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2016년 4월 6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슈퍼컴퓨터 개발, 계획대로 추진되려면

미래창조과학부가 슈퍼컴퓨터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고 한다. 인공지능(AI)이나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하는 지식정보사회 구현을 앞당기기 위한 조치다. 이를 위해 향후 10년간 1000억원 이상의 개발자금을 투입한다는 잠정적인 계획도 마련됐다고 한다.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최초의 초고성능 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우리 자체 역량으로 슈퍼컴퓨터를 개발키로 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그동안 전자·통신 분야를 비롯해 무인자동차, 로봇 등의 분야에서 나타난 국내 연구수준도 괄목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판단이다. 연구 여건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당장이라도 우수 인력들이 달라붙을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야심찬 계획을 마련한 데 대해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

슈퍼컴퓨터란 대용량의 정보를 초고속으로 저장·처리·활용하는 것이 가능한 첨단 컴퓨터다. 따라서 기존의 보통 기술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도 척척 답변을 제시하게 된다. 최근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와 세계 바둑 최고수인 이세돌 선수의 시합에서 드러났듯이 슈퍼컴퓨터의 기능은 이미 사람의 사고능력을 뛰어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세계 각국이 개발경쟁에 뛰어든 결과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처럼 개발 계획을 마련한 것이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동안의 첨단기술 개발 추이를 살펴볼 때 선발주자들의 꽁무니를 따라가기 바쁘지 않을까 우려된다. 기왕이면 바짝 추격해서 단시일 내에 따라잡는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정부가 알파고의 3배 이상 빠른 슈퍼컴퓨터를 2020년까지 개발키로 목표를 잡은 것이 그래서일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계획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장기간에 걸쳐 수행돼야 하므로 안정적인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아무리 중요한 계획도 해당부처 장관이 바뀌기만 해도 주춤해지기 마련이 아닌가. 하물며 앞으로 5년, 10년 뒤의 계획이라면 더더욱 장담하기 어렵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존폐 문제에 대해서조차 미리부터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슈퍼컴퓨터 개발계획과 함께 장기적인 지원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2. 급증하는 해외소비 국내로 돌릴 방안은

국내에서는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소비자들이 외국만 나가면 돈을 펑펑 쓴다고 한다. 뭔가 잘못된 얘기다. 정부가 온갖 소비 진작책을 내놓으며 경기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지금과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민계정 잠정치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지출한 돈은 모두 26조 2700억원으로 전년보다 13.7%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액으로도 사상 최대 규모다.

이에 비해 지난해 국내 소비지출은 708조 3700억원으로 2.7% 증가에 그쳤다. 통계청이 집계한 가계소비성향은 사상 최저 수준인 71.9%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해외 소비지출증가율이 국내 소비지출증가율의 5배도 넘었지만 소비자들이 인터넷 등으로 외국 제품을 직접 구매한 ‘해외 직구’나 외국 출장길에 업무용으로 쓴 금액 등을 포함하면 증가율은 훨씬 더 올라갈 것이다.

내수 부진이 국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이것이 다시 소득 감소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속에서도 해외 씀씀이는 대폭 커졌다는 얘기다. 주요 원인은 소득 수준 향상으로 외국 여행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한국관광공사에 의하면 지난해 해외 여행객은 1930만명을 넘어서 전년보다 20%나 늘어났다.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쓴 돈의 일부만이라도 국내로 돌렸다면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됐으리라는 점에서 진한 아쉬움이 배어난다. 그렇다고 요즈음 같은 국제화 시대에 무턱대고 외국 여행이나 현지 씀씀이를 자제하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그보다는 여행객들이 자발적으로 해외 소비를 국내 소비로 돌리도록 유도하는 정책 수단을 서둘러 개발하는 게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국내 관광 활성화가 절실하다. 외국의 어느 명승지 못지않은데도 홍보 부족으로 빛을 보지 못하는 관광지가 허다하다. 돈 있는 사람들이 맘껏 쓸 수 있도록 규제를 확 풀어 시설을 고급화하고 이용도 한결 편리하게 해야 한다. 연간 100만명도 넘는 골퍼가 외국에 나가 몇조원씩 쓰는 왜곡된 현상을 시정할 해법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각종 소비재와 서비스에 매겨지는 세금을 낮춰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한국에서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것도 요긴하다.

[서울신문]

3. 나랏빚 1300조의 절반이나 되는 연금부채

나라 살림살이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지난해 재정적자가 2009년 이후 6년 만에 가장 많은 38조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가계부채가 1200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국가부채도 1300조원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정부가 발표한 ‘2015 회계연도 국가결산’에 따르면 관리재정수지는 지난해 38조원으로 집계됐다. 국가재정을 살피는 대표적 지표인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에서 미래 세대를 위해 쌓아 둬야 하는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의 흑자를 뺀 것이다.

지난해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2.4%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다. 특히 세수가 예상보다 2조 2000억원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부양을 위해 11조 6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재정적자 규모가 커졌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이 양호하다는 입장이다.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1.8%로OECD 평균 115.2%와 비교하면 건전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문제는 재정적자 증가 추세가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7.9%로 1년 만에 2.0% 포인트 늘었다. 올해 상황은 더 나쁘다. 연초부터 수출이 급감하고 내수도 심각한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등이 국가부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지난해 국가부채 1284조 8000억원 가운데 연금충당부채가 전체의 51.1%인 659조 9000억원에 이른다. 연금충당부채는 2013년 569조 3000억원으로 전년보다 무려 160조 3000억원이 늘었다. 지난해 반쪽짜리 공무원연금 개혁 탓에 증가율이 뚝 떨어져 16조 3000억원 증가에 그쳤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상태다. 아직 본격적인 논의도 하지 못한 군인연금과 사학연금 개혁의 시급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우리 국민들의 해외 지출액이 26조 2722억원으로 전년보다 13.7%(3조 1593억원)나 급증한 점도 재정 상태를 악화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의 선거공약 가운데 복지, 고용과 관련된 장밋빛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재원은 여야 합쳐 200조원이 훌쩍 넘는다. 재정건전성은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는 전형적인 묻지마 공약이란 비판을 면할 길 없다.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정부와 국민 모두 비장한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다. 재정건전성이 무너지면 국가 경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4. 국세청, 명예 걸고 한국인 역외탈세 추적해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가 외국 조세회피처에 유령회사를 세운 사실이 들통났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는 그제 전 세계 1150만건의 조세회피 자료를 폭로했다. 노씨는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2012년 페이퍼컴퍼니 3개를 설립했다. 그 자신이 주주 겸 이사로 취임한 문제의 회사들은 1달러짜리 주식 1주만을 발행했다. 노씨는 사업이 진행되지 않아 계좌 개설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삼척동자라도 탈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유령회사의 전형이다.

의혹의 진상은 추후 더 밝혀야겠으나, 세계가 주목한 ‘역대급’ 조세회피 폭로 자료에 그의 이름이 들었다는 사실부터 국민들 속을 뒤집는다. 바통을 이어 졸렬한 사고를 치는 것이 우리 전직 대통령 아들들의 전매특허인가 싶을 지경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가 똑같이 버진아일랜드의 탈세 유령회사가 발각돼 지탄을 받았던 게 불과 3년 전이다. 대통령의 아들이란 사람들이 번번이 탈세와 재산 도피 혐의로 세인의 손가락질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낯 뜨거운 일이다.

이번 폭로 자료에서는 주소를 한국으로 기재한 한국인도 195명이나 됐다. 이들의 탈세 수법이나 계좌 관련 정보와 명단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덜미가 잡힌 규모만 보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역외 탈세를 할 수 있었다는 정황은 파악되고도 남는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서민들은 울화가 치민다. 쥐꼬리 월급을 받더라도 유리지갑의 샐러리맨들은 십원 한 장까지 납세의 의무를 다하고들 있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역외 탈세를 일삼는 것은 사회 정의에 구정물을 끼얹는 중대하고 파렴치한 범법 행위다.

국세청이 이번에는 제 역할을 제대로 하길 기대한다. 3년 전 전재국씨를 포함한 182명의 역외 탈세 파동에서는 48명에게서 1324억원을 추징한 게 고작이었다. 국민들 눈에 국세청은 조세 정의를 세우는 일은 뒷전이고 세수 확보의 수단쯤으로 그때그때 탈세를 적발한다는 인상이 짙다. 해외 조세회피자가 국세청의 고발 의지로 단단히 벌을 받았다는 사례를 들어 본 적이 별로 없다. 국제 공조를 서둘러 한국인 명단을 확보하고 탈세 혐의자들을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검찰 수사도 강화해 해외 재산 도피는 아예 꿈도 못 꾸게 엄벌해야 한다.

5. 정책 꼼꼼히 보고 배례대표 정당 선택하길

서울 종로는 흔히 ‘정치 1번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종로에서도 세종로 사거리는 서울의 중심이자 대한민국의 중심이라고 해도 크게 과장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각 후보 진영이 앞다투어 유세전을 펼치는 선거운동의 핵심 요지다. 하지만 4·13 총선을 앞둔 세종로 사거리는 조용하기만 하다.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는 총선이 이곳에서는 남의 이야기인 것만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저녁 수많은 직장인이 세종로 거리를 뒤덮다시피 하지만 대부분은 종로 선거구의 유권자가 아니다. 출근 시간 세종문화회관과 동화면세점 앞 버스 정류장에서는 분당과 일산을 비롯한 경기도 남부와 북부 지역 주민들이 광역버스에서 줄지어 내린다. 서울 지하철 1호선과 2호선 시청역과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도 종로 유권자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런 세종로 사거리에서 조용히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군소 정당 후보들이다. 유세차와 확성기, 그리고 유니폼 차림의 운동원을 다수 동원하는 유력 정당 후보들과 달리 이들의 선거운동은 조촐하기만 하다. 후보자는 건널목에서 녹색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명함을 건네고, 다른 한 사람이 핵심 공약을 담은 피켓을 들고 있는 정도다. 자기 선거구 유권자가 아닌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광고용어로는 소구대상(訴求對象)을 완전히 잘못 짚은 캠페인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면 자신(自身)의 존재가 아닌 자당(自黨)의 존재를 알리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유력 정당들이 생산한 이슈에 우선순위가 밀린 자당 정책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당부다.

오는 13일 투표소에 가면 유권자는 두 장의 투표용지를 받게 된다. 한 장은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는 투표용지이고, 다른 한 장은 지지 정당을 고르는 투표용지다. 미래지향적 정책의 설득력 있는 이행 방안을 제시하는 정당에 국회 진출 기회를 주는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제도라고도 한다. 실제로 군소정당의 정책 공약 가운데는 유력 정당에서 찾을 수 없는 참신한 내용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공약을 유권자들에게 알릴 기회는 많지 않다. 이번 총선에서 후보를 낸 정당은 21개에 이른다. 물론 정책 생산 능력이 없는 이름뿐인 정당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건전한 군소정당이 공약을 유권자에게 알릴 기회는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믿는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라고들 한다. 낡은 정치세력을 미래지향적인 정치세력으로 교체하는 한바탕 축제의 주체는 말할 것도 없이 유권자다. 지역구 의원은 유권자의 판단에 따라 인물과 능력 중심으로 투표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비례대표 의원을 뽑는 지지 정당 투표는 직관만으로는 판단이 쉽지 않다.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선거공보를 꼼꼼히 읽어 보고 지지할 정당을 선택하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능력 있는 인물과 조화로운 정책이 국회에 넘쳐날 때 정치도 발전한다. 지지 후보와 지지 정당이 반드시 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 20대 국회가 얼마나 건강하게 태어날지는 유권자들에게 달려 있다.

[동아일보]

6. 봉은사·조계사 재정 공개, 종교계 과세로 이어져야

대한불교조계종이 서울 조계사와 봉은사, 인천 강화 보문사, 경북 경산 선본사 등 총무원 관할 직영사찰 4곳의 수입과 지출을 공개했다. 지난해 서울 강남 봉은사의 수입(일반회계)이 210억8700만 원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조계사(200억4900만 원)보다 많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려졌다. 

조계종이 종단 차원에서 사찰 재정을 최초로 일반에 공개한 것은 불교계가 스스로 다짐했던 개혁의 첫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2012년 일부 승려들이 연루된 백양사 도박사건이 불거지자 조계종은 자성과 쇄신, 종책(계파) 해산 등을 선언했지만 이후에도 ‘금권선거’ ‘종단정치’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작년 초 종단 혁신을 모색하는 초유의 대중공사(大衆公事)가 열렸고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사찰 재정 투명화를 통해 신뢰받는 종단으로 거듭나겠다”며 직영사찰과 특별분담금사찰, 1년 예산이 30억 원 이상인 사찰을 대상으로 7월부터 재정 공개 계획을 밝혔다. 

당시의 다짐에 비해 공개 범위가 대폭 축소됐고, 시기도 아홉 달이나 늦춰졌지만 불교계 자정(自淨) 노력은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투명한 재정 공개가 개혁의 첫걸음이다. 재정 공개 대상을 모든 사찰로 확대하고 외부 회계 전문가 감사는 물론이고 예산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도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이미 2007년부터, 대부분 교회들도 주보에 헌금 명세를 싣고 매년 당회에 결산보고를 하고 있다. 재정의 투명한 공개는 다른 종교로도 확산돼야 할 것이다. 

차제에 종교인 과세 유예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세청 자료로 추산한 2014년 종교단체 기부금이 약 8조 원이다. ‘소득 있는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당초 2015년부터 종교인 과세를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일부 종교인들의 반발로 1년 유예되더니 작년 12월 통과된 법안에선 2018년으로 또 늦춰졌다. 선거를 의식해서라는 뒷말이 파다하다. 지난해 국가부채가 무려 1284조 원이다. 종교계가 스스로 세금 납부를 앞당기는 것도 사회 통합을 돕는 길이다.

[중앙일보]

7. 유권자 판단 흐리는 여론조사 정비 필요하다

총선을 1주일 앞두고 새누리당 자체 여론조사에서 원내 과반의석은커녕 135석 안팎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기존 ‘집 전화 여론조사’ 방식에 휴대전화 표본을 섞었더니 수도권에서 여당 후보의 확실 우세지역이 25곳 안팎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심야 긴급 선대위회의를 소집하는 등 호들갑이다.

하지만 정작 어리둥절한 건 유권자다. 어안이 벙벙한 걸 넘어 현기증을 느낀다. 불과 전날까지만 해도 새누리당은 수도권 122곳 중 40개 지역에서 우세한 것으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총선 상황실을 포함해 언론에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 분석한 수치다. 그러니 고정 지지층의 위기감을 자극해 투표장에 내몰려는 새누리당의 엄살이란 말이 나온다.

새누리당이 선거 전략 차원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들쭉날쭉 활용한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이 판세 분석의 근거가 되는 조사 결과를 구체적으로 내놓지 않은 건 사실이다. 가뜩이나 동일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조사기관별로 상반되거나 지지율이 제각각이어서 혀를 차게 만드는 게 한국의 여론조사 시장이다. 100개가 넘게 난립한 조사 회사들이 응답률 2%가 되지 않는 자동응답기 조사를 마구잡이로 쏟아낸다. 표본과 응답률도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선관위는 이번 총선에서 왜곡이 의심되는 7개 여론조사기관, 53개 조사를 적발해 처벌했다. 전문가들조차 여론조사 결과를 믿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지경이다.

문제는 이런 엉터리 여론조사 결과가 유권자의 표심을 출렁이게 하고 선거 판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선거 여론조사는 정치 현장에서 의사 결정과 건전한 여론 형성에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조사의 공정성과 투명성, 신뢰성이 생명이다. 조사 과정과 결과는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그러려면 문항 내용과 표본 채취를 공개하고 안심번호를 활용해 신뢰성을 검증받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 총선을 계기로 선거 여론조사와 관련된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매일경제]

8. 北정권 검은돈 조세회피처 통한 세탁 차단해야

북한 정권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해 조세회피처 안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뒤 무기를 팔아 핵과 미사일 개발 자금을 조달했던 정황이 포착돼 충격을 주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4일 파나마 최대 로펌 모색폰세카에서 유출된 조세회피처 자료 '파나마 페이퍼스'를 인용해 영국 은행가 나이절 코위가 북한인 김철삼과 공동으로 2006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인 'DCB파이낸스'를 세웠다고 보도했다. 코위는 김정일 정권 때인 1995년 입북해 북한 첫 외국계 은행인 대동신용은행을 설립하고 은행장까지 역임한 인물이다. 

이 회사를 세운 직후인 2006년 7월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했고 그해 10월에는 첫 핵실험을 실시했는데 여기에 DCB파이낸스를 통해 유입된 자금이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 후에도 DCB파이낸스는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해 북한 정권에 검은돈을 공급하는 채널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은 2013년 핵 개발과 탄도미사일 등 대량파괴무기 확산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대동신용은행과 DCB파이낸스, 이 회사 중국 다롄 지점 대표 김철삼을 제재 대상에 올리기도 했다. 당시 미국은 DCB파이낸스가 북한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지원한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와 단천상업은행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이 DCB파이낸스 같은 페이퍼컴퍼니를 조세회피처에 세우고 핵과 미사일 개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달 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으로 들어가는 자금과 물품의 길목을 막는 포괄적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고 지난달 16일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정권의 자금줄을 차단할 목적으로 대북 제재 행정명령을 발동한 바 있다. 이처럼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무기를 팔아 자금을 마련한다면 제재 효과는 반감된다.

정부는 가급적 많은 국가들과 긴밀한 공조를 통해 북한 정권이 불법적으로 검은돈을 조달하지 못하도록 차단해야 한다. 그래야 대북 제재에 빈틈이 생기지 않고 궁극적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다.

[부산일보]

9. 토론회 불참 후보틀, '유권자 무시' 여론 깊이 새겨야

4·13 총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후보도 정책도 보이지 않는 '깜깜이 선거'가 계속되고 있다. 뒤늦은 선거구 획정에다 공천 잡음 끝에 본격적인 선거전의 막이 올랐지만 유권자에게 후보들은 여전히 '너무 먼 당신'이다. 당리당략에 따른 공천으로 누가 후보로 나오는지도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정국'이 한동안 계속된 데 이어 이번에는 입후보자들의 공약과 인물 됨됨이를 차분히 검증할 기회조차 봉쇄당할 판이다. TV 토론회를 노골적으로 기피하는 후보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선거운동에 전념하겠다" "(치열한 당내 경선 혹은 탈당으로)토론회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정치 신인이 여러 차례 선거를 치른 후보와 토론을 벌이는 게 부담스럽다" 등 토론회에 불참하는 후보들이 내건 이유도 가지가지다. 하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되레 자신의 약점만 드러나 자칫 '안 한 것보다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정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마디로 유권자에 대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과거 운동장이나 광장 등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던 합동연설회를 TV 브라운관으로 옮긴 방송 토론회는 공직선거법이 정한 법정 토론회다. 정당한 사유 없이 토론회에 불참하게 되면 4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까지 물리게 되어 있다. 후보 검증과 정보 전달이라는 '미디어 선거'에 대한 애초의 기대가 오로지 당선만을 노린 채 유권자 위에 군림하려는 후보들에게 일방적으로 무시당하고 있는 상황에 이른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토론회 불참자에 대해 강력한 규제가 뒤따라야 마땅하다. '벌금만 내면 그만'이라는 오만에 사로잡혀 유권자를 무시하는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공직선거법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또한, 이럴수록 투표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과 참여가 더욱 요청된다. 이참에 총선 슬로건으로 '당신의 투표를 응원합니다'를 내건 본보가 기획하고 있는 '유권자가 만드는 DIY 공약'과 후보들을 집중 검증하는 '상호 쟁점 질의'도 일독을 권한다. 

[매일신문]

10. 대구에서 무소속'야권 후보의 선전이 말해주는 것

대구 총선판이 요동치고 있다. 새누리당 독식 구조에 큰 균열이 가는 조짐이다. 현재까지 여론조사를 보면 12개 선거구 가운데 6곳에서 새누리당 탈당파 무소속과 야권 후보가 선전하고 있다. 수성갑은 김부겸 후보의 우세가 유지되고, 수성을도 주호영 후보가 이인선 후보에 앞선다. 북을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홍의락 후보가 양명모 후보를 큰 격차로 앞선다. 동갑에서는 류성걸 후보가 정종섭 후보와 치열하게 경합 중이고, 북갑과 달성에서는 권은희`구성재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와의 격차를 좁히고 있다. 새누리당 무공천 지역인 동을의 유승민 후보는 이미 당선 안정권에 진입했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이어진다면 대구 의석 가운데 최대 6석이 비새누리당 후보로 채워지게 된다. 물론 선거날까지 아직 8일이나 남았기 때문에 속단은 금물이다. 하지만 무소속과 야권 후보가 예상 밖의 선전을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새누리당이 전 의석에서 일관되게 우세를 달렸던 19대 총선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이는 대구 민심이 변하고 있음을 감지케 한다. 새누리당에 대한 일방적 지지에서 후보별 선택적 지지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대구에서 무조건 ‘1번’을 찍는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는 분석에 큰 무게가 실린다. 그 원인은 ‘공천 파동’에서 드러난 새누리당의 오만이라는 것이 일치된 견해다. 유권자의 뜻에 배치하는 후보를 일방적으로 꽂거나 이 지역, 저 지역으로 후보를 옮겨 심는 ‘돌려막기’ 공천으로 대구 유권자를 ‘핫바지’ 취급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새누리당은 이런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했다. 이는 지역 차원에도 해당하는 금언이다. 대구가 발전하고 못하고는 유권자가 대표를 잘 뽑느냐에 달렸다. 이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후보의 인물됨과 정책을 꼼꼼히 비교`검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이 없는 투표는 선거권의 실질적 포기나 마찬가지다.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이 절실한 때다.

주요 신문칼럼

1. [뉴시스][리뷰]스릴러로 변주한 멜로드라마, 임수정 조정석 이진욱 '시간이탈자'

공교롭게도 tvN 드라마 ‘시그널’이 먼저 방송되면서 김이 빠진 측면이 없잖다. 임수정, 조정석, 이진욱이 주연한 ‘시간 이탈자’는 꿈으로 연결된 과거와 현재의 남자가 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1983년 1월1일, 고등학교 교사 지환(조정석)은 같은 학교 동료이자 애인인 윤정(임수정)에게 청혼하던 중 강도를 만나 칼에 찔려 의식을 잃는다. 2015년 1월1일, 강력계 형사 건우(이진욱) 역시 뒤쫓던 범인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생사를 오간 이들은 이때부터 꿈을 통해 서로의 일상을 보게 된다.

‘엽기적인 그녀’(2001) ‘클래식’(2003)의 곽재용 감독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한국영화다. 스릴러의 구조를 띄고 있으나 ‘감성추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결혼을 앞두고 예비신부를 잃은 남자의 안타까운 사랑을 추적극으로 풀어냈으나 결국은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을 만나 사랑하겠다는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찬가다.

국민적 인기를 끈 ‘응답하라 1988’까지 본 관객들로서는 1980년대와 2015년을 오가는 이 영화 속 그때 그 시절 풍경에서 추억을 되새길 일이 딱히 없다. 후발주자의 어려움이다. ‘시간’을 이용한 스릴러도 너무 많이 나왔다. 누가 범인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대충 짐작은 간다. 지환과 건우가 어떻게 과거를 바꿀지, 과연 두 사람은 윤정(혹은 현재의 소은)을 살릴 수 있을지, 스릴러적 긴장감은 있다. 

요즘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영화가 번번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여배우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를 가미한 스릴러이고 여배우의 역할이 다른 스릴러에 비해 큰 편이라 흥행성적이 따라주면 여배우들에게 좋은 일일 것이다.

임수정은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이 정점이었다. ‘은밀한 유혹’(2014)을 거쳐 ‘시간이탈자’를 내놨는데, 이번 영화는 임수정의 기존 매력을 활용할뿐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녀의 숨은 매력을 발굴할 작품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한효주, 천우희, 유연석의 ‘해어화’와 같은 날인 13일 개봉한다. 

2. [한국일보]막내 잃은 흰고래 벨루가의 눈물

지난 주말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살던 멸종위기종인 흰고래 벨루가 3마리 가운데 ‘벨로’(수컷)가 다섯살 나이로 폐사했다는 것이다. 벨루가가 야생에서 35~50년까지 사는 것을 감안하면 벨로는 너무나 일찍 죽었다. 롯데월드는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의뢰했고, 결과는 2주 뒤 나올 예정이다.

국내 수족관의 문제를 다루는 기사를 준비하고 있던 차에 나머지 2마리는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기 위해 4일 이형주 동물보호활동가와 함께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매일 두 번씩 하던 벨루가 생태설명회는 중단된 상태였다. 3마리가 살았던 수조에는 벨리(9세.수컷)와 벨라(5세.암컷) 2마리만이 쉴새 없이 위 아래로 헤엄치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귀엽다”를 연발하며 연신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한눈에도 수조는 고래 2마리가 헤엄치기에도 너무 비좁아 보였다. 롯데 측은 높이 7.5m, 1,250톤의 물이 담긴 수조로 공간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 얘기는 다르다. 공간 자체도 좁지만 특히 수평으로 좁기 때문에 벨루가들이 위아래 수직이동만 가능하고, 관람객으로부터 몸을 숨길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야생에서 벨루가는 한번 잠수해 2, 3㎞를 이동하니 아무리 넓은 수조라고 해도 그들에겐 감옥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조 속 벨루가에게 공간의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벨루가는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무리를 지어 함께 살도록 하면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을까. 이형주 활동가는 “오히려 좁은 공간 속 개체 간 갈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벨리와 벨로가 벨라를 공격하고, 벨라는 피부에 상처를 입은 채 계속 좁은 수조 안에서 도망 다니는 게 목격되기도 했다. 한화 아쿠아플라넷 여수에서도 수컷 2마리가 암컷을 공격해 암컷 1마리를 좁은 보조수조에 격리해 오다 지난달부터는 수컷 1마리를 따로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전 징후가 없었냐는 질문에 롯데 측은 “어린 벨로는 면역력이 약해 평소 감기 등 잔병치레가 많았다. 폐사 전 식욕감퇴와 컨디션 저하 등 이상 징후가 있어 집중 관찰 중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벨로만 유독 면역력이 약한 개체였을까. 이에 대해 동물보호단체들은 사육하는 것 자체가 건강한 개체도 면역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벨루가의 모유 수유기간은 2년이다. 두살 때 포획된 벨로, 벨라는 젖을 떼기 전이나 떼자마자 붙잡혀 1년 7개월은 강릉 송어양식장에, 이후에는 수조 속에 갇힌 채 원하지도 않는 무리들과 살면서 먹이를 먹기 위해 몸을 돌리고 물을 뿜어내는 쇼를 해야만 했다.

롯데 측은 벨리와 벨라에 대해 최근 정밀 건강 검진을 실시했고 결과에 따라 추가 조치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동물자유연대는 성명을 내고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으로 나오든 간에 근본적인 원인은 ‘야생동물의 인공시설 감금’이라고 했다. 벨로가 죽으면서 현재 국내에서 살고 있는 벨루가는 한화 아쿠아플라넷 여수 3마리, 거제 씨월드 4마리,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2마리로 총 9마리가 됐다. 더 이상은 ‘벨로의 비극’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3. [서울신문][오늘의 눈]거꾸로 가는 국내 전기차 정책/박재홍 산업부 기자

사전 주문 27만대, 예상 매출 13조원. 미국의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가 출시하지도 않은 ‘모델3’를 통해 3일 만에 거둔 기록이다. 모델3는 아직 생산 작업에도 착수하지 않았다. 테슬라는 내년 하반기 생산에 들어가 2018년에야 차량을 받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27만명의 고객이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차라는 것과 공개된 외부 디자인만으로 100만원이 넘는 돈(1000달러)을 기꺼이 지불했다.

전기차는 자동차 시장에서 여전히 뜨거운 아이템이다. 미래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로 재편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미래 시장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현재 미국이나 중국, 유럽 등은 재정 지원을 통해 전기차 보급 확대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기차 지원책 발표 이후 최대 860만원(7500달러)의 지원금을 전기차 구매자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지난해 판매된 신차의 20%가 넘는 전기차 보급률을 자랑하는 노르웨이는 취득세와 부가세 면제 등 구입 시 지원뿐 아니라 충전시설, 톨게이트 비용 등 실질적 지원책도 확대 중이다. 중국은 정부 차원의 총력 지원을 펼치고 있다. 공용차량의 30%는 전기차로 구입하고 차량 가격의 최대 40%까지 보조금을 지원한다. 덕분에 지난해 중국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11만대가 넘는다. 중국은 ‘중국 제조 2025’라는 정책 아래 2020년까지 자국 전기차 브랜드의 연간 판매량을 100만대 이상으로 늘리고 세계 시장 점유율도 70%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 같은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지난해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인 비야디(BYD)는 중국 내에서 4만 3069대(1~10월)를 판매해 일본의 닛산과 테슬라 등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같은 기간 칸디(KANDI)와 중타이자동차(ZOTYE) 등도 각각 1만 7021대와 1만 5384대를 팔아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

각국 정부가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고 전기차에 투자하는 이유는 하나다. 미래에 다가올 전기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다. 최소한 자국의 도로에 전기차가 돌아다녀야 시장을 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전기차 정책은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환경부는 오는 11일부터 전기차 급속충전 시설을 이용하는 데 당 313.1원을 부과할 방침이다. 급속충전만 사용할 경우 휘발유 자동차 대비 약 60%의 연료비에 해당하는 액수다. 환경부는 이를 통해 전기차 충전시설 확충 사업에 민간 사업자의 참여를 끌어들이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기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가장 큰 목적이 연료비 절약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같은 조치가 전기차 보급 확대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기술력 측면에서 한국이 테슬라나 선진국에 전혀 뒤질 것이 없다고 보고 있다. 전기차 기술의 핵심은 배터리와 관련한 기술력인데 현재 LG화학과 삼성SDI 등 국내 업체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부가 졸속 행정으로 업계의 발목만 잡는다면 이 같은 기술력도 중국이나 미국에 추월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4. [서울신문][길섶에서]찬란한 봄/구본영 논설고문

몇 주 전 아침. 동네 뒷산을 산책하다가 양지 바른 곳에서 활짝 핀 진달래를 올 들어 처음 봤다. 봄꽃도 햇볕을 많이 받는 곳에서부터 피기 시작한다는 자명한 이치를 새삼 깨달았다.

봄이 되면 만물이 소생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희망으로 부푸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절반은 따스한 햇살 덕분일 듯싶다. 하긴 사람의 뼈조차 햇볕을 받으면 생성되는 비타민D 덕분에 튼튼해진다지 않나.

전직 의사 한 분이 보내 준 메일 글에서 비타민D 못잖게 ‘비타민M(문화)’이 필요하다는 대목을 읽고 무릎을 쳤다.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문화적 소양을 쌓아야 당사자도, 그가 속한 사회도 건강해진다는 취지에 공감했다.

문득 얼마 전 다니던 직장을 떠나 문화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 젊은 후배의 말이 떠오른다. “추운 겨울에 일터서 잘리지 않고 따뜻한 봄날에 새 출발을 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한. 들을 때는 걱정스러웠지만. 이제 와서 보니 축복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릴 적부터 ‘문화 비타민’이란 영양소를 듬뿍 섭취한 그가 이 봄에 찬란한 햇볕 세례까지 받으면서 새 길을 걷는다니….

5. [서울신문][양진건 유배의 뒤안길]미남의 이치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 때문에 송중기 앓이가 심하다. 드라마가 시작되는 밤 10시 이후에 남편은 부인의 감정이입에 방해되는 일체의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며, 가능하다면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좋다는 조언까지 나돌 정도다. 예로부터 여자들이 미남을 좋아하는 것은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유배인 중에 미남이라면 단연 김춘택(金春澤·1670~1717)이다. 그가 대궐에 들어서면 궁녀들이 난리였다. 그는 미남계를 이용해 궁녀들을 손아귀에 넣었고, 장희빈의 오빠 장희재의 처도 자신의 여자로 만들어 정보를 빼냈다. 또한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와도 내연의 관계를 맺을 수 있어서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 아닌 김춘택의 아들이라는 소문을 만들기까지 했다. 김춘택이 죽자 숙빈 최씨도 공교롭게 얼마 안 있어 죽으니 소문은 증폭됐다.

제주 유배 중에는 석례라는 기생과도 관계가 깊었다. 김춘택의 매제인 임징하는 그녀를 두고 “백우(伯雨·김춘택)가 유배 와서 살고 있을 때 정을 두었던 사람”이라고 했는데 임징하가 제주에 유배를 오자 늙은 석례는 먼 길을 찾아와 연인이 남긴 ‘별사미인곡’을 부르기까지 했다. 그리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조 문제로 김춘택은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불편한 이름 가운데 하나로 취급돼 왔다.

그런가 하면 박태보(朴泰輔·1654~1689)도 미남으로 당대 처녀들의 마음을 뒤흔들던 사내였다. 후일 남인의 탄핵으로 선천에서 유배 생활도 하지만 젊을 때 그에게 반한 어느 대갓집 여종이 상사병을 앓다가 죽음을 각오하고 박태보의 집을 찾아가 하루만이라도 함께 지내 줄 것을 요청했다. 오죽이나 미남이었으면 여종이 반상의 법도를 어기면서까지 그러했겠는가. 이에 아버지는 그녀의 요청을 들어 주라고 했다. 법도란 사람을 위한 것이고, 가엾은 여인이 원한에 차 죽으면 그 또한 도리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그 말에 따라 박태보는 그녀와 하루를 만나 준다. 소원을 푼 그녀는 아마도 평생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남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여자도 있었다. 권진응(權震應·1711~1775)은 젊을 때 여행 중에 광주의 어느 아전 집에 며칠 머물렀는데 그 집의 딸이 그만 그에게 반해 버린다. 미남인 권진응을 보고 딸이 상사병을 앓기 시작하자 큰일이 날 것 같아서 아전은 그에게 자기 딸을 소실로라도 삼아 주기를 청했다. 오죽하면 아버지로서 그랬겠는가. 그러나 권진응은 끝내 거절을 한다. 그러자 아전의 딸은 상사병이 악화되더니 끝내 죽고 말았다.

미남 때문에 한 여자가 목숨까지 잃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일 이후 권진응의 진로에 액운이 끼기 시작했다. 아마도 부녀의 원한 때문일 터인데 미남들은 매사 조심할 일이다. 제주 유배 중에 권진응은 송시열의 유배를 기리는 비석을 세우게 하고 직접 비문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꽃은 피면 지기 마련. “피지 않았을 땐 조바심에 더디 피는 걸 염려하다가(未開躁躁常嫌遅), 한창 피고 나면 시들어 떨어지는 것을 애태우며 다시 걱정한다(旣盛忡忡更怕衰)”라는 시도 있듯이 성쇠(盛衰)의 이치는 미남이든 미녀이든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유배인 정약용의 말처럼 “황혼의 시각 보내기가 새삼 어려운 줄을”(銷得黃昏一刻殊) 알게 될 때가 이제 곧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리 애타지 말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이치를 따르는 편안한 마음일 터이니 송중기와 함께 출연해서 얼핏 늙어 보인다는 송혜교가 그래서 더 정겹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2016년 4월 5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텃밭 공천=당선 등식이 깨지는 이유 직시해야

4·13 총선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초반 판세가 드러나고 있다. 특징은 여야가 고수해 왔던 전통적인 텃밭에서 균열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은 영남과 수도권에서,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국민의당은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역대 선거에서 영·호남 지역은 특정 정당의 ‘공천=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해 왔다.

지역구 당선만 놓고 보면 19대 총선은 18대 총선에 비해 지역 구도가 오히려 강화된 선거였다. 18대 때는 ‘친박연대’의 돌풍으로 당시 한나라당이 영남 68석 가운데 46석을, 민주통합당은 호남에서 31석 가운데 25석을 차지했다. 양당 구도로 치러진 19대 총선은 새누리당이 영남 지역 67석 중 63석을 쓸어 담았다. 민주통합당 3석, 친새누리당 성향 무소속에 1석만 내줬다. 민주통합당은 호남 30석 가운데 25석, 정책 연대를 한 통합진보당이 3석, 민주통합당 성향 무소속에 2석을 내줬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예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야권의 텃밭인 호남에서는 더민주와 국민의당 후보들이 치열하게 맞붙고 있다. 여기에 새누리당 후보가 전북 전주을과 전남 순천에서 선전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텃밭인 부산에서 더민주 후보가 사하갑과 북·강서갑, 경남 김해갑, 김해을에서 의미 있는 선전을 하고 있다. 야권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구에서는 더민주 김부겸 후보가 여전히 우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특히 대구에서 새누리당 공천 파동의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 수혜자인 무소속의 유승민 후보와 다른 무소속 후보들이 선전해 새누리당을 긴장하게 하고 있다. 친박연대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수도권 표심에 영향을 주고 있어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이러한 지형 변화는 원칙을 무시한 공천 파문과 명분 없는 야권 분열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텃밭 민심을 무시한 오만함에 대한 유권자의 반격이라는 시각도 있다. 당 대표의 옥새 파동으로 번진 새누리당의 공천 파행은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텃밭과 수도권 표심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 결과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야권 분열에 따른 반사 이익을 기대했던 것만큼 얻지 못하고 있다. 더민주도 마찬가지다. 호남에서 더민주 후보들은 공천 컷오프를 두려워해 탈당한 국민의당 후보들에게 밀리고 있다. 여론을 무시한 당내 패권주의가 가져온 참담한 결과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호남의 맹주가 더민주냐, 국민의당이냐를 놓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후보의 면면과 지명도만 놓고 보면 국민의당이 비교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가 이끄는 국민의당은 호남 이외의 모든 지역에서 고전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야권 분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선거 초반이긴 하지만 지역 구도 완화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텃밭 유권자나 국민을 무시한 공천 파행과 야권 분열의 원치 않은 결과라는 점이 안타깝다. 총선에서 유권자의 선택은 언제나 현명했다는 점을 정치권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2. 가습기 살균제 보고서 조작 의혹 진상 뭔가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살균제 제조사의 의뢰를 받아 수행한 서울대 수의과대학 연구팀 보고서가 충분한 실험을 거치지 않은 채 조작됐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 중인 것으로 그제 드러났다. 연구팀 보고서가 실제와 달리 왜곡된 사실이 밝혀지면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밖에 없다. 연구팀의 조작이든, 제조사의 조작이든 간에 위험에 노출된 생명을 고의성 여부를 떠나 방치한 결과와 다름없는 까닭에서다.

사건은 2006년부터 불거진 의문의 폐질환 논란 속에 2011년 임신부 4명의 급성 폐질환 사망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에 맞춰지면서 비롯됐다. 이후 집계된 피해자는 임신부를 포함해 영·유아까지 무려 143명에 이른다. 검찰은 2012년 관련 업체에 대한 고소·고발을 4년 가까이 손놓고 있다가 올해 1월 말에야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수사에 나섰다. 초점은 제조사나 유통사가 제품을 시판하기 전에 안전성 검사를 제대로 했는지, 또 흡입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제품을 제조했는지 등에 맞춰져 있다.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검증이 핵심이다.

검찰은 지난 2월 제조사인 옥시레킷벤키저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에서 서울대 연구팀이 회사 측에 회신한 보고서가 조작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 “살균제가 유해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보고서가 제조사 측에 유리하게 작성된 정황이 있다”는 게 검찰 측의 설명이다. 현재로선 의혹 수준이다. 최근 서울대 연구진 등을 참고인으로 조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제조사 측도 곧 소환하기로 했다. 옥시 측은 지금까지 연구팀 보고서를 근거로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검찰은 충분한 실험 결과를 담지 못한 채 보고서가 작성된 경위를 밝혀내야 한다. 옥시 측의 주도 아래 또는 서울대 연구팀이 독자적으로, 아니면 합의에 의해 부실한 보고서가 만들어졌는지를 캐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사인을 둘러싼 공방이 첨예한 만큼 인과관계를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과학적 역량을 총동원할 필요가 있다. 실체적 진실의 규명만이 피해자와 가족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 줄 수 있는 데다 엄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뒤늦게 국민 생명·안전과 직결된 사건이라며 수사에 착수한 검찰의 반성이자 과제다.

3. 제재 후 첫 협상 언급한 北, 국면 전환 바라나

북한 국방위원회는 그제 유엔의 대북 결의에 대해 “시대착오적이고 자살적인 망동”이라고 비난하면서 미국에 사태 수습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대변인 명의의 담화로 “무모한 군사적 압박보다 협상 마련이 근본 해결책이며 부질없는 제도 전복보다 무조건 인정과 협조가 출로”라고 주장하면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안 채택 한 달째를 맞아 북한 정권이 빼든 국면 전환 카드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별무효과라고 강변하면서도 제재 국면에서 벗어나려는 이중적 태도였다. 이런 태도가 핵을 포기하려는 신호로 보긴 어려운 만큼 북한의 핵 포기를 견인하기 위한 우리의 중장기 전략을 재점검할 때다.

현시점에서 대북 제재의 성패를 말하기는 시기상조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그리고 우리와 미국·일본·유럽연합 등의 독자 제재 효과를 정확히 가늠하긴 어렵다는 뜻이다. 제재의 실효성을 담보할 열쇠를 쥔 중국의 태도가 아직 미심쩍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북한을 오가는 화물에 대한 검색 등 유엔 결의안을 이행하려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긴 하다. 하지만 북·중 접경 지대에서 각종 금수 품목들이 매일 북한으로 밀반출되고 있다는 엇갈린 보도도 있지 않나. 다만 북한 국방위가 제재가 “(우리에게) 공기처럼 익숙한 것”이라느니, “(우리를) 천하에 둘도 없는 자립·자력·자강의 강국으로 전변시켰다”고 강변하고 있음은 뭘 말하나. 북측도 제재 국면이 장기화되는 데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그렇다면 굳이 이 시점에서 제재의 고삐를 늦출 이유는 없을 게다.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병행 추진하자는 중국의 제안에 힘을 실어 주면서 슬쩍 제재를 피하려는 게 북한의 진짜 속내라면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북측의 ‘협상’ 거론에 “지금은 대화를 논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본 정부의 인식은 적실하다. 핵을 포기하려는 의지가 없는 북측의 협상 제스처에 섣불리 장단을 맞춰 북한의 ‘도발→제재→대화→보상→도발’의 악순환이 되풀이돼선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재의 효과가 가시화된 후 본격화할 대화 국면에도 미리 대비하기 바란다. 북한 정권의 붕괴가 아닌, 북한의 핵 포기가 일차적 목표라면 이에 따른 중장기 안보 전략의 큰 그림을 그려 놓으란 얘기다. 북한이 ‘핵 포기’가 아닌 ‘핵 동결’ 카드로 우리의 어깨너머로 미·중과 협상을 시도하려 한다면 달갑지 않은 시나리오다. 북한이 제재를 모면하려 협상 신호를 보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미·중과의 전략적 대화가 긴요하다.

[동아일보]

4. 노태우 前대통령 장남이 해외 유령회사 세운 이유 뭔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 씨가 조세회피처에 3곳의 유령회사를 설립했다고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어제 보도했다.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함께 파나마의 최대 로펌 ‘모사크 폰세카’에서 유출된 자료를 분석한 결과 홍콩 주소를 썼던 노 씨 외에 한국 주소를 기재한 195명의 한국인 이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재헌 씨가 2012년 설립해 주주 겸 이사로 취임한 3개 회사는 재산 도피나 탈세에 악용될 소지가 큰 페이퍼컴퍼니(서류상의 유령회사)다. 노 씨는 “사업 진행이 안 돼 계좌 개설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2011년 홍콩에서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한 뒤여서 재산을 빼돌리려 했다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뉴스타파 측은 ‘노태우 비자금’이나 매형SK 최태원 회장과의 연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유령회사를 만든 경위가 뭔지 당국은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2013년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를 비롯한 182명도 조세회피처를 이용한 탈세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수천억 원의 정치자금을 받아 형사처벌 받은 데 이어 두 아들까지 탈세와 재산 도피 혐의로 도마에 오른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당시 국세청은 48명에게 1324억 원을 추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시의 10배가 넘는 자료가 유출된 만큼 더욱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탈세 혐의가 밝혀지면 검찰 수사를 의뢰해 엄벌해야 한다.

ICIJ와 뉴스타파에서 공개한 1977∼2015년 자료는 1150만 건에 달한다. 사상 최대 조세 회피 문건의 폭로로 일파만파(一波萬波)가 예상된다. ICIJ가 주도한 자료 분석에 뉴욕타임스 인디펜던트 르몽드를 비롯한 전 세계 109개 언론매체가 참여했다. 이 속에는 전현직 국가 정상 12명,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와 배우 청룽 같은 유명인사의 금융 거래 실태도 들어 있다.

조세피난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제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한미 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FATCA), 53개국이 참여하는 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 체결로 해외 탈세 적발이 한층 쉬워졌다. 재헌 씨 등 196명의 탈세 사실이 밝혀지면 엄하게 처벌해 조세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5. 與 선대위원장 증세 불가피하다면서 왜 공약에선 빼놨나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그제 증세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일본이 증세를 하지 않고 쓰기만 하다가 세계에서 부채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며 “증세를 안 하면 우리도 일본처럼 된다”고 말했다. 그는 부가가치세율 3%로 시작한 일본의 경우 선거를 의식해 재정 적자가 나는데도 올리지 못하다가 지금 8%까지 올렸다고 말했다. 이에 기자들이 “부가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얘기냐”고 묻자 강 위원장은 “선거 때는 언급하기에 안 좋다”며 즉답을 피했다. 공약과 무관한 평소 소신이라고 해도 새누리당이 영입한 경제통 선대위원장이 ‘증세 불가피론’을 말하면서 선거공약에선 제외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같은 날 오전 강 위원장은 4년 내 최저임금 시간당 8000∼9000원으로 인상, 정규직의 80% 수준으로 비정규직 임금 인상 등을 추가 경제공약으로 발표했다. 이때도 그는 “법인세 인상, 부자증세를 통한 분배개선은 효과가 제한적이고 산업 경쟁력 약화의 요인이 된다”고 야당의 증세론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증세 없는 복지’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으며 이번 총선 공약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총선 공약집에는 바이오·나노 신기술 및 에너지 신산업 육성, U턴 기업 경제특구 설치, 고교 무상교육 등의 공약에 2020년까지 56조 원이 든다고 소개돼 있다. 그러면서도 증세를 포함한 재원 확보 방안은 쏙 빼놓은 것은 무책임하다. 

최근 국가미래연구원은 저성장과 고령화에 따른 복지수요 증가로 재정파탄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세제 및 재정 개혁을 강조한 바 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일반 재정지출은 연평균 2.6% 늘어나지만 복지 분야의 법정지출은 6.7% 늘어난다. 전체 복지예산 가운데 정부가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돈의 비중만 무려 70%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한계에 봉착하는 등 새로 돈 나올 곳은 없는데 증세 없이 무슨 수로 복지를 늘린다는 건지 의문이다. 달콤한 공약으로 표를 산 다음 총선 이후 증세를 추진한다면 국민을 속이는 일과 다름없다. 

유승민 의원(무소속·대구 동을)은 1일 방송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은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인 강봉균 전 장관도 하는데 내가 한 말만 왜 그리 문제가 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정부 여당은 지금까지 야당의 증세 불가피론을 비판해 왔지만 외부에서 영입한 강 위원장의 증세론까지 반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강 위원장은 증세론을 경제공약의 맨 앞줄로 올리는 게 정정당당하다.

[이데일리]

6. 대전 과학 벨트 '속빈 강정' 안되려면

거액의 예산을 투입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정식 출범도 하기 전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래창조과학부를 비롯해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등 관련기관들이 지난해 7월부터 대전시 유성구 신동·둔곡지구에 조성하고 있는 첨단기업 및 연구소 육성 단지다. 그러나 아직 입주를 확정지은 대상은 중소기업 3곳에 불과하며, 연구기관은 전혀 없는 상태다. 이래서는 막대한 국민 혈세를 투입해 조성하는 과학벨트 사업이 속빈 강정으로 전락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사업은 국내 과학계에서 외면받고 있는 기초과학을 육성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자는 취지로 전임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시작했다. 과학벨트 연구소에서 나온 성과를 곧바로 비즈니스로 연결한다는 사업 목표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과학·문화·산업이 융합하는 창조경제의 지식생태계로 만든다는 거창한 구상이었다. 정부가 모두 5조 7400억원의 사업비를 책정한 가운데 지금까지 1조 6000억원 이상을 투입한 것도 이 같은 의욕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산은 예산대로 들어가고도 추진 실적은 제자리 걸음이다. 과학벨트 조성사업이 이처럼 빨간불이 켜진 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떠밀기식 행정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부와 특구진흥재단은 직접 이해 관계자인 대전시와 LH가 유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대전시는 주무부처인 미래부에 책임을 미루고 있다. LH는 토지 보상과 개발사업 문제만 책임질 뿐 기업유치는 소관사항이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는 입장이다.

시작 단계에서부터 책임 한계를 명확히 정하지 않았기에 생겨난 결과다. 세금을 펑펑 쏟아부으면서도 주먹구구로 사업을 계획한 것이다. 이렇게 관련기관들이 서로 네탓 공방을 주고받는 동안 세계 상위 1% 수준 과학자 500명을 유치하겠다는 원래 목표는 그냥 사그러들고 있다.

과학벨트 사업은 기초·응용과학자와 기업인이 손잡고 새로운 스타트업을 만드는 클러스터 조성에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관련기관은 이 사업을 통해 우리의 밝은 미래를 이끌 수 있는 세계적 연구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체계적인 역할 분담과 지원 방안에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7. 이젠 정책으로 당당하게 심판받아야

4.13 총선이 여드레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후보 단일화도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다. 투표용지 인쇄가 시작된 어제 이후에는 후보가 단일화된다 해도 사퇴한 후보의 이름이 투표용지에 그대로 남게 되므로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투표 직전의 후보 단일화는 되레 유권자들의 반감을 유발할 우려마저 없지 않다. 정장선 더불어민주당 총선기획단장이 “앞으로 당에서 단일화 얘기를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힌 것도 그래서일 게다.

이번 총선은 야권 후보 단일화가 초반 판세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면서 정작 선거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후보의 인물 됨됨이와 공약은 뒷전으로 밀려난 ‘깜깜이 선거’라는 비판이 거셌다. 선거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파(無黨派)가 25% 안팎에 이르며, 지역에 따라서는 30%를 넘고 있다. 정치철학은 없고 정치공학에만 몰두하는 후진적인 우리 정치 행태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여야는 이미 공천 과정에서부터 많은 실망을 안겼다. 새누리당은 현직 정의화 국회의장이 대놓고 ‘악랄한 사천(私薦)’이라고 개탄할 정도의 뻔뻔한 계파 이익 챙기기로, 더민주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셀프 공천’으로 골수 지지자들의 대거 이탈을 자초했다. 그나마 공천 파동을 덜 겪은 국민의당은 ‘박근혜 저격수’를 자처한 권은희(광주 광산을) 후보의 막말 선거포스터 파문으로 발목이 잡혔다. 두 거대 정당에 실망해 ‘제3당’을 기웃하던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는 모양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국민은 선거 때마다 ‘엄중한 심판’을 내렸다. 그러나 정치는 계속 뒷걸음질쳐 왔다. 국민들의 판단이 꼭 올바르지만은 않았다는 얘기다. 더욱이 이번에는 ‘공약 전쟁’이 시들함으로써 유권자들의 표심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럴수록 결국 믿을 건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뿐이다. 선거 때는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느라 온갖 교언영색(巧言令色)을 쏟아내지만 막상 당선되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권력자 눈치나 보는 후보에겐 절대 표를 줘선 안 된다. 야권 단일화를 놓고 오락가락하다 체면을 구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공정선거를 이룩하려면 더 이상의 실수는 용납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중앙일보]

8. [키워드로 보는 사설]비례대표제도

비례대표제도는 각 정당의 득표수에 비례해 국회의원 당선자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보통 단독적으로 채택되기보다 선거구 단위로 후보들이 경쟁해 당선자를 결정하는 방식과 병행 실시되는 제도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지역구에 대별되는 전국구 개념으로 각 선거구에 입후보한 각 정당 후보들의 득표를 전국적으로 합계해 그 비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방법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이 제도가 위헌 결정을 받음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지역 단위의 선거구에 입후보한 후보들에 대한 투표와 별도로 정당 지지 투표를 실시해 그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으로 변경해 시행하고 있다. 즉, 자력으로는 국회 진입이 힘든 소외계층이나 약자들 그리고 전문가 집단을 진출시켜 국민에게 필요한 입법활동을 하기 위해 채택된 제도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비례대표제도의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멀게 운용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이번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싼 갈등 양상을 보면 여전히 제도의 본래 취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내 계파 간 나눠먹기 또는 정치적 목적으로 영입한 인사들에게 자리를 배분하는 수단 등으로 오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은 각 정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어 향후 대한민국 정치 개혁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매일경제]

9. 법무부·공직자윤리의 부실 대응 땐 제2진경준 낳는다

재산공개에서 불투명한 주식매매로 거액의 시세차익을 거둬 논란을 빚자 사의를 밝힌 진경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에 대한 관련 당국의 뒤처리 여부가 계속 관심을 끌 것 같다. 검사장급인 진 본부장은 2005년 비상장기업 넥슨 주식을 샀다가 지난해 126억여 원에 처분해 한 해 동안 38억여 원의 차익을 거뒀다고 신고했다. 논란이 커지자 해명을 뒤늦게 했으나 되레 더 의혹을 키우고 말았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지난 1일 뒤늦게 해당 주식 보유 적절성이나 고의 누락 또는 오류 등 진 검사장 신고 내역에 대한 재검증에 들어갔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공직자윤리위의 심사 결과 거짓이 있거나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이익을 취한 것으로 드러나면 경고에서부터 징계나 파면까지 제재를 요청할 수 있다. 특히 위법 혐의를 찾으면 법무부 장관에게 조사를 의뢰할 수 있고, 장관은 내부 감찰이나 검찰에 조사를 지시해야 한다. 하지만 진 검사장은 윤리위의 심사를 피하기 위해 공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꼴이니 법무부는 윤리위의 심사 마무리 전에 그의 사직서를 수리해서는 안 된다. 퇴직자에게는 자료 제출이나 소명을 강제할 수 없는 만큼 시민단체 등의 고발 없이는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진 검사장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그가 금융거래 정보를 분석하는 금융정보분석원(FIU) 파견근무를 마친 직후 해당 주식을 매입했고 이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을 역임했다는 점에서다. 아무리 부인해도 업무 연관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일반인은 취득하기 어려운 비상장 주식을 진 검사장이 어떤 경위로 얼마에 누구로부터 샀는지 밝혀내야 한다. 친구로 알려진 김정주 넥슨 대표에게서 특별한 대우를 받지 않았는지, 넥슨의 일본 상장 계획을 사전에 알았는지도 규명해야 한다.

검찰은 불투명한 재산 형성 흠결을 가진 검사장급 간부에 대해 인사 전 얼마나 철저한 자체 검증을 했는지도 묻고 싶다. 공직자윤리위와 법무부가 이번에 대충 넘어가면 고위 공직자 재산 문제에 '제2의 진경준' 사태가 또 생길 수 있음을 알기 바란다.

10. 전기차 대중화로 산업 판도 바꾼 테슬라의 혁신

미국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차 '모델3'가 3일 만에 27만6000대나 예약 판매된 것은 혁신의 힘을 다시 한번 보여준 사건이다. 모델3는 한 번 충전으로 약 350㎞를 달릴 수 있을 만큼 다른 전기차에 비해 경쟁력이 있고, 다양한 편의 장치와 고급 디자인을 갖췄음에도 가격은 3만5000달러에 불과하다. 이전 모델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값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한국에서도 모델3를 판매한다고 밝혔는데 전기차에 붙는 보조금을 감안하면 2000만원대에 구입이 가능하다. 모델3에 대한 열광은 2007년 애플 아이폰이 출시됐을 때를 연상시킨다. 아이폰이 휴대폰 시장을 스마트폰으로 재편한 것과 같이 '모델3'가 전기차 대중화를 이끌면서 산업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의 혁신 기업 중에는 테슬라처럼 기존 시장을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가 적지 않다. 지난달 이세돌 9단과 다섯 번의 바둑 대국에서 4승을 거둔 구글 알파고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한 단계 올려놓는 계기를 마련했다. 

아마존은 드론 배송으로 물류·택배 분야에서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을 뿐 아니라 이 회사 창업자인 제프 베저스는 발사체 회수가 가능한 로켓을 개발하며 우주관광시대를 열고 있다. 15억명의 가입자를 둔 페이스북도 광고·마케팅 등 많은 분야에서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정보통신기술(ICI)과 바이오 의약 등 신성장동력 발굴에 힘쓰고 있지만 산업 자체를 바꿀 기술이나 제품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에서 테슬라 같은 기업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혁신 기업을 키울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과 벤처가 독창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도 적기에 투자를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실리콘밸리처럼 혁신 기술의 가치를 알아주고 평가하는 시스템도 미진하다. 테슬라가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면 '모델3' 같은 제품이 나왔겠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부는 '게임 체인저'가 나올 수 있도록 벤처 생태계의 질적 변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도 파괴적 혁신을 통해 성장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저성장 늪에 빠진 경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주요 신문칼럼

1. [뉴시스][리뷰]한효주와 한복패션은 좋다, 영화 '해어화'

우리나라 대중가요는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강점기에 태동했다. 1926년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최초의 대중가요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대중가요의 시대가 열렸다. 기존의 판소리와 잡가 등 전통음악들을 제치고 재즈와 만요, 신민요, 유행가(트로트)와 같은 새로운 장르들이 인기를 모았다. 1936년을 전후로 광복 이전까지 황금기를 누린다.

이때 권번 기생들이 가요를 부르며 대중가요계에 활력을 더했다. 권번은 기생학교로 요즘으로 치면 연예기획사에 해당된다. 1940년대 전후 ‘대정권번’과 ‘한성권번’, ‘한남권번’, ‘조선권번’이 조선을 대표하는 4대 권번으로 이름을 떨쳤다. 

권번에 소속된 기생은 예의범절, 서화, 기조, 창, 가야금, 유행가, 일본 노래 등 가무와 풍류는 물론이고 예능과 교양을 겸비한 교양인으로 대우 받았다. 권번의 기생이 되기 위해서는 정해진 수업 과정을 거쳐 시험에 통과해야 했는데, 실력에 따라 일패(一牌)와 이패(二牌), 삼패(三牌) 기생으로 나뉘었다. 

영화 ‘해어화’(감독 박흥식)는 1943년, 가수를 꿈꾸는 마지막 기생의 숨겨진 이야기다. 뮤지컬 가수 차지연이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당대 인기가수 이난영을 연기했고 한효주와 천우희가 이난영을 동경하는 경성 제일의 대성권번 소속 일패 기생으로 나온다.

권번의 선생 산월(장영남)의 딸인 소율(한효주)은 어릴 적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권번에서 자란 연희(천우희)와 둘도 없는 친구다. 둘 간의 비극은 소율이 어려서부터 사모하던 당대 최고의 작곡가이자 역시 기생의 아들인 윤우(유연석)가 자신의 노래를 부를 가수로 연희를 점찍으면서 시작된다. 

소율을 사랑한 윤우는 처음에는 연희를 자신의 노래를 부를 가수로 생각하나 어느 순간 마음을 뺏긴 자신을 발견한다. 우정과 사랑을 모두 잃은 소율은 이때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그들에게 상처 입히고 자신 역시 변해간다. 

한효주와 천우희가 부르는 노래는 시대 분위기와 겹쳐지며 마음을 울린다. 한효주는 우리나라 전통가곡인 정가를 실제로 불렀다. 청아하면서도 섬세한 목소리가 제법 예인처럼 보인다. 천우희도 민중들의 마음을 울렸던 ‘사의 찬미’와 ‘조선의 마음’을 열창한다. 계속 듣고 싶어지는 노래다. 민족의 한이 느껴지는 ‘아리랑’ 등 유연석의 유려한 피아노 연주도 눈길을 끈다. 스스로도 모르게 대역인지 아닌지 확인하게 되는데, 유연석이 실제로 연주했다.

‘곱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는 각양각색 한복부터 소율의 방에 품격을 더하는 소품 등 화려한 미술과 의상이 볼거리다. 적어도 여자 관객이라면 밑단을 레이스로 처리한 저고리며 파격적 색상을 적용한 치마 등 다양한 디자인의 한복에서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둘도 없는 친구에서 연적이 되는 한효주와 천우희의 연기호홉도 돋보인다. 특히 한효주는 연기력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20대 연기자로 정평이 나있었지만 이번 영화로 100억원에 육박하는 시대극도 이끌수 있는 주역임을 증명해낸다. 새삼 한효주를 다시 보게 된다.

‘해어화’는 큰 범주에서 보면 사랑에 빠진 한 여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여자의 사랑과 질투를 인간의 보편적 욕망과 감정으로 끌어올린다. 그 중심에 한효주가 있다. 유연석의 대사처럼, 복사꽃처럼 순수하고 어여쁘던 소녀부터 춤과 노래로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의 마음을 훔치는 예인, 그리고 친구와 애인의 배신에 180도 달라지는 상처 입은 여인까지 자유자재로 오간다.

다소 유치할 수 있는 장면도 사랑스럽게 풀어내는 한효주는 세 남녀 사이에서 빚어진 비극 이면의 복잡한 감정을 설득력 있게 전한다. 후반부 노인 분장은 다소 허를 찌르나, 마지막 소율을 위한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그녀의 뜨거웠던 열망과 깊은 회한이 느껴진다. 

물론 위태로운 점도 있다. 세 남녀가 빚어내는 비극의 드라마가 예상가능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구태의연한 전개로 스토리에 대한 긴장감이 떨어진다. 호흡도 느린 편이라 속도에 길들여진 젊은 관객들이 고비를 잘 참아낼지 우려된다. 

‘조선의 마음’을 만들어 민중을 위로하고자 한 작곡가 윤우의 야심이 힘없이 무너지면서 그 시대의 아픔을 품어내지 못한 것도 아쉽다. 15세관람가, 13일 개봉.

2. [머니투데이][기자수첩]이건 고쳐야 할 말입니다.

요즘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큰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 속 말투도 유행한다. 바로 ‘~ 말입니다’다. 
군대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다나까’ 말투다. ‘~다’와 ‘~까’로 문장을 끝내야 하는 것인데 의문형 문장의 경우 이중 ‘까’밖에 쓸 수 없을 때도 있고 문장의 제약, 무리한 사용으로 인해 일종의 변형인 ‘~말입니다’가 만들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다나까’ 말투는 왜 쓰는 것일까. 군기를 세우기 위해, 특히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말투 자체로도 정중하고 명확함을 담기 위해 사용토록 한 게 ‘다나까’ 말투의 시작이라고 한다. 즉, 말투부터 기강을 잡는다는 것이다. 

최근 국방부는 ‘다나까’로 말을 맺도록 하는 경직된 병영 언어문화를 개선하고자 ‘새 병영언어 생활지침’을 일선 부대에 내려보냈다. 기계적 말투인 ‘다나까’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막고 어법에 맞지 않는 언어 사용을 초래했다는 게 국방부의 판단이다. 국방부는 ‘다나까’ 원칙을 접고 상황과 어법에 맞게 바꿔 사용하도록 교육할 것을 지시했다. 교육훈련과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선 ‘~다’ ‘~까’ 등 정중한 높임말을 쓰되 생활관에서 편하게 대화하거나 비공식적인 자리에선 ‘~요’로 말을 맺어도 된다. “말씀하시지 말입니다”와 같이 어색한 말투 대신 “말씀하세요”로 쓰면 된다는 것이다.

군대에선 강압적인 상하관계 분위기 개선과 사병간 원활한 소통을 위해 바꾸려는 말투가 드라마의 인기로 일반인들 사이에선 유행처럼 퍼진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국방부는 서열을 강조하는 군대식 높임말인 ‘압존법’ 관행도 바꿔나가기로 했다. ‘압존법’은 아랫사람이 윗사람과 제3자에 관해 말할 때 제3자가 윗사람보다 지위가 낮으면 윗사람 기준에 맞춰 그를 낮춰 부르는 용법이다. 이를테면 군대에선 김 일병이 박 병장에게 이 상병을 이야기할 때 “이 상병님은 안 계십니다”가 아니라 “이 상병은 없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압존법을 경직되게 사용하다보니 신병들은 실수하지 않기 위해 ‘서열’ 외우기에 바쁘다. 

국립국어원은 압존법이 사적 관계에선 써도 좋지만 직장과 사회에선 언어예절에 맞지 않다고 지적해왔다. 국방부도 여론을 의식한 듯 “압존법이 언어예절에 맞지 않다는 것을 장병들에게 교육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군인들의 말투가 한결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질 것 같으나 드라마의 인기로 일반인들은 한동안 어색한 말투를 쓸 것 같다.

3. [동아일보][야마구치의 한국 블로그]"한국의 거리엔 담배꽁초가 너무 많아요"

한국에서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 등 자주 인용되는 속담이나 표어가 있듯 일본에서도 사람 행동을 재촉하는 마법의 문구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그 자리에) 왔을 때보다 깨끗하게 (하고 떠나라!)’라는 표어는 수십 년 동안 일본인을 움직이는 큰 원동력이 돼 있다. 나도 남의 집 화장실에 가면 휴지로 더러운 곳을 닦기도 하고 전봇대, 버스정류장에서 여기저기 광고 전단 등으로 인해 지저분하게 남아 있는 초록색 테이프를 발견하면 열심히 떼기도 한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다지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하다 보면 계속 하게 된다. 머릿속에는 ‘왔을 때보다 깨끗하게’라는 말이 반복해 들린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가 싶을 때도 있지만 깨끗해진 모습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한 번도 자랑한 적이 없는 나만의 비밀이지만, 일본인이라면 아마 누구나 이 문구가 자주 떠오를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 주문이 널리 퍼지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녔을 때 나는 학교 주변을 청소하는 학부모 단체 ‘깔끔이 봉사단’에서 활동했다. 당시 청소하고 있는 내 앞에서 담뱃갑 비닐 껍질을 아무렇지도 않게 길가에 버리고 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등굣길이나 운동장에도 담배꽁초가 수없이 버려져 있었고 골목길에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깨끗하게 치워도 다음에 청소할 때는 똑같은 상태였다. 중학교 방과후 수업으로 일본어를 가르친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줬더니 가게 앞이나 길가에 비닐 껍질을 아무 생각 없이 버렸다. 나는 큰 충격을 받고 “왜 길가에 버리느냐”며 소리쳤다. 중학교 계단에도 과자 껍질이 떨어져 있었고 왜 이렇듯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는가 생각하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당시 장면들이 떠올랐다. 

식당에서 한국인 남편 친구들이랑 식사를 했는데, 그때 주변 테이블에서 수저를 싼 종이를 식당 바닥에 여러 사람이 동시에 버리는 것을 봤다. “왜 바닥에 버리느냐”고 물었더니 “청소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길거리에도 청소하는 사람이 있으니 버려도 되는 건가? 청소하는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해?

한국에선 각 개인의 집은 대체로 깨끗하다. 공간을 넓게 보여주는 깔끔한 구조로 하루에도 두세 번씩 바닥을 물걸레로 닦고 쾌적한 공간을 확보한다. 일본의 집은 여러 가지 물건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고 좁은 공간을 메우고 활용하기 위한 ‘수키마(틈) 가구’라는 것이 등장할 정도로 수납공간이 눈에 보이게 돼 있어 한국처럼 넓고 깔끔한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공공장소에는 쓰레기 하나 볼 수 없다. 우선 아무도 길에다 쓰레기를 안 버린다. 

일본은 흡연하는 여성도 많고 패밀리 레스토랑에도 흡연석이 있을 정도지만 흡연자는 뚜껑이 있는 휴대용 재떨이를 이용해 담뱃재도, 꽁초도 다 본인이 갖고 다닌다. 그래서 길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찾는 게 어렵다.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당시 많은 사람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한국 선수들을 응원했다. 어떤 나라에선 많은 사람이 모이면 차 위에 올라타거나 옷을 벗거나 강에 뛰어 들어가거나 경기에 열중한 나머지 이성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지만 한국은 달랐다.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빨간색 티를 입고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이웃들과 즐겁게 TV를 시청하고, 질서 있게 각자의 쓰레기와 주변 정리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은 집 밖이 아닌 커다란 거실에 이웃사촌들이 사이좋게 앉아 TV를 함께 보면서 조국애를 나누고, 거리를 자신의 집과 마당처럼 애착을 갖고 기꺼이 청소하고 간 것이다.

이제 해외봉사자 배출 수가 일본을 넘어 미국 다음의 세계 2위가 된 대한민국. 부지런하고 정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이 나라. ‘왔을 때보다 깨끗하게’ 길거리도 자신의 집처럼 애착을 갖고 치운다면 ‘깨끗한 화장실 운동’처럼 주변이 못 알아볼 정도로 달라질 것이다. 대한민국의 저력을 다시 보고 싶다.

4. [서울신문][씨줄날줄]열린사회와 퀴어 축제/박홍환 논설 위원

뮤지컬과 영화로 대성공을 거둔 ‘레미제라블’의 삽입곡 ‘레드 앤드 블랙’은 후렴부의 색깔 규정에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빨강-분노한 이들의 피, 검정-지나간 암흑시대/ 빨강-여명을 맞는 세상, 검정-결국 막 내리는 어두운 밤.” 우리 선조들은 청·백·적·흑·황을 이른바 오방(五方)색이라 하여 천지사방과 세상의 중심을 표현했다. 인류는 색깔에 의미를 부여해 희로애락, 만사를 담았다.

가슴 설레게 하는 분홍색과 무지개색에는 슬픈 사연이 숨겨져 있다. 이른바 핑크 트라이앵글과 레인보 깃발은 모두 동성애 인권운동의 상징이다. 분홍색 역삼각형인 핑크 트라이앵글은 원래 나치 독일이 수용소에서 동성애자를 식별하기 위한 코드로 사용했다. ‘저열인간’을 탄압하는 일종의 주홍글씨였던 셈이다.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깔로 표현하지만 동성애 사회의 무지개 깃발에는 남색이 빠져 있다. 1970년대 미국에서 고안된 상징 깃발에는 분홍과 남색이 있었지만 당시 분홍은 상업용 도료가 시판되지 않아 제외했고, 남색은 최초의 동성애 커밍아웃 시의원이 저격당한 것을 계기로 사라졌다. 사라진 남색은 조화(調和)를 상징한다. 동성애를 벽안시하는 사회에 대한 항거로 볼 수 있다.

1969년 6월 28일 새벽 뉴욕 맨해튼의 게이바 스톤월에서 역사적인 동성애 인권운동의 계기가 만들어졌다. 동성애 사회에서는 스톤월 항쟁이라고 말한다. 이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경찰의 단속이 있었지만 동성애자들과 주변 군중들까지 똘똘 뭉쳐 저항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뉴욕에서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동성애자 퍼레이드가 펼쳐졌고, 그 물결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뉴욕의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 또는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프라이드 퍼레이드’, 호주 시드니의 ‘마디그라 퍼레이드’, 브라질 상파울루의 ‘파라다 게이’…. 명칭과 프로그램은 다르지만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떳떳이 세상에 나서는, 그래서 스스로 자긍심을 갖는 축제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부터 ‘퀴어(성소수자) 문화축제’라는 이름으로 매년 열리고 있다.

성 정체성에 관한 한 매우 보수적인 탓에 국내에서는 매년 퀴어축제 때마다 큰 논란이 벌어지곤 한다. 특히 지난해 처음으로 서울광장에서 행사가 진행되자 기독교단체를 중심으로 보수세력이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망사 스타킹 등 참여자들의 복장을 문제 삼기도 했다. 올해도 퀴어 문화축제 조직위는 서울광장 사용 신청을 냈다.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도 수용 의견을 밝혔다. 거리 퍼레이드도 진행될 예정이다. 이들을 마귀에 비유하는 반대 함성 또한 거셀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 성소수자 불용은 또 다른 색깔론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 미성숙하다는 방증이다.


5. [중앙일보][분수대]'할미넴'

금요일 밤, 아무 생각 없이 TV 채널을 돌리다 할머니와 힙합가수가 떼로 등장하는 기묘한 장면과 마주쳤다. 이름하여 ‘힙합의 민족’(JTBC). 나이 여든의 배우 김영옥을 비롯해 평균 나이 65세 할머니들의 힙합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이란다. 아무리 힙합이 대세라지만 허세와 디스(상대를 말로 깎아내리는 것)·욕설 탓에 40대인 나도 때론 거부감이 드는데 이걸 할머니들한테 시킨다고?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채널을 고정했다. 힙합의 ‘힙’자도 모르면서 젊은애들 가르치려 드는 막무가내 할매들 상대하느라 땀 좀 빼는 힙합가수들, 이런 걸로 좀 웃겨 보려는 얄팍한 예능이려니 했다.

그런데 웬걸.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할머니와 힙합가수 둘 다 진지했다. 어느 누구도 예능이라는 방패막 뒤에 숨어 “(어린) 니들이 인생을 알아?”라고 꼰대질하거나 “(늙은) 니들이 힙합을 알아?”라고 디스하지 않았다. 또 적당히 시늉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열심히 도전하고 그런 모습에 진심으로 존경을 표시했다. 과정뿐 아니라 결과도 훌륭했다. 민망한 헛웃음을 기대했다가 기분 좋은 일격을 당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방송이 끝난 후 악플 일색이던 포털과 SNS에 “할미넴(‘할머니’와 미국의 유명 힙합가수 ‘에미넴’을 결합한 말), 멋있다”거나 “저렇게 늙고 싶다”는 반응이 이어진 걸 보면 나처럼 느낀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할머니의 도전뿐 아니라 같이 출연한 힙합가수에게도 냉소적이었던 젊은 힙합 팬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나이를 벼슬처럼 앞세우는 대신 나이와 무관하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또 나이가 아닌 실력으로 상대를 인정하고 배우려는 할머니들의 열린 자세였을 것이다. 힙합 특유의 스웨그(자아도취)는 유지하면서도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 힙합가수 역시 한몫했을 테고.

그러고 보니 지난해 개봉해 "세대 간 화합 영화”라는 평을 받은 ‘인턴’도 그랬다. 간부로 퇴직하고 인턴으로 새 인생을 출발한 늙은 인턴 벤이 나이를 앞세우지 않고 경륜으로 젊은 CEO 줄스와 호흡을 맞추는 걸 보면서 많은 젊은이가 “저런 어른을 갖고 싶다”고 소망했다. 그땐 다들 영화 속 얘기일 뿐이라고 했지만, 할미넴의 도전을 보니 우리에게도 이런 어른이 없으리란 법이 없겠다.

할머니가 랩을 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세대 갈등의 해법을 어렴풋이나마 봤다. 힙합과 할머니. 대척점에 선 이 조합이 이토록 훌륭한 조화를 이뤄낸다면 다른 분야에서도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2016년 4월 4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중앙일보]

1. 북한의 GPS 공격 언제까지 당할 텐가

북한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교란 공격을 나흘째 계속하고 있다. 아직 큰 피해가 없다고는 하지만 GPS가 위치 혼선을 일으키거나 작동이 중지되면 위험천만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자칫 항공기나 어선이 충돌해 커다란 인명피해가 발생하거나 경계를 넘어 월북하는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더구나 북한의 GPS 교란은 여객기나 어선 등 민간 부문까지 무차별적으로 노린 공격이어서 정상국가의 행위로서는 믿어지지 않는 비열한 테러행위이자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북한은 지난달부터 계속되고 있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과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고, 이번GPS 교란 공격도 그런 반감의 표현이 분명하다. 하지만 국제제재는 말할 것도 없고 유례없는 대규모 군사훈련은 모두 북한이 자초한 것이다. 4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 핵탄두 소형화 및 대기권 재진입 기술 확보 주장, 신형 방사포 발사 등 계속 꼬리를 무는 도발에 대한 우리의 당연하고도 필수불가결한 대응이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어떠한 도발도 대한민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단호한 제재 의지에 조금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 경제사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역효과만 낳을 뿐이다. 북한은 누구보다 북한에 재앙이 될 핵 무장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하루라도 빨리 진정성 있는 대화 의지를 피력해야 한다. 그런 북한을 국제사회가, 누구보다 먼저 한국이 두 손을 들어 환영할 것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이번 북한의 교란 공격에 대한 군 당국의 대응 태도는 지극히 실망스럽고 신뢰가 가지 않는다. 북한의 GPS 공격이 시작된 것이 2010년이고 줄곧 교란 범위와 강도가 확대되고 있는데도 우리 군 당국은 군용장비가 항재밍(anti-jamming) 기술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많은 어선이 GPS 이상으로 조업을 중단하는 등 무방비로 당하는 민간 피해는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GPS 공격이 전력망, 금융네트워크, 이동통신망까지 교란할 수 있으며 개인 차원의 국지적 교란 공격 가능성도 있는데 이에 대한 대비책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심대한 피해가 발생하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국방부 성명 역시 결국 소 잃은 뒤에야 외양간을 고치겠다는 허언에 불과하다. 북한의 교란기술이 서울과 수도권에 미쳐 큰 피해를 볼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 아닌가. 하루빨리 북한의 전자전을 무력화하고 응징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해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것이다.

북한의 도발을 강력 규탄해 재발을 방지하고 군 당국에 적절한 대응 수단 확보를 촉구할 의무가 있는 정치권 역시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여야 모두 마음이 온통 총선이라는 콩밭에 가 있어 자기 당의 표만 계산할 뿐 정작 표를 줄 유권자들의 안보 불안을 해소시킬 의지는 조금도 없어 보인다. 고작 대변인 성명으로 북한을 비난하는 시늉만 해서는 결국 유권자들의 싸늘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 카카오의 대기업 지정, 성장판 막는 족쇄 안 돼야

인터넷 기업 카카오가 어제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됐다. 의약품 업체 셀트리온, 닭고기 가공업체 하림과 함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열사 총자산이 5조원을 넘으면 상호출자를 제한하는 기업집단, 곧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한다. 국내 인터넷 기업의 대기업 집단 지정은 카카오가 처음이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성장 신화를 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카카오의 성공에는 승부사 김범수 이사회 의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김 의장은 창업 4년 만에 지금의 카카오를 만든 핵심 서비스 ‘카카오톡’을 출시했다. 카카오스토리, 카카오게임으로 영역을 넓힌 뒤 합병 전략으로 덩치를 키웠다. 2014년엔 국내 포털 2위 다음을 합병했고 이어 록앤롤(김기사)·로엔엔터테인먼트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카카오의 계열사는 지난해 말 현재 모두 45개다. 벤처로 출발해 재벌 반열에 오른 것이니 축하할 만하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대기업 집단 지정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온갖 규제 때문에 성장판이 닫힐 수 있다. 규제 법령만 35개에 달한다. 상호출자는 물론 계열사 간 채무 보증이나 일감 몰아주기도 할 수 없다. 카카오의 경우 당장 하반기 출범 예정인 인터넷 은행 ‘카카오 뱅크’부터 문제가 될 수 있다. 산업자본의 은행업 지배를 금지하는 은산분리 때문에 카카오가 현행법상 대주주가 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기업 규제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야 한다. 지금 글로벌 경제는 온·오프 융·복합이 대세다. 페이스북·알리바바 등 인터넷 기업이 신산업의 주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조업 중심의 낡은 규제론 신산업의 뒷다리를 잡기 십상이다. 업종별·산업별로 대기업 집단 요건을 차별화·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8년째 그대로인 자산 5조원 기준도 검토 대상이다. 자산 상위 기업에 대한 규제 효과는 적은 대신 자산이 적은 기업만 과잉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자산이 5조1000억원이지만 자산 348조원인 삼성과 똑같은 규제를 받게 된다. 재계는 이를 10조원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입장인데 일리가 있다.

3. 취지 좋지만 현실성 의문인 새누리의 임금 공약

새누리당이 3일 최저임금 인상과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 축소 공약을 발표했다. 최저임금을 기업부담만으로 1만원까지 올리겠다고 다짐한 야당에 맞서 이런 공약을 내놓은 듯하다. 하지만 현실성 있는 내용인지는 의문이다.

새누리당의 최저임금 인상안은 현행 6030원인 시급을 4년 안에 최대 9000원까지 올린다는 것이다. 최하층의 소득을 중산층 소득(25~75%) 최저선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는 좋다. 하지만 불황에 고전 중인 영세상인·중소기업의 부담을 해소할 방안은 뭔지 궁금하다. 한국은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근로자 비율(14.6%)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 최저임금을 너무 올리면 감원하겠다는 중소기업이 50%에 달한다는 조사도 있다. 새누리당은 근로장려세제를 활용, 1조6000억원까지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기엔 크게 부족한 액수다. 실질적으로 부담을 경감할 방안부터 분명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임금격차 해소 공약도 마찬가지다.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한 비정규직 임금을 4년 뒤 80%까지 올리겠다는 취지는 좋다. 날로 심화되는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임금격차 완화는 절실하다. 하지만 현행 호봉제를 유지하면서 임금격차를 줄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기업들이 감원이나 채용 중단으로 맞설 게 뻔하기 때문이다. 호봉제를 역할·직무·성과급으로 바꾸고 고용을 유연화하는 한편 임금동결을 대가로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 중단을 유도해야 임금격차 해소의 길이 열릴 것이다.

이런 내용은 정부가 추진해온 노동개혁 5대 법안에도 들어 있었다. 이들 법안은 19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될 운명에 처해 있다. 전체 근로자의 10%에 불과한 대기업 노조의 포로가 돼 발목잡기로 일관한 야당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협상력 부족으로 밀리기만 한 끝에 손을 놓아버린 새누리당의 책임도 작지 않다. 정말 새누리당이 임금격차를 줄이고 싶다면 이제라도 노동개혁 법안 통과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게 우선이다.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내놓은 공약은 공약(空約)에 불과하다.

[이데일리]

4. 트럼프에 엄중 경고한 오바마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주말 워싱턴DC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북핵 등 한반도정책에 무지한 후보가 백악관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최근 ‘주한미군 철수’, ‘한·일 핵무장론’ 등의 잇단 돌출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공화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를 겨냥한 발언이다. 트럼프의 잇단 ‘허튼소리’에 오바마 대통령이 옐로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지적이 아니라도 트럼프의 한반도 인식은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주둔 비용을 늘리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을 ‘안보 무임승차국’이라고 비난하더니 급기야 주한미군 철수까지 거론한 것이다. 그는 특히 “한국과 일본의 독자적 핵무장도 허용할 수 있다”고 했다. 동북아 지역의 핵무기 개발 경쟁을 불러올 수 있는 충격적 발언이다.

문제는 트럼프가 미국 유권자들의 상당한 동조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공화당 주류 세력의 반발이 크다곤 하지만 그는 현재 당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유력 대선후보다.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국가들이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도록 해서 그 돈으로 경제를 살리자는 트럼프의 주장에 공감하는 미국인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의 말을 헛소리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은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미국·중국·일본 정상들의 북핵 불용 의지를 재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을 전면적이고 완전하게 이행할 것”이라는 약속까지 받았다.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북한은 추가 핵실험을 시사하는 등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핵은 여전히 위협요인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언제든 미국에서 트럼프와 같은 주장을 하는 세력이 또 나올 가능성은 크다. 북핵 해결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미국의 대선 향배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트럼프 뿐 아니라 어느 후보에게든 한반도 안보 실상과 우리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미국의 대한(對韓) 외교정책 변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때가 왔다는 얘기다.

5. 경제회복 공약 내놓을 자격이 있는가

여야가 서로 경제활성화를 내걸고 선거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경제가 침체에 빠져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공략 수단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경제정책 수행에 발목을 잡은 야당을 심판해 달라는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 실정을 직시하자며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기존의 성장론이나 분배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틈새를 파고드는 전략이다.

새누리당은 어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를 줄이고 최저임금을 단계적으로 올려 중산층 하위권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노인 기초연금도 빈곤층에 혜택을 집중시킨다는 전략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이에 맞서 20년 만기를 채울 경우 원금의 2배를 돌려주는 재형저축국채 도입과 금융상품 세금혜택을 서민층에 집중하도록 제도를 재정비하겠다는 공약을 추가 발표했다.

각각의 사안마다 국민들의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내놓은 정책일 것이다. 실제로도 그럴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을 왜 평소에는 꺼내놓지 않다가 선거철에 이르러서야 무더기로 쏟아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 19대 국회를 돌아보면 여야는 오히려 민생을 외면한 채 당리당략에만 몰두했다. 그러고도 지금 와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들이 가당치 않다.

선거운동이 이뤄지는 지금도 경제는 계속 수렁으로 빠져드는 양상이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던 수출은 15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으며 내수도 ‘소비 절벽’에 부딪쳐 있다. 창고마다 재고품이 쌓인 탓에 백화점 진열대에서도 ‘바겐 세일’이 일상화돼 버렸다. 시내 점포나 사무실도 문을 닫는 경우가 늘어가는 중이다. 정치권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야 정당이 서로 한 표를 호소하며 전국 지역구를 누비고 있는데도 민심이 싸늘하게 식은 채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지금도 경제를 살리겠다며 온갖 공약을 제시하고 있지만 선거가 끝나면서 금방 휴지조각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여야의 약속에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선거용으로 꺼내든 공약만으로는 부족하다. 먼저 무릎을 꿇고 진정으로 사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서울신문]

6. 한·일 군사교류와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별개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곳곳에 봄을 알리는 벚꽃이 한창이지만 엄동설한에 벚꽃은 어불성설이다. 때를 못 읽고 개화(開花)를 서둘렀다간 얼어 죽기 십상이다. 국제관계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의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을 지나치게 서두르는 듯한 인상이다. 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도 양국이 북한의 핵 위협 억제를 위해 우리 측에 조기체결을 강력히 요구했다고 한다. 우리 측은 “(협정을 위해선)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며 신중론을 밝혔다니 옳은 대응이라고 본다.

일본은 2012년 협정 체결이 무산된 이후 줄곧 재추진을 강력하게 희망해 왔다. 북한 리스크가 점점 커지는데다 갈수록 보폭을 넓히는 중국의 군사적 행보를 감안하면 한·일 양국 간 정보교류의 확대를 더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중재를 크게 기대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위해 기존의 한·미, 미·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이어 한·일 간에도 조속히 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2월 초 대북 워게임에서 미국이 한·일 군사 당국자들을 같은 편으로 편성하는 등 미국의 조기 체결을 위한 분위기 조성도 활발한 듯하다.

우리도 점증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관련 정보의 수집 및 교류에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 2014년 12월 한·미·일 3국 간 정보공유약정을 맺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정보를 미국을 매개로 양국이 상호 공유하고는 있지만 즉응성(卽應性) 측면에서는 다소 미흡한 것도 사실이다. 언젠가는 양국 간 직접 정보교류의 확대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GSOMIA는 국가 간에 군사기밀을 공유할 수 있도록 맺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해결돼야 할 과제들이 많다. 핫라인 개설이나 합동군사훈련 등의 군사교류와는 차원이 다르다.

신(新)안보법 발효로 일본은 이제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됐다. 자국 내에서도 군국주의 회귀 비난이 거세다. 게다가 아베 신조 총리는 여전히 자기 육성으로는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 일본과 군사기밀을 공유한다는 것에 많은 우리 국민들이 부정적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4년 전 이명박 정부가 사회적 공감대 없이 밀실 추진하다 낭패를 본 까닭이다. 일본의 군사정보는 우리에게 필수적이고 한·미·일 3각 안보협력도 중요하지만 대중관계 등 고려해야 할 외교적 요소도 만만치 않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신중해야 한다.

[매일경제]

7. 국회, 인터넷은행 막지 말고 `銀産분리 완화`에 답해라

카카오뱅크와 K뱅크가 지난해 11월 국내 첫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예비인가를 받은 지 꼬박 넉 달이 흘렀다. 연내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의 인터넷은행 지분제한 완화 규정을 담은 '은산분리 완화' 은행법 개정안이 여야 간 이견으로 국회에 계류돼 있어 난항을 겪고 있다. 

인터넷기업협회는 지난 1일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3곳에 인터넷은행의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다. 한국핀테크포럼, 클라우드산업협회 등도 성명서를 내고 낡은 규제를 없애라고 촉구했다. 인터넷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이 은행의 의결권 있는 지분을 기존 4%에서 5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다. 현행 은행법상 산업자본은 당국 승인 시 은행 지분을 10%까지 보유할 수 있지만 4% 초과 지분은 의결권을 포기해야 한다.

'은산분리 완화'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ICT 기업들은 주도권을 행사하기 힘들어진다. 카카오와 KT의 지분율은 각각 10%(의결권 4%), 8%(의결권 4%)이고 나머지 지분은 금융회사가 나눠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카카오뱅크는 한국투자금융지주 50%, K뱅크는 우리은행, 한화생명 등이 10%씩 보유한 1대주주다. 은행법이 개정돼야 증자 등을 통해 카카오와 KT가 책임경영을 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으면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4·13 총선 등을 고려할 때 연내 출범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인터넷은행을 도입한 나라들은 이미 은산분리 규제를 풀었다. 유럽은 은산분리 규제가 아예 없고, 일본은 인터넷은행에 한해 5% 지분제한을 풀었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도 알리바바, 텐센트 등 IT 기업들이 핀테크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은 재벌의 사금고화 등을 우려하며 은산분리를 고집하고 있다. KT뿐 아니라 카카오도 최근 대기업집단에 진입해 야당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인터넷은행 진입에 있어 한국은 지각생인데 세계 흐름에 역행하는 규제 때문에 또 지연돼서는 안 된다. 이러다가는 글로벌 핀테크 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말것이다. 과거에도 총선 이후 임시국회가 소집된 전례가 있는 만큼 19대 국회는 총선 이후에라도 '은산분리 완화'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8. 39년 만에 최저인 기업 투자 살릴 묘책 필요하다

정부가 투자와 소비 활성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지만 기업 투자와 민간 소비는 최악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해 걱정이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고정자본형성 비중은 29.1%로 1976년 26.4% 이후 39년 만에 가장 낮았다. 총고정자본형성은 기업이 생산능력을 유지하거나 신규 사업에 투자한 자금에 따라 결정된다. 이 비중은 2008년 이후 계속 하락했는데 기업들이 신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면서 추세를 바꾸지 못한 것이다. 

기업 투자는 올해 들어서도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2월 설비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5% 줄었다. 기업 투자가 부진하다 보니 일자리와 가계소득도 줄어 지난해 GDP 대비 민간 소비 비중은 49.5%로 떨어졌다. 2012년 이후 3년 연속 하락하며 199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투자와 소비가 저조하면 실업률도 증가하게 마련이다. 지난 2월 전체 실업률이 4.9%로 2010년 이후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청년실업률은 12.5%로 통계치 작성 이후 가장 높았는데, 투자와 소비가 늘지 못한 것이 결정적 이유다. 

투자가 부진한 것이 기업 탓만은 아니다. 세계 경제 침체로 전자·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전 분야에 걸쳐 수요가 크게 감소한 것이 기업 투자를 막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다. 글로벌 경기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에 나서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 소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줄지 않고 있고, 고령화와 일자리 감소로 소득도 줄어들 테니 소비 증대를 기대하기 힘들다. 

기업 투자와 소비를 살리지 못하면 경제는 성장할 수 없다. 다행히 최근 유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자동차·스마트폰·철강 제품 등의 판매가 늘면서 산업생산과 체감경기가 좋아지고 있으니 이를 계기로 투자와 소비의 물꼬를 터야 한다. 

정부는 투자를 막고 있는 각종 규제를 과감하게 풀고 미래 성장동력 중심으로 산업 체질을 개선하는 등 경제 성장률을 장기적으로 높일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기업들도 기업가정신을 되살려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과 투자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9. 선관위, 유권해석 번복 등 잇단 헛발질 왜 이러나

20대 총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선거관리위원회가 연달아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3당 후보가 모두 단일화하지 않으면 이번 총선에서 '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을 쓸 수 없도록 2일 의결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창원 성산구와 인천 지역에서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자 선관위 유권해석을 받아 유세차량이나 벽보·명함에 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을 써왔다. 선관위 유권해석은 '제2 야당을 빼놓고 어떻게 야권단일후보가 될 수 있느냐'는 반발에 봉착했다. 국민의당 후보가 제기한 '인쇄물 철거·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1일 인천지방법원이 받아들이자 선관위도 부랴부랴 유권해석을 번복했고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노회찬 정의당 후보는 창원시 성산구선관위의 지난달 22일 유권해석을 토대로 '야권단일후보'라고 표시해온 현수막·벽보·명함을 모두 바꿔야 한다. 허위사실 공포라며 상대 후보가 검찰에 고발한 탓에 법적다툼도 벌여야 할 판이다. 

이번 총선에서 선관위는 투표지 사전 인쇄와 투표 독려 영상을 놓고도 논란을 빚었다. 투표용지는 공직선거관리규칙에 따라 후보자 등록 마감 9일 후인 4일부터 인쇄한다. 그런데 서울 구로, 경기 남양주 등에서 미리 인쇄하자 더민주가 '야권후보 단일화를 반영하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인쇄시설이 부족할 때에는 시·군·구 선관위가 인쇄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구로·남양주 투표용지를 사전 인쇄한다는 사실은 3월 24일 후보 등록 이전에 결정돼 이미 후보들에게도 통보된 사안이니 야당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 그럼에도 오래전에 예정된 총선을 놓고 인쇄시설 부족을 핑계 삼은 선관위는 행정편의주의나 준비 부족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선관위가 '알아들으면 최소 음란마귀'라는 제목으로 공개한 1분18초짜리 투표 독려 영상도 성관계를 연상시키는 선정적인 내용으로 논란을 빚자 열흘 만에 영상을 삭제하기도 했다. 

선관위는 총선에서 불법 행위를 엄단하겠다며 서슬이 퍼렇다. 그런데 정작 그들 자신은 유권자와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 스스로 야기한 혼란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도 지켜보게 된다.

[세계일보]

10. 정치혐오 부추기는 막말 정치인 심판해야

야당 반국가세력 낙인 대통령을 저격 대상 갈등 조장하는 구태
4·13총선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네거티브 선거전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제·안보정책 공약이나 인물 경쟁보다는 상대 당,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막말 공세로 유권자를 현혹하고 있다. 특정 정당의 우세를 가늠하기 힘든 접전지역이 적잖아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이런 구태 양상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주말 유세전에서 야당의 테러방지법 처리 반대를 위한 국회 본회의 무제한 토론에 대해 “12시간씩 발언하기 위해 아기들이 차는 기저귀를 차고 연설했다고 하니, 국정 발목을 잡는 반국가세력에게 우리나라 미래를 맡겨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개성공단 정상화 공약을 비판하며 “1년에 1억달러가 김정은에 가고, 그 돈으로 핵폭탄 만드는 걸 도와주는 그런 매국적인 정당은 이 땅에서 없어져야 한다”고도 했다. 아무리 선거판이라 해도 국정 파트너인 제1야당을 ‘반국가세력’ ‘매국 정당’으로 모는 건 집권 여당 대표로서 저급한 행태다. 

일여다야 구도로 치러지는 지역이 많다 보니 야권 후보단일화를 둘러싼 공방은 갈수록 치열하다. 새누리당 김 대표는 “운동권 세력이 발톱을 감추는 주특기”라고 일갈했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서로 “분열 획책세력” “낡은 기득권 정치세력”이라며 험담을 퍼붓는다. 호남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두 야당의 패권 다툼은 더민주 김종인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 간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졌다. 

광주 광산을에 국민의당으로 출마한 권은희 의원은 군복을 입고 총을 든 사진에 ‘박근혜 잡을 저격수, 권은희지 말입니다. 다음은 국보위 너다!’라는 문구를 담은 포스터를 그제 SNS에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삭제했다. 요즘 뜨고 있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패러디했다고 하나 대통령과 김종인 대표를 ‘저격 대상’으로 삼은 내용은 비난을 살 만하다. 더민주 주진형 국민경제상황실 대변인은 지난달 말 새누리당 강봉균 선대위원장을 “집에 앉은 노인”이라고 막말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의뢰로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조사한 설문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82.4%가 남남갈등 문제를 심각한 문제로 평가했고, 57.6%가 그 원인으로 ‘(정치인들이) 남남갈등을 정치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선거 때마다 이념갈등, 세대갈등, 지역갈등을 부추기니 정치혐오, 불신이 클 수밖에 없다. 자극적인 막말을 일삼고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인은 유권자 선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사랑과 우정이 부딪칠 때…평시엔 남편(모리스), 여름엔 남편친구(로제티)와 보낸 제인요즘 재개봉된 영화 ‘쥴 앤 짐(프랑수아 트뤼포 감독, 1961년)’은 세 남녀 사이의 기묘한 사랑을 그린, 영화사의 빛나는 걸작이다. 한 여자가 절친인 두 남자와 모두 관계를 맺는다. 중요한 건, 그렇다고 두 친구(둘 다 글을 쓰는 작가다)의 우정이 완전히 끝장나지는 않고 지속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첫 남편인 쥴은 아내의 불륜을 묵묵히 참아낸다. 진정 그녀 곁에 남아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한 여자를 두 남자가 공유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남자가 두 여자를 거느렸던 일이야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풍습이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더 멀리 원시 모계사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 한 여자를 사랑한 예술가 남자들은 어떻게 사랑과 우정 사이를 조절했을까?

2009년 영국의 BBC에서 ‘Desperate Romantics’라는 드라마가 상영됐다. 19세기 빅토리아왕조 시대에 라파엘전파(르네상스 대표 화가인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화풍을 비판하고 자연을 섬세히 관찰해서 표현한 초기 르네상스와 중세 고딕시대 미술로 돌아가자는 주장) 작가들의 예술과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라파엘전파 집단의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와 윌리엄 모리스는 절친한 친구였다. 두 사람은 한 여자를 사랑했다. 제인 모리스. 1839년 마부의 딸로 태어나 극도의 빈곤 속에 성장한 그녀는 17세 때 우연히 라파엘전파의 화가들 눈에 띄어 모델 요청을 받는다. 특히 유복한 가문 자제로 옥스퍼드대 출신의 모리스는 제인을 스케치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그녀의 서늘한 침묵과 생각에 잠긴 아름다움에 매료된 것. 제인은 디자이너, 공예가, 시인, 사회주의 개혁가였던 모리스와 약혼한 뒤 상류층 부인이 되기 위한 교양과 매너 수업에 매진한다. 감각이 뛰어나 금세 귀부인의 자질을 갖추게 된 그녀는 남편이 운영하던 공예장식 사업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2.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드보르작 ‘첼로협주곡’…비장함·향수 담은 한편의 드라마

연주자를 만나다 보면 이들이 언제부터 음악의 길을 가려 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카운터테너 이희상과 쳄발리스트 김희정 역시 남다른 이유가 있다. 

학교 다닐 때 중창단 반주를 했던 이희상은 원래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세계 3대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을 만나면서 진로를 바꿨다. 21살의 늦은 나이에 카운터테너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희상은 음악계에서 유명한 카운터테너로 자리 잡았다. 김희정도 비슷한 사연이 있다.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바흐 음악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그러다 바흐 시대 건반이었던 쳄발로를 접하면서 쳄발리스트의 길로 들어섰다. 

동유럽 조그만 나라 체코의 작곡가였던 드보르작(Antonin Dvorak, 1841~1904년)도 인생의 전환점이 있었다. 바로 신대륙, 아메리카로부터의 초청이었다. 그것도 미국국립음악원장의 자격으로. 

말로만 듣던 신대륙, 새로운 개척의 땅 아메리카에서의 시간은 드보르작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그는 그곳에서 최대 걸작 교향곡 9번 ‘신세계’를 비롯해 현악사중주 ‘아메리카’, 피아노 삼중주 ‘둠키(Dumky)’, 첼로협주곡 b단조(Cello Concerto in bminor Op.104)를 남겼다. 

그중 드보르작의 첼로협주곡 b단조는 특히 첼리스트에게 있어서 신성시되는 곡으로 불린다. 이 곡이 없었더라면 첼로는 솔리스트가 되기 어려웠을 거라고 첼리스트들은 입을 모은다. 

b단조는 드보르작이 53세가 되던 해에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해 여름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열린 음악회에 참석했던 드보르작은 빅터 허버트(Victor Herbert)라는 작곡가의 첼로협주곡 2번을 들으면서 대단히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드보르작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드문 편성인 세 대의 트롬본을 사용한 점을 주목했다. 드보르작은 자신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 될 첼로협주곡을 쓰기 시작했다. 드보르작은 첼로협주곡에 자신의 모든 경험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아메리칸 문화와 체코 슬라브 문화가 어우러진, ‘드보르작’만이 가능한 독자적인 스타일의 작품이 탄생했다. 마치 교향곡 ‘신세계’가 연상되는 듯 강렬함 속에 격정적인 첼로의 어우러짐이 인상적인 1악장. 도저히 딴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게 되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2악장에서는 남다른 선율미가 느껴지는데 드보르작의 첫사랑의 채취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첼로협주곡엔 뉴욕에 체류하던 드보르작의 향수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항구에서 증기기관선을 보거나 센트럴파크의 비둘기와 함께하는 것으로 그리움을 달랬다고. 그 애틋함을 달랬던 곳이 체코인들이 많이 모여 살던 아이오와주 북동부에 있던 스필빌이었다. 그곳에서 고국의 기운을 어느 정도 채운 뒤 돌아오는 길에 만난 나이아가라 폭포의 장관 또한 그의 가슴을 크게 흔들어놨다. 20세기 첼로의 거장 카잘스는 이 곡을 영웅의 생애를 담은 한 편의 드라마라고 했다. 여기서 영웅이 드보르작인지, 또는 사랑의 추억인지 한 가지로 꼬집어 말하긴 어렵다. 다만, 새로운 시대를 연 작곡가의 혼이 느껴지는 곡임은 분명하다.

3. [머니투데이]매주 월요일 아침, 당신 상사로부터 편지를 받는 다면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 이메일 박스를 열었을 때, 당신의 '보스'로부터 동보 메일이 와있다면? 

인사고과를 책임지는 사람이니 그의 생각을 읽는 게 중요할 수 있고 업무 지침이 포함돼있을 수도 있으니 꼼꼼하게 읽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참 기운도 좋아." 하며 속으로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이 보스는 뭔가 다르다. 특별한 사정(집안 상이나 휴가 등)이 아니면 빠트리지 않고 7년간 편지를 꾸준히 보낸 정성도 그렇지만 내용 측면에서 더 그렇다. 

"다 아시다시피 점심 때마다 한분씩 초대하여 점심 식사를 같이 하고, 회사 캠퍼스를 산책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략) 개인의 적성을 상세하게 파악하여 적합한 부서에 잘 배치시키기 위함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이러한 산책이 당사자에게는 평생의 추억이 될 수도 있겠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중략) 그 짧은 시간이 한 사람이 미래를 설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중략) 가능한한 편안하게 점심 산책 면담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만남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는 제목의 편지는 '인맥의 정의'로 이어진다. 그가 생각하는 인맥은 '자연스러운 좋은 만남을 통해서 만들어진 삶의 추억의 합'이다. 자신과 점심이 직원에게 좋은 추억이 되길, 그래서 좋은 인맥을 맺는 관계로 이어지길 바라는 소원과 더불어 즐거움이 있는 좋은 만남을 만들어 좋은 인맥을 구축하는 한 주를 시작하라는 덕담으로 마무리된다.

주인공은 김정한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벤처경영학과 객원교수다. 김 교수는 학교로 옮겨가기 전까지 삼성전자에서 소프트웨어연구소장(전무)을 맡아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개발을 이끌었다.

'프롬 유어 보스'는 그가 10년 근무 중 7년을 직원들에게 보낸 월요편지를 엮어 만든 책이다. 책에 담긴 그의 편지를 읽으면 '그가 공학도인가' 싶다. 직원들의 인문학적 소양 함양에 기울인 그에 노력과 사유의 깊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은 시와 명언을 인용해 '사유'를 이끌어내지만, 어렵거나 실수했던, 즐거웠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다.

'단점을 즐깁시다'라는 편지에서는 단점을 극복하려는 노력보다는, 단점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를 권한다. 단점이 있음을 아는 것이야말로 발전할 수 있는 축복의 기회라는 것. 물론 자신의 단점을 공개하고 그것 때문에 고민했던 경험을 토대로 한다.

"파도가 섬의 옆구기를/ 자꾸 때려친 흔적이/ 절벽으로 남았는데/ 그것을 절경이라고 말한다./ 거기에 풍란이 꽃을 피우고/ 괭이 갈매기가 새끼를 기른다./ 사람마다의 옆구리께엔 절벽이 있다/ 파도가 할퀴고 간/ 상처의 흔ㅇ적이 가파를수록/ 풍란 매운 향기가 난다./ 너와 내가 섬이다/ 아득한 거리에서 상처의/ 향기로 서로를 부르는" - '섬' 전문, 복효근 

복효근 시인의 '섬'을 인용한 이 편지의 제목은 '내면의 절경'이다. 그는 각자 내면에 아름다운 절경을 만드는 일이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용기를 갖고 견디는 힘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내면의 절경이 만들어진 사람이야말로 '아름다운 사람' 혹은 '아름다운 청년'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묻는다. 어떤 절경을 만들고 싶냐고.

개인적 삶에 대한 사유와 사회인으로서 삶에 대한 사유로 재구성한 편지에 대해 삼성전자의 임원은 그를 "공감하는 동반자"로 칭했다. 신입사원으로 만나 대리가 된 직원은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그의) 접근법"을 추억하며 감사를 나타냈다. 

그가 미국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통해 깨달은 극복방법을 보자. 그는 어려움을 이겨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는 사고'였다고 회고한다. 흔히 사람들은 비움을 말할 때 욕심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는 염려와 두려움도 포함된다고 강조한다. 결국 비움의 사고로부터 배운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법'.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아프지만, 그 아픔이야말로 아름다운 미래를 안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편지에 가장 많이 쓴 단어 '생각'은 '현장'과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의 편지를 그저 '교과서적인' 말로 치부하지 않고 모두가 귀담아 들은 이유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하는 제언 6가지 

1. 어려움의 본질을 분해하기 바랍니다,
2. 그러기 위해서 현실을 직시하기 바랍니다.
3. 현실을 직시하는 방법은 자기 합리화의 역과정이랍니다.
4. 그리고 그 역과정을 만드는 태도는 자신에게 엄격함이랍니다.
5. 구체적이 역과정의 방법은 본질에 대한 질문이랍니다.
6. 본질에 대한 접근은 아프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여러분의 아름다운 미래를 잉태하고 있답니다.

4. [한국일보][편집국에서]한국이 중국보다 좋은 이유

4년 간의 베이징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한 달여 전 귀국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은 한국과 중국 중 어디가 더 좋으냐고 묻곤 한다. 답은 ‘한국이 100배는 더 좋다’다.

먼저 우리나라는 공기가 맑다.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내린 순간 “와, 어쩜 이렇게 깨끗하지?”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희미해진 눈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마치 흑백TV를 보다 초고선명 TV로 바꾼 것 같았다. 베이징에서는 환기를 시키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아침에 출근해 창문부터 연다. 한 선배가 “제정신이야? 오늘 미세먼지가 얼만데”라며 핀잔을 주지만 “베이징에 비하면 이 정도는 정말 좋은 편이에요, 앞 건물도 보이잖아요”라며 웃는다. 손을 마주 잡은 연인의 얼굴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스모그에 시달리는 중국에 비하면 서울은 청정지역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서울 한복판엔 한강이 흐르고 남산도 있다. 베이징 도심엔 강도 없고 산도 없다. 서울은 골목길까지도 모두 관광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다. 중국 관광객들에게 서울은 아름다운 도시일 수밖에 없다. 

음식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중국에선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지 않다. 여전히 하수구 기름이 유통되고 있고, 길거리 음식은 무슨 고기와 재료를 썼는지 확인할 수 없다. 공업용 원료로 쓰이는 멜라민을 넣은 우유와 분유에 대한 충격도 아직 가시지 않았다. 중국인이 해외 관광 때 분유를 싹쓸이하는 이유다. 중국인도 안 먹는 우유를 세 딸에게 먹일 순 없어 베이징에서는 수입 한국 우유를 5,000원 이상 주고 사 먹어야 했다. 그러나 한국에선 더 맛있고 고소하며 신선한 우유를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우유뿐 아니라 한국엔 정말 아무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산해진미가 넘쳐난다. 

길을 건널 때 긴장할 필요도 없다. 중국 생활에서 가장 어렵고 적응이 안 되는 게 길 건너기였다. 중국에선 사람보다 차가 우선이다. 사람은 차량의 흐름을 방해해선 안 된다고 법으로 돼 있다. 차량들은 사거리에서 언제든지 우회전을 할 수 있다. 횡단보도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왔다 하더라도 길을 건너려면 고개를 열심히 좌우로 돌리며 차량들을 살펴야만 한다. 더구나 맞은편에서도 비보호 좌회전 차량이 횡단보도 안으로 덮쳐 올 때가 많다. 이런 상황이니 파란 신호등일 때도 길을 건너지 못하는 경우가 적잖다. 신호등을 보고 건너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무리 지어 건너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널 때마다 식은땀을 흘려야만 했다. 그러나 한국은 횡단보도 신호등에 파란불만 들어오면 차량들을 신경 쓸 필요 없이 안심하고 길을 건널 수 있다. 교통 질서 천국이다. 

중국 생활은 평소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얼마나 감사해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새삼 깨닫게 해 줬다. 이러한 것들의 예는 끝도 없다. 그 가운데 선거도 빼 놓을 수 없다. 중국의 최고지도자를 뽑는 건 14억명의 중국 인민들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이다. 야당도 없다. 반면 우리는 선거를 통해서 국민들을 위해 일할 대통령을 뽑고 투표로 집권당을 교체할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이다. 한 번 지지한 정당이 일을 잘 하면 격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을 받들어야 할 지도자가 소통조차 안 하고, 살림살이는 갈수록 더 팍팍해지면서, 가장 활력이 넘쳐야 할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좌절할 수밖에 없다면 선거와 투표로 심판하면 된다. 중국은 이런 게 불가능하다.

공기가 없어야 비로소 공기의 소중함을 알 듯 민주주의가 없는 곳에 갔다 오며 정치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곧 총선이다. 중국인은 행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소중한 한 표를 자랑스럽게 행사해 볼 생각이다.

5.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먼 것은 

조선 선조 때의 명재상 유성룡이 숲 속에 정자를 지었는데 이름을 ‘원지정사’라고 하였습니다. ‘원지’(遠志)는 원래 심기를 맑게 해 주는 약초 이름인데, 뜻이 확대되어 ‘마음을 다스린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유성룡은 심기가 불편할 때 이 약초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마침 정자 뒷산에도 이 약초가 많이 있어 정자의 이름으로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글자대로의 풀이인 ‘먼 것에 대한 지향’이라는 의미도 함께 부여하였습니다.

‘먼 것’에 대해서는 매우 복잡하게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가까운 것이 쌓인 것이다’라고만 말하였습니다. 몇 자 안 되는 간단한 말이지만 먼 것에 도달하는 방법까지도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상하 사방의 가없는 공간이나 옛날로부터 흘러온 아득한 시간은 멀고도 먼 것이지만, 이것들은 모두 눈앞의 가까운 것들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 내딛는 한 발짝은 지극히 사소하고 작아 보이지만 이것이 쌓인다면 결국 언젠가는 보이지 않는 먼 곳까지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시작이 없는 결과는 없으며, 또 과정이 없는 결과도 없습니다. 시작은 언제나 미미해 보이고 과정은 언제나 고달프지만 그러한 시작과 과정이 없다면 성취도 없을 것입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이 말을 무척 많이 들어왔기에 감동이 아니라 오히려 식상함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공을 초월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참으로 소중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곳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하고, 다음 시간이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시간이 지나가야 합니다. 먼 훗날의 모습이 어떠할지는 지금 이 순간, 이 자리가 결정해 줄 것입니다.

■유성룡(柳成龍·1542~1607)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 본관은 풍산. 임진왜란 때 병조 판서와 영의정을 역임하면서 슬기롭게 국난을 극복하였다. 도학과 문장에도 이름이 높았고, ‘징비록’, ‘상례고증’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문집으로 ‘서애집’이 있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2016년 4월 1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과연 뒷골목 성매매는 근절됐는가

착취나 강요를 당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성을 판매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한 성매매특별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가 어제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9명의 재판관 가운데 3명이 위헌 의견을 냈을 만큼 앞으로도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간통제 폐지 결정에 이어 이번에도 미리부터 상당한 관심을 불러모은 것이 사실이다.

이번 헌재의 합헌 결정에는 건전한 성풍속 및 성도덕을 우선시하려는 의지가 뒷받침되고 있다. 공익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 판매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성매매 공급이 더욱 확대될 수 있는데다 성 판매자가 불법적 조건을 내세워 상대방에게 성매매를 유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헌재의 판단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동시에 우리 구성원들에게 또 다른 과제를 부여했다. 여성 성판매자들이 절박한 생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건전한 사회 풍토를 위해 성매매를 단속해야 한다면 그들의 생계 대책도 당연히 사회가 부담해야 할 몫이다. 먹고 사는 문제만큼 절실한 기본권이 어디 있겠는가. 성매매를 단속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개인의 내밀한 성생활 영역까지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원론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특히 지체장애인이나 독거 남성 등의 경우에는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막혀 버리게 되는 셈이다. 당사자들이 사회적으로 드러내놓고 처지를 얘기하기가 껄끄러워서 뿐이지 이에 대한 주장이 적지 않다는 사실도 분명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당국의 꾸준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성매매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더욱 심각하다. 유흥가 뒷골목에서는 온갖 변태적인 방법으로 여전히 성매매가 이뤄지는 게 숨김없는 현실이다. 단속의 눈길을 피하려고 주택가나 아파트까지 위장 성매매 업소가 침투해 있으며,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서도 노골적인 성매매 유혹이 이뤄진다. 직장인들은 물론 의사, 변호사들도 고객 명단에 오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결정은 새로운 논의의 출발점일 뿐이다.

2. 외제차업계 다시는 '갑질' 못하게 해야

결국 외제차 고객들이 뿔을 내고 말았다. 아우디와 BMW 소유주 3명이 개별소비세 환급을 거부한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와 BMW코리아 등을 상대로 부당이익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대행하는 법무법인 바른은 개소세 환급을 거부한 다른 외제차 구매자들도 모아서 집단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올 1월에 외제차를 구입한 1만명 안팎의 고객들이 모두 참여한다면 소송가액은 수백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늘 앉아서 당하기만 하던 국내 소비자들이 외제차업계에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부는 지난달 내수 진작을 위해 작년 하반기에 한시적으로 5%에서 3.5%로 내렸던 개소세율을 승용차에 한해 올 상반기까지 연장 적용하기로 하고 올 1월에 환원된 세율로 구매한 고객에겐 혜택을 소급해 주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대, 기아, 쌍용 등 국내 회사들은 해당 구매자들에게 개소세 인하분을 진작 반환했으나 외제차업체들은 고객들의 환급 요구를 거부했다.

외제차업계가 정부로부터 반환받은 개소세 인하분을 소비자들에게 돌려주지 않는 것은 일종의 부당이득 편취 행위다. 이달 초 한국자동차소비자연맹이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BMW코리아, 포드코리아, 아우디코리아, 닛산코리아, 랜드로버코리아 등 6개 업체를 사기 혐의로 고발함에 따라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실태 파악에 나선 것도 그래서다.

세율 인하를 미리 반영했다는 외제차업계의 변명은 군색하기 짝이 없다. 그런 내용을 사전에 명시하지 않았다면 기존의 판촉 전략에 따른 판매로 봐야 한다.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못하는 것도 속으로 켕기는 게 있다는 증거다. 논란이 커지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방침을 바꿔 개소세를 환급하기로 한 것만 봐도 업계의 주장은 설득력이 거의 없어 보인다.

결국 국내 소비자들을 만만한 ‘호갱’으로 보고 배짱을 부린 것으로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지난해 BMW와 아우디 등의 연비조작 사건 당시 미국과 유럽에선 손해배상을 해주면서도 국내에서는 어물쩍 넘어간 것이 좋은 사례다. 외제차업계가 다시는 갑질을 하지 못하도록 소비자들이 이번에 단단히 혼쭐을 내야 한다.

[동아일보]

3. 北, “핵 포기까지 제재” 한미일 정상의 경고 새겨들으라

4차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현지 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對北) 제재 결의 2270호의 충실한 이행과 대북 압박 강화에 합의했다. 이어 열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한미일 정상회의에선 유엔 결의안의 빈틈을 메워줄 3국의 독자적 대북 제재 조치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 논의됐다. 박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한중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 비핵화 실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국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한미일 정상들은 전화로 대응책을 논의했으나 직접 만나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전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북한 김정은이 지난달 ‘핵탄두 폭발시험’을 준비하라고 지시하는 등 5차 핵실험 가능성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한미 정상이 연합방위 태세를 재확인한 것을 북한은 엄중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 위협에 한미일 3국이 빈틈없이 대처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연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요청한 것을 정부는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 시절 이 협정 체결을 추진했으나 국무회의에 졸속 상정했다는 논란이 일자 취소했다. 현재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이 체결돼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미흡하다. 한일 양국에 과거사 문제의 현안이 있지만 안보협력과 과거사는 구분해서 대응해야 한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유엔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국경 경비대가 200달러 정도의 뇌물만 받으면 북한으로 들어가는 물품을 아무 제지 없이 통과시키고 있다고 폭로했다. 중국이 유엔 제재를 찬성했음에도 북에 뒷문을 열어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한중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주한미군 배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협상 병행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회동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도록 한국은 전략적 외교를 해내야 한다. 

1일 핵안보정상회의에서도 북핵 문제는 집중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이 상황을 오판하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다시 한 번 단호한 대북 제재 이행을 다짐해야 할 것이다.

4. '청년드림'으로 해외 일자리 개척, 한국의 영토 키운다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던 기마민족의 DNA를 지닌 한국인의 핏속에는 유목민의 이주 본능이 흐른다. ‘헬조선’ ‘N포세대’라는 분노의 언어가 들끓는 시대, 눈을 지구촌으로 돌려 세계 곳곳의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유목민의 본능을 깨워 보자. 청년 시절 ‘유목민의 땅’ 몽골에 진출해 사업을 시작한 박민규(36) 권영주(37) 이성민 씨(41)는 “젊을 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과감하게 개척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첨단 전자기기를 들고 전 세계를 상대로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유목민)’의 세상이 활짝 열렸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 미래학자 군둘라 엥리슈가 “일자리를 찾아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는 ‘잡 노마드’가 21세기 인류의 모습”이라고 했던 예견이 들어맞고 있다. 한반도라는 좁은 우물 안을 박차고 나가 자신과 제품을 끊임없이 혁신하며 바꾸는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에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길이다. 

총선에 길 잃은 노동개혁, 청년대책들

일제강점기인 1920년 4월 1일 민족의 표현 기관임을 자임하며 태어난 동아일보가 오늘 창간 96주년을 맞았다. 동아일보가 청년드림센터를 중심으로 3년 반 동안 추진한 청년 일자리창출운동은 1931년 농촌계몽으로 학생들을 사회 중추세력으로 이끈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운동’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청년 계몽, 청년 고용으로 국권 상실이나 경제 위기의 엄혹한 현실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는 것은 1920년 4월 1일 이후 96년간 변함없는 동아일보의 창간 정신이자 국가의 핵심 과제였다.

2016년 한국의 청년 실업 문제는 정부 정책만으로는 넘기 힘든 철벽이다. 12.5% 사상 최고로 치솟은 청년실업률은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10.8%)을 넘어섰다. ‘잃어버린 20년’을 지낸 일본(5.0%)의 2.5배 수준이다. 더구나 한국은 비정규직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높고 저임금 근로자 비율은 선진국보다 훨씬 높은 이중구조에 갇혀 있다. 노동개혁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노동시장의 경직 탓에 정규직 기성세대는 일을 못해도 해고할 수 없고, 청년세대는 능력이 있어도 일자리가 없는 꽉 막힌 상황이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청년 대책은 한숨이 나올 정도다. 새누리당 공약은 대기업의 투자 및 고용 여건을 우호적으로 조성해 청년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원론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은 공공일자리 확대 등을 통해 총 70만 개의 청년 일자리를 만들고 청년 구직활동 지원을 위해 6개월간 60만 원의 취업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재원 조달을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일자리를 급조해 청년 취업자를 늘리는 임시방편으로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노동시장의 악순환을 막을 수 없다.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발상의 획기적 전환만이 돌파구를 열 수 있다.

청년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지난해 해외 취업자 수는 2903명으로 2014년(1679명)보다 72.9% 급증했다. 이종덕 씨(37)는 10여 년 전 ‘I can’t speak English’ 한마디만 외운 채 실리콘밸리에 갔다가 지금은 회계사로 일하고 있다. 최윤석 씨(25)는 올 2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아이디어 하나만 갖고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 ‘메탈월드’를 창업했다.

모험심 강한 이런 청년들이 해외 취업의 물꼬를 텄다.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에 따라선 해외에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낳는 큰 물결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연예기획사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예비 스타들도 바늘구멍 같은 국내 시장을 벗어나 동남아로 눈을 돌린다면 블루오션이 열릴 것이다. 정부가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영어권 국가뿐 아니라 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 비영어권 국가에 진출하는 청년들에게 취업정보를 제공하고 정착 지원금도 주는 열린 방식이 절실하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가 청년 취업 플랫폼으로 정부 청년일자리 정책의 빈틈을 채울 것이다. 청년드림센터만 오면 원스톱으로 인턴 및 정규직 취업 정보와 구직 노하우, 취업시장의 변화와 새로운 트렌드를 알 수 있도록 정보를 집대성해 놓았다.

기마민족의 DNA로 넓은 세상에 도전을

동아일보는 올해 ‘미국 실리콘밸리 드림캠프’ 프로젝트를 새롭게 시작한다. 현지에서 취업 또는 창업을 하려는 청년들을 위해 정부와 해외 공관, 해외 교민사회와 연계해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생활 관련 고충을 해결하는 데 최대한 앞장설 계획이다. 이는 ‘코리나(Korea+China) 청년 창업육성’ ‘청년드림 도쿄 취업 네트워크 개발’ ‘찾아가는 미주 청년드림 캠프’ 등 기존 사업과 함께 해외 취업의 유용한 창구가 될 것이다.

청년과 일자리는 한국 경제의 성장이고 복지이며 미래다. 동아일보는 정부의 노동개혁과 일자리 정책을 감시하면서 청년들과 함께 세계 일자리 시장을 열어갈 것을 다짐한다.

[서울신문]

5. 고액 체납 재벌 처벌할 법적 근거 만들어야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이 법무부를 상대로 출국 금지를 풀어 달라는 소송을 냈다가 그제 패소했다. 그가 출국 금지당한 이유는 바로 700억원대 세금을 내지 않아서다. 그런데 국민의 의무는 나 몰라라하고 무슨 염치로 해외에 나갈 권리를 찾겠다며 소송까지 벌이는지 참으로 뻔뻔하기 짝이 없다. 소송할 돈이 있으면 체납된 세금의 일부라도 갚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다.

재산이 없다는 그는 고급 빌라 두 채를 터서 만든 집에 살고 있다. 출국 금지 전까지 미국 등 56차례에 걸쳐 503일 동안 해외에 머물렀다. 어디 그뿐인가.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과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역시 호화생활을 하면서 세금을 안 낸 악성 체납자들이다. 이들의 체납액은 2252억여원과 1073억여원에 이른다. 2013년 서울시가 최씨의 체납된 지방세를 징수하기 위해 가택을 수색했을 때의 일은 지금도 생생하다. 시가 17억원의 호화 저택 금고 속에서 현금 다발과 시가 1억원 상당의 명품 시계 등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일반 서민들은 그들이 결코 몰락한 재벌이 아니라는 점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어딘가에 재산을 빼돌려 놓지 않으면 도저히 그런 일상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안다. 조씨의 부인과 아들은 한솔그룹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는데 조씨만 없는 것도 다 세금을 안 내려는 꼼수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서울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라니 매월 쥐꼬리 월급에서도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월급쟁이들로서는 허탈할 뿐이다.

배 째라는 식으로 버티는 악질 체납자가 법망을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려면 조세범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 2010년 선의의 피해자 구제를 위해 빼버린 “정당한 사유 없이 1차 회계연도에 3회 이상 체납할 경우 1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다”는 조항을 부활시켜야 한다. 정말 돈이 없어 세금을 못 내는 이들과 달리 능력이 있는데도 세금을 내지 않은 이들은 감옥에 보내는 게 조세 정의다.

세무 당국에 체납자 가족들에 대한 금융조회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체납자들이 가족 명의로 재산을 은닉해도 세무 당국은 속수무책이다. 체납자 본인 외에는 과세 자료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세수 확보를 위해 담뱃값 인상처럼 서민들 주머니만 탈탈 털 게 아니라 악질 체납자들의 수천억 세금부터 받아 내는 게 순서다. 조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더 정교한 법 정비가 시급하다.

6. '한국판' 양적완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강봉균 공동선대위원장이 공약으로 내건 ‘한국판 통화완화 정책(QE)’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국가 경제의 근간인 금융·통화 정책을 건드린 핵심 논쟁이라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다. 진흙탕 속에서 멱살잡이 식으로 펼쳐졌던 기존의 여야의 네거티브 선거 전략과 비교해 한층 격이 높아진 정책 대결이란 의미도 없지 않다.

강 위원장이 그동안 밝힌 한국판 통화완화의 논리는 이렇다. 지금까지 통화 당국이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낮췄지만 돈이 잘 돌지 않아 투자가 필요한 곳에 제대로 돈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우리 경제는 연간 3% 이상의 잠재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양적완화 같은 더 과감한 재정·금융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통화완화의 구체적 방법으로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의 채권을 인수해 기업 구조조정을 뒷받침하는 한편 주택담보대출 증권을 직접 인수해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상환 기간을 20년 장기분할 상환 제도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 위원장이 양적완화 공약을 제시한 것은 침체 국면에 빠져 일본식 장기 불황의 조짐마저 보이는 우리의 경제 상황을 비상사태로 인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반응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국채나 정부 보증채가 아닌 증권을 한은이 직접 인수하는 것의 적법성 문제는 일단 접어 두더라도 기준금리가 1.5%인 현시점에 금리가 제로 수준인 선진국들처럼 양적완화의 카드를 꺼내는 것은 선후가 뒤바뀐 것이다. 법적 테두리에서 실행할 방법들을 버려 두고 굳이 양적완화라는 초법적 방법을 동원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인 발권력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면서 한국은행의 독립성 훼손 문제도 불거졌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한국은 양적완화를 시행하는 선진국과 상황이 다르다”고 선을 그은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설사 한은이 정치권 압박으로 양적완화를 수용했을 경우 통화가치 안정과 지속 성장을 추구하는 한은 정책에 대한 신뢰도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 유럽연합(EU) 등과 상황이 다르다.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이 효과를 본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당한 구조 개혁을 이미 했기 때문이다. 시장 원리에 따라 돈이 필요한 기업으로 흘러갔고 경기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반면 구조조정에 소극적인 일본의 경우 양적완화 정책이 한계를 드러낸 것은 이른바 좀비기업들의 연명을 돕는 부작용을 차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를 이유로 한계기업 정리 작업을 미루고 있는 우리 경제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최대의 문제는 구조적인 경쟁력의 문제이지 유동성의 문제는 아니다.

여당의 양적완화 공약은 그 한계와 부작용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급조된 느낌이 있다. 기업과 가계의 부실을 해결하려고 발권력을 동원하는 문제는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 원칙이 훼손된 경제 정책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허물고 정책의 비효율이란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양적완화 정책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앙일보]

7. 갈팡질팡 면세점 정책, 차라리 전면 개방이 낫겠다

면세점 제도가 2년 만에 도돌이표가 됐다. 기획재정부는 어제 ‘보세판매장(면세점)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2년 전 5년으로 줄였던 특허 기간을 다시 10년으로 연장하고 갱신도 허용하기로 했다. 논란이 컸던 신규 특허 여부 결정은 4월 말로 늦췄다. 지난해 신규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들이 기존 사업자의 재진입만은 절대 안 된다고 강력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갈팡질팡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른바 ‘홍종학법’으로 불리는 5년 시한부 면세점 특허 제도는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관광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고용 불안을 불렀으며 투자 위축까지 폐해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산업계에서는 현 정부의 최대 실패 정책이란 얘기마저 나왔다. 오죽했으면 대통령까지 비난행렬에 가세했겠나. 정부가 잘못된 제도를 인정하고 신속하게 보완책을 내놓은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보완책이 여전히 미봉책에 그치고 있어 문제다. 면세점은 더 이상 내수 산업이 아니다. 외국인을 겨냥한 수출 산업이다. 글로벌 경쟁도 치열해졌다. 중국은 19곳에 입국 면세점을 새로 짓고 있다. 일본도 사후면세점환급제도를 크게 늘려 나가고 있다. 면세점의 성패가 글로벌 경쟁에서 갈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특허 기간이나 업체 수 제한 같은 ‘우물안 경쟁’에만 머물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이번 면세점 파동은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 줬다. 정치권과 정부가 시장논리를 무시하고 규제의 잣대만 들이댄 결과 세계 1위를 자랑하던 면세 산업 기반이 뿌리째 흔들렸다.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는 등 사회적 비용도 크게 치렀다. 역설적으로 국회의원 한 사람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알게 됐다. 산업계의 비명에는 귀를 틀어막은 채 국회 권력에 기대 자기 규제 파워를 늘리는 데만 급급했던 정부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정치권과 정부는 대오각성해야 한다. 규제를 과감히 풀고 면세점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혁신적이고 근본적 대책을 내놓는 것이 속죄의 시작이어야 한다.

8. 더민주-정의당 연합후보가 어떻게 야권 단일후보인가

야권후보 단일화는 이번 총선에 영향을 미치는 최대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야권후보로서는 단일후보가 되느냐에 따라 득표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이 호칭의 사용은 매우 엄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선관위가 불공정한 결정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의석수 기준으로 야권에서는 제1 더민주, 제2 국민의당, 제3 정의당, 제4 민주당이 후보를 내고 있다. 인천 13곳 지역구에서 제1 야당 더민주와 제3 야당 정의당이 단일화를 완료했다. 11곳은 더민주, 2곳은 정의당 출신이 단일후보가 됐다. 제2 야당 국민의당은 단일화에 불참했다.

이에 더민주 측은 선관위에 ‘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지 질의했다. 선관위는 사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는 잘못된 결정이다.

엄연히 20석을 지닌 제2 야당 국민의당의 후보가 있는데 1당-3당 연합후보가 어떻게 ‘야권단일후보’가 될 수 있는가. 선관위는 2012년 선례를 들었다. 제2 야당 자유선진당을 빼고 제1 야당 민주당과 제3 야당 통합진보당이 단일화 연대를 했을 때에도 ‘야권단일후보’ 명칭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당시의 상황은 다르다. 단일화에 불참한 제2 야당 자유선진당은 여당과 가까운 보수정당이었고 나머지 2당은 진보였다. 형식적으로는 제2 야당이 빠졌지만 내용적으론 야권단일화였던 것이다. 그래서 언론도 야권연대요 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을 썼다.

이번에는 내용적으로 야권에 그런 색깔의 구별이 없다. 제2 야당 국민의당은 제1 야당에서 분파된 것이다. 두 당 사이에 야권연대가 설왕설래할 정도로 실질적인 차이가 별로 없다.

그런 상황에서 1당-3당 연합후보가 야권단일후보를 표방하면 국민의당 후보는 야권지지자들의 투표에서 피해를 보게 된다. 야권단일후보가 아니라 더민주-정의당 연합(또는 단일)후보라고 하는 게 공정하다. 선관위는 “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은 정치적 수사여서 유권자의 판단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까지 달고 있다. 이는 ‘야권단일후보’의 현실적 영향력을 모르는 자의적인 판단이다.

선관위는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단일화를 하는 경우에도 똑같이 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다른 야당후보들이 반발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선관위의 실책은 사전에 명확한 기준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고보조금 지급이나 비례대표 배분에는 의석수라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야권단일후보’ 문제도 미리 의석수 같은 기준을 정해두었다면 혼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선관위는 최근 젊은이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동영상에 성관계를 암시하는 내용을 잔뜩 집어넣는 바람에 “섹스 독려 동영상이냐”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동영상을 삭제했다. 예산만 버린 것이다. 선관위는 선거라는 중요한 제도의 심판이자 주관자다. 보다 치밀한 문제의식과 전문적인 지식으로 선거의 선진화를 주도해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9. 산업생산 등 경기지표 회복 경제 불씨 살릴 계기로

광공업 생산이 2009년 9월 이후 6년5개월 만에 최대 폭인 3.3% 뛰는 등 산업생산이 2월 들어 증가세로 돌아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통계청이 어제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산업생산은 지난해 12월 반등했다가 올 1월 감소세로 바뀐 후 한 달 만에 다시 0.8% 증가했다. 스마트폰 신제품이 출시되고 반도체 수출 물량이 늘어난 데다 금속가공 생산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결과다. 생산 호조에 힘입어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1.2%포인트 상승한 73.5%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전월 대비 5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이후 4개월 연속 하락했다가 5개월 만에 상승세로 전환된 것이다. 국제 유가가 안정세를 찾았고, 그동안 부진했던 석유화학과 철강 등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동시에 회복세를 보인 것이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현대경제연구원도 '단가 및 물량 추세로 살펴본 수출경기 방향성 판단' 보고서를 통해 수출 경기가 올 상반기 중 바닥을 찍고 하반기에는 회복기에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소비와 투자가 여전히 부진하기 때문이다. 2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1.8% 떨어졌고 설비투자도 6.8% 하락하며 두 달 연속 뒷걸음질 쳤다. 수출 감소 폭은 1월 18.9%, 2월 12.2%, 3월 8.1%로 점차 줄고 있지만 중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면 성장세로 돌아서기 쉽지 않다. 제조업 가동률이 상승했다고 하지만 재고율은 128%로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BSI 역시 68로 제조업 업황 장기 평균치 85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글로벌 경기가 불확실하고 내수와 수출 부진 등 아직 걸림돌이 많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본격적 회복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와 기업은 산업생산과 체감경기 회복등 오랜만에 청신호를 보낸 경기지표를 꺼져가는 경제의 불씨를 살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기업은 스마트폰 신제품을 이을 경쟁력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꾸준하게 내놓고, 정부는 개별소비세 인하 등 부양정책의 효과를 면밀하게 분석한 뒤 적절한 후속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와 함께 과잉 공급 업종의 비중을 줄이면서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경제 체질 개선과 한계기업 정리 등 구조조정에도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10. 시민의식 실종 보여주는 얌체 지하철 부정승차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가 최근 2주간 부정승차 특별단속을 벌인 결과 961명을 적발했다. 표 없이 개찰구 밑으로 기어 가거나 위로 타 넘어가는 무표 승차가 절반을 넘었고, 65세 이상 노인이나 장애인용 우대권을 부정하게 사용한 사례도 299건에 달했다고 한다. 어른이 어린이 교통카드를 쓰거나, 손자가 할머니 우대권을 사용하는 등 부정승차 유형도 갖가지였다. 부정승차를 하면 요금 30배를 벌금으로 물리는데 격렬히 저항하다가 증거를 보여주면 한번 봐 달라며 꼬리를 내리는 등 단속 현장에서는 부끄러운 장면이 많았다고 한다.

서울메트로 부정승차 단속 건수는 2014년 1만4538건에서 지난해 2만1431건으로 30% 늘어나는 등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우리나라 대중교통 요금은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저렴한 편인데도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이 사회질서를 흩트리고 있는 것이다. 겨우 1350원에 양심을 파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는 데다 특히 사회에서 본보기를 보여야 할 50·60대 어른들이 부정승차 중 절반을 차지하는 것은 안타깝다. 경제는 성장해도 시민의식은 아직도 개발도상국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하철뿐 아니라 최근 5년간(2010년~2015년 8월 말) 철도 부정승차 적발 건수도 132만건에 달했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부정승차가 범죄라는 인식을 갖도록 얌체족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벌금을 강하게 물려야 한다. 

부정승차뿐 아니라 고령화로 인한 무임승차 급증도 문제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공짜로 탄 사람은 1억5000만명을 넘어서 전체 승차 인원 중 13.3%나 됐다. 노인 무임승차 인원을 운임으로 환산하면 1365억원에 달해 서울메트로 지난해 순손실(1587억원) 중 86%에 달했다. 대한노인회가 노인 기준 연령을 70세로 올리자는 제안을 했으나 선거와 맞물려 흐지부지되는 모양새인데 무인승차 노인 연령도 올리고 소득이나 재산에 따라 차별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동아일보][광화문에서/김민경]아저씨, 아재, 개저씨

“새우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대하 드라마! 새우가 대하니까. 왜 안 웃어? 대하 먹어본 적 없어?”

안 웃기는요. 쓰러지며 웃었다. ‘아재씨’라는 TV 개그 코너였다. 답이 썰렁한 만큼, ‘난닝구’와 발가락 양말 차림의 ‘아재 악령’이 ‘아재 개그’로 세상을 얼리지 못하게 젊은 퇴마사들이 나선다는 설정은 따끈했다. 최근의 ‘아재 현상’을 풍자한 개그였다. 아저씨를 낮춰 부르는 ‘아재’가 권위적인 기성세대를 희화화하는 말로 쓰이면서 약해 보이는 이에게 던지는 무례한 반말투를 ‘아재체’, 유치한 동음이의어식 말장난은 ‘아재 개그’라 한다. ‘전화기로 세운 건물은 콜로세움’ ‘고양이를 미워하는 고양이는 미어캣’ ‘과자가 자기소개를 하면 전과자’라는 식이다. 셰프 오세득 씨는 ‘한 손으로 넣으면 염(소금)이고 양손으로 넣으면 양념’류의 아재 멘트로 먼저 유명해졌다. 

아재 개그는 흔히 ‘주목!’이라는 명령으로 시작한다. 개그가 나와야 하는 바로 그 순간, 기억력을 탓하는 말과 프롬프터 역할의 휴대전화가 나오고, 웃어야 하는 이유까지 들어야 하는 ‘훈시’에 가깝다. 박장대소냐 싸늘한 조소냐에 의해 부하 직원 중 아재의 ‘진실한 사람’이 즉시 감별된다. 

아재보다 비하와 조롱의 정도가 심한 말로 ‘개저씨’가 있다. ‘개념 없는 아저씨’의 줄임말이란 해석과 멍멍이와 아저씨를 더한 신조어란 설이 있다. 최근 ‘개저씨’를 소재로 다룬 한 시사 프로그램은 전형적 인물로 ‘미생’의 마 부장을 등장시켰다. 극 중 마 부장은 48세. 부하 직원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며, 문제는 ‘요즘 애들’에게 있을 뿐이며 성희롱이 ‘딸 같아서’란 말로 양해된다고 생각하는, 어쩌면 ‘대개 아저씨’다. 

문화이론지 ‘문화과학’ 봄호에는 ‘개저씨 문학’이 등장한다. 문화연구자 오혜진은 한국 문학계의 주류 권력과 비평 정신의 회복을 주장하는 비판론자 양 진영을 똑같은 문화패권주의라 규정하고, 21세기 독자들이 이 같은 ‘개저씨 문학’에 냉담하리라 예언한다. 

개그에서 비평에 이르기까지 ‘참을 수 없는 개저씨의 진지함’이 이렇게 조롱을 받는 건, 시대적 맥락과 공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거나 부정한다. 수첩 속 개그는 더 이상 개그가 아니고, 제단 위의 문학은 삶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사실 ‘아재’는 예전에 ‘부장님’이었고 꼰대 개그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따라서 ‘부장님=아재 개그’의 원조는 중년 남성이지만 요즘은 성과 무관한 경우를 많이 본다. 즉, 부장님 개그란 권력을 남용하는 갑질 개그로서 종종 사회적 약자를 비웃는,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내용으로 파국에 이른다. 관객의 웃음은 벌거벗은 임금님에 대한 조건반사적 두려움이다. 반면 아재 개그는 부장님, 꼰대, 개저씨에 대한 조소, 권력자의 자기 연민과 불안에 대한 풍자다. 21세기 관객으로부터 외면받는 아저씨, 아재. 그의 자리는 남성 주류 권력자의 반대편, 여성, 신입사원, 실직자 옆이다. 부장님 개그와 달리 아재 개그가 젊은층에서 싸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그 덕분에 좋은 소식도 있다. 오랫동안 회식 자리에 찬물을 끼얹어 왔던 부장님 개그가 요즘 최첨단 아재 개그로 진짜 환영받는다는 것이다. 내용이 썰렁할수록 반응은 폭발적이다. 아재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시라. 단, 이 정도 개그는 다 외워서 ‘쳐’ 주시길 부탁드린다.

2. [동아일보][박성연의 트렌드 읽기]'집밥'를 넘어 '집활'로

야외 활동 시즌에 집 안에 있으면 갑갑하지 않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야외 활동 증가에 따른 폭발적인 소비를 기대했던 곳에서는 판매 전략을 바꿔야 할 판이다. 4인 가구 중심의 소비 진작 대책도 맥을 잘못 잡았다. 시대가 바뀌어 1인 가구 주인들이 ‘방콕’(방 안에 콕 박혀 있음)을 고집하니까.

주5일 근무제 정착과 소득 증가가 오히려 ‘집으로!’ 추세를 굳혀주는 형국이다. 이젠 ‘불금’(불타는 금요일) 경기도 사라졌다. 목요일 저녁 이후 집으로 들어가는 인파 때문이다. 실제 ‘집에 가만히 있을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하다’ ‘집에서도 술 한잔, 커피 한잔 즐기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상 외로 많다.

이런 추세에서 소비가 확 줄어들지는 않았다. 어딘가 야외 소비 감소를 상쇄한 요인이 있다는 얘기다. 요즘 한 인터넷 마켓에서 팔던 팝콘 제조기 매출이 전년에 비해 710%나 증가했다. 뜻밖의 제품에서 소비가 불붙은 것이다. ‘집밥’에 대한 인기가 유지되는 한 누룽지 참기름 제조기 등에 대한 꾸준한 소비도 기대할 수 있다. 안심할 수 없는 원산지와 재료 속이기 행태가 사라질 때까지.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 또한 많아졌다. 성인 남녀 4명 중 3명은 셀프 인테리어를 여가 생활로 인식하고 있다. 반제품 조립가구가 이 분야의 최대 수혜 종목이다.

야외 활동을 집 안에서 즐기는 인구도 거역하기 어려운 대세다. 사해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경험을 집으로 옮겨 놓는가 하면 트램펄린을 닮은 운동 기구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 한 공간을 헬스장처럼 꾸며 놓은 홈짐(home gym)도 흔한 풍경이 됐다. 집 밖에서만 보던 식물을 집 안으로 옮기기도 한다. 집 안을 꾸며놓은 뒤 서로 안방까지 공개하는 집스타그램은 ‘집활(집 안 활동)’을 보여주는 신세대 교감 미디어로 떠올랐다. 이 트렌드는 트램펄린이나 홈짐에서 일으키는 층간 소음, 거침없는 사생활 공개를 걱정할 단계까지 치달았다.

3. [동아일보][지금 SNS에서는]갱단과 찍은 결혼식 기념 사진

웨딩촬영 중 갱단을 만났다면 함께 사진을 찍자고 말씀해 보세요. 그 전에 비행기를 타고 11시간 20분을 날아 뉴질랜드에 가는 것은 잊지 마시고요.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하얀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함께 티셔츠 차림의 건장한 남성이 문신이 새겨진 오른 팔뚝을 치켜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또 다른 남성이 ‘블랙파워(Black Power)’라는 글자가 새겨진 검은색 깃발을 들고 섰지요. 블랙파워는 1970년대에 만들어진 뉴질랜드의 유명한 갱단입니다.

3일 동안 이 사진은 730번이 넘게 공유가 됐고 ‘좋아요’ 등도 6000개에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게 됐냐’는 문의가 이어지자 사진을 올린 사진작가 레베카 인스 씨(31)는 댓글로 촬영 당시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루시스 걸리에서 신랑 신부 들러리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비가 막 그친 뒤라 화창한 날씨의 웨딩촬영은 즐거웠지요.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왔더니 수많은 차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산에서 하는 히코이 행렬의 일부로 죽은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곳에 왔더군요. 웨딩 사진을 함께 찍어도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협조적이었습니다. 이게 그 결과입니다.’

4. [서울신문][열린세상]사랑과 지혜/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최근에 사랑니 하나를 잃었다. 그런데 그저 그런 사랑니가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에 맨 뒤의 큰 어금니를 잃었는데, 기묘하게도 바로 그 공간에 자리를 잡은 긴요한 사랑니였다. 얼추 계산해 봐도 반세기 넘게 어금니 역할을 톡톡히 해 온 사랑니였다.

그러니 그 사랑니가 뽑혀 나간 자리는 무척 허전했다. 씹을 때 느끼는 불편함과는 차원이 다른, 어떤 본질적인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며칠 전 바로 그 자리에 임플란트를 했다. 씹는 데 아직 큰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 자연스럽게 다른 한쪽으로 씹게 될 걸 생각하니 인위적으로라도 씹는 균형을 잡는 게 좋겠다 싶어 그렇게 결정했다. 그런데 이런 시술 과정을 겪으면서 뜻밖에도 만감이 교차했다.

한국어에서는 ‘사랑’니라고 하지만, 영어권에서는 ‘지혜’의 이(wisdom tooth)라고 한다. 실제 기능은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괜히 사람에게 고통을 안기는 이빨을 두고 사랑이니 지혜니 하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아마도 사랑을 알고 지혜를 접할 10대 후반 곧 성인이 된 자라야 그런 이빨을 경험할 수 있기에 자연스럽게 붙여진 것 같다.

그 이빨을 어떤 문명권에서는 이성 간의 사랑에 눈뜰 나이가 됐다는 일종의 ‘자격증’으로 인식했고, 어떤 문명권에서는 지혜를 알고 실천할 만한 나이가 됐다는 하나의 ‘인증’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런데 사랑니가 갖는 바로 이런 상징성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현대인은 살면서 이를 꽤 뽑는다. 사랑니도 그렇다. 심지어 사람(주인)에게 아무런 고통도 불편도 주지 않는데도, 그 주인은 치과의 현대의술을 동원해 사랑니를 아예 발본색원(拔本塞源)해 버린다. 그런데 이런 행위를 인류 문명사의 맥락에서 보자면 나이가 들어 갈수록 어른답게 더욱 빛을 발해야 할 두 가지 덕목, 곧 사랑과 지혜의 뿌리를 아예 미리 제거해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에 어쩔 수 없이 사랑니를 뽑으면서 크나큰 아쉬움이 온몸을 감싼 이유는 바로 이런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또한 임플란트를 하면서 느낀 자괴감은 사랑과 지혜를 제거해 생긴 그 공간에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없는 인공 조형물을 기계적으로 박아 넣었다는 사실에 닿아 있다.

나도 이제 50대 중반인데, 내 생각과 언행에는 과연 사랑과 지혜가 묻어나는가? 내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는가? 단순한 처세술이 아닌, 삶의 지혜를 그들과 진정으로 나누는가? 사랑과 지혜는 인간의 유연성과 포용성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키워드이자 양대 축인데, 그것을 상징하는 근원(사랑니)을 상실한 내게는 과연 무엇이 남을까? 혹시라도 마치 임플란트 철심처럼 나의 마음과 삶도 그렇게 경화(硬化)될 것이라는 징조는 아닐까? 사랑과 지혜의 뿌리를 네 개나 갖고 태어났는데, 이제 어느덧 두 개를 잃었으니, 그만큼 내 삶과 생각도 경직되지는 않을까? 사랑니가 있던 공간을 대신한 임플란트 철심처럼 내 마음도 고집불통으로 강퍅해지지는 않을까? 주위 사람들을 사랑과 지혜로 포용하는 나무그늘 같은 ‘어른’으로 나이를 먹어 가지 못하고, 혹시라도 자기만 항상 옳고 남들은 죄다 그르다면서 어떤 소통도 거부하는 한갓 고집쟁이 ‘노인’으로 늙으면 어떡하나? 내심 두렵다.

눈을 돌려 2016년 현재 대한민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둘러본다. 정치 무대 위의 군상들은 다들 선남선녀인 양 미소 지으며 입을 열어 한 표를 구하지만, 혹시라도 사랑과 지혜의 근원을 이미 오래전에 제거해 버린 입안에는 딱딱하고 감정 없는 임플란트가 박혀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선거만 끝나면 다시금 어깨에 힘주며 안하무인 식의 옹고집으로 똘똘 뭉치는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의 생명인 합리적이고도 상식적인 대화와 절충 소식은 여간해서는 들어 보기 어렵고, 독선과 아집으로 뭉친 이전투구 뉴스만 하루 세 끼 밥 먹듯이 자주 접하는 현실이니 하는 말이다. 차라리 그저 사랑과 지혜의 이빨만 잃었다면 그 공간을 새롭고 건설적인 유연성 좋은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다는 기대라도 하겠건만, 요즘 인왕산 자락과 여의도로 출근하는 이들의 입안에는 죄다 쇠처럼 딱딱한 ‘임플란트’뿐인 것 같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못내 무겁다.



히코이는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말로 ‘가두 행진’으로 보통은 몇 주씩 걸리는 긴 여행을 뜻합니다. 블랙파워는 백인 갱단 등에 맞서 조직된 단체이기도 하지요. 이런 배경 탓인지 몇몇은 인종 간 장벽을 허무는 데 도움이 되는 사진이라며 열광했습니다. 한 남성은 ‘올해의 사진이다. NZH(뉴질랜드 현지신문인 뉴질랜드헤럴드)의 1면에 실려야 할 파괴력 있는 이미지로 인종 간 장벽을 해소하는 데 있어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고 적었습니다. 뉴질랜드 고유의 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으로서 이런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안 됩니다. 블랙파워는 마약 제조 및 판매에도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인스 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두 그룹이 우연히,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자신들만의 특별한 이유를 갖고 모였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놀라운 특별한 사진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습니다. 

인스 씨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젓는 제 모습을 보며 어느새 ‘낭만’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뒤돌아보게 됩니다. 그래도 전 웨딩촬영 때 갱단을 만나게 돼도 절대 함께 사진을 찍자는 말은 하지 않으렵니다.

5.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헤라클레스는 흙수저였다

서양인들에게 최고의 영웅을 꼽으라면 단연 헤라클레스다. 그는 그리스 청춘의 불굴의 투지와 용맹, 그리고 괴력의 상징이자 모델이다. 헤라클레스가 그리스의 영웅을 넘어 서구의 불멸의 영웅으로 숭배받는 이유다. 하지만 그의 출발은 흙수저였다.

기원전 2세기에 활동한 아폴로도로스가 지은 그리스 신화집 ‘비블리오테케’에는 헤라클레스의 탄생과 행적이 자세히 나온다. 헤라클레스는 페르세우스의 손자인 암피트리온과 알크메네 사이에서 쌍둥이 아들로 태어났다. 명목상 족보는 화려하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암피트리온이 전쟁에 나간 사이 평소 알크메네에게 눈독을 들이던 제우스가 암피트리온의 모습을 하고는 하룻밤을 세 배로 늘리며 알크메네와 동침을 했다. 뒤늦게 테베로 돌아온 암피트리온은 예언자로부터 아내가 제우스와 교합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엄밀히 따져 헤라클레스는 불명예스러운 사생아였다. 하지만 암피트리온은 자신의 부재 중에 잉태된 자식을 신성한 신의 핏줄로 승화시킨다. 헤라클레스를 제우스의 아들로 규정하는 순간 그는 숙명적으로 인간을 넘어선 탁월한 역량을 요구받게 된다. 게다가 외간 여인에게서 얻은 자식을 질투심 많은 제우스의 정실 헤라는 끊임없이 괴롭힌다. 이는 흙수저가 겪는 시련의 은유일 테다.

헤라클레스는 주변의 질시와 견제를 딛고 당대 최고의 고수에게 궁술과 무술을 배우고 강철 같은 체력을 갖춘다. 그러던 중 헤라의 질투로 헤라클레스는 정신착란을 일으켜 제 자식과 동생 자식들을 불 속에 던져 죽인다. 이로 인해 테베에서 추방된 헤라클레스는 간신히 죄를 정화받고 델포이의 신탁에 의해 12년 동안 페르세우스의 적통(嫡統) 손자 에우리스테우스가 부과한 12가지 고역을 수행해야 했다. 잔인한 시험이다.

그 과업을 완수하면 불멸의 존재가 되리라는 신탁을 믿고 헤라클레스는 세계 오지로 죽음의 도전을 떠났다. 사자와 괴물 히드라의 처치, 난폭한 황소 끌고 오기, 황금사과 가져오기, 저승의 개 잡아 오기 등등 하나같이 인간에게 불가능한 난제들을 모두 해결하고서야 헤라클레스는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그의 흙수저 탈출기는 목숨을 건 처절한 사투였다. 오늘날 청년들이 안은 과제도 험난하다. 하지만 진정 자신의 전부를 걸고 도전하는 이가 얼마인지는 의문이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2016년 3월 31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정치가 싫다"는 유권자들의 목소리

이번 4·13 총선을 앞두고 아직 찍을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과연 투표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망설이는 경우다. 정치 불신이 초래한 결과다. 일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선거를 불과 열흘 남짓 남겨놓은 상황에서 부동층이 40%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이번 총선의 투표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어두운 전망까지 제기될 정도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가 국민을 외면했기에 벌어진 자업자득이나 다름없다. 여야 정당이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의적으로 공천권을 행사했으며, 선거 공약을 내걸면서도 현실성 없는 약속을 남발하고 있는 탓이다. 민생은 돌보지 않고 파벌싸움으로 일관했던 19대 국회의 빗나간 모습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정치인들의 시대착오적인 행태가 정치 혐오증을 불러온 것이다.

그동안 여야의 텃밭으로 여겨지던 영남과 호남 지역에서도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니, 이번 선거를 바라보는 민심의 향배가 어떠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공천만 하면 당선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자격도 없는 후보들을 마구잡이로 내세운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공천 과정에서 드러난 중앙당 차원의 내분과 잡음도 정치 불신의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각종 포퓰리즘 공약도 문제다. 저마다 경제를 살려 일자리를 만들고 서민들의 소득을 높이겠다고 약속하고 있으나 지금껏 한두 번 속은 게 아니다. 가능하지도 않은 공약으로 기대 수준만 부풀려 오히려 사회적 불만을 야기하기도 한다. 야권의 후보 단일화 논의도 석연치가 않다. 후보를 단일화할 거면 도대체 신당에 왜 합류했으며, 정부 보조금은 무슨 명목으로 받았는지 명확한 해명이 따라야 한다.

선거일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지만 정치에 등 돌린 민심이 얼마나 투표장에 얼굴을 내밀 것인지가 걱정이다. 정치가 국민들의 현실 생활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불신감을 해소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표를 얻으려고만 하지 말고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진정성이 요구된다. 선거가 끝나더라도 민심을 하늘처럼 떠받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2. 車 부실정비·바가지요금 문 닫게 해야

부실정비에 바가지요금 등 자동차 정비업체들의 횡포가 심각하다. 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고친 곳이 다시 고장이 나거나 과도한 수리비를 청구하는 등 소비자들의 불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적정 비용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위한 부품가격 공개, 대체부품 사용, 수리비 가이드라인 등의 정부 정책이 겉돌고 있기 때문이다. 악덕업체는 퇴출시키는 등 실효성을 높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한국소비자원은 그제 자동차 정비관련 소비자 불만이 최근 3년간 매년 5000건 이상 접수됐으며 피해구제 신청은 738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피해구제 신청 가운데는 고장이 재발하는 등 ‘수리 불량’이 65.4%로 가장 많았다. 이른바 바가지요금인 ‘부당 수리비 청구‘도 24.4%나 됐다. 과도한 수리비를 요구하거나 동의 없는 임의수리 및 수리하지 않은 비용 청구 등이다. 

부실정비와 바가지요금으로 인한 폐해는 크다. 특히 수리를 맡긴 고객에 피해가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부실정비는 도로 위에 달리는 흉기를 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리불량으로 인해 사고가 나면 정비 고객뿐 아니라 제2, 제3의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바가지요금은 자동차보험 손해율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해 전체 운전자의 보험료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정비업체들의 횡포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터무니없는 부품가격과 과잉수리 등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품가격 공개 의무제도나 순정부품과 비슷한 성능의 대체부품을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는 대체부품제 등은 수입차 업체들의 소극적 태도로 별 실효성이 없다. 적정 공임 등의 가이드라인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업체들이 많다고 한다.

횡포를 뿌리 뽑으려면 상습 악덕업체는 끝내 문을 닫도록 처벌을 엄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현재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형인 부품가격 미공개 업체에 대한 제재도 강화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부품의 경우 병행수입 활성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경미한 사고 때엔 부품 교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표준화된 수리비 기준을 만드는 것도 긴요하다. 무엇보다 정비업계의 자정노력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동아일보]

3. '한국형 양적완화' 총선공약으로는 부적절하다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그제 ‘한국판 양적완화’를 선거 공약으로 내놓았다. 금리를 낮춰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다며 한국은행이 산업금융채권(산금채)을 인수해서 산업은행에 기업 구조조정용 실탄을 제공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채권을 사들인 뒤 대출상환 기간을 장기로 바꾸도록 하는 방침도 내놨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 미국과 일본이 돈을 찍어 경기 부양에 나선 것과 비슷한 고육지책을 공약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양적완화를 시행하는 선진국과 상황이 다르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의 공약은 존중하지만 통화정책에는 할 말이 없다”며 언급을 피했다. 새누리당이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 부담 경감을 위해 마련한 공약이라지만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인 발권력을 선거 공약으로 들고나온 것은 문제가 있다. 

미국이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1월부터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 식’으로, 일본도 아베노믹스의 하나로 양적완화를 도입한 것과 ‘한국판 양적완화’가 다른 것은 사실이다. 강 위원장은 무차별적인 자금 공급이 아니라 발권력을 동원해 시중 자금 규모를 늘리되 용도를 정해 두도록 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가 살아난 반면 일본 경제가 돈을 뿌려댄 만큼 살아나지 못한 것은 기업 구조조정과 경제 전반의 구조개혁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금융 시스템이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이면서 될 만한 기업으로 돈이 흘러갔지만 일본에선 좀비기업으로 흘러가 구조조정만 지연시키고 있다.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한없이 미루고 있는 한국의 경우 미국보다는 일본과 비슷해질 공산이 크다.

한은 이 총재는 10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준금리 자체는 충분히 완화적인 수준”이라고 했고 어제는 “올해 성장률이 3%를 밑돌 것”이라고 진단했다. 금리 인하 정책이 한계에 봉착했고 경제의 기초 체력이 심각하게 떨어졌다는 의미다. 더운밥 찬밥 가릴 때가 아니다. 정치적 논리로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미루지 않을 자신만 있다면, 한국형 양적완화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보완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총재, 유 부총리, 안종범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머리를 맞대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비책을 짜내야 한다.

4. 막장 공천에 대구 폭력사태까지, 정치혐오 부추기는 여당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어제 “선거의 승패와 관계없이 이번 총선이 끝나면 뒷마무리 잘하고 사퇴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국민공천제 실시하겠다는 약속을 100% 지키지 못한 것으로 당에 일대 혼란이 있었다”며 “당 대표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20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 여당 대표가 ‘총선 후 사퇴’를 선언한 것은 막장 공천 후폭풍에 시달리는 한심한 여당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김 대표의 임기는 7월 13일까지다.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려면 1년 6개월 전에 대표직을 떠나야 한다는 당헌·당규에 따라 6월 중순까지는 물러나야 한다. 어차피 물러날 대표직인데 ‘당 대표 책임’ 운운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의 사의 표명은 친박(친박근혜)계가 어차피 당 대표 사퇴 요구를 할 것이므로 ‘선제적 방어’를 한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에 이어 대구를 찾은 김 대표에게 ‘옥새 보이콧’으로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못하게 된 이재만 전 예비후보의 지지자들이 몰려가 위력시위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지지자들은 김 대표에게 “대구를 떠나라” “자폭하라”는 구호와 함께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김 대표의 차 앞에 드러눕거나 차 위에 올라타 경찰에 의해 끌려 내려왔다.

대구 동갑에 단수 추천을 받은 진박(진짜 친박) 정종섭 후보는 한술 더 떠 박근혜 대통령을 예수에 비유했다. “우리가 뽑은 박근혜 대통령이 많은 일을 피를 흘리며, 예수가 십자가를 지듯 어려운 언덕을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친박 좌장인 최경환 대구경북 선거대책위원장도 어제 “나부터 친박이라는 표현을 않겠다”면서도 “대구는 박근혜 정부의 심장이다. 심장에 작은 구멍 하나 나면 결딴난다”고 했다. 새누리당 후보의 전원 당선을 촉구한 말이지만,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이다. 

본보와 시대정신연구소 조사 결과 유권자 10명 중 4명은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으로 나타났다. 특히 상대적으로 여당 지지층이 많은 60세 이상 부동층 비율(37.2%)이 40대(33.9%)나 50대(33.3%)보다 높게 나타난 것은 막장 공천에 따른 정치혐오 현상으로 분석됐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어제 “지역에서 (후보자 간) 연대가 이뤄질 경우 당에서 적극적으로 연대 과정을 지원할 것”이라며 국민의당을 압박했다. 지지율이 열세인 국민의당에선 부정적이지만,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단일화 폭풍은 이번 총선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벌써 본선 레이스에 집중하는 야당과 아직도 공천 전쟁의 앙금을 털지 못하는 여당의 승부는 이미 판가름 났는지도 모른다.

[서울신문]

5. 로스쿨 부정입학 의혹 철저히 파헤쳐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지난해 말 법무부의 ‘사시 폐지 4년 유예’로 불거진 사시 존치 논란 이후 또다시 위기에 맞닥뜨렸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16일부터 6주 동안 실시한 전국 25개 로스쿨에 대한 전수조사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어서다. 전수조사는 2009년 개원 이래 처음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그제 전수조사에 대한 투명한 공개를 촉구하고 나선데다 사시 존치를 희망하는 고시생들이 경북대 로스쿨의 입시 의혹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응급 처치만으로 감추며 버텨왔던 로스쿨의 상처가 7년 만에 결국 곪아 터지는 형국이다.

로스쿨 전수조사에서 밝혀진 불공정 입학 사례의 단면을 보면 과연 예비 법조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맞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원서의 자기 소개서에 ‘아버지가 재판을 준비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라는 식으로 노골적으로 부모의 신분, 직업을 밝히거나 이름까지 적기도 했다. 행정고시를 포함해 주요 시험에서는 부모의 지위를 공개하는 행위는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부정행위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소개서를 쓴 지원자가 합격했다는 사실이다. 합격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면접의 기준도 갖추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선발한 곳도 적발됐다.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다분할 수밖에 없다.

신평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자신의 저서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을 통해 “사회지도층 인사들로부터 청탁전화 받은 경험이 많다. 청탁하고 다닌 교수도 아직 현직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로스쿨은 입학에서 취업까지 금수저에 너무나 완벽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인터뷰에서는 “사시였다면 꿈도 못 꿀 아이들이 법조인으로 탄탄대로를 걷는다”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로스쿨의 기형적인 민낯을 보여준 것과 같다.

로스쿨에 대한 일반적인 시선은 곱지 않다. 입학과정이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졸업 뒤 로펌 취업도 연줄에 의해 이뤄지는 현실 탓이다. ‘금수저, 그들만의 리그’, ‘현대판 음서제’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 이유다. 국회의원의 졸업시험 구제 압력, 취업 청탁 등 불미스러운 사건도 적지않았다. 교육부의 전수조사는 로스쿨 개혁을 위한 단초인 까닭에 결과대로 가감 없이 공개해야 한다. 철저한 수사가 뒤따라야 함도 당연하다. 썩은 환부는 과감하게 도려내야 새 살이 돋는 법이다. 로스쿨이 사는 길이 따로 없다.

6. 천문학적 재원 드는 선심공약 남발한 여야

선거 때마다 선심성 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당과 후보들은 실현 가능성은 제대로 따져 보지도 않은 채 유권자들이 혹할 만한 공약만 골라 내놓고 사실상 표를 사들여왔다. 하지만 근거가 빈약하니 마무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공약 이행률이 50% 안팎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다음 선거에 생색낼 목적으로 무리하게 공약을 이행하려다 보니 국고가 거덜나든 말든 ‘쪽지예산’이다 뭐다 해서 정부를 몰아붙이는 모습이 예산안 심사 때마다 반복돼왔다. 불요불급한 공약 이행에 돈이 쏠리면서 정작 민생 사업들은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수출 부진, 글로벌 악재, 잠재성장률 추락 등 사면초가의 경제상황 속에 맞은 이번 총선이지만 여야가 내놓은 공약을 보고 있자면 위기의식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일자리 창출이나 경제 살리기 등 겉으로 내건 구호는 그럴듯하다. 문제는 해법이다.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붓는 공약만 봇물이 터진다. 여야의 공약대로라면 4년 내에 일자리 1100만개가 창출될 판이다. 매표(買票)용 선심 공약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의 공약을 이행하려면 56조원, 더불어민주당은 147조 9000억원, 국민의당은 46조 2500억원이 소요된다는 분석까지 나와 있다.

새누리당은 사회간접자본(SOC) 등의 대규모 재정투자를 약속하고, 이를 위해 금융 당국에 과감한 통화정책을 주문하겠다고 그제 밝혔다. ‘한국판 양적 완화’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한국은행의 영역을 침범하는데다 같은 날 정부가 밝힌 ‘재량지출 예산 10% 절감’ 등과도 상충할 소지가 크다. 재정 건전성 고민 없이 천문학적 규모의 혈세 투입만 약속한 꼴이다. ‘노인 기초연금 30만원 균등 지급’을 비롯한 더민주의 10대 공약 대부분은 막대한 재원 대책이 부실하다. 법인세 인상, 국민연금 기금 활용 등을 통해 복지공약 재원을 조달한다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중앙당이 이렇듯 선심성 공약 제시에 혈안이니 개별 후보들 또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허황한 개발 공약만 쏟아내는 것 아니겠는가. 도로 건설, 국책사업 유치, 산업단지 조성 등 재원은커녕 도시계획조차 없는 식상한 공약은 그나마 봐줄 만하다. 경제성 부족으로 이미 정부 차원에서 지워버린 대규모 SOC 사업을 무슨 수로 되살리겠다는 것인지 해저터널, 고속철도 건설 등 대선급 공약을 내건 후보들도 많다. 조 단위의 예산이 투입되는 신공항 유치 등 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후보들이 당선된다면 건전 재정을 좀먹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금 우리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 한정된 예산으로 그 질곡을 빠져나올 토대를 만들어야만 한다. 전문가의 올바른 처방전에 따르지 않고 민간요법식으로 예산을 남용하다간 경제 살리기는 고사하고 쇠락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지도 모를 일이다. 정부가 2017년도 예산에서 14조~16조원을 절감하기로 했는데 이 같은 세출 구조조정이 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정치권이 협력해야 한다. 여야의 공약도 한정된 재원을 투입해 가장 효율적으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돼야만 한다. 아무리 총선 국면이라도 무책임하게 선심 공약을 쏟아내선 안 된다.

[중앙일보]

7. 여직원이 결혼하면 사표 받는 금복주의 시대착오

한국은 15년째 출산율 1.3명 이하의 초저출산 국가다. 지난해 출산율은 1.21명에 불과하다. 요인은 복합적이지만 결혼·출산·양육으로 이어지는 경제활동 여성을 사회가 보호하지 못하는 탓도 크다. 그러자 정부는 지난해 말 혼인 장려를 포함한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을 내놓았다. 여성들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해 2020년까지 출산율을 1.5명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여기에는 무려 200조원의 세금이 투입된다.

그런데 이런 정부 대책에 역행하는 기업의 시대착오적 행태가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대구의 향토 주류업체인 '금복주'가 결혼을 앞둔 30대 여성의 퇴직을 강요했다는 의혹이 그것이다. 분노한 여성들은 제품 불매운동 전단·스티커를 지하철역 등에 배포하고, 63개 시민단체는 불매운동본부까지 발족했다. 여성단체에 따르면 2011년 입사한 30대 사무직 여직원은 지난해 10월 "두 달 뒤 결혼한다”며 상사에게 알렸다고 한다. 그런데 축하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회사 측의 퇴사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같은 해 12월 결혼한 뒤로는 회사 눈치를 보는 동료들의 따돌림까지 받았다고 한다. 견디다 못한 이 여성은 올 1월 회사 대표 등을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대구고용노동청에 고소했고, 결국 이달 10일 사표를 냈다.

여성단체들은 "금복주가 지난 58년간 여직원이 결혼하면 모두 퇴사시켰고, 지금도 10명의 사무직 여직원은 다 미혼자”라며 부당한 인사를 폭로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정신을 못 차린 듯하다. 홈페이지에 달랑 '피해 직원에 사죄한다'는 사과문을 게재하고는 여직원들이 결혼하면 모두 알아서 나갔지 해고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교묘한 회사의 압박과 만행에 그동안 선후배 여직원들이 겪은 고초가 얼마나 심했겠는가.

현행 남녀고용평등(일·가정 양립)법과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에게 성별 등을 이유로 차별적 처우를 못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대구노동청이 조사에 착수한 만큼 조속히 사태의 진위를 밝히기 바란다. 여직원을 홀대하는 기업이 있는 한 국가적 과제인 저출산 해소는 꿈도 꿀 수 없다.

8. 관광입국 컨트롤타워, 그랜드 플랜을 제시하라

앞으로 한국을 먹여 살릴 가능성이 큰 관광산업의 컨트롤타워가 신설된다. 정부는 그제 국무회의를 열고 문화체육관광부에 산하에 2개 국을 둔 관광정책실을 신설하기로 했다. 그간 한국은 싸구려·바가지 관광이 판을 쳐도 방치될 만큼 관광정책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관광이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서비스산업의 총아로 떠오르는데도 유·무형의 관광 인프라가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는 얘기다.

13억 중국인 관광객(유커·遊客)을 놓고 우리와 경쟁 관계에 있는 일본은 달랐다. 관광이 서비스업은 물론이고 제조업까지 견인하는 차세대 첨단산업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정부 차원에서 2003년 관광입국(立國) 전략을 수립해 2008년 관광청을 설립하면서 관광산업에서 치고 나갔다. 지난해 일본이 1974만 명을 유치하면서 1323만 명 유치에 그친 한국을 크게 따돌린 배경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엔저(低)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같은 변명을 늘어놓아선 안 된다.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듯 관광입국은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산업의 영역이다. 따라서 정책의 컨트롤타워를 뒤늦게 신설하는 것은 무너진 관광산업을 일으키는 첫 단추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른 시일 내 선진 외국 사례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관광 진흥을 위한 그랜드 플랜부터 짜야 한다. 한국은 일본에 뒤진 것은 물론이고 싱가포르·마카오 같은 경쟁 도시에도 크게 뒤져 있다.

중국은 1999년 포르투갈로부터 마카오를 반환받은 뒤 카지노 도시에서 복합리조트 도시로 탈바꿈시켜 왔다. 마카오 앞바다의 갯벌을 메워 만든 코타이 스트립 지역의 복합리조트가 대표적이다. 코타이 스트립에는 현재 세계 6대 복합그룹 업체가 들어와 신천지를 만들어 놨다. 카지노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도 복합리조트를 찾는 기업 고객과 관광객이 꾸준히 늘어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을 돌파했다. 코타이 같은 곳이 중국에 더 늘어나면 한국은 유커를 모두 빼앗기게 된다.

이에 반해 한국은 영종도에서 이제 삽을 뜨고 있다. 그나마 3개 사업자 가운데 인도네시아계 중국 자본인 리포그룹이 미단시티 복합리조트 사업을 포기하는 수순을 밟고 있어 장밋빛 전망을 뒤집어 놓고 있다. 중국 화장품 업체 아오란(傲瀾) 직원 6000명이 인천 월미도에서 치맥 파티를 열고 5월에는 건강제품 업체 난징중마이(南京中脈) 사원 8000명이 서울을, 중국 무술협회 5000명이 청주를 찾기로 한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한류 드라마에 취한 유커의 방문이 계속될 거란 기대는 금물이다.

파리·뉴욕·홍콩처럼 한 번 방문하면 반복해 찾게 되는 매력을 가져야 관광이 산업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관광정책 컨트롤타워는 대형 국제회의·기업 인센티브 여행이 가능한 마이스(MICE) 산업이 지속 가능하도록 관광 인프라를 총체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관광정책실 신설을 계기로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대통령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주길 촉구한다

​[매일경제]

9. 경유차 규제 등 미세먼지 줄일 자구책 필요하다

짙은 미세먼지가 며칠째 하늘을 뒤덮고 있다. 서울은 이달에만 8일간 일평균 미세먼지(PM 10)농도가 '나쁨(81~150㎍/㎥)'을 기록했다. 경기도는 어제 시간당 평균 농도가 157㎍/㎥를 기록하자 김포·고양 등 6개 시·군에 미세먼지주의보를 발령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한반도상에 안정된 고기압이 머물고 있어 향후 2~3일은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라고 하니 답답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을 정도로 미세먼지는 건강에 치명적이다. 특히 입자가 작은 초미세먼지(PM2.5)는 자동차,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된 오염물질로 폐나 심장에 침투해 호흡기·심혈관 질환을 일으킨다. 

미세먼지는 중국 산업지대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이 서풍을 타고 국내로 유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13년 환경부는 대기오염 물질 중 30~50%는 국외에서 유입됐다고 발표해 나머지 50~70%는 국내에서 배출된 것으로 추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국내 미세먼지 발생 원인을 찾아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정부의 대응은 마스크 쓰기, 실외활동 자제 등 한가하기만 하다. 

환경부는 지난 24일 3대 주요 배출 원인인 자동차, 사업장, 생활오염원에 대한 미세먼지 감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친환경 자동차, 천연가스버스 보급 확산 등 방안이 담겼지만 미세먼지의 위험에 비해 강도가 느슨하기 짝이 없다. 미세먼지가 심각하면 차량 2부제 등도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24시간 이상 주의보 수준으로 유지될 경우로 기준을 높여 잡아 실시된 적이 없다. 

대기질 악화는 경유차 증가와 연관이 깊다. 경유차 배기가스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이 화학반응을 거쳐 미세먼지가 된다. 국산차 중 경유차 비중은 2012년 27%에서 지난해 44.7% 증가해 가솔린차를 추월했다. 높은 연비와 고출력, 친환경 이미지 때문에 디젤차가 늘었지만 폭스바겐 사태로 '클린 디젤'의 허구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클린디젤에 대한 환경개선 부담금 면제 등 각종 혜택을 축소해야 할 뿐 아니라 대기오염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영국은 런던 시내에 노후 디젤차 운행 제한 구역을 설정하고 있고 프랑스는 경유 세제 혜택을 5년 내 종료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인도는 뉴델리시에 고급 경유차 등록을 잠정 금지하는 강력한 규제조치를 명령한 바 있다. 환경부는 경유차가 미세먼지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만큼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10. 가파른 노인 비중 증가 미리 대비해야 재앙 안돼

인구 구성에서 노인 비중이 증가하는 것은 전 세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한국의 고령화가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니 걱정스럽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소(NIH)가 펴낸 '늙어가는 세계: 2015'라는 보고서를 보면 세계 총인구 중 현재는 8.5%인 65세 이상 인구가 2050년 17%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은 세계 평균보다 훨씬 심해 2050년 노인 비중이 35.9%로 일본 40.1%에 이어 두 번째 상위를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통계청이 최근 낸 '한국의 사회지표' 보고서에서도 2060년 인구 구성을 보면 14세 이하 유소년은 전체 중 10.2%에 불과한 반면 65세 이상 고령층은 40.1%로 4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전체 인구를 나이별로 한 줄로 세웠을 때 중간에 해당하는 중위 연령이 58세이고, 인구 10명 중 4명이 노인인 늙은 나라가 된다니 어둡기만 하다.


현재는 30~50대가 많은 항아리형인데 2060년엔 60세 이상에 더 많이 몰려 있는 역피라미드형으로 바뀌는 것이다. 급격하게 낮아진 출산율에다 의료기술 발달에 따른 수명 연장 때문이지만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유독 빠르게 고령인구가 증가하는 것이어서 곤혹스럽다.


문제는 노령화 속에 숨어 있는 사회적·경제적 변화다. 총인구 자체가 2030년쯤 정점을 찍은 뒤 계속 줄어든다. 15~64세인 생산가능인구가 전체 중 절반도 안 될 뿐 아니라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노인이 2060년 80.6명으로 불어난다. 일하는 인구 1.2명당 노인 1명씩을 책임져야 하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 경제 규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이 2024년부터 모자라기 시작해 2060년엔 900만명이나 부족할 것이라는 추정도 있으니 심각하다. 노령화는 연금 노동 은퇴 등 많은 부문에 영향을 미칠 사안이니 정부는 물론 개인 차원에서도 미리 대응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인구 구성 변화를 막연하거나 느슨하게 추정하다가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다. 최악의 상황까지 설정해 빈틈없는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이데일리][데스크칼럼]노는 者의 승리..이경규에게 배우다

‘노는 중’. 한 친구의 페이스북에 오른 사진의 제목이다. 11세 딸의 방문에 붙인 표시라면 보통 ‘공부 중’ 적어도 ‘휴식 중’이다. 신기하게도 친구의 딸은 놀고 있으니 건들이지 말라고 적어놨다. 페이스북 친구의 댓글도 넘쳐났다. ‘노는 것보다 공부가 쉬웠어요’ ‘아이의 센스가 좋네요’ 등등이었다. 그 중 눈에 띄는 댓글은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 분별과 절제를 아는 듯하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주말 한 명의 걸출한 방송인이 화제에 올랐다. 개그맨 출신 MC 이경규다.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서 노는 게 뭔지 제대로 보여줬다. 이경규는 반려견과 함께 하는 ‘눕방’(누워서 하는 방송)을 선보여 1위를 하더니 이번엔 ‘낚방’(낚시방송)으로 1위를 따냈다. ‘마리텔’은 연예인이나 셀럽이 인터넷 방송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형식이다.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준 게 ‘마리텔’의 대표적 아이템이다. 그래서 출연진들은 춤을 추기도 가면을 만들기도 작곡을 하기도 한다. 이경규는 별다른 재주도 보여주지 않았고, 그저 자신의 편안한 일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를 열광하게 만들었다.

이경규의 이날 승리 비법은 배워볼만하다. 먼저 어떤 판이 깔리더라도 그 판에 휩쓸리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 유리한 분야로 판을 다시 만들어낸다. ‘무한도전’에서 ‘나이 들면 누워서 하는 방송을 하면 된다’고 말했던 것처럼 힘에 부칠 때마다 바닥에 드러누우며 ‘눕방’을 보이더니 평소 낚시광답게 스튜디오가 아닌 낚시터로 나갔다. “지금 스튜디오는 난리가 났을 거다. 내가 밖에서 뭘 하는지 모르지 않나”고 너스레를 떨었다. 낚시 베테랑답게 한 번에 두 마리의 붕어를 잡는가 하면 직접 라면을 끓이며 한때 하얀 국물 라면 ‘꼬꼬면’으로 히트를 친 ‘쿡방’ 원조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또 다른 비법은 ‘노는’ 게 뭔지 안다는 데 있다. 이경규는 지난 1월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예능계를 이끌어 온 대부로 소개됐다. ‘무한도전’에 출연한 것도 10년 만이었다. 부침이 심한 연예계에서 그가 오래 살아남은 비결은 ‘노는’ 맛을 아는 덕분이다. 많은 스타와 예능인들이 줄줄이 실패를 맛본 ‘마리텔’에서, 그는 그저 놀았을 뿐이다. 인터넷 방송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며 무리수를 두려고 하기 보다는 평소 자신의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줬다.

잘해내야 한다는, 실패하면 추락한다는 두려움으로 요즘 현대인은 불행하다. 나이 60이 넘은 선배를 만나면 가끔 필자에게 아쉬운 게 많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제대로 놀지 못한 아쉬움이다. 논다는 게 무위도식(無爲徒食)한다는 말은 아니다. 놀다의 첫번째 사전적 의미는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다’는 뜻이다. 20대는 취업을 준비하느라, 30대는 젖먹이 아이 키우느라, 40대에는 그 아이 학원비 대느라, 그리고 50대에는 부모 봉양과 자신의 노후 걱정 하느라 바삐 살았다. 그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책 ‘노는 만큼 성공한다’에서 놀면 불안해지는 병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일과 삶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잘 노는 사람이 창의적이고 성공한다는 주장도 담겨 있다. 일을 벗어나 재미있는 일에 잠시 빠지는 게 일, 나아가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일이 곧 놀이일 수도 있겠으나 실상 일과 놀이는 병행하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강박이었다. 시위 떠난 화살마냥 후회도 소용없다. 놀멘 놀멘 살지 못한 삶을 아쉬워해도 쓸모없다. 11세 소녀처럼 용기 있게 재미난 일을 하면서 살 수는 없을까? 나는, 당신은 재미난 일을 한 적이 언제인가? 놀 때는 놀고 일할 때는 일하는, 초등학생도 아는 진실을 어른이 되고 나면 잊고 만다. 이경규처럼 재미에서 일까지 뽑아내는 삶을 살 수 있을까.

2. [한국일보][기자의 눈] 세월호 의혹 이대로 눈 감을 건가

“진위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채 풀리지 않는 의혹으로 남을까 겁이 납니다.”

28일부터 이틀간 열린 4ㆍ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2차 청문회를 지켜 본 한 유가족의 소감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이 진상 규명의 실마리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보다 정치권과 여론의 무관심 속에 이대로 진실이 가라앉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만 가득했다. 

날 선 공방만 오갔던 1차 청문회와 달리 2차 청문회에서 나온 증언과 의혹은 새로운 것이었다. 세월호 여객부 직원 강혜성씨는 승객들의 탈출을 막은 ‘선내 대기’ 방송이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지시였다고 폭로했다. 숨진 여객부 동료직원에게 누가 될까 검찰에서도 말하지 않은 ‘팩트’라며 유가족에게 사죄했다. 검찰 수사와 재판기록에는 없던 내용이다. 선사와 국가정보원, 해경 등의 유착 관계도 재확인됐다.

조사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사고 책임소재를 가릴 결정적 근거가 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세월호 참사의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라며 만든 특조위는 힘이 없다. 예산이 정한 특조위 활동시한은 6월30일까지. 시간도 부족하거니와 조사를 강제할 권한은 더더욱 없다. 강씨 증언을 검증하기 위해 청문회에 부른 청해진해운 전 대표가 끝내 출석하지 않은 사실만 봐도 그렇다. 

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정신이 팔린 정치권은 세월호 문제에 도통 관심이 없는 눈치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해경 지휘부의 구조구난 작업이 적정했는지 확인해 달라’며 특조위가 제출한 특별검사 요청안을 지금껏 거부하고 있다. 야당 역시 손을 놓고 있긴 매한가지다.

이는 분명한 약속 위반이다. 여야는 세월호특별법 제정 당시 특조위에 수사ㆍ기소권을 부여하지 않는 대신 특검 요청이 가능하도록 합의했다. 게다가 아비규환의 현장을 목도한 당사자의 양심선언까지 나왔는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뒤바뀐 증언의 옳고 그름을 따져보자는 특조위와 피해자 가족들의 요구는 월권이나 과도한 떼쓰기가 아니다. 참사 2년이 지나도록 사고 원인 하나 속 시원히 밝혀내지 못한다면 정치권의 직무유기로 볼 수밖에 없다. 한 여당 의원은 30일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난 만큼 특검 요청이 다시 들어오면 무시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마침 특조위도 2차 특검요청안을 준비 중이다.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진실을 건져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3. [동아일보][횡설수설/이진]시한부 상사병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춘향가 중 사랑가의 한 대목이다. 단옷날 광한루에서 이몽룡은 성춘향을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긴다. 과거 준비에 촌음이 아까웠건만 글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춘향도 원님의 자제 몽룡을 본 순간 한눈에 반한다. 오붓하게 만난 두 사람, 건넛방 월매도 아랑곳 않은 채 세상없을 사랑놀이에 빠져든다. 지금 선남선녀들은 봄바람만 불어도 ‘심쿵’하는 세대. 단옷날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다가오지 … 잔 들어 그대 얼굴 보다 한숨짓네.’ 문호 윌리엄 예이츠의 시(‘A DrinkingSong’)처럼 이룰 수 없는 사랑은 술을 부르고 상심(傷心)하게 한다. 정보기술(IT) 덕분에 지구 반대편의 연인이 바로 곁에 있는 듯한 요즘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고무신 거꾸로 신은 애인을 잊지 못해 한숨과 눈물의 무기력을 넘어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일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제 이집트 여객기를 납치한 ‘자칭’ 자살폭탄 테러범은 헤어진 아내를 만나기 위해 일을 벌인 듯하다. 테러범은 아이를 5명이나 두었다니 아내와 금실이 무척 좋았나 보다. 왜 갈라섰는지 몰라도 얼마나 속이 타고 답답했기에 여객기를 통째로 가로채 아내에게 날아갔을까. 익살스러운 미소를 짓는 영국인 인질이 가짜 폭탄조끼 두른 테러범과 찍은 기념사진은 상사병이 아니었다면 볼 수 없었을 희비극이다.

4·13총선을 향해 뛰는 국회의원 후보 942명은 잠자리에 누워도 유권자들 얼굴만 아른거린다. “(표만 주시면) 하늘에서 별을 따 드리겠다”는 달콤한 말을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천 번 만 번 약속하며 다닐 때다. 사랑이 얼마나 넘치면 일자리를 1100만 개나 만들겠다고 할까. 전에 없던 청년사랑이 듬뿍 생겨나 그러려니 여기는 건 착각이다. 유권자를 무서워하는 체하며 포퓰리즘 공약을 내건 후보들은 속으로 투표일만 지나가길 바란다. 모두 총선만 끝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애정이 홀연 사라질 ‘시한부 상사병’ 환자들이다.

4.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반장선거

벌써 4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중학교 3학년 때의 반장선거는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 있다. 1, 2학년 때 반장을 했던 터라 나는 강력한 후보였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반장선거를 시작하겠다면서 갑자기 모두 눈을 감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호명하면 손을 들라고 했다.

“윤세영 지지하는 사람 손들어.”

눈을 감고 반장을 뽑겠다는 것이었다. 열네 살 어린 나이였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뭔가 석연치 않았다. 그러나 선생님께 건의해볼 틈도 없이 선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결국 나는 얼떨결에 눈을 감은 채 다른 친구가 반장으로 당선되었다는, 나로서는 검증할 길 없는 선생님의 결과 발표를 들어야 했다.

그 일은 내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선생님은 왜 관례대로 친구들 앞에서 발언할 기회를 주지 않았는지, 왜 무기명 투표를 한 뒤 개표하는 절차를 무시하고 우리 모두 눈을 감게 한 뒤 선생님 혼자 일방적으로 선거를 진행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학년에 올라올 때까지 한 번도 학교를 찾아온 적이 없는 엄마. 그럴 여유가 없는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 나보다 더 속상하고 가슴 아파할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아니, 실은 엄마 앞에서 울먹이지 않고 이야기를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로 하여금 눈을 똑바로 뜨고 민주적인 선거의 과정과 절차를 지켜보고 결과를 받아들이도록 가르쳤어야 했다. 내가 충격을 받은 까닭은 반장이 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도무지 그 과정과 결과에 승복이 되지 않아서였다. 우리의 반장을 뽑는데 왜 선생님이 개입하여 우리를 모두 눈감은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그걸 납득할 수 없어서였다.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둔 채 애써 잊고 지낸 이 일이 최근 불쑥 다시 떠오른 것은 선거철이 다가와서일까. 어른이 되었는데도 선거란 것이 여전히 눈 뜨고 봐주기 어려운 지경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눈을 감지 말았으면 한다. 풀지 못한 수학문제처럼 그때의 일이 수십 년이 지나도록 내 가슴 한구석에 커다란 물음표로 남아 있는 것은 그때 내가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이번 봄, 우리 모두 어떤 이유로든 눈을 감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학교에서 반장을 뽑는 선거도 아니고 나라를 움직이는 국회의원을 뽑는 일이 아닌가.

5. [동아일보][2030세상]아이의 고통을 외면하는 어른들

얼마 전 동료가 한 학부모에게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우리 단체가 요즘 진행하는 국회의원 선거 캠페인에 참여한 아이의 아빠였는데 “아무래도 내 딸이 의욕이 너무 넘친다”는 거였다. 이번 캠페인에서는 아이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직접 정당 대표들에게 물어보는 기회가 있다. 이 아빠는 딸이 너무 많은 질문거리를 준비하는 것 같다면서 “어린이는 정치 하면 안 돼요?”라는 질문도 있는데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며칠 뒤, 이런 당돌한 질문을 품은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요즘 겪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학원 8개를 다니는데 시간이 없어요. 생일파티 때도 2시간밖에 못 놀았어요. 학원 가는 시간을 줄여줄 수 있을까요?” “아빠는 서울에서 일해 주말에만 보고, 엄마도 일하는데 9시 넘어 오고, 오빠는 고등학생이라 기숙사 생활하니깐… 혼자 있는 게 좀 힘들어요.” “시골은 문구점이나 마트가 너무 멀고, 놀 곳이나 문화시설이 없어서 심심해요.” “아이들을 때리는 어른들이 감옥에 갔다가 금방 나와서 다시 우리를 괴롭힐까 봐 무서워요.”….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어른들에게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어른들은 일 하느라 바빠서 우리 이야기에 관심 없어요. 공부나 하래요.” 다시 “학교에서 학급회의 시간을 이용해 선생님께 건의해보는 것은 어떤지” 물어보았다. “학급회의? 그거 1년에 한 번 하는데 그냥 장난 같아요.” 

어린이들의 열띤 토론을 듣다 보니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서 직접 그들의 의견을 듣는 일에 어른들이 얼마나 소홀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만난 한 정치인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권은 투표를 먹고 사는 동물이에요. 아이들은 투표권이 없으니 당연히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죠.” 

우리나라의 예산과 정책을 뜯어보면 그의 이야기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3년 연구에 따르면 아동가족 복지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2.3%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정부의 아동복지예산 또한 전체 사회복지예산 중 0.25%에 불과하다. 이 중 대부분은 영유아 보육에 집중돼 있다. 그럼 정책은 어떨까.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온 정당 공약을 살펴보니 부모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교육과 보육이 아닌 아동 관련 공약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최근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서 들어간 듯한 학대예방 관련 공약이 없었다면 아동공약 페이지는 아예 빼는 게 나을 뻔했다.

또 다른 정치인을 만났을 때는 “미래세대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말이지만 혹시 ‘미래세대’라는 말 뒤에 숨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어려움에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2002년에 열린 아동에 관한 유엔총회 특별회의 선언문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당신들은 우리를 미래라고 부르지만, 우리 또한 현재랍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너희들이 미래의 희망”이라는 표현이라고들 한다. 그들은 미래에서 사는 게 아니고,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현재의 존재’다. 아동청소년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통계가 보여주듯 ‘현재’ 고통받고 있는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어른이 생각하는 행복과 어린이가 원하는 행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저희가 원하는 행복을 즐길 수 있도록 항상 물어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단체가 매년 진행하는 아이들의 삶의 만족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축사를 해준 어린이대표가 한 말이다. 아이들의 말을 경청해 달라는 요청이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2016년 3월 30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중앙일보]

1. 매표용 공약 근절이 경제 살리기의 시작이다

예산을 짜는 것은 정부의 국정 철학을 숫자로 담는 행위다. 어제 정부는 내년 예산안 편성 지침을 확정했는데 재량지출 사업의 10%를 줄여 일자리 창출 등에 쓰기로 했다. 이렇게 줄이는 돈은 최대 16조8000억원에 달한다. 정부가 쓸 돈, 곧 세출의 구조조정을 명문화한 것이다. 재정 사정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터라 세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꾸준히 언급돼 왔는데 이를 7년 만에 처음 명시한 것이다. 집권 후반 정부의 국정 철학이 ‘재정 건전성 강화’라는 얘기다. 이는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쏟아지는 포퓰리즘 공약에 대해 정부가 먼저 자물쇠를 채웠다는 의미도 크다.

선거는 공약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행위다. 그런데 허황된 공약(空約)이 춤추고 선거판이 혼탁해질수록 정부가 먼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여당의 공약도 덩달아 차분해지고 있다. 새누리당의 공약엔 4년간 4조3000억원이 든다. 추가로 세금을 더 안 걷고 달성 가능한 수준이다. 강봉균 공동 선대위원장표 공약의 핵심은 반(反)포퓰리즘이다. 그는 “무상 복지 시리즈를 감당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고 말했다. 그가 다듬은 7대 경제 공약의 기본틀에는 유권자의 환심을 살 사탕발림이 없다. 과거에 비하면 이게 과연 총선 공약인가 싶을 정도다.

반면 더민주당은 돈이 좀 더 드는 공약을 내놨다. 10대 주요 공약에만 약 15조원이 든다. 소득 하위 70% 어르신에게 기초연금 30만원, 0~5세 무상교육, 공공 임대주택 240만 가구 공급 등 선심성 복지공약도 꽤 담겼다. 쓸 것 줄이고, 부자한테 더 걷는 재정·조세 개혁이 중심이다.

이런 패턴은 과거 선거와 비교하면 나쁘지 않다. 지금까지 우리 정치는 선거 때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포퓰리즘 광풍에 휘말려 책임지지 못할 공약으로 나라 살림을 거덜 내는 일에만 몰두해 왔다. 이번 총선은 이런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날 좋은 기회다. 굳이 가르자면 야당의 공약은 적극적·공격적·진보적, 여당은 소극적·수비적·보수적인 쪽이 바람직하다. 그 안에서 절충점을 찾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사실은 여야 모두 알고 있다. 원인과 처방도 대개 서로 공감한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어렵고, 우리 산업의 구조개혁이 안 됐으며, 규제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처방은 구조개혁, 규제완화다. 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같다. 일자리와 가계소득 증대다. 다만 방법론과 우선 순위가 차이가 날 뿐이다.

여야가 실현 가능한 경제 공약을 내놓고 제대로 맞붙어 보라. 한정된 자원으로 누가 더 효율적으로 경제를 잘 살릴 수 있는지 겨루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돌아보지도 않을 비현실적인 공약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정책조합을 놓고 유권자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선거가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래야 유권자도 표를 줄 마음이 생길 것 아닌가.

2. 통신자료, 마구잡이로 들여다봐선 안 된다

검찰·경찰과 국가정보원의 통신자료 조회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무차별적으로 사생활을 훔쳐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통신자료가 정해진 용도로만 활용되고 외부에 유출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절차를 전반적으로 점검할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고 말했다. 시중에 확산되고 있는 논란을 의식해 보완 방안을 마련해보겠다는 얘기다. 최근 국회의원과 노동단체 실무자, 기자, 대학생 등 일반 시민들까지 통신자료를 조회당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통신 사찰(査察)’이란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83조는 수사·정보기관이 재판, 수사, 형 집행, 국가안보에 대한 위해 방지를 위해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 등 인적 사항을 사업자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관들은 이 조항을 활용해 법원 영장 없이 인적 사항 일체를 제공받아왔다. 2014년의 경우 통신사는 전화번호 수 기준으로 검찰 426만 건, 경찰 837만 건, 국정원 11만 건의 통신자료를 제공했다(미래창조과학부 집계). 1년간 1270만 개 넘는 전화번호 보유자의 인적 사항이 수사·정보기관에 제공된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제공요청서에 요청사유 및 연관성 등만 간략하게 적으면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해당자들의 인적 사항 일체가 넘어간다는 데 있다. 당사자는 통신사에 제공 내역을 요청해야 알 수 있다. “인적 사항쯤이야…”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인적 사항은 프라이버시의 핵심이다. 특히 주민번호 하나만 있으면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서 추가적인 개인정보를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생활의 울타리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표현의 자유도 위협받기 마련이다.

분명한 건 인권이 수사 편의에 희생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경찰은 물론이고 국정원과 검찰 모두 시민이 납득할 수 있게끔 명확한 기준과 절차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통신자료 조회는 원칙적으로 법원 허가를 거치도록 법을 고치고 당장 법 개정이 어렵다면 최소한 사후 통지 절차라도 도입해야 한다.

[이데일리]

3. 법원으로 옮겨가는 '미인도' 위작 논란

지난해 타계한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둘러싸고 그동안 벌어졌던 위작 논란이 끝내 법원으로 옮겨갈 조짐이다. 천 화백의 유족이 무료 변호인단을 구성하고 조만간 국립현대미술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한국 화단에서 대표적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던 천 화백의 위작 시비와 관련해 마찰을 빚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유족이 소송을 제기하려는 취지는 단순하고도 명백하다. 천 화백이 생전에 문제의 그림에 대해 거듭 자기 작품이 아니라고 밝혔는데도 이 그림을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 측이 계속 천 화백을 저작자로 표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막아 달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국가기관인 미술관이 저작권 침해 및 사자명예훼손을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확대해서 바라보자면, 고인에 대한 인권모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술관 측은 이 그림을 이용해 엽서와 달력 등을 제작·판매하기도 했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미술관 측이 이 그림과 관련해 국회에 허위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이다. 위작이 아니라는 근거를 마련하려는 술책이었다. 미술관 고위 관계자들이 천 화백으로부터 “위작 주장이 착오에 의한 것이었다”는 진술을 청취했으며, 문제의 그림이 실린 화집이 발간된 데 대해서도 “천 화백이 편집과정에 참여했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위작 논란으로 한참 옥신각신하던 1990년 무렵의 얘기들로, 지난해 국회 제출 경과보고서에서 확인된 내용이다. 관계자들 사이의 진술이 약간씩 엇갈리고 있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술관 측이 허위 공문서 작성 범죄까지 스스럼없이 자행한 셈이다.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의 이중적인 시각이다. 이우환 화백 위작 논란이 제기되자 “작가가 살아 있으니 작가에게 물어보면 된다”며 작가의 뜻을 최우선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문제의 미인도에 대해서는 “충분한 위작 근거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한 논란에 대해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했거나 일방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일단 법원으로 문제가 옮겨가는 만큼 모든 논란이 말끔히 해소됨으로써 고인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바란다.

4. 능력중심 채용이 선진사회 앞당긴다

모름지기 조직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게 조직이 발전하는 지름길이다. 나라나 기업, 단체가 똑같다. 하지만 이처럼 지극히 당연한 진리가 통하지 않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어느 지역 출신이고, 어느 대학을 나왔으며, 누구와 어떤 관계냐가 취업에 훨씬 요긴한 요소가 되곤 한다. 민주노총 산하노조 4개 중 1곳꼴로 기업이 종업원 자녀를 우선 채용해 주는 ‘고용 세습’을 누리고 있다니, 이젠 노조의 ‘갑질’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취업준비생들이 능력 키우기보다 학벌과 스펙 쌓기에 집착하는 것이 그래서다. 대한상의에서 그제 열린 ‘능력중심 채용 실천선언’ 선포식은 그릇된 채용 풍토를 확 바꾸자고 민관(民官)이 손잡은 자리다. 국무총리실을 비롯해 고용노동부, 교육부,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와 공공기관, 경제단체인 대한상의·경총·전경련·중소기업중앙회가 참여했다. 기업 중에서도 삼성·현대·SK·LG 등 대기업 25곳과 몇몇 중소·중견기업이 동참했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이날 선언에서 채용기준과 절차를 사전에 명확히 알리며, 합리적 이유 없이 사진·연령·출신지·가족관계 등의 인적사항을 요구하지 않으며, 업무와 무관한 어학성적·해외연수·사회봉사 등 과도한 스펙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등 10개 실천과제를 제시했다. 이대로만 된다면 고학력 인재를 과잉 공급하느라 부담하는 사회적 비용과 막상 취업하고 나면 쓸모도 없는 스펙을 쌓느라 취준생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 크게 줄어들 게 틀림없다.

채용기관이나 취준생 모두에게 이로운 ‘상생’ 조치를 더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정부의 복안은 각 직종의 필수 직무능력을 규정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이다. 지난해 130개 공공기관에 도입돼 성과를 낸 NCS를 내년에는 모든 공공기관으로 확대하고 앞으로 기업들의 능력중심 인사관리를 유도해 나간다는 것이다.

능력중심 사회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자 선진국으로 가는 디딤판이다. 만시지탄이지만 후진적 채용 관행에 제동을 걸려는 시도를 환영해 마지않는다. 이번엔 결코 말로만 끝내지 말고 새로운 채용제도로 굳건히 뿌리내리도록 민관이 함께 힘써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동아일보]

5. F-35A 격납고 로비 의혹, 수사도 않고 덮을 참인가

차기 전투기(FX)로 미국에서 도입하는 F-35A의 격납고 건설을 놓고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로비를 벌인 정황이 기무사령부에 포착돼 국방부 특별건설기술심의위원회 영관급 장교 40명이 전원 교체됐다. 대기업 계열사 A사와 대형 건설사 B사가 공병 병과 출신 예비역들을 영입해 작년 10월부터 경쟁적으로 로비했고, 이들의 상관에게도 로비를 했다고 한다. 청와대 지시에 따라 국방부는 이들과 민간인 심사위원 28명 등 68명 중 20명을 새로 심사위원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로비 의혹을 철저하게 수사해 진상을 가려내는 대신 당초 예정대로 1일 결과를 발표키로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총사업비 7조3400억 원대의 FX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비리 의혹이 불거졌으니 사업이 본격 진행됐더라면 ‘먹자판’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격납고는 전투기를 보관하고 정비하는 시설로 2400억 원 규모의 대형 사업이다. 건설사가 ‘군피아’를 이용해 로비했는데도 군이 현역 심사위원만 교체하고 의혹을 묻어둔 채 아무 일도 없는 듯 로비 기업에 사업을 맡긴다니 이해하기 힘들다. 군은 로비 기업의 제재도, 입찰을 새로 할 법규도 없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청와대와 국방부에 보고는 왜 했는지, 사업을 둘러싼 곡절이 대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건국 이래 최대 무기도입 사업인 FX는 그렇지 않아도 논란이 많았다. 미국 록히드마틴사에서 F-35A를 도입하면서 핵심 기술을 이전받아 한국형전투기(KF-X)를 개발하려던 정부의 구상은 미국의 거부로 우리가 독자개발을 해야 할 판이다. 아직 개발 중인 F-35A는 중력가속도와 무기 발사, 비상시 조종사 탈출 기능에 결함이 나타나 미 국방부는 내년 7월 말로 예정됐던 개발시험 완료 일정을 1년 정도 늦출 것임을 미 의회에 보고했다. 그런데도 국방부가 뭐가 급해 그렇게 서둘러 의혹을 덮고 넘어가려는 건지 모르겠다. 

정부는 방산비리의 뿌리를 뽑겠다고 방위사업비리합동수사단을 설치해 작년에 1조 원 규모의 비리를 적발한 데 이어 올 1월 서울중앙지검에 방위사업수사부를 신설했다. 이적행위나 다름없는 방산비리를 척결하기 위한 사정 당국의 노력이 계속되는데도 일선에선 달라진 게 없다. 파문의 최소화에 급급해 이번 사건을 그대로 덮고 넘겨선 안 된다. 차제에 부패의 화근을 근본적으로 수술하지 않으면 FX 사업이 더 큰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져 국가안보에 큰 구멍이 뚫릴 수 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지 못하는 사태를 예방하려면 철저한 수사와 일벌백계가 필요하다.

6. 헌재가 해산시킨 통진당 출신, 간판만 바꿔 출마하나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정당 결정으로 해산된 옛 통합진보당 소속 인사 40명이 지난달 창당한 민중연합당 후보로 20대 총선에 출마한 것으로 확인됐다. 40명 중 36명이 과거 통진당 간판으로 총선이나 지방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다. 이 중 4명은 주요 당직자였고, 이상규(서울 관악을) 김재연(경기 의정부을) 전 의원도 포함됐다. 비례대표 4명 모두와 상당수의 시도당 위원장도 통진당 출신이다. 이력을 정확히 기재하지 않은 사람까지 감안하면 수가 훨씬 늘어날 것이다. 민중연합당의 총선 후보 60명 가운데 무려 3분의 2가 통진당 출신이니 사실상 ‘통진당의 간판만 바꿔 단 신장개업’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민중연합당은 “99% 민중의 직접 정치를 실현하자”는 모토로 2월 27일 비정규철폐당 농민당 흙수저당 연합으로 창당했다. 공동대표인 강승철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과 이광석 전 전농 의장도 통진당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창당 한 달도 안 돼 13개 광역시도당을 구축하고 단시일 내 당원 2만여 명을 확보한 것을 보면 통진당 세력과의 연계 의혹이 짙다.

정당법상 해산 정당의 강령 또는 기본 정책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정당의 창당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구성원들에 대한 제재 규정은 별도로 없다. 해산 당시 통진당 소속 의원 5명의 의원직 박탈도 헌재의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위헌을 이유로 정당을 해산하면서 그 사유가 된 강령을 만들고 활동에 동조한 구성원들에게 입법 미비로 법적 제재를 가하지 못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홍성규 전 대변인 등 통진당 출신 10명은 이번에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독일은 정당 해산 결정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할 경우 일정 기간 피선거권을 제한한다. 또한 ‘헌법에 적대적 활동을 하는 사람은 공무원에 임용될 수 없고, 적대적 조직에 소속된 구성원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공무원 임용을 거부할 수 있다’는 규정까지 두고 있다. 일본도 비슷하다.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불순 세력까지 용인하는 것은 자유와 민주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서울신문]

7. 청년 실업 비웃는 고용세습 특권 뿌리 뽑으라

정부와 경제단체가 그제 능력 중심의 채용을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사회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 사회의 청년 실업 문제가 임계점에 달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고용노동부는 근로자 100명 이상 기업 2769곳을 대상으로 노사 단체협약 실태를 조사한 결과 업무상 재해를 당한 직원의 가족을 우선 채용하는 규정을 둔 사업장이 505곳으로 가장 많았고, 정년 퇴직자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직장이 442곳이나 됐다고 밝혔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사원들의 복지 차원에서 회사를 위해 일하다 불행을 당한 직원의 자녀에게 취업 기회를 주는 것을 비난할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국가 유공자에게 취업 기회를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능력 유무와 상관없이 부모의 지위나 단체교섭의 특권으로 취업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양질의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대기업의 블루칼라 고용세습도 이제는 시대 상황에 맞게 개선돼야 한다. 화이트칼라 고용세습도 마찬가지다. 기업마다 임원 출신 자녀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하는 현대판 음서제도가 공공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에서 적성검사 등 창의적인 면접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비교적 공정할 것으로 여겨지는 대학교 로스쿨 입학 전형에서도 면접을 담당하는 교수들의 정성평가가 당락을 결정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반영돼 금수저 논란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공기업은 물론이고 민간기업의 고용 실태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리가 없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정부는 공정한 채용을 위해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을 이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NCS는 산업 현장에서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과 기술, 소양 등을 산업부문별 수준별로 구성해 놓은 체계다. 산업 현장에서 곧바로 투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아직도 교육 현장과 산업 현장의 괴리가 크다는 것이 약점이다. 이를 활용하려면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

능력 중심의 사회가 되려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그동안 누리고 있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노동조합도 예외가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걸맞게 고용세습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게 마땅하다.

8. 탈당파에 대통령 사진 떼라는 친박의 갑질

4·13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내부에서 유승민 탈당 파동에 이어 대통령 ‘존영’(尊影) 반납 소동까지 일어나 시끄럽다. 그제 새누리당 대구시당이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유승민(대구 동을), 주호영(대구 수성을), 권은희(대구 북갑), 류성걸(대구 동갑) 의원 등 4명에게 대통령 존영을 반납하라는 공문을 보내 논란이 일어났다. 존영은 사진이나 화상을 높여 부르는 말로 박근혜 대통령 사진이 들어간 액자를 반납하라는 의미다.

새누리당 대구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 명의로 보낸 공문에는 “2013년 6월 새누리당에서 당 소속 국회의원 사무실에 배부해 드린 ‘대통령 존영’을 29일까지 반납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대구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조원진(대구 달서병) 의원은 유 의원 등이 사무실에 대통령 사진을 계속 걸어 두는 것에 대해 “대통령을 무시하는 것을 넘어 조롱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문을 받은 의원들은 “황당하고 옹졸한 처사”라고 반발했고, 청와대 측은 “특별히 언급할 게 없다”며 말을 아꼈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파동의 여진이 계속되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반응일 것이다.

최근 유승민 탈당 파동에 이어 이번 소동까지 지켜보는 국민들은 착잡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들이 대통령의 눈 밖에 난 인물들을 낙천시키고 탈당까지 몰아간 것도 부족해 박 대통령의 친분을 앞세워 반사이익을 보려는 속셈에 그저 혀를 찰 뿐이다. 탈당 의원들이 잘못을 했다면 유권자에게 당을 내친 그들의 행태를 지적하고 정정당당하게 표로 심판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 정도다. 탈당 인사들이 대통령·새누리당과 결별한 무소속 후보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전략 자체가 정정당당한 대결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유승민 탈당 파동에 이어 대통령 사진 반납 논란까지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등 친박 측의 독선에 있다. ‘당 정체성’ 문제로 공천을 줄 수 없다면 당당하게 이유를 제시하고 유권자들의 판단에 맡기면 될 일이다. 대통령 사진 반납 소동은 김무성 대표의 옥새 파동까지 겪은 집권당의 부끄러운 민낯에 다시 먹칠을 하는 꼴이다. 새누리당은 ‘친박’의 전유물이 아니다. 집권당으로서 통합과 포용의 자세를 보여 주지 않는 한 유권자들의 심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9. 이번 핵안보회의에선 반드시 북핵 의지 꺾어야

박근혜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제4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오늘 출국한다. 핵무기와 핵물질은 물론 원전 등 핵시설을 테러 집단으로부터 방호하려는 목적의 회의이지만 국제사회의 ‘발등의 불’인 북핵 문제가 주관심사다. 회담 기간 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그리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연쇄 회동과 3국 정상회담이 주목되는 이유다. 핵 비확산이 아닌 핵테러 문제를 다루는 정상 간 협의체라지만, 목마른 쪽이 우물을 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정부는 이번에 북핵 문제를 적극 이슈화해 북한 김정은 정권이 핵 개발을 포기하도록 빈틈없는 국제 공조를 견인하는 무대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핵안보정상회의는 이번 4차 회의를 끝으로 일단 역사적 수명을 다한다. 물론 항구적 글로벌 핵안보 체제 구축이란 회의의 근본 취지는 우리가 의장국으로 예정된 국제원자력기구(IAEA) 각료회의로 이어지게 된 것은 다행스럽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번 정상회의에 임해야 할 당위성은 차고 넘친다. 핵테러 예방 등 핵안보에 대한 글로벌 기여도를 늘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자원부족국인 우리나라가 안정된 국제통상 활동을 영위할 중장기적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차원만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 도발을 억제하고 비핵화를 압박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란 뜻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도발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전례 없이 강도 높은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를 발동한 지 한 달이 다 돼가는 시점이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핵을 포기하긴커녕 핵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등 대남 핵공갈을 일삼고 있다. 심지어 북측은 이번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의 적대적 행동에 대응해 사전 핵공격을 가할 준비가 돼 있다”(리수용 외무상)는 등 신경질적 반응까지 보였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등 한반도 주변 당사국 정상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이번 회의야말로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 낼 실효성 있는 방안을 논의할 적기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현시점에서는 중국이 대북 제재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게 관건이다. 미 의회가 김정은의 통치자금과 북측의 석탄 등 광물 수출을 차단하는 독자적 제재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중국이 협력하지 않는 한 실효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란 대북 정책을 당분간 유보하고 제재의 고삐를 죄기로 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전 배치가 시간문제가 된 상황에서 말이다. 그래서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야말로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는 확고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절호의 기회임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차제에 국제사회가 지난 20여년간 되풀이된 북한의 ‘도발→제재→대화→보상→도발’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의지를 보여 줘야 할 것이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세습 체제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촘촘한 그물망 국제 제재를 다지는 데 우리의 외교 역량을 총동원하기를 당부한다.

[매일경제]

10. 中 반도체 투자 무서운 기세, 격차 유지할 방안 있나

중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인 칭화유니그룹과 국영기업인 XMC는 각각 300억달러와 240억달러를 투자해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을 과점하고 있어 한국 반도체 산업에 도전장을 내민 것과 다름없다. 중국은 이미 인텔 퀄컴 등과 합작해 생산시설을 유치했고 한국과 대만, 일본의 반도체 기술인력 영입을 위해 기존 연봉의 5~10배를 제시하는 등 공세를 펼치고 있다.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한 인수·합병(M&A)은 무서울 정도다. 칭화유니그룹은 크고 작은 업체를 합병하며 덩치를 키웠고, 지난해에는 D램 세계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 인수금액으로 무려 230억달러를 제시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37.9%와 19.6%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아직 공정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세계시장에서 존재감은 미미하다. 중국이 지금 당장 한국의 D램 미세화 공정이나 낸드플래시 3차원(3D) 적층 기술을 따라오는 것은 역부족이다. 바로 생산한다고 해도 기술 격차는 최소한 2~3년 벌어져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중국은 거대한 내수시장을 확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화웨이와 하이얼 등 중국 토종 가전·전자업체들의 반도체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점도 중국의 반도체 산업에 호재로 작용한다. 칭화유니그룹이 이들을 고객사로 확보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생산설비에 14조6000억원, 연구개발(R&D)에 3조6000억원을 투자했고 SK하이닉스도 5조원 이상 투입하는 등 막대한 자금을 쓰고 있지만 중국의 투자 규모에 비하면 충분한 수준은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의 미세화·적층 기술은 한계에 봉착했다는 주장도 있는 만큼 초격차를 유지하려면 독창적인 선행기술 개발에 더욱 고삐를 죄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자율주행차와 웨어러블 기기 등에 탑재되는 시스템반도체도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가야 중국의 매서운 추격을 따돌릴 수 있다.

주요 신문칼럼

1. [주간경향][백가흠의 눈]인심은 그곳에 있어야 한다

실종아동 전수조사를 통해 몇 년째 행방불명이 된 아이들을 찾고 있는 중, 한 명씩 그 행방을 찾을 때마다 안타까움과 충격이 가실 길 없다. 실종되었던 대부분의 아동들은 부모에게 고문에 가까운 체벌을 받다 숨져 야산에 묻힌 채 발견되고 있다. 폭력과 학대로 희생된 가엽고 불쌍한 어린 영혼들에게 어떤 위로와 평안의 기도도 할 수 없을 만큼 그 내용은 충격적이고 가혹하다. 우리의 더 큰 공포는 사건 자체에 있지 않다. 옆에 사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학대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그것을 막을 아무런 장치도 이 사회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속 반복되고 있는 우리 사회와 안전에 대한 민낯이다. 현재 20여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경찰이 찾고 있는 중이다. 마음은 무겁기만 하고 비관적이다.

우리에게는 인심(人心)이라는 것이 있었다. 타인을 도와주거나 배려의 마음을 뜻하는 인심은 사람에 대한 온정,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타인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 자문해보고 발견한 그 답이 우리가 처한 안전의 현재일 것이다. 다시 선거철이 되었고, 모든 현안과 관심은 총선 이슈에 함몰되었다. 우리의 정치라는 것이 편할 날이 없고 근심이 되지 않는 순간이 없다. 국가의 행정과 운영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정부도, 이 사회 안의 다양한 계층의 고충과 목소리와 보편적이고 올바른 시각을 담아야 할 언론마저도 온통 선거와 정치 얘기뿐이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이 없어져도 알 수 없고 무감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로지 ‘힘’과 ‘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과 뺏으려는 자들과 지키려는 자들과 눈치 보며 빌붙으려 하는 자들과 구경꾼까지 모여 만들어내는 떠들썩한 굿판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오로지 그것에만 인심(人心)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정치란 국민에게 행해져야 하는 인심이다. 우리의 정치는 누구를 위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오로지 편을 가르고 그 ‘힘’을 차지하고 유지하고 빼앗기 위한 이전투구. 국민들은 씁쓸하지만 주체를 되돌릴 방법이 묘연하기만 하다. 정책이 없어도, 고난과 불투명한 미래밖에 주어지지 않아도 근소한 다수의 국민은 무조건 그들에게 동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희귀해진 인심(人心)이 존재하는 듯하다.

‘다수’라는 개념은 현 시대에서는 가장 불공정한 룰 같다. 정치에서 근소한 다수의 승리는 가장 다이내믹한 승부를 만들어낸다. 정치는 승부만 존재하는 게임에 불과하다. 그저 승패만 존재하는 스포츠다. 거기엔 매너도 없고 룰도 없고 보편적인 가치의 목적도 없다. 그러니 신성한 스포츠도 아닌 무엇이다. 어쨌든 근소한 우위의 다수를 만드는 것만이 오로지 목적이다. 선거라는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은 사라지고 있고, 여전히 실업자는 늘어나고, 부자들과 재벌에 대한 법의 테두리는 느슨해진다. 소득의 분배는 갈수록 불공평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승리에 도취된 사람들은 실종된 이 많은 것들을 잊고 승부에만 집착한다. 다수의 편에 서야만 한다는 생각, 무조건 우리 편이 이겨야 한다는 신념뿐이다.

윤리와 가치, 안전과 희망, 생명과 자연, 이 모든 것이 실종되고 돌아오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무책임은 우리 사회의 현실과 정치의 현재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모욕적 언사를 일삼은 정치인들 다수가 출마를 했다. 이번에는 인심이 다른 곳에 있는 자들을 심판하는 선거를 하자.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 투표하자. 인심(人心)은 그곳에 있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믿는 사람들, 비록 근소한 차이의 소수이겠지만 서로를 위안 삼아 보자.

2. [뉴시스][리뷰]창작뮤지컬, 새로운 길 찾다…'마타하리'

올해 최대 기대작인 '마타하리'가 창작뮤지컬의 또 다른 길을 보여줬다. 29일 밤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통해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에 뒤지지 않는 화려한 무대와 조명의 위용을 드러냈다. 

EMK뮤지컬컴퍼니가 3년여 간 제작비 125억을 쏟아부은 것이 오롯이 드러났다. 제작비의 8할이 무대 세트 제작에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규모를 자랑했다. 창작은 물론 라이선스 뮤지컬보다 훨씬 많은 29대의 자동화기기의 움직임으로 인해 무대 세트가 마치 또 다른 배우처럼 시시각각 변주됐다. 

EMK뮤지컬컴퍼니는 '모차르트!' '엘리자벳' '황태자 루돌프' '팬텀' 등 유럽 중세를 배경으로 한 라이선스 뮤지컬로 입지를 다져왔다. '마타하리'는 이 회사의 첫 창작뮤지컬이다. 그간 노하우를 반영하듯 주요 스태프는 외국 창작진으로 꾸렸다. 실존 인물인 마타하리를 뮤지컬로 만들자고 EMK뮤지컬컴퍼니에 제안한 프랭크 와일드혼과 미국 뮤지컬 연출가 겸 안무가 제프 칼훈이 주축이다.

와일드혼은 넘버 '지금 이 순간'으로 유명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히트 이후 '황태자 루돌프' '몬테크리스토'로 EMK뮤지컬컴퍼니와 작업하며 국내 뮤지컬계에서 마니아층을 구축한 인물이다. 칼훈은 뮤지컬 '뉴시즈'로 토니상 최우수 연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하이스쿨 뮤지컬' '올리버' 등을 지휘했다. 여기에 아이반 멘첼(대본), 잭 머피(작사), 제이슨 하울랜드(편곡·오케스트레이션·음악감독)가 힘을 실었다. 

주요 스태프만 보면 과연 한국산 창작뮤지컬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뮤지컬 '드라큘라'의 4중 턴테이블 무대로 호평 받았던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의 무대의 메커니즘은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원형 모양이 아닌 한쪽 끝이 뭉뚝한 삼각형 모양의 턴테이블은 끊임없이 다양한 공간감을 입체적으로 연출한다. 대형 뮤지컬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도맡는 김문정 음악감독과 그녀가 이끄는 더 엠시(M.C)의 탄탄한 연주력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컴퍼니와 미국 스태프가 협업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소재로 만든 뮤지컬은 오히려 한국적인 것에 대한 강박관념을 넘어서며 또 다른 창작뮤지컬의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앞서 충무아트홀이 영국 작가 M W 셸리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국내 창작진 만으로 같은 사례를 보여준 바 있다. '프랑켄슈타인'이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새 기준의 창작뮤지컬을 보여줬다면 '마타하리'는 마타하리의 정서와 감수성을 원동력으로 삼아 긴장과 이완을 조절해나간다. 

제1차 세계대전 중 2중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 당국에 체포돼 총살당한 아름다운 무희 '마타하리'(마가레타 거트루이다 젤러)의 실화가 바탕이다. 마타하리가 사랑한 유일한 남자인 파일럿 '아르망', 마타하리에게 스파이가 될 것을 제의한 프랑스군 대령으로 투철한 사명감을 지니고 있지만 점점 그녀에게 이끌리는 '라두'의 이야기가 섞여 들어간다.

다만, 인물들의 감정에 기반해 이야기를 밀고 나가다보니 종종 이야기가 늘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빠른 무대 전환의 속도감을 쫓아가지 못하니 흐름에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대사에 감정의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음악인 '언더스코어'로 지루함을 덜어내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러닝타임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 25~27일 프리뷰의 러닝타임은 3시간 가량이었다. 라두 대령의 아내 캐서린의 1막 솔로 넘버, 앙상블들의 무대 등을 덜어내며 10분 정도 줄였는데 조금 더 압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장면마다 무대를 중심으로 한 볼거리가 넘쳐 조정이 쉽지 않을 것로 보인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장면마다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그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덜어낼 장면을 쉽게 고르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마타하리의 지난한 인생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 라인은 따라갈 만하다. 어릴 때 자신을 겁탈한 삼촌, 하녀를 겁탈한 전 남편 등 남자에게 수차례 배신감을 느낀 마타히리가 아르망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연다는 설정은 사실 납득하기 힘들다. 그러나 뮤지컬 무대에서 남녀 간의 벽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마법 같은 순간으로 수긍이 된다. 사전에 노출되지 않은 아르망에 대한 또 다른 정보는 1막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와일드혼 특유의 한국 대중가요 같은 멜로디에 기반한 넘버는 무난하다. 36곡을 4년에 걸쳐 완성했는데 인도 지방의 음악, 아메리칸 재즈, 드뷔시 등 클래식음악을 아울렀다. 아르망과 라두 대령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표현한 '남자 대 남자', 마타하리가 1막에서 절규하는 '어딘가'가 특히 귀에 들어온다. 하지만 넘버들이 전체적으로 음이 높아 피로도가 쌓이는 흠이 있다.

이날 무대에 오른 배우들도 성공적인 프리미어의 공헌자다. '옥주현의 옥주현에 의한 옥주현을 위한' 수식이 나돌 정도로 옥주현의 마타하리는 기대를 모았는데 그녀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다. 1910년대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지난함을 표현한 이 뮤지컬에서 넘버마다 알맞은 연기력을 과시한다. 주요 라이선스 작품의 국내 초연을 도맡는 류정한은 역시 안정된 연기력을 선보인다. 자신의 욕망으로 마타하리를 수렁으로 몰아넣는 라두 대령에 품위를 부여한다. 하지만 바리톤 음역인 그가 너무 많은 고음을 소화해야 해서 후반으로 갈수록 목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창이 종종 불안하기는 했으나 송창의는 순수한 아르망의 캐릭터에 덧 없이 어울렸다. 노래, 춤 뿐 아니라 잠깐 보여주는 연기력까지 갖춘 앙상블들의 실력이 탄탄한 점도 눈길을 끈다. 

임춘길이 맡은 MC, 즉 극의 해설자이자 사회자 역은 프리뷰 기간 호불호가 크게 나뉘었다. 마타하리에게 감정을 이입하는데 방해가 되는 등 사족이라는 것이 불호의 큰 이유였다. 작가인 멘첼은 "MC와 (마타하리의 물랭루주 무대의상 담당자인) 안나가 마타하리라는 인물을 만들어준 아버지, 어머니 같은 역"이라며 "마타하리 삶 자체가 연극적이었다. 현실과 공연이라는 경계선이 희미했는데 MC가 그녀의 인생을 이야기로 전달하는 것이 걸맞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초연에 '월드 프리미어'라는 수식을 단 이유는 '마타하리'가 해외 진출을 계획 중이기 때문이다. 앞서 '프랑켄슈타인'이 일본 진출을 확정했는데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소재로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가는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김준수·홍광호를 앞세운 라이선스 뮤지컬 '데스노트'로 흥행에 성공한 씨제스컬처는 첫 창작 뮤지컬로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바탕으로 한 '도리안 그레이'(프로듀서 백창주·연출 이지나·작곡 김문정)를 준비하고 있다. 

'마타하리'가 앞서 '명성황후' '영웅' 등 말 그대로 한국적인 뮤지컬로 해외 진출을 꾀한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험대에 올랐다. 


이날 초연에 '월드 프리미어'라는 수식을 단 이유는 '마타하리'가 해외 진출을 계획 중이기 때문이다. 앞서 '프랑켄슈타인'이 일본 진출을 확정했는데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소재로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가는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김준수·홍광호를 앞세운 라이선스 뮤지컬 '데스노트'로 흥행에 성공한 씨제스컬처는 첫 창작 뮤지컬로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바탕으로 한 '도리안 그레이'(프로듀서 백창주·연출 이지나·작곡 김문정)를 준비하고 있다. 

'마타하리'가 앞서 '명성황후' '영웅' 등 말 그대로 한국적인 뮤지컬로 해외 진출을 꾀한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험대에 올랐다. 

3. [뉴시스][신진아의 이주이영화]꿈꾸는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 '대배우'

아동극 ‘플란다스의 개’의 파트라슈 역할 전문으로 20년째 대학로를 지키고 있는 성필(오달수)은 한때 극단 생활을 함께했던 설강식(윤제문)이 국민배우로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언젠가 대배우가 되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사 한 마디 없는 개 역할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자신의 꿈을 성원해주는 가족들마저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남편의 속내를 우연히 알게 된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버리고,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성필은 설강식이 주연하고 ‘깐느 박’(이경영)이 연출하는 새 영화 ‘악마의 피’ 사제 역할을 따내려 몸부림친다.  ‘천만요정’ 오달수가 무명배우로 나오는 ‘대배우’는 여러 사건이 겹쳐진 영화다. 무명배우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다가 배역을 따내기 위해 소동을 벌이기도 하며, 오디션을 거쳐 영화에 출연하나 삶이 늘 그렇듯 영웅이 되기란 쉽지 않다. 

무명배우가 유명배우가 되는 성공담이 아니여서 극적인 감동이나 대리만족의 즐거움은 크지 않다. 무명배우의 설움을 보여주는 초반부는 다소 구태의연하기도 하다. 하지만 삶의 페이소스가 영화를 관통하며 매순간 유머를 잃지 않는다. 뭔가 뭉클한 감동이 있고, 구석구석 소소한 재미가 포진해있다. 특히 ‘박쥐’를 패러디한 ‘악마의 피’ 촬영현장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알듯 몰랐던 영화판의 이면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서툰 배우 연기를 절묘하게 해낸 오달수의 연기는 생각할수록 놀랍다. 박찬욱 감독에게 빙의된 듯 열연한 이경영의 호연은 이 영화를 보는 큰 즐거움이다. 현실에서는 조연을 주로 맡는 윤제문이 극 속에서 주연을 연기할 때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배우부터 감독까지 제작진의 삶이 투영돼 있는 진정성이야말로 이 영화의 최대 무기다. 다소 부족하고 모자란 점이 있더라고 예쁘게 봐달라는 인사에 무조건 화답하고 싶어진다.

윤제문이 연기한 설강식은 다들 아는 설경구, 송강호, 최민식 이름 석 자를 조합해 만들었다. 연극판에서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지금의 자리에 오른 영화판 모든 배우들을 상징한다. 오달수도 그 중 한 명이다. 극중 깐느 박의 모델인 박찬욱 감독은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나 ‘공동경비구역 JSA'(2000)로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2편의 영화를 말아먹었다.

석 감독은 이제 시작이다. 그는 박 감독의 ‘올드보이’(2003)와 ‘친절한 금자씨’(2005) ‘박쥐’ (2009) 그리고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2010) 조연출로 나름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하지만 영화 한 편이 끝날 때마다 불안감에 휩싸였다고 한다. 영화는 늘 한 편씩 할 때마다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데뷔 준비에 들어가면서는 조감독 일을 할 수 없어 생활비를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정을 꾸린 뒤로는 데뷔도 쉽지 않고 데뷔 이후 삶도 고단한 감독의 꿈을 접을까 고민이 컸다. 

‘대배우’는 석 감독이 10년 넘는 세월 숱한 갈등과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내놓은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닌 시작이다. 영화의 흥행 성적에 따라 차기작을 연출할 기회가 쉽게 혹은 어렵게 주어질 것이다. 그렇게 징검다리 건너듯 매 발걸음이 도전이고, 한 발만 헛딛어도 물에 빠질 수 있는 게 이 바닥의 생리다. 하지만 오랫동안 품어온 열정을 저버리기란 쉽지 않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오달수가 하나뿐인 아들의 연기를 모니터하는 장면이다. 이때 그가 보이는 기쁜 듯 부러운 듯 복잡 미묘한 표정은 지금 이 순간 재능을 타고 났는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그 누구보다 간절히 연기를, 연출을 꿈꾸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어쨌든 성필은 한때 온힘을 다해 그 배역을 원했고, 최선을 다해 도전했다. 

석 감독은 “어떻게 보면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객관성을 잃을 때도 있었고 선배님들 연기하는 것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오달수는 “아무리 자기 꿈을 좇아가고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자 지지고 볶더라도 결국엔 옆에 가족이 없으면 그 사람은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이 영화가 가족들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경영은 “무언가 자기가 원하고자 하는 꿈을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모든 세대들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4. [이데일리][특파원의 눈]뉴욕의 소금 전쟁

영국이 설탕이 많이 들어간 제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설탕세’ 도입으로 시끄럽다면 미국 뉴욕은 소금 때문에 난리다. 뉴욕시가 소금과의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짠맛에 관해서라면 한국인이 둘째가라면 서럽지만 사실 미국인도 만만치 않다. 미국인의 하루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3436mg으로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속한다. 한국인(4027mg)의 나트륨 섭취에 근접한 수준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하루 나트륨 섭취량은 2000mg이다. 미국심장학회(AHA)는 이것보다 더 엄격한 기준인 하루 1500mg을 넘지 않을 것을 권장한다. 한국인과 미국인 모두 권장량의 두배 이상인 나트륨을 먹고 있는 셈이다. 미국인들도 한국인 못지않게 짠맛을 좋아한다.

심지어 단맛이 포인트인 햄버거 가게에서도 테이블마다 소금과 후추를 놓아둔 곳이 적지 않다.(햄버거에 소금을 뿌려 먹으면 느끼함이 덜하고 맛이 한결 좋아진다.)

급기야 뉴욕시는 ‘소금 경고 표시제’라는 걸 도입했다. 올해부터 15개 이상 체인점을 갖춘 대형 음식점은 나트륨이 2300mg이상 함유된 메뉴 이름 옆에 소금통 그림이 그려진 경고 모양을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한 것이다. 

나트륨 2300mg이라는 기준은 WHO의 하루 권장 섭취량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메뉴마다 ‘당신이 이 음식을 먹으면 하루동안 먹어야 할 나트륨 소비를 초과해 섭취하는 겁니다’란 경고를 붙이라는 뜻이다. 

뉴욕시는 식당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남겨두지 않았다. “경고 표시는 반드시 하얀색 삼각형에 검은색 바탕이어야 하고 메뉴 글씨와 똑같은 크기여야 한다. 경고 표시는 반드시 눈에 두드러지게 표시돼 있어야 한다”고 아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소금 경고를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식당엔 벌금 200달러(약 23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자 뉴욕 식당 메뉴판은 그야말로 소금 경고로 도배될 지경이다. 어떤 식당은 메뉴판의 80% 정도에 소금경고 표시를 부착해야 했다. 대체 뭘 먹으라는 거냐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뉴욕의 식당들도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전미레스토랑협회는 “이러다 뉴욕의 식당이 모두 망하겠다”며 뉴욕시위생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금 경고를 둘러싼 소송전은 엎치락뒤치락이다. 뉴욕주 법원은 지난달 “뉴욕시가 제정한 소금경고 표시 의무화제 시행을 중단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뉴욕시의 손을 들어줬다. 빌 드블라지오 뉴욕시장은 “너무 많은 뉴욕 시민들이 고혈압의 위험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대량의 나트륨 함유를 경고하는 표시는 분명 시민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시민들의 건강을 지키도록 판결을 내려준 대법원 결정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며칠 후에 판결이 뒤집혔다. 뉴욕시가 소금 경고 조치를 잠정 중단하도록 미국 연방 항소법원이 결정한 것이다. 전미레스토랑협회는 성명을 통해 “뉴욕시의 전례 없고 불법적인 조치에 대해 연방법원이 잠정 중단을 결정할 걸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뉴욕시는 법적 판단이 최종적으로 내려질 때까지 벌금 부과는 하지 않기로 했다. 

짜게 먹는 게 몸에 해로운 건 틀림없다. 소금 섭취를 하루 1~3g만 줄여도 혈압약을 먹는 것보다 효과가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핀란드에서는 30년 동안 나트륨 섭취량을 3분의1로 줄였더니 평균 수명이 5년 연장됐다는 발표도 있었다. 뭐든지 과한 건 좋지 않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뉴욕 식당들이 과연 뉴욕시의 소금 경고 표시 조치를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5. [서울신문][공희정 컬처 살롱] 사랑, 너마저

다시는 잎이 돋지 않을 것 같던 나무에서 연둣빛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볕 좋은 담벼락에는 노란 개나리가 방긋방긋 입을 벌리고, 솜털 보송한 목련도 만개할 준비를 마쳤다.

미처 떠나지 못한 겨울이 바람 안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처럼 하늘거리는 옷 입고 설레는 마음 살짝살짝 보여 줄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할 시절. 그래서일까, 가상일지라도 달달한 연애 프로그램에 자주 눈길이 머문다.

가상 연애 프로그램이 처음 등장한 것은 8년 전쯤이다. 가상현실이 익숙하지 않았던 때이다 보니 보는 시청자도, 보여 줘야 하는 출연자도 어색했다. ‘연애에 대한 공감과 결혼에 대한 설렘’을 보여 주기에 적합한 미혼의 젊은 연예인들이 가상 부부가 돼 출연했다.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물리적 거리도 가까워졌다. 그 모든 순간이 텔레비전을 통해 전달됐다. 가끔은 이 사람들 진짜 결혼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리얼’했다.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 된, 또는 혼기를 한참 넘긴 중년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가상 결혼 프로그램도 있다. 사랑의 아픔을 알고 있는 그들은 새로운 사랑 앞에 조심스러웠다. 사람들은 혼기를 놓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에도 무감각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가슴 설레는 사랑을 꿈꾸는 건 스무 살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임을 이들은 보여 주고 있다. 가상 부부인 40대 개그맨 커플은 시청률 7%를 넘으면 실제로 결혼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 그 덕분인지 시청률은 꾸준히 상승해 5%를 넘었다. 정말 7%를 넘으면 이들은 결혼할까?

밀고 당기는 사랑의 현장을 보여 주는 가상 프로그램도 있다. 일명 ‘싱글 중년 친구 찾기’. 출연자는 한때 대중들의 마음을 홀딱 뺏어 갔던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가수나 배우들이다. 팽팽했던 젊음은 세월따라 가버렸고, 아무리 화장을 해도 숨길 수 없는 주름과 탄력 잃은 피부 때문에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애잔하게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자신만만했다. 한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은 한때 스타들은 좁고 허름한 시골집에 옹기종기 모여 밥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한다. 세수도 하지 않은 부스스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고, 익숙하지 않은 집안일에 우왕좌왕한다. 엉성한 일상의 틈새를 뚫고 남자와 여자는 자신과 주파수가 맞는 상대에게 은근슬쩍 신호를 날려 본다. 짓궂은 웃음이라도 날아들면 어느새 얼굴은 발그레해진다. 밀고 당기는 현장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가상 연애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오락이다. 기획에 의해 설정된 상황에서 주어진 캐릭터를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 주면 된다. 드라마와는 다른 현실감이 시청자들을 묘하게 유혹한다. 간혹 카메라 밖 그들의 실제 애정 생활을 보면서 프로그램 속 상대방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바람난 남동생 보듯 실망도 하지만 아무도 속이지 않았다. 가상을 현실로 오해한 것은 시청자다.

그래도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눈이 먼 것도 아닌데 사랑을 이렇게 상품화해도 될까 싶은 마음이 든다. 가상이 현실인 듯, 현실이 가상인 듯 천지 분간되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사랑마저 참과 거짓을 구분해서 봐야 하는 이 봄이 좀 씁쓸하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2016년 3월 29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한국 핵무장' 들먹이는 트럼프 향방 주시해야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 선거 역사상 가장 천방지축인 예비 후보다. 그는 엊그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특유의 정제되지 않은 말버릇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중동 국가를 차례로 거론하며 “우리는 더이상 돈을 뜯기지 않을 것”이라고 떠벌렸다. 그러면서 이런 외교 정책이 고립주의가 아니라 미국 우선주의라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외교 정책이 고립주의든, 미국 우선주의든 표현은 자유다. 하지만 공화당 대선 후보에 공식 지명될 가능성에 높은 트럼프다. 이런 인물의 발언이 자국민을 다독이는 차원을 넘어 동맹국 안보에 위협을 미친다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한반도의 안보 상황과 관련된 망발에 거침이 없었다. 한국은 물론 일본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두 나라가 더 많은 미군 주둔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했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에도 “어느 단계에 이르면 논의해야 할 문제”라며 “미국이 지금처럼 약한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두 나라도 핵무장을 원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북한의 비핵화가 국제사회의 당면 과제인 상황에서 트럼프의 주장은 철이 없는 것이다. 그럴수록 트럼프의 속셈을 도외시하고 ‘한국의 핵무장’이라는 수사에 매몰돼 그를 지지하는 국내 세력이 있다면 국가 안보를 스스로 위협에 몰아넣는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전통적으로 미국 공화당의 배후에 조직화된 무기산업의 로비스트가 밀집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트럼프 발언의 이면에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이 아닌 ‘동북아시아의 분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미군 철수로 자국 국민에게는 가족이 이국땅에서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하면서, 그 결과 자칫 군사적 충돌이라도 일어난다면 침체된 자국 국방산업의 부흥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트럼프의 진짜 의도라면 불행해도 크게 불행한 일이다.

트럼프가 아무 생각 없이 동북아시아 안보 상황을 거론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입만 험한 후보라는 선입견은 버려야 한다. 마구잡이로 내뱉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언사에 오히려 정교한 정치적 의도가 개입돼 있는 만큼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트럼프가 본선에 나서 설혹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한다 해도 캠페인 과정에서 미국민의 사고에 미치는 악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미국 대선의 향방에 어느 때보다 관심을 갖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2. 헛 공약 남발 말고 바른 정책으로 경쟁하라

선거는 공약(公約)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정당과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에게 ‘임기 동안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는 약속을 내놓고 유권자들은 그중에서 가장 진실된 정당과 후보자들을 골라 투표함으로써 나라 운영을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각종 선거에서 진정성 있는 공약은 보이지 않고, 말 그대로 표를 얻기 위한 거짓 약속인 공약(空約)만 난무하니 우리 정치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개탄스럽기만 하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에서는 여야가 제발 제대로 된 정책 공약을 내걸고 국민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을 벌여야만 할 것이다.

아쉽게도 현재까지는 여전히 기대 이하 수준이다. ‘야당심판’(새누리당), ‘경제심판’(더불어민주당), ‘양당심판’(국민의당) 등 살벌한 이분법적 전투성 구호, 재탕·삼탕의 무성의 공약, 실현 불가능한 포퓰리즘 공약 등 유권자들을 우습게 여기는 헛 공약들이 한둘이 아니다. 유권자들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표 찍어 주는 기계쯤으로 인식하지 않고서야 이런 황당 공약을 내놓을 리 없다. 여야의 대표 공약들을 살펴보면 기가 막힐 따름이다. 먼저 새누리당이 10대 공약으로 내세운 ‘U턴 경제특구 설치’는 2012년부터 실행되고 있는 정책으로 성과도 거의 없다.

더민주는 소득 하위 70% 어르신에게 기초연금 30만원 균등지급, 0~5세 무상보육, 공공임대주택 240만 가구 공급 등 눈과 귀가 확 트이는 복지 공약을 또 쏟아 냈다. 조세개혁을 통해 천문학적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에 따른 조세저항 극복 대책은 내놓지 못했다. 국회의 세종시 이전 공약은 충청권 표를 노린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난이 일자 사실상 없던 일로 얼버무렸다. 국민의당의 ‘국회의원 국민 파면제’나 정의당의 ‘평균 월급 300만원’ 공약도 실현 가능성보다는 ‘아니면 말고’ 식 선언형 공약과 다름없다. 집권을 꿈꾸는 공당의 정책 공약과는 거리가 멀다.

개별 후보들의 지역 공약 또한 허무하기 그지없다. 대구 지역의 모 후보는 선거 때마다 단골 헛 공약에 그쳤던 KTX 지하화 공약을 또 내걸었고, 충청 지역의 한 후보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동서내륙철도를 끌어오겠다는 거창한 비전을 제시했다. 실현 가능성 없는 헛 공약의 남발은 국민들의 정치불신과 정치혐오를 부채질해 결과적으로 제 발등을 찍을 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선거가 끝나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허황된 인기영합 공약 대신 지역의 위기를 타개할 현실적 대안을 내놓고 평가받으려는 후보는 눈을 씻고 찾기 힘든 현실이 안타깝다.

이번 총선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깊다. 여야 모두 진흙탕 공천에서 겨우 빠져나와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하게 총선을 맞고 있다.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든 19대 국회에 대한 심판 성격도 짙다. 게다가 2%대에 고착된 저성장의 먹구름 속에 온갖 사회적 모순까지 축적되고 있다. 공천 분탕질도 모자라 헛 공약 남발로 유권자들을 욕되게 할 때가 아니다. 그렇잖아도 유권자들은 억지로 선거판에 끌려 들어가는 듯한 고약한 심정이다. 여야는 엄혹한 안팎의 위기에 대한 고민을 담은 진정성 있는 정책 공약으로 경쟁해 유권자의 올바른 심판을 받길 바란다.

3. 아동학대 방치하다간 천문학적 비용 치를 것

우리가 아동학대로 연간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최대 7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학대받는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데 드는 직접 비용과 피해 아동의 향후 정신적 질환과 노동력 상실 등에 따른 간접 비용을 합한 추정치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연구팀의 분석대로라면 아동학대를 치유 없이 놔둔다면 국내총생산(GDP)의 5%에 가까운 비용을 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 직접 비용도 그렇지만 학대 아동에게 장기적으로 발생할 사회 비용은 훨씬 더 심각한 규모다. 피해 아동이 겪어야 할 사회 적응이나 실업 및 미취업, 생산성 저하 상황 등을 두루 고려하면 간접 비용은 직접 비용의 최대 8배까지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추산치라지만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잇따라 드러난 아동학대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숙제를 던지고 있다. 자녀 학대의 끔찍한 사례들은 정부가 작정하고 전수조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덮이고 말았을 일들이다. 사회 각계에서 예방 대책을 강구하려는 움직임은 늦었지만 다행스럽다. 서울가정법원은 5월부터 자녀를 둔 부부가 이혼하려 할 때 반드시 아동학대 예방 교육을 받도록 의무화했다. 협의·소송 이혼 구분 없이 이 교육을 받지 않으면 이혼 절차를 아예 중단하기로 했다. 부부 폭력이 이혼 사유라면 자녀의 학대 여부까지 파악해 이혼 과정에 직권 개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런 적극적인 사법 장치는 아동학대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참극들은 거의 재혼 및 한부모 가정에서 빚어졌다. 실제 재작년 통계에서도 학대 아동 10명 중 4명은 한부모·재혼 가정의 자녀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가정법원의 대책이 전국의 법원으로 확대되길 바라는 까닭이다.

법원이 이혼할 부모를 교육하는 조치는 그야말로 궁여지책일 뿐이다. 자녀의 인권을 존중할 수 있도록 부모들의 양육관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 개선 작업이 속도를 내려면 정책의 지속적 지원이 절실하다. 정부가 조만간 발표할 종합 대책이 눈앞의 급한 불만 끄는 임시처방전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당장 새 정책들을 소화해 낼 현장 인력 자체가 태부족이라는 걱정이 크다. 일과성 예산 늘리기보다는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체계적인 작업이 더 급하다는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이데일리]

4. '오물 막걸리'까지 뿌린 대학 동아리 모임

대학교의 신입생 환영행사가 갈수록 유치해지는 경향이다. 며칠 전 부산 어느 대학에서 축구 동아리 모임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막걸리를 뿌려 구설수에 오른 것이 하나의 사례다. 그냥 막걸리가 아니라 먹다 남은 두부와 김치 등 음식물 찌꺼기를 넣은 막걸리였다는 것이다. 신입생들을 청테이프로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는 막걸리에 담배꽁초와 가래침까지 섞어 뿌렸다는 뒷얘기도 전해진다. 만행이나 다름없는 추태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지성인들의 모임인 대학에서 이런 야만적인 작태가 벌어지는 것인가.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동아리 대표가 공식 사과문을 올리고 대학 당국이 관련자를 엄벌하겠다고 발표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신입생들을 상대로 한 대학생들의 막가파식 행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의 어느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게임을 하면서 노골적인 성행위를 떠올리게 하는 말과 몸동작으로 물의를 빚은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얘기다. 심지어 남학생 무릎에 여학생을 앉힌 채 서로 껴안거나 입에서 입으로 술을 건네는 러브샷은 물론 옷 벗기기 행위도 있었다고 하니 가히 충격적이다. 더 나아가 여학생을 상대로 한 성폭력에 동아리 회원들은 물론 교수도 포함된 경우도 있다고 하니 이 정도면 대학이 지성의 전당이 아닌 성범죄 소굴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신입생 환영회가 빗나간 음주와 성추행, 군기잡기 문화의 온상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는 여성을 성(性)의 도구로만 여기는 왜곡된 도덕관념이 대학에도 뿌리 깊게 박혀 있음을 방증한다. 고교를 갓 졸업했거나 힘겨운 재수생활을 마친 신입생들을 상대로 술기운을 빙자해 성추행을 일삼고 군기를 잡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는 ‘갑질’이다. 직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형사처벌감이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역인 새내기들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신성한 통과의례다. 다양성과 지성을 추구해야 할 대학가가 그릇된 음주문화와 성추행이 난무하는 소굴이 돼서는 곤란하다. 대학이 지성의 요람이라는 본래의 자리를 하루빨리 되찾기 바란다.

[동아일보]

5. '국회 세종시 이전'식 선동적 공약 스스로 걸러내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세종시 이전’을 총선정책 공약집에 넣었다가 이틀 만에 백지화했다. 어제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현재 상황에서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한다는 것은 지난 헌법재판소 판결 등을 고려할 때 시기상조인 것 같다”며 일단 분원을 세종시에 만든 뒤 실질적 이전은 장기적 과제로 넘기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더 커지기 전에 국회 이전 공약을 철회해 다행스럽다. 하지만 법적 타당성과 국론 분열, 지역주의 논란 같은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공약집에 넣은 것은 경솔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더민주당은 행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가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20대 국회 중에 세종시로 국회 이전을 검토한 것은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면 공무원들이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는 행정 낭비는 줄어들지 모른다. 그러나 현행 헌법 아래서는 위헌 소지가 있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관습헌법상 수도는 입법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어야 하며 대통령이 활동하는 장소”라고 규정한 바 있다. 

세종시는 “(대선에서) 재미 좀 봤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토대로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지역감정을 선동했고, 두고두고 국가적 논쟁을 일으킨 폭탄 같은 이슈였다. 지역 균형발전을 내걸고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라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많다. 장차관부터 국장 과장들이 국회에 불려 다니느라 공무원들의 서울 출장비만 연간 230억 원이나 된다. 부처 간 소통이 미흡해진 데 따른 정책 품질 저하 등 ‘광의의 행정 비효율’까지 합하면 연간 매몰비용이 약 5조 원에 이른다는 추계도 나와 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더민주당이 국회 이전을 총선공약집에 넣었다면 충청권 표심을 노린 포퓰리즘적 발상이다. 선거구 변화로 충청권 의석이 25석에서 27석으로 늘어나 대구경북(25석)보다 많고 호남권(28석)과 맞먹게 됐으니 충청에서 또 한 번 재미를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국회 분원만 만든다고 해도 툭하면 장차관을 불러 호통 치는 ‘국회 갑질’을 버리지 않는 한, 행정 비효율에 입법 비효율까지 더해질 우려가 크다.

더민주당이 국회 이전 공약을 자진 철회하기는 했지만 일부 유권자의 이기적 감정을 자극해 표를 얻겠다는 공약은 아직도 수두룩하다. 새누리당은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의 개인채무 원금 감면 확대, 더민주당은 기초연금의 차등 없는 월 30만 원 지급, 국민의당은 국민연금을 재원으로 한 컴백홈 법안 같은 국가 재정의 기둥뿌리를 흔들 수 있는 선동적인 공약을 내놓았다. 국가와 미래를 아랑곳하지 않는 묻지 마식 선거 공약은 각 당이 스스로 폐기해야 한다.

6. 호남 쟁탈전 벌이는 두 야당, 고질적 지역주의 부추기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주말 총선 지원 첫 일정으로 광주·전남을 찾아 “호남인의 소망이 뭔지 잘 안다. 완벽하게 대변해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정치권에서는 ‘호남인의 소망’을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계승할 ‘호남 대통령론’으로 이해한다. 김 대표도 지난달 이른바 ‘광주 선언’에서 제2, 제3의 DJ로 자라날 차세대 지도자를 키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호남은 DJ 이후 여야 어느 쪽이든 대통령 후보를 갖지 못한 데 내심 불만이 커지고 있다. 김 대표의 발언은 호남인의 심리적 박탈감에 응답 또는 영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김 대표는 “나도 광주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중학교를 다녔다. 뿌리가 호남”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 인근에서 태어나 서울의 덕수초등학교에 입학했고 6·25전쟁 때 광주로 피란해 서석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서중을 1년 반 다녔다. 이후 서울에서 중앙중고를 졸업했다. 김 대표가 전북 순창이 고향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손자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광주에서 초·중학교를 다녔다는 것은 처음 듣는 사람이 많다. 과거 인터뷰에서 호남 연고(緣故)를 부인했던 김 대표가 평소 안 하던 이야기를 갑자기 꺼낸 것인데 ‘호남 구애’가 급해도 정도가 지나치다. DJ처럼 호남을 발판으로 ‘킹’을 해보려는 것일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 대표는 국민의당을 겨냥해 “광주·전남 유권자들을 희롱하고 있다”며 “왜 호남 정치를 분열하는 데 앞장서야 하느냐”고 말했다. 더민주당에서 분당한 국민의당은 ‘호남 자민련’으로 전락할 우려가 없지 않다. 그렇지만 더민주당이 그동안 호남에서의 독점적 지지가 당연하다는 듯 국민의당을 향해 분열 운운한 것도 오만하게 들린다.

호남 지역주의에 관해서는 국민의당은 입을 다물어야 할 처지다. 천정배 공동대표는 김 대표가 참배하고 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어제 “‘민족·광주·민주’ 등 세 가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며 “정권 교체는 역사적으로 소외받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호남이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리적 비약으로 가득한 이런 주장은 호남 지역주의에 기대려는 이 당의 허약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양김(兩金) 시대의 종언 이후 정치권에 남겨진 숙제는 지역주의의 극복이다. 인구수로 볼 때 지역주의에 기대서는 호남 정당이 다수당이 되거나 집권의 꿈을 꾸기 어렵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호남을 지역주의의 틀에 가둘수록 사실상 호남을 배신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7. 대학 구조조정는 프라임사업이 빨리빨리 해치울 일인가

교육부가 추진하는 프라임사업(PRIME·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의 지원 마감시한이 다가오면서 대학가가 몸살을 앓고 있다. 산업 수요에 맞춰 인문사회계와 예술계 정원은 줄이는 대신 의학·이공계 정원을 늘리는 대학 19곳을 선정해 연간 2000억 원을 차등 배분하는 사업이다. 지원 규모가 엄청나 ‘단군 이래 최대’의 지원사업으로 불린다. 2009년 이후 등록금 동결로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학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당근이다. 

하지만 사업 기본계획을 작년 12월 공표한 뒤 4월 말 지원 대학을 선정하는 일정이 지나치게 촉박하다. 게다가 교육부 취지와 달리 산업 수요 아닌 교수들의 파워게임에 따라 조정해 곳곳에서 마찰음이 터져 나온다. 숭실대는 최고의 특성화 학부로 육성한다며 2010년 출범시킨 금융학부의 정원을 이번에 45%로 감축하는 대상에 올렸다. 건국대는 2013년 신설해 졸업생도 내지 못한 바이오산업공학과의 폐지 간담회를 지난 겨울방학에 열겠다고 알려 반발을 샀다. 중앙대는 작년에 총장이 물러날 정도로 홍역을 치렀다. 교육부는 프라임사업 선정의 전제조건은 ‘구성원 간 합의’라며 구경만 하고 있다.

시대 상황에 비추어 프라임사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속도전을 치르듯 빨리빨리 밀어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 대학의 기획처장은 “교육부가 20, 30년 전처럼 일방적으로 따라오라 한다”고 꼬집었다. 대학 구조조정은 10, 20년 뒤를 내다봐야 할 사안인데도 정부 사업은 정권만 바뀌면 유명무실해지는 예가 많아 문제다. 

교육부가 단기성과에 급급해하기보다는 대학의 발전계획과 연계되도록 속도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수요자인 대학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구조조정을 독려해야 역풍을 줄일 수 있다.

[중앙일보]

8. 법무부 간부의 '주식 대박' 납득되게 해명해야

검사장급인 진경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의 100억원대 재산 형성 경위를 놓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진 본부장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156억여원의 재산을 신고하며 법조계 순위 1위를 기록했다. 1995년 검사로 임용돼 공직자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 만에 100억원대가 넘는 재산을 공개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2월 검사장급으로 승진해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현재의 보직을 맡고 있으며 올해 처음으로 재산공개 대상이 됐다.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진 본부장은 지난해 게임회사인 넥슨 주식 80만1500주를 126억원에 처분했다. 2014년 12월 말과 비교할 때 주가 상승으로 1년 만에 37억9800여만원의 시세차익이 났다. 이로 인해 그의 재산은 공개 대상이 아닐 때 등록된 재산 116억여원에서 40억여원 증가했다. 이는 입법·사법·행정부 등 전체 재산 공개 대상자 2328명 가운데 최고 증가액이다.

진 본부장은 “11년 전인 2005년 지인들과 함께 투자를 한 뒤 이 같은 사실을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의 권유로 얼마를 투자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법무부 측은 “진 본부장이 검사장급으로 승진한 뒤 주식을 백지신탁하라는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모든 주식을 매각했기에 법적으로 문제는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진 본부장은 투자를 하기 전인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부패방지위원회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파견돼 근무한 전력이 있다. 2009년부터 1년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으로 재직했었다. 금융거래의 정보 수집 및 분석과 관련된 법률 조언을 해주고 기업 수사를 전담하는 부서의 장을 맡으면서 특정 기업의 주식으로 거액의 돈을 번 것을 미심쩍어 하는 여론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진 본부장이 계속해 책임 있는 설명을 거부한다면 법무부는 감찰 조사를 벌여 인과관계를 명확히 해줄 것을 촉구한다. 고위 공직자라고 투자를 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 과정은 적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경제]

9. '능력중심 채용' 구호에 그치지 않게 하라

학벌·스펙 위주의 채용 관행에서 벗어나 능력과 직무 중심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능력 중심 채용 실천 선언 대국민 선포식'이 어제 열렸다. 국무총리실, 고용노동부, 교육부 등 정부기관과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 10대 그룹, 중소·중견기업 대표 130여 명이 참여해 공정하고 투명한 채용을 다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동안 취업 준비생들은 기업의 불명확한 채용 기준 때문에 불필요한 스펙을 쌓느라 시간과 돈을 낭비한 것이 사실이다. 휴학하거나 졸업을 미루면서 토익, 자격증 등 평균 5.2개의 스펙 쌓기에 매달린다. 2012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조사 결과 대졸자의 평균 스펙비용은 1인당 4269만원에 달했다고 한다. 또 입사지원서에 직무능력과 아무 상관없는 인적사항을 기재하게 하거나 업무와 무관한 사적인 질문을 하는 등 채용 과정의 불합리한 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이날 실천 선언에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 활용, 선발 기준 사전 공지, 과도한 스펙 요구 지양, 청년들의 열정 보호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채용 문제점을 시정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동안 학연·지연을 동원한 취업 청탁이 만연해 있었던 만큼 이 같은 선언이 과연 제대로 지켜질지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 탈스펙 채용이 엉뚱하게도 집안 좋고 백 있는 집 자제들을 뽑기 위한 통로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이번 선언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누구나 능력을 갖추면 학벌·집안과 상관없이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헬조선, 흙수저, 열정페이 등이 유행어가 될 만큼 사회에 대한 20대 청년들 불신의 뿌리는 깊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청년들의 고통과 좌절은 더 커질 것이다. '알파고 쇼크'가 보여줬듯 미래는 창의성과 능력이 좌지우지하는 시대다. 더 이상 학벌사회의 벽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지난해 130개 공공기관에서 NCS 기반의 능력 중심 채용을 도입했는데 그 결과 신입사원 중도 퇴사율 감소, 출신 대학 다양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사례를 지속적으로 발표해 과잉 스펙과 채용비용을 줄여나가야 한다. 이것이 기업과 취업 준비생들이 모두 상생하는 길이다.

10. 외국 두뇌 못 끌어들이는 인력정책 과감한 수술을

우리나라에서 취업자격을 얻어 일하는 외국인은 2월 말 현재 61만5000명으로 전체 국내 체류 외국인(185만6000명) 세 명 중 한 명꼴이다. 취업자격 외국인 중 전문인력은 8%(4만9000명)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모두 단순기능인력이다. 전문인력 중에서도 외국어 회화 지도(34%)와 예술 흥행 지원(9%) 인력이 다수를 차지하고 연구와 기술 지도, 전문직 인력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월 소득이 200만원을 넘는 외국인 취업자는 네 명 중 한 명에 불과하다. 인력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고속성장 산업의 외국인 활용도는 떨어진다. 우리나라 외국인력 정책은 아직도 힘들고 어설프고 위험한 3D 업종 인력 수요를 메워줄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는 데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와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혁신을 주도할 고급 두뇌를 얼마나 끌어들일 수 있느냐에 따라 판가름난다. 더욱이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우리나라는 지구촌 어디에서든 뛰어난 과학기술 인재를 유치해 생산성을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외국의 첨단 기술 인력에 사증 발급과 체류 허가 편의를 제공하는 '골드카드'나 '과학카드' 제도를 도입하고KOTRA 조직을 통해 우수 두뇌 발굴부터 추천까지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비롯해 이런저런 인재 유치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성과는 신통치 않다. 국내 고급 두뇌는 자꾸만 해외로 빠져나가는 반면 국내로 수입되는 인력은 거의 모두 단순 저임 노동자들이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글로벌 두뇌를 한국으로 끌어들일 강력한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외국인 고용 관련 규제 체계를 수술하고 교육과 의료, 문화생활 전반에 걸쳐 누구나 일하고 싶어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고용 허가, 외국인 정책, 사회 통합, 유학생 관련 정책에서 고용노동부, 법무부, 여성가족부, 교육부가 따로 놀지 않고 체계적인 두뇌 유치 전략을 펼 수 있어야 한다.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이민청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프랑스, 미국, 독일, 호주 같은 나라들처럼 우리가 국비유학제도로 키운 외국 인재의 취업과 정착을 도울 맞춤식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국일보]할슈타인 원칙

미국 변호사 제임스 도노번을 소개하며 언급했던 영화 ‘스파이 브릿지’에는 동독이 미국과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기 위해 용 쓰는 이야기가 작은 에피소드로 끼여 있다. 도노번이 활약했던 1957년은 서독의 ‘할슈타인 독트린’ 즉 동독 불승인 원칙이 확고하던 때였다. 서독 외무차관과 유럽공동시장(EEC) 초대 위원장을 지낸 발터 할슈타인(Walter Hallstein)이 1982년 3월 29일 별세했다. 할슈타인 원칙의 그 할슈타인이다. 

1955년 9월 서독 수상 콘라트 아데나워는 의회 연설에서 “서독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제3국이 동독과 공식적 외교관계를 맺을 경우 비우호적 행위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 해 12월 본에서 열린 대사회의에서 서독 외교부는 동독과 외교관계를 맺으려는 제3국에 대한 제제방안을 마련했다. 우선 대사를 소환하고 외교사절단 규모 등 교류 범위를 축소한 뒤 변화가 없을 경우 단교도 불사한다는 거였다. 물론 회의도, 내용도 비공개였다. 

57년 10월 유고슬라비아가 동독을 승인했고, 서독은 유고슬라비아와 단교했다. 언론은 ‘동독 불승인’을 ‘동독 승인=서독 단교’로 판단, 단 한번도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 없는 그 정책에 ‘할슈타인-그레베 독트린’이란 용어를 붙였다. 당시 서독 외교부는 장관 없이 수상- 차관 체제로 운영됐고, 그레베는 외교부 정치국장이었다.

냉전기 할슈타인 원칙은 동독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지만, 1969년 취임한 사민당 빌리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으로 효력을 다했다. 브란트는 그해 10월 시정연설에서 ‘1민족 2국가’원칙을 표방하며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을 정식 국가로 인정했다. 

할슈타인 원칙의 동양 버전이 중국의 ‘하나의 중국’노선이다. 중국 대륙의 합법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일하므로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중화민국(대만)과 단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2년 한국은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대만과 단교했다. 당시 중화민국 대사 진수지(金樹基)는 서울 중구 명동의 중화민국 대사관(현 중국 대사관)의 청천백일기를 하강한 뒤 기자회견에서 “오늘 우리는 대만 국기를 내리지만 이 국기는 우리 마음 속에 건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한국서 활동해온 대만출신 가수 쯔위가 최근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태극기와 청천백일기를 함께 흔들어 대륙의 심사를 틀어지게 하고, 이어 나온 미숙한 수습책이 대만ㆍ한국인의 묵은 소회까지 들쑤신 일이 있었다. 적의 친구는 적이라는 할슈타인 원칙은, 일국의 국제법적 지위와 무관하게, 보다 앞서고 보다 오래 가는 감정의 서슬로 사사화(私事化)하고 내면화한다.

2. [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 이제는 '불목' 시대

미국 가수 대니얼 분의 ‘뷰티풀 선데이’는 7080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추억의 팝송이다. 아름다운 일요일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겠다는 순진한 내용이다. 신나는 기타 반주에 ‘하∼하∼하∼ 뷰티풀 선데이’같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가사로 엄격한 학교생활에 짓눌린 까까머리 남고생과 단발머리 여고생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라디오 DJ들이 주말이 다가오면 분위기를 띄우려고 자주 틀었다. ‘안녕하세요’의 가수 장미화가 1974년 발매한 앨범에 이 노래를 수록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2000년대 들어 주5일 근무가 활성화됐지만 그 이전부터 사람들은 토요일에 주말 분위기를 즐겼다. 1987년 가수 김종찬의 ‘토요일은 밤이 좋아’란 가요가 히트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때는 토요일이면 나이트클럽에 모여든 청춘남녀가 ‘아쉬움을 두고 떠나가지 말아 토요일은 밤이 좋아’라고 목청껏 질렀다. 여름철 해변의 흥겨운 분위기를 내는 데도 일등공신이었다.

주말 시작이 주5일제 정착을 계기로 금요일 저녁으로 굳어졌다.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등장한 것이다. 금요일 저녁과 밤을 음주가무로 신나게 즐기는 불금 문화가 홍익대 앞과 이태원에서 활짝 꽃피웠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더니 생활패턴의 변화를 따라 ‘불금’이 ‘불목(불타는 목요일)’에 점차 밀린다는 소식이다. 신세계 롯데 현대 등 국내 백화점이 31일 정기 세일을 시작한다. 금요일부터 세일을 시작하던 관행이 반세기 만에 무너졌다. 유통업계만 아니라 영화 개봉과 여행 패키지 상품도 ‘불목 마케팅’을 거든다. 

젊은 직장인들은 회식 날짜를 정할 때 금요일보다 목요일 저녁을 압도적으로 선호한다. 주말을 숙취 후유증에 시달리며 허송하기보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힐링 시간으로 온전히 보내려는 마음에서다. 덩달아 식당과 술집도 목요일에 북적인다, ‘불금’ 탓에 생긴 택시 승차난이 좀 나아지려나. 청년실업률이 12%를 돌파하면서 불금이든 불목이든 ‘불타는 밤’이 남의 나라 얘기만 같은 고단한 청춘이 너무도 많다니 왠지 마음이 짠할 뿐이다.

3. [동아일보][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자유와 위로의 상징, 서커스

미술의 역사에는 선구자들이 있습니다. 조르주 쇠라(1859∼1891)도 그중 한 명입니다. 서른두 살에 요절한 화가는 신인상주의의 창시자입니다. 당시 유행했던 공공 벽화를 방불케 하는 커다란 화면에 19세기 중엽 프랑스 사회를 기념비적으로 표현했지요. 특히 물감을 팔레트에 직접 섞지 않고 나란히 두어 색채 혼합을 꾀한 기법은 혁신적이었어요.

화가는 도시화, 산업화와 함께 빠르게 확산된 여가 문화를 즐겨 그렸지요. 그림 속 인물들은 공원과 유원지에서 물놀이와 뱃놀이로 휴일을 보냅니다. 카페와 공연장에서 캉캉과 서커스를 관람하며 여가를 즐깁니다. 새로운 주제는 아닙니다. 인상주의 미술도 붓으로 도시의 일상을 포착하고자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화가의 미술은 결이 다릅니다. 

기하학적 화면 구성 때문일까요. 휴식과 놀이의 순간조차 질서정연합니다. 고대 벽화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정적인 분위기의 인물들 때문일까요. 행락객의 모습에 긴장감이 넘칩니다. 마냥 여유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절제된 분위기는 ‘서커스’에서도 반복됩니다. 

늦은 밤 관객들이 특별한 구경을 하러 왔군요. 서커스는 새로운 볼거리였지요. 전통적인 발레나 오페라 공연처럼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관람 분위기도 자유로웠어요. 숨죽인 채 무대에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공연 도중 자리를 옮기는 것은 물론이고 잡담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림 속 객석 뒤쪽에 모자를 쓴 채 앉아 있는 두 명의 관객처럼요. 게다가 무대와 객석 거리에 따른 입장료 차별도 없었지요. 상업적 유흥 공간에서 모든 계층은 잠시나마 하나 됨을 느꼈어요. 아슬아슬한 마상 쇼가 펼쳐지는 순간만큼은 자유였습니다. 일상의 시름과 속도 경쟁에서 한숨을 돌렸습니다.

버거운 삶에서 벗어나고픈 자유와 해방의 꿈이 위로와 공감으로 바뀐 것일까요. 관계의 소원함이 깊어지는 시대, 익명성에 기반을 둔 사회관계망서비스가 새로운 소통 창구로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누군지 밝히지 않은 채 부담 없이 현실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답니다. 일면식 없는 누군가가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답니다. 100여 년 전 늦은 밤 서커스 공연장에서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던 관객들은 짐작이나 했을까요. 훗날 뉴미디어 시대의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타인들에게 주목하리라는 것을요. 그것도 나의 고단함을 달래 주고, 걱정거리를 토닥여 줄 적임자로 말입니다.

4. [동아일보][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사슴 꼬리(鹿尾)

짐작하지 못할 식재료는 아니다. 짐작은 하지만, ‘글쎄? 그게 어떤 맛일까?’라는 궁금증은 든다. 사슴꼬리, 녹미(鹿尾) 이야기다. 

연산군 10년(1504년) 10월의 ‘조선왕조실록’이다. 사슴꼬리 때문에 애꿎은 관찰사의 목이 떨어질 판이다. 연산군, 누구나 알듯이 해괴한 짓 많이 했다. 그중 하나다. 연산군이 사옹원에 명한다. “녹미는 모름지기 꼬리가 있는 것으로 올리라. 관찰사도 부엌의 반찬을 보고 좋고 나쁨을 따진다. 하물며 궁중에 올리는 물건이야 말하면 무엇하랴? 앞으로 사옹원에서는 관찰사가 올리는 녹미의 색깔과 맛을 살펴보고, 나쁜 것이 있으면 조사하라. 이조에서는 장부에 기록하라. 6개월에 3번 이상 질 나쁜 녹미를 올리는 관찰사가 있으면 비록 근무성적이 최고라 하더라도 파면하라.” 

입이 짧기로 소문난 영조도 녹미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많이 남겼다. 영조 40년(1764년) 4월 “사슴꼬리나 메추라기고기도 내가 전에 즐겼던 것들이나 올리지 말라고 했다. 역시 민폐가 될까 두려워서이다”라고 했다. 이쯤 되면 사슴꼬리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5년 후인 영조 45년 8월의 기사에는 “사슴꼬리가 60조(條)면 사슴 또한 60필이다. (제주도에서) 1년에 두 번 올리면 사슴이 자그마치 120필이다. 예전엔 그렇게 올렸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진공(進貢)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 사슴꼬리가 또 등장했다. 

영조 48년 11월에도 “오늘 젓가락을 댄 것은 오직 녹미뿐이다. 맛있다고 해서 어찌 어질지 못한 짓을 계속하겠는가. 앞으로는 녹미를 봉진하지 말라”고 했다. 영조 51년 8월에 또 ‘사슴꼬리 봉진 금지’가 등장한다. “내가 일찍이 녹미를 즐겼으므로 어영청에서 먼저 구해서 바쳤다. 다른 영문에서도 장차 이와 같이 할 것이다. 앞으로 다시는 (녹미를) 구하지 말라. 하여, 내가 녹미를 구하는 뜻이 없음을 보여주라.” 어영청은 5영문 중 하나다. 어영청에서 시작하면 훈련도감 등 다른 영문들도 따라할 것은 뻔하다. 

영조는 10여 년간 계속 ‘녹미 봉진 금지’를 이야기한다. 뒤집어 보면 영조는 사슴꼬리로 만든 음식을 좋아했고 역설적으로 계속 녹미를 받아왔음을 알 수 있다. 집권 말기, 여든 살 무렵 영조의 변덕도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사슴꼬리 음식’을 쉽게 만날 수 없으니 얼마나 맛있는 고기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연산군이나 영조 외에도 녹미를 좋아하는 이들은 많았다. 일반인도 녹미를 좋아했고 그 때문에 녹미를 둘러싼 잡음도 많았다. 

중종 3년 4월의 기록에는 ‘중신 채윤문이 경상도 수사로 있을 때 녹미, 녹설(鹿舌)을 많이 거두어 장사를 해서 이익을 취했으니, 이렇게 더러운 사람으로 장수를 삼을 수 없다’는 사간원의 탄핵 내용도 있다. 1712년 베이징(北京)에 사신으로 갔던 조선 후기 문인 김창업(1658∼1721)은 베이징에서 “주방에서 사슴꼬리를 들여보냈는데 구웠더니 별로 맛이 없었다. 오래되어 변한 듯하다”고 했다. 귀하지만 일상적으로 먹었던 음식임을 알 수 있다. 

녹미의 봉진을 둘러싼 다른 잡음들도 있었다. 진상용 녹미를 구하지 못한 지방에서는 엉뚱하게도 한양으로 녹미를 구하러 보낸다. 지방관리가 면포를 가지고 한양에서 녹미를 구하여 진상하는 일도 있었다. 중종 12년(1517년) 8월의 기록에는 ‘한양에서 녹미를 구하다니 도대체 한양 어디에서 녹미가 나오는지 알 수 없다. 결국 사옹원 등에서 퇴짜 맞은 물건들이 떠돌아다니는 것 아니겠는가’라는 참찬관 조방언의 진언도 남아 있다.

황해도 감사였던 율곡 이이도 “녹미는 맛있는 음식이 아니다. 황해도 내에서 사슴이 많이 나지 않으므로 결국 베와 재화를 가지고 한양에서 바꾼다. 그 값도 (원래에 비하여) 지나치게 높다”며 제도를 바꿀 것을 제안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녹미에 대한 관심은 깊었다. 교산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녹미는 전북 부안에서 그늘에 말린 것이 가장 좋고 제주도 것이 그 다음’이라고 밝혔다. 오주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녹미 절임법’을 상세히 설명한다. ‘칼로 사슴꼬리의 뿌리 부분 털을 잘 깎아낸다. 뼈를 발라내고 소금 1전(錢)과 무이(蕪荑) 5푼(반전)을 꼬리 속에 넣는다. 긴 막대에 끼워서 바람 부는 곳에서 말린다.’ 무이는 왕느릅나무(열매)로 추정한다.

5. [동아일보][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나를 '1인 기업'으로 대접해주는 조직

기업이 신문사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간 나는 살짝 눈썹이 올라갔다.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기자 생활을 하다가 기업으로 이직하여 주요 요직을 거친 한 대기업 팀장과의 식사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눈썹은 내려왔고, 점차 공감을 하게 되었다. 그때 대화가 그 후에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몇몇 기자를 상대로 ‘취재’도 해보았다. 기업이 신문사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는 말에 지친 나날을 보내는 기자들도 처음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몇몇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업에서 생각해볼 만한 부분 몇 가지를 들어보자.

최근 삼성이 대대적으로 조직문화를 혁신하기 위해 직급체계를 단순화하고 수평적 조직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수년 전부터 다른 기업에서도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고자 직책을 없애고 “○○님”이라고 부르는 시도를 해온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성공적이었다는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외부와 일을 할 때, 명함의 직책이 사라짐으로 해서 불편함을 겪는다는 불만이 더 많이 들렸다.

신문사 안으로 들어가 보자. 직책은 그대로 있다. 하지만 신참 기자들도 ‘감히’ “김 국장” “박 부장”이라고 부른다. 얼핏 이해 못 하겠지만, 이는 언론사 기자들이 신참이라 하더라도 취재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의 사람을 만났을 때 당당하게 대하라는 뜻에서 내려온 전통이다. 상상을 해 본다. 기업에서 직책을 없애고 서로 ‘○○님’으로 부르기보다 직책은 그대로 두고 ‘님’자를 떼고 부르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수평적인 조직이 될까.

‘신문사는 수평적 조직일까’라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들 수 있다. 호칭만 바꾼다고 해서 문화가 바뀌지는 않는다. 신문사의 또 다른 측면을 들여다보자.

기자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고분고분한 사람의 이미지와는 반대일 것이다. 기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비판의식이 있으며 할 말은 하는 타입인 경우가 많다. 조화를 중시하는 집단주의 사회인 우리는 이런 ‘모난 사람’을 배척하는 경우가 많다. 신문사에도 위계질서가 있지만 기업과 신문사의 회의문화는 다르다. 신문사에서는 적어도 기업보다는 참석자들이 할 말은 할 수 있는 분위기이다. 리더 혼자서 ‘주욱’ 이야기한 후 마치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각자의 개인성(individuality)을 살려내는 것이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과 개인의 행복 증진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모와 선생, 상사와 선배 앞에서 우리는 자기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조화와 순종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처음 내게 이야기를 들려준 팀장은 오너 회장에게도 할 말은 하는 성격이다. 팀원들에게도 자기 목소리를 확실히 내도록 장려하고, 형식적인 회의는 거부한다.

신문사에서 기자 한 사람은 일종의 1인 기업이다.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책임을 지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개인의 역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신참 기자라 하더라도 특종을 ‘물어오면’, 그 기사는 1면에 그 기자의 이름으로 실릴 수 있다. 기업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보고 단계를 거치면서 신참 직원의 이름은 보고서 어느 한구석에서나 찾을 수 있을까? 아직도 주말 행사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의 개인 생활을 무시한 채 동원하고 때로는 과로사하는 사회에서 상사나 조직이 직장인을 1인 기업처럼 대해 주리라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일지 모른다. 그래도 직장인은 조직 내에서, 또 자신의 삶에서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내고 밝힐 방법을 연대하며 찾아가야 한다.

신문사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매일 결과물을 내고 평가받는 지친 삶을 살아가는 기자도 적지 않다. 기업이 신문사처럼 되자는 말이 아니라 신문사의 독특한 문화로부터 새롭게 생각해 볼 점들이 있으며, 이를 기업과 개인의 실정에 맞게 변형 발전시켜보자는 것이다. 물론 신문사도 기업의 경영으로부터 배울 것은 많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2016년 3월 28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총선 후보자 40%가 전과자라니

4·13 총선 후보자 10명 가운데 4명이 벌금 100만원 이상인 전과자라고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후보자 명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253개 지역구 후보 944명 가운데 40.6%인 383명이 전과기록자다. 이는 17대 17.7%, 18대 15.3%, 19대 19.7%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것이다. 총선 후보자 가운데 병역면제자도 16.9%에 달했다. 국민의 대표로서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인물 중 상당수가 전과자요 병역면제자라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당 공천을 받은 후보자 중에도 전과자가 많다는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 99명, 새누리당 80명, 국민의당 67명, 민중연합당 32명, 정의당 30명 순이었다. 총선 이후 당내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계파 간 이전투구로 보복 공천, 돌려막기 공천 등 막장 공천을 하느라 후보의 도덕성을 제대로 거르지 않은 탓이다. 어떤 이유로든 전자과를 공천한 것은 유권자인 국민을 우습게 보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전과 기록이 있다고 모두 자격미달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처벌 받은 시국 관련 사범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도, 폭행, 뇌물, 음주운전, 음란물 유포 등 일반적인 상식으로 용납하기 어렵고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범죄를 저지른 파렴치범들도 상당수다. 심지어 전과 10범, 9범, 8범 등 상습범도 적지 않다. 

여성후보 100명을 뺀 844명 중 143명, 16.9%가 병역 면제자라는 점도 걸린다. 비례대표 후보는 22.3%에 달했다. 일반 국민의 평균 병역면제율은 6.4%에 불과하다. 민주화운동 등에 따른 수형이나 질병 등을 이유로 면제된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징병검사를 연기 또는 기피하거나 장기 대기하던 중 ‘고령’, ‘행방불명’, ‘생계곤란’ 등 석연치 않은 사유로 면제된 사례도 많았다.

심판은 유권자의 몫이다. 국회의원으로서 자질과 도덕성이 의심되는 파렴치범이나 상습범, 병역기피자, 부패·막말 전력자 등 함량 미달 후보들은 표로서 걸러내야 한다. 선거 공보를 꼼꼼하게 살펴 후보들의 전과, 병역, 납세 문제 등을 따져서 부적격 후보는 엄격하게 가려내야 한다. 흠결투성이 후보를 뽑아놓고 뒤늦게 국회가 왜 이 모양이냐고 손가락질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2. '국민소득 3만달러'공염불 안되려면

경기침체 여파로 한국경제호(號)가 우울한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GNI) 잠정치가 달러화 기준으로 2만7340달러라는 한국은행의 최근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2만8071달러를 기록한 2014년에 비해 2.6% 줄어든 것이다. 1인당 GNI가 전년보다 감소하기는 금융위기 이후 6년만에 처음이다. 그만큼 저성장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1인당 GNI는 국민총소득을 인구로 나눈 지표로 국민이 국내와 외국에서 벌어들인 소득 수준을 나타낸다. 그동안 우리는 ‘국민소득 3만달러’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척도로 여겨왔다. 이에 따라 1인당 GNI는 2014년 2만8000달러대로 3만 달러에 가까이 다가선 적은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감소세를 나타내 2006년 2만 달러대에 진입한 후 9년째 3만 달러 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올해를 크게 기대할 수 있는 처지도 못된다. 글로벌 경제 위기로 전세계 교역량이 크게 감소해 우리 경제 버팀목인 수출이 지지부진하다. 수출액은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967억6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 가량 주저앉아 충격을 줬다. 설상가상으로 민간 소비가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국제유가도 하락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3.1%대로 잡고 있지만 대다수 민간연구소가 2%대에 머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는 것도 이같은 이유다. 1인당 GNI가 3만 달러를 넘어서기가 이래저래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한국경제가 소득 2만달러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면 한국경제 펀더멘털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대규모 수술작업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를 과감히 없애고 혁신을 토대로 한 새 성장동력을 마련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와 함께 ‘경제의 최대의 적(敵)은 정치’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국회에서 낮잠 자고 있는 경제 활성화 법안을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동아일보]

3. 성장해도 살림은 제자리, 대기업정책 수정할 때다

경제가 성장해도 가계소득은 별로 늘지 않는 현상이 한국에서 유독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적했다. 최근 ‘2016년 경제정책 개혁’ 중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소득 비율은 1995년 69.6%에서 2014년 64.3%로 5.3%포인트 떨어졌다. OECD 국가 중 30개국 가운데 오스트리아에 이어 2번째로 빠른 하락세다. 정부, 기업, 가계 부문에서 창출한 부가가치의 합인 GDP 가운데 가계소득 비율이 급감한 것은 국가 전체의 부를 기업과 정부가 주로 나눠 가졌다는 의미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허리띠를 졸라맨 한국의 가장들로선 박탈감이 크다. 

성장의 과실이 고루 분배되지 않고 일부에 쏠리는 양극화가 세계적인 현상이라고는 하나 한국만큼 가계소득 비중이 줄어든 나라는 드물다. 지난 20년간 미국(79.5%→82.6%)은 물론 일본(74.8%→77.9%) 스웨덴(68.2%→71.1%) 심지어 스페인(75.8%→76.1%)까지 가계소득의 비중이 늘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계 빚이 1200조 원을 넘었는데 고용 없는 성장, 임금 인상 없는 성장이 계속되면 가계의 소비가 줄면서 성장 여력도 감퇴할 수밖에 없다. 

2014년 7월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는 기업이 투자와 배당, 임금 인상에 나서게 하겠다며 기업소득 환류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근로소득 증대세제 등 가계소득 3대 패키지 정책을 내놨다. 임금이 오르지 않고 비정규직은 늘면서 가계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체증은 제대로 짚어냈으나 환자의 소화기능을 살릴 처방이 빠져 효과는 크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투자 증가율은 1998년 이후 1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드러났다. 고배당이 외국인투자가들에게 돌아가 국부가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지난해 대기업 임금은 3.9% 오른 반면 중소기업 임금은 3.4% 오르는 데 그쳐 대·중소기업 간 월급 격차는 역대 최고인 191만 원으로 벌어졌다.

대기업이 성장하면 중소기업과 가계에까지 혜택이 돌아간다는 낙수효과에 근거한 두루뭉술한 지원정책은 재검토할 때가 됐다. 투자를 가로막는 핵심 규제를 풀어 기업이 질 좋은 고용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개혁의 근간이 돼야 한다.

[서울신문]

4. 무능하고 불량한 후보 유권자가 가려내야

4·13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별로 주권자인 국민의 한숨 소리가 커질 판이다. 중앙선관위 후보자 등록이 지난 25일 마감됐지만, 온갖 비리 전과로 얼룩진 후보들로 짜인 대진표를 받아들면서다. 총선 후보 가운데 세금체납·전과·병역미필 기록 중 1개 이상을 갖고 있는 후보가 절반이 넘는 509명(53.9%)이라니 말이다. 특히 이들 중 9명은 세금체납·전과·병역미필 등 ‘불명예 3관왕’ 기록까지 갖고 있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불량한 정치꾼들이 대거 국회에 등원하면 온 국민이 염원하는 선진 국회도 요원해진다. 우리는 ‘불량 국회’를 막는 최후의 보루는 유권자들의 분별력 있는 주권 행사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간 여야 각 당이 공천 개혁을 입에 달다시피 했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선관위에 등록한 후보 10명 중 4명꼴로 각종 전과자라서만이 아니다. 전과자 비율이 18대나 19대 총선 때보다 크게 늘어난 것도 문제지만, 헌법에서 정한 국민의 의무인 납세와 병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후보들이 득실거리니 혀를 찰 노릇이다. 후보 개인별로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6명 중 1명은 병역을 이행하지 않았고, 7명 중 1명꼴로 세금 한 푼 안 내거나 체납했다니 고개를 젓게 만든다. 특히 전체 출마자의 절반가량이 연간 국민 1인당 세금 납부액보다 적게 냈다니 평균적 시민들보다 더 도덕적으로 해이해진 인사들이 선량(選良)이 되기를 꿈꾸는 꼴이다.

당장 이런 수준 낮은 후보자들이 펼칠 선거전의 양태를 생각해 보라. 재정 능력이나 교통 수요도 생각지 않고 내 지역구에 다리를 놓자는 식의 온갖 선심성 공약을 내걸 게 뻔하지 않은가. 이들이 선거 관문을 뚫고 등원한 이후의 후유증은 더 심각할 게다. 우리 사회의 공동선보다 온갖 이권에만 눈이 먼 의원들이 늘어난다면 말이다. 일찍이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말한 ‘생계형 정치인’이 대거 의석을 점령하면 입법부가 타락할 소지는 그만큼 커질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진 자의 도덕적 책무)와는 거리가 먼 의원들이 앞에선 행정부를 질타하면서 뒤로는 정부기관과 공기업을 상대로 알선과 청탁을 일삼는 부조리를 저지를 가능성을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잖아도 무한 정쟁과 민생 입법 지연으로 19대 국회는 역대 최악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런 국회를 개혁하려면 기존의 특권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엄중한 책임감으로 무장한 선량으로 20대 국회를 구성해야 한다. 그런데도 입후보자의 평균적 자질이 더 나아져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19대 총선 때보다 퇴행했다니 걱정이 앞선다.

장관급 이상 고위공직자와 달리 국회의원은 인사청문회가 없는 까닭에 선거가 곧 불량 의원을 솎아 낼 마지막 관문이나 다름없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의 포퓰리즘 공약에 현혹되지 말고 그들의 자질부터 꼼꼼하게 검증해야 할 이유다. 생업에 바쁜 유권자들이 일일이 유세장을 쫓아다니기 어렵다면 선거 공보라도 꼼꼼히 읽어야 한다. 무능하고 불량한 입후보자들이 만들지도 모를 저질 국회를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백신은 유권자의 현명한 한 표 행사임을 유념할 때다.

5. 北 잇단 불장난 조짐에 단합된 힘으로 맞설 때

북한 중앙통신이 그제 “인민군 전선대연합부대 장거리 포병부대가 자신들의 집중화력 타격권 안에 청와대가 포함돼 있다는 등 최후통첩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이에 앞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이용해 미국의 워싱턴 DC를 공격하는 동영상을 내보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나서 “지상과 공중, 해상, 수중의 임의의 공간에서 핵 공격을 가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는 등 막가파식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 군은 이에 대해 “국가원수에 대한 저급한 언동을 중단하라”고 엄중히 경고했고 미국도 성명을 통해 “도발적 언행을 삼가라”고 했다.

북한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발적 언행을 계속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우선 5월로 예정된 제7차 노동당대회를 앞두고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 따른 흐트러진 민심을 다잡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또한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김 위원장이 통 큰 지도자라는 인식을 북한 주민들에게 심어 주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대북 정책 전환을 유도하는 효과와 함께 총선을 앞두고 남남 갈등을 유발하겠다는 속셈도 엿보인다.

미국 본토를 공격 목표로 한 동영상을 공개한 것도 미국의 대북 정책 유도책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북한은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에 응하는 것을 대미 외교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물론 국제사회에서 가해진 강력한 대북 제재와 역대 최고 수준의 한·미 군사훈련에 따른 북한의 자포자기식 반응이라는 등 다양한 시각이 있다. 아무튼 북한이 도발 수위를 높이면 높일수록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북한은 그동안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방사포 등 무력시위, 상륙훈련 등 도발 역량 과시, 북방한계선(NLL) 침범, 비무장지대 등의 다양한 형태의 도발을 일삼아 왔다. 북한은 아직 특이한 동향은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새로운 무력 도발을 시도할지 모를 일이다. 우리 군은 어떠한 상황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정치권도 총선 과정에서 단합된 힘을 보여야 한다. 북한이 노리는 것 중 하나가 남남 갈등을 부추기는 일이다. 정부 또한 그 어떤 도발에도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충무계획 등 종합대비태세를 상시 점검하는 체제를 갖춰야 할 것이다.

6. OECD 2위인 가계소득 하락폭

가계소득 하락 추세가 가파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소득 비율이 20년간이나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감소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위로 기록됐다. OECD가 최근 발간한 구조개혁 중간평가 보고서 내용이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소득 비율은 1995년 69.6%에서 2014년 64.3%로 5.3% 포인트 떨어졌다. 경제 3주체 중에서 가계가 차지하는 소득의 비중이 크게 줄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OECD에서 자료가 있는 30개 회원국 중 오스트리아에 이어 두 번째였다.

가계소득이 줄어들면 소비 부진을 불러 기업 생산을 위축시키며 결국 경제성장 둔화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한 끝에 지난해 2.6%로 추락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소득보다 소비가 더 큰 폭으로 위축되면서 가처분소득 대비 소비지출 비중이 사상 최저치(71.9%)를 기록했다. 가계가 아예 지갑을 닫아 버리는 상황이 굳어지면 일본식 장기 불황을 답습할 가능성도 커진다. 일본은 소비 쿠폰 지급 등 갖가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소득분배 시스템은 악화일로에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20년 전 80% 수준에서 50%로 떨어졌다. 기업소득 증가율의 절반에 불과한 가계소득 증가율도 문제다. 어렵게 경제가 성장해도 근로자 개인에게 돌아가지 않고 기업의 배만 불리는 것이 우리의 경제 시스템이다. OECD 보고서도 “대다수 국가에서 노동소득 분배율이 하락한 가운데 자본에서 가계부문으로의 소득 재분배율도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는 기업 부문의 이익이 가계 부문으로 재분배되지 않고 기업 부문에 유보되는 비중이 상승했음을 의미한다. 우리 경제의 중추 세력인 중산층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구조적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최근 가계소득 증대를 위해 기업소득환류세제 등 일련의 정책을 발표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노동개혁을 통한 일자리 확대나 최저임금 인상 등의 방안도 가계소득을 늘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계 소득계층 간 소득 배분 구조를 보완해 최종적으로 가계소득 비중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계층 간 소득불균형을 합리적으로 보완하는 과감한 소득세제 개편책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중앙일보]

7. 삼성의 스타트업 방식 혁신에 거는 기대

삼성전자가 최근 ‘스타트업 삼성’을 표방하며 스타트업 기업의 DNA를 조직문화에 이식하겠다고 선포했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혁신 후 23년 만에 나온 새 경영 혁신 방안이다. 특히 이번 혁신안은 현재의 시대정신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기대가 된다. 기존 조직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겠다는 통 큰 변화의 신호탄이다.

삼성은 90년대 신경영 이후 수직적이고 일사불란한 조직문화를 만들며 하드웨어 생산 경쟁력을 최고도로 높였다. 제품 생산에 있어서 기술 개발과 수율 경쟁 등 모든 속도 경쟁에서 승리했고, 일본·대만 등 경쟁자들을 시장에서 차례로 탈락시키며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20여 년간 지속된 신경영 문화는 권위주의와 관료화를 낳았고,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경쟁으로 바뀌는 세계 산업의 변화를 따라잡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이 5조원대 초반으로 전분기보다 1조원 이상 빠질 것으로 예측했다. 올 들어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선 5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지난해 반도체를 제외한 전 삼성 제품 중국 판매는 77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스마트폰은 이미 세계시장 자체가 폭발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들면서 더 이상의 성장을 이끌어내기 힘들어졌다. 삼성전자가 변하지 않으면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사인인 것이다.

이런 시점에 조직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고, 하향식 지시가 아닌 상향식 의사전달 문화를 만들고, 근무환경도 유연화하는 등 스타트업 방식의 혁신을 선언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시의적절한 변신 노력은 ‘젊은 삼성’의 탄생을 알리는 메시지 역할을 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성패는 ‘창의성과 생태계의 활성화’에 달렸다. 무한경쟁·승자독식 문화의 삼성이 기존에 승리했던 방식을 모두 잊고 새롭게 출발해야 성공할 수 있다. 삼성의 신경영이 국내 대기업의 혁신을 선도했듯이 이번 혁신도 성공해 국내 기업에 새로운 활로를 제시하기 바란다.

8. 트럼프의 핵무장 용인 발언은 위험한 단견

미국 공화당의 대선 경선주자 중 선두를 달리는 도널드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는 물론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용인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뉴욕타임스가 26일 공개한 외교안보 정책 인터뷰에 따르면 트럼프는 “(대통령이 된 뒤) 한·일이 주둔 비용 부담을 상당히 늘리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에 “즐겁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한국을 “안보 무임승차국”이라고 비난하긴 했지만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까지 거론한 것은 충격적이다. 동맹의 근간인 신뢰를 흔드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만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경우 한·미 동맹과 양국 관계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트럼프는 “(한·일의) 핵무장에 반대하는가”라는 물음에 “언젠가는 우리가 더는 (방어 역할을) 할 수 없는 시점이 올 것”이라며 “우리는 부유했고 강한 군대와 대단한 능력을 갖췄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고 답해 핵무장 용인을 시사했다. 이러한 발언은 동맹과 안보 질서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 단견일 뿐이다. 비용 문제로 핵우산 제공을 포기하고 독자 핵무장을 용인한다면 동북아시아의 안보 상황이 더욱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핵무장은 군사대국화로 이어지며 이럴 경우 지역 세력 균형이 무너지면서 동북아 안보 질서가 요동치게 된다. 결국 북한과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핵 대결과 군비 경쟁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입장에서는 긴장 고조에 따른 안보비용 증가와 분단 고착화가 우려된다. 한·일 핵무장은 도미노 현상을 불러 핵 비확산 체제가 무너질 수도 있다. 이는 국제사회의 안보 불안을 유발하고 미국의 국익에도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유력 대선 경선주자가 주한미군과 핵 문제를 비용 차원으로만 접근해 주판알을 튀기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칫 미국에 대한 전 세계의 불신과 불만만 키울 수 있 다. 트럼프는 소탐대실의 마구잡이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외교 루트를 통해 우리 입장에서 본 트럼프 발언의 위험성을 의회 등 미 지도층에 설명해야 한다.

[매일경제]

9. 타인이 올린 글 삭제 안 되면 '잊힐 권리' 보장되겠나

인터넷상에 떠돌고 있는 자신의 정보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가 곧 법제화된다. 유럽연합, 미국, 일본 등에 비해 늦었지만 인터넷 시대 화두가 되고 있는 '잊힐 권리'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바람직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흔적을 인터넷에서 지울 수 없어 괴로웠던 이들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5일 공개한 가이드라인 초안은 삭제 요청할 수 있는 대상을 본인이 직접 올린 글·사진·동영상 등 게시물로 한정하고 있다. 제3자가 올린 게시물로 인해 정신적·사회적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고려할 때 이에 대한 구제 방안이 담기지 않은 것은 아쉽다. 유럽연합은 2012년 구글 등 검색엔진의 검색 결과에서 작성자와 관계없이 자신과 관련된 각종 정보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프랑스 국가정보위원회는 최근 구글이 잊힐 권리를 전 세계 구글 도메인에 적용하지 않았다며 벌금 10만유로를 부과하기도 했다.

잊힐 권리를 지나치게 확대 적용할 경우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할 수 있다. 인터넷 기록은 역사의 한 부분인 만큼 '기억할 권리'가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정치인, 범죄자들이 과거 행적을 지우는 데 악용할 수 있고 정보 접근을 차단해 여론 형성을 저해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스스로 공개할 권리가 있듯이 스스로 삭제·차단할 권리도 있어야 한다.

신상 털기 피해자나 '디지털 주홍글씨'를 안고 사는 이들은 구제돼야 한다. 유럽연합은 언론, 공공보건, 역사, 통계, 과학연구 목적 등에 필요한 경우에만 잊힐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방통위가 다음달 내놓을 최종 가이드라인은 프라이버시 보호와 알 권리 간 균형을 잘 잡아야 할 것이다. 피해자가 늘지 않도록 법제화도 서둘러야 한다.

[매일신문]

10. 문제 많고 불편한 경북도청 신도시, 활성화 대책 세워라

경북도청이 안동·예천으로 이전한 지 한 달 보름이 지났다. 그런데 도청 신도시에는 비싼 땅값 및 임대료로 인해 상점과 사무실에 들어오려는 개인·회사가 거의 없다. 거주하고 일하기에 너무나 불편한 환경이다. 도시 기능이 전혀 없는 신도시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감이 크다. 

신도시 일대에 준공했거나 준공을 앞둔 아파트 단지 상가와 빌딩 등에는 문을 연 상점이 거의 없다. 신도시 반경 10㎞ 주변에 문을 연 상점은 편의점 1곳뿐이다. 입점을 준비하는 곳도 거의 없다. 상가가 텅텅 빈 이유는 터무니없이 비싼 임대료 때문이다. 아파트 상가 임대료가 월 170만~200만원 선이고, 노른자위 상가는 월 300만~400만원에 이른다. 대구 혁신도시의 상가보다 훨씬 비싼 수준이다.

임대료가 엄청나게 높은 원인은 비싼 땅값 때문이다. 경북개발공사가 지난해 12월 일반상업용지를 분양한 결과 1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해 3.3㎡당 평균 980만원에 낙찰됐다. 낙찰가가 감정가의 2배를 넘을 정도였다. 이로 인해 분양가 상승과 임대료 폭등의 후유증을 남겼지만, 경북개발공사는 큰 이익을 챙겼다. 경북개발공사는 경북도 산하 공기업인 만큼, 결국 경북도가 투자자들에게 땅을 팔아 도청 이전 비용을 충당한 셈이다. 

도심의 빈 점포만 문제가 아니다. 공무원들이 입주한 임대아파트는 비싼 보증금과 부실시공으로 말썽이다. 도청 직원 및 민원인이 이용하는 안동시내 음식점과 대중교통에 대한 불만이 엄청나게 높다. 신도시와 연결하는 시내·시외버스의 접근성도 아직 엉망이다. 신도시 형성 과정의 초기에 일어난 불가피한 일이라고 하기엔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어려움이다.

경북도는 이전 초기의 문제점을 사전에 예견했음에도 이를 해결하지 않은 채 이전을 강행했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것이라는 경북도의 안이한 자세도 한몫했다.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 것은 도청 직원과 민원인뿐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하면 신도시는 앞으로도 불 꺼진 적막한 도시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경북도는 도시 기능이 제대로 갖춰질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서평]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 | 개방·관용으로 부강해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살짝 미친 것이 미덕입니다.”

2001년부터 10년 동안 암스테르담 시장을 지낸 요프 코헌의 말이다.

그럴 만도 하다. 이 도시에는 5000~ 7500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활동하고 있다. 성매매는 합법이다. 그저 법적 통제의 대상이다. 커피숍에서는 마리화나와 해시시를 주문할 수 있다. 이는 네덜란드 특유의 ‘헤도헌(gedogen)’에 따른 것이다. 헤도헌은 엄밀히는 불법이지만 공식적으로 용인되는 것을 말한다.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러셀 쇼토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Amsterdam)’에서 그리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원래 뼛속 깊이 보수적이다. 그런데도 관용의 전통을 꽤나 자랑스러워한다. 이런 태도에는 악덕으로 치부될 일이라도 어차피 일어날 거라면 차라리 합법화해서 통제하는 게 낫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개인의 자유에 최고의 가치 부여하면서 

바닷물과 함께 싸우는 협동정신 중시해


인구 80만명의 암스테르담은 한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였다. 도시 역사는 1100년경에 비로소 시작됐다. 바닷물이 해마다 해안선을 바꾸는 게 지겨워진 농부 수백 명이 질퍽한 늪지를 집터로 삼고 가장자리에 제방을 쌓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자연과의 끝없는 싸움을 시작했다. 침수 위험에 함께 맞서는 공동체 문화가 만들어졌다.

암스테르담은 가톨릭교회와 봉건제도가 맞물려 돌아가는 중세와 맞지 않았다. 권력을 잡은 건 봉건 영주가 아니었다. 청어상이나 직물상, 비누 제조업자나 목재 야적장 소유자, 조선소 운영자들, 마을마다 있는 물관리위원회가 공동체를 이끌었다. 바다나 늪지를 개간한 땅은 교회나 귀족이 소유권을 주장하기 어려웠다. 활발한 무역도시로서 서로 다른 사람들을 끌어안는 개방성과 독립적 사고를 강조하는 신학이 더해져 관용의 문화가 자랄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은 다른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근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도시에서 싹튼 자유주의(liberalism)를 통해서다.

자유주의는 미국과 유럽에서 정반대의 뜻으로 쓰인다. 유럽에서 자유주의는 정부 개입이 제한되기를 바랐던 상인들이 주창한 사상이었다. 미국에서 자유주의는 자유를 보장하는 정부의 더 큰 개입을 지지하는 말로 쓰이게 됐다. 결국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누구나 유럽 변방의 작은 도시에서 꽃핀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도시는 투자 위험을 나누는 놀라운 제도적 혁신을 이뤘다. 주식을 발행하는 벤처기업이 대표적이다. 세계 최초의 다국적기업인 연합동인도회사(VOC)는 100만명이 넘는 유럽인을 아시아로 보냈고 영국 동인도회사보다 네 배 많은 생산품을 유럽으로 들여왔다. 세계 최초 증권거래소도 만들었다. VOC 선단의 보유 재산에 관한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됐다. 굳이 위험천만한 항해에 나서지 않고도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1950~1990년대에 제2의 황금기를 맞은 암스테르담은 20세기 자유주의 수도로 탈바꿈했다. 덕분에 이곳은 동성애자 결혼이나 자유연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에 이르기까지 온갖 새로운 아이디어를 얼마든지 시험해볼 수 있는 무대가 됐다.

이 책은 한 도시에 관한 책이면서 자유주의라는 하나의 개념에 관한 책이다. 자유와 관용이 도시와 국가 경쟁력을 높여줄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소소한 재밋거리도 버무려져 있다. 이 도시에 흔한 청어에 관한 이야기 하나. 암스테르담은 청어잡이의 혁신 덕분에 큰 부를 거머쥐었다. 청어 내장을 완전히 제거하는 대신 유문수라는 작은 주머니와 췌장을 남겨둔 채 염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신선도가 오래 유지되며 맛도 더 좋다.

2. [매경이코노미][고재윤의 ‘스토리가 있는 와인’] (9) 사랑의 와인 ‘라파주’-금슬좋은 부부사랑 담긴 루시옹 와인

완연한 봄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이 소생하고 들판에는 유채꽃 망울이 올망졸망 피어나기 시작한다. 봄은 결혼의 계절이라 했던가. 여기저기서 청첩장이 날아든다. 사랑의 결실을 맺는 신혼부부들을 보노라면 ‘사랑의 와인’으로 유명한 ‘도멘 라파주(Domaine Lafage·도멘은 프랑스어로 포도원이란 뜻)’가 생각난다.

라파주는 지중해 연안 남프랑스 루시옹 지역을 대표하는 와이너리 중 하나다. 최근 유럽에서 유기농 와인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루시옹 지역은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산들과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으로 천혜의 테루아를 자랑한다. 그간 자본력과 양조기술 부족 등으로 테루아를 십분 살리지 못해 저평가를 받아왔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특히 라파주 와이너리는 보르도나 부르고뉴는 물론, 신대륙 못잖은 최첨단 대형 와인 양조시설을 도입, 선조들이 이루지 못한 세계적인 와인 생산의 꿈을 펼쳐나가고 있다.

라파주가 ‘사랑의 와인’으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장 마크 라파주(Jean-Marc Lafage)는 남프랑스 루시옹 지역에서 6대째 포도 재배업을 하던 가족들 영향을 받아 13세부터 와인 양조에 몰두했다. 그는 프랑스 남부에서 가장 유명한 몽펠리에대에서 와인 양조학을 공부할 때 같은 학과에 다니던 엘리아나 라파주(Eliane Lafage)와 사랑에 빠진다. 금슬이 지극히 좋았던 부부는 함께 세계를 돌며 와인 공부에 매진한다. 프랑스의 보르도, 샹파뉴 등에선 전통적인 양조법을 공부하고 미국, 호주, 칠레 등에선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와인 양조기법을 배우면서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지난 1995년 루시옹에 라파주 와이너리를 설립해 현재 21년째 운영하고 있다. 

장 마크의 선조들은 와인을 병입하지 않고 벌크로만 팔았기 때문에 현대적인 의미에서 와이너리의 역사는 1995년부터라 할 수 있다. 현재 라파주는 ‘루시옹의 테루아를 가장 잘 표현하는 와인’으로 각광받는다. 

도멘 라파주는 전체 포도밭이 약 160㏊에 달한다. 그르나슈(Grenache), 무스카트(Muscat) 등 16종의 포도 품종을 재배하고, 수령이 50년 이상 된 포도나무에서 직접 손수확해 20여종 와인을 생산하며, 생산량의 70%를 해외에 수출한다. 최근 수년간 프랑스 최고의 영예인 파리농업박람회 콩쿠르(Concours General Agricole)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다. 가격 대비 품질이 아주 우수하다.

화이트 와인은 꼬떼 플로랄 2015(Cote Floral 2015)를 추천한다. 무스카트 85%, 비오니에 15%로 블렌딩했다. 지중해 바다가 근접한 돌 많은 포도밭에서 수령이 50년 된 무스카트를 8월 말, 수령이 10년 된 비오니에를 10월 초에 수확해 서로 다른 방법으로 발효한 게 특징이다. 

특히 5%의 비오니에는 새 오크통을 사용, 숙성 후 블렌딩해 독특한 와인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맑고 밝은 연초록빛을 띠며 라임류, 복숭아, 시트러스, 꿀, 열대과일, 달콤한 흰꽃향이 난다. 기분 좋은 산미와 신선한 과실의 풍미가 입안을 가득 메우며, 목넘김 후 미네랄향의 여운이 길게 남는 것이 인상적이다. 2012년 빈티지는 파리농업박람회 콩쿠르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울리는 음식은 샌드위치, 샐러드, 생선회 등이며 욕심을 내면 디저트, 생크림 케이크 등에도 좋다. 가격은 1만8000~2만원.

레드 와인을 마시고 싶다면 미국의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94점을 준 ‘테세라에 올드 빈스 2013(Tessellae OldVines 2013)’이 좋다. 그르나슈 누아 40%, 시라 40%, 무르베르 15%, 그르나슈 그리 5%를 블렌딩했다. 풍부한 과일향, 알코올, 산도, 타닌이 적절하게 배합돼 입안에서 오랫동안 매력을 발산한다. 음식과의 조화는 불고기, 쇠고기 스테이크, 양념 돼지고기 등이 좋다.

3. [동아일보][박윤석의 시간여행]서울 사람 6할이 셋집살이

‘도시의 주택난 문제는 서울을 비롯하여 평양 부산 대구 인천 개성 함흥 등 각 도시의 중요한 사회문제로 되고 있다.’

통일 한국의 미래를 그리는 공상 소설이 아니다. 언제 해방될지 모르는 채 일상을 꾸려 가던 78년 전 신문의 한 구절이다. ‘심각한 주택난 문제’라는 제목의 1면 사설이다. 

‘도시 생활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차가인(借家人)들은 그 생계비 중에 가임(家賃)이 가장 큰 부담인 까닭에 사회문제로서도 중요성을 띠는 것이니, 물가의 억제는 가임의 억제에까지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동아일보 1938년 9월 18일자)

차가인은 요즘 말로 세입자이며 가임은 집세라는 뜻이다. 집을 임차한다는 뜻에서 차가이며, 집을 빌리는 대가가 가임이다. 요약하자면 주택난 문제는 세입자의 생계비 부담으로, 물가 안정과 주거 안정을 위협하는 경제 문제이자 사회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주거비 압박으로 인한 가처분소득 감소와 내수 경기 침체 등 오늘날 주택 임대차를 방불케 하는 내용이다. 지금과 시차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과거의 주택 환경은 어떠했던 것일까. 

‘경성부 내의 가구 수는 14만4000여인데 가옥 수는 8만2000여밖에 안 된다. 6만2000여 가구가 차가인이라는 말이다. 즉 43%가 셋집살이를 한다는 뜻이다.’

사설은 이렇게 단순 계산을 해 본 뒤에 다시 ‘가옥세를 납입한 자가 5만8000여 명’이라는 당국의 통계치를 적용해, 실제 가옥을 소유하지 못한 가구는 이보다 더 많은 8만5000여 곳이 된다고 계산한다. 앞의 수치는 1가구 2주택 이상 보유자를 감안하지 않은 단순 계산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전체 14만4000가구 중 60%가 집 없는 가구인 셈이 된다. 당시 서울 인구 70만 명의 6할이 ‘차가 계급’, 즉 셋집살이라는 결론이 이렇게 해서 나왔다. 

이보다 6년 전에는 ‘도시 생활과 주택난’이라는 제목의 사설이 나왔다. 

‘서울에 가옥은 7만여 호 있는데 그중 셋집은 2만 호이다.’(동아일보 1932년 7월 14일자)

이에 따른다면 셋집 비율은 30% 미만인데, 이후 6년간 대폭 상승했다는 뜻이다. 그동안 주택이 1만2000여 호, 즉 17%가량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1932년의 사설이 제시하는 문제점과 원인 분석을 풀어 쓰면 다음과 같은 요지가 된다. 

‘파리나 도쿄 같은 도시에 비하면 서울은 오히려 자가(自家) 호수가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주택난에 헤매고 있다. 주택 문제는 세계 공통이지만 조선의 도시는 기형적 주택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옛날 서울의 살림살이를 보면 크건 작건 주택을 갖지 못한 사람은 드물었다. 최저급의 생활을 하는 일부만이 차가 생활을 했다. 조선의 차가 제도가 유독 가혹했던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그러던 것이 도시로의 인구 집중이 가속화됨에 따라 가옥의 매수보다 세를 얻는 수요가 증가하게 되었다. 그런데 집주인들은 종래의 관례를 고치지 않고 여전히 횡포를 부리는 것이다. 집주인은 언제든 세입자를 축출할 수 있고 세입자는 수시로 이사에 분주하다.’

사설은 다음과 같이 개선 대책을 제시한다. 높은 집세를 요구하는 집주인을 제재할 제도적 방책 △집주인이 언제든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는 관행은 ‘차가법’ 제정으로 막을 것 목돈이 없어서 집을 사기 힘든 사람을 위해 ‘주택조합령’을 만들어 수년 내지 10년 안에 꿈을 이루도록 할 것.

다시 6년 후로 돌아와 1938년의 사설을 보면, ‘공영주택’의 도입을 비롯한 당국의 대책이 다각도로 시도되었지만 근본적 개선은 거두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특이한 것은 세입자들이 단체 행동에 나섰다는 점이다. 집세가 폭등하는 대도시마다 ‘차가인 조합’이 1930년을 전후해 활발히 조직되어 과도한 집세 인상 등 집주인의 횡포를 고발하고 당국에 압박을 가했다.

그 역시 궁극적 해답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단순히 법만으로, 경제 논리만으로 풀기 힘든, 한국적 특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서일까.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비롯해 임대주택 보급 등 각종 법적 원칙과 제도적 장치 및 시장원리가 활발히 작동하는 오늘날에도 그 난제는 여전하니 말이다.

4. [중앙일보][이영희의 사소한 취향]중드의 매력에 빠지고야 말았네

요즘 스스로 놀라고 있다.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10회까지 몰아보고도 유 대위님(송중기)의 신묘한 매력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았다는 사실! 그러나 따져 보자면 이 역대급 완벽 남주(남자 주인공)로부터 온전한 정신을 지켜낼 수 있었던 건 때마침 새로운 ‘덕질’의 대상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다름 아닌 벼락처럼 찾아온 중드(중국 드라마) ‘랑야방-권력의 기록’(이하 랑야방·중화TV 사진 참조)이다.

“개작두를 대령하라”가 귓가에 울리는 ‘판관 포청천’ 이후 중드라고는 본 적이 없다. 어느 밤 “요즘 나의 화두는 ‘랑야방’이니 만나기 전 준비토록 하라”는 친구의 문자를 받고 인터넷TV로 1화를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가상국가인 양 나라를 배경으로 황제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암투를 그린 54부작 정치 사극. 장국영과 유덕화를 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외모의 주인공 매장소(호가)가 등장하는데, 그는 원래 역모의 누명을 쓰고 죽은 걸로 알려졌지만 우여곡절 끝에 살아나 얼굴을 감쪽같이 바꾸고 강호를 뒤흔드는 지략가가 돼 나타난다. 가족의 원수를 갚고 옛 친구 정왕(왕개)을 황제 자리에 앉히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는 내용이다.

소재만 보면 한국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합쳐놓은 셈인데 ‘랑야방’은 호방하고도 우아하다. 주인공은 강호의 고수답게 막후에서 고요하게 움직인다. 이야기의 플롯은 단단하고, 무술 장면은 아름다우며 적절한 유머도 있다. 화려한 세트와 의상은 ‘중드’ 하면 떠오르던 ‘왠지 촌스럽네’란 선입견을 날려버린다. 시대물임에도 여성 캐릭터들은 남자 못지않은 기개를 지녔고, 남녀 관계보다 남·남 관계에 집중해 ‘BL(Boys love)물’스러운 분위기를 담은 건 또 얼마나 트렌디한지. 지난해 중국 방영 당시 50개 도시에서 시청률 1위였고 온라인 드라마 사이트에선 30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말 그대로 대륙을 휩쓸었다.

‘랑야방’이 증언하는 중드의 놀라운 약진에 한국 드라마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엔 경찰서에서도, 병원에서도, 재난 현장에서도 사랑을 꽃피우는 놀라운 신공이 있지 않은가. 잘하는 것을 더욱 잘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랑야방’ 54부를 몇 주에 걸쳐 끝낸 지금은 드라마 속 복식을 분석한 블로그를 탐독 중이다.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많은 일이 곧 인공지능(AI)에 맡겨지고 말 터이니, AI가 절대 도전하지 않을 ‘잉여력 발휘’에 힘을 쏟을 때가 아닌가 하며.

5.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지팡이

나이 들어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 지팡이는 무척 미더운 존재입니다. 지팡이를 길동무 삼아 들로 산으로 꽃 구경 단풍 구경도 가고, 말벗을 찾아 길을 나설 수도 있으니, 지팡이 덕분에 정신이 상쾌해진다는 표현도 과장이 아닙니다. 또 지팡이 덕에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할 수 있으니, 몸이 개운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렇게 고마운 지팡이를 보다가 성현의 생각은 혼란한 나라를 지탱해 줄 지팡이로 옮겨 갑니다. 답답한 백성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고 피곤에 지친 몸을 활기차게 하며,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사회를 안정시킬 지팡이가 무엇일까를 고민합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누군가 뛰어난 사람이 나와 무언가 훌륭한 일을 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화분에 물을 주는 것도,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 주는 것도, 우울해하는 친구를 크게 한 번 웃기는 것도, 소신을 지키다 불이익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고 힘을 실어 주는 것도, 관심 있는 시민 단체를 후원하는 것도,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품을 줄 아는 훌륭한 지도자를 뽑는 것도 모두 내가 누군가의 지팡이가 되어 주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자기 자리에서 조금씩 짐을 나누어 지고 누군가의 버팀목이 돼 준다면 ‘큰 바위 얼굴’은 기다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성현(成俔·1439∼1504)

조선 초기의 학자·문신. 자는 경숙(磬叔), 호는 용재(?齋)·부휴자(浮休子)·허백당(虛白堂), 본관은 창녕. 대사헌,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으며, 당시의 음악을 집대성한 ‘악학궤범’을 편찬했다. 청백리에 뽑힐 만큼 소박한 삶을 누렸다. ‘허백당집’, ‘용재총화’, ‘부휴자담론’ 등을 남겼다. 시호는 문재(文載)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2016년 3월 25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매일신문]

1. 김무성의 무공천 결정, 여당 대표직 포기인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4일 대구 동갑과 동을, 달성군 그리고 서울 송파을과 은평을 지역에 대한 무공천을 결정했다. 이유는 “잘못된 공천을 최소한이나마 바로잡아서 국민께 용서를 구하는 것”이라 했다. 이들 지역은 공천관리위원회의 공천안 의결이 최고위원회의에서 보류된 곳이다. 김 대표가 선거관리위원회 후보등록 만료일인 25일까지 최종 의결하지 않으면 무공천은 확정된다. 단수 추천 후보 5명은 출마와 선거를 포기해야 한다. 선거 차질은 어쩔 수 없고 피해는 오롯이 국민과 유권자 몫이다. 

선거를 불과 20일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진데는 무엇보다 그의 책임이 크다. 특히 이 같은 중대사를 다른 최고위원들과의 의견수렴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했다니 납득할 수 없다. 한마디로 감정적이고 신중치 못한 처사일 뿐이다. 그가 내세운 무공천 결정 이유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무원칙과 자의적인 공천 심사 활동으로 여론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는 이한구 위원장을 비롯한 공관위원들의 공천 횡포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또 그는 당으로서도 달리 대처할 물리적인 여유조차 없는 상황에서 결정했다. 과연 당 대표에 걸맞게 떳떳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급박하게 한 것은 말하자면 벼랑 끝 전술이다. 그의 또 다른 속내를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후보 등록이 끝나는 내일까지 최고위를 열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당의 항복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그가 말한 ‘살아 있는 정당, 건강하고 활기찬 정당으로 만드는 길’과는 너무 멀어 보인다. 

아울러 그는 “전국 253개 지역구 중 꼭 경선해야 하는 161곳 가운데 141곳에서만 열려 국민공천제가 100% 관철되지 못했다”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속 보이는 해명이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체면치레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공천 과정의 숱한 문제는 하루 이틀에 그치지 않았지만 그는 오랜 시간 침묵했다. 그의 결정은 몽니처럼 비칠 수밖에 없다. 무공천은 당사자는 물론 후보를 잘 뽑아야 할 국민과 유권자의 투표권 박탈과 다름없는 전횡일 따름이다.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결정인지 되새겨볼 일이다. 

2. 기업 채용장려금, 부작용 막고 효과 높여야

전문 인력 부족으로 애를 먹는 지역 중소기업이 전문`핵심 인력을 신규 채용하면 인건비 일부를 지원하는 채용장려금 제도를 확대하겠다고 대구시가 발표했다. 연구개발과 경영, 제조업`서비스업 분야 핵심 인력을 채용할 경우 1인당 최대 1천500만원까지 장려금을 지역 기업에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시가 확정한 ‘창조전문인력 채용지원’과 ‘중소기업 핵심인력 고용창출 지원’사업은 낮은 임금 등을 이유로 대구를 빠져나가는 우수 인력의 유출을 막고 지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당근책이다. 

대구시는 지난해 이 정책을 처음 도입했다. 6억원의 예산으로 지역 중소기업에 전문 인력 45명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올해는 지원금 규모를 16억원으로 늘려 140명의 인재를 신규 채용할 계획이다. 심각한 청년 실업난과 지역 고용창출 효과만 놓고 따져볼 때 미미한 수준이나 우수 인력이 대구에서 일할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 등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정책 효과나 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최대 2년간 지원하지만 그 이후는 기업의 몫이라는 점에서 걸림돌이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어렵게 모은 우수 인재들이 지역에서 계속 일한다는 보장도 없다. 자칫 혈세만 쏟아붓고 아무런 정책 효과가 나지 않는다면 곤란한 일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책 확대도 중요하나 지역 기업이 제대로 인력을 뽑는지, 계속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지 등을 정확히 심사`평가해야 한다. 노무현정부 때 청년 고용을 유도하기 위해 채용장려금 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당시 일부 기업이 지원금에만 눈독을 들이고 제도를 악용하는 등 제도적 허점도 많았다. 노무현정부 5년간 4조원을 쓰고도 고용률은 추락해 결국 청년 실업 대책은 실패했다. 

대구시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진단과 평가, 감독이 뒤따라야 한다. 또한 우수 인재들이 대구에 자리 잡고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근로 분위기를 만드는 등 사후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수 인력 확보의 핵심은 많은 강소기업과 좋은 일자리다. 채용장려금 정책이 이를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3. 유승민이냐 새누리당이냐, 곤혹스러운 유권자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유승민 문제’는 일단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공은 유권자에게 넘어갔다. 이제 유권자는 새누리당과 유 의원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에 따라 새누리당과 유 의원 중 한쪽은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유 의원의 손을 들어주면 새누리당은 최대 지지 기반에서 민심 이반이란 역풍을 맞는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주면 유 의원은 정치적 미래를 기약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유권자의 선택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회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소중한 권리의 포기이다. 따라서 유권자는 잘잘못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평가해 최선이 아니라면 차악의 선택이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 

유 의원 공천 파동에서 새누리당이 보여준 자세는 매우 비겁했다. 처음부터 공천 배제를 결정해놓고도 발표를 미뤘다. 결국 유 의원은 무소속 출마 시한에 쫓겨 탈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누리당의 목표는 바로 이것이었다. 유 의원 공천 탈락의 후폭풍을 우려한 꼼수였다. 공당이라면 당당하게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새누리당의 ‘무결정’은 누가 봐도 부끄러운 책임 회피다. 

유 의원도 공과를 균형 있게 평가받아야 한다. ‘유승민 파동’을 불러온 데 대해 유 의원 본인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의견도 분명히 있다. 복지정책 방향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과 불화(不和)한 것은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원내대표로 있을 때 청와대의 반대에도 정부의 시행령에 대한 수정권한을 국회 상임위에 부여한 국회법 개정안을 야당과 합의해 통과시킨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원내대표에서 물러날 때에 이어 무소속 출마 선언을 할 때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한 것은 ‘오버’했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나라가 독재국가인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반된 평가는 유권자를 혼란시켜 선택을 매우 어렵게 한다. 과연 유권자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전국의 관심이 여기에 쏠려 있다.

[이데일리]

4. 막오른 4·13 총선, 정책대결은 없는가

드디어 공천 폭풍이 지나가고 어제 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4·13 총선의 막이 올랐다. 후보 등록은 오늘까지다. 후보 등록이 끝나면 본격적인 선거판이 펼쳐진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여야는 곧 선거대책본부를 꾸리고 선거체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새누리당은 야당이 경제개혁법안의 발목을 잡았다며 ‘야당 심판론’으로 지지를 호소할 방침이다. 더민주당은 보수정권의 ‘잃어버린 8년’을 앞세워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심판론으로 맞선다는 전략이다.

유권자들은 혼란스럽다. 여야 모두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막장 공천으로 찍을 후보가, 지지할 정당이 없다고 하소연이다. 새누리나 더민주나 말로는 개혁공천을 내세웠지만 총선 이후 당내 주도권을 잡기 위한 계파 간 진흙탕 싸움으로 공천심사의 원칙과 기준이 오락가락했다. 보복 공천, 돌려막기 공천 등 구태가 횡행했다. 새누리당 친박계의 유승민 의원 찍어내기와 비박계 몰아내기, 더민주당의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싼 친노·비노 간의 다툼이 대표적이다. 국민의당도 후유증이 심하다.

정치권이 막장 공천을 반성하고 그나마 책임있는 정당의 모습을 보이려면 이제라도 정책으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에 드리운 그림자는 짙다. 수출은 14개월째 감소세고 내수는 얼어붙어 있으며 청년실업은 사상 최악이다. 대외 환경도 불안하다. 북한의 핵위협으로 안보부터가 위기다. 어느 당이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 안보를 굳건히 할 믿음직한 세력인지 정책으로 보여주기 바란다. 실체 없는 ‘심판론’이 아니라 생산적인 정책 대안을 내놔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표로 심판해야 한다. 여야의 공천 결과는 나라살림을 떠맡겠다는 공당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인가 할 정도로 한심하다. 그렇다고 방관하면 정치판의 변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정당과 후보자의 공약을 꼼꼼하게 살펴 어느 후보가, 어느 당이 앞으로 4년간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능력과 자격이 있는지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치개혁은 물 건너가고 19대에 이어 또다시 불임국회를 맞게 될지 모른다.

5. 한류의 나아갈 길 보여준 '태양의 후예'

현재 국내에서 방영되고 있는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중국에서도 관심을 집중시키는 등 국내외적으로 맹렬한 인기몰이 중이다. 16부작으로 예정된 이 드라마는 아직 8회밖에 안 나갔는데도 벌써 해외 27개국 수출이 성사됐고 다른 나라들과도 상담이 진행 중이어서 훨씬 더 많이 팔릴 것이라는 게 제작사 측의 전망이다. 정치권의 한심한 공천 싸움에 크게 낙담한 시청자들에게는 모처럼 기분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태후’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가는 수출 계약이 이뤄진 나라의 면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금까지 미국을 포함해 일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의 기획사들이 앞다퉈 판권을 사갔다. 스웨덴과 스페인, 러시아, 홍콩, 대만,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보통 종영이 임박해 계약이 이뤄지던 지금까지의 관행에 비춰보면 ‘태후’에 쏠리는 관심은 매우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아직 한류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함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특히 중국에서의 열기는 상상 이상이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의 해시태그가 52억 회를 기록함으로써 공전의 화제작으로 꼽혔던 ‘별에서 온 그대’(12억 8000만회)의 4배를 이미 넘어섰다. 오죽하면 중국 공안이 ‘송중기(주인공) 상사병 주의보’를 발령했겠는가. 미주의 반응도 뜨겁다. 미국의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비키가 4주일 동안 방영한 ‘태후’는 세계 최신작 50여편 가운데 압도적 1위의 조회를 기록했고, 월간 비키 이용자 4000만명이 자발적으로 올린 자막이 이미 32개 언어에 이른다.

한류는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이 정식 연구 사례로 삼을 만큼 이제 동남아권이나 맴돌던 차원을 벗어나 세계적 문화상품으로 발돋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 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태후’를 직접 언급하며 “좋은 문화 콘텐츠 하나가 경제·문화적 가치를 낳을 뿐만 아니라 관광 활성화에도 기여한다”고 강조한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류는 우리의 미래 먹거리로서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 과감한 투자와 치밀한 기획만 뒷받침된다면 세계에서 얼마든지 통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다. 한류의 나아갈 길을 새롭게 제시한 ‘태후’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서울신문]

6. 사병들에게 뚫리는 방탄복 입게 한'군피아'

국방부가 철갑탄을 막을 수 있는 고성능 방탄복을 개발하고서도 일반 방탄복을 장병들에게 지급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밝혀졌다. 장병들의 목숨과 직결되는 방탄복인 까닭에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국방부와 방위산업체의 검은 뒷거래에서는 가능했다. 적발된 당시 군 장성과 퇴역한 ‘군피아’ 등은 장병들의 생명을 지켜 주는 군장비마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삼았다. 충격적이다. 자기 자식이라면 철갑탄에 숭숭 뚫리는 방탄복을 입혀 경계 근무를 세울 수 있을지 따져 묻고 싶다.

이른바 다목적 방탄복 사업은 부정·부패로 얼룩졌다. 국방과학연구소는 2010년 28억원을 투입해 첨단 나노기술을 이용한 ‘액정 방탄복’을 만들어 성능시험까지 통과했다. 2012년부터 각 군이 쓰도록 결정했다. 액정 방탄복은 북한이 2006년 전차·군함 등을 뚫는 철갑탄을 일선 부대에서 사용한 데 따른 대응이었다. 그러나 액정 방탄복 사업은 2011년 취소되고 2700억원 규모의 다목적 방탄복 사업으로 바뀌었다. 2014~2015년 장병들에게 보급된 3만 5200벌이 철갑탄 방탄복이 아닌 일반 방탄복인 이유다. 독점공급권까지 딴 삼양컴텍은 2011년 이미 불량 방탄복 납품으로 찍혔던 방산업체다. 그런데도 봐줬다. 해야 할 일을 저버리고 해선 안 될 일을 저지른 것이다.

뚫리는 방탄복 비리를 주도한 육군 소장 출신 국방부 1급 간부는 삼양컴텍으로부터 특혜 대가로 4000만원을 받고 아내를 계열사에 위장 취업시킨 뒤 꼬박꼬박 월급을 챙겼다. 육군 영관급 장교는 이 업체에 관련 기밀을 넘겨주고 5100만원을 받은 데다 퇴직한 뒤 이사로 채용됐다. 육군사관학교 교수도 허위 방탄 시험성적서를 발급해 주고 1억 1000만원어치의 주식을 받고 이 업체의 연구소장으로 들어갔다. 현직과 전직, 뒤 봐주기와 금품 제공 및 취업 보장 등 부패 고리의 전형을 여실히 보여 줬다.

북한은 하루가 멀다 하고 무력시위를 벌이며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경계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방산비리는 명백히 반국가 범죄다.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 행위나 다름없어서다. 뚫리는 방탄복은 장병들마저 위험에 노출시켰다. 이제 방산비리가 터질 때마다 발본색원을 내세울 게 아니라 일벌백계 차원에서 엄중하게 죗값을 물어야 한다. 업체 선정의 투명성 확보와 철저한 검증을 위한 실질적인 실천도 필요하다. 군이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이 불안감을 떨치게 하는 게 최선인 까닭이다.

7. 이런 공천으로 20대 국회에 뭘 기대하겠가

여야의 무원칙한 공천이 극심한 후폭풍을 불렀다. 정체성 논란 끝에 새누리당을 떠난 유승민 의원과 주호영·류성걸 등 대구 지역구 의원, 친이계 이재오(서울 은평을) 의원 등이 어제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김무성 대표가 유·이 의원 지역구 등 5개 선거구 무공천을 고집하면서 여권은 종일 벌집 쑤신 분위기였다. ‘막장 공천’이란 면에서 도긴개긴이었던 야권도 어수선하긴 마찬가지다. 원조 친노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에게 “미쳐도 곱게 미쳐라”라는 말을 들으며 친노 운동권을 솎아 내는 시늉을 했던 김종인 대표가 친문 세력의 비례대표 독식을 묵인, 가까스로 봉합된 내홍은 문재인 전 대표가 복귀하면 언제든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이런 공천 여진은 여야가 자초했지만, 20대 국회에서 국정 혼선으로 이어진다면 통탄할 노릇이다.

작금의 공천 여진으로 정당 민주주의가 한계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치열한 토론으로 의견의 간극을 좁히고, 그래도 이견이 남으면 다수결로 결정을 내리고 패자는 이에 승복하는 게 민주주의의 요체다. 탈당 후 무소속 출마자가 줄을 잇는다는 건 여야의 공천 과정에서 이 기본 원리가 작동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특히 여당 지도부가 유승민 의원에 대한 공천 여부를 결정도 않고 탈당을 유도한 것은 무책임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한구 공관위원장은 그가 탈당하자 대구 동을 후보로 이재만 전 구청장을 단수 공천했고 김무성 대표는 이곳을 포함한 5개 선거구 후보에 대한 최고위 추인을 거부했다. 자당 대표에게 “김무성 죽여 버려”라고 막말했던 친박 윤상현 의원은 무소속으로 나오겠단다. 국민의 눈엔 국정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할 여당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그런데도 여당 지도부는 이런 민심을 제대로 못 읽는 것 같다. 김 대표가 뒤늦게 공관위의 5개 선거구 공천에 직인을 찍지 않겠다고 버티며 어제 한때 당내 갈등은 비등점을 향해 치닫지 않았나. 이 공관위원장은 탈당한 유 의원을 향해 “당에 침 뱉으며 자기 정치 위해 떠났다”고 해 분열된 여권이 선거 후 한 배를 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4·13 총선 이후가 사뭇 걱정스럽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안보와 경제 양쪽으로 위기인 상황에서 출범할 20대 국회가 제대로 국정을 ‘선도’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무한 정쟁에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입법 기능이 마비된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으로 평가됐지만, 20대 국회는 한 술 더 뜰지도 모르겠다. 각 당의 공천에 불복한 인사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나올 선거 판도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여야가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친여·친야 무소속 당선자들까지 뒤엉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이합집산과 권력투쟁을 벌이는 시나리오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번 공천은 여야 모두 참담하게 실패했다. 여론조사에 의한 상향식 공천이든, 새 인물 발탁을 위한 전략 공천이든 계파 패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는 점에서다. 여야 양쪽 열성 지지층조차 투표장에 나가고 싶지 않을 정도의 막장극이었다. 이제 고장 난 정당 민주주의, 그리고 총선 이후의 의회 민주주의를 되살리려면 유권자들의 옥석을 가리는 밝은 눈에 마지막 기대를 걸어야 할 듯싶다.

8. 안하무인 재벌 3세 갑질 처벌 못 하나 

그야말로 삼류 코미디에나 나올 일이다.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의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 갑질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는 3세 경영인이다. 국내 굴지의 건설사인 대림그룹 창업주인 고 이재준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이준용 명예회장의 아들이다. 그의 갑질은 재벌을 고발한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인가 싶을 정도다.

이 부회장은 운전기사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지 않게 백미러를 접고 운전하라는 위험천만한 지시도 했다. 10초 안에 휴대전화 문자 답변하기 정도는 횡포 축에도 못 끼었다. 운전 중인 기사의 뒤통수를 때리거나 사이드미러를 접고 달리라고도 주문했다니 어떤 심리 상태였는지 궁금하다. 더 가관인 것은 대림산업은 이런 오너의 상식 밖 갑질을 견디라는 수칙까지 만들어 수행 기사를 뽑았다. ‘실언하실 경우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잘 인내하면 차후 배려해 주신다’는 문구까지 넣었다. 분노조절이 잘 안 되는 오너의 감정받이가 돼 주면 후사하겠다는 뜻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재벌가 사람들의 안하무인 행실은 잊힐 새도 없이 터진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이 경고가 될 법도 하건만 도무지 나아진 게 없다. 금수저 하나 물고 태어난 것 말고는 경쟁력이 없는 재벌 자녀들이 사실상 많다. 부모 잘 만나 그룹 주인 자리에 무임 승차한 오너들의 저급한 처신은 반재벌 정서만 굳힌다. 기업과 사회 발전에 이만저만 해악이 아니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단군 이래 최악이라는 청년 실업에 젊은이들이 절규한다. 반듯한 직장은 고사하고 아르바이트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느라 미래 계획은 꿈도 못 꾸고 자포자기한다.

록펠러 가문의 후손과 월트 디즈니의 손녀가 스스로 세금을 더 내려고 한다는 소식이 그제 외신을 탔다. 참 달라도 어쩌면 이렇게도 다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동냥을 못 줄 거면 쪽박이라도 깨지 말라고 했다. 시대착오적인 재벌 갑질은 가뜩이나 흙수저라서 좌절하는 청춘들을 허탈감으로 무너지게 만든다.

사과 한마디 없이 뭉개는 이 부회장과 대림산업은 여론이 무섭지 않은 모양이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갑질하는 오너의 기업은 사회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 대물림 경영을 계속할 재벌들은 이참에 머리 맞대고 ‘자녀 훈육 십계명’부터 만들라.

[한겨레]

9. 대통령 관심 전시회 반대한 게 경질 사유인가

이달 초 전격 교체된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자신의 경질 배경에 청와대의 압력이 작용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관심을 보인 전시회 개최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보복 경질을 당했다는 것이다. 자질 부족이나 특별한 과오가 아니라 대통령의 심기를 받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기관의 장을 물러나게 했다면 이는 민주주의 국가, 문명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제가 된 전시회는 르네상스시대부터 현대까지 프랑스의 장식명품들을 소개하는 것인데, 카르티에, 루이뷔통, 에르메스 등 명품 업체들이 현재 판매중인 고가의 상품들이 별도로 진열된다고 한다. 김 관장은 이처럼 상업성이 강하기 때문에 국립박물관에서 열기는 부적합하다며 반대한 것이다. 전시회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에서 개최할 만한 품격을 갖췄는지는 전문가인 김 관장이 누구보다 잘 판단할 수 있다. 그렇게 문화예술적인 관점에서 내린 판단은 존중되는 게 정상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가 보고 싶다며 관심을 표명했다는 이유로 청와대가 나서 김 관장의 판단을 찍어누르고 전시회 성사를 압박한 것은 정치 논리로 문화마저 재단하는 권위주의 시대의 전형적 행태다. 그 연장선상에서 김 관장을 교체까지 했다면, 공직자가 대통령의 뜻을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어김없이 쫓겨나는 ‘심기 인사’가 문화계마저 옥죈 셈이다.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문화융성’은 문화·예술인들이 자유를 만끽하는 분위기 속에서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하지만 현 정부는 권력에 대한 충성과 획일적인 코드를 문화계에도 강요하는 퇴행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이 상영된 뒤 영화제를 통제 아래 두려는 부산시의 집요한 움직임이 대표적 사례다. 이로 인해 국제적 망신을 산 것도 모자라 청와대까지 나서서 더 큰 웃음거리를 만들고 있다. 문화가 융성하기는커녕 말라죽는 형국이다.

[매일경제]

10. 中기업 포상관광 유치할 인프라 확충 서둘러라

중국 건강보조식품 유통기업 아오란그룹의 직원 6000명이 포상관광차 오는 27일부터 6박7일 일정으로 인천을 방문한다고 한다. 158편의 항공기를 타고 입국하는 이들을 위해 관광버스 140대, 가이드 280명이 동원되고 26개 호텔 1500개 객실이 예약되는 등 인천은 유커 특수를 맞았다. 28일 월미도 문화의거리에서 열리는 '치맥 파티'에는 무려 1500마리의 치킨이 공수된다고 한다. 이들은 나흘간 인천에 머물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촬영지 등을 둘러볼 예정이라고 하니 '한류'가 유커 유치에 큰 힘을 발휘한 셈이다.

중국 기업들은 조직원들의 성과 보상과 동기 유발을 위해 회사가 비용을 부담하는 인센티브 여행을 확대하는 추세다. 이번 아오란의 포상관광은 2011년 중국 바오젠그룹 소속 임직원 1만명이 크루즈 선박을 이용해 제주도를 방문한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해 5월에는 중국 톈스그룹 직원 6500명이 프랑스 니스를 방문해 파란색 단체복을 입고 해변에 '톈스의 꿈은 훌륭하다'는 문구를 몸으로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이 니스에서 쓰고 간 돈은 2000만유로(약 245억원)가 넘어 유커가 세계 관광 시장의 지형을 바꿀 만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번 아오란그룹의 방한으로 인천시가 얻는 경제효과가 12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중국 기업의 포상관광 유치야말로 내수 부진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대박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프랑스는 유커의 주머니를 열기 위해 백화점 유커 전용 매장 설치, 고속철 운행 연장, 오픈카 퍼레이드 제공 등 민관이 공조해 이들을 모셨다는데 우리도 단체여행객이 불편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인천시는 이들의 단체회의 때 식사 장소가 모자라자 송도컨벤시아 지하 주차장까지 식당으로 꾸미고 호텔도 부족해 시흥, 부천, 수원 등으로 분산했다고 한다. 6000명의 손님을 받아놓고 식사, 잠자리, 버스 이동 등이 매끄럽지 못할 경우 불만이 제기될 것이 틀림없다.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이니만큼 이들이 만족하고 돌아갈 수 있게 서비스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중국인들의 크루즈 여행 수요도 늘고 있으니 각 지자체별로 단체여행객 지속 유치를 위한 관광 인프라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데일리안] 봇물터진 재혼 소재 드라마가 현실을 못담는 이유

근래에 재혼 드라마가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재혼 소재의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재혼에 관한 캐릭터가 드라마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노릇이라는 분석이 많다. 재혼이란 다시 혼인하는 것이니 이혼을 한 사람들이 많아야 가능하다. 결혼한 상태에서 결혼하는 것은 이중 결혼에 해당한다. 재혼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혼을 한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에 재혼이 늘어날 것이다. 물론 재혼한 사람이 늘어난다면 말이다. 이혼 가정이 한국에 많아 지고 있는 것은 많은 통계자료들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이런 통계자료에 따른다면, 재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중요한 문제이지만, 사회적으로 이에 대한 코칭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방송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 있다. 

드라마는 사람들의 관심 사항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드라마에 재혼 소재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해할만하다.

재혼 소재의 드라마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돌싱과 미혼의 커플이 등장하는 경우다. 연인으로 연하남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를 적극 반영하는 추세다. 또한 남녀 둘 다 돌싱인 경우도 있다. 팽팽한 긴장감이 돌 때도 종종 있다. 잠재적인 돌싱과 재혼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남편이 바람 등 불륜을 일으키고 헤어진 뒤 복수하듯이 재혼에 성공하는 모습들 그리는 경우도 있다. 이때 백마탄 왕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가족 구성원 안에서 서로 재혼 때문에 갈등을 하거나 궁금증을 일으키는 애피소드를 만들기도 한다. 

재혼에 대한 소재는 결국 전통적인 가치관안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드라마 '세번 결혼하는 여자'도 있었는데, 스스로 자신과 결혼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유형의 결말은 흔하지 않은 것이었다. 

어쨌든, 재혼 소재 자체보다는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다뤄내고 있는가일 것이다. 일부에서는 현실을 제대로 이뤄내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노릇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이런 재혼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다. 자신들에게 해당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다루는지 별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럴수록 이런 드라마의 흐름은 현실과 멀어지고, 정작 재혼 커플들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이런 지적은 이해를 할 수 있는 점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현실을 제대로 다루는 것은 결국 다큐나 시사프로그램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가 커버할 수 없는 점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드라마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드라마는 문화 컨텐츠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문화 콘텐츠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실의 결핍이나 한계를 넘어 이상적인 무엇인가를 담아내는 것이다. 

작가들은 그렇게 교육 받는다. 현실을 그대로만 보여주면 누가 드라마를 보느냐고 말이다. 현실 플러스, 더해지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재혼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소망이나 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심해지면 환타지가 되거나 몽상이라는 평가를 듣게 된다. 현실적인 소망을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대리적으로 충족 시켜주는 재혼 소재의 드라마이어야 한다. 

다만, 현실적인 소망의 드라마라면 어느 한 쪽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설득력도 떨어지는 법이다. 더구나 본질이 흥미와 재미를 중심에 두고 있다면 더욱 더 그렇다. 누군가의 상처와 고통을 고려한다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혼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엄존하고 있다. 그것이 본질이고 재미와 현실탈출의 바람은 그 이후다. 예컨대, 환타지 드라마 처럼 고색창연한 삶이 갑자기 펼쳐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이겠다. 

무엇보다 현실을 벗어난 소망스런 상황이 천편일률적이어서는 더욱 곤란한 것이다. 사람들의 삶이 다양한데 픽션의 작품들이 획일적이라면 장르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2. [머니투데이]우리 '송중기'가 '뚫리는  방탄복'를 입는다면…

요즘 수요일과 목요일만 되면 대한민국 남성들이 급격히 외로워진다는 밑도 끝도 없는 얘기가 있다.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빠진 여성들이 '본방 사수'를 위해 남편이나 남친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않기 때문이란다. 재방, 삼방까지 시청하고 분석하며 예측까지 하는 열혈 여성 시청자들을 주변에서 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배우 송중기. 극중에서 해외에 파병된 군 장교, 유시진 대위로 등장하는데 그 인기가 총선에 출마하면 압도적으로 당선될 기세에까지 이른다. 중국에서는 송 배우 때문에 중년 부부가 이혼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언론 보도까지 있었으니 가히 뭇 남성들의 부러움을 받고도 남음이다.

특히 감정이입에 각별한 재능이 있는 일부 시청자들은 송 배우가 극중에서 위험한 전투를 치를 때마다 마음을 졸인다고 한다. 행여 다칠까(물론 극중에서다) 노심초사하는 어머니, 혹은 연인의 심정으로.

인생에서 이런 무한 사랑을 받은 적이 있었는지 개인적 경험 여부를 따져보는 건 일단 뒤로 미루자. 그보다도 더 슬프고 화가 나는 소식이 있기 때문이다. 엊그제 나온 감사원의 발표 말이다. 국방부가 28억원을 들여 철갑탄을 막을 수 있는 방탄복 개발에 성공하고도, 총알이 숭숭 뚫리는 일반 방탄복을 만드는 '삼양컴텍'이란 업체에 2700여억원에 이르는 독점사업권을 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세금 28억원을 헛돈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더 많은 세금을 주고 특정 업체의 사업 발전을 도왔다는 얘기다. 이게 다 돈이나 일자리를 대가로 받고 그랬단다. 누가? 우리나라 군인들이. 국방부 1급 공무원은 이런 식으로 업체를 도와주고 부인을 위장 취업시켜 월급 받게 하고, 나중에는 자신도 취업하는 대담함을 보여줬다. 

실제 국방부는 2014년부터 2년간 이 업체로부터 3만5200여벌의 일반 방탄복을 넘겨 받아 국외 파병부대에 지급했다. 감사원은 이 비리에 연루된 전직 장성 3명과 영관급 장교 5명, 공무원 2명과 삼양컴텍 임직원 3명 등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거나 수사 참고자료를 제공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삼양컴텍은 1980년대 최루탄 팔아 떼돈을 번 삼양화학그룹의 계열사다.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때 데모 막기 위해 쓰였던 이 업체의 최루탄은 독하기로는 세계 최고였다. 

삼양화학은 독점공급의 대가로 비자금을 만들어 전두환 전 대통령쪽으로 건네는 등 그동안 '군산복합체(軍産複合體) '를 거론할 때마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던 업체였다. 최루탄에서 방탄복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과정에서 여러 군인들을 알뜰살뜰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감사원은 삼양화학 관련 기업에 2008년 2월부터 2014년 5월까지 몸 담은 퇴역 장성 등 육군 전직 장교들은 모두 29명이라고 밝혔다. 

어떤 여성 시청자는 '태양의 후예'를 가리켜“내 평생 이토록 정의로운 인물들만 등장하는 드라마는 처음”이라며 “송중기는 군인 정신에 투철한 인물로 등장한다”고 말했다. 김은숙 작가가 만들어낸 유 대위는 정의로운 군인의 표상이라는 말이다. '정의로운 군인', 이 얼마나 신선한 단어의 조합이란 말인가. 

그래서인지 군대를 경험하지 못한 주변의 여성 시청자들중 상당수는 우리나라 모든 군인들이 송중기에 준하는 직업 정신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이쯤되면 국방부가 나서서 송중기에게 상이라도 줘야 할 판이었다. 우리 군인들의 위상을 드높였으니 표창 감도 이런 표창 감이 없다. 그런데 뚫리는 방탄복이 등장하면서 이 모든 것이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게 또다시 증명됐다. 

방산비리는 잊을 만하면 나오는 단골메뉴다. 그렇게 많은 장관과 장성들이 온갖 추잡한 비리로 군복을 벗고 옥살이를 했는데도 모자라지 않는가 보다. 지긋지긋하다.

국민 세금을 펑펑 쓰면서, 아군에게 해를 입히는 짓을 하는 건 매국노에 다름 아니다. 이적행위를 하는 군인이라니. 그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애국심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가뜩이나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고, 청와대를 공격하겠다고 하는 판에 군의 기둥이 돼야 할 장성과 장교들이 한 통속이 되어 이런 비리를 저질렀다니 허탈하다. 아들을 군에 보낸 어머니, 애인을 군에 보낸 '곰신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유 대위 같은 우리나라의 수많은 올바른 군인들을 생각하면 더욱 더 안타깝다.

이제 그만해야 한다. 혹시라도 지금도 방산업체와 어울려 청탁, 접대, 뇌물 등을 받거나 받을 예정이라면 이쯤에서 자수하고 광명 찾아야 한다. 그것이 정의로운 군인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극중 송중기가 뚫리는 방탄복을 입고, 전투에 나섰다가 변이라도 당한다면 우리의 열혈 시청자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진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있어서도 아니 되겠지만 뚫리는 방탄복을 입은 우리 군인들이 행여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땐 우리 어머니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 국방부, 우리 군에겐 최고의 악몽이 될 것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3. [머니투데이] [광화문] "tvN이 지상파를 위협한다고?"

CJ E&M의 tvN이 올 10월로 개국 10년을 맞는다. ‘벌써?’ 하다가 ‘드라마는 tvN’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제대로 컸네!’라는 생각에 이른다. “지상파방송보다 tvN이 낫다”는 얘기는 낯설지 않다. 올 1월16일 종영한 ‘응답하라 1988’의 마지막회 평균 시청률은 19.6%(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이하 동일)를 기록, tvN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tvN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우선 콘텐츠를 발굴하고 제작하는 실무자들의 밝은 눈과 노력을 들 수 있다. 최근 마니아층을 만들고 방송을 끝낸 ‘시그널’(평균 시청률 12.5%)은 드라마작가가 지상파에서 거절당한 사연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tvN의 결실 앞에서도 CJ E&M은 웃을 처지가 못 된다. CJ E&M은 2014년 게임사업을 매각한 직후 적자를 냈다. 지난해 비로소 527억원의 흑자(매출 1조3473억원)로 돌아섰다. 잘 나간다고 하는 tvN이 5%대 영업이익을 올리며 효자 노릇을 한 덕이다. 나머지 3개 부문은 여전히 적자다.

냉정하게 CJ E&M은 연간 매출 150억원을 올리면서 1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공연사업’은 안 하는 게 맞다(2014년 기준). 하지만 CJ가 그러면 가뜩이나 어려운 공연예술시장은 더 큰 시련을 맞이할 것이다. “돈 이 되는 사업만 한다”고 비판받을지 모른다.

그래서 콘텐츠사업을 하는 CJ의 자세는 비즈니스 공식으론 설명이 안 되는 그 무엇이 있다. 거기에는 스스로 부여한, 외부에서 요구하는 ‘책임’마저 읽힌다.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M&A(인수합병) 인가 심사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당국이 법에 근거해 합당한 의사결정을 할 것으로 믿지만 ‘유료방송시장의 재편 필요성’이나 ‘문화콘텐츠산업 투자활성화’도 중요하게 검토할 항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tvN의 성공스토리와 CJ E&M의 상황을 살펴보니 이번 M&A가 대한민국 콘텐츠산업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CJ가 오랫동안 공들여 키운 CJ헬로비전을 파는 이유는 콘텐츠와 플랫폼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즉, 방송플랫폼을 포기하는 대신 문화콘텐츠에 ‘올인’한다는 결정이다. CJ 내부에선 “M&A 성사로 확보할 1조원의 자금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1조원은 CJ E&M이 tvN에 10년간 투자한 제작비 규모다.

지상파가 이번 M&A에 반대하는 이유도 콘텐츠산업 측면에서 봐야 한다. 일부 지상파는 반대 근거 중 하나로 “CJ E&M이 지상파를 위협할 수준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야말로 ‘지상파의 사익’을 앞세운 논리다. 20년간 7조5000억원을 투자한 CJ가 콘텐츠산업에 집중하기 위해 사업을 조정하는 데 ‘자신들을 위협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반대하니 말이다.

논리도 궁색하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자료(2014년)를 보면 2005~2014년 온미디어를 포함한 CJ계열PP(방송채널사업자)는 144% 성장했지만 같은 기간 지상파계열 PP의 광고매출은 무려 235% 늘어났다. 이와 별도로 지상파4사는 81% 성장했다. CJ의 성장에 긴장하면서 “지상파의 미래가 안 보인다”고 한탄하지만 숫자는 그들의 주장과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여전히 지상파의 위력이 막강한데 문화콘텐츠에 투자할 의지 대신 남의 성장에 태클을 거는 모양이다.

적자여도 CJ는 영화·음악·공연부문까지 포기하지 않고 제2, 제3의 tvN 사례를 만들고자 한다. 이제 막 꽃을 피운 tvN의 성공사례 앞에서 콘텐츠산업 육성을 향한 CJ의 의지를 꺾을 이유는 없다. 

4. [동아일보][지금 SNS에서는]우유 같은 여자, 치즈 같은 여자

여자를 굳이 우유와 치즈에 비유해야 한다면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아래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댓글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한 의사의 의학 칼럼입니다.

“치즈와 우유의 유통기한의 차이는 어떤 것이 있을까? 치즈는 유통기한이 길다. 솔직히 유통기한이 조금 지나도 그냥 먹는다. 하지만 우유는 어떤가? … 1등급 우유인데 유통기한이 3일 지난 것을 마실 것인가? 3등급 우유지만 유통기한이 3일 남은 것을 마실 것인가?”

계속 읽어 보면 의학 칼럼이라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입니다.

‘정상적인 남자는 결혼에서 아이를 원한다. 남자와 그 부모가 생각하는 (여성의 가임기) 마지노선은 34세다. … 남자 측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개할 수 있는 여자 나이의 상한선은 32세다. … 34세 넘은 미혼 여성이 좋은 남편감을 만날 가능성에 기대를 건다는 것은 조금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남자가 자기 나이를 고려해 만나는 여자의 나이를 연장할 것이라는 것은 매우 큰 착각 중의 하나이다.’

저는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젊은 여자 좋다 하듯, 어쩌면 다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또 어쩌면 머지않아 저는 질풍처럼 지나간 20대를 한탄하며 싱크대 하수구에 버려질 상한 우유 신세가 될지도 모릅니다.

글 제목은 ‘30대 전문직보다 20대 전문대 여자가 먹힌다’입니다. ‘30대 후반의 능력남은 30대 중반 여성을 만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당신은 명심해야 한다’는 의사의 충고입니다. 2014년에 쓰인 글이지만 최근 SNS 유명인이 ‘진정한 개저씨(개와 아저씨의 합성어) 칼럼을 발견했다’며 이 글을 공유하면서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이 의사의 주장에 동의한 남성들은 ‘역시 배우신 분. 용기 있는 의사 선생님의 글에 박수를 쳐라’라며 댓글을 달았습니다. ‘남자는 42세 넘어가도 정자가 만들어집니다. 여잔 42세 넘어가면 폐경기가 와서 난자가 안 만들어져요. 남녀가 똑같다고 주장하는 여자는 자원입대부터 하고 보시죠?’

이윽고 유치찬란한 남녀 댓글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분기탱천한 여성들은 2010년 항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30대 여교사와 15세 남학생의 불륜 기사를 댓글로 달았습니다. 30대 여성도 얼마든지 매력적이라는 점을 증명한다는 겁니다.

남성들은 반격했습니다. ‘여자는 나이 들면 가치가 떨어지는 거야, 상폐녀(상장폐지녀·주식시장에 빗대어 결혼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당한 여자라는 뜻의 신조어)야’라는 글과 함께. 상황이 심각해지자 글을 올린 의사는 “여성의 나이가 장애물이 되는 현실을 알게 됐고 이런 불편한 진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성 혐오적인 내용을 담으려고 쓴 글은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댓글 전쟁이 이성 혐오로 번진 뒤였습니다.

저는 여성의 매력을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재단한 것이 애초 이 칼럼의 문제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령 출산이 가지는 난점과 그 난점의 극복을 의학적 관점에서 조망한 것이 아니라 남자들이 나이 든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마음대로 정의하며 엉뚱한 결론을 내립니다.

설사 서술된 글이 팩트에 매우 가깝다고 한들, 이 글에서 사용된 비유는 비판을 피할 여지가 없습니다. 최근엔 여성 팬층이 두꺼운 인디밴드 가수 윤모 씨가 “음악에서 ‘자궁냄새’가 나면 듣기 싫어진다”고 발언한 사실이 SNS를 통해 밝혀져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윤 씨는 “모성에 대한 공포를 함의한다”는 둥 이해 불가능한 사과문을 올려 조롱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래도 저는 굳이 골라야 한다면 치즈를 고르겠습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사람은 저마다의 특색을 안고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맛을 내는 치즈에 가깝다고 믿습니다. 제가 푸른곰팡이가 서린 블루치즈를 좋아하듯, 상대가 느끼는 매력은 ‘개취(개인의 취향)’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만 덧붙이고자 합니다. “의사 선생님, 1960년대생인 저의 어머니께선 나이 서른일곱에 4.2kg의 건강한 제 막냇동생을 순산하셨습니다. 제 걱정은 제발 참아주세요.”

5. [중앙일보][노트북을 열며] ‘아재 개그’야 고맙다

누군가 내 진심을 알아주면 정말 고맙다. 사소한 일상의 대화에서도 고맙거나 섭섭한 상황은 속출한다. 분위기 좀 띄우려고 꺼낸 농담이 차갑게 내팽개쳐졌을 때의 난감함이란….

그런 상황에서 한동안 썰렁하다는 말이 유행했다. “아 추워”라는 반응이 확산됐고 농담을 한 당사자가 스스로 덜덜 떨면서 화제를 돌리는 임기응변도 탄생했다. 그렇게 재미없는 농담은 ‘썰렁 개그’라는 이름으로 한동안 인기를 모았다. 썰렁 개그는 서로 무안할 정도로 어색한 농담 때문에 망친 분위기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최근엔 썰렁 개그의 자리를 ‘아재 개그’가 대신하고 있다. 아재는 아저씨의 낮춤말. 아저씨가 어떻게든 웃기려고 구사하는 농담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웬만해선 누군가를 웃기기 힘든 센스 없는 아저씨들에게 가슴 아픈 표현인데 이게 반복되면서 하나의 개그 장르가 됐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저씨 입장에서 참 감사한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뒤처지는 유머 코드를 보완해 주니까. 예전에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을 농담이 아재 개그라는 문패를 달고 부활한다. 아재 개그의 예를 들면 대충 이런 식이다. 초등학생들의 난센스 퀴즈와 비슷하다.

문: 딸기가 회사에서 잘리면? 답: 딸기시럽(실업)

문: 전화로 세운 건물은? 답: 콜로세움

문: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는? 답: 태평양

문: 누가 치고 갔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답: 친자확인

헛웃음이 나오는 문답이지만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자녀를 둔 아재들에겐 더 그렇다. 하나라도 외워서 아이들에게 써먹고 싶어진다. 아재 개그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실패해도 오히려 소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굳이 외워서 준비한 문답이 아니어도 허접한 농담에는 “아이, 아재 개그”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부정적인 반응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아재 개그’라는 자녀의 한마디엔 ‘아빠 웃기려고 한 건 알겠어. 그래도 그건 아니지’라는 다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누가 작명을 했는지 아재의 한 사람으로서 고맙다. 가족과의 소통에서 좌절감이 커지는 중년을 위로하는 것 같다. 여간해서는 웃지 않는 사춘기 자녀에게 자신 있게 농담을 건넬 용기를 준다. ‘안 웃기면 어때, 아재 개그인데’라고 버틸 수 있는 안전한 구조 덕분이다.

아재 개그가 왜 유행하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성과주의에 내몰린 이 시대의 중년들이 그만큼 짠했기 때문에 생겨났을 수도 있다. 아재들을 위로하고 싶은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모였을지도 모른다. 늘 부족하다고 지적받는 처량한 아재들을 위해 이 사회가 준비한 집단예능이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고맙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2016년 3월 24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새누리당은 집권당 자격이 있는가

새누리당은 과연 집권당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옳고 그른 가치판단을 내세워 국가와 국민을 이끌어가기에 스스로 떳떳한가. 유승민 의원의 공천 여부에 대한 결론을 유보한 채 마지막까지 질질 끌어온 과정을 지켜보면서 새삼스럽게 떠오른 질문이다. 아무리 눈앞의 이익을 좇아 정치적 도의가 헌 신발짝처럼 내팽개쳐지는 세태라지만 이런 정도일 줄이야 차마 짐작조차 못했다. 정치가 어느 밑바닥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 꼽을 만하다.

유 의원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새누리당 일각에서 그의 정체성에 의문점을 제기하며 ‘미운 오리 새끼’처럼 곁눈질로 쳐다보고 있는데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한다. 사태가 지금처럼 이르기까지 본인의 책임도 없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있는 대로 처리하는 것이 올바른 처사였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공천 대상에서 제외시킨다고 발표하면 그뿐이었다. 다른 지역구에서도 마찬가지로 처리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유독 유 의원에 대해서는 본인이 알아서 떨어져 나가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로 일관했다. 이른바 ‘친박’, ‘비박’과의 갈등 관계에서 여론의 악화를 우려한 꼼수였다. 새누리당은 어제 오후 다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했으나 유 의원의 공천 여부에 대해서는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설사 결론을 내렸다고 해도 이미 집권당으로서의 권위와 신뢰는 땅바닥에 떨어져 버린 마당이다. 

결국은 오늘부터 4·13 총선의 후보 등록이 시작되면서 유 의원이 제풀에 꺾여 스스로 탈당하도록 유도하려는 모양새였다. 공천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어제 자정까지 탈당하지 않는다면 출마 자격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점을 노린 얍삽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당내 투표를 통해 원내대표까지 지낸 인물에 대한 예우로서는 말도 아닌 처사였다. 앞으로 누구라도 집권층에 잘못 보인다면 이런 식으로 당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준 셈이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다. 국회의원 후보를 결정하는 역할과 임무도 그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그러나 이번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정치가 아직도 당파싸움이 횡행하던 왕조시대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된다. 이러고도 한 표를 달라며 유권자들에게 손을 벌리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2. 소주 한 잔에도 운전대 못 잡게 해야

현재 혈중알코올농도 0.05%인 음주운전 단속기준을 0.03%로 강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운전대를 잡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음주운전 사고를 줄이자는 취지다. 경찰청은 내달 중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이런 방안에 대한 찬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한다. 살인행위나 다름없는 음주운전의 폐해를 감안할 때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음주운전은 자신은 물론 피해자와 그 가족까지 돌이킬 수 없는 불행으로 내모는 중대한 범죄다. 일순간의 그릇된 호기가 본인과 이웃을 파탄에 이르게 한다. 음주운전자가 모는 차를 잠재적 살인기계라고 하는 이유다. 사회·경제적 비용도 엄청나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만 해도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인한 손실이 1조원 이상에 이르렀다.

일각에서는 0.03%는 알코올 성분이 함유된 다른 제품을 먹어도 나올 수 있는 수치이므로, 자칫 측정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등의 반론을 내세우기도 한다. 프랑스와 독일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나라가 0.05%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제시된다. 기준을 강화하기보다는 지속적인 단속과 계도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일리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하루에도 100명 이상이 음주운전으로 죽거나 다치는 현실을 생각하면 너무 안이한 접근이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2010~2014년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는 전체 교통사고의 12.3%인 13만 6800여건에 이른다. 사망자 3600여명을 포함해 전체 사상자가 24만 8900여명으로, 하루 평균 136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10.8명)는 OECD 회원국 중 1위다.

음주운전 사고를 막으려면 “한 잔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잘못된 인식부터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 2002년 단속기준을 0.05%에서 0.03%로 강화한 이후 음주운전 사망자가 75% 가량 줄어든 일본의 사례에서 배워야만 한다. 아울러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지난해 음주운전 사망 사고자 10명 중 7명이 형을 살지 않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고 한다.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 음주운전은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동아일보]

3. 시리아 참전한 北, 테러조직에 핵무기 확산 주시해야

북한군 2개 부대가 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미국 등 국제연합군과 맞서 싸우고 있다고 러시아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5년째로 접어든 시리아 내전에 북한이 개입하고 있다는 정황은 드러나 있지만 ‘철마1(Chalma-1)’ ‘철마7(Chalma-7)’이라는 부대 이름이 밝혀지기는 처음이다. 무고한 민간인에게까지 화학무기 등을 퍼부으며 학살과 인권 유린을 서슴지 않는 아사드 정권을 도우려 북한이 파병까지 했다니 충격적이다. 

연일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를 타격하겠다고 위협해온 북한이 시리아에서 실제로 전쟁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을 정부는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시리아 내전에 투입된 탱크도 대부분 북한제로 알려져 있다. 돈줄이 막힌 북한이 시리아 내전에서 무기를 팔고 국가용병을 보내 외화벌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기와 용병의 대가로 시리아에서 북한으로 흘러들어 가는 외화를 차단하지 않으면 북한 핵개발을 막기 위해 발동한 유엔과 한미일 3국의 제재를 약화시킬 우려가 크다. 

북한은 2007년과 2010년에도 핵 원자로와 미사일 기술을 시리아, 이란 등에 수출한 전례가 있다. 미국 딕 체니 전 부통령은 회고록에서 “1차 북핵 실험을 한 2007년엔 북한이 시리아 사막에 건설 중인 원자로를 이스라엘이 공격해 폭격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 핵 일부가 시리아를 무대로 활동하는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의 손에 들어가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가공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내전으로 시리아에서는 25만 명이 죽고 1130만 명이 피란민 생활을 하고 있다. 대통령 아사드는 ‘수도 다마스쿠스만 지키는 대통령’이라는 놀림까지 받는다. 시리아와 북한 모두 ‘썩은 동아줄’과 같은 위태로운 동맹관계를 이어가는 위험한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생화학무기까지 사용해 자국민을 학살한 아사드와 이를 돕는 김정은은 명백한 학살방조범으로 국제형사법정에 세워 단죄해야 한다.

4. ‘도로 운동권黨’의 김종인, 무슨 낯으로 표 달랄 건가

사퇴의 배수진까지 쳤던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어제 기자회견에서 당 잔류를 밝혔다. 그는 “현재와 같은 일부 세력의 정체성 논쟁을 해결하지 않으면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이 요원하다”면서도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의 책임감’ 때문에 대표직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비례대표 2번은 “당을 끌고 가기 위해 필요해서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더민주당은 김 대표를 2번에 배정해 헌정사상 비례5선을 보장한 비례대표 공천안을 확정했다.

김 대표가 말한 ‘정체성’이란 뿌리 깊은 친노 운동권 체질을 의미한다. 그는 “미래의 정권을 지향한다면 기본적으로 국민의 정체성에 당이 접근하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이 당의 방향을 정상화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하도록 결심했다”고 말했으나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니 마치 총선과 대선 패배를 미리 내다보고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일부 세력이 정체성을 고집해 어쩔 수 없었다”는 ‘알리바이용’으로 짐짓 내세운 건 아닌지 의문이다. 

어떤 이유든 김 대표가 중앙위원회의 비례대표 결정을 수용한 것은 백기투항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어제 울산에서 “지도부가 자의적으로 하지 않고 중앙위가 결정한 것은 정당 민주주의 혁신을 보여준 사례”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1월 “친노 패권주의가 당에 얼마만큼 깊이 뿌리박고 있는지를 보겠다. 이것을 수습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으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다”고 했지만 되치기당한 셈이다. 일각에선 ‘친노의 벽은 못 넘고 노욕(老慾)만 채웠다’고 비난한다. “내 말대로 안 하면 떠난다”고 했던 말이 무색하게 맥없이 주저앉았으니 이제 그의 으름장을 겁낼 사람도 당내엔 없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더민주당의 실제 주인은 친노 운동권이고, 문 전 대표는 상왕(上王) 같은 존재임을 국민이 알게 됐다. 김 대표와 문 전 대표는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위한 당의 확장성’에 의기투합했다. 문 전 대표가 총선 이후 대선까지 내다보고 김 대표를 당의 전면에 내세워 자신의 대권 가도를 닦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도로 운동권당’의 얼굴마담이라는 본색이 드러난 마당에 김 대표가 앞으로 어떤 선거 공약을 내놓든 유권자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서울신문]

5. 집권당의 한계 보여준 유승민 탈당

공천이냐, 탈당 후 무소속 출마냐를 놓고 왈가왈부했던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사태가 마무리됐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와 최고위원회의는 어젯밤 늦게까지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로 나뉘어 고성이 오갈 정도로 막판까지 논란을 벌였다. 공천 과정 내내 떠들썩했던 유승민 파문이 총선 후보자 등록일 직전까지 이어진 것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공천관리위원회와 최고위원회의의 합작품 성격이 짙다. 이한구 위원장 등 친박계가 주도하는 공관위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 낙인이 찍힌 유 의원을 내부적으로 공천에서 배제했지만 후폭풍이 무서워 차일피일 시간 끌기에 나섰다. 유 의원에 대한 동정 여론과 수도권 등지의 총선 악영향을 우려해 후보 등록 전날까지 최대한 결정을 미루면서 유 의원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편 셈이다.

그동안 공천 여부를 미뤄 놓고 유 의원에게 거취를 정리하도록 압박한 것은 일종의 고사(枯死) 작전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유 의원에게 무언의 압력을 넣어 자진 탈당하게 하거나 공천을 주더라도 최대한 힘을 빼놓자는 계산법을 쓴 것이다. 집권 여당의 꼼수에 지나지 않은 이런 공천에 국민들의 실망감은 적잖다.

정당의 노선과 정체성도 중요하지만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다양성을 보일 때 더 많은 국민이 지지하고 외연 확장의 가능성도 커지는 법이다. 국회의원 한 사람을 찍어 내기 위해 이렇게 집요하게 ‘작업’을 한 것은 여야를 통틀어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비박계 인사들을 대거 낙천시킨 것은 집권당의 편협성을 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공관위가 마지막까지 유 의원 스스로 탈당하라며 결정을 늦춘 조치는 어떤 이유로든 기회주의적인 데다 떳떳하지 못하다. 국민을 우롱하고 유권자의 수준을 우습게 보는 것과 다름없다. 이 위원장의 말대로 유 의원의 정체성에 문제가 있다면 처음부터 결단을 내리고 공당으로서 책임을 지면 될 일이었다. 어물쩍 책임을 회피해 비난을 모면하려는 처신은 집권당의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오늘부터 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4·13총선의 막이 올랐다. 이제 새누리당은 하루빨리 계파 싸움을 종식하고 공천 과정에서 실망한 민심을 돌려놓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집권당의 위상에 맞도록 제대로 된 공약을 내놓아 국민의 심판을 받는 동시에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적 정당으로서 국민에게 믿음을 주기 바란다.

6. 천인공노할 브뤼셀 폭탄 테러

그제 벨기에 브뤼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폭탄 테러가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의 소행이라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최소한 34명의 시민이 희생된 이번 테러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 집단 학살 행위다. 게다가 출근 시간대에 지하철역에서 선량한 시민들을 노린 ‘소프트 타깃’ 테러라는 점에서 그 악랄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연쇄 폭탄 테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IS는 이날 밤 인터넷을 통해 “우리 형제들이 자살폭탄 벨트와 폭탄을 품고 최대한의 죽음을 가져오려 했다”고 범행을 자인하는 뻔뻔함까지 보였다. 이번 테러는 범행 나흘 전 파리 테러의 주범 살라 압데슬람이 체포된 데 대한 보복 공격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압데슬람이 수사 당국에 협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저지른 테러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BBC 방송에 따르면 얀 얌본 벨기에 내무장관은 “압데슬람 체포 후 실제로 보복 공격 위협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 조직이 멈추면 또 다른 조직이 테러를 실행에 옮기게 된다”며 이 같은 테러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천인공노할 테러리즘에 대해 강력히 대응할 것을 천명했다. EU 28개 회원국 정상들은 그제 공동성명을 통해 “브뤼셀 테러는 개방된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단결해 증오와 극단주의 테러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EU 정상들이 반테러리즘 공동성명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앞으로 테러를 막기 위해선 전 세계가 연대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 것이다.

이런 연대 강화 움직임은 연이은 테러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테러 방지 노력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에선 IS 근거지 일부에 대한 폭격을 감행했을 뿐 강력한 연대에 의한 색출작전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그 결과 지난 13일 터키에서 27명이 차량 테러로 숨지는 등 최근 8개월간 여섯 번의 자살폭탄 테러에 의해 200명 이상이 희생됐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테러 세력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강해질 수밖에 없다. 유엔과 국제사회는 브뤼셀 테러를 계기로 모든 나라가 힘을 모아 테러분자들을 색출해 내기 위한 강력한 방안을 짜내야 할 것이다.

7. 여야 최악 공천 유권자가 제대로 심판해야

4·13 총선의 공천이 마무리됨에 따라 사실상 본격적인 선거 체제에 돌입했다. 온갖 파행 속에서 이뤄진 컷오프와 경선에서 공천을 받은 후보들은 오늘부터 이틀 동안 등록을 마치는 대로 선거판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의 1차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각 당의 공천 과정은 밀실·보복·전략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밖에 없는 데다 당권 장악에만 매몰된 계파 갈등으로 진흙탕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새누리당은 친박·비박으로, 더불어민주당은 친노·비노로 나뉘어 개혁 공천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내팽개친 채 죽기 살기로 패거리 정치에 매달렸다. 최악의 공천이었다. 이 때문에 20대 국회가 가장 형편없는 19대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조차 사치스럽다.

새누리당의 공천 행태는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당인지 의심케 했다. 전략 공천을 막고 상향식 공천을 지키겠다던 김무성 대표의 공언은 헛말로 끝났다. 대신 친박 주도의 공천이 이뤄졌다. 경선 지역은 전체 250개 지역구 가운데 140곳에 그쳤다. 단수·우선 추천 중 50곳 가까이 전략 공천이었다. 현역 의원의 낙천도 43명인 27.2%에 불과했다. 당헌·당규에 상향식 공천을 못박아 놓고도 내리꽂기 공천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비박계 공천 배제는 ‘3·15 비박 학살’이라는 표현을 낳았다. 경선에서는 역풍으로 작용해 진박(진짜 친박)들에게 패배를 안겼다. 밉보인 유승민 의원에 대해서는 전례 없는 고사 작전이 펼쳐졌다. 원칙 자체가 흔들린 탓에 감동은 없었다.

더민주도 김종인 대표를 중심으로 변신을 꾀했지만 후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 친노의 핵심인 이해찬·정청래 의원 등을 쳐내는 것으로 대대적인 물갈이 공천을 시도했다. 그러나 현역 의원의 탈락은 전체의 33.3%인 36명으로 19대 총선 때 더민주의 전신인 통합민주당 현역 교체 비율 34.8%보다 낮다. 더욱이 물갈이 과정에서 이해찬 의원의 컷오프 기준을 “정무적 판단”이라고 애매모호하게 제시해 당의 시스템 공천을 무색하게 했다.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싼 김 대표의 사퇴 파동은 어제 당무 복귀로 일단락됐지만 친노·운동권 출신들의 힘과 함께 속내를 고스란히 노출했다. 합리적인 대안 정당으로의 탈바꿈이 여간 쉽지 않음을 보여 준 것이다. 국민의당도 심한 경선·공천 후유증을 앓고 있다.

공천이나 경선에서 떨어진 후보를 공천하는 ‘돌려 막기 공천’ 역시 정치 불신을 한층 부추겼다. 더민주는 전북 익산에서 경선에 떨어진 한병도 전 의원을 익산을에, 새누리당은 황우여 의원을 자기 텃밭인 인천 연수 대신 인천 서을로 전략 공천했다. 컷오프당했던 더민주 문희상·백군기·윤후덕 의원의 구제 공천도 마찬가지다. 인재 재활용이라는 측면일 수도 있지만 해당 지역의 예비후보나 유권자들에게는 모욕적인 처사다. 게다가 여야 정치권은 실현 가능성을 따지지도 않고 선심성 공약을 쏟아 내고 있다. 엉망으로 공천 결과를 내놓고도 막무가내로 표를 달라는 격이다. 국민들은 정치권이 바꾸지 못한 정치를 바꾸는 심판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19대 최악의 국회를 20대 국회에서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

8. 갈 길이 먼 제1야당의 정체성 개혁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어제 잔류를 선언했다. 이로써 비례대표 문제로 촉발된 ‘김종인 사퇴 파동’은 일단 정리됐다. 그러나 이번 일은 제1 야당에서 진보 패권주의와 낡은 진보를 청산하는 데에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저항이 버티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진보 패권 세력은 그동안 김 대표의 중도·실용 공천 개혁에 반격하지 않았다. 당장 공천과 총선준비가 급했던 것이다. 하지만 공천이 마무리되자 이번에 대거 공세에 나섰다. 문재인 대표 시절 운용됐던 혁신위, 친노 성향의 당내 을지로위원회, 외곽에서 당을 지원하는 원로 원탁회의의 주요 인사들이 김 대표를 정면으로 공격했다. 정봉주 전 의원과 강금실 전 장관 같은 외곽 그룹도 가세했다. 특히 강씨는 김 대표에게 끌려가는 당에 “미치려면 곱게 미치라”는 극단적인 매도를 퍼부었다.

이들이 막판에 공세를 멈춘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그들이 지지하는 시민단체·운동권 출신 수명이 비례대표에 들어가는 실리가 확보됐고, 당장 김종인 대표의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총선 후 새 지도부 선출과 대선후보 경쟁국면이 시작되면 이런 위장된 수습은 깨질 가능성이 높다. 김 대표의 공천 과정에서 이해찬·전병헌·정청래·강기정·신기남·노영민 등 진보 패권주의 핵심 다수가 탈락했다. 하지만 친문재인 세력은 대부분 재진입에 성공했다. 그리고 약 500명의 중앙위원회, 대의원·핵심당원 그룹은 여전히 진보 패권주의의 공고한 울타리 안에 있다. 이들이 총선 후 세를 다시 가동하면 김종인의 개혁은 변방으로 밀려날 공산이 크다.

개혁은 힘든 것이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김 대표도 반격의 빌미를 제공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비례대표 순번은 중앙위에서 정한다는 당헌을 중시했어야 했다. 그가 처음부터 자신의 비례 순번을 비대위에 맡겼더라면 그의 개혁은 더욱 힘을 받았을 것이다.

제1 야당의 노선 개혁이 중요한 것은 낡은 운동권식 투쟁의 폐해가 국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사리(私利)를 버리고 자신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을 직시해야 한다.

9. 법원 개입까지 불러들인 새누리당 무법 공천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을 지역구에서 배제한 새누리당 공천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어제 받아들였다. 집권당의 공천관리위(위원장 이한구)가 주 의원을 탈락시킨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주 의원은 국회 정보위원장이며 대구 수성을에서 내리 3선을 한 새누리당 중진 의원이다. 공천위는 그의 지역구를 한순간에 여성우선추천지역으로 변경해 주 의원을 공천심사 대상에서 제외(컷오프)시켰다. 대신 그곳엔 당내 친박세력이 미는 이인선 전 경북부지사를 공천했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대표 김무성)는 공천위에 주 의원을 구제하라는 취지로 재의(再議)를 요구했으나 이한구 위원장이 공천위원 3분의 2의 재의결을 거쳐 원안대로 관철했다. 법원이 문제 삼은 부분은 공천위원은 총 11명으로 3분의 2 재의결 정족수는 8명인데 실제 원안에 찬성한 사람은 7명뿐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위원장이 의결 정족수가 몇 명인지도 파악하지 않은 채 졸속·날림으로 의사를 결정했다는 게 드러났다.

정당의 공천은 고도의 헌법적 자율성을 누리는 사안으로 그 결정에 대해 사법부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아왔다. 사법부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고 능동적인 결정을 내린 배경엔 새누리당 공천위의 독단적·비민주적 행태가 불러일으킨 국민적 공분이 깔려 있을 것이다. 입법부의 구성원을 선발하는 집권당의 움직임이 얼마나 한심하고 초법적이었길래 법원이 이렇게 제동을 걸겠는가. 현재 남부지원에 들어와 있는 정당공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은 새누리당 8건, 더불어민주당 1건 등 9건이라고 한다. 개별 사안마다 경우가 다르겠지만 이번처럼 ‘가처분 인용’이 속출할 경우 4·13 총선 뒤 선거불복 소송이 이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주호영 의원은 새누리당이 23일 자정까지 그를 재공천하는 결정을 내리지 않음으로써 결국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됐다. 이 문제는 주 의원의 당적과 관계없이 초라해진 한국의 정당 민주주의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차원에서 엄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이한구 위원장은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10. 대한민국 미래 50년 혁신으로 大도약 이루자

'우리의 앞길은 밝다.'

1966년 3월 24일 세상에 나온 매일경제신문의 첫마디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창간호 1면을 채운 건 캄캄한 터널을 빠져나오는 열차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이런 설명이 달려 있었다.

'태곳적부터 어둠처럼 누적되었던 빈곤을 헤치고 이제 우렁찬 고동을 울리며 희망에 부푼 산업열차가 어두운 굴을 빠져나오고 있다.'

그로부터 꼭 반세기가 지났다. 오늘 창간 50돌을 맞은 매일경제는 1만5581번째 신문으로 새 아침을 연다.

매일경제는 이제 21세기 지식혁명을 이끌어가는 최정상급 미디어그룹으로 우뚝 섰다. 매일경제 가족은 새삼 벅찬 감동과 자부심을 느끼며 오늘의 매일경제를 만들어준 독자의 사랑과 성원에 깊이 감사한다.

창간 50돌 매경 최정상 지식미디어로

신문은 역사의 초고다. 매일경제는 지난 반세기 대한민국의 도전과 성취와 위기 극복의 역사를 오롯이 담아냈다. 50년 새 한국의 1인당 소득은 218배로 불어났다. 매일경제 독자는 피와 땀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이들이다. 이들은 환란의 아픔도 겪었다. 남북 분단의 질곡과 민주화의 산고도 견뎌야 했다.

매일경제는 역사의 기록자에 머무르지 않았다. 위기 극복과 선진국 진입을 위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며 역사를 만들어왔다. 25차례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와 16차례 세계지식포럼은 매일경제의 고뇌와 땀의 결정들이다.

매일경제는 1997년 한국 경제위기를 내다보고 창조적 지식강국을 주창했다. 고비마다 새로운 국가 어젠더로 변화를 선도하는 언론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워싱턴에서 테헤란에 이르기까지 세계 주요 도시에서 23차례 열린 매경글로벌포럼은 우리의 지평을 지구촌 전체로 넓혔다. 무재해 운동과 기업 사랑, 기초질서 지키기 캠페인은 선진 사회를 향한 열망을 담았다.

매일경제는 한국 경제와 기업이 주저앉으려 할 때마다 '다시 뛰자'며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일관되게 경제적 자유를 부르짖었다. 창조적 파괴를 가로막는 온갖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늘 앞장섰다.

매일경제는 세계 최고의 지식미디어를 지향한다. 신문, 방송, 인터넷을 아우른 글로벌 디지털 콘텐츠 그룹으로서 창조적 지식사회를 선도하고 자유시장경제 창달의 선봉에 선다는 사명을 늘 잊지 않을 것이다. 독립성과 품격을 갖춘 지식 공동체로서 언론 자유와 독자의 신뢰를 생명으로 여길 것이다.

먼저 혁신해야 사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매일경제는 이제 미래 50년을 본다. 앞으로 국가와 기업의 명운을 바꾸고 개인의 삶을 뒤흔들 변화가 쓰나미처럼 닥쳐올 것이다. 지난 50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충격이 우리의 지식과 제도의 한계를 시험할 것이다.

변화의 큰 흐름은 4차 산업혁명과 새로운 차원의 세계화로 압축할 수 있다. 21세기 산업혁명의 폭발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기술, 기업, 금융, 정치, 도시에 미칠 파괴력도 그만큼 클 것이다. 

수출제조업에 의존하고 노동시장이 경직적인 한국은 인공지능의 진격이 가장 거센 나라가 될 것이다. 인간과 로봇의 경쟁에 따른 실업 사태와 고령화 충격이 겹치면 극단적인 불평등과 복지재정 파탄을 불러올 수 있다. 유전자 편집과 블록체인 기술은 전통 사회와 금융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

지구촌에서는 자본과 인재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구하는 세계화와 저성장 시대 각자도생을 위한 역세계화의 힘이 충돌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화 흐름을 주도해야 한다. 지구촌이 단절과 고립으로 회귀할수록 우리의 경제 영토는 좁아진다. 창조적 개인이나 기업이 국가보다 큰 영향력을 미칠 새로운 차원의 세계화는 우리에게 위협이자 기회다.

매일경제는 한·중·일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이 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원 아시아'를 주창했다. 하지만 아시아는 21세기의 화약고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대륙과 해양세력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가운데 핵 위협을 계속하는 북한을 상대하며 통일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미래 50년은 새로운 비정상과 불확실성의 시대다. 낡은 지도와 나침반은 쓸모가 없다. 국가와 기업, 개인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시대 글로벌 경쟁은 한마디로 누가 먼저 혁신하고 개혁할 수 있느냐를 가리는 혈투다. 나라의 운명은 혁신 역량과 개혁 의지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릴 것이다. 이 냉혹한 전쟁에서 지면 첫 세계화시대의 식민지 국가처럼 한순간에 추락하게 된다.

미래 50년의 변화를 주도하려면 먼저 스스로 변해야 한다. 한국이 새로운 글로벌 경쟁의 승자가 되려면 미래형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미래형 국가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필요로 한다. 매일경제는 그 시대정신의 핵심은 혁신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미래 50년 한국 재창조를 위한 국가 전략으로 '노바투스 코리아(Novatus Korea)'를 제안한다. 

노바투스는 혁신과 변혁을 뜻한다. 지금은 개인과 기업, 도시와 국가가 끊임없는 혁신으로 변화를 만들어가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할 때다. 

변혁 주도할 '노바투스 코리아'로 가자

무엇보다 절실한 건 다음 세 가지 혁신이다.

첫째, 창조적 리더십이다. 개발연대에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통했다. 창조시대에는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면서 온 국민의 무한한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통합과 설득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매일경제는 국가 거버넌스 개혁으로 미래 50년을 내다보는 비전과 실천력을 갖춘 새로운 리더십을 확립할 것을 주문한다.

둘째, 창업국가의 역동성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30년대 한국 경제 잠재성장률이 1%로 34개 회원국 중 꼴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역성장 시대가 올 것이다. 대기업들은 창업세대의 도전정신과 헝그리 투혼을 잃어버렸다. 자본주의 체제의 역동성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의 모험정신에서 나온다. 젊은이들의 창의성을 한껏 북돋울 수 있게 금융과 산업 생태계, 규제 체계의 전면적 혁신을 촉구한다.

셋째, 파괴적 신기술이다. 우리가 빠른 추격자에서 혁신의 선도자로 거듭나려면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을 비롯해 게임의 판을 바꿔놓을 핵심 기술에서 앞서가야 한다. 지금처럼 설거지 연구만 해서는 끝내 선진국을 넘을 수 없다. 공장식 교육제도를 뜯어고쳐 글로벌시대 지적 노마드를 키울 평생학습 체제로 가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우리 앞길은 밝다

매일경제는 오늘 새로운 50년의 항해를 시작한다. 파고는 높다. 하지만 우리는 50년 전 창간사에서 그랬듯이 다시 한 번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인류 진보와 한국의 미래에 대한 합리적 낙관주의를 견지하고자 한다. 어떤 결정론이나 숙명론도 거부하되 근거 없는 낙관론도 경계할 것이다. 모두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와 용기를 갖고 함께 미래를 열어가는 한 앞길은 밝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이 말했듯이 신문은 미래를 덮고 있는 커튼을 걷어내는 지식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매일경제는 세계 최고의 지식미디어로서 대한민국호가 미래의 불확실성을 헤쳐나가는 데 믿음직한 길잡이가 될 것을 엄숙히 다짐한다. 미디어 빅뱅시대 혁신을 주도하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는 데 온 힘을 다할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사랑과 성원을 바란다.

주요 신문칼럼


​1. [뉴시스][리뷰]인간 배트맨·구세주 슈퍼맨,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얼마 전 중국 베이징에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아시아 7개국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때 슈퍼맨을 연기한 헨리 카빌에게 던져진 질문이 있다. ‘과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슈퍼히어로 무비가 봇물터지듯 쏟아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서부극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카빌은 스필버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서부극의 캐릭터가 현실성이 떨어지는 반면 슈퍼히어로는 그 자체로 신화의 주인공이라 슈퍼히어로 무비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화면을 꽉꽉 채운 밀도 높은 영상과 묵직한 액션으로 장대하게 써내려간 현대판 신화다. 영웅의 대서사시는 진지하고 엄숙하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 이 영화는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누가’ 이 둘을 싸우게 만들었는지가 중요해진다. 

최근 몇 년 간 만화를 찢고 나온 슈퍼히어로의 활약은 대단했다. ‘어벤저스’시리즈가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모으면서 미국산 슈퍼히어로는 한결 친숙해졌다. 흥행성적에 힘입어 아이언맨이나 스파이더맨, 헐크가 더 대중적이 됐지만 자고로 슈퍼히어로의 대명사는 슈퍼맨과 배트맨이다. 이들 슈퍼히어로는 출신성분에 따라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파로 나뉜다. 슈퍼맨과 배트맨이 DC코믹스파라면 ‘어벤저스’에 나온 슈퍼히어로들은 마블코믹스 출신이다. 아이언맨과 헐크, 스파이더맨, 엑스맨이 대표적이다. ‘마블스튜디오’는 마블코믹스 히어로를 속속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 명명하며 각각의 히어로가 주인공인 영화와 이들을 한 데 모은 대작을 매년 선보이고 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DC코믹스도 마블코믹스에 이어 ‘DC유니버스’를 시작한다는 신호탄이다. 마블코믹스 무비가 상대적으로 밝고 경쾌한 분위기라면 ‘배트맨 대 슈퍼맨’은 그 반대다. 어둡고 진지하며 사실적이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나 ‘슈퍼맨’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빨간 팬티를 벗기고 새롭게 리부트한 ‘맨 오브 스틸’(2013)을 떠올리면 된다. 메가폰을 잡은 잭 스나이더는 ‘300’(2006)과 ‘왓치맨’(2009) 그리고 ‘맨 오브 스틸’을 연출한 감독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슈퍼맨(헨리 카빌)과 배트맨(벤 애플렉)은 영화 속 허구의 영웅이 아니라 관객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다. 영화의 세트부터 스토리, 액션신까지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두 영웅이 실제로 존재하다면 어떤 모습일지, 그 능력과 행동의 결과로 어떤 복잡한 결과가 야기될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무릇 블록버스터는 팝콘 보며 즐기는 영화라지만 이 영화는 곳곳에 숨겨놓은 상징과 은유로 철학하기를 유도한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강점이자 단점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주요 갈등 중 하나는 슈퍼맨에게 영웅적 행동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묻는 부분이다. 슈퍼맨은 외계인 조드 장군의 지구 침공, 일명 ‘블랙 제로 사건’ 당시 온 힘을 다해 인류를 구했다. 도시 곳곳에 슈퍼맨 석상이 세워지고, 현대판 메시아로 추앙받는다. ‘슈퍼맨교’의 탄생이다. 동시에 슈퍼맨의 절대적 힘을 무서워하고 우려하는 이들이 생겨난다. 

슈퍼맨은 지구인이 키웠지만 원래 크립톤 행성의 외계인이다. 만약 슈퍼맨이 인류의 편에 서지 않으면 인류는 지구의 주인이 아닌 노예가 되는 것이다. 배트맨이 슈퍼맨을 비딱한 시선으로 예의주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슈퍼맨을 둘러싸고 격론이 펼쳐진다. 설상가상 연인이자 기자인 로이스 레인(에이미 애덤스)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한 것과 관련, 비난이 쏟아진다. 급기야 슈퍼맨은 쫄쫄이 복장을 한 채 미국의회에 출두한다.

스나이더 감독은 이 영화를 두고 ‘배트맨의 관점에서 본 슈퍼맨의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 때문일까? 영화는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어린 시절 그 비극적 사고로 문을 연다. 배트맨은 알려진대로 어릴 적 트라우마로 히어로가 된 책임감 과다형 인물이다. 눈앞에서 부모가 노상강도에게 죽는 걸 목도한 그는 자신의 전 재산과 삶을 범죄소탕에 바치고 있다. 그는 이 영화에서 다시 한 번 아픔을 겪는다. 조드 장군과 슈퍼맨의 대결로 회사 건물이 무너져 유사가족인 직원들을 한순간에 잃은 것이다. 

이러한 상처는 ‘다크 나이트’시리즈로 친숙한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 배트맨과 새로운 배트맨의 가장 큰 차이다. 배트맨은 나이도 들어 좀 지쳐있다. 분노에 사로잡혀 판단력이 흐려진 부분도 있다. 애플렉은 베일의 배트맨을 잊게 만들며 자신만의 배트맨을 성공적으로 선보인다. 193㎝의 장신(배트맨 부츠를 신으면 198㎝)인 그는 상대적으로 젊은 슈퍼맨을 위협하는 존재로서 어떤 위엄이 느껴진다. 묵직한 갑옷 타입의 배트맨 슈트는 애플렉의 선 굵은 외모와 잘 어울린다. 

젊고 캐주얼한 이미지의 렉스 루터(제시 아이젠버그)는 신선하다. ‘슈퍼맨’ 시리즈에서 슈퍼맨의 적수인 악당 루터는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도 위험한 적수다. 그는 배트맨과 마찬가지로 억만장자에 고아다. 차이라면 절대 권력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악랄한 말장난과 농담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똑똑한 인간이지만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 요즘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개망나니 재벌3세’가 인기 악역으로 부상했다. 이 영화에서 루터가 바로 그런 존재다.

갈등의 중심축인 세 캐릭터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힘과 정의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린 시절 자신들의 아버지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새삼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슈퍼맨이 얼마나 행복한 히어로인지 알게 된다. 친부모가 아닌 양부모의 손에 길러졌지만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는 정신적으로 가장 건강하다. 사랑하는 엄마와 연인도 곁에 있다. 지켜야할 사람이 있는 슈퍼맨은 셋 중 가장 약한듯 강하다. 반면 학대받고 자란 외로운 루터는 강한듯 약하다. 배트맨 곁을 지키는 유사 아버지 ‘앨프리드’같은 존재도 없다. 

렉터가 만들어낸 괴물과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이 맞붙는 후반부 액션신은 마치 신들의 전쟁을 보는 듯하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 영화가 어느덧 미국의 신화가 되는 순간이다. 특히 슈퍼맨은 부활이 예고된 메시아로 다가온다. 현실에 발붙인 배트맨은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모범적 모델이다. 

오늘날 렉터는 점점 늘고 배트맨은 찾아볼 길 없다. 그 반대가 된다면 살만한 세상이 될 텐데 말이다. 인간의 선을 믿는 배트맨의 독백에 희망을 걸고 싶어진다. 기대를 모은 원더우먼은 맛보기로 등장한다. 그녀의 본격적인 매력은 내년 6월 개봉하는 ‘원더우먼’에서 확인하자. 만화에서는 슈퍼맨과 사귀나 스크린에서는 배트맨과 원더우먼의 로맨스를 기대해본다.

2. [동아일보][@뉴스룸/김유영]‘필기 수재’를 키우는 학교

최근 해외 석학이 강연하는 자리에 갔다. 강연장은 학구열로 넘쳐났다. 참석자들은 필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찰칵 소리를 내며 파워포인트 파일을 찍는 민폐를 불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강연 후. 그렇게 열심히 강의를 듣던 사람들은 “질문이 있느냐”는 사회자의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강연은 서로를 어색하게 쳐다보다 끝났다. 

우리에겐 익숙한 한국적인 풍경일 것이다. 한국에 온 외국인 교수들은 굳이 강의실이 아니어도 얻을 수 있는 지식과 정보를 받아 적기에만 바쁘다면 대체 교육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고 한다. 

기자가 미국에서 대학원 수업을 들었을 때를 떠올려보면 그럴 법도 하다. 수업을 이해하려면 학생들은 최소 30∼40쪽 분량의 교재를 읽어 가야 했다. 교수가 학생을 갑자기 지명해서 질문하는 ‘콜드 콜(cold call)’도 부담이었다. 

교수는 자신을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촉진자)’로 칭했다. 학생들의 생각을 이끌어내 어떤 결론에 이르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 토론 뒤엔 ‘테이크어웨이(take-away)’를 내라는 교수도 있었다. 직역하면 수업 시간에 자신이 얻은 것을 적는 것. 정답은 없었다. 자신이 깨닫고 생각한 걸 내면 그만이었다. 

10년 넘게 정답이 있는 교육을 받았던 기자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고민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보다 이미 누군가가 낸 결론을 외우는 데에 익숙해져 있지 않았던가. 실제로 학부 시절 영문학을 전공한 기자는 중세시대 영시에 고어(古語) 전치사를 끼워 넣는 시험이 고역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전치사, 굳이 외워야 했나 싶다. 정 필요하면 검색하면 되고, 오히려 영시에 나온 삶과 의미를 읽어내는 노력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말한다. 현재 대학교육 모델은 평균 수명이 60세였던 산업 사회 초기에 개발된 것으로, 전공지식을 주입해 산업현장에서 30년 동안 써먹기 위한 대량 교육 시스템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지식과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아서 문제다. 시험 문제용 정답을 찾으려면 인터넷 등 지천에 널려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자신에게 필요한 걸 골라내고 생각하는 힘, 사고를 구조화해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역량을 기르는 교육일 것이다. 

다행히 변화의 조짐은 있다. 학교에서 배우고 집에 가서 숙제하는 기존 교육과 달리 집에서 지식과 정보를 먼저 습득하고 학교에서 실험, 토론, 문제 해결 프로젝트 등을 하는 일명 거꾸로 교육(flip-learning)이다. KAIST 등 일부 대학이 실시하지만 여전히 제한돼 있다. 

고성장 시대에는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성적 받으면 좋은 직장에 갔고 그걸로 좋은 삶이 제법 보장됐다. 지금은 저성장이 고착화됐고 게다가 100세 인생을 논하는 시대다. 좋은 학교 나온들, 좋은 성적 받은들, 좋은 직장에 간들 불안감에 떠는 게 현실이다. 고로, 틀리면 끝장인 시절을 견딘 우리에게 알파고가 던지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매년 수업료를 1000만 원이나 내는 대학에서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만 배우기엔 아깝지 않나요?”

3. [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돌아온 이발소

‘청와대 3인방’ 중 핵심인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이 쓰는 방은 박근혜 대통령의 집무실과 붙어 있다. 과거 남성 대통령들의 이발실로 쓰였던 공간을 개조한 것이다. 남성 대통령들은 바로 옆에 있는 이발실에서 머리를 다듬으며 휴식을 취하곤 했다. 말 그대로 권력과 ‘지근(至近)거리’에 자리한 방이다.

미장원이 아줌마의 사교장이라면 동네 이발소는 남성의 사랑방이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무반주 남성 4중창을 뜻하는 ‘바버숍 콰르텟’은 19세기 말 흑인 이발소에서 탄생했다. 자기 순서를 기다리면서 손님들이 화음에 맞춰 흑인영가 포크송을 부른 것이 그 시발점이다. 1938년 바버숍하모니협회가 결성된 뒤 지금은 매년 아카펠라로 부르는 국제대회가 열릴 만큼 인종과 남녀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음악 장르가 됐다.

남녀 공히 미용실을 드나들면서부터 주변에서 이발소 간판을 찾기 힘들어졌다. 그럴수록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련한 향수도 커지는 법. 인천시가 2013년부터 ‘친근한 우리 동네 이발소 살리기’ 사업을 추진한 결과 이용자가 꾸준히 늘어난다는 소식이다. 참여한 15곳의 인테리어 개선, 기술 교육 등을 지원하면서 젊은 손님들의 발길이 늘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이발소라고 하면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풍경이 떠오르겠으나 요즘은 고급화 추세로 주목받고 있다. 외모 꾸미기에 관심 많은 그루밍(grooming)족을 겨냥해 고급 이발소가 등장한 것이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작년 패션매장과 결합된 세련된 복고풍 이발소를, 현대백화점 판교점도 이발 서비스 공간을 마련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대결한 서울 포시즌스호텔의 경우 최근 위스키를 마시면서 영국식 습식 면도와 이발 서비스를 받는 공간을 열었다. 면도 6만6000원, 면도와 커트를 합치면 13만2000원 등 가격이 만만치 않다. 고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발소는 서구식 ‘바버숍’임을 강조한다. ‘추억의 이발소’가 서서히 되살아나고 고품격 바버숍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걸 보니 ‘남성 화장품 소비 세계 1위 국가’란 사실이 새삼 실감난다.

4. [동아일보]2030 세상]내 아이가 살게 될 세상

연초에 배 속에 새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주변에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는 부부가 워낙 많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큰 기다림 없이 아이가 찾아왔다. 입덧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고생하고 있지만, 하루하루 자라는 태아를 보며 생명의 신비를 느끼고 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아이를 좋아했던 나는 결혼하면 되도록 여러 명의 자녀를 낳겠다고 다짐했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런 자신감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남편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결혼을 앞두고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생각에 깊이 빠지기도 했다. 

아는 것이 병이다. 먼저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친구들을 보니 육아라는 것이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안아 주지 않으면 아예 잠을 안 자는 아기들도 있고, 젖병을 거부한 채 엄마 젖만 찾는 고집쟁이도 있었다. 조금 자라면 언제 어디서 말썽을 부릴지 몰라 늘 긴장 상태로 지내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 때문에 출산 자체를 고민한 것은 아니다. 나와 남편, 넓게는 가족의 헌신으로 어떻게든 이겨내겠다고 다짐할 수 있다. 과거에 내가 인생의 중심이었다면, 당분간은 아이 위주로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내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이다. 세상이 발전하고 좋아졌다고 하지만, 과연 내 아이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답하기가 힘들다. 앞으로 이 나라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냐는 물음에도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겠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하고 싶은 공부를 일찍 찾아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를 했고, 재주를 살려 작지만 좋은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지방 출신이라 서울살이의 고단함을 느끼긴 했지만 좋은 친구들과 어른들을 만나 빠르게 생활의 안정을 찾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나와 같은 ‘운’은 기대하기 어려워진 것 같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10년 전 무렵에도 취업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는 소가 통과할 바늘구멍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은 그 구멍이 더 작아지거나 아예 막혀 버린 것 같다. 어린 친척 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이다.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한 주변인들도 회사 사정이 나빠져 고용에 문제가 생길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는 어떨까. 제 앞가림은 하고 있지만, 금수저 아닌 부모를 만났으니 어릴 때부터 ‘무한 경쟁’으로 던져질 것이다. 직장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는 조건이라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어린이집 입소부터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공부를 잘하거나 특기 적성이 있어도 경제적인 이유로 포기부터 배워야 할 수도 있다. 더 자라 어른이 된 후에는 직업을 얻지 못해 고생할 수도 있고, 사회 격차가 심해져 보이지 않는 장벽 때문에 눈물 흘릴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인 나의 인생도 문제다. 잠시 회사를 쉬면서 새로운 진로를 찾던 중 아이가 생겼다. 임신한 몸으로는 재취업이 쉽지 않은 데다 출산 후 사회로 쉽게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모님은 괜한 걱정은 넣어두라고 하신다. 하지만 부모라면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는 환경과 세상을 꿈꾸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자식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지만, 늘 다짐했던 대로 가정에서는 남의 처지를 헤아릴 줄 아는 사람으로 양육하고 싶다. 더불어 아이에게 “개인의 노력으로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선거에서 나를 위한 공약을 살폈다면, 이제부터는 내 아이를 위한 나라를 만들려고 애쓰는 곳이 어디인지 더 꼼꼼히 신경 쓸 것이다. 혼자 생각하고, 불평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작은 일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 방법이 있다면 실천을 위해 노력하겠다.

5.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마음 읽기

친구와 함께 서울 지하철을 탔다. 신도림역에서 회기역까지 가야 하니 꽤 먼 거리였다. 나는 앉고 친구는 내 앞에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니 옆자리 청년에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 아무리 작게 이야기해도 들릴 수밖에 없으니. 빈자리가 날 때마다 내심 옆자리 청년이 자리를 옮겨주길 바랐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이십 분쯤 흘렀을까. 그 청년 옆에 앉았던 아줌마가 다른 자리로 옮아가면서 청년에게 말했다.

“이리 앉아요. 두 분이 같이 앉아서 가게.” 

그 덕분에 친구는 내 옆에 앉았고 우린 그 아줌마를 향해 감사의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지하철에서 내린 후 우리가 그 청년의 장래를 걱정(?)해 준 것은 물론이다. 웬만하면 친구들끼리 나란히 앉아서 갈 수 있도록 해줄 법하련만 그렇게 눈치 없고 배려에 무딘 청년의 사회생활이 진심으로 걱정스럽기도 했다.

딸이 다니던 회사에서의 이야기다. 소위 일류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이 영 눈치가 없어서 서로 자기 부서로 받지 않으려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런데 딸이 소속된 부서로 발령을 받은 그 신입사원, 어느 날 조금 지각한 대리가 상사의 눈을 피하여 마치 화장실에 다녀오는 양 살며시 들어오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배꼽인사를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대리님, 안녕하세요?”

모두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어 무사히 넘어갈 뻔했는데 그 신입사원의 우렁찬 인사에 사무실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살금살금 들어오던 대리는 민망해 얼굴이 붉어졌지만 전혀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그 신입사원은 배운 대로 인사를 했을 뿐이니 태연했다. 그 이야기에 한바탕 웃고는 그 이후 종종 딸에게 그 눈치 없는 신입사원이 궁금해서 근황을 묻곤 했는데, 몇 년간 이리저리 부서 이동만 하다가 화려한 스펙을 채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결국 퇴사했다고 한다.

눈치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이다. 즉, 남의 마음을 읽는 센스다. 그러나 신세대들은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익힐 기회가 없다. 남과 어울리는 경험이 적으니 눈치라는 걸 알 턱이 없다. 옆을 둘러볼 줄도, 나의 행동이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그저 ‘공부 바보’로만 키워지기 때문이다.

지금쯤은 신입사원 교육을 마치고 현장에 투입되었을 직장 새내기들, 진짜 공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마음을 읽어야 성공한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