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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3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우려되는 '맞춤형 보육' 집단 움직임

내달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가도록 예정된 ‘맞춤형 보육’ 방안을 놓고 어린이집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이다. 일부 어린이집이 오늘부터 이틀 간 집단 휴원에 들어가며 그 사이 정부가 개선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순차적으로 폐업 수순을 밟기로 했다는 것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동참에 대한 목소리가 크다는 점에서 단순한 엄포로 들리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경영상의 문제다. 정부가 맞춤형 보육 실시를 전제로 보육료를 6% 올려준다고 약속했지만 그것으로는 모자라다는 얘기다. 그동안 5년째 보육료가 동결되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양상이다. 이번 맞춤형 보육을 받는 유아들에 대한 보육료 지원을 20% 삭감하겠다는 방침도 그리 마땅치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정상 운영이 어려워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맞춤형 보육 방안은 지금 우리 상황에서 가장 무난한 선택이다. 2살 이하의 유아를 대상으로 종일반(12시간)을 운영하되 그렇지 않으면 맞춤반(6시간)으로 돌린다는 것이니, 각 가정의 맞벌이나 홀벌이 사정에 따라 보육 시간을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정부 지원예산이 375억원 줄어든다고 하지만 보육료 인상으로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지난해보다 1440억원 늘어나게 된다.

문제는 이에 대한 정부의 설득 노력이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일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가 ‘육아선진화 포럼’을 개최했지만 일방적인 홍보로 빈축을 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맞춤형 보육 방안이 진일보한 대책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방법으로는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어렵다. 그러고도 어린이집의 집단 움직임에 대해 ‘법에 따른 엄정 대처’ 방안만 내세워서는 곤란하다.


여야 정치권도 가급적 이 문제에 대해 공감대를 이뤄나갈 필요가 있다. 제도 시행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얘기로 갈라져서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일단 예정대로 시행하면서 점차적으로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어린이집에 대해서도 진정성 있는 대안을 내놓고 설득하는 것이 먼저다. 복지부가 어린이집 단체들과 물밑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니 타협점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2. 세계가 영국의 선택을 주목한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오늘 영국 전역에서 실시된다. 그동안 잔류 운동을 벌여 왔던 조 콕스 하원의원이 괴한에게 살해된 지난 16일 이후 잔류론이 상승세라지만 여전히 탈퇴 여론도 만만치 않아 예측불허의 상황이라고 한다. 영국이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자 EU 핵심축이라는 점에서 투표 결과에 따라 세계 경제가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영국민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EU 탈퇴 여부에 전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파운드화 급락은 물론 물가폭등, 일자리 축소 등 영국 경제에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9년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5.5%가 축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U의 향배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EU 경제의 17%, 인구의 13%를 차지하고 있는 영국의 EU 탈퇴는 다른 회원국의 연쇄 이탈로 이어져 EU 붕괴를 부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세계 금융시장과 경제에 몰고 올 엄청난 충격과 혼란이 걱정이다.

국제사회는 이 같은 혼란을 우려해 잔류를 호소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브렉시트는 매우 부정적인 경제 여파를 가져올 수 있다”며 잔류 지지 의사를 밝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등 국제기구 수장들과 크리스토퍼 피사리데스 교수 등 10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도 탈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독일 BMW를 포함한 글로벌 기업들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유럽의 미래와 글로벌 경제의 안정을 위해 영국민의 ‘현명한 판단’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탈퇴로 결론이 나더라도 영국과 EU 수출비중이 10.5%로 낮아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게 정부 분석이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브렉시트 여부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증폭될 수 있다”며 경제·금융상황에 계속 경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급격한 자본 유출 가능성 등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면밀한 대응책이 마련돼야 한다. 브렉시트가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서울신문]

3. 北 무수단 미사일 집착 말고 주민 생계 돌보라

북한이 어제 오전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중거리 탄도미사일 ‘무수단’ 두 발을 발사했다. 군 당국은 먼저 발사된 미사일은 150㎞를 날아가 공중폭발했으며 나중에 발사된 미사일은 각도를 높여 쏘아 400㎞를 날아간 뒤 동해상에 낙하한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은 지난 4월 중순 이후 지난달 말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모두 실패한 바 있다. 결국 여섯 번째 만에 상당한 기술적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고 군 당국은 밝혔다. 일본 전역과 태평양 괌 미군기지까지 사정권에 둔 무수단 미사일의 위협이 차츰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3월 “빠른 시일 안에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탄도 로켓 실험 발사를 단행하라”고 지시한 바 있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어제 발사 장면도 직접 참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무수단 미사일에 병적으로 집착해 왔다. 강력한 제재 국면에서도 김정은이 끊임없이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는 것은 대내외적으로 중거리 핵무기 운반 능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유사시 한반도로 전개되는 미군 증원 전력에 대한 타격 능력을 보여 주려는 목적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함께 운용한다면 상당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미사일 발사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발사 행위를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니만큼 강력히 규탄하는 동시에 국제사회가 일치단결해 대북 제재 강도를 한층 더 높여야만 할 것이다. 최근 북한은 여러 차례 대화를 제의한 데 이어 중국 베이징에 대표단을 보내 반관반민 성격의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에도 참여하고 있지만 이번 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유화 제스처가 기만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셈이다. 다소 느슨해지는 감이 없지 않았던 제재 고삐를 더욱 죄어야만 한다.


제재가 계속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삶은 한층 피폐해지고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엘리트층인 해외 식당 종업원들이 연쇄적으로 집단탈출을 하고 있겠는가. 그런데도 김정은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미사일 도발에만 집착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무수단 미사일 한 발을 발사하는 데 2000만 달러가 투입된다는 추정에 비춰 보면 북한은 최근 두 달간 무려 1억 2000만 달러를 쓸데없이 허공에 날려 보낸 셈이다. 그 돈이면 북한 주민들의 두 달치 식량을 수입하고도 남는다고도 한다. 김정은이 정녕 북한 지도자라면 주민들의 생계부터 돌보는 게 도리다.

4. 김해공항 허브공항으로 거듭나게 힘 모아야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로 나뉘어 영남권 광역자치단체 간 지역 대결 양상을 띠던 신공항 유치전이 제3의 길로 출로를 찾았다. 용역을 맡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 측이 경제성·안전성·환경성 등을 망라한 전체 평점에서 가장 앞섰다며 김해공항 확장안에 손을 들어 주면서다. 결과적으로 보면 다행스러운 결말이다. 지역 갈등이 폭발하는 최악의 상황은 면해서다. 그러나 부산·대구 지역의 여야 정치인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등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청와대는 물론 여야 정치권이 이번 사태를 성급하게 대형 국책사업을 공약으로 내건 전비(前非)를 자성하고 앞으로 이를 자제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영남권 신공항이 김해공항을 대폭 확장하는 방식으로 낙착되기까지 무려 10여년을 표류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신공항 검토 지시를 한 뒤 이명박 후보가 2007년 대선에서 약속했다가 집권 후에 부산 대 대구·경북·경남·울산으로 민심이 갈리자 백지화했다. 2012년 대선에선 박근혜·문재인 두 여야 후보가 경쟁적으로 공약으로 내걸었다. 꼴뚜기가 뛰면 망둥이도 뛰듯 영남권 단체장과 여야 의원들도 수시로 신공항 약속을 남발했지 않았나. 이로 인해 높아진 지역민들의 기댓값이 야기한 갈등과 국정 혼선은 비용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는 신공항 건설과 같은 가장 전문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안을 정치 논리로 접근한 탓이다. 즉 표심에 휘둘려 대국을 보지 못한 결과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유사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는 게 옳다. 그런 맥락에서 청와대가 김해공항 대폭 확장이 곧 신공항이라는 논리로 공약 번복 논란에서 벗어나려 하는 건 옹색해 보인다. 외려 공약 불이행을 사과하면서 경제성도 없고 국민 통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밀양 또는 가덕도 신공항을 포기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당당하게 국민을 설득하는 게 정공법일 것이다. 김해공항 확장안의 합리성에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불이행 책임을 남 얘기하듯 하는 더불어민주당 일각의 태도도 가관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대선·총선에서 연거푸 공약으로 내걸었고, 최근 가덕도 방문 이벤트까지 벌인 터라 자가당착인 까닭이다. 여든 야든 신공항 문제로 더는 지역 정서에 불을 붙이거나 다시 대선 공약화할 생각일랑 꿈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다행히 이번에 외국 용역업체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듯 김해공항 확장안을 선택했다. 이로써 최대 6조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다만 어제 황교안 총리가 “영남권 거점 신공항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지만, 이는 활주로를 추가하고 공항 터미널을 신축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김해와 영남권 주요 도시 간 교통망을 확충하고 여객·화물 수요를 김해공항으로 집중시킬 후속 조치가 긴요하다. 김해공항이 동남권 허브공항으로 자리 잡으려면 중앙정부나 부산뿐만 아니라 영남권 자치단체가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 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영남 지역 단체장들이나 정치인들이 속히 소지역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 대승적으로 손을 잡기를 당부한다.

5. 투기 바람 못 잡으면 경제에 치명상 줄 수 있다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그제 분양권 불법거래 실태 점검에 나섰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과 위례신도시, 하남 미사 등 수도권 3곳과 부산 1곳의 아파트 모델하우스, 공인중개사무소 등을 대상으로 다운계약과 불법전매, 시세 차익을 노린 떴다방, 청약통장 거래 등을 집중 단속했다. 지난해 말부터 ‘미친 재건축’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부동산시장이 국지적으로 과열된 가운데 각종 탈·불법까지 판치자 팔짱을 끼고 있던 정부가 뒤늦게 개입을 시작한 것이다. 올 1~5월까지 아파트 분양권 거래는 5만 4187건에 17조원을 넘어섰다. 분양권에 붙은 전체 프리미엄, 즉 웃돈은 7923억원으로 건당 평균 1460만원이 얹혀져 거래됐다. 서울에서는 평균 2645만원, 경기에서는 1952만원의 웃돈이 붙었다. 말 그대로 투기다.


평균 분양가도 치솟고 있다. 강남구 개포주공 3단지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가는 3.3㎡당 평균 4500만원 선이지만 일부 평형은 5000만원을 넘어섰다. 주상복합이 아닌 일반 아파트로는 역대 최고 분양가다. 자고 나면 1000만원씩 뛴 말이 빈말이 아니다. 여유 자금이 있는 웬만한 중산층도 넘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런데도 물량이 달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서울시의 ‘2016 서울 서베이 도시정책지표 조사’ 결과에 비춰 보면 딴 세상 얘기일 수밖에 없다. 조사에 따르면 30대 서울시민의 88%가 전·월세를 살고 있다. 10명 중 9명꼴이다. 게다가 전체 시민의 전·월세 평균이 58.9%로 자기 주택보다 높다. 최근 분양 시장은 도무지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


과열 책임은 정부에 있다. 집값을 띄워 경기를 살리겠다며 무차별적으로 규제를 풀어서다. 전매 제한을 완화한 데다 분양가 상한제도 폐지했다. 빚을 내 집을 사도록 가계대출 규제도 크게 낮췄다. 1%대의 최저금리도 한몫했다. 시중에 풀린 유동자금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부동산으로 몰리는 형국이다.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방치했다가는 부동산시장 자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서둘러 집단대출 규제를 비롯해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떴다방 등 거래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는 당연히 엄단해야 한다. 물론 부동산 전체 경기를 냉각시켜서는 안 된다. 하지만 투기 바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거품이 꺼질 때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동아일보]

6. 참으로 부족한 박 대통령의 ‘갈등관리 리더십’

영남권 신공항 무산에 대해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이 어제 오전 “김해공항 확장은 사실상 신공항으로, 동남권 신공항이 김해공항 신공항이 되는 것”이라며 “(대선) 공약 파기가 아니라 어려운 문제이지만 약속을 지켰다”고 주장했다.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연구용역을 맡은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항공 안전과 경제성 등을 종합 판단해 김해공항 확장을 최적의 대안으로 발표한 데 대해서는 본보 역시 ‘합리적 결정’으로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약속을 지켰다”는 청와대 발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철석같이 믿었을 영남 주민들의 실망과 분노를 손톱만큼도 배려하지 않은 면피성 궤변이다. 


박 대통령도 어제 오후 신공항 결정 과정을 언급하며 “이렇게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 대해 관련 당사자들의 합의와 전문기관의 의견 존중, 정부의 지원이 잘 조화된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갈등 전문가의 논평을 듣는 듯하다. 이해관계와 가치가 엇갈린 공공 갈등의 경우 합리적 토론과 숙고(熟考)를 통한 합의, 그리고 승복으로 풀어내느냐가 민주주의 수준을 말해준다. 그러나 신공항 문제는 박 대통령 자신이 촉발시킨 사안이다. 국민과 공감하지 못하는 이런 발언으로 영남권의 들끓는 민심과 정치권의 반발을 가라앉힐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정이 나온 바로 다음 날인 2011년 3월 31일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라 유감스럽다”며 “(향후 대선 공약으로) 동남권 신공항은 계속 추진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음 날인 4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공약을 지킬 수 없어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까지 했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부산 시민 여러분께서 바라는 신공항 반드시 건설할 것”이라고 외쳤던 박 대통령이 이제 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김해 신공항’ 운운하는 것은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먼 ‘갈등관리 리더십’이다. 


박 대통령에게서 배운 듯 서병수 부산시장은 민자(民資)를 유치해서라도 가덕도에 공항을 짓겠다고 나섰다. 대구 유일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부겸 의원은 대구 최고(最古)의 신문이 1면을 백지로 내면서 항변할 만큼 국민이 농락당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 혈세로 생색내기에 재미 들인 정치인들의 비용 개념을 무시한 포퓰리즘 발상이다. ADPi의 결론을 검증하겠다는 지방자치단체들의 행태도 사회적 불신만 증폭시킬 뿐이다. 지금도 고추 말리는 데나 쓰는 지방 공항이 많은 현실을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묻고 싶다. 


이명박 정부 때 나왔던 김해공항 확장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진작 받아들였더라면 7년간의 국력 낭비와 갈등 비용은 치르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신기루 같은 신공항 공약으로 날을 지새우지 않으려면 대통령부터 정치권, 단체장들까지 모두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선거 때마다 부도가 뻔한 공약의 남발을 방지하고 국책사업의 표류도 막을 수 있다.

7. 기재부가 세금감면 실태 밝힌 뒤 법인세 개편 논의하라

정부가 외국인투자기업에 폭넓은 세금감면 혜택을 줬지만 일자리 창출 효과는 적고 국내기업이 받는 역(逆)차별이 컸다고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어제 공청회에서 발표했다. 대기업이 공익법인에 출연할 때 법인세를 깎아주는 제도는 조세 회피나 변칙적 부(富)의 세습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매년 이맘때 열리는 세법 공청회는 기획재정부가 세법 개정안에 담을 주요 내용을 미리 제시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올해는 외투기업과 공익법인에 대한 법인세 감면을 손질하는 세법 개정을 추진할 모양이다. 하지만 법인세 개편작업이 부분적인 땜질에만 그친다면 연간 세수 40조 원이 넘는 법인세의 근간이 정치 논리에 휘둘릴 수 있다.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더불어민주당은 과세표준(세금부과 기준금액) 500억 원 초과인 대기업에 대해 현행 22%의 법인세율을 25%로 높이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어제 국회 연설에서 “중부담-중복지로 가야 한다”며 조세부담 조정을 제안했다. 그러나 조세재정연구원은 법인세율을 1%포인트 올리면 경제성장률이 최대 1.13%포인트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새누리당은 “경기 회복의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자는 모순”이라며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문제는 정치권에서 표가 필요할 때마다 선심성 감면제도를 도입하는 바람에 혜택이 어디에 얼마나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받는 세금지원 효과를 분석해야 하지만 현실은 ‘깜깜이’다. 2014년 기준 법인세 평균 실효세율만 해도 기재부(17.2%), 국회예산정책처(14.2%), 안 대표(순이익 5000억 원 이상 16%, 5000억 원 이하 18%)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연구개발(R&D) 촉진, 고용 창출, 기부 유도정책 등 몇몇 감면 항목만 고친다면 자칫 중소기업 R&D가 타격받거나 대기업 고용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 


모든 정보를 틀어쥔 기재부에서 230개에 이르는 비과세·감면 항목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실제 세 부담을 얼마나 줄여주는지 분석해 공개해야 한다. 이 토대 위에서 공정하면서도 경쟁력도 살리는 세제 개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중앙일보]

8. ‘양극화 해소’ 입 모은 여야, 실천으로 보여라

어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연설을 마지막으로 20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마무리됐다. 여야 주요 3당 대표 모두 양극화를 가장 큰 문제로 꼽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 대표는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면 우리 공동체의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며 “소수가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 공공은 민간에 대한, 재벌 대기업은 하청업체에 대한, 기성세대는 미래세대에 대한 기득권을 각각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더 가진 기업과 근로자가 양보하는 중향(中向) 평준화를 지향하자”고 제안했다. 상위 1%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과 재벌들의 불법·편법적인 행위를 규제해 분배의 형평성을 높이자는 주장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경제민주화와 포용적 성장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 등) 거대 경제세력이 나라 전체를 지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의회에서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극화 해결책으로 보수가 분배를, 진보가 성장을 거론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양극화는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좀먹는 중병이 된 지 오래다.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19세 비정규직 김모군이 열차에 치어 숨졌다. 사상 처음으로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 임금의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계와 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공과 민간, 원청과 하청 간의 양극화가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교육을 통해 대물림되는 추세도 뚜렷하다. 헬조선과 금수저·흙수저 논란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국민의 90%가 노력해도 잘살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이 상징하는 극단주의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보여주는 고립주의가 대한민국에서도 발호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지금까지 정치권은 양극화를 국가가 아닌 정파의 시각에서 바라봐 왔다. 새누리당은 귀족 노조를 공격하며 대기업을 감쌌고, 야당은 재벌 비판으로 반사이익을 노렸다. 보수와 진보가 각각 성장과 분배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양극화 현상의 단면만을 골라 자신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형성하려 했을 뿐이다. 진영논리의 포로가 된 것이다.


3당 대표의 연설은 이런 정치권이 바뀌는 계기가 돼야 한다. 중도 성향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적 제스처로 끝나서는 안 된다. 말이 아닌 실천을 통해 국가적 문제를 고칠 능력이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입증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새누리당이 대기업을, 야당이 노조를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민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양극화를 해결할 리더십을 갈구하고 있다. 각 정당이 이런 요구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내년 대선 결과가 좌우될 것이다.

9. 미세먼지 공포 WHO 탓하는 윤성규 장관 사퇴하라

국민은 올 상반기 내내 생활환경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건강에 치명적인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미세먼지 공포에 시달렸고, 정부가 ‘클린 차’라고 한 경유차는 폴크스바겐 등의 사기극임이 밝혀져 큰 충격을 받았다. 10여 년 만에 실상이 드러난 ‘안방의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국민의 마음을 더 아리게 했다. 모두 엉성한 정책이 화근이었다.


3대 이슈의 책임자는 환경부 윤성규 장관이다. 그런데 윤 장관은 국민 정서와는 거꾸로 “법령이 미비했다” “기업의 문제다”는 식으로 에두르면서 사과도 않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왔다. 엊그제 그의 출입기자 간담회 발언은 “과연 장관 자격이 있나” 싶을 정도다. 윤 장관은 “유례없는 삼각파도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마치 버뮤다 해협인가 싶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 정부 최장수(40개월) 장관인 그에게 일련의 현안이 큰 파고였다는 뜻일 것이다.


고충은 이해하지만 미세먼지에 대한 그의 인식엔 아연할 따름이다. 기자들이 “대책에 국민 공감대가 떨어진다”고 묻자 “일부 의사들은 ‘건강한 사람은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더라. WHO가 발암물질이라고 너무 주장해서 심각성이 커졌다”며 WHO를 원망했다는 것이다. 그러곤 “(미세먼지 증가가) 일시적 현상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어쨌든’ 줄여 나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윤 장관의 발언은 극히 무책임하고 부적절하다. WHO가 2012년과 2014년 디젤차 매연과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것은 담배 연기나 석면처럼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물질이라고 판단해서다. 그 후 각국이 미세먼지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인데 윤 장관이 엉뚱하게 WHO 탓을 한 셈이다. ‘어쨌든’ ‘일시적’이란 말도 부적절하다. 올 1~5월 서울의 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당 57㎍으로 환경부 연평균 기준치(50㎍)를 넘어섰다. 일시적이지도, 어물쩍 대처할 일도 아닌 심각한 사태 아닌가. 능력도,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하는 윤 장관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대통령이 경질하든 스스로 물러나든 결단이 필요하다.

[매일경제]

10. 최운열 의원의 `리디노미네이션` 주장 적극 검토해야

화폐 액면단위를 변경하는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이 야당에서 제기됐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경제민주화 태스크포스 팀장은 21일 디플레이션 걱정이 없는 지금이 적기라며 리디노미네이션을 주장하고 나섰다. 예를 들면 1만원을 100원 또는 10원으로 화폐단위를 변경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0환을 1원으로 변경한 1962년 화폐개혁 이후 54년째 화폐단위가 고정돼 있다. 그사이 국민총소득(GNI)은 4000배 이상 불어났고 1인당 국민소득도 2000배 이상 증가하다보니 여러 가지 부조화가 생겼다. 이제 1달러당 환율이 1000 이상인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뿐이다. 사회적 비용도 만만찮다. 조(兆)를 넘어서 경(京)이라는 숫자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국내 파생금융상품 거래는 이미 2002년 1경원을 넘어섰고 총금융자산, 국민순자산도 1경원을 웃돈다. 화폐단위가 불편해지다 보니 커피점에서 4500원짜리 메뉴를 4.5로 표시하는 자구책이 등장했을 정도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면 재무·회계·금융업무가 효율화되는 반면 화폐를 재발행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또 1만원권을 10원으로 변경하면 상품가격이 싸진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 때문에 물가상승 우려도 있다. 2003년 한국은행이 화폐단위 변경을 추진하다가 중단한 까닭도 그 당시 부동산을 비롯한 물가상승 움직임 때문이었다. 그런데 올해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8%로 한국은행 물가안정목표인 2%를 크게 밑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걸림돌이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리디노미네이션으로 기존 화폐를 새 화폐로 바꾸는 과정에서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아직 리디노미네이션 주장은 최운열 의원의 개인적 소신일 뿐 더민주가 당론으로 채택한 건 아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중앙은행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고 국민적 합의나 공감대가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경제규모 확대나 물가 안정 등 여건을 감안할 때 이제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무작정 미뤄선 안 된다. 국민 불편을 해소하고 경제효율을 높이는 차원에서 여야와 한은이 리디노미네이션을 본격 검토해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신문][문화마당] 어른이 되어야 할 시간/최진영 소설가

어린 시절에는 스무 살만 넘으면 어른인 줄 알았다. 스무 살이 지난 후 ‘어른은 스스로 벌어 먹고사는 사람’이라고 다시 정의 내렸다. 하지만 직장을 가지고 스스로 벌어먹게 된 다음에도 나는 어른이 된 것 같지 않았다. 생년월일로 따지면 분명 성인이지만 성인과 어른은 다른 말 같았고 스스로 어른이라 자부하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워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말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럼 신부님이나 수녀님, 스님들은 절대 어른이 될 수 없단 말이에요?

사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만은 청소년처럼 살고 싶었다. 주위 어른들의 엇비슷한 신념은 고루해 보였고 돈과 성공을 강조하는 판에 박힌 조언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직업이나 월급을 잣대로 나의 쓸모를 판단하는 말들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21세기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에 재빨리 적응하고 세상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는 것이 성장이고 성숙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어른이 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려고 애쓰는 대신 아이가 어른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품는 여러 의문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나는 어른이 되지 않겠다던 자신에게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지 그제야 깨달았다. 사회에 만연한 이기심과 무책임, 물신주의와 성공지상주의에 매몰된 어른을 부정하고 싶었다면 ‘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해선 안 되었다. ‘그런 어른은 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어야 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처럼 어른들의 속물적인 가치관을 불평하면서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하는 어른이 될 것’이라는 꿈이라도 가져야 했다.


세월호에는 많은 어른이 있었다. 어떤 어른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주었고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배에 머물렀다. 어떤 어른은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자마자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진해서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어떤 어른은 300명이 넘는 생명이 사라지는 것보다 자신의 밥줄과 지위가 사라지는 것을 더 두려워했다. 어떤 어른에게 생명은 숫자이고 권력은 자신만의 것. 그리고 어떤 어른들은 이제 이 모든 것을 지겨워하고 있다.


세월호 민간 잠수사 김관홍씨의 자살 소식을 듣고 나는 다시 죄책감에 빠졌다.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자마자 생업을 포기하고 수색 작업에 자원해 차가운 바닷속에서 25구의 시신을 수습한 사람이 어째서 스스로 죽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 “나는 국민이기 때문에 달려간 거고 내 직업이, 내가 가진 기술이 그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 것일 뿐 애국자나 영웅이 아니다”라고 말하던 그를 죽음이란 절망에 빠트린 것은 이 사회의 이기적이고 뻔뻔하고 무책임한 어른들이다. 세월호 탑승객 304명을 희생자로 만들어 버린 그 어른들.


어른이라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역할과 지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 공동체 사회에서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걱정하고 보호해야 하며 타인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사회 구성원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성인이 되기까지 살아온 세월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어른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되는 것이다. 점점 나빠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좋은 어른이 돼야 한다. 미루고 있을 수만은 없다.

2.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꼴찌에게 희망을

엊그제 시골에 사는 쌍둥이 엄마가 하소연을 해왔다.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쌍둥이 아들이 1학기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왔는데, 둘의 평균점수를 합쳐도 60점이 안 된다면서 ‘꼴찌들에게도 희망이 있을까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덧붙인 말은, 원래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표는 앉아서 보지 말고 누워서 봐야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에서 느슨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중학교의 성적표를 받아 보면 놀라 뒤로 넘어가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날 우연찮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 나는 즉시 답을 보냈다. ‘○○ 선생님 알지요? 어제 그분 만났는데 중학생 손자가 이번에 꼴찌를 했대요. 그분이 어렸을 때는 꼴찌 하는 친구들의 엄마 아버지는 무슨 낙으로 살까, 그런 생각을 했다는데 막상 손자가 꼴찌를 하니 어라, 그냥 귀엽기만 하더라는 거예요.’ 그러자 금세 답이 왔다. ‘맞아요, 귀엽긴 해요. 그런데 제가 공부 못하는 자녀를 둔 죄인 같아요. 그렇지만 선생님 손자도 꼴찌라니 완전 반전이에요. 크하하하.’


이렇게 해서 우리의 대화는 유쾌하게 끝을 맺었다. 공부는 못해도 꿈은 야무져서 쌍둥이 중 큰애는 프로게이머, 작은애는 KTX 기관사라고 한다기에 “공부 못해도 인성은 좋으니 기다려 봐요”라고 말했다. ○○ 선생도 손자에게 “야 인마, 너 공부는 꼴찌여도 친구들보다 잘하는 거 하나는 있어야지. 운동을 잘하든 악기를 잘하든 노래를 잘하든, 알았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손자가 꼴찌를 해도 그저 귀엽기만 한 것은 대책 없는 할아버지의 사랑에서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 나이에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창회에 나가 보면 공부 잘하던 극소수는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시험으로 정해지는 자리에 가 있지만 나머지는 정말 예측 불허다. 오히려 공부에 주눅 들었지만 저마다의 숨은 장점을 살려서 더 크게 성공하여 즐겁게 살고 있는 친구가 한둘이 아님을 보게 된다.


최근 더욱 다양해진 직업군 중에서 성적으로 차지할 수 있는 직업은 매우 한정적이다. 더구나 꼴찌에게는 이제 올라갈 희망만 남아 있지 않은가. 우리의 인생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부모가 해야 할 중요한 몫이다. 꼴찌에게도 얼마든지 기회와 희망이 있을 테니 말이다.

3. [동아일보][@뉴스룸/김유영]21세기의 소작농들

‘보증금 3억 원, 월세 3000만 원.’


회사 근처 빈 점포의 외벽에 이런 문구가 나붙었다. 커피집이 있던 자리였다. 단순 계산해 커피 한 잔에 5000원으로 치면 하루 200잔을 팔아야 임대료가 빠진다. 인건비 등을 건지고 이윤까지 남기려면 대체 커피 몇 잔을 팔아야 하는 걸까. 임대료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곱셈과 덧셈을 하자니 머릿속이 새삼 아득해졌다.


대도시의 웬만한 지역에선 ‘임대료 리스크’가 일상화됐다. 저금리 시대에 믿을 만한 건 역시 임대료인 걸까. 한 지인은 맥줏집을 하면서 월 170만 원을 내던 임차료를 월 250만 원으로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이달 기준금리 인하로 건물주의 기대 수익률이 낮아졌는데 부동산 시장은 오히려 이런 흐름과 거꾸로 간다”고 하소연했다. 


심지어 세입자인 자영업자가 다시 세를 놓는 경우도 있다. 생활용품 판매업자인 A 씨는 서울 강북에서 월 500만 원의 임차료를 낸다. 그는 이 돈을 바로 옆 옷 가게 주인에게 준다. 옷가게 주인이 불황으로 장사가 안 되자 자신의 가게를 쪼개 A 씨를 세입자로 받아들였다. 목돈이 부족한 A 씨는 보증금을 내지 않는 대신 월세를 시가의 2배가량 낸다. 임대료를 깔고 들어온다 해서 ‘깔세’로 불리는 전대차(轉貸借) 계약이다. 그는 “인건비 건지기도 힘들다”며 “목청 터져라 물건 팔아 남는 돈의 대부분을 임차료로 바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자영업자는 지주에게 땅을 빌려 사용료를 내는 소작농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지대(地代·rent)는 공급 제한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과점적 이익이다. 땅과 건물이 한정되어 있으니 지주는 노동이나 자본을 추가 투입하지 않아도 비교적 쉽게 이윤을 얻는다. 돈이 넉넉하다면 힘들게 일하기보단 건물주가 되는 게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문제는 월급쟁이 상당수가 ‘잠재적인 치킨집 사장님’이라는 점, 그래서 은퇴 후 자영업에 뛰어드는 이들이 과도한 임대료와 갑작스러운 임대료 인상 리스크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외교관 출신으로 강남에서 우동집을 운영하는 신상목 씨는 “근로 계약에서 낮은 임금을 막기 위한 최저임금제가 필요한 것처럼 임대차 계약에서 지나친 소득 이전을 막기 위한 규범이 필요하다”며 “임차인이 영업의 지속을 보장받기 위해 건물주에 대항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닐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영업 대책에 대한 논의는 10년 넘게 이어져 왔지만 그간 동네 사장님들의 사정이 딱히 나아졌다는 소식을 접해보지 못했다. 노후 보장이 미비한 사회안전망 탓일까. 좋은 일자리를 못 낳는 불임(不姙)형 산업구조 탓일까. 생산성이 낮은 데다 판박이형 창업을 되풀이하는 문화 탓일까. 어디부터 꼬인 건지 모르겠다. 다만 자영업에서 임대료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빈곤한 사장님’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어느새 회사 인근 점포에 또 다른 커피점이 들어섰다. 페인트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가게에서, 달뜬 표정의 새 사장님이 월 3000만 원의 임차료를 감당하려면 커피 몇 잔을 팔아야 할까. 다시 셈해본다.

4. [중앙일보][제임스 후퍼의 비정상의 눈] 브렉시트 여부 결정 결혼처럼 타협 필요

영국 국민은 오늘 국민투표장에서 유럽연합(EU) 잔류냐, 탈퇴냐를 결정한다. 국경을 넘어 글로벌 사회에 영향을 미칠 결정이다. 이번 투표는 EU가 그간 사회·경제 통합으로 평화를 유지하고 번영과 행복을 가져왔는가에 대한 최종 평가 성격이다. 탈퇴를 결정하면 EU의 약점을 만천하에 드러낸 채 불확실성과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다. 다른 회원국들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게 된다. 영국은 정말 탈퇴할까.


EU는 마치 혼인 관계와도 같다. 제 운명을 다른 이에게 맡기고 꿈과 이상을 상대에게 맞춰야 한다. 하지만 서로 상대를 지지해줌으로써 얻는 보상이 막대하다. 수입 증가와 경제적 안정, 신변 안전, 구매력 증가, 업무 분담, 재난 상황에서 서로 버팀목 역할을 하는 것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혼자일 때보다 함께일 때 더 많은 이점이 생긴다. 서로 다른 문화·종족·생각들이 한데 섞이면서 끈끈한 유대감이 생기고 창의력이 샘솟는다. 결혼도 부부가 조화를 이루면 각자에게 사랑과 자신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EU 탄생 때 꿈꾸던 이상향이 바로 이것이다. 어떤 결혼이든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마련이다.


하지만 결혼이든 EU든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지속적인 노력과 타협이 있어야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다. 모든 것이 머릿속 상상대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것이란 보장도 없다. 관계가 늘 공평하지도 않다. 한쪽이 병을 앓아 회복 시간이 필요하거나 투자나 후원이 더 필요할 때도 있게 마련이다.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이런 장애물들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만큼 헌신하고 서로 지지하겠다는 서약 아래 모두를 위해 나은 미래를 조금씩 일궈가는 것이다.

결혼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혼’은 최후의 선택이 돼야 한다. 물론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도 있다. 한쪽이 이기적으로 굴며 힘을 남용하고 조종하며 비협조적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EU는 이 정도는 아닌 것 같다. 통합 방향이나 정책·규정·재정 등에 대한 회원국 간 의견 충돌 정도야 전 세계 모든 결혼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필요한 것은 타협을 위한 대화와 협상이지 이혼 요구가 아니다.


오늘 영국은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영국은 물론 EU의 미래가 이 ‘결혼 생활’이 구원될지에 달렸다. 화살 하나를 부러뜨리기는 쉽지만 여러 개는 한번에 꺾을 수 없다. 연합의 힘이라는 것이 그런 게 아닐까? 나는 EU 안에서 계속 지지고 볶는 데 한 표를 던진다.

5. [중앙일보][분수대] 해우소와 화장실

며칠 전 집에 있는 변기가 막혔다. 아내가 계란 껍데기를 잘못 넣은 탓이다. 퇴근 직후 아파트 관리실에 달려가 ‘뚫어뻥’을 구해 문제를 해결했다. 속이 시원해졌다. 무엇이든 인간은 막히면 곤란하다. 몸이 아프고 심할 경우 병이 난다. 배설의 문제는 특히 그렇다. 자연스러운 순환이 핵심이다. 어디 신체뿐이랴. 사회도, 정치도, 경제도 “소통, 소통”을 외치는 이유다.


해우소(解憂所)라고 했다. 근심을 푸는 곳, 절간의 화장실을 가리킨다. 지금이야 여느 사찰을 가도 쉽게 만나는, 마치 보통명사처럼 굳어진 단어 같지만 그 역사는 길지 않다. 근대 한국 불교의 고승이었던 경봉(1892~1982) 스님이 6·25전쟁 직후 만든 말로 전해진다. 스님은 통도사 극락선원의 소변 보는 곳에 휴급소(休急所), 큰일 보는 데에 해우소라는 팻말을 붙여놓았다고 한다. 지금 돌아봐도 빼어난 언어감각이다.


그 해우소가 요즘 ‘적우소(績憂所)’가 된 모양새다. 한류스타 박유천의 잇따른 성폭행 논란 때문이다. 사건이 모두 화장실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일었다. 박씨와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들이 맞고소를 하고 경찰이 대규모 수사팀을 꾸릴 만큼 파문이 커졌다. 스타라는 이름값과 화장실이라는 묘한 공간이 겹치며 온갖 억측과 루머가 쏟아졌다.


사실 화장실도 20세기 후반의 산물이다. 뒷간·측간·잿간 등으로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 변소를 거쳐 1970~80년대 아파트 문화가 확산되면서 정착된 말이다. 화장실 문화라는 말도 생겼다. 최근에는 으리으리한 욕조, 번쩍이는 변기 등 부와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처럼 격상되기도 했다. 일례로 지난달 초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공중화장실에 황금변기 ‘아메리카’를 설치해 눈길을 끌었다. 남과 다른 나를 보여주려는 현대인의 ‘과시적 소비’에 대한 일침이었다.


‘박유천 사태’도 그런 휘청거리는 시대의 한 단면이다. 돈과 폭력, 성과 뒷거래의 연결고리가 볼썽사납다. 거기에 춤을 추는 대중의 선망과 질시도 구린내 난다. 해우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마디씩 보태는 수좌·신도들에게 경봉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 다급한 마음 쉬어 가고, 근심 걱정 버리라고 한 말이야. 그게 자신을 찾고 도를 닦는 거야.” 우리들 중생이야 도와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더는 출렁대지 않았으면 한다. 수사 결과를 차분히 기다려보자. 그게 우리의 속을 뚫어주는 화장실의 진면목을 되찾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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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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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2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신공항 계획

영남권 신공항 건설 문제가 결국 김해공항으로 귀결되었다. 공항을 다른 곳에 새로 만들기보다는 기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이 최적의 대안이라는 게 타당성 연구용역을 수행해 온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어제 발표한 최종 결론이다. 김해공항의 활주로와 터미널 등 주요 시설을 대폭 신설하고 공항 접근 교통망도 함께 개선하는 방법으로 늘어나는 항공 수요에 원활히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신공항을 추진한다는 발상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치밀하게 따져보고 얘기를 꺼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계산에서 서둘러 계획이 시작된 탓이다. 그동안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으로 나뉘어 신공항 유치를 강력 주장하던 주변지역 주민들이 공연히 헛심을 쓴 꼴이라고 생각하니 허탈하기만 하다. 용역결과 발표를 앞두고 양측의 치열한 마찰로 인한 사회적인 비용도 결코 작지 않았다.

이처럼 영남권이 서로 갈라져 불필요하게 대립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부가 이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국토교통부는 신공항 계획이 처음 제시됐을 때부터의 추진 과정을 명확히 공개하고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없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아무리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신공항 건설을 내걸었다고 해도 현실적 판단 없이 무작정 쫓아간 것은 잘못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결정은 지역이기주의를 앞세운 우리 정치권과 무책임 행정에 대한 경종이나 다름없다. 김해공항이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최선의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서로 나눠먹기식의 선심성 계획이 발동했던 것은 아닌지 묻고자 한다. 신공항 건설에 10조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는 점에서도 보통 일은 아니다. 현재 지방공항 가운데 상당수가 운영적자에 시달리는 것이 주먹구구 결과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번 결과에 승복하고 소모적인 논란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 인사들부터 감정적인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 신공항 건설 무산에 따라 상실감에 빠진 주민들을 공연히 자극하려 들어서는 곤란하다. 서로 대립했던 주민들끼리도 서로 웃으며 조속히 손을 맞잡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이번 제시된 방안을 토대로 김해공항 확장·보완 작업도 차질없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2. 공수부대 '학살부대' 딱지 온당치 않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또다시 야권의 표적으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이 그제 박 처장 해임촉구결의안을 공동 발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6·25 기념행사로 기획된 광주 시가행진에 제11공수특전단을 동원하려 했다는 이유에서다. 야권은 지난달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기념식 제창이 불허되자 박 처장 해임촉구결의안을 내기로 합의한 바 있다.


논란이 일자 보훈처는 광주 향토부대인 31사단 150명과 11공수특전단 50명의 동원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6·25 발발 66주년을 맞아 참전유공자와 군인, 시민, 학생 등이 참여하는 ‘호국보훈 한마음 퍼레이드’가 전국 주요 도시에서 펼쳐지지만 광주에선 군인이 행진 대열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한참 어색해진 모양새다.


야3당의 입장은 단호하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공수부대원들을 광주 거리에 풀어놓겠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며 날을 세웠고, 국민의당 소속인 박주선 국회부의장은 “왜 광주시민을 자극하는 행동만 하는지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정미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도 박 처장 해임과 광주시민에 대한 사죄를 촉구했다. 일부 언론과 누리꾼들도 공수부대는 ‘학살부대’라며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3년 전에는 아무 탈 없이 치른 행사가 이번에는 왜 문제가 되는지 도대체 영문을 이해하기 힘들다. 당시 공수부대의 특공무술 시범 등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며 행사를 더 확대해 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는 보훈처의 설명을 듣고 보면 더더욱 그렇다.


‘학살부대’라는 것도 가당찮다. 공수부대는 우리 군의 자랑스러운 전력이다. 훈련이 강도 높기로 이름난 데다 자부심을 갖고 자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5·18 때의 만행은 결코 용서할 수 없으나 그 책임은 당시 못된 정치군인들에게 돌리는 게 옳다. 우리의 핵심 전력에 ‘학살부대’라는 험악한 딱지를 붙여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수부대원 중에는 광주 출신 젊은이들도 없지 않을 텐데 그들도 학살부대원이란 말인가. 불철주야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공수부대 장병들의 사기를 꺾는 자충수는 어리석은 국민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서울신문]

3. 정부도 민변도 탈북자 신변 보호에 소홀했다

중국 내 북한 식당에 근무하다 지난 4월 탈북한 여종업원 12명이 자유 의사로 한국을 택한 것인지를 가리는 심리가 어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비공개로 열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신청한 인신보호구제심사 청구를 법원이 수용해서다.


민변은 국정원이 이들 여성 탈북자를 지나치게 외부와 차단하는 등 수용·관리 방식이 비정상적인 점을 내세워 이들의 진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총선이 임박한 가운데 국정원이 이들의 탈북 사실을 전격 공개해 ‘기획 탈북’이 아니냐는 의혹이 깔려 있는 듯하다. 국정원은 이후 민변의 탈북자 접견 신청과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연구자들의 면담 요청을 모두 불허한 상태다. 또 지금까지 고위급이 아닌 탈북자들의 경우 통상적으로 조사 뒤 하나원에 보내 남한 정착 교육을 하던 것과 달리 여종업원들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그대로 남겨 두기로 한 것도 의심을 사고 있다. 정부 당국은 이에 대해 공식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익명의 당국자에 의해 “북한의 선전공세 등을 고려해 신변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언급이 나오는 정도다.


국정원의 탈북자 공개와 이후 관리 방식은 분명히 전과 달라 보인다. 총선 닷새 전 공개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들의 신상을 먼저 공개한 점이 특히 그렇다. 신상이 노출된 뒤 북한은 그들의 동료와 가족들을 내세워 남측에 의한 ‘납치극’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국정원이 오히려 탈북자 가족들의 신변 안전을 위협한 셈이 됐다. 한데 이제 와서 가족 신변 안전을 이유로 접촉을 차단하니 의혹만 더 커지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필요한 정보는 공개함으로써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어렵더라도 민변이나 통일연구원의 접견이나 면담도 허용할 필요가 있다.


민변의 법적 대응은 더 이해하기 어렵다. 탈북 경위나 이후의 관리 상황이 이상해 보인다고 이를 법정에서 따지는 것은 무리다. 탈북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여종업원들은 법정 진술 자체가 고통스러울 수 있다. 민변은 친북 인사들을 통해 북한 탈북자 가족들의 위임장을 받아 인신보호구제 심사를 신청했다고 한다. 납득하기 어렵다. 북한 체제하에서 작성된 위임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정부 당국과 민변 모두 탈북자들의 신변 보호를 최우선에 두고 탈북 관련 의혹을 해소할 방안을 고민해 보기 바란다.

4. 통화 스무 번에 전관예우 없다니, 특검으로 밝혀라

혹시나 했던 검찰의 홍만표 수사가 역시나로 끝날 기미다.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를 구속 기소하면서 경찰이 밝힌 수사 결과는 허탈하기 짝이 없다. 검찰 고위층을 상대로 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구명 로비는 실패했다는 결론이다. 홍 변호사의 구속영장 청구 시점과 공소사실이 달라진 것도 없다. 탈세액이 고작 5억원 늘어났을 뿐이다. 검찰의 수사 내용을 요약하자면 홍 변호사에게 전관(前官) 특혜를 챙겨 준 현직 검사는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홍 변호사가 스스로 자신의 이름값을 앞세워 의뢰인들을 현혹했을 뿐 로비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얘기다.


쓴 입맛이 다셔지는 수사 결과다. 정운호 게이트에서 전관의 입김이 전방위로 통했을 정황은 곳곳에서 여실했다. 정 대표의 도박 혐의에 검찰은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정 대표가 100억원대 해외 원정 도박빚을 갚느라 회삿돈을 횡령한 부분도 공소사실에서 빠졌다. 정 대표의 보석신청 때도 법원이 적절히 판단하라며 호의적 의견을 제시한 것도 검찰이다. 윗선의 신호를 받지 않고서는 상식으로 납득되지 않는 의혹들이다.


검찰 발표를 곧이곧대로 듣자면 우리 사법부는 전관예우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싶다. 홍 변호사는 지난해 당시 원정 도박 수사의 책임자이던 최윤수 3차장 검사를 두 번이나 만났고 20여 차례 통화했다. 관련 수사관을 접촉하기까지 했다. 전관 변호사가 수억원의 로비 자금을 받아 백방으로 애썼으나 현관들이 싸늘하게 거절해 실패했다고 설명하지만, 검찰도 속으로는 낯이 부끄러울 것이다. 외형상 검찰 지휘부가 구속 수사를 밀어붙였다고 로비가 먹히지 않았다는 논리는 그야말로 옹색하다. 300억원대 해외원정 상습 도박자의 형량이 터무니없이 줄었다면 누가 봐도 명백히 ‘성공한 로비’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겨서는 애초에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연루 의혹을 받는 최 차장검사는 서면 조사, 박성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수사 대상에서조차 제외했다. 검찰은 전관과 현관(現官)의 불법 커넥션을 들춰 스스로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 자체가 없었다.


이번 사건에서 온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대목은 일개 전관 변호사의 일탈이 아니라 고질적인 현관 유착 비리다. 국민 신뢰는 바닥을 기거나 말거나 제 식구 감싸기 수사에 인이 박인 검찰에는 더 기대할 것이 없다. 국회가 지체 없이 특검 카드를 뽑아야 하는 이유다.

[중앙일보]

5. 수능 '족집게' 강사 전면 조사할 필요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모평) 문제 유출의 파장이 간단찮다. 경찰이 어제 문제 유출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한 학원 강사 이모(48)씨와 현직 교사들의 검은 커넥션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어서다. 수능 ‘족집게’를 내세운 유명 강사의 뒷거래 유혹에 현직 교사들이 그대로 넘어갔다는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국어 시험 문제 사전 유출 당사자로 지목된 이씨는 이른바 ‘일타강사(과목 매출 1등 스타강사)’ 출신이다. 그간 ‘적중률 마케팅’을 통해 인기를 끌었는데 알고 보니 도덕 불감증에 빠진 교사들이 뒤에 있었던 것이다.


이씨는 “특정 작품이 나온다고 콕 집어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모평 검토위원인 송모 교사가 또 다른 박모 교사에게 출제 내용을 알려줬고, 박 교사(구속)가 이를 이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이씨와 교사들의 은밀한 거래도 드러났다. 수년 전부터 교사들이 출제한 국어 문제를 넘겨받아 자신의 강의 교재에 실은 뒤 3억원을 건넸다는 것이다.


이 같은 강사들의 문제 사들이기는 학원가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수능이나 모평 출제 참여 가능성이 큰 교사나 EBS 교재 저자에게 문항당 최고 10만원까지 준다고 한다. 출제교사 풀이 적은 데다 EBS·수능 연계율이 70%나 돼 이들의 출제 패턴이 수능에 반영될 확률이 높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몇 문제만 적중해도 단번에 족집게로 알려져 돈방석에 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1993년 수능 시행 이후 그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6·9월 모평과 교육청의 연합학력평가 , 수능을 치르는 과정에서 족집게들의 몸값만 치솟았다. 그래도 교육부는 의심도 않고 관리·감독에 손을 놓았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참에 족집게 강사나 일타강사의 실태를 전면 조사할 필요가 있다. 사전 정보 없이 실력만으로 예상 문제를 콕 짚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이번 사건이 보여주지 않았는가. 교사들의 윤리의식도 요구된다. 교사가 흔들리면 절대 공교육이 강해질 수 없다.

[매일경제]

6. 한국 배터리·한류 방송 막는 중국의 비관세장벽

LG화학, 삼성SDI 등 국내 전기차용 배터리생산업체들이 중국 정부의 인증을 따내지 못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중국 정부가 배터리업체 난립을 막기 위해 만든 '모범규준' 4차 인증 심사에서 31개 업체가 통과했지만 국내 업체들은 몇 개 조항을 충족시키지 못해 탈락했다. 미인증 업체에는 2018년 1월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업체들은 그 이전에 인증을 따내야 한다. 중국 측은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석연치 않다.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한국 기업을 견제하는 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어 우려감이 고조되고 있다. 올해 초에도 보조금 대상 전기버스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중국 업체가 생산하는 리튬인산철(LFP) 방식만 허가하고, 한국 기업의 삼원계 배터리는 배제하기로 해 차별 논란이 일었다. BMW, 제너럴모터스 등이 삼원계를 쓰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자국 기업 밀어주기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은 해외 드라마의 온라인 편성을 제한한 데 이어 위성방송국 황금시간대에 외국 판권을 수입해 리메이크한 프로그램 방영도 규제하기로 했다. 한류 드라마와 한국 방송포맷 수출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미다. 


또한 화장품 위생감독 조례를 수정해 까다로운 심사기준을 적용하는가 하면 특정 품목에 강제성 인증제도 마크 부착 요구, 조제분유 관련 규제 강화 등 비관세장벽을 갈수록 높게 쌓고 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수출 호조가 예상됐지만 국내 기업들의 애로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업들이 이런 첩첩규제를 넘기 위해서는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정부는 무역질서를 어지럽히는 중국의 비관세장벽에 대해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비관세장벽을 해소하지 못하면 늪에 빠진 대중 수출은 헤어나오기 힘들다.

7. 김종인의 `포용적 성장` 교각살우의 愚는 피해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재벌개혁을 통한 경제민주화와 기본소득제 도입 등 '포용적 성장'을 집권 전략으로 제시했다.


김 대표는"재벌개혁을 하지 않고는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거대 경제세력이 나라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의회가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기업 이사회의 의사결정 구조 개혁,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기본소득제 도입, 기초연금 30만원으로 인상, 최저임금 인상, 대기업 감세 폐지 등을 제시했다.


전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이어 김 대표까지 양극화 해소를 화두로 들고나온 것은 그만큼 민심이 흉흉하다는 뜻이다. 소득·노동·부동산·교육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상위 10%가 부(富)와 양질의 일자리, 교육 기회의 절반을 가져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해법이다. 의회가 국정의 중심이 되겠다는 자세는 좋으나 자칫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선명성 경쟁, 포퓰리즘으로 치달을 경우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기 십상이다. 재벌을 양극화 주범, 사회의 공적으로만 몰아붙이는 것도 곤란하다. 일자리를 만들고 수출을 하고 글로벌 경제전쟁의 선두에 서는 것은 대기업일 수밖에 없다. 김 대표가 말하는 재벌개혁이 재벌 죽이기가 아니라 기업 본연의 역동성과 혁신·도전정신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과거 공정, 동반, 상생의 이름으로 행해졌던 경제민주화 조치들이 되레 시장을 죽이고 경제활동을 억압하는 독이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경제 성장 없이 기초연금, 최저임금 인상 재원이 나올 리 없다. 양극화 해소와 사회 대통합을 위해서는 재벌개혁 못지않게 귀족노조 설득, 노동개혁도 시급하다. 균형 잡힌 시각, 정교한 정책 설계, 철저한 실용주의만이 포용적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

[동아일보]

8. '김해 확장'으로 되돌아간 영남권 신공항, 합리적 결정이다

영남권 신공항 건설에 대한 사전타당성 연구용역을 진행해온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과 국토교통부가 지금의 김해공항 확장이 최적의 대안이라고 어제 발표했다. ADPi는 “옵션 2개(밀양, 가덕도)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제로’에서 새로 시작했다”며 “가덕도, 밀양을 포함한 영남권 후보지 35곳을 놓고 항공 안전과 경제성, 접근성,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부산 가덕도나 경남 밀양 중 한 곳을 택해 영남권 신공항을 건설한다는 정부 계획은 취소됐다. 하지만 ‘김해공항 리모델링’을 분명한 대안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완전 백지화가 아니다. 국토부도 단순한 김해공항 확장이 아니라 ‘김해 신공항’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17일 본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김해의 공군기지를 한적한 여수공항으로 옮기고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임에도 상식과 이성이 발붙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이 옳았음이 이번 ADPi 용역 결과를 통해 드러났다. 밀양이 고향이고 부산에서 대학을 다닌 천 이사장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내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전문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김해공항 확장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는 얘기는 정치적 이유로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 이전부터 나왔던 얘기다. 2013년 한국공항공사도 김해공항 확장을 유효한 대안으로 제시했으나 신공항 사업을 백지화하려는 정부의 물타기 전략이라며 무시됐다. 일반적으로 가덕도는 접근성, 밀양은 안전성과 환경 문제 등이 지적된다. 2011년 신공항 입지평가위원회에서도 밀양과 가덕도가 모두 기준 평점에 미달해 백지화됐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곁에 두고 2006년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명박-박근혜 정부까지 무려 10년간 영남권이 둘로 갈려 지역 갈등과 분열을 키우고 국력을 낭비한 것이 안타깝다.


이번 결정이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권의 텃밭인 영남권이 분열되는 것을 우려한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결과라는 일각의 해석도 나온다. 그동안 신공항 문제를 놓고 부산과 대구-경북-경남-울산에서 과열 경쟁이 벌어졌지만 이제는 지역 이익보다 국가의 미래와 발전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공항 10년 논란’과 함께 앞으로는 선거 때마다 표를 얻기 위해 정치권이 국책사업을 지역 이기주의에 이용하는 포퓰리즘 관행도 종식시켜야 할 것이다. 행정수도, 혁신도시, 첨단의료복합단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건설 논란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지역과 정서가 찢어지는 후유증을 겪을 만큼 겪었다. 내년 대선주자들은 국책사업을 절대 선거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선언부터 해야 할 것이다.

9. “전관예우 없이 年100억” 검찰발표 특검으로 검증하라 

검찰이 어제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를 구속 기소하면서 홍 변호사의 ‘현관(現官) 로비’는 실패였다고 결론 내렸다. 홍 변호사의 혐의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원정도박 사건을 맡아 검찰에 구명 로비 명목 등으로 5억 원을 받고, 선임계 없이 62건의 형사사건을 ‘몰래 변론’해 세금 15억여 원을 탈루했다는 것 정도다.


홍 변호사가 접촉한 정운호 사건 수사 책임자 중에는 최윤수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현 국가정보원 2차장)도 있다. 지난해 두 차례 만나고 20여 차례 시도한 끝에 6차례 전화 통화를 하면서 홍 변호사가 ‘선처 부탁’을 했으나 거절당했고 ‘엄정 수사’ 방침만 전해 들은 것으로 검찰은 결론지었다. 그러나 수사책임자와 피의자 변호의 이런 접촉 자체가 특권이고 전관예우(前官禮遇)다.


현직 검사들과의 ‘관계’ 없이 홍 변호사가 한 해 100억 원 가까운 수임을 하는 것이 가능할 리 없다. 정운호 사건만 해도 검찰에서 두 차례 무혐의 처분을 받고, 기소 때 횡령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항소심에서의 구형량이 1심보다 6개월 줄고, 보석을 재판부 의지에 일임한 ‘적의(適宜)처리’ 같은 상식에 반하는 처분이 꼬리를 물었다. 현직 검사에 대한 검찰 조사가 서면으로 또는 ‘적절한 방법’으로 확인됐다고 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제 식구 감싸기요, 면죄부 주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판에 ‘실패한 로비’라는 검찰 결론에 누가 수긍할지 모르겠다.


검찰은 당초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특임검사에게 수사를 맡길 것을 검토했으나 어차피 국회에서 특별검사가 거론될 것으로 예상해 포기했다고 한다. 특검이 다시 수사해야 그나마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10. 改憲특위, 국회만이 아닌 汎국민적 기구로 만들어야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21일 국회 원내 교섭단체 연설에서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현행 헌법의 문제점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 '승자 독식 권력 구조' 등을 들었다. 그는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아야 한다며 상법 등 법 개정에도 당장 착수하겠다고 했다.

 

김 대표의 제안은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13일 20대 국회 개원사(開院辭)에서 개헌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국회에 개헌특위를 구성한다는 것은 국회가 국민들을 향해 헌법 개정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정치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김 대표의 이 제안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민의당도 아직 입장 정리가 되지는 않았지만 개헌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편이다. 현행 헌법을 만든 1987년 이후 처음으로 국회에 개헌특위가 구성될 가능성이 조금씩이나마 커지는 상황이다. 만약 특위를 구성해 개헌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경우 내년 대선이 새 헌법에 따라 치러지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절반을 훨씬 넘는 국민이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들이 구시대적 대결 정치에 질릴 만큼 질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중임제냐, 내각제나 이원정부제냐 같은 권력 구조 문제에만 관심이 국한되어 있을 뿐 바로 이 시점에 개헌이 왜 필요한지, 개헌을 한다면 얼마나 광범위한 내용이 되어야 할지 같은 '개헌의 본질'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금 개헌 논의에 들어간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현행 헌법 아래의 29년을 총결산하는 작업이 앞서야 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민족사적 작업이라는 생각도 있어야 한다.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 기본권이나 복지·환경, 경제 양극화 등에 대한 전 사회적 논의도 필수적이다. 그래야 국민 다수가 환영하는 가운데 개헌을 끝내고 미래로 향할 수 있는 에너지도 얻게 될 것이다.

 

그러자면 개헌을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다양한 국민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가운데 범국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시간적 여유도 충분히 둬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정치인들의 전유물처럼 진행되면 정작 개헌에 이르지도 못하고 아까운 기회만 낭비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특히 다음 대선에서 권력을 쥐려는 사람들의 흥정과 거래가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겨레][유레카]로봇의 얼굴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화 <천지창조>에서 신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신에게 사람 몸과 눈코입의 쓸모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고대 서양인들은 신의 모습을 사람처럼 생각했다. <성서> 창세기와 그리스 신화는 신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미국의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은 인간 정신이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로봇을 ‘마음의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신학자들이 신의 모습을 고민했다면 로봇설계자들은 로봇에 어떠한 생김새를 줄지 고민 중이다. 1970년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섬뜩함의 계곡’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로봇의 모습이 사람과 가까워질수록 친밀도 증가를 경험하다가 어느 순간 섬뜩함을 느끼며 친밀도가 추락하는 골짜기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시판에 들어간 감정인식 인간형 로봇 ‘페퍼’는 커다란 눈과 귀가 있지만, 사람과는 다르게 디자인됐다. 사람이 유사성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귀엽고 친근한 표정을 짓는다. 미국 나이트스코프가 만든 케이5(K5)는 달걀처럼 생긴 경비용 로봇이다. 이 로봇이 쇼핑센터 등에 배치돼 사람들을 접촉하자, 신기하고 귀엽다고 달려드는 사람들의 손길에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문제가 생겼다.


섬뜩함과 두려움을 피해 로봇을 온순하게 디자인한 결과의 부산물이다. 2014년 일본 오사카의 쇼핑몰에 로봇이 나타나자 아이들이 로봇을 때리고 발로 차는 로봇 학대 현상이 보고됐다. 2015년 차량을 얻어 탈 수 있도록 운전자와 소통기능을 갖춘 히치하이크 로봇 히치봇은 캐나다 횡단에 성공한 뒤 미국 횡단에 나섰다가 금세 머리와 팔이 잘린 채 발견됐다. 로봇과의 공생이 가시화하면서, 어떤 생김새와 기능을 부여해야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가 과제가 됐다.


2. [서울신문][공희정 컬쳐 살롱]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이 되면 저절로 세상 이치를 깨닫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 보니 그렇지 않았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을 넘어도 삶은 언제나 낯설게 다가왔다. 그 낯섦 앞에서 뻘쭘해지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이 시대 청춘들은 사회가 정해 놓은 퇴장 시기에 다가선 어른들을 꼰대라 부르며 쉰 떡 취급을 한다. 하기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엉덩이에 뿔 난 존재가 청춘들이었으니 그들의 말장난은 뽑히지 않은 뿔 때문인 듯도 하지만, 하여간 우린 어쩌다 어른이 됐을까.


사전적 의미의 어른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다 자랐다는 것의 기준이 애매하긴 하지만 사회적 통념상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을 이루면 비로소 어른이 됐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일가를 이루지 못했다면 어른의 범주에 끼워 주지 않았다. 그건 다양한 입장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면 그녀는 딸이면서 며느리이고, 엄마이면서 딸이 된다. 아이를 품에 안고 보니 자신에게 엄격했던 엄마의 마음도 이해되고, 시부모님 모시고 살다 보니 바쁘고 힘들다며 전화 한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던 친정엄마 생각에 시부모님에게 향하는 마음이 더 애뜻해지기도 한다. 역지사지의 힘은 상대를 배려하는 지혜를 솟아나게 했다.


그런데 어른들은 지혜만 쌓아 가는 줄 알았더니 고집도 함께 쌓아 갔다. 자꾸만 자신의 생각대로 타인의 삶을 지적하고,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유일한 기준인 양 주장을 앞세운다.


쉽사리 타협점이 보이지 않으면 그때부턴 “내가 살아 봐서 안다”는 이유로 빗장 풀린 간섭이 시작된다. 마치 처음부터 세상이 어른들의 것이었던 것처럼. 그래서 부모 자식 간 생각의 차이를 짚어 보는 방송 프로그램까지 생겼나 보다.


금쪽같은 내 자식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한탄하는 부모와 한없이 커 보이던 부모님이 왜 이렇게 시시해 보이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십대들이 주인공이다.


웃으며 등장해 사연을 이야기하다 보면 금세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진다. 집이었다면 이미 여러 번 고성이 오갔을 것이다. 집안을 촬영하는 관찰 카메라를 보면서도 처음엔 내 자신보다 눈에 거슬리는 상대방의 행동만 보였다. 시간이 지나고 전문가들의 조언이 오가며 서서히 자신이 보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되자 슬슬 상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며 아이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걸어가야 할 자기의 길을 둘러보게 됐다.


사실 어른들도 처음 살아 보는 삶의 순간순간이 벅차다. 어른이니까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아야 한다. 해야 하는 일들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지만 빠뜨리고 잊어버리고, 실수 연발이라 창피하기도 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안 풀릴 때는 아이처럼 두 다리 버둥거리며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어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지혜로움은 놓친 버스처럼 꼭 한 템포 늦게 찾아와 자신의 미련함을 탓하게 만들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은 삶,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인생이 더이상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는 건 어려운가 보다. 아름답지 않은 인생의 민낯을 보듬고 살아가야 하니까.


3. [머니투데이][우보세] 1토막에 1만6000원 '제주도 갈치'

세계자연유산이 모여있는 제주도는 내국인에게도 설레는 외국 휴양지 같은 자랑스러운 우리 땅이다. 지난주 취재차 다시 방문했다. 음식점을 찾기 위해 블로그 등을 뒤졌더니 여러 군데서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이 자료만 보면 ‘안 가면 안 될 것 같은 의무감’이 무겁게 다가왔다. 그중 A음식점을 찾아 방문하기로 했다.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갈치구이 가격이 1만 6000원. “(좀 비싸긴 하지만 관광지니까) 한 마리 시켜보지”하고 주문하려던 순간, 그 가격은 한 마리가 아닌 한 토막이었다.


‘얼마나 크길래’하며 오기 반으로 주문하자, 이번엔 공기 밥은 가격에서 제외된다는 말이 돌아왔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음식값이 왜 이리 비싸냐”고 하소연했다. 제주도 갈치가 요즘 어획량이 지난해에 비해 반으로 줄어 가격이 치솟은 데다, 1인당 제공되는 갈치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을 만큼 희귀해졌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래도, 1토막에…” 했더니, 그는 “그건 좀 비싸다”며 “보통 (같은 크기) 5토막에 5만 원 정도가 관광 음식점에서 받는 금액”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순간 머릿속에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말한 “김밥 한 줄에 1만 원”이 스치며 갈치도 그런 종류의 바가지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김밥은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일 수 있는데, 갈치는 구이일 뿐인데도 가격 차이가 크게 날 수 있는지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다가왔다.


제주도에서 갈치는 마리 당이 아닌, kg당으로 팔린다. 외지인이 싸게 갈치를 먹겠다고 수산시장에서 무게를 잰 뒤 정당한 가격을 치러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사례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한 관광객은 “2kg어치 갈치를 샀는데, 알고 보니 무게를 잴 때 바구니 밑에 600g짜리 납이 있었다”며 “항의를 해도 ‘원래 그런 것’이라는 그쪽 분위기에 되레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제주도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관광객이 SNS에 올라간 ‘맛집’만 따라가다 보니, 다른 음식점들이 다들 고사 직전”이라며 “극과 극의 가격이 낳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고 혀를 찼다.


문제는 갈치 가격이 아니다. 관광지라는 ‘특수’에 기대어 가격 편차가 심해지는 극심한 환경이 또 다른 갈등 구조의 사회를 잉태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관광객이 적어 ‘폐허’로 평가받던 제주도가 관광지로 인기를 끌자, 외지인의 돈이 물밀 듯이 밀려들면서 주민 간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는 것이다.


서귀포시에서 만난 한 제주도 도민은 “한 달에 이주민이 1000명 정도 내려오는데, 옆 사람 보지 않고 건물 올리는 데만 열중하면서 콩가루 도시가 된 기분”이라며 “관광지 개발도 중요하지만 인정도 중요한 것 아니냐”고 씁쓸해했다.


관광지는 돈을 벌겠다는 공급자와 돈을 쓰겠다는 수요자의 대칭성이 중요하다. ‘버는 것’이 목표의 전부가 되는 관광지는 추한 관광의 상징으로 남을 뿐이다.

4. [동아일보][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조언에 사로잡힌 육아

모처럼 한가한 토요일, 윤재와 아빠는 각각 한 손에 장난감 로봇을 들고 놀고 있다. 아빠의 로봇은 악당, 윤재의 로봇은 지구특공대. 윤재의 로봇이 아빠의 로봇을 공격하는 것 같더니, 아빠의 로봇 팔이 떨어져 나갔다. 아빠는 “각오해라”라며 윤재의 로봇을 온몸으로 부딪쳐 박살내버렸다. 화가 난 윤재는 아빠를 닥치는 대로 발로 찼다. 아빠는 잠시 생각했다. ‘친구 같은 아빠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참아야 하는 거야? 같이 때려야 하는 거야?’ 


영주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가계부를 쓰고 있다. 이번 달 교육비가 무려 3배나 초과했다. 전집을 안 샀으면…, 특별학습을 신청하지 않았으면…, 논술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잠시 후회가 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내가 이 돈 아까워하면 안 되지. 무릇 부모는 아이를 잘 가르쳐야 하는 거니까.’ 


민철이가 동생을 때렸다. 엄마가 왜 때렸는지를 물었다. 아끼는 조립식 장난감을 동생이 망가뜨렸다고 한다. 엄마는 민철이가 그 장난감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기에, 동생을 때린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차마 민철이를 혼내지 못했다. “그래, 그랬구나. 민철이가 많이 속상했구나”만 되뇌었다. 엄마의 머릿속에는 어제 TV에서 본 전문가의 말이 맴돌고 있었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육아는 너무 많은 명제에 사로잡혀 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혹은 아이를 잘 키워낸 유명인들이 ‘이렇게 키워라, 저렇게 키워라’라는 명제를 쏟아놓는다. 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 좋은 말들이 육아를 더 힘들게 하기도 한다. 더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육아 명제는 너무나 짧다. 중요한 내용이 압축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 구절만 보아서는 아무리 좋은 명제도 구체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명제의 ‘단어’에만 집착하여 잘못된 방식으로 적용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친구 같은 아빠’는 아빠들이 워낙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친구처럼 친밀한 시간을 되도록 많이 보내라는 뜻이다. 아이에게 부모의 사랑에 대한 깊은 믿음과 단단한 신뢰를 갖게 하기 위해서다. 친구처럼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다. ‘잘 가르쳐야 한다’는 명제도 무조건 빨리 많이 가르치는 것이 좋다는 얘기가 아니다. 여기서 가르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어떤 능력, 수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도덕이나 인성과 관련이 깊다. ‘아이 마음 읽어주기’는 아이의 생각, 마음, 감정 등을 수긍해주고 존중해주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수긍은 하되, 잘못된 행동은 안 되는 거라고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 따라서 모든 상황에서 최우선은 아니다. 아이가 위험할 때, 옳고 그른 것을 가르쳐줄 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할 때는 훈육이 먼저고, 마음 읽기가 나중이다. 마음 읽기는 아이의 역성을 들어주기가 아니다. 


‘좋은 부모’라는 말도 그렇다. 도대체 좋은 부모란 무엇일까? 너무나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이다. ‘좋은’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육아의 모든 것에 ‘좋은’을 적용하려고 들면 과잉 육아를 하기 쉽다. 당연히 육아가 버겁고 힘들어진다. 쉽게 화나고 자주 불안해진다.


육아 명제를 따르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명제로 인해 오히려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내 육아에 적용하기에 앞서 ‘내 육아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기간은 최소 20년이다. 그 긴 여정 동안 아이를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도와줄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 고민 속에는 나는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아이가 어떻게 자라기를 바라는가,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도 포함될 것이다.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나의 육아에 대한 기본적인 지침, 기준, 개념들이 정리된다. 그것이 쌓이면 가치관이나 철학도 생길 것이다. 명제는 그 이후에 내 삶에 적용해야 한다.


앞으로도 육아 명제들은 계속 나올 것이다. 광고 카피처럼 바로 따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자극적인 것도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내 육아의 철학은 무엇인가’부터 생각하자. 없다면 그것부터 고민해야 한다. 육아 명제는 ‘어떻게’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왜’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나의 육아에 또 하나의 화두를 던져주는 것이다. ‘이런 명제가 왜 나왔을까. 나의 육아에 더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뭘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하면, 명제의 좋은 점만 나의 가치관에 녹아들어 나의 가치관이 확장될 것이다. 더불어 어떤 육아 명제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이를 키우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5. [중앙일보][노트북을 열며]어느 연극 제작자의 죽음

뜻밖이었다. 지난달 말 극단 ‘적도’의 홍기유(46)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말이다. 딴 사람이라면 ‘이 바닥 워낙 힘드니깐…’이라며 솔직히 한 귀로 흘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고인은 꽤 잘나가는 프로듀서였다. 한때 ‘연극열전’을 기획해 대학로에 새바람을 일으켰고, ‘웃음의 대학’ 등 히트작도 몇 개 갖고 있었다. 연극인이라면 다들 오태석(연출가)이나 윤석화(배우)만을 떠올릴 때 엄연히 제작자도 있으며 “연극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다”는 걸 입증해 오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자살하다니,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죽기 나흘 전에도 같이 술 마셨어요. 평소처럼 껄껄댔는데 내 참….” 눈치 못 챈 지인들은 죄책감마저 든 듯싶었다. 손상원 정동극장장은 “힘들어도 티 낼 사람이 아니다. 자존심이 세다”고 했다. 겉으론 태연한 척했을지 몰라도 물려받은 땅을 대부분 저당잡히고, 빚마저 계속 쌓이면서 속으론 새까맣게 탄 모양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어떡하든 자기 돈으로 꾸려가던 그도 막판엔 “투자 좀 해 달라”고 몇 명에게 애원했다는 후문이다. 그마저 거절당하면서 무력감에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다.


연극이 가난하다는 걸 누가 모르랴. 하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까. 기획자 S는 “‘옥탑방 고양이’ 같은 롱런 레퍼토리를 내놓지 못하면 무조건 쪽박”이라고 일갈했다. 제작자 H는 “어쩌다 하나 터져봤자 1, 2억 번다. 나머지는 다 적자니 결국 작품을 할수록 빚이 늘어난다”고 했다. “아니 쇼 비즈니스 하면서 빚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누군 100억원 채무 있어도 잘만 버티던데. 아니면 나 몰라라 하면서 파산을 하든지. 홍기유는 너무 깔끔해.” 애도인지 한탄인지 모를 소리를 하는 이도 있었다.


대학로 제작자가 헉헉대는 것과 달리 연극계의 전반적 풍경은 의외로 평온하다. 아니 상차림만 보면 더 풍성하다. 국·공립단체가 연극을 자체 제작하기 때문이다. 명동예술극장(국립극단)을 필두로 남산예술센터가 뒤를 잇더니 최근엔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서울시극단)까지 적극적이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이들 공공기관이 일일이 수익성까지 따지진 않을 터. 상대적으로 넉넉한 예산 덕에 좋은 연출가와 배우도 모이게 마련이다. 넓은 의미의 연극 지원이다. 그런데 그 지원이 오히려 민간 제작자를 옥죄고 있으니 ‘지원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공공에 비해 규모·자본력이 떨어진 민간 극단은 자연히 박리다매 전략을 취하게 된다. 대학로에 1만원 이하 저가 연극이 범람하는 이유다. 공공은 고급으로 가는데, 민간은 덤핑으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하여 홍기유의 죽음은 연극의 양극화가 잉태한 불행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또한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웰메이드 상업 연극의 종언을 목도하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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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6월 22일 신문 브리핑 #


* 내일부터 이틀간 신문브리핑 및 해양뉴스 브리핑은 쉴 예정입니다. 꾸준히 읽으시는 분들께는 양해 부탁드립니다.


"행복은 작은 감사가 모여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 평생감사 카드



<< 정치/외교 >>

특이내용 없음



<< 경제 일반 >>

1. 영남권 신공항 건설이 기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제3의 선택’으로 결론남

-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연구용역을 맡은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과 국토교통부는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 최종보고회’를 열어 “영남권에 새로운 공항을 건설하는 대신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이 최적의 대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함

- 정부는 올해 하반기 김해공항 확장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추진하고 내년 공항개발기본계획 수립에 들어갈 계획임


2. 중국 최대 민영투자회사인 중국민성투자유한공사(중민투)가 온라인쇼핑몰 11번가를 운영하는 SK플래닛에 약 1조3000억원을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 중임

- SK텔레콤의 100% 자회사인 SK플래닛은 쿠팡, 티켓몬스터 등 소셜커머스업체들의 공격적인 확장 전략에 대항할 ‘실탄’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초부터 조(兆) 단위 투자 유치를 추진해왔음


3. 대우조선해양이 앙골라에 공급하기 위해 건조하고 있는 해양플랜트 2기의 인도 일자가 미뤄진 것으로 알려짐

- 발주사의 사정으로 연기됐기 때문에 지연보상금을 지급할 필요는 없지만, 1조원 규모의 자금 확보가 당분간 어려워지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대우조선이 추가 악재를 만났다는 우려가 나옴


4. 지출증빙을 위해 영수증을 챙겨서 풀로 붙이고 엑셀 파일로 정리하는 과정을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으로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는 영수증 관리 서비스 ‘자비스’가 나옴

- 법인 카드번호를 등록하고 영수증 사진을 찍어서 보내기만 하면 되며, 영수증에 있는 날짜, 상호, 금액 등을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자비스앤빌런즈가 채용한 전문 타이피스트가 대신 입력해주는 서비스임



<< 금융/부동산 >>

1.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이 자본 확충을 위해 이달 말 최대 1조원어치 조건부자본증권(코코본드)을 발행함

- 조선·해운업종 동반 부실에 따른 재무건전성 악화에 대비하기 위한 것임


2. 금융위원회가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을 위해 자기자본이 5조원 이상인 증권사에 종금형 수신상품(CMA)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음

- 종금형 CMA는 예금보험공사가 5000만원까지 원리금을 보장하는 상품으로, 만약 허용된다면 부채(레버리지) 비율을 높이지 않고도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기업대출 등에 활용할 수 있게 됨


3. 국제통화기금(IMF)이 올 들어 엔화 가치는 달러 대비 15% 이상 올랐기 때문에 저평가 상태가 상당 부분 해소되면서 엔화 가치가 적정 수준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함

- 앞으로 엔화가 더 강세를 보이면 일본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IMF가 세워줬다는 분석이 나옴


4. 21일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는 중국 외환거래센터가 중국 내 원·위안 직거래시장 조성자로 한국계 은행 5곳을 포함해 14개 은행을 선정했다고 밝힘

- 한국계 5개 은행은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중국법인, 산업은행(상하이지점)으로, 중국 시장에서 시장조성자는 호가 제시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환율도 시장조성자 은행 간 거래로 형성됨


5. 연금시장에서 고령화가 최대 변수로 등장하면서 최근 미국 연금시장에서 `퇴직연금 위험`을 상품화한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음

- 고령화에 따라 연금지급 기간이 지난 30년 동안 평균 12년에서 17.5년으로 늘어나면서 이러한 위험을 보험사 등이 인수해 관리하는 `퇴직연금 위험 전가`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2007년 이후 이 같은 위험 전가 계약이 영국에서만 1860억달러, 미국에서는 710억달러에 달함



<< 국제 >>

1. 중국 정보기술(IT) 기업 텐센트가 이끄는 컨소시엄이 핀란드 게임 개발사 슈퍼셀을 86억달러(약 10조원)에 인수하는 데 21일 합의함

- 슈퍼셀은 인기 모바일 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을 만든 회사임



<< 오늘 신문의 경제관련 용어 >>

* CMA(Cash Management Account)

- 본래 CMA는 종합금융회사가 고객으로부터 예탁받은 금전을 어음 및 채무증서 등에 운용하고, 그 수익을 고객에게 지급하는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금융상품을 지칭하는 용어로 20여년 전부터 종금사에서 사용하고 있었음. 하지만 증권회사에서도 고객의 유휴현금을 자동으로 MMF, RP 등에 투자하면서도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금융서비스에 CMA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현재는 예금자보호가 되는 종금사형 CMA와 예금자보호가 되지 않는 증권사형 CMA가 명칭 구분없이 혼용하여 사용되고 있는 실정임.

증권회사의 CMA는 CMA약정 계좌내 예치자금을 MMF, RP 등의 금융자산에 자동으로 투자(매수)하고 고객의 현금인출 요구시 자동으로 매도하여 주고, 연계된 은행계좌 또는 소액지급결제시스템에 참가한 증권회사의 고객계좌를 통해 급여이체, 인터넷뱅킹, 결제대금(공과금, 카드대금, 보험료 등) 자동납부, 자동화기기를 통한 입출금 등 각종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종합계좌서비스를 말함

- 출처 : 금융감독용어사전, 2011. 2., 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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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1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검사 1억' 이어 '판사 10억', 확산되는 법조 비리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방위 로비에서 비롯된 법조 비리 수사가 급기야 현직 부장급 검사와 부장판사 등 현관(現官)으로 확대되고 있다. 감사원, 경찰 등도 연루된 정황이 잇따라 제기됨에 따라 ‘게이트’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의 브로커로 활동했던 이동찬씨가 검거됨으로써 전관(前官)을 넘어 현관의 비리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 가는 형국이다. 전관예우는 현관의 도움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검찰의 현관 수사는 당연한 수순이다.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검찰은 정 대표가 2010년 지하철 입점 로비와 관련한 감사원의 서울메트로 감사를 무마하기 위해 부장급 박모 검사에게 전달해 달라며 지인 최모씨에게 수표 1억원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최씨는 수표를 현찰로 바꿔 박 검사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박 검사는 최근 뇌출혈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다. 수사 선상에 박 검사와 함께 박 검사의 고교 선배인 감사원 고위 간부 김모씨가 오른 이유다. 또 다른 현직 이모 검사는 정 대표의 도박 관련 정보를 정 대표에게 알려 줬다는 의혹 때문에 조사를 받았다. 구속 기소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와 고교 동문인 이 검사는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연과 지연이 얽힌 이 검사의 의혹에 대한 규명은 검찰의 몫이다.


현직 판사에 대한 수사도 활기를 띨 것 같다. 검찰은 브로커 이씨가 송창수 이숨투자자문 대표로부터 모 판사의 로비 명목으로 10억원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해 사실관계를 캐고 있다. 송 대표는 인베스트 사기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받았다가 1심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감형돼 풀려났다.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선고이기에 풀어야 할 대목이다. 최 변호사가 수임료 50억원에 선임계를 낸 사건이다. 또 정 대표의 항소심과 관련, 브로커와 저녁 식사를 한 사실이 드러나 사임한 부장판사도 조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찰의 수사는 지금껏 제 식구를 감싸려는 듯한 미온적인 태도 탓에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 검찰은 스스로 썩은 환부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단호한 각오를 다지고 수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 현관 수사는 한 치의 의혹이 없도록 있는 그대로 엄격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전관과 현관의 고질적인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까닭이다. 현관의 몸통, 지휘 계통에 주목하고 있다. 법조 비리 척결 차원에서다. 그래야 법 앞에 평등이라는 법치주의의 실현에도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2. 서로 역지사지 않으면 여야 협치 갈 길 멀다 

20대 국회가 어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시작으로 본격 가동됐다. 경제 침체와 불확실한 안보 상황 등 복합 위기 속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했다. 그러나 국회가 산적한 국가적 난제들을 제대로 풀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용렬하기 짝이 없는 친박·비박 갈등으로 총선에서 참패한 여당의 자중지란이 여전한 데다 말로는 협치를 다짐해 온 야권도 실제로는 여권 길들이기 공세를 펼 조짐을 보이면서다. 여든 야든 때 이른 대선 세몰이보다 민생을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음에도 19대 국회는 여야 간 무한 대치로 입법 마비 상태였다. 그런데도 국민은 지난 4·13 총선에서 어느 정당에도 과반수 의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흑백 논리에 매몰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양당 정치를 퇴출하고 국민의당을 포함한 여소야대의 3당 구도를 정립했다. 이는 합리적 토론과 절충으로 선진적인 ‘숙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라는 국민의 명령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야도 민생을 위한 협치를 한목소리로 강조하면서 이런 민심에 부응하는가 했다.


그러나 원 구성 후 여야의 행태를 보면 그런 다짐이 자칫 구두선으로 끝날 참이다. 무엇보다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의 칩거와 복귀 등 계파 갈등에 발목이 잡힌 듯한 여당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면 ‘식물국회’가 아예 뉴노멀이 될 판이다. 과반수 의석을 가졌던 19대 국회에서도 국회선진화법의 벽에 막혔던 터에 이제 소수 여당이 친박과 비박으로 갈려 소모전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국정의 무한 책임을 진 여당이라면 스스로 국정 동력을 소진하지 말아야 한다. 여당은 경위야 어떠하든 유승민·윤상현 의원 등에 대한 일괄 복당을 허용한 혁신비대위의 결정을 존중하는 선에서 내홍을 수습해야 할 것이다.


식물국회의 일상화를 막으려면 야권의 책임도 무겁다. 더민주 출신인 정세균 국회의장은 개원사에서 개헌론의 불을 지폈다. 하지만 야 3당 의석을 다 합쳐도 개헌선인 3분의2에 못 미치지 않나. 20대 국회에서는 여야가 협의하지 않으면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20대 국회 벽두부터 벌어지고 있는 청문회 개최 공방이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정의당을 포함한 야 3당은 가습기 살균제, 어버이연합 사태, 정운호 법조비리 사건, 백남기 농민 중상 사건 등 4대 청문회에 합의한 데 이어 대우해양조선 부실화와 관련한 청문회도 추가할 기세다. 그러자 정치 공세로 변질될 것을 우려한 여당이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들을 겨냥한 ‘구의역 참사’ 청문회 개최로 맞불을 놓고 있다. 하지만 가습기 사건을 제외하곤 대부분 검경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사안이라 상임위에서 거르지 않고 청문회부터 여는 것은 생산적 국회와는 거리가 멀다. 혹여 대선을 앞둔 이슈 선점 경쟁만 가열되면 민생을 위한 협치는 물 건너가고 만다. 20대 국회가 초장부터 무차별 폭로전이나 정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여야의 공동 책임임을 유념할 때다.

3. IS 국내 테러 위협 가벼이 넘겨선 안 돼

국가정보원은 그제 “ISIL(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 IS의 다른 이름)이 주한 미군 공군시설과 국민을 대상으로 자생적 동조 세력들에게 테러를 선동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2월 국내의 언론 보도 스크랩 업체를 해킹해 20명의 신상 정보를 털었으며, 이들 중 국내 복지단체 직원의 신상을 공개하기도 했다고 한다. ISIL은 지난해 11월에도 우리나라를 IS에 맞선 ‘십자군 동맹군’ 60개국에 포함한 뒤 테러 대상국으로 선동해 왔다.


IS는 최근 미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리비아·시리아군의 반격으로 그들의 본거지를 빼앗기는 등 세력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생적 테러를 선동, 이를 추종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 행위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총기 난사 사건도 IS를 추종하는 은둔형 외톨이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시리아와 예멘에서 발생한 연쇄 테러 사건도 맥을 같이한다. 아울러 영국 정보기관이 아시아 지역에서 테러가 발생할 것이라는 첩보를 정보기관에 통보까지 했다.


우리 국민에게까지 파고든 IS의 위협은 섬뜩하다. 우리나라도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그러므로 이번 위협을 그저 위협에 그칠 뿐이라고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국민을 테러에서 보호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국가의 의무다. 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예방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내 IS 동조 세력의 동향도 상시 파악하며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기 바란다. 테러 대상으로 지목된 사람과 단체를 보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최우선적인 일이다. 그런데도 신상이 공개된 복지단체 직원에 대한 보호 업무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니 책임 있는 국가 기관이라고 할 수 있겠나.


다행히 테러방지법이 지난 19대 국회에서 통과돼 지난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테러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며 정치권도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테러방지법에 따라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 기관은 테러를 막기 위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논란이 많던 테러방지법이 어렵게나마 국회의 문턱을 넘은 것은 IS뿐 아니라 북한의 테러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데 잘못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일 게다. 법을 남용하는 것도 경계해야겠지만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작은 허점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동아일보]

4. ‘미친 재건축’에 ‘떴다방’ 판쳐도 국토부는 주시만 하나

아파트 분양권 거래액이 1∼5월에만 17조 원을 넘어섰다. 분양권에 붙은 웃돈(프리미엄)만 8000억 원이다. 총 거래 건수 5만4187건으로 나누면 한 건당 평균 1464만 원의 웃돈이 붙은 셈이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갈 곳을 잃은 부동자금이 수도권의 아파트 분양으로 쏠려서다. 강남구(8384만 원) 송파구(7781만 원) 등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 중심으로 분양권 프리미엄이 치솟아 ‘미친 전셋값’에 이어 ‘미친 재건축’이란 말이 나돈다. 그런데도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주말 “이상 과열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단계적인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미온적 논평만 내놨다.


수도권 민간택지나 전국 공공택지에서 분양된 아파트는 계약 후 6개월∼1년 동안 분양권을 거래할 수 없다. ‘불법 거래 처벌’이라는 주택법을 비웃는 듯 아파트 청약 당첨자가 발표되는 당일 밤 모델하우스 인근에는 ‘떴다방’들이 불야성을 이룬다. 투기세력이 정부의 단속 의지를 비웃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법 거래는 분양계약자 이름을 그대로 둔 채 전매제한 해제 시점에 분양권을 매수인에게 넘기기로 공증을 한 상태에서 이뤄진다. 양도소득세를 줄이기 위해 실거래가보다 낮춰 신고하는 ‘다운계약’은 보통이다. 


불법 전매의 밑바닥에는 정부가 ‘부동산 거품’이 터질 것을 두려워하는 한 절대 단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음습한 공감대가 깔려 있다. 정부가 세종시 공무원들의 불법 전매도 처벌하지 않는 판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더 강력한 단속을 하는 것도 명분이 서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대출규제 대상에서 분양아파트에 대한 중도금 대출을 제외하면서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갑자기 모든 대출을 죄는 식으로 급선회한다면 물 온도를 적절히 맞추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샤워실의 바보’가 되고 말 것이다. 지역별 시차를 두고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적용 대상에 중도금 집단대출을 점진적으로 포함시키는 정책 조정이 시급하다. 돈과 시간이 있는 사람들만 분양권 불법 거래에 골몰하는 모습을 보며 대다수 국민은 침체된 주택시장에서 분노하고 있다.

5. 北대리인처럼 탈북자들 납치인지 따지는 民辯

4월 초 중국 내 북한식당인 류경식당을 집단 탈출해 국내 입국한 12명의 여종업원이 자유의사로 한국을 택한 것인지, 북한 주장대로 국가정보원의 납치인지를 가리는 심리가 오늘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신청한 인신 보호 구제 심사 청구를 법원이 수용했다지만 탈북자들의 입국 경위를 법정에서 따지는 것은 초유의 일이다. 


국정원은 ‘탈북 여종업원들이 북에 남겨둔 가족에 대한 걱정 때문에 공개 장소에 나서기를 원치 않는다’며 변호인을 대신 법정에 내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한국행을 결정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경우 가족들이 ‘반역자 가족’으로 몰릴 수 있다는 점에서 민변의 소송은 적절하지 않다. 정신병원도 아니고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한국사회 적응 훈련을 하고 있는 탈북자들이 인신 보호 구제의 대상인지도 의문이다.


북 당국은 ‘남측의 납치’라고 주장하며 가족들을 내세워 탈북 여성들과의 대면 및 송환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류경식당의 동료 여종업원 7명은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이 남한 당국의 지시하에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이들은 함께 탈북하려다 막판에 포기한 사람들이다. 류경식당 종업원들 중 북으로 돌아간 이들도 있다는 것이야말로 국정원이 집단 탈북자들을 강제로 데리고 오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도 민변은 탈북 종업원들의 접견을 국정원에 요구하다 거부당했다며 마치 북의 대리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해외 친북 인사들을 통해 북에 있는 이들의 가족 위임장을 근거로 인신 보호 구제 심사를 신청했다. 자유의사에 따라 보호를 요청한 북한 이탈 주민은 변호인 접견 대상이 아니고, 합동신문 과정에 있는 탈북자를 변호인이 접견한 전례도 없다. 


류경식당 집단 탈북자들에 대해 국정원이 비밀주의로 일관해 불필요한 의혹을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국회 정보위원회도 이미 이들의 자유의사를 확인했다. 민변이 납북자들의 가족을 위해서도 이렇게 발 벗고 나선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6. 박 대통령, ‘죽은 신공항’ 대선공약서 살려낸 책임 통감해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어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영남권 신공항에 대해 “인천공항에 이어 세계적 국제공항으로 건설돼야 한다”며 지역 갈등을 부추기는 시도지사들에게 자제를 당부했다. 그러나 서병수 부산시장은 정 원내대표의 연설이 끝나기가 무섭게 “발표가 임박한 신공항 입지평가 용역이 특정 지역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면서 부산 가덕도에 신공항을 유치하지 못하면 시장직을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지도부의 말발이 먹히지 않는 새누리당의 현주소다.


서 시장은 “이변이 일어나면 승복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시민 불복종 운동까지 지휘할 태세다. 가덕도 유치를 주장하는 부산과 경남 밀양 유치를 촉구하는 대구·경북·울산·경남의 5개 시도 광역단체장은 지난해 이미 입지평가 용역 결과가 나올 때까지 유치 경쟁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 바 있다. 서 시장의 사퇴 운운은 명백한 합의 위반이다.


이에 질세라 대구·경북·울산·경남 4개 단체장도 지난달 부산의 ‘합의 파기’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5개 지역은 과거부터 새누리당 ‘텃밭’ 지역이고 단체장 모두 여당 소속이다.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으로 나뉘어 지긋지긋한 계파 투쟁을 벌이는 새누리당이 소속 대통령이 내걸었던 대선 공약 정책을 두고도 둘로 쪼개질 듯 막장드라마를 연출한다.


서 시장은 가덕도에 신공항 유치가 결정되면 대구·경북에 지역공항을 건설하자는 제안을 ‘상생안’이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신공항 문제가 또다시 주고받기 식으로 해결되는 나쁜 선례를 남겨선 안 된다. 그러지 않아도 여객은 없고 세금만 잡아먹는 공항들이 전국에 많이 있다. 영남권 공항은 가덕도든 밀양이든 하나를 선정해 인천공항 다음가는 허브공항으로 키워야 한다. 여객과 정부 지원이 분산되면 어느 곳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신공항 문제가 이토록 국가 갈등의 주요 현안으로 커진 것은 박 대통령 책임이 작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지역 갈등이 불거지자 2011년 대국민 사과까지 하며 백지화했다. 그러나 이듬해 대선에서 박근혜, 문재인 후보 모두 표심 잡기에 급급해 건설을 약속하면서 신공항 건설 문제가 되살아났다. 


박 대통령은 “정치적인 고려 없이 국제 기준에 맞춰 누구나 수긍할 수 있게 정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당장 친박인 서 시장부터 불복 운운하고 있다. 대선 때 철석같이 약속했다가 문제가 곪아 터지도록 사실상 방치하고, 총선 직전 진박(진실한 친박) 후보들이 “대통령 선물” 운운해도 방조했다. 박 대통령은 신공항 입지 발표가 나기 전에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당내 분란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데일리]

7. 현대차, 특허 사냥꾼의 먹잇감 되나

현대·기아차가 미국 특허전문회사들에 의해 잇따라 소송전에 휘말리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어댑티브 헤드램프 테크놀로지스(AHT)는 지난해 7월 자사가 개발한 헤드램프 기술을 현대·기아차가 도용했다며 델라웨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기아차는 2012년에도 하이브리드 특허 침해로 피소돼 지난해 12월 미국 특허전문업체 파이스(PAICE)와 300억원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분쟁을 마무리했다. 한숨 돌리는가 했더니 또다시 특허침해 소송 위기를 맞은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특허소송 위기를 알리는 전주곡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른바 ‘특허 사냥꾼’들은 그동안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을 주된 먹잇감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자동차와 IT기술 융합이 가속화하면서 이젠 소송 대상이 자동차 업계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한국지식재산보호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외 특허관리 전문회사의 기술특허 소송 가운데 현대·기아차를 상대로 한 소송이 42건(현대차 26건·기아차 16건)으로, 완성차 회사 중 포드(44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특허 사냥꾼이 현대·기아차를 노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군침을 흘릴만한 먹잇감이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5월 현재 미국 시장점유율이 8.7%를 넘어섰다. 겉으로는 내로라하는 자동차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특허소송 배경인 원천기술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특히 전장 부품은 물론 요즘 자동차업계 화두인 친환경·스마트로 넘어오면 기술 경쟁력이 더욱 떨어진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한 치 양보 없는 소송전에서 확인됐듯이 기술 특허는 회사의 운명을 좌우한다. 특허전쟁에서 이기려면 원천기술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대·기아차도 예외는 아니다. 경쟁업체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한편 원천기술을 얻기 위한 노력을 펼쳐야 한다.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최강국이다. 스마트카 기반도 결국 ICT다. ICT 업계에서 스마트카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을 찾아 적극 지원하고 성과를 공유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점입가경인 글로벌 특허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혁신만이 정답이다.

[매일경제]

8. 한국 양극화 해소, 노동시장 개혁서 해답 찾아라

20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노동·복지구조 개혁을 강조했다. 20대 국회가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를 제시한 만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도 책임 있는 자세로 이런 민생 문제에 대한 해답부터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정 원내대표는 "우리 노동시장이 정규직 일자리를 과보호하면서 비정규직 처우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평균 임금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기업의 75%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53%로 떨어졌다. 또 비정규직의 평균 월급은 정규직의 43%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소득 상위 10%의 평균 소득은 2013년 하위 10%의 10.1배에 달했다. 이런 소득 불평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정 원내대표는 정규직·비정규직, 원도급·하도급, 대기업·중소기업 노동자가 각각 어떤 일을 하고 얼마를 받아가는지 표시하는 '일자리 생태계 지도'를 그리자고 제안했는데 이 또한 옳은 방향이다. 비정규직·중소기업·여성 근로자 등 노동시장 약자에 대한 실태 파악부터 정치적 고려 없이 정확하게 이뤄져야 할 일이다. 정 원내대표는 모든 노동자를 한꺼번에 대기업 정규직처럼 대우하는 '상향 평준화'는 어려운 만큼 기득권을 양보하면서 '중향 평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파견근로자보호법 등 노동개혁 4법도 국회가 이른 시일 내에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인 방향이면서 시급하게 달성해야 할 과제들을 정확하게 짚었다. 다만 정 원내대표는 이런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노사정 3자 간 사회적 대타협을 제안했는데 소모적인 방안으로 들린다.


노사정위원회는 2014년 9월 노동시장 구조개선특위를 설치한 뒤 모든 개혁 방안들을 놓고 토론하고 또 토론한 상태다. 심지어 노사정 대타협안까지 발표했으나 임금체계 개편, 근로자 파견 범위 등 구체적인 사안에 이르면 기득권에 막혀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했다. 또다시 노사정 대타협에 맡겨본들 갈등만 확인하고 시간만 허비할 뿐이다. 이제는 국회가 책임지고 전면에 나서서 노동개혁을 이뤄야 한다. 노동개혁 4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도 책임 있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9. 갈 곳 잃은 돈 1000兆 생산적 투자로 물꼬 터야

한국은행 기준금리와 시중 실세금리가 사상 최저로 떨어지면서 갈 곳을 잃고 떠도는 돈이 크게 늘고 있다. 현금과 요구불 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머니마켓펀드(MMF) 설정액을 비롯한 단기 대기성 자금은 모두 10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540조원)의 2배 가까운 수준이다. 같은 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40% 남짓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매우 급격한 증가세다. 


이제 수시입출식 예금 금리는 0.01%까지 떨어졌다.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도 1% 아래로 떨어져 물가 상승과 세금을 고려한 실질 이자는 마이너스다. 사정이 이러니 시중 자금은 언제든 갈아탈 수 있는 단기 금융상품이나 투기적 거래에 몰릴 수밖에 없다. 기준금리 인하 후 일주일 새 5대 은행 예수금이 10조원이나 늘어난 것이나 아파트 분양권 웃돈을 노린 단타 거래가 과열로 치닫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 같은 초저금리에도 민간 소비와 설비 투자는 살아나지 않고 실물 경기와 괴리된 머니게임으로 자산시장의 거품만 일어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이미 위험한 수준에 이른 단기 부동자금이 생산적인 부문의 장기 투자로 흘러가도록 물꼬를 잘 터줘야 한다. 


무엇보다 3200조원 가까운 금융자산을 보유한 가계가 단기 고수익을 노린 투기에 휩쓸리지 않고 장기적으로 중간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투자상품을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 지금처럼 주가연계증권(ELS)과 같은 파생상품에 100조원이 몰리고 아파트 분양권 단타족이 급증하는 것은 그만큼 믿을 만한 중위험·중수익 상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좀비기업들을 신속히 정리해 상장기업에 대한 투자자 신뢰를 높이고 벤처기업을 키우는 크라우드펀딩을 활성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이나 가계는 미래 불확실성이 클수록 투자를 꺼리게 되므로 정권 교체기 주요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10. 서해 남북 어민 수산물 공동판매 제안 전향적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수역에서 남북한 어민의 수산물 공동 판매를 추진하자는 유정복 인천시장 제안에 눈길이 쏠린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어족 자원을 보호하면서 연평도 어민의 생업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목적 카드다. 북한 어민들이 잡은 수산물을 연평도 어민들이 저렴하게 사들여 대신 팔게 되면 남측 어민들에게는 물량 확보를 해결해주고, 북한 어민들은 판로 확보로 조업에 더 적극 나서 남북이 공동으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막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유 시장도 말했듯이 당장 실현되기는 어렵겠지만 성사되기만 한다면 민간 협력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으로 남북 화해의 접점이 될 수도 있다.


중국 어선의 서해 NLL 수역 불법 조업은 최근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한강 하구 수역에서 우리 군과 해경 그리고 유엔군사령부로 구성된 민정경찰이 대대적인 중국 어선 퇴거 작전을 벌이며 단속에 나선 효과가 서해 연평도 인근까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우리 어선들이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 2척을 나포해 연평도로 끌고 와 해경에 넘긴 사건 후 정부는 뭐하고 있느냐는 비난 여론에 단속의 고삐를 조인 점도 작용했다. 


남북 간에는 2007년 10·4남북공동선언에 서해 NLL 해역에 서해공동어로구역 지정을 약속한 바 있다. 남북 어민의 공동 조업을 허용하자는 합의였지만 이후 남북 관계 경색으로 흐지부지됐다. 이와 관련해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4일 중국 어선 불법 조업 방지 대책으로 남북공동어로수역 설치를 주장하고 나섰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공동어로구역이 어렵다면 남북 간에 조업 규칙이라도 합의해 수산물을 거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자고 가세했다. 유 시장은 국회를 방문해 이번 방안을 설명하고 통일부와 해양수산부에도 정식으로 건의하겠다는데 관련 부처와 청와대가 귀담아듣고 실행 방안을 강구해보기를 촉구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경제][무언설태]아무리 자식이 짐이라지만...

​자식도 버릴 수 있는 인스턴트 시대인가요? 프랑스 남성이 한국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살배기 아들을 공원에 버렸다가 인천 경찰서에 구속됐습니다. 이 프랑스인은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한국인 여성과 동거하다 아이를 낳았으나 지난해 결별했답니다. 이후 프랑스에서 홀로 아들을 키우던 그는 아이를 친엄마에게 맡기려 했으나 거절당하자 공원 벤치에 버렸다고 합니다. 현대사회 젊은 남녀의 생명관이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일본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모의고사에서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를 불법점령하고 있는 나라를 택하라”는 4지 선다형 문제가 등장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습니다. 통신은 “역사적 경위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용어 암기를 우선시하게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지식인과 학부모들에게서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네요. 그나저나 똑똑한 일본 어린이라면 정답을 일본으로 골랐겠죠.


“아버지 돌 떨어져유∼.” 한국신용평가가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등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렸군요. 대우조선은 BB+에서 BB로, 현대중공업도 A+에서 A로 각각 내렸습니다. 등급 강등의 이유로 대우조선해양은 경영정상화의 불확실성이 증대된 점이, 현대중공업은 수주부진 장기화 우려를 들었답니다. 이중 우리가 몰랐던 내용이 하나라도 있었나요? 뒷북치는 데는 신용평가사 만한 곳이 없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전관예우를 차단하겠다며 판검사 출신인사에 대해 퇴직 이후 아예 변호사 개업을 금지하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우선 검사장·고등부장 이상의 고위직은 변호사 활동을 못하게 하되 현직 판검사의 정원을 70세로 크게 늘려 최대한 공직에서 일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직 변호사들은 신규 경쟁자가 들어오지 않으니 좋고, 검찰은 정년이 대폭 늘어나니 역시 머리 좋은 법조인들입니다.

2. [매일경제]고통과 위로의 영화 '우리들'

예상치 못하게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감상한 이유가 컸다. 나는 괜히 포스터를 원망했다. 눈물에 대한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두 소녀를 에워싼 고운 빛깔의 봉숭아꽃, 그리고 녹잎들. 햇살을 받아 투명함까지, 빛과 색들은 영화에 아픔일랑 없을 것이라 예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는 아팠다. 다분히 현실적이었고 그래서 공감도가 컸다. 가정(환경)에서의 차이, 거기에서부터 기인되는 아이 개인의 의식, 집단 따돌림, 기타 가정과 사회의 문제들. '우리들'은 초등학생 여아들의 집단 따돌림을 주 소재로 다루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도처에서 널려있는 '사회적' 문제들을 알알이 짚어낸다.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친구들에게 선한(어쩌면 굴복) 자세를 취한다. 


성인인 지금에서야 인간관계에 있어 본인 의지대로 대상을 선택하고 나름대로의 처세를 취하겠지만 학창시절에는 다르다. 공부를 잘 하고, 이성친구와의 교제가 원활한 것 보다 동성 친구 간의 원활한 관계가 가장 중요했다. 좋은 교우관계를 갖는 건 권력을 쥐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나 할까. 친구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힘 있는' 친구들을 우리는 '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선'은 친구가 없다. 즉, 학교에서 힘이 없다. 그녀의 학교생활을 무기력하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거기에 친구들의 눈치까지 봐야 할 신세다. 영화의 첫 신(scene)에서 쉴새 없이 눈치를 보는 선의 표정은 선의 학교생활 전반을 압축한다. 그런 그녀에게 힘이 되어 줄 친구 한 명이 등장한다. 바로 '지아'라는 친구다. 친구가 없는 선과 새 친구가 없는 지아는 그렇게 친구가 된다. 선과 지아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나가며 가까이 지내지만, 결핍은 소녀들 개인의 내면에 또 다른 응어리로 자리잡는다. 경제력이 약한 선은 갖고 싶은 걸 살 수 있고 학원을 다닐 수 있는 지아에게 열등감을, 지아는 선 모녀의 단란한 모습에 부러움과 시샘을 느낀다. 두 소녀는 상황과 심경의 곡절로 인해 관계의 변화를 맞는다.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두 소녀의 가정사와 선과 지아를 따돌리던 '보라'의 사정도 보여준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고민과 상처가 있다. 결국 영화 ‘우리들’은 이 문제를 꼬집어 낸다. 우리가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선과 지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고민과 아픔이 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안고 있는 고통들은 관계라는 치료제를 통해 치유되어야 할 것들이다. 선의 동생 '윤'은 덩치가 큰 친구와 노느라 표면적 상처를 얻지만 마음의 상처는 받지 않는 천진한 어린이다. "그럼 언제 놀아? 친구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친구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나 그냥 놀고 싶은데!"라는 대사에서 우리 모두는 움찔했을 것이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사회적 의식, 개인의 의지보다 타인의 시선으로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피동적인 우리들을 반성하게 만드는 대사다.


영화를 보며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를 둘러싼 관계(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선이 처한 환경이 나의 어린 시절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해서, 그녀가 감내해야 할 고통의 정도를 잘 알아서, 뜨거운 눈물이 나온 것도 있다. 영화 '우리들'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된 시기에 이르기까지의 성장 통을 모두 담아낸다. 그 안에는 공감과 연민, 고통과 슬픔 모두가 존재한다. 게다가 감초 역을 톡톡히 해내는 '윤'은 귀여운 매력으로 감상자들에게 웃음까지 선사한다.


'나의 우리들(관계)'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우리들'. 개인과 사회문제 모두를 아우르는 이 영화는 알찬 작품이다. 어떤 장면 하나 버릴 것 없는 영화, 미사여구 없이도 아름다운 눈물을 쏟게 만드는 영화다. 상처 하나 없는 사람 없듯 위로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 또한 없다. 아픔의 조각들이 물들어 있는 듯 보이지만, 따듯한 시선이 배어있는 '우리들'은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본다면 더욱 좋을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3. [동아일보][광화문에서/김갑식]좋은 관객? 나쁜관객?

“프랑스 공연을 마치고 왔는데 가장 크게 느낀 게 뭔가요?”


“‘좋은 관객’을 보고 왔다는 겁니다.”


지난달 김승업 충무아트센터 사장과 안호상 국립극장장과의 점심 모임이 있었다. 마침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공연 뒤 첫 대면이라 자연스럽게 화제가 그쪽으로 옮아갔다.


안 극장장의 대답은 의외였다. 20년을 훌쩍 넘긴 ‘기자 짬밥’으로 예측한 답변은 공연 성과였다. 아니면 프랑스 공연장의 시설이나 요즘 파리 공연계 분위기 정도였다.


공연 장소인 테아트르 드 라빌은 현대 무용의 거장 피나 바우슈나 머스 커닝햄의 정기공연이나 화제작들이 오르는 곳이다. 관객의 호불호가 분명해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연 도중 퇴장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들이 의자에서 불쑥 일어나면서 생기는 소리는 공연자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고 한다.


좋은 관객에 대한 안 극장장의 설명은 이렇다. “창극은 대부분 처음 본 공연일 텐데도 관객 1000여 명이 금세 웃으며 작품에 빠졌다. 공연장 측에서 우리 작품을 선택한 이유와 배경을 잘 이해하고 있는 관객들이었다.”


동석한 김 사장은 공연장과 관객의 관계를 동반자라고 정의했다. “공연장도 음식점처럼 자주 찾는 ‘단골손님’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벗’이 될 수 있는 관객들이 좋은 관객이죠.” 그는 몇 년 전 김해문화의전당 사장 재직 시절 뮤지컬 ‘미스 사이공’ 때 만난 그 벗들을 잊지 못했다. 부산에서 가깝지 않은 거리임에도 공연장을 찾은 일행은 이곳에서 작은 모임을 진행하면서 “큰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2주 전 국립극장에서 열린 ‘음악이 있는 생큐 파티’도 좋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행사였다. 국립극장 패키지 티켓을 구입한 관객 50명을 상대로 공연장 로비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국립창극단과 국립무용단 등 상주 단체의 예술감독과 주역들이 참석해 관객들과 격의 없는 대화도 나눴다. 주요 공연의 장단점과 주역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너무 잘 알고 있어 기쁘면서도 부담이 느껴져 ‘무서웠다’는 게 안 극장장의 말이다.


요즘 베스트셀러 순위에선 ‘채식주의자’(한강)와 ‘종의 기원’(정유정)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독자들이 한동안 국내 소설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종의 기원’ 출간 뒤 얼마 되지 않아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이 발표됐다. 정 작가가 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 묻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이 책을 출간한 은행나무 측 설명은 다르다. 맨부커상의 화제성에 밀려 순위는 내려왔지만 절대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두 작품이 ‘쌍끌이’로 출판 시장을 이끌면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긍정의 도미노’ 현상이다.


작품과 관객, 또는 독자와의 관계에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의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다. 좋은 작품이 있어야 좋은 관객들이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작품이 좀 모자라도 인내하고 격려하는 좋은 관객이 있어야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반대의 경우 꽤 명확하다. 작품 탓, 관객(독자) 탓으로는 문화와 그 사회의 수준을 높일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 한국 영화는 한동안 볼 게 없다는 비난에 시달렸고, 최근까지 한국 소설도 그랬다.


좋은 관객이든 나쁜 관객이든 관객은 있어야 한다. 그 계기가 무엇이든 한번 찾아온 손님을 단골손님, 나아가 벗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4. [동아일보][챈들러의 한국 블로그]美 총기만큼 불안한 韓 안전불감증

“혹시 미국 집에 총을 갖고 있어요?” 


한국인 친구들이 내 미국 생활에 대해 궁금해할 때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총기에 노출돼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나 또한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댁에 가면 항상 문 위에 소총이 걸린 걸 보았고, 지금도 동네 스포츠용품 가게에만 가도 거의 모든 유형의 총을 등록해 구입할 수 있다. 경찰도 소총, 권총 등으로 항상 무장하고 다니기 때문에 그들을 때때로 두려워하게 된다. 


미국은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나라이지만 사회 안전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올랜도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은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보여 줬다. 그러나 미국인의 총기 소유는 헌법에도 있는 국민의 기본 권리이기 때문에 규제가 쉽지 않다. 총기 소유는 이제 미국인들에겐 삶의 일부분이 됐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언제든 폭력적이고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지금은 총기 소지에 엄격한 한국 생활에 어느덧 익숙해진 것 같다. 물론 한국에서도 위험한 사건 사고가 가끔 일어난다. 이번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은 정말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보며 이렇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쉽게 총기를 소유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더 큰 사고가 일어났을지 생각해 봤다. 


한국에선 그래도 일반인들의 총기 소유가 금지돼 있어 미국보다 항상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콘서트나 클럽 등 사람이 많은 곳에 가도 총기 난사와 같은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밤늦게 길거리를 다녀도 습격당할 걱정을 안 할 것이다. 미국에 비해 한국에선 경찰을 그만큼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 같다. 미국도 한국처럼 총기 소유를 엄격하게 관리하면 올랜도 총기 난사 사건과 같은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은 총기 사건에 대한 문제가 없는 대신 다른 유형의 안전 문제를 갖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는 ‘안전 불감증’에 대한 문제가 자주 떠오른다. 한국에서 오래 지내면서 나 또한 안전 불감증 상황을 많이 목격한다. 학교 근처 골목길의 횡단보도 신호등이 파란불이어도 그냥 지나가는 택시를 자주 보게 되고, 길거리에 있는 소화전 바로 앞에 주차하는 차도 많다. 또 집 뒤에 있는 공사장에서 헬멧을 쓰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하루는 공연장을 갔는데 비상구 앞에 상자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런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더 큰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세월호와 판교 공연장 사고는 한국의 안전 의식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대형 사고라고 생각한다. 안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관계자들뿐 아니라 시민들의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 때문에 최근까지도 이런 사고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만 같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처음에 가장 어색했던 것은 ‘빨리빨리’ 문화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더 빨리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가끔은 안전이 뒷전으로 간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제는 이 ‘빨리빨리’ 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구의역 스크린도어(안전문) 사고가 났을 당시 나는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있었다. 당시 지하철은 한 정거장에 10분씩 멈춰 있었다. 그때 나는 무슨 일이 생긴지도 모른 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과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에 불편했고, 약속 시간에 늦어 불안했다. 그랬던 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물론 한국은 미국처럼 총기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안전 조치와 의식의 문제는 여러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한국은 산업과 기술의 빠른 발전 덕에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안전 문화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성장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미국의 안전 의식이 굉장히 높다는 말은 아니다. 미국은 단지 총기 소유로 인한 위험 요소가 많기 때문에, 그 위험을 항상 의식하면서 산다. 


한국도 경제적, 사회적으로 발전한 만큼 위험 요소들은 곳곳에서 점점 더 생겨날 것이다. 안전 의식을 중요시하며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관리해 나간다면 조금 더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 싶다.

5. [동아일보][한옥에 살다/박선주]화려한 자태보다 존재의 이유를 보니…

한옥을 공부한다고 시작한 지가 30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 처음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꽤 긴 시간들이 3배속으로 돌린 무성영화 필름의 잔영처럼 눈앞을 지나간다. 그중에 어떤 놈을 골라 한옥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볼까? 섬을 돌아다니며 길섶에서 우연히 만났던 ‘방-정지(부엌)’ 달랑 두 칸의 오두막집부터 너른 마당에 몇 개씩 채를 거느린 고래등 같은 기와집까지 제 나름의 시간과 삶을 품은 우리의 집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고민스러웠다.


전통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우리가 예전부터 살았던 집, 먹었던 음식, 입었던 옷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사실 그것들이 우리에게 오기보다는 우리가 그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그러나 그 방법과 초점에서 바른 길을 걷지 못한다면 전통을 지키는 일은 도리어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무엇이 정답인지를 알 수 없는 시간이 지금이 아닌가 싶다. 북촌 한옥마을을 찾아 그것을 전통한옥이라 배우고, 치마저고리면 한복인 것처럼 어디에도 없던 옷을 한복이라 입고 궁궐을 찾는 이들처럼 말이다.


몇 해 전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에 야외전시장을 꾸미면서 한옥이 들어갈 자리를 비워 두었다. 넓지 않은 크기지만 그 위치가 박물관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누구나 지나는 길이라 매우 중요한 입지였다. 그곳에 집을 짓기로 했다. 땅의 크기에 맞는 신축이 거론되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 중 적당한 것을 그대로 지어 보자고 했다. 그게 뭔 의미가 있을까? 영혼 없는 복제에 불과한 것인데…. 사람의 이야기가 함께 있는 집을 찾아다녔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순한 기원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2010년 3월 경북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서 오촌댁을 만났다. 금방이라도 땅속으로 들어갈 듯한 그를 보는 순간, ‘아, 이거면 되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험했던 집이 왜 그리도 맘에 들었던지.


뜻을 이해해 준 집안의 결정으로 오촌댁은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되어 영덕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박물관 마당으로 이건(移建)되었다. 공사 기간 중 집의 나이를 알 수 있는 상량이 적힌 부재와 명문기와까지 나와 집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실물까지 접하는 호사를 누렸다.


오촌댁은 그렇게 부활하게 되었다. 경북 영덕에서 1848년에 태어나 162년 동안 그 자리에서 영양 남씨 일가의 생활을 고스란히 담아 왔고 땅속으로 스러져 갈 운명 직전에 자신의 몸체를 그대로 지니고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집을 이루고 있는 작은 부재는 물론이고 남겨져 있던 소소한 살림살이까지 모두 함께 가져왔다. 집에는 삶이 녹아 있고, 그 삶의 기록들은 그곳에 거주했던 가족들이 사용했던 물건에 그대로 묻어 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버릴 수가 없었다.


한옥이 좋아 찾아다니는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집을 보면 그저 집의 외관에 감탄하며 그 자태를 감상하기에 바쁘다. 나도 초보 시절에는 당연히 그랬다. 발품을 팔아 찾아간 집 앞에서 그들이 내뿜는 모습에 일단 매료되어 그냥 찬사의 눈길을 주고 오기 바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집이 거기 있는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라도 마루 끝에 앉아 집이 바라보는 같은 풍광을 눈에 넣는다. “나 여기 이런 게 좋아 앉아 있어요”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집은 우리가 보기 좋아 거기 있는 게 아니라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좋기에 터를 잡은 것이다. 집은 객관적인 사물로 여기기엔 그 속에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생명체라는 이야기다. 집과 같은 입장에서 앞에 펼쳐진 산과 내를 볼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우리 한옥이 지닌 의미에 동화되어 함께 느낄 수 있다.


집은 분명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하늘, 땅과 교감하면서 성장한다. 사람처럼 외형적인 성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단단하고 야무진 완성체가 되어 간다. 특히 한옥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래서 지금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에 앉아 있는 오촌댁은 이제 완전히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박물관을 찾는 많은 이들을 건강한 모습으로 맞이하고 있다. 마치 예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언제 보아도 듬직하고 대견해서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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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6월 21일 신문 브리핑 #


"땅도 메마르면 쩍쩍 갈라지듯, 사람도 감사할 줄 모르면 쉽게 메마르게 된다. 감사로 마음의 밭을 촉촉이 적셔라. 감사의 열매가 맺히리라."

- 평생감사 카드



<< 정치/외교 >>

특이내용 없음



<< 경제 일반 >>

1. 20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화장품, 웨어러블 기기(착용형 스마트기기) 등 7대 수출 유망 고급 소비재 업종을 선정해 연구개발(R&D)에 예산 3000억원 이상을 집중 지원하는 내용의 ‘프리미엄 소비재 수출 활성화 방안’을 마련, 향후 열리는 무역투자진흥회의에 올릴 예정임

- 정부가 7대 수출 유망 소비재 업종을 선정해 연구개발(R&D)을 집중 지원하기로 한 것은 앞으로 수출 주도 업종이 과거 전통 제조업에서 고급 소비재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 따른 것임


2. 카카오가 기존 대리운전업체 불공정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제소 등 법적 대응을 불사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힘

- 이달 초부터 지금까지 카카오로 접수된 피해 사례는 220여 건에 이르며, 접수된 내용은 카카오드라이버 기사 회원에 대한 다양한 협박 사례로서 가입·운행 시 퇴사를 종용한다는 공지를 비롯해 대리운전을 하러 나갈 때 지원되는 순환차량도 타지 못하게 하겠다는 내용도 있음



<< 금융/부동산 >>

1. 국민연금이 올해 4조1000억원인 국내 주식시장 신규 투자 규모를 내년에 2000억원으로 대폭 삭감하고 해외 주식 투자 순증 규모는 올해 10조8000억원에서 15조6300억원으로 44.7% 늘리기로 함

- 연간 40조원 이상 불어나는 연금 자산을 국내에 오롯이 투자하기가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지만, 국내 최대 ‘큰손’인 국민연금의 이 같은 결정 자체가 박스권 장세를 부추기는 악순환을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임


2. 금융감독원은 소비자 불만이 많은 변액보험 상품구조와 판매·모집절차 등에 대한 개선 방안을 20일 내놓음

- 소비자의 투자 성향을 분석해 원금보장을 요구하는 소비자에게는 변액보험 권유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기로 했으며, 계약자가 언제든 펀드 선택·변경과 관련해 자문할 수 있도록 오는 4분기부터 변액보험 펀드주치의 제도를 도입하여 전용 콜센터를 설치하고 전문가를 배치해 소비자에게 펀드 구조, 리스크 등을 알리고 펀드 변경 상담을 해줘야 함


3. 부동산펀드가 국내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살 때 현금을 빌려준 뒤 이자수익을 챙기는 사모부채펀드(PDF: private debt fund)가 국내 처음으로 출시됨

- 금융회사 등으로부터 부실화한 부동산 담보대출채권(NPL)을 사들이거나실물자산을 매입할 때 투자금액의 60~70%를 대출해주는 형태로 운용하게 되며, 하나자산운용은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3000억원 규모의 PDF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다고 20일 밝힘


4. 2014년 4월 산업단지 지정 해제로 중단됐던 평택 브레인시티 개발사업이 2년여 만에 재개됨

- 브레인시티 개발사업은 경기 평택시 도일동 일대 482만4912㎡에 성균관대 캠퍼스를 포함해 지원시설용지, 연구시설용지, 첨단산업용지, 공동주택용지(1만4000여가구) 등을 조성하는 대규모 개발사업으로서, 총사업비 2조4213억원을 들여 내년 6월 착공해 2021년 말 완공할 계획임



<< 국제 >>

1. 7년간 이어진 미국 경제의 확장세가 끝나고 내년부터 경기침체(리세션)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음

-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고용 증가세가 둔화하고 자동차 등 내수가 부진한 데다 기업이익까지 감소하는 등 최근 발표된 지표가 전형적인 경기하강 국면 진입을 나타내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미국경제연구소(NBER)가 경기 저점으로 공식 확인한 2009년 6월 이후 7년간 지속된 확장세가 종료되면서 향후 18개월 이내 경기후퇴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함


2.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2700여년 역사상 첫 여성 시장이 탄생함

- 지난 19일 치러진 로마시장 선거 개표 결과 제1야당 오성(五星)운동(M5S)의 비르지니아 라지 후보(37)가 67.2% 득표율로, 32.8%를 얻은 집권 민주당(PD)의 로베르토 자케티 후보를 누르고 당선됨


3. 중국이 슈퍼컴퓨터 두뇌인 중앙처리장치(CPU) 분야에서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섬

- 2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국제 슈퍼컴퓨팅 콘퍼런스(ISC) 2016에서 발표된 성능기준 ‘상위 500대 슈퍼컴퓨터’ 순위에서 중국국립병렬컴퓨터공학연구센터에서 만든 선웨이 타이후라이트가 93페타플롭스(초당 9경3000조번 연산처리)의 속도로 1위를 차지함



<< 오늘 신문의 경제관련 용어 >>

* 무역투자진행회의

-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수출진흥위원회라는 이름으로 개최되던 회의를 박근혜 대통령이 명칭을 바꿔 부활시킨 회의임. 

2013년 5월 1일 열린 첫 회의에는 경제단체와 기업실무자, 장관, 여야의원 등 총 180여 명이 참석해 새정부 출범 후 청와대 회의 중 최대 규모를 기록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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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0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제주공항은 중국 항공사들의 안방인가

제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어나면서 제주∼중국 노선의 항공 수요도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수요 증가에 따른 이득의 대부분은 중국 항공사가 가져가고 국내 항공사는 낮은 점유율에 허덕이고 있다. 제주와 중국을 오가는 하늘길을 사실상 중국 항공기들이 독차지하면서 제주 공항이 마치 중국 항공사들의 안방이 돼버린 듯한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주∼중국 항공편은 현재 25개 노선에 주 350편이다. 이 가운데 20개 노선 304편이 중국 항공사 몫이다. 국내 항공사는 5개 노선 46편에 불과하다. 노선의 80%, 항공편의 86.9%를 중국 항공사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용객도 중국 항공기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2012년 28.1%에서 2013년 52.3%, 2014년 76.8%, 2015년에는 83.8%로 급증 추세다.


근시안적인 정책 탓이다. 제주도는 1998년 외환위기 직후 관광 활성화를 명분으로 ‘일방향 항공자유화 제도’를 시행했다. 우리 정부의 운수권 허가 없이도 외국 항공사가 제주 공항에 자유롭게 취항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제주를 찾은 중국인이 1998년 1만 5000명에서 2014년 286만명으로 늘어난 것이 그 결과다.

문제는 갈수록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식이라면 관광객이 늘어난다고 박수만 칠 일도 아니다. 우리의 일방향 자유화 조치로 인해 중국 항공사는 자유롭게 제주 공항에 취항할 수 있지만 국내 항공사가 중국에 운항하려면 중국 정부의 운수권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중국이 좀처럼 노선 개설을 허가하지 않고 있어 국내 항공사는 수년째 발목이 잡혀 있다. 중국 어선들이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안 우리 영해에 드나들며 마구 고기를 잡아가는 것이 불법이라면 제주 항공노선에 대해서는 갖다 바친 꼴이나 다름없다. 


이제는 불평등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양국 간 전면 쌍방향 자유화 제도를 채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아니라면 제주~중국 노선만이라도 한국~산둥, 한국~하이난다오 노선처럼 쌍방향 자유화를 시행하도록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2025년 개항 예정인 제주 신공항도 중국 항공사들에게 고스란히 넘어갈 수밖에 없다.

[서울신문]

2. 성의없고 턱없이 미흡한 옥시 보상안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최대 가해 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가 피해자들에게 보상안을 제시했다.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접어든 시점에서 책임 업체의 보상안까지 나왔으니 옥시 파동은 마무리 단계를 밟는 모양새다. 옥시는 지난 주말 피해자들과의 비공개 만남에서 사망자나 상해 피해자에게 최대 1억 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1·2등급 판정 피해자에게는 1억원 이상을 제시했다. 옥시가 보상액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처음이다.


옥시 파동은 세계적으로도 유사 사례를 찾기 힘든 어처구니없는 소비자 집단 사망 피해 사건이다. 오죽했으면 온 국민이 생활용품 공포증을 앓고 있겠는가. 그런 사안의 중대함을 따질 때 옥시의 사태 인식은 너무 안이해서 허탈할 정도다. 교통 사고나 산업재해 사고의 사망 위자료 기준액보다는 그래도 높게 책정했다며 선심을 쓰는 듯한 입장이다. 사망 사고가 일어난 지 5년이나 지나 검찰 수사를 앞두고서야 영혼 없는 사과를 하더니 이제 와 기껏 불의의 사고들에 갖다 댈 일인가. 이 사건은 불가항력의 돌발 사고가 아니라 부도덕한 기업이 조직적·지속적으로 소비자들의 피해를 외면하고 은폐한 결과다.


소나기만 피하겠다는 얕은 계산으로 일관하는 옥시의 몰염치에 분통이 터진다. 그런 마당에 우리 사법부의 물러 터진 처벌 의지도 납득할 수가 없다. 옥시의 영국 본사를 건드리지 않고 어물쩍 눈감으려는 수세적인 자세가 답답할 뿐이다. 핵심 책임자인 존 리 전 옥시 대표의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한 탓에 옥시 본사와 다른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는 더 어려워졌다. 검찰은 이달 말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가뜩이나 늑장 수사를 시작했던 검찰이 고작 이 정도 선에서 수사를 매듭짓겠다는 발상이라면 손가락질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국민 생명을 우습게 본 해외 기업은 정신이 번쩍 들게 단죄해야 한다. 옥시의 해외 책임자들이 검찰 소환을 거부하고 뭉개는 상황은 모멸감마저 느껴진다. 해외 기업들이 유독 한국 소비자들을 만만하게 보는 이유가 멀리 있지 않다. 국가적 손해를 봐도 제대로 항의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는 우리 정부의 ‘새가슴’ 대처와 늑장 부실 조사, 솜방망이 처벌 탓이다. 검찰은 옥시 본사와 책임자들의 과오가 명백히 가려질 때까지 기왕에 잡은 칼을 내려놓지 않아야 할 것이다.

3. 추경 서두르되 두루뭉술한 편성·집행 안된다

추가경정예산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조선·해운 업계의 구조조정이 임박해 대량 실직의 조짐이 보이면서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엊그제 연구기관장 간담회에서 “추경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4월 기자 간담회에서 “추경이 필요하다고 속단할 수 없다”고 한 데서 추경 편성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도 그제 “추경 편성에 한 발짝 다가갔다”며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했다. 지난달 “추경 요건에 맞지 않는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인 것과 대비된다.


최근 경제 상황을 보면 추경 편성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선 지난해 소폭 개선됐던 고용 여건이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기준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만여명 증가한 2645만명이다. 지난 2월과 4월에도 취업자 증가가 20만명대에 머물러 지난해 평균 34만명에서 크게 떨어졌다. 고용과 직결되는 수출과 소비도 부진하다. 올 1분기 수출액은 1156억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3% 이상 감소했다. 같은 분기 민간 소비도 전기 대비 0.2% 줄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일자리의 근간인 수출과 내수 모두 좋지 않은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청년 실업률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해운·조선 업계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올 하반기 재난적 수준의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경제계에선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올해 경제성장률 3.1% 달성을 위해선 20조원대 추경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8조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다행히 지난 4월까지 국세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조원 넘게 더 걷히는 등 추경 재원 조달 여건은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추경은 내용 못지않게 시기가 중요하다. 경기 활성화와 실업 대책으로서 효과를 내려면 늦어도 8~9월에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7월 초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돼야 한다.


지금까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추경이 편성되면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에 주로 투입됐다. 고용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SOC 분야 사업은 고용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청년 인턴 같은 청년 일자리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런 정책은 일시적인 고용 수치 개선엔 도움이 되지만 지속성이 떨어진다. 유 부총리도 얼마 전 올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과 관련해 “구조 개혁에 박차를 가해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추경 편성에 대한 바람직한 방향이다.


따라서 추경이 편성된다면 단순히 일자리 개수만 늘리는 데 쓰여선 안 될 것이다. 수치적인 성과가 낮아도 경제 활력을 높이거나 지속적인 노동이 가능한 부문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신성장 동력이 될 사업에 쓰일 양질의 일자리 창출, 보육이나 노인 돌보기 같은 안정적 일자리를 보장하는 복지 서비스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그만큼 정교하고 치밀한 추경 편성과 집행이 필요하다. 아르바이트나 일용직 등 비정규직 일자리는 아무리 늘어나도 경제 활력만 떨어뜨린다. 정부가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4. 與 중진·원로 뒷방서 나와 수습 힘써야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탈당파들의 복당 승인 과정을 둘러싼 새누리당 내홍 사태가 어제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과 정진석 원내대표의 만남을 계기로 일단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김 위원장이 정 원내대표의 요청을 받아들여 칩거 사흘 만인 20일 당무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권성동 사무총장은 교체하기로 했다. 민생 등 산적한 현안을 제쳐 둔 채 집안싸움에만 골몰해 국민을 크게 실망시킨 새누리당은 하루속히 혼돈에서 벗어나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여당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친박계와 비박계 모두 자숙·자중해야만 한다.


총선 참패 이후에도 계속되는 계파 갈등은 새누리당에 내재된 위기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 준다. 친박계와 비박계 모두 내심 “결국 갈라설 것”이라는 극단적 결심을 굳히지 않고서야 이렇듯 사생결단 싸우겠는가. 김 위원장은 어제 정 원내대표를 만나 작심한 듯 새누리당의 실상을 비판했다. 애당심은커녕 동지애도 없고, 신뢰·윤리·기강조차 무너져 내린 엉망진창 상태라는 것이다.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갈라서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뜻 아니고 무엇인가. 당의 혁신을 위해 외부에서 모셔 온 김 위원장의 진단을 내부 구성원들은 뼈아프게 반성해야만 한다.


이번 사태가 진정된다 해도 계파 정치를 청산하지 않는 한 새누리당 위기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동지애도 없는 상황에서 언제라도 계파 갈등은 재연될 수 있다. 특히 당 대표를 뽑는 8월 전당대회는 ‘예고된 전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자칫하다가는 진짜 당이 쪼개지는 파국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진즉 20대 국회가 개원했지만 진흙탕 집안싸움에만 매몰돼 국정을 팽개치고 있는 여당에 국민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당내 화합과 혁신도 못 하면서 어떻게 국민 통합과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단 말인가.


새누리당에는 복당 의원 2명을 제외하고도 4선 이상 중진 의원이 19명이나 된다. 한때 지도부를 맡았던 원로들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번 사태 과정에서 이들 중진과 원로들의 중재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소장 강경파들의 격한 전투적 언어만 난무했다. 중진들은 당내 세력 판도의 주판알을 튕기며 뒷방에 숨었고, 원로들은 당내 역학 구도에서 뒷전으로 밀려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래선 안 된다. 중진과 원로, 특히 계파를 이끄는 최경환·김무성 의원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당을 수습해야 한다. 언제까지 국민이 집권 여당의 지겨운 집안싸움을 지켜봐야 한단 말인가.

[동아일보]

5. 개헌을 위한 몇가지 기준

20대 국회의 개원과 더불어 개헌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1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주도하던 원포인트 개헌이 정당 대표들과의 약속에 따라 제18대 국회로 미뤄진 이래 개헌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숙제였다.


그동안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형성되었지만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 범위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기 때문에 개헌이 과연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개헌의 필요성을 직시해야 한다. 


평균수명이 5년에도 미치지 못하던 과거 헌법들에 비해 현행 헌법은 근 30년에 이르는 압도적인 최장수 헌법이지만, 그로 인해 현실과 맞지 않게 된 부분도 적지 않다. 또한 대통령의 임기 문제나 권력구조 문제 이외에도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해서도 손보아야 할 것이 적지 않다. 


예컨대 3공화국 당시 위헌으로 결정되었던 것을 유신헌법에서 헌법 규정으로 만들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국가배상청구권의 제한에 관한 제29조 제2항의 문제는 반드시 손질해야 할 조항이며, 그 밖에도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정보 인권 조항의 필요성, 글로벌 시대에 맞는 외국인의 인권 보장 등 인권 보장의 현실화와 관련하여 논의되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물론 개헌의 중심 화두는 여전히 국가조직일 것이다. 특히 대통령제를 유지할 것인지,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개편할 것인지에 따라 헌법 질서 전반에 미치는 파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각각의 주장이 그 나름의 논거를 가지고 있으나, 향후 개헌의 준비 과정에서는 몇 가지 기준이 먼저 설정될 필요가 있다.


첫째, 30년 만의 개헌이기 때문에 차후에도 30년이 지나야 개헌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 세대에 한 번 있는 개헌이므로 이 기회에 바꿀 수 있는 것은 모두 바꾼다는 생각보다는 합의가 가능한 것, 개헌이 꼭 필요한 것부터 단계적으로 바꾸도록 해야 하며 필요에 따라 차기 개헌은 언제라도 가능하다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둘째, 같은 맥락에서 이념적 갈등이 극심한 사항은 개헌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예컨대 보수와 진보 사이에 갈등이 첨예한 영토 조항 문제나 경제 조항 문제를 개헌 대상에 포함시킬 경우에는 여타 조항들에 대한 합의조차 흔들리게 될 우려가 크다.


셋째, 개헌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것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엄밀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통일에 대한 대비는 전자에 해당할 것이지만, 권력구조의 개편은―비록 전자와 무관하지 않지만―후자에 해당한다. 전자는 중장기 과제로 볼 수 있는 것이지만, 후자는 당장의 성공 조건을 따져야 한다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양자의 구별이 중요한 것이다.


예컨대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은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통일 이후의 사회 통합에 유리할 수 있고, 그런 맥락에서 우리도 통일헌법의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로 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장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그 성공 조건, 즉 국회와 국회의원들에 대한 신뢰, 정당에 대한 신뢰를 더 높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개헌의 필요성은 명백하다. 그러나 개헌을 통해 동상이몽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만일 개헌을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이용하려 들면, 지난해 말에 선거구 재획정 시한을 앞두고 여야가 서로 다른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하던 경우처럼, 개헌이 지연되면서 모두에게 상처만을 남기게 될 수 있다. 개헌은 개헌의 본질에 맞게 진행되어야 하며,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가운데 헌법의 이념과 원리가 올바르게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겨레]

6. 9월이면 북한이 무릎 꿇는다는 막연한 대북전략

정부가 오는 9월까지 북한과 어떤 형태의 대화나 교류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정부 고위 관계자가 19일 밝혔다. 이런 방침은 범정부 차원의 내부 검토를 거친 뒤 결정된 것이라고 한다. 이 고위 관계자는 그때쯤이면 북한이 견디지 못하고 태도를 바꿀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9월이면 북한 핵실험 이후 안보리 제재 결의 2270호가 나온 지 6개월 되는 시점이다. 6개월 정도 대북 압박·제재를 하면 정말로 북한 핵 문제를 포함해 모든 것을 우리 정부 뜻대로 풀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인데, 적이 걱정스럽다.


정부 고위 관계자의 이런 발언은 박근혜 정부가 그동안 보여온 대북 기조와 일치한다. 그동안 정부가 보여온 것은 ‘대화 배제, 대북 압박’을 통해 북한의 굴복을 끌어내겠다는 전략이었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은 아프리카까지 가서 북한 봉쇄 작전을 폈다. 1970년대식 대결 외교가 되돌아온 듯했다. 윤병세 외교장관도 쿠바·러시아·불가리아 등 북한의 전통적 우방국들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북한 고립화 외교를 펼치고 있다. 박 대통령은 13일 국회 개원 연설에서도 “비핵화 없는 대화 제의는 국면전환을 위한 기만일 뿐”이라고 북한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면서 “성급히 북한과 대화를 위한 대화에 나서서 모처럼 형성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모멘텀을 놓친다면 북한 비핵화의 길은 더욱 멀어질 뿐”이라고 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압박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압박 전략이 실효를 거둘지는 매우 의문이다. 6개월 동안 물샐틈없이 압박하면 북한이 무릎 꿇고 나올 것이라는 것은 우리 정부의 희망 사항일 뿐 현실적인 정세 판단에 따른 전망이라고 할 수 없다. 지난 경험을 보면, 북한은 대화의 길이 막히고 대북 압박이 커질 때마다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쏘는 식으로 더 거세게 반발해 왔다. 북한 핵 문제는 대북 압박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현실적인 방안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국제적 공조를 긴밀하게 펴되, 동시에 북한과의 다각적인 대화의 장을 마련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 길을 찾는 것이다. 대화 없는 압박은 반발만 불러올 뿐이고 그 결과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이 아닌 악화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막연한 소망에 의지해 대북 압박에 모든 것을 걸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중앙일보]

7. 청와대, 조속히 당·청 관계 회복 나서라

유승민 의원 복당 결정으로 격화됐던 새누리당의 내분이 19일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의 회동으로 봉합 수순에 들어갔다. “복당 표결 과정이 강압적이었다”며 사흘째 칩거해온 김 비대위원장은 이날 정 원내대표가 찾아와 사과의 뜻을 밝히자 “진정성이 있다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출범한 지 겨우 한 달인 집권당 지도부가 간신히 붕괴 위기를 넘긴 것이다. 이제 김 위원장이 속히 업무에 복귀해 당을 정상화하는 일이 남았다.


유 의원 복당 표결 과정이 다소 격앙된 분위기 속에 진행된 측면은 있다. 그러나 그의 복당은 4·13 총선에서 나타난 호된 민심을 받들기 위해 비대위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였다. 새누리당 참패의 핵심 원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눈 밖에 난 정치인을 강제로 쫓아내 유권자의 선택권을 배제하려던 데 있기 때문이다. 출범 2주일 동안 허송세월만 해온 비대위가 늦게나마 유 의원의 복당을 결정한 건 모처럼 할 일을 한 것이다.


당의 주류인 친박들은 이런 당헌·당규에 따른 비대위의 복당 결정에 극력 반발하며 뒤집기를 시도했다. 복당 논의 과정을 주재하고 표결 결정에 찬성한 김 위원장마저 뒤늦게 표결 분위기를 문제 삼아 당무를 거부했다. 청와대도 복당 결정 당일인 16일 잡혀 있었던 고위 당·정·청 회의를 전격 취소했다. 총선 두 달 만에 처음 열리기로 돼 있던 이 회의에선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과 부실기업 구조조정 등 긴급한 현안들이 논의될 예정이었다. 이런 중요한 회의를 일방적으로 취소한 건 복당 결정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려는 의도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


청와대와 친박이 앞으로도 민심 대신 대통령의 뜻과 계파 이익을 앞세우는 행태를 버리지 못한다면 당내 갈등은 언제든 다시 폭발할 개연성이 크다. 이는 당·정·청 조율 기능 마비와 국정 공백으로 이어져 민생에 큰 피해를 안길 것이다. 당장 사흘 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결정하는 브렉시트 투표에 따라 금융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


또 신공항 선정을 놓고 원수처럼 갈라진 영남권 민심을 다독여야 하는 등 나라 안팎에 현안이 쌓여 있다. 집권세력이 내분이나 벌일 때가 아니다. 청와대는 김 위원장이 당무에 복귀하는 대로 조속히 당·정·청 회의를 열고, 정 원내수석과 유기적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해결책은 박 대통령의 태도 변화다. 유 의원의 복당을 비롯해 자신의 뜻에 역행하는 당의 행태가 야속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총선에서 확인된 민의에 부응하기 위한 집권당의 불가피한 자구책이다. 대통령 임기가 1년8개월 남은 상황에서 당이 내년 대선을 겨냥해 청와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통령은 당의 엇박자를 비판만 할 게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유 의원 등 국정 현안을 놓고 청와대와 의견을 달리하는 여당 의원들을 ‘배신자’로 낙인찍는 대신 당의 외연 확장을 위한 ‘자산’으로 포용하는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8. ‘정운호 게이트’ 현관 비리 의혹의 몸통 밝혀야

검찰이 현직 검사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1억원의 금품을 받은 단서를 잡고 조사 중이다.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의 브로커로 활동했던 이동찬씨도 검거했다. 이에 따라 판검사 출신 전관(前官)을 넘어 현관(現官) 비리 의혹의 몸통이 드러날지 주목되고 있다.


검찰은 현직 검찰 간부 박모 검사와 정 대표 사이에서 돈 심부름을 한 것으로 지목된 A씨를 긴급 체포해 조사했다. 정 대표는 최근 검찰에서 “2010년 박 검사에게 전달해달라며 A씨에게 1억원을 줬다”고 진술했다. 네이처리퍼블릭의 서울메트로 입점 과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무마하기 위해 청탁성 자금을 건네도록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박 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사실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다. 또 브로커 이동찬씨가 검거되면서 ‘정운호 게이트’ 핵심 인물들의 신병이 모두 확보됐다. 이씨는 최 변호사가 맡았던 정 대표 사건, 송창수 전 이숨투자자문 대표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인물이다.


지금까지 현관 관련 의혹에 대한 수사는 답보 상태를 면치 못했다. 박 검사 조사로 현관 수사의 물꼬를 트게 됐지만 곁가지에 불과하며, 이제 시작일 뿐이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와 관련된 부분은 아직 뚜껑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해외 원정 도박 사건으로 수사받던 정 대표가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받고 ▶3차 수사 후 도박 혐의 기소 때 횡령 혐의가 빠지고 ▶정 대표 측의 보석 요청에 검찰이 ‘재판부가 알아서 해달라’고 한 과정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최 변호사가 수사·재판 과정에서 검찰과 법원에 어떤 로비를 벌였는지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고리들이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한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와도 시민들을 납득시키기는 힘들 것이다.


검찰은 현재 대우조선해양과 롯데그룹을 대상으로 전방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 수사가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검찰 자신의 손부터 살펴야 한다. 검찰은 검사장 출신이 한 해 100억원을 벌고, 어떻게 123채의 오피스텔 쇼핑이 가능했느냐는 국민의 물음에 응답할 의무가 있다.

[매일경제]

9. 휘발유차량도 조작한 폭스바겐, 퇴출까지 고려해야

독일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및 사기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한때 세계 1위 자동차업체였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만적이고 퇴행적이다.


엊그제 검찰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골프 1.4 TSI 차량이 국립환경과학원의 배출가스 인증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자 전자제어장치(ECU) 소프트웨어를 두 차례나 조작해 불법 판매해 왔다고 한다. 이 같은 배출가스 조작은 독일 본사가 직접 지시했으며, 폭스바겐 한국법인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본사 지시에 따라 질소산화물 배출 수치를 조작하고 소프트웨어를 교체할 경우 별도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국내 법까지도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골프 1.4 TSI는 지난해 3월부터 국내에서 총 1567대가 팔렸고 배출가스 조작 경유차량 12만5000대가 지금도 돌아다니는 점을 감안하면 폭스바겐으로 인한 우리 국민의 직간접적인 피해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더욱 괘씸한 것은 폭스바겐의 안하무인 행태다. 폭스바겐은 경유차 배출가스 조작이 밝혀진 후 취해진 환경부의 리콜 요구를 7개월째 뭉개고 있다. 2011년에도 에어컨을 켜면 배출가스 기준치를 초과한다는 사실이 적발돼 리콜 요구를 받았으나 이 역시 강제 리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회장이 직접 나서 조작 사실을 시인하고 배상금이나 세금을 부담하기로 했으나 한국 정부와 소비자는 철저하게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금이라도 정부의 명예를 걸고 폭스바겐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대로 대응해야 한다. 폭스바겐이 국내 인증 절차를 기만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향후 폭스바겐 차량에 대해서는 일일이 자동차 한 대 한 대 철저하게 인증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실제 도로 주행 시 배출가스에 대해서도 기습점검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조금이라도 위법 사실이 밝혀지면 즉시 수입 판매를 중지시키는 것이 옳다. 소비자들도 리콜 요구, 환불 요구, 민사배상 소송 등 자력 구제를 적극 강구할 필요가 있다. 환경부가 대체 언제까지 국민 건강과 소비자 피해는 내팽개치고 통상마찰 핑계만 댈 건지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10. 전·현직 검찰 비위 사건 롯데 수사에 묻히면 안된다

전직 검사장인 홍만표 변호사와 부장판사 출신인 최유정 변호사 구속으로 이어진 '정운호 게이트'의 핵심 브로커 이동찬 씨가 지난 18일 체포되면서 전·현직 법조인 비위 의혹 사건이 다시 여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검찰은 현직 검사가 수사 상황을 누설하고 2010년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1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도 포착하는 등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운호 게이트'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인 진경준 검사장의 넥슨 주식 대박 사건과 더불어 세간에 주목을 받고 있는 사건이다. 두 건 모두 수사 결과에 따라 법조계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높다.


하지만 롯데그룹과 대우조선해양 등 대기업 비리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 사정이 시작되면서 두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전·현직 검사장 수사에 부담을 느껴 의도적으로 파급력이 큰 사건을 들고나온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홍 변호사의 전관로비 의혹이나 진 검사장의 넥슨 주식 특혜 시비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있어 여론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기업 비리 수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검찰은 롯데나 대우조선에 대한 수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의심을 해소하려면 한 점 의혹도 없이 진실을 밝혀야 한다.


현재 홍 변호사는 탈세 등 일부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금품로비 등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변론권 행사의 적절한 범위를 넘어선 적이 없다"며 극구 부인하고 있다. 진 검사장 사건 역시 직위를 이용한 편의 제공이나 뇌물수수, 차명주식 여부, 자금 출처에 대해 말을 바꾼 이유 등 궁금한 점이 많다. 이에 대해 검찰은 명확하게 밝힐 책임이 있다. 전·현직 법조인 비위 사건이 롯데나 대우조선 수사에 묻혀서는 곤란하다. 질질 시간을 끌다가 진실을 규명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된다면 국민적인 저항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검찰은 명심해야 한다. 두 사건에 검찰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요 신문칼럼

1. [머니투데이]그 일 안 하면 안 돼요?

누구나 언제나 무언가를 한다. 나 또한 언제나 무언가를 한다. 그것이 주로 '읽거나 쓰거나 걷거나'다. 이 일은 내가 좋아하는 놀이다. 나를 느끼고 즐기고 꽃 피우는 노래다. 나에게 다가가고 나를 펼치는 춤이다. 나에겐 읽고 쓰고 걷기가 1순위다. 다른 일은 2, 3 순위다.


읽고 쓸 때는 머리가 일을 한다. 에너지가 위로 오른다. 걸을 때는 몸이 일을 한다. 에너지가 아래로 내려간다. 이로써 머리와 몸은 균형을 맞춘다. 한참 읽고 쓰면 몸이 걷자고 한다. 한참 걸으면 머리가 읽고 쓰자고 한다. 나는 이 리듬이 좋다. 머리와 몸이 어울려 돌아가는 삼박자가 즐겁다. 왈츠처럼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당신은 어떤가? 밤낮으로 일에 쫓기는 분에게 묻는다.


- 그 일 안 하면 안 돼요?

= 안 돼.

- 안 하면 어떻게 되요?

= 할 일이 없어.

- 할 일이 없으면 좋잖아요.

= 그럼 심심해서 못살아.

- 그럼 좋아하는 일을 하시죠.

= 그게 뭔데?


이 분은 은퇴한 뒤에도 바쁘다. 돈이 없는 건 아닌데 어떻게든 일을 벌이고 돈을 벌려고 한다. 하지만 이 분에게 삶은 지루하다. 무료하다. 일을 거두면 지루함만 남는다. 무료함만 남는다. 은퇴 전이라고 별로 다르지 않다. 직장은 좋아서 다니는 게 아니다. 일은 재미로 하는 게 아니다. 내키지 않는 일에 시달리고 집에 와서 퍼진다. TV를 켜고 뒹군다. 집사람은 잔소리만 한다. 아들은 컴퓨터만 두드린다. 딸은 스마트 폰만 만지작거린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아들과 딸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받는 스트레스를 시시한 오락으로 푼다. 영화 보고, 쇼핑하고, 수다 떨고, 먹고 마시고, 꾸미고……. 어쨌든 심심할 틈이 없다. 내면의 나를 대면할 겨를도 없다. 


지금껏 나는 이러고 산 게 아닐까? 시답잖은 일에 마음 쓰면서 휩쓸려 다닌 게 아닐까? 단 한 번도 내 안의 바다에 잠기지 못한 채. 넓고 푸른 바다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깊고 고요한 바다에서 평화롭지 못한 채. 파도처럼 철썩이고 출렁이면서. 서로 부대끼고 밀고 밀치고 아우성치고 부서지면서.


누구나 언제나 무언가를 한다고 다 똑같은 건 아니다. 나와 일의 관계에 따라 일의 질이 달라진다. 삶의 향기가 바뀐다. 같은 일이라도 내 안에서 우러나면 놀이다. 노래다. 춤이다. 나를 드러내는 예술이다. 나를 이루는 성취다. 그렇지 않으면 짐이다. 노동이다. 투쟁이다. 나를 옥죄는 억압이다. 나를 파는 장사다. 나는 어떤가? 내 일은 놀이인가? 노동인가?

2. [동아일보][특파원 칼럼/전승훈]“내 증오를 선물하지 않겠다”

지난주 프랑스 대표팀이 출전하는 ‘유로 2016’ 축구 경기가 있는 날 파리 에펠탑 인근의 ‘팬 존’을 찾아갔다. 8만 명이 한꺼번에 모여 응원할 수 있는 샹드마르스 광장 입구는 경계가 삼엄했다. 무장 경찰로부터 몸수색을 2, 3차례 받은 뒤 팬 존에 들어서니 한 손에 맥주를 든 응원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이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겁이 나게 마련이지만 역시 프랑스인들은 어떤 위험에도 노는 것은 절대 포기할 수 없나 보다.


요즘 파리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경찰이 아닐까. 파리 테러 이후 국가 비상경계 태세 아래에서 파업과 시위, 훌리건 난동까지 하루도 쉴 날이 없다. 노동법 반대 시위가 과격해지면서 경찰 ‘증오’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5월에는 경찰관이 탑승한 경찰차가 화염병에 불탔다. 시위 현장에선 ‘모든 이가 경찰을 증오한다’는 등 경찰 혐오 구호가 난무한다.


다음 달 초 3년간의 파리 특파원 생활을 마친다. 파리 테러, 브뤼셀 테러, 이집트 폭탄 테러, 시리아 난민캠프, 그리스 재정 위기 현장을 다니며 종군기자 같은 생활을 했다. 유럽은 5년 전 프랑스로 연수 왔을 때의 평화로움과는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다. 제3세계에서 벌어지던 야만적인 테러가 이제 유럽 한복판에서 일어난다.


북한에서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할 때마다 프랑스인들은 내게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날까 봐 불안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내가 “적어도 한국에서는 카페에 앉아 있다가 총을 맞는 일은 없다. 파리가 더 불안하다”고 말하면 프랑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지난주 발생한 사건들은 과연 이곳이 민주주의와 이성이 빛나던 유럽이 맞나 싶을 정도다. 프랑스에서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충성을 맹세한 테러리스트가 경찰관 부부 자택에 침입해 세 살배기 아들이 보는 앞에서 아빠와 엄마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앞두고 여성 정치인이 대낮에 총격을 받고 숨지기도 했다.


도대체 얼마나 큰 증오가 쌓여 있기에 이렇게 인간성을 저버린 끔찍한 일들이 발생하는 걸까. 증오 범죄란 인종, 피부색, 민족, 종교, 성(性) 정체성,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무차별 폭력이다. 시리아 내전 5년의 증오로 IS가 탄생했다.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고, 유럽이 문을 걸어 잠그는 과정에서 브렉시트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청년 실업, 부의 불평등에 대한 증오도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007년 한국계 미국인 조승희가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총기 난사를 한 다음 날 나는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있었다. 당시 한국인이란 이유로 입국이 거절당할까 봐 불안에 떨었지만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올랜도 테러 사건 이후 “테러범 출신 국가의 이민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작지 않았다.


트럼프의 방식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특정 국가에 ‘이민 금지’ 딱지를 붙이는 일은 증오를 더 키울 뿐이다. 지난해 파리 테러 당시 아내를 잃은 앙투안 레리는 “그들은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빼앗아 갔지만 나는 그들에게 내 분노를 선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한 16일 사망한 영국의 조 콕스 하원의원의 남편도 “모두 힘을 합쳐 내 아내를 죽인 증오와 맞서 싸워 달라”고 호소했다. 두 사람의 차분하고 이성적인 대응은 유럽의 문명사회를 지킬 마지막 희망이다.

3. [중앙일보][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100엔짜리 인생이라 해도

직업, 없다. 남자친구, 없다. 꿈? 물론 없다. 16일 개봉한 일본 영화 ‘백엔의 사랑’(사진)의 주인공 이치코(안도 사쿠라)는 전문대를 졸업한 후 일자리 찾을 생각도 없이 도시락 가게를 하는 엄마에게 기대 살아가는 서른두 살의 여자다. 헝클어진 머리에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화가 난 표정으로 어기적어기적 걷는다. 열심히 하는 일이라고는 초등학생 조카와의 게임뿐. 자신에게 관심 없는 세상과 그런 세상에 구애하지 않겠다는 포기가 만들어낸 기운 빠지는 인생을 살던 이치코. 어느 날 이혼해 집에 돌아온 여동생과 머리채를 뜯으며 싸우다 홧김에 집을 뛰쳐나온다.


어쩔 수 없이 독립했으나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100엔(약 1100원)짜리 물품들을 판매하는 잡화점에서 심야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100엔 100엔 100엔 생활, 싸요 싸요 뭐든 싸요!”라는 노래가 늘 흘러나오는 곳. 그러다 잡화점에서 바나나를 사는 복싱선수 카노(아라이 히로후미)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를 보기 위해 체육관을 찾았다가 ‘다이어트하러 왔느냐’는 관장의 오해로 복싱을 시작하게 된다는 내용.

여기까지 보고 나면 ‘알 만하다’ 싶다. 한심하게 살던 청춘이 새로운 꿈과 사랑을 만나 성공을 향해 달린다는 내용이겠거니. 하지만 영화는 단순하지 않다. 이치코의 멋들어진 성공담 대신, 100엔 숍을 찾아오는 ‘100엔짜리’ 인생들을 그리는 데 공을 들인다. 하루 18시간씩 일하다 우울증에 걸린 점장,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훔쳐 가는 할머니, 있는 힘껏 노력한 적도 없으면서 포기는 빨랐던 한물간 복서…. 그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한 번쯤은 이겨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이치코의 변화를 담담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감동의 포인트는 이치코의 변화하는 눈빛이다. 복싱을 시작한 이치코가 밤낮없이 줄넘기를 하고, 계단을 뛰어오르고, 매대 사이에서 끊임없이 섀도 복싱을 할 때 보는 이의 마음도 덩달아 뜨거워진다. 내 것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삶에 처음으로 애착을 갖게 된 순간, 열정을 쏟아부어 노력하고 싶은 대상을 발견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반짝이는 눈빛. 남들에겐 100엔짜리로 보이는 인생이라 해도, 나에겐 이것밖에 없으니 최선을 다해 싸워보겠다, 이런 결심의 순간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외면과 내면의 변화를 실감 나게 연기한 배우 안도 사쿠라의 공이 크다. 안도는 이 영화로 올해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4. [서울신문][오늘의 눈] 태양의 서커스와 공시생/윤창수 사회2부 기자

천막 지붕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은 꽃, 동물 등 온갖 무늬를 만들어 낸다. 뱀으로 분장한 소년은 머리와 무릎을 붙이고 꼬아 마치 진짜 뱀으로 환생한 듯하다. 조금 전까지 무대 바닥에 있던 수영장이 배우가 뛰어들자 사라져 버린다.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공연 중인 태양의 서커스의 신작 ‘루지아’다.


태양의 서커스는 1982년 거리공연을 하던 캐나다 예술가들이 만든 문화기업이다. 퀘벡은 영어가 공용어인 캐나다에서 프랑스어를 쓰며 아직도 분리 독립운동이 계속되는 등 고유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런 문화적 힘이 캐나다 퀘벡 지역을 세계 사회적경제의 3대 메카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태양의 서커스는 중국 푸싱그룹과 미국 자본에 팔린 상태지만, 캐나다인들은 여전히 퀘벡의 문화적 전통이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런 기대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라 토후’다.


우리나라 난지도와 같은 쓰레기 매립지 위에 태양의 서커스 본사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라 토후는 이익이 아니라 인간을 생각하는 사회적경제인 비영리단체로 퀘벡을 아트 서커스 도시로 키우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긴 곳이다. 쓰레기장에서 나온 재활용품으로 극장 건물을 세우고, 자퇴생과 같은 취약계층에게 서커스를 비롯한 예술을 가르치며, 자체 축제로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1인당 연간 4500만원에 이르는 퀘벡주 총생산(GDP)의 7%를 라 토후와 같은 사회적경제가 차지하고 있다. 퀘벡에서 사회적경제 운동이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퀘벡의 사회적 운동가들은 주로 이민 여성이었던 근로자의 인권운동 ‘빵과 장미’를 성공시키는 등 약자와 소수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90년대 활동했던 운동가들의 자녀가 성장해 지금의 사회적경제를 이끌고 있다. 캐나다 사회적경제 협의체인 샹티에의 낸시 님탄은 “1980년대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는 우리보다 훨씬 독립적이고 첨단 기술로 무장돼 있다”며 “젊은이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사회적경제가 더욱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의 대학생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학생주택을 건설하고 식당, 금융업, 도시농업, 정보기술(IT)업 등에 진출하고 있다.


라 토후의 서커스학교 졸업 공연으로 인체를 통해 물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퀘벡 젊은이들을 보면서 노량진에서 시험 공부에 매달리는 30만~40만명에 이르는 공시생이 떠올랐다. 공무원은 사회에 봉사하는 보람된 직업이지만, 공무원이 되려고 청춘을 몇 년 동안 영어 단어 외우는 데 쏟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사회적경제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과 비교하면 더욱 안타깝다.


“겨울이 너무 춥고 기니까.” 태양의 서커스와 같은 거리공연이 발달한 이유를 물은 기자에게 던진 라 토후 감독의 대답이다. 아주 간단한 이유로 재능 발현 기회를 찾은 캐나다 청춘처럼 한국의 젊은이들도 창의성을 발휘할 다양한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5. [매경이코노미][HEALTH] 80세 이상 4명 중 1명…치매 원인과 예방법-생선·채소 먹는 ‘333수칙’ 뇌건강 지켜

우리나라 80세 이상 노인의 4명 중 1명이 앓고 있다는 치매. 60세 이후 5년이 지날 때마다 치매 발병 위험은 2배씩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치매는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인지 능력에 장애가 생겨 독립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 상태를 뜻한다. 한번 진행되기 시작하면 새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치매가 생긴 후에 일어난 일은 기억하지 못해도 그 이전의 것은 정상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이유다.


뇌 기능을 떨어뜨려 치매의 원인이 되는 질환은 무수히 많으며, 그중 85% 정도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알츠하이머다. 알츠하이머는 베타아밀로이드(beta-amyloid)라고 부르는 나쁜 단백질이 과도하게 축적돼 신경세포를 죽이는 병이다. 김기웅 중앙치매센터장은 “공장의 제조 공정에서 한 번씩 불량품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 몸속 단백질 대사 과정에서도 한 번씩 실수가 생겨 나쁜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면역 체계가 이런 단백질을 청소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축적되면서 뇌세포를 공격해 죽이게 되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알츠하이머 외에도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생기는 치매, 알코올성, 외상성 치매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치매의 최고 위험 요인은 연령이다. 고령화 진행으로 치매 발병률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두 번째 위험 요인은 학습 등 두뇌 활동의 부족이다. 교육을 적게 받은 사람일수록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 김 센터장은 “신경세포가 죽는 알츠하이머병을 생각하면 쉽다”면서 “학력이 높고 두뇌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신경세포 간에 다양한 회로가 형성된다. 그러다 보면 신경세포 중 하나가 죽어도 다른 통로가 많기 때문에 영향을 덜 받는다. 반면 교육을 많이 받지 않고 두뇌를 많이 쓰지 않을 경우 신경세포의 길이 단조롭기 때문에 세포 손상이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위험 인자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만성 대사성 질환과 우울증이다. 대사성 질환은 혈액순환에 문제를 일으켜 혈관성 치매, 알츠하이머성 치매 위험을 높인다. 당뇨, 고지혈증은 치매 유병률을 1.5~2배가량 높인다고 알려졌다. 우울증 역시 치매 위험을 높인다.


그다음은 잘못된 식습관이다. 김 센터장은 “무조건 몸에 좋은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좋은 게 아니다. 충분한 비타민과 함께 신경세포 재생에 도움이 되는 불포화지방산이 포함된 식단을 규칙적으로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 특히 뇌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는 녹황색 야채와 등푸른 생선이 꼽힌다”고 설명했다.


김기웅 센터장은 이 같은 위험 요인을 알고 대비하는 것이 치매 발병 위험을 줄이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는 333수칙도 있다. 3가지(운동·식사·독서)를 권하고, 3가지(절주·금연·뇌손상 예방)를 금하고 3가지(건강검진·소통·치매 조기 발견)를 챙기는 것이다. 또 치매상담콜센터(1899-9988)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김 센터장은 “치매 진단을 받은 후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완치약은 없지만 약물을 통해 증상을 조절하고 진행을 늦출 수 있다. 다만 치매 예방에 좋다며 검증되지 않은 주사나 약물을 고가에 파는 경우가 있는데, 병원의 공식 처방제 외에는 주의해야 한다.” 김 센터장의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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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6월 20일 신문 브리핑 #


"사람에게 가장 큰 저주는 '목마름'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름'이다.

- 평생감사 카드



<< 정치/외교 >>

특이내용 없음



<< 경제 일반 >>

1. 산업통상자원부는 18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제2차 한·인도 CEPA 장관급 공동위원회의를 열어 한국과 인도가 양국 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을 손질해 관세 철폐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에 합의했다고 발표함

- 자유무역협정(FTA)의 일종인 한·인도 CEPA는 2010년 1월 발효됐으나 다른 FTA보다 관세 철폐 대상 등이 적고 원산지 기준이 엄격해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왔음

공정위는 M&A 등 기업결합 신고 시 기업이 제출해야 하는 서류 등을 규정한 ‘기업결합의 신고요령’ 고시를 20일 개정해 신고 서류를 간소화한다고 19일 발표함

- 경쟁제한성이 없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업 재편 목적의 ‘계열사 간 M&A’ 등 ‘간이신고 대상 기업결합’에 대해선 해당 기업에 ‘시장 현황 자료’의 제출 의무를 면제하기로 함


2.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 17일 경기 양평 현대블룸비스타에서 열린 ‘2016년 한국선주협회 사장단 연찬회’에 참석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합병을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지금은 원만하게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합심해야 할 때”라고 말함



<< 금융/부동산 >>

1.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4년 79억달러이던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거래 규모는 지난해 140억달러(78.4% 증가)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으며, 해외 펀드에도 자금이 몰리면서 지난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는 4조4295억원이 빠져나간 반면 해외 주식형 공모펀드엔 2조2154억원이 유입됨

- 해외 부동산과 채권 투자도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올 1분기 해외 부동산펀드 설정액은 2014년 말(7조3251억원)보다 96.5% 증가한 14조4001억원을 기록함


2. 예금금리 제로시대를 맞아 상대적으로 안전하면서도 정기예금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처를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신탁 상품이 뜨고 각광받고 있음

-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2011년 1분기 말 174조6393억원이던 은행 신탁 자산은 올 1분기 말 335조1626억원으로 5년 새 91.9% 증가함

- 예대마진(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의 차이) 축소로 비(非)이자수익 확대에 주력하는 은행들이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신탁 상품 판매에 공을 들이는 것도 시장이 커지는 요인임


3. 현대중공업은 올 들어 처음 수주한 18만㎥급 액화천연가스(LNG)선 두 척에 대해 수출입은행과 KEB하나은행이 각각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발급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고 19일 밝힘

- RG는 조선회사가 주문한 선박을 제대로 인도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금융회사가 일종의 보증을 하는 것으로, RG 발급은 원래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서 주로 했지만 조선산업 부진으로 이들 은행에 부담이 가중되면서 시중은행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음



<< 국제 >>

1. 스타 경제학자’ 출신으로 인도 경제를 회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라구람 라잔 인도 중앙은행(RBI) 총재가 연임을 포기하고 물러나기로 함

- 외신은 라잔 총재의 전격 사퇴가 가뜩이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으로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인도 경제를 더욱 불안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함



<< 오늘 신문의 경제관련 용어 >>

* 신탁상품

- 은행, 투신사 등 금융기관이 개인이나 법인 등 고객으로부터 예금을 받아 일정기간 동안 이 자산을 운용해서 수익을 돌려주는 금융상품. 신탁상품은 크게 두가지로, 원금이 보존되고 확정된 이자율에 따라 수익을 배당받는 상품과,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나누어짐. 

개발신탁, 일반불특정 금전신탁, 적립식 목적신탁, 개인연금신탁, 노후생활연금신탁 등은 배당금이 확정된 상품이고, 신종적립신탁, 비과세가계신탁, 근로자우대신탁 등은 운용에 따라서 배당률이 달라짐.

실적배당형 상품과 투신사의 상품은 운용 실적대로 배당금을 주며, 따라서 금융기관이 고객의 돈으로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해서 높은 수익을 얻으면 고객의 수익도 커지지만, 반대로 금융기관이 투자를 잘못해 손실을 보게 되면 고객도 원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됨

- 출처 : 매일경제, 매경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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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7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미국 금리인상 유보, 일단 한숨 돌렸으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15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0.25%∼0.5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제로금리 시대’ 마감 선언에 따라 금리를 인상하리라던 당초 예상을 비켜간 것이다. “고용시장 개선 속도 지체에 따라 일자리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게 연준의 금리 동결 배경이다. 미국의 경제 사정이 금리 인상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처지라는 뜻이다.


미국 경제는 잠시 호전되는 듯했으나 난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성장이 후퇴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연준이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를 3개월 전의 2.2%에서 2%로 하향 조정한 것이 그런 결과다. 세계은행도 최근 세계경제전망 수정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올해 예상 성장률을 종전의 2.7%에서 1.9%로 크게 낮춘 바 있다. 이런 여건이라면 당장 금리를 올리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브렉시트’라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오는 23일 실시되는 영국 국민투표에서 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될 경우 기존의 세계 경제 질서가 무너지는 등 전대미문의 파급효과가 따를 것으로 우려된다. 따라서 연준으로서는 브렉시트 여부가 결정되기 전에 금리를 올림으로써 이중으로 불확실성을 키우지 않겠다는 의지가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 금리 인상이 유보됨으로써 일단 안도의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때까지 시간적 여유를 벌게 된 것이다. 미국 금리가 인상된다면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행이 미국 경제 동향을 내다보고 지난 9일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한 선제적 조치에 대해 새삼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미국의 금리인상 움직임이 꺾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브렉시트 투표가 부결되고 자체 고용시장 지표가 개선된다면 내달이라도 인상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이 하나의 변수가 되겠지만 금리가 한 차례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경우에 대해서도 대비가 필요하다. 특히 브렉시트는 우리 경제에도 블랙홀이다. 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한 치의 차질없이 위기를 극복해가야 할 것이다.

2. 내년 대선에서 개헌 공약 걸도록 하자

개헌이 갑작스레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한쪽에서 “개헌은 시대적 과제”라고 목청을 높이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서민들은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무슨 개헌 타령이나”며 핀잔이다. 다만 여느 사안과는 달리 개헌 찬반론이 여야와 보수·진보의 진영 논리를 떠나 전선이 어지럽게 형성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과 노선을 같이 하는 친박(親朴)계조차 내부 의견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제20대 국회 개원 연설에 이어 어제 취임 기자간담회에서도 “개헌은 이제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며 개헌론을 폈다. 그가 ‘개헌 전도사’로 알려진 우윤근 전 의원을 국회사무총장으로 임명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정 의장이 운을 떼자 여야 중진들이 가세하면서 개헌론에 힘이 붙고 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청와대 측은 “개헌에 대한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개헌=블랙홀’ 공식을 수정할 뜻이 없다는 뜻이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비롯해 경제 난국 타개에 국력을 집중해야 하는 터에 개헌 논의가 모든 정치 및 경제 현안을 빨아들이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도 지금은 권력구조를 따지기보다 경제 살리기에 주력할 때라며 개헌 논의에 반대한다.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채택한 ‘1987년 체제’의 시효가 끝났다는 데 대해서는 대체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분위기다. 여기저기서 솟구치는 개헌 논의를 ‘블랙홀’이라며 덮기엔 한계가 있다. 문제는 시기다. 우 사무총장은 늦어도 내년 4월까지는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대선을 새 헌법으로 치른다는 전제에서다. 그러자면 연말까지는 개헌안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개헌론자들끼리도 이원집정제니, 대통령 중임제니 하며 동상이몽인 마당에 반대파까지 설득해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서두르다가는 자칫 그르치기 마련이다. 이런 맥락에서 내년 대선 때 주요 후보들이 저마다의 개헌안을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 몇몇 정치인들이 권력구조를 멋대로 바꿔 가며 ‘그들만의 리그’를 계속하게 놔둬선 안 된다.

[서울신문]

3. 공공기관 개혁 강도 더 높여야 한다

정부가 어제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2015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결과를 심의·의결했다. 116개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 A(우수) 등급의 성적표를 받은 공공기관은 20개(17.2%)로 2014년에 비해 5개 늘었고 E(아주 미흡) 등급 공공기관은 6개에서 4개로 줄었지만 D(미흡) 등급 공공기관은 9개로 동일했다.


지난해 전체 공공기관의 부채는 490조 5000억원으로 2014년(507조 2000억원)보다 16조 7000억원 감소했다. 공공기관 부채 비율이 191%를 기록해 처음으로 200% 밑으로 떨어졌다. 기획재정부는 “적극적인 부채 관리 노력의 결과로 공공기관의 재무건전성이 크게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의 부채가 주는 등 일부 경영 실적도 나아진 측면은 평가받을 만하다. 정부는 지속적인 공공 개혁의 성과라고 밝히면서 경영평가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문제점도 적지 않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335개 공공기관 수장의 지난해 업무추진비 집행 금액이 56억 6082만원으로 전년보다 3.8% 늘었다. 2014년에 전년보다 10% 이상 줄였던 업무추진비를 슬그머니 올린 것이다. 경영실적이 나빠져도 업무추진비를 대폭 늘린 기관들의 행태를 보면 과연 개혁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부채 비율 감소가 재무건전성에 도움이 되지만 경영의 건전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특히 공공기관들이 정부의 경영평가를 의식해 수치를 꿰맞추는 보여 주기식도 없애야 할 관행이다. 공공기관 스스로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이 중요한 이유다.


공공기관의 철밥통을 깨자는 성과연봉제 도입도 지지부진이다. 업무성과에 따라 급여를 차등화해 공공기관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다. 노조는 업무평가의 공정성을 의심하고 있지만 변화의 물꼬를 튼 뒤 점진적으로 합리적 방안을 찾으면 된다. 무턱대고 반대하는 것은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밖에 안 된다.


공공기관 개혁을 부르짖는 정부와 정치권의 이율배반적 행태도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올해 상임감사·감사위원에 대한 평가에서 우수등급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4·13 총선 이후 공공기관 감사 등의 자리에 여당 출신 인사들이 잇따라 내려오고 있다. 낙하산 인사의 근절이 바로 공공기관 개혁의 출발점일 수 있다.

4. 대우조선 부실 방치한 산은 책임 엄중히 물어야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경영에는 산업은행의 부실 감독과 무능력이 결정적 뒷받침이 됐다. 대우조선의 주채권은행이자 최대 주주인 산은이 대우조선의 방만 경영을 방치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확인됐다. 한마디로 기가 막힌다. 기업의 재무 상태를 미리 점검하는 장치가 있는데도 산은이 손 놓고 있어 준 덕에 대우조선은 1조 5000억원의 분식회계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사정을 보면 대우조선이 지금까지 굴러온 것도 신기하다.


막대한 분식회계로 영업이익을 뻥튀기한 대우조선은 임직원들에게 마구잡이로 성과급을 돌렸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급여를 깎아도 모자랄 판국에 눈먼 돈인 양 마구 써댄 것이다. 영업손실이 3조원을 넘었던 지난해 임직원 격려금으로 877억원을 퍼쓰는데도 산은은 전혀 제동을 걸지 않았다. 이뿐이 아니다. 조선업과 아무 관련도 없는 자회사를 문어발식으로 세우고 인수하는데도 산은은 못 본 척했다. 감독은커녕 출자 회사들에 경영관리단을 파견해 대주주랍시고 가당찮은 갑질까지 일삼았다. 그런 신선놀음을 할 시간에 최소한의 감독 역할만 했더라도 대우조선의 부실은 단속할 수 있었다.


무책임한 기업 관리가 통했던 배경은 간단하다. 전문 경영을 하려야 할 능력이 없는 권력 낙하산 인사들이 산은의 요직을 꿰찬 관행부터 명백한 한계다. 애초에 전문성을 요구받지도 않은 낙하산들이 굳이 낯 붉혀 가며 관리 기업의 부실을 감독하고 책임 경영에 땀을 뺄 이유가 없다. 대우조선의 차장급 직원 하나가 8년간 회삿돈 180억원을 빼돌려 초호화 생활을 하다 구속됐다. 무한 방임하는 감독 기관 밑에서 눈먼 돈 빼먹는 파렴치가 없기를 바란다면 그게 오히려 비상식적이다.


지난해 5조원의 적자를 낸 대우조선에 밀어넣은 혈세가 7조원이다. 방만 경영을 계속한 부실 기업을 왜 국민 혈세로 살려야 하는지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비판이 괜히 쏟아지는 게 아니다. 제 역할을 못 하는 산은을 정책 금융기관으로 계속 대접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늑장 면피 감사로 비난을 자초한 감사원은 전·현직 산은 행장 등에 대한 솜방망이 징계만 요구했다. 이 와중에 대우조선 노조는 파업까지 결의했으니 차라리 파산시키라는 성토가 커진다. 정부가 총체적 부실 덩어리를 어떻게 수술하는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난파선에서 흥청망청 혈세 잔치판을 벌인 대우조선과 그런 행태를 눈감아 준 산은 경영진부터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5. 신공항, 집단 세 과시로 선정에 영향 미쳐선 안 돼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이 임박했다. 타당성 검토 용역을 맡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막바지 심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는 그제 “신공항 부지 선정 결과 발표 때 선정 방식과 이유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탈락 지역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데 대한 설명 차원이라고는 하나 이미 입지를 내정해 놓고 그에 대한 해명을 준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특히 경남·경북·대구·울산 등 4개 광역단체장들이 힘을 과시하듯 일제히 ‘계획했던 신공항 입지 발표를 약속대로 반드시 이행하라’고 언론에 광고까지 내 이 같은 심증을 뒷받침하고 있다.


영남권에선 신공항 입지 문제를 놓고 10여년째 ‘밀양 대 가덕도’ 구도로 갈등을 빚어 왔다. 이 때문에 이미 5년 전 백지화된 전례가 있다. 그렇다고 갈등 수위가 그때보다 낮아진 것도 아니다. 현재 영남권과 정치권이 들썩이는 모양을 보면 오히려 그때보다 폭발의 잠재성이 더 커진 듯싶다. 정치권의 개입은 불씨를 더 키우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물론 일부 국회의원들까지 신공항 유치에 실패할 경우 불복하겠다는 뜻을 내비칠 정도다. 전문가들은 지금껏 오로지 경제 논리에 의해 입지가 선정돼야 하며, 어느 쪽이든 심사 결과에 승복할 것을 촉구해 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신공항 유치를 위한 궐기대회에서 실패할 경우 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피켓까지 등장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하다.


정부는 신공항 입지 발표 때 선정 방식과 이유에 대해 상세히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해명이 나오든 유치에 실패한 쪽을 이해시키긴 어려울 것 같다. 지금의 상황이 5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당시 김황식 총리는 담화문에서 “가덕도와 밀양 모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운영상 상당한 장애가 있으며, 공항 규모에 비해 건설비가 과다하다”고 백지화 배경을 설명했다. 무엇보다 지역 갈등 유발에 대한 우려가 컸다.


당시 밀양과 가덕도는 19가지 세부 항목 평가 결과 100점 만점에 각각 39.9점, 38.3점을 받았다.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제성에서 각각 12.5점과 12.2점을 받았다. 두 지역 모두 상당히 낮은 점수였다. 따라서 이번엔 양쪽 모두 사업비를 대폭 줄이는 등 경제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었다고 한다. 제안서를 보면 부산시는 5년 전 9조 8000억원이던 사업비를 5조 9000억원으로, 밀양은 10조 3000억원에서 4조 6000억원으로 낮췄다. 밀양의 경우 기존에 27개의 산을 깎아야 했던 것을 항공학적 기술을 적용해 4개만 깎아도 장애물을 피할 수 있도록 해 비용을 줄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가덕도 측은 안전을 문제 삼고 있다.


현재로선 선정 방식을 크게 바꾸지 않는 한 어느 쪽도 눈에 띄는 우세를 보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5년 전 백지화의 주된 원인이었던 환경 훼손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지역 갈등은 오히려 더 심화될 조짐을 보인다. 벌써부터 정권 심판, 불공정, 음모 같은 극단적 어휘들이 춤추고 있다. 아무리 필요한 시설이라도 그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크면 없느니만 못할 수 있다. 신공항이 극심한 국론 분열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냉정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6. 무작정 시작한 보편복지 무상보육, '구조조정'해야 옳다

보편적 무상보육을 7월부터 선별적 무상보육으로 바꾸는 ‘맞춤형 보육’ 제도가 야당과 일부 어린이집의 반대로 흔들리고 있다. 취업 여성들이 0∼2세 아이를 맡길 곳이 부족하다는 여론에 따라 하루 12시간 이용 가능한 어린이집 종일반을 취업여성 위주로 운영하고, 전업주부와 육아 휴직자의 자녀들은 하루 6시간 맡기도록 구조조정을 한 것이 맞춤형 보육이다. 하지만 정부 지원이 줄어든다며 반발하는 어린이집 원장들이 내주부터 집단 휴원을 예고해 일하는 엄마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아무리 선진 복지국가라 해도 전업주부 아이들을 종일, 무상으로 돌보는 나라는 없다. 일본과 프랑스는 맞벌이가 아니면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없고, 영국 독일 스웨덴은 전업주부의 어린이집 이용시간에 제한을 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출발부터 엄마의 취업 여부에 관계없이 모두 종일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도록 잘못 설계하는 바람에 어린이집에선 자녀를 빨리 데려가는 전업주부만을 선호해 정작 보육이 절박한 취업 주부가 불이익을 당하는 구조였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전업주부의 종일반 이용을 제한하고 절감된 예산을 보육교사 처우 개선 등 보육의 질 향상에 쓰도록 정책을 바꾼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이런 취지에 공감한 야당도 지난해 9월 맞춤형 보육에 동의했고, 전년도 대비 1083억 원 증액된 보육 예산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시행을 불과 2주일을 앞두고 돌연 “맞춤형 보육 도입으로 피해를 볼 사람이 발생할 것이 눈에 보이는데 그냥 있을 순 없다”고 나선 것은 야당의 발목 잡기 고질병을 드러낸 것 같아 실망스럽다. 맞춤형 보육 도입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있다면 어린이집 원장들일 것이다. 정치권이 이들의 ‘조직적’ 반발에 휘둘려 정작 일하는 엄마들의 고통을 외면해선 안 될 일이다. 맞춤형 보육으로의 전환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복지가 제공돼야 한다는 점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봐야 한다.

7. 유승민 복당 안된다는 친박, 총선참패 이전과 뭐가 다른가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어제 20대 총선 과정에서 탈당해 무소속 당선된 7명을 일괄 복당시키기로 했다. 비대위는 이미 복당을 신청한 유승민 강길부 윤상현 안상수 의원 등 4명의 복당을 무기명 투표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은 126석으로, 원내 제1당의 자리를 되찾았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가관이다. 유 의원 복당 결정에 반발한 일부 강경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이 “비대위 쿠데타”라고 반발했고, 김희옥 비대위원장은 “거취를 고민하겠다”며 오늘 예정된 고위 당정청 회의 참석까지 취소했다. 김 위원장이 사퇴하면 비대위는 마비된다. 새누리당 막장 드라마의 끝은 어디인가.


김 위원장이 거취 고민을 말한 정확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당 안팎에선 청와대와 친박계의 집중적인 압력 때문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탈당 의원 복당 문제는 새 지도부가 출범할 때까지 당 지도부 역할을 맡은 비대위의 전결 사항이다. 복당 결정에 절차적 하자도 없다. 만약 청와대와 친박이 유 의원 복당 결정을 힘으로 찍어 누르려고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정당 민주주의에 반하는 패거리 정치다. 한 달 전 정진석 원내대표의 혁신위원장 선정과 비대위 구성을 친박이 좌초시킨 것 이상의 패권주의 행태다.


정치 경험이 없는 김 위원장은 처음부터 적격이 아니라는 관측이 많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혁신해야 한다” “계파 활동으로 통합을 해치는 구성원은 제명하겠다”고 했으나 과연 그런 다짐을 관철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친박은 자신들이 인정한 김 위원장 체제마저 마음에 안 든다고 갈아 치울 태세다. ‘당의 주인은 우리다. 누구든 도전하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식의 패권의식은 정상적인 공당(公黨)에선 있을 수 없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배신자’로 낙인찍힌 유 의원을 당에서 쫓아내는 과정은 졸렬했다. 민심이 떠나서 총선에서 참패한 주요 원인이 된 것이 당연하다. 청와대와 친박이 총선 참패라는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위상이 졸아들었는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복당 결정까지 무산시키려 한다면 친박 패권주의에 넌더리 난 국민의 인내를 다시 한번 시험하는 일이다. 민심이 떠나간 당은 결국 존속 기반이 사라진다.

8. 세계경제 넘어 세계정치 흐름 뒤바꿀 브렉시트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를 23일(현지 시간) 실시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5일 기준금리를 현행 0.25∼0.50%로 동결하기로 결정한 뒤 재닛 옐런 의장은 “기준금리 동결의 한 요인이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라고 밝혔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어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하면서 “우리나라는 영국과의 무역 금융 연계가 낮아 상대적으로 브렉시트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금융시장을 뒤흔들 수 있을 뿐 아니라 국제정치의 흐름까지 바꿀 수 있는 브렉시트의 영향을 영국과의 무역 문제 정도로만 보는 것은 협소한 시각이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한 뒤 EU와 새로 자유무역협정(FTA)도 맺지 못할 경우 2030년까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2.2%까지 손실이 예상된다. EU도 역내 시장 규모가 축소되면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영국과 EU의 경제적 손실에 따라 파운드화와 유로화 가치가 요동치면 국제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몰고 올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경제적 손실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방과 통합을 추구하던 자유시장경제적 흐름이 꺾일 경우 발생할 국제정치의 변화를 더 크게 우려하고 있다.


미국 올랜도에서 발생한 이슬람국가(IS) 추종자의 테러 이후 영국의 브렉시트 지지 여론이 반대를 앞지르는 역전극이 벌어졌다. EU의 이민 정책으로 테러리스트들이 유입될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외국인에게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피해의식도 팽배해 있다. 국민투표 결과가 브렉시트 쪽으로 나온다면 주류 정치권과 경제사회적 기득권 계층에 대한 ‘대중의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공화당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주류 세력의 반대를 뒤엎고 대선 후보로 결정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과 영국같이 개방을 선도했던 나라가 고립주의, 국수주의의 길로 가는 것이 세계가 가장 우려하는 일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작년 총선에서 보수당 내 반(反)EU 세력을 달래고 같은 우파 성향인 독립당의 약진을 막기 위해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공약했다. 그 덕에 총선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자승자박이 됐다. 정치적 목적으로 내건 포퓰리즘 외교 공약이 자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어떤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반미(反美)면 어때”를 외쳤던 노무현 대통령 시절 한미 관계가 왜곡된 적이 있다. 외교든, 경제든, 복지든 표만 노리고 국익은 도외시하는 포퓰리즘은 결국 감당하기 어려운 대가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브렉시트는 경제 그 이상이다.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통합과 협력을 지향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성장했다.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서는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당연시했던 정신적 물적 토대가 바뀔 수도 있다. 미리 내다보고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앙일보]

9. 전관 비리를 '변호사 처신 탓'으로 돌린 대법원 대책

대법원이 전관(前官)예우 논란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다. 연고관계에 따라 변호사를 선임하려는 시도를 차단하고 법정 밖에서의 변론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과연 이런 대책으로 전관 비리 의혹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제 대법원은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재판부와의 연고관계를 내세워 수임료 10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데 대해 사법부 차원의 대책을 밝혔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은 대법원에서 하루라도 함께 근무한 대법관에겐 배당하지 않고 법정 밖 변론과 전화 변론, 몰래 변론 등 부적절한 의견 전달 금지를 대법원 규칙으로 명문화하기로 했다. 가칭 ‘부당변론신고센터’도 개설하겠다고 했다. 요약하면 법원 외부의 불순한 접근을 차단하겠다는 얘기다.


이번 대책은 대법원의 안이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대법원은 “사태의 근본 원인은 법관과의 연고관계를 사건 수임의 도구로 악용해온 일부 변호사의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사법부 역시 이러한 행태가 가능하도록 틈을 보인 측면은 없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전관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근본 원인은 ‘일부 변호사의 부적절한 처신’이 아니라 재판의 불투명성과 폐쇄성에 있다.


법정에 제출된 증거와 진술을 토대로 실체적 진실이 가려지고 법리적 문제가 정리된다면 의뢰인들이 굳이 판사 출신 변호사의 인적 네트워크를 돈으로 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다 보니 ‘전관’ ‘연고’를 앞세운 변호사와 브로커들의 영업 마케팅에 말려드는 것 아닌가. 책임을 내부(재판)가 아닌 외부(변호사 처신)로 돌리는 이번 대책은 법원이 얼마나 국민과 동떨어진 집단사고에 갇혀 있는지 말해주는 것이다.


그간 법조 비리가 터질 때마다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대책의 틈새를 비집고 새로운 유형의 비리들이 고개를 들곤 했다. 대법원이 재판에 대한 근본적 반성 없이 미봉책으로 넘어가려고 한다면 사법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

10. 성폭행 피해자 신상털기, 반인륜 범죄다

일부 삐뚤어진 네티즌이 전남 신안군에서 발생했던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신상털기’를 시도하다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의 회원 등 네티즌 5명은 신안군 성폭행 사건 피해자의 정보를 캐서 인터넷에 올리려다 엉뚱한 사람의 사진을 올리는 바람에 피해를 안겨준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됐다.


피해자가 기간제 교사라는 잘못된 이야기를 접한 이들은 사건이 발생한 초등학교 홈페이지에서 A교사의 사진을 찾아 인터넷에 올렸다. 하지만 이들이 신상 정보를 공개한 인물은 피해자가 아니었다. 뒤늦게 자신의 사진이 성폭행 피해자로 지목돼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음을 알게 된 A교사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네티즌 5명에 대한 고소장을 직접 경찰에 제출했다. 그는 이 일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다가 최근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하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성폭행 사건은 전 국민을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은 흉악 범죄다. 그런 사건의 피해자 신상 정보를 캐서 인터넷에 올리려고 한 것 자체가 성폭행 못지않은 비윤리적이고 반인륜적이며 파렴치한 중범죄다. 극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피해자를 돕지는 못할망정 이런 시도를 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희롱한 망나니 짓이다. 그릇된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 엉뚱한 사람을 피해자로 둔갑시킨 것도 마찬가지다. 사명감을 가지고 벽지에서 일하는 교사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간적 어려움을 안겨줬다.


당국은 이번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고 강력하게 단죄해 사회적 경종을 울려야 한다. 일벌백계 차원에서 법이 허용하는 가장 강력한 처벌을 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올린 비인간적인 정보를 보고 킬킬거리며 ‘좋아요’ 등을 누른 네티즌에게도 책임을 물릴 방안을 찾아야 한다.


사람을 노리개 삼는 이런 비인간적인 사이버 범죄의 재발을 막으려면 정부는 물론 네티즌 차원의 대책도 필요하다. 인터넷에서 단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벌이는 이러한 일탈 행동을 근절하려면 사이버 공간의 자율적인 자정 기능부터 강화해야 한다. 인터넷 자정 시민운동을 기대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최재석의 동행> "사장님, 나빠요"

2000년대 초반 KBS2의 예능프로그램 '폭소클럽'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어눌한 한국어를 흉내 낸 코너가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외국인노동자 '블랑카'로 분한 개그맨 정철규 씨의 "사장님, 나빠요"라는 대사는 당시 꽤 유행했다. 블랑카 코너가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풍자적으로 잘 그렸다는 점에서 공감이 컸다.


10여 년이 지나 이 인기 개그 코너를 다시 떠오르게 한 일이 있었다. 경남 창녕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등 외국인노동자 4명이 이달 9일 건축업자로부터 밀린 임금 440만 원을 모두 동전으로 받았다고 한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이들을 고용했던 건축업자는 자루에 담아온 100원짜리 동전 1만7천505개와 500원짜리 동전 5천297개를 컨테이너 사무실 바닥에 쏟아 뒤섞이도록 한 뒤 '가져가라'고 했다.

외국인노동자 4명은 지난달 중순부터 이 건설현장에서 급여를 주급으로 받기로 하고 일했다. 그런데 한 달 가까이 임금을 받지 못하자 현장에 출근하지 않았고 이에 화가 난 건축업자가 밀린 돈을 동전으로 지급했다는 것이다. 동전을 받은 노동자들은 합숙소인 원룸에서 밤새 100원짜리와 500원짜리로 나눴고, 다음날 단골 슈퍼마켓 주인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후 슈퍼마켓 직원과 함께 동전을 차에 싣고 농협과 은행 등을 찾았으나 '동전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번번이 환전을 거절당했다. 창원시에 있는 한국은행 경남본부를 찾아가서야 겨우 지폐로 바꿀 수 있었다고 하니 그들이 느꼈을 인간적 모멸감이 어느 정도였겠는가.


요즘 외국인노동자는 전국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이 많아졌다. 2015년 10월 통계청의 '외국인 고용조사' 발표에 따르면 그해 5월 기준으로 외국인 국내 취업자가 93만8천여 명이다. 연평균 10%의 증가세를 고려하면 현재 100만 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고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외국인노동자와 이주민들이 여전히 많다고 한다. 외국인노동자가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일각의 주장도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는 게 이주노동자권익옹호단체들의 설명이다. 경기도 광주의 한국이주노동재단 이사장인 안대환(56) 목사가 지난달 말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우리 산업 현장의 현실을 잘 말해준다.


"1970∼80년대 지금 청년들의 바로 윗세대가 손가락이 잘려가며 하던 일을 이제 파키스탄이나 몽골의 노동자들이 대신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고도화돼 자동차나 휴대전화 제조업이 주력이라 해도 부품을 만드는 절삭가공이나 사출금형 등의 작업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청년들은 선반이나 밀링머신, 프레스 등의 위험한 기계는 다루려고 하지도 않지요."

지금은 바야흐로 '외국인 200만 명 시대'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194만3천여 명이다. 2000년 49만 명이었던 외국인이 불과 15년 만에 4배로 늘어났다. '단일 민족'을 고집하던 한국이 여러 나라 출신 외국인과 함께 사는 '글로벌 국가'로 변모한 것이다. 외국인과 이웃하는 광경이 더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주민을 바라보는 인식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격차가 크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9∼10월 전국의 성인 4천 명과 청소년 3천640명을 대상으로 '국민 다문화 수용성 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노동자와 이민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31.8%였다. 스웨덴(3.5%), 호주(10.6%), 미국(13.7%)과는 아직 큰 차이를 보였다.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노동자는 힘든 노동이 필요한 중소기업과 농촌에서 지금도 부족한 일손을 메우고 있다. 그들이 우리 사회가 지탱하고 발전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는 사회 구성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저출산의 늪에서 오랫동안 못 벗어나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판에 우리나라에서 일하겠다고 찾아온 외국인에게 멸시와 차별이 있어서 되겠는가.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걷다가 생김새나 피부색이 우리와 다른 그들을 우연히 마주쳤을 때 왠지 주위를 경계하는 듯한 행동이나 눈빛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면 외면하지 말고 조용히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봐주자. 같은 세상을 사는 한국인의 사랑을 느낄 것이다. 사실 먹고 살게 부족했던 우리 아버지 세대의 많은 사람이 외국으로 건너가 온갖 설움을 견디며 '노동자' 생활을 한 것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가짜 손가락 수당/최광숙 논설위원

007 영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1971년)에는 제임스 본드가 보안문을 통과하기 위해 가짜 지문을 엄지손가락에 붙여 지문인식기를 무사히 통과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은 보안을 위해 지문뿐만 아니라 목소리, 손의 혈관, 얼굴 등을 활용한 다양한 생체인증 기술이 발달했지만 당시만 해도 그것은 ‘최첨단 기술’이었다.


공직사회에도 가짜 지문이 등장했다.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다. 공무원들이 야근 수당 등을 타 내기 위해서다. 지난해 말 해임된 경북의 소방공무원 2명은 초과근무 수당을 챙기기 위해 ‘가짜 손가락’을 만들었다가 적발됐다. 이들은 미술을 전공한 부하 직원의 도움을 받아 실리콘으로 손가락 본을 뜬 뒤 부하 직원들에게 맡겨 야근을 한 것처럼 지문인식기에 체크를 하도록 했다고 한다. 개당 20만원을 주고 가짜 손가락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실리콘 손가락 덕분에 이들은 연간 200만~400만원의 수당을 챙겼다.


사실 공무원들이 출퇴근 시간 조작으로 수당을 챙기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0년 전만 해도 지방자치단체의 서무 담당 공무원의 주요 일과 가운데 하나가 그 일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부서원들의 수당을 모아서 부서 회식비 등으로 썼을 정도로 조직 차원에서 이뤄졌다. 오랜 관행이다 보니 초과근무 수당을 챙기는 것을 문제 삼는 이들이 없었다.


정보기술( IT)이 발달한 이후에는 컴퓨터에 출퇴근 시간을 입력하거나 카드 인식기로 체크를 했다. 그런데도 다른 동료 직원들을 대신해 체크해 주는 등 공무원 야근 수당 조작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10여년 전 도입된 것이 지문인식기다. 본인만 체크를 할 수 있어 수당 비리가 사라질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나쁜 버릇은 쉬 고치기 어려운 법이다. 2014년 충북도청 한 직원은 음주 교통사고를 낸 뒤 경찰 조사를 끝내고 귀가하는 도중 잠시 사무실에 들러 지문인식기에 지문을 찍었다가 들통이 났다. 회식을 하거나 외국어 공부를 하러 학원에 다녀온 뒤 사무실에 돌아가 지문을 찍고 가는 경우는 다반사다. 심지어 귀가했다가 슬리퍼에 운동복 차림으로 지문을 찍으러 갔다가 걸린 공무원도 있다.


2014년 공무원 초과근무 수당이 연 2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밤늦도록 일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이런 식으로 수당을 훔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부가 공무원 초과근무 수당 문제 개선을 위해 ‘초과근무 총량관리제’를 도입한 것도 그래서다. 일부 지자체 등에서는 지문인식기보다 한 차원 높은 정맥인식기로 교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수당 타 먹기에 관한 한 우리 공무원들의 ‘창의성’을 감안한다면 그것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고질적인 수당 비리를 근절하려면 무엇보다 공무원의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 수당 비리는 분명 세금 도둑질이자 범죄다.

3. [동아일보][지금 SNS에서는]카톡방 언어성폭력을 보며

14일 오후 11시경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보다가 대학 후배가 올린 사진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고려대 남학생 8명이 1년 넘게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여자 동기와 선후배들의 실명을 언급하며 성희롱 대화를 나눈 이른바 ‘고대생 카톡방 언어 성폭력 사건’을 고발하는 대자보 사진이었습니다. 


부끄러운 학창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중학교 3학년 도덕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성(性)을 주제로 한 조별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제가 속한 조는 남학생들로만 구성돼 있었습니다. ‘나에게 이성이란’ 질문에 한 친구가 ‘욕망의 대상’이라고 썼고 저를 포함한 나머지는 이걸 보고 키득거렸습니다. 마침 그때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습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끝난 뒤에도 다들 조별 과제물에 적은 문제의 표현을 지워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 과제물이 교탁 위에 올려져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수업을 하러 들어온 국어 선생님은 그 과제물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조의 과제물을 본 순간 선생님의 표정은 일그러졌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와.” 


그날 우리는 호되게 맞았습니다. 그리고 한 주 동안 수업을 듣지 못했습니다. 학생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매일 반성문을 써야 했거든요. 교실에 돌아간 첫날 담임선생님은 “잘못 가르쳤다”며 매를 들었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여성 인권과 성 평등을 주제로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감상문을 써 내야 했습니다. 


고대생 카톡방 성폭력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다음 날인 15일 가해 학생들은 캠퍼스 곳곳에 대자보 형식의 사과문을 붙였습니다. 이들은 ‘언어 성폭력에 관련된 혐의를 모두 인정합니다. 형사처벌을 포함한 징계 역시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사과했습니다. 


이들이 나눈 대화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저속한 표현이 많았습니다. 단체방에 있던 한 학생이 문제 제기를 했는데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들 중 한 명은 학교 양성평등센터 자원봉사자였고 다른 한 명은 페미니즘학회 회원이었습니다.


누리꾼들은 이들을 향해 ‘역겹다’, ‘추악하다’며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사과문에 대해서도 진실성이 없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카톡 단체방에서 나눈 대화도 모욕죄로 처벌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만약 이들이 법정에 가더라도 초범이기 때문에 그 처벌은 벌금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사례에 비춰 봤을 때 징계도 그리 무겁지 않을 테고요. 성인이 되어서도 고쳐지지 않은 비뚤어진 사고방식이 이 정도로 고쳐질 수 있을까요. 이들은 사과문에서 ‘평생 반성하며 살겠다’고 했지만 그 말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건 저 뿐일까요.

4. [중앙일보][마음산책]성인이 된 아이는 놓아주고 친구를 챙기세요

출가할 당시만 하더라도 스님이 되면 본인의 깨달음을 위해 수행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보살심을 발휘해서 중생 구제를 하더라도 우선은 내가 깨달은 후에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절에 있다 보면 실상은 절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절을 찾는 신도님께서 갑자기 힘든 일이 생겨 많이 괴로워하시는데 그분을 모른 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차라도 함께 나누면서 힘든 상황을 따뜻하게 들어주고 위로의 한마디라도 해드리면, 비록 문제를 해결해드리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조금은 홀가분해하신다. 어떻게 보면 심리상담가가 없던 그 옛날에는 종교인들이 바로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 내게 힘든 심정을 토로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와 부모 사이 관계에서 비롯한 문제가 가장 많았던 것 같다.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가 말을 듣지 않거나 아니면 지금 힘든 아이 상황을 보는 것이 괴롭고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의 지나친 간섭이나 기대, 아니면 반대로 무관심으로 인한 상처 때문에 아파한다.


예를 들면 서른이 넘은 아이가 결혼을 하려고 하지 않아 걱정이라고 하시는 분이 유독 많다. 부모 입장에선 아이가 미혼으로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부모 역할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기만 하다. 마치 미완성인 그림을 보는 듯한 심정이신 것 같다.

더불어 결혼 말고도 부모님들은 아이의 직장 문제로 또 고민하신다. 요즘 워낙 취업이 힘들다 보니 몇 년째 취업 공부만 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고 능력이 크게 없는 부모 처지가 미안하기까지 하다. 올해도 취직 시험에 떨어진 아이를 보면서 그만 공부하게 하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1년 더 지켜봐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기껏 어렵게 입사해서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신 분들은 갑자기 아이가 직장을 때려치우고 장사를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또 고민하신다. 장사 밑천이 없으니 부모 도움이 필요한데 노후를 위해 준비해둔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아이를 도와주는 것이 맞는지, 그냥 없다고 하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아이 문제로 상담하시는 부모님을 만날 때마다 나도 함께 깊은 고민에 빠진다. 획기적인 문제 해결은 어렵지만 그분의 어려움을 함께 공감해드리고 지금 현재 상황을 좀 더 수용하면서 안정을 찾으시도록 몇 마디 해드려야만 할 것 같아서다.


예를 들면 미혼 자녀 때문에 걱정이라는 분께는 이렇게 말씀드린다. “저는 아이가 결혼을 안 한 것이 꼭 불행이라거나 미완성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전 세계 그렇게 많은 신부님, 수녀님, 스님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데도 그분들은 본인 인생이 미완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서두르다 보니 배우자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한 결혼 때문에 자신의 삶이 싱글 때보다 불행해졌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식의 직장 문제로 고민하시는 분들께는 또 이런 이야기를 해드린다. “공무원 시험이나 각종 고시 같은 시험 준비를 하는 자녀가 작년에 이어 이번 시험에서도 떨어졌는데 본인은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고 한다면 아이에게 다짐을 받으세요. 딱 1년만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고 만약 내년에도 떨어지면 깨끗하게 단념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요. 그리고 직업의 종류는 3만 가지나 되는데 너무 하나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은 그리 지혜로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실제로 꿈의 직장에 취직이 된 사람들 가운데도 상당수가 1~2년 안에 이직을 꿈꾸는 경우가 아주 많으니까요. 그냥 생각으로 직장을 고르는 것과 실제로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노후 준비 자금으로 자녀를 도와주는 것이 맞는지를 물어보시는 분께는 이렇게 말씀드린다. “우리나라 노년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위라고 합니다. 노년이 찾아왔을 때 자식들이 부모가 해준 것만큼 다시 해주면 참 좋겠지만 실상은 본인들 살기도 힘들고 바쁘기 때문에 그것이 쉽지가 않아요. 재산이 있으면 또 자식들 간에 다툼이 생길 수 있어 심리적으로 힘든 노년을 맞는 분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요. 그래서 성인이 된 자식은 본인의 삶을 살도록 좀 놓아주고 나 자신과 배우자, 친구들을 좀 더 챙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특히 은퇴 후 내 마음을 살찌울 공부를 한다던가 여러 친구들과 운동이나 취미, 종교, 봉사활동 등을 주기적으로 하면서 밥을 같이 먹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은퇴 후 20~30년을 더 사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 삶의 중심을 너무 자식으로만 두지 말고 나 자신과 배우자, 그리고 특히 친구들과 함께하는 충만한 삶으로 설계하세요.”

5. [중앙일보][시선 2035] 편의점과 숟가락

퇴근길에 종종 집 근처 편의점을 찾는다. 맞벌이 부부다 보니 밥솥은 텅 비어 있고, 녹초가 된 몸으로 밥을 해먹기엔 엄두가 안 나서다. 편의점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라면과 삼각김밥, 햄버거로 손이 간다. 복학생 시절인 8년 전 자취를 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 나 혼자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항상 20대 대학생, 30대 직장인 등이 편의점 자리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3만 곳이 넘는 편의점 수만큼이나 이곳 음식은 젊은 층에게 일상이 됐다. 배문경 충북대 교수에 따르면 주 2회 이상 편의점 식품으로 끼니를 때운다는 대학생은 절반을 넘었다(52.2%). 하지만 맛 때문에 편의점 식품을 먹진 않았다.


대부분 쉽게 살 수 있고 시간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돈 없고 집밥과 거리가 먼 자취생들이 단골이다. 혼자 원룸에 살고 있는 친구는 “편의점 식품이 몸에 안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래도 혼자서 5000원, 1만원짜리 밥을 먹긴 부담스러우니 선택지는 편의점뿐”이라고 말했다.


직장에 나간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맛을 음미할 여유도 없이 허겁지겁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해 한 취업사이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이 실제로 점심을 먹는 시간은 20분 미만이 53.2%였다. 빡빡한 점심시간 규정과 쌓여 있는 업무 속에 부랴부랴 식당 문을 나서는 셈이다. 그마저도 평균 6000~7000원인 점심값을 줄여보려고 싼 곳을 찾아다니기 일쑤다. 회사원 친구는 “바쁘면 샌드위치나 김밥으로 때우는 경우도 많다. 아침은 굶고 점심을 부실하게 먹으니 도리어 저녁·야식을 많이 먹게 된다”고 푸념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말을 농담처럼 나누던 시절은 흘러가고 오직 생존을 위해 먹는 세상이 된 걸까. 천천히 밥알을 꼭꼭 씹어 가며 점심을 먹거나, 집에서 손수 만든 반찬과 국으로 저녁을 해결하는 건 ‘로망’이 된 지 오래다. 1식4찬을 갖춘 1000원짜리 대학교 학생식당 밥, 영양소를 다 갖췄다는 편의점 웰빙 도시락이 그나마 대안이 될 뿐이다. 값싼 편의점 식품에, 짧은 점심시간에 시달리는 20~30대는 갈수록 늘어 간다.


지난달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사고를 당한 19세 김씨도 마찬가지다. 고교생 티를 막 벗은 그의 가방 속 사진이 공개되자 모두의 시선은 같은 곳에 머물렀다. 손때 묻은 공구들 사이의 사발면과 나무젓가락, 그리고 쇠숟가락. 특히 컵라면과 숟가락은 비정규직 청년의 아픔을 대변하는 상징이 됐다. 정해진 수리 시간을 맞추기 바쁘지만 어떻게든 밥 한 숟갈 뜨고 싶었을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문득 김군과 함께 스크린도어 정비업체에 입사했다는 또래 비정규직 직원 16명의 가방 속도 궁금해졌다. 여러분은 식사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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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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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6월 17일 신문 브리핑 #

"잠들기 전 하루 동안 신이 내게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라. 믿음과 소망과 사람과 기쁨 주신 것을 감사하라."
- 평생감사 카드


<< 정치/외교 >>
특이내용 없음


<< 경제 일반 >>
1. 본격적인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경기 하락 가능성이 커지면서 하반기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는 방안이 급부상하고 있음
- 여야 정치권이 추경 편성의 불가피성을 제기하면서 ‘불가론’을 고수하던 기획재정부도 “검토하겠다”며 긍정적으로 돌아서는 분위기임

2.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4차 전원회의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계 위원들은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시간당 6030원)보다 65.8% 많은 1만원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함
- 한국경영자총협회 분석 결과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원으로 오르면 통상 한 달 근무시간(209시간) 기준으로 월급은 209만원이 되며, 현행 공무원 7급 5호봉의 기본급인 200만2700원보다 많아짐
- 김수복 조선5사협력회사 협의회장은 이날 “조업 일수 223일 기준으로 현행 최저임금 6030원을 적용한 연봉은 3480만원”이라며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인상되면 협력업체는 대부분 망할 것”이라고 말함

3. 삼성전자가 모바일 클라우드 사업을 확대하고 사물인터넷(IoT) 등과 연계한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서 스토리지(대용량 저장장치), 서버 등 클라우드 인프라 운영과 최적화 기술에 강점을 지닌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 전문 기업인 조이언트를 인수함
- 인수 금액은 밝히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수천억원으로 추정하고 있음

4. 숙박공유 업체 에어비앤비를 활용해 국내에서 숙박 문제를 해결하는 외국인이 크게 늘고 있으며, 외국인을 겨냥한 게스트하우스와 비즈니스호텔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남
- 이 같은 새로운 형태의 숙박업체에 고객을 빼앗긴 특급호텔들은 객실 이용률 하락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전체 호텔업계가 공급과잉에 시달릴 것이란 지적도 나옴


<< 금융/부동산 >>
1.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은 16일 제38차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아래 내용을 포함하는 외환건전성 제도 개편 방안을 마련함
- 달러 등 외화가 급격히 이탈하는 금융위기 상황에 대비해 은행들이 쉽게 팔 수 있는 우량 외화 자산을 일정 수준 이상 강제 보유하도록 하는 ‘외화 LCR(liquidity coverage ratio·유동성 커버리지 비율)’ 제도가 내년부터 전면 시행되며, 은행들의 외화 차입을 제한하는 선물환보유 한도도 늘어나 은행들이 외화를 들여올 수 있는 여력도 커짐

2. 일본은행은 16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어 연간 80조엔 규모의 양적 완화를 유지하기로 하고 시중은행이 일본은행에 맡기는 당좌예금 일부에 적용하고 있는 연 -0.1% 금리도 동결함
- 일본은행의 이러한 양적완화 보류 조치 발표로 엔화 가치는 장중 달러당 103.55엔까지 급등해 2014년 8월29일 이후 최고를 기록했으며, 엔화 강세에 따른 기업 실적 악화 우려로 닛케이225지수는 3.05% 급락한 15,434.14에 마감함

3.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또다시 동결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함
- 오는 23일 예정된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에 대한 우려와 미국의 고용시장 지표 악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임


<< 국제 >>
특이내용 없음


<< 오늘 신문의 경제관련 용어 >>
* 선물환)先物換 , future exchange)
- 장래의 일정기일 또는 기간내에 일정금액, 일정종류의 외환을 일정 환율로써 수도할 것이 약정된 외환을 말하고 이러한 약정을 선물환계약이라 함.
계약 내지 선물기간은 일반적으로 6개월 이내이지만 6개월 이상의 장기계약도 있으며, 만기일이 되면 그 약정에 따라 매매가 이루어지는데 이것을 수도(delivery)라고 함
또 이 선물거래에 적용되는 환율은 선물환율이라 하고 선물환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것을 선물환거래라고 함. 
선물환거래에는 외국환은행을 중심으로 대고객간에 이루어지는 대고객 선물환거래와 외환시장에서 외국환은행간에 이루어지는 시장선물환거래가 있으며 환율도 대고객률과 시장률도 나누어짐
- 출처 : NEW 경제용어사전, 2006. 4. 7., 미래와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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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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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6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롯데그룹 수사 무리해선 곤란하다

검찰의 전면적인 수사 확대에 따라 롯데그룹 경영 비리가 베일을 벗고 있다. 호텔롯데가 제주리조트를 헐값에 합병했는가 하면 롯데케미칼이 해외로부터 원료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일본 계열사를 거치도록 하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단서를 포함해 여러 정황이 포착된 상황이다. 지난 며칠 사이 주요 계열사들에 대한 2차례의 압수수색이 이뤄졌으므로 상당한 증거가 확보됐을 것이다.


대기업 비리를 규명하려는 검찰 노고에 응원을 보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가 없지 않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이 관리해 왔다는 ‘수상한 자금’에 대한 성격 규정이 그 하나다. 계열사들로부터 해마다 300억원을 받은 데 대해 검찰은 비자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롯데 측에서는 배당금 및 급여라고 주장한다.


재벌 오너들이 회사돈을 빼돌려 개인 금고에 숨겨놓는 비리에 대해 검찰이 철퇴를 가해 온 공적을 모르는 바 아니다. 혹시 다른 계좌나 금고에 비자금이 감춰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정당하게 받은 배당금이나 급여에 대해서까지 미리 범죄 혐의를 두는 태도는 옳지 않다. 오너라고 해서 배당금을 많이 받는 현실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신격호·신동빈 회장보다 배당금을 더 많이 받는 기업인도 더러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을 수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문제도 그렇다. 화살이 이명박 전임 대통령의 주변을 향하는 듯한 조짐이지만 이런 식이어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 이미 건물이 최종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공군 비행기의 이·착륙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진작부터 의혹의 소지가 거론됐었으나 검찰이 그냥 넘어가고 말았던 결과다. 정권의 눈치를 살피는 뒷북 수사가 안타깝다는 얘기다. 


롯데그룹 수사가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경기가 좀처럼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처지에서 기업 수사가 장기화된다면 국가적으로도 이로울 것은 없다. 수사를 철저히 진행하되 가급적 빠르게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해 무려 8개월 동안 이어지고도 ‘먼지떨이 수사’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던 포스코 수사가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검찰의 명쾌한 솜씨를 보여주기 바란다.

2. 대학 캠퍼스가 '성폭력의 소굴'인가 

고려대학교 남학생 8명이 카톡 단체대화방에서 지난해 7월부터 선후배 여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희롱한 사실이 최근 내부 고발로 드러났다. 대학 사회의 일그러진 성의식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참담한 현실이다. ‘지성의 요람’인 대학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집단 언어 성폭력’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대학이 성범죄의 사각지대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성희롱 대책위가 공개한 A4용지 700장 분량의 대화 내용은 차마 필설로 옮기기 민망할 정도다. ‘새따(새내기 따먹기)’, ‘(술을) 샷으로 먹이고 쿵떡쿵’, ‘○○여대 축제가자, 다 따먹자’ 등 성희롱·성폭행을 암시하는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가해자들은 반성은커녕 피해자들을 모욕하며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고도 한다. 지성인이라는 대학생들의 의식 수준이 이 정도라니 당혹스럽다.


고려대 측은 “사실관계를 파악해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미덥지 못하다. 고려대는 성폭력과 관련해 아픈 기억이 있다. 의대 본과 4학년 남학생 3명이 술에 취해 잠든 여학생을 집단 성추행한 사건이 불과 5년 전 일이다. 그동안 성폭력 예방을 위해 어떤 조치들을 취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래서야 어디 딸자식을 둔 부모들이 마음 놓고 고려대에 보낼 수 있겠는가.


비단 고려대만의 일도, 학생들만의 일도 아니다. 여학생을 ‘빨통’ 등으로 비유해 물의를 빚은 국민대 카톡방 사건을 비롯해 서울대, 연세대, 건국대 등 대학을 가리지 않는다. 1993년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이후 교수들의 성폭력 관행도 여전하다. 2014년 서울대 강모 교수의 성추행 파문이 대표적인 사례로, 신성한 상아탑이 일부 교수들의 그릇된 성범죄 온상이 된 지 오래다.


대학 내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데는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한 대학 측의 잘못이 크다. 쉬쉬할 게 아니라 가해 학생들을 일벌백계로 다스리고 성폭력 연루 교수는 다시는 교단에 서지 못하도록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 대학이 성폭력의 소굴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정부와 대학이 머리를 맞대고 예방 대책을 서두르기 바란다. 이번 고려대 사태를 주시하는 이유다.

[서울신문]

3. 전문성 무시한 상임위서 좋은 정책나오겠나

국회가 ‘일하는 국회’로 탈바꿈하려면 상임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돼야만 한다. 우리 국회에는 전문 분야별로 16개의 상임위원회와 2개의 상설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있다. 국회의원들은 본회의에 앞서 소속 상임위에서 특정 범주의 정책 사안이나 의안, 청원 등을 심사하고 법안을 직접 발의할 수 있다. 보좌진의 보필을 받는다 해도 전문성을 갖춘 의원들이 해당 분야 상임위를 맡는 것이 비전문가보다 생산성 측면에서 효율적이다. 그런데 20대 국회의원들의 상임위 배정이 문제투성이다. 한 의원은 재배정을 요구하며 농성까지 하고 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오랫동안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등을 지내 ‘언론개혁 전문가’로 주목받았지만 해당 분야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아닌 외교통일위원회로 배정됐다. 현대차 울산공장 노동자 출신인 무소속 윤종오 의원은 자신의 ‘전공’인 환경노동위원회가 아닌 외통위에 배치됐다. 국방 분야 문외한인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국방위로 갔고, 경영학과 교수 출신인 새누리당 김종석 의원은 경제 분야 상임위가 아닌 외통위를 배정받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출신 새누리당 김승희 의원을 안전행정위원회에 배치한 것도 난센스다.


의원들의 상임위 배정은 국회의장에게 있는데 원내 교섭단체는 의석 비율에 따라 상임위별 의원 정수를 받은 뒤 당 내부에서 분배하고, 군소 정당이나 무소속 의원들은 남은 자리를 국회의장이 배정한다. 다선과 실세 의원들이 인기 상임위를 선점하기 때문에 힘없는 초선이나 비례대표, 군소 정당과 무소속 의원들은 전문성과는 관계없는 비인기 상임위로 밀려나는 일이 지금까지 허다했고, 20대 국회에서도 이 같은 구태가 반복된 것이다.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던 상임위에서 해당 의원들이 어떤 열정을 갖고 일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국회 운영의 성패는 상임위 활동에 달려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일부 상임위원장 임기를 1년으로 변칙 적용해 나눠 먹기한 행태에 대해 “일하는 국회에 역행한다”는 비판 여론이 거센데 상임위 배정까지 전문성을 무시한다면 어쩌자는 말인가. “일하는 국회, 생산적인 의정 활동으로 국민에게 짐이 아닌 힘이 되는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원사는 그저 말치레에 불과했는지 묻고 싶다. 미국 의회가 상임위원장은 물론 상임위 배정에서도 전문성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까닭을 우리 국회가 되새기기 바란다.

4. 청산하자는 판에 파업 결의한 대우조선 노조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이 파업을 결의했다는 소식에 국민은 억장이 무너진다. 대우조선이 어떤 회사인가. 다시 입에 올리는 것도 거북하지만, 지난해 4조 2000억원의 혈세를 투입하고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어마어마한 경영 부실만 누적됐다. 그 결과 대우조선을 비롯한 조선 3사에만 12조원의 세금이 다시 들어갈 판이라는 것을 노조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노조는 지난해 10월 임금을 동결하고 파업을 금지하는 내용의 동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더구나 동의서에는 ‘경영 정상화가 이루어질 때까지’라는 문구가 명문화돼 있다고 한다. 따라서 노조의 파업 결의는 명백하게 신의 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 하지만 동의서를 거론하기 이전에 대우조선 구성원으로서 무슨 낯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지 당황스럽다.


노조가 파업을 결의한 것은 인력 감축을 포함한 5조 3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에 대한 반발일 것이다. 하지만 인력 30% 이상, 설비 20% 이상을 줄이는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 방안은 실효성 논란에 휩싸여 있다. 부실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내놓은 처방이냐는 것이다. 실제로 분식회계로 얼룩진 대우조선의 믿지 못할 경영 상황에서 어떤 부실이 어디서 새로 불거져 나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어제 감사원은 대우조선이 2013∼2014년 영업이익 기준 1조 5342억원을 분식회계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그제는 일개 차장이 회사 돈을 180억원이나 빼돌려 검찰에 구속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런데도 8년 동안이나 횡령 사실을 몰랐다니 내부 감사 기능을 포함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회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청산 대상 회사에 세금 추가 투입이 웬 말이냐는 시중 여론을 노조는 듣고 있는지 한 번 묻고 싶다.


파업 결의에 정부는 “노조의 동의서는 현재도 유효하다”면서 “노조는 파업을 추진할 명분이 없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너무나도 당연한 대응이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 4조 2000억원의 지난해 지원자금 가운데 아직 집행되지 않은 자금은 동결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고 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동의서의 정신이 유지되길 바란다”면서 “채권단, 주주, 노조, 이해관계자들의 고통 분담이 전제되지 않으면 경영 정상화는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각 이해당사자와 협력해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벌여도 시원치 않을 노조다. 그럼에도 파업을 결의해 도덕적 배임에 나선 것을 두고 정부 구조조정 책임자의 경고가 이렇듯 뜨뜻미지근한 것도 국민은 불만스럽다.


한국 조선업은 지금 생사의 기로에 있다. 조선업이 구조조정 대상이 된 것은 그동안의 부실 경영도 부실 경영이지만도 기본적으로 새로운 수주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도 오늘의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앞장서서 타개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대우조선 노조에 이어 현대중공업 노조도 17일 파업 찬반 투표를 벌일 것이라고 한다. 파업 결의가 마지막 생존의 몸부림이라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정말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라고 생각한다면 노조 스스로 임금을 낮추어 회사를 살리겠다는 자구안은 왜 내놓지 못하는가.

5. 잡음 많은 맞춤영 보육 밀어일 일 아니다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될 어린이집 맞춤형 보육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0~2세 영아를 둔 외벌이 가구의 어린이집 이용 시간을 하루 6시간으로 제한한 게 맞춤형 보육의 핵심이다. 보육 수요가 더 큰 맞벌이 가구에 맞춰 이용 시간을 달리한 정책이다. 현재 영아는 부모의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어린이집의 12시간 종일반을 이용할 수 있다. 맞춤형 보육은 복지사업 구조조정의 일환이다. 그러나 외벌이 가구 쪽도, 어린이집 쪽도 불만이 크다. 외벌이 가구의 영아가 차별을 받을 수 있는 데다 보육료와 운영비의 삭감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들은 맞춤형 보육에 대한 정부지원금이 종일반의 80%에 그쳐 운영난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맞춤형을 하더라도 종일반이 운영되는 상황에서는 달라지는 게 없는데 지원금이 줄면 보육교사의 임금이 줄고 보육 환경이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린이집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이유이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등은 그제 대규모 집회를 갖고 맞춤형 보육의 개선이나 시행 연기, 철회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오는 23~24일 어린이를 볼모로 삼는 집단 휴원도 예고했다.


맞벌이 보육은 부모와 자녀의 애착을 돕겠다는 취지와 달리 전업주부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외벌이 가구는 자녀가 3명 이상일 때만 종일반에 보낼 수 있도록 규정했다. 현실 무시이자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차별적 발상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접근도 매한가지다.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은 종일반을 이용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증빙서류를 제출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 때문에 전업주부들 사이에서 ‘위장 취업’을 해야 할 판이라는 씁쓸한 말까지 나오고 있다.


맞춤형 보육은 잡음이 많은 만큼 정교한 보완이 요구된다. 좋은 정책도 현실과 동떨어져서는 취지를 살릴 수 없다. 특히 무상복지는 한 번 시행하면 줄이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우선 어린이집과 전업주부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보육료 인상과 보육 시간의 탄력적 운영 등 구체적인 방안을 내놔야 한다. 어린이집 측도 운영난이 공급 과잉에서 비롯된 점이 없지 않기에 정부와 대화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 역시 ‘탁상행정’이라고 비판만 할 게 아니라 국회 차원에서 깊이 논의하는 등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일정에 얽매여 밀어붙이다가는 혼란만 키울 수 있다.

[동아일보]

6. 산하기관 직원에게 아들 영어숙제 시킨 '미래부 갑질'

박근혜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 방문에 동행했던 미래창조과학부 A 사무관이 산하 기관인 K-ICT(코리아 정보통신기술) 본투글로벌센터 직원에게 고교생 아들의 영어숙제를 시킨 일이 뒤늦게 드러났다. A 사무관은 본투글로벌센터가 주최한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행사 지원을 위해 따라나섰다. 그런데도 파리 관광 차량 대여 비용과 가이드 비용까지 산하 기관에 부담시키는 갑질을 했다.


본투글로벌센터는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경제’ 일환으로 신생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돕기 위해 미래부가 만든 기관이다. 예산과 인사권을 쥔 공무원의 사적인 부탁을 산하 기관 직원이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두 달 전 현대가(家)의 3세 사장이 운전기사에게 자신의 속옷과 양말, 운동복을 챙기도록 한 ‘갑질 매뉴얼’이 공개되면서 ‘금수저’가 천민자본주의를 만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번엔 ‘금밥통’의 공무원이 정부 주도 자본주의를 만났을 때의 추악한 민낯을 보는 느낌이다. 


이번 일을 무개념 공무원의 단순 일탈로만 볼 수 없다. 14조 원대 예산을 주무르는 미래부 공무원들이 세금을 쌈짓돈으로, 산하 기관을 밥으로 여기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래부는 창조경제와 K-ICT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매년 가파르게 예산을 늘려왔다. 지난해는 국감에서 연구개발(R&D) 예산 낭비가 가장 심한 부처로 산업부와 함께 꼽혔다. ‘미흡’ 판정을 받은 12건 사업에 총 2672억 원이라는 혈세가 낭비됐다. 


‘다음 정권에서 없어질 가능성이 가장 큰 조직’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인지 기강 해이도 심각하다. 롯데홈쇼핑 재승인 과정에서 미래부 공무원들이 서류 조작을 눈감아줬다는 의혹이 최근 불거져 수사를 받는 중이다. 2014년 6월 최양희 장관이 취임한 후 금품·향응수수, 음주운전, 동료 폭행, 심지어 성 관련 사건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직원만 5급 사무관에서부터 서기관 부이사관까지 38명에 이른다. 최 장관은 창조경제 이전에 미래부 공무원들의 기강부터 바로잡을 일이다.

7. 국민의당 김수민 비례대표 공천 내막도 의심스럽다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 관련 의혹은 4·13총선 당시 홍보 업무를 하면서 업체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는지가 핵심이다. 김 의원은 “개인적으로 착복한 건 없다”고 밝혔지만 어제 이상돈 국민의당 진상조사단장은 “당으로 유입된 돈이 없다”는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해 되레 의혹을 키웠다. 이와 별개로 나이 30세에 대학 시절 디자인 벤처기업을 창업한 경력이 전부인 김 의원이 어떻게 비례대표 후보 7번을 받았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공천 신청도 하지 않았는데 비례대표 명단 발표 당일 새벽에 결정됐다는 건 정상으로 보기 어렵다.


비례대표는 취약계층 대변자나 각 분야의 전문가를 국회에 들여보내 입법의 전문성을 보완하려는 것이 기본 취지다. 그러나 김 의원처럼 비례대표 선발 과정이 불투명해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 해산된 통합진보당은 2012년 총선 때 비례대표 부정 경선이 탄로 나면서 당이 갈라지고 결국 정당 해산의 한 사유가 됐다. 과거 비례대표는 공천을 대가로 거액을 주고받는 불법 공천헌금의 온상이기도 했다.


이번 국회에선 비례대표가 전문성과는 상관없는 상임위에 배정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언론 관련 시민단체에서 일한 경력으로 비례대표가 됐지만 언론을 다루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가 아닌 외교통일위에 배정되자 농성에 나섰다. 경영학자인 새누리당 김종석 의원이 외통위에,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출신인 새누리당 김승희 의원이 안전행정위에, 국방 관련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더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국방위에 배치됐다. “축구선수를 농구장에 놓아둔 격”이라는 추 의원 말대로 코미디일 뿐 아니라 세금 낭비다. 


비례대표는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사실상 ‘임명’해준 당 대표에 충성을 바칠 수밖에 없다.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 공천을 따내기 위해 당 실력자에게 줄을 서거나, 당을 위해 공헌했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튀는 언행을 해서 물의를 빚기도 한다. 야당은 이런 비례대표를 더 늘리겠다고 총선 50일 전까지 선거구 획정의 발목을 잡았다. 선정 과정에 문제도 많고 전문성도 못 살리는 비례대표라면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

[중앙일보]

8. 한국 경제, 브렉스트 후폭풍에 철저히 대비해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 가능성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다. 먼 나라 얘기로 무심코 지내는 사이 브렉시트가 가시화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일본 증시가 1만5000선대로 맥없이 무너지고 중국 위안화값은 최근 5년 내 최저 수준에 근접했다. 영국 증시에서는 나흘 사이에 160조원이 사라졌고, 국제자금이 안전자산으로 몰리면서 일본 엔화값이 급등하고 독일·스위스·미국 국채 금리는 제각각 마이너스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가디언·더타임스 여론조사에서 탈퇴가 잔류를 7%포인트 앞지르면서 나타난 브렉시트 공포증이다. 쓰나미처럼 간발의 시차를 두고 국내 금융시장을 덮칠 상황도 조만간 가시화할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가 세계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영국의 EU 탈퇴가 몰고 올 경제적 파장에 대한 우려에서 나오고 있다. 영국의 EU 탈퇴는 미국·일본과 함께 세계 선진 경제권의 3대 축 가운데 하나인 EU가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세계 경제를 더욱 약화시키고 유럽의 정치·사회적 불안까지 야기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유럽은 오래전부터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면서 정치·경제·사회가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는 지역공동체였다. 이런 체제에서 분열과 고립주의는 언제나 큰 비용을 치렀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EU는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모태로 출발해 99년 단일통화 유로를 출범시키면서 하나로 뭉쳤다.


하지만 처음부터 불안한 동거가 시작됐다. 영국은 EU에 참가하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는 합류하지 않으면서다. 브렉시트는 결국 회원국 간 경제 격차를 극복하지 못한 데 따른 파국이다. 탈퇴파는 경제 체력이 다른 국가 간 살림 통합으로 영국이 끊임없이 경제가 취약한 회원국에 돈을 퍼주는 불평등 구조에 불만을 제기해왔다. 영국엔 EU 출신의 취업자가 220만 명에 달하는데다 대규모 난민까지 몰려들고 있다. 이들에 대한 주택·교육·보건 혜택을 더는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경제주권을 되찾겠다는 탈퇴파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면서 23일(현지시간)로 임박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는 탈퇴파의 우위를 예고하고 있다. 영국의 EU 탈퇴가 현실화하면 28개 회원국 체제는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영국의 고립주의는 영국 수출 비중이 큰 아일랜드·벨기에·네덜란드에 직격탄을 날리고 도미노처럼 전 세계로 충격파를 던져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수출에도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은 외풍에 취약한 한국 경제에 치명적이다. 97년 외환위기로 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린 데 이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저성장 터널로 빠져든 한국으로선 다시 위기 앞에 설 수도 있 다. 정부와 기업은 브렉시트에 따라 벌어지게 될 후폭풍이 어느 정도의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충분히 예측하고 만반의 대비에 나서야 할 때다.

[매일경제]

9. 셋 중 하나 꼴 청년 실업 실효대책으로 개선해보라

어제 발표된 통계청의 5월 고용 동향을 보면 청년(15~29세)실업률이 9.7%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보였다. 청년실업률은 올 2월 12.5%로 사상 최고를 기록한 뒤 매년 동월 기준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좀처럼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의 공식 청년실업률은 이렇게 10%대 전후로 나오지만 주변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놀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지표보다 훨씬 많게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경제연구원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듯한 도발적인 분석을 내놓아 주목을 끌었다. 지난해 8월 통계청의 고용 동향을 토대로 분석한 것인데 공식 청년실업률은 8%로 발표됐지만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으로 불완전 고용 상태에 있거나 그냥 쉬고 있다고 응답한 취업 포기자를 합하면 체감 청년실업률은 34%까지 올라간다는 것이다. 


통계청은 공식 실업률 산정 때 취업을 희망하고, 취업이 가능하며, 구체적인 구직활동을 했음에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경우만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국제노동기구(ILO) 권고로 아르바이트생이나 입사시험준비생을 실업자에 포함하는 고용보조지표도 쓰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여기에다 비자발적 비정규직과 쉬고 있는 청년을 더한 것이니 통계 기법에는 안 맞을지 몰라도 정부가 실업대책을 마련하는 데는 더 유용할 수 있을 듯하다.


정부가 청년 직접고용지원금을 확대하고 육아휴직제도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내놓았고, 청년 근로자들에게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방안까지 발표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당장의 효과를 내기는 힘들고 그사이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의 한숨은 깊어만 가니 문제다.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투자와 생산성 제고를 통한 성장과 고용 확대가 우선이다. 채용 및 해고와 임금 탄력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개혁도 절실하다. 장기든 단기든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해 꺾일 줄 모르는 청년실업률을 개선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10. 노인학대 예방·방지체계 보강 늦어져선 안된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우리 사회에서 '노인학대'가 크게 늘고 있다니 걱정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4일 내놓은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학대 건수는 3818건으로 최근 4년 동안 11% 증가했다. 노인학대 36%는 아들이 저지른 일이었을 뿐 아니라 전체 70%는 가족·친족에 의한 학대였다고 하니 우리 사회의 충격적인 윤리 붕괴를 보여주는 일이라 할 만하다.


노인학대 86%는 집에서 발생했는데 앞으로도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비슷한 사례는 더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다행히 노인복지법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개정됨에 따라 올해 말부터는 노인학대와 관련한 신고체계가 크게 보강되게 됐다. 노인학대를 알게 되면 보호·수사기관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는 직종이 기존 8개에서 다문화가족센터 종사자 등을 포함해 14개로 늘어난다. 가정문제라는 생각 아래 수수방관할 것이 아니라 이웃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대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일이다. 개정된 노인복지법은 매년 6월 15일을 '노인학대 예방의 날'로 지정했다. 유엔이 2006년 제정한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보다 10년 늦은 대응인데 신고·보호조치와 더불어 효과적인 예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복지수준을 세계노인복지지표를 이용해 평가해보니 조사 대상 96개국 중 60위권에 머물렀다고 한다. 태국 베트남 중국 등 개발도상국에도 뒤지는 수준이다. 건강 취업 교육기회에서는 상대적으로 나은 평가를 받았으나 소득보장(82위)과 노인에 대한 우호적 환경(54위) 부문에서 나쁜 평가를 받았다. 어려운 상황에서 의지할 만한 친인척이나 친구가 있다고 응답한 노년층 비율이 60%로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우리 사회가 경로사상을 중요시하는 유교 문화권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내년에는 14%를 넘어서며 '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만큼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에서 노인인권 부문을 강화해야 한다. 노인학대를 예방·근절하기 위한 인성교육과 가족윤리 회복 계획도 마련돼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윤고은의 참새방앗간> 스캔들: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2013년 MBC TV에서 방송된 주말극의 제목은 '스캔들: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다. 


유괴와 불륜, 치정, 폭력, 배신 등 온갖 막장 요소가 뒤섞인 이야기로, 1980년대부터 20여년에 걸쳐 벌어진 우리 사회의 온갖 비리를 주인공의 인생을 통해 그려냈다. 


여기서 '스캔들'은 매일같이 사회뉴스 톱을 장식하는 권력형, 금권형 비리와 범죄를 말하며, 제목은 영어 단어 스캔들(scandal)의 사전적 의미에 충실했다. 


그런가 하면 2008년 역시 MBC TV에서 방송된, 고(故) 최진실의 마지막을 기억하게 하는 작품의 제목은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다.


여기서 '스캔들'은 중년 여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한 달콤한 사랑 이야기다. 

아무것도 이상할 게 없는 처녀-총각의 열애가 아니고 총각 톱스타와 별 볼 일 없는 싱글맘의 사랑 이야기라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긴 하지만, 부도덕한 추문은 아니다. 


한마디로 지금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 연예면 톱을 장식할 이야기. 그러나 법적, 도덕적 하자도 없고 누구에게 피해도 주지 않은 이 드라마 속 달콤한 '사건'은 많은 시청자를 즐겁게 만들었다. 


최근 한 달 남짓 사이 연예계에서 잇따라 스캔들이 터지고 있다. 전혀 달콤하지 않고 추잡한 성적 추문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과 궤를 같이한다. 


개그맨 유상무가 성폭행 논란에 휘말리더니, 한 배우는 '부적절한 관계'를 이유로 소송을 당했고, 지난 13일에는 세계적인 한류스타 JYJ의 박유천의 성폭행 피소 뉴스가 전해졌다. 


또 이보다 수위는 약하지만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한 셰프는 민감할 수 있는 사생활 영상이 유출돼 갑론을박 논란을 낳았다. 


한 달도 안돼 잇따라 터지는 강도 높은 스캔들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이젠 구설수 없는 연예인이 대단해 보일 지경임"(네이버 아이디 'cjsd****')과 같은 댓글이 이어진다. 

음주 운전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이 이들 '덕'에 가려질 정도다. 


스캔들은 실재하는 사건일 수도 있지만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추문으로 끝나기도 한다.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닌 경우도 많고, 또 많은 일에서 사실과 진실이 다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단 스캔들에 휩싸이면 그 자체가 오명, 오점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특히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계에서 한번 실추된 이미지는 회복하기가 어렵다. 


또한 연예계 스캔들은 당사자 자체도 피해지만 많은 팬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다른 분야의 스캔들과 차원이 다르다.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스타가 부도덕한 일에 휩싸이는 것은 법적 문제를 떠나 그 파장이 크다. 한마디로 '19금' 콘텐츠에 대한 청소년의 접근을 차단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한방에 무위로 돌아간다. 


연예인에 대한 호기심이 2차, 3차 피해를 낳는 경우도 많다. 당장 박유천을 고소한 여성으로 누리꾼들이 여러 여성을 지목해 그 사진을 퍼뜨리는 행위는 '범죄'와 다름없다. 

요즘 최고 인기 드라마 tvN '또 오해영'에서는 오해영이 이보다 치명적일 수 없는 애정의 사각 관계에 휘말린다. 


평범한 30대 여성인 오해영은 라디오 방송과의 전화 연결에서 실수로 그 사실을 까발리면서 순식간에 모두가 아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돼버린다.


하지만 오해영의 스캔들은 이 땅의 여성들로부터 격한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아무 잘못이 없는, 오히려 피해자인 오해영이 조건 없이 사랑에 몸을 던진 결과로 벌어진 스캔들은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런 사랑,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외침이 터져나온다. 


연예계에서도 일련의 추잡한 스캔들 대신,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나 '또 오해영'과 같은 달콤한 스캔들을 만나고 싶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 노인 학대 사회/강동형 논설위원

노인 학대가 사회문제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75년 영국에서 ‘매 맞는 할머니’라는 보고서가 쟁점이 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러나 노인 학대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리나라는 2004년 노인복지법을 개정하면서 노인 학대의 예방과 조치에 관한 법 조항을 신설했을 정도다. 유엔이 6월 15일을 ‘세계 노인 학대 인식의 날’로 정한 것도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우리 사회는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노인 공경 사상과 부모 부양에 대한 의무감이 약화되고 있다. 여기에 사회안전망까지 부실해 노인 학대가 사회적인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나라를 초고령사회, 14~20% 미만인 사회를 고령사회, 7~14% 미만인 사회를 고령화사회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고령인구가 13.1%로 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세계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나라는 일본·독일·이탈리아 3개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30년 고령인구가 24.3%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2060년이 되면 고령인구가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0.1%에 이른다고 한다.


보건복지부가 어제 ‘세계 노인 학대 인식의 날’을 맞아 발표한 ‘2015 노인 학대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학대의 유형은 물리적인 힘을 가하는 신체적 학대, 모욕을 주는 정서적인 학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성적 학대, 재산을 빼앗는 경제적 학대, 부양 의무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 방임적 학대 등 다양하다. 이 밖에 노인 스스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살에 이를 정도로 생명을 위협받는 자기 방임도 노인 학대의 한 유형이다. 노인 학대 신고 건수는 지난해 1만 1905건으로 2014년에 비해 12.6%나 증가했다. 충격적인 것은 노인 학대의 85.8%가 가정에서 이뤄지고, 아들과 딸, 며느리와 사위, 손자와 손녀 등에 의해 행해지는 패륜 범죄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학대 행위자가 노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약물이나 알코올 남용, 정신장애 등의 증상이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노인 역시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요구된다.


노인을 학대하는 사회에서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 노인 빈곤율 1위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노인 학대 문제를 더 방치해서는 안 된다. 노인 학대의 실태를 조사하고, 노인들의 취업 확대와 복지증진 등 사회안전망을 더 촘촘히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전문 상담원 확보와 노인보호 전문기관 및 자활기관과의 연계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초고령사회인 독일이 노인들의 취업을 확대해 각종 노인 문제를 극복하고 있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3.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절정의 순간

무더운 날에 지하철역에서 일곱 살쯤 보이는 남자아이가 “엄마, 내 평생 이렇게 더운 날은 처음이야”라고 말해서 속으로 웃고 말았다. 어린아이가 평생이라니 가당치 않아서였다. 그런데 나 역시 세상모르던 10대에는 눈부신 20대까지가 삶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서른이 되고 보니 아직 제대로 인생을 시작도 하지 않은 젊은 나이가 아닌가. 그래서 조금 수정했다. “쉰을 넘기면 사는 재미가 없겠지”라고. 물론 그때는 쉰이 금세 온다는 걸 실감하지 못했다.


살아가면서 그렇게 거듭 ‘한평생의 상한선’을 수정해 가는 사람이 내 주변에 또 있다. 내가 젊은 나이일 때 50대였던 지인은 “난 칠십까지만 살 생각이야. 그 이상은 잉여의 삶이잖아”라고 말하더니 훗날 칠십을 목전에 두자 “요즘은 다들 건강하니 팔십이 예전의 칠십이야”라며 슬며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80대가 된 요즘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다. 물론 그분은 이제 더 이상 한평생의 데드라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제 어느 나이나 흔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어떤 나이든 살 만한 가치가 있음을 터득했기 때문이리라.


최근 미국에서 열두 살 여자아이가 10년 후 스물두 살의 자신에게 쓴 편지를 인터넷에서 보았다. 그 아이는 10년 후를 상상하며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펜을 꾹꾹 눌러 편지를 썼지만 그 다음 해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 편지를 읽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 아이의 평생이 너무 짧아 안타깝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평생의 길이가 절대적인 건 아닌 것 같다.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산다면 말이다.


박우현 시인은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라는 시에서 ‘마흔이 되면/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이윽고/마흔이 되었고/난 슬프게 멀쩡했다/쉰이 되니/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예순이 되면/쉰이 그러리라/일흔이 되면/예순이 그러리라//죽음 앞에서/모든 그때는 절정이다/모든 나이는 아름답다/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라고 썼다.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가 절정이라면 우리는 지금 절정의 순간순간을 살고 있는 셈이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리하여 언젠가는 다시 그리워하게 될 순간들임을 기억한다면 평생 처음인 더위에 시달려도, 평생 가장 힘든 시기여도 조금은 위로가 될 것 같다. 

4. [동아일보][2030 세상/이어진]아픈 '코이안드리머'를 치료하며

사무실 뒷동산에 들풀들이 많이 자랐다. 인적이 뜸한 곳에는 토끼풀 무리가 무릎까지 닿을 기세다. 흠뻑 내린 비를 맞고 자란 초록은 하늘과 바람, 태양과 잘 어우러져 우리네 바쁜 일상 곁에서 초여름 뜨거운 생명력을 내뿜고 있는 중이다. ‘매미 울 때가 된 것 같은데.’


늘 도심 가운데에서 에어컨 바람과 아스팔트 열기로 맞던 여름과의 색다른 대면이 기분 좋으면서도 아직은 조금 어색하다. 그동안 만나던 평균 연령 75세의 보건소 고객님들은, 다양한 국적의 2030세대 보호 외국인 고객님들로 바뀌었다. 건너편 예방접종실에서 들려오던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출입국관리사무소 보호실 방과 방을 오가는 다양한 언어들로 대체되었다. 


비자 만료나 밀입국 등으로 불법 체류 중에 단속되어 우리 사무소에 입소하게 되면, 보호 기간에 간단한 건강검진과 필요한 진료를 받게 된다. 주로 젊은 친구들이 많은데, 진료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갓 입소한 내 또래의 보호 외국인과 마주하고 있노라면, 아직은 나도 낯설고 이 친구는 더 낯설어 서로 멋쩍게 웃는다. 


“안녕하세요” “여기 왜 오셨어요?” “한국말은 잘하세요?”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 데 있어요?”로 시작되는 한국식(?) 진료가 시작된다. 짧은 한국말이 통하는 10명 중 여덟아홉에게 의사도 “여기? 아파? 안 아파?” “(가리키며) 약! 줄게!” “먹고(시늉), 발라(시늉), 오케이?” 손짓 발짓 짧은 한국말로 응대한다. 다행히 간단한 단어나 문장은 포털 사이트의 번역기를 이용하기도 하고, 외국인 근로자 관련 시민단체에서 제작한 각국 언어로 된 진료책자도 있어 활용하고 있다. 


이곳에는 ‘환자-의사’ 관계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맥락이 존재한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출입국법을 위반한 범법 사실이 존재하고, 그 때문에 그동안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귀국하더라도 당사자가 원하는 수준의 치료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금전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이가 대부분인 데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국내 시스템에서 고가의 검사나 치료는 아무래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강제퇴거 전 보호소에 머무르는 기간에는 기본적인 건강관리를 위한 야외 운동시간, 여가시간, 관련 프로그램들이 제공되지만 제한된 공간과 제한된 행동, 여기에 체불임금이나 다른 법적 문제가 걸려 있는 경우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 수준 또한 높다. 진료실에서 간혹 질병이 상당 기간 악화된 상태에서 마주하게 되는 불법 체류 외국인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과거 ‘코리안 드림’의 부푼 꿈을 안고 왔을 이들인데, 처음 잘못 끼운 단추로 인해 돈도 벌지 못하고 건강도 많이 상한 채 강제출국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대략 20만 명의 불법 체류 외국인이 있고, 이들 중 많은 수가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특히 각종 감염성 질환이나 치과질환, 만성질환 관리 불량,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 문제에 취약할 것으로 생각된다.


국내 불법 체류자 문제는 국민을 위한 엄정한 법 집행과 사회적 안전 측면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더불어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단속 후 퇴거집행까지 보호 외국인들의 인권 증진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균형 있게 잡아야 하는 것이다. 난민 문제, 이주민 정책 및 다문화 정책 또한 여름이 지나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 것 같다. 


이들이 보호 외국인 퇴거 준비를 하는 이른 새벽부터 밖이 훤하다. 남극에서 이맘때 받았던 편지에 적혀 있던 ‘극즉반(極卽反)’이 떠오른다. 이 친구들도 고향에 돌아가서는 바른 단추를 꿰어 다시 만나길. 오늘 아침 오른 뒷동산 풀밭은 어느 한쪽 부족함 없이 말끔하게 벌초가 되어 있다. 벌써 절반이 거의 지난 2016년의 중간결산이다.

5. [중앙일보][알베르토 몬디의 비정상의 눈]한국살이의 최대 고충은 너무 높은 집값과 보증금

지난 2년 동안 살던 집의 계약기간이 지난주로 끝나 이사를 했다. 한국에 와서 9년 동안 이사를 벌써 10번 이상 한 것 같다. 나라마다 주거 방식, 집의 형태, 부동산 시장의 규칙이 다르다는 점은 재미있는 일이다.


유럽의 대학생이나 젊은 직장인들은 집이나 아파트를 빌려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함께 살면서 월세를 나눠 내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골치 아픈 일이 될 수도 있다. 서로 성격과 사는 방식이 맞으면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지만 함께 사는 사람이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지나치게 시끄럽거나, 성격이 맞지 않으면 얼른 다른 집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 이러니 집을 나눠 쓸 사람을 구하는 일은 대기업 면접보다 더 까다롭고 진지하기 일쑤다.


남자들끼리 살면 집이 순식간에 지저분해지기 일쑤다. 여자끼리 살면 집은 깨끗하지만 싸움·질투·오해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종종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되기 쉽다고 한다. 따라서 서로 사생활과 공간을 존중하면서 이성 친구들끼리 집을 나눠 사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탈리아에선 이런 환경에서 살았다. 그러다 스물세 살 때 한국에 와보니 젊은이들은 주로 원룸·투룸·고시텔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혼자 사는 것이 편할 수도 있겠지만 이탈리아에선 함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눌 사람이 필요한 데다 나눠 쓰더라도 널찍한 공용 공간이 필요해 원룸이나 고시텔에 대한 수요는 아예 없다.


원룸과 고시텔에서도 살아보고 한국 친구들과 셰어링도 하다가 결혼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집을 구하게 됐다. 그때도 역시 이탈리아와 문화적 차이가 컸다. 처음 부동산에서 보증금(전세) 금액을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다. 유럽에선 보증금이라고 하면 통상 두어 달 치 월세다. 입주자가 한두 달 정도 월세를 안 내면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집에서 내보낸다.


한국 젊은이들이나 외국인들에게 보증금은 큰 부담이다. 외국인들은 신용대출을 받기 힘들고 전세담보대출은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서울의 외국인들은 집 보증금이 몇 백만원밖에 안 되는 이태원이나 해방촌 같은 동네에 모여 살 수밖에 없다. 한국의 집값은 유럽이나 북미에 비해 정말 높은 편이지만 보증금 수준은 그보다 더하다. 단독주택보다 아파트를 선호하는 문화도 외국인에겐 적응이 쉽지 않다. 주거 문제가 해결되면 외국인들이 한국에 더욱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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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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