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조선일보]
1. 비정규직 95%가 中企인데 "재벌 반성하라"니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이 28일 "우리나라의 가장 큰 기득권은 재벌"이라며 "사회 개혁·대타협을 이루려면 재벌들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틀 전 문재인 대통령과 국정기획위가 비정규직 정책에 문제를 제기한 경총의 반성을 촉구한 데 이어 나온 말이다. 재벌에 문제가 있고 개혁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재벌 개혁을 말하는 것은 번지수가 완전히 틀린 엉뚱한 얘기다.
비정규직 문제는 대기업보다 중소·영세 기업 경영과 직결된 사실상의 중소기업 이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 644만명의 95%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5인 미만 영세 사업체 근로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다. 새 정부가 "반성하라"며 비난하는 경총도 회원사의 90%가 중소기업이다.
반면 300인 이상 대기업의 비정규직 비율은 14% 정도여서 상대적으로 정규직 전환 부담이 덜하고, 재무적 여력도 중소기업보다 크다. 실제로 SK브로드밴드 같은 몇몇 대기업들은 이미 자발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시작했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정규직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든 곳들이 태반이다.
정부가 정규직 전환 드라이브를 걸면 재벌이 아니라 중소기업들의 경영 압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새 정부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비정규직 문제가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표가 많은 중소기업을 비난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나 공감하고 손쉬운 표적인 재벌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를 풀겠다는 태도인가.
대기업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할 때 대기업 비정규직은 62.7, 중소기업 정규직은 52.7,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37.4다. 대기업 비정규직 임금이 중소기업 정규직보다 더 높다. 만약 새 정부가 대기업만 표적 삼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이 목표라면 극소수 대기업 근로자와 절대다수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진다. 새 정부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중소기업 인력난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새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가 재벌이나 보수 정부 때문에 생긴 것인 양 말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제도는 '파견근로자보호법'을 만든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됐고,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보호법'은 취지와 달리 도리어 비정규직을 양산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반성하라고 할 일이 아니다. 새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이 지금 식으로 가면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전체의 95%인 중소기업 비정규직에 초점을 맞추고 먼저 동일 노동, 동일 임금부터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서울신문]
2. 총리 인준 與·野 협치 본보기 보여라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 후보자 이낙연 전 전남지사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이 야 3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대로라면 오늘부터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총리 인준은 불투명하다. 새 정부가 정권인수위원회도 없이 지난 10일 취임 이후 급하게 달려오면서 공약으로 내건 ‘공직 배제 5대 원칙’에 따라 각료 후보자를 세밀하게 검증하지 못한 결과이다. 할 말이 없게 됐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주 금요일 이 총리 후보자,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 3명의 위장전입 논란과 관련해 사과 회견을 했다. 임 실장은 선거 캠페인과 국정 운영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기계적으로 같을 수 없다는 말로 인사 검증의 잘못을 변명했다. 하지만 국민은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다. 야당 때이건 여당 때이건 적어도 인사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한결같이 원칙을 지키는 정부를 보고 싶은 게 국민이다. 따라서 비서실장의 설명이 모자랐다면 대통령이 직접 해명하는 것도 검토해 볼 일이다.
대통령 선거 전 누가 대통령이 됐건, 협치의 정신을 발휘해 위기의 대한민국 상황을 극복해 줄 것을 염원했다. 그런 국민적 요구가 41% 득표율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에게 88%의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총리의 위장전입은 실정법상 분명한 불법이다. 그러나 재산 증식을 위해 부도덕하게 위장전입을 일삼았던 과거 고위공직자 후보의 사례와 동일한 기준에서 이 총리 후보자 등을 비난해야 할 일인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5대 원칙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며, 향후 잡음 없는 공직 인선을 위해서도 구체적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김진표 위원장이 어제 공직자 인선을 둘러싼 소모적 논란을 없애고 인재를 적소에 기용하기 위한 새로운 기준을 여야와 머리를 맞대고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힌 것을 환영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 논란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윤곽도 모르는 새 인선 기준의 소급 적용도 가능하지 않다.
총리 인준이 늦어지거나 무산되면, 내각 구성도 늦어진다. 임시국회는 문재인 정부 초대 내각을 조기에 발족시켜야 할 어느 때보다 무거운 책무를 지고 있다. 당장 다음달로 닥친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비롯해 각종 대외적 과제는 물론이고, 일자리를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개혁 입법, 정부조직개편 등의 현안이 기다리고 있다. 국회와 머리를 맞대고 돌파해 가야 할 조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적 재앙이다.
대선 전 협치를 말하지 않은 후보와 당은 없었다. 조그만 흠결을 꼬투리 잡아 야당이 국정의 발목을 잡는 우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 총리 인준의 비중을 감안한다면 청와대도 비서실장 회견으로 할 것을 다했다고 손 놓아서는 안 된다. 여야가 협치의 본보기를 보여 줄 좋은 기회다.
3. 대기업, 국민이 수긍하는 일자리 대책 고민해야
비정규직 해소를 중심으로 하는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공공부문에서 우선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당연히 공공부문만의 변화로는 깊어질 대로 깊어진 양극화의 모순을 해소할 수 없다. 그럴수록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부터 해결하면서 분위기를 확산시켜 나가겠다는 것이 정부의 뜻이다. 나아가 일자리 정책은 비정규직 해소에 그칠 수도 없고, 그쳐서도 안 될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해소는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재계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마중물이다. 그런데 정부가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 경영자 측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반발부터 하고 나선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김영배 경총 상근부회장은 엊그제 “사회 각계의 정규직 전환 요구로 기업들이 매우 힘든 지경”이라고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을 직접 비판했다.
경총의 반발은 한마디로 소수 재벌의 심기를 읽으며 ‘총대’를 메고 나선 것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장 박수현 대변인으로 하여금 유감의 뜻을 밝히도록 했다. 집무실에 상황판까지 설치하고 일자리 정책을 직접 챙기고 있는 상황에서 경총의 ‘다른 의견’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박 대변인은 “마치 정부가 민간기업에 일방적으로 일자리 정책을 강압하려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데다 사실과도 맞지 않고 정부 정책을 심각하게 오독(誤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은 ‘오독’을 바로잡겠다는 듯 “올해 공무원 1만 2000명을 추가 채용하는 등 공공부문 일자리를 계속 늘려가겠다”면서 “정부가 모범 고용주로서 소득 주도 성장, 좋은 일자리 만들기에 앞장서면서 기업 등 경제계 전반을 향해 메시지를 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우리 국민과 정부는 대기업을 ‘국민 경제를 지탱해 주고, 나아가 미래로 이끌어 주는 동반자’로 여기며 많은 기회를 주었다. 최근만 해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대기업의 투자를 촉진시키는 데 경제 정책의 초점을 맞추었음을 재계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혜택을 받은 대기업은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음에도 막상 그렇게 만들어 준 국민의 여망인 일자리 늘리기는 철저히 외면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기업의 배은망덕한 행태가 없었다면 일자리 절벽이나 비정규직 문제도 지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5년만 피하면 되는 소나기가 아니다. 극소수 재벌만 공감하지 못할 뿐 국민의 뜻이라는 것을 재계는 깨달아야 한다.
4. '구의역 사고 1년' 관련 법안 하나 처리 못했다.
19세 청년 김모군이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안전문을 고치다 참변을 당한 지 어제로 1년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이 위험천만한 일터에서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혼자 작업하다 목숨을 잃은 사건은 충격 자체였다.
1년이 지난 지금 근로현장의 인권과 환경은 얼마나 개선됐는지 돌아보자면 민망해진다. 안전을 최우선하려는 정책과 사회 인식은 여전히 성적이 초라하다. 삼성중공업 조선소의 크레인 사고, 인천공항 감전 사고 등 최근에도 엇비슷한 하청업체 인명 사고들이 줄을 이었다.
위험한 작업은 하청업체에 떠맡기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는 변함없이 진행형이다. 비정규직의 임금 차별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하청업체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근로자의 생명이 저당잡히는 현실은 부당함을 넘어 잔혹한 인권침해다. 지난해 산재 사망 사고가 가장 많았던 5개 기업의 사망자 중 무려 87%가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청년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또한 개선된 것이 없다. 특성화고 출신의 어린 청년들이 관리감독 사각지대에서 속수무책으로 노동을 착취당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고용을 미끼로 한 살인적 업무와 박봉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소식이 잊힐 새도 없이 이어진다.
구의역 참사 이후 서울시는 민간 위탁 분야를 직영체제로 전환했다. 더 물러날 데 없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서야 뒷북 대책으로 스크린도어 수리 직원들의 신분은 보장된 셈이다. 이런 수동적인 자세로는 산업현장의 안전문화와 노동인권 개선은 기대할 수가 없다. 지난해 사고 직후 더불어민주당은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7개 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19대 국회는 단 하나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제2의 구의역 사고 예방에 말뿐인 정치권과 나약한 정부 의지가 변명의 여지없이 확인된다.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도 아쉽다. 서울메트로와 정비용역업체 관계자 9명이 어제서야 불구속 기소로 재판에 넘겨졌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작업이 새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가속이 붙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외형적 성과 못지않게 실질을 챙기는 정책이 함께 보조를 맞춰야 할 것이다.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원청기업이 휘청거릴 정도의 과징금을 물리는 강력한 입법이 추진돼야 한다. 앞뒤 재지 않겠다는 결연한 각오 없이는 외주화에 따른 노동 현장의 생명 안전은 확보될 수 없다.
[중앙일보]
5. 치솟는 집값과 부채… 원인규명부터 잘 해야
새 정부 초반 부동산 시장이 예상 밖으로 움직이고 있다. 강력한 규제로 집값과 전셋값이 움츠러들 것이라는 전망이 무색하다. 시장정보업체들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 당선 뒤 서울 아파트 값 상승률은 이전의 두세 배로 높아졌다. 서울 강남권의 일부 재건축 단지는 일주일 새 5000만원씩 올랐다고 한다. 전문가 분석도 엇갈린다.
오랜 금융완화정책으로 만들어진 거품의 끝물이라거나 내년 시행될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한 마지막 ‘수건 돌리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히 6개월 동안의 탄핵 불확실성이 사라진 탓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보인다. 실수요자 비중이 큰 서울 비강남권 단지들의 집값도 함께 꿈틀거리고 있는 반면 지방 부동산은 몇 년째 바닥을 기고 있다.
부동산 시장과 밀접한 가계부채 추이도 그렇다. 3월 말 현재 1360조원을 기록해 올 들어 석 달 새 17조원 넘게 늘었다. 은행 대출보다 저축은행·보험사 등 제2금융권 대출이 폭증했다. 비싼 이자를 감수하더라도 돈을 빌리겠다는 수요가 늘었다는 얘기인데 해석이 엇갈린다. 경기 호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수요 증가라는 주장과 규제 강화 전 마지막 투기 수요가 몰렸다는 상반된 주장이 맞선다.
이런 가운데 금융연구원이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강화를 검토하자”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주택시장에 거품이 있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만큼 충분히 고려해볼 대책이다. 하지만 먼저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동산 시장은 크고 복잡하다. 경기와 주택 수급 상황, 과거 정책의 영향과 같은 객관적 지표는 물론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신뢰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들과 시장의 관계를 면밀하게 파악해 막힌 곳을 정확히 겨냥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과잉반응과 후유증을 최소화하면서 “집 걱정 없게 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을 현실화할 수 있다.
[이데일리]
6. '미세먼지 경유차' 퇴출시켜야 한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미세먼지 저감조치 차원에서 4대문 안부터 노후화된 경유차량 운행을 단계적으로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미세먼지를 심각한 재난으로 보고 그에 준하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게 박 시장이 그제 광화문광장 시민 토론회에서 밝힌 내용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공영차량 운행을 중단하고 차량 2부제를 실시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응급대책으로 노후 화력발전소 일시 가동중단을 지시한 데 이어 서울시도 ‘미세먼지와의 전쟁’에 돌입한 모습이다. 이날 시민 3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광화문 대토론회 주제가 ‘미세먼지’로 정해졌다는 자체에서도 그런 의향이 드러난다. 미세먼지가 ‘침묵의 암살자’로 불린다는 점에서 오히려 뒤늦은 조치다. 갈수록 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유해성도 심해지는 추세다.
그러나 논의는 풍성하지만 실행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게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미세먼지 주범으로 눈총 받는 경유차가 하나의 사례다. 서울시는 이번만이 아니라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노후 경유차의 서울 도심 진입을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 대통령도 2030년까지 개인용 경유차 퇴출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실제적인 대책 마련이 어렵다는 게 문제다.
경유차를 액화석유가스(LPG) 자동차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경유차 운행을 제한함으로써 미세먼지 생성물질인 질소산화물 배출을 줄일 수 있겠지만 LPG차 운행을 확대한다면 온실가스 배출이 그만큼 늘어나기 마련이다. 경유가 현재 국내 정유사들에 의해 생산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 소비되는 LPG의 70%는 해외에서 수입되고 있어 경제성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더 큰 문제는 경유차량을 국내 도로에서 완전 퇴출시키는 과정에서의 상황이다. 자동차 업계는 물론 정유업계에 엄청난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다. 정부가 미세먼지 피해를 줄이기 위해 경유차 퇴출 의향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관련업계에 분명한 구조조정 신호를 보내야만 한다. 운전자에 대해서도 더 이상 경유차를 구매하지 않도록 금지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그럴 의지도 없이 대책만 열거한다면 공연히 사회적 혼란만 일으킬 뿐이다.
7. '알파고 쇼크' 1년, 우리는 무얼 했나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세계 바둑챔피언 중국 커제와의 3번기에서 완승했다. 지난해 3월 이세돌과의 대국 때보다 한층 진화한 모습을 보여줬다. 알파고가 처음 단계에서 기보를 익히며 실력을 키웠다면 지금은 스스로 바둑을 두며 최적의 수를 찾는 수준에 올랐다는 평가다. 인간의 경험이나 지식이 아니라도 혼자서 새로운 실력을 쌓아가는 경지에 다다랐다는 얘기다. 그러고는 돌연 은퇴를 선언한 상태다.
바둑계를 제패한 알파고의 은퇴는 예견된 수순이다. 신약·자연과학 등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구글 딥마인드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커제와의 대국 후 “범용 AI가 의학·공학 등 이공계 연구자들에게 최적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파고를 AI의 산업화, 이른바 4차 산업혁명 구현의 첨병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알파고 쇼크’ 이후 우리 정부도 AI 산업화 관련 대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4차 산업혁명 대응 수준은 초라하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기업 10곳 중 7곳이 별다른 준비를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준비를 하고 있는 경우라 해도 대응 수준은 글로벌 기업이 10점이라면 7.1점에 그쳤다. 정부는 6.3점으로 더욱 심각한 수준을 드러냈다.
이처럼 대응이 미흡한 이유로는 ‘과도한 규제’와 ‘인프라 부족’이 첫손에 꼽힌다. AI는 알고리즘 개발과 함께 기술 활용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정부의 규제완화가 뒤따라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민간기업의 기술개발은 물론 정부의 규제혁파 의지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최근 민관 협업으로 2030년까지 AI 산업화를 위한 3단계 로드맵을 마련한 일본의 조치가 눈길을 끄는 이유다.
앞으로는 4차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라 국가의 미래 경쟁력이 좌우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하고 인공지능과 로봇, 자율주행차 등 혁신 기술을 키우겠다며 의지를 다지고 있다. “규제가 신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최소 규제와 자율 규제의 원칙을 지키겠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말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한겨레]
8. '고용 없는 성장'과 대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경제가 성장을 해도 고용은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사정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의 심각성이 크다. 특히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면서도 인력을 줄이고 있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는 이제 담을 쌓기로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가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상장사협의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사 750곳의 직원 수가 125만9661명으로 2015년에 비해 2717명 감소했다. 지난해 신규 상장한 기업들을 제외하면, 기존 상장사들은 1만3304명 줄었다. 반면 지난해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은 68조4천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직원을 줄인 상장사 가운데는 조선업 불황으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현대중공업(4332명)과 삼성중공업(2077명) 같은 곳들도 있다. 하지만 막대한 이익을 내고도 인력 축소에 나선 곳들이 다수다.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29조24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2013년에 이어 역대 2번째다. 그런데도 직원을 3698명 줄였다.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삼성은 그룹 전체로도 가장 많은 1만2790명을 줄였다.
올해도 이런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16일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12월 결산법인 536곳(금융업 등 70개사 제외)의 올해 1분기 실적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지난해 1분기보다 각각 25%와 36% 증가했다. 이 추세라면 올해 연간 순이익이 100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지난달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신규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23%가 지난해보다 채용을 줄이거나 아예 한명도 뽑지 않겠다고 밝혔다.
고용과 직결된 시설 투자는 해외에서 하고 국내에선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 구조조정을 하는 대기업들이 많다. 당장 이윤은 증대하겠지만 단견이 아닐 수 없다. 국내 고용이 줄면 가계 소득 감소와 소비 축소로 이어져 가뜩이나 취약한 내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 경제 전체가 망가지는 것이다. 이 악순환에서 기업만 예외일 수 없다.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대기업들의 책임 있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매일신문]
9. '눈먼 쌈짓돈' 특수활동비, 예산은 깎고 투명성은 높여야
한 해에 9천억원 가까운 혈세가 ‘특수활동비’라는 명목 아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집행되고 있다. 특수활동비는 공직자들과 정치인들이 특권을 누리는 수단으로 변질된 지 오래이고 부적절한 사용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수활동비란 국가기관의 정보 수집이나 수사 또는 이에 준하는 활동에 쓰이는 돈을 말한다. 기획재정부의 세부 지침으로는 중앙 관서의 장이 특수활동비의 부적절한 집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있으나 마나 한 규정이다. 실제로 특수활동비는 사용처 보고 의무도 없고 영수증을 첨부하지 않아도 돼 ‘눈먼 돈’이 됐다. 이런 특수활동비가 지난해만 8천870억원이고, 지난 10년간 정부 각급 기관이 사용한 특수활동비 총액도 8조5천억원에 달한다.
검증 절차가 없으면 반드시 썩게 돼 있다. 우리나라 전체 특수활동비 가운데 절반(지난해 4천700억원)을 사용하는 국정원의 경우 민간인 불법 사찰 혹은 국내 정치 개입에 쓰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왔다. 연간 86억원의 특수활동비를 쓰는 국회도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 특수활동비를 생활비로 부인에게 준 사실이 밝혀지는 등 곱잖은 시선을 받고 있다.
청와대의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해 직무가 정지된 70일 동안 특수활동비 35억원을 쓴 사실이 드러났다. 대통령 직무 정지 기간 동안 하루 5천만원씩의 돈이 영수증도 없이 지출된 셈인데 누가 사용했는지를 놓고 진실 공방마저 벌어지고 있어 진상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세금 집행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공정성과 투명성이다. 특수활동비라고 해서 보안과 대외 비밀 유지 등을 핑계로 쌈짓돈인 양 써서는 안 된다. 안보상 공개가 곤란한 항목이라면 대외 비공개를 전제로 국회가 특수활동비 사용 내역을 검증하게끔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42% 감축하겠다고 하니 지금이 특수활동비 대수술의 호기이다. 국회도 내년도 예산 심사 때 각 기관의 특수활동비를 대폭 삭감하고 사용 시 영수증 등 증빙 자료 첨부를 의무화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세계일보]
10. '돈봉투 만찬' 검찰, 시늉 낼 거면 접는 게 낫다
‘돈봉투 만찬’ 사건을 감찰하는 법무부·대검찰청 합동감찰반이 사건 현장인 서울 서초동 식당을 조사하면서 그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감찰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감찰반은 “식당 주인이 ‘최근 기자들이 취재를 많이 와서 장사도 안 되는데 밥이나 먹고 가라’고 해서 점심식사를 한 것”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식당 관계자에게 당시 상황을 꼼꼼하게 확인했고 당일 결제전표 등을 확보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감찰반은 현장조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밥 한 끼 먹은 게 무슨 잘못이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감찰공무를 수행하면서 다른 곳도 아닌 사건 현장에서 식당 주인이 밥 먹고 가란다고 밥을 먹은 것은 법무·검찰 당국이 어떤 자세로 감찰에 임하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백번 양보해 해명이 모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일이 없도록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 끈을 고쳐 쓰지 말아야 하는 감찰반으로서의 직분을 지키지 않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돈봉투 만찬은 국정농단 검찰 특별수사본부 본부장인 서울중앙지검장과 특수본 검사 등 7명과 조사 대상이었던 법무부 검찰국장을 비롯한 검찰국 간부 3명이 격려금 명목의 돈봉투를 서로 주고받은 저녁 술자리를 말한다. 이 사건이 불거지면서 검찰은 쑥대밭이 되다시피 했다.
관례라는 법무부·검찰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모임과 돈봉투의 성격을 놓고 논란이 확대되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고,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특별감찰을 지시했다. 이 여파로 법무부 장관 권한대행과 대검 차장이 사의를 밝혔고 서울지검장과 검찰국장은 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됐다.
대통령이 감찰을 지시한 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감찰이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자 보안 유지 등을 이유로 감찰 상황을 공개하지 않던 감찰반은 어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검찰국장 등 만찬 참석자 10명과 참고인 등 20여명의 대면조사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감찰을 하기로 했을 때 “제대로 된 감찰이 되겠느냐”는 의문이 쏟아지면서 특검이나 특임검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았다. 새 정부 들어 검찰은 유례없는 대대적인 수술대 위에 올라 있다. 이번 감찰이 시늉이나 내며 제식구 감싸기에 그친다면 검찰에 가차 없는 메스가 가해질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조수미 자랑스러운 국가대표 프리마돈나
음악계에선 요즘 2018 평창올림픽이 화제다.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성공을 기원하는 특별 공연 ‘야외 오페라’ 때문이다. 이 또한 여러 사연(?)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최종 발표된 것이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를 조선시대로 배경을 바꾼 ‘동백꽃 아가씨’란다. 여러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왜 이런 기획을 했을지 궁금하다.
기획 의도도 정확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맥락의 오페라를 굳이 전 세계가 보는 축제의 장에서 하는 게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한국이 배출한 음악가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갈라 콘서트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려만 봐도 얼마나 자랑스러운 한국의 예술가들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일 터.
세계무대에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음악가들을 헤아려보는 일은 언제라도 즐거운 일이다. 1세대인 한동일부터 시작해 정경화, 정명화, 정명훈, 백건우, 조수미, 홍혜경, 신영옥, 장영주, 장한나, 연광철, 사무엘 윤 등. 최근엔 김선욱, 조성진도 있다. 그야말로 세계가 부러워할 클래식 강국의 모습이다. 그중에서 소프라노 조수미(Sumi Jo, 1962년~)는 세계는 물론 한국인에게도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존재다.
그런 조수미가 어느덧 국제무대 데뷔 30주년이 됐다. 정확히는 지난해인 2016년인데, 올해까지 이를 기념하기 위한 무대가 전국 주요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부산일보와 (재)영화의전당이 공동 주최하는 ‘조수미 콘서트-봄의 열정’이 5월 27일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린다.
선화예술중과 선화예술고를 거쳐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이탈리아로 가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수학한 그는 1985년 나폴리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1986년 트리에스테의 베르디 극장에서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데뷔한 지 벌써 30여년이 흘렀다.
그는 1988년 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에서 오스카 역으로 플라시도 도밍고 등과 함께 녹음에 참여해 세계적인 명성을 쌓을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 오디션에서 거장 카라얀은 ‘신이 내려준 목소리’라며 극찬했다. 주빈 메타 또한 ‘100년에 한두 사람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의 주인공’이라고 평가했고 조수미는 이후 세계 오페라계의 주역으로 활약해왔다. 1993년 게오르그 솔티와 녹음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그림자 없는 여인’은 그래미상 클래식 오페라 부문 최고 음반에 선정됐다.
국제무대를 누비는 프리마돈나인 그가 한국 가곡의 재정비에 나선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업적 중 하나다. 그는 채동선, 정지용의 가곡 ‘고향’의 본모습을 찾아놨고, 예술 가곡으로서는 다소 미비했던 반주 부분에 대해서도 여러 시도를 하며 한국 가곡 발전에 앞장서왔다.
이제는 원숙기에 접어든 조수미. 그가 여전히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는 건 대단히 기분 좋은 일이다. 오래도록 건강하고 아름답게 우리 곁에서 노래 부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의 멋진 음악가가 평창올림픽을 빛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고.
2. [매경이코노미][신동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 달갈에 다시를 넣어 부친 '다시마끼' 카스텔라처럼 말캉한 일본식 계란말이
냉장고 속 재료 중에 하나만 골라 몇 날 며칠을 먹어야 한다면? 필자는 서슴없이 달걀을 꺼낼 것이다. 학창 시절 달걀이 완전식품이라고 배우기 훨씬 이전, 아주 어렸을 적부터 달걀 하나만 있으면 오케이였다.
야들야들한 달걀찜이나 노른자 탱글탱글한 달걀 프라이. 어머니표 달걀 요리는 어린 필자의 입맛을 사로잡았을 뿐 아니라 쑥쑥 성장하는 데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달걀은 언제나 옳다! 이런 아들에게 어머니는 학창 시절 도시락 반찬으로 늘 달걀말이를 싸주셨다. 바쁘신 날엔 달걀말이 대신 달걀 프라이를 밥 위에 척 올려주셨는데, 정말 열 반찬이 부럽지 않았다.
달걀만큼 완벽한 식품도 드물다. 약간의 탄수화물과 채소나 과일을 더하면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별문제가 없을 정도다. 비록 콜레스테롤의 주범처럼 저평가되고 있지만, 보통 사람에게 달걀은 여전히 최고의 식품이다. 필자는 술 먹은 다음 날에는 무조건 달걀 프라이로 해장하는 습관이 있다. 부스스 일어나 몽롱한 상태에서 팬을 올리고 기름을 둘러 달걀을 깨뜨려 넣는다. 노른자가 반숙이 될 정도로 익혀 호로록 들이마시면 신기하게 눈이 또렷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달걀 노른자에 숙취에 좋은 성분이 들어 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달걀은 혼자서도 완벽하지만, 별것 없는 재료도 달걀을 만나면 영양과 맛을 갖춘 훌륭한 음식으로 변신한다. 예를 들면 냉장고 속 자투리 야채에 밥을 넣고 달달 볶다가 달걀 하나 깨뜨려 고루 섞어주면 영양 만점 달걀 볶음밥이 된다. 프렌치토스트는 어떤가. 딱딱한 식빵 한 조각에 달걀 옷을 입혀 부쳐주기만 하면 우아한 토스트가 된다.
세계인이 즐기는 달걀 요리는 무궁무진하지만 일식 요리사인 필자가 가장 즐겨 먹는 달걀 요리를 꼽으라면 달걀에 맛있는 다시(멸치, 다시마, 조개 등을 우려내 맛을 낸 국물)를 섞어 돌돌 말아 부친 다시마끼다. 다시마끼를 먹을 때면 어렸을 적 어머니표 달걀말이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달달하고 깊이 있는 일본 음식의 맛을 흠뻑 느낄 수 있다.
다시마끼는 대개 스시집이나 일본 요리집 아니면 이자카야에서 흔히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식당에서는 보기 어렵다. 생각보다 만들기 어려운 메뉴기 때문이다. 사각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걀을 여러 번 반복해서 모양 나게 말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다시가 들어가기에 일반 달걀말이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달걀 물이 너무 부드러워 중간에 모양이 잘 흐트러진다. 그런데 막상 다시가 들어간 다시마끼를 먹어보면 카스텔라처럼 부드럽고 말캉한 식감의 매력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필자가 처음으로 다시마끼를 배운 곳은 한국에 있는 일식당이었다. 20대 나이에 처음으로 들어간 일식당은 손님이 많아 굉장히 분주하고 정신이 없는 곳이었다. 당시 주방에서 막내였던 필자는 다시마끼를 말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다행인 것은 다시마끼를 좀 망치더라도 이해를 해주셨다는 사실. 망가지면 식당 직원들 밥으로 먹으면 되니 마음껏 만들어보라며 격려해줬다. 그래서 하루에 4~5개 정도는 필자가 직접 만들었다.
처음에는 왜 이리 어려운지 짜증이 나서 포기할까도 싶었지만 오기가 생겨 더욱 열심히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1~2달 지나면서 실력은 눈에 띄게 성장했다. 선배 요리사들이 잘한다고 칭찬해줬는데, 그 힘에 더욱 공들여 만들었다. 이렇게 열심히 했던 경험은 일본 유학 시절 요리학교에서 빛을 발했다. 요리학교 수업 시간에 다시마끼를 만드는 수업이 있었는데 다른 학생에게는 어려운 요리였지만 필자는 너무 쉽고 빠르게 만들어보였다. 꾸준한 연습으로 다시마끼에 관한 한 일류 조리사 부럽지 않게 된 것이다.
그 덕에 다른 일본 식당에서 일할 때 아이디어를 내어 새로운 다시마끼 메뉴를 개발해 판매한 적도 있다. 여러 가지를 만들어봤는데, 그중에 낫토와 모차렐라치즈를 넣은 다시마끼가 생각보다 인기가 좋았다. 지금은 필자의 매장인 멘야미코 청담역점에서도 다시마끼를 단품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모두 그때의 아이디어가 바탕이 됐다. 독자분들도 처음엔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자꾸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먼저 달걀 12개를 준비해 잘 풀어둔다. 달걀에 들어갈 가츠오다시를 만들어 준비하고 정종은 알코올을 날려 준비한다. 설탕과 소금, 간장을 밸런스 맞춰 모든 재료를 달걀과 함께 혼합한다. 그리고 채에 내려서 기본 준비를 끝낸다. 준비된 사각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한 판 가득 계란을 부어서 익힌다. 이때 주의할 점은 약불로 부쳐야 한다는 것.
달걀이 살짝 덜 익었을 때 말아줘야 촉촉한 다시마끼를 먹을 수 있다. 일정량을 반복해 부어가며 말아주는데 보통 달걀 개수만큼 나눠 달걀 물을 부어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만약 달걀 6개를 사용한다면 6차례에 나눠 부어주는 식이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아주면 어느새 통통! 시간을 들여 겹겹이 말아준 다시마끼는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끝내준다.
보통은 젓가락으로 하지만 가정에서는 뒤집개를 사용해서 천천히 말면 쉽다. 하지만 역시 몇 번은 해봐야 나만의 다시마끼가 완성된다. 이렇게 완성된 다시마끼를 바로 먹으면 더 맛있지만 식혀서 냉장고에 보관하다 먹을 만큼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따뜻하게 먹어도 그 맛은 유지된다.
달걀에 있던 다시가 감돌기 때문에 전자레인지에 데워도 촉촉한 맛의 다시마끼를 먹을 수 있다. 전자레인지에 데울 때는 너무 세게 가열하면 다시가 다 빠져나오기에 미지근할 정도로만 가열해야 맛있다. 보통 달걀 12개가 들어간 다시마끼인 경우 약 1분 30초 정도 데우면 적당하다.
다시마끼를 큼지막하게 잘라 한입 그득 사르르 녹는 맛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다시마끼를 큐브 모양으로 잘라 하나씩 쏙쏙 집어먹게 해주면 좋다. 여기에 무즙과 유자 폰즈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매일 먹는 한국식 달걀 요리도 좋지만 특별한 날 가족들을 위해서 나만의 다시마끼를 만들어보자. 식사로도 좋고, 애주가의 술안주로도 훌륭하다. 한 가지 팁을 주자면 다시 대신 우유와 생크림을 넣고, 설탕량을 좀 늘려서 다시마끼 형태로 만들면 정말 맛있는 달걀빵이 된다. 한번 경험해보시기 바란다.
3. [한국경제][천자 칼럼] '카·페·트 중독' 이후
“페이스북을 많이 쓰면 우울해지고 건강도 나빠진다.” 미국 UC샌디에이고 연구팀이 최근 발표한 논문의 결론이다. 페이스북 이용자 대다수가 남들의 과시용 게시물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주리과학기술대 연구팀과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 교수팀 역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오래 사용할수록 자존감이 떨어지고 우울증을 앓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SNS 쏠림’ 현상은 유별나다.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 트위터의 앞글자를 딴 ‘카·페·트 중독’이 심각한 수준이다. 사진 위주의 인스타그램이 등장한 뒤로는 ‘카·페·인 우울증’까지 겹쳤다. 멋진 여행 사진이나 명품 선물, 비싼 공연 티켓 등을 경쟁적으로 게시하며 ‘나 행복해요’를 연발한다. 댓글이 적으면 ‘좋아요’를 눌러 달라고 구걸까지 한다. 한편으론 남과 비교하며 속을 끓인다. 정신없이 바쁜 업무와 가벼운 주머니 사정, 육아와 교육에 치이는 자신의 인생이 보잘것없다며 불행해한다.
연출된 이미지에 자극받아 비싼 물건을 사들이거나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직장이 없는데도 고급차를 빌려 타고 뽐내는 ‘슈퍼카 렌트족’까지 등장했다. 사진 한 장으로 백마 탄 왕자가 되고 나면 현실감을 잊고 만다.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고 가공된 언행을 반복하는 ‘리플리 증후군’에 빠지기도 한다. 이들은 ‘SNS 피로증후군’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다.
이런 부작용을 치유하는 방법은 뭘까. 《페이스북 심리학》을 쓴 임상심리학자 수재나 E 플로레스의 처방이 눈길을 끈다. 그는 “SNS가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 공간이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공들여 단장한 신부 화장’이나 ‘오랜 기간 준비한 졸업전시회’ 같은 가공 이미지를 자신의 일상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심리학자 애덤 알터는 “가상의 SNS 정보는 끝이 없기 때문에 끝이 있는 현실의 활동으로 이를 넘어서라”고 권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스마트폰 내려놓기’라고 한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SNS 탈출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꼭 필요하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장점만 활용하고 폐해를 최소화하는 ‘디지로그 방식’도 활용할 만하다. 트위터 최고경영자인 잭 도시는 주말마다 스마트폰을 끄고 명상이나 하이킹에 나선다. 그러고 보니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집에서는 자녀들의 컴퓨터 사용을 엄격히 제한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이롭지 못하다.
4. [서울경제][만파식적] 브레진스키의 '체스판'
1979년 11월9일.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비서진의 급전을 받고 잠에서 깨어나야 했다.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로부터 미국을 향해 날아오는 소련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탐지했다는 보고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부재중이어서 브레진스키 보좌관이 핵 버튼을 누를 최종 권한을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 안보 라인은 즉각적인 핵 보복을 주장했지만 브레진스키는 대통령을 호출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컴퓨터 오작동에 따른 가짜 경보로 판명됐다. 과거 냉전 시대에 가장 긴박했던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브레진스키는 헨리 키신저와 함께 미국의 3대 외교 거물로 꼽힌다. 브레진스키가 민주당의 외교 브레인이라면 키신저는 공화당 계열이다 보니 두 사람의 관계는 극히 나빴다고 한다. 제럴드 포드 행정부 시절 브레진스키가 사사건건 외교정책에 토를 달고 나서자 키신저에게 회의 석상에서 ‘창녀 같은 놈’이라는 막말까지 들었을 정도다. 1979년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 브레진스키가 강경 진압을 주도하면서 온건파인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을 물러나게 만든 것은 유명한 일화다.
폴란드 출신의 브레진스키는 소련에 대해 강경 대처를 주창해온 매파였으며 관여정책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산주의 국가들과 꾸준히 교류하고 협력해 서서히 체제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구명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일찍이 중국의 외교적 부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한국에 주문해왔다. 역저 ‘거대한 체스판’에서는 미국의 패권 유지 전략을 소개하면서 한국이 지정학적 구도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브레진스키가 26일(현지시간)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그는 2008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외교정책 고문을 담당했고 정권 출범 후에도 그림자 외교고문으로 불릴 만큼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그가 생전에 비유한 대로 한국은 지금 강대국이 맞붙은 거대한 체스판 위에 덩그러니 올려진 신세인지도 모르겠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김성수
‘국민방위군 사건’에 항의하며 초대부통령 이시영이 사임(51년 5월 9일)한 데 이어 ‘부산정치파동’ 직후인 52년 5월 29일 2대 부통령 김성수가 사임했다. 사퇴서에서 그는 부산정치파동을 “민주주의를 유린한 행동”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이승만의 인사정책 전반에 대해서도 실망과 분노를 토로했다. “이 박사는 충언과 직언을 염오( 惡)하고 아첨만을 환영하며 그의 인사정책은 사적 친분으로 일관된 중에도 자기의 하료(下僚)조차 항상 시기의 눈으로 보아 모든 국사를 그 자신이 일일이 직결하려고 하고(… 중략)” 김성수는 야당(민국당) 지도자로 부통령에 당선됐고, 초기부터 이승만과 불화했다.
40년대 전시 징용ㆍ징병 독려 등 친일행적으로 김성수는 자신의 명예에 때를 입혔지만, 20세기 초 조선의 민족ㆍ독립운동에 그만큼 헌신한 이도 드물었다. 다시 말해 그가 광복회 등이 분류한 ‘친일파’ 명단에 든 건 타당하지만, 개인적 영달을 꾀한 수다한 친일인사들과 한 구덩이에 그를 밀어 넣는 것은 부당하다. 공적 영역에서 활동했던 그로서는 당연히 상해의 그들처럼 선명한 반일의 자리에 설 수 없었고, 국내 지사들처럼 일제의 요구를 완전히 외면하기도 힘든 처지였다.
전북 고창의 유력 가문에서 태어난 인촌 김성수(1891~1955)는 자가와 처가(장인이 창흥의숙 설립자 고정주)의 도움으로 한학과 영어 수학 등 신학문을 두루 익히며 실력 배양이 자주 독립의 처음이자 끝이라 여겼다. 그는 17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 정경학부를 졸업했는데, 당시 유학생 중에 그의 경제적 도움을 안 받은 이가 드물었다고 한다. 23세에 귀국한 뒤 1915년 중앙학교를 인수해 교육활동을 시작했고, 19년 경성방직을 설립했다. 임시정부와 독립군에 자금을 댔고, 도피처 및 회합 장소를 제공했다. 3ㆍ1운동 직후 동아일보를 창간한 것도, 이상재 등과 민립대학 설립을 추진한 것도,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한 것도 민족계몽ㆍ개량운동의 일환이었다.
그는 일장기 말소사건(36년) 조선어학회 사건(42년) 등으로 수 차례 연행 되기도 했다. 그가 친일 활동을 본격화한 것도 42년 무렵부터였다. 그는 중일전쟁을 미화하고, 학병ㆍ징병을 독려했고, 국방헌금을 냈고, 그 대가로 경제적ㆍ비경제적 혜택과 특권을 누렸다. 해방 후 권력층은 거의 대부분 그에게 빚을 진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