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주요 이슈
■ 이완구 총리 후보자 자격 논란
■ 새정치민주연합 새 대표 문재인 의원 선출
■ 증세 없는 복지 가능한가?
■ 건강보험료 개편 혼선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이완구 총리 후보자 자격 논란
[한국일보 사설-20150209월] 근본적 자질 의심케 하는 이 총리 후보의 언행
인사 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있는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부적절한 언행과 도덕성 의혹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고 있다. 일찌감치 제기된 재산형성 과정이나 병역 등 의혹들만 해도 일반의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 이런 차에 지난달 말 기자들과 식사 자리에서의 해괴한 발언이 터져 나왔다. 드러난 그의 대(對)언론 인식과 언행은 어이가 없는 수준이다. 노골적인 대(對)언론 협박으로 들릴 뿐만 아니라, 도덕성 하자를 감추려는 불순한 의도마저 엿보이기 때문이다.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인사 검증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언론계 고위층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언론사 간부 인사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처럼 말했다. 권력을 주체할 수 없는 듯한 안하무인적 태도다. 이 후보자는 당시 모 종편TV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야, 우선 저 패널부터 막아 인마 빨리, 시간 없어’라고 했더니, (나중에) 내가 보니까 빼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그의 거취에 대한 판단까지도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이 후보자의 이 발언은 분당 토지 투기 의혹이 막 제기된 시점에서 나왔다. 2000년 이 후보자 장인이 2억6,000만원에 사들인 판교 인근 토지가 2년 뒤 이 후보자 부인에게 증여된 뒤 다시 차남에게 증여되면서 무려 10배 차익을 얻었다는 내용이다. 그는 시세차익이 2.5배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며칠 뒤 토지 물색 과정에 당시 국회 재경위원이었던 그의 관여 의혹이 드러났다. 뒤이어 동시 거래된 주변 13필지 중에 국회 재경위 소속 의원 자녀 3명과 중견기업 회장 등이 함께 매입한 사실까지 드러나 사전에 개발정보를 알고 집단 투기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추가로 제기됐다. 언론 외압 발언이 폭발성 커져가는 투기 의혹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의심할만한 대목이다. 2002년 11월 강남 타워팰리스 매입도 웃돈을 얹은 분양권 전매에다 수억 원의 시세차익으로, 투기는 물론 재산신고 누락 의혹까지 제기됐다.
병역 문제 역시 속 시원하게 해명되지 않았다. 그는 최초 징병검사에서 1급 현역 판정을 받았지만 행정고시 합격 후 재검 신청으로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비슷하게 현역 판정 뒤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면제를 받은 차남도 공개검증까지 거쳤지만 환자 본인이 수술을 원했다는 기록지가 뒤늦게 발견됐다. 불가항력적인 면제냐에 대한 의문은 자연스럽다. 석ㆍ박사 논문표절 문제도 가볍지 않다.
이 후보자가 이번에 상식 밖의 언론관까지 드러내면서 그간 우호적이던 야당도 태도를 바꿔 정면으로 “부적격”을 운운할 정도로 분위기가 급반전하고 있다. 청문회에서 엄중하게 따져 가려야 할 문제가 한 둘이 아니다. 이 후보자의 “대오각성”사과 정도로 양해될만한 상황은 이미 아니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209월] 이완구 후보자는 총리 자격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나오는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흠결이 이제 치명적인 정도를 넘어 공직 자격에 사망선고를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형성된 인사검증 기준에 비춰 보면 지금까지 드러난 몇가지 비위와 의혹만도 낙마 사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이 후보자가 지난달 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발언은 귀를 의심케 한다. 이 후보자는 자신의 의혹과 관련한 방송 보도를 막았다는 놀라운 이야기와 함께 마음에 들지 않는 기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협박성 발언을 저급한 어투로 늘어놨다. 정치권력의 보도통제와 언론사 인사 개입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행위를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떠벌이는 이 후보자를 보면서 비뚤어진 언론관을 넘어 민주적 세계관의 결여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인사검증을 받는 처지에서 언론인들을 만난 자리였으니 말실수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그가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막중한 권한을 쥐게 되면 자신의 이해관계나 정략적 목적을 위해 언론 자유를 비롯한 민주주의 원칙을 어떻게 훼손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이 후보자의 과거 행적을 볼 때 공공의 이익보다 일신의 영달과 치부를 우선시해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에 이런 우려가 더욱 커진다. 본인과 차남의 병역 기피와 여러 건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이어 처남의 뒷배로 교수에 임용된 의혹, 억대 연봉의 차남이 건강보험에 무임승차한 사실이 추가됐다. 열 가지가 넘는 비위와 의혹 덩어리들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버겁다. 일부 특권·부유층이 공공선을 팽개치고 잇속 챙기기에 매달리는 전형적인 행태들이 망라돼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8일 총리 인준 뒤 개각 수순을 밟겠다며 “인준이 조속히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여당에 인준 강행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문창극·안대희 후보자에 이어 세 차례나 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가 빚어진다면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점은 이해된다. 하지만 정치적 계산보다 중시해야 할 게 국정이다. 이 후보자가 이대로 총리가 된들, 산적한 국정 과제를 풀어가는 데 꼭 필요한 국민의 신뢰와 존중을 얻을 수 있겠는가. 특히 언론 관련 발언은 민주국가의 총리로서 자격 미달임을 충분히 확인시켜줬다. 행정부의 좌장이 상징하는 공직자상도 무너져 내릴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정략에 휘둘려 국익을 위한 판단을 흐려선 안 된다. 이 후보자 자신도 공직자로서의 책임감과 애국심이 남아 있다면 스스로 거취를 결단해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20150209월] 총리 후보자의 언론관, 지금이 독재정권 시절인가
이완구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차기 총리 후보로 지명됐을 때만 해도 우리의 마음은 이리 착잡하지 않았다. 안대희·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잇따른 낙마로 위기의식에 쌓였던 국민들은 이 후보자의 지명에 마침내 총리다운 총리를 갖게 되리란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무너뜨리는 의혹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더니 공직자로서 기본 자질마저 의심케 하는 사태까지 불거졌다.
이 후보자가 지난달 말 기자들과 오찬 도중 한 발언이 공개되면서다. 그는 “방송사 간부에게 전화해 특정 패널을 뺐다”고 자랑했다. “‘내가 윗사람들하고 다 관계가 있다. 걔는 되고 걔는 안 돼”라며 언론사 인사에 개입할 수 있다는 암시도 했다. “지가 죽는 것도 몰라요. 어떻게 죽는지도 몰라”란 말에 이르러선 총리 후보 입에서 나온 얘기인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정부가 인사 개입과 보도 지침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던 독재정권 시절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후보자의 시계는 그때를 향해 거꾸로 도는가.
이미 이 후보자에겐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힘든 의혹들이 쌓여왔다. 본인과 차남의 병역 기피 의혹을 비롯해 땅 투기 의혹에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삼청교육대 관여, 황제 특강과 교수 특혜 채용 의혹 등 열거하기도 벅차다. 게다가 8일엔 차남이 미국 로펌에서 2억원 넘는 연봉을 받고도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의혹이 추가됐다. 이런 와중에 비뚤어진 언론관까지 확인된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 후보자가 사석에서 한 얘기를 기자가 몰래 녹취해 야당에 흘렸다”며 언론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사석에서 드러난 총리 후보의 언론관이 이런 수준이라면 이를 보도하지 않는 언론이 직무유기다.
이 후보자는 최연소 경찰서장, 충남지사에 4선 의원을 지낸 경륜과 여당 원내대표로서 원만한 처신을 인정받아 총리 후보로 지명됐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근간인 언론 자유를 부정하는 사고를 바꾸지 않는다면 정부를 이끌 자격이 없다. 이 후보자는 10·11일 열릴 국회 청문회에서 잘못된 언론관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209월] 언론사 외압, 투기 의혹… 이완구, 총리 자격 있나
이완구 총리 후보자가 방송사 간부들에게 전화해 자신에 대한 의혹 보도를 막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후보자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본인 입으로 말해놓고 발뺌하는 것 같아 설득력이 약하다. 이 후보자는 또 자신이 언론사 인사에 개입할 수 있다는 회유성 발언도 했다. 비뚤어진 언론관과 경솔한 언행을 보면 행정부를 통할하는 총리로 합당한 인물인지 중대한 의문이 든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기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자신이 방송사 간부들에게 전화해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를 빼라고 요구해 이를 관철시켰다고 밝혔다. 그가 거론한 방송사 간부들은 전화를 받기는 했지만 방송을 막은 적이 없다거나 아예 통화 사실 자체가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청문회를 통해 밝혀야 하겠지만 공개된 발언만으로도 그는 총리로서 자격 미달이다. 방송 외압 의혹이 사실이라면 언론 자유에 심각한 위협이 될 터이고, 사실이 아니지만 무용담 삼아 지어낸 것이라면 그 같은 부박한 언행으로 엄중한 총리 업무를 순탄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는 나아가 “(언론사) 윗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기자는 클 수도 있고 자기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도 한다. 해당 기자들이 이 후보자의 검증 취재를 하고 있었고, 여러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식사 자리에 동석한 점을 감안하면 이 발언은 회유나 압박으로 들렸을 수밖에 없다. 그는 사석에서 편하게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언론계 고위층과의 친분을 이용해 자기 입맛에 맞는 기자들은 키워주고, 불리한 기사를 쓰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통제하겠다는 게 본심이라면 경악할 노릇이다. 이 후보자의 추가적인 해명을 요구한다.
이 후보자에게는 이미 부동산 투기와 본인의 병역 문제 등 의혹이 여럿 제기된 상황이다. 이 후보자는 1971년 첫 신체검사에서 ‘평발’임에도 현역입영 대상 판정을 받았지만 입영을 미룬 뒤 두 차례 더 재검을 받은 끝에 방위(보충역)로 군 복무를 마쳤다. 첫 신체검사 후 특별한 신체 변화가 없는데도 보충역 판정으로 바뀐 경위가 석연치 않다. 또 서울 강남에 투기붐이 일던 시기에 타워팰리스 단기매매를 통해 9개월 만에 2억원가량의 시세차익을 올린 점도 규명이 필요하다. 그는 이 과정에서 부동산투기의 전형적 수법인 미등기전매, 속칭 딱지 매매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내일부터 열리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209월] 이완구 총리 후보자 ‘보도개입 의혹’ 규명해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언론 보도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직면했다.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언론사 간부와의 관계를 이용해 불리한 보도를 막으려 했음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그는 지난달 말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문제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는 “윗사람들하고, 내가 말은 안 꺼내지만 다 관계가 있어요. 어이! 이 국장, 걔 안 돼. 해 안 해? 야, 김부장 걔 안 돼. 지가 죽는 것도 몰라요. 어떻게 죽는지도 몰라”라고 말했다. 특정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신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과시하는 내용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이 후보자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기자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는 사적인 자리에서 사실과 다른 보도를 접하면서 답답한 마음에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정중히 구하고자 한다”고도 했지만, 정작 국민은 납득하지 못하는 듯하다.
이번 사안에서 드러난 이 후보자의 언론관(觀)은 어떻게 해명하더라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사 간부와의 친분으로 보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발상 자체도 어불성설이지만, 총리 후보자는 언론사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곧 정치적 압력이라는 인식조차 없는 듯하다. 그런 만큼 이 후보자나 그 측근이 실제로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친분을 내세우거나 압력을 행사한 결과 보도 내용과 인사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반드시 확인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번 사안에서 보듯 기자가 취재원과의 대화를 녹취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을 야당에 건네고, 야당은 다시 방송사에 넘겨 보도하게 하는 비정상적 정치 뉴스 재료의 유통 과정에도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
이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당초 일정에서 하루씩 순연된 10∼11일 열릴 예정이다. 당초 ‘통과의례성’이 될 것이라던 인사청문회는 후보자 본인과 차남의 병역 문제와 재산 형성 과정, 논문 표절 의혹으로 벌써부터 문턱이 높아진 느낌이다. 여기에 보도 개입 논란까지 불거졌으니 야당이 ‘거취’를 거론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럴수록 여야는 말이 아니라 의혹의 실체를 제대로 밝힐 수 있도록 청문회를 준비해야 한다. 당사자인 이 후보자는 ‘보도 개입 의혹’을 포함해 진실을 털어놓는 데 결코 주저함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총리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진지하게 자문자답하는 시간도 갖기 바란다.
■ 새정치민주연합 새 대표 문재인 의원 선출
[한국일보 사설-20150209월] 문재인 새 대표, 제1야당 혁신 과제가 무겁다
이변은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새 대표에 문재인 의원이 뽑혔다. 문 의원은 어제 오후에 열린 전국대의원대회(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45% 반영)와 권리당원 투표(30% 반영), 일반당원(10% 반영)과 국민 여론조사(15% 반영) 결과 등을 합친 총 45.30%의 득표율로 41.78%에 그친 박지원 의원을 따돌렸다. 문 의원은 권리당원 자동응답전화(ARS) 투표와 일반당원 여론조사에서 박 의원에 졌으나 상대적으로 반영률이 높은 대의원 투표와 국민여론조사에서 앞서 전당대회에서 승리했다. 대표 경선과 함께 치러진 최고위원 경선에서는 유승희 정청래 주승용 전병헌 오영식 의원 등 5명이 당선됐다. 어제 대표 경선 결과는 선거전 막바지의 치열한 접전양상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는 친노(親盧) 세력이 과반수를 점한 제1야당의 세력분포를 재차 확인했다.
새로 선출된 문 대표와 최고위원 등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의 과제는 무겁다. 특히 문 대표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은 한결 두툼하다. 당장은 잇따른 선거 패배와 ‘안철수 신당’인 새정치연합과의 통합 등에 따라 지난 2년 동안 무려 다섯 차례나 지도부가 교체됐던 내부 혼란을 끝내고, 당을 화합과 혁신으로 이끌어야 한다.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4월 보선과 내년 총선이 그 시험대가 될 것이다.
통합 또는 당내 화합의 과제는 구체적으로 계파 간의 화해다. 당내의 뿌리깊은 계파 갈등이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한결 커졌다. 선거전 막판의 경선 규칙 변경 논란과 함께 빚어진 막말 파문 등은 친노와 비노 사이에 깊은 감정의 골을 팠다. 당내 주류를 이끌어온 문 대표의 입장에서는 모든 비노 세력에 특별한 배려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결코 쉽지 않게 추격을 따돌린 박지원 의원 등 호남 기반 세력은 물론이고 이번 경선에서 자기주장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안철수ㆍ손학규 계 등에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지난달 정동영 상임고문의 탈당과 ‘국민신당’ 동참이 예고한 당내 갈등과 내분을 피할 수 있다.
혁신의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지혜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어제 전당대회에서 140일 동안 성공적으로 수행한 비상대책위원장 직을 내려놓은 문희상 의원이 보여 온 당 관리 및 정부여당과 국민에 대한 기본 자세를 참고할 만하다. 13~16%에 못박혔던 당 지지율이 최근 30% 가까이로 치솟아 오른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친 반작용이기도 하지만, 문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이뤄진 제1야당의 부분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문 의원은 어제 전당대회 연설에서 지지율 상승이 “우리가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하지 않는 정치, 약속을 지키는 정치, 말보다 실천하는 정치에 앞장 선 결과”라고 밝혔다. 그렇듯 야당의 혁신은 체질 개선, 즉 정책과 약속, 실천 중심의 노선으로의 방향 틀기이자 대여 강경 투쟁 색채가 짙었던 ‘친노’ 성향의 완화와 다름 아니다.
문제는 문 대표의 성향과 현재의 당내 세력 분포에 비추어 화합과 혁신 어느 것도 쉽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다만 문 대표의 눈길이 이번 당권 확보로 한결 유리해진 대권 고지를 향해 있으리란 점에서 역설적 기대를 걸 만하다. 패배의 아픔을 잊지 않았다면, 눈앞의 이익을 버릴 수 있을 것이고 거기서 화합과 혁신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209월] 국민에게 희망 주는 강력한 야당 돼야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대표에 8일 문재인 의원이 선출됐다. 새정치연합 당원과 지지자들이 문 의원을 새 대표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지난 대선에서 1400만표를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정권교체의 희망을 보여달라는 뜻일 것이다. 문 대표는 앞으로 130석의 제1야당을 이끌며 박근혜 정권을 견제하고 내년 4월 총선에서 지지자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책임이 있다.
우선, 새 대표 선출을 계기로 새정치연합은 집권 비전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믿음직한 야당이 되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는데도 이번 전당대회가 국민의 기대와 관심을 끄는 데 실패한 이유를 뼈저리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새정치연합이 대안세력으로서 분명한 자리매김을 했다면 지금과 같은 정치상황에서 이렇게 전당대회를 치르진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현재 야당이 처한 정확한 현실이고, ‘정치인 문재인’이 야당 대표로서 첫발을 내디뎌야 할 출발점이다. ‘야당이 정권을 잡으면 더 나은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줘야 하며, 이런 경쟁을 여야가 벌여나갈 때 야당도 살고 우리 정치도 정상화될 것이다. 현 정권의 실수에 기대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스스로 국민의 마음을 얻고 믿음을 되찾아야 한다.
문재인 새 대표는 도를 넘은 박근혜 정권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제대로 비판하고 견제해야 한다. 누가 뭐라 해도 야당의 기본 사명은 정권의 독주를 견제하는 일이다. 여당이 청와대 거수기 노릇을 하는 우리 정치현실에서, 야당마저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하지 못하면 국정 난맥을 막을 도리가 없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국정운영 방식을 바꾸고 인사 쇄신을 하라고 그토록 얘기해도 듣지 않는 대통령을 제대로 이끌 책임은 제1야당 대표에게도 있다. 무조건 비판과 반대만 하라는 게 아니다. 필요하면 대통령을 만나서 담판을 짓든 또는 치열한 투쟁을 하든, 야당이 정치를 이끌어가는 한 축이 돼야 한다. 대통령은 저 높은 데서 ‘국정’을 논하고 야당은 여당과만 경쟁하는 식이 돼선 야당이 대안 정치세력으로 설 수가 없다.
이번 전당대회는 네거티브 공방과 경선규칙 논란 등으로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게 사실이다. 그런 과정에서 ‘친노-비노’ 를 둘러싼 갈등과 불신이 당내에 뿌리깊게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문 대표는 높은 국민 지지에도 불구하고 당원·대의원 투표에서 박지원 후보에게 고전한 사실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계파를 뛰어넘는 포용력과 헌신성을 먼저 보여줘야 당내 통합을 이룰 수 있다. 박지원·이인영 후보 역시 전당대회가 분열이 아닌 화합의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여러 갈래로 나뉜 범야권의 맏형으로서 새정치연합이 제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제1야당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매우 무겁다는 걸 문 대표를 비롯한 새 지도부 모두가 마음에 새기길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20150209월] 박정희 참배하겠다는 문재인, 통합의 리더십 보여주길
문재인 의원이 어제 새정치민주연합을 이끌어 갈 새 대표에 선출됐다. 최고위원에는 5명 중 4명이 친노계로 분류되는 인사로 채워졌다. 야당의 주도권이 다시 친노세력에 넘어간 모양새가 됐다.
새롭게 항해를 시작하는 ‘문재인호’ 앞에는 평온한 바다가 아니라 격랑이 기다리고 있다. 경선을 치르면서 곪아 터질 대로 터진 계파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번 당 대표 경선은 야당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저질·막장 대결이었다. 2위로 낙선한 박지원 의원과의 표 차가 3.52%포인트에 불과할 정도로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승자와 패자 간의 골이 깊을 수밖에 없다. 후유증을 훌훌 털어내고 비상체제로 운영됐던 당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것은 전적으로 문 대표의 리더십에 달렸다. 해답은 경선기간 중 문 대표 자신이 강조한 ‘용광로 정당’을 실천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원순의 생활정치, 안철수의 새정치, 안희정의 분권정치, 김부겸의 전국정당을 실현할” 용광로 정당을 만드는 지름길은 인사에 있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권고한 대로 자신을 도왔던 참모들이나 계파 의원을 주요 당직에서 배제하고 상대 진영에서 뛰었던 인사들을 기용하는 통 크고 파격적인 용인술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그렇게 하면 당내 화합은 절로 이뤄질 것이다.
문 대표는 대표 수락 연설을 통해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 정권 교체를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지난 대선 당시 문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만 참배하고 끝내 이·박 전 대통령 묘소 참배를 거부함으로써 지도자답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늦었지만 이·박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겠다고 한 건 다행스럽고 진일보한 것으로 환영받을 만하다. 또한 이런 통합의 리더십을 곳곳에서 발휘한다면 잃었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선동적인 구호나 정권에 대한 날 선 비판,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낡은 관행도 과감히 벗어던지길 기대한다.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지금, 그렇지 않아도 국정은 삐걱대고 뒤틀려 있다. 회생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 미진한 인적 쇄신과 가라앉지 않은 연말정산 파문, 공무원연금 개혁, 건보 부과체계 개혁,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개혁, 증세 없는 복지기조에 대한 궤도 수정 등 과제는 산적해 있다. 제1야당에 대한 역할과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다. 그런 만큼 공허한 이념이나 투쟁 일변도의 강경노선이 아니라 생활밀착형 이슈에 대해 현실성 있고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를 통해 여당과 선의의 경쟁을 하는 강한 야당으로 이끌어 나가길 기대한다. 대선 패배나 지난해 7·31 보궐선거의 참패 등 잇따른 야당의 실패는 강경론에 휘둘린 무소신 리더십이 빚은 결과였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문재인 대표의 새정치민주연합이 심기일전하기를 기대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209월] ‘문재인호’ 출범, 야당 혁신의 마지막 기회다
새정치민주연합 새 대표에 문재인 의원이 선출됐다. 문 의원은 어제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맹추격을 벌인 박지원 의원을 3.52%포인트의 근소한 격차로 따돌리고 임기 2년의 당 대표에 올랐다. 문 의원 당선의 결과는 지난 대선에서 1400만표 지지를 받은 경험을 토대로 지리멸렬한 당을 추슬러 내년 총선 승리와 집권 희망을 보여달라는 당심의 표출로 풀이된다. 야당 지지자들에게 ‘선거 승리’의 갈망이 ‘계파 패권’의 우려를 누를 만큼 강렬했다는 얘기도 된다.
이번 전당대회는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서 연이은 패배로 존망의 기로에 처한 제1야당을 재건할 리더십을 세우는 자리였다. 하지만 전대 과정은 실망스러웠다. 수권정당으로서 비전, 전략, 정책 경쟁을 보여주기는커녕 친노·비노의 계파싸움과 네거티브 공방의 구태만 노정했다. 제1야당의 전대가 아무런 주목과 기대를 받지 못한 채 무관심과 비웃음 속에서 치러진 냉엄한 현실이 ‘문재인호’ 앞에 놓인 것이다. 따라서 문 대표에겐 친노와 비노로 찢긴 경선 후유증을 치유하고 통합을 이뤄내는 게 일차적 과제다. 문 대표 체제에서 새정치연합을 분열·무능의 아이콘으로 찍히게 만든 계파정치를 해체하지 못한다면, 국민은 마지막 기대마저 거둬들이게 될 것이다.
문 대표가 ‘이기는 야당’을 강조했듯 제1야당으로서 실력을 키우고 책임과 역할을 강화하는 게 절대 과제다. 그래야 야당의 부진이 여당의 독주로, 다시 정치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 새정치연합은 선거에 패배하고 나면 습관적으로 비상대책위를 꾸리고 당 혁신을 부르짖었지만 매번 공염불로 끝났다. 문 대표의 취임 일성처럼 “변화와 혁신”은 지상명령이다. 노선의 혁신, 정책의 혁신, 리더십의 혁신으로 수권 비전을 마련해 보여야 한다.
문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민주주의, 서민경제를 계속 파탄낸다면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기력에 빠진 새정치연합을 ‘강한 야당’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반대를 위한 반대는 경계해야겠지만, 정권을 견제하는 ‘강한 야당’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 문 대표는 박근혜 정권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제대로 비판하고 견제해야 한다. 그간 새정치연합은 제대로 된 대여투쟁도 못하고, 확실한 대안을 갖고 민생을 챙기지도 못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다. 야당이 강해야 정부·여당이 독주하지 못하고, 국정이 엇나가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정부·여당에 대한 분명한 견제 세력이 되는 동시에 정책·비전으로 경쟁할 수 있는 대안 세력으로 거듭나기, ‘문재인 새정치연합’에 주어진 숙제다.
[서울신문 사설-20150209월] 문재인 대표 민심 제대로 읽어라
새정치민주연합이 어제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대표를 포함한 6명의 최고위원을 새로 선출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섰던 문 대표가 당권마저 거머쥐면서 야권 지형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그동안 제1야당으로서 제대로 위상 정립을 하지 못했던 만큼 문 대표가 이끄는 새로운 당 지도부 앞에는 무거운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지도부는 변화와 개혁이라는 거센 국민적 요구에 직면해 있다. 수권 정당은커녕 야당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국민들의 질타와 외면으로 한때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질 만큼 지리멸렬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다소 오르고 있다고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 철회와 여권의 실책에 따른 반사이익 측면이 강하다. 야당 지지자마저 등을 돌렸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계파에 기반을 둔 당내 분열 정치로 봐야 한다. 친노파, 486그룹, 옛 민주계 등 각 세력의 파벌 싸움과 차기 대권 경쟁이 당의 정체성을 혼미하게 하고 국민보다는 계파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당의 체질이 된 지 오래다. 갈등의 봉합을 넘어 당을 하나로 통합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해야 하며 이를 위해 조만간 단행될 후속 당직자 인선과 오는 4월 재보궐 선거 공천 과정에서 문 대표가 공약한 대로 포용과 대승적 정치를 선보여야 한다.
문 대표를 중심으로 무엇보다도 새로운 리더십의 창출이 절실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락을 함께했고 지난 대선에서 후보로 나섰던 문 대표는 지나친 친노 색채를 빨리 벗을 필요가 있다. 계파의 수장이 아닌, 명실상부한 당 대표로서 중도우파까지 포용할 수 있는, 넓은 이념적 스펙트럼의 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 건강한 상식을 바탕으로 종북세력과 확실하게 선을 긋고 이념 정당이 아닌 정책 정당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 운동권 시각에서의 강경론과 진영 논리에 근거한 도덕적 우월성이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도 많았다.
정권 심판론이나 전통적 진보 노선에 충실한 정강이나 정책으로는 일부 야당 지지층의 박수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중도층의 지지를 끌어낼 수 없다. 시대는 급변하는데 당심과 민심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중도 세력마저 적으로 돌리는 이분법적 진영 논리로는 미래의 변화를 선도할 정치적·정책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새정치연합의 시대적 소명은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닌, 견제를 위한 견제가 아닌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승부해야 한다. 당장 현안이 된 복지구조 개편이나 공무원연금 개혁, 건보료 개편에서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민들이 공감하는 정책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건강하고 강한 야당이 있어야 건강한 여당이 나올 수 있다. 성공하지 못한 야당이 수권 정당이 된 사례는 한 번도 없다. 무너져 가는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다시 세울 수 있는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또다시 국민들의 외면을 받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209월] 새 출발하는 새정련, 종북과 결별 없이는 미래 없다
문재인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대표로 선출됐다. 선출 직후 “민주주의, 서민경제를 파탄낸다면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시작할 것”이라며 대립각도 세우고 나섰지만 문 대표가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이번 경선에서도 친노·비노 계파싸움에다 호남·영남하는 지역프레임이 재현됐다.
새정치연합이 몇 차례 선거의 패배를 딛고 진정 국민정당으로 거듭나려면 무엇보다 종북세력과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새누리당의 잇단 헛발질에도 야당의 지지도가 올라가지 않았던 것도 이 문제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문 대표부터 대북·안보관에서 대다수 국민들이 원하는 확고한 입장을 보여주지 못했다. 과거 남북 정상회담 때의 소위 ‘북방한계선(NLL) 포기 관련 발언’ 등이 그랬다. 새정치연합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결정 때도 “정당의 자유가 훼손된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많은 국민들 판단과는 딴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새정치연합에는 간첩·빨치산 추모제에 이름을 올린 의원이 한둘이 아니다. 천안함 폭침 규탄 국회 결의안 때도 반대자 70명 중 69명이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민주당 의원이었다.
통진당 해산과 함께 의원직을 박탈당한 이상규·김미희의 4월 보선 출마를 통한 국회 재진입 시도에 대한 입장부터가 궁금하다. 소위 전략 지역구라며 공천자를 내놓지 않을 것인지, 그리고 향후 이들과의 연대 여부까지 당 대표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새정치연합 의원 중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자만 20명이다. 명백한 친북행위까지 옹호하며 좌편향 정책에 매달리니 국민들의 의구심은 지극히 당연하다.
종북세력과 결별을 통한 이념적 좌표 재설정은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새정치연합이 극좌와 연대를 모색하게 되자 새누리당의 이념조차 거침없이 좌편향으로 기울어졌다. 그 결과는 정치권 전체의 이념적 방향 상실이었다. 복지 포퓰리즘 경쟁이나 경제민주화 광기가 그 결과였다. 시장경제에 대한 몰이해 위에 기업에 대한 적대감만 부추기며, 자유민주적 헌법 가치를 부정한다면 문재인 체제도 미래는 없다. 새정치연합이 정치적 좌표를 분명히 해야 새누리당도 보수정당으로 제 위치를 정립하게 될 것이다.
■ 증세 없는 복지 가능한가?
[한겨레신문 사설-20150209월] 박 대통령 ‘증세 없는 복지’ 기조 재고할 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지금 증세 얘기가 나오지만 우리 목표는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냄으로써 청년들도 좋을 뿐만 아니라 세수도 늘려 그런 비용을 국민에게 부담 주지 않고 해보겠다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일고 있는 증세를 통한 복지재원 확보 논의를 뿌리치고 자신의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이어갈 뜻을 밝힌 것으로 읽힌다. 이는 박 대통령이 현실성 없는 것으로 판명된 논리에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걱정스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 말마따나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냄으로써 … 세수도 늘”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잘 알다시피 지금 우리 경제는 기대 만큼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이런저런 부양책을 펴고 있는데도 그렇다. 부작용을 무시한 채 정부가 규제완화 등에 속도를 낸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긴 어렵다. 세수는 지난해 11조원(예상)을 비롯해 3년째 손실이 났고 올해도 이런 추세를 뒤집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중시하는 재정건전성 확보에도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반면, 재원 조달 방안은 한계에 이른 지 꽤 됐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비과세·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 지출구조 조정으로 재정을 확충하겠다고 했지만 계획은 계속 어긋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담뱃값 인상 등 서민증세 형태의 꼼수가 동원됐으나 세수 확충에는 크게 힘이 달린다. 최근 빚어진 연말정산 파동의 의미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 방침을 재고해야 할 때다. 박 대통령이 “이 정부의 복지 개념은 미래를 위한 소중한 투자(라는 것이다)”라며, 특히 “보육은 투자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접근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 게 빈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게다가 복지수요는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 ‘증세 불가’라는 기조를 금과옥조처럼 고수하지 말고 증세 논의에 귀를 열어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209월] 도돌이표 복지·증세 논란, 與 지도부 반성해야
지난 한 주 정국을 달군 복지·증세 논란의 흐름을 보면 새누리당 지도부가 대체 어떤 인식을 갖고 이 문제를 대하고 있는지 마냥 헷갈린다. ‘원박’(元朴·옛 박근혜계)이라 불리는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되면서 불을 댕긴 작금의 당·청 간 복지·증세 논란이 실상은 집권세력 내부의 역학 관계 변화에 따른 불협화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자아내는 형국이다.
의문을 촉발시키는 단서의 하나는 어제 새누리당에서 흘러나온 복지사업 구조조정 구상이다. 기획재정부 등 정부 각 부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등을 근거로 새누리당 관계자는 “7개 주요 복지사업을 구조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연간 12조원 넘게 재정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무상급식 축소 등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이 관계자는 “‘버킷리스트’, 즉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을 적은 목록처럼 증세 논의에 앞서 반드시 해야 할 복지 구조조정”이라고 했다.
복지 구조조정론은 기실 지난 10년간 이어져 온 선별적 복지론과 보편적 복지론 간 접점 없는 궤도 위에 놓인 주장이다. 그 타당성과 별개로 새로울 건 없는 사안이다. 문제는 최근 불거진 복지·증세 논란의 흐름에 있다. 세액공제 방식의 변화에 따른 연말정산 환급액 축소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는 과정에서 새누리당, 특히 유승민 원내대표는 불쑥 ‘증세 불가피론’을 꺼내 들며 청와대와 각을 세웠다.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불가론이 성역이 될 수 없으며 모자란 복지 재원 확보를 위해선 증세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해 증세 논란의 불을 지폈고, 이에 김무성 대표도 “증세 없는 복지는 거짓말”이라고 거들었다.
증세 여부로 모아지던 논란의 초점은 돌연 지난 6일 방향을 틀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를 통한 세수 확대’를 강조하며 거듭 증세 반대의 뜻을 밝히자 김 대표는 “증세에 앞서 복지예산의 효율성부터 따져 봐야 한다”며 ‘복지조정론’으로 방향을 틀었고, 유 원내대표는 “(증세에 대한) 내 생각을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꼬리를 내렸다.
‘고(高)부담-고복지’든, ‘중(中)부담-중복지’든 한 정부의 정책 기조라는 큰 틀은 개개인의 한두 마디로 결정될 사안이 아니다. 여권 지도부라면 더더욱 발언을 삼가고 긴밀한 내부 조율과 검토 과정을 밟아야 마땅하다. 면밀한 정책 검토 없이 섣부른 발언으로 논란만 키운 새누리당 지도부부터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할 듯하다.
■ 건강보험료 개편 혼선
[한국일보 사설-20150209월] 건보 개편 둘러싼 혼선, 진상 밝히고 사과해야
새누리당과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다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당정은 협의체를 구성해 건보료개선기획단이 이미 마련한 안을 토대로 상반기 내로 최종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소득층 부담을 줄이고 고소득 직장인의 부담은 늘리는 게 개편안의 핵심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올해는 개편안을 만들지 않겠다”고 밝힌 지 열흘 만에 원점으로 회귀한 셈이다. 무책임과 무소신 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다.
문 장관이 개편안 백지화 방침을 밝힌 것은 발표 하루 전이다. 하지만 계획을 바꾼 배경에 대한 분명한 설명도 없었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자 며칠 만에 저소득층에 대해서만 감면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물러섰다. 고소득층에 대한 건보료 부담 없이 저소득층 감면만 해줄 경우 건보료 재정에 막대한 타격을 줄 게 뻔한데도 당장의 비난만 피하자는 심산이었다. 뒤늦게 새누리당이 수습에 나서 개편안을 더 미루지 않겠다고 나선 게 그나마 다행이다.
불과 열흘 사이에 건보료 개편안은 발표 예정→사실상 백지화→부분 개편→원점 재추진 등 몇 차례나 오락가락했다. 그러나 개편안이 왜 중단됐는지, 왜 다시 추진하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고 책임지는 이도 없다. 그저 문 장관이 “발표 과정에서 혼선을 드린 점에 대해 사과 드린다”는 한 마디가 전부다. 이번 건보료 파동은 국정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고 정부의 기강을 허문 중대한 사태다. 건보료개선기획단장은 1년6개월 동안 추진해온 개편안이 무산된 데 대한 실망으로 사퇴하기도 했다.
문 장관은 연기 발표가 자신의 결정이라고 했지만 청와대 압력설이 더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 “임기 중에 반드시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가 건보료 개선”이라고 기자간담회에서 의지를 강조했던 문 장관이 이런 중대한 사안을 스스로 결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윗선에서 지시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소신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는 장관도 문제지만 뒤에서 시켜놓고 책임은 피해가는 게 더 큰 문제다. 정부는 이제라도 진상을 국민 앞에 소상히 설명하고 사과를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갔다가는 국정에 대한 불신만 더 커질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209월] 건강보험 개편, 지출 구조조정은 안 할 건가
보건복지부와 새누리당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재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복지부가 마련한 개선안은 고소득 직장가입자에게 더 걷고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의 부담을 낮추는 등 수입보험료 제도개편이 골자였다. 그러나 이런 개편방안은 건보료 체계에도 맞지 않고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개악일 뿐이어서 지지하기 어렵다. 또 건보재정 악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이번 개편안은 건보료 수입 확보에 연연해 건강보험의 취지에 걸맞은 보험료 부과는 아예 공식적으로 포기한다는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 물론 무임승차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소득이 있으면서도 피부양자로 등록해 무임승차하는 사람이 지난해 12월 기준 2061만5000여명에 달한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이는 전체 가입자 10명 중 4명에 해당할 정도다. 그만큼 그동안의 건보료 부과체계가 엉망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문제는 고소득자의 보험료 부담을 또 늘리는 식의 이번 개편이 과연 보험의 성격에 부합하느냐 하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이건 보험이라기보다 무상복지에 가깝다. 더구나 이런 개편으로는 건보재정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렵다. 복지부 개선안만 해도 건보료 총수입액이 1조원 정도 줄어든다. 하지만 지출은 고령화 등으로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다. 이대로 가면 건보 재정은 내년에 다시 조 단위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더구나 적자 규모는 해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 2020년 6조3000억원, 2030년 28조원, 2050년 102조1700억원, 2060년 132조원에 각각 이를 것이라는 추산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복지부는 지출을 더 못 늘려 안달이다. 올해만 해도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등이 새로 도입된다. 그것도 모자라 정부는 2017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을 70%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조원가량이 더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고소득자, 근로소득자를 얼마나 쥐어짤 것인가. 지출을 손보지 않는 한 건보 재정 파탄은 불가피하다. 건강보험은 복지 구조조정 무풍지대라는 것인가.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중앙일보 사설-20150209월] TK 가 요직 독식한 검찰, 국민 신뢰 못 받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검찰 인사를 둘러싼 뒷말이 나왔다. 지난 주말 있었던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간부 46명의 인사를 놓고서다. 지연(地緣)과 학연(學緣)을 배경으로 한 부정적 해석이 주류였다. “전문성과 능력을 기준으로 적재적소에 간부들을 배치했고 우수한 인재를 발탁했다”는 법무부의 발표문은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
무엇보다도 대구·경북(TK) 출신이 중요 보직을 독점한 것은 검찰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서울중앙지검장의 경우 박성재 대구고검장이 임명되면서 네 번 연이어 TK 출신이 바통을 잇는 기록을 남겼다. 이 정부 출범과 함께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됐던 조영곤씨는 국정원의 댓글사건 수사를 놓고 수사팀과 마찰을 빚다 사표를 냈다.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에 대한 부실 수사 논란에 휘말렸던 김수남 지검장이 검찰 내 2인자 격인 대검 차장으로 발령 난 것은 국민의 입장에선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검찰 인사의 결재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여론은 무시하기로 작정한 것일까. 벌써부터 정치권에선 “현 정부가 30% 이하로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검찰을 친위대로 활용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재 청와대 민정특보-우병우 민정수석-김 대검 차장-박 중앙지검장 등 TK 중심으로 꾸려지게 된 현 정부의 사정라인에 대해 국민이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
법무부에서 인사와 예산을 총괄했던 김주현 법무부 검찰국장이 ‘나 홀로 승진’을 통해 법무부 차관 자리를 꿰찬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자신의 인사만 챙기는 바람에 인사의 투명성에 흠집을 냈다”는 비판을 사게 된 것이다.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가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검찰 조직 자체가 정당성을 갖춰야 한다. 국민은 그 정당성에 근거해 검사들에게 사회적 병리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투명하고 공평한 인사가 중요하다. 지역 중심의 인사는 정의롭지 못하다. 정의롭지 못한 인사를 하고 어떻게 정의를 외칠 수 있단 말인가.
[경향신문 사설-201502009월] 박상옥 후보자, 물러나는 게 옳다
11일로 예정됐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사실상 무산됐다. 박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한 수사팀의 일원이었음이 드러나면서다. 야당은 자진 사퇴를 요구하며 청문 절차를 사실상 보이콧할 태세다. 법조계와 시민사회에서도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박 후보자는 “안타깝고 송구스럽다”면서도 거취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다. ‘버티기’에 들어간 인상이 짙다. 자칫하다가는 신영철 대법관이 퇴임하는 17일 이후 상당기간 대법관 공백이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박 후보자는 “당시 수사검사로서 담당했던 역할에 대해 청문회서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한다. 말석 검사로서 수사를 주도할 위치가 아니었고 권한도 없었다는 해명을 내놓을 모양이다. 그러나 수석이든 말단이든 “고문 끝에 억울하게 죽어간 대학생의 가해자와, 그 가해자를 숨기려는 시도를 알면서도 책임을 방기한”(서울지방변호사회) 것만은 사실 아닌가. 그는 박종철 사건 후에도, 무고한 시민을 물고문한 혐의로 입건된 경찰관을 불구속 처리한 적이 있다. 최소한 반성과 자책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했겠는가.
여당의 박 후보자 감싸기도 볼썽사납다. 새누리당은 박종철 사건 당시 주임검사였던 신창언씨는 여야 합의로 헌법재판관까지 지냈다며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창언 재판관이 임명된 1994년에는 국회 인사청문 제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후보자에 대한 구체적 검증이 불가능했던 시절과 비교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박 후보자의 대법관 임명은 한국 민주주의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후보자 스스로 물러나는 게 그나마 남은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고 본다. 끝내 사퇴하지 않는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동의 요청을 철회하는 수밖에 없다. 임명 제청권자인 대법원장도 오불관언할 때가 아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헌법이 사법부를 다른 국가기관과 달리 선거에 의하지 않고 구성하도록 한 것은, 사법부에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라는 특별한 사명을 맡기고자 하는 헌법적 결단”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 후보자가 그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기에 합당한 인물인가. 지금 여론은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양 대법원장도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209월] 무분별한 빚탕감, 不信사회 조장한다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사람이 지난해 11만707명에 달해 사상 최대라고 한다. 4년 새 2.4배로 급증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경이 은행 카드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 20개 주요 금융회사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개인회생으로 탕감해준 빚이 1조1495억원이다. 금융권 전체로는 약 2조3000억원(사금융 제외)에 이를 것이란 추정이다. 여기에다 개인파산(5만5467명),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8만5168명) 등을 합치면 탕감액은 훨씬 커진다.
벼랑 끝에 내몰린 채무자들의 빚을 줄여줘 재기를 돕겠다는 취지야 나무랄 데가 없다. 그 덕에 정상 생활로 복귀한 이들도 많다. 하지만 빚 탕감 구제제도가 많을수록 빚을 안 갚으려는 심리도 커지게 마련이다. 국민행복기금의 25만명 빚 탕감 조치에도 개인회생 신청이 매년 최고치인 것만 봐도 그렇다. 탕감해줄수록 개인회생 신청이 늘어나니 제도 자체의 결함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회생은 재산보다 빚이 많으면서 일정 소득이 있으면 법원 인가를 받아 이자의 전액, 원금은 최대 90%까지 탕감받고 3~5년간 갚아 나가면 된다. 채권자의 빚독촉, 급여압류가 금지되고 직장에 통보되지도 않아 개인워크아웃보다 여러모로 유리하다. 제도가 이렇게 설계됐으니 채무자의 모럴해저드는 당연한 귀결이다. 일부러 대출을 더 받은 뒤 개인회생을 신청하고, 소득을 줄이려고 알바로 위장취업하고, 타인 명의로 재산을 숨기는 식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빚 탕감 노하우가 버젓이 공유될 정도다. 건당 100만원 안팎의 수임료를 겨냥해 악덕 브로커가 판치고, 일부 변호사 법무사들은 명의 대여, 위법 유도로 적발되기도 한다.
국민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편법 불법 탈법을 권장하는 꼴이다. 법원도 문제를 의식해 의심 사안에 대해 조사를 강화하고 법개정을 위한 태스크포스까지 구성했지만 1년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다. 악성 채무자가 늘수록 손해보는 것은 채권자인 금융회사들과 성실하게 빚을 갚는 채무자들이다. 어설픈 빚 탕감제도가 신용사회를 좀먹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209월] 한미 원자력협상 진전 있다지만 아쉬움도 크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이 4년여 만에 타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논의된 바로는 한국도 핵확산 우려가 없는 일부 사용후핵연료 연구개발(R&D)을 자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40여년간 지나치게 제약을 받아온 우리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일부나마 보장받는 등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원전 연료를 만드는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금지하는 '골드스탠더드' 조항을 넣지 않기로 한 것도 의미가 작지 않다.
이로써 우리도 핵 비확산 차원에서 문제가 없는 사용후핵연료의 이동·저장 등을 위한 기본적인 연구나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진행 중인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의 앞 단계 연구를 활성화할 발판을 마련했다. 지금까지는 사용후핵연료를 건드리기만 해도 일일이 미국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적지 않다. 첫째, 재처리 등과 관련한 주요 연구개발은 여전히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 핵 비확산이라는 미국의 정책기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라지만 미국과의 사전협의 없이 자체 판단에 따라 농축·재처리를 할 수 있는 일본에 비해 평화적 핵이용에 대한 권리침해 수준이 여전히 매우 높다. 몇 년 뒤면 한국 내 모든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등 임시저장소가 포화되는 만큼 원전 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는 재처리 권리 확보가 시급하다.
둘째, 현 협정이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는 우라늄 농축 문제도 미국과의 협의 대상에 들어가게 됐다. 일부 재처리 연구개발 권한과 맞바꾼 셈이다. 정부는 부속서 등을 통해 미국이 안정적인 원전 연료 공급을 보장하는 등 한국의 원전 가동과 수출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안전장치를 확보하기로 했다고 강조하지만 자주권을 인정한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어 아쉬움이 크다. 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랐지만 정부는 투명성을 담보로 보다 폭 넓은 평화적 핵이용 권리와 에너지 주권 확보를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209월] 현대차 노조, 해외공장 확대 이유 아직도 모르겠나
현대자동차 노조가 자사의 해외공장 확대를 막기 위해 본격 대응에 나선다고 한다. 노조의 일자리 수호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앞뒤가 완전히 뒤바뀐 대응논리가 놀라울 뿐이다.
현대차 노조는 최근 유인물에서 "무분별한 해외공장 확대 방지가 시급하다"며 이를 위해 올해의 임금 및 단체협약과 연계해 강제로 막을 방안을 적극 강구하기로 한 것으로 8일 확인됐다. 노조는 "중국 4, 5공장은 눈앞에 다가왔고 미국 공장과 인도 공장 신설계획도 보도됐는데 이것이 현실이 되면 국내 공장 생산량은 해외 대비 30%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밝히면서 "노조는 해외공장의 장악력을 확대하고 국내 생산량 확보와 고용안정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현대차는 6년 전만 해도 국내공장 생산비율이 60%를 상회했다. 그러다 최근 들어 절반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물론 이 같은 수치변화는 회사 측의 적극적인 해외시장 진출과 판매 신장에 힘입은 것이지만 국내 노조의 역기능이 기여한 몫도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국내공장의 비용부담이 너무 크다. 생산직 1인당 평균 연봉이 8,000만원을 넘는데다 각종 복지혜택까지 포함할 경우 1억원에 육박한다. 중국·브라질·체코는 물론 미국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자동차 한 대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도 해외공장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미국은 14.8시간, 체코가 15.7시간인 데 비해 국내공장은 무려 27.8시간이나 된다. 브라질·터키 공장보다 못한 세계 꼴찌다. 이렇듯 생산성은 낮은 판에 파업은 연례행사다. 현대차 노조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야말로 밖으로 나가려는 회사가 아니라 생산성 향상임을 알 수 있다. 그러지 못하는 한 노조의 국내공장 일자리 수호는 공염불로 끝날 수밖에 없다.
요즘 들어 국내 도로에 수입차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소비자들이 더 이상 노조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단적인 표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209월] '의료관광' 사상 첫 수입 감소가 걱정되는 이유
우리나라의 건강 관련 여행수입이 지난해 1년간 3억4,800만달러를 기록했다는 한국은행 집계 결과가 나왔다. 전년의 3억7,290만달러에 비해 6.5% 줄어든 수치다. 관련 통계를 한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의 권고에 맞춰 2006년부터 산출한 이래 수입액이 줄어든 것은 지난해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더욱이 이 부문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마무리된 후 성장률이 2011년 46.0%와 2012년 54.3%를 거쳐 2013년에 84.9%로 정점을 찍었다가 다음해 -6.5%로 급전직하한 것이라 걱정스럽다.
한류에 힘입어 탄력을 받던 의료관광이 벌써 성장한계에 부딪힌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의료산업은 세계적인 의료기술 경쟁력을 갖추고도 그동안 정부의 규제정비 지연과 정치권의 미온적 입법활동으로 본격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하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다 지난해 하반기 들어 루블화 가치가 폭락해 러시아 환자 유치가 위축되면서 내리막에 들어선 것으로 분석된다. 급기야 최근에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던 중국인 환자가 뇌사 상태에 빠지는 의료사고가 발생했다.
국내 최고 인재들이 집중된 의료 분야가 성장 잠재력을 잃기 전에 발전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의료는 더 이상 단순한 내수 서비스가 아니라 수출 비즈니스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시아권 의료관광 1위인 태국은 스파까지 의료관광 범주에 넣을 정도로 비즈니스 육성에 적극적이다. 우리도 외국인 환자와 보호자가 편히 쉴 수 있는 '메디텔'을 양성화하는 등 제도정비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관광진흥법·국제의료사업지원법 등의 저지를 고집할 때가 아니다. 의료관광 수입 감소는 야당도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의료관광 코리아'가 꽃피기도 전에 시들지 않게 힘을 합쳐야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강준만 칼럼/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20150209월] 꿈의 독재
한때 좋은 덕담이었던 “꿈을 가져라”라는 말이 이젠 노골적인 냉소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도 “꿈을 가져라”라는 말의 변형일 텐데, 이 말을 제목으로 내건 책의 운명도 그런 처지에 놓여 있다. 2010년에 나온 이 책은 300만부 이상 나갈 정도로 독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는데, 이젠 이 책에 대해 비판적인 글이 어찌나 많이 쏟아져 나오는지 일일이 세기조차 힘들 정도다.
내가 보기에 그 책은 어떤 사람들에겐, 즉 꿈을 가져도 좋을 사람들에겐 여전히 좋은 책이다. 다만 문제는 3만부 정도 나가면 적당할 책이 300만부나 나가는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는 것일 텐데, 단지 책이 많이 팔렸다는 이유만으로 그 저자를 비판하는 게 공정할까? 무엇이 좀 좋다 싶으면 우우 몰려다니는 우리 사회의 ‘쏠림’ 현상을 문제삼는 게 옳지 않을까?
지난 몇년간 극도로 악화되었고 앞으로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취업난은 꿈을 기만과 모욕의 단어로 전락시키고 있다. “3차 대전은 일자리 전쟁이 될 것이다”라는 경고가 실감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는가? “꿈을 가져라”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분노의 삿대질을 한다지만 여전히 꿈은 간직하면서 꿈을 이룰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울화통을 그렇게 표현하는 건 아닌가?
우리는 ‘아메리칸드림’의 허구성을 비웃곤 하지만, ‘코리안드림’에 대해선 여전히 강고한 신앙을 갖고 있다. 전 국민의 85%가 “나는 신분이 상승할 것”이라고 믿고 있을 정도로 한국인의 상향 이동성에 대한 믿음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런 믿음이 한국의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룬 원동력인 건 분명하지만, 지금 우리가 당면한 저성장과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엔 피할 수도 있는 고통의 근원이 될 수 있다.
그간 한국을 지배해온 경제 이데올로기는 이른바 ‘낙수 효과’였다. 대기업이나 중앙을 우선 지원하여 경제가 성장하게 되면 그 혜택이 중소기업·소비자나 지방에 돌아간다는 논리가 ‘광복 70년’을 이끌어온 것이다. 그 덕을 본 점이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지만, 문제는 달라진 세상이다. 그 이데올로기의 원조 국가들에서도 ‘낙수 효과’는 수명을 다했다며 새로운 진로를 모색한 지 오래인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성공 신화에 사로잡혀 이미 비대할 대로 비대해진 재벌과 중앙의 덩치를 키우는 짓을 계속하고 있다.
경제적 ‘낙수 효과’를 비판하는 사람들 역시 개혁 방법론에서 ‘위에서 아래로’라거나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라는 ‘낙수 효과’의 원칙에 충실하다. 노동운동에 대한 응원도 대기업 노조 중심이며, 사회 진보를 평생 과업으로 삼겠다는 사람들도 서울이나 서울 근처에서 살아야만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목표는 어떤가. 이는 7년째 공고화된 ‘비정규직 800만명대’라고 하는 현실에선 아름다운 꿈이 될 수밖에 없다. 그 꿈을 추구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꿈과 현실을 구분하여 현실에 걸맞은 대안 모색도 병행해야 하는 게 아닌가? 즉 비정규직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조건으로 먹고살 수 있게끔 하는 길을 찾아야 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 고민을 하는 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목표를 흔들 수 있기 때문에 외면해야 한다면, 이는 ‘꿈의 독재’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우리의 꿈이 서 있는 토대는 승자 독식 체제다. 모두 승자가 될 수 있는 꿈을 지향하면서 ‘승자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먹고살게만 해달라’는 외침엔 ‘기다리라’는 답만 해줄 뿐이다. 정규직의 고용안정성과 비정규직의 고임금을 양자택일할 수 있게 한다면, 장그래도 정규직이 되고 싶다고 절규하진 않았을 것이다. 장그래의 아픔에 공감했던 우리는 그가 정규직이 되길 응원했을 뿐, 다른 수많은 장그래들의 처지에 대해선 눈을 감은 게 아닐까? 우리는 작게나마 나눠 먹는 꿈을 꾸기보다는 고용안정성과 고임금을 동시에 누리는 승자독식을 꿈으로 삼으면서, 그걸 개혁이요 진보라고 주장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닐까?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주철환(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20150209월] 이거, 지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어떤가. “요즘 커피가게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은 거의 다 그렇게 말하던데 뭐.” 이러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므로 욕먹을 각오하고 한마디 보탠다. “주문은 고객이 하신 거 맞는데 커피는 나오신 것이 아니라 나온 게 맞죠.” 바쁜 아르바이트생에게 격려는 못할지언정 ‘지적질(계몽)’까지 하니 이건 좀 세상을 어렵게 사는 건 아닌지.
커피 ‘배급’받을 때마다 휴화산 같은 교사 본능으로 숨을 고르던 참에 ‘작은 외침 LOUD’ 운동이 시작됐다. 캠페인은 순수하고 끈질겨야 성공한다. 드디어 토종 커피음료 브랜드 업체들이 ‘사물 존칭 사용 안 하기 운동’에 동참한다고 선언했다. “어법도 법이다”고 외치던 ‘나 같은’ 사람들은 시간 절약 혜택을 보게 됐다.
지적할 때는 표정과 소리가 중요하다. 야단치듯이 하면 반성은 없고 반발만 불러온다. 잔소리로 여겨지면 감정만 남고 교훈은 종적을 감춘다. 웃는 표정(비웃는 표정 절대 금지)으로 부드럽게 얘기해 주면 상대방은 대체로 고마워한다. 변화는 거기서 시작된다.
떠오르는 과거사 한 토막. 어느 유명 인사와 20년 넘게 호형호제하며 지내다 거의 10년째 연락 두절 상태다. 이유는? 오로지 ‘내 탓이오’다. 참을 수 없는 ‘교육 강박’이 화근이었다. 특강을 부탁할 때마다 기꺼이 와 줬는데 간간이 내가 지적을 한 것이다. 사람 좋은 그가 마침내 폭발했다. 강의 도중에 내가 살짝(?) 끼어들었는데 그게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분명히 좋은 뜻으로 한 건 그도 인정했지만 결과는 어긋났다. “내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로 시작된 언쟁이 “형은 늘 가르치려고만 해”로 마무리됐다. 그 후 서로 전화를 주고받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은 ‘바른 어법 전도사’의 해명서가 아니라 ‘밴댕이 속을 가진 교사’의 반성문이다.
습관은 바꾸기 힘들다. 내친김에 지적 한 가지를 추가해야겠다. 바른말 무시(무지) 현상이 요즘 예식장 안에서 확산되고 있다. 가끔 주례하러 갈 때마다 “주례사님이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젊은이들은 교사·목사·의사·변호사·주례사 이렇게 유추하는 거다. 한자교육이 아쉬운 지점이다. 허둥지둥 바쁜 직원을 ‘빨간 펜 선생님’은 그냥 놓아 주지 않는다. “덕담하는 사람은 그냥 주례라 부르고요, 주례사는 주례가 하는 덕담이랍니다.” 젊은 직원이 호의로 받아들였는지는 체크하지 못했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이기환(논설위원)-20150209월] 막말 외교의 역사
‘정치 무능아’ ‘못난이 하는 짓마다 사달’ ‘돌부처도 낯을 붉힐 노릇’ ‘역사의 시궁창에 처박힌 산송장’…. 북한이 회고록을 출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표현들이다.
하지만 이는 애교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북한 국방위 대변인이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인터뷰>의 미국상영을 계기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발표문을 보라. “아프리카 원시림 속의 잰내비 상통(원숭이 얼굴) 그대로다. 인류가 진화되어 수백만년 흐르도록 잰내비 모양이다.” 그뿐이 아니다. “혈통마저 분명치 않은 인간 오작품”이라며 “원숭이 무리에서 빵부스러기나 핥으며 지내는 것이 좋을 것”(지난해 5월)이라고 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을 겨냥해서는 “주걱턱에 움푹 꺼진 눈확(눈구멍), 푸시시한 잿빛 머리털에 이르기까지 승냥이 상통인 데다…”(지난해 8월)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는 ‘시집못간 노처녀의 술주정’ ‘유신군사깡패의 더러운 핏줄’ ‘살인마 악녀’ ‘못돼먹은 철부지 계집’ 등의 막말을 기회 있을 때마다 쏟아내기도 했다.
아무리 ‘인종차별’ ‘성차별’ ‘인신공격’이라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기야 막말 외교의 뿌리는 깊다. 472년 백제 개로왕이 중국 북위 황제에게 보낸 외교문서는 고구려를 ‘시랑(豺狼·승냥이와 이리)’이자 ‘장사(長蛇·큰 뱀)’라 표현했다. 또 고구려 장수왕을 두고는 “‘소수(小竪·더벅머리 어린애)’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니 “북위와 백제가 손잡고 ‘추악한 무리(고구려)’를 멸망시키자”고 제안한 것이다. 고구려 또한 백제를 백잔(百殘)이라 욕했다.
불후의 대문장가라는 최치원의 막말 외교도 뜻밖이다. 최치원은 신라와 대등한 지위에 오른 발해를 저주하는 외교문서를 당나라 황제에게 보낸다. 즉 발해를 두고 ‘축로(丑虜·추악한 오랑캐)’이자 온갖 악행을 저지른 ‘떼강도’라 욕한 것이다. 나아가 “발해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모래이자 자갈이고, 앙큼한 쥐이며 무식한 놈”이라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나 이렇게 개로왕이나 최치원이 막말 외교전을 펼쳤다고 해서 지금도 통용될 수 있을까. 1200~1600년 전에나 통했던 얘기가 아닌가.
[서울신문 칼럼-이영탁 미래와 세상/이영탁(세계미래포럼 이사장)-20150209월] ‘내가 조현아 변호인이라면’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조현아 전 부사장에 대한 공판이 열리고 있다. 나는 법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일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항로 변경’ 여부에 대한 법리 논쟁을 지켜보다가 이게 최선의 방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일 조현아 피고인의 변호인이라면 어떻게 할까? 바른 세상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법조인으로서 이번 사건에 임하는 변호인의 자세는 어떤 모습이 바람직할까?
우선 문제가 된 비행기 회항이 항로 변경이 아니라는 식의 논리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가 항로인가에 대해서는 관계법에 명확한 규정이 없는 모양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일단 비행기 문이 닫히고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항로에 들어섰다고 한다. 그러나 변호인 측에서는 공중 경로가 항공로이기 때문에 램프 리턴이 곧 항로 변경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논리적으로도 약하게 들리지만 지금 피고인이 받는 비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항공기 운항도, 자동차 운전도 안전이 급선무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음주운전 여부를 판단할 때 차의 시동을 걸고 기어를 주행(D)에 놓으면 차가 움직이지 않아도 음주운전에 해당한다. 비행기의 경우에도 비행기가 다니는 모든 길이 항로이며, 따라서 활주로는 물론이고 활주로로 가는 과정도 항로에 해당한다고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지금 조 전 부사장 입장에서는 실제로 한 행동에 비해 그 후에 받는 고통이 너무 커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런 상황까지 됐느냐고 호소할 수도 있다. 또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힌 갑을관계에 대한 비난을 혼자 받고 있다고 하소연할 수도 있다. 이해가 가는 면이 없지 않지만 그런 생각은 마음속에 가두어 두어야지 밖으로 표출해서는 백해무익하다. 왜 이번 사건과 상관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흥분하고 비난할까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약한 사람의 가슴을 멍들게 한 갑질이 얼마나 컸으면 이렇게까지 됐을까 하는 반성이 앞서야 한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을 똑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비난과 고통을 벗어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까다로운 법리 논쟁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거기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제가 이처럼 커진 것은 피고인이 저지른 행동의 법적인 잘못보다도 국민 정서를 심하게 자극한 데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않고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 만일 법원이 항로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왔다고 치자. 그래도 피고인에게 돌아갈 비난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피고인은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그동안 저질러 온 갑질에 대해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더 겸손하고 낮아지면서 어떤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이 좋다. 그런 식으로 종전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일 때 성난 민심은 누그러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판의 내용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지 않겠는가.
변호인의 기본 임무는 법적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도록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피고인은 약자가 아니다. 변호인으로서 항로의 법적 해석에 매달리는 걸 두고 나무랄 수야 없지만 썩 좋은 모습은 아니다. 그동안 갑중에서도 갑으로 살아온 피고인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 변호의 중심이 돼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피고인은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줄 시점이다. 그것은 재판의 결과를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최상의 길이기도 하다. 만약 변호인의 이러한 전략이 먹혀들지 않는다면? 그럴 때 두말없이 물러서는 법률가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은 보고 싶어 한다. 수임료에 연연하지 않고 보다 의연하게 대처하는 변호인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은 비단 나뿐일까?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209월] 세계일주
책상 위에 놓인 지구본을 돌릴 때마다 손가락이 간지럽다. 손끝의 감촉이 마음보다 먼저 설렌다. 지축(地軸)의 기울기만큼 23.5도 정도 고개를 젖히고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커피 산지를 따라 세계일주를 떠난 선배 커플이 참 부럽다. 편백나무 향기 사업을 접고 더 큰 일을 찾겠다며 지난해 떠난 후배는 지금쯤 어디를 걷고 있을까.
여행이란 생각과 시야를 넓히는 공부의 여정이다. 17~18세기 영국 등 유럽 귀족 자제들이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돌며 문물을 익히던 그랜드 투어(Grand Tour)도 ‘젊은 날의 긴 여행’을 통해 ‘일생의 지성을 쌓는’ 과정이었다. 토머스 홉스와 존 로크, 애덤 스미스 등 근대 유럽 사상가들이 이를 통해 지식과 지혜를 나눴다.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도 마찬가지다. 시계처럼 정확한 영국 신사가 유럽과 아시아, 미주를 돌아오는 여로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들을 극복하며 생각의 전환을 이루는 얘기가 아니던가.
글로벌 투자자 짐 로저스는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기 위해 두 번이나 세계일주에 나섰다. 1994년 펴낸 월가의 전설 세계를 가다는 6대륙 52개국 10만마일을 22개월 동안 모터사이클로 돌아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린 얘기다. 1999~2002년에는 부인과 함께 116개국 15만2000마일을 여행해 또 기네스북에 올랐다. 이 때 한국에도 보름이나 머물다 갔다. ‘썰물이 시작되면 누가 알몸으로 수영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같은 투자 격언들을 이런 여정에서 체득했다.
요즘은 세계일주 여행객들의 콘셉트가 많이 달라졌다. 음악과 미술 등 특정 문화 장르를 중심으로 하는 ‘예술파’부터 요리, 와인, 커피 등의 ‘먹자파’까지 각양각색이다. 요리 중에서도 빵이나 과자, 아이스크림, 파스타, 해산물 등으로 더 세분화한다. 지역 역시 전 세계를 모두 도는 ‘두루파’와 한 대륙에 집중하거나 강·산맥을 죽 따라가는 ‘집중파’ 등으로 전문화하는 추세다. 나홀로 배낭족은 물론이고 친구나 연인, 가족, 동호회 멤버들과 함께하는 사례도 많다. 허니문 세계일주 또한 인기다.
각 항공사의 세계일주 티켓을 이용하면 여비를 아낄 수 있다. 자전거나 모터사이클로 움직이는 마니아족도 급증하고 있다. 숙소는 잠자리와 음식을 외국인에게 서로 제공하는 카우치서핑(couchsurfing.com)이나 에어비앤비(airbnb.co.kr), 자전거 여행 전용 웜샤워스(warmshowers.org) 등으로 다 해결한다. 참 좋은 세상이다. 나는 지구본만 더 세게 돌리고 있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문성진(논설위원)-20150209월] '앵무새 죽이기'
사람의 생각을 가장 많이 변화시킨 책이라면 흔히들 '성경'을 꼽고 어떤 이들은 그다음으로 소설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를 예로 들기도 한다. 미국 여성작가 하퍼 리가 쓴 이 작품은 1960년 7월11일 출간 이후 세계 각국에서 꾸준한 관심을 모으며 그동안 4,000만부가 넘게 팔렸다. 영국에서는 대학입시 필독서로 읽힐 정도다. 그러니 그만한 평가가 나옴직도 하다.
'앵무새 죽이기'에는 7세 소녀 스카우트를 화자로 억울하게 '사법살인'을 당하는 흑인 피해자의 고통과 백인 가해자들의 추악함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1930년대 대공황 직후 앨라배마주의 한 마을에서 흑인 청년 톰은 백인 여성 마엘라를 강간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기소된다. 그러나 사실은 마엘라가 톰을 유혹한 것이었고 스카우트의 아버지인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가 법정에서 이를 입증한다. 그런데도 백인만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모두 '유죄!' '유죄!' '유죄!'라며 끝내 진실을 외면해버리고 만다.
하퍼 리는 이 작품 하나로 큰 명성을 얻었다. 1961년에는 '퓰리처상'을, 1962년에는 '베스트셀러상'을 받았다. 후속 작품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는 이후로 단 한 작품도 내놓지 않았다. 마치 '앵무새 죽이기' 한 작품에 모든 힘을 소진해버리기나 한 듯이.
오랜 공백을 깨고 하퍼 리의 후속작 '가서 파수꾼을 세워라(Go set a watchman)'가 오는 7월 출간된다. 전작 '앵무새 죽이기'의 화자 스카우트가 성인이 돼 아버지 핀치를 찾아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한다. 이번에 그려지는 1950년대 앨라배마주는 '억울한 죽음'이 사라진 세상일는지….
안타깝게도 2015년 현실 세계는 '앵무새 죽이기'가 여전하다. 요즘 이슬람국가(IS) 테러단을 보면 더 극악무도해졌다. 잊어서는 안 된다. 소설 속 1930년대 핀치 변호사의 외침을. "앵무새를 쏘아 죽이는 건 죄야. 앵무새는 즐거움을 줄 뿐 해라고는 끼치지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