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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최순실 게이트’ 후속조치 진행 미흡하다

‘최순실 게이트’가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자칫 국정 붕괴가 우려되는 국면이다. 국내에서는 성난 민심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대(對)국민 사과 이후 닷새 만인 그제 청와대 비서진을 전격 개편한 것도 상황이 매우 위중하다는 판단에서일 게다.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4명을 경질하면서 사퇴 압박이 거셌던 우병우 민정, 안종범 정책조정수석과 함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까지 한꺼번에 쳐낸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후임자를 민정·홍보수석만 겨우 채웠다는 점에서 인선 과정이 다급하게 이뤄졌음을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그 정도론 어림없다.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효과적인 사태 수습책을 찾아내는 일도 시급하다. 여야 영수회담도 일책이다. 야권이 쉽게 응하지 않겠지만 박 대통령이 결자해지의 자세로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협치 총리’ 정신에 입각해 책임총리제든 거국중립내각이든 가능한 대안들을 영수회담 테이블에 올려놓고 당리당략을 떠나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져야만 한다. 야당이 요구하는 내각 총사퇴는 그다음이다. 지금 상태에서 박 대통령이 새 내각을 짠들 또 다른 정쟁거리밖에 더 되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박 대통령의 의지다.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진정성이 무엇보다 요긴하다. 최태민·순실 부녀와의 40년 악연을 끊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국난 극복에 앞장서겠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일단 소낙비는 피하고 보자”는 요량으로 꼬리 자르기 식 해명과 원칙 없는 꼼수로 일관한다면 정국은 끝내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최씨 수사가 첫 시험대다. 최씨가 어제 검찰에 소환된 만큼 국정농단의 진상이 한 꺼풀씩 벗겨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박 대통령이 스스로 “나부터 조사하라”는 지침을 내리지 않는 한 겉치레 수사에 그칠 게 뻔하다. 우병우·안종범 전 수석은 물론이고 .박 대통령의 18년 수족이라는 문고리 3인방도 본격 수사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사태에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김종 전 문체부 2차관,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송성각 콘텐츠진흥원장 등에 대해서도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2. 최씨의 ‘국정농단’ 정책 전면 폐지돼야

어제 국회 예결특위에서는 최순실씨와 관련된 ‘국정농단 예산’이 도마에 올랐다. 최씨에 줄을 댄 비선 인사들이 정부 사업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정황이 계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핵심과제인 문화융성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씨의 입김으로 발탁된 인사들이 문화융성사업을 주도했고, 그 계획에 따라 예산이 편성됐다면 전액 삭감하는 것이 온당하다.

최씨 측근 인사들이 국가 정책을 주물렀다는 자체가 불쾌하다. 그렇게 계획된 문화융성사업이 모두 12개이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추진됐거나 현재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들 사업에 투입되는 전체 예산이 1800억원대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사업은 박 대통령의 지원 아래 전국적인 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씨의 측근으로 현 정권에서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던 차은택씨가 한때 적극 관여했다고 한다.

지난 3월 확정된 정부상징 로고 교체사업도 마찬가지다. 소관부처인 문체부가 전문사업단을 구성해 1년 동안의 작업을 거쳐 최종 시안을 확정하고 청와대에 보고했으나 묵살된 채 지금의 태극문양 디자인으로 최종 결정됐다는 것이다. 소요된 예산과 인력낭비도 문제지만 이 로고의 정체가 석연치 않다는 게 더 심각하다. 배후에 최씨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오는 28일 인터넷에 공개될 예정인 새 국정 역사교과서도 의심을 받을 만하다. 박 대통령이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혼’, ‘기운’ 등의 용어를 자주 사용했는데, 이것이 최씨로부터 종교적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박정희 미화’ 내용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는 또 다른 차원이다. 더욱이 국정화 작업을 추진한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이 최씨 측근인 차은택씨의 외삼촌으로 확인되고 있다,

최씨를 국정 농단의 장본인으로 법의 심판대에 세우려는 마당에 그가 영향력을 미친 정책들도 당연히 즉각 폐기되거나 원점으로 환원돼야 마땅하다. 해당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한 담당 공무원들의 뒤늦은 푸념소리를 되새겨야 한다. 국가 정책에서 최씨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내야 한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최씨의 하수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신문]

3. 국가 장래 위해 정략 버리고 거국내각 구성을

정치권에서 책임총리제에 이어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최순실씨 국정 농단 사건으로 기울어진 민심은 시간이 흐른다고 개선될 기미가 없이 계속되는 등 엄중한 상황을 맞고 있다. 하지만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려면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야는 당리당략을 버려야만 한다. 셈법이 서로 다른 정치권으로서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휴일인 그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대통령에게 여야가 동의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책임총리제를 요구했던 새누리당이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촉구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은 정략을 넘어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거국중립내각 구성은 야당의 전유물이었다. 야당은 어차피 주장해도 대통령이나 여당이 받아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보다 더 좋은 공격 소재가 없었다. 대통령중심제하에서 거국중립내각이 구성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도 남북전쟁을 치르던 링컨 대통령이 부통령으로 민주당의 앤드루 존슨을 임명한 적은 있지만 이를 우리 상황과 비교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도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92년 8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선거 관리를 위해 현승종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중립내각을 구성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야당이 국정에 참여하지는 않은 탓에 이를 거국중립내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대통령 중심제에서 거국중립내각은 구성 그 자체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당이 하자고 하는데 야당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특히 거국중립내각은 야당이 당론으로 정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틈만 나면 주장해 온 국정 수습 방안이 아닌가.

그런데도 갑자기 민주당이 진실 규명이 우선이라며 발뺌을 하는 것은 야당의 당리당략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여당의 거국중립내각 촉구도 책임 회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를 구성하려면 대통령이 당적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여당 수뇌부 그 누구도 대통령에게 당적을 버리라고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현 정국을 안정시키는 1차적인 책임은 집권당인 새누리당에 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무엇 하나 주도적이지 못하다. 이 기회에 지도부를 쇄신하고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해 대통령에게 거국내각 구성을 건의하고, 야당에 실무 협상을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야당도 책임총리제나 거국내각 구성 논의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국회가 제 역할을 못 하면 야당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거국중립내각은 일정 기간 대통령제를 포기하고 내각제를 시행하는 것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여야 정치권의 역할은 거국중립내각을 포함한 모든 국정 수습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다.

4. 경제팀은 흔들리는 운전대 꽉 잡아야

우리 경제가 ‘최순실 파도’를 맞아 휘청거리고 있다. 가뜩이나 나라 안팎으로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대통령의 국정 동력까지 급속히 약화되면서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이 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대통령 입만 쳐다보던 관료들이 사실상 일손을 놓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거국중립내각이니 책임총리니 하는 새 지도체제에 관심이 쏠리면서 긴급한 경제 현안들이 방치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우려는 어제 정부가 내놓은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서도 드러났다. 이날 발표에서 최고 관심사는 대우조선해양 처리 문제였다. 정부의 해법은 기존의 ‘연명치료’를 당분간 이어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지난 1년간 대우조선의 상황이 훨씬 악화됐음에도 2018년까지 그대로 끌고 가 차기 정부로 처리를 넘기는 선택을 했다. 정부는 고강도 자구안과 사업 재편을 유도해 대우조선이 회생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사태에 따른 국정 공백 상황에서 어려운 판단을 하지 않겠다는 속셈이 읽힌다.

우리 경제는 이미 빠져나오기 어려운 늪에 갇힌 상황이다. 통계청이 어제 발표한 9월 산업동향에 따르면 생산과 소비 모두 상황이 심각하다. 소비는 지난달보다 4.5% 줄었다. 2011년 2월 이후 감소폭이 가장 크다. 산업생산도 전월보다 0.8% 줄어 5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우리 경제를 견인했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갤럭시노트7 단종과 대규모 리콜 사태로 절룩거리는 등 기업들의 영업실적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시한폭탄이 돼 있고, 실업률은 9월 기준으로 11년 만에 최악의 수치를 보여 주고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동력을 잃은 상황에서 경제를 챙길 그룹은 미우나 고우나 현 정부 경제팀이 될 수밖에 없다. 새 지도체제가 수립될 때까지는 유일호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관료들이 위기 대응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부동산 시장 과열과 가계부채 관리, 조선·해운 구조조정 추진, 내년 예산안 처리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대부분 민생과 깊이 연관돼 판단을 미룰 수 없는 문제들이다. 경제를 오래 챙겨 온 경제 관료들이 ‘우리 임기 안에만 탈이 나지 않으면 된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버려야 경제 회생도 가능해진다.

[동아일보]

5. 새누리당 친박 지도부 물러나고 보수 혁신하라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해 김무성 나경원 의원 등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 의원 54명이 어제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며 연판장 서명에 나섰다. 그제는 김현아 대변인, 김종석 여의도연구원장, 오신환 당홍보위원장 등 당직자를 포함한 의원 21명이 ‘최순실 사태 진상규명과 국정 정상화를 위한 새누리당 국회의원 모임’을 만들고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했다. 당직자들은 어제 사표를 내면서 “실추된 국민 신의를 회복하려면 뼈를 깎는 혁신이 수반돼야 한다”고 압박했다. 비박 의원들은 의원총회 소집까지 요구했다.

새누리당에서 비박의 반란은 사필귀정이요, 자업자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명을 바꾸고 19대 총선을 지휘한 2012년 이후 새누리당은 줄곧 ‘친박 천하’였다. 올해 4·13총선 때의 공천 파행은 친박 패권주의의 극치였다. 총선 참패에도 친박은 2선 후퇴 대신 비대위 체제를 뒤에서 흔들었고, 결국 8·9전당대회에서 이정현 대표 당선으로 다시 지도부를 접수했다.

이 대표는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주도하는 청와대를 견제하고 박 대통령이 민심에 귀를 열도록 ‘악역’을 하기보다 오히려 박 대통령 옹호에 앞장섰다. 오랜 세월 참모로 박 대통령 곁에 머문 이 대표가 비선 실세의 존재를 알고도 지금까지 직언하지 못했다면 참모의 자격이 없고,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다. 대표 당선 직후 그는 “대통령과 맞서고 정부에 맞서는 게 마치 정의고 그게 다인 것처럼 인식한다면 여당 소속 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했다. 결국 박 대통령이 비선 실세와 일부 참모진에 휘둘리면서 지금의 사태를 초래한 데는 이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친박의 책임도 크다.

새누리당이 직면한 상황은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정권 재창출은 고사하고 보수의 공멸을 우려하는 소리도 나온다. 여당이 청와대를 대신해 국정을 리드해야 하지만 박 대통령의 아바타인 친박 지도부에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려면 새누리당도 지도부 교체를 비롯해 재창당 수준의 개혁에 나서야 한다.

6. 경제위기 덮친 ‘최순실 게이트’… 국가신인도 관리하고 있나

‘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하는 외신들이 한국을 사적(私的) 관계가 지배하는 ‘정실(情實) 자본주의’ 사회로 묘사하는 분위기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최태민은 베일에 가린 종교지도자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멘토”라며 “최 씨 일가가 대통령의 권위를 이용해 기업의 돈을 빼내 온 의혹이 있다”고 정리했다. 미국의 공영 라디오방송인 NPR는 “샤머니즘적 숭배와 관련된 스캔들이 한국 대통령을 위협 중”이라고 전했다. 시장경제 원칙과 동떨어진 정실 자본주의, 비합리적 샤머니즘이 한국 사회를 지배한다고 알려지면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을 어떻게 볼지 모골이 송연하다.

무디스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같은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지금까지 한국의 기업 구조조정 정책과 중장기 통일 시나리오를 높게 평가해 왔다. 경제와 외교 분야는 대통령의 의지를 핵심 엔진 삼아 추진된다. 이 엔진이 멈추는 것도 문제지만 정부 정책이 사적 관계에 좌우된다는 분석이 나오는 순간 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을 본격적으로 물어뜯을 가능성이 있다.

어제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열 달이나 끌어온 ‘조선·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이라며 현재의 빅3 체제 유지를 발표했다. 부실 덩어리 대우조선을 안고 가면서 2020년까지 11조 원을 퍼붓겠다니 차기 정부로 시한폭탄을 넘기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조들은 “성과연봉제에도 최순실이 개입됐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갖고 있다”며 성과연봉제 포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9월 소매 판매는 5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고 생산과 투자마저 감소세로 돌아선 총체적 난국인데도 무기력증에 빠진 관료들은 일손을 놓은 채 개각과 후속 인사에만 관심을 쏟는 모습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국제 신용평가사와 해외 기관투자가 1000여 명에게 e메일을 보내 국가신인도를 관리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악의적 외신 보도로 한국 위기설이 증폭되자 기획재정부는 신용평가기관을 찾아다니면서 펀더멘털(경제 기초)을 홍보했다. 유일호 부총리는 외신 대상 특별브리핑이나 국제 신용평가기관과 소통을 하고 있는가. 국가 위기관리 컨트롤타워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안보 상황을 점검하는 것은 물론 한중일 정상회의를 포함한 민감한 외교 현안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이다.

[세계일보]

7. 환부에 고약만 바른 조선·해운 대책 전면 재검토해야

조선·해운 재편을 위한 정부의 밑그림이 나왔다. 정부가 어제 내놓은 ‘조선·해운업 경쟁력 강화방안’에 따르면 단기적인 수주 절벽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까지 공공선박 250척, 11조원 규모를 발주한다. 장기 침체에 빠진 해운산업의 회생을 위해선 6조5000억원 규모의 금융을 지원한다. 조선업 불황과 구조조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에도 2020년까지 긴급경영안정자금 등 3조7000억원의 투·융자를 해주기로 했다. 한마디로 조선·해운 회생에 2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붓겠다는 것이다.

어제 대책은 수년 내 조선경기가 회복될 것이란 예측을 근거로 만들어졌다. 향후 2∼3년의 조정 기간을 거쳐 완만하게 회복할 것이므로 현재의 불황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조선업체에 발주 물량을 몰아주자는 것이다.

최근 나온 맥킨지 컨설팅 보고서를 보면 조선 수주 급감으로 인해 2018~2020년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3사의 연매출은 지난 5년 평균치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 미래 산업환경의 변화와 중국 조선업체의 부상을 고려할 때 2020년 이후에도 우리 조선업이 회복된다는 보장이 없다. 이런 판국에 정부가 나서서 일시적으로 발주 물량을 늘려준다고 해서 조선경기가 되살아나겠는가.

정부 대책에도 조선업체의 구조조정 방안이 일부 담기기는 했다. 2018년까지 조선 3사의 독(dock) 수를 23% 줄이고 인력도 32%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조선 3사가 이미 오래전부터 자구계획으로 내놓은 내용이다. 더구나 독자생존이 어려운 대우조선의 합병 등 빅2 체제 개편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대우조선은 지난해에만 영업적자가 5조5051억원에 이르고 부채비율이 7000%가 넘는다. 이런 기업에 계속 수혈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다. 이번 대책이 대우조선 구하기로 비쳐지는 이유다.

조선·해운의 지원은 기업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확보를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 뚜렷한 회생 방안도 없이 무턱대고 자금을 지원하면 부실의 눈덩이만 키울 뿐이다. 산업계에선 레임덕에 빠진 정부가 복지부동의 자세로 구조조정하는 시늉만 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근본 원인은 제쳐 둔 채 환부에 고약만 바른 이번 대책은 당연히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중앙일보]

8. 신임 민정수석, 대통령에게 ‘수사 자청'을 건의하라

박근혜 정부 국정 농단의 장본인인 최순실씨가 검찰청사에 나오는 모습을 지켜본 시민들은 분노와 허탈감에 우울한 하루를 보냈다고 말했다. 모자와 머플러로 얼굴을 가린 60대 아낙네가 4년 가까이 국정을 좌지우지했다는 사실은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병신년(丙申年) 대한민국의 현실이 돼 버렸다. 비참하고 부끄럽지만 이 또한 우리 대통령의 민낯이고 자화상이다.

국민은 대통령과 검찰에 묻고 있다. “도대체 이 탐욕스러운 여인은 어디서 나왔고,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은 누구냐”고. 이제라도 박 대통령은 답해야 한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深淵)으로 추락한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민의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사건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검찰의 청와대 압수수색에 실정법과 관행이라는 명분으로 버틸 게 아니라 수사에 협조해야 했었다. 다행히 우병우 전 민정수석 후임인 최재경 민정수석이 “검찰이 추가 자료를 요청하면 성실히 임하겠다”며 다소 전향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나마 인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 전 수석의 오만방자한 태도에 질려 버린 국민은 후임자가 국가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헌신적인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 수석 또한 국민의 이 같은 바람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먼저 박 대통령에게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내가 먼저 수사를 받겠다’고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선언하라”고 건의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지금처럼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할 경우 검찰 수사는 거대한 장애물 앞에 막혀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혼돈 속으로 빠져들 경우 취임 이후 최저치인 15.5%의 대통령 지지율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정공백이 최소화되기를 원한다면 형사 불소추권의 특권을 더 이상 강조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이 정부 들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까지 와 있다. 국가는 뒷전으로 한 채 오로지 정권에 아부하는 듯했던 검찰에 대해 국민은 조롱과 비아냥으로 분풀이하고 있다. 어제 검찰청사에 한 시민이 던진 오물은 검찰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상징하고 있다.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김수남 검찰총장과 특별수사본부장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직을 걸고 수사를 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최씨가 외국으로 도피하고 기자회견을 갖고 갑자기 귀국한 배경에 정권 차원의 음모가 숨은 것으로 의심한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수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대선자금 수사팀이 ‘국민의 검찰’로 지지를 받았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검찰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계속해 정권의 치마폭에 숨을 것인가. 아니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 명예를 되찾을 것인가. 국민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검찰 수뇌부와 신임 민정수석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고 있다.

9. 최순실 농단 방조한 친박 패거리는 모두 물러나야

박근혜 대통령에 의한 ‘국정 시스템 붕괴사건’은 최순실이 일으켰지만 이를 근접거리에서 견제·관리하지 못한 제1책임은 청와대 참모진, 제2책임은 새누리당이 져야 한다. 어제 최순실은 검찰에 소환됐다. 최순실과 연관된 청와대 참모진도 모두 자리를 떠났다.

다음 수순은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가 물러나고 그의 정치적 온상인 친박 세력이 정치 전면에서 후퇴하는 것이다. 이 대표를 비롯한 친박 정치세력은 지난 4년간 박 대통령의 기이하고 위법 혐의가 짙은 행태를 방치한 죄를 범했다. 친박들 중엔 이 대표 외에 서청원·최경환·윤상현·조원진·이장우·김태흠 의원 등이 있다.

이들이 무슨 패거리처럼 떼로 몰려다니며 대통령 주변을 에워싸고 개인의 권력을 확장하거나 이익을 챙겼다는 지적을 받아온 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유권자의 미움을 받아 집권여당을 순식간에 여소야대 상황으로 전락시킨 4·13 친박 공천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국민 세금으로 먹고살면서 고도의 공적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새누리당 지도급 의원들은 최소한 박 대통령 취임부터라도 최순실을 대통령으로부터 격리하고 권력 사유화의 통로를 차단시켜야 했다. 청와대 눈치만 살피면서 단물만 빨아먹은 친박 세력은 최순실 사건의 공범이거나 방조자란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친박은 법적 책임 이전에 정치적·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을 탄생시킨 정당이면 대통령의 잘못을 막아야 할 책임도 있다. 새누리당 당헌 8조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당의 정강·정책을 충실히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돼 있다. 박 대통령이 당의 정강·정책은커녕 최순실의 정신·지침을 국정에 반영했으니 이를 막지 못한 친박 세력은 물러나는 게 당연하다.

향후 여야 간엔 특검, 거국중립내각, 여야 합의에 의한 새 총리 추천 등 국회가 주도적으로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다. 국가 비상상황에서 국회 합의안을 원활하게 도출하기 위해서라도 이 대표와 친박 세력은 더 이상 시간 끌지 말고 깨끗이 물러나야 한다.

[매일경제]

10. 박대통령은 한중일 도쿄 정상회담에 참석하라

최순실 사태가 국정 전반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걱정이 큰데 다음달 초로 추진되던 한중일 정상회담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니 심각하다. 한중일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초청 형식으로 다음달 초 도쿄에서 3국 정상회담을 여는 데 의견을 모으고 실무 협의를 진행해 왔다.

중국 측이 개최 시기 등에서 난색을 표해 진전을 보지 못했는데 우리는 이미 정상회담 개최에 수용 의사를 통보했지만 최순실 사태라는 돌발변수로 난감해하고 있다. 의제 조율과 사전 준비 등을 위해서 실무협의를 해야 하는데 청와대와 외교부는 여론을 의식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달 한국을 찾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의 만남 외에 다른 정상 차원 외교활동을 잡지 않은 상태다.

한중일 정상회담은 한 달여 후의 일인 데다 우리 측 의사에 따라 결정할 수 있으니 차질을 빚었다고 볼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제정치 무대에서 전개되고 있는 일련의 일정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제 역할을 못 하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한국을 찾는 다른 나라 수반과의 정상회담은 빠짐없이 가져야 한다. 다음달 8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에서 선출될 새 대통령 당선자와의 전화통화도 늦어지거나 생략돼서는 안 된다.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비하기 위해 결정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나 한일 간 군 위안부 합의 이행 및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같은 외교안보 현안의 추진 동력이 떨어진다면 대외정책 수행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의 외교안보 정책에서 지켜져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은 유사시를 포함한 안정적인 상황관리와 일관성 유지다. 재임 중인 대통령의 공백이나 유고 발생 시 이를 이어받을 군 통수권자를 순서대로 정해놓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라는 공식기구를 명문화해 위기를 관장토록 한 것은 이런 차원이다.

현직 대통령(president)에게는 문제가 생기더라도 헌법에 규정된 대한민국 대통령직(presidency)의 역할과 직무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거나 유보돼서는 안 된다. 이번에 추진되는 한중일 정상회담은 북핵 제재에 미적대는 중국을 끌어들여 국제공조 수준을 높일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 최순실 사태로 인한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와 상관없이 한중일 정상회담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야고부] 국사(國事)

2011년 4월,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기 위해 미 해군 특수부대가 파키스탄 은신처에 투입됐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요원들 헬멧에 부착된 카메라를 통해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작전 종료 후 미 당국은 한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전문가인 공군 장성이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컴퓨터로 작업하며 상황을 브리핑하는 사진이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헤드테이블 옆 작은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모니터를 지켜봤다. 테이블 양쪽에 바이든 부통령과 클린턴 국무장관, 게이츠 국방장관이 자리를 지켰다. 이 작전은 9`11 테러를 9년 만에 일단락짓는 중대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자기 자리를 내어주고 옆에서 지켜본 것이다. 대통령 신분보다 공적 프로세스를 더 중시하는 미국의 합리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우리도 정책 결정 등 공적 프로세스가 소수의 독단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고치자는 취지다. 노무현정부 당시 이런 움직임이 구체화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양한 논의를 거쳐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정책이 결정되고 시행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 작은 성과마저 이명박`박근혜정부 들어 깡그리 무시됐다. 대신 ‘왕차관’ ‘십상시’ ‘비선 실세’라는 전근대적인 용어가 대신 자리를 꿰찼다.

이명박정부 때 벌어진 각종 스캔들과 ‘최순실 게이트’는 국가 시스템의 선진화에 무관심한 지도자들이 잉태시킨 산물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국가 최고기관인 청와대의 참모진이 누구랄 것도 없이 불법을 방조하고 충실한 조력자가 됐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 모든 국민이 분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1993년 김영삼정부 당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방한해 ‘직지심체요절’ 반환을 약속했다. 하지만 파리 국립도서관 사서 2명이 ‘직지’ 반출을 한사코 거부해 무산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개 사서보다 못한 당`정`청의 조력자들이 공적 프로세스를 무시하고 법 테두리를 무시로 뛰어넘은 것이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이다.

더 한심한 것은 아무 권한도 없는 최순실의 손끝 하나에 대통령과 공인들이 움직이고도 국가의 녹을 먹었다는 것은 멀쩡한 국가라면 상상도 못할 국기 문란이자 국정 파탄이다. 저잣거리 아줌마의 ‘탐욕’과 ‘수다’에 국가 운명을 내맡긴 꼴과 무엇이 다른가. 지금 국민이 “박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매일신문][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멘붕 게임

너무 피곤한 날은 여섯 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조차 힘이 든다. 그럴 때면 ‘멘붕 게임’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질문 놀이를 하곤 하는데, 방법은 이렇다. 아빠는 편안하게 침대나 소파에 누운 채로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아이에게 던진다. 아이가 답을 하면 거기에 대해 질문을 이어나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불은 위험한 거잖아? 위험한 일은 나쁜 거지? 소방관은 불을 끄는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나쁜 사람인 거네?” 이런 질문에 대체로 아이는 “불은 위험하니까 불을 끄는 소방관 아저씨는 고마운 거야”라며 좋은 대답을 내놓지만, 목표는 아이의 멘탈을 붕괴시키는 것에 있다 보니 질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 위험한 것을 막기 위해서 위험한 일을 하는 건 괜찮은 거야?” 이런 질문은 사실 수사학적인 궤변에 가까운 것이지만 철학적으로 의미 있는 질문을 할 때도 있다. “너는 태어났을 때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말도 못했고, 그때는 걷지도 못했어. 그런데 지금은 키도 크고, 말도 잘하고, 잘 뛰잖아? 말 못하고, 걷지도 못했던 그 아이와 너는 지금 다르니까 두 아이는 다른 아이지?” “그때의 아이가 자라서 지금 내가 된 거야”라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 다시 물었다.

“자라난 것은 달라진 거지? 달라졌으면 똑같은 것은 아니지? 그러면 그때 아이와 지금의 너는 다르지 않을까?” 흥분한 아이를 보며 낄낄대고 있노라면 아이의 엄마는 답도 없는 쓸데없는 질문으로 아이를 헷갈리게 한다고 질타한다.

물론 철학을 공부한 나로서도 이런 질문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 대답을 듣고 있으면 가끔 ‘우아할 정도로’ 아름다운 대답이 나와 놀랄 때가 있다. 그건 내 아이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의 세계가 우아하고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나는 대답 중 하나는, “아빠, 엄마가 네 아빠라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는 물음에 “엄마, 아빠의 냄새에서 알 수 있어. 엄마에게는 공주 냄새가, 아빠한테는 왕자 냄새가 나”라는 대답은 지금도 너무 황홀해서 잊을 수가 없다. 내게 발 냄새, 땀 냄새가 아니라 왕자 냄새가 난다니.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알려주듯이 “매우 중요한 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멘붕 게임의 가장 큰 효용은 세상에는 잘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많다는 것, 세상은 모호한 구석이 많고, 누가 답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답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 주는 데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대통령이라는 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는지 아이에게 물어봐야겠다. 대통령이 대통령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요즘 상황을 생각해보면 해볼 만한 멘붕 게임에서 할만한 질문이지 않은가? 아이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3. [머니투데이][MT 시평] 고지식한 사람들의 힘

1972년 6월 중순 미국 수도 워싱턴DC의 한 호텔에 괴한이 침입한 흔적을 경비원이 발견해 신고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당시 호텔에는 야당의 전국위원회가 입주해 있었다. 경찰은 침입의 목적이 야당 사무실에 도청기를 설치·교체하기 위함이라고 밝혔고 침입자의 수첩에서 닉슨 대통령 보좌관의 전화번호가 발견되면서 결국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나섰다. 대통령과 측근들은 중앙정보국(CIA)을 움직여 수사를 방해하고 증인을 매수하려 했다. 연말 선거에서 대통령이 압도적 표차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사건은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수사는 중단되지 않았고 당시 특별검사가 핵심 증거제출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증거제출을 거부했고 법무장관에게 특별검사 해임을 명령했다. 장관은 명령에 불복해 사임했고 권한을 대행하게 된 법무부 차관도 대통령의 명령에 사임으로 맞섰다. 다음 권한대행이 특별검사를 해임했지만 새로 임명된 특별검사가 다시 증거제출을 요구했다. 대통령은 중요 부분이 삭제된 자료를 제출하면서 비서의 실수라고 둘러댔지만 결국 CIA를 통한 수사 방해를 시도했음이 드러냈다. 끝없이 악화되는 여론과 의회의 탄핵안 추진으로 마침내 대통령은 사임했다. 저 유명한 ‘워터게이트’는 이렇게 역사에 남았다.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을 상대로 새로 임명된 특별검사가 (국정을 걱정하여) 증거제출을 계속 요구하지 않았다면, 법무장관과 차관이 사임하지 않았다면, FBI가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수사를 계속하지 않았다면, 언론이 관심을 거두고 다른 이슈로 시선을 돌렸다면, 경찰이 침입자들의 의도를 사실대로 밝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질문은 별 의미가 없다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 속 사람의 역할에 주목한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살아있는 권력이 두렵지 않았거나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대한 걱정이 없었던 것일까?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우리 모두는 무대 위의 배우와 같다고 말한다. 직장이라는 무대에서는 사장 과장 대리 혹은 직원으로, 가정이라는 무대에서는 부모이거나 자녀, 형제자매로, 정겨운 술자리에서는 친구로. 우리의 삶은 다양한 역할놀이와 같고 무슨 역할을 맡느냐는 어떤 무대에 서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문제는 무대에 어긋나는 역할을 수행할 때 일어난다. 예컨대 직장을 학교 동문회로 착각하면 동문 간의 의리(?)가 어느새 본래 역할을 압도하여 소수 의견을 내는 사람은 미움을 받거나 심하면 배신자로 몰린다. 역할보다 관계를 앞세우는 것이 더 유리하게 보일수록 그렇게 얽힌 집단은 패거리로 변질된다.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대학교수, 의사, 기업인과 같은 역할은 허공에 부유하는 이름표가 되고 만다.

2016년 가을. 역할을 망각한 사람들이 대한민국 사회의 심장을 강타했다. 정치인이 장사를 했고, 기업인이 정치를 했으며 몇몇 민간인이 이 둘 모두를 했다. 대통령과의 ‘의리’가 공직자의 사명보다 (심지어 헌법보다) 중요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럴수록 제 자리에서 묵묵히 역할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빛을 발한다.

집요하게 사실을 파헤치는 언론인, 판결 하나에 명예를 거는 법조인, 합리적 경영에 헌신하는 기업인, 진리탐구에 몰두하는 대학교수를 포함해 주어진 자리의 가치와 의미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든 사람. 사적인 의리가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다고 믿는 이런 사람들은 흔히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다”는 비웃음을 사곤 한다.

그러나 이들이 모인 힘은 거대한 진실을 수면 위로 밀어올릴 만큼 강하다. 지금 주변의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이 살아온 사람들을 돌아보고 작은 경의를 표하자. 그들이 위기의 순간에 우리 모두를 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4. [서울신문][데스크 시각] 이 지긋지긋한 막장 드라마의 끝은/최여경 사회부 차장

막장 드라마. 권력 암투와 배신, 불륜과 복수가 난무하는 드라마를 이렇게 부른다. 막장 드라마의 틀거리는 대체로 비슷하다. 두뇌 회전이 다소 둔하고 쉽게 휘둘리는 기업 회장이 있고, 중상모략과 계략에 능한 그의 아들이나 딸, 사위나 며느리가 등장한다. 마냥 정의로운 인물과 물심양면 도와주는 지인이 있다. 인물들은 쉽게 속고 속인다. 문을 연 채 비밀을 털어놔 들통나고, 통제 공간에도 수월하게 들어가서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다. 구성이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방송국 편성을 받아 시청자들 눈앞에 펼쳐진다.

이보다 더한 막장 드라마가 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40년 전 뜬금없이 나타난 종교 지도자에게 오랜기간 의지했고, 그가 죽자 그의 딸이 대통령을 농간했다. 대통령은 그의 딸이 하라는 대로 하고, 읽으라는 대로 읽을 뿐이다. 나라 정책은 미친X 키질하듯 제멋대로였고, 그사이 딸은 막강한 부(富)를 취했다.’

민망하고 불경스러운 이 막장 드라마는 해외에도 순식간에 수출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확인된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을 두고 영국 가디언은 ‘박 대통령이 샤머니즘 지도자와 딸에게 홀렸다’고 했고, 프랑스의 르몽드는 ‘박 대통령은 마리오네트’라 불렀다. 구글에서 ‘샤머니즘’과 ‘박’이라는 단어만으로 검색하면 가디언이나 르몽드, 시드니 모닝 헤럴드 같은 세계 유수 매체의 관련 기사가 줄줄이 엮여 나온다.

얼마 전 프랑스 명문대에서 강의하는 한국인 교수가 메신저 문자를 보냈다. 그는 “강의하는 데 한국에 대해 물어볼까봐 조마조마했다”며 “상황이 어떻게 돼 가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중국에서 언론학을 공부하는 친구도 물었다. “너희 대통령이 샤머니즘에 빠졌다는데 정말이냐.”

도저히 답을 할 수 없어 한마디로 갈음했다. 수습 불가.

이 드라마가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게 우리의 비극이다. 막장 드라마도 철저한 인과응보, 결자해지를 향해 달려가면서 막판에는 속을 시원하게 풀어 준다. 그런데 이 비극은 나라 안팎에 있는 모든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고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지긋지긋한 현실은 도대체 끝이 안 보인다. ‘몸통’으로 불리는 최씨가 입국해 31일 검찰 조사를 받았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나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도 속속 소환될 예정이다. 이름을 다 거론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인물이 수사 대상이 됐지만, 하루하루 또 다른 이름이 드러나고 그들의 비리가 불거진다.

수사에 속도가 붙고 있다지만, 진짜 몸통을 배제한 채 수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바로 박 대통령과 청와대다. 이 사태를 ‘박근혜 게이트’로 불러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이 사태를 방기한 박 대통령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주인공이다. 박 대통령이 수사를 받지 않는 한, 청와대가 철옹성처럼 꼭꼭 닫혀 있는 한 아무리 날카로운 검찰의 칼날도 진실을 드러내진 못한다.

숨어서는 안 된다. 정치 원로들에게 자문 따위를 받으러 시간을 쓸 필요도 없다. 그들의 조언이 없어서 이 사태가 벌어진 게 아니다. 차라리 검찰의 칼날 끝에 당당히 서는 정공법을 쓰길 권한다. 진실을 갈구하는 국민의 열망에 조금이나마 부응하는 것이고, 대통령 자신이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채식주의자의 날

11월 1일은 ‘월드 비건 데이(World Vegan Day)’다. 육류를 먹지 말자는 ‘Meat Free Day’와 ‘World Vegetarian Day’ ‘World Farm Animal Day’ 등 유사한 날들이 연중 열흘 남짓 된다. 오늘은 1944년 영국 런던에서 출범한 세계 최초 채식주의자 모임인 ‘비건 소사이어티 Vegan Society’가 제정한 채식인의 날 중 하나다.

채식주의자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정보를 나누고, 채식주의자로서 덜 불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환경을 함께 모색하고 실천하자는 취지의 날이다. 각자가 채식 레시피로 요리한 음식을 공개된 장소에 가져와 자랑하고, 나눠 먹기도 하고, 비 채식인에게 시식을 권하기도 한다. 비건 공개행사는 그래서 꽤 인기가 높다.

채식주의자들이 널리 알려온 채식의 가치 혹은 동기는 대략 네 가지쯤 된다. 채식주의의 기원은 종교적인 배경 위에 있다. 기독교 금식문화와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주의.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사상도 있다. 하지만 현대 채식주의자들이 앞세우는 가치는 보다 적극적이다.

먼저 윤리적 가치. 그들은 동물 사육과 도살 과정의 비윤리성에 주목한다. 환경적인 이유도 있다. 사육 과정에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 배설물 메탄 가스 등이 지구 온난화를 부추기고, 수질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현대 사회의 여러 질병들, 대사증후군 같은 각종 성인병과 일부 암, 알러지, 피부염 등이 육식 문화와 관련이 있고, 특히 부적절한 사료와 항생제 등 약물이 가축을 통해 인체 내에 축적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체로 옳지만, 전적으로 옳은 건 아니라는 윤리적ㆍ과학적 반론도 있다.

채식주의자는 실천 범위에 따라 대개 여섯 등급으로 나뉜다. 플렉시테리언(채식 위주지만 육식도 하는 이들)- 폴로ㆍ세미 베지테리언(닭과 생선, 유제품과 달걀은 먹는 이들)- 페스코 베지테리언(유제품과 달걀, 생선은 먹지만 닭을 포함 육류는 안 먹는 이들)-락토 오보 베지테리언(유제품과 달걀까지만 먹는 이들)- 락토 베지테리언(유제품만 먹는 이들)- 비건(모든 동물성 식품을 안 먹는 이들). 폴로와 페스코 베지테리언을 구분 없이 페스코로 분류하기도 한다.

윤리적 우월감에 도취해 타인의 삶(자녀 포함)에 개입하려는 이들도 물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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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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