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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경향신문]

1. 세월호 인양, 진실의 시간이 다가왔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1072일 만에 선체 인양작업이 어제 시작됐다. 선체를 1m가량 들어 올리는 시험인양에 이어 완전히 물 위로 끌어올리는 본인양 작업도 진행 중이다. 3년 가까이 팽목항 임시 컨테이너에 머물며 잃어버린 가족을 애타게 찾아온 미수습자 가족의 한풀이가 뒤늦게나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어렵게 시작한 선체 인양작업인 만큼 성공하기를 바란다. “부모의 마음으로 인양해달라”는 내용의 대국민 호소문을 낸 미수습자 가족의 고통을 생각하면 실패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세월호 선체는 참사의 진실을 밝힐 중요한 증거물이라는 점에서도 선체 인양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참사 발생 3년이 다 돼가지만 세월호의 진실은 속 시원히 밝혀진 게 별로 없다.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침몰 과정과 원인 등은 어느 정도 파악됐지만 그렇다고 전모가 명확히 드러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정부의 구조 실패 책임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특검도, 헌법재판소도 7시간의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 대통령과 정부에 면죄부를 줄 수도 없고, 줘서도 안된다.

세월호 참사는 무도하고 무능한 박근혜 정권의 실상을 드러낸 사건이다. 박 전 대통령은 “내 할 일을 다했다”고 주장하지만 초동대응과 구조 노력에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현장으로 달려갔더라도 아이들을 살리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컨트롤타워의 정점인 대통령이 직접 참모들의 보고를 받으면서 구조작업이 실효성 있게 진행되도록 지휘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구조작업 중인 해경이 분초를 다투는 시간에 청와대의 지시로 대통령 보고용 동영상 촬영을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막을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는 오히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을 조롱하고 억압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하고 단식투쟁하는 유족 앞에서 폭식을 하도록 극우단체를 사주하고 지원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기는커녕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내팽개친 패륜적 행태에 앞장섰다. 이는 영원히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 두고두고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 진실 찾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새로 꾸려지는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를 빨리 가동할 필요가 있다. 미수습자 시신 수습도, 선체 조사도 다 중요하고 급한 일이다. 대선후보들도 세월호 진실 찾기를 적극 지원하고 협력해야 한다.



2. 문재인 후보의 대입개혁 공약, 더 다듬고 신중해야 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가 대학 입시를 학생부교과·학생부종합·대학수학능력시험 전형 등 3가지로 단순화하겠다는 교육 공약을 내놓았다. 수시모집 비중은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고 했다. 현재의 입시가 너무 복잡해 수험생 혼란이 크고 일선 고교에서 진학 지도의 어려움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지만 입시 제도 변경은 신중히 결정돼야 한다. 

입시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다. 한 사람이 이득을 보면 다른 사람은 손해를 본다. 입시를 바꾸면 몇 가지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수시 비중 축소로 수능 중심의 정시 비중이 늘어나면 지난 몇 년간 학생부 중심의 수시 전형 확대로 거둔 고교교육 정상화 등의 효과는 줄고 재수생 증가나 교육 획일화 등의 부작용이 생긴다.



초·중·고교의 예체능 교육을 강화해 대학 입시에 반영하겠다는 공약도 재고가 필요하다. 사교육 증가와 평가의 공정성 논란으로 음악·미술·체육 과목의 내신 반영을 축소·폐지한 것이 불과 십수년 전의 일이다.

대학 입시는 필요악의 성격이 강하다. 인재 선발과 엘리트 양성 차원에서 이른바 명문대학은 존재해야 하고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특목고와 자사고 진학을 위한 고교 입시는 ‘불필요한 악’이다. 초·중학생들을 선행학습 경쟁으로 내몰고 사회적으로 합의가 이뤄진 고교 평준화의 기반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설립 취지와 어긋나게 운영되는 특목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문 후보의 공약은 득이 실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고입 경쟁이 사라지면 학생들은 학습 부담이 줄고 부모는 사교육비 고통을 덜 수 있다. 평준화의 단점은 수준별 맞춤형 수업 등을 통해 최소화할 수 있다. 

대선후보 입장에서 입시는 유권자들의 환심을 얻고 교육개혁도 이룰 수 있는 좋은 재료다. 작은 것에도 수백억·수천억원이 들어가는 복지 정책과 비교하면 입시 정책에는 돈 한 푼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입시 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변석개를 거듭했지만 실제 교육이 나아진 것은 없다. 오히려 정부와 공교육의 권위가 추락하고 사교육시장만 키웠을 뿐이다. 교육에도 돈이 들어가야 한다.



문 후보의 표현대로 ‘부모의 지갑 두께가 자녀의 학벌과 직업을 결정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육 소외 계층에 직접적인 지원을 늘리고, 공교육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정공법이 필요하다.



[한겨레]

3. 3년 만의 세월호 인양, 진실도 인양해야

세월호 인양 작업이 22일부터 시작됐다. 참사 3년 만에 뭍으로 올라올 세월호는 목포신항으로 옮겨져 10여일 뒤면 선체 조사가 진행된다. 9명의 실종자 수습과 함께 진실 규명 작업도 다시 본격화돼야 함은 물론이다. 세월호는 우리의 경박한 망각증에 죽비를 날리며 다시 한번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안타까운 생명들을 구하지도 못했는데, 다시 실종자 수습에 3년이나 지체한 것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허망하게 허비한 ‘7시간’의 진실을 감추고 책임을 모면하려 당시 대통령과 권력붙이들은 수년간 집요한 은폐공작을 벌여왔다. 참사 당일엔 해경에 브이아이피(VIP) 보고용 영상을 요구하며 사실상 구조를 방해하더니, 진상을 밝히려는 국회 국정조사와 검찰 수사도 조직적으로 틀어막고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활동조차 강제종료시켰다.



청와대 홍보수석은 <한국방송> 보도국장에게 “해경을 밟으면 어떡하냐”며 보도통제를 시도했고, 정무수석은 어버이연합에 ‘반세월호 집회’ 공작을 지시했다. 단식 유족 옆에서 패륜적 폭식 투쟁을 벌이던 장면도 기억에 생생하다.

정권 차원에서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조직적이고 집요하게 은폐공작을 벌이는 사이 일부 국민은 피로증과 망각증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에서 당시 대통령의 대응이 ‘미흡하고 부적절’했음을 지적했고 특히 보충의견은 대통령의 책임을 신랄하게 질책했다.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대통령이 적어도 당일 10시엔 청와대 상황실로 가서 재난대응을 총괄·지휘·감독했어야 한다”며 “주위에 10대 이상 선박들이 대기해 구조가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대통령 박근혜’가 참사 책임의 주체임을 명시했다. “8시간 동안이나 국민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의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대통령 책임을 질타했다.

선체 인양은 온전한 진실의 인양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만이 원혼들을 위로하고 재발을 막는 길이다. 당장 8명으로 선체조사위를 꾸리는 것과 함께 참사특별조사위도 재가동해야 한다. 그래야 그간 조사 결과를 포함해 종합적인 진상규명이 가능해진다. 대통령은 왜 8시간이나 안 나타났는지, 진상규명을 방해한 책임자와 실행자는 누구인지도 밝혀야 한다. 참사의 피해자와 그 가족은 물론 온 국민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4. ‘박근혜 구속’, 망설일 필요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22일 귀가했다. 이제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조사 내용과 관련 기록, 증거 등을 토대로 구속 여부를 포함한 수사 방향을 정하게 된다. 오로지 법과 원칙이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사실과 법률 관계로 보면 판단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건의 실체는 박 전 대통령 조사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달라진 게 없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13가지 혐의에 대해서는 이미 범죄를 충분히 소명할 만큼의 물증과 증언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공범이나 관련자들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혐의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더구나 박 전 대통령의 혐의 대부분은 중형이 예상된다. 삼성에서 받았다는 수백억원의 뇌물이 법정에서 인정되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을 받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공범 대부분이 이미 구속돼 있다는 점도 사안의 중대성을 보여준다. 혐의가 이렇게 중대하면 대부분 구속 수사를 하기 마련이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도 구속의 필요성을 높이는 것이다. 물증이 확실하고 관련자들의 흔들림 없는 진술이 있는데도 범죄의 고의성을 반복해 부인하는 것 자체가 증거인멸의 우려를 한층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증거가 분명한데도 한사코 아니라면 언제든 수사를 방해하리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쪽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공범’인 최순실·안종범·정호성씨 등 관련자 대부분이 구속된 마당에 모든 혐의의 중심인물인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형사소송법의 어느 기준과 원칙으로도 박 전 대통령 구속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검찰은 큰 사건일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수사를 위해, 법 집행의 원칙상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그 판단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된다. 앞으로 치를 대통령선거에서 누가 유리하고 불리할지, 어느 쪽이 얼마나 반발할지, 어떤 상황이 검찰에 유리한지 따위의 정치적 고려를 하다가는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 법과 원칙이 기준이 되어야 할 결정이 정치적으로 오염됐다는 의심을 받게 되면 가뜩이나 국민 불신을 받아온 검찰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판단이 섰다면 미뤄서도 안 된다. 결정이 지연되면 불필요한 논란과 의심만 키우게 된다. 영장 청구 여부는 이번주 안에 결단하는 게 옳다.



[이데일리]

5. 대선 전략이 비방과 포퓰리즘 뿐인가

‘5·9 대선’의 정당별 후보 경선이 달아오르면서 구태가 재연되고 있다. 후보 간 경쟁이 국가의 미래를 밝힐 비전과 정책 대결이 아닌 인신공격과 흑색선전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 공약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예선이 이럴진대 각 당 후보가 확정되고 본선에 접어들면 진흙탕 싸움이 더 격화할 공산이 크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불행한 사태를 겪고도 과거 행태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벌써부터 이번 대선도 기대할 게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당 지지율에서 앞서가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 간의 공방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전두환 표창’과 ‘대연정론’을 두고 연일 인신공격성 막말로 상대방을 몰아붙이고 있다. 서로 “네거티브를 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네거티브에 빠져드는 꼴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경남지사의 “민주당 1등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 등의 거친 언사도 듣기에 거북하다. 이밖에 인터넷이나 카톡 대화방을 통해서도 걸러지지 않은 의혹과 소문들이 마구 퍼져가는 양상이다. 

포퓰리즘 공약도 문제다. 문 전 대표는 가계부채 해법의 하나로 22조 6000억원의 개인 부실채권을 정리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며, 공공개혁을 거스르는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폐지 약속까지 내놓았다. 안 지사는 10년 동안 일한 국민에게 1년간 유급휴가를 주겠다고 했다. 재원 마련이 불투명해 실효성은 없으면서 부작용만 키울 내용들이다. 민주당 이재명 성남시장의 연 100만원 기본소득 지급,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의 국민연금 최저 수급액 80만원 등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돼야 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엄중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으로 촉발된 외교·안보 위기에 경제까지 동반 추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촛불과 태극기 시위로 갈라진 내부 갈등을 추스르고 험난한 안팎의 파고를 헤쳐 나갈 의지와 능력을 갖춘 대통령을 찾고 있다. 후보들은 이제부터라도 비방과 포퓰리즘 공약이 아닌 대한민국의 앞날을 열어갈 정책과 비전으로 경쟁하길 바란다.



[서울신문]

6. 포퓰리즘 우려되는 저소득 청년 300만원 지원

정부가 어제 ‘청년고용대책 보완 방안’을 내놓았다. 대책 아닌 보완이라 했지만 현 정부 들어 열 번째 청년실업 대책이다. 취업을 하지 못한 고졸 이하 저학력·저소득 청년 5000명에게 한 사람당 최대 연 300만원을 생계비로 지원하고 고교 졸업 후 즉시 창업에 나설 수 있도록 입대를 연기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정부가 또다시 백화점식 보완 방안을 내놓은 것은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9.8%까지 치솟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20대 고용률은 지난해 11월 이후 4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청년층(15~29세) 장기실업자와 구직단념자는 지난달 36만 2000명으로 전년보다 1만 1600명이 늘었다.



청년실신(청년실업+신용불량),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등 자포자기한 청춘들이 우글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 대책을 통해 정책 체감도를 높이겠다고 하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은 고용 상황이 나아졌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청년수당은 서울시와 성남시에서 이미 시행 중이다. 정부는 돈을 나눠 주는 지자체의 정책에 반대했었다. 이번 300만원 지급 정책에 대해서는 “지자체 청년수당과는 목적 자체가 다르다. 구직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엄정한 심사를 거치지 않으면 또 하나의 포퓰리즘적인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대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경기 침체와 대내외적 불확실성으로 기업이 투자와 채용을 꺼렸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의 일자리 창출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민간기업에서처럼 연봉 수천만원짜리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정부의 청년 일자리 대책은 따지고 보면 각종 지원 등 보조수단 성격이 짙다. 정부가 지난해 청년 일자리 예산으로 2조 1000억원을 쏟아부었지만 고용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도가 낮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결국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해법은 민간에 있다.

문제는 경제다. 현재 우리 경제는 고용 없는 성장에서 고용 축소형 성장으로 접어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눈앞에 닥친 4차 산업혁명도 기존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노동시장이 구조적 변화에 직면한 것이다. 지금처럼 땜질식 처방으로는 어림없다. 청년들에게 몇 푼 안 되는 돈을 나눠 줄 게 아니라 노동시장의 변화에 맞춰 일자리 정책을 새롭게 개발해야 한다. 고기 잡는 법 말이다.



7. 미세먼지 대책, 중국에 따질 근거부터 찾길

그제 오전 한때 서울의 공기 질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나빴다. 세계 대기오염 실태를 점검하는 다국적 커뮤니티 에어비주얼의 조사 결과다. 차량 매연이 가득한 터널 안에서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니 보통 일이 아니다.

올 들어서만도 전국 각지에 발령된 초미세먼지 특보는 크게 늘었다. 지금까지 80회가 훌쩍 넘어 지난해 같은 기간의 40회 정도에 비해 두 배나 뛰었다.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은 지난해에도 소리만 요란했다. 미세먼지 논란이 몇 달째 이어지자 환경부가 고등어 굽는 연기까지 들먹거려 여론이 부글부글 끓기도 했다. 당장 특단의 조치를 내놓을 듯하더니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시간만 흘렀다.

환경부는 그제 봄철 미세먼지 대책으로 건설공사장 단속, 경유차 매연 집중 점검 등을 내놓았다. 이제 이런 대책은 해마다 때가 되면 들리는 녹음기 소리가 됐다. 지난달 도입한 비상 저감 조치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벌써 나온다. 수도권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공공기관 차량 2부제, 공공사업장 조업 단축 등을 시행하는 것이 제도의 골자다. 공기의 품질이 연일 나쁨을 기록한 며칠 새 한번도 비상조치는 내려지지 않았다. 유명무실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개선책을 더 미루지 말고 강구해야 한다. 실효성 있는 정책 개발과 함께 좀더 장기적인 대책을 고민할 때다. 정부는 봄철 미세먼지의 70~80%가 중국발(發)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니 방법이 없다며 팔짱 끼고 있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대기 환경은 미래의 중대한 국가 자산이다. 한두 해만 눈감아 줘서 될 일이 아니라 중요한 국익이 지속적으로 훼손될 전망이라면 이제 중국에 할 말은 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자국 이익을 위한 안보외교를 물불 가리지 않고 구사하는 중국에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60년이면 한국의 대기오염 사망자가 회원국 중 유일하게 1000명이 넘을 거라고 경고했다. 국민 생명 안전으로 따지자면 미세먼지도 위협적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그제 중국에 공기오염의 책임이 있는지 입증해 보라는 식의 배짱 논평을 냈다. 노후 경유차 단속 등 국내의 여러 개선책만큼이나 중국에 당당히 따질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정부는 별도의 연구팀을 꾸려서라도 중국과의 환경외교에 구체적으로 대비해야 할 때다.



[한국일보]

8. 세계 최악 수준의 미세먼지,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봄철의 연례행사가 되다시피 한 짙은 미세먼지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21일 오전 서울의 공기 질은 세계 주요 도시 중 인도 뉴델리에 이어 두 번째로 나빴다. 스모그 천국인 중국 베이징이나 청두보다 더 나쁜 수준이다. 올 들어 21일까지 발령된 초미세먼지 특보는 모두 85회로 지난해(41회)에 비해 두 배 이상이다.

미세먼지는 ‘침묵의 암살자’로 불리는 1급 발암물질이다. 흡연보다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4년 미세먼지에 따른 조기 사망자는 700만명으로 흡연 조기 사망자(600만명)를 웃돌았다. 한국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 WHO 권고치의 세 배나 된다. OECD는 40년 뒤 한국이 대기오염에 따른 조기 사망률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공기 질이 개선될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박근혜정부는 여섯 차례나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해 6월에도 노후 화력발전소 폐쇄, 차량 2부제 실시 등의 특별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미세먼지를 근본적으로 줄이는 실효성 있는 대책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예컨대 석탄화력발전소는 미세먼지 주요 배출원이다. 정부는 수명을 다한 노후 설비를 없애겠다면서도 오히려 9기를 새로 지어 현재 39%인 석탄발전 비중을 10년 후 50%까지 늘릴 계획이다. 경제성에만 집착한 에너지 정책이다. 지난달 15일부터 시행된 공공ㆍ행정기관 대상의 차량 2부제도 별 효과가 없다. 당일은 물론, 다음 날도 ‘매우 나쁨’이 일정시간 예보돼야 하는 등 요건이 까다로워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산업화가 빨리 진행된 데다 인구 밀도가 높아 단위면적당 미세먼지 배출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과다 배출원에 대해서는 과격하게 느껴질 정도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미세먼지에 따른 건강 피해 등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석탄을 결코 값싼 에너지원으로 보기 어렵다. 석탄발전 비중을 대폭 줄이고, 태양광 등 친환경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에너지정책을 바꾸는 게 시급하다. 노후 경유차를 조기 폐차하고 공사장ㆍ소각장의 오염원을 차단하는 등 범정부적 차원의 총력 대응에 나서야 한다. 

미세먼지의 절반은 전 세계 석탄의 절반을 쓰는 중국에서 날아온다. 특히 봄철 미세먼지는 중국 영향이 70% 안팎에 달한다. 중국과의 환경 협력에도 속도를 내야 함은 물론이다.



[조선일보]

9. 美가 걱정하기 시작한 韓 차기 정부 對北 정책

그제 미국 연방 의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차기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공화·민주 양당 의원 모두 5·9 대선 이후 들어서는 한국 신(新)정부의 대북 정책 변경 가능성을 거론했다. 브래드 셔먼 민주당 하원의원은 "개성공단에서 힘들게 번 노동자의 돈이 김정은 정권을 유지하는 자금으로 쓰인다"며 개성공단 재개에 반대했다.



앤 와그너 공화당 하원의원은 "한국의 차기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차기 한국 대통령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백지화하거나, 북한 제재에 소극적일 것이라는 우려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커지고 있다는 로이터통신 보도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방한한 미 국무부의 조셉 윤 대북 정책 특별대표는 우리 외교관보다는 대선 출마 정치인이나 그 참모들을 만나는 데 더 주력했다. 특히 민주당의 안희정 충남지사,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외교·안보 정책 전문가들을 만나서 이들의 대북 정책을 탐색했다. 매우 이례적인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불안한 느낌마저 준다.



미 행정부와 의회가 차기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우려하는 것은 집권 가능성이 큰 민주당 후보들이 급격한 대북 정책 전환을 공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 전 대표는 당선되면 2억달러가량이 김정은에게 흘러가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을 즉각 재개하겠다고 공언했다. 북핵 방어용인 사드도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미국은 문 전 대표의 대북 정책이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유엔 대북 제재 결의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사드까지 철회한다면 양국 공조의 파탄이 현실화할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집권하고 한·미 간 정책 차이가 걱정처럼 표면화할 경우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김정은이고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안보 위기에 몰릴 우리 국민과 한·미 동맹이다. 노무현·부시 행정부 사이의 정책 부조화가 북한의 핵실험과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도왔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처럼 기존 정치인들과는 셈법이 전혀 다른 미국 대통령과 다른 문제도 아닌 민감한 안보 문제로 충돌하게 된다면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한국의 다음 정부가 그 길을 가겠다면 한·미 동맹 아닌 다른 어떤 방법으로 국민을 지킬 것인지 국민에게 먼저 설명해야 한다.



[중앙일보]

10. 대학생 울리는 대학 기숙사의 ‘갑질’

새 학기에 활기차야 할 대학생들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다. 집을 떠난 새내기들은 낯선 환경과 경제적 문제로, 졸업반들은 취업 문제 등으로 고민한다. 그런데 기숙사에 들어간 학생들은 황당한 고통까지 겪고 있다. 대학 측이 한 학기에 수백만원 하는 기숙사비를 일시불 현금으로만 받고, 식권도 100장·200장씩 강매하는 것이다. 학생에 대한 배려는 내팽개치고 수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중앙일보가 서울 소재 12개 대학의 기숙사를 조사해 보니 횡포가 지나쳤다. 12곳 모두 신용카드 결제는 물론 분할납부조차 받지 않았다. 교육부가 2년 전부터 권고한 내용이지만 대학 측이 처벌 조항이 없는 데다 수수료 부담을 내세워 외면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기숙사비 지불 방식을 자율에 맡기는 미국 대학들과는 정반대다. 식사의 질도 열악하다. 한 끼에 3900원을 받으면서도 밥과 국, 김치와 계란말이 한두 조각이 전부인 기숙사도 있었다. 밥맛이 없어 사용하지 않은 식권이 쌓여도 환불을 안 해 준다니 이런 갑질이 어디 있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방치되는 이유는 기숙사가 턱없이 부족해서다. 전국 4년제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20%에 불과하다. 그나마 수도권은 15%, 서울은 11%여서 방 구하기가 별 따기인 학생들만 봉이 된다. 게다가 민자기숙사의 경우 업자가 시설을 짓고 운영을 맡아 투자금을 거둬들이려다 보니 1인실이 월 60만원을 넘는 곳도 있다. 일반 원룸보다도 비싼 수준이다.

이번에 드러난 갑질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교육부는 전국 대학의 기숙사 실태를 점검해 횡포를 바로잡아야 한다. 대학 일에 시시콜콜 간섭하면서 학생들 잠자리와 밥을 갖고 장난치는 기숙사만 방치하는 까닭이 뭔가. 기숙사 확충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대학에 저금리로 건축비를 빌려줘 기숙사비를 낮게 매기는 공공기숙사, 여러 대학 학생들이 함께 거주하는 연합기숙사, 자치단체가 공급하는 향토학사 등이 많아져야 한다. 기숙사 확충을 반대하는 대학가 주민들과의 상생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는 곧 우리 사회의 문제 아닌가.





주요신문칼럼



1. [매일경제][사랑에 대한 단상] 영화 '오버 더 펜스'

누구에게나 말 못할 비밀이 있다. 나도 당신도, 그리고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들도 저마다의 비밀을 한 두 개쯤 갖고 있을 거다. 우리는 이렇게 감쪽같이 침묵하면서 때로는(어쩌면 항상) 위로 받기를 원한다. 이는 굉장히 이기적인 모습이다. 어쩌면 비정상적으로 보일지라도 표현에 과감한 이들이 덜 이기적인 건 아닐까. ‘오버 더 펜스’ 속 사토시처럼 말이다.

그녀는 어린 아이 같다. 길거리에서 화를 내기 일쑤고, 곧잘 운다. 새 흉내를 낸다며 이리저리 날뛰기까지 한다. 이런 그녀를 향한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녀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간다. 밤낮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말이다. 괴짜 같은 행동으로 미루어보자면 말 못할 사연이 있는 듯 하다.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와 뒤늦게 직업훈련학교를 다니는 요시오. 그는 매일같이 학교가 끝나면 도시락과 맥주 두 캔을 사 들고 집으로 향한다. 물건뿐 아니라 온기조차 없는 텅 빈 그의 집은 요시오 그의 현재 삶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맥주 두 캔과 집 앞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만이 그를 위로해준다. 알고 보니 요시오는 부인과 헤어진 상태다.

사토시와 요시오는 길거리에서 이 우연한 만남 이후로 자주 마주치게 되고 그러면서 관계가 가까워진다. 사랑을 갈구하는 사토시와 사랑을 잃은 상태인 요시오는 서로의 빈 공간을 채워나간다. 이들 두 사람은 평범한 우리들을 대변한다.

말 못할 사연들로 심신이 지쳐버린 남녀를 일으켜 세워줄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랑이다. ‘오버 더 펜스’는 현실과 내면의 벽에 부딪힌 남녀가 사랑을 이뤄내는 과정을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에 놓인 이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요시오가 뱉었던 말처럼 그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상태다. 분노와 자괴감으로 휩싸인 사토시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렇게 결핍으로 가득 찬 둘도 사랑을 하고 사랑의 힘으로 현실을 개선해나간다.

사토시가 등장하자 요시오의 타구가 하늘 높이 치솟는 장면은 ‘오버 더 펜스’의 주제를 함축하는 장면이다. 야구장에 모인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요시오의 타구를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꿈을 쫓고 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오버 더 펜스’는 말한다. 우리 모두는 사랑을 갈구하고, 따라서 해야만 한다고. 서툴고 투박하더라도 사랑을 통해 얻는 것들이 많다고 말이다.



2. [경향신문][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 행복하다는 것

행복의 날이란 게 있는 줄 몰랐다. 지난 20일이 바로, 유엔에서 제정한 세계 행복의 날이란다. 제헌절이나 한글날, 삼일절 같은 날들처럼 역사적으로 뭔가 대단히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걸 기념하기 위해 만든 날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날은 역사적으로 아주 행복했던 어떤 사건을 기념하는 날일 터이고, 사람들의 마음도 그 기억과 함께 흐뭇해졌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살펴보니, 이날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복지와 경제발전을 도모하고자 국제연합에서 제정’한 날이라고 되어 있고, 관련 정보로는 세계 행복 보고서가 보인다.



행복의 조건을 수치화해서 순위를 매겼을 때, 우리나라의 순위가 아주 한참 아래이다 못해 거의 바닥 수준이라는 건 이제 새삼스러운 뉴스도 아니다. 그 구체적인 예들로 청년실업률, 노인빈곤율, 출산율 등이 제시되기도 했다. 다 새삼스럽지 않은 뉴스들이다. 간신히 청년실업을 면했다고 해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엄두를 내기에는 턱없이 적은 임금과 과도한 업무에 시달려야 한다. 혹시 아이를 낳더라도 그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거나, 그런 사람을 구할 돈이 없고, 그래서 아이를 낳지 못하고, 그럴수록 그들이 어깨에 메고 살아가야 할 노년층의 두께는 두꺼워지고, 가난해지는 식이다.

야근이 많은 회사에 다니는 젊은 친구에게 결혼 계획을 물었더니, “회사에서 집엘 보내줘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겠지요”라는 농담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출산율을 따지기 전에 결혼하고 출산할 수 있는 조건을 따져야 한다는 소리다. 행복수치를 따지기 전에, 행복한지를 묻기 전에, 행복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봐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나 역시, 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는 말은 이제 아주 유명한 말인 듯하다. 심리학자가 한 말이기도 하고, <종의 기원>을 쓴 다윈의 연구결과라고도 한다. 독일의 연구자들은 그걸 확인해보기 위해 웃음 근육을 마비시키는 보톡스를 주사하고 뇌반응을 측정해보기도 했단다. ‘웃음의 숨겨진 힘’에 대한 TED 강연에서 들은 말이다. 이 강연 중, 자궁 안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태아의 초음파 사진이 보인다. ‘우리는 사실 선천적으로 미소짓도록 태어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사실 선천적으로 행복하려고 태어났다는 것’일 터이다. 같은 TED 강연으로 아주 유명한 에이미 쿠디(Amy Cuddy)는 보디랭귀지의 힘을 말하면서, 마음이 몸을 만드는 게 아니라 몸이 마음을 만든다고 말한다. 주눅든 자세로 있으면 약해지고, 센 척하면 세진다는 것이다. 대개의 생각과는 반대다. 약하니까 주눅이 들고, 가진 게 없으니까 센 척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심리학과 과학은 아니라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착각과 자기 세뇌의 문제가 아니라, 뇌와 그에 작용하는 호르몬의 문제라는 것이다.

문학은 어떤가? 문학은 관계에 대해 집중한다. 사람과 사람의 개인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 역사와의 관계를 포괄한다. 나의 이야기가 단지 나의 이야기인 것이 아니라 나이면서 동시에 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센 척하는 자세를 해서 개인의 지배 호르몬 혹은 행복 호르몬을 발생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관계를 행복하게 만들거나, 혹은 관계 속에서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예컨대 내가 대한민국의 출산율을 고민하는 아주 건강한 20대 여성이라면, 출산은, 단지 건강한 호르몬을 바탕으로 하여 아이를 낳는 문제인 것이 아니라, 월수입, 노동시간, 직장의 구조와 상사의 성격, 사회적인 보육시설의 안전도와 신뢰도, 부모님의 경제력과 건강, 심지어는, 아랫집 주민의 층간소음 반응까지도 미리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에 비해서는 훨씬 비관적이지만, 그래도 ‘사랑’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건 문학이다.

탄핵이 인용된 후 광화문 촛불집회는 특별했다. 나로서도 그 집회는 매우 각별한 경험이었는데, 행복한 집회의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소위 386세대라고 불리는 사람의 하나로서 내가 생각하는 시위나 집회의 정의는, 다치고, 죽고, 검거되고, 투옥되는 일들의 총합쯤으로 여겨졌다. 말하자면 정말로 피를 흘리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었고,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끈 원동력이 된 1987년 6월항쟁만 하더라도,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 전에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있었다.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다치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그 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누구도 다치고 검거되지 않고 투옥도 되지 않았는데, 그날 촛불집회의 구호는 ‘승리’였다. 실은 ‘행복’이라고 바꿔 말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날의 참가자들은 일부러 센 척할 필요도 없이 이미 셌다. 그 호르몬은 우리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억 세포로 전이되어 개인의 역사가 되고, 사회의 역사가 될 것이다. 

서울시가 촛불집회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가 아닌가를 따지기 전에 나는 그 자긍심이 좋다. 역사는 피를 흘려야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뜻을 모으면 바꿀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그런 자리에 자신의 목소리를 보탤 수 있다는 것, 그 소박함의 엄청난 힘이 좋다. 시위가 축제가 될 수 있고, 축제는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무소불위인 줄 알았던 자리에서 밀어낸 것보다 더 큰 승리는 바로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앞으로 정권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는 모르지만, 촛불을 완성하는 정권이 되어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장미대선’이라는 말이 참 좋게 들린다. 덩굴장미처럼 행복을 마구 피워내는 그런 정권이 들어서야겠다. 그러려면 잘 지켜봐야 할 일이다. 4년 전의 실수를 다시 해서는 안 될 터이니. 대선까지 모두들 어깨를 활짝 펴 긍정 호르몬을 마구 발산시키시기를 바란다.



정치나 권력은 그 속성상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치를 감시하는 힘은 국민들에게 있어 보인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지는 게 아니라, 바람과 함께 타오르는 힘이다.



3. [경향신문][경제와 세상]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큰 화두는 일자리일 것이다. 해외의 옥스퍼드 연구소, 다보스 포럼과 한국의 노동연구원과 고용정보원 등 각종 기관들이 앞다퉈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앗아가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제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의 근본적 문제에 대하여 논의해 보고자 한다.



지난 250년의 산업혁명을 통하여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숱한 주장이 반복되어 왔으나,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줄인 사례는 전혀 없다. 1차 산업혁명 시기인 19세기 초 벌어진 기계 파괴 운동인 ‘러다이트’ 운동과 3차 산업혁명 태동기인 1961년 타임지의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소멸 예측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입증되었다.



80%의 농업인구가 2%가 되었으나, 78%는 실업자가 아니라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전환되었다. 즉 지금까지의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의 증가로 근무시간을 줄여 삶의 질을 끌어올리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왔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기술혁신으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노동총량 불변의 법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노동총량이 일정할 경우 새로운 기술혁신은 노동총량을 축소하여 결과적으로 일자리의 수요를 줄인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산업혁명 초기에 주당 80시간의 노동시간이 이제는 40시간 이하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노동총량은 불변이 아니었다.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이 증가되어 잉여가 발생하면 새로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자리가 등장해 왔다.

혁신이란 일자리의 소멸과 생성을 의미하는 단어다. 일자리는 사라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일자리 문제에 대한 본질적 질문은 사라지는 일자리가 아니고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예측 기관들은 사라지는 일자리는 말하고 있으나, 창출되는 일자리에 대한 언급은 찾아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 일자리 창출의 원천은 무엇인가 하는 본원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일자리의 원천은 바로 인간의 욕망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은 노동총량 불변의 법칙이 오류임을 지난 250년의 산업혁명 역사를 통하여 입증했다. 1차 산업혁명은 기계 기술로 인간의 생존 욕구를 충족시킨 혁명으로 인간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했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 기술로 인간의 안정의 욕구, 즉 편리함의 욕구를 충족시킨 혁명으로서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편리한 제품을 제공했다. 그리고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 기술로 인간의 사회적 욕구인 연결을 만족시켜준 결과, ‘혼밥’과 ‘혼술’ 같은 사회적 현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존의 산업혁명이 충족시켜 온 인간의 욕망은 매슬로가 주장한 인간 욕구 5단계의 1·2·3단계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 충족시킬 인간의 욕망은 바로 매슬로의 욕구 4단계인 자기 표현 욕구일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해 본다. 매슬로는 이 4단계를 다시 인지적 욕구와 심미적 욕구로 세분화한 7단계설로 확장한 바 있다. 이제 새로운 일자리의 원천은 바로 인간의 개인화된 자기 표현 욕망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화된 욕망을 인간과 인공지능 및 로봇이 협업하여 충족하는 사회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과 로봇을 만드는 생산성 증가로 노동 총량 감소의 일자리와 자기 표현의 욕망을 충족하는 노동 총량 증가의 일자리로 나누어질 것이다. 생산성 증가 일자리는 노동시간을 줄여주고, 자기 표현 일자리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제 4차 산업혁명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역할은 각각 창조적인 일과 반복되는 일로 나뉘어 서로 협력하게 될 것이다. 소위 ‘딥러닝(DeepLearning)’이라는 인공지능 기술은 반복되는 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단순화하자면 반복되는 단순 작업은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맡기고 인간은 자기 창조적인 일에 몰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미래의 인재상은 ‘협력하는 괴짜’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교육은 바로 협력하는 창조적 인재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협력하는 괴짜는 산업과 교육이 융합하는 프로젝트 기반 교육(PBL)으로 구현된다. 세계 선도 대학들은 이미 팀 프로젝트 교육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학과 교육들은 온라인 교육(MOOC)으로 전환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새롭게 형태를 바꿀 뿐이다.



4. [여성신문][서민의 페미니즘 혁명] 임신부에게 X표를 긋는 나라

아내와 함께 지하철을 탔다. 서 있던 자리가 노약자 지정석 앞이었는데, 그 자리를 표시하는 스티커의 임신부에게 X자가 그어져 있다. 신기해하는 아내에게 설명을 해줬다. “이게 바로 여혐의 증거야."

몇 년 전, 지하철 노약자석을 주제로 한 방송에 나간 적이 있다. 프로그램 중 나이든 분과 임신부 중 누가 더 약자인지 묻는 코너가 있었는데, 연구결과는 내 예상과 달리 임신부가 10배쯤 더 힘들단다. 나이든 분들이 다 같은 것도 아니고 임신부도 다 다를 테니 이것만 가지고 결론을 내긴 어렵겠지만, 최소한 임신부가 노인에 필적할 만큼 힘들다는 데는 다들 동의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도 임신부가 노약자석에 앉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배가 아주 나왔으면 모르겠지만, 만삭이 아닌 바에야 그냥 배가 나온 것과 임신한 사람을 구별하는 건 쉽지 않다. 이를 위해 서울지하철에선 산모수첩을 내면 임신부고리라고, 분홍색으로 된 큰 고리를 나눠주는데, 이걸 꺼냈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냐면 그런 것도 아닌가보다. 14주차 임신부는 인터넷에 “임신부 고리를 봐도 아무도 신경을 안 썼다. 역시 큰 도움은 안되는 듯”이라고 수기를 올렸다.

그런데 이 글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노약자석은 무서워서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왜일까. 노약자석은 그 이름 때문인지 나이든 분들이 우선권을 갖는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미담이 만들어진다. “경찰이 과천역 인근에서 노약자석에 앉아 가던 임신부 A씨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며 폭행한 70대 노인 B씨를 검거했다.” 참고로 A씨는 임신 27주였으니 임신한 걸 알아볼 수 있었을 테지만, 노인 B씨는 막무가내였다. 언론에 따르면, B씨는 “‘임신한 게 아니면서 그런 척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확인을 해야 한다”고 A씨의 임부복을 걷어 올리기까지 했고 곧이어 임신부 A씨의 부른 배를 가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A씨만 겪는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여혐 세력은 임신부들이 임신을 빌미로 노약자석을 점거하는 걸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스티커에 그어진 X자 표시를 보면 그 자리에 앉는 게 두렵지 않겠는가. 고육지책으로 서울시가 만든 게 바로 임신부 배려석이다. 가끔 지하철을 보면 좌석 맨 끝자리에 분홍색으로 칠해진 좌석이 눈에 띄는데, 그게 바로 임신부 배려석이다.

색깔도 그렇지만 좌석 앞바닥에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고 쓰여 있으니,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자리라는 걸 알아챌 수 있다. 한량에 두 개뿐이긴 해도, 노약자석에 앉지 못하는 임신부들에겐 ‘가뭄에 단비’다. 이제 임신부들의 고생은 끝난 것일까? 기뻐하기 이르다. 지하철을 꽤 탔지만, 그 자리에 임신부로 추정되는 여성이 앉아 있는 걸 본 경험은 드물다. 오히려 건장한 남자일수록 그 자리를 좋아했다. 혹시 분홍색에 페티시가 있는 건 아닐까? 거기 앉아 있는 승객에게 물어본 결과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온다.

“비워놓는 건 비효율적이니, 일단 앉아 있다 임신부가 오면 비켜주면 되는 거 아니냐?”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이가 많은 듯하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 경우 임신부가 자리를 양보받는 게 쉽지 않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느라 앞에 누가 오는지 신경을 안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렵게 자리 양보를 부탁해도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다.

임신을 하면 개인으로 봐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몸도 힘든데다 직장에서 눈치 보이지, 몸매 망가지지, 좋을 게 뭐가 있는가? 그럼에도 임신을 하는 건 사랑하는 부부의 결실을 세상에 내보내는 게 이 모든 고통을 감수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어난 새 생명은 국가와 사회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임신부들이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 좀 해달라는 건데, 그것마저 우리 남성들은 들어줄 마음이 없다. 그래서 이런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우리나라의 저출산은 훨씬 더 심각해져, 걷잡을 수 없을 정도까지 갈 거라는 걸.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탄핵

1945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은 11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그들 중 임기를 온전히 채운 이는 6명(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고 나머지는 하야(이승만), 사임(윤보선, 최규하), 피살(박정희), 탄핵(박근혜)으로 중도 하차했다. 임기를 마친 6명 중 둘(전두환 노태우)은 임기 후 내란ㆍ반란죄 등으로 실형을 살았고,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통령은 되기도 어렵지만 제대로 해내기도 어렵고 위험한(?) 자리인 듯하다.

이승만은 4.19로 하야하기 전,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탄핵 당한 이력도 있다. 1919년 9월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그는 21년 독단적으로 국제연맹에 한반도 위임통치를 청원, 1925년 3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탄핵 당했다.



대통령 선출 전, 총리제 하의 임시정부 총리로서 외교무대에서 자신을 ‘대통령(president)’으로 소개하며 말썽을 빚었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주로 미국에 머물며 독자 외교노선을 걷던 그는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된 나머지 21년의 청원을 대통령 자격으로 행했고, 의정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철회를 거부했다. 당시 신채호는 “없는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것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보다 더한 역적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탄핵서는 “이승만은 외교를 빙자하고 직무지를 떠나 5년 동안 원양일우에 편재해서 난국수습과 대업진행에 하등 성의를 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허무한 사실을 제조 간포해서 정부의 위신을 손상시키고 민심을 분산시킨 것은 물론…”으로 시작된다. 그는 60년 4월의 하야로 두 차례 대통령 직에서 불명예 퇴진하는 기록을 세웠다. 윤보선과 최규하는 각각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와 전두환의 위세에 밀려 사실상 강압에 의해 대통령직을 내놓았다. 

우연이지만 1962년 윤보선의 하야도 이승만이 탄핵된 날과 같은 3월 23일이었다. 윤보선은 5ㆍ16 군사쿠데타 직후인 61년 5월 19일 방송을 통해 하야 선언을 했다가 국제법상 새 정부 승인 문제 등이 복잡해질 것을 우려한 군부의 사임 재고 요청(사실상의 압박)으로 다음 날 하야를 번복하기도 했다.

3월 10일의 헌재 판결로 직에서 파면 당한 박근혜는 아버지에 이어 2대에 걸쳐 중도하차한 대통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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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22일 (水) 조간 

# ICT정책/동향
[전자신문]4차 산업혁명의 정글 獅子가 되어 질주할 때
http://naver.me/5cGjsu2W
[중앙일보]우주개척 꿈 베저스, 한국 로봇에 반하다
http://naver.me/FJZKWd3S
[전자신문]아이폰 다음은… 증강현실?
http://naver.me/5MXmqok9
[전자신문]잠자는 공공기술 사업화 산업부·미래부 손잡았다
http://naver.me/xRT7E5sv



# 오피니언
[디지털타임스]4차 산업혁명 시대, ‘행복한 세상‘인가
http://naver.me/x1pwTsS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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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한겨레]

1. ‘진심과 사죄’ 빠진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뇌물수수 등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조사실로 들어가기에 앞서 그는 “국민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이의 대국민 사과라기엔 많이 모자란다. 검찰에 나온 피의자들의 전형적인 말이 꼭 이랬다. 박 전 대통령에게선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치는 진정성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그런 형식적 입장 발표로는 국민의 성난 마음을 달래기 힘들다. 그는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 쪽이 태도를 누그러뜨린 것은 분명하다. 그는 지난 1월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특검이 나를) 완전히 엮었다”고 거칠게 반발했다. 극우성향 인터넷 방송에 나와선 검찰과 특검 수사를 “거짓으로 쌓아 올린 커다란 가공의 산”이라거나 “오래전부터 기획된 음모”라고 비난했다. 대면조사도 온갖 핑계와 트집을 잡아 끝내 거부했다.



그런 그가 이제야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방향을 튼 이유가 달리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처럼 검찰과 특검 수사를 전면 부정하고 조사를 회피하다간 구속을 면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겠다. 국민 여론을 자극할 필요 없이,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 사회 통합에 끼칠 악영향’ 등이 부각되도록 하는 게 낫다는 계산도 했음 직하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 쪽의 계산에 신경을 쓸 이유는 없다. 법과 원칙에 따라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필요하면 구속해 수사를 계속하면 될 뿐이다. 원칙대로라면 구속수사가 당연해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뇌물수수나 블랙리스트 등 박 전 대통령의 혐의 하나하나에 대해선 관련자들의 구체적인 증언과 물증이 다 갖춰져 있다고 한다. 증거가 명백한데도 끝내 부인하면 구속수사가 불가피하다.



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관련자 대부분이 구속돼 재판까지 받는 마당에선 형평성 때문에라도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준 사람보다 받은 사람이 더 무겁게 처벌되는 뇌물죄의 경우, 준 쪽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진작 구속돼 있다. 박 전 대통령만 구속하지 말자는 게 되레 어색하다.

검찰은 이제 일체의 정치적 고려를 던져버려야 한다. 다른 사건도 그렇지만 이번에는 특히 법과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법치와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이데일리]

2. 이 부끄러운 역사에 마침표를 찍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돼 하루 종일 조사를 받았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내려진 지 열하루 만으로 뇌물수수, 직권남용, 기밀문서 유출 등 13개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청 포토라인에 선 ‘자연인 박근혜’는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대꾸하지 않은 채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만 말했다.

앞서 청와대에서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가면서 내놓은 짤막한 대국민 발표문에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고 말한 것으로 미뤄 박 전 대통령의 법정 다툼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이들이 모인 검찰과 바로 얼마 전까지 최고 권력을 누렸고 여전히 막강한 지지세력을 거느린 박 전 대통령 사이의 법리 공방은 나라를 반년 가까이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최순실 사태’의 끝내기 수순인 셈이다.



검찰은 오롯이 실체적 진실 규명에만 매달려야 한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 정도면 몰라도 또다시 정치권이나 여론을 기웃거리며 좌고우면하다간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잇단 법조 비리 등으로 밑바닥까지 실추된 검찰의 체면을 되살릴 절호의 기회로 삼아 어느 누구도 시비 걸지 못할 만큼 깔끔한 조사 결과를 내놔야 한다. 박 전 대통령도 본인의 억울함만 내세울 게 아니라 이참에 국민의 분노와 실망에 내포된 의미를 곱씹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전직 대통령이 피의자로 전락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잘라내는 일이다. 건국 이후 11명의 대통령 중 벌써 4번째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감옥까지 갔고,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 수사 도중 자살했다. 다른 전직 대통령들도 비리와 부패, 국정농단에서 자유롭지 못하긴 매한가지다. 그들에게도 이번과 똑같은 기준이 적용됐다면 역시 탄핵을 면치 못했으리란 지적은 국민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다.

이젠 우리도 부끄러운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질 때가 됐다. 그러려면 국민이 제대로 된 대통령감을 가려낼 줄 아는 안목부터 키워야 한다. 나쁜 짓을 한 대통령이나 잘못 뽑은 유권자나 오십보백보다. 한 달 보름여 앞으로 닥친 다음 대선이 그 첫 시험대다.



3. 유커 빈자리 채우는 동남아 관광객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유커(遊客)의 방문이 현저히 줄어든 가운데 동남아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요즘 서울 명동 일대에서 중국인들의 왁자지껄한 대화가 거의 사라진 반면 말투와 피부가 구분되는 다른 동양인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는 광경이 그 결과다. 비록 그 규모에 있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도 유커의 공백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위안이 된다.

우선 동남아 방문객이 크게 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1월의 경우 홍콩 관광객은 전년 대비 65% 급증했고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관광객도 50% 가까이 늘어났다는 게 한국관광공사의 집계 결과다. 중국 관광객이 56만 5000명으로 전체의 46.3%를 차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남아 국가의 방문객 비율도 25%로 나타났다. 일본 관광객도 10%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중국과의 사드 갈등을 떠나서도 앞으로 정책적으로 동남아 국가들과의 유대를 더욱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교역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중국에 너무 일방적으로 의존해 무역·관광시장 전략을 마련해 온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 중국이 지리적으로 가깝고 시장이 큰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이런 식으로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했다는 얘기다.

중국의 유커 방문 단속조치로 관광 경기에 타격을 입었던 대만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대만도 동남아 쪽으로 눈길을 돌려 곤경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이른바 ‘신(新)남향정책’이 그것이다. 대만도 중국의 보복조치로 관광 분야 피해가 작지 않았다.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정부가 들어선 지난해 5월 이래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라며 일련의 보복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동남아 관광객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중국 관광객들에게 적용했던 방문 특례규정을 동남아 관광객들에게 허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무슬림 관광객 유치 노력도 요구된다. 다양한 초청행사와 여행박람회를 개최하고 관광안내 표지판을 다국어로 만들어야 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한 이번 홍역을 값진 경험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매일신문]

4. 대선 후보자들의 지역 공약 실종, 이래도 되나

대통령 선거가 48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으나 주요 후보자들의 공약은 한마디로 부실, 그 자체다. 그 가운데 지역 공약에 대해서는 부실 수준을 넘어 아예 실종된 상태나 마찬가지다. 후보자들의 지역 공약을 보면 원론적인 수준에서 간간이 언급될 뿐, 구체성이 있거나 실현 가능한 정책은 보이지도 않는다. 이 정도의 ‘지역 홀대’나 ‘지역민 무시’는 역대 대선에서 단 한 번도 볼 수 없던 현상이다.



지역민 입장에서는 후보자를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잣대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후보자들이 아무리 시간에 쫓기고 있다지만, 이런 기초적인 준비조차 없이 대선에 나서는 것 자체가 ‘양심 불량’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주자들은 실현 가능성이 의심되는 선심성 공약만 줄줄이 내놓고 있을 뿐, 눈에 띄는 지역 관련 공약이 거의 없다. 민주당 후보자들은 균등 분배와 균형 발전을 공약의 기조로 삼고 있다지만, 수도권 중심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정책은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심하게 말하면, 이들의 머릿속에 지역과 지역민에 대한 관심과 배려 자체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유한국당의 유력 주자인 홍준표 경남지사, 김진태 의원은 ‘우파 집권’만 외칠 뿐, 공약이라고 발표한 것이 전무한 상태인 만큼 언급할 가치도 없다. 그나마 지역 출신인 김관용 경상북도지사와 유승민 의원이 지방분권과 균형 발전, 대구경북 현안 등 지역 관련 공약을 앞세우고 있어 다행스럽다.



후보자들이 지역 공약을 제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준비 및 공부 부족 때문이다. 지역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집권 후에 지키지 못할 수 있기에 공약화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역에서는 현재 추진 중인 핵심사업이 좌초되지나 않을까 불안해한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가장 큰 현안인 통합공항 이전사업이 혹시라도 차질을 빚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으니 서글픈 풍경일 수밖에 없다.



후보자들이 당내 경선에 매진하고 있기에 지역 관련 공약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이라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렇지만, 지역민에 대한 관심과 지방분권 없이는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이 불가능하고 우리 사회의 적폐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루빨리, 지역 관련 공약을 제시해 지역민에게 후보자 자신의 소신과 의지를 검증받아야 할 것이다.



5. ​박 전 대통령 검찰 수사, 대립과 갈등의 치유 계기 돼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 11일 만에 검찰 조사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조사에 앞서 검찰 포토라인에서 “국민에게 송구스럽고,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고 했다. 그 말대로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에 대해 성실하게 있는 그대로 진술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탄핵 결정 뒤 사저로 퇴거하면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했던 말을 스스로 실천하는 길이자 박 전 대통령과 똑같이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하는 국민의 바람에 부응하는 길이다.



박 전 대통령의 혐의는 삼성 특혜에 따른 뇌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제 모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직권남용 등 13개에 이른다. 이 중에는 박 전 대통령의 주장처럼 “엮은 것”도 있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수 있다. 엮은 것이면 박 전 대통령은 방어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인 것이면 떳떳하게 인정하고 당당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 국민은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서 전직 대통령에 걸맞은 당당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다.



검찰도 오직 진실을 향해 공정하고 객관적 입장에서 조사했을 것으로 믿는다. 탄핵 과정에서 나라는 둘로 찢어졌고, 그 갈등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를 봉합하기 위해서는 검찰의 수사가 한 점의 흠결도 없어야 한다. 누가 봐도 엄정하고 객관적인 수사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수사 결과는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면서 대립과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구속영장 청구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차 구속에 실패했던 특검의 무리수 같은 것은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일이 또 벌어지면 ‘엮으려 한다’는 의심이 나올 수 있다. 무엇보다 수사의 목적은 구속이 아니라 혐의 입증임을 명심해야 한다. 앞으로도 검찰은 흔들림없이 수사하되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6. 성주 사드 배치 반대 집회, 평화롭도록 정부도 할 일 해라

경북 성주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또다시 몸살을 앓게 됐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성주 롯데스카이힐 골프장과 경기도 남양주 군용지의 맞교환을 발표하면서 빚어진 배치 갈등 때문이다. 이후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모임이 성주에서 연일 열리고 앞으로도 반대 촛불 집회가 계속 이어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드 집회를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마음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가장 우려스러운 일은 반대 집회 참가자와 집회에 대비하는 경찰 병력 등과의 물리적 충돌이다. 그러나 지난 18일 성주 초전면 롯데스카이힐 골프장 인근에서 4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평화발걸음대회는 다행히 평화적으로 끝났다. 물론 원불교 평화천막 철거 과정에서 경찰과의 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경찰의 정당한 공무집행에 따른 일로 큰 사고는 없었다. 다행스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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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평화적 시위와 함께 집회 주최 측의 현명한 대처가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지난 18일 집회처럼 사드 배치는 전국 시민`사회단체나 정치인이 참여하는 민감한 문제이다. 불순 세력의 개입 여지도 없지는 않다. 자칫 소홀히 대처하다가는 예기치 못한 충돌과 같은 불상사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행사 주최 측이나 당국 모두 긴장해야 할 부분이다.



집회 보장과 함께 경찰이나 행정 당국의 정당한 공무집행도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한 행사 주최 측의 적극적인 협조와 함께 공무집행 당국의 당당한 대처도 필요하다. 아울러 정부 역시 반대 주민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 집회에는 주민들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부족한 데 따른 불만도 녹아 있다. 반대 목소리를 낮추고 평화시위로 이어지도록 대책 마련에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드 배치 갈등과 관련된 모든 당사자는 사드 이후에도 다시 얼굴을 맞대고 함께 나라를 걱정해야 할 국민이어서다.



[서울신문]

7. 주 52시간 근로, 일자리 증가로 이어져야

국회가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데 그제 합의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소위는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16시간 단축하되 한시적으로 사업주에 대한 처벌 면제 규정을 두기로 했다. 정치권은 주당 근로시간을 줄이는 데는 합의하고서도 몇 년째 시행 시기와 방법을 놓고 여야가 각을 세워 왔다.



기업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행하자는 여당의 주장에 야당은 곧바로 전면 시행하자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대선을 앞둔 여당이 야당안에 동의함으로써 관련 법이 내년부터 시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근로시간 단축은 사회적 공감대가 이미 넓게 자리 잡은 시대 현안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연간 500시간이나 많은 근로시간을 기록한다. 저출산율, 자살률과 함께 세계 최고를 다투는 부정적인 사회문제로 꼽힌 지 오래다. ‘저녁이 없는 삶’에 찌든 과로 국가여서는 노동생산성을 기약할 수도 없을뿐더러 실업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다.



이번 합의안은 현행 휴일 근로 16시간을 단순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것이 골자다. 일자리 확대와 근로자의 삶의 질 개선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고민이 반영됐다.

문제는 기업 부담과 저항이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로서는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고용을 늘리든지 그게 여의치 않으면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하락분도 보전해 줘야 하는데, 인건비를 줄이려는 기업들이 편법·불법 운영, 무리한 자동화를 밀어붙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휴일 근로에 연장근로 가산금을 소급 적용하는 문제도 기업들로서는 충격이다. 중소기업은 존폐 위기에 몰릴 우려도 있다.

그렇더라도 노동시간 단축은 더 좌고우면할 일이 아니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시대적 대의보다 앞에 놓일 수 있는 사안은 없다. 국회는 기업의 충격을 덜어 주기 위해 처벌 면제 규정도 두기로 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2년, 미만 사업장은 4년간 법 적용을 유예한다는 방침이다. 실업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노사 합의를 통해 현실적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청년실업률은 지난달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 대책을 입으로만 외치며 고작 알바 일자리나 늘리는 눈속임은 그만둬야 한다. 한발씩 양보하지 않고서는 당장 일자리 창출의 묘수는 없다.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절벽과 청년 실업을 구제하는 기폭제가 돼야 한다.



8. 말꼬리 잡는 ‘文 전두환 표창장’ 비난 그만두라

본격적인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면서 인신공격과 마타도어가 난무하고 있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경선 후보가 지난 19일 TV합동토론회에서 한 ‘전두환 표창장’ 발언도 논란을 불렀다. 다른 정당과 같은 당 후보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경솔한 발언에 대해 광주와 호남 민중에게 사과하라”, “공개적으로 전두환 표창을 폐기하라” 등의 비난을 퍼부었다. 특히 국민의당은 문 후보 캠프 측이 “왜곡하지 말라”고 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 너무나도 닮은 모습”이라고 공격했다.

문 후보의 발언은 이렇다. “저는 특전사 공수부대 시절 주특기가 폭파병이었다. 12·12 군사반란 때 반란군을 막다가 총을 맞아서 참군인의 초상이 된 정병주 특전사령관으로부터 폭파 최우수상을 받았다. 나중에 제1공수여단 여단장인 전두환 장군, 반란군의 우두머리였던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문 후보의 발언이 결코 문제가 된다고 보지 않는다. 군 복무를 열심히 했다는 말을 하다 나온 것으로 본다. 문 후보가 복무할 당시는 전두환씨가 반란을 통해 전면으로 나서기 전이었다. 문 후보는 전 여단장에게 충성하기 위해 열심히 복무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성실하게 복무해 표창장을 받았는데 그때 여단장이 전두환 장군이었을 뿐이라고 말하려 했을 것이다.



5·18 관련으로 투옥됐고 군부독재와 싸워 온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말꼬리를 잡아서 상대를 흠집 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무리 표가 급해도 말도 안 되는 공격을 하는 것은 네거티브 전략도 아닌 마타도어에 불과하다.

각 진영이 뒤늦게 과도한 공격이었음을 인정하고 이 발언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을 그만두자고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민주당 안희정 후보는 “군 복무를 성실히 했다는 애국심 강조 끝에 나온 발언”이라며 “5·18 광주 정신을 훼손하고자 했던 발언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바른정당의 대선 주자인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전두환 개인’에게 받은 것이 아니라 ‘특공여단장’에게 받은 표창이기 때문에 비판하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경선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인신공격이 벌써 도를 넘어서고 있다. 미래를 밝힐 비전과 정책 대결은 보이지 않는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구태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경선 후보들은 변변한 정책이나 공약하나 내놓지 못한 채 연일 막말에 가까운 직설적인 화법으로 서로 때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차기 정권은 대한민국의 국운을 살려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짊어지고 있다. 북한의 핵 도발을 둘러싼 안보 위기는 물론 사드 배치를 둘러싼 국내외 갈등, 미·중 간의 패권 경쟁과 심각한 경제위기 등 어느 하나 허투루 여길 수 없는 난제들이 쌓여 있다. 미래를 열어 가는 시대정신을 제시하고 구체적 공약과 정책을 통해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후보만이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이다.



[매일경제]

9. `근로시간 단축` 일자리 늘리지 않으면 오히려 해악이다

여야 4당이 주당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 이내로 축소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연간 근로시간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766시간에 비해 훨씬 길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이때 일자리를 나누고 근로자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근로시간 단축은 지향해야 할 과제다.



노·사·정이 2015년 9월 대타협에서 근로시간 단축에 합의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여야가 합의한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늘리기'라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는 방식인지 의문이다. 여야는 기업 규모에 따라 2019년 또는 2021년부터 강제 시행할 계획이라는데 너무 서두르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근로시간을 주당 52시간으로 줄이면 기업 부담이 연간 12조원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중 8조원 이상은 중소기업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런 충격을 갑작스럽게 안기면 경쟁력 약화에 그치지 않고 아예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노·사·정은 2015년 대타협 때 2024년까지 충격 완충기간을 뒀다.



기업 규모에 따라 2020년까지 근로시간을 단축하되 그 후 4년 동안 특별연장근로를 주당 8시간까지 허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경기 변동에 따라 생산량이 급증한 업종, 인력을 구하지 못해 납기를 채우지 못하게 된 중소기업 등이 노사 합의를 거쳐 특별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이 조항이 이번 여야 합의에서 사라졌으니 걱정이다. 

이처럼 밀어붙이기만 하다가는 노사갈등을 확대시킬 우려도 있다. 그동안 근로자들은 특근수당을 통해 임금을 보전받아 왔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급여·수당이 줄어들면 대기업·공공기업에선 강력한 노조를 내세워 기득권을 유지하는 반면 중소기업 근로자들만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질 수도 있다. 

여야 정치권은 휴일근로에 대한 임금 할증률을 아직 결정조차 하지 못했다. 그동안 연장·야간·휴일근로에는 임금을 50% 할증해 왔는데 노동계는 앞으로 휴일근로 할증률을 100%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치권은 눈치를 보고 있다. 50% 할증률도 이미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인데 여기에 더 할증률을 높이자고 하는 것은 '일자리 나누기'라는 취지를 망각한 것이다. 그저 제몫 챙기기일 뿐이다.



프랑스는 1999년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늘리려 했으나 임금 삭감을 병행하지 못한 탓에 일자리는 늘리지 못하고 인플레이션만 부추기는 실패를 맛봤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늘리려 한다면 기업에는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하고 근로자들에게는 고통 분담을 설득해야 한다.



10. 고교중퇴 흙수저 방준혁이 보여준 불굴의 기업가정신

국내 최대 모바일 게임업체 넷마블게임즈가 오는 5월 최대 13조원의 상장 대박을 터뜨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임 대장주로 등극하게 될 뿐 아니라 올해 공모주 시장의 최대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방준혁 넷마블 이사회 의장이 보유한 주식가치는 3조원을 넘어 이해진 네이버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을 제치고 국내 6위 부호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글로벌 업체에 크게 밀리던 모바일 게임시장에서 넷마블의 질주는 국내 게임산업 경쟁력 향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상장 잭팟을 터뜨린 방 의장이 고교를 중퇴한 소위 '흙수저'라는 점이 주목을 끈다. 넷마블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마치지 못한 그가 두 번의 창업 실패 후 2000년 설립한 회사다. 창업 4년 만에 CJ에 800억원을 받고 기업을 팔 정도로 성공했지만 그가 떠난 후 기업이 흔들리자 다시 지분을 사들이고 한물간 PC 온라인 게임 대신 모바일 게임에 집중하면서 기업을 살려냈다. 대단한 학벌도, 엔지니어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가난에도, 사업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는 게 그의 유일한 무기였다.

방 의장은 지난해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에서 "나는 진품 흙수저다. 성인이 될 때까지 한번도 내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고 학원비가 없어 신문 배달을 하며 학원에 다녔다"고 했다. 그런 그였기에 스펙보다는 역량을, 학연과 지연보다는 고난의 경험을 중시해 인력을 뽑았고 이들과 같이 혁신과 도전에 나섰다. 그의 성공 스토리는 정주영, 이병철, 김우중 등 불굴의 패기와 도전정신으로 꿈을 향해 돌진했던 1세대 기업인들의 기업가정신을 떠오르게 한다.

1970~1980년대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기업가정신은 갈수록 쇠퇴하고 있다. 빽빽한 규제가 기업인을 주저앉게 하고 헬조선, 흙수저 등 자학적 문화가 젊은 세대를 움츠리게 하고 있다. 지독한 일 중독자이자 승부사인 방 의장의 성공은 도전보다는 포기, 희망보다는 좌절에 익숙한 청년세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방 의장은 이제 공모자금을 인수·합병(M&A)에 활용해 글로벌 제패의 꿈을 꾸고 있다. '2020년 세계 게임시장 톱5'라는 목표를 달성하며 다시 한번 잭팟을 터뜨리기를 기대한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소곤소곤 그림 이야기] 노년, 그 아름다움의 빛깔

아름다운 노년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둠속에 빛나는 촛불과 같다 .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하여 공간 전체를 빛으로 물들일 수 있고 부드러운 따스함에 차가움을 녹일 수 있으며 다가가면 갈수록 세기가 강해져 환한 빛을 느끼게 하는 존재, 노년만이 가지는 고귀함이다. 

노마식도(老馬識途)라 하여 늙은 말이 길을 안다는 뜻으로 연륜이 깊은 사람에게 삶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는 사자성어가 있다. 세상 사는 올바른 이치에 세월의 무게가 더해져야 더욱 빛을 발하는 일이 어디 한두 개인가? 예부터 어수선한 현실을 바로 잡아줄 혜안은 삶의 경험이 쌓인 연장자를 통해 얻었다.



촛불 앞에 두 손 모아 기도 드리는 노파한테서 삶의 연륜이 묻어난다. 주름투성이인 얼굴과 투박한 손, 남루한 옷차림의 노파지만 겸손과 절제를 품고 소망을 기원한다. 노파에게선 어떠한 과욕도, 과장도 찾을 수 없다. 생을 관조하고 세상 이치에 순응하며 쌓인 노년의 온화함이아름답게 빛날 뿐이다. 

세상 누구도 노인의 주름을 보고 비난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내보이는 아집, 불친절함, 괴팍함 등 정신의 주름살을 보며 늙음을 비난하는 거다. 아름다운 노년은 모두에게 존경받고 미숙한 젊음을 순화시키고 교화시킨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시대의 요구를 듣지 않고, 세대와 교감하지 않는 일그러진 노년들로 어지럽다. 젊은 세대는 연장자의 가르침을 지표 삼아 세상을 살아야 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도 시대의 요구가 무엇인지 귀 기울여 화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잘 물든 단풍이 화사한 봄꽃보다 예쁘다라고 법륜 스님이 말씀하셨다. 단풍은 낙엽 진 후에 책갈피에 꽂히지만 떨어진 꽃은 그대로 버려지는 거란다. 
세월을 인내한 단풍의 고운 빛깔처럼 잘 늙은 노파의 주름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

영원히 늙지 않는 젊음을 갖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불가능을 좇는 것만큼 허무한 일은 없다. 그림속의 노파는 젊음을 돌이키는 데 혼신을 다하는 듯하다. 쭈글쭈글한 가슴을 드러낸 채 정성 들여 머리를 빗고 비싼 깃털을 꽂고 제일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을 해 보지만 주름을 감출 수가 없다. 장미꽃을 들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듯 거울을 응시하는 모습 어디에도 젊음의 싱그러움은 없다. 심지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심취한 듯한 노파의 나르시스에 슬쩍 웃음마저 난다.



반면 노파의 시중을 드는 하녀는 남루한 옷차림에 빗질조차 하지 않은 더벅머리의 여인이지만젊고 싱싱하다.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린 듯한 노파의 늙은 가슴이 터질 듯 탱탱한 하녀의 젊음과 비교되어 더욱 애처롭게 느껴진다. 작가는 또한 한 손에는 젊음을 상징하는 장미를, 다른 한 손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금송화(장례식꽃)를 들고 있는 노파를 그려 생과 사의 아이러니를 극명히 보여준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허무하고 허무한 육체의 젊음이다. 인간은 태어난 그 시간부터 매 순간을 늙어간다. 늘 함께 할 것 같던 젊음의 찬란함도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 빛을 잃는다. 젊음을 돌이킬 순 없다. 그게 인생이다. 

언제부터 인가 한국은 성형왕국이 돼 버렸다. 보톡스니 필러니, 젊음을 모방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지름길이고 노화로 인한 얼굴 주름이 가난과 게으름의 상징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이다. 심지어 수백 명의 아까운 목숨이 바다에 수장될 때 대통령이 그 시간에 성형을 했느냐의 여부가 나라의 큰 이슈가 되었었다. 



 웃을 수도 없는 이 슬픈 현실을 옹호하려 일부 노년은 길거리에서 확성기를 들고 성형이 뭐 잘못이냐며 주름진 눈을 치켜 뜬 채 세상을 향해 삿대질 한다.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야 할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도리가 악다구니에 묻히고, 소통하지 않는 고집이 세상에 지천인 현실이 너무도 답답하다.



젊고 아름다운 사람은 자연의 산물이지만, 늙어 아름다운 사람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라고 엘레노어 루스벨트가 말했다. 최고의 미적 가치라 할 수 있는 성숙미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무르익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해야 한다. 설익은 그 무엇은 절대 감동을 줄 수 없다. 바닥을 응시하고 있는 렘브란트의 노파는 삶을 인내하고 생을 관조한 오래된 연륜에서 우러나는 원숙미가 있다. 그 노년의 아름다움이 렘브란트의 빛의 효과와 함께 우아하게 발현된다.

잡지 못할 젊음에 얽매여 현재를 손에 넣지 못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사람은 믿는 만큼, 자신감을 갖는 만큼, 희망하는 만큼 젊어질 수 있단다. 100세 시대를 살며 노년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새로운 사회계층이 형성되고 있다. 노년이 바로 서야 그 사회는 건강해진다.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



2. [서울신문][박형주 세상 속 수학] 듣는 것과 보는 것의 수학

내가 자란 소도시에서 아직 TV가 생소하고 귀했던 때, 라디오를 통해 샹송과 칸초네를 처음 접했다. 여행자의 입담으로 듣는 세상 얘기는 신기했고, 동경하던 과학자의 삶에 대한 실마리도 이런저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얻었다.

라디오는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창이었고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꾸어 무선으로 멀리 전달한다는 건 경이로웠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서울에서 대전까지 전달될 리 없다. 소리라는 게 음파여서 매초 몇 번 진동하는지(주파수)가 제각각인데, 저음은 천천히, 소프라노 소리는 빨리 진동한다. 더 빨리 진동하면 귀에 들리지 않는 초음파가 된다. 빨리 진동할수록 멀리 전달된다.

결국 멀리 가는 고주파에 소리를 실어 보낼 생각을 하게 됐다. 도착 후에 고주파 부분을 제거하면 드디어 귀에 들린다. 두 파동을 더하는 방법에 따라 진폭 조정(AM)과 주파수 조정(FM)으로 나뉜다. 기본적으로 두 파동의 합이라서 삼각함수의 덧셈을 연상하면 된다. 조금 더 수학을 공부해서 시간 공간과 주파수 공간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법을 터득하면 이 모든 것은 투명하고 깔끔해진다.

아쉽게도 라디오의 전성기는 갔다. TV는 정보 전달의 매개로, 텍스트와 영상을 결합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쌍방향 소통의 매개체로 자리 잡았다. 예전 사진 전문가의 장비보다 더 우수한 화질의 카메라가 스마트폰에 달려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임을 실천하는 SNS 전사들은 매일 온갖 사진과 영상을 온라인에 올린다.

사진은 어떻게 저장하고 전송하는 걸까. 여권 사진 한 장에 가로줄 2000개와 세로줄 1000개를 균일하게 자로 그리면 사진은 아주 작은 네모 200만개로 갈라진다. 각각의 네모 하나를 가리켜서 화소라고 한다. 각 화소는 워낙 작으니 균일한 색깔이라고 간주하면 200만 화소 사진을 얻는다. 귀찮아서 가로줄 200개와 세로줄 100개의 2만 화소로 나누고 각 화소에 균일한 색을 칠한다면 모자이크처럼 엉성한 사진이 된다.

각 화소는 하나의 색깔이니 빨강(R), 녹색(G), 파랑(B)을 적당히 섞어서 만들 수 있다. 그러니까 하나의 화소는 다음(23, 16, 250)과 같이 숫자 세 개의 3차원 벡터로 표현된다. 첫 가로줄 각 화소의 숫자를 기록하고, 다음에 두 번째 줄로, 이렇게 2000줄의 화소들을 모두 숫자로 기록한다.



​그래서 사진은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총합이다. 이 숫자들을 전송한다. 받은 사람은 처음 숫자 세 개를 합해서 하나의 색깔을 만든 뒤에 작은 네모에 그 색깔을 채운다. 다음 숫자 세 개는 두 번째 네모에 채우는 색깔이다. 결국 200만개의 네모는 모두 색깔로 가득 차고, 원래 보낸 사진이 된다.

이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는 수학 문제가 출현한다. 숫자를 이진법으로 바꾸어 0과 1만 사용하면 전기신호 유무로 표현할 수 있으니 기록과 전송이 쉽다. 디지털 통신이다. 잡음 때문에 중간에 0이 1로 바뀌면 어쩌지? 신호 0110을 보냈는데 중간에 잡음이 생겨서 0111로 바뀌어 도착해도 이 오류를 탐지하고 교정할 수 있는 수학 이론인 코딩 이론이 등장한다.

8비트 컬러의 200만 화소 사진을 전송하려면 4800만개의 0과 1이 필요하다. 이걸 전송하려면 날이 샌다. 화질에 영향을 많이 안 주면서도 화소 수를 줄이는 압축이 필요하다. 결과물인 압축 알고리즘 JPEG와 MPEG는 이젠 표준어의 반열에 올랐다.

모두 현대 수학이 성공적으로 해결한 문제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더 많다. 흥미진진하다.



3. [조선일보][일사일언] 어머니와 놋그릇

놋그릇을 보았다. 인사동을 지나면서다. 놋그릇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골동품 가게에서나 볼 수 있다. 물론 방짜유기라고 해서 부잣집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고들 한다.



놋그릇은 내게 그리움의 대상이다. 관혼상제가 엄격하던 집안, 제삿날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놋그릇을 꺼냈다. 놋그릇이 담긴 무거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우물가로 가는 어머니 손에는 짚단과 잘게 부순 기와 가루가 들려 있다. 어머니는 짚에다 기와 가루를 묻혀 놋그릇을 닦는다. 해 본 사람은 안다. 그 일이 얼마나 단조롭고 지난한지를.



단지 엄마 곁에 있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우물가를 서성거렸다. 동짓달 제삿날은 엄청 추웠다. 두 귀가 빨갛게 얼어갈 때쯤이면 그릇 닦기는 끝났다.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놋그릇을 머리에 이고 돌아오는 길, 길가 사시나무는 윙윙 바람 소리를 내었다. 아주 어린 시절이다.



기억은 꼬리를 문다. 오랫동안 한옥에 살았다. 봄이 오면 어머니는 방문들을 물가로 가져갔다. 겨울을 나며 누렇게 변색된 문종이를 물에 불려 벗겨 낸 뒤 새 창호지를 발랐다. 무거운 다듬잇돌 밑에 곱게 말려 놓은 은행잎들은 문 중앙에 장식용으로 붙여졌다. 햇살이 비치면 유난히 노랗던 은행잎들이 어제같이 선명하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아버지의 저녁밥이 떠오른다. 겨울날, 어머니는 밥을 담은 놋그릇을 면수건으로 겹겹이 싼 뒤 아랫목이나 장롱 이불 속에 깊숙이 묻어 두셨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나가 있는 식구들의 밥을 따뜻하게 묻어둬야 밖에서도 굶지 않게 된다고.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대처로 통근하시던 아버지는 늦었다. 하루 서너 번 버스가 다니던 시절, 아버지를 기다리며 불러주던 어머니의 노래가 희미해질 때쯤이면 아랫목 놋그릇의 온기를 발가락으로 느끼며 어린 생명들은 잠이 들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때 우물가에서 칭얼대던 아이는 이제 중년이다. 어쩌다가 거리에서 놋그릇을 보게 되면 걸음이 멈춰진다. 창 너머 놋그릇에 뽀얀 얼굴의 어린 내가 보인다. 불현듯 코끝이 찡해진다. 봄이다.

​ 

4. [경향신문][구정은의 세계] 망령의 시대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는 오토바이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소설이다. 뿌리 뽑힌 채 질주본능으로만 존재하는 오토바이는 거대 도시를 꽉꽉 메운 인간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한다. “뒈져라, 형법 불소급의 원칙.” 문명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저급함, 죄를 짓고도 뉘우치지 않으며 스스로가 더럽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인간들, 늙고 병들고 타락한 나라를 향한 이단아의 처절한 외침이다.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언술이 곳곳에서 판을 친다. 얼마 전 미국에서는 연방 하원의원이 백인들의 문명, 백인들의 문화를 거론했다. 미국이 스페인에서 필리핀을 빼앗던 시절에 나오던 케케묵은 말들이 21세기에 소셜미디어를 타고 울려 퍼졌다. 인종주의의 망령은 미국과 유럽이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쌓아 올린 이상과 삶의 기준을 흔들고 있다.


‘나치’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목소리를 높일 적에 이미 미국의 멕시코계 이민자들은 파시즘의 그림자를 느꼈다. 최근에는 캘리포니아의 한 예술가가 트럼프에 나치 표식을 합성한 광고판을 설치했다가 논란을 샀다. 서구인들에게 여전히 상처인 스와스티카 문양이 대로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장기집권을 꿈꾸는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유럽국들에 나치 딱지를 붙였다. 그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유럽은 우리가 자기네를 나치라 부르면 불편해하지만 바로 네가 나치 수법을 쓰고 있다”고 했다. 누군가를 보며 나치를 연상하거나, 나치에 비유하거나 하는 일이 어느 틈엔가 금기에서 풀려나버렸다.


프랑스에선 트럼프보다 극우 색채가 더 짙으면서도 약간 점잖은 척하는 마린 르펜이 대선후보다. 르펜은 나치를 대놓고 옹호해 온 자기 아버지를 당에서 내쫓으면서까지 중도 유권자들을 끌어당기려 하지만 그의 뒤에 있는 낡고 오래된 인종주의의 그림자는 좀체 옅어지지 않는다. 유엔에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을 ‘아파르트헤이트’로 규정한 보고서가 나왔다가 철회되는 소동이 벌어져 시끄러웠다. 인도의 힌두 민족주의자들은 종교차별 속내를 감추지도 않은 채 ‘뉴인디아’를 외친다.

인종주의와 파시즘의 부활이라고 하면 좀 호들갑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톤을 좀 낮춰 독재 향수 혹은 ‘권위주의의 재생’이라면 어떨까. 트럼프가 불러낸 로널드 레이건, 프랑스에서 우파 대선후보 프랑수아 피용이 들고나온 드골 향수는 양반이다. 필리핀에선 쫓겨난 독재자 마르코스가 ‘영웅’으로 복권됐고,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는 석방될 예정이다. 얼마전 페이스북에는 제주에서 서북청년단을 자처하는 우익집단이 간판을 내걸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다.

망령의 시대다. 과거의 이야기만 난무하고 미래의 이야기는 없다. 사회의 모든 목소리가 과거로 흘러간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과거를 불러낸다. 그럴 때 불러내는 과거는 상상과 조작된 기억으로 이뤄진 과거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위대했던 미국. 박근혜가 그리도 갖다 붙이고 싶어했던 한강의 기적. 모더니티로 이동해가는 데 실패한 이슬람 전투조직들의 극단주의도 겉모습만 다를 뿐이지 조작된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매한가지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를 제도와 국가가 모른 체하고 덮어두고 편들 때 사회는 과거를 놓고 싸운다. 과거를 불러 현재와 싸울 때 미래는 사라진다. 알파고가 바둑을 두는 시대에 삼성동 친박 시위대 입에서 나왔다는 ‘마마’는 대체 웬 말인가. 중국 무협사극을 보던 내게 딸이 물었다. 옛날 시종들은 모두 주인을 위해 목숨까지 내걸고 충성을 바쳤느냐고.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아 모르지만, 그렇게 계속 교육을 받으면 주인을 위해 목숨도 내놓게 될지 모르지”라고 답해줬다. 망령의 시대는 복종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신적 노예의 시대이기도 하다.

망령은 멋대로 떠도는데, 지나온 길을 담담하게 되돌아보는 건 너무나 힘든 작업이다. 프랑스 유력 대권주자인 에마뉘엘 마크롱은 지난달 “알제리 식민통치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가 우파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왕의 목을 자른’ 혁명의 나라라고 칭송받지만 프랑스에서 유력 정치인이 제국주의의 과거를 놓고 마크롱처럼 공개적으로 사과를 주장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프랑스가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사람들과 문화를 공유해왔다는 것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는 없다”며 궤변을 늘어놓는 피용 같은 정치인들만 있었을 뿐이다.


역사와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우리는 아직도 4·3과, 베트남전과, 미군 기지의 군 위안부 같은 문제들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다. 마루야마의 일갈은 단죄를 보지 못한 피해자들의 무익무해한 투덜거림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입 밖에 내 함께 말하게 될 때 역사가 새로 쓰인다. 뒈져라, 거짓으로 가득한 과거의 망령 따위.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마르셸 마르소

프랑스 리모주(Limoges)에서 코셔(kosher) 정육점을 운영하던 유대인 아버지는 1944년 나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해됐다. 21세 청년 마르셸 멩겔(Marcel Mangel)이 아버지의 성 대신 프랑스혁명 영웅 프랑수아 세비앙 마르소-드그라비에(Francois Severin Marceau-Desgraviers)의 성으로 개명, 마르셸 마르소(MarcelMarceau)가 된 게 그 무렵이었다.

그는 레지스탕스였다. 나치와 비시정부 치하에 숨어 살던 유대인들, 특히 어린이들을 스위스와 연합국 진영으로 도피시키는 게 그의 임무였다. 게슈타포의 감시를 피해 자동차로, 때로는 어둠을 틈타 걸리기도 하면서 아이들을 무리 지어 인솔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침묵의 손짓 발짓 몸짓이 더 유효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두려움과 슬픔을 눅이고 용기를 북돋우기도 해야 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먼저 부모와 떨어져야 했을 그들의 신뢰를 얻어야 했을 것이다.


그건 말보다는 표정, 몸짓으로 전해지는 진솔한 기운 같은 것이어야 했을 것이다. 18세기의 마르소가 쥐었던 총과 지휘봉 대신 청년 마르소는 그렇게, 마임(mime, 무언극)을 선택했다. 

그는 생사를 건 저 레지스탕스 활동기부터 이미 마임의 거장이었을 것이다. 5살 무렵 어머니와 함께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본 뒤부터 마임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영어와 독일어에도 능통했다. 전후에는 프랑스 육군에 입대, 패튼 부대의 연락장교로 일했다. 

마르셸 마르소는 45년 해방된 파리의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 극장 샤를 뒬렝(CharlesDuyllin) 드라마학교에 등록해 본격적인 연기 수업을 시작했고, 47년 그의 평생 아바타가 된 ‘어릿광대 빕(Bip the Clown)’으로서 첫 무대에 섰다. 

긴 마임의 역사에서 마르소는 현대 마임을 대중화하고 새로운 문법을 정립한 배우로 불린다. 그는 감정과 행위, 공간과 시간을 드러내 보여주는, 함축적이고도 상징적인 몸짓들로, 때로는 말이나 글보다 더 섬세하고 웅장하게 인간과 세계를 구현했다는 평을 듣는다. 수다한 말이 침묵으로 끝난 뒤에, 그 침묵과 더불어 시작되는 게 마임이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마임은 말과 말 사이, 소통의 처음서부터 시작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의 마임은 시작되곤 했다. 마르셸 마르소는 1923년 3월 22일 태어나 2007년 9월 22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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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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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세계일보]

1. 또 전직 대통령 소환조사… 국격 고려한 신중 자세 필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늘 서울 서초동 검찰 청사에 출두한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으로 파면된 지 11일 만이다. 전직 대통령의 소환조사는 노태우·전두환·노무현에 이어 4번째다.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지켜보는 국민 마음은 참담하기만 하다. 전직 국가원수가 카메라 불빛 세례를 받으며 검찰에 출두하는 장면은 세계 곳곳에 그대로 전해질 것이다. 첫 여성 대통령을 지낸 박 전 대통령의 불명예이자 국가로서도 오욕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소환조사는 박 전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은 1차 검찰과 특별검사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약속을 뒤집고 대면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자연인으로서 소환에 응한 만큼 솔직하고 성실한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다. 그에게는 삼성 특혜와 관련한 뇌물 수수 등 13개 죄목이 붙어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그간 “완전히 엮였다”, “좋은 의도로 한 것이다”고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해왔다. 박 전 대통령이 앞으로 무죄를 주장하며 법정투쟁을 벌이는 것은 국민으로서 당연한 법적 권리다.



하지만 자신과 관련한 사건으로 20명이 이미 구속된 데다 국가적 피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다. 개인이 아니라 국가 지도자로서 이 부분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사죄가 있어야 한다. 오늘 박 전 대통령이 메시지를 내놓는다고 하니 국민은 그의 입을 주시할 것이다.

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로 물러난 국가원수일지라도 품격은 갖춰야 한다. 검찰은 사건의 실체 규명에 최선을 다하면서 예우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의 신병 처리를 놓고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탄핵심판이라는 절차를 통해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채 법정을 오가는 모습이 해외로 전파되는 일은 여러모로 바람직스럽지 않다. 개인 차원을 넘어 국가의 명예로 볼 때도 이롭지 못하다. 태극기와 촛불로 쪼개진 민심과 대선정국의 민감한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도주 우려 등이 없는 경우 불구속 수사를 하는 것은 우리 형법이 추구하는 대원칙이기도 하다. 김수남 검찰총장의 결단이 요구된다. 수사는 엄정히 하되, 국격도 생각해야 한다.



[서울신문]

2. 박 전 대통령 조사, 예단 없이 법과 원칙 따라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늘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진 최순실 국정 농단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된 지 5개월 만에 비로소 검찰의 직접 조사가 이뤄지는 것이다. 전두환·노태우·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피의자로서 검찰에 소환되는 네 번째 전직 대통령이다.

2009년 노 전 대통령 이래 8년 만에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는 전직 대통령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국민의 불행이자 헌정사상 또 하나의 오욕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이 지난 15일 박 전 대통령에게 출석을 통보했을 때 “성실하게 조사를 받겠다”고 밝힌 변호인단 측의 약속이 지켜진다는 전제에서다. 박 전 대통령은 몇 차례에 걸친 검찰과 특검의 조사 요구에 대해 “적극 협조하겠다”고 공표하고도 정작 닥치면 여러 이유로 거부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동안 검찰과 특검의 수사에서 드러난 모든 혐의에 대해 “사익을 위해, 특정 개인의 이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하거나 행사한 적도 없다”며 전면 부인하고 있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로부터 탄핵을 선고받고 이틀 뒤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가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며 탄핵에 불복했다. 앞서 한 인터넷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최순실과 경제공동체이자 국정 농단의 공범이라는 혐의와 관련해서도 “엮어도 너무 엮었다”며 정당한 수사마저 비난했다. 헌법과 법을 준수하기는커녕 부정한 격이다.

박 전 대통령 역시 방어권이 있다. 삼성 특혜에 따른 뇌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제 모금, 청와대 기밀문서 유출 등 혐의만 13개다. 변호인단은 예상 질문까지 뽑아 조목조목 반박할 태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기소된 30명 가운데 핵심 인물들이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상당 부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련 물증과 진술도 적잖게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모른다”, “선의였다”는 식으로 다짜고짜 부인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진정 ‘진실’이 밝혀지길 원한다면 당당하게 진상 규명에 협조하는 게 국민을 위한 도리다.

검찰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에는 법과 원칙만 있을 뿐이다.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와 같은 정치적 고려로 좌고우면할 이유가 없다. 검찰은 혐의에 초점을 맞춰 정교하게 조사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다만 조사 과정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와 배려를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혐의가 확인되면 사안의 중대성과 증거 인멸 우려, 다른 관련자들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가능한 한 신속하게 사법 처리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국민적 혼란이 가중될 우려가 있는 만큼 명쾌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한 점의 의혹이라도 남을 경우 분열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검찰의 어깨가 무겁다.



3. 금호타이어 매각, 쌍용차 재판은 안 된다

금호타이어 인수전이 막판 반전을 거듭하는 양상이다. 그동안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우선매수권자인 박삼구 회장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채권단에 끈질기게 요구해 왔다. 그러나 채권단은 구조조정 때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이를 일축해 왔다. 아예 채권단은 얼마 전 중국 국영 타이어 업체인 더블스타와 주식 매매 계약을 하고 금호타이어를 중국에 넘기는 방안을 기정사실화해 버렸다.



그런데 어제 채권단 측이 한발 물러나 박 회장 요구 수용 여부를 22일까지 결정 내리기로 했다고 한다. 채권단이 컨소시엄 허용 여부를 공식적으로 논의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강경 일변도였다는 점에 비춰 봤을 때 이런 입장 변화는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

야권 유력 대선 주자들은 호남 민심을 얻기 위해 일제히 금호타이어 매각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선 주자들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특정 기업의 인수전까지 왈가불가하는 것은 그다지 썩 좋은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방산업체인 금호타이어가 중국 업체에 매각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우리는 과거 쌍용자동차 사태에서 중국 기업이 한국 기업을 인수한 뒤 기술만 쏙 빼먹고 ‘먹튀’하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금호타이어는 기아차, 삼성 광주공장과 함께 광주·전남 지역 경제의 3대 축이다. 지역 경제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금호타이어가 중국 기업에 넘어가면 인근 협력업체의 연쇄 피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가뜩이나 지금은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노골화하면서 반중 감정이 최악인 상황 아닌가.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의 “금호타이어의 중국 매각 추진이 ‘사드 달래기’ 용도가 아닌가 의심한다”는 발언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지금의 양국 관계를 볼 때 그럴 만한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일본이 도시바 반도체를 매각하면서 국부 유출과 기술 유출 때문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을 채권단은 주시해야 한다. 기업의 해외 매각 때 경제 논리 못지않게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은 새삼 말할 나위가 없다.

박 회장도 책임 있는 기업인으로서 떳떳한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기대어 금호타이어 인수 문제를 해결할 심산이라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런 기미가 보이면 채권단은 아예 금호타이어를 제3자에게 넘기는 방안을 원점에서 모색하기 바란다.



4. 사드 외면한 미·중 양강 사이에 낀 한국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한·중·일 3국 순방이 그제 끝났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첫 동북아 순방에서 틸러슨 장관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과 관련해 한·미 동맹 강화를 재확인했지만 동시에 엄혹한 국제 외교의 현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 베이징에서 미·중 외교장관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지만 사드라는 단어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 우려 표시나 사드 배치에 대한 불가피성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비공개로 진행된 미·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사드와 관련된 내용이 거론됐을 가능성은 있지만 전 세계가 지켜보는 공개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지원한다는 신호조차 내놓지 않아 오히려 중국의 보복 조치가 용인된 듯한 오해도 줄 수 있다.

틸러슨 장관은 한국에서 “중국의 보복 조치는 부적절하고 유감스럽다”는 강경 입장을 내놓고 정작 중국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미국의 역할로 사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일각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중국을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우리를 미국이 돕는 것은 당연하다.

사드는 애초 미사일방어(MD) 시스템으로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성격이 강한 데다 미국은 한국에 사드를 배치한 당사자다. 사드는 한국군이 구매한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이 기지에 반입한 무기 체계라는 의미다. 중국이 한반도에 사드가 들어온다는 이유로 한국에 대한 무차별 경제 보복에 나서는 상황에서 한국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다음달 초 미국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똑같은 일이 재연돼선 안 된다.

사드 운용 주체인 미국이 중국에 대한 실질적인 압박이나 설득 없이 조기 배치를 서두르는 상황이다. 중국이 미국 대신 한국에 분풀이를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미·중 패권 경쟁에서 ‘넛 크래커’에 낀 신세나 다름없는 상황이 됐다. 틸러슨 장관은 일본이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라고 지칭했지만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로 언급했다.



미국이 중요도에서 차등을 두고 자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일부 시각은 왜곡된 사대주의나 다름없다. 우리가 동맹국 미국에 실망하기에 앞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냉엄한 국제 현실을 제대로 보는 것이 순서다.



[조선일보]

5.美 국무 말처럼 한반도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트럼프 행정부의 핵(核) 정책이 바뀔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다. 틸러슨 장관은 한·중·일 3국을 잇달아 방문하면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일본의 핵무장 허용 가능성에 대해 "테이블 위에는 모든 옵션이 있다"고 했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한·일의 핵무장에 반대하는 미국 입장이 바뀌지 않았다고 했지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대선 기간 중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허용할 수 있다는 듯한 의미의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 일본이 북한과 중국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미국의 핵우산에 기대는 것보다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도록 허용하는 것에 관대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미국 내 비판이 나오자 한동안 이런 언급은 사라졌으나 틸러슨 장관의 입에서 다시 나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틸러슨 장관의 외교 관련 발언은 아직 정제돼 있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다만 이들이 자주 언급하고 또 자명하기도 한 사실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바로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다. 국제정치, 국제 안보에서 '100%'라는 것은 없으며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조만간 6차 핵실험과 ICBM 발사를 실시하고 미 정보 당국이 내부적으로 북의 핵무장을 인정하게 될 때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바뀔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미국이 군사행동으로 나설 수도 있고 정반대로 미·북 평화협정과 주한 미군 철수가 의제로 등장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제도 "김정은이 매우, 매우 나쁘게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북한에 보상을 해주고 핵을 동결시키는 제2의 제네바 합의로 방향을 바꿀지도 모른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0년 말 평양 방문을 진지하게 검토했고, 부시 전 대통령은 북한과 평화협정 맺는 방안도 고려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동맹을 미·일 동맹의 하부 체계로 인식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주고 있다. 지금 우리 처지가 그렇기도 하지만 이것이 한국을 잘 모르는 트럼프 행정부의 속성일 수 있다. 아무래도 트럼프 행정부 한반도 정책과 한·미 관계는 그동안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방향으로도 갈 수 있다는 사실부터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불가측한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로 미군 전술핵 재반입이나 우리의 독자 핵무장 추진을 상정조차 않고 있다면 국가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6. '공무원 정치 허용' 표 얻으려 불법·위헌 약속까지 하나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공무원 정당 가입과 정치 후원 등을 허용하겠다고 공약한 것은 우리 공무원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헌법은 공무원의 정치 중립(7조), 교육의 정치 중립(31조)을 규정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도 '공무원은 정당이나 정치 단체 결성에 관여·가입할 수 없고, 선거에서 특정 정당·후보에 대한 지지·반대 행동을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육기본법·교원노조법도 교원의 정당 가입 등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헌재는 2004년과 2014년 공무원의 정치 중립을 규정한 공직선거법과 교사의 정치 활동을 금지한 교원노조법 등에 합헌(合憲) 결정을 내렸다.



공무원의 정치 활동 허용으로 공직 사회가 지지 정파별로 분열할 경우 전체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공직자들이 정당의 전위 부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분열·대립이 심각한 우리 정치 풍토에선 더욱 그렇다. 그에 따라 집권당이 교체될 때마다 선심·보복 인사가 반복되면 공직 사회의 뿌리가 흔들릴 것이다. 정책도 전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지지층의 의사가 반영되는 쪽으로 흘러갈 수 있다.



특히 공무원 노조가 대놓고 정치 세력화할 경우 앞으로 공공 개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국민 세금으로 메꿔주는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는 일들을 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기업에선 노조의 과도한 요구가 기업을 망하게 한다. 그러나 공공 부문은 아무리 비효율과 도덕적 해이에 빠져도 망하지 않는다. 혈세로 메꿔주기 때문이다.



당원(黨員) 교사들이 판단력이 채 여물지 않은 초·중등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안 그래도 상당수 전교조 교사가 사실상 정치 행위를 하고 있고 교실에선 특정 정파 이념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다. 아예 민노당에 가입해 정기적으로 당비(黨費)를 내다 적발된 교사들도 있었다. 교사의 정치 활동이 허용되면 전국 1만1000여개 초·중·고교가 이념 싸움터로 바뀔지도 모른다.



외국의 경우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 활동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우리와 환경이 다르다. 예컨대 독일의 경우 1970년대에 교사는 이념과 정권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교육을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 우리는 정반대 상황이다.



공무원은 우리 사회에서 특수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다. 국민연금보다 유리한 공무원연금을 받을 수 있고, 정년 때까지 신분 보장이 된다. 이제는 급여도 웬만한 기업 못지않아 선망되는 직업이다. 이들이 국민에게 봉사할 생각보다는 이익집단화 하고,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거기에 영합하는 것은 국가나 국민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7. 백악관까지 번진 '탄핵 댓글 전쟁' 부끄러울 뿐

외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한국 네티즌들이 탄핵을 놓고 댓글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탄핵 선고일인 지난 10일 미국 CNN 페이스북 계정에선 탄핵 찬성 네티즌이 '자랑스럽다'고 하자 탄핵 반대 네티즌이 한국어로 '그러지 마라. X팔린다'는 답글을 달았다. 이후 양측은 이 사이트에서 '너 같은 박사모 따위는' '탄핵은 종북 좌파의 음모'라는 식의 욕설과 비방을 주고받았다.



영어로 시작된 싸움은 결국 한국어 막말로 끝났다. 같은 날 미국 워싱턴포스트 사이트도 이런 댓글로 도배가 됐다. 보다 못한 외국 네티즌들이 '집안싸움은 다른 곳에서 하라' '이들을 차단(block)할 수 없냐'고 사이트 운영자에게 항의했다고 한다.



지난 15일 영국 BBC 사이트엔 '세월호 사고 때 근처에 미국 군함이 있었는데 박근혜가 도움을 거절했다'는 댓글이 달렸다. 거짓 주장으로 이미 판명된 내용이다. 하지만 이를 사실로 믿은 외국 네티즌은 '대통령이 한마디라도 했으면 모두 살렸을 텐데'라고 했다고 한다.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의 시민청원 사이트에선 지난달부터 탄핵 관련 서명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엔 어느 재미 교포가 이 사이트에서 '사드의 한국 배치를 철회하라'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세계 어디에도 없을 희한한 일이다.



지난 17일 영화 홍보차 방한한 할리우드 여배우의 기자회견장에서 "한국 대통령 탄핵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한국에 처음 온 그는 "저를 한국 정치에 끌어들이려는 건가요?"라며 농담으로 넘겼다지만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데일리]

8. 중국 보복에 끌려다니는 유일호 경제팀

정부가 중국의 사드보복 조치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항의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관련부처 장관은 뒤늦게 세계무역기구(WTO)에 협정위배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는 투다. 롯데그룹 등 우리 기업들의 피해는 갈수록 커지는데도 정부는 부처 간에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중국에 끌려다니는 꼴이다.

유 부총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중국의 보복에 대해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으므로 유감 표명도 어렵다”고 밝혔다. 대책이 없다는 사실을 실토한 셈이다. 게다가 “잘못하면 우리 발목을 스스로 잡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지레 꼬리를 내렸다. ‘한한령’에 관광 중단 등 보복 조치가 엄연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경제 정책을 책임진 수장이 할 말인지 의심스럽다. 물증을 찾으려는 노력은 했는지 묻고자 한다.



이와는 달리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어제 국회 상임위에서 “지난 17일 WTO에 관광·유통 분야 중국 조치에 대해 WTO협정 위배 가능성을 정식 제기했다”고 밝혔다. 유 부총리 얘기와 달리 한 발 진전된 조치다. 하지만 ‘제소’가 아닌 ‘위배 가능성’ 제기로, WTO의 조사가 언제 이뤄질지 장담하기 어렵다. 피해 기업들의 아우성은 커져만 가는데 대응은 너무 느슨하다.

보복조치가 공식 문서가 아닌 구두나 문자메시지 등으로 이뤄져 WTO 제소를 위한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항의할 생각조차 않는 부총리나 뒤늦게 위배 가능성을 제기한 수준에서 생색을 내려는 장관이나 모두 책임 있는 태도는 아니다. 부처 간 엇박자를 내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응책이 나올지도 의문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문화·관광, 유통·서비스 분야는 물론 무역 분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교묘하고 치졸한 수법으로 미뤄 앞으로 우리 주력산업인 자동차나 전자 부문에 타격을 줄 조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0년 마늘파동 때의 수입제한 조치가 전례다. 더 큰 화를 당하기 전에 WTO에 정식 제소하는 등 ‘경제 전쟁’도 불사한다는 각오로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맞서야 한다.



[매일신문]

9. 치졸한 중국의 사드 보복에 할 일 못 찾는 정부

중국의 사드 보복과 관련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협정 위반 가능성을 제기했다. 20일 국회에 출석한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관광`유통 분야 등 중국의 제재 조치가 최혜국 대우 등 협정 위반 가능성이 높아 17일 WTO에 공식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의 사드 보복이 표면화된 이후 우리 정부가 내놓은 첫 공식 대응이다.

 
하지만 WTO가 당장 조사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조사 착수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제소를 통해 WTO가 조사에 나서려면 중국이 국제법을 어겼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국 당국의 제재가 구두로 이뤄진데다 자국법을 핑계 대고 부인하면서 증거 찾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정부가 최혜국 및 내국민 대우 위반을 들어 일단 문제점을 짚은 것은 잘한 일이다.



중국의 보복이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타깃이 된 롯데그룹의 경우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현재 중국 내 롯데마트 90%가 영업정지 상태이거나 납품 거부, 반한 시위 등을 이유로 문을 닫았다. 국내 수출 업체 피해도 늘고 있다. 무역협회 대중국 무역애로신고센터에 따르면 20일 기준 구미지역 수출 업체 5곳을 포함, 모두 67건의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명칭 표기 등을 꼬투리 잡아 통관 허가를 내주지 않거나 제품 전수조사로 통관을 지연시키는 등 갖가지 수법을 동원해 한국 기업을 골탕먹이고 있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보복 행위가 지속될 경우 지역 수출 업체들이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당장 개막을 한 달 앞둔 대구국제안경전(DIOPS)에도 불똥이 튀었다. 매년 600~700명의 중국 바이어가 전시회에 참가해왔으나 올해는 단체로 참가를 취소하면서 큰 차질이 예상된다.



그동안 중국의 비이성적인 경제 제재에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해온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늦었지만 더 이상 중국의 치졸한 보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 협정 위반 증거를 꾸준히 수집하고 반박 카드도 모아야 한다. 우리 기업에 가해지는 부당한 대우와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동아일보]

10. ‘노무현 불행’ 끄집어낸 한국당, 보수 가치 더는 훼손 말라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어제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 뇌물수수 의혹의 모든 진상이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은폐됐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민정수석비서관과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또한 비리를 막지 못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 전날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의 불행한 역사를 끄집어낸 발언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정 원내대표의 발언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불출마로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주장을 사실상 되풀이한 것이다. 홍 지사는 그동안 문 전 대표를 향해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막말을 했다. 자신의 ‘성완종 게이트’ 대법원 판결이 유죄가 나오면 “노 전 대통령처럼 자살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자살을 ‘검토’한다니, 이런 수준 낮은 언행을 하는 사람이 어제 한국당 2차 경선 컷오프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홍 지사는 ‘자살’이란 표현 대신 ‘극단적 선택’으로 바꾸겠다고 했지만 “의로운 죽음이 아니었다”고 거듭 문제를 삼았다.

정 원내대표는 홍 지사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와 친노(친노무현) 세력을 싸잡아 비난한 것은 당이 전면에 나서 보수 대 진보의 대립 구도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물론 문 전 대표가 ‘적폐 청산’을 주장하기에 앞서 자기 쪽의 부끄러운 과거부터 되돌아보라는 정 원내대표의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니다. 자기만 깨끗한 척하며 남을 싸잡아 청산 대상으로 모는 문 전 대표와 민주당의 인식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하지만 맞는 말이라도 할 말, 안 할 말은 가려야 한다.

우리는 오늘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또 한 명의 실패한 대통령을 지켜봐야 한다. 한국당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한 책임을 함께 져야 할 여당이었다. 통렬한 반성을 못 하겠다면 침묵이라도 지켜야 한다. 당장 눈앞의 선거를 의식해 불행한 역사를 끄집어내는 것은 비겁하다. ‘정통 보수’를 내세우는 한국당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도덕성의 잣대로 존엄과 권위를 중시하면 보수주의 성향, 공정과 배려를 중시하면 진보주의 성향으로 구분한다. 보수라면 과거의 상처까지 들추며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천박함을 경계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매일신문][기고] 봄철 산불 예방 나부터 실천하자

봄철은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으로 연중 산불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계절이다.


이 시기는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습도가 50% 이하일 때가 많고, 바람이 강하게 불기 때문에 작은 불씨라도 순식간에 대형 화재로 확대될 수 있다.



특히 최근 10년간 분석한 산불 발생 빈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3~4월에 연간 산불 건수의 50% 이상, 피해 면적의 78% 정도를 차지할 만큼 산불이 집중되고 있으며, 대구는 지난 10년간 총 139건의 산불이 발생해 15.38㏊를 태웠다.



대구지역의 산불 원인은 총 139건 중 입산객 실화 75건, 논`밭두렁 태우기 8건, 쓰레기 소각 13건, 담뱃불 실화 11건, 성묘객 실화 4건, 어린이 불장난 6건, 기타 원인을 알 수 없는 22건이다.(※대구시 산불 통계 자료 2007년~2016년 12월)



봄철 산불 원인의 대부분은 농민들이 논`밭두렁의 잡초를 태우거나, 등산객이 무심코 버린 담뱃불 또는 쓰레기 소각 등 부주의로 발생한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기본안전수칙을 준수하는 시민의식이 선행된다면 산불 발생 건수를 현저히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산불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과 그에 따른 예방법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째, 산불의 주요 발생 원인은 입산자의 부주의라 할 수 있겠다. 원인을 분석한 결과 입산자의 실화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논`밭두렁 소각, 담뱃불에 의한 실화 순으로 나타났다. 이 중 주말과 휴일에 많이 발생한 것으로 비추어 볼 때 산불은 결국 인재이며, 인간의 부주의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산에서는 절대 불을 사용해서는 안 되고 라이터, 성냥, 담배는 아예 가져가지 않는 것이 좋다. 건강을 위해 맑은 공기를 마시려고 산에 가는데 그곳에서까지 담배를 피우는 것은 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까?



둘째, 논`밭두렁 소각 행위를 자제해야 할 것이다.



예로부터 농촌에서는 봄철이 되면 해충 방제, 잡풀 제거 등의 이유로 논`밭두렁 태우기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태워왔다.



하지만, 이제는 품종 개량으로 농작물에는 별 피해가 없게 됐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논둑에는 유익한 곤충이 89%인 반면 해로운 곤충은 11%에 불과하다고 한다. 즉, 논두렁을 태우면 유익한 곤충을 더 많이 죽이게 되고 해충을 죽여서 얻는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런 습관이 반복되는 이유는 논`밭두렁을 태움으로써 얻는 것보다 오히려 잃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구시 산불방지대책본부는 지난달부터 소각 전면 금지기간으로 설정하고, 산림 인접지역에서 불을 피우는 행위에 대해 단속을 실시하고 적발 시 10만~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만약에 산불이 발생했을 때 119, 112, 시`군`구청으로 신속하게 신고를 해야 한다. 산불 발생지역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 안전을 확보하고, 산불 발생지역과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시민들을 빨리 대피시켜야 한다. 또한 주민대피령이 발령되면 공무원의 안내에 따라 침착하고 신속히 대피하되 산림에서 멀리 떨어진 논, 밭, 학교 등 공터로 대피하자.



대부분의 산불이 사람들의 부주의나 실수로 발생하고 있으며, 산불로 인한 피해 복구에 30~40년의 긴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국민 모두가 각자 생활 주변이나 산행 등에서 산불 예방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보자.



자연이 주는 혜택을 아무런 대가없이 누려온 우리 세대가 할 일은 그 혜택을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울창한 숲이 보존될 수 있도록 산불에 대한 지속적인 경각심과 적극적인 예방활동으로 아름다운 산을 지켜나가는데 우리 모두 앞장서도록 하자.



2. [서울신문][황인숙의 해방촌에서] 그 후로도 오랫동안, 다시 봄

내 방은 세 방향으로 창이 나 있다. 남쪽 서쪽 북쪽, 모든 창이 햇살 비추는 한낮이다. 창이란 창을 다 열어 놓으니 방안에 바람이 가득하다. 살짝 쌀쌀하긴 하다. 현재 기온, 바닥 온도 40도에 맞춘 보일러가 쉴 만한 정도. 봄이다. 어제가 낮과 밤의 시간이 똑같다는 춘분이었다. 오늘부터 낮이 길어지기 시작할 테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길 떠나고 싶은 마음 간절해질 테다. 여행지에서는 낮이 긴 게 좋다. 더 많이 쏘다닐 수 있으니까. 밤도 말랑말랑하고 따뜻하겠지.



이제 나무들도 고양이들도 살살 기를 펼 테다. 지난주에는 동네 가로수들과 놀이터 뜰의 나무들 가지치기를 하더라. 깔끔하니 보기 좋아졌지만 나무들 좋으라고 그렇게 한 건 아니겠다. 재작년엔가는 정말 속이 상했다. 수십 년 그 자리에 살았던 아름드리 가로수들이 듬성듬성, 어지간한 크기의 탁상 상판만 한 그루터기로 남은 것이다. 그 일을 지시한 사람에게 악을 쓰고 싶었다. “당신이 뭔데!? 당신이 뭔데!?” 도시 조경 책임자는 식물 복지도 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춥긴 춥네. 창을 닫을까, 보일러 온도를 높일까. 다 그냥 두고 패딩을 입었다. 어떤 체형이라도 무난히 가려 주고 따뜻해서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 여성의 국민 겨울옷이 된 검은색 패딩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입고 있는 바지 역시 겨울철 국민 여성 하의, 허리에 고무 밴드가 들어간 검정 기모 바지군. 이렇게 사네…. 나이 든 살찐 여자로 산 지 십 년이 훌쩍 지났건만 아직도 그걸 내 정체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심이어라. 나이 먹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살은 좀 빼야지. 살을 못 빼겠으면 자세라도 바르게 잡아야지.



예전에 발레를 배우러 다녔을 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몸을 한시도 편치 않게 하라.’ 늘 어깨 끝을 바짝 내리고 등을 펴고 목뼈와 허리뼈를 곧추세우고 배를 집어넣고 있으라는 말씀. 생각난 김에 그리 해 보니 온몸이 시원하고 반듯해지는 듯도 하다.

이러나저러나 외모에 신경 좀 쓰고 살아야겠다. 일본 소설가 시마자키 도손의 사소설 ‘신생’에도 나오지 않는가. ‘한 번은 그녀가 몸단장을 하지 않고 있을 때 찾아가 자신의 집에서 볼 때와는 다른 사람이 아닌가 싶을 만큼 운치도 없고 정취도 없는 그녀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 그는 일종의 환멸마저 느꼈다. 그때 그는 생각했다. 이렇게 기분이 편해지는 것이라면 왜 좀더 일찍 야나카로 세스코를 보러 오지 않았을까, 하고.’ 조카에 대한 ‘황폐한 열정’에 운명이 휘저어진 지경에도 이러한데, 나는 어쩌자고 낯선 사람을 만나러 나가면서도 때로 심지어 세수도 안 하고 추레한 복장이었을까. 남루 속에 보석 같은 정신이나 영혼이라도 감추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가관이었네.

이렇게 살지 말자. “너 아직도 포기 안 했구나!?” 살을 빼겠다는 내 결심을 비웃던 남자 동갑내기 친구를 놀래 줘야지. 초목이 새로 옷을 입고 고목도 꽃피울 채비를 하는 봄이다. 나도 무채색을 벗고 화사하니 색을 찾으리라. 그나저나 나는 어느 정도 늙은 걸까. 지난해 초가을에 중학교 급식 조리보조원으로 취직한 친구가 있다. 그는 나보다 여섯 살 어린데, 취업 면접관한테 이런 말을 들었단다. “그 나이면 집에서 쉬어도 힘들 나이인데, 일할 수 있겠어요.” 맙소사, 집에서 쉬어도 힘들 나이! 우리는 낄낄 웃었다. 그게 웃을 일이야. 친구가 일하는 학교는 부유한 동네에 있어서인지 학생들이 급식을 너무 조금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늘 많이 남았는데, 이 봄에는 모자랄 지경이란다. 이제 갓 중학생이 된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보다 급이 높아진 급식에 감동해 엄청 많이들 먹어서라고. 가을 학기부터는 심상해져서 먹는 양이 줄어들 테란다. 먹성 좋은 중학교 신입생도, 새침한 여고 신입생도, 제가 이제 성인인가 아닌가 갸우뚱할 대학교 신입생도, 세상 무서움을 배우기 시작한 사회 초년생도 저 봄볕과 봄바람 속에서 움죽움죽 움츠리고 살이 오르겠지.



이 글을 쓰는 내내 니노 페레의 ‘그 후로도 오랫동안’을 듣고 있다. 1966년에 세상에 나온 곡이다. 50년 저쪽에서 노래하는 저 목소리의 주인공은 1998년에 권총 자살을 했다. 64세. 열 살 덜 먹어도 젊다고 결코 할 수 없는 나이. 내 나이도 그렇다.



3. [경향신문][청춘직설]‘1990년대 공주’가 돌아왔다

엠마 왓슨의 <미녀와 야수>가 개봉했다. 책을 읽고, 질문을 던지는 여성이자,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여성인 ‘벨’. 그는 대중문화로 스며들어간 페미니즘 제2물결의 영향 아래에서 1980년대 말 등장한 2세대 디즈니 공주였다. 물론 “진정한 미녀라면 짐승을 ‘인간’으로 만들어 결혼에 성공해야 한다”는 20세기 판본의 평강공주 스토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 캐릭터를 페미니스트 선언을 한 엠마 왓슨이 연기했다. 이는 ‘셀렙 페미니즘’의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다.



왓슨은 2014년 유엔에서 ‘HeforShe’ 연설을 했고, 그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유명인이 페미니즘 운동의 아이콘이 되는 것을 ‘셀렙 페미니즘’이라고 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말한 패트리샤 아퀘트의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소감, 여성영화를 만들기 위한 리즈 위더스푼의 영화사 설립, 세계여성공동 행진에서의 애슐리 주드의 연설 등은 이런 셀렙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예로 언급된다.

다만 셀렙 페미니즘은 때때로 선언의 형태에 그치기도 해서, 이것이 과연 현실 운동으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계속되었다. 특히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밝힌 왓슨의 차기작이 <미녀와 야수>임이 알려졌을 때, 많은 이들이 여성에 대한 정형을 생산해 온 디즈니 작품에서 그가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소식은 대중을 설레게 했다. 왓슨은 촬영 당시 “여성의 행동과 몸을 제한하는 코르셋은 벨의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코르셋 착용을 거부하고, 벨을 ‘과학자’로 그리자고 제안해 캐릭터 설정에도 기여한다. “벨이 만든 세탁기는 그로 하여금 책을 읽고 동네 여자 아이에게 글을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이 기계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부숴버린다.” 왓슨의 설명이다.

물론 앤젤리나 졸리의 <말레피센트>가 기대를 부추긴 면도 있다. 디즈니는 소재 고갈을 극복하고 안전한 흥행을 위해 고전 애니메이션을 실사판으로 리메이크하기 시작했는데, <신데렐라> <말레피센트> <정글북> 등이 그 결과물이다. 그중 <말레피센트>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마녀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그에게 역사와 목소리를 부여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였다. 

여기서 디즈니는 이성애 관계에 매몰되어 있던 ‘공주’를 구해내 여성들 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그렇다면 <미녀와 야수>는 어땠을까? 이 오래된 이야기를 재해석해서 21세기의 ‘소녀’들에게 다른 모델을 보여주고자 했던 왓슨의 의지는 높이 살 만하다. 무엇보다 ‘페미니스트 셀러브리티’로서 고군분투하는 왓슨의 삶이 벨과 겹쳐졌고, 그가 <라라랜드>가 아닌 <미녀와 야수>를 선택한 이유 역시 명백해 보였다. 하지만 이 작품을 페미니즘 영화로 평가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벨은 용감하고 따뜻하고 정의롭고 현명할 뿐만 아니라 과학을 이해하는 신여성이지만, 홀로 고고하고 특출하며 아름답다. 그리고 그렇게 벨을 빛나게 하기 위해 다른 여성들의 재현은 더욱 저열해진다. 그리하여 벨은 야수를 왕자로 변신시키는 마술을 행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처럼 영화 속에서 혼자서만 빛나는 벨(왓슨)은 셀렙 페미니즘이 1인 영웅주의로 귀결될 때 벌어질 참담한 결과를 예시한다. 페미니즘은 나 홀로 돋보이라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면 페미니즘은 그저 액세서리일 뿐이다. 

페미니즘은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라고 말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를 발견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마법의 성에서 일하는 이들의 동료애가 세밀하게 묘사되었던 반면, 실사판에서는 그들끼리의 커플링과 이성애 로맨스가 강조되는 것은 같은 의미에서 실망스럽다.

<말레피센트>에서 <주토피아>, 그리고 <모아나>까지. 최근 디즈니의 작품세계는 계속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미녀와 야수>에서는 갑자기 1990년대로 회귀해버린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이 작품이 중요한 것은 역시 왓슨의 행보 덕분일 터다. 왓슨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4. [부산일보사][밀물썰물] 바뀌는 '과일지도'

'사과 대구, 배 나주, 포도 안성….' 어릴 적 외우던 우리나라의 과일 주산지다. 하지만 요즘 과일 주산지를 묻는 문제가 시험에 나온다면 이대로 답하다가는 틀리기 십상이다. 우리나라 과일, 채소 등 농작물의 주산지가 크게 바뀌고 있는 것은 물론 예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열대·아열대 과일을 재배하는 지역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표 과일인 사과의 주산지는 과거 대구·경북에서 지금은 충북과 경기 등으로 바뀌었고, 강원도 산간지방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된 과일 중 가장 품질이 우수한 상품에 수여되는 '대한민국 대표과일' 대상을 받은 과일이 강원도 정선에서 생산한 사과라는 사실이 이 같은 과일 주산지 변화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또 복숭아는 주산지가 경북에서 충북, 강원 등으로 북상하고 있고, 포도의 경우에도 경북 영천과 경기도 안성 등은 주산지라는 타이틀을 강원도에 뺏길 처지다.



제주 특산품이던 감귤과 한라봉의 재배지도 전남 완도 보성 등과 경남 거제로 재배 가능 지역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제주도에서나 겨우 나던 망고나 패션프루트 등의 열대·아열대 과일 재배지가 이제는 경남과 전남 등은 물론 경북과 충청 내륙지방까지 북상했고, 재배 면적도 크게 늘고 있다.

이 같은 과일 주산지 변화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후변화 속도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배나 빠르다. 지난 100년간(1911~2010년) 우리나라 대도시의 평균기온은 1.8도 상승했는데 이는 세계 평균 0.75도보다 배 이상 높다. 북반구에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기온 상승에 따라 과일 및 농작물이 재배될 수 있는 지역적 한계 온도인 북한계선이 북쪽으로 이동하는데, 평균기온이 1도 오르면 농작물 재배 적지는 80~100㎞ 북상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과일 재배지는 과거에 비해 이미 200㎞ 정도 북상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2100년에는 우리나라 평균기온이 지금보다 5도가량 더 오른다. 2020년 이후에는 남부권 전체, 2070년에는 한반도 전체가 아열대 기후를 보일 것이라는 전문가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때가 되면 열대 과일이 우리나라를 뒤덮고 사과나 배 같은 전통적 과일은 수입품으로만 맛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릭 핸슨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 포트 알버니(PortAlberni) 출신의 릭 핸슨(Richard “Rick”Hansen, 1957~)이 1985년 3월 21일 휠체어 세계일주 ‘Man in Motion World Tour’를 시작했다. 밴쿠버 오크리지 쇼핑몰을 출발한 그는 만 26개월 동안 4대륙 34개국 4만여km를 가로지른 뒤 87년 5월 22일 밴쿠버 BC플레이스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출발할 무렵엔 큰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여정이 이어지면서 세계 언론이 그를 주목했고, 투어를 끝낼 무렵 그는 국제적인 장애인 활동가가 돼있었다.

핸슨은 15살이던 72년 교통사고로 척수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됐다. 어려서부터 온갖 운동을 즐겨 중학교 시절 5개 종목에서 ‘올스타 어워즈’를 탔다고 한다. 그는 재활치료를 받으며 고교를 졸업했고, 장애인으로선 처음으로 브리티시 콜롬비아대 체육학과에 진학했다. 당연히 운동도 계속했다. 휠체어 배구와 농구, 휠체어 마라톤. 1980년과 84년 하계 장애인올림픽에 캐나다 대표로 출전해 금메달 3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땄고, 국제 휠체어마라톤에서도 3차례 우승하기도 했다.

지역 고교에서 배구와 농구 코치로 일하던 그를 자극한 것은, 1980년 골육종으로 잃은 한쪽 다리에 의족을 차고 캐나다 횡단한 테리 폭스(Terry Fox, 1958~1981)의 '희망의 마라톤'이었다. 핸슨보다 1년 늦게 태어나 5년 늦은 77년에 장애인이 된 폭스는 의족 마라톤이라는 누구도 엄두내지 못한 멋진 일을 해내며 암과 장애에 맞섰다.



핸슨이 휠체어 세계일주에 나선 것은 28세 때였고, 2,600만 달러를 모금했다. 이듬해인 88년 릭 핸슨 재단을 설립, 장애인 재활 및 삶의 질 개선 사업을 시작했다. 장애인 이동권 개선 캠페인과 교육, 차별 철폐 소비자 운동 등에 앞장섰고, 국제 비영리 장애인재활지원단체 ‘ICORD’의 중추로 참여했다. 프레이저 강 연어와 철갑상어 보호운동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등 사회적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87년 결혼한 아내(AmandaReid)와 세 딸을 두었다.

2013년 한 지역 언론이 그가 재단에서 고액 연봉(more than $400,000)을 받아왔고, 사적 기부로 생색을 내고는 같은 금액의 세액 공제를 받았다는 사실 등을 들추며 그의 ‘위선’을 꼬집기도 했지만, 그건 공익활동가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함께 드러낸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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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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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美·中 보란듯 ICBM용 신형 로켓 시험한 北

“북한이 미국을 갖고 놀았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는 미 수뇌부의 강경한 말의 성찬과 달리 엊그제 미국과 중국 외교 수장의 회담은 예상대로 한반도 비핵화에는 공감, 해법은 동상이몽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시사하는 신형 고출력 로켓엔진 지상분출 시험을 참관했다는 사실을 어제 북한 관영매체가 공개했다. 로켓엔진 시험은 미·중 외교회담이 열린 지난 18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이 선제타격론을 비롯한 모든 대북 옵션을 고려하고 있는 미국에 굴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강대강 국면으로 치닫는 북·미 대결이 심히 우려스럽다.

틸러슨 장관과 왕이 외교부장의 첫 회담 성과라면 한반도 정세가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4월 시진핑 주석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미·중 정상회담의 사전조율을 겸한 두 장관의 대면은 구체적인 북핵 해법을 도출하기보다는 서로의 의중을 탐색하는 성격이 짙었다. 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이 “더 좋은 길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면서 강력한 대북 제재를 통한 중국 역할론을 강조했다. 반면 중국은 대화와 협상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6자회담 부활을 강조했다.

이런 해법의 차이 때문에 왕이 부장은 “양국 간 이견이 조기 대선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어느 정당 할 것 없이 대선 후보를 확정하는 작업에 눈코 뜰 새 없다. 선거일은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는데 정당의 후보는 20여명 가까이 난립하고 있다. 우선 눈길을 끌고 보려는 지르기식의 선심 공약과 달콤한 구호들이 쏟아진다. 가뜩이나 빠듯한 시간에 대선 후보의 자질과 도덕성, 공약 등을 제대로 검증할 수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압도적인 지지를 얻는 더불어민주당은 어제까지 5차 대선후보 합동 TV토론회를 열었다. 시중에는 “민주당 경선이 곧 본선”이라는 말이 떠돈다. 당과 후보들의 지지 여론이 그만큼 높다. 그런데도 유권자들은 토론에서 후보들의 국정 운영 철학과 정책 비전을 저울질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 쉽지 않다. 원론적 질문에 돌아가면서 모범답안을 읽는 듯한 토론쇼라는 지적을 면치 못했다. 그나마 어제 토론회는 좀 나았다는 평가를 얻긴 했다. 후보들 간 격론, 방청객의 돌발 질문에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토론이 유의미하려면 그렇게 온도가 바짝 끌어 올려져야 한다.

다른 정당들도 일제히 후보 확정을 위한 공개토론에 들어갔다. 그제 예비경선 후보자를 6명으로 압축한 자유한국당, 바른정당도 어제부터 토론회를 시작했다. 후보 토론회는 요식 절차가 아니라 실질적 검증 장치가 돼야 한다. 사드 배치와 북한 핵, 일자리 해법, 개헌, 사회 양극화 등 당장 풀어야 할 국가 난제들이 쌓여 있다. 누가 얼마나 더 열린 사고로 국민을 설득하고 통합해 나아갈 수 있을지 최선의 카드를 찾아야 한다.

민주당은 모두 10회의 토론회를 거쳐 후보를 확정한다. 남은 토론은 최대한 생산적으로 후보의 자질을 살펴볼 수 있는 검증의 마당이 되게 해야 한다. 백화점식으로 주제를 늘어놓는 TV토론은 ‘재방송’이라는 혹평을 벗어날 수 없다. 몇몇 중요 현안을 주제로 압축해서 이런저런 제약 없는 심층토론을 벌이는 자리가 필요하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번갯불에 콩 볶듯 치르는 대선에서 리허설을 거친 듯한 맹탕 토크쇼는 그야말로 전파 낭비일 뿐이다.

한 뼘이라도 더 나은 자질의 대통령을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눈으로 뽑아야 한다. 빈곤한 철학, 절대적 역량 부족으로 눈먼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국가 지도자를 다시는 우리 손으로 뽑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자세를 똑바로 잡고 눈을 크게 떠야 하는 까닭은 분명하다. 더러 실수를 하더라도 국정을 효율적으로 이끌 수 있는 철학과 소통의 리더십을 누가 더 가졌는지 훑고 또 훑어 봐야 한다.존재하는 것은 정상적이며 한두 번 의견 교환만으로 합의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단기간에 양국이 북핵 해법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를 통한 해결’을 지난 20년간 국제사회가 기대해 왔으나 북핵 위기를 더욱 키웠다는 점을 중국은 알아야 한다.

북한에서 6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조짐이 포착되고 있다. 미국 행정부는 물론이고 의회에서도 대북 강경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 1월 미 하원의 공화당 소속 테드 포 의원이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촉구하는 법안을 발의한 데 이어 공화당 소속 테드 크루즈 의원이 금주 중으로 상원에서 유사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2008년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이후 상·하원에서 재지정 법안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처음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참화가 두 번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동의를 한다면, 북한의 후견인을 자처하는 중국은 핵·미사일을 포기하도록 북한을 설득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국제사회에 내놓아야 할 것이다.

미·중 장관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해서도 논의를 했다. 중국은 반대입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주장대로 사드가 대중 감시용이려면 레이더 설치, 요격미사일 안전거리 확보 등 모든 체계가 바뀌어야 하는데, 이는 한국 국민의 동의 없이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국답지 않은 사드 보복은 이제 거둬라.



2. 맹탕·재탕식 대선토론 확 바꿔라

조기 대선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어느 정당 할 것 없이 대선 후보를 확정하는 작업에 눈코 뜰 새 없다. 선거일은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는데 정당의 후보는 20여명 가까이 난립하고 있다. 우선 눈길을 끌고 보려는 지르기식의 선심 공약과 달콤한 구호들이 쏟아진다. 가뜩이나 빠듯한 시간에 대선 후보의 자질과 도덕성, 공약 등을 제대로 검증할 수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압도적인 지지를 얻는 더불어민주당은 어제까지 5차 대선후보 합동 TV토론회를 열었다. 시중에는 “민주당 경선이 곧 본선”이라는 말이 떠돈다. 당과 후보들의 지지 여론이 그만큼 높다. 그런데도 유권자들은 토론에서 후보들의 국정 운영 철학과 정책 비전을 저울질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 쉽지 않다. 원론적 질문에 돌아가면서 모범답안을 읽는 듯한 토론쇼라는 지적을 면치 못했다. 그나마 어제 토론회는 좀 나았다는 평가를 얻긴 했다. 후보들 간 격론, 방청객의 돌발 질문에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토론이 유의미하려면 그렇게 온도가 바짝 끌어 올려져야 한다.

다른 정당들도 일제히 후보 확정을 위한 공개토론에 들어갔다. 그제 예비경선 후보자를 6명으로 압축한 자유한국당, 바른정당도 어제부터 토론회를 시작했다. 후보 토론회는 요식 절차가 아니라 실질적 검증 장치가 돼야 한다. 사드 배치와 북한 핵, 일자리 해법, 개헌, 사회 양극화 등 당장 풀어야 할 국가 난제들이 쌓여 있다. 누가 얼마나 더 열린 사고로 국민을 설득하고 통합해 나아갈 수 있을지 최선의 카드를 찾아야 한다.

민주당은 모두 10회의 토론회를 거쳐 후보를 확정한다. 남은 토론은 최대한 생산적으로 후보의 자질을 살펴볼 수 있는 검증의 마당이 되게 해야 한다. 백화점식으로 주제를 늘어놓는 TV토론은 ‘재방송’이라는 혹평을 벗어날 수 없다. 몇몇 중요 현안을 주제로 압축해서 이런저런 제약 없는 심층토론을 벌이는 자리가 필요하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번갯불에 콩 볶듯 치르는 대선에서 리허설을 거친 듯한 맹탕 토크쇼는 그야말로 전파 낭비일 뿐이다.

한 뼘이라도 더 나은 자질의 대통령을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눈으로 뽑아야 한다. 빈곤한 철학, 절대적 역량 부족으로 눈먼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국가 지도자를 다시는 우리 손으로 뽑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자세를 똑바로 잡고 눈을 크게 떠야 하는 까닭은 분명하다. 더러 실수를 하더라도 국정을 효율적으로 이끌 수 있는 철학과 소통의 리더십을 누가 더 가졌는지 훑고 또 훑어 봐야 한다.



3. 反 IS 테러전 참여 신중해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오는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반(反)이슬람국가(IS)연합 국제회의에 참석할 것이라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시리아에 지상군을 투입하는 등 이슬람 급진 무장단체 IS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개최되는 반IS 국제회의에 미 행정부의 관심은 클 수밖에 없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주재하는 이번 회의에는 모두 30개 남짓한 나라의 장관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은 지난주 방한한 틸러슨 장관과 회담한 직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회의 참석 사실을 알렸다.

물론 윤 장관이 틸러슨 장관과 회담하면서 회의 참석을 즉석에서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관급이 참석하는 국제회의 관례상 벌써 오래전에 참석이 확정된 상태였다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틸러슨의 방한은 고려할 것이 많은 국제회의 참석을 공표하는 데 적절한 기회를 제공했다고 외교부는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윤 장관의 반IS회의 참석은 틸러슨 장관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발표됐다. 그럼에도 우리가 당사자라고 할 수 없는 문제에 섣불리 개입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없지 않다.

대한민국은 모든 테러에 반대한다. 우리는 IS 못지않게 극악한 테러를 일삼는 북한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이 얼마나 무도한 집단인지는 김정남 독극물 암살 사건이 증명을 하고도 남는다. 나아가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동족의 생존권마저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굳건한 한·미 동맹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은 다시 강조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우리의 국제관계 또한 어느 때보다 다변화되어 있다. 하나의 행동원칙만으로 복잡한 이해를 풀어갈 수 있는 시대는 벌써 오래전에 지났다는 사실은 외교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번 반IS 회의는 외무장관 회의에 이어 군사적 격퇴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실무 그룹 회의도 예정되어 있다. 각국 군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실무 회의에서는 미국이 마련한 IS 군사전략 재검토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 군 관계자가 참석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군 부대의 철수를 요구하는 이라크 무장단체의 김선일씨 살해사건은 여전히 국민의 뇌리에 또렷하다. 자칫 국민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수 있는 국제회의 참석 결정은 신중에 신중을 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일보]

4. 野 "성과연봉제 폐지", 이 포퓰리즘이 청소해야 할 적폐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8일 공무원노조총연맹 출범식에서 "(집권하면) 공공 부문 성과연봉제와 성과평가제를 즉시 폐지하겠다"고 밝혀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문 전 대표만이 아니라 야권 대선 주자 대부분이 같은 공약을 하고 있다. 성과연봉제는 공공 부문 비효율을 개혁하기 위해 추진했던 것이다. 일하는 사람이나 안 하는 사람이나 똑같이 대우받는 게 지금 우리 공공 부문이다. 열정을 바쳐 일하는 분위기가 살아날 수 없다. 이 철밥통 풍토를 깨자는 게 성과연봉제다.



노조 반발 속에서도 어렵게 119개 공기업·준정부기관 종사자에게 새로 적용하고, 기존에 성과연봉제 대상이었던 공무원의 직급을 낮춰 범위를 확대했다. 야권 대선 주자들이 이것을 원점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100만 공무원' 표를 겨냥한 포퓰리즘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말로는 개혁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반(反)개혁이란 사실을 잘 보여준다. 나라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지금 편하게 나눠 먹자는 궁리뿐이다.



문 전 대표는 "정부 조직 개편 시 노조와 협의할 것"이라며 "정당 가입과 정치 후원 등 공무원의 정치 기본권 보장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공무원 노조 가입 범위 확대, 근로시간 면제제도 도입 등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공노총이 내걸고 있는 11대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우리와 같은 정치 풍토에서 공무원에게 정치 활동을 허용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헌법이 '공무원 정치적 중립'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문 전 대표 식이면 앞으로 공공 부문 개혁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문 전 대표는 국민 세금으로 공무원 81만명 증원도 계속 주장했다. 여론조사상 지지가 반대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라에 해(害)를 끼치는 공약이다. 야당은 적폐 청산을 외치지만 정말 청소해야 할 적폐는 바로 이런 포퓰리즘이다.



[이데일리]

​5. 세월호 인양, 갈등 끝내는 계기 삼아야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위한 점검 작업을 마쳤다고 한다. 어제 실시하려던 시험 인양 작업이 높은 파도로 보류됐지만 사나흘 뒤에는 다시 시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세월호 3주기인 내달 16일까지 세월호 선체가 목포 신항에 입항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참사가 발생한 지 3년이 다 돼가고 선체 인양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진실규명 논란은 아직 진행형이다. 우리 내부에서는 침몰 원인과 구조실패 책임,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 등을 놓고 여전히 편을 갈라 싸우고 있다. 세월이 흘렀지만 차가운 바닷속에서 숨진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희생자 304명 가운데 9명은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내 편, 네 편으로 갈려 소모적 갈등만 벌이고 있는 것이다.

참사 이후 달라진 것도 없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던진 시대적 과제는 ‘안전 대한민국’ 건설, 바로 선 정부, 부정부패 척결 등이다. 그러나 메르스, 지진,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재난과 크고 작은 안전사고는 여전하다. 국민안전처를 신설했지만 정부 대책은 늘 허점투성이로 국민은 여전히 불안하다. ‘관피아’와 ‘정피아’ 등 부패사슬도 그대로다. 그제 소래포구 화재에서 보듯 국민의 안전불감증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세월호를 차질 없이 인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분별하게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유가족들의 상처만 깊게 할 뿐 진실 규명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선체를 온전히 인양하면 침몰 원인 등 모든 의문이 백일하에 밝혀져 불필요한 논란이 종식될 것이다. 정부와 국민 모두의 안전의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실종자 가족의 슬픔도 조금은 풀릴 것이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인양 시기가 대선 정국의 한복판이라 자칫 정치적으로 이용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세월호 선체 인양은 반목과 대결의 내부 갈등을 끝내고 화합과 통합으로 가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정파적 이해관계로 인양 시점과 선체 조사 등에 정치권이 개입하거나 선거에 이용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6. 변죽만 울린 틸러슨의 베이징 회담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그제 베이징에서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첫 대면했지만 분위기는 부드럽지 않았다. 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의 굳은 표정에서도 회담이 순조롭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가장 관심을 끌었던 북핵 문제에 대한 발표도 “우리는 공동 노력을 통해 북한 정부를 설득함으로써 더 좋은 길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원론적 수준에 불과했다. 

중국이 한국에 대해 경제 보복을 진행하고 있는 사드 문제에 있어서도 거의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틸러슨 장관은 전날 윤병세 장관과의 서울 공동회견에서 “한국에 대한 경제적인 보복조치는 부적절하고 유감스럽다”며 중국의 자제를 촉구했으나 이날 왕이 부장과의 회견에서는 정작 아무런 언급도 없이 넘어갔다. 오히려 사드에 반대한다는 중국 측의 기존 입장만 확인됐을 뿐이다.

결국 틸러슨 장관의 이번 한·중·일 동북아 3국 순방은 한반도 정세 및 사드 문제에 있어 변죽만 울린 모양새에 그쳤다. 첫 방문국인 일본에서 “지난 20년간 미국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고 밝힌 데 이어 서울에서 “전략적 인내 정책은 끝났다”고 밝힌 정도에 불과했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 때보다 어조가 다소 강력해지기는 했지만 중국의 벽을 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내달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북한이 그제 신형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을 실시한 것도 틸러슨 장관의 베이징 방문에 맞춘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미국의 대북 압박에도 불구하고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노골적인 의사 표시였다. “북한이 그동안 미국을 갖고 놀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 그대로다. 틸러슨 장관이 “북한 위협이 선을 넘을 경우 군사적 행동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다.

이처럼 한반도 정세가 유동적인 가운데 우리 내부에서 사드 배치와 북한 제재 등에 있어 생각들이 서로 다르게 표출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의견의 일치를 보기는 어렵더라도 적어도 국가 안보와 관련한 문제에 있어서는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탄핵 정국으로 인해 한국이 이미 주변국 사이에서 동네북이 돼버린 처지다. 앞으로 대선 국면이 이어지면서 나라꼴이 더욱 초라해지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매일신문]

7. 경산 문명고, 이제는 국정교과서 혼란을 끝낼 때다

경산 문명고에서 벌어지는 국정 역사교과서 논쟁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답답하고 불편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국정교과서로 인해 학교`재단, 전교조`학부모가 편을 갈라 얼굴 붉히고 소송까지 벌이는 모습은 정당성 여부를 떠나 바람직하지 않다.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모두 학생들을 위해 시작한 일이겠지만, 결과적으로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상처받게 한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번 사태는 지난달 문명고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지정을 신청하면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다. 전교조와 야당, 시민단체 등이 국정교과서를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겠다고 나선 문명고를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재단과 학교 측이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교과서 채택을 강행한 것은 다소 무리한 행동으로 보인다. 홍정택 재단이사장이 국정교과서에 남다른 의지를 갖고 있기에 시위 및 항의에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 버텼다는 것이다. 국정교과서 반대 측의 문제 제기 방식에도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문명고 교사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판단해야 할 교과서 문제를 전교조`시민단체, 일부 학부모 등이 앞장서 반대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우리는 문명고의 국정교과서 채택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굳이 논쟁하고 싶지 않다. 개인마다 생각과 관점이 다를 수 있다. 다만, 우려하는 것은 ‘어른’들의 이념 싸움이 학생들의 학습권과 정서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마치,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문명고의 국정교과서 사태에 고스란히 옮겨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며칠 전, 대구지법이 문명고 학부모들이 낸 연구학교 지정처분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국정교과서를 당분간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법원 결정을 계기로 문명고는 더는 국정교과서를 고집하지 않는 것이 옳다. 학교를 혼란 속에 놔두지 말고 학생들의 수업권 보장을 위한 방향으로 정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교육은 어른들이 아닌, 학생들을 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자칫하다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울지도 모른다.



8. 이 시국에 관광성 외유? 민심 아랑곳없는 김천시의회

사드 배치 등 중대 현안으로 지역 민심이 뒤숭숭한 상황에서 김천시의회 의원들이 관광성 해외 연수를 강행했다. 더욱이 김천시의회는 시의원 해외여행 경비를 최고 등급으로 일괄 인상하는 조례 개정도 추진하고 있어 의정 활동보다 해외여행에 관심이 더 많다는 눈총까지 받고 있다.



이달 16일 김천시의회 의원 17명 중 8명은 시의회 공무원 4명과 4박 6일 일정으로 두바이로 떠났다. 이들의 해외 연수에 소요된 예산은 총 2천만원이다. 그런데 “선진지 견학 차원의 해외연수”라는 이들의 설명과 달리 일정을 보면 두바이시청과 신재생에너지 박람회를 제외하고는 쇼핑몰, 고층타워전망대, 사막 사파리, 음악 분수쇼, 페라리 월드, 마리나워크 등 대부분 관광성 코스로 짜여 있다. 연수는 명분일 뿐 해외로 관광을 떠났다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백번을 양보해 김천시의회 주장대로 선진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 해외 연수를 갔다고 치더라도 시기가 부적절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성주 배치가 급박하게 진행되면서 김천도 초비상 상황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김천에서는 200일 넘게 사드 반대 집회가 열리는 등 언제 불상사가 발생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인 만큼 시의원들은 ‘비상 대기’를 해도 모자랄 판이다. 시의회가 국가 안보를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사드 배치를 수용한다 하더라도 지역민의 상실감을 위로할 수 있는 반대급부를 정부로부터 얻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해야지 한가로이 선진지 견학이나 할 상황은 아니다.



더구나 최근 들어 김천시의회가 시의원 해외여행 경비를 여행지와 관계없이 가장 높은 등급에 맞춰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조례 개정안을 공고한 것과 관련해서도 지역 여론이 곱지 않은 마당이다. 시의원들이 지역 현안은 외면한 채 여행 경비 올리는 데 관심을 쏟고, 지역구가 난리통인데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유권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최고 덕목 중 하나는 지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인데, 김천시의회를 보면 지방의회 무용론이 왜 끊이지 않는지 이유를 알 만도 하다.



[세계일보]

9. ‘정치 품격’ 해치는 막말 정치인, 퇴출 1순위다

대선주자들의 거친 입이 또 말썽이다. 자유한국당의 대선 예비경선에 나선 홍준표·김진태 후보의 발언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홍 후보는 그제 기자회견에서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유죄가 되면 노무현 대통령처럼 자살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8일에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민주당에서 1등 하는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쏘아붙여 고인을 욕보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당은 “인륜을 저버린 추악한 언사”라고 반발했다.

홍 후보는 경쟁자인 김 후보를 ‘걔’, ‘애’라고 부르며 “앞으로 애들 얘기해서 열 받게 하지 마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우겠다는 자신의 출마 선언 장소(대구 서문시장)를 김 후보가 “거기 가면 박 전 대통령이 생각나지 않을까요”라고 비꼬자 막말로 응수한 것이다. 집권 여당의 대표까지 지낸 유력 정치인의 언행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김 후보는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말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망나니 특검’이 짐 싸서 집에 갔다”며 태극기 집회를 선동했다. 홍·김 후보의 험한 화법은 여권의 반노·반문 정서나 ‘박근혜 동정론’을 자극해 지지층을 결속하려는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이다. 경선전이 치열할수록 강도가 심해질 공산이 크다.

막말은 대선주자에게 국한된 게 아니다. 문 전 대표 측근인 손혜원 의원은 지난 9일 노 전 대통령 서거가 “계산된 것”이라고 발언해 경선캠프 홍보부본부장직을 사퇴했다. 문재인 캠프의 문용식 가짜뉴스 대책단장은 14일 SNS에 문 전 대표에 대한 유언비어 유포자를 비판하며 “저의 모토는 한 놈만 팬다. 걸리면 죽는다”라고 적어 설화에 휘말렸다.

상대를 향한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는 막말은 갈등과 분열을 부추긴다. 사회 통합을 가로막고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암적 존재다. 미국 사회가 대선 이후에도 두 쪽으로 갈려 대치하게 만든 ‘트럼프 현상’은 대표적이다.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막말 정치인의 존재감은 커졌을지는 몰라도 우리 사회와 국민의 스트레스는 쌓이고 있다. ‘한국판 트럼프’, ‘홍트럼프’로 불리는 홍 후보는 자성해야 한다. 유권자들의 자세도 중요하다. 품격을 상실한 정치인은 지도자감이 될 수 없는 퇴출 대상 1순위다. 이들에게 지지를 보내선 안 된다.



[매일경제]

10. 다시 시작된 총수소환…검찰은 대기업 수사 최소화하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소환으로 13시간여 조사를 받은 뒤 어제 새벽 귀가했다. 검찰은 SK에서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111억원의 대가성과 최 회장 자신의 사면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청탁했는지 등을 추궁했다고 알려졌다. 특허권을 잃었다가 다시 부여받은 SK의 면세점을 놓고 박 전 대통령과 최 회장 간의 비공개 독대 때 오간 얘기도 검찰은 따졌다고 한다. 검찰의 기소에 관련된 기업 중에는 이미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외에 SK 말고도 롯데, CJ 등이 있으니 이쪽 관계자 소환 조사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내일로 예정한 박 전 대통령 소환 조사를 앞두고 제기된 13개 혐의 가운데 대기업 연루 부분을 확인하려는 것인데 핵심인 뇌물죄를 입증하기 위해 총수를 포함한 대기업 관계자들을 옥죄는 것으로 읽힌다. 박영수 특검팀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 특수본은 지난 16일 SK그룹 전·현직 수뇌부를 참고인으로 소환하더니 곧바로 최 회장을 불렀다.



같은 잣대를 댄다면 면세점 특허권 박탈 후 재취득 과정을 거친 신동빈 롯데 회장이나 자신의 사면 청탁을 대가로 K컬처밸리사업에 투자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재현 CJ 회장도 검찰청사의 포토라인에 세울 듯한데 편한 마음으로 볼 수만은 없는 장면일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수사 장기화로 관련 기업들이 겪는 경영상의 어려움은 이미 곳곳에서 드러났고 갈수록 안팎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대기업 총수들에게 걸어둔 출국금지로 외국 기업을 놓고 벌이는 인수·합병(M&A) 경쟁에 지장을 받는 경우도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용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 측 보복의 직격탄을 맞는 롯데는 엎친 데 덮친 격의 이중 고초를 겪는 중이다.



검찰의 기업 수사는 실체 규명을 위해 필요하다. 청탁과 특혜 여부를 따져보고, 강압과 자발의 경계를 엄정하게 선 그어 줘야 한다. 하지만 특검 따로 검찰 특수본 따로 이중 삼중 겹치게 진행하면서 저인망식으로 바닥까지 긁어내는 수사에 버틸 기업은 없을 것이다. 질질 끌며 먼지 털어내듯 해서는 안 된다. 검찰 수사는 기업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최소화하기 바란다.





주요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신동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 스키야키 소고기를 가래(농기구)에 올려 구워먹은 데서 유래

​야키라는 말이 들어간 일본 요리가 참 많다. 일본에서는 음식을 굽거나 볶아서 조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야키소바(소바·국수), 야키도리(도리·닭), 야키니쿠(니쿠·고기) 등 주로 재료 이름에 구이 혹은 볶음이라는 의미의 ‘야키’를 붙인다. 그런데 스키야키만은 그렇지 않다. ‘스키’는 농기구인 ‘가래’를 의미하는 것으로, 요리 재료명도 아니고 하다못해 ‘테판야키(테판·철판)’처럼 조리도구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왜 요리 이름에 음식 재료도, 조리도구도 아닌 ‘가래(스키)’라는 농기구명이 붙었을까? 거기에는 스키야키의 유래가 얽혀 있다. 말 그대로 고기를 가래에 올려 구워 먹었기에 스키야키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이외에 얇게 썬 고기, ‘스키미(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게 썬 고기)’를 사용한 데에서 ‘스키야키’가 됐다는 설도 있고, 고기를 스기(삼나무)로 만든 얇은 판과 판 사이에 넣어 구워 먹었다 하여 ‘스기야키’가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일본에서는 나라 시대 이후 육식이 금지됐지만 에도 시대 후기부터는 몸을 보양하는 약으로서 고기를 공공연하게 먹곤 했다. 생선뿐 아니라 기러기, 오리, 사슴 등 다양한 육류를 재료로 활용했다. 에도 시대 스키야키는 두툼하게 썬 고기를 미소(일본 된장)로 만든 다레(일본식 양념장)에 넣어 끓이는 방식으로 조리했다. 메이지 시대 이후 소고기를 합법적으로 섭취할 수 있게 되면서 소고기와 와리시타를 사용한 스키야키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와리시타는 기존의 미소가 아닌 간장, 설탕, 술 등을 섞어 만든 지금 형태의 다레를 뜻한다.



관서지방에서 발달했던 스키야키는 관동대지진 이후 관동지방에까지 전해졌는데, 두 지역의 스키야키 조리 방식은 좀 다르다. 관서식 스키야키를 만들 때는 뜨거운 팬에 고기를 먼저 구운 후에 고기가 거의 다 구워질 즈음 청주와 설탕, 간장을 살짝 붓는다. 고기 육즙과 청주, 설탕이 섞인 자작한 소스에 나머지 고기, 채소, 두부 등을 익혀 먹는다.

반면 관동식은 청주와 간장, 설탕, 술 등을 섞어 살짝 끓여낸 와리시타가 사용된다. 뜨거운 팬에 먼저 와리시타를 넉넉히 붓고 고기, 야채, 두부, 곤약 등을 넣어 익혀 먹는 것이다. 샤브샤브를 먹고 나면 남은 국물에 칼국수나 죽을 끓여먹듯이, 스키야키를 먹고 남은 육수에 우동이나 죽을 끓여 먹는다.

스키야키는 지역에 따라 기호에 따라 먹는 방법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개인용 작은 볼에 날달걀을 풀어 와리시타의 맛이 밴 고기와 채소 등을 찍어 먹는다. 고기, 채소 등을 다 건져 먹고 나면 삶은 우동을 넣거나 식은 밥을 넣어 죽을 만들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필자가 처음으로 스키야키를 접한 것은 일식 요리를 배우기 위해 다녔던 서울의 한 요리학원에서였다. 

그때 우리나라 불고기보다는 국물을 더 많게 해서 전골식으로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요리를 다 배우고 시식 시간이 돼서야 제대로 된 스키야키를 먹어볼 수 있었다. 젓가락으로 고기와 야채를 날달걀에 찍어 한입 먹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부드러운 소고기와 야채 등이 간장 베이스 국물과 조화를 잘 이뤘다고 할까? 

그러고 보면 간장이라는 장은 정말 대단하다.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 구이나 육수 등 요리의 맛을 하나로 혼합시키는 소스로는 최고인 것 같다.



일본 유학 시절, 주머니 사정은 그닥이었지만 스키야키가 맛있는 음식인 것을 알기에 중저가의 스키야키 맛집을 찾아 이곳저곳 다녔던 기억이 난다. 당시 도쿄에 있었으므로 전골 스타일 스키야키를 많이 먹었다. 한국에서 맛본 것과 많이 다르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소스맛이 덜 강하고 야채나 재료들이 더 많고 깔끔했다.

이후 요리를 더 알게 됐고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생기자 최고의 스키야키를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쿄의 심장부, 치요다구의 소토칸다 인근에 있는 ‘이시바시’라는 스키야키 전문점을 찾았다. 이곳은 140년 역사의 전통 맛집으로 노포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에서 스키야키를 즐길 수 있다. 전통이 있는 가게인데도 다른 곳에 비해 가격이 합리적이고 비교적 덜 달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드는 곳이다. 가게가 작은 데다 점심 영업을 안 하고 주말에도 쉬기 때문에 한참 전 미리 예약을 해야 여유 있게 방문할 수 있다. 

일단 주문을 하면 얇게 썬 A5 등급의 최상급 등심이 나온다. 그 비주얼만 봐도 싱글벙글 기분이 좋아진다. 그 옆으로 두부, 곤약, 대파, 쑥갓, 팽이버섯 등이 세팅되고 중간 크기의 넓고 둥근 철판이 준비된다. 이곳은 관서지방 스타일로, 질 좋은 소기름을 두르고 철판을 가득 메울 정도로 넓적한 고기를 한 점씩 놓고 간장소스를 뿌려 구워준다.



일단 달걀에 찍지 않고 한입 맛봤는데, 고기가 입안에서 스르르 녹아버렸다. 다음으로 준비된 야채와 두부 등을 구우면서 계속 고기를 서비스하는데, 조리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맛은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다.



이 집은 마무리 밥도 인상적이다. 고기와 야채를 다 구워 먹은 뒤 남은 소스에 흰밥을 넣어 펴서 살짝 졸인다. 그리고 잘 저은 달걀을 밥 위에 듬뿍 올려 익혀주는데, 간장소스가 스며든 쫀득한 밥에 부드럽고 농후한 달걀이 어우러져 정말 일품이다. 스키야키를 한번 제대로 드시고 싶다면 꼭 한번 경험해보시기 바란다.

집에서 맛있게 요리해 먹는 것도 좋지만 전문식당의 맛을 즐겨보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 된다. 일본의 정말 비싼 스키야키 전문점들은 직접 셰프들이 최상급의 소고기를 테이블로 들고 와 칼로 슬라이스해서 서비스한다. 그냥 바라만 봐도 입가에 미소와 함께 침이 고인다. 벌써부터 스키야키 미식여행을 떠날 수 있는 휴가가 기다려진다.



2.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빅토리아 뮬로바

지난 호에 ‘얼음 공주(Ice Princess)’ 힐러리 한 얘기를 했다. 이번에는 ‘얼음 여왕(IceMaiden)’이다. 러시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뮬로바(Viktoria Mullova, 1959년~). 슬라브인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이 인상적인 뮬로바의 연주 모습은 표정 없는 연주자들 중에서도 단연 압권이다. 얼음 여왕이라 지칭하는 이유다. 여기에 우여곡절 그녀의 삶도 여왕으로 불리는 데 한몫할 것이다. 

범상치 않은 삶은 24살이던 1983년부터 시작됐다. 핀란드 공연 중에 당시 반주자며 연인이던 옛 소련 그루지아 출신의 지휘자 박탕 조르다니아(Vakhtang Jordania)와 함께 서방으로 목숨을 건 망명을 감행한 것이다. KGB의 감시를 따돌리기 위해 호텔방에 그녀의 분신과도 같던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그대로 둔 채 택시를 타고 스웨덴 국경을 넘었다. 소련은 격노했고, 당시 소비에트의 서기장이었던 유리 안드로포프(YuriAndropov, 1914∼1984년)가 그녀를 ‘인민의 적’으로 규정할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1971년 카라얀 지휘 콩쿠르 우승자였던 조르다니아는 미국으로 망명한 후 훗날 국내 KBS와 대구시립교향악단 지휘를 맡았던 인물. 두 사람은 이 탈출을 위해 일 년 이상 준비했다고 알려져 있다. 미 대사관의 도움으로 워싱턴으로 넘어가기까지 그들의 탈출은 첩보 영화를 능가할 정도로 긴박하게 진행됐다. 

탈출 직후 미국에 머물다 유럽으로 건너간 뮬로바는 마에스트로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26년 나이 차로 당시 큰 스캔들이 되기도 했던 이 사건은 1988년 아바도와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 일본 공연에서 알려졌다.

5년간 이어진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고, 현재 재즈 더블베이시스트로 활동하는 미샤 뮬로브 아바도다. 아바도와 헤어진 후에도 뮬로바는 그의 부고에 크게 가슴 아파했을 정도로 그에 대한 사랑을 오래 간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바도와의 인연과 별도로 뮬로바의 음악 활약은 대단했다.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몬트리올 심포니,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등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계몽주의 시대 오케스트라,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 같은 고악기 오케스트라와도 협연하고 있으며, 1990년대 중반부터 뮬로바 앙상블을 결성해 유럽에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약 20년을 메이저 음반 회사와 함께 많은 음악을 만들어내며 ‘얼음의 여왕’으로 도도하게 살아왔던 그녀의 연주관이 달라진 건 1991년 즈음 첼리스트 남편 매튜 베일리와 런던에 거주하면서부터. 그간의 음악들에서 좀 더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음악적 욕망 때문이었다.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거트현을 사용하는 바로크 음악에 심취하면서 연주 스타일이 크게 바뀌었다. 바흐와 고음악 연구뿐 아니라 남편 매튜를 통해 재즈와 연합한 새로운 형태의 클래식 음악에도 도전 중이다. 

요즘 그녀에게 생긴 변화가 있다. 바로 웃음이다. 웬만해선 웃지 않던 그가 미소 짓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그러니 그녀의 새로운 도전이 흥미로울 수밖에. 그 속에 또 어떤 ‘얼음 여왕을 녹인 비밀’이 있는지 탐구해볼 일이다.



3. [중앙일보][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인공지능 번역과 ‘컨택트’의 외계 언어 해독

방대한 한문 사료 『승정원일기』를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에 올해부터 인공지능(AI)이 투입된다고 한다. AI는 초벌 번역만 한다지만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45년 걸릴 번역 기간을 18년으로 줄일 수 있으리라 한다. 무척 반가운 뉴스다. 하지만 반신반의하게도 된다. 과연 큰 시간적 격차만큼 사고방식과 문화 배경의 격차가 있는 먼 과거의 글을, 그것도 표의문자인 한자로 써진 것을 AI로 번역하는 게 쉬울까. 지난달 개봉한 SF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에서 외계인 언어를 해독하는 것에 버금가게 어려울 것 같은데.

‘컨택트’에서 외계인은 손으로 먹물 같은 것을 뿜어 허공에 문자를 그리는데, 마치 서예가가 멋들어지게 일필휘지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외계 언어는 과거·현재·미래의 시제가 동사로 구분되지 않는 표의문자라고 하니 한자가 연상되기도 했다. 주인공 언어학자는 열린 마음으로 그 언어를 탐구하고 흡수하다가 점차 시간의 선형적 흐름의 한계를 벗어나 비선형적으로 과거·현재·미래의 사건들을 동시에 인식하게 된다. 언어의 형식이 단지 생각의 표현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결정한다는 ‘사피어 워프 가설’에 따른 SF적 상상이다.



20세기 초에 나온 이 가설은 후대에 반박도 많이 당했지만 완전히 무시되지도 않는다. 언어가 사고방식에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가 많은 것이다. 이건 나 자신도 실감한 것이다.



같은 글을 영문과 국문으로 모두 쓸 때가 종종 있는데, 같은 내용인데도 언어 구조와 단어가 다르기 때문에 내 생각의 전개도 미묘하게 달라지고, 따라서 문장과 단락의 구성도 달라지게 된다. ‘컨택트’의 언어학자가 외계 언어를 해독하는 과정에 외계인처럼 비선형적으로 사고하게 되면서 다시 그들의 말을 더 제대로 해독하게 되었듯이 번역가는 원저자의 언어적 사고방식대로 생각할 수 있어야 완전한 번역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상 어렵기에 번역은 어쩔 수 없이 ‘제2의 창작’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AI는 어떨까. 『승정원일기』 번역에는 인공신경망 번역기술이 적용된다고 한다. 『승정원일기』 중 기존에 인간 연구원들이 번역해 놓은 영조 때 기록 20만∼30여만 문장 원문과 번역문을 입력한 후 이것을 바탕으로 AI가 기계학습을 통해 번역 모델을 생성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승정원일기』의 원저자인 옛 사람들보다는 현대 연구원들의 사고방식을 따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데이터가 점점 쌓여 가는 와중에 혁명적인 학습으로 옛 사람들의 사고에 근접하게 될까.



4. [중앙일보][이명현의 별 이야기] 우리는 다시 달로 간다

한 달에 달을 몇 번이나 보시나요? 달은 늘 밤하늘에 떠 있어서 언제든 달을 보고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물리적으로도 달을 보기가 쉽지 않다. 초저녁에 뜨는 초승달은 금방 서쪽으로 넘어가 버린다. 새벽에 뜨는 그믐달은 작정을 해야만 볼 수 있다. 반달에서 보름달에 이르는 기간 동안은 그래도 밤하늘에서 쉽게 달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면 볼 수 없다. 보름달이 지나면 달이 늦게 뜨기 때문에 사람들이 잠든 심야에만 볼 수 있다. 이래저래 달을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바쁜 일상을 살다보면 고개 한번 젖혀서 하늘을 올려다보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한 달에 정말 한 번이라도 달을 맘 편하게 볼 수 있는 날이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을 더 자주 보게 될 이유가 생겼다. 달을 향한 멋진 계획들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 전기자동차 예약 판매로 우리들을 흥분시켰던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가 또 꿈같은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2018년 말께 사람을 태운 우주선을 달로 보내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과학 탐사가 목적이 아니라 관광이 목적이다. 돈을 받고 2명의 승객을 우주선에 태워 달에 가겠다는 것이다. 달에 착륙하는 것은 아니고 달 궤도를 돌고 근접해서 감상한 후 돌아오는 일정의 상업적인 달 여행이다.



머스크와 민간 우주 탐사 경쟁을 벌이고 있는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도 2020년대 중반까지 달에 과학 탐사 장비와 사람이 살 수 있는 주거시설을 건설하기 위한 자재를 달로 나르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달에 사람이 사는 주거지역을 건설하는 것이다. 달을 바탕으로 한 상업적인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처음은 아니다. 문익스프레스라는 회사는 2016년에 민간회사로는 처음으로 미국 정부로부터 지구 궤도를 벗어난 상업적 우주 탐사를 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1972년 12월 아폴로 17호 우주인들이 달에 발을 디딘 후 아무도 달에 간 사람이 없다. 정말이다. 우리는 우주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지난 45년 동안 아무도 달에 가지 않았다. 이제 다시 달이다. 15년 이내에 달은 지구의 경제 공동체가 될 것이라는 것이 민간 달 탐사에 나서는 사업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제2의 지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익스프레스 홈페이지에는 ‘WE RETURN’이라는 문구가 크게 새겨져 있다. 우리는 다시 달로 간다. 당신은 한 달에 달을 몇 번이나 보십니까?



5. [서울신문][이은미의 뮤지엄 천국] 내 인생의 박물관

‘시네마 천국’은 영화를 좋아하는 소년 토토와 마을극장 영사기사 알프레도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틈만 나면 마을에 있는 유일한 극장인 ‘시네마 천국’으로 달려가던 영화 속 주인공 토토는 고향을 떠나 로마에서 영화감독으로 성공한다. 이 영화는 영화와 더불어 성장하는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토토처럼 영화에 빠져 있던 소년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마음속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친 감동적인 영화의 기억 한 편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 권의 책 또한 때로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책을 읽는 것은 우리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많은 사람이 ‘내 인생의 책’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박물관은 어떠할까. 피카소의 유명한 입체파 그림이 박물관에서 만난 아프리카 가면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은 젊은 시절 루브르 박물관의 열렬한 애호가였다. 특히 그리스 도자기 전시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작품 속 춤추는 동작을 따라 했다고 한다.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데미안 허스트의 대표작인 동물 표본을 상기시키는 작품들은 런던에 있는 왕립외과대학 헌터리안 박물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내 인생의 박물관’을 꼽으라고 한다면 박물관이 일터가 돼 버린 지금은 하나를 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박물관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자주 드나들었던 고향 대전의 과학관. 시내 한구석에 자리한 작은 과학관에 친구와 동생들, 때로는 혼자서도 찾아가 전시실 체험을 즐겼다.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가 말하는 ‘몰입’을 경험했다고 할까. 돌이켜 보니 아마도 이러한 경험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학 소녀로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박물관 하면 떠올리게 되는 역사·고고 박물관에 처음 가 보았던 기억 또한 생생하다. 중학생 시절 서울 나들이에서 가족들과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했다. 약간 어두운 전시실에서 난생처음 사진으로가 아닌 진짜 고려청자를 접하고, 이걸 왜 천하제일 비색이라고 하는지 강렬한 호기심을 가졌다. 물론 그 당시는 답을 찾을 수 없었지만 가슴속 깊은 인상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박물관은 인류의 유형·무형의 문화유산을 수집, 관리, 보존, 연구, 전시, 교육하고, 이를 통해 문화 향유와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기관이다. 국제박물관협의회의 박물관, 즉 뮤지엄에 관한 정의에 따르면 소위 ‘박물관’뿐만 아니라 과학관, 민속촌, 수족관, 동물원, 식물원, 어린이박물관, 유적지 등이 모두 박물관에 포함된다.

박물관은 현대사회에서 대표적인 문화기관이자 평생학습 기관으로 각광받고 있다. 박물관은 친구와 가족, 때로는 혼자 방문해 다양한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장소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경험과는 다르게 박물관에서는 몸을 움직여 전시실을 돌아다니며 유물들과 대화하고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박물관이 담고 있는 인류 문화유산의 보물들은 직접 보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우리의 가슴과 머릿속에서 살아 숨 쉴 때 비로소 가치를 활짝 꽃피우게 된다.

우리나라 박물관 수가 1000개를 넘어섰다. 첫 박물관에 관한 기억 또한 어두운 전시실에서 만난 석기와 도자기에서 벗어나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바뀌고 있다. 누군가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삶을 바꾸는 ‘내 인생의 박물관’이 늘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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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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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조선일보]

1. 오늘 시험대 오르는 대한민국, '역사적 승복'으로 위기 끝내자

헌법재판소가 오늘 11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선고한다. 작년 10월 5일 검찰이 최순실 사건 수사를 시작한 지 5개월여, 국회가 12월 9일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지 3개월 만이다. 이 긴 시간 동안 밖에서 태풍이 불어오는데도 나라 전체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여기까지 왔다. 오늘은 여기에 종지부가 되는 날이다. 정치·사회적 모든 논란과 불투명성도 함께 종결돼야 한다.



​선고를 하루 앞둔 9일 헌법재판소 주변에서는 탄핵 찬반 집회가 열렸다. 탄핵 반대 측 대변인은 탄핵 각하를 반대한 재판관을 국가반역자로 규정해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걱정스러운 일이다. 탄핵 찬성 쪽에서도 '기각되면 혁명' 같은 말을 반복해왔다. 경찰은 10일 헌재 주변 100m 안쪽에서는 집회를 전면 봉쇄키로 했다. 또 서울 전역에 최상위 경계령인 갑호 비상을 발동키로 했다. 상황이 그만큼 엄중하다.



​그러나 불복 조짐을 경계하고 승복을 주문하는 각계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보수적 성향의 한국기독교단체총연합회, 진보적 성향의 천주교 주교회의가 각각 승복을 주문하는 호소문을 냈다. 불교 조계종도 호소문을 낸 뒤 정당 대표들을 방문했다. 모두 "승복이 민주주의의 출발점" "불복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거리에 나서지 않은 많은 시민들도 같은 뜻일 것이다. 지난 몇 달간 군중의 무절제한 목소리가 국가의 앞날을 위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점점 커져왔다. 그러나 이제 승복 외에는 어떤 다른 길도 존재하지 않는다.


헌재 선고가 있은 뒤 있을 수밖에 없는 한쪽의 상실감을 수습하는 일도 중요하다. 원하는 헌재 선고를 받아 든 사람들의 자중(自重)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자중이란 언행을 신중하게 한다는 뜻이다. 오늘처럼 그것이 필요한 날이 없다. 이 모든 문제를 제도권으로 수렴해야 할 책임이 정치권에 있다.


대선 주자들과 각 정당 지도부는 그 반대 역할만 해왔다. 대선 여론조사 선두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집회 참석을 자제해달라는 많은 주문을 거스르고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촛불 집회에 참석했다. 집회 참석을 그만둔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극성 군중에게 몰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자유한국당 일부 인사들도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국회와 특검을 비난했다.


오늘부터라도 달라져야 한다. 각 정당 대표들과 대선 주자들은 함께 만나 실질적인 수습책을 논의해야 한다. 치유해야 할 상처들이 너무 많이 났다. 오늘 이후에도 자극적인 분열 책동을 펴는 사람이 있으면 대선 주자로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퇴출시켜야 한다.


지금 우리는 탄핵 사태만을 보고 있지만 실은 그보다 더 큰 안보·경제 복합 위기가 눈앞에 닥쳐와 있다. 그동안 북은 중거리탄도미사일 도발을 두 차례 감행했고 중국은 사드 보복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미 트럼프 정권은 북을 향한 선제타격·정권교체까지 포함한 모든 방안 검토에 들어갔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경제도 수출 홀로 버텨나가고 있을 뿐 투자와 내수, 소비 심리, 고용 모두 침체가 깊어지고 있다.


만약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경우라면 두 달 동안 선거라는 소용돌이에 또다시 모든 것이 휩쓸려 들어갈 것이다. 기각되면 또 그에 따른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오늘 헌재는 역사적 법정으로 기록될 것이다. 국민은 탄핵 찬성이든 반대든 입장을 떠나 '역사적 승복'으로 대혼돈을 끝내야 한다. 정치권은 여기에 앞장서 그동안 방치해온 숱한 국가 현안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와 법치가 한 단계 성숙할 수도 있다. 중대한 역사적 갈림길이다. 대한민국이 시험대에 섰다.


2. 시진핑 주석, '스트롱맨' 아닌 존경받는 지도자 되길
북한의 핵·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경북 성주에 설치 중인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에 중국이 반발하면서 한·중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국가 관계에서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경제 보복을 하고 관광객의 발길을 막는 것은 과도한 것으로 중국의 위상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다.



올해는 한·중 양국이 수교한 지 25년 되는 해다. 그 사이 한국에 중국은 최대 교역국, 중국에 한국은 넷째 교역국이 됐다.



1주일에 양국 간 항공기가 900편 오간다. 두 나라 대학에서 공부하는 양국 학생 숫자도 모두 1위다. 이런 관계가 사드 문제 하나로 흔들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중국 처지에서 어쨌든 동북아시아에서 미군 전력이 증강되는 것은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도 사드 배치를 놓고 오랜 기간 고심을 거듭했다. 그러나 북핵과 미사일이 고도화를 거듭해 무방비 상태에 빠진 한국에 사드 배치는 선택 문제가 아니게 됐다. 중국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이것은 사실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취임 후 북한을 방문하지 않고 김정은을 초청하지도 않았다. 2014년 한국을 먼저 방문하면서 중국의 한반도 정책을 합리적, 현실적으로 재조정할 지도자로 기대를 모았다. 한국 대통령이 동맹국 미국의 우려를 무릅쓰고 중국의 항일 전쟁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한 것은 그런 기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결단이었다. 그러나 시 주석의 지난 4년을 돌아보면 한국민의 이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거듭되는 도발과, 그에 따라 동북아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명백한 사실을 앞에 두고도 중국은 양비론을 견지해 사실상 북한을 지원해 왔다. 최근에는 북한이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김정남을 화학무기 VX로 암살한 일까지 감싸고 있다. 말레이시아 장관이 북을 "깡패 국가"로 부른 며칠 뒤에 중국 외교부장이 북한 외교 관리와 나란히 서서 "중·북 우호"를 다짐하는 것을 보면서 깡패 국가와 함께해야 하는 중국의 국익이 과연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은 '북핵 폐기보다 북한 정권 안정이 중요하다'는 한반도 정책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북한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달려가는 21세기에 '완충지대'와 같은 19세기적 지정학 사고방식은 유효하지 않다. 이 시효가 끝난 '완충지대론'이 북한을 동북아의 폭탄으로 만들고 '국제 깡패'로 키워왔다.


시 주석은 마오쩌둥에게 부여됐던 '당 핵심' 칭호를 듣는 지도자다. 중국 정치는 시 주석 1인 체제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시 주석의 지도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 주석이 이 지도력을 실효성도 없는 '북한 완충지대'를 지키는 데 사용하면 국제사회에서 또 한 명의 '스트롱맨'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 주석이 강력한 리더십을 중국의 한반도 고정관념을 깨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발휘하면 세계의 존경받는 지도자 반열에 오를 것이다. 무엇이 시 주석과 중국이 가야 할 길인지는 자명하다.



시진핑 체제는 '낡은 사회주의'와 결별하겠다고 했다. 시 주석이 낡은 지정학 패러다임과도 결별했으면 한다. 중국이 북핵을 폐기시킨다고 북한이 붕괴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핵 폐기 때문이 아니라 비인간적 모순 때문에 결국 무너지게 돼 있다. 통일 한국은 중국에 명백하게 이롭다. 좋은 미·중 관계를 세계에서 가장 원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우리는 시 주석이 새로운 한반도, 새로운 동북아 시대를 여는 결정적 역할을 해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중국을 만든 위대한 정치가로 기록되기를 희망한다.


[중앙일보]

3. 중국 방송에 “사드 철회” 약속한 이재명

유력한 대선 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의 안보관이 도를 넘었다. 지난 두 차례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에 대해 편향된 인식을 드러내더니 이번에 제대로 사고를 쳤다. 그는 7일 중국 최대 방송사인CC-TV에 나와 “사드 배치는 대한민국 국익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원점에서 재검토해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명하다”고 말한 뒤 기자가 ‘대통령이 되면 사드 배치를 철회할 것이냐’고 묻자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이 시장의 발언이 중국과 중국인에게 얼마나 값진 얘기였는지 CC-TV는 이날 하루 동안 네 차례 같은 장면을 방영했다고 한다. 중국 기자와의 인터뷰는 전날 이 시장이 자기의 대선 캠프에서 주최한 ‘전국 사드 피해 상인 간담회’에서 이뤄졌다.

사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1953년)과 행정협정(SOFA·1966년)에 따라 양국 정부가 합의하고, 이미 장비 일부가 오산 미군기지에 도착해 규정된 절차에 따라 배치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다.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 위협에 주한미군이 자기들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방어 무기다. 만일 한국이 이를 거부하면 6·25전쟁 이래 60여 년간 안보와 번영의 기반이었던 한·미 동맹 체제가 깨질 위험이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안보를 돕기 위해 와 있는 주한 미군이 자기 방어를 위한 무기조차 한국인의 반대로 들여놓지 못한다면 그들이 한국 땅을 떠난다 해도 붙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뻔히 예견됨에도 이재명 시장이 중국 방송에 나가 “사드 철회”를 약속한 것은 어이가 없다. 설사 그가 현직 대통령이라 해도 역사적·문화적·지정학적 뿌리가 깊은 한·미 동맹을 그렇게 쉽게 뒤흔들어선 안 된다. 이 시장의 사드 철회론은 그가 사드를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미의 자위적 수단’으로 보지 않고 ‘미국의 대륙 봉쇄 전략에 한국이 첨병으로 동원됐다’는 친중·반미적 안보관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친중·반미 안보관은 야당에 널리 퍼져 있는데, 이런 위험한 사고방식을 정비하지 않고는 차기 대선 때 정권 교체가 어려울 수 있다.


[서울신문]

4. 분열 아닌 통합의 길 가는 역량 보여 주자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의 심리를 마무리 짓고 오늘 오전 선고한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로부터 탄핵소추 의결서를 접수한 지 91일 만에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헌재의 선고 결과는 당장 정치 일정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수밖에 없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파면하면 60일 안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대통령 임기가 1년 남짓 짧아지면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은 물론 ‘국민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탄핵이 기각돼 박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한다 하더라도 탄핵 정국 후유증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촛불’과 ‘태극기’로 쪼개진 민심이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는 상처 난 국민의 마음을 보듬어 다시 통합의 길로 이끄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 우리가 향유하는 민주주의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일본제국주의의 강점과 6·25 전쟁에 이은 남북 분단으로 만신창이가 된 나라를 다시 세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민주주의 선진국들이 놀라워하고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는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국민이 흘린 피의 대가다. 지금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과정에서는 한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뜻을 합쳤던 결과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오늘 헌재 선고에 승복하느냐, 불복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한 단계 도약할 수도, 수십 년 전으로 뒷걸음질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으로 돌아간다. 서울 재동의 헌재 청사 앞에서 벌어지는 탄핵 찬반 진영의 시위는 선고가 다가올수록 과격해지는 양상이다. 어제도 헌재 정문 앞에서는 “탄핵 각하”를 외치는 시민들이, 그 맞은편에서는 “탄핵 인용”을 주장하는 시민들이 돌아가며 1인 시위를 벌였다. 양측은 치열한 설전을 넘어 언제라도 폭력 사태가 벌어질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찬반 진영은 오늘 이곳에서 각각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선고 이후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지금은 힘을 합쳐도 나라를 정상화시키기가 쉽지 않다. 구성원 하나하나의 뼈를 깎는 노력이 더해지더라도 탄핵 소추 이전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게다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사드 보복’ 등 안보 및 경제 환경은 최악이다. 그럼에도 헌법 가치를 부정하며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사태까지 빚어진다면 대한민국호(號)는 결국 항해 불능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5. 이 시국에 외유에 정신 팔린 의원, 공무원

국회의원, 공무원 등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탄핵 정국에도 외유성 해외 출장에 대거 나선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고 있다. 해외 유명 관광지에서 성매매로 국가적 망신을 산 공기업 직원들도 있다.

한 시민단체가 그제 공개한 국회의원들의 해외 출장 현황은 다소 의아하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해 12월 9일 이후 1개월여 동안 무려 64명의 의원이 해외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는 현지 대사관이나 박람회 방문 등 출장 목적에도 맞지 않는 일정에다 출장 후 20일 이내에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조차 아직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온 국민이 혼미한 정국에 불안해할 때 국회의원들은 태연히 외유를 즐긴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이 단체는 보고서를 통해 “국내 정치 상황이 불안한 시점에 해외로 발길을 돌린 국회의원들의 활동이 적정한지 논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공직자들의 일탈 행위도 국민을 실망시켰다. 한 자치단체 공무원 10여명은 업무 관련성도 없으면서 세계문화유산을 벤치마킹하겠다며 중국의 관광지를 다녀왔다가 비난을 샀다. 또 다른 자치단체 공무원은 국제 교류 목적으로 다녀온 5건의 해외 출장에 민간인 14명을 포함시켜 주의 처분을 받기도 했다. 여기에다 해외여행 때 업무 관계자들로부터 경비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받아 챙겨 기소된 공무원과 필리핀의 유명 관광지에서 성매매로 적발돼 망신을 산 공기업 직원들도 있다.

탄핵 정국이라고 해서 국회의원이나 공무원들의 해외 출장이 중단돼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국내외 정국이 불안한 시기에 나간 해외 출장이 외유성이거나 일탈 행동으로 이어졌기에 볼썽사나울 수밖에 없다. 해외 출장은 목적과 일정, 활동 내용 등을 더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 예산이 확보돼 있기 때문에 다녀와야 한다는 식의 해외 출장은 사라져야 한다.

꼭 필요한 해외 출장이라면 다녀온 후에 사용한 경비를 보전받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만큼 배우기 마련이다. 해외 출장에 나서기 전에 관련 국가나 업무에 대한 사전 지식과 정보를 충분히 습득한다면 출장보고서 또한 충실해질 수밖에 없다. 외유성 출장이라는 오해는 자연히 사라진다. 배 밭에서는 갓끈을 고치지 말고, 오이 밭에서는 신발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6. 사법개혁 요구의 싹부터 자르겠다는 대법원

대법원이 사법개혁 방안을 고민하는 내부 논의를 시작부터 묵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이만저만 심각한 일이 아니다. 사법부를 향한 국민 불신은 더 떨어질 데 없이 추락한 실정이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따져 보자면 대법원이 스스로 조직 쇄신에 소매를 걷어도 만시지탄이다. 그런 마당에 내부의 자발적 고민에 지도부가 나서 발목을 잡았다면 묵과하기 어렵다.

현직 판사들이 회원인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최근 전국의 판사들을 대상으로 사법 독립과 법관 인사제도에 관해 익명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지나치게 대법원장에게 권한이 쏠린 현행 대법관 선출 방식, 눈치 보기 자기 검열 분위기를 조장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 등 민감한 설문 항목이 포함됐다. 그러자 대법원장 직속인 법원행정처가 학술 모임을 정비하겠다고 나선 데다 모임 실무를 맡은 판사를 갑자기 인사 조치했다. 법원 내부는 연일 뒤숭숭하다.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현직 부장판사가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폐쇄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조직이 법원과 검찰이다. 그런 울타리 안에서 현직 판사들이 오죽 위기감이 컸으면 그런 설문 작업을 했겠는가. 양 대법원장과 수뇌부가 독려해도 모자랄 일이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 났던 모임의 해당 판사를 부임 첫날 일선 법원으로 복귀시켰다니 누가 봐도 징계성 인사다.

대법원만 지금 딴 나라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온 나라를 혼돈으로 몰아넣은 국정 농단 사태는 따져 보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사법부의 책임이 지대하다. 법과 원칙의 소신으로 똑바로만 서서 권력을 견제했더라도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다. 자성과 쇄신의 목소리가 아래로부터 터져 나오는 한계 상황이라면 사법부의 수장이 눌러 덮을 게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압도적 여론이 특검의 수사 연장을 갈망했던 까닭이 뭐였겠는가. 우리 사법부의 신뢰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급이다. 국정 농단의 몸통들이 제대로 단죄될 수나 있을까 국민은 당장 그 걱정이 크다. 외풍을 살피는 수뇌부의 찍어 누르기 단속에 판사들이 자기 검열에 빠지게 된다면 괜한 걱정도 아닐 것이다.

대법원장의 과도한 권한에 사법부가 관료화하고 법관 독립성이 흔들리는 문제점은 밖에서 봐도 쇄신이 급하다. 사법 불신의 걸림돌을 스스로 돌아보고 치우지 않으면 조만간 국민적 개혁 요구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매일경제]

7. 남녀 임금격차 37%, OECD 최대 불명예 언제까지

우리나라 남녀 임금 격차는 3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이 100만원 받을 때 여성은 63만원밖에 못 받는다는 것이다. 전 세계 평균 남녀 임금 격차가 23%인 것을 감안하면 실로 불명예스러운 수치다.

이 같은 남녀 임금 격차는 고액 임금을 받는 고위직 여성 비율이 적은 탓이다. 출산, 육아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들이 많고, 여성의 일자리 중 40%가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인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이처럼 과도한 격차가 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사회·경제적 차별의 벽이 높다는 의미다. 

오죽하면 '여성의 날'이었던 지난 8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들이 조기퇴근 시위를 벌였겠는가. 한국여성노동자회를 주축으로 구성된 여성 1500여 명은 남녀 임금 격차를 고려할 때 여성들은 오후 3시부터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라며 '3시 스톱'을 외치면서 거리로 나왔다.

대한민국 여성들의 불평등한 삶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통계는 이뿐이 아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유리천장 지수' 최하위로 직장 내 여성 차별이 가장 심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한국의 기업과 공공부문에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미미하다. 올해 30대 그룹 임원 승진자(1517명) 가운데 여성은 37명으로 고작 2.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그룹 전체 직원 중 여성 비중이 24%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견고한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각료 중 여성 장관 비율도 5.9%(2015년 기준)로 OECD 평균(29.3%)에 크게 못 미쳤다.

여성 대통령이 나오면서 여성 차별 문제가 해소될 거라고 전망했지만 여성의 지위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여야 대선주자들은 여성의 날을 맞아 "단계적으로라도 남녀 동수 내각 실현"(문재인), "여성 장관 비율 OECD 평균인 30%로 상향"(안철수), "공공부문 여성 임원 30%로 확대"(안희정) 등의 공약을 쏟아냈다.


여성 표심을 잡기 위한 선거용 말잔치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여성에 대한 사회·경제적 차별은 세계 최저 출산율(1.17명)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등 선진국들은 공공·민간에서 여성 임원 비율을 30~40%까지 높이는 여성 임원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다. 말로만 남녀 평등을 외칠 게 아니라 우리도 여성 임원 할당제 도입을 실천해야 할 때다. 


[매일신문]

8. 포항시의 예산 낭비 악순환, 백서로 남겨 반면교사 삼자

포항시의 여러 시설이 부실 행정 탓에 수십억원의 아까운 예산만 낭비한 채 철거되거나 또다시 보수로 큰돈을 들이는 등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지만 마땅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산 낭비 행정이 되풀이되는 까닭이다.



먼저 2013년 7월 70억원을 들여 개관한 복합체육시설인 만인당(萬人堂)의 사례다. 포항시는 부실 공사로 안전성이 문제가 되자 20억원을 들여 보수키로 했다. 보수해도 추가 하자 발생 예방을 장담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직원 2명이 견책의 징계를 받았지만 포항시는 돈 먹는 하마 시설을 그냥 두고 사용하기로 한 셈이다.



음폐수병합처리시설도 문제다. 2011년 69억7천만원으로 공사를 시작, 2013년 1월부터 가동키로 했지만 법적 보증수질을 못 맞춰 2013년 9월 18억7천만원을 더 들여 시설 개선 공사를 했지만 여전히 부실로 놀리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시는 음폐수처리를 위해 4억6천만원을 지출했고 올해도 5억2천만원을 책정한 채 손을 놓고 있다.



2007년 16억원을 들여 설치해 해마다 7천만~9천만원의 유지관리비가 들어간 영일대해수욕장 고사분수는 잦은 고장 등으로 2016년 12월 7천만원을 들여 철거했다. 그동안 유지관리비로만 6억7천만원을 날렸다. 2013년 15억원으로 지은 드라마 제작용 시설도 여러 문제에다 재난위험 등급 판정을 받아 지난해 6천만원을 들여 없앴다.



이런 예산 낭비가 되풀이되는 것은 무책임 행정 탓이다. 앞 사례에서 만인당 외에는 처벌받은 직원이 없는 것이 증거다. 눈치 보는 단체장의 나약한 의지도 문제다. 책임을 묻지 않아서다. 지방자치 20년의 검은 그림자이다. 끝까지 업체에 책임을 따지지 못하는 포항시의 병폐도 한몫을 한다. 공사를 둘러싼 뭇 의심을 살 만하다.



과제는 분명하다. 부실 행정에 대한 엄정한 책임이다. 선거를 의식 않는 단체장의 의지도 필요하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 않고 반면교사로 삼기 위한 부실 행정의 백서 발간도 있다. 부끄럽지만 포항을 위해서다. 그리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포항은 경북 최대 도시이니 파급효과도 클 것이다.


9. 사드 배치는 속전속결, 지역민 지원 대책은 감감무소식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배치 지역인 성주`김천 주민들을 다독일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지원책과 대책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다가는 성주`김천 지역민들이 희생만 강요당한 채 사드만 떠안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최근 들어 사드 발사대 2기가 반입된 데 이어 이달 중으로 사격통제레이더가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알려졌다. 운용시험과 장비 전개 절차가 끝나는 대로 사드는 작전 운용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해당 지역민들은 여전히 사드 배치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사드 배치를 대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성주군은 정부에 성주국방산업단지, 전파레이더산업집적화단지 조성 등 보상책 마련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김천에서는 반대 여론이 워낙 강해 지원사업 논의조차 금기시되고 있지만, 이곳이 지역구인 이철우 국회의원은 혁신도시 내 대형병원 유치 등 여러 가지 지원을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부는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지역의 요구 사항 대부분이 기획재정부와 통일부 등과 겹쳐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현재로서는 속 시원한 답을 줄 수 없다며 원론적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해 성주가 사드 배치 지역으로 전격 발표됐을 당시 지역민들의 저항과 분노가 상상을 초월하고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자 정부는 사드만 받아주면 무엇이든 해 줄 것 같은 자세를 취한 바 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 반발의 강도가 약해지고 국민적 관심사도 예전 같지 않다고 판단한 것인지 사드 배치 과정에서 성주`김천 주민들의 의견을 구하는 기본적 절차마저 정부는 생략했다. 이래가지고서야 ‘화장실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드는 국가 안보에 불가결한 군사시설이어서 어디에든 들어서야 하지만, 특정 지역의 일방적 희생을 바탕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국가 이익에 부응하기 위해 희생을 감수한 지역에 정부는 상응하는 보상과 지원을 해줘야 한다. 아울러 사드 배치 과정에서 지역민이 받은 상처와 불안감을 위무하는 대책도 세워야 한다.


[이데일리]

10. 미국 금리 인상에 대응책은 있는가

국내 은행들의 대출금리가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조만간 기준금리를 올리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데 따른 당연한 반응이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최근 “고용과 물가 동향에 따라 금리의 추가 조정이 적절하다”며 금리 인상을 예고한 바 있다. 미국 금리가 오를 경우 국내 유입 자금이 높은 금리를 찾아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고, 이를 막으려면 국내 시장금리가 함께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에 속한다.

문제는 가계대출 분야다. 금리가 오른다면 어느 수준까지 이자 부담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다. 이미 정부가 가계대출에 대해 최대한 고삐를 죄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금리 인상 움직임까지 더해져 위험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가 이미 1300조원 규모를 넘어섰다는 점에서도 가계의 이자 부담은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꼽힌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일시적인 조치에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도 우려를 더해준다. 미국 연준이 올해 안으로 기준금리를 3차례 올릴 것이며, 따라서 금리가 현행 0.5~0.75% 수준에서 0.75%포인트 올라갈 것이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당장 내주로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 조치가 내려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러한 움직임이 진작부터 예고돼 왔지만 미리 대응책이 마련되지 못한 것이 잘못이다. 그중에서도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저소득층의 충격이 우려된다.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를 경우 이른바 한계가구의 금융부채가 25조원 급증한다는 게 한국은행의 조사 내용이다. 그중에서도 주택담보 대출이 위험 요인이다. 주택시장이 침체 상태에 빠질수록 위험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우리 경제 여건이 미국 금리 인상에 곧바로 대처하기에는 불확실한 요인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탄핵 결정 반발 움직임에 중국의 사드 보복만 해도 심각한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에 맞춰 금리가 따라 오르는 게 정상이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활동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유일호 경제팀과 이주열 총재가 이끄는 한국은행 간의 긴밀한 정책 공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주요신문칼럼


1. [세계일보][양경미의영화인사이드] 신의 침묵 ‘사일런스’

할리우드에서 일본을 소재로 한 영화는 그동안 많이 제작되었다. ‘쇼군’, ‘라스트 사무라이’… 최근 ‘핵소고지’까지 그렇다.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많은 이유는 선진화된 경제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이 지닌 독특한 문화에 있다. 지난 28일 개봉한 ‘사일런스’는 일본에서의 천주교 박해를 다룬다.

‘사일런스’는 선교사 페레이라 신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침묵’이 원작이다. 17세기 일본에서 천주교 박해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포르투갈 예수회 신부 로드리게스(앤드루 가필드)와 가루페(에덤 드라이버)는 배교한 스승 페레이라(리암 니슨)를 찾아 일본으로 간다. 그러나 그들 또한 강한 탄압으로 결국 배교하거나 사망하게 되면서 고통에 침묵하는 신에 대해 깊이 고뇌한다.



일본이 지닌 문화적 특성이 잘 드러난다. 어느 나라나 자기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중시하고 보존한다. 그러나 일본은 서구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재창조했다. 반면 정신을 지배하는 종교와 같은 정신문화의 유입은 철저히 차단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상인들의 교역을 통해 천주교가 전파되자 당시 일본 지배층은 천주교를 일본의 정신을 병들게 하는 위험요소로 간주해 종교를 탄압한 것이다.



16세기 일본 막부가 단행한 박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영화에서 보듯이 일본 위정자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집요하고 체계적으로 천주교를 박해했을 뿐 아니라 신부들 또한 배교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지금도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도의 비중은 지극히 낮다.

감독의 신앙에 대한 열정과 고민이 담겨 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여러 차례 “최종 목표는 소설 ‘침묵’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1988년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그린 ‘예수 최후의 유혹’ 이후 ‘침묵’을 각색하기까지 15년, 작품을 완성하는 데 30년이 걸렸다.



영화는 신자들이 고문과 학살을 당하는 모습, 간절히 기도하지만 침묵하는 신, 한 인간의 종교적 신념이 뿌리째 흔들리는 과정을 차분하고 집요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후보에 오를 만큼 영상미가 빼어나며 배우들의 연기 또한 훌륭하다. 할리우드 유명배우들은 물론 쓰카모토 신야를 비롯한 일본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열연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숙연해진다. 무엇이 진정한 신앙이며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고난의 순간, 신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의 배교로 신도들을 살리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신부 로드리게스의 딜레마는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강력한 국가주의도 엿볼 수 있다. 영화에서 신도들과 주민들은 관료의 지시나 국가의 권위에 대해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침묵한다. 이러한 일본의 국가주의는 ‘쇼군’이나 ‘라스트 사무라이’, ‘핵소고지’에서도 잘 나타난다. 종교영화인 ‘사일런스’를 보면서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에서도 최근 강화되고 있는 국가주의 성향이 걱정되는 것은 괜한 기우일까.



2. [경향신문][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국밥과 토렴

<흥부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자식들이 돌아가며 먹고 싶은 걸 말하는데, 한 녀석이 이런다. “고깃국에 이밥이나 실컷 말아먹었으면.” 피자나 치킨, 짜장면이 없던 시절이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없는 이에게 고깃국은 대단한 음식이었을 테다. 

돈 받고 파는 요식(料食) 중에 고깃국, 즉 국밥처럼 실감나는 음식은 드물었다. 김치나 된장은 사먹는다는 느낌이 적다. 밖에서 돈 내고 먹는다고 하면 짜장면 말고는 국밥이 오랫동안 주인공이었다. 

국밥은 누구나 한 술 뜰 수 있는 음식이기도 했다. 국밥에는 찬이 적다. 국에 밥을 말아내고 찬 없이 빨리 싸게 먹는 형식으로 발전했다. 조선후기에 김홍도가 그린 주막 풍경에도 뚝배기를 기울여가며 국밥을 퍼넣는 장정의 모습이 나온다. 상업이 발달하지 않아 유럽에 비해 레스토랑의 역사가 짧은 조선에서 주막은 그나마 ‘돈 주고 사먹는 외식’의 한 역사를 이루어 왔던 것이다. 

그 주막의 메인 메뉴는 역시 국밥이었다. 국밥은 어지간한 장시가 있는 곳에서는 다 성행했다. 사람이 모이면 허기가 지고, 싸게 한 그릇 먹기에 국밥만 한 게 없었다. 나중에 미국 밀가루가 값싸게 풀리기 전에는 역시 국밥이 즉석 음식의 왕이었다. 장꾼들이 먹는 음식이 국밥이요, 한번에 많이 끓여서 빨리 낼 수 있는 음식도 국밥이었다.

토렴도 그렇게 발달했다. 미리 썰어둔 밥과 고기를 따뜻하게 데우는 기술, 건더기가 든 뚝배기에 펄펄 끓는 국물을 부었다 내렸다 하면서 딱 먹기 좋은 온도에 맞추어내는 기술이다. 토렴은 전기보온밥솥이 없던 때, 밥을 데우는 데 최적의 방법이었다. 

밥풀에서 전분이 풀려서 국물이 탁해지는 걸 막아주는 것도 토렴이었다. 그렇게 상에 내면 차갑던 밥이 입에서 부드럽게 풀리면서 적당한 온도에서 씹혔다. 질이 좋지 않은 밥도 먹어낼 수 있는 마술이기도 했다.



국밥은 이렇게 본디 토렴과 한 뚝배기를 이루면서 ‘패스트푸드’로 민중에 자리 잡았다. 토렴한 밥과 국은 딱 먹기 좋은 온도였고, 일에 바쁘고 허기진 민중들이 빨리 먹어낼 수 있었다. 이제 토렴하는 집을 찾는 건, 어지간히 헤아리지 않으면 어렵다. 펄펄 끓는 뚝배기가 주력이다. 언제나 따끈한 밥이 있는데, 굳이 밥을 식혀 토렴할 일이 없기도 하지만, 토렴이 결국 그놈의 ‘인건비’가 되기 때문이다. 식당 기술자들이 없어서 토렴을 하라고도 못한다. 국만 뜨고, 퍼 둔 밥 꺼내주면 될 일을 누가 펄펄 끓는 국솥에 뚝배기 기울여 손에 화상 입어가며 토렴하겠는가.

토렴 잘하기로 유명했던 여러 오래된 국밥집들이 점차 토렴을 버리고 있다. 손님들도 뜨거운 밥을 따로 내주는 걸 좋아하는 이가 많다고 한다. 

토렴에는 본디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도 있다. 음식의 온도가 적당(섭씨 80도 미만)해서 입이나 식도의 화상을 예방할 수 있다. 암 예방수칙에 뜨거운 음식을 조심하라는 건 의사들의 공식적인 의견이기도 하다. 토렴하는 국밥집을 응원하고 싶다.



3. [매일신문][야고부] 올랭피아의 기억

“세상에! 저런 그림이 전시회에 걸리다니….”



1865년 파리 시민들은 살롱전에 전시된 그림 한 점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작품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Olympia)였는데, 옷을 벗은 창녀가 비스듬히 누워 있고 그 뒤에는 흑인 하녀가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림 속의 모델은 관객을 쏘아보면서 마치 “나는 창녀인데, 그럼 너는?”이라고 도발적으로 묻는 듯했다.



당시에도 여성 누드가 많이 등장하긴 했지만, 신화와 매혹적인 이야기의 여주인공 같은 ‘환상 속의 여인’만 그려졌다. ‘성처녀로의 순결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예술작품 속의 누드는 비인격화되어야 하며, 특정 인물을 생각나게 해서는 안 된다.’ 19세기의 미적 개념으로 볼 때 비너스나 요정도 아니고, 창녀가 모델로 등장했으니 경천동지할 사건일 수밖에 없다. 전통과 관습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다. 미술사에서 이만큼 대중의 조롱과 비난을 받은 작품도 없다.



재미있는 것은 주말이면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작품을 가까이에서 보기 불가능할 지경이었다는 점이다. 관람객의 분노로 그림이 훼손될까 봐 경찰관 2명이 지킬 정도였다. 세상의 비웃음과 야유에도 불구하고, 흥행 측면에서는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 셈이다. 

   
화가로서의 성공을 꿈꾸던 마네는 평생 좌절감과 실의에 빠져 허덕댔다. 1883년 마네가 죽을 때까지 ‘올랭피아’는 ‘역겨운’ 그림일 뿐이었고, 1890년에 들어서야 모네 등 동료 화가들의 도움으로 격이 낮은 뤽상부르 미술관의 귀퉁이를 겨우 차지했다. 1907년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다가 1986년 오르세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길 때에는 ‘세계 최고의 그림’이 돼 있었다.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이구영 씨의 ‘더러운 잠’을 둘러싼 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를 희화화하려는 목적이었는데, 그 결과는 ‘표현의 자유’ ‘성 상품화’ ‘좌파의 책동’ ‘사생활 보호’ 등 온갖 파생적인 논쟁으로 확대됐다. 며칠 전에는 표창원 의원의 부인을 덧씌운 현수막이 걸리는, 웃지 못할 사건까지 벌어졌다.



‘더러운 잠’은 예술 작품이라기보다는 시사적인 패러디물일 뿐이어서 그렇게 치열하게 싸울 대상이 되는지 의아스럽다. 한국에서 정치는 무엇이든 잡아먹는 블랙홀이나 다름없기에 예술이나 표현의 자유와는 공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정치 현실 못지않게 씁쓸한 풍경이다.



4. [서울신문][이재무의 오솔길] 삶

모진 겨울 넘기고 나오셨구나/ 서울역 앞 몸에 좋은 약초 파는 할아버지

그 사이 공손하던 허리가 땅에 더 가까워지셨구나(이시영, 시, ‘삶’, 전문)



삶이란 무엇인가. 삶을 과학적 개념으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감정과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을 수치나 물량의 척도로 계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스펙트럼이 넓고 변화무쌍한 인간 삶에 대해 누구도 함부로 그 의미를 확정적으로 규정짓거나 정의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삶의 의미와 가치에 유클리드 기하학 같은 공준을 적용할 수 없으며 절대성과 객관성을 부여할 수 없다.



그것은 저마다 타고난 유전적 기질과 주어진 처지와 환경,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경험의 총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대성과 차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삶에서 절대성과 객관성을 벗어날 수 없는 단 하나의 예외적 사실이 있다. 그것은 누구나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게 된다는 사실이다.

삶은 유한하고 죽음은 영원하다. 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누구라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삶이 끝나는 자리에서 죽음이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의 근대적 사유 체계인 이원론적 세계관은 삶과 죽음을 분리해 사고하지만 유서 깊은 동양적 사유 체계, 즉 일원론적 세계관에 따르면 삶과 죽음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대립 쌍이 아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활과 리라’의 저자, 남미의 작고 시인 옥타비오 파스에 따르면 삶과 죽음은 유기체의 한 몸 안에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고 있다. 삶이 끝나면 죽음도 끝난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감과 동시에 죽어 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 우리는 날마다 살아가지만 날마다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첨단과학이 발달해도 이것만은 부정할 수 없고 물리, 수학에 능한 이라 할지라도 삶에서 죽음을 따로 분리해 내거나 솎아 낼 수는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관념론자들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나날의 일상 속에서 죽음을 살면서(경험하면서) 시나브로 죽음(자연)에 다가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삶의 진실을 도덕학으로 규명하는 일 또한 명쾌하지 않을뿐더러 옳은 일도 아니다.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윤리와 도덕은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윤리는 공공적 진리를 추구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서 공공적 실천을 통해서 구현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반면에 도덕은 개인이 속한 사회의 상규나 관습”(김명인)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윤리와 도덕은 서로 대립하고 갈등할 수 있다. 그가 말의 온전한 의미에서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이라면 현실 너머를 꿈꾸는 자로서 도덕에 얽매이거나 안주하는 것이 아닌 윤리적 태도와 실천으로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그가 속한 사회의 전통과 관습이 낡고 고루하다면 이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삶의 진실을 구현하는 데 종교학도 적절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종교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의 방편으로 추구될 수는 있다. 하지만 종교는 인간의 제 갈등을 신의 논리로 수렴해 각 개인이 처한 실존적 정황과 세목을 추상화함으로써 삶의 진실을 굴절 또는 왜곡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서울역은 다종다양한 한국적 삶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시적 공간이다. 모진 겨울을 넘기고 나온, 허리가 땅에 더 가까워진 할아버지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몸에 좋은 약초를 팔고 있다. 죽음이란 땅의 중력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는 언젠가 삶과 함께해 온 죽음을 보내고 영원한 안식처인 자연으로 귀환할 것이다. 하지만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주인공이 보이고 있는 죽음에 대한 예민한 자의식과는 달리 시 속 노인은 죽음에 대한 의식이 없다. 시 속의 노인은 삶과 죽음을 분별하지 않는 일원론적 세계를 보여 준다.

우리는 위 단시를 통해 과학과 도덕과 종교가 규명하지 못한 삶의 구체적 진실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다. 새삼 생각하노니 문학(시)이란, 삶이란 얼마나 넓고도 깊은 것인가.



5. [동아일보][광화문에서/이동영] 소주 7800병 파는 나라

한 대학 총학생회가 신입생 환영행사에 쓰겠다며 소주 7800병을 구입했다. 단일 행사에 이렇게 많은 소주를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마실 사람이 1700명이란 점을 감안해도 1인당 5병에 가까운 수치다. 술을 마실 다수는 몇 주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학 신입생이다. 여성이나 종교 신념 또는 체질적으로 안 마시는 사람을 감안한다면 두 번의 밤을 보내는 동안 실제 술잔 잡는 사람은 소주 8병 이상을 들이켠다는 의미다.

암 전문의들은 한결같이 “이 정도면 치사량”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전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1군 발암요인’은 음주다. 음주는 간암 유방암 대장암 식도암 구강암 인후두암 직장암을 직접적으로 유발하는 요인이란 뜻이다.

담배의 독성과 다를 바 없다. 담배와 소주를 나란히 놓고 보자. 담배에는 섬뜩한 경고 그림과 문구가 들어가 있다. 담배 자체가 독성물질이니 거기에 ‘순하다’ ‘마일드’ 같은 멋진 문구로 소비자를 유혹하지 못하게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주에는 청정함을 느끼도록 참이슬, 순하리, 처음처럼 같은 상표가 쓰이고 있다. 건강음료도 아닌데 ‘천연암반수 100%’라는 문구까지 쓴다. 아이유, 수지 같은 인기 연예인이 광고 모델일 뿐 아니라 소주병 라벨과 판촉용 소주잔 아래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톱클래스 연예인이 흥겹게 파티하면서 술 마시는 광고 영상을 보면 누구나 한잔 들이켜고 싶은 충동이 일지 않겠나. 돈보다 국민 건강을 생각하는 연예인이라면 최소한 술 광고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란 게 내 생각이다.

이 나라에선 누가 어디서 얼마나 마시는지 상관없이 얼마든 술을 살 수 있다. 아무런 규제가 없는 탓이다. 음주의 나라로 알고 있는 러시아에서도 오후 9시 이후에는 마트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 한국에선 언제 어디서든 소주에서 양주까지 살 수 있고 길거리든 지하철 안에서든 술병을 기울여도, 운행하는 차 안에서 동승자가 술을 마셔도 이를 막을 근거가 없다.



일정 도수의 주류는 허가받은 전문 업소에서만 판매하게 하고, 공공장소에선 빈 술병만 들고 있어도 처벌하는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렇게 관대하다 보니 술에 취해 남에게 해를 입히는 뉴스는 매일 숱하게 쏟아진다. 술에 취해 살인을 저지르고 불을 지르고 난동을 부리거나 운전대를 잡고 질주하다 일가족의 목숨을 앗아간다.



시간과 장소와 양을 적절히 규제해 과하지 않게 막는 장치가 나오지 않는다면 ‘만취 상태에서 … 저질렀다’는 뉴스는 그치지 않을 게 뻔하다. 지난해 국민 한 사람이 마신 소주는 97병 정도라고 한다. 매주 2병 가까운 양이다.

담배 못지않은 폐해가 분명하게 확인되는데 왜 비슷한 수준의 규제를 내놓지 않느냐고 정부 당국자에게 물었다. 술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상 규제를 신설하기 쉽지 않다는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자, 내 잔 받게”라며 자신의 잔에 술을 따라 남에게 주는 이 말이 친근감과 신뢰를 상징하는 사회이니 그의 푸념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소주를 담배 수준으로 규제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온 국민이 그 부작용을 뉴스로 간접 체험할 뿐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목격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 정도라면 사회 분위기를 말하며 강력한 드라이브 거는 일에 주저하는 정부 당국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놓지 않을 수 없다. ‘서민의 술’이라든가 ‘영세상인의 주 수입원’이라는 말도 중요하지만 어느 대학의 소주 7800병 뉴스를 듣고 나니 이젠 소주 명칭과 광고, 판매를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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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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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국민 6명 숨진 가해 선박 중국인 선장, 그대로 풀어주는 나라

포항 앞바다에서 발생한 선박 충돌사고로 선원 6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는데도 정작 사고를 일으킨 홍콩상선의 선장 등 중국인 3명은 벌금만 내고 중국으로 풀려났다. 수사당국은 국제협약 및 관련 국내법 때문에 신병을 더 이상 잡아둘 수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중국 눈치보기 저자세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포항 앞바다 공해상에서 채낚기 어선인 주영호와 충돌해 6명의 인명 피해를 낸 홍콩선적 상선 선장과 선원들이 지난달 말 출국정지 해제와 동시에 중국 등으로 떠났다. 이들이 대형사고를 내고도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수사당국이 형법(과실치사)이 아니라 해양환경관리법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선박 충돌 사고로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기름 오염을 유발시킨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결국 중국인 3명은 구속을 면했고 3천만원씩 총 1억2천만원의 벌금만 냄으로써 출국금지에서 풀려났다. 반면, 주영호의 선장 박모 씨는 구속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포항 앞바다에서 대형 인명 사고가 발생했는데 발생 지점이 공해상이라는 이유로 외국인 가해자가 풀려나고 내국인이 구속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고 국민 정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 수사당국이 요청한 ‘형사 관할권 주장 여부’에 대해 중국 측이 회신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답변도 듣지 않은 채 출국금지를 풀어준 것은 절차상으로 문제 소지가 있다. 해경 관계자 전언에 의하면 그 와중에 우리 외교부 측은 “빨리 풀어주라”고 수사당국에 전화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국제규약과 실정법 때문에 구속 수사에 무리가 있었다는 당국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대한 우리 수사기관의 강력한 처벌 의지가 과연 있었던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중국과의 외교 마찰을 의식한 눈치보기 수사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중국인들의 불법 싹쓸이 조업과 단속 해경에 대한 폭력 행사로 서해와 동해가 무법천지가 되다시피하는 판국이다. 중국인들의 무례 못지않게 우리 국민 자존심에 더 큰 상처를 주고 국격도 떨어뜨리는 것은 당국의 소극적 자세일 수 있다.



2. 빗나간 대학 신입생 환영 행사, 창조적 파괴 아쉽다

대학 입학철을 맞아 대구경북의 대학에서 다양한 신입생 환영 행사가 열리고 있으나 희망보다 걱정이 앞서는 불미스러운 일이 잇따르고 있다. 새 출발과 각오를 다짐하며 학교 선후배 간 교류, 대화와 소통의 시간으로 도움을 주려는 행사의 당초 취지는 퇴색되고 폐해만 부각되고 있다. 신입생 환영 행사의 무용론이 나올 만하다.



대구의 한 대학에서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두 시간 동안 벌을 세우고 밥을 먹게 한다거나 문을 잠그고 휴대폰까지 끄도록 했다고 한다. 다른 대학에서는 신입생들에게 술자리 참석과 장기자랑 강요를 비롯한 부당한 일들이 일어나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면식이라는 그럴듯한 명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일도 있었다. 포스텍에서는 지난달 27일 MT 행사에서 선배 학생이 신입 여학생 2명을 성폭행, 성추행한 사건으로 가해 학생이 구속됐다. 이에 앞서 지난달 22일 교통사고로 1명이 숨지고 44명이 부상을 입은 구미의 금오공대 신입생 설명회 행사 때는 소주와 맥주 등 7천 병이 넘는 술을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신입생에 대한 배려 실종이다. 신입생은 대학에서의 새 삶의 설계에 부푼 새내기들이다. 낯선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이 교차하는 긴장의 순간을 맞고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살뜰한 배려의 길라잡이가 필요하지 주최 측의 일방적인 주입이나 강요가 필요하지 않다. 뼈아픈 자성이 필요할 때다.



또 지나친 술의 강요다. 술이 낯선 선후배 간의 서먹함이나 어색함을 덜어줄 수 있을지라도 결코 만족스럽지 않음은 수많은 선례들이 증명한다. 그럼에도 금오공대 사례처럼 대학 술 문화는 여전히 논란이다. 옛 사람의 구태를 젊은 세대들이 닮는 꼴이다. 행사를 마련하는 선배 세대의 낡은 틀을 깨는 창조적인 파괴가 절실한 까닭이다. 학교 당국의 방임은 더욱 문제이다. 책임이 담보되지 않는 이런 행사는 자제시키거나 세심한 관심이 마땅하다. 대학의 대학다움, 대학생의 대학생다움을 위해 말이다.



[서울신문]

3. 급박한 기업활동 위한 한시적 출금 해제 검토를

재계 총수의 출국 금지가 장기화하면 기업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점은 예견됐던 바다. 지난 연말 박영수 특검팀이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사건과 관련해 삼성과 롯데, SK 총수의 출국을 금지한 것은 진실 규명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그럼에도 총수의 발이 국내에 묶여 긴급한 대외 현안을 챙기지 못하는 현실은 안타깝다.

최태원 SK 회장은 세계 반도체 업계의 판도를 바꿀 일본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낸드플래시 시장 1위는 삼성, 2위는 도시바다. 세계 5위인 SK하이닉스가 인수하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D램에 이어 낸드플래시까지 장악할 수 있다. 도시바 반도체는 인수 가격이 25조원에 달해 단독 인수가 어렵다.



그러나 해외 파트너들이 초대형 투자 결정권은 최 회장이 가졌다고 믿는 까닭에 공동전선 구축이 여의치 않다. 신동빈 회장도 롯데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의 직격탄을 맞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중국 롯데마트의 절반인 50여곳이 영업정지를 당했지만 현지를 찾아 사태를 수습할 길이 없다고 한다.

하루라도 빨리 조사를 끝내 원활한 기업활동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모르고, 그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총수들의 출국 금지를 무조건 해제하라고 요구할 수만은 없다. 형평성 측면에서도 시비의 소지가 있다. 다만 급박한 경영 상황에 직면한 총수들에게는 최대한 융통성을 발휘해 한시적으로나 풀어 주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



법률상으로도 출국 금지를 일시 해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당사자가 수사기관에 출국금지 해제를 요청하고, 수사기관이 그 사유가 타당한 것으로 인정하면 법무부 장관에게 해제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수사기관이 귀국한 당사자에게 다시 출국금지를 하면 된다.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지만 한국 경제는 미국 금리 인상과 중국의 사드 보복, 고용 없는 저성장이란 삼중고를 겪고 있다. 검찰은 대기업이 사업 목적상 총수의 해외 방문이 꼭 필요하다는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면 일시적으로라도 출국 금지를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길 바란다. 수사에 차질을 빚지 않는 범위에서 총수들이 경제 회생에 일조하도록 하는 것은 실보다 득이 클 것이다.



4. 탄핵당한 대통령의 ‘사저 정치’ 바람직하지 않다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축으로 한 정치적 흐름이 가시화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간 직후 박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한 자유한국당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의원들이 이른바 친박 보좌 그룹을 만든 것이다. 총괄·정무·법률·공보·수행 등 구체적인 역할까지 분담하고 있다.



해당 의원들은 인간적 정리에 따른 자발적인 봉사라고 하지만 탄핵을 반대하지 않았다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시대착오적인 발상인 까닭에서다. 친박계 의원들은 박 전 대통령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며 사실상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메시지를 내놓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좌 그룹을 구성한 데다 “역사적 판결은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며 탄핵 자체를 깡그리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으로 파면된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당사자다. 그럼에도 국민의 세비를 받은 의원들의 보좌 그룹을 묵인한다면 정치 생명의 연장을 위해 패거리 정치의 작태를 복원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사저 정치’의 출발이다. 헌재의 탄핵 심판 이후 국정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가능한 한 분열을 치유하며 통합으로 나가길 바라는 국민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친박계 핵심 의원들의 후안무치 역시 도를 넘었다. 탄핵과 동시에 폐족(廢族·큰 죄를 지어 벼슬할 수 없는 족속)을 선언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박 전 대통령을 내세워 정치적 입지를 지탱하고 지지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얄팍한 꼼수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90%가 탄핵에 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은 것이나 다름없다.

박 전 대통령이 한국 정치사에서 적잖은 족적을 남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라는 식의 사저 정치를 구상한다면 일찌감치 미몽에서 깨어나야 마땅하다. 소위 ‘삼성동계’는 정당 정치를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과도 전혀 맞지 않는다. 정치의 역사를 되돌리는 꼴이다.



상도동계나 동교동계는 공개적인 정치 활동을 극도로 탄압하던 군사정권 시절의 부산물로 등장했다. 비공개적인 정치 무대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합법적인 절차와 공정한 심판에 의해 탄핵된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박 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헌재 결정을 수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 대통령”이라고 강조했던 과거 발언대로 헌재 결정에 승복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는 게 순리다. ‘진실’을 밝히지 못해 억울하다면 검찰의 수사에 당당하게 협조해 풀어 가야 한다. ‘보좌 그룹’을 중심으로 한 정치 세력화의 시도 자체를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지층을 겨냥한 정치적 언행을 삼가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박 전 대통령 자신에 따른 혼란이 아닌 통합이다.



[조선일보]

5.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하는 사태​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오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일정을 통보한다. 소환은 이르면 며칠 안이 될 것이라고 한다. 수하들이 줄줄이 구속 기소돼 재판이 진행되고 있으니 중심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의 출두는 피할 수 없는 사법적 절차이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과 특검 조사엔 응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소환에 응할 것으로 본다.



강제 수사를 해야 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 하루빨리 나라가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국민의 희망과도 배치된다. 박 전 대통령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한 만큼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을 검찰에 나가 적극적으로 밝히는 것이 옳다.



헌재의 파면은 774억원 미르·K재단 관련이 주된 사유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재단 의사결정을 함께 했고 두 재단은 최의 사익 추구에 이용됐을 뿐이라고 했다. 정작 돈을 낸 기업들은 전혀 관여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은 왜 최순실 같은 무자격자가 두 재단을 장악하게 했는지 설명한 적이 없다. 이 부분은 직권남용 여부와 직결된다. 헌재는 '삼성 뇌물 수수' 문제는 판단하지 않았으나 이 문제도 규명돼야 한다.



검찰 수사를 받은 다른 전직 대통령들의 전례에 비춰볼 때 박 전 대통령은 출두 시 포토라인에 설 가능성이 크다. 이번이 그렇게 되는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다. 검찰은 수사를 하더라도 예우를 갖추고 최대한 신속하게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대다수 국민은 수개월간 끌어온 탄핵 국면에 지칠 대로 지쳐 있다. 박 전 대통령 소환 조사가 이 모든 것의 종결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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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선 주자들 '私교육 고통 줄이기' 공약으로 승부를

지난해 초·중·고교생 1인당 사(私)교육비가 월평균 25만6000원인 것으로 교육부가 집계했다. 1인당 사교육비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24만2000원에서 23만6000원으로 줄었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 4년 동안은 계속 늘어왔다. 사회 전체 사교육비도 학령인구 감소 탓에 꾸준히 감소 추세였지만 지난해 7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 18조1000억원이 됐다. 월 소득 700만원 이상 가구의 사교육비(한 달 44만3000원)는 소득 100만원 이하 가정(5만원)의 8.8배로 나타났다.


어느 정권이든 '사교육비 대책'을 발표해왔다. 박근혜 정부는 수능을 쉽게 출제하고, 수능 영어 과목을 절대평가로 바꾸는 걸 추진해왔다. 선행(先行) 학습 금지법도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에선 EBS-수능 연계 정책과 학원 시간 규제, 노무현 정부에선 수능 등급제 도입 등이 시행됐다. 그러나 대부분 효과가 없거나 미미했다. 잦은 교육제도 변경에 발 빠르게 대응한 사교육 업체만 돈을 벌었다. 이런 악순환이 수십 년 반복됐다.


사교육비 부담은 중산층의 재산 축적을 막고 이것이 노후 불안과 내수 위축으로 이어져 결국 저출산이란 악순환을 낳는다. 아이들을 암기식 문제 풀이 기계로 만들어 학문과 산업 발전, 국가 경쟁력 전체에 막대한 해악까지 끼치고 있다.


이번 대선에 나온 후보들도 다양한 사교육 대책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국공립대 공동 학위제, 안철수 후보는 교육부 폐지와 학제 개편, 남경필 후보는 사교육 전면 폐지 국민투표, 유승민 후보는 자사고·외고 폐지를 공약했다. 하지만 '이거면 되겠다' 싶은 정책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사교육 과열은 몇 가지 소소한 정책으로 가라앉히기 힘든 문제다. 학벌 사회 풍토와 기업들 인재 충원 방식을 동시에 바꿔야만 없어진다. 사교육 문제 해결의 뚜렷한 비전을 제시해주는 후보가 있다면 지지해주겠다는 유권자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이번 대선은 어떤 교육정책으로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것인지를 놓고 후보들과 유권자들이 함께 고민하고 결단을 내리는 선거가 돼야 한다.


[중앙일보]

7. 대선일 지정 머뭇거릴 이유가 뭔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제 주재한 국무회의엔 대선일 지정 안건이 상정되지 않았다. 당연히 19대 대통령 선거일은 아직 미확정 상태다. 선거 관련 부처에선 ‘5월 9일 대선’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인데도 정부는 뚜렷한 이유조차 밝히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 여부를 확정하지 못해 대선일 지정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선거일 공고 후 출마 입장을 밝히면 심판이 선수로 뛴다는 공정성 시비가 커질 수 있어서란 것이다. 총리실 측은 “관계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대선일 지정을 위한 법정시한(3월 20일)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있긴 하다. 하지만 결정을 미룰 타당한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선거일 확정 지연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닷새나 지났다. 대선까지 남은 최대 일수는 55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권은 여전히 탄핵 후유증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불확실한 대선 일정이 박 전 대통령과 친박계의 불복 움직임을 강화시키고 대선을 미래보다 과거에 더욱 얽매이게 하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오늘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날짜를 통보할 예정이어서 향후 정국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살얼음판이다. 정부는 무엇보다 정치적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대선일 확정은 그 출발선이다.

특히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입장을 하루속히 밝혀야 한다. 정부가 대선일을 확정하지 못하는 게 그의 대선 출마 여부 때문이란 말이 나도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애매한 태도를 보이며 정국 불확실성을 키우는 건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출마든 불출마든 분명한 입장을 당장 국민 앞에 밝히는 게 도리다. 만약 출마하는 쪽이라면 권한대행 사퇴가 당연하다.


가뜩이나 아슬아슬한 선거판에 선거법 위반 논란까지 불쏘시개가 될 경우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에 빠져들 수도 있다.


[매일경제]

8. 대기업 총수 출국금지 해제해야 마땅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탄핵정국이 일단락됐지만 경제 불확실성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미국 금리 인상 등 널려 있는 대외 악재를 넘기 위해 기업들마다 악전고투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에게 내려진 출국금지 조치는 석 달째 해제되지 않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90일 수사가 지난달 28일 종료됐는데도 해외 출장이 잦은 이들의 발을 묶어 두는 것은 과도하다.

롯데그룹은 사드 용지 제공 이후 중국 사업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롯데마트 영업 정지, 롯데제과 초콜릿공장 중단, 불매운동 확산 등 중국으로부터 융단폭격식 보복을 받고 있지만 신 회장이 출국금지 족쇄에 묶여 있다 보니 중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해외면세점 인수·합병(M&A) 추진 역시 동력이 떨어진 상태다. 신 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자주 오가는 등 통상 1년의 3분의 1을 해외에서 보냈는데 글로벌 경영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SK도 총수의 출국금지가 해외 경영과 기업 M&A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25조원 규모 도시바 반도체 사업 인수에 나서고, SK이노베이션이 2조원 규모의 중국 석유회사 상하이세코 지분(50%)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총수의 행동반경이 제한되니 협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SK플래닛의 중국 투자 유치 무산 위기,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보류 등 현안이 많아 최 회장의 중국 현장 방문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오는 23~26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리는 보아오 포럼 참석도 불가능하다.

도주 위험이 없는 대기업 총수들의 출국금지 장기화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도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문에서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유'를 강조하지 않았던가. 출국금지 해제야말로 자유로운 경영을 보장하는 것이다. 일자리 부족, 투자 부진의 골이 깊어 기업 총수들을 뛸 수 있게 해줘도 경제가 살아날까 말까다. 검찰은 서둘러 출국금지를 해제해 기업 글로벌 경영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세계일보]

9. 박 전 대통령 오늘 소환통보… 검찰, 진실규명 최선 다하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다고 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어제 “박 전 대통령 소환 날짜를 내일(15일) 정해서 통보하겠다”고 밝혔다. 조사 때 신분에 대해선 “피의자로 입건돼 있으니 신분은 피의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르면 이번 주 검찰 포토라인에 피의자 신분으로 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찰청에 나와 포토라인에 섰다. 박 전 대통령이 출두하면 노태우·전두환·노 전 대통령에 이어 네 번째로 검찰 수사를 받는 전직 대통령이 된다.

검찰은 헌재 결정 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착수 시점을 놓고 고심해 왔다. 두 달 뒤 치러질 조기 대선에 대한 정치적 파급력이 부담이었으나 신속한 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을 의식해 속전속결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기 전 수사를 끝내는 게 바람직하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조사 때 전직 대통령 예우 등을 감안해 서면질의서를 보내고 답변서를 받은 뒤 소환 일자를 통보했다. 이번에 곧바로 소환 일자를 통보하는 것은 신속 수사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본격화한 지난해 10월 이후 검찰과 특검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사를 계속 회피해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수사의 편파성, ‘일정 유출’ 의혹 등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했다.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도 무산시켰다. 당시엔 박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이라 그럴 수 있었으나 이젠 불소추 특권이 사라진 자연인 신분인 만큼 출석을 피하기 어렵다. 박 전 대통령은 명멱백백하게 진실이 규명될 수 있도록 검찰의 조사에 적극 응해야 한다.

국민들은 국정농단사건에 최씨가 어느 정도 개입했고 이 과정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궁금해 한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의 모금과 운영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철저히 밝혀야 한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실체 규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역사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결과물을 내놔야 할 것이다. 어떤 정치적 의도나 외압에 흔들린다면 검찰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사즉생의 각오로 나서길 바란다.


[이데일리]

10. 협정 발효 5년을 맞는 한·미 FTA의 교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오늘로 5년이 지났다. 2012년 3월 15일 협정 발효 이래 양국 간 교역이 증가세를 유지한 것은 물론 상대국 내 시장 점유율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의 대미 교역은 수출이 연평균 3.4% 늘어난 데 힘입어 전체적으로는 1.7%의 증가세를 유지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시작된 한·미 FTA가 양국 교역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거뒀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상은 이 기간 중 우리의 전체 교역이 오히려 연평균 3.5%나 줄어든 것과도 비교된다. 대미 수입도 연평균 0.6% 감소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선방한 셈이다. 경제 성장이 내수보다는 수출에 달려 있는 우리 여건에서 한·미 FTA가 중요한 버팀목 구실을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가 대미 수출 증가를 이끌어 왔다.

문제는 한·미 FTA의 골격을 뜯어고치겠다는 미국의 움직임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대한(對韓) 무역수지가 적자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동차·쇠고기·LPG 등 관세인하 품목을 중심으로 수입이 늘어나고 있는 데다 서비스 분야에서는 미국이 월등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재협상을 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는 쉽게 꺾일 것 같지가 않다.

협정 내용을 일부 손보자는 미국 측 주장에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미 FTA의 원래 취지가 교역을 통해 서로 윈윈하자는 데 있으므로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어느 정도는 양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삼성·LG·현대차 등이 떠밀리다시피 현지에 대규모 공장을 새로 세우겠다는 방침을 발표해야 할 만큼 미국의 압력이 강화되는 추세다. 적극적인 협상으로 우리의 이익을 최대한 지켜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한·미 FTA를 바라보던 우리 사회 내부의 부정적인 눈길이다. 협정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당장 국가 경제가 결딴이라도 나는 듯이 몰아붙인 정치인들이 적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 측이 협상이 공정하지 않다며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주장이 틀렸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섣부른 정치 선동으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5년에 이른 한·미 FTA의 교훈이다.



주요신문칼럼


1. [경향신문][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사람을 이어주는 책방 주인

할아버지께서 하시던 자전거포 옆에 책방이 들어선 건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과자나 신발처럼 책을 파는 가게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약방, 미곡상회, 신발가게, 비료가게, 철물점, 솜틀집, 기름집이 늘어서 있는 장터 초입에 들어선 책방의 주인은 젊은 부부였다. 둘은 번갈아가며 책방을 지켰고, 나는 가게가 한가하다 싶으면 슬그머니 들어가 책 구경을 했다.


소년·소녀의 영원한 세계의 명작 문고 <부활>은 내가 가장 좋아한 책이었다. 나는 주인아주머니가 허락해준 만화책을 보는 틈틈이 <부활>을 슬쩍슬쩍 읽었는데, 그 책을 다 읽기 전에 책방은 문을 닫아버렸다.


울진 읍내에는 내가 어릴 적 드나들었던 책방과 같은 작은 책방이 있다. 책방 벽은 화사한 페인트칠이 되어 있고, 커피 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빼곡하게 꽂힌 책 제목을 목이 아프게 올려다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아마도 책방에 스스럼없이 드나드는 아이들 때문인지 모른다.


학원 가방을 멘 초등학생이 혼자 들어와 여기저기 둘러본 뒤 휙 나가고, 야간 자율학습을 빠졌다는 고등학생은 소설책을 꺼내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책방 주인은 아이들과 친숙하게 눈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다. 그는 아이들에게 책을 외상으로 내주기도 한다. 외상 장부가 있는 책방이라니….

사람들은 점점 책을 읽지 않고, 동네 책방은 거의 사라져 곧 유물로 남을지 모르는 세상에서 20년을 용케 버티고 있는 책방 주인은 느긋하기만 하다. 아마도 그에게 책은 파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것인지 모른다. 그 책방에서는 수시로 작가 초청 강연과 토론회 자리가 열린다. 그는 책으로 사람과 사람을 잇고 있는 것이다.

“여기가 우리 읍내 사랑방이지요. 그래서 문을 닫을 수가 없어요.”

그는 책이 잘 팔리는 세상을 바라지 않는다. 한 달에 책 한 권 사는 일쯤은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는 세상, 퇴근하고 나면 책 읽을 여유가 있고, 사람들과 마주 앉아 책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마음 넉넉한 세상을 꿈꾼다.

하지만 봄이 온다고 해도 삶이 바뀌기는 쉽지 않을 터, 나는 그저 그 작은 책방이 오래오래 잘 버텨내길 바랄 뿐이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일회용 시대

일회용 컵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일회용 티백 하나를 까서 넣고, 서너 번 휘휘 흔들고는 쓰레기통에 툭 던진다. 서류를 뒤적이며 전화 응대를 한다. 전화를 받으며 메모를 하고, 자판을 두들긴다. 정신이 없다.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바닥을 드러낸 종이컵. 똑같은 방법으로 다시 한 잔을 준비한다.



책상 위에 일회용 컵 서너 개가 널브러져 있다. 손바닥으로 아가리를 움켜쥔다. 탁탁탁, 잽싸게 컵에 컵을 포개어 쓰레기통에 툭 던진다. 톡톡, 물티슈 두어 장을 뽑아 컵이 사라진 책상을 닦는다. 오늘 하루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버린 일회용품들이 쓰레기통에 가득하다. 누구는 물 한 모금을, 누구는 한 끼 식사를 위해 거리낌 없이 일회용품을 사용했을 것이다. 편하고, 위생적이고, 값도 싸서 쉽게 다가오던 것들. 마음만 먹으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 수도 있겠다.



방문객에게 차 한 잔을 건넸던 적이 있다. 일회용 컵에 담긴 일회성 차 한 잔이었다. 얼마 후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그날의 방문객이었다. 낯선 곳을 여행하며 몹시 갈증을 느끼던 차에 나를 만난 것이었다. 내가 무심히 건넨 차 한 잔에 목을 축이고, 무심히 해주었던 말에 여행이 더 행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른 봄, 두메산골에서 그가 직접 따고 말려 수차례 덖어 만든 매화차라 했다. 그의 매화는 다기 안에서 서서히 피어났다. 나는 그를 까맣게 잊었지만 나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 그에게 미안하고 감사했다.



세상이 온통 일회용으로 변해간다. 일회성 직업이 생겨나고, 잠깐 부리고 마는 일회용 계약 아래 일회성 사람들이 존재한다. 기억하지 않고 잊기도 쉬워졌다. 쉽게 쓰고 버리는 것과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뭐가 다르랴. 친구도 연인도 심지어 부모와 자식 간에도 쉽게 연을 끊는 시대가 되었다.


사랑도 우정도 단칼에 끊어지는 세상이 온 건가. 오래 기억될 친구, 너 아니면 못 산다던 애틋한 사랑은 어디로 갔나. 그 속에 존재하던 수많은 약속과 언약, 죽어서도 지킬 서약은 모두 사라진 걸까. 가장 존엄하다는 인간도 일회용으로 전락하고 있으니 얼마나 씁쓸한 세상인가.



일회용품들을 보라. 비록 일회용으로 만들어졌을 뿐 두 번, 세 번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한 번 사용하고 쓰레기통으로 내쳐지는 일회용품들 속에 내가 무심코 흘려보냈을 수많은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나의 씁쓸한 자화상은 아닌지. 뒤늦은 후회 속에 수고하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으로 오래오래 기억되는 사람이기를 그려본다.


 버리려던 컵에 다시 물을 붓는다. 조금 불편하면 어떠랴. 단 한 번으로 잊히는 그런 인연이 아니라, 그대 오래오래 내 곁에 남아 있으라.


3. [서울신문][이호준의 시간여행] 전당포에 맡겨 놓은 눈물

작은 도시를 지나는 중이었다. 모퉁이 건물 2층에 붙은 ‘전당포’라는 간판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아직도 저런 곳이 남아 있구나…. 왠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전당포야말로 어렵던 시절의 상징이자 가난한 이들의 눈물이 배어 있는 곳 아니던가.

전당포(典當?)는 남의 물건을 맡아 두고 돈을 빌려주는 곳이다. 대신 기한 내 찾아가지 않으면 처분해서 이익을 얻는다. 전당포를 기쁜 일과 함께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보통은 지긋지긋한 가난과 비정한 쇠창살, 그리고 인색한 이미지의 주인이 함께 떠오르기 마련이다.

전당포 단단한 쇠창살에는 애달픈 사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죽자사자 공부했지만 계속 낙방하고 더이상 버틸 수 없어 법전을 들고 찾아간 고시생, 아버지의 유일한 유물인 손목시계를 품고 문 앞을 뱅뱅 돌던 청년, 아내의 병원비 때문에 단벌 양복을 맡겨야 했던 어느 가장…. 아무리 애써도 하루를 살아 내는 것조차 숨 가빴던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곳이 전당포였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절박했던 건 아니었다. 돈이 급한 사람들이 찾던 곳은 분명하지만, 그리 가난하지 않은 대학생들도 단골 고객이었다. 술값이나 용돈이 떨어지면 시계나 미니카세트, 전자계산기, 심지어 교과서까지 들고 전당포를 찾는 청년들도 꽤 많았다. 시골 출신 학생들은 물건을 맡겼다가 집에서 용돈을 보내 주면 다시 찾으러 가고는 했다. 물론 제때 찾지 못해서 새 주인의 품으로 넘어간 물건들도 많았다.

전당포의 전성기는 1970~80년대였다. 70년대는 양복·구두 같은 것들이, 80년대에는 컬러TV 같은 가전제품이 단골 품목이었다. 잘나가던 전당포를 밀어낸 건 신용카드였다. 1990년대 들어 신용카드 보급이 확산되면서 전당포를 찾는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비교적 쉽게 대출받을 수 있는 금융 상품들이 쏟아지면서 90년대 후반 이후에는 하나둘 문을 닫더니, 결국 카지노 촌에서나 연명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쉽사리 만나기 어렵던 전당포가 곳곳에서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당장 포털 검색창에 ‘전당포’라고 치면 수없이 많은 이름이 쏟아진다. 불황이 길어지면서 전당포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아르바이트 자리가 부족한 방학 중에는 정보기술(IT) 기기를 맡기고 소액 대출을 받는 ‘IT전당포’가 인기라고 한다. 대학생들은 스마트폰과 노트북컴퓨터, 태블릿PC 등을 맡기고 20만∼40만원씩 대출받는다.

이와는 다른 개념의 전당포도 많다. 청담동, 압구정동 등에는 이른바 ‘명품전당포’들이 성업 중이다. 이곳에서는 주로 고가의 물건들이 오간다. 노트북컴퓨터나 디지털카메라는 그나마 고전에 속한다. 주요 품목은 루이비통이나 샤넬 같은 상표를 단 가방, 고가의 양복, 명품 시계들이다. 고급 골프 세트도 나온다고 한다.

물론 쇠창살 안으로 쭈뼛쭈뼛 시계나 반지를 디밀던 전당포는 아니다. 쇠창살은 아예 없다. 입학 기념으로 받은 시계와 용돈을 바꾸던 대학생은 물론 아이를 업은 채 눈물을 삼키며 결혼반지를 맡기던 새댁도 없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었다. 새삼 그 옛날 ‘눈물의 전당포‘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허덕이며 걷던 시절의 고통이 가슴에 새겨져 시간으로도 지우지 못하는 이들은 여전히 전당포라는 이름이 바늘 끝처럼 아플 것이다.


4. [서울신문][씨줄날줄] 칼빈슨호와 일석이조

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CarlVinson·CVN 70)이 오늘 부산항에 입항한다. 2001년 제작된 존 무어 감독의 ‘에너미 라인스’를 본 사람이라면 이 전쟁 영화에 등장하는 항공모함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주인공 오언 윌슨이 보스니아 상공 촬영의 임무를 안고 전투기 FA18 슈퍼호닛을 몰고 이륙하는 곳이 바로 항모 칼빈슨 선상이었다.


9·11 테러를 주도한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과도 인연이 있다. 미 해군의 특수부대 네이비실은 파키스탄에 잠복해 있던 빈 라덴을 찾아내 살해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시체를 인수할 국가나 개인을 찾지 못하자 갑판에서 장례 의식을 치르고 수장한 곳이 칼빈슨이었다.


칼빈슨은 1975년 건조돼 1982년 취역했으니 퇴역을 앞둔 42살의 노병이다. 길이 333m, 높이 76.8m, 배수량 10만t으로 갑판이 축구장 3배 크기이며 7000명의 승조원이 생활한다. 폭격기, 조기 경보기, 대잠수함 헬리콥터 등 함재기 90대에 장거리 순항미사일도 탑재하고 있다. 호위하는 5~6척의 이지스 군함, 1~2척의 핵 잠수함 공격력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떠다니는 요새이자 군사기지다.

2차 세계대전 때 야마토 등 일본의 항모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미 항모다. 지금은 10척의 항모가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가상 적국 러시아 2척, 중국 1척과 비교할 수 없는 세계 최고의 군사강국 미국의 상징이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한국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된 1996년 2월 군산 앞바다에 들어온 미 7함대 소속 인디펜던스호(1998년 퇴역)에 탑승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데이브 플라티 함장(대령)은 이륙이 20초에 1대꼴로 이뤄져 76대의 함재기가 26분이면 공격에 나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플라티 함장의 말대로라면 칼빈슨호의 함재기 90대는 하루에 7500차례 출격이 가능하다. 24시간 안에 세계 어디든 주요 군사기지를 초토화할 수 있는 가공할 전력인데, 북한이 항모만 떴다 하면 신경질적이 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일본 요코스카항에 있는 로널드 레이건호를 놔두고 미 샌디에이고가 모항인 칼빈슨이 한국에 온 것은 이례적이다. 세계 최강의 특수부대 네이비실을 태우고 참수훈련에도 참가한다고 하니 김정은의 오금이 저릴 법도 하겠다.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수행하고 온 칼빈슨의 부산 입항은 중국도 겨냥하는 미국의 일석이조 전략이 엿보인다.

칼빈슨호는 페이스북에도 계정을 가지고 있는데, 14일 현재 14만 1278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13일 한·미 훈련 격려차 승선한 이순진 합참의장과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의 사진을 올렸는데 홍보에도 기민한 칼빈슨이다.


5. [국민일보][살며 사랑하며] 퍼스널컬러

‘오렌지색 립스틱이 더 어울릴까, 핑크색 립스틱이 더 어울릴까?’ ‘실버가 어울릴까, 골드가 어울릴까?’ 그건 ‘앞머리를 자르는 게 나을까, 기르는 게 나을까’와 더불어 어떤 선택을 해도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보이게 되는, 그런 질문들이었다. 그러던 참에 퍼스널컬러 진단이라는 것을 받게 됐다. ‘퍼스널’ 같은 단어가 붙으면 내 지갑은 경계심이 좀 약해지곤 했는데, 게다가 색채 진단이라니 호기심이 솟았다. 비슷한 호기심을 갖고 있던 소설가 Y가 합류했다. 

화장을 지운 두 명의 여자가 흰 벽 앞에 앉아 있고, 그 민낯 위아래로 다양한 색의 천 조각이 오가기를 한참. 내가 깊고 진한 컬러가 어울리는 가을-웜(warm)-딥(deep) 톤이라면 Y는 하늘하늘하고 가벼운 컬러가 어울리는 여름-쿨(cool)-라이트(light) 톤이었다. 핑크를 좋아하던 나는 오렌지가 더 어울린다는 결과를, 오렌지를 좋아하던 Y는 핑크가 더 어울린다는 결과를 받았다. 가방 속 립 제품을 서로 교환해야 할 판이었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컬러표도 받았는데, 확실히 나는 가을에, Y는 여름에 있었다. 

재미있는 건 그 컬러표가 생각보다 유연해서 어느 유형이라도 아주 못 가질 컬러는 없다는 거였다. 핑크에도 무수히 많은 핑크가, 오렌지에도 무수히 많은 오렌지가 있다. 다만 명도와 채도, 톤의 차이가 있을 뿐. 그래서 모든 유형의 컬러를 쭉 늘어놓고 보면 사계절과 간절기까지 포함한 한 세계로 연결되는 걸 느낄 수 있다.


혼자 뚝 떨어진 컬러는 없는 것이고, 모든 컬러는 계절을 타며 조금씩 익어간다. 어찌 보면 퍼스널컬러는 누군가의 선택을 제한하려는 게 아니라 경계와 경계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더 세심하게 보도록 돕는 장치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티타임을 하러 가면 Y가 이렇게 말한다. “가을 딥 웜 톤의 케이크로 골라봤어요.” 또는 “오늘은 여름 쿨 라이트 톤 케이크를 먹을까요?” 케이크뿐이랴. 간판과 난간과 보도블록까지 미묘한 색감을 읽다보면 눈이 심심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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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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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조선일보]

1. 한·미 FTA를 "賣國"이라던 野와 文, 정말 집권 자격 있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내일(15일) 발효 5주년을 맞는다. 지난 5년간 한·미 간 교역은 세계 무역량이 매년 3.5%씩 감소하는 속에서도 연평균 1.7% 증가했다. 상대국에 대한 투자는 각각 4.5배(한국→미국), 2.6배(미국→한국) 늘었고, 상대국 수입 시장 점유율은 0.6%포인트(한국), 2.1%포인트(미국) 씩 올랐다. 상품·서비스 교역과 투자 등 모든 부문에서 두 나라에 윈-윈의 상호 이익을 가져다준 점에서 전 세계 수많은 FTA 중에서도 모범 사례로 꼽힌다.



​한·미 FTA는 애초 '이익의 균형' 원칙에 따라 설계됐기 때문에 어느 쪽에 더 유리한지를 따지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일이지만 한국 경제에 득이 됐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재협상을 공언하는 것 자체가 긴 설명이 필요 없음을 보여준다. 5년 사이 대미(對美) 무역 흑자가 116억달러 증가한 반면 우려됐던 국내 농축산물이나 서비스 산업 타격은 없었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부수적 효과도 있었다.



​5년간의 성과를 보면서 과거 FTA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아수라장은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FTA 비준 동의안을 처리한 국회 상임위에선 야당이 쇠망치와 전기톱까지 동원하며 물리력으로 막았다. 2011년 11월 비준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자 야당은 단상 점거와 실력 저지에 나섰고, 최루탄을 터트려 전 세계 신문 1면을 장식했다. 비준안이 통과되자 야당은 거리로 뛰쳐나가 장외투쟁을 벌였다.



​FTA 반대 시위 현장에선 '수돗물 값이 폭등해 빗물을 받아 쓰게 된다'거나 '돈 없는 사람은 아파도 병원에 못 간다' '맹장 수술비가 900만원이 된다'는 구호가 난무했다. 자칭 '전문가'들은 미국산 수입 소 때문에 온 나라가 광우병 천지가 된다고 겁주었다. 국회에 최루탄을 던진 야당 정치인은 "안중근의 심정으로 했다"고 했다.



​당시 민주당은 한·미 FTA가 '을사늑약'과 같다며FTA를 매국(賣國)으로 몰아붙였다. 괴담은 결코 진실을 이길 수 없다. 그런데 한·미 FTA가 나라를 팔아먹는 것처럼 선동하던 사람들이 막상 진실이 드러났는데도 단 한 사람 나서서 '그때 내가 잘못 생각했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천안함 괴담, 세월호 괴담으로 종목을 바꿔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2012년 대선에 출마했던 문재인 후보는 한·미FTA가 잘못됐다며 재협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것인데 당시 정권의 핵심에 있던 사람이 잘못됐다고 하니 국민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 중대한 국가 문제에서 이처럼 커다란 판단 착오를 했다면 무언가 설명이 있어야 한다. 나라가 망할 것처럼 결사반대하던 민주당과 문 전 대표가 FTA 5년의 성과에 대해선 입을 다문 채 집권당이 되겠다고 한다. 정말 집권할 자격이 있는가.



2. 朴 前대통령, 歷史에 평가 맡기고 市民으로 돌아가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삼성동 사저(私邸)로 퇴거한 지 하루 만에 친박 의원들로 된 보좌진이 꾸려졌다고 한다. 총괄·정무·법률·수행·대변인 등 역할 분담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제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하는 처지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돕고 조언할 사람들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다른 전직 대통령들처럼 경우에 따라 정치적인 문제에도 발언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현역 의원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사저로 돌아간 직후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는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이런 일들이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적 파장을 낳고 있다. 각 정당은 박 전 대통령이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은 것으로 단정하면서 마치 박 전 대통령이 불복 투쟁에서 나아가 정치를 재개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내놓고 있다. 논란이 벌어진 지 하루가 지나도록 박 전 대통령은 아무 반응을 하지 않고 있어 '불복'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진의가 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4년을 재직한 그가 절대다수 국민의 바람과 달리 불복 투쟁을 벌이거나 정치를 다시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진실…"이란 박 전 대통령의 언급도 수사와 재판을 앞둔 사람으로서의 입장으로 다른 뜻이 없기를 바란다.



​탄핵 논란으로 국민은 지칠 정도로 상처받았다. 국정은 경제·안보 복합 위기 속에서 위태롭게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다. 헌재 결정으로 모두 매듭짓고 중대한 국정 현안에 대처해야 한다. 그러려면 분열·대립을 끝내고 통합을 향해 한 발짝씩이라도 나아가야 한다. 전직 대통령들은 자신에 대한 평가를 역사에 맡긴 채 한 명의 시민으로 돌아갔다. 이 불문율이 이번에도 지켜져야 한다. 누구보다도 박 전 대통령을 위해서 그렇다.



[동아일보]

3. 한미 FTA 윈윈 5년… ‘괴담 유포 세력’ 사과하라

15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5주년을 맞는다. 최근 5년 동안 글로벌 경기 침체로 세계 교역은 연평균 2% 감소했지만 한미 간 교역은 오히려 1.7% 증가했다고 최근 무역협회가 발표했다. 특히 한국은 상품무역에서, 미국은 서비스무역에서 강세를 보이면서 두 나라 제품과 서비스가 상대국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동반 상승하는 ‘윈윈 현상’을 보였다. 한미 FTA가 ‘일자리 빼앗는 협정’이라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 셈이다. 

5년 전 한국에선 괴담 수준의 한미 FTA 반대 논리가 야당 정치인과 이른바 진보진영에서 쏟아져 나왔다.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던 2008년의 괴담이 더는 통하지 않자 “의료민영화로 맹장수술비가 900만 원으로 오른다” “물값이 폭등해 빗물을 받아 쓰게 된다”는 얘기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나돌았다. 하지만FTA 이후 수도요금과 맹장수술비는 10%가량 올랐을 뿐이다.



“안보정국을 틈타 우리나라 이익을 팔아먹은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던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 “을사늑약과 한미 FTA는 본질이 같다”던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금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미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를 내건 트럼프 정부가 한미 FTA 재협상을 추진한다고 해도 전면 재협상이나 협정 종료까지 갈 것 같진 않다. “한미 FTA가 ‘골드 스탠더드(최상의 표준)’라는 태미 오버비 미국 상공회의소 아시아 담당 부회장의 말처럼 한미 FTA는 미국 기업에도 ‘기회’로 작용한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에선 한미 FTA가 없었다면 2015년 미국의 적자 규모가 150억 달러 이상 더 늘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2007년 4월 한미 FTA 체결 때 노무현 정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시 ‘우리 이익을 지켜낸 협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2012년 대선 직전에는 “세상에 무슨 이런 조약이 다 있나”라며 반대했다가 최근에는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굳이 거부할 이유도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유력 대선 주자답게 자중(自重)하길 바란다.



4. 박 전 대통령, 친박 폐족 모아 ‘私邸 정치’ 나서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사저(私邸) 앞에는 어제 아침부터 지지자들이 찾아와 탄핵 무효를 외쳤다. 이른바 ‘박근혜 지킴이 결사대’도 출범했다. 윤상현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 등 친박(친박근혜) 인사들도 다녀갔다. 서청원 최경환 등 친박 의원 10여 명은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한 총괄·정무·법률·수행 등 역할 분담까지 마쳤다. 박 전 대통령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며 탄핵에 사실상 불복하는 메시지를 내놓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친박 인사들이 그 주변에 재결집하는 모양새다.

박 전 대통령은 조만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수사도 받아야 하는 처지다. 이런 박 전 대통령을 위문하겠다는 인간적 정리까지 탓할 수는 없다. 파면당한 대통령은 경호와 경비 외에는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만큼 보좌진 구성도 자발적 봉사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비선과 ‘문고리 3인방’을 막아 서서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기는커녕 탄핵당하게 만든 친박은 ‘폐족(廢族·벼슬할 수 없는 족속) 선언’이라도 해야 마땅하다. 얼마 남지 않은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에 기대 끝까지 정치생명을 연명하겠다는 태도는 혐오를 자아낼 뿐이다

박 전 대통령도 친박 보좌그룹 구성을 보고받았을 테지만 이를 말렸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더구나 사저를 중심으로 한 정치인과 지지 세력의 조직화는 자칫 ‘사저 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 삼성동을 드나드는 이들 중 일부는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불복을 선동해온 인물들이다. 박 전 대통령의 의중을 빌려 직간접적으로 불복의 정치 메시지를 확대 재생산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 정치사엔 상도동과 동교동으로 대표되는 사저 정치가 있었다. 상도동계·동교동계의 탄생은 군사정권 시절 가택연금 투옥 등 박해를 받았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비공식 정치무대를 열어주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두 대통령 재직 당시는 물론이고 퇴임 이후까지 주군 모시듯 싸고돌며 한국정치를 혼탁하게 했던 명암을 남겼다. 이런 구시대적 ‘골목길 정치’가 되풀이된다면 한국 정치의 수준이 우스워진다.

박 전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헌재의 탄핵심판이 기각될 것으로 확신했다고 한다. 친박이 탄핵 이후까지 박 전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려선 안 된다. 박 전 대통령도 당장은 탄핵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지지자들에게 의지하고 싶겠지만, 무엇이 훗날 역사에 대통령다웠던 전직으로 기록되는 길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데일리]

5. 개헌, 어떻게 할 건지 조속히 결론내야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결정으로 조기 대선이 현실화하면서 ‘대선 시계’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번 주말에 앞서 선거일을 공고할 예정이고, 여야 정당은 늦어도 내달 초까지 대선후보를 확정하게 된다. 이미 대권도전을 선언한 예비후보가 10여명을 훌쩍 넘는 터에 자천타천으로 나서려는 정치인이 적지 않아 어느 때보다 치열한 선거전이 예상된다.

이번 대선은 탄핵 결정으로부터 2달 안에 치러지도록 돼 있는데다 당선자는 정권인수위원회를 꾸릴 새도 없이 곧장 취임해야 하는 그야말로 숨 막히는 일정이다. 여야 정당마다 서둘러 경선 체제에 돌입하는 것이 그래서다. 섀도캐비닛(예비내각)을 미리 짜둬야 하므로 인재 영입에도 박차를 가해야만 한다.

그중에서도 대선의 주요 변수인 개헌 여부가 여전히 미정으로 남아 있다는 게 문제다. 연초부터 활동에 들어간 국회 헌법개정특위가 어제 전체회의를 열고 그동안 논의 내용에 대한 중간점검을 벌였지만 촉박한 일정에 맞춰 의견 조율이 원활히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제1·2소위원회도 오늘과 내일 각각 소집돼 논의를 이어가게 된다. 그러나 각 정당과 대선주자 간의 이해가 사안마다 엇갈리고 있다.

물론 이번 탄핵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줄여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대체적인 합의가 이뤄진 듯하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분권 수준과 내각구성 등 세부 방안에서는 논의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할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도 합의에 이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기본권을 강화하는 방안에서도 원칙적으로는 큰 다툼이 없으나 폭력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 등이 쟁점으로 남아 있다.

더 큰 문제는 개헌 시기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은 ‘대선 전 개헌’에 뜻을 같이하지만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후 개헌’이 당론이다. 말하자면, 압도적 선두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중심으로 지금의 구도대로 대선을 치르려는 ‘친문(親文)’과 어떻게든 판을 바꿔보려는 ‘비문(非文)’ 간의 대결구도인 셈이다. 정치권은 30년 만에 시도되는 개헌 움직임이 정치공학적 셈법의 산물이 아니라 국민 대통합과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담보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



6. ‘물대포’ 난무한 서울대에 무엇을 바랄까

서울대에서 학생들이 소화기를 발사하는 가운데 학교 측이 소방호스로 맞대응하는 공방이 이뤄졌다고 한다. 다른 장소도 아닌 총장실이 들어 있는 본관 건물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소화기 분말가스와 소방호스의 거센 물줄기가 엇갈리며 사방으로 난무하는 난장판을 떠올리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대한민국 ‘지성의 전당’ 가운데서도 단연 최고임을 자부하는 서울대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이로써 학생들의 본관 장기 점거사태가 막을 내린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뒷맛은 개운하지 않다. 학교 측의 진입에 대비해 학생들이 본관로비 입구를 쇠사슬로 묶었는가 하면 학교 측이 절단기로 이 쇠사슬을 끊어내고 사다리차까지 동원했다는 얘기가 마치 폭력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선하다. 출입구에 책상을 쌓아 진입을 막았다거나 렌치로 문짝을 내리찍었다는 살벌한 얘기도 들려온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지난해 10월 서울대가 시흥캠퍼스 조성계획을 내놓은 데 대해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셈이다. 무엇보다 학교 시설을 강제 점거한 학생들의 집단행동에 동의하기 어렵다. 이번 학교 측의 진압작전에 대해 “이게 대학이고, 민주주의냐”라고 항의했다지만 문제를 야기한 건 학생들이 먼저다. 물론 학내 반발을 무릅쓰고 시흥캠퍼스 조성계획을 추진한 학교 측도 책임이 없을 수는 없다.

이번 본관진입 사태에 있어 학생회와 학교 양측이 서로 피해자임을 내세우며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사실도 떳떳한 처사는 아니다. 사회적인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게 대학 사회의 한결같은 목소리이면서도 정작 자기 문제에 부딪쳐선 폭력으로 얼룩지는 게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서울대에 쏠리는 바깥의 눈길은 부정적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뛰어난 엘리트 집단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오히려 국가 발전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김기춘·조윤선·우병우 등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 노릇을 했던 선배 동문들에 대해 재학생들 스스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이 최근 일이다. 서울대가 우리 사회를 위해 기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내부 문제가 바깥에까지 시끄럽게 들려오는 일이나 없었으면 한다.



[서울신문]

7. 금리 인상기, 취약계층에 각별한 관심 가져야

미국이 이달 중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은행 등 금융권의 대출금리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자고 나면 오른다’는 말이 실감 날 만큼 상승 속도가 무섭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최고 금리는 연 5%에 육박하고 있다. 2금융권인 저축은행의 주택담보대출금리는 지난해 12월만 해도 5.74%였지만 1월엔 6.09%로 6% 선을 넘어섰다. 현재로서는 미국이 올해 총 세 차례 정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국내 대출금리의 상승세는 한층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파른 금리 상승은 그렇지 않아도 경기침체와 저성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자칫 1300조 가계부채의 뇌관을 건드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국내 금융권의 금리가 오르면서 서민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정책으로 신규 대출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금리가 오르고 대출을 옥죄면 맨 먼저 타격을 받는 쪽은 다중채무자와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이다. 대출금리가 1% 포인트만 올라도 한계가구의 이자 비용은 연간 755만 4000원에서 891만 3000원으로 18%나 급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과 대출 부실이 위험수위에 이르렀지만 미국의 영향으로 금리 상승 기세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은 3월 기준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했다. 시장의 예상대로 올해 총 세 번 금리를 올린다면 금융채나 국고채 인상은 불가피하다. 이와 맞물려 금융권이 수익성 보전을 위해 점진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경우 취약계층이 견뎌 낼지 의문이다.

정부는 어느 때보다 취약계층의 연쇄 파산 우려가 큰 만큼 리스크 관리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가계 대출을 억제하기 위해 금융권 대출을 옥죄는 방식의 탁상행정식 처방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은행권이 여신심사를 강화해 대출을 까다롭게 하자 대표적 자영업종인 음식·숙박업의 대출이 2금융권으로 몰리는 ‘풍선효과’만 나타났을 뿐이다.



지난해 이 업종의 2금융권 대출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서민의 이자 부담만 가중시킨 꼴이다. 가계부채 대책은 질적인 소득 증가 없이는 백약이 무효이며 미봉책에 불과하다. 금융권도 수익성 강화에만 열을 올릴 게 아니다. 은행만 웃는 금리 상승이 취약계층의 파산을 몰고 올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8. ‘박근혜 진실’ 밝힐 검찰 책무 더 무거워졌다

지난주에는 대한민국 역사에 반드시 기록하지 않으면 일대 안 될 사건이 하나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선고다. 헌재의 8대0 전원일치 파면 선고는 탄핵 지지파나 탄핵 반대파 모두에게 조금은 뜻밖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추정하자면 헌재 재판관들이 사법적 판단의 영역에 매몰되지 않고 무엇이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질곡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숙고한 결과라고 본다. 나아가 역사가 이 사건을 어떻게 평가할지를 깊이 고심한 결과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파면 선고로 헌재는 ‘최순실 게이트’에서 손을 놓았지만 당연히 사건의 사법적 판단이 종결된 것은 아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시간에 쫓겨 마무리하지 못한 수사는 검찰로 넘어갔다. 헌재가 그랬듯 검찰 역시 역사적 평가를 의식하며 후속 수사에 매진해야 한다.

검찰은 특검 출범 이전 ‘최순실 게이트’ 수사에 성의를 다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국가의 흥망이 걸린 사건에 녹슨 헌 칼일망정 한 번이라도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했다는 것은 아무리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 수뇌부라도 변명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여전히 무관할 수 없는 관계가 아닌가.



검찰 인사를 좌지우지했다는 우 전 수석의 영향력은 지난 검찰 소환 당시 피의자의 모습은 간데없는 한 장의 보도 사진이 증명해 주기도 했다. 따라서 검찰은 지금 ‘정치 검찰’에 머무르고 마느냐, 아니면 벗어나느냐를 가르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박 전 대통령이 그제 저녁 청와대를 떠나 사저로 돌아갔다. 박 전 대통령은 사저에 도착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의 진의를 두고는 적지 않은 설왕설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발언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무엇인지 검찰이 고민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본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말한 그대로 좌고우면하지 말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이 말한 ‘진실’을 과거처럼 ‘의도가 분명한 정치적 수사’로 해석했을 때 앞으로 검찰이 설 자리는 사라진다는 것을 깊이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검찰이 새로 태어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임명권자의 이해가 아닌 국민의 이해에 충실하면 된다. 임명권자의 궁금증이 아닌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하면 되는 일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을 진정으로 알고 싶은 것은 박 전 대통령보다 오히려 국민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면 된다.



나아가 국민은 지금 권력 오용(誤用)으로 파면된 임명권자에 대한 의리를 과연 의리라고 할 수 있는지 검찰에 따져 묻고 있다. 탄핵당한 권력자 한 사람에게 의리를 지켜 국민 모두를 배반하는 길을 택한다면 검찰의 미래는 없다. 이번만큼은 검찰의 손으로 ‘진실’을 밝혀 달라.



9. 점거 농성에 강제해산, 폭력으로 얼룩진 서울대

지난 주말 서울대에서 벌어진 광경을 옆에서 봤다면 참담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을 법하다. 교직원과 학생들의 물리적인 힘 대결에는 “이게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냐”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을 수가 없다. 수백 명의 교직원이 007 작전하듯 학생들의 농성장에 몰래 들어가 쫓아내고, 이에 맞선 학생들은 소화기까지 분사하며 재진입을 시도했다. 이유야 어떻든 이런 낭패스런 싸움이 서울대 캠퍼스 안에서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한심스럽다.

서울대생들의 본관 점거 농성은 지난해 10월 학교 측의 시흥캠퍼스 조성에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학교 측이 경기 시흥시와 시흥캠퍼스 사업 협약을 기습적으로 맺자 학생들은 신뢰를 깼다며 반발했다. 협약 무효를 주장하는 학생들은 이후 5개월째 농성을 이어 왔다.

딱하다. 학생들이 처음부터 반대했던 사업을 협약 체결 직전에야 통보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학교 측은 이런 논란을 예측하지 못했는지 궁금하다. 관악캠퍼스가 좁아 글로벌 복합연구단지를 새로 짓는 데 시흥캠퍼스가 필요했다면 학교 측은 어떻게 해서든 학생들을 설득했어야 했다. 학생들도 잘한 게 없다. 학교 측과 적극적으로 대화하지 않는 태도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학생 농성이 장기화하자 지난 토요일 서울대 교직원 400여명은 긴급 해산 작전을 폈다.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니 교직원들은 강제로 학생들을 건물 밖으로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는 서로 욕설도 오간 모양이다. 결국 학생들은 소화기 분말을 분사했고, 이에 흥분한 교직원들은 소방 호스를 꺼내 물을 쐈다. 그러자 학생들 입에서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물대포를 쐈다”는 비방까지 나왔다. 최고의 지성 집단에서 이 무슨 막가는 행태들인지 기가 찬다.

이번 일은 일개 대학의 학내 갈등 해프닝으로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앞서 이화여대 사태에서도 확인했듯 최근의 대학 내 갈등이 학교가 추진하는 사업 자체가 아니라 학교 측의 독단과 불통에서 비롯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일방적인 주장만 쏟아내며 소통 불능의 갈등을 거듭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썰렁해진다.



학교와 학생은 서로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머리 맞대야 할 공동체다. 상대를 인정해 양보하고 타협하는 대화 방식이 대학에서조차 부정된다면 우리는 어디에서도 소통 사회의 희망을 찾기가 어렵다.



[매일경제]

10. 서울시 35층 규제 문제 있다는 국회 입법조사처 지적

일반주거지역에서 아파트를 지을 때 최고 35층을 넘지 못하도록 한 서울시의 '2030 서울 도시기본계획'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표한 '공동주택 높이 규제 논의와 쟁점' 보고서를 보면 국토계획법시행령 제10조 제3항에 따라 도시기본계획은 여건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포괄적으로 수립해야 하는데 '2030 서울 도시기본계획'은 공동주택 높이를 35층으로 제한하는 등 지나치게 구체적이라고 지적했다.



부산과 인천 등 다른 광역시도 도시기본계획을 세웠지만 건물 층수를 명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마디로 서울시의 35층 규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아파트 층수를 제한한 이유로 주거지역 과밀도와 난개발 우려가 있다는 점을 꼽는다. 상업지역에서 50층 내외의 건물을 짓도록 허용한 마당에 주거지역까지 초고층을 짓게 하면 자연 경관과 역사문화유산 보호가 어렵다는 것이다.



고층 건물을 지으면 동간 거리가 넓어져 쾌적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결국 단지마다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게 돼 답답한 경관이 조성될 수밖에 없고, 이미 35층 기준에 맞춰 건립한 단지와 형평성도 맞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지난달 잠실 재건축 단지가 일부 동을 50층으로 짓겠다며 제출한 계획을 승인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국회 입법처가 지적한 대로 도시기본계획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서울시 입장은 납득하기 힘들다. 아파트는 건폐율과 용적률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고, 주변 단지의 일조와 채광 등을 고려한 사선 제한도 있어 마구잡이로 초고층 건물을 건립할 수 없다. 층수 제한은 이중 삼중 규제인 셈이다. 세계적인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 뉴욕과 도쿄 등 외국 주요 도시 중에 주거지역이라고 단일 층수로 높이를 제한하는 곳은 거의 없다. 도시 스카이라인과 전체 경관 등 다양한 요인을 감안해 층수를 결정하도록 한다.



국회 입법처 보고서는 우리 도시기본계획에 해당하는 런던플랜을 예로 들며 건축물을 지을 때 시 전체에 하나의 기준을 적용하기보다 시는 입지와 조망 관리 지침만 제시하고 자치구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35층 규제에만 목매고 있는 서울시가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주요신문칼럼



1. [연합뉴스][이희용의 글로벌시대] '국제 누루즈의 날' 아시나요

이중과세 논란에도 불구하고 양력으로 새해를 맞고도 음력으로 설을 쇠는 풍습은 좋은 면이 있긴 하다. 새해에 새롭게 다짐한 목표나 수칙들을 며칠 만에 까맣게 잊어버리고 마는 작심삼일형 인간들에게는 또다시 신년 결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 얼마 가지 않아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면 어떻게 할까? 달력 두 장을 넘기고 석 장째마저 며칠 남지 않은 현실을 보며 속절없이 내년을 기약해야 하나?

이런 의지박약형 인물들에게 희소식이 있다. 밤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을 한 해의 시작으로 치는 '누루즈'(Nowruz)란 풍습이 있는 것이다. 일부 지역에 국한되기는 하나 3천 년 넘게 이어내려온 전통이고 유엔이 정한 어엿한 국제 기념일이다. '누루즈'는 페르시아어로 '새롭다'는 뜻의 '누'(now)와 '날'이란 의미의 '루즈'(ruz)가 합쳐진 말로, 봄의 첫날을 축하하고 자연의 새로움을 기뻐하는 날이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강역이던 발칸반도에서 중동을 지나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약 3억 명이 이날을 전후해 축제를 연다.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친지끼리 선물을 주고받고, 전통음식을 만들어 먹고, 가무를 즐긴다. 지역에 따라 '노브루즈'(Novruz), '노우루즈'(Nowrouz), '나브루즈'(Navruz), '네브루즈'(Nezruz) 등으로도 부른다.

유네스코가 2009년 누루즈를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한 데 이어 유엔은 이듬해 총회에서 이란·인도·아제르바이잔·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아프가니스탄·터키·알바니아·마케도니아 등 11개국의 발의로 3월 21일을 '국제 누루즈의 날'(International Day ofNowruz)로 제정했다. 세대와 가족 간의 화해·선린·평화·연대의 가치를 증진하고 문화적 다양성과 공동체 사이의 우정에 기여하자는 취지다. 올해는 춘분(3월 20일)과 하루 차이가 난다.



예로부터 어떤 날을 새해의 시작으로 할지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역사적 기원을 거슬러가면 해가 가장 짧아졌다가 커지기 시작하는 날(동지)이나 동지와 춘분의 중간으로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을 기준으로 삼은 사례가 많다. 전자는 크리스마스와 신정에 가깝고 후자는 구정에 가깝다. 음력 설은 당연히 정월 초하루지만, 양력 1월 1일은 고대 로마의 권력자 카이사르가 기원전 45년 율리우스력을 제정할 때 그전까지 로마력으로 1월이던 '마르티우스'(Martius·영어의 March)를 3월로 바꾸는 등 달의 순서를 물리며 자의적으로 정한 것이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사막을 오가야 했던 중동 지역에서는 음력을 중시했다. 달의 지구 공전주기는 약 27.3일인데 지구도 태양 둘레를 돌기 때문에 달의 모양이 변하는 주기(삭망월)는 약 29.5일이다. 1년 12달을 합치면 지구의 공전주기보다 11일 정도 모자라므로 이 일대에서는 오래전부터 태양의 주기와 일치시키려고 2∼3년에 한 번씩 윤달을 끼워 넣는 태음태양력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정치적·종교적 필요에 의해 윤달을 남용하는 사례가 잦자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636년에 헤지라(성천·聖遷, 서기 622년 7월 16일 마호메트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근거지를 옮긴 일)를 이슬람력 원년 1월 1일로 선포하며 순수 태음력을 쓰기로 했다. 이슬람력으로 올해는 1438년으로 원년부터 따지면 서기와 43년 차이가 난다. 오는 9월 21일이 이슬람력 1439년 첫날이다. 9월을 뜻하는 라마단(성월·聖月)은 올해 5월 27일부터 6월 25일까지다.

유대인들은 19년에 윤달이 7번 들어가는 메톤 주기법의 태음태양력을 기본으로 하되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유월절의 첫날(8월 15일)이 월·수·금요일이 되지 않도록 복잡한 법칙을 적용한 유대력을 쓰고 있다. 저녁에 3개의 별이 보이면 하루가 시작된다고 여기고, 추분 후의 음력 초하루를 새해 첫날로 삼는다. 

중동 지역 가운데 이집트는 예외적으로 일찍부터 태양력을 썼다. 기원전 18세기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이 범람할 때면 해가 뜨는 쪽에서 큰개자리의 가장 밝은 별 시리우스가 먼저 떠오르는 것을 관찰하다가 1년을 365일로 하는 달력을 만들었다. 이를 로마가 채용했다가 태양 주기와 차이가 나자 4년마다 하루를 더하는 율리우스력을 제정했고, 오차가 누적되자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00으로 나뉘는 해는 평년으로 하되 400으로 나뉘는 해는 윤년으로 삼는 그레고리력을 공포했다.



그러나 서유럽의 가톨릭 세력과 대립하던 동방정교회 지역에서는 교황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아 오랫동안 율리우스력을 써왔다. 이를 토대로 한 러시아력은 그레고리력과 13일 차이가 나므로 러시아혁명이 1917년 3월과 11월에 일어났음에도 각각 2월혁명과 10월혁명이라고 부른다. 러시아를 비롯한 일부 지역 정교회는 크리스마스(성탄절)도 12월 25일이 아닌 1월 7일에 기념하고 있다.



부활절은 동서 기독교가 분리되기 전인 서기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정한 것이어서 정교회도 똑같이 쇤다. 춘분 후 보름이 지난 뒤의 첫 주일(일요일)이어서 양력과 음력 요소가 섞여 있는데 올해는 4월 16일이다.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메톤 주기법의 태음태양력을 사용하면서도 계절의 변화나 농사의 시기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단점을 보완하고자 태양의 궤도에 맞춰 1년을 15일 간격으로 나눈 24절기를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갑오경장 때 1895년 11월 17일(음력)을 1896년 1월 1일(양력)로 선포하며 태양력을 공식 채택했으나 지금도 음력의 전통이 남아 있어 설, 추석, 단오, 부처님오신날 등의 명절과 일부 기념일은 음력으로 지내고 있다. 

오늘로써 올 한 해가 정확히 5분의 1(73일)이 지났다. 8번째 국제 누루즈의 날을 앞두고 다시 한 번 2017년을 맞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면서 전 세계 인류의 다양한 문화와 가치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2. [서울신문][이효석의 신호를 찾아서] 과학자는 울지 않는다?

요즘 인터넷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이야기들이 주는 감동과 교훈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에서 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돌아보게 되며, 누군가의 비정한 운명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행운에 안도하며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과학자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갖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슬픈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다음 질문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슬픈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바로 어떤 이야기가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것인지, 궁극적으로는 왜 인간이 슬픔을 느끼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과학자와 지식인들은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진화를 통해 발생했음을 받아들인다. 진화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특성을 가진 개체가 세대를 거칠수록 개체군 안에서 늘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진화론의 한 갈래인 진화심리학은 키와 피부색 같은 육체적 특성을 넘어 인간의 특정 행동과 이를 유도하는 감정 역시 진화의 영향 아래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이 바로 그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음을 의미한다. 맛있는 음식은 영양가가 높고 인체에 필수적인 성분을 가지고 있어 이를 좋아하는 것은 생존에 유리했다. 아름다운 이성은 환경에 잘 적응한 혹은 성선택의 측면에서 유리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나의 유전자를 번식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아름다운 이성에 대한 호감은 번식에 유리했다. 기쁨이란 바로 이런 호감에 대한 보상이다.

이제 슬픔이라는 감정이 왜 존재하는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슬픔은 바로 우리에게 특정한 행동이나 상황을 회피하도록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감정이다. 가까운 이의 죽음, 중요한 자원의 손실, 배우자의 부정 등은 개체의 생존과 번식을 불리하게 만들기 때문에 개체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즉 슬픔을 유발하는 상황을 미리 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된다. 이것이 왜 인간이 슬픔을 느끼는지, 어떤 이야기가 슬프게 느껴지는지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이 될 것이다.

우리가 슬픈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다른 재료가 필요하다.

하나는 인간은 이야기 자체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정보를 의미하며 정보는 그 자체로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된다. 옆 마을의 갑돌이가 뒷산에서 곰에게 물려 죽었다는 사실은 생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보이며 이 사건 때문에 갑순이의 연애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는 번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가십의 기원에 대한 설명으로도 언급된다.



또 다른 재료는 마음속에 가상의 현실을 그리고 이를 생각해 보도록 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인간으로 하여금 위험한 일을 실제로 시도하지 않고도 피할 수 있게 만들어 생존에 도움을 주었다. 가상의 불행한 일을 상상하는 것은 실제 현실을 유리하게 만들었으며,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기쁨이라는 보상을 얻게 되었다.



이 설명은 사람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에서도 언급된다. 당신이 다른 이의 슬픈 이야기를 읽고 이를 나누고 싶어 하는 이유는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이것이 과학자가 울기에 앞서 처음 이야기한 질문을 가짐으로써 얻게 된 보상이다.

물론 과학자가 울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이는 ‘수학자는 복권을 사지 않는다’ 또는 ‘경제학자는 보험을 들지 않는다’와 같은 선언적 표현에 불과하다. 수학자가 기댓값이 1보다 클 때 복권 판매소로 가고 경제학자가 오랜만에 건강검진을 받기 전에 보험을 드는 것처럼 과학자 역시 눈앞의 사건에 대한 자신의 감정적 반응이 충분히 합리적이고 장기적으로 자신의 정신건강에 득이 된다고 여기면 비로소 안심하며 호르몬의 지시를 따를 것이다.



3. [서울신문][김용석의 상상 나래] 홀로그램으로 통화할 2027년의 스마트폰

​2027년, 5년째 기러기 아빠인 김철호씨는 이제는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미국에 유학 중인 아들, 아내와 매일 홀로그램 스마트폰으로 전화통화를 한다. 아내, 아들의 모습이 3D 형상으로 떠오르면서 바로 옆에 있는 모습이 연출된다. 10년 후 우리의 일상적인 풍경이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7년은 아이폰이 세상에 나온 해다. 이때부터 스마트폰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의 우리 삶은 어떤가.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통해 일상을 확인하고, 정보를 검색하고, 상품도 구매하고, 친구들과 문자로 대화를 나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낸 아이폰의 핵심 기술은 디자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위한 스크린 터치 방식, 3G 이동통신, 앱스토어, 최적화된 운영체제(OS)에 있었다. 이를 제품 개발에 활용하고 개발된 제품을 이용한 서비스는 생활을 매우 편리하게 해 주었다. 손가락 하나만 쓸 수 있는 저항 방식에서 두 손가락을 동시에 쓸 수 있는 정전용량 방식을 처음으로 채용했다. 그에 따라 인터넷을 통해 올라오는 사진, 웹페이지를 쉽게 확대, 축소할 수 있게 됐다.



두 번째 아이폰에는 빠른 속도의 3G 이동통신 기술이 채용됐다. 이것이 앱스토어를 탄생시킨 동력이 됐다. 개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쇼핑, 결제수단 같은 많은 응용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됐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 후 2027년의 스마트폰은 어떤 모습일까. 미래를 생각해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기술은 사람들의 습관, 가치관과 삶의 양식을 바꾸고, 결국은 사회와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기술을 예측해 보면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아이폰에 채용된 것보다 혁신을 주도할 더욱 많은 기술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폰 탄생 당시보다 더 큰 혁신이 예상되는 이유다. 상용기술들을 예측해 보고, 그에 따른 스마트폰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먼저 스마트폰의 형태가 바뀔 수 있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의 채용으로 좀더 다양한 형태의 스마트폰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동안은 융합이 대세이었지만, 분할될 가능성이 크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의 채용으로 지금의 대화면 모양, 팔목 부착형, 시계나 반지 같은 웨어러블 기기로 나누어지면서 여러 가지 형태의 스마트폰 출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꽃피면서 스마트폰은 계속해서 생활의 중심에 있을 것이다.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된 많은 데이터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모바일 지능 서비스는 스마트폰을 통해 주고받아야 한다. 특히 스마트 홈 서비스는 크게 활성화될 것이다. 사람의 기분, 체온 등의 개인적 사용 패턴을 감지해 가장 편안한 전등의 밝기를 유지하고 실내온도도 맞춰 준다. 스마트폰이 집 안의 TV, 냉장고, 세탁기 등의 가전기기나 전등, 온도 조절기 등의 기기들을 제어하고 홈 방범 서비스의 허브 역할을 할 것이다.

그다음은 더욱 발전한 인공지능 기술과 5G 이동통신 기술의 파괴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계학습, 인공신경망 기술의 발달로 음성인식, 화상인식이 완벽한 수준으로 되면서 통화 내용이 통화 중에 실시간으로 통역되고 번역된다. 스마트폰은 자연스럽고 편리한 개인 비서로 변신할 것이다.

2020년 상용화되는 5G 이동통신은 현재의 롱텀에볼루션(LTE) 통신망보다 100배 정도 빨라지고, 데이터를 보내는 속도도 20배 이상 빨라진다. 이 막대한 데이터 전송으로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을 완벽한 수준으로 실감할 수 있는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실물을 보는 것과 같은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홀로그램으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불가능했던 자율자동차 제어나 실시간 건강검진이 가능해지고, 원격진료와 수술이 보편화된다. 스마트폰은 5G 이동통신용으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기지국을 포함해 스마트폰의 모든 핵심 반도체 칩들, 소프트웨어, 모바일 서비스가 새롭게 변화하는 과정을 겪을 것이다.

지금부터 10년 후인 미래의 이야기다. 지금부터 10년을 준비하라. 새로운 세상의 스마트폰 시대를 이끌어 보자.



4. [경향신문][학교의 안과 밖] 3월에 꽉 잡지 말자

3월은 입학과 개학의 계절이다. 신규 교사는 물론 경력이 꽤 되는 중견교사조차 새 학년, 새 학급을 만나기 전에 꽤 많은 설렘을 느낀다. 경력이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첫 만남은 언제나 신선하고 아름답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이런 첫 만남을 퇴색시키는 괴이한 격언이 있다. “애들은 3월 한달 동안 잘 잡아야 1년이 편하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 말은 내가 젊은 시절 선배교사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기도 하다. 심지어 “3월 한 달 동안 가능하면 웃지도 말라”고 충고하는 분도 있었다.



의미는 뻔하다. 학생들이 아직 교사의 본색을 파악하기 전에 이른바 ‘군기’를 잡아 놓아야지, 일단 한번 기어오르고 나면 다시 잡기 어렵다는 말이다. 어디 학교뿐일까? 이 ‘3월에 꽉 잡자’주의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변형되어 널리 퍼져있다. 대학생들은 갓 입학한 신입생들을 따뜻하게 환대해 주는 대신 온갖 짓궂은 신고식으로 후배들을 괴롭힌다. 직장에서도 ‘사수’ ‘부사수’라고 하면서 신입 사원들을 거의 얼차려에 가까울 정도로 ‘갈군’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면 긴장한다. 수업 첫날을 맞이하는 학생들, 출근 첫날을 맞이하는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잔뜩 긴장한 채 새로 만나는 선생님, 직장 선배, 상사를 마주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엄격하고 무리한 요구를 받아도 옳고 그름을 따져볼 여유없이 일단 복종한다. 이게 소위 말하는 군기가 잡히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학습도 업무도 할 수 없다.

서로 누군지도 모르고 마음도 열지 않은 상태에서 다짜고짜 엄하게 내리는 지시, 꾸지람, 벌은 교육이 아니라 폭력이다. 폭력적인 분위기에서 성장기를 보낸 사람은 그 자신도 폭력적이 되기 쉽다는 것이 교육학의 정설이다. 그런 학창시절을 보낸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서 사회 곳곳에서 신입들을 상대로 초반에 군기를 잡겠다며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3월에 꽉 잡는 교실에서 헬조선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후배 그리고 동료 교사들에게 “1년 내내 눈 부라리고 꽉 잡고 있을 생각이 아니라면 3월에 꽉 잡지 말라”고 제안하고 싶다. 3월은 군기를 잡는 기간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의 불안을 달래어주는 시기다. 그중 더 불안한 쪽은 학생이다. 그 불안을 이용하여 공포에 빠뜨리는 대신 안심시켜주고, 교사를 믿고 사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기간이 3월이 되어야 한다.

물론 교사가 늘 다정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때로 엄히 꾸짖기도 해야 하고, 잘못한 일에 대해 따끔하게 벌도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선 학생들을 다정하게 맞이하고, 불안을 풀어주고, 사랑과 공감을 조성하는 것이 먼저다. 사랑과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관계가 이루어져야 꾸지람을 하고 벌을 주더라도 학생들이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행동을 고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진정한 교육이다.



이렇게 사랑과 엄격함이 함께하는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어른이 되어 상사나 선배가 되었을 때 신입이나 후배들에게도 역시 그렇게 할 것이다. 이렇게 신입들에게 다정하면서도 엄격한 선배나 상사가 하나둘 늘어날 때 불친절하고 차갑고 가혹한 갑질의 사회가 따뜻하게 바뀔 것이다. 의외로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 사회를 바꾸는 열쇠일 수도 있다. 그 실천을 한마디로 정리해 본다. “3월에 꽉 잡지 말자.”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메리 해밀턴

16세기부터 불려온 스코틀랜드의 구전 노래 '메리 해밀턴Mary Hamilton'. 
이 세계인에게 알려진 건 19세의 무명 포크 가수 조앤 바에즈(Joan Baez)의 1960년 데뷔 음반을 통해서였다. 궁정 시녀 메리 해밀턴이 왕의 아이를 잉태했다가 그 아이를 죽인 뒤 여왕에 의해 처형당한다는 게 노랫말의 내용이다. 

해밀턴은 바에즈의 맑고 처연한 음성을 빌려 느리고 담담하게, 1인칭 화법으로, 제 사연을 들려주지만 자신이 왜 아이를 죽여야 했고 왜 처형당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해 보이는 건, 왕이 해밀턴의 목숨을 지켜줄 만큼 (여왕보다) 권력이 세지 않았거나 열렬히 사랑하지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해밀턴이 살고 아이도 무사히 성장했다면 그 아이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왕위 세습의 변수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소문이 번지기도 전에 제 손으로 아이를 죽인 걸 보면, 애당초 사랑도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사에는 해밀턴이 교수대로 끌려가기 전날 밤 왕이 찾아와 해밀턴을 가여워하며 마지막 만찬을 함께 나누자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해밀턴은 물론 왕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다. 

영국의 16세기는 1509년 왕위에 오른 헨리 8세(1491~1547)가 열었다.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고 시녀였던 앤 불린과 재혼하면서 수장령으로 로마와 척을 진 뒤로도 그는 네 명의 왕비를 더 맞이했는데 그들 중 셋이 전 왕비의 시녀였다. 셋째 왕비 제인 시모어가 낳은 아들 에드워드의 권력 강화를 위해 스코틀랜드의 왕녀 메리 스튜어트와 결혼시키려다 거절당하자 전쟁을 감행하기도 했다.



‘메리 해밀턴’의 유래는 불분명하지만, 헨리8세의 잉글랜드에 앙심이 있던 스코틀랜드 시민들이 저 사연들 위에 훗날 엘리자베스1세 여왕에 의해 처형 당하는 비운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사연을 겹쳐 불렀으리라는 설이 그럴싸하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의 표트르 대제와 그의 아내 예카테리나 1세의 시종 메리 해밀턴이 처형(1719년 3월 14일)된 사건에서 유래를 찾기도 하지만 설득력은 약하다. 

‘메리 해밀턴’은 1970년대 초 싱어송라이터 방의경이 '아름다운 것들'이란 제목으로 가사를 번안해 불렀고, 이듬해 가수 양희은이 음반을 내면서 한국인의 애창곡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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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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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끝내 승복 않고 법적투쟁 시사한 박 전 대통령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에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로 거처를 옮긴 뒤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을 통해 헌재의 탄핵 선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모든 결과를 안고 가겠다.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선고 후 이틀간의 침묵을 깨고 밝힌 입장은 누가 보더라도 승복과는 거리가 멀다. 지지자들에게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기에 충분하다. 반년 가까이 나라를 극심한 분열과 혼란에 빠뜨린 책임이 박 전 대통령에게 있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할 생각이 없다면 헌재의 결정을 존중했어야 했다.

명시적 승복 선언은 지난 4년간 국정을 이끌었던 박 전 대통령의 마지막 책무이자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였다. 그러나 승복하기는커녕 법적인 투쟁을 예고했다. 이는 지지자들에게 암묵적으로 탄핵 불복 운동을 부추기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헌재에 제출한 최후 변론서에서 “앞으로 어떠한 상황이 오든 소중한 우리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모아 지금의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가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청와대는 “이미 선고 승복 입장을 밝힌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인정할 사람은 많지 않다. 최후 변론서 그 어디에도 승복이라는 표현은 들어 있지 않다. 헌재 선고 전 정상참작을 노린 진술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헌재의 전원 일치 파면 선고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기각이나 각하를 기대했던 박 전 대통령은 선고 뒤 일부 참모들에게 탄핵 여부를 재확인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렇지만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한 몸이 아니라 국가 장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런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설령 헌재의 선고가 기대와 다르고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헌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법치주의요, 민주주의다.

헌재의 선고에 불복하고 오히려 법적인 싸움을 하겠다고 한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은 대립과 갈등을 키울 뿐이다. 친박 단체의 과격한 시위도 쉽게 누그러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다. 악순환을 끊을 사람은 바로 박 전 대통령이며, 이는 명확한 승복 의사를 밝히는 데서 시작됨을 알고 실천했어야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렇게 강조했던 법치를 스스로 어기는 모순을 범하고 말았다.



2. 통합·적폐청산 함께하는 대선에 미래 있다

탄핵 정국이 끝나면서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번 주 대선일을 공고한다. 5월 9일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많다. 더불어민주당은 2차 선거인단 모집에 들어갔고, 자유한국당은 이달 말 대선 후보를 선출한다는 일정을 확정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정의당 등도 저마다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야말로 대선 정국으로 급격하게 빨려 들어가는 형국이다.

대선 정국에 돌입하면서 우리 사회는 두 갈래의 에너지가 강렬하게 분출되고 있다. 국정 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적폐를 청산하자는 주장과 탄핵 과정에서 확인된 대한민국의 분열을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것이다. 적폐 청산과 국민 통합은 선후의 관계도, 적대적 관계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힐 두 기둥이며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사안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어제 기자회견을 갖고 적폐청산과 국민 통합에 앞장서겠다는 다짐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에서 드러난 대한민국의 적폐는 실로 참담했다. 재벌과 권력자 사이에서 이뤄진 음습한 뒷거래는 개발 독재 시절부터 우리 사회를 짓눌러 왔던 정경유착의 악습이다. 검찰과 국정원, 국세청 등 국가를 지탱하는 권력 기관들이 대통령 권력 사유화에 동원된 사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헌재의 탄핵 인용은 법 위에 누구도 군림할 수 없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확인한 만큼 법치주의에 입각해 분명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중장기적으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각종 불평등 구조는 법적·제도적 개선을 통해 개선돼야 한다.

분열과 갈등의 대한민국을 통합하는 일 또한 우리 앞에 놓인 중대한 과제다. 촛불과 태극기로 상징되는 작금의 분열상은 더 나은 대한민국을 향한 진통의 과정이다. 현재의 5당 체제가 대권에 집착해 당파와 정파의 이익에 골몰해 갈등을 유발시키는 것은 국가적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다. 무엇보다 대선 주자들은 정치공학적 접근으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발상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보복,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발호 등 외교·안보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국민 통합과 초당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대선 주자들이 인신공격과 흑색선전 등 갈등 유발적 전략으로 접근하지 말고 정교한 정책 중심적인 선거전을 통해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보여 줘야 한다. 도덕성에 국한된 논쟁과 구호성 공약에서 벗어나 확실한 후보 검증이 필요한 이유다.



진영의 논리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전체의 안위와 국민 복리가 우선돼야 한다. 19대 대선은 국민의 염원을 담아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는 선거가 돼야 한다는 것이 모든 국민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매일신문]

3. 박 전 대통령, 분열과 갈등을 해결하려는 모습 보여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 사흘간 침묵을 지키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4문장짜리 짧은 대국민 메시지를 내놨다.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 전한 내용에 따르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헌재 결정을 직접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이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박 전 대통령이 헌재 결정에 명쾌하게 승복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국민이 많았지만, 현재로선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을 준다.



짐작하건대, 박 전 대통령은 헌재 결정에 억울하고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그동안 박 전 대통령이 ‘잘못이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해왔기에 헌재 결정을 부정하고픈 마음이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렇더라도, 헌재 결정에 승복하고 새 출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평범한 ‘자연인’이라면 거부하고 불복해도 괜찮겠지만, 책임 있는 정치인 혹은 전직 대통령이라면 그렇게 해선 안 된다. ‘공인’이라면 설령 부당해 보이는 법 절차라도 무시하거나, 거부해서는 안 된다.



며칠 전 태극기 집회에서 사망자 3명이 나온 것을 볼 때, 박 전 대통령의 승복 여부가 무척이나 중요하다. 항의 집회가 계속되는 만큼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더 이상의 갈등과 대립은 국가를 나락으로 떨어트릴지 모른다. 박 전 대통령이 분열과 대결을 해소하고 봉합하는 디딤돌을 놓는 것이 마지막 책무가 아닐까 싶다.



박 전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다소 억울하게 이명박 후보에게 졌지만 깨끗하게 승복했다. 다시 한 번 그런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박 전 대통령을 끝까지 지지한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야당도 명심할 것이 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승복을 강요하고 공격하는 자세는 보기에 좋지 않다. 짧은 메시지 하나만으로 무조건 욕하고 매도하는 것도 문제다. ‘승자’의 아량이나 관용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박 전 대통령을 심하게 몰아붙이는 것보다는, 스스로 승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경제 대혼란 막는데 국가 총력 모으자

탄핵 결정으로 정치 리스크가 크게 완화됐지만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대내외 압박 요인은 여전하다. 특히 정권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노동개혁 등 각종 정책은 동력을 잃었고 대내외 악재가 동시다발로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어 사실상 경제가 표류 중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경제 리스크는 새 정부가 들어서고 정치적 혼란이 완전히 수습되어도 해소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당장 경제 살리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대경제연구원이 12일 발표한 ‘탄핵 이후 한국 경제의 5대 리스크’ 보고서에도 위기 현실을 정확히 짚었다. 연구원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EU 붕괴, 사드 관련 중국의 경제 보복, 가계 부채, 남북관계 경색 등을 5대 리스크로 지목했다. 어느 것 하나 해법 찾기가 쉽지 않은 문제다. 만약 정권 공백기를 이유로 이를 방관하거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한국 경제 신인도 하락은 물론 금융시장 불안 등 후폭풍이 크다는 점에서 만반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압박 강도가 세지고 있는 중국의 사드 보복은 가장 큰 위협 요소다. 무역협회가 콘텐츠`관광`소비재 기업 597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를 보면 사드 관련 경제 제재로 인해 ‘현재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이 56.2%로 나타났다. ‘지금은 피해가 없으나 3개월 내 미칠 것’(32.9%)이라는 응답을 합하면 열에 아홉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 인상이 유력시되는 미국의 금리 변동도 큰 악재다. 미국이 올해 기준금리를 3차례 이상 올릴 경우 한`미 간 금리가 역전한다. 대규모 외국인 투자금의 이탈에다 1천300조원이 넘는 가계 부채에 초비상이 걸리고 내수 침체 등 파장이 엄청나다. 여기에다 한미 FTA 폐기가 현실화할 경우 대미 수출 손실액은 약 130억달러, 고용도 12만 명 이상 감소하는 등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만약 정부와 한국은행이 지금과 같은 강도로 각종 현안에 대응한다면 경제 위기를 헤쳐나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최악의 경우까지 염두에 두고 경제 이슈에 집중하고 금융시장 혼란 등 대내외 악영향 차단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중앙일보]

5. ‘자연인 박근혜’ 검찰 수사 원칙대로 해야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피의자’ 신분이 됐다. 특별검사팀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서 박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강요 등의 공모자로 입건했으나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 때문에 기소하지 못했다. 그런 특권이 박탈당하면서 ‘자연인 박근혜’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국민 정서와 정치적 파장을 두루 고려한 ‘현명한 수사’가 돼야 할 것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시기와 강도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한다. 대선 정국에 돌입한 상황에서 소환 시점은 매우 민감하다. 바로 며칠 전까지 대통령이던 사람을 잡범 취급하듯 무리하게 강제 수사를 한다면 동정 여론만 불러올 수 있다. 그렇다고 뚜렷한 이유도 없이 수사를 지연시킬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어제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며 여전히 혐의를 부정했다. 사실상 헌재 결정을 수용치 않은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헌재가 지적했듯이 박 전 대통령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최순실씨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고 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해 사익 추구를 도운 중대한 범죄 행위” 등에 대해 여전히 궁금해한다. 불행한 사태가 초래된 과정과 경위를 밝혀야 할 의무가 검찰에게는 있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자발적으로 응하는 것이 최선이다. 수사 당국도 강제소환이나 불응 시 체포 등 수사권 발동에는 그 당위성 등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 검찰은 중립적 입장에 서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여론, 정치 일정 등을 감안하면서도 법의 원칙대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6. 황교안, 하루빨리 거취표명 안 하면 반칙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정국은 조기 대선 체제로 전환됐다. 대통령 궐위 때부터 60일 이내에 보선을 치러야 한다는 헌법 규정에 따라 늦어도 5월 9일까지는 새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엊그제 김용덕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대국민 담화에서 “짧은 기간이지만 자유과 공정이 조화되는 준법선거를 실현하겠다”며 “공직자는 어떤 선거 개입 논란도 일어나지 않도록 엄정 중립의 자세를 확고히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대통령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의 거취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황 대행이 탄핵 정국에서 정부의 연속성을 유지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대선 정국을 관리해야 한다.

비유컨대 운동경기의 심판이 된 셈인데 그가 아직도 선수로 뛸지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면 자유롭고 공정한 게임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황 대행은 정부의 최고 의사결정자로서 일거수일투족이 대선에 영향을 주는 위치에 올랐다. 당장 이번 주 황 대행은 선거 날짜를 확정, 발표해야 하는데 그 행위조차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지금은 선거법의 규율을 받는 사전선거운동 기간이다. 행여 황 대행이 마음속으로 출마 의욕을 감춰 두고 선거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한다면 나중에라도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예를 들어 5월 9일이 선거일로 결정되고, 황 대행이 보궐선거 시 공직자 사퇴시한(투표일 30일 전)에 맞춰 4월 9~10일께 갑자기 후보로 나서게 되면 선거판은 대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황 대행은 선거 여론조사에서 보수 주자 가운데 줄곧 1위를 차지함으로써 어느새 대선판의 핵심 변수가 됐다. 박근혜 파면으로 목표를 잃은 탄핵 반대 그룹의 집회에서 “황교안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대통령 파면에 이어 권한대행까지 출마를 위해 직을 관둔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만약 황 대행이 꼭 대선에 뛰어들겠다면 오늘내일 사이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출마면 출마, 불출마면 불출마를 분명히 밝혀 정국의 불확실성을 확실히 거둬내야 한다. 아무리 늦어도 이번 주 선거일 발표 때까지 거취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반칙 행위를 하는 것과 같다.



[이데일리]

7. 경제 되살리지 못하면 모든 게 허사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그동안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걷힌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안정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호의 앞날은 여전히 가시밭이다. 당장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일이 급선무다. 5월 대선도 중요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사드 배치를 둘러싼 외교·안보 갈등을 푸는 일도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안팎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국가적 과제다.

더욱이 중국의 사드 보복은 전방위로 격화하고 있다. 유통매장에서 생산시설로, 롯데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로 규제가 확대되는 중이다. 심지어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한국상품 불매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와중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도 통상압력을 노골화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부정적 평가와 삼성·LG에 대한 불공정 무역 경고에 이어 현대중공업 대형 변압기에 61%의 반덤핑 관세기 확정됐다.

내부 사정도 여의치 않다. 가뜩이나 부진하던 경제는 탄핵정국 동안 극심한 외풍에 시달리며 뒷걸음질 쳤다. 국회 청문회와 잇단 검찰·특검의 조사 등으로 대기업의 투자와 고용은 꽁꽁 얼어붙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시중을 떠도는 단기 부동자금이 무려 1000조원을 넘었을 정도다. 산업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대란도 걱정거리다.

이번 주 결정될 미국 금리인상도 악재다. 우리도 금리 인상압박을 받아 1300조원의 가계부채가 경제에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상환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금리차로 인한 외화유출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지난 6일 기준 1조 1240억원의 채권형 펀드자금이 순유출됐다. 신흥국 경기 위축으로 수출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대통령 부재’의 위기 상황이다. 황교안 권한대행과 유일호 경제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차기 정부 출범 전까지 정치권과의 협치로 공정한 대선 관리, 안보위기 해소는 물론 적극적 대내외 리스크 관리로 민생을 돌보고 경제를 살리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정치권도 대선 정국에서 득표 요인만을 노려 정파적 이익만을 앞세우다간 나라가 결딴날 수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8. 대선 후보들, 예비내각 명단 밝혀야

이제 우리는 다음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파면됐다는 초유의 사태에 비춰서도 다시는 그런 불상사가 없도록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과거 역대 대통령마다 결정적인 흠결을 남긴 채 국민들의 박수를 받기보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는 사실도 헌정사가 지금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엄정한 교훈이다.

더욱이 이번 선거는 시간적 여유도 그리 충분하지 않다. 최고 리더십 공백을 하루빨리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파면에 따라 60일 안에 선거가 치러지도록 돼있는 것이 그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인수위원회를 통한 권력인수 절차도 없이 그날부터 대통령 직책을 수행해야 할 만큼 절차가 촉박하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금주 안에 선거일을 공고할 예정이지만 지금으로써는 5월 9일이 유력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가장 큰 문제는 후보들에 대한 검증 작업이다. 여야 각 정당이 탄핵을 기정사실화한 상황에서 벌써부터 자기 당의 후보선출 작업을 진행해 왔지만 검증 작업은 아무래도 미진할 수밖에 없다. 탄핵 정국의 와중에서 광장에 뛰쳐나가 걸러지지 않은 원색적인 발언으로 인기를 얻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결국 국가 재정을 털어먹는 식의 유치한 포퓰리즘 공약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정공백 현상을 하루라도 앞당겨 해소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각 후보들이 선거 공약에 국무총리를 포함한 예비내각 명단도 포함시켜 함께 발표하는 것이 마땅하다. 선거가 끝나고 난 다음 내각을 꾸린다면 그만큼 국정 혼란이 가중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예비내각 진용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해당 후보의 정부조직 개편 의중도 저절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선거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선거운동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야 정당마다 적어도 내달 초까지 후보를 결정한다는 계획 아래 절차에 돌입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 이후의 선택과 책임은 전적으로 유권자들의 몫이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해 후회된다”는 푸념이 이번에도 되풀이돼서는 곤란하다. 후보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두눈을 부릅뜨고 선거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가의 주인 된 도리다.



[매일경제]

​9. 헌재가 일깨워준 기업 경영자유와 재산권의 가치

우리 헌법의 중대한 가치와 지향점을 온 국민이 되돌아본 날이었다.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을 또박또박 읽어내려갈 때 '대한민국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큰 메아리로 울려퍼졌다. 이번 헌법재판소 판결은 비록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줬고 이를 발판 삼아 우리는 새로운 법치의 역사를 열어야 한다.

이 편 저 편으로 갈라진 사회를 하나로 통합하고 굳건한 국가 안보 토대 위에서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매진해야 한다. 박근혜정부가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을 약속하며 내세웠던 '4·7·4 공약'은 이미 실패로 결론났다. 글로벌 경제전쟁은 첨예해지고 있는데 그 첨병에 서야 할 대기업들은 몇 달 동안 청문회, 검찰 수사에 불려다니며 반기업 정서에 시달리고 있다. 이 혼돈을 수습하려면 하루빨리 우리 경제의 지향점과 기업·정부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재판소는 10일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경제질서의 중대 원칙들을 재확인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박 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최서원(최순실) 이권개입에 도움을 준 행위는 기업 재산권을 침해하고 기업경영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적시했다.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한다'는 헌법 23조 1항과 '대한민국 경제질서는 개인·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기본으로 한다'는 헌법 119조 1항의 정신을 일깨운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차기 대통령 선거가 급류를 타면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구호는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그에 비례해 기업을 옥죄는 규제 법안들은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기업을 질타·매도하는 정서도 커지고 있으니 걱정스러운 일이다. 그사이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며…'로 표현되는 헌법 119조 2항의 경제 민주화 조항은 수시로 인용된다.



헌법재판소는 10일 우리 헌법이 재산권과 기업경영 자유라는 가치를 경제민주화에 앞서 우선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우리 경제를 성장시켜온 원동력인 이 소중한 가치들이 정치권 구호에 밀려 희석돼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 사회에 뿌리박혀 있던 오랜 정경유착 관행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낯을 드러냈다. 헌재가 밝힌 것처럼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출연 요구를 받은 기업으로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고 볼 것인지 아니면 특별검사 판단처럼 뇌물로 볼 것인지는 앞으로 법원이 판단할 문제다. 

중요한 것은 기업의 후원·기부 과정이 투명해지도록 기업과 정부의 관계를 투명하게 재정립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 경제 잠재성장률은 지난해 2%대로 떨어지고 고용률도 66%에 머물러 당초 박근혜정부가 약속한 모습과 거리가 멀다. 여기에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거세지고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이 거칠어지고 있으니 하루도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경제 동력을 되살리기 위한 비상한 결단과 발상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기업들은 뭇매를 맞으면서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삼성과 SK 등은 10억원 이상 기부금을 내야 할 때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하는 등 투명한 의사절차를 만들어 가고 있다. 정작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 환골탈태해야 할 곳은 정치권과 정부다. 기



업을 정치권의 화수분으로 생각하고 언제든지 간섭·압박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없다. 모든 국민이 경제적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받는 가운데 기업가정신을 불태울 수 있도록 헌법 정신을 바로세워야 성장동력은 되살아날 것이다.



10. 안보·경제 격랑속 두달, 황대행은 위기관리 철저히 하라

헌정사상 첫 대통령 파면으로 대한민국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대통령 궐위로부터 60일 이내에 선거를 치러야 하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두 달간의 대통령 공백 사태는 불가피하다. 그 기간 동안 대한민국호(號)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운행해야 한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황 권한대행은 국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권한대행을 맡아 국정을 운영해 왔지만 대통령 궐위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만큼 보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국정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도록 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의 임기가 공약을 가다듬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도 없이 바로 개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황 권한대행의 '60일 과도정부'의 역할은 너무도 중요하다.



황 권한대행의 직무범위가 '현상 유지'에 그쳐야 한다는 의견도 많지만 차기 정부가 직면할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위기관리를 철저히 해야할 것이다.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두 축인 안보와 경제는 지금 위중한 상황이다. 북한은 김정남 독살에 이어 탄도미사일 발사 등 도발의 수위를 높이고 있고,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반발해 보복에 나서는 등 동북아 정세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한에 대한 미국 내 경각심이 커지면서 대북 선제타격론, 전술핵 배치 등 초강경 옵션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중·일 3국이 북핵 등 한반도 문제 해결에 한국을 배제하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황 권한대행은 헌재의 박 전 대통령 파면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북한 도발 시 확실히 응징할 수 있도록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춰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는데 굳건한 한미 연합 방위태세 구축에 가장 역점을 둬야 한다. 황 권한대행은 사드 배치에 있어 미국과의 합의를 이행하면서 중·일과의 관계 악화를 막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

안보 이상으로 중요한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탄핵정국이라는 정치 불확실성으로 경제는 위기로 치닫고 있다. 2%대의 저성장 기조, 소비 둔화, 13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등 악재가 한둘이 아니다. 대외 경제 환경은 더 좋지 않다.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미국의 통상압력이 노골화되고 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한국 환율조작국 지정, 대우조선해양의 회사채 만기 등을 근거로 한 '4월 위기설'도 지난달부터 퍼지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할 컨트롤타워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 당일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는 한강 다리를 여섯 번이나 건너며 국제 신용평가사 등 시장을 안심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중심이 돼 위기를 헤쳐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황 권한대행의 대선출마론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여권 대선주자 중 지지율이 높지만 황 대행의 본분은 비상 상황에 처한 국가를 안정화시키고 조기 대선의 심판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위기의 2개월간 국정혼란 수습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국민이 황 대행에게 바라는 것일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힐러리 한​

‘한(Hahn)’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를 한국계로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는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독일계 미국인 연주자다. 사라 장, 율리아 피셔와 함께 21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3인방 중 한 사람이다. 3살 때 메릴랜드 볼티모어에 위치한 피바디 음악원의 스즈키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1991년 불과 12살의 나이에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데뷔한 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닉과의 협연을 통해 연주 활동을 했다. 1995년 독일에서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바이에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지금까지 세계 40여개 국가에서 한 해 100차례 이상의 콘서트를 열고 있는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다.

힐러리 한은 특히 바흐 음악에 있어서 특별한 연주자로 꼽힌다. 17세던 1997년 바흐로 데뷔 앨범을 냈고, 이를 통해 그래미·그라모폰상 등을 휩쓸었다. 10대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것이 바흐의 음악. 하지만 이에 대해 그는 “오히려 바흐가 편안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데뷔 음반으로 ‘바흐’를 들고나온 연주자답게 그녀의 연주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냉철하고 빈틈없는 음악’이라는 평을 받았다. 

대체로 풍부한 표정의 타 연주자들과 다르게 무대에 선 힐러리 한은 표정의 변화가 별로 없는 ‘얼음같이 차갑게 냉정함’으로 유명하다. 덕분에 ‘얼음공주’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마치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인형 같은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면서도 무표정 연주가 인상적이다. 

협연 무대에서 독주자로 서는 연주자들은 대개 지휘자와의 호흡을 중요시한다. 때로는 지휘자의 사인에, 때로는 연주자의 호흡에 맞추며 서로 간의 소통을 면밀히 이어가는데, 힐러리 한은 종종 다른 모습을 보인다. 연주 중 그녀가 단호하게 표정을 지으며 활을 내딛거나, 깐깐한 표정으로 지휘자를 쳐다보면 지휘자가 따라와주는 느낌을 줄 때가 적지 않다. 힐러리 한의 힘이다. 음악의 해석에 있어서 틀림없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모습일까나.

연주 전 작곡가에게 직접 연락해 곡 해석에 대한 의견을 나누거나 다른 연주자를 인터뷰하는 것도 그녀의 남다름이다. 세계 각지 연주 여행을 다니며 느낀 것을 담아 에세이 ‘바이 힐러리(ByHilary)’를 쓰고 있고, 현지 소식과 음악에 대한 단상을 본인의 홈페이지(hilaryhahn.com)에 연재하기도 한다. 모두 그녀의 왕성한 탐구심과 풍부한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하여 이 ‘얼음공주’는 성숙한 지성과 세련된 감성, 천부적 재능, 거기에 미모까지 겸비한 이 시대 완벽한 바이올리니스트의 표본이 됐다. 그리고 매번 ‘완벽한 연주’를 펼쳐 보인다. 가히 얼음공주다운 위엄이다. 하지만 연주가 만족스럽게 끝나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활짝 웃는 바이올리니스트. 이때 그녀는 활짝 핀, 빛나는 미소의 비르투오소가 된다.



2. [매경이코노미][Health] 후두염의 증상과 예방법

3월. 큰 일교차와 미세먼지 탓에 호흡기 질환에 노출되기 쉬운 때다. 감기 외에도 이맘때 주의해야 할 질환이 ‘후두염’이다. 후두염은 염증이 생겨 후두가 빨갛게 부어오르면서 아픔을 느끼는 병이다. 후두는 우리가 코와 입으로 공기를 들이마시면 그 속의 이물질을 걸러내주는 역할을 하는 부위다(이미지 참고).

후두염은 봄이 시작되는 3월, 환자가 급증하는 경향이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3월 한 달간 만성 후두염 환자는 6만3851명으로 같은 해 7월보다 2배 정도 높은 수치를 보였다. 급성 후두염 역시 3월에 50만7558명으로 7월보다 2배 이상 많았다. 평소에는 문제가 없던 후두에 왜 갑자기 염증이 생기고 병으로 이어지는 걸까. 기온 차에 우리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공기 중에 있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후두에 침입해 문제를 일으키기 쉬워지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후두염은 콧물, 코막힘 같은 일반적인 감기 증상을 보이기보다는, 목소리가 쉰다는 점이 특징이다. 

김하균 고대안암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후두 부분에 성대가 가까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 생긴 염증이 목소리를 변하게 만든다. 기침을 많이 하고 침을 삼킬 때 목구멍이 아프고 이물감이 느껴질 수 있다. 증상이 심해지면 기도가 좁아져 환자들은 숨 쉬기 어려운 증상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성인에게 나타나는 감염성 후두염 중에선 바이러스성 후두염이 가장 많다. 김하균 교수는 “가장 흔히 진단되는 바이러스는 리노바이러스(rhinovirus)다. 실내 습도가 부족한 곳에 오래 있으면 후두염에 걸리기 쉽다. 소리를 많이 지르거나 말을 많이 해야 하는 환경과도 관련이 있으며 흡연 역시 악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감염성 후두염 중 호흡 곤란을 나타내는 ‘급성 후두개염’도 있다. 김 교수는 “급성 후두개염이 발생하면 기도가 막힐 수 있어 위험하다. 18~40세 사이 연령대에서 많이 나타나며 여성보다 남성에게 2배 이상 더 흔하게 나타난다. 헤모필루스(Haemophilus) 인플루엔자라는 박테리아가 가장 흔한 원인균”이라고 말했다.

급성 후두염은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1~2주일 내에 완치가 된다. 그러나 후두염을 가볍게 생각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만성 후두염으로 악화될 수 있다. 만성 후두염으로 성대 내 염증이 심해지면 성대 궤양이나 성대 물혹 등이 생길 수 있다.

후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실내 습도를 조절해주고 성대를 부드럽게 안정시켜주며,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후두염에 걸렸다면 소염제를, 고열 증상을 보이는 등 다른 세균 감염의 증상이 있다면 항생제를 처방받는다. 

급성 후두개염처럼 증상이 심한 후두염은 산소 공급 치료법과 함께 항생제나 스테로이드를 처방받기도 한다. 호흡 곤란이 심하다면 기관절개술이나 기관삽관 등의 응급처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

“후두염에 걸렸다면 후두에 최대한 자극을 주지 않아야 빨리 낫는다. 먼지를 없애 실내 공기를 깨끗이 만들어주고, 가습기를 이용해 공기가 건조해지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병을 옮길 위험이 있으므로 되도록 공공장소를 피하는 것을 권한다. 또 후두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맵고 짠 음식은 삼가는 것이 좋다. 또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되도록 야외 활동을 삼가고 외출이 불가피하다면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김 교수의 조언이다.



3. [아시아경제][초동여담] 그가 없는 봄

낡았지만 마당이 있는 주택에 몇 해 전 둥지를 틀었다. 서울의 끄트머리 동네, 아파트 개발의 바람 속에서도 존치된 한가로운 마을이다. 쥐뿔도 없으면서 ‘마당 있는 집’이라는 로망을 안고 사는 걸 한탄스러워 하다가 운 좋게 값싼 전셋집을 구한 것이다. 

매일 풀밭과 나무를 보며 사니까 주말이 돼도 굳이 공원이나 야외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도시’를 찾아가곤 한다. 계절의 변화는 오롯이 스며든다. 마당의 눈이 녹고 누르스름한 자취가 드러나는가 싶다가 햇살이 따사로워짐에 따라 서둘러 풀들이 피어오른다. 

개나리가 피고 마침내 목련이 팝콘처럼 봉오리를 터뜨리면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다가 또 어떨 때는 아득한 안온함에 젖기도 한다. 목련은 우아함의 극치이며 아름다움은 찰나여서 더 고고하다는 걸 제 몸 바쳐 입증해내곤 한다. 목련이 피어 있는 동안은 왠지 조마조마하다. 마치 짧은 청춘의 불안한 찬란함을 보는 듯 하다. 

철쭉이 피면 이제 느긋하게 봄내음을 즐기면 된다. 과장하지 않고 익숙한 아름다움으로 오래 머물러 줘서 고맙다. 

이제는 횟수가 줄었지만 이사 온 첫 해에는 툭 하면 숯불을 피웠다. 손님이 찾아오거나, 혹 반찬이 마땅치 않다고 해도 그저 “불 피우자”고 했다. 고기는 프라이팬이 아니라 석쇠에 올려지는 게 상례가 됐다. 물론 요즘은 좀 뜸해지긴 했다. 

마당 한 켠에선 나름 텃밭 시늉을 내보려 했다. 무지하고 게으른 주인이지만 상추나 깻잎은 심어놓으면 알아서 잘 자라는 편이었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몸에 좋다는 양배추를 심으려 모종을 사러 갔다. 봄철 모종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욕심만 많아서 두 판, 그러니까 50여개의 모종을 심었다. 

설마 엉뚱한 모종을 줬으리라고야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심어놓고 한참을 기다려도 당최 저게 양배추 꼴이 될 성 싶지가 않았다. 결국 케일 모종으로 밝혀졌다! 쓴 맛의 케일을 먹는 일은 가끔이었다. 우리 가족보다 벌레들이 더 많이 먹어치웠다. 모종 가게에 대한 원망만큼이나 스스로 무안했다. 와이프는 비웃었다. 

올해는 요긴한 모종을 정확히 따져서 심고 정성을 들여 가꿔볼 요량이다. 원하는 것을 심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전혀 다른 작물이 올라오는 황당함을 적잖은 국민들도 느꼈을 것 같다. 일단 뿌리째 뽑아내고, 다시 잘 보고 심어야 하겠다. 엉뚱한 뿌리는 철저히 없애야 다시 엉망이 되지 않을게다. 이 나라는 시행착오를 거쳐 다시 성숙의 길을 갈 것으로 믿는다. 이 봄이, 전혀 다른 봄이 되길 바란다. 예감은 나쁘지 않다.



4. [매일신문][매일춘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성공이 곧 행복이며 이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 진리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사는 법’ ‘너무 바쁘다면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와 같은 책들이 일 중독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백세 시대에 길어야 삼사십 년 소용될 일만 보고 살다 보면 문득 거대한 벽 앞에 멈춰 서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질문한다. ‘나는 잘산 것인가,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자녀교육 전문가 가나모리 우라코는 “자식에게 남길 최고의 재산은 내 부모가 정말로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라 말한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의 저자 이근후는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였으나 현재는 일곱 가지 병을 갖고도 재미있게 살고 있다.



노년에는 주변의 도움에 익숙해질 것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오늘을 귀하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에게 젊음의 무지(無知)가 오히려 불확실한 미래를 개척하는 용기가 된다고 인생 선행 학습을 시킨다.



소설책 몇 권으로도 다 풀지 못하는 인생을 살아왔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책 한 권을 실제로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구 중구 도심재생재단에서는 ‘생애사열전 100선 사업’을 2012년부터 해오고 있다. 이미 78권의 책이 출간되었고 올해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다.



일흔을 훌쩍 넘기고 생애사 ‘배우며 나누며’를 쓴 최상순은 “좀 더 이른 나이에 생애사를 써봤더라면 부족한 점을 보충하여 남은 삶을 더 보람 있게 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인생의 황혼기를 정리하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답을 찾으려고 생애사나 자서전 쓰기를 시작했던 분들이 오히려 ‘어떻게 살 것인가’의 답을 얻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학생과 대학생들에게 미래 상상자서전을 쓰게 한 적이 있었다. 자서전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나이에 무슨 자서전이냐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미래 일기 쓰기처럼 미래 자서전 쓰기는 막연한 꿈에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주는 역할을 한다. 자신이 살고 싶은 미래를 상상하고, 그를 위해 거쳐야 할 과정들을 구상하고 무릎이 꺾이는 순간들도 내다보며 만든 자서전은 장난처럼 시작하지만, 결코 장난일 수 없다. 자



서전을 쓴 후 자신의 길을 찾아 늦깎이 학생이 되고, 공무원이 되고, 작가의 꿈을 이뤄가고, 드라마PD가 되어 찾아온 그들을 보면서 구체적으로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는 진리와 또 한 번 만난다.



어떻게 죽고 싶은가.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적어보라.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의 해답이 그 안에 담겨 있다.



5. [서울신문][백승종의 역사 산책] 성호 이익의 소박한 밥상

“올해 여름(1756년 영조 32)은 집집이 백성들이 굶주림을 면치 못해 그저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 다행이라고 말들 합니다. 이웃까지 구제할 여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경전 말씀에 윗사람이 고아를 돌봐주면 백성들도 서로 저버리지 않는다고 하였지요. 지금의 형편을 감안하면 윗사람이 남의 어린아이를 잘 보살펴 주면 백성들도 자애로운 마음을 가질 것이라고나 할지요.”(‘성호전집’ 제26권)



실학자 성호 이익이 제자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수신자는 안정복, 그는 ‘동사강목’으로 후세에 유명해진 선비였다. 그런데 아마도 스승은 유교 경전의 틈새로 파고들 뜻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편지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자애로운 마음이 격려를 통해 일어나기란 어렵습니다.” “사람들을 구제하기란 성인에게도 어려운 일이었지요. 가난한 사람들이 어찌 실천에 옮길 수 있겠는지요. 성인의 말씀은 뜻이 깊어 무궁한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은가 거듭 생각해 봅니다.” 이익은 경전에 실린 주장이라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늘 주저했다.

18세기 조선에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다. 가난에 시달리는 선비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조차 ‘봉제사’(奉祭祀·제사모심)와 ‘접빈객’(接賓客·손님대접)을 소홀히 하지 못했다. 특히 주자가 주를 단 ‘가례’의 내용이라면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실학자 이익은 철저한 고증 작업을 통해 ‘가례’의 신화에 맞섰다. 그는 다름 아닌 주자의 저서를 샅샅이 뒤져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구절을 찾아냈다. 주자 역시 ‘가례’에 나열된 15가지의 제수를 낭비로 여겼다. 주자의 말은 이랬다. “(제수는) 집안의 경제적인 형편에 따라야 한다. 한 그릇의 국과 한 그릇의 밥이라도 정성을 다할 수 있다.”(‘주자어류’) 주자의 본의까지 확인한 마당이라 이익의 생각에 날개가 달린 셈이었다. “상례나 제례같이 큰일(大事)이라도 반드시 규모를 줄이고 절약에 힘써야 합니다.”

이익은 사랑하는 제자 안정복에게 속생각을 자세히 말했다. “‘가례’에 명시된 예법은 벼슬이 없는 사람(庶人)이 반드시 지켜야 할 예법이 아닙니다.” 사실 이익은 사당에다 4대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일도 공자에게는 낯선 풍습임을 확인한 바였다. 또 한식과 추석 등 4명절의 제사며 무덤제사(墓祭)도 훗날에 만들어진 전통임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확신을 제자에게 알렸다. “군자는 인의(仁義)를 소중히 여기고 재화를 천시합니다. 하나 재화가 없어서 망하기도 합니다. 하물며 보통 사람들이야 어떠하겠습니까. ‘가례’를 보완할 때는 이런 뜻을 기억해야겠지요.”

조선의 법전 ‘경국대전’을 살펴보면 사대부의 제례는 간소했다. 국가가 사대부 집안을 위해 토지를 지급한 적도 없었다. 또 벼슬 높은 사대부 가문이라도 재산 규모는 차이가 심했다. 그런 점에서 국가가 제례의 규모를 성대하게 정하지 않은 것은 옳은 일이었다. 이러한 법의 취지를 이익은 십분 이해했다.

제사 지낼 물건도 아끼는 마당에 자신의 밥상을 풍성하게 차릴까. 이익은 절약을 고집했다. “나의 식사는 밥과 국, 고기 한 접시, 채소 한 접시로 국한한다. 형편이 나쁘면 더 줄여야 맞다. 만일 잘살게 된다 해도 더 늘릴 수는 없다. 내 자손들은 대대로 이 법을 따르기 바란다.”(‘성호사설’ 제11권) 오늘따라 마침 풍성하게 차려진 저녁 밥상을 받아 놓고 이익의 뜻을 잠시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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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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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신문사설


​[조선일보]

1. 오늘 시험대 오르는 대한민국, '역사적 승복'으로 위기 끝내자

헌법재판소가 오늘 11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선고한다. 작년 10월 5일 검찰이 최순실 사건 수사를 시작한 지 5개월여, 국회가 12월 9일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지 3개월 만이다. 이 긴 시간 동안 밖에서 태풍이 불어오는데도 나라 전체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여기까지 왔다. 오늘은 여기에 종지부가 되는 날이다. 정치·사회적 모든 논란과 불투명성도 함께 종결돼야 한다.



​선고를 하루 앞둔 9일 헌법재판소 주변에서는 탄핵 찬반 집회가 열렸다. 탄핵 반대 측 대변인은 탄핵 각하를 반대한 재판관을 국가반역자로 규정해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걱정스러운 일이다. 탄핵 찬성 쪽에서도 '기각되면 혁명' 같은 말을 반복해왔다. 경찰은 10일 헌재 주변 100m 안쪽에서는 집회를 전면 봉쇄키로 했다. 또 서울 전역에 최상위 경계령인 갑호 비상을 발동키로 했다. 상황이 그만큼 엄중하다.



​그러나 불복 조짐을 경계하고 승복을 주문하는 각계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보수적 성향의 한국기독교단체총연합회, 진보적 성향의 천주교 주교회의가 각각 승복을 주문하는 호소문을 냈다. 불교 조계종도 호소문을 낸 뒤 정당 대표들을 방문했다. 모두 "승복이 민주주의의 출발점" "불복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거리에 나서지 않은 많은 시민들도 같은 뜻일 것이다. 지난 몇 달간 군중의 무절제한 목소리가 국가의 앞날을 위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점점 커져왔다. 그러나 이제 승복 외에는 어떤 다른 길도 존재하지 않는다.


헌재 선고가 있은 뒤 있을 수밖에 없는 한쪽의 상실감을 수습하는 일도 중요하다. 원하는 헌재 선고를 받아 든 사람들의 자중(自重)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자중이란 언행을 신중하게 한다는 뜻이다. 오늘처럼 그것이 필요한 날이 없다. 이 모든 문제를 제도권으로 수렴해야 할 책임이 정치권에 있다.


대선 주자들과 각 정당 지도부는 그 반대 역할만 해왔다. 대선 여론조사 선두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집회 참석을 자제해달라는 많은 주문을 거스르고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촛불 집회에 참석했다. 집회 참석을 그만둔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극성 군중에게 몰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자유한국당 일부 인사들도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국회와 특검을 비난했다.


오늘부터라도 달라져야 한다. 각 정당 대표들과 대선 주자들은 함께 만나 실질적인 수습책을 논의해야 한다. 치유해야 할 상처들이 너무 많이 났다. 오늘 이후에도 자극적인 분열 책동을 펴는 사람이 있으면 대선 주자로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퇴출시켜야 한다.


지금 우리는 탄핵 사태만을 보고 있지만 실은 그보다 더 큰 안보·경제 복합 위기가 눈앞에 닥쳐와 있다. 그동안 북은 중거리탄도미사일 도발을 두 차례 감행했고 중국은 사드 보복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미 트럼프 정권은 북을 향한 선제타격·정권교체까지 포함한 모든 방안 검토에 들어갔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경제도 수출 홀로 버텨나가고 있을 뿐 투자와 내수, 소비 심리, 고용 모두 침체가 깊어지고 있다.


만약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경우라면 두 달 동안 선거라는 소용돌이에 또다시 모든 것이 휩쓸려 들어갈 것이다. 기각되면 또 그에 따른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오늘 헌재는 역사적 법정으로 기록될 것이다. 국민은 탄핵 찬성이든 반대든 입장을 떠나 '역사적 승복'으로 대혼돈을 끝내야 한다. 정치권은 여기에 앞장서 그동안 방치해온 숱한 국가 현안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와 법치가 한 단계 성숙할 수도 있다. 중대한 역사적 갈림길이다. 대한민국이 시험대에 섰다.


2. 시진핑 주석, '스트롱맨' 아닌 존경받는 지도자 되길
북한의 핵·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경북 성주에 설치 중인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에 중국이 반발하면서 한·중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국가 관계에서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경제 보복을 하고 관광객의 발길을 막는 것은 과도한 것으로 중국의 위상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다.



올해는 한·중 양국이 수교한 지 25년 되는 해다. 그 사이 한국에 중국은 최대 교역국, 중국에 한국은 넷째 교역국이 됐다.



1주일에 양국 간 항공기가 900편 오간다. 두 나라 대학에서 공부하는 양국 학생 숫자도 모두 1위다. 이런 관계가 사드 문제 하나로 흔들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중국 처지에서 어쨌든 동북아시아에서 미군 전력이 증강되는 것은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도 사드 배치를 놓고 오랜 기간 고심을 거듭했다. 그러나 북핵과 미사일이 고도화를 거듭해 무방비 상태에 빠진 한국에 사드 배치는 선택 문제가 아니게 됐다. 중국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이것은 사실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취임 후 북한을 방문하지 않고 김정은을 초청하지도 않았다. 2014년 한국을 먼저 방문하면서 중국의 한반도 정책을 합리적, 현실적으로 재조정할 지도자로 기대를 모았다. 한국 대통령이 동맹국 미국의 우려를 무릅쓰고 중국의 항일 전쟁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한 것은 그런 기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결단이었다. 그러나 시 주석의 지난 4년을 돌아보면 한국민의 이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거듭되는 도발과, 그에 따라 동북아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명백한 사실을 앞에 두고도 중국은 양비론을 견지해 사실상 북한을 지원해 왔다. 최근에는 북한이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김정남을 화학무기 VX로 암살한 일까지 감싸고 있다. 말레이시아 장관이 북을 "깡패 국가"로 부른 며칠 뒤에 중국 외교부장이 북한 외교 관리와 나란히 서서 "중·북 우호"를 다짐하는 것을 보면서 깡패 국가와 함께해야 하는 중국의 국익이 과연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은 '북핵 폐기보다 북한 정권 안정이 중요하다'는 한반도 정책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북한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달려가는 21세기에 '완충지대'와 같은 19세기적 지정학 사고방식은 유효하지 않다. 이 시효가 끝난 '완충지대론'이 북한을 동북아의 폭탄으로 만들고 '국제 깡패'로 키워왔다.


시 주석은 마오쩌둥에게 부여됐던 '당 핵심' 칭호를 듣는 지도자다. 중국 정치는 시 주석 1인 체제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시 주석의 지도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 주석이 이 지도력을 실효성도 없는 '북한 완충지대'를 지키는 데 사용하면 국제사회에서 또 한 명의 '스트롱맨'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 주석이 강력한 리더십을 중국의 한반도 고정관념을 깨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발휘하면 세계의 존경받는 지도자 반열에 오를 것이다. 무엇이 시 주석과 중국이 가야 할 길인지는 자명하다.



시진핑 체제는 '낡은 사회주의'와 결별하겠다고 했다. 시 주석이 낡은 지정학 패러다임과도 결별했으면 한다. 중국이 북핵을 폐기시킨다고 북한이 붕괴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핵 폐기 때문이 아니라 비인간적 모순 때문에 결국 무너지게 돼 있다. 통일 한국은 중국에 명백하게 이롭다. 좋은 미·중 관계를 세계에서 가장 원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우리는 시 주석이 새로운 한반도, 새로운 동북아 시대를 여는 결정적 역할을 해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중국을 만든 위대한 정치가로 기록되기를 희망한다.


[중앙일보]

3. 중국 방송에 “사드 철회” 약속한 이재명

유력한 대선 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의 안보관이 도를 넘었다. 지난 두 차례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에 대해 편향된 인식을 드러내더니 이번에 제대로 사고를 쳤다. 그는 7일 중국 최대 방송사인CC-TV에 나와 “사드 배치는 대한민국 국익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원점에서 재검토해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명하다”고 말한 뒤 기자가 ‘대통령이 되면 사드 배치를 철회할 것이냐’고 묻자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이 시장의 발언이 중국과 중국인에게 얼마나 값진 얘기였는지 CC-TV는 이날 하루 동안 네 차례 같은 장면을 방영했다고 한다. 중국 기자와의 인터뷰는 전날 이 시장이 자기의 대선 캠프에서 주최한 ‘전국 사드 피해 상인 간담회’에서 이뤄졌다.

사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1953년)과 행정협정(SOFA·1966년)에 따라 양국 정부가 합의하고, 이미 장비 일부가 오산 미군기지에 도착해 규정된 절차에 따라 배치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다.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 위협에 주한미군이 자기들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방어 무기다. 만일 한국이 이를 거부하면 6·25전쟁 이래 60여 년간 안보와 번영의 기반이었던 한·미 동맹 체제가 깨질 위험이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안보를 돕기 위해 와 있는 주한 미군이 자기 방어를 위한 무기조차 한국인의 반대로 들여놓지 못한다면 그들이 한국 땅을 떠난다 해도 붙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뻔히 예견됨에도 이재명 시장이 중국 방송에 나가 “사드 철회”를 약속한 것은 어이가 없다. 설사 그가 현직 대통령이라 해도 역사적·문화적·지정학적 뿌리가 깊은 한·미 동맹을 그렇게 쉽게 뒤흔들어선 안 된다. 이 시장의 사드 철회론은 그가 사드를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미의 자위적 수단’으로 보지 않고 ‘미국의 대륙 봉쇄 전략에 한국이 첨병으로 동원됐다’는 친중·반미적 안보관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친중·반미 안보관은 야당에 널리 퍼져 있는데, 이런 위험한 사고방식을 정비하지 않고는 차기 대선 때 정권 교체가 어려울 수 있다.


[서울신문]

4. 분열 아닌 통합의 길 가는 역량 보여 주자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의 심리를 마무리 짓고 오늘 오전 선고한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로부터 탄핵소추 의결서를 접수한 지 91일 만에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헌재의 선고 결과는 당장 정치 일정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수밖에 없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파면하면 60일 안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대통령 임기가 1년 남짓 짧아지면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은 물론 ‘국민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탄핵이 기각돼 박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한다 하더라도 탄핵 정국 후유증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촛불’과 ‘태극기’로 쪼개진 민심이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는 상처 난 국민의 마음을 보듬어 다시 통합의 길로 이끄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 우리가 향유하는 민주주의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일본제국주의의 강점과 6·25 전쟁에 이은 남북 분단으로 만신창이가 된 나라를 다시 세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민주주의 선진국들이 놀라워하고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는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국민이 흘린 피의 대가다. 지금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과정에서는 한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뜻을 합쳤던 결과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오늘 헌재 선고에 승복하느냐, 불복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한 단계 도약할 수도, 수십 년 전으로 뒷걸음질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으로 돌아간다. 서울 재동의 헌재 청사 앞에서 벌어지는 탄핵 찬반 진영의 시위는 선고가 다가올수록 과격해지는 양상이다. 어제도 헌재 정문 앞에서는 “탄핵 각하”를 외치는 시민들이, 그 맞은편에서는 “탄핵 인용”을 주장하는 시민들이 돌아가며 1인 시위를 벌였다. 양측은 치열한 설전을 넘어 언제라도 폭력 사태가 벌어질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찬반 진영은 오늘 이곳에서 각각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선고 이후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지금은 힘을 합쳐도 나라를 정상화시키기가 쉽지 않다. 구성원 하나하나의 뼈를 깎는 노력이 더해지더라도 탄핵 소추 이전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게다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사드 보복’ 등 안보 및 경제 환경은 최악이다. 그럼에도 헌법 가치를 부정하며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사태까지 빚어진다면 대한민국호(號)는 결국 항해 불능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5. 이 시국에 외유에 정신 팔린 의원, 공무원

국회의원, 공무원 등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탄핵 정국에도 외유성 해외 출장에 대거 나선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고 있다. 해외 유명 관광지에서 성매매로 국가적 망신을 산 공기업 직원들도 있다.

한 시민단체가 그제 공개한 국회의원들의 해외 출장 현황은 다소 의아하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해 12월 9일 이후 1개월여 동안 무려 64명의 의원이 해외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는 현지 대사관이나 박람회 방문 등 출장 목적에도 맞지 않는 일정에다 출장 후 20일 이내에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조차 아직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온 국민이 혼미한 정국에 불안해할 때 국회의원들은 태연히 외유를 즐긴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이 단체는 보고서를 통해 “국내 정치 상황이 불안한 시점에 해외로 발길을 돌린 국회의원들의 활동이 적정한지 논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공직자들의 일탈 행위도 국민을 실망시켰다. 한 자치단체 공무원 10여명은 업무 관련성도 없으면서 세계문화유산을 벤치마킹하겠다며 중국의 관광지를 다녀왔다가 비난을 샀다. 또 다른 자치단체 공무원은 국제 교류 목적으로 다녀온 5건의 해외 출장에 민간인 14명을 포함시켜 주의 처분을 받기도 했다. 여기에다 해외여행 때 업무 관계자들로부터 경비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받아 챙겨 기소된 공무원과 필리핀의 유명 관광지에서 성매매로 적발돼 망신을 산 공기업 직원들도 있다.

탄핵 정국이라고 해서 국회의원이나 공무원들의 해외 출장이 중단돼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국내외 정국이 불안한 시기에 나간 해외 출장이 외유성이거나 일탈 행동으로 이어졌기에 볼썽사나울 수밖에 없다. 해외 출장은 목적과 일정, 활동 내용 등을 더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 예산이 확보돼 있기 때문에 다녀와야 한다는 식의 해외 출장은 사라져야 한다.

꼭 필요한 해외 출장이라면 다녀온 후에 사용한 경비를 보전받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만큼 배우기 마련이다. 해외 출장에 나서기 전에 관련 국가나 업무에 대한 사전 지식과 정보를 충분히 습득한다면 출장보고서 또한 충실해질 수밖에 없다. 외유성 출장이라는 오해는 자연히 사라진다. 배 밭에서는 갓끈을 고치지 말고, 오이 밭에서는 신발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6. 사법개혁 요구의 싹부터 자르겠다는 대법원

대법원이 사법개혁 방안을 고민하는 내부 논의를 시작부터 묵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이만저만 심각한 일이 아니다. 사법부를 향한 국민 불신은 더 떨어질 데 없이 추락한 실정이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따져 보자면 대법원이 스스로 조직 쇄신에 소매를 걷어도 만시지탄이다. 그런 마당에 내부의 자발적 고민에 지도부가 나서 발목을 잡았다면 묵과하기 어렵다.

현직 판사들이 회원인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최근 전국의 판사들을 대상으로 사법 독립과 법관 인사제도에 관해 익명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지나치게 대법원장에게 권한이 쏠린 현행 대법관 선출 방식, 눈치 보기 자기 검열 분위기를 조장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 등 민감한 설문 항목이 포함됐다. 그러자 대법원장 직속인 법원행정처가 학술 모임을 정비하겠다고 나선 데다 모임 실무를 맡은 판사를 갑자기 인사 조치했다. 법원 내부는 연일 뒤숭숭하다.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현직 부장판사가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폐쇄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조직이 법원과 검찰이다. 그런 울타리 안에서 현직 판사들이 오죽 위기감이 컸으면 그런 설문 작업을 했겠는가. 양 대법원장과 수뇌부가 독려해도 모자랄 일이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 났던 모임의 해당 판사를 부임 첫날 일선 법원으로 복귀시켰다니 누가 봐도 징계성 인사다.

대법원만 지금 딴 나라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온 나라를 혼돈으로 몰아넣은 국정 농단 사태는 따져 보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사법부의 책임이 지대하다. 법과 원칙의 소신으로 똑바로만 서서 권력을 견제했더라도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다. 자성과 쇄신의 목소리가 아래로부터 터져 나오는 한계 상황이라면 사법부의 수장이 눌러 덮을 게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압도적 여론이 특검의 수사 연장을 갈망했던 까닭이 뭐였겠는가. 우리 사법부의 신뢰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급이다. 국정 농단의 몸통들이 제대로 단죄될 수나 있을까 국민은 당장 그 걱정이 크다. 외풍을 살피는 수뇌부의 찍어 누르기 단속에 판사들이 자기 검열에 빠지게 된다면 괜한 걱정도 아닐 것이다.

대법원장의 과도한 권한에 사법부가 관료화하고 법관 독립성이 흔들리는 문제점은 밖에서 봐도 쇄신이 급하다. 사법 불신의 걸림돌을 스스로 돌아보고 치우지 않으면 조만간 국민적 개혁 요구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매일경제]

7. 남녀 임금격차 37%, OECD 최대 불명예 언제까지

우리나라 남녀 임금 격차는 3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이 100만원 받을 때 여성은 63만원밖에 못 받는다는 것이다. 전 세계 평균 남녀 임금 격차가 23%인 것을 감안하면 실로 불명예스러운 수치다.

이 같은 남녀 임금 격차는 고액 임금을 받는 고위직 여성 비율이 적은 탓이다. 출산, 육아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들이 많고, 여성의 일자리 중 40%가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인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이처럼 과도한 격차가 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사회·경제적 차별의 벽이 높다는 의미다. 

오죽하면 '여성의 날'이었던 지난 8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들이 조기퇴근 시위를 벌였겠는가. 한국여성노동자회를 주축으로 구성된 여성 1500여 명은 남녀 임금 격차를 고려할 때 여성들은 오후 3시부터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라며 '3시 스톱'을 외치면서 거리로 나왔다.

대한민국 여성들의 불평등한 삶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통계는 이뿐이 아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유리천장 지수' 최하위로 직장 내 여성 차별이 가장 심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한국의 기업과 공공부문에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미미하다. 올해 30대 그룹 임원 승진자(1517명) 가운데 여성은 37명으로 고작 2.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그룹 전체 직원 중 여성 비중이 24%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견고한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각료 중 여성 장관 비율도 5.9%(2015년 기준)로 OECD 평균(29.3%)에 크게 못 미쳤다.

여성 대통령이 나오면서 여성 차별 문제가 해소될 거라고 전망했지만 여성의 지위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여야 대선주자들은 여성의 날을 맞아 "단계적으로라도 남녀 동수 내각 실현"(문재인), "여성 장관 비율 OECD 평균인 30%로 상향"(안철수), "공공부문 여성 임원 30%로 확대"(안희정) 등의 공약을 쏟아냈다.


여성 표심을 잡기 위한 선거용 말잔치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여성에 대한 사회·경제적 차별은 세계 최저 출산율(1.17명)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등 선진국들은 공공·민간에서 여성 임원 비율을 30~40%까지 높이는 여성 임원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다. 말로만 남녀 평등을 외칠 게 아니라 우리도 여성 임원 할당제 도입을 실천해야 할 때다. 


[매일신문]

8. 포항시의 예산 낭비 악순환, 백서로 남겨 반면교사 삼자

포항시의 여러 시설이 부실 행정 탓에 수십억원의 아까운 예산만 낭비한 채 철거되거나 또다시 보수로 큰돈을 들이는 등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지만 마땅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산 낭비 행정이 되풀이되는 까닭이다.



먼저 2013년 7월 70억원을 들여 개관한 복합체육시설인 만인당(萬人堂)의 사례다. 포항시는 부실 공사로 안전성이 문제가 되자 20억원을 들여 보수키로 했다. 보수해도 추가 하자 발생 예방을 장담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직원 2명이 견책의 징계를 받았지만 포항시는 돈 먹는 하마 시설을 그냥 두고 사용하기로 한 셈이다.



음폐수병합처리시설도 문제다. 2011년 69억7천만원으로 공사를 시작, 2013년 1월부터 가동키로 했지만 법적 보증수질을 못 맞춰 2013년 9월 18억7천만원을 더 들여 시설 개선 공사를 했지만 여전히 부실로 놀리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시는 음폐수처리를 위해 4억6천만원을 지출했고 올해도 5억2천만원을 책정한 채 손을 놓고 있다.



2007년 16억원을 들여 설치해 해마다 7천만~9천만원의 유지관리비가 들어간 영일대해수욕장 고사분수는 잦은 고장 등으로 2016년 12월 7천만원을 들여 철거했다. 그동안 유지관리비로만 6억7천만원을 날렸다. 2013년 15억원으로 지은 드라마 제작용 시설도 여러 문제에다 재난위험 등급 판정을 받아 지난해 6천만원을 들여 없앴다.



이런 예산 낭비가 되풀이되는 것은 무책임 행정 탓이다. 앞 사례에서 만인당 외에는 처벌받은 직원이 없는 것이 증거다. 눈치 보는 단체장의 나약한 의지도 문제다. 책임을 묻지 않아서다. 지방자치 20년의 검은 그림자이다. 끝까지 업체에 책임을 따지지 못하는 포항시의 병폐도 한몫을 한다. 공사를 둘러싼 뭇 의심을 살 만하다.



과제는 분명하다. 부실 행정에 대한 엄정한 책임이다. 선거를 의식 않는 단체장의 의지도 필요하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 않고 반면교사로 삼기 위한 부실 행정의 백서 발간도 있다. 부끄럽지만 포항을 위해서다. 그리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포항은 경북 최대 도시이니 파급효과도 클 것이다.


9. 사드 배치는 속전속결, 지역민 지원 대책은 감감무소식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배치 지역인 성주`김천 주민들을 다독일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지원책과 대책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다가는 성주`김천 지역민들이 희생만 강요당한 채 사드만 떠안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최근 들어 사드 발사대 2기가 반입된 데 이어 이달 중으로 사격통제레이더가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알려졌다. 운용시험과 장비 전개 절차가 끝나는 대로 사드는 작전 운용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해당 지역민들은 여전히 사드 배치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사드 배치를 대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성주군은 정부에 성주국방산업단지, 전파레이더산업집적화단지 조성 등 보상책 마련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김천에서는 반대 여론이 워낙 강해 지원사업 논의조차 금기시되고 있지만, 이곳이 지역구인 이철우 국회의원은 혁신도시 내 대형병원 유치 등 여러 가지 지원을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부는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지역의 요구 사항 대부분이 기획재정부와 통일부 등과 겹쳐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현재로서는 속 시원한 답을 줄 수 없다며 원론적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해 성주가 사드 배치 지역으로 전격 발표됐을 당시 지역민들의 저항과 분노가 상상을 초월하고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자 정부는 사드만 받아주면 무엇이든 해 줄 것 같은 자세를 취한 바 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 반발의 강도가 약해지고 국민적 관심사도 예전 같지 않다고 판단한 것인지 사드 배치 과정에서 성주`김천 주민들의 의견을 구하는 기본적 절차마저 정부는 생략했다. 이래가지고서야 ‘화장실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드는 국가 안보에 불가결한 군사시설이어서 어디에든 들어서야 하지만, 특정 지역의 일방적 희생을 바탕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국가 이익에 부응하기 위해 희생을 감수한 지역에 정부는 상응하는 보상과 지원을 해줘야 한다. 아울러 사드 배치 과정에서 지역민이 받은 상처와 불안감을 위무하는 대책도 세워야 한다.


[이데일리]

10. 미국 금리 인상에 대응책은 있는가

국내 은행들의 대출금리가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조만간 기준금리를 올리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데 따른 당연한 반응이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최근 “고용과 물가 동향에 따라 금리의 추가 조정이 적절하다”며 금리 인상을 예고한 바 있다. 미국 금리가 오를 경우 국내 유입 자금이 높은 금리를 찾아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고, 이를 막으려면 국내 시장금리가 함께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에 속한다.

문제는 가계대출 분야다. 금리가 오른다면 어느 수준까지 이자 부담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다. 이미 정부가 가계대출에 대해 최대한 고삐를 죄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금리 인상 움직임까지 더해져 위험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가 이미 1300조원 규모를 넘어섰다는 점에서도 가계의 이자 부담은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꼽힌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일시적인 조치에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도 우려를 더해준다. 미국 연준이 올해 안으로 기준금리를 3차례 올릴 것이며, 따라서 금리가 현행 0.5~0.75% 수준에서 0.75%포인트 올라갈 것이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당장 내주로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 조치가 내려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러한 움직임이 진작부터 예고돼 왔지만 미리 대응책이 마련되지 못한 것이 잘못이다. 그중에서도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저소득층의 충격이 우려된다.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를 경우 이른바 한계가구의 금융부채가 25조원 급증한다는 게 한국은행의 조사 내용이다. 그중에서도 주택담보 대출이 위험 요인이다. 주택시장이 침체 상태에 빠질수록 위험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우리 경제 여건이 미국 금리 인상에 곧바로 대처하기에는 불확실한 요인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탄핵 결정 반발 움직임에 중국의 사드 보복만 해도 심각한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에 맞춰 금리가 따라 오르는 게 정상이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활동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유일호 경제팀과 이주열 총재가 이끄는 한국은행 간의 긴밀한 정책 공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주요신문칼럼


1. [세계일보][양경미의영화인사이드] 신의 침묵 ‘사일런스’

할리우드에서 일본을 소재로 한 영화는 그동안 많이 제작되었다. ‘쇼군’, ‘라스트 사무라이’… 최근 ‘핵소고지’까지 그렇다.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많은 이유는 선진화된 경제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이 지닌 독특한 문화에 있다. 지난 28일 개봉한 ‘사일런스’는 일본에서의 천주교 박해를 다룬다.

‘사일런스’는 선교사 페레이라 신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침묵’이 원작이다. 17세기 일본에서 천주교 박해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포르투갈 예수회 신부 로드리게스(앤드루 가필드)와 가루페(에덤 드라이버)는 배교한 스승 페레이라(리암 니슨)를 찾아 일본으로 간다. 그러나 그들 또한 강한 탄압으로 결국 배교하거나 사망하게 되면서 고통에 침묵하는 신에 대해 깊이 고뇌한다.



일본이 지닌 문화적 특성이 잘 드러난다. 어느 나라나 자기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중시하고 보존한다. 그러나 일본은 서구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재창조했다. 반면 정신을 지배하는 종교와 같은 정신문화의 유입은 철저히 차단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상인들의 교역을 통해 천주교가 전파되자 당시 일본 지배층은 천주교를 일본의 정신을 병들게 하는 위험요소로 간주해 종교를 탄압한 것이다.



16세기 일본 막부가 단행한 박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영화에서 보듯이 일본 위정자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집요하고 체계적으로 천주교를 박해했을 뿐 아니라 신부들 또한 배교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지금도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도의 비중은 지극히 낮다.

감독의 신앙에 대한 열정과 고민이 담겨 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여러 차례 “최종 목표는 소설 ‘침묵’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1988년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그린 ‘예수 최후의 유혹’ 이후 ‘침묵’을 각색하기까지 15년, 작품을 완성하는 데 30년이 걸렸다.



영화는 신자들이 고문과 학살을 당하는 모습, 간절히 기도하지만 침묵하는 신, 한 인간의 종교적 신념이 뿌리째 흔들리는 과정을 차분하고 집요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후보에 오를 만큼 영상미가 빼어나며 배우들의 연기 또한 훌륭하다. 할리우드 유명배우들은 물론 쓰카모토 신야를 비롯한 일본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열연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숙연해진다. 무엇이 진정한 신앙이며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고난의 순간, 신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의 배교로 신도들을 살리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신부 로드리게스의 딜레마는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강력한 국가주의도 엿볼 수 있다. 영화에서 신도들과 주민들은 관료의 지시나 국가의 권위에 대해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침묵한다. 이러한 일본의 국가주의는 ‘쇼군’이나 ‘라스트 사무라이’, ‘핵소고지’에서도 잘 나타난다. 종교영화인 ‘사일런스’를 보면서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에서도 최근 강화되고 있는 국가주의 성향이 걱정되는 것은 괜한 기우일까.



2. [경향신문][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국밥과 토렴

<흥부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자식들이 돌아가며 먹고 싶은 걸 말하는데, 한 녀석이 이런다. “고깃국에 이밥이나 실컷 말아먹었으면.” 피자나 치킨, 짜장면이 없던 시절이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없는 이에게 고깃국은 대단한 음식이었을 테다. 

돈 받고 파는 요식(料食) 중에 고깃국, 즉 국밥처럼 실감나는 음식은 드물었다. 김치나 된장은 사먹는다는 느낌이 적다. 밖에서 돈 내고 먹는다고 하면 짜장면 말고는 국밥이 오랫동안 주인공이었다. 

국밥은 누구나 한 술 뜰 수 있는 음식이기도 했다. 국밥에는 찬이 적다. 국에 밥을 말아내고 찬 없이 빨리 싸게 먹는 형식으로 발전했다. 조선후기에 김홍도가 그린 주막 풍경에도 뚝배기를 기울여가며 국밥을 퍼넣는 장정의 모습이 나온다. 상업이 발달하지 않아 유럽에 비해 레스토랑의 역사가 짧은 조선에서 주막은 그나마 ‘돈 주고 사먹는 외식’의 한 역사를 이루어 왔던 것이다. 

그 주막의 메인 메뉴는 역시 국밥이었다. 국밥은 어지간한 장시가 있는 곳에서는 다 성행했다. 사람이 모이면 허기가 지고, 싸게 한 그릇 먹기에 국밥만 한 게 없었다. 나중에 미국 밀가루가 값싸게 풀리기 전에는 역시 국밥이 즉석 음식의 왕이었다. 장꾼들이 먹는 음식이 국밥이요, 한번에 많이 끓여서 빨리 낼 수 있는 음식도 국밥이었다.

토렴도 그렇게 발달했다. 미리 썰어둔 밥과 고기를 따뜻하게 데우는 기술, 건더기가 든 뚝배기에 펄펄 끓는 국물을 부었다 내렸다 하면서 딱 먹기 좋은 온도에 맞추어내는 기술이다. 토렴은 전기보온밥솥이 없던 때, 밥을 데우는 데 최적의 방법이었다. 

밥풀에서 전분이 풀려서 국물이 탁해지는 걸 막아주는 것도 토렴이었다. 그렇게 상에 내면 차갑던 밥이 입에서 부드럽게 풀리면서 적당한 온도에서 씹혔다. 질이 좋지 않은 밥도 먹어낼 수 있는 마술이기도 했다.



국밥은 이렇게 본디 토렴과 한 뚝배기를 이루면서 ‘패스트푸드’로 민중에 자리 잡았다. 토렴한 밥과 국은 딱 먹기 좋은 온도였고, 일에 바쁘고 허기진 민중들이 빨리 먹어낼 수 있었다. 이제 토렴하는 집을 찾는 건, 어지간히 헤아리지 않으면 어렵다. 펄펄 끓는 뚝배기가 주력이다. 언제나 따끈한 밥이 있는데, 굳이 밥을 식혀 토렴할 일이 없기도 하지만, 토렴이 결국 그놈의 ‘인건비’가 되기 때문이다. 식당 기술자들이 없어서 토렴을 하라고도 못한다. 국만 뜨고, 퍼 둔 밥 꺼내주면 될 일을 누가 펄펄 끓는 국솥에 뚝배기 기울여 손에 화상 입어가며 토렴하겠는가.

토렴 잘하기로 유명했던 여러 오래된 국밥집들이 점차 토렴을 버리고 있다. 손님들도 뜨거운 밥을 따로 내주는 걸 좋아하는 이가 많다고 한다. 

토렴에는 본디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도 있다. 음식의 온도가 적당(섭씨 80도 미만)해서 입이나 식도의 화상을 예방할 수 있다. 암 예방수칙에 뜨거운 음식을 조심하라는 건 의사들의 공식적인 의견이기도 하다. 토렴하는 국밥집을 응원하고 싶다.



3. [매일신문][야고부] 올랭피아의 기억

“세상에! 저런 그림이 전시회에 걸리다니….”



1865년 파리 시민들은 살롱전에 전시된 그림 한 점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작품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Olympia)였는데, 옷을 벗은 창녀가 비스듬히 누워 있고 그 뒤에는 흑인 하녀가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림 속의 모델은 관객을 쏘아보면서 마치 “나는 창녀인데, 그럼 너는?”이라고 도발적으로 묻는 듯했다.



당시에도 여성 누드가 많이 등장하긴 했지만, 신화와 매혹적인 이야기의 여주인공 같은 ‘환상 속의 여인’만 그려졌다. ‘성처녀로의 순결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예술작품 속의 누드는 비인격화되어야 하며, 특정 인물을 생각나게 해서는 안 된다.’ 19세기의 미적 개념으로 볼 때 비너스나 요정도 아니고, 창녀가 모델로 등장했으니 경천동지할 사건일 수밖에 없다. 전통과 관습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다. 미술사에서 이만큼 대중의 조롱과 비난을 받은 작품도 없다.



재미있는 것은 주말이면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작품을 가까이에서 보기 불가능할 지경이었다는 점이다. 관람객의 분노로 그림이 훼손될까 봐 경찰관 2명이 지킬 정도였다. 세상의 비웃음과 야유에도 불구하고, 흥행 측면에서는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 셈이다. 

   
화가로서의 성공을 꿈꾸던 마네는 평생 좌절감과 실의에 빠져 허덕댔다. 1883년 마네가 죽을 때까지 ‘올랭피아’는 ‘역겨운’ 그림일 뿐이었고, 1890년에 들어서야 모네 등 동료 화가들의 도움으로 격이 낮은 뤽상부르 미술관의 귀퉁이를 겨우 차지했다. 1907년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다가 1986년 오르세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길 때에는 ‘세계 최고의 그림’이 돼 있었다.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이구영 씨의 ‘더러운 잠’을 둘러싼 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를 희화화하려는 목적이었는데, 그 결과는 ‘표현의 자유’ ‘성 상품화’ ‘좌파의 책동’ ‘사생활 보호’ 등 온갖 파생적인 논쟁으로 확대됐다. 며칠 전에는 표창원 의원의 부인을 덧씌운 현수막이 걸리는, 웃지 못할 사건까지 벌어졌다.



‘더러운 잠’은 예술 작품이라기보다는 시사적인 패러디물일 뿐이어서 그렇게 치열하게 싸울 대상이 되는지 의아스럽다. 한국에서 정치는 무엇이든 잡아먹는 블랙홀이나 다름없기에 예술이나 표현의 자유와는 공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정치 현실 못지않게 씁쓸한 풍경이다.



4. [서울신문][이재무의 오솔길] 삶

모진 겨울 넘기고 나오셨구나/ 서울역 앞 몸에 좋은 약초 파는 할아버지

그 사이 공손하던 허리가 땅에 더 가까워지셨구나(이시영, 시, ‘삶’, 전문)



삶이란 무엇인가. 삶을 과학적 개념으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감정과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을 수치나 물량의 척도로 계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스펙트럼이 넓고 변화무쌍한 인간 삶에 대해 누구도 함부로 그 의미를 확정적으로 규정짓거나 정의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삶의 의미와 가치에 유클리드 기하학 같은 공준을 적용할 수 없으며 절대성과 객관성을 부여할 수 없다.



그것은 저마다 타고난 유전적 기질과 주어진 처지와 환경,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경험의 총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대성과 차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삶에서 절대성과 객관성을 벗어날 수 없는 단 하나의 예외적 사실이 있다. 그것은 누구나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게 된다는 사실이다.

삶은 유한하고 죽음은 영원하다. 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누구라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삶이 끝나는 자리에서 죽음이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의 근대적 사유 체계인 이원론적 세계관은 삶과 죽음을 분리해 사고하지만 유서 깊은 동양적 사유 체계, 즉 일원론적 세계관에 따르면 삶과 죽음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대립 쌍이 아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활과 리라’의 저자, 남미의 작고 시인 옥타비오 파스에 따르면 삶과 죽음은 유기체의 한 몸 안에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고 있다. 삶이 끝나면 죽음도 끝난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감과 동시에 죽어 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 우리는 날마다 살아가지만 날마다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첨단과학이 발달해도 이것만은 부정할 수 없고 물리, 수학에 능한 이라 할지라도 삶에서 죽음을 따로 분리해 내거나 솎아 낼 수는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관념론자들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나날의 일상 속에서 죽음을 살면서(경험하면서) 시나브로 죽음(자연)에 다가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삶의 진실을 도덕학으로 규명하는 일 또한 명쾌하지 않을뿐더러 옳은 일도 아니다.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윤리와 도덕은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윤리는 공공적 진리를 추구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서 공공적 실천을 통해서 구현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반면에 도덕은 개인이 속한 사회의 상규나 관습”(김명인)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윤리와 도덕은 서로 대립하고 갈등할 수 있다. 그가 말의 온전한 의미에서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이라면 현실 너머를 꿈꾸는 자로서 도덕에 얽매이거나 안주하는 것이 아닌 윤리적 태도와 실천으로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그가 속한 사회의 전통과 관습이 낡고 고루하다면 이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삶의 진실을 구현하는 데 종교학도 적절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종교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의 방편으로 추구될 수는 있다. 하지만 종교는 인간의 제 갈등을 신의 논리로 수렴해 각 개인이 처한 실존적 정황과 세목을 추상화함으로써 삶의 진실을 굴절 또는 왜곡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서울역은 다종다양한 한국적 삶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시적 공간이다. 모진 겨울을 넘기고 나온, 허리가 땅에 더 가까워진 할아버지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몸에 좋은 약초를 팔고 있다. 죽음이란 땅의 중력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는 언젠가 삶과 함께해 온 죽음을 보내고 영원한 안식처인 자연으로 귀환할 것이다. 하지만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주인공이 보이고 있는 죽음에 대한 예민한 자의식과는 달리 시 속 노인은 죽음에 대한 의식이 없다. 시 속의 노인은 삶과 죽음을 분별하지 않는 일원론적 세계를 보여 준다.

우리는 위 단시를 통해 과학과 도덕과 종교가 규명하지 못한 삶의 구체적 진실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다. 새삼 생각하노니 문학(시)이란, 삶이란 얼마나 넓고도 깊은 것인가.



5. [동아일보][광화문에서/이동영] 소주 7800병 파는 나라

한 대학 총학생회가 신입생 환영행사에 쓰겠다며 소주 7800병을 구입했다. 단일 행사에 이렇게 많은 소주를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마실 사람이 1700명이란 점을 감안해도 1인당 5병에 가까운 수치다. 술을 마실 다수는 몇 주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학 신입생이다. 여성이나 종교 신념 또는 체질적으로 안 마시는 사람을 감안한다면 두 번의 밤을 보내는 동안 실제 술잔 잡는 사람은 소주 8병 이상을 들이켠다는 의미다.

암 전문의들은 한결같이 “이 정도면 치사량”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전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1군 발암요인’은 음주다. 음주는 간암 유방암 대장암 식도암 구강암 인후두암 직장암을 직접적으로 유발하는 요인이란 뜻이다.

담배의 독성과 다를 바 없다. 담배와 소주를 나란히 놓고 보자. 담배에는 섬뜩한 경고 그림과 문구가 들어가 있다. 담배 자체가 독성물질이니 거기에 ‘순하다’ ‘마일드’ 같은 멋진 문구로 소비자를 유혹하지 못하게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주에는 청정함을 느끼도록 참이슬, 순하리, 처음처럼 같은 상표가 쓰이고 있다. 건강음료도 아닌데 ‘천연암반수 100%’라는 문구까지 쓴다. 아이유, 수지 같은 인기 연예인이 광고 모델일 뿐 아니라 소주병 라벨과 판촉용 소주잔 아래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톱클래스 연예인이 흥겹게 파티하면서 술 마시는 광고 영상을 보면 누구나 한잔 들이켜고 싶은 충동이 일지 않겠나. 돈보다 국민 건강을 생각하는 연예인이라면 최소한 술 광고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란 게 내 생각이다.

이 나라에선 누가 어디서 얼마나 마시는지 상관없이 얼마든 술을 살 수 있다. 아무런 규제가 없는 탓이다. 음주의 나라로 알고 있는 러시아에서도 오후 9시 이후에는 마트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 한국에선 언제 어디서든 소주에서 양주까지 살 수 있고 길거리든 지하철 안에서든 술병을 기울여도, 운행하는 차 안에서 동승자가 술을 마셔도 이를 막을 근거가 없다.



일정 도수의 주류는 허가받은 전문 업소에서만 판매하게 하고, 공공장소에선 빈 술병만 들고 있어도 처벌하는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렇게 관대하다 보니 술에 취해 남에게 해를 입히는 뉴스는 매일 숱하게 쏟아진다. 술에 취해 살인을 저지르고 불을 지르고 난동을 부리거나 운전대를 잡고 질주하다 일가족의 목숨을 앗아간다.



시간과 장소와 양을 적절히 규제해 과하지 않게 막는 장치가 나오지 않는다면 ‘만취 상태에서 … 저질렀다’는 뉴스는 그치지 않을 게 뻔하다. 지난해 국민 한 사람이 마신 소주는 97병 정도라고 한다. 매주 2병 가까운 양이다.

담배 못지않은 폐해가 분명하게 확인되는데 왜 비슷한 수준의 규제를 내놓지 않느냐고 정부 당국자에게 물었다. 술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상 규제를 신설하기 쉽지 않다는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자, 내 잔 받게”라며 자신의 잔에 술을 따라 남에게 주는 이 말이 친근감과 신뢰를 상징하는 사회이니 그의 푸념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소주를 담배 수준으로 규제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온 국민이 그 부작용을 뉴스로 간접 체험할 뿐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목격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 정도라면 사회 분위기를 말하며 강력한 드라이브 거는 일에 주저하는 정부 당국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놓지 않을 수 없다. ‘서민의 술’이라든가 ‘영세상인의 주 수입원’이라는 말도 중요하지만 어느 대학의 소주 7800병 뉴스를 듣고 나니 이젠 소주 명칭과 광고, 판매를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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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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