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발언 ■ 박근혜 정부의 영남 편중 인사 논란 ■ 경제지표 하락세 ■ 원세훈 국정원장 선거법 위반 판결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발언
[한겨레신문 사설-20150303화] 한-미 관계 해치는 미국 국무차관 ‘망언’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지난달 27일(미국시각) 일본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을 했다. 미국 정부의 납득할 만한 후속조처가 없다면 한-미 관계를 해칠 수 있는 내용이다.
“(동북아에서) 민족주의 감정이 여전히 이용될 수 있으며, 어느 정치지도자도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런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는 그의 말은 분명히 중국과 우리나라를 겨누고 있다. 과거사
해결에 소극적인 것도 모자라 문제 자체를 부인하는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입장을 적극 두둔하는 발언이다. 미국 국무부의 3인자로
동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고위 관리의 언급으로 믿기지 않는다. 그가 일본의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는 의례적인 요구조차 하지 않은
것은 그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한·중·일 모두 똑같이 문제가 있으니 이제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말아달라’는 주문인 것이다.
그가 왜 이런 발언을 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국 위상이 떨어진 상황에서,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일본과 적극적으로 손잡겠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미국·일본 쪽에 확실히 서라는 요구로 읽힌다.
4월 방미를 앞둔 아베 총리에게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을 빨리 마무리하라는 압박의 뜻이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반역사적인데다 과거사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어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자국의 전략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처지가 어떻든 무슨 행동도 할 수 있다는 오만한 발상이기도 하다.
미국은 ‘한·중·일이 과거 교훈을 거울삼아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지향적인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해왔다’고 우리 정부에 해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셔먼 차관의 발언 내용과 어긋난다. 이 정도 설명에 그친다면 많은
한국인은 미국이 일본 과거사 문제를 부인하고 과거 일제의 잘못을 옹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한국인들은 미국이
이제까지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통해 과거사 문제를 풀고 미래로 나아가자’라는 입장인 것으로 믿어왔다.
북한 핵 등 동북아 현안에 대한 관련국의 협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인 요구가 과거사 문제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 미국은 ‘치고 빠지기’식 발언으로 한-미 관계를 흔들지 말고 무엇이 옳은 모습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경향신문 사설-20150303화] 미국은 셔먼 차관의 문제 발언 입장을 밝혀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은 지난달 27일 워싱턴 카네기평화재단에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동북아 문제를
주제로 연설하면서 한·중·일 간 과거사 갈등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 한·중 지도자가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일본
때리기로 민족주의 감정에 불을 붙이는 경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외교평론가가 그걸 지적하는 것과 미국의 고위 외교
당국자가 비판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더구나 한·중·일 간의 갈등 사안에 대해 한·중을 하나로 묶어 비판하며 일본 편을 드는 것은
발언 내용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하나의 외교적 사건이다.
그는 민감한 외교정책에 관한 발언을 하면서 한·중의 일본 비판을 ‘도발’이라는, 편견이 배어 있는 단어로 표현하기까지 했다.
한·일 갈등에 대해 미국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는 한국의 입장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그는 일본의 퇴행적인 과거사 인식을
지적하는 최소한의 균형감각도 갖추지 않고 미국 정부가 한·일 갈등을 보는 시각의 일단을 드러냈다. 게다가 그는 중국과의
대일공동보조에 신중했던 한국을 중국과 같은 편으로 밀어 넣었다. 일본이 아무리 아시아에서 미국을 대리하는 최고의 동맹이라 해도
그런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일본의 태도는 거론하지 않은 채 한·중 양국 비판으로 미·일 대 한·중의
구도를 만드는 게 과연 미국을 위해 전략적으로 이익인지도 의문이다.
그동안 미국은 일본의 태도를 온건하게 지적했고, 아베 신조 총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미국이 이렇게 은근히
편들기까지 한다면 아베 총리가 뭐가 아쉬워서 과거사 태도를 바꾸겠는가. 미국이 미·일 동맹 때문에 과거사에 발목 잡힌 일본을
방치하는 한 아시아에서 미·일 동맹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 동맹으로는 아시아 평화에도 기여하기
어렵다.
셔먼 차관의 발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일본을 비판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진의도 의심케 한다. 이 시점에서 미국이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본 과거사 문제는 역사적 정의에 관한 문제인 것은 물론 한·일
관계의 올바른 미래, 한·미 관계의 발전을 위한 과제이기도 하다. 미국은 셔먼 차관의 발언에 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303화] 美, 과거사 누가 악용하는지 제대로 보라 Tweet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의 한·중·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돌출 발언이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렀다. 그가 “민족 감정은
악용될 수 있고, 정치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엉뚱한 ‘훈수’를 하면서다. 지난달
27일 워싱턴의 한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한국과 중국 정부가 과거사를 국내 정치용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인식을 공개리에 내비친
것이다. 우리는 그의 발언이 외교적 수사로도 부적절하지만, 역사적 사실(팩트)을 공정하게 짚지 못한 실언이라고 본다.
셔먼 차관 발언의 진의는 한·중·일 3국이 과거사를 털고 미래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데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본말이
뒤집힌 인식을 드러낸 게 문제다. 양비론의 외피를 걸쳤지만 일본보다 한·중에 동북아 갈등의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오해를 초래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에서다. 그는 “한·중이 일본에 위안부 문제 등을 제기하며 과거사로 다툼을 벌이는 것을 이해할 만하지만 동시에
좌절감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오히려 그의 이런 인식에 좌절감을 느껴야 할 판이다. 언제 일본 정부가 일제가 저지른
위안부 악행이나 난징 학살 사건에 대해 배상은커녕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라도 했던가.
반면 역대 독일 정부는 나치 정권의 만행에 대해 기회 있을 때마다 진솔하게 사과해 오지 않았나. 유럽의 미래를 위한 협력은
이처럼 독일의 진정 어린 과거사 청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그릇된 대응이 3국 불화의 근본
원인임을 망각한 셔먼 차관의 발언이 유감스러운 이유다.
그의 언급이 동북아에서 헤게머니를 키우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나왔다면 이 또한 오산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등을 앞두고 공동 보조를 취하고 있는 일본과 달리 대중 관계 강화 드라이브를 거는 박근혜
정부를 견제하려는 의도라면 말이다. 일본 아베 정권이 침략 전쟁의 책임을 부인하면서 재무장을 서두르고 있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과거사 3국 공동 책임을 주장하는 것은 일본 편을 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금의 한·일 영토 분쟁도 역사적 인과관계를
제대로 헤아리지 않은, 미국의 모호한 태도가 불씨가 됐지 않았나. 즉 미·일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일본이 독도 문제를 물고 늘어질
빌미를 준 채 미봉했다는 차원에서다.
물론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핵이나 중국의 급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3각 협력 체제의 복원이 절실한 과제다. 우리 또한
동북아의 격랑을 헤치고 통일 한국이라는 항구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공고한 한·미 동맹이 필수불가결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바마
행정부가 일본의 전향적 태도를 촉구하던 기조를 바꿔 한국을 압박하는 쪽으로 돌아섰다면 이미 패착을 예고한 셈이다. 자칫 한국 내
반미 여론만 되살리면서 명분 없이 일본의 과거사 왜곡이나 국수주의 행보에 날개를 달아 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는 꿩도 놓치고
매도 잃는 일이다. 미 행정부는 하루속히 셔먼 차관의 발언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혀 불필요한 파문이 더는 번지지 않게 하기를
바란다.
■ 박근혜 정부의 영남 편중 인사 논란
[한겨레신문 사설-20150303화] ‘영남향우회 정부’ 만들려고 정권 잡았나
대통령에서 감사원장까지 국가 의전서열 10위 안에 든 11명 가운데 8명이 영남권 출신이다. 검찰·경찰·국세청을 비롯한 이른바
5대 권력 기관장은 모두 영남이 싹쓸이했고,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여러 공공기관장도 역시 영남 일색이다. 박근혜 정부 편중인사의
심각성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2일 발표한 현 정부 고위직 인사들의 출신 지역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나타난
대한민국의 권력지도 모습은 참담하기만 하다.
윗자리가 특정 지역 출신 인사들로 채워지면 밑의 노른자위 자리들도 자연히 그쪽 동네 사람들의 차지가 되는 법이다. 지금 정부 각
부처와 주요 기관들의 핵심 요직에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거의 ‘영남향우회’ 수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이
끼리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축배를 들고 있는 한쪽 편에서는 소외된 지역 사람들의 울분과 원망이 차곡차곡 쌓여 간다. 이런 인사의
빛과 그늘 속에서 국가의 통합이며 화합 따위는 아득히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의 편중인사 특징의 하나는 염치며 체면 따위를 과감히 벗어던졌다는 점이다. 과거 정부에서도 편중인사니 코드인사니 하는
논란이 있었으나, 그래도 형식적 균형이라도 유지하려 애썼다. 검찰총장이 호남이면 법무부 장관은 영남 하는 식으로 모양새라도
갖추려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제 그런 시늉도 하지 않는다. 예전에 흔히 쓰이던 지역안배라는 말이 사라진 지도 오래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새해 기자회견에서 편중인사에 대한 질문을 받고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인재를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답변했다. 잘못된 인사에 대한 국민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귀담아듣겠다는 자세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처럼
능력있는 사람들만 발탁하는데도 이 정부가 역대 최악의 무능한 정부라는 평을 듣는 이유는 무엇이며, 지금까지 임명한 장관 중 어느
누구 하나 도덕성 흠집이 없는 사람을 발견하기 힘든 이유는 또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동종교배 퇴화의 법칙’이 동물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도 적용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같은 고향 사람들, 같은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 비슷한 학교와 배경을 지닌 사람들만 옹기종기 모인 조직이 걸어갈 길은 뻔하다. 더 나은 진화와 발전은커녕 퇴보만을 거듭할
뿐이다. 지금 이 정부가 총체적 난조에 빠져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303화] 박근혜 정부 ‘영남 편중’ 너무 심각하다
박근혜 정부의 특정지역 편중 인사가 도를 넘어섰다. “100% 대한민국”은 고사하고, 사회통합을 위한 최소한의 지역균형마저도
실종됐다. 외려 갈수록 편중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국가 의전서열 10위까지 8명이 영남 출신이다. 올 들어 교체된 청와대 신임
수석 4명 가운데 3명이 대구·경북(TK) 출신이다. 선임 수석인 정책조정수석을 비롯해 민정·홍보 수석 등 핵심 요직이다. 최근
검찰 인사에서도 대검 차장과 서울중앙지검장 등 수사의 핵심 라인이 TK 출신으로 채워졌다. 청와대 개편에서 민정특보와 민정수석에
TK 출신이 임명된 데 이어 ‘사정 라인’을 동향으로 도배한 꼴이다. 편중 인사는 권력기관에서 특히 심각하다.
감사원장·검찰총장·국세청장·경찰청장과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장까지 5대 권력기관장이 모두 영남 출신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어제 낸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5대 권력기관의 국장급 이상 고위직 168명 중 영남 출신이 42.3%에 달한다.
과거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지역 편중이다. 동향·동창으로 엮인 인사들이 권력기관을 장악하게 되면 ‘끼리끼리 문화’에 빠져
균형과 견제의 원리는 증발되기 십상이다.
인위적인 지역 안배를 하려 능력과 자질에 따른 적재적소의 인사 원칙을 깨라는 말이 아니다. 통합의 가치를 일거에 무력화시킬 만큼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는 거라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2년 평가에서 국민이나 전문가들 공히 ‘인사’를 최악으로
꼽는다. 실로 “지역에 관계없이 최고의 인재”(대통령 신년회견)를 등용했다면, 박근혜 정부의 나락을 재촉한 인사실패는 벌어지지
않았을 터이다. 결국 ‘내 사람 심기’와 ‘우리가 남이가’ 식의 패거리 인사가 빚어낸 결과가 특정지역 편중 현상이다.
대통령의 인사에서 지역 편중이 노골화되고 탕평의 기본원리가 무시되면 그 해악은 광범위하게 번진다. 당장 연고주의가 드센
관료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 실제 일선 부처와 공공기관에 편중 인사가 심화하고 있다. 또한 연고로 얽힌 인사는 부정부패의 관피아
구조와 쌍생아이다. 무엇보다 편중 인사는 지역 갈등과 차별의 불씨를 댕겨 분열을 조장한다. 에두를 것 없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빌리자. “국민통합은 말로만 외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대통령이 되면 모든 인사에서 대탕평을 확실하게 할 것이다. 그것이
국민대통합의 핵심이다.” 그 약속대로 박 대통령은 과연 “대탕평인사로 분열과 갈등을 빚어온 역사의 고리를 끊고 있는가”를 냉철히
자문해 보기 바란다.
■ 경제지표 하락세
[한국일보 사설-20150303화] 다시 꺾인 경기지표, 경제활성화策 다급해졌다
경기회복 기대감에 또 다시 찬물을 끼얹는 통계가 나왔다. 지난 연말 다소 반등 가능성을 비쳤던 산업활동 지표가 새해 들어 재차
크게 가라앉았다. 어제 통계청에 따르면 1월 전체 산업생산 증가율은 전월 대비 -1.7%로 2013년 3월(-1.8%) 이후
2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0.9% 증가세를 기록했던 지난해 12월과 비교하면 무려 3% 포인트 가까이 급락한 것이다.
정부는 2월 설 연휴 등 경기 외적인 요인을 들어 비관적 상황이 아님을 애써 강조하지만 우려는 다시 점증하고 있다.
산업활동 부문별로 보면 경기불안 양상은 더욱 심각하다. 제조업 경기의 실상을 반영하는 광공업생산은 전월 대비 -3.7%를 기록,
3.4% 증가했던 12월에 비해 무려 7% 포인트 이상 추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2월(-10.5%) 이후
6년 1개월만의 최저치다. 여기에 설비투자와 소매판매 증가율 역시 큰 폭으로 뒷걸음쳐 각각 -7.1%, -3.1%를 나타냈다.
요컨대 가까스로 달리려던 타이어가 펑크나듯 생산ㆍ투자ㆍ소비에 걸친 핵심 지표가 모두 가라앉은 셈이다.
불황 장기화 우려는 당장 금리인하론에 불을 댕기고 있다. 지난해부터 유럽ㆍ일본이 강력한 양적 완화책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캐나다
호주 인도 등에 이어 지난 28일엔 중국마저 또 다시 금리인하를 단행하자, 한국은행도 금리인하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다급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은으로서는 여전히 급증세를 타고 있는 가계부채 및 미국의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 등을 의식해
운신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더욱이 자금이 넘쳐나도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 양상을 보이는 현 상황에선 추가로 금리를
낮춰도 성장을 자극하기 어렵다는 점도 딜레마다.
재정ㆍ금융에 걸친 경기부양책이 이미 가동 중인데다, 추가 금리인하도 큰 효과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즉각적인 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촉진할 경제활성화 조치에서라도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당장 30조원 규모 기업투자촉진 프로그램 등 준비된 시책
가동이 시급하다. 아울러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경제자유구역특별법, 관광진흥법 등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인 11개 경제활성화법안도
조속히 처리돼야 한다.
경제활성화법안 처리와 관련해 여당은 “구태의연한 발목 잡기”라며 야당을 몰아붙이고, 야당은 의료민영화 및 투기조장 등 부작용을
내세워 핵심 법안 처리를 피하고 있다. 하지만 여야의 대책 없는 기 싸움 속에서 경제활성화의 모멘텀조차 멸실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의 카드가 거의 소진된 절박한 상황임을 감안할 때, 이젠 국회가 경제 난국 타개를 위해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할 때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03화] 산업생산 감소세 반전… 국내기업 활력 문제없나
연초부터 기업의 생산·판매·투자·수출입지표들이 하나같이 시들고 있다. 가장 먼저 1월 광공업생산은 3.7%나 감소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전체 산업생산 증가율도 -1.7%로 다시 꺾여 22개월 만에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7.1% 줄었다. 소비의 지표가 되는 소매판매 또한 의복 등 준내구재(-7.7%),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2.9%) 판매가 줄어 전월보다 3.1%나 감소했다. 생산·소비·투자의 동반감소는 11개월 만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뿐
아니라 1월 수출과 수입마저 10%와 16.9%씩이나 줄었다. 국내 기업의 활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큰 걱정이다.
이렇듯 지표는 충격적인데 정부는 여전히 경제가 개선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기획재정부는 1월 광공업생산이 급락한 데 대해
"지난해 12월 광공업생산이 2009년 9월 이후 최대폭으로 증가한 데 따른 기저효과"라고 밝혔다. 소매판매가 마이너스로 돌아선 데
대해서는 "담뱃값 인상, 따뜻한 날씨, 설 이동에 따른 일시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산업의 생산과 소비는 물론 수출·수입이 일제히 마이너스 성장률을 나타냈다면 정부는 경각심을 갖고 만반의 대비에 나서는
것이 마땅하다. 더구나 경제기조 자체가 허약해지고 있지 않은가. 지난해 전체 산업생산은 전년보다 1.1% 증가하는 데 그쳤고
광공업생산 증가율도 0%대에 불과했으며 소매판매액지수도 지난해 고작 1.6% 올라갔을 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1,1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에 짓눌려 내수부진 의 탈출이 요원하다는 점이다. 35개월째 경상수지 흑자 또한 '불황형 흑자'의 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일본식 장기불황을 피하기 어렵다. 기업의 활력을 되살려 경제 추락을 막아야 한다. 유가 하락 등 호재들을 기업수익
개선에 직결시키고 기업 규제를 완화하는 노력이 우선 필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노동시장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바꾸는
구조개혁이다. 과거 일본 정부는 장기불황 조짐을 알아채지 못한 채 구조조정 없이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다가 '잃어버린 20년'을
자초했다. 불황의 깊이를 제대로 인식한 처방이 요구된다.
■ 원세훈 국정원장 선거법 위반 판결
[사설 속으로-20150303화] 오늘의 논점 - 원세훈 전 국정원장 선거법 위반 판결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 중앙일보 <2015년 2월10일 34면>
1, 2심 엇갈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사건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어제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 모두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서울고법의 이번 판결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내렸던 1심 선고와는 정반대의 결과다.
형량에 있어서도 원 전 원장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에서 징역 3년이라는 중형을 받았다.
항소심은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2012년 8월 이후 국정원 심리전단이 인터넷 및 트위터 등에 댓글을 단
행위가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인정했다. 항소심 판결로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과 파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은 판결문에서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조직을 특정 정당 반대에 활용한 것은 공직선거법 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밝혔다.
“사이버 활동은 방어심리전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였다”는 원 전 원장의 주장에는 “국정원 본연의 활동 범위를 넘어선 위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 행위”라고 설명했다. 이는 “댓글 활동은 국정원 심리전단이 평소 해오던 활동으로 이를 선거 기간 중
선거운동으로 전환한 정황을 찾을 수 없다”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던 1심 판단과도 배치된다. 항소심은 그러나 원 전 원장이 사이버
심리전단을 통해 정치활동에 관여한 부분에 대해서도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를 인정했다.
하급심의 엇갈린 판결에 대해 대법원이 가능한 이른 시일 내에 최종 판단을 내려줄 것을 촉구한다. 벌써부터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사법부를 끌어들여 정치 쟁점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사건을 놓고 또다시 보수와 진보로 여론이 분열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정원도 과거 스스로 권위를 훼손해 불신을 자초한 점을 인정하고 과감한 개혁 작업을 벌여야 할 것이다. “국가 정보기관은 선거와
무관할수록 국민들이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재판부의 지적처럼 정치적 중립을 실효적으로 이룰 수 있는 입법 작업을 검토해주기
바란다.
■ 한겨레<2015년 2월10일 31면>
박 대통령의 정통성에 의문 던진 ‘원세훈 판결’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국정원 조직을 동원해 후보들을 지지·비방하는 댓글·트위터 활동을 벌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항소심 재판에서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1심 판결과 달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인정됐다는 점에서 항소심 판결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대선이 국가기관의 부정선거로 오염됐다는 점을 사법부가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드러난 국정원의 댓글·트위터 공작 실태에 비춰보면 이번 판결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앞선 1심 판결은 국정원 심리전단이 선거
기간에 특정 정당·정치인을 지지·비방하는 활동을 벌인 게 국정원법상 금지된 정치관여라고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선거운동으로 볼
만큼 능동적·계획적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모순된 결론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정치관여 활동이 (선거 시기에)
선거개입으로 전환되는 것은 이미 내포하고 있었던 문제”라고 핵심을 짚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야당 후보 비방 글이 급증하고 선거 쟁점에 더욱 기민하게 대응했다는 객관적 증거를 들어 능동적·계획적 선거운동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법리와 더불어 사실관계에서도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1심은 국정원이 사용한 트위터 계정 175개와 트위트 글 11만여 건만 증거로
인정했으나, 항소심에서는 트위터 계정 716개, 트위트 글 27만4800건으로 늘어났다. 더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공작의 실체가
인정된 것이다. 실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친 정도도 그만큼 컸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이 사건은 ‘국정원 댓글 사건’이라는 약칭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중대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 ‘국정원 부정선거 사건’으로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국정원장과 일부 직원들이 정치관여라는 구시대적 일탈행위를 저지른 데 그치지 않고, 선거라는 주권자의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한 훨씬 심각한 범죄행위로 판명 났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지적했듯이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근본적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정통성도 의문에 직면하게 됐다. 국정원의 댓글·트위터 공작이 실제 선거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는 계량하기 힘들겠지만, 선거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민주적 권력 창출의 근본 원리가 흔들린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를 둘러싼 혼란을 막고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정원 부정선거 사건의 실체를 더 철저히 밝혀야 한다.
그동안 수사팀은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 수뇌부의 방해 속에 혐의를 입증할 최소한도의 증거를 찾아내는 것도 힘겨웠다. 원세훈 전
원장의 범행 동기나 배경, 박근혜 후보 쪽의 인지 여부 등 더 확인돼야 할 대목이 여럿 남아 있다. 박 대통령도 이런 재판 결과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정치인의 책임이라고 본다.
■ 논리 vs 논리
“엇갈린 판결로 혼란 불러” … “1심 모순 바로잡은 판단”
선
거는 민주사회의 근간이다. 대한민국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은 오래전 일이 아니다. 우리 근·현대사는 부끄럽게도 불법
부정선거가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1960년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는 4·19혁명을 초래했고 5·16군사쿠데타로
이어졌다.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야말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전제 조건이다.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 인류의 가장
큰 불행이라고 역설했던 아널드 토인비의 통찰이 새삼스러운 현실을 살펴보자.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관련 항소심 재판에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을 위반한 혐의가 모두 인정되어
유죄를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유죄가 인정된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 중대한 범죄행위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검찰 측은 모두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로
최종 판결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나 지자체 선거의 불법행위와 달리 대통령 선거가 불법행위로 오염됐다는 사실을 사법부가 인정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한겨레는 이를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정통성도 의문에 직면하게 됐다”며 의미 있는 판결로 평가했다. 그러나 중앙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과 달리 2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점에 주목했다. 항소심의 결과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그 의미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설의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한겨레는 이 판결에 따라 이번 사건을 ‘국정원 댓글 사건’이 아니라 ‘국정원 부정선거 사건’으로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1심에서는 국정원 심리전단이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비방하는 활동이 정치관여라고 인정하면서도 선거운동으로 볼 만큼
능동적·계획적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모순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항소심은 이를 바로잡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법리와 더불어
사실관계에도 주목한다. 1심에서는 국정원이 사용한 트위터 계정 175개와 트위터 글 11만여 건만 증거로 인정했으나, 항소심에서
트위터 계정 716개, 트위터 글 27만여 건으로 증거가 늘어난 것은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공작의 실체’를 인정한 판결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비해 중앙은 ‘국정원 본연의 활동 범위를 넘어선 위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 행위’라는 항소심의 판결은 “댓글 활동은
국정원 심리전단이 평소 해오던 활동으로 이를 선거 기간 중 선거운동으로 전환한 정황을 찾을 수 없다”는 1심의 판단과 배치된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2012년 8월 이후 국정원 심리전단이 인터넷과 트위터 등에
댓글을 단 행위가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인정한 항소심 판결로 대선 개입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과 파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1심의 모순을 바로잡은 적절한 판단이라며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근본적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환영하고 있다. 이에 비해 중앙은 1심과 2심의 엇갈린 판결로 인해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이 사건을 정치
쟁점화하고 있으며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됐다고 우려하고 있다.
아직 대법원의 판단이 남아 있지만 항소심 결과에 따라 이 사건의 대책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서로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 한겨레는 이 사건으로 인해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정통성도 의문에 직면하게 됐기 때문에 국정원 부정선거 사건의 실체를 더
철저히 밝히고 박근혜 대통령이 재판 결과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정치인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중앙은
하급심의 엇갈린 판결로 여론이 분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빠른 시일 내에 대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려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어 국정원도 과감한 개혁 작업을 벌이고 정치적 중립을 실효적으로 이룰 수 있는 입법 작업을 검토해 달라고 요구한다.
대법원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판결이 어떻게 나더라도 국가정보원과 정부는 항소심의 판결문처럼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됐다고 믿는 대다수 국민에게 이번 사건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법적으로
유·무죄인가를 판단하기 전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 그리고 국정원의 역할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사건이다. 정치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국민들의 감시가 없으면 역사는 언제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류대성 용인 흥덕고 국어교사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303화] 靑 정무특보단 성격과 법적 지위 분명히 하라
박근혜 대통령이 여당 의원 3명을 청와대 정무특보로 임명한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다. 국회의원의 겸직 제한 규정과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는 위헌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비서실장 교체와 정무특보단 임명을 끝으로 인적 쇄신을 매듭짓고 집권 3년 차
국정운영에 매진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계획에도 적잖은 차질이 예상된다.
청와대 정무특보단 신설은 국회 및 여야 정치권과의 소통 강화가 기본 취지일 것이다. 취임 후 줄곧 불통 논란에 휩싸여온 박
대통령인 만큼 청와대의 정무기능을 보강해 소통을 늘리겠다는 의욕 자체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적인 헌법기관인
현역의원들을 정무특보로 기용한 게 문제다. 비록 특보 즉 특별보좌관은 무보수 명예직이라고 해도 직접적으로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자문만 하는 직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당적은 물론 국회의원 직위도 내놓아야 임명되는 비서나 참모에 가깝다.
특보들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수석비서관회의에도 참석한다. 그런 자리에 대통령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현역 국회의원을 기용하는
것은 3권 분립 정신에 어긋난다.
우리 헌법에 내각제적 요소가 있고, 국회의원이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을 겸직할 수 있도록 한 규정(국회법 29조)에 비춰 별 문제가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 권력집중현상이 심해지면서 견제 강화를 위해 국회의원의 국무총리ㆍ국무위원 겸직조차도
금지해야 목소리가 정치권과 학계에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역의원의 정무특보 기용은 이런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대통령과 정부를 감시ㆍ견제하는 국회의원과는 임무가 상충한다며“의원이냐 정무특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일리가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친박 성향 의원들 중심인 정무특보단 운용은 결코 소통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갈등의 요인이 될 소지가 높다는 것이다. 당초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도 당ㆍ청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자주 만나 대화하면 된다며 정무특보단 신설에 반대했다. 이미 당ㆍ정ㆍ청 정책조정협의회를
운영하기로 했는데 정무특보단을 가동하면 지도부가 무력화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렇게 여러 문제와 논란이 뻔히 예상되는 데도 정무특보단 임명을 강행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현역의원을 정무특보에
기용할 경우 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을지를 세심히 검토하지 않았다. 즉흥적이고 주먹구구식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비정상적인 시스템은 빨리 바로 잡아야 한다.
[한국일보 사설-20150303화] 획일적인 영세업소 금연 강제, 보호책 고민해야
서울 강서구와 경기 포천시에서 각각 100㎡ 이하의 영세음식점을 운영하는 박모씨와 정모씨 등이 ‘금연법’ 관련 헌법소원을 3일
제기한다고 밝혔다.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 4항 24호 및 시행규칙 제6조 1항 3호가 자신들의 직업수행의 자유(헌법 제15조)와
재산권(헌법 제23조 3항), 행복추구권(헌법 제10조) 등을 침해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해 말까지 100㎡ 이상의
영업장에만 적용되던 의무적 금연구역 지정이 올해부터 100㎡ 이하 영업장으로까지 전면 시행되면서 매출이 30% 이상 줄어드는 등의
심각한 영업 손실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는 게 헌법소원 심판 청구의 실질적 이유다.
심판 대상 법규가 포괄위임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거나 직업수행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는 등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법리적으로
타당한지는 앞으로 헌법재판소가 충분히 가려줄 것이라 믿는다. 헌재는 과거 담배연기를 즐길 권리(흡연권)와 담배연기를 피할
권리(혐연권)가 충돌할 경우 혐연권이 우월한 권리라고 분명한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이번 에는 혐연권과 흡연권의 단순충돌보다는
쟁점이 복잡하고, 일부 심판 대상법규의 자구에 상식적 의문이 제기될 만하지만 종합적 법리 판단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심판 대상법규가 재산권, 즉 영세음식점의 영업권을 ‘특별히’ 침해했다는 이들의 주장은 그에 대한 헌재의 법리적 판단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정부의 금연정책이 담배연기로부터 국민건강을 지켜야 할 당연한 책무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또한
그에 발맞춘 국회의 관련 입법도 원칙적으로 타당하다고 본다. 다만 정부의 정책이 애초의 취지는 최대한 살리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선택했느냐 여부는 수시로 검증돼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시행규칙 등의 손질도 수시로 이뤄져야 마땅하다.
올 들어 ‘금연법’ 확대 시행에 따른 영세업주의 영업 손실은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굳어져 가고 있다. 서민경제를
구성하는 자영업의 대종을 차지하는 영세음식점의 어려운 사정은 전체 서민경제의 안정을 위협할 수준이라는 볼멘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일찌감치 대상에 포함된 PC방이나 100㎡ 이상 영업장에 비하면 100㎡ 이하의 영세음식점은 영업 손실 회피 능력이 극도로
취약하다. 좁은 영업장에 ‘금연법’이 규정한 시설기준을 충족하는 흡연실을 둘 공간도 없고, 필요한 자금도 마련하기 어렵다. 업소
각각의 영업내용과 주된 고객층의 성향 등을 일절 고려하지 않고 금연을 의무화한 결과 영세음식점을 지탱해 준 저녁 술 손님 상당수를
잃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정부가 이번 헌법소원을 계기로 영세음식점을 보호할 실질적 정책 대안 발굴에 나서길 촉구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303화] ‘빈곤 고착화’와 ‘소득 격차 확대’ 흐름 바꿔야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 뒤 국내 저소득층의 빈곤 탈출이 어려워지고, 중산층의 감소 추세가 뚜렷해졌다는 연구보고서가
얼마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나왔다. 최상위 소득계층에 소득이 쏠리는 현상은 더 심해졌다고 한다. 소득격차의 확대와 소득계층 간
이동의 감소는 경제의 역동성과 사회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조세연구원의 연구보고서는 정부가 발표하는 소득지표와는 다른 조사 방식을 썼다. 정부는 가구 응대를 통한 표본조사 방식으로 지표를
산출하는 반면에, 연구원은 국세청의 납세 자료와 자체 재정패널 조사치를 이용해 2008년부터 2012년까지의 변화를 분석했다.
이렇게 하면 정부의 조사 방식에 따른 결과보다 소득분배의 실태와 변화를 더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연구 결과 또한 정부의 공식 지표와 크게 다르게 나왔다. 정부는 국내 소득 불평등 수준이 2010년 이후 완만하게 개선되고 있다고 발표해왔으나, 조세연구원은 계속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보
고서를 보면, 고소득층(중위소득의 150% 이상 소득을 얻는 계층)은 2008년부터 2012년 사이에 그대로 고소득층에 남아 있는
확률이 높아졌다. 반면에 중산층(중위소득의 50~150%)의 잔류율은 33.7%에서 31.2%로 2.5%포인트 낮아졌다.
‘상대빈곤층’으로도 불리는 저소득층(중위소득의 50% 미만)은 중산층으로 올라간 비율이 2008년 6.1%에서 2012년 5%로
줄었다. 아울러 2008년 44.8%이던 중산층 비중이 커지기는커녕 2012년에 41.3%로 더 줄었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고착화와 중산층의 감소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최상위 소득계층으로 소득 쏠림 현상은 더 심해졌다. 2012년 기준으로 소득 상위 1% 계층이 전체 소득의 11.66%를
가져갔다. 소득집중도의 심화에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작용했겠지만,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 정책도 한몫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부는 감세 정책의 결과로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고 성장의 과실이 고루 돌아갈 것이라고 장담했으나 현실은 거꾸로였다. 불평등만
심화하고 나랏빚만 잔뜩 늘려놓았을 뿐이다.
소득 불평등과 빈곤의 고착화는 바꿀 수 없는 흐름이 아니다. 정치적, 정책적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조세연구원도
보고서에서 세제와 재정지출의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조했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할
때다.
[중앙일보 사설-20150303화] 학생 수업권 침해하는 전교조 연가투쟁 중단돼야
이 오는 4월 연가투쟁에 나선다. 2006년 교원평가제에 반대하는 연가투쟁 이후 9년 만이다. 연가투쟁이란 집단으로 학교장에게 사유를 제출해 결재를 받거나 무단결근해 집회에 참가하는 것이다.
이번 연가투쟁은 불법일 뿐 아니라 명분도 약하다.
우선 공무원 신분인 교사는 마음대로 근무지를 이탈할 수 없다.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와 공복(公僕)의무, 집단행위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집단 연가는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이런 이유로 법원에서도 연가투쟁에 대해 여러
차례 불법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또 전교조는 연가투쟁의 명분으로 ▶공무원연금 개혁 저지 ▶전교조 법외노조화 중단 ▶세월호 진상 규명 등을 내걸었다. 학생들의
교육과 무관한 사안들로 모두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거나 정치적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것들이다. 학생들 입장에선 일부 교사들의
이익을 위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전교조가 법외노조화 중단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을 벌인다는 것 자체도 어불성설이다. 전교조는 1심 법원에서 법외노조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에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위헌심판 제청신청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잠정적으로 합법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법외노조 여부를 가리는 것은 법원이나 헌재의 몫이다. 따라서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에 집단 연가투쟁을 벌이는 것은 학생들의
수업권을 볼모로 재판에 압력을 넣으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전교조의 연가투쟁은 1999년 합법노조로 인정받은 이후 10여 차례나 벌어졌다. 하지만 대부분이 주의·경고를 받는 등 경징계에
그쳤다. 지난해 친(親)전교조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연가투쟁을 옹호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교사가
조퇴투쟁한 것을 수업권 침해라고 과잉 해석하는 경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는 명분 없는 전교조의 불법 연가투쟁에 대해 보다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불법을 일삼는 교사들이 어떻게 학생들에게 법치와 준법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는가.
[중앙일보 사설-20150303화] 대한민국 잠수함으로 부활한 유관순 열사의 정신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1902~20) 열사의 이름을 딴 군함이 탄생한다. 해군은 다음달 진수 예정인 214급(1800t급)
잠수함 6번 함을 유관순함으로 명명하기로 했다. 광복과 해군 창설 70주년, 유관순 열사의 순국 95주기를 맞는 올해 유관순함이
우리 바다를 지키게 된 것은 여러모로 뜻깊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열사에 대한 숭모의 마음이 더욱 깊어지기를 기대한다.
사실 그동안 우리 정부와 사회가 유관순 열사에게 희생에 걸맞은 예우를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그치지 않았다. 특히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한선교 의원이 지난달 27일 동북아역사재단과 교육부 자료를 토대로 “유관순 열사에 대한 서술이 일본
고교 근·현대사 역사교과서 7종 중 4종에는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 고교 역사 교과서 중 본문에 이를 담은 것은 8종 중
1종(지학사)에 불과했다”고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다.
지
난달 25일 취임한 이혜훈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회장이 “유관순 열사는 매년 9월 열리는 순국 추모제 때 대통령의 헌화 대상이
아니다”고 지적한 것도 마찬가지다. 건국훈장 1등급 서훈자만 대통령 헌화 대상인데 열사는 1962년 3등급을 추서받았기 때문에
대상이 아니라니 이를 수긍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나.
교육계에서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정부에선 형식적인 예우에 그치고 있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겠다.
상황이 이러니 일부 극단적인 인사가 ‘친일파가 만들어낸 영웅’이라는 식으로 열사의 충절을 헐뜯는 황당한 사건까지 벌어진 게
아닌가.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코와 귀가 잘리고 내 손과 발이 다 부러져도 그 고통은 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국을 잃은 그
슬픔만은 도저히 잊을 수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수 있는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 열사가
작성한 유서의 한 부분이다.
이 뜨거운 애국·애족의 정신을 후손에게 가르치고 숭모하는 작업을 제대로 시작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303화] 현실 도외시한 '김영란법' 우려한다
여야가 2일 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 법안(김영란법)’ 에 이견을 해소해 3일 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했다. 여야는 이
법이 적용되는 공직자 등의 가족 범위를 배우자로 한정키로 합의했다. 공직자가 대가성이 없는 돈을 받았더라도 100만원을 넘기면
일괄 처벌키로 했다. 또 관·혼·상·제에 부조(扶助)하는 행위는 대통령령으로 규율하고, 위반자에 대한 과태료는 3권 분립 원칙에
따라 법원이 부과키로 했다.
여야가 법안의 입법 취지와 사회 관행을 절충해 이 같은 합의를 도출함에 따라 3년 가까이 끌어온 김영란법에 마침내 입법화의 길이
열렸다. 이 법은 ‘벤츠 여검사’처럼 공직자가 거액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아도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할 길이 없는 현행
형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안됐다. 지구촌 176개국 가운데 45위(2012년)에 불과한 국가 청렴도를 획기적으로 높여 선진
사회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여야가 합의한 법안엔 문제점이 더 많다. 우선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 빠져나갈 구멍이 크다. ‘선출직 공직자·정당·시민단체
등이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 개선을 제안하는 경우’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의원과 공무원을 적용 대상으로 한 원래의 입법 취지를 위반한 편법 입법이란 비판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또 법이
시행되면 공직자에게 1인당 3만원을 넘는 식사를 대접할 경우 대개 불법이 된다. 골프 접대는 물론 명절선물도 사라진다. 식당과
골프장, 선물업계 등 국민 상당수가 종사하는 자영업이 큰 타격을 받을 공산이 크다.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 및 그 가족까지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점도 논란이다. 언론인에게는 사회적으로 높은 윤리가 요구된다. 하지만 언론은 공공기관이 아니라 민간기업이다.
또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최대한의 자유를 누려야 할 존재다.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제정되는 법에 한 묶음으로 적용될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여야가 언론을 굳이 끌어들인 건 다른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사기 충분하다. 이럴 경우 적용 대상이 크게 확대돼 법을
제대로 집행하기 어려워진다. 또 검찰·경찰이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언론도 이 법을 남용한 수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연히 이
법이 통과되면 위헌 논란에 휘말려 헌법 소원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위헌으로 결정 나면 정치권과 공직사회로선 법이
휴지가 돼서 좋고, 합헌으로 결정 나도 언론을 통제하기 쉬워지는 점에선 나쁠 게 없는 셈이다. 여야는 법안 통과에 앞서 적용
대상을 올바로 재설정해 위헌 소지를 없애고, 국민 경제에 주름살을 지울 우려도 줄여야 한다. 공직자로 적용 대상을 한정하고,
정치인 예외 규정은 삭제하며 접대 범위에도 탄력성을 부여해 입법하기 바란다.
[경향신문 사설-2010303화] 기대되는 KB지주의 사외이사 실험
KB금융지주가 사외이사 후보 7명 중 3명을 소액주주권인 주주제안 절차를 통해 추천했다. 대주주나 경영진 입맛대로 사외이사를 뽑아왔던 한국적 풍토를 감안하면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외이사는 대주주와 관련 없는 외부인사를 이사회에 참가시켜 대주주의 독단적인 경영과 전횡을 사전에 차단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한국적 현실은 이런 취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부분의 사외이사들이 최고경영자의 통제 아래에 놓이면서 견제는커녕 내부적으로 담합하고
외부적으로 방패막이 역할을 해왔다. 최근 들어서도 대기업은 물론 금융권까지 대주주 측근이나 권력기관 출신 인사들을 대거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행태는 변하지 않고 있다.
KB지주가 이번에 사외이사 후보로 올린 7명 중 이병남 LG인화원장, 김유니스 이화여대 교수, 박재하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 부소장
등 3명은 경제개혁연대 등의 주주제안 절차를 통해 추천한 인물이다. 이들은 시민운동가들이 아닌 해당 분야 전문가들로 경영진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추천 이유다. 이들이 이달 말 주총에서 확정되면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소액주주들이 추천한
인물이 사외이사가 된다. 2001년 참여연대가 당시 전성철 세종대 세계경영대학원장을 주주제안으로 삼성전자 이사로 추천했지만 표
대결에서 밀려 좌초했다.
KB가 주주제안을 통해 후보를 받은 것은 기존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결과이다. 대주주가 없는 KB는 정권의
낙하산 천국이었다. 정권은 최고경영자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냈고 이들은 측근들을 사외이사에 포진시켰다. 이런 이사들이 제 역할을 할 리
만무하다. 지난해 은행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드러난 지주회장과 국민은행장 간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KB 사외이사들은
수수방관했다.
물론 이번 사외이사 선임만으로 KB의 변화를 얘기하는 것은 이르다. 최근 내놓은 현직 회장 연임 우선권 등 최고경영자
승계프로그램은 논란이 되고 있다. 비어있는 KB지주 사장직을 놓고 정권이 입맛을 다신다는 얘기도 여전하다. 기업 건전화의 최후
보루가 주주라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교수는 “제비 한 마리가 봄을 가져오지 않겠지만 KB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주주의 의견을 들으려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서울신문 사설-20150303화] 입 닫고 눈감은 국가인권위 왜 필요한가
국가인권위원회가 독립적 인권기구로서의 권위와 위상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 정권을 바꿔 가며 예기치 않은 ‘장수’를 누리고 있는
현병철 현 인권위원장 체제 이후 인권위는 퇴행을 거듭해 온 게 사실이다. 지난해에는 전 세계 인권기구를 대표하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로부터 두 차례나 ‘등급보류’ 판정을 받는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이러다간 마침내 각종 투표권마저
빼앗기는 ‘3류 인권국’으로 전락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인권위가 본분을 망각한 행위로 또다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인권위가 유엔에 인권규약 이행실태 의견서(정보노트)를 내면서 초안에
있던 내용들을 대거 삭제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언론기관의 독립성 등 하나같이 민감한
쟁점들이다. 자국의 인권 상황을 유엔에 정확히 알리고 인권침해 문제를 예방하는 것은 인권위의 기본적인 직무에 속한다. 그럼에도
“마무리가 안 된 사안”이니 뭐니 하며 동에 닿지 않는 소리를 해명이라고 하고 있으니 최소한의 인권 감수성이라도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인권위가 정부의 인권침해를 노골적으로 은폐하려 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충격적인 ‘윤일병 사건’ 때는 가혹 행위를 확인하고도 진정을 각하했다가 뒤늦게 직권조사에 나섰던 줏대 없는 인권위다. 이쯤 되면
인권위가 아니라 ‘인권말살방조위’라고 해도 반박할 말이 궁할 듯하다. 인권위는 정부에 대한 적절한 견제를 통해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국가기관보다도 정부가 불편해할 만한 쓴소리를 거침없이 내놓아야 마땅하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인권위는 상징적 장식물에 불과하다.
진정한 국민의 인권위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혁신이 불가피하다. ‘존재감 제로’의 식물인권위를 이끌어 온 현 인권위원장부터
스스로 책임을 통감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혁신의 단초를 삼기 바란다. 이명박 정부 초기 ‘반인권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한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은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들을 국제사회에서 변론할 자신과 면목이 없다”며 인권위를 떠났다. 새겨들을
만하다. 현 위원장은 무슨 명분과 논거로 국제사회에 우리 인권퇴행 현실의 안과 밖을 설명할 것인가.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다. 인권에 눈감는 것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치명적인 국격 훼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303화] 혼탁해진 조합장 동시선거 감시 제대로 해야
오는 11일 전국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농협·수협·축협과 산림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일부 조합의 비리가 드러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어제 농·축협 조합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한 것에 따르면 일부 조합의 비리는 도를 넘어섰다. 한 지역 축협은
교육지원사업비 예산을 전용해 2년간 명절 선물로 하나로마트 교환권 9억 6000만원어치를 구입했다. 회의비 예산으로 3년간
야유회에 1081만원을 쓴 곳도 있었다. 일반 경쟁에 부쳐야 하는 인테리어 공사 계약을 쪼개서 수의계약하는 방식으로 4억
1250만원을 특정 업체에 몰아준 곳도 적발됐다. 현직 조합장 이름으로 선심을 쓸 소지가 많은 만큼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사상 최초로 중앙선관위의 관리하에 전국에서 동시에 1326명의 조합장을 뽑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부정행위가 판을 치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26일까지 벌써 523명의 선거 사범을 적발했다. 10명 중 6명꼴로 금품·향응을 제공한 혐의가 가장 많다.
후보자와 유권자를 가리지 않고 금품 살포, 후보 매수 등 불법·탈법으로 인한 혼탁 양상이 극심해졌다. 5억원을 쓰면 당선되고
4억원을 쓰면 떨어진다는 ‘5당 4락’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다. “선거와 관련해 당신이 한 일을 알고 있으니 백만원만
보내면 조용히 넘어가겠다”는 중앙선관위 대표 번호를 발신번호로 하는 피싱 범죄가 기승을 부릴 정도다.
조합장 선거가 과열 양상을 빚으면서 불법으로 치닫는 것은 지역 농어촌에서 조합장들이 임기 4년 동안 제왕적 위치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합장의 연봉은 1억원 정도다. 홍보활동비, 경·조사비, 조합원 선물비 등의 명목으로
연간 10억원 안팎의 교육지원사업비도 마음만 먹으면 재량으로 쓸 수 있다. 대출 결정은 물론이고 인사와 예산, 각종 사업에도
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일단 당선만 된다면 본전을 뽑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돈을 뿌리거나 다른 후보를 매수하는 복마전 행태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농어촌 주민의 피폐한 삶을 개선하려면 사익에 눈이 먼 ‘정치꾼’이 아니라
조합원의 이익을 최우선시할 ‘일꾼’을 뽑아야 한다. 조합원들은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하는 동시에 불법·탈법 선거가 되지 않도록
감시의 눈초리를 곧추세워야 한다. 돈을 뿌린 후보자는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또 불법·탈법 선거를 한 후보자는 지역 사회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303화] 청년 고용이 늘어날 까닭이 없지 않은가
대졸 취업문이 갈수록 바늘구멍이 될 전망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중 종업원 3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7개 응답 기업 가운데 64.7%가 아직 대졸 신규채용 계획을 확정하지조차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보다 덜 뽑거나 아예 한 명도 안 뽑겠다는 기업이 11.6%에 달했고, 작년보다 더 뽑겠다는 기업은 5.8%에 그쳤다. 심각한
대졸 취업난을 보여주는 조사결과다.
취업난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1월 고용동향 조사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전체 취업자 증가폭이 7개월 만에
다시 30만명대로 추락했다. 일자리를 찾다 취업을 포기한 이른바 구직단념자도 49만2000명으로 통계청이 고용동향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다였다. 극심한 청년 취업난이 구직단념자를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더욱 심각한 건 구직단념자 증가세가 매우 가파르다는
사실이다(그림 참조). 잠재구직자를 포함한 체감실업률도 11.9%로 지난해 5월 지표 도입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다. 이러다 보니
지난해 하반기 8% 전후이던 청년실업률도 올 들어 9.2%를 기록하며 10%대에 육박하고 있다. 청년 범위를 15~29세가
아니라 선진국처럼 15~24세로 바꾸면 청년실업률이 11.5%로 이미 10%대를 돌파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문제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고용이 개선될 까닭이 없다는 점이다. 기업의 수익성은 갈수록 하락하는데 고용시장에서는 정년연장,
통상임금 등 온갖 악재가 쏟아지고 있다. 전경련 조사에서 기업이 신규채용을 늘리지 못하는 이유로 국내외 경기악화(26.4%),
회사 내부상황 악화(23.6%)와 더불어 정년연장(23.6%), 통상임금(6.9%) 등을 지목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말로만 노동개혁을 외칠 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오히려 기업에 부담을 떠넘기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기업의
성장이 지속되지 않는 한 취업난이 더 악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나 정치권은 상황이 얼마나 더 악화되고서야 대책을 강구할
건가.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303화] 대형마트의 생활물가 안정효과가 크다는 보고서
대형마트가 많은 지역일수록 장바구니 물가가 더 싸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서울시내 25개구에서 30개 생필품
가격을 조사한 결과 대형마트가 5개 들어선 중랑구와 강서구의 평균 장바구니 가격이 17만817원으로 가장 낮았다. 반면 대형마트가
없는 종로구, 서대문구는 17만8082원으로 가장 높았다. 3대 대형마트 비중과 생필품 가격의 상관관계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형마트가 많을수록 물가가 싸졌다는 얘기로, 소위 ‘월마트 효과’가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이 입증된 것이다. 월마트 효과는
미국에서 월마트가 들어선 지역의 생필품 가격이 10% 이상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 지역에서는 가격이 내리면서 두툼해진
소비자 지갑을 겨냥한 새로운 업종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그 결과 지역경제는 더욱 활성화됐다. 1990년대 미국의 신경제 호황도
월마트 효과가 불러온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유통혁신이란 이런 것이다. 복잡한 유통단계를 줄여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경쟁적으로
공급해 물가를 내리고 그 결과 소비자 후생도 높아지게 된다. 높아진 후생은 경제전반에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우리가 본란에서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과 출점 규제를 지속적으로 반대해 왔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소위 골목상권 보호 논리는 대형마트 규제의 강도를 갈수록 높여가고 있다. 영업시간과 출점 제한에 이어 동반성장위원회는
최근 문구판매를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하고 대형마트가 자율적으로 문구판매를 줄여나가도록 추가로 규제를 높였다. 이제는 판매 품목까지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매출증대가 본업인 사업자들에게 특정 품목 판매를 알아서 줄이라는 게 도대체 말이 되나.
전통시장이나 중소 상인들의 어려움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업종 전환 등 다른 지원방법을 찾아야지 소비자 편익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규제로 인한 대형마트 종사자들과 납품업체들의 피해 역시 고려해야 한다. 더욱이 월마트 효과에서
알 수 있듯이 가격하락이 가져올 연쇄작용까지 생각한다면 대형마트 규제는 시급히 철폐하는 것이 옳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303화] 방송에 편향된 소위 '광고총량제'에 반대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소위 TV방송에 현저하게 유리한 ‘광고총량제’ 도입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어서 논란이다. 광고물량 총액이
제한적인 상태에서 방송에 대한 광고배정이 늘어날 경우 신문산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고 이는 언론시장의 중요한 일각을 허물게
되는 의외의 결과를 배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신문업계는 광고총량제 도입으로 신문 광고의 10~20%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처럼 전체 미디어 시장에 큰 파장이 예상되는데도 방통위는 문화체육관광부 등 다른 정부 부처와는 아무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광고총량제가 포함된 방송법시행령 개정안에 많은 여론과 언론 매체가 반대하는 것은 단순히 지상파 방송3사의 광고 유치가
유리해진다는 차원 때문만이 아니다. 시청료를 강제로 징수하면서 상업광고는 광고대로 경쟁적으로 내보내는 공영방송은 어느 나라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면서 막장 드라마에 선정적인 오락 프로그램까지 시청률 올리기에 여념이 없어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더구나 뉴스의 공정성조차 심각하게 의심받는 지경이다.
방송사들의 방만한 경영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차장 이상 간부가 70%에 달하고 노조방송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질 낮은
프로그램에 경영도 방만한 방송사들을 살리려고 방통위가 팔을 걷고 나선 꼴이다. 정부 부처들 간에 정책 조율이 안된다면 총리실이나
청와대라도 나서서 광고총량제의 일방적인 추진에 제동을 걸어야 하지 않겠는가.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03화] 초심으로 돌아간 삼성전자, 혁신 지속만이 답이다
삼성전자가 2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막한 '모바일월드 콩그레스 2015(MWC2015)'에서 전략스마트폰 갤럭시S6를
공개했다. 삼성이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 1위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준비해온 야심작이다. 개발명을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가 담긴
'프로젝트 제로'로 정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올뉴 갤럭시(ALL NEW GALAXY)'라는 제품공개 행사 명칭에서도 심기일전하겠다는 삼성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 전혀 새로운 제품으로 반격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이를 반영하듯 갤럭시S6는 디자인과 성능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무엇보다 무선충전 기술과 결제 서비스인 삼성페이 등 최첨단 기술이 적용됐다니 기대가 크다.
삼성페이를 탑재한 건모바일과 금융의 결합인 핀테크를 선도하겠다는 포석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은 끊임없는 혁신을 하지 않으면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삼성이 지난해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중국 업체에 고전했던 연유도 혁신을 멈춘 것 아니냐는 의문 탓이 컸다.
여전히 고급형 스마트폰에서는 애플, 보급형에서는 샤오미·화웨이의 협공이 거세다. 핀테크 시장 선점 경쟁도 달아오르고 있다.
모바일 축제인 MWC에 마스터카드를 비롯한 세계적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참석한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일부 금융
CEO는 기조연설자로 나서고 HSBC·아메리칸익스프레스·비자는 전시 부스까지 마련했다고 한다.
삼성이 미국 전자결제사 루프페이를 인수하고 삼성페이를 신제품에 탑재하는 등 핀테크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필요하다면 인수합병(M&A)에 더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로 일상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할 수 있게
혁신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는 신종균 사장의 다짐처럼 혁신을 통한 삼성전자의 재도약을 기대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303화] 은행으로 확산되는 '고객수익률' 따른 직원평가
고객 자산을 얼마나 불려줬는지를 근거로 직원을 평가하는 인사제도를 도입하는 금융사가 늘고 있다. 신한은행은 최근 고객자산
투자수익률을 1만4,000여 전 직원의 핵심성과지표(KPI)에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증권사 등에서는 이미 도입, 시행돼왔으나
은행에서는 업무와 상품별 성과비교 등의 기술적 한계로 투자상담 전문부서(PB) 등에 일부만 도입됐을 뿐 전 직원을 상대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사 본연의 임무가 고객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불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금융산업은 그간 상품 판매실적 등 외형과 회사이익 중심의 문화가 주도하는 후진성을 보이면서 이 같은 제도 도입이 미뤄져왔다.
뒤늦게나마 신한은행이 고객중심 사고로 돌아선 것은 환영할 만하다. 물론 초저금리 추세 속에서 금융소비자들의 금리 민감성이 높아지며
0.1%라도 높은 곳을 찾아 이탈하는 고객이 급증함에 따라 고객을 잡아두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하게 제도 도입에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년에 은행 계좌이동제 실시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신한은행의 '인사 실험'은 전 은행권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결국 우리 은행산업은 생존권 차원에서라도 고객이익을 중심으로 한 인사·운영 등 시스템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셈이다. 이 제도를
도입한 신한은행 경영진의 말대로 "이제 말로만 고객중심을 외치는 시대"는 지나갔다. 가뜩이나 자기자본순이익률(ROE) 급락 등
위기를 맞고 있는 은행들이 인사 시스템뿐 아니라 '업(業)' 전반을 고객중심으로 재편하기 바란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유레카/김회승(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20150303화] 불황과 불륜
불경기엔 이혼이 증가한다. 통계청의 연간 이혼 건수를 보면, 1990년대 이후 전년 대비 증가폭이 가장 컸던 때는 외환위기가
닥친 1998년(28.0%)이다. 다음으로 높았던 게 카드대란을 겪은 2003년(15.0%)이다. 이후 줄곧 감소하던 이혼 건수는
금융위기 때인 2009년 6년 만에 다시 6.4% 증가한다. 통계가 있는 1970년 이후 연간 이혼 건수는 2003년에
정점(16만6617건)을 찍고 추세적으로 줄어 2013년 말 기준 11만5292건이다. 결혼한 사람 1000쌍에 9.4쌍
수준이다.
미국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로 마이너스 성장을 한 초기 6개월 동안은 이혼율이 이전보다 크게 낮아졌다가 급등한 것으로
나타난다. 처음에는 부부가 함께 역경을 이겨내려 노력하지만 불황이 길어지면서 결국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고,
집값 하락으로 깡통 주택이 속출해 분할 재산이 거의 없는 실익 때문에 잠시 이혼을 미룬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불황 이혼’의 이면에는 이른바 ‘불륜 산업’이 있다. 미국의 기혼자 데이트 주선 사이트 애슐리 매디슨의 가입 회원은 금융위기
때인 2008년 한 해 동안 전세계적으로는 166%, 미국에서만 192% 증가했다. 2001년 개설한 이 사이트의 종전 연평균
증가율은 각각 50%, 71%였다. 고용률이 하락할 때 회원 증가율이 높아지는 공통된 현상이 나타났고, 특히 매사추세츠 등 교육
수준이 높은 곳에서 회원 수가 많이 늘었다는 게 업체의 분석이다. 이 업체는 2013년 일본에 진출해 1년 만에 100만명을
돌파한 뒤에는 “장기침체에 찌든 일본 중년 남성들의 호응 덕분”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전세계 회원수는 2000만명으로 한 해
1억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 이혼 건수는 2013년 이후 2년째 다시 소폭 증가세다. 경기침체가 갈수록 깊어지는 터여서 왠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50303화] 통금 시대에나 어울리는 간통죄를 …
언제던가, 가슴 뛰는 사랑을 했던 때가. 1974년, 하얀 목련이 교정에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 그를 처음 만났다.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는 만나서 늦은 밤까지 데이트를 했다. 지금은 그와 결혼해 소 닭 보듯 살고 있지만 그때는 그의 어디가 그리
좋았던지. 기껏 데이트라고 해봐야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영화 보고 버스 타고 집에 데려다주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자정부터
새벽까지는 통행금지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우리 집은 신림동, 그의 집은 돈암동. 버스로 왕복 두 시간 거리인데 나를 집에
바래다주고 그가 돌아가다가 통행금지에 걸린 거다. 파출소에 잡혀갔다가 장발 단속 때문에 바리깡으로 머리까지 밀고 나왔다.
그땐 그랬다. 장발, 미니스커트, 야간통행 등등 금지가 많았다. 크리스마스이브와 섣달그믐날. 일 년에 딱 두 번 광란의 밤이
허락됐었던가. 통행금지. 불편은 했어도 없애긴 다들 불안해했었다. 얼마 후 통금은 없어졌지만 우려했던 대로 밤이 더 문란해지지도
않았고 호황을 누렸던 나이트클럽이 오히려 쇠퇴하기 시작했다. 구태여 꼭 그 밤에 모여 놀 필요가 없어진 게다.
드디어 여러 차례 진통 끝에 62년 만에 간통죄가 폐지됐다. 폐지된 바로 그날, 피임기구 회사의 주가가 상한선을 쳤단다. 불륜은 등산 가서 많이들 하시는지 등산복과 하산 길에 마시는 막걸리도 덩달아 상한가란다. 완전 코미디다.
글쎄다. 세상 그 어디에도 우리나라처럼 러브호텔이 많은 나라는 없고 룸살롱 이차 문화가 발달된 나라도 없는데. 손님이 기혼이라면
모조리 간통 현장 아닌가. 간통죄가 있었어도 할 사람들은 다 해왔는데 막상 폐지됐다고 간통이 더 늘어날까. 조만간 민사적 보완책이
마련될 것이고 간통도 더 이상 늘지 않을 거라 믿는다. 간통죄 남은 나라가 이제 이슬람국가를 빼고는 거의 없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사람만이 ‘성적 자기결정권’이 무시당한 채 진부한 그 법의 통제를 받았다는 사실도 참으로 웃기는 일이다.
요즘은 보기 민망할 만큼 속옷이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든지, 가슴골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입든지 상관없이 입고 다닌다. 머리도
남자가 꽁지머리를 하건 파마를 하건(내 남편도 파마했다) 칠순 된 할머니가 보라색으로 염색을 하건 말리는 이도 없다. 새벽에
나가 족발을 뜯고 와도 통금이 없어 괜찮다. 미니스커트 길이를 자로 재고 남자가 머리 길렀다고 확 밀어버리고 통금도 있던, ‘그땐
그랬지’ 시절에나 간통죄가 어울렸던 게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민아(논설위원)-20150303화] 암살
암살자를 의미하는 영어 ‘assassin(어새신)’의 어원은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한 아랍어
‘hashshashin(hashishin)’이라고 한다. ‘(농축 대마인) 해시시를 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11세기 이슬람
시아파의 한 분파인 니자르 이스마일파에서 결성한 비밀 암살단을 가리키는데, 환각 상태에서 암살을 저질러 공포의 대상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마약 중독자였는지는 논란이 많다.
십자군 전쟁 과정에서 암살단의 이름은 유럽에 유입된다. 마침내 17세기 초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암살(assassination)’이란 말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암살’이라는 어휘가 서구 문학에서 쓰인 첫 사례로 기록된다.
셰익스피어에 의해 ‘시민권’을 획득한 이 단어는 널리 확산된다.
어휘의 역사와 별개로, 암살은 인류가 권력투쟁을 시작한 이래로 존재해왔다. 특히 절대권력자들은 정적(政敵)을 제거하는 데 이를
‘애용’했다. 심야에, 후미진 곳에서, 남들 모르게 저지르는 게 대부분이지만 중인환시리에 자행한 경우도 있었다.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권이 베니그노 아키노에게 한 것이 대표적 사례일 터다. 1983년 8월21일 아키노는 3년간의 미국 망명
생활을 접고 모국 땅을 밟았다. 암살을 걱정하는 측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귀국길이었다. 마닐라국제공항에 내리는 순간
저격범이 쏜 총탄에 쓰러졌다. 아키노의 죽음은 ‘피플 파워’의 도화선이 되고, 아내 코라손은 대통령에 올랐다. 마르코스의 21년
독재는 이렇게 끝장이 났다.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맞서온 야당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가 괴한의 총격으로 숨졌다. 사망 당시 정황에 비춰보면
‘정교하게 계획된 암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다수 언론의 견해다. 4발 이상의 총탄을 집중적으로 쐈고, 크렘린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에서 ‘대담하게’ 총격한 점 등이 그렇다는 것이다. 아키노와 마찬가지로 넴초프도 어머니를 비롯해 주변에서 암살을
우려해왔다고 한다. 우려는 또다시 현실이 되고 말았다. 넴초프 암살 뒤에 누가 있는지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다만 푸틴에
반대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이 처음은 아니라는 데 눈길이 간다.
[서울신문 칼럼-최동호 새벽을 열며/최동호(경남대 석좌교수·시인)-20150303화] 아! 윤동주 서거 70주년
2월 16일은 적지(敵地)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윤동주가 서거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별다른 준비가 없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도쿄의 릿쿄대와 교토의 도시샤대 그리고 후쿠오카 등 세 곳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도시샤대에서는 윤동주 시비 건립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해 유품 전시와 추모 행사를 함께 했다.
우리 시사랑일행은 도시샤대를 방문해 윤동주 시비에 묵념했으며 재학 시절 윤동주의 시에 대해 한양대 유성호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일본 감방에서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옥사한 윤동주가 규슈대 생체 해부 대상이기도 했다는 것은 70주기를 매우 가슴 아프게
했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귀국하니 22일 오후 릿쿄대 예배당에서 거행된 ‘윤동주 시인 70주기 추모 낭독회’에는 유료 입장객
400여명이 몰려 들었다고 한다. 제1부 윤동주 시 낭독에 이어 제2부 소설가이자 ‘윤동주 평전’의 저자 송우혜씨의 특강
‘윤동주가 꿈꾼 세상’을 듣고 세대와 국적을 초월해 모인 청중들은 윤동주의 지고한 생과 순정한 시에서 진정한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윤동주의 ‘서시’ 경우는 일역시가 동시에 낭독됐는데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시가 군국주의로 치달리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청중들에게 울림이 컸을 것이다.
윤동주가 그의 시 ‘서시’에서 노래한 ‘죽어 가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은 동아시아 공동의 명제다.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혀 죽을 때나 지금이나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역학 관계는 근본적으로 유사한 구조다. 또한
그들 뒤에는 미국과 러시아가 자리 잡고 있는 세계사적 문제이기도 하다. 정작 국내에서는 누구도 준비하지 못한 윤동주 추모 행사가
일본에서, 그것도 세 곳에서 거행됐다는 사실은 우리가 국내적 쟁점에 갇혀 국제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문학의 문제로 돌아와 도시샤대의 윤동주 시비에 대한 이야기를 한마디 해 두고자 한다. 이 시비에 윤동주의 ‘서시’가
육필시와 일역시가 함께 새겨져 있는데 일본어 번역시에 문제가 있다. 원시의 제7행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을
일본어로 ‘生きとし生けるものをいとおしまねば’라고 번역했는데 이 구절을 한국어로 옮기면 ‘살아 있는 동안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가 될 것이다. 어느 정도 의역이라는 것을 전제한다고 해도 안타깝게도 윤동주 시의 원문과 다른 의미의 시가 새겨졌다는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윤동주의 원문에는 군국주의로 치달리는 급박한 전시 상황의 일본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자의 비장한 결의와
역사 의식이 내포돼 있는데 번역시에서는 보편적인 사랑이나 연민으로 변형돼 첫 행에서 노래한 대로 ‘죽어 가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소망하는 시인의 절박한 마음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일본어 번역자는 첫 행에 이미 ‘죽는 날’이 나와 있으니 이와 대비해 ‘살아 있는 날’을 연상하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의역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원시가 말하고 있는 죽음의 심각성은 어디론가 증발한 것 같다. 이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감각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미세한 것 같지만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제국주의 시대나 지금이나 역사를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각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 차이들이 앞으로의 국제적 변수를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되새겨야 할 것은 이번 윤동주 70주기 행사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가 일본인들에 비해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거나
중요한 것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독도 문제가 어쩌면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지심을 금할 수
없다.
송우혜씨의 역저 ‘윤동주 평전’에 소상하게 밝혀진 대로 윤동주는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를 사랑한 시인이다. 3월 1일을 맞아 그의 지고한 희생을 망각하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다시 한번 옷소매를 여미게 된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오형규(논설위원)-20150303화] 착시(錯視)
제주 ‘신비의 도로’(일명 도깨비도로)는 오르막길로 보이지만 기어를 중립에 놓아도 차가 슬슬 앞으로 간다. 실제론 3도가량
내리막길이다. 1980년대 초 신혼부부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산록도로 초입엔 제2 도깨비도로도 있다. 도깨비도로는 전국
각지에서 발견된다. 의왕 하우고개, 세종 비암사 입구, 제천 청풍호반, 화천 호음고개, 태백 두문동재, 칠곡 요술고개 등
10여곳이다. 모두 관광명소로 뜬다니 착시가 돈벌이도 되는 셈이다.
착시(錯視·optical illusion)는 사물의 크기 방향 각도 길이 등이 실제와 달리 보이는 착각의 일종이다. 독일 수학자
프란츠 뮐러리어가 1889년 고안한 뮐러리어의 도형이 대표적이다. 같은 길이의 두 직선이 양쪽 끝의 화살표시가 안쪽이냐
바깥쪽이냐에 따라 길이가 달라 보이는 것이다. 네덜란드 판화가 에셔는 영국 수학자 펜로즈의 ‘불가능한 도형’을 응용해 착시를
일으키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예부터 착시는 건축의 중요한 고려 대상이었다. 고대 그리스 건축물은 대개 기둥 중간부가 약간 볼록하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엔타시스(entasis) 형태다. 기둥 굵기가 일정하면 중간이 오목해 불안정해 보이는 착시를 유발하는 탓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과 같은 원리다. 석탑의 중심기둥을 모서리보다 높게 하는 ‘귀솟음’, 탑신의 기둥을 안쪽으로 기울이는 ‘안쏠림’도 착시
교정기법이다.
일상의 착시는 흔하다. 이발소 표시등의 빗금이 아래로 내려가고, 선풍기가 실제 회전과 반대로 도는 듯한 것도 눈의 착각일
뿐이다. 하이힐, 코르셋은 착시를 응용해 여성을 날씬하고 풍만해 보이게끔 해주는 사례다. 헤어스타일과 줄무늬 옷으로 얼굴, 체형의
단점을 커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착시가 유발하는 위험도 많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가속도로 인해 하늘과 바다를 혼동하는 비행착시(vertigo)는
추락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남극에선 대기가 워낙 투명해 얼음의 원근을 혼동하게 된다고 한다. 신기루(mirage)는 불안정한
대기층에서 빛이 굴절돼 물체의 위치가 다른 곳에서 보이는 착시 현상이다.
최근 영국에서 색깔 논란을 빚은 드레스가 화제다. 인터넷과 SNS에서 네티즌들이 이 드레스를 놓고 청색·흑색파와 흰색·금색파가
갈려 갑론을박한 덕에 드레스가 ‘완판’됐다고 한다. 같은 색도 빛의 양에 따라 달리 인식되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눈은 가장 나쁜 증인’이란 서양 속담이 떠오른다. 우리가 보는 게 과연 진실일까.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한기석(논설위원)-201503030화] '불세례' 협박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가 2일 시작된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수수방관하지 않겠다"며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을 다스릴 유일한 수단은
대화도 평화도 아닌 오직 무자비한 불세례뿐"이라고 협박했다. 조폭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북한 당국의 언어 사용이 참으로 경이로울
지경이다.
북한의 난폭 언어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1차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1994년 특사교환을 위한 남북실무접촉에서 북한 측
박영수 대표는 이른바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우리 대표단을 위협했다. 그는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말아요. 송 선생(우리 측 대표)도 살아남지 못할 거요." 등의 폭언을 내뱉었다.
당시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는 한편 미국에서는 항공모함을 동해로 보내 북한의 핵시설을 공습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등 한반도가 전쟁 위기로 내몰리던 때였다. 이 위기는 그해 10월 미국이 북한에 핵 공격을 하지 않고 대신 북한은
NPT에 잔류한다는 제네바 합의가 체결되면서 가라앉았다. 하지만 불바다 발언 이후 우리 정부는 1995년부터 국방백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주적 개념을 삽입했다.
2010년에도 서울 불바다 발언이 반복됐다. 그해 3월 백령도 해상에서 천안함이 침몰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정부는 이에 따른
대북조치의 일환으로 서해 북단 등 11곳에 대북 심리전용 확성기 설치를 마쳤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를 "직접적
선전포고"라며 "우리의 군사적 타격은 서울의 불바다까지 내다본 무자비한 군사적 타격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끊임없는 북한의 협박은 발언 그 자체로도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더 심각한 것은 기회가 왔다 싶으면 내뱉은 말을 실천에 옮기기도
한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날 새벽에 스커드 계열 미사일로 추정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예측을 불허하는
북한을 다룰 좋은 방안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