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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해체 위기 몰린 전경련의 자업자득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해체 얘기다. 전경련이 창립 55년 만에 최대 위기에 처했다. 그제 열린 ‘최순실 청문회’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SK 최태원 회장, LG 구본무 회장 등 주요 재벌 총수들이 탈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존립 자체가 위협받게 됐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해체 요구도 거세다. 당장 해체되지는 않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전경련의 변화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결국은 자업자득이다. 전경련은 최순실 사태를 통해 부도덕한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청와대 요구에 주요 기업들로부터 774억원을 거두는 ‘수금창구’ 노릇을 했다. 국민들은 전경련의 정경유착 역할에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회원사들로부터는 재계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탈퇴 선언에 해체 요구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전경련은 자유시장경제 창달을 목표로 설립된 1961년 이래 산업화 초기 경제발전에 긍정적 역할을 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본래 역할보다는 대기업 옹호에 권력과의 ‘검은 거래’ 창구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받는 등 위상이 바닥인지 오래다. 최근에는 이념단체 지원 논란도 불거졌다. 오죽하면 주요그룹 총수들이 회장 자리를 고사해 현 허창수 회장이 5년째 맡고 있을 정도다. 역할과 수명이 다했다는 얘기다.

환골탈태해야 한다. 정경유착의 창구라는 검은 그림자를 떨쳐버리고 시대 변화에 맞게 기능과 역할을 새로이 정립해야 한다.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있다는 점에서 무조건 해체한다면 사회적 손실이 될 수도 있다. 청문회에서 허 회장을 비롯한 6명의 총수가 해체에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발전적 해체도 하나의 방안이다.

그런 점에서 “헤리티지재단처럼 운영하고 친목단체로 남아야 한다”는 LG그룹 구 회장의 제안은 새겨들을 만하다. 회원사들의 중지를 모아 한국 경제의 미래를 연구하는 싱크탱크로 거듭날 길을 모색하기 바란다. 차제에 권력에 빌붙어 기업의 팔목을 비틀어가며 모금책 노릇을 한 관련자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는 등 전횡을 저질러 온 사무국 조직도 일대 혁신해야 함은 물론이다.



2. 야권의 ‘탄핵 이후’ 초헌법적 발상 우려한다

결국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표결에 돌입하게 됐다. 탄핵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야권은 일단 탄핵안을 처리한 다음 이후 문제를 고려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지켜보겠다”며 야권의 ‘즉시 퇴진’ 요구를 일축하고 있다. 내일로 예정된 탄핵안 표결이 통과 여부에 관계없이 정치 혼란과 국정 공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 측은 어제도 “탄핵안 표결이 가결되면 그 절차에 따라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법에 정해진 대로 탄핵심판 절차를 끝까지 마치겠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의중이라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그 전날 새누리당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밝힌 얘기의 연장선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가 돼 있다”는 게 박 대통령의 언급이었다. 야권과 박 대통령이 ‘탄핵열차’에 올라서도 마지막까지 대치하는 모양새다.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진행돼 온 일련의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정치·도의적 책임을 벗을 수는 없다. 박 대통령 스스로도 3차례의 대국민담화를 통해 인정한 사항이다. 야권이 ‘촛불 민심’에 의지해 탄핵을 주도해 온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탄핵 이후’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데 있어서는 야권도 공동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협상 기회를 번번이 걷어찬 잘못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포함한 야권 일각에서는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박 대통령이 즉각 퇴진해야 한다고 내세운다. 그러나 이런 처사는 헌법정신을 무시한 발상이다. 야권이 헌법 절차에 따른다며 ‘퇴진 협상’을 거부해 놓고는 정작 박 대통령에 대해서만 퇴진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혹시 뒷날 탄핵 논란이 제기되는 경우에 있어서도 그릇된 선례로 남을 소지가 다분하다.

탄핵 통과에 대비해 미리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작업도 이제는 물 건너가 버렸다. 박 대통령이 제시했던 김병준 책임총리 및 임종룡 경제부총리 내정자 카드도 공중에 떠버린 상황이다. 좋으나 싫으나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 탄핵안을 처리해놓고 야당이 딴소리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의회 폭거’다. 탄핵 표결까지 이른 것은 불가피하지만 그에 따른 국정 공백 책임은 야권도 뚜렷이 인식해야 한다.



[서울신문]

3. 국정조사에서 확인된 참담한 국정 농단

최순실 게이트 핵심 인물들의 국정 농단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어제 국회에서 계속된 최 게이트 핵심 인물들에 대한 국정조사에는 몸통인 최씨를 비롯, 문고리 3인방,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 등이 불참했다. 반쪽짜리 청문회였지만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차은택·고영택·장시호씨 등의 증언으로도 최순실씨 국정 농단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왕실장으로 불렸던 김 전 실장과 차씨의 증언에서 최씨를 통하면 불가능이란 없다는 ‘만사최통’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김 전 실장은 대통령의 지시로 차씨를 공관에서 만났다고 했다. 차씨는 최씨로부터 김 실장이 전화를 할 테니 만나 보라고 했다고 전했다. 두 증인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최씨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청탁해 대통령이 비서실장으로 하여금 차씨를 만나도록 지시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김 전 실장은 형식적으로는 대통령의 지시를 따랐지만 내용적으로는 막후 인물인 최씨의 지시를 따른 셈이다.

우 전 민정수석의 비서관 임명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김 전 실장은 우 전 수석을 비서관으로 임명할 때도 대통령이 만나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이 역시 우 전 수석의 청와대 입성 배후에 최씨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최씨와 우 전 수석의 장모가 골프 모임을 함께한 데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모르쇠’로 일관한 김 전 실장의 증언 태도는 문제였다.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적힌 내용이 자신에게 불리하면 아니라고 부인했다. ‘세월호 7시간’에 관한 부분과 국정 농단에 관해서도 전반적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최·차·고씨가 보여 준 행태는 돈과 치정이 얽히고설킨 막장 드라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들은 나아가 정부 인사뿐만 아니라 국가 정책도 주물렀다.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최씨의 심부름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씨는 대통령 가방 30~40개뿐만 아니라 옷도 100벌 가까이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문체부 최고의 실세로 군림했던 김 전 차관을 최씨의 수행비서로 폄하하기도 했다. 차씨는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과 김종덕 전 장관을 최씨를 통해 추천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최씨의 국정 농단에 청와대는 물론 국가기관의 공적 시스템은 마비됐다. 국정 농단은 최씨에서 시작해 박 대통령을 거쳐 진행됐다는 것이 더욱 명백해졌다. 박 대통령이 최씨 등의 공소장에 공범으로 적시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오죽했으면 청문 위원들이 권력 서열 1위가 최순실이라며 답답해했겠는가. 이제 남은 것은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특검에서 철저히 수사하는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 관련자들의 엄벌은 물론 비선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시스템 정비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경향신문]

4. 아이들이 죽어갈 때 대통령은 머리 손질로 시간 보냈다니세

월호가 침몰할 때 박근혜 대통령은 전속 미용사를 불러 90분간 머리를 손질했다는 보도가 그제 나왔다. 300명 넘는 목숨이 생사의 기로에 선 금쪽같은 시간을 올림머리 하느라 허비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로부터 오전 11시23분쯤 ‘315명의 미구조 인원들이 실종 또는 선체 잔류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별다른 주문을 하지 않았고, 미용사는 평소와 다름없이 머리를 손질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전속 미용사가) 오후 3시20분쯤부터 1시간가량 청와대에 머물렀다”며 “당사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머리 손질에 소요된 시간은 20여분”이라고 말했다. 기껏 해명한다는 게 머리 손질에 소요된 시간이 90분이 아니라 20분이라는 것이다.

시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시간에 ‘90분’간 머리 손질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꽃 같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촌각을 다투는 때 대통령이 ‘딴전’을 피웠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미용사에게 머리 손질과 화장을 맡긴 바로 그 순간은 해경이 선체에 남은 생존자들을 찾기 위해 수중 수색 작업에 나선 때이다. 300여명이 수장되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은 머리치장을 하면서 구조 관련 내용을 묻거나 지시를 내린 정황은 없다. 그런 급박한 상황이라면 국가 지도자가 아니라 장삼이사라도 맨발로 뛰쳐나가 상황 파악과 구조에 나서는 게 인지상정이다. 

박 대통령 당시 행태를 보면, 어린 생명보다 자신의 머리 모양을 더 중시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경중을 가릴 줄 모르는, 이성마비 상태나 다름없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그 뒤 보도대로라면 4시간 뒤, 청와대 주장대로라도 1시간 뒤인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민방위복을 차려입고 나타났다. 그러고는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 청와대는 거짓말도 했다. 이영석 청와대 경호실 차장은 지난 5일 국회 국정조사 청와대 기관보고에서 “참사 당일 외부에서 (청와대로) 들어온 인원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미용실 원장 출입 사실이 드러나자 “미용사는 계약직 직원이라 출입증을 찍고 들어간다. 외부인이 아니다”라며 말장난을 했다.

머리 손질 외에도 7시간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박 대통령이 침묵한다고 가려질 수 없다. 특별검사는 이미 7시간을 조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곧 의문의 시간, 의문의 행적이 드러난다. 남에 의해 폭로되기 전에 박 대통령 스스로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를 지키기 바란다.



[조선일보]

​5. 교육 경쟁력에도 경고등, 누가 고민하고 있나

3년마다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2015년 한국 학생들 학력이 OECD 35개국 가운데 읽기 3~8위, 수학 1~4위, 과학 5~8위로 나왔다. 2012년(읽기 1~2위, 수학 1위, 과학 2~4위)과 비교해 뚜렷하게 떨어졌다. 상위권 학생들 수준은 전과 비슷했다. 그러나 최하위권 학생 비율은 읽기가 2012년 7.6%에서 2015년 13.6%로, 수학은 9.1%에서 15.4%, 과학 6.7%에서 14.4%로 증가했다.



교육부 학업성취도평가에서도 낙오(落伍) 학생들 문제가 심각했다. '기초 학력 미달' 중·고생 비율이 2012년 2.6%, 2014년 3.9%였는데 올해는 4.1%였다. 친(親)전교조 교육감이 이끄는 지역이 낙오 학생 비율에서 1~6위를 차지했다. 시험 횟수 줄여주고 학력은 중시하지 않는 방침 탓일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학교별로 기초 학력 미달 학생 비율을 공개하는 방법 등으로 교장·교사들에게 자극을 줘 낙오 학생 비율을 낮추는 효과를 봤다. 이런 정책은 대부분 흐지부지됐다.



이번 PISA에서 일본은 수학·과학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2002년부터 창의성과 자율성을 중시한다면서 수업 시간은 10%, 학습 내용은 30% 줄이고 체험 학습을 늘리는 '유토리(여유) 교육'을 실시했다가 2006년 PISA 성적이 10위권 밖으로 떨어지는 'PISA 쇼크'를 경험했다. 그 후 '교육 재생'을 내걸고 교과서를 더 두껍게 만들고 수업 시간도 늘리는 등 학력 끌어올리기에 힘써 다시 세계 상위권에 올랐다. 우리 학생들의 학력 저하가 일본식 교육 실패를 답습한 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학력 수준이 하향 추세라면 국가적 교육 문제로 인식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 학생들의 학력 저하 사태 역시 별 주목도 받지 못하고 묻혀버리는 분위기다. 떨어진 교육 경쟁력은 10년, 20년 뒤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에 반영돼 나타날 것이다.



[매일경제]

6. 경제개발 이후 첫 장기 저성장 경고한 KDI

어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경제 전망 보고서를 보면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하다. 올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딱 3분기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한다. 까딱 잘못하면 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할 판이다. 연간 성장률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2.6%에 그치고 내년에는 2.4%로 낮아질 것으로 KDI는 전망했다. 1960년대 초 경제개발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 2%대 저성장이 3년 내리 이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장기 저성장이 현실로 닥친 것이다.

지난 반세기 남짓한 기간 중 한국 경제가 맥없이 주저앉은 건 크게 세 차례였다. 정치적 격변으로 경제가 얼어붙었던 1980년 성장률은 -1.7%로 추락했다. 환란으로 성장 엔진이 완전히 망가진 1998년(-5.5%)과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0.7%)에도 경기 침체의 골이 깊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성장률은 V자형 반등을 기록했다. 고통은 격심했지만 짧게 끝났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한국 경제는 일시적인 경기 하강이라기보다 구조적인 저성장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과거 위기 때마다 한국 경제에 돌파구를 열어주었던 글로벌 경제는 이미 성장의 활력을 많이 잃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내의 정치적 혼란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극에 달할 것이다. KDI 전망은 그 파장을 반영하지 않았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가뜩이나 움츠러든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를 더욱 얼어붙게 하고 한국 경제의 대외 신인도를 떨어트릴 경우 성장률이 1%대로 곤두박질할 수도 있다.

그럴수록 지금의 위기를 넘기 위한 경제팀의 강력한 리더십이 절실하다. 리더십 공백으로 좀비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거나 유연하고 발 빠른 재정·통화정책 대응이 이뤄지지 않으면 저성장의 늪을 탈출하는 건 요원해질 것이다. 탄핵정국에서 대통령이나 권한대행의 경제 리더십을 기대할 수 없는 만큼 경제부총리와 각 부처 수장들이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비상한 결단력과 추진력을 보여줘야 한다. 여야 정치권은 경제 활성화와 구조개혁을 위한 정책만큼은 폭풍 정국에 좌초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서울경제]

7. 삼성 미래전략실 해체한다는데 대안은 뭔가

삼성이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았던 미래전략실 해체를 결정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6일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미래전략실에 관해 의혹과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것을 느꼈다”며 “국민 여러분께서 부정적 인식이 있으면 미래전략실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삼성이 비서실에서 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로 이름이 바뀌어온 그룹 컨트롤타워를 공식 폐지하겠다는 것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안팎의 부정적 시각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미래전략실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인 정경유착의 핵심 연결고리로 활용되면서 국민의 거센 비난을 자초해왔다. 그룹 내부에서도 미래전략실이 계열사 지원이라는 본연의 역할보다 막강한 권한을 앞세워 군림하며 시대 변화에 뒤떨어졌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미래전략실이 부작용 못지않게 나름 순기능을 발휘해온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미래전략실의 역기능은 바로잡되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주력사업의 경영상태를 점검할 전략기능은 어떤 식으로든 유지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스마트카와 바이오 등 특정 계열사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신사업이나 인수합병(M&A) 전략을 지휘할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은 오히려 높아졌다고 봐야 한다. 삼성에 비판적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삼성은 국내 계열사만도 약 60개이며 모두 400여개의 계열사가 있다”며 “그룹은 컨트롤타워 없이 경영을 잘하기 힘들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간 추진해온 지주회사 체제 전환과정에 별도의 조직개편을 담거나 SK처럼 별도의 위원회 방식을 통해 의사결정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적이고 투명한 경영체제는 우리 기업들의 과제일 것이다. 조직개편이 글로벌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재계의 각성과 분발이 필요한 때다.



[한국경제]

8. 최악의 기업환경 만들어 놓고 해외투자 타박, 말이 되나

그제 열린 기업 총수 국회 청문회에서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국내 대기업이 외국에 투자한 돈의 3분의 1만 한국으로 옮기면 취업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청년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됐는데 임금이 높아서 혹은 노사관계가 좋지 않아서 채용을 못 하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기업이 일자리 창출에 ‘올인’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기업들이 해외 투자를 많이 하면서 청년 실업이 심각해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가 지적한 청년 실업 원인은 물론 해법 모두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 실업 증가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성장 둔화, 대졸 인원의 증가, 구직자의 눈높이 변화, 기업들의 해외투자 증가 등이 모두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마치 해외 투자가 주된 원인인 것처럼 지목한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열악한 국내 기업 환경이다. 공장 하나 지으려 해도 수백개에 달하는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높은 인건비와 강성 노조, 노동 경직성으로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돼 버렸다. 경제민주화, 동반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툭하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거미줄 같은 규제를 양산해낸다. 반기업 정서가 사회에 만연하고 기업인을 범죄인처럼 취급하기 일쑤다.

게다가 미국을 위시한 대다수 국가가 법인세율을 내리고 규제를 완화해 기업을 유치하려 드는 마당에 정치권은 툭하면 법인세율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기업을 협박한다. 이런 환경에서 누가 기업 하고 싶겠나. 지난 5년간 미국으로 유턴한 기업 수만 700개나 되고 매년 6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아디다스는 24년 만에 독일에 공장을 짓고 있다. 반면 한국의 유턴 기업수는 2013년 37곳에서 올해는 5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대기업은 한 곳도 없다.

이처럼 ‘최악’의 환경을 만들어 놓고 기업들만 타박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 게다가 이익 창출이 목적인 기업에 “임금이나 노사관계를 따지지 말고 채용하라”는 게 말이 되나. 국회의원들은 기업을 자선단체로 알고 있다.



[헤럴드경제]

9. 대기업 총수 망신주기 식 청문회 이제는 끝낼 때

내로라하는 한국 기업 총수 9명이 청문회 증언대에 나란히 앉아 의원들에게 추궁당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TV로 생중계됐다. 이를 놓칠리 없는 외신들은 이 소식을 주요 뉴스로 실시간 타전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기업 총수들을 상대로 한 공개 심판(AP)’, ‘한국 업계 거인들 스캔들 조사에서 진땀(AFP)’ 등의 표현을 동원됐다.



국적 정경유착 비리를 집중 보도하는 외신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일로 글로벌 시장에서 초 일류 반열에 들어선 한국 대기업 이미지와 신뢰에 큰 흠집이 난 것은 물론 나라의 꼴도 말이 아니게 됐다. 언제까지 권력과 기업의 유착 의혹 논란이 계속될지 마음이 답답하고 무겁다.

국제적 망신을 초래할 줄 뻔히 알면서 이런 식의 청문회를 열어야 하는 까닭도 여전히 납득할 수가 없다. 우선 대기업 총수를 한 자리에 불러 모은 것부터 그렇다.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을 촉발한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자금 성격을 따진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이를 추궁하는 의원들은 시종 목청만 높였지 만족할 만한 답변은 단 한 마디도 받아내지 못했다.



진상규명의 의지가 있다면 먼저 실무 임원 등을 상대로 의심스러운 점들을 따져보고 이를 최고 책임자에게 확인하는 수순이 필요하다. 무턱대고 총수를 불러내 호통치고, 면박주는 식의 청문회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이미 28년 전 우리는 5공비리 청문회에서 똑 같은 경험을 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총수들의 한결같은 답변 중 하나는 “정부 정책에 따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대목이다. 대가성 여부를 떠나 최고 권력과 독대한 자리에서 모종의 금전적 지원을 요청하는 데 이를 거절한 간 큰 기업인은 없다. 최순실 파문은 이런 구태를 청산하는 절호의 기회다. 재계도 ‘재벌도 공범’이라는 촛불 민심을 아프게 새겨야 한다. 그동안 투명치 않았던 부분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에 충실하되 이에 대한 관리에 더욱 투명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10. ‘국민에 소상히 밝히겠다’약속 끝내 저버린 不通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9일 오후 2시 본회의)이 이틀 앞이다. 가결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표결 전에 ‘온전한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으로서 박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틀뿐일 가능성이 크다. 탄핵소추가 이뤄지더라도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국회 표결 이전에 국민과 공직사회에 대해 ‘마지막 사과와 호소’라도 하는 게 도리다. 정치적 고향인 대구의 지도층조차 6일 “못난 대통령 탄생에 산파 노릇을 한 것을 깊이 반성한다”는 집단 반성문을 발표했을 정도로 지지층에까지 큰 상처를 준 데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최순실 사건 관련 3차 담화 발표 뒤 “가까운 시일 내에 여러 가지 경위에 대해서 소상히 말씀을 드리겠다. 질문하고 싶으면 그때 하는 게 좋겠다”고 밝혔다. 기자 질문을 뿌리치면서 한 약속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만간 기자회견 방침도 밝혔다. 이 약속도 끝내 지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차 담화에서의 ‘검찰 조사’ 약속도 저버렸다.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다. 박 대통령이 제대로 된 기자회견이라도 자주 가졌더라면 국정농단 사태도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박 대통령의 불통(不通)은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국민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불통이 마지막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 대신 박 대통령은 6일 청와대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를 불러 만났다. 이 자리에서 “탄핵소추 절차를 밟아서 가결 되더라도 헌법재판소 과정을 보면서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또 “당에서 4월 퇴진, 6월 조기 대선 당론을 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쭉 해왔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지켜본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국회 권능으로 탄핵소추를 추진하니, 박 대통령도 4월 퇴진 등 정치 일정 불안정을 제거하기 위한 ‘협력’ 방침을 철회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자고 나면 새로운 의혹들이 떠오른다. 세월호 참사 당일 근무시간대인 대낮에 서울 강남의 미용사를 불러 ‘올림머리’를 손질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탄핵·수사 절차와는 별개로, 온갖 의혹에 대한 국민의 궁금증에 마지막 애국이라는 자세로 직접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주요 신문칼럼



1. [이데일리][목멱칼럼]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

구석진 곳에 상대를 몰아넣는 일은 가끔 보는 풍경이다. 벌어지는 싸움이나 다툼 등에서다. 모질게 몰아붙이는 경우도 본다. 상대를 거꾸러뜨린 뒤 패고 짓밟는다. 싸움이나 다툼은 그로써 끝을 맺는 듯 보이지만 어딘가 서늘하다. 당하는 쪽의 앙심이요 원한 때문이다. 

싸움판에서 몰고 몰리는 상황은 흔히 고양이와 쥐로 설명할 때가 있다. 고양이에 몰린 쥐가 막판 절명의 위기 앞에서 드러내는 행동이다. 쥐는 결사의 저항으로 자신을 위기에 몬 고양이를 물려고 덤빈다. 

그런 경우를 지칭하는 언어 표현은 적지 않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 속언은 한자로 적을 때 궁서설묘(窮鼠齧猫)다. ‘막다른 곳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깨문다’는 뜻이다. 고양이는 때로 삵을 지칭하는 리(狸)로도 쓴다. 

그렇듯 막다른 상황에 내몰린 쥐, ‘궁서(窮鼠)’는 사유의 대상이다. 요즘 중국에서는 쥐 대신 개가 등장한다. 개가 급해지면 담을 뛰어 넘는다는 뜻의 구급도장(狗急跳墻)이다. 등장하는 주역이 달라서 그렇지 둘은 같은 맥락의 표현이다. 

오랜 성어에도 이런 흐름의 표현이 보인다. 곤수유투(困獸猶鬪)다. ‘곤경에 빠진 동물이 오히려 싸운다’는 의미다. 

254년간의 춘추전국시대 역사를 기록한 ‘좌전’(左傳)에 등장하는 그 용례를 보면 뜻이 대개 이렇다. “어려운 지경에 몰리면 짐승도 싸우려 드는데 사람은 오죽하겠느냐” 

싸움을 살피는 사람의 노련한 시선이 읽힌다. 궁지에 몰린 쥐, 급한 경우에 처한 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을 뜻한다. 따라서 예상했던 승리가 때로 불길한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섞인 시선이다. 쥐를 모는 고양이가 물려서 다칠 수 있고 개는 담 밖으로 튀어 눈앞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얘기다. 

몰리는 상대는 급기야 결사항전으로 나설지도 모른다. 물을 등지고 진을 구성하는 배수진의 각오로 나오거나 지니고 있던 밥솥과 타고 왔던 배를 물속에 가라앉히고 덤비는 파부침주(破釜沈舟)의 정신으로 무장할 수도 있다. 

이어졌던 승리의 기운은 그로써 충분히 반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상대를 극한의 상태로 몰고 가는 싸움 방법은 그래서 최선이 아니라 차선, 아니면 그보다 더 하위의 방도일 수 있다. 막다른 곳에 몰린 쥐, 담장을 뛰어 넘는 개의 언어적 표현에는 그런 사유가 담겨 있다. 

그래서 상대를 궁지에 몰 때는 여지를 남긴다. 그물의 한 쪽을 슬쩍 열어 두고 상대를 몰아가는 망개일면(網開一面) 방식을 취하라고 가르친다. 당장은 잡지 못하고 놓치는 적이 있더라도 싸움의 상황을 장기적으로 바라보며 보다 철저한 승리를 거두기 위한 방략이다. 

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제갈량과 맹획의 싸움이 좋은 예다. 제갈량은 보다 완전한 승리를 위해 일곱 번 잡았던 맹획을 일곱 차례 풀어준다. 이른바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고사다. 우세를 지닌 쪽이 열세에 있는 사람에게 여지를 두고 공격을 벌여 마음으로부터의 항복을 받아냈다는 내용이다. 

우리사회의 싸움 방식을 되돌아보자고 꺼낸 얘기들이다. 사납고 모질게 상대를 몰아가다 보면 의외의 상황이 생겨나 제 뜻을 관철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통령 주변 비선 실세인 최순실이라는 여인으로 불거진 최근의 사태가 특히 그렇다. 

그악스러운 야권의 공세만 연일 돋보인다. 탄핵을 결정했으면 그에 충실하는 게 좋다. 대통령의 조기 퇴진도 정해졌으니 이제는 법의 논리와 틀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일만 남았다. 모질고 사나운 말과 행위로만 상대를 겨눈다면 우리사회 전체가 다 망가지는 의외의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이제는 그 점을 걱정해야 할 때다.



2. [매일신문][기고] 소방관의 안전이 우리의 안전이다

위험한 재난 현장에는 어김없이 그들이 있다. 바로 소방관이다. 소방관은 각종 재난`구급현장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또한 선진국일수록 국민으로부터 가장 신뢰받고 존경받는 직업 1위가 소방관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들이 우리의 안전을 지키고 있기에 우리는 안심하고 생업과 학업에 종사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소방관의 근무여건과 처우를 보면 우리 국민은 말로만 이들을 신뢰하고 존경하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소방관이라는 직업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형편없는 처우를 애써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한 해 평균 소방관 6, 7명이 순직하고 3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할 정도로 이들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생명수당 격인 위험수당은 월 6만원, 화재진압수당, 구조구급수당도 출동 횟수에 관계없이 각 월 8만원, 월 10만원뿐이다. 5명 중 1명이 5년 안에 소방관을 그만둘 정도로 이직률 또한 높다.

소방관 상당수가 참혹한 사고현장에서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치유할 틈도 없이 또 다른 사고 현장에 노출되다 보니 소방관의 우울증은 일반인(2.4%)의 4배가 넘는 10.8%에 이른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일반인(0.6%)의 10배가 넘는 6.3%에 달하며, 정신장애로 치료가 필요한 소방관은 무려 39%에 달한다. 최근 5년간 자살한 소방관은 41명으로, 사고로 순직한 소방관 27명보다도 더 많다.

해마다 경북도의회 행정사무감사, 예산 철이면 도의원들은 현장에서 고생하는 소방관을 위해 처우를 개선하고 더 많은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일선 소방관이 체감하기에 개선해야 할 부분이 아직 많아 보인다.

지난 2010년과 2016년 현재 상황을 비교해보면 도내 소방관서 1개서 증설, 119안전센터 12개소 신설, 소방 인력은 2천570명에서 3천334명으로 764명이 증원(연평균 150여 명)됐다. 예산은 1천670여억원에서 2천942억여원으로 1천272억여원 증액됐다. 장비는 629대에서 831대로 202대가 보강돼 외형적으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이제는 소방관이 체감할 수 있는 후생복지 등 내적 측면을 강화해 나가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소방관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심신안정실’ 설치가 시급하다. 현재 도내 17개 소방서 중 4개 소방서에만 심신안정실이 설치되어 있다. 이는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최하위 수준이다. 서울, 광주, 울산, 경기, 충남 등 7개 시`도는 관내 소방서 내에 심신안정실을 100% 설치해 소방관들의 심신을 치유하고 있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또한 소방본부와 소방서에 보건복지를 전담하는 부서를 설치하고 전담인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소방관 건강과 복지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근무여건 개선 등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주민 또한 위험 속에서 인명을 구하는 소방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일부이기는 하나 출동현장에서의 폭언과 폭력, 현장에서 불가피한 재산 손실까지 따져 묻는 이기적 행태, 몰상식한 신고 행위는 소방관을 정신적 고통으로 몰아넣는 또 다른 원인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 많은 생명을 살려야 할 소방관의 안타까운 희생이 이제는 되풀이되지 않고, 소방관의 근무환경과 처우 개선이 곧 우리들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것을, 소방관이 안전하고 건강해야 우리 삶이 더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3. [매일신문][매일춘추] 나를 좀 더 아끼는 방법

벌써 12월이다. 보통 지금쯤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뒤를 돌아보는 시기인데, 오늘 책상에 놓인 다이어리를 보는 순간 이제까지 잊고 있었던 연초 계획이 생각나 ‘지금이라도 새로 시작해 볼까?’ 하는 마음이 활활 타오른다.

입사 초기 선배 한 분이 ‘나를 좀 더 아끼는 방법’이라며 두 가지 말씀을 해 주셨다. ‘만약 나에게 매일 꼬박꼬박 8만6천400원이 통장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막연하게 “당연히 필요한 곳에 모두 쓰겠지요”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자 선배 왈 “하루가 8만6천400초다. 그런데 우리는 돈은 아까워하면서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는다.”

또 이런 말씀도 해 주셨다. “선배들과 회식도 하고 담소를 나눌 때 잡담만 하지 말고 꼭 물어볼 게 있다. ‘선배님 지금 제일 후회되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 선배에게 듣는 대답이 바로 너희들이 지금부터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마지막 남은 달력을 보니 선배의 보배 같은 충고들이 떠오른다. 그동안 나는 나를 좀 더 아끼기 위해 무엇을 해왔는가? 그냥 남들처럼 헬스, 영어회화, 한자 공부 같은 형식적인 목표에 매달려 왔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실천은 없고 남은 것은 후회뿐이다.

반백을 넘어서는 내년에도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한 살 더 먹으면서 그냥 밥그릇 수만 늘려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당연히 그에 맞는 나만의 특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문득 내년부터는 나 자신에게 상을 줘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부족하지만 사회 구성원과 가장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것에 대한 상.

그런데 좋은 상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닐까? 바쁜 시간 속에 지나쳐왔던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그것을 찾자. 인생 많이 남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는 좀 뻔뻔(?)하게 살아야겠다. 이제까지 남을 의식하면서 체면 때문에 꾹 참고 살아온 날이 얼마던가? 그러고선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면서 더 이상 마음의 상처를 받지 말아야겠다.

마지막으로, 유쾌하게 한 살 더 먹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노안이 온 것에도 당황하지 말고, 신체 변화도 부끄러워하지 말자. 사회생활 속에서 젊은 사람들보다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체력은 여행할 정도, 경제력은 독립을 유지할 정도, 교양은 자신의 견해를 말할 정도라면 충분하다’라는 말처럼 내려놓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4.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브루킹스 연구소

민간 정책연구소를 뭉뚱그려 ‘싱크탱크’라 한다. 정치형태로서의 민주주의,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가 국가 조직과 시스템, 정책 등으로 구현되는 데 기여한 바를 기려 그들을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세계에는 이름난 민간 연구소만 7,000여 개가 있고, 영향력 평가 등에서 늘 1위를 지켜온 곳이 미국 워싱턴D.C의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서 모인 300여 명의 연구자들이 공유하는 연구소의 지향은 ‘독립과 통합, 다양성과 포괄성(Inclusion)’이다. 

브루킹스연구소는 1927년 12월 8일 탄생했다. 국가 운영, 특히 세금으로 예산안을 짜고 집행하는 일을 정부 관료들에게만 맡겨두는 게 미덥지 않았던 개혁 성향의 전문가들이 만든 ‘정부 연구소(Institute for Government Research, 1916년)’, 그 연구소를 후원하던 사업가 로버트 브루킹스의 경제연구소(Institute of Economics, 1922년), 브루킹스 대학원(1924년)이 합쳐진 거였다. 이념이 아닌 효율과 합리에 바탕을 둔 연구소는 출범 초기부터 정치ㆍ이념적 중립을 표방해왔다. 그 점이 이념을 중시하는 보수 성향 연구소와 차별화하면서 진보ㆍ자유 성향의 연구소로 인식되게 했다.

연구소는 20년대 연방예산국 설립과 복지법 제정의 초안을 만들고, 40년대 유엔창설과 마셜플랜의 실행 계획을 작성하면서 명성을 높였다. 냉전기 군비 증강서부터 미국의 사회보장제도, 90년대 대외 안보정책을 집단안보에서 지역협력안보로 전환하는 밑그림 등이 거기서 나왔다. 오늘의 브루킹스연구소는 재정 공공정책 외교 안보 등 국가 기능 거의 전반을 포괄하는 종합연구소다. 

브루킹스연구소의 경쟁력은 지침이나 목표에 종속되지 않고 중립적ㆍ초당적 연구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에서 나온다. 연구원이 정부 기관에서 일하거나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값진 경험으로 보아 환영 받지만, 그 경우에는 연구소 떠났다가 돌아와야 한다. 그 인적 네트워크가 미국 국내ㆍ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또 연구소의 영향력을 키워온 것도 사실이다. 브루킹스연구소에는 동북아정책연구소가 별도로 있다. 

펜실베이니아대 로더연구소의 ‘싱크탱크와 시민사회프로그램(TTCSP)’이 매년 발표하는 2015 보고서의 ‘올해의 싱크탱크’ 1위도 브루킹스연구소였다.



5. [머니투데이][우보세] "언제쯤 집 살 수 있을까요?"
"지금 집 사도 될까? 전셋값에 조금 더 보태면 될 것 같은데…." 내년 초 전세계약 만기가 돌아온다는 친구 A가 불쑥 말을 꺼낸다. 비록 전세지만 학군 좋은 동네, 작지 않은 아파트에서 사는 데다 벌이도 나쁘지 않아 먹고 살만 한가보다 여겼던 친구다. 이 친구도 집 고민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던가 보다. 

경제정의실천연합에 따르면 현 정부가 출범한 2013년 2월부터 지난달까지 45개월간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20% 이상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셋값은 그 배로 뛰었다. 상승률이 무려 50%에 이른다. 박근혜 정부 4년간 2억원짜리 전셋집이 3억원으로 뛴 셈이다. 

연봉이 매년 두자릿수 이상 오른다면 모를까 도저히 소득 증가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다. 실제 현 정부 출범 이후 가구소득 증가율은 5.3%에 그친다. 정부가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명목으로 줄기차게 '빚 내서 집 사라'고 얘기하는 동안 '빚 내서 세 사는' 사람들만 늘어났을 뿐이다. 가계부채 1300조원 얘기가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뛰는 전셋값을 보며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겠다고 다짐했던 A였지만 막상 계약 갱신 시기가 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연초만 해도 '청약 과열, 전세난'을 말하던 시장이 어느새 급랭과 역전세난을 걱정하고 있다. 당장만 해도 전세 보증금에 몇천만원을 보태면 살 수 있는 급매물이 나오지만 A로서는 선뜻 손을 뻗기가 쉽지 않다. 매년 전세 계약 갱신 때마다 밤잠을 설치는 걸 떠올리면 대출을 조금 더 받아 집을 사는 게 나을까도 싶지만 좀체 확신이 서질 않는다. 

역대 정부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으레 '서민주거 안정화'를 목표로 내세웠다. 이번 정부도 생애 첫 주택 구입자·신혼부부 세제 혜택, 전세 대출 확대 등을 서민 주거안정대책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가 세액 공제와 저리 융자 혜택을 주는 것 이상으로 집값은 뛰었고 서민들이 집 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이 전셋값은 그 이상으로 솟구쳤다. 

지금 집값과 전셋값이 내림세로 돌아선 것도 정부의 서민 주거대책과는 거리가 멀다. 집값 오름세가 고개를 숙일 것이란 부정 전망과 슬금슬금 오른 대출금리 상승에 투자 수요가 시장에서 등을 돌린 이유가 크다. 

정부 정책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반성이 뒤따라야 했다. 집 사라고 세금 혜택을 주고 대출 문턱을 낮춰준 정책이 서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것은 아닌지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4년 내내 딴 곳을 보고 있었고 이제는 그 콘트롤타워 기능마저 상실했다. 

이미 시장은 급변상황에 들어섰고 시장 안정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시점이 됐다. 급등과 급락 사이에서 시장은 춤을 추고 그 동안 서민 주거안정은 또 한걸음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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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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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조선일보]

1. 재벌 집단 청문회, 제도 안 바꾸면 또 하는 날 올 것

6일 국회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 1차 청문회가 열렸다. 재벌 총수 9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28년 전 5공 비리 청문회에 이어 두 번째다. 권력과 모종의 유착이 있었느냐는 의혹을 받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총수들이 한꺼번에 청문회에 불려나온 자체가 개탄할 일이다.



이날 청문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독대해 어떤 혜택이나 대가를 약속하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받아냈느냐를 밝히는 것이 핵심이었다. 재벌 총수들은 한결같이 대가성은 부인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정부 요청이 있으면 기업이 거절하기 힘든 건 한국적 현실"이라고 했다. 특히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여야 의원들로부터 집중 질문을 받았다. 삼성이 유일하게 최씨 측에 직접 돈을 건네고 딸 정유라의 승마 지원을 한 결과가 됐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죄송하다" "적절치 못한 지원이 있었다"고 수십 번도 더 사과해야 했다. "미래전략실에 부정적인 인식이 있으면 없애겠다"고도 했다. 이날 청문회를 통해 전경련의 해체도 불가피해졌다.



28년 전 총수들이 불려 나올 때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10배 커졌다. 대한민국 대표 기업들의 규모와 위상은 그 이상으로 커졌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그럼에도 권력이 손 벌리면 기업이 돈 대는 후진적 관행은 28년 전이나 달라진 게 없다. 검찰 공소장에 기업들의 대가성 등 범죄 혐의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공범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다. 정권 탓 하면서 "억울하다"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날 청문회는 세계에 보도됐다.



재벌 총수 집단 청문회는 이게 마지막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이 더 투명하고 선진화돼야 권력이나 비선 실세의 압력에 당당할 수 있다. 기업이 권력을 두려워하는 것은 먼지털기식 표적 검찰 수사와 세무 조사 때문이다. 권력이 검찰과 국세청을 자의적으로 동원할 수 없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정부가 틀어쥐고 있는 수많은 인허가권에 대한 규제 개혁도 필요하다. 기업 약점을 잡고 갖은 청탁을 하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도 사라져야 한다.



2. 文 "탄핵돼도 즉각 하야하라"라니, 권력욕은 거두길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를 만나 탄핵보다는 자진 사퇴를 원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두 사람이 전했다. 새누리당의 '4월 퇴진, 6월 대선' 당론을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지만 여야 합의가 안 돼 아쉽다는 말도 있었다 한다. 그러나 정 원내대표가 대통령 면전에서 9일 탄핵 표결이 불가피하다고 했고, 새누리당 의원들도 그 직후 의원총회에서 의원들 자유투표로 표결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촛불 시위대와 야권은 탄핵을 요구해왔다. 탄핵은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안을 법 절차 위에 올려놓는다는 장점은 있다. 그런데 탄핵 표결을 눈앞에 둔 지금 야당은 "탄핵당해도 하야하라"는 요구를 새로 하기 시작했다. '법대로 하자'고 하더니 그렇게 되니까 '법 필요 없고 내려오라'고 하는 것 아닌가.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그제 국회 앞 연설에서 "탄핵이 의결되면 딴말 말고 즉각 사임해야 한다"고 했다. 이 사태 초기 거국내각을 주장하다가 정치 일정에 따른 퇴진으로 바꾸고 다시 탄핵으로 옮겼다. 이제 즉각 하야를 주장하고 있다.



탄핵안이 가결됐을 때 박 대통령이 헌재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물러나겠다고 스스로 결단할 수는 있다. 그러나 탄핵을 몰아붙이던 사람들이 탄핵 절차를 무시하고 즉각 물러나라고 강요하는 것은 자기모순이자 무법적 발상이다.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이어서 헌법에 따라 탄핵한다더니 자신들은 헌법 절차를 건너뛰겠다는 것이다. 마치 점령군 같은 행태다.



박 대통령이 지금 물러나면 내년 2월 초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누가 봐도 무리한 일정이지만 민주당과 문 전 대표는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야권 내 경쟁자가 부상하자 무책임하고 자극적인 언사를 부쩍 늘리고 있다. 이들이 지금은 민심을 타고 있지만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아일보]

3. 北 해킹당하고도 모르는 軍… 안보 안심할 수 있나

국방부 내부 인트라넷이 해킹당해 일부 군사기밀이 유출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국방부는 9월 발생한 국군사이버사령부 백신중계 서버 악성코드 감염 의혹에 대해 “북한으로 추정되는 해킹세력이 군 내부망에 침투해 여러 건의 군사기밀을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이버 전쟁을 수행하는 본부 격인 국군사이버사령부가 북에 뚫린 것은 2010년 창설 이후 처음이다. 

군은 10월 1일 국회 국방위 소속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서버 해킹 문제를 지적했을 때만 해도 군 내부 인트라넷망과 인터넷이 분리돼 있어 정보 유출 가능성이 없다고 잡아뗐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국방부가 “2년 전 창설된 예하부대 백신중계 서버에 외부망과 내부망(국방망)을 연결하는 랜카드 2개를 통해 해킹용 악성코드가 군 PC에서 기밀을 빼갔다”고 밝힌 것이다. 그동안 ‘망 분리’를 사이버안보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말하던 군이 무려 2년 동안이나 내·외부망이 연결된 것도 몰랐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군은 감염 징후를 알아채고도 두 달여가 지나도 해킹 원점은 물론이고 어떤 기밀이 새나갔는지조차 파악 못하고 있다. 군 수뇌부가 사용하는 컴퓨터 등에서 대북작전 계획 같은 핵심 기밀이 새나갔다면 군사작전까지 전면 수정해야 할 판이다. 물리적으로 분리된 망이 연결된 과정에서 누군가의 의도적인 개입은 없었는지 경위를 명확하게 규명해 엄중 문책해야 한다.

북한 김정은은 사이버 전사를 우리의 10배 수준인 6000여 명으로 늘려 국가 주요 기반시설을 비롯해 정부 언론 금융 등 남한 심장부를 겨냥하는 도발을 하고 있다. 군 내부망까지 적에 뚫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김관진 대통령안보실장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은 며칠 전 포병부대 훈련을 참관한 자리에서 “남조선 것들을 쓸어버려라”고 했다. 이래서야 북이 공격을 해온들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데일리]

4. ‘탄핵 이후’의 정치 혼란이 더 걱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표결이 모레로 다가왔지만 그 이후 정치 일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탄핵을 주도하는 야3당과 새누리당 비박계가 탄핵안 가결에 필요한 정족수 계산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뿐 ‘탄핵 이후’에 대해서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탄핵안 통과 여부에 관계없이 국정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되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지금은 탄핵에 집중하고 있다. 탄핵 이후 로드맵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데서도 현재 상황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제 취임 100일을 맞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탄핵 이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탄핵안이 가결되면 박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해야 한다”는 원론적 수준의 입장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른 것은 ‘질서있는 퇴진’이 막혀 버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퇴진 시점을 명확히 밝히면서 거국내각 구성과 그 이후 치러질 대선 일정을 내놓았다면 그나마 정치 혼란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정치 원로들도 ‘4월 퇴진’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퇴진 방안’을 제시해 달라며 공을 국회에 넘겼고, 야당이 이를 거부하면서 물 건너간 상태다. 새누리당 비주류로 구성된 비상시국위원회도 ‘4월 퇴임’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거부당한 카드”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결국 박 대통령으로서는 마지막 대국민담화 기회를 놓친 채 어정쩡한 상황에서 탄핵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막상 담화를 발표한다고 해도 야당이 주장하듯 ‘즉각 퇴진’ 방안이 아니라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습 가능한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정치권이 서로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며 타협을 거부한 탓에 막다른 상황에 처한 것이다.

야당은 ‘대통령 권한대행’과 거국내각에 대해 탄핵안이 처리된 뒤에 논의하자고 하지만 너무 안이한 발상이다. 탄핵이 이뤄진다면 각료임명 방안도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최종 탄핵심판 결정이 나오기까지 국정 공백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탄핵안 표결이 이뤄지기 전에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마땅한 대책도 없이 루비콘강을 건너야 하는 지금 상황이 너무 걱정스럽다.



[경향신문]

5. 재벌총수들의 반성 없는 변명, 뻔뻔한 동문서답·모르쇠

이재용(삼성), 정몽구(현대차), 최태원(SK), 구본무(LG) 등 재벌 총수 9명이 어제 국회 청문회장에 섰다. 총수들이 한꺼번에 불려 나온 것은 1988년 5공비리 청문회 이후 28년 만이다. 대내외 경제가 최악인 상황에서 총수들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돼 청문회장에 나온 것은 본인은 물론 시민들에게도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시민들이 청문회를 주시한 것은 국정농단 의혹을 소상히 밝히고 통렬한 자기반성을 통해 정경유착을 단절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이런 기대는 몇 시간 만에 여지없이 배신당했다. 의원들은 이미 알려진 내용을 묻고, 총수들은 알맹이 없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공허한 질문에, 공허한 답변이었다. 총수들은 동문서답·모르쇠·변명으로 핵심을 피해갔다.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에 대해 “청와대의 출연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허창수 전경련 회장)며 강제성은 시인했지만 사업 특혜나 총수 사면 등 대가성 의혹은 부인했다. “사회공헌이든 출연이든 어떤 부분도 대가를 바라고 하는 지원은 없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할당받은 만큼 냈다. 대가성이라는 생각을 갖고 출연한 적이 없다”(최태원 SK회장), “면세점 추가 입찰이나 수사 관련 로비와는 관계없다”(신동빈 롯데 회장)고 주장했다. 

총수들의 이런 답변은 국회에 사전 제출한 자료와도 거리가 있다. 총수들은 지난해 7월과 올해 2월 박근혜 대통령과의 독대 때 “글로벌비즈니스센터 조기 착공 협조”(현대차), “아울렛 의무휴업 확대 우려”(롯데) 등 민원을 요청한 것이 확인된 터다. 이러고도 대가성이 없었다는 것은 뻔뻔한 얘기다. 

이재용 부회장은 재단 출연 외에 정유라의 승마 지원에 별도로 100여억원을 지원한 것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의 대가라는 의혹에 대해 “지원은 실무자들이 결정한 것. 합병은 승계와 관계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합병은 승계의 디딤돌”(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합병에 찬성해달라는 압력이 있었다”(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는 증언과도 배치된다. 이 부회장은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모르겠다’로 일관했다. 반복된 모르쇠에 “기억력이 좋고 아는 게 많은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겨야 하지 않나”라고 되묻자 “언제든지 훌륭한 분 있으면 경영권을 넘기겠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총수들의 이런 태도는 건강한 재계 생태계 구축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재계는 총수를 청문회장에 불러내는 것 자체가 기업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행위라고 말하지만 무성의한 답변이 되레 기업의 신뢰를 갉아먹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 최태원 회장 등이 전경련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모금창구인 전경련 해체를 시사했지만 유착의 근절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민심의 분노는 국정농단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은 이 과정에서 재확인된 특권 세습, 불평등, 부정 부패,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 재벌이 있다. 5공비리 청문회 때 재벌 총수들은 정경유착의 단절을 선언하고 대국민 사과 성명까지 냈지만 뒷거래는 계속됐다. 2002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불법 정치자금 820억원을 트럭째 받은 차떼기 사건은 기억에도 새롭다. 2004년 정치자금법이 개정된 이후에도 기부금 명목으로 모금행위는 단절되지 않고 있다. 

시민들이 특히 삼성에 의구심을 갖는 것은 총수 일가를 위해 국민연금이 시민 자산에 손실까지 입혀가며 지원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밑바닥에는 20년 전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은 60억원을 종잣돈으로 주식 편법 운용 등을 통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8조원대의 부를 움켜쥔 금수저의 수법에 대한 좌절감이 깔려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총수 중심의 황제적 경영관행에서 기인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재단 출연금 역시 이사회 의결도 거치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따지고 보면 권력에 대한 기부금의 최종 수혜자는 재벌총수와 권력에 기댄 비선 실세이다. 지금 시민이 기대하는 것은 평등하게 권리를 갖고 주권을 행사하는 나라다. 시민들은 결코 재벌을 권력에 자릿세 뜯긴 노점상으로 보지 않는다. 이런 인식을 깰지는 재벌의 의지에 달려있다. 회피할 경우 촛불은 재벌을 향할 것이다.



[국민일보]

6. 청와대 무시로 드나들던 ‘보안 손님’ 최순실·차은택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인 최순실과 차은택이 이른바 ‘보안 손님’으로 인정돼 청와대를 손쉽게 출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안 손님은 대통령 접견객 중 출입증을 패용하지 않고 별도 출입하는 인사를 뜻하는 경호실 내부 용어다. 이들은 청와대 경호실에 따로 보고되지 않아 사실상 별 제재 없이 청와대를 자유롭게 드나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영석 청와대 경호실 차장은 5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위 청와대 기관보고에서 “최순실, 차은택 모두 보안 손님이 맞느냐”는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의 질문에 “맞다”고 답변했다. 그는 이들의 청와대 출입 여부와 관련, “보안 손님에 대해선 출입기록을 (경호실에서) 보고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차장은 또 “보안 손님은 부속실의 요청으로 지정한다”고 답했다. 이에 박 의원은 “당시 보안 손님의 출입을 주관한 제2부속비서관이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안봉근 전 비서관”이라고 지목했다.

이 차장의 답변은 놀랍다. 부속실이 지정하면 누구든지 보안 손님으로 청와대를 들락거릴 수 있다는 의미다. 최씨와 차씨 이외 외부 인사가 보안 손님 자격으로 의료가방을 들고 청와대를 왕래했다는 사실도 이미 확인됐다. 부속실 한마디면 청와대 경호 업무가 무력화될 수 있다고도 해석된다. 

대통령도 자연인으로서 얼마든지 사적 만남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국가원수에 대한 경호 업무는 24시간 철통같아야 한다. 이는 대통령 경호법에도 명시된 내용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대통령의 사적 만남 주 대상이 온갖 구설을 낳는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경호실의 통제를 벗어난 개인적 접촉이 결국 대통령을 퇴진 위기로 내몰고 국정을 격랑에 휩싸이게 한 결과를 자초했다. 부속실 관계자의 대통령 경호법 위반과 경호실의 직무유기 여부 등은 앞으로 특검에서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한국경제]

7. 파리기후협약 흔들린다는데 또 한국만 잘난 척하나

정부가 신기후체제에 대응하기 위한 ‘제1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을 내놨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전망치(BAU) 대비 37%에 해당하는 3억1500만t을 감축한다는 로드맵이다. 발전부문 6450만t(BAU 대비 19.4%), 산업부문 5640만t(BAU 대비 11.7%) 등 8개 부문에서 2억1900만t을, 국외에서는 9600만t을 감축한다는 세부 목표도 제시됐다. 해당 산업계는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마당에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추가적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가장 많은 감축 목표를 할당받은 발전업계는 말할 것도 없고 철강, 디스플레이, 전기전자업계 등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정부도 이를 의식했는지 향후 국내 경제 상황이나 국제 기후협약의 변동성 등을 반영해 계획을 수정·보완할 것이라고 밝히고는 있다. 하지만 정부가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할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온실가스 문제에 대응해온 경과를 보면 오히려 그 반대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한국은 의무 감축국이 아닌데도 국제사회에 무리한 감축 목표를 덜컥 제시한 것이 그렇고, 박근혜 정부가 파리협정을 앞두고 당초 시나리오에도 없던 가장 강한 감축 목표치를 약속한 것 또한 마찬가지다. 더구나 지금은 파리협정의 앞날부터가 불투명한 마당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파리협정에 부정적인 데다 WTO 환경상품협정(EGA)마저 불발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서둘러 온실가스 감축을 치고 나오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저탄소와 기후변화 이슈, 환경보호 아젠다 등이 여전히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자칫 환경근본주의에 경도돼 강박증을 가지면 경제만 망치기 십상이다.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는 파리협정 등을 지켜보면서 대응해도 늦지 않다.



[파이낸셜뉴스]

8. 해외소비 펑펑… 국내로 돌릴 방안 찾아야부자들이 돈 맘껏 쓸 수 있게 리조트 등 소비산업 키워야 

해외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6일 3.4분기에 가계의 해외소비가 8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6.8% 늘었다고 밝혔다. 증가율이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통계상의 민간소비 증가율(2.7%)의 6배를 넘었다. 소비자들이 국내에서는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았지만 해외에 나가서는 돈을 펑펑 썼다. 이 같은 소비행태가 내수경기 부진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해외소비가 급증하는 것은 해외여행객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해외여행객은 1930만명을 넘어섰고 이들이 해외에서 지출한 돈은 26조2700억원에 달했다. 올해는 3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경제는 지금 심각한 소비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해외소비를 국내로 돌리면 내수경기를 살리고 일자리 창출에도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정부는 소비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개별소비세 인하나 블랙프라이데이, 임시공휴일 지정 등을 대책으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이는 미래 소비를 앞당겨 쓰는 것이어서 일회성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 근원적인 처방이 되려면 국내 민간소비 총량을 늘려야 한다. 정부는 지난 5월 연휴 때 소비진작을 위해 임시공휴일을 지정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대거 해외여행을 가는 바람에 해외소비만 대폭 늘어나 외국 좋은 일만 시켰다는 지적이 나왔다. 휴가를 받아도 국내에서는 돈 쓸 곳이 없다. 국내에서 벌어 해외에서 쓰는 것이 소비자의 일반적 인식으로 굳어지고 있다.

소비의 해외유출은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점에서 투자유출과 다를 바 없다. 소비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개방화 시대에 해외여행 가는 것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 그 대신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국내여행을 선택하도록 국내에 돈 쓸 곳을 마련해주는 것은 가능하다.



현행 제도에는 절약이 미덕인 시대에 만들어진 소비억제형 정책수단이 의외로 많다. 골프나 요트, 복합리조트 등에 고율의 개별소비세를 물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질 높은 소비고객을 해외로 내쫓는 것이 국민경제를 위해 바람직한가. 소비성, 사치성 산업에 대한 세금을 대폭 줄여 부자들이 국내에서 마음껏 돈을 쓰게 해야 한다. 단계적으로 카지노 내국인 출입 등 관광.레저산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풀고, 관련 세제도 소비 친화적으로 고쳐야 한다.

과거 자본이 부족했던 시대에는 투자에 많은 유인책을 주었다. 지금은 소비가 부족한 시대다. 소비에 다양한 유인책을 줘야 한다.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해외여행과 소비를 국내로 돌리도록 유도하는 정책개발이 시급하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헤럴드경제]

9. 개혁보다 경제 우선을 확인시킨 伊 개헌투표

이탈리아 개헌 국민투표가 부결된 것을 두고 포풀리즘의 확산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미국과 영국을 덮친 포퓰리즘이 이탈리아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오성운동이나 북부리그 등 이탈리아 야당은 대부분 반세계화, 고립주의를 주장하는 포퓰리즘적 성격이 강하고 결과적으로 중도파인 마테오 렌치 총리의 사임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그같은 해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나 네덜란드 극우정당인 자유당(PVV)을 이끄는 헤이르트 빌더스도 즉각 환영의 반응을 보여 마치 유럽 포풀리즘 극우정당의 연대가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도 있다. 

하지만 이번 이탈리아 개헌투표는 철저히 정권심판의 결과로 보는 게 옳다. 렌치 정권의 경제운용 실패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렌치 정권이 추진한 국민투표는 상원의원 수와 권한 축소, 중앙 정부 권한 강화를 통한 관료주의 청산 등을 목표로 하는 헌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것이었다. 국정운용의 효율성을 위한 조치였다. 그럼에도 60%에 가까운 반대로 부결됐다는 것은 국민이 현 개헌 추진세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간의 국정운영에 대한 냉정한 평가라는 얘기다. 

이탈리아는 정부 부채가 GDP의 130%를 넘어 유로존 국가 중에서 두 번째로 많으며, 은행 부실자산 규모도 엄청나서 3200억 유로(4백조 원)에 달한다. 40억 유로(5조원)가 넘는 구제금융을 은행에 쏟아부었지만 회생은 한참 멀었다. 유로존 회원국의 평균 성장률이 4%를 웃도는 상황에서 이탈리아는 작년 성장률이 0.8%에 불과하다.



경제가 이런 상황이니 실업률은 11% 중반을 넘나들고 청년실업률은 40%에 육박한 상태다. 젊은이들은 한달에 1000유로(125만원) 받는 일자리도 구하기 어렵다. 렌치 정권의 국정운용 특히 경제정책은 거의 실패에 가깝다. 포풀리즘의 승리라기보다는 정권심판으로 보야하는 이유다.

국제금융시장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이탈리아 개헌 국민투표 부결에도 장중 19,274.85까지 상승해 사상 최고치를 다시 썼으며 마감가 기준으로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탈리아 국민투표에 따른 시장 영향이 제한적일뿐 아니라 오히려 향후 들어설 새정권이 누가됐든 지금보다 나쁠 게 없다는 판단인 셈이다. 

국민들에겐 먹고 사는 문제가 최우선이다. 개혁보다 경제가 먼저라는 점을 새삼 일깨워준 이탈리아 국민투표 결과다.


[세계일보]

10. 속수무책으로 번지는 AI 대재앙 총력 대응 나서야

고병원성 조류인플레인자(AI)가 걷잡기 힘들 정도로 번지고 있다. 지난 1일 철원 양계농가의 닭이 H5N6형 고병원성 AI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뒤 영남을 제외한 전국이 AI에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3일까지 도살 처분한 닭·오리는 127개 농가, 383만3000마리에 달한다. 앞으로 305만9000마리를 더 도살 처분하기로 한 만큼 땅에 묻힐 가금류는 688만마리에 이른다. “닭·오리의 씨가 마를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사태는 그만큼 심각하다. 

확산 속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르다. 3일에는 경기도 포천 평택 양평, 4일에는 전북 정읍과 포천 농가에서 AI 의심신고가 또 접수됐다. 지난달 16일 전남 해남에서 처음 발생한 후 20여일 만에 재앙적인 수준으로 변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에도 철새는 AI 감염의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철새 이동 경로를 따라 집중 발생한 점을 놓고 보면 타당한 분석이다. 곳곳에서 철새 서식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천안시는 어제 곡교천과 풍서천 일대의 갈대숲을 불태웠다. 하지만 철새만 탓해야 하는지는 자못 의문스럽다. 부실 대응이 화를 키운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AI 발생 초기 정부는 일선의 빗발치는 예산·인력 지원 요청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순실 사태’에 공직기강이 해이해지면서 해야 할 일을 제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새 AI는 급속히 번졌다. 컨트롤타워가 정상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곳곳에서 부실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경북 영주에는 경기 이천 종계장의 종란 10만8000만개가 반입됐다. 이동제한지역 내에 있는 이천 종계장은 이틀 뒤 AI 양성 판정을 받았다. 경북 봉화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동제한 조치는 말뿐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AI확산을 막을 수 없다. 느슨해진 공직기강부터 다잡아야 한다. 현장 책임자는 필요하면 모든 결정을 내리고, 상급 기관은 현장 요구에 따라 예산과 인력, 장비를 전폭 지원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마비된 국정이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AI 사태는 연례행사가 됐다. 그때마다 주먹구구식 대응을 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된다. 감시망을 더욱 촘촘히 하고, 철새 이동 경로에 있는 국가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AI가 대재앙으로 이어지는 사태를 막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이데일리][특파원의 눈] 트럼프와 채식주의자

한국 작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뉴욕타임스(NYT)가 뽑은 올해 최고의 책 10권에 들었다.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맨부커상을 받은 영향이 크지만 그것만으론 미국의 ‘채식주의자’ 열풍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NYT는 ‘채식주의자’를 두고 “우리를 뒤흔드는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소설이지만 바다 건너 미국인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소설의 주인공 영혜는 어느 날 채식주의자가 된다. 영혜 남편과 가족들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영혜 아버지는 특히 그랬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끝까지 버티는 영혜에게 아버지는 뺨을 때리고 영혜 입 속에 고기를 구겨 넣는다. “먹어라. 애비 말 듣고 먹어. 다 널 위해 하는 말이다. 그러다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냐. (중략) 한 번만 먹기 시작하면 다시 먹을 거다. 세상천지에 요즘 고기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영혜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그리곤 칼로 자신의 손목을 긋는다. 

채식주의자가 됐다는 건 그저 취향이 달라졌을 뿐이다. 채식을 먹는다는 게 누군가를 해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 영혜가 달라졌다는 걸 참아내지 못했다. 가족들은 영혜를 자신들과 똑같은 고기 먹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발버둥을 친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앤 라이스는 ‘채식주의자’를 읽은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언급하며 “멸시받는 자들을 기꺼이 옹호해야 한다”고 썼다. 라이스가 ‘채식주의자’를 정치적 맥락에서 읽었다는 얘기다. 

정치적 올바름은 인종이나 민족, 종교, 성(性) 등에서 차별이 포함된 용어나 표현을 쓰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미국인들은 무슬림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려고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표현도 잘 쓰지 않는다. 채식주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미국은 채식주의자들의 천국이다. 어디서든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햄버거와 피자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소설 ‘채식주의자’ 속의 폭력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요즘 미국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도전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자와 다른 피부, 다른 종교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판하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미국인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폭력성이 공공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비영리민권단체 남부빈곤법센터(SPLC)에 따르면 지난 8일 미국 대선 이후 열흘만에 무슬림과 이민자, 성소수자를 상대로 867건에 달하는 희롱과 협박 사례가 보고됐다. SPLC 대표 리처드 코언은 “증오가 전국적으로 창궐하고 있다. 집계된 수치는 실제로 벌어진 혐오행위보다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라고 말했다. 

콜로라도의 한 중학교에서는 백인 학생들이 라틴계 학생들을 향해 “트럼프가 너희들에게 전기 개목걸이를 걸어줄 거야”라고 놀려댔고, 한 무슬림 여성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가 백인 남성에게 “운 좋은 줄 알아. 아무도 없었으면 널 쏴 죽였을테니”라는 말을 들었다. 

한인 사회에서도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뒤를 돌아보니 한 백인이 자신을 무섭게 쏘아보고 있더라, 반갑게 인사하는데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하며 그냥 지나가더라, 주위에서 겪은 사연이 한둘이 아니다. 

지금의 미국을 만든 건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기반이 됐다. 다양성은 미국의 경제와 사회를 자극하는 자양분이었다. 획일화된 미국에서 혁신을 기대하긴 어렵다. 한국소설 채식주의자에 대한 관심은, 역설적으로 다양성이 무너지고 있는 미국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흉터의 지리학

모든 것이 일시적이고, 모든 사람이 그저 지나치기만 하는 경유지로 쇠락해버린 경관을 지나가다 보면, 어딘가 의미 있는 장소를 향한 갈망을 느끼게 되곤 한다. 장소에 관한 이러한 감정은 ‘인간’이라는 종의 본질적인 특징 중 하나다. 이-푸 투안이 ‘토포필리아’라 말한 바와 같이, 인간에게 환경은 깊은 정과 사랑의 대상이자 기쁨과 확실성의 원천이다. 환경은 그것을 경험하는 인간들에게 세계관을 이루는 연결고리가 된다. 

하지만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속도가 군림하게 된 세상에서는 ‘장소의 특별함에 대한 무관심’이 늘어난다. 과잉 이동의 시대에, 장소에 대한 사랑은 마치 구닥다리인 것으로, 심지어 반동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쉽다. 예전에 다녔던 레코드점, 책방 등은 인터넷 사이트와 대형문고에 의해 밀려나고, 그 시절의 기억은 머릿속에서만, 운이 좋으면 그 기억을 공유하는 다른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겨우 살아남는다.



어떤 곳들은 레코드나 책 등으로 어느 정도 기억해낸다지만, 아예 사라져버린 것들은 도통 떠올리기 쉽지 않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곳들처럼, 꿈에서 본 것처럼 흐릿해진다. 그 장소로부터 분리되는 상실감은 우리에게 일종의 상처를 준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곳이자 기억의 축적물인 장소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한 친구는 어릴 적 갑자기 가난해진 집안 사정으로 이곳저곳으로 자주 이사를 다니면서 힘들게 지내야 했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할 틈도 없이 이사를 반복하면서 일종의 의식을 치르게 됐다고 했다. 이사를 가기 전 살던 집 벽이나 바닥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그곳에서의 기억들을 빠짐없이 노트에 적어뒀다고.

하지만 어른이 되고, 기억을 더듬어 다시 찾아간 그 집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사라졌고, 대개 아파트로 바뀌어 있었다. 기억을 이을 단서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왜 자꾸만 오래된 것들에 눈이 머물고, 영상을 통해 그것들이 사라지지 않게 잡아두고 싶었는지 스스로 되묻는 과정에서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그렇게 도달한 곳은 그녀 자신의 기억 속이었다.

상처 한 번 안 난 어른이 없듯이, 이 도시도 그럴 것이다. 상처는 때론 흉터를 남기지만, 그 흉터는 오히려 어떤 상처가 회복된 증거가 된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여러 겹에 걸쳐 쓰인 이 도시는 우리 각자의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기억과 망각의 텍스트가 된다. 그래서 도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뭉쳐진 원고지들을 한 장씩 한 장씩 벗겨내며 읽고 해독하는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상처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생채기와 통증을 치유하고 아물게 하는 기술이 바로 ‘흉터의 지리학’이다. 앞서 이야기한 그 친구는 어릴 적 잃어버린 기억의 장소들에 대한 상실감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애도의 방법을 찾아냈다. 그녀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업에 몰두하는 것도 그 연장 선상에 있다. 자신과 같은 이들이 기억상실증에 빠지지 않는, 기록이 남는 도시를 만들고 싶다는 그녀는 앞으로 또 어떤 층위의 도시를 읽고 해석할까?



3. [서울신문][공희정 컬처 살롱] 공개 방송에 가는 이유

텔레비전만 있으면 7시간이 아니라 석 달 열흘이라도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지낼 수 있을 만큼 난 텔레비전이 재미있다. 세상 어디라도 못 갈 곳 없고,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것도 마음대로다. 이 사람이 지루하다 생각될 때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뭐 독특한 것 없나 싶으면 상상을 뛰어넘는 프로그램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배불뚝이 브라운관 TV가 날렵한 평면 TV로 자리바꿈하는 동안 방송은 HD를 넘어 UHD 시대로 접어들었다. 진화된 기술은 초고화질의 영상과 실감형 음향으로 시청자를 유혹하고, 각종 SNS와 스마트폰 앱 등을 통해 실시간 소통 또한 최첨단을 경험하게 한다. 방송국을 통째로 안방에 들여놓은 듯 시청자는 그저 리모컨 하나만 들고 이리저리 채널 돌려가며 텔레비전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참 좋아 보이는 세상이다. 그런데 ‘가요무대’(KBS)나 ‘웃음을 찾는 사람들’(SBS)과 같은 공개 방송 현장엔 아직도 수많은 시청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들은 왜 방송사 공개홀로 향하는 것일까.

방송사 홍보 담당으로 일하던 때 개국 기념 공개 방송이 있었다. 제작팀만이 아니라 홍보팀에게도 분주한 나날이었다. 장소는 장터. 생방송으로 진행된 방송은 각도의 특산품을 소개하고, 중간중간 초청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상인들과 고객들이 참여하는 이벤트 등으로 진행됐다.

방송 시간은 오후 2시, 관계자는 당일 아침 8시까지 현장 집합이었다. 카메라와 조명 등 방송 장비들의 설치가 시작됐다. 진행자와 초대 손님들은 주어진 대본에 따라 연습을 이어 갔고, 각자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과 동선을 확인했다. 특히 방송사 공개홀이나 스튜디오가 아니라 대중에게 열려 있는 장소였기 때문에 돌발 상황에 대한 대비는 필수였다. 장터 밖에는 앰뷸런스도 대기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때 가장 긴장했을 사람은 총감독이었을 것이다. 100여명에 달하는 공개 방송 제작진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정점에 그가 있었으니까.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실수의 책임은 그의 몫이었다. 돌발 사고에 대한 대응 또한 그의 민첩한 판단력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리허설은 본방송 같았고, 방송 시간이 다가올수록 감독의 눈은 매서워져만 갔다. 끝없는 점검만이 실수를 예방하고 사고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음을 경험상 잘 알고 있는 총감독은 각 담당들로부터 진행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았고, 직접 지시를 내렸다.

실수 없이, 사고 없이 방송은 끝났다. 하지만 보여진 성공과 달리 소소한 실수와 사고는 곳곳에 있었다. 정신을 집중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도 있었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었다. 우리는 동일한 실수의 반복은 용납할 수 없다는 각오를 다지며 그날 방송을 정리했다.

현장은 살아 있는 공간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날 것의 소통을 하는 곳, TV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꾸미지 않은 메시지가 오가는 곳이다. 공개 방송 현장에 온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는 당당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이며, 함께 방송을 만들어 가는 시청자의 당연한 행동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방청권을 신청하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방송국을 향해 간다. 의미 있는 시청자로서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그 무리 안에 나도 있다.



4. [동아일보][황광해의 역사속 한식] 주막(酒幕)

나라가 어수선하다. 1728년(영조 4년) 음력 3월,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다. 영조가 이복형 경종을 게장으로 ‘독살’했다고 믿는 노론 세력의 반란이었다. 한 해 전 7월, 노론 일부가 실각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반란은 충청도 청주를 기점으로 영남 일대로 번졌다. 반란군의 목표는 분명하다. 한양도성의 궁궐이다. 예나 지금이나 집권 세력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권력 핵심으로 향하는 유동인구 통제와 반란 세력의 집결지를 봉쇄하는 것이다. 

난이 일어난 다음 달인 4월 2일, 경기감사 이정제가 보고한다. “(한강의) 송파나루부터 공암나루(서울 강서구 가양동)까지 모든 배들은 강의 북쪽으로 옮겨두고 사사로이 강을 건너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지금의 이른바 주막(酒幕)은 옛날의 관정(關亭)으로서, 적도(賊徒)가 밤에는 주막에서 자고 낮에는 장터에서 모이니, 착실하게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란세력 혹은 수상쩍은 자들이 묵는 곳은 주막이다. 주막은 예전의 관정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관정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만든 역원(驛院)이다. 조선은 공식적으로 각 지역에 역(驛), 원(院), 참(站), 점(店) 등을 두었다. 공적 업무로 지방에 가는 관리들은 주로 지역 관아의 객사(客舍) 등에서 묵었다. 객사가 없는 곳에서는 역참에서 말을 갈아타거나 잠을 잤다. 역은 30리 간격으로 하나씩 세웠다. 역, 원, 참도 없는 산골이나 시골에서는 민가에서 하룻밤을 묵는 수밖에 없었다. 

주막은 주점(酒店)과 다르다. 주점은 공식적이고 주막은 사설기관이다. ‘막(幕)’은 비바람을 가리려, 임시로 지은 가건물이다. 초기의 주막은 ‘가볍게 술 한잔 마시는 가건물’에서 시작되었다. ‘영업신고’를 하지 않으니 세금도 없다. 세금을 걷는 곳은 통제도 쉽다. 중국 한나라 이후부터 중앙정부는 술을 만들거나 파는 곳에 독점권을 주고 세금을 거두었다. ‘각고((각,교)])’제도다. ‘각’은 독점, ‘고’는 술, 술집을 뜻한다. 주점은 공식적이며 세금을 낸다. 초기 주막은 세금을 내지 않는 가건물로 시작하였다. 난전(亂廛)이다. 

1574년 12월(선조 7년) 미암 유희춘(1513∼1577)은 선조와의 경연에서 “경기도의 탄막(炭幕)은 나그네가 숙박하는 곳인데 도둑들이 엄습하여 그 집을 불태웠다”고 보고한다(미암집). 탄막은 주막인데 숙박시설이다. 술도 마시고 잠도 잔다. 

탄막은 땔나무와 숯을 보관하는 곳이다. 이덕무(1741∼1793)는 “점은 주막인데, 술(酒)과 숯(炭)의 발음이 비슷하여 ‘술막(酒幕)’이 숯막(炭幕)이 되었다. 관청의 문서에서도 탄막으로 쓰고 있다”고 하였다. 임진왜란 이전에도 주막은 있었다. 조선후기에는 점, 주점, 주막, 탄막 등 여러 이름으로 나타난다.

조선의 생산능력이 늘어난 17세기 후반 이후에는 유동 인구가 늘어난다. 역참을 이용할 수 없는 양민, 상인들은 주막을 이용한다. 전국에 주막이 급격히 늘어났다. ‘간편하게 술 한잔 마시는 공간’으로 시작한 주막은 점차 술 마시고, 식사하고, 잠도 자는 공간으로 발전한다.  

정조 13년(1789년) 2월 ‘일성록’의 기록. 황해도 신계에 살던 한조이는 남편의 억울한 유배를 풀어줄 것을 호소한다. “남편 이귀복과 저는 길가에 살면서 탄막으로 업을 삼고 있었습니다. 재작년(1787년) 5월, 나그네가 저희 탄막에 와서 아침을 사먹고 있는데 (황해도) 곡산의 기찰 장교가 그를 잡아가고, 남편도 잡아가서 유배 보냈습니다.”

호남의 실학자 존재 위백규(1727∼1798)는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다. 젊은 시절 존재가 과거장에 다닐 때 “주막이나 여관(旅店·여점)을 제외하면 단연코 아는 사람 집에서 유숙하거나 남에게 부탁하거나 인정을 바라는 일이 없었다.



한양도성에 들어오면 반촌(泮村)에 세를 들었다. 시험이 끝나면 바로 말을 타고 왜고개(서울 한강로 부근)를 넘었다”고 했다. 존재는 주막과 여관 모두 ‘검소하게 잠자는 곳’으로 여겼다. 물가 비싼 한양에서는 허름한 곳에 세를 들었다. “술 마시는 걸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30리마다 큰 팻말을 세우고 나무를 심어 잘 가꾼 곳에 주막을 세우자. 나머지 작은 점포들은 술독을 두지 못하게 하자.”(존재집) 술을 막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줄이자는 뜻이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영국 M11 연결도로 항쟁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국산책’에는 영국의 도로가 “체계적으로 보이는” 체계에 따라 놓여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런던을 중심으로 에든버러로 이어진 A1도로부터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A6(런던-칼라일)까지 6개 주간선도로가 영국을 6개로 피자처럼 나누고, 고속도로(M)와 보조간선도로(B)들도 각기 포함된 조각에 따라 번호를 부여 받는다는 이야기. 예컨대 A11도로나 B1065 도로는 ‘1번’ 조각 속의 도로여서 거기서 빠져 나와 시계방향으로 달리면 ‘2번’영역의 경계인 A2도로와 만나게 되는 식이다.



다만 브라이슨이 “체계적으로 보이는”이라 쓴 까닭은 크고 작은 후속 도로들이 잇달아 건설되면서, 영국 지명의 알쏭달쏭한 발음들처럼, 적잖은 예외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번호 순서가 뒤집혀 길을 찾느라 곤란을 겪곤 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브라이슨은 그 체계 속의‘비체계’들이 영국 문화의 한 특징이라고 썼다. 하지만 그도 그 배경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M11’은 잭 리처의 소설 ‘하드웨이’에서 런던의 통근길 교통체증을 대변하는 도로로 언급되는, 영국 1번 조각의 방사선 고속도로다. 런던 동북부 해크니를 지나는 A12번 도로와 M11번을 잇는 연결도로는 60년대에 계획이 시작돼 80년대 말 착공했고, 1999년에야 개통된 진통(陣痛)의 도로로 유명하다. 토지 수용과 주택 철거, 원스테드(wanstead) 인근 녹지 보존 등을 둘러싼 주민들의 저항 때문이었다. 

착공 시점 계획지구 내에는 빈집들이 많았다. 거기 터를 잡은 예술가와 개발반대 운동가들은 ‘원스토니아(Wanstonia)’라는 이름의 자치국가를 표방하며 공권력에 맞섰다. 1993년 12월 7일, 원스테드 조지 그린의 250살 된 밤나무를 살리기 위한 주민과 운동가들의 대립이 절정이었다. 법원으로부터 정식 주소까지 부여 받아 합법적인 주거지로 인정받은 나무를 지키기 위한 대치. 10여 시간에 걸친 공방 끝에 건설국은 나무를 베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고 당일 경찰 비용만 약 50만 파운드가 들었다. 이후로도 싸움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도로는 99년 10월에야 개통됐다. 약 350채의 집과 1에이커 녹지를 수용해 4마일이 채 안 되는 도로를 건설하는 데 10년이 걸린 셈. 공사 비용 2억5,000만 파운드가 들었다. 영국 도로체계의 예외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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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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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조류 인플루엔자에 속수무책인 현실

전국이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강원도 철원군 농장까지 AI가 확산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 농림축산식품부의 발표다. 강원도에서도 AI 확진 판정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충격적이다. 이로써 AI는 영남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창궐하고 있는 모양새다. 방역당국이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물론 AI 발생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와 지지난해에도 AI에 따른 피해가 심각했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이번에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H5N6형 바이러스가 지난해 극성을 부린 H5N8형보다 파괴력이나 전파력이 훨씬 강력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8일 충남 천안 지역에서 H5N6형이 처음 확인된 이후 불과 한 달여 만에 전국이 이 바이러스에 뻥 뚫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지금으로써는 영남지역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 AI매개체인 겨울 철새가 도래지인 영남으로 계속 날아들고 있는 데다 AI에 걸린 야생조류 분변 찌꺼기가 유입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닭·오리의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AI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면 가금류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살처분한 가금류가 340만 마리 가까이 이른다는 게 방역당국의 설명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살처분 가금류가 400만 마리를 넘는 것도 시간문제다.

AI의 피해가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지만 근본대책은 없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AI 확산으로 애꿎은 철새를 탓하고 농가의 가금류 살처분과 주변 소독, 차량이동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부 대책의 전부다. 새떼를 따라 날아서 유입되는 바이러스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제는 총체적 관리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발생 지역에 따라 대응하기보다는 중국 등 아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AI 발생 감시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AI 진단과 처방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농가 피해는 물론 지자체의 살처분 매몰비용, 정부 보상비용 등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주는 AI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2. 박 대통령은 정치혼란 더 키워선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처리가 오는 9일로 다가오면서 여야 정치권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탄핵안이 통과되든, 통과되지 못하든 후폭풍이 드셀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만약 탄핵안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 길거리로 몰려나온 촛불 민심이 국회를 향해 쏠리게 될 것이며, 통과된다고 해도 헌법재판소 심리 일정을 감안해 후속 정치 일정을 마련하는 작업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서도 박 대통령이 나름대로 막판 승부수를 띄울 가능성에 대해서는 경계심이 요구된다. 자신의 거취 문제를 국회에 맡기겠다는 취지의 제3차 담화를 통해 탄핵 진용을 흔들었던 효과를 되살리려 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탄핵이냐, 자진사퇴 표명이냐의 갈림길에서 또 다른 엉뚱한 변수를 내놓는다면 ‘꼼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 스스로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천명한 만큼 이제는 민의에 순응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다.



박 대통령이 담화를 할 예정이라면 시기를 명확히 못 박아 퇴진 시점을 밝히는 게 옳다. 또 다시 교묘한 조건을 달아 정치 혼란을 가중시킨다면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로서의 마지막 책무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치권에서는 이르면 오늘 중이라도 박 대통령이 대(對)국민담화 형식으로 탄핵 정국에 대한 자신의 의중을 밝힐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이 어제 국정조사 증인으로 출석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임기에 연연하지 않는다”면서 “곧 결단을 내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한 점에 주목하게 된다. 박 대통령이 금명간 퇴진 시점을 밝힐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도 박 대통령에게 ‘4월 퇴진’ 당론에 대한 조속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기로 의견을 모음으로써 퇴로는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문제는 탄핵이든 자진사퇴든 그 이후의 정치·사회적 혼란을 어떻게 수습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동안 탄핵추진을 둘러싼 논란 과정에서 심각한 국정공백 사태를 드러냈고, 이런 상태가 더 지속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경제정책 공백이 심각하다. 여야 정치권은 국정이 안정적이고 평화롭게 이양될 수 있도록 서로 지혜를 모아야만 한다.



[서울신문]

3. 동북아 정세 바꿀 트럼프의 아웃사이더 외교

미국과 중국의 외교 관계가 출렁거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가 최근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37년 만에 미국과 대만 정상 간의 직접 대화라는 점에서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지켜진 ‘하나의 중국’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중 관계가 자칫 급랑 속으로 빠져들 경우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에 미칠 심각한 악영향도 피할 수 없다.

미·중 수교는 ‘하나의 중국’이란 기본 전제 속에서 이뤄졌다. 미국이 중국과 수교 조건으로 대만과 단교를 단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미 정계의 아웃사이더로 불렸던 트럼프 당선자는 과거와 다른 외교 안보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이 자국의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건드리면서 중국을 압박하는 초강수 대만 카드를 꺼내 든 측면이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중·미 관계를 흔들지 말라. 국제사회에 형성된 ‘하나의 중국’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엄중히 경고했다.

문제는 트럼프 당선자가 꺼내 든 ‘대만 카드’가 일회적이고 돌발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한 신고립주의 노선을 토대로 대중 강경책을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 대중 관세를 45%로 인상한다거나 환율 조작국으로 고발할 것을 예고한 상황에서 미·중 관계는 갈수록 험악해질 수 있을 것이다. 내년 1월 차이 총통과의 정상 회동을 검토한다는 보도마저 나오는 상황에서 대외 강경론자들이 속속 트럼프 인수위에 합류하고 있는 것도 우려스럽다.

트럼프 당선자가 미·중 관계를 파탄으로 몰지 않는다고 해도 협상의 명수답게 당분간 중국과의 기싸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미·중 관계가 악화될 경우 한반도에선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중국 내 분위기가 고조될 것이다. 북핵 문제 해법에서 중국의 협력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의미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싼 불협화음도 현실화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외교 안보 전략을 수립할 것이 확실하다. 한·미 동맹 위주의 4강 외교에 안주해 온 우리 외교로선 새로운 도전일 수밖에 없다. 새롭게 전개되는 미·중 간의 복잡한 외교 전략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에 대비해 우리의 국익 극대화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한다.



4. 기업인만 괴롭힐 ‘최순실 청문회’ 돼서야

‘최순실 일당의 국정 농단 사건’을 파헤치기 위한 국정조사가 핵심 증인의 불출석 등으로 맹탕으로 흐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어제 2차 기관보고에 이어 오늘과 내일 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사안의 심각성과 오는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과 특검의 조사 활동을 앞두고 열리는 시점 등을 고려하면 이번 국정조사는 1988년 ‘5공 청문회’ 이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씨를 비롯해 김기춘·우병우·안종범 등 내일 2차 청문회의 증인으로 채택된 전직 청와대 참모진은 하나같이 증언을 기피해 부실 국정조사를 예고하고 있다. 최씨와 안씨 등은 구속을 이유로 불출석하고, 최씨 일당의 국정 농단을 방조, 묵인한 의혹의 우 전 수석은 아예 출석요구서 자체를 피하는 방식으로 국회를 우롱하고 있다. 김 전 비서실장은 아예 출석요구서가 전달됐는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국가의 공권력을 휘두를 때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던 이들이 하나같이 법치를 농락하는 자가당착의 처신을 보이고 있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국조특위에서는 이들에 대해 ‘동행명령장’ 발부 운운하지만 증인들이 처벌을 감수하더라도 나오지 않겠다고 버티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국회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들을 증언대에 세우려는 치열함에 청문회의 성패가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오늘 1차 청문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 9명이 한꺼번에 증언대에 설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청문회는 기업 청문회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핵심 주범들은 정작 청문회에서 빠져나가고 어떤 의미에서는 피해자인 기업 총수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이번 청문회는 우리 국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다. 자료 등을 바탕으로 진실에 접근하는 품격 있는 국조가 돼야 하는 이유다. 더구나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최순실 게이트가 한국 경제의 중대한 결정 지연을 초래한다’는 한국 경제 보고서를 냈다. 이런 상황에서 정경유착의 커넥션은 파헤쳐야 하지만 대기업 총수에 대한 인신 공격이나 반기업 정서를 확산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핵심 증인들을 향해야 할 칼날이 엉뚱하게 총수들을 대상으로 호통치기와 망신주기 등의 구태를 보인다면 본말이 전도되는 청문회가 될 것이다. 국정 농단으로 망가진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청문회가 돼야 한다.



[조선일보]

5. 썰렁한 '무역의 날' 단상에 비친 한국 경제

어제는 제53회 무역의 날이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기념식이 열렸지만 썰렁했다. 나라 안팎 사정이 어두운 데다 탄핵 정국으로 대통령마저 불참했다. 올해 수출의 탑 수상 업체 숫자는 2004년 이후 가장 적다. 2002년 이후 14년 만에 100억불 이상 수출탑을 받는 기업도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무역입국(貿易立國)'은 중규모 개방 경제인 대한민국에 말 그대로 생존 전략이다. 12월 5일을 무역의 날로 정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전에는 수출 1억달러를 돌파한 1964년 11월 30일을 '수출의 날'로 지정해 대통령이 직접 수출 기업과 수출 역군을 포상하고 격려해왔다. 마침내 2011년 12월 5일 우리가 세계 아홉 번째로 무역 규모 1조달러 대열에 오르면서 그 감격의 날을 기념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념비적 성취에 환호한 것도 잠시, '1조달러 무역대국'은 단 4년 유지되고 끝났다. 작년과 올해 2년 연속 1조달러에서 뒷걸음질했다. 수출 5000억달러 기록은 6년 만에 무너졌다. 글로벌 교역이 다 회복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 등 경쟁국에 밀려 세계 수출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이 작년 3.46%에서 올해 3.35%로 줄어들었다. 세계 6위까지 올랐던 수출 순위가 올해는 프랑스·홍콩에 밀려 8위로 내려앉을 전망이다.



수출이 어려우면 내수라도 그럭저럭 돌아가야 하는데 나라 안 경기도 싸늘하다. 불황의 한파는 취약 계층부터 가혹하게 덮친다. 임시 일용직 일자리도 줄고, 영세 자영업자 매출도 신통치 않다. 지난 3분기(7~9월)에 하위 10% 빈곤층의 가처분소득이 1년 전보다 무려 16%나 줄었다. 200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빈곤층 소득이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가난한 사람들 소득이 16%나 줄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별 주목도 받지 못한다. 이들은 한 달 평균 71만7000원, 하루 2만4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다. 경제 활력을 가늠하는 경제성장률이 2%대로 내려앉았는데도 모두가 '그러려니' 하며 방치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안팎으로 위기인데 정부에는 컨트롤타워도 없다. 정치권은 경제가 망가지든 말든 관심도 없다. 대선을 앞두고 세금으로 표 사는 포퓰리즘은 창궐할 것이다. 400조원 수퍼 예산이 편성됐지만 여야 의원들은 쪽지 예산 챙기기에만 바빴다. 경제 활력을 일으킬 법안은 야권과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이미 무산됐다. 세계와 경쟁해야 할 기업들은 국내 정치 사건에 휘말려 있다. 노조엔 눈앞의 이익뿐 '내일'이 없다. 이대로면 무역 1조달러의 빛나는 성취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멀어져 갈 것이다.



[동아일보]

6. 빈곤 심해진 한국, 伊 총리 날린 포퓰리즘 피할 수 있나

소득 하위 10%에 속하는 저소득 가구의 3분기 월평균 가처분소득이 71만7000원으로 1년 전보다 16% 감소했다고 통계청이 어제 밝혔다. 소득 감소 폭이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최대 수준이다. 반면 상위 10%에 속하는 고소득 가구의 월평균 가처분소득은 1년 만에 3.2% 늘어난 811만 원이다. 양극화가 한국 사회의 불안 요인으로 대두한 셈이다.

4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167만 원인 점을 감안하면 저소득가구는 가장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힘든 한계상황에 몰렸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빈곤층에 정리해고와 자영업 파산 같은 충격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위 10% 계층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5%로 아시아 22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는 국제통화기금(IMF) 분석은 우리의 분배 구조가 얼마나 편중돼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보조금 같은 땜질 처방으로는 고질병을 고칠 수 없는데도 정부와 정치권의 해법은 늘 판박이다.

국민이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상황에서 정권이 어떤 장밋빛 성장 정책을 꺼내 들어도 역풍만 맞을 뿐이다. 4일(현지 시간) 이탈리아에서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것이 좋은 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저성장 극복과 정치 불안 해소를 명분으로 개헌을 주장했지만 1997년 이래 최고인 13.7%로 치솟은 빈곤율(중위 소득의 50% 미만 가구 비율)에 낙담한 국민은 표로써 정부를 심판했다. 이번 국민투표를 “경제·반부패 개혁에 나서지 않는 렌치 총리의 실정에 대한 심판”으로 몰아 부결로 이끈 야당이 포퓰리즘 정치의 오성운동당이다.

작년 한국의 빈곤율은 이탈리아와 비슷한 13.8%였다. 기획재정부는 현 정부 들어 빈곤율이 감소하고 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빈곤층의 소득 감소 폭이 큰 상황에서 분배가 개선됐다고 느낄 국민은 드물다. 지금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은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적 문제도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매일경제]

7. 면세점 불확실성 방치한 국회 무책임하다

국회가 면세점 특허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관세법 개정안'을 무산시킨 것은 별 근거도 없는 의혹에 편승해 산업 경쟁력을 실추시킨 결정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관세법 개정안에는 정부안에 포함됐던 면세점 특허기간 연장 내용이 빠져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공청회 등 업계 의견 수렴을 거쳐 마련한 특허기간 연장은 기약 없이 표류하게 됐다. 

앞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특허기간 연장 결정에 최순실 등의 영향력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관련 대목을 뺐다. 국회가 이 같은 의심을 하는 것은 지난해 면세점 선정에서 탈락한 기업들이 올해 박근혜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재선정과 관련된 청탁을 했다는 의혹에 기반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의혹은 아직 사실로 특정되지 않았을뿐더러 특허기간 연장과는 직접 관련도 없는 것이다. 정부가 특허기간 연장을 결정한 것은 2013년 관세법 개정으로 면세점 특허기간이 10년에서 5년으로 줄면서 온갖 부작용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존 면세점 두 곳이 입찰에서 탈락하면서 직원 수천 명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어야 했다. 신규 면세점 4곳은 단 한 곳 예외 없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 중이며 영업이익률이 -150%까지 떨어진 곳도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5년짜리 특허권으로는 면세사업 계획을 짜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면세점은 직접 물건을 사서 마진을 붙여 파는 사업으로 초기 투자비용이 매우 크다. 흑자 전환에만 4~5년이 걸려 5년 후 사업권을 회수당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 사업구조다. 특허 유지가 불안정한 상황에선 소신 있는 투자도 어렵고 해외명품 브랜드 유치도 힘들다. 이 때문에 올해 초 정부가 공청회를 통해 의견 수렴에 나섰을 때 업계나 학계, 언론을 막론하고 10년 연장 및 특허갱신제로의 전환을 요구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신규 지정된 면세점일수록 특허기간 연장 목소리가 컸다. 

그런 배경을 모를 리 없는 국회가 이제 와서 '최순실 의혹' 운운하며 연매출 12조원으로 세계 최대이자 한류의 첨병인 면세사업을 비토하는 것은 무책임한 보신주의다.



[서울경제]

8. 가입자 확보 비상 걸린 ISA 수익률 높일 방안 고민하라

금융당국이 고사 위기에 몰린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살려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까지 나서 세제혜택 등을 늘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투자협회에서 저축의식을 키워주자는 취지로 가입 대상을 어린이로 확대하는 ‘주니어 ISA’ 도입 방안을 밝혔다. 이른바 ‘ISA 시즌2’다. 나아가 대학생·주부·미성년자 등까지 가입 대상을 전면 개방하고 가입기간도 영구화하는 ‘시즌 3’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고 한다. 

그만큼 ISA가 처한 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가입과 해지 현황만 봐도 ISA의 인기가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월 출시 때는 불과 보름 만에 121만명의 가입자를 끌어모았지만 갈수록 급감 추세다. 급기야 불과 8개월 만인 10월에는 해지하는 사람이 가입자보다 많아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0월 신규 가입자는 3만2,000명에 불과한 반면 해지자는 3만5,000명에 달했다. 

무리한 할당경쟁이 낳은 부산물인 깡통계좌 문제도 여전하다. 가입액이 1만원 미만인 계좌가 전체의 절반 수준이고 10만원까지 확대하면 70%가량이 ‘무늬만 계좌’인 상태다.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수익률마저 바닥을 기고 있다. 일임형의 경우 최근 3개월 수익률이 마이너스(-0.13%)를 기록하고 있고 누적수익률도 1.5%선에 머물고 있다. 8월에는 수익률 공시 오류가 불거져 ISA 자체에 대한 불신마저 더해졌다. 

오죽했으면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현재 상태라면 ISA는 조만간 사장될 것”이라고 했겠는가. 어린이용 상품을 만들어서라도 ISA의 불씨를 살려보려는 당국과 업계의 고민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상품 종류를 이것저것 새로 만든다고 해서 ISA가 활성화되기는 쉽지 않다. 자칫 실속 없는 숫자 늘리기로 깡통계좌만 더 양산할 수 있다. 투자자들이 진정 원하는 게 뭔지를 파악하는 게 먼저 할 일이다. 꾸준한 가입환경 개선과 ISA에 대한 이해를 돕는 상담 및 교육지원, 마케팅 강화 등의 노력 끝에 ISA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영국의 사례를 좀 더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

​9. ‘친일 후손들’ 말 듣고 교과서 밀어붙이는 교육부

​교육부가 5일 국정 역사교과서의 명백한 사실 오류는 바로잡되 이승만·박정희 미화 등의 지적은 “왜곡”이라며 내년 1월 최종본 발행 계획을 재확인했다. 국민들로부터 이미 탄핵당한 국정교과서를 철회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독립운동을 축소하는 등 문제투성이 교과서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67%가 반대(2일 한국갤럽 여론조사)하는 등 국민적 신뢰를 잃었는데도 여전히 집착하는 교육부의 처사는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게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행태다.

지난달 28일 현장검토본 공개 이후 교육부가 해명을 내놓았으나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각 정권의 공과를 균형있게 서술했다지만 박정희 정권 18년에 10쪽을 할애하면서 6월항쟁 이후 30년 세월은 4쪽으로 줄였으니 양적으로도 편향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또 박정희 ‘권위주의’ 체제를 언급했다지만 그 앞에 안보위기 상황을 잔뜩 적었으니 사실상 ‘불가피했다’는 취지로 합리화 내지 미화한 것이 분명하다.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인하는 ‘대한민국 수립’ 등 뉴라이트 역사관도 그렇거니와, 초고엔 “유신헌법이 민주화 운동의 헌법적 근거가 됐다”는 주장까지 들어 있었다니 교과서라고 이름붙이기도 낯부끄러울 정도의 수준 이하 책이다. 애초 융통성을 발휘하는 듯하던 이준식 교육부 장관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만난 것을 계기로 “철회는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을 독려하고 있는 언론이나 필자들이 ‘친일’ 인사들의 후손이란 점은 허투루 넘길 수 없다. <조선일보> 사주였던 방응모는 일제강점기 잡지 <조광>을 통해 징병을 권유하는 등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로부터 친일행위자로 판정받았고 최근 대법원에서도 재확인됐다. 최근 칼럼을 통해 국정교과서 연기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검은 세력에 대한 백기투항’이라며 강행을 주문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역시 할아버지가 친일행위를 한 것으로 친일규명위 보고서에 기록돼 있다.

교육부는 12일 토론회를 연다지만 국정교과서를 철회할 조짐은 아직 없다. 이 장관 등은 ‘촛불’의 뜻을 거스르고 ‘친일’ 후손들에 휘둘리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한국경제]

10. 환경상품협정 불발…기후변화협약 제동 걸리나

WTO 환경상품협정(EGA)이 결국 타결되지 못했다.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보호라는 명분 아래 2014년 시작된 EGA 협상은 소위 ‘녹색기술’ 이용 제품에 무관세 혹은 5% 이내의 저율관세를 적용하자는 것으로, 올해 타결을 목표로 진행돼 왔다. 한국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등 17개 참가국은 18차례 협상에서 대상 품목을 304개로 줄이는 등 성과를 낸 듯했으나 관심·민감 품목에 대한 국가별 입장 차가 컸다.

주요 협상 품목에는 태양광·풍력·수력 등 신재생에너지 제품을 비롯해 펌프·밸브 같은 수처리 제품, LED조명·고효율 전동기 등 에너지 효율 제품까지 망라돼 있다. 굳이 환경상품이니 녹색기술이란 거창한 카테고리로 포장하지 않아도 기업들이 글로벌 소비자층을 의식해가며 자연스럽게 개발해 보급에 나설 제품들이다. 단지 ‘환경상품’이라며 관세를 없애면 저가 중국 제품의 무차별 범람 같은 문제도 파생될 수 있다.

일괄적으로 관세를 철폐할 경우 나라마다 유불리한 품목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도 콘덴싱보일러·LED조명·온수기 등은 유리하나 전기류·펌프류 같은 품목은 불리해진다고 한다. 환경상품이나 기후변화 공조라는 환경근본주의적 관점에 쫓겨 새로운 무역 규준을 성급히 도입하려는 논의 자체가 무리였다. 정부가 우리 산업계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한 뒤 향후 일정에 임해야 하는 이유다.

저탄소와 기후변화 이슈, 환경보호 아젠다는 정말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정 탈퇴 공약을 내건 데 이어 이번에 EGA가 불발된 것은 숙고해볼 일이다. 지구온난화는 과학이 아니라는 그린피스 공동 설립자의 언급도 있었고, 지구온난화가 사기극에 불과하다는 지적까지 과학계 내부에서 나온 판이다. 검증도 안 된 온난화 이슈에서 환경근본주의에 경도돼 마치 국제사회의 모범생이라도 되려는 듯 강박증까지 보인 게 환경부 등 우리 사회 일각의 모습이었다. 온실가스에 대한 과도한 규제도 그렇게 나왔다. 브레이크 걸린 기후변화협약과 EGA를 보면서 환경 조급증에서 조금은 벗어나 보자.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매일춘추] 오페라와 뮤지컬

오페라와 뮤지컬의 차이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오페라의 성악가들은 숙련된 벨칸토 발성으로 음향 시스템의 지원 없이 노래한다. 반면 뮤지컬 가수는 마이크를 활용하여 대중 가수들과 비슷한 창법을 쓴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대사를 처리하는 방식도 다르다. 오페라는 레치타티보(음악적인 낭독)를 사용하지만 뮤지컬은 연극과 동일한 대화 형식이다. 음악과 극의 결합 및 무용, 무대장치, 의상 같은 미술적인 요소 등 모든 장르가 통합되는 종합무대예술이라는 것은 오페라와 뮤지컬이 일맥상통한다.

오페라와 뮤지컬 제작은 대다수 공연기획 업무의 최종 지향점이다. 모든 공연 장르를 한 작품 속에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대 장치들도 다른 공연 종류와 비교하여 복잡하고 미(美)적이다. 두 분야의 영향을 받아 공연장이나 기획사에 몸담게 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카메론 매킨토시와 앤드류 로이드 웨버 같은 세계적인 프로듀서들은 공연 제작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단지 음악을 좋아했던 나를 공연 분야의 길로 이끈 것도 바로 뮤지컬과 오페라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뮤지컬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대학 시절 ‘지킬 앤 하이드’와 ‘레미제라블’ 등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 찰나에 ‘노트르담 드 파리’는 미국 작품만 알던 나에게 새로운 충격이었다. 낭만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 배우들의 폭발적인 가창력은 이 장르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바꿔 버렸다. 출연자들의 노래와 춤 외에도 대사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달리, 송스루(Song-Through, 대사 없이 노래가 계속 이어지는 형식) 진행 방식은 지금까지도 프랑스 뮤지컬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오페라에 대한 관심은 대학 졸업 후 찾아왔다. 평소 국내외 유명 성악가들의 음반을 통해 많은 곡을 접했지만 오페라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처음으로 관람한 오페라는 베르디의 리골레토였다. 평소 전자 음향에 익숙했던지라 극 초반에는 귀가 답답했다. 하지만 뮤지컬에서 느껴보지 못한 클래시컬한 사운드와 오페라 가수들의 시원한 발성은 이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딕 양식의 무대세트 또한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그날 이후 결심했다. ‘내 천직은 공연이다.’

오페라와 뮤지컬! 두 장르는 늘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웃는얼굴아트센터는 내년 리모델링 완료 후 뮤지컬과 오페라 시리즈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물론 예산 상황이나 극장의 공간적 한계로 규모 있는 작품을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작지만 지역민들이 공감하고 쉽게 즐길 수 있는 기획을 구상하고 있다. 언젠가는 대구를 브랜드로 한 멋진 작품을 제작해보는 날도 있지 않을까?



2.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워싱턴포스트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려는 언론 기업들의 몸부림이 눈물겹다. 디지털 파도는 이미 들이닥쳤지만 안정적으로 파도를 타는 보드는 찾기 힘들다. 양질의 차별적 컨텐츠라도 생산할 능력이 있는 곳들은 사정이 낫다. 거기에 변화의 의지와 자본력이 요구된다. 미국 워싱턴D.C의 가장 오래된 신문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의 근년 실험이 주목 받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1877년 12월 6일 4쪽짜리 창간호 1만부를 찍어 부당 3센트로 영업을 시작했다. 자유주의 언론인 스틸슨 허친스가 창간한 친 민주당 신문은 10여 년 뒤 경영난 끝에 매각돼 보수 신문으로 변신하는 등 수 차례 경영주가 바뀔 때마다 신문의 색깔과 위상도 달라지곤 했다. 사교계 소식과 선정적 뉴스에 치중하던 때도 있었고, 친정부적 논조로 영향력을 상실한 적도 있었다.



그 신문이 안정적 기반을 잡은 건 30년대 금융업자 유진 마이어(Eugene Meyer)와 40년대 그의 사위 필립 그레이엄(Philip Graham) 일가 때부터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보도, 독립적인 논조. 그렇게 다져진 전통과 기량이 60년대의 격동기를 거쳐 70년대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투력으로 이어졌고, 비로소 뉴욕타임스와 어깨를 겨루는 전국 신문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013년 8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하며 “WP는 디지털기업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편집에는 관여하지 않는 대신 기술진 주도의 디지털 혁신을 이끌었다. 다종편집 시스템 ‘밴디토(Bandito)’, 의사 전달ㆍ결정 구조를 디지털화한 ‘웹스케드(Websked), 속보 대응력을 높인 브렉패스트(BreakFast), 구글 협력 모바일 혁신(AMP) 등. ‘Red’라 불리는 베조스 기술군단의 뉴스 컨텐츠 매니징 시스템 아크(Arc)는 캐나다 최대 매체인 ‘Globe and Mail’에 라이선스 계약을 맺기도 했다. 

아직 성패는 미지수지만, 현재까지의 성과는 컨텐츠 경쟁력과 자금력, 무엇보다 경영주의 확고한 철학과 추진력 덕이었다. 셋 모두 혁신의 필수 조건이지만, 시동을 건 건 제프 베조스였다. 경쟁지인 뉴욕타임스의 디지털혁신 8원칙 중 변화의 의지를 천명한 제 1항도 “경영진에서부터 시작하는 하향식(Top-Down) 혁신”이었다. 새로운 시도에는 위험과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3. [서울신문][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역사기록의 활용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말은 정치, 사회 분야뿐만 아니라 과학과 재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길어야 100년 남짓 사는 인간은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일어나는 자연의 다양한 변화를 모두 경험할 수 없다. 이런 자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긴 기간의 관측 자료 분석이 필요하다.

특정 지역에서 발생가능한 최대 지진과 지진 발생 예상 지역과 피해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수백년 이상의 지진 기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 지진계가 도입된 시기가 1978년임을 감안해 보면 지진계에 기록된 자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방대한 역사기록물이 있다. 특히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에는 1900여회가 넘는 지진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는 진도 8 이상으로 평가되는 지진 피해 기록도 여럿 있다. 서울에서 발생한 지진 기록도 꽤 있다.

중종 13년(1518년) 음력 5월 15일에는 “유시(오후 5~7시)에 세 차례 크게 지진이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성난 우레 소리처럼 커서 사람과 말이 모두 피하고, 담장과 성첩이 무너지고 떨어져서, 도성 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밤새도록 노숙하며 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노인들이 모두 옛날에는 없던 일이라 하였다. 팔도가 다 마찬가지였다”라고 한양에서 발생한 지진을 기록하고 있다.



세 차례 큰 지진이 연쇄적으로 발생했을 뿐 아니라 지진동이 전국적으로 감지될 정도로 강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성첩의 무너짐은 지진동의 크기가 지금껏 우리가 겪은 수준 이상이었음을 시사한다. 또 성난 우레 소리는 단층 운동에 암반이 부서지는 소리로 이곳이 진앙지 인근임을 의미한다.

명종 1년(1546년) 음력 5월 23일 기록은 더 구체적이다.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갔으며 한참 뒤에 그쳤다. 처음에는 소리가 약한 천둥 같았고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집채가 모두 흔들리고 담과 벽이 흔들려 무너졌다. 신시에 또 지진이 일어났다.”

이 기록은 서울에 지진이 발생했을 뿐 아니라 단층 파열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행했음을 의미한다. 또 큰 단층을 따라 연쇄적으로 여진이 발생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단층 파열과 연쇄 지진은 미국 서부지역과 같이 활성 단층이 잘 발달한 지역에서 목격되는 현상으로 수도권과 같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오래된 암반을 가진 지역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또 강력한 지진동에 의한 피해 정도를 통해 지진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

지난 9월 12일 규모 5.8의 경주지진에서도 담과 벽이 무너지는 피해가 없었음을 감안해 볼 때 당시 지진동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역사에 남은 지진 피해 기록은 최근 지진 발생 특징과는 차이를 보인다. 최근 지진 기록에 의하면 수도권에서는 지진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1978년 이후 지금까지의 짧은 지진 관측 기록이 특정 지역의 지진 특성을 잘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저평가돼 온 수도권 지역의 지진 재해 가능성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 지역은 지질학적으로 안정되고 매우 단단한 암반으로 평가되는 경기육괴 위에 위치한다. 지진은 오랜 기간 응력 누적이 있어야 발생한다. 최근 수도권 지역에서의 지진이 관측되지 않음은 지각 내 응력이 누적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수도권에 지진을 유발한 단층을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경주 지진의 예에서 보듯이 지표에 단층면을 드러내지 않은 지표 하부 단층일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역사기록이 과학의 영역으로 확장돼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록자의 주관에 따른 취사선택이나 자료 왜곡이 되지 않고 모든 사실이 빠짐없이 정확하게 기록될 때 의미가 있다.

기록이 나중에 어떻게 활용될지는 기록자가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했던 사초 기록자들의 노고가 새삼스레 크게 느껴진다.



4. [서울신문][신통방통 기상] 날씨와 소형항공기/고윤화 기상청장

2013년 11월 서울 삼성동에서 헬기가 고층건물에 부딪혀 탑승자 2명 모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의 주요 원인은 안개에 의한 시정장애였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 따르면 항공기 사고 중 날씨가 직접적 원인이 된 사고는 약 10%에 불과하지만 기상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사고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밝히고 있다. 그만큼 항공기 사고에서 기상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항공기는 여러 교통수단 중 사고 발생 확률은 가장 적지만 한 번 사고가 발생하면 탑승객의 사망률은 거의 100%에 달한다. 최근 항공산업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항공기 사고도 증가하고 있으며, 그중 소형항공기의 사고 발생률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최근 10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항공기 사고는 총 52건으로 소형 및 회전익 항공기(헬기)의 사고 건수는 39건으로 75%를 차지하고 있다.

소형항공기나 헬기는 주로 고도 3㎞ 이하의 저고도를 운항하는 항공기로 안개, 난류 등 기상현상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저고도에서는 지형지물에 의해 날씨가 수시로 변하고 위험기상이 나타날 경우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저고도 운항 항공기일수록 기상변화에 더욱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겨울철에는 공기 중에 노출된 물체의 표면에 과냉각된 물방울이나 구름입자가 붙어 얼음막을 만드는 착빙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날개 끝이나 항공기 표면의 착빙은 이륙 전 항공기 조작에 영향을 주게 되고 안정판이나 방향타 등에 착빙이 생기면 조작 방해를 받게 된다. 항공기 표면에 불균일하게 착빙이 생기면 헬기의 회전날개나 프로펠러의 균형을 무너뜨려 떨림현상을 발생시키고 운항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또 엔진 공기흡구의 착빙은 엔진 내부 연소에 필요한 공기 공급을 차단해 엔진 고장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겨울철 운항 시에는 폭설뿐만 아니라 착빙에 관한 예보도 빠짐없이 챙겨야 한다.

실제로 항공기상청을 통해 비행계획 수립과 이착륙 항공기를 위한 공항예보, 이착륙 예보를 발표할 뿐만 아니라 저고도 항공기를 위한 다양한 기상정보를 제공하지만 운항 관계자들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시정’은 지형에 민감하고 매우 국지적인 기상현상으로 촘촘한 관측망을 통해 기상정보 제공이 가능하지만 관측망 확충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항공기 운항을 위한 정확한 기상정보 확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기상청과 육·해·공군이 갖고 있는 기상자료와 국토교통부, 경찰청, 지방자치단체들에서 운영하는 폐쇄회로(CC)TV 정보를 통합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일 것이다.



5. [동아일보][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 후래자삼배

우리말 보고(寶庫)라는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에 나오는 대목이다. 소설 속 한온이가 황천왕동이에게 연속해서 술잔을 권하는 장면이다. ‘뒤에 오면 석 잔’이라는 건 요샛말로 ‘후래자삼배(後來者三杯)’ 아닌가. 나중에 온 사람은 석 잔을 거푸 마셔야 한다는 뜻이다. 먼저 온 사람들과 술기운을 맞춰주려는 주당들의 배려인지 모르겠다.

후래자삼배를 누가 처음으로 입길에 올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70년이 넘은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 경성(서울)을 배경으로 한 다나카 히데미쓰의 ‘취한 배’(1948년)에 이 말이 나온다. 일본어에도 가케쓰케산바이(驅けつけ三杯)라고 해서 똑같은 말이 있다. 

술 따위를 남에게 권하기도 하고 자기도 받아 마시는 모습을 ‘권커니 잣거니’ 또는 ‘권커니 잡거니’라고 한다. 국립국어원이 바른말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언중은 ‘권커니 자커니’ ‘권커니 작거니’도 입길에 올린다. 

‘권(勸)하다’와 어미 ‘-거니’를 줄여 쓴 ‘권커니’는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표준어로 삼은 ‘잣거니’는 어딘가 어색하다. ‘잣’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다. ‘잡거니’의 ‘잡’은 ‘술잔을 잡는다(執杯)’는 뜻이 있고, ‘작거니’의 ‘작’은 술잔(爵·酌)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집(執)’도, ‘작(爵·酌)’도 사실인지 아닌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 그렇다면 ‘자커니’가 제격이다. 말의 뿌리가 분명하지 않을 경우에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게 말법이니.

거섶안주는 나물로 차린 초라한 안주를 뜻한다. 이보다 못한 안주도 있다. ‘침안주’다. 침을 안주로 삼아 강술을 마시는 걸 말한다(열에 열, 깡술이라지만 강술이 표준어다). ‘술잔거리’는 술 몇 잔 정도를 사먹을 만한 돈이라는 뜻이다. 춘향전에서 춘향이 자기를 잡으러 온 아전들에게 건네는 돈이 바로 이 술잔거리다. ‘술추렴’은 여러 사람이 술값을 분담하거나, 차례로 돌아가며 술을 내는 것이다.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있다. ‘술이 가득 차면 전부 빠져나가는 술잔’인데, 욕심을 다스리라는 가르침을 준다.

송년 모임이 시작됐다. 한 해의 묵은 찌끼를 날려 보내려는 주당들의 마음이 바쁠 때다. 자, 거섶안주면 어떻고, 침안주면 또 어떤가. 벗과 나누는 술은 향기롭기만 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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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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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이 와중에 ‘쪽지예산’ 잔치 벌인 여야 실세들

그제 국회 본회의에서 400조 5000억원에 달하는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됐다.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기면서 ‘슈퍼예산’ 시대가 열린 것이다. 씁쓸한 점은 심의 막판에 여야 실세를 포함한 국회의원들의 민원성 지역구 예산인 ‘쪽지예산’이 대거 편성됐다는 사실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따르면 증감액 심사 과정에서 내년 예산은 5조 1424억원 증액됐다. 이 중 수천억원이 의원들이 밀어넣은 쪽지예산일 것으로 추정된다. 수백만명의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는 와중에 정치인들은 자기 지역구 민원만 챙겼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올해는 이른바 ‘최순실 예산’이 최대 4000억원 가까이 삭감되면서 쪽지예산은 예년보다 더 늘었다. 삭감분이 지역구 민원 예산 증액분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순천대 체육관 리모델링과 순천만 보수공사, 하수도 개선공사 등에 18억원을 막판에 끼워 넣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공주박물관 수장고 건립, 지역구 내 도로 건설 예산 등에 18억원을 증액시켰다. 친박 실세인 최경환 의원은 경북 경산의 무선전력사업 연구예산 10억원, 장제원 의원은 부산 사상공단 재생예산 80억원을 챙겼다.

야당에서도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구 수성구 노후공단 재생사업 예산 60억원을, 같은 당 위성곤 의원이 서귀포 크루즈항 예산 40억원을 더 편성토록 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백지화됐던 전남해양수산과학원 목포지원 신축예산 10억원을 만들어 냈다. 최순실 사태로 예산이 대폭 깎인 교육문화위 예산은 상당 부분이 강릉원주대, 목포해양대 등 대학들로 흘러 들어갔다. 해당 지역구 의원들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쪽지예산은 의원들이 지역구 관련 예산을 쪽지로 해당 부처나 동료 의원에게 부탁하는 예산이다. 미국에서도 논란이 거세다. 부정청탁금지법(청탁금지법) 위반 소지도 있다. 지난달엔 기획재정부가 청탁금지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의원들은 지역구 사업이란 공익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정식 심의를 거치지 않은 졸속 편성한 예산이어서 낭비 요소가 크다. 게다가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이 올스톱 위기에 처해 있다. 내우외환으로 경제는 고사 직전이다. 한 푼이라도 아껴 꺼진 경제 동력을 살리는 데 써야 한다. 경제야 어찌 되든 자기 지역 민원만 챙기는 것은 국회의원의 도리가 아니다.



2. 특검, 법치 바로 세우겠다는 초심 잃지 않기를

지금 국민의 관심을 가장 뜨겁게 받는 사람은 박영수 특별검사일 것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을 파헤칠 박 특검은 임명된 즉시 “좌고우면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했다. 그 첫 일성을 국민들은 외우고 있다. 박 특검의 분명한 수사 방침에도 기대가 크다. 박근혜 대통령을 반드시 직접 대면조사하고, 박 대통령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한 검찰과 달리 뇌물죄를 밝히는 쪽으로 수사력을 모으겠다고 선언했다. 빠듯한 특검 수사 일정을 하루라도 앞당기겠다는 박 특검의 의지도 사뭇 결연해 보인다. 특검보가 임명되면 당장 수사팀을 가동하겠다고 하니 며칠 안에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될 듯하다.

특검의 성패는 박 대통령 대면 조사를 통한 뇌물수수 혐의 적용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한 진실 규명도 결코 이에 밀리지 않을 중대 쟁점이다. 박 특검은 국민이 가장 큰 의혹으로 제기하는 문제인 만큼 철저한 수사로 의혹을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당연한 일이다. 세월호 7시간은 단순히 박 대통령의 사생활 문제가 아니다.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한 비선 정치로 국민을 도탄에 빠트린, 참담한 실정(失政)의 문제다.

온 국민이 특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과 기대를 모아 주는 이유는 하나다. 검찰이 들추지 않았거나 못했던 의혹을 샅샅이 뒤져 실체적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 주길 바랄 뿐이다. 그런 맥락에서 검찰이 끝내 건드리지 않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국정 농단도 풀어야 할 숙제다. 박 대통령과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을 묵인한 의혹이 짙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마찬가지다. 파견 검사 선발 과정에서부터 ‘우병우 라인’을 철두철미하게 걸러 내 공평무사한 수사 결과물을 내놓아야만 할 것이다.

이 모든 국민적 요구를 충족시키기란 결코 쉬울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은 3차 대국민 담화에서 또 한번 자신의 혐의들을 전면 부인했다. 특검 성공의 전제 조건은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할 확고한 증거 확보다. 검찰 수사를 거부한 박 대통령이 만에 하나 또다시 조사를 회피한다면 강제 수사를 불사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번 특검 수사는 헌정 사상 열두 번째다. 주말마다 수백만명의 국민이 촛불로 진실 규명을 외치는 특검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전대미문의 이 부끄러운 국정 혼돈을 벗어나 국민 가슴에 평정을 되돌려 줄 특명을 특검이 짊어졌다. 그뿐인가. 만신창이로 허물어진 법치를 추슬러 세우는 시대적 사명도 특검의 몫이다.



[이데일리]

3. 박 대통령, 국가 미래가 걱정되지 않는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운명의 일주일’이 다가왔다. 야3당이 공동 발의한 탄핵소추안이 오는 9일 국회 표결을 앞둔 가운데 새누리당 비박계가 결성한 비상시국위원회도 어제 탄핵 가세 방침을 천명했다. ‘탄핵 정국’에서 주도권을 쥔 비박계가 당초 내세웠던 ‘내년 4월 퇴진’ 협상 카드를 철회한 채 ‘탄핵열차’에 동승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열차는 이미 종착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상태다.

지난주 제3차 대국민 담화로 국회에 떠넘긴 공을 다시 넘겨받은 박 대통령 앞에 놓인 선택지는 오직 탄핵과 퇴진 두 가지뿐이다.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에 관여했든, 아니면 본인 해명대로 주변 관리를 잘못한 탓이든 막중한 책임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또다시 변명이나 교묘한 술수로 판세 반전을 노렸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그제 청와대 앞 100m까지 다가가 ‘즉각 퇴진’을 외친 촛불 민심뿐만 아니라 사태의 추이를 근심어린 눈초리로 지켜보는 ‘말없는 다수’의 가혹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망각해선 안 된다.

정치권이 이미 정치를 포기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야권이 비박계의 반대를 묵살하고 세월호 사건까지 탄핵안에 포함시킨 것은 실제 탄핵 의사는 없이 보여주기식 정치쇼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좋고, 설령 부결돼도 책임을 비박계에 뒤집어씌우면 그만이다. 대한민국호(號)가 좌초하든 말든, 국민이 도탄에 빠지든 말든 저마다 정략적 이익을 극대화하기에 급급한 ‘소인배 정치’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국민이 박 대통령의 선택을 주시하는 것도 그래서다.

정치 입문 이후 단 한 번도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박 대통령으로선 억울할지도 모르겠으나 변명만 늘어놓는 대통령을 봐야 하는 국민의 고통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국정 붕괴와 경제 추락에 대한 경고가 나라 안팎에서 잇따르는데도 미적대기만 한다면 나라가 어찌 되겠는가. 지금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자마자 “전선은요?”라고 물으며 본인보다 나라 걱정을 앞세웠던 37년 전의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 국가의 앞날만 생각하고 이제라도 올바른 결단을 내리는 것만이 ‘정치인 박근혜’가 자신을 믿었던 국민에게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다. 조속한 결단을 기대한다.



[매일신문]

4. 연례화한 AI 피해, 이제 선제적 대응책 나와야

신종 AI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신종 H5N6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를 막기 위해 강력한 방역 조치를 취하고 있다지만 역부족이다. 지난 10월 첫 바이러스 검출 후 한 달여 만에 전국의 닭 오리농장 101곳이 감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살처분된 닭과 오리가 이미 300만 마리를 넘어섰다.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 능력에 구멍이 뚫렸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게 됐다.

3일 경북 영주의 한 닭 부화장이 AI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의 한 양계장에서 종란 10만8천 개를 반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종란이 반출된 양계장은 경기도 동물위생시험소 검사 결과 양성반응이 나온 곳이다. 옮겨 다녀서는 안 될 AI 발생 농장의 종란이 도 경계를 넘나든 것이다. 뒤늦게 이를 안 경북도는 해당 부화장에 대해 폐쇄 조치를 취하고 반입한 종란을 폐기했다지만 자칫 경북도의 AI 청정 지역 지위가 흔들릴 뻔했다.

AI는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발생 일수도 길어지고 발생 시군도 확대되고 있다. 겨울철이 아닌 여름철에 발생한 사례도 나왔다. 2014년 발생한 H5N8형은 거의 2년 동안 간헐적으로 발병하며 축산 농가를 울렸다. 이번 H5N6형 AI 역시 피해 정도나 확산 속도로 미뤄 지난 피해를 능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정부는 AI가 확산되자 철새를 탓하고 있다. AI 이동 경로가 철새 이동 경로란 점을 강조하고, H5N6 바이러스가 신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발생 농가 가금류 살처분과 주변 소독, 차량 이동 제한 등 조치를 취하는 것이 고작이다. 

AI 피해가 해마다 발생한다면 정부는 선제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존 발생 지역 따라다니기식 대응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AI 바이러스에 대한 감시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조기 경보를 위해 철새 이동 경로에 있는 나라에 가서 연구하고 협력해야 한다. AI 진단과 처방에 걸리는 시간도 최대한 당겨야 한다. 일단 발생하면 즉각 과감한 살처분과 철저한 이동 제한 조치는 기본이다. 사후 조치식 당국 대응은 늦을뿐더러 피해 방지에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5. 시민 성원과 시장 화합이 서문시장 재건의 첫걸음

서문시장 화재로 인해 지역 서민 경제에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빠른 시장 정상화를 위한 노력과 시장 구성원들의 화합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아직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이번 화재 피해 규모가 1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당장 직격탄을 맞은 시장 상인들뿐 아니라 거래 도소매업 등 지역 경기 위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지역 경기 침체의 우려를 뛰어넘고 위기 극복에 힘을 모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우선 백화점 등 지역 유통가는 최대 성수기인 연말임에도 어려움을 함께한다는 취지로 조용한 연말 분위기 조성을 다짐했다. 같은 어려운 처지이지만 서문시장 야시장 상인들도 당분간 영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는 물론 지역 기관단체 지원과 성원도 본격화하고 있다. 국민안전처는 2일 재난안전 특별교부세 35억원을 대구시에 긴급 지원했다. 원인 조사가 끝나는 대로 4지구 건물 철거 등 앞으로 시장 재건을 위한 계획이 속속 구체화될 전망이다. 여기에 시장 부활을 위한 지역 기업과 금융권, 종교계 등 각급 기관단체들이 앞다퉈 성금 모금과 지원을 약속하며 큰 힘을 보태고 있다. 그만큼 서문시장의 빠른 정상화를 바라는 시민의 희망과 기대가 높다는 말이다. 

이런 성원에 힘입어 시장 구성원들도 하루빨리 충격에서 벗어나 재활의 용기를 내야 한다. 빠른 복구를 통해 서문시장 본래의 활기찬 모습을 되찾는 것은 두말이 필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시장 구성원이 시장 재건에 한마음이 되는 일이다. 상인들이 화합하고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야말로 시장 정상화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만약 시장에 생계를 걸고 함께 땀을 쏟아온 상인들이 반목하고 분열한다면 재건은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화재를 지켜본 대구 시민의 낙심과 좌절감 또한 상인들 못지않게 크다. 따라서 상인들은 자신의 터전을 본래의 활기찬 모습으로 되돌려놓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250만 시민의 협력과 성원도 커지기 마련이다. 불행한 사고는 이제 접어두고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시장 복구에 총력을 모아야 할 때다.



[동아일보]

6. 임박한 공공기관 인사, 이제는 낙하산 접어라

1일 마감된 한국예탁결제원 신임 사장 공모에 후보 7명이 지원했다. 유재훈 전 사장이 지난달 2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으로 자리를 옮긴 지 1개월 만이다. 기술보증기금도 차기 이사장 선정을 위한 공모 신청을 1일부터 20일까지 받는다. 은행권에선 기업 우리 하나 신한은행 등 은행장과 신한금융 농협금융 등 금융지주사 회장 인선 작업이 이달부터 내년 3월경까지 이어진다. 

정부는 공공금융기관과 민간은행을 가리지 않고 인사에 개입해 낙하산을 내려보내 왔다. 최근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가 드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권위를 잃으면서 친박(친박근혜)계 등 특정 인사를 점찍기는 어려울 것이다. 각 기관의 임원추천위원회를 거쳐 주무 부처 장관이 최종 후보를 정하는 규정된 절차에 따라 인선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정상적 낙하산 인사가 제자리를 찾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최근 금융기관장 하마평에 관피아가 많이 거론되는 것은 친박계 낙하산이 내려가기 어렵게 된 틈을 관료집단이 비집고 들어오려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질서 있는 퇴진’을 명분으로 내년 4월까지 임기를 보장받을 경우 국가인권위원회, 경찰청, 국민대통합위원회 인사에 이어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달에만 한국마사회(4일), 한국도로공사(9일), 한국언론진흥재단(25일) 등 비금융 분야 공공기관장의 임기가 줄줄이 끝난다. 주무 부처 장관은 유명무실했던 내부 임원추천위를 정비해 리더십과 업무 능력을 겸비한 최고의 전문가를 인선해야 한다. 낙하산 인사로 공공성을 훼손한 정부가 뒤늦게나마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바란다.



[매일경제]

7. 국정조사 청문회 기업총수 망신주기로 흘러선 안된다

6일 열리는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9개 그룹 총수가 증인으로 출석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총수들이 한꺼번에 청문회에 불려나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해외에서는 진풍경이라고 희화화해 보도할지도 모른다.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청문회는 종료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아마도 '하세월 대기'하는 총수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정몽구(79), 손경식 회장(77) 등은 고령에다 건강이 좋지 않아 구급차까지 대기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과정에 의혹이 있다면 해소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검찰 조사에서 '피해자'로 적시됐고 구체적인 혐의가 나오지 않은 기업 회장까지 증언대에 무더기로 세우는 것은 불합리하다. 국민연금의 그룹 합병 찬성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 총수 사면 문제가 걸린 CJ·한화, 면세점 대가성 의혹이 있는 롯데와 SK 등이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청문회라는 산을 넘어도 특검이 대통령의 제3자 뇌물죄 입증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연결 고리가 되는 기업 총수들은 다시 불려가게 될 가능성도 높다.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정치인들이 의혹 규명보다 총수들을 망신 주거나 호통치면서 청문회를 자신들의 쇼맨십 발휘 자리로 만들 가능성이다. 과거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구태가 반복되지 않았던가. 자칫 말실수로 꼬투리를 잡히면 존경받는 기업인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추락할 수도 있어 재계의 불안은 크다. 그러다 보니 각 기업 총수들이 예상 질문에 답변을 해보는 '리허설'이 한창이라고 한다. 연말 인사를 단행하고 내년 투자계획을 세워야 할 시기에 기업들이 청문회 도상훈련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니 실로 답답한 노릇이다. 

TV로 생중계되는 청문회는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에 엄청난 리스크다. 기업 총수가 정치인들에게 공격받고 훈계받는 장면이 해외로 나갈 경우 해당 기업의 신인도와 브랜드 이미지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기업 총수들의 청문회 출석에 대해 최근 "이는 경제 심리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진상 규명이지, 기업 총수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게 아니다. 면박 주기 청문회는 국익 훼손과 경제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위 위원들은 국정 혼란 속에서도 경제가 돌아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경향신문]

8. 2년7개월 만에 청와대 앞 집회 연 세월호 유족의 눈물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100m 앞까지 다가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세월호 사건 진실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구호도 외쳤다. 지난 3일 열린 6차 촛불집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가족들의 청와대 앞 시위는 사건 발생 이후 처음이다. 이날 전국에서 촛불을 든 230만 시민이 유가족들의 든든한 원군이었다.



전명선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그동안 한번도 못 온 곳인데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가족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에 답변 한번도 없다. 그에 대한 사과, 꼭 받아내겠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그동안 박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며 광화문 일대에서 수백일간 농성을 하고 집회를 열었지만 경찰에 가로막혔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 무성의와 외면으로 일관했다. 박 대통령은 참사 당시 진도 팽목항을 찾아가 유가족들 앞에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해내겠다며 눈물을 흘렸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유가족이 원하면 언제든지 면담을 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말뿐이었다. 사건 발생 한 달 뒤인 2014년 5월16일 유가족 대표와의 면담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후로는 오히려 유가족들을 사회적으로 따돌림하는 일에 골몰했고 세월호특별법과 특별조사위원회도 무력하게 만들었다. 유가족들의 마지막 바람이라 할 수 있는 세월호 선체 인양은 언제 이뤄질지 기약도 없다. 

세월호 사건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불가분의 관계다. 게이트 정점에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의혹이 있다. 전 국민이 TV 생중계로 배가 가라앉는 장면을 보고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출근도 않고 숙소인 관저에서 시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참모들도 공범이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이 짧게는 3분, 평균 20분 간격으로 쉼없이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그랬다는 박 대통령은 7시간 만에 나타나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하는 뚱딴지같은 말을 했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첩을 보면 김 전 실장은 ‘대리기사 폭행’ 건에 검찰의 엄정 수사를 주문하는 등 유가족과 야당 의원을 범죄자로 내몰아 상황의 반전을 꾀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박 대통령의 7시간 의혹도 수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판단이다. 유가족들의 한과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해소하지 못하는 수사는 의미가 없다.



[서울신문]

9. 산은·수은 자금지원 축소, 정책금융 한계 보여줬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정책자금 규모가 내년에 줄어들 모양이다. 4일 서울경제신문에 따르면 산은과 수은의 내년 자금 지원액은 각각 57조원과 67조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보다 각각 4조원과 8조원 줄어든 것으로 이로써 양대 정책금융기관 자금 공급 규모는 2년 연속 감소하게 됐다. 자금 지원에 나서려 해도 원하는 기업이 없었던 탓이 컸다. 조선·해양 등 주력 산업의 침체와 경기 부진으로 지원을 받아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정책자금의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다. 경제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하던 예전과는 한참 동떨어진 모양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추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경제에 온기가 돌아야 기업 자금 수요가 늘어날 텐데 현실은 영 딴판이다. 안으로는 정국혼란·대선 등에 따른 정치 불확실성과 내수 부진이 걸림돌이고 밖으로는 보호무역주의라는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2%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게다가 정책자금의 주요 수요처인 제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낮아지는 반면 서비스와 정보기술(IT), 바이오 산업 등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산업 지형이 바뀌는데 정책금융은 제자리니 약발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책금융의 한계가 명확하다면 지원의 기본 틀을 바꿔야 한다. 먼저 정책자금 지원 대상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전통 제조업에서 서비스·혁신 산업으로 이동한 만큼 정책자금의 무게중심도 이에 걸맞게 변화해야 한다. 지원 방식도 자금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과 혁신문화 도입 등 기업의 체질 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중소기업 지원의 경우 필요하다면 벤처캐피털과 연계하는 것도 검토해봄 직하다. 기업에 지원금만 주고 내 할 일 끝났다는 식의 사고를 버리지 않고서는 정책자금의 딜레마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국민일보]

10. 중국 사드 보복, 경제적 피해 대응책 시급하다

우리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보복이 최근 극심해지고 있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대놓고 제재하고 있다. 이미 한국행 유커(관광객) 20% 축소를 지시한 데 이어 한국 드라마 등 프로그램 방영과 한국 연예인의 광고 출연 금지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지난달 말부터 롯데그룹의 중국 매장과 사업장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소방점검과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 롯데가 경북 성주골프장을 사드 배치 부지로 제공한 데 따른 보복 성격이 짙다. 이외에도 자동차,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원료 분야의 한국 기업을 견제하는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 식품과 화장품에 대해서는 통관 거부 등의 방식으로 실질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

중국의 대응이 이처럼 전방위적으로 단행되면서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확산되고 있다. 중국은 우리 수출의 26.1%, 수입의 20.7%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다. 대중 무역흑자는 연간 600억 달러에 이른다. 그만큼 한국 경제에는 치명적이다.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대안 모색이 극히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나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우리의 입장을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설명해야겠다.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서 북한 핵의 위험성만 강조했지 중국의 우려는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스포츠, 예술 등 비경제 분야의 민간 교류를 확대하는 노력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지나치게 부당한 조치라고 생각되면 당당하게 항의하는 한편 사안에 따라서는 국제기구에 제소하는 방안 등도 배제하지 않아야겠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고 시장 다변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크리스티안 짐머만 | 폴란드 출신 완벽연주 ‘현대의 쇼팽’

폴란드 출신 크리스티안 짐머만(KrystianZimerman, 1956년~)은 1975년 제9회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불과 19세의 나이로 우승하면서 세계 피아노 음악계에 등장했다. 할리나 체르니 스테판스카, 아담 하라시에비치에 이어 3번째로 쇼팽의 조국 폴란드 출신 우승자였다. 폴란드 피아니스트라는 것은 세계 음악계에서 ‘쇼팽의 직계’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짐머만은 쇼팽 음악에 있어서 최고의 해설자로 꼽히는 데다가 수려한 외모까지 생전의 쇼팽을 연상시켜 ‘현대의 쇼팽’으로 불리는 피아니스트다.

짐머만은 한국과 지난해 유난히 친밀해졌다. 한국의 첫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 때문이다. 지난해 열린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한국 음악팬에겐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선에 오른 조성진 때문. 조성진의 결선 연주가 끝나자마자 심사위원 크리스티안 짐머만은 당시 현장에 있던 정경화에게 문자를 이렇게 보냈다. 

“대체 이 친구가 누구야? 금메달이네!(This isgold!).” 

이후 짐머만은 조성진을 알아본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한국인에게 각인됐다. 정경화와 짐머만은 절친한 사이다. 둘 다 최고의 연주자며 또 완벽주의자. 

그런데 짐머만이 좀 더 심하긴 한 것 같다. 일화가 있다. 

레스피기 바이올린 소나타를 녹음하던 당시 짐머만이 완벽한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피아노의 위치를 10번이나 넘게 바꾸는 바람에 정경화도 두 손 두 발 들었다는 것. 

짐머만은 완성도 높은 연주를 위해 연간 연주 횟수를 50회 이내로 제한하는 엄격한 자기 관리를 하고 있다. 50회 연주도 실내악단과 마스터 클래스(Master Classes)를 모두 합친 것이다. 또한 자신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직접 갖고 다니며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다. 짐머만은 이에 더해 화물차에 피아노를 싣고 직접 운전하기도 하고, 분해된 피아노를 조립·조율까지 손수 해내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다. 

그러다 보니 비극적인 일도 있었다. 미국 카네기홀 연주를 위해 JFK공항에 입국했던 짐머만은 그의 피아노에서 화학물질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미 교통안전청 TSA로부터 피아노가 파괴되는 끔찍한 일을 당한다. 피아노에 쓰인 접착제가 냄새 원인으로 판명됐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 이후 짐머만은 피아노를 분해해 갖고 다니면서 직접 조립과 조율을 했다. 

음반 녹음 또한 완벽주의 때문에 짐머만은 잘 안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의 ‘은둔형 피아니스트 미켈란젤리’와 맞먹는 급. 음반을 내기로 마음먹으면 최대 8년이나 걸릴 정도로 완벽을 추구한 후 내놓는 탓에 그의 음반은 불세출의 명반으로 자리 잡았다. 

피아니스트와 음악팬들은 그의 연주와 음반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 선명한 터치와 적절한 페달 사용으로 감각적인 음향과 완벽한 기술의 조화를 이루는 짐머만의 연주 모습은 피아니스트에겐 교본처럼 통한다. 쇼팽도 그가 ‘현대의 쇼팽’으로 불리는 것에 엄지를 척 들었을 것 같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편애도 범죄라니까

굳이 진화론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생물은 늘 환경에 맞도록 변화하고 달라져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무는 나무대로, 곤충은 곤충대로, 물고기는 물고기대로, 새는 새대로 좀 더 안전해지기 위하여, 그 나름 편안해지기 위하여, 나아가 험난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서서히 또 조금씩 몸을 바꾸어온 것이다. 보다 나은 유전자를 얻기 위하여 움직인다는 점은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종자 개량’을 해보겠다면서 큰 키나 마른 체형 혹은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이성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숱하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혈통의 개량 또한 엄연히 진화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태어남과 죽음이 반복되는 동안 취향과 기호라는 유전자가 대물림되었다. 사람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든 기울어지도록 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언제나 더 좋거나 더 싫은 것이 있어왔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바람직한 일이다. 더 좋은 것은 발전 혹은 확장시키고, 더 싫은 것은 극복 혹은 인내하면서,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해 나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감정이 사람에 대한 차별이라는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상황은 비극으로 길을 튼다. 특히 여러 명의 자녀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부모의 차별은 그럴듯하게 포장된 갖은 명분을 뒤집어쓰고 자행된다는 점에서 아주 그악한 범죄라 하겠다. 게다가 당하는 입장에서는 항거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고통도 밑천이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것은 진실이어서, 얼마간의 고통은 독감 백신처럼 사람의 면역력을 키운다. 그래서 차별 속에서도 꽤 건강한 아이가 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적정량을 초과했을 때 나타난다. 과한 백신은 사람을 실제로 환자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양이 과한지 아닌지는 각자의 신체가 증명한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같은 양의 비를 맞아도 유난히 녹이 잘 스는 물질이 존재하듯이, 감정에도 개별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니 편애에 대한 핑계로 드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겠느냐’는 식의 말은 명백한 위선이다. 모든 손가락을 동일하다고 간주하는 것부터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똑같은 압력을 가해 손가락을 입으로 물어뜯으면 어떤 손가락은 말짱하지만, 어떤 손가락은 멍이 들고, 어떤 손가락에서는 피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한쪽으로 쏠리는 마음을 멈추지 못하겠거든 가식이라도 부려야 할 것이다. 명배우도 울고 갈 만큼의 연기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쩌겠는가, 그렇게라도 해야지. 손가락 하나를 잘라 내버릴 작정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제발 편애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3. [서울신문][씨줄날줄] 전곡선사박물관/서동철 논설위원

경기 연천 전곡리는 한탄강이 한바탕 크게 휘돌아 나가며 만들어 놓은 땅의 넓은 터에 자리 잡고 있다. 낙동강이 감싸고 도는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풍광이 수려해 전곡의 한탄강은 일찍부터 유원지로 개발됐다. 지금도 강변은 오토캠프장으로 인기가 높다.



전곡은 구석기 문화에 얽힌 스토리가 많다. 유적 발견 과정부터가 드라마다. 전곡에서 멀지 않은 동두천에 주둔한 미군 2사단의 그레그 보웬 하사는 1978년 1월 어느 날 여자친구와 한탄강변을 산책하다 숯이 되어 버린 목재 조각을 발견한다.

인디애나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다 입대한 보웬은 여자친구를 달래 가며 한 시간 이상이나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고 한다. 혼자 일종의 지표조사를 한 것이다. 결국 그는 주먹도끼 3점, 가로날도끼 2점, 긁개 1점을 찾아냈다. 그는 프랑스 보르도대학의 구석기 고고학 권위자 프랑수아 보르드 교수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보르드 교수는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다면 의심할 것 없는 아슐리안 문화의 석기”라고 답장을 했다. 아프리카와 유럽에서만 쓰여진 것으로 여겨지던 주먹도끼가 전곡리에서 발견됐다는 것은 동아시아 구석기 문화도 같은 수준으로 발전해 있었음을 증명한다.

서울대 박물관을 중심으로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소, 각 대학 박물관이 대거 참여한 대규모 조사단은 1979년부터 1992년까지 모두 10차례 이상 발굴조사를 벌여 5000점 남짓한 구석기 유물을 찾아냈다. 전곡리 구석기 유물은 1981년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 선사·원사 고고학회에서 공식으로 인정을 받았다.

연천 전곡리 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된 것은 1979년으로 면적은 77만 8296㎡이다. 문화유산 보호 역사에 드물게 신속한 사적 지정 결정이 이루어졌고, 보호 면적 또한 매우 넓다. 발굴조사를 주도하면서 박물관 건립을 꿈꿨던 김원룡 서울대 고고학과 교수는 1993년 세상을 떠났다. 유언은 “시신을 화장해 전곡리 유적에 뿌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의 꿈은 2011년 전국선사박물관 개관으로 현실화됐다.

경기도 산하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전곡선사박물관의 올해 관람객은 17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교육적 효과가 큰 데다 흥미로운 콘텐츠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반드시 찾아야 하는 박물관으로 벌써부터 자리 잡았다. 전곡선사박물관은 분명 ‘경기 북부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럴수록 구석기 고고학 교과서를 다시 쓰게 만든 유적에 자리 잡은 박물관이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쉽다. 최근에는 도지사들의 ‘경기 문화 사랑’도 갈수록 식어 가고 있다. 전곡선사박물관 역시 ‘세계적인 선사 박물관’의 비전은커녕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 세계적으로 각광받을 몇 안 되는 경기 문화의 하나라는 사실을 모르는지 묻고 싶을 뿐이다.



4. [동아일보][표정훈의 호모부커스]독서 계획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맹세하여 시경, 서경, 예기, 춘추전을 차례로 3년 동안 습득하기로 하였다.’ 보물 제1411호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 새겨진 내용의 일부다. 신라 진흥왕 또는 진평왕 때 화랑으로 추정되는 두 젊은이가 학문을 닦아 나라를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했다. 3년 동안 경서 4종을 습득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임신서기석은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독서계획이자 독서문화유산이다.

어떤 책들을 어떤 순서로 얼마 동안 읽겠다는 게 독서계획의 기본이다. 주자(朱子·1130∼1200)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순으로 사서(四書)를 읽을 것을 강조했다. 성혼(成渾·1535∼1598)은 손아래 동서 강종경이 세상을 떠난 뒤 자신이 맡아 기른 강종경의 아들 강진승에게 권면하였다. “책을 읽을 때에는 엄밀히 과정(課程)을 정하여 익숙히 읽고 정밀하게 생각하며 간절하게 체득하라.” 

미국의 작가이자 비평가 클리프턴 패디먼은 18∼81세 독자를 염두에 두고 ‘평생독서계획’(이종인 옮김)을 펴냈다. 패디먼은 고전 명저를 중심으로 저자 133명의 책을 소개, 논평하면서 독서와 삶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들을 읽는다는 것은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는 것, 자신의 경력을 쌓는 것, 가정을 꾸리는 것 등과 대등한 행위다. 이 책들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길동무이다.’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친 근대 중국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1873∼1929)는 청년들을 위한 독서계획으로 ‘독서분월과정(讀書分月課程)’을 만들었다(‘중국고전학입문’·이계주 옮김). 아침에는 유교 경서, 낮에는 사상, 저녁에는 역사, 밤에는 문학을 읽도록 짜인 빡빡한 계획이다. 량치차오는 서양 학문을 배우러 유학 떠날 학생들이 이를 통하여 중국의 전통 교양을 철저히 익히기를 바랐다. 

‘평소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하여 새해 설계에 반드시 독서를 먼저 꼽아 놓고도 제대로 실천해본 적이 거의 없다.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책방에 가서 읽을 만한 책을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해서 읽으려는 의욕을 한층 북돋아 볼까 한다.’ 

1959년 1월 8일자 동아일보 독자투고란에서 한 주부가 밝힌 결심이다. 읽을 만한 책도 훨씬 더 많아지고 그런 책을 찾아내기도 무척 편리해진 요즘이다. 새해면 늦다. 바야흐로 한 해의 독서생활을 돌이켜보고 새로운 계획을 짤 때다.



5. [중앙일보][비즈 칼럼] 미래는 감성의 시대, 여성벤처에 길 있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가상현실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얼마 전 우린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AI의 논리적 문제 해결능력을 보았다. 이어 9월엔 소니 컴퓨터과학연구소의 인공지능이 두 곡의 음악을 작곡해 유튜브에 발표했다.

인간의 지적인 능력이나 노동력 심지어 예술적 창작력까지 위협받고 있다. 이 두려운 시대에 미래학자들은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핵심 키워드로 ‘여성’을 꼽고 있다. 상대방의 생각과 감성을 읽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고도의 지능을 가진 기계문명에 대응할 중요한 자산으로 생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1986년 월스트리트 저널은 여성이 고위직 승진에 있어 보이지 않는 사회 전반의 성적 차별을 지칭하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란 용어를 탄생시켰다. 30년이 지난 지금, 올해 발표된 유리천장 지수에서 대한민국은 100점 만점에 25점, OECD 조사국 29개국 중 29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것도 4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에 있어 대한민국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새로운 반란이 시작되고 있다. 젊고 유능한 여성 인재들이 기존 조직에 굳건하게 자리한 유리천장을 뚫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벤처 창업에 몰려들고 있다. 불과 10년 전인 2007년 여성벤처기업은 501개사로 전체 벤처기업의 3.5%에 지나지 않았으나 지난해 말 2566개사로, 8.2%의 의미 있는 신장을 이루었다. 음식·숙박, 도소매 분야에 60% 이상이 포진되고 있는 통상의 여성창업 모델에서, 제조업 70%, 정보처리·소프트웨어 12%라는 전문적이고 기술 중심형 분야로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우수 인재들의 벤처행 또한 올해 들어 눈에 띈다. 중소기업청의 ‘선도벤처연계 창업지원사업’ 여성신청자의 28.5%가 석·박사 인재들이고 매해 고학력자들의 참여는 가속화하고 있다.

여성벤처협회가 운영하고 있는 ‘1인 창조기업비즈니스센터’의 입주 CEO중 40%도 석·박사, 해외 대학 출신이다. 여성 스타트업의 경우 증가추세는 올 들어 눈부실 정도다. 여성벤처협회 내에 스타트업 모임인 청년미래위원회 경우, 20여 명으로 시작한 모임이 올 한 해를 보내며 이미 100명을 넘어섰다.

이제 기존의 추격형 경제 성장 모델은 한계에 부딪혔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벤처에 있다. 또한 기계문명의 시대를 제어할 유일한 힘인 감성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이런 시대적 변혁기에 감성·소통·공감 능력이 뛰어난 역량 있는 여성 인재들의 창업 도전을 독려하고 이들의 노력을 지원하는 환경 조성에 함께 힘을 모을 때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여성벤처인들의 창업 도전과 그들이 이루어 나갈 꿈의 결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견인할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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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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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한층 강화된 유엔의 대북 제재방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그제 저녁 북한의 5차 핵실험 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북한 외화벌이의 주력품목인 석탄의 수출을 사실상 전면 견제하면서 동과 니켈, 은, 아연 등 다른 광물자원도 수출 금지품목에 추가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북한이 지난 9월 5차 핵실험을 실시한 이래 뒤늦은 조치지만 내용에 있어서만큼은 강력한 편이다.

이런 식으로 경제 제재가 이뤄질 경우 북한으로서는 연간 최대 9억달러 안팎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북한의 취약한 경제 실정을 감안하면 이번 결의안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지금껏 국제사회가 취한 대북 조치 가운데 가장 파급력이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우리 정부도 이르면 오늘 중으로 북한에 대한 독자 제재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 한다.

이번 제재는 북한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경거망동을 전세계가 더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확인한 셈이다. 유엔 회원국으로서의 지위에도 제한을 가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더구나 급변하는 세계의 정세 변화도 북한에 결코 우호적이지가 않다. 특히 미국 정부의 태도 변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와 달리 도널드 트럼프 차기 정부는 북한의 잇따른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전략적 인내’가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내년 1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북한 핵 실험에 초강경 노선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문제는 이번 제재 방안을 확실히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유엔이 지난 10년간 각종 대북 제재안을 내놨지만 북한이 핵 야심을 계속 추구할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그것이다. 제재 방안에 ‘구멍’도 있었겠지만 북한 핵제재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국의 무관심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의도적인 감싸기가 북한 핵위기를 키워 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중국이 국제적으로 세계평화에 기여해야 할 위치에 오른 만큼 북한 핵개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이번 대북 제재가 제대로 효과를 거둠으로써 북한이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서울신문]

2. 예산 통과 지연은 또 하나의 경제 악재다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을 불과 하루 앞두고 어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원내교섭단체 3당이 최대 쟁점인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 편성에 합의했다. 여야 3당 정책의장이 누리과정 예산을 위한 3년 한시의 특별회계를 설치하기로 의견을 모아 예산안 처리의 최대 걸림돌을 제거함으로써 오늘로 예정된 법정 시한 내 합의처리 가능성을 높여 준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특별회계는 회계연도마다 누리과정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지방교육재정 교부금과 일반회계로부터의 전입금으로 마련하기로 했다고 한다. 특별회계 재원은 지방교육청이 누리과정 편성에만 쓰되 중앙정부도 1조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3당은 그간 법인세·소득세율과 누리과정 예산 확보를 주고받기식 ‘빅딜’로 진행해 왔다. 헌법은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12월 2일)까지 국회에서 의결하도록 하고, 국회법 85조는 소관 상임위원회가 예산안과 예산 부수법안 심사를 11월 30일까지 마치지 못할 경우 국회의장이 법안을 선정해 12월 1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야 3당은 누리과정 예산 문제에서 접점을 찾지 못해 예산안 심사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을 넘겨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법인세는 과표 500억원 초과 부분의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단계적으로 올리는 민주당 안이, 소득세의 경우 과표 3억원 초과 구간과 1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각각 41%와 45%의 세율을 매기는 국민의당 안이 자동 부의 대상에 올라와 있다.

1987년 개헌 이후 28년 동안 정부 예산안이 법정 시한 내 국회를 통과한 것은 단 일곱 차례에 불과하다. 예산안 국회 파행이 특정 정당이 예산안을 당리당략과 결부시켜 추진한 데서 비롯됐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회가 법정 시한 내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것은 연초부터 재정 집행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순이다. 과거에는 12월 31일 밤 12시를 넘겨 예산안이 처리돼 이듬해 1월 3일부터 집행된 적도 있다. 물론 시한을 넘겼다고 해서 재정 집행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기 재정 집행을 위해서는 조기 집행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등 12월 중순부터 준비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야는 새해 예산안이 가뜩이나 어려운 실물경제 동력을 살릴 최소한의 불씨가 돼 경제 회생과 일자리 창출 등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막판까지 합의 처리에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



3. 수용할 만한 ‘선 4월 퇴진, 후 9일 탄핵’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 키를 잡고 있는 새누리당 비주류가 대통령에게 ‘질서 있는 퇴진’을 위한 퇴로를 일시 열어 주면서 탄핵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새누리당은 어제 의원총회를 열고 내년 4월 말 대통령 퇴진과 6월 대통령 선거 실시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촛불 집회와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국가 원로와 정치권에서 제기한 질서 있는 퇴진을 비주류가 수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비주류는 주류인 친박계와는 달리 무작정 기다리지는 않겠다는 복안이다. 주류는 4월 말 퇴진을 당론으로 정한 뒤 향후 정치 일정을 야당과 협의할 생각이지만 비주류는 대통령이 4월 말 퇴진 약속을 분명히 밝혀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비주류가 제기한 ‘대통령의 4월 말 퇴진 약속’은 탄핵소추를 하지 않는 전제조건인 동시에 최후통첩의 성격을 띠고 있다.



야 3당은 새누리당 비주류의 도움 없이는 탄핵안 가결에 필요한 정족수 200석을 확보할 수 없다. 탄핵안에 공동보조를 맞추던 새누리당 비주류의 태도 변화로 야 3당은 향후 일주일 정도는 탄핵소추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어제 회동을 갖고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를 조율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민주당은 의총에서 2일 탄핵 추진을 당론으로 정했으나 국민의당이 발을 빼는 바람에 탄핵안 발의 자체가 무산됐다. 박 비대위원장은 탄핵안 발의보다는 가결이 더 중요하다며 탄핵안 표결 연기를 주장했다.



이에 앞서 추 대표와 비주류의 김무성 전 대표가 만났으나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추 대표는 대통령 퇴진 문제를 1월 말까지 마무리 짓자고 새롭게 제의했고, 김 전 대표는 퇴진 시한을 4월 말로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입장 차는 3개월이다. 협치의 정신으로 노력하면 좁히지 못할 것도 없다.

새누리당 비주류의 방향 선회로 공은 다시 박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청와대는 4월 말 퇴진 공표에 대해 “국회에서 정해 주는 대로 따르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시간은 대통령 편이 아니다. 7일이나 8일까지 입장 표명이 없으면 오는 9일 탄핵안 처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비주류가 응하지 않아 설사 탄핵안이 가결되지 않더라도 국정 혼란의 모든 책임은 여권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여야 영수회담이나 기자간담회 등의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비주류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 야당도 대통령의 입장 발표 때 가능한 한 향후 정치 일정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 질서 있는 퇴진과 탄핵의 갈림길에 서 있다.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화합을 위해서도 탄핵보다는 질서 있는 퇴진이 더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박 대통령이 퇴진 시한을 국민 앞에 밝히고 질서 있는 퇴진의 수순을 밟기를 기대한다.



[동아일보]

4. ‘세월호 7시간’ 열쇠 쥔 두 간호장교의 수상한 인터뷰

2년 전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 의무실에서 근무한 간호장교 조모 대위가 어제 연수 중인 미국 현지에서 “당일 나를 포함해 다른 의료진도 관저에 간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 대위는 태반주사, 프로포폴 등의 시술 여부에 대해서는 의료법을 거론하며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아 의혹을 증폭시켰다. 조 대위와 함께 근무했던 신모 전 대위도 하루 전날 기자회견에서 “청와대에서 통상적인 업무를 수행했고 박근혜 대통령을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동안 소재를 찾을 수 없던 두 장교가 하루 간격으로 나섰으니 누군가가 조율한 결과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의혹을 키운 것은 국방부다. 세월호 참사 당일 국군수도병원 간호장교가 청와대로 출장 갔다는 기록을 검찰이 확보했다는 지난달 17일 보도에 국방부는 “청와대로 출장 간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그러나 다음 날 해당 간호장교는 청와대 상주 근무자여서 출장 기록이 필요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8일에는 당시 청와대 의무실에서 근무했던 간호장교가 당초 알려졌던 1명이 아닌 2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 ‘잠적설’까지 제기됐던 조 대위가 네 차례나 의료법을 거론하며 강하게 부인하니 되레 의심이 커지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그 화급했던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청와대가 프로포폴이나 엠라크림 같은 마취제를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용시술 의혹이 새롭게 불거졌다. 300명이 넘는 국민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 대통령이 모든 인적 물적 자원 동원 명령을 내리는 대신 관저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탄핵 사유가 될 수도 있다.



국방부가 군 통수권자를 보호하기 위해 두 간호장교에게 모종의 압력을 가했다면 그 자체가 새로운 범죄라고 할 수 있다. 박영수 특검이 “비록 범죄혐의가 없더라도 특검은 국민이 궁금해 하는 의혹의 진상을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한만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밝혀내야 한다.



[조선일보]

5. 조희연, 새 역사 교과서 읽어나 보고 원천 봉쇄 나선 건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30일 서울 시내 18개 중학교 교장을 불러 이들 학교가 내년 3월부터 새 국정교과서를 교재로 실시하기로 했던 1학년 역사 수업을 하지 말도록 했다고 한다. 교장들은 예정된 역사 과목 편성을 취소하기로 했다. 고교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전망이다.



교육부는 새 역사 교과서에 대해 "12월 23일까지 국민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감이 확정되지도 않은 교과서 사용을 미루도록 종용하는 것은 학교의 교육과정 편성권과 교과서 선택권을 훼손하는 것이다. 조 교육감은 작년 정부 예산으로 558개 학교에 '친일 인명 사전'을 배포하며 "보수든 진보든 다양한 관점의 책들이 도서관에 비치돼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랬던 그가 새 역사 교과서에 대해서는 "검토하는 것조차 거부하겠다"며 원천 봉쇄에 나선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새 교과서 검토본을 한쪽에서는 '박근혜 교과서'라고 비난한다. 검토본에서 1960~70년대 서술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박정희만을 특별히 미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과오도 서술했다. 검토본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면에 대한 언급 없이 치적(治績)만 기술했다. 현재 상당수 고교가 쓰고 있는 한 검정 교과서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이 딱 한 장 나온다. 5·16 군사정변 때 군복에 선글라스 끼고 서울 시청 앞에 서 있는 모습이다.



반면 다른 어느 대통령 사진은 민주화 운동 때나 남북정상회담 때의 활짝 웃는 모습 등 4장이 실렸다. 이는 공정하고 균형 있는 서술인가. 조 교육감은 새 역사 교과서를 제대로 읽어나 봤는가. 더 이상 학교의 교과서 선택권에 개입하지 말라.



[세계일보]

6. 야당은 협상·탄핵 함께 해야 하는 정치현실 왜 모른 척하나

야 3당이 어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지 못해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하려던 계획이 무산됐다. 탄핵안 발의를 위해선 151석이 필요한데 국민의당(38석)이 반대해 더불어민주당(121석)과 정의당(6석)만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탄핵 열쇠를 쥔 새누리당 비박계가 ‘오늘 표결’ 불가로 돌아서자 국민의당은 “가결 가능성이 없다”며 민주당의 발의 동참 요구를 거부했다. ‘질서있는 퇴진’ 로드맵을 위한 여야 협상을 갖자는 비박계 중재안을 걷어찬 야당의 강공 일변도가 자초한 일이다. 

국민의당은 뒤늦게 탄핵안 ‘9일 처리’에서 후퇴한 ‘5일 처리’를 제안했고 야 2당은 지도부 판단에 일임했다. 그러나 5일 본회의를 열어 탄핵안을 처리하기 위해선 여당의 의사일정 합의와 비박계 표결 동참이 필요해 전망이 불투명하다. 비토밖에 할 줄 모르는 야당 지도부에는 리더십도 전략도 안 보인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탄핵 공조를 이끌기는커녕 일을 그르치고 있다.

추미애 대표는 어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조찬회동을 갖고 퇴진 시점과 탄핵 문제를 논의했다. 임기 단축을 위한 여야 협상을 거부한 야 3당 대표의 합의를 하루도 안 돼 무시한 것이다. 국민의당의 발의 대열 이탈에는 추 대표의 잇단 단독 플레이에 쌓였던 반감도 작용했다. 지난달 14일 추 대표가 나홀로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철회하는 바람에 국민의당이 발끈한 바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추 대표가 아무런 상의 없이 대통령 단독회담을 요구했던 것처럼 김 전 대표와 회동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민주당이 ‘플랜B’도 없이 무조건 하야만 외치는 건 ‘촛불 민심’ 때문으로 보인다. 협상에 나섰다가 역풍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새누리당이 촛불민심을 배신했다”며 “퇴진일정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민주당 의원 30여명은 탄핵안 의결을 촉구하며 국회 농성에 돌입했다. 

민주당이 계속 이런 식이라면 탄핵 여부도 불확실해진다. 민주당은 비박계의 ‘내년 4월30일’ 퇴진 로드맵을 거부했으나 국민의당은 유보했다. “탄핵과 대화를 병행하겠다”는 것이다. 추 대표가 ‘1월 말 퇴진’을 언급한 만큼 협상을 갖고 시기를 조율하는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비박계가 동참할 명분을 만들 수 있다. 촛불이 뜨겁더라도 정치권은 냉철하게 국정 정상화를 위한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중앙일보]

7.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 성패, 중국에 달렸다

5차 북핵 실험을 응징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가 실험 82일 만에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채택됐다. 전례 없이 긴 산통으로 다소 맥빠진 감도 없지 않지만 획기적인 대목도 적잖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북한의 석탄 수출 금액 또는 총량을 2015년의 38%인 4억90억 달러(4720억원) 또는 750만t 중 낮은 쪽으로 통제한다는 규정이다. 은·구리·니켈·아연 등 북한의 주요 수출 광물의 반출을 막겠다는 것도 김정은 정권으로서는 무척 아플 내용이다. 이들 조치가 발동되면 북한이 입을 손해는 한 해 8억 달러(9390억원)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유엔 조치에 만족하지 못한 한·미·일 3국은 곧 독자적 대북 제재에 들어간다고 한다. 금융제재 대상 확대, 북측 인사에 대한 출입국 통제 강화 등이 골자가 될 전망이다. 강력한 유엔 제재에 추가되는 조치인 만큼 잘만 하면 북한의 숨통을 확실히 조여 협상 테이블로 걸어오도록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단서가 붙는다. 중국이 결의 내용을 충실히 지킨다는 전제다. 그간 우리는 중국이 민생 등을 핑계로 북한의 숨통을 터줘 왔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이번 결의 채택 직후에도 류제이(劉結一) 유엔 주재 중국대사는 “제재가 북한의 민생과 정상적 무역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고 한다. 민생을 구실로 언제든 대북 제재를 완화할 심산임을 내비친 셈이다.

공식적으로 대북 제재를 늦추지 않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은 여전히 많다. 석탄 수입업자들이 제대로 신고할지부터 의문이지만 지역경제 발전에 혈안이 된 지방 당국이 중앙 정부의 방침을 엄격히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허점이 없게 누구보다 눈을 부릅뜨고 지켜야 하는 장본인은 바로 우리다. 중국 당국이나 민간업자들이 결의를 위반하면 우리가 달려가 항의하고 제지해야 한다. 그런 중요한 시점임에도 우리는 지금 리더십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다. 하루빨리 국내 상황을 추슬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매일경제]

8. 朴 특검 국민정서에 휘둘리지 말고 오직 법과 팩트로 말하라

'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칠 박영수 특별검사가 어제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수사팀장으로 영입하면서 '특검 정국'의 막이 본격적으로 올랐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수사를 맡은 박 특검의 책임감과 각오는 남다를 것이다. 국가적으로 엄중한 시기이고 전 국민의 시선이 쏠려 있는 사건인 만큼 공명정대한 수사로 모든 혐의를 한 점 의혹도 없이 규명해야 한다. 

박 특검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수사하겠다"며 "수사 영역을 한정하거나 대상자의 지위 고하를 고려하지 않고, 일체의 정파적 이해관계 역시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는데 끝까지 이 원칙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박 특검이 언급했듯 '특검은 주권자인 국민 요구에 따른 수사'인 만큼 이번 사태로 국가에 실망하고 자괴감에 빠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물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국민이 특검에 바라는 것은 검찰이 파헤치지 못한 부분까지 모두 들춰내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이번 특검의 최대 쟁점은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의혹, 대통령의 제3자 뇌물수수 혐의 입증이 될 것이다. 검찰이 건드리지 못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국정농단을 낱낱이 밝히는 것도 특검의 숙제다. 하지만 특검이 국민의 기대를 의식해 여론에 휘둘려서는 절대 안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정서법'이 헌법 우위에 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떼법'이 특정사건을 좌지우지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떼법은 법치의 훼손을 의미하는 만큼 박 특검은 오로지 법과 팩트에 입각해 수사해야 한다.

검찰 대면조사에 응하지 않았던 박근혜 대통령도 조건 없이 특검에 협조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특검에 응해 소상히 밝혀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박 특검이 우 전 수석과 막역한 최윤수 국정원 2차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는 "수사에 전혀 영향이 없다"고 답변했는데 인연에 얽매이지 않는 수사로 우려를 불식시키기 바란다. 또한 홍만표, 진경준, 김형준 등 비리검사로 무너진 사법시스템을 복구하기 위해서라도 흔들림 없이 진상 규명에 나서야 한다.



9. 증세 압박하며 보육예산 따내려는 야당의 정략적 행태

헌법 제54조에 따르면 국회는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기 30일 전까지 정부가 짠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 400조원 넘는 내년 나라살림이 오늘 중에는 모두 확정돼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야는 마지막까지 예산과 부수법안들을 놓고 치열한 수싸움을 계속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을 더 따내려 정부와 새누리당이 강력히 반대해온 법인세 인상안을 밀어붙이는 양동작전을 썼다.

우리가 누차 강조했듯이 지금은 법인세를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미국, 일본, 영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줄줄이 법인세를 내리고 있다. 기업 투자는 가뜩이나 위축되고 최악의 고용절벽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마당에 정세균 국회의장은 과세표준 500억원 초과 법인에 대한 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는 야당안을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했다. 고소득자 최고세율을 올리는 소득세법 개정안과 누리과정에 대한 예산 지원을 늘리는 안도 부수법안에 포함됐다. 이들 법안이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본회의에 자동으로 올라가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야당도 현실적으로 법인세 인상이 무리라는 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야당이 스스로 집권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면 기업들의 세금 부담이 무거워질수록 집권 후 경제 운용이 어려워지리라는 걸 알고 있을 터다. 그런데도 법인세 인상안으로 정부와 여당을 몰아세운 건 무상보육 예산 확보를 위한 작전으로 보인다. 실제로 야당은 협상 과정에서 누리과정 예산과 법인세 인상안 간 빅딜 가능성을 계속 흘려왔다.

정부는 해마다 누리과정 예산 부담을 놓고 중앙과 지방정부 간 줄다리기가 벌어지면서 보육대란이 되풀이되는 걸 막으려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교육세로 5조2000억원 규모 지방교육정책지원 특별회계를 꾸리려고 했다. 그러나 야당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2조원 중 절반을 중앙정부가 별도로 지원하는 안을 고집했고 어제 여야 정책위원회 의장들은 이를 위한 한시적 특별회계 신설을 정부에 요구했다. 법인세 인상과 무상보육 예산 증액 중 차악을 선택하라고 정부를 몰아붙이는 것이다.



[서울경제]

10. 기존 산업 마인드 내려놔야 4차산업 길 열린다

일본과 중국·미국·독일 등 세계 주요 제조업대국들이 올 들어 잇따라 4차 산업혁명에 불을 붙이고 있지만 우리의 준비상황은 이들 국가에 크게 뒤처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일 웨스틴조선호텔 서울에서 ‘제4차 산업혁명과 산업의 융복합’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2016년 글로벌 산업경제포럼’에서 서중해 KDI 선임 연구위원은 시장환경과 지식기반, 기업가적 활동, 사회기반시설 및 정책 등에서 한국 신산업혁명의 준비성이 이들 국가보다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지금 상태대로라면 선진국은 물론 경쟁 제조국가들과의 4차 산업혁명 경쟁도 녹록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미 주요 국가들은 4차 산업혁명으로 시장을 선도한다는 목표 아래 앞다퉈 제조업 첨단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4월 ‘신산업구조 비전,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일본의 전략’을 발표했다.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으로 산업을 고도화해 2020년까지 부가가치 30조엔(약 330조원)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다. 중국도 ‘제조 2025’ 전략 등을 통해 10년간 정보기술과 바이오, 우주항공 등을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을 공표한 바 있다. 

우리도 스마트공장 확산 등을 핵심으로 한 ‘제조업혁신 3.0’ 전략을 마련했지만 일본과 상당히 겹치는데다 추진 속도도 늦다는 지적이 많다. 올 초 투자은행 UBS가 평가한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준비 정도는 139개국 중 25위로 미국(5위), 일본(12위), 독일(13위)에 크게 뒤지고 중국(28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선진국과의 격차 좁히기가 시급한데 오히려 더 벌어질 것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4차 산업혁명은 각 나라의 미래 성장을 좌우하고 경제·사회 시스템과 노동시장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뜩이나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쓴맛을 볼 수밖에 없다. 서둘러 신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를 풀고 노동 유연성도 강화해야 한다. 기존의 산업 마인드를 내려놓고 새로운 생태계 구축에 나서는 것만이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 길이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윤고은의 참새방앗간] 성희롱 남녀불문

데미 무어가 마이클 더글러스를 성추행한 게 20여 년 전이다. 

국내에서는 1995년 개봉한 영화 '폭로' 얘기다. 

영화는 직장 내 여성 상사가 지위를 이용해 부하 남성 직원을 성적으로 유혹하려다 실패하자, 도리어 부하에게 성희롱 혐의를 뒤집어씌우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남성은 여성 상사가 자신을 성희롱했다고 주장하고 나서고, 그의 변호사 역시 이들 만남의 주도권이 여성 상사에게 있었음을 입증하려고 한다. 

하지만 2016년인 지금도 여전히 '이색적'인 일로 받아들여지는 여성의 남성 성희롱이, 20년 전에는 오죽 낯설게 다가왔을지는 영화를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성적으로 개방적인 미국이 무대다. 

영화는 성범죄는 권력의 문제임을 이야기한다. 

물론, 물리적인 힘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태반이라 아직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범죄가 압도적이지만 권력을 이용할 경우 여성도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20년 전 이 영화는 고발했다. 

올 한해 '대세 개그우먼'으로 주목받던 이세영이 난데없는 성희롱 논란으로 고꾸라졌다. 

'응답하라 1988'의 '왕조현'에서 시작해 개그 프로그램과 뷰티 프로그램까지 섭렵하며 신나게 상승곡선을 그리던 이세영은 아이돌그룹 '오빠'들을 성희롱했다는 '혐의'로 단숨에 급전직하 추락했다.



심지어 이번 성희롱 논란은 '피해자' 남성이 제기한 게 아니라, 그들의 팬인 여성들이 제기했다는 게 중요한 포인트다. 

일각에서는 '너무 과한 거 아니냐', '개그우먼의 장난이었다'는 옹호론도 나오지만 '대세'는 이세영이 성희롱을 했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남녀를 바꿔 남자 개그맨이 걸그룹 멤버들에게 같은 행동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이론 없이 여론은 한목소리로 맹비난을 쏟아냈을 듯하다. 

이세영은 공식 사과를 했지만, '피해자'인 아이돌그룹의 팬이 국민신문고에 이세영을 성추행 혐의로 조사해달라는 민원까지 제기해 경찰이 이 사건을 정식으로 접수했다.

SBS TV 예능 프로그램 '헤이헤이헤이'에서 신동엽과 김원희가 여성 상사의 남성 부하 직원 성희롱을 콩트의 소재로 삼아 웃음을 줬던 것도 벌써 10년 전이다. 이제는 남편을 강간한 혐의로 아내가 법정에 서기도 하는 세상이다.

작고 가녀린 체구의 개그우먼이 웃자고 한 '짓'이 지금 시대에서는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 됐으니 자나 깨나 성희롱 조심이다.

물론, 남녀불문하고 말이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은퇴 없는 삶을 위하여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은퇴를 하지 않을 작정이다. ‘은퇴 후 미래’는 중년 이상 지인들과의 이야기에서 늘 빠지지 않는 주제다.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은퇴 후 미래에 대해 불안해한다.

나는 불안하지 않다. 아무도 은퇴를 강요하지 않는 자유업을 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객이 없더라도 혼자서 옷을 만드는 즐거움으로 살아갈 생각이다. 연금도 퇴직금도 없는 프리랜서로 살면서 호기롭게 말할 수 있다. 1년에 단 한 벌의 주문이 있더라도 그 옷을 즐거이 만들어 줄 수 있을 때까지 일하겠다고.

눈이 침침해져 재단선이 흔들리기도 하겠지만, 수십 년 경험한 노하우가 있으니 두 배, 세 배, 열 배의 시간을 들이면서라도 나처럼 늙어가는 미싱사들과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공들여 옷을 만들 생각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들보다 많진 않겠지만,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디자인 펜과 재단 가위는 늘 내 몸 가까이에 둘 작정이다. 물론 추운 겨울날 공연장에서 나오며 콜택시를 부를 수 있을 만큼의 돈은 미리 좀 벌어둬야 하겠지만 말이다. 

청년실업은 매년 이슈인데 봉제공장에는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 라인 작업이라 하여 자동화 및 컴퓨터화 추세에 사람이 점점 부품으로밖에 쓰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이 해야 할 일이 현장엔 꼭 있기 마련인데도 말이다.

대학 패션디자인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국내외 콘테스트에서 화려한 상도 무수히 탄 친구들이 하이패션 브랜드에서 몇 년을 견디지 못하고 아예 패션업계와 등을 돌리는 경우도 많이 봤다. 자신은 일류 디자이너라는 자부심을 떨칠 수가 없는데, 몇 년을 동대문시장에서 단추 같은 부자재만 다루고, 택배기사 노릇만 해야 하는 처지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가. 30여 년 전 어깨가 무너질 듯이 무거운 원단과 샘플 보따리를 들고 8월 염천 더위에 버스를 세 번씩이나 갈아타고 가봉을 간 집에서 뜨거운 콜라를 얻어 마시던 그 시절에도 나는 꿈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 내게 어찌 은퇴를 상상하라는 말인가. 

누군가 나이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했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 입을 열어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장 안정된 직장과 눈앞의 이익을 좇지 말고, 평균수명 100세 시대에 40, 50년 뒤의 삶 속에서 나 자신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뭔지를 생각하며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나아가 입만으로 살아갈 생각보다는 내 몸을 아끼지 말며 기능인, 나아가 기술인, 더 나아가 예술인으로 평생 은퇴 없이 삶을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권하고 싶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은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것이면 최소한의 성공을 이룬 것은 아닐까 한다.



3.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존 브라운

미국이 멕시코와 전쟁(1846~48)을 벌여 텍사스와 뉴멕시코 캘리포니아를 얻고, 동부의 시민들이 ‘노다지’를 찾아 서부로 몰려가던 무렵(골드러시, 1848~55), 남부의 주들은 노예들의 저항과 북부 자유주들의 압박으로부터 ‘노예주’의 주권을 방어하기 위해 민병대 정비 등 방위태세를 갖추느라 분주했다. 

북부는 산업혁명과 중공업화로 노동자 부족사태에 직면해 있었고, 남부는 여전히 노예노동에 기반한 면화농업이 주요 산업이었다. 북부는 유럽 공산품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율 관세 등 보호무역이 필요했고, 남부는 면화 수출을 위한 자유무역과 관세 철폐가 관건이었다. 1850년 탈주노예법은 연방이 캘리포니아를 자유주로 편입하면서 남부 노예주에 안긴 선물이었다. 1808년 노예수입이 금지된 뒤로도 밀무역은 여전했지만 남부 정치인과 지주들 입장에서 노예 확보는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코네티컷 주 출신 백인 존 브라운(John Brown, 1800~1859)은 오직 무력으로만 남부의 노예제를 없앨 수 있다고 믿는 맹렬한 노예 폐지론자였다. 그는 1859년 10월 16일, 단 22명의 타격대(흑인 5명 포함)를 이끌고 버지니아 주 하퍼스페리(Harpers Ferry)의 연방 병기고를 점령했다. 머스킷과 라이플 등 10만여 정의 무기를 탈취해 노예들을 무장시킴으로써 남부의 경제적 기반을 와해시키고 노예 존치주의자들과 맞서고자 했다. 

타격대는 하지만 지역 민병대와 연방 로버트 리(Robert E. Lee) 대령 휘하의 군인들에게 포위돼 전투 중 브라운의 두 아들을 포함 10명이 숨졌다. 부상 당한 채 포로로 잡힌 브라운은 살인과 반란 공모, 반역죄 등으로 사형을 선고 받고, 연방 정부의 승인 하에 12월 2일 교수 당했다. 그는 “나 존 브라운은 이 죄 많은 땅의 범죄행위는 피가 아니고는 어떤 것으로도 씻을 수 없다는 점을 단연코 확신하는 바이다”라고 최후진술했다. 

그는 당시에도 또 이후에도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영웅이라는 평, 극단적 모험주의자라는 평. 하지만 그의 판단이 현실적이었음은 그를 “미치광이”라 불렀던 에이브러햄 링컨에 의해, 1년여 뒤의 남북전쟁(1861~65)에 의해 입증됐다.



4. [조선일보][일사일언] 고양이의 애환

우리 동네에는 붙임성 좋은 터줏대감 길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누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였는데 1~2년 전쯤 이사를 가면서 버렸단다. 나는 이사 오던 날부터 종종 밥도 주고 잘 자리도 봐주면서 녀석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2~3주 전부터 이 녀석이 아예 우리 집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눈치다. 복도에서 한참을 놀아줘도, 좋아하는 간식을 줘도 떠나지 않고 자꾸 현관문에 머리를 비비며 울어댄다. 슬슬 날씨가 추워지니 따뜻한 집 안이 그리운가 보다. 키울 여력이 안 되어 쫓아 보낼 때마다 안쓰럽고 얼굴도 모르는 옛 주인이 원망스럽다.



반면, 생후 두 달 되었을 때 분양받아 만 4년 넘게 키우고 있는 우리 집 반려묘는 호시탐탐 바깥세상을 노린다. 현관문만 열면 쏜살같이 밖으로 뛰쳐나가는 걸 겨우 집까지 유인해 데려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무리 혼을 내고 달래 봐도 소용없으니, 괜히 야생동물을 집에 가둬 키우는 게 아닌가 회의가 들기도 한다.



각각 다른 이유로 두 고양이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 문득 둘의 생활이 뒤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 봤다. 집에 갇힌 길고양이는 추위와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겠지만 답답함을 견디지 못할 테고, 길거리로 나간 집고양이는 자유를 누리는 대신 먹이를 구하느라 진땀 뺄 것이다. 처음에는 원래 살던 곳을 그리워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만약 어려움을 딛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된다면 어떤 것이 더 나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 인생이나 묘생이나 양손에 떡을 쥘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이맘때쯤에는 늘 반성과 계획들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 사이에는 언젠가 삶의 갈림길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도 있고, 먼 곳에서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향한 열등감과 질투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으려 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모든 삶에는 애환이 따른다는 걸 알 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잃은 것이 더 귀한 게 아니었는지는 곰곰이 따져봐야겠다.



5. [세계일보][양경미의영화인사이드] ‘신비한 동물사전’ 속의 현실

1926년 뉴욕에 도착한 마법사 뉴트(에디 레드메인)는 신비한 동물들을 보관해 둔 가방을 잃어버린다. 가방에서 탈출한 동물들이 말썽을 부리자, 그는 마법의회로부터 인간사회와 마법사회에 혼란을 줬다는 오해를 받는다.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은 뉴트가 신비한 동물을 구조하고 혼란을 일으킨 옵스큐라의 정체를 밝혀 오해를 푼다는 내용이다.

비수기 극장가에 찬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가운데 ‘신비한 동물사전’은 360만 관객을 동원하며 11월 흥행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관객을 끌어 모으는 영화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환상적인 마법세계에 첨단 CG(컴퓨터그래픽)는 재미와 신비감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 ‘신비한 동물사전’은 해리포터로 잘 알려진 영국 작가 조앤 롤링이 제작과 각본을 맡았다. 전 세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그는 해리포터와 같은 마법 세계관을 ‘신비한 동물사전’에도 담아냈다.



배경이 된 1926년 뉴욕은 에너지가 넘쳐나는 매력적인 도시로 표현된다. CG로 만들어진 동물들은 실제 동물의 왕국을 보는 듯하다. ‘니플러’, ‘데미가이즈’처럼 사랑스러운 동물에서 ‘천둥새’, ‘스우핑이블’ 같은 상상력이 발휘된 동물까지 무척이나 다채롭고 다양하다. 여기에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도 한몫을 한다.



판타지 영화가 답답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게 돕는다. ‘최순실 게이트’로 하루하루 뉴스를 접하는 것이 버거운 요즘이다. 지치고 갑갑해진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판타지나 코미디를 보는 것이다. 강동원 주연의 ‘가려진 시간’과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현실을 벗어난 국내외 판타지 영화가 그나마 극장가를 메우고 있는 것도 이에 대한 방증이다. 또한 코믹영화 ‘럭키’가 10월 유일하게 700만 관객을 동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26년을 보며 2016년을 떠올린다. 영화 속 현실은 리얼리즘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판타지 영화에서도 은유와 상징으로 읽어낼 수 있다. 정치인에 비유되는 마법사는 더 큰 권력을 가지려 하고 소년 몸에 들어간 옵스큐라는 테러를 일으켜 혼란한 사회를 만든다. 이에 마법의회는 인간과 동물을 위험군으로 간주한다. 외국인노동자와 이민자를 배척하는 현실과 영화가 교차되면서 관객들은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를 떠올린다. 이민과 세계화를 반대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1930년대 세계를 대공황의 늪으로 몰고 간 보호무역주의와 고립주의를 재현시키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한다.

작가는 잠수함의 토끼로 비유된다. 미래를 알려주는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앤 롤링은 ‘신비한 동물사전’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가. 영화 속 1926년은 경기침체와 실업으로 세계가 대공황으로 들어가는 시기였다. 지금은 그때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신고립주의와 보호무역으로 더 심각한 경기침체와 실업대란을 두려워하고 있다.

판타지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재미있는 마법 이야기와 화려한 CG세계에서 잠시나마 지친 현실을 잊는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 내우외환에 처해 있는 우리 사회를 떠올리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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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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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2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동아일보]

1.美 역대 최강 대북제재법안에 야당은 느끼는 게 없나

미국 상원이 10일(현지 시간) 역대 대북(對北) 제재 법안 중 가장 강력한 ‘2016 북한 제재와 정책강화 법안’을 참석 의원 96명 전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 사이버 공격, 지도층의 사치품 구입에 쓸 수 있는 달러 등 김정은의 통치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개인과 단체를 제재할 수 있는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을 둔 것이 핵심이다. 

북한만을 겨냥한 첫 제재법안이 될 이 법안은 이란 핵 동결을 이끌어낸 포괄적대(對)이란제재법이나 이란핵무장방지법처럼 강력한 강제성을 띤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이란제재법에 따라 2012년 이란과 거래한 중국의 국영석유무역회사에 미국 수출면허 금지 등의 제재를 내림으로써 중국을 압박해 이란 제재에 동참시킨 바 있다. 북한 제재법안도 행정부에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어 미국의 의지에 따라서는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이나 은행 제재가 가능하다. 관건은 미국이 중국과 외교 마찰을 각오하고 북핵 해결에 강하게 나서느냐다. 

표결에 앞서 26명의 의원이 7시간 동안 북을 성토하고 강력한 대북대응을 강조한 것은 고무적이다. 대통령선거 공화당 경선 후보인 마코 루비오 의원과 테드 크루즈 의원은 잠시 유세를 중단한 채 표결에 참여했다. 민주당 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의원도 표결엔 불참했지만 법안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는 등 미 의회는 선거보다 안보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 정부는 이제 북한이 이란처럼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미국과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그러나 한국의 국회는 북을 비난하는 결의안만 채택했을 뿐 북한인권법안을 11년째 묶어놓고, 테러방지법은 언제 처리할지 기약 없는 상태다. 오히려 정부의 대북 제재가 4월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북풍(北風) 카드’인지를 놓고 여야 간에 민망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북을 뼈저리게 응징할 방법을 찾기는커녕 서로 손가락질하는 이 나라 정치권을 세계가 어떻게 보겠는가.

2.북핵 해결을 위한 안보 위기, 박 대통령이 국론 모아야

북한이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 하루 만에 개성공단 폐쇄와 남북 간 연락 채널 전면 중단을 밝혔다. 북은 어제 오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통해 “개성공업지구를 파탄시켜 우리의 핵무력 강화와 위성 발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라며 개성공단 폐쇄 및 군사통제구역 선포, 17시(한국 시간 오후 5시 반)까지 남측 인원 추방, 모든 자산 전면 동결, 서해 군통신선 및 연락관 직통전화 폐쇄 등을 발표했다. 

북의 반발이 기습적이기는 하지만 예상됐던 일이다. 개성공단에 체류하고 있던 우리 측 인원 전원이 어젯밤까지 무사히 귀환한 것이 다행스럽다. 이로써 남북 간의 대화 창구가 완전히 끊기게 된 상황은 안타깝지만 북의 대응이 강경한 것은 그만큼 개성공단 중단의 타격이 컸다는 의미다. 

북이 개성공단에서 유입된 현금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썼다는 우리 정부의 발표에 대해 “초보적인 셈세기도 할 줄 모르는 황당무계한 궤변”이라고 주장한 것은 가소롭기 짝이 없다. 북이 마약·무기 밀매, 해외 근로자 임금 착취 등으로 김정은 통치자금을 조달하고 대량살상무기까지 개발한 것을 국제사회가 뻔히 안다. 북이 개성공단의 재개를 원한다면 핵을 포기하고 대화와 교류협력의 장으로 나오면 될 것이다. 

북이 이를 거부할 경우 남북관계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북에 대한 일방적인 퍼주기가 결국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 돌아온 것을 고려하면 지금의 한반도 안보 위기는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진통이고 언젠가는 거쳐야 할 불가피한 과정으로 봐야 한다. 문제는 북이 개성공단을 중단시킨 대가를 몸서리치게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한 대로 긴장의 수위를 더욱 고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핵과 미사일에 쏠린 국제사회의 이목을 남북 간의 충돌로 돌리기 위해서라도 북은 대규모 도발은 아니어도 후방 침투나 테러, 사이버 공격 등 은밀하고 추적이 쉽지 않은 도발을 할 개연성이 높다. 만반의 대비가 필요하다.

예측 불가능의 김정은이 핵 개발을 계속하는 한, 우리는 한 가닥 말총으로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다모클레스의 칼’ 아래 앉아 있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까지의 외교적 노력은 실패했고 더는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면,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도록 제재와 압박을 가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에 강력한 압박을 하지 않으면서 유엔 안보리에 강력한 압박을 주문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북은 성명에서 ‘남조선 인민들이 격분에 넘쳐 규탄하듯이’라고 남남(南南)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검토,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등 정부가 나라의 명운을 걸고 북핵 해결을 위해 꺼내든 대북 제재 조치에 국력을 결집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와 국민이 하나 되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국민과 여야 대표에게 현재의 안보 상황을 소상히 알리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야당도 당리당략을 떠나 도울 것은 도와야 한다. 우리가 일치단결해 안보 위기를 넘길 것인지, 잠시 발끈하다 집안싸움 때문에 제풀에 꺾일 것인지에 한반도의 장래가 달려있다.

[이데일리]

3.북한에서 벌어지는 공포정치 흔적들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 처형설로 북한 체제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그제 리 총참모장이 ‘종파분자 및 비리’ 혐의로 이달 초 전격 처형됐다고 한다. 사실로 확인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고모부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까지 처형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허튼소리만은 아닌 듯하다.

이로써 김 위원장 집권 4년 남짓에 총참모장 4명 중 3명이 숙청·처형됐다. 총참모장은 총정치국장과 인민무력부장 다음의 군 서열 3위로, 우리로 치면 합참의장 격이다. 작년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김 위원장의 연설 도중 졸은 데다 말대꾸한 ‘반역죄’로 재판 절차도 없이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됐다. 권력의 수뇌부조차 김 위원장 눈 밖에 나면 한낱 파리 목숨인 북한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들이다.

김 위원장 치하에서 처형된 간부가 벌써 100명 이상에 이른다. 일각에선 36년 만에 열리는 오는 5월의 노동당 7차 대회를 고위직 숙청의 분수령으로 점치지만 김 위원장의 ‘공포통치’가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때일수록 냉철한 정세 판단이 요긴하다. 공포통치가 군부에 대한 불신 때문인지, 내부 권력다툼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 어린 김 위원장의 자격지심 때문인지부터 가려야 정확한 처방을 내릴 수가 있다.

지나치게 잦은 군 수뇌부 교체야말로 김 위원장이 군부를 장악하지 못한 증좌라는 얘기도 그럴듯하나 온건파인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작년 말 석연찮은 교통사고로 죽은 것만 봐도 권력다툼이 한창이란 논리가 더 일리가 있어 보인다. 강경파가 득세해도 그렇지만 “아버지가 못해낸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김 위원장의 소영웅주의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예측하기 힘들다. 최근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된다.

최근 북한 상층부가 동요하고 있고 실제 탈북을 감행하는 경우도 늘어났다는 사실은 공포통치의 종막이 멀지 않았다는 신호탄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고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우리부터 단합해야 한다. 적전분열은 북의 섣부른 도발을 부추길 뿐이다.

4.글로벌 금융불안 맞설 카드 있는가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금리인상 속도를 늦추겠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옐런 의장은 그제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강하게 나타나면 금리를 올리겠지만 경기 흐름이 실망스럽다면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금리 추가 인상을 기정사실화해 왔던 입장에서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 언급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 양상이 미국에 있어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 흐름의 난기류가 중국의 위안화 가치 하락에서 비롯됐지만 미국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연준이 지난해 12월 기준금리를 7년 만에 0.25% 포인트 올리면서 자금이 미국으로 몰리는 과정에서 신흥국의 금융불안을 야기했지만 그 자체가 미국 경제에도 위협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이 기준금리를 또 올린다면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채질하는 셈이다.

아시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내 증시가 설 연휴로 휴장하는 사이 일본 닛케이지수가 폭락한 것이 하나의 사례다. 닛케이평균주가 지수는 지난 9일과 10일 연속 폭락함으로써 장중 한때 1만60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1년 4개월 만의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엔화 가치는 달러당 114.63엔을 기록하는 등 1년새 최고 수준이다.

일본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등 부양카드를 꺼냈지만 주식은 폭락하고 엔화는 강세를 보이는 기묘한 형국이다. 그나마 어제는 일본 증시가 건국기념일 휴장으로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홍콩H지수가 5% 넘게 폭락하고 코스피지수도 3% 가까이 떨어지는 등 아시아 금융시장이 시계 제로의 안갯속이다.

한국도 글로벌 금융 불안을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니다. 중국발 경기부진으로 위기를 맞은 가운데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고 있다. 일본 등 해외경제의 악재도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중이다. 다음주로 예정된 금통위를 앞두고 이주열 한은총재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경제위기 속에서 글로벌 금융시장 변화에 따른 총제적인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신문]

5.북 도발, 테러방지법 통과로 대비를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을 제재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범국민적·초당적 대처가 긴요한 시점이다. 국회도 이런 여론을 좇아 그제 본회의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 규탄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도 영 미덥지 않다. 이후 여야가 딴소리하고 있어서다. 어떻게든 북한의 핵미사일 실전 배치를 막아야 한다는 대의를 인정한다면 정치권도 소이(小異)에 휘둘리지 말고 대동(大同)의 자세를 보여주기를 당부한다.

김정은 정권은 우리 정부나 국제사회가 지원을 하든, 제재를 하든 핵무장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기세다. 북측이 지난날 핵실험을 강행한 후 유엔 안보리가 제재 방안을 조율하는 중인 며칠 전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지 않았나. 개성공단 가동으로 알토란 같은 달러를 챙기면서도 핵·경제 병진노선을 포기하지 않았던 김정은이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 등 독자 제재에 나섰다 해서 태도를 바꿀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예기치 않은 국지적 도발이나 대남 테러로 맞대응할 개연성이 농후하다고 봐야 한다.

이런 까닭에 일차적으로 철저한 군사적 대비 태세가 긴요하다. 북의 도발 기미를 사전에 탐지해 응징할 역량을 충분히 갖춰 놔야 한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건 북측이 테러를 자행할 틈을 주지 않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핵 문제뿐만 아니라 북한 정권의 주민 인권 유린이나 대남 테러에 대해서도 한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야당 일각의 태도는 실망스럽다. 기권한 5명이나 불출석자를 빼면 만장일치에 가까운 243명이 찬성해 ‘북 미사일 규탄 결의안’을 처리해 놓고 갈지자걸음을 하고 있어서다. 어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공위성 아니냐”며 북한을 역성드는가 하면 국민의당은 개성공단 중단에 대해 “자해” 운운하는 논평을 했다가 수정하기도 했다.

이래서야 가뜩이나 생명의 존엄성과 인권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둔감한 김정은 정권의 테러 도발 유혹을 끊어내겠나. 미 상원은 어제 역대 최강의 대북 제재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대로라면 북한과 거래를 하는 제3자도 제재를 할 수 있어 미국 기업도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국회는 ‘맹물 결의안’ 하나 내놓고 할 일을 다했다고 할 건가. 지금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국민의 안전과 북한 주민의 인권이지 북 지도부의 심기가 아니다. 미사일 규탄 결의가 진심이라면 여야는 계류 중인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을 속히 처리해야 할 것이다.

6.北 개성공단 폐쇄, 기업 피해 최소화해야

북측이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조치에 맞서 초강경 맞불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북측은 어제 개성공단의 우리 측 자산을 전면 동결하고, 우리 측 인원을 전원 추방했다. 아울러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한편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해 버렸다. 남북 간 강대강 대결 국면에서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과 근로자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갈 수밖에 없게 됐다. 철수를 준비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듯 빈손으로 쫓겨났으니 걱정이 이만저만 크지 않을 것이다. 물건 및 설비를 반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은 북측의 ‘몽니’에 울분을 삭이기가 쉽지 않다.

입주 기업들이 입게 될 피해와 관련, 정부는 ‘개성공단 기업 종합지원센터’를 설치해 입주 기업들을 지원하고, 11개 부처 차관급 인사들로 합동대책반을 꾸려 구체적인 피해보상 등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는 남북협력기금 대출원리금 상환 유예 및 특별대출, 경협보험금 지급, 운전자금 지원, 신용보증기금 특례보증 등 2013년 4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 당시의 지원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제발 입주 기업인과 근로자들의 입장에서 지원책을 세워달라는 것이다.

입주 기업 대부분은 해외나 국내에 대체공장 없이 개성에만 공장을 둔 영세업체들로 알려졌다. 이들에게 공장 가동 중단과 폐쇄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납기를 못 맞춰 거래처는 모두 끊기고 말 것이다. 당장 인력 구조조정이 시작될 테고, 도산 기업이 속출할 수도 있다. 수천명의 근로자와 그 가족들이 엄동설한에 거리로 나앉을 판이다. 북측의 핵·미사일 개발 중단을 전제로 우리 측이 취한 조치인 만큼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고, 실제 북측이 폐쇄를 선포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2013년 가동 중단 사태와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번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를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행해진 행정적 행위”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판단’ ‘행정적 행위’라는 대목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침해된 기업 활동과 손실에 대해서는 정부가 전적으로 보전해 주는 게 맞는 것이다. 입주를 독려할 때와는 달리 피해 보전은 생색만 낸다면 이후 누가 정부 시책에 호응하겠는가. 물건이나 설비, 자산 등 계량할 수 있는 손실 외에 거래처 단절 등 앞으로 발생할 예상 손실 등도 충실하게 반영해야 할 것이다. 입주기업들이 등을 돌린다면 대북 제재 효과 또한 반감될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는 사실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올인하는 북측을 제재할 수 있는 우리 측 ‘카드’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일견 예상됐던 조치이기도 하다. 북측이 폐쇄 조치로 맞대응함에 따라 이젠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됐다. 우리 내부의 단합된 의지를 보여줘 이번 조치의 효과를 극대화해야만 한다.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남남갈등 양상으로 치달아선 북측만 웃음 짓게 할 뿐이다. 정부·여당은 더 설득하고, 야권은 자제하며, 국민은 인내함으로써 혼연일체가 돼 북측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때이다.

7.비현실적 저출산 정책으로 ‘인구 절벽’ 못 막아

성인 97.5%가 정부의 저출산 정책을 못 미더워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사실상 거의 모든 국민들이 정부 정책이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의미다. 정부가 지난 10여년간 80조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했지만 합계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1.2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국민 불신이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그제 발표한 ‘저출산·고령화 대응 국민 인식 및 욕구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면 정부의 저출산 정책에 대해 응답자의 2.5%만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38.5%는 정부가 ‘예산 등의 한계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35.6%는 ‘일부 영역만 노력해 가시적 효과가 나는 데 역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결과는 그동안 정부가 항목만 늘려 찔끔 도와주는 백화점식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연 8조원 정도의 저출산 예산도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으로 ‘지원 수준 등이 현실과 맞지 않았다’는 응답이 30.9%로 가장 많았다. ‘가짓수는 많지만 내게 해당하는 정책은 없다’는 반응도 25.2%나 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기혼자들은 추가 출산을 하지 않는 이유로 48.8%가 ‘자녀를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들어서’라고 말했다. 뒤집어 보면 양육비 부담만 없으면 아이를 더 낳겠다는 뜻이다. 정부가 보육과 교육,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정책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스웨덴과 프랑스가 본보기다. 스웨덴은 1990년대 이후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보육 인프라 확보에 투자하고 있다. 어린이집, 종일 유치원, 가정 탁아 중 선택해 아이를 맡길 수 있고 급식을 포함해 모든 비용을 전혀 부담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선 임신에서 출산, 교육 전 과정에 현금이 지원된다. 두 나라 모두 출산휴가도 충분히 준다. 그 결과 스웨덴은 출산율이 1998년 1.5명에서 2014년 1.91명으로, 프랑스는 1994년 1.66명에서 2014년 2.08명으로 높아졌다.

정부는 올해를 정점으로 생산 가능 인구가 줄기 시작해 2050년이면 1000만명 이상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는 셈이다. 정부는 부모가 아이를 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워준다는 각오로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인구절벽’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중앙일보]

8.증시·원자재값 급락, 경제 운용의 틀 재점검해야

설 연휴가 지나고 문을 연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몸살을 앓고 있다. 어제 코스피지수는 3% 가까이 하락해 3년8개월여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코스닥도 5% 가까이 떨어졌다. 춘절 연휴를 끝낸 홍콩 항셍지수는 4.92% 급락했고, 일본 닛케이225지수도 이틀간 8% 빠졌다. 유럽과 미국 증시도 설 연휴기간 내내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일본·홍콩·독일 증시는 올 들어서만 이미 20% 이상 하락 중이다.

 추락하는 건 글로벌 금융시장만이 아니다. 실물 경기를 반영하는 원자재값과 각종 지표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난달 말 일시적으로 배럴당 30달러 선을 회복했던 국제유가는 다시 20달러 중반으로 하락했다. 해운 운임을 나타내는 발틱해운지수(BDI)는 사상 처음으로 300 이하로 내려가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절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외환시장의 출렁임도 심상치 않다. 일본 엔화는 마이너스 금리가 발표된 지난달 29일 달러당 121.39엔까지 떨어졌다가 지난 9일 114.21엔으로 급반등했다. 강세를 지속하던 달러가 약세 조짐을 보이고 위안화 가치도 중국 정부의 입맛에 따라 예측 불허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원-달러 환율의 하루 변동 폭은 7원90전으로 지난해 평균보다 1원30전 컸다. 금리·환율·주가·유가 등 경제를 좌우하는 4대 가격 변수가 일제히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이 변수들이 단기간에 진정되거나 예측했던 방향과 속도로 움직여 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경제 운용계획을 총체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내다본 올해 성장률은 3.1%, 물가상승률은 1.4%다. 여기엔 유가가 배럴당 40달러 선을 유지하고 중국 성장률이 6% 중반을 지킬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가정이 다 깨질 수 있는 상황이다. 비상시를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을 포함해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원유와 원자재시장에 이어 홍콩 외환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핫머니에 대한 대비책도 구체적으로 마련할 때가 됐다.

[매일경제]

9.한국 GDP대비 R&D 1위인데 성과 이렇게 미미해서야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은 4.2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위로 집계됐다. 투자총액으로 보면 중국의 5분의 1밖에 안 되지만, 경제 규모 대비 R&D 비중은 2위 이스라엘(4.11%), 3위 일본(3.58%)을 앞질렀다. 삼성전자의 R&D 투자총액는 전 세계 기업 중 2위를 차지했다. 기술 혁신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1980년대(GDP 대비 1%)보다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올해 국가 R&D 예산도 19조1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1% 늘었다.

문제는 R&D 투자 증가가 질적 성과를 견인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과학기술 논문(SCI) 한 편당 피인용 횟수는 세계 32위에 머물렀고, A급 특허 비중은 되레 낮아지는 추세다. 기술 수출액에서 도입액을 뺀 기술무역수지도 2013년 기준 51억9300만달러 적자라고 하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력에 비해 엄청난 R&D 투자를 하고도 효율성이 이렇게 떨어지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R&D 투자가 제품 개발과 제조업에 집중되고 기초연구에는 미미하게 투입되는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서울대 공과대학이 "끈질기고 탁월한 연구로 만루 홈런을 쳐야 하는데 번트(단기 성과와 논문 수 채우기)로 1루에 진출하는 데 만족했다"고 통렬히 반성한 것처럼 양적 성과에 급급해 질적 성과를 등한시하는 것도 문제다. 특히 정부의 R&D 자금이 나눠먹기식으로 방만하게 운영되는데 이를 감시할 수 있는 체제가 미흡했던 것도 연구의 질이 떨어진 원인이다. 

제대로 된 R&D 투자가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은 한미약품이 증명한 바 있다. 지난해 5조원대 신약 기술을 수출한 한미약품은 지난 15년간 R&D에 9000억원을 투자했고 2014년에는 매출의 20%를 R&D에 쏟아부었다. 기초·원천기술에 대한 R&D 투자를 늘리되 정부 R&D 투자의 경우 성과물의 70% 이상이 사업화 예산 부족으로 사장되지 않도록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매일신문]

10.행정력과 기업체 동참 절실한 남성 육아휴직

강은희 여성가족부장관이 올해 신년 업무 보고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가정 양립 문화 조성과 여성고용촉진정책을 중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가족친화인증기업 확대를 통해 아버지가 육아휴직을 편히 쓰도록 하는 기업문화로 바꿔가거나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에 따른 불이익 해소정책 추진 등은 바로 이를 위한 뒷받침이다.

여성기업인 출신인 강 장관의 의지와 정책 방향은 공감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여성 취업 증가와 저출산 고령화 추세를 맞아 여성`고용정책에서 반드시 반영돼야 할 현안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가정 양립을 위한 기업문화 정착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만만찮다. 이는 일`가정 양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육아휴직에 대한 통계를 보면 더욱 그렇다. 특히 대구의 통계치는 더욱 나빠 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육아휴직자 수는 8만7천339명으로 2014년 7만6천833명보다 14% 늘었다.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2015년 4천872명으로 전년 3천421명에 비해 42% 증가했다. 지역별로 보면 정부 정책과 제도의 혜택이 고르지 못함이 자명하다. 8대 광역시 가운데 대구의 지난해 육아휴직자 수는 2천412명으로 서울(4만351명), 부산(3천994명), 대전(3천232명), 인천(2천499명)에 이어 5위였다. 대구의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전년(69명)보다 늘어난 101명으로 서울(2천164명), 대전(201명), 부산(144명), 인천(118명) 뒤를 이었다. 

육아휴직제는 정부가 일`가정 양립을 위해 도입, 시행 중인 제도다. 하지만 통계처럼 지역적인 편차가 많은 게 현실이다. 대구의 이용이 낮은 것은 영세 중소기업이 많고 기업체의 소극적인 참여, 보수적인 분위기 등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역 중소기업 경우, 휴직제로 인한 대체인력 충원의 어려움이 큰 만큼 당국의 정책적인 배려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강 장관이 ‘대체인력 파견 뱅크’ 설립 같은 방안을 제시한 까닭도 여기 있다. 따라서 정부의 일`가정 양립 정책의 고른 수혜를 위한 세심한 정책 마련과 함께 기업체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행정력이 필요하다.

주요 신문칼럼

1.[한국일보]찰스 다윈 탄생…진화론 창사자 말년엔 지렁이도 연구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연구ㆍ저술 환경을 부러워하는 학자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돈 잘 버는 의사였고, 외가는 도자기로 유명한 웨지우드 가문이었다. 그 자신도 재테크의 귀재여서, 철도주식 투자로 ‘종의 기원’ 인세 수입 못지 않은 큰 부를 얻었다. 그의 집중력과 끈기가 ‘병적으로’ 뛰어났다는 말도 있다. 2009년 한 정신의학자는 다윈이 아스퍼거증후군(자폐성 장애)의 전형적인 증상을 지니고 있었다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가 ‘종의 기원’과 ‘비글호 항해기’ 외에도 방대한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데는 그런 저런 배경과 조건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다윈은 심지어 ‘지렁이의 활동을 통한 식물 재배 토양의 형성’이라는 책도 썼다. 그는 말년까지 다른 걱정 없이 오직 연구에 골몰했다. 

‘지렁이…’는 다윈이 숨지기 6개월 전인 1881년 10월 출간한 그의 마지막 책이다. 하버드대 과학사 교수 재닛 브라운(JanetBrowne)은 다윈 평전 ‘나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이경아 옮김, 김영사)에서 다윈이 책 원고를 출판인(존 머리)에게 전하면서 쭈뼛대며 했다는 말을 전한다. “제가 오랫동안 큰 관심을 가지고 매달린 연구 주제입니다. 솔직히 사람들이 이 주제에 관심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절 봐서 출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책 서문에도 그는 “이 책의 주제가 시시해 보일 수도 있다”고 썼다고 한다. 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를 논하던 그가 지렁이라니…, 하던 이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브라운은 “하지만 시시해 보이는 모습 뒤에 숨겨진 원리는 ‘미미한 힘과 그 힘이 축적되어 나온 결과’였다”(책 789쪽)고 썼다. 한마디로 그게 진화였다. 

말년의 그는 몸의 노쇠도 연구를 통해 잊곤 했다고 한다. 아들 레너드 다윈은 그 즈음, 노을 저녁 산책길에 다윈이 했다는 말을 전한다. “만약 다시 한 번 이 세상에 살게 된다면 매일 시 몇 줄을 꼭 읽을 거다. 그리고 ‘정신이 이렇게 썩지 않기를’바라셨다.”

다윈은 1809년 2월 12일 태어나 73년을 살고 1882년 4월 19일 별세했다. 사인은‘협심증으로 인한 실신’이었다. 심장이 힘을 잃어가던 마지막 순간까지 부럽게도, 그의 정신은 살아 있었던 듯하다. 그가 아내(에마 웨지우드)에게 남긴 유언은 “나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소. 당신이 얼마나 훌륭한 아내였는지 기억해요”였다.

2.[매일경제][CEO 심리학]좀처럼 뜻이 안맞는 직원…같이 밥부터 먹어보세요

강연이나 방송에서 가끔 필자가 이런 농담을 한다. "한국 사회에는 4대 인맥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학연, 지연, 혈연…." 여기까지는 청중이 다 아는 내용이다. 그런데 나머지 하나는 무엇일까?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다리시는 분들께 필자가 '흡연'이라고 말씀드리면 좌중은 폭소를 터뜨린다. 그러고는 꽤 많은 분들이 이것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고 뼈 있는 말임을 이내 깨달으신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런 일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항을 위해 열띤 회의를 하고 있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잠시 회의를 중단하고 휴식을 취한다. 당연히 회의 참석자들 중 애연가들께서는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올 것이다. 

그런데 다시 시작된 회의에서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온 사람들이 갑자기 결론에 도달하고 이후에 회의 내용이 급진전된다. 이런 사례들을 많이 보셨을 것이다. 그래서 "정작 회의 중에는 그런 말 없다가 잠시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자기들끼리 중요한 이야기를 다 한다"는 불평이나 푸념을 비흡연자들께서 많이 하신다. 오죽하면 어떤 분들께서는 담배는 피우지 않아도 사람들이 담배 피우러 나갈 때 꼭 따라 나가신다고도 하실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단순히 제한된 흡연 장소로 내몰린 애연가들끼리의 우스운 동질감 때문일까? 당연히 그 때문만은 아니다. 그래서 이 현상을 좀 더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보면 흡연과 같은 건강에 해로운 습관이 아닌 사소해 보이는 행위를 통해 소통과 논의의 진행을 훨씬 더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당연히 이 시대의 리더들께 중요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일을 위한 회의나 논의는 말, 즉 언어를 통해서 이뤄진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언어적 활동이 신체적 활동을 공유하면 더 촉진된다는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같은 동작은 같은 생각과 그 생각이 만들어내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 동작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연구를 네덜란드의 심리학자인 민규안 추(Mingyuan Chu) 교수와 영국 심리학자 소타로 키타(Sotaro Kita) 교수가 최근에 발표했다. 이들은 아주 사소한 동작들을 사람들에게 같이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특정한 방향을 가리키거나 머그컵을 만지작거리는 행동들이다. 이렇게 지극히 사소한 행동들을 같이 하게 되면 사람들 사이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관찰된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대화할 때 그 사람 의견에 동의하면서 점점 같은 결론에 도달할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단순히 "동의합니다" 혹은 "찬성이요"라고 무미건조하게 반응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더한다. 예를 들어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 '응' '오'와 같은 짧은 말들이 동반된다. 전자는 제스처에 해당하고 후자는 감탄사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사소한 동작을 같이 하게 되면 제스처와 감탄사 역시 동질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 쉬워지거나 합의를 하기 용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자, 이제 담배를 피우러 나간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무언가 작당을 해서 같은 결론에 도달하거나 중요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이유가 담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사소한 동작들을 같이 함으로써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제스처와 감탄사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더 쉽고 원만하게 의견을 주고받고 조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굳이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사소한 동작들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가벼운 체조는 굉장히 그나마 상식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에 더 좋은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예를 하나 들자면 밥을 같이 먹는 것이다. 식사라는 절차는 흡연보다도 훨씬 더 많은 동작들을 공유할 수 있게 한다. 같이 밥 먹고 난 뒤 회의가 더 잘되는 이유에 관한 심리학 연구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에 관한 좋은 이유가 하나 추가되는 순간이다.

3.[동아일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나무가 나에게

나무가 나에게 ― 이해인(1945∼ )

아파도
아프다고
소리치지 않고
슬퍼도
슬프다고
눈물 흘리지 않고
그렇게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견디는 그만큼
내가 서 있는 세월이
행복했습니다
내가 힘들면 힘들수록
사람들은 나더러
더 멋지다고
더 아름답다고
말해주네요

하늘을 잘 보려고
땅 깊이 뿌리 내리는
내 침묵의 언어는
너무 순해서
흙이 된 감사입니다
하늘을 사랑해서
사람이 늘 그리운
나의 기도는
너무 순결해서
소금이 된 고독입니다

사람들은 왜 이해인 수녀를 좋아할까. 왜 그의 시를 좋아할까. 간단하다. 맑고 깨끗해서다.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그의 시는 위안을 선사해 준다. 특정 종교를 떠나 기도하는 사람의 언어는, 간절한 사람들의 마음을 도닥여 준다. 힘들고 지칠 때, 무기력하고 답답할 때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힐링’의 키워드가 시대의 이슈가 되기 훨씬 전부터 그의 삶과 시는 사람들에게 힐링의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수도자도 사람이다. 그라고 왜 힘들지 않겠는가.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강한 것만은 아니다. 사람이니까 그도 아프다. ‘나무가 나에게’는 바로 그, 아픔에 대한 시인의 고백을 담고 있다. 많이 아팠지만, 많이 참았다고 말한다. 나무가 울지 않고 깊이 뿌리 내리는 것처럼 시인 역시 그렇게 살아 왔다고 한다. 이때의 뿌리란 인내와 사랑과 감사다. 나아가 그 뿌리는 언어이고 기도이며 시다. 무엇도 쉽게 태어나지는 않는 법. 이제는 이해인 수녀가, 단순하면서도 담백한 그의 시가 왜 좋을 수 있는지를 참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4.[동아일보][광화문에서/이동영]삼성이 신입 공채 없애면

벌써 다음 달이면 대기업 신입사원 공채가 시작된다. 절대 다수는 ‘유능한 당신과 함께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뜻 모를 낙방 통지서를 받아야 한다. 경쟁률은 100 대 1이 넘고 온갖 스펙이 필요하다지만 대기업에 취직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2015년 대기업 대졸 초임 연봉이 4075만 원, 중소기업 초임은 2450만 원이다. 한국 대기업(300인 이상)의 신입사원 연봉이 일본 대기업(1000명 이상)보다 1만 달러(약 1200만 원) 이상 많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고 이보다 훨씬 높은 기업에는 수만에서 10만 명에 이르는 지원자가 몰려든다. 

기업 규모가 아무리 커도 이렇게 많은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살펴 됨됨이와 능력, 잠재력까지 잘 파악하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방대에서 어학실력을 쌓고 해외 봉사도 했고, 기업 실무 경험 쌓은 내용까지 학원 다녀가며 자기소개서에 써 봐도 그저 지방대 혹은 삼류대라는 딱지 때문에 내 지원서가 휴지통으로 직행하는 건 아닌지 의문을 갖는다는 말이다. 용케 면접까지 올라갔지만 서너 개 질문에 답했을 뿐인데 회사 측이 나를 얼마나 잘 평가했을지, 수많은 응시자가 ‘걱정+의심’을 했을 법하다. 물론 이런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기업에서도 나름대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능력보단 학벌이나 집안 배경이 당락을 좌우한다는 대중의 막연한 의심까지 거두진 못한다. 물론 매출 단위가 큰 대기업에서 경험이나 실적 없는 신입을 뽑으려니 학벌과 배경이 생산성으로 연결될 것 같은 편견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부의 재촉에, 의심의 눈초리까지 받는 대기업에선 정작 신입사원을 뽑는 데 부담이 적지 않다. 여러 대기업 임원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대답이었다. “신입 공채요? 경영논리로만 보면 안 뽑는 게 정상이죠. 그런데 왜 뽑냐고요? 허허, 이건 나라가 시키는 복지정책이잖아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17개 대기업 총수에게 “신규 채용에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이윤 추구가 목표인 기업은 어떤 사람을 언제 얼마나 뽑는 게 좋은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냥 놔두면 ‘딱 필요한’ 만큼 채용한 뒤 더 큰 이익을 창출해 나라 전체에 흘려보낼지 모른다.

중소기업에선 능력을 떠나 와주었으면 하는 수준의 청년까지 재수 삼수 하더라도 대기업에만 가려 하기 때문에 언제나 인력난에 허덕인다고 하소연한다. 요약해 보면 청년층은 학벌 말고 능력만으로 대기업 입사가 결정되길 희망한다. 경영 논리로만 보면 대기업에 신입 공채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아니다. 중소기업은 충분한 인력이 공급되길 바란다.

이런 현실이라면 신입 공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삼성을 시작으로 각 대기업은 눈치 보기 사회공헌성 신입 공채를 그만두거나 대폭 축소하면 어떨까. 그 대신 3년 혹은 그 이상 중소기업 근무나 창업 경력을 가진 청년 중 성과를 낸 사람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하루빨리 전환해야 한다. 대기업은 뜻하지 않은 사회공헌 대신 경쟁력을 키워 수익을 높일 수 있고 중소기업은 인력난이란 고질병에서 벗어날 기회를 갖는다. 명문대 출신이나 고스펙 청년층에서 불만이 나올 수 있지만 절대 다수는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대기업이 경력 위주로 채용 방식을 바꾸면 당장은 커다란 사회적 복지가 사라지는 것 같겠지만 장기적으론 학벌이 아니라 능력 위주로 사회가 재편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효과와 함께 가슴 답답해지는 온갖 ‘수저 논란’을 적어도 채용시장에선 듣지 않아도 되지 않겠나.

5.[서울신문][길섶에서] 아버지의 손맛2/서동철 논설위원

경기 파주에 10년 넘게 사는 동안 헤이리마을이 유명세를 타고 명품 아울렛이 잇따라 들어섰다.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음식점이 생겨나면서 호기심도 발동했다. 하지만, 전국 공통의 맛일 뿐 다시 가고 싶은 집은 많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오래된 단골집으로 향하게 마련이다. 문산 너머 막국수집 주인 영감님은 겨울이면 문을 닫아걸고 날이 풀릴 때까지 영업을 하지 않았다. 설 연휴 직전, 지난해 겨울에는 뜻밖에 문을 열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찾아갔지만 다시 휴업이었다.

문을 열었던 지난해 1월에도 막국수 맛은 시원치 않았다. 주방을 들여다보니 영감님 대신 아들만 보여 ‘아버지 손맛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모양이군’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다시 겨울 장사를 접은 것도 ‘무르익지 않은 아들의 솜씨’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설 연휴 뒤끝 문을 열었다기에 찾았지만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오후 6시 30분 영업을 종료한다’는 푯말만 내걸려 있었다. 너무 일찍 문을 닫는 것이 불만스러우면서도 영감님 기력이 달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문득 ‘새해에는 세상의 모든 아들이 분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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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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