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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6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롯데그룹 수사 무리해선 곤란하다

검찰의 전면적인 수사 확대에 따라 롯데그룹 경영 비리가 베일을 벗고 있다. 호텔롯데가 제주리조트를 헐값에 합병했는가 하면 롯데케미칼이 해외로부터 원료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일본 계열사를 거치도록 하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단서를 포함해 여러 정황이 포착된 상황이다. 지난 며칠 사이 주요 계열사들에 대한 2차례의 압수수색이 이뤄졌으므로 상당한 증거가 확보됐을 것이다.


대기업 비리를 규명하려는 검찰 노고에 응원을 보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가 없지 않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이 관리해 왔다는 ‘수상한 자금’에 대한 성격 규정이 그 하나다. 계열사들로부터 해마다 300억원을 받은 데 대해 검찰은 비자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롯데 측에서는 배당금 및 급여라고 주장한다.


재벌 오너들이 회사돈을 빼돌려 개인 금고에 숨겨놓는 비리에 대해 검찰이 철퇴를 가해 온 공적을 모르는 바 아니다. 혹시 다른 계좌나 금고에 비자금이 감춰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정당하게 받은 배당금이나 급여에 대해서까지 미리 범죄 혐의를 두는 태도는 옳지 않다. 오너라고 해서 배당금을 많이 받는 현실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신격호·신동빈 회장보다 배당금을 더 많이 받는 기업인도 더러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을 수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문제도 그렇다. 화살이 이명박 전임 대통령의 주변을 향하는 듯한 조짐이지만 이런 식이어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 이미 건물이 최종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공군 비행기의 이·착륙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진작부터 의혹의 소지가 거론됐었으나 검찰이 그냥 넘어가고 말았던 결과다. 정권의 눈치를 살피는 뒷북 수사가 안타깝다는 얘기다. 


롯데그룹 수사가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경기가 좀처럼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처지에서 기업 수사가 장기화된다면 국가적으로도 이로울 것은 없다. 수사를 철저히 진행하되 가급적 빠르게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해 무려 8개월 동안 이어지고도 ‘먼지떨이 수사’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던 포스코 수사가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검찰의 명쾌한 솜씨를 보여주기 바란다.

2. 대학 캠퍼스가 '성폭력의 소굴'인가 

고려대학교 남학생 8명이 카톡 단체대화방에서 지난해 7월부터 선후배 여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희롱한 사실이 최근 내부 고발로 드러났다. 대학 사회의 일그러진 성의식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참담한 현실이다. ‘지성의 요람’인 대학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집단 언어 성폭력’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대학이 성범죄의 사각지대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성희롱 대책위가 공개한 A4용지 700장 분량의 대화 내용은 차마 필설로 옮기기 민망할 정도다. ‘새따(새내기 따먹기)’, ‘(술을) 샷으로 먹이고 쿵떡쿵’, ‘○○여대 축제가자, 다 따먹자’ 등 성희롱·성폭행을 암시하는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가해자들은 반성은커녕 피해자들을 모욕하며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고도 한다. 지성인이라는 대학생들의 의식 수준이 이 정도라니 당혹스럽다.


고려대 측은 “사실관계를 파악해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미덥지 못하다. 고려대는 성폭력과 관련해 아픈 기억이 있다. 의대 본과 4학년 남학생 3명이 술에 취해 잠든 여학생을 집단 성추행한 사건이 불과 5년 전 일이다. 그동안 성폭력 예방을 위해 어떤 조치들을 취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래서야 어디 딸자식을 둔 부모들이 마음 놓고 고려대에 보낼 수 있겠는가.


비단 고려대만의 일도, 학생들만의 일도 아니다. 여학생을 ‘빨통’ 등으로 비유해 물의를 빚은 국민대 카톡방 사건을 비롯해 서울대, 연세대, 건국대 등 대학을 가리지 않는다. 1993년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이후 교수들의 성폭력 관행도 여전하다. 2014년 서울대 강모 교수의 성추행 파문이 대표적인 사례로, 신성한 상아탑이 일부 교수들의 그릇된 성범죄 온상이 된 지 오래다.


대학 내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데는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한 대학 측의 잘못이 크다. 쉬쉬할 게 아니라 가해 학생들을 일벌백계로 다스리고 성폭력 연루 교수는 다시는 교단에 서지 못하도록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 대학이 성폭력의 소굴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정부와 대학이 머리를 맞대고 예방 대책을 서두르기 바란다. 이번 고려대 사태를 주시하는 이유다.

[서울신문]

3. 전문성 무시한 상임위서 좋은 정책나오겠나

국회가 ‘일하는 국회’로 탈바꿈하려면 상임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돼야만 한다. 우리 국회에는 전문 분야별로 16개의 상임위원회와 2개의 상설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있다. 국회의원들은 본회의에 앞서 소속 상임위에서 특정 범주의 정책 사안이나 의안, 청원 등을 심사하고 법안을 직접 발의할 수 있다. 보좌진의 보필을 받는다 해도 전문성을 갖춘 의원들이 해당 분야 상임위를 맡는 것이 비전문가보다 생산성 측면에서 효율적이다. 그런데 20대 국회의원들의 상임위 배정이 문제투성이다. 한 의원은 재배정을 요구하며 농성까지 하고 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오랫동안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등을 지내 ‘언론개혁 전문가’로 주목받았지만 해당 분야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아닌 외교통일위원회로 배정됐다. 현대차 울산공장 노동자 출신인 무소속 윤종오 의원은 자신의 ‘전공’인 환경노동위원회가 아닌 외통위에 배치됐다. 국방 분야 문외한인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국방위로 갔고, 경영학과 교수 출신인 새누리당 김종석 의원은 경제 분야 상임위가 아닌 외통위를 배정받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출신 새누리당 김승희 의원을 안전행정위원회에 배치한 것도 난센스다.


의원들의 상임위 배정은 국회의장에게 있는데 원내 교섭단체는 의석 비율에 따라 상임위별 의원 정수를 받은 뒤 당 내부에서 분배하고, 군소 정당이나 무소속 의원들은 남은 자리를 국회의장이 배정한다. 다선과 실세 의원들이 인기 상임위를 선점하기 때문에 힘없는 초선이나 비례대표, 군소 정당과 무소속 의원들은 전문성과는 관계없는 비인기 상임위로 밀려나는 일이 지금까지 허다했고, 20대 국회에서도 이 같은 구태가 반복된 것이다.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던 상임위에서 해당 의원들이 어떤 열정을 갖고 일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국회 운영의 성패는 상임위 활동에 달려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일부 상임위원장 임기를 1년으로 변칙 적용해 나눠 먹기한 행태에 대해 “일하는 국회에 역행한다”는 비판 여론이 거센데 상임위 배정까지 전문성을 무시한다면 어쩌자는 말인가. “일하는 국회, 생산적인 의정 활동으로 국민에게 짐이 아닌 힘이 되는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원사는 그저 말치레에 불과했는지 묻고 싶다. 미국 의회가 상임위원장은 물론 상임위 배정에서도 전문성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까닭을 우리 국회가 되새기기 바란다.

4. 청산하자는 판에 파업 결의한 대우조선 노조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이 파업을 결의했다는 소식에 국민은 억장이 무너진다. 대우조선이 어떤 회사인가. 다시 입에 올리는 것도 거북하지만, 지난해 4조 2000억원의 혈세를 투입하고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어마어마한 경영 부실만 누적됐다. 그 결과 대우조선을 비롯한 조선 3사에만 12조원의 세금이 다시 들어갈 판이라는 것을 노조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노조는 지난해 10월 임금을 동결하고 파업을 금지하는 내용의 동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더구나 동의서에는 ‘경영 정상화가 이루어질 때까지’라는 문구가 명문화돼 있다고 한다. 따라서 노조의 파업 결의는 명백하게 신의 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 하지만 동의서를 거론하기 이전에 대우조선 구성원으로서 무슨 낯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지 당황스럽다.


노조가 파업을 결의한 것은 인력 감축을 포함한 5조 3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에 대한 반발일 것이다. 하지만 인력 30% 이상, 설비 20% 이상을 줄이는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 방안은 실효성 논란에 휩싸여 있다. 부실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내놓은 처방이냐는 것이다. 실제로 분식회계로 얼룩진 대우조선의 믿지 못할 경영 상황에서 어떤 부실이 어디서 새로 불거져 나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어제 감사원은 대우조선이 2013∼2014년 영업이익 기준 1조 5342억원을 분식회계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그제는 일개 차장이 회사 돈을 180억원이나 빼돌려 검찰에 구속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런데도 8년 동안이나 횡령 사실을 몰랐다니 내부 감사 기능을 포함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회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청산 대상 회사에 세금 추가 투입이 웬 말이냐는 시중 여론을 노조는 듣고 있는지 한 번 묻고 싶다.


파업 결의에 정부는 “노조의 동의서는 현재도 유효하다”면서 “노조는 파업을 추진할 명분이 없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너무나도 당연한 대응이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 4조 2000억원의 지난해 지원자금 가운데 아직 집행되지 않은 자금은 동결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고 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동의서의 정신이 유지되길 바란다”면서 “채권단, 주주, 노조, 이해관계자들의 고통 분담이 전제되지 않으면 경영 정상화는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각 이해당사자와 협력해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벌여도 시원치 않을 노조다. 그럼에도 파업을 결의해 도덕적 배임에 나선 것을 두고 정부 구조조정 책임자의 경고가 이렇듯 뜨뜻미지근한 것도 국민은 불만스럽다.


한국 조선업은 지금 생사의 기로에 있다. 조선업이 구조조정 대상이 된 것은 그동안의 부실 경영도 부실 경영이지만도 기본적으로 새로운 수주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도 오늘의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앞장서서 타개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대우조선 노조에 이어 현대중공업 노조도 17일 파업 찬반 투표를 벌일 것이라고 한다. 파업 결의가 마지막 생존의 몸부림이라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정말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라고 생각한다면 노조 스스로 임금을 낮추어 회사를 살리겠다는 자구안은 왜 내놓지 못하는가.

5. 잡음 많은 맞춤영 보육 밀어일 일 아니다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될 어린이집 맞춤형 보육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0~2세 영아를 둔 외벌이 가구의 어린이집 이용 시간을 하루 6시간으로 제한한 게 맞춤형 보육의 핵심이다. 보육 수요가 더 큰 맞벌이 가구에 맞춰 이용 시간을 달리한 정책이다. 현재 영아는 부모의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어린이집의 12시간 종일반을 이용할 수 있다. 맞춤형 보육은 복지사업 구조조정의 일환이다. 그러나 외벌이 가구 쪽도, 어린이집 쪽도 불만이 크다. 외벌이 가구의 영아가 차별을 받을 수 있는 데다 보육료와 운영비의 삭감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들은 맞춤형 보육에 대한 정부지원금이 종일반의 80%에 그쳐 운영난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맞춤형을 하더라도 종일반이 운영되는 상황에서는 달라지는 게 없는데 지원금이 줄면 보육교사의 임금이 줄고 보육 환경이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린이집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이유이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등은 그제 대규모 집회를 갖고 맞춤형 보육의 개선이나 시행 연기, 철회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오는 23~24일 어린이를 볼모로 삼는 집단 휴원도 예고했다.


맞벌이 보육은 부모와 자녀의 애착을 돕겠다는 취지와 달리 전업주부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외벌이 가구는 자녀가 3명 이상일 때만 종일반에 보낼 수 있도록 규정했다. 현실 무시이자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차별적 발상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접근도 매한가지다.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은 종일반을 이용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증빙서류를 제출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 때문에 전업주부들 사이에서 ‘위장 취업’을 해야 할 판이라는 씁쓸한 말까지 나오고 있다.


맞춤형 보육은 잡음이 많은 만큼 정교한 보완이 요구된다. 좋은 정책도 현실과 동떨어져서는 취지를 살릴 수 없다. 특히 무상복지는 한 번 시행하면 줄이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우선 어린이집과 전업주부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보육료 인상과 보육 시간의 탄력적 운영 등 구체적인 방안을 내놔야 한다. 어린이집 측도 운영난이 공급 과잉에서 비롯된 점이 없지 않기에 정부와 대화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 역시 ‘탁상행정’이라고 비판만 할 게 아니라 국회 차원에서 깊이 논의하는 등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일정에 얽매여 밀어붙이다가는 혼란만 키울 수 있다.

[동아일보]

6. 산하기관 직원에게 아들 영어숙제 시킨 '미래부 갑질'

박근혜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 방문에 동행했던 미래창조과학부 A 사무관이 산하 기관인 K-ICT(코리아 정보통신기술) 본투글로벌센터 직원에게 고교생 아들의 영어숙제를 시킨 일이 뒤늦게 드러났다. A 사무관은 본투글로벌센터가 주최한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행사 지원을 위해 따라나섰다. 그런데도 파리 관광 차량 대여 비용과 가이드 비용까지 산하 기관에 부담시키는 갑질을 했다.


본투글로벌센터는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경제’ 일환으로 신생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돕기 위해 미래부가 만든 기관이다. 예산과 인사권을 쥔 공무원의 사적인 부탁을 산하 기관 직원이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두 달 전 현대가(家)의 3세 사장이 운전기사에게 자신의 속옷과 양말, 운동복을 챙기도록 한 ‘갑질 매뉴얼’이 공개되면서 ‘금수저’가 천민자본주의를 만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번엔 ‘금밥통’의 공무원이 정부 주도 자본주의를 만났을 때의 추악한 민낯을 보는 느낌이다. 


이번 일을 무개념 공무원의 단순 일탈로만 볼 수 없다. 14조 원대 예산을 주무르는 미래부 공무원들이 세금을 쌈짓돈으로, 산하 기관을 밥으로 여기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래부는 창조경제와 K-ICT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매년 가파르게 예산을 늘려왔다. 지난해는 국감에서 연구개발(R&D) 예산 낭비가 가장 심한 부처로 산업부와 함께 꼽혔다. ‘미흡’ 판정을 받은 12건 사업에 총 2672억 원이라는 혈세가 낭비됐다. 


‘다음 정권에서 없어질 가능성이 가장 큰 조직’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인지 기강 해이도 심각하다. 롯데홈쇼핑 재승인 과정에서 미래부 공무원들이 서류 조작을 눈감아줬다는 의혹이 최근 불거져 수사를 받는 중이다. 2014년 6월 최양희 장관이 취임한 후 금품·향응수수, 음주운전, 동료 폭행, 심지어 성 관련 사건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직원만 5급 사무관에서부터 서기관 부이사관까지 38명에 이른다. 최 장관은 창조경제 이전에 미래부 공무원들의 기강부터 바로잡을 일이다.

7. 국민의당 김수민 비례대표 공천 내막도 의심스럽다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 관련 의혹은 4·13총선 당시 홍보 업무를 하면서 업체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는지가 핵심이다. 김 의원은 “개인적으로 착복한 건 없다”고 밝혔지만 어제 이상돈 국민의당 진상조사단장은 “당으로 유입된 돈이 없다”는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해 되레 의혹을 키웠다. 이와 별개로 나이 30세에 대학 시절 디자인 벤처기업을 창업한 경력이 전부인 김 의원이 어떻게 비례대표 후보 7번을 받았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공천 신청도 하지 않았는데 비례대표 명단 발표 당일 새벽에 결정됐다는 건 정상으로 보기 어렵다.


비례대표는 취약계층 대변자나 각 분야의 전문가를 국회에 들여보내 입법의 전문성을 보완하려는 것이 기본 취지다. 그러나 김 의원처럼 비례대표 선발 과정이 불투명해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 해산된 통합진보당은 2012년 총선 때 비례대표 부정 경선이 탄로 나면서 당이 갈라지고 결국 정당 해산의 한 사유가 됐다. 과거 비례대표는 공천을 대가로 거액을 주고받는 불법 공천헌금의 온상이기도 했다.


이번 국회에선 비례대표가 전문성과는 상관없는 상임위에 배정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언론 관련 시민단체에서 일한 경력으로 비례대표가 됐지만 언론을 다루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가 아닌 외교통일위에 배정되자 농성에 나섰다. 경영학자인 새누리당 김종석 의원이 외통위에,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출신인 새누리당 김승희 의원이 안전행정위에, 국방 관련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더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국방위에 배치됐다. “축구선수를 농구장에 놓아둔 격”이라는 추 의원 말대로 코미디일 뿐 아니라 세금 낭비다. 


비례대표는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사실상 ‘임명’해준 당 대표에 충성을 바칠 수밖에 없다.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 공천을 따내기 위해 당 실력자에게 줄을 서거나, 당을 위해 공헌했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튀는 언행을 해서 물의를 빚기도 한다. 야당은 이런 비례대표를 더 늘리겠다고 총선 50일 전까지 선거구 획정의 발목을 잡았다. 선정 과정에 문제도 많고 전문성도 못 살리는 비례대표라면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

[중앙일보]

8. 한국 경제, 브렉스트 후폭풍에 철저히 대비해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 가능성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다. 먼 나라 얘기로 무심코 지내는 사이 브렉시트가 가시화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일본 증시가 1만5000선대로 맥없이 무너지고 중국 위안화값은 최근 5년 내 최저 수준에 근접했다. 영국 증시에서는 나흘 사이에 160조원이 사라졌고, 국제자금이 안전자산으로 몰리면서 일본 엔화값이 급등하고 독일·스위스·미국 국채 금리는 제각각 마이너스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가디언·더타임스 여론조사에서 탈퇴가 잔류를 7%포인트 앞지르면서 나타난 브렉시트 공포증이다. 쓰나미처럼 간발의 시차를 두고 국내 금융시장을 덮칠 상황도 조만간 가시화할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가 세계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영국의 EU 탈퇴가 몰고 올 경제적 파장에 대한 우려에서 나오고 있다. 영국의 EU 탈퇴는 미국·일본과 함께 세계 선진 경제권의 3대 축 가운데 하나인 EU가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세계 경제를 더욱 약화시키고 유럽의 정치·사회적 불안까지 야기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유럽은 오래전부터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면서 정치·경제·사회가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는 지역공동체였다. 이런 체제에서 분열과 고립주의는 언제나 큰 비용을 치렀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EU는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모태로 출발해 99년 단일통화 유로를 출범시키면서 하나로 뭉쳤다.


하지만 처음부터 불안한 동거가 시작됐다. 영국은 EU에 참가하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는 합류하지 않으면서다. 브렉시트는 결국 회원국 간 경제 격차를 극복하지 못한 데 따른 파국이다. 탈퇴파는 경제 체력이 다른 국가 간 살림 통합으로 영국이 끊임없이 경제가 취약한 회원국에 돈을 퍼주는 불평등 구조에 불만을 제기해왔다. 영국엔 EU 출신의 취업자가 220만 명에 달하는데다 대규모 난민까지 몰려들고 있다. 이들에 대한 주택·교육·보건 혜택을 더는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경제주권을 되찾겠다는 탈퇴파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면서 23일(현지시간)로 임박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는 탈퇴파의 우위를 예고하고 있다. 영국의 EU 탈퇴가 현실화하면 28개 회원국 체제는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영국의 고립주의는 영국 수출 비중이 큰 아일랜드·벨기에·네덜란드에 직격탄을 날리고 도미노처럼 전 세계로 충격파를 던져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수출에도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은 외풍에 취약한 한국 경제에 치명적이다. 97년 외환위기로 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린 데 이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저성장 터널로 빠져든 한국으로선 다시 위기 앞에 설 수도 있 다. 정부와 기업은 브렉시트에 따라 벌어지게 될 후폭풍이 어느 정도의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충분히 예측하고 만반의 대비에 나서야 할 때다.

[매일경제]

9. 셋 중 하나 꼴 청년 실업 실효대책으로 개선해보라

어제 발표된 통계청의 5월 고용 동향을 보면 청년(15~29세)실업률이 9.7%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보였다. 청년실업률은 올 2월 12.5%로 사상 최고를 기록한 뒤 매년 동월 기준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좀처럼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의 공식 청년실업률은 이렇게 10%대 전후로 나오지만 주변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놀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지표보다 훨씬 많게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경제연구원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듯한 도발적인 분석을 내놓아 주목을 끌었다. 지난해 8월 통계청의 고용 동향을 토대로 분석한 것인데 공식 청년실업률은 8%로 발표됐지만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으로 불완전 고용 상태에 있거나 그냥 쉬고 있다고 응답한 취업 포기자를 합하면 체감 청년실업률은 34%까지 올라간다는 것이다. 


통계청은 공식 실업률 산정 때 취업을 희망하고, 취업이 가능하며, 구체적인 구직활동을 했음에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경우만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국제노동기구(ILO) 권고로 아르바이트생이나 입사시험준비생을 실업자에 포함하는 고용보조지표도 쓰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여기에다 비자발적 비정규직과 쉬고 있는 청년을 더한 것이니 통계 기법에는 안 맞을지 몰라도 정부가 실업대책을 마련하는 데는 더 유용할 수 있을 듯하다.


정부가 청년 직접고용지원금을 확대하고 육아휴직제도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내놓았고, 청년 근로자들에게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방안까지 발표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당장의 효과를 내기는 힘들고 그사이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의 한숨은 깊어만 가니 문제다.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투자와 생산성 제고를 통한 성장과 고용 확대가 우선이다. 채용 및 해고와 임금 탄력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개혁도 절실하다. 장기든 단기든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해 꺾일 줄 모르는 청년실업률을 개선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10. 노인학대 예방·방지체계 보강 늦어져선 안된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우리 사회에서 '노인학대'가 크게 늘고 있다니 걱정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4일 내놓은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학대 건수는 3818건으로 최근 4년 동안 11% 증가했다. 노인학대 36%는 아들이 저지른 일이었을 뿐 아니라 전체 70%는 가족·친족에 의한 학대였다고 하니 우리 사회의 충격적인 윤리 붕괴를 보여주는 일이라 할 만하다.


노인학대 86%는 집에서 발생했는데 앞으로도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비슷한 사례는 더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다행히 노인복지법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개정됨에 따라 올해 말부터는 노인학대와 관련한 신고체계가 크게 보강되게 됐다. 노인학대를 알게 되면 보호·수사기관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는 직종이 기존 8개에서 다문화가족센터 종사자 등을 포함해 14개로 늘어난다. 가정문제라는 생각 아래 수수방관할 것이 아니라 이웃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대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일이다. 개정된 노인복지법은 매년 6월 15일을 '노인학대 예방의 날'로 지정했다. 유엔이 2006년 제정한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보다 10년 늦은 대응인데 신고·보호조치와 더불어 효과적인 예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복지수준을 세계노인복지지표를 이용해 평가해보니 조사 대상 96개국 중 60위권에 머물렀다고 한다. 태국 베트남 중국 등 개발도상국에도 뒤지는 수준이다. 건강 취업 교육기회에서는 상대적으로 나은 평가를 받았으나 소득보장(82위)과 노인에 대한 우호적 환경(54위) 부문에서 나쁜 평가를 받았다. 어려운 상황에서 의지할 만한 친인척이나 친구가 있다고 응답한 노년층 비율이 60%로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우리 사회가 경로사상을 중요시하는 유교 문화권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내년에는 14%를 넘어서며 '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만큼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에서 노인인권 부문을 강화해야 한다. 노인학대를 예방·근절하기 위한 인성교육과 가족윤리 회복 계획도 마련돼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윤고은의 참새방앗간> 스캔들: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2013년 MBC TV에서 방송된 주말극의 제목은 '스캔들: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다. 


유괴와 불륜, 치정, 폭력, 배신 등 온갖 막장 요소가 뒤섞인 이야기로, 1980년대부터 20여년에 걸쳐 벌어진 우리 사회의 온갖 비리를 주인공의 인생을 통해 그려냈다. 


여기서 '스캔들'은 매일같이 사회뉴스 톱을 장식하는 권력형, 금권형 비리와 범죄를 말하며, 제목은 영어 단어 스캔들(scandal)의 사전적 의미에 충실했다. 


그런가 하면 2008년 역시 MBC TV에서 방송된, 고(故) 최진실의 마지막을 기억하게 하는 작품의 제목은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다.


여기서 '스캔들'은 중년 여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한 달콤한 사랑 이야기다. 

아무것도 이상할 게 없는 처녀-총각의 열애가 아니고 총각 톱스타와 별 볼 일 없는 싱글맘의 사랑 이야기라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긴 하지만, 부도덕한 추문은 아니다. 


한마디로 지금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 연예면 톱을 장식할 이야기. 그러나 법적, 도덕적 하자도 없고 누구에게 피해도 주지 않은 이 드라마 속 달콤한 '사건'은 많은 시청자를 즐겁게 만들었다. 


최근 한 달 남짓 사이 연예계에서 잇따라 스캔들이 터지고 있다. 전혀 달콤하지 않고 추잡한 성적 추문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과 궤를 같이한다. 


개그맨 유상무가 성폭행 논란에 휘말리더니, 한 배우는 '부적절한 관계'를 이유로 소송을 당했고, 지난 13일에는 세계적인 한류스타 JYJ의 박유천의 성폭행 피소 뉴스가 전해졌다. 


또 이보다 수위는 약하지만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한 셰프는 민감할 수 있는 사생활 영상이 유출돼 갑론을박 논란을 낳았다. 


한 달도 안돼 잇따라 터지는 강도 높은 스캔들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이젠 구설수 없는 연예인이 대단해 보일 지경임"(네이버 아이디 'cjsd****')과 같은 댓글이 이어진다. 

음주 운전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이 이들 '덕'에 가려질 정도다. 


스캔들은 실재하는 사건일 수도 있지만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추문으로 끝나기도 한다.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닌 경우도 많고, 또 많은 일에서 사실과 진실이 다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단 스캔들에 휩싸이면 그 자체가 오명, 오점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특히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계에서 한번 실추된 이미지는 회복하기가 어렵다. 


또한 연예계 스캔들은 당사자 자체도 피해지만 많은 팬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다른 분야의 스캔들과 차원이 다르다.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스타가 부도덕한 일에 휩싸이는 것은 법적 문제를 떠나 그 파장이 크다. 한마디로 '19금' 콘텐츠에 대한 청소년의 접근을 차단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한방에 무위로 돌아간다. 


연예인에 대한 호기심이 2차, 3차 피해를 낳는 경우도 많다. 당장 박유천을 고소한 여성으로 누리꾼들이 여러 여성을 지목해 그 사진을 퍼뜨리는 행위는 '범죄'와 다름없다. 

요즘 최고 인기 드라마 tvN '또 오해영'에서는 오해영이 이보다 치명적일 수 없는 애정의 사각 관계에 휘말린다. 


평범한 30대 여성인 오해영은 라디오 방송과의 전화 연결에서 실수로 그 사실을 까발리면서 순식간에 모두가 아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돼버린다.


하지만 오해영의 스캔들은 이 땅의 여성들로부터 격한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아무 잘못이 없는, 오히려 피해자인 오해영이 조건 없이 사랑에 몸을 던진 결과로 벌어진 스캔들은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런 사랑,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외침이 터져나온다. 


연예계에서도 일련의 추잡한 스캔들 대신,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나 '또 오해영'과 같은 달콤한 스캔들을 만나고 싶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 노인 학대 사회/강동형 논설위원

노인 학대가 사회문제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75년 영국에서 ‘매 맞는 할머니’라는 보고서가 쟁점이 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러나 노인 학대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리나라는 2004년 노인복지법을 개정하면서 노인 학대의 예방과 조치에 관한 법 조항을 신설했을 정도다. 유엔이 6월 15일을 ‘세계 노인 학대 인식의 날’로 정한 것도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우리 사회는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노인 공경 사상과 부모 부양에 대한 의무감이 약화되고 있다. 여기에 사회안전망까지 부실해 노인 학대가 사회적인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나라를 초고령사회, 14~20% 미만인 사회를 고령사회, 7~14% 미만인 사회를 고령화사회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고령인구가 13.1%로 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세계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나라는 일본·독일·이탈리아 3개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30년 고령인구가 24.3%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2060년이 되면 고령인구가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0.1%에 이른다고 한다.


보건복지부가 어제 ‘세계 노인 학대 인식의 날’을 맞아 발표한 ‘2015 노인 학대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학대의 유형은 물리적인 힘을 가하는 신체적 학대, 모욕을 주는 정서적인 학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성적 학대, 재산을 빼앗는 경제적 학대, 부양 의무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 방임적 학대 등 다양하다. 이 밖에 노인 스스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살에 이를 정도로 생명을 위협받는 자기 방임도 노인 학대의 한 유형이다. 노인 학대 신고 건수는 지난해 1만 1905건으로 2014년에 비해 12.6%나 증가했다. 충격적인 것은 노인 학대의 85.8%가 가정에서 이뤄지고, 아들과 딸, 며느리와 사위, 손자와 손녀 등에 의해 행해지는 패륜 범죄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학대 행위자가 노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약물이나 알코올 남용, 정신장애 등의 증상이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노인 역시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요구된다.


노인을 학대하는 사회에서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 노인 빈곤율 1위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노인 학대 문제를 더 방치해서는 안 된다. 노인 학대의 실태를 조사하고, 노인들의 취업 확대와 복지증진 등 사회안전망을 더 촘촘히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전문 상담원 확보와 노인보호 전문기관 및 자활기관과의 연계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초고령사회인 독일이 노인들의 취업을 확대해 각종 노인 문제를 극복하고 있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3.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절정의 순간

무더운 날에 지하철역에서 일곱 살쯤 보이는 남자아이가 “엄마, 내 평생 이렇게 더운 날은 처음이야”라고 말해서 속으로 웃고 말았다. 어린아이가 평생이라니 가당치 않아서였다. 그런데 나 역시 세상모르던 10대에는 눈부신 20대까지가 삶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서른이 되고 보니 아직 제대로 인생을 시작도 하지 않은 젊은 나이가 아닌가. 그래서 조금 수정했다. “쉰을 넘기면 사는 재미가 없겠지”라고. 물론 그때는 쉰이 금세 온다는 걸 실감하지 못했다.


살아가면서 그렇게 거듭 ‘한평생의 상한선’을 수정해 가는 사람이 내 주변에 또 있다. 내가 젊은 나이일 때 50대였던 지인은 “난 칠십까지만 살 생각이야. 그 이상은 잉여의 삶이잖아”라고 말하더니 훗날 칠십을 목전에 두자 “요즘은 다들 건강하니 팔십이 예전의 칠십이야”라며 슬며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80대가 된 요즘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다. 물론 그분은 이제 더 이상 한평생의 데드라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제 어느 나이나 흔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어떤 나이든 살 만한 가치가 있음을 터득했기 때문이리라.


최근 미국에서 열두 살 여자아이가 10년 후 스물두 살의 자신에게 쓴 편지를 인터넷에서 보았다. 그 아이는 10년 후를 상상하며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펜을 꾹꾹 눌러 편지를 썼지만 그 다음 해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 편지를 읽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 아이의 평생이 너무 짧아 안타깝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평생의 길이가 절대적인 건 아닌 것 같다.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산다면 말이다.


박우현 시인은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라는 시에서 ‘마흔이 되면/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이윽고/마흔이 되었고/난 슬프게 멀쩡했다/쉰이 되니/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예순이 되면/쉰이 그러리라/일흔이 되면/예순이 그러리라//죽음 앞에서/모든 그때는 절정이다/모든 나이는 아름답다/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라고 썼다.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가 절정이라면 우리는 지금 절정의 순간순간을 살고 있는 셈이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리하여 언젠가는 다시 그리워하게 될 순간들임을 기억한다면 평생 처음인 더위에 시달려도, 평생 가장 힘든 시기여도 조금은 위로가 될 것 같다. 

4. [동아일보][2030 세상/이어진]아픈 '코이안드리머'를 치료하며

사무실 뒷동산에 들풀들이 많이 자랐다. 인적이 뜸한 곳에는 토끼풀 무리가 무릎까지 닿을 기세다. 흠뻑 내린 비를 맞고 자란 초록은 하늘과 바람, 태양과 잘 어우러져 우리네 바쁜 일상 곁에서 초여름 뜨거운 생명력을 내뿜고 있는 중이다. ‘매미 울 때가 된 것 같은데.’


늘 도심 가운데에서 에어컨 바람과 아스팔트 열기로 맞던 여름과의 색다른 대면이 기분 좋으면서도 아직은 조금 어색하다. 그동안 만나던 평균 연령 75세의 보건소 고객님들은, 다양한 국적의 2030세대 보호 외국인 고객님들로 바뀌었다. 건너편 예방접종실에서 들려오던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출입국관리사무소 보호실 방과 방을 오가는 다양한 언어들로 대체되었다. 


비자 만료나 밀입국 등으로 불법 체류 중에 단속되어 우리 사무소에 입소하게 되면, 보호 기간에 간단한 건강검진과 필요한 진료를 받게 된다. 주로 젊은 친구들이 많은데, 진료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갓 입소한 내 또래의 보호 외국인과 마주하고 있노라면, 아직은 나도 낯설고 이 친구는 더 낯설어 서로 멋쩍게 웃는다. 


“안녕하세요” “여기 왜 오셨어요?” “한국말은 잘하세요?”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 데 있어요?”로 시작되는 한국식(?) 진료가 시작된다. 짧은 한국말이 통하는 10명 중 여덟아홉에게 의사도 “여기? 아파? 안 아파?” “(가리키며) 약! 줄게!” “먹고(시늉), 발라(시늉), 오케이?” 손짓 발짓 짧은 한국말로 응대한다. 다행히 간단한 단어나 문장은 포털 사이트의 번역기를 이용하기도 하고, 외국인 근로자 관련 시민단체에서 제작한 각국 언어로 된 진료책자도 있어 활용하고 있다. 


이곳에는 ‘환자-의사’ 관계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맥락이 존재한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출입국법을 위반한 범법 사실이 존재하고, 그 때문에 그동안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귀국하더라도 당사자가 원하는 수준의 치료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금전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이가 대부분인 데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국내 시스템에서 고가의 검사나 치료는 아무래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강제퇴거 전 보호소에 머무르는 기간에는 기본적인 건강관리를 위한 야외 운동시간, 여가시간, 관련 프로그램들이 제공되지만 제한된 공간과 제한된 행동, 여기에 체불임금이나 다른 법적 문제가 걸려 있는 경우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 수준 또한 높다. 진료실에서 간혹 질병이 상당 기간 악화된 상태에서 마주하게 되는 불법 체류 외국인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과거 ‘코리안 드림’의 부푼 꿈을 안고 왔을 이들인데, 처음 잘못 끼운 단추로 인해 돈도 벌지 못하고 건강도 많이 상한 채 강제출국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대략 20만 명의 불법 체류 외국인이 있고, 이들 중 많은 수가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특히 각종 감염성 질환이나 치과질환, 만성질환 관리 불량,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 문제에 취약할 것으로 생각된다.


국내 불법 체류자 문제는 국민을 위한 엄정한 법 집행과 사회적 안전 측면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더불어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단속 후 퇴거집행까지 보호 외국인들의 인권 증진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균형 있게 잡아야 하는 것이다. 난민 문제, 이주민 정책 및 다문화 정책 또한 여름이 지나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 것 같다. 


이들이 보호 외국인 퇴거 준비를 하는 이른 새벽부터 밖이 훤하다. 남극에서 이맘때 받았던 편지에 적혀 있던 ‘극즉반(極卽反)’이 떠오른다. 이 친구들도 고향에 돌아가서는 바른 단추를 꿰어 다시 만나길. 오늘 아침 오른 뒷동산 풀밭은 어느 한쪽 부족함 없이 말끔하게 벌초가 되어 있다. 벌써 절반이 거의 지난 2016년의 중간결산이다.

5. [중앙일보][알베르토 몬디의 비정상의 눈]한국살이의 최대 고충은 너무 높은 집값과 보증금

지난 2년 동안 살던 집의 계약기간이 지난주로 끝나 이사를 했다. 한국에 와서 9년 동안 이사를 벌써 10번 이상 한 것 같다. 나라마다 주거 방식, 집의 형태, 부동산 시장의 규칙이 다르다는 점은 재미있는 일이다.


유럽의 대학생이나 젊은 직장인들은 집이나 아파트를 빌려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함께 살면서 월세를 나눠 내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골치 아픈 일이 될 수도 있다. 서로 성격과 사는 방식이 맞으면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지만 함께 사는 사람이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지나치게 시끄럽거나, 성격이 맞지 않으면 얼른 다른 집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 이러니 집을 나눠 쓸 사람을 구하는 일은 대기업 면접보다 더 까다롭고 진지하기 일쑤다.


남자들끼리 살면 집이 순식간에 지저분해지기 일쑤다. 여자끼리 살면 집은 깨끗하지만 싸움·질투·오해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종종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되기 쉽다고 한다. 따라서 서로 사생활과 공간을 존중하면서 이성 친구들끼리 집을 나눠 사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탈리아에선 이런 환경에서 살았다. 그러다 스물세 살 때 한국에 와보니 젊은이들은 주로 원룸·투룸·고시텔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혼자 사는 것이 편할 수도 있겠지만 이탈리아에선 함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눌 사람이 필요한 데다 나눠 쓰더라도 널찍한 공용 공간이 필요해 원룸이나 고시텔에 대한 수요는 아예 없다.


원룸과 고시텔에서도 살아보고 한국 친구들과 셰어링도 하다가 결혼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집을 구하게 됐다. 그때도 역시 이탈리아와 문화적 차이가 컸다. 처음 부동산에서 보증금(전세) 금액을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다. 유럽에선 보증금이라고 하면 통상 두어 달 치 월세다. 입주자가 한두 달 정도 월세를 안 내면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집에서 내보낸다.


한국 젊은이들이나 외국인들에게 보증금은 큰 부담이다. 외국인들은 신용대출을 받기 힘들고 전세담보대출은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서울의 외국인들은 집 보증금이 몇 백만원밖에 안 되는 이태원이나 해방촌 같은 동네에 모여 살 수밖에 없다. 한국의 집값은 유럽이나 북미에 비해 정말 높은 편이지만 보증금 수준은 그보다 더하다. 단독주택보다 아파트를 선호하는 문화도 외국인에겐 적응이 쉽지 않다. 주거 문제가 해결되면 외국인들이 한국에 더욱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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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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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5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동남권 신공항, 승복 약속이 먼저다

동남권 신공항의 입지선정 발표가 임박해 오면서 지역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현재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는 밀양과 가덕도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 주민들 사이의 마찰이 그것이다. 입지선정 결과에 따라 불만이 뇌관처럼 터져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게 현지에서 전해지는 소식이다. 같은 영남권이면서도 지역개발 이해관계에 있어서는 서로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도라 여겨진다.


가덕도나 밀양이 모두 신공항 입지로서 나름대로 경제적 타당성을 지니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가덕도는 기존 김해공항과 연계해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며, 밀양은 주변 지역으로부터의 접근성 면에서 유리하다. 영남권에서도 부산 주민들이 가덕도를 지지하는 반면 대구·경북과 경남, 울산 등 여타 지역 주민들은 밀양을 지지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하지만 어느 한 곳은 탈락해야 하는 운명이고, 어느 쪽이든 탈락한다면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게 문제다. 신공항 건설계획이 다시 추진되면서 이미 지난해 1월 영남권 5개 광역단체장들이 심사 결과에 승복하기로 굳게 합의했으나 이러한 약속이 깨져버린 듯한 분위기라는 얘기다. 과도한 유치경쟁을 자제하자는 약속부터 일찌감치 물 건너간 마당이다.


여기에 정치인들까지 끼어들어 마찰을 조장하고 있다는 게 더욱 심각하다. 자기들의 정치생명이 지역적인 이해관계에 직접 영향을 받게 되므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하더라도 지켜야 할 한계가 있는 법이다. 자기 지역이 탈락할 경우 승복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는 것은 선동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는 국가 행정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고, 정치가 올바로 굴러갈 수 없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이번에는 계획대로 추진돼야 한다. 하지만 경제 논리에 따라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 지역 이기주의를 앞세운 무리한 여론 조성이나 선동은 폐해만 초래할 뿐이다. 무엇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그대로 따르겠다는 정치인 및 단체장들의 다짐이 필요하다. 심사 결과가 발표되고도 승복하지 않는다면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공항이 지역 불화의 상징이 돼서는 안 된다.

2. 안철수 대표가 리베이트 의혹 결단해야

국민의당이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에 대해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하며 자꾸만 진흙탕으로 빠져드는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국회 개원 초부터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주는 꼴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두 가지다. 김수민 의원을 포함한 당 관계자들이 홍보대행업체 두 곳에서 2억 4000여만원을 리베이트로 받았느냐와 당선권인 비례대표 7번이 어떻게 만 30살도 안 된 정치 초년병에게 돌아갔느냐 하는 것이다.


국민의당 사활이 의혹의 투명한 해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의당은 “부정부패로 기소되면 곧바로 당원권을 정지한다”고 당헌에 ‘깨끗한 정치’를 못 박았다. 지난 총선에서 ‘녹색 바람’을 일으켰던 비결이기도 하다. 이미 박준영 의원 공천헌금 사건으로 망신을 톡톡히 산 터에 또다시 리베이트 의혹이 불거지면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대처하는 국민의당 태도는 여간 실망스럽지 않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김 의원 등을 검찰에 고발하자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다가 곧바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어뜨린 것부터가 그렇다. 국민의당 관계자들은 문제의 리베이트가 당으로 들어오지 않은 사실을 들어 “기소하면 검찰이 망신당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김 의원이 운영하던 디자인업체가 당과 허위 계약서를 작성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전체 다 조사하고 투명하게 말씀드릴 것”이라던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의 말과 달리 진상조사단이 공천 과정은 조사대상에서 아예 배제한 것도 석연찮다. 국민의당은 공천을 신청하지도 않은 김 의원이 어떻게 비례대표 후보 명단 발표 당일에 7번에 끼었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개나 소나 다 하는 자리가 아니다. 일반 국민은 상상도 못할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혜택을 누리는 게 국회의원으로, 그만큼 막중한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국민의당 측은 “김 의원에 대한 전략 공천은 관행”이라고 둘러대고 있으나 동네 아이들에게 눈깔사탕 나눠 주듯이 국회의원을 아무나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몹쓸 행태야말로 국민의당이 퇴출시키겠다는 ‘낡은 정치 관행’의 전형이다. 안 대표가 진정 ‘깨끗한 정치’를 계속 추구할 생각이라면 더 이상 비겁한 변명 뒤에 숨어선 안 된다.

[서울신문]

3. 공공기관 구조조정, 부작응 꼼꼼히 시켜대처를

정부가 에너지·환경·교육 분야 공공기관들에 대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기로 했다. 지난해 사회간접자본(SOC)과 농림·수산 분야 등의 87개 공공기관에 대한 기능 조정에 이은 2단계 구조조정인 셈이다. 그동안 부실 공공기관들이 중복 투자와 적자 누적으로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돼 온 점을 고려하면 이번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강력한 실천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어제 공공기관장 워크숍에서 밝힌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의 골자는 중복기능 조정과 비핵심 업무 축소, 독과점 체제 해소다. 이를 위해 기초전력연구원 등 5개 기관이 통폐합되고 석탄공사와 광물자원공사는 단계적으로 구조조정된다. 이 밖에 29개 기관도 중복 기능과 비핵심 업무에 대한 조정과 축소, 민간 개방을 통해 업무와 기능이 다듬어진다.


특히 부실 누적과 독과점 폐해가 심각한 에너지 분야 공공기관들에 대한 수술 강도가 셀 전망이다. 지난해 감사원은 그동안 해외 자원 개발에 총 36조여원이 투입됐지만 성과가 미미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석유공사는 석유 사업에 21조원을 쏟아부었지만 9조원을 건지는 데 그쳤다. 가스공사는 10조원 이상을 투입해 2조원, 광물자원공사는 4조원 가까이 퍼부어 3000억원만 회수했다. 이를 고려하면 이들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늦은 감마저 있다. 이번 구조조정에서 석유공사는 부서의 23%, 인력 30%를 줄일 계획이다. 광물자원공사도 신규 채용을 중단하고 2020년까지 118명을 감축한다. 독과점 사업을 민간에 개방해 경쟁체제로 바꾸는 것도 이번 방안의 특징이다. 한전이 독점한 전력판매업, 가스공사의 가스 도입 및 도매업 등이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개방된다.


이번 기능 조정안은 제대로 실천만 하면 해당 공공기관들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계속 지적돼 온 공공기관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다만 대규모 구조조정에 따르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전력 판매의 민간 개방에 따른 전기료 인상, 기관 통폐합과 감원에 따른 노사갈등,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 자원개발 역량 저하 등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워크숍에서 “사전에 철저하게 보완 대책을 수립해 부작용을 최소화해 달라”고 주문한 것도 그 때문이다. 개혁은 규모가 크고 강도가 셀수록 반발과 부작용도 클 수밖에 없다. 정교하고 현실적인 보완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4. 한국 만만히 보는 폭스바겐에 소비자 힘 보여야

배출가스 조작 의혹을 받는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다. 회사 임원을 처음 소환한 검찰은 관계자를 피의자로 전환해 심도 있는 수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지금까지의 수사 내용만 봐도 폭스바겐을 대충 조사하고 넘겨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검찰이 수입 차량을 압수해 살폈더니 배출가스 미인증 차량이 600대가 넘었다.


지난해 9월 배출가스 저감 장치가 조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폭스바겐은 세계 경유차 파동의 진원지가 됐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리콜 등으로 발 빠르게 대처했으면서도 우리한테는 별 대책 없이 뭉개 왔다. 거기다 차량 성능 조작까지 일삼은 사실이 줄줄이 들통나고 있다. 우리를 만만히 보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폭스바겐은 2010년부터 최근까지 수십 건의 연비와 배출가스 시험 성적서를 조작해 환경부를 속였다. 2011년 배출가스 재순환 장치 조작으로 질소산화물이 다량 배출된다는 사실이 적발되고서도 환경부의 리콜 요청마저 무시했다. 당시 국산 차들은 관련 부품을 모두 교체했으나 폭스바겐은 환경부가 요구한 서류조차 내놓지 않고 버텼다.


배출가스 저감 장치 조작이 들통난 뒤 폭스바겐은 유럽과 미국에서는 호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결함 차량 환불에다 미 법무부한테서는 100조원이 넘는 민사소송을 당했다. 그런데도 우리한테만은 유독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분통 터지는 일이지만 그 빌미를 우리 스스로 던져 준 측면도 크다. 배출가스 조작과 오만한 태도가 계속 말썽이었는데도 여전히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 자동차가 폭스바겐이다. 그런 데다 즉각 검찰에 고발하지도 못하며 미적댄 한국 정부가 무서울 리 없다. 이래저래 한국 시장은 ‘호갱’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뒤늦게 검찰에 고발한 환경부는 수사 과정을 구경만 해선 안 된다. 신차 인증 과정의 꼼수와 조작에 또 속아 넘어가지 않게 자존심을 걸고 단속해야 한다. 불법 조작이 발각돼도 차종별 매출액의 고작 3% 이내로 과징금 상한선을 정한 대기환경보전법으로는 어림도 없다. 미국에서는 위반 차 한 대당 3만 75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자동차가 아니라 대기환경의 문제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기업에는 판매 중지 처벌이 가능한 특단의 대책도 검토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5. '87년 체제' 극복할 개헌 공론화 필요하다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개헌론이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원식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공식으로 제기한 이후 정치권에서 서서히 논의가 확대되는 모양새다. 내년이면 30년을 맞는 이른바 ‘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공감대 속에서 여야 중진들은 물론 일부 대선 주자들까지 개헌론에 합세하는 형국이다. 개헌론을 둘러싼 기류는 복잡하다. 집권 후반기를 맞은 청와대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고 집권 실세인 친박계 일각에서는 차기 대선과 관련해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에 동조하는 기류가 있다. 야권은 ‘87년 헌법’이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에 비효율적이라는 인식 속에서 개헌론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87년 체제는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 폐지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제9차 개헌을 통해 출범했다. 당시 6월 항쟁 이후 독재 청산이란 시대 정신을 구현한 87년 체제 덕에 장기 집권이 봉쇄되고 국민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정착되는 등 성과도 많았다. 하지만 과도하게 대통령 일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통치 시스템에서 정권을 쥐려는 여야의 극한적 대립에 국정은 늘 불안한 상태로 유지됐다.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이어지는 청와대의 독주가 논란이 됐고 주요한 국가 정책은 후임 대통령이 고의로 단절시켜 5년 이상 지속하는 정책 자체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이명박 정권 시절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던 자원외교나 녹색성장 정책이 현 정부 들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고도성장기에 만들어진 87년 체제와 전혀 다른 상황이다. 현재의 국가 시스템은 저성장과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등의 구조적 문제는 물론 갈수록 커지는 빈부 격차에도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양당 체제를 무너뜨린 4·13 총선 민의 저변에 새로운 국가 통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


집권 후반기 여소야대로 재편된 정국에서 개헌론이 화두가 되면 국정 동력이 급격하게 약화돼 각종 국정 개혁과 민생이 소홀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개헌과 관련해 핵심 쟁점인 권력구조 개편 방안과 시기 등을 놓고 정당별, 차기 대선 주자별로 입장 차가 큰 것도 사실이다. 자칫 청와대가 우려하는 ‘개헌 블랙홀’로 빠져들 개연성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럼에도 국가 백년대계를 새롭게 세워야 한다는 논의 자체를 언제까지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헌 논의도 골든타임이 있다. 대선 정국에 올인하기 전인 올해 말까지가 적기다. 우리 국민도 성숙한 민주주의를 체험했다. 정치권이 경제와 민생이라는 당면 국정 현안을 제쳐 놓고 개헌에 몰두한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국회는 시급한 국정 현안을 정상적으로 논의하면서 한쪽에서 개헌특위 등을 통해 로드맵을 차분하게 만들어 가는 투 트랙 방식으로 진행하면 된다. 급변하는 글로벌 시대에 맞춰 가장 효율적인 국가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더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

[동아일보]

6. “교육부 때문에 경쟁력 추락” 10대 사립大 총장 나섰다

서울지역 10개 주요 사립대 총장들이 13일 대학 발전을 위한 ‘미래대학포럼’을 출범시키는 자리에서 교육부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학생선발권을 틀어쥔 정부가 수시로 바꾸는 입시제도, 지원금을 무기 삼아 획일적으로 밀어붙이는 대학 구조조정이 대학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지금의 대학이 지금 이대로 학생들을 길러 인공지능(AI)과 겨룰 수 있겠느냐”며 “대학은 지금 바뀌지 않으면 도태되는 문명사적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통제와 간섭이 어떻게 대학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 총장들이 앞다퉈 지적한 것을 보면 어떻게 여태 침묵할 수 있었는지 답답할 정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양교육 강화’ ‘취업·창업 지원’ 등 정책 방향이 오락가락하고 재정지원도 달라져 수험생들뿐 아니라 대학들도 눈치작전을 편다고 총장들은 한탄을 했다. 그럼에도 2009년부터 계속된 등록금 인상 억제 정책과 정치권의 반값 등록금 공약에 대학 재정난이 심각해져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피해는 대학과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대학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장기적 안목으로 개혁을 밀고 나가야 하는데 교육부는 연 2조 원 규모의 재정지원 사업을 내걸고 수시로 정책 방향을 바꾸면서 좌파 정권 뺨치는 ‘대학 하향 평준화’ 정책을 펴고 있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등록금을 최대 3배까지 올릴 수 있게 한 대학 개혁으로 교육 경쟁력 제고의 길을 터준 것과 거의 정반대다.


물론 대학들도 반성할 점이 적지 않다. 해외 명문대들은 지식 공유를 위한 온라인 강좌(MOOC) 제공 등 대학 혁신에 전력을 쏟는 데 비해 한국의 교수들은 자기 전공이나 강의 지키기 등 기득권에 매몰돼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마침내 10대 사립대 총장들이 입을 연 것은 의미가 있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현행 대입 수시모집 제도의 일정 제한을 허물고 연중 상시 모집 형태로 바꾸는 등 자율 개혁에 나설 태세다. 정부가 행여 총장들의 쓴소리를 괘씸하게 여겨 온갖 구실로 대학에 불이익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교육부가 대학의 ‘갑’ 노릇을 하는 한 대학 개혁은 불가능하다. 다양성과 자율성에 대한 총장들의 요구를 교육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중앙일보]

7. 강남 아파트발 양극화, 놔두면 망국병된다

이달 들어 강남 부동산 시장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주로 재건축 단지다. 개포에서 시작해 반포→압구정→목동→여의도까지 확산하고 있다. 자고 나면 1000만원씩 오른다는 얘기도 나온다. 2주 만에 1억원, 한 달 새 3억원 넘게 오른 곳도 있다. 압구정동 신현대의 가장 작은 평형인 85㎡ 아파트 값은 두 달 전 14억원에 거래됐지만 최근 16억원으로 뛰었고 그나마 지금은 매물도 자취를 감췄다.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 반포 주공아파트, 개포동 1단지 등도 비슷하다. 이미 투기 조짐이 뚜렷하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너무 올랐다”며 투자에 신중하라고 당부할 정도다.


경기는 가라앉고 있는데 강남 재건축 아파트만 평당 분양가가 5000만원까지 치솟는다는 건 도무지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당국은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금융당국이 대출 동향을 점검하는 게 고작이다. 그러는 사이 지방과 강남 간 부동산 양극화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과열의 1차 원인은 초저금리다. 크게 늘어난 부동자금이 강남 재건축에 몰렸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을 왜곡한 책임도 크다. 직전 최경환 경제팀은 집값을 띄워 경기를 살리겠다며 규제를 무차별 풀었다. 전매제한 완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유예, 청약 1순위 요건 완화, 분양가 상한제 폐지에 이어 재건축 주민동의 요건을 2분의 1 찬성으로 완화했다. 여기에 빚을 내 집을 살 수 있도록 가계대출 규제도 크게 완화해 줬다. 시장을 정상화하는 데 그쳤어야 하는데 과하게 약을 쓴 것이다. 재건축 시장으로 돈이 몰릴 여건이 차고 넘칠 정도였으니 이래 놓고도 시장이 과열이 안 되길 바라면 그게 비정상일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뒷짐을 진 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혹여 지금껏 강남발 부동산 훈풍을 기대해 손 놓고 있다면 오산이다. 강남 재건축이 경기부양을 이끄는 시대는 지났다. 강남이 아무리 달궈진들 지방은 차갑다. 고령화·저출산 시대의 덫이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전국 주택가격은 0.09% 올랐다. 강남을 빼면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강남 대 비강남의 부동산 양극화는 또 다른 불평등을 부를 수 있다. 토마 피케티의 주장대로 ‘자산에 의한 부의 대물림’을 부추겨 사회를 크게 갈라놓을 수도 있다. 강남과 비강남의 대립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시장의 혼탁과 투기 광풍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정부는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과열을 막아야 한다.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투기세력을 가려내는 것은 기본이다. 재건축 때 초과이익의 50%를 환수하는 초과이익 환수제나 분양가 상한제를 예외적으로 강남 아파트에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장기 과제인 강북 개발 등 대체재 개발도 서둘러야 한다. 질질 시간만 끌다가 타이밍을 놓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된다. 투자자들도 신중해야 한다. 경제가 안 좋고 지방 부동산은 다 시원찮은데 강남 아파트만 나 홀로 고공행진을 계속할 수는 없다.

8. 노조 파업하는 대우조선에 혈세 쏟아부을 순 없다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이 어제 파업을 결의했다. 노조는 “일방적 구조조정 저지와 고용 보장을 위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조합원 85%가 찬성했다”고 밝혔다. 지난 8일 회사와 채권단이 내놓은 자구안에 대해 전면 거부를 선언한 것이다. 자구안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20년까지 인건비와 생산 능력을 30% 줄이고 방산부문을 떼내 모두 5조3000억원을 절감할 계획이다.


이번 파업 결의가 불법은 아니다. 지난해 경영진이 거액의 손실을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급작스러운 실업의 위협에 노출된 근로자들의 불안감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자구계획 자체를 반대하는 파업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대우조선은 2000년 이후 모두 7조원이 넘는 공적자금과 국책은행 자금을 지원받았다. 앞으로도 수조원을 더 받아야 생존을 기약할 수 있다. 부채비율이 7300%에 이르고 지난해부터 수주가 사실상 끊긴 상태다. 인력과 임금, 생산 설비를 그대로 두고도 회사가 살아날 방법이 있는지 노조에 묻고 싶다.


노조보다 훨씬 황당하고 억울한 건 국민들이다. 아무 상관없는 회사인데도 ‘기간산업’이란 이유로 혈세를 부담해야 한다. 평균 7000만원대인 대우조선보다 적은 연봉과 복지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 낸 세금도 적지 않다. 노조의 파업 결의는 국민들에게 귀족노조의 밥그릇 지키기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더구나 대우조선 노조는 지난해 10월 4조2000억원을 지원받을 때 ‘쟁의행위를 하지 않겠다’ 는 동의서를 제출했다. 상황이 좀 더 어려워졌다고 말을 뒤집는 노조를 보며 누가 지원을 말할 수 있겠는가.


혈세는 공짜가 아니다. 대우조선을 꼭 살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고한 것도 아니다. 대우조선 노조는 엄중한 현실을 직시하고 파업 계획을 접어야 한다. 한진중공업 노조는 어제 “조선업 불황에 따른 경영위기를 노사가 합심해 극복하기 위해 올해 임단협을 회사에 전부 위임했다”고 발표했다. 그래도 생존이 쉽지 않은 게 조선업의 현실이다. 노조가 파업하는 대우조선에 혈세를 쏟아부을 순 없다.

[매일경제]

9. 금리인하發 `부동산 버블` 조짐 내버려둬선 안된다

부동산 시장이 심상치 않다. 서울 개포·반포·압구정 등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한 달 새 1억원 이상 치솟았고 신규 아파트 분양가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잠실주공 5단지, 목동 신시가지 7단지 등은 부동산 시장이 최고점을 찍었던 2006~2007년 매매가격을 넘어섰다. 올해 분양한 강남 재건축단지가 3.3㎡당 4000만원 안팎의 높은 분양가에도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자 재건축조합들은 앞다퉈 분양가를 올리고 있다. 용산구의 한남더힐은 3.3㎡당 8000만원에 분양에 나서 고분양가 논란이 일고 있다. 대출규제에서 벗어나 있는 아파트 분양시장에는 분양권거래로 한탕을 노린 떴다방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상반기 전국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이 0.46%에 그쳐 정부는 안정세로 보고 있지만 강남 재건축과 청약시장 이상과열은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상승세는 저금리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들이 부동산 시장으로 꾸준히 흘러든 탓이다. 게다가 분양가상한제 폐지, 전매제한 완화, 재건축 시 추가이익 환수 유예 등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각종 규제를 걷어낸 영향이 크다. 주택담보대출 규제는 옥좼지만 청약시장 과열이라는 풍선 효과를 낳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는 달아오르는 부동산 시장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수 있어 걱정이다. 금리 인하 소식이 발표된 직후 수도권 모델하우스에는 방문객이 대거 몰렸다. 


경기가 바닥을 기고 있는데 부동산 시장만 활황세를 보이는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아파트값 상승 추세는 2006~2007년 부동산 과열기와 비슷하지만 경제성장률은 당시(5%대)의 절반밖에 안 되는 수준이다. 섣불리 빚을 내 추격매수를 했다가는 가격 조정기에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만큼 실거주자가 아니라면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 지난해 분양이 48만가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해 내년 하반기부터 입주 물량이 쏟아져 나오면 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버블 붕괴는 사회에 심각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국토교통부는 전문가들을 모아 고분양가 확산, 투기세력 기승, 월세로 인한 주거비 부담에 대해 논의했다고 하는데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서둘러 투기세력을 색출해야 할 뿐 아니라 집단대출 규제, 분양가 상한제 일시 부활까지 염두에 두고 시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또한 부동산뿐 아니라 금융부문에서도 새로운 투자처를 만들어내야 한다.

10. 민간까지 파고든 北 해킹,사이버테러방지법 재추진을

북한이 SK, 한진 등 국내 방위산업 관련 대기업들을 해킹해 F-15 전투기 날개 도면, 현재 개발 중인 무인정찰기 정보 등 4만여 건의 문서를 빼갔다고 한다. SK그룹 계열사 17곳, 한진그룹 계열사 10곳 등 무려 160여 개 업체와 기관이 1년7개월 동안 해킹에 노출됐고 4만2608건의 서류 중 2만6000여 건이 군(軍) 관련 정보였다고 하니 아찔하다. 이번 사건은 특정 보안업체의 프로그램을 쓰는 기업과 기관들이 모두 해킹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허술한 사이버 보안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한항공 등 대형 방산기업들은 별도 전산망까지 깔아뒀지만 무용지물이었다. 특히 북한이 사용한 '유령 쥐(Ghost RAT)'라는 프로그램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원격 제어 오픈소스 프로그램으로 고차원의 정밀한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속수무책으로 뚫렸으니 그동안 우리 기업들의 보안 의식 및 투자가 소홀했다는 방증이다. 


북한의 사이버 공격은 해가 갈수록 교묘해지고 대담해지는 추세다. 2009년 7월 청와대와 미국 재무부 사이트 해킹, 2011년 4월 농협 전산망 해킹, 2013년 3월 언론사 및 금융기관 전산망 해킹, 2015년 10월 우리 정부 외교·안보라인 주요 인사 수십 명의 스마트폰 해킹에 이르기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사이버 공격이 행해지고 있다. 북한이 실전 배치한 사이버 전사만 5000명이 넘는다고 하니 개별 기업 수준에서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19대 국회에서 끝내 불발된 사이버테러방지법의 처리가 시급하다. 이 법은 민간에 일정 수준의 정보보안을 의무화하고 국가사이버안보센터를 신설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이버 공격은 금융, 철도, 전력, 통신 등을 일거에 마비시켜 대한민국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북한 해킹을 단순한 보안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 차원의 문제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20대 국회는 9월 정기국회에서 제일 먼저 사이버테러방지법부터 처리하기 바란다.

주요 신문칼럼

1. [주간경향][편집실에서]싸우지 않고도 여성들이 이기는 방법

이번호 마감을 하루 앞둔 목요일 밤. 퇴근 버스에서 후배 여기자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읽는 순간 가슴이 멎는 듯했다. “깜깜하고 까마득한 기분… 살아있다는 생동이 아닌 살아남았다는 생존, 내게는 자연스럽지 않은 다른 세계의 감각이었다. …지난 몇 주간 동일하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이름 지을 수 있는 감각들이 무기력했고 슬펐고 무서웠다.” 공감의 표시로 ‘좋아요’를 어느 때보다도 꾹 눌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것뿐이었다.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많은 여성들이 날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악몽 속에 사는 동안 여성을 상대로 한 살인사건은 계속 일어나도 고작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니. 그 직전에 또 다른 후배 여기자가 글을 올렸을 때도 같은 심정이었다. “내가 이 여교사였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먹먹하다.” 무기력함과 먹먹함. 그랬다. 약 한 달 전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으로 움츠러들 대로 움츠러든 여성들은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으로 아예 숨조차 쉴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으로 참담함이 극에 달했을 때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두 건의 글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나는 미국 스탠퍼드대학 유명 수영선수의 성폭행 사건이었다. 사건은 지난해 1월 일어났지만 법원 선고가 지난 4일 있었다. 이 사건이 주목을 받은 건 피해 여성이 법정에서 읽은 장문의 글 때문이었다. 사건 이후 모든 것을 잃은 그는 자신이 당한 상황과 심정을 담았다. 다른 하나는 25년 전 ‘데이트 강간(date rape)’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당사자가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는 글이었다. 시사주간 <타임>은 1991년 6월 3일자에 피해자 얼굴을 싣고 ‘데이트 강간’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글을 읽는 것은 고통이자 고문이었다. 가해자의 뻔뻔함과 당당함에 분노가 일었다. 동시에 경외감도 들었다.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 자신이 당한 끔찍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두 여성의 용기 때문이었다.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에 대한 남성의 공격을 제대로 바라보려는 남성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피해자로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여성들의 분노는 당연하다. 사건이 나기 직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현실문화)라는 책을 봤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벌인 에멀린 핑크허스트(1858~1928)의 자서전이었다. 핑크허스트는 참정권을 얻기 위해 폭력시위를 이끌었고, 이때 전투파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서프러제트’라고 불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싸우지 않고는, 폭력에 호소하지 않고는, 심지어 목숨을 버리지 않고는 편견과 모멸과 무관심에 대항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100년이 지난 한국의 여성들 앞에는 깨부술 수 없는 견고한 편견과 무관심의 장벽이 놓여 있다.


25년 전 데이트 강간 피해 여성은 단호히 말한다. “아무도 내가 겪은 일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 스탠퍼드대 사건의 피해 여성은 이렇게 당부했다. “싸움을 절대 멈추지 말라.”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들이 보여준 것은 싸우겠다는 용기나 다름없다. 정녕 싸우지 않고도 여성들이 이기는 방법은 없는 걸까. 남성들이 앞장선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남성들이 답할 차례다. 공감을 넘어 의견을 표출하고 행동으로 연대를 보여줄 때다. 여성들의 싸움을 멈추게 하는 길은 결국 남성들에게 달려 있다.

2. [동아일보][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충고를 해도 미래지향형이 유리하다옳

은 말이 항상 먹히는 것은 아니다. 피드백이 대표적이다. 상사의 입장에서 무엇이 잘 되었고 잘못되었는지 후배 직원에게 이야기하면 전자는 먹히지만 후자는 옳은 소리라는 건 알겠는데 몸과 마음에서 거부하게 된다. 성인이 되어 누군가에게 ‘지적질’을 당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방어심리가 있으니까.


세계 최고의 리더십 코치인 마셜 골드스미스는 피드백보다는 피드포워드(feedforward)를 활용해볼 것을 제안한다. 피드백은 자동차로 치면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천장에 붙어 있는 뒷거울에 해당한다. 이는 후방, 즉 과거를 돌아보며 주는 평가이다. 피드포워드는 앞, 즉 미래에 더 잘하기 위한 조언을 구하거나 주는 행위이다. 피드백이 “제가 지난 1년 동안 어땠나요?”라고 묻는다면 피드포워드는 “제가 앞으로 1년 동안 좀 더 나은 과장 역할을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묻는다. 미래에 대한 조언을 주고받는 대화에서는 서로 방어적일 필요성이 매우 낮아진다. 자동차 운전을 하려면 뒤도 봐야 하지만 대부분 시선은 앞 유리창을 향해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피드백도 필요하지만 우리는 더 많은 피드포워드를 주고받을 필요가 있다. 


12월에 인사 평가가 있다고 치자. 대부분의 사람은 평가 시기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막판에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 전략을 바꿔보자. 1년의 절반 정도가 끝난 이 즈음 작년 말이나 올해 초 상사와 논의했던 연간 목표를 갖고 상사에게 차 한잔을 마시자고 하면서 먼저 피드포워드를 요청해보라.


“부장님, 올해도 절반이 지나갔는데요. 남아 있는 반년 동안 제가 어떤 점들을 신경 쓰면 좀 더 제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 조언 부탁합니다.”


물론 지난 반년 동안의 피드백도 요청하는 것이 좋다. 피드백을 줄 때까지 기다리는 직원과 스스로 먼저 요청하는 직원은 상사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 게다가 미래에 대한 피드포워드를 요청하는 직원에 대해서 상사는 남다르게 평가하지 않을까.


이 기회에 내가 일하고 있는 팀에서 회의 등을 할 때 과거에 대한 논의에 시간을 많이 쏟는지, 아니면 미래에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에 시간을 많이 쏟는지 생각해보자. 최근 만난 한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태평양지역 사장은 부하 직원들에게 과거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대신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빨리 보고하도록 하고, 격주로 열리는 회의에서는 향후 계획에 대해서만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고 했다.


선배가 부하 직원으로부터 듣는 피드백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먼저 후배들이 주는 긍정적 피드백에 너무 취하지 말자. 이러한 긍정적 피드백의 상당수는 거짓이기도 하다. “후배 직원들이 내 농담에 웃는다고 절대로 네가 웃겼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조언은 인사권을 쥐고 있는 상사에게 누가 안 웃어 주고 좋은 소리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회의에서 발표를 마치고 나서 후배에게 “내 발표 어땠니?”라고 묻는 것은 후배 입장에서는 “나한테 좋은 소리 한 번 해봐”라고 요청하는 것과 똑같은 질문이다. 만약 정말 앞으로 발표 실력을 높이고 싶어서 후배에게 진심 어린 피드백을 받고 싶다면 질문의 타이밍과 프레임을 바꿔야 가능하다. 발표 후가 아니라 발표 전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오늘 내 발표 잘 들은 후 네가 보기에 내가 잘한 것 한 가지와 개선해야 할 것 한 가지씩 적어 두었다가 내게 알려줄래? 다음 달에 더 중요한 발표가 있는데, 잘하고 싶어서 말이지.” 이렇게 되면 나보다 나이 어리고 직책 낮은 후배라 하더라도 좀 더 편하게 진정 어린 조언을 해줄 수 있다.


내 고객 중 한 기업의 임원은 1년 동안 리더로서 자신이 개선하고 싶은 행동을 한 가지를 정한 뒤 매달 7명의 상사, 동료, 부하 직원에게 피드백과 피드포워드를 구한다. 얼마 전 반년이 지나 여러 사람의 평가를 받았을 때 자신에 대한 평가가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임원의 경우 피드백과 피드포워드를 요청해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이다. 연말에 인사 평가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쯤 차 한잔하며 피드포워드를 구해보는 것은 어떨까.

3. [서울신문][박형주 세상 속 수학] 미술 작품 위작 가려내기

요즘 미술 위작품 얘기를 부쩍 자주 접한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는 1991년 작가가 위작이라고 선언했지만 미술관 측은 진품이라고 믿고 있어서 분쟁 중이다. 이우환 화백의 경우는 반대여서 그가 진품이라고 믿는 작품 13개를 경찰은 모두 위작이라고 발표했다.


감정을 위해서는 먼저 전문가가 육안으로 원작자의 작품 기법이나 사용 재료의 특성 등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원작자의 화풍이 시기에 따라 변해 온 이력을 꿰뚫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제작 시기나 사용된 재료 등을 알아내기 위해 화학적 방식이나 엑스레이와 적외선 분석 등의 방법도 쓰인다. 제작된 시기의 안료나 도구가 쓰였는지도 꼼꼼히 점검한다. 드러난 그림 아래에 숨겨진 밑그림을 파악해 제작 시기의 상이함을 알아내기도 한다. 물론 위작자들도 허송세월하는 게 아니라서 이런 방식의 허점을 파악하고 이용한다. 점입가경이다.


모방작이 다 나쁜 것만도 아니라서 문외한에게 혼란을 더한다.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박물관은 모방작도 하나 보관하고 있다. 고흐 사망 2년 후에 제작된 이 모방작이 진품보다 더 고흐의 화풍을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고흐가 재정적 궁핍함으로 인해 싸구려 물감을 사용하는 바람에 진품에서 주홍색이 변색됐지만 이 모방작은 그런 문제가 없어서 오히려 고흐의 스타일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위작 가려내기의 한계에 대해 획기적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 건 놀랍게도 수학자였다. 2008년 미국의 방송 제작 업체인 노바는 고흐의 작품 6개를 제시하고 이 중에 숨어 있는 위작품 하나를 찾아내는 챌린지를 진행했다. 참가 팀들이 이에 도전하는 과정은 다큐로 제작돼 PBS에서 방송됐다. 노바는 이 챌린지를 위해 유명 화가인 샬로테 캐스퍼스를 초빙해 진짜와 같은 수준의 위작을 만들어 냈고, 참가 팀들은 이걸 찾아내야 했다.


당시 프린스턴대학의 수학자 잉그리드 도브시 교수가 이끄는 팀은 웨이블릿이라는 수학 이론을 무기로 이 챌린지에 참가했고 성공적으로 위작을 가려냈다. 지금은 듀크대에 재직 중인 도브시 교수는 한걸음 더 나가서 고흐 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다’는 모방작도 가려냈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 사이 화풍의 유사성을 측정해 화풍을 시기적으로 분류하는 작업까지 해냈다.


도브시 교수의 관점은 원작자는 자기 생각의 표현에 집중하지만, 위작자는 원작과 동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사 과정에서 구체적인 선과 곡선을 그려 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주저함’이 숨어 있을 거라고 추정했다. 그녀는 이 주저함을 수학적으로 정량화해 찾아냈다. ‘모방작에 숨어 있는 주저함의 정도’를 추적하다니, 놀라운 관점의 전환 아닌가.


수학적으로는 그림을 표현하면서 윤곽과 상세 정보로 나누어 표현하는 것인데, 이 방식은 1990년대 초반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수억 개의 지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때 이미 사용했다. 현장에서 수거한 지문 하나를 보관 중인 수억 개와 어느 세월에 하나하나 대조한단 말인가. 큰 윤곽만 비교해 아예 다른 건 배제하면 비교 대상이 수백만 개로 준다는 아이디어로 FBI는 이 난제를 해결했다.


FBI의 지문 데이터베이스나 고흐의 위작품을 가려내는 수학은 단지 유용할 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세간을 흔드는 미술품 위작 논란도 이제 수학의 힘을 빌려 보길 권한다.

4. [주간경향][주간 여적]인부와 대학생

‘등록금 벌려던 대학생 포함 4명 사망’. 2011년 7월 2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이마트 탄현점 기계실에서 냉동기 보수작업을 하던 노동자 4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언론들은 대부분 제2보를 이렇게 내보냈다. 제1보는 ‘이마트 탄현점 인부 4명 사망’이었다. ‘인부들의 죽음’은 보통 관심을 못 받지만 사고 장소가 국내 최대 유통업체 이마트여서 취재진이 몰렸다.


희생자 중에 서울시립대 휴학생 황승원씨(당시 22세)가 있었다. 군 제대 후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다 한 달 만에 변을 당했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부들의 죽음’은 ‘대학생의 죽음’으로 격상됐다. 언론이 앞장섰다. “이마트 일산 탄현점에서 질식사한 노동자 중 한 명이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하던 ‘가난한 휴학생’으로 밝혀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야당 정치인들과 시민사회단체는 무거운 등록금으로 대학생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말할 때 이 사고를 꺼냈다. 서울광장에서는 매일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해 ‘국가장학금’,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등이 마련됐다. ‘반값등록금’에 맞춰 이슈화가 진행되는 동안 숨진 3명의 존재와 황씨를 포함한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직접적인 원인은 지워졌다.

‘누군가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한다’는 문제만큼 한국인들을 분노하게 만들 수 있는 이슈는 드물다. 동료 시민의 교육받을 권리 앞에서는 이처럼 뜨거운 사람들이 역시 동료 시민인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보내는 무덤덤한 반응은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교육문제에 관한 공분조차 실상은 이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학 나올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하지만, 그 기회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낙오됐거나 자발적으로 다른 길을 택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불평등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한 제 탓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인부’들의 죽음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법원도 노동부도 노동자를 숨지게 한 기업에 약한 책임만 묻고, 세월호 참사 이후 ‘놀러가다 죽은 아이들에게 무슨 보상이냐’는 막말이 나온 이유다. 이마트 사고의 원인은 냉매가스에 의한 질식사. ‘인부’들에게 안전마스크라도 지급했다면 피할 수 있었다.


19세 노동자가 숨진 구의역 9-4 승강장은 조금 달랐다. 한국 사회를 작동시켜온 오래된 원리를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거부한다는 메시지로 가득 차 있었다. 황승원씨를 다시 떠올린다. 공부하려 했던 대학생, 위험에 내몰렸던 노동자, 누구와도 대체 불가능한 인간. 숨진 모두가 그러했다.

5. [머니투데이][광화문]형제 갈등이 초래한 롯데사태, 치킨게임은 막아야

​1 "롯데 경영권을 확보하면 롯데홀딩스 종업원지주회 1인당 2억5000만엔(25억원) 지급하겠다."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2월 도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한·일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롯데홀딩스 주총을 앞두고 캐스팅보트를 쥔 종업원지주회를 겨냥한 승부수였다. 130여명으로 알려진 회원들에게 1인당 수십억의 현금을 주겠다고 회유할 정도로 다급함이 엿보엿지만 3월 주총은 신동빈 회장의 완승으로 끝났다. 

2 "지금 상황에서는 안되고, 신 전 부회장이 백기투항해야 한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만난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을 껴안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신 전 부회장이 신 회장의 '원리더'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만큼 화해는 이르고 양측 감정의 골도 깊다고 밝혔다. 


3 "검찰 내사 사실을 인지하고 그룹 차원에서 증거를 인멸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어 압수수색이 불가피했다." 검찰은 10일 그룹 정책본부와 롯데호텔, 롯데쇼핑, 롯데홈쇼핑 등 계열사 6곳, 신 회장 평창동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검사, 수사관 200여 명이 투입됐는데 2005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 당시 100여명, 2007년 삼성비자금 사건 때 40여명과 비교하면 단일기업 수사로는 최대규모 인원이 동원됐다. 검찰이 이번 사건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두고 있는지 알수 있다.


검찰 공세 배경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10년간 35건에 달하는 인수합병(M&A)으로 재계 5위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비자금 조성, 배임 등 불법 행위를 처단하겠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제2롯데월드' 건축허가 등 이명박 정부에서 특혜를 누린 롯데에 대한 수사가 MB계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포스코, 효성, CJ에 이은 친MB 기업에 대한 사정(司政)이라는 것.


하지만 재계 인사들은 사태 발단이 결국 형제간 분쟁이라고 지적했다.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의 반목이 검찰이라는 호랑이를 안방으로 불러 들였다는 것이다. 신동주측은 부인하지만 분쟁 과정에서 확보한 각종 자료, 제보를 검찰에 제공하고 수사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부회장 의도가 '판흔들기'라면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 롯데 '원리더' 자리를 굳힌 신 회장은 자신을 겨냥한 검찰의 칼날에 노출됐다. 검찰이 14일에도 롯데건설, 케미칼, 제과 등 10여곳을 2차 압수수색하고 이인원 부회장을 비롯한 핵심 관계자 소환을 준비하는 등 롯데를 향한 압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파장 분위기였던 6월 롯데홀딩스 정기주총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이 설립한 SDJ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이번 주총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동안 번번이 실패한 종업원지주회 설득에 진전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롯데홀딩스를 통해 양국 롯데를 지배하는 신 회장으로서는 검찰 수사 만큼이나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신 회장은 롯데홀딩스 주총을 마무리하고 귀국할 예정이다. 주총장에서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며 해임을 시도할 신 전 부회장을 막기 위해서는 신 회장이 자리를 지킬 수 밖 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귀국을 서둘러야 한다. 창립 이후 최대 위기로 평가받는 현 국면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서는 신 회장이 직접 나서는 길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 전 부회장도 금도가 있어야 한다. 형제간 우애가 이미 물건너간지 오래라고 해도 이판사판식 '치킨게임'으로는 부정적 결과만 가져올 것이다. 땅에 떨어진 '롯데' 이미지도 문제지만 10만 임직원의 명예도 걸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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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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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4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20대 국회 '협치와 소통'므로 민생 돌봐야

20대 국회가 어제 개원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개원사에서 “정치의 기본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민생 국회’를 다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3당 대표회담을 정례화하고 국정운영의 동반자로서 국회를 존중할 것”이라며 소통·협력의 국정운영을 강조했다. 행정부와 입법부 수장이 협치와 소통으로 민생을 돌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이해된다. 20대 국회의 순조로운 출발을 보는 듯해 반갑다.


국민은 지난 총선에서 어느 당도 일방적으로 정국 주도권을 쥘 수 없도록 여소야대의 3당 체제를 선택했다. 갈등과 대립의 구태에서 벗어나 협치와 상생의 정치를 하라는 명령이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은 한목소리로 국민 요구에 부응하겠다고 했다. 당리당략과 정쟁으로 시간을 허송하지 않고 일하는 국회, 생산적인 국회상을 정립하겠다는 다짐이다. 


하지만 걱정이 없지 않다. 가습기 살균제, 서별관회의, 어버이연합 지원, 정운호 게이트 등의 청문회 여부를 둘러싸고 여야 간 공방과 갈등이 예고돼 있다. 국회법 개정안 재의, 조선·해운 구조조정, 노동 및 공공개혁 등을 둘러싼 힘겨루기도 심상치 않다. 자칫 협치는 고사하고 국회가 파행할 수도 있다. 내년의 대통령선거도 생산적 국회에는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우리 현실은 경제·안보의 동시 위기다.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조선·해운 구조조정이 발등의 불이다. 저출산·고령화, 청년실업, 가계부채 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여부 등 대외환경도 불안정하다. 북한의 핵 실험 이후 대북제재로 얽힌 한반도의 외교 및 안보 지형도 불투명하다. 어느 하나 녹록한 과제가 없다.


20대 국회가 난제를 극복하고 민생국회로 거듭나려면 대립과 갈등의 패러다임을 벗어던져야 한다. 국민의 명령인 협치와 상생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정 의장은 “도탄에 빠진 민생경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갈등과 분열의 상처를 치유해 하나 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국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20대 국회에서는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상황’이 다시 없기를 바란다.

[서울신문]

2. 혁신은 뒷전이고 감투싸움에만 몰두한 與

새누리당이 혁신의 방향을 좀처럼 잡지 못하고 있다. 총선 참패 뒤 혁신이 필요하다고 부르짖으면서도 막상 정치공학적 이해 앞에선 본인과 계파 이익에 매달리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정진석 원내대표의 비상대책위원회가 친박계의 보이콧으로 무산된 뒤 새로 출범한 김희옥 혁신비대위는 좀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우려했던 ‘관리형 비대위’ 전락이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그 와중에 중진 의원들은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싸움에 몰두해 국민을 실망시켰다.


김희옥 비대위원장은 지난 10일 새누리당 정책 워크숍에서 “국민의 눈높이와 뜻을 받들어 혁신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출범 2주가 돼 가도록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다. 당면 과제인 계파 청산과 무소속 의원 복당은 실질적인 진전이 없고, 비대위원장으로서 구체적인 쇄신안도 내놓지 못했다. 청년 간담회 등 민생 일정이나 소화하고 있다. 민생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비대위원장이 혁신을 제쳐 놓고 다닐 만한 행사는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친박, 비박계 중진 의원들을 만나 계파적 이해를 조정하고, 쇄신을 위한 실천 방안들을 하나씩 내놓아야 할 때라고 본다.


당 혁신은 지지부진한데 중진 의원들은 상임위원장 감투싸움에만 몰두했다. 새누리당은 어제 20대 국회 전반기를 이끌어 갈 상임위원장 후보들을 결정했다. 기획재정위원장에는 4선의 조경태 의원, 안전행정위원장에는 3선의 유재중 의원이 경선을 통해 선출됐다. 나머지 상임위원장은 의원들 간 조율을 통해 결정됐다. 선출 과정에서 내홍이 극심했다. 상임위원장 후보군인 3·4선급 의원들이 너나없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조율이 안 돼 경선으로 가거나, 임기를 쪼개 맡는 기형적 모양새를 연출했다. 법사위원장은 권성동·여상규 의원이 1년씩 나눠 맡기로 했고, 나머지 2년은 홍일표 의원이 책임지기로 했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장과 정무위원장, 국방위원장, 정보위원장도 임기가 1년씩 쪼개졌다.


상임위는 행정 부처의 정책과 법안을 심의, 의결하는 국회 핵심 기관이다. 위원장에게 무엇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한데 지역구 예산 우선 배정 등 각종 특혜만 생각하고 몰려들어 이런 사태를 부른 것이다.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혹독하게 변신하라’는 민의를 확인했다. 조만간 전당대회를 열어야 하고, 그 후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매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혁신이 지체될수록 지지층만 떨어져 나갈 것이다.

3. 방위산업까지 해킹한 北, 언제까지 당할 텐가

북한이 한진그룹과 SK그룹 계열사들의 전산망을 해킹해 무려 4만 2608건의 자료를 빼내 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 10개사와 SK네트워크 등 SK그룹 17개사가 북한의 사이버 공격 대상이 됐다. 대한항공은 항공운송이 주력 사업이지만 방위산업을 비롯한 항공우주 분야 사업 규모도 적지 않다. SK그룹은 잘 알려진 것처럼 국가 기간산업이나 다름없는 정보통신과 에너지 분야를 대표한다. 유출된 자료 가운데는 군 통신망 자료와 우리 군의 주력 전투기인 F15의 날개 설계도도 들어 있다. 개별 기업의 기밀을 넘어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에서 놀랍고 걱정스럽다. 북한은 정보통신 대기업 KT에 대한 사이버 공격도 시도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북한의 의도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북한은 우리 업체가 개발한 개인용컴퓨터 통합관리망을 사이버 침투에 이용했다고 한다. 관리자가 원격으로 다수의 개인용컴퓨터를 관리할 수 있어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 소프트웨어다. 실제로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대기업 등 모두 160곳의 통합관리망이 북한의 공격에 뚫렸다. 이렇게 북한의 통제 아래 들어간 개인용컴퓨터가 모두 14만대에 이른다. “북한이 국가적 규모의 사이버 테러를 계획하면서 장기간 사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수사 당국의 설명이다. 2013년 9000억원의 손실을 발생시킨 ‘3·20 사이버’ 테러 당시 이용된 개인용컴퓨터가 4만 8284대였다. ‘통합관리망 테러’가 현실화됐다면 사회적 혼란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지만 이미 한진과 SK가 입은 사이버 테러의 규모는 작지 않다. 나아가 북한이 탈취한 정보를 활용해 우리에게 어떤 타격을 가할지는 더더욱 알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은 2009년 정찰총국을 창설해 사이버 테러에 나서고 있다. 정찰총국의 최정예 해커는 3000~4000명에 이르고, 해마다 수백 명씩 늘어나고 있다. 정보통신 후진국인 북한이지만 사이버 공격 능력만큼은 세계 최상위 수준으로 평가되곤 한다. 반면 우리는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 능력을 자랑하지만 보안에는 취약하다.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지탄받는 사이버 테러를 당장 멈춰야 한다. 정보통신 능력이 있다면 인민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써야 할 것이다. 우리 기업과 정부도 사이버 도발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북한이 깨닫도록 보안 능력을 키워야 한다.

4. '한국판 말뫼의 눈물' 막을 협치 요청한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20대 국회 개원 연설을 통해 “국민을 위한 일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면서 국정의 한 축을 든든히 받쳐 달라고 20대 국회에 당부했다. 국민이 바라는 ‘화합’과 ‘협치’를 위해 국회를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존중하겠다고도 했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개원사를 통해 “국민이 내린 준엄한 명령은 여야의 극한 대립을 청산하고 서로 합심해 일하는 국회를 만들라는 것”이라면서 국회가 실질적으로 국정의 한 축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과 20대 국회의 이 같은 ‘협치선언’이 군더더기 없는 실천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박 대통령은 첫 번째 협치 과제로 ‘발등의 불’로 떨어진 구조조정을 꺼내 들었다.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비장한 표현까지 사용했다. 지금 구조조정을 해 내지 못한다면 2000년대 초 스웨덴 말뫼의 세계적인 조선업체 코쿰스가 문을 닫으면서 단돈 1달러에 핵심 설비인 골리앗 크레인을 현대중공업에 넘긴 ‘말뫼의 눈물’이 이제는 우리의 눈물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말뫼 주민들은 해체돼 팔려 가는 골리앗 크레인을 지켜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이 장면을 중계하던 현지 방송은 장송곡을 함께 내보내 스웨덴 조선산업의 종말을 알렸다. 그 비극이 지금 울산과 거제에서 재연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산업 구조조정은 시장 원리에 따라 기업과 채권단이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기업과 채권단이 ‘사즉생’의 각오로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실직자 재훈련 등 정부의 보완 대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동개혁과 규제개혁을 통해 노동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나가야 구조조정이 성공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이 대목에서 국회의 도움과 협조를 정중하게 요청했다.


사실 “국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거나 “국회가 혜안을 가지고 뒷받침해 주시길 바란다”는 박 대통령의 표현은 국회, 특히 야당을 윽박지르고 질타하던 19대 국회 때에 비해 확연하게 부드러워졌다. 여소야대, 3당 체제의 국회에서는 야당의 협조가 없이는 그 어떤 국정 과제도 추진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했겠지만 국회를 이제 국정의 동반자로 존중하겠다는 대(對)국회 인식 변화의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국회와의 적극적인 소통과 협력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국정 운영을 펼치겠다는 다짐을 넘어 실천적 조치들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위기의 진단과 해법은 정부·여당과 야당이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관건은 진정한 소통을 통해 그 차이를 좁혀 나가는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의견을 경청하고 토론한다면 이견을 차츰 좁혀 해법을 도출할 수 있다.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또다시 구조조정을 미적댄다면 울산과 거제의 골리앗 크레인이 단돈 1달러에 팔려 나가 한국 조선산업의 종말을 고하는 ‘울산의 눈물’ ‘거제의 눈물’이 현실화될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당장이라도 머리를 맞대 한국판 ‘말뫼의 눈물’만큼은 막아야 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한, 국민이 바라는 정치다.

[동아일보]

5. 이슬람·동성애·총기… 美 뇌관 터뜨린 反인륜 테러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게이클럽에서 12일 새벽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총기난사로 104명의 사상자를 낸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테러사건이 발생했다. 현장에서 경찰에 사살된 범인 오마르 마틴은 범행 직전 한국의 119 격인 911에 전화를 걸어 이슬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충성서약을 했던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이다. IS는 자신들과 연관이 없는 자생적 테러리스트의 범행을 독려하기 위해 911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충성맹세를 공표하기만 하면 IS의 테러로 인정해 준다. 평소 조울증세가 있고 동성애를 혐오했다는 그가 어떤 동기로 범행을 자행했건, 무고한 시민을 살상한 반(反)인륜적 범죄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이번 테러는 동성애자들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테러 행위이자 증오 범죄 행위”로 규정했다. 이슬람권에선 동성애를 도덕적 일탈을 넘어 중대한 범죄로 보는 경향이 있다. 2001년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9·11테러 충격이 가시지 않은 미국에서 반이슬람 정서가 다시 불붙고 성적(性的) 소수자와 총기 규제 문제를 놓고 논란과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11월 미 대선에도 후폭풍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테러를 막기 위해 무슬림 입국 금지, 미국 내 무슬림 데이터베이스화 등을 공약해 국제적 물의를 일으킨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테러 예방에 실패한 오바마 행정부를 비판하며 자기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이슬람 관련 언급을 삼간 채 동성애자에 대한 지지를 거듭 밝히며 총기 규제 강화를 주장했다. 이번 테러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떤 리더십이 미국을 하나로 모을 수 있을지 세계가 미국을 주시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 같은 총기 소유가 불가능하지만 테러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다. 현실에 대한 불만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터뜨리는 ‘외로운 늑대’에 대한 대비는 우리 사회에서도 필요하다. 미국이 이번 참사에 결코 굴하지 말고 다양한 인종과 종교, 가치 등을 포용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충격과 슬픔에 잠긴 미국인들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보낸다.

6. 기업부채 2위 중국에 IMF 경고, 3위 한국은 괜찮은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8개 신흥국 중 1위(88.4%), 기업부채 비율은 홍콩(213.7%) 중국(170.8%)에 이어 3위(106%)라고 국제결제은행(BIS)이 어제 밝혔다. 중국의 가계, 기업, 정부 부문을 합한 부채 비율은 254.8%로 미국(250.6%)을 처음 넘어섰다. 전날 국제통화기금(IMF)이 “중국 정부가 부채 억제에서 실패하면 금융위기를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한 데 이어 중국발(發) 부채 리스크가 통계로 확인됐다.


한국의 가계부채가 1200조 원을 돌파하고 기업부채가 1700조 원에 이르러도 경제 규모가 커진 데 따른 ‘성장통’이라고 뭉뚱그리면 위기감은 둔해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주목할 점은 중국 변수다. 중국의 국영기업들은 은행 빚을 무리한 인수합병(M&A)과 설비투자에 퍼부어 성장률을 끌어올려 왔다. 성장이 벽에 부닥치자 부실채권이 쌓이면서 이제 정치권만 바라보는 상황이다. 중국의 부채가 터지면 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성장이 멈출 뿐 아니라 지금까지 관리해 왔던 ‘안전한 부채’가 시한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주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정부가 이를 소비 회복의 기폭제로만 해석하는 것은 한쪽 면만 보는 단견이다. 돈이 경제 회복에 물꼬를 트는 쪽으로 흐르지 않고 부동산 등 비생산적인 분야로만 흐른다면 금리 인하는 경제의 거품만 키우는 임시 진통제일 뿐이다. 한국은 부채 주도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고 고령화로 구조적 성장에 제약을 받고 있다는 모건스탠리의 경고가 들리지 않는가.


정부는 중국발 부채 위기를 주시하면서 국내 부채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 국내에서 빚을 진 가계 중 빚을 갚기 힘든 한계 가구가 무려 160만 가구다. 기업 부실채권에 대해 충당금을 충분히 쌓는 한편 부동산 관련 대출이 급증하지 않도록 대출 기준을 강화하는 등 인기를 끌기 힘든 정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 “부채의 질이 양호하다”고 하는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직전 “경제의 펀더멘털이 양호하다”고 했던 보신주의와 다를 게 없다.

7. 20대 국회, '87년 체제' 바꿀 개헌논의 시작해보라

정세균 국회의장이 어제 20대 국회 개원사에서 “내년이면 소위 ‘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된다. 언제까지나 개헌을 외면할 수는 없다”며 개헌론을 공식 제기했다. 정 의장은 개헌의 목표를 국민 통합으로 제시하면서 “국회의장으로서 20대 국회가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헌정사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겠다”고 밝혔다. 20대 국회의장이 개원 일성(一聲)으로 개헌론에 불을 붙인 것은 대통령선거를 1년 반 앞두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한반도선진화재단 등 6개 사회단체 연합체인 국가전략포럼도 어제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정치인이 참석한 가운데 ‘개헌, 우리 시대의 과제’라는 주제의 특강을 열었다. 인명진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은 “5년 대통령 단임제를 30년간 시행하며 6명의 대통령을 겪었지만 성공했다고 평가할 만한 대통령이 없다”며 이는 사람의 문제가 아닌 제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당선되고 나면 더는 민심을 살필 필요가 없다는 오만과 5년 안에 치적 쌓기에 급급한 정책, 필연적 레임덕과 퇴임 후를 대비한 대못 박기 등이 대통령들을 불행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국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은 개원 연설에서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서 국회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국회 차원의 개헌 논의에 대해 ‘국정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며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본보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 정부(32.7%) 또는 차기 정부(41.1%)에서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4·13총선 민의가 만든 여소야대(與小野大) 3당 체제는 수명이 다한 87년 체제를 바꾸라는 경고등이다. 대통령도 소통과 협력을 강조한 만큼 이제는 판을 바꿔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은 나누고, ‘제왕적 국회’의 책임은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헌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과거 이명박, 박근혜 후보처럼 강력한 미래권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선 개헌을 추진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 새누리당은 차기 주자가 안 보이는, 사실상 불임(不姙) 상태다. 친박(친박근혜)계에서 끊임없이 ‘반기문 대통령, 친박 실세 총리’를 염두에 둔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이 나오는 이유다. 개헌론을 제기한 정 의장은 더불어민주당 출신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개헌을 전제로 한 ‘대선 결선투표’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박 대통령도 지난 대선을 앞두고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한 바 있다. 임기 후반 대통령의 개헌 추진은 ‘권력 연장 의도’라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만큼 20대 국회 주도로 개헌의 큰 그림을 논의해 볼만하다.

[매일경제]

8.한·미FTA 내세운 美 통상압박 치밀한 대응책 마련해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 상황을 평가하는 미국의 보고서에 한·미 FTA 성과에 대한 비판과 시정 요구가 담길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미국이 각국과 체결한 FTA의 영향을 분석하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의 평가보고서로 오는 29일 공개될 예정이다.


미국 대선에서 각 당 후보들의 보호무역주의 성향이 갈수록 커지고, 양자 간 FTA 체결 후 미국의 무역수지가 가장 악화된 대상 국가로 한국을 꼽는 민간 연구소 분석까지 나와 우리를 향한 통상 압박이 커질 조짐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흑자는 283억달러로 사상 최대 규모였는데 한·미 FTA 발효 직전인 2011년 132억6100만달러였으니 미국 입장에서는 눈에 띄게 적자 폭이 커진 셈이다. 이런 점을 겨냥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는 한·미 FTA로 적자만 오히려 늘었다며 재개정을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 간 교역 내용을 세밀하게 뜯어보면 미국의 주장이 얼마나 일방적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수출 증가에서는 한·미 FTA 영향을 받는 품목보다 그러지 않는 품목이 더 많이 차지한다.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액은 미국 기업의 대한(對韓) 투자액의 두 배에 달한다. 무엇보다 미국은 한·미 FTA 이후 서비스수지에서 한국에 압도적인 흑자를 기록해 2015년의 경우 114억달러에 달했다. 미국 기업의 특허권료 수입이나 유학생 송금 덕분이다. 주미 한국대사관 집계로는 미국의 대한 서비스 분야 무역흑자는 2011~2015년 14% 증가한 반면 같은 분야 한국의 대미 흑자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내년부터 미국의 셰일가스가 한국에 수출되기 시작하면 현재의 무역수지 불균형은 곧 개선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이번 보고서를 내세워 반덤핑 및 상계관세 부과 등 기존의 무역규제 외에 환율조작에 대한 제재, 지식재산권 보호 관련법 집행 등 고강도 대응책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적극 나서 미국 조야와 업계에 양국 교역의 세부 내용을 설명하고 협의해 부당한 통상 압박이 더 고조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무분별한 보호무역주의에 감정적으로 맞서지 말고 합리적인 논리와 근거를 갖고 대응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9. 국회-정부 개헌시기와 방향 시각차부터 해소하라

20대 국회가 개원한 13일 여소야대 정치 지형에 맞춰 '협치'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그와 동시에 '개헌'이라는 거대담론도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정세균 신임 국회의장은 내년이면 현행 헌법이 제정된 지 30년째가 된다며 "개헌은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국회에서는 '개헌 우리 시대의 과제'라는 세미나도 열렸고 김무성 이주영 김영춘 등 여야 의원들이 다수 참석했다. 새 국회 출범을 계기로 개헌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정부 분위기와는 또다시 엇박자가 느껴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20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지금 우리는 우리 경제와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조정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 문제를 거론하며 19대 국회에서 무산된 노동개혁법 처리를 촉구했다. "우리 경제를 도약시키기 위한 핵심 열쇠는 규제개혁"이라면서 규제개혁특별법, 규제프리존특별법 통과도 호소했다. 박 대통령은 2014년 10월 국가 역량을 분산시키는 블랙홀이라고 지칭하며 개헌론에 제동을 걸었던 경험이 있다. 이날도 규제를 12차례, 일자리와 구조조정을 각각 11차례 언급하면서도 개헌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아 정세균 의장과는 뚜렷한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구조조정과 규제개혁 모두 정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라며 국회 협조를 요청했다. 우리 앞에 놓인 소중한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도 했다. 개헌도 마찬가지다. 국회 의욕만으로는 힘든 과제다. 19대 국회 때에도 2012년 말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발족됐고 이 모임 소속 의원 수가 한때 155명으로 개헌안 발의 기준을 넘기도 했다. 2013년 5월에는 여야 합의로 국회의장 직속 '개헌연구회'를 설치하기도 했지만 각종 사건사고 속에 국민적 관심과 추동력을 얻는 데 실패했다. 경제 살리기이든 개헌이든 그것을 추진하는 데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고 차기 대선을 1년6개월가량 남겨둔 지금은 어느 측면에서나 매우 중요한 시기다. 국회와 정부가 20대 국회 개원일을 맞아 한목소리로 협치를 강조했는데 그러려면 개헌을 비롯한 국정과제의 우선순위에 대한 시각 차부터 해소해야 할 것이다.

10. 구조조정 가로막는 대우조선 노조, 공멸하자는 건가대

우조선해양 노동조합이 특수선 사업 분할 및 인력 2000명 감축을 골자로 하는 구조조정 자구계획안에 반발하며 전체 조합원 7000여 명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 투표에 돌입했다. 노조 측은 "일방적인 구조조정 저지와 총고용 보장을 위해 찬반 투표에 나섰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노조도 오는 17일 파업을 위한 임단협 쟁의 발생을 결의할 예정이다. 이들의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현재 건조 중인 해양플랜트 납기에 차질이 생겨 조 단위 추가 손실이 불가피하다.


지난 8일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가 11조원 규모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하는 대신 조선 3사에 대해 인력 30% 감축, 설비 20% 축소, 자회사 매각 등 10조3500억원 규모 자구계획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웠는데 첫발을 떼기도 전부터 노조라는 암초를 만난 셈이다.


조선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와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대주주와 경영진의 책임부터 엄정하게 물어야 한다는 노조의 주장은 일면 타당하다. 실제로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 등 경영진과 회계법인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다. 2000년 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된 뒤 공적자금과 국책은행 자금을 합쳐 7조원 넘는 돈이 투입됐음에도 천문학적 규모의 부실 회사로 전락한 경위가 소상히 밝혀지고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작년 한 해에만 영업적자 5조5051억원을 기록하고 부채비율은 7300%를 넘어선 데다 추가적으로 국민 혈세 수조 원을 투입받아야 할 회사의 노조가 자구계획 자체를 반대하면서 급기야 파업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행태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대우조선 노조는 특히 지난해 10월 4조2000억원을 긴급 지원받으면서 일체의 쟁의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채권단에 제출한 바 있는데 이 같은 약속마저 내팽개친다면 국민이 혈세 투입을 용납하겠는가.


대우조선 노조는 회사 경영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평균 7000만원대의 고연봉과 각종 복지 혜택을 누리며 철밥통을 과시해왔다. 당장 생사의 기로에 직면해 있는 하도급업체와 협력업체 근로자들을 생각해서라도 노조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회사 살리기에 앞장서기 바란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현경숙의 시각> 변화의 DNA

태국에 근무했던 공공기관 주재원은 그곳에 사는 재미 중 하나로 옷값이 거의 안 든다는 점을 꼽았다. 반소매 셔츠와 반바지 서너 벌로 몇 년을 버틸 수 있다. 사계절 무더운 날씨 때문에 화려하고 비싼 옷은 별 소용 없다. 1년 내내 기후 변화가 없으니 국민 성격도 기복이 없다. 느긋하고 놀라지 않고 웬만한 일에는 그저 마음 좋게 웃는다. 


한국 조직폭력배는 태국서 힘자랑, 무기 자랑하지 않는 게 좋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여유로운 태국인들은 먼저 화를 내거나 상대를 치지 않지만, 정말 분노했을 때는 무기를 들며, 반드시 이를 사용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무기로 위협하면 자신을 향해 사용하겠다는 의도로 파악한다. 한국 영화 속 '조폭'처럼 "너 맛 좀 볼래"라며 흉기를 흔들어대거나 약을 올리면 자신을 해치려는 것으로 간주하고 바로 공격한다. 그래서 태국에서는 싸우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위협을 위한 위협을 하다간 큰코다치기 쉽다.


이런 데서 볼 수 있는 차이는 기후 등 자연환경에서 비롯되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 같다. 한국인이 성격 급하다거나 기분이 잘 바뀐다는 것은 뚜렷한 사계절 덕분 아닐까. 가마솥더위, 얼어 죽을 수도 있는 혹한 등 3개월 마다 바뀌는 계절로 인해 한국인에겐 변화에 대한 적응력, 임기응변, 순발력이 유전자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서울 한복판 전통문화의 거리 인사동을 기점으로 삼청동, 북촌, 서촌, 부암동, 평창동으로 뻗을 조짐을 보이던 일종의 문화 벨트가 몇 년 만에 완연한 모습을 갖췄다. 윤동주문학관, 청운도서관, 서울미술관, 화랑, 개성 있는 음식점과 찻집, 게스트하우스 등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곳곳에서 드라마 촬영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서울이 거의 통째로 아파트촌으로 변한 바람에 단독주택들이 남아있는 이런 동네 말고는 '그림 되는' 장소가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게 방송계 인사의 설명이다. 주말이면 연인, 부부, 아이 손을 잡은 부모들이 담벼락에 난, 별것도 아닌 꽃과 나무를 구경하기 위해 골목골목을 찾는다. 사람 냄새가 그리운 데서 온 변화다. 


인간사회만 빨리 바뀌는 게 아니다. 그 속의 사람을 닮은 듯 한국은 자연도 시시각각 변화한다.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 분지와 계곡에 들어앉은 부암동은 계절이 영화 장면 넘어가듯 한다. 도심보다 기온이 2~3도 낮아 강원도 산골 속 같은 겨울이 끝나면 인왕산 둘레길과 북악스카이웨이를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흐드러지게 휘감는가 싶은데, 어느새 아카시아가 산을 꽃으로 하얗게 뒤덮고 아찔한 향기로 진동시킨다. 울긋불긋 꽃 대궐이 스러지는 게 안타까워지려고 하면 꽃보다 어여쁘고 파릇한 신록이 천지를 연둣빛으로 물들인다. 5월에는 '꽃보다 신록'이다. 성하의 문턱 6월 북한산 형제봉에서 내려다본 서울은 우람하게 무성해진 숲과 당당한 바위들에 둘러싸여 천 년의 반석 위에 앉은 듯하다. 수십 년 동안 격렬하게 진행된 개발 속에서 북한, 인왕, 북악이 서울의 '허파'로 건재함에 안도한다. 


3년 만에 돌아온 서울에서 가장 낯선 변화는 뭐니뭐니해도 광화문 세종로를 오가는 인파의 무표정과 그들 사이에 부는 찬바람이다. 서울은 우울하고 기운 없어 보였다. 저성장과 양극화가 현재를 규정하는 새 기준이 되고, 실업은 젊은이들에게 이 땅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다. 한국 경제는 더는 고도성장이 불가능하단다. 계급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었고, 비정규직이 정규직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와 같다. 2004년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은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지 2년이나 지났지만, 승리의 감격과 열기가 가시지 않은 채 희망과 활력으로 떠돌고 있었다. '다이내믹 코리아'가 10년 만에 딴 나라로 변했다.


부익부 빈익빈, 정규·비정규의 '이중 국민' 구조는 이미 굳어진 걸까. 한국인의 변화 유전자(DNA)에서 답을 찾는다. 우리 국민은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것을 알고, 봄을 맞기 위해 춥고 긴 겨울을 견디는 것이 체화돼 있다. 역동적일 뿐 아니라 평등의식도 강하다. 사촌이 땅 사면 나도 사야지 가만히 있지는 못한다. 'IMF' 위기 때 시작된 양극화가 더는 악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빈부, 계층 격차가 손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도 변화를 직감하게 한다. 임금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은 3명 중 1명이다. 이 추세라면 비정규가 정규가 될 판이다. 자살률, 노인 빈곤율, 저출산, 이혼 증가율, 노동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등 권이다. '묻지 마 범죄'는 분노한 민심의 단면이다. 비정규직, 하도급 근로자들의 자살과 사고로 인한 죽음의 행렬은 이대로는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변화의 조짐은 이미 보인다. 여야는 4·13 총선에서 경제, 복지 공약을 경쟁적으로 제시했고 선거 결과는 내년 대선을 예측불허로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으나 별로 진전되지 못한 경제민주화는 다음 대선에서도 중심 화두가 될 것이다. 양극화 해소, 고용의 질과 환경 개선은 저성장 탈출과 함께 이제 시대정신이 됐기 때문이다.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우선이냐의 소모적 논쟁은 중단돼야 한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찾는 것이 과제가 됐다. 우리에겐 70, 80년대 산업화를 위해 흘렸던 피땀, 위기 극복의 '금 모으기' 전설이 있다. 국민은 나라를 위해 움직일 태세가 돼 있다. 문제는 리더십이다. 지도자가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국민의 성원을 업고 '세계의 리더'가 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최근 대권 도전을 시사해 한국인과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의 대권 의지가 시대정신을 통찰하고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애국심의 발로이지 항간의 소문대로 하늘을 찌르는 욕심 때문이 아니길 바란다. 

2. [국민일보][한영주의 1318 희망공작소] 무기력과 의지

얼마 전 한 부모님이 중학생 자녀를 데리고 찾아오셨다. “얘만 보면 속이 터져요. 의욕이나 열정이 없어요. 선생님이 뭐든지 좀 하고 싶게 만들어주세요.” 아이의 ‘무기력’한 상태를 참다못해 전문가를 찾아와 ‘하고 싶은 의지’를 주입해달라는 것이다. 상담실 소파에 기대어 사색에 잠긴 듯 한곳을 응시하는 아이에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었다. “아무 것도요. 그냥 멍 때리는 거예요.”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더 적극적으로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요즘 아이들이 잘 쓰는 말이다. 바람의 대상이 ‘아무 것도 안하는 상태’이고 이런 수동적 상태에 ‘적극적으로’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도 역설적이다. 결국 아이들의 무기력은 불가항력적임과 동시에 다분히 자기가 결정하는 ‘의지적 무기력’이기도 하다. 가장 활기차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가슴이 벅차올라야 할 청소년기에 이들은 왜 이렇게 무기력한 걸까.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스스로 지향할 때 의지가 발동되기 마련이다. 무기력은 그 지향의 대상이 결여된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의 무기력은 주어진 과제(학업)나 일상(학교 가정)이 자기 스스로의 지향점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예를 들어 ‘공부 잘해서 성공하는 것’은 딱히 거부할 이유가 없는 당위적 목표이지만 아이에게는 부모의 욕망을 투사해놓은 것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면 그 결과는 당연히 ‘적극적 거부’의 표현인 무기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아이 스스로 의지를 발동하게 하는 방법은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뿐이다. 인간의 의식이 항상 무언가를 지향하는 특성이 있듯이 모든 아이들의 내면은 분명 어떤 형태의 지향점에는 열려있기 마련이다. 외부에서 주어진 ‘당위적 공부, 당위적 성공’ 이전에 자기 스스로의 자리를 잡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의 삶에 어떤 것도 미리 결정된 것이 없음을 보여주는 데에는 부모의 여유와 기다림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아이들이 일상을 멈추고 세상을 다시 보게 하는 여행이나 휴식도 매우 효과적이다.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작가는 작품과 함께 죽어야 한다’고 썼다. 그래야 독자의 자유로운 해석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것(장미)도 시간이 지나면 이름만 남는 기호와 이미지일 뿐이다. 새로운 세대에는 늘 새로운 포도주가 주어진다. 새 부대를 만들고 그것을 담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며 그 방법을 찾는 순간 그들은 주체적으로 의지를 발현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모든 아이들 안에는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의지의 씨앗이 있다. 그것은 기다림과 지지의 환경에서만 싹을 틔운다. 아이 스스로 자신 안에 있는 욕구와 의지를 찾아 발견하기 전에 섣불리 방향을 지시하거나 압력을 행사해서는 결코 튼실한 싹을 틔울 수 없다. 무기력은 바로 그러한 기다림과 지지를 갈구하는 아이들의 적극적 표현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3. [동아일보][림펜스의 한국 블로그]판정에 흥분하는 한국인 vs 자책하는 서양인

나는 우리 아버지처럼 테니스광이다. 공 치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한테 배웠다. 첫 라켓을 들게 된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나이에 시작해 ‘테니스 바이러스’에 일찍 걸렸다. 학창 시절 내내 규칙적으로 쳤고, 특히 사춘기 몇 년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씩 테니스클럽에서 열심히 훈련받았다. ‘플레이 테니스’란 전문 월간지를 구독하기도 했다. 매달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다 잡지가 우편으로 도착하자마자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그 자리에서 읽곤 했다. 봄, 여름 대회에도 몇 번 나갔는데 벨기에는 테니스가 워낙 인기 스포츠라 경쟁이 심했다. 괜찮은 랭킹에 이른 적은 없지만, 늘 즐겁게 쳤다. 


젊은 테니스광으로서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1989년 롤랑가로스 프랑스오픈이었다. 오래전부터 좋아해 왔던 어린 아웃사이더 마이클 창 선수가 천재적으로 우승한 해였다. 그리고 1년 뒤 1990년 6월에 벨기에 학교 선생들이 총파업을 해서 롤랑가로스에 더욱 몰두하게 됐다. 파업이 며칠밖에 안 걸릴 줄 알았는데 결국 거의 한 달간을 학교에 못 갔고, 그해 기말고사조차 취소됐다. 한국인에겐 상상도 안 되겠지만, 당시 프랑스어권 벨기에 초중고교 학생들이 모두 한 달 동안 집에서 빈둥거렸다. 나는 프랑스오픈 경기를 2주 동안에 걸쳐 하루 종일 TV로 봤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저녁까지 볼 수 있는 게임은 빠짐없이 다 본 것 같다. 밤엔 하이라이트도 다시 보고. 


그러다 대학생 때는 열심히 노느라 나도 모르게 한참 동안 테니스를 무시하게 됐다. 한국에 올 때도 테니스 라켓을 갖고 왔지만, 3년간 한두 번밖에 만지지 않았다. 한국 직장생활에 휩쓸려 테니스 친구를 찾아볼 생각도 못했다. 그러다 2008년 운이 좋게 다시 규칙적으로 주말에 공을 치게 되며 오래도록 깊은 잠에 빠졌던 내 안의 ‘테니스 바이러스’가 갑자기 깨어나게 됐다. 그동안 테니스를 그리워했던 걸 실감하지 못했는데, 다시 시작해 보니 친한 친구와 오랜만에 재회한 듯 행복함을 느꼈다. 게다가 한국인과 함께 치는 건 처음이었다. 


한국 사람은 서양인과 다른 방식으로 테니스 게임에 접근하는 것 같다. 우선 유럽에선 단식이 기본이지만, 한국은 거의 복식으로만 친다. ‘서울에 테니스장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했는데 한국인의 사교적인 성격에서 비롯된 것인지 복식을 더 선호하는 듯하다. 한국 사람은 운동할 때도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코트 옆에 기다리는 선수들을 열정적으로 응원해 주는 것도 흔한 일이다. 테니스장에 대한 태도도 서로 다른 것 같다. 한국인은 착하게, 젠틀하게 치는 편이라면 서양인은 기본적으로 경쟁심이 조금 더 강한 것 같다. 예를 들어 한국에선 경기를 할 때 상대방이 쉬운 공을 실수로 ‘낭비’하게 되면 ‘생큐’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욕심이 세서 질 줄 모르는 유럽인에겐 기분 나쁜, 도발적인 발언처럼 받아들일 수 있으니 서로 그런 말은 아예 삼간다. 


테니스장에서 소리 내 고함치는 방식도 다르다. 서양인은 플레이가 잘 안 되면 자기한테 스스로 화내는 모습을 보여 주는 일이 흔하다. 반면 한국인은 보통 다른 선수랑 논의할 때 제일 시끄럽다. 공이 라인에 닿았는지 아웃인지를 판단할 때 흥분한다. 선수 네 명, 그리고 옆에 있던 선수들까지 흥분해선 강하게 논쟁하는 장면을 몇 번 목격했다. 그래도 일반적으로 한국 선수들은 페어플레이를 하는 편이며 쾌활하다. 전략적으로 똑똑하게, 또 재밌게 치는 편이다. 


테니스 동호회 덕분에 잃어버렸던 즐거움을 되찾게 됐다. 이제 테니스 없는 생활은 생각도 할 수 없다. 여전히 가끔 유튜브에서 테니스 동영상을 찾아볼 정도로 테니스광이다. 지지난주 서울시청 앞 ‘롤랑가로스 인 더 시티’에 두 번이나 갔다. 거기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야외 생방송을 즐겼다. 테니스는 직접 치든 관람을 하든 멋있고 흥미로운 스포츠다. 몸 관리만 잘하면 60, 70대까지 계속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장점이다. 우리 아버지는 현재 67세인데, 아직도 매주 테니스를 치신다. 나도 그러고 싶다. 열정적으로 운동하는 게 행복하게 나이 먹는 방법인 것 같다.

4. [중앙일보][삶의 향기] 매력 <魅力>

매력은 종잡을 수가 없다. 따듯한 사람도 냉철한 사람도 매력이 있을 수 있다. 우아해서 좋은 음악도 있고 애절함으로 마음에 파고드는 음악도 있다.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가고 싶은 거리도 있고 복닥복닥 사는 모습이 발걸음을 잡아당기는 장터도 있다. 후더분한, 뾰로통한, 고색창연한, 구성진, 유머러스한 등이 모두 매력이란 말 앞에 올 수 있으니 매력은 말로 설명이 불가능한 것인가?


매력은 압도해 오는 무엇이 아니다. 끌어당기는 무엇이다. 더 보고 싶고 더 잘 듣고 싶어서 다가가게 하는 힘이다. 굳이 크거나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크기로야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능가할 수 없고 완벽하기로야 바흐의 ‘B단조 미사곡’을 따라가기 힘들지만 이들에게는 ‘매력 있다’는 말보다 다른 말이 더 적합할 듯하다. 그에 비하면 담양의 명옥헌이나 쇼팽의 녹턴은 작고 소박한 정자요 음악이지만 시시때때로 나를 끌어당긴다.


작고 소박해도 매력에는 대책이 없다(매(魅)자에는 귀신이란 뜻이 들어 있다). 애써 피하려고 해도 자꾸 눈길이 간다. 게다가 느닷없이 마음에 들어온다. 설명도 예고도 없이. 그냥 꽂힌다. 한 번 들었을 뿐인데 저도 모르게 내 입에서 하루 종일 그 선율이 흘러나오는 그런 것이다.


매력은 쉬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불암의 터프한 매력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음악도들은 저도 모르게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가를 흉내 낸다. 어린 시절 나는 슈베르트의 곡을 빼다 박은 곡을 쓰곤 했다. 그러나 스승들은 ‘나다운’ 것을 발견하라고 권하셨다. ‘나다움’이 없으면 그 음악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무엇이 나다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채 형성되지 않았으니 내가 누군지 알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슈베르트를 버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버렸어도 내가 좋아했던 음악가들의 자취는 두고두고 남았다. 그 남아서 버릴 수 없는 것이 지금 나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체취 같은 것이다. 체취는 내가 어찌할 수 없다. 만일 그 체취가 페로몬같이 다른 곤충을 끄는 힘을 가졌다면 그것이 매력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매력은 향수나 명품과는 다르다. 아무리 골라도 그것들은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냄새와 치장으로 나를 꾸미기 때문이다.


‘나답다’는 것은 ‘자연(自然)’스럽다는 말이다. 매력은 자연스럽다. 따듯한 사람은 저절로 따듯한 것이고 터프한 사람은 저절로 터프한 것이지 꾸며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꾸밈은 매력이 될 수 없다. 중국의 산시(山西)성에 여행했을 때의 얘기다. 한 도시에 갔더니 멋진 ‘옛 중국다운’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곧 그것이 새로 지은 관광용 거리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실망하는 나에게 동행한 사람의 얘기가 재미있었다. “이 거리가 지금은 사이비 전통거리지만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진짜 역사거리라고 우기면 어떻게 될까요?” 그럴까? 오래 가꾼 ‘나다움’이 아니라 새로 꾸민 ‘나다움’도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것이 되는 것일까?


왜 매력을 찾는가? 끄는 힘이 곤충들에게는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멀리 있는 짝을 유혹해서 짝짓기를 해야 종의 번식이라는 절체절명의 의무를 다할 수 있다. 물론 인간에게도 성적 매력은 중요하지만 ‘삶의 향기’에서 말하는 향기가 그런 페로몬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돈도 사람을 끈다. 그러나 매력을 추구하는 것은 부유해지자는 것과 다르다. 또 부유해진다고 매력 있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따금 마을 입구의 큰 돌이 타이르듯 “바르게 살자”는 것도 아니다. 모범적으로 살고 건전한 거리 문화를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캠페인은 자칫하면 그냥 꽂히는 소소함이나 사람마다 다른 체취나 오랜 숙성이 필요한 ‘나다움’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데로 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매력이 없어지는 빠른 길 중의 하나일 것이다.


글을 맺으면서 보니 매력은 결국 ‘나다운’ 삶에서 나온다. 그러면 사람들의 시선과 발걸음이 나에게 모인다. 하나의 작가가 되는 과정과 다름없다. 그렇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완성해 가는 작가이다.

5. [중앙일보][권석천의 시시각각] "날 강간한 범인은 술이 아니다"

“‘강간 피해자(Rape Victim)’라고 적힌 서류에 사인을 하고 검사를 받았어. 몇 시간 후 샤워를 했어. 흐르는 물줄기 속에서 내 몸을 보았어. ‘이 몸은 더 이상 내 몸이 아니야.’ 무서웠어. 내 몸을 재킷처럼 벗어 다른 모든 것과 함께 병원에 놔두고 오고 싶었어.”


경험하지 않고는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남성인 나는 성폭행 당한 여성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다. 단지 짐작할 뿐이다. 그 인식의 한계를 알면서도 ‘에밀리 도우’란 가명으로 불리는 23세 미국 여성의 용기에 몇 자 적고자 한다.


“모든 걸 잊어 보려고 했어. 말을 할 수 없었고, 먹지 못했고, 잠들지 못했어. 퇴근 후 소리 지를 수 있는 곳을 찾아가곤 했어. 어느 날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봤어. ‘그는 여성이 성관계를 원했다고 주장했다.’ 내가 원했다고?”


지난해 1월 17일 동생을 따라 파티에 갔던 에밀리는 다음날 새벽 스탠퍼드대 캠퍼스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다. 범인은 대학 수영선수 브록 터너(20). 에밀리는 법정에서 터너를 향해 7244 단어의 진술서를 읽는다. 판사는 지난 2일 징역 6월, 보호관찰 3년의 가벼운 처벌을 한다. 뒤이어 터너의 아버지가 ‘20년 인생에서 20분간의 행동에 대한 대가로는 너무 가혹하다’는 탄원서를 낸 사실이 드러난다.


“성폭행은 사고가 아니야. 너는 ‘술에 취해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없었고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고 했지. 술은 변명이 될 수 없어. 내 옷을 벗기고, 나를 만지고, 내 머리를 땅에 질질 끌었던 건 술이 아니야.”


이제 교사 성폭행 사건은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남성 세 명에겐 중형이 선고될 것이다. 만약 ‘교사, 학부모, 섬마을’이란 키워드를 뺀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달 대전고법은 또래 여중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중학생 10명 전원에게 실형을 선고한 1심을 깼다. “나이가 매우 어리다”며 3명의 형량을 깎고 나머지 7명은 가정법원 소년부로 보낸 것이다. 지난 1월 인천에선 술에 취해 잠든 10대 여성을 성폭행한 20대 4명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지난해에는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해 후배를 성폭행한 대학생 3명이 항소심에서 징역 4~6년에서 징역 3~5년으로 감형됐다.


“너는 내게서 삶의 가치, 사생활, 열정, 시간, 안전함, 친밀감, 자신감, 나 자신의 목소리를 빼앗았어. 네가 평판을 걱정하고 있을 때 나는 매일 밤 숟가락을 냉장고에 넣어둬.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눈물로 눈이 부어 있거든….”


판사들은 “죄질이 나쁘다” “피해가 심각하다”면서도 초범, 반성, 학생이란 이유로 정의를 선언하지 않는다. 조두순 사건 이후 음주 감경을 할 수 없게 되자 음주 성범죄에 ‘우발적’이란 딱지를 붙인다. 법전을 펼치면 강간은 ‘3년 이상 유기징역’, 강간 등 상해·치상과 2명 이상 강간은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이다. 판사들은 양형(형량 결정)기준 뒤에 숨지 말고 국회가 만든 법대로 선고해야 한다. 1심에서 고심하며 선고한 형량을 항소심에서 줄이는 일도 없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모든 여성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저는 매일 당신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러니 절대 싸움을 멈추지 말아 주세요. 작가 앤 라모트가 말했듯 등대는 배를 구하기 위해 배가 가는 길을 늘 따라다니지 않습니다. 그저 그곳에 서서 빛을 비출 뿐이죠. 저는 희망합니다. 당신이 한 줌의 빛을 품은 사람이기를. 당신이 침묵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를.”


글은 힘이 세다. 에밀리가 쓴 편지의 힘으로 한국의 남성들에게 말하고 싶다. 강간범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함께 숨 쉬고, 웃고, 떠들며, 분노하던 친구, 동료·선후배다. 어쩌면 우리 자신들의 그림자다. ‘순간의 실수’ ‘충동을 못 이긴 사고’라고 안타까워하고 “여자도 책임이 있지 않느냐”고 수군대는 마음에서, 성폭력을 욕하면서 즐기는 그 마음에서 성범죄는 자란다. 남성들에게도 한 줌 빛이 있다면 그것은 한때의 분노가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반성, 여성을 대상화하는 문화에 등을 돌리는 연습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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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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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3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40년 후 미세먼지 사망 1위 된다는 OECD 경고

우리나라에서 미세먼지 등 대기 오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보고서가 나왔다. OECD는 최근 발표한 ‘대기오염의 경제적 보고서’에서 2060년이 되면 전 세계적으로 미세먼지 등 대기 오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2010년 기준 300만명에서 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우리나라는 인구 100만명 기준 사망자 수가 2010년 359명에서 1109명으로 늘어나 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1000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우리나라 대기 질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OECD 비회원국인 중국의 사망자 수는 우리나라의 두 배인 2050명이나 된다고 봤다. 현재 각종 대기 오염에 의한 사망자 수는 우리나라가 일본(468명)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미래에는 이들을 제치고 1위가 된다는 것은 경제적 손실에 앞서 미세먼지가 우리의 목숨까지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점에서 보통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침묵의 살인자’라 불리는 미세먼지 농도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건강에 치명적인 초미세먼지 농도는 벌써 OECD 회원국 평균의 두 배에 이를 정도로 대기 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정부와 각종 연구기관에서는 우리나라 미세먼지의 주범을 중국이나 몽골로부터 유입되는 황사를 비롯한 각종 공해 물질로 꼽고 있다. 전체 오염원의 50%쯤이다. 나머지 절반가량은 국내에서 발생하는데 석탄 화력발전소를 포함한 산업체가 약 55%, 경유차 등 교통수단이 33% 정도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와 중국의 대기에서 이산화질소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석탄 화력발전소와 경유차가 미세먼지 오염도를 증가시키는 주범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국민의 건강’과 ‘비용 절감’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할 때 비용 절감을 우선시한 게 사실이다. 정부는 최근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했지만 재탕 삼탕식 정책에 근본적인 원인의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받았다. 비용 증가가 수반되는 경유차 운행 감소나, 석탄 화력발전소 가동 및 건설이 상대적으로 등한시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가 80기나 있으나 석탄에 비해 발전 단가가 높아 현재 가동률은 3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비용보다는 국민의 건강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만 미래의 미세먼지로 인한 사망자 1위라는 굴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2. 나랏돈으로 로스쿨생 연수까지 보내려하나

교육부가 로스쿨 학생의 해외 연수를 추진해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는 ‘법학전문대학원 취업역량강화 사업’에 해외 인턴십은 1인당 700만원, 국내 인턴십은 1인당 200만원으로 모두 13억 1400만원을 배정했다. 가뜩이나 ‘현대판 음서제’로 비난받는 로스쿨에 다니는 학생들의 취업을 돕고자 과연 정부가 혈세를 써야 하는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매년 로스쿨 학생 150명을 해외 기업이나 로펌, 국제기구에서 법률 실습 활동을 하게 한다고 한다. 항공료와 생활비 등 10억 5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니 과도한 특혜가 아닐 수 없다. 국내 연수에도 150명을 선발해 3억원의 예산을 쓰겠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교육부가 이번 사업은 법률시장의 개방에 대응해 국제 전문 법조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그 일은 법률 분야 전문인 양성을 위해 설립된 로스쿨에서 해야 할 일이다. 어려운 나라 살림살이에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니다. 앞서 국회 예산정책처가 이 사업 계획안을 보고받고 정부 예산을 지원해야 할 필요성과 타당성이 없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로스쿨의 등록금은 연평균 1500만~2000만원에 이른다. 서민들은 가고 싶어도 엄두를 내기 어렵다. 입시 절차도 불투명해 부유층 자제들의 법조인 통로가 된 게 현실이다. 그런데 그런 로스쿨 학생에게 해외 연수까지 나랏돈으로 보내겠다는 것은 정신이 똑바로 박힌 정책 입안자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다른 대학원 및 전문대학원 등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연수생을 뽑는다지만 결국 취약 계층은 일부만 선발될 것이다. 과거 한 국회의원의 아들이 국비 지원 해외 연수에 선정된 것처럼 고위층 인사들의 자녀들이 연수 선발 혜택을 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더구나 로스쿨 학생들은 이미 다른 대학원생들보다 훨씬 더 많은 장학금 수혜를 누리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달 로스쿨 입시 부정 의혹과 관련해 자기소개서의 부모 직업 기재가 합격과의 인과관계를 알 수 없다며 입학 취소 대신 경고 등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로스쿨 학생들의 연수 제도는 즉각 폐지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부는 이래저래 로스쿨을 비호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3. 20대 국회는 달라져야 한다

20대 국회가 오늘 개원한다. 비록 법정 시한(6월 7일)을 넘겼지만 여야의 전격적인 원 구성 합의로 지난주 정세균 국회의장, 심재철, 박주선 국회 부의장 선출에 이어 18개 상임위원장을 뽑고 본격적인 의정 활동에 돌입한다.


20대 국회가 역대 국회와 비교해 그래도 순탄하게 문을 열게 됐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새누리당은 19대에서 넘어온 노동개혁법안을 재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야당의 반발이 거세고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법인세 25% 인상안에는 새누리당이 반발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청문회와, 세월호 특조위 활동 기간에 대한 공방도 여전하다. 여기에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원대 자금 지원에 대한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의 폭로로 청와대의 ‘서별관회의’가 핵심 뇌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개원 연설도 관심거리다. 아프리카·프랑스 순방을 마친 박 대통령이 개원 연설을 시작으로 공식 일정을 재개할 방침이다. 최근 일부 청와대 참모를 교체함으로써 임기 후반기 국정 운영의 윤곽이 드러났지만 이번 개원 연설을 통해 구체적인 방향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비롯해 노동개혁 등 집권 4년차 국정과제의 중단 없는 개혁 의지를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법 개정안(상시 청문회법) 거부권 행사로 야권과 불편한 관계에 놓인 박 대통령이 여소야대 정국에서 협치와 상생을 강조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박 대통령이 각종 현안에 대해 진솔한 설명과 함께 향후 대처 방안을 국민에게 설득한다면 난국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난국 그 자체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가 발목을 잡은 상황에서 조선·해운업의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경제적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반도 주변 4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외교·안보 정세도 격랑이 일고 있다.


이렇게 중차대한 시기에 출발한 20대 국회는 여소야대의 3당 정립구도다. 어느 당이 일방적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쥐는 구도가 아니다. 식물국회로 지탄받던 19대 국회와 달리 20대 국회가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국회가 되려면 여야 모두 국민에 약속한 협치 정신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 된다. 역대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입버릇처럼 외쳤던 민생정치를 이번에는 제대로 실천하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도 기억해야 한다.


여야 모두 쟁점 사안에 대해 한발씩 물러나는 자세로 소통과 타협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집권당은 ‘국회 심판론’이나 ‘야당 심판론’을 제기하며 야당을 자극하는 대신 낮은 자세로 야당에 협조를 구하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20대 국회는 합치의 정신으로 국민 지지를 받는 민의의 전당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특히 주목할 것은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 등은 도입 당시의 취지가 분명하지만 시대의 요구에 맞춰 바뀔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정세균 국회의장의 언급이다. 20대 국회에서는 정 의장의 말대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서 의원 특권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이데일리]

4. 中어선 불법조업 무력응징 검토해야

우리 군과 해경,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 요원으로 이뤄진 ‘민정경찰’이 소총 등을 휴대하고 10일부터 한강 하구 수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 퇴거작전을 벌이고 있다. 중립지대인 한강 하구 수역에 민정경찰을 투입한 것은 지난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이다. 중국 어선의 심각한 불법 조업 횡포에 비춰 당연한 조치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무장 퇴거작전을 시작하자 중국 어선들은 북한 연안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근절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단속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단속이 쉽지 않은 연평도 등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이다. 불법 조업 중국 어선 규모는 지난 2013년 꽃게철인 4~6월 1만5500여척에서 2015년에는 2만9600여척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들어서는 더욱 기승을 부려 이달 들어 하루 300척이 넘는 중국 어선이 서해 NLL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올해 우리 어민 꽃게 어획량은 지난해의 30% 수준으로 격감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지난 5일 우리 어민이 불법 조업하던 중국 어선을 직접 나포했겠는가.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으로 우리 어족자원이 황폐화하고 어민 생계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포 작전 중에 중국 어선이 NLL 북한 쪽으로 달아나면 군사 충돌 우려로 단속이 어렵다는 해경 설명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해양주권과 어민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보다 단호한 의지가 필요하다. 어떤 이유로든 어민들이 직접 중국 어선을 잡아 당국에 넘긴 일은 결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중국 정부에 불법조업 방지를 위한 한·중 합의의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외교적 노력과는 별개로 과감한 나포와 수십억∼수백억 원 수준의 벌금 폭탄 등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인도네시아와 아르헨티나 등 세계 여러 나라가 중국어선의 불법 조업에 대해 총격을 가해 격침시키는 등 군사작전 수준의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베트남도 불법조업 등을 단속하는 수산자원감시대 선박에 기관총, 고사총 등을 탑재하고 있다. 우리라고 무력 응징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5. '골육상쟁의 민낯'이 부른 롯데 수사

재계 서열 5위인 롯데그룹이 1967년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검찰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정책본부와 주요 계열사 사무실 등 17곳을 압수수색했다. 압수 수색 대상에는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과 아들 신 회장 자택과 집무실도 포함됐다. 롯데는 역대 정권마다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아 검찰 수사가 새삼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관 200여명을 투입해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해 불거진 그룹 경영권 분쟁이 기폭제가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롯데는 지난해 7월 신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전(前)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 회장 등 형제간의 볼썽사나운 경영권 다툼인 ‘형제의 난’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아 왔다. 두 형제간 진흙탕 싸움은 소송과 상호 비방에 그치지 않고 창업자인 아버지까지 정신감정을 받게 하는 ‘막장 드라마’를 연출했다. 롯데그룹을 재계 5위로 키운 아버지를 자식들이 정신상태 운운하며 난도질하는 추악한 모습을 보인 것은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같은 패륜적 태도는 우리 사회로부터 철퇴를 맞기 마련이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 대해 계열사 간 거래 과정에서 불거진 비자금 조성 혐의에 따른 횡령·배임사건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검찰이 압수수색에 수백명을 투입한 점은 사건을 롯데그룹 횡령·배임으로 마무리할 것 같지는 않다. 압수수색 결과에 따라 총수 일가 비리와 정·관계 로비 등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롯데는 제2롯데월드 인·허가와 부산 롯데월드부지 용도 변경, 맥주사업 진출, 면세점 운영사업 수주 등 각종 사업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이어졌다. 


검찰이 건전한 시장 경제 질서를 지키기 위해 대기업의 불법 행위를 철저히 수사하고 엄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롯데그룹 조사가 자칫 ‘대기업 때리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켜서는 안 될 것이다. 국내 기업이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에 따른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경영난을 겪고 있는 마당에 검찰의 사정(司正) 드라이브가 기업의 정상적인 영업활동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동아일보]

6. 안전사고 빌미로 서울메트로의 덩티 키우려 하다니

박원순 서울시장이 어제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와 관련한 시민토론회에서 서울메트로 안전 업무를 직영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천명했다. 이 경우 메트로 인력은 최소 400명 이상 늘어난다. 지방공기업 인원 채용은 중앙정부와의 협의사항이어서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순 없다. 어제 서울시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는 해명자료를 내는 등 시 일각에서 다른 목소리가 있는데도 박 시장이 밀어붙이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박 시장은 이번 문제를 ‘직영화’ 프레임으로 몰아가 중앙정부 책임으로 몰 생각인 듯하다. 어제 “서울시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에서 매년 1조 원의 적자가 발생하며 무임승차만으로도 적자가 4000억 원인데 중앙정부에서 한 푼 보조도 없다”면서 메트로 부실을 정부 탓으로 돌렸다. “우리 사회 전체가 하청사회가 되고 있다”는 과장된 발언이나 “시민들이 나서 달라”는 선동도 책임 있는 시장이 할 말이 아니다.


경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스크린도어 유지 보수를 맡은 은성PSD는 처음부터 메트로 퇴직 직원들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시민 돈으로 ‘메피아(서울메트로+마피아)’의 퇴직 후 일자리를 만들어준 데 이어 박 시장은 낙하산 인사까지 해서 메트로의 경영 부실을 심화시켰다. 그래 놓고도 운임 비용 탓만 하는 것은 박 시장의 책임 회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직영화를 한다고 해도 반쪽에 그칠 공산이 높다. 24개 역의 관리를 맡은 유진메트로컴이 2026년까지 계약을 맺은 상태여서 이 회사가 동의하지 않는 한 전면적인 직영화는 불가능하다. 스크린도어 사고가 없었던 도시철도공사는 직영이라고 서울시가 주장하지만 이곳은 안전 업무를 신호직에게 맡겨 사정이 전혀 다르다. 메트로에는 도시철도공사처럼 스크린도어가 고장 나도 열차 운행이 중단되는 시스템이 없다. 직영한다고 반드시 사고를 막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박 시장은 어제 “즉흥적 피상적으로 대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천문학적 누적 적자를 내면서도 매년 수백억 원대 성과급을 가져가는 메트로의 방만 경영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박 시장은 공석인 메트로 사장에 또 낙하산을 보낼 생각은 접고 용역업체의 관리감독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

7. '구조조정 반대 파업' 조선사에는 혈세 지원 못한다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오늘부터 이틀간 파업 찬반투표를 한다. 노조는 5조3000억 원의 자구계획 중 핵심인 특수선 사업 분할 및 인력 2000여 명 감축을 반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도 구조조정에 반대하기 위해 17일 대의원대회에서 임금단체협상 관련 쟁의 발생을 결의할 예정이다. 정부가 8일 조선 및 해운업계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지 1주일도 안 돼 조선업계 노조가 반대 투쟁에 나서면서 구조조정 자체가 흔들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우조선의 작년 영업적자는 5조5051억 원, 부채비율은 7308%에 이른다. 2000년 경영난으로 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된 뒤 투입된 공적자금과 국책은행 자금만도 7조 원을 넘는다. 막대한 지원을 받고도 부실 규모가 커졌지만 대우조선의 평균 연봉은 2014년 기준 7400만 원으로 민간업체인 삼성중공업(7200만 원)보다 많다. 작년 10월 4조2000억 원의 자금 지원을 받기 직전에도 임금협상에서 1인당 평균 900만 원의 격려금 조항을 집어넣다 질타를 받았다. 현대중 노조 역시 회사가 9개 분기 연속 적자에 허덕일 때도 임금 인상과 해외연수 확대를 요구하며 ‘상경 투쟁’을 벌였다. 


정부는 조선·해운 분야 구조조정을 위해 11조 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 조성을 발표하면서 조선 3사의 인력 30% 감축, 설비 20% 축소, 자회사 매각을 통한 10조3500억 원 규모 자구계획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웠다. 조선사 노조의 반발 때문에 인력 및 설비 구조조정이 차질을 빚는다면 자구책은 빈껍데기에 불과해진다. 가뜩이나 정부의 구조조정안은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근본 수술이 아니라 조선 3사를 연명시키는 미봉책이란 비판이 비등한 판이다. 이런 마당에 파업까지 하려는데 국고를 털어 지원할 이유가 없다. 


조선 경기가 호황일 때는 임금 상승과 복지 확대를 누리다가 어려워지면 정부에 손을 내밀면서 임금과 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행태는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과거 노조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던 여야 정치권도 개입을 자제해 구조조정의 성공에 힘을 보태야 한다.

8. 계파청산 선언 이틀 뒤 “친박 해체” 요구… 與혁신 불가능인가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에 내정됐다 ‘친박 쿠데타’로 물러났던 김용태 의원이 어제 “당의 계파는 친박(친박근혜)계 하나뿐”이라며 “새누리당에서 계파를 해체하라고 한다면 친박이 해체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여당이 ‘2016 새누리당 국회의원 정책 워크숍’에서 “이 순간부터 계파라는 용어는 쓰지 않을 것”이라며 ‘계파 청산 선언’을 발표한 지 이틀 만이다. 선언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나온 정면 반박은 ‘계파 청산’이 관제(官製) 선언과 다름없는 이벤트였음을 드러낸 것이다. 


김 의원이 “계파란 사람들 무리에 들어가서 이득을 봐야 하고 대장과 그 아래 서열구조, 운영원리가 있다”며 따라서 비박(비박근혜)은 계파가 아니라고 한 말도 일리가 있다. 4·13총선에서 새누리당 참패 이유로 첫손에 꼽히는 것이 바로 이런 ‘친박 패권주의’다.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여는 첫 워크숍이면 이 같은 총선 패배 원인에 대해 끝장토론이라도 벌여 반성과 개혁안을 도출해내고, 그 결과물로 계파 청산 선언을 내놓았어야 옳다. 그런데 친박계에선 총선 참패 책임을 따지는 것이 계파 조장 행위라는 무책임한 주장까지 하고 있다. 그러니 뒤늦게 친박 해체 요구가 나오는 게 아닌가. 


새누리당 워크숍에선 교육·복지, 주거·환경, 일자리·경제, 청년·소통 같은 정책과제를 놓고 1시간 30분씩 분임토론을 했다고 한다. 계파 청산 선언의 배경이 된 공천 파동과 총선 참패 책임, 탈당 의원 복당 같은 핵심 사안을 아예 토론 주제에서 뺐다는 것은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에게 혁신의 의지가 없다는 얘기다. 위원장이 된 뒤 “사적인, 정파적인 이익을 위한 파당은 국민 지지를 떠나게 한다”며 획기적인 쇄신 방안을 마련하겠다던 다짐은 허언(虛言)이었던 모양이다. 혁신 논의가 실종된 것을 문제 삼아야 할 비박 의원들도 상임위 배정을 받기 위해 친박의 심기를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니 ‘웰빙 새누리’의 행태는 친박이나 비박이나 마찬가지다.


혁신비대위는 원 구성 협상이 타결되면 복당 문제를 본격 논의하기로 했으나 김 위원장은 손도 못 댈 만큼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총선 민의를 담아 내달 중순 발간 예정인 ‘국민 백서’를 놓고도 분란만 커질 우려가 있으니 내놓지 말자는 주장이 나온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당시 민주통합당이 한상진 서울대 교수에게 의뢰해 친노 패권주의 문제 등을 지적한 대선 평가 보고서를 만들고도 친노(친노무현)계 반발로 덮는 바람에 반성의 기회를 놓치고 국민 지지도 잃은 길로 가려는 듯하다. 이런 식이면 혁신비대위를 조기 해체하고 전당대회를 열어 친박 대표나 뽑으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김 위원장은 알아야 한다.

[중앙일보]

9. 외교장관의 방러, 적극적 다원외교 계기되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어제 러시아로 떠났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을 만나 북핵 문제를 비롯한 현안을 논의한다. 놀라운 점은 2013년 장관 취임 이후 첫 러시아 방문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지난 1월 6일 4차 핵실험, 2월 7일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이에 따른 3월 2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 2270호 채택 이후 100일이 넘은 시점의 방러는 만시지탄이다.


러시아는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하나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6자회담 참가국이다. 이번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도 러시아는 미국과 중국이 합의했던 안이 통과되기 직전에 개입해 채택을 하루 늦춘 것은 물론 내용도 완화시켰다. 북핵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미·중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런 러시아에 한국 고위급 인사의 ‘외교적 스킨십’이 이토록 소홀했던 것은 국익 차원의 문제다. 실제로 양 장관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직후 공조 방안을 전화로만 협의했다. 지난 2월 안보회의가 열렸던 독일 뮌헨과 지난 4월 아시아 교류·신뢰구축회의(CICA)가 개최됐던 중국 베이징에서 양자 회담을 열었을 뿐 서로 상대 국가를 방문하는 적극 외교는 없었다. 자칫 러시아가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최근 주한미군의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와 관련해 반대와 우려 입장을 밝힌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도하는 극동 개발과 양국 물류 연결 등 경제 분야에서도 협력할 사안이 적지 않다. 북핵 사태로 중단된 남·북·러 3각 물류협력 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미래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윤 장관의 이번 방러가 한국 외교가 미국과 중국 일변도의 ‘G2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다원적이고 적극적인 외교로 전환하는 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조와 동북아 정세, 핵심 주변국들의 외교정책이 급변하는 상황이 아닌가.

[매일경제]

10. 네이버 라인 해외상장, 기업 글로벌 영토 확장 큰 의미

네이버 자회사인 메신저 서비스기업 라인이 다음달 일본과 미국 증시에 동시 상장한다. 라인은 2000년 네이버재팬으로 출발한 네이버 100% 자회사로 모바일 메신저를 출시한 지 5년 만에, 해외 상장을 추진한 지 2년 만에 이룬 성과다.


국내 기업의 인수·투자 방식이 아닌 해외 자회사를 설립한 후 성장시켜 글로벌 증시 2곳에 동시 상장하게 된 최초 사례라는 점에서 쾌거라 할 만하다. 라인은 본사와 별개로 독자적인 서비스 플랫폼과 비즈니스모델을 갖춰나갔고 기업공개로까지 연결시켰다. 상장 후 시가총액은 6000억엔(약 6조500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돼 올 들어 일본 내에서 이뤄진 기업공개(IPO) 중 최대 규모로 예상된다.


라인이 '일본의 국민 메신저'가 된 것은 네이버가 일찍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철저한 일본 현지화 전략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 일본에서의 성장을 바탕으로 태국, 대만 등에서도 현지인 취향을 공략한 마케팅으로 1위에 올랐다. 현재 글로벌 인터넷서비스 시장은 미국 중국 기업들이 독식하고 있고 유럽 기업조차 발을 들이밀지 못하는 상황인데 한국에 뿌리를 둔 기업이 독자적인 서비스로 글로벌 시장에 이름을 알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라인은 상장을 통해 약 1조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확보하는 만큼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네이버 측도 "일본 및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을 위한 인수·합병(M&A)에 전략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인터넷 기업으로 해외에서 성공신화를 만들 기회다. 페이스북이 보유한 와츠앱, 중국 텐센트의 위챗 등과도 힘겨루기를 해볼 만하다. 물론 라인 월간 실질 사용자 수가 2억1840만명으로 와츠앱(10억명), 위챗(6억5000만명)에 밀리고 일본 태국 대만 등 아시아권에 치우쳐 있는 것은 약점으로 지적된다.

최근 이용자 증가세가 한풀 꺾였다는 점도 악재지만 상장으로 마련한 실탄으로 동남아 국가를 발판 삼아 북미 유럽 등으로 영토확장을 꾀해야 한다. 다만 미국은 메신저 시장이 포화상태인 만큼 새로운 서비스와 혁신으로 승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좁은 내수시장에서 고전 중인 다른 기업들도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라인의 현지화를 통한 해외 상장을 벤치마킹할 만하다.

주요 신문칼럼

1. [프레시안]사패사 살인, 정말 1만5천원 때문일까?

경기도 의정부시 사패산에서 6월 7일에 일어난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검거되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모양이다. 최근 흉흉한 사건이 이어지고 있어 누구나 착잡한 마음일 텐데, 그나마 사건 발생 3일 만에 유력한 피의자가 잡혀 다행이다.


피의자 정모 씨(45)의 범행 동기와 관련해 동기에 성폭행이 포함되는지 안 되는지가 뉴스의 주요 관심거리로 보도되고 있다. 나에겐 단위가 다른 비슷한 두 개의 숫자가 뇌리에 남아서 떠나지 않는다.


먼저 1만5000원. 범인이 피해자를 살해하고 피해자의 지갑에서 빼앗아간 돈이다. 사람 목숨 값이 1만5000원이고, 1만5000원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식의 설명은 우리가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다 하여도 무척 불편하다. 결과로서 피해자가 우연찮게 강탈당한 돈이 1만5000원인 것이지, 범인이 그 돈을 노리고 범행을 벌이지는 않았을 터이다. 피해자의 지갑 안에 1만5000원밖에 없었음을 사전에 알았다면 범인이 범행에 나서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일단 1만5000원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설명은 틀렸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강탈할 금액이 1억5000만 원이거나 15억 원이면 살인의 동기로 납득할 만한 금액일까. 영화 <몽타주>(2012년 개봉)에서 아동 유괴범이 제시한 금액이 5000만 원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범행과정에서 유괴한 아동을 죽게 만들어 범인은 결과적으로 살인의 대가로 5000만 원을 수중에 넣는다. 


언론보도에서는 죽음의 값어치를 한눈에 보여주기 위해 흔히 관련된 금액이 특정된다. 그 금액이 영화 <몽타주>처럼 계획되었을 수도 있고 사패산 사건처럼 아닐 수도 있다. 또 사패산 살인사건처럼 1만5000원일 수도 있고, 영화처럼 5000만 원일 수도 있다. 사전에 어떤 금액이 계획되었든, 모르는 상태에서 사후적으로 금액이 결정되었든, 또한 그 금액이 크든 작든, 돈을 목적으로 한 살인사건에서 유일한 사건은 돈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돈 때문에 간단하게 사람 목숨을 취할 수 있는 세상이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실체적 진실로 생활에 밀착한 상황은 소름끼친다. 


나아가 비록 사후적으로 확정되었지만 1만5000원이란 푼돈이 상징하는 살인범죄의 '생활밀착' 극치는 사회병리가 일반적인 생활인에게 보편적 위험으로 전가된 악몽으로 규정될 수 있다. 1만5000원은 인간 목숨의 교환가치가 아니라 보편적 위험으로의 입장료이다. 특별히 누군가에게 나쁜 짓 혹은 '죽을 짓'을 하지 않아도 노래하다가 죽을 수 있고, 등산하다가 죽을 수 있고, 게다가 숨 쉬다가도 미세먼지로 죽을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기억에 남은 또 다른 숫자는 1시간 반이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사건발생 3일째인 10일 밤 10시 55분쯤 의정부경찰서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에서 현재 검거 상태인 정씨가 자신이 사패산 살인사건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때까지 경찰은 살인현장으로 이어지는 사패산 샛길 폐쇄회로(CC)TV 분석과 DNA 대조에서 딱히 명확한 단서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보도를 근거로 체포과정을 정리하면, 전화를 받은 의정부경찰은 장난 전화가 아니라 피의자의 자수임을 직감하였다. 정 씨는 술을 마신 상태로, 범행을 고백한 데 이어 자신이 현재 강원도 원주시내에 있다고 밝혔다. 소재를 밝히는 순간 형사들이 원주시로 급파되었고, 그 사이에 고참 형사가 정 씨와 통화를 이어나갔다. 기사에는 "그 사이 정 씨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도주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며 "곧바로 기지가 발휘됐다. 형사들이 (원주에) 도착하기 전까지 통화를 계속하기로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기사에 따르면 의정부 경찰서에서 정 씨가 있는 곳까지는 빨리 가도 1시간30분이 걸린다고 한다. 의정부 경찰은 중간중간 끊었다가 통화하기를 반복하며 정 씨를 안정시켰고, 용의자의 심리를 아우르고 달래주면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긴박하기 그지없는 범죄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 체포 작전은 급파된 의정부 경찰이 11일 오전 0시 33분에 그때까지 통화를 하며 바람을 쏘이고 있던 정 씨를 살인 혐의로 검거하면서 성공적으로 종료되었다. 


무용담을 연상케 하는 기사를 읽으며 든 생각은 정 씨로부터 전화를 받은 의정부 경찰은 지근의 원주지역 경찰에게 연락하는 대신 1시간반 이상 떨어진 거리임을 알면서 왜 자기네 형사들을 보냈을까 하는 것이었다. 영화 <몽타주>를 보면 범인 체포과정에서 두 형사가 순차적으로 용의자를 덮친다. 먼저 용의자를 넘어뜨린 주인공 형사(김상경) 대신에 나중에 숟가락을 얹은 격인 조연 형사(조희봉)가 수갑을 채운다. 이후에 조희봉은 자신이 범인을 체포했다고 강조하는 대목이 극중에 나온다. 


"민첩하게 대응하였다"고 보도된 의정부 경찰이 굳이 자기네 형사를 보낸 이유가 설마 영화와 같은 이유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일주일을 힘들게 일하다가 하루 시간을 내 산행을 통해 모처럼 휴식을 취하려다 불귀의 객이 된 피해자를 생각하면 영화 같은 발상은 현실에서 나타나선 안 된다. 그렇다면 원주지역에는 용의자를 잡으러 출동할 만한 믿을 만한 경찰이 없었기에 그런 선택을 했을까. 1시간 반 통화하는 동안 정 씨는 아무 때고 전화를 끊고 다른 곳으로 잠적할 수 있었다. 1분 초가 중요한 시점에 굳이 자기네 인력 말고는 아무도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경찰조직이 무능하기에, 혹은 공조나 긴급한 업무협조가 안 되기에 그렇게밖에 할 수가 없었을까.


안 했어도 문제, 못 했어도 문제이다. 만약에 영화와 같은 이유로 정 씨를 검거하는 데 1시간 반을 허비하였다면, 의정부 경찰은 문책을 받아야 한다. 아직 피의자 신분이지만 정황상 범인인 정 씨가 또 만약에 통화 중 도주하였다면 국민은 또 한 명의 살인범과 함께 생활하는 가중된 보편적 위험에 노출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1분 1초를 아끼지 않고 기꺼이 1시간 반을 받아들이는 경찰의 태도가 1만5000원을 보편적 위험의 입장료로 기능케 하고 있다.

2. [연합뉴스]<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혈액형은 우열이 없다

의학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구한 위대한 발견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ABO식 혈액형의 발견이다. 이전에는 부상이나 수술·출산 중에 과다 출혈로 숨지는 일이 많았으나 수혈이 가능해지면서 위험성이 크게 줄었다. 


피가 온몸을 순환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1613년이다. 그때부터 모자라는 피를 보충하거나 노쇠한 몸의 피를 건강한 피로 바꿔보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졌다. 처음에는 동물의 피를 주입했다가 나중에는 사람의 피를 넣었다. 그러나 모든 수혈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성공한 듯 보이는 사례도 있었으나 다음 시도에서는 실패가 반복됐기 때문에 안심하고 수혈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야 의문이 풀렸지만, 혈액형이 다른 피가 섞이면 적혈구가 엉기는 응집 현상이 일어나 모세혈관을 막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아낸 이가 오스트리아 출신의 병리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1868∼1943)이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법령이 유대인은 의사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해 대학 때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빈대 병리해부학연구소에서 자신과 연구원들의 피를 뽑아 여러 가지 조합으로 실험해본 결과 피를 엉기게 하는 응집소가 두 가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각기 다른 응집소를 보유한 혈액형을 각각 A형과 B형으로 구분하고, 두 응집소와 섞여도 엉기지 않는 혈액형은 C형이라고 명명했다. 란트슈타이너는 이 내용을 담은 논문 '정상인 혈액의 응집 현상'을 1901년 11월 14일 발표했다. 이듬해에는 그의 제자들이 두 응집소와 모두 반응하는 AB형을 찾아냈다.


1923년 미국 록펠러의학연구소로 옮긴 란트슈타이너는 그때까지 1, 2, 3, 4 혹은 A, B, C, AB로 나라마다 다르게 불리던 혈액형을 A, B, O, AB로 통일하자고 제창했다. C형은 응집원이 모두 없다는 의미로 숫자 '0형'으로 불렀다가 나중에 알파벳 'O형'으로 굳어졌다. 란트슈타이너는 ABO식 혈액형 말고도 1926년 MN식 혈액형과 P 혈액형을 더 발견했고 1940년 Rh 혈액형도 발견했다. 이밖에도 여러 학자의 추가 발견으로 혈액형은 모두 150여 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이 가운데 국제수혈학회가 주요 혈액형 분류법으로 고지하는 것은 30여 가지이며, 수혈 때 반드시 구분해야 하는 혈액형은 ABO와 Rh뿐이다. 란트슈타이너는 이 공로로 193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혈액형의 존재가 알려지자 지역별·인종별 혈액형 분포를 집계해 그 차이를 알아보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폴란드 출신의 루트비히 히르슈펠트는 8천500여 명의 혈액형을 분류해 인종계수를 산출한 뒤 "진화한 민족일수록 B형보다 A형이 많다"는 연구 결과를 1919년 발표했다. 인종계수는 A형 인구를 B형 인구로 나눈 값으로, 서유럽인들은 모두 2.0을 넘었고 흑인이나 아시아인들은 그 이하였다. 유대인이나 러시아인도 1.3에 그쳤으며 흑인은 0.8이었다. 인도인이나 베트남인은 0.5에 불과했다. 


이를 본격적인 민족우월주의로 연결해 식민지 지배나 전체주의에 활용하려는 시도도 등장했다. 1922년 경성의학전문학교 외과교실의 기리하라 신이치(桐原眞一) 교수와 제자 백인제는 조선 거주 일본인의 인종계수는 1.78인 데 비해 조선인은 평균 1.07로 나왔다고 발표했다. 기리하라 교수는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서구에 가깝다는 사실을 내세워 '탈아입구'(脫亞入歐)의 논리를 두둔하는 동시에 경기(1.00)나 평북(0.83)보다 전남(1.41)은 일본과 유사성을 보인다며 '내선일체'(內鮮一體)의 당위성을 시사했다. 독일의 인류학자 오토 레헤도 히르슈펠트의 연구 결과를 인종차별의 근거로 사용하려 했다. 심지어 독일 나치 정권은 우생학을 내세워 유대인의 말살을 꾀하는 단종법(斷種法)을 제정하기도 했다. 유대인이던 란트슈타이너로서는 통탄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는 과학적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다. 혈액형뿐 아니라 피부 빛깔이나 모발의 형태 등 그 어떤 신체적 차이도 종족 간의 우열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이 현대과학의 통설이다. 미국의 석학 재러드 다이아몬드도 명저 '총, 균, 쇠'에서 "미국의 수많은 심리학자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들이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보다 선천적으로 지능이 낮음을 입증하려고 수십 년 동안이나 노력했지만 허사였다"고 지적했다.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성을 밝혀내려는 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혈액형 성격설이 유독 일본과 한국에서만 유행한다는 사실은 일제의 식민지배 논리를 떠올릴 때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4일은 '세계헌혈자의 날'이다. 2004년 세계보건기구, 국제적십자사연맹, 국제헌혈자조직연맹, 국제수혈학회가 란트슈타이너의 탄생일에 맞춰 헌혈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헌혈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기 위해 제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한적십자사 주관으로 해마다 기념식과 축하 공연을 열고 있다. 이날을 맞아 허황한 혈액형 성격설에 호기심을 품기보다는 혹시라도 우리 안에 인종차별주의나 에스노센트리즘(자민족 우월주의) 성향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이웃을 위해 헌혈에 동참해보는 것은 어떨까.

3. [동아일보][데스크 진단]왜 사람들은 '순백의 만찬'에 모였을까

11일 저녁 수십 명의 남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옷으로 차려입고 내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서울 지하철 고속터미널역에서 나와 잠수교로 향하는 행렬이었다. 드레스를 입은 여자, 한복을 입고 레이스 양산을 쓴 여자, 중절모를 쓰고 트렁크를 끄는 남자…. 의상과 소품까지 온통 흰색이었다.


역시 흰 드레스를 입고 머리엔 커다란 흰 꽃 장식을 한 나를 보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물었다. 궁금해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었다.


“오늘 무슨 일 있나요?” 


“네, 오늘 세빛둥둥섬 앞에 사람들이 흰색 옷 입고 모여 저녁 먹어요.”


이날 열린 행사는 제1회 ‘디네앙블랑 서울’이다. 1988년 프랑스인 프랑수아 파스키에 씨가 친구들과 연 디너파티 ‘디네앙블랑(Le D^iner en Blanc·흰색 차림으로 저녁 먹기)’에서 비롯됐다. 파스키에 씨는 많은 친구들을 초대해 드넓은 불로뉴 숲에서 파티를 열면서 서로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흰색 옷을 입도록 했다. 손님들은 이 색다른 경험에 흡족해했고, 이후에도 이런 파티가 열리기를 원했다.


여기에서 콘셉트가 탄생한 디네앙블랑은 프랑스 궁정문화를 재현한다는 취지로 음식, 패션, 공연을 즐기는 야외 복합문화 행사로 발전했다. 그동안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앞 등 파리 주요 명소 주변에서 열려 왔다. 매번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장관을 이뤘다. 8일(현지 시간)엔 올해로 28주년을 맞은 이 행사가 파리 방돔 광장에서 열렸다.


또 세계적으로 상표등록을 한 ‘디네앙블랑’은 미국 뉴욕, 호주 시드니 등 25개국 60여 개 도시에서도 열리는 국제적 행사가 됐다. 그제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맞아 열린 첫 서울 행사에는 1200여 명이 모였다. 이날 흰색 셔츠와 바지를 입고 참석한 파비앵 페논 주한 프랑스 대사는 “디네앙블랑이 한국적으로 재해석된 모습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왜 사람들은 ‘순백의 만찬’에 모였을까. 세 가지로 이유를 정리해 봤다.


① 자발적 참여의 즐거움


이 행사는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참가비(두 명에 90달러)를 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모든 참가자는 ‘우아한 흰색 옷차림’을 하고 테이블과 그릇, 음식을 직접 준비한다. 서울시내 네 군데 집결지를 미리 공지하고 만찬 장소는 행사 시작 2시간 전에 집결지에서 알려줬다. 고속터미널역은 그 집결지 중 하나였다. 


간호사라는 한 30대 여성은 친구들과 순백의 테이블을 꾸몄다. 화이트와인과 테이블 꽃 장식도 트렁크에 챙겨 왔다. 왜 여기에 왔느냐고 묻자 “내 인생에 이런 드라마틱한 경험을 언제 또 해 보겠느냐”고 말했다. 스스로 모인 사람들은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옆 테이블의 모르는 사람들과 나눠 먹기도 했다.


②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축제


야외 행사장에 어둠이 내려앉자 재즈 공연 등이 오후 11시까지 이어졌다. 사회자도, 진행자도 없지만 다들 무대 앞에 나가 음악과 춤을 즐겼다. 행사에서 만난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요즘 젊은 세대는 삶을 즐길 줄 안다. 판을 벌여주면 언제든 놀 준비가 돼 있다. 기성세대처럼 쭈뼛거리지 않는다. 갑갑한 미래를 괴로워하는 대신 이렇게 욕구를 분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함께 간 지인은 호모 페스티부스(Homo Festivus), 즉 ‘축제하는 인간’의 시대를 절감한다고 말했다.


③ 나만의 SNS 콘텐츠를 찾아서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디네앙블랑 서울’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사진 게시물이 주렁주렁 올라왔다. 해시태그는 SNS에서 검색이 편리하도록 만든 일종의 메타데이터로, 누구나 SNS에서 ‘#’ 뒤에 단어를 넣으면 원하는 정보를 모아 볼 수 있다.


1200명이 흰색 옷을 입고 만찬을 즐기는 모습은 반포 한강공원을 지나는 시민들에게도 흥밋거리였다. 흰 백합과 화이트와인, 흰 풍선과 화사한 미소들….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한 참가자는 “오래 추억에 남을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많이 올리게 돼 기쁘다”고 했다.


한국은행은 전날인 10일 기준금리를 연 1.50%에서 연 1.25%로 낮추면서 사상 최저 금리의 역사를 새로 썼다. 온 나라가 가계 소비를 끌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소비는 합리적 계산 말고도 감성적 요인의 영향을 꽤 받는다. 요즘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소비하고 싶은 인간에게 어떻게 즐거운 소비의 장(場)을 펼칠 것인가. 소비자의 감성 취향을 저격할 ‘무기’가 있는가. ‘순백의 만찬’에 모인 인파를 보면서 정부와 기업들이 작은 실마리라도 얻었으면 한다.

4. [중앙일보][김호정의 왜 음악인가]바이엘·체르니, 그 다음엔?

19세기 오스트리아 작곡가가 한국 사람들의 기질을 예측이라도 했던 걸까. 카를 체르니(1791~1857)는 유독 한국에서 빅 히트를 쳤다. 체르니는 좋은 피아니스트였다. 무엇보다 베토벤 작품의 해석을 잘 해서 유명했다. 베토벤의 제자기도 했고 나중에는 좋은 피아노 선생이 됐다. 프란츠 리스트라는 명 피아니스트를 길러냈고 그 밖에도 크게 된 제자가 많았다.


그런 그가 한국에서는 ‘100ㆍ30ㆍ40’ 같은 숫자와 늘 함께 불리는 작곡가다. 우리에게 체르니는 하나의 문화 코드다. 체르니의 노하우가 들어있는 연습곡 100곡을 묶은 연습곡집 100권을 떼고 30권으로, 40권으로 가기 위해 무던히 애 썼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또 체르니 덕분에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40이라는 고지에 올라본 이라면 30에서 좌절했던 이보다 우수한 게 당연하다.

그러느라 못 보고 지나친 게 많다. 나는 한 피아니스트의 독주회 앙코르로 체르니 30권 중 한 곡을 듣고 소스라친 적이 있다. 공들인 음색, 풍부한 페달, 적당한 강약 조절이 들어간 그 곡은 아름다웠다. 30권을 얼른 떼고 40권으로 가기 위해 숨가쁘게 연습할 때는 알 수 없었던 아름다움이었다. 한때는 30-40-50이라는 피라미드형 설계야말로 아름답다 생각했다.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당장 해결할 과제도 선명했다. 약간의 경쟁심, 동년배와 비교 같은 것도 야릇한 쾌감을 불렀다. 하지만 음악을 어떻게 듣고 표현해야 하는지 여유있게 배우기는 힘들었다.

(잘 연주하면 아름다운 체르니의 연습곡. 30권 중 4번이다. 한 피아니스트가 앙코르에서 이 곡을 연주할 때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다. 유튜브에서는 그렇게 공들인 연주를 찾을 수가 없다.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움을 못 본 채 지나간다.)

(이 또한 체르니의 작품이다. 기분 좋은 악상을 고전적으로 표현하는 작곡가다. 이런 작품들 역시 ‘연습곡’의 그늘에 가려 들어볼 기회가 없었다.)

(쇼팽의 연습곡 10-1. 무대에 올릴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운 연습곡을 작곡한 건 쇼팽이지만, ‘연습곡’이라는 아이디어를 시작하고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건 체르니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취재를 위해 많은 국적의 피아니스트들을 만났지만 피아노 공부를 이렇게 시작하는 나라는 보지 못했다. 일제 시대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일본보다 한국에서 훨씬 고착화된 코스인 듯하다. 얼마 전 피아노를 시작한 여덟살 조카마저 ‘바이엘-체르니’의 코스에 발을 올렸다. 30년 전 나와 달라진 게 없다.


다른 걸로 시작하면 안될까. 피아노 치면서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 아이도 있을 거고, 화음이나 리듬 쪽에서 자유롭게 음악을 공부하는 방법도 있을 거다. 이유도 모르는 목표에 우르르 올라타 안도감을 느끼는 건 음악 교육 뿐 아니다. 한국의 ‘체르니 코스’는 뭐든 잘 하기 위해 맹렬히 정진하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털어내는 사회를 보여준다. 교향곡ㆍ미사곡 같은 거대한 작품을 포함해 1000곡 넘게 음악을 남기고도 30ㆍ40 같은 숫자하고만 짝 지워지는 체르니에게 미안한 일이다.

5. [중앙일보][시론]오감을 버려라

요즘 경제가 어려워 서민 생활이 더욱 힘들다. 그래도 오감(五感)으로 느끼는 인생은 즐겁다. 활짝 핀 꽃들이 눈을 즐겁게 하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한다. 우리는 매일 보고, 듣고, 냄새를 맡으면서 삶의 맛을 오감으로 느끼며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오감을 통해 느끼는 것은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험도 있다. 우리는 일터나 생활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오감으로 만난다. 일터에는 눈에 보이는 먼지가 있고, 화학약품 냄새가 나고, 시끄러운 기계 소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감을 통해 위험을 쉽게 알 수 있다. 보이는 위험은 미리 대비해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일터의 위험은 항상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경인지역 소규모 사업장의 여성 근로자가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 위기에 처했다. 신혼의 단꿈을 꾸던 이 여성 근로자는 파견직이었는데,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지 못해 안타까움이 더했다. 무색의 투명한 공업용 알코올인 메탄올을 마시면 시력을 잃을 수 있다. 미국은 1930년대에 금주법을 제정해 술을 제조하거나 판매하지 못하게 했다. 밀주가 유통됐고 이를 마신 사람에게 실명이 발생했다. 밀주에는 에탄올(술)과 비슷한 정제되지 않은 메탄올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부 국가에서는 밀주를 마시다 메탄올에 의해 실명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메탄올에 의한 실명은 위장관으로 흡수될 때 나타난다. 공기 중의 메탄올을 폐로 호흡해 실명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그래서 처음 메탄올 중독에 의한 시력 손상이 발생했다고 알려졌을 때 전문가들조차 반신반의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 사업장의 공기 중 메탄올 농도는 정부가 제시한 관리기준값의 5~10배에 달했다. 관리기준값은 근로자가 수십 년간 일을 할 때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 있는 수준의 농도를 말한다.

이러한 위험성이 있음에도 기준값보다 메탄올 농도가 훨씬 높은 작업장에서 근로자들은 왜 그냥 일을 했을까? 메탄올의 위험성을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모든 용기마다 메탄올의 위험성을 표기하고 취급 요령 및 유해성에 대해 교육했으면 낫지 않았을까? 불행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유해성을 알았어도 그냥 일했을 것이다. 공기 중 메탄올 농도가 높아져도 제대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메탄올의 공기 중 관리기준값은 200ppm이다. 냄새를 인식할 수 있는 농도(냄새역치)는 이의 열 배인 2000ppm 이상이다. 즉 건강장해를 크게 일으킬 수준에 노출되기 전에는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자신이 메탄올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얼마만큼 노출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물과 현상을 오감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사고는 이처럼 오감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05년 노트북 부품 공장에서 태국인 근로자들이 화학물질(노멀헥산)에 의해 하반신이 마비되는 집단 중독 사건이 발생했다. 노멀헥산의 관리기준은 50ppm이지만 냄새역치는 200ppm이 넘는다. 건강에 해가 되는 관리기준값의 4~5배에 노출됐는데도 근로자들은 위험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화학물질은 독성을 알아도 어느 정도 노출되는지는 알 수 없다.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심각한 질병에 걸린다. 그래서 직업병은 자신이 왜 질병에 걸렸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냄새역치가 관리기준값보다 낮은 경우에는 사실상 건강에 영향이 없지만 근로자들은 건강에 문제가 생길까 봐 불안에 떤다.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스티렌이란 물질은 관리기준이 20ppm이지만 1ppm 내외에서 냄새가 난다. 이 물질을 사용하면 주변에 냄새가 진동한다. 혹시 화학물질에 의한 건강장해가 있을까 염려하지만 관리기준값 이내면 별다른 이상은 없다. 그러니 냄새를 맡았다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럼 화학물질로부터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감을 버려야 한다. 유해성은 오감과 일치하지 않는다. 먼지가 눈에 보이지 않거나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안전하다곤 할 수 없다. 반대로 먼지가 보인다고, 냄새가 난다고 높은 농도에 노출되거나 건강장해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화학물질은 사람의 오감으로는 독성의 정도를 알 수 없다. 독성이 있는 물질을 사용한다는 사실만 안다는 것으로 중독을 예방할 수 없다.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고, 냄새가 난다고 유해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원칙에 충실하면 된다.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에서는 법에 정해진 대로 공기 중의 농도를 주기적으로 측정해야 한다. 작업 방법이나 사용물질이 바뀌거나 작업량이 많아지면 작업환경을 측정해야 한다. 특히 냄새역치가 높은 화학물질은 공기 중 농도를 측정해야 한다. 근로자의 오감에 의존하지 말고 실제 노출되는 농도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치명적인 후유증을 초래하는 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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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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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9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파렴치 리베이트 의사 명단 공개하라

제약회사로부터 ‘검은 돈’을 받아 챙긴 의사와 병원 사무장 등 수백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2010년부터 최근까지 의약품 처방을 대가로 45억원대 리베이트를 받은 사람들이다. 의사만 해도 290여명에 이른다, 단속 대상에는 돈을 전달한 제약회사 임직원들도 160여명 포함돼 있다. 단일 리베이트 사건으로는 검거자 수가 역대 최대라고 한다. 정부가 불법 리베이트를 근절하겠다며 도입한 ‘쌍벌제’와 ‘투아웃제’가 무색할 뿐이다.


이번 적발된 수법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로 교묘했다. 어느 제약회사는 처음 거래하는 의료기관에 ‘랜딩비’라는 명목으로 처방 금액의 최대 750%까지 현금으로 되돌려줬다. 속칭 ‘상품권 깡’을 하거나 먹지도 않은 음식값을 카드로 결제한 뒤 현금으로 돌려받는 등의 수법으로 뒷돈을 마련했다고 한다. 유령회사와 다름없는 설문조사 대행업체나 도매상을 거쳐 의사들에게 현금과 법인카드를 제공하기도 했다.

단순히 돈을 주고받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일부 부도덕한 의사들은 간식 배달과 자녀 등교, 휴대폰 개통, 병원 컴퓨터 수리 등의 허드렛일은 물론 가족 생일 선물까지 챙기도록 했다고 한다. ‘감성 영업’이라는 핑계를 붙여 제약사 직원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은 것이다. ‘갑질’ 치고도 악질에 속한다. 


제약회사가 의사에게 건네는 리베이트가 결국 환자들의 부담으로 전가된다는 게 문제다. 뿐만 아니라 약값 및 건강보험료 인상 요인으로 작용해 건보 재정에도 악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뿌리 뽑아야 할 파렴치 범죄다. 하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곤 한다. ‘쌍벌제’와 ‘투아웃제’로도 근절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제약업계와 의료계의 말뿐인 자정노력에도 기대할 게 없다.


의약업계가 비리 관행을 스스로 정화하지 못한다면 법규나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 원천 차단하는 수밖에 없다.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의 명단을 전면 공개하고 정도에 따라 면허정지 등 발붙일 공간이 없도록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 소속 병·의원에 불이익을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제약사의 경우 애꿎은 ‘노예 직원’만 처벌할 게 아니라 최고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는 방안도 적극 강구하기 바란다.

2. 섬마을 치안 대책, 뒷북으로 그쳐서야

경찰관이 상주하지 않는 외딴 섬마을의 경우 이장 등 마을 유지들이 ‘치안 지킴이’로 위촉될 것이라고 한다. 비상 연락망도 가동될 전망이다. 전남 신안의 여교사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경찰청이 마련하고 있는 재발방지 대책의 일환이다. 주민이 거주하는 섬마을이 전국적으로 4000개 안팎에 이르지만 그중 치안 시설이 없는 곳이 무려 70%에 이른다는 점에서 솔깃하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형적인 뒷북 대응이다. 도서지역이라면 치안이 취약할 텐데도 아직 그러한 방안조차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씁쓰레할 뿐이다. 그러니까 ‘염전 노예’니, ‘새우잡이 노예’니 하는 사례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치안 수요가 많고 적고를 떠나 당연히 진작부터 시행됐어야 하는 대책이다. 이번 사건이 다행히 세상에 알려졌기에 망정이지 그동안 신고도 없이 묻혀 버린 불상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뒷북 행정은 교육부 차원의 보완 대책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여교사를 낙도나 오지로 발령내지 않도록 한다는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는 모양이다. 급한 대로 여론의 눈치를 피해 가려는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들이 군대에서도 남성들과 거의 비슷하게 훈련 받는 모습을 감안한다면 그런 발상 자체가 차별이다. 동일한 기준에 따라 근무를 시키면서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변 여건을 개선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섬마을 학교의 관사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부터가 문제다. 지어진 지 오래된 탓에 곰팡이가 끼거나 벌레가 나오는 경우를 제쳐놓는다 해도 외부인의 침입에 대처가 어렵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절반쯤은 범죄에 노출된 셈이다. 사회 경험이 부족한 신규 임용자들을 우선 배치하는 관행도 고쳐져야 한다. 일선 교사들 사이에 낙도 근무를 두고 ‘유배지’라는 자조적인 평가가 나도는 이유를 되새겨야 한다.


이미 여러 대책이 제시됐지만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섬마을 학교 주변에 폐쇄회로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은 물론 관사의 잠금장치나 방범 창살 및 비상벨 시설이 조속히 보완돼야 한다. 지역별로 보건지소 등과 관사를 공동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현재 낙도 지역에서 근무하는 1100여명의 여교사들이 더 이상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시급한 보완책이 시행돼야 할 것이다.

[한국일보]

3. 20대 국회 원 구성 협사용 타결, 협치로 이어가길

여야가 8일 20대 국회 원구성 협상을 타결하고 9일 의장단 선출, 13일 18개 상임위원장 선출 및 개원식을 갖기로 했다. 국회의장은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맡고, 2명의 부의장은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몫이 됐다. 18개 상임위원장은 새누리당 8개, 더민주 8개, 국민의당 2개로 배분하되 쟁점이 된 상임위를 적절하게 나눴다. 비록 법정시한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더 늦지 않게 여야가 원구성 협상을 마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난항을 거듭하던 원구성 협상에 돌파구가 열린 것은 새누리당이 ‘국회의장은 여당 몫’이라는 입장에서 물러섰기 때문이다. 늦게나마 새누리당이 여소야대를 만들어낸 총선 민의를 수용한 잘한 일이다. 하지만 하루만 일찍 결단을 내렸다면 20대 국회가 또다시 법정 시한을 어겼다는 지탄을 받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총선 결과로 나타난 명백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타성에서 비롯한 시행착오다. 현실 정치구도를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절충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자세가 아니면 이런 시행착오는 거듭될 수밖에 없다.


총선 이후 민심의 흐름도 결코 정부 여당에 유리하지 않다. 한국일보가 창간 61년을 맞아 여론조사 전문기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총선 직후에 비해 상승했으나 여전히 30%대에 머물렀다. 새누리당 지지도는 30.0%로 총선 직후보다 다소 나아졌다 해도 더불어민주당 28.9%, 국민의당 19.3% 등 야당의 지지도 합이 50%에 육박하는 추세가 이어지는 데 비하면 크게 열세다. 새누리당의 지역 기반인 영남의 경우, 대구ㆍ경북 지역은 총선 후 지지도를 회복해 가고 있지만 부산ㆍ울산ㆍ경남 지역은 계속 하락세라는 점도 새누리당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상황은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내지 않으면 국회운영과 국정을 원활하게 풀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협치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은 총선 직후 청와대 여야 원내지도부 회동에서 협치 분위기 조성에 공감했다. 하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 상시 청문회법 거부권행사, 원 구성 협상 난항 등으로 협치 분위기가 크게 흐트러진 게 사실이다. 여야는 이번 원 구성 협상 경험을 교훈 삼아 민심의 뜻이기도 한 협치의 토대를 재구축해야 한다. 친박 핵심인 김재원 전 의원의 청와대 정무수석 기용이 여권내부 결속과 소통에만 그치지 않고 여야간 협치 확대에도 기여하기 바란다.

[서울신문]

4. 국제 제재 비웃는 北 플루토늄 생산 재개

북한 김정은 정권이 결코 가서는 안 될 길에 들어서고 있다. 4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견고한 대북 제재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핵무기에 사용되는 플루토늄 생산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과 미 국무부 고위 간부의 전언이니 사실이 아닐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지금 영변 핵시설 내 5㎿급 원자로의 사용후핵연료를 빼내 식힌 다음 재처리 시설로 옮기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폐연료봉에서 핵무기 원료 물질인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작업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 1월 4차 핵실험, 2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이 기존의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연쇄 도발을 감행하자 지난 3월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대북제재 결의안 2270호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북한을 사실상 봉쇄하는 강력한 조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엘리트층의 집단탈출 등 그 효과도 차츰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핵 도발 의지를 여전히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지난달 제7차 당 대회를 통해 핵개발을 계속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올 초부터 의심스러운 재처리 관련 활동이 포착되기도 했다.


북한이 이미 2013년 4월 5㎿급 원자로를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한 것에 비춰 보면 지금까지 상당량의 폐연료봉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크다. 연간 원자로 가동에 사용된 8000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6㎏ 정도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고, 이는 핵무기 2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이미 확보한 40㎏ 외에 매년 6㎏씩 지속적으로 비축할 수 있다는 얘기다. 농축 우라늄은 이와는 별개니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의 핵위협은 가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급히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어야만 하는 이유다. 더욱 공고한 제재 전선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으면서도 핵개발 ‘마이웨이’를 고수하는 것은 제재를 ‘종이호랑이’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제재 강도가 약해지고 대화 국면으로 바뀐 그동안의 ‘학습효과’ 탓도 클 것이다. 실제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며 제재 전선에 균열을 내는 것 아닌가. 미국과 중국은 그제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며 대북제재의 전면적 이행을 상호 약속했다.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한 치의 틈도 벌어져선 안 될 것이다. 북한도 핵무기에 집착하는 한 파멸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5. 12조 붓는 조선·해운 구조조정, 더 센 자구책 내놔야

정부가 조선·해운업계에 12조원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은행 등이 대출 형식으로 11조원의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하고, 정부가 현물출자를 통해 1조원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결국 조선·해운업계의 부실경영으로 누적된 엄청난 부채를 국민이 떠맡을 수밖에 없게 됐다. 우리나라의 기간산업인 조선·해운업의 붕괴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그럼에도 위기 때마다 부담을 떠안은 국민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정부의 책임도 막중해졌다. 더이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지원이 되풀이되지 않게 할 과제를 국민으로부터 받았다. 이를 위해선 지금까지와는 확실히 차별화된 초고강도의 자구계획 실천이 불가피하다. 경영진의 부실경영 및 도덕적 해이 근절도 필요하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대한 무차별적인 낙하산 인사도 중단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금액을 쏟아부어도 사망선고를 받은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우선 구조조정 대상 기업과 국책은행에 대한 혹독한 자구책이 선행돼야 한다. 이미 지난해 4조 2000억원의 구제금융을 받은 대우조선해양은 2020년까지 국내외 자회사를 모두 매각하고, 인건비를 30% 절감하는 내용의 추가 구조조정안을 제출했다. 기존에 비해 진일보한 내용이지만, 비상상황임을 고려하면 여전히 미진한 감이 있다. 산업은행은 성과연봉제 도입과 함께 임원 연봉을 5% 삭감하고, 직원들의 올해 임금 상승분을 반납하겠다고 한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엄청난 부실 채권을 안고 있으면서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는 사실을 고려하면 삭감 폭을 더 늘려야 한다. 자구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대한 낙하산 인사 근절이다. 그동안 국책은행들은 경영 감시 등을 빌미로 지원 기업에 퇴직 임직원들을 끊임없이 내려보냈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소속기업의 국책은행에 대한 로비 창구로 변질됐다. 이는 국책은행의 부실을 가속화하는 부작용만 낳았다.


부실경영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을 묻는 것도 꼭 필요하다. 국민 혈세를 지원받으면서도 방만경영을 하고, 부실을 은폐하는 경영진을 처벌하지 않고는 기업이 살아날 수 없다. 검찰이 어제 대우조선해양의 전 경영진에 대해 수사를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지난 수년간의 방만경영, 회계조작을 통한 부실 은폐, 도덕적 해이 등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곪을 대로 곪은 기업의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구제금융이 아니라 ‘연명금융’이 될 게 뻔하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이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구제금융이 정치적으로 결정됐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금융당국이 결정한 행위로 애초부터 시장원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본인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의도가 엿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혈세를 동원한 구제금융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이뤄질 수 있다는 의혹은 여전히 남는다. 이번 조선·해운업계의 구조조정이 만약 실패한다면 이 같은 폭로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정부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구조조정에 임해야 하는 이유다.

[동아일보]

6. '대통령의 오른팔' 새 정무수석, 완정 찰 생각 말라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김재원 전 새누리당 의원을 새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임명했다. 4·13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한 직후부터 공천개입설 등을 둘러싸고 현기환 정무수석 문책론이 일었던 데 비하면 뒤늦은 인사다. 청와대가 총선 참패의 책임을 인정하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교체를 늦췄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청와대는 김 정무수석의 인선 배경으로 ‘대통령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를 들었다. 하지만 정무수석에게 가장 중요한 자격 요건은 청와대와 정치권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소통 능력이어야 한다. 현 전 수석은 이 점에서 많이 미흡했다. 


김 신임 정무수석은 TK(대구경북) 출신의 핵심 친박에다 정무특보까지 지냈다. 그의 인선이 친정체제 강화에 무게를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면에서 대통령이 원만하게 국정을 이끌려면 야당과의 협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 정무수석은 ‘대통령의 오른팔’을 내걸고 나섰던 당내 경선에서조차 참패해 총선 ‘진박 마케팅’의 역풍을 체험한 사람이다. 또다시 진박 완장을 차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해서 박 대통령의 임기 후반을 어지럽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어제 8선인 서청원 의원의 국회의장 불출마 선언 직후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야당에 ‘국회의장직 양보’를 밝혀 20대 국회 원(院) 구성 협상이 타결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다. 현 전 수석과 함께 ‘청와대 개입설’을 동반 퇴진시켰다는 추측도 나온다. 청와대가 정무수석 교체를 계기로 달라졌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야당과의 협상이든, 내부 혁신이든 새누리당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당청(黨靑)관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7. '클린 정당' 표방한 국민의당 비례대표 의혹

어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4·13총선 당시 회계부정 의혹으로 국민의당 회계책임자인 박선숙 의원 등 4, 5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국민의당이 비례대표 선정 직전 당 홍보위원장으로 영입한 김수민 의원(30·비례대표 7번) 관련 업체에 20억 원 상당의 일감을 몰아줬다는 혐의다. 김 의원도 리베이트로 수억 원을 받은 혐의로 고발됐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의원이 홍보회사를 통해 국고보조금을 빼돌린 사건과 유사한 행태다. 


국민의당 안에서도 무명의 김 의원이 당선 안정권에 비례대표 공천을 받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가 대학 시절 교내 디자인 동아리에서 포장지 디자인을 한 허니버터칩이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지만 벤처동아리 수준의 업체에 당의 심벌과 로고까지 맡긴 경위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작년 12월 창당선언문에서 “부패에 단호한 정당을 만들겠다”며 ‘클린 정당’을 표방했다. 당헌에도 “부정부패와 관련된 자는 기소와 동시에 당원권을 정지한다”고 돼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 등을 영입하면서 ‘예외’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수사 결과 홍보비 빼돌리기 차원을 넘어 공천 헌금을 주고받은 검은 뒷거래가 확인된다면 당과 안 대표의 이미지엔 심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총선 당시 ‘녹색바람’을 일으키며 제3당으로 우뚝 섰지만 국민의당은 비례대표 선정 과정에서 잡음이 무성했다. 검찰은 국민의당 공천 의혹에 관해 신속하게 조사해 비리가 드러나면 일벌백계(一罰百戒)해야 한다.

[매일경제]

8. 부실대학 퇴출 구조개혁법 없이는 속도 안난다

서남대 구 재단이 서남대를 정상화하기 위해 의대를 폐과하고 부실대학인 한려대를 폐교하기로 결정했다. 현 정부 들어 첫 부실대학 퇴출이다. 자진 폐교를 결정한 것은 재단 설립자가 자신이 설립한 대학 4곳에서 897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형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서남대는 지난해 교육부 대학구조조정 평가에서 최하위인 E등급을 받는 등 6년간 부실대학 지정으로 재정지원을 받지 못해 버티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교육부는 2013년부터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대학정원 감축과 부실대학을 퇴출시키겠다고 외쳤지만 3년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제야 퇴출대학 1호가 나온 것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저출산으로 2023년 고교 졸업생 수는 40만명으로 줄어 대학입학정원(56만명)에 16만명이나 못 미친다. 학령인구 감소 속도를 고려하면 대학 구조조정은 더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정부의 대학구조개혁 작업이 지지부진한 것은 대학정원 감축을 강제할 수 있는 대학구조개혁법이 여야 이견으로 19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대학등급(A~E)을 매겨 정원을 차등 감축할 계획이었으나 법 통과가 지연되면서 재정지원 축소 외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재정을 줄여도 대학들이 버티면 어쩔 도리가 없다. 프라임사업, 코어사업 등 재정지원으로 대학정원 감축을 유도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야당은 구조개혁법의 '잔여재산 귀속 특례 조항'이 부실대학 설립자들이 출연금 일부를 챙길 수 있도록 특혜를 주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한계에 이른 부실대학에는 퇴로를 열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먹튀'에 대한 걱정 때문에 퇴출을 미루다보면 대학들은 공멸할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대학은 사회복지법인, 평생교육기관 등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교육부는 20대 국회에서 대학구조개혁법을 재추진할 계획인데 야당은 더 이상 반대하지 말고 부실대학 퇴출에 협조해야 한다.

9. 리콜 무성의 폭스바겐, 신차 인증 불이익 고려해야

국내에서 약 12만대의 배기가스 조작 차량을 판매한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차량 리콜(결함 보완) 계획서가 세 번째 반려됐다. 지난 1월과 3월에 이어 지난 2일 내놓은 3차 계획서 역시 리콜 명령을 이행할 의사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라는 평가와 함께 퇴짜를 맞았다. 전 세계적으로 배기가스 조작 경유차 1100만대 이상을 판매한 폭스바겐은 미국에서는 결함차량을 환불 조치하기로 했고 유럽에서도 환경 관련 세금을 부담하기로 하는 등 적극적인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으나 한국에서만 유독 배짱과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폭스바겐의 이 같은 태도는 현행 리콜 제도의 맹점, 임의조작 차량에 대한 환불 및 사법 조치 규정 미비 등 법적 제도적 허점에 기인한다. 배기가스 조작 파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 수입차 판매 1위를 달릴 만큼 기꺼이 폭스바겐 차량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무개념도 문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임의조작 차량 과징금을 종전 1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올리고 사법 조치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으로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폭스바겐에는 소급적용이 어렵다. 리콜 명령도 45일 내에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 보완·반려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질질 끌 경우에는 강제할 방법이 없다. 특히 제품 조작이나 하자가 있을 경우 반품·환불은 상거래의 기본인데도 환불 요구 규정조차 없다. 한마디로 맹탕 같은 법과 정부의 무기력이 멸시를 자초한 셈이다.


환경부는 검찰 고발로 할 일 다 했다고 팔짱 끼고 있어서는 안 된다. 미세먼지로 인한 국민적 손해는 측정 불가일 만큼 심대하다. 배기가스 조작이라는 중대한 기만행위를 저지르고도 사죄와 반성은커녕 적반하장으로 정부와 국민을 무시하는 폭스바겐은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폭스바겐의 전체 신차 인증 과정을 한층 꼼꼼하고 엄정하게 살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을 기만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개별 인증을 넘어 기업 자체에 대한 영업 정지 및 판매 중지 명령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부산일보]

10. 해운대관광리조트 승인 조건도로 확장 '하세월'

부산 해운대는 주말만 되면 교통지옥에 시달린다. 해운대지역 주민은 주말이나 퇴근 시간을 피해 다닐 정도다. 관광객들은 "전국 최악의 교통난"이라며 불평이다. 달맞이길 입구인 미포육거리에 해운대관광리조트 조성사업이 한창이다. 이곳은 상습 정체지역 중에서도 정도가 심한 곳이다. 기존 도로를 확장해 진입도로로 이용할 예정인데 부산시와 해운대구는 예산이 없다며 하세월이다. 관광리조트가 개장하자마자 주차장이 될까 걱정이 앞선다.


해운대관광리조트 사업은 바다와 온천 휴양시설로 관광객 유치가 목적이다. 기존의 왕복 2차로 도로 2개로는 아파트 882세대, 레지던스 561세대, 호텔(281실)과 물놀이 테마파크(1만 8천㎡)를 감당할 수 없었다. 부산시 건축위원회는 체증 해소책으로 왕복 2차로 도로 2곳을 왕복 4차로로 확장하는 조건을 달아 사업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이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두 도로 가운데 해운대 온천사거리~미포육거리(614m) 구간은 60%가량 보상이 진행됐지만 달맞이길 62번길(125m)은 예산 책정이 미뤄지고 있다. 사업비는 200억 원가량이다.


해운대구 벡스코 일대가 막히면 해운대구 전체가 옴짝달싹 못 하는 일이 일상사가 된 지 오래다. 여기에 해운대에서 가장 막히는 해운대 온천사거리와 미포육거리에 교통량이 더 늘어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부산의 랜드마크인 해운대관광리조트가 완공되면 주말마다 수천 대의 차량이 밀려들 것으로 예상된다. 교통난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면 해운대관광리조트 완공 예정인 2019년까지 도로 확장을 마무리해야 하나 지금으로선 시한을 넘길 가능성이 커 보인다. 도로 두 곳 확장 외에 추가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교통전문가들의 충고다. 부산시와 해운대구는 추가대책은 고사하고 계획된 도로마저 미루고 있다.


해운대의 교통난은 개발이 동부산에 편중된 결과다. 하지만 도로확장을 조건으로 사업 허가를 내주었으므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다만 이번 일을 계기 삼아 동부산권에 대해 개발을 자제하고 교통난을 줄일 획기적인 방안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김성용의 저울달기> 시원한 여름나기 쿨맵시 어떨까요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지난달 중순엔 전국이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더위로 뜨거웠다. 여름이 너무 일찍 찾아온 듯한 느낌이다. 기상청이 발표한 하계 3개월 기상 전망에 근거하면 올여름은 평년에 비해 폭염이 잦고 무덥고 습한 날씨가 자주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냉방기를 틀면 시원하지만 냉방병, 냉방비 걱정을 지울 수 없다. 전력 사용량 만큼 온실가스 증가로 지구도 더욱 후끈거린다.


여름철 실내 온도를 너무 낮추고 장시간 생활하면 두통과 어지럼증, 피부 건조증 같은 냉방병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더 심하다. 정부는 냉방온도를 26~28도로 맞추고 실내외 온도차를 줄일 것을 권한다. 냉방온도가 너무 낮으면 우리 신체의 '방위체력'이 저하된다. 방위체력은 체온 조절력, 면역력, 신체적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 등을 뜻한다. 외출시 기온 변화에 대한 즉각적 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불쾌감은 증가한다. 


이맘때면 시원한 옷차림 얘기가 많이 나온다. 정부는 그간 쿨맵시 캠페인을 벌여 왔다. 여름이 한결 시원해지고 지구의 내일이 건강해진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환경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쿨맵시는 시원하고 멋스럽다는 의미의 쿨(cool)과 옷 모양새를 의미하는 순 우리말 맵시를 합친 말이다. 시원하고 편할 뿐 아니라 예절과 맵시를 함께 갖춘 친환경 옷차림을 말한다. 


여름철에 많이 입는 면섬유는 땀을 잘 흡수하지만 건조 속도가 느린 단점이 있다. 운동량이 많아 땀을 많이 흘릴때는 건조도 빠른 합성섬유가 더 적당하다. 체내 열이 쉽게 방출되도록 하기 위해선 옷을 겹쳐 입지 않는 게 좋다. 칼라가 달리지 않은 반팔 상의, 무릎길이 스커트 등이 열 발산에 가장 좋은 패션 아이템으로 꼽힌다.

허리를 조이지 않는 디자인의 원피스가 시원한데 이는 굴뚝 효과 때문이다. 위쪽 방향으로 대류 및 환기가 증가해 방열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여밈이나 소맷부리 등이 열려 있으면 약간의 동작만으로 펌프질 효과가 발생해 체열과 땀을 신속히 배출할 수 있어 시원함을 더할 수 있다. 


쿨맵시 옷감으로는 가는 실을 사용해 짠 것으로 가볍고 얇은 것, 피부로부터 적당히 떨어져 환기를 증가시키고 신체 곡선을 드러내지 않는 약간 빳빳한 것, 대나무나 마, 레이온 섬유같이 촉감이 차갑고 열 전도성이 큰 것을 권장한다. 


넥타이를 꽉 매면 목의 혈류 속도가 감소하고 뇌혈관의 압력이 상승해 두뇌 회전을 방해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안압이 높아져 녹내장과 망막 손상, 시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주요 대기업에선 여름철 노타이 차림이 점차 일반화되고 캐주얼 형태의 복장이 빠르게 확산하는 추세다. 1년 내내 노타이 복장이 자리 잡은 곳도 있다. 


삼성은 '쿨비즈' 명목 아래 주말(휴일) 반바지 근무를 허용했다. 에너지 절감은 물론 직원들의 창의적인 근무환경 조성이 목적이다. 작년 사례를 들면 6월 말부터 9월 초까지 금융 계열사를 제외한 그룹 계열사 직원들은 모두 재킷을 벗고 반소매 셔츠를 착용했다. 6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주말과 휴일 근무자에 한해 반바지 출근을 허락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옛 제일모직 패션부문) 직원들은 평일에도 반바지 차림으로 근무했다. 2014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한해 시범 운영해 큰 호응을 얻은 반바지 근무를 작년부터 다른 계열사로 확대하고 있다고 삼성측은 전했다. 


SK는 캐주얼 복장 근무가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에너지 절약을 통한 녹색성장 실천이란 슬로건을 달았다. 여름철에는 반팔이나 반바지 차림에서부터, 통기성 있는 가벼운 소재의 신발 착용까지 허용했다. 자유로운 복장 문화가 이미 그룹 전반적으로 정착된 모습이다. 물론 업무상 고객 접견이나 공식 행사 시에는 정장이나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을 권한다. SK하이닉스나 SK플래닛은 자율복장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 SK C&C는 비즈니스 캐주얼 제도가 정착돼 있다.

한화그룹은 하절기 간소복 차림을 5월 중순부터 각사별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복장은 노타이, 반팔 등이며 사업장별로 별도 근무복이 있는 경우 근무복을 입는다. 또한 기존 비즈니스 캐주얼 시행 회사는 그대로 유지된다. 하절기 간소복 착용은 이미 정착 단계이고 현재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노타이 근무는 기본이다. 


대한항공은 6월 1일부터 노타이 근무에 들어갔다. 노타이 근무 체제는 올해의 경우 9월 13일까지 예정돼 있다. 노타이 근무 대상은 국내외 전체 남자 임직원이다. 운항 및 객실 승무원과 접객 서비스 직원 등 제복을 착용해야 하는 직원은 제외된다. 해외 지점은 각 지역 기후 특성에 맞게 노타이 근무 여부를 결정한다. 대한항공은 2008년부터 노타이 근무 제도를 도입했으며 갈수록 길어지고 뜨거워지는 여름 날씨를 감안해 노타이 근무를 9월 중순까지 시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2.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전쟁과 소년

참 특별한 여행이었다. 우리 부부가 사진평론가 김승곤 선생에게 전북 고창 여행을 제안할 때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4년을 그곳에서 보냈지만 떠난 이후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내 남편의 고향이기도 한 그곳으로 추억여행을 가자고 했다. 그러나 고창에 도착한 날 밤, 그분은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6·25전쟁의 기억을 꺼내놓았다.


“읍내를 흐르는 천(川) 있지? 그 다리 아래서 인민재판이 열리는 걸 보았어. 그리고 효수된 머리를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지. 집집마다 보초 설 남자를 한 명씩 차출하는 바람에 어린 내가 죽창을 들고 밤에 보초를 서기도 했어. 우리 집에는 누님만 있어서 나갈 사람이 없었거든. 무섭고 끔찍했지. 평생 트라우마가 되었어.”


전쟁이 한 소년의 기억을 그렇게 잿빛으로 만들었다. 그분보다 한참 어린 남편은 바로 그 다리 아래에서 송사리를 잡고 겨울이면 얼음을 지치며 놀던 신나는 추억뿐인데, 같은 공간을 두고 어쩌면 이리도 다른 기억을 가질 수 있을까. 


1950년 당시 열한 살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은 참혹했다. 교장 발령을 받은 아버지를 따라와 살던 고창에서 전쟁의 참상과 맞닥뜨렸던 소년은 두려움과 그리움이 뒤섞인 그곳을 60여 년이 흐르도록 다시 가지 못했다. 그곳에서 오래된 상처와 대면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름답게 변한 풍경과 따듯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결 밝아진 그분은 점차 어두운 기억 뒤에 가려진 그리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저기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네, 우리가 살던 교장 관사가 헐리고 큰길이 났구나.” 추억의 봇물이 터진 듯 나중에는 “실은 박○○라는 아주 예쁜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애를 보려고 주일학교에도 나갔어”라는 고백까지 나왔다.


내친김에 우리는 그분의 아버지가 근무하셨다는 고창중학교까지 찾아갔다. 그리고 교장실에서 마침내 보았다. 역대 교장선생님의 사진 중에 맨 앞에 걸려 있는 초대 김용환 교장선생님. 70대 중반인 자신보다 더 젊은 아버지의 사진을 올려다보며 감격하는 모습에서 비로소 그분의 깊은 상처가 치유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그가 우리에게 말했다.


“정말 고마워. 어두운 기억을 아름다운 색으로 덧칠하게 해줘서.”


그 한마디로 특별한 추억 여행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3. [중앙일보][새미 라샤드의 비정상의 눈] 한국서 맞는 라마단, 정이 있어 행복하다

드디어 찾아왔다. 무슬림이면 누구나 반가워하는 손님, 잘 맞이하기 위해 1년 가까이 준비하는 손님, 떠나면 많이 섭섭해하면서 있는 동안 제대로 잘 해주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손님이다. 이 손님은 사람이 아니라 라마단이라는 기간이다. 한국인에겐 다소 생소하겠지만 무슬림(이슬람 신자)들은 라마단을 이렇게 생각한다.


라마단은 이슬람달력(음력)으로 9월이다. 무슬림들은 그 기간 중 의무적으로 단식해야 한다. 이슬람에서 단식이란 해가 뜨기 전부터 해가 질 때까지, 즉 낮 시간에는 음식 섭취와 부부관계 등 욕구를 자제하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나 유대교 등 다른 종교에도 여러 형태의 단식이 있다. 따라서 단식은 이슬람만의 전통은 아니다.


단식의 목표는 욕구를 자제하면서 동물적 충동을 억누르고 인간적 품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배고픔과 갈증 속에서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한다. 그러면 베푸는 마음이 강해지고 거만함이나 강한 자존심을 억제할 수 있게 된다.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과 화해할 기회도 된다. 해가 진 뒤 가족끼리 함께 식사하며 사이가 더욱 돈독해질 수 있다. 빈말이나 화를 억제하고 선행을 많이 하면서 성격을 개선할 기회를 얻기도 한다.

이번이 한국에서 맞는 네 번째 라마단이다. 매년 한국인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2013년 여름 첫 라마단 땐 주변에서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어 만나는 사람들에게 매번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올해는 변화를 실감한다. 주변에서 “라마단이 언제냐”고 묻는 것은 물론 “그 기간 동안 건강을 잘 챙겨라”는 인사말까지 한다. 심지어 “해가 지면 함께 밥 먹자”는 말까지 들었다. 한국 사람들은 정이 들면 같이 식사하는데 라마단에 맞춰 해 진 뒤에 함께 하자고 제의한 것이다. 평생 기억에 남을 말이다.


같이 운동하는 사람 중 몇몇은 더운 날씨에 물도 마시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는지 “아무도 안 볼 테니 숨어서 한 모금이라도 물을 마셔라” “세수하는 척하고 입에 물을 대라”는 말도 해준다. 처음엔 단식에 임하는 내 진심을 몰라준다는 생각에 섭섭하기도 했지만 이젠 익숙해졌다. 정이 많은 한국에서 살고 있으니 듣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라마단을 고국인 이집트에서 보내지 못하면 가족도 그립고 분위기가 안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라마단도 나름대로 분위기와 특색이 있다. 이젠 한국에서 라마단을 보내지 않으면 뭔가 허전할 것 같다.

4. [중앙일보][분수대]사이코패스, 내 안의 악마

소설가 한강이 지난달 중순 맨부커상을 받자 서점가에선 농담 아닌 농담이 흘렀다. “정유정이 최대 희생양이 될지도 몰라.” 『채식주의자』 등 한강의 작품이 일진광풍을 일으키자 한창 기대를 모았던 정유정의 신작 『종의 기원』이 묻혀버릴 수 있다는 예견에서였다. 우려는 기우로 끝났다. 『채식주의자』와 『종의 기원』은 종합 베스트셀러 1, 2위를 달리고 있다. 교보문고에 물어보니 한국 소설이 베스트셀러 최상위를 휩쓴 것은 8년 만이다. 2008년 11월 가수 타블로의 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이 1위, 황석영의 자전소설 『개밥바라기별』이 2위에 올랐었다.


한강과 정유정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이후 동력을 잃었던 한국 소설 시장을 쌍끌이 하고 있다. 시대의 공기를 대변하는 베스트셀러. 두 작품은 이란성 쌍생아 비슷하다. 가정과 사회의 폭력이란 문학의 영원한 숙제를 파고든다는 점에서 닮은 듯 다르다. 『채식주의자』의 주부 영혜가 가족이란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편으로 스스로를 식물 상태로 몰고 간다면 『종의 기원』의 스물여섯 청년 유진은 엄마·이모로 상징되는 기성 체제에 존속살해라는 칼을 꺼내 든다.


『종의 기원』은 진화론의 태두 다윈의 고전에서 제목을 빌려왔다. 소설 후반부, 거취를 고민하던 사이코패스의 독백 “다윈의 가르침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죽거나, 적응하거나”가 뼈대를 이룬다. 소설은 그 적응의 문제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연쇄·토막·무차별 살인 등 최근 우리를 경악하게 했던 사건 보고서를 읽는 듯하다. 피가 거꾸로 돌 만큼 장면 장면이 섬뜩하다. 웬만한 스릴러 영화는 “아이고, 형님” 하며 내뺄 정도다. 정신병리학·뇌과학·범죄생리학 등을 천착한 작가의 공력 덕분이다.


정유정은 냉정하다. “살인은 진화적 성공”이라는 진화심리학 이론을 인용하며 도덕 개념이 거세된 순수악인이 “나의 분신일 수 있다”고 조심스레 말한다. “예방주사를 맞는 기분으로 즐겨달라”고 당부했다. 그럼에도 몸서리가 쳐진다. 차별과 구속이 빚은 시대의 살풍경과 마주한 것 같다. 우리가 기댈 곳은 없는 걸까.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인류는 지금 가장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했다. 도덕 ‘천사’가 복수심 ‘악마’를 제압해 왔다고 주장했다. 경계할 건 사이코패스가 무한경쟁의 부산물이라는 점. 정유정도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도 사이코패스가 대두됐다”고 전했다. 점점 굳어지는 불평등 구조, 예방주사의 표적이 분명해진다.

5. [동아일보][2030세상/우지희]자식에게 미안해하는 부모의 마음

얼마 전 ‘성시경의 축가’라는 공연 예매 포스터를 보고서 엄마 생각이 대뜸 났다. 엄마는 성시경의 대단한 팬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큰 체격이 주는 든든함과 감미롭고 달콤한 목소리가 좋다며 곧잘 그의 노래를 듣곤 했다. 새 앨범을 한창 들을 때는 몇 곡조를 흥얼거렸고 나와 함께 드라이브를 하며 그의 히트곡들을 목청껏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결혼을 하고서는 그럴 여유가 잘 나지 않아 영 아쉬웠던 차에, 이번 공연을 기회로 모처럼 모녀 데이트 겸 라이브 음악 감상의 시간을 가지면 딱이겠다 싶었다. 그런데 엄마는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이셨다. “아이고 그 콘서트가 얼마나 비싼데, 뭐 하러 그런 데 돈을 쓰냐”며 탐탁지 않아 하시는 게 아닌가. 하지만 어르신들의 거절은 때로 거절이 아닐 수 있음을 배웠기에, 과감하게 예매를 해버리곤 엄마에게 통보했다. “몰라, 그날 시간 비워둬. 벌써 표 샀단 말이야.”


엄마는 못 이기는 척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내 도착한 엄마의 문자메시지에 한참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딸, 성시경 CD 좀 보내줄래? 콘서트 가기 전에 예습하려고. 나 너무 설렌다∼.’ 마다할 때는 언제고 소녀처럼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미리 듣고 있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았다. 봄날 야외 공연장에서 엄마와 함께 보낼 시간을 떠올리며 들뜬 마음으로 공연 날을 손꼽았다.


하지만 공연 당일에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졌다. 내일모레 환갑 나이의 엄마는 몇 시간 동안 그 빗속에서 공연을 감상했다. 행여나 엄마가 서울까지 와서 감기라도 걸려 편찮으실까 내내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히 우리는 무사히 공연을 끝까지 관람했다. 엄마는 힘들어하시기는커녕 재밌었다고 말해 주셨다. 집으로 돌아와 곤히 주무시는 엄마를 보며 이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으면 진작 좀 모시고 다닐 걸 하는 생각도 했다.


그 다음 날이었다. 출근 후 정신없이 오전을 보내고 나니 휴대전화에 엄마의 부재중 전화 한 통이 남아 있었다. 발신 버튼을 눌렀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가 숨이 넘어갈 듯 엉엉 울고 있었다. 심장이 덜컥 발등에 떨어지는 기분으로 다급히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아니다, 별일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재차 묻자, 그제야 엄마는 꺼이꺼이 목을 놓던 울음 사이에 겨우 한마디를 뱉었다.


“희야, 고맙대이.”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엄마는 딸이 힘들고 어렵게 돈을 버는구나 싶어 내내 마음이 쓰이셨다고 했다. 그렇게 고생해서 번 돈으로 매진된 비싼 공연 표를 어렵게 구해 엄마를 모시고 간 것이 너무 고맙고 미안해 눈물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지난 어버이날 아빠가 사려고 벼르던 모자를 선물한 것도 참 고맙다고 덧붙이셨다. “아빠도 니한테 고맙단다. 돈도 돈이고 니가 마음을 이렇게 써준다는 게 참말 고맙대이.” 


그 말에 순간 나도 울컥했다. 남들이 보기에 특별한 말이 아닐지 모르지만 경상도 토박이로 60년을 넘게 살아온 아빠가 처음으로 딸에게 한 고맙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엄마의 말이 백미였다. “내하고 느그 아빠 잘 살았제. 딸 키워가 이래 호강도 누리고.” 


그만 울라는 뜻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전화를 끊었지만 그 이후로 마음이 계속 이상했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잘 살았제” 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마음에 탁 맺혔다. 사실 그동안 내가 받은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것에 감동하는 부모님이라니. 전날 저녁 공연에서 흠뻑 비를 맞고 몸살 기운이 돌아 아프던 머리가 두 배로 멍해졌다.


처음에 공연을 안 보려고 하시던 것, 공연을 기다리며 설레어 하시던 것, 폭우를 맞으면서도 즐거워하시던 것, 그리고 고맙다며 울음을 터뜨리시는 엄마의 모습을 차례로 떠올리며 나는 숙연해졌다. 시작부터 끝까지 자신보다 자식을 더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고, 또한 그러면서도 자신의 행복을 숨기지 못했던 소녀 같은 엄마의 마음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부모로 산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들을 애써 마다하고 정작 그것을 누리게 되더라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미안해하고 마는 것일까. 그렇다면 자식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참 여운이 많이 남는 비 오는 봄날의 음악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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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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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8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아시아경제]

1. 한국경제 미래, 구조조정 성패에 달렸다

조선과 해운 등 한계기업의 구조조정 재원 마련을 위해 총 11조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가 조성된다.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는 등 관련산업의 고용지원방안도 추진된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대해서도 고강도 쇄신안이 적용된다. 정부는 장관급 구조조정협의체인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신설, 오늘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주재로 1차 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대형 부실기업에 대한 본격적인 구조조정의 돛이 오른 셈이다. 


구조조정 사령탑을 맡을 관계장관회의를 신설한 것은 개별 기업의 구조조정과 산업 전체 구조개편을 위해 정부가 공적 기구를 통해 총괄조정하면서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과거 대기업 구조조정은 그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채 밀실회의에서 결정되곤 했다. 이번에 신설한 관계장관회의는 모든 구조조정 관련 정책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 국민적 공감 속에서 산업 개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정부 출자와 한은의 펀드 간접출자를 병행키로 한 것은 중앙은행 발권력 동원에 반발한 한은과 비판적 여론을 반영한 절충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발권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그에 맞먹는 효과를 거두면서 구조조정 또한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국책은행 자본확충은 구조조정을 위한 실탄을 마련했다는 의미다. 다음 단계로 구조조정을 실행에 옮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마침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자구안이 주채권은행에 의해 받아들여졌고 대우조선해양 자구안도 승인을 앞두고 있다. 자구안 내용은 규모는 달라도 공히 자산 매각과 사업 구조조정, 수천 명의 인력감축이 그 핵심이다. 유일호 부총리는 "해운 조선업 구조조정은 철저한 자구이행과 엄정한 손실분담 원칙하에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다짐했다. 구조조정을 위한 컨트롤 타워,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 자구안이 마련됐으니 조선 3사의 구조조정은 일단 속도를 낼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 셈이다. 


구조조정의 속도 못지않게 파생될 부작용의 최소화도 중요하다. 정부는 수년간 4조5000억원을 STX조선에 투입했지만 회사는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뼈아픈 실패를 범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사실상의 국민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정확한 판단 아래 면밀한 추진계획을 짜야 한다. 실업대책,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을 세워 구조조정의 충격을 완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번 구조조정의 성패는 조선과 해운의 차원을 넘어서 한국경제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점을 정부 당국자와 국책은행, 해당기업은 명심해야 한다.

[이데일리]

2. 박근혜 대통령의 잦은 '순방 과로' 문제 있다

아프리카 3국과 프랑스 순방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체력 고갈로 사실상의 휴무에 들어갔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곤 이번 주 일정을 취소 또는 연기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실제로 귀국 이튿날인 그제 현충일 행사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꽤 피곤해 보였다. 링거까지 맞는 12일간의 악전고투 끝에 거둔 외교·안보·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의 성과를 치하하며 박 대통령이 하루속히 건강한 모습을 되찾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제 ‘강행군 외교’는 박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로 간주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작년 3월 유럽 순방 때는 몸살기로 네덜란드 국왕 주최 만찬에 불참해야 했고, 다시 6개월 뒤 캐나다 국빈 방문 당시에는 하루에 2~3시간만 자는 살인적 일정을 소화했다. 또 작년 4월 중남미 순방에서는 위경련과 인두염을 앓느라 귀국 일주일 뒤에야 공식 일정을 재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순방 과로’가 너무 잦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링거 투혼’은 청와대 공식 발표만 해도 벌써 세 번이나 된다. 안에서나 밖에서나 불철주야로 국민과 국가에 봉사하려는 충정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 과로로 정상 집무가 어려운 상황이 번번이 되풀이된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늘 최상의 건강상태에서 국사를 돌보고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에서는 용의주도한 판단력을 발휘해야 하는 게 바로 대통령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참모진은 박 대통령의 체력 탓이든, 아니면 과중한 일정 탓이든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외교 쪽이든, 의무 쪽이든, 경호 쪽이든 책임소재가 드러나면 분명히 문책도 해야 한다. 행여나 ‘몸을 혹사해 가며 나랏일을 돌보는 대통령’이라는 동정적 여론을 기대할 만큼 아둔하지는 않겠지만 박 대통령의 건강 문제로 국민을 불안에 몰아넣는 일이 더 이상 재연돼선 곤란하다.


어느 나라나 국가원수의 건강은 안보와 직결되는 중대 사안으로 관리하는 게 관행이다. 청와대 스스로 박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2급 비밀’로 분류하고 있다면서도 툭하면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것도 한심하긴 매한가지다. 차제에 박 대통령 자신도 외치(外治)에 못지않게 내치(內治)에도 열정을 쏟을 필요가 있다는 항간의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3. 연평도 꽃게잡이 중국어선 대책 없는가

어제 하루만 해도 연평도 인근 해역에 침범해 꽃게를 잡아간 중국어선이 200척 가까이 이르렀다. 백령도 해상까지 합치면 300척이 넘었다고 한다. 연평도 소속 우리 민간 어선이 지난 5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불법 조업하던 중국어선 2척을 직접 나포했는데도 전혀 아랑곳없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나포에 성공한 다음날 하루 정도만 잠시 줄었다가 다시 늘어난 모양새다.


마치 해볼 테면 해보라는 기세다. 아마 비슷한 경우에 대비해 단단히 무장 태세도 갖췄을 것이다. 우리 해군 경비정이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하더라도 흉기를 휘두르며 완강히 대항하는 그들의 평소 대응 태도로 미뤄 고분고분 물러설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 어선들이 다시 나포를 시도한다면 예기치 못한 유혈사태를 겪을지도 모른다. 지난번의 나포 성공은 저들로서도 얼떨결에 당한 결과일 것이다. 


이 해역이 NLL과 불과 2.5㎞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북한군 해안포에 노출된 특수한 사정이라고 해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 두 차례의 연평해전을 치러가면서도 굳게 지키고 있는 곳이 아닌가. 최근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북한군과 첨예하게 대치하는 상황을 들어 단속활동의 어려움을 얘기하는 것도 나약한 태도다. 이런 약점을 노려 중국어선들이 출몰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10년이 넘는다.


연평도 꽃게 어장이 중국어선들에 의해 황폐화되고 있다는 게 더욱 심각하다. 꽃게 어획량이 5년 전에 비해 이미 절반으로 줄었다는 어민들의 하소연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중국어선들이 바다 밑바닥을 헤집다시피 꽃게 새끼에 먹잇감인 조개들까지 닥치는 대로 훑어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오죽하면 우리 어선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포에 나섰을까 싶다.


청와대나 외교부 고위 당국자들이 중국 측과 뻔질나게 회담을 하면서도 우리 한뼘의 바다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국어선들의 우리 영해 침범은 엄연한 약탈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로서는 정말 근본적인 대책이 없는 것인지 묻고자 한다. 앞으로도 연평도 어선들이 목숨을 걸고 나포작전에 나서야 하는 것인지 속 시원한 답변을 듣고 싶다.

[서울신문]

4. 오지 여교사 몹쓸 짓 당하도록 당국은 뭘 했나

천인공노할 사건이 또 발생했다. 전남 신안의 한 섬에서 발생한 여교사 성폭행 사건은 상대가 새내기 여교사이고 학부모와 섬 주민이 가담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아무리 막돼먹은 세상이지만 자신의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를 상대로 입에 담기조차 싫은 몹쓸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같은 인간으로서 부끄러울 뿐이다.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의 범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수사 결과 가해자들은 사전에 공모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가해자 3명이 미리 짜고 차례대로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들은 경찰 조사에 앞서 혐의를 벗으려고 입을 맞추는 모임까지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고립된 지역에서 힘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행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여성인권 침해 사건이자 교권침해 사건이다. 서울 강남역 인근 술집 화장실에서 발생한 여성 살인 사건과 본질이 다르지 않다. 30년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고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이 더 있을지 모른다. 섬마을 근무를 경험한 여교사들은 늘 범죄의 표적이 되는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 지경이 되도록 교사들의 관사 주변에 그 흔한 CCTV 하나 설치하지 않은 교육 당국의 무능은 놀랍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사건이 공론화되고 사회 문제가 되고 나서야 대책을 내놓느라 법석을 떠는 당국이 차라리 안쓰럽다. 전형적인 뒷북행정이 아닐 수 없다. 교육 당국은 여교사를 도서 벽지에 발령 내지 않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사들의 성비를 고려하지 않은 이런 즉흥적인 대책이 미덥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치안이 부실한 벽지와 오지에서 이런 범죄의 위험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비단 교사만은 아닐 것이다. 당국은 연약한 여성들이 안심하고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유사한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구하기 바란다.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짓밟았다는 점에서 가해자들에게는 법정 최고형을 받게 해 일벌백계하는 게 마땅하다.


이 마당에 일부 주민들이 가해자들을 두둔했다는 후문은 더 엽기적이다. 자신의 딸이 당했다고 생각해 보라. 걱정스러운 것은 외상후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피해 교사의 앞날이다. 충분한 치료를 받게 하고 교직에 복귀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5. 포퓰리즘 복지 마다한 스위스 국민과 정치권

스위스 국민은 그끄저께 국민투표에서 성인 누구에게나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씩 기본 생활비를 보장토록 하는 법안을 부결시켰다. 유권자의 77%가 반대표를 던지면서다. 스위스 국민들이 ‘묻지마 공짜 현금 복지’가 오래가긴커녕 기왕의 복지 시스템까지 망가뜨릴 위험성을 자각한 결과다. 노조를 포함한 스위스인들의 높은 의식 수준도 평가할 만하지만, 스위스 정치권이 국민투표 과정에서 인기에 영합해 포퓰리즘 복지를 부추기지 않았다니 놀랍다. 왜 스위스가 진정한 선진국인지를 실감하게 하는 생생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덮어 놓고 ‘전면 무상 시리즈 공약’을 내놓는 우리 정치권과 지자체들이 지속 가능한 복지 정책을 고민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스위스기본소득(BIS)이라는 민간단체가 국민투표를 요구한 현금복지 법안의 취지는 나름의 설득력이 없지 않다. 각자에게 기본 소득을 지급해 생계를 위한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적 품위를 지킬 수만 있다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더군다나 사무 자동화와 인공지능(AI)이 초래할 ‘고용 없는 성장’ 시대를 맞아 현금을 미리 풀어 내수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자는 제안도 솔깃한 대안일 수 있다. 그러나 스위스 정부도, 국민들도 이를 부작용이 많은 ‘당의정(糖衣錠) 법안’으로 보고 현혹되지 않았다. 미성년자에게 지급할 월 78만원씩을 포함해 이를 실행하는 데 연간 2080억프랑(약 250조원)의 엄청난 재원이 소요될 판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세금을 대폭 올리고 기존의 복지를 줄여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스위스 정부가 처음부터 반대한 건 그렇다 치자. 스위스노동조합연맹(SBG)조차 “그럴 돈이 있으면 사회보장 시스템 강화에 사용하는 것이 낫다”며 정부 입장에 동조했다고 하지 않나. 분별력 있는 스위스인들이 달콤해 보이는 몰약을 덥석 삼켰다가 더 큰 속병을 앓게 된다는 걸 인식한 셈이다.


사실 아무 일을 안 해도 기본 생계를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지상낙원도 멀지 않을 게다. 하지만 철학자 칼 포퍼는 “지상에서 천국을 건설하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든다”고 했다. 국가가 뭐든지 다 해 준다는 약속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전체주의적 사술에 불과함을 지적한 것이다. 국가에 의한 100% 무상 복지로 일할 수 있는 계층마저 근로 의욕을 잃고 재정까지 고갈된다면 그 결과가 뭐겠나. 성장은 멈추고 그나마 있는 복지 전달 체계마저 마비될 위험성이 농후하다. 1년 일하면 13개월치 월급을 주는 식의 선심 정책에 환호하던 아르헨티나인들이 경제가 무너지면서 익숙했던 복지와도 끝내 결별해야 하지 않았나.


바야흐로 지구촌은 문명사적 전환기다. 청년 실업은 늘어나고 인구 고령화에 사회적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다. 까닭에 스위스에서 물꼬가 트인 기본 소득 지급이라는 전면적 복지 논의가 세계적으로 번질 조짐도 있다. 다만 복지가 미래세대에 재앙이 안 되려면 그 시혜를 청년 실업자나 생계가 어려운 노령층 등 사회적 약자부터 시작해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게 합리적이다. 이번에 스위스인들도 복지를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여야 정치권과 지자체장들이 유념했으면 한다.

6. 당리당략적 원 구성 중단하고 국회법 따르라

20대 국회가 여야 간 기싸움으로 법정 시한을 넘기면서 국정 공백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헌법과 국회법에 따라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는 국회가 조직 구성을 마치지 못함에 따라 국회 기능이 전면적으로 정지된 상황이다. 정치권은 여소야대를 만들어 준 민의를 받들어 소통과 협치의 정치를 다짐했건만 국회의장과 주요 상임위원장 배분을 놓고 공허한 네 탓 공방에만 몰두하고 있다.


여야 3당 원내 지도부가 원 구성의 법정 시한을 맞추고자 주말 연휴에 이어 어제까지 막후 협상을 벌였지만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한 치 양보 없는 평행선 대립을 지속했다. 여당은 4·13 총선 참패로 원내 122석의 제2당이 되면서 국회의장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가 정권 후반기의 국정 과제 추진을 위해 집권당이 국회의장직을 맡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청와대의 지시로 입장을 바꿨다는 비판이 비등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더민주는 원내 제1당으로서 국회의장을 가져오는 대신 법사위원장을 새누리당에 내주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했다가 어제 의원총회를 통해 국회의장 자유투표를 주장하는 국민의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국회의장 선출은 여야 합의로 본회의에서 표결해야 한다”며 ‘자유투표 수용 불가’ 입장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 임기 개시 후 7일 이내에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단을 선출하도록 한 조항은 14대 국회 때인 1994년 도입됐지만 이후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원 구성이 국회 임기 개시 때마다 늦어지면서 국정 운영에 혼란을 주고 있는 잘못된 관행이 이번에도 재연된 것이다. 법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거세지만 새누리와 더민주, 국민의당 등 여야 3당은 상식적인 협상과 협치에 주력하지 않고 상대방을 비난할 구실만 찾고 있다. 여야가 유리한 정치 지형을 확보하기 위해 기싸움을 벌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국민의 눈으로 보면 노른자위를 차지하려는 얄팍한 밥그릇 싸움 이상 이하도 아니다.


북핵을 둘러싼 국제 정세는 미·중 갈등의 증폭으로 안갯속에 휩싸여 있고 국가 경쟁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회가 조정 기능을 상실했다면 국회법 15조 규정대로 의장과 부의장은 국회에서 무기명 투표로 선출하면 된다. 법치국가의 원칙을 입법부가 스스로 허무는 20대 국회에 국민들의 실망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동아일보]

7. 삼성SDS 분할, 주주이익 존중하고 투명하게 진행해야

삼성SDS가 어제 이사회에 “글로벌 물류 경쟁력 강화 및 경영역량 집중을 위해 물류사업 분할을 검토하겠다”고 보고했다. 공시(公示)를 통해 “물류 외 정보통신서비스 등 나머지 사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도 찾겠다”고 밝혀 추가 사업 분할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삼성그룹이 한때 내부적으로 검토했던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중단하고 비(非)금융 계열사를 중심으로 사업구조 재편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삼성이 부인하지만 재계에서는 물류산업 분할이 마무리되면 삼성SDS의 양대 사업 중 정보통신서비스는 삼성전자로, 물류사업은 삼성물산으로 합병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삼성이 미래 신성장 동력 발굴과 시너지 창출을 위해 선제적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2014년 말 삼성과 한화의 4개 계열사 빅딜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핵심 역량을 집중시킨 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작년 9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한 데 이어 국내 대표적인 시스템통합(SI)업체인 삼성SDS가 알짜사업인 물류를 떼어내 삼성물산과 합병 또는 제휴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삼성의 실질적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SDS 지분 9.2%를 합병 후 삼성물산 주식으로 전환하면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도 강화된다.


문제는 삼성의 당당하지 못한 태도다. 물류사업 분할설이 증권가에 나돈 2일 삼성SDS는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었다가 몇 시간 뒤 ‘확인해 줄 수 없다’며 말을 바꿨다. 다음 날 공시를 통해 “사업부문별 회사 분할을 고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회사와 합병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일주일도 안 돼 물류사업 분할을 공식화했다. 하이투자증권이 어제 ‘주주는 인질이 아니다’라는 리포트에서 ‘분할이 됐든 합병이 됐든 그 사실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소통 방식이 잘못됐다’고 꼬집었을 정도다. 최근 3거래일 동안 주가가 20%가량 폭락해 삼성SDS의 일부 소액주주들은 어제 회사 본사 항의 방문에 이어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반발했다. 


지난해 9월 주주들의 ‘애국심’에 힘입어 출범한 통합 삼성물산은 “주주와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기업가치를 극대화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을 대표하는 만큼 삼성은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의사결정 과정에서 투명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일등 기업을 넘어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려면 국민과 시장의 불신을 키워선 안 될 것이다.

[매일경제]

8. 美·中 갈등 불구 `북핵 불용` 합의한 전략대화

미국과 중국이 제8회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북한 핵문제 해법, 남중국해 영유권 등을 놓고 수시로 갈등을 표출했지만 '북핵 불용' 원칙에는 이견이 없었다.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은 7일 전략경제대화 폐막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는 점에 미국과 중국이 동의했다"고 밝혔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안을 전면적으로 이행한다는 점에서도 양국이 의견을 같이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케리 장관은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강조한 반면 중국은 "대화·협상에 나서야 한다"며 시각 차를 드러냈다. 미국이 1일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하고 중국 화웨이의 대북 수출 내역을 조사하고 나선 데 대해서도 중국은 우려를 표시했다. 이 밖에도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확대에 대해 미국은 '일방적 행동'이라고 비판했고, 중국은 "영토주권을 결연히 수호해 나갈 것"이라며 대립했다. 철강 덤핑과 관련해서도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은 "중국의 과잉생산이 세계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며 비판했고, 가오후청 중국 상무부 장관은 "세계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수요 부족의 결과"라며 맞섰다. 


미국이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여러 분야에서 대립이 심화되고 있지만 '북핵 불용'이라는 원칙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북한은 올해 1월 4차 핵실험을 감행한 데 이어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도발을 지속해 왔고 국제사회도 그에 맞춰 제재를 강화해 왔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안은 강력한 제재라는 사실을 오랜 경험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스위스 폴란드 등이 최근 잇따라 독자적인 대북 제재 조치를 내놓고 있는 것도 그런 공감대를 반영한다. 


북한은 이달 1일 리수용 노동당 정무국 부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에도 핵·경제 병진 노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미국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시적으로 압박을 강화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국도 남중국해 영유권이나 철강·환율 문제 등과 연계해 북핵 문제를 저울질하려 해서는 안 된다. 북핵 문제의 유일한 해법은 완전한 폐기뿐이다.

9. 경유차 혜택 폐지하고 공회전 대책도 세워야

정부가 뒤늦게나마 미세먼지의 주범 가운데 하나인 경유차에 대한 혜택을 없애기로 한 것은 당연한 조치다. 폭스바겐 사태로 '클린 디젤'이 허위로 드러난 만큼 그 근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저공해 또는 친환경 차량 혜택과 관련된 시행규칙을 개정해 이르면 9월부터 경유차에 대한 수도권 공영주차장 사용료 반값 할인과 혼잡통행료 50% 감면을 폐지하기로 했다. 지난주 발표한 미세먼지 종합대책에 포함된 저공해 차량 기준 강화 방안의 후속 조치다.


문제는 기존 경유차에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경유차 지원을 근거로 차량을 구입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 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국내 경유차 등록대수가 883만대가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규 등록 차량 규제만으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다소 부작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경유차에 대한 혜택을 전면 폐지해야 미세먼지를 줄일 근본 대책이 될 수 있다. 경유차는 노후할수록 대기오염물질 발생량이 급속히 증가해 조기 폐차가 매우 중요하다. 현재 10년이 넘는 경유차는 400만대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클린 디젤' 정책 폐기와 더불어 꼭 필요한 대책이 자동차 공회전을 줄이는 일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약 20분간 공회전했을 때 버스는 미세먼지의 원인인 질소산화물을 17.3%, 택시는 5.6%, 택배트럭은 4.1% 더 많이 발생시킨다. 이처럼 공회전이 대기오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단속 등 규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회전 차량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근거해 과태료 5만원을 부과하게 돼 있다. 하지만 지자체의 단속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공회전에 걸려도 과태료를 물리지 않고 경고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운전자들도 차량 내 냉난방을 위해 아무 죄책감 없이 주차 중에 시동을 켜놓기 일쑤다. 관광버스나 경찰버스 등이 30분 이상 공회전하며 한 곳에 대기하는 모습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공회전을 줄이기 위해서는 더욱 철저한 단속과 함께 공회전 제한 장치 보급을 확대하는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

[세계일보]

10. 클린턴 대 트럼프 대결이 몰고올 한반도 리스크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어제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수인 ‘매직 넘버’를 확보해 사실상 후보로 확정됐다고 미 언론이 보도했다. 클린턴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공식 후보 지명절차를 밟으면 주요 정당의 첫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된다. 11월 8일 열리는 제45대 미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의 클린턴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간 치열한 접전이 될 전망이다.


클린턴은 남편인 빌 클린턴 정부 시절 국정에 깊숙이 개입했고 버락 오바마 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을 역임한 만큼 정치 경험이 없는 트럼프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민주당 정통 정책 노선을 계승하는 그는 ‘미국 고립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와 달리 미국의 적극적 개입과 동맹·협력 관계의 강화를 지향한다. 클린턴은 이달 초 외교정책 연설에서 “미국은 오랜 동맹국들의 곁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한반도 안보, 북핵 위기 해소를 위해 미국 정부의 협력, 정책 공조가 필요한 우리로서는 타당한 접근이라 하겠다.


미 정가와 외교가에서 클린턴은 ‘매파’로 불린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대선 경선 레이스에서 마지막 남은 진정한 매파”라고 평했다. 북핵 문제에 대해 클린턴은 ‘엄격한 제재’를 강조한다. 클린턴의 외교 책사로 불리는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정무차관은 지난달 한 싱크탱크 토론회에서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오게 하려면 북한이 가까운 장래에 붕괴나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제재 수준이 혹독해야 한다”고 했다. 대북 압박 기조를 지속하겠다는 메시지다. 그러면서 미사일 방어시스템 구축을 우선 과제로 내세운다. 최근 오바마 정부가 압박 수위를 높이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동맹 가치보다 미 국익을 우선시하는 트럼프에 열광하는 미 유권자들은 대선 결과가 어떻든 한반도 및 동북아 외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내부 싸움이 치열할수록 바깥 공동의 적에 대한 공격 수위는 높아진다. 중국, 북한 김정은 정권 등이 핵심 타깃이다. 미 정부 교체기에 우리 정부의 면밀한 외교전략이 필요한 때다. 사드, 북핵과 같은 핵심 안보 이슈가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느냐는 외교안보 라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 미·중의 힘겨루기와 일본의 우경화로 동북아 안보 지형이 불안한 마당에 ‘매파’인 클린턴, ‘독불장군’ 트럼프의 맞대결이 우리 외교력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주요 신문칼럼

1. [주간경향][유창선의 눈]우리는 아직 더 슬퍼해야 한다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의 <노예선>은 화물로 취급당하며 바다에 버려진 인간들의 처참한 모습을 그린 작품인데, 1783년에 있었던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400명을 싣고 자메이카를 향해 가던 영국 노예선 종(Zong) 호는 위기에 봉착한다. 오랜 항해 과정에서 질병 등으로 50여명의 노예와 선원들이 사망한 상태였고, 식수도 여유가 없었다. 이에 선원들은 노예들을 바다에 던져 학살하기로 했다. 보험금 때문이었다. 당시 보험사와의 계약조건은 노예가 배에서 사망하면 선주의 책임이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게 되어 있었지만, ‘화물’이 바다에 빠져 없어질 경우에는 보험금이 지급되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보험금을 노예 한 명분으로 환산하면 1인당 30파운드였다. 선원들은 이 보험금을 위해 노예들을 한 명씩 바다에 던져버리는 학살을 했던 것이다. 돈에 대한 탐욕 앞에서 인간은 이처럼 짐짝만도 못하게 다루어져 왔다. 불과 150여년 전의 일이었다.


구의역에서 참변을 당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 또한 인간의 생명보다 돈을 우선하는 사회의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본질은 다르지 않다. 업체들은 위험한 일은 외주에 맡기고, 사정이 열악한 하청업체는 경비 절감을 위해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을 시킨다. 가방에 넣고 다니는 컵라면 먹을 시간조차 없이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이 사회가 곧 노예선인 셈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조차 가로막는 정치가 그대로 있는데, 안전을 우선해야 한다는 교훈이 망각의 영역으로 사라져버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위험을 예방하자는 취지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철로 정비 등 생명·안전업무 종사자를 정규직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19대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에 의해 발의되었지만, 정부의 부정적 의견 때문에 폐기되었다고 한다. 그때 정부가 내세웠던 이유가 그렇게 하면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일할 기회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정규직의 유지를 통해 위험을 아래로 떠넘기는 목숨의 하청 고리는 이어져 왔던 것이다.


구의역에서 있었던 청년의 죽음 앞에서 안전에 대한 근본대책이 필요하다고 너도나도 말한다. 사실은 세월호 때도 그랬다. 하지만 이런 사고들, 이런 비통한 죽음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돈과 효율의 가치를 우선하는 거대한 질서가 바뀌지 않는 한 약자들이 우선적으로 희생되는 일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그러했다.


그렇다면 이 엄연한 시대적 한계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나마 마음껏 슬퍼하는 일일 게다. “안전장치도 하나 없는 환경에서 끼니를 굶어가며 일했다”며 “솔직히 얘기했다면 부모로서 당장 그만두라고 했을 것”이라던 어머니의 슬픔을 충분히 공감한 이후에야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사회가 얼마나 야만적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철학자 푸코가 말했던 ‘살게 하거나 죽도록 내버려두는 통치술’에 따라 선택받은 자는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죽어야 하는 시대의 잔혹함을 말이다.


슬퍼해야 분노도 생기고, 비통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줄어들도록 그래도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구의역 승강장의 추모 포스트잇과 국화꽃들은 이 정글과도 같은 사회 속에서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마지막 끈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 아직 더 슬퍼하도록 하자.

2. [매일경제]피어나지 못한 청춘 일기 - 영화 ‘동주’, ‘리틀 애쉬’

29세, 다 피어보지도 못하고 별이 되어버린 청춘을 그린 영화 ‘동주’. 예의 교과서를 통해 보아온 시인 윤동주와 우리에게는 조금 낯설었던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생애를 다룬 전기 영화 ‘동주’는 단출한 화면으로 긴 여운을 남겼다. 


동주와 몽규의 청춘일기는 불안하고 아름다운 젊은 날의 일상을 진솔하게 기록한다. 어두운 시대상황을 수묵화로 그린 듯 110분의 러닝타임 동안 살풍경한 흑백 화면은 여러 번 가슴을 치고 지나간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삶에 가장 깊숙이 들어갈 수 있던 학창시절, 한 지붕 아래 사는 사촌지간 동주와 몽규는 늘 비교대상이기도 했다.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몽규의 낭보에 동주는 기뻐하면서도 왠지 모를 침울함을 앓기도 한다. 그렇게 동주는 가슴 한 켠에 자신보다 늘 한발 앞서가는 듯한 몽규에 대한 열등감을 품게 되는데,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시인에게도 이러한 열등감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몽규와 동주는 같은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하고, 하숙집에서 동기생 처중을 만나며 셋의 우정은 깊어진다. 동주와 몽규, 처중이 문예지를 만들며 문학이라는 예술적 매개로 교우하는 모습에서 살바도르 달리의 청춘을 그린 영화 ‘리틀 애쉬’가 오버랩 된다.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에서 예술적인 천재성으로 영감을 주고받던 청춘들 로르카, 브뉘엘, 달리는 이후 문학, 영화 미술 분야에서 한 시대를 일신하는 거장으로 성장하게 되지만, 나라를 잃은 청춘에게 빛나는 미래는 한낱 신기루 같은 꿈이었다. 


동주의 시에는 청춘에 대한, 혹은 시대에 대한 맑은 희망이 묻어나지만, 시대의 공기는 시인이 되고자 했던 청년의 꿈을 옥죄고 좌초시키고 만다. 혼란한 나라를 떠나 일본에서 공부를 이어가지만, 동주는 독립운동에 매진하게 된 몽규와 함께 끌려가 옥살이를 하게 된다. 생체실험으로 의심되는 주사를 맞으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면서 동주는 읊조린다. 


“이런 시대에 태어나서 시를 쓰겠다고,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 원했던 내가 부끄럽습니다.”


달리와 로르카, 브뉘엘의 열병 같은 순수함이 종내 무르익어 결실을 맺게 되었듯, 이들 역시 시대를 풍미하는 거장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 좋은 작품을 발표하고, 사랑도 해보고, 결혼도 하며 남들 하는 일 다 겪어볼 수 있었던 어린 청년들이었다. 시대의 비극으로 차가운 옥중에서 외로운 생을 마감하면서조차 동주는 부끄러워했다. 나라를 원망하는 대신 시를 쓰는 자신에게 화살을 돌렸다. 일제 치하에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날에도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탓하기보다 어려운 상황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어깨를 움츠리는 청춘이 눈에 밟혀 더욱 가슴 언저리를 아프게 한다. 

청춘의 어느 날, 달리는 로르카 앞에서 작품을 완성하였고 이를 지켜본 로르카는 작품의 제목을 지어준다. ‘Little Ashes’. 우리는 언젠가 재가 되어 흩어진다. 허공을 부유하는 초현실주의적인 형체들이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필연적인 순간을 예고하는 것 같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기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소멸하여 별이 된 청년. 한낮의 빛이 사위고 별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순수했던 문학 소년은 별을 헤며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이름을 불러보았고, 이제 그 소년은 그들처럼 역사를 풍미한 별이 되었다. 혼란한 시대 탓으로 그가 저당 잡힌 시간에 대한 약간의 빚이 우리에게도 있다면,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아닐는지. 그가 시를 쓴 것은 부끄럽지 않은 일이었음을, 시 한 편 쓰는 자유조차 허락하지 못했던 세상이 당신께 부끄러워해야 할 일임을 말이다. 


19세의 나이로 재가 되어버린 지하철 노동자의 죽음에 추모의 발길이 이어진다. 구조적인 문제로 고통 받고, 평범한 시간조차 누리지 못하고 떠나버린 젊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길은 나은 세상을 위한 꽃밭을 함께 고민하고 가꾸어 나가는 것일 게다. 


미완의 젊음이 남긴 짧은 기별이, 재가 되어버린 꿈이 훈풍에 실려 훨훨 날아 우리 가슴에 가라앉길, 그리고 꽃이 피어나길.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윤동주 <서시> 중에서

3. [머니투데이][우리가 보는 세상] 다시 청춘, 좀 다른 청춘

언뜻 보고는 실내 전시용으로 붉은 벽돌에 박아놓은 전위적 목공예 작품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 있었다. 바닥과 벽 사이 간신히 난 틈에서 자라난 나무는 벽돌을 하나하나 쥐고 구불구불 창틀 위까지 올라 양철 지붕으로 뚫린 구멍으로 나가더니 잎사귀들을 무성하게 뻗쳤다. 아이 얼굴만치 큰 잎들. 오동나무였다. 지붕 위 푸른 잎들은 그 아래 줄기와 뿌리가 처한 열악한 환경에 아랑곳없이 바람이 불자 햇빛을 튕겨내며 까불거렸다.


지난 5일 '동인천건축탐험대'가 들어간 곳은 인천 참외전로 172-41번지의 전시공간 ‘잇다스페이스’였다. 80여년 전엔 소금창고였고 일제시대엔 여자한증막, 15년 전까진 골목 서점이었던 이곳은 지난해 2월까지 폐허였다. 


정희석 잇다스페이스 대표는 자신의 목공예품을 쌓을 창고를 찾아 인천 골목을 헤매다 지쳐 담벼락에 잠깐 등을 기댔다가 이 곳 나무와 인연을 맺었다. 담배 피다 슬쩍 열어본 창고 안엔 지붕까지 침대, 찬장 따위 온 동네 쓰레기가 쌓여 있었고 어두운 실내를 더듬어 들어가자 가냘픈 새 잎 하나가 난데없이 마른 줄기에서 돋아 있었다고 했다. 정 대표는 그걸 보고 “아, 여기다” 했다. 


그는 밖에 ‘엄마나무’가 따로 있다며 일행을 옆집과 함께 쓰는 담장으로 이끌었다. 시멘트 바닥 위로 여자팔로 한 아름은 됨직한 그루터기가 솟았고, 그 위에 날 선 도끼가 놓여 있었다. 땅 위로 드러난 뿌리마다 도끼질 자국이 선명했다. 지금도 도끼질을 해줘야 한단다. 옆집 민원 때문이다. 오래전 베인 나무에서 뿌리가 계속 자라 옆집 구들장을 계속 들어 올린단다. 그 힘으로 나무는 시멘트로 뒤덮인 땅 아래를 뿌리로 더듬다가 깨진 지붕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과 빗물을 찾아내고 줄기를 뻗었을 것이다. 그 좁은 지붕이 뿌리에 다시 잎사귀를 올릴 기회, 다시 청춘을 줬다. 


다시 청춘을 찾아 사회적 경제 영역에 들어오는 베이비부머들이 꽤 많다. 어떤 청년들은 스펙 쌓기와 무한경쟁의 논리를 피해 청춘을 다르게 싶다는 생각으로 들어온다. 더러는 실망하고 더러는 상처 받는다.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도 기존의 경제 생태계 안에서 활동하는 조직 중 한 형태다. 한국 경제 생태계가 안은 한계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어렵다. 한국의 사회적 경제는 잇다스페이스의 오동나무와 닮았다. 삶을 발현할 기회를 잃은 이들이 찾아낸 작은 기회, 작은 틈새다. 


사회적 경제에서 다시 청춘 혹은 다른 청춘을 찾고자 한다면, 필요한 건 아직 못 다 피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조금 다른 관계 혹은 조금 다른 관점이다. 동인천탐방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의중 대표는 서울 북촌에서 사회적기업을 준비하다 인천 송학동 한옥, 신흥동 대저택에 남아 있는 품격을 보고는 계획을 바꿨다. 뿌리를 옮긴 것이다. 


1920년대 얼음창고로 쓰였던 벽돌건물을 재생해 아내와 카페를 연 그는 인천막걸리 ‘소성주’ 회장집이던 한옥에서 살고 있다. 그는 뜻 맞는 건축가를 모아 30년은 더 건축재생에 몰입하고 싶단다. 100년 된 건물을 무너뜨리고 새로 지으면 20살짜리 그냥 건물이 되지만 재생해 다시 쓰면 120년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말했다. 건축물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4. [서울신문][이호준 시간여행] 완행열차와 함께 떠난 것들

해마다 6월이면 기차 여행을 떠난다. 녹음이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계절, 산천은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른다. 들판을 열어젖히며 달리는 기차의 창을 스치는 풍경은 얼마나 가슴 설레게 하는지. 이 무렵에는 자동차보다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이 훨씬 행복하다.


산들은 금방 머리를 감고 나온 새댁처럼 싱그럽고 강물은 노래하며 완보(緩步)로 흐른다. 강둑에는 미루나무 여린 잎들이 바람 따라 깔깔거리며 몸을 뒤챈다. 낮은 언덕에는 예배당 종탑이 우뚝 서 있다. 가슴을 활짝 열어젖히면 뎅뎅 푸른 종소리가 들판을 달려와 안길 것 같다. 간이역에서 내려 가르마처럼 뻗은 논길을 걸어가면 산 아래 낮게 엎드린 집에서 허리 굽은 어머니가 마중 나올 것 같다.


기차가 시골 역에 들어서면 사람 사는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주름이 깊어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노인 하나가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 열차가 서고 젊은 여인과 서너 살 정도 먹어 보이는 아이가 내린다. 노인의 얼굴에 순식간에 환한 꽃이 피어오른다. 고단으로 찌든 삶 어디에 저런 미소가 숨어 있을까. 시집간 딸과 손자가 다니러 온 모양이다. 할머니를 발견한 아이가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달려간다. 노인도 마주 달려간다. 걸음이 둔할수록 상봉의 감동은 웅숭깊다.


만남이 있는 곳에는 헤어짐도 있기 마련. 아빠와 엄마, 그리고 꼬마 형제가 기차에 오른 뒤 플랫폼에는 노인만 남았다. 노인은 떠나는 자식들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든다. 화살처럼 내리꽂히는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손짓마다 이별의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하지만 얼굴 가득 피어난 미소는 끝내 지워지지 않는다.


6월의 여행은 가능하면 천천히 달리는 기차를 타고 간다. 역마다 서는 기차라야 제맛이 난다. 검은 연기를 내뿜던 증기기관차는 퇴역한 지 오래고 완행열차 자체가 시간의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그 이름에 담긴 그리움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시골 풍경 속을 지나다 보면 완행열차가 누비던 날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그때의 기차는 민초들의 기쁨과 아픔까지 싣고 오갔다. 돈벌이를 찾아 도시로 가는 처녀도, 푸른 꿈을 품고 서울로 가는 청년도 기차를 타고 고향을 떠났다.


그 시절의 완행열차는 요즘의 기차처럼 안락하지 않았다. 자리 하나에 여럿이 끼어 앉기도 하고 통로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으면 그게 내 자리였다. 시큼한 땀 냄새와 억센 사투리도 함께 길을 떠났다. 손수건에 싸 온 삶은 달걀을 나눠 먹고 사이다 하나로 여럿이 갈증을 달래기도 했다. 그런 풍경 역시 옛날이야기가 됐다. 속도 경쟁에서 밀려 소박한 삶을 실어 나르던 열차도, 정겹던 풍경도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빠르게 달리는 세상이 어지럽다. 분침과 초침에 쫓기는 삶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얼마나 많은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달려야 하는 일상 속에서는 나 자신조차 들여다볼 기회가 없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 속의 부품으로 전락한 채 한세상을 쫓기다 갈 뿐이다. 천천히 가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한발 비껴나 본래의 나를 찾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완행열차다. 그 열차 어딘가에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꿈이 길게 누워 있을 것 같다. 6월이면 느리게 달리는 기차를 타는 이유다.

5. [동아일보][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잘못된, 혹은 위험한 훈육법

동생의 팔을 주먹으로 때린 아이, 엄마는 “너, 동생 때리지 말라고 했지? 어디 너도 한번 맞아 봐. 동생이 얼마나 아플지 느껴 봐” 하며 아이의 팔을 주먹으로 때렸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는 동생의 아픔을 공감했을까? 그리고 다시는 때리지 말아야겠다며 깊이 뉘우쳤을까?


게임을 하루 30분만 하겠다는 아이가 오늘은 50분을 했다. 아빠는 한 달 동안 게임을 금지했다. 아빠는 아이와 미리 약속했기 때문에 정당한 벌이라고 생각했다. 아울러 이렇게 해야 한 달 뒤 다시 게임을 하게 되었을 때 이전보다 약속을 잘 지킬 것이라고 믿었다. 과연 아이는 다음에는 좀 더 잘 조절하게 되었을까? 


아이가 잘 놀다가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너, 당장 네 방 ‘생각의 의자’에 가서 앉아!” 아이는 “싫어! 싫어! 안 가! 안 간다고!” 발을 쾅쾅 구르며 악을 썼다. 엄마는 발버둥치는 아이를 질질 끌다시피 하여 ‘생각의 의자’로 데려갔다. 아이는 의자 앞에서도 앉지 않으려고 두 다리를 뻗댔다. 엄마는 “어디!” 하며 억지로 의자에 앉힌 뒤 문을 쾅 닫았다. 그러고 꾸욱∼ 잠금장치를 눌렀다. “네가 뭘 잘못했는지, 잘 생각해 봐.” 아이는 “엄마, 열어! 열어!” 하면서 문을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면서 울부짖었다. 잠시 뒤 조용해졌다. 아이는 지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중일까?


우리가 흔히 쓰는 훈육 방법 중에는 잘못된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대표적인 것이 앞의 세 가지이다. 우선, 폭력을 쓴 아이에게 폭력으로 되갚아 주는 ‘너도 똑같이 당해 봐’ 식의 훈육이다. 이런 방법은 훈육이라기보다는 폭력 교육이다. 아이가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을 오히려 약간 강화된 형태로 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나쁜 행동을 안 하기는커녕 훈육자의 공격성을 다시 모델링하여 더 폭력적이 될 수 있다. 절대 쓰지 말아야 하는 방법이다. 


다음은 ‘약속 어겼으니, 너 이제 못할 줄 알아’ 식의 훈육이다. 보통 게임이나 TV 시청 시간, 스마트폰, 용돈 등에 많이 쓰는 방법인데, 사실 적절히 제한만 하면 나쁜 방법은 아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적절히’를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 그 기간이 일주일, 한 달 정도로 너무 길다. 어린아이일수록 너무 길게 제한하면 못 견딘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몰라 몰라 약속하든지 말든지. 그냥 실컷 하고 혼나고 말지’가 된다. ‘적절히’란 하루, 이틀 정도이다. 어린아이일수록 제한은 짧게 두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아이에게 어떤 제한 설정을 할 때는 늘 조절이나 한계를 가르치기 위함이지, 기회를 박탈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는 요즘 인기 있는 ‘타임아웃’ 식의 훈육이다. 가정에서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생각의 의자’ ‘생각의 방’이 등장하면서 이 방법을 정말 많이 쓴다. 타임아웃은 잘 쓰면 굉장히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좀 어려움이 있다. 예전 한 실험에서 동양 사람들과 서양 사람들에게 각각 넓은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서 있어 보라고 했다. 서양 사람들은 드문드문 섰다. 하지만 동양 사람들은 공간이 그리 넓은데도 다닥다닥 붙어 섰다. 우리 정서와 문화도 서로 밀착되고 붙어 있어야 안정감을 느낀다. 부모 자녀 관계에서도 부모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고불고 매달리는 아이들이 많다. 이 때문에 타임아웃을 조금만 잘못해도 아이는 부모 혹은 교사가 자신을 거부한다고 느낄 수 있다. ‘생각의 방’에 안 간다고 우는 아이가 많은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이다. 벽을 보고 서 있으라는 벌도 아이는 타임아웃과 비슷하게 느낀다. 


더군다나 ‘생각의 의자’에 가서 앉으라고 말할 때, 우리 부모들은 너무 무섭다. 잘 적용하려면 감정은 빼고 약간 사무적으로 단호하게만 하면 된다. 타임아웃은 안정된 너의 공간에서 너 스스로를 진정시켜 보라는 것이다. 겁을 주거나 협박할 필요가 없다. 외국의 아이들은 타임아웃으로 가게 되는 장소를 ‘자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공간’이라고 여기지만, 우리나라 아이들은 ‘벌을 받는 독방’이라고 느낀다. 우리의 문화와 정서를 고려해볼 때, 나는 타임아웃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부모가 아이와 마주 앉아 가만히 지켜보면서 진정할 시간을 주는 것이 훨씬 더 적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훈육은 아이 성질이 나빠서 혼내고, 아이 잘못을 벌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알아야 하는 옳고 그름을 가르치고, 조절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훈육은 부모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이며, 아이에 대한 더 큰 사랑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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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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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7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헤럴드경제]

1. 중국 불법 어선 문제 정부對 정부 차원서 해결해야

서해 연평도 어민들이 불법 조업중인 중국 어선을 직접 나포한 사건이 충격적이다. 서해 5도 해역에서의 중국 어선 불법 조업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특히 꽃게잡이 철을 맞아 연평 바다를 가득 메울 정도로 기승이다. 이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바닥까지 훑어가는 바람에 정작 우리 어민들의 그물은 텅비고, 어장은 황폐화되고 있다. 그런데도 해경 등 우리 당국은 제대로 단속도 못하고 있다. 보다 못한 연평 어민들이 직접 응징에 나선 것이 이번 사건의 전말이다. 


생계가 걸린 조업을 포기하고 불법 어선을 잡겠다는 어민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연평 어민들이 중국 어선을 나포한 곳은 북방한계선(NLL)에서 남쪽으로 불과 500여m 떨어진 어로통제구역라고 한다. 홧김에 앞 뒤 재지 않고 달려갔지만 북한 경비정이라도 들이닥쳤다면 정말 위험하고 곤혹스런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 1,2차 연평해전이 일어난 곳도 이 지역이다. 


더욱이 중국 어선들은 해경 단속에 저항하기 위해 낫과 쇠꼬챙이 등을 배에 싣고 다닌다. 나포된 중국 어선에도 이런 흉기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나포 시점이 새벽녘 중국 선원들이 자는 시간이라 별 저항이 없었다지만 자칫 강력하게 저항했다면 인명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이 정도로 그친 것만해도 다행이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우리 해경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해경도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드는 중국 어선을 단속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연평 앞바다는 첨예한 남북대치 해역이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중국 어선들은 불법 조업을 하다 해경이 나타나면 전 속력으로 NLL 북쪽으로 달아난다. 그러다 해경이 NLL을 넘어서기라도 하면 남북 군사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행태다.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은 이제 서해 연평해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남해와 동해까지 중국 선단이 출몰하고 있다. 어민 보호와 나아가 해양 주권 수호 차원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외교라인을 통해 중국에 준엄하고 강력하게 불법 어선 단속을 요구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 해양 당국은 지난해 ‘불법어업 방지를 위한 공동합의문’을 채택한 바 있다. 이거라도 제대로 지키라고 따져야 한다. 어민들이 불법 어선을 잡으러 다닐 정도라면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2. 유럽 주요 도시들이 '민생 시장'를 선택한 이유

유럽에 여성 시장(市長), 생활밀착형 시장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 시장선거에서 변호사출신 비르지니아 라지 후보가 집권 민주당의 로베르토 자케티 후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19일 결선투표에서 승리할 경우 사상 첫 여성 로마시장이 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인 유럽 주요 대도시 시장이 라지같은 인물들로 바뀌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미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마누라 카르메나와 아다 콜라우 시장을 배출했고, 프랑스 파리는 얀 이달고가 수장이 됐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역시 가브리엘라 피레아가 시장에 당선됐다. 모두 여성이자, 기성 정당의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이들은 시민운동을 해왔거나, 작은 변화를 내건 군소정당 소속인데도 유권자인 시민들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유럽은 총선에서 반난민 정서를 자극한 우익 보수 정당들이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장을 뽑는 지방선거는 양상이 다르다. 부패하거나, 당리당략 싸움에서 자유롭지 못한 기존 정치인에 대한 실망감과 반감이 시민들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당선된 시장들의 공통분모는 ‘시민들을 위한 정치, 생활밀착형 정치’를 표방하고, 추구한다는 것이다. 라지 로마시장 후보는 악명높은 교통정체를 없애겠다고 했다. 쓰레기도 줄이고, 공공기관의 무사안일도 배격한다. ‘어느 당도 로마시민을 돌보지 않고 있다’는 그의 분노에 시민들은 지지표로 화답했다. 카르메나 마드리드 시장도 시 소유 골프장을 대중에게 개방했다. 시장 연봉을 대폭 삭감하려다 반대에 부딪히자 상당액은 기부하기로 했으며, 오페라와 투우장 무료입장 특혜도 거부했다. 시민운동가 출신 콜라우 바르셀로나 시장은 가스 수도 전기 요금 등 인하를 약속했다. 또 F1 경주 지원금을 어려운 공립학교 학생의 급식비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했다.


저명하고 촉망받는 정치인이나, 도시를 유명하게 만들 각종 이벤트 개최는 실제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변화를 택한 이유다. 그들의 도시가, 정치인의 치적이나, 정치인이 더 큰 무대로 나아가는 발판으로 전락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우리나, 외국이나 이제 재임기간 중 막대한 비용으로 전시성 이벤트를 유치하고, 시 재정을 바닥내는 정치적 시장들은 설 곳이 없어질 것이다.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언변좋은 정치인이 아니라 부지런하고 꼼꼼한 행정가다.

[아시아경제]

3. 기업문화 과제 제시한 롯데ㆍ넥슨 사태

국내의 대표적인 유통 대기업과 벤처업체가 비리 의혹에 휩싸이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유통 재벌 롯데는 총수 일가가 최대주주인 면세점 입점 대가성 뇌물수수 의혹으로, 최대 게임업체인 넥슨은 창업주의 대학 동창인 검사장의 재산증식 과정에서의 부당거래 의혹으로 각각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검찰이 일단 철저히 진상을 밝혀야 할 문제들이지만 검찰 수사를 넘어서 기업 문화의 개선을 위한 하나의 시금석으로 삼아야 할 '사건'들이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비롯된 법조비리 수사 과정에서 면세점 입점 대가로 수억~수십억원의 금품을 받은 의혹이 불거졌다. 넥슨은 창업주인 김정주 대표의 대학 동기인 진경준 검사장이 자사의 비상장 주식을 샀다가 팔아 120억원이 넘는 차익을 챙기는 과정에서 수상쩍은 정황이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두 회사의 이 같은 의혹들에 대해 위법 행위가 없었는지 검찰 수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김 대표나 신 이사장에 대한 조사 등이 곧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으니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두 회사를 둘러싼 이번 사태는 단지 사법처리 여부에 국한되지 않는, 새로운 기업문화의 정착을 위한 과제를 새삼 환기시키고 있다. 즉 우리 기업의 신구(新舊)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대기업과 벤처기업에 각각 필요한 자기쇄신과 새로운 기업문화의 제시다.


롯데의 경우 대기업의 '폐쇄경영' '가족경영'의 어두운 면을 다시 보여준다. 롯데 측은 이번 일을 '개인비리'라고 강조하지만 신 이사장이 오너 일가인데다 롯데의 8개 계열사 등기임원으로 재직 중인 현실에서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신동빈 회장이 경영권 분쟁 이후 여러 번 천명해 온 대로 가족(소유)ㆍ경영 분리, 그룹 투명성 개선 등의 원칙이 빈말이 되지 않으려면 고질을 도려내는 과감한 수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넥슨의 경우는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한다.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등의 히트작을 터트리면서 한국 벤처업계의 성공 신화로 꼽혀 온 넥슨은 기술에서의 혁신과 함께 기업문화나 의사결정 구조에서도 새로운 모범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해 왔다. 그러나 이번의 사태는 그 같은 기대와 바람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회사 자금이 투입된 진 검사장 관련 사항을 '개인 투자자 간의 거래'라고 하는 등의 해명은 설득력도 낮을 뿐더러 무책임한 자세다. 기업문화에서도 첨단인 진정한 벤처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이데일리]

4. '놀고먹는 낙원' 거부한 스위스 유권자들

모든 성인에게 매월 2500스위스프랑(한화 300만원)씩 기본 생활비를 보장토록 하는 스위스 국민투표가 부결로 끝났다. 그제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유권자의 77%가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돈을 그냥 퍼주겠다는 복지 포퓰리즘에 선뜻 동의하지 않은 스위스 국민들의 높은 의식 수준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투표에 부쳐진 방안대로 각자에게 기본 생활비를 지급함으로써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벗어나 인간적 품위를 유지하자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가만히 팔짱을 끼고 있어도 기본 생계는 물론 최소한의 문화생활까지 누릴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된다면 그야말로 지상낙원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셈이다. 그런데도 세계 최초로 지상낙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스위스 국민들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방안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데다 한 번 맛을 들이게 되면 그 유혹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치명적인 함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일할 수 있는 사람조차도 근로를 포기하게 됨으로써 사회가 생산을 멈추고 점차 무기력증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결국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고 나라를 들어먹는 것도 금방이다. 스위스가 유럽에서 부자나라로 손꼽히면서도 정부와 의회가 이 법안에 미리부터 반대하고 나선 것이 그런 때문이다.


이미 국내에서도 복지 포퓰리즘 공세가 시작됐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의 청년지원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두 사람의 정치적 야심과도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중앙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중소기업 취업 청년들에게 1200만원 목돈을 만들어 주겠다는 별도 대책을 내놓았다. 이들 지자체에 대해 예산안 위법성 소송을 대법원에 제기한 자체가 코미디다.


일단 스위스에서 논의가 시작된 만큼 앞으로 비슷한 문제 제기가 이어질 것이다. 갈수록 실업이 늘어나고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에서도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다. 삶의 활력을 깎아먹는 무분별한 복지보다는 실업수당이나 노령연금 등 선별적 지원으로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일하지 않고도 지상낙원을 이룰 수 있다는 허망한 환상을 경계해야만 한다.

5. 반기문 총장은 유엔서도 대선 행보하나

지난달 하순 국내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놓고 뉴욕으로 돌아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현지에서도 대권 행보로 비칠 움직임을 그치지 않고 있다. 현재 방미 중인 이해찬 의원이 “차나 한 잔 마시자”는 반 총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두 사람이 내일 유엔본부에서 회동한다는 것이다. 공연히 오해를 살 만한 처신으로 빈축을 사는 것이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반 총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당시 외교장관으로 사무총장에 출마했을 때 국무총리였던 이 의원이 그의 선거운동을 지원한 인연이 있으니 만나지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시기가 문제다. 반 총장이 참여정부 핵심 인사를 만나는 것이 2006년 총장 취임 이후 처음이라지만 굳이 이 시점에 친노(親盧) 좌장인 이 의원을 만나 온갖 억측을 낳는 게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그가 지난번 귀국 때 국내 정치 지도자들을 질타하며 “임기 종료 후 한국 시민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를 고민, 결심할 것”이라고 밝히자 대부분 언론이 사실상의 대선 출정으로 받아들였다. 김종필 전 총리 예방과 안동 하회마을 방문은 친박(親朴)계의 정권 재창출 전략이라는 ‘충청+TK(대구·경북)’ 연대론의 시동으로 해석됐다. 반 총장은 출국 기자회견에서도 자신의 발언과 행동을 “과대 해석하거나 추측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며 한 발 빼는 듯했지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별로 없었다.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로 유엔 회원국들이나 외신의 공세에 대비하려는 면피용이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번에 그가 다시 이 의원에게 손을 내민 것도 앞으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화제를 몰아가며 대선 판도의 중심에 서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출로 읽힌다. 아울러 불편한 사이로 알려진 친노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자신이 여권 후보로 굳어지는 듯한 항간의 분위기에 제동을 걸어 몸값을 높이려는 의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 최대 국제기구의 수장에 오른 대한민국의 귀중한 자산이 경솔한 행동으로 본인과 국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은 피해야 한다. 반 총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7개월도 안 남은 임기를 잘 마무리해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다. 더 이상 말장난으로 국민을 우롱해선 안 된다. 진정 대권에 뜻이 있다면 퇴임하고 나서 움직여도 늦지 않다.

[서울신문]

6. 서울메트로, 억지 문책으론 사고 재발 막을 수 없다

“매를 번다”는 속담이 있다. 서울 지하철 구의역 사고를 수습하는 서울메트로의 행태를 보면 절로 나오는 말이다. 구의역의 안전문을 혼자 수리하다 19세 용역업체 정비원이 사망한 사고는 서울메트로의 책임이 거의 전부다. 안전관리의 기본조차 무시한 처사에 울화가 치미는데 자사 퇴직자들의 자리를 챙기려고 하청업체와 갑질 거래를 해 왔다니 분노가 솟는다. 이쯤 되면 누구 하나라도 즉각 책임을 졌어야 했다. 그런데도 겨우 어제서야 임원 2명의 사표를 수리하고 관계자 5명을 직위 해제했다. 어이없는 사고가 난 지 무려 9일째다. 지탄이 쏟아질 대로 쏟아지자 등 떼밀린 자구책이라는 느낌이 역력하다.


구의역 사고에 대한 비판이 거세자 서울메트로는 그제 간부급 임직원 180명의 사표를 받았다. 그것도 사고 책임자를 문책하려는 조치가 아닌 면피용이어서 되레 역풍을 맞았다. 앞으로 업무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면 제출된 사표를 수리하겠다는 황당한 입장을 내놨다. “집단 사표 코스프레”라는 뭇매를 맞고서야 서울메트로가 수습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경영진 사표 수리인 셈이다.


최근 몇 년간 같은 사고가 반복됐는데도 서울메트로는 달라진 게 없다. 지난해 8월 강남역 안전문 수리 도중 정비원이 사망하고서는 2인 1조 근무 수칙을 철저히 감독하겠다고 장담하더니 말뿐이었다. 부실한 관리 감독보다 더 큰 문제는 이른바 ‘메피아’의 검은 커넥션이었다니 기가 막힌다. 사고를 당한 김군의 소속 업체 은성PSD는 2011년 서울메트로 퇴직자들의 자리를 챙겨 주느라 만들어진 하청업체나 다름없었다. 하청업체 정원의 72%인 90명을 퇴직 임직원들로 채워 그들에게 기존 월급의 60~80%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용역 입찰 계약을 했다. 이런 횡포에 하청업체는 ‘물 반(半), 메피아 반’의 가분수 괴물이었으니 합리적 경영은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이다. 은성PSD는 서울메트로에서 받은 용역비의 30%를 메트로 퇴직자들의 인건비로 썼다. 김군 같은 현장 인력들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목숨 걸고 일해도 고작 144만원의 쥐꼬리 월급을 받았던 까닭이다.


명색이 공기업인데 이런 고약한 갑질이 또 없다. 온갖 잡음에도 청년수당을 챙겨 주며 일자리 복지를 외치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왜 꿀 먹은 벙어리인지 알 수 없다. 안전 관련 업무의 외주를 중단하겠다는 한마디로 책임을 벗을 수는 없다. 서울시 산하 공기업만이라도 낙하산 인사와 구린 갑질 커넥션을 뿌리 뽑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상식이다.

7. 미·중 ‘북핵 긴밀공조’ 말로만 그쳐선 안 돼

최근 북한 핵 문제 해법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의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베이징에서 양국 정부 핵심 인사들이 오늘까지 이틀간의 일정으로 ‘전략경제대화’를 하고 있다. 미국은 존 케리 국무장관과 제이컵 루 재무장관, 중국은 왕양 경제담당 부총리와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각각 대표단을 맡았다. 첫날인 어제 케리 장관은 양국이 북핵 문제에서 지속적으로 공동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개막식 축사를 통해 “미국과 중국이 북핵 문제 등에 대해 긴밀한 소통과 협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발언록만 놓고 보면 두 나라 사이의 ‘북핵 긴밀공조’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미·중 양국이 이번 대화를 통해 북핵 해결의 공조를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 준다면 북핵의 직접 당사자인 우리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모쪼록 미·중 양국이 외교적 언사를 뛰어넘어 ‘북핵 공조’의 폭과 깊이를 확대해 주길 기대한다.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초강대국이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북핵 문제에 공동 대처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역할이자 책무라고도 할 수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는 일관되고도 강력한 대북 제재를 실시해 왔다.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호된 제재가 계속되면서 차츰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돈줄이 막힌 상태에서 강한 송금 압박에 시달리던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들이 연쇄적으로 집단탈출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고삐를 죌 때이지 재갈을 풀어 줄 시기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최근 동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시 주석이 김정은 특사 리수용을 면담해 북·중 관계를 핵실험 이전 수준으로 되돌려 놓고, 당국자들은 연일 대화를 강조하며 제재 전열을 흐트러뜨리고 있다.


중국의 이런 어깃장은 미국의 대중(對中) 현안 압박 등에 대한 반발일 가능성이 높다. 8번째인 이번 대화를 앞두고 미국은 남중국해는 물론 위안화 환율과 무역, 인권, 해킹 등 사실상 전 분야에 걸쳐 중국에 할 말은 하겠다고 별려 왔다. 대북 제재와 관련해선 북한과 거래해 온 중국 거대 정보기술(IT) 업체 화웨이를 정조준하고 있다. 대선을 앞둔 탓에 미국의 ‘중국 때리기’ 강도가 예년과는 사뭇 다른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미·중 간의 이런 대립과 갈등이 결국 우리에게 불똥이 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대북 제재의 균열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 아닌가.


미·중 양국이 자국의 이익을 따라 통상과 안보, 인권 정책 등을 달리하면서 상대국을 힐난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우리가 뭐라고 할 처지도 아니다. 하지만 이란 핵 문제가 원만하게 타결된 지금 내전 중인 중동을 제외하고 가장 위험한 지역은 바로 한반도라는 사실을 미·중 양국은 직시해야 한다. 이대로 북핵이 실전 배치된다면 미·중은 물론 국제사회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외교안보적 노력과 비용을 치러야만 한다. 미·중 갈등이 대북 제재 전선의 균열로 이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북핵 문제만큼은 절대 팻감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동아일보]

8. 매일 5억 혈세 쓰는 20대국회, 지각개원하면 세비 반납하라

여야 3당은 어젯밤까지 원(院) 구성 협상을 벌였으나 국회의장과 주요 상임위원장 배분에 합의하지 못했다. 결국 20대 국회도 법정 시한인 오늘 개원하지 못하게 됐다. 지난달 11일 3당 원내사령탑 첫 상견례 자리에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그동안 개원이 늦어졌던 낡은 관습을 타파하고 법에 정해진 대로 6월에 정상적 개원이 되도록 국민께 약속한다”고 한 말도 식언(食言)이 됐다. 대한민국 국회는 1994년 원 구성 시한을 못 박은 국회법 시행 뒤 22년 동안 6번째 ‘개점 휴업’이라는 악습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여당인 새누리당 책임이 크다. 국민이 원내 2당으로 추락시킨 총선 민의를 존중해 국회의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양보할 뜻을 시사했다가 갑자기 ‘의장직 고수’로 돌변했다. 서청원 의원의 이름이 의장 후보로 거론되고 야당에서 ‘청와대 오더설’까지 나왔지만 변변한 해명도 못 했다. 원내 1당인 더민주당도 “통 크게 양보하겠다”고 큰소리치다가 19대 국회까지 새누리당 몫이었던 국회의장, 운영위원장, 기획재정위원장, 정무위원장 등 노른자 상임위를 모두 가져가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원내 1, 2당부터 여소야대(與小野大) 3당 체제인 20대 국회에서의 협치(協治)를 바랐던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오늘 재개될 원 구성 협상에서는 여야가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 배정을 분리해 매듭을 풀어야 한다. 국회법 15조에 따르면 ‘의장과 부의장은 국회에서 무기명 투표로 선거하되 재적의원 과반수 득표로 당선’된다. 선출 방식이 엄연히 법에 규정돼 있는데도 여야가 의장을 나눠 먹기 대상으로 전락시킨 것이 협상을 꼬이게 만든 주원인이다.


여야 3당은 총선 전후 지각 개원하면 세비를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으나 3당인 국민의당만 약속을 지킬 태세다. 일 안 해도 꼬박꼬박 세비 계좌에 쌓일 현금을 토해내자니 아까워진 건가.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20대 국회의원 1명에게 드는 세비와 의정활동 경비, 보좌진 보수를 합치면 1년에 6억7600만 원이나 된다. 국회가 개원하지 않아도 의원 300명에게 매일 5억5500만 원의 혈세를 쏟아붓는 셈이다. 


13∼19대 국회까지 임기 개시 이후 개원식을 여는 데만 평균 51.2일 걸렸다. 국회법에 국회의장 및 상임위원장의 배분과 관련해 보다 명확한 규정을 마련해 21대 국회부터는 무책임과 비효율의 사슬을 끊어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9. 신흥 명운으로 뜨는 일반고의 반란을 주목한다

전국의 고등학교 수는 2393개다. 이 가운데 일반고는 전체의 64%인 1537개나 되지만 8%에 불과한 특수목적고(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에 밀려 존재감이 약해진 지 오래다. 특목·자사고는 우수학생을 신입생으로 뽑는 데다 수업 편성·운영이 자유로워 대입에서 강세다. 반면 ‘국민공통 교육과정’ 명분에 갇힌 일반고는 옴짝달싹 못한다. 학생들의 실력이 갈수록 떨어져 기피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욱이 ‘학생 절벽’ 여파로 앞으로 2년간 고교 입학생 수가 13만 명이나 감소한다니 일반고, 특히 지방 소재 학교들의 최대 위기다.


이런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며 학생 실력을 최상위권으로 끌어올린 지방 일반고들의 반란이 신선하다. 중앙일보가 2005~2015년 수능 응시자 중 특목고와 전국단위 자사고를 제외한 589만여 명의 성적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성적 상승 폭이 가장 큰 상위 10개는 대부분 중소도시나 농어촌 소재 학교였다. 이들 학교의 공통점은 교사들이 열정적으로 헌신한다는 것이었다.


1위로 분석된 경북 안동 풍산고는 안동 시내에서 차로 30분 떨어져 있는 시골 사립고다. 2005년 수능에서 국어·영어·수학 2등급 이내 ‘우수생’이 한 명에 불과했는데 지난해에는 절반이 우수생이 됐다. 학생들이 안 오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에 기숙사를 짓고, 교사들이 중학교를 찾아다니며 학생을 보내 달라고 읍소했다고 한다. 교사들이 자청해 밤 늦게까지 남아 가르치며 학생 실력을 끌어올린 결과 명문고로 변신한 것이다.


수능 우수생이 46.7%로 전체 2위에 오른 경기도 양평 양서고는 수업방법을 뜯어고쳤다. 일주일 전 미리 교재를 만들어 배포해 학생들이 예습 후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고, 교사들이 자체 교재를 만들어 보충 수업을 한다. 농촌지역 특성상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불리함을 교사들이 메워 주는 것이다. 최근 3년 사이 우수생이 43%포인트나 증가한 오산 세마고는 교사들이 학부모·학생의 신뢰를 얻는 데 힘을 쏟았다. 학교를 찾은 200여 명의 학부모들과 일대일 상담을 하고, 일대일 집중교육과 맞춤형 심화학습을 통해 제자들에게 ‘학교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줬다고 한다.


이 같은 교사들의 열정과 노력이 지방 일반고 부활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제도적 뒷받침도 중요하다. 풍산고와 양서고는 일반 사립고지만 수업 편성권이 있는 자율학교이고, 세마고는 우수교사 초빙이 가능한 자율형 공립고이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일반고에 자율을 부여하면 교사들이 시너지를 내며 학교를 확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신선한 사례 아닌가. 그런데도 교육부는 일반고의 손발을 꽁꽁 묶어 놓고, 일부 교육감들은 평준화 교육을 빌미로 수준별 수업까지 가로막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자율권 확대와 과감한 재정지원이 일반고를 살리는 길이다. 교육 당국은 규제가 강할수록 일반고가 죽어 간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매일경제]

10. '노벨상 꿈' 이루려면 30대 젊은 과학자 중시하라

매일경제가 1990~2015년 노벨물리학상·화학상·생리의학상 등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 182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이 상을 받은 평균 나이는 64세였지만 연구 성과를 발표한 나이는 평균 39세로 나타났다. 통상적으로 노벨상 수상자들은 20대 후반~30대 초반에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0년 이내인 30대에 가장 창의적인 연구 성과를 내놓는다. 이때부터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연구가 20년 이상 검증 과정을 거치며 무르익어 노벨상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은 일찍이 젊은 과학자를 중시하는 것이 노벨상의 비결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이들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은 이런 대접과는 거리가 멀다. 위계질서가 지배하는 연구실에서 30대 과학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교수나 선배들의 보조 역할을 하며 세월을 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최근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가 "토론을 꺼리고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한국적 문화가 창의적인 연구를 저해한다"고 비판했는데 참으로 뼈아픈 지적이다. 


우리는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한 명도 내지 못했다. 일본은 21명이나 배출했다. 이 때문에 노벨상을 발표하는 10월이면 전 국민은 실망하고 과학계도 열패감에 시달린다. 정부가 분주하게 원인 분석, 연구비 확대 등 대책을 쏟아내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네이처는 "한국이 노벨상을 받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노벨상은 돈만으로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는 2014년 4.29%로 미국(3%) 중국(2%)을 앞질렀지만 기초과학 분야 경쟁력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학술지 발표 논문 수는 크게 떨어진다는 것을 이유로 꼽았다.


해외 과학계의 이 같은 충고를 허투루 들어서는 곤란하다. 기초과학 지원 부족, 장기 투자에 인색한 '빨리빨리' 문화, 토론이 불가능한 분위기 등 알면서도 방치한 문제들을 고쳐야 한다. 과학계에 만연한 상명하복의 경직적인 문화를 깨는 것이 급선무다.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낸 젊은 과학자를 우대하고 이에 대해 동의할 수 있는 건강한 연구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노벨상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주요 신문칼럼

1. [헤럴드경제][라이프스타일 칼럼] 비웃음과 웃음 사이에서 - 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고민들 중의 하나가 부모가 자녀에게 말의 권위가 전혀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녀가 삐딱하거나 반발하고 대들 때면, 부모는 억장만큼 높게 쌓은 성(億丈之城, 1장은 3미터)이 허물어질 때처럼 허탈감과 슬픔을 느낀다고 한다. 과거에는 성이 무너지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간관계에서 말을 가장 잘 듣는 것은 상하관계에서이다. 나라의 대통령으로부터 그 아래로 혹은 회사의 회장으로부터 그 아래로 전해지는 말이 그래도 강력한 편이다. 짐승도 마찬가지여서, 아드리(ardry)가 일본원숭이에게 새로운 먹이를 길들이는 실험을 했을 때도 서열이 낮은 원숭이부터 주면 보급이 매우 느리게 진행되지만 대장부터 새 음식을 주니 짧은 기간에 전체에 보급되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권력이 권위처럼 작용해서 진짜 말의 권위라고 볼 수 없다. 


말의 권위로 따지면, 말씀으로 전 세계와 인류를 창조한 하나님이 최고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을 듣고도 속으로 웃었던 여인이 있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수많은 민족의 어머니가 되도록 아들을 주겠다고 축복할 때에, 89세가 되도록 아이를 갖기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경수가 끊어진 사라가 부지불식간에 속으로 웃은 것이다. 하나님이 사라의 나쁜 점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축복의 말을 했음에도 비웃음을 사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도 인간에게 비웃음을 살 때가 있는데, 인간 사이에서 오죽하랴. 더구나 우리가 흔히 말의 권위를 확인하려할 때는 상대방의 나쁜 점이나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하고 싶을 때이다. 대화법 차원에서 보면, 상대방의 좋은 점을 곧잘 알려주었던 사람이거나 그의 어려움에 배려가 있었던 사람이라면 어쩌다가 나쁜 말도 먹혀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의 권위는 이런 대화법 차원을 넘어서는 듯하다. 


말의 권위는 누가 어떻게 세우는 것일까?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90세의 사라가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사라는 기쁨에 넘쳐 예언대로 아이의 이름을 ‘이삭’이라 부른다. ‘웃음’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웃게 하시고 듣는 자가 함께 웃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히브리어로 ‘이삭’은 비웃음과 웃음이라는 두 개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말씀이 실제와 일치하자 비로소 비웃음에서 웃음으로 넘어갔던 것이다. 


자식이 더 이상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의 말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사라처럼 말이다. 결국 말의 권위는 말하는 자의 말과 행동의 일체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타인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고통스러워하지만, 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니 타인도 내 말을 믿기 어려운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때가 더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타인보다 내가 내 말의 권위를 이미 무너뜨린 것이다. 억장만큼이나 높은 성(城)은 권위가 아니라 권위의식이 세운 것일 수도 있다. 진짜 말의 권위는 시간이 흘러도 타인이 그 말로 인해 웃을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2. [아시아경제][데스크 칼럼]아주 사소한(?) 직업의식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브리 라슨은 영화 '룸'에서 고립된 공간에 갇힌 여성의 절망과 희망을 연기한다. 브리 라슨이 분한 여주인공 조이는 17살 때 길에서 납치돼 무려 7년간 두 평 남짓한 룸에 갇혀 지낸다. 브리 라슨의 연기는 썩 괜찮았고, 여주인공이 룸에서 출산한 아들 잭으로 분한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연기는 놀라웠다.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대목이 있다. 잭이 죽은 것으로 위장해 담요에 둘둘 말려 룸에서 탈출한 뒤 트럭 짐칸에 실려 어디론가 이동하는 장면. 잭은 엄마가 사전에 일러준 대로 트럭이 신호에 걸려 멈추자, 트럭에서 뛰어내려 무작정 뛴다. 다행히 주택가였고 개와 산책을 하던 동네 주민과 부딪혀 잭은 넘어진다. 잭의 생물학적 아버지이자 납치범은 자신이 속은 것을 깨닫고 운전석에서 내려 잭을 다시 강제로 데려가려 한다. 동네 주민은 잭에게 "괜찮냐? 다친데 없냐?"라고 묻는데, 납치범은 "신경 쓰지 말라. 내 아이다"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여기서 빛나는 시민의식. 주민은 "당신 누구냐? 경찰을 부르겠다"며 납치범을 제지한다. 평범한 동네주민의 이 행동이 어린 아이의 목숨 하나를 살린다.


이어 신고를 받고 출동한 여성 경찰 파커는 잭에게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잭은 세상을 처음 접한 충격(파란하늘을 처음 본다)에 일시적 기억상실에 걸려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자 경찰은 아이를 안심시키며 대화를 끌어내 아이가 '그 어떤 범죄의 피해자'임을 알아낸다. 그리고 잭의 진술을 토대로 룸의 위치를 파악한다. 파트너인 동료 경찰은 "그냥 길을 잃은 아이니 경찰서에 데려다주자"고 말한다. 만약 동료 경찰의 말대로 그저 실종된 아이로 처리돼 중요한 몇십 분을 놓쳤다면 잭의 엄마 조이는 분노한 납치범에게 살해당했을 것이다. 평범한 여성 경찰의 직업의식이 한 생명을 구했다. 이 영화는 실화에 기초했다. 


기자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도록 훈련받는다. 파장이 큰 사건이 발생하면 습관적으로(?) 사안의 배후에 가려진 시스템을 보려고 한다. 그렇게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 기사는 데스크로부터 칭찬을 받고, 운이 좋으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도 한다.


기자들의 이런 직업의식은 빛나는 특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구의역 사망사고의 배후에 비정규직의 고단한 삶이 있음을, 가습기 살균제 사건엔 우리사회의 조직적인 무관심이 있음을 밝혀낸다. 조선ㆍ해운산업의 구조조정 이면엔 정부, 국책은행, 기업의 교묘한 먹이사슬이 얽히고설켜 있음을 보도한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만 볼 뿐 디테일을 보지 못한다면 그 보도는 필시 왜곡되고야 만다. 나아가 사건의 총체적인 실체를 알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여기에 기자정신과 종종 혼돈되는 '공명심'까지 더해진다면 기사는 더욱 산으로 가게 된다. 거악(巨惡)과 불의(不義)에 대항한다는 대의명분이 뚜렷한 기사일수록 더욱 그렇다. 팩트와 디테일이 없는 담론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세월호 이후 2년이 지났다, 많은 언론들이 그간 숱한 담론들을 제시해왔지만 우리사회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이 순간에도 '안방의 세월호', '구의역의 세월호', '섬마을의 세월호'가 벌어지고 있다. 이어서 사건의 배후와 구조적인 모순과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먹이사슬(이를 한마디로 '적폐(積弊)'라고 대통령은 말했다)을 지적하는 언론의 보도, 그리고 나오는 정부의 지극히 즉자적이고 표면적인 대책. 신문지상에서 보도가 사라지는 시점을 전후해 슬그머니 잊히는 사건. 매번 판박이처럼 반복되는 전개과정이다. 


거악에 분노하고, 불의에 항거하며, 적폐를 없애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그것은 사회를 보다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첫걸음이다. 하지만 진정 사회를 바꾸는 힘은 아주 사소한 직업의식으로 무장한 평범한 우리의 이웃 일는지도 모른다.

3. [연합뉴스]<현경숙의 시각> 한국 남자는 명품(?)

상하(常夏)의 나라 태국에 터를 잡고 사는 한국 교민 부인들은 태국 남성이 아무리 부자라도 딸을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한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 회원국 중 경제규모가 두 번째로 큰 태국은 빈부 격차가 심하다. 부자들은 수억 원 하는 고급 외제 차를 대여섯 대, 많게는 20대도 넘게 갖고 있다. 차마다 별도 운전사들이 고용돼 있고 집에 수영장은 기본이다. 그런데도 태국 남자들은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약해 딸을 주고 싶지 않단다. 남성들이 외도하거나 딴살림을 차리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서민층 남성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남편이 가정을 버리는 바람에 저소득 여성들이 쥐꼬리만 한 수입으로 자식들과 함께 생계를 잇기 위해 갖은 고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동남아에서는 여성들이 생활력 강하고 직장에서 남자들보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 관청에는 여성 관리직이나 고위직이 흔하다. 현지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은 남자 직원들이 부지런하지 않고 일 처리도 야무지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무더운 날씨와 풍부한 먹거리로 인해 남자들이 게을러지기 쉽다는 것은 짐작할 만하다. 


교민 부인들은 한국 남자들이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키도 크고 인물도 훤하다, 열심히 일한다 등의 이유를 들며 다른 나라 남자들과 비교하면 "괜찮은 편"이라고 후한 점수를 준다. 상황이 바뀌면 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듯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에 살다 보니 '내 자식과 마누라는 내가 먹여 살린다'는 한국 남성들의 책임감이 새삼스러운가 보다. 실제로 아내와 자식을 외국에 보내놓고 외로움을 이겨가며 번 돈을 꼬박꼬박 해외의 처자에게 송금하는 '기러기 아빠'는 한국에서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우나 고우나 아내에게 월급을 봉투째 맡기는 남자는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별로 없다. 여기에는 '내 가정'이라는 의식과 아내에 대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미국, 유럽 등 서양에는 남녀가 결혼조차 잘 하지 않는다. 만나고 헤어지는 데 대한 태도가 자유로운 탓도 있지만, 재산을 공유하지 않겠다는 타산도 한몫하고 있다.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남성들은 이혼 시 재산을 아내에게 분할해 줘야 하는데, 결혼하지 않고 동거했으면 재산 분쟁을 치르지 않고도 쉽게 헤어질 수 있다. 일본은 한국보다 선진국인데도 여성의 지위가 한국의 경우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중국은 공산 혁명을 거치면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됐지만, 남자들이 월급을 아내에게 통째로 갖다 바치지는 않는다. 골치 아픈 일이나 위기가 닥치면 아내에게 맡기고, 자신은 쏙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단다(그래서 '태양의 후예' 유시진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한국 남자가 중국 여성들에게 인기 있다고 한다). 유교적 전통이 뚜렷한 아시아에서 남성들에게 내 가정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 한국이 아닐는지.


강남역 근처 화장실 살인 사건으로 여성혐오, 남성 우월주의, 성차별에 관한 논란이 뜨겁다. 우리 사회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남녀 성차별이 뿌리 깊다. 집 밖에서 똑같이 일하는 맞벌이 부부 가정도 가사 노동이나 육아에서 여성의 부담이 압도적으로 크다. 직장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누리려면 한참 멀었다. 여성 대통령이 나왔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여성들은 범죄의 표적으로 쉽게 노출된다. 이혼율도 점차 높아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다.


한편으로 한국 남성들의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보기 드물게 강하다는 점이 간과되기도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 세계 10위 권의 한국 경제는 자식과 가족을 위해서라면 염치없다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앞뒤 가리지 않는 억척 '아줌마 정신'과 '내 가정은 내가 책임진다'는 남성들의 책임 의식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한국의 아버지들은 괴롭다. 끝없이 치열한 경쟁, 기술과 정보화가 발달할수록 줄기는커녕 늘어나는 업무량과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는 업무 속도, 짧아지는 정년 등으로 까딱하면 낙오하기에 십상이다. 가정을 지키려는 아버지들이 직장에서 감내해야 하는 굴욕과 눈물이 어떤 것인지는 이제 아내와 아이들도 안다. 연전에 돌풍을 일으킨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 독일 베를린예술대학교 교수가 간파했듯이 그들은 "영혼이 사라져버릴" 정도로 피곤하다. 한국 남성들의 무한 책임감은 여성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기에 가능하고, 가정의 유대가 약해지는 세태 변화에 따라 앞으로는 지금과 같지도 않을 것이다. 젊은 부부들은 이미 각자 딴 주머니를 찬다지 않는가. 남성들의 든든한 책임감 위로 양성평등 문화가 꽃피고 남녀 차별을 없애는 법적, 제도적 혁신이 이뤄지면 한국은 부자 나라가 아니라도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어느 저녁 자리에서 이런 화제로 '알고 보면 한국 남자가 명품이야'라고 좀 과하다 싶은 농담(?)을 했다가 아니나 다를까 남녀 좌중들로부터 별 공감을 얻지 못했다. '그 대신 집에서 남녀가 평등하지 않잖아' '남편이 훌륭한 분인가 봐요' 등의 반격이 바로 들어왔다.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한국 남성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4. [동아일보][야마구치의 한국 블로그]나누어 먹는 음식과 ‘혼밥’ 취향

한국에서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기대감과 동시에 ‘내게 뭔가 부탁할 게 있나?’ 하는 경계심이 스쳐간다. 누가 밥을 사겠다고 해서 나갔다가 부담스러운 부탁을 받은 뒤부터다. 그렇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같이 밥 먹자”는 말 자체도 ‘당신과 친해지고 싶다’ ‘대화하고 싶다’는 달콤한 말로 들려 기대된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거다.


한국과 일본의 식문화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일본에선 혼자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는 일이 일상인데 한국에선 대부분 혼자 밥 먹기를 어색해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쓴다. 여자들은 아예 혼자 식당에 안 간다.


일본의 유명한 라면가게 중 카운터 테이블에 한 자리씩 칸막이를 세우고 라면이 나오는 구멍만 앞에 보이도록 만든 곳이 있다. 오직 라면과 대화하며 라면 맛을 깊이 음미하기 위해서다. 장인정신을 자랑하는 일본다운 발상이다. 장인이 만든 예술작품을 잡념 없이 관상하며 ‘먹는 사람도 장인의 경지에 도달하라’는 의도인지…. 참 재밌는 시도 같다.


그에 비해 특히 한국 엄마들은 혼자 맛있는 걸 먹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다. 한국의 옛말에 ‘콩 하나만 있어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눔의 정신이 한국 문화의 기본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밥을 시키고 밥값을 계산할 때도 차이점이 있다. 한국에선 식사를 제안한 사람이 메뉴도 고르고 계산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 일본은 식당에 여러 명이 같이 들어가도 각자의 취향에 맞게 따로 메뉴를 선택하고 밥값을 각자 내는 것이 보통이다. 일본 사람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해 대접해 주는 줄 알고 따라가면 실망할 수 있다.


그런 차이점이 있어 나는 한국에서 일본인 후배를 만나면 한국 풍습을 알려주기 위해 밥을 사주면서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에선 보통 나이가 많은 사람이 밥값을 계산한다”고 가르쳐준다. 일본인 친구라면 “오늘은 일본 스타일로 각자 내자”고 할 때도 있고, 기분이 좋으면 “한국 스타일로 내가 밥 사준다”고 말할 때도 있다. 


한국 풍습을 몰랐을 때는 실수도 있었다. 아주 오래전 천안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일본어를 잘하는 한국인 남학생 두 명을 만나 내 일본 친구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간 적이 있다. 그들은 우리랑 같이 먹으려고 호두과자를 사주었다. 재미있게 대화를 이어가다 때마침 각종 식음료를 파는 카트가 지나갔다. 나를 포함한 일본인 3명은 카트로 달려가 각자 취향에 맞게 음료수를 사왔다. 


나는 ‘한국인 두 명은 취향을 모르니 각자 알아서 살 것’이라 생각하며 그들의 것은 사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학생들은 한국어로 “자기들 것만 샀네, 일본인들은 이기주의라잖아” 하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것이 아닌가. 그때 일본인 3명 중 유일하게 한국어를 알아들었던 나는 얼굴에서 불이 날 정도로 창피했다. 그때까진 한국 풍습을 잘 모르고 있어서 음식을 함께 나눠먹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것까지 다 챙겨야 하는 걸 몰랐었다. 나는 그날 표시 안 나게 갖고 있던 과자를 나누어주면서 그 상황을 조금이나마 만회했다. 그 사건은 내겐 큰 문화 충격이었다.


한국에서 다양한 ‘생활 문화’를 배우고 있지만 지금도 납득이 안 가는 점도 물론 많다. 식당에서 음식을 시킬 때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물론 동일해야 할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같은 메뉴를 주문하면 빨리 나온다는 점, 똑같이 시간 맞춰 먹을 수 있다는 점, 가게도 한 가지 메뉴를 만들기가 편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까? 


똑같은 음식을 같이 먹을 때 동질감을 많이 느껴서 그러는 건지 아직 도를 덜 닦아서 깨닫지 못하고 있다. 머리로는 알지만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을 고치기가 참 어렵다. 항목에 따라 자기 취향을 고집하는 것과 어울림을 위해 자기 취향을 희생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한국의 아름다운 ‘나눔의 정신’이 뼛속 깊이 들어가면 나도 언젠가 자랑스러운 한국 엄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5. [한국일보]앨런 튜링의 사과

앨런 튜링은 적국의 암호와 씨름하며 전쟁 중인 조국을 이롭게 했고, 자신의 죽음을 암호화함으로써 인류를 이롭게 했다. 그에게 조국과 인류를 이롭게 하겠다는 목적의식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특별한 의도로 죽음을 기획했을 리는 더더욱 없다. 그는 수학자, 논리학자였다. 암호화한 기호들에서 질서와 논리를 찾아 의미를 풀어내는 과정 자체가 그에겐 도전이고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2차 대전 독일의 군사 암호 정보 체계(작성ㆍ해독 기계)를 부르던 이름이 ‘이니그마(Enigma)’였다. 


튜링은 191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24세이던 1936년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복잡한 연산의 계산 알고리즘을 추상화한 모델, 즉 ‘튜링기계’의 개념이 거기서 비롯됐다. 인류는 25살에 이룬 저 업적을 기려 그를 ‘컴퓨터과학의 아버지’라 불렀고, 미국컴퓨터학회(ACM)는 컴퓨터공학과 인공지능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튜링상’을 제정했다. 


1939년 전쟁이 나자 영국 정부는 그를 독일군 암호 해독부서인 ‘Hut 8’의 책임자로 발탁했다. 그의 활약이 어떠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지만, 1992년 BBC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한 동료는 “튜링이 없었다면 영국은 전쟁에서 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후 그는 제국훈장(OBE)을 탔고, 국립물리연구소(NPL)의 수학부서 창설을 주도하며 수리논리학에 기초한 초보적 형태의 컴퓨터 개발 연구를 지속했다. 


그는 동성애자였다. 52년 1월 23일 집에 도둑이 들었고, 경찰 조사 과정에서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외설 혐의로 입건됐다. 법원은 그의 과학적 재능과 국가에 헌신한 공을 참작, 그에게 구속 수감과 화학적 거세 중 하나를 택하도록 했다. 그는 약 1년 간 합성 에스트로겐 주사를 맞았다. 전후 유럽은 스파이들의 각축무대였고, 게이는 이중첩자로 포섭하기 좋은 타깃이었다. 그는 일체의 국가 보안(암호연구) 업무에서 배제됐고, 미국 입국도 거절 당했다. 


54년 6월 7일 그가 숨졌다. 시안화칼륨(청산가리) 중독. 침대 머리맡에는 먹다 만 사과 한 조각이 놓여 있었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밝혔지만, 사고사라는 설도 있다. 한 전기 작가는 그가 백설공주와 왕비의 사과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다고 썼다. 여왕이 튜링의 동성애 죄를 사면한 것은 2013년 12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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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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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3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일용직 안전사고, 하도급 구조가 문제다

공사장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목숨을 잃는 것은 늘 애꿎은 일용직 근로자들이거나 외주업체 직원이다. 이번 경기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폭발사고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망자 4명에 부상자까지 합쳐 14명이 모두 하청업체 일용직 근로자들이었다. 최소한의 전문성이 요구될 텐데도 숙련공보다는 일용직 위주로 현장에 투입되면서 안전관리에 소홀했던 것이 아닌가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공사현장은 포스코건설이 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시공을 받아 협력업체에 맡겼고, 협력업체도 현장 작업자를 일용직 형태로 투입한 식이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난 서울메트로의 경우에도 30종이 넘는 기술분야 업무를 외주업체에 맡기고 있다. 이처럼 먹이사슬처럼 계약이 겹겹이 얽혀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가운데 현장 근로자들이 막다른 여건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가 업계의 오랜 관행이어서 당장 개선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복잡한 계약관계에서 맨 밑에 있는 하청업체로서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도 일용직 형태로 고용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다. 일손이 달릴 때는 경험도 없는 사람이 첫날부터 위험이 따르는 현장에 투입되기도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작업장이 수시로 바뀌기 마련인 일용직들이 숙련도가 필요한 사고 위험성에 철저히 대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도급 건설계약에서 원청업체의 안전관리 책임은 묻지 않도록 돼있다는 사실도 심각한 허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마련한 표준하도급계약서에서 하청업체에 대해서만 안전 및 재해관리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게 그것이다. 작업 현장에 안전관리 담당 직원을 두는 것도 하청업체의 부담이다. 원청업체로서는 하청을 줌으로써 공사 차익을 남길 수 있는 데다 사고가 발생해도 직접적인 책임을 면하게 되는 셈이다.


결국 이런 상황이니만큼 현장에 투입되는 근로자들이 부지불식간에 생명의 위협을 무릅쓸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현장 근로자들의 안전을 도외시하기 쉬운 하도급 관행에 대해 조속한 개선책이 필요하다. 적어도 안전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하청·원청업체가 서로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뒤늦게 이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한다니 지켜보고자 한다.

2. 금배지에겐 국민 혈세가 그리 하찮은가

국회 원(院) 구성을 둘러싼 여야 3당의 기세 싸움이 세비 반납 문제로 번지면서 두 야당이 치고받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국민의당은 원이 구성될 때까지 세비를 받지 않겠다”고 선수를 치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원에게 세비로 시비 거는 게 제일 유치하다”며 발끈한 것이다.


제20대 국회 임기가 지난달 30일 시작됐으나 개원 협상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국회의장을 놓고 다투는 데다 주요 상임위원장 인선도 각 당의 셈법이 다른 탓이다. 더민주가 마지못해 국회의장을 주면 법사위원장을 양보하겠다는 타협안을 내놨으나 새누리당은 요지부동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의장단은 오는 7일, 상임위원장은 9일까지 뽑아야 한다.

문제는 국회 공전이 장기화할 경우 국회의원 선서도 하지 않은 채 세비를 받아도 되느냐 하는 것이다. 안 대표는 “한국 어디에도 일하지 않고 버젓이 돈 받는 국민은 없다”며 세비 반납을 압박했다. 우 원내대표는 그러나 ‘전형적 반(反)정치논리’라며 “월급에 연연하는 것도 아닌데 모욕감을 느낀다”고 쏴붙였다.


모름지기 공직자라면 염치가 있어야 한다. 서민들도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받는 터에 국회의원이라고 예외를 인정해선 안 된다. 세금으로 지급되는 세비를 놓고 “시비 건다”, “유치하다” 운운하는 자체가 가벼운 처신이다. 국민의 혈세를 우습게 여긴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그동안 말실수로 여러 번 구설수에 오른 안 대표지만 이번만큼은 모처럼 옳은 소리를 했다는 게 중론이다.


국회의장을 야당에 내주지 않는 한 정상 개원은 어려운 게 뻔한데도 “기간 내에 원을 구성하면 되지 왜 판을 깨느냐”고 강변하는 새누리당도 떳떳지 못하긴 매한가지다. 세비 250만원 삭감과 회의수당 엄격 제한을 비롯한 10대 개혁 과제를 추진하겠다던 지난달 결의는 한낱 장난이었는가. 지난 19대 국회 원 구성이 33일 동안 지연되자 세비를 단독 반납한 4년 전보다도 후퇴한 모습이다. 여야는 국민을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말고 개원 협상을 빨리 끝내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법정시한을 지키지 못한다면 세비를 자진 반납하는 것이 옳다. 이참에 국회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법제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서울신문]

3. 리퍼트 美 대사가 꺼낸 통상압력 전주곡

한·미 간 통상 마찰이 본격화할 조짐인가. 엊그제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세계경제연구원 조찬 강연에서 한국의 법률 시장 개방을 거듭 촉구한 게 그 전주곡처럼 들린다. 그는 특히 “한국은 여전히 사업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완전한 이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간 한국 측에 자동차 관련 규제 폐지와 법률 시장 개방을 한목소리로 요구해 온 미 조야의 입김이 고스란히 반영된 ‘작심 발언’이었다. 우리 정부가 적극적인 통상 논리를 개발하되 괜한 분쟁의 빌미를 주지 않도록 전략적으로 대응할 때라고 본다.


한·미 간 통상 갈등이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다만 이번엔 어느 때보다 불길한 느낌이다. 대선 국면에 접어든 미국 내 여론이 보호무역 기조로 급선회하고 있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게임 체인저’로 나서면서다. 그는 한·중·일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엄청난 대미 흑자로 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식의 극단적 주장을 펴 왔다. 한·미 FTA를 재검토하겠다는 위협도 그 일환이다. 엊그제 트럼프 선거캠프 사령탑 격인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은 한 술 더 떠 “한·미 FTA로 무역적자가 240% 늘어났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문제는 이런 논리 비약적 주장이 먹혀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조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비준 반대로 돌아섰지 않나. 미 상무부가 지난달 한국산 내부식성 철강제품에 대해 최대 47.8%까지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도 이런 흐름 속에서 나왔을 수 있다.


그렇다면 미 대선에서 클린턴과 트럼프 중 누가 이기더라도 우리의 제2 수출국인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봐야 한다. 때마침 한국을 환율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했던 미 재무부 제이컵 루 장관이 어제 방한했다. 그를 통해 미 조야의 기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FTA 체결 이후 상품 수지에서는 우리가 흑자를 늘려 가고 있지만, 직접 투자는 미국보다 우리가 더 많이 하고 있다면 적극적 방어 논리로 활용해야 한다. 다만 미국의 요구가 없더라도 우리도 스스로 필요한 규제 완화를 선제적으로 이행해 통상압력의 빌미를 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 한·미 FTA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식의 엄포가 지금은 작은 너울성 파도일지 모르나 엄청난 쓰나미를 예고한다고 보고 치밀하게 미리 대응해야 한다.

4. 시진핑, 국제사회 북핵 폐기 노력외면 하는가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그제 리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의 면담에서 북·중 우호 관계를 중시하는 발언만 하고 북핵에 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은 것은 북핵 폐기를 위한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에 역행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미국이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국으로 지정하고, 북한의 자금줄을 전방위로 차단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본받아야 주요 2개국(G2)으로서 국제사회에서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북핵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이 없이 “관련 당사국들이 냉정과 절제를 유지하고 대화와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지역의 평화·안정을 수호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중국은 대외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와 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등 3원칙을 고수해 왔다. 시 주석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3가지 원칙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가 빠져 있다. 이는 북한이 지난달 열린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 당 규약에 명시한 ‘핵·경제 병진노선’을 인정한 셈이다. 중국 언론의 보도 내용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북핵 문제에 대한 갈등이 양국 관계를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양국은 핵 갈등이 확대되지 않도록 방법을 모색해 가고 있다”고 밝혀 현재의 갈등 상황에서 북핵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는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노력에 재를 뿌리는 행위와 다를 게 없다.


우리 내부 일각에서는 북한 대표단이 핵·경제 병진노선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시 주석이 한반도 비핵화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을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시 주석과 중국, 중국과 북한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안일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중국과 북한은 국가 간에는 갈등이 있을 수 있지만 중국 공산당과 북한 노동당은 떼어놓을 수 없는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우리 스스로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중국이 북한을 감싸고 돌수록 북핵 문제 해결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중국이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까지 비난할 수는 없지만 북한 주민들의 민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핵 개발과 미사일 개발에 자금을 쏟아붓는 북한의 행태는 바로잡아야 한다. 미국은 북한을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하면서 중국을 포함한 제3국이 북한과 차명 계좌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면 금융거래를 중단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발동했다. 중국도 북한이 핵 개발에 투입하는 자금줄을 끊어야 한다. 아울러 북한의 핵·경제 병진노선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심어 줄 필요가 있다. 한·미 동맹처럼 북·중 우호관계가 지속되는 한 북한이 핵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북핵 포기에 중국의 역할이 중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에 나서고 있는 것처럼 실질적인 대북 제재에 나서야 한다. 나아가 한·미·일 3국이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에서 재확인한 것처럼 지금은 북한과의 대화보다는 압박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유도할 때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5. 특수부가 강력부 비리를 제대로 캐겠나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방위 로비 사건’ 핵심 당사자인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가 어제 새벽 구속 수감됐다. 선후배들의 신망을 받아 온 엘리트 ‘특수통’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의 몰락은 그 자신의 불행을 넘어 검찰 조직 전체에도 큰 충격을 던졌다. 특히 홍 변호사가 정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친 정황까지 드러나 현직 검사 및 수사관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검찰 내부는 뒤숭숭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전관 비리의 썩은 관행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야만 한다.


전관 비리를 포함해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수사하고 있다. 연루 의혹이 제기된 현직 검사 및 수사관들에 대한 수사도 예외는 아니다. 2014~2015년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와 강력부의 미심쩍은 정 대표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한 수사니 어찌 보면 ‘셀프 수사’라고도 할 수 있다. 수사팀이 ‘제 식구’를 과연 한 점 의혹 없이 엄정하게 수사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번 사건에는 검찰 최고위급 인사들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다. 설령 이들을 조사한다 해도 과연 주눅 들지 않고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검찰은 현재까지 부장검사 2명을 소환 조사하고, 한 명은 서면 조사를 했다고 한다. 수사 검사도 소환 조사했지만 부장검사들 윗선으로는 수사를 확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 대표는 “2015년 도박 수사를 받을 때 홍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에게 말해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박성재 서울고검장, 강력부를 관할했던 3차장은 최윤수 국가정보원 2차장이다. 홍 변호사는 2014년 수사 때도 관여했는데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김수남 검찰총장, 형사3부를 관할했던 1차장은 신유철 수원지검장이었다.


검찰은 과거 고위 간부들이 연루된 대형 사건에서 특별감찰본부 등을 구성해 외견상으로는 독립적 수사를 진행하곤 했다. 이용호 게이트와 삼성 비자금 사건이 그랬다. 일선 수사팀이 맡기엔 버겁기도 하고 수사 결과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획득도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두 사건 모두 검찰 수사 이후 특검을 피할 수 없었다. 아무리 독립적 수사를 진행한다 해도 검찰의 제 식구 수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검찰의 ‘셀프 수사’로는 전관과 현관의 ‘짬짜미 사슬’ 비리를 제대로 캐낼 수 없다.

[동아일보]

6. 은행 부실채권 15년 만에 최대치… 중국보다 위험하다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가 3월 말 기준 31조 원으로 15년 만에 최대치라고 금융감독원이 어제 밝혔다. 조선·해운업에서 빚을 못 갚는 좀비 기업이 많아지면서 1분기에 새로 발생한 부실채권 7조5000억 원 중 기업 관련 채권이 6조8000억 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의 쓰나미가 금융권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회수가 힘든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 1.87%로 중국은행(1.75%)보다 높아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은행들은 기업의 미래 채무상환능력을 자체 평가해 여신 등급을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의 5단계로 나눈다. 고정 이하는 빚을 떼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부실채권이 급증했다는 것은 기업들이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했고, 은행의 수익성도 나빠진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금감원에서 밝힌 부실채권 31조 원이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조선사들 여신을 정상으로 분류해 충당금을 거의 쌓지 않았다. ‘부실 공룡’인 대우조선해양 관련 여신도 국민과 신한은행을 뺀 대부분의 은행은 모두 정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대우조선 여신 18조6000억 원을 갚을 수 있다는 평가에 선뜻 동의할 사람은 없다.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조차 “대우조선의 여신등급을 정상 밑으로 떨어뜨리면 기업에 부정적”이라며 손을 놓은 상태다. 숨어 있는 ‘그림자 부실’의 규모를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폭발력 미상의 뇌관을 안고 있는 것처럼 불안하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는 부실채권을 처리하지 않고 증권으로 만들어 돌리다가 뇌관이 터진 사건이었다. 최근 중국에선 은행권 부실채권이 중국 경제의 경착륙이나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민스키 모멘트’가 5년 안에 도래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왔다. 중국보다 부실채권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 은행들이 부실 가능성 높은 여신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지 않는 것은 완충장치 없는 자동차가 콘크리트 벽에 부딪히도록 내버려두는 격이다. 한국은행과 금감원은 은행 건전성 검사에 착수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중앙일보]

7. 군납 비리에 30년 전 침낭에서 떨며 자는 병사들

엊그제 발표한 감사원 감사 결과는 군납 비리가 군 장병들이 사용하고 있는 침낭 품질과 마찬가지로 30년 전에 비해 하나도 나아진 게 없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1000억원대 군용 침낭 시장을 놓고 전·현직 군 고위 간부들이 업체들과 유착해 진흙탕 싸움을 벌였고, 방위사업청과 국방기술품질원도 금품을 받고 입맛에 맞게 납품 계약을 맺는 불법을 버젓이 저지른 것이다.


군납 비리는 우리 군 안팎의 고질병이다. 끝 모르고 터져 나오는 것은 물론 전투기에서부터 잠수함, 함정, 방탄복, 전투화, 수통, 고춧가루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종류 불문이다. 이번엔 침낭으로, 품목 하나 더 보탠 데 불과하지만 업자들의 농간에 육사 출신의 엘리트 장교들이 놀아났다는 사실이 더욱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다. 자신이 관계된 업체의 제품이 채택되도록 상부에 수차례 허위보고까지 했다고 하니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는 군 기강이 허탈할 따름이다.


그 과정에서 민간에는 값싸고 질 좋은 침낭이 넘쳐나는데도 병영에서는 ‘따뜻하지도 않고 무겁기만 한’ 30년 전 품질의 제품을 더욱 비싼 값에 사용하도록 강요받았다. 사리사욕에 눈먼 ‘군피아’가 호주머니를 두둑이 채우고 있을 때 장병들은 침낭 무게로 비지땀을 흘리고 정작 침낭을 사용하면서는 추위에 떨어야 했던 것이다. 2003년부터 10년간 병영생활관 개선 명목으로 6조8000억원을 쓴 국방부가 2조6000억원을 추가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비슷한 이유 탓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것도 그래서다.


침낭 비리가 수조원대 방산 비리에 비해 규모가 작다고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국민 혈세는 샐 대로 새고 장병들의 고통은 커지는 현실에서 결코 강군(强軍)을 기약할 수 없다. 검찰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비리 관련자들을 엄벌해야 한다. 군 역시 예비역 전관예우로 인한 유착 비리를 근절하고 비리 업체들이 다시는 군납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도록 엄격히 조치하는 등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매일경제]

8. 영남권 신공항 경제효과·편익만으로 입지 정해야

영남권 신공항 입지 발표일이 다가오면서 후보 지역 간 갈등이 커지고 있어 염려된다. 지난해 6월 용역을 맡은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ADPi)은 오는 24일 이전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인데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를 놓고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지역구 정치인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며 극단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부산은 평가 방식에 문제를 삼으며 밀양으로 입지가 선정되면 결과에 불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경남과 대구 지역 정치인들은 부산의 과도한 유치 활동 자제를 촉구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어느 곳이 선정되든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돼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영남권 신공항은 10여 년 전부터 사업이 추진됐지만 입지를 둘러싸고 지자체가 싸우는 바람에 계속 지연됐다. 2009년 국토연구원이 타당성과 입지 평가를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을 빚다가 2011년 사업 자체가 백지화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는 이번에는 반드시 입지를 선정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지자체와 정치권 협조가 없으면 사업이 지지부진하거나 최악의 경우 다시 좌초할 수도 있다. 


영남권 신공항 필요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존 김해공항만으로는 영남권을 오가는 이용객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해공항은 2014년 이용객이 1000만명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도 20% 증가한 1238만명에 달했다. 저가 항공사들이 생기면서 2023년 이전에 포화 상태가 될 것이라고 하니 신공항 건설을 더 이상 늦추기는 어렵다. 김해공항은 착륙할 때 주변 산들과 충돌할 위험도 있어 이래저래 신공항 조성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자체와 정치권은 힘겨루기를 중단하고 좀 더 냉정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공항 건설에만 5조원가량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인 데다 전 국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시설인 만큼 오직 경제 효과와 편익만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역 이기주의를 내세워 정치 논리에 따라 입지가 정해지면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게 뻔하다. 이용객들은 불편을 겪고 공항 이용률도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후보지 지자체와 사회단체, 지역구 정치인들은 이 점을 명심하고 대국적 견지에서 신공항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길 바란다.

[세계일보]

9. 당정 엇박자에 '산으로 가는' 미세먼지

새누리당과 정부가 어제 미세먼지 대책에 관한 첫 당정협의에서 경유값 인상 등 주요 방안에 이견을 드러냈다.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회의 후 “당은 경유값 인상과 고등어·삼겹살 직화구이집 규제처럼 영세 자영업자 부담을 늘리거나 국민 생활에 불편을 주는 방안은 포함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고 전했다. 지난 총선 참패 후 여론 눈치를 보는 여당이 서민층 반발이 뻔한 정책은 빼라고 정부를 사실상 압박한 것이다. 여당까지 경유값 인상 등에 반대하고 나서니 미세먼지 대책이 자칫 산으로 갈 판이다.


당정이 발표한 대책은 중국 정부와의 협력 강화, 미세먼지 배출 공장에 대한 방진 시설 확대였다. 새누리당이 회의에서 정부에 요청한 디젤엔진 대책, 석탄화력발전소 연료의 친환경 연료 전환, 노후 화력발전소 점진적 폐쇄는 정부가 이미 장기 과제로 추진하는 것들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세우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 마디로 기존에 추진하던 ‘재탕 정책’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꼴이다.


미세먼지 대책이 갈피를 못 잡는 데는 정부 책임이 크다. ‘미세먼지 주범’으로 지목되는 경유차, 석탄화력발전소 정책은 처음부터 오락가락했다. 2009년 경유차를 친환경차에 포함시키고 환경개선부담금까지 깎아주며 경유차 활성화 정책을 펴더니 이제는 경유값이나 환경개선부담금을 올려 운행을 막겠다고 한다. 화력발전소에 대한 규제 추진은 2029년까지 화력발전소 34곳을 신설하겠다는 전력수급계획과 상충한다. 미세먼지 문제가 ‘발등의 불’인 지금이라도 정부가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부처 간 손발이 맞지 않아 진척이 없다. 


앞으로 대통령 선거가 임박해질수록 환경 규제는 탄력을 잃을 것이 자명하다.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서민에 부담이 될 만한 정책은 눈에 불을 켜고 반대할 공산이 크다. 연일 미세먼지 공해로 국민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엇박자가 스트레스를 키우는 형국이다.


어제도 경기도 11곳에서 대기오염 등으로 오존주의보가 발령됐다. 미세먼지 저감은 국민 건강과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한시가 급한 일이다. 오염물질을 뿜어대는 경유차, 화력발전소 등에 대한 방책 없이는 깨끗한 공기는 기대할 수 없다. 정치권이 일부 국민의 반발과 표만 의식한다면 전체 국민의 건강은 더 나빠지게 된다. 미세먼지 대책이 산으로 가지 않으려면 청와대가 교통정리에 나서야 한다.

10. 일본 미쓰비시, 피해국 가려가며 사과하는가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머티리얼이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노동과 관련해 중국인 피해자 3765명에게 ‘사죄금’을 지급하기로 피해자 측과 그제 합의했다. 피해자 1인당 10만위안(1800여만원)을 주고 기념비 건립과 실종 피해자 조사에 총 3억엔을 내놓기로 했다고 한다. 강제 노동을 인정하면서 피해자와 유족에게 “통절한 반성”과 “심심한 사죄”의 뜻도 밝혔다. 과거 어느 때보다 사죄 수위가 높다. 미쓰비시가 일본 정부의 입장에 구애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합의에 나선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미쓰비시의 결정을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미쓰비시가 유독 한국인 피해자에 대해서만은 시종일관 눈을 감은 탓이다. 미쓰비시는 지난해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전시 강제 노동으로 피해를 본 미군 포로와 유족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당시 “영국과 네덜란드, 호주 출신 전쟁포로들에게도 사죄하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정작 식민 지배로 더 큰 고통을 받은 한국인 피해자만 쏙 빼놓고 사과를 하고 있는 꼴이다. 미쓰비시는 일제시대에 10만명이 넘는 한국인들을 탄광과 조선소로 끌고 가 인간 이하로 대우하며 노동력을 착취했다.


미쓰비시는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을 핑계로 내세운다. 양국 간에 이미 해결된 사안이므로 개인에게는 청구권이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 대법원은 2012년 5월 판결에서 “일제 식민지배에 따른 강제 동원 자체가 불법이므로 한일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일본 법원도 강제 노역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미쓰비시 측에 자발적 해결을 권고한 적이 있다. 자국 법원의 충고마저 무시하며 한국인 피해자에게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도의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한·일 양국 간에는 해묵은 갈등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갈등을 푸는 열쇠는 가해자 일본이 중국에 했던 것처럼 ‘통절한 반성’으로 손을 내미는 데 있다. 지난해 말 양국이 위안부 협상을 어렵게 타결해 놓고서도 최종 해결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그런 마음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독일과 프랑스 정상은 최근 서로 총부리를 겨눈 베르? 전투 발발 100주년 기념식에서 손을 맞잡고 화해와 협력을 다짐했다. 일본이 먼저 사죄의 마음으로 손을 내민다면 한·일 간에도 그런 화해의 시대가 오지 않겠는가.

주요 신문칼럼

1. [한국일보] 마보의 날

호주 전 총리 토니 애버트의 2013년 총선 공약 중 하나는 매년 1주일간 원주민 마을에 들어가 생활한다는 거였다. 원주민 지위 개선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는 2014년에는 북부 오지 안헴랜드 원주민 주거지에서 텐트 생활을 했고, 지난해에는 퀸즈랜드 북부 토레스해협의 머리(murray)섬을 방문, 호주 총리로는 최초로 원주민 운동가 에디 코이키 마보(Eddie Koiki Mabo, 1936~1992)의 묘소에 헌화했다. 그는 “마보는 오랜 시간 정의를 위해 싸웠고, 늦은 감이 있지만 그의 정의는 실현됐다”며 “그로 하여 호주인이 함께 전진할 수 있게 됐고, 이제 우리는 전보다 더 가까워졌다”고 말했다고, 당시 언론은 전했다. 


6월 3일은 토레스해협 일대 섬 주민들이 기리는 ‘마보의 날’이다. 1992년 그날 호주연방최고법원이 원주민의 토지소유권을 인정하는 최종 판결을 내렸고, 그 소송을 이끈 게 마보였다. 마보는 판결 5개월여 전 암으로 별세했고, 호주 정부는 그해 말 ‘올해의 호주인’으로 그를 선정했다. 


마보는 머리 섬에서 태어나 외삼촌 손에 자랐다. 그의 부족에게 땅은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거였고, 경계는 나무와 돌, 바위로 충분했다고 한다. 하지만 호주 백인 개척자들의 법은 주인 없는 땅(Terra Nullius)은 먼저 차지하는 게 임자라는 거였고, 원주민은 그들에게 ‘사람’이 아니었다. 토레스해협 섬의 땅들도 그렇게 백인들에게 빼앗겼다.


퀸즈랜드 제임스쿡 대학의 조경사로 일하며 독학한 마보는 74년 말이 통할 것 같은 대학의 역사학자들에게 부족의 땅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고, 이런저런 토지권 관련 토론회에 나가 발언도 하게 된다. 그가 법률가들의 도움으로 백인 정부의 ‘테라 눌리우스’원칙에 도전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은 81년이었다. 


10여 년간 공방을 벌이면서도 마보는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한국외대출판부가 펴낸 책 ‘호주ㆍ뉴질랜드’ 등은 92년 법원이 “원주민 주권은 엄연히 존재하며, 그들도 토지 소유권의 주체일 수 있기 때문에 기존 법원의 기각 결정은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고 전한다. 


마보의 무덤은 백인 총리의 헌화 전에도 후에도, 스프레이 낙서로 무덤을 더럽히거나 비석을 훼손하는 이들도 잦은 수난을 겪었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 포스트잇 메시지 현상 / 박홍기 논설 위원

​작은 종이 한 장의 힘은 엄청났다. 노랗거나 파란, 형형색색의 종이들이 붙은 게시판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종이 속에 적힌 짧은 글, ‘손편지’는 목이 터져라 외치는 구호나 선동적인 연설과는 또 다른 큰 울림이 있다. 꾸밈이 없고 진솔한 까닭에 읽는 이가 누구든 가슴에 닿았다. 말 그대로 감정의 공유, 공감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출구에 세워진 게시판에 작은 종이들이 빼곡했다. 역내 9-4 승강장의 스크린도어(안전문)에도 촘촘히 붙어 있다. 지난달 28일 19세의 정비 용역업체 직원이 작업을 하다 지하철에 변을 당한 곳이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가 더 안전하고 나은 세상을 만들게요’, ‘그곳에서는 부디 컵라면 말고 따뜻한 밥 챙겨 드세요’라는 등의 글귀들이다. 추모의 글이자 분노의 글이다. 집단행동이나 말이 아닌 글을 통한 묵언의 시위다. 앞서 강남역 화장실 여성 살인사건 때 처음 나타난 사회 현상이다.


작은 종이는 일상에서 흔히 쓰는 ‘포스트잇(Post-it)’이다. 접착식 쪽지다. 포스트잇은 다국적 기업 3M의 연구원 스펜서 실버가 1968년 만든 제품이다. 실패의 산물이다. 실버는 애초 강력 접착제를 개발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접착력이 떨어지고 끈적거리지 않은 ‘이상한’ 접착제를 만들었다. 포스트잇과 반대로 게시판에 접착제를 뿌린 뒤 종이를 붙이고 떼는 식으로 사용했다. 상품성이 떨어졌다. 5년이 지난 1974년 동료인 아서 프라이가 발상을 전환했다. 쪽지 뒤편 일부에다 접착제를 바른 뒤 다른 종이에 붙였다 뗐다. 그 결과 다른 종이는 찢어지지도, 자국도 남지 않았다. 3M은 1980년 책갈피와 메모용 ‘포스트잇 노트’라는 상표로 출시해 사무용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포스트잇 ‘손편지’는 디지털 세상 밖으로 나온 댓글이나 다름없다. 한두 줄 문장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담았다. 애도, 슬픔, 아픔, 분노, 저항 등의 감정을 ‘그대가 곧 나’라는 전제 아래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자발적인 집단 메시지다. 대학가의 소통 수단인 대자보와는 기능이 다르다. 대자보는 보고 읽었지만 스스로 의견을 밝히는 데 한계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쪽지 한 장 한 장은 곧 참여다.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어서다. 특히 위험하고 불안한 사회를 향한 젊은이들의 소리 없는 함성이자 연대와 같다.


작은 쪽지의 전파력은 대단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소통력에 견줄 만하다. 쪽지에 적힌 문구를 찍은 사진이 인터넷이나 SNS를 타고 돌고 돌아서다. 포스트잇 추모 물결은 새로운 사회 현상이다. 개개인의 의견 표출이 집단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효순·미순 때의 촛불,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때의 노란 리본과도 같은 추모 도구이지만 의미가 다르다. 메시지의 전달이 분명해서다. 포스트잇에 담긴 소망들을 이뤄나가야 한다, 우리의 과제다.

3. [서울신문][금요 포커스] 한류, 다시 길 위에 서다 / 송성각 한국콘텐츠 진흥원장

길은 어디로 이끌지 모르는 여행이다. 그래서 치밀한 계획으로 길을 나선 사람이든, 혹은 우연히 그 길에 들어선 사람이든 길 위에서만큼은 다 같이 평등하다. 어찌 보면 결정은 길이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마음으로 길을 걷고 있든, 그 사람의 마음만이 길의 방향과 운명을 결정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한콘진)이 출범한 지 어느새 7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는 2000년을 전후해 중국과 일본에서 시작된 한류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첫걸음은 신선한 스토리를 찾는 것부터였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좋은 스토리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수상작인 김원석 작가의 ‘국경 없는 의사회’다. 이 매력적인 이야기는 몇 년 후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거듭나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심히 창대한 나중을 기대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스토리가 지닌 잠재력이다.


‘신(新)한류’의 중심에는 K포맷도 있다. 중국판 ‘런닝맨’은 여전히 인기몰이 중이고, 한콘진의 해외시장 진출 지원을 받은 ‘꽃보다 할배’는 미국 NBC에 수출돼 올여름부터 ‘베터 레이트 댄 네버’(Better Late Than Never)라는 이름으로 방영될 예정이다. 지난 4월에는 대한민국의 대표 방송 포맷들이 프랑스 칸에서 열린 ‘K포맷 쇼케이스’에 참가해 미주·유럽 등 글로벌 콘텐츠 제작자들로부터 뜨거운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게임 분야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인기 아이돌 그룹 ‘EXO’를 캐릭터화해 제작 중인 모바일 러닝게임 ‘엑소런’은 한콘진 글로벌게임허브센터에 입주한 한 게임회사가 만들었다.


콘텐츠가 아닌 사람에 대한 투자가 새로운 한류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LA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받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2013년 창의인재동반사업 멘토링 프로젝트의 결실이다. 국내에서 개봉돼 500만 관객을 모은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감독도 창의 인재 프로젝트의 멘티 출신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말 영화의 본고장인 미국으로 수출되는 쾌거를 이뤘다. 기존의 성공 사례 외에 장차 ‘신한류’를 이끌어 갈 유망주들도 줄지어 대기 중이다. 중국·일본·인도네시아 등 6개국 이상에 역대 최고가로 선(先) 판매된 배우 이영애의 드라마 복귀작 ‘사임당 허스토리’는 ‘대장금’ 열풍을 재현할 것으로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작품 역시 지난해 한콘진의 방송 콘텐츠 제작 지원을 받았다.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수상작인 장용민 작가의 ‘궁극의 아이’는 현재 할리우드 진출을 타진 중이고, 그의 또 다른 작품은 조만간 블록버스터 영화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그동안 한콘진이 한류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쏟은 노력은 지난 10년간 국내 콘텐츠 수출액이 약 4배 증가하는 결실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뉴노멀 시대의 개막에 따라 한류 역시 저성장이라는 해자(垓子)를 만나면서 전환점을 모색해야 할 시기를 맞게 된 것이다. 한콘진이 중국 충칭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한 ‘서역 한류’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3300만의 중국 최대 인구 도시 충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으로 급성장 중이다. 한콘진은 최근 2년간 이곳을 한국과 중국이 함께 손잡고 더 큰 글로벌 콘텐츠 시장으로 나아가는 전략적 거점으로 삼기 위해 애써 왔다. 충칭시의 적극적인 협력을 토대로 이제 곧 그 계획을 실현하려고 한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의 인구 대국(2억 5000만명)으로 구매 능력을 갖춘 중산층이 2000만명이나 되는 거대한 나라다. 이미 젊은층에 한류 마니아가 존재하고 한국 콘텐츠에 대해 호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이곳을 통해 중동과 아프리카 등 다른 무슬림 문화권과 협력하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올가을 자카르타에서 우리 콘텐츠 기업들과 함께 한국 콘텐츠를 소개하는 로드쇼를 개최하고 현지에 사무소도 설립할 계획이다.


이제 새로운 한류의 갈림길에 서 있는 우리는 다른 무엇이 아닌 우리의 마음만이 우리가 나아갈 길의 방향과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땀 냄새 배어 있는 사유만이 삶이라는 다리를 건널 힘과 용기를 줄 것이다”라고 말한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의 명언처럼 콘텐츠로 대한민국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신한류’라는 새로운 길 위에 선 한국콘텐츠진흥원 구성원 모두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4. [동아일보][헌채방 톡톡]세월 쌓인 책갈피, 기억과 대화를 되살린다

사라져가는 헌책방


“1980, 90년대 전성기 땐 청계천 헌책방이 120군데는 됐었죠. 2000년도부터 점차 줄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21군데뿐입니다. 대형 서점, 중고 서점이 생겨나니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요. 남아 있는 헌책방들은 가겟세도 못 낼 정도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세를 내놓은 지 오래됐는데도 경기가 안 좋아 팔리지 않는 집들도 많고요.” ―현만수 씨(69·평화시장 서점연합회장)


“운영한 지 60년이 넘었지만 3년 전부터 헌책방은 중단하고 내부를 카페로 개조했어요. 서촌이 유명해지면서 방문객은 많아졌지만 장사는 안 돼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진촬영 및 공연 장소로 제공하고 있어요.” ―조희진 씨(56·대오서점 관계자)


“인천 배다리에서 올해로 43년째 운영하고 있어요. 한때 이 일대엔 헌책방이 40여 군데가 있었죠. 그러다 1974년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전철이 개통되면서 손님이 점점 줄었고 지금은 저희까지 포함해 5곳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요. 책방은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지식의 통로예요. 지키고 있다는 데 의의를 둡니다. 지금은 서점 옆 건물에 문화공간을 만들어 매달 시낭송회를 열고 각종 전시도 열고 있어요.” ―곽현숙 씨(67·아벨서점 대표)


“대형 온라인 서점에선 새 책과 다름없는 책을 30∼40% 싸게 팔죠. 신간을 싸게 사들여 약간의 마진을 붙여 되파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들었어요. 소비자 입장에선 더 싼 중고 서적에 끌릴 수밖에요. 그러면 중고 서점이 새 책의 할인 매장처럼 되는 거죠. 출판 시장이 잔뜩 불황인데 이런 움직임은 출판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어요. 도서 할인 판매율을 10%로 묶은 도서정가제를 교란할 수도 있고요.” ―오모 씨(43·출판사 대표) 


헌책방 살리기 운동


“지난해 6월부터 헌책방 주인들이 추천하는 책 세 권을 무작위로 골라 상자에 담아 판매하는 ‘설레어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한 달에 100여 권 팔려요. 청계천 헌책방 4곳이 참여 중이고 올여름 두 곳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김수경 씨(24·연세대 영어영문학과)


“부산시가 헌책방 거리에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관을 개관해 카페, 쉼터 같은 공간이 생겼어요. 헌책방들 자체적으로도 인터넷 홈페이지로 전화 주문을 받는 등 변화에 발맞추고 있답니다.” ―양수성 씨(43·부산보수동책방골목연합회장)


“청계천 오간수교 아래 산책로에서 ‘헌책다방 행사’를 2년째 진행하고 있어요. 헌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이벤트죠. 서울광장에서도 매년 ‘한 평 시민 책시장’ 행사를 주기적으로 열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학계 및 현장 관계자 10여 명으로 이루어진 ‘서점활성화 자문위원회’에서도 헌책방을 살리기 위한 여러 대책을 강구하고 있죠.” ―김홍기 씨(59·서울도서관 행정지원과장) 


이런 손님들, 기억에 남아요


“딸과 함께 책방을 찾은 한 손님이 자기 동생 이름이 쓰인 백설공주 동화책을 발견한 적이 있어요. 알고 보니 25년 전 그 손님의 남동생이 학교에서 책 한 권 가져오라고 했을 때 이름을 써서 가져갔던 책이었던 거죠. ‘동생과 함께 꼭 다시 찾아오겠다’며 놀라워했던 기억이 나요.” ―조희진 씨(56·대오서점 관계자)


“부산의 한 손님이 1960년대에 출판된 한 절판본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몇 개월 걸려 겨우 찾아내 ‘입금해 주시면 우편으로 보내 드리겠다’고 연락했죠. 그랬더니 그 손님은 ‘내게 첫사랑 같은 책인데 어떻게 우편으로 받을 수 있느냐’며 책값보다 비싼 KTX 티켓을 끊어 직접 서울까지 오셨답니다.” ―윤성근 씨(41·‘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


“주말에 관광객들이 많이 들러요. 그래서 가족 단위 손님들을 자주 봐요. 아버지 세대는 ‘추억의 팝송’이나 시집 등 옛날 책들을 기념으로 사 가요. 자녀들을 위해 세계명작 시리즈나 한국 전래동화 책들도 사 갑니다.” ―박기봉 씨(67·부산 남해서점 주인) 


해외 헌책방 현황


“책을 좋아해 많이 사는 편이에요. 그런데 호주는 책값이 비싸 헌책방에 자주 갑니다. 희귀한 책이 많아 애용하는 편이죠. 책을 팔 때도 현금으로 받는 것보다 헌책방 쿠폰으로 받으면 판매가의 20% 정도를 더 보상해 주니 이익이에요. 한국과는 다르게 교과서를 팔 땐 학생증을 보여주고 이름을 적어야 하죠.” ―최소영 씨(23·멜버른대 3학년)


“미국 뉴욕엔 고서적이나 희귀본을 취급하는 곳부터 신간의 중고 서적을 파는 서점에 이르기까지 헌책방 종류가 다양해요. 그래서 헌책방에 가면 왠지 모를 흥분이 느껴졌죠.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버지니아 울프 등 유명 작가 책들의 초판본이나 사인본도발견할 수 있죠. 이런 책을 직접 만져 보고 읽어 볼 수 있답니다. 그 밖에 헌책을 기증받아 판매한 돈으로 에이즈 환자나 노숙인을 지원하는 헌책방, 서가 길이만 18마일(약 29km)에 이르는 헌책방, 뉴욕 갤러리의 도록이나 소더비 경매 출품작 카탈로그 등을 구해 파는 헌책방 등 제각기 특색이 있답니다.” ―최한샘 씨(36·‘뉴욕의 책방’ 저자) 


헌책방, 이래서 좋아요


“헌책방의 가장 큰 매력은 ‘소통’이에요. 깊은 얘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갈 때마다 사장님, 단골손님들과 함께 대화할 수 있죠. 서로 아끼는 책을 추천해 주기도 하죠. 지난번엔 한강 작가에 대해 한 시간가량을 얘기했어요. 서로의 신상을 밝히지 않고도 자연스레 대화에 참여할 수 있어 좋아요.” ―김수경 씨(24·연세대 영어영문학과)


“학창 시절 헌책방을 뒤져 성문종합영어와 맨투맨 기본영어를 사서 달달 외우고 공부했어요. 먹고살기 바쁜 시대였던 만큼 집에 책이 거의 없었죠. 하지만 헌책방에 오면 책이 차고 넘쳤죠. 그런 제게 헌책방은 삶의 자양분이나 다름없었답니다. 헌책방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수밖에요.” ―김경식 씨(48·교사)


“헌책들 하나하나엔 다 사연이 있어요. 열에 한둘엔 꼭 쪽지나 메모가 발견되죠. 얼마 전엔 신경숙 씨 소설책 앞 장에 ‘○○아, 고맙고 미안해’라고 쓰인 문구를 봤어요. 이 책엔 대체 무슨 사연이 얽혀 있는지 궁금해요.” ―백승연 씨(35·회사원) 


“인터넷서점이 운영하는 중고 서점을 애용해요. 유행을 많이 타는 자기계발서나 이야기 구조가 단순한 소설, 여행 가이드북 등 일회성으로 읽는 책을 주로 중고로 구매하죠. 읽고 나서 다시 팔기도 해요. 인터넷서점에서 새 책을 사려다가도 새 책 바로 밑에 가격이 30% 정도는 더 싼 중고 서적이 뜨면 새 책보다는 헌책에 관심이 가요.” ―최윤미 씨(38·회사원)


“경주 한옥 저희 집에 사랑방과 같은 헌책방을 열었어요. 처음엔 환자들에게 제가 읽은 책을 1000원씩에 팔다가 반응이 좋아 제 서재를 개방한 거죠. 10년이 지나도 안 읽을 책이라면 그 책이 더 필요한 분에게 드리고 싶어요. 헌책 판매 수익금은 기부할 예정이랍니다.” ―이상우 씨(38·한의사)

5. [동아일보][광화문에서/이광표]마을벽화 유감

최근 서울 종로구 이화마을에서 일부 주민이 골목길 계단의 벽화를 지우는 일이 발생했다. 마을벽화를 지운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는 바람에 우리가 너무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이 벽화를 다시는 복구하지 말라”고 그동안의 불편함과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주민들과 함께 지역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인데, 일방적으로 벽화를 훼손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벽화마을 관광지의 주민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종로구 등 자치단체들은 정숙 관람을 권장하겠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정숙 관람이 잘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원주민을 배려하지 않는 탐방객들을 그동안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요사이 벽화마을이 부쩍 늘어났다. 이화동, 통영의 동피랑마을. 부산의 감천마을, 서울 강풀만화거리는 물론이고 전주 청주 여수 등 전국 어딜 가도 곳곳에 벽화 골목이 있다. 


마을벽화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된 경우가 많다. 이 프로젝트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노후한 마을이나 건물을 재생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주민들의 수익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취지는 분명 좋았다. 하지만 냉정히 돌아보면 이 프로젝트의 관점은 대부분 관광객 중심이었다. 주민이 참여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어떻게 하면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렇다 보니 원주민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벽화마을 관광지들은 소음 공해에 여기저기 쓰레기가 늘어나고, 원주민들의 바깥나들이는 점점 더 불편해졌다. 관광객이 몰리다 보니 자고 나면 카페만 늘어났다. 자연스레 건물 임차료가 올라갔고, 세탁소나 과일가게 같은 생계형 가게를 운영하던 원주민들은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 원주민이 사는 주택가인지 카페촌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지역도 있다.


벽화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도 지적해야 할 대목이다. 골목 중간중간 한두 곳에서 벽화를 마주친다면 멋진 풍경일 텐데, 골목골목 꽉 차 있는 벽화를 보노라면 번잡하고 부담스럽다. 지나치게 원색이 많고 아마추어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좀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마을벽화를 보고 별 감동을 느끼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아기자기하고 동화적이어서 외려 더 좋다” “프로 작가들만의 미술이 아니라 주민과 함께 벽화를 그렸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더 인간적인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일견 그럴 수 있지만, 공동 참여라는 과정이 서툰 결과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요즘 곳곳에 들어서는 조각공원도 상황이 비슷하다. 작품성과 관계없이 조각물을 채워 넣기에 급급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이는 원주민을 배제한, 관광객 중심의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반대한 원주민보다 찬성한 원주민이 많았고 또 원주민이 참여했지만, 중요한 것은 관광객이었다. 인근 도로는 자동차로 꽉 차고, 늘어나는 건 카페와 음식점이다. 서울 서촌, 가회동, 삼청동도 그렇고 부산 감천마을도 그렇다.


이번 이화동 마을벽화 훼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주민과 함께하는 것도 좋고 관광 활성화, 소비 진작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마을벽화 자체의 품격을 고민해야 한다. 냉정하게 봐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의 마을벽화는 지나친 감이 있다. 관광을 위해 과도하게 유행에 편승하는 건 곤란하다. 우리네 마을벽화에 절제와 여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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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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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헤럴드경제]

1. 부실채권 비율 5년만에 최고, 은행들 대책 마련해야

결국 올 것이 오고 있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의 쓰나미가 금융권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은행 부실채권이 31조원(3월말 현재) 이상 쌓였다. 지난해 말보다 3개월만에 1조3000억원이나 증가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6조6000억원 늘었다. 금액상으론 2001년 3월 말(38조1000억원) 이후 15년 만에 최대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여신도 증가하니 부실채권도 절대금액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비율이다. 은행권 전체 여신 가운데 부실채권(고정이하)이 차지하는 비율은 1.87%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때인 2010년 3월의 2.0%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다. 비상 상황에 접어들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높은 편이다. 미국은 1.54%, 일본은 1.53% 수준이다.


문제는 앞으로의 전망이다. 암울하다. 점점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증가 속도도 빠르다. 우선 부실채권은 대부분 기업에서 생겨나고 그것도 대기업에 몰려있다. 전체의 90% 이상이다. 기업 부실채권비율은 2014년 말 2.09%에서 작년 말 2.56%, 올해 3월 말 2.67%로 수직 상승중이다. 대기업만 보면 부실채권 비율이 3월 말 4.07%로 작년 말보다 0.31%포인트 높아졌다. 중소기업은 1.61%로 오히려 0.03%포인트 하락했다. 


부실채권으로 가는 징조는 연체율에서 먼저 나타난다. 역시 좋지않은 시그널이 계속 나온다. 은행권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지난 1월 말 0.92%로 한 달 동안 0.14% 포인트나 급격히 올라갔다. 특히 대기업만 보면 연체율은 1.14%에 달한다. 심각한 수준이다. 그나마 지난 4월 말 대기업의 연체율이 0.87%로 다소 낮아졌지만 앞으로 부실채권이 늘어날 가능성은 점점 높아져 간다. 


부실채권은 떼인 돈으로 본다. 그게 늘어난다는 건 은행의 수익성이 나빠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조선사들 여신을 정상으로 분류해 아직 충당금을 거의 쌓지 않은 상태다. 실제로 올해 1분기 동안 새로 발생한 부실채권은 7조5000억원으로 전 분기 13조3000억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부실채권으로 분류되어야 할 규모가 커진다. 


몰랐던 일이 아니니 조선 해운의 구조조정이 은행권의 위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대책에는 만전을 기해야 한다. 조선, 해운뿐 아니라 철강을 비롯한 주요 업종에서도 부실채권은 발생할 수 있다.

2. '메피아' 청산없는 사고재발방지 대책은 백년하청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파장이 거세다. 사고현장에는 열아홉살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메시지가 연일 넘쳐나고 있다. 여야 대표급 인사들의 발길도 이어지는 등 정치권 관심도 뜨겁다. 지하철 1~4호선을 관리하는 서울메트로는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았고, 서울시는 해당 본부장을 교체하는 문책인사를 단행했다. 경찰은 서울메트로와 김 군이 소속된 용역업체인 은성PSD간의 용역계약 문제점 등에 대한 수사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야말로 일파만파다. 파장의 밑바닥에는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O피아’의 고질적인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같은 바람은 이번에도 희망사항에 그칠 뿐이다. 구의역 사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울메트로는 사고 방지를 위해 스크린도어 관리 자회사를 설립하고 정비 인력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메피아(메트로+마피아) 문제가 정리되지 않는 한 의미를 찾기 어렵다. 상위기관이 산하기관이나 용역업체를 장악하고 끼리끼리 일을 몰아주고 이익을 챙기는 구조를 차제에 확실히 뿌리 뽑자는 것이다. 


도마에 오른 은성PSD의 인적구조와 경영 상황을 보면 이번 사고가 구조적일 수밖에 없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우선 은성PSC의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직원의 40%가 서울메트로 출신이다. 서울메트로는 은성PSD와 용역 계약을 하면서 퇴직자의 일부를 받아주도록 명시했고, 급여도 종전의 60~80%를 보장하도록 했다. 그 댓가로 은성PSD는 4년간 350억원 가량을 용역비로 받았다고 한다. 경영 효율화를 빌미로 외주를 준다면서 용역업체를 정규직 인원감축의 배출구로 활용한 셈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옮겨간 ‘전적자’들이 대부분 ‘앉은뱅이’라는 사실이다. 이직 당시 이들은 역무원 등 스크린도어 정비관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서 일을 했다. 입사후 2~3주의 간단한 교육만 받았을 뿐이고 그나마 적극적으로 현장에 투입되지 않았다. 그 빈 자리를 일반 채용 인력이 메우려니 업무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도 월급은 일반직원의 2~3배를 받았다고 한다. 


세월호 사태 이후 ‘관피아’ 폐해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법개정이 이뤄질 정도로 일대 광풍이 몰아쳤다. 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그 폐해의 찌꺼기는 여전히 독버섯처럼 자라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다. 이제 정말 달라져야 한다.

[아시아경제]

3. 미세먼지 대책, '기본'에 충실하라

미세먼지 대책을 놓고 갈등 양상을 빚었던 정부 관련 부처와 여당이 오늘 오전 국회에서 만나 '긴급 수습'에 들어갔다. 정부 측에서는 "처음엔 이견이 좀 있었으나 좁혀지고 있으며 균형 있는 대책 수립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그 말처럼 국민들이 안심할 만한 대책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미세먼저 저감을 둘러싼 최근 정부 대응의 난맥과 혼란은 과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챙기는 정부' '문제를 체계적으로 푸는 정부'로서 신뢰를 보낼 만할지 의문을 갖게 한다.


정부의 대응의 혼선은 무엇보다 환경부가 덜컥 '경유값 인상론'부터 꺼낸 것에서 비롯됐다. 경유 사용을 억제하면 대기질이 좋아질 것이라는 주장이었지만 환경부는 미세먼지의 발생원에 대한 종합적인 파악도 안 된 상태에서 이렇다 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정부 안에서부터 반론이 나왔고 여당도 반대하면서 경유 인상론은 슬그머니 가라앉았다.


경유값 인상론은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이 '미세먼지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지시하자 '비상'이 걸린 정부가 뭔가 급히 내놓을 대책을 서둘러 마련하면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대기질 개선 효과에 대한 충분한 검토는 없었다. 이 같은 급조 대책은 그 동안 미세먼지 문제를 방치 내지 안일하게 대응해 왔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경유값 인상' 발상은 문제가 터지면 그때부터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우왕좌왕하다가 뭐든 한두 가지를 원인으로 쉽게 규정하는 식의 해결법을 보여준다. 경유가 대기 오염원 중 하나이며 휘발유 값의 85%에 묶여 있는 경유값 인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미세먼지 발생원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석탄화력발전소, 공장, 중국발 오염원까지 다양한 발생원과 발생경로를 정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경유가 주원인으로 꼽히지만 미세먼지 배출량이 다른 연료와 사실상 차이가 없다는 실험결과도 나오는 등 과장됐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경유값 인상 여부는 그런 근거들을 종합해서 결정할 문제다. 또 올리더라도 소비자 간 형평성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담뱃값 인상처럼 추가부담을 서민에게 떠넘기는 식이어선 안 된다.


오늘 당정 협의에서 새누리당 측이 요구한 것처럼 '영세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늘리지 않고 국민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는 방안'은 없을까라는 고민을 애초부터 많이 했어야 했다. 당정 협의에선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해 새로운 먹거리ㆍ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도록 하겠다"(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는 말까지 나왔다. 의욕적이긴 하나 '기본'에 충실한 모습부터 보여주기 바란다.

[이데일리]

4. 안전불감증이 초래한 '사회적 타살'

어제 경기 남양주시 진접선 지하철 건설공사장에서 강력한 가스폭발로 현장 근로자 4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 당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지하 15m 밀폐공간에서 철근 절단작업을 하던 중 프로판가스가 새나와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며칠 전 서울 광진구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작업을 하던 수리공이 승강장으로 진입하는 열차에 끼여 숨진 사고에 이어진 ‘인재’(人災)다.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관계당국이나 사업주가 재발 방지를 굳게 다짐하지만 잊힐 만하면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는 안전사고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안전불감증이 팽배해 있다는 얘기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사고만 해도 2013년 성수역에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난 이래 벌써 4번째다. 열아홉 살 나이에 채 피지도 못한 채 숨져간 이번 구의역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렬이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사고는 더 조사해봐야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겠지만 스크린도어 사고는 인재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2인 1조’ 근무가 원칙이지만 이번에도 혼자서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희생자의 동료 수리공들은 “여러 사정으로 파트너가 빠지는 바람에 혼자 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작업 도중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시민단체들이 이번 사고에 대해 ‘명백한 타살’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메트로가 구의역 사고와 관련해 뒤늦게 총체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의 뜻을 표명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사고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도 내놓았다. 하지만 앞으로 정말로 비슷한 사고가 근절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비용을 줄이기 위한 외주화 정책의 구조적 문제와 형식적인 관리·감독, 현장 여건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한 매뉴얼로는 근본적인 사고 예방이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전을 비용으로 따지는 사회적인 인식이다. 어려운 경영 여건을 따진다면 불가피한 일이겠으나 그래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만은 마련돼야 한다. 그러지 않다면 안전사고는 누구에게나 순식간에 닥쳐오기 마련이다. 작업 도중 폭발사고로 아수라장으로 변한 남양주 건설공사 현장이 그것을 말해준다. 부주의한 사고로 애꿎은 희생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5. 악성 보험사기 범죄 왜 끊이지 않는가

지난해 적발된 보험사기 금액이 6549억원이라고 한다. 전년에 비해 9.2%가 늘어난 것은 물론 역대 최대치에 해당한다. 국민 1인당 13만원씩 가만히 앉아서 사기당한 셈이다. 적발되지 않은 것까지 감안하면 실제로는 한해 5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추측이다. 본지가 어제 보도한 보험사기의 현주소다. 이대로 둔다면 보험산업의 근간이 무너질지 모를 일이다.


보험사기 적발 금액은 2012년 4533억원에서 3년 사이에 2016억원, 44.5%가 늘어나는 등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보험금을 노린 살인, 방화 등 강력범죄도 문제지만 ‘나이롱환자’, 수리비 과다청구 등 ‘연성 사기’가 더 큰 문제다. 지난해 살인 등 고의사고 비율은 14.9%로 전년보다 3.2%포인트 줄었다. 반면 가짜 환자와 사고내용 조작 등 허위·과다 청구 비율은 75.8%로 5.4%포인트가 늘었다.

보험사기가 늘어나는 1차적 원인은 죄의식 결여에 있다. “그 정도의 거짓말이 무슨 죄냐”는 잘못된 생각으로 범죄 유혹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 탓도 크다. 보험사기로 적발돼도 징역형 비율은 22%로, 일반사기범(45%)의 절반 수준도 안 된다. 최장 20년형의 1급 중범죄로 다스리는 미국 뉴저지주와는 천양지차다. 미수에 그쳐도 보험남용죄로 처벌하는 독일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보험사기는 보험료 인상을 유발해 선량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악성 사회범죄다. 이렇게 새나가는 사회적 비용을 조금만 줄여도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보험사기를 뿌리 뽑아야 한다. 날로 수법이 지능·조직화하고 있는 점에 비춰 조사기법의 선진화, 관련기관 간 공조체제 구축 등 선제적 대응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보험사기는 엄연한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별것 아닌 가벼운 거짓말이라고 넘어가는 ‘연성 사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 처벌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 오는 9월부터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에 따라 보험사기가 일반 사기와 별도로 구분된다. 중범죄에 준하는 처벌 수준으로 다듬어 보험범죄 예방의 실효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6. 김정은 특사 맞은 中, 북핵 오판 않게 해야

북한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40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그제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리 부위원장은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정치국 위원에 임명됐고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직도 맡는 등 외교 분야의 실세로 등장한 인물이다. 이번 방중은 제7차 노동당 대회 결과를 중국 측에 설명하는 게 주요 목적이지만 핵실험과 대북 제재 등으로 경색된 양국 관계를 개선하고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리 부위원장의 방중은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졌던 북한과 중국이 일단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유엔의 대북 제재를 완화시키고 고립에서 탈피하는 돌파구를 찾으려 할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면서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탐색하는 자리인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어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리 부위원장 일행과 면담을 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일관되고 명확한 입장’이란 표현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3원칙(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안정, 대화·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은 불변이라고 밝혔다. 이는 북한의 ‘핵·경제’ 병진 노선은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앞서 리 부위원장은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만나 핵·경제 병진 전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유엔 안보리는 북의 핵실험과 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를 막기 위해 지난 3월 역대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 2270호를 채택했고 중국 역시 결의안 이행을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이런 와중에 리 부위원장의 방중은 2013년 2월 3차 핵실험으로 유엔의 대북 제재가 발효되고 3개월 뒤 최룡해 당시 군 총정치국장이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최룡해가 시 주석에게 6자회담 재개 등을 통한 문제 해결 의사를 밝힌 뒤 중국의 대북 제재는 완화됐고 결국 지난 1월 4차 핵실험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그동안 북한을 지정학적 안보 자산으로 인식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미·중 패권 다툼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다.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이용해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해 중국을 압박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중국 언론들이 최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베트남과 일본 순방을 대중 포위전략의 구체화라고 보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자국의 안보적 이익을 앞세워 북한을 비호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북한에 핵과 미사일 도발을 불용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중국이 그동안의 유엔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지속하는 한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은 불가피하며 핵 포기 이외에 다른 출구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이번만큼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의무를 다해 북한의 오판을 막아야 한다.

​[동아일보]

7. 新보호무역 시대, 낡은 수출전략으론 먹고살 수 없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어제 “한국은 여전히 사업하기 어려운 환경이며 이를 개선하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완전히 이행해야 한다”면서 법률시장 개방을 촉구했다. “자동차 좌석 크기를 수치로 정해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한국의 규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통상(通商)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오늘 방한하는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도 통상 문제와 원화 환율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거론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대선 국면에서 공화당 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외친 ‘반(反)자유무역’의 공명(共鳴)을 타고 누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든 보호무역주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대사의 FTA 이행 촉구는 이런 변화 기류의 전조일 뿐이다.


미국과의 통상 마찰을 피하려면 정확한 통상 논리를 갖추고 우리의 입장을 최대한 이해시켜야 한다. 그럼에도 리퍼트 대사의 지적에는 곱씹을 대목도 있다. 한미 양국은 FTA에서 2017년부터 법률시장을 개방하기로 했지만 현행법은 합작법인 설립 시 외국 로펌의 지분을 49%로 제한했다. 대통령이 규제개혁회의를 5번이나 주관해도 규제는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아 진입 장벽을 치고 국내외 기업을 괴롭힌다. FTA를 ‘경쟁을 통한 경쟁력 확보’ 기회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어렵게 얻은 기회를 사장(死藏)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더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공급 과잉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는 자유무역을 주장하지만 자국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보호무역으로 돌아서는 추세다. 정부가 이런 세계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과거의 성장전략에만 몰두한다면 잠재성장률 둔화를 피할 수 없다. 5월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6% 감소하는 등 월별 수출이 지난해 1월 이후 17개월 연속 뒷걸음질치는 것도 제조업 경쟁력 추락과 함께 보호무역주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대증요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불치병을 수출금융 확대 같은 단기 대책에 치중할 뿐, 내수를 키우는 근본적인 수술을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말 당선인 시절 “지금까지 대기업 수출에 의존하는 외끌이 경제 성향이었다면 이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가 함께 가는 쌍끌이로 가겠다”고 강조했지만 거꾸로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과 정부는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의 수출로는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 됐다는 인식의 공유를 시작으로 산업 구조를 바꾸는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좁은 한국 내수시장에 더해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야 신(新)보호무역주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중앙일보]

8. 위험 업무를 외주업체로 돌려선 안 된다

생일 전날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고로 숨진 청년의 안타까운 사연의 후폭풍이 거세다. 청년을 죽음으로 몰고간 구조적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서다.


가장 큰 문제는 공기업과 퇴직 사우들 간의 유착이다. 서울메트로는 기술 분야에서만 30가지 이상의 업무를 외주업체에 맡기고 있는데 상당수 외주업체를 퇴직사원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참사와 관련된 업체는 서울메트로로부터 연 9%가 넘는 고수익과 최대 22년의 독점사업권을 보장받았다고 하니 누가 봐도 정상적인 계약이 아니다. 공기업이 ‘퇴직 후 직장’을 만들어 이권이 보장된 일감을 몰아주면서도 서울메트로 출신이 아닌 대부분의 현장 직원들은 복지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혹사당했던 사실이 이번 비극을 통해 드러났다. 퇴직 임직원들의 배를 불리느라 정작 현장에서 위험한 일을 하는 직원들의 안전은 나 몰라라 했다는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서울메트로는 퇴직 직원들을 챙겨주려고 허술한 안전 관리를 눈감아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최판술 서울시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이번에 숨진 김군을 고용한 외주회사는 작업확인서 195건 중 48건에서 작업자가 한 명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2인1조 근무지침을 최소한 4번에 한 번꼴로 안전기준을 공공연하게 무시해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고는 예고된 참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경찰과 검찰은 이들의 유착 의혹을 낱낱이 수사해야 한다. 이권이 걸린 부문은 공권력이 개입하지 않으면 스스로 깨끗해지지 않는 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4년 동안 유사 사고가 반복됐음에도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피해자 가족과 시민 앞에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 더불어 안전 업무의 외주 관행을 뜯어고치는 근본적인 대책도 내놔야 할 것이다.


지난 19대 국회 시절이던 2014년 10월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이 발의했던 ‘생명·안전 업무 종사자 직접 고용법’이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이 법안은 철도·도시철도·항공·운수사업 등 생명·안전과 관련한 업무는 외주 용역을 금지하고 정규직을 직접 고용해서 보다 나은 근로조건·안전환경 아래에서 일을 맡기게 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상관없이 안전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차별도 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안전 차별 금지’ 내용까지 포함되기를 기대한다.


안타까운 점은 이 법안이 별 관심을 받지 못한 채 2015년 3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불과 한 차례만 논의된 뒤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는 것이다. 곧 개원할 20대 국회는 개원 즉시 힘없는 근로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폐기된 관련 법안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검토하기를 바란다. 언제부터인가 비정규직과 외주업체 직원들이 붕괴·화재 등으로 희생되는 비극적인 산업재해가 너무 흔해졌다. 잘못된 관행과 제도는 철저하게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위험한 업무들이 외주업체에 무책임하게 떠맡겨져 안전을 소홀히 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9. 새누리당은 무리한 조기복당 시도 그만 두라

20대 국회 원 구성을 앞두고 새누리당에서 탈당파 의원들을 조기 복당시키려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강길부·장제원 의원 등 탈당파 7명 중 최소한 5명을 국회의장단 인선 마감일인 7일 이전 복당시켜 1석 차로 더불어민주당에 내준 원내 1당 지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박계가 이런 주장에 가장 적극적이다. 이들은 더민주와 국민의당에 포위된 원내 구도를 유리하게 바꾸려면 조기복당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 이면엔 새누리당이 하루라도 빨리 원내 1당으로 올라서야 관례상 1당에 주어져온 국회의장과 주요 상임위원장직을 차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게 중론이다.


4·13 총선 결과 더민주가 제1당에 오르고, 새누리당이 2당으로 내려앉은 건 민심의 준엄한 선택이다. 총선 뒤 두 달도 되지 않아 편법으로 순위를 뒤집으려는 건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총선 전 탈당파들을 공천 탈락시킬 당시 새누리당은 ‘의원직을 너무 오래 했다’ ‘정체성에 문제가 있다’ 같은 이유를 댔다. “탈당자가 당선돼도 복당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말들을 번복하려면 공천 과정에서 빚어진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사죄부터 해야 한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도 이런 비판을 의식했는지 1일 “원 구성 협상 전 복당은 없다”고 천명했다. 옳은 얘기다. 하지만 이런 다짐이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당헌당규상 복당 결정권은 이르면 2일 업무를 개시할 혁신비대위원회에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혁신비대위의 김희옥 위원장은 친박 인사로 분류된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1일부터 “국회의장은 원내 1당 아닌 여당이 맡는 게 관례”란 주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런 기류라면 혁신비대위에서 조기 복당이 추진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럴 경우 야당의 반발을 불러 원 구성 협상이 장기화할 우려가 크다. 이로 인해 20대 국회의 정상 가동이 늦어지면 나라 전체가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20대 국회를 협치 국회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면 여당은 무리한 조기복당 시도부터 접어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10. 고개든 美통상압박 더 거세질 상황까지 대비해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어제 한 강연회에서 한·미 간 통상 문제에 강도 높게 불만을 표명하며 통상 압박에 팔을 걷어붙인 모양새를 보여줬다. 리퍼트 대사는 한국에만 있는 기업 규제라며 자동차 좌석 넓이를 구체적으로 들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 비관세 장벽을 제거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한국은 여전히 사업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의 법률서비스 시장 개방 등 한·미 FTA에 대한 한국 측의 완전한 이행이 부족하다는 공격까지 했다. 양국 간 갈등이 불거진 것도 아닌데 고강도 요구를 하고 나선 점에서 통상 압박이 거세질 조짐을 읽게 한다.


미국 측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들먹인다. 한·미 FTA가 발효된 2012년 152억달러였던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이후 해마다 늘어 2015년엔 258억달러에 달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대미 수출은 585억달러에서 698억달러로 113억달러 늘었으나 수입은 433억달러에서 440억달러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런 불균형을 미국 의회가 계속 지적하자 미 재무부는 지난 4월 대미 흑자를 많이 내는 한국과 중국, 일본, 독일, 대만 등 5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 바 있다. 미 의회는 한·미 FTA와 관련해 법률서비스 시장 추가 개방, 미국산 의약품 가격 결정 등에서 한국의 이행이 부족하다는 공세를 계속 펼치고 있는 만큼 추가적인 압박이 예상된다.


마침내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말 한국산 내부식성 철강제품에 대해 최소 8.7%에서 최대 47.8%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미국 내 철강회사들이 한국과 중국 제품의 덤핑 수출 의혹을 제기한 후 1년여 전부터 조사를 해왔는데 반덤핑 예비판정 때(최대 3.5%)보다 훨씬 높은 관세율을 적용한 것이어서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강경한 보호무역주의를 내걸자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도 한국 등 FTA 기체결국에 강력한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표심을 겨냥한 미 대선 후보들의 통상 이슈에 대한 자세는 한층 강경해질 개연성이 높은 만큼 우리는 더 거세질 압박에 미리 대비해야 할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헤럴드경제][데스크칼럼]한강의 손

대학시절, 한 교수님은 학문을 계속할 싹수가 있는지 없는지를 손으로 판단하셨다. 손가락이 굵고 짧아야 한다는게 그의 지론이었다.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앉아 한 길을 계속 파들어가야 하는 학문의 태도와 그런 아둔한듯 끈기있는 성격이 손가락에 담겨 있다고 봤다. 바꿔말하면 농부의 손가락과 비슷해야 한다는 얘기었는데, 당연히 그 교수님의 손가락은 굵고 짧았다. 그러나 키가 작고 퉁퉁한 몸집이었던 그의 손가락이 만약 가늘고 길었다면 기형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가 믿고 있는 그 확신은 그의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으니 나름대로 전통도 있는 셈이다.그

이후 누군가를 만나면 ‘공부에 뜻이 있는지’를 손가락으로 재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대체로 맞아 떨어진다는게 이상하다면 이상하달까. 작가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늦가을 열렸던 소설가 황석영의 북콘서트에서도 눈길이 간 건 그의 손가락이었다. 마이크를 쥔 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발랄하고 육덕진 어휘력을 구사하는 시인 김민정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콘서트 무대에 선 황 작가는 예의 막힘 없고 날랜 말솜씨를 자랑했다. 문제는 손가락이었다. 황 작가는 자신의 작품 얘기를 하다 그만 마이크를 쥔 손을 내려놓고 어쩔줄 몰라했다. 사회자인 김 시인의 재치있는 대처로 약간의 해프닝 정도로 넘어갔지만 그 일은 바로 한달 전의 일을 떠올리게 했다. 어느 저녁식사 자리에서 젓가락을 잡은 그의 손이 떨리는 걸 본 것이다. 50여년 넘게 봉사해온 그의 손가락이 아니던가.


얼마 전,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에서 만난 이문열 작가는 내년이 칠순인데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고 뻑뻑하다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의사에게 물어봤더니, 그 나이에 안 아프면 이상한게 아니냐고 했다는데, 1년전 암 수술한 것보다 손가락이 그는 더 마음이 쓰이는 듯 했다. 아닌게 아니라 그의 투박하고 부은 듯한 손가락은 아파보였다.


작가들의 손가락은 신체 중 가장 혹사당하는 기관임에 틀림없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역시 손가락 통증을 호소한 적이 있다. 바로 ‘채식주의자’의 ‘작가의 말’에서다. 그는 연작 세 편 중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은 손가락 관절이 아파 손으로 썼다고 했다. 그렇게 쓴 걸 한 여학생이 타이핑 해오면 다시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했는데 그 정도까지는 그나마 괜찮았다. 나중에는 손목 통증으로 지속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2년을 쉬고 나온 세번째 연작 ‘나무 불꽃’은 “볼펜을 거꾸로 잡고 자판을 두드”려 썼다는데 그게 어떤 모습인지 아리송하다.


그렇게 고통 속에 하나의 소설이 탄생하지만 독자들의 선택을 받는 건 쉽지 않다. 한강의 맨부커상 효과로 모처럼 독자들이 소설로 돌아왔다. 한국 소설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는 3년만이다. 


80년대만 해도 해외에선 ‘한국에 소설이란게 있냐’고 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게 거저 주어진 게 아니란 걸 우리는 때로 잊는다.

2. [헤럴드경제][직장신공-김용전 작가 겸 커리어 컨설턴트] 진로 고민

‘선배 미용인들의 블로그 글을 보면서 깨달은 바 있어 나이 29세에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1년 전에 미용인으로 전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 접해보니 블로그는 환상이었고 실제는 그다지 열정 있는 선배를 못 만났으며 대부분 2백50 정도의 월급에 그나마 매출이 줄면 150만 받더군요. 제 하기 나름인 건 알지만 결국 저도 그런 길을 가는 게 아닌가 걱정되어서 요즘 미용인이냐 은행원이냐 다시 고민 중입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6권 306쪽에 보면 이봉학(임꺽정의 의형제)이 전주 감영에 예방비장으로 갔을 때 동료 아전들이 시기해서 귀신 나오는 방을 배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봉학이 덤덤하게 받아들여서 그리로 가려 하자, 통인 아이 하나가 조르르 와서는 ‘나리 거기로 가지 맙시오. 그 방이 귀신 나오는 방이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입니다.’라고 한다. 


그러자 이봉학이 왈, ‘네가 말하는 세상이라는 건 필시 전주 부중일 테지!’ 한다. 이분이 겪은 미용인의 세상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질문 내용으로 봐서는 아직 그 세상의 반도 못 보았을 것 같다. 


내가 아는 선배만, 그것도 1년만 보고 나서 미용의 세계를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다. 


더 넓은 세상에는 미용인으로 일하면서 행복한 분들과 성공한 분들도 많다. 


그리고 이상한 건 이분이 블로그에서, 미용으로 떼돈 번다는 글을 읽고 느낀 바가 있었던 건 아닐 텐데, 왜 결론은 돈 이야기로 돌아가는지? 


이분은 미용인이 되어서 불행한 인생이 되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갈팡질팡해서 불행한 인생이 될 확률이 아주 높다. 


직장인들이여!! 전업할 때 그 일에서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분명히 정하고 가라. 


어떤 일이든 1년 안에 환희가 찾아오는 일은 흔치 않으며, 또 어떤 업이든 실패한 자와 성공한 자는 공존한다. 


이 말이 이해되지 않으면 섣불리 ‘깨달음’ 운운하지 말고 하던 일이나 잘 하라!

3. [매일신문][매일춘추] 인생의 주인공 

공연이 끝나면 출연진과 스태프들이 함께 회식자리를 가진다. 그동안의 수고를 격려하고 작품에 대한 품평회도 하는 자리이다. 자리가 진행되다 보면 조명감독인 필자에게도 배우들이 말을 걸어온다. “감독님 오늘 조명 너무 좋았어요”라고 인사를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그냥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되지만 장난기가 발동한 필자는 질문을 주신 분들에게 다시 묻는다. “제 조명이 좋다고요? 어디가 좋다는 말씀이시죠?” 십중팔구 질문을 주신 분들은 당황한다. 그때 “제 조명이 좋은 이유는 바로 당신을 비추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자리는 모두 웃으며 즐거운 분위기가 된다. 필자는 작품 속에서 빛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그 빛이 무대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모두 배우를 비추기 때문이다.


경험이 부족한 일부 배우들은 가끔 자신들이 무대 위에서 얼마나 빛나고 있는지 스스로는 잘 모를 때가 많다. 화려한 조명과 웅장한 무대세트에 위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대가 아닌 현실에서도 지금 막 사회에 진출한 청년들은 여러 가지 문제로 위축되어 있다. 하지만 삶이라는 무대에 주인공인 ‘우리’가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반대로 일부 배우들은 무대에서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너무 강해 모든 것이 본인 위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스케줄을 무조건 본인에게 맞춰야 한다거나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연습을 반복해서 하는 시간이면 옆으로 빠져 특별한 대우를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작품이라는 것은 주연급 배우 몇 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연이 있다면 조연이 있어야 하고 작품을 만드는 수많은 스태프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관객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사는 세상도 혼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방송에 나와 자신을 사랑하라고 이야기하고 혼자 음식을 맛있게 먹는 법을 이야기한다. 핵가족 사회를 넘어 1인 가구 형태가 많아지면서 자신 위주로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신이 불편한 것을 매우 싫어한다.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요즘 생기고 있는 흉악범죄의 시작일 수도 있다.


무대 위의 주인공이 박수받고 사랑받아야 마땅하지만 하나의 작품을 위해서는 주인공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나 스스로가 행복해야 하지만 내 이웃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삶이라는 작품의 완성을 위해서 꼭 우리 모두가 함께해야 하는 이유다.

4. [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여친과 부모님 마음 돌려놓기

등 돌린 여자친구의 마음, 어떻게 해야만 되찾을 수 있을까? 인터넷을 검색하면 이런 고민으로 가슴앓이하는 이들을 위한 ‘재회 컨설팅’ 업체들 광고가 줄줄이 이어진다. 재회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서비스는 전화 상담부터 현장 출장 이벤트까지 다양하다. 수수료는 1회 상담에 4만∼20만 원대에 이른다. 


4·13총선 때 호남에서 참패한 더불어민주당의 지도부는 요즘 ‘호남민심’ 회복 방안을 놓고 의견차를 드러내고 있다. 야권의 전통적 텃밭인 호남의 유권자들은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전폭적으로 밀어주면서 더민주를 심판했다. 더민주 내부에서는 싸늘해진 호남을 ‘여자친구’로 바라보는 쪽과 ‘부모님’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문제를 푸는 방법론도 달라진다.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 등이 ‘여자친구론’을, 문재인 전 대표와 송영길 의원 등은 ‘부모님론’을 지지한다. ‘여자친구론’ 편에서는 ‘애인이 싫어져 떠난 여친에게 스토커처럼 매달리면 역효과를 낼 수 있으니 이성적으로 생각할 시간을 주자’며 ‘냉각기’를 주장한다. 반면 ‘부모님론’ 측에선 “무슨 소리냐. 부모님이 화내시면 더 자주 뵙고 마음을 풀어드리는 게 도리”라며 받아친다. 호남의 속내는 과연 어느 쪽일까. 아무리 얘기해도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남친에게 질려버린 여친처럼 결별의 최후통첩을 보낸 것일까. 하는 짓은 미워도 절대 자식을 내칠 수 없는 부모의 심정으로 또 한번 회초리를 든 것일까.  


헤어진 여친 마음을 돌리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컨설팅 업체들은 재회의 열쇠는 ‘당신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여친을 되찾고 싶다면 우선적으로 여친의 속마음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사귀는 동안 잘못한 부분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고쳐 나갈지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내려야 한다. 그저 임시방편으로 적당히 둘러대거나 궤변을 늘어놓으면 관계 회복은 물 건너간다. 떠난 여친을 그리워하는 남친뿐 아니라 ‘호남 구애’에 나선 더민주가 새겨들어야 할 조언인 것 같다.

5.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 태어나서 참 좋다

“제품아, 잘 팔려라. 이얍∼!”


광고사진을 찍으면서 이렇게 기합을 넣고 셔터를 누르던 분이 계셨다. 광고디자이너가 원하는 대로 제품 사진을 찍어주면 그만이지만 항상 자신이 촬영하는 상품이 잘 팔리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힘차게 기를 불어넣었다는 원로 사진가 김한용 선생님이다. 지난주 93세로 세상을 떠난 그분의 빈소를 다녀오며 “내가 사진을 찍은 제품이 잘 팔리고 내게 일을 준 사람이 부자가 되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이겠어요”라고 하시던 생전의 말씀이 떠올랐다. 단순히 일과 돈을 주고받는 거래가 아니라 그 너머까지 생각한 진정한 프로였다.


그분은 청년 시절에 일이 없어 풀 죽어 집에 들어가는 날일수록 골목 밖까지 마중 나와 있던 어머니에게 일부러 더 큰 소리로 “어머니∼”라고 부르며 달려갔다고 했다. 행여 어머니가 아들의 곤궁함을 눈치채실까 봐 더 씩씩하게 행동했다는 그분은 6·25전쟁 직후 남루했던 시대를 살면서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행복한가를 체험했다고 말했다. 그 후 자신의 혼을 불어넣어서라도 고객이 잘되길 바랐던 투철한 직업정신은 지금까지 광고사진계의 전설로 남아 있다. 


항상 긍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만나면 참 반갑다. 엊그제 미장원에서 내 머리를 만지던 원장이 “저는요, 이 세상에 태어난 게 너무 좋아요”라고 하는데, 그녀의 인생 역정을 아는지라 그 말이 더욱 신선하고 감동적으로 들렸다. 그녀는 간신히 중학교를 졸업한 후 집을 나와 자수성가했다. 그녀가 “혼자 힘으로 사느라 고생은 많이 했지만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것만으로도 부모님께 감사해요. 나머지는 내가 하면 되니까요”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그녀는 주어지지 않은 것을 원망하지 않고 나머지는 자기 힘으로 했다. 어린 나이에 미용기술을 익힌 다음 30여 년 동안 혼자 힘으로 자신이 갖지 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성취해왔다. 일을 하면서 뒤늦게 학교도 다녔고 착실하게 돈을 모아서 가게를 열었다. 지금은 자신처럼 부모덕을 보지 못하는 어린이 세 명을 후원하고 있다고 했다. 


시대를 잘못 타고 나왔다고, 부모를 잘못 만났다고 좌절하기보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최선을 다하는 긍정적인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바꾼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 우리도 자문해보자.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참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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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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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황교안 총리가 미세먼지 대책 책임져야

미세먼지가 연일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도 정부는 부처 간 영역 다툼으로 허송하는 모습이다. 환경부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 관련부처들 사이의 기본입장 차이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국무조정실을 둔 것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워낙 해법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물밑에서 서로 해결책을 찾아 나가고 있을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지난 주로 예정됐던 관계부처 차관회의가 연기되고는 다음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니, 이런 난맥상이 따로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세먼지가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며 특단의 대책 마련을 누차 지시했는데도 꿩 구워 먹은 소식이라면 내각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현재 가장 큰 쟁점은 경유값을 올리거나 경유차에 대한 환경개선부담금을 부활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좁혀지고 있다. 경유차가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휘발유차에서도 만만치 않은 미세먼지가 배출된다는 분석을 가볍게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정부가 과거 수년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인다는 차원에서 경유차를 장려했던 실책을 소비자에게 전가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가 그동안 경유차 소유주로부터 거둔 환경부담금 가운데 정작 대기 질 개선에 사용한 금액이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정책 선택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인 셈이다. 화력발전소 문제도 전력 공급을 계속 확대해야 하는 필요성에 비춰본다면 쉽사리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여기에 소비자 단체나 환경단체들까지 가세해 저마다 목소리를 높여가는 중이다.


결국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한 다음 절충점을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 미세먼지를 줄이는 것이 최대 당면 과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차량 소유자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떠넘겨서는 정책이 성공하기 어렵다. 석탄발전을 줄이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각 부처의 입장을 떠나 국민 건강과 경제를 두루 살피는 안목이 요구된다.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부처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황교안 국무총리가 자리를 걸고라도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2. 국방부최전방으로 보내야 할까

각종 비리와 사건으로 바람 잘 날 없는 국방부가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이번엔 근무 태도가 불량한 군의관들을 격·오지로 좌천시키겠다는 구상 때문이다. 국방부 인사관리 훈령에 진료 중 친절하지 않거나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되는 등 불성실한 군의관들을 비(非)선호 근무지로 보내는 조항이 신설됐다고 한다. 이들에게 진료를 받게 될 해당 지역 장병들의 사기를 감안한다면 구설수 차원을 넘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그동안 일부 군의관의 불성실한 진료 및 근무태도는 끊임없는 민원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계급이 자기보다 낮은 것을 핑계 삼아 환자가 아닌 부하로 거칠게 다루거나 의무병에게 주사와 조제를 맡겨 잦은 의료사고를 빚기도 했다. 엉터리 진료와 처방으로 목숨을 잃거나 장애를 떠안은 사례도 수두룩하다. 특히 제대가 가까운 말년 군의관들의 기강 해이가 심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불량 군의관을 손보겠다는데 누가 뭐래겠는가.

다만 방법이 문제다. 비선호 지역이란 교통이 불편하고 편의시설이 열악한 최전방 일반전초(GOP)나 서북 도서 등의 격·오지를 가리킨다. 불량 군의관을 골라내 최전방 장병들의 치료를 맡기겠다니 도대체 제정신인지 모르겠다. 앞으로 최전방에 배치됐다가 억울하게 덩달아 ‘불량 군인’ 딱지라도 붙으면 그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할 텐가. 이런 조치는 우수 병력의 최전방 지원을 유도한다며 봉급·휴가·부식·보급 등을 우대하는 ‘최전방 수호병제’를 2014년 말 도입한 국방부의 기존 정책과도 정면 배치된다.


격·오지 근무 장병들을 위로하고 우대하지는 못할망정 그들의 사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리는 제도를 다른 곳도 아닌 국방부에서 시행하려는 발상은 충격적이다. 국방의 총본산에서 이런 한심한 발상이나 하고 있으니 우리 군에서 매국 행위나 마찬가지인 방산 비리와 병영 폭력을 비롯한 인권 침해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격·오지 근무가 벌이라면 국방부 수뇌부가 가장 먼저 받아야 한다는 항간의 비아냥을 가벼이 흘려들어선 안 되는 이유다.


군의관이든 누구든 불성실이 드러나면 영창에 집어넣든지 불명예 제대를 시키는 게 방법이다. 기존 방법으로도 군의 기강은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다.


[서울신문]

3. '원 구성 안 되면 세비 반납하겠다'는 약속 지켜라

20대 국회 개원을 위한 여야 협상이 힘겨루기만 반복하면서 좀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장 및 주요 상임위원장 배분을 놓고 여야 3당의 셈법이 제각각이어서 또다시 원 구성이 법정 시한을 넘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새누리당 정진석,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법정 시한 내 원 구성에 합의한 바 있지만 허언(虛言)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여야는 7일 본회의를 열어 국회의장단을 선출하고, 9일 또다시 본회의를 개최해 18개 상임위원회를 구성함으로써 원 구성을 마쳐야 한다.


임기가 이미 그제부터 시작됐으니 의원들의 세비는 꼬박꼬박 쌓여 가고 있을 것이다. 임기 개시와 원 구성 시한의 불일치도 비합리적이지만 원 구성을 하지 못해 사실상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 세비를 타 간다는 것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다. 이런 여론을 의식해 여야 3당 지도부 모두 총선 직후 ‘20대 국회 원 구성을 마칠 때까지 세비를 받지 않겠다’거나 ‘원 구성이 안 되면 세비를 반납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는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법정 시한 내 원 구성을 마치겠다는 굳은 다짐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협상에 속도를 내 제때 원 구성을 마쳐야 할 것이다.


현재 여야 3당은 국회의장과 운영위원장·법사위원장·예산결산특위위원장의 배분을 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원내 2당이 된 새누리당은 원내 1당인 더민주에 국회의장을 양보하겠다던 입장을 바꿨다. 더민주는 국회의장은 물론 3개 핵심 상임위 중 최소한 하나의 위원장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원내 1, 2당이 나눠 갖는 게 합당하다던 입장에서 야당이 두 자리를 모두 가져야 한다는 쪽으로 선회했다. 각 당 나름대로 핵심 상임위 확보의 명분과 속셈이 있겠지만 국민 눈에는 그저 밥그릇 싸움, 감투 전쟁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자리다툼에 연연하느라 원 구성이 늦어진다면 그만큼 국정 공백기는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실업대책, 북핵 위기, 옥시 사태 등 지금 국가적으로 시급한 현안들이 얼마나 많은가. 원 구성을 못해 이 모든 현안들을 내팽개친다면 20대 국회는 역대 최악이었던 19대 국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일하는 국회’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그 다짐을 실천하려는 굳은 의지를 가져야만 한다. 원 구성부터 제때 해야 한다. 국민은 여야의 세비 반납 약속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4.  IMD 국가경쟁력 추락시킨 후진적 경영관행

국가 경쟁력이 추락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올해 국가 경쟁력 순위는 61개 주요 국가 중 29위다. 지난해 25위에서 4계단이나 떨어졌다. IMD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후진적인 경영 관행을 지목했다. 대기업 오너의 갑질이나 소비자 안전을 도외시하는 경영자의 윤리 실종이 이 같은 결과를 낳은 것이다. 우리 경제가 어려움에 빠진 첫째 원인은 물론 세계 경제의 침체다. 그러나 이런 후진적 경영 관행이 기업의 경쟁력,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맨 먼저 잘못된 경영 관행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였다.


IMD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은 2014년 이후 급락 추세다. 2011~2013년 3년 연속 22위 자리를 지켰으나 2014년 26위, 올해 29위로 떨어졌다. 순위를 매기기 위한 4대 평가항목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게 낮은 것이 기업 효율성이었다. 지난해 37위에서 올해 48위로 낮아졌다. 국가 경쟁력을 좀먹은 가장 큰 원인이 기업이란 의미다. 특히 세부 항목 중 경영 관행이 61위로 꼴찌다. 노동시장도 51위로 상당히 낮다. 금융이나 생산성이 30위권으로 중간지대에 자리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경영 관행을 다시 항목별로 보면 기업 윤리실천(58위)과 경영자의 사회적 책임(60위), 건강·안전 등에의 관심도(56위)는 거의 바닥 수준이다. 지난해 이후 잇단 기업 오너들의 갑질 행태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에서 보듯 기업윤리 실종이 가장 크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IMD 국가경쟁력 지수는 설문조사 비중이 높아 조사 당시 사회·경제적 상황과 분위기에 많이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지난 수년간 국민들은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비롯해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과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의 수행 기사에 대한 폭행, 폭언 등 재벌가 후손들의 갑질을 눈으로 확인했다. 이들은 대기업 오너이면서도 사회적 책임의식, 도덕성은 갖추지 못했다. 회사 직원들을 노예 부리듯이 대하는 관행은 자기 회사는 물론 국가 경제 발전에도 걸림돌일 뿐이다.


국가 경쟁력 추락은 또한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보여 준다. 건강·안전에 대한 관심도 항목에서 거의 꼴찌(60위)를 기록한 것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독성실험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살균제를 썼다가 수백 명이 사망한 황당한 사태를 외국 전문가들은 과연 어떻게 볼까. 사고 후에도 책임 회피에 급급한 기업들의 뻔뻔함, 이런 사태를 사실상 방치한 정부의 무책임은 하나같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좀벌레와 다를 게 없다.


추락한 국가 경쟁력을 되살리려면 결국 낙제점을 받은 기업 경영 관행을 고치는 게 급선무다. 기업인들이 고객 만족도와 기업윤리 실천, 소비자 안전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은 오너의 소유물이기 이전에 사회와 국가, 종업원들을 위해 존재한다. 기업인들은 다 잊어도 이것만은 기억해야 한다.

5. 허술한 우범자 관리가 '수락산 살인' 불렀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묻지마 범죄’ 때문에 시민들의 불안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최근 발생한 서울 노원구 수락산 등산객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피의자 김모씨는 피해자인 60대 여성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김씨는 “산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을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흉기를 갖고 밤 10시쯤 수락산에 올라 범행을 저질렀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가 살인으로 이어진 전형적인 묻지마 범죄인 것이다.


비슷한 사건인 ‘강남역 살인 사건’에도 많은 국민이 공분했다. 최근엔 부산에서도 길을 가던 여성 2명이 도심 큰길 가에서 아무 이유 없이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극심한 경쟁과 빈부격차 등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개인의 분노를 불특정 다수에게 표출하는 흉포한 범죄에 해당한다. 신체적 방어 능력이 떨어지는 여성을 포함한 대다수 시민은 묻지마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하지만 수락산 등산객 살인은 정신적 질환과 연관된 강남역 살인 등과 달리 경찰의 우범자 관리에 허점을 드러낸 사건이다. 피의자 김씨는 강도살인죄로 대구교도소에서 15년간 복역하고 올 1월 출소했지만 4개월간 경찰의 우범자 관리 대상에서 누락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살인, 강도, 절도 등으로 3년 이상 형을 받은 사람 중 재범의 우려가 있는 사람은 관리대상 우범자로 등록되며 3개월에 1번 이상 첩보를 수집해 보고해야 한다. 전국에는 4만여명의 우범자가 있지만 이 중 10%가량은 김씨처럼 소재지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경찰의 해명처럼 출소 당시 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법적 근거도 없이 위치 추적이나 통신수사 등 실질적인 소재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인권 침해 소지를 최소화하면서 우범자 관리에 대한 법적·제도적 뒷받침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성인에게도 소년범에게 적용하는 것처럼 출소 단계에서 보호관찰 처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불특정 다수에게 현실의 분노를 표출하는 범죄자들 역시 경제적 불안감과 사회적 유대관계가 단절된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다고 한다. 장기적으로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공동체와의 유대관계를 지속시키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 사전에 범죄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

6. 日정부 손들어준 위안부재단 위원장의 “치유금” 발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화해·치유 재단(가칭) 설립준비위원회 김태현 위원장이 어제 일본 정부가 출연할 10억 엔(약 107억 원)의 성격에 대해 “치유금이지 배상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했고,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존중해 주겠다고 하는 차원에서 출연되는 것이기 때문에 배상금으로 보기는 어렵다”라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지난해 12월 한일 합의에서 재단에 출연할 일본 정부 기금이 ‘사실상의 배상금’이라고 해석한 외교부 방침과 다르다. 합의 이행의 첫발인 위안부 지원 재단 설립부터 정부와 민간이 엇박자를 낸 것이다.


한일 위안부 협상 합의문에는 한국이 요구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그 대신 한일 양국은 위안부에 대해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표현에서 합의해 일본 측이 유리하게 해석할 소지를 남겼다. 이 같은 합의문을 발표하며 일본은 위안부 상처 치유를 위해 한국 정부가 설립한 재단에 일본 정부 예산 10억 엔을 출연한다고 밝혔다.


당시에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은 “(법적) 배상은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외교부는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책임을 표명하고 내각총리대신 명의의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사실상 배상 조치”라고 반박했지만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협상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차원에서 출연되기 때문에 치유금’이라는 김 위원장의 논리는 사실상 일본 입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재단 운영 책임자가 일본 정부에 동의하는 입장이니 피해자들을 설득할 적임자인지 의문이다. 한일 양국이 첨예하게 다툰 기금의 성격조차 모른 채 위원장을 맡았다는 건가.


김 위원장은 회견 도중 외교부 당국자와 이야기를 나눈 뒤 “배상금이 아니라는 부분에 여러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는 여지는 남기겠다”며 발언을 정정했다. 그 뒤 방송 인터뷰에서는 출연금의 성격을 일본 정부의 입장과 우리 정부의 입장을 조정해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도 논란거리다. 첫걸음부터 삐걱거리는 위안부 지원 재단이 상처받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다시 아픔을 주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7. 北 김정은 특사 맞는 中, 북핵 개발 시간 벌어줄 참인가

북한의 외무상을 지낸 이수용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어제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올 1월 4차 핵실험 이후 중국을 찾은 북의 최고위직이다. 최고지도자의 신임이 두터워 김정은 특사라는 관측이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면담해 김정은 방중(訪中)을 논의할 수도 있다. 북은 이수용 방중 직전인 어제 오전 강원 원산에서 무수단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를 시도했으나 이동발사대에서 폭발해 실패했다.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더라도 핵과 미사일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여준 셈이다.


북의 핵실험과 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를 막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월 2일 역대 가장 강력한 대북(對北) 제재 결의 2270호를 채택했다. 그로부터 3개월이 되는 2일까지 유엔 회원국들은 이행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와 별도로 미국 일본 유럽연합(EU)도 독자 제재에 나섰다. 북이 최근 군사당국 회담을 하자며 파상적인 대남(對南) 평화 공세를 벌인 데 이어 중국과의 대화에 나선 것은 국제사회의 제재가 점점 조여 오고 있지만 중국의 제재가 관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수용의 방중은 2013년 2월 3차 핵실험으로 유엔의 대북 제재가 발효되고 3개월 뒤 최룡해 당시 군 총정치국장이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것을 연상시킨다. 최룡해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6자회담 재개 등을 통한 문제해결 의사를 밝힌 뒤 중국의 대북 제재는 완화됐으나 이후 달라진 건 없다. 북은 휴전선 목함 지뢰 도발에 이어 4차 핵실험까지 하며 핵 능력만 고도화했다. 이번에도 한반도 비핵화 협상과 평화협정 논의의 병행을 주장하는 북-중 양국은 다시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처럼 핵개발에 필요한 시간만 벌어주는 협상 전술에 또다시 속아서는 안 된다. 


어제 실패한 북의 무수단 미사일은 사거리가 3000∼4000km로 핵탄두를 탑재해 괌의 미군기지까지 공격할 수 있다. 북이 이수용의 방중에 맞춰 이를 쏘려고 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 중국이 모를 리 없다. 중국은 과거보다는 적극적으로 유엔 제재를 이행한다고 하지만 북이 붕괴하거나 북 주민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는 밀어붙이진 않는다. 북이 좀 더 버티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란 망상을 떨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중국을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이수용 방중은 중국이 과연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고, 그 책임을 다하는지를 국제사회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차제에 이수용이 핵 포기 외엔 살 길이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김정은에게 보고하도록 만들어야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도 중국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경제]

8. 금융위기 때 수준으로 떨어진 제조업 가동률

지난 4월 우리나라 전체 산업생산은 한 달 전보다 0.8% 줄었다. 석 달 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광공업 생산은 지난 2월에만 반짝 회복세를 보였을 뿐 줄곧 감소세다. 서비스업 생산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경기 회복을 이끌어가기에는 역부족이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건 수출 부진으로 놀고 있는 공장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1%까지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69%) 이후 7년1개월 만에 최저다.


제조업 가동률은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일시적으로 60%대 초반까지 급락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원화값이 떨어지고 수출이 살아나면서 V자형 회복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주요 수출 시장 가운데 나 홀로 성장하고 있는 미국을 빼면 우리가 믿을 곳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2011년 초 고점(82%)을 찍은 후 5년째 내리막을 걷고 있는 제조업 가동률이 금세 회복세를 탈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4월 생산 감소와 가동률 하락에는 조선과 자동차 업종이 큰 몫을 차지했다. 국내 제조업체들은 지금도 평균적으로 생산 능력의 29%를 놀리고 있다. 수출 주력 업종 구조조정이 더딜수록 가동률은 형편없이 더 떨어질 수 있다. 그럴수록 단순히 부실기업의 연명을 위한 응급처방이 아니라 유휴설비와 인력을 과감히 줄이고 새로운 성장산업에 자원을 몰아주는 산업 구조조정이 시급하다.


수출 제조업의 썩은 살을 도려내고 새살이 돋게 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나타날 충격을 줄이려면 내수 서비스산업을 최대한 활성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내수 서비스업 위주의 성장은 생산유발효과나 장기적인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 뚜렷한 한계가 있다. 


2000년대 들어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제조업 구조조정을 소홀히 한 채 건설과 부동산에 집중적으로 자원을 몰아준 것은 잘못이었다. 정부와 금융권은 우리나라 주력 제조업이 총체적인 위기를 맞았다고 보고 그에 걸맞게 비상한 대응 전략을 보여줘야 한다.

[부산일보]

9. 병원 적자인데 '배당 잔치' 이사장 일가 부끄럽지 않나

백병원은 국내 최초의 민립 공익병원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술제세'라는 이념 아래 설립된 백병원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현재 부산, 해운대, 서울 등 5개 규모로 커졌다.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인제대학교와 국내 최대 규모의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백병원의 외적 성장에 대한 시민들의 놀라움은 병원 비리가 낱낱이 밝혀지면서 실망과 분노로 변해 버렸다. 검찰의 수사 결과는 한마디로 '비리 백화점'으로 요약된다.


이 중 '간납업체'를 통한 백 모 전 이사장의 배당금 잔치는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백 전 이사장은 물품 구매를 독점하는 대행업체(일명 간납업체) I사를 설립하고 대표 박 모(구속) 씨를 통해 7년간 10억 2천만 원을 상납 받고 I사 소유의 30억 원을 빼돌려 개인 용도로 쓴 혐의를 받고 있다. 더욱이 백 전 이사장이 직·간접 지배한 I사 등 간납업체 두 곳은 연간 1천200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백 전 이사장 일가는 100억여 원의 배당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기간 백병원들은 적자에 시달렸음을 감안하면 오너 일가의 행태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윗선이 회사 돈을 빼돌리는 데 정신을 파는 사이에 의사들은 거액의 리베이트에 빠져 있었다. 백 전 이사장의 친척인 병원 부원장은 직원 채용 면접 문제와 모범 답안을 빼돌려 자신의 딸을 합격시키는 데 사용했다. 3명을 뽑은 당시 공채에는 328명이 몰려 109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한다. 병원 측은 부원장의 딸을 당장 합격 취소시키고 차점자를 구해 줘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병원 간납업체를 통한 오너 일가의 배당금 잔치 및 공금 빼돌리기 문제가 심각함을 보여 준다. 다른 대형 병원에서도 이 같은 비리가 횡행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의약품 외에 의료기기와 치료재료 구매 업무를 대행하는 간납업체 설립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재 조건이 없는 게 사실이다. 의료기관 개설자나 개설자와 특수관계인은 간납업체를 설립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검찰은 나머지 병원들의 리베이트 비리도 발본색원하길 바란다.


10. 부산 해수욕장 개장, 성패는 교통 문제 해결에 달렸다

해운대, 송도, 송정해수욕장이 1일 개장에 들어감으로써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막 올랐다. 올해는 전국에서 총 306곳의 해수욕장이 문을 여는데, 2015년 우수 해수욕장으로 선정된 해운대를 비롯하여 광안리, 송도, 송정, 다대포, 일광, 임랑 등 부산의 해수욕장이 특히 주목 받고 있다. 지난해 해수욕객 수 4천515만 명을 돌파한 부산이 해양수산부가 올해 예상하는 '해수욕객 1억 명 시대'에 얼마나 기여할지 기대를 모으기 때문이다. 


올해 부산 해수욕장의 성패는 교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수욕장 개장과 함께 해운대가 '교통지옥'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주말마다 해수욕장에서는 각종 공연과 행사가 진행되며, 특히 해운대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인 벡스코에서는 3일부터 12일까지 '2016 부산 국제모터쇼'가 열려 극심한 교통 체증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신세계 센텀시티몰 이용객까지 감안하면 가위 교통대란이 우려될 지경이다. 


'바다의 도시' 부산의 명예가 걸린 만큼 부산시와 경찰청, 기초지자체들은 해수욕철 교통 대란을 해소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함은 물론이다. 불법 주·정차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통해 차량 정체를 미리 방지하고 우회로 확보 등을 통해 차량 흐름을 원활히 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충분한 주차공간을 확보해 두는 것도 중요한 교통정책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인파와 차량의 분산을 적극 유도하는 행사 운영의 묘도 필요하다. 


해운대해수욕장이 '명품 해수욕장'으로 가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혀 온 게 해수욕객의 원성을 사 온 교통 문제였다. 해운대구청이 내외국인 관광객 만족도를 조사한 '해수욕장 운영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교통·주차시설에 대한 만족도 평가에서 특히 불만족 비율이 해마다 크게 나왔다. 지난해의 경우 주차장 바가지요금과 주차난에 대한 불만이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부산의 바다로 가는 길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한 해 해수욕장 장사의 성패가 달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신문][씨줄날줄] ‘진짜’ 천안 명물 호두과자/서동철 논설위원

호두는 이란·이라크와 터키,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같은 러시아 남부 지역이 원산지라고 한다. 흔히 페르시아 호두(Persian walnut)라 부르는 것은 일찍부터 페르시아 상인들에 의해 교역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스를 거쳐 지중해 연안으로 재배가 확산되면서 영국 호두(English walnut)로도 불렸는데, 이 역시 영국이 무역을 주도한 결과라는 것이다.


호두는 일찌감치 중국에도 전해졌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제단에도 올렸다는 신성한 먹거리를 페르시아 상인들이 교역 대상으로 삼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호두가 중국에 전해졌다는 한나라(BC 202~AD 220) 시대에는 실크로드를 이용한 동서 교류가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출발지는 다르지만 인도 불교가 실크로드로 중국에 전해진 것도 한나라 시대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엉뚱하게 미국산 호두다. 미국 호두의 역사는 이 나라의 다른 역사와 마찬가지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8세기 중엽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도사들이 유럽에서 호두를 가져간 것이 시초라고 한다. 19세기 중엽 지중해 연안과 기후 조건이 비슷한 캘리포니아에서 재배를 본격화하면서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지난해 캘리포니아의 호두 수확량은 57만 5000t이었다. 세계시장의 4분의3을 휩쓰는 엄청난 양이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호두 생산량은 1122t 정도라고 한다. 반면 수요는 연간 1만 4000t에 이른다. 국산 호두 보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호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시대라고 한다. 재상 유청신(?~1329)이 충렬왕을 호종하여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당시 호두나무를 심었다는 곳이 충남 천안시 광덕면 광덕사 아래다.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400년생 호두나무 한 그루가 시배지(始培地)를 지키고 있다. 일대에서는 유청신의 후손인 고흥 유씨들이 여전히 호두나무 밭을 일구고 있다. 이렇듯 천안은 우리나라 호두의 성지(聖地)다.

2. [동아일보][송평인 칼럼] '메갈리아'식 여성혐오 편집증

편집증을 가진 사람은 타인이 자신을 박해하거나 악의를 가지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비현실적인 생각에 시달리며 불안해한다. 편집증이 정신병적 단계에 이르면 조현병(調絃病)이라고 부른다. 강남 ‘묻지 마 살인’ 사건은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여성 혐오’로 규정하고 끝까지 억지를 부리는 것 역시 편집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살인자는 체포된 직후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가 정신병력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럼에도 여성 혐오로 몰아가는 몰이는 계속됐다. 한 신문은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에 붙은 포스트잇 1000여 건을 촬영해 일일이 문자화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추모공간을 만들어 기념하겠다며 포스트잇을 통째로 서울시로 가져갔다.


색깔이 붉은 훈제 청어(레드 헤링)는 냄새가 독해 사냥감을 쫓던 개가 그 냄새를 맡으면 혼란을 일으켜 사냥감을 놓치게 된다. 여성 혐오라는 잘못된 규정은 레드 헤링 효과를 일으켜 올바른 의제 설정을 방해했다.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관리하고 대처할 것인가 같은 본질적인 문제는 뒷전이 됐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사건을 정신질환자의 문제로 보는 쪽을 여성 혐오 동조자로 몰아가는 태도다. 경찰은 “정신질환자의 범죄이지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한 뒤 여성 혐오를 옹호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2002년 한 정신질환자가 서울 광진구에서 교회 주차장을 통해 들어가 교회 부설 유치원의 아이들을 칼로 찌른 사건을 취재한 적이 있다. 유치원은 외부인의 자유로운 출입이 허용돼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그 유치원은 길가에서 바로 교회 주차장을 통해 아무나 들어갈 수 있게 돼 있었다. 정신질환자는 김일성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숨을 곳을 찾아 교회로 들어갔고 준비해 간 칼도 아닌 유치원에 있던 과도로 아이들을 찔렀다. 그가 “아이들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는 식으로는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김일성으로 보였다면 이것은 아동 혐오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정신질환자 관리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근대화를 속성(速成)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도시’의 특징을 정확히 이해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도시는 익명적이다. 바로 앞집에 사는 사람이 뭘 하는지도 모른다. 그 익명성 때문에 지하철을 타면 자기 옆에 앉은 사람이 정신질환자나 테러리스트일 수도 있는 곳이 도시다. 도시의 삶은 정신질환자나 범죄자의 적절한 격리를 조건으로 해서만 가능하다.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와 ‘감시와 처벌’을 쓴 프랑스 학자다. 그가 독창적이었던 것은 서구에서 근대화 초기에 발생한 정신질환자나 범죄자의 격리에 주목하고 그런 격리를 서구 근대화의 한 주요한 특징(물론 그에게는 극복해야 할 특징)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에 취약한 것은 여성이 아니라 약자 일반이다. 약자에는 어린이와 청소년, 노인, 장애인도 포함된다. 어떤 경우에는 유치원생이 피해자가 됐고, 어떤 경우에는 여성이 피해자가 됐다. 서구 선진국의 대도시 도심에도 남녀 공용 공중화장실은 많다. 남녀 공용 공중화장실을 없애면 여성이 타깃이 된 범죄가 줄어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해답이 될 수 없다. 범죄는 여성 공중화장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해답은 여성이 아니라 정신질환자에 주목할 때 찾을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일간베스트(일베)와는 대척점에 있으면서 여성 일베라고도 불리는 메갈리아라는 사이트가 유명해졌다. 메갈리아와 같은 사고방식에 동조한 여론이 적지 않았다.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로 단정했고, 더 이상 단정하기 어렵게 되자 경찰을 비판했고, 경찰도 비판하기 어려우니까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권 침해를 들고 나왔다. 


편집증은 어떤 생각에 한번 사로잡히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증상이다. 살인자는 여성들이 자신을 무시했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한번 여성 혐오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자 어떤 진실에도 귀 기울이지 않은 것 역시 편집증적인 증상이다. 누구나 망상은 갖는다. 그러나 정상인은 사실에 맞춰 망상을 수정할 줄 안다. 그래서 정상이다.


호두과자는 1934년 천안역전 과자가게에서 태어났다. 지역 특산물인 호두를 넣은 호두 모양의 전에 없던 과자를 만들어 낸 창의성이 놀랍다. 호두과자를 가장 쉽게 살 수 있는 곳은 기차 안이었다. 천안을 지날 무렵 팔기 시작했던 ‘천안 명물’ 호두과자는 지역 대표 먹거리이자 여행 기념품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벌써 오래전에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어디에나 있는 흔한 주전부리가 되고 말았다.


여인홍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 천안 광덕의 팥 가공시설과 밀 재배단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호두과자 명품인증제를 천안시에 제안했다고 한다. 지역에서 나는 호두와 팥, 밀로 만든 호두과자에 천안시의 인증마크를 붙이라는 것이다. 천안시도 적극 검토를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진짜’ 천안 명물 호두과자라면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지갑을 열 사람은 많다.

3. [머니투데이][기자수첩]화랑협회장, "미인도 위작인 증거가 어딨어"

지난 3월 8일 오전, 김정희 미국 몽고메리대 교수(고 천경자 화백의 차녀) 변호인인 배금자 해인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에게 뜻밖에 걸려온 전화 한 통의 내용이다. 전화를 건 인물은 가나아트, 학고재 등 전국 주요 화랑 모임인 한국화랑협회 박우홍 회장.(동산방 대표)


배 변호사는 지난달 29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일절 교류가 없던 박 회장이 대뜸 내게 전화해 언성을 높였다"며 "유족 대리인에게 편파적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이에 대해 "배 변호사가 '당신은 왜 가짜를 진짜라고 보느냐'고 내게 묻길래 '가짜나 진짜라고 단정지으려 한다기 보다, 배 변호사가 전문가도 아닌데 무작정 틀리다(위작)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취지로 반문을 했던 것"이라고 했다. 전화를 건 의도에 대해서는 "'미술판'이 소란에 휩싸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아 전화를 건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작 시비는 미술 시장 불경기로 고민한다는 박 회장 근심을 깊게 만들 주제일 수 있다. 하지만 '어머니의 실추된 명예'를 두고 긴 세월 가슴앓이 해 온 유족 입장에서 '미술계 안정'은 뜬금없는 주제다. 


국립현대미술관도 마찬가지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최근 "미인도 진위를 모르겠으니 일반인·전문가에게 그림을 공개해 널리 의견을 구하려 한다"는 서한을 유족 측에 전달했다.


김 교수 측은 "전문가 의견을 구한다는 얘기는 제 3자 의견을 빌어 과거처럼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키려는 것"이라며 경계감을 감추지 않았다. 1991년 천 화백은 본인 작품으로 전시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작가 견해는 인정되지 않았고, 미술관 감정 의뢰를 받은 한국화랑협회가 진작 판정을 내렸다. 유족으로서는 '여론몰이'도 우려할 수밖에 없다.


미인도 위작 시비는 수사기관으로 넘어갔다. 김 교수가 지난달 마리 관장 등 미술관 관계자 6명을 사자명예훼손·저작권법 위반·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하면서다. 미술계는 당국의 해법을 기다릴 때다. 유족에게 압박을 가하는 듯한 행동이나 미술 시장을 위한다는 행동이 외려 볼썽 사나운 일이 될 수 있는 시점이다. 


 4. [한국일보]이브 생로랑

“시대의 열정을 디자인한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 1936~2008)이 8년 전 오늘(6월 1일) 별세했다.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태어난 그는 병약하고 내성적이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종이 인형 만드는 걸 좋아했고, 어머니와 두 누이동생에게 옷을 만들어주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14세 무렵 우연히 본 연극에서 극 자체가 아니라 무대와 의상에 매료돼 디자이너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1953년, 17세이던 그는 국제양모사무국이 주최한 디자인 컨테스트에 참가해 드레스 부문 3등을 차지했고, 이듬해 1등을 한다. 그를 눈 여겨 본 패션지 ‘보그’ 편집장 미셸 브뤼노프가 그를 크리스찬 디오르에게 소개했다는데, 디오르 역시 컨테스트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다. 19세에 디오르의 조수가 된 그는 2년 뒤(1957년) 타계한 디올의 유언에 따라 파리 최고ㆍ최대의 디자인그룹 ‘디올하우스’의 수석디자이너가 됐다. 


그가 알제리 독립전쟁에 징집된 건 3년 뒤인 1960년이었다. 이미 두 차례 ‘디올하우스’의 영향력으로 징집 연기를 받은 그는 어쩔 수 없이 전장에 끌려갔고, 불과 20일 만에 군 병원에 입원한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이었다. 그는 군 병원에 이송돼 결코 섬세하지 않았을 진정제 처방과 전기충격 요법 등을 받는다. 그 일로 디올에서도 해고 당한다. 훗날 그는 자신의 약물 중독과 정신적 문제가 군대와 군 병원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를 구원한 건 연인이자 사업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1930~)였다. 그의 도움으로 62년 자신의 이름을 건 오토쿠튀르를 연 생로랑은 파리 패션의 금기를 허물어가기 시작했다. 


여성 이브닝웨어 ‘르 스모킹(Le Smocking)’을 발표한 건 1966년이었다. 화려한 드레스 대신 턱시도와 바지, 느슨하게 매달린 넥타이를 결합한 여성 파티 정장은 60년대 성 해방의 시대를 선도한 혁명적 패션이었다. 68년의 누드룩(시스루드레스), 70년대의 히피룩 …. 그는 디자이너 기성복(프레타포르테)라인을 처음 연 디자이너였고,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생존 작가로는 첫 전시를 연 패션 디자이너였다. 베르제와의 연애는 76년 끝이 났지만, 둘은 사업 파트너로 평생 대체로 사이 좋게 지냈다. 


5. [서울신문][오늘의 눈] 게임산업, 설익은 청사진 대신 숨통을/김소라 산업부 기자

‘치즈 인 더 트랩’(tvN), ‘동네변호사 조들호’(KBS), ‘운빨로맨스’(MBC)…. 웹툰을 브라운관에 옮겨 인기를 모은 드라마들이다.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내부자들’(2015)은 700만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네이버가 국내 웹툰을 영어, 중국어, 태국어 등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해 제공하고 NHN엔터테인먼트의 웹툰 플랫폼 ‘코미코’가 일본과 대만, 태국, 중국에 상륙하는 등 ‘웹툰 한류’의 확산 속도도 가파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유해매체’ 취급을 받았던 만화가 이제는 문화 콘텐츠의 보고(寶庫)로 자리잡은 것이다.


‘선정적인 하위문화’라는 오명과 규제의 칼날은 만화의 뒤를 이어 게임으로 향했다. 2011년 ‘셧다운제’ 도입을 기점으로 게임은 정치권과 정부로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게임이 술,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물질’로 규정되는가 하면 매출의 일부를 게임중독 치유 기금으로 징수하자는 법안도 발의됐다.


세계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국내 게임업계에는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2012년 10% 성장률을 기록했던 국내 게임산업은 2014년 2.6% 성장하는 데 그쳤고, 2010년부터 2014년까지 4년 새 게임업체는 30%, 종사자 수는 20% 가까이 줄었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게임 진흥’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책은 엇박자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게임의 규제 완화와 육성 방안을 발표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보건복지부가 ‘게임중독’에 질병코드를 부여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게 대표적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4년 국내 게임업계의 수출액은 29억 7383만 달러로 전체 콘텐츠 수출액의 56.4%를 차지한다. 게임산업의 부가가치액은 4조 7111억원(12.5%)으로 음악(1조 7647억원)과 영화(1조 5333억원)의 세 배에 이른다. ‘게임 강국 코리아’의 힘은 여전하지만 업계가 마주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인 중국은 텐센트 등 현지의 정보기술(IT) 거인들의 손을 잡지 않으면 발도 내딛지 못한다. 모바일 게임의 성장세가 둔화된 가운데 미국과 일본은 VR 게임 등 새로운 성장 엔진을 달아 앞서 나가고 있다.


20대 국회가 문을 열고 문체부의 게임 진흥 기본계획 발표를 앞두면서 게임업계가 거는 기대가 크다. 시대착오적인 규제를 고쳐 나가는 건 물론이지만, 게임업계의 피부에 와 닿지 못하는 ‘설익은 청사진’만 넘쳐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앞서 국내 웹툰의 성공 비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저기서 ‘K 웹툰 육성’과 같은 구호들이 넘쳐나지만, 지금의 웹툰 생태계는 정부의 거창한 육성 정책에 힘입은 것이 아니다. 인터넷이라는 플랫폼 위에서 젊은 작가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세계를 펼치면서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 게임업계에 필요한 것 역시 젊은 IT 인재들이 역동성과 창의성을 발휘해 급변하는 세계 시장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 주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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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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