 힘들다. 민간 사업자에게 연 5%가 넘는 임대수익률을 보장해주려면 그만큼 세입자에게 부담을 떠넘겨야 한다. 그만큼 높은 수익률이 보장된다면 차라리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이나 공공기금을 활용한 임대주택 건설이 더 바람직하다. 사업 수익을 재투자함으로써 공공임대주택 공급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도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주거 복지 또는 서민·중산층의 주거 안정을 목표로 내세워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부동산 시장을 띄우기 위한 공급 위주의 주택정책을 되풀이하고 있다. 주거 안정과 주거 복지만큼은 공급자의 논리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할 것을 촉구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114수] ‘세입자 보호’ 외면한 기업형 임대주택
정부가 전·월세난과 중산층 주거안정 대책으로 기업형 임대주택 육성방안을 내놨다. 중산층이 주거정책 사각지대에 있다는 정부 설명을 감안하더라도 주거안정책이 더 절실한 계층이 저소득층임을 감안하면 선후가 바뀐 게 아닌지 걱정된다. 더구나 엊그제만 해도 중산층을 향해 빚내 집 사라던 정부가 이번에는 월세로 옮겨 살라고 권유하는 것 같아 혼란스럽다.
임대주택 육성방안의 핵심은 건설사나 리츠로 하여금 임대아파트를 지어 공급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임대기간은 4년 단기와 8년 장기 등 두 종류로 단순화했다. 건설사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택지, 금융, 세제 지원책도 내놨다. 사업자가 집을 짓고 관리하는 것은 물론 중개, 이사, 세탁, 청소, 육아 등을 함께 제공할 수 있도록 해 동네상권까지 독점할 수 있게 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전세에서 월세로 넘어가는 연착륙 과정으로 설명한다. 그러면서 기업형 임대주택은 보증금 3000만~1억원에 월세는 지방 45만원, 수도권 60만원, 서울 80만원 수준으로, 연간 월세 인상률도 5% 이내로 제한할 것이라고 했다. 그 정도면 중산층이 감내할 수준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세입자들의 월세에 대한 중압감을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중산층인 소득 5분위의 월소득은 354만원이다. 이들에게 100만원에 육박하는 월세는 작은 돈이 아니다. 더구나 수익을 맨 앞에 둘 임대사업자들이 보증금은 낮추고 월세를 더 높게 책정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정부는 사업자들에게 연간 5~6%의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임대주택 관련 핵심 규제 6개 중 4개를 풀겠다고 했다. 그 가운데는 초기 임대료를 임대사업자 임의대로 정하고, 임차인 자격을 없애는 것도 포함돼 있다. 무주택 서민들의 형편을 감안해 월세부담을 줄여주고 조건을 제한하는 쪽으로 가는 게 마땅하지만 정반대다. 부동산 규제완화 바람이 기업에 온갖 특혜를 준 반면 세입자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마저 흔들어버린 셈이다.
서민이든 중산층이든 세입자 대다수는 월세보다는 전세를 원한다. 어쩔 수 없이 월세를 선택해야 할 때는 ‘고 보증금, 저 월세’를 희망한다. 하지만 정부안은 곧바로 ‘저 보증금, 고 월세’다. 이것은 주거안정책이 아니다. 더구나 이번 대책은 실행까지 최소 3년 이상이 걸려 당장의 전·월세난에도 도움이 안된다. 전체 1800만가구 중 800만가구가 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지금 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전·월세 시장의 안정과 저가의 임대주택이다. 기업형 임대주택에 앞서 임대차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개인을 상대로 한 시장안정화 방안을 찾는 게 순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114수] 기업형 장기임대주택서 제2, 제3의 부영 나와야
정부는 중산층의 주거비 경감을 위해 임대기간 8년의 기업형 장기임대를 도입하기로 했다. 기업형 임대 육성을 위해 60~85㎡의 8년 장기임대주택에 대한 취득세 감면폭을 50%까지 확대하고 자기관리형 리츠의 임대소득은 8년간 법인세를 100% 감면해주는 등 파격적인 세제지원까지 내놓았다. 여기에다 기업형 임대사업자에게 가용한 모든 공공토지를 제공하고 국민주택기금을 통한 저리융자까지 베풀기로 했다.
국토교통부가 '뉴 스테이(New Stay)라고 명명한 이 정책의 목표는 명확하다. 국내 임대주택 공급실적 1위인 부영 같은 기업이 나와 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늘려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임차인을 보호하려는 의무 임대기간과 임대료 상승률 제한(연 5%)을 제외한 초기 임대료, 임차인 자격, 분양전환 등의 규제를 모두 풀었다. 정부의 이 같은 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경우 월 40만~80만원 정도를 부담하는 합리적인 임대주택 공급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형 임대 활성화 방안은 우리 주택시장의 변화 흐름으로 볼 때 기본적으로는 맞는 방향이다. 사실 부동산시장의 장기침체와 전월세난 등으로 주택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소유'에서 '주거'로 바뀌고 있음에도 시장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양질의 임대주택 공급은 턱없이 모자랐다. 월세가구 비중이 지난해 55%로 전세가구(45%)를 추월했는데도 800만 임차가구 중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임대주택은 64만가구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었다.
관건은 민간 건설사들의 참여 여부다. 건설사들은 이번 정책을 환영하지만 수익성을 반신반의하면서 5~6%의 수익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월세로 옮겨가는 주택시장 흐름이 분명한 만큼 무조건 수익보장만 요구하지 말고 이번 대책을 시장진입의 호기로 삼아 적극 참여하기를 기대해본다. 정부도 정책 제시에 머물지 말고 분양시장에 못지않은 환경조성에 노력하기 바란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114수] 스트레스테스트 결과조차 공유않는 한은과 금감원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대외변수에 대한 국내 금융 시스템과 금융기관의 대응 능력을 평가하는 '스트레스테스트' 결과조차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IMF는 13일 공개된 '스트레스테스트와 금융안정 분석 테크니컬 노트' 등의 보고서에서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은의 하향식 스트레스테스트 결과와 금감원의 상향식 결과는 교차 검증할 효과적인 통로가 없다"고 꼬집었다. IMF의 '한국 금융 부문 평가 프로그램(FSAP)'에 부속된 이번 보고서는 평가단의 세부의견이 반영돼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거시경제 변수 위주로 측정하는 한은과 개별은행들의 영향을 중심으로 측정하는 금감원의 스트레스테스트 결과는 상호보완적이라는 점에서 공유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물론 한은과 금감원의 해명에도 일리는 있다. 그동안의 조사가 내부 참고용일 뿐이며 결과 공유과정에서 외부에 유출되면 금융기관과 금융시장 전반에 뜻하지 않은 소동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게다가 IMF의 지적을 맹신하기도 어렵다. 그동안 IMF가 약소 회원국들에 보여준 '갑질'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최근 들어 '국제금융안정 보고서' 등 IMF 문건들에서 숱한 오류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금융 부문 당국 간 정보공유를 더 강화할 여지가 있다"는 IMF의 권고를 흘려들을 수 없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국제환경이 그만큼 엄혹하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급격한 유가 하락세로 디플레이션 공포가 커지고 미국 금리 인상과 엔화 평가절하, 신흥국 자본이탈에 따른 경제 경착륙 등 심상치 않은 대외변수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그럴수록 금융권의 위기대응 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작업이 중요해진다. 한은과 금감원에 유비무환(有備無患) 자세와 협조체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중앙일보 사설-20150114수] 의정부 화재 현장 의인들, 시민정신을 보여줬다
적지 않은 인명 피해를 낸 의정부 아파트 화재 사고는 국민들을 또 한 번 안타깝고 불안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을 구한 의인(義人)들이 있어 그나마 위안을 주고 있다. 간판 시공업자 이승선(51)씨는 탈출하지 못한 주민 10명을 밧줄을 이용해 땅으로 내려보냈다. 이씨는 3명을 구한 뒤 힘이 빠진 상태였지만 미처 피난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고 다시 옥상 위로 올라가 7명을 추가로 구조했다고 한다.
화재가 난 대봉그린아파트에 살고 있는 진옥진(34) 소방사는 이날 쉬는 날이었지만 주민 13명을 옆 건물 옥상으로 대피시켰다. 그는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연기를 많이 들이마셨지만 구조를 멈추지 않았다. 의정부시청 9급 공무원인 신승진(33)씨도 옆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주민들이 1m 간격의 건물 사이를 건너올 수 있도록 도왔다.
민간인인 이씨는 사람들을 구해야 할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화재가 났을 때 그는 안전한 지상에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웃을 구하려는 시민정신을 발휘한 것이다. 진 소방사의 투철한 직업의식도 귀감이 될 만하다. 아래층에서 불이 난 것을 직감하고 주민들을 옥상으로 유도하지 않았더라면 인명 피해가 더 늘어났을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는 안전 불감증, 인명 경시, 직업윤리 실종 등 우리 사회의 병폐를 그대로 드러냈다. 국민은 승객을 버리고 먼저 도망친 선장과 선원, 늑장 구조로 인명 피해를 키운 무능한 해경을 보고 공분했다. 하지만 남윤철·최혜정 교사,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씨처럼 끝까지 아이들을 구하려다 숨진 의인들도 있었다. 의인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해 5월 서울지하철 도곡역 방화 사건 때 불을 끈 역무원 권순중(46)씨와 이창영(75)씨는 ‘용감한 의인’으로 선정돼 표창을 받았다. 이들의 용감한 행동이 없었다면 자칫 제2의 대구지하철 화재 같은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의인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안전하고 건강해진다. 의인들의 선행이 확산돼 남을 먼저 배려하는 시민의식이 뿌리 내리기를 기대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114수] ‘공동주택 안전’ 민·관 차원 종합대책 필요하다
경기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를 계기로 도시형 생활주택 등 공동주택 건물의 안전 대책과 규제 강화 문제가 정치권 안팎에서 논의되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불연재 사용과 스프링클러 설치 기준 강화 등을 골자로 한 종합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현행 건축법은 30층 이상 고층건물 등의 외벽에만 불연재를 의무 사용토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외벽 단열재의 경우 건물 높이와 용도에 상관없이 불연재를 사용하고, 내벽 단열재의 경우 현행 30층에서 16층 이상으로 낮추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는 것이다. 건물 내부의 스프링클러도 현행 11층 이상에서 5~6층으로 낮추는 한편, 화재에 취약한 ‘드라이비트(Drivit·콘크리트벽에 스티로폼 단열재 마감)’ 공법에 난연의 기준을 추가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라 한다.
문제는 이 같은 제도 개선안이 기존 건물에는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존 건물에 소급해 적용할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현실적으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건물의 마감재를 완전히 교체하거나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2009년 이후 인허가를 받은 36만여가구에 이르는 도시형 생활주택의 안전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이는 셈이다. 이에 따라 법을 개정해서라도 ‘10층까지’라고 돼 있는 완강기와 같은 대피장비를 기존 건물에 설치해주는 방안은 물론 외부계단이나 드렌처(drencher·건물 외벽에서 물을 뿌리는 설비)를 설치하는 등의 보완책도 제시되고 있다. 이번 사고에서도 드러났듯이 골목길 소방차 진입로 확보 문제는 해묵은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모든 문제점을 검토해서 의정부 화재와 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차제에 아파트·오피스텔을 비롯해 전국 가구수의 70%(2011년 자료)가 넘는 공동주택 주민들도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겠다. 의정부에 이어 어제도 경기 양주의 아파트에서 2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화재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정부의 대책과는 별도로 주민들의 주의 환기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우선 공동주택의 피난계단이나 방화문은 제대로 열리고 닫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비상시 베란다를 통해 옆집으로 대피할 수 있는 비상통로도 파악해야 한다. 또 아파트 3~10층에 설치된 완강기 사용법도 이참에 알아둬야겠다. 불이 났을 때 물에 적신 수건 등으로 코와 얼굴을 감싸고 낮은 자세로 이동하는 등의 화재 시 비상행동요령도 숙지할 필요가 있다.
■ 박근혜 대통령, 대통령 특보단 신설 의사 표명
[중앙일보 사설-20150114수] 특보단, 청와대 안의 야당이 되어야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특보단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부문의 특보들을 통해 청와대 밖 여론을 듣고 전문 식견을 넓히며 국회 등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대통령으로서는 ‘자기 개혁’의 첫 조치에 해당하는 것이다.
특보단의 취지가 실현되려면 인선과 운용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특보단은 집행부서인 내각 그리고 대통령 보좌기구인 수석비서관들과 중복되지 않는 독특한 영역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다면 ‘분야별 경험과 식견을 갖춘 청와대 안의 야당’으로 기능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운용했던 10인 내외의 특보단은 이런 기능을 수행했다. 대통령은 철학자 박종홍, 새마을운동 선구자 박진환, 국제정치 전문가 함병춘 등 존경받고 학식 있는 인재들을 초빙했다. 함 박사 같은 이를 설득하기 위해 김정렴 비서실장은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았다. 함 박사는 정권의 재목이 되었고 훗날 아웅산 테러 때 순국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막걸리 저녁에서 특보단은 ‘쓴소리’를 적잖이 개진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들 외에 비공식 교수자문단을 운영했으며 이들도 까다로운 사항을 건의했다.
이후 역대 정권은 종종 특보단을 운영했다. 하지만 상당수가 당·청 고위직을 그만둔 이를 위한 위인설관(爲人設官)이나 ‘회전문’에 그쳤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경제 강만수, 정무 맹형규, 언론 이동관, 사회 박형준 특보가 있었는데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을 지낸 이들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해당 수석비서관과 업무상 갈등을 빚기도 했다. 특보조직이 오히려 정권에 부담을 준 것이다.
박근혜 특보단은 친박계 등 정권 주변인사를 위한 낙하산 자리가 되어선 안 된다. 현재의 청와대에는 ‘예스 맨(yes man)’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 많다. 수석들은 대통령과 상하관계여서 직언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특보단은 수평적 관계의 차원으로 사심 없이 대통령에게 조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성공 여부는 대통령의 활용에 달려 있다.
■ 관련 칼럼
[경향신문 칼럼-여적/양권모(논설위원)-20150114수] 대통령 특보
7대 대선을 앞둔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각계 전문가들로 하여금 중·장기 정책 수립에 이론적인 뒷받침을 하고 정부 시책에 대한 분석·평가를 맡을 연구소 형식의 외곽기관 설립을 구상한다. 하지만 ‘연구소원’이라는 직함이 각계의 중량급 인사 영입에 걸림돌이 된다. 대안으로 마련된 것이 ‘대통령 특별보좌관제’다. 미국 백악관의 특별보좌관(special assistant)에서 따온 이름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대통령 특보’는 단순 조언자에 머물지 않았다. 실질적인 정책 수립의 브레인으로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 못잖은 막강한 역할을 수행했다. 김용환·남덕우(경제), 함병춘·윤치영·이용희(정치), 김용식·최규하(외교), 박종홍(문화교육) 등 내로라하는 역대 특보들의 면면이 징표다.
‘대통령 특별보좌관’이라는 직함은 대통령이 부여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도 활용됐다. 전두환 정권 시절 노태우 정무2장관이 외교안보 특보를 겸하면서 올림픽 유치 활동을 벌였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임동원 외교안보통일 특보가 남북 접촉의 밀사 역을 맡았다.
하지만 이후 정부에서 대통령 특보단은 대개 측근들의 ‘일자리 창출용’이거나 기존 청와대 및 내각 멤버의 퇴임 후 거처로 활용되면서 빛이 바랬다. 이명박 정부 후반 이동관·박형준·유인촌 등 최측근들로 특보단이 꾸려지면서 ‘특보정치’ 논란까지 빚은 것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특보는 업무를 위한 실비만 제공되는 무보수 명예직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강철 정무특보가 청와대 인근에 횟집을 내 시비가 일었을 때다. 실제 횟집을 운영하는 부인이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항변해 ‘무보수’를 극적으로 부각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회견에서 ‘소통’을 위한 특보단 신설 방침을 밝혔다. 이제라도 ‘소통 부재’를 깨우친 것이라면 가상한 일이겠으나, 특보 몇 자리 늘린다고 고질의 불통이 개선될지 의문이다. 장관이나 수석비서관 등 계선조직의 인사조차 대통령과의 소통이 어려운 구조에서 특보가 ‘문고리 권력’을 넘어 바깥의 얘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싶다. ‘특보단 신설’이 청와대 쇄신 요구를 우회하고, 충성심으로 무장한 측근 몇몇을 ‘대통령 곁’에 두기 위한 기획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 6개 경제 부처 신년 업무보고
[서울신문 사설-20150114수] 경제혁신의 마지막 골든타임이 시작됐다
기획재정부와 농림축산식품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6개 경제 부처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에게 신년 업무보고를 했다. 해마다 하는 업무보고이지만 올해 더 관심이 가는 것은 특히 경제 분야에서 국내외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는 세월호 충격에 경제 회복을 위한 정부의 추진 동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경제 구조개혁도 더디게 진행됐고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여전히 경제 활성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래서 ‘경제 혁신을 본격화할 골든타임’이라고 누누이 강조해 온 대로 박근혜 정부는 집권 3년차인 올해를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경제 회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제 혁신은 ‘선택지 없는 외나무다리’”라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에서 느껴지듯 우리의 상황은 절박하다. 내수와 투자 부진으로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는 마당에 설상가상 유럽의 경제위기와 유가 급락이라는 외생적 악재가 우리를 덮치고 있다. 혁신은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다. 기업은 제품의 혁신을 통해 시장을 선도해야 하며 정부는 의사가 환자를 수술하듯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도려내고 바꿔야 한다. 정부가 업무보고에서 노동·금융·공공·교육 등 핵심 분야의 구조개혁을 재삼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말만큼 개혁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해 내놓은 비정규직 대책에 노사 모두 반발했듯이 노동 개혁은 그중에서도 최고의 난제로 꼽힌다. 근로자의 권익과 처우를 개선하면서도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개혁의 성공에 왕도는 없다. 반발 세력을 설득하고 강한 의지로 밀어붙이는 길뿐이다. 공공개혁 또한 중단 없이 추진돼야 한다. 정부는 공사채 총량제 확대로 방만경영 개선 노력을 제도화하고 연봉제와 임금피크제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더 중요한 것은 공무원연금 개혁이다. 올해 안에 개혁의 틀을 완성하지 않으면 기회는 더 없다는 사실을 깊이 되새겨야 한다.
장밋빛 전망과 보여 주기 정책으로는 우리 앞을 가로막은 산을 넘을 수 없다. 재탕, 삼탕, 잡탕식 정책으로도 개혁을 달성할 수는 없다. 정책의 무분별한 남발은 도리어 시장에 혼란만 준다. 이번 업무보고에서도 자화자찬과 백화점식 정책 나열의 관행이 여전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최경환 경제팀이 많은 정책을 내놓았지만 결과적으로 칭찬받을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초이노믹스’라 명명됐던 한국식 양적완화도 별무신통이었다.
물론 경제정책은 단기간에 성과를 보기도 어렵고 단시일 안에 승부를 보려는 근시안적인 시각도 금물이다. 정책의 진행 과정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는 끈질긴 리더십이 요구된다. 대통령과 정부의 힘만으로 개혁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함께 경제의 3축인 국민(가계)과 기업이 정부와 보조를 맞추고 힘을 합쳐야 한다. 개혁에 보수·진보, 노사, 여야가 따로 있을 수도 없다. 상대방의 발목만 잡는 구태는 청산하고 양보와 타협을 할 줄 알아야 경제 혁신은 앞당겨질 수 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1050114수] 부처 업무보고 백화점식 계획보다 실천 중요하다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 등 6개 경제 관련 부처를 필두로 정부 부처 대통령 업무보고가 13일 시작됐다. 부처 업무보고는 22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기재부 등 6개 부처의 업무보고는 저성장과 고령화 위기에 직면한 한국 경제의 재도약에 필요한 기반을 다지는 데 중점을 뒀다고 한다.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핵심 분야 구조개혁을 통해 저성장·저물가의 침체국면에 빠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복안이다.
업무보고가 구조개혁과 내수확대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실행방안을 제시하고 있음은 나름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지난해 말 정부가 내놓았던 각종 경제정책과 올해 경제정책 방향에 반영됐던 내용이다. 무엇보다 개혁을 뒷받침할 주요 액션플랜이 눈에 띄지 않는 듯하다. 구조개혁 중 가장 난제로 꼽히는 노동개혁의 경우도 큰 틀은 이미 발표된 '비정규직 종합대책'과 유사하다.
정책의 큰 그림은 그럴듯한데 실천방안이 이에 못 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민원 해결용으로 여겨지는 정책들도 다수 포함돼 있어 진정성에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각 부처가 청와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기존 사업을 부풀려 새로 포장만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래서는 업무보고가 겉포장만 화려한 보여주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공공 부문을 마중물 삼아 구조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본격화·장기추진 등 구호성이거나 장밋빛 계획만 나열해서는 경제가 제대로 살아날 리 없다. 그러잖아도 올해를 한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구조개혁과 경제살리기가 '우리 시대의 소명' '선택지 없는 외나무다리'라며 절박성을 강조해온 정부 아닌가. 하나라도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오도록 실천에 앞장서야 할 때다. 국민의 피부에 직접 와 닿지 않는 정책 나열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114수] 잠들지 않는 '정윤회 문건' 음해·이간질에 악용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들여다보던 개인수첩에 ‘문건 파동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한 인터넷언론 카메라에 포착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있던 날이다. 김 대표는 논란이 일자 “누가 그러길래 그냥 적었는데, 그게 카메라에 찍힌 것”이라며 “이니셜 인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당 대표의 메모에 문건 파동 배후가 나왔다면 무게가 다르고, 그냥 넘어갈 일도 아니다. 당장 새정치민주연합은 “검찰 수사를 심지어 여당 대표조차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난 메모”라며 “특검을 통해 배후를 가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바탕 소동이 빚어지자 메모에 적힌 또 다른 이름의 한 인사가 뒤늦게 사실을 밝힌 모양이다. 그가 김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김무성(K), 유승민(Y)이 십상시 문건 파문의 배후라고 하는 소문에 대해 아시냐고 말 한적이 있다”며 “황당한 헛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준 것”이라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누군가 ‘정윤회 문건’을 이용해 또 다른 음해, 이간질에 이용해 먹고 있다는 얘기다. 정치판이 말을 잘 지어낸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풍문과 의혹의 확대재생산 구조가 이 정도라니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풍문도 결국 검찰 수사의 빈틈을 파고든 것이라는 데 이르면 예사로 볼 일도, 그냥 해프닝으로 치부할 일도 아니다.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에서 문건 내용에 있는 2013년 십상시 송년모임과 정윤회씨의 김기춘 비서실장 관련 언급에 대해 박관천 전 경정의 ‘창작’으로 결론 내렸다. ‘근거 없는 풍설이 공직자에 의해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가공됐다’고 한데서 그렇다. 하지만 박 전 경정은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에게 들었다고 했지만, 박 전 청장은 김 실장 사퇴설에 대한 찌라시 내용 등을 말했을 뿐 문건에 있는 정씨 발언을 박 전 경정에게 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또 김 실장과 홍경식 전 민정수석의 지시로 김 실장 사퇴설 유포 경위를 조사하게 됐다는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말과 달리 김 실장이나 홍 전 수석은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문건 작성 경위와 ‘창작’과정이 분명하지 않다는 의미다. 허위라면 범행 동기가 있어야 할 터인데 그것도 없다. 문건 파장 ‘배후’ 풍문이 김 대표를 겨냥하고, 대통령이 허위라고 해도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하는 까닭이 검찰 수사의 허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일보 사설-20150114수] 현병철 체제로는 인권위 바로 세울 수 없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해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로부터 두 차례 등급보류 판정을 받은 것을 인권단체 등 NGO 탓으로 돌려 또 도마에 올랐다. 그는 엊그제 3월로 예정된 ICC의 3차 심사를 앞두고 인권위법 개정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다른 나라 NGO는 이렇게 하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국론이 분열될 정도로 이의 제기를 한다”며 NGO에 화살을 돌렸다. 여당 추천인 유영하 상임위원은 한술 더 떠 “어떤 국가도 ICC의 요구를 100% 충족 못한다”며 ICC의 권고 자체를 문제 삼았다. 극히 이례적인 두 차례 등급보류로 국제적 망신을 사고도 자성은커녕 남만 탓하고 있다.
세계 120개국 인권기구연합체인 ICC는 5년마다 각국 인권기구의 활동을 평가해 AㆍBㆍC등급을 매긴다. 한국은 2004년 가입 당시와 2008년 심사에서 A등급을 받았으나 지난해 3월과 11월 연거푸 등급보류 판정을 받았다. 현재 A등급은 70여개국. B등급으로 떨어지면 각종 투표권이 제한된다. 국제사회에서 인권문제를 거론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안경환 전 위원장 시절 ICC 의장국 물망에까지 올랐던 인권위로서는 굴욕이 아닐 수 없다.
등급보류의 주된 사유는 인권위 구성 문제다. ICC는 인권위원의 자격요건에 관한 명확하고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고, 후보자를 공모해 심사ㆍ선정에 여론을 반영하며, 위원 구성을 다양화할 것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1차 등급보류 이후 현재 위원장만 치르는 인사청문회를 상임위원으로 확대하는 정도만 법에 반영하고 선임절차 등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으로 대체한 개선안을 내놨다가 거듭 퇴짜를 맞았다.
현재 인권위원 11명 가운데 4명은 대통령,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고, 4명은 국회에서 여야 2명씩 선출하도록 돼 있다. 인권기구의 생명인 독립성과 자율성이 쉽게 침해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이나 다름없는 현 위원장 취임 이후 5년간 인권위는 본분을 망각하고 정권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용산참사, 밀양송전탑 농성 등에서 벌어진 인권유린을 철저히 외면했고, 윤모 일병 폭행사망 사건 때는 가혹행위를 확인하고도 진정을 각하했다가 뒤늦게 직권조사에 나서 빈축을 샀다.
인권단체 등은 인권위원 선임의 투명성과 공정성, 구성의 다양성 제고를 위해 후보자추천위원회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ICC의 권고에 비춰봐도 당연하고도 필요한 절차다. 현 위원장은 마지못한 듯 NGO와의 대토론을 제안했지만 진정성 있는 대화가 이뤄질 리 만무하다. 인권위를 철저히 망가뜨린 그는 당장 물러나야 옳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114수] ‘들끓는 기자회견 민심’마저 귀 막을 텐가
박근혜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을 놓고 오랜만에 ‘여론 통일’이 됐다.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언론이 이처럼 똑같은 목소리로 부정적 평가를 일제히 쏟아낸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그만큼 기자회견에서 확인된 박 대통령의 ‘고집과 불통’은 심각했고, 국민과의 사이에 가로놓인 인식의 간극은 넓고도 깊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청와대는 이런 상황을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듯하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언론의 부정적 평가에 대해 “여러분의 시각을 존중하고, 여러분이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여론의 반응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대책을 마련하려는 긴장된 분위기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사실 이런 내용의 기자회견에 여론의 집중포화가 쏟아지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라도 비선세력의 국정개입 의혹 사건으로 청와대의 인적쇄신이 필요하다는 데는 국민의 의견이 하나로 모여 있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민심의 아우성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청와대 의사 결정의 ‘악순환’이다.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을 성공시키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책임자는 바로 김기춘 비서실장이었다. 그런데 김 실장 자신이 기자회견의 ‘아킬레스건’인 상황에서 무슨 제대로 된 참모 판단과 건의가 이뤄졌겠는가.
김 실장이 버티고 있는 한 기자회견의 뒷수습 역시 이뤄지기 힘든 구조다. 기자회견 이후 들끓는 민심을 있는 그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할 리도 만무하고, 제대로 된 여론 진정 방안을 찾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에 대한 ‘무한 애정’을 과시한 대통령에게 새해 기자회견이 ‘실패작’이라고 말할 리 있겠는가. 오히려 대통령의 눈과 귀를 더욱 가리려 할 것이다. 결국 ‘청와대 인적쇄신 거부→국민 여론의 잘못된 해석→그릇된 국정운영’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새해 기자회견을 통해 ‘누가 뭐래도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천명했다. 시쳇말로 ‘개는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식이다. 하지만 그 기차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박 대통령의 전통적인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한 상황에서 새해 기자회견은 민심 이반을 더욱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철길에는 적신호가 켜져 있는데 기차는 계속 낭떠러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114수] 나라 망신시키는 국가보안법 공안몰이
방북 경험을 전하는 ‘통일 토크콘서트’를 열었다는 이유로 재미동포 신은미씨가 강제출국 당하고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구속되는가 하면 이 행사에서 인사말을 한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소환 통보를 받았다. 검경이 벌이는 이 ‘공안몰이’의 법적 근거는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다. 이 조항은 처벌 대상이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혀왔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그랬듯이 집권자가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거나 사회적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최근의 상황만 봐도 이런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통일 토크콘서트에 대해 종편 등 보수매체들이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했다’는 등 허위사실을 동원해가며 ‘종북몰이’를 하자, 검경이 기다렸다는 듯이 강경대응에 나서고 야당 의원까지 수사선상에 올렸다. 국내에서는 물론 국외에서도 비판이 나올 정도다. 젠 사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9일 “일부 경우에서 보듯이 그 법(국가보안법)이 표현의 자유와 인터넷 접근을 제한하고 있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해마다 발간하는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통해 국가보안법의 남용 가능성을 지적해왔지만, 이번처럼 특정 사건과 관련해 바로 공식 언급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 언론들도 “기이한 사건”이라거나 “박근혜 정부 집권 이후 그런 남용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지적에 대해 12일 기자회견에서 “각 나라마다 사정이 똑같을 수 없다. 남북이 대치하는 특수한 사정에서 우리나라의 안전을 지키고자 필요한 최소한의 법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말끝마다 국제기준에 맞는 행동을 하라고 촉구하면서 우리한테는 특수사정 운운한다면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미국과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사회는 국가보안법 제7조의 폐지를 줄곧 권고해왔다. 그것이 우리의 안보를 포기하라는 요구가 아니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한반도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인류 보편의 가치에 비춰 용인될 수 없는 법이라는 얘기다. 사실과 의견의 자유로운 흐름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임을 박 대통령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폐지해야 마땅한 국가보안법 제7조가 오히려 다시 기승을 부리는 지금의 현실은 민주주의의 후퇴이자 나라 망신이다.
[중앙일보 사설-20150114수] 영화 '국제시장' 표준근로계약서, 진정한 대박이다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이 13일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한국영화로는 11번째 기록이다. 한때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산업화 시대 가족을 위해 희생해온 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가 공감을 자아내며 흥행에 성공했다. 윤 감독은 2009년 ‘해운대’에 이어 두 편의 1000만 영화를 내놓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보다 더 주목할 기록은 제작비 140억원의 블록버스터인 이 영화가 제작 스태프들에 대한 표준근로계약서를 이행한 첫 번째 대작 영화라는 점이다. 표준근로계약의 내용은 ‘하루 12시간 이상 촬영 제한, 12시간 넘길 시 초과수당 지급, 일주일에 1회 휴식일 보장, 4대 보험 가입’이다. 사실 그간 문화산업 현장은 실질적인 ‘노동법의 사각지대’와 다름없었다. 이런 당연한 최소한의 권리조차 지켜지지 못했다. 젊은 스태프들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기는커녕 일명 ‘열정페이’란 이름으로 저임금과 부당노동행위를 감수해야 했다. ‘열정을 돈으로 따지지 말라. 열정을 불태울 기회를 줬으니 돈은 덜 받아도 된다’는 이상한 논리다.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백주대낮에 굶어 죽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는가 하면, 능력 있는 창작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현장을 떠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충무로 스태프들의 오랜 노력으로 지난해 드디어 표준근로계약서를 이행한 첫 영화 ‘관능의 법칙’이 나왔다. ‘국제시장’은 더 나아갔다. 기획 단계부터 제작의 전 단계에 표준근로계약을 적용했고, 막내 스태프들까지 예외를 두지 않았다. 1000만 돌파에 따른 보너스도 고루 지급할 예정이다. ‘국제시장’의 사례는 문화산업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윤 감독은 “표준근로계약을 통해 순제작비가 3억원가량 상승했지만 현장 분위기가 좋아지고 10분도 허투루 쓰지 않는 등 철저한 준비로 제작에 플러스가 됐다”고 말했다. “예전에 이틀 밤을 넘기면서 촬영할 때는 영화라는 게 사람 할 짓이 못 된다고 느꼈는데 이번에는 영화를 평생 직업으로 가져도 되겠다 싶었다”고도 했다. 그가 이럴진대 평범한 대다수 스태프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영화의 투자배급사인 CJ E&M은 ‘국제시장’을 필두로 2013년 8월 이후 투자배급이 결정된 모든 작품에 표준근로계약을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이런 노동인력의 ‘갑을관계’ ‘착취구조’ 문제는 충무로뿐 아니다. 방송 드라마, 공연에서 최근 유명 디자이너의 ‘청년착취’ 논란이 불거진 패션업계까지를 망라한다. 한류나 창조경제를 이야기하지만 스태프들의 기본 권리 찾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건강한 문화생태계 조성은 요원한 얘기일 것이다. 다행히 최근 몇 년간 정부와 업계의 노력으로 각 영역마다 ‘표준계약서’ 제정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문제는 그것의 현실 적용이다. ‘국제시장’은 업계의 자율적 상생과 공존이 영화의 완성도와 ‘대박’으로 이어진 모범사례라 할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114수] 북, 두만강 개발 위한 남북협력 뜻은 좋지만
북한은 사회과학원 학보 최신호에서 ‘동북아시아 경제협력의 발전과 조선반도’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남북한 경제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논문은 두만강 지역 개발 사업을 남북 경협의 시범지역으로 삼을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남북 간 원유 및 천연가스 수송관 부설, 시베리아 횡단 철도 및 한반도 종단 철도 건설도 남북협력 사업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비록 북한 당국의 공식 입장이 아닌 논문 발표 내용이지만 두만강 개발 및 가스·철도 연결을 위한 남북협력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남북관계 현실이 열악하더라도 북한이 대화와 협력을 바라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두만강 개발 계획은 남북은 물론 중국·러시아·몽골·일본이 참여하는 다자간 협력 구상이다. 경제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추구하고 역내 평화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두만강 개발 사업 참여국가 간 이견은 없다. 그러나 국가들 간 이해와 관심사가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 그 때문에 두만강 개발 계획은 오랜 논의에도 기대만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 요인, 즉 북한 리스크가 가장 큰 변수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외부의 투자 유치에는 적극적이지만, 투자 유치에 필요한 내부 개혁에는 부정적이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 및 한반도 종단 철도 건설에 진전이 없는 것도 이런 북한 요인 때문이다. 동북아 협력사업은 곧 정치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치 현안을 풀지 않으면 동북아 협력의 실질적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문제로 인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의 중단 상태를 방치하는 한 협력은 장애물을 넘을 수 없다.
북한도 논문에서 “동북아시아 경제협력에서 조선반도가 제대로 참가하고 그 역할을 높이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이 지역의 긴장한 정치군사 정세를 완화시키기 위한 조치들이 취해져야 한다”며 그런 논점에 공감을 나타냈다. 사실 북측 주장이 아니더라도 북한 선박의 남측 해양 운항, 남북교역, 북한에 대한 신규 투자를 불허하는 5·24 조치가 있는 한 남북협력은 요원하다. 그러나 북한이 ‘미제’ 운운하며 그 책임을 외부로만 돌리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경제협력을 위해 비핵화에 성의를 보이고,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는 도발적 언행을 자제해야 할 당사자의 한 측이 바로 북한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외부 여건을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 장애물을 치우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114수] 전국 정당이 과제라는 제1야당의 딱한 현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들에게 새 당대표의 핵심 과제를 꼽도록 한 본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68명 중 가장 많은 23명이 ‘전국 정당 기반 강화’를 지목했다. ‘계파 타파’(12명)나 ‘당 혁신’(7명), ‘개헌’(7명) 등 보다 ‘당의 전국 정당화’를 더 중요하게 보는 의원들이 많은 셈이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새정치연합 전신인 통합민주당은 17개 광역 시·도 가운데 대구·경북과 강원, 울산을 빼고 13곳에서 109명의 지역구 국회의원을 냈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광주와 전남·북, 세종, 제주 등 5곳에서 국회의원을 못 낸 것에 견줘 보면 새삼 전국 정당을 외쳐야 할 만큼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다고 볼 수는 없는 당이다. 호남 편중이 문제인 것은 분명하나 지역패권 구도야 새누리당도 별반 다를 바 없으니 새정치연합만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정당화’를 핵심 과제로 꼽은 의원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은 자못 흥미로우면서도 많은 우려를 자아내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일단 설문 결과에 담긴 새정치연합 의원들의 희구(希求)는 지금 진행 중인 당대표 경선과 결부지어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비호남 출신 후보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의도적으로 당내 지역편중 문제를 부각시키려 한 결과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런 정략적 계산과 별개로 호남 편중에 따른 당 저변의 심리적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야권 연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면서 이를 대체할 ‘선거승리 공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실체가 무엇이든 전국 정당화를 핵심 과제로 보는 인식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부단한 자기 혁신과 정책 계발로 수권 정당의 면모를 갖추려 하기보다는 여전히 선거공학 차원의 해법을 찾는 데 사고가 머물러 있는 게 아닌지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스스로 벽을 깨고 나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을 산업화·민주화 세력으로 나누고,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적 사고 틀에 자신을 가둬 둔다면 희망이 없다. 현충원을 찾아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만 참배하고 돌아서는 옹색한 자세와 대안 없는 비판에만 몰두하는 안이함을 버리지 못하는 한 당의 외연 확대는 요원하다. 어제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의 신년 회견처럼 현 정권 비난에만 부심할 뿐 그 어떤 대안도 내놓지 못한다면 만년 야당 신세를 면키 어렵다. 혁신으로 경쟁하고 대안으로 승부하는 정당이 차기 지도부의 과제가 되길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1050114수] 비싼 커피 불매운동이라도 해야 하나
자유무역협정(FTA)만 체결하면 관세 인하로 수입 물가가 크게 떨어진다던 정부의 약속과 달리 일부 수입 농식품 품목의 국내 가격은 오히려 올랐거나 선진국보다 훨씬 비싼 것으로 드러났다. 소비자시민모임은 지난해 6월과 10월에 서울을 포함해 세계 13개국의 주요 도시에서 42개 농축산물·가공품의 가격을 조사해 그중 8개 품목은 한국 판매 가격이 가장 높다는 결과를 그제 내놓았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커피와 칠레 와인인 몬테스알파 카베르네소비뇽의 가격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비쌌다. 이탈리아산인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과 미국산 체리, 미국산 톰슨 시들리 청포도는 거의 최고가 수준으로, 원산지 가격과 비교하면 각각 2.8배와 2배, 1.9배였다. 특히 체리는 지난해 6월 기준으로 100g당 1780원으로, 한·미 FTA 발효 직후인 2012년 6월과 비교했을 때 2년 만에 42.4%나 올랐다. 농식품에 붙은 관세가 사라졌거나 낮아졌고, 심지어 환율마저 내려갔는데 이런 분통 터지는 일이 왜 벌어진 것일까. 간단하다. FTA 관세 인하 효과를 독점 수입업체가 독점하거나,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가격이 오히려 올라가 소비자가 체감할 수 없게 된 탓이다.
대표적인 품목이 칠레 와인과 미국 커피다. 2004년 한·칠레 FTA로 2009년부터 관세가 철폐됐지만, 가격이 떨어지지 않은 데 대해 정부도 비판을 피해 갈 수 없다. 정부는 FTA 체결에만 힘을 쏟았을 뿐 그 효과가 확산할 수 있는 시장구조, 즉 수입업체 다변화를 통한 경쟁의 활성화나 유통구조의 개선 등에 충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의미다. FTA로 수입업체 배만 불려 준 꼴이다.
미국에서 2477원에 마시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커피를 한국에서는 4100원을 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마셔야 하는 것에 분통이 터진다. 한국의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커피는 13개국 커피 평균 가격 3207원과 비교해도 28%가 비싸다.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훨씬 높은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보다 싸게 마셔야 할 스타벅스 커피를 오히려 비싸게 마시고 있으니 한국의 소비자는 역시 봉이다. 정부가 FTA로 한국 기업의 경제 영토를 넓혀도 소비자가 관세인하의 과실을 따먹을 수 없다면, 이런 FTA를 왜 하느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소비자 불매 운동이 일기 전에 해당 업체는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고 정부도 철저히 관리하고 감독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114수] 한은 - 감독원 정보공유조차 안한다는 IMF의 비판
한은 금감원 등 금융감독 당국들이 정보공유조차 안 하고 있어 위기대응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적은 뼈아픈 것이다. 종합적인 위기대응을 위해 감독기구를 통합한 기억이 생생한데 기초적인 부문에서조차 담을 쌓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한은과 금감원은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주고받지 않는다”며 “따라서 한은의 하향식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와 금감원의 상향식 결과는 교차검증할 효과적 통로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IMF가 최근 공개한 한국금융부문 평가프로그램(FSAP)의 부속보고서에서 밝힌 내용들이다.
IMF는 이미 지난해 한국 금융평가 프로그램에서 한국 금융 상황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부속보고서는 한국에 대한 평가단의 솔직한 시각이 담겨 있어 특히 주목을 끈다. 특정 국가의 당국간 비협조를 비판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 Fed(중앙은행)의 금리인상에 대비해 신흥국들의 위기 대응능력을 면밀히 조사하고 있는 IMF가 한국의 금융감독 체계와 위기관리 시스템의 신뢰성에 의문부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금융당국 간 영역 다툼과 정보독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은행과 금감원 간 자료나 데이터의 단절은 해묵은 과제 중의 과제다. 자료를 요청하면 언론에 이미 배포한 보도자료를 건네주는 일도 빈번했다는 것이다. 한은과 금융위 금감원 예보 등 감독당국의 수장들이 모여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그것도 모자라 차관급이 수장을 맡는 태스크포스도 여러번 만들었지만 결과는 요지부동이라는 것이 이번 IMF의 진단이다. IMF의 지적대로 이런 구조에서라면 위기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한은과 정부의 협력도 마찬가지다. 외환보유액 관리에서 정보나 지식의 공유는 찾아보려야 볼 수가 없다. 박근혜 정부는 유독 정부 내 협업을 강조한다. 정부보고서에는 말미에 다른 부처와의 협업결과까지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금융감독 당국 간 의사소통 부재가 외부의 지적을 받을 정도다. 속좁은 관할권 의식은 이다지도 골수에 박힌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114수] 월성 1호기 재가동, 계속 미루기만 하겠다는 것인가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안건이 15일 열리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전체회의에 상정된다. 한국수력원자력이 2009년 12월30일 계속운전을 신청한 지 무려 5년이 지나고 있다. 한수원은 당시 월성 1호기의 설계수명 30년이 되는 2012년 11월을 앞두고 원자력법에 따라 연장 여부를 물은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지금까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은 탓에 월성 1호기는 벌써 2년 넘게 가동이 정지된 상태다. 이번에도 원안위가 분명하게 결론 내린다는 보장이 없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설계수명 만료 전에 이미 결론을 냈어야 할 사안이다. 법에서 설계수명 만료 5년 내지 2년 전에 계속운전 여부를 신청하도록 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18개월 이내 심사 규정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정부는 그동안 후쿠시마 사태와 원전비리 등으로 여론이 악화되고 계속운전이 대선 이슈로 등장하자 눈치를 살피느라 결정 자체를 무작정 연기해왔다. 그 후 월성 1호기는 법에도 없는 스트레스 테스트까지 받았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이 계속 물고 늘어지면서 또 시간이 흘러가고 말았다. 월성 1호기가 계속운전에 들어가더라도 설계수명 만료일로부터 10년이다. 이미 소모해버린 2년을 빼면 길어야 8년밖에 가동을 못 한다는 얘기다. 원안위가 15일에도 결정을 못 하면 그마저도 보장이 안 된다. 원안위가 왜 있는건가.
정부가 결정을 못 내리는 건 사용후핵연료도 마찬가지다. 당장 2016년 고리원전을 필두로 포화에 이를 것이라는데도 시간만 보내고 있다. 그게 벌써 30년이 다 돼간다. 정부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사례는 널렸다. 보건복지부는 1990년대부터 제기된 원격진료에 대해 아직도 시범사업이나 벌이며 결론을 못 내리고,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정권마다 규제개혁을 외치지만 규제 중의 규제라고 할 수도권규제가 매번 표류하는 것도 똑같은 문제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올해 수도권 규제완화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이를 믿지 않을 정도다. 아무런 결정도 못 내리는 불임정부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114수] 제멋대로 판사, 우리끼리 변호사…법조는 어디로 가나
법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통상임금 판결은 법원마다 제각각이어서 무엇이 정의로운 판결인지 이미 실종 상태다. 2013년 12월 대법원이 전원합의를 거쳐 통상임금 판단 기준을 제시한 이후에도 ‘오락가락 판결’이 계속되고 있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볼 것이냐가 최대 논란거리인데 최근의 판결 18건 가운데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본 판결이 4건, 아니라고 본 경우가 14건이었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판례에도 불구하고 일선 법원들이 제멋대로 판결을 내리면서, 상급법원으로의 송사만 계속되고 있다. 통상임금 소송이 최대 6000건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 있다.
동일한 사건은 동일한 판결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보편법정의 이념이다. 그런데 재판부의 재량이 법치를 압도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멋대로’ 판사들이 ‘마음대로’ 재판하는 상황이라면 누가 어디서 판결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보편법정의 이념을 설파했던 볼테르가 지금 한국의 법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실망을 주기는 변호사들도 마찬가지다. 엊그제 하창우 변호사가 대한변호사협회 차기회장에 당선됐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현재 2000명 수준인 연간 배출 변호사 수를 1000명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이왕에 변호사 자격증을 딴 사람들의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것인데, 아무리 협회라고 하지만, 변협 회장 후보가 내건 공약 치고는 걱정스럽다. 변협은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집단이요 회원에 대한 처벌권 등 공적 권한까지 행사하고 있다. 사법개혁에 대해 언급하긴 했다. 상급법원 설치 반대, 검찰평가제 도입 등을 언급했지만 방점은 엉뚱한 곳에 찍혔다. 그가 내건 사법시험 존치 공약은 변호사 수 축소와 맞물려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전관예우에 대한 비판조차 전업변호사들의 이권수호처럼 들릴 지경이다.
법조삼륜이 모두 헛바퀴를 돌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나라에서 법치주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과연 무엇으로 나라의 기초를 삼을 것인가.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한겨레 프리즘/허호준(사회2부 기자)-20150114수] 역사를 되돌리지 말라
새해 첫날 <한겨레>가 주관한 새해맞이 일출 행사를 위해 얼굴을 때리는 세찬 눈보라를 뚫고 일행들과 함께 다랑쉬오름에 올랐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잿빛 구름 사이로 여명이 밝아오면서 밤새 내린 눈의 바다에 펼쳐진 오름 군락이 자태를 드러냈다.
다랑쉬오름을 택한 이유는 대설로 한라산 등산이 전면 통제된 것도 있었지만, 4·3의 상징과도 같은 오름이기 때문이었다. 1992년 4월 제주시 구좌읍 다랑쉬굴에서 발견된 4·3 희생자 11명의 유골을 취재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이 겨우 기어들어가야 하는 조그마한 굴 안에서 유골을 만난 것은 충격이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은 희생자들의 눈물이었다. 희생자들은 1948년 12월18일 토벌대에 발각돼 집단학살된 구좌읍 종달리와 하도리 주민들이었다. 토벌대는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넣었고, 굴속의 주민들은 연기에 질식돼 죽어갔다. 그 가운데는 7살 어린아이도 있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금기시되던 4·3문제 해결은 더디지만 진전돼왔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제주4·3특별법이 2000년 초 제정됐다. 이 법에 따라 국무총리 산하 제주4·3위원회는 2002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9차례에 걸쳐 희생자 심사를 벌여 1만4311명의 희생자를 결정했다. 희생자로 결정되면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 희생자 위패를 봉안할 수 있고, 유족들은 언제든지 위패봉안소를 찾을 수 있다.
다랑쉬오름에 오른 지 10여일이 지난 지금, 4·3 유족들을 들쑤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 고위 관리의 입에서 희생자 재심사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제주도를 방문한 정재근 행정자치부 차관이 4·3유족회 간부들과의 오찬간담회 자리에서 “4·3추념일에 대통령께서 참석하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자 재심사와 위패 문제를 꺼냈다. 대통령이 참석하려면 보수단체들이 문제 삼고 있는 위패들은 재심사를 통해 정리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정 차관의 발언은 4·3특별법 제정을 부정해온 일부 보수단체들이 희생자 재심사를 통해 ‘주동자’들의 위패를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희생자 재심사를 해서 문제가 있으면 위패를 철거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상처를 끄집어내 부관참시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제주4·3유족회 등 관련 단체들은 12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4·3 희생자 재심사 착수 운운한 정 차관의 발언은 4·3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을 우롱하는 반역사적 발언이자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몰상식한 행태”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새정치민주연합만이 아니라 새누리당 제주도당도 재심사를 반대하고 나섰다. 정종학 새누리당 도당위원장은 “화해하고 상생하려는데 왜 자꾸 소금을 뿌려대느냐”고 비판했다.
4·3문제 해결의 대원칙은 화해와 상생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화해하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취지다. 이 때문에 군경 토벌대로 참여한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사과를 한 적은 없지만, 피해자들은 가해자 처벌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적도 없다.
제주4·3위원회에는 국무총리를 포함해 7명의 장관이 위원으로 들어가 있다. 심사소위원회에서 희생자를 심사하면 전체회의에서 희생자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희생자 재심사는 국가 차원의 결정을 부인하는 행태다. 대통령이 과거 국가폭력행위로 수많은 국민들이 희생된 곳을 찾아 추념하는 것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14일에는 심사소위원회가 열린다. 재심사 여부가 의제로 거론될 예정이다. 어두컴컴한 다랑쉬굴 속에서 죽어간 섬사람들, 그들이 앞마당처럼 다녔던 다랑쉬오름은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역사를 되돌리지 말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영희(문화스포츠부문 기자)-20150114수] 패기 없는 젊음이라고?
문화스포츠부문 기자늦은 퇴근길 버스에서 고교 동창생으로 보이는 20대 초반 여성 둘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한 명은 서울 명동에 있는 화장품 드러그스토어 점원으로, 다른 이는 명동의 한 미용실에서 보조 미용사로 일하고 있는 듯했다. 대화의 대부분은 수당도 없이 하루 12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노동과 ‘진상 손님’으로 인한 괴로움, 그리고 생활을 유지하기에 빠듯한 “백만원 살짝 넘는 월급”에 관한 것이었다. “캐나다에선 보조 미용사도 월 300만원은 번대”라며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던 중 이야기는 얼마 전 일어난 백화점 주차요원 수난 사건으로 이어진다. “네가 알바생이면 어떡할 건데?” “야, 바로 무릎 꿇는 거지. 사회생활이 장난이냐.” 그러고는 마주보며 깔깔 웃는다.
백화점을 찾은 모녀 손님이 주차요원들을 무릎 꿇린 사건을 두고 한 교수가 SNS에 이렇게 적었다. “하루 일당 못 받을 각오로 당당히 부당함에 맞설 패기도 없는 젊음. 가난할수록 비굴하지 말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 좋겠다.” 안타까움에서 나온 말이란 건 안다. 그런데도 이 말이 불편한 건 ‘젊음=패기’라는 공식이 주는 어떤 강압적인, 혹은 예스러운 느낌 때문이다. 말하기에도 입이 아프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 20대는 가장 패기를 갖기 힘든 세대다. 지난해 우리나라 실업률은 3%대지만 15~29세 실업률은 8% 안팎에 이르렀다. 취업을 하면 뭐하나. 한 달 월세 내기도 빠듯한 ‘열정 페이’로 이들의 시간과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회사들이 즐비하다. 살기는 팍팍한데 살아야 할 날은 길다.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패기를 가지라”고 강요하는 건 가혹하지 않은가.
최근 출간된 일본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이렇게 앞이 보이지 않는 20년을 지난 후 한 나라의 젊음이 다다른 종착점을 보여준다. 번듯한 직업을 갖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는 삶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거란 기대가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현재에 만족하며 즐겁게 살자는 ‘정신승리’에 돌입한다. 그리하여 이름도 ‘사토리(さとり·득도, 깨달음) 세대’다.
패기(?氣)는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해내려는 굳센 기상이나 정신’이란 뜻이다. 한 20대 후배가 말했다. “자신의 월급을 지키기 위해 무릎 꿇는 모욕을 견디는 것도 일종의 패기라면 패기다.” 요즘 청년들은 패기가 없다기보단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양권모(논설위원)-20150114수] 대통령 특보
7대 대선을 앞둔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각계 전문가들로 하여금 중·장기 정책 수립에 이론적인 뒷받침을 하고 정부 시책에 대한 분석·평가를 맡을 연구소 형식의 외곽기관 설립을 구상한다. 하지만 ‘연구소원’이라는 직함이 각계의 중량급 인사 영입에 걸림돌이 된다. 대안으로 마련된 것이 ‘대통령 특별보좌관제’다. 미국 백악관의 특별보좌관(special assistant)에서 따온 이름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대통령 특보’는 단순 조언자에 머물지 않았다. 실질적인 정책 수립의 브레인으로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 못잖은 막강한 역할을 수행했다. 김용환·남덕우(경제), 함병춘·윤치영·이용희(정치), 김용식·최규하(외교), 박종홍(문화교육) 등 내로라하는 역대 특보들의 면면이 징표다.
‘대통령 특별보좌관’이라는 직함은 대통령이 부여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도 활용됐다. 전두환 정권 시절 노태우 정무2장관이 외교안보 특보를 겸하면서 올림픽 유치 활동을 벌였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임동원 외교안보통일 특보가 남북 접촉의 밀사 역을 맡았다.
하지만 이후 정부에서 대통령 특보단은 대개 측근들의 ‘일자리 창출용’이거나 기존 청와대 및 내각 멤버의 퇴임 후 거처로 활용되면서 빛이 바랬다. 이명박 정부 후반 이동관·박형준·유인촌 등 최측근들로 특보단이 꾸려지면서 ‘특보정치’ 논란까지 빚은 것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특보는 업무를 위한 실비만 제공되는 무보수 명예직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강철 정무특보가 청와대 인근에 횟집을 내 시비가 일었을 때다. 실제 횟집을 운영하는 부인이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항변해 ‘무보수’를 극적으로 부각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회견에서 ‘소통’을 위한 특보단 신설 방침을 밝혔다. 이제라도 ‘소통 부재’를 깨우친 것이라면 가상한 일이겠으나, 특보 몇 자리 늘린다고 고질의 불통이 개선될지 의문이다. 장관이나 수석비서관 등 계선조직의 인사조차 대통령과의 소통이 어려운 구조에서 특보가 ‘문고리 권력’을 넘어 바깥의 얘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싶다. ‘특보단 신설’이 청와대 쇄신 요구를 우회하고, 충성심으로 무장한 측근 몇몇을 ‘대통령 곁’에 두기 위한 기획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40514수] 공자학원
“공자학원(孔子學院)은 중국의 것일 뿐 아니라 세계의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평소 강조하는 말이다. 공자학원이란 중국 교육부가 세계 각국 대학과 협력해 중국 문화나 중국어 등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을 말한다. 2004년 서울에 처음 설립한 데 이어 123개국 475곳으로 늘렸다. 유럽이 158곳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미국(152곳)이다. 각국 초·중학교에 설치된 ‘공자학당(교실)’ 730곳까지 합치면 1200곳이 넘는다. 여기서 교육받은 학생만 345만여명이다.
중국은 반중 정서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소프트외교 전략으로 공자학원을 활용하면서 매년 거금을 투입하고 있다. 공자학원 설립 때 100만달러(약 10억원)를 주고 매년 10만~15만달러의 운영자금을 지원한다. 대학들도 중국어 강좌와 강사 양성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적지 않아 유치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대가도 치러야 한다.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대만 독립, 티베트·신장위구르 문제 등 중국이 금기시하는 사안을 건드리기 어렵다. 공자학원 공동 운영자이면서도 중국의 허락 없이 인사에 개입할 수 없다. 이런 문제 때문에 지난해 미국 시카고대, 펜실베이니아대에서는 공자학원을 퇴출시켰다. 캐나다 맥매스터대도 그랬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는 공자학원이 미국 대학의 학문 자유를 침해한다며 청문회까지 열었다.
미국과 캐나다의 또 다른 우려는 안보불안이다. 공자학원이 순수하게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일방적인 주장을 선전하면서 스파이 노릇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캐나다 보안정보국은 “중국 공산당이 서방에 침투시킨 ‘트로이 목마’”라고 표현했다.
엊그제 스웨덴 스톡홀름대가 공자학원을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10년 전 유럽에 처음 설립된 것이어서 상징성이 크다. 중국 외교부는 “각국의 중국어 및 중국문화 학습 수요에 따라 교사와 교재 등을 지원하고 있을 뿐 학술적 자유를 간섭한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세계의 반감은 줄지 않고 있다. ‘차이나머니’를 앞세워 학계에까지 공세를 펴 온 중국의 ‘공자외교’가 역풍을 맞는 형국이다.
공자어록을 자주 인용하는 시 주석은 지난해 7월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고 했다.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공자학원이 세계의 것이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모두가 싫다는데야 어쩌겠는가.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임웅재(논설위원)-20150114수] 전략비축유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 세계 2차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알베르트 슈페르 군수장관은 1944년 5월 연합군의 폭격으로 12개 합성석유 공장 가운데 규모가 큰 5곳이 잿더미가 되자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고급 항공유의 92%를 생산하던 이들 공장이 파괴되자 독일군은 제공권을 잃었고 1년 뒤 연합군에 항복했다.
국제유가는 석유 메이저나 산유국들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수급에 큰 차질이 빚어지거나 요동을 친다. 그래서 수입국들은 지상·지하 탱크에 원유나 휘발유 등의 형태로 저장해두고자 한다. 바로 전략비축유(SPR)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정부와 민간을 합쳐 90일분 이상을 비축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미국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중동 산유국들이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 등을 요구하며 원유가격을 대폭 인상, 1차 오일쇼크가 일어나자 관련법을 제정해 비축을 시작했다. 비축유 방출설이나 비축용 석유 매입설만 돌아도 국제유가가 요동을 칠 정도로 영향력도 크다.
지난해부터 유가가 급락하자 원유수입 대국인 중국도 SPR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수입량을 2배로 늘려 2013년 말 기준 22일분(1억4,100만배럴)으로 추산되는 저장시설을 다 채웠고 2020년까지 90일분 비축을 목표로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큰손의 움직임은 초대형 유조선의 운임을 올릴 정도로 위력적이다.
한국의 SPR는 지난해 말 2억배럴로 239일분. 정부 비축량은 9,174만배럴인데 2025년까지 1억716만배럴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그런데 몸놀림이 무겁고 정부와 석유공사의 비축 예산도 지난해 1,004억원에서 올해 549억원으로 반쪽이 났다. 구입 시기와 가격도 1~9월 평균 유가, 10~12월 국제현물가로 고정돼 전략적 구매를 가로막고 있다. 정치권과 감사원 등의 문책을 피하기 위해 리스크 관리에 치중한 때문이다. 배럴당 50달러 밑으로 내려간 국제유가가 상반기 중 저점을 찍고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데 골든타임을 놓칠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