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주요 이슈
■ 국토부, 땅콩회항 자체감사 결과 발표
■ 고용노동부, 29일 비정규직 종합대책 정부안 발표
■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
■ 통준위 대북 회담 제의
■ 정부, 규제 완화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국토부, 땅콩회항 자체감사 결과 발표
[한국일보 사설-21041230화] 땅콩회항 국토부 자체감사 미흡하고 신뢰 못해
국토교통부가 ‘땅콩 회항’ 사건 조사와 관련해 특별자체감사를 벌여 공정성 훼손과 부실조사를 인정하면서 서승환 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관련 공무원 8명을 문책(중징계 1명, 징계 3명, 경고 4명)하는 선에서 일단락 지었다. 하지만 이미 검찰에 구속되어 있는 계약직 직원인 김모 항공안전감독관만 중징계 하는 수준인데다, 김씨가 금품을 받은 정황이나 국토부 공무원들이 대한항공으로부터 좌석 업그레이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 등 유착관계에 대해서는 밝혀낸 것이 없다. 하지만 국토부는 “현 시점에서 재조사는 부적절하고 추가조사 여부는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야 할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잘못은 인정하되 더 밝힐 것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서 장관은 사과문에서 “조사단에 대해 전적인 신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항공감독관 중 1인이 대한항공과 유착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에 대해 큰 실망과 함께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는 양 기관의 유착관계를 1인에 한정시키고 있어 국토부가 사태를 여전히 안이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서 장관은 사태 초기에 대한항공 출신을 조사 담당자로 내세웠다가 공정성과 객관성 논란이 일자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장담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특히 이번 자체감사로 밝혀진 것만 봐도 국토부는 정부기관으로써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듯 하다. 사건조사를 총괄 지휘할 컨트롤타워 부재로 조사 직원간 역할분담, 조사계획 수립, 보고체계 구축 등 초기대응이 미흡했다고 자인했다. 그나마 조사과정에서 공정성 훼손을 야기했다. 대한항공을 통해 조사대상자 출석을 요청하고 피해자인 박창진 사무장을 조사할 때 대한항공 여모 상무와 동석하도록 하는 등 어처구니 없는 행위가 있었다. 여 상무는 박 사무장 대신 답변하거나 보충 설명하는 등 12차례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탑승객 명단 등 기초자료도 제대로 확보하지 않아 초동 조사가 부실할 수 밖에 없었다. 김 조사관은 대한항공 여 상무와 수십 차례에 걸쳐 휴대전화 통화와 문자 메시지로 연락했다. 국토부 감사가 시작된 17일 이후에는 연락 흔적을 일부 삭제하기도 했다. 정부기관으로써 존재가치가 의심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땅콩 회항’사건 조사와 이번 특별자체감사 결과를 볼 때 국민들이 국토부를 더 이상 신뢰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이다. 반성과 사과만으로 이번 사태를 덮을 수 없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와는 별도로 감사원의 감사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항공좌석 업그레이드 문제는 국토부만이 아니라 전 부처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30화] 국토부, 항공안전 책임질 수 있나
국토교통부가 29일 특별 자체감찰 결과 발표를 통해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 조사가 불공정하고 부실하게 이뤄졌다고 공식 인정했다. 국토부는 이에 따라 조사 내용을 대한항공 쪽에 알려준 대한항공 출신 김아무개 항공안전감독관을 중징계하는 등 모두 8명을 문책하겠다고 밝혔다. 서승환 장관은 “감독관 1명이 대한항공과 유착된 사실이 확인된 것에 대해 큰 실망과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사과했다. 당연한 조처로, 국토부 스스로 믿음을 갉아먹는 모습을 보였으니 입이 몇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감찰 결과를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우선 조사 대상과 방향, 방법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관을 투입해 조사 자체가 부실하게 진행됐다. 대한항공을 통해 조사 대상자 출석을 요청하고, 조현아 부사장이 강제로 비행기에서 내리게 한 박창진 사무장을 조사할 때는 대한항공 임원을 한동안 동석하게 했다. 공정성이 훼손되게 한 부적절한 행동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김 감독관은 대한항공 임원과 여러 차례 통화하고 문자를 주고받았다. 이런 조사가 처음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국토부의 행태는 어설프기 짝이 없다.
문제가 마무리되려면 아직 멀었다. 검찰이 구속된 김 감독관과 대한항공의 유착관계를 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대한항공 직원들이 김 감독관의 계좌에 수천만원을 입금한 정황을 잡았다고 한다. 검찰은 대한항공에서 좌석 업그레이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는 다른 국토부 공무원 3명도 소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 파장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국토부는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관련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서 장관은 “국토부 항공안전관리체계 전반과 안전관리 조직 및 전문인력 구성, 채용 방식 등을 원점에서 진단해 새롭게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대로 실천함으로써 비판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미봉책이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 항공사와의 유착관계를 청산할 실효성있는 방안도 적극 강구해야 한다.
■ 관련 사설
[중앙일보 사설-20141230화] 관피아 비리, 해도 해도 너무했다
검찰이 어제 발표한 공공기관 비리에 대한 수사 결과는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고질적이고 비정상적인 유착이 얼마나 뿌리 깊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대검찰청 반부패부는 지난 1월부터 12월 24일까지 전국 검찰청에서 특별수사를 벌여 52개 공공기관 및 산하단체의 전·현직 임직원과 업체 대표 등 390명을 입건하고 이 중 256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의 폐해를 지적하는 언론의 집중적 보도가 나온 이후인 지난 8월부터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불과 4개월여 만에 놀랄 만한 수치의 비리혐의가 적발된 것이다.
임직원들은 공사·납품계약, 직원 채용 및 인사, 연구개발, 대출·금융 등 모든 분야에서 관련 업체 측으로부터 금품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일부 기관장은 독과점 구조 속에서도 엉터리 실적평가와 부실한 경영감시 시스템에 편승한 방만 경영으로 재무구조를 악화시켰다고 한다. 검찰은 “임직원들의 부패와 도덕적 해이는 공공기관 부채 규모가 2008년 290조원에서 2013년 523조원으로 급증하게 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밝혔다. 검찰의 이번 수사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공기업의 비리 단속이 왜 필요한지를 알려주고 있다. 경제적 성장은 물론 정치적 안정과 투명한 사회라는 구호는 관피아 비리 척결 없이는 공염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국토교통부가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태와 관련해 8명의 공무원을 문책하기로 했지만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은 “(조 전 사장에 대한 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은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밝혔다가 해당 사무장의 폭로와 언론보도가 잇따른 뒤에야 진상조사를 지시한 것이다. 또 대한항공 측에 조사 내용 등을 알려준 혐의 등으로 구속된 공무원의 금품거래 의혹이 불거지자 서둘러 징계 내용을 발표하면서도 국토부 공무원들의 ‘부정 승급’ 의혹에 대해서는 어물쩍 넘어간 것도 진정성을 의심케 하고 있다. 새해에도 관피아에 대한 수사는 꾸준하고 집요하게 이뤄져야 한다.
■ 고용노동부, 29일 비정규직 종합대책 정부안 발표
[한국일보 사설-20141230화] 비정규직 늘리는 비정규직 대책, 勞도 社도 "반대"
정부가 어제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를 위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비정규직 보호를 공약한지 2년 만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35세 이상 기간제 및 파견 근로자의 사용기한을 본인이 원할 경우 최장 4년까지(현재 2년) 연장할 수 있게 하고, 해고의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하는 방안 등이 골자다.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선 방안 마련에 나선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이를 안건으로 보고하고 논의를 요청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나 노사정위에 참여한 한국노총과 불참한 민주노총 모두 “비정규직 양산 대책”이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경총도 “비정규직 고용 규제만 강화한 대책”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비정규직 남용을 방지하고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고용형태별 맞춤형 대책”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학계와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비정규직 차별해소 대책이 미흡한데다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과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로 인해 되레 비정규직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물론 비정규직으로 3개월 이상(현재는 1년) 일하면 퇴직금을 지급하고, 기간 연장 후 정규직 전환이 안 되면 임금의 10%인 이직수당까지 주도록 하고, 계약갱신 횟수를 2년에 3회로 제한하는 등 진일보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비정규직 차별금지 법규를 무시한 온갖 편법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실효성이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런 마당에 기간제 사용기한을 4년으로 늘릴 경우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4년을 일해도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기 어려운데다 법을 지켜 2년 이상 근무시 정규직으로 채용하던 기업들까지 기한 연장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국노총의 비정규직 조합원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0% 이상이 ‘기업의 정규직 회피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기간 연장에 반대했다고 한다.
정부 정책의 근본적인 문제는 기간 연장 등 편법을 동원해 고용률 수치를 높이는 데 급급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비롯한 비정규직 차별해소의 핵심을 등한시했다는 것이다. 정규직을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해 기업의 부담을 줄여줌으로써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끌어내겠다는 발상도, 이번 대책을 ‘규제 강화’라고 비판하는 경총의 반응을 보면 어불성설이다. 55세 이상에 한해 파견근로를 전 업종으로 확대한 것도 질 나쁜 일자리를 양산해 장기적으로 국가경제의 기반을 갉아먹는 근시안적 접근이다.
노사정위는 내년 3월까지 비정규직 대책을 포함한 3개 의제를 우선 논의할 방침이다. 정부뿐 아니라 한국노총과 경총도 각기 대책을 내놓은 만큼 신중하고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방안을 찾기를 바란다.
[한겨레신문 사설-20141230화] 비정규직 양산 부추기는 게 비정규직 대책인가
고용노동부가 29일 비정규직 종합대책 정부안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35살이 넘은 비정규직(계약직)의 고용기간 제한을 현행 2년에서 최장 4년으로 늘리고, 정규직도 근로계약 해지와 취업규칙 변경 기준 등을 완화해 지금보다 고용보호 수준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비정규직 양산을 부추길 소지가 큰 안이다.
정부안이 발표되자마자 양대 노총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은 정부안을 강하게 비판하며 노사정위 불참도 불사할 것임을 경고했다. 민주노총도 즉각 폐기를 요구했다. 정부는 노사정위 논의를 거쳐 내년 3월까지 종합대책을 확정하겠다는 방침이나, 대화 상대방인 노동계에선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겠다는 반응이다.
노·정 간 간극이 이렇게 큰 이유는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대책의 내용이 애초 목적과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처음 대책 마련에 나설 때 비정규직 남용 방지와 차별 개선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다. 그러나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뒤 ‘노동시장 유연화’와 ‘정규직 과보호 해소’ 등 엉뚱한 화두가 정부 안에서 떠오르더니 종합대책의 방향은 결국 흐려졌다. 정부안은 누가 보더라도 비정규직 남용 방지가 아니라 남용 여지를 더 키우는 대책이다.
노동부가 제시한 대책의 근거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 현장 기간제 노동자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기간 연장을 바라는 답변이 많았다는 게 노동부 설명이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처지에 있는 노동자에게 답이 뻔할 수밖에 없는 질문을 해놓고서, 그 결과를 근거로 대는 것이다.
고용기간 제한을 4년으로 연장하면 현재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을 일시적으로나마 해소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전체 비정규직 규모는 자연스럽게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기간 연장 조처는, 숙련도 높고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는 비정규직조차도 더 길게 비정규직으로 부릴 수 있는 기회를 기업에 주는 것이다. 또 기업들이 정규직 신입사원을 뽑을 이유도 줄게 된다.
국내 임금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은 통계청 집계로 669만명(전체의 35.5%), 노동계(노동사회연구소) 분류 기준으로는 852만명(45.4%)에 이른다. 박근혜 정부 들어 탄력근무제, 시간선택제 일자리 등이 추진되면서 비정규직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임금과 처우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불균형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심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얼마 전에 낸 ‘비정규직 이동성 비교 보고서’에서 한국의 비정규직이 16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열악한 수준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런 상태에서 정부는 비정규직 양산을 초래하고 정규직 보호 수준까지 낮추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그대로 강행할 경우에는 엄청난 저항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물론 이와 관련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
[경향신문 사설-20141230화]비정규직만 늘릴 우려 큰 정부 종합대책안
정부가 어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내놓았다. 근로개선책도 포함돼 있으나 대체로 비정규직을 보다 더 자유롭게 사용하려는 재계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다. 주요 내용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확대하고 파견 허용 업종을 늘린다는 것이다. 정규직의 쉬운 해고와 임금 깎는 방안도 포함됐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차별 철폐라는 사회적 요구와는 정반대다. 우리는 이번 대책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늘리고 정규직 고용불안을 야기할 것으로 우려한다. 정규직을 흔들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인 데다, 사회적 갈등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위험하기조차 하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를 줄이고 비정규직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바꿔 말하면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빌미 삼아 정규직을 문제 삼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 대책에는 성과가 낮은 노동자를 해고하는 가이드라인을 신설하고 성과위주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등의 방안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는 노사불신이 심하고, ‘쪼개기 계약’ 등 왜곡된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정규직 임금을 깎아 비정규직 임금을 올려줄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비정규직 남용 방지책도 원래 취지와는 다르게 흘러갈 공산이 더 크다. 비정규직 당사자가 원하면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고용안정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노동계 전체 차원에서는 사탕발림일 뿐이다. 비정규직 고착화와 신규 직원채용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저임금 숙련노동자의 돌려쓰기가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에서 신규 채용을 하려는 기업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파견 대상을 55세 이상과 고소득 전문가로 확대하는 방안도 역효과가 우려된다. 정부가 비정규직 처우개선책으로 제시한 정규직 미전환 이직수당 신설이나, 퇴직금 수령자격 시한을 1년에서 3개월로 줄인 것도 기업의 법 위반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형태로 변질될 공산이 크다.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정규직으로의 전환과 차별 해소다. 사용기간 연장과 허용 직종 확대, 몇몇 처우개선책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이번 대책은 노사정 논의를 위한 정부 측 제시안이다. 그러나 정부는 노사정의 이름을 빌려 정책 추진을 밀어붙일 것이란 의심을 받아왔다. 내년 3월까지 이어질 논의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 전환을 강력히 요구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노사뿐 아니라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문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30화] 비정규직 종합대책 기업부담·규제만 늘리나
정부가 29일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에 자체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제시하고 공식 논의를 요청했다. 일반직 고용해지 기준·절차를 마련하는 등 정규직에 대한 유연성 강화 대책도 들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차별 완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전체 임금 근로자의 32.4%(608만명)나 되는 비정규직은 임금이 정규직의 64%에 불과하고 고용불안도 심각하다. 따라서 비정상적인 차별은 완화할 필요가 있다.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고 내수를 살리기 위해서도 그렇다. 문제는 정부 안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도, 시장친화적이지도 않다는 데 있다. 비정규직 확대는 정규직 과보호에 따른 유연성 확보라는 국내적 특수성과 시장경쟁 심화에 따른 기업 비용절감 노력의 일환이라는 보편성이 맞물려 있다. 선진국에서도 오래전부터 일반화한 현상이다.
미국·영국·독일·호주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파견근로자 사용업무·사유·기간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비정상적인 차별은 규제하되 신축적인 인력운용이 가능하도록 파견근로 등과 관련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 균형을 추구해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에 대한 근로자 파견을 계속 불법으로 남겨둔 채 55세 이상 고령자 등에 대한 규제만 완화하는 안을 내놓았다. 글로벌 경쟁업체들은 탄력고용을 무기로 앞서가는데 낡은 규제의 틀을 깨지 않고 기업에만 부담을 떠넘기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양산의 핵심 원인인 정규직에 대한 노동관련법상의 과보호 해소에도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저성과 근로자 해고방안을 마련했다지만 그 절차와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해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균형감각도, 정규직의 고통분담도 결여된 비정규직 대책으로는 일자리를 늘릴 수 없다.
■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
[한겨레신문 사설-21041230화]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29일 전체 내용이 공개된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관한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은 내용과 형식, 추진 방식 등에서 모두 문제가 많다. 정부는 이 약정이 이미 이날 0시를 기해 발효했다고 말하지만, 체결 여부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마땅하다.
정부가 국회에 보고하지도 않은 채 지난 26일 이 약정에 서명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정부는 ‘정부 간 협정’이 아니라 ‘국방당국 간 약정’이므로 국회 비준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오만한 행태다. ‘나라 사이 상호원조, 안전, 국민에 부담을 끼치는 문제라면 이름을 불문하고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약에 해당한다’고 한 1999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위배됨은 물론이다. 그동안 이 사안을 투명하게 추진하겠다고 해온 정부 스스로의 약속에도 어긋난다.
이 약정의 추진 배경과 내용은 더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이 이 약정 체결을 밀어붙인 주된 이유는 사실상의 한·미·일 군사동맹 구조를 만들려는 데 있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관한 정보’는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미사일방어(엠디) 체제 구축과 직결되며, 이 엠디는 중국을 핵심 대상으로 한다. 미국으로선 한국과 일본을 자신의 편에 묶어 대중국 전선에 나란히 세우기 위한 기본 틀로 이 약정이 필요한 것이다. 일본에도 이 약정은 큰 이익이 된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북한이라는 공통의 적을 상정해 군사정보를 교환하는 것 자체가 아베 신조 정부가 추진하는 군사대국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은 자연스럽게 한반도에 대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주장할 여지가 커졌다.
우리나라는 실익도 거의 없으면서 외교·안보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관한 정보는 한-미 동맹의 틀 안에서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일본에 기댈 이유가 없다. 반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더 뻣뻣해질 것이다. 이 약정을 자신에 대한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로 보는 중국의 반발도 부담이 된다. 북한 또한 핵·미사일 역량을 더 강화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이 약정은 결국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안보구도로 이어질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전시작전권 환수 재연기라는 ‘독사과’를 미국에게서 얻어내는 대가로 서둘러 이 약정 체결에 나선 것으로 의심된다. 갈수록 진창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정부가 약정 체결을 재검토하지 않는다면 국회가 나서서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41230화] 국민을 우롱한 국방부의 거짓말
29일 발효된 ‘한·미·일 3국 간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관한 정보공유 약정’을 놓고 ‘밀실 추진’ 논란에 휩싸였던 국방부가 체결 시점을 놓고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은 지난 26일 언론 브리핑에서 “한·미·일이 29일 정보공유 약정을 체결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 사흘 전인 23일, 일본과 한국은 각각 26일 약정서에 서명을 마친 상태였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29일 0시 약정이 공식 발효된 지 수시간이 경과한 이날 오전에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이 사실을 밝히며 “송구스럽다”고 했다. 국방부가 국민과 언론에 명백한 거짓말을 한 셈이다. 오죽하면 여당 소속 황진하 국방위원장까지 “장관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며 질타했을까.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정보는 많을수록 좋은 게 우리 처지다. 한·미·일 군사정보 교류는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제한한다는 조건 아래 국익 차원에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절차다. 2012년 7월 이명박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 교류 협정을 국무회의에 기습 상정하려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반발이 일자 ‘없던 일’로 하고 덮었다. 국방부는 이 악몽이 재연될까 두려워 약정이 발효될 때까지 체결 사실을 숨기고 거짓말까지 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렇게 여론을 도외시한 채 몰래 체결된 약정이라면 역풍을 맞게 마련이고, 효과도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올 들어 국방부가 한 거짓말은 손에 꼽기 힘들 만큼 많다. 육군 28사단 윤 일병이 선임들의 끔찍한 가혹 행위로 숨진 사실을 석 달 넘게 은폐하다 인권단체가 폭로하자 마지못해 시인한 게 엊그제다. 지금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 수준이다. 이런 군대는 아무리 최첨단 무기로 무장해도 백전백패하기 마련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상당수 외교안보 현안을 여론의 공감대 없이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외교안보 현안은 투명한 추진이 필수적이다. 국회 사전보고를 회피하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일본과 군사정보 약정을 체결한 건 우려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 통준위 대북 회담 제의
[한국일보 사설-20141230화] 정부 대북 제의, 새해 남북관계 돌파구 돼야
정부가 어제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 명의로 내년 1월 중 남북 간 상호 관심사를 논의하기 위한 회담을 갖자고 북한에 공식 제의했다. 북측의 대화파트너는 노동당 통일전선부다. 통준위의 정부측 부위원장인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내년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이 되는 해가 적어도 분단시대를 극복하고 통일시대로 나가기 위해 남북이 공동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면서 “북측이 적극적으로 호응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북측의 국방위원회 간에 진행되던 2차 남북고위급접촉이 교착상태에 있는 가운데 북측이 통준위 명의의 우리측 대화 제의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다만 지난해 7월 통준위 출범에 대해 “흡수통일을 위한 기구”라고 비난했던 것과 달리 북측은 어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앞으로 발송된 우리측 전화통지문을 수령했다. 앞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개성공단을 방문한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김대중평화센터 이사)을 통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대통로를 열자”고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점에 비춰 마냥 배척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형식과 격을 갖춘 대화가 중요하긴 하지만 남북고위급접촉이나 이번에 제의한 회담의 의제가 다를 게 없다는 점에서 북측의 분별 있는 판단을 예상한다. 통준위는 어제 이산상봉에서 스포츠문화교류, 남북을 포함한 국제적 경제협력 등 남북한 협력을 위한 구체적 추진방향을 밝힌바, 우리 정부의 대북 제의나 다름없다. 북측은 천안함 폭침 이후 지속되고 있는 대북경제제재(5ㆍ24조치)와 금강산관광 중단 해제가 당면 현안이다. 이 문제는 통일부 소관 업무이니만큼 통준위 부위원장인 류 장관이 책임 있는 당사자다. 다만 남북고위급접촉 중단의 원인이 된 우리측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문제는 쌍방이 유연한 자세로 문제해결의 길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통준위-통전부간 회담은 북측의 체면을 고려한 제안으로도 볼 수 있다. 대북전단 문제는 남북 모두가 기존 입장을 접기가 어려워 남북고위급접촉의 장애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다른 대화 루트로 현안을 논의하자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측이 기왕에 밝힌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살려 우리 측의 대화 제의를 받아들이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대화를 위한 대화가 회담을 열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낳는 전례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지난 2월 1차 고위급접촉 이후 남북 쌍방이 현안과 쟁점에 대한 충분한 숙의 기간을 가진 만큼 해결 방안이나 절충안을 갖고 대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과거처럼 뻔한 요구와 대응으로는 실질적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내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과 한반도 긴장완화, 동북아의 평화분위기 조성이 남북 모두의 이해에 부합한다는 적극적 자세로 대화의 길을 열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41230화] 남북, 대화 재개로 상생의 광복 70주년 맞아야
박근혜 대통령이 위원장인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가 내년 1월 중 남북 당국 간 회담을 하자고 어제 북측에 공식 제의했다. 올해 발족한 민·관 합동의 통준위가 남북 대화 창구로 나선 것은 처음이다. 통준위는 정부 측 부위원장인 류길재 통일부 장관 명의의 전화통지문을 김양건 북한 노동당 대남비서에게 보냈고, 북측은 이를 수령했다. 류 장관은 통준위를 대화 주체로 한 데 대해 “통준위의 활동을 북측에 설명하고 함께할 수 있는 사업들을 함께 추진하는 것이야말로 통일 준비라는 의제에 걸맞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남북 간에 청와대-국방위원회를 창구로 하는 고위급 회담이 한 차례 성사됐던 점을 감안하면 대화 채널을 바꾸려는 의지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관계가 닫힌 상황에서 대화 형식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회담 의제에 대해선 내년 설(2월 19일) 전의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남북 상호 관심사라고 류 장관은 밝혔다.
정부 측이 연말에 선제적으로 대북대화 제의를 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연초에 대화의 물꼬를 터야 내년의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을 맞아 남북 상생의 협력과 평화 정착의 새 장을 열어나갈 수 있다. 우리가 한반도 문제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북한에 의한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후의 5·24 제재 조치의 완화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가 필요하다. 류 장관이 이날 밝힌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이나 나진-하산 물류사업 등은 5·24 조치의 해제나 완화 없이는 본격화될 수 없다. 남북 모두의 공공재(公共財)인 개성공단 확대와 새로운 남북 합작 공단 건설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마침 20여 개의 경제특구를 설치해 외자 유치를 꾀하고 있다. 북한 전체 교역에서 중국이 90%를 차지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루기 위해선 우리의 유연한 대북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는 대화가 이뤄지면 남북 관계의 새 청사진을 북한에 제시하기 바란다. 크고 작은 사업들을 단순히 나열하기보다 로드맵을 갖춘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설득력이 생긴다. 남북 축구대회나 평화문화예술제는 남북 화합의 좋은 촉매제가 될 것이다.
북한은 남측의 대화 제의에 조건 없이 호응해 나와야 한다. 북한의 경제난 탈피와 민생 회복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는 남한밖에 없다. 설을 계기로 한 이산가족 상봉 성사는 남북 관계의 좋은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북한이 올해처럼 대화와 위협을 병행하는 화전(和戰) 양면 전술로 나와서는 남측은 물론 국제사회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 핵 문제 등에서 상황을 악화시켜 양보를 얻어내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북 관계는 3년 탈상(脫喪)을 한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새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광복 70주년인 내년은 남북이 불완전한 평화, 단절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화해·협력의 새 이정표를 세우는 원년이 돼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30화] 이젠 북한이 남북화해 진정성 행동으로 보여줘야
내년 1월 중 남북 간 상호 관심사를 논의하기 위한 당국 간 회담을 하자는 제안이 담긴 통일준비위원회 명의의 전통문이 29일 북측에 보내졌다. 통준위 정부 측 부위원장인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이 사실을 전하면서 "이 만남으로 설 전에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날 제안은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그렇지만 북한의 대남 기조를 확인할 수 있는 신년사가 내년 1월1일에 나올 것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발표시점이 다소 이례적이다. 그만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강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제시된 회담 안건도 하나같이 긴요한 것들이다. 무엇보다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과 정례적 상봉, 서신·영상편지 교환 등의 실행이 다급하다. 광복 70주년 기념사업으로 제안한 남북축구대회와 평화문화예술제·세계평화회의 개최, 남북문화협정 체결은 물론 나진·하산 사업과 생활 인프라 개선 등 경제협력 과제도 논의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비무장지대(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작업을 구체화하고 국제기구와 남북이 DMZ 생태계 공동조사도 추진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통준위의 이번 제안은 시기적절하며 정당하다. 광복 70주년과 분단 70년을 맞는 새해는 분단을 해소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나가는 한편 남북이 힘을 합치는 데 더없이 좋은 기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발전은 북한 지도부의 태도변화가 선결돼야 가능하다. 북한은 최근 남북고위급 접촉에 합의해놓고도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트집 잡아 무산시켰다. 지난해 6월 남북당국회담 추진 때도 수석대표의 격을 둘러싼 다툼으로 회담 자체가 열리지 못했다. 이래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개선이 어렵다.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북측의 책임 있는 조치도 필수적이다. 공은 북으로 넘어갔다. 북이 남북화해에 대한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여줄 차례다.
■ 관련 사설
[서울신문 사설-20141230화] 남북, 분단 70년 한반도 새 지평 열어야
이틀 앞으로 다가온 2015년은 모두가 알 듯 광복 70년, 분단 70년이 되는 해다. 7500만 겨레가 더 없는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받아안은 지 70년이 되는 해다. 강산이 일곱 번 바뀌고, 한 목숨이 생을 정리할 시간을 맞이할 만큼의 오랜 세월이건만 두 동강 난 한반도는 지금껏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다. 분단 70년 역사의 물꼬를 돌려야 하는 민족적 명제는 그래서 더더욱 절실하고 간절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3년차이면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집권 4년째로 접어드는 내년은 남북 관계에서 일대 전환점이 되기에 더없이 좋은 여건을 갖췄다고 본다. 무엇보다 북한으로서는 국제사회에서의 고립과 이에 따른 외교적·경제적 압박이 더이상 견뎌 내기 어려운 수위로까지 치달은 상태다. 전통 우방인 중국은 북한을 혈맹이 아닌 ‘일반국가’로 격하시키며 거리를 한껏 벌렸고,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세계는 핵과 미사일을 넘어 북한의 척박한 인권 실태에 대해서도 정면 대응을 선언하며 압박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안으로는 다소 나아진 식량 사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절대 다수의 주민들이 빈곤의 위험에 노출돼 있고 장성택 처형 이후 잠재적 체제 불만 세력의 위협도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통치자금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강고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제1비서로서는 체제의 기반을 강화하는 차원에서라도 국제적 고립으로부터의 탈피와 획기적인 경제 안정을 위한 모멘텀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 할 것이다.
북한 당국뿐 아니라 우리 정부에도 2015년의 의미는 각별하다고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5대 국정 목표의 하나인 ‘행복한 통일시대 기반 구축’을 임기 중 달성하기 위해서는 새해 남북 관계의 획기적 변화와 이를 발판으로 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정상 가동이 절실하다. 2018년 2월까지의 남은 임기 중 가시적인 남북 관계 발전의 틀을 구축하려면 내년을 넘길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어제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부위원장인 류길재 통일부 장관과 정종욱 인천대 석좌교수의 이름으로 새해 초 남북 당국 간 대화를 갖자고 제의한 것은 그런 점에서 시기적으로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류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서부터 민간 차원의 교류 협력, 남북 당국 간 경제협력 방안 등을 포괄적이고 다층적으로 논의할 시점에 다다랐다고 본다. 천안함 피폭과 연평도 포격, 박왕자씨 피살 사건, 그리고 이에 따른 5·24 대북 제재조치 등의 해법은 앞으로 펼쳐 낼 남북 협력의 청사진이 얼마나 크고 높고 넓으냐에 따라 얼마든 뛰어넘을 수 있는 수준의 장벽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김 제1비서는 자신을 넘어 2500만 북한 주민과 한반도의 내일을 위해 박 대통령이 내민 손을 맞잡기 바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친서를 보내는 소극적 유화 제스처를 취할 게 아니라 남북 당국 간 대화에 즉각 임해 서로의 현안을 모두 꺼내 놓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과감한 행보를 택해야 한다. 지금의 고립에서 벗어날 출구는 중국이나 러시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있으며, 자신들의 경제적 궁핍은 핵과 미사일이 아니라 개방과 남북 협력에 의해서만이 해결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 정부, 규제 완화
[서울신문 사설-20141230화] 핵심은 피해 간 ‘규제 기요틴’ 실효성 높여야
정부가 그제 국무조정실 주재로 열린 민관합동회의에서 ‘규제 기요틴(단두대)’ 과제 153건 중 114건을 폐지하거나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8개 경제단체가 개선을 건의한 안건 가운데 4건 중 3건꼴로 한 달 만에 수용했다는 점에서는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루만 연체해도 한 달치 연체금을 물리던 4대 보험료 연체금 산정 방식을 1일 단위로 고친 것이나 감기약 등 안전상비의약품을 콘도나 리조트에서도 팔 수 있도록 확대한 것 등은 작지만 국민들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의미있는 조치다. 정보기술(IT) 업체의 금융업 진출을 막았던 전자금융의 자본금 기준을 완화하기로 한 것이나 통신요금인가제, 프로 스포츠 경기장 규제 등을 풀어 준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규제완화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 수준이 한껏 높아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강도 높은 발언을 이어 가며 규제를 혁파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단두대’라는 단어 자체도 섬뜩하지만 “진돗개는 물면 살점이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 ‘원수’, ‘암덩어리’라는 거친 표현까지 이어졌다. 정작 이번 조치에서는 그러나 가장 민감한 핵심 현안인 수도권 규제완화와 노동 관련 규제완화는 모두 빠졌다. ‘추가 논의’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뒤로 미뤄졌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굵직굵직한 안건을 제외하고 고만고만한 규제완화만 잔뜩 집어넣어 결국 ‘질’보다는 ‘양’을 늘려 ‘실적 채우기’에만 급급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추가 논의가 필요한 과제 23건 중 절반인 파견과 대체근로, 해고요건 등 노동관련 규제들은 노사정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피해 갔다. 30년 넘게 묵은 수도권 공장 신·증설 규제완화 역시 손을 대지 못했다. 수도권 규제완화는 지방의 반발과 국가 균형발전 등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을 해야 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수도권에 공장을 못 짓게 한다고 해서 지방이 발전하는 게 아니라는 주장은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타당성이 있다. 수도권 규제완화를 통해 일자리 창출과 신규 투자가 이뤄지는 건 분명한 만큼 이번에 결론을 이끌어 냈어야 했다. 이해 당사자의 반발과 정치적인 득실 관계에만 휘둘려 아무것도 못 한다면 정부가 진정 규제완화 의지가 있는지마저 의심받게 된다. 실제로 핵심 사안을 다 빼고 넘어가면서 ‘기요틴’이라는 표현에 걸맞지 않은 규제완화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규제완화는 내실을 기해야 한다. 홍보만 요란하게 하고 실익이 없어서는 곤란하다. 국민들의 불편을 없애고 경제활성화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도록 핵심 규제를 혁파하는 데 정부는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물론 필요한 규제를 없애선 안 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30화] 중앙서 아무리 규제 풀면 뭐하나, 현장은 그대로다
정부가 규제완화에 발벗고 나서고 있지만 일선 지자체 선에서 여전히 먹히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한상의가 228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전국 규제지도를 조사한 결과도 그렇다. 중앙에서 아무리 규제를 풀어도 현장에서는 그대로 막혀 있는 사례가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우선 정부가 푼 규제를 지자체들이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2009년 국토계획법 시행령을 개정, 계획관리지역 내 공장설립을 허용했지만 경기 김포, 강원 화천 등 8개 지자체는 여전히 금지하고 있다. 김포시는 조례도 아닌, 공무원업무처리지침으로 공장허가를 계속 제한해 왔다. 담당 공무원 재량으로 규제완화 효과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그 결과 김포시의 공장 승인·건축 허가 기간은 전국 평균의 1.5배인 68일에 달한다. 일선 지자체의 관행을 앞세운 늑장 민원처리, 면피성 집행 등도 비슷한 사례다.
중앙과 지방의 규제가 서로 따로 노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표적인 게 규제개혁의 아이콘처럼 여겨졌던 푸드트럭이다. 정부는 지난 3월 자동차관리법과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고쳐 이를 합법화했다. 하지만 현재 허가를 받고 영업 중인 푸드트럭은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영업을 할 수 있게 풀린 곳이 유원지 도시공원 하천부지 등인데 일선 지자체들이 기존 상권과의 마찰 등을 이유로 법적 요건을 갖췄어도 허가를 잘 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식이니 아무리 규제를 단두대에 보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규제개혁 방식에 근본적 전환이 요구되는 이유다. 폐지한 규제 수를 세는 데만 급급할 게 아니라 규제완화가 얼마나 실효성 있게 침투되는지 사후 추적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규제완화 단계부터 일선 지자체의 참여를 확대하고 주기적인 피드백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규제개혁에도 AS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푸드트럭과 같은 이벤트식 규제완화도 경계해야 한다. 푸드트럭은 관련법 간 상충으로 출발 때부터 실패가 예견됐었다. 늘 그렇듯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경향신문 사설-20141230화] ‘부실 인사’ 감추려 ‘깜깜이 청문회’ 하자는 건가
새누리당이 인사청문 제도의 골간을 바꾸는 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인사청문 후보들의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고, 도덕성 검증 자료를 언론에 유출하는 국회의원을 처벌한다는 것이 뼈대다. 공개 인사청문은 직무능력 검증에 국한하자는 일견 그럴싸한 취지다. 그러나 속내는 박근혜 정부 들어 ‘참극’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빈발한 고위공직 후보자의 낙마 사태를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생각에, 아예 신상 문제를 다루는 청문회를 ‘깜깜이’로 하자는 것이다. 고위공직에 합당한 자질과 능력, 도덕성을 갖추었는지를 종합적으로 따지는 청문회의 본디 목적을 무력화하는 발상이다.
새누리당의 방안은 도덕성 문제는 자기들끼리 밀실에서 판단하고 결정할 테니 국민들은 상관 말라는 것이나 진배없다. 인사청문회가 비공개로 진행되고 국회의원들이 입수한 도덕성 의혹 자료를 언론에 공개조차 못하게 할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자명하다. 공직 후보자에게 제기된 도덕성 문제가 어떤 것들인지, 당사자의 해명은 합당한 것인지 등을 국민은 알 길이 없어진다. 도덕성에 하자가 있는 후보자가 버젓이 고위공직에 임명되어도 제어할 여론장치가 사라진다.
새누리당은 미국 인사청문의 이원화를 명분으로 내걸지만 아전인수다. 미국의 청문회가 정책과 자질 위주로 치러지는 것은 앞서 “도덕성의 무덤”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철저한 사전검증 덕분이다. 후보자 물색에서 임명까지 6단계에 걸쳐 검증을 하고, 4개월 이상에 걸쳐 국가기관의 모든 기록을 총동원해 신상을 파헤친다. 박근혜 정부 장관 후보자들의 ‘필수 항목’이 돼버린 위장전입, 세금탈루, 병역기피, 논문표절 등은 애초 검증 그물을 통과할 수 없다. 그러니 본 청문회가 정책과 능력 검증 위주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인사 실패’의 근인은 “신상털기식 청문회”가 아니라 청와대의 부실한 검증과 밀실·비선의 인사추천 시스템 때문이다. 청문회 무대에 가기도 전에 여론검증에 걸려 국무총리 후보자와 장관 후보자들이 줄줄이 낙마한 게 무엇을 뜻하는가. 청문회 과정에서 공개되는 걸 전제로 하는 검증도 이토록 부실한 판에, 세상에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검증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정녕 청문회 과정에서 공직 후보자의 낙마 사태를 막고 싶다면, 손봐야 할 것은 인사청문 제도가 아니다. 몇몇 측근에게 의존하는 대통령의 ‘밀실 인사’, 국민의 눈높이도 따르지 못하는 청와대의 ‘인사 잣대’와 ‘검증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41230화] ‘알맹이’ 빠진 문화부의 체육계 비리 조사 결과
문화체육관광부가 그제 체육계 비리에 대한 스포츠 4대악(승부조작·편파판정, 입시비리, 조직 사유화, 폭력·성폭력)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문화부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에 269건의 신고·제보가 접수돼 그중 118건이 조사 종결됐다고 한다. 이번 발표로 13억원이 넘는 공금을 빼돌린 대한택견연맹 회장 등 국가대표 지도자와 경기단체 임직원 등이 모두 36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렇게라도 ‘복마전’이라는 체육계 비리에 대한 단속이 이뤄진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현 정부가 신고센터·합동수사본부까지 꾸려 10개월간 대대적인 조사를 벌인 결과치고는 그리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없다. 신고센터에 접수된 사안 가운데 검찰 송치와 수사 의뢰는 각각 단 2건에 불과하다. 25건은 경기단체 자체 처분, 나머지 89건은 단순 종결처리하는 데 그쳤다. “역대 정부에서는 시도한 적이 없는 일” “스포츠 비리 척결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라는 문화부의 호들갑이 무색한 결과다. 게다가 문화부가 실적 과시를 위해 아직 수사단계인 내용을 공표하는 등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최근 정치권과 체육계의 이슈가 된 승마·펜싱협회 관련 핵심 내용이 빠졌다는 점이다. 대통령 비선 실세로 거론된 정윤회씨 딸의 ‘공주승마’ 논란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사 결과도 내놓지 않았다. 합동조사반의 무리한 조사로 전직 펜싱 감독이 자살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알맹이가 빠진 채로 결과 발표가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문화부가 승마 국가대표 선발전과 관련해 승마협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해당 국·과장의 경질을 지시했다는 유진룡 전 장관의 증언이 나온 바 있다. 이날 브리핑을 주관한 김종 차관이 바로 문화부와 산하단체 인사 개입 창구로 거론된 당사자다. 그럼에도 김 차관은 정작 자신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긴급한 사안도 아닌 조사 결과를 휴일인 일요일을 택해 기습적으로 발표한 것도 석연치 않다. 민감한 의혹들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피해 보려는 꼼수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문화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 문화계 일각에서는 ‘수준 미달 문화부’라는 혹평까지 나온다. 체육계 비리도 지금껏 상황을 방치해온 문화부의 책임이 크다. 스포츠계의 해묵은 적폐를 뿌리 뽑기 위해서라도 문화부의 신뢰 회복이 급선무다.
[서울신문 사설-20141230화] 환자 두고 생일파티 한 의료진 엄벌해야
서울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에서 수술 환자를 그대로 놔둔 채 생일 파티를 벌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간호조무사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보면 환자가 누워 있는 수술실에서 생일 케이크를 들고 있거나 음식을 먹는 모습 등이 그대로 나온다. 수술 환자를 배경으로 셀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가 하면 수술에 쓰일 가슴 보형물로 장난을 치고 수술 도구로 팔찌를 수리하는 장면도 여과 없이 공개됐다. 그야말로 성형공화국의 말폐적 증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의료기관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 살풍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흉부외과 의사가 마취통증의학과 의사와 의견 충돌을 빚은 뒤 전신마취를 받고 수술대에 누워 있는 어린 아이를 놓아둔 채 수술실을 나가 버린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했다. 의료계의 ‘신종 갑질’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죄질이 너무 나쁘다. 반인권적 패륜 행위다. 우리는 언제부터 의사가 수틀리면 하던 수술을 마음대로 때려치우는 무지막지한 세상,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곁에 두고 ‘가학적’ 파티를 즐기는 막된 세상에 살게 되었는가.
병원 측은 생일 파티는 환자가 수술 후 회복 중일 때라고 해명했지만 어떤 이유를 들이대도 최소한의 직업적 양심마저 망각한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에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얼빠진 짓을 했다. 철없는 간호조무사도 문제지만 이를 지도감독해야 할 의사가 이 같은 일탈행동을 수수방관한 것은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아무리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켜 봤자 결국 솜방망이 처분으로 끝나지 않겠느냐는 냉소는 더이상 통용돼서는 안 된다. 단호한 처벌만이 재발을 막을 수 있다. 화가 난다고 수술실을 박차고 나간 대학병원 의사가 고작 1개월 정직이라는 경미한 징계를 받는대서야 무슨 징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논란이 커지자 대한의사협회가 문제의 성형외과를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간단없이 벌어지는 의료인의 수술 환자 인권침해는 이미 용인 수준을 넘었다. 의료계의 자정 노력만으로 개선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위법 여부를 밝히고 경우에 따라 손해배상은 물론 영업정지, 면허취소 등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다. 해당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실명도 공개해 의료계에서 영원히 퇴출시키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30화] 노동개혁, 당근부터 내놓는 이런 협상 잘 되겠나
정부가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할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내놨지만 벌써부터 적지 않은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기간제 사용기간과 관련해 2년 근로 후 본인 신청 시 추가 최대 2년 연장(35세 이상)하고, 정규직 미전환 시엔 별도 이직수당을 지급하며, 3개월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에 퇴직급여를 적용한다는 게 이번 대책의 골자다. 여기에 이른바 쪼개기 계약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계약기간 중 갱신횟수를 최대 3회로 제한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경제계, 노동계 모두 정부안에 반발하면서 벌써 내년 3월 합의는 물 건너갔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안대로 하면 당장 기업들로서는 부담이 크게 늘 수밖에 없다.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퇴직금, 이직수당 도입 등이 그렇다. 여기에 정부가 정규직 전환 촉진을 지도한다는 이유로 기간제 근로자 고용안정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고, 철도 항공 선박 등에는 원칙적으로 비정규직 사용이 제한된다. 그렇다고 정규직 과보호가 덜어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불가피한 경영상 해고 시에도 절차적 요건이 강화되고, 일반적인 고용해지 기준 및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도 두자는 것이어서 기업들로서는 걸림돌만 더 많아진다. 반면 노동계는 이번 기회에 더 얻어내자는 계산이다. 겉으로는 비정규직 양산이라며 반발하지만 해고를 더 어렵게 하는 등 기득권을 더욱 강화하면서 비정규직 보호도 강하게 밀어붙이자는 전략인 것이다.
정부안은 핵심인 정규직 과보호 해소가 아닌, 비정규직 보호 강화를 통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비용만 잔뜩 올리는 결과가 될 게 뻔하다. 더구나 떡부터 먼저 주자는 정부안대로 가면 노동현장의 기득권을 깨는 진짜 노동개혁은 물 건너가고 만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노동시장 정책은 해고요건 강화 등 오로지 규제강화 쪽으로만 질주했다. 그런데도 정부안이라고 나온 것이 또다시 노동시장의 경직성만 더 키우자는 역주행이니 이게 말이 되나.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개혁의지가 보이지 않는 정부안은 노·사·정 합의체제로 노동개혁을 하겠다는 발상이 처음부터 무리였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41230화] 기업소득환류세제, 세금폭탄 혹은 경영개입
기업에 또 세금폭탄이 터졌다. 정부가 최근 입법예고한 세법 시행령 개정안에 담긴 기업소득환류세제 얘기다. 제조업 대기업의 경우 앞으로 3년간 당기순이익의 80%를 투자 배당 임금 인상에 써야만 피할 수 있는 사내유보금 과세다. 이에 못 미치면 미달액의 10%를 과세한다. 이미 법인세를 물린 순익에 대해 정부가 사용처까지 일일이 정해주고 덜 썼으면 또 세금을 물리는 희한한 이중과세인 셈이다.
어떤 세금이건 취지는 그럴싸해도 결론은 증세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기업소득환류세제도 어김없다. 애초 정부는 순익의 60~80%를 과세기준으로 제시했고, 세수 제로(0)가 목표라고 수차례 공언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과세기준이 상한선(80%)에 맞춰져 10대 그룹만도 1조원이 넘는 세금 추징이 예상된다. 정부 추산도 수천억원이다. 말로는 투자확대가 목적이라면서 실상은 ‘꼼수증세’란 의심을 살 만하다. 담뱃값을 올리면서 “증세는 따라오는 것”이라던 해괴한 해명이 연상된다.
물론 경기의 군불을 때보려는 의도를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불 보듯 뻔하다. ‘투자’에 대한 시대착오적 인식부터 문제다. 공장을 지으면 투자이고, M&A는 투자가 아니란 판정기준은 글로벌 흐름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M&A를 통한 핵심역량 강화나 벤처기업, 구조조정기업 인수는 하지 말란 소리나 진배없다. M&A에 열 올리는 구글, 애플도 한국 기업이라면 세금폭탄을 맞게 될 것이다.
업무용 부동산 매입도 투자에 포함시키는 방침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내년 2월 정하겠다는 ‘업무용’ 범위가 또 문제다. 공장 건설만 인정하고 호텔, 전시장, 테마파크 등은 투자에서 제외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이런 식이면 고용 효과가 큰 관광인프라나 대규모 MICE 시설은 아무리 투자해도 세금이 줄지 않는다. 환류세제의 본래 목적이 가계소득 증대란 점을 상기하면 오히려 권장할 일인데도 세금을 물리겠다고 한다. 1년 내내 규제혁파를 외쳐온 정부가 기업 경영까지 간섭하는 규제를 만들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41230화] 창업 8만개 돌파… 한국경제 答 여기 있다
올해 창업한 신설법인 숫자가 2000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8만개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11월까지 신설법인은 7만6,808개로 사상 최다였던 지난해(7만5,574개) 수준을 이미 넘어섰으며 연말까지 8만개 돌파가 무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창업기업에 대한 벤처 투자액은 11월까지 1조3,953억원으로 전년보다 14.6%나 늘어났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설법인 숫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모바일 혁신 흐름과 연관산업의 급팽창, 우리 정부의 지원 등에 힘입어 사회 전반에 창업 열기가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선데이토즈(애니팡), 데브시스터즈(쿠키런), 파티게임즈(아이러브커피) 등 모바일 게임업체의 잇따른 코스닥 상장 등 성공 모델이 선도자 역할을 톡톡히 해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불고 있는 창업 붐이 2000년 닷컴 열풍과 다른 점은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자생적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규제완화, 창업지원 정책이 미처 작동하기 전인 시점인데다 세월호 참사 등 외부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창업이 꾸준히 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혁신과 창조의 토대가 되고 있는 창업이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복원시키고 있는 것이다. 세계은행(WB)의 최근 창업환경 국제평가에서도 한국은 전년 34위에서 17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국내 제조업들의 성장한계로 전환기에 선 한국 경제로서는 창업 활성화야말로 유일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창업기업의 도전정신과 혁신에서 미래 먹거리 산업도 태동할 수 있다. 모처럼 살아나는 창업 열기를 이어가고 확산시키기 위해 정부의 지원과 이에 상응하는 벤처투자 등 민간의 노력이 뒤따랐으면 한다. 창업은 언제나 실패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런 만큼 실패하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몫이라 할 것이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세상 읽기/김계수(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20141230화] 종자 소독과 소비 윤리
도시의 어느 소비자단체에서 농민들이 소독된 종자로 농사를 짓는 것에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농사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꽤 잘 알고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극소수의 존경스러운 농사꾼을 제외하면 오늘날 농사에 필요한 대부분의 종자나 모종은 시중에서 구입해서 쓰고 있다. 전문회사에서 구입한 종자는 갖가지 색깔로 코팅되어 있는데, 농약의 일종인 소독약으로 옷을 입힌 것이다. 유통과정에서 병원균에 감염되거나 변질되는 것을 막고 땅속에서 발아될 때까지 해충의 피해를 막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그래서 포장재에는 식용이나 사료용으로 쓰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있다.
오늘날 농사꾼들이 종자를 자급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옳지 않은 일이지만 농업이 상업화되는 추세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전문회사가 개발해서 보급하는 종자는 병해충에는 약할 수 있으나 수확량도 많고 때깔도 좋기 때문이다. 게다가 농민이 스스로 종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채종과 보관에 세심한 주의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튼실한 열매를 골라야 하고 되도록 부드럽게 탈곡해서 잘 말린 다음 쥐나 해충의 피해를 보지 않을 곳에 보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배추나 무처럼 가을에 수확하고 봄에 씨앗을 맺는 품목은 농사일을 매우 번거롭게 할 것이다. 파종기에 농약방에 발걸음 한 번 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당장 수확을 늘려주지도 않는 자가채종에 농민들이 의욕을 낼 리 없다. 또 종자 소독에 쓰인 성분은 농사를 지어서 얻은 수확물에서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는 전문가의 의견도 한몫할 것이다.
소독된 종자를 쓰지 말라는 소비자들의 요구는 건강한 먹거리를 먹고 싶어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지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명품에 대한 과도하고 맹목적인 집착이 만연해가고 있는 최근의 소비 성향을 고려해보면 이러한 요구의 이면에는 소비에 대한 명품 추구와 맥이 닿는 고급 취향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짐작하게 된다. 1차 농산물에는 명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니 사소한 것까지도 완벽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아닐까. 더구나 그것이 자신과 가족의 건강 문제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국내 유수의 농산물 직거래 단체에서 쓰는 홍보 문구에는 ‘윤리적 소비’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윤리적인 소비가 도대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드넓은 태평양의 어딘가에는 해류의 흐름이 멈춘 곳이 있다는데, 여기에는 바다에 닿아 있는 모든 곳에서 흘러온 쓰레기가 거대한 섬을 이루고 있고 그 면적은 무려 한반도의 세 배나 된다고 한다. 이것을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은 인류 문명의 미래상을 보는 것 같아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오늘날 생산과 소비가 철저히 분리된 현실에서 자급하지 않는 모든 소비는 원천적으로 윤리적이지 않다. 외부에서 구입하는 소비재에는 생산과 보관, 운송, 포장, 폐기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지구 생태계에 부담을 주는 쓰레기를 남기기 때문이다. 지구의 자정 능력이 한계에 부딪혀 환경오염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소비는 ‘범죄적’이라 할 만하다. 필연적으로 유형 무형의 쓰레기를 낳게 되는 소비가 어떻게 윤리적일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소비생활에서 보이는 극단적인 고급 취향은 균형감각을 찾을 필요가 있다. 자급자족이 시대착오적이라면 적어도 자신의 소비생활이 환경에 미치는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생각과 노력이 곁들여져야 한다. 또한 농민에게 완벽한 농사를 지으라는 요구는 농업·농촌이 붕괴되는데도 쌀 수입을 전면 개방하기로 한 정부의 정책에 대한 의문과 함께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41230화] 친정 식구 여행 가기
친정 식구들이랑 부산을 다녀왔다. 사남매 부부가 모두 함께한 여행은 부모님 돌아가신 후 처음이다. 바닷가를 낀 휘황찬란한 높은 주상복합건물들. 오랜만에 간 부산은 몰라볼 정도로 변했다. 홍콩인가 착각할 정도다. 목을 90도로 꺾어 위를 치켜봐야 건물 이름을 읽을 수 있는데 하나같이 영어 이름이다. 그나마 친숙한 영어도 아니다.
시어머니가 아들 집 찾아오기 힘들게 하려고 며느리들이 어려운 영어 이름을 좋아해서 저런 이름이 많아졌다는데, 농담치곤 잔인하다. 그렇다면 내게는 살가운 친정 식구와의 이번 여행도 세 올케에게는 마지못해 참석했던 고역스러운 시집 여행일 수도 있었겠다.
어쨌거나 부산 별미도 먹고 바다도 보며 각자에게 던지는 ‘한 해 마무리 멘트’를 끝으로 2박3일 일정의 여행을 모두 마쳤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다. 엄마 생전에는 올케들 모두 그 흔한 밉상 올케였건만 엄마 떠난 자리에서 만난 그들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언니며 친구며 동생이었다. 엄마를 사이에 두고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가 우리 관계를 힘겹게 했던 모양이다. 이 나이에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이유를 ‘나이 듦의 여유’로 봐야 하나.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다지 나쁜 것만도 아니다. 나이 들며 칼날이 무뎌지고 이빨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건 ‘더 이상 힘들게 씹고 칼질하며 살지 마라’는 하늘의 뜻인지도 모른다. 다 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인 게다.
사실이지 나 혼자서 씹고 칼질하며 바꾸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세상이든 나라든 사람이든 바꿀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올 한 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가 ‘지록위마(指鹿爲馬)’라 했다. 이제부터는 누가 사슴을 말이라고 우긴다고, 해를 손바닥으로 가린다고 펄펄 뛰며 속상해하지 않고 그걸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기로 했다. 마음을 비우고 그저 할 수 있는 일만을, 할 수 있는 만큼만 열심히 하면서 그 결과를 지켜보리라고.
인생은 어쩌면 그렇게 하나씩 비워가며 사는 건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새해 첫 해돋이 보러 떠나는 사람이 많을 거다. 을미년 첫해를 바라보며 을의 마음가짐도 다짐하고 또 근심·걱정일랑 말끔히 비워버리자. 내일이면 같아도 다른 새 태양이 떠오를 터이고 또 새로운 걱정거리가 비워놓은 내 머릿속을 채우겠지만 말이다.
‘적을수록, 버릴수록, 느릴수록 행복이 온다’는 말대로 내년에는 적게 먹고 많이 버리고 느리게 생각하며 살련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손동우(논설위원)-20141230화] 유인물의 부활
강의동 옥상이나 시계탑 등 높은 곳에 학생 한 명이 메가폰을 들고 등장한다. 그는 “학우 여러분!”이라고 외친 뒤 미리 준비한 반정부 유인물을 아래로 뿌린다. 그러나 학생의 단독 시위는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어느 틈엔가 나타난 사복경찰들이 잽싸게 그를 체포한 뒤 질질 끌고 가버린다. 학생들보다 학내에 상주하는 사복경찰의 숫자가 더 많았다는 우스개가 통용되던 1970~19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 대학 캠퍼스의 풍경이다.
캠퍼스를 비롯해 군사독재를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위나 집회의 현장에는 항상 유인물이 있었다. 철판에 파라핀 종이를 올려놓고 직접 철필로 쓰거나 타자기로 써서 만든 유인물은 비록 외형은 볼품없었지만 그 내용만은 독재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로 준엄하고 치열했다.
‘민주’ 유인물에 맞서기 위한 ‘면학’ 유인물이란 것도 있었다. ‘나라 망치는 시위를 그만두고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열중해야 한다’ 운운하는 내용의 이런 유인물 작성자는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대학 학우 일동’ 등으로 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안기부(국가정보원의 전신) 등 정보기관이었다. 언론사에는 “오늘 오후 몇시쯤 XX대학 도서관 앞에 면학 유인물 배포된다”는 ‘친절한’ 연락이 오곤 했는데 가끔씩 ‘배달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유인물이 제때에 도착하지 못했는데도 신문에는 ‘XX대학에 면학 유인물’이라는 기사가 실리는 웃지 못할 코미디가 연출되기도 했다.
서울 마포구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와 명동 등 도심 곳곳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유인물과 낙서가 잇따라 발견됐다고 한다.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후퇴하고 정권의 ‘종북 공안몰이’가 기승을 부리면서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 저항의 방식이었던 유인물 살포가 부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완벽한 복고(復古)가 이루어지려면 면학 유인물의 2014년 버전으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불순종북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유인물이 나와야 제격이겠다. 지난 대선에서의 댓글 공작으로 문장력을 갈고 닦은 국정원이 이런 정도의 유인물 만드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이래저래 우울한 연말이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허원순(논설위원)-20141230화] 남수북조(南水北調)
20여년 전, 영천댐을 세워 그 물을 포항으로 보냈을 때 작은 물분쟁이 있었다. 가뜩이나 하상계수가 높은 천정천인 금호강의 수량이 확 줄어들자 영천~대구의 하류지역에서 들고일어난 것이다. 포스코가 수자원공사에 지급하는 하루 1000만원 물값으로 지역지원 방안까지 나왔으나 소용없었다.
영천댐 북쪽에 저수량이 6배나 되는 임하댐이 건설되고서야 갈등은 대충 봉합됐다. 임하댐 물을 영천댐으로 보내는 53㎞의 수로까지 완공됐던 것이다. 낙동강 물이 중계댐에서 금호강 물과 섞여 포항으로 가면서 작은 물전쟁이 해소됐다. 물론 빗물을 가둬쓰고, 1만5000명이 상주하는 제철소의 460여개소 화장실·목욕장의 오수 재활용시스템도 돌린 포스코의 물 아껴쓰기도 돋보였다. 아무튼 다목적댐 건설로 ‘윈윈’한 경우다.
물길을 새로 내 도시를 진화시키고 산업을 발전시킨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콜로라도 강을 막은 후버댐이 아니었다면 사막의 불야성 라스베이거스는 불가능했다. 한국 기업 동아건설이 시공한 리비아의 대수로도 기념비적 대역사다. 직경 4m 수도관 4000㎞로 사하라사막을 관통한다는 게 카다피식 철권이 아니고서는 애초 시도도 어려웠을 것이다. 물길을 내면서 인류는 점차 생활 한계를 극복해왔다.
경제가 발전해 생활 수준이 나아지면 물 사용량은 필연적으로 늘어난다. 단지 식수만이 아니라 목욕·세탁에다 오락·산업시설까지 돌려야 한다. 전기사용량만큼이나 경제활동에 비례적으로 필요하다.
지난 주말 양쯔강물이 베이징에 도착했다고 중국이 떠들썩했다. 장강(長江)의 물이 보름간 1200㎞를 달려가 소위 ‘남수북조(南水北調)’가 실현됐다. 물이 부족해진 2000만 베이징 사람들은 연간 50㎥씩 더 쓰게 됐지만 양쯔강 유역에선 앞으로 뭐라 할지 주목된다. 일정시기까지 중국의 경제발전은 양쯔강의 수질을 나쁘게 할 것이다. 양쯔강 유역의 물 사용량도 만만찮게 증가할 텐데 갈수기에 가만히 있을지….
중국의 물길내기는 이력이 있다. 수대부터 대운하를 팠다. 다만 중국운하 하면 중국을 좀 안다는 이들까지 ‘물자유통’ ‘수로교통의 동맥’ 운운하며 틀에 박힌 얘기를 꺼내는 건 유감이다. 화베이(華北)를 장악한 베이징 쪽 권력이 주도한 남쪽 지역의 물산수탈 통로이기도 했다고 봐야 한다. 보완책이 없다면 현대식 물길 변경도 그렇다. 한쪽에선 축복이겠지만 한쪽에선 삶의 터전의 공유 아닌가. 물과 강의 활용은 그 자체로 인류의 역사다. 갈등의 역사냐, 협력의 역사냐 그게 관건이었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임석훈(논설위원)-20141230화] 아프간전쟁의 경제학
1조달러, 8,360억달러, 1,000억달러. 28일 공식적으로 종지부를 찍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미국이 치를 경제적 대가(代價)다. 1조달러는 2001년 9·11테러와 함께 시작된 아프간 전쟁 13년간 미 정부가 지출한 순수 전쟁비용이다. 우리 돈으로 1,100조원이 넘는다. 이를 기회비용으로 따지면 2년간 미 국민들이 무상으로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전비는 대부분 빌려 조달하기 때문에 정부의 빚이다. 원금 상환은 까마득한데 지금까지 미 정부가 낸 채무 이자만 1,250억달러다. 전쟁을 하다 보면 전비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부상 군인들의 치료비용도 만만찮다. 린다 빌 메스 하버드대 교수의 추산에 따르면 아프간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후유증을 앓는 참전군인들이 60대가 될 때까지 의료 서비스에 지출하는 비용이 8,360억달러에 달한다. 모두 정부 몫이다.
폐허가 된 아프간 재건에 투입될 자금도 1,000억달러를 웃돈다. 존 소프코 아프간 재건 특별감사관은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아프간 재건에 쓰인 돈이 2차 세계대전 후 서유럽 재건용 마셜플랜에 들어간 돈보다 많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종전 선언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완전 철수까지는 2년 남짓 시간이 남았으니 수백억달러가 더 들어갈 판이다.
이것저것 다 합하면 2003년부터 9년을 끈 이라크전 때의 1조7,000억달러를 가뿐히 넘을 듯하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라는 말밖에 안 나온다. 이 정도면 웬만한 국가는 기둥뿌리가 흔들릴 지경일 텐데 미국이니 버티는 모양이다. 그렇더라도 지난해부터 개선 추세를 보이는 미국 재정 적자에 상당한 압박요인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막대한 대가에 걸맞은 성과는 거둔 것일까. 탈레반 정권 붕괴, 빈 라덴 사살 등으로 일견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지만 아프간 정정은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아프간이 테러 공격의 근원지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자신감이 현실로 나타나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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