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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국정공백 줄일 합당한 인사 기준 속히 마련해야
문재인 정부가 취임 20일 만에 국무총리를 포함한 국무위원 인선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탈세,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를 고위 공직에서 배제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인사 원칙에 어긋나는 사례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탕평 인사로 박수를 받던 여론 흐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 처리에 국민의당은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수용 불가’를 당론으로 정했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은 문 대통령의 해명과 함께 재발 방지책 제시 등 두 가지를 요구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어제 국회 인사청문제도가 도입된 2005년 7월 이후 위장 전입 관련자는 국무위원 후보자에서 배제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2005년 이전이라도 부동산 투기성 위장 전입자는 국무위원 지명에서 배제할 것으로 보인다.
어제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 비서·보좌관 회의를 통해 인사 원칙 위배 논란에 대해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번 논란은 인수위 등의 준비 과정을 거칠 여유가 없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야당과 국민들에게 양해를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동시에 “5대 인사원칙 공약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공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으면서 청와대 참모들에게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면서도 원칙을 지킬 수 있는 기준 마련을 당부했다. 위장 전입에 대한 새로운 기준 요구와 대통령 해명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위장 전입 자체가 불법인 것은 확실하지만 현실을 고려해 부동산 투기 등의 범죄용과 단순 위장 전입을 차별화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 마찬가지로 병역 면탈 등도 명확한 건강상의 이유가 있을 경우 고의적인 병역 기피와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새 정부의 장·차관 인선안에 대해 새로운 인사검증 기준을 적용해 재점검에 들어갔다. 하루빨리 인사 검증 기준을 손질해 인사청문회제도가 정책·능력 평가에 집중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탄핵 정국으로 시작된 국정 공백이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국무위원 인선 문제로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 총리 후보자 인준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은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서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등을 시작으로 이번 주부터 내각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줄줄이 잡혀 있다.
자칫 이번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박근혜 정부 초기의 인사 참사가 재연될 수도 있다. 현 정부는 불통과 독선으로 실패의 길을 길었던 박근혜 정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소통 대통령을 강조해 온 문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의 불통 인사와 차별성을 갖지 못하면 검찰 개혁 등 적폐 청산에 스스로 발목을 잡는 꼴이 된다.
2. 현실과 괴리된 김영란법 개정 검토를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8개월이 지났다. 아직 시행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소비 위축 등을 이유로 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어제 국민권익위원회의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영란법 개선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가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맑고 깨끗한 사회라는 가치를 포기할 수 없지만 과도하게 피해를 보는 분야가 생기면 안 된다”면서 법 개정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법 개정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법 시행 후 과도한 선물·접대 문화에서 다소 벗어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렇다고 민원과 청탁이 일시에 사라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김영란법을 조롱하는 편법이 난무한다. 접대 골프장에서는 현금이 오고 가고, 3만원이 넘는 식사비도 3만원만 카드로 결제하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낸다고 한다.
더욱 큰 문제는 내수 위축이다. 정부가 금요일 조기 퇴근, 여행주간 확대 실시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김영란법으로 발목 잡힌 내수 심리 위축이 갑자기 좋아질 리 만무다. 법의 취지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실적인 개정안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김영란법이 만들어진 것은 공직사회의 부패·비리 척결을 위해서다. 그럼 공직사회의 제도적 부패부터 손대는 것이 옳다. 국정원, 청와대, 국회 등 권력기관의 특수활동비 8000여억원이 쌈짓돈처럼 쓰이고 있다. 영수증도 없이 쓸 수 있다 보니 사적 유용과 나눠 먹기 관행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됐다. 목적과 달리 쓴 것이니 ‘세금 도둑’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큰 도둑은 잡지 않고 3만·5만·10만원(식사·선물·경조사)의 규정을 어기는 작은 부패를 잡는 데만 열을 올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최근 애플이 개발자 대회에 세계 각국의 기자들을 초청했지만 한국 기자들만 제외됐다고 한다. 항공기 등 교통편이나 숙박 등을 제공하다 보니 김영란법 저촉을 우려했다는 후문이다. 공직자도 아닌 기자들을 김영란법 대상에 넣다 보니 생긴 해프닝이다.
이처럼 김영란법은 부정부패를 척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여러 혼선을 초래하고 경기를 위축시키고 있다. 권익위는 오는 9월 김영란법의 경제적 영향 분석에 대한 연구용역이 나오는 것을 보고 법 개정을 결정하겠다고 한다.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잘못된 법은 하루라도 빨리 손보는 것이 마땅하다.
3. 미사일 연쇄 도발로 대화 테이블 걷어차는 北
북한이 어제 새벽 원산에서 스커드 계열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을 동해상으로 발사하는 도발을 자행했다. 올 들어 아홉 번째이자 문재인 정부 들어 세 번째 미사일 도발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이 같은 미사일 연쇄 도발은 북한 문제를 제재 일변도에서 벗어나 대화를 통해 풀어 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망동이자 국제사회의 우려와 거듭된 경고를 깡그리 무시하는 마이동풍식 행보라는 점에서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북한은 핵을 틀어쥐고 탄도미사일을 쏘아대는 것이 자위권 차원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국제사회가 북한의 폭주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지난 27일 이탈리아 타오르미나에서 폐막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가한 정상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문제는 국제사회가 직면한 최우선 과제”라고 결론 지었다. 정상들의 공동성명 내용도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에 대한 제재 강화였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대북 정책 4대 기조에 서명했다. 또한 ‘최종적으로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유연한 입장도 갖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국제사회가 정한 제재에는 동참하지만 대화를 통한 해결 의지를 갖고 있다. 이전 보수정권과 달리 민간 차원의 지원 허용, 5·24 조치 해제 검토와 같은 문재인 정부의 전향적인 대북 유화책도 이러한 기조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북한 김정은 정권이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탄도미사일 발사라는 위험천만한 곡예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북·미 대화를 염두에 두고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측면이 강하다.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기 전 자체 미사일 개발 로드맵에 따라 미사일 시스템을 완성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무력화하고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의도가 깔린 도발이다. 그런 만큼 북의 미사일 도발은 진행형이다.
그러나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행위인 동시에 문재인 정부를 곤경에 빠뜨리고, 대화 테이블을 걷어차는 철없는 망동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특히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통해 새 정부의 인내심을 확인하려 했다면 오판이다. 북한의 유일한 선택은 달리 없다.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걸어나오는 것뿐이다. 새 정부도 북의 도발에 좀더 단호할 필요가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집만으로는 북한의 망동을 제어할 수 없는 것이다.
[조선일보]
4. 對北 정보 역량 강화가 국정원 개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를 공약했다.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업무를 전면 폐지해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하고, 국정원의 대공(對共)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겠다고 했다. 그동안 정치적 문제를 일으켜 온 국정원을 전면 수술하겠다는 것이었다.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는 29일 국회 청문회에서 "(문 대통령과 입장이) 전혀 다르지 않다"면서도 "정치 관여 근절이란 취지가 국내 정보 폐지로 표현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오늘날 국내 정보, 해외 정보가 물리적으로 구분되기는 어렵다"고도 했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와는 절연해야 하지만, 방첩(防諜)을 위한 국내 정보 수집 업무는 존속할 필요가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세상이다. 해외와 국내를 두부 자르듯이 나눌 수 없다.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것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간첩 수사는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과 자료가 절대적이다. 지금 국정원만 한 곳이 있을 수 없다. 국정원의 수사 정보를 경찰로 쉽게 이관할 수도 없다. 정보활동이 노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대공 수사권 문제는 더 시간을 두고 검토해야 할 문제다.
북한은 어제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올해 들어 9번째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3번째다. 결국 핵실험과 ICBM 도발도 한다고 봐야 한다. 이 위기에서 국민을 지키려면 '정보'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국정원 개혁은 오로지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서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에서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대화에 깊숙이 관여한 사람이다. 청문회서도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남북대화에 나서면 대한민국에 정보기관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 후보자는 "남북회담은 기본적으로 통일부의 책무"라고 한 자신의 답변을 임기 내내 기억하기 바란다.
[이데일리]
5. 종교인 과세유예, 명분도 원칙도 없다
종교인 과세 문제가 또 도마 위에 올랐다.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되도록 예정돼 있는 종교인 과세를 2년 더 미루기 위해 소득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제기된다. 50여년 만에 어렵사리 입법화된 종교인 과세가 시행 7개월여를 앞두고 자칫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명분도 원칙도 없이 종교인 과세를 미루는 것은 곤란하다.
김 위원장은 그제 “종교인의 소득을 파악하기 쉽지 않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이유로 종교인 과세 유예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2015년 12월 국회가 관련법을 통과시킬 때 첫 시행인 만큼 혼란을 줄이자는 취지로 이미 2년간의 준비 기간을 두어 2018년부터 시행하도록 했다. 그동안 무얼 했기에 이제 와서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명분이 없는 억지 논리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국민개세(國民皆稅)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종교인 과세는 단순히 세수확보 차원을 넘어 공평과세 원칙을 확립하는 일이다. 종교계도 이런 원칙에 발 맞춰 천주교는 1994년부터 세금을 내고 있으며, 불교와 일부 개신교에서도 세금 납부를 확대해가고 있다. 과세에 반발하는 일부 특정 교단을 위해 유예시키려 한다면 ‘반개혁적’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지금 일자리 창출과 문재인 대통령 공약사업 추진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실효세율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추경은 10조원 정도가 필요하고 문 대통령의 201개 공약사업에는 5년간 178조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각종 조세감면 혜택을 줄이고 분리과세를 종합과세화하는 등 한 푼이라도 더 재원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유독 종교인 과세만은 유예하려 한다면 누가 이해하겠는가.
종교인 과세는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문제점이 있다면 대책을 세우고 미비점을 보완해 법대로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종교계도 유예 논란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세금 납부에 적극 호응해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이 옳다.
[동아일보]
6. 서훈 후보, 대북협상가에서 안보파수꾼으로 바뀌어야
서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는 어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정원은 정권을 비호하는 조직이 아니다”며 “앞으로 국정원은 국내 정치와 완전히 단절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내 정보 수집업무 폐지 공약에 대해선 “선거 개입, 민간인 사찰 같은 행위를 없애겠다는 것이지, 대공 수사력이 약화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국정원의 개혁은 추진하되 본연의 임무에 소홀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들린다.
여야 의원들은 고액 자문료 같은 신상검증 외에 서 후보자의 대북관과 안보관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서 후보자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의 기획과 실무를 총괄한 대북 협상전문가인 만큼 새 정부의 국정원이 물밑 대화 창구로 나서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서 후보자 스스로도 국정원장에 지명된 직후 “조건이 성숙되면 (대통령이) 평양에 갈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서 후보자는 “남북관계와 남북회담은 기본적으로 통일부의 책무”라며 선을 그었다. 대통령 공약인 대공수사권 이관에 대해서도 “대공수사를 가장 잘할 기관은 국정원”이라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공교롭게도 서 후보자 청문회가 열린 어제 오전 북한은 또다시 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새 정부 들어 벌써 세 번째 도발이다. 정부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북한을 규탄하고 단호한 대응을 경고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잇단 도발에 대한 대응 수위는 점점 느슨해지는 분위기다. 특히 문 대통령은 북한의 첫 도발 때만 직접 NSC를 주재하고 이후엔 참석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안보와 대북정보의 최일선 기관장으로서 보다 분명한 소신을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 후보자는 2012년 대선 때 발생한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 “사실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자칫 정치 보복성 조사로 국정원 조직을 흔들어 놓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국정원은 국내 정치에 개입해서도 안 되지만 정권 입맛에 맞춘 대북 정보를 생산해서도, 과거처럼 대북 비선 접촉에 나서서도 안 된다.
7. 獨 메르켈 ‘EU 안보 독립’ 선언… 美중심 세계질서 요동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8일 “유럽은 더 이상 미국과 영국 동맹에만 의존할 수 없다”며 “이제 스스로의 운명을 위해 싸워야만 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의 맹주가 독자 행보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 년 역사에서 유럽이 미국을 떠나겠다는 움직임은 처음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흔들려온 국제질서 지형이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선거 유세 중 나온 말이긴 하지만 평소 신중한 언행을 보여온 메르켈 총리 스타일상 이번 발언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 품어온 생각을 적절한 타이밍을 골라 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침공 이후 유럽인들은 러시아로부터 직접적 안보 위협을 느끼고 있다. 미국이 과연 유럽의 안보를 위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불안감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대선 기간 공약한 대로 취임 후에도 독일의 대미(對美) 흑자를 지적하며 방위비 증액 요구를 집요하게 외치자 메르켈로서도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헌장 5조인 집단방위 조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충격을 줬다. 미국 마셜플랜이 2차 대전 후 유럽의 경제부흥 축이라면 나토는 안보 축이다. 1949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 이래 역대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이 공격받으면 미국이 자동 개입하는 헌장 5조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68년 나토 역사상 처음이었다. 외려 트럼프는 나토 동맹국들이 국내총생산(GDP) 2% 수준으로 국방비 지출을 늘리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4연임을 자신하는 메르켈은 자유무역과 EU를 옹호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손잡고 프랑스와의 결속을 강화하면서 미국 영국에 의존해온 국방에서 탈피해 독자적인 EU군(軍) 창설까지 검토하고 있다. 유럽이 독일 프랑스 주도의 EU와 전통적 친미, 친트럼프 성향인 영국 두 진영의 갈등 체제로 접어들 수 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중심주의는 세계 열강의 세력화와 지역주의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대선 기간 나토는 물론 한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동맹국을 향해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며 방위비 증액을 요구했었던 트럼프는 이를 하나하나 현실화시키고 있다. 동맹조차도 이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대상으로 생각하는 상대에게 안보를 얼마나 의탁해야 하느냐는 유럽의 질문은 바로 우리에게도 향한다. 동맹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미 협상력도 함께 높여야 하는 한국의 외교도 초유의 시험대에 올랐다.
8. 규제 없애야 핀테크 발전한다
‘인공지능(AI) 4년 후면 일상화’(24일자 A10면)는 2017 동아국제금융포럼의 내용을 소개한 기사였다. 앞으로 다가 올 핀테크 시대를 독자들이 이해하고 참고할 수 있게 해준 내용이었다.
이 포럼에서 우리 경제의 역동성이 저하된 원인으로 과잉 규제를 지적한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무분별한 의원 입법으로 인한 규제로 한국 경제와 금융의 성장이 역으로 발목을 잡히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규제 개혁을 위해 의원 입법의 품질 관리를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고 한다. 의원 입법은 행정부와 달리 법안 발의 시 규제 영향을 분석해 첨부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법안 발의 전 공청회 등을 거치도록 국회법에 규정돼 있지만 지켜지지 않거나 형식적인 경우가 많은 것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 한두 명의 몽니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규제 법안들이 만들어지고 시행될 때는 국회가 왜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얼마 전 미국 뉴욕 월가의 금융기관에서 근무하는 후배를 만났을 때 처음 한 말이 지금 월가 금융은 핀테크에 흠뻑 빠져 있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새 정부가 핀테크, 바이오 등 신생산업 분야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를 빨리 풀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한다.
[중앙일보]
9. 4대 강 보 개방…가뭄 대책 지혜도 모아야 한다
가뭄이 극심하다. 올 들어 전국 평균 누적 강수량은 161.1㎜로 평년(292.7㎜)의 56% 수준에 그쳤다. 특히 모내기가 본격화한 이달의 강수량은 21.9㎜로 평년의 30% 밑으로 떨어졌다. 경기·충청 일부 지역에선 모내기에 차질이 빚어져 농민들이 발을 구른다. 기상청은 다음달까지 가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어제 4대 강 6곳의 보(洑) 개방을 최종 확정했다. 다음달 1일부터 강정고령보·달성보 등 낙동강 4개 보와 금강 공주보, 영산강 죽산보 수문을 열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지시(22일) 후 일주일 만에 나온 수질 개선 조치다. 정부는 “모내기철 농업용수 이용에 지장이 없도록 점진적으로 개방 수위를 조절하겠다”고 밝혔다. 수위가 19.5m로 가장 높은 강정고령보는 1.25m, 수위가 8.75m인 공주보는 0.2m 얕아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어정쩡하게 수문을 열면 ‘녹조 라테’를 잡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아까운 물만 흘려보낼 뿐 유속이 느려 바닥층 무산소층을 걸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지시라고 과속하지 말고 수량과 생태계 영향을 감안해 과학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물론 보 개방과 가뭄 피해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지역도 있다. 그럼에도 수질 보호와 수량 확보라는 두 가치의 충돌은 여전하다. 공주보가 대표적이다. 금강물을 끌어다 쓰는 공주 지역 주민들은 수량이 줄면 양수장이 무용지물이 될 것을 걱정한다. 양수장 취수구 높이가 8.5m인데 가뭄에 보까지 열면 취수구가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란 얘기다. 정부는 주민들의 하소연을 외면하지 말고 정확히 ‘양수 가능 수위’를 지켜야 할 것이다.
물은 소중한 우리의 천연자원이다. 4대 강 문제를 계기로 가뭄 극복 지혜도 다시 모아야 한다. 금강 백제보에서 물을 끌어오는 보령댐 도수로가 그 모델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2년 전 보령댐이 바닥을 드러내자 정부에 도수로 건설 지원을 긴급 요청해 마침내 주민들의 물 걱정을 없앴다. 강을 환경과 수자원의 가치로 융합한 중앙정부와 충남도의 협수(協水)·소통의 성과물 아닌가.
10. 정신병 강제 입원 줄이되 치료 인프라는 확 늘려야
오늘부터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 환자의 강제 입원이 까다로워진다. 인권침해를 줄이기 위한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옷만 선진국처럼 입었을 뿐 몸뚱이(관리 인프라)는 여전히 후진국이어서 즉각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는 평가할 만한 것들이 많다. 종전에는 가족과 전문의 의견만으로 강제 입원시켰다. 입원 환자의 67%가 강제 입원이다. 영국·독일의 4~5배다. 그동안 치료보다 격리를 우선해 온 결과다. 지금부터는 다른 병원 전문의가 추가 진단하고 한 달 내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서 또 확인한다. 기존 입원 환자 심사도 강화된다. 또 경증 우울증 같은 병은 정신병에서 빠지기 때문에 편견을 줄이고 취업 기회 확대에 기여할 전망이다.
한국의 강제 입원은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개선 권고를 받았고,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해 국제 기준에 맞춰 개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뜻이 아무리 좋아도 현실이 받쳐주지 않으면 혼란이 따른다. 강제 입원이 줄면서 1만9000명의 입원 환자가 쏟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탈(脫) 병원' 정책이 안착하려면 환자 관리가 촘촘해야 한다. 안 그러면 사고가 발생해 조현병 편견을 심화시키거나 재입원이 늘게 된다.
탈 병원 환자 관리를 담당하는 전국 정신건강증진센터와 사회복귀 시설은 이미 포화 상태다. 센터 직원 1명이 적정 인원의 두 배를 맡고 있다. 약 복용, 증세 변화를 빈틈 없이 체크하고 재활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는 게 중요하다. 주간재활·단기보호·주거 등의 사회복귀 시설을 이용하면 증세가 몰라보게 좋아지고 일상으로 복귀한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정신보건에 가치를 두지 않았다. 올해 복지부 예산의 0.2%(1224억원)에 불과하다. 복지부 1개 과에서 담당한다. 암 같은 눈에 보이는 병에만 연 5조원의 건보 재정을 집중한다. 이번 기회에 예산을 대폭 늘리고 복지부 정신보건과를 정신보건국으로 키워 개정 법률을 뒷받침해야 한다. 470만 명이 평생 한 번이라도 정신질환을 앓을 정도로 현대인의 정신건강이 피폐해지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이재무의 오솔길]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
평상이 없다/예비군복과 기저귀가 없다/새댁의 나이아가라 파마가 없다/상추와 풋고추가 없다 줄넘기 소리가 없다/쌍절봉이 없다 씨멘트 역기와 통기타가 없다/골목길 멀리 내뱉던 수박씨가 없다/항아리가 없다 항아리 뚜껑 위에 감꽃이 없다/모기장이 없다 모기를 잡던 박수소리가 없다/모기장을 묶어 매던 돌덩어리 네 개가 없다/고무신이 없다 고무신 속 빗물 한 모금이 없다/안테나가 없다 안테나를 돌리는 작은 손이 없다/잘 나와? 잘 나오냐고? 안마당에 내려놓던 고함이 없다/우리 집은 잘 나오는디 염장을 지르던 옆집 아저씨의/ 늘어진 런닝구가 없다 (중략)/근데, 이 많은 것들이 언제 내 머릿속에 처박혔나?(이정록, 시 ‘옥상이 논다’ 부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우리 생활 주변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들이 많다. 살다 보면 사라져 가는 것들이 불쑥 애틋하게 눈에 밟혀 오는 때가 있다. 그중 생각나는 목록 몇 가지를 순서 없이 떠올려 본다. 골목길, 공중전화, 이발소, 정미소 등등. 한때 요긴했으나 지금은 기억에서 멀어진 생활의 세목들이 새록새록 눈에 밟혀 온다.
미로처럼 어지러운 좁은 골목길은 생활에 다소 불편을 초래했지만 얼마나 많은 인정을 꽃을 피웠던가. 키 작은 처마와 처마가 연달아 맞닿아 있어 한낮에도 짙게 그늘이 고여 있던 질척한 골목길. 이쪽 집 창문을 열고 저쪽 집 열린 창문을 향해 갓 쪄낸 고구마나 옥수수, 밀개떡 등을 건네기도 하고, 송이눈이 내리는 겨울밤 술 취한 홀아비의 코 고는 소리가 낮은 블록 담을 넘어가 낯가림 없이 과부댁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고 가는 비 오는 어느 여름날 저녁 이웃집 고등어구이 냄새가 배고픈 남매의 공복 위로 스멀스멀 기어오르기도 했던 골목길.
늦은 저녁 나이 어린 누이와 함께 집 앞에 쭈그려 앉은 채 저쪽 끝에서 빈 도시락 주머니를 흔들며 돌아올 어머니를 기다리던 골목길. 새벽마다 두부장수 방울 소리가 창문을 흔들고, 조간을 돌리는 고학생의 성급한 발자국 소리가 아침잠을 깨워 흔들어 대던 골목길. 백내장 앓아 대던 가등 아래 서로 더운 숨을 탐하던 늦은 밤의 연인들 실루엣이며, 이집 저집에서 흘러나온, 온갖 소리의 넝쿨들과 온갖 색깔 범벅의 냄새들이 주인 몰래 저희끼리 희희낙락 짝짓기하던 우리 한때의 자궁이었던 그곳, 그 골목길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없다.
모던의 상징이었던 공중전화. 뜨겁고 짜고 싱겁고 차갑던 사연들을 분주히 실어 날았던 공중전화.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뜻 모를 그리움이 까닭 없이 마음의 우물에 가득 차 출렁이던 공중전화. 영하의 매서운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 저녁 길게 늘어선 줄이 빨리 줄어들기를 기다리며 언 발을 동동 구르면서 차갑게 식은 청색의 손을 호호 불어 대던 추억의 공중전화.
한 시절 시쳇말로 뭇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잘나가던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이제 늙은 창부처럼 누군가 덜커덕 떨어뜨린 마음 한 조각을 허겁지겁 삼키고 있는 공중전화가 우리 시대 낡은 서정시같이 잘 보이지 않거나 후미진 곳에 함부로 방치돼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로 시작되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 ‘삶’이 무채색 벽면에 걸려 있던 천장 낮은 이발소. 장 프랑수아 밀레의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만종’이 걸려 있던, 금성 라디오에서 구성진 유행가 가락이 흘러나오던, 국수 내기 장기 놀이가 자주 벌어지던, 늘 서울이 그리운 늙다리 총각들이 무나 참외를 깎아 먹으며 음담패설을 주고받던,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겨운 장삼이사들이 모여 앉아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자꾸만 그리운 서울 얘기 등으로 까닭 없이 흥미진진하던 곳, 정겨운 이발소가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눈에 띌 뿐 멸종 신세로 전락해 가고 있다.
어찌 이뿐이랴. 정미소, 떡 방앗간, 하꼬방, 연탄구이 집, 지하다방, 작부 집 등속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추억의 목록들이 이름만 남긴 채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 시편 ‘옥상이 논다’는 이제 이곳 현실 속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지난 연대의 살가운 풍경이다. 다 해진 런닝구를 입고 염장을 지르던 이웃 아저씨가 간절하게 그리워지는 여름날이다.
2. [중앙일보][삶의 향기] 일상을 바라보는 열 개의 시선
일상은 광장의 집회처럼 감격적이지 않다. 일상은 시시하다. 광장에 모인 수십만의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외칠 때, 내 마음이 그 많은 마음으로 확장되는 듯한 감동에 사로잡힌다. 때로 하늘까지도 열리는 듯, 벅찬 믿음도 생긴다. 이런 감격과 믿음이 있어 맨몸으로 탱크를 가로막아 서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그 마음들은 닫혀 있다. 같은 마음들이 주차 문제로 싸우고 뒷담화를 둘러싸고 서로 눈을 흘긴다.
일상은 잔치가 아니다. 잔치에서 우리는 베풀고 대접받는다. 낯선 사람에게도 친절하고 거지들도 배불리 먹게 해준다. 주인은 무리를 해서라도 넉넉히 내고 손님들은 십시일반 비용을 보탠다. 그러나 잔치가 끝나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계산을 해본다. 과했다 싶으면 마음이 쓰리다. 일상은 쫀쫀하다.
일상은 여행이 아니다. 여행에서와 같은 홀가분함이 일상엔 없다. 여행자가 되어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면 좋다. 거리를 두고 보면 삶의 자잘한 모습은 정겹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무심히 바라볼 수 없다. 그럴 틈도 없다. 바쁘다. 약속과 할 일 사이에서, 몸이 분주하지 않아도 무슨 일엔가 항상 매어 있다는 의미에서 바쁘다.
일상은 시(詩)가 아니다. 순수하지도 충만하지도 않다. 시적인 순간에 비하면 하루하루 삶에 목을 맨 나의 일상은 비루하다. 하긴 메마른 삶에도 잠깐 시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난데없이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문득 오래전부터 끊어진 일기장을 다시 펼치기도 한다. 지평선 너머를, 혹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광막한 공간과 아득한 시간 속에서 덧없는 나의 시공간을 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시심이 밥 먹여주지는 않는다. 밥을 위해 우리는 시를 잊어야 한다.
일상은 고되다. 고된 일들의 반복이다. 매일의 일을 사람들은 사무실에서, 공장에서, 거리에서 한다. 운동선수나 음악가의 일상은 반복으로 채워져 있다. 같은 동작을 수백 번 한 결과가 체조선수의 연기고 같은 패시지를 수천 번 반복한 결과가 피아니스트의 연주다. 보고 듣는 사람들에게는 잠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멋진 동작이고 황홀한 소리이지만 그 빛나는 순간은 일상의 고됨을 통해 이루어진다.
시시하고 비루하고 고되지만 우리는 일상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여행에서 돌아와 주민등록도 하고 세금도 내야 한다. 실은 그래야 광장에도 나가고 대통령선거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을 통해 산다. 일상을 부정하거나 망가뜨린다면 그것은 위대한 혁명도 고결한 시도 아니다.
일상의 의미는 그것을 상실한 후에 가장 쉽게 안다. 편도암 수술을 받은 후 한 목사님이 말했다. “수술 후 물 한 숟가락 삼키는 데 5분 걸렸습니다. 그때 알았죠. 물 한 모금을 시원하게 마실 수 있으면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고요.”
‘우리 읍내’(손턴 와일더 작)는 1막과 2막에서 우리 삶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 2막에서 결혼을 하는 여주인공 에밀리는 3막이 열리면 젊은 나이에 죽는다. 그는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무대감독에게 애원해서 그는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 본다. 열두 살 나던 해의 자기 생일, 일상은 언제나처럼 돌아가고 있다.
보고 싶었던 이승의 사람들에게 에밀리는 말해주고 싶다. 지금 이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물론 될 일이 아니다. 이승의 사람들과 자신의 간격을 절실히 느끼고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며 그는 독백한다. “안녕. 이승이여. 맛있는 음식도, 커피도, 새 옷도, 따뜻한 목욕도, 잠자고 깨는 것도. 아, 너무 아름다워 그 진가를 몰랐던 이승이여, 안녕.”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혹한의 강제수용소에 갇힌 이반은 한 조각의 빵을 소중히 씹으며 옛일을 후회한다. “그렇게 감자를, 고기를 마구 먹어대는 것이 아니었다. 음식은 그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어야 하는 법이다. 입안에 조금씩 넣고, 혀끝으로 이리저리 굴리면서, 침이 묻어나도록 한 다음에 씹어야 한다.”
한 육 개월 만에 이 나라에 일상이 회복된 듯하다. 모처럼 일상을 느끼니 신선하다. 우리가 이 하루하루를 “소중히 그 맛을 음미하면서” 사는 것은 언제까지일는지.
3. [조선일보][특파원 리포트] 마크롱이 쥔 양날의 검
"마크롱이 누구야?" 2014년 8월 올랑드 대통령이 신임 경제장관에 에마뉘엘 마크롱을 임명하자 프랑스 언론은 '의외' '파격'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만 37세에 정치 경력이라곤 2년간 대통령 경제 비서관을 지낸 게 전부인 마크롱은 프랑스 정계와 언론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었다.
3년 뒤 마크롱은 말 그대로 돌풍을 일으키며 역대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이 됐다. 그를 대통령에 올려놓은 건 기성 정치권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실망과 분노였다. 유권자들은 전후 60여 년간 정계를 양분해 온 공화당과 사회당 후보를 1차 투표에서 탈락시켰다. 언론은 이를 "앙시앵 레짐(AncienRégime·구체제)의 몰락"이라고 했다. 이번 프랑스 대선을 좌우한 '핫 이슈'는 테러·이민과 실업·경기침체였다.
프랑스는 2015년 1월 시사만평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총기 테러(12명 사망)를 시작으로, 그해 11월 파리 동시 다발 테러(130명 사망), 지난해 7월 니스 트럭 테러(86명 사망) 등 대형 테러 사건을 겪었다. 테러는 이민·난민 문제와 결합하면서 격렬한 화학반응을 일으켰고, 극우 포퓰리즘 세력은 이를 에너지 삼아 급성장했다. 하지만 테러·이민 이슈는 극우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 정도까진 이르지 못했다. 프랑스 국민 중엔 "누가 대통령이 돼도 테러를 완전히 막을 순 없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프랑스 국민이 가장 분개한 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나아지지 않는 실업난과 경기침체였다. 작년 초 올랑드 대통령은 "높은 실업률은 극단적 테러리즘만큼 중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프랑스 경제를 '국가 비상사태'라고도 했다. 올랑드는 실업률 낮추기에 모든 정책적 자원을 집중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지지율이 4%까지 떨어지자 올랑드는 지난해 12월 "권력에 취해 제정신을 잃진 않았다"며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한 것은 1958년 제5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처음이었다.
마크롱의 전략은 기업 경쟁력을 되살려 '취업 공간'을 넓히고, 기술·재취업 교육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노동자들 역량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멈출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는 역사적 인식에 기반한 전략이다. 사실 그동안 미국과 유럽은 고졸 정도 학력을 가진 사람이 무난히 잘살 수 있는 사회였다.
그러다가 세계화를 맞아 전 세계 모든 국가의 기업과 상품·서비스, 노동력과의 경쟁에서 지는 일이 속출했고, "남 때문에 내가 못살게 됐다"고 느낀 사람들이 투표소에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트럼프 대통령을 택했다. 그중엔 보호무역주의와 막무가내식 노동자 보호 정책으론 실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그런 선택을 한 이도 많다.
대안을 찾아 헤매는 절망적 심리가 프랑스에선 기존 정당 후보 배제로 나타났다. 마크롱 신화를 만들어낸 실업률은 '양날의 칼'이다. 프랑스 국민이 마크롱에게 큰 기대를 건 만큼, 그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 거센 역풍이 불 것이다. 언론도 마크롱이 헛발을 디디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럴 경우 다음 대선 때 극우 진영의 마린 르펜이 엘리제궁 주인이 될 가능성은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4. [조선일보][데스크에서] '시민도 예술 볼 줄 안다"
폐기된 신발 3만켤레로 만들어진 서울역 고가(高架) '서울로'의 설치 작품 '슈즈 트리(ShoesTree)'가 예정된 9일간의 전시를 마치고 29일 철거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높이 17m, 길이 100m 크기의 작품을 철거하는 데 이틀 정도 걸린다고 했다. 슈즈 트리는 설치를 시작한 첫날부터 논란을 불렀다. 거무죽죽한 신발 폭포 같다, 흉물이다, 지저분하고 냄새 난다는 의견이 많았다. 불과 9일 전시에 시비(市費) 1억3900만원이 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은 더 거세졌다.
슈즈 트리 논란은 시민과 작품을 이을 다리가 돼야 할 행정의 감수성이 무뎌서 벌어진 사태다. 작품 설치는 서울시 디자인 담당 부서가 아니라 조경 관리 부서인 푸른도시국이 주도했다. 시에 공공미술자문단이 있지만 푸른도시국은 자문단 심의를 거치지 않고 설치를 진행했다. 한 자문단 관계자는 "설치 검토 후보에 올라왔다면 채택되기 어려웠을 작품"이라고 했다.
푸른도시국은 슈즈 트리를 "도시 재생의 개념을 환기할 신선한 예술품"이라고 홍보했다.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슈즈 트리는 미술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자문단을 거칠 필요가 없다고 봤다"고 밝혔다. "관계 부서 내부 회의를 거쳤고 시장님께도 보고됐으며 시장님도 좋아하셨다"고도 했다.
박원순 시장은 정책 입안에서 시민을 강조한다. 전문가 영역인 미세 먼지 대책을 정하면서도 시민 3000명이 주말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토론해 의견을 도출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정작 시민이 향유할 예술엔 거쳐야 할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설치 기간 내내 시민의 반감이 잦아들지 않자 일부에서는 "흉물도 예술"이라며 시민 눈높이를 탓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흉물도 때론 예술이 될 수 있다.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작품 앞에서 오히려 미감이 고양될 때도 있다. 그러나 서울역은 보고 싶은 사람만 찾아가는 미술관이 아니라 공공에 개방된 공간이다. 시민 공간에다 시민의 세금으로 작품을 만들어 전시할 때는 평균적인 대중의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 보고 싶지 않다는 시민을 향해 "예술을 못 알아보느냐"고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
대중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공공 미술은 아무리 예술성을 내세워도 존재하기 어렵다. 1979년 뉴욕 맨해튼 페더럴플라자에 세워진 미니멀리즘 대가 리처드 세라의 작품 '기울어진 호(弧·TiltedArc)'는 "통행에 방해된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광장을 반으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작품에 시민 1300명이 "공공장소를 볼모로 잡고 있다"며 철거 청원서를 냈다. 존치 여부를 두고 법정 공방으로까지 번진 작품은 결국 설치 10년 만인 1989년 철거됐다.
슈즈 트리 논란은 공공 미술을 대하는 서울시의 현주소를 돌아볼 기회가 됐다. '흉물도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기사에 달린 한 시민의 댓글은 시 당국에 던지는 따끔한 일침이다. '예술은 지들만 하나. 나도 눈 달렸다.'
5. [매일신문][세계의 창] 먼 나라 이웃나라를 다시 생각하며
국제화의 영향인지 캠퍼스에 외국인 학생들이 자주 보인다. 언젠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여학생 두 명이 전형적인 슬라브계 외모여서 러시아 학생인가 말을 건네니 폴란드에서 왔단다. 사과를 하자 당신더러 일본인이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해서 함께 웃었던 기억이다.
좀 복잡한 마음이 든 것은 한국과 일본처럼 폴란드와 러시아의 뿌리 깊은 애증의 역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소련의 우방이었던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다.
히틀러로부터 해방시켜줬다는 고마움과 함께 무력으로 억압받은 과거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그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같은 서유럽 강대국들과 동쪽의 제국 러시아가 충돌할 때마다 그 가운데 있던 동유럽 각국은 쑥대밭이 되곤 했다. 그중에서도 인종과 언어가 비슷한 폴란드는 러시아와 특히 견원지간이었다. 두 나라는 폴란드 전성기였던 16세기부터 자주 충돌했다. 당시엔 러시아가 폴란드에 당하는 입장이었지만 이후 서구화 정책으로 강대국으로 급성장한 러시아와 달리 폴란드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18세기 말 폴란드는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에 의해 분할되는데, 그 때문인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당시 자발적으로 그를 따른 폴란드 용병만도 엄청난 수였다고 한다. 폴란드가 독립한 것은 이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1차 대전 이후니 그들도 지난한 역사를 지녔다.
20세기에 와서 갈등은 더 심해졌다. 2차 대전 발발 직전 상호 불가침조약을 깨고 폴란드를 먼저 침공한 히틀러와 이를 빌미로 폴란드 동쪽을 차지했던 스탈린에 의해 폴란드는 다시 둘로 쪼개졌다. 수세기에 걸친 양국의 갈등 중에서도 이 시기 카틴 숲에서 행해진 대량 학살은 가장 끔찍한 사건 중 하나다.
스탈린의 명령으로 수만 명의 폴란드 장교와 학자 등 지도층들이 숲 속에서 몰살을 당했다. 소련이 전승국이었던 관계로 히틀러의 소행으로 은근슬쩍 떠넘겨졌다가 영원히 역사에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의 전모는 1980년대 말 모두 밝혀졌다. 이 사건은 몇 년 전 기념식을 하러 이곳에 가던 폴란드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또 다른 비극을 낳았다. 그러니 폴란드인들에게 러시아란 그냥 애증의 이웃이 아니라 증오의 대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두 달 동안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당시엔 여전히 널리 통용되던 러시아어로 말을 건네면 유독 날카로운 반응이 돌아오던 곳이 바로 폴란드였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상처를 많이 주는 것처럼, 국가 간에도 이처럼 가까운 이웃이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와 일본은 수천 년 동안 잘 지낸 적이 별로 없다. 특히 일제 강제 병합과 광복 이후로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는 21세기까지 두 나라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근간에 있었던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을 두고도 두 나라는 이견을 보인다.
최근에는 유엔 총장까지 나서서 한일 위안부 합의 지지 발언을 하고, 오랫동안 한국에서 근무했던 전 주한 일본대사가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좋았다’라는 제목의 혐한 서적까지 발간했다. 일본 측에서는 두 나라의 발전적 미래 관계에 제동을 거는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 사과를 요구하는 우리나라라고 우긴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정한 사과는 그것을 하는 측이 아니라 사과를 받는 사람이 충분하다고 말할 때 이뤄진다. 용서는 얼마간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국가 간의 역사적 과오를 용서할 권리가 특정 정권에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반가운 것 중 하나가 외교관계 정상화와 개선을 위한 노력 의지이다. 출범 즉시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등 주요 4개국에 특사를 파견하여 한반도 안보를 비롯한 다양한 현안 해결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최근 첨예화된 일본과의 갈등에서 볼 수 있듯, 제대로 된 과거의 청산 없이 발전적 미래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 이웃들과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기를 기대해 본다.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국정공백 줄일 합당한 인사 기준 속히 마련해야
문재인 정부가 취임 20일 만에 국무총리를 포함한 국무위원 인선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탈세,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를 고위 공직에서 배제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인사 원칙에 어긋나는 사례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탕평 인사로 박수를 받던 여론 흐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 처리에 국민의당은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수용 불가’를 당론으로 정했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은 문 대통령의 해명과 함께 재발 방지책 제시 등 두 가지를 요구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어제 국회 인사청문제도가 도입된 2005년 7월 이후 위장 전입 관련자는 국무위원 후보자에서 배제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2005년 이전이라도 부동산 투기성 위장 전입자는 국무위원 지명에서 배제할 것으로 보인다.
어제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 비서·보좌관 회의를 통해 인사 원칙 위배 논란에 대해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번 논란은 인수위 등의 준비 과정을 거칠 여유가 없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야당과 국민들에게 양해를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동시에 “5대 인사원칙 공약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공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으면서 청와대 참모들에게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면서도 원칙을 지킬 수 있는 기준 마련을 당부했다. 위장 전입에 대한 새로운 기준 요구와 대통령 해명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위장 전입 자체가 불법인 것은 확실하지만 현실을 고려해 부동산 투기 등의 범죄용과 단순 위장 전입을 차별화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 마찬가지로 병역 면탈 등도 명확한 건강상의 이유가 있을 경우 고의적인 병역 기피와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새 정부의 장·차관 인선안에 대해 새로운 인사검증 기준을 적용해 재점검에 들어갔다. 하루빨리 인사 검증 기준을 손질해 인사청문회제도가 정책·능력 평가에 집중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탄핵 정국으로 시작된 국정 공백이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국무위원 인선 문제로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 총리 후보자 인준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은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서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등을 시작으로 이번 주부터 내각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줄줄이 잡혀 있다.
자칫 이번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박근혜 정부 초기의 인사 참사가 재연될 수도 있다. 현 정부는 불통과 독선으로 실패의 길을 길었던 박근혜 정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소통 대통령을 강조해 온 문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의 불통 인사와 차별성을 갖지 못하면 검찰 개혁 등 적폐 청산에 스스로 발목을 잡는 꼴이 된다.
2. 현실과 괴리된 김영란법 개정 검토를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8개월이 지났다. 아직 시행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소비 위축 등을 이유로 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어제 국민권익위원회의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영란법 개선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가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맑고 깨끗한 사회라는 가치를 포기할 수 없지만 과도하게 피해를 보는 분야가 생기면 안 된다”면서 법 개정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법 개정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법 시행 후 과도한 선물·접대 문화에서 다소 벗어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렇다고 민원과 청탁이 일시에 사라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김영란법을 조롱하는 편법이 난무한다. 접대 골프장에서는 현금이 오고 가고, 3만원이 넘는 식사비도 3만원만 카드로 결제하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낸다고 한다.
더욱 큰 문제는 내수 위축이다. 정부가 금요일 조기 퇴근, 여행주간 확대 실시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김영란법으로 발목 잡힌 내수 심리 위축이 갑자기 좋아질 리 만무다. 법의 취지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실적인 개정안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김영란법이 만들어진 것은 공직사회의 부패·비리 척결을 위해서다. 그럼 공직사회의 제도적 부패부터 손대는 것이 옳다. 국정원, 청와대, 국회 등 권력기관의 특수활동비 8000여억원이 쌈짓돈처럼 쓰이고 있다. 영수증도 없이 쓸 수 있다 보니 사적 유용과 나눠 먹기 관행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됐다. 목적과 달리 쓴 것이니 ‘세금 도둑’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큰 도둑은 잡지 않고 3만·5만·10만원(식사·선물·경조사)의 규정을 어기는 작은 부패를 잡는 데만 열을 올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최근 애플이 개발자 대회에 세계 각국의 기자들을 초청했지만 한국 기자들만 제외됐다고 한다. 항공기 등 교통편이나 숙박 등을 제공하다 보니 김영란법 저촉을 우려했다는 후문이다. 공직자도 아닌 기자들을 김영란법 대상에 넣다 보니 생긴 해프닝이다.
이처럼 김영란법은 부정부패를 척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여러 혼선을 초래하고 경기를 위축시키고 있다. 권익위는 오는 9월 김영란법의 경제적 영향 분석에 대한 연구용역이 나오는 것을 보고 법 개정을 결정하겠다고 한다.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잘못된 법은 하루라도 빨리 손보는 것이 마땅하다.
3. 미사일 연쇄 도발로 대화 테이블 걷어차는 北
북한이 어제 새벽 원산에서 스커드 계열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을 동해상으로 발사하는 도발을 자행했다. 올 들어 아홉 번째이자 문재인 정부 들어 세 번째 미사일 도발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이 같은 미사일 연쇄 도발은 북한 문제를 제재 일변도에서 벗어나 대화를 통해 풀어 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망동이자 국제사회의 우려와 거듭된 경고를 깡그리 무시하는 마이동풍식 행보라는 점에서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북한은 핵을 틀어쥐고 탄도미사일을 쏘아대는 것이 자위권 차원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국제사회가 북한의 폭주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지난 27일 이탈리아 타오르미나에서 폐막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가한 정상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문제는 국제사회가 직면한 최우선 과제”라고 결론 지었다. 정상들의 공동성명 내용도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에 대한 제재 강화였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대북 정책 4대 기조에 서명했다. 또한 ‘최종적으로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유연한 입장도 갖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국제사회가 정한 제재에는 동참하지만 대화를 통한 해결 의지를 갖고 있다. 이전 보수정권과 달리 민간 차원의 지원 허용, 5·24 조치 해제 검토와 같은 문재인 정부의 전향적인 대북 유화책도 이러한 기조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북한 김정은 정권이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탄도미사일 발사라는 위험천만한 곡예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북·미 대화를 염두에 두고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측면이 강하다.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기 전 자체 미사일 개발 로드맵에 따라 미사일 시스템을 완성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무력화하고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의도가 깔린 도발이다. 그런 만큼 북의 미사일 도발은 진행형이다.
그러나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행위인 동시에 문재인 정부를 곤경에 빠뜨리고, 대화 테이블을 걷어차는 철없는 망동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특히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통해 새 정부의 인내심을 확인하려 했다면 오판이다. 북한의 유일한 선택은 달리 없다.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걸어나오는 것뿐이다. 새 정부도 북의 도발에 좀더 단호할 필요가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집만으로는 북한의 망동을 제어할 수 없는 것이다.
[조선일보]
4. 對北 정보 역량 강화가 국정원 개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를 공약했다.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업무를 전면 폐지해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하고, 국정원의 대공(對共)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겠다고 했다. 그동안 정치적 문제를 일으켜 온 국정원을 전면 수술하겠다는 것이었다.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는 29일 국회 청문회에서 "(문 대통령과 입장이) 전혀 다르지 않다"면서도 "정치 관여 근절이란 취지가 국내 정보 폐지로 표현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오늘날 국내 정보, 해외 정보가 물리적으로 구분되기는 어렵다"고도 했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와는 절연해야 하지만, 방첩(防諜)을 위한 국내 정보 수집 업무는 존속할 필요가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세상이다. 해외와 국내를 두부 자르듯이 나눌 수 없다.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것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간첩 수사는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과 자료가 절대적이다. 지금 국정원만 한 곳이 있을 수 없다. 국정원의 수사 정보를 경찰로 쉽게 이관할 수도 없다. 정보활동이 노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대공 수사권 문제는 더 시간을 두고 검토해야 할 문제다.
북한은 어제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올해 들어 9번째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3번째다. 결국 핵실험과 ICBM 도발도 한다고 봐야 한다. 이 위기에서 국민을 지키려면 '정보'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국정원 개혁은 오로지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서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에서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대화에 깊숙이 관여한 사람이다. 청문회서도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남북대화에 나서면 대한민국에 정보기관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 후보자는 "남북회담은 기본적으로 통일부의 책무"라고 한 자신의 답변을 임기 내내 기억하기 바란다.
[이데일리]
5. 종교인 과세유예, 명분도 원칙도 없다
종교인 과세 문제가 또 도마 위에 올랐다.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되도록 예정돼 있는 종교인 과세를 2년 더 미루기 위해 소득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제기된다. 50여년 만에 어렵사리 입법화된 종교인 과세가 시행 7개월여를 앞두고 자칫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명분도 원칙도 없이 종교인 과세를 미루는 것은 곤란하다.
김 위원장은 그제 “종교인의 소득을 파악하기 쉽지 않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이유로 종교인 과세 유예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2015년 12월 국회가 관련법을 통과시킬 때 첫 시행인 만큼 혼란을 줄이자는 취지로 이미 2년간의 준비 기간을 두어 2018년부터 시행하도록 했다. 그동안 무얼 했기에 이제 와서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명분이 없는 억지 논리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국민개세(國民皆稅)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종교인 과세는 단순히 세수확보 차원을 넘어 공평과세 원칙을 확립하는 일이다. 종교계도 이런 원칙에 발 맞춰 천주교는 1994년부터 세금을 내고 있으며, 불교와 일부 개신교에서도 세금 납부를 확대해가고 있다. 과세에 반발하는 일부 특정 교단을 위해 유예시키려 한다면 ‘반개혁적’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지금 일자리 창출과 문재인 대통령 공약사업 추진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실효세율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추경은 10조원 정도가 필요하고 문 대통령의 201개 공약사업에는 5년간 178조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각종 조세감면 혜택을 줄이고 분리과세를 종합과세화하는 등 한 푼이라도 더 재원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유독 종교인 과세만은 유예하려 한다면 누가 이해하겠는가.
종교인 과세는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문제점이 있다면 대책을 세우고 미비점을 보완해 법대로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종교계도 유예 논란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세금 납부에 적극 호응해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이 옳다.
[동아일보]
6. 서훈 후보, 대북협상가에서 안보파수꾼으로 바뀌어야
서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는 어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정원은 정권을 비호하는 조직이 아니다”며 “앞으로 국정원은 국내 정치와 완전히 단절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내 정보 수집업무 폐지 공약에 대해선 “선거 개입, 민간인 사찰 같은 행위를 없애겠다는 것이지, 대공 수사력이 약화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국정원의 개혁은 추진하되 본연의 임무에 소홀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들린다.
여야 의원들은 고액 자문료 같은 신상검증 외에 서 후보자의 대북관과 안보관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서 후보자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의 기획과 실무를 총괄한 대북 협상전문가인 만큼 새 정부의 국정원이 물밑 대화 창구로 나서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서 후보자 스스로도 국정원장에 지명된 직후 “조건이 성숙되면 (대통령이) 평양에 갈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서 후보자는 “남북관계와 남북회담은 기본적으로 통일부의 책무”라며 선을 그었다. 대통령 공약인 대공수사권 이관에 대해서도 “대공수사를 가장 잘할 기관은 국정원”이라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공교롭게도 서 후보자 청문회가 열린 어제 오전 북한은 또다시 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새 정부 들어 벌써 세 번째 도발이다. 정부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북한을 규탄하고 단호한 대응을 경고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잇단 도발에 대한 대응 수위는 점점 느슨해지는 분위기다. 특히 문 대통령은 북한의 첫 도발 때만 직접 NSC를 주재하고 이후엔 참석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안보와 대북정보의 최일선 기관장으로서 보다 분명한 소신을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 후보자는 2012년 대선 때 발생한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 “사실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자칫 정치 보복성 조사로 국정원 조직을 흔들어 놓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국정원은 국내 정치에 개입해서도 안 되지만 정권 입맛에 맞춘 대북 정보를 생산해서도, 과거처럼 대북 비선 접촉에 나서서도 안 된다.
7. 獨 메르켈 ‘EU 안보 독립’ 선언… 美중심 세계질서 요동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8일 “유럽은 더 이상 미국과 영국 동맹에만 의존할 수 없다”며 “이제 스스로의 운명을 위해 싸워야만 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의 맹주가 독자 행보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 년 역사에서 유럽이 미국을 떠나겠다는 움직임은 처음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흔들려온 국제질서 지형이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선거 유세 중 나온 말이긴 하지만 평소 신중한 언행을 보여온 메르켈 총리 스타일상 이번 발언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 품어온 생각을 적절한 타이밍을 골라 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침공 이후 유럽인들은 러시아로부터 직접적 안보 위협을 느끼고 있다. 미국이 과연 유럽의 안보를 위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불안감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대선 기간 공약한 대로 취임 후에도 독일의 대미(對美) 흑자를 지적하며 방위비 증액 요구를 집요하게 외치자 메르켈로서도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헌장 5조인 집단방위 조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충격을 줬다. 미국 마셜플랜이 2차 대전 후 유럽의 경제부흥 축이라면 나토는 안보 축이다. 1949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 이래 역대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이 공격받으면 미국이 자동 개입하는 헌장 5조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68년 나토 역사상 처음이었다. 외려 트럼프는 나토 동맹국들이 국내총생산(GDP) 2% 수준으로 국방비 지출을 늘리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4연임을 자신하는 메르켈은 자유무역과 EU를 옹호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손잡고 프랑스와의 결속을 강화하면서 미국 영국에 의존해온 국방에서 탈피해 독자적인 EU군(軍) 창설까지 검토하고 있다. 유럽이 독일 프랑스 주도의 EU와 전통적 친미, 친트럼프 성향인 영국 두 진영의 갈등 체제로 접어들 수 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중심주의는 세계 열강의 세력화와 지역주의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대선 기간 나토는 물론 한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동맹국을 향해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며 방위비 증액을 요구했었던 트럼프는 이를 하나하나 현실화시키고 있다. 동맹조차도 이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대상으로 생각하는 상대에게 안보를 얼마나 의탁해야 하느냐는 유럽의 질문은 바로 우리에게도 향한다. 동맹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미 협상력도 함께 높여야 하는 한국의 외교도 초유의 시험대에 올랐다.
8. 규제 없애야 핀테크 발전한다
‘인공지능(AI) 4년 후면 일상화’(24일자 A10면)는 2017 동아국제금융포럼의 내용을 소개한 기사였다. 앞으로 다가 올 핀테크 시대를 독자들이 이해하고 참고할 수 있게 해준 내용이었다.
이 포럼에서 우리 경제의 역동성이 저하된 원인으로 과잉 규제를 지적한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무분별한 의원 입법으로 인한 규제로 한국 경제와 금융의 성장이 역으로 발목을 잡히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규제 개혁을 위해 의원 입법의 품질 관리를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고 한다. 의원 입법은 행정부와 달리 법안 발의 시 규제 영향을 분석해 첨부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법안 발의 전 공청회 등을 거치도록 국회법에 규정돼 있지만 지켜지지 않거나 형식적인 경우가 많은 것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 한두 명의 몽니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규제 법안들이 만들어지고 시행될 때는 국회가 왜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얼마 전 미국 뉴욕 월가의 금융기관에서 근무하는 후배를 만났을 때 처음 한 말이 지금 월가 금융은 핀테크에 흠뻑 빠져 있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새 정부가 핀테크, 바이오 등 신생산업 분야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를 빨리 풀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한다.
[중앙일보]
9. 4대 강 보 개방…가뭄 대책 지혜도 모아야 한다
가뭄이 극심하다. 올 들어 전국 평균 누적 강수량은 161.1㎜로 평년(292.7㎜)의 56% 수준에 그쳤다. 특히 모내기가 본격화한 이달의 강수량은 21.9㎜로 평년의 30% 밑으로 떨어졌다. 경기·충청 일부 지역에선 모내기에 차질이 빚어져 농민들이 발을 구른다. 기상청은 다음달까지 가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어제 4대 강 6곳의 보(洑) 개방을 최종 확정했다. 다음달 1일부터 강정고령보·달성보 등 낙동강 4개 보와 금강 공주보, 영산강 죽산보 수문을 열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지시(22일) 후 일주일 만에 나온 수질 개선 조치다. 정부는 “모내기철 농업용수 이용에 지장이 없도록 점진적으로 개방 수위를 조절하겠다”고 밝혔다. 수위가 19.5m로 가장 높은 강정고령보는 1.25m, 수위가 8.75m인 공주보는 0.2m 얕아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어정쩡하게 수문을 열면 ‘녹조 라테’를 잡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아까운 물만 흘려보낼 뿐 유속이 느려 바닥층 무산소층을 걸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지시라고 과속하지 말고 수량과 생태계 영향을 감안해 과학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물론 보 개방과 가뭄 피해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지역도 있다. 그럼에도 수질 보호와 수량 확보라는 두 가치의 충돌은 여전하다. 공주보가 대표적이다. 금강물을 끌어다 쓰는 공주 지역 주민들은 수량이 줄면 양수장이 무용지물이 될 것을 걱정한다. 양수장 취수구 높이가 8.5m인데 가뭄에 보까지 열면 취수구가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란 얘기다. 정부는 주민들의 하소연을 외면하지 말고 정확히 ‘양수 가능 수위’를 지켜야 할 것이다.
물은 소중한 우리의 천연자원이다. 4대 강 문제를 계기로 가뭄 극복 지혜도 다시 모아야 한다. 금강 백제보에서 물을 끌어오는 보령댐 도수로가 그 모델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2년 전 보령댐이 바닥을 드러내자 정부에 도수로 건설 지원을 긴급 요청해 마침내 주민들의 물 걱정을 없앴다. 강을 환경과 수자원의 가치로 융합한 중앙정부와 충남도의 협수(協水)·소통의 성과물 아닌가.
10. 정신병 강제 입원 줄이되 치료 인프라는 확 늘려야
오늘부터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 환자의 강제 입원이 까다로워진다. 인권침해를 줄이기 위한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옷만 선진국처럼 입었을 뿐 몸뚱이(관리 인프라)는 여전히 후진국이어서 즉각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는 평가할 만한 것들이 많다. 종전에는 가족과 전문의 의견만으로 강제 입원시켰다. 입원 환자의 67%가 강제 입원이다. 영국·독일의 4~5배다. 그동안 치료보다 격리를 우선해 온 결과다. 지금부터는 다른 병원 전문의가 추가 진단하고 한 달 내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서 또 확인한다. 기존 입원 환자 심사도 강화된다. 또 경증 우울증 같은 병은 정신병에서 빠지기 때문에 편견을 줄이고 취업 기회 확대에 기여할 전망이다.
한국의 강제 입원은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개선 권고를 받았고,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해 국제 기준에 맞춰 개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뜻이 아무리 좋아도 현실이 받쳐주지 않으면 혼란이 따른다. 강제 입원이 줄면서 1만9000명의 입원 환자가 쏟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탈(脫) 병원' 정책이 안착하려면 환자 관리가 촘촘해야 한다. 안 그러면 사고가 발생해 조현병 편견을 심화시키거나 재입원이 늘게 된다.
탈 병원 환자 관리를 담당하는 전국 정신건강증진센터와 사회복귀 시설은 이미 포화 상태다. 센터 직원 1명이 적정 인원의 두 배를 맡고 있다. 약 복용, 증세 변화를 빈틈 없이 체크하고 재활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는 게 중요하다. 주간재활·단기보호·주거 등의 사회복귀 시설을 이용하면 증세가 몰라보게 좋아지고 일상으로 복귀한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정신보건에 가치를 두지 않았다. 올해 복지부 예산의 0.2%(1224억원)에 불과하다. 복지부 1개 과에서 담당한다. 암 같은 눈에 보이는 병에만 연 5조원의 건보 재정을 집중한다. 이번 기회에 예산을 대폭 늘리고 복지부 정신보건과를 정신보건국으로 키워 개정 법률을 뒷받침해야 한다. 470만 명이 평생 한 번이라도 정신질환을 앓을 정도로 현대인의 정신건강이 피폐해지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이재무의 오솔길]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
평상이 없다/예비군복과 기저귀가 없다/새댁의 나이아가라 파마가 없다/상추와 풋고추가 없다 줄넘기 소리가 없다/쌍절봉이 없다 씨멘트 역기와 통기타가 없다/골목길 멀리 내뱉던 수박씨가 없다/항아리가 없다 항아리 뚜껑 위에 감꽃이 없다/모기장이 없다 모기를 잡던 박수소리가 없다/모기장을 묶어 매던 돌덩어리 네 개가 없다/고무신이 없다 고무신 속 빗물 한 모금이 없다/안테나가 없다 안테나를 돌리는 작은 손이 없다/잘 나와? 잘 나오냐고? 안마당에 내려놓던 고함이 없다/우리 집은 잘 나오는디 염장을 지르던 옆집 아저씨의/ 늘어진 런닝구가 없다 (중략)/근데, 이 많은 것들이 언제 내 머릿속에 처박혔나?(이정록, 시 ‘옥상이 논다’ 부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우리 생활 주변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들이 많다. 살다 보면 사라져 가는 것들이 불쑥 애틋하게 눈에 밟혀 오는 때가 있다. 그중 생각나는 목록 몇 가지를 순서 없이 떠올려 본다. 골목길, 공중전화, 이발소, 정미소 등등. 한때 요긴했으나 지금은 기억에서 멀어진 생활의 세목들이 새록새록 눈에 밟혀 온다.
미로처럼 어지러운 좁은 골목길은 생활에 다소 불편을 초래했지만 얼마나 많은 인정을 꽃을 피웠던가. 키 작은 처마와 처마가 연달아 맞닿아 있어 한낮에도 짙게 그늘이 고여 있던 질척한 골목길. 이쪽 집 창문을 열고 저쪽 집 열린 창문을 향해 갓 쪄낸 고구마나 옥수수, 밀개떡 등을 건네기도 하고, 송이눈이 내리는 겨울밤 술 취한 홀아비의 코 고는 소리가 낮은 블록 담을 넘어가 낯가림 없이 과부댁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고 가는 비 오는 어느 여름날 저녁 이웃집 고등어구이 냄새가 배고픈 남매의 공복 위로 스멀스멀 기어오르기도 했던 골목길.
늦은 저녁 나이 어린 누이와 함께 집 앞에 쭈그려 앉은 채 저쪽 끝에서 빈 도시락 주머니를 흔들며 돌아올 어머니를 기다리던 골목길. 새벽마다 두부장수 방울 소리가 창문을 흔들고, 조간을 돌리는 고학생의 성급한 발자국 소리가 아침잠을 깨워 흔들어 대던 골목길. 백내장 앓아 대던 가등 아래 서로 더운 숨을 탐하던 늦은 밤의 연인들 실루엣이며, 이집 저집에서 흘러나온, 온갖 소리의 넝쿨들과 온갖 색깔 범벅의 냄새들이 주인 몰래 저희끼리 희희낙락 짝짓기하던 우리 한때의 자궁이었던 그곳, 그 골목길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없다.
모던의 상징이었던 공중전화. 뜨겁고 짜고 싱겁고 차갑던 사연들을 분주히 실어 날았던 공중전화.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뜻 모를 그리움이 까닭 없이 마음의 우물에 가득 차 출렁이던 공중전화. 영하의 매서운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 저녁 길게 늘어선 줄이 빨리 줄어들기를 기다리며 언 발을 동동 구르면서 차갑게 식은 청색의 손을 호호 불어 대던 추억의 공중전화.
한 시절 시쳇말로 뭇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잘나가던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이제 늙은 창부처럼 누군가 덜커덕 떨어뜨린 마음 한 조각을 허겁지겁 삼키고 있는 공중전화가 우리 시대 낡은 서정시같이 잘 보이지 않거나 후미진 곳에 함부로 방치돼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로 시작되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 ‘삶’이 무채색 벽면에 걸려 있던 천장 낮은 이발소. 장 프랑수아 밀레의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만종’이 걸려 있던, 금성 라디오에서 구성진 유행가 가락이 흘러나오던, 국수 내기 장기 놀이가 자주 벌어지던, 늘 서울이 그리운 늙다리 총각들이 무나 참외를 깎아 먹으며 음담패설을 주고받던,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겨운 장삼이사들이 모여 앉아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자꾸만 그리운 서울 얘기 등으로 까닭 없이 흥미진진하던 곳, 정겨운 이발소가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눈에 띌 뿐 멸종 신세로 전락해 가고 있다.
어찌 이뿐이랴. 정미소, 떡 방앗간, 하꼬방, 연탄구이 집, 지하다방, 작부 집 등속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추억의 목록들이 이름만 남긴 채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 시편 ‘옥상이 논다’는 이제 이곳 현실 속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지난 연대의 살가운 풍경이다. 다 해진 런닝구를 입고 염장을 지르던 이웃 아저씨가 간절하게 그리워지는 여름날이다.
2. [중앙일보][삶의 향기] 일상을 바라보는 열 개의 시선
일상은 광장의 집회처럼 감격적이지 않다. 일상은 시시하다. 광장에 모인 수십만의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외칠 때, 내 마음이 그 많은 마음으로 확장되는 듯한 감동에 사로잡힌다. 때로 하늘까지도 열리는 듯, 벅찬 믿음도 생긴다. 이런 감격과 믿음이 있어 맨몸으로 탱크를 가로막아 서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그 마음들은 닫혀 있다. 같은 마음들이 주차 문제로 싸우고 뒷담화를 둘러싸고 서로 눈을 흘긴다.
일상은 잔치가 아니다. 잔치에서 우리는 베풀고 대접받는다. 낯선 사람에게도 친절하고 거지들도 배불리 먹게 해준다. 주인은 무리를 해서라도 넉넉히 내고 손님들은 십시일반 비용을 보탠다. 그러나 잔치가 끝나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계산을 해본다. 과했다 싶으면 마음이 쓰리다. 일상은 쫀쫀하다.
일상은 여행이 아니다. 여행에서와 같은 홀가분함이 일상엔 없다. 여행자가 되어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면 좋다. 거리를 두고 보면 삶의 자잘한 모습은 정겹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무심히 바라볼 수 없다. 그럴 틈도 없다. 바쁘다. 약속과 할 일 사이에서, 몸이 분주하지 않아도 무슨 일엔가 항상 매어 있다는 의미에서 바쁘다.
일상은 시(詩)가 아니다. 순수하지도 충만하지도 않다. 시적인 순간에 비하면 하루하루 삶에 목을 맨 나의 일상은 비루하다. 하긴 메마른 삶에도 잠깐 시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난데없이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문득 오래전부터 끊어진 일기장을 다시 펼치기도 한다. 지평선 너머를, 혹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광막한 공간과 아득한 시간 속에서 덧없는 나의 시공간을 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시심이 밥 먹여주지는 않는다. 밥을 위해 우리는 시를 잊어야 한다.
일상은 고되다. 고된 일들의 반복이다. 매일의 일을 사람들은 사무실에서, 공장에서, 거리에서 한다. 운동선수나 음악가의 일상은 반복으로 채워져 있다. 같은 동작을 수백 번 한 결과가 체조선수의 연기고 같은 패시지를 수천 번 반복한 결과가 피아니스트의 연주다. 보고 듣는 사람들에게는 잠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멋진 동작이고 황홀한 소리이지만 그 빛나는 순간은 일상의 고됨을 통해 이루어진다.
시시하고 비루하고 고되지만 우리는 일상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여행에서 돌아와 주민등록도 하고 세금도 내야 한다. 실은 그래야 광장에도 나가고 대통령선거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을 통해 산다. 일상을 부정하거나 망가뜨린다면 그것은 위대한 혁명도 고결한 시도 아니다.
일상의 의미는 그것을 상실한 후에 가장 쉽게 안다. 편도암 수술을 받은 후 한 목사님이 말했다. “수술 후 물 한 숟가락 삼키는 데 5분 걸렸습니다. 그때 알았죠. 물 한 모금을 시원하게 마실 수 있으면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고요.”
‘우리 읍내’(손턴 와일더 작)는 1막과 2막에서 우리 삶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 2막에서 결혼을 하는 여주인공 에밀리는 3막이 열리면 젊은 나이에 죽는다. 그는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무대감독에게 애원해서 그는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 본다. 열두 살 나던 해의 자기 생일, 일상은 언제나처럼 돌아가고 있다.
보고 싶었던 이승의 사람들에게 에밀리는 말해주고 싶다. 지금 이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물론 될 일이 아니다. 이승의 사람들과 자신의 간격을 절실히 느끼고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며 그는 독백한다. “안녕. 이승이여. 맛있는 음식도, 커피도, 새 옷도, 따뜻한 목욕도, 잠자고 깨는 것도. 아, 너무 아름다워 그 진가를 몰랐던 이승이여, 안녕.”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혹한의 강제수용소에 갇힌 이반은 한 조각의 빵을 소중히 씹으며 옛일을 후회한다. “그렇게 감자를, 고기를 마구 먹어대는 것이 아니었다. 음식은 그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어야 하는 법이다. 입안에 조금씩 넣고, 혀끝으로 이리저리 굴리면서, 침이 묻어나도록 한 다음에 씹어야 한다.”
한 육 개월 만에 이 나라에 일상이 회복된 듯하다. 모처럼 일상을 느끼니 신선하다. 우리가 이 하루하루를 “소중히 그 맛을 음미하면서” 사는 것은 언제까지일는지.
3. [조선일보][특파원 리포트] 마크롱이 쥔 양날의 검
"마크롱이 누구야?" 2014년 8월 올랑드 대통령이 신임 경제장관에 에마뉘엘 마크롱을 임명하자 프랑스 언론은 '의외' '파격'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만 37세에 정치 경력이라곤 2년간 대통령 경제 비서관을 지낸 게 전부인 마크롱은 프랑스 정계와 언론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었다.
3년 뒤 마크롱은 말 그대로 돌풍을 일으키며 역대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이 됐다. 그를 대통령에 올려놓은 건 기성 정치권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실망과 분노였다. 유권자들은 전후 60여 년간 정계를 양분해 온 공화당과 사회당 후보를 1차 투표에서 탈락시켰다. 언론은 이를 "앙시앵 레짐(AncienRégime·구체제)의 몰락"이라고 했다. 이번 프랑스 대선을 좌우한 '핫 이슈'는 테러·이민과 실업·경기침체였다.
프랑스는 2015년 1월 시사만평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총기 테러(12명 사망)를 시작으로, 그해 11월 파리 동시 다발 테러(130명 사망), 지난해 7월 니스 트럭 테러(86명 사망) 등 대형 테러 사건을 겪었다. 테러는 이민·난민 문제와 결합하면서 격렬한 화학반응을 일으켰고, 극우 포퓰리즘 세력은 이를 에너지 삼아 급성장했다. 하지만 테러·이민 이슈는 극우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 정도까진 이르지 못했다. 프랑스 국민 중엔 "누가 대통령이 돼도 테러를 완전히 막을 순 없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프랑스 국민이 가장 분개한 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나아지지 않는 실업난과 경기침체였다. 작년 초 올랑드 대통령은 "높은 실업률은 극단적 테러리즘만큼 중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프랑스 경제를 '국가 비상사태'라고도 했다. 올랑드는 실업률 낮추기에 모든 정책적 자원을 집중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지지율이 4%까지 떨어지자 올랑드는 지난해 12월 "권력에 취해 제정신을 잃진 않았다"며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한 것은 1958년 제5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처음이었다.
마크롱의 전략은 기업 경쟁력을 되살려 '취업 공간'을 넓히고, 기술·재취업 교육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노동자들 역량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멈출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는 역사적 인식에 기반한 전략이다. 사실 그동안 미국과 유럽은 고졸 정도 학력을 가진 사람이 무난히 잘살 수 있는 사회였다.
그러다가 세계화를 맞아 전 세계 모든 국가의 기업과 상품·서비스, 노동력과의 경쟁에서 지는 일이 속출했고, "남 때문에 내가 못살게 됐다"고 느낀 사람들이 투표소에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트럼프 대통령을 택했다. 그중엔 보호무역주의와 막무가내식 노동자 보호 정책으론 실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그런 선택을 한 이도 많다.
대안을 찾아 헤매는 절망적 심리가 프랑스에선 기존 정당 후보 배제로 나타났다. 마크롱 신화를 만들어낸 실업률은 '양날의 칼'이다. 프랑스 국민이 마크롱에게 큰 기대를 건 만큼, 그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 거센 역풍이 불 것이다. 언론도 마크롱이 헛발을 디디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럴 경우 다음 대선 때 극우 진영의 마린 르펜이 엘리제궁 주인이 될 가능성은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4. [조선일보][데스크에서] '시민도 예술 볼 줄 안다"
폐기된 신발 3만켤레로 만들어진 서울역 고가(高架) '서울로'의 설치 작품 '슈즈 트리(ShoesTree)'가 예정된 9일간의 전시를 마치고 29일 철거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높이 17m, 길이 100m 크기의 작품을 철거하는 데 이틀 정도 걸린다고 했다. 슈즈 트리는 설치를 시작한 첫날부터 논란을 불렀다. 거무죽죽한 신발 폭포 같다, 흉물이다, 지저분하고 냄새 난다는 의견이 많았다. 불과 9일 전시에 시비(市費) 1억3900만원이 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은 더 거세졌다.
슈즈 트리 논란은 시민과 작품을 이을 다리가 돼야 할 행정의 감수성이 무뎌서 벌어진 사태다. 작품 설치는 서울시 디자인 담당 부서가 아니라 조경 관리 부서인 푸른도시국이 주도했다. 시에 공공미술자문단이 있지만 푸른도시국은 자문단 심의를 거치지 않고 설치를 진행했다. 한 자문단 관계자는 "설치 검토 후보에 올라왔다면 채택되기 어려웠을 작품"이라고 했다.
푸른도시국은 슈즈 트리를 "도시 재생의 개념을 환기할 신선한 예술품"이라고 홍보했다.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슈즈 트리는 미술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자문단을 거칠 필요가 없다고 봤다"고 밝혔다. "관계 부서 내부 회의를 거쳤고 시장님께도 보고됐으며 시장님도 좋아하셨다"고도 했다.
박원순 시장은 정책 입안에서 시민을 강조한다. 전문가 영역인 미세 먼지 대책을 정하면서도 시민 3000명이 주말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토론해 의견을 도출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정작 시민이 향유할 예술엔 거쳐야 할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설치 기간 내내 시민의 반감이 잦아들지 않자 일부에서는 "흉물도 예술"이라며 시민 눈높이를 탓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흉물도 때론 예술이 될 수 있다.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작품 앞에서 오히려 미감이 고양될 때도 있다. 그러나 서울역은 보고 싶은 사람만 찾아가는 미술관이 아니라 공공에 개방된 공간이다. 시민 공간에다 시민의 세금으로 작품을 만들어 전시할 때는 평균적인 대중의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 보고 싶지 않다는 시민을 향해 "예술을 못 알아보느냐"고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
대중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공공 미술은 아무리 예술성을 내세워도 존재하기 어렵다. 1979년 뉴욕 맨해튼 페더럴플라자에 세워진 미니멀리즘 대가 리처드 세라의 작품 '기울어진 호(弧·TiltedArc)'는 "통행에 방해된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광장을 반으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작품에 시민 1300명이 "공공장소를 볼모로 잡고 있다"며 철거 청원서를 냈다. 존치 여부를 두고 법정 공방으로까지 번진 작품은 결국 설치 10년 만인 1989년 철거됐다.
슈즈 트리 논란은 공공 미술을 대하는 서울시의 현주소를 돌아볼 기회가 됐다. '흉물도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기사에 달린 한 시민의 댓글은 시 당국에 던지는 따끔한 일침이다. '예술은 지들만 하나. 나도 눈 달렸다.'
5. [매일신문][세계의 창] 먼 나라 이웃나라를 다시 생각하며
국제화의 영향인지 캠퍼스에 외국인 학생들이 자주 보인다. 언젠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여학생 두 명이 전형적인 슬라브계 외모여서 러시아 학생인가 말을 건네니 폴란드에서 왔단다. 사과를 하자 당신더러 일본인이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해서 함께 웃었던 기억이다.
좀 복잡한 마음이 든 것은 한국과 일본처럼 폴란드와 러시아의 뿌리 깊은 애증의 역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소련의 우방이었던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다.
히틀러로부터 해방시켜줬다는 고마움과 함께 무력으로 억압받은 과거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그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같은 서유럽 강대국들과 동쪽의 제국 러시아가 충돌할 때마다 그 가운데 있던 동유럽 각국은 쑥대밭이 되곤 했다. 그중에서도 인종과 언어가 비슷한 폴란드는 러시아와 특히 견원지간이었다. 두 나라는 폴란드 전성기였던 16세기부터 자주 충돌했다. 당시엔 러시아가 폴란드에 당하는 입장이었지만 이후 서구화 정책으로 강대국으로 급성장한 러시아와 달리 폴란드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18세기 말 폴란드는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에 의해 분할되는데, 그 때문인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당시 자발적으로 그를 따른 폴란드 용병만도 엄청난 수였다고 한다. 폴란드가 독립한 것은 이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1차 대전 이후니 그들도 지난한 역사를 지녔다.
20세기에 와서 갈등은 더 심해졌다. 2차 대전 발발 직전 상호 불가침조약을 깨고 폴란드를 먼저 침공한 히틀러와 이를 빌미로 폴란드 동쪽을 차지했던 스탈린에 의해 폴란드는 다시 둘로 쪼개졌다. 수세기에 걸친 양국의 갈등 중에서도 이 시기 카틴 숲에서 행해진 대량 학살은 가장 끔찍한 사건 중 하나다.
스탈린의 명령으로 수만 명의 폴란드 장교와 학자 등 지도층들이 숲 속에서 몰살을 당했다. 소련이 전승국이었던 관계로 히틀러의 소행으로 은근슬쩍 떠넘겨졌다가 영원히 역사에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의 전모는 1980년대 말 모두 밝혀졌다. 이 사건은 몇 년 전 기념식을 하러 이곳에 가던 폴란드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또 다른 비극을 낳았다. 그러니 폴란드인들에게 러시아란 그냥 애증의 이웃이 아니라 증오의 대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두 달 동안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당시엔 여전히 널리 통용되던 러시아어로 말을 건네면 유독 날카로운 반응이 돌아오던 곳이 바로 폴란드였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상처를 많이 주는 것처럼, 국가 간에도 이처럼 가까운 이웃이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와 일본은 수천 년 동안 잘 지낸 적이 별로 없다. 특히 일제 강제 병합과 광복 이후로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는 21세기까지 두 나라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근간에 있었던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을 두고도 두 나라는 이견을 보인다.
최근에는 유엔 총장까지 나서서 한일 위안부 합의 지지 발언을 하고, 오랫동안 한국에서 근무했던 전 주한 일본대사가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좋았다’라는 제목의 혐한 서적까지 발간했다. 일본 측에서는 두 나라의 발전적 미래 관계에 제동을 거는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 사과를 요구하는 우리나라라고 우긴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정한 사과는 그것을 하는 측이 아니라 사과를 받는 사람이 충분하다고 말할 때 이뤄진다. 용서는 얼마간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국가 간의 역사적 과오를 용서할 권리가 특정 정권에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반가운 것 중 하나가 외교관계 정상화와 개선을 위한 노력 의지이다. 출범 즉시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등 주요 4개국에 특사를 파견하여 한반도 안보를 비롯한 다양한 현안 해결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최근 첨예화된 일본과의 갈등에서 볼 수 있듯, 제대로 된 과거의 청산 없이 발전적 미래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 이웃들과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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