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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1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노동계의 총파업 도미노 걱정된다

금융노조가 어제 ‘총파업 1차 결의대회’를 열어 노사대결 국면에 돌입했음을 과시했다. 정부의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한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된 데 따른 전초전이다. 그제 전국 35개 지부 9만여명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투표에서 찬성표가 95.7%로 최종 집계됐다고 한다. 금융노조는 성과연봉제 도입이 강행될 경우 오는 9월 총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파업 움직임은 금융계만이 아니다. 산업계 전반에 걸쳐 파업의 전운이 휘몰아치고 있다. 이미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노조가 동시 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파업 분위기가 도미노 현상처럼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데다 브렉시트 여파의 불확실성과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내부의 노사갈등 장벽에 직면한 것이다.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조선업계도 마찬가지다. 삼성중공업과 성동조선 노조가 어제 연대파업 투쟁에 가담했고, 대우조선 노조는 구조조정 반대 집회를 벌였다. 이밖에 한국가스공사와 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공단 등을 포함한 공공기관 노조도 공공부문 민영화 및 성과퇴출제 저지를 명분으로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노동계가 이른바 전면적인 ‘하투(夏鬪)’ 국면에 돌입한 양상이다.

그러나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의 동시 파업부터가 무모하다. 임금협상을 파업 투쟁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현대차의 현재 평균 연봉은 9600만원으로 세계 자동차 업계를 통틀어서도 최고 수준이다. 일본 도요타(7960만원)나 독일 폭스바겐(7840만원)보다 높다. 자동차 협력업체의 경우 임금이 ‘열정 페이’ 수준에 머무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더욱이 현대중공업은 경영 적자가 누적되는 중이다. 그런데도 구조조정 반대를 외치며 파업에 들어갔으니,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가 어렵다.

금융노조가 반대하는 성과연봉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제도다. 성과에 따라 보수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연봉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지는 등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제도를 시행하면서 고쳐갈 일이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판국에 여기저기서 파업을 감행한다면 경제를 거덜내자는 꼴밖에 안 된다. 국민들의 걱정하는 눈길을 살펴보기 바란다.


2. 국회 사무처, ‘의원 특권’의 한통속인가

국회 사무처가 최근 300명 의원실의 접견실 의자 2400개를 각 당의 상징 색깔에 맞춰 바꾸는 중이라고 한다. 새누리당 의원실은 빨간색, 더불어민주당 파란색, 국민의당 초록색 등으로 교체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예산 낭비를 감시해야 할 국회가 얼마든지 더 사용 가능한 의자 교체에 혈세를 마구 쓰는 것은 제 눈의 들보를 모른 체하는 뻔뻔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기존 의자가 10년의 내구 연한이 다해 바꿀 때가 됐다는 게 국회 사무처의 해명이다. 하지만 기한이 됐다고 해서 반드시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달청도 사용이 가능하면 계속 쓰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정당별 의석은 변하기 마련이며 그 상징색도 선거 때면 바뀌곤 한다. 그때마다 의자를 또 바꾸겠다는 것인지, 한심한 발상에 말문이 막힌다. 이런 발상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우윤근 사무총장이 명백히 해명할 필요가 있다.


예산낭비 논란은 이뿐이 아니다. 20대 국회 개원 때인 지난 5월에는 의원실마다 컴퓨터 10대, 프린터 5대, 책상 등 집기를 모두 교체했다. 컴퓨터만 해도 3000대에 이른다. 물품 교체비에 50억원이 넘었다고 한다. 지난 19대 때도 의원실 집기를 새것으로 바꾸고 건물 내 벽지와 입구 레드카펫을 교체하는 데 48억원을 써 빈축을 산 바 있다.

의원들의 특권의식에 국회 사무처가 편승한 꼴이다. 1882억원의 건립비가 들어간 제2 의원회관이 단적인 예다. 2012년 개관한 의원회관의 사무실은 전보다 2배가 넓다. 장관급 사무실로 ‘격상’시키라는 의원들 요구 때문이었다. 한통속이 돼 과잉 예우하는 사무처도 잘못은 매한가지다. 이번 의자 교체를 두고 의원실에서조차 사용에 불편이 없는데 왜 교체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다지 않는가.

국회는 며칠 전 의장 직속의 특권 내려놓기 자문기구를 출범시켰다. 정세균 의장은 “국민 눈높이에서 가감 없이 의원특권 문제를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권한의 적절성 여부를 검토해 존속·폐지·수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이 생각하는 특권 내려놓기는 거창한 것만이 아니다. 멀쩡한 집기를 교체하느라 예산을 펑펑 써대는 허튼 욕심을 버리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서울신문]

3. 현대차·현대중 파업, 국민 차가운 시선 못 느끼나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노조가 지난 19일부터 동시 파업을 벌이고 있다. 22일까지 부분적으로 조업을 중단하면서 적지 않은 생산 차질이 예상된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조선노동조합연대 소속 조선사들도 연대 파업에 들어갔거나 돌입할 예정이다. 울산과 경남 거제 일원이 파업의 격랑에 휩싸이는 모양새다.


국내 굴지의 제조업체인 이들의 파업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현대차는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이 9600만원, 현대중은 7800만원이다. 대표적인 고임금 직장이다. 현대차 노조는 이번에 기본급 7.2% 인상과 성과급 지급, 사외이사 추천권 등을, 현대중 노조는 기본급 5.09% 인상 및 우수 조합원 100명에 대한 해외연수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조선 업계가 맞고 있는 위기 상황을 고려하면 과도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자동차 업계에선 기존의 내연기관 중심 생산 시스템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생산 체제로 바뀌기 시작하는 등 시장 환경이 급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차는 생산도 하기 전 발표 며칠 만에 수십만대가 예약 판매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선도 기업들의 자율주행차 개발 및 시판도 눈앞에 있다. 앞으로 15년 안에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이 자취를 감출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기존 자동차 업체들이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존립 기반이 위협받을 수 있는 것이다.

조선 업계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동안 수조원에 이르는 혈세를 지원받아 연명해 온 처지다. 앞으로도 그에 못지않은 규모의 국고 보조를 받아야 한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에 ‘임금을 올려 달라’, ‘해외연수를 보내 달라’고 요구하고, 파업까지 벌이는 것은 누가 보아도 어린아이의 생떼와 다름이 없다. 지금은 경영진뿐만 아니라 노조도 위기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해야 할 시기다. 누울 자리를 봐 가며 발을 뻗으라고 했다. 회사야 어떻게 되든 내 밥그릇만 챙기다간 생계의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4.  난국 직면한 당·청, 신뢰 회복할 수습책 내놔야

정부가 집권 4년차를 맞아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자중지란에 빠져 있고 청와대 핵심 실세로 알려진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의혹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우 수석은 명예훼손으로 언론사를 고소했지만 시민단체로부터는 반대로 고발된 상태다. 이유야 어떻든 현직 민정수석이 검찰 조사 대상이 된 것 자체가 우려스런 일이다.

지금 국정 난맥상은 심각하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싸고 국론이 분열된 상황에서 중국의 반발로 북핵 문제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나사 풀린 공직 기강은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민중은 개돼지와 같이 먹고살게만 해 주면 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파면됐다. 미래창조과학부 직원들은 뇌물 수수와 성매매 추문을 일으켰고 이것도 모자라 산하 단체 직원에게 자식의 숙제까지 시키는 참으로 어이없는 갑질을 했다. 미세먼지를 고등어 탓으로 돌린 환경부나 국가 브랜드 표절 논란에 휩싸인 문화체육관광부,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에 앉혔다가 나라 망신을 자초한 기획재정부 등 어느 한 곳 믿을 데가 없다. 경제 부처 장관들이 내놓은 대책마다 재탕·삼탕의 짜깁기 정책으로 언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정치는 물론이고 외교안보, 교육, 경제 어느 분야를 가릴 것 없이 국정 운영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검찰 권력의 부패상이 국민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비리를 척결하라고 권력을 위임받은 진경준 검사장은 그 권한으로 사익을 취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저질렀다. 부도덕한 검찰의 민낯이 드러났다. 검찰 권력의 부패는 너무 과도한 권한을 부여한 탓이다. 한국 검찰은 세계 어느 검찰도 갖지 못한 수사권과 수사 지휘권, 독점적 기소권을 갖고 있다. 범죄 수사와 사정권을 가진 검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국가 존립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검찰 권력을 바로 세우려면 강력한 내부 감찰 제도를 운용해 비리를 발본색원하는 한편 고위공직비리조사처 신설 등 근본적인 개혁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신뢰가 땅바닥으로 추락한 지금의 상태로는 원활한 국정 수행을 기대하기 어렵다. 남은 1년 7개월 동안 현 정권은 미완의 개혁을 완성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갖고 있다. 권력 누수 징후가 나타나면 국정 추진 동력은 급속히 힘을 잃게 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 분노한 민심을 되돌리고 조기 레임덕을 막으려면 공직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동시에 전면적인 수습책을 내놓아야 한다. 임기 말까지 제대로 국정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장관이든 수석이든 비리 연루자나 함량 미달자들은 과감하게 물갈이해야 한다.


5. 친박의 전방위 공천 개입 드러난 새누리

친박 핵심 인사들의 4·13 총선 공천 개입 정황을 담은 녹취록이 잇달아 공개됐다. 최경환·윤상현 의원,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난 1월 김성회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지역구 출마 포기를 회유하고 협박했다는 내용이다. 김 전 의원이 출마하려던 지역은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의 지역구(경기 화성갑)다. 계파 이익을 위해서라면 득달같이 ‘장애물’을 물어뜯어 주저앉히고야 마는 친박의 하이에나 행태가 그대로 드러났다. 논란이 커지자 이들이나 청와대는 개인적인 일이라고 해명하지만 그들의 발언 강도나 내용을 보면 그냥 덮고 갈 사안이 아니다.

이들 3명은 김 전 의원에게 돌아가면서 전화를 걸어 “까불면 안 된다. (지역구 변경) 안 하면 사달이 난다. 별의별 것을 다 가지고 있다”(윤 의원), “감이 그렇게 떨어져서야 어떻게 정치를 하나?”(최 의원)라며 협박했다. 현 전 수석은 한술 더 떠 “(저하고) 약속한 건 대통령한테 한 약속하고 똑같은 것 아니에요?”라고 지역구 변경이라는 ‘대못’을 박았다. 이들이 공천에 관여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지 못할 말들이다. ‘배신자’ 찍어 내기 등 친박의 오만불손은 익히 알지만 막상 그들의 적나라한 발언들을 보니 과연 이런 사람들이 집권 여당과 국정을 쥐고 흔들었나 싶어 비애감이 들 정도다.

녹취록 파문이 커지자 결국 서 의원은 대표직 출마를 포기했다. 그런 그가 어제 녹취록 논란을 ‘음습한 공작정치’라고 공세를 폈다.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에 공개된 녹취록은 친박과 비박 간 계파 싸움의 산물일 수 있다. 설혹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친박의 패거리 공천 전횡이 세상에 드러난 것을 갖고 공작정치로 모는 것은 온당치가 않다. 자신들의 공천 농단죄는 눈감고 녹취록을 놓고 정치공작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다. 더구나 친박 실세들은 ‘대통령의 뜻’을 내세워 김 전 의원을 압박했다. 이런 식으로 주저앉힌 이가 어디 김 전 의원뿐이겠는가. 청와대는 그런 일이 없다고 했으니 대통령을 팔아 호가호위한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선 당내 경선 후보자를 협박하거나, 당내 경선의 자유를 방해한 만큼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친박에서는 당권 미련을 못 버리고 친박 홍문종 의원을 대표직 카드로 만지작거린다는 얘기가 들린다. 최경환·서청원 카드가 무산되자 나온 고육지책일 게다. 대통령을 위해서나 당을 위해 이쯤 되면 친박은 쥐 죽은 듯 납작 엎드려 있어도 모자란다.


[동아일보]

6. 안철수, 北 핵미사일 방어보다 중요한 국익이 대체 뭔가

어제 이틀째 열린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국민의당은 당론인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철회와 국회 비준을 주장했다. 오늘 오전부터는 국민의당 온라인 채널인 ‘ON 국민방송’으로 의원 20여 명이 참가하는 ‘사드 배치 반대 필리버스터’를 19시간 동안 생중계한다. 의사당도 아닌 곳에서 의원들이 벌이는 사드 반대 주장 캠페인에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뜻하는 필리버스터라는 이름까지 붙인 신생 국민의당의 발상이 참 안이하고 딱해 보인다.

국민의당이 사드 배치 철회를 고집하는 것은 당의 대주주인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의 영향이 크다. 그는 신동아 최근호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 철회 요구가 ‘안보는 보수’라는 평소 지론과 동떨어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 “사드를 도입하면 안보를 보수적으로 보는 것이라는 주장은 굉장히 단순한 논리”라고 반박했다. 안보도 안보 나름 아니냐며 국방안보, 외교안보, 경제안보의 득실을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드 배치 반대 이유로 성능 미(未)검증, 비용 부담, 전자파로 인한 국민 건강 염려,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안 전 대표는 꼽았다. 하지만 미 국방부 무기성능시험평가국장은 작년 3월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사드가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요격에 효율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밝혔다. 사드 포대의 용지와 기반시설을 제외한 비용은 미군이 부담한다. 전자파 피해 우려는 미군 괌 기지 공개 측정에서 기준치의 0.007%에 불과한 것이 확인됐다. 중국의 반대는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면 우리가 감당할 수밖에 없는 과제라고 봐야 한다.

그제 김정은이 부산과 울산까지 나오는 대형 지도를 펼쳐놓고 탄도 로켓 선제타격 발사훈련을 지도했다는 북한 조선중앙방송의 보도가 나오는 상황이다. 안 전 대표는 “사드 배치 문제가 이념 논쟁으로 흐르면 절대 안 되고 철저히 국익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북의 핵과 미사일 기술이 고도화하는 데 대응해 방어망을 갖추는 것 이상의 국익이 무엇인지 안 전 대표가 밝혀야 ‘안보외면 정당’이라는 비판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7. 인기 없는 ‘비과세 축소’ 세제개편 다음 정부로 떠넘기나

기획재정부가 올해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를 연장하는 ‘2016년 세법 개정안’을 28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경차 소유주에게 유류비를 연간 10만 원 한도로 할인해주는 감면제도는 올해 말 일몰이지만 2년 더 연장될 것 같다. 비과세 소득인 ‘2000만 원 이하 월세 임대소득’은 내년부터 과세할 예정이었지만 소규모 임대사업자의 반발 때문에 그 시기가 2, 3년 미뤄진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2002년 첫 일몰 이후 계속 연장되다가 올해 일몰을 다시 맞았다. 하지만 봉급생활자의 저항을 의식해 7번째 연장된다. 

결국 인기 없고 증세 논란이 우려되는 세제 개편은 모두 다음 정부로 넘어갈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는 지난해 “추가 과표 양성화가 한계에 이르렀다”고 분석하며 지하경제 양성화가 벽에 부딪혔음을 사실상 자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과세·감면 축소는 세율 인상 없이 복지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하지만 국세 감면액은 2014년 34조3000억 원에서 올해 35조3000억 원으로 되레 늘었다. 현재 전체 납세 대상 근로자 1669만 명 중 802만 명은 근로소득에 따른 세금을 내지 않는다. 시혜성 정책은 일단 시작하면 줬던 것을 뺏는 것 같아 되돌리기 어렵다. 올해 일몰이 돌아오는 25개 항목 중 몇 개나 원칙대로 폐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9대 국회가 304건의 세법 개정안으로 법체계를 흔들어놓더니 20대 국회는 벌써 15건의 세금 감면 법안을 발의했다. 감면 법안이 거론될 때마다 기재부가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청와대와 정치권에 눌려 말을 바꾼다. 그렇게 정권의 입맛을 맞춰준 덕분인지 세제를 총괄하는 기재부 차관은 다른 부처 장관으로 영전하고, 세제실장은 기관장으로 옮겨 보상받는다. 

지금의 세제를 유지하면 2010년 392조 원이던 국가채무는 2019년에 2배 가까운 761조 원으로 폭증한다. 정부는 올해 일몰 대상인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해 세제 정상화를 위한 토대만이라도 쌓길 바란다. 그래야 이 정부가 무책임하게 손도 대지 못한 근본적 세제 개혁을 다음 정부는 첫해부터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다.


[중앙일보]

8. 공수처 신설 계기로 검찰 개혁 고삐 죄어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에 공조하기로 합의했다. 홍만표 전 검사장의 탈세사건과 진경준 검사장의 뇌물사건에 이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두 야당은 8월 국회에서 공수처 신설과 관련된 법안을 다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공수처 신설은 통제받지 않은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18대 국회 때도 사법개혁특위가 관련 안건을 내놓았다. 하지만 검찰 등의 조직적 반대로 무산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공수처 신설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이행하지 않았다. 정치권도 법안 추진 과정에서 공수처의 수사대상에서 국회의원을 제외하고 판사와 검사 등 고위 공직자 등으로 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여론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최근 전·현직 검찰 간부들의 비리 의혹이 쉴 새 없이 터져나오면서 박근혜 정부는 물론 나라 전체가 결딴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법을 집행하는 기관의 조직원으로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도덕성과 청렴성은 고사하고 범법행위로 수백억원대의 돈을 챙기는 제2의 홍만표·진경준 등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검찰 개혁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의’라는 시대정신을 생각해도 그렇다.

그동안 법무부와 검찰은 검사들이 연루된 각종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으로 개혁하겠다”고 요란을 떨었지만 변한 건 없다. 그 때문에 검찰에 ‘셀프 개혁’을 맡겨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정치권은 이번 기회에 검찰의 과도한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기소 독점주의를 전면 손질하고, 검경의 수사권 조정에 필요한 입법활동을 다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 과거의 유물과도 같은 검사동일체 원칙을 깨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검찰 간부들이 독점하고 있는 법무부를 민간 영역에 개방해 투명한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공수처 신설 등 검찰 개혁의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한다.


9. 승진 거부, 성과연봉 반대로 자멸 재촉하는 귀족노조

세계에서 가장 배 부른 노조로 유명한 국내 금융·대기업 노조가 자멸을 재촉하고 나섰다. 금융노조는 95.7%의 찬성률로 파업안을 가결시켜 어제 1차 결의대회를 열고 9월 23일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성과에 따라 동일 직급에 최대 40% 연봉 격차를 두겠다는 성과연봉제 도입 반대가 이유다.

또 현대자동차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제시한 ‘승진 거부권’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어제 부분파업을 벌였다. 22일에도 부분파업을 벌여 경영진을 압박하기로 했다. 지난해 조 단위 적자를 기록해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현대중공업 역시 승진거부권을 요구하고 삼성중공업 등과 연대파업을 벌였다.

성과를 내면 연봉을 더 주고, 승진시켜 준다 해도 거부하는 해괴한 현상을 일반 국민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내 상위 기업 1%에 들어가는 금융·대기업 귀족노조에서는 엄연한 현실이다.

성과연봉제는 은행이 생존하기 위한 합리적 임금혁신안이다. 4차 산업혁명을 계기로 금융이 빠르게 디지털화하고 있어 금융산업은 조선·해운에 이은 긴급 구조조정 대상으로 꼽힌다. 이를 위해선 보상체계 개편이 불가피하다.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공기관도 올 들어 일제히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이유다.

과장 승진을 거부하고 ‘만년 대리’로 남겠다는 현대차 노조의 요구는 코미디를 뺨친다. 과장부터는 연봉제를 적용받고 신경쓸 일이 많아지니 노조 울타리에서 평균 연봉 9600만원을 즐기겠다는 계산이다.

국내 노동시장은 극심한 이중구조여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고, 청년 취업은 낙타 바늘구멍 통과하기다. 모두 귀족노조의 기득권 지키기 탓이 크다. 이런 불평등을 떠나 은행이나 조선·자동차 산업은 모두 공급 과잉 속에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어 변화 없이는 도태를 피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귀족노조는 태평하게 제몫 지키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기업이 망하면 직장도 없어진다는 건 평범한 진리다. 귀족노조는 이제 과유불급의 우를 범하지 말고 제자리로 돌아가길 촉구한다.


[매일경제]

10. 대형차 AEBS 의무화 앞당기고 대상도 늘려라

지난 17일 강원도 평창군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 5중 추돌로 4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친 사고는 온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시속 105㎞로 달리던 대형 버스가 그대로 승용차들을 덮치는 영상을 보면 고속도로의 대형차들이 언제든지 무시무시한 살인 흉기로 돌변할 수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2013년 9월에는 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터널 출구에서 공항리무진버스가 9중 추돌사고를 일으켜 21명의 사상자를 냈다. 작년 전세버스 사고는 78건으로 2년 전(47건)에 비해 66% 늘었다. 사상자도 212명에서 362명으로 41% 증가했다. 올해 들어 5개월간 화물차 사고 사망자는 45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32명)보다 41%나 늘었다.

끔찍한 대형 참사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건 안전불감증에 젖은 잘못된 운전 습관과 후진적인 교통문화, 도로 위 무법자를 잡아내지 못하는 느슨한 법규와 솜방망이 처벌 관행 때문이다. 선진국 수준의 교통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 강력히 추진해야 할 때다.

특히 교통사고의 90%는 운전자 과실에 따른 것이므로 졸음·과로·음주·난폭 운전 예방과 단속을 대폭 강화하면서 차량 제작 단계부터 안전 기준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정부는 내년부터 차체가 11m를 넘는 승합차와 총중량 20t 이상 화물·특수차에 대해 차로이탈경고장치(LDWS)와 비상자동제동장치(AEBS) 부착을 의무화기로 했다. 봉평터널 사고나 2013년 사패산터널 사고 같은 경우 전방 충돌 상황을 감지해 자동으로 차를 멈추는 AEBS가 작동했다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아직도 규제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을뿐더러 신차가 아닌 기존 모델 승합차는 2018년, 화물차는 2019년에나 적용된다. 의무화 대상을 더 늘리고 시기도 앞당겨야 한다. 이와 함께 데이터 입수용으로만 쓰고 있는 운행기록장치(태코미터)를 교통법규 위반 단속과 처벌에 활용하고 최고속도 제한 장치를 무력화하는 불법 튜닝을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선진국처럼 과로 운전을 막기 위한 운전시간 제한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경제]조미료, 노년에 감치다

“거 하나만 물어봅시다. 거기서 만드는 조미료가 건강에 해롭지 않습니까?”

고단한 노년 남성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전해집니다.

갑자기 마음의 평온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서툰 긴장감이 채웁니다.

이 상황을 헤쳐갈 수 있게 도와줄 구원자를 찾아 두리번거립니다.

2003년 여름 어느 토요일 아침, 식품기업으로 이직한 지 아직 한 달이 지나지 않을 무렵이었습니다.

여름휴가 중인 선배들이 많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혼자 사무실을 지키다가, 우연히 당겨받은 전화였습니다.

조미료, 그 중에서도 미원으로 대표되는 인공 조미료 MSG는 회사의 대표 제품입니다.

입사 첫날부터 자료들을 많이 읽어 정보는 있었지만, 막상 직접 설명하려니 초조합니다.

“선생님, MSG는 안전한 식품첨가물입니다. 안심하고 드셔도 좋습니다.”

밝고 상냥하게 대답하려 애씁니다.

“그게 건강에 안 좋다고 하는데, 정말 괜찮은 건가요?”

“그럼요. 의학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나를 나무라는 듯합니다.

“그 말 믿을 수 있어요? 우리 자식들이 안 좋다고 먹지 말라는데...”

몇 차례 되돌이표를 찍는 문답에, 이야기가 투박해지기 시작합니다.

전화를 거는 이가 말로만 듣던 블랙컨슈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갑자기 애사심에 달아오르기 시작합니다.

이직을 하며 많은 변화들을 겪는 중이었습니다.

한참 설명해도 모르는 작은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이름만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큰회사 소속이 되니 대우가 달라졌습니다.

친구도, 지인도, 예전보다 나를 더 존중해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고마움도 남달랐습니다.

자칫하면 어렵사리 손에 쥔 행운을 놓칠 것만 같았습니다.

시나브로 방어모드에 돌입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받아 적고, 그에 맞는 대답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 MSG에 대해 1995년에 세계보건기구와 미국 식약청에서 공동 조사한 결과, 유해성이 없다고 판명되었습니다. 더불어 1일 섭취 제한량도 없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차분하게 한 단어 한 단어 정성을 쏟아 설명합니다.

다음 공격에 대응하려면 흥분은 금물입니다.

“아, 그럼 정말 다행이네요. 선생님이 그걸 우리 자식들한테도 좀 알려주실 수 있겠소?”

노인께서 기뻐하십니다.

뭔가 단단히 각오했다가, 맥이 빠진 듯 어리둥절합니다.

뭐가 뭔지 당최 감을 잡기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어떤 상황이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게... 참... 허허...”

노인께서 말을 이으십니다.

“내가 몸이 좀 아파요. 그래서 우리 자식들이 아주 난리에요. 술담배 못 하게 하는 건 이해하는데, 음식까지 밍밍한 걸 먹으라지 뭡니까?”

“아이고, 자제분들께서 효성이 지극하시네요.”

“난 좀 맛있게 먹고 싶은데, 미원 안 좋다고 못 먹게 하니까 아주 속상해요. 그러니 우리 선생님이 자식들한테 얘기 좀 해줘요. 먹어도 된다고.”

살짝 난감했지만, 훈훈한 한 병실풍경이 그려집니다.

살짝 웃음을 머금고 이야기를 마칠 준비를 합니다.

MSG는 인체에 유해하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르신, 빨리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참 깔끔하고 훈훈한 갈무리라고 자부합니다.

“고마워요. 나도 그러면 좋겠는데, 허허...”

노인의 담담하고 아쉬운 듯한 말맺음에, 갑작스레 궁금증이 밀려옵니다.

“선생님, 혹시 어디가 편찮으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머리에 반갑지 않은 게 찾아왔어요. 종양이 생겼다네요.”

머리가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괜한 걸 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은 날들이라도 좀 맛있게 먹다 가고 싶은데, 몸에 안 좋다고 먹지 말라고만 하니...”

“아... 네...”

“참 신기했어요. 없이 살던 시절, 뭐 변변한 찬거리가 있나? 그런데 미원만 넣으면 음식이 맛있어지더라구요. 고생 고생하던 젊은 시절부터 밥 먹을 때면 항상 생각나요.”

“그러셨군요.”

“도와 달랄 곳이 없어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회사로 전화했어요. 아침부터 힘들게 해 미안합니다.”

착잡한 마음과 뭐라도 얘기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뒤섞입니다.

“선생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어떤 말을 할지 머릿속을 정리해 갑니다.

“아직 신입사원이라 아주 잘 알지 못합니다. MSG가 안전한 건 확실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몸이 많이 편찮으시니까, 자제분들 말씀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밖에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노인이 담담히 대답하십니다.

“고마워요. 그런데 옛날 그 맛이 너무 그리워요. 한 끼라도 좀 맛있게 먹으면 좋겠어. 자식들에겐 내가 얘기하리다. 마음 써줘서 고맙소. 잘 지내요.”

전화를 끊고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혹시라도 노인께서 조미료를 듬뿍 넣은 음식을 드시다가, 건강이 악화되지 않을지 걱정스럽습니다.

전화번호를 적어두지 않은 스스로를 책망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잠시 후엔 업무에 대한 두려움과 회의감이 찾아왔습니다.

홍보는 내 천직이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던 만큼 충격도 컸습니다. 

홍보라는 업무가, 자칫하면 세상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려가 있다고 해도, 이 매력적인 업무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고작 2년차 풋내기였지만, 홍보가 창의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멋진 직업이란 걸 알기엔 충분했습니다.

끌리는 맛이 있었습니다, 감칠맛에 끌리는 조미료처럼.


조미료의 대표적인 맛으로 ‘감칠맛’을 이야기합니다.

단맛, 쓴맛, 신맛, 짠맛과 함께 5미(味)로 꼽히는 감칠맛은 어떤 뜻일까요?

조미료 자체의 맛은 늑늑하고 짭짤해 그리 당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재료와 만나면 본연의 맛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내줍니다.

감칠맛은 여기서 나옵니다.

‘감치다’라는 말은 본디 바느질을 할 때 마무리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옷감의 가장자리를 감아서 꿰매는 방법을 말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는, ‘혀에 감겨 계속 찾게 되는 맛’이란 의미로 쓰입니다.

영어로 단순히 맛 좋은, 향긋한 이란 뜻(savory)보다 훨씬 더 실감나는 표현입니다.

13년이 지난 지금, 힘 있는 인물과 조직의 비호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홍보인들의 모습에 입맛이 씁쓸합니다.

다른 한편으론, 기발한 아이디어와 서 말 구슬을 꿰는 기획력으로 새로운 기회를 창조하는 홍보가 참 가치있는 일이란 생각도 듭니다.

내게 홍보는 끊을 수 없는 평생의 업(業) 같습니다.

노인께서 마지막까지 그리워했던 미원처럼 말입니다.


2. [서울신문][문화마당] 손을 쓸 때 쓰자고요/김민정 시인

일은 힘들지 않았어요. 사람이 힘들었어요. 누구나 한번쯤 내뱉어봤을 말, 너무 빤한 레퍼토리 같아서 그 힘듦을 고민거리라고 어디 내놓기도 민망한 말, 위로도 어쭙잖고 위안도 남세스러운 것 같아 그저 웃지요, 하고 등이나 토닥거려주는 일로 피해버리는 말, 그럼에도 우리 모두 인간관계라는 그물망 속에 알게 모르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게 하는 말, 죄책감과 억울함 사이의 말, 그 말에 우리가 얼마나 끌려다니고 있는지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뱉은 말만 말일까, SNS에 내가 남긴 글이나 읽게 된 당신의 글 또한 말처럼 들리는 게 사실이니 말이다.

그러나저러나 왜 사람은 사람을 힘들게 할까. 현실 속에서 빚어지는 내 갈등은 미치게 싫어하면서 드라마 속에서 일어나는 가상의 갈등은 왜 미치게 좋아할까. 어차피 죽을 걸 알면서도 평생 안 죽을 것처럼 연기를 해야 살 수 있는 삶의 모순 속에 헛바퀴인 줄 알면서도 평생 쳇바퀴를 굴리는 게 재미라도 있다 체념해서일까.

한 직장에 다니는 후배 녀석 둘이 제각각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시간도 아낄 겸 셋이 같이 보자는 제안에 부득불 따로 보자는 것이 그들 둘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뭔가 있구나, 있어, 이건 분명 갈등이다, 어쩌지, 뭘까, 뭐지, 혹시 이것들이 나 몰래 연애라도 했었나, 깨졌나, 미치겠네, 하며 각각 시간차를 달리해 테이블에 마주 앉았는데 얘기의 초입부터 나는 헛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서로의 입에서 공통으로 튀어나온 말이 있었으니 바로 ‘무시’라는 단어였던 것이다.

무시는 얼마나 나쁜 말이고 무시는 얼마나 슬픈 말인가. 같은 대학 선후배로 직장까지 한곳에 들어가게 되어 유난히 친분이 두텁던 이들이 한 부서로 발령이 나면서부터 사소한 오해들이 쌓여간 듯싶었다. 제가 일을 잘하는 게 신경이 쓰여서인지 경계를 하려는 목적인지 과장님께 선배가 내 험담을 하고 다닌 것 같더라고요. 에이 설마, 걔가 그럴 애는 아니잖니.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사내에 소문을 내서 내가 아주 난감해요, 알다시피 내 스타일은 아닌데 걔 공주병을 봐줄 수가 없어요. 에이 설마, 걔가 그래도 예쁘기는 하잖니.

입이 너무 썼다. 서로 10년을 넘게 봐온 사이인데 허심탄회하게 얘기 한번 하는 일이 뭐가 어려운가 싶었는데 여자 후배가 덜컥 SNS 얘기를 꺼냈다. 팔로를 끊으면 되는데 내가 그걸 못해요 언니. 이상하게 선배가 감정 토로를 하는 모든 글이 다 나를 향한 것 같아요. 아마 나 보라고 썼을 거야. 읽으면 속상하고 안 보면 궁금하고 밤에 잠도 안 와 짜증 나서. 여자 후배가 택시를 타고 사라진 뒤 앞서 만난 남자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트위터에 너 걔 엿 같다고 썼다며. 뭔 소리야, 그거 개돼지 발언 듣고 짜증 나서 올린 건데. 안 되겠다, 너 걔한테 편지를 써라. 이메일 말고 손으로 편지를 써. 그리고 너 보는 앞에서 읽으라고 줘.

초등학교 1학년 때 남자 짝꿍이 사사건건 나를 괴롭혀서 등굣길마다 울음보를 터뜨린 적이 있었다. 하루는 엄마가 스케치북을 펼치더니 그 아이에게 그림편지를 쓰라고 했다. 할 말 없는데 하면서도 나는 도화지 가득 깨알같이 내 마음을 적어나갔다. 며칠 뒤에 짝꿍이 내게 전한 종이에 빨간 해가 삐죽삐죽 그려져 있었다. 종이의 3분의2를 차지할 만큼 크고 둥글고 새빨간 해였다. 그날부터 우리는 책상 아래 손을 잡고 수업을 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손이 알아서 다했다. 맞잡은 손의 힘을 믿는 이유다.


3.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평양냉면의 ‘뜨거운 유혹’

돈의 많고 적음이 사람의 행복을 좌우하지 않듯이 가격의 높고 낮음 또한 음식 맛을 결정하지 않는다. 비싸지 않고 맛있는 단품 메뉴로 행복한 한 끼를 즐기는 것은 분명 생활의 작은 기쁨이다.


뜨거운 여름, 냉면의 계절이 왔다. 계절을 가리지 않는 냉면 마니아들도 꽤 있지만 역시 냉면은 여름에 먹는 평양냉면이 제격이다. 냉면 손님이 적은 계절에는 거창한 반죽기계를 돌리는 것이 쉽지 않아 보통 손 반죽을 하지만 손님이 많을 때는 기계를 돌리는데 그 면발이 쫄깃하고 메밀향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나는 걸음마를 할 때부터 이북이 고향인 어머니가 피란 와서 살던 부산의 ‘원산면옥’에 따라다녔다. 어머니는 또 이른 저녁 후 어둠이 깊어질 즈음 동치미에 냉면을 말아 식구들 방마다 돌려 주셨다. 그렇게 냉면은 나의 솔 푸드가 됐고, 지금도 해외에 나가면 가장 생각나는 것이 냉면이다.

평양냉면은 육수와 면발에 손이 많이 가는 까다로운 음식이다. 그래서 맛있는 냉면집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평양냉면 전문집에는 양대 계보가 있다. 경기 의정부에 있는 ‘평양면옥’은 홍영남 사장이 1969년 개업한 이래 3대가 이어 오는 집이다. 큰딸은 서울 필동에서 ‘필동면옥’, 둘째 딸은 입정동에서 ‘을지면옥’, 셋째 딸은 잠원동에서 ‘본가 평양면옥’을 각각 운영하면서 평양냉면의 일가를 이루고 있다. 이 집 냉면에는 고춧가루, 파, 깨가 얹어진다.


또 다른 계보의 대표인 서울 장충동의 ‘평양면옥’은 1985년 변정숙 사장이 개업해 큰아들에게 물려줬다. 둘째 아들은 논현동의 ‘평양면옥’, 딸은 분당의 ‘평양면옥’, 손녀딸들은 도곡동과 강남의 한 백화점에 평양냉면집을 각각 열었다. 이 집 냉면은 맑은 육수에 오이절임이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이들 양가의 냉면집은 물론 맛 차이가 있다. 그러나 슴슴하고 꾸밈없는 육수, 메밀향이 풍부한 면발은 공통이어서 많은 냉면 중독자들을 만들어 냈다.

이 외에도 고유의 냉면 맛을 자랑하는 집들이 꽤 있다. 주교동에 위치한 ‘우래옥’은 70년 역사를 자랑하며 수많은 냉면 인재를 배출했다. 마포의 냉면 지존이라는 1970년산 ‘을밀대’와 강남분점, 냉면 장인 김태원의 ‘봉피양’, 백병원 옆 매콤한 닭무침을 곁들여 주는 60년 전통의 ‘평래옥’, 어린이대공원 앞 ‘대미필담’(大味必淡’·정말 좋은 맛은 반드시 담백한 것이다)을 모토로 하는 ‘서북면옥’, 남대문시장 골목 안 2층 작은 집이나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55년 된 ‘부원면옥’ 등도 내가 즐겨 찾는 곳이다.

요즘은 무시 못 할 내공을 자랑하는 숨겨진 냉면 맛집이 새로 등장하고 있고 지방에도 부산의 ‘원산면옥’, 진주의 ‘하연옥’ 등등 냉면 명가가 즐비하다. 평양냉면의 맛은 먹어 본 횟수에 비례해서 느껴진다고 한다. 냉면 없는 한여름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4. [동아일보][2030 세상/제충만]내게도 찾아온 직장인 사춘기

한 친구가 컵밥집을 열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멀쩡히 직장 잘 다니던 친구가 왜 갑자기 컵밥집인가 싶어 오랜만에 연락을 해봤다. 친구는 곧 있으면 개업을 앞두고 있는데 한번 놀러오라는 말과 함께 명대사를 날렸다. “너 아직 거기 다닌다고 했지? 그냥 거기 있어. 회사 안은 전쟁터, 밖은 지옥, 여기가 진짜 헬조선이다야.”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살 만한가 보다 싶어 농을 주고받다가 친구의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적성이 안 맞는지 재미도 없고 생각보다 돈도 안 벌리고 해서 때려치우고 나왔어.”

나는 석 달 후면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만 4년이 된다. 올해 들어 이직을 하거나 아예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는 또래 친구들의 소식이 왕왕 들려온다. 한 조사 결과를 보니 직장인들은 첫 직장에서 평균 3년 동안 근무하고 이직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고민이 많아지는 심리적 불안 상태를 일컫는 ‘직장인 사춘기’는 백이면 백, 입사 4년 차 이내에 찾아온다고 한다. 지금이 딱 방황할 시기인가 보다. 

또 다른 친구는 직장을 옮겼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너무 경쟁적인 회사 분위기를 탓하며 “아내분 생일날 집에 잠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일하는 부장님을 본 적이 있어. 내가 10년 후에 딱 부장님 같은 모습일 거라 생각하니까 오래 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싹 사라지더라”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3년 차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직장 생활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로 3년 차를 꼽는 조사도 있었다. 아무래도 직장에 들어온 지 3년쯤 되면 여러 가지 이유로 고민이 많아지나 보다. 취업 때야 일단 바늘구멍부터 뚫자는 심정으로, 입사 초기에는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가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내게도 직장인 사춘기가 찾아왔다. 얼마 전 참가한 한 심포지엄에서 36년간 일본의 모험놀이터를 일군 연사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 우물만 판 대가의 깊이 앞에서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내가 하는 일이 여러 아동권리 침해 이슈에 대응을 하는 것이다 보니 고질적인 깊이에 대한 갈증이 있는데 그 부분을 건드렸나 보다. 더군다나 “제충만 씨는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지만 오래가지는 못하는 거 같아요”라는 말을 직장동료에게 듣자 나같이 대인관계가 부족한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는 게 과연 적성에 맞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 일에 대한 열정도 옛날만 못한 것 같은 내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기도 한다. 

더욱 씁쓸한 것은 내가 일하는 직장이 비정부기구(NGO)라서 그런지 고민을 털어놓아도 별반 공감을 얻지 못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사명감으로 해야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나도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어떤 날은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고, 일요일 밤이 오면 무섭기도 하다. “제충만 씨도 이제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이 되고 있는 거예요. 환영해요”라며 우스개로 격려를 받은 게 가장 큰 위로였다.

얼마 전 캄보디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직장인 사춘기’에는 여행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던데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런 상태와 고민들을 그냥 인정하고 지켜보기로 했다. 

내 어린 시절 사춘기는 언제 왔는지 모르게 왔다가 많은 생채기를 남기고 또 언제 끝났는지 모르게 갔다. 비록 그 시간만큼은 혼란스러웠지만 후에 돌아보니 그만큼 더 풍성한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던 고마운 시절이었다. 언젠가는 지나갈 나의 ‘직장인 사춘기’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하게 되는 많은 고민으로 인해 더욱 풍성한 나 자신과 직장 생활을 만들어 주는 데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해 본다.


5. [중앙일보][새미 라샤드의 비정상의 눈] 아랍인에게 “돼지”는 가장 심한 욕이 된다

같은 언어를 쓰는 한국인끼리도 의사소통에서 어려움이나 오해가 종종 발생한다. 하물며 외국어를 배워서 쓰는 사람이라면 오해를 부르는 일이 더욱 잦을 수밖에 없다. 특히 그 나라 고유의 문화·풍습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부문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분야에선 다른 언어로 옮기기 쉽지 않은 낱말이나 표현이 많기 때문이다.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라도 나라에 따라 개념이 다를 수 있다. 한국어와 아랍어 사이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이집트에서 비슷한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 유학 온 한국 친구가 열심히 운동하는 다른 친구를 보고 아랍어로 “후아 하야완”이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이 말을 들은 이집트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말은 “그는 동물(짐승)이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심히 운동하는 친구에게 왜 욕하느냐고 따졌더니 그 친구는 “그 말은 한국에서 멋진 사람에게 칭찬으로 쓰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야성미 넘치는 남자를 가리키는 ‘짐승남’을 그렇게 말한 것 같다. 그래서 “언어는 참 신기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아랍어를 공부하는 한국 사람들과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누는데 몇 가지 재미있는 사례가 나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돼지다. 한국 사람들은 돼지라는 말을 음식인 돼지고기와 돼지같이 통통한 체형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동시에 사용한다. 한국어로 “돼지야”라고 부르면 당연히 장난치는 거라고 생각할 뿐 기분이 상할 일은 없다. 하지만 아랍어로 사람을 “돼지”라고 부르면 큰 문제가 생긴다. 아랍·이슬람 문화권에선 돼지고기 식용을 금지해 왠지 불결하고 멀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 성격이 “돼지 같다”고 하면 매우 심각한 모욕이 된다. 아랍 문화에서 돼지는 책임감이 없어 자기 여자를 지키려 하지 않는 남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돼지 같다”는 말은 아랍 남성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욕인 셈이다.

또 다른 예로 술이 있다. 한국에서 술이라고 하면 19세만 넘으면 마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 문화권에선 ‘마시지 말라’는 말이 항상 따라다니는 금기 음료라 느낌이 좋지 않다. ‘친구’라는 말도 한국에선 남녀를 모두 포함한다. 하지만 아랍어에선 동성 친구만 친구라고 부를 뿐 이성은 친구 범주에 넣지 않는다. 아직 우정은 동성끼리만 가능하다는 보수적인 인식이 남아 있어서다. 같은 단어라도 문화권에 따라 의미가 다를 수 있으므로 사용할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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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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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0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SK·CJ 인수합병 불허 최선이었나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M&A) 노력이 끝내 무위로 그치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양사의 합병 신청에 대해 최종 불허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결합이 이뤄질 경우 전국 케이블TV 권역별로 시장지배적 지위가 강화된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이동통신 시장에서도 가격·서비스 경쟁이 제한될 우려가 있는데다 KT나 LG유플러스 등 경쟁사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불허 결정 이유다.

공정위의 판단에 대해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우려 또한 감출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케이블TV 업계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번 M&A 실패에 따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지율적인 구조조정의 돌파구가 막혀 버린 셈이다. 이번 합병 무산으로 가입자 확보를 위한 내부 경쟁이 심화되면서 과도한 마케팅 비용의 증가를 초래할 개연성이 커진 것이다.

이번 결정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에도 어긋난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은 현재 영역의 장벽을 뛰어넘어 ‘국경없는 경쟁’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번 심사 결과를 통해서도 유료방송 업계의 미래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다. 국내 미디어 기업들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M&A까지 포함한 여러 사항을 감안해 장기적인 사업 전략을 짜야 하지만 관련 규제가 아직 모호하다는 얘기다.

앞으로 유료방송 업계에서의 M&A는 시장 경쟁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중소업체끼리의 결합만이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중소업체들은 M&A를 시도할 만한 자본의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M&A를 통한 업계의 성장동력 마련은 거의 어려워진 상황이다. 콘텐츠 투자 등 방송업계의 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 처지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합병 신청이 접수되고 공정위의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최대 120일로 정해진 심사기간이 7개월 이상 이어졌다는 사실도 되짚어야 할 문제다. 늑장 결론으로 인해 방송·통신 업계에 혼란만 가중시켰다. 해당 업체에 미친 영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공정위가 외부 눈치를 살피느라 심사를 끌고 있다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심사기간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2. 인적 쇄신으로 공직기강 다잡아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전면 개각을 촉구하고 나섰다. 저마다 불미스러운 일로 궁지에 몰린 두 야당이 국면 전환용 역(逆)공세로 펼치는 성격이 짙기는 하나 작금의 총체적 국정 난맥상을 감안하면 일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 잇따라 터져나온 대형 사건 중에서도 검찰 역사상 첫 현직 검사장 구속 사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진경준 검사장은 120억원대 ‘주식 대박’과 재벌 탈세 내사 무마 등의 혐의로 구속됐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도 처가와 넥슨의 수상한 부동산 거래 연루 의혹에 휘말려 있다. 진 검사장과 우 수석이 이미 구속된 홍만표 전 검사장과 밀접한 ‘3각 친분’이라는 대목에서는 의혹의 심증이 더해진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혼란은 현 정부의 국정 운영이 여전히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 준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근거 없는 괴담이 마구 퍼져 민심을 들쑤시고 국력을 탕진시키곤 한다. 광우병과 메르스, 세월호 사태를 보면 가히 ‘괴담 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사드 괴담’이 퍼지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안이한 정책 탓이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다.

병세 외교장관은 사드배치 발표 시점에 백화점 쇼핑이나 하고 교육부 간부는 “민중은 개, 돼지”라는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미세먼지를 고등어 탓으로 돌린 환경부나 국가브랜드 표절 논란을 불러일으킨 문화체육관광부,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에 앉혔다가 나라 망신을 자초한 기획재정부 등 어느 한 곳 믿을 데가 없다.

일국의 장관이라면 국가적 도전에 대처하는 예지와 난국을 타개하는 추진력은 기본 덕목으로 갖춰야 하나 실상은 영 딴판이다.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흐리멍덩한 눈매로 부하들이 써 준 자료나 읽다가 의원들의 질문 공세에 쩔쩔매는 장관이 한둘이 아니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 대표도 “장차관 모두 복지부동을 넘어 행동과 언행을 이해하지 못할 게 많다”고 쏴붙였지만 장관이든 수석이든 비리 연루자나 함량 미달자는 과감히 물갈이해야 한다. 정권 말기로 접어드는 지금이야말로 인적 쇄신으로 공직 기강을 다잡을 적기다.

[서울신문]

3. 우병우 부동산 거래 의혹 수사로 진위 가려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처가와 넥슨 사이의 1300억원대 부동산 거래를 둘러싼 의혹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확산되고 있다. 우 수석은 사정 총괄, 인사 검증 등을 맡은 현 정부의 실세이고, 넥슨은 뇌물 혐의로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에게 126억원의 주식 대박을 안겨 준 김정주 NXC 회장이 운영하는 기업인 까닭에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의혹은 친구인 진 검사장의 소개로 넥슨 창업주 김 회장이 5년 전 우 수석 처가의 부동산을 1326억원에 구입한 사실에서 비롯됐다. 우 수석은 “정상적 거래 절차를 통해”라며 ‘삼각 커넥션’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의혹 수준이지만 거래 과정에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잖은 탓에 수사로 명백하게 진위를 가리지 않고 우 수석의 해명만을 믿고 넘길 수는 없다. 우 수석은 변호사 때 ‘몰래 변론’한 의혹까지 사고 있다.

우 수석과 관련된 의혹은 먼저 넥슨이 2011년 3월 부동산 불황인 데다 상속세 근저당권까지 설정된 우 수석 처가의 서울 강남 부동산을 제값에 샀어야만 했느냐는 것이다. 넥슨은 1년 4개월 뒤 되팔아 겉으로는 79억원가량 차익을 남겼지만 취·등록세와 이자 등을 포함하면 오히려 15억~27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한다. 또 넥슨이 강남 신사옥을 세우기 위해 굳이 이면도로 부지를 선택한 점도, 직원들조차 모르게 추진했다는 사실도 개운찮다. 넥슨은 당시 판교에 신사옥을 짓고 있었던 때다. 더욱이 3055억원의 현금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넥슨 재팬을 통해 일본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잔금을 치르기까지 했다. 이런 정황 때문에 진 검사장의 부탁을 받은 넥슨이 상속세 납부 문제로 고심하던 우 수석에게 부동산 매입이라는 호의를 베푼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우 수석은 ‘정상 매매’라는 해명과 달리 구청에 중개인 없이 ‘당사자 거래’라고 허위로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시민단체로부터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된 우 수석을 수사하지 않을 수 없다. 석연찮은 부동산 거래가 우선 조사 대상이다. 호의적 거래가 ‘뇌물’의 성격이었는지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진 검사장이 지난해 2월 검사장 승진 인사 검증 때 신고한 88억원어치의 넥슨 주식을 문제 삼지 않은 우 수석의 판단 경위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는 수사 선 긋기로 비칠 수 있는 “사실 확인이 안 된 의혹 부풀리기”라는 식의 대응을 자제하는 편이 옳다. 우 수석을 둘러싼 의혹 수사는 국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4. 남남갈등 부추기는 북한 미사일 도발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쉬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우리 내부의 가장 큰 적은 ‘남남 갈등’이다. 우리는 정치권이 대북 정책의 큰 방향을 놓고 벌이는 정책 토론까지 남남 갈등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부가 사드 배치를 수용하기로 한 것은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도발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방어 수단이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로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직 북한만 이롭게 할 뿐이다.

북한은 어제 새벽에도 남한 전 지역을 사정거리에 둔 스커드C 미사일로 추정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3기를 발사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의 노림수는 자명하다. 지난 11일 포병국 중대 경고를 통해 사드 배치가 확정되는 시각부터 물리적 대응 조치가 실행될 것이라고 위협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미사일이 발사된 황해북도 황주와 사드 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는 380㎞ 정도 떨어져 있다. 성주군 일대가 사정권에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남남 갈등을 증폭시키고자 하는 속셈이다. 우리는 북한의 이러한 노림수에 말려들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그런데도 갈등 해소를 위한 공론의 장이 돼야 할 국회는 정치 공세의 장으로 변질돼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어제 국회에서 열린 사드 배치와 관련된 긴급 현안 질문에서 국민의당은 배치 연기, 취소, 재검토의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며 배치 철회를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도 대통령이 지지자들에 대한 배신의 정치를 했다거나 한반도를 군비경쟁의 늪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등 자극적인 발언을 이어 갔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배치 지역 결정의 절차상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국방장관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정부의 답변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국회 비준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등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국회를 찾아 속 시원한 답변을 듣고 싶어 했던 성주 주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한·미 군 당국이 괌에 설치된 미군 사드 기지를 언론에 공개했지만 전자파 유해성 논란은 계속되고 있고, 주민들은 21일 상경 투쟁을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성주 주민들이 정부를 신뢰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려면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하다. 사드 괴담으로 참외 농가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한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이 자발적으로 나서 성주 참외 사주기 운동을 벌였으면 한다. 작은 실천이지만 의미 있는 소통의 통로가 되지 않을까. 국회는 정치 공세를 중단하고, 공론화를 통해 사드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부는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에 철저히 대비하는 한편 사드 배치에 따른 득실과 전자파 유해성 여부를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5. 전기요금 거리병산제 검토할 만하다

전기 생산 시설이 집중된 지방자치단체들이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공론화하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그제 한 회견에서 전기요금 거리병산제를 제기했다. 그는 “서해안을 오염시키면서 생산된 전기의 60%가 수도권으로 가고 이 과정에서 송전탑 문제도 발생한다”면서 지역별 요금 차등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내 고장에 혐오시설이 자리잡는 것을 꺼리는, 이른바 ‘님비 현상’이 만연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거리병산제는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대안이라고 본다.

보령과 당진, 태안, 서천 등 충남 4개 시·군은 지난주 국회에서 회견을 갖고 석탄화력발전소 추가 건설 철회 등을 요구했다. 이를 딱히 지역이기주의로 몰아붙이기도 어렵다. 이들 지역에는 국민 건강을 해치는 미세먼지 발생의 주요인의 하나인 국내 석탄화력발전소(총 53기) 중 약 절반인 26기가 가동 중이다. 생산한 전력의 일부만 자체 소비하고 나머지는 수도권으로 보내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 조사를 보면 화력발전소가 밀집된 충남 상공의 2차 미세먼지는 서울의 2배 이상이다.

충남도는 인천·부산시와 9, 10월쯤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 공청회를 열고 정부에 관련법 제정도 건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공감이 가는 행보다. 발전소가 있는 지자체들이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면서 사회적 갈등만 떠안고 있다면 그렇다. 미국과 영국, 호주 등이 거리병산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정부가 갈수록 심화될 님비 현상을 해소하고 에너지 수급 정책을 합리적으로 재편하는 차원에서 지역별 차등 요금제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기를 권한다. 석탄화력발전소가 입지한 충남 지역뿐만 아니라 원전이 밀집된 경북·부산 지역 주민들에게도 전기료 감면 혜택을 줘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할 때 혐오 시설이 있는 지역에도 주민들이 선호하는 시설도 들어서 지역균형 개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기 과다 사용국인 우리 현실에서 국민이 전기를 아끼도록 유인하기 위해서도 차등 요금제는 가야 할 길임을 거듭 강조한다.

[중앙일보]

6. 최경환·윤상현 공천 개입 불법성 규명해야

새누리당 최경환·윤상현 의원이 지난 총선 때 지역구를 옮기라고 특정 예비후보를 협박·회유하는 목소리가 녹음으로 공개됐다. 최 의원은 “동료 정치인으로서 강제성 없는 권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 뜻’을 내세운 데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서청원 의원 지역구에 도전한 김성회 전 의원으로 알려져 파문이 커지고 있다.

녹음 파일에 따르면 윤 의원은 김 전 의원에게 “뒤에 대통령이 있다. 까불면 안 된다. 내가 별의별 것 다 갖고 있다”고 협박성 언급을 했다. 지역구를 옮기는 게 대통령의 뜻인지 묻는 김 전 의원에게 최경환 의원은 “그럼, 그럼”이라며 “옆에 보내려는 건 우리가 그렇게 도와주겠다는 것”이라고 약속했다. 최 의원은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선 “총선 기간 저는 최고위원은커녕 공관위 구성과 공천 절차에 아무런 관여도 할 수 없었던 평의원 신분이었다”고 공천 개입을 부인했다.

물론 공식·공개 석상에서의 발언이 아닌 데다 전체 맥락이 드러나지 않은 일방적 녹취란 걸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당내 경선과 관련해 후보자를 협박·유인하거나 공사(公私)의 직을 제공·약속하는 건 명백한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새누리당의 철저한 진상 규명을 넘어 사법 당국이 나서 불법 여부를 규명해야 할 일이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최·윤 두 의원이 “대통령 뜻”이라고 앞세운 것과 관련, 과연 자신의 뜻이었는지 해명할 필요가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 주말 총선 참패의 원인을 분석한 국민 백서를 공개했다. 4·13 총선이 끝난 지 3개월여 만이다. 하지만 291쪽에 달하는 백서 어디에도 참패의 명확한 책임을 지우는 내용이 없어 친박 눈치를 본 ‘맹탕 백서’란 평가를 받았다. 친박의 오만에서 비롯된 막장 공천극과 진박 마케팅, 윤상현 막말이 선거 패인이란 건 친박세력만이 외면하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의 뜻과 관계없이 최·윤 두 의원이 대통령을 팔아 호가호위한 일이었다면 박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두 의원을 엄정하게 조치해야 결백이 입증된다.

[매일경제]

7. 8·15 사면, 국민통합과 경제살리기 계기 만들어야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19일 대법원에 재상고 취하서를 제출했다. "이 회장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신체적·정신적으로 재판을 더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CJ 측이 밝힌 이유이지만 8·15 특별사면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구속집행정지 상태로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이 회장은 샤르코 마리 투스(CMT)라는 신경근육계 유전병과 신장이식 후유증 등으로 치명적인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고 한다. 

지난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8·15 특별사면 방침을 공식화한 이후 재계에 사면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직접 "경제 어려움과 재기의 기회"를 언급한 때문인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구자원 LIG 명예회장 등 특별사면 대상자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분위기다.

기업인 사면에 대한 국민여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국민 일반의 법 의식은 이번 특별사면 대상에 음주운전자를 포함시키는 것조차 부정적으로 볼 만큼 고양된 상태다. 횡령·배임·조세포탈 등 중죄를 저지른 기업인들이 매번 경제위기를 빌미로 면죄부를 받는 모습이 쉽게 용납될 리 없다. 대주주와 경영자의 중대범죄에 대한 사면권 제한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박 대통령에게도 사면은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이다. 박 대통령이 집권 후 단 두 차례, 기업인과 정치인을 가급적 배제하고 사면을 단행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경제위기가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조선·해운·철강·석유화학·건설 등 제조업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미래 먹거리는 앞이 보이지 않고 수출, 투자, 고용, 소비할 것 없이 꽉 막혔다. 그 어느 때보다 위기 돌파의 선봉에 설 기업과 기업인이 절실하다. 특히 총수가 앞장서 진두지휘해야 투자든 일자리 창출이든 신산업 육성이든 일이 이뤄지는 게 한국적 기업 현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업인 사면은 악화 일로인 경제흐름을 선순환으로 바꾸는 카드가 될 수 있다. 가석방·사면 요건을 갖췄거나 형 집행의 실익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사면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국가에 기여할 길을 열어줘야 한다. 기업인들 역시 사면·복권의 기회가 주어질 경우 국민 기대를 넘어서는 과감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성과로 보답해야 할 것이다.

8. 새누리당 친박 행태, 더는 눈뜨고 못볼 지경이다

새누리당이 '8·9 전당대회'를 앞둔 가운데 친박(친박근혜)계의 민낯과 그로 인한 계파 갈등이 또다시 노출됐다. 친박 주축인 최경환·윤상현 의원이 4·13 총선 공천에 부적절하게 개입한 내용을 담은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총선 참패 후 3개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친박계가 새누리당 내 갈등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19일 서청원 의원이 당권 불출마를 선언했으나 계파갈등이 수그러들 것 같지도 않다.

이번에 공개된 녹취록을 보면 최경환·윤상현 의원은 4·13 총선에서 서청원 의원 지역구에 출마하려던 김성회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지역구로 옮기라고 회유했다. 그 과정에서 윤 의원은 "내가 대통령 뜻이 어디 있는지 알잖아"라거나 "안 하면 사달 난다니까. 내가 별의별 것 다 갖고 있다니까"라며 아예 협박으로 들릴 만한 발언을 했다. 선거법 위반 여부를 따져봐야 할 수준이다. 공직선거법 237조는 당내 경선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을 협박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의 뜻' 운운하며 친박계가 막장 공천파동을 주도한 명분은 국정 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영남권 신공항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지역을 결정할 때 친박계가 보여준 행태는 그야말로 생떼 정치라 할 만하다. 사드 배치 지역을 경북 성주로 발표했을 때 대구·경북 지역 국회의원 21명이 단체로 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그들 대부분이 친박계였다. 공천파동에서 곤욕을 치른 비박계 유승민 의원과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성명에 불참한 것과 대비된다. 

공천받을 때와 당권 경쟁할 때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내세우고 지역 표심이 걸린 문제를 만나면 제 살길만 찾는 행태다. 공천 개입 녹취록이 공개된 뒤에도 친박계 측은 전당대회를 겨냥한 '불순한 의도' 운운하며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에 급급하다. 이들이 여당 핵심 세력이라니 국정이 걱정이다.

9. 北, 美공화당 노예국가 압박 보고도 계속 도발인가

미국 공화당이 18일 공개한 새 정강에 북한을 김정은 일가의 노예국가라고 규정하면서 집권할 경우 강한 압박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올 11월 치를 대선 후보를 확정하기 위해 열린 전당대회에서 채택한 대북정책인데 인권 문제와 핵 개발에 초점을 맞춰 북한을 몰아붙였다.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완벽하고 검증 가능한 비가역적 해체를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도 적시했다. 특히 김정은 정권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중국에 촉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후보로 뽑힌 도널드 트럼프는 그동안 유세에서 북한 김정은과도 대화할 수 있다는 유화적인 발언을 했는데 이번 정강에서 보면 집권 후 북한을 옥죄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천명한 것이다.

미국 민주당도 정강정책 초안에서 북한을 가학적인 독재자가 다스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억압적인 체제라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압박 조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하는 장거리 마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능력을 개발하려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데 진력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양대 정당의 정강에 담긴 대북정책을 보면 김정은 독재를 위해 주민 인권을 유린하고 핵과 미사일로 위협하는 북한을 강하게 압박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도록 하겠다는 기조에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박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도발을 멈추지 않는다. 지난 8일 한·미 양국이 한반도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하자 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쐈고, 19일에는 탄도미사일 3발을 쏴 맞불을 놓았다. 사거리가 500㎞이니 내년 말 사드를 배치할 경북 성주포대를 겨냥할 기술을 가졌음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거듭된 도발은 국제사회의 제재만 두껍게 만들 뿐이다. 북한의 핵·경제 병진 노선은 수용되기 어렵다. 과거 6자회담에서 합의한 것처럼 핵 동결을 비롯한 최소한의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 태도 변화만이 살길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매일신문]

10. 경북체육중·고 학생 인권 침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경북체육중학교의 여학생이 지난 6일 기숙사에서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으려다 친구에게 발견됐다. 여학생은 유서에서 평소 운동부 지도교사로부터 외모에 대한 모욕적인 말을 지속적으로 들었다고 썼다.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여학생이 목숨까지 버리려는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도 학생만 전학조치했다. 교사를 내버려둔 학교나 교육 당국의 학생 인권에 대한 무관심과 소홀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자살 기도 여학생이 다니던 경북체육중`고교는 경북 엘리트 체육 교육의 산실이다. 기량을 가진 학생을 발굴해 유망 스포츠선수로 키우는 학교다. 따라서 전문교육과 함께 엄격한 규율을 필요로 하고 성적을 중요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반학교처럼 학생 전인교육 역할도 맡는 엄연한 대한민국 교육기관이다. 학생을 아끼고 인격과 인권을 존중하며 미래 인재로 키우는데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동안 일어난 여러 일을 보면 학교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번 여중생의 자살 기도뿐만 아니라 지도교사의 폭언으로 지난달에도 한 여고생이 자해를 시도했다. 지난해에는 기숙사 생활 남학생끼리 게임 과정에서 음란 행위를 강요한 것이 드러났다. 동급생끼리의 폭력 사건, 불법 찬조금 모금 같은 나쁜 일도 일어났다. 지금까지 드러난 일만으로도 재학생은 물론 학부모를 불안하게 하고도 남는다.

운동과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일이 이어져도 교육 당국은 태평이다. 여중생 자살 기도와 관련해 관할 경산교육청은 문제교사의 수업 배제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인권이 침해된 학생에 대한 배려는 전학뿐이었다. 경북도교육청은 아예 몰랐다. 도교육청은 앞서 지적한 다른 문제를 감사했으나 솜방망이 처벌로 끝냈다. 

학생 인권에 대한 학교나 교육 당국의 처사는 한심하고 실망스럽다. 학생을 보호하고 미래 엘리트 체육인으로 키우는 본연의 의무를 잊고 있다. 자녀를 맡긴 학부모 심정은 헤아릴 생각조차 없는 듯하다. 불미스러운 일의 재발 방지 의지는 기대조차 접어야 할 상황이다. 학생 인권 존중 교육의 필요성이 나오는 까닭이다. 학교와 교육 당국의 학생 인권에 대한 배려와 깨인 의식이 절실한 때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신문][공희정 컬처 살롱] 엄마와 딸

“착한 내 딸이 왜 이렇게 됐을까.”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이 세상 모든 여자는 ‘누구나’ 딸이고 ‘대부분’ 엄마로 살아간다. 서로에게 기쁨이면서 희망이고, 때로는 슬픔이면서 아픔인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마음을 흔들었다. 다시 태어나면 엄마의 딸로 때어나고 싶다고, 삶이 수백 번 바뀌어도 너의 엄마로 또 살아가겠다고 서로에 대한 의리를 힘주어 말하지만 모녀지간의 일상은 맹세와 달리 치열한 갈등의 연속이었다.

같이 볼까 하는 마음에 거실에서 TV 보고 계신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뭐하세요?” “테레비 본다.” 코고는 소리가 낮게 울린 듯해서 “주무시지 않았어요?” “안 잔다니까. 연속극 보고 있다고.” 엄마는 졸다 들킨 아이처럼 괜히 목소리를 높이셨고, 그 바람에 나는 심통이 나 같이 보자는 말도 하지 않은 채 방으로 돌아갔다.

세월의 옷을 입은 엄마를 보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건강마저 엄마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건 슬프기까지 하다.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맛난 음식과 예쁜 옷을 만들어 주셨다.

때로는 아빠보다 힘센 모습으로 집안일을 하셨고, 어떤 때는 대범한 용기로 가족을 지켜 내셨다. 애지중지하는 흰색 양산 쓰고 한여름 거리를 사뿐사뿐 걷는 ‘젊은’ 엄마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두서없이 부딪치는 모녀의 일상을 몇 장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해결해 주진 못한다.

엄마는 딸을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한다. 어떤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딸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겠느냐며 엄마 말대로만 하면 잘될 것이라고 한다. 딸들은 엄마에게 원한다. 엄마의 길이 아니라 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힘이 들어도 해볼 터이니 지켜봐 달라고.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삼십대 딸은 그렇게 말한다. 고생하는 엄마를 보며 엄마가 원하는 착한 딸로 살아왔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냐고. 이제는 좀 놓아 달라고. 그건 엄마의 삶이지 나의 삶이 아니라고.

도움이 필요할 땐 돌아서 있었고, 독립이 필요할 땐 과도하게 간섭했다. 격려가 필요할 땐 야단쳤고, 따끔한 일침이 필요할 땐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했다. 엄마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딸에게 엄마는 항상 아쉬운 존재였다. 엄마도 한때는 딸이었다. 자신은 엄마 말을 어긴 적이 없다고 하시지만, 외할머니의 말씀은 달랐다. 세상 안에서 자유롭고 싶었고, 세상 밖으로 도전해 보고 싶어 하며 할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한다. 무엇이 엄마로 하여금 청춘의 꿈을 잊고 잔소리 쟁이가 되게 했을까.

엄마와 괜한 신경전을 치르다 세수 한번 하고 거울을 보니 보이는 것은 나인데 그 안엔 엄마가 있었다. 오십의 딸이 아직도 걱정인 엄마도 문득 딸에게서 오래전 잊었던 젊은 시절의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까. 생각과 감정이 대물림되는 모녀지간, 자신의 과거와 미래는 서로의 모습 안에 들어 있었다. 마치 오래전 잘려 나간 탯줄이 다시 이어진 듯 엄마와 딸은 하나였다.

딸들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착하고, 엄마는 딸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엄마의 엄마가 그러했고, 딸의 딸이 그러할 것처럼.


2. [중앙일보] [차이나 인사이트] 나이 스물에 사장이 못 되면 대장부가 아니라는 중국

한국에선 많은 젊은이가 좋은 직장 취직을 꿈꾼다. 중국에선? 너도나도 창업해 ‘라오반(老板·사장)’이 되려 한다. 남이 장군이 ‘남아 스물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훗날 그 누가 대장부라 일컬으리오’라고 읊은 반면 요즘 중국의 청춘 사이에선 ‘나이 스물에 사장이 되지 못하면 그 누가 대장부라 부를까’라는 말이 유행 중이다. 그만큼 창업 열기가 뜨겁다. 창업의 밑천으론 모두 다 혁신을 외친다. 어떤 힘이 중국을 창업 국가로 만들고 있나.
왕양(汪洋·61)은 중국 부총리다. 내년 가을 열릴 제19차 당대회에서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진입이 유력하다. 그러나 중국 청년 사이에서 주목받는 왕양(汪洋)은 따로 있다. 1990년생 왕양이다. 그는 체중계 제조업체 ‘윈마이(雲麥)’의 창업주다. 지난해 스마트 체중계 50만 대를 팔아 샤오미(小米) 체중계를 제치고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90년생 왕양은 중학 시절 게임에 빠져 20만 회원의 게임 커뮤니티를 운영했지만 학교로부터는 자퇴를 권고받았다. 부모의 설득으로 다시 학업에 매진한 그는 대학생이 돼선 PC용 소프트웨어 상점을 차려 재미를 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인생 세 번째 창업에 나선 건 24세 때인 2014년.

창업 아이템으론 집집마다 하나씩 있는 체중계를 택했다. 전통산업에 인터넷을 접목하자는 ‘인터넷 플러스’ 열풍을 타고 체중계를 가족 건강을 챙기는 ‘스마트 매개체’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성공하려면 혁신이 필요한 법. 그의 체중계는 중국 최초로 중국인이 무게를 잴 때 익숙한 근(斤·1근=500g)을 기준 단위로 채택했다.

또 스마트폰 앱과 연동시켰다. 비만 상태를 알려주는 신체질량지수(BMI)와 골격량, 신체 나이 등 8가지 데이터가 스마트폰 앱에 표시되며 식단 조절과 운동법까지 알려준다. 놀라운 건 가격. 프리미엄 모델인 ‘윈마이 하오칭(好輕)’이 199위안(약 3만5000원)이고 79위안짜리 체중계도 출시했다.

그런 윈마이에 중국 벤처업계는 지난해 4000만 위안을 투자했다. 향후 10조 위안을 웃돌 중국 헬스케어 시장에서 윈마이가 체중계의 성공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건강 생태계를 구축할 경우 현재 1억2500만 위안인 기업 가치가 얼마로 뛸지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엔 90년생 왕양처럼 창업을 꿈꾸는 수많은 청춘이 넘실댄다. 대륙에 창업 열풍의 불을 지핀 건 리커창(李克强) 총리다. 지난해 봄 중국의 연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전인대, 정협회의) 때 ‘대중창업 만인혁신(大衆創業 萬衆創新)’을 외치면서다. 혁신과 함께하는 창업이 중국의 성장동력임을 강조한 것으로 제2, 제3의 ABT(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가 나와야 중국 경제가 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후 중국의 창업 열기는 수치가 보여준다. 중국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에 따르면 2015년 중국의 신설 법인은 443만9000개를 기록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5년 전 94만 개에 비해 4배 이상 늘었다. 하루 평균 1만2000개 이상의 창업이 발생한 셈이다. 우리 전체 벤처기업 총수의 약 150배 가까운 숫자다.

중국을 창업의 나라로 만드는 힘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중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이다. 세 방면에서의 도움이 두드러진다. 먼저 창업을 잘할 수 있게끔 탄탄한 인프라를 구축한다. 중국 청년 창업의 상징과도 같은 곳인 베이징(北京)의 중관춘(中關村)을 비롯해 성(省)마다 혁신 산업단지를 만들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이다.

중관춘엔 40여 개 대학과 200여 개의 국가 과학연구소, 122개의 국가지정 연구센터가 밀집해 중국 전체 창업 투자의 3분의 1이 이뤄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곳에 창업과 관련한 기금 마련, 해외 진출 지원, 혁신거리 조성, 창업 지원 서비스 플랫폼 구축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또 중국 정부는 광둥(廣東)성 선전(深?)이나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등과 같은 2선 도시에 소프트웨어 파크나 하이테크 파크 등으로 불리는 산업단지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 산업단지는 창업(創業)과 창신(創新·혁신)의 쌍창(雙創)기지로 일컬어지며 2018년까지 중국 전역에 28개가 만들어져 정보통신(IT) 중심의 창업을 적극 지원하게 된다. 중관춘이 소프트웨어 중심이라면 선전은 하드웨어 스타트업(창업)이 가장 주목하는 곳이다.

중국 정부의 두 번째 지원은 인재에 대한 투자다. 이미 2011년부터 우수 유학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천인(千人)계획’을 마련했다. 천인계획 대상자로 선정되면 창업 초기 자본금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이르는 모든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연구 착수자금으로 200만~400만 위안이 지급되고 중국의 톱9 대학과 동급의 연봉이 주어진다. 천인계획은 더 나은 배움을 위해 중국을 떠났던 인재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도록 만드는 물질적·정서적 지원책이기도 하다.

세 번째 지원은 투자자가 마음 놓고 신생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투자가의 창업 투자에 대한 실패를 정부가 보상하는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상하이(上海) 시정부가 지난 2월부터 에인절투자 활성화를 위한 보상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게 대표적 예다. 이에 따르면 에인절투자가가 벤처기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해 투자액을 회수하지 못하게 될 경우 최대 600만 위안의 보상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중국 창업의 힘은 민간 영역에 의해 뒷받침되는 측면도 크다. 현재의 창업 열풍이 비록 정부 주도로 펼쳐지고 있긴 하지만 알리바바나 바이두, 텐센트 같은 민간기업이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적극적 투자를 진행해 창업 열기를 달구고 있다.

한 예로 알리바바의 자회사 알리윈은 다른 30여 개 투자회사와 공동으로 ‘촹커(創客)’ 계획을 발표하고 100억 위안 규모의 창업자금 지원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또 텐센트와 레노버 등도 창업센터 개소, 기금 조성 등을 통해 신생 벤처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미 대기업으로 발돋움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유망 스타트업을 상대로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선순환적 창업 문화가 형성된 셈이다.

중국 정부가 중국의 청년 세대를 창업의 길로 이끌기 위해 국력을 쏟아붓는 이유는 무얼까. 중국은 30년 가까운 고도 성장기를 마치고 이제는 ‘신창타이(新常態·중국판 뉴노멀)’라 불리는 중속 성장의 시대에 진입해 있다. 중국 경제 활성화를 위해선 혁신을 무기로 하는 창업이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취업난 해소 목적도 크다. 중국엔 매년 750여 만 명의 신규 인력이 발생한다. 현재 중국 대졸 인력의 절반가량인 300여 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2014년 10.5%에서 지난해엔 15%를 넘어섰다. 방치할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중국 청년은 또 단순히 일자리 자체가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에 대해 강한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 대졸자 취업 연간 보고서(2014)’에 따르면 ‘현재 연봉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56%에 달했다. 이처럼 불만족스러운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로서 창업이 선호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 일고 있는 창업 열기는 결코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중국에서 사상 최대의 창업 붐이 조성되는 건 한국 신생 벤처기업에도 좋은 기회다. 중국 ICT 기업의 성공 사례를 이어 가려는 창업 열기가 향후 5~6년은 지속될 전망으로 중국 창업 생태계를 활용해 더 큰 시장을 상대로 사업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중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청두시에는 7만㎡ 규모의 ‘중·한 혁신창업보육파크’가 지난 6월 문을 열었다. 이 보육파크는 지난해 10월 말 서울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리커창 총리의 발언이 시발점이 됐다. 당시 리 총리는 “중국의 ‘대중창업 만인혁신’ 전략과 한국의 ‘창조경제’ 전략은 모두 청년의 창의력을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중국 진출 시 고려 사항이 있다. 중국은 한국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통신환경과 사용자 습관이 다른 시장이기에 선행 조사가 필요하다. 또 중국 시장은 물론 중국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 요구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전략이 나온다.


3. [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섹시한 퍼스트레이디 후보 멜라니아

대통령 부인을 뜻하는 ‘퍼스트레이디’는 미국에서 유래됐다. 12대 대통령인 재커리 테일러가 1849년 4대 대통령의 부인 돌리 매디슨 여사 장례식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전한다. 18일 클리블랜드에서 개막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대선 후보가 마지막 날 등장하는 관례를 깼다. 연단에 오른 트럼프는 슬로베니아(옛 유고 연방) 출신의 전직 모델인 부인 멜라니아(46)를 ‘미국의 차기 퍼스트레이디’라고 직접 소개했다.

유세 때 언론 노출을 자제한 멜라니아는 흰색 원피스를 입고 나와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동유럽의 억양이 강한 영어로 “미국을 위해 싸울 적임자”라며 남편에 대한 지지를 호소해 박수를 받았다. 한데 연설 중 두 대목이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있었던 미셸 오바마의 연설과 판박이여서 구설에 올랐다. 연설 전 “원고를 직접 썼다”는 말이나 안 했으면 좋았을걸.

‘가장 섹시한 퍼스트레이디 후보’로 평가받는 멜라니아는 트럼프의 세 번째 아내다. 트럼프의 첫 아내, 두 번째 아내도 모델 출신이다. 1996년 미국에 온 멜라니아는 28세 때 뉴욕 나이트클럽에서 24세 연상 트럼프와 만나 2005년 결혼했다. 둘이 사귀던 2000년 남성잡지 GQ에 멜라니아의 요염한 세미누드 화보가 실렸다. 상대 후보가 이 사진을 선거운동에 이용한 탓에 ‘완벽한 몸매’는 더 유명해졌다.

멜라니아는 머리도 비상해 ‘트럼프의 비밀병기’로 불린다. 대학에서 건축과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슬로베니아어 영어 프랑스어 세르보크로아트어 독일어에 능통하다. 한 지인은 “그는 좋은 퍼스트레이디가 되겠지만 그 남편이 걱정”이라고 했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후보인 남편 탓인지 멜라니아도 최근 여론조사에서 역대 최악의 비호감 후보 부인으로 나타났다. 무급에 공식직함도 아니지만 퍼스트레이디는 ‘대통령의 귀’로 통한다. 언제든 대화를 나누고 직언할 수 있어서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최초의 동유럽 공산권 태생 퍼스트레이디에 오를 그는 사진기자들을 바쁘게 할 것 같다.


4. [동아일보][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아이와의 약속에 함정이 있다

형택이(만 4세)는 뭔가 마음에 안 들면 사람을 미는 버릇이 있다. 엄마는 오늘도 키즈카페에 가기 전,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너 오늘은 절대로 친구 밀면 안 돼.” 아이는 알았다고 했다. 말로만 하는 것은 마음이 안 놓여 “약속해!” 하면서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을 찍고, 손바닥으로 복사까지 했다. 그런데 아이는 카페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친구를 밀고 말았다. 놀란 엄마는 부리나케 아이에게 달려가 말했다. “너 엄마랑 약속했지?” 아이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약속 안 지키면 어떤 사람이야?” 아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나쁜 사람요”라고 대답했다. “나쁜 사람한테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주셔? 안 주셔?” 엄마는 내친 김에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이야기했다. 아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은우(만 5세)는 오늘이 엄마가 장난감을 사주기로 약속한 날이다. 옷을 챙겨 입고 막 장난감을 사러 나가려는데, 엄마가 말한다. “아까 가지고 논 장난감들 치워. 장난감 정리 잘 안 하면 새 장난감은 안 사기로 약속했지?” 아이는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에 허둥지둥 장난감을 치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다. 아이는 “갔다 와서 치우면 안 돼요?”라고 말한다. 엄마는 “무슨 소리야? 네가 약속 안 지키면 엄마도 약속 안 지켜.” 아이는 훌쩍이면서 장난감을 치운다. 

나는 종종 “그놈의 약속”이라는 말을 한다. 약속은 지켜야 하고 아이한테 가르쳐야 하는 가치이기는 하나, 아이에게는 너무 어렵고 무거운 개념이다. 그런데 부모들은 자주 ‘약속의 힘’을 악용하여, 아이를 마음대로 다루고 통제하려는 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동생을 때렸어도, 장난감을 사 달라고 해도, 정리를 잘 안 해도, TV를 많이 봐도, 편식을 해도, 친구와 싸워도, 선생님 말씀을 잘 안 들어도, 숙제를 제때 안 해도 부모들은 “너 약속했잖아”를 들이댄다. 그러면 아이는 할 말이 없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너무 대전제이고 상위 가치이기 때문에 대항할 방법이 없다. 일순간 아이는 대역 죄인이 돼서 부모가 풀어놓는 비난을 다 들어야 하고, 무슨 벌이든 달게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육아 상황에서 아이와의 ‘약속’은 뭔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하게 된다. 위의 형택이 엄마도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밀어서는 안 된다’를 가르치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약속을 강조할 게 아니라 “화가 나도 누구를 밀면 안 되는 거야. 기분이 나쁘면 그 친구한테 말로 해”다. 이것 하나만 가르쳐서 다시 들여보내면 된다. 아이가 계속 그 행동을 반복하면 “오늘은 더 이상 놀기 어렵겠다. 다음에 또 오자”며 집으로 오면 된다. 그래야 아이가 ‘다른 아이를 밀면 안 되는구나’를 배운다. 

은우 엄마도 ‘자기가 가지고 논 장난감은 자기가 정리해야 한다’를 가르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는 아이의 마음을 먼저 보고 약간의 유연성을 발휘해도 된다. “네가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은 네가 치워야 하는 것은 맞는데, 갔다 와서 꼭 치우자”고 하면 된다. 약속을 위해 약속을 한 것이 아니므로 그 순서는 좀 달라져도 된다. 그 순서를 꼭 엄마 마음대로 정할 필요는 없다. 아이가 약속을 어겼을 때는 약속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원래 가르치려고 했던 그것을 가르치면 된다. 

사실 아이들은 부모의 무언의 압력으로 억지로 약속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꼭 지켜야겠다는 동기가 있어서, 지킬 자신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논리적인 생각을 갖기에는 아이는 아직 너무나 어리다. 그저 약속을 하지 않으면 혼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혹은 약속을 하면 부모가 그 상황만은 칭찬을 해주기 때문에 ‘멋모르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키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 부모는 그렇게 얼렁뚱땅 한 약속을 어겼다고, 아이를 비난하고 협박하고 죄책감까지 준다. 그리고 당당히 아이를 통제한다. 약속을 못 지켰다는 것을 전제로 자꾸 타율로 가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아이의 자율성, 책임감, 자기 효능감, 자존감 등은 모두 떨어지게 된다. 벌이 두려워서 싫지만 억지로 지키게 될 때도 아이의 자율성, 책임감, 자존감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이때는 욕구 불만이 생기고 무력해지기까지 한다. 

아이와의 약속은 지킬 수 있는 현실적인 기준으로 최소한만 정하되, 그것도 아이와 충분히 합의가 되어야 한다. 부모의 일방적인 지시가 ‘약속’의 형태가 되면 안 된다. 어겼을 때도 융통성을 좀 발휘해 줘야 한다. 약속은 부모가 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5. [주간경향][백가흠의 눈]소설, 비즈니스 클래스 탑승기

소설가 S는 처음으로 비즈니스 클래스를 탔다.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아테네가 최종 목적지였다. 항공 마일리지라는 것이 막상 사용해 보니 제법 쏠쏠했다. 잊고 부었던 적금 만기 같았다. 소설가라는 직업이 원래 놀아도 일인지라 여행의 목적은 말로는 항상 거창했다. 그는 조금 들떠 있었는데, 말로만 들었던 비즈니스 클래스를 경험해볼 참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글을 흘깃거리거나 주변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기대감은 점점 커졌다. 그는 자신이 타고 가는 비행기 가격을 알고 깜짝 놀랐다. 자중하려던 기대감은 그리하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올랐다.

그는 시간에 쫓기면서도 공항 비즈니스라운지에 들러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생맥주도 한 잔 하면서 여유를 만끽했다. 모든 시설이 공짜라는 말에 집에서 나오며 샤워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비행기 타기 전에 씻고 싶다는 이상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내심 더 일찍 집에서 나올 것을 하고 후회했다.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막상 탑승시간에 쫓겨 그는 정신없이 발을 떼었다. 비행기는 2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게 참 신기했다. 그는 갑자기 모든 게 생소해서 긴장되었다. 비행기를 제주도 갈 때도 타 보고 부산 갈 때도 타 보고 외국에도 몇 번 다녀온 적이 있어서 익숙했지만, 2층 좌석의 비즈니스 클래스는 참 낯설었다. 개인좌석이 넓은 것도 그렇고 널찍한 공간에 사람들이 몇 명 없는데 승무원들이 많은 것도 그랬다. 그는 좀 부자연스러웠고, 뭔가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어려운 자리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그저 자격지심이겠거니 스스로를 다독였다. 곧 승무원이 와서 무릎을 꿇고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그녀의 미소는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그런데 승무원이 무릎을 꿇고 인사하고 식사 주문을 받는 그 시간이 그는 아주 길고 어렵게 느껴졌다. 괜히 옆 사람을 흘깃거리며 당황한 자신이 좀 촌스러운 건가 조바심마저 일었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앉은 남자는 샴페인을 마시며 여유롭게 승무원에게 이것저것을 계속 주문했는데, 그게 그렇게 부럽거나 편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이 불편함을 겪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기대했던 식사시간이 되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비즈니스 클래스에 탄 것을 후회했다. 음식이야 평소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맛보는 것보다도 훌륭했으나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근사한 유리잔에 음료를 담아 마시고 식기에 서빙을 받아 나이프나 포크를 두 개씩 사용하며 음식을 먹는 일이 그리 우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꾸 뭔가 신경 쓰이고 불편했다. 솔직히 그 풍경은 좀 우스꽝스러웠다.

그가 유일하게 승무원에게 말을 건 순간은 누군가 사용한 잔에 음료를 따라줘서 바꿔달라고 한 것이었다. 그것도 누군가 알아서 승무원이 난처해질까 그는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동행도 없는 아래층의 이코노미 클래스가 괜스레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한잠 자는 사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비행기는 내렸고, 그는 아테네로 향하는 비행기로 환승했다. 독일 국적 항공이었고 역시 비즈니스 클래스였는데, 한국 항공사에 비해 서비스는 초라했다. 승무원은 말할 때마다 무릎도 꿇지 않았고 유리로 된 근사한 와인잔이나 식기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비즈니스석에 사람이 적으니 승무원 한 명이 모두를 서브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그 편안함의 정체에 대해 그는 아테네 도시의 야경이 눈에 들어올 때까지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곰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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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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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9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총선 참패 ‘친박’ 책임론 희석시킨 새누리 백서

새 누리당이 그제 공개한 4·13 총선의 참패 원인을 정리한 국민백서를 놓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마지못해 내놓은 ‘면피용’ 백서라는 지적이다. 백서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제대로 진단해 앞으로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교훈을 얻기 위해 만드는 ‘반성문’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백서에는 처절한 반성과 참회가 없다. 외부 전문가와 일반인, 당원, 총선 경선 후보 등의 의견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했을 뿐이다. 집권 여당이 2당으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고도 겨우 이런 백서를 내려고 지난 석 달여 동안 시간을 허비했는지 한심하기만 하다.

새누리당은 선거 참패의 책임 소재를 제대로 규명하지 않고 주변 인사들의 얘기나 늘어놓을 생각이었다면 차라리 백서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 ‘배신자’를 찍어 내겠다며 공천권을 휘두른 친박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 만한 이들은 다 아는데도 백서가 이를 ‘계파 간 공천 갈등’이라고 눈 가리고 아웅을 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대선을 치를 생각이 있는 정당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총선 당시 새누리당은 공당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친박들이 ‘완장’을 차고 공천권을 휘둘렀다. 이한구 전 공천관리위원장의 오만하고도 독선적인 공천위 운영에 친박 인사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선거 때 ‘진박’ 사진 마케팅을 벌여 민심을 악화시킨 이도 친박들이었다. 친박 인사들의 경거망동이 선거를 망쳤는데도 이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지 않은 것은 아직도 새누리당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 줄 뿐이다. 오죽하면 이번 백서가 “친박 계파 패권주의에 굴복해 면죄부를 줬다”는 얘기까지 나오겠는가.

그런데도 백서에서 선거 패배의 책임자로 실명으로 거론한 이는 이씨와 김무성 전 대표 등 두 명뿐이다. 친박의 막장 공천에 반기를 들고 막판에 ‘옥새 파동’을 벌인 김 전 대표의 책임도 당연히 없지 않다. 하지만 이 두 사람에게 당 패배의 책임을 씌우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이씨가 공천 전횡을 하도록 멍석을 깔아 준 것도 친박이고, 뒤에서 손뼉 친 것도 친박인데 뒤늦게 그를 희생양으로 몰아가는 것은 친박 책임론을 희석시키는 꼼수일 뿐이다. 김희옥 비대위원장은 백서를 내고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하다”고 했다. 과거의 진실을 가리는 선거 참패 ‘흑서’를 내는 새누리당의 미래가 안 보인다.

2. 檢 ‘제2의 진경준’ 막을 대책 내놓으라 

진 경준 검사장의 구속 사태를 맞아 검찰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3월 진경준 검사장이 156억원 상당의 재산을 신고한 이후 양파 껍질처럼 벗겨지는 그의 비리를 보면서 국민적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국민으로부터 부패를 척결하고 사법 정의를 세우라는 임무를 위임받은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자신과 친인척의 재산을 불리는 참담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진 검사장은 게임업체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회장에게서 10억원의 주식매각 대금과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에서 복귀한 직후 제네시스 차량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한진그룹을 압박해 처남의 청소용역 업체에 130억원 상당의 일감을 몰아준 파렴치한 범죄도 구속 사유다.

‘진경준 사태’는 우리 사회의 권력 시스템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다. 검찰 내부의 고장 난 감찰 시스템은 물론 검사장 승진 과정에서 검증을 제대로 못 한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도 지적받아야 한다. 진 검사장이 평검사 시절 비상장 넥슨 주식을 1만주나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2009년 9월부터 2010년 8월까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으로 근무했다. 부장·차장 검사는 물론 주식을 대거 보유한 평검사도 금융 관련 업무를 보는 데 제한 장치가 없다는 점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더 욱 우려되는 것은 ‘제2, 제3의 진경준’이 과연 존재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홍만표 전 검사장이 연루된 최근의 법조 비리에 비춰 볼 때 교묘한 수법으로 검찰 권력을 이용해 개인 재산을 축적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진 검사장과 김 회장처럼 학연과 지연으로 결탁된 범죄는 지금 이 시간에도 은밀하게 싹트고 있을 것이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어제도 국회에 출석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이면서 재발 방지를 거듭 약속했지만 과거 사례에 비춰 공염불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권력과 돈의 검은 유착이 횡행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이번 사건이 보여 주듯 검은돈은 늘 비호 세력을 찾고 있다. 제도적인 견제 장치 없이는 언제든지 제2의 진경준 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구조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이번에 국민은 똑똑히 목격했다. 기소 독점주의라는 방패막이 뒤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왔던 검찰은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한 상태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검찰 조직을 위해서라도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같은 제도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3. 열정과 노력의 가치 되찾아야 미래 있다

반 세기 전까지만 해도 글로벌 무대의 중심에 자리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행복을 유예하는 것쯤은 당연시 여기며 헌신한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빈손으로 시작한 이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열정이었다.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것은 ‘지금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절실한 염원이자 간절한 기구(祈求)였다. ‘열정과 노력’은 보상받는다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는 개발 시대 도덕성 붕괴를 지연시키고 최소한의 사회적 건강을 유지하게 한 정신적 바탕이기도 했다.

서울신문이 창간 112주년을 기념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1970~1980년대 사회 분위기의 일단을 보여 준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50대와 60대는 짐작처럼 ‘열정과 노력’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젊은 시절을 개발 시대 경제 활동의 최일선에서 보낸 세대다. 하지만 20대와 30대는 ‘경제력’과 ‘인맥’을 각각 첫 번째와 두 번째로 들었다. 40대는 ‘경제력’이 가장 많았지만 두 번째는 ‘열정과 노력’이라고 답했다니 세대별 의식 차이는 분명하다. 20~30대는 분명 글로벌 금융위기 뒤끝의 저성장 시대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고달픈 세대다. 극심한 ‘취업 절벽’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취업에 성공해도 일자리의 질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해도 ‘경제력과 연줄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보편화돼 있다는 사실에는 우울함을 감추기 어렵다.

[동아일보]

4. 현대車-현대重 연대 파업, 일자리 잃는 자해행위 아닌가

현 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노조가 이번 주 19, 20, 22일 3차례에 걸쳐 부분적으로 생산을 중단하는 연대 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21일에도 부분 파업하기로 해 오늘부터 4일 연속 파업한다. 국내 제조업을 대표하는 두 노조의 동시 파업은 1993년 현대그룹노조총연맹의 공동 파업 이후 23년 만이다.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 직원 평균임금이 9600만 원인 현대차와 7800만 원인 현대중 노조가 거리로 나오는 상황을 온당하게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올 들어 현대차가 국내에서 만든 자동차 비중은 전체 생산 대수의 36%로 10년 전의 절반 수준이다. 글로벌 시장에 가깝고 생산비가 싼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한 결과다. 국내 전체 생산량이 급감하고 있어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의 지위를 인도나 멕시코에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졌다. 구조조정 대상인 현대중이 고통 분담을 하기는커녕 파업에 나서는 것은 혈세로 조선업을 지원한 국민의 뒤통수를 치는 격이다.

현 대차 노조는 기본급 7.2% 인상 및 일반 연구직 조합원에 대한 승진거부권 보장을, 현대중 노조는 기본급 5.09% 인상과 우수 조합원 100명 이상에 대한 해외연수 등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야 어떻게 되건 단물만 빨아먹고 내 밥그릇만 챙기겠다는 발상이다. 대우조선해양에 기생하며 회사를 거덜 낸 정피아 낙하산 집단과 뭐가 다른가.

현대차에 따르면 지난해 부분 파업과 잔업 거부로 입은 손실은 4500억 원에 이른다. 무엇보다 글로벌 기업이 한국 진출을 외면하고 국내 기업은 해외로 이전하는 양상이 심화하고 있다. 제조업 공동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는 오랜 기간에 걸쳐 경제에 회복할 수 없는 심각한 상처를 안길 것이다.

두 대기업 노조의 파업을 계기로 정부와 국회는 노동개혁의 시동을 다시 걸 필요가 있다. 노동 4법 가운데 파견법 개정안은 대상 업종을 용접 도금 등 뿌리산업으로 확대해 파업으로 초래되는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 럼에도 주목해야 하는 것은 결과로 나타난 수치가 아니라 행간에 담긴 젊은 세대의 목소리여야 한다고 믿는다. 조사 결과 부모·자녀와 비교해 경제환경을 묻는 또 다른 질문에 50대 이상은 ‘부모보다 더 잘살고 있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어섰다고 한다. 반면 20대와 30대는 ‘부모보다 잘산다’는 응답이 각각 8.9%와 14.0%에 불과했다니 부모 세대와 비교해도 상대적 박탈감은 매우 크다. 특히 ‘우리 사회의 불공정한 분야’를 골라 달라는 질문에 20대는 ‘고용’이라는 응답이 절반에 육박했다고 한다. 원인을 알았으면 치유의 길은 가깝다.

열정과 노력의 가치가 부각되지 않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열정과 노력 대신 경제력과 인맥이 성공의 지름길로 인식되고 있는 사회라면 병세는 벌써 깊다. 20~30대의 진단대로 우리 사회는 우선 고용의 불공정부터 회복해야 한다. ‘로스쿨’ 입학에서부터 기능직 채용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갑질 문화’를 청산하는 것은 50~60대 기성세대의 몫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제도적 모순을 없애는 데 다시 한번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20~30대는 그들대로 ‘현실의 벽’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한번 용기를 발휘하기를 바란다. 경제력과 인맥에 기가 죽어 열정과 노력을 포기하기에는 젊음이 너무 아깝다.

5. 검찰개혁, 결국 청와대 의지가 관건이다

김 현웅 법무부 장관은 어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사태에 대해 “법무장관인 저 스스로도 한없이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사죄했다. 그러나 김 장관은 주식 대박 의혹이 터졌을 때 바로 감찰에 착수하지 않은 초동 대처의 문제에 대해선 언급을 피해 사과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남겼다.

김수남 검찰총장 역시 어제 전국 고검장 회의를 열고 사과한 것을 비롯해 진 검사장의 파렴치한 비리에 대한 자성의 소리가 내부에서도 높다. 김 총장은 재산등록에 대한 심층 감찰 등 검찰 쇄신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견제받지 않는 비대한 검찰권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직시해 해결책을 찾지 않고선 개혁에 성공할 수 없다.

2012년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의 9억 원대 수뢰사건이 터졌을 때도 검찰은 사과와 함께 외부인을 영입한 감찰위원회 강화 등의 대책을 내놓았으나 ‘스폰서 검사’ ‘성추문 검사’ ‘뇌물 검사’ 비리가 꼬리를 물었다. 이날 새누리당 권성동 법사위원장이 법무부 차관에게 비리 근절 대책을 시급히 마련토록 했지만 검찰에 ‘셀프 개혁’을 맡겨서 될 일이 아니다.

어제 검사 출신 야당 의원들이 개최한 ‘검찰개혁 방향과 과제’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검찰의 근본적 문제는 지나치게 큰 권한에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의 어느 검찰보다 우리 검찰은 직접수사권과 수사지휘권, 기소권, 공소유지권, 형집행권을 독점하는 막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다. 비대한 검찰권은 결국 부패하고 남용의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제2, 제3의 진경준 비리가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검찰권을 적절하게 통제해야 한다.

이 명박 정권 시절 검경 수사권 조정이 논의될 때 직을 걸고 검찰 수사권을 지킨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는 개업 이후 한 해 100억 원 넘게 수임했다. 이것이 전관예우(前官禮遇)와 무관하다고 보는 국민은 없다. 그가 왜 검찰 수사권을 그토록 지키려 했는지 알 것 같다. 검찰 권력을 축소하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선진국처럼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거나 검찰인사위원회를 강화하고 청와대 파견 검사는 검찰에 복귀할 때 일정 기간 임용을 제한하며 부당한 축소 수사를 막는 재정신청 제도를 확대하는 견제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검찰개혁의 성패는 박근혜 대통령과 국회에 달려 있다.

[이데일리]

6. 자동차업체들 국내 고객 차별 너무하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새 차를 판매하면서 인체유해 성분인 메탄올 워셔액을 넣어주고 있다고 한다. 자동차 앞 유리를 닦을 때 쓰는 세정액으로 메탄올 성분이 들어간 워셔액을 주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를 비롯해 기아차,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 등 5개 업체들이 모두 마찬가지다.

운 전자가 워셔액을 사용할 때마다 메탄올이 공기 중으로 뿜어진다는 게 문제다. 메탄올을 5㎖만 흡입해도 중추신경을 마비시켜 두통이나 구토 등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하게 된다. 심할 경우 실명까지 야기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운전자뿐만 아니라 도로 보행자들도 잠재적인 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메탄올 사용을 규제하는 명확한 규정이 없는 점도 맹점이다. 미국, 독일 등 자동차 선진국에서는 차량 워셔액으로 인체유해 정도가 약한 에탄올을 사용하도록 지침을 내리고 메탄올은 엄격 규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관련 규정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대형마트나 자동차 용품 매장에서 판매되는 워셔액이 모두 메탄올을 함유하고 있을 정도다.

이 들 자동차업체들이 내수용과 수출용 차량에 차별을 두는 이중잣대도 질타를 받기에 충분하다. 해외 수출용 신차에는 현지 규정을 이유로 에탄올 워셔액을 넣고 국내출고 신차에는 메탄올을 사용한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 소비자는 봉’이란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지 않는가.

최근 계속되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내수시장 중요도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이와 함께 시장이 판매자 중심의 ‘셀러스 마켓’(seller’s market)에서 소비자 중심인 ‘바이어스 마켓’(buyer’s market) 으로 재편된 지도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내수차량과 수출차량에 차별을 두어 국내 소비자들의 애국심에만 의존하는 판매전략은 접을 때가 됐다. 이미 국내출고 차량에 부착된 저가 에어백과 범퍼 부실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마당이다. 여기에 워셔액에 있어서까지 차별을 둔다면 소비자들의 집단 반발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국산차 업체들은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와 배려를 더 이상 늦춰선 곤란하다. 품질 강화와 서비스 개선에 소홀해서는 제 발등을 찍는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7. 박 대통령 귀국 이후 사드 해법을 묻는다

최 근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출장 때마다 국내에서 미묘한 사안들이 이어지고 있다. 으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정도다. 그러나 밖에서 아무리 뛰어난 외교적 성과를 아무리 거둬도 안이 시끄러우면 말짱 헛일이다. 박 대통령이 4박5일에 걸친 몽골 공식방문을 마치고 어제 오후 귀국한 이번에도 또 그런 처지다. 이번엔 사드(THAAD) 미사일방어체계의 경북 성주 배치에 따른 혼돈을 조기에 수습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발등의 불이다.

황 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15일 성주 군민들을 설득하려고 한민구 국방장관과 함께 현지로 내려갔다가 계란과 얼음물병 세례의 곤욕을 치르며 6시간 반이나 극렬 시위대에 갇혔던 사건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총리가 대통령 부재중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는 건 사실상의 국정 공백을 의미한다. 정부는 “통신선이 유지됐으므로 국정 공백은 아니다”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당시 황 총리는 휴대폰과 국정 현안이 적힌 수첩까지 빼앗긴 상태였다.

박 대통령의 가시적인 대처가 필요한 이유다. 가장 급한 것은 국민 설득이다. 또다시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뒤에 숨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기자회견 등을 통해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고 성주 군민들도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요긴하다.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 관행을 과감히 떨치고 사드 배치의 현실적 측면을 인정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등 야권 인사들도 폭넓게 만나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사

드 배치에 집단 반발한 새누리당 소속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과 성주군수 등에 대해서도 분명한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 아무리 선출직이라지만 근거 없는 ‘사드 괴담’을 부채질한 행태를 모른 체 넘어가는 것은 국정 최고책임자의 덕목이 아니다. 지난 총선에서 ‘박근혜 마케팅’으로 당선되고도 이제 와서 표심에 눈멀어 박 대통령 등에 비수를 꽂는 그들의 몰염치를 응징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레임덕을 재촉하는 꼴밖에 안 된다.

황 총리 억류사태에 대한 수사도 서둘러야 한다. 성주 군민들이 더 이상 폭력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은 다행이나 외부세력의 개입이 드러난 만큼 철저한 진상 규명이 따라야 한다. 폭력행사 관련자를 엄벌하고 애먼 군민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앙일보]

8. 석연치 않은 우병우 민정수석의 처가 건물 매각 과정

우 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뇌물 혐의로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의 소개로 처가 건물을 넥슨 측에 팔았다는 일부 보도가 나오면서 이번 사건은 그 파장을 쉽게 가늠할 수 없게 됐다. 진경준 검사장 사건의 특임검사가 우 수석에 대한 조사에 나서거나 국회가 특검을 도입해 수사를 벌일 경우 박근혜 정부의 최대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우 수석은 “처가 건물은 정상적 거래 절차를 통해 넥슨에 팔렸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한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수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우 수석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것은 지난해 진경준 검사장 승진 때 인사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과 120억원대 주식 대박 사건이 불거졌는데도 미온적 반응을 보인 데 따른 것이다. 이런 와중에 우 수석 처가의 건물이 2011년 3월 진 검사장의 주선으로 넥슨코리아에 1300억원대에 매각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김정주(넥슨 창업주)-진경준-우병우’의 커넥션을 의심하는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우 수석은 입장문을 통해 처가 소유의 부동산 매매에 전혀 관여한 바 없고 김정주 대표와는 단 한 번도 접촉한 일이 없으며 10억원에 가까운 중개수수료를 지급하는 등 정상적 거래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례적이고 신속한 대응이다. 이 같은 우 수석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혹이 완전히 풀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넥슨 측이 강남역 인근 골목에 있는 건물을 굳이 살 필요가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넥슨이 매입을 완료한 시점은 2011년 3월이지만 건물 협상은 2010년부터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거래가 침체된 때여서 석연치 않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당시 넥슨 측이 경기도 판교에 신사옥을 짓고 있었던 점도 의혹을 부추긴다.

1000억원대의 상속세 납부 문제로 고심을 하고 있던 우 수석을 위해 진 검사장이 넥슨 김 대표에게 부탁을 해 호의적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진 검사장의 주식 대박 사건이 불거진 이후 우 수석과 김현웅 법무장관의 수수방관적 언행 때문에 검찰 수사가 한동안 표류한 것도 사실이다. 이번 사건이 진 검사장 개인에 대한 처벌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마침 김 장관이 국회에서 “구체적 범죄 혐의나 수사 단서가 확인되면 당연히 수사의 필요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고 하니 검찰의 대응을 국민들은 주시할 것이다. 검찰도 청와대나 법무부의 눈치를 보지 말고 넥슨 관계자부터 소환해 부동산 거래 내역 등을 면밀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또 이미 신병이 확보된 진 검사장을 상대로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조사할 것을 촉구한다. 홍만표 전 검사장과 진 검사장 사건으로 검찰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검찰은 정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상기했으면 한다.

9. 포켓몬 고 뜨자 “규제 풀겠다”는 뒷북 정부

정 부가 어제 게임문화진흥계획을 발표했다. 게임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마이스터고를 설립하고 청소년은 0시부터 6시까지 무조건 게임에 접속할 수 없도록 한 현행 강제적 셧다운제(신데렐라법)를 부모 선택제로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간 꽁꽁 묶어놓았던 게임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김종덕 문화체육부 장관은 “포켓몬 고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켓몬 고 열풍이 불 때 정부의 이런 대응은 이미 예견됐던 바다. 2008년 닌텐도DS가 빅히트하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는 왜 저런 것을 못 만드나”라고 했다. 몇 달 전 알파고 열풍이 불자 정부는 그전까지 나 몰라라 했던 인공지능(AI) 분야에 대규모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이런 정부의 뒷북 대응에 업계는 이미 이골이 나 있다. 오죽하면 게임업계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이럴 줄 알았다”며 “안 도와줘도 되니 방해하지만 말아 달라”고 말하겠나.

전 세계에 둘도 없는 신데렐라법과 각종 규제로 우리가 쥐고 흔들던 온라인 게임산업의 패권은 중국에 넘어간 지 오래다. 지금은 되레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2010년 2만658개이던 국내 게임업체 수는 지난해 1만4440개로 5년 새 30%가 급감했다. 게임업계 종사자 수도 2012년 5만2466명에서 작년에는 3만9221명으로 25%가 줄었다. 산업의 활력도 사라졌다.

포켓몬 고의 성공을 부른 것은 증강현실이다. 실제 공간과 가상의 객체를 연결하는 증강현실은 100% 허구의 세계인 가상현실, 인공지능과 더불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3대 핵심 키워드로 불린다. 4차 산업혁명의 성패가 이들에게 달렸다. 게임이야말로 이들 3대 키워드를 관통하는 산업이다. 게임산업을 잃는 것은 무한한 미래가치를 잃는 것과 같다. 1990년대 한국 게임산업은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화려한 성공신화를 썼다. 뒤늦게 정부가 규제 완화로 가닥을 잡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포켓몬 고 열풍을 타고 반짝 시늉만 냈다간 또다시 ‘그럴 줄 알았다’는 소리나 듣게 될 것이다.

[매일경제]

10. 불안한 지구촌, 해외여행 안전이 최우선이다

지 난 14일 프랑스 니스의 트럭 테러 당시 한국인 60여 명이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들의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가족들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16일 터키 군부 쿠데타 당시 이스탄불 공항에 발이 묶인 140여 명의 한국 여행객은 10시간 동안 극도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테러 공포와 정정 불안에 휩싸인 나라가 늘어날수록 지구촌을 누비는 한국인들은 더 많은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지난해에는 2000만명 가까운 한국인이 해외로 나갔다. 10년 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해마다 방학과 휴가철에는 관광과 연수, 선교 활동을 위해 출국하는 이들이 크게 늘어나는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끼어 있는 올해 7~8월에는 작년 같은 기간(350만명)보다 많은 이가 해외로 나갈 것으로 보인다. 온갖 범죄와 테러, 전염병 같은 위험에 그만큼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재외국민 사건·사고는 지난 5년 새 연간 7000여 건에서 1만3000여 건으로 급증했다. 한국인이 피해자가 된 사례는 작년 한 해에만 8000여 건에 이르렀다. 2004년 무역회사 직원 김선일 씨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피살되고, 2007년 분당샘물교회 자원봉사자 23명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인질로 잡힌 것을 비롯해 지난 10여 년 새 한국인 피랍 사건도 끊이지 않았다.

이제 선진국에서조차 무고한 민간인(소프트 타깃)을 겨냥한 테러가 잇따르고 있다. 이슬람국가(IS)는 한국도 공격 대상에 올려 놓았다. 필리핀에서는 불과 몇 년 새 한국인 수십 명이 피살됐고 올림픽이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강력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그 럴수록 정부는 재외국민 안전 확보를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위기 대응 시스템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여행자 스스로 안전을 위한 행동 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정부가 여행 자제를 권고했음에도 관광과 사업, 선교를 위해 무리하게 위험 지역에 들어가서 사달이 난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정부는 위험 지역에 대해 여행유의, 여행자제, 철수권고, 여행금지로 구분해 경보를 내리는데 이 안내만 잘 따라도 불필요한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신문][씨줄날줄] ‘서울마당’/구본영 논설고문

서구의 도시들은 다중이 모이는 넓은 공간, 즉 광장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그리스 아테네의 아고라가 그 원형이다. 동양권의 도읍에도 마당과 같은 공터는 있었지만 대개 소규모였다. 남사당패가 공연하던 우리네 시골 장터를 떠올려 보라.

르 네상스 시대 이래 도시계획가들은 광장을 도시의 중심적 위치에 놓고 설계했다. 이탈리아 로마의 콜론나·시에나의 캄포,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 등이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광장 중심의 도시 공간 구조라는, 구대륙의 전통은 신대륙에서도 계승됐다. ‘빌리지 스톰퍼스’의 경음악으로 더 유명해진 뉴욕의 ‘워싱턴 스퀘어’가 대표적이다. 뮤지컬 영화 ‘에비타’에서 본 아르헨티나의 ‘5월의 광장’도 그랬다. 에비타로 분한 마돈나가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란 애절한 노래를 부른 무대가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심장부인 대통령궁 발코니였으니….

소 설가 최인훈은 ‘광장’에서 남북 분단의 현실을 뛰어넘는 유토피아로서 광장을 그렸다. 하지만 유토피아의 어원 자체가 ‘아름답지만 세상에는 없는 곳’이란 뜻이다. 최인훈이 꿈꾸던 이상향과 달리 현실에서의 광장은 역사적으로 늘 불온한 공기가 감도는 곳이었다. 고대 아테네 시민들은 아고라에 모여 도자기 파편에 이름을 적는 방식으로 독재자가 될 소지가 있는 인물들을 추방했다. 소위 ‘도편 추방제’였다. 1989년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시민들이 탱크를 동원한 중국 군부에 의해 진압된 6·4사건도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일어났다.

몇 년 전 파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에펠탑에서 샹젤리제 거리를 거쳐 콩코르드 광장까지 걸었던 기억이 난다.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콩코르드 광장은 평온했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등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무시무시한 역사를 갖고 있는 광장이 편안하게 다가온 까닭이 뭐겠나. 양쪽이 차도로 차단돼 보행인의 접근이 어려운 광화문 광장과 달리 쉽게 다가가 쉴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일 듯싶다.

정도(定都) 600년을 넘긴 서울에 작지만 아름다운 시민 광장이 생겨났다. 어제 창간 112주년을 맞은 서울신문사가 세종대로 사옥 앞에 잔디와 거장 이우환의 조형물 등으로 조성한 2600㎡의 공간이다. 시민들이 가까이서 체취를 나누며 생각을 교환하는 작고 정겨운 광장을 만드는 것이 21세기 도시계획의 대세다. 엄청난 군중을 동원하려는 큰 광장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일지도 모르겠다.

본사는 시민 공모를 통해 ‘서울마당’이란 이름을 골랐다.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조곤조곤 정담을 나눌 이 쉼터에 우리네 수도 서울의 새로운 스토리가 입혀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렇다면 굳이 먼 나라의 넓은 광장을 부러워해야 할 이유도 없다. 누군가 ‘작은 것은 아름답다’고 했다.


2. [머니투데이][정유신의 China Story] 바뀐 독서습관과 인터넷쇼핑

중국정부가 인터넷 활용을 중시하는 인터넷플러스전략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면서 인터넷쇼핑이 양적 질적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인터넷쇼핑이란 뭔가. 보통 PC나 휴대폰을 통해 상품·서비스를 구입하는 걸 말하는데, 기업과 개인간의 B2C 거래와 개인간의 C2C 거래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론 인터넷쇼핑 웹사이트에서 상품정보 검색 및 수주, 결제와 배송까지 모든 구입절차를 마칠 수 있다.
어 느 정도 확산되고 있나. 2015년 12월 중국의 인터넷쇼핑 고객수는 4.13억명으로 2014년보다 5183만명 증가했다. 증가율이 14.3%로 인터넷 이용자 증가율 6.1%의 2배 이상이다. 질적 측면을 좀 더 들여다보면 첫째, 스마트폰을 통한 인터넷쇼핑 고객 수가 급성장세다. 지난해 말 기준 고객 수는 3.4억명, 전년 대비 증가율은 43.9%로 인터넷쇼핑 고객 전체의 82.3%를 차지한다. 인터넷 중에서도 스마트폰 쇼핑이 갈수록 보편화한다는 얘기다. 둘째, 소셜미디어, 소셜사이트를 활용한 인터넷쇼핑도 활발하다. 지난해말 고객수는 1.45억명으로 2014년보다 19.1%(2330만) 증가. 텐센트의 웨이신을 이용한 웨이상 모델, 텐센트와 징동 의 공동 빅데이터를 이용한 인터넷쇼핑 등이 유명하다.

셋째, 특히 해외 인터넷쇼핑도 관심의 대상이다. 해외 인터넷쇼핑은 해외 쇼핑사이트에서의 직접구매, 중국 내 전자상거래업체를 통한 간접구매, 중국에 입주한 해외업체의 쇼핑사이트를 통한 구매로 구분되는데, 2015년 그 고객 수가 2014년 2356만명에서 4091만명으로 급증했다. 증가율은 무려 135.8%, 인터넷쇼핑 총고객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년 만에 4.8%에서 9.9%로 2배 이상 높아졌다. 급등 이유로는 소비재 수입 확대, 소비관세율 인하 등 중국 정부의 소비촉진정책과 중국 소비자들의 외국제품에 대한 관심을 꼽는다. 특히 소득증가로 품질에 민감한데다 인터넷쇼핑을 통해 외국제품에 대한 다양한 정보, 브랜드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인 터넷쇼핑 판매액은 얼마나 되나. 중국 통계국에 따르면 2015년 인터넷쇼핑 판매액은 전년 대비 33.3% 증가한 3조8800억위안(약 700조원)으로 중국 총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2.9%. 특히 관광상품이 판매액 6349억위안(약 114조원)으로 가장 높은 증가율(42.4%)을 기록해서 최근 중국인들의 국내외 여행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한다고 한다. 인터넷쇼핑 거래건수도 2015년 256억건(1인당 62건)으로 전년 대비 35%나 급증했다.

인터넷쇼핑 판매의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보자. 첫째, 2013~2015년 ‘인터넷쇼핑 톱5’를 보면 의류 및 신발이 3년 연속 1위로 부동의 인기품목이고 일용잡화가 2위, 순위에 없던 녹음 및 녹화제품이 단번에 3위로 도약했고 가전제품은 5위를 유지했다. 녹음 및 녹화제품 판매가 급증한 것은 인터넷판매 할인율이 큰 데다 중국인의 독서습관이 빠르게 바뀌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5년 기준 중국 성인의 독서는 디지털서적에 의한 비중이 전년 대비 6%포인트 높아진 64%로 일반서적 36%보다 훨씬 높다.

둘째, 성별 특징은 어떤가. 남성의 인터넷쇼핑 금액은 지난해 기준 1만25위안(180만원)으로 여성보다 약 15% 많다. 주로 PC, 디지털제품 등 단가가 높은 제품소비가 많고 여성은 화장품이나 미용제품, 유아용품 등 중저가소비가 주류라고 한다. 셋째, 최근 급증세인 해외 인터넷쇼핑의 인기품목과 지역은 어떤가. 해외 인터넷쇼핑에선 역시 화장품과 미용제품의 비중이 53.4%로 단연 압도적이라고 한다. 분유 및 아기용품, 의류 보건 관련 제품도 인기품목이다. 지역적으론 미국이 48%로 1위고 일본 45.3%, 대한민국 37.8%, 호주 18.6%, 독일 16.6%의 순으로 톱5를 형성했다.

이처럼 빠른 확장세를 보이는 만큼 중국 인터넷쇼핑업계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까진 알리바바의 톈마오와 징동이 시장의 80~90%를 장악했지만 지난해부터 또다른 전자상거래업체 쑤닝 등이 뛰어들면서 업체간 M&A, 한정판매, 특가바겐세일 등 경쟁이 본격화됐다. 이에 따라 중국 내 이익률이 하락하면서 알리바바 등을 중심으로 해외 인터넷쇼핑 진출을 서두른다는 분석이 나온다.


3. [서울신문][남순건의 과학의 눈] 상상력과 미적 감각의 산물, 과학

요 즘 들어 창의력과 상상력을 강조하는 말들이 자주 들린다. 최근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도 이런 차원 때문일 게다. 흔히들 인문학이 물리학 같은 ‘딱딱한’ 과학보다 훨씬 더 상상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적 상상력이라는 말에 더 익숙한 이유도 과학에는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편견 때문이다.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과학에서는)상상력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과학의 발전이 정확한 지식과 이성적 판단에만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창의적 과학 연구는 상상력, 직관력 그리고 미적 감각에 기대는 바가 많다. 과학 분야 연구라는 것이 교과서나 참고서의 문제처럼 주어진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계속 던져 온 근본적인 질문들, 예를 들어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새로운 답을 찾아내는 과정이 바로 과학이다. 과학자들은 전인미답의 길을 가고 지도에 없는 새 항로를 개척하려는 탐험가들과 같다. 그래서 용기도 필요하고 상상력도 필요하다. 미국 하버드대 과학사학자 제럴드 홀튼 교수가 1970년대에 당시에는 생소한 ‘과학적 상상력’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도 그런 차원에서다.


혹 자는 또 과학은 미적 감각과 가장 거리가 먼 분야라고 이야기한다. 과학에서 미적 감각이란 자연이 보여 주는 아름다움에 대해 과학자들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각자가 다르게 해석한 형태로 표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미술에 여러 화풍이 있고 화풍마다 보이는 대상을 달리 표현하는 것과 흡사하다. 다양한 표현들 중에는 보다 많은 호응을 얻는 것도 있고 소수만이 그 가치를 아는 경우도 있다. 과학에서는 이런 방식의 창의적 연구활동들이 모여 엄청난 과학적 성과와 세계관을 만들어 왔고 상상을 초월하는 큰 혜택을 인류에게 가져다줬다.

과학에서 성공하기 위해 또 한 가지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행운이다. 비과학적 이야기 같지만 과학에서 행운은 ‘거인의 어깨 위에 앉을 수 있어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 하버드대 시드니 콜먼 교수가 이야기한 ‘내 앞에 나보다 키 작은 사람들이 많이 서 있어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이다. 이런 행운은 앞서 언급한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창의적 연구성과들이 모일 때 가능한 것이다.

과학에서 창조적 결과를 많이 이뤄낸 경험이 있는 선진국들에서는 과학자들 스스로 연구 방향과 방법을 정하도록 하고 이를 위한 제도와 재원을 마련해 주는 방식으로 과학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빨리, 그대로 답습하고 추격하는 형태의 연구 경험만 있어 항상 단기간에 가시적 결과만을 기대해 왔다. 물론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과학을 시작할 때에는 이런 방법이 최선일 수 있다.

이제는 제대로 된 과학을 할 때가 됐다. 과학자들이 과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본연의 과학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할 때가 됐다는 말이다.

과 학적 상상력을 동원해야 겨우 찾을 수 있는 창의적 문제들은 간단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실패한 시도들 가운데에 몇 개만 살아남는다. 많은 재원을 투입하고 지도자가 과학적 성취기간을 정하고 선언한다고 해서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인류사회에 큰 족적을 남기는 과학의 산물을 내놓기를 원한다면 겨우 뿌리 내리려 하고 있는 과학생태계를 교란하는 조급한 결정은 하지 말아야 한다. 과학자 사회를 믿고 꾸준히 지원하는 국민과 정부를 가진 많은 선진국을 한번쯤 바라볼 필요가 있다.


4. [동아일보][한옥에 살다/김성현]도시인에게 자연 바람을 선사하는 한옥청사

대 부분의 사람들은 집보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그렇기에 회사는 단순한 업무공간이 아니라 우리네 삶에 영향을 미치는 행복의 잣대가 될 수 있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선 넉넉함과 온유함이 풍겨 나온다. 서울 혜화동 로터리의 북쪽 한 골목을 지나가다 보면 의젓하게 잘 지어진 한옥이 눈에 띈다. 바로 혜화동주민센터다. 청사는 딱딱하고 사무적인 관공서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전통 한옥 형태로 지어졌다. 낮은 담장, 사랑방, 대청마루, 기둥, 서까래, 사주문(四柱門), 나무 한 그루에 이르기까지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툇마루에 한지로 장식한 미닫이문이 있고 문서보관함도 철제가 아닌 전통 문양 장이다.

이곳과 나의 인연은 2년여 전 시작됐다. 출근 첫날 나는 청사를 앞에 두고도 두리번두리번하다가 한옥 입구에 부착된 ‘혜화동주민센터’ 문패를 겨우 발견했다. 관공서가 콘크리트 건물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길을 헤맸다.

한 옥 근무는 단연 장점이 많다. 일단 월요병이 없어졌다. 출근이 소풍 가듯 즐겁다. 밀린 업무로 답답할 때면 널찍한 마당으로 나가 상쾌한 공기를 마신다. 아파트에서만 살던 나는 마사토가 곱게 깔린 청사 마당에 매료됐다. 이 마당은 아름드리나무와 어우러져 나를 위로해 주곤 한다. 마당은 동네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강아지나 고양이와 함께 산책하러 들르기도 한다. 마당은 그야말로 ‘포토존’이 될 때도 있다. 나도 업무를 보다가 방문객들에게 “마당 나무 앞에서 사진 찍으면 인생샷 나옵니다”라고 외친다. 청사는 어린이집 산책 코스가 되기도 하고 외국인들은 “원더풀”이라며 찬사를 늘어놓고 간다.

청 사 대청마루나 마당에서는 어느 오케스트라 공연보다도 멋있는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한옥청사를 사랑하는 주민들이 공연도 하고 감상도 하며, 알음알음 알게 된 방문객들도 온다. 마당에 돗자리를 펼치고 바람 소리와 음악이 처마 끝에 머무는 아름다움을 함께 즐기고 느낀다.

직원들 또한 한옥이 뿜어내는 단아한 기운 때문인지 행동 하나하나 정중히 하게 된다. 직원들은 “한옥이 정서를 순화해 마음가짐까지 차분하고 온화하게 한다”고 한다. 게다가 방문객들이 “우아∼ 이런 곳에서 일하다니 너무너무 부러워요”, “안에서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라고 말하면 자연스레 이곳 근무를 감사히 생각하게 된다.

한옥청사에선 사계절을 온전히 만날 수 있다. 한지 창문으로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빛은 마음의 안정을 준다. 햇빛 좋은 봄이면 일하는 중간중간 쪽마루에 앉아 사색도 즐긴다. 여름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질 때면 항상 한옥 문을 열어 놓는다. 모든 직원이 창밖의 한옥 채를 배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에 심취한다. 살면서 한 번은 느껴봐야 할 경치다. 한옥에서는 떨어지는 빗소리마저도 다른 곳에서 떨어지는 빗소리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한옥은 사소할 수 있지만 스쳐 가는 사람들에게 행복지수를 높여 주기 때문인 것 같다. 한겨울 창문 밖 한옥 지붕에 쌓인 하얀 눈은 직원에게도, 민원인에게도 한 폭의 그림을 선사한다. 민원인들은 우연히 천장을 보고는 천장 서까래가 보여 시골집에 와 있는 듯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나 또한 도심 한가운데서 근무하고 있지만 자연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민원인들에게는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놀러온 듯한 추억에 빠지게 한다.

방문객이 우연히 들렀다가 어릴 적 한옥의 향수를 느끼고 그 아름다움을 아이들에게도 보여 주고 싶다면서 아이와 함께 오는 경우도 잦다.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직원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한 동안 한옥은 옛날 집, 불편한 곳이라고만 치부했다면 이곳에 한번 들러 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곧 다가올 가을에 이곳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누구나 부담 없이 와도 되는 소통의 공간이다. 한여름 나무 아래 의자에서 시원한 바람 맞으며 쉬면서 땀 식히고 가는 열린 공간이다. 한옥청사의 사주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5. [중앙일보][The New York Times] 아직도 먼 100% 자율주행 차량의 꿈

운 전대를 잡지 않고 ‘해리포터’ 영화를 보고 있었을 것이란 보도 때문일까. 자율주행 중인 차량에서 처음으로 목숨을 잃은 테슬라 운전자 조슈아 브라운은 죽음을 자초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시각도 있다. 실제보다 자율주행이 훨씬 실현 가능한 것처럼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바로 이런 위험한 믿음 때문에 목숨을 잃은 첫 희생자가 브라운이라는 주장이다.

브라 운은 사고 당시 테슬라가 요구한 자동주행 규칙을 지키지 않은 걸로 보인다. 차가 자동주행 중이라도 운전자는 운전대에서 손을 떼지 않아야 하며 언제라도 즉각 운전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브라운은 이를 어긴 대신 테슬라모터스의 창립자이자 CEO인 일론 머스크의 말을 더 귀담아들은 걸로 보인다.

머 스크는 ‘영업의 귀재’로 유명하다. 그는 자동주행 기능을 홍보하면서 그런 역량을 십분 발휘했다. “자동주행차는 사람보다 두 배는 더 훌륭하다”며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애틀까지 1300㎞ 거리를 운전대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머 스크의 얘기를 “과장됐다”고 비난하며 자율주행차 전체를 매도하는 건 공평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자율주행차 내러티브와 맞아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차 운전이 실질적으로 완성된 만큼 자율주행 차량의 보편적 보급은 불가피한 흐름이라는 주장 말이다. “언제?”라고 물으면 실리콘밸리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라고 대답한다. 이런 세상에선 대중교통이 불필요해지니 그에 대한 투자를 줄여야 한다는 의원까지 등장할 정도다.


자 율주행차의 ‘파괴적 혁신’에 사람들이 열광하자 자동차 업체마다 “우리도 그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인다. 이들 업체가 마구잡이로 터뜨리는 ‘신제품 출시’ 소식은 공학적 지식이 부족한 소비자에게 자율주행차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최근 볼보가 발표한 ‘드라이브 미 런던(Drive Me London)’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자율주행차 100대를 2년간 일반 도로 위에서 시험 운행하는 프로젝트다. 볼보는 “영국에서 최고로 야심 찬 자율주행 시험이 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이 소식에 흥분한 나는 ‘로봇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트래펄가 광장을 돌아다니는 꿈’을 꾸며 볼보에 응모했다. 그러나 ‘드라이브 미 런던’은 런던 시내 일반 도로가 아니라 고속도로에서만 시행되는 프로그램이란 응답을 듣고 환상을 깨야 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면 즉각 인간이 운전하는 수동 모드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차의 기술 수준이 아직 멀었음을 보여준다.

고속도로 운전은 자율주행 차량에서 가장 쉬운 대상이다. 모든 차량이 같은 방향으로 주행하고 속도도 비슷하다. 보행자가 갑자기 뛰어들 가능성도 없다. 요즘 ‘자동주행’이라고 선전하는 대부분은 ‘오토 크루즈 컨트롤(정속주행)’ 기능을 발전시킨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렇게 낮은 수준의 자율주행 차량조차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자율주행 차량은 긴급 상황에서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는 상황을 가정한다(예외가 있다면 운전대와 브레이크가 아예 없는 구글 자동차뿐이다). 이럴 경우 치명적 문제가 발생한다. 자동차가 인간의 판단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위급 상황에서 운전자의 눈은 도로에 집중하는 대신 낮잠을 자느라 감겨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자율주행 차량의 문제는 이뿐 아니다. 고속도로보다 훨씬 복잡하고 예측이 힘든 게 시내 도로 주행이다. 예고 없이 도로에 파인 구멍을 자율주행 차량은 피해 가기 어렵다. 비가 쏟아지는 날,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맨해튼 거리를 무인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지 입증한 업체는 한 군데도 없다.

고속 도로에서부터 복잡한 시내 주행까지 그 어떤 것도 자율운전 차량은 안전운행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증명하지 못했다. 자율주행 기술의 슬픈 현실이다. 실리콘밸리가 자랑하는 ‘운전대가 필요 없는 차’는 아직 인류의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자율주행 차량의 등장을 가장 현실적으로 예측한 업체는 구글이다. 구글은 늦어도 2020년 말까지는 자체 제작한 자율주행 차량을 시장에 내놓게 될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암시해 왔다. 그러나 지난 2월 구글의 자율주행 차량이 시범운행 중 버스와 충돌하는 첫 사고를 일으켰다. 부상자는 없었지만 구글은 계획을 급변경해야 했다. 크리스 엄슨 구글 프로젝트 총괄에 따르면 구글은 운전자가 원하는 곳은 어디나 갈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자율주행’ 차량을 30년 뒤에나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고 한다.

기술발달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라면 ‘30년 뒤’라는 말은 ‘실현 불가’와 동의어임을 금방 알아챌 것이다. 자율주행 차량을 염원하는 얼리어답터들은 자동차 업체들이 내놓는 시간표보다는 훨씬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기가 지루하다면 지금 당장 차에 시동을 걸고 드라이브를 즐겨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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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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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8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폭력적인 불만 표출 사드 배치 해결책 아니다

황 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장관이 엊그제 경북 성주군청에서 사드 배치에 대한 협조를 구하다 주민들의 봉쇄로 6시간가량 발이 묶이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총리가 외부와 자유롭게 연락을 주고받는 등 국정 수행에는 큰 차질이 없었다고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아시아·유럽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한 상황이어서 하마터면 안보 공백 상태를 초래할 뻔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황 총리의 연설 도중 욕설과 고성이 이어졌고, 물병과 달걀, 소금 등이 날아들어 총리가 황급히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총리 일행이 탄 버스를 가로막는 등 폭력적인 불만 표출도 이어졌다. 총리와 국방장관의 발이 묶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의견을 표출하기 위해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아무리 옳더라도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하면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을 수밖에 없다. 수사 당국은 사드 배치 반대 집회와는 상관없이 폭력 사태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 법적 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외부 세력의 가담 여부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정부도 좀더 정교한 접근이 필요했었다. 성주 주민을 상대로 사전에 어떠한 설명도, 설득 작업도 하지 않았다. 사드 배치 지역을 발표한 뒤 주민들을 설득하겠다고 나선 것은 주민들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와중에 어제는 성주에서 듣도 보지도 못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사드배치 찬성 가두 행진을 벌였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행동이야말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누가 됐든 제3자가 개입하는 것은 갈등만 부추기고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관련 전문가로 하여금 과학적인 증거를 토대로 진실되게 주민들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 10여년 전 서울시내 쓰레기 소각장에서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문제가 됐을 때 서울시가 시설 보완과 실증을 토대로 주민들의 이해를 구한 사례를 참고해 볼 만하다.

정부는 괴담 수준인 주민들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기 위해 탄도미사일 탐지용 ‘그린파인 레이더’까지 공개했다. 레이더 최대 탐지거리가 900㎞로 사드 탐지거리 800㎞보다도 더 강력하다. 이어 한·미 양국은 성주에 배치될 사드와 동일한 미군 괌기지 사드 포대를 어제부터 언론에 공개했다. 사드의 안전 논란을 잠재우려는 목적에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주민들을 설득하겠다는 것은 오산이다. 이와는 별도로 김항곤 성주 군수가 주민과 전문가로 구성된 검증단의 괌 사드 포대 방문 요구를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다. 검증단에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공개해 사드를 둘러싼 각종 괴담과 전자파의 유해성 논란을 종식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폭력적인 의견

2. 檢 뼈 깎는 성찰·쇄신 일깨운 진경준 구속

이 쯤 되면 검찰은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는 게 맞다. ‘주식 대박’ 진경준 검사장이 어제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현직 검사장이 구속되기는 대한민국 검찰 역사상 처음이다. 검사장이 어떤 자리인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거머쥔 검찰 조직 내부에서도 ‘꽃’이라 부르며 선망하는 자리다. 그런 막중한 권한과 임무를 부여받고서도 진 검사장은 완장을 차고 돈만 밝힌 장사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검사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속속 확인된 의혹들에 낯이 화끈거린다.

진 검사장은 칼자루를 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부정이란 부정은 다 저질렀다. 친구인 넥슨 회장과 짬짜미해서 120억원대의 주식 시세차익을 챙긴 것도 모자라 내사하던 대기업을 봐주는 대가로 처남 회사에 130억원대 일감까지 몰아줬다. 검찰의 고위 공직자가 어떻게 기업한테서 고급 승용차를 공짜로 받아 타고 다녔는지, 비리를 덮어 주겠으니 내 가족 회사에 일감을 달라는 거래는 얼마나 철면피라야 가능한지 상상하기 어렵다. 권력을 개인 축재에 밥 먹듯 써먹은 사람이라면 과연 이 정도의 비리뿐이었을까 의심스럽다. 계속 수사가 필요한 이유다.

진 검사장의 구속 직후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사과 정도로 넘길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던 진 검사장의 비리가 이만큼이라도 확인된 것은 비난 여론에 떠밀려 특임검사가 임명된 덕분이다. 의혹이 제기되고도 석 달여나 개인 간 거래일 뿐이라며 팔짱 끼고 있었던 게 검찰과 법무부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서 검찰총장은 끝까지 꿀 먹은 벙어리인 모양이다.

이 참담한 사건은 검찰 개혁이 얼마나 급한지 여러 말이 필요 없게 한다. 제2, 제3의 진경준이 검찰 조직 내부에 더는 없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검찰의 신뢰는 지금 더 떨어질 바닥도 없다. 법무부와 검찰은 있으나 마나 한 인사 검증 시스템부터 당장 대수술해야 한다. 청와대의 허술한 검증도 마찬가지다. 비리의 결정판인 인물을 꽃 보직에 앉혀 승승장구시킨 것은 내부의 심사 기능이 완전히 고장났다는 의미다. 진 검사장이 뇌물로 덩치를 키운 특혜성 수익 126억원도 십원 한 장 남기지 않고 추징하는 것이 옳다. 그런 선례를 남겨서라도 검찰은 조직 쇄신의 엄중한 풍토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3.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국민 눈높이서 해야

국 회의원의 특권을 손보기 위한 국회의장 직속의 자문기구가 이번 주초 출범한다고 한다. 서영교 의원의 친인척 보좌진 채용으로 촉발된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다. 자문기구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각 당이 추천한 외부 전문가로 구성한다는 원칙 아래 인선 작업이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과거에도 특권 논란이 일 때마다 개선 움직임은 있었다. 19대에서도 불체포특권 남용을 막기 위한 ‘국회법 개정안’, 돈 받는 출판기념회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회의 불참 시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수당 관련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다. 그러나 여론이 식자 방치되다가 대부분 자동 폐기됐다. 이번에는 기구까지 설치해 특권 전반을 검토한다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 한다. 20대 국회 임기 초반이라 관련법 개정이 힘을 받을 가능성도 높다.

걱 정스러운 것은 검토 대상이 많아 옥석 가리기가 제대로 될까 하는 점이다.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각종 특권이 200여개에 달한다. 자칫 양적 성과에만 매달릴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자문기구는 먼저 그동안 폐해가 가장 심했거나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특권·특혜를 우선 검토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청탁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도 선출직이란 이유로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빠진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공직자의 부정 청탁 금지를 위한 법을 대한민국 최고위 공직자인 국회의원이 거부하면 다른 공직자들에게 영이 서겠는가.

친인척의 보좌진 채용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법 규정도 꼭 마련돼야 한다. 지금처럼 정당별로 윤리 규정을 두는 방식으론 근본 처방이 될 수 없다. 회의에 불참하면서 수당을 꼬박꼬박 챙기는 행위, 의원 1인당 7명의 유급 보좌관을 두는 것도 과도한 측면이 있다. 회기 중 불체포 특권도 제한적으로만 허용해 ‘방탄국회’ 오명을 벗어야 한다. 면책특권은 제한할 경우 권력과 행정부 견제 역할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외교통일위원회 의원들이 오는 30일 전후로 일제히 유럽과 남반구 순방에 나선다고 한다. 일부 의원은 브렉시트에 대해 공부하러 간다지만, 휴가철 외유에 대한 국민 시선이 싸늘하다. 특권을 내려놓겠다면서 여행 가방이나 싸는 의원들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이유다. 이번에 의원 외유에 대한 국고 지원도 엄격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 특권 내려놓기는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 신뢰와 직결된다. 국민 눈높이에서 특권을 내려놓아야 국민도 다시 믿음을 줄 것이다.

[이데일리]

4. 지방의회 의정비·보좌관 타령 어이없다

지 방의회의 염치없는 행태가 지나치다. 전국 시·도의회 의장단은 지난 달 의정활동비를 두 배 이상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이달 들어서는 광역의회에 유급 보좌관을 두도록 법을 고쳐달라며 입법로비를 벌이고 있다. 무보수 명예직으로 출발한 지방의원들이 겸직 가능한 유급제도 성에 안차 의정비 인상에 보좌관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염불보다 젯밥만 챙기려는 꼴이다.

서울시의회 신임 의장단은 지난 주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를 만나 추미애 의원 등이 발의한 지방자치법 개정안 처리에 협조를 요청했다. 개정안은 광역의원 1명당 정책지원 전문 인력 1명을 두도록 하는 것이다. 명분은 광역단체를 효율적으로 감시·견제하고 의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등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공감할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지방의원들의 자질과 도덕성이 못 미덥기 때문이다. 1년에 한 건의 조례도 발의하지 않는 의원이 수두룩하다. 의원직을 자신의 사업에 이용하거나 이권에 개입하는 등 각종 비리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의장 자리를 놓고 조폭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혈서 각서’ 파문까지 터졌다. 정책보좌관을 둔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곳간만 더 축낼 뿐이다.

현재 광역의원 150만원, 기초의원 110만원인 활동비 상한을 각각 380만원, 285만원으로 올려달라는 것도 그렇다. 광역의원은 1인당 평균 의정비가 5672만원(수당 3872만원 활동비 1800만원)에 달한다. 그들 요구(연 4560만원)대로 올리면 일부 광역의원 의정비는 연 1억원이나 된다. 오랜 경기침체로 서민들 삶은 고달프기만 한데 일은 제대로 않으면서 ‘연봉 1억’을 챙기겠다니 몰염치가 따로 없다.

1991년 지방자치 부활 당시 지방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이었다. 2006년부터 유급제로 바뀌어 1인당 4000만∼6500만원의 의정비를 받고 있다. 겸직도 가능하다. 하지만 밥값을 제대로 하는 의원들은 손으로 꼽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방의원이 유급 보좌관을 두도록 하는 나라도 거의 없다. 지방의원들은 초심으로 돌아가 의정비 인상과 유급 보좌관 요구를 철회하는 게 온당하다.

5. '소프트 타깃 테러'에 대비책 있나 

프 랑스 남부의 대표적 휴양지 니스에서 발생한 트럭 테러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25톤 대형 트럭이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역사적인 날에 축제에 참가한 이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광란의 질주를 벌이며 총격을 가해 80여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부상당한 것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말 파리에서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테러로 130여명이 희생된 데 이어 프랑스에서 또다시 대형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니스 테러 배후가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IS는 이번 테러가 자신들 추종자의 소행이라고 주장해 공포감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우 려스러운 대목은 최근 테러 양상이 갈수록 극악무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테러 대상이 과거에는 주로 군사시설이나 정부기관 등 ‘하드 타깃’이었다면 최근에는 휴양지, 해변가, 식당 등을 찾는 민간인 등 ‘소프트 타깃’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스 테러도 축제를 즐기기 위해 산책하고 불꽃놀이를 관람했던 무고한 어린이와 시민들이 희생양이 된 것이다. 더욱이 대형 트럭이 돌진해 마치 볼링 핀을 치듯 사람을 쓸어간 것도 모자라 총까지 난사한 점은 천인공노할 만행이 아닐 수 없다. 세계가 한목소리로 규탄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다.

니스테러는 더 이상 테러 안전지대가 없음을 재확인시킨 사건임에 틀림없다. 과거엔 중동과 유럽 특정 국가를 향했던 공격이 이제는 휴양지까지 확산되는 모습이다. 또한 대형 트럭의 돌진 공격은 과거 특정 목표물을 겨냥한 차량 자살폭탄 테러와 차원을 달리한다. 이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테러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테러 장소로 악용할 수 있는 IS의 폭력적 극단주의 무대가 더욱 넓혀질 것이라는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한국도 더 이상 테러 안전지대가 아니다. 최근 IS가 공격 대상인 ‘십자군 동맹국가’에 한국을 포함시키지 않았는가. IS가 안전불감증에 빠진 한국을 겨냥해 해운대나 한강변 등에서 니스테러와 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IS의 테러 활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테러 대응 시스템을 총점검해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6. 터키 불발 쿠데타, 하루빨리 정세 안정 되찾아야

지 난 15일(현지시간) 터키에서 6시간짜리 불발 쿠데타가 일어나 260여 명이 숨지고 1400여 명이 다친 것은 참으로 불행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유야 어쨌든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정권을 무력으로 몰아내려는 것은 정당화되기 힘들다. 다수의 터키 국민이 쿠데타에 반대하며 몸으로 탱크를 막아내는 모습은 이번 군부의 행동이 민심을 얻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무리 쿠데타로 근대화에 접어들었던 터키일망정 민의를 거스르는 행위는 결코 성공하기 어렵다는 걸 이 나라 군부는 깨닫기 바란다.

동서양의 가교인 터키는 작금의 세계 정세 속에서 전후 어느 때보다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다. 미국 등 서방세계와 손잡고 이슬람국가(IS) 등 이슬람 테러단체 소탕의 전초기지로 활약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시리아 등 중동 분쟁지역에서 밀려오는 난민들을 소화해 냄으로써 유럽의 짐을 결정적으로 덜어주고 있다. 이런 나라가 혼란에 빠진다면 가뜩이나 불안한 세계 정세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위기를 넘긴 에르도안 정권은 세계 평화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안정을 찾아야 한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쿠데타 후유증이다. 에르도안 정권은 6000명 이상의 쿠데타 관련자를 체포한 뒤 혹독한 숙청을 벼르고 있다.

레 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자신이 “(쿠데타 관련자들은) 반역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터키에서 진작 폐지된 사형제 부활까지 논의될 모양이다. 분노한 터키 군중마저 쿠데타 가담 군인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있다는 점으로 보아 자칫 피바람이 불 위험이 짙다. 피는 피를 부르는 법이다. 이번 쿠데타가 터키의 헌정 질서를 무시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법치주의에서 벗어난 감정적 보복이 돼서는 안 된다.

특히 에르도안 대통령도 장기집권과 언론 탄압, 편중 인사 등 쿠데타의 명분을 줄 만한 과오를 적잖게 저질렀다는 게 국제사회의 평가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만큼 이번 불발 쿠데타가 정적 제거의 기회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

이번 쿠데타를 계기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대목은 교민 및 관광객 등의 안전 문제다. 갈수록 악화하는 국제적 갈등 탓에 각종 테러와 소요 사태가 하루 평균 4.7건씩 발생한다고 한다.

이 처럼 불안한 국제 정세에도 웬만한 해외 명소치고 한국 관광객이 북적대지 않는 곳이 없다. 인기 여행지로 부상한 터키의 경우도 지난해 22만 명이 넘는 한국 관광객이 찾았다고 한다. 이번 쿠데타 때도 110명의 한국 관광객이 터키 공항에서 발이 묶이기도 했다. 며칠 전 일어난 프랑스 니스 테러 때도 60여 명의 한국 관광객 등이 한때 연락 두절되기도 했었다.

관광객뿐 아니다. 터키에는 64개 국내 업체가 진출해 있으며 4000여 명의 교민이 살고 있다. 이렇듯 우리 국민이 세계 곳곳에 진출해 있는 터라 당국은 교민 및 해외 관광객들의 신변 안전에 만전에 만전을 기할 일이다.

7. 간신히 봉합된 최저임금…이제 결정 방식 바꿔야 한다

최 저임금위원회가 16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7.3% 인상된 시급 6470원으로 의결했다. 노동계 인사로 구성된 근로자위원이 빠진 상태에서다. 사용자위원 중 소상공인 대표 2명도 표결에 불참했다. 노사 모두 불참한 가운데 의결 정족수만 겨우 채워 결정했다는 얘기다. 심지어 최종 수정안을 내고 그 안대로 표결을 진행한 사용자 측조차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의결이 되자마자 성명을 내고 “경제불황기에 고율 인상이 이어져 영세·중소기업의 부담을 한층 가중시킨다”고 했다. 앞에서 찬성표를 던지고 뒤에서 고함을 지르는 격이다.

이래서야 최저임금의 법적 지위가 존중받을 수 없다. 가뜩이나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곳이 많아 골머리를 앓는 판이다. 한데 노동계와 경영계 중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수량적 민주주의’에 근거해 결정된 최저임금이 시장에서 온전하게 통할 리 없다.

그동안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의 교섭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노사는 회의 때마다 자기주장만 펴고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조정이나 중재 기능은커녕 협상장을 제공하고 27명의 위원에게 20만원의 회의비만 꼬박꼬박 지불했을 뿐 국가 임금정책을 결정하는 기구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 정도 상황이면 최저임금을 정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의 권고처럼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하고 노사 합의에 의한 방식보다 경제지표와 소득분배 상황 등을 살펴 최저임금을 정하는 게 맞다. 특히 최저임금 액수에 얽매일 게 아니라 근로장려세제와 같은 세제 개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최 저임금위원회가 앞으로 할 일은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에 힘을 써야 한다. 어쩌면 차관급 기구로서의 지위를 털어내는 결단을 고려해야 할 필요도 있다. 의견을 수렴하고 최적의 분배 정책을 조언하는 정책분과 정도가 딱 어울릴 수 있다. 그게 협상을 빌미로 한 갈등의 진원지로 전락한 최저임금위원회가 살 길인지도 모른다.

[매일경제]

8. 토지거래 절벽 부른 `양도세 폭탄` 반드시 재개정하라

국 회가 지난해 말 세법을 개정하면서 과도한 의욕을 부린 탓에 올해 들어 토지 거래가 얼어붙어 버렸다. 직접 거주·경작하지 않는 비사업용 토지가 양도소득세 폭탄을 맞으면서 땅 주인들이 거래를 기피해 올해 1분기 토지 거래량이 지난해 4분기에 비해 18.8%나 줄어든 것이다. 울산시는 300실 규모 일본계 비즈니스호텔 투자를 2년 동안 공들여 유치했다가 무산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갑자기 늘어난 양도소득세에 놀라 땅 주인이 토지 매각을 거부하고 나선 탓이다.

정부는 땅 투기를 막기 위해 2007년부터 비사업용 토지에 대해 60%에 달하는 양도소득세 중과세를 적용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자 2009년부터 이 제도를 유예하고 지난해까지 사업용 토지와 마찬가지로 양도세율 6~38%를 적용하다가 올해 다시 중과세 제도를 부활했다. 비사업용 토지에 대한 양도소득세율이 16~48%로 높아지게 된 것이다.

당초 정부는 세법 개정안에 토지 취득 시점을 기준으로 3~10년 이상 보유자에게는 양도차익 10~30%를 차감해주는 특별공제 혜택을 담으려 했다. 상속·증여 등으로 비사업용 토지를 보유해온 사람들도 양도소득세가 갑자기 높아지면 땅 매각을 기피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과거 토지 보유 기간은 5년이든 10년이든 전혀 인정하지 않고 앞으로 3년 이상 보유하는 때에만 양도소득세를 공제해주는 것으로 내용이 바뀌어 버렸다. 양도소득세 장기보유 공제를 2018년 말 이후에만 받을 수 있게 되자 토지 주인들이 걱정했던 대로 거래를 기피했고 정부에는 민원이 쏟아졌다.

결국 정부는 2016 세법 개정안에서 비사업용 토지와 관련해 '장기보유 특별공제' 조항을 다시 손보기로 했다고 한다. 토지 취득 이후 3년 이상 장기보유자에게는 기간별로 양도차익 10~30%를 공제해서 거래를 활성화하자는 내용이다. 국회에서 과한 욕심을 부려 공제 조항을 수정한 탓에 토지거래 절벽이라는 시장 혼란만 불렀음을 직시하기 바란다. 경제활동에서 시간은 곧 돈이다. 비사업용 토지 중과세 원칙은 유지하되 부동산 거래 절벽을 막기 위해 국회는 반드시 세법을 재개정해야 한다.

9. 최저임금 올려도 264만명이나 적용 못 받는 현실

내 년 최저임금이 7.3% 오른 6470원으로 지난 16일 새벽 진통 끝에 결정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여러 산출 근거를 제시했지만 경영계와 노동계를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노동계는 최소 두 자릿수 인상을 기대했던 터라 즉각 반발했고, 동결을 주장했던 경영계와 영세 소상공인들도 불만을 토로하고 있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인상보다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264만명에 육박한다는 사실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가 한 해 전에 비해 30만명 이상 늘어난 263만7000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체 근로자 1923만2000명의 13.7%, 즉 7명 중 1명이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노동시장의 척박한 현실을 보여준다.

더 심각한 점은 최저임금 미달 대상이 비정규직과 대학생에게 몰려 있다는 것이다. 경기침체와 주요 산업의 구조조정, 청년실업과도 무관하지 않다. 일할 곳이 크게 줄다 보니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과 대학생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이다. 25세 이하 청년들 중에서도 대학 재학생과 휴학생은 10명 중 4명꼴로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니 안타깝다.

이런 사태는 사업자의 비양심적인 행태가 1차 원인이지만 정부의 감독 소홀 탓도 크다. 처벌 규정 자체는 엄격한 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업주에 대해서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최저임금을 근로자에게 알리지 않은 사업주도 1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문제는 위반했어도 실제 처벌받는 사업자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고용부가 적발한 3만2997건의 최저임금법 위반 사업자 중에 불과 0.2%만 제재를 받았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위반 사업자를 적극적으로 적발하는 등 관리 감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경영계도 비양심 사업자가 생기지 않도록 자정 분위기를 조성하고, 노동계 역시 최저임금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철저하게 감시할 필요가 있다.

[매일신문]

10. 권력 구조 개편에 쏠린 개헌론, 속셈이 의심스럽다

정 치권이 제헌절을 맞아 ‘개헌론’을 쏟아냈다. 20대 국회 개원식에서 “개헌은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며 개헌론에 불을 댕긴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날 “2018년 제헌절 이전에 새 헌법을 공포할 수 있어야 한다”며 구체적 로드맵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개헌 방향에 대해서는 중구난방이다. 4년 중임제와 내각제는 물론 ‘한국형 협치 대통령제’, ‘대통령 직선 내각제’ 등 듣도 보도 못한 권력 구조까지 거론된다.

이 런 주장들의 공통 인식은 현행 헌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지나 시대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87년 체제 및 5년 단임제 한계론’과 ‘제왕적 대통령 권력 제한론’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치권을 위한 정치권의 주장일 뿐이다. 우선 현행 헌법이 시대적 한계에 봉착했다는 주장은 구체적 근거가 없다. 시대적 한계라는 주장이 경제 활력 저하를 얘기하는 듯한데 그 원인은 헌법이 아니라 신성장 동력 발굴 실패 등 경제 자체에 있다.

5 년 단임제 한계론 역시 그럴듯한 얘기일 뿐이다. 레임덕은 대통령제의 속성이다. 4년 중임제라고 레임덕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리고 레임덕은 정치권이 대통령에게 잘 협조하면 시기를 늦추고 정도를 약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야는 위치를 바꿔 가며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데 매진해 왔다. 그렇게 레임덕이 걱정이라면 국회가 나서서 대통령에게 협조하면 될 일이다.

‘제 왕적 대통령론’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주장이다. 현재 ‘제왕’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이다. 대통령은 국회의 협조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 서비스산업발전법이 4년이 넘도록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결국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제 주장은 대통령의 권력을 떼 국회로 가져오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정 치권의 개헌론은 권력 구조 개편에만 쏠려 있다. 이는 야당으로서는 정권을 잡는 데, 여당의 입장에서는 정권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는 계산 때문일 것이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국민은 개헌에 큰 관심이 없다. 헌법 때문에 모든 것이 잘 안 돌아간다는 것은 정치권의 주장일 뿐이다. 지금은 개헌 논의로 에너지를 소모할 때가 아니다.



주요 신문칼럼


1. [머니투데이]커피 보리와 천사 다방과 어디야 다방

나 는 '커피 보리'에 앉아 있다. '커피 보리'는 읍내의 작은 카페다. 읍내라지만 변두리 골목 안에 숨은 빈티지 커피숍. 그래도 커피 맛은 아주 좋다. 나는 이 가게의 단골이다. 때로는 며칠씩 '출근부'를 찍는다. 그러니까 여기는 내 아지트다. 나는 여기서 책 읽는 걸 좋아한다. 카페에서 책을 읽으면 이상하게 잘 읽힌다. 그래서 어려운 책은 일부러 카페로 들고 간다.

사실 읍내에 내 아지트는 두 곳이 더 있다. 하나는 천사 다방(엔제리너스). 번화가에 자리한 가장 좋고 비싼 커피숍이다. 또 하나는 어디야 다방(이디야). 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가장 싸고 북적이는 커피숍이다.

나 는 세 곳의 아지트를 내 나름의 기준에 따라 애용한다. 예컨대 한두 시간이 나면 '어디야', 두세 시간이 나면 '보리', 서너 시간이 나면 '천사'로 간다. 한 시간 쯤 짬이 나는 데 '어디야' 말고 다른 데로 가기엔 본전 생각이 난다. 서너 시간 죽칠 작정인데 '보리'로 가면 어쩐지 눈치 보인다. 이럴 땐 커피 값이 비싸지만 익명성이 보장되는 '천사'가 낫다.

책 들고 읍내 다방을 돌고 도는 나! 그것이 좁은 시골 바닥에서 뒷소문이 나 졸지에 나는 '홍 반장'이 됐다. 나처럼 읍내 다방을 애용하며 수다를 즐기는 젊은 아줌마들이 쑥덕거린 얘기가 한 바퀴 돌아서 나에게 왔다. "저 꽁지머리 아저씨는 완전 홍 반장이야. 가는 데마다 있어." 영화 주인공 <홍 반장>의 오지랖이 넓긴 넓은가 보다. 이 외진 동네에까지 분신을 두었으니.

카페에서 책 읽기. 이것이 나의 호사여서 다행이다. 더 비싼 호사라면 감당 못할 뻔 했다. 벌이를 내려놓았으니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마음대로 다할 순 없다. 하고픈 일마다 돈이 많이 든다면 얼마나 속상할까. 얼마나 골치 아플까.

내 가 원하는 일이 읽고 쓰고 걷는 한 세트로 간추려져서 좋다. 이 일은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다. 경제적이다. 책은 주로 빌리거나 헌 책을 사서 읽는다. 커피 값은 나만의 호사로 친다. 이 일은 또한 시간과 장소에 자유롭다. 전천후다. 언제 어디서든 읽다가 쓰고 싶으면 쓰고, 쓰다가 걷고 싶으면 걷고, 걷다가 읽고 싶으면 읽는다. 셋은 한 통속이다. 하나처럼 사이가 좋다. 서로 어긋나거나 충돌하지 않는다.

여행을 가도 헷갈리지 않는다. 집에서는 읽고 쓰다가 걷는다. 여행할 때는 걷다가 읽고 쓴다. 쿵쿵작 쿵작작! 강약이 바뀌지만 박자는 똑 같다. 한 나절 낯선 길을 걷다가 마주친 작은 카페. 그곳 또한 나의 아지트다. 세상 구석구석에 숨겨둔 나의 안가다. 그곳에서 다리를 쉬고 한 잔의 커피를 마실 때, 창밖의 풍경을 바라볼 때, 책장을 넘길 때, 무언가 끄적일 때 그것은 또 얼마나 행복한가. 때로 돌아다니고 싶어 여행을 간 건지, 이름 모를 카페에 앉고 싶어 여행을 간 건지 헷갈리곤 한다. 읽고 쓰고 걷기는 이렇게 하나로 섞여 내 삶을 이룬다. 내 삶을 채운다. 그러면 충분한 것 아닌가.


2. [동아일보][이슈&뷰스]여름휴가, 국내에서 보내자

한낮 기온이 연일 높아지면서 여름휴가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데 세계 경기 부진과 수출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우리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면서 내수 침체가 지속되고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정 부는 소비 진작과 내수 활성화를 위해 각종 처방전을 내놓고 있다. 그중 하나가 여름휴가를 국내에서 보내자는 방안이다. 국내 휴가는 국내 소비를 진작시키고 이를 통해 경제의 긍정적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어 휴가를 즐기는 사람도 행복하지만 관련 서비스와 재화를 제공하는 측도 행복해진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해외 여행객의 10%만 국내 여행으로 돌릴 경우 4조2000억 원 이상의 내수 진작 효과, 5만 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한 경제 단체들과 동아일보, 채널A가 ‘여름휴가는 국내에서’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올해 여름 휴가지를 결정하지 못한 분들에게 국내로 떠나볼 것을 추천한다.

국내 휴가가 가져다주는 매력은 오감(五感)으로 경험할 수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따끈한 오곡밥과 구수한 청국장찌개, 고소하게 구운 굴비, 형형색색 다채로운 맛의 산나물로 이루어진 여름휴가의 만찬은 생각만 해도 몸이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이렇듯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게 해주는 신토불이 토종 밥상은 국외에서는 즐기기 어려운 행복이다.

전국 곳곳에 숨어 있는 맛집 체험은 새로운 즐거움이다. 강원도 산골 속 허름한 한옥의 할머니표 메밀막국수나 제주도 해녀가 당일 물질하여 잡은 신선한 해산물로 조리한 찜요리는 맛의 신세계를 선사한다.

지 쳐 있는 마음까지 따뜻하게 안아주는 우리나라 특유의 푸근한 자연환경도 매력적이다. 장성 편백나무숲길이나 거제 바람의 언덕을 천천히 거닐다 보면 온몸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각종 스트레스로 눌려 왔던 어깨는 편안해지고 무거웠던 머리는 가벼워진다.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는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뚫어주고 눈을 맑게 해준다. 진정한 휴식이다.

삼면이 바다이고 전 국토의 70%가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우리나라는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각 지방에서는 여름휴가 기간에 맞춰 수많은 축제가 열린다. 머드축제, 빛축제, 꽃축제 등 각종 콘셉트의 행사에는 눈, 코, 입 등 전신으로 체험할 수 있는 이벤트로 가득하다. 사랑하는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하는 매 순간은 가슴속 앨범으로 남아 평생의 선물로 가져가기 충분하다. 각 행사에는 지역의 오랜 역사와 특색이 녹아 있어, 행사 참여를 통해 선조들의 옛 숨결을 느끼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뿌듯함과 자랑스러움도 얻어갈 수 있다.

휴가는 치료제이자 회복제이며 동시에 예방약이라는 말이 있다. 빗대어 표현하면, 국내 휴가는 쉼표 없이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심신의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내고 생활의 활력소를 불어넣는 치료제이다. 동시에 소비 진작을 통한 내수 활성의 회복제이자 사회 구성원의 행복과 우리 경제의 건강을 유지하는 예방약이다. 올해 여름에는 종합비타민 같은 국내 휴가로 사랑하는 가족, 친지, 친구와 함께 보내는 것은 어떨까. 소중한 추억도 남기고 순도 높은 힐링도 경험해보길 바란다.


3. [매경이코노미][신병주의 ‘왕으로 산다는 것’] (36) 순조의 즉위와 세도정치 시작…농민 분노에 ‘홍경래의 난’ 발발 정권 위기

1800 년 6월 조선 후기 개혁정치를 이끌던 정조가 투병 끝에 승하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조선 중흥을 이끌던 정조의 죽음은 조선 정국에 파란을 몰고 왔다. 정조 승하 후 왕위는 11세의 순조(1790~1834년, 재위 1800~1834년)가 이어받았다. 순조의 즉위는 영·정조 시대의 강력한 왕권이 사라지고 왕실의 외척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의 시작이 됐다.

순조는 정조와 수빈 박씨 사이에서 1790년 6월 창경궁 집복헌(集福軒)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공(玜), 호는 순재(純齋)다. 정조는 왕비인 효의왕후와의 사이에서 후사를 보지 못했다. 의빈 성씨에게 문효세자(1782~1786년)를 얻었으나, 문효세자는 5세 나이로 요절했다. 순조는 1800년 1월 효의왕후의 양자로 들어가 세자로 책봉됐다. 그해 6월 정조가 승하하자 11살의 나이로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식을 올리고 왕위에 올랐다. 조선 전기에 단종 12세, 성종 13세, 명종이 12세에 왕위에 오른 사례가 있었지만, 조선 후기엔 숙종이 14세에 즉위한 것을 제외하면 이례적으로 어린 나이에 왕이 됐다.

19세기 세도정치가 시작된 원인을 어린 왕이 즉위한 것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19세기에만 유독 세도정치가 극성이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세력 있는 외척 가문이 정치 권력을 독점하고 17·18세기에 행해졌던 붕당 간 견제와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특히 왕실과의 정략적인 혼인은 외척 세력에게 한층 더 큰 날개를 달아줬다. 성종이나 숙종은 신하의 보필을 잘 받고 왕으로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기에 왕권이 외척의 힘에 결코 휘둘리지 않았다.

순조가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관례대로 당시 왕실의 최고 어른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됐다. 1759년 15세에 영조의 계비로 들어왔던 정순왕후는 증손자인 순조가 즉위하면서 46세의 나이로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됐다. 정조 재위 기간 동안 큰 존재감이 없었던 정순왕후는 본격적으로 정치 일선에 등장했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후 정조 친위부대인 장용영이 혁파되고 개혁정치의 중심기관인 규장각이 축소된 것은 이런 정치적 변화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노 론 벽파를 두둔했던 정순왕후는 1801년 신유박해라는 천주교 탄압을 주도했다. 천주교가 당시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차단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천주교 신자 대부분이 남인인 것도 박해의 큰 원인이었다. 신유박해로 이가환, 이승훈, 권철신 등 300여명의 신도와 청나라 신부가 처형됐다. 정약용은 겨우 처형을 면한 채 전라도 강진으로 귀양을 갔다. 외가 근처인 강진에 귀양을 간 것은 정약용이 지금까지도 최고의 실학자로 기억될 수 있는 주요한 계기가 된다. 순조 초반에 전개된 정순왕후의 천주교 탄압은 결과적으로 위대한 실학자 정약용을 만들어준 셈이다.

순조 즉위 초반에는 정순왕후로 대표된 경주 김씨의 외척 세력이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1804년 순조가 15세가 되면서 정순왕후는 수렴청정을 거뒀다. 이후 1805년 정순왕후가 승하하자, 안동 김씨가 권력을 잡았다. 안동 김씨는 순조의 왕비인 순원왕후를 배출한 집안으로 순조 초반 최대 실세가 됐다. 어리고 허약한 왕을 대신해 정치를 해준다는 명분으로 외척 중심의 세도정치를 펼친 것. 순조는 정조를 도왔던 노론 시파 안동 김씨 김조순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면서 안동 김씨 가문의 도움을 받게 된다. 안동 김씨는 병자호란 때 순절한 김상용과 척화파의 대표자인 김상헌 이후 17~18세기 수많은 재상을 배출한 명문대가로 성장했는데, 순조 즉위는 안동 김씨의 권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었다.

세 도정치는 원래 ‘도를 회복시킨다’는 의미의 ‘세도(世道)정치’로 쓰였다. 하지만 정조 즉위 후 홍국영이 정조의 측근으로 지나치게 권력을 행사하면서, ‘세도(勢道)정치’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순조 즉위와 함께 세도정치는 19세기 외척과 소수 가문에 의해 독점되는 정치 형태를 뜻하는 용어가 됐다.

세도정치는 안동 김씨 외에도 남양 홍씨, 풍양 조씨, 여흥 민씨, 대구 서씨, 반남 박씨 등 명문 양반 가문이 혈연적으로 깊은 연결을 맺으면서 정권에 참여해 서울 양반의 연합정권과 같은 성격도 띠게 된다. 왕은 허수아비와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순조 이후에도 헌종(재위 1834~1849년)과 철종(재위 1849~1863년)은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안동 김씨나 풍양 조씨 등 외척 가문은 대왕대비나 왕대비를 권력의 기반으로 삼아 확고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왕이 정상적으로 국정을 운영하지 못하고 정치가 소수 외척 가문을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조선왕조는 점차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19세기 세도정치가 전개되면서 가장 고통을 받게 된 계층은 가난한 농민들이었다. 세도정치는 권력의 독점을 가져왔고 수령직까지 매관매직 대상이 됐다. 수령과 아전들은 세금을 더욱 혹독하게 거뒀고 전정(田政·토지에 대한 세금), 군정(軍政·군역), 환곡(還穀·봄에 곡식을 빌리고 이자를 쳐서 추수에 갚음)의 폐단은 극에 달했다. 농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유민이 돼 떠돌아다니거나, 산속에 숨어 살며 화전민이 되기도 했다. 농한기에는 광산에 모여 임노동에 종사했다. 국경 밖으로 넘어가 간도나 연해주에 이주한 농민도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 바로 홍경래의 난이다. 홍경래는 우군칙, 김사용, 이희저, 김창시 등과 함께 봉기의 횃불을 높이 올렸다.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리면서 농민들 삶이 곪을 대로 곪은 시절, 홍경래는 서북지방의 대상인과 향임층(지역 향반), 무사, 유랑 농민, 노비 등을 규합했다. ‘서북지방 지역 차별 타파’와 ‘나이 어린 임금 아래에서 권세가 있는 간신배가 국권을 농단하니 백성의 삶이 거의 죽음에 임박했다’는 점을 내세우며 반란을 일으켰다. 홍경래는 어린 왕 순조가 제대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면서 세도정치가 심화되는 상황이 반란의 동기임을 분명히 밝혔다.

1811년 12월 18일 저녁, 홍경래는 평서대원수의 직함으로 가산의 다복동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다음과 같은 격문을 낭독하며 출정식을 올렸다.

“무 릇 관서지방은 단군조선의 터전으로 예부터 문물이 빛나고 임진·병자의 전란을 극복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 난 자랑스러운 곳이다. 그런데도 조정에서는 이 땅을 천시하니 어찌 억울하고 원통하지 아니한가? 현재 왕의 나이가 어려 김조순, 박종경 등 권신의 무리가 국권을 농단해 정치는 어지럽고 백성은 도탄에 빠져서 헤어날 길을 모르고 있다. (중략) 각 군현의 수령들은 동요하지 말고 성문을 활짝 열어 우리 군대를 맞으라. 만약 어리석게도 항거하는 자가 있으면 철기 5000으로 밟아 무찔러 남기지 않으리라.”

10 년간 준비 끝에 일으킨 거사인 만큼 초기 반란군 위세는 대단했다. 처음 다복동에서 1000여명의 병력으로 군사를 일으킨 홍경래는 평안도 백성의 호응을 얻어 순식간에 청천강 이북의 9개 읍을 점령하는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이내 전열을 가다듬은 관군의 반격에 가로막혔다. 홍경래 일당은 박천의 송림전투에서 관군과 접전을 벌였으나, 완강한 관군의 저항에 밀려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남기고 정주성으로 퇴각했다. 전황은 반군에게 점차 불리해졌다. 반군 수뇌부들은 최후 거점인 정주성에 들어가 2000여명의 농민군과 함께 마지막 저항에 나섰다. 그럼에도 관군의 거센 공격에 1812년 4월 19일 정주성은 함락됐다. 거병한 지 4개월 만의 일이었다. 홍경래는 남문 부근에서 전사했다. 당시 관군에 체포된 자는 총 2893명으로 이 중 10세 이하 어린이를 뺀 1917명이 즉시 처형됐다. 장장 4개월간 평안도 일대를 휩쓸었던 농민 봉기의 열풍은 이날 정주성 위로 타오르는 시체의 검은 연기와 함께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홍경래의 난은 세도정치 척결과 지역 차별 철폐를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세도정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장기간 준비한 반란이었지만 충분한 물자가 준비돼 있지 않았고 지방 차별 타파라는 명분이 전국적인 호소력을 갖지 못하면서 평안도 지역에 한정된 농민전쟁으로 끝나고 말았다. 한편으로 홍경래의 난은 19세기 조선 사회를 저항의 시대로 열어나가는 원동력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반란은 진압됐지만, 홍경래의 난에 대한 후유증은 컸다. 순조는 세도정치에서 파생되는 정치, 사회, 경제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보이지 못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왕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도 큰 원인이었다. “경연을 여는 날이 적어 책 한 권도 끝을 맺을 기약이 없다”는 영의정 김재찬의 지적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왕은 정치 의욕을 잃고, 농민 부담은 더욱 가속화되면서 19세기 조선 사회는 점차 위기에 빠지게 된다.


4. [머니투데이][기고]'팝콘 브레인'을 경계하며

누 구나 어릴 적 아빠의 퇴근을 기다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엄마 손을 잡고 아빠를 기다리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오늘은 혹시 통닭을 사들고 오시지는 않을까. 장난감 선물을 갖고 오시지는 않을까. 정작 아빠보다는 아빠 손에 들린 무언가에 더 관심이 갔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놀랍게도 아빠도, 선물도 아닌 스마트폰을 갖고 놀기 위해 아빠의 이른 퇴근을 기다린다는 말이 있다. 유아기부터 스마트폰에 친숙해진 우리 아이들은 이제 인형이나 장난감 등과 같은 고전적인 놀잇감에는 관심이 없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이전부터 스마트폰을 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칭얼대거나 다른 일로 바쁠 때 자기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준다. 가족 외식을 하거나 운전을 할 때도 스마트폰, 혹은 태블릿PC가 없으면 자녀를 통제하기 어려운 부모들도 많다. 한 술 더 떠 아이들 스스로 스마트폰 사용법을 깨우치고 잘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내 아이가 천재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는 것 같다.

그 러나 이렇게 스마트폰을 일찍부터 접하기 시작한 아이들은 신기한 장난감에 깊이 빠져들어 스마트폰을 빼앗으면 소리를 지르고, 떼를 쓰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급기야 타인의 말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현실에 무감각해지는 소위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 증후군에 걸릴 가능성도 낮지 않다.

미 국 워싱턴대학의 데이비드 레비 교수가 처음 언급한 ‘팝콘 브레인’은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거나 여러 기기로 멀티태스킹(다중작업)을 반복하는 것이 원인이 된다고 한다. 이 증후군은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생활에 흥미를 잃고 현실에 무감각해지면서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것에만 반응하는 증상을 동반한다. 마치 팝콘이 튀면서 부풀어 오르듯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비유한 것.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 또는 느리고 섬세한 자극에는 무감각해진다. 주의력이 떨어지는 것 역시 스마트폰을 장기간 이용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겪는 부작용이다. 이에 레비 교수는 팝콘 브레인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뇌는 상당히 강력한 수준이 아니면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스마트폰이 삶에 주는 긍정적인 영향이 크지만 이를 잘못 이용하면 부작용까지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노출되고, 스마트 환경이 오히려 익숙하기까지 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들에게 보다 능동적인 스마트폰 이용자로서 올바른 이용습관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니 어른들이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만 뭐라 할 일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단순히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스마트폰 이용을 절제할 줄 아는 습관을 만들어줘야 한다. 아이들의 생활환경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아이들을 위해 △유아 대상 바른인터넷 윤리교실 △초등학생 대상 한국인터넷드림학교 △교원 대상 원격·집합연수 △인터넷 리터러시(식별 및 기록, 판독 능력) 교육 등 참여형 체험활동을 통한 인터넷 윤리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펼치고 있다.

특히 이번 여름방학부터는 ‘밥상머리 인터넷 윤리교육’을 시작한다. 온 가족이 스마트폰을 올바로 이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된 이 프로젝트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과도한 이용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에서다. 자녀들이 스스로 ‘밥상머리 실천노트’(가칭)를 쓰도록 함으로써 부모들이 아이의 스마트폰 이용행태를 살펴보고,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유도할 생각이다.

이 밖에도 전국민 공모 창작동요제인 ‘인터넷드림 창작동요제’, 학교 현장 교원 대상 ‘우수 교안 공모전’ 등 다양한 참여형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우리의 노력들이 분명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우 리 아이들을 인터넷윤리와 책임의식이 투철한 디지털 사회의 훌륭한 주역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우리 아이들이 ‘펑’ 하고 부풀어 올랐다 꺼지는 ‘팝콘’이 아니라, 한여름 뙤얕볕과 폭풍우를 견디며 단단히 여무는 옥수수 알갱이처럼 건장하게 자라나길 바란다.


5. [연합뉴스]<김종현의 풍진세상> 역사는 드라마가 아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놓고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는데 다른 쪽에서는 국가를 해치는 일을 했다고 아우성이다.

나 라 밖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남중국해 패권 싸움이 세계의 갈등으로 비화하는 모습이다. 상설중재재판소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부정하는 판결을 하자 필리핀과 베트남의 후견인격인 미국은 재판 결과를 인정하라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처지다. 사드는 중국의 반발을 고려해 후방인 경북 성주에 배치하기로 했다. 감시 범위가 중국이 아닌 북한이라는 걸 정부는 어필한다. 배치 자체는 동맹인 미국, 입지는 전략적동반자인 중국의 눈치를 본 결정이다.

남 중국해 문제에서도 미국과 중국은 서로 자국 편에 서라고 우리나라를 압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어느 편도 들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은 해방 이후 줄곧 우리나라를 지켜준 맹방이자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다. 중국은 6ㆍ25 때 대군을 투입해 한국의 북진통일을 저지한 북한의 혈맹이지만 우리 수출의 26%를 점하고 있는 새로운 목숨줄이자 글로벌 패권을 꿈꾸는 세계 두 번째 강대국이다.

현재의 패권과 미래의 패권(아직은 불투명하지만)은 반드시 충돌하게 돼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편에 서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 양다리를 걸치는 건 평화시에나 가능하다. 큰 고래가 싸울 때는 중립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두 눈 똑똑히 뜨고 어느 쪽이 센지를 지켜봐야 한다. 강한 쪽에 붙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우리 역사가 그랬다. 우리 땅을 인도양이나 아프리카 해역쯤으로 들어 옮길 재주가 없는 한 이 건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을 지정학적 숙명이다.

14 세기 말 중원에서 원나라와 명나라의 세력 교체(조선건국), 16세기 말엽 명나라와 일본의 동아시아 패권 다툼(임진왜란), 17세기 초반 명나라를 밀어낸 청나라의 대륙쟁탈(병자호란), 19세기 후반 청나라와 일본의 한반도 지배권 전쟁(조선 멸망) 등 600여 년간 우리의 운명을 가른 강대국의 쟁투는 4차례 있었다.

이 가운데 지배층이 제대로 시류를 읽고 대처한 건 원명 교체기 뿐이다. 그것도 내부 갈등을 관리하지 못하고 결국은 쿠데타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를 바꿨다.


나머지 3차례는 조선이 전쟁터가 되거나 정벌을 당해 국토는 황폐화하고, 백성은 어육이 되거나 굶주려야했다. 이들 비극은 TV 사극에서 하도 많이 봐 국민이 스토리를 뚜르르 꿰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역사드라마가 넘쳐나는 곳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처럼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국민도 없다니 아이러니다.

역 사적 비극의 공통점은 국가가 힘(경제력과 군사력)이 없고, 명분에 매몰됐다는 점이다. 임금과 신하가 패를 갈라 밤낮없이 권력투쟁을 하고 있었다는 점도 추가돼야 한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비극적 결함은 시세의 흐름을 읽지 못한 지도층의 썩은 눈이었다.

청 나라와 친교 해야 할 때 오랑캐와는 상종할 수 없다며 망하는 명나라를 섬기고, 일본의 동향을 면밀하게 주시하며 대책을 세워야 할 때 근본 없는 왜놈들이라고 무시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동학이라는 이름으로 백성이 들고일어나자 청나라군과 일본군을 불러들였다.

그 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중요한 건 지역 혹은 글로벌 패권의 향방을 예측해 미리 대비하는 능력이다. 일단 그것만 제대로 하면 대책 없이 나라가 결딴날 일은 없다. 물론 지금은 평화기이므로 한쪽으로 올인할 게 아니라 주변 열강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낭만시대가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지구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 첨예화는 우리에게 한쪽으로 줄을 설 것을 강요한다. 요즘은 좀 잠잠하지만, 중국의 GDP가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로 올라선 2010년 전후로 중국이 얼마 안 가 미국을 누르고 패권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봇물을 이뤘다. 최근엔 중국이 이번 세기에 미국의 벽을 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운명을 함께할 나라를 선택할 때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의 안위, 명분이 아닌 실리를 중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고래들의 패권 전쟁에 휘둘리는 가련한 운명이 되지 않으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 대하사극 『정도전』에서 정도전은 말한다. "국제관계에서 미사여구를 다 제외하고 남는 단 한 글자는 힘(力)이다." 열강 사이에서 힘의 균형추를 흔들 수 있는 수준이어야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어느 나라도 한국을 마음대로 집어삼킬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정도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정치권과 국민은 사드니 신공항이니 개헌이니를 놓고 다투느라 진을 뺄 여유가 없다.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을 정도로 내공이 바닥을 드러낸 나라의 힘을 어떻게 하면 단기간에 극대화할 수 있느냐를 갖고 피 터지게 싸워야 한다. 북한은 경제 대신 핵을 택했다. 핵만 안고 있으면 어떤 나라도 쉽게 넘볼 수 없다고 자신하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국력을 쏟아 미래를 도모해야 하는가. 그걸 화두로 잡고 답을 내야 한다. 그 게 주변 열강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나랏일을 줏대 있게 결정할 수 있는 길이다. 주변 강국이 으름장 한 번 놓으면 냉정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어찌할 줄 몰라하며 서인과 동인, 주화파와 척화파, 훈구와 사림, 진보와 보수가 갈라져 싸움질하다 세월 다 보내는 자해적 바보짓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나.

임진왜란 7년간 백성은 절반으로 줄고 20만 명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병자호란 때는 임금이 적장에게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도 모자라 청나라에 50만 명의 백성을 노예로 바쳤다. 대한제국의 종말로 백성은 36년간 종살이를 하고, 해방 후에는 나라가 둘로 갈라서야 했다. 역사는 소설이나 드라마가 아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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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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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4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사드 설득 나서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 부지가 경북 성주군 성산리 일대로 결정됐다고 한다. 다른 지역보다 군사적 효용성이 큰 데다 민간인 밀집 주거지로부터 1.7㎞ 떨어진 400m 고지여서 전자파 유해성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전해진다. 후방지역이기 때문에 사드가 자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반발하는 중국의 공세를 비켜갈 수 있는 여지도 고려됐을 것이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와 군사·외교적 측면을 두루 살핀 결정이라는 얘기다.

배치 지역이 결정됨으로써 정책적 혼란은 일단락된 셈이다. 하지만 성주 주민들이 즉각 범군민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절대 불가, 강력 저지’를 결의하는 등 반발은 그치지 않고 있다. “사드 전자파로 주민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는 걱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레이더에서 100m 이상 떨어지면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과학적 설명이다. 이를 외면하고 반대만 외치는 것은 지역 이기주의요 ‘님비 현상’일 뿐이다. 영남권 신공항을 서로 유치하려던 ‘핌피 현상’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때에 국론이 갈라지고 배치 예정 지역 주민들까지 집단 반발에 나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권과 지자체 수장들이 단식 농성을 하는 등 되레 주민을 선동해 ‘안보 님비’를 부추기는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국가 안보를 외면한 무책임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무 엇보다 내부 결속이 중요한 시점이다.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과 해당 지역민의 대승적 협조가 긴요하다. 분열과 갈등이 더 깊어지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과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불임’, ‘방사선 참외’ 등 근거 없는 괴담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등 주민 설득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외부 세력이 반목을 조장해 경제·사회적 낭비가 극심했던 불상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주먹구구 추경 예산 편성을 우려한다

우 리 경제 여건이 추가경정예산에 기대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어려워졌다고 한다. 경기가 잠깐 회복세로 돌아서는 듯하다가 상승국면을 미처 느끼지 못한 상황에서 회복세가 끝나 버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대로 간다면 올해 성장률이 2.5%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게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솔직한 실토다. 추경 예산이 신속히 국회를 통과해 실물 부문에 투입돼야 한다는 얘기다.

경 제정책 수행에 추경 예산 투입이 당연시되기에 이른 자체가 심각하다. 박근혜 정부 들어 현오석·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호기를 부리며 추경을 투입했으나 돌아온 것은 계속되는 경기 침체에 성장률 둔화에 불과했다. 그러는 사이 국가 부채와 함께 가계 빚도 큰 폭으로 늘어가는 추세다. 주어진 여건이 불리하기도 했지만 어정쩡한 정책에도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추경 예산을 거창하게 편성하고도 정작 집행 과정에서는 원칙도 없이 사용하는 행태부터가 문제다. 메르스와 가뭄 사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11조원 이상의 추경을 편성했던 지난해의 사례도 예외가 아니다. 저소득층과 사회 초년병의 직업훈련 과정을 지원하는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이나 경기부양책으로 마련했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서도 예산이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공연예술계를 지원한다는 취지에서 편성된 티켓구입지원 계획도 목표에 미달했다.

이 처럼 추경 예산은 물론 본예산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니 추경 편성이 주먹구구로 이뤄졌다고밖에는 달리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추경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경기 활력의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원인을 추경에 돌리려는 핑계가 아니냐는 지적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올해 추진 중인 10조원 규모의 추경 예산에서도 비슷한 행태가 이어지지 않겠느냐 하는 점이다. 이렇게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게 된다면 추경 예산을 아무리 많이 편성하더라도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없다. 경기진작 차원을 떠나서도 국민의 세금을 가볍게 생각한다는 발상이 문제다. 지금 상황에서 추경 편성이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전시행정 차원의 항목 배정은 없기를 바란다.

[서울신문]

3. 檢, 가습기 사태 정부 책임도 분명히 가려야

가 습기 살균제 참사의 책임이 관련 기업들에만 있다고 보는 사람은 지금 거의 없을 것이다. 눈앞의 이익을 앞세워 생명을 경시한 악덕 기업의 부도덕성이야 눈곱만큼도 동정할 여지가 없다. 그와 동시에 철저히 책임이 가려져야 하는 쪽은 다름 아닌 정부다. 정부와 관련 책임자가 누구인지 한창 진행 중인 검찰 수사를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 사정인데 검찰이 정부 책임을 제대로 따져보기도 전에 한 발 빼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니 걱정스럽다. 검찰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을 소환해 조사하는 중이다. 정부 책임을 따지는 수사 범위는 가습기 살균제가 출시된 1996년부터 20년간이다. 검찰은 대부분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그마저도 법리상 직무유기죄 정도만 적용할 수 있어 실질적인 처벌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검찰이 지레 앓는 소리를 내지 않아도 수사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는 있다. 가습기 사태는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면서 진행된 해묵은 사건이다. 결정적 고비마다 정부 당국과 관계자들이 어떤 실수와 오판을 했으며 책임을 방기했는지 규명하는 작업이 쉬울 리 없다. 그렇다고 공무원 형사처벌 불가론부터 앞세우며 소극적인 수사를 한다면 그 결과를 누가 납득하고 신뢰하겠는가.

가뜩이나 늑장 수사로 정부만큼이나 검찰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중대 사건이다. 치명적 유해물질이 15년이나 시중에 버젓이 유통되면서 인명 피해가 속출했는데도 정부나 검찰이나 움직이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들이 한둘 아니다.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을 유독물이 아니라고 고시했다가 15년이 지난 2012년에야 유해물질로 지정했다. 피해가 줄을 잇는데도 아무 조치 없이 미적댄 것도 도무지 석연치 않은 일이다. 직무태만인지, 기업 유착이 있었는지 반드시 가려야 한다.

지 금이라도 검찰은 수사 의지를 곧추 세워야 한다. 적극적인 수사 의지가 전제돼야 진실에 한 치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검찰은 애초에 정부를 수사 대상에 넣지도 않으려다 국회가 국정조사를 결정하자 태도를 바꿨다. 국정조사 면피용으로 대충 넘길 생각은 접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에 안전마크까지 붙여준 정부의 행위는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4. 남중국해 충돌, 패권주의는 찬성할 수 없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힘겨루기 양상이 한층 격화되고 있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 가 그제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삼았던 ‘남해구단선’(南海九段線)에 대해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하면서부터다. 중재재판소는 중국의 인공섬 건설도 불법이라고 못 박았다. 중국의 완패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남중국해 도서는 중국의 영토”라면서 “중재 판결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불복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항행의 자유’를 내세워 해군과 공군 전력을 분쟁 해역에 투입해온 미국 측도 “국가 이익이 걸려 있는 만큼 눈감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대강의 형국이다. 이번 판결에 따라 남중국해 일대의 제해권을 차지하려는 미·중 간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만큼 새로운 접근과 함께 해법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분쟁의 핵심은 남중국해 전체 해역의 90%를 포괄하는 U자 형태의 남해구단선에 대한 합법성 여부였다. 중국은 1953년 구단선을 지도에 표시한 뒤 선 안에 있는 섬·암초·산호초와 해역을 자국의 영토와 관할로 규정했다. 영유권을 위해 역사적 권원(權原)까지 내세웠다. 판결은 바로 2013년 1월 필리핀이 중국을 상대로 분쟁 소송을 제기한 결과다. 남해구단선의 합법성은 부인된 데다 9개의 해양 지형물도 섬이 아닌 암초·간조노출지로 판정됐다. 중국이 국제적 비난을 무릅쓰고 건설한 인공섬은 법적 지위는커녕 환경 파괴 행위라는 판단까지 받았다. 인공섬을 기점으로 한 12해리·배타적경제수역(EEZ) 200해리 주장도 헛된 일이 됐다. 국력이 약한 동남아 국가들을 힘으로 밀어붙인 중국으로서는 굴욕이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 번 판결이 아시아의 안보 지형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미·중 관계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해양 강국을 꾀하던 중국은 제동이 걸린 반면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을 펴는 미국은 ‘항행의 자유’의 명분을 얻었다. 미국의 중국 저지인 셈이다. 미국은 석유를 비롯한 전략물자의 수송로이자 군사작전의 요충지인 남중국해를 중국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는 것을 팔짱을 끼고만 있을 수 없었다. 중국의 판결에 대한 강력한 반발은 이해할 수도 있지만 군사력을 동원한 무력시위는 옳지 않다. 국제 질서를 깡그리 무시한 패권주의나 다름없어서다. 미국의 물리적 맞대응도 바람직하지 않다. 양국의 대승적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은 남중국해 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중 간의 대립인 탓이다.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해야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중국과는 북핵과 관련된 협조가 더 확고해야 할 상황에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으로 마찰을 빚고 있다.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도를 국제 분쟁 지역으로 몰아가려는 일본의 망동도 어느 때보다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정부는 고민이 깊을수록 국제법의 원칙에 입각해 신중하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 국익이 우선이지만 패권주의에는 찬성할 수 없다. 정부가 남중국해 분쟁 판결과 관련해 내놓은 ‘평화로운 해결’이라는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정부의 현명한 외교적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동아일보]

5. ‘소수 아닌 모두를 위한 경제’ 내건 英보수당 여성총리

영국 집권 보수당의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이 13일(현지 시간) 영국의 76대 총리에 취임했다. 신임 메이 총리는 취임을 앞두고 “국민이 유럽연합(EU)을 이탈하는 브렉시트(Brexit)에 찬성한 만큼 총리로서 EU를 떠난다는 것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브렉시트 투표 전까지는 ‘EU 잔류파’였지만 이제는 브렉시트 현실을 인정하면서 변화를 원하는 자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는 실용적 기회주의(pragmatic opportunism) 노선을 보인 것이다.

‘철 의 여인’ 마거릿 대처 이후 26년 만에 여성으로서 총리 자리에 오른 메이는 강경 보수주의자로 통하지만 ‘작은 정부와 큰 시장’에 집착하지 않는다. ‘정부는 지역별 전략산업을 지원하고 기업은 고용을 창출한다’는 상생의 경제를 주장한다. 최근 들어선 “소수 특권층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경제”를 강조하고 “완전히 노동자 편에 설 것”이라는 발언으로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근로자 이사제를 도입하고 주주들이 경영자의 연봉을 결정하는 정책으로 사회 통합을 추진하려는 정책이 대처 식 신자유주의 경제와 어긋나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유연하게 적응해 성과를 낸다는 점이다. 그가 6년 동안의 내무장관 재직 중 경찰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도 범죄 발생률을 줄이는 성과를 낸 것도 효율을 중시하는 유연성 덕분이었다.

이 같은 보수의 ‘진화’는 빠르게 변해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과거의 교훈에서 나왔다. 대중이 원하는 것이라면 노동당 정책도 받아들이는 보수당의 DNA가 브렉시트라는 위기 국면에서 정책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그렇게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처칠, 대처, 메이저 등 보수당 총리들의 전통이기도 하다.

영 국 보수당의 행보가 반드시 정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새누리당의 행보는 보수도, 진보도, 중도도 아닌 회색지대에서 눈치만 보는 격이어서 한숨만 나온다. 시장경제 수호라는 고유 가치를 정책화하지도 못하면서 어설픈 경제민주화 논리로 야당 흉내만 낼 뿐 국민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있다. 국민의 변화 요구에 따라 당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계파 다툼에 골몰하는 새누리당은 영국 보수당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6. 배부른 현대차-현대중 노조 때문에 노동개혁 시급한 것

현 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노조가 임금협상과 관련해 연대파업 카드를 들고 나왔다. 현대차는 기본급 7.2% 인상, 전년도 순이익 30% 성과급 지급, 일반 연구직 조합원의 승진거부권을 요구한다. 2년간 5조 원의 적자를 기록한 현대중 노조는 기본급 5.09% 인상, 성과급 250% 보장, 우수 조합원 100명 이상 해외연수를 요구하고 있다. 통념과 어긋난 승진거부권을 요구하거나 구조조정에 들어간 회사를 상대로 해외연수까지 보내 달라는 것을 보면 철밥통 노조 이기주의의 끝이 어디인지 궁금하다.

현대차 노조는 13일, 현대중 노조는 13∼15일 파업 찬반투표에 들어갔다. 역대 투표를 보면 가결이 확실시된다. 현대차는 5년, 현대중은 3년 연속 파업에 23년 만의 동반 파업이라는 치욕적 기록이 나올 판이다.

어 제 발표된 6월 청년실업률이 10.3%로 두 달 만에 두 자릿수로 올라섰다. 올 들어 청년실업률은 전년 같은 달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6개월 연속 상승세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좌절하고 있는데, 대기업 노조들이 자기들 잇속만 챙기느라 혈안이 됐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는 최근 “정규직 보호를 완화하는 노동시장 개혁은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2016 고용전망’을 발표했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심한 한국 같은 나라일수록 노동개혁을 추진하면 고용이 오히려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다. 비정규직 비율이 25%였던 스페인에서는 정규직 중심의 고용시장 개혁을 단행한 결과 신규 고용에서 정규직 고용이 3.1%포인트 증가했다.

현대차-현대중 같은 정규직의 보호를 완화하는 노동개혁을 해야 청년고용도 늘어날 수 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와 소득불평등이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사회통합까지 저해하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가 사면초가의 위기라는 사실, 왜 귀족노조의 눈에만 보이지 않는가.

[중앙일보]

7. 검사직을 비즈니스 수단으로 쓴 주식 대박 검사장

진 경준 검사장이 자수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지난 3월 말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주식 대박’ 의혹이 불거진 뒤 거짓 해명과 침묵 사이를 오갔던 그가 검찰 수사가 확대되자 일부 사실관계를 시인하고 나선 것이다. 과연 이것이 공직자, 특히 ‘검찰의 꽃’이라는 검사장에게 걸맞은 행태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금로 특임검사팀은 어제 “진 검사장이 변호인을 통해 자수서 형식의 자료를 제출했으며 그 내용을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해당 문건에는 그간 불거진 의혹에 대한 해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넥슨 비상장 주식 1만 주를 매입할 당시 넥슨에서 4억여원을 빌린 사실과 함께 넥슨의 법인 리스 차량을 처남 명의로 제공받았다는 의혹도 일부 시인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2006년 주식을 10억여원에 되팔고 다시 넥슨재팬 유상증자에 참여한 과정에 특혜가 없었다고 하는 등 대가성과 업무 관련성을 부인하는 취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진 검사장의 자수서 제출은 결국 상황을 또다시 모면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특임검사팀 수사가 120억원대의 주식 대박 의혹을 넘어 처가(妻家) 명의 청소용역 업체 운영, 차명계좌 등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수사의 칼끝을 피해보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검찰은 어제 김정주 넥슨 창업주를 소환한 데 이어 오늘 진 검사장을 피의자로 조사할 예정이다. 앞서 진 검사장은 주식 매입 자금에 대해 “개인 돈”이라고 했다가 정부 공직자윤리위 조사에선 “처가에서 빌린 돈”이라고 말을 바꿨다. 지난달 초 넥슨이 주식 매입 자금을 대줬다고 인정한 뒤에도 그는 계속 묵묵부답이었다. 뒤늦은 자수서로 형사처벌을 피할 돌파구를 찾으려는 그의 모습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검사의 진정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진 검사장은 검사직을 비즈니스 수단으로 활용한 것 아닌가. 검찰은 허울뿐인 자수서에 수사 강도를 낮춰선 안 된다. 시민들은 “떳떳하지 않게 자기 앞가림만 하려는 사람이 어떻게 수사를 했고, 어떻게 검사장까지 올라갔느냐”고 묻고 있다. 검찰은 관련 의혹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철저히 수사하고 그 결과를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매일경제]

8. 메르스 대비하랬더니 내시경 구입에 쓴 추경 예산

지 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후 급하게 마련된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지원받은 병원들이 감염병 대비와 무관한 엉뚱한 곳에 돈을 썼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메르스 연관사업을 제쳐놓고 평소 구비해야 하는 제세동기를 사거나 내시경 장비 등을 마련하는 데 탕진했다는 것이다. 메르스 대비용으로 총 500억원가량이 투입됐는데 이렇게 부적절하게 혈세를 써버린 것은 물론 아직까지 정산보고서조차 제출하지 않은 병원이 있다니 더 심각하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내놓은 2015회계연도 결산자료를 보면 추경을 통해 수십억 원에서 수천억 원까지 추가로 예산을 투입했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은 사업이 수두룩했다. 추가로 늘린 추경예산을 한 푼도 사용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기존의 본예산조차 다 쓰지 않았는데 추경으로 돈을 더 지원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 지원사업에는 본예산 2746억원에다 추경으로 628억원을 증액해 3374억원까지 불어났으나 실제 집행된 예산은 본예산보다 적은 2562억원에 그쳤다. 본예산도 전부 집행하기 버거웠는데 추경을 한다며 억지로 끼워 넣어 불용액만 늘린 주먹구구식 편성의 민낯을 보여준 것이다.

지난해 메르스와 가뭄 등으로 침체된 경기를 살리겠다며 국민 혈세로 11조원 넘게 추경을 편성했지만 편성과 집행 과정 곳곳에 숭숭 뚫려 있는 구멍을 보니 걱정스럽다. 올해에도 구조조정과 일자리 창출 등의 명목으로 10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인데 다시 졸속 편성으로 세금 낭비를 반복할까봐서다. 이번에는 추경 결정 시점이 늦은 만큼 이달 내 추경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우려가 더 클 수밖에 없다. 민간 부문에서의 역할이 제한적일 때 정부의 재정 조기 집행과 추경 같은 적극적인 재정 운용이 경기 활성화에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부분에 추경을 편성해 효과를 극대화해야 할 것이다.

9. 금리 내렸지만 투자는 안 늘고 가계빚만 늘었다니

지 난달 은행권 가계대출은 6조6000억원 늘어 잔액이 667조5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증가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은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4조8000억원 증가해 잔액이 사상 처음 500조원을 넘어섰다. 반면 6월 은행의 기업대출은 1조2000억원 줄어 감소세로 전환됐다. 중소기업 대출은 1조7000억원 늘었지만 전달에 비해 증가 폭이 둔화된 것이고, 대기업 대출은 2조9000억원 감소했다.

지난달 9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이 기업의 활발한 투자를 유발하기보다는 가계 빚만 늘린 꼴이니 답답할 노릇이다. 기업들은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불확실한 글로벌 경기, 수요부진 등에 짓눌려 과감한 투자를 미루고 여유자금을 그냥 쌓아두고 있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기업 투자 부진 장기화는 대량 실업과 가계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릴 게 뻔하다. 전반적인 수요 침체에 따른 기업들의 투자심리 위축은 이해하지만 신사업에 대한 활발한 투자 없이 돈을 은행에 쌓아 놓고 있어서야 어떻게 지금과 같은 경기 부진을 타개해나갈 수 있겠는가.

이렇게 경기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저금리에 올라탄 부동산 투자가 급증하면서 가계부채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은 우려가 된다. 올해 상반기에 불어난 은행권 가계대출 28조4000억원 중 주택담보대출은 23조8000억원에 달한다.

정 부가 7월부터 분양가 9억원 이상 아파트 중도금 집단대출을 규제했지만 풍선 효과로 다른 수도권 아파트 청약 경쟁률이 치솟고 있어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쉽게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소비 감소로 이어져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 수 있다. 향후 금리가 상승할 경우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이대로 방치해선 곤란하다. 특히 저소득층의 가계 부채는 부실화 가능성이 커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정부가 좀 더 치밀한 가계부채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세계일보]

10. 도 넘은 공직기강 해이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황 교안 국무총리가 어제 중앙행정기관 감사관 회의를 소집해 공직기강 확립을 강조했다. 황 총리는 “앞으로 공직기강 해이 사례가 또다시 발생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하게 문책하겠다”고 했다. “공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부를 대표한다는 책임감으로 처신을 바르게 하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도 했다. 총리가 감사관 회의에 직접 참석해 공직기강을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한다.

어제 회의는 교육정책 실무를 총괄하는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발언 파장을 수습하기 위한 후속조치로 마련됐다. 나 기획관은 최근 한 언론사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99%의 민중은 개돼지로 보고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는 막말을 일삼았다. 공직자의 자질과 직분을 망각한 망언이다.

무개념 공직자의 일탈 현상은 몇몇 공무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근자에 불거진 사건만 해도 셀 수 없을 지경이다. 미래창조과학부의 한 사무관은 외국 출장에 동행한 부하 직원에게 자녀의 학교 숙제를 대신 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부산에선 학교전담경찰관 2명이 여고생과 성관계를 맺는 일까지 벌어졌다. 자의적인 휴직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직을 날려버린 홍기택 부총재의 행동은 국제 망신감으로 손색이 없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미 양국의 사드(THAAD) 배치 방침을 발표하던 8일 오후 백화점 쇼핑으로 구설에 올랐다. 윗물이 이런 정도이니 아랫물의 기강을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공 공개혁은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4대 개혁의 첫 단추다. 그런데도 개혁의 바로미터인 공직기강부터가 여전히 엉망이다. 공직기강은 총리가 몇 번 호통을 친다고 해서 나아지지 않는다. 공무원들이 눈치나 살피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정부는 갑질·막말·복지부동하는 공직자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 회초리를 제대로 들지 않으면 박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은 빨라질 수밖에 없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신문][씨줄날줄] 이준 열사와 상설중재재판소/강동형 논설위원

‘네 덜란드 헤이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은 이준 열사다. 그는 1907년 7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고종 황제의 명을 받고 이상설·이위종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했다. 그는 회의에 참석해 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서 불귀의 객이 됐다. 그는 일본 대표인 가토 다카아키가 고종 황제의 친임장이 위조됐다며 퇴장을 요구했고, 영국이 가세하는 바람에 회의 참석이 좌절됐다. 그는 이때 ‘선혈(鮮血)의 호소’라는 연설문을 낭독하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헤이그에 묻혀 있던 그 유해는 1963년 고국의 품에 안겼다. 그의 죽음에 대해 과거에는 항의의 표시로 할복 자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분통함이 원인이 된 악성종양으로 호텔방에서 쓸쓸히 숨을 거뒀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상설중재재판소(PCA) 는 이 열사가 뜻을 이루지 못한 바로 그 회의에서 창설된 기구다. 1899년 열린 제1회 만국평화 회의에서 ‘국제 분쟁의 특정한 처리 방법을 위한 조약’이 체결되었고, 이 조약은 다시 2차 만국평화회의에서 ‘국제 분쟁의 평화적 처리 방법을 위한 조약’으로 수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PCA는 유엔기구인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설립되면서 그 역할과 기능이 축소됐다. 그러나 국가 간의 분쟁만을 다루는 ICJ와 달리 국가와 개인 간의 분쟁도 처리한다. 이 재판소의 한계는 판결 결과를 지키지 않아도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PCAICJ가 나란히 입주해 있는 건물을 ‘평화 궁전’(Peace Palace) 이라고 부른다. 평화 궁전은 당시 국제평화재단을 설립한 미국의 철강재벌 앤드루 카네기의 지원으로 건립됐다. 건물 주변에 전 세계 197개국에서 보내온 돌을 전시한 공원이 조성돼 있고,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와 평화의 불꽃 등 평화를 주제로 한 각종 조형물을 설치해 관광 명소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만국평화회의의 산물로 탄생한 ‘PCA의 판결’이 평화를 가져오기는커녕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PCA가 그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은 역사적·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하자 중국은 판결 내용을 무시하며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예견됐던 일이지만 국제사회에서 힘이 곧 정의라는 현실을 접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 지역에서 패권 다툼을 하고 있는 미·중의 무력 충돌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중국이 영해라고 그어 놓은 9개의 선을 지도상에서 살펴보면 너무 과해 실소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중국은 실효지배를 하고 있고 강대국인 반면 PCA에 제소한 필리핀은 힘이 없다. 미국이 뒤를 받치고 있지만 애처로워 보인다. PCA가 제 역할을 할 그런 날은 올 것 같지 않다. 우리가 이준 열사의 분통함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PCA 판결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2. [서울신문][세종로의 아침] 위작의 메커니즘과 과학적 진실/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은데 또 한가지가 추가됐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우환 화백이 경찰이 압수한 그림 13점에 대해 “모두 내가 그린 것 맞다”고 말한 것이다.

국 과수의 과학 감정, 미술 감정 전문기관의 안목 감정 결과 위작으로 판명났고 체포된 위조범이 범행을 시인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림의 주인인 작가 자신에게 의견을 묻지도 않고 자격 없는 사람들이 위작 판단을 내렸다”며 울분을 토했다. 심지어 경찰이 자신을 회유하려 했다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했다.

경찰이 압수한 그림들이 이 화백이 그린 1970년대 후반의 그림들과 다르다는 것, 그러니까 위조범들이 그린 뒤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40년 전 그림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는 증거는 여러 가지 있다. 굳이 수억원짜리 장비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육안으로 쉽게 가짜임이 드러나는 것들이었다고 경찰 감정에 참여했던 복수의 감정위원들은 전한다.

이 화백은 이런 모든 증거들을 부정하려 하고 있다. 나아가 국가기관의 권위와 과학적 판단 자체를 무시하려 들고 있다. 이런 행동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경찰도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은가 의심스럽게 보고 있다”며 배경을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화백의 ‘진품 주장’을 사주하는 사람들로 가장 먼저 지목되는 것이 이 화백과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대형 화랑들이다. 미술시장의 구도를 놓고 보면 위조 조직과는 별개로 이 화백 작품을 거래하는 몇몇 대형 화랑과 이들이 소유한 옥션, 컬렉터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2007~2008 년 반짝 경기 이후 미술시장이 수년째 불황으로 허덕이는 상황에서 한국의 추상회화 운동인 ‘단색화’는 화랑가에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대형 화랑들은 국내 시장이 좁다며 해외에까지 나가 전시회를 열었고, 국내외 경매에서 거래를 부추기면서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우환 위작을 만든 위조범들에게는 멋지게 한탕 할 찬스가 온 것이다. 작가는 “내가 본 그림 중에 위작은 없다”고 거들고, 화랑이 요구하면 확인서도 써주었다. 화랑은 작품에 사인도 대신하고, 겹치는 일련번호를 매기기도 했다.

이런 그림을 컬렉터들에게 팔고, 컬렉터들은 대형화랑이 소유한 옥션에 그림을 다시 내다 판다. 컬렉터는 차익을 챙기고 옥션은 수수료를 챙긴다. 누구도 밑지는 장사가 아닌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위작은 진품으로 둔갑한다.

미 술계에서는 시장 위축을 우려하며 위작 관련 법제를 강화해야 하고, 지금이라도 위작을 걸러낼 검증시스템을 공고히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시급한 것이 있다. 돈이나 권력보다 과학적 진실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 화백이 과학적 증거 앞에서 위작임을 순순히 인정한 뒤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위조범들에게는 엄한 처벌을 바란다”고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2016년 6월 29일, 이 화백은 예술가로서의 양심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찬스를 놓쳐버렸다.


3. [동아일보][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공세리 성당과 이명래 고약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불리는 곳, ‘태극기 휘날리며’ ‘사랑과 야망’ ‘아내가 돌아왔다’ 등 7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한 곳.

바 다에 인접한 충남 내포(內浦) 땅 아산에 가면 공세리 성당이 있다. 내포는 한국 천주교의 요람. 이에 걸맞게 공세리 성당의 역사도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0년 공세리에 공소(신부가 상주하기 전 단계의 소규모 천주교회)가 생겼고 1895년 프랑스인 에밀리오 드비즈(한국명 성일론) 신부가 부임했다. 그는 1897년 한옥 성당을 신축했고 이어 1922년 직접 설계해 지금의 공세리 성당을 지었다.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공세리 성당은 우아하면서 단정하다. 그런데 언뜻 보면 근대기에 지어진 다른 성당과 그 모습이 비슷하다. 그럼, 이 성당이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히는 이유는 뭘까. 건물의 외관도 외관이지만, 가장 매력적인 것은 주변 경관과의 조화다. 수령 350여 년의 느티나무를 비롯해 건물 주변엔 고목이 여럿이다. 그 고목과 서양식 건축물의 조화가 압권이다. 성당 마당엔 순교자 32위의 넋을 기리는 공간도 있다. 순교의 흔적이 찾는 이를 숙연하게 한다.

이 성당엔 빼놓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1900년 전후, 아산 지역엔 종기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모습을 안타까워한 드비즈 신부는 나름대로의 의약 지식을 활용해 종기 퇴치 약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신통하게 종기는 곧 나았고 화제가 되었다. 당시 공세리 성당에서 심부름을 하던 10대 소년 이명래가 있었다. 소년은 드비즈 신부로부터 열심히 고약 조제법과 치료법을 배웠다. 그러다 1906년 종기를 치료하는 고약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이에 힘입어 아산에 ‘명래한의원’을 개업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이명래 고약’은 공세리 성당에서 그렇게 탄생했다.

성당 한쪽엔 박물관도 있다. 사제관 건물을 박물관으로 바꾼 것이다. 박물관엔 성당과 순교의 역사, 성당 건축 과정, 이명래 고약 등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촬영한 영화 드라마 가운데 대표작의 관련 영상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공세리 성당은 언제 가도 아름답다. 뜨거운 여름 태양에 빛나는 붉은 벽돌도 좋고 건물 외벽에 드리운 고목의 그림자도 좋다.


4. [동아일보][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보기 힘들다, 볼 수 있다, 매우 보여진다

영 화 대사 한 줄이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들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라는, 영화 ‘내부자들’ 속 권력자 백윤식의 대사 말이다. 이 말은 알고 보면 관객의 공분(公憤)을 자아내기 위한 영화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이 대사를 듣고 ‘아하! 난 개돼지에 절대로 속하지 않아. 나는 상위 1%니까. 하하하’라며 기분 좋아할 관객은 세상에 별로 없을 것이므로. 공분이란 최대 다수의 최대 공감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정서인 것이다.

그런데 ‘내부자들’의 명대사는 따로 있다. 백윤식이 “어떠어떠하다고 보기 힘들다, 볼 수 있다, 매우 보여진다…. 같은 말이어도 누구에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힘 가진 자는 무슨 극악무도한 짓을 하더라도 대부분 ‘나쁘다고 보기 힘들다’고 표현되지만, 힘없는 자는 웬만하면 ‘나쁘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나쁘다고 매우 보여진다’로 치부된다는 얘기다.

이 번에 지탄을 받게 된 고위관료는 이런 논리가 거꾸로 적용된 경우다. 일도양단하자면 한국사회에서 그는 ‘힘 있는 자’로 분류되기에, 힘없는 다수의 입장에서 볼 때 그는 ‘나쁘다고 보기 힘든’ 게 아니라 외려 ‘나쁘다고 볼 수 있는’ 것을 넘어 ‘나쁘다고 매우 보여지는’ 것이다. 이처럼 대중의 공분은 북핵보다 무섭다.

올해 상반기 국내 개봉 영화들에서도 폐부를 찌르는 명대사들을 찾아볼 수 있다.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룬 영화 ‘라스트 홈’엔 집을 잃고 쫓겨나는 사람들의 등에 칼을 꽂는 서슬 퍼런 대사가 나온다. “이 나라는 패자를 구해주지 않아. 오직 승자들을 위해 세워졌지. 승자의, 승자를 위한, 승자에 의한 나라이니까.” “100명 중 단 한 명만 방주에 올라타는 거야. 나머지는 물 밑으로 가라앉는 거지.” 그렇다. 공분을 자아내기 딱 좋은 ‘상위 1%론(論)’인 것이다. 할리우드도 한국처럼 공분이 돈이 되는 시장인가 보다.

미 국 여성 사업가의 성공 실화를 옮긴, 제니퍼 로런스 주연의 영화 ‘조이’에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대사가 등장한다. “착각하지 마. 세상은 당신에게 빚이 없어.” 아, 동정 없는 세상은 결코 패자에게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는 냉정한 진실을 이처럼 천연덕스럽게 속삭이는 대사가 또 있을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오는 대사 “말은 제대로 하자. 넌 노력하지 않아. 단지 징징대는 거야”보다 몇 곱절 더 싸늘하고 잔인하다.

하지만 영화에는 삶의 의욕을 뿌리째 꺾어놓는 나쁜 대사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로와 희망을 주는 대사도 많다.

영 국 최초 스키 국가대표 선수의 도전 실화를 옮긴 감동적인 영화 ‘독수리 에디’에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꼴등’ 선수 에디에게 세계 1위가 건네는 철학적인 대사가 나온다. “너와 나는 한 시와 열한 시 같아. 나머지 시간들보다 서로와 더욱 가깝지. 이기고 지는 건 중요하지 않아. 우리는 영혼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점프를 하지.” 얼마나 멋진 은유인가! 12시라는 최고의 자리를 이미 맛본 자신(1시)만큼이나 12시를 향해 달려가는 에디(11시)의 삶도 소중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니 말이다.

멜로물에 정통한 곽재용 감독이 뜻밖에 내놓은 스릴러 ‘시간이탈자’에도 사고뭉치 제자에게 스승이 건네는 명대사가 등장한다. 역시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은유다.

“선 생님, 저 양아치 맞거든요? 이제 그만 저를 포기하시라고요.”(제자) “허∼. 나침반 바늘이 움직이는 동안은 방향을 알 수 없는 법이지.”(스승) “예?”(제자) “네가 길을 잃어서 나침반을 꺼냈다고 생각해 봐. 그럼 방향을 찾으려고 나침반 바늘이 마구 움직이겠지? 그동안 너는 눈금을 읽을 수 있을까?”(스승) “당연히 없죠. 근데,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제자) “넌 지금 방향을 찾고 있는 거야, 인마! 네 나침반 바늘이 아직 움직이고 있는데, 남의 말이나 듣고 내가 널 판단해서야 쓰겠냐? 나침반 바늘이 움직이는 동안 난 너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기로 했다.”(스승) “그게 언제까지 움직일 줄 알고….”(제자) “교사의 본분은 가르치는 게 아니야. 기다려 주는 거지.”(스승)

아, 상대의 나침반 바늘이 움직이는 동안 기다려 주는 아량과 배려가 이 세상엔 이미 멸종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나를 믿고 기다려 주는 단 한 명만 세상에 있어도 제법 살맛이 날 터인데. 영화 ‘계춘할망’에서 할머니가 손녀에게 건네는 대사로 이번 칼럼을 마감할까 한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내 편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야. 내가 네 편 해줄 테니 너는 네 원대로 살거라.”


5. [동아일보][열린 시선/문태학]어르신 운전자의 안전운전을 위한 제언

같 은 속도로 나란히 달리던 두 차가 앞서가던 화물차가 떨어뜨린 적재물을 동시에 발견했다. 두 차의 운전자 모두 전방 주시를 철저히 했지만 한 대는 교통사고를 피했고 다른 차는 화물을 들이받았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운전자의 나이였다. 사고를 피한 차의 운전자는 33세, 사고가 난 차의 운전자는 75세의 어르신 운전자였다.

위험을 인지하고 브레이크를 밟기까지 걸리는 반응시간은 성별 연령 컨디션 주의력 및 위험 예측의 정도 등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주로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지연된다. 30대 운전자의 반응시간은 0.7초였지만 70대 운전자는 1.2초가 걸렸다. 그만큼 정지거리가 길어지면서 적재물을 들이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고 사례에서 보았듯이 다른 조건이 같더라도 어르신 운전자는 청장년층 운전자에 비해 교통사고 확률이 높아진다. 최근 5년 동안 발생한 교통사고 통계(경찰청 자료)를 보면 운전자의 연령이 61세 이상일 경우 사망률이 높아지기 시작하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65세 이상일 때 사망률은 60세 이하의 1.5배 수준이고 71세 이상은 2배 이상이다. 같은 기간 어르신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 점유율 역시 전체 교통사고 발생건수 대비 6.1%(2011년)에서 9.9%(2015년)로 증가하는 추세다.

어르신 운전자들에게 운전을 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제도적 보완과 개인의 노력이 합쳐지면 어르신 운전자 교통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먼저 고령자로 하여금 운전면허를 반납하도록 하는 법적 장치 또는 자발적 문화 형성이 필요하다. 최근 동아일보 기획기사처럼 대한노인회가 적성검사 기간 단축이나 점진적 인지능력 검사의 의무화 방안에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르신 운전자는 본인의 신체 및 정신적인 상태가 운전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어르신 운전자는 노화에 따른 감속운전 및 차간거리 확보 등의 운전행동 변화를 실천해야 한다.

도 로교통공단에서는 65세 이상 어르신 운전자의 교통안전과 보험료 절약을 위해 노인운전자 교육과정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3시간 교육을 이수하고 교육 중에 실시하는 인지지각 검사를 통과한 어르신 운전자는 2년간 자동차 보험료를 5% 할인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제도를 적극 활용하면 어르신 운전자들의 교통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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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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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3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생리대 논란, 거품가격 빼는 것이 먼저다

공 정거래위원회가 여성 필수품인 생리대 가격에 대해 조사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생리대 가격이 다른 품목에 비해 훨씬 높아 소비자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고 있다면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다. 오죽하면 국회에서조차 이에 따른 문제점이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생리대가 비싸서 우리 딸들이 고통 받고 있는데 생산업체의 독점가격 때문”이라고 지적했고, 이에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이 조사 방침을 밝힌 것이다.

이처럼 생리대와 관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점유율 선두업체가 가격인상 방침을 발표하면서 가격 부담 때문에 화장실 휴지나 신발 깔창을 생리대 대용으로 쓰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졌다. 일부 지자체에서 저소득 여성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생리대 지원사업까지 펼치게 된 사정이다. 생리대가 빈부 격차를 나타내는 상징이 돼버린 것이다.

문제의 초점은 가격이 너무 높게 형성된 게 아니냐는 데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2010년부터 올해 4월까지 생리대 가격이 25.6%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10.6% 오른 데 비해 2.4배에 해당한다. 펄프와 부직포 등 비슷한 재료를 사용하는 화장지 및 기저귀의 소비자 가격이 각각 5.9%, 8.7% 오른 데 비해서도 현저하게 높은 수준이다.

제조업체들 나름대로 가격 관리에 대한 고충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 가격을 올린 데는 그만한 이유와 배경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생리대 가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배 수준이라면 뭔가 크게 잘못됐다. 여성들이 생리현상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하는 필수품이라는 점을 노려 업체들이 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될 만도 하다.

생 리대 논란은 일부 독과점업체의 과도한 이윤 추구 여부에 그치지 않는다. 기본 생리현상조차 처리할 만한 형편이 안 되는 빈곤층이 아직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는 점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각 지자체가 이들에게 생리대를 무료로 지원하는 전시성 사업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인권침해 가능성은 또 다른 문제다. 가능하다면 생리대의 거품가격을 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2. 광복절 특사, 원칙 지키되 역차별 없어야

내 달 실시될 8·15 특별사면의 범위와 대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기업 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한 사면권 제한을 대선 공약으로 못 박았고, 집권 이후에도 이 공약만큼은 성실하게 지키려고 노력했다.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이뤄진 재작년 설 특사에서 비리 정치인과 기업인이 일체 배제됐고, 작년 광복절 70주년 특사 때도 재벌 총수로는 최태원 SK 회장 1명만 포함된 게 그런 결과다.

그 러나 이번에는 비리 정치인과 기업인들도 사면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 박 대통령이 ‘경제 위기’를 사면의 배경으로 지목한 데서 그런 뜻이 함축돼 있음을 느끼게 된다. 박 대통령은 그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금 우리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이 많고 국민의 삶의 무게가 무겁다”며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전기가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비교적 사면을 자제해 온 편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은 각각 7~9번의 사면을 남발했고 숫자도 많게는 1000만명을 넘겼으나 박 대통령은 그동안 2번의 사면에 그친 데다 그나마도 규모가 각각 6000명 안팎에 머물렀다. 정치인과 재벌 총수 적극 배제 원칙까지 고려하면 사면에 관한 한 박 대통령의 점수는 역대 최고로 평가할 만하다.

청 와대는 일단 “관계 부처에서 대상이나 범위를 검토할 것”이라며 한발 빼는 모양새다. 하지만 관심의 초점이 되는 주요 인사들의 포함 여부는 당연히 대통령 몫이다. 역대 정권의 사면권 남용을 강력 비난하던 박 대통령이 전임자들처럼 ‘경제 위기’나 ‘국민 화합’을 구실로 정치인과 경제인들을 대거 사면한다면 누워서 침 뱉는 꼴밖에 안 된다.

어렵사리 자리 잡은 사면 원칙과 기준이 지금에 와서 흔들린다면 국가적 손실이다. 고통스럽더라도 정치권과 국민이 합심해 훌륭한 전통을 세워야 한다. 그렇다고 사면을 너무 교조적으로 운용하는 바람에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란 이유만으로 역차별당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면 요건을 이미 충족했고 잘못을 진지하게 뉘우치는 경우에는 법의 형평성 범위 안에서 나라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다시 한 번 부여하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서울신문]

3. 사드 배치, 정치권부터 초당적 협력하라

사 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를 더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의 정례 브리핑에서조차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면서 공공연히 ‘보복’을 시사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가진 모든 역량을 한데 모아 주변국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는 데 총력을 기울여도 부족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정치권의 모습에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북한 미사일에 맞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최소한의 자위 조치가 필요 없다는 뜻인지 정치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사드 정국에서 국민의당 처신은 특히 미덥지 못하다. 안철수 전 대표는 앞서 사드 배치를 국민투표에 부쳐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논란을 빚기도 했다. 어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동영 의원은 한 걸음 더 나간 무리수를 두었다. 그는 ‘야당외교’를 강조하면서 “미국에는 왜 사드를 한국에 갖다 놓으면 안 되는지 설득하고, 중국에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 새 정권이 사드를 철회하겠다고 말해 우리 국익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외교를 말하지만 국내 정치적 반사이익을 겨냥하는 의도가 너무나도 뻔한 발언이 설득력을 갖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당은 의원총회에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 철회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4·13 총선에서도 사드 배치 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당시에는 “북한이 보유한 다수의 중·단거리 미사일을 고려할 때 군사적 효용이 낮고,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며, 주변국과의 안보 딜레마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사드가 패트리엇 미사일과 함께 다층방어 체계를 구축하면 당연히 요격성공률은 높아진다. 여기에 6조~8조원이 들어간다는 국민의당 주장과 달리 사드는 주한미군이 보유하는 만큼 막대한 예산이 들어갈 일도 없다. 상황이 바뀌고 전제가 달라졌음에도 요지부동인 것은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은 사드 정국에서 아예 존재감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이제는 원내 제3당이 의도적으로 벌이는 선명성 경쟁에 ‘전략적 신중론’마저 흔들리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어제 열린 사드 의견 수렴을 위한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한 더민주 의원 가운데는 당론으로 반대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더 많았다고 한다. 사드 배치 지역이 아직 공표되지 않은 상황에서 후보지로 거론되는 지역의 반발은 당연할 것이다. 그럴수록 주민의 불안감에 정치적으로 편승하겠다는 의도가 있어서는 안 된다.

북한이 보유한 1000발 안팎의 탄도미사일 가운데 85% 이상은 대한민국을 겨냥하고 있다. 대비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유사시 우리 국토 어디에도 안전지대란 있을 수 없다. 안팎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사드를 배치한다고 모든 국민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드 배치는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사드를 반대한다면 국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지금은 국내 정치의 유불리는 잠시 접어 두고 초당적 협력으로 주변국을 설득해야 할 때다.

4. 中 경제보복에 대비하되 과민반응 말아야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중국 장화이(江淮·JAC)자동차가 삼성SDI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생산을 중단했다고 한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 측의 각종 보복 조치가 우려되는 가운데 나온 소식이다. 삼성SDILG화 학 등 국내 업체들의 배터리가 지난달 중국 정부의 인증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장화이자동차로서는 이 배터리들을 탑재할 경우 정부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없어 부득불 생산을 중단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사드 관련성이 제기된 것이다.

공 교롭게도 같은 날 중국 외교부는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사드 배치는 중국에 엄중한 손해를 끼칠 수 있다”면서 “중국은 당연히 자기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상응하는 조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성 발언을 했다. 말로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맞대응하겠다는 뜻이다.

중 국의 경제 보복은 과거의 사례에 비춰 봐도 비현실적인 가설이 아니다. 중국은 2012년 일본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당시 일본 측에 희토류 수출 중단 조치를 내린 바 있고, 2010년 자국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劉曉波)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노르웨이에는 연어 수입을 중단하는 방법으로 보복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는 국가에도 어김없이 상응하는 경제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자국의 ‘핵심이익’이 침해됐을 경우 국제적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최소한 경제적 보복으로 대응해 온 중국이다. 2000년 우리 정부가 중국산 마늘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한국산 휴대전화 수입 금지로 맞대응하지 않았는가.

우 리 정부는 일단 중국이 대규모의 경제 보복을 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치·안보와 경제 분리론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그러면서도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에 상응하는 계획들을 짜고 있다”고 했다. 경제 보복이 실제 단행돼도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만반의 대비책을 갖춰야만 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우리 제품을 상대로 통관 지연, 검역 강화 등 비관세 장벽을 높이거나 관영매체를 동원한 불매운동 등이 우려된다. 중국 내 우리 기업들을 표적 단속하거나 한국행 유커(관광객)를 의도적으로 제한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너무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양국의 교역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2273억 달러에 이른다. 경제 갈등이 격화된다면 중국도 적지 않은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구조다. 중국 정부의 이성적 대응을 기대한다.

5. 폭스바겐 판매정지 엄포에 그쳐선 안 돼

정 부가 배기가스 조작으로 국내 소비자들을 속여 온 독일 자동차 업체 아우디·폭스바겐에 대해 강력한 제재 절차에 들어갔다. 환경부는 최근 검찰로부터 허위·조작된 소음 및 배기가스 시험성적서로 인증을 따낸 아우디·폭스바겐의 30여개 차종 명단과 행정처분 요청을 받았다. 사실 확인을 거쳐 인증 취소와 함께 판매된 차량을 리콜토록 하고 과징금을 부과할 방침이다. 폭스바겐이 리콜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내년 상반기 자동차 정기검사 때 불합격 처리하고 운행 정지 명령까지 고려하고 있다.

검찰이 밝혀낸 허위 시험성적서 엔진을 장착한 차량은 RS7·A8· 벤틀리 등 30여종이지만, 인증 일련번호가 동일한 엔진이 여러 차종에 동시에 탑재될 수 있어 제재 대상은 70여종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2007년부터 국내에서 판매된 아우디·폭스바겐의 디젤·휘발유 차량 25만여대 가운데 10만∼15만대가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이번 사태로 이미지 추락으로 인한 소비자 외면까지 겹칠 경우 폭스바겐이 국내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까지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가짜 배기가스 서류로 우리 정부와 소비자를 우롱한 폭스바겐은 배상은커녕 어떤 사과나 리콜도 하지 않은 채 부도덕한 기업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니 폭스바겐에 대한 징벌은 당연한 결과다. 그동안 폭스바겐이 한국에서 보여 준 태도는 안하무인식이었다. 폭스바겐은 디젤 배출가스 조작 사건이 터지자 미국에는 17조원을 배상하겠다며 납작 엎드린 반면 한국에서는 100억원의 사회공헌 기금만 달랑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환경부가 지난해 11월 티구안 등 15개 차종 12만 5522대에 대해 리콜 등의 조치를 내리고 검찰에 고발했음에도 아우디·폭스바겐은 계속 책임을 회피하기만 했다. 더욱이 세 차례나 부실한 리콜 계획서를 제출한 것도 모자라 “법을 어긴 적이 없어 배상할 수 없다”며 배짱을 부리는 판이다.

이 런 부도덕한 기업은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징벌을 내리고, 리콜 명령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엄중히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비자들을 깔보고 우롱하는 기업은 더이상 시장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번 행정처분을 계기로 폭스바겐의 불법행위 여부를 더 철저히 가려 상응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내 시장에서 폭스바겐이 퇴출되는 상황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중앙일보]

6. 체세포복제 연구,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자

체 세포복제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가 7년 만에 재개됐다. 보건복지부는 차의과대학이 제출한 체세포복제배아 연구계획을 지난 11일 조건부로 승인했다. 이로써 차의대는 2009년 복지부의 승인을 받아 진행하다 1차 줄기세포주 생성에 실패했던 연구에 재도전할 수 있게 됐다.

차의대는 2년 전 미국에서 신선 난자를 활용해 같은 연구에 성공한 적이 있어 이번 연구의 성공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2020년까지 체세포복제배아에서 줄기세포주를 생산해 이를 시신경 손상, 뇌졸중, 골연골 형성 이상 등 난치병 환자의 세포 치료용으로 이용할 계획이라니 기대를 모을 수밖에 없다.

이는 2005년 이후 고사되다시피 한 줄기세포 연구에 단비와도 같은 희소식이다.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 여파로 대부분 중단되면서 오랫동안 허송세월을 보내야 했다. 한국 생명과학계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따라서 이번 승인은 그동안 국내 줄기세포 연구 분야의 막힌 혈을 뚫어 주고 ‘잃어버린 세월’을 따라잡기 위한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이번 연구 재개를 계기로 희귀·난치병 치료를 위한 선도적 기술을 확보하려는 한국 과학계의 노력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릴 것으로 기대한다.

명심해야 할 것은 체세포복제배아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려면 연구 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기준 충족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여전히 체세포복제배아 연구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승인에 난자 획득이 합법적으로 이뤄지는지, 기관생명윤리위가 적정하게 운영되는지, 인간 복제 방지를 위한 감시체계가 제대로 갖춰졌는지를 감시할 시스템 마련 등 까다로운 조건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차 의대는 이러한 윤리적 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정부와 과학계도 지속가능한 체세포복제배아 연구를 위해 윤리적 기준 준수를 확고히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모쪼록 이번 연구 재개가 한때 세계를 선도했던 한국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부활하는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7. 남중국해 분쟁의 진정한 해결책은 대화뿐이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필리핀의 손을 들어줬다. 2013년 1월 필리핀이 중국을 상대로 제기한 중재안에 대해 3년6개월에 걸친 심의를 마무리한 결과다. PCA는 중국이 그동안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제시해 온 ‘구단선(九段線)’에 대해 역사적 권리를 주장할 법적 근거가 없으며 중국이 필리핀의 어업권을 침해했다고 어제 판결했다. 필리핀의 압승으로 보인다. 이는 필리핀의 입장을 지지하며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주장해 온 미국의 승리로도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판결 전부터 “(재판에) 참여하지도 않고 (판결을) 수용하지도 않겠다”고 선언한 중국은 판결문을 ‘한낱 휴지 조각(一張廢紙)’에 불과한 것으로 일축하며 PCA 판결문 자체를 접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PCA 판결은 강제성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중국이 남중국해 상당 부분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현재의 구도를 깨긴 어렵다. 그러나 중국이 국제법과 국제기구를 얼마나 존중하느냐의 측면에서 볼 때 중국이 수세적인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남중국해 갈등은 비단 중국과 관련한 아세안 국가와의 영유권 분쟁 차원에 머무는 게 아니다. 새롭게 해양 국가로서 정체성을 다지려는 중국과 기존의 지배적 위치를 재확인하려는 미국 간의 주도권 다툼이 중첩돼 있다. 미국은 이번 PCA 판결을 중국에 대한 보다 강한 압박의 계기로 삼을 것이며 이에 따라 중국의 반발 수위 또한 높아질 전망이다. 자칫 미·중 군사적 충돌 우려까지 제기되며 남중국해가 동아시아의 화약고로 변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남 중국해는 우리 수출입 물량의 30%와 수입 에너지의 90%가 지나는 길목이다. 남중국해 파고가 거세질수록 우리 경제의 불안정성 또한 높아지지 않을 수 없다. 분쟁은 대화로 푸는 게 최상이다. 마침 필리핀의 신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국과의 대화를 통한 분쟁 해결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국 대화에 성과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동아일보]

8. 신고리 안전성 논란, 사고관리계획으로 풀어야

신 고리 5, 6호기 건설 허가가 6월 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같은 부지에 여러 기의 원전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안전성 검토가 충분히 이루어졌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 부지에 여러 기를 두고 있다. 해외의 많은 원전도 두 기 이상을 동일한 부지에 두고 있다.

고리 원전 지역에 신고리 5, 6호기가 건설되면 10기의 원전이 들어서게 돼 세계 최대라고 한다. 그런데 고리, 신고리라고 해서 모두 동일 부지인가 하는 점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접 지역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부지라고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원전 안전성은 하나하나의 원전이 충분한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만에 하나 인접한 원전에 이상이 발생했을 경우, 옆의 원전으로 전파될 수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원전의 안전에 영향을 주는 모든 설비는 인접한 원전에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구성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두 기의 원전이 같이 있다면, 독립적인 설비 외에도 지원 설비를 받는 데 유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일본 후쿠시마 5, 6호기에서는 5호기의 비상전원을 6호기에서 공급받을 수 있었다. 다만, 두 기의 원전 사이에 안전성 간섭은 없어야 한다. 이는 법령에도 명시돼 있는 사항이다.

원 전의 입지는 자연재해의 영향을 감안해 선정하고 설계는 기록된 자연재해의 최고치에 보수성을 더해서 방비할 수 있도록 하고 안전심사를 거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새로운 자연재해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이에 대한 대비가 추가로 필요하다.

최근 발생한 울산 동부 해저지진에도 인접 지역의 원전들이 모두 정상가동한 것을 보면, 상당한 안전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더 큰 지진 발생 가능성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2015년 6월 중대사고에 대한 관리계획이 원자력안전법에 반영됐고, 사고관리에 대한 기술 기준이 올 3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제정됐다. 이 기준에 따르면, 원전 사업자는 극한 자연재해를 고려해 사고관리 계획서를 수립해야 하고 동일 부지 내 다수 원전의 영향을 고려하도록 돼 있다. 불시의 사고에 대해서도 철저한 대비를 의무화하고 있는 것이다. 사고관리계획은 설비뿐 아니라 원전 주변 지역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그에 인접한 오나가와 발전소에는 후쿠시마 원전보다 더 큰 쓰나미가 몰려왔다. 오나가와 원전을 관리하는 동북전력은 안전에 미리 투자해 예상되는 쓰나미보다 더 높게 방벽을 쌓았다. 그 결과 발전소가 안전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 주민들이 발전소로 대피했다. 안전경영에 대한 관점이 중요한 것이다.

이번 울산 동부 지진을 분석하면서 동해 남부 해저의 단층도 살펴보고 안전경영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9. 아베노믹스 2탄 글로벌 통화전쟁 격화시킬 수 있다

아 베 신조 일본 총리는 어제 경제정책 사령탑에 종합적이고 대담한 경기부양책을 지시했다. 지난 10일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후 아베노믹스를 더욱 강력히 밀어붙이려는 것이다. 일본을 전쟁 가능한 나라로 만드는 개헌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도 추동력을 잃고 있는 아베노믹스에 다시 불을 붙여야 할 상황이다. 공격적인 통화 완화와 대규모 재정 확대, 경제 구조개혁을 뼈대로 한 아베노믹스는 2012년 9월 가시화한 후 4년 동안 줄곧 강화돼왔다. 급기야 지난 1월에는 일본은행이 사상 첫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플레이션 목표(2%) 달성은 요원하며 올해 성장률은 0%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아베노믹스가 좌초 위기에 몰린 건 엔고 탓이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3년 남짓한 기간에 30% 넘게 떨어졌지만 올해 들어서는 17%나 뛰었다. 브렉시트로 엔고 저지가 더욱 절박해진 일본은행은 오는 28·29일 금융정책회의에서 채권 매입(연 80조엔)을 더 늘리고 마이너스 금리도 더 끌어내릴 수 있다. 일본 정부는 10조엔 규모 재정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 참의원 선거 후 엔화 가치가 급락하고 주가가 연일 치솟은 것도 그 때문이다.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아베노믹스는 우리에게도 커다란 파장을 미칠 것이다. 물론 일본이 성장 활력을 되찾으면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의 실패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무제한적인 돈 풀기 정책은 이미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20년 만기 국채 수익률까지 마이너스로 돌아선 마당이라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에 따른 경기 활성화 효과는 제한적이다. 그럴수록 일본 당국은 더욱 극악스럽게 돈을 풀어 엔저를 유도하려 할 것이고 이는 글로벌 통화전쟁을 더욱 격화시킬 수밖에 없다.

엔저 공습은 필연적으로 근린궁핍화를 초래한다. 아베노믹스 강도가 높아질수록 한국은 더 큰 타격을 입게 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일시적인 엔고로 반사이익을 얻었던 한국 기업들은 이제 엔저 공습 재개에 대비해 비가격 경쟁력을 높여야 하며, 통화당국은 글로벌 통화전쟁에 가장 기민하고 유연한 대응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10. 대학생 단톡방 성희롱 파문, 인성 교육 시급하다

서울대 남학생 8명이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단톡방)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성희롱을 한 사실은 충격적이다. 서울대 총학생회 산하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학소위)는 지난 1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대자보를 통해 이런 사실을 공개했는데 지난달 고려대 남학생들이 저지른 행위와 비슷해 SNS상에서 성희롱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특히 '지성의 요람'인 대학에서 이런 저급하고 몰상식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는 것은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심각한 사회 문제다.

대 자보에 따르면 이들 남학생은 지난해 2월부터 6개월 동안 단톡방에서 동기 여학생들을 포함해 많은 여성을 거론하며 입에 담기에도 민망한 음담패설을 주고받았다. 학소위가 공개한 내용에는 유명 대학을 다니는 지성인들이 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성폭력적이고 여성 혐오감을 부추기는 발언이 다수 포함돼 있다. SNS상 밀실인 단톡방에서 자기들끼리 주고받은 농담이라고 하지만 피해 여성들의 입장을 단 한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런 말을 차마 내뱉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사 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어렸을 때부터 인성 교육을 등한시한 채 입시 위주 교육에 치중한 결과다. 그러다 보니 성적만 좋으면 어떤 짓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다른 사람이 입을 상처나 고통에 무감각해진 것이다. 잔인하고 공격적인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단톡방과 같이 끼리끼리 모인 SNS 공간에서는 끈끈한 유대관계와 암묵적 비밀주의까지 작용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여성 비하나 성희롱 발언도 서슴지 않게 된다.

서울대 측은 사건의 진상을 명확하게 조사해 가해 학생들에게 합당한 징계를 내려야 한다. SNS상 의 비공개 대화도 죄질이 나쁘면 명예훼손과 모욕죄를 적용해 형사 처벌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입시 위주 교육에서 탈피해 인권과 성 평등, 윤리 등 인성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육체계를 바꾸는 것이다. 이와 함께 SNS상에 올바른 소통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교육과 캠페인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김성용의 저울달기> 한국판 '셜록 홈스' 실제 가능할까

영 국 작가인 아서 코난 도일(1859~1930)의 추리소설 주인공 '셜록 홈스'는 민간자문 탐정으로 불린다. 소설속 인물이지만 탁월한 역량을 선보이는 명탐정의 대명사다. 의사인 존 왓슨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며 지내는 하숙집으로 묘사된 런던 베이커 거리 221B에는 사건을 의뢰하는 우편물이 수없이 도착했다고 전해진다.

홈스는 '바스커빌의 개'를 비롯한 장편소설 4편, 단편소설 56편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한다. 셜록 홈스의 실제 모델이 누구냐가 관심이기도 했는데 작가인 코난 도일의 대학 시절 은사라는 설이 유력하나 코난 도일 본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도일은 에든버러대학 의학박사 출신이다.

홈스는 키가 6피트(180㎝) 가량으로 체구가 말랐다. 살집 없는 매부리코와 각진 턱은 차갑고 단호한 인상을 풍긴다. 운동을 별로 하지 않지만 힘이 좋고 발도 빠르고 싸움을 잘한다. 평소 일찍 일어나는 법이 거의 없고 실험에 몰두하면 밤을 새우기 일쑤다. 문학이나 철학에는 무지하지만 화학이나 해부학 지식은 상당하다. 일이 없으면 안락의자에 축 늘어져 말도 안 하고 때론 우울증에 시달려 코카인에 손을 대기도 한다.


강 력 사건을 추적하는 명탐정 홈스와 비교할 만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는 흥신소가 있다. 고객의 요청에 따라 타인의 정보를 캐는 사설 기관이다. 개인이나 기업의 신용, 재산 상태, 비리 행위를 조사해 알려주는 일을 한다. 개인 정보를 캐내고 조사하는 업무가 약간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일을 해야 하지만 속성상 불법 행위 소지가 크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수시로 넘나든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서울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개인정보를 불법 유출, 거래한 혐의로 흥신소가 낀 사이버 점조직을 적발했다. 이동통신사의 서버 해킹을 통해 유출된 휴대폰 위치 정보나 주소지 등을 팔았다. 합법적 수단으로는 정보 캐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을 반영하는 듯하다.

국내 흥신소는 3천여개가 성업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헌법재판소 결정을 통해 간통죄가 폐지된 이후 배로 늘어났다. 흥신소에 의뢰하는 사건의 80%가량은 외도가 의심되는 배우자의 사생활을 조사해 달라는 경우다. 간통죄가 없어져 형사처벌은 불가능하지만 이혼 소송에서 배우자의 불륜 현장을 증거자료로 제출해 위자료(재산 분할권) 책정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한 목적이다. 딸의 남자친구 차량 추적, 헤어진 여자 친구 위치 파악, 사위의 차량 위치 추적을 의뢰한 사례도 있었다.

경찰이 배포한 브리핑 자료에 따르면 차량 위치추적기를 배우자 차량에 부착하기 위해 든 비용은 250만원이다. 고객이 원하는 정보의 클래스에 따라 가격은 제각각이다. 차량 조회는 15만원, 출입국 조회 45만원, 병원 기록 40만원, 재산 조회 30만원이다. 휴대폰 위치 조회는 80만원, 주소 조회 70만원, 택배 주소 40만원, 가족 관계 150만원 등이다.

한국판 셜록 홈스의 등장은 실제 가능한 일일까. 사설탐정은 규정상 불법인데 예외적으로 채권추심업을 허가받은 신용정보회사나 변호사 및 변호사 사무장(패러리걸)은 사실상의 탐정 활동을 할 수 있다. 지난달 국내 전·현직 경관들이 주축이 돼 사설탐정(민간조사원) 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단체인 '대한공인탐정연구원'을 설립하기로 해 관심을 끈다. 경찰 내부망 게시판에는 회원 모집 공고가 떴다. 사설탐정은 경찰의 숙원 사업 중 하나로 꼽혀 왔다. 외국에선 탐정 활동이 가능한 나라가 적지 않다. 흥신소가 갈수록 음성화되고 불법 행위가 만연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제도적으로 흡수해 양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사설탐정 수요가 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실종·가출한 사람을 찾거나 악성 채무자의 소재를 파악하는 일을 공공 수사기관이 모두 떠맡는 건 물리적으로 어렵다.


사 설탐정을 공인화하는 내용의 민간조사업법 제정 작업이 그간 꾸준히 추진돼 왔다. 20대 국회에는 경찰 출신 의원이 8명으로 늘어났다. 19대 국회 때는 4명에 불과했다. 경찰은 19대 국회에서 무산됐던 '탐정법' 제정 작업에 좀 더 힘이 실리지 않을까 기대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민간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일이 타당한지, 전직 경찰이 재직 때 취득한 정보를 사적 용도로 악용하는 부작용은 없을지 등의 우려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들의 활동이 사생활 침해 논란을 확산시키는 악재가 될 수 있다. 사설탐정의 업무 영역과 권한을 명확히 설정하고 이들에 대한 관리 및 규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논의가 충분히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연합뉴스]올림픽 골프…야구의 길 걷나 vs 테니스처럼 연착륙하나

국제골프연맹(IGF) 피터 도슨 회장은 지난 11일 스코틀랜드 로열트룬 골프 링크스 클럽 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는 오는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하는 남녀 60명씩 120명의 명단을 확정, 발표하는 행사였다.

112년 만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골프에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끌어 보려고 마련된 이 자리에서 도슨 회장은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골프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한 2009년에만 해도 타이거 우즈(미국)를 비롯한 최고의 골프 스타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다투게 됐다고 발표하면서 커다란 박수를 받을 것으로 기대한 자리였다.

하지만 도슨은 세계랭킹 1위∼4위에 포진한 '빅4'를 포함해 세계랭킹 30위 이내 선수 가운데 20명이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사실을 밝혀야 했다.

도슨 회장은 "많은 선수가 불참하는 바람에 올림픽에서 골프가 빛이 바랜 건 분명하다"고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국가별 출전 선수 제한 규정 때문에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는 상위 랭커도 있지만 '빅4'를 포함해 유명 스타 선수 상당수는 자발적으로 올림픽 출전을 사양했다

올림픽 출전 고사 이유는 대부분 지카 바이러스였다. 자신뿐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라도 지카 바이러스의 위험에 노출되기가 겁난다는 호소였다.

도슨 회장은 "건강을 염려하는 선수들의 뜻을 존중하고 이해한다"면서도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염려가 조금 도를 지나친 것 같다"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그 는 "남자 선수 가운데 불참자가 너무 많은 건 실망스럽지만 여자 쪽은 최정상급 선수가 빠짐없이 다 나오는 건 기쁜 일"이라고 덧붙였다. 지카 바이러스가 그렇게 위험하다면 왜 유독 남자 선수들만 겁을 내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돌려서 표현한 셈이다.

도슨 회장을 비롯한 골프계는 정상급 선수가 대부분 빠지면서 올림픽에서 '골프 퇴출론'이 힘을 얻게 되는 상황을 우려한다.

골프는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는 정식 종목으로 치러지지만 2024년 올림픽 정식 종목 존속 여부는 2017년 IOC 총회에서 투표로 결정된다.

올림픽에서 골프를 퇴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미 나온 지 꽤 됐다.

배리 마이스터(뉴질랜드) IOC 위원은 지난달 "최고의 선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올림픽에서 빠져야 한다"고 쏘아붙인 바 있다.

IGF 앤서니 스캔랜 사무총장은 "IOC가 종목마다 TV 중계 시청률과 함께 미디어, SNS에서 얼마나 많이 다뤄졌나를 측정해 정식 종목 잔류 여부를 결정할 때 참고 자료로 활용한다"면서 퇴출에 대한 걱정을 털어놨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의 불참은 올림픽에서 골프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건 맞다"고 실망감을 표현했다.

영국 권위지 더타임스는 "정상급 선수들의 불참으로 올림픽에서 골프의 미래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고 12일 보도했다.

올림픽에서 해당 종목 최고 선수가 출전하느냐는 해묵은 논란거리다.

축구는 올림픽에 최고 선수가 출전하지 않는다. 23세 이하 선수만 출전할 수 있다. 와일드카드라는 명목으로 팀당 23세 이상 선수 3명을 출전시킬 수 있을 뿐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월드컵축구대회보다 올림픽이 더 주목받는 상황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상식이다.

올림픽에서 축구를 퇴출해도 FIFA는 아쉬울 게 없다. 반면 IOC는 대부분 회원국이 국민 스포츠로 여기는 축구를 올림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처지다.

그러나 야구는 최정상급 선수가 올림픽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올림픽에서 쫓겨났다. 올림픽 기간에도 페넌트레이스 경기를 계속한 미국 메이저리그(MLB)는 올림픽에 선수를 내보내지 않았다. 돈과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쥔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올림픽에는 시큰둥했다. IOC 회원국 가운데 야구가 인기 스포츠인 나라도 그리 많지 않다.

올림픽과 골프의 관계는 축구보다 야구 쪽에 가깝다. 골프가 대중적인 국가가 많지 않고 IOC가 굳이 올림픽에서 골프를 정식 종목으로 치르고자 하는 의지가 큰 편은 아니다. 돈과 명예를 손에 쥔 정상급 선수들이 올림픽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닮은꼴이다.

다만 메이저리그와 달리 미국프로골프(PGA)투어는 올림픽에 공을 들인다. 골프가 더 많은 나라에서 대중화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PGA투어는 IOC와 창구인 IGF에 타이 보토 부사장을 부회장으로 파견했다.

PGA투어와 IGF 등 골프계는 골프가 올림픽에서 야구의 전철을 밟게 될까 봐 걱정이 태산이다.

1992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된 야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퇴출당했다. 최정상급 선수가 올림픽에 나오지 않는다는 게 결정적인 퇴출 사유였다.

올림픽에서 골프의 앞날은 그러나 야구보다는 테니스와 유사한 길을 걸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테니스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부터 프로 선수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최고의 선수가 올림픽에서 뛰어야 한다는데 프로 테니스계와 IOC가 뜻을 같이한 덕이었다.

하지만 정상급 선수들은 서울올림픽을 외면했다. 올림픽이 아니라도 명예를 드높일 메이저대회라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고 게다가 올림픽은 상금도 없었다.

28년이 지난 요즘 올림픽 테니스에는 정상급 선수들이 대부분 참가한다.

1988년 올림픽 출전을 고사했던 존 매켄로(미국)는 훗날 "그때는 프로 선수가 올림픽에 왜 나가느냐는 생각이었다"면서 "이제는 올림픽이 메이저대회나 다름없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9일 윔블던 여자 단식을 제패해 메이저대회 최다승 타이(22승)기록을 세운 세리나 윌리엄스(미국)는 "집에 불이 나서 딱 한 가지만 챙겨 나와야 한다면 올림픽 금메달을 선택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골프계 인사들은 테니스의 연착륙 사례를 자주 언급하는 까닭은 골프가 테니스처럼 올림픽에서 자리를 잡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IGF 보토 부회장은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테니스는 올림픽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면서 "올림픽을 외면했던 테니스 선수들은 지금은 올림픽에 나가지 못한 걸 후회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슨 회장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는 정상급 선수들이 빠짐없이 출전할 것"이라며 "올림픽도 살고 골프도 사는 상생이 기대된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골프가 올림픽에서 야구의 길을 걸을지, 테니스의 성공 사례를 닮을지는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얼마나 많은 최정상급 선수가 참가하느냐에 달렸다는 진단이다.


3. [이데일리][명사의 서가]①쉼없이 공부하고 결단하라..'책스승' 리콴유 가르침이죠

“독서하는 회사는 달라요. 구성원들이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하고 깊이 있게 생각하는 훈련을 하다보니 내공이 쌓이게 되죠. 10년 이상 독서 경영을 하다보니 사고의 패턴과 깊이가 달라지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어요.”

국내 1위 건설사업관리(CM) 기업인 한미글로벌의 김종훈 회장은 초고층 빌딩 전문가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독서광’으로도 유명하다. 본인 스스로 책을 많이 읽을 뿐 아니라 회사에서도 ‘독서 경영’을 하는 그야말로 독서 전도사다.


얼마 전 김 회장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집무실은 독서광이란 별명에 걸맞게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집무실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한 책장은 물론이고 그의 책상과 창틀에까지 자리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책이 쌓여 있다.

“책 욕심만 많아서 이렇게 쌓아 두고 시간이 없어서 다 못봐요. 직접 사는 것도 있고 여기저기서 읽어보라고 선물을 주는 것도 많은데 다 읽지 못해서 죄스럽죠. 그래도 책을 손에서 안 놓고 있어요.”

워낙 책을 정독하는 스타일이라 다독하진 못한다. 매일 틈 날 때마다 책을 읽어 한달에 서너권 정도 독파한다. 그러다보니 항상 책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이런 독서 갈증을 해소하는 때가 5년마다 한번씩 그에게 찾아온다. 한미글로벌은 창업 때부터 임원은 5년, 직원은 10년에 한번씩 두달간 유급 안식 휴가를 주고 있다. 이 때가 바로 책을 몰아서 읽는 기회다.

올 해 초 김 회장은 두달간 안식 휴가를 다녀왔다. 매번 그랬듯이 이번에도 책을 싸들고 설악산으로 들어갔다. “처음 목표는 하루에 두 권씩 읽는 것이었는데 한 권 반 정도씩 50권을 읽고 왔어요.” 그때를 얘기하는 김 회장의 얼굴엔 사탕을 얻은 소년 같은 미소가 가득했다.

그가 책읽기를 시작한 것은 한미글로벌을 창업하면서부터다. “직장생활할 때까지만 해도 책은 거의 안 봤어요. 그런데 회사 창업하고 나니 경영에 대해 알아야겠는데 방법이 책을 읽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처음엔 경영서적을 많이 읽었는데 책 읽기에 재미가 붙으니까 고전도 보고 인문학도 보고 손 가는 대로 읽게 됐어요.”

◇2003년부터 독서 경영 도입

김 회장은 자신이 독서의 재미에 푹 빠질 무렵인 2003년, 회사에도 독서 경영을 도입했다. 독서 경영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없다. 전 임직원이 현장별로 조를 짜서 독서그룹을 만들고 각 그룹에서 희망 도서를 신청하면 회사에서 책을 사주고 직원들은 책을 읽고 사내 통신망에 독후감을 올리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참여율이 저조했어요. 저도 직장생활할 때 그랬지만 어디 책 읽는 게 쉬운가요. 게다가 독후감까지 내라고 하니 반발이 컸어요. 할 수 없이 책읽기와 독후감 제출을 의무화했죠. 독후감 안 내는 직원에게는 제가 직접 독촉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서서히 정착되더라고요.”

물론 단순히 강제적인 방법만 동원한 건 아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직원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설득했다. 독서 방법도 직원들의 의견을 들어 개선했다. 처음에는 회사가 책을 사서 나눠주던 것을 2005년부터는 지정한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연간 15만원 한도에서 도서를 구입할 수 있도록 했고, 2009년부터는 지원금을 20만원으로 늘렸다.

대신 최소한 달마다 2권 이상의 책을 보도록 했다. 한권은 전체 임직원이 공통으로 보는 것이고, 나머지 한권은 개인이 고른다. 매달 우수독후감 11편을 뽑아서 시상도 하고 있다. 또 임원들은 솔선수범 차원에서 한달에 한번씩 독서토론을 벌인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책의 저자를 초청해 강의를 듣는 ‘저자 특강’ 시간도 갖고 있다.

“우리 회사에서 독서는 문화가 아니라 경영이에요. 유수의 건설사들을 상대로 건설사업관리(CM) 를 해야 하는 우리 회사의 특성상 개개인이 뛰어나지 않으면 인정을 받기 어려워요. 학교에서 배운 지식, 현장에서 얻은 경험만으로는 부족해요.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독서 경영을 하는 겁니다.”

◇“책은 인생의 스승, 서재는 삶이 재창조되는 곳”

이 렇게 책을 사랑하는 김 회장을 사로잡은 책은 무엇일까? 그는 이 질문에 “기억에 남는 책이 많다보니 딱 한권만 고르는 것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읽는 책마다 전해주는 메시지와 느껴지는 감동이 다른데 우열을 가릴 수 있겠냐는 말이다. 우문현답이다. 그래도 어렵사리 몇 권을 골라냈다.

그런데 첫번째로 소개한 책이 의외였다. 유명한 경영학이나 인문학 서적으로 꺼낼 줄 알았는데 미국의 철학자인 헬런 니어링의 회고록인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꼽았다. 헬렌 니어링은 남편 스코트 니어링과 함께 귀농해 채식주의를 평생 실천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기업을 경영하는 김 회장이 이 책을 골랐다는 자체가 신선했다. “이 책은 헬렌 니어링이 87세가 됐을 때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스코트 니어링과의 사랑 이야기와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쓴 책이에요. 삶과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지요. 그들의 삶을 통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다음으로 꺼내든 책은 싱가포르 전 총리 리콴유가 지은 ‘리콴유 자서전’과 ‘내가 걸어온 일류 국가의 길’이다. “두 권을 합치면 1600여쪽이 돼요. 책을 사놓고 엄두가 나질 않아서 밀어두다가 2006년 안식휴가 때 독파를 했어요. 회사를 경영하는데 큰 힘이 됐던 책이에요.” 리콴유는 26년간 총리로 재직하면서 부패과 빈곤, 폭력 등 혼동 속에 있던 싱가포르를 세계에서 가장 정의롭고 깨끗한 부국으로 만든 위대한 지도자다.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결단하고 행동하는 리콴유의 모습을 통해 지도자의 표상을 발견했다고 한다. 김 회장이 끊임없이 독서하는 이유도 이런 모습을 본받고자 하는 그의 결단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책을 읽으면 나 자신의 부족함을 많이 깨닫게 됩니다. 책은 제 인생의 스승입니다. 그래고 서재는 내 삶이 재창조되는 곳이지요.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삶을 배울 수 있어요. 이런 책을 어떻게 손에서 놓을 수 있겠습니까.”


4. [서울신문][In&Out] 미술품 위작 막으려면 ‘작품거래이력제’ 도입해야/서성록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미술평론가

미 술계의 잇단 위작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진위 공방, 이우환 화백의 작품 진위 논란으로 미술계가 불신의 나락으로 떨어진 느낌이다. 게다가 위작자는 잡혔는데 정작 이우환 화백은 ‘전부 진품이 맞다’고 하니 여간 혼란스럽지 않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져 난감하기 짝이 없지만 이 역시 슬기롭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때 마침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7일 미술시장의 유통 시스템을 점검하고 대처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두 번째 정책토론회를 마련하였다. 이번에는 우리보다 감정문화가 발달한 프랑스와 미국의 감정전문가들을 초청해 그들의 경험 사례를 들을 수 있었다.

첫 발제자 장 미셀 르나르는 프랑스의 경우 1981년 마르쿠스 시행령을 시행하면서 위작 유통 문제가 크게 개선되었다고 했다. 미술시장의 전문성과 윤리성을 골자로 하는 이 법안이 제정된 이후 판매자는 구매자에게 작품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작품 거래의 신뢰도를 높이게 되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프랑스에서는 작품을 사고팔 때 ‘작품거래이력’과 영수증, 진품확인서 등을 고객에게 건네주어야 하는데 이를 위반할 시 법적인 제재를 받게 된다.

이 중 판매자, 구매자, 가격정보, 상세한 작품내역 등이 담긴 ‘작품거래이력’은 작품의 진위를 가를 때 요긴한 자료로 사용된다. 어떤 사람이 위작을 만들었을 경우 그것은 아무런 이력을 갖지 못한다. 판매자와 구매자를 밝힘으로써 ‘작품의 궤적’을 추적해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국내에도 ‘작품거래이력제’가 있었더라면 이번처럼 안타까운 사건까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예술법 전문 변호사 알렉시스 푸놀은 전작도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 도록은 한 작가의 작품들을 연대순으로 나열하고 연도, 매체, 크기, 출처 또는 연보, 참고문헌, 전시 기록이나 작품의 상태와 같은 필수적인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다. 전작도록 자체도 “사람에 의해 기록되므로 실수하는 경향이 있지만”(푸놀) 그것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크다. 실제로 해당 전문가나 연구팀에 의해 발간된 전작도록과 그 안에 실린 도판은 작품에 관한 일체의 정보를 담고 있기에 진위의 판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간 ‘성장주의’에 급급해 작가연구 등을 소홀히 해온 미술계가 성찰해볼 대목이며, 지금부터라도 자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화랑과 경매의 겸업 금지, 국가미술품감정연구원 설립, 공인 감정사, 미술품 유통 전산망 가입, 위작자 및 유통자에 관한 처벌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법제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규제의 카드를 꺼내든 정부의 단호한 입장과 미술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타당한가 하는 입장이 맞서고 있는 양상이다. 한 명의 ‘진위감정가’를 키우는 데 수십년 걸리는 것을 단 몇 개월 만에 해내겠다는 제안에서는 조급함마저 느껴진다. 곳곳에 허술한 부분이 눈에 띄는 만큼 정부에서는 충분한 현장의견을 들어 빈틈없이 추진해가야 할 것이다.

초점은 실추된 미술시장의 신뢰 회복에 달려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에서 ‘신뢰’라는 무형의 가치를 사회번영을 가져다주는 ‘사회적 자본’이라고 기술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신뢰’가 형성되지 못한다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대가를 지불하는 저신뢰 국가의 폐해를 답습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참에 미술계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신뢰받는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5.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 말은 행동의 그림자

우 리 속담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선량한 말 한마디의 힘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말이 항상 복만 안겨 주지는 않는다. 잘못된 말 한마디가 화를 불러올 때도 가혹한 힘을 발휘한다. 동서양의 많은 현인들이 신중한 언사와 때로 침묵의 가치를 강조한 이유다.

로마 시대의 그리스인 철학자 플루타르코스도 ‘모랄리아’에서 혀를 통제할 필요성을 환기시키고, 적시의 침묵이 지혜로운 일임을 강조했다. 적정한 때에 침묵을 지키면 아무도 딱한 처지에 놓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못한 말은 나중에 쉽게 말할 수 있으나, 뱉은 말은 쉽게 주워 담을 수가 없다”고 했다. 아테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BC 460~370)도 “말은 행동의 그림자”라며 언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플 루타르코스는 그리스인들이 침묵을 지키는 습관을 들인 좋은 예를 들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엘레우시스 비의(秘儀)는 신비로운 의식으로 이름이 났다. 아테네 북서쪽 20㎞ 정도 떨어져 있는 엘레우시스에서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를 경배하며 사후 세계를 영적으로 체험하는 의식이 행해졌다. 이 의식에 입회한 사람들은 의식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외부에 철저히 침묵을 지켰기에 엘레우시스는 신비로운 종교 성지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비의 입회 의식에서 침묵을 지키는 습관을 들인 것을 일상에서도 잘 실천해 나갈 것을 권고했다.

플루타르코스는 또 입을 가벼이 놀려 큰 불행을 당한 대표적인 예도 들었다. 소피스트인 테오크리토스는 알렉산드로스(BC 356~323)가 그리스인들에게 동방 원정에서의 승리를 위한 감사제를 올릴 수 있도록 진홍색 예복을 갖추고, 모든 도시국가들에 인두세를 현금으로 낼 것을 요구하자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로 인해 그는 알렉산드로스의 적이 되었지만 다행히 거기까지는 포용되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사후 마케도니아의 왕이 된 안티고노스(BC 382~301)를 외눈박이라고 흉을 보았다가 왕의 분노를 사 결국 죽임을 당했다.

다 변보다 침묵이 더 큰 울림을 가질 때가 있다. 또 건전한 비판은 상대를 아프게 하지만 성찰의 계기를 준다. 하지만 신상의 약점을 조롱하는 공격은 치졸한 것이다. 또 아무리 좋은 말도 때와 상황에 맞게 가려야 한다. 잘못된 인식과 오만에서 나오는 막말은 대중에게 큰 상처를 주고 자신에게 파멸을 안겨 준다. ‘민중은 개·돼지’라는 고위 공직자의 막말보다 더 무서운 것은 독선에서 나온 인식의 오류다. ‘말은 사고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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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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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2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AIIB 부총재 날린 홍기택 파문 책임 엄히 물어야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한국 몫인 최고리스크책임자(CRO) 직위가 부총재에서 국장급으로 격하됐다. 홍기택 부총재가 돌연 휴직계를 내고 잠적한 지 14일 만이다. AIIB는 대신 국장급이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부총재급으로 격상시켜 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결국 한국이 4조 3000억원의 분담금을 내고 어렵게 확보한 자리만 허무하게 날린 셈이 됐다. AIIB는 후임자 자격 요건으로 ‘전문성’과 ‘직업윤리’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고 하니 국가적 망신까지 산 꼴이 됐다.

이 번 사태의 1차적 책임은 홍 부총재의 부적절한 처신에 있다. 그는 지난 2월까지 대우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회장을 맡았다. 대우조선의 부실을 키우는 데 누구보다 책임이 크다. 특히 5조 4000억원에 이르는 대우조선의 회계 부정을 감독하는 역할을 소홀히 했다. 홍씨가 회계 부정을 알면서도 눈감아 줬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홍 부총재는 서별관회의를 폭로하는 인터뷰를 통해 모든 책임을 정부와 청와대에 돌려 파문을 불렀다. 또 지난달에는 휴직계를 제출하고 AIIB 연차 총회에 불참했고, 결국 이번 사태로 이어졌다. 그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다. 검찰이든 감사원이든 그를 불러 철저히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할 것이다.

무 능하고 무책임한 인물에게 중책을 맡긴 청와대와 정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홍 부총재는 금융 실무 경험이 거의 없는 학자 출신이다. 산은 회장 선임 때부터 뒷말이 적지 않았다. 복잡한 산은 회장 업무를 맡기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정부 일각에서까지 불거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그가 소신과 책임의식을 갖고 산업은행을 이끌었다면 대우조선의 부실이 손대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홍씨에 대해 대우조선 부실 문제만으로도 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했다. 그런데 외려 지난 2월 그를 AIIB 부총재로 추천해 사실상 영전을 시켜 줬다. 전문성이 부족하고 소신마저 없는 인물에게 무리하게 중책을 맡긴 셈이다. 이번 사태는 우리 정부에 만연한 낙하산 인사가 국제적으로까지 확대돼 망신을 산 경우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가도 샌다고 했다. 무자격자를 아무 데나 내리꽂는 낙하산 인사가 근절되지 않으면 이번과 같은 국제 망신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2. ‘전쟁 가능한’ 일본과 아베를 경계한다

일 본 아베 신조 총리가 평생의 숙원으로 여겨 온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의 개헌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그제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 등 연립 여당을 포함한 개헌 지지 4개당과 무소속이 전체 242석 가운데 165석을 차지해 개헌에 필요한 3분의2석을 넘어섰다. 개헌 세력의 압승이다. 아베 총리는 2014년 12월 중의원 선거에서도 승리해 의회의 개헌 발의 요건인 3분의2 의석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이로써 전쟁·교전권·군대 보유를 포기한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기 위한 국회 차원의 걸림돌은 사실상 제거됐다. 아베 총리는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개헌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것이다.

참의원 선거의 결과는 아베 총리의 신임이다.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한 재정 확대와 금융 완화, 구조개혁이라는 세 개의 화살로 집약되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나 마찬가지다. 자민당은 경기·고용을 최우선 공약으로 앞세운 반면 개헌의 쟁점화를 피했다. 자민당의 전략은 브렉시트를 비롯한 불안한 경제 현실 아래 10~20대 유권자에게까지 먹혀들었다. 제1야당인 민진당은 공산당, 사민당, 생활당 등과 아베노믹스의 무용론을 주장하고,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기 위해 단일 후보까지 내세웠지만 수권 정당으로서의 믿음을 주지 못했다.

아베 총리는 선거 당일 “국회 헌법심사회가 개헌 논의를 심화시켜 조문을 어떻게 바꿀지 결정될 것”이라며 개헌의 고삐를 당길 의지를 거듭 밝혔다. 제정된 후 70년 동안 자구 하나도 고쳐지지 않은 까닭에 ‘불마(不磨)의 대전(大典)’으로 불리는 평화 헌법이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된 것이다. 아베 총리는 거칠 것이 없다. 참의원, 중의원에서 개헌 발의를 위한 절대 다수 의석을 가진 데다 당규를 고쳐 연임을 노려도 대항할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표현대로 ‘개헌 저지의 벽이 무너진 역사적인 선거’를 보는 한국으로서는 착잡하다. 일본이 시나리오처럼 우경화의 길로 가고 있어서다. 아베 총리가 2014년 7월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토록 결정한 데다 이듬해 4월 미·일 안보협력지침을 고쳐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넓혔다. 그러나 한국과의 과거사, 위안부, 독도 문제뿐만 아니라 아시아 침략의 역사는 아직도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헌법 개정을 밀어붙인다면 동북아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동북아 전체 정세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서다. 우리가 철저히 경계하고,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3. 中, 북핵 방어 수단인 사드 반대해선 안 돼

우 리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에 동북아 지역 패권을 놓고 미국과 다투는 중국이 비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한반도 방어 수요를 초월한 것”이라고 비판한 데서 중국의 심기를 읽을 수 있다. 중국은 ‘사드 배치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자위적 안보수단’이라는 우리 정부의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은 그동안 유엔의 대북 제재에 자신들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앞으로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했다.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미온적인 대북 제재, 사드에 대응하는 안보체제 구축, 양국 간 교역 제한, 관광 제한 등 경제적인 분야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필요한 조치 운운하기 전에 먼저 한반도 사드 배치에 중국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북한이 네 차례의 핵실험과 여섯 차례에 걸친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는 동안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남중국해 군사기지 건설과 관련해 미국의 반대 입장 표명 요구에도 ‘국제법에 따라 평화적 해결’을 해야 한다며 중국 측 입장을 고려해 왔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한·중 수교 당시 한국은 우방이었던 대만과 단교를 선언한 사실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것도 우호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한에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 아닌가.

한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경제 교류에 비하면 사드 배치 문제는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고, 우리는 미국의 반대에도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에 가입했다. 한·중 인적 교류는 연간 1000만명을 넘어섰고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국이 됐으며 한국은 중국의 제3대 무역국이다. 지난해 한·중 무역 규모는 2274억 달러로 한·미와 한·일 무역 규모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사드 배치 문제로 두 나라의 관계에 틈이 벌어지는 것은 모두에게 손해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어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사드는 순수 방어 목적의 조치이며 제3국을 겨냥하거나 제3국의 안보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한 것도 중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중국이 사드 배치에 불쾌감을 갖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로 인해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중국이 충분히 이해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과 함께 남남 갈등으로 국론이 분열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해야 한다. 사드가 배치되는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주민들을 설득하는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한다. 정치권도 사드 배치의 문제점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등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 발언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4. 공정위 과징금 남발, ‘공피아’ 몸값 올리기 위해선가

공 정거래위원회가 가격담합이나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기업에 과징금을 물렸다가 소송에서 지거나 직권 취소해 물어준 환급액이 지난해 3572억 원으로 전년(2518억 원)보다 41.9%나 증가했다. 이 때문에 당초 6532억 원의 과징금을 거둬들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절반 정도인 3284억 원을 걷는 데 그쳐 국고 예측에 혼란이 생기는 상황이다. 여기에 소송비용만 29억 원에다 공정위가 뒤늦게 과징금을 돌려주는 바람에 생긴 이자(가산금)까지 373억 원이 더 들어갔다.

2012년 130억 원이었던 과징금 환급액이 3년 만에 27배로 급증한 것은 대규모 과징금 소송에서 패할 만큼 애초 무리하게 과징금 부과를 남발했다는 얘기다. 공정위는 “행정적 판단과 법률적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해명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죽하면 국회 예산정책처가 2015회계연도 결산분석 보고서에서 “과징금 부과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꼬집었겠는가. 공정위가 일단 거액의 과징금을 때리고 보자는 식으로 행정처분을 했다가 법원에 가서 패소해 돌려주는 일이 반복되면 행정의 신뢰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공 정위 과징금을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전관(前官)예우와 무관한지도 의문이다. 지난 5년간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를 통과한 4급(서기관) 이상 공정위 퇴직자 20명 중 13명이 대기업에, 4명이 대형 로펌에 취업했다. 관가나 재계 일각에서는 공정위 공무원들이 무리하게 과징금을 물리면, 로펌이나 대기업에 몸담고 있는 ‘공피아’들이 현직 시절의 경험을 살려 법률적 허점을 찾아내 몸값을 올린다는 말까지 나온다.

4·13총선에서 경제민주화를 주장한 야당들이 약진하면서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권한을 더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가 지금까지 보인 행태나 실력으로는 기업의 경쟁 촉진과 공정거래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 같지가 않다. 자칫 관료들의 힘만 키우고 기업을 옥죄는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

5. 헌법정신 비웃고 교육정책 신뢰도 추락시킨 나향욱

‘민 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의 출석 여부를 놓고 어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중단됐다 속개되는 파행이 벌어졌다. 오전에 불출석했던 나 기획관은 의원들의 거센 요구로 고향인 경남 창원에서 급하게 서울로 돌아와 “영화에 나온 말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과음과 과로 상태였다”는 변명을 붙인 것을 보면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언행이었고 어떠한 변명도 있을 수 없다”며 사과하고 엄중한 조치를 다짐했다. 이 정도로 국민적 공분(公憤)이 가라앉을지 모르겠다.

나 기획관의 발언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11조도 모르는 망발이다. 여야 의원들도 일제히 나 기획관의 파면과 해임을 포함한 중징계를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은 “개돼지 취급받은 국민들의 심정은 어떡하냐”면서 “나 기획관 발언은 반(反)헌법적, 반교육적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간사인 이장우 의원도 “여야가 엄중하게 고위 공직자 처신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책기획관은 대학구조개편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핵심 정책을 기획하고 조율하는 요직이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일수록 교육공무원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놓을 교육정책을 내놓아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교육부 고위 공직자가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고 했다니 헌법과 민주주의의 기본을 흔들고 공무원의 자질과 인성까지 의심케 한다.

최 근 국가장학금 수조 원을 관리하는 한국장학재단(차관급) 안양옥 이사장이 “빚이 있어야 학생들이 파이팅을 한다”는 발언으로 분노를 샀다. 막대한 교육예산을 쥐고 있는 교육공무원들이 평소 얼마나 교육계와 국민을 깔보는 특권의식에 젖어 있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꼬리를 무는 것인가.

현재 인터넷에서는 “나도 개돼지다”라며 나 기획관 파면요구 서명이 확산되고 있다. 일자리를 못 구한 청년들은 흙수저 금수저를 들먹이며 가슴을 친다. 이런 시기에 나온 나 기획관의 폭언은 우리 사회의 안정을 뒤흔들 만큼 인화성이 높다. 국민의 분노를 달래고, 교육현장에서 군림하며 갑질을 해온 교육부 공무원들의 자질을 높일 획기적 방안을 내놓을 자신이 없다면 이 부총리도 책임을 져야 한다.

[세계일보]

6. 지금이야말로 정치권이 초당 협력할 때다

한·미 정부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북한과 중국이 반발하면서 동북아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어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포병국 ‘중대경고’를 통해 “사드 위치와 장소가 확정되는 그 시각부터 그를 철저히 제압하기 위한 우리의 물리적 대응조치가 실행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지난 9일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쏘아 올렸다.

중 국의 반발 강도도 세지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사드 배치는 한반도의 방어 수요를 훨씬 초과하는 것”이라며 “그 어떤 변명도 설득력이 없다”고 했다. 루캉 외교부 대변인은 어제 “중국의 전략적 안전을 엄중하게 훼손하는 것으로, 중국은 분명히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스스로의 안전 이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보복을 시사했다. 중국이 실제 보복에 나설지는 알 수 없다.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상정해 대비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중국 보복을 우려해 사드 결정을 반대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일이다.

박근 혜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대한민국 미래와 국민의 생존이 걸린 아주 중요한 절체절명의 문제”라고 했다. 이어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하나로 단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각오를 피력하고 국민 협력을 요청한 것은 사드 배치 결정을 놓고 내부 갈등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드 후보지로 경북 성주와 경남 양산 등이 추가되면서 지역 반발이 거세지는 우려스러운 사태를 맞고 있다.

국가안보를 위해 내린 결정을 놓고 국내외에서 반발하고 있는 지금은 정부와 정치권이 합심해 위기를 헤쳐나가야 하는 비상 시국이다. 그럼에도 초당적 협력은커녕 여야로 갈려 정쟁을 벌이며 되레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권은 한심스럽다. 야당은 정책 결정 과정에 충분한 의견 수렴이 없는 데다 부정적 효과가 크다며 비판적 입장이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사드 배치가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쟁점화를 시도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야권조차도 균열 양상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사드 결정에 대한 국민투표를 거론하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국민투표할 대상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사드 배치는 국익 차원에서 결정한 불가피한 선택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치권이 논란 확산에 앞장서는 건 명분도 실리도 없는 무책임한 처사다. 지금이야말로 정치권의 초당적인 협력이 필요한 때다.

[이데일리]

7. 풀어지는 공직사회, 임기말 현상인가

윤 병세 외교부장관이 사드 국내 배치가 발표되던 지난 8일 당시의 백화점 출입 질타에 대해 두루뭉수리로 넘어갔다. 어제 국회 외통위 의원들로부터 이에 대한 지적을 받고 “오해 소지가 있다는 것을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면서도 대국민 사과 의사가 없느냐는 질의에 대해서는 “공인은 행동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는 수준의 답변에 그쳤다. 그야말로 외교적인 답변일 뿐이다.

윤 장관의 바쁜 일과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이번 주 국회 일정과 박근혜 대통령의 아셈정상회의 참석 수행을 앞두고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처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백화점 출입시간 선택은 잘못됐다. 사드 배치 발표와 동시에 여야 정치권은 물론 외교 상대국들로부터 관련 성명이 쏟아지리라는 점을 감안했다면 외교수장으로서 쇼핑이나 즐기는 듯한 한가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분명히 문제다.

비단 윤 장관에게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박 대통령의 임기 말에 접어들면서 고위 공직사회의 근무 분위기가 풀어지는 게 아니냐는 데 있다. 각 부처 장관들이 국무회의 석상에서는 박 대통령의 얘기를 일일이 받아 적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소관 업무 추진에 있어서는 소신도 없고 지리멸렬한 상태가 그것을 말해준다. 경제 정책이 혼선을 빚는 가운데 속도를 내지 못하는 조선·해운 구조조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등어와 삼겹살에까지 눈총을 돌렸던 환경부의 미세먼지 정책이나 표절 논란을 불러일으킨 문화체육관광부의 국가브랜드 사태가 모두 마찬가지다. 이런 분위기에서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이 맡았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자리까지 순식간에 날리게 된 것이다.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 우리나라도 신분제를 정했으면 좋겠다”는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 가를 움직이는 것은 역시 공직사회다.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모든 과정이 공직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박 대통령이 조만간 개각을 추진한다는 전망이니만큼 풀어지는 공직 기강을 다잡을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개각 폭에 제한이 따르겠지만 소신없고 무책임한 사람들만큼은 걸러내야 한다. 박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중앙일보]

8. 증오 아닌 사랑 필요한 미국의 흑백 갈등

백 인 경찰의 흑인 총격 살해에서 비롯된 미국의 흑백 갈등이 심상치 않다. 흑인들이 백인 경찰관을 저격하는 매복형 총격 사건이 잇따르고, 항의 시위가 과격해지면서 2014년 ‘퍼거슨 사태’ 이후 흑인 시위에 유연하게 대처하던 미 경찰도 강경진압으로 돌아서려는 태도다.

자칫 1919년 시카고에서 발생해 미 전역 25개 도시로 번져 흑인 23명과 백인 15명이 숨졌던 미국 사상 최악의 흑백 충돌 사건, ‘붉은 여름’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흑백 갈등을 넘어 자유주의 대 보수주의로 미국 국론이 분열되는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스페인 방문 일정을 축소하고 서둘러 귀국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양쪽에 자제를 촉구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미국 사회 전반에 흐르는 긴장감은 여전히 팽팽하다.

이번 사태는 모든 사회 갈등은 증오 바이러스를 내포하고 있으며 초기 대응을 잘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증오의 창궐 사태를 맞게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운다. 당초 흑인에게 우호적이었던 미국 여론은 경찰 저격 사건 등 과격행동에 나뉘었다. 3년 가까이 계속되는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M)’ 운동에 공개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백인 보수층은 이제 “백인 경찰은 무조건 나쁘다는 선입견이 문제”라는 주장을 자신 있게 공론화하고 있다. 정당한 해명을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흑인들은 그들대로 “저격 살해는 잘못이지만 원인 제공은 백인 경찰이 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렇게 갈등의 악순환은 더욱 가팔라지고 미국 사회는 ‘흑백 내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티핑 포인트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미국 사회는 “증오를 넘어 사랑을, 절망을 넘어 희망을 보라”는 시각장애인 가수 스티비 원더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원더의 말처럼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게 사랑이자 희망인 것이다. 그것은 사회 제반의 현안에 대해 툭하면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싸우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메시지다.

[매일경제]

9. 광복절 특사 국민 통합과 경제위기 극복 계기 돼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광복절 특별사면이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런 뜻을 밝혔는데 특별사면이 국민 통합과 경제 살리기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 번 정부 들어 사면은 2014년 설 직전과 지난해 광복 70주년에 이어 세 번째다. 박 대통령은 사면이 사회 정의와 법치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발하지 않겠다는 것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때문에 수시로 사면을 단행했던 역대 정권에 비해 횟수가 적었고, 대상도 엄격하게 제한했다. 두 차례에 걸친 사면에서도 생계형 사범 위주였고, 정치인과 공직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경제인도 형기를 대부분 채우거나 죄질 등을 따져 대상을 선정했는데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도 이런 원칙에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와 환율 전쟁, 주요 산업의 구조조정과 최악의 청년 실업,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 등 국내외 경제 여건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정치적으로도 국회가 여소야대로 바뀌었고, 북핵을 둘러싼 외교·안보 분야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엄청난 위기가 올 수 있다. 그런 만큼 국민 통합 분위기를 조성하고 국가 역량을 결집한다는 취지에서 특별사면은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우리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이 많고, 국민 삶의 무게가 무거워 희망의 전기가 필요한 시기"라며 사면을 결정한 배경을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사면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특히 비리와 불법을 저지른 정치인이나 기업인에 대한 사면은 국민 화합은커녕 국론 분열만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해 정부도 지난 사면 때와 마찬가지로 민생에 초점을 맞춰 서민과 영세사업자, 중소기업인 등 생계형 사범 위주로 대상을 선정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 시기다. 국난을 극복하고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려면 좀 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정부는 사회 각계각층의 여론을 수렴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범위 안에서 사면 대상을 선정하되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취지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0. 금융 CEO 공모 큰 장, 무능한 낙하산 철저히 걸러라

다음달부터 내년 초까지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공모가 줄을 잇는다. 신용보증기금과 한국거래소(9월), 예탁결제원과 자산관리공사(11월),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12월), 기술보증기금(내년 1월), 수출입은행(내년 3월) 수장들 임기가 끝나면서 대폭적인 CEO 물갈이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관은 대부분 정부 입김이 강하게 미치는 금융공기업 영역에 있다. 그래서 정권 말기에 금융권에 또다시 낙하산 인사 공습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근혜정부에서 마지막이 될 CEO 공모의 큰 장을 놓치지 않으려는 인사들은 벌써 관계 요로와 정치권 실세에 열심히 줄을 대고 있다고 한다.

낙 하산 인사는 한국 금융의 고질병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선 캠프나 권력 주변 인물들이 금융권 노른자위를 차지하고, 눈을 씻고 봐도 전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총선 낙천·낙선 인사들까지 요직을 꿰차는 일이 관례처럼 돼버렸다. 여기에 퇴직 관료들까지 뒤엉켜 자리다툼을 벌이니 정작 금융 전문가들은 설 자리가 없다.

'홍기택 사태'는 낙하산 인사가 얼마나 큰 참사를 부르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국책은행 수장으로서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실패했고 엄청난 전략적 가치를 지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핵심 요직을 허망하게 날려버렸다.

다 른 금융공기업의 비효율과 전략적 실패 사례도 부지기수다. 보이지 않는 손이 무능한 낙하산 인사를 계속해서 내려보내는 한 한국 금융은 제때 기업 부실을 도려낼 수도,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을 보일 수도 없을 것이다. 낙하산을 매개로 한 권치와 관치의 폐해는 한국 금융을 고사시킬 것이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그 악순환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 우선 다음달부터 시작될 금융공기업 CEO 공모 때부터 무능한 낙하산 인사를 철저히 걸러내야 한다. 무늬만 공모가 아니라 가장 투명한 절차와 치밀한 검증을 거쳐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인물을 뽑아야 한다.

거수기가 아닌 독립적인 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게 그 첫걸음이다. 출신보다 전문성과 개혁적 리더십을 중요하게 봐야 하며 성과가 좋으면 연임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국일보]죽음의 레이디 파블리첸코

2 차대전 소련 붉은 군대의 약 8%(100만 명)는 여군이었다. 그들 중 다수는, 다른 연합군과 달리 후방 지원병과가 아닌 보병 등 전투병으로 전선에 투입됐다. 여군 저격수만 2,000여 명에 달했고, 나치 병사 1만1,280명을 저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상 최고의 저격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루드밀라 파블리첸코(Lyudmila Pavlichenko)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키 에프대학 역사학도 파블리첸코는 1941년 독일군이 러시아를 침공하자 보병으로 자원 입대, 소련군 25사단에 배속돼 저격 훈련을 받았다. 입대 전 그는 키에프 사격클럽 회원으로 총을 다룬 이력이 있었다. 그는 3.5배율 조준경을 장착한 토카레브 SVT-40 반자동 소총으로 오데사 전투에 투입돼 약 두 달 반 동안 무려 187명을 사살한 뒤 크림 반도의 세바스토폴 전투에 가담했다.

저 격병은 전투에서 적의 핵심 화력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아군을 적 저격병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맡는다. 42년 6월 박격포에 부상을 당해 전선을 떠날 때까지 그는 소련군 공식 집계로 309명을 저격했고, 그 중 36명이 적의 저격병이었다. 그는 ‘죽음의 숙녀 Lady Death’라 불렸지만, 뭇 아군의 생명을 지킨 구원의 천사이기도 했다.

전 시 연합군은 전쟁 영웅들을 대중 앞에 세워 사기를 돋우고 참전을 독려하는 역할을 맡기곤 했다. 국제적 영웅이던 파블리첸코는 캐나다와 미국 영국 등지에 초대받아 대중 강연 등을 했고, 백악관에 초대받아 루스벨트와 그의 부인을 예방하기도 했다. 워싱턴D,C에서 한 기자가 그의 스커트 길이를 문제 삼으며 “미국 여성들은 더 짧은 스커트를 입는데 당신 스커트는 너무 길어 뚱뚱해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시카고 연설에서 그는 저 ‘희롱’에 반박하듯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25살인 저는 지금까지 309명의 파시스트 군인을 사살했습니다. 당신들은 저의 등 뒤에 너무 오래 숨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파 블리첸코는 43년 소련 영웅금성훈장을 탔고 소령 예편 전까지 저격 교관으로 복무했다. 종전 후 학위를 받은 뒤로는 사학자로 일했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세르게이 모크리츠키 감독의 영화 ‘1941: 세바스토폴 상륙작전’이 지난해 개봉됐다. 1916년 7월 12일 태어나 74년 10월 10일 별세했다. 향년 58세.


2. [머니투데이][광화문]'밥 안먹는' 대한민국

"야 이 눔아, 한국사람은 밥 먹어야 힘쓰는 거여""누가 그래요? 시간도 없고 밥 맛도 없어요"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얼른 한 숟가락 들고 나가. 밥 먹어야 힘도나고, 머리도 좋아지는 거여. 어여"

학 생을 둔 가정이라면 매일 아침 이런 풍경은 다반사일 듯 싶다. 쌀 소비가 줄어든 게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요즘 그 추세는 속도를 더 하는 것 같다. 집집마다 쌀 씻는 소리는 사라진지 오래고, 대신 빵이나 과일 또는 즉석식품이 메뉴를 대신해 버렸다.

모 두가 식생활 습관이 바뀌고, 1인 가구가 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실제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이른바 '혼밥족'이 증가하면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바로 먹을 수 있는 즉석식품 등 간편식의 성장세는 두드러 진다. 반대로 쌀소비는 몇 년째 곤두박질 치고 있다. 쌀소비가 30년전과 비교할 때 '반토막' 난 지 오래고, 하루에 밥 2공기도 먹지않는 대한민국 가정이 허다하다.

이같은 추세는 넘쳐나는 쌀을 저장하는 정부 양곡창고 안을 들여다보면 더 두드러진다. 지난 5월말 기준으로 쌀 재고량은 174만4000톤을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 133만7000톤보다 더 늘어났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권장하는 적정 재고량 수준이 80만톤이니 이미 정상수치를 벗어난 지는 한참이 지났다. 그동안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아 외국에서 의무적으로 들여오기로 한 저율관세할당(TRQ) 물량도 계속 증가세다.

이 에 반해 국민들의 쌀 소비량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지난 해 국민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72g이다. 밥 한 공기에 쌀이 100~120g 정도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 1인당 하루 소비량이 공기밥 두 그릇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다. 1985년 무렵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128.1kg 이었지만, 지난 해에는 62.9kg을 기록하면서 쌀 소비량은 30여년만에 반토막이 났다.

문 제는 아무리 둘러봐도 넘쳐나는 쌀 재고량을 소비할 만한 출구가 보이지 않다는 점이다. 몇 년째 이어진 풍년으로 물량은 시장에 넘쳐나고 있지만 쌀 재고량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농부가 흘린 '땀의 결실'이 되어야 할 쌀가격은 끝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올들어 전국 평균 산지 쌀값은 80kg기준 14만3892원으로 작년 같은기간 15만8472원보다 1만4580원 떨어졌다.

정말 이런 추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쌀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 농업의 뿌리는 내부로부터 위협받게될 지도 모른다.

정 부도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작년 말 '쌀 특별재고관리대책'을 발표했지만 현장반응은 그리 탐탁치 않은 것 같다. 농식품부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은 보이지만 생산조정제 등 정부대책이 수년 째 반복되는 '재탕''삼탕' 정책들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일부 농가에서는 정부대책중 하나였던 '묵은 쌀 배합사료 원료용 판매'와 관련, "쌀을 이용해 만든 배합사료를 사용했더니 오히려 산란률이 떨어졌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한 농민은 "오리, 닭의 경우 주로 옥수수 등을 섞어 사료로 제공해 왔는 데 갑자기 쌀을 섞다보니 사료성분 변화에 민감한 가축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고 답답해 했다.

요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탈 퇴 결정)로 인한 국제 금융시장 불안도 심각한 문제지만, 쌀 소비량이 줄면서 우리 농업은 이제 생존위기까지 걱정하는 급박한 처지가 됐다. 위기상황은 농업·농촌을 총괄하는 농림축산식품부도 마찬가지다. 경영난으로 자립기반을 상실한 농업인들이 속출하게 된다면 농식품부의 존재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정말 식량문제가 인간의 생존에 직결된 이슈라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밥먹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국가차원의 종합대책을 세우고, 이를 추진하려는 결사항전의 각오를 보고 싶다.


3. [중앙일보][삶의 향기] 여름의 추억

이 제는 완연한 더위의 터널로 진입한다. 다른 길은 없다. 들어간 이상 터널의 출구를 향해 끝까지 나가야 한다. 추운 겨울이면 더운 계절의 가벼운 옷차림이 그립고, 막상 뜨거운 여름이 되니 목까지 감싸는 터틀넥 스웨터를 입을 때의 싸늘한 대기가 그립다.

직 장이 정해지면서 아파트 생활에 접어든 지 4년차다. 유학생활 9년을 빼고 30년간을 나는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흙을 밟고 살았던 셈이다. 도심의 소음으로 신경쇠약에 걸리신 아버지 탓에 우리 가족은 일찍 전원생활의 불편함을 감내해야만 했다. 한 시간에 버스 한 대가 다니는 서울 인근의 그린벨트 생활에 주변 분들은 많이 염려했지만, 초등학생인 나에게 전원생활은 보물섬과 같이 미지의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차산 기슭, 개울 앞에 자리한 그 집은 많은 추억을 담고 있다. 꽁꽁 숨겨온 탐험 소질이 본격적으로 발휘되는 계절이 여름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개울로 나가 놀기에 급하다. 기르던 개와 동생까지 덩달아 뛰어나왔다. 때묻지 않은 자연을 스승 삼아 노는 우리에게 여름은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그 시절 여름방학은 축제나 다름없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널찍한 평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수박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저녁상을 물리면 이웃들도 하나둘 건너왔다. 평상에 누워 올려다본 여름밤의 높고 검푸른 하늘, 그리고 그 하늘 밑의 가로등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의 그림 같았다. 그 깊은 하늘과 대비를 이루는 선명한 노란 가로등 아래서 우리 또래들은 ‘다방구’ ‘얼음땡’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를 했다. 그 재미나고 흥분되는 몰입의 순간은 누군가 넘어지거나 큰 울음이 터져야 비로소 흥이 깨졌다. 평상 위에서 어른들이 나누던 대화는 어린 우리에게는 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 여름밤은 그렇게 깊어만 간다.

그 시절 우린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구미호’와 ‘거꾸로 떨어져 죽은 여중생’ ‘홍콩할매 귀신’ 같은 으스스한 괴담을 들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곤 했다. 그런 날이면 두려움에 떨며 학교 화장실도 함께 모여 가야 했고, 깊은 밤 귀신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은 오싹함이 여름밤을 더욱 절정으로 몰아갔다.

여름의 보물은 숲에 숨어 있었다. 숲속의 짐승들과 곤충들의 몸짓 소리,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가 온몸으로 울어대는 소리가 나무들에 부딪쳐 되돌아온다. 매미는 유충에서 성충으로 자라는 데 7년의 긴 시간이 걸린다는데, 단 7일 만에 막을 내리는 매미의 세레나데는 그래서 더 절절하다. 아무리 도시 매미가 시끄럽다지만 그리 울어대는 매미의 소리가 없는 여름은 지루하고 싱거울 것 같다.

오래전 동네에서 시끌벅적 떠들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 에어컨과 선풍기에 둘러싸여 지내며 카디건을 두르거나 냉방병을 걱정한다. 더위에 아랑곳 않고 생기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여름은 세월의 먼지에 쌓여 빛바래져 버렸다.

얼 마 전 막내 아들과 텔레비전을 보다가 격세지감을 느꼈다. 어릴 적 우리는 지루한 오후를 기다린 끝에야 간신히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던 ‘말괄량이 삐삐’는 방송사 측의 사정인지 몇 번의 재방송을 거듭하고도 결말을 보여주지 않아 무척 상심했었다. 이에 비해 요즘은 여러 채널에서 아예 다양한 어린이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접할 수 있다. 여기에다 지금은 인터넷만 간단히 검색해도 프로그램의 결말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무작정 목을 빼고 텔레비전 방영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 시절 그 간절한 궁금증은 지금의 편리함과 바꾸기 싫을 만큼 아련한 기다림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좋아하던 나의 여름은 어디로 갔을까. 어린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맞이했던 축제 같은 여름의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는 없을까. 뻘뻘 땀을 흘리면서도 더위를 즐겼던 그 시절 그 여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인지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 리모컨부터 찾는 지금의 내 모습이 더욱 씁쓸할 뿐이다.


4. [동아일보][김상욱 교수의 과학 에세이]‘개, 돼지’를 인간으로 만든 과학

진 부하고 경박한 질문을 하나 해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누구일까.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티무르? 나폴레옹? 철학자 볼테르는 망설임 없이 ‘아이작 뉴턴’이라고 대답했다. 우리가 숭배해야 할 사람은 폭력으로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자가 아니라 진리의 힘으로 우리 정신을 정복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볼테르가 활동하던 18세기 유럽에서 뉴턴은 분명 가장 위대한 영웅이었다.

뉴턴이 확립한 물리학은 천상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기술해 주었다. 우주에는 법칙이 분명 존재했고, 이것은 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했다. 적어도 신이 자연 현상에 기적과 같은 형태로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스피노자와 존 톨런드는 성서를 무시하고 자연 그 자체를 신으로 보는 ‘범신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과학은 종교 개혁의 혼란을 겪던 타락한 중세 교회에 타격을 주고, 이성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로써 계몽주의라 불리는 서양의 근대 사상이 17, 18세기 유럽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계몽주의는 인간 삶의 목적이 내세(來世)가 아닌 현세의 행복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현세의 행복은 과학적 지식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 베이컨이 말했듯이 ‘아는 것이 힘’ 아닌가. 계몽은 무지와 미신과 같은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하다. 계몽을 하면 할수록 인간은 도덕적으로 변하고, 세계는 진보한다. 물론 지금 우리는 계몽주의의 한계를 알고 있다. 계몽의 주체는 이성이며, 이성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은 필연적으로 당시 지배계급이 가지고 있던 특권주의와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계몽주의는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과 같은 역사의 전환점을 만드는 데 한몫을 한다. 오늘날 우리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라고 믿는 자유, 평등, 이성 등은 과학 혁명에서 비롯된 계몽주의에 그 근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런 보편적 가치가 아주 최근에야 확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근대 사회에서 귀족과 평민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때로 평민은 ‘개돼지’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기도 했다. 물론 지금의 시각에서 신분제는 난센스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역사는 이런 당연한 사실이 받아들여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는지 보여준다.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싸움이었다지만,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과 같지 않았다. 백인들이 신분제를 철폐하기 위한 전쟁을 벌이는 동안에도 대부분의 흑인은 여전히 노예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미국은 독립전쟁을 끝내고 100년이 지나서야 노예해방전쟁을 치르게 된다. 백인 남성들이 평등을 위해 싸우는 동안 여성은 남성과 평등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백인 여성보다 흑인 남성이 먼저 참정권을 가지게 된 것이 한 예다.

인류의 근현대사는 인간 평등의 범위를 확대하는 투쟁의 역사다. 그런데 인간은 왜 평등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대답할 수 있을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면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필자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오히려 용감하게 답을 할 수 있을 거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이유는 생물학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각 개인이 가진 문화적 사회적 겉모습을 벗고 벌거벗은 호모 사피엔스로 섰을 때,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지하철 정비노동자 사이의 차이를 말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유 전자 수준으로 가서 보면 차이를 구분하기 더욱 힘들어진다. 모든 인간의 유전자는 다른 사람과 평균적으로 99.5% 정도 같다고 한다. 유전자만 봐 가지고는 두 사람을 차별할 근거를 찾기 힘들다는 말이다. 유전자까지 오면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평등도 문제가 된다. 침팬지의 유전자는 인간과 99%가 같다. 참고로 남자와 여자도 유전자의 99%가 같다. 인간의 평등이 생물학적인 근거 때문이라면, 우리는 이제 평등의 범위를 다른 생물종(種)으로 넓혀야 할 시점에 온 것인지도 모른다.

“민중은 개돼지.”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 2016년 대한민국 교육부 고위 공무원이 한 말이다. 과학 혁명에 이은 계몽주의,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혁명과 전쟁.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가치를 확립하기 위해 인류는 처절한 대가를 치렀다. 서양 사회가 18세기에 치른 계몽주의의 혼란을 우리는 이제 겪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이런 전근대적 발언을 두고 왈가왈부할 시간이 없다. 동성애자 차별, 성 차별, 여성 혐오, 병역 거부자 차별, 외국인 혐오 등을 없애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학의 이름으로.


5. [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외교부 장관은 패셔니스타?

1887 년 초대 주미공사로 임명된 박정양(1841∼1904) 일행이 미국 워싱턴에 부임했을 때 일이다. 기이한 모자에 괴상한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이들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난리법석이었다. 하루는 길을 걸어가는데 아이들이 돌을 던졌다. 경찰이 ‘외교 결례’를 범한 아이들을 붙잡아가자 이들은 서장을 만나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다’며 석방을 당부했다. 신문에 ‘한국에서 온 신사’란 미담 기사가 실리면서 구한말 외교사절의 관용이 워싱턴 외교가에서 화제가 됐다.

외교 의전에서 복장 규정이 빠질 리 없다. 초청장에 ‘화이트 타이’라고 적혀 있으면 최고 격식의 연미복과 흰색 나비넥타이를 매야 한다. ‘블랙 타이’(약식 야회복)는 검은색 턱시도에 검은 나비넥타이 차림을 뜻한다. 이 밖에 짙은 색 정장을 갖춰 입는 ‘라운지 슈트’(평복), 재킷은 필수지만 넥타이는 선택인 ‘비즈니스 캐주얼’ 같은 드레스코드가 있다.

옷차림으로 외교상 껄끄러운 논란이 빚어질 때도 있다. 1998년 일본을 방문한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은 일왕 주최 만찬에 인민복 차림으로 참석해 일본 측이 반발했다. 최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외교 문제가 아닌 옷 때문에 구설에 올랐다.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를 발표할 당시 백화점에서 옷 수선을 하고 새 양복까지 쇼핑을 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화급한 외교안보 사안이 발표되는 시점에, 그것도 평일 오전에 대한민국의 외교 수장은 꼭 백화점에 있어야 했을까.

외교부 해명인즉, 장관이 며칠 전 청사에서 넘어져 바지가 찢어졌는데 평소 아끼던 바지라서 수선차 들렀다는 것이다. 야당은 “굳이 장관이 직접 들고 백화점에 갈 만큼 한가한 상황이었는지, 열 번을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라고 꼬집었다. 어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윤 장관은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는 것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 장관으로서 ‘옷을 못 입는다’는 입길에 오르내리는 것보다는 패셔니스타라는 말을 듣는 것이 낫겠지만 업무의 경중을 따지는 사리분별력은 옷 잘 입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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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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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1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사드 배치 후폭풍에 빈틈 보여선 안된다

정부가 주한 미군부대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를 배치하기로 결정한 것은 군사 주권 차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갈수록 증대되고 있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위협에 맞서 국가와 국민의 안전과 생존을 지키기 위한 자위적 조치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러한 결정을 두고 성급했다거나 절차가 불투명했다고 비판하는 주장들이 오히려 공허하고 무책임할 뿐이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노동, 스커드, 무수단 등 다양한 중·단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남한 전역이 타격권에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최근 들어서는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무기개발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만약의 경우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가장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요격무기 체계가 사드다. 패트리엇 미사일과 함께 이중의 방어막을 이루게 된다.

문 제는 앞으로의 추진 과정이다. 그동안 논의로만 맴돌던 사드 배치가 기정사실화된 만큼 그에 따른 위험 부담과 반발도 함께 따를 것으로 우려된다. 그중에서도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중국은 사드 배치 결정이 중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며 극구 반발하고 있다. 사드 배치의 필요성과 불가피성에 대한 우리 입장을 이해시키는 데 외교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단 기적으로는 중국의 경제 보복 가능성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해 놓을 필요가 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보복 조치가 한국을 방문하는 자국 관광객의 규모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럴게 될 경우 우리 관광·숙박·유통업계가 심각한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우리 제품에 대한 중국 정부 차원의 차별적인 보호무역 조치도 강화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중국은 이미 삼성, LG 등 국내 배터리 제품을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사 드 배치가 거론되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가라앉히는 과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칠곡과 음성, 원주, 평택 등 후보지 주민들마다 벌써부터 대규모 반대집회를 열거나 계획 중에 있다. 부지가 최종 발표되면 반발 수위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군 당국은 사드 레이더가 가동하더라도 민간인 지역에서 인체 유해성 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반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 홍기택 파문 ‘보이지 않는 손’ 누구인가

기어코 일이 어그러졌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그제 홍기택 씨가 맡고 있던 리스크담당 부총재(CRO) 자리를 국장급으로 강등하는 대신 재무담당 부총재(CFO)직을 신설하고 후보자를 공모했다. 그러나 지난달 CFO로 선임된 프랑스 출신 티에리 드 롱구에마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가 사실상 내정됐다고 하니, 공모 자체가 형식적인 셈이다. 후임 부총재를 다시 한국인이 맡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결국 홍 씨의 돌발행동 탓에 막대한 분담금을 내고도 부총재 자리를 날린 꼴이다. AIIB에 내는 한국 분담금은 37억달러(약 4조 3000억원)다. 중국, 인도, 러시아, 독일에 이어 5번째다. 새 부총재직을 가져갈 프랑스는 7번째다. 나라 위상에 흠집이 생긴데다 발언권 약화 등 향후 AIIB 활동 측면에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일차적으로 홍 씨의 책임이 크다. 그는 한국을 대표해 맡은 부총재직을 정부와 협의도 없이 취임 4개월 만에 돌연 휴직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AIIB 총회에서 진리췬(金立群) 총재에게 휴직 사실을 들었다고 한다. 나라 망신을 자초한 무책임한 처사다. 최근 ‘서별관회의’를 언급하며 대우조선 지원결정 책임을 청와대 등에 떠넘길 때부터 유별났다.

애 초 그릇이 못되는 인물을 부총재로 지원한 정부 잘못이다. 그는 박근혜 정권 인수위에 참여한 덕분에 산업은행 회장이 된 ‘낙하산’이다. 산은 회장 때 대우조선의 대규모 분식회계 방조 의혹,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지연 등 부실관리 책임을 진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에게 정권 실세들이 퇴로를 열어주려 감사원 봐주기 감사에 국제기구 부총재 자리까지 밀어줬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AIIB 중요 고위직에 한국인이 선임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심한 작태다.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홍 씨의 추천·지원 과정을 엄정히 따져 ‘보이지 않는 손’이 누구든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는 물론 필요하다면 국회 청문회도 추진할 일이다. 대우조선 분식회계 묵인 의혹 등 산은 회장 당시의 책임도 당연히 밝혀내야 한다.

[서울신문]

3. ‘민중은 개·돼지’란 공직자의 이해 못할 가치관

교 육부 고위공무원의 막말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최근 한 언론사 기자들과 만나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아무리 영화의 대사를 인용한 것이라도 해도 고위공직자의 발언이 이쯤 되면 충격적이다 못해 참담하기 그지없다. 교육부는 그를 대기발령 조치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덮을 일은 아니다. 공직자로서의 기본과 자질을 의심케 하는 위험천만한 가치관을 가진 그를 공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 옳다.

고위 관료가 아무리 사석이라고 해도 “99%의 민중은 개·돼지로 보고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했다니 정신 나가지 않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발언이다. 그는 은연중에 자신은 지배계급, 민중은 피지배계급으로 보는 계급론적 시각을 보였다. 더구나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고까지 하며 속내를 드러냈다. 그의 발언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헌법(제11조 )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그는 국민이 주인이 되어 국민을 위해 정치(행정)가 이루어지는 민주주의의 정신마저 짓밟은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의 분노가 들끓는 것은 당연하다. 교육계와 네티즌 등은 “나향욱 자신이 개·돼지만도 못한 인간”, “신분제, 차별 교육에 대한 생각을 뼛속 깊이 가진 사람이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것은 분노할 일”이라고 맹비난했다. 야당이 어제 일제히 논평을 내고 “막말로 국민을 모독한 그는 더이상 공무원 자격이 없다”며 즉각 파면할 것을 촉구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국민이 우매해서 공무원들에게 나랏일을 맡긴 것이 아니다. 국민을 대신해 일하도록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국민을 깔본다면 더이상 공직에 있으면 안 된다. 더구나 교육부는 신분 등의 차별 없이 누구나 교육을 받도록 해 건강한 시민을 키워 내는 곳이다. 요즘 ‘수저계급론’이 나오는 등 부의 불평등이 심각하다. 교육의 균등한 기회 제공을 통해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놔 줘야 하는 교육부의 책무가 더 막중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교육부의 고위 인사가 ‘신분제 공고화’ 등과 같은 망언을 쏟아 낸 것은 한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할 수 없는 중차대한 문제다. 이번 기회에 공직 적격 심사를 다시 해 공직 부적격자들을 반드시 걸러 내야 한다.

4. ‘광복절 특사’ 경제인·정치인 신중해야

박 근혜 대통령이 8·15 광복절을 계기로 특별사면을 단행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주 금요일 청와대로 새누리당 의원 126명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정진석 원내대표의 ‘광복절 특사(特赦)’ 건의를 받고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정 원내대표가 “국민 화합과 사회 활력을 높이기 위해 8·15 광복절 때 전(全) 분야에서 규모 있는 수준의 특사를 검토해 주시면 좋겠다”고 하자 박 대통령은 “좋은 생각”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정 원내대표는 특별히 정치인·경제인에 대한 특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건의했다고 밝혔다.

특별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고, 그 대상자 또한 주변의 다양한 건의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대통령만이 결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면은 사법적 절차의 모든 과정과 결과를 무효화시켜 사법체계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합당한 명분을 갖춰야 함은 물론 엄격한 기준하에 시행돼야 한다. 사면 대상자 또한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 비춰 본다면 이번 광복절 특사가 단행될 경우 정치인과 경제인을 대상자에 포함하는 문제는 섣불리 결정할 일이 아니다. 신중하게 판단하는 게 마땅하다.

박 대통령도 지금까지 정치인과 경제인 사면을 자제해 왔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단 두 차례 특사를 단행했다. 2014년 1월 설을 맞아 서민·생계형 사범 5925명을 처음으로 특별사면했다. 정치인, 공직자, 경제인 등은 아예 제외했다. 두 번째인 지난해 8·15 ‘광복 70주년 특사’ 때는 총 6527명을 사면했는데 이때도 정치인과 공직자는 배제했고, 경제인도 죄질을 따져 대기업 인사 등 14명만 제한적으로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대기업 중대 범죄에 대해 사면권 행사를 엄격하게 제한하겠다”는 공약을 깬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엄청난 비리와 불법을 저질러 처벌받았던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사면이라는 ‘면죄부’를 받아들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모습에 우리는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역대 대통령 모두 경제 살리기, 정치적 갈등 해소, 국민통합 등의 명분을 내세워 그들에게 사면의 은전을 내렸지만 국민의 뇌리에는 ‘유전무죄, 유권무죄’ 인식만 강하게 남아 있다. 박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들에 비해 엄격하게 사면권을 제한해 온 것도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정치인과 경제인 등 권력이나 부를 가진 이들에 대한 사면은 오히려 국민통합에 역행할 뿐이다.

[동아일보]

5. 참의원도 개헌세력 압승, ‘전쟁할 수 있는 일본’으로 가나

일 본 참의원 의원 242명의 절반인 121명을 새로 뽑는 어제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 등 개헌 찬성 정당들이 압승했다. 오늘 새벽 끝난 개표에서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 개헌찬성 2개 야당 등 ‘개헌 4당’이 비(非)교체 의석을 포함해 161석을 차지했다. 개헌을 지지하는 무소속 의원 4명을 합하면 165석으로 전체 참의원 의석의 3분의 2(162석)를 넘었다. 개헌에 반대하는 민진당 공산당 사민당 생활당은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기 위해 단일후보를 세웠지만 대안세력으로서의 믿음을 주지 못해 참패했다.

양원제 의회인 일본에서 개헌은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거쳐 발의해 국민투표에 부친 뒤 유권자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중의원은 자민당과 공명당 의석만 합해도 이미 3분의 2를 넘는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파들이 3분의 2를 돌파하면서 1946년 현행 일본 헌법이 만들어진지 70년 만에 개헌세력이 중·참의원 모두 개헌발의가 가능한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했다. 일본 국민 사이에 개헌 거부감이 적지 않지만 자민당 등 보수 세력의 숙원인 개헌으로 가는 중대한 걸림돌이 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아베 총리는 올해 3월 임기 중 개헌 문제를 완수하고 싶다고 했다. 총리 취임 전에도 “현행 헌법은 일본이 점령당한 시기에 점령군 손으로 만들어졌다”며 개헌을 위한 국민운동을 펼치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개헌 4당은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헌법 9조를 개정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일본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베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민감한 사안인 개헌 문제를 피하고 아베노믹스 지지를 호소하는 데 집중했지만 앞으로 참의원 선거 승리를 기폭제로 개헌을 향해 고삐를 당길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개헌은 국내 문제이면서도 제국주의 일본의 아시아 침략 역사와 맞물려 한국 중국의 경계심을 부를 소지가 크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 및 장거리 미사일 위협을 발등의 불로 여기는 한미일(韓美日) 3국과 북한에 우호적인 중국 러시아 간 갈등 국면에서 일본의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면 우리가 곤혹스러운 처지에 직면할 수 있다. 아베 정권은 참의원 선거 결과에 고무돼 개헌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동북아에 심각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6. 서비스경제, 선택과 집중이 필요

정 부는 최근 서비스경제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우리 고용의 70%를 차지하는 서비스산업을 발전시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쟁력을 제고시켜 경제 활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서비스산업 발전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완돼야 할 점 또한 많다.

먼 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서비스산업의 범위는 넓다. 농림수산업과 제조업 그리고 건설업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업종이 서비스업이다. 음식료, 숙박, 운수, 의료, 관광, 유통, 교육, 금융, 문화콘텐츠, 정보통신 그리고 과학기술 연구개발이 포함된다. 서비스업의 고용 비중이 70%에 달하는 것도 업종 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고용비중이 28%인 음식료, 숙박 그리고 운수업이며 의료와 교육이 각각 7%를 차지하고 있고 과학기술 연구개발이 차지하는 비중은 4%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서비스업 전체보다는 특정 부분을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내수와 고용을 늘리기 위해 음식료나 관광업을 육성하는 것과 신산업인 정보통신업을 육성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이번 정책은 신산업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관광, 의료 등도 포함해 그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신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정보통신과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에 집중해 지원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내수 부양에만 치중하기보다는 수출산업 지원을 병행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서비스업은 내수 업종이 대부분이다. 서비스업의 고용 비중이 70%라는 수치 때문에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내수 부양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일자리가 창출되는 음식료, 숙박, 운수 및 관광업은 대부분 소비 업종이며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소득이 있어야 한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빈약한 소규모 국가다. 내수 위주의 성장전략으로는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수출에 의해서만 성장률을 높이고 소득을 늘릴 수 있다.

지금처럼 수출이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내수를 부양하면 결국 소득 없이 소비만 늘어 부채가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수출 증대를 통해 소득을 창출한 뒤 소비를 늘려 내수를 부양시켜야 한다. 이러한 내수 부양이 기업 투자로 연결되면서 일자리가 창출되는 선순환경제로 우리 경제가 들어가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수를 위해 서비스업만 지나치게 육성하는 전략보다는 수출산업을 병행 육성하는 성장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서비스업과 제조업의 융합 발전전략도 중요하다. 우리 경제는 조선, 철강 등 주력 산업의 중국 이전으로 이를 대체할 고부가가치 신산업이 필요하다. 신산업이나 고부가가치 산업은 모두 서비스업과 제조업이 융합돼 있다. 따라서 서비스업만 강조하고 제조업을 사양 산업으로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보통신 같은 서비스업 육성을 통해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그 외에도 디지털과 아날로그로 지원부처가 분리돼 있는 정부의 서비스산업 지원체계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구분이 없어지는 지금 과거의 지원체계로는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서비스산업 발전을 통해 국부 유출을 막고 경제 활력을 제고시키려는 정책방향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저성장과 부채 증가의 늪에 빠진 것은 지나치게 내수 위주, 그리고 서비스 위주 성장전략을 추진한 것과도 연관이 있다. 서비스산업 발전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신산업 육성에 두고 수출과 제조업을 함께 중요시하는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 경제를 부채 증가와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해야 한다.

[중앙일보]

7. 개헌 열쇠 쥐게 된 아베의 폭주를 우려한다

일 본이 언제든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보통국가로 바꿔놓으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망이 한층 현실에 다가서게 됐다. 10일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 자민당과 공명당을 비롯한 개헌 지지 4개 당이 개헌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에 근접한 표를 얻은 것으로 출구조사 결과 나타났다. 재정확대·금융완화·구조개혁이란 세 개의 화살을 통해 일본을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에서 탈출시키겠다는 아베노믹스가 일본 국민에게 먹혀들면서 야당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아베노믹스는 3년을 넘기면서 효과가 반감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 브렉시트 등으로 엔화값이 치솟으면서 수출기업마저 힘을 못 쓰고 있다. 하지만 일본 유권자들로선 아베노믹스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게 문제다.

여기에다 중국이 세력을 확대하고 북한의 핵 위협까지 가중되고 있어 일본 유권자에겐 아베의 노선을 배척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야당이 헌법 개정을 반대하고 아베노믹스의 무용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일본 국민이 귀담아 듣지 않는 이유다. 이런 국민적 정서는 투표율에 고스란히 반영돼 이번 투표율은 역대 참의원 선거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인구고령화에 따른 ‘실버 민주주의’ 폐해를 완화하기 위해 선거권을 처음으로 18세 이상으로 2년이나 낮추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베는 개헌에 필요한 열쇠를 모두 쥐게 됐다. 중의원에서는 이미 3분의 2 의석을 넘어섰고, 참의원에서도 무소속 의원 등을 영입해 개헌에 필요한 의석을 다져 나갈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이번 참의원 선거 압승으로 아베는 장기 집권의 길을 열게 됐다. 엔화값을 떨어뜨려 수출을 촉진하는 아베노믹스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게 됐다.

이제 우리 정부도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을 고민해야 한다. 일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한편 일본과의 교류 또한 소홀히 해선 안 될 것이다. 일본의 우경화 흐름을 경계하되 민간과 경제 교류가 지속돼야 일본을 설득할 계기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외교든 경제든 그런 토대가 있어야 아베의 질주를 막을 수 있다.

[매일경제]

8. 마이너스 금리 확산, 글로벌 은행 위기 올 수 있다

글 로벌 금융시장에서 마이너스 금리가 확산되고 있다. 세계적인 유동성 홍수 탓에 여윳돈을 빌려주는 쪽이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되레 보관료를 물어야 하는 비정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에는 덴마크와 네덜란드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독일 국채는 15년물, 일본 국채는 20년물까지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50년 만기 스위스 국채 수익률도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반세기 후 원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돌려받는 조건에도 기꺼이 돈을 묻어두려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브렉시트로 글로벌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가 더욱 강해지면서 이제 전 세계 국채 물량의 3분의 1인 13조달러(1경5000조원)어치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가 확산되면 각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QE) 정책은 헛돌게 된다. 유럽중앙은행(ECB) 은 매달 600억유로어치의 유로존 국채를 사들이며 유동성을 공급하는데 이 지역 국채의 31%는 금리가 너무 낮아 아예 매입 대상에서 제외될 정도다. 일본 중앙은행은 브렉시트에 따른 엔고를 저지하려 더욱 극단적인 양적완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수익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글로벌 은행들은 각국 정책금리와 실세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직격탄을 맞고 있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나 크레디트스위스, 도이체방크, 바클레이스 같은 유럽계 은행들의 주식 시가총액이 올해 들어 반 토막이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럴수록 은행들은 더욱 몸을 사리게 되고 이는 세계 금융시장에 급격한 신용경색을 불러올 수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동맥경화는 우리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좇아 한국 시장에서 발을 빼고 우리 은행과 기업들이 해외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 경우 부실 기업 구조조정으로 건전성이 떨어진 국내 은행들도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지금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나 외화유동성 비율이 양호한 수준이라고 안심할 게 아니라 과연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잘 버틸 수 있을지 엄격한 잣대로 검증해봐야 할 때다.

9. AIIB 대주주 한국이 핵심그룹에서 밀려나서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홍기택 부총재가 맡고 있었던 최고위험책임자(CRO) 보직을 국장급으로 강등하고 후임자 공개모집에 들어가면서 한국 몫이었던 부총재 자리는 사실상 날아가게 됐다. 홍 부총재의 돌발적인 휴직은 결국 국제 망신은 물론 국익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AIIB는 국장급이던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를 부총재로 격상시켰지만 ADB 부총재인 프랑스인 티에리 드 롱게마르가 선임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우리 몫이 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한다. 정부는 홍 부총재 후임에 한국인이 인선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AIIB의 직급 조정에 손도 써보지 못하고 부총재직을 다른 나라에 뺏기게 됐다.

이제 한국인이 실제 도전할 수 있는 보직은 국장급 세 자리뿐이다. AIIB의 핵심 멤버로서 4조3000억원의 분담금을 내기로 한 한국이 어렵게 따낸 부총재 자리를 이렇게 허망하게 잃게 된다면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왜 이런 기막힌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홍 부총재는 돌연 휴직 후 연락을 끊고 잠적해 있다고 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낙하산 인사가 빚은 참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홍 부총재는 박근혜 정권 인수위원을 지낸 후 산업은행 회장에 올랐던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다. 그는 재임 시절 대우조선의 부실을 걸러내지 못하고 4조2000억원을 신규 지원한 데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자 그 책임을 청와대와 금융당국에 떠넘기는 듯한 말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 후 AIIB 부총재로 추천한 정부와 충분한 사전 조율도 없이 돌연 휴직을 감행해 사태를 최악으로 만들고 말았다. 정부는 이번 사태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책임 소재를 반드시 가려야 한다.

AIIB에 대한 한국 지분은 중국, 인도, 러시아, 독일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다. 이렇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도 부총재직 상실로 의사결정에 대한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게 된 것은 실로 개탄스럽다. 하지만 정부는 손을 놓고 있을 게 아니라 AIIB를 끊임없이 설득해 우리 몫을 되찾아야 한다. 또한 핵심 의사결정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세계일보]

10. 사드 외교전 중차대한 시기에 남남갈등이라니

한·미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공식 발표한 지 하루 만인 그제 북한은 동해상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을 쏘아 올렸다. 미국이 최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인권침해 혐의로 제재 대상에 올린 데 이어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확정한 데 대한 무력 시위로 해석된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이처럼 릴레이 ’미사일 쇼’를 벌이는 행태야말로 사드 배치 명분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사 드 배치 결정은 우려했던 대로 중국·러시아 정부의 반발, 북한의 무력 시위 등 동북아 안보불안 지수를 높이고 있다. 중국 내에서는 외교적 대응뿐 아니라 경제 제재를 검토해야 한다는 ‘반한’ 여론몰이마저 벌어지고 있다. 대북 미사일 억지 차원이라는 우리 정부 해명에도 중국 등을 겨냥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 편입으로 간주하는 탓이다. 미·중 군사적 이해 충돌이라는 점에서 내일 예정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한 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 결과도 사드 이후 외교전을 복잡하게 만들 공산이 크다. 곳곳에서 미·중 간 힘겨루기가 벌어지면 우리 외교의 입지는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이 럴 때일수록 내부 결속이 중요한데 사드 배치 지역 선정을 앞두고 지역 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린다. 국가안보는 어떻든 ‘우리 지역은 안 된다’는 님비 현상이 횡행하는 건 극히 유감스런 일이다. 후보지로 꼽히는 경북 칠곡에선 그제 3000여명의 주민이 배치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 삭발 시위도 등장했다. 충북 음성은 오늘 ‘사드 배치 반대 범군민결의대회’를 연다. 후보지로 거론되는 지방자치단체장은 물론 지역 국회의원들이 ‘절대 불가’ 여론몰이에 나서고, 진보단체들까지 가세하면서 국론분열 양상을 빚고 있다.

북 한 핵·미사일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국익 차원에서 결정한 일인 만큼 배치 지역도 북 미사일 방어와 우리 군사적 이익 확보에 가장 효과적인 곳으로 정하는 게 마땅하다. 기준은 투명하고 정치적 고려는 배제돼야 한다. 해당 주민들을 설득하고 근거 없는 ‘사드 괴담’에 대응하는 정부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분 단 상황에서 지역 이익이 국가적 이익보다 앞설 수는 없다. 주변국과 외교적 거래로 절충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 중국 등 주변국의 이해를 끌어내고 내부 갈등을 최소화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 대통령이 결단한 이상 국민을 설득하는 리더십도 보여야 한다. 지역 사회의 대승적 협력 또한 요구된다.



주요 신문칼럼


1. [이데일리][목멱칼럼]"아버님 댁에 소화기 놓아드리세요"

주 택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공간으로, 다른 어느 곳보다도 안전해야 한다. 화재를 비롯한 각종 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고 사고 발생 시에는 신속히 대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안전해야 할 주택이 ‘우리 집은 괜찮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과 기본적인 소방시설의 미비로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하고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아 파트의 경우에는 오래전부터 소방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소방안전에 대해 자격을 갖춘 소방안전관리자를 두어 안전관리를 수행하도록 해온 반면, 일반주택은 소방시설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 결과 국가화재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발생한 전체 화재의 25%, 화재사망자의 60%가 주택에서 발생하였으며, 주택화재 사망자의 84%가 단독주택 같은 일반주택에서 발생하고 있다.

화 재가 발생한 경우 골든타임을 기점으로 화염은 급속도로 확산되고, 다량의 유독가스가 발생하여 질식의 위험도 높아진다. 주택에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이유는 화재의 대부분이 잠자는 시간대에 발생하여 화재를 빨리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초기에 불을 끌 수 있는 소화기조차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화 재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주택에 소방시설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1977년), 영국(1991년), 일본(2004년) 같은 나라의 경우에는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를 의무화한 이후 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대폭 줄어들어 그 효과가 입증된 바 있다.

프 랑스의 경우에는 설치 의무화는 물론, 주거 임대시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주거상태 확인서에 단독경보형감지기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서 명기토록 하였다, 또한 주거 점유자(세입자 또는 실소유주)는 주거점유기간 동안 설치된 단독경보형감지기의 정상작동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점유기간 중 소방시설이 고장나면 교체토록 의무화하고 있다.

우 리나라도 주택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신축이나 증축하는 주택은 2012년부터, 기존 일반주택은 2017년 2월 4일까지 주택용 소방시설(단독경보형감지기·소화기) 을 설치토록 의무화하였다.

정 부와 지자체는 재정지원과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연계하여 기초생활수급가구 등 73만여 가구에 주택용 소방시설을 보급하였다. 아울러 화재 없는 안전마을 조성사업 등을 통하여 쪽방촌을 비롯한 화재취약지역 21만여 가구에도 소방시설을 설치하였다.

단독경보형감지기와 소화기 설치로 인한 효과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 3일 전북 군산에서는 독거노인이 음식물을 가스 불에 올려놓고 깜박 잠든 사이 단독경보형감지기가 울려 신속히 대피하여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다.

하 지만 법령 개정과 정부 지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 비율은 낮은 실정이다. 그래서 국민안전처는 올해 하반기부터 매월 전 직원들의 자율적인 모금을 통해 취약계층에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를 지원하고, 기업의 사회공헌활동과 연계하여 소방시설 무상보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주택용 소방시설의 구매와 설치를 지원하기 위해 전국 모든 소방서에 원스톱지원센터를 운영 중이다.

주 택 화재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참여와 협조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화재 초기에 소방차 한 대의 효과가 있는 소화기와 잠든 시간에 알람 역할을 하는 단독경보형감지기가 국민의 행복한 보금자리를 지키는‘가정 안전의 파수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2. [동아일보][이슈&트렌드]‘위로’를 팝니다

3 년째 유통 분야 기업을 출입하며 기업 관계자들로부터 꾸준히 들어온 말이 있다. 바로 “요즘 장사가 안 돼요”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듯 경기를 타지 않고 “요즘 잘나간다”고 말하는 것이 세가지 있다. 화장품, 여행, 편의점 업계다.

화장품이 잘나가는 데는 한류 덕이 크다. 전형적인 내수산업이던 화장품은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진출하면서 최근 몇 년 새 수출액이 급증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에 와서 사가야 하는 필수품목으로 통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반 면 패키지 여행사를 비롯해 항공권 예매, 숙박예약 업체 등은 해외로 나가는 내국인이 늘면서 호황을 맞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매년 해외로 나가는 우리 국민은 1900만 명을 넘어섰다. 1, 2위를 다투는 여행사들은 달력이 한 장 넘어갈 때마다 경쟁하듯 전달에 비해 상승한 실적 자료를 배포한다.

편 의점은 어떤가. 편의점업은 철저히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크고 있다. 1980년대 처음 국내에 도입된 편의점은 어느 때보다 몸집이 커졌다. 올해 말까지 상위 3개 업체의 전국 점포 수를 합치면 3만 개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소도시의 골목골목까지 편의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화 장품이야 한류 열풍을 타고 활황을 맞았다 치자. 여행과 편의점에 대한 국내 수요가 왜 이렇게 늘어나는지 궁금해졌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 배경에 숨겨진 공통적 키워드가 하나 있다. 바로 ‘1인 가구’다. 1인 가구의 소비 생활에 편의점과 여행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1인 가구 비중은 전체 가구의 27.2%. 인구로 따지면 약 50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대다수는 학업과 직장 때문에 타지 생활을 하는 20, 30대일 가능성이 크다. 혼자 사는 고달픔과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이들에게 편의점과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싱 글족들에게 편의점은 단골 밥집 같은 존재다. 매 끼니를 직접 만들어 먹기 힘든 이들에게 편의점은 엄마가 차려준 것 같은 식사를 24시간 대령한다. 최근 편의점들이 쌈밥, 김치찌개, 장어 등 최고 1만 원짜리 고급 도시락을 앞다퉈 내놓는 것도 이들을 겨냥한 것이다. 따뜻한 엄마의 밥상까지는 아니더라도 굶지 않고 밥과 반찬을 챙겨 먹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딸 린 가족이 없으니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버리기도 쉽다. 여행 한 번에 몇 달간 저축한 수백만 원이 깨지더라도 “일단 떠나고 보자”는 사람이 많아졌다. 아등바등 모아도 어차피 내 집 마련이 어려울 바에야 즐기며 살자는 의미에서다.

언 뜻 보면 편의점에서 밥을 먹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은 별개의 행위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를 듯한 이 소비 행태에서 찾을 수 있는 묘한 공통 정서가 있다. 두 업종은 ‘위로’를 팔고 있었다. 편의점이 먹고사는 사소한 ‘일상의 위로’를 제공한다면 여행은 빡빡한 일상을 뒤로하고 잠깐 쉬어 가도 좋다는 ‘특별한 위로’를 준다.

연 애, 내 집 마련, 꿈 등을 포기해 ‘N포 세대’라 불리는 이들이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게 위로에 목말라서라고 생각하니 안타깝다. 모두가 나 혼자 잘살겠다며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시대.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며 “너는 잘살고 있어”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그립다. 서로에게 “너희들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주면 어떨까.


3. [매경이코노미][신동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 세계 3대 수프, 타이의 ‘똠얌꿍’…독특한 향에 호불호 강해도 매력적인 맛

타 이(태국)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데다가 물가가 저렴해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나라다. 볼거리, 즐길거리가 무궁무진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것은 타이의 음식이 아닌가 싶다. 필자가 요리사라서가 아니라 실제로 타이 음식은 일본 음식이나 중국 음식 못지않게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타이 요리가 주목받는 이유는 우선 그 복잡미묘한 맛과 함께 웰빙 음식이라는 점이다. 거기에 타이 정부가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는 ‘타이 키친 투 더 월드’라는 캠페인도 한몫한다. 풍부한 음식문화와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인 맛을 지닌 타이 음식은 한두 번 먹어보면 금세 매료되는 맛의 비밀을 갖고 있다.

동 남아시아 중앙에 자리 잡아 여러 문화의 영향을 받은 타이는 음식에서도 중국, 인도 등 인근 나라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기본적인 맛은 비슷하지만 지리적으로 나라 안에서도 크게 네 개의 식문화권으로 나뉜다.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는 소금으로 음식의 간을 하는 특징이 있으며, 라오 문화권인 동북부는 북부와 함께 찹쌀을 주식으로 하며 코코넛밀크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민물고기로 담근 젓갈로 음식 맛을 낸다. 방콕을 중심으로 한 중앙부는 코코넛밀크와 고추, 민트 등을 사용한 걸쭉한 요리가 많고 중국식도 선호한다. 조미료는 생선을 소금에 절여 우려낸 즙인 남플라(Nampla)를 많이 사용한다. 한편 남부 요리는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인도 요리에 가깝다.

풍부한 해산물과 열대과일, 다양한 허브와 향신료는 타이 음식을 복합적인 맛의 건강식으로 발전시켰다. ㅤ


똠 얌꿍은 타이 음식의 대표 메뉴다. 똠얌꿍의 ‘똠’은 끓이다, ‘얌’은 무치다, 마지막으로 ‘꿍’은 새우를 뜻한다. 프랑스의 부야베스, 중국의 샥스핀 수프와 함께 세계 3대 수프로 꼽히는 똠얌꿍은 새우에 향신료와 소스를 넣고 끓인 일종의 새우 수프다. 주로 닭육수에 새우와 레몬그라스, 양송이, 라임, 고수, 방울토마토, 태국 칠리소스 등을 넣어 요리한다. 매콤하면서도 시고, 달콤하면서도 쓴 타이 음식의 온갖 풍미를 한 그릇 속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특히 짧고 강하게 피어오르는 매운맛이 일품이다.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매운맛이라고 할까. 우리의 고추장처럼 달콤하며 묵직하게 오래가는 매운맛과는 다르다. 또한 강렬한 향신료인 박하, 고수(코리엔더) 등을 넣어 향기가 강하며, 코코넛밀크를 더해 새콤한 맛이 난다. 국물의 매운맛과 함께 전해지는 시큼한 맛이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호불호가 강하다.

레 몬그라스, 카피르라임 잎, 갈랑갈과 매운 타이고추, 피시소스 등의 재료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야릇한 맛의 똠얌꿍. 여기에 마지막 방점을 찍는 것은 현지인들이 팍치라고 부르는 고수다. 고수의 독특한 향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주문할 때 그것을 빼달라는 외국인도 많지만 한번 맛을 들이면 결코 멀리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는 향신 채소다.

똠 얌꿍의 재료들은 맛도 독특하지만 건강에 좋다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예를 들면 레몬그라스는 배속의 가스를 배출하게 도와주고, 이뇨작용을 돕는다. 라임과 고추는 기침과 감기를 낫게 하는 데 효능이 있다고 한다.

필 자는 13년 전 서울에 있는 타이 요리 전문식당에서 처음으로 똠얌꿍을 맛봤다. 세계 3대 수프로 유명하며 너무 맛있다는 말을 많이 듣던 터라 기대가 컸다. 허름하면서도 편안하고 타이 분위기가 물씬 나는 식당에서 타이를 느끼며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기다리던 똠얌꿍 수프가 나왔고 배도 고프고 맛도 궁금해서 재빨리 숟가락으로 수프를 한술 들이켰다. 그런데 살짝 얼굴이 찡그려졌다. 첫맛은 시큼하면서 새우와 해산물의 감칠맛이 이어지면서 동시에 매운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고수의 향이 더해지는 것이다. 당시 내가 느낀 똠얌꿍 수프의 맛은 마치 국물에 화장품을 살짝 탄 것 같았다.

지 금까지 그런 맛의 수프는 처음이라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기대를 너무 해서 그런지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 이 수프가 세계인이 사랑하는 수프인가라는 의문점을 가지며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 고수도 좋아하지 않는 채소라 더 맛있게 먹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추억이지만 그만큼 타이의 문화와 맛을 정말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후 고수를 일부러 꾸역꾸역 먹었다. 요리사들은 특별히 싫어하는 식재료가 있으면 안 된다. 음식을 만들 때 자기가 싫어하는 재료는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식재료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노력으로 10년 전에 그토록 싫어하던 고수는 이제 오히려 더 추가해서 먹을 정도로 좋아하게 됐다.

필 자가 해외에 가는 목적은 여행도 좋지만 그보다는 그 나라의 문화와 국민들의 입맛, 식재료, 음식을 즐기려는 이유가 더 크다. 타이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타이 요리를 먹었을 때 정말 이게 타이의 맛인지 아니면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나온 퓨전 음식인지 혼동되기 때문에 타이 곳곳을 다녀보면서 여러 가지 음식들의 맛을 보았다.

▶한국에서 타이 음식 먹고 싶을 때마다 ‘스파이스마켓’ 찾아

그중에서도 똠얌꿍은 갈 때마다 꼭 시키는 메뉴다. 식당에 가서 제일 먼저 시켜먹는 음식이 국물 음식인데 국물 요리만 맛보면 이 집이 음식을 잘하는 집인지 못하는 집인지 바로 알 수가 있다.

필 자가 제일 좋아하는 타이 식당은 푸껫의 맛집으로 매우 유명한 ‘넘버6’다. 이 식당은 신선한 재료, 살짝 간간하지만 조화로운 맛,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끈다. 고급이지만 그리 맛이 훌륭하지 않은 집이 많아 실망하던 중 ‘넘버6’에서 음식 맛을 본 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듯 행복했다. 그래서 이틀 동안 ‘넘버6’의 메뉴를 거의 다 먹어봤다. 그 집의 다양한 메뉴들이 다 맛있었다. 요리사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때 필자 때문에 배불러 죽을 뻔했던 와이프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한 국에 와서 타이 음식이 생각날 때마다 가는 단골 식당이 있다. 이태원에 있는 ‘스파이스마켓’이다. 깊은 골목 안에 예쁜 테라스가 있는 집으로 분위기가 깔끔하다. 무엇보다 음식 맛이 좋고 요리의 기본기가 튼튼해 보인다. 이 집에선 팟타이, 쏨땀, 똠얌꿍 등 타이 본토의 맛을 잘 살린 음식들을 내놓는다.

똠얌꿍뿐 아니라 쏨땀 등 타이 음식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운맛에 신맛이 조화롭게 섞여 있다. 요즘처럼 더운 계절, 매콤새콤 타이 음식으로 지친 입맛을 되찾아보는 건 어떨까.


4. [이데일리][데스크칼럼] 러시안룰렛, 걸리면 죽는다?

박 수근(1914∼1965) 화백의 ‘빨래터’가 위작논란에 휩싸인 것은 2007년 12월. 그해 5월 서울옥션에서 45억 2000만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직후였다. 불씨는 잡지 ‘아트레이드’의 류병학 주간이 붙였다. 2008년 1월 창간호에서 ‘대한민국 최고가 그림이 짝퉁?’이란 글로 시비를 건 거다. 서울옥션은 즉각 반박했다. “비전문가의 주관적인 견해”라고 몰아붙인 뒤 “전문위원은 물론 유족까지 감정을 거쳤다”고 열을 올렸다. 그러곤 부리나케 감정위원 20명을 다시 소집했다. 1명을 제외한 19명이 ‘진품’ 결론을 내렸는데 그러자 류 주간이 다시 나섰다. “그때 그 인물이 내린 감정결과를 믿으란 말이냐.” 결국 서울옥션은 류 주간을 상대로 30억원 손해배상소송까지 냈다.

미 술계는 혼란에 빠졌다. ‘대국민사기극’ ‘공신력 상실’ ‘경매사의 투명성’ ‘추락한 순수미술’ 등을 키워드로 빼낸 긴 탄식이 이어졌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결국 2년여에 걸친 지루한 소송 끝에 2009년 대법원이 종지부를 찍었다. “진작으로 추정되지만 위작 의혹을 제기한 건 정당한 언론활동에 해당한다.”

이 후 10여년을 맞는 2016년. 미술계는 박수근 당시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미궁에 또 빠졌다. 언론이 퍼나르는 헤드라인까지 거의 같다. ‘미스터리’ ‘미술계 타격 불가피’ ‘해법은 거래관행’ 등. 그새 경매시장은 계속 열렸고 ‘빨래터’를 누른 최고가 미술품이 네 점이나 더 나왔건만 ‘어쩌다 이 지경’은 여전히 진행 중, 아니 더 복잡해졌다. 위작논란 미술품이 더 많아졌으니까.

25 년을 묵힌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선두주자로 몇년 전부터 스멀스멀 삐져나온 이우환 화백의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 등 13점이 중심에 섰다. 지난달 경매에 출품했다가 ‘위작이 의심된다’며 하루 전날 출품에서 빠지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천 화백의 ‘기행스케치: 화문집’도 뜨거운 감자가 될 모양이다. 한 평론가는 ‘짜깁기한 위작’이라고까지 주장했다. 더욱 황망한 건 작가의 주장과 대척점에 선 ‘진실게임’이다. 최근 이 화백은 경찰이 ‘위작’으로 감정을 끝낸 13점에 “내 작품 틀림없다”며 어깃장을 놨다. 한술 더 떠 “4점만 위작으로 하자고 회유했다”며 경찰에 선전포고까지 날렸다. 이에 질세라 경찰은 이 화백의 작품 위조혐의로 화가 이모 씨를 구속한 상태.

행 태야 못 미덥지만 이 화백만 몰아세울 순 없다. 사실 우린 이미 비슷한 빚이 있지 않나. ‘내 작품이 아니다’란 천 화백에게 ‘당신 작품이 맞다’고 우기며 그의 붓까지 꺾어버렸다. 이 화백의 경우는 정반대라지만 ‘누구 거짓말이 더 센가’ 같은 블랙코미디 한편을 다시 제작할 형국이다.

잘 그린 그림을 보면 따라하고 싶은 건 인간의 원초적 욕구에 가깝다. 문제는 거기서 멈추질 못하는 것이다. 시장을 기웃거리면 안 되는데 그 유혹을 세상이 허용하는 거다. 개인이 자제를 못 하면 시스템이 나서야 하는데 그것도 없다. 이제라도 단초를 마련하자고 지난주엔 정부가 주도한 세미나가 열렸다. 선진국의 사례나 들어보자는 자리였는데 열기가 뜨거웠던 모양이다. ‘어쩌다 이 지경’에 대한 공감대가 적잖은 것이다. 남은 것은 실행력. 이쯤에서 논란을 끝내려면 기술이든 법이든 뭐든 만들어내야 한다.

언 제부턴가 ‘러시안룰렛’을 지켜보는 듯한 착각도 든다. ‘미인도’를 둘러싼 국립현대미술관과 천 화백 유족, ‘선·점으로부터 13점’을 사이에 둔 이 화백과 경찰, 그 틈에 끼여 있는 경매회사, 감정사 등이 방아쇠를 당길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위기에 몰린 상황. 하지만 다들 알고 있지 않나. 이 게임에서 모두가 살아남을 순 없다.


5. [서울신문][나태주 풀꽃 편지] 시인의 자리

인 간은 이성도 있고 감성도 있는 존재다. 이성은 무엇인가를 알고 기억하고 따지고 분석하고 종합하는 마음의 능력이다. 학교 교육이나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이고, 또 개인의 능력을 평가할 때도 이 분야를 중심으로 삼는다. 그래서 아예 인간의 능력이나 가능성의 척도를 이성적인 요소로만 국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이성적인 요소보다는 감성적인 요소가 더 중요하게 작용을 한다. 행복이나 불행도 감성적인 요소나 조건들이 만들어 내는 하나의 무지개에 불과하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시비의 마음은 이성적인 마음에서 비롯되는 마음이고 호오(好惡)의 마음은 감성적인 마음에서 출발하는 마음이다. 시비와 호오, 그 가운데 보다 강력한 마음은 호오의 마음이다. 일단 시비의 마음은 한 번으로 결판이 난다. 그러나 호오의 마음은 절대로 한 번으로 결판이 나지 않는다. 그만큼 뿌리가 깊고 수정이 잘 되지 않는 마음이라 하겠다. 우리 삶을 이끌고 가고 멀리까지 안내하는 마음도 바로 이 호오의 마음, 즉 감성의 마음이다.

문 학 작품 가운데서도 시는 오로지 감성의 마음에 의지하는 예술품이다. 그러므로 시는 사람의 마음을 울려 준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울려 준다는 것은 감동을 말한다. 감동, 임팩트, 그것은 시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요 요건이다. 감동을 하게 되면 엔도르핀보다도 강력한 다이돌핀이라는 호르몬이 우리 몸에서 나온다고 그런다. 이 호르몬이 우리를 기쁘게 하고 만족을 느끼게 하여 끝내는 행복감에 이르도록 한다고 그런다. 그렇다면 시를 읽고 시를 사랑하는 일은 우리 인간이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 간은 어디까지나 즐거움을 좇는 성향이 강하고 이로움을 추구하는 마음이 강하다. 아무리 미사여구로 포장한다 해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존재이고 이로움을 추구하는 본성을 지녔다. 왜 우리가 시를 좋아하고 시를 읽는가? 시를 읽고 좋아해서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시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시를 읽지도 않을 것이다.

역 시 시도 읽어서 이로움이 있어야 하겠다. 무슨 이로움인가?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이로움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이로움, 정신의 이로움이다. 마음의 기쁨이요 만족이다. 한발 더 나간다면 힘겨운 삶에 대한 위로와 응원이다. 그래, 당신 마음을 내가 알아.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야. 당신은 그 힘든 마음이나 어려움에서 헤어나야만 해. 그래, 당신은 충분히 행복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칭찬받을 자격이 있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내가 그것을 보장하고 내가 그것을 응원할 거야.

만 약 시가 이런 암시를 준다면 누구도 시를 읽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를 좋아하고 시를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런 필요와 소망으로 시를 가까이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의외로 사는 일이 힘들고 지친다고 한다. 우울하고 불행하다고 호소한다. 의기소침하고 소외감, 열등감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엇이 위로가 되겠고 무엇이 응원이 되겠는가.

밥 이나 옷이나 그런 현실적인 것들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마음을 다치고 마음이 힘든 데에는 마음의 치료가 있어야 한다. 마음을 다스려 주고 마음을 쓰다듬어 주고 마음을 밝게 해 주는 그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이런 때 가장 적절하게 동원돼야 할 것은 시다. 최근 중학생이나 초등학생들까지도 열정적으로 시를 좋아하고 시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가 바로 우리들의 정신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묘약이란 것을 새삼 깨닫곤 한다. 마음의 파이팅. 그 뒤에 시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수긍이 가지 않겠지만 오늘날 세상은 또다시 시의 세기다. 사람들이 그만큼 시를 읽고 싶어 하고 가까이하고 싶어한다. 왠가? 시를 통해 위로받고 싶어 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이런 문장을 읽은 기억이 있다. ‘예술이 가난을 건져 주지는 못하지만 위로를 해줄 수는 있다.’ 시인의 자리, 시의 자리도 바로 그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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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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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7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지진 대피소동, 비상대책 매뉴얼 있는가

그 제 밤 8시 33분께 울산 동쪽 52㎞ 해상에서 진도 5.0의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관측을 시작한 1978년 이후 역대 5위 규모다. 인근 지역인 부산 해운대에서는 80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흔들렸으며 서울에서도 집안 가재도구가 흔들리는 진동이 감지됐다. 재산이나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이 다행이다. 울산 근처 월성원전과 고리원전 등 국내 모든 원전의 안전에도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진 충격에 놀란 주민들이 대피소동을 벌이는 등 밤새 가슴을 졸여야 했다.

이번 지진은 우리나라도 결코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한반도는 일본 등 지진이 잦은 ‘불의 고리’ 지역에서 비켜나 있어 대형 지진의 위험이 크지 않은 것으로 그동안 알려져 왔다. 하지만 발생 빈도가 갈수록 잦아지는 점은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1980년대엔 연간 16회 정도였던 것이 2010~2014년엔 58회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올해도 벌써 36건이 발생했다. 규모도 커지는 추세다. ‘지진 재앙’의 공포가 커지는 건 당연하다.

그 런데도 대비는 허술하다. 지난해 말 기준 내진설계 대상 시설물 중 42.4%만 내진 성능을 갖췄을 뿐이다. 실제로 지진이 일어나면 절반 이상이 순식간에 허물어질 거라는 얘기다.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안전대책을 세운다고 호들갑을 떨면서도 그때뿐이기 때문이다.

지 진을 예방할 수는 없지만 철저히 준비하면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 활성단층 지도 작성, 지진 다발지역의 지각 조사 등 장기 계획을 수립해 중·대형 지진에 대비해야 한다. 내진설계 및 보강 계획의 차질 없는 추진과 경보·비상체계 구축, 주민 대피 계획 등도 소홀히 해선 안 될 것이다. 지자체 주도로 아파트나 마을별로 구체적인 비상대책 매뉴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비 단 지진 뿐 아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게릴라성 집중호우와 폭염, 이상 한파, 폭설 등 기상이변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며칠 전에도 ‘물폭탄’이 중부지방을 할퀴고 지나갔다. 과거와는 다른 양상의 자연재해 위험 요인을 미리 걷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연재해는 한 번 덮치면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내기 마련이다. 사후약방문 식의 일과성 대책이 아닌 면밀한 종합 대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2. ‘초가집 수준’ 자기반성한 삼성그룹

삼 성이 스스로의 위치를 ‘초가집 수준’에 비유했다. 그제 사내 채널에서 방송된 ‘삼성 소프트웨어 경쟁력 백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고층건물을 지어야 하는 입장에서 큰 그림을 그려가는 건축으로서의 개념이 부족함을 반성하자는 취지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세계 경쟁업체들에 비해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이 뒤지고 있는 데 대한 자아비판이기도 하다.

이번 프로그램에 붙여진 ‘우리의 민낯’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삼성그룹 내부의 위기감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이미 지난달 방송된 ‘불편한 진실’에 이어진 후속편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큰 그림을 그릴 줄 모르니 기본 설계가 엉망이고, 설계가 부실하다 보니 심각한 문제에 부딪쳐서도 밑바닥부터 뜯어고치지를 못하고 땜질식 처방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그만큼 난감한 지경에 이렀다는 게 삼성의 자기반성이다.

그 렇다면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경직적인 조직문화가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상급자가 만든 코드에 대해 부하 직원에게 검토를 맡길 경우 설사 오류가 발견되더라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직언할 수 있는 분위기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계질서에 억눌려 서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고는 창의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최근 조직문화 혁신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에서라 여겨진다. 직원들끼리 직급 대신 각자의 이름으로 호칭을 바꾸도록 했고, 심지어 반바지 차림도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인 움직임이 사고방식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공연한 헛수고다. 조직문화를 바꾸려면 최고 경영진부터 먼저 시범을 보여야 한다.

이런 고민이 비단 삼성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을망정 현대차그룹이나 LG, SK, 포스코 등 대부분 대기업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문제점이다. 회사 규모가 커가면서 상하관계가 앞세워지고 서열에 따른 지시관계가 강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개인의 능력보다 입사 서열을 따지는 조직이 순조롭게 발전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5년이나 10년 뒤를 내다본다면 조속한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기업들이 초가집 수준에서 벗어나 고층빌딩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서울신문]

3. 원전 밀집한 울산 지진 대응체계 강화해야

그 제 밤 8시 30분쯤 울산에서 동쪽으로 50㎞ 떨어진 해저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해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이웃 나라인 일본과 중국, 대만에서는 잊을 만하면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강진이 일어난 적이 없어서인지 지진은 남의 나랏일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이번 울산 지진은 우리나라가 결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지난 4월 환태평양 불의 고리에 위치한 일본 구마모토현과 오이타현에서 규모 6.3, 규모 7.3의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는 등 올해는 유난히 강진 발생 빈도가 높다. 우리나라도 올 들어서만 크고 작은 지진이 36차례나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울산 지진이 구마모토현 지진으로 발생한, 지각을 변형시키는 힘이 대한해협 활성 단층대에 전달되면서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서 빈발하는 지진이 우리나라 단층대에 영향을 미쳐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개연성도 있다고 하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제 지진으로 진앙지와 가까운 울산과 부산에서는 창문이 심하게 흔들렸고 고층 아파트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1978년 전국 단위로 지진을 관측한 이후 다섯 번째로 강한 지진으로 기록됐다. 우리나라는 17세기에 강원도 양양에서 규모 7.0 정도의 지진이 발생했으며 신라시대에도 강진으로 경주에서만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삼국사기 기록이 있다. 지금도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과 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지진은 예측하기 어렵고, 천재(天災) 앞에서 인간은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강진으로 인한 대재앙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진 다발 지역인 울산 인근에는 원자력발전소와 석유화학공장이 밀집해 있고 방사성폐기물 처분 시설도 있다. 이런 시설들은 강진에도 끄떡없을 만큼 내진 설계가 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체 국내 공공시설물의 내진율은 40.9%에 불과하다. 민간 건축물의 내진율은 30.3%에 그친다.

정부는 올 들어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했다. 또 공공시설물의 내진율을 2020년까지 49.4%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하지만 지진 대책은 여전히 미흡하고 진척이 더디다. 내진율을 더 빠른 속도로 올려야 한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일반 국민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훈련도 평소에 해 두어야 한다. 재난 문자 보낸 것만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4. 서비스업 대책 내놔도 실천 안 하면 헛일이다

정 부가 발표한 ‘서비스업발전전략’은 우리 서비스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육성하기 위한 향후 5년간의 로드맵이다. 정부는 세제·금융 등 각종 지원을 통해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의 차별을 해소하고 산업 간 융복합을 활성화한다는 것이 골자다. 유망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 경쟁력을 높이며 5년간 25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전체 고용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70%에서 2020년 73%로, 부가가치 비중은 60%에서 65%로 확대해 선진국 수준에 근접시킨다는 야심찬 목표다.

서비스산업은 우리 경제를 견인할 수 있는 내수 활력의 핵심이다. 정부가 서비스 경제 발전 전략을 마련한 것은 우리 경제를 이끌어 온 수출과 제조업이 경쟁력 약화로 한계를 드러낸 상황에서 고용 창출과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미다.

이번에 발표된 발전 전략을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현 정부 임기가 1년 8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5년간의 계획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다음 정권에서 정책의 연속성을 갖게 될지도 불투명하다. 이번 발표는 현 정부 들어 일곱 번째 대책이다. 일부는 기존의 정책을 보완한 수준에 그치거나 구체적인 계획 없이 원론적인 방향만 제시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의료부터 소프트웨어, 관광 등 무수히 많은 분야의 정책이 백화점식으로 망라돼 있다.

당장 기존의 의료체계를 허물고 있다는 의료계의 반대는 물론 대기업 위주의 편향된 정책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의약품을 편의점에서 판매하거나 택배를 허용하는 문제도 약사들의 반대가 심하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서비스 활성화는 개인정보 침해 논란 소지도 있다. 2020년까지 취업자 수를 25만명 더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근거가 없어 정치적 구호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현 정부 들어 규제 완화와 고용 확대 등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각종 대책이 이미 무수히 나왔다. 그 대책들이 지금 얼마나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정책은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행에 옮겨져야 의미가 있다.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관련 정책을 강력하게 실행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비스업 발전 전략의 핵심으로 꼽히는 규제 완화의 경우 각계의 반대로 지금까지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부의 이번 발표가 다소 부실한 측면은 있지만 서비스산업 발전은 결코 지체할 수 없는 국가 현안이다. 입법 지원 없이 정부 혼자 추진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서비스 경제 발전 전략을 실천하려면 당장 의료법, 은행법, 산악관광진흥법 등을 개정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한다. 산업 간, 기업 간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이해관계가 얽힌 기득권 집단을 설득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정부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비전과 의지를 갖고 야당을 설득해야 하고 야당은 국가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6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통과에 우선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5. 편법 부추기는 무늬뿐인 맞춤형 보육

논 란 끝에 강행된 맞춤형 보육에 잡음이 끊일 새가 없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소란을 피우며 정책을 바꿨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정부가 지난 1일부터 시행한 맞춤형 보육제도는 양육 부담이 큰 맞벌이 가정이 어린이집 종일반을 좀더 원활히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기존의 일률 지원 방식과 달리 전업주부의 아이들은 하루 6시간,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은 12시간을 각각 맡길 수 있도록 차등 지원하는 것이다. 우려 속에 강행된 정책은 그러나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민폐 제도로 주저앉은 모양새다.

현장에서는 맞춤형 보육제도 시행으로 달라진 것은 전업주부들의 맞춤반 자녀들이 등하원하는 시간이 한 시간 앞당겨진 것뿐이라는 볼멘소리가 높다. 바뀐 정책이 맞춤반 아이들을 오후 3시면 데려가도록 유도한 바람에 아이들은 낮잠을 자거나 간식을 먹기가 애매해졌다. 전업주부들이 ‘긴급 보육 바우처’를 너나없이 쓰고 있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이 제도는 전업주부가 급한 사정이 생겨 아이를 제때 데리러 가지 못할 때를 대비해 한 달에 15시간씩 추가 위탁할 수 있게 하는 돌봄 서비스다. 낮잠을 자거나 오후 간식을 먹는 아이를 중간에 데려오기 난처하니 이 서비스로 위탁 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엄연한 편법을 어린이집이 버젓이 권유하고, 정부 당국도 달리 방책이 없으니 모른 척해야 하는 현실이다. 당장 “바우처 안 쓰면 바보”라는 말이 유행하는 모양이다.

맞춤반 보육료를 줄이는 차등 지원으로 올해만 375억원쯤의 예산을 절감하겠다는 것이 애초 보건복지부의 계산이었다. 그런 것이 시행 하루 전날까지 현장의 반발을 무마하지 못해 결국 말짱 도루묵의 상황을 만들었으니 예산절감 효과가 있을 리 없다. 혹 떼려다 혹만 더 붙였는데도 현장 혼란에 속수무책인 복지부가 딱하다. 종일반 아이들만 별도 위탁하는 어린이집 설치가 대안으로 거론될 판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정책에 옥상옥(屋上屋)의 보육 프로그램이 또 나와서야 되겠는가.

정책 시행 전 복지부가 충분한 의견 수렴을 위해 공청회를 몇 번이나 열었는지 새삼 궁금하다. 차등 지원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늦었지만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정책이 민생을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 하루빨리 불합리한 부분이 수습될 수 있도록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동아일보]

6. 특임검사는 진경준보다 홍만표 사건에 필요하다

대 검찰청이 진경준 검사장의 ‘주식대박 의혹’ 수사를 특임검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번이 4번째 특임검사로 검찰 고위간부가 관련된 의혹을 단호하게 수사하겠다는 뜻이다. 전현직 검찰 간부들이 연루된 각종 비리로 검찰이 고개를 들기 어려운 현실에서 나온 고육책(苦肉策)이다.

특임검사는 2010년 스폰서 검사 논란 이후 도입했다. 현직 검사의 비리를 중립적으로 수사할 필요가 있을 때 검찰총장이 지명한다. 첫 특임검사는 그랜저 승용차 등 금품 4600만 원을 받고 후배 검사에게 사건 청탁을 한 ‘그랜저 검사’를 수사해 ‘무혐의’라던 검찰 수사를 뒤엎고 대법원까지 유죄 선고를 받아냈다.

진 검사장은 2005년 넥슨 비상장 주식 1만 주를 사들여 매각한 차익으로 126억 원을 챙겼다.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법무부는 사건 초기에 ‘개인 간 주식 거래일 뿐’이라며 그를 감싸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지금은 사건의 전말이 거의 드러났다. 최초의 매입 대금이 넥슨에서 나온 사실까지 확인됐다. 특혜를 받은 뒤 2011년 개인정보 유출로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넥슨을 위해 진 검사장이 후배 검사에게 청탁을 했는지만 가려내면 된다. 굳이 뒤늦게 특임검사를 임명하는 것은 ‘전시(展示)성 수사’로 보인다.

그보다는 홍만표 변호사의 전관예우 비리야말로 딱 떨어지는 ‘특임검사 사건’이다. 애당초 대검은 이 수사를 특임검사에게 맡길 것을 유력하게 검토하다가 접었다. 어차피 거야(巨野)가 특별검사를 도입할 것으로 지레짐작해 특임검사 수사를 하지 않는 것이라면 무기력하고 한심한 검찰이다.

홍 변호사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의 해외원정 도박사건에서 두 차례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을 비롯해 1년에 100억 원이 넘는 사건 수임을 한 배경에 검찰 내 현관(現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당장 특임검사에게 이 수사를 맡겨 홍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을 전수(全數)조사해 석연찮게 무혐의 처분한 사건을 가려내 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7. 최경환 불출마에도 친박은 패권주의 미련 못 버리나

새 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 좌장 격인 최경환 의원이 어제 ‘8·9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최 의원은 “당의 화합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면서도 “지난 총선에서 저는 최고위원은커녕 공천관리위원회 구성과 공천 절차에 관여도 할 수 없었던 평의원 신분이었다”고 강조함으로써 4·13총선 패배 책임을 부인했다. 친박 대부분이 공유하는 생각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최 의원의 당 대표 불출마 선언으로 친박계 당권 장악에 빨간불이 켜지자 ‘친박계 맏형’ 서청원 의원 추대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일 리 없다.

최 의원이 실제 공천에 얼마나 개입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총선 당시에도 그는 친박 좌장이었다. TK(대 구경북) 지역을 돌아다니며 ‘진박(진실한 친박) 마케팅’을 벌인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똑똑히 기억한다. 오죽하면 일찌감치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한 친박 이주영 의원조차 “공천 과정에서 계파 갈등이 가장 큰 패착 원인이었다”고 친박의 책임을 인정하며 “계파 청산과 당의 화합적 융합을 위한 용광로가 되어줄 당 대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겠는가.

그런데도 조원진 김태흠 의원 등 친박계 14명이 5일 서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방으로 찾아가 전당대회 출마를 ‘강권’한 것은 당권을 비박(비박근혜)계에 넘겨줄 순 없다는 패권주의적 행태다. 서 의원은 “이 나이에 그걸 뭐하려고 하겠나”고 고사했지만 친박계의 끈질긴 ‘릴레이 설득’에 ‘추대 형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친박은 주류 홍문종 의원에게 불출마를 요청한 데 이어 이주영 의원이나 출마 선언 예정인 이정현 의원에게도 ‘단일화’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서 의원이든 누구든 당 대표 경선에 친박계 한 사람이 비박계 후보들과 격돌을 한다면 친박 대 비박의 대결은 계속될 것이 뻔하다. 그러지 않아도 새누리당의 내부 총질에 넌더리 난 국민을 또 한 번 열받게 만드는 일이다. 총선 패배 후 ‘보수 혁신’을 위한 반성과 공부는커녕 계파 간 세력싸움과 ‘패거리 정치’를 계속하는 데 전통적 보수계층도 염증을 내고 있다. 친박이든 비박이든 꼬리표 떼고 개인 자격으로 나와 새누리당과 보수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치열하되 공정한 자유투표로 선택받아야 한다는 내부 소리가 왜 안 나오는 건가.

최 의원의 불출마 선언과 서 의원의 출마 고사는 현재 권력에서 미래 권력으로 한 시대가 서서히 바뀌는 변곡점을 맞고 있다는 의미다. ‘꼴박(꼴통 친박)’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강성 친박들은 대선 과정에서도 알량한 당내 다수의 머릿수를 계산하면서 총선 때와 같이 패권주의를 휘두르려 하겠지만 무망한 시도일 뿐이다. 당내 분란만 초래해 여당의 재집권만 어렵게 만들 것이고, 내년 대선에서 야당의 집권을 돕는 결과로 직결돼 친노(친노무현)계처럼 ‘폐족의 낙인’만 찍힐 공산이 크다. 친박은 물론 청와대에서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패권주의에 미련을 버려야 한다.

8. 새만금 스마트팜 반대 ‘정치 농민’에 휘둘려서야

LG그룹이 새만금 산업단지에 농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시킨 대규모 스마트팜(smart farm) 단지를 세운다. ICT 서비스 기업인 LG CNS 주도로 빅데이터를 통해 최적의 생육환경을 찾아내는 스마트팜 연구개발(R&D) 센터부터 재배시설, 가공 및 유통시설까지 3800억 원을 투자하는 수출형 미래 먹거리 산업의 활로를 뚫겠다는 의미 있는 시도다. ‘창조 농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만들 시금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대기업의 농업 진출을 막겠다’며 어제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앞에서 LG의 스마트팜 진출 반대를 외치는 시대착오적 모습을 보였다. 농업과 ICT 융합은 세계적 추세다. 네덜란드가 세계 2위 농업 수출국으로 성장한 비결이 바로 스마트팜이다. 전체 인구 중 2.5%에 불과한 농업인구가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책임진다. 일본도 최근 기업의 농지 소유를 자유화하는 파격적인 규제 철폐에 나서는 등 ‘농업 보호주의’에서 벗어나고 있다.

전농이 ‘농민 생존권’을 외치며 반대하는 것은 2000년대 초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에 결사반대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당시 농민들은 FTA를 맺으면 포도농가가 다 망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LG 측은 이번 사업의 목적이 ICT를 접목해 개발한 설비를 시장에 보급하는 것이라고 했다. 스마트팜 생산 작물은 모두 수출하며 해외투자자도 국내 농작물 판매는 금하는 조건까지 걸고 계약했다.

FTA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등 사사건건 반대를 일삼는 ‘정치 농민단체’에 언제까지 끌려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2년 동부팜한농이 경기 화성에 수출용 토마토를 재배할 유리온실을 지었다가 농민단체의 반대로 사업을 접었던 전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행정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연소득 5000만 원 이상 13만 농가를 ‘스마트팜 사장님’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한 바 있다. ‘정치 농민단체’의 횡포와 압력에 기업이 굴복하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설득하는 문제해결형 리더십을 보여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9. 전문성 부족 드러낸 공정위 CD금리 담합조사

공정거래위원회가 은행권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담합 의혹을 4년 동안 조사한 끝에 사실상 무혐의로 결론을 냈다. 국민·신한은행 등 6개 은행의 CD금리 담합 문제를 심의한 결과 "사실관계 확인이 곤란해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심의 절차 종료를 결정했다.

은행권에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효력은 무혐의 결정과 동일하다. 공정위의 전문성 부족과 불충분한 근거에 의한 무리한 조사로 그동안 금융시장에서 야기된 혼란을 감안하면 따끔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이 사건은 공정위가 2012년 7월 9개 은행과 10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3개월 만기 CD금리 담합 의혹을 조사하면서 시작됐다. 그때까지 은행들은 CD금리에 가산금리를 덧붙여 가계대출 변동금리를 정기적으로 조정했는데, CD금리가 높게 유지되면 은행권은 대출이자를 더 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당시 공정위가 CD금리를 담합이라고 본 근거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국고채 금리가 하락해도 CD금리는 몇 개월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바클레이스 UBS 등 미국·유럽 은행들이 리보(런던 은행 간 거래금리) 조작으로 2조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받자 국내 소비자들도 의혹을 제기했고 이것이 공정위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의 의욕은 곧 벽에 부닥쳤다. CD금 리가 조작된 것으로 결론 나면 은행권은 천문학적 규모의 과징금과 소비자 손해배상소송에 직면하게 된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도 부실 감독에 따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금융권은 일치단결해서 "담합은 없었다"며 반발했고, 공정위 조사는 겉돌기만 했다.

2014년 1월에는 CD금리 조작 의혹과 관련해 소비자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이 'CD금리를 조작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은행 손을 들어줬다. 법원 판결문까지 나온 마당에도 공정위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제야 무혐의와 다름없는 결론을 내렸으니 어이가 없다.

4년 동안 이득을 본 곳은 공정위 고위 퇴직자들이 몰려가서 법률 자문을 하고 소송을 담당한 법무법인들뿐이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공정위는 이번 일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전문성 강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10. 막말 의원 징계할 국회 윤리심판원 당장 만들어라

20대 첫 임시국회 본회의장에서 고성과 막말로 파행을 초래한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 파동은 20대 국회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완전히 짓밟았다는 점에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김 의원은 5일 대정부 질문 중 이장우 의원 등 새누리당 의원들이 야유를 보내자 "어떻게 저런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아놨느냐" "저질 국회의원들 창피해 죽겠네" 등의 막말을 퍼부었다. 4선의 중진의원이 국회TV와 인터넷으로 국민에게 생중계되는 현장에서 인신 모독 언사를 서슴지 않았으니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행태다. 김 의원은 2013년 2월 이명박정부 시절에도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가장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등 평소 거친 언사로 유명하다고 한다.

20대 국회 초반부터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필두로 한 국회의원 친·인척 보좌관 채용 문제가 불거져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 여야 할 것 없이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에 고심하는 와중에 또 막말 파행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표창원 더민주 의원은 학교전담경찰관이 여고생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어 물의를 일으킨 사건에 대해 "여학교에 잘생긴 남자 경찰관을 배치한 탓"이라는 말로 논란을 자초했다. 같은 당 조응천 의원은 MBC 고위 간부가 성추행했다는 근거 없는 사실을 주장해 물의를 빚는 등 국회의원의 양식과 수준을 의심케 하는 돌발 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런데도 여야 지도부는 말로만 징계를 외칠 뿐 꼬리 자르기에 급급하다. 김 의원에 대해 윤리특위 제소를 운운했던 새누리당이나 지난 총선 때 국회의원소환제(파면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국민의당이나 팔은 안으로 굽고 의원들끼리는 철저하게 한통속이라는 사실만 새삼 확인시켜주고 있다. 19대 국회 때 39건의 국회의원 징계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철회 또는 폐기됐는데 20대 국회도 출발부터 싹수가 노랗다.

여야는 김 의원을 일벌백계함으로써 19대 국회와는 다를 것임을 실천으로 보여야 한다. 차제에 외부 인사로 국회 윤리심판원을 만들어 국회의원으로서 기강을 해치거나 품위를 손상할 경우 중징계하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애초에 국회의원 징계를 국회의원 손에 맡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주요 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초동여담]김밥의 배신

단 단히 여민 검푸른 홑겹의 옷. 눈부시고 찰진 속살을 지녔으나 굳이 옷섶을 풀어 교태를 짓지 않다.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지니려 하지 않았으니 향기는 고요하고 맛은 담백하다. 빼어난 몸을 고집하지 않고 서슴없이 제 몸을 점점이 나눠 한입에 먹기 좋도록 가지런히 누웠다.나이테처럼 내보인 속살의 파문은 옛사랑의 고백처럼 뭉클하게 아름답다.

김에서 밥으로, 밥에서 간간한 찬들로 넘어가는 맛의 회랑. 이 모든 것들 다 내주지만, 스스로를 매긴 값은 겸허하여 주린 이들의 넉넉한 한 끼가 된다. 어린 소풍가방 속의 너는 얼마나 설레는 별미의 유혹이었던가. 새벽에 그것을 말던 사람의 마음이, 점심에 그것을 푸는 사람의 마음으로 건너와, 가끔은 목메일듯 서럽기도 하던 그것. 이 나라 사람이라면 살아온 몸의 절반쯤이 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처음엔 심심하지만 가만히 씹어 삼키면 단맛이 깊이 우러나 코끝까지 그윽해지던 기억, 우리는 어쩌면 김밥민족이 아니던가.

혹 자는 일본의 김초밥(후토마키)을 너의 아비로 잡기도 한다. 일제 때는 김밥을 노리마키(海苔?き)로 부르기도 했는데, 네모난 넓은 김을 깔고 밥을 얹은 뒤 식재료를 점점이 놓고 말아서, 먹기 좋도록 썰어먹는 것이 김초밥과 비슷했다. 게다가 김밥을 마는 대나무발 김발이도, 후토마키의 마키스와 닮았다. 넌 정말 일본 음식이냐. 식초로 간을 하는 김초밥과 참기름으로 간을 하는 김밥이 다르다곤 하지만, 참기름김밥이 나온 건 40년쯤 밖에 되지 않았다. 이미 국민음식이 된 너에게 민족의식까지 부여하려는 건 과한 욕심일까.

혹 자는 삼국유사에 복쌈(福裏)이란 대보름음식이 나오는데, 이 중에 김밥이 있다고 주장한다. 복쌈은 취나물과 배추잎으로 밥을 싸기도 하지만, 김으로도 쌌다는 것이다. 김에 대한 구체적 기록이 나오는 것은 조선시대 '경상도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이다. 이 무렵에는 우리나리에서 김을 양식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근거로 너를 겨레음식이라 말하는 건 좀 석연찮다. 요즘 형태의 김밥이 나오는 것은 한국전쟁 무렵인 1950년대이기 때문이다. 좀 더 개연성있는 해석은, 우리 고유의 김쌈이 통영의 충무김밥(1930년대 시작)처럼 면면이 전수되어 오다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후토마키의 영향을 받으면서, 일신을 했고 차츰 우리 입맛에 맞게 진화해왔다고 보는 것이리라.

김밥천국은 개별브랜드가 아니라고 한다.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브랜드를 내놨기에 누구를 원조로 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김밥천국의 감동적인 컨셉트는, 김밥 한 줄을 천원에 파는 '겸손한 가격'이었다. 천원이면 배부르진 않지만 허기를 끌 수 있다는 그 약속은, 이 나라의 빈 손 빈 주머니의 서민들에게 복음과도 같았다. 게다가 그 천원을 이유로, 맛이나 차림이 부실해지지 않았던 것도 미덕이었다. 천국은 천원의 나라(千國)이며, 김밥이 이룩한 천국(天國)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김밥은 졸지에 콧대가 높아졌다. 다른 물가들이 오르니 저만 겸손 떨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던가. 작년보다 5.2%가 뛰어, 물가상승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한줄에 6500원 짜리 프리미엄 김밥이 등장했다. 그야말로 김밥의 배신이다. 세상에. 곧 김밥만(萬)국이 나올 것 같다.


2. [동아일보][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창덕궁 샹들리에, 근대의 두 얼굴

유 네스코 세계유산 창덕궁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건물은 인정전이다. 경복궁으로 치면 근정전이다. 인정전 내부를 들여다보면 임금이 앉는 어좌(御座)가 있고 그 뒤로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이 놓여 있다. 어좌 위로는 화려한 장식의 닫집(보개·寶蓋)이 펼쳐진다.

그런데 인정전엔 경복궁 근정전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인정전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샹들리에다. 조선시대 궁궐에 서양식 전등이라니.

조 선의 마지막 왕 순종은 1907년 즉위와 함께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고는 이듬해 창덕궁의 수리를 명했다. 순종이 명했다고 하지만 실제 작업은 일제가 맡았다. 인정전의 샹들리에는 그때 유리창, 커튼과 함께 설치되었다. 일제는 실내 바닥의 전돌도 걷어내고 일본식 나무마루로 바꿨다. 공사는 1909년 봄 마무리되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샹들리에였다. 인정전 샹들리에는 자못 화려하고 육중하다. 노란 천으로 휘감은 뽀얗고 큼지막한 전등들. 샹들리에 틀에는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이화무늬를 디자인해 넣었다. 샹들리에 전깃불은 첨단 서양문물이었고 근대의 상징이었다.

우리나라에 전기가 도입된 것은 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 처음 전깃불이 들어왔다. 에디슨이 전구를 활용한 이후 불과 8년 만이었다. 현재 건청궁 앞에는 ‘한국의 전기 발상지’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그 전깃불이 20여 년 뒤 창덕궁에도 들어왔고 샹들리에까지 설치한 것이다. 시대에 따라 사람 사는 공간도 변하는 법. 궁궐 전각에 전등을 설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20세기를 살아가는 임금님이 꼭 19세기 스타일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샹들리에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고 창덕궁의 밤은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지만 창덕궁의 샹들리에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인정전을 수리하고 샹들리에를 매단 것은 결국은 일본의 의도가 반영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 시엔 전기 공급이 원활치 않아 전구가 자주 깜박였고 그로 인해 수리비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전구가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그 모습이 마치 건달 같다고 해서 ‘건달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깜박깜박하는 전등. 당시 우리의 국운과 비슷했던 것일까. 1910년 8월 그곳 창덕궁에서 조선의 500년 역사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20세기 초 신문명을 상징했던 창덕궁의 전깃불 샹들리에. 우리는 그렇게 근대와 만났다.


3. [한겨레][유레카] 금메달을 판 챔피언

2016 리우올림픽 금·은·동메달 무게는 500g으로 똑같다. 금·은메달은 순은이 92.5% 포함되는데, 금메달에는 순금이 1%(6g)가량 더해진다. 동메달은 구리, 주석 등으로 만들어진다.


은 메달, 동메달을 제조할 때 사용되는 재질의 30%가량은 재활용품이다. 재활용 은은 중고 거울이나 엑스레이 기기, 그리고 납땜 물질에서 수거됐고, 동메달 제조 때 사용되는 구리의 40%가량은 브라질 조폐공사에서 쓰다가 남은 것을 재활용했다.


메 달을 목에 걸 때 사용하는 리본 또한 재활용 플라스틱 물병이 50% 사용된다. 제조 원가만 따져보면 금메달은 508.42달러, 은메달은 260.40달러, 동메달은 5달러 이하이다. 그러나 올림픽 메달은 금전적 가치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우승한 우크라이나 권투선수 블라디미르 클리치코는 자신의 금메달을 100만달러에 팔아서 우크라이나 아이들의 스포츠 활동을 돕는 자선단체를 만들었다.


애틀랜타올림픽은 우크라이나가 소비에트 연방에서 분리독립해 최초로 출전한 올림픽이었기 때문에 의미가 컸으나 클리치코는 기꺼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금메달을 내놨다.


2000 년 시드니올림픽 수영 50m 자유형에서 우승한 앤서니 리 어빈(미국) 또한 금메달을 경매에 부쳐 벌어들인 1만7101달러를 인도양 지진해일 피해자들에게 기부했다. 폴란드의 오틸리아 옝제이차크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2004년 아테네올림픽 접영 200m 우승으로 따낸 금메달을 8만달러에 팔기도 했다.


옝 제이차크는 “(올림픽을) 기억하기 위한 메달은 필요 없다. 나는 내가 올림픽 챔피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메달은 이미 내 마음속에 있다”고 말했다. 믿는 만큼, 행동하는 만큼 가치는 달라진다. 메달도, 사람도 가치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4. [서울신문][문화마당] 마징가는 왜 필살기의 이름을 외쳤을까/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우 리 집에는 비디오가 없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광장국민학교 2학년 4반 부반장이었던 박우석이네 집에 놀러 가곤 했다. 4교시 수업을 마치고 가면 그 시간까지 주무신 게 틀림없어 보이는 우석이네 엄마가 짜장면을 시켜 먹으라며 천 원짜리 두 장을 주셨다. 당시 짜장면은 한 그릇에 600원이었다. 남은 돈으로는 비디오 가게에서 만화영화를 빌려 보았다. 대부분 거대 로봇 만화였다. 일본 대중문화의 수입이 통제되던 시절이었지만 아동용 애니메이션은 프리패스였고 저간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우리는 틈만 나면 각 로봇의 전투력에 대해 논하곤 했다. 그때 나에게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두 개 있었으니 다음과 같다. (1)왜 정의의 로봇은 필살기의 이름을 적에게 들리도록 외쳤는가. (2)어째서 악당 로봇은 정의의 로봇들이 합체하는 동안 기다려 주었는가.

(1) 의 경우는 기합이 당사자의 투지를 증가시키고 상대의 기를 꺾는다는 측면에서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겠다. 하지만 그것이 굳이 필사기의 종류를 발설하는 형태여야 했는지는 한번쯤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코너에 몰리다가 결정적 순간에만 구사하는 필살기는 야구로 치면 투수의 결정구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9회 말 풀카운트 상황에서 “이번엔 낙차 큰 슬라이더”라고 외치며 볼을 던지는 투수라니 좀 웃기지 않나. 그런데 그거 안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마징가는 닥터 헬이 보낸 기계수들을 향해 이제 곧 ‘광자력 빔’을 구사한다는 것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광자력 빔!”이라고 외치면서 슬쩍 ‘루스트 허리케인’이나 ‘로켓 펀치’를 쐈다면 교란작전인가 하고 이해할 텐데 내가 관람한 비디오에서 그런 장면은 등장하지 않았다.

(2)의 경우는 더 이해하기 힘들다. 정의의 로봇은 나름대로 ‘정의=페어플레이(동심)’라는 등식을 지키기 위해 필살기도 막 알려주고 그랬다 치자. 모름지기 악당이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 시대의 악당 로봇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떼로 몰려오면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마치 병목구간을 통과하는 자동차처럼 한 번에 하나씩만 날아오는 걸로도 모자라 정의의 로봇이 “합체!”라고 외치면 본인이 거의 승기를 잡은 싸움에서도 주제가 1절이 다 불릴 정도의 시간 동안 기다려 주었다. ‘도중까지는 악당 로봇이 더 많이 때렸으니까 됐잖아’라는 의미가 담긴 호혜평등주의적 안배였을까.

여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 ‘드래곤볼 깊이 읽기’라는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됐다. ‘무슨 드래곤볼 따위를 깊이씩이나 읽는가’ 하고 한심해하며 혀를 찰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한다. ‘채식주의자’나 ‘사피엔스’ 같은 베스트셀러를 읽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말이지. 하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공상과학독본’이니 ‘마징가 Z 지하기지를 건설하라’ 같은 제목의 책을 마주하면 덮어 놓고 구매하게 된다. 내 허접한 취향에 잘 맞아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거니와 이런 책은 한국에서 안 팔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책이 팔리지 않으면 출판사는 ‘많은 사람들이 찾을 법한’ 책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나 같은 독자 입장에서 보면 꽤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마징가가 왜 필살기의 이름을 외쳤는지 궁금해졌다면 서점에 한번 들러봐 주시길. 양손을 모아 “에~네~르~기”라고 천천히 소리를 내다가 마지막에 기를 단번에 방출하듯이 “파!” 하며 팔을 쭉 뻗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특히 추천하는 바이다.


5. [중앙일보][노트북을 열며] 1등 국가에는 없는 존댓말

삼성전자에서 내년 3월부터 대리·과장·부장 직함이 사라진다. 대신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른다. ‘홍길동님’ 식이다.

왜 이렇게 하는지는 이미 다 아는 바다. 연공서열에 얽매이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일하라는 뜻이다. 호칭은 곧 지위고, 지위는 곧 위계며, 위계는 관료화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창조적 발상과 거침없는 토론이 설 자리는 없다.

사례는 차고 넘친다. 정보지능기술연구소처럼 백년지계와 관련된 문제조차 그렇다. ‘BH(청 와대) 지시’라는 딱지가 붙으면 토론은 사라지고 속도만 남는다. 기업도 다를 바 없다. 도전적 아이디어는 안정적 지시 앞에 무력하다. 삼성전자의 새 지침은 관료화 극복의 몸부림이다. 취지를 놓고 보면 삼성전자 방침의 방향성은 백번 옳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말이 안 된다. 새 방침은 임원은 빼고 직원에게만 적용된다. 내부에선 “수평적 소통은 부장 이하만 적용되냐”는 자조가 나온다.

수직형 구조의 근원에는 존댓말이 있다. 존댓말은 미풍양속으로 대접받아 왔다. 그러나 존댓말로 상징되는 상명하복은 20세기의 산물일 뿐이다. 근대화와 압축 성장은 속도전이 필요했고, 군대식 지휘체계가 성공의 요체였다. 상·하를 분명하게 가르는 존댓말은 강화됐다.

그러나 존댓말은 1등 국가의 DNA가 아니다. 미국·중국·유럽 등 역사적으로 1등을 해 본 지역에선 존댓말이 없거나, 있어도 약하다. 그들에게 존댓말이 없다고 배려나 존중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토론의 품격은 그들이 더 높다. 반면 한국은 수천 년간 1등 국가를 쫓으며 살아왔다. 중국·일본·미국은 교과서이자 미래였다. 그러니까 존댓말은 퍼스트 무버를 열심히 쫓아가는 패스트 팔로어의 DNA다.

외 부에서 지적이 나온 건 오래됐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맬컴 글래드웰은 1997년 괌에서 일어난 대한항공 추락 사고의 근원을 말에서 찾는다. 당시 조종실 녹음 내용에 따르면 부기장은 이상 징후를 알았다. 그러나 그는 직설적이고 강력한 어조로 기장에게 비상 사태를 알리지 못했다. 권위에 눌린 언어 습관 때문이다. 참치잡이 어선 광현 803호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인의 ‘요요’라는 말을 반말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존대와 반말이라는 언어적 위계가 엷었다면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지 금 우리는 교과서가 없어진 시대에 산다.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한국이 이미 겪은 일을 뒤늦게 선진국이 겪는가 하면, 평균 점수는 높은데 개별 점수에선 말도 안 되는 역전이 일어나는 분야도 많다. 상·하, 선·후 구도를 기본으로 살아온 한국이 유독 숨이 찬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존댓말 DNA를 바꿀 수 없으면, 퍼스트 무버의 DNA도 가질 수 없다.

14년 전에 이미 실험과 증명이 있었다. 2002년 히딩크는 축구장 안에서 존댓말을 없앴다. 한국 축구는 그때만큼 창의적인 플레이를 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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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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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6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지속될지 의문이다

정부가 새로 만든 국가브랜드라며 ‘CREATiVE KOREA(창의 한국)’를 선보였다. 대(對)국민 공모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로 도출된 ‘창의’, ‘열정’, ‘화합’ 가운데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미래가치로 ‘창의’를 선택했다는 게 문화체육관광부의 설명이다.

문체부는 새 국가브랜드가 만들어진 만큼 앞으로 국내외에서 이를 적극 홍보할 방침이라고 한다. 내달 열리는 리우올림픽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등 국제행사에서도 활용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KBS 인기연속극 ‘태양의 후예’의 주인공인 송중기·송혜교와 바둑기사 이세돌, 피아니스트 조성진, 남성 5인조 빅뱅 등이 출연하는 홍보 영상을 CNN이나 BBC 등 외국 매체에서 방영한다는 구상도 내놨다.

하 지만 세간의 반응은 영 신통찮다. 무엇보다 전혀 창의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다. 문체부가 내세우는 ‘한국다움’의 근거를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런 뜬구름 잡기 식의 추상적 구호로 세계에서 과연 통하겠느냐는 힐난이 쏟아진다. 얼마 전 ‘I. Seoul. You.’라는 해괴망측한 구호로 국내외에서 두루 망신당한 서울시를 본받으려고 작정이라도 했단 말인가. ‘CREATiVE’에서 ‘i’는 영어 소문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의 ‘인’이란 대목에선 지나가는 소도 웃을 노릇이다.

지 속성도 의문이다. 전임 정부가 심혈을 기울였고, 국내외에서 가시적 성과도 꽤 있었던 ‘녹색 성장’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현 정부가 임기를 1년 반 남짓 남겨 놓고 내놓은 구호를 다음 정부에서 이어받으리라고 기대한다면 어리석거나 오만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김종덕 문체부 장관은 국가브랜드가 국정기조인 ‘창조경제’와 혼동된다는 지적에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천연덕스럽게 응수했지만 이번 새 국가브랜드도 미래창조과학부나 창조경제처럼 박근혜정부의 임기 종료와 함께 용도 폐기될 공산이 크다.

사족(蛇足) 같지만 어문정책의 주무 부처인 문체부가 ‘한국다움’을 내세우는 자리에서조차 ‘크리에이티브’, ‘브랜드’, ‘이미지’, ‘로고’, ‘키워드’, ‘슬로건’ 등의 외래어를 마구 쏟아내는 것도 몹시 마뜩잖다. 무책임 행정의 표본이나 다름없다. 국어 사랑이 국민에게만 강조할 덕목은 아닐 게다.

2. 공정위 SK·CJ 합병 불허 온당했는가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의 CJ헬 로비전에 대한 인수·합병(M&A)을 끝내 불허했다. M&A가 성사될 경우 불공정 행위 등 각종 폐해가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를 들어 주식취득 및 합병금지 명령을 내린 것이다. 두 회사의 합병이 이뤄지면 방송권역 대부분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독과점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조치로 여겨진다.

그러나 시장경제에 부응하는 결정이라고 간주하기는 어렵다. 공정위가 시장을 너무 엄격한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불평이 나올 법도 하다. “이런 식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냐”는 푸념도 들려온다. 심사에 무려 7개월을 끌고도 불허로 방침을 굳힌 것은 무책임한 처사이기도 하다. 두 회사가 그동안 M&A 건으로 거의 업무공백 상태에 이르렀던 것을 자업자득이라고만 돌리기에는 너무 야박하다.

시 장 공정성이 침해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우려가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두 회사가 결합하게 되면 이로 인한 시장 재편 속도와 폭은 상상 범위를 넘어설 게 틀림없다. 결국 급격한 쏠림 현상으로 방송통신 생태계가 위협받을 수도 없지 않다. 경쟁사인 KTLG유플러스 측이 두 회사의 합병에 극구 반대하고 있는 것도 그런 논리였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면 적극 보완해가면 될 일이었다.

무 엇보다 지금의 통신방송 시장이 서로를 연계한 결합상품 중심으로 급변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 업계 판도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해서 변화를 통한 성장동력의 싹을 자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번 M&A를 통해 7조 5000억원의 생산효과와 4만 8000명의 고용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SK측의 주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 일말의 기대조차 단숨에 날아가 버린 셈이다.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현대원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여부다. 그가 서강대 신방과 교수로서 KT 사외이사를 맡아 이번 M&A에 부정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미디어 전문가로서 현 수석의 개인 견해를 존중하지만 이번 심사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를 바란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 꼴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신문]

3. OECD 3위 세비, ‘눈먼’ 특수활동비 다 줄여야

정 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그제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회의원 세비(歲費·월급)를 절반으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20대 국회 초반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의원 특권 내려놓기의 일환이었다. 우리는 현실성 여부를 떠나 다수 국민이 그의 제안에 공감할 것으로 본다. 노 원내대표의 지적처럼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의원 세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 중 3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의원들이 당리당략을 떠나 오로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헌신해 국민의 마음속에 희망의 싹을 틔웠다면 세비가 논란거리가 됐겠나. 국민이 세비 유지에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의원들이 민생을 외면하고 특권 유지에 연연했던 업보일 것이다.

그제 노 원내대표가 본회의장에서 ‘반값 세비’나 특수활동비 폐지 등을 거론했을 때 여야 의원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노 의원 본인도 내심 자신의 제안이 전폭 수용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의 제안을 때만 되면 나오는 인기영합성 발언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20대 의원의 세비가 연 1억 4000만원으로, OECD 회원국 중 1인당 국민소득에 견줘 미국·일본 다음이라는 통계를 보라. 임기 중 겸직 금지를 고려하더라도 항공기와 KTX 무료 이용에다 연 2회 이상 해외 시찰, 그리고 정책개발비 지원 등 온갖 혜택을 고려하면 미·일에 비해서도 결코 낮지 않다. 굳이 “세비를 반으로 줄여도 근로자 평균임금의 세 배”라는 노 의원의 지적을 들먹일 필요도 없을 정도다.

이처럼 우리나라 세비는 의원 1명을 유지하는 데 드는 전체 국고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그런데도 국민은 ‘반값 국회’도 아닌, ‘반값 세비’가 현실화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까닭이 뭐겠나. 진영 논리에 갇혀 무한 대치를 일삼는 여야가 세비 인상 등 의원 기득권 지키기에는 늘 한통속이었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야당 의원이 지난달 13일 개원한 20대 국회에서 첫달치 세비 880만원을 받고 너무 적다고 푸념하는 판이 아닌가. 혹여 ‘반값 세비’에 냉소적인 의원들이 있다면 얼마 전 외신을 통해 전해진 미국 메인주 지사 부인의 사례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가계를 돌보면서 불과 연봉 7만 달러(약 7900만원)를 받는 주지사 남편을 내조한다니 말이다.

박봉에도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있는 선진국 의회에 비춰 우리 국회의 자화상은 노 의원의 말처럼 부끄럽다 못해 처절하다. 그런 측면에서 세비의 다과보다 더 큰 문제가 의원들이 국고를 불투명하게 축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19대 국회에서 특수활동비를 유용해 물의를 빚은 사례가 어디 한둘이었나. 한 여당 상임위원장은 부인 생활비로, 다른 야당 위원장은 자식 해외 유학비로 특수활동비를 탕진한 게 한국적 특수성이 아닌가. 그러고도 문제점을 고친다더니 그때뿐이었다. 여야는 차제에 세비나 특수활동비를 다만 얼마라도 줄이고 투명하게 사용함으로써 20대 국회에서는 떳떳한 의정 활동을 하기 위한 자계(自戒)의 징표로 삼기 바란다.

4. 구청 없애 시·동 체계로 주민 편하게 한 부천시

경 기도 부천시가 주목할 만한 ‘행정개혁’을 해냈다. 부천에서는 그제부터 원미·소사·오정 등 3개 구청이 사라졌다. 구청을 둔 지 28년 만이며 구청을 없앤 것은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이다. 관료 사회의 속성상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행정 조직을 만들기는 쉬워도 일단 만들어진 조직을 없애기는 어렵다. 조직을 만들어 놓으면 인력과 예산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작은 조직 하나 없애려고 해도 반발이 만만찮은 게 현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부천시가 3개의 구청을 없애는 ‘용단’을 내린 것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다른 지자체들도 배워야 한다.

부천시의 이번 조치가 의미 있는 것은 단순히 구청을 없애는 차원이 아니라 행정의 통합을 통해 주민 편의를 위한 행정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부천시는 기존의 시·구·동 3단계의 행정 체계에서 구를 없애 2단계로 한 단계 줄이는 대신 10개의 행정복지센터를 뒀다. 이 센터는 몇 개 동을 묶어서 책임동(洞) 역할을 맡는다. 동사무소의 역할뿐만 아니라 시·구청의 업무도 함께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과거 서류를 하나 떼려고 해도 동사무소에 들른 뒤 구청, 시청에 가야 일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청소, 도로 보수 등 생활민원은 이 센터에서 즉시 처리가 가능하다. 구청에서 하던 간단한 인허가 등록이나 신고 업무 등도 이 센터에서 한 번에 할 수 있게 됐다. 이 센터가 작은 구청인 셈이다.

그뿐이 아니다. 행정 기능에 복지 기능도 강화됐다. 보건소를 따로 찾지 않아도 이곳의 ‘100세 건강실’에서 치매· 우울증·콜레스테롤 등 건강 검진과 상담도 할 수 있다. 구인·구직 상담도 가능하다. 이런 주민 밀착형 서비스를 가능케 하려면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만 부천시는 별도로 공무원을 늘리지 않았다. 없앤 구청에서 일하던 인력 300명을 행정복지센터 등으로 재배치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구청사를 도서관이나 공동육아센터 등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3000억원의 예산절감 효과도 거둔다 하니 주민들이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경기도 수원·성남 등 6개 도시는 행정자치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으로 조정교부금을 다른 이웃 도시에 나눠 줘야 할 상황이 되자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부천시는 ‘예산타령’ 없이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주민들을 위한 생활행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5. 뇌물, 갑질에 성매매까지, 미래부 왜 이러나

미 래창조과학부 소속 서기관이 성을 매수하다 현장에서 적발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지난 3월 서울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술을 마신 뒤 일행과 함께 성매수를 하려고 인근 호텔로 이동했다가 첩보를 입수하고 현장에서 잠복근무 중이던 경찰에 성매매처벌법 위반 현행범으로 체포됐다는 것이다. 성 상납 의혹까지 제기되는 만큼 엄정하게 수사해야만 한다. 행정고시 출신의 간부급 공무원이 버젓이 성 매수를 한 것도 놀랍지만 거리낌 없이 유흥업소를 출입했다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미래부의 기강해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미래부 간부급 공무원의 ‘탈선’은 너무도 빈번하다.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롯데홈쇼핑 전·현직 대표가 미래부 간부급 공무원 3명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라고 한다. 홈쇼핑 채널 재승인 과정의 금품 로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이들의 금융거래 내역을 추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3명에 대해서는 이미 감사원도 재승인 심사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요청한 바 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간부급 공무원들이 업체와 유착해 ‘짬짜미’했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미래부는 별것 아니라는 태도다. 의혹의 당사자를 민간근무휴직 대상자로 추천해 중견기업의 임원으로 일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징계를 앞둔 상황에서 어떻게 기업에 파견 근무를 시킬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미래부의 도덕불감증이 놀랍기만 하다. 앞서 지난달에는 미래부 소속 한 사무관이 프랑스 출장 중 산하기관 직원에게 아들의 영어 작문 숙제를 시켜 ‘갑질’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들이 과연 어떤 공직관, 국가관을 갖고 근무해 왔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 정도면 미래부가 아니라 비리부라고 할 만하다”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미래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창조경제의 기반을 닦기 위해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신설한 정부 부처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한다는 취지가 부처 이름에 담겨 있다. 하지만 소속 공무원들의 심각한 기강해이를 보면서 미래부에 과연 미래를 맡길 수 있는지 솔직히 걱정스럽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14년 7월 최양희 장관 취임 후 총 38명의 미래부 공무원에 대한 징계 의결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 금품과 향응을 받은 사례만도 10건이나 된다. 흐트러진 기강을 즉각 다잡지 않는다면 미래부에 미래는 없다.

[중앙일보]

6. 경제·복지엔 여야가 없음을 보여준 의원 이념조사

중 앙일보와 한국정치학회가 20대 국회의원 2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책·이념조사 결과 새누리당 의원의 55%가 법인세 인상에 찬성한다고 답변했다. 야당의 전유물이었던 법인세 인상론에 여당 의원 과반수가 동조한 것이다. 특히 김무성 전 대표, 서청원 의원 등 당을 이끌어온 원로·중진까지 ‘점진적’이란 전제를 달긴 했지만 법인세 인상에 찬성한 건 눈여겨볼 대목이다.

고용·복 지에서도 여야 간 수렴현상은 두드러졌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해 보호조치를 확대하고 소득수준에 따라 무상보육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새누리당 의원이 10명 중 8~9명에 달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해 온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사드) 체계 도입 같은 민감한 사안을 제외하면 중도로의 수렴현상이 드러났다. 북한의 도발이 끊이지 않는 와중임에도 새누리당 의원의 72.8%가 “대북 인도적 지원을 늘려 북한을 개방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응답한 게 대표적이다.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서도 새누리당 의원들 상당수가 ‘지나친 조치’라며 야당과 같이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사회·치안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수사기관의 도청이나 학교 체벌에 대해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 의원들 대부분이 “반대한다”고 답변했다.

이렇게 여당이 야당과 동조화 경향을 보이면서 의원들의 전반적인 이념지수도 4년 전보다 진보 경향성이 강해졌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보다 진보 성향인 것으로 나타났을 정도다. 이 같은 의원들의 의식 변화는 이들을 20대 국회에 입성시켜 준 민심의 변화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유권자들은 4·13 총선을 통해 성장 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 복지·인권도 챙기라는 분명한 시그널을 보냈다. 이런 민심의 요구에 부응하려면 당파를 초월한 대타협 외엔 길이 없다는 것이 이번 조사 결과 드러났다. 민생엔 여야가 없다는 상식이 재확인된 셈이다. 사회 정의에 대해서도 여야 의원들 간의 인식 격차가 줄어든 게 확인된 점도 의미 있다. 치안을 빙자해 마구잡이 도청을 자행하거나 ‘사랑의 매’란 미명 아래 학생들에게 가하는 체벌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허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당파를 초월해 의원들 인식에 반영된 것이다.

정치인과 유권자의 정책 선호를 통해 이념을 파악하는 이념지수는 2002년 중앙일보와 정당학회가 한국 언론 사상 처음으로 개발했고, 이후 지역과 인물 중심의 낡은 정치 패러다임을 정책과 이념 중심으로 전환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됐다. 여야는 이번 조사 결과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 민생만큼은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또 입법 과정에서 인권·법치 등 사회의 상식이 된 가치가 훼손되지 않게끔 하는 데도 손을 맞잡아야 할 것이다.

이번 조사를 보면 상당수 의원들이 당론에서 벗어난 유연하고 현실적인 인식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야 지도부는 의원들에게 당론을 따르라고 강요만 할 게 아니라 소신에 따라 교차투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해 민의를 충실히 반영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7. 서비스산업 활성화, 대책만 내놓는다고 저절로 되나

정 부가 어제 ‘서비스 경제 발전 전략’을 내놓았다. 굵직한 것만 따져도 이 정부 들어서만 7번째다. ‘서비스산업 정책 추진 방향 및 대책’ ‘고부가가치 사회 서비스 일자리 창출 방안’ ‘유망 서비스산업 육성 중심의 투자 활성화 대책’ 등 경제부총리가 누구냐에 따라 이름만 조금 바뀌었을 뿐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보건·의료, 관광, 콘텐트, 교육, 금융, 소프트웨어, 물류 7대 유망 산업도 똑같다. 규제를 풀고 진입 장벽을 낮춰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겠다는 골자도 그대로다.

서비스산업에 정부가 목을 매는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일자리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중심축이었던 제조업과 수출은 더 이상 양질의 일자리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은 경쟁력을 급속히 잃고 있고 수출도 세계 경기 침체로 맥을 못 추고 있다. 1990년 이후 20여 년간 제조업 일자리는 90만 개가 줄었지만 서비스업 일자리는 800만 개 넘게 늘었다.

글로벌 경제도 제조업 위주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산업 개편을 서두르고 있다. 게다가 최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로 글로벌 경제엔 보호주의와 신고립주의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맞서는 데도 서비스업이 필수다. 이제 서비스업 활성화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됐다는 얘기다.

대책만 놓고 보면 정부의 청사진은 별로 나무랄 데가 없다. 문제는 실천이다. 매번 이해집단의 반발과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번에도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국 회부터 달라져야 한다. 6년째 국회 문턱을 못 넘고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부터 이번 20대 국회가 통과시켜야 한다. 입법 지원 없이 정부 혼자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더 노력해야 한다. 산업 현장의 풀뿌리 규제를 앞장서 풀고 산업 간, 기업 간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시행령을 고쳐서라도 일이 되도록 하는 등 정부가 할 일부터 제대로 한 뒤 국회 탓을 해도 해야 할 것이다.

8. 대통령·유승민 오찬, 국정운영 전환점이 돼야

박 근혜 대통령이 모레 새누리당 의원 전원과 오찬 간담회를 갖는다. 3주일 전 복당한 유승민 의원도 참석한다. 여소야대 국회가 출범해 여권엔 위기감이 큰 상황이다. 국회 권력을 쥔 거대 야권은 각종 청문회 요구 등으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총선 패배 후 계파 갈등이 오히려 커진 새누리당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전당대회, 유승민 의원 복당 문제로 내홍 중이다. 그런 만큼 오찬 간담회에 쏠리는 관심과 기대는 각별하다. 1년 전 ‘배신의 정치’ 발언으로 촉발된 당내 계파 갈등과 공천 파동, 총선 참패의 후유증을 털어내고 소통 정치, 화합 정치로 전환하는 장(場)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대통령이 친박 계파 해체를 선언하고 유승민 복당을 받아들여야 한다. 또 청와대 거수기에 불과했던 집권당의 위상도 재정립해야 한다. 친박 패권주의 공천과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을 심판한 게 지난 총선의 민의였다. 수직적 당청 관계를 포함한 대통령의 상황 인식, 국정운영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충격적 패배에도 대통령은 국민 앞에 “잘못했다”는 사과 한마디 없고 새누리당은 ‘도로 친박당’ 조짐이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할 친박계에선 ‘최경환 안 나오면 당대표는 서청원’이란 추대론까지 확산된다고 한다. 친박 공천이나 친박 마케팅에 대해 대통령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잘라 버렸다.

현 정부에서 여당 의원 전원이 청와대로 초청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선 두 번의 오찬 간담회는 대통령이 주문하고 압박하는 분위기였다. 이번에도 대통령이 ‘협조’만 되뇌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는 까닭이다.

그 러나 이번엔 확 달라진 대통령의 리더십을 기대한다. 남 탓을 하는 건 국정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의 몫이 아니다. 같은 이유로 다음 달로 예정된 국회의장단·상임위원장단 회동 역시 과거처럼 갈등만 키운 만남으로 끝나면 곤란하다. ‘국회 심판론’에 매달렸던 그동안의 인식에서 벗어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세계일보]

9. 서해 불법조업, 중국정부 발 빼면 실력행사 나서야

서해는 불법조업하는 중국 어선으로 인해 무법천지로 변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과 중국은 어제 제9차 어업문제협력회의를 열었다. 우리 정부는 가시적이고 실효적인 대책을 중국에 촉구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접 수역에서의 불법조업을 막기 위해 중국의 단속선을 상시 배치해 어획물 운반선을 차단하고, 중국어민 교육과 계도를 강화하라고 요구했다. 불법조업 실상을 담은 영상과 통계자료도 자세히 보여줬다고 한다. 중국 쪽에서는 이렇다 할 실질적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서해의 불법조업은 탁상공론만 주고받을 수 없는 심각한 상태다. 해양수산부의 조사 결과 서해 NLL 주변 해역에서는 지난해 월 평균 4300∼8700여척이 불법조업을 했다. 서해 NLL 주변이 중국 어선에 점령당한 것에 진배없다. 북한이 조업권을 중국에 팔아넘긴 뒤 불법조업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한강하구 NLL을 떼를 지어 넘어오는 판이다. 서해 모든 해역에서 불법조업하는 중국 어선은 수만척에 이를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불 법조업은 재앙으로 변하고 있다. 촘촘한 그물망으로 치어까지 싹쓸이하니 어족자원이 남아날 리 만무하다. 올해 봄어기 꽃게 어획량이 70% 이상 줄어든 것도 어족자원 고갈의 실상을 잘 말해 준다. 풍어를 기대하던 우리 어민의 가슴에는 절망만 가득하다.

중 국정부는 실질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 “수만척에 이르는 어선을 단속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말이나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중국정부가 불법조업을 방치하는 것은 서해 중국쪽 해역의 어족자원이 고갈되다시피 하면서 어려워진 어민의 처지를 배려한 측면이 크다. 그렇다고 이웃나라의 어족자원 도둑질을 용인하는 것은 국가적 차원의 범죄행위다.

중국정부가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 정부가 불법을 뿌리 뽑아야 한다. 정부는 중국 어선의 저인망식 조업을 막기 위해 서해 NLL 주변 해역에 80여개의 인공어초를 설치하기로 했다. 인공어초 설치만으로 광활한 바다에서 저지르는 불법조업을 막을 수는 없다. 실질적인 해결책은 강력한 단속이다. 우리의 공권력을 무시하고 이루어지는 불법조업을 실력행사로써 대응해야 한다. 정선 명령에 응하지 않는 중국 어선에 대해서는 발포를 허용해야 한다. 무법천지로 변하는 우리의 바다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10. 친환경시대 열 신재생에너지 성공 관건은 지속성

정부가 에너지신산업에 42조원을 투자한다는 굵직한 대책을 내놨다. 2020년까지 신재생에너지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1300만kW 규모의 발전소를 확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삼성전자와 같이 대규모 사업장에 태양광발전소로 생산한 전력을 판매하는 기업형 프로슈머 사업자가 탄생하고, 자가용 태양광이 생산한 전력은 무제한으로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어제 에너지 미래전략위원회 출범식에서 발표한 ‘에너지신산업 성과 확산과 규제개혁 종합대책’의 내용이다.

새 정책이 시행되면 신재생 발전 비율은 2029년까지 20.6%로 높아져 발전 용량이 석탄화력발전의 절반에 이른다고 한다. 에너지신산업 수출도 지난해 49억달러에서 2020년 207억달러로 4배 이상 늘어난다. 신재생 분야에서만 2020년까지 내수 12조원, 고용 3만명 창출이 기대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그야말로 장밋빛 친환경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정부가 향후 산업 육성의 방향을 에너지신산업으로 잡은 것은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의 공기질이 세계 최하위권으로 추락한 현실에서 친환경에너지로의 전환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인도·중동 등 신흥국, 글로벌 기업도 에너지신산업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최근 미세먼지 파동으로 음식점 영업까지 규제 대상으로 거론되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문제는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실천이다. 공기 질은 한두 해 반짝 투자한다고 갑자기 좋아지지 않는다. 기후변화 정책은 연속성이 중요하고 최소 10년 단위의 장기전략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정책의 골간이 송두리째 바뀌기 일쑤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정부가 추진했던 녹색성장이다. 이 정책은 전임 정부 시절에 유엔 산하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 등을 국내에 유치할 정도로 상당한 성과를 냈지만 박근혜정부가 들어서자 종적을 감췄다.

좋 은 정책도 정권의 구미에 맞춰 단기 성과에 집착하면 용두사미가 되기 십상이다. 어제 발표된 신재생 정책 역시 짧게는 2020년, 길게는 2029년에 이르는 장기 비전을 담고 있다. 만약 다음 정부에서 또다시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변질된다면 정책은 소기의 성과를 내기 어렵다. 기후변화대책은 범국가적 차원에서 백년대계로 추진돼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이데일리][특파원의 눈] 뻥튀기, 그리고 한식의 재발견

올해도 전 세계 2550개 식품업체가 참여해 18만개의 새로운 식품을 선보였다. 단 사흘동안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남미의 식당 관계자와 식품 유통업자 5만여명이 전시장을 찾았다.

이탈리아관 옆에 큼지막하게 자리를 잡은 한국 식품관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건 다름 아닌 쌀과자다. 이른바 ‘뻥튀기’.


한국인에게 뻥튀기는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음식이지만 난생처음 맛을 본 외국인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뻥튀기를 극찬했다.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 세프이자 뉴욕 요리전문학교 ‘내추럴 구오메이 인스티튜트’ 교수 제이 와인스타인은 뻥튀기 맛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풍미가 있으면서도 바삭한 느낌이 나지만 어느새 입안에서 녹아 사라진다. 결코 포만감을 주지 않는 환상적인 맛이다.”

미국 대형 식재료 유통업체 KeHE 디스트리뷰션의 구매담당 에이전트 존 발렉은 유통업자답게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랐다.

“2주 전에 처음으로 뻥튀기를 접했는데 단번에 제 시선을 사로잡았어요. 이건 언제 어디나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을 만큼 간편하고 맛도 훌륭한데다 다이어트에 좋은 식품이잖아요. 제가 지금껏 찾던 바로 그 식품이에요.”

요즘 미국의 스낵 트랜드가 기름에 튀기지 않은 구운 스낵으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는데 한국의 쌀과자가 그 흐름에 딱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10년째 쌀과자 사업을 해온 한국 중소기업 델리스의 김형섭 대표도 “올해부터 사업이 성과를 낼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사실 뻥튀기뿐만이 아니다. 한식 전체가 미국에서 재평가를 받으며 급부상하는 분위기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베트남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 쌀국수를 먹는 장면이 공개돼 유명해진 미국인 셰프 앤서니 부르댕은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에서 가장 대중화되고 있는 음식으로 ‘한식’을 꼽았다.

그는 “한식은 매우 맛있고 흥미진진하다”면서 “한식은 모든 이들이 원하고 갈구하는 음식이다. 맵고 파격적이며 발효된 모든 맛이 다 있어 잘 나가는 아이들(cool kids)이 원하는 바로 그 음식”이라고 말했다.

뉴욕 맨해튼의 유명 한식당 ‘단지’를 이끄는 후니 김 세프도 한식의 위상이 달라졌다고 했다. ‘단지’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가이드’로부터 최초로 별 등급을 받은 한식당이다.

“불 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매운맛이나 마늘맛 같은 걸 뉴욕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정말 달라졌습니다. 서양 사람들 입맛에 맞게 변형한 한식이 아니라 된장찌개 같은 정통 한국의 맛을 찾는 분위기에요.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실감합니다.”

이런 분위기는 숫자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올 들어 5월까지 한국의 미국 수출액은 작년보다 3.2% 감소했지만 유독 농식품의 미국 수출은 13% 늘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신현곤 뉴욕지사장은 “한국 음식에 대한 미국인 인지도가 높아졌고 무엇보다 미국 유명 쉐프들이 올해 주목하는 음식으로 한결같이 한국 음식을 꼽고 있다”면서 “한국 농식품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한식은 어느새 세계적인 ‘상품’으로 우뚝섰다.


2. [서울신문][이호준 시간여행] 소금꽃이 피기까지

물 을 흠뻑 머금은 초목이 활기차게 생명을 노래한다. 비구름이 잠시 물러난 사이 잘 벼린 창날 같은 햇살이 길 위로 연신 곤두박질친다. 저만치 푸른 바다가 포식한 짐승처럼 게으르게 누워 있다. 남도로 가던 길, 전북 부안의 곰소 염전에 들른 참이다. 소금이 익어 가는 모습을 보러, 저녁노을이 아름다워서 가끔 찾는 곳이다.

목이 마른 뭇 생명에게는 천금 같은 비지만, 이곳에서는 햇볕 한 줌이 더 귀한 대우를 받는다. 염전이라고 사시사철 소금을 만드는 건 아니다. 보통 4월 중순에 시작해 9월 말까지 바닷물을 졸인다. 그러니 한여름에 쏟아지는 뙤약볕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염전 길을 걷는다. 결정지에도 소금꽃은 피지 않았다. 비가 내린 탓이다.

여기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길게 뻗은 수로들이 바다가 부풀어 오르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염분 듬뿍 머금은 바닷물을 데려올 것이다. 누구는 바닷물을 가두기만 하면 소금이 생기는 줄 알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땀방울이 섞여야 소금 몇 말을 얻을 수 있다.

저장지로 끌어들인 바닷물은 1차 증발지에서 어느 정도 졸인 다음 2차 증발지로 보낸다. 이곳에서 염도가 정점에 오른 소금물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곳은 결정지. 맑은 날 새벽 결정지에 도착한 소금물은 하루 종일 졸여져 저녁 무렵이면 하얗게 엉기기 시작한다. 이런 상태를 두고 소금꽃이 핀다고 한다.

소금꽃은 저절로 피어나는 게 아니다. 햇볕은 물론 적당한 바람과 사람의 땀을 품어야 피는 꽃이다. 염전에서는 바닷물뿐 아니라 시간도 함께 졸인다. ‘시간의 뼈’가 순백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소금은 계절, 햇볕, 바람은 물론 만들어지는 시간에 따라 굵기와 맛이 달라진다. 북서풍이 부는 날 엉긴 소금은 단단하고 굵으며, 동풍이 부는 날 거둔 소금은 밀가루처럼 곱다고 한다. 환경에 따라 맛이 쓴 소금도 생산되고, 짜기만 한 소금이 있는가 하면 짜면서 향기로운 소금도 나온다.

소금을 만드는 이들의 일상은 고단하다. 그들의 몸이 태양 아래 까맣게 탈수록 하얗고 맛좋은 소금이 태어난다. 느닷없이 비라도 내리면 마음까지 까맣게 탄다. 애써 조린 소금물에 빗물이 섞이면 모두 헛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심초사해도 바닷물 열 말을 졸여야 겨우 한 되의 소금을 얻는다고 한다. 한여름 볕이 좋을 때는 사나흘 만에 거두기도 하지만 봄가을은 보통 열흘에서 스무 날까지 걸린다. 결국 찔레꽃처럼 하얀 소금을 빚어내는 것은 땀과 시간이다.

요즘은 바닷가에 가도 염전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재래식 염전이 사라진 것은 오래전이다. 활차 대신 양수기가 바닷물을 퍼 올리고 비닐장판이나 타일 위에서 졸여진 소금을 거둔다. 그렇게 해도 중국산 저가 소금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다. 어느 염전은 세파에 떠밀려 새우 양식장으로 변했고, 어느 곳은 생태공원으로 바뀌었다. 소금의 질이 좋기로 소문난 이곳 곰소 염전도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근래에는 몇몇 천일염전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게라도 보존돼서 후세에게 소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 줬으면 좋겠다. 바닷물이 기다림을 거쳐 하얗게 꽃을 피우는 그 경이로운 과정은 세월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 가르침이 될 테니.


3. [동아일보][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가르쳐야할 때 혼내면 미움만 남아요

초 등학교 1학년 재현이가 알림장을 또 적어 오지 않았다. 학기 초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러 번 말했음에도 실수가 계속 반복되자, 엄마는 좀 화가 났다. 아이를 앉혀 놓고 무섭게 말했다. “앞으로 딱 세 번만 봐 줄 거야. 세 번이 넘으면 ‘자’로 한 대씩 맞는 거야.” 그렇게 엄포를 놓았건만, 아이는 금세 그 세 번을 넘어버렸다. 엄마는 30cm 자를 들고, “자, 손 대! 엄마가 잘 적어 오라고 했어? 안 했어?”라고 했다.

아 이들에게 부모의 행동 중 가장 싫은 것을 물으면 ‘혼내고 야단치는 것’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다. 그 부모들을 불러 “왜 아이를 혼내세요?”라고 물으면, “아니, 아이가 잘못하는데 가만둡니까? 잘 가르쳐야지요”라고 한다. 내가 “아, 가르친 거네요. 그럼, 가르쳐야지 왜 혼내세요?” 하면 대부분 당황한다. 재현이도 지금의 상황을 알림장을 안 써 와서 ‘혼나는 것’이라고 느낄 것이다. 이에 반해 엄마는 알림장을 잘 써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 부모들은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혼내고 야단치는 것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뭔가를 가르칠 목적이라면 혼내고 야단쳐서는 안 된다.

가르친다 는 것은, 아이 입장에서는 뭔가를 새롭게 배우는 것이다. 배운다는 것은 뇌에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는 일이다. 뇌에 정보가 저장되려면, 같은 정보가 여러 번 반복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보가 응축되는 과정에서의 감정 경험이다. 그 경험이 좋아야 정보가 잘 저장된다. 뇌의 기억·학습을 담당하는 부위와 감정·정서를 담당하는 부위는 매우 가까워서 서로 많은 영향을 주는데, 공포나 두려움, 싫음, 불안 등 부정적인 정서가 너무 강하면 지식이나 정보가 잘 저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뭔가를 배울 때 계속 혼이 나면 제대로 배워지지 않는다.

혼내면서 가르치면, 정보 저장이 잘되지 않을 뿐 아니라 부모 자녀 관계에도 치명적이다. 아이는 기분이 나빠지고 서러운 마음에 눈물까지 난다. 그런데 부모는 가르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아이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 “넌 내가 이렇게 좋은 얘기를 해주는데, 왜 울고 그래?”라고 하면서 버럭 화까지 낸다. 아이는 더 서러워진다. 너무 자주 혼나거나 어쩌다 한 번이지만 너무 심하게 혼났다고 생각되면,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행동이 ‘미움’으로 각인된다. 그때 어떤 이유로 혼났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도 아이 마음속에는 부모가 준 ‘미움’은 새겨진다.

아 이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고 뭔가를 가르쳐줄 목적이라면, 방식도 가르치는 형태여야 한다. 가르친다는 것은 정확한 핵심을 얘기해주고, 뭐가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격분하고 화를 낼 필요가 없다. 아니, 부모가 감정적으로 안정되지 않을 때는 뭔가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잘못하면 가르침은 고사하고 아이를 공격할 수도 있다. 아이의 행동을 진정으로 교정하고 싶다면, 뭔가를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면, 정말 친절히 아주 여러 번에 걸쳐서 가르쳐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바뀌고 배울 수 있다.

어떤 부모는 반문한다. 아무리 친절히 가르쳐주어도 아이의 행동이 계속 바뀌지 않더라고. 역시 매를 들어야 효과가 빠르더라고. 아이가 빨리 행동을 바꾼 것은 그저 아프기 때문이다. 아프니까 무서우니까 잠깐 그렇게 행동한 것뿐이다. 부모의 가르침이 내재화되어서 ‘아, 이것이 옳지 않구나’라는 것을 배워서가 아니다. 아무리 잘 가르쳐줘도 아이가 행동을 교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부모들은 종종 말한다. “딱 세 번은 참을 거야. 그 다음부터는 혼날 줄 알아.” 나는 이런 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미숙함을 딱 세 번 만에 고칠 수 있습니까?” 어른도 못 할 일이다. 그런데 어린아이에게는 세 번 만에 안 고치면 가만두지 않겠다니, 이런 억지가 어디 있는가.

아이가 알림장을 안 써 오면 “너 다음에도 안 써 오면 혼나!”가 아니라 그렇게 해서 발생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가르쳐준다. “알림장을 안 써 올 수도 있어. 그런데 지금 내일 준비물을 모르는데 어떻게 할까?”라고 물은 뒤, 아이의 답을 듣는다. 같은 반 친구나 담임 선생님한테 물어본다고 할 수 있다. 아이의 답에 따라, 스스로 해결해 보게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이는 ‘아, 알림장은 꼭 적어 와야 하겠구나’를 배운다. 아이가 어떤 실수를 하거나 미숙함을 보일 때는, 혼내고 야단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잘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면 된다.


4. [동아일보][@뉴스룸/민동용]스토리가 필요해

11 년 전 영화를 담당할 때다. 함께 점심을 먹으며 배우 품평을 하던 영화기획사 대표가 말했다. “좋은 배우의 얼굴에는 드라마가 있어요.” 깎은 듯, 아니면 깎아서 잘생기고 예쁜 배우는 많다. 그러나 좋은 배우라면 얼굴에 삶의 희로애락과 기승전결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얼굴에서 이야기가 배어나올 때 비로소 진짜 배우가 된다는 얘기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속된 말로 배우처럼 얼굴을 뜯어먹고 살지는 않지만 좋은 정치인이 되려면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건 정치권의 불문율이다. 하물며 대권에 도전한다면 더욱 그렇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민주화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와 동일시됐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는 청계천 복원이 따라다녔다. 그렇다면 야권의 대선 유력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에게는 지금 어떤 스토리가 있는 것일까.

솔직히 두 정치인이 갖고 있는 이야기보따리는 거의 비어 있다.

비 명에 떠난 노 전 대통령의 운명(殞命)을 차분히 발표하고 듬직하게 빈소를 지키며, 영결식장에서 모 의원의 ‘무례’에 대해 당시 이 대통령에게 정중히 사과하던 문 전 대표. 2012년 대선에 나온 그에게는 노 전 대통령의 ‘부활’이라는 이야기가 녹아 있었다.

2011 년 지지율이 자신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박원순 씨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한 안 전 대표는 곧바로 ‘안철수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이듬해 대선에 나온 그를 두고 ‘메시아가 나타나 우리를 구원할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나오기도 했다.

문 전 대표는 대선 패배로 자신의 스토리를 소진했고, 안 전 대표는 2014년 민주당(현 더민주당)과의 통합으로 사실상 ‘현상’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이후 두 사람이 새로 쓰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엿보인다.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이다. 방법은 강경함과 단호함이다.

문 전 대표는 자신을 흔들어대는 비노(비노무현) 진영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끝내 당 밖으로 몰아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김종인 더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삼고초려해 총선 승리를 이뤄냈지만 김 대표에게 당을 더 오래 맡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안 전 대표는 혁신이라는 화두를 내걸고 문 전 대표와 건곤일척의 쟁투를 벌였다. 새로운 당을 만들고, 김한길 전 의원의 야권통합 시도는 단칼에 잘라냈다. 총선 리베이트 의혹 사건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을 내놓는 강수를 던졌다. ‘또 철수’라는 평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강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4·13총선의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며 거대하게 움직이는 민심이 어떤 이야기를 바라는지 더 고민해야 한다. 기존의 정치 작법(作法)으로는 이 스토리의 한 문장도 써내려가지 못한다.


5. [머니투데이][우보세] 도둑맞은 레시피와 소작료 전쟁

15세기 무렵 베니스 항구에 한 청년이 외딴 하숙집을 얻어 문을 안으로 걸어잠그곤 매일 요리를 했다. 하숙집 주인은 처음 맡아보는 기막힌 음식냄새에 이끌려서 열쇠구멍으로 방안을 훔쳐봤다.

좀 더 많은 향료를 구하러 홀연히 동양행 선박을 타고 사라졌던 청년은 3년 후 베니스항을 다시 밟고 깜짝 놀란다. 그만의 레시피가 이미 베니스 시내 전체에 퍼져 곳곳에서 같은 향을 내고 있었던 것. 범인은 하숙집 주인이다. 마카로니 그라탱의 유래다.

베 니스는 근대적 의미의 특허권이 처음 정립된 지역을 알려진다. 15세기 후반 무렵 이미 베니스에선 특허를 인정하고, 그에 따른 권리를 부여하는 분위기가 정착됐다. 창의적인 장치를 고안하면 베니스공화국에 보고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확산된 특허 제도는 500년 이상 다듬어졌다. 하지만 자본주의 역사가 40년이 채 안되는 중국은 불과 10여년 만에 글로벌 IT 특허시장의 신예로 부상했다. 화웨이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걸자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을 "세계의 공장에서 글로벌 특허기지로 재탄생하고 있다"고 재평가 하기도 했다.

물 론 화웨이의 특허 공세엔 마케팅 효과를 염두에 둔 여러가지 셈법이 깔려있다. 기술적인 우위를 논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퀄컴을 제친 지난해 특허출원수(3898건)나 애플을 넘어서는 R&D 투자규모(연간 92억달러) 등 밖으로 드러난 숫자는 시사하는 바는 크다. 미래에 우리 기업들이 중국 기업들에게 이용료를 내고 기술을 얻어쓰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글로벌 IT기업들에게 특허는 공정거래 이슈가 발생하지 않는 가장 배타적이면서도 혁신적인 무기로 통한다. 특허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IT 스타트업들에 무조건 많은 특허를 확보하라고 조언한다. 일단 기술 방어적인 측면에서 초기 스타트업에겐 특허 출원이 필수적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애플과 삼성전자 사이의 세기의 특허 전쟁이 무승부 형국이 된 데는 삼성전자의 수적으로도 '충분한' 통신기술 특허가 작용했다. 애플에겐 없는 삼성만의 통신기술 특허로 애플의 UI(사용자 인터페이스) 특허에 맞선 것.

그 렇다고 무조건 특허 출원만 많이 하는게 답일까. 특허출원 숫자를 늘리는게 경쟁사의 공격에 맞서는 방어전이라면 '길목을 지키는 특허'를 확보하는 것은 보다 적극적 특허 전략이다. 글로벌 B2B(기업 간 거래) 기업의 사업모델은 이 같이 핵심 길목을 지키는 특허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퀄컴 등은 특허와 R&D 조직 간 협업을 통해 지적재산권 만으로 상당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구축해놓고 있다. 농사만 짓지 않고 목 좋은 땅을 선점해 소작료도 챙기는 셈이다. 특허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같은 IT인프라 강국에선 IT서비스에 승부를 걸기보다 원천기술 특허를 확보하는게 최적의 사업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 변호사는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해 어려울 따름이지 지식재산 강국으로 가기 위해선 우리도 특허 라이센스사업을 시도해야 한다"며 "길목을 지키는 기술을 개발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혜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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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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