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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9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사드 ‘제3 후보지’ 약속, 분란만 더 키웠다

사드(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논란이 ‘제3 후보지’ 문제로 장기간 공전할 조짐이다. 어제 경북 성주군청에서 열린 사드배치철회투쟁위와 주민들 간의 토론회에서 이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도 투쟁위와의 비공개 대화에서 “주민들이 제3 후보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한 장관도 제3 후보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그러나 설사 다른 후보지를 선정한다 해도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성주군 초전면 롯데 스카이힐골프장 일대가 제3 후보지로 굳어질 듯하자 불똥이 김천으로까지 옮겨붙은 것이 비슷한 맥락이다. 골프장에서 7㎞ 떨어진 김천시 농소면 주민들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강력 투쟁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이틀간에 걸쳐 열린 토론회 분위기를 감안하더라도 아직은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다. 투쟁위 강경파가 사드배치 결정 철회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여러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정부가 뒷걸음질치는 경우 오히려 더 강하게 나오는 반(反)정부 투쟁의 속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논란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눈덩이처럼 불리는 주범은 아마추어식 정책 추진이다. 성주 성산포대를 최적지로 결정하고도 사드배치 발표와 함께 공개하지 않고 미적대다가 “뭔가 감추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자초한 것부터가 그렇다. ‘전자파 참외’, ‘무정자증’ 등의 사드 괴담이 전국을 휩쓴 다음에야 괌 조사단 파견에 나서는 등 번번이 때를 놓친 ‘뒷북 대응’도 문제다.

그렇다고 성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한 장관이 지난달 황교안 국무총리와 함께 성주를 방문했다가 6시간 넘게 억류됐던 것을 감안하면 정부와 투쟁위, 주민들이 참여한 이번 대화는 긍정적인 상황 전진이다. 강경파에 의해 저지되긴 했으나 주민은 물론 투쟁위 내부에서도 나오기 시작한 제3 후보지 논의에 대한 반응도 조심스레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정부가 또다시 어수룩한 일처리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은 금물이다. 비단 사드뿐만이 아니다. 다른 정책들에 있어서도 정교한 추진과 진정성 있는 국민 설득이 담보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론 분열과 그에 따른 국익 훼손을 피할 수 없다는 게 평범한 진리다.

2. 새만금의 미래가 오직 카지노 뿐일까

국민의당이 새만금에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오픈 카지노’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라고 한다.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은 그제 ‘새만금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만 지을 수 있도록 한 조항을 손질해 내국인도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과 당 전북출신 의원 모두가 개정안 발의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사실상 당 차원에서 사업을 이끄는 모양새다.

내국인 카지노 유치 명분은 지지부진한 새만금 개발을 앞당기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새만금 지구 개발 진전과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대응하려면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 같은 복합카지노 리조트 도입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복합 리조트가 건설되면 향후 5년간 일자리가 23만개 창출되고 생산유발 효과 23조 5000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 8조 9000억원에 세수도 해마다 1조원 정도에 이를 것이라는 게 김 의원 측의 추산이다.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부정적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사행산업 확대에 대한 사회적 우려, 2025년까지 내국인 카지노 독점 운영권을 가진 강원랜드의 반발,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등 갈등 요인이 잠복해 있다. 지역 내에서도 “내국인 대상 도박산업의 빗장을 열면 지역사회가 붕괴하고 말 것”이라는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강원랜드는 ‘입법 포퓰리즘’이라며 극력 저지를 선언했다. 부산, 인천 등 다른 지역에서도 오픈 카지노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새만금에만 허용할 경우 지역 간에 충돌이 생길 우려도 크다.

텃밭지역 경제활성화를 위한 국민의당의 충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경제적 효과만을 생각해 도박산업으로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은 근시안적 발상이다. 24조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단군 이래 최대 간척지인 새만금에서 카지노만이 미래는 아닐 것이다.

새만금 위상에 걸맞게 지속성장이 가능한 방도를 찾는 것이 지역과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되는 길이다. 그런 점에서 LG CNS의 새만금 스마트팜은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카지노 유치에만 힘쓸 게 아니라 스마트팜에 반대하는 농민들 설득에도 적극 나서는 건 어떨지 검토가 필요하다.

[서울신문]

3. 우병우 수석, 검찰 가기 전 거취 밝히는 게 옳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비위 의혹을 감찰한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어제 우 수석에 대한 정식 수사를 검찰에 의뢰했다. 우 수석 아들의 의경 보직 특혜와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를, 우 수석 가족 기업인 ㈜정강에 대해서는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우 수석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을 수밖에 없다. 우 수석은 경질 여론의 질타 속에서도 “문제 될 소지가 없다”고 버텨 왔다.

청와대 역시 “우 수석의 의혹 중 사실로 드러난 것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우 수석을 감싸 왔다. 결론적으로 우 수석은 이 시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거취를 표명하는 게 마땅하다. 청와대도 더는 우 수석에게 연연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우 수석은 지난달 19일 진경준 검사장의 인사검증 미흡, 의경 아들 복무 특혜, 가족회사 정강을 통한 세금 회피 및 재산 축소 등의 비위 의혹에 대해 특별감찰을 받아 왔다. 특별감찰은 2014년 도입된 이후 첫 시행이었다. 우 수석 아들은 지난해 2월 의경으로 입대해 같은 해 4월 서울정부청사 경비대를 거쳐 두 달 반 뒤인 7월 서울지방경찰청 운전병으로 자리를 옮겨 특혜 논란을 낳았다.

이 감찰관은 우 수석이 ㈜정강을 통해 고급 승용차 리스 비용을 부담시키거나 세금을 회피하고 재산을 축소한 정황이 있는지를 따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감찰법 제19조의 ‘범죄행위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도주 또는 증거 인멸을 방지하거나 증거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수사 의뢰를 한다’는 규정에 따른 조치다. 우 수석과 경찰 측의 비협조로 형사처벌을 전제로 한 고발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제 우 수석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야 한다. 특별감찰관이 수사를 의뢰한 만큼 미온적 자세를 떨쳐 내야 할 것이다. 우 수석 처가의 강남역 부동산 매각과 관련해 넥슨이 매매가 1173억원보다 153억원이나 더 주고 구입한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터다. 정강의 회삿돈을 우 수석과 가족이 사적으로 사용한 의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이 감찰관의 감찰 내용 누설 여부와 함께 MBC의 누설 자료 입수 경우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 수석의 비위 의혹에 대한 규명은 온전히 검찰의 몫이다. 검찰이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못할 경우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

4. 동요하는 北 체제 현실 보여준 태영호 귀순

제3국 망명 신청설이 나돌던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최근 가족과 함께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태 공사는 지금까지 탈북한 북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이다. 북한 외무성 유럽연합(EU) 담당 과장, 구주국장 대리 등을 지낸 서유럽 전문가로서 북한 체제를 서방에 홍보하는 선전 업무에 종사한 인물이다.

이번 태 공사 귀순으로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 도미노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올 들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도가 높아지면서 북한 외교관들이 상부의 질책과 압박을 받다가 망명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통일부는 탈북 동기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와 장래 문제”라고 밝혔다. 북한 정권은 즉각 해외 주재원들이 많은 중국을 비롯한 해외 각 지역에 검열단을 급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 사회에서 출세의 바로미터인 출신 성분과 당성 등을 모두 인정받은 외교관 등 해외 근무자들의 연쇄 탈북 등의 사태를 막아 보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북한 정권의 핵심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 사회의 시선이 이번 사건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 4월 북한 내 상류층에 속하는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에 이어 이번 태 공사의 귀순은 북한 체제의 총체적 난맥상을 반영한다.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주민들에 대한 공개 처형을 대폭 늘리는 등 공포정치로 체제 동요를 잠재우려고 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올 들어 전체 탈북자 수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엘리트층 탈북이 급증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태 공사 이외에 북한 외교관 여러 명이 입국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와중에 북한 원자력연구원은 최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5차 핵실험 예고는 물론 영변 핵시설에서 플루토늄 재처리 재개, 출력 10만㎾의 경수로 건설 추진 등을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물론 북한의 노회한 선전전의 일환일 수도 있지만 최근 들어 5차 핵실험으로 치닫는 정황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5차 핵실험을 추진하는 것은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아 이를 계기로 제재 국면에서 벗어나려는 전략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핵 활동 중단을 규정한 유엔 안보리 결의를 보란 듯이 위반하고 있는 만큼 국제사회의 추가 제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북한이 결국 ‘핵을 껴안고 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게 할 수밖에 없다. 열성적으로 북한 체제를 옹호한 엘리트 계층마저 등을 돌리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불만을 외면하고 핵·미사일 개발에서 살길을 찾는 것 자체가 그릇된 망상임을 김정은 정권은 깨달아야 한다.

5. 공직사회 ‘복지부동’ 풍조 경종 울려야

정부 각 부처를 비롯한 공직사회에 ‘복지부동’ 풍조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한다. 미세먼지, 전기료 누진제 등 정부가 내놓는 각종 대책마다 절박한 민심과는 겉도는 결과를 낳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게 그 징후다. 심지어 ‘오대수’(오늘만 대충 수습하자)라는 유행어가 관료사회에 회자되고 있을 정도라니 말이다. 어제자 본지 기획 보도에서 분석된 바처럼 정권 4년차부터 ‘3년 일하고 2년 쉰다’는 식의 공직사회의 잘못된 DNA(유전자)가 발현된 것이라면 문제는 사뭇 심각하다. 공직자들도 각성해야겠지만, 임기 말을 향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도 공직 기강을 다잡을 처방을 내놓을 때다.

4월 총선 이후 각 부처가 내놓은 정책 중 제대로 정곡을 찌르지 못하거나 타이밍을 놓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수입 자동차 연비 조작과 미세먼지 대책, 가정용 전기 누진제 개선책 등이 그런 사례였다. 야당의 입김이 거센 해운·조선사업 구조조정 대책이 지지부진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여타 사안은 딱히 ‘여소야대’ 탓으로 돌리기도 어렵다. 특히 가정용 전기료 파문은 관료들의 무사안일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올여름 유례없는 폭염으로 서민들은 ‘전기료 폭탄’을 맞을까 봐 전전긍긍하는데 “에어컨을 하루 4시간만 켜면 된다”는 관료들의 한가한 소리가 가당키나 했겠나. 그러다 박 대통령이 관심을 보인 당일 허둥지둥 개선안을 내놨으니 믿을 만한 근본 대책이 나올 리도 만무했다.

정책 난맥상이 되풀이될 토양이 켜켜이 쌓이고 있다면 더 큰 문제다. 가뜩이나 주요 부처의 세종시 이전으로 공무원과 민원인 간 소통이 단절되고 있는 형편이다. 공무원들이 민생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는 듣지 않고 청와대가 한마디 하면 그때서야 움직이는 시늉만 한다면? 그런 ‘땜질 행정’의 피해는 국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현 정부 임기가 1년 반 남은 지금 공직자들이 벌써 차기 정권의 향방에나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면 안 될 말이다. 역대 정권의 임기 말이 그랬다고 해서 공직사회의 무사안일이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당연시될 수 없다면 정책 추진력의 회복도 현 정부의 책임이다. 엄정한 직무 감찰과 신상필벌이 필요조건이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성과를 낸 공무원이 더 많은 보상을 받게 해야겠지만, ‘설거지하다 접시를 깨는’ 식의 행정 과실을 함부로 징치해선 곤란하다. 공직자들이 소신을 갖고 ‘위민(爲民) 정책’을 생산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 급선무라고 본다.

[동아일보]

6. DJ 7주기에 돌아보는 야당 집권의 길

어제 거행된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7주기 추도식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하기 위해서는 (야권이) 다들 뜻을 함께하리라고 믿는다”며 “저희가 어떤 방식이든 함께 힘을 모아서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저희’는 문-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를 지칭한 말이겠지만 야당이 집권하려면 야권통합보다는 수권정당의 자질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더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그제 당 강령 전문(前文)에서 ‘노동자’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서해평화지대) 설치’를 삭제하려던 개정안을 철회하고 이 문구들을 다시 살려냈다. 당초 강령분과위는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 향상’을 ‘시민의 권리 향상’으로 바꾸고 안보 논란을 불렀던 서해평화지대 부분을 삭제하려 했으나 당권 주자들이 ‘정체성에 위배된다’며 일제히 반발해 되돌린 것이다. 

진보·중도정당을 자처하는 당의 강령에 ‘노동자 권리 향상’이란 문구가 들어간 것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서해평화지대 부분은 단순한 우클릭 시도가 무산된 것이 아니라 당의 정체성과 노선 투쟁, 집권 시 남북관계에 대한 중대한 함의를 담고 있는 문제여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10·4선언’은 ‘남과 북이 서해평화지대를 설치해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하도록 했다. 이어 열린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북측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인 우리 영해에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자고 주장해 NLL 무력화 의도를 드러냈다. 이를 막은 사람이 당시 김장수 장관이고, 김 장관을 비난했던 사람이 문 전 대표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피와 죽음으로 지킨 영해선을 무력화하는 ‘서해평화지대’ 설치를 강령에서 고집하는 것은 국민의 안보 불안 의식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정체성에 매달려선 영원히 집권하지 못한다”고 비판한 것을 새겨들어야 한다.

DJ는 생전에 정치인들에게 ‘서생(書生)적 문제의식’ 못지않게 ‘상인(商人)적 현실감각’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햇볕정책의 3원칙 가운데 첫 번째로 ‘평화를 파괴하는 일체의 도발 불용’을 내세웠다. 야당 지도자들은 DJ 7주기에 “내년 정권교체로 유지(遺志)를 이루겠다”는 말만 외칠 것이 아니라 진정 정권교체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중앙일보]

7. ‘노동자 정당’ 흉내 낸 더민주의 강령 소동

더불어민주당이 8월 27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체성 논쟁, 선명성 투쟁 일변도로 흐르고 있어 걱정스럽다. 과도한 정체성·선명성 경쟁은 피폐한 민생 문제에 대한 집중력을 헝클어트리고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 논쟁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더민주는 엊그제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전당대회 준비위가 올린 ‘시민 중심’ 강령 개정안을 거부하고 구(舊) 강령보다 더 강력한 ‘노동자 중심’으로 되돌아갔다.

강령 전문이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 향상’(구 강령)→‘시민의 권리 향상’(강령 개정안)→‘노동자·농어민·소상공인 등 서민과 중산층의 권리 향상’(신 강령)으로 변화했다. 노동자는 속성상 시민에 포함되기에 ‘노동자와 시민’을 같은 수준에서 병렬한 구 강령은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개정안에서 이를 보다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시민’이란 범주로 묶은 건 국민정당을 지향하는 더민주로선 적절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추미애·이종걸·김상곤 당대표 후보들이 “노동자 삭제는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최재성·정청래 의원 등 운동권 출신들이 강력히 반대하면서 계층·계급적 용어가 구구절절 나열된 형태로 변질된 것이다. 또 강령 개정안엔 북한 김정은의 핵·미사일 위협 상황을 반영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추진’이 삭제됐는데 정체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원래대로 복원됐다.

더민주는 4·13 총선 전 친노·친문 패권주의가 지배하는 운동권 정당 이미지로는 도저히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문재인 당시 대표가 물러나면서 보수·중도 성향의 김종인 비대위 대표를 영입해 오늘에 이르렀다. 김종인 대표가 당 강령안 번복 소동을 보면서 “노동자를 삭제했다고 난리를 치지만 이제껏 당이 노동자를 위해 한 일이 뭔가” “급할 때는 이런저런 소리 다 하더니 이제 당이 살아날 만하니까 딴 소리를 한다”고 평했는데 정곡을 찌른 얘기다.

더민주 당권 주자들이 정체성·선명성 경쟁에 목을 매다시피 하는 건 당이 안철수 의원 등 이질 세력이 떠나면서 이른바 친노·친문 당원들 일색이 됐기 때문이다. 친노·친문 세력한테 잘보이겠다고 노동자 정당 행세를 한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매일경제]

8. 더 강한 구조조정 필요하다는 경영학자들의 조언

대다수 경영학자들은 해운업 구조조정이 매우 미진했고 조선업도 더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경제가 지난 17일 부산에서 개막한 제18회 통합경영학회를 앞두고 경영학자 1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나온 내용인데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 많다.

응답자의 54.6%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법정관리나 파산까지 갔어야 했는데 정부와 국책은행의 대응이 미온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조선업 구조조정도 굿 컴퍼니와 배드 컴퍼니를 나눠서 정리하고,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을 합병하는 등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던 반면 공적자금을 투입해 조선 3사를 모두 살려야 한다는 답변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실은 경영학자들이 요구하는 방향과 다르게 가고 있어 걱정이다. 대우조선은 올 상반기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 등 상황이 나빠지는데도 정부와 채권단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구조조정보다는 자본 확충 방안만 강구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한심하기는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여야는 조선·해운업 부실 원인과 책임 규명을 위해 이른바 '서별관 청문회'를 열기로 합의하고서도 증인 채택 문제로 시간만 끌고 있다. 야당은 지난해 10월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의 공적자금 지원을 결정할 당시 회의 참석자였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안종범 전 경제수석을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으나 여당은 정권 실세를 망신주려는 정치 공세일 뿐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원활한 구조조정을 돕고 침체된 경기를 살린다는 취지로 편성된 추경안 심사가 교착 상태에 빠졌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추경이나 구조조정은 무엇보다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적기를 놓치면 재원만 낭비하고 효과는 반감된다. 그 피해와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 경제와 국민에게 돌아온다.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여야가 한 발씩 양보해 추경안을 신속하게 처리하고 경영학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9. 한·중 정상 G20 무대서 따로 만나 사드 매듭 풀어야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달 4~5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제11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이때 개최국 정상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따로 만날지 주목된다. 한·중 외교 당국이 이 문제를 협의 중이라고 한다. 

사실 두 나라 정상은 이번에 꼭 직접 만나서 풀어야 할 중요한 외교 현안이 있다. 지난달 8일 한국과 미국 정부가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발표한 후 중국 정부가 이를 공개적으로 성토해왔는데 외교 실무 라인에서는 꼬인 매듭을 풀지 못하고 있는 터라 정상 외교로 돌파구를 열어야 할 때다. 

이 문제는 시간을 끌수록 더 꼬일 수 있다. 지난 3일 북한이 노동미사일을 발사한 후 이를 규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성명 채택이 중국 반대로 무산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이 시 주석과 맺은 신뢰 관계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작년 9월 중국 전승절 때 베이징 톈안먼 망루에 시 주석과 나란히 서서 열병식을 지켜보았다. 동맹국 미국과 일본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중 간 신뢰와 협력 관계를 다지려는 결단이었다. 두 정상은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솔직한 대화를 통해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해야 한다. 

우리로서는 사드 배치가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이해시켜야 한다. 사드 배치는 어디까지나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위적 조치로 제3국을 겨냥한 게 아님을 강조해야 한다. 중국도 문제의 근원은 북한 핵과 미사일에 있음을 명확히 인식하고 이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에 앞서 다음달 2~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EEF)에 참석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모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며 한반도 사드 배치에 반대하고 있다. 대북 압박과 제재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중·러의 협력이 꼭 필요하다. 한·러, 한·중 간 잇단 정상회담이 균열 조짐을 보이는 대북 공조 체제를 다지는 계기가 돼야 한다.

[매일신문]

10. 국민 짜증만 돋우는 여야의 유치한 ‘건국절’ 말싸움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언제로 볼 것이냐를 놓고 여야가 소모적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를 보는 국민은 한마디로 짜증스럽다. 총의(總意)를 모아도 해결이 만만치 않은 대외적 현안이 산적해 있음에도, 조선시대 당쟁을 빼다박은 공허한 말싸움으로 에너지를 탕진하고 있으니 그렇다. 1억원이 넘는 고액 연봉으로 먹고살 걱정 없으니 한가한 논쟁이나 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여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 71주년 경축사에서 올해를 ‘건국 68주년’이라고 한 대로 1948년 정부 수립이 건국 시점이라고 한다. 야당은 이에 대해 상해 임시정부와 항일 독립운동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임시정부가 출범한 1918년을 건국일이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주장들이다. 건국의 개념 규정부터 빠져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3요소는 주권, 영토, 국민이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없으면 정의(定義)상 국가가 아니다. 그렇다면, 건국 시점은 정부 영토와 국민, 주권을 다 갖추게 된 1948년이 맞다. 반면 상해 임시정부 시절의 대한민국은 국가의 3대 요소 모두를 결여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임시정부는 최초의 헌법인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했지만, 민주공화국의 성립에 필요한 선거 등 법률적 절차를 거칠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임시정부 수립=건국’이란 등식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이 부정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 헌법 전문은 독립정신과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1948년=건국 시점’이란 주장은 곧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정통성에 대한 부정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사실의 부정이자 논리의 비약이다. 여당이 헌법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건국 시점을 언제로 볼 것이냐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지금 정치권의 논쟁은 진영 논리에 함몰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기 진영의 해석과 가치 부여만이 옳다는 저열(低劣)한 독선만 횡행하고 있다. 이런 막무가내식 말싸움에서는 건설적인 합의 도출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이것이 우리 정치권의 수준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동아일보][광화문에서/김상훈]사무실의 ‘진상’들

며칠 전 친구가 휴대전화로 동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그날 출근길에 찍은 거란다. 동영상을 열어보니 전철 안이었다. 셔츠 차림의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 남성이 골프 스윙 연습을 하고 있었다. 왜 이런 동영상을 찍었느냐고 묻자 친구가 킥킥대며 말했다. “하도 한심해서…. 혼잡한 출근길 지하철에서 뭐 하는 짓인지….”

요즘 어디를 가나 이런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 편하면 된다는 사람들. 이들의 안하무인을 ‘진상 짓’이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며칠 전 휴가를 다녀온 후배도 진상 짓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불쾌한 경험을 했다. 경북 안동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 안이었다고 한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 8명이 탑승했다. 그들은 입석표를 끊은 것 같았다. 입석으로 열차를 탄 사람들은 맨 앞좌석과 벽 사이의 공간을 선호한다. 그 공간을 만들려면 앞좌석을 두 번째 좌석과 마주 보게 돌려놓아야 한다. 공교롭게 후배는 맨 앞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후배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좌석을 돌려놓았다. 후배는 졸지에 낯선 이들과 얼굴을 마주 보면서 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후배가 좌석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 하자 그들이 허허거리면서 “한국인끼리 이러지 맙시다. 불편해도 좀 참고 가 주세요”라고 했단다. 

기차가 출발하자 그들은 아예 통로에 간이 의자를 펼쳐놓고 술을 마셨다. 휴대전화로 올림픽 경기 방송을 보면서 괴성을 질러댔다. 후배는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들은 맥주를 바닥에 쏟고 닦지도 않았다. 이런 진상 인간들을 매일 접하지 않는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기분이 상해도 곧 잊혀진다. 하지만 이런 진상들을 매일 사무실에서 접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얼마 전 상사인 부장검사의 폭력에 시달리던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검찰청 감찰본부가 밝힌 부장검사의 진상 짓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폭언은 일상적이었고, 폭력도 동반됐다. 부하 직원들을 세워놓고 보고서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구겨 던졌다. 예약한 식당과 메뉴가 성에 안 찬다며 모욕을 줬다. 누리꾼들은 “우리 상사와 똑같다”며 공분했다. 

최근 건전한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며 정시 퇴근을 독려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특정 요일을 정해서 야근을 금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직장인의 상당수가 이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한밤의 사무실은 환하다. 일거리를 싸들고 퇴근하는 이도 많다. 혹시라도 상사의 전화를 제때 받지 못하면 불호령이 떨어질 테니 휴대전화는 항상 켜둬야 한다. 이런 직장인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이상일 뿐 현실이 아니다. 

회사 차원에서 직원들을 위한 여러 시스템을 만들었는데도 일터의 삶이 고통스럽다면 그 원인이 같은 조직원, 특히 상사에게 있을 확률이 높다. 부장검사가 조금만이라도 부하 직원을 배려했더라면 억울한 죽음은 피했으리라. 하지만 부장검사는 부하 직원의 고통을 무시했다. 어쩌면 부장검사는 자신이 진상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진상’은 원래 조선시대 때 임금에게 보내는 진귀한 특산품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최상품만이 진상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상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폐단이 나타났고, 급기야 부정적인 뜻으로 변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군들 처음부터 진상이었겠는가.

부하 직원들이 자신을 진상 인물로 지목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사가 적지 않다고 한다. ‘진상 감별 체크리스트’ 같은 거라도 만들어야 할까. 우선 나부터 거울을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지금 어떤 인간인가.


2. [동아일보][@뉴스룸/손효림]자주 화가 나나요?

“그곳 사람들은 다들 웃고 있더라. 그제야 내가 잔뜩 화난 사람 같다는 걸 깨달았어.”

하와이로 휴가를 다녀온 친구가 말했다. 쌓인 업무를 간신히 처리하고 기진맥진해서 비행기를 탔단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는 걸 몰랐는데 웃고 있는 현지인들을 보니 자신이 평소에도 화난 듯한 상태였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일년 내내 날씨 좋은 곳에서 지내니 그렇겠지’ 싶다가도 베트남, 캄보디아, 터키 등에서 눈만 마주쳐도 수줍게 웃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국인의 상당수는 무표정하다. 빌딩이 숲을 이룬 도심에서 스치는 이들은 더욱 더. 인터넷 댓글 등에 넘쳐나는 증오의 언어들을 보노라면 ‘건드리기만 해 봐. 언제든 불을 뿜어 줄 테니’라며 화를 낼 만반의 태세가 돼 있는 사람들이 가득한 것만 같다. 여유 없고 불안한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분석해보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최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분석가를 잇달아 인터뷰하게 됐다. 이들은 인간의 뇌는 요즘처럼 많은 정보를 처리할 정도로 진화하지 않았는데 엄청난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과부하가 걸렸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머리를 쉬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실제 여유가 있을 때는 어지간한 일도 그냥 넘어가게 되지만 정신없이 무언가를 하면 다른 이를 배려하기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도 어렵다. 

감정을 조절하고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구체적인 방법이 궁금했다. 권혜경 정신분석가(‘감정 조절’의 저자)는 “분노가 솟구쳐 오르면 일단 100번만 숨을 천천히 내쉬어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 마음이 차츰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단다. 짜증이나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면 운전하거나 걸을 때,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을 이용해 매일 100번 숨을 내쉬어 보라고 했다. 감정적으로 즉각 대응하는 행동이 줄어들 수 있다고 한다. 

삶의 중심을 다른 이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두는 것도 중요하다. 수도자들이 산으로 가거나 홀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하루 1시간만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는 처방이 나왔다. 김진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의 저자)는 “혼자 있는 시간이 없다면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회사 업무든 개인적인 용무든 지금 하고 있는 일의 10%만 줄여보라”고 말했다. 혼자 운동하는 것도 좋고, 인터넷 서핑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들여다보는 것만 덜해도 생각보다 적잖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단다. 그래도 방법이 안 보이면 일의 우선순위를 쭉 적은 후 아래에서부터 지워 나가라고 했다.

눈이 팽팽 돌아갈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평안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 실천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표정도 더 밝아질 수 있을까.


3. [중앙일보][시선 2035] 취향 있는 어른이 필요해

친구가 SOS를 보냈다. “흰 셔츠가 거기서 거기지. 왜 그 돈을 주고 사?”라는 자기 부장의 ‘거기서 거기론’ 때문이다. 옷이나 머리 스타일을 건드리는 것까진 괜찮았단다. 문제는 일에까지 손을 뻗쳤단 거다. 10년 전 유행하던 스타일의 디자인 업체와 계약하려는 부장의 구식 취향에 공들인 프로젝트를 망치게 생겼다며 한숨이었다.

청와대의 밥상도 호화스러움보단 그 몰취향이 뜨악했다. 송로버섯, 캐비아, 바닷가재, 샥스핀…. 고급 음식에 1차원적으로 연상되는 재료들만 억지로 쑤셔 넣은 것 같아서다. 고급 재료로 만들어도 창의적 주제 없인 좋은 음식이 될 수 없다. “나 샥스핀도 캐비아도 먹었어”라는 자랑 말고는 연상되는 게 없는 무취향의 메뉴다. 분명 청와대의 상에 오르기엔 격이 떨어졌다.

‘금동이의 좋은 술은 100명의 피’ 운운하는 비판자들의 논리도 시대착오적이다. 도시락 바닥의 쌀밥까지 적발해내며 배를 곯던 시대가 아니다. 서민 음식 먹는다고 정치인의 삶이 서민의 삶일 수도 없다. 2016년이면 국밥 먹방에 점수를 주는 것도 끝낼 때가 됐다.

그럼에도 선거철이면 정치인들의 사치품 논란과 전통시장 유세는 빠지질 않는다. 에르메스 명품 타이, 600만원대 고가 의자는 정책보다 더 큰 논란이 됐다. 논란의 당사자들은 “선물이다” “중고로 샀다”는 궁색한 변명을 해야 했다. 내가 좋아서 샀다고 용기 내 말한 이들은 없었다.

조금 사치스러우면 어떤가. 지금 젊은이들에겐 취향이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비용만 강조한 탓에 똑같은 성냥갑 같은 아파트, 효율만 내세우다 보니 최단 거리로 연결된 직선형 다리로 가득 찬 도시를 넘겨받았다. 이제는 다른 선진국처럼 뭔가 여유와 멋, 취향을 가질 때도 되지 않았을까.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는 돈 쓰는 게 문제가 아닌 시대가 됐다.

영국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호피무늬 구두와 가죽 부츠를 즐겨 신는 테리사 메이 신임 총리에 대해 그녀의 말을 인용해 “똑똑하면서도 패션을 좋아한다”고 자랑한다. 수백만원대 비비언 웨스트우드 슈트를 즐겨 입는 그녀의 취임에 옷의 가격은 화제가 아니었다. 영국은 손가락질보다 그녀의 센스가 불러일으킬 새바람을 기대했다.

우리도 한번쯤 자신의 당당한 취향으로 고가품 논란을 잠재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 지난 대선 때 고가 의자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문재인 대선 후보가 “나는 아름다운 의자를 좋아한다. 찰스 임스의 라운지 체어는 무리해서라도 한번 가져보고 싶은 꿈의 의자였다. 1956년부터 팔린 의자가 60년이 지나도 600만원에 팔리는 이유를 고민하고 있다”며 고부가가치 산업에 대한 비전으로 맞받아쳤더라면 어땠을까. 무턱대고 사치스럽다고 욕먹었을까.


4. [중앙일보][마음산책] 올림픽은 금메달을 위해 존재하는가?

낮밤이 반대인 브라질에서 올림픽 경기를 하다 보니 현장 중계로 경기를 보는 것이 힘들어서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예전만큼 올림픽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이 덜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런던 올림픽 때처럼 금메달 따는 선수 숫자가 많았다면 그래도 사람들이 새벽잠을 포기하면서라도 텔레비전을 볼 텐데, 아쉽게도 리우 올림픽에서의 메달 수는 예전만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올림픽을 보면서 너무 이기는 것에만 집착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반성도 해 본다. 왜냐하면 올림픽에 나가서 경기를 모두 이기고 금메달을 따는 선수보다는 메달권 밖이지만 최선을 다하고 돌아오는 우리 선수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통계를 살펴봐도 리우 올림픽보다 메달 성과가 좋았던 지난 런던 올림픽 출전 선수 248명 가운데 한 게임도 지지 않고 모든 경기를 우승한 선수의 숫자는 단체전 금메달 선수를 포함해 총 18명이었다. 하지만 그 숫자보다 월등히 많은 230명의 선수가 경기에 지거나 메달권에 들지 못해 조용히 귀국한다. 만약 올림픽을 하는 이유가 경쟁을 통해 내 실력이 다른 선수들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해 금메달을 따고 영웅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라면, 아주 극소수의 성공하는 사람들과 대다수의 실패자들을 양산하는 불행한 무대가 돼버린다. 은메달을 따고도 자신은 “금메달을 못 따 영웅이 아니다”라고 했다는 북한 역도의 엄윤철 선수처럼 말이다.


올림픽을 포함해 우리 인생을 항상 이렇게 경쟁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한다면 1등이 되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의 삶은 초라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해 버린다. 더불어 나를 누르고 올라선 소수의 성공한 사람에 대한 질투와 분노, 박탈감 또한 올라올 수밖에 없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에만 가치를 둔다면 다른 사람의 실패가 곧 나의 성공이요, 나의 실패가 타인의 성공이 되는 제로섬 게임이 우리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고, 목표만 이룰 수 있다면 몇 년간의 과정은 즐기기는커녕 그냥 참고 견디는 삶이 돼버린다. 게다가 나의 가치를 내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의 비교를 통한 등수로 매겨진다면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내 삶의 가치 결정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남들이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유쾌하고 행복한 기운을 전달해 준 선수들 중 푸위안후이(傅園慧)라는 중국 여자 수영 선수가 있다. 그녀가 100m 배영 준결승전에서 자신의 기록을 듣고 “헉, 제가 그렇게 빨랐어요?” 하고 깜짝 놀라는 코믹한 표정을 지어 세계 여러 언론의 이목을 끌었다. 사람들은 푸위안후이 선수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고 재미나게 드러냈다는 사실에 좋아했고, 1등을 못했다고 슬퍼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본인이 쓸 수 있는 일체의 모든 힘, 홍황의 힘(洪荒之力)까지 써가면서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냈다. 즉, 비교 대상을 금메달 선수의 기록과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최선을 다했는지, 평소 본인 실력에 비해 좋았는지에서 의미를 찾았다.

또한 그녀보다 0.01초 빨리 들어온 선수가 있어 아깝게도 은메달을 놓쳤다는 기자의 말을 듣자 푸위안후이 선수는 아주 쿨하게 답했다. 아마도 자기 팔이 은메달을 딴 선수의 팔보다 조금 짧아서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실제로 팔다리가 백인이나 흑인이 비해 짧은 동양인의 신체 구조로 육상이나 수영에서 그들과 똑같이 경쟁한다는 것은 어려운 게임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이 기록이 좋지 않을 때 그들이 노력하지 않았다고 바라보는 시선은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선천적인 몸의 구조, 경기 당일의 날씨와 컨디션, 어떤 심판을 만났고 예선전에서 누구와 경쟁했는지 등 여러 가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운도 분명 작용한다. 그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도 혼자만의 노력의 결과라고 여기는 것도 맞지 않고, 반대로 성적이 평소보다 좋지 않았다고 무조건 자기 잘못이라며 두고두고 자책하는 것도 맞지 않다.

지금 올림픽 공식 웹사이트에는 두 명의 육상 여성 선수의 이야기가 메인을 장식하고 있다. 5000m 달리기에서 미국 선수와 뉴질랜드 선수가 경기 도중에 넘어졌는데 바로 일어난 미국 선수가 자기 혼자만 달리지 않고 같이 넘어진 뉴질랜드 선수를 도와 끝까지 완주하도록 한 것이다. 매일 아침 올라오는 나라별 올림픽 메달 집계 현황도 중요하지만 경쟁이 아닌 우정과 협력의 올림픽 정신을 보여준 그런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올림픽 경기에서 지고 돌아올 많은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그대가 그대 인생의 승자라고 격려해 주고 싶다.


5. [머니투데이][기고]‘끓는 철판 도시’ 옥상 녹화로 식히자

서울이 끓는 철판이 됐다. 지난 15일까지 서울의 8월 평균 기온은 29.7도였다. 기상청이 1907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라 한다. 역사적 폭염으로 기록된 1994년의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0.3도가 높단다.
8월초 서울대 강연자로 초청했던 미카엘 크라빅 씨와 대낮의 서울 도심을 걸은 적이 있다. 불판이 따로 없었다. 그는 "빗물 낭비가 폭염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슬로바키아 NGO '사람과 물' 회장인 그는 1999년 환경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골드만 상을 받은 바 있는 환경 전문가다. 대규모 댐 건설에 반대하며 대안적 방식을 고안했다는 공로였다. 

서울이 이렇게 더운 이유가 탄소 배출로 인해 일어난 온난화 때문이라면 답이 없다. 한 도시가 탄소 배출을 줄여서 온난화를 막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도시에 물이 없기 때문에 더 더워진 것이라면 답이 있다. 기화열로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도시화가 진행되면 건물과 도로가 불투수층으로 덮인다. 즉, 흙 대신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도시를 뒤덮는다. 서울시의 경우, 1962년에는 불투수율이 7.8%였던 것이 2010년에는 47.7%로 증가했다.

도시의 빗물은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배수구로 버려진다. 바짝 마른 도시의 표면은 태양의 에너지를 흡수한다. 8월 초 오후에 서울대 건물 콘크리트 옥상에서 표면 온도를 재니 섭씨 60도까지 올라갔다. 

반면, 오목형의 옥상 녹화를 한 서울대 35동의 온도는 섭씨 25도로, 35도나 더 시원했다. 옥상 바로 아랫층은 다른 서울대 건물보다 여름에는 평균 3도 더 시원했고, 겨울에는 3도 따뜻했다. 

다시 생각해보자. 서울의 불투수층이 늘어난 만큼, 25도 정도의 풀밭이 줄어든 만큼, 60도로 달궈진 불판이 늘어난 셈이다. 그러니 더울 수밖에. 해결책은 바뀐 지표면의 일부라도 원상복구시키는 것이다. 

그중 가장 쉬운 것이 옥상 녹화다. 원리는 간단하다. 물이 기화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하는 특성 즉 기화열을 이용하는 것이다. 숲이나 물가가 시원하게 느껴지는 원리다. 건물의 옥상이든, 도로든, 빗물이 떨어진 자리에 모아두면 증발할 때 소모하는 기화열로 도시 온도를 낮출 수 있다. 

옥상을 태양광발전소로 사용할 수도 있다. 여기서 1년 동안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는 1평방미터(㎡)당 최대 230KwH다. 월 500kwh의 전기를 사용하는 집 옥상에 주택형(3㎾) 미니발전기를 설치하면 월 13만260원(5단계)에 이르던 전기요금이 2만5590원(3단계)가량으로 10만4670원이 줄어든다. 누진구간을 낮춰주는 덕분이다.

단, 태양광 패널은 도시의 열섬현상을 해소해주진 못한다. 주위와 조화로운 경관을 이루기도 어렵다. 해결책은 태양광 발전기와 텃밭을 함께 만드는 것이다. 태양광 패널에 떨어지는 빗물은 깨끗하므로 별도의 처리 없이 통에 모아 텃밭에 뿌릴 수 있다. 태양광 판넬의 높이를 다른 시설보다 1미터만 높인다면, 그 밑에 식물을 키우거나 휴식공간을 만들 수 있다. 

서울대 35동 옥상이 그 성공 사례다. 840평방미터에 꽃밭과 텃밭, 연못을 만들었더니 교수, 학생, 지역주민의 소통이 시작됐다. 여기서 키운 감자, 배추는 어려운 이웃과 나눠 먹었다. 덕분에 국제적인 상도 2번이나 받았다. 

서울의 옥상을 텃밭 겸 미니발전소로 만들자. 이런 해법이 다른 도시로 퍼지면 원자력발전소를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원전 때문에 불안한 지역민들의 시름도 줄어들 것이다. 불판을 풀밭으로 만드는 옥상은 미래형 도시의 모델이다.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가까운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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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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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8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가짜 한우고기’에 언제까지 속아야 하나

서울 시내 정육식당의 절반이 한우 등급을 속이거나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해 팔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대형 정육식당 30곳을 점검한 결과 허위표시 판매 등 불법행위를 한 15개 업소를 적발했다는 게 서울시의 발표 내용이다. 그중 6개 업소는 낮은 등급의 한우를 높은 등급으로 속여 팔았으며, 9곳은 원산지와 고기 종류·등급·부위명 등을 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 잇속을 챙기려 먹을거리를 속여 파는 부도덕한 행태가 언제까지 계속되려는지 개탄스럽다.

한우 등급이나 원산지를 속여 파는 것은 손님은 안중에도 없이 이익을 더 많이 남기려는 그릇된 욕심 때문이다. 관악구 A식당은 3등급 꽃등심을 1등급으로 높여 팔았다. 1등급은 ㎏당 1만 9000원, 3등급은 1만 3800원이니 1㎏당 5200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셈이다. 이처럼 원산지를 속이고 한우로 둔갑시킬 경우에는 이문이 3~4배나 된다고 한다. 강남구 B식당은 미국산 쇠고기를 한우불고기라며 몇배 비싸게 팔다 덜미를 잡혔다. 소비자들이 한우 등급이나 가짜 한우를 식별하기 어려운 점을 노려 덤터기를 씌운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등급 허위표시나 가짜 한우고기 판매가 서울지역만의 문제도, 또 정육식당만의 문제도 아니라는 점이다. 전국적인 현상이다. 전국한우협회에 따르면 2010년 6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5년 동안 수도권 지역 정육점과 음식점 등 8318곳에서 파는 한우고기 시료를 채취해 유전자검사를 한 결과 3.4%(284곳)가 가짜 한우였다고 한다. 2008년 ‘가축 및 축산물 이력관리법’ 시행 이후 감소세를 보인다지만 여전히 ‘가짜 한우’가 근절되지 않고 유통된다는 얘기다. 

한우의 속임수 판매는 소비자에게 부당한 손해를 끼치는 것은 물론 생산자인 농민에게도 피해가 돌아가기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축산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가짜 한우가 사라지지 않는 데는 제도상의 허점도 있을 것이다. 적발되더라도 속임수로 얻는 이익보다 처벌이 작다면 근절하기 어렵다. 돈벌이에 눈이 멀어 생산자와 소비자를 우롱하는 악덕 업주들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명품 한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도 뿌리를 뽑아야 한다.

2. 한강 팔당호까지 확산된 녹조류 사태 

수그러들 줄 모르는 폭염과 가뭄으로 전국 하수면에 녹조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식수원으로 사용되는 주요 강과 호수도 예외가 아니다. 금강 대청호와 영산강, 낙동강 등에 조류경보 첫 단계인 ‘관심’ 단계가 발령된 상황이다. 며칠 전에는 수도권 식수원인 한강 팔당호에서도 녹조가 관찰됐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비쳐진 녹조의 색깔이 마치 크레용을 칠해놓은 듯 진하다.

녹조가 발생하는 원인은 기온 상승과 하천의 오염에 있다. 날씨가 더워지거나 생활 오폐수에 섞여 버려지는 질소나 인 등 화학물질 농도가 높아질수록 녹조가 많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식물 플랑크톤의 일종인 남조류가 이러한 영양염류를 빨아들여 대량 번식하면서 물빛이 초록색으로 변하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물에서 악취를 일으키고 비린내가 나기도 한다. 아직 물고기의 집단폐사 사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여름철에는 수돗물 소비가 훨씬 늘어난다는 점에서도 녹조류의 발생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녹조가 심해지면 정수 과정에서 소독약을 더 풀어야 할 것이고, 따라서 먹는 물은 물론 생활용수 사용에 있어서도 심리적으로 위축받을 수밖에 없다. 불볕더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전기 사용에 이어 수도꼭지 트는 데조차 신경을 써야 한다면 그처럼 짜증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녹조 현상이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 기회에 확실히 밝힐 필요가 있다. 유속이 느려지면서 녹조류 발생 여건을 만들어 줬다는 것이다. 어류 생태계가 훼손됐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수질 문제가 사회적인 현안으로 떠오를 때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인 공방으로 변질되는 것은 그렇게 유쾌한 모습이 아니다.

당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효과적인 대응책이다. 수돗물 안전을 위해서는 물론 생태계의 균형을 침해받지 않으려면 지자체와의 합동 작전으로 초동 단계에서부터 면밀한 대책이 따라야 한다. 녹조발생 구역에 대한 오염물질 저감 활동에 집중하는 한편 하천으로 유입되는 오폐수 차단에도 각별히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녹조가 그동안 별로 발생하지 않던 한강 수계에서도 발생했다는 점에서 올해는 보통 상황이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녹조 라떼’에서 걸러진 수돗물을 마시는 상황만큼은 피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3. 가정용보다 더 비싸고 불합리한 학교 전기료

이번 주 개학한 초·중·고교도 폭탄 전기요금 걱정에 몸살을 앓고 있다. 폭염이 여전히 꺾이지 않은 가운데 개학한 학교들은 전기료 폭탄을 맞을까 봐 온갖 옹색한 방책을 다 동원하고 있다. 아예 단축 수업이나 임시 휴교에 들어간 곳도 있고, 층마다 번갈아 에어컨을 돌리는 탓에 속수무책으로 찜통 교실을 견뎌야 하는 모양이다. 참 딱한 이야기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만 문제가 아니다. 수십 명이 모인 교실에서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학생들이 수업을 못 할 정도라면 문제가 크다.

학교의 불합리하게 과다한 전기요금은 번번이 논란거리가 되긴 했다. 지난해 말 정부는 7~8월과 12~2월 일선 학교들의 전력 사용량에 따른 요금을 15% 할인해 주기로 했다. 해묵은 논란에 대한 임시방편이었던 셈이다. 그나마 이번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 파동이 없었더라면 납득할 수 없는 학교 전기요금 문제는 제대로 공론화되지도 못했다.

교육용 전기 요금은 산업용은 물론이고 주택용보다 더 비싼 현실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불합리한 요금 체계는 1년 중 전력사용이 가장 많은 날 하루의 사용량을 기준으로 삼는 현행 기본요금 산정 방식 때문이다. 이 계산법으로는 연간 사용량이 상대적으로 고른 산업용보다 교육용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학교의 기본요금이 산업용보다 17%나 비싸고 심지어 누진제가 적용되는 주택용보다도 높은 이유다.

올해 같은 폭염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 일선 학교들이 전기료 폭탄이 무서워 찜통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은 단순히 절약 차원의 이야기와 다르다. 저런 찜통 교실에서라면 무상급식 밥상은 뭐하러 차려 주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앞뒤 맞지 않은 제도는 당장 손을 봐야 한다.

전기요금 부과 체계에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한 이유는 이처럼 가정용 누진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주 정부가 발표한 주택 전기료 땜질 처방으로는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 걱정했던 폭탄 전기요금 청구서가 속속 날아들고 있다. 평소보다 두세 배나 많아진 요금을 내는 것도 답답한데, 왜 이런 액수가 나왔는지조차 계속 안갯속이라면 정부의 존재 이유를 따질 수밖에 없다. 생색내기에 그친 임시 처방으로 뭉갤 게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누진제 개편안을 내놔야 한다. 한전이 전기요금을 매기는 검침일 기준이 왜 옆집하고도 들쭉날쭉 제멋대로인지도 의문이다. 이번 기회에 정부와 한전은 이런 미스터리도 속 시원히 풀어 주고 납득시켜 주길 바란다.

4. 정부·성주 주민, 사드 제3후보지 접점 찾길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어제 사드 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 주민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황교안 총리와 함께 성주를 방문한 지 한달 만에 다시 찾았다. 그때는 과격 시위로 대화가 불가능했던 만큼 주민과의 실질적인 대화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와 사드 배치에 강력히 반발하는 주민들 간 입장 차로 서로 평행선만 달렸는데 이번에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한 장관은 이날 성주군청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사드 배치를 미리 설명해 드리지 못해 거듭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부지 결정 전 진작에 간담회가 열렸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다. 군사 기밀 등을 고려해 사드 배치를 전격으로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지만 한 달 넘게 반발하는 주민들을 보고만 있었던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사드 배치 발표 후 보여 준 정부의 행보는 오락가락 그 자체였다. 국방부는 성산포대가 아닌 제3 지역이 거론되는데도 부인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성주 내 다른 지역으로 배치 검토”를 말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입장을 바꿨다. 중요한 안보 정책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결정된 것 아니냐는 의혹과 불신을 정부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어제 간담회에서는 제3 후보지를 놓고 공식적인 대화가 오간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한 주민이 발언권을 얻어 “사드 배치 여부는 대통령이, 부지는 국방부 장관이 결정하는 만큼 다른 지역에 (배치)할 수 있도록 재가를 받아 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장관은 이에 “지역 의견으로 말씀을 주시면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다른 주민들이 강력히 항의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고 한다.

주민 대표로 이뤄진 사드 배치 철회 투쟁위원회는 여전히 배치 철회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앞으로 정부와의 접점을 찾기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하지만 사드 사태가 장기화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성주 참외 출하량이 줄어들고 관광객이 급감하는 등 성주 경제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한다. 일부 정치인들까지 이를 정치 쟁점화하면서 정쟁으로 비화되는 것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겠는가. 그런 만큼 성주 주민들의 대승적 결단이 필요하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주민 한 명이 제3 후보지를 언급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성주 지역 안보·유림 단체를 중심으로 한 제3 후보지 이전론이 힘을 얻어 가고 있다. 국가 안보를 위한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이해하고 있다는 얘기인 만큼 투쟁위는 제3 후보지 이전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주민 설득이 중요하다. 지금 주민들의 반발이 제3 후보지 인근의 김천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 장관뿐만 아니라 총리, 나아가 대통령까지 주민들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 대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5. ‘대북 확성기’까지, 할 말을 잃게 하는 방산비리

대북(對北) 확성기 도입 사업이 ‘검은 거래’ 의혹에 휩싸였다. 군 검찰이 사업을 관장한 국방부 심리전단과 관련 업체의 사무실을 최근 압수수색했다고 한다. 무기 도입과 관련한 방위산업 비리가 극성을 부리더니 하다하다 대북 심리전에 사용하는 확성기에까지 손을 댔단 말인가. 너무 놀라워 도저히 입이 닫히지 않는다.

고성능 확성기를 이용한 대북 심리전은 군 통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지대한 관심 속에 추진돼 왔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13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북한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심리전 수단”이라고 했을 정도다. 실제 지난해 지뢰도발 당시 11년 만에 재개된 확성기 방송은 최전방 북한 군 장병들을 동요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한 바 있다. 오죽하면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가장 무서워한다고 하겠는가.

대북 확성기 방송은 지난해 남북 간 8·25 합의에 따라 중단됐다가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이틀 뒤인 8일 정오부터 재개됐다. 우리 군은 대북 압박을 위해 확성기 방송을 더욱 확대하기로 하고 40대의 신형 확성기 도입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심리전단이 방송용 음향장비를 생산하는 특정 업체에 유리하게 평가 기준을 조정했다는 의혹이 입찰 참여 업체들 사이에 제기됐다고 한다.

대북 확성기가 전방의 북한 장병뿐 아니라 내륙의 북한 주민들에게도 효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최소 10㎞ 거리에서도 또렷하게 들려야 한다. 하지만 선정 업체의 확성기는 가청 거리가 겨우 3㎞에 불과했다니 폭 4㎞의 비무장지대(DMZ)도 넘어가지 못할 ‘모기소리’로 하나 마나 한 대북 심리전을 벌일 뻔했다는 얘기 아닌가. 사업비 183억여원도 크게 부풀려졌을 가능성마저 제기되니 복마전 같은 검은 커넥션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김포 등 경기 북부 지역에서 오히려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이 밤마다 귀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극성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대북 확성기 사업 비리는 사실상 이적행위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국가 안보를 갉아먹는 비리 장본인들을 철저히 색출해 엄벌해야 한다.

[동아일보]

6. 최경환·안종범 안 나오는 ‘서별관 청문회’는 의미 없다

추가경정예산안 심사를 위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어제 파행으로 끝났다.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해운산업의 부실 원인과 책임을 따지는 이른바 ‘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의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가 맞섰기 때문이다. 여야는 ‘추경안 22일 국회처리, 23∼25일 서별관 청문회 개최’를 12일 합의했다. 국회법상 청문회 증인으로 세우기 위해서는 일주일 전인 어제까지 여야가 증인 명단에 합의해야 한다. 자칫 청문회 때문에 추경 처리가 물 건너갈 판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작년 10월 대우조선에 4조2000억 원의 공적자금 지원을 결정한 당시의 서별관회의 멤버였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안종범 전 대통령경제수석을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우조선의 회계분식과 부실경영 실태를 이미 알고 있는 정부가 왜 이렇게까지 회생에 집착하는지, “서별관회의에서 청와대와 금융위원회가 대우조선 지원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홍 전 회장의 발언이 사실인지 규명하려면 이들 최종 결정권자의 청문회 출석은 필수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증인 요구를 ‘정치공세와 망신주기’로 규정하고 반대하지만 서별관회의를 주도한 핵심 인사를 증인에서 제외하는 것은 누가 봐도 비상식이다. 당시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은 유일호 현 부총리가 대신 설명할 수 있다는 여당의 주장은 친박(친박근혜) 실세인 최 의원을 보호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추경과 청문회가 별개라는 새누리당의 주장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추경에는 1조4000억 원의 구조조정용 국책은행 출자금과 2000억 원의 조선업 고용안정금이 포함돼 있다. 청문회를 통해 대우조선 지원에 대한 당국의 책임을 엄정하게 물어야 구조조정용 자금을 지원할 명분이 선다. 

그러나 더민주당 김현미 예결특위 위원장이 “증인 채택이 안 된 상태에서 예결위를 가동하는 것은 국회의 심의 의결권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기는 어렵다. 추경은 추락하는 경제를 떠받치기 위한 마지막 보루다. 여당은 증인 출석에 협조하되 야당은 9월 자금 집행에 차질이 없도록 추경안 심사에 속도를 내는 게 옳다.

대우조선의 실적은 1분기(1∼3월) 314억 원 순이익에서 2분기(4∼6월) 1조2209억 원 순손실로 전환됐다. 반짝 실적이 나더라도 언제든 새로운 부실이 드러날 수 있는 기업이라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대우조선이 산은 자회사에 편입된 2000년 이후의 장부를 모두 검증하고 정확한 실적 전망을 토대로 구조조정 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

7. 노후 잠수정 폭발사고 對北작전 중 터졌으면 어쩔 뻔했나

북한 침투 겸 잠수함 정찰용으로 사용한 70t급 소형 잠수정이 16일 경남 진해 군항에서 수리하는 도중 폭발했다. 이 사고로 장교와 부사관 등 3명이 숨지고 장교 1명은 중상을 입었다. 군은 잠수정에 쌓여 있던 가스가 갑자기 폭발해 사상자들이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사용 연한(30년)을 넘겨 올해 말 퇴역시키려던 노후 잠수정이었다지만 군 장비 노후화 때문에 생때같은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면 더욱 기막힌 일이다. 

정의당은 브리핑을 통해 “세계 10위권에 드는 국방예산을 소모하면서도 노후장비로 소중한 장병들이 목숨을 잃는 것은 국방부의 심각한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만일 노후 잠수정으로 대북(對北) 작전을 하다 이런 폭발 사고가 벌어졌으면 어땠을지 아찔하다. 북한 잠수정이 1996년 강원 강릉 해안에서 좌초했고, 1998년에는 속초 인근 해상에서 유자망 그물에 걸렸던 일도 있다. 우리 군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고물 잠수정’으로 그동안 북한 잠수함을 정찰하고 폭파하는 훈련이나마 제대로 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2월 부조종사 등 3명이 숨진 육군 헬기 추락사고는 항공기 노후화에 따른 부품 작동 불량 때문이었던 것으로 군 조사 결과 밝혀졌다. 2000년 이후 노후 전투기의 추락으로 숨진 조종사가 10명이나 된다. 최근에는 목 디스크 치료차 청평 국군병원을 찾은 23세 육군 병장에게 군의관이 소독용 에탄올을 주사하는 바람에 왼팔이 마비되는 의료사고까지 일어났다. 

대북 확성기 사업까지 특혜 의혹이 나오는 등 상층부에서는 방산 비리가 터지고 일선에서는 안전사고가 그치지 않으니 국민은 불안하다. 북의 핵과 미사일에 맞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한다 해도 군이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면 국가 보위가 흔들릴 수 있다.

8. 특별감찰관, 우병우 비리의혹 검찰에 수사 의뢰하라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비위 의혹을 감찰 중인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감찰 내용을 유출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그제 이 특별감찰관이 한 언론사에 “감찰 대상은 우 수석의 아들과 가족 회사인 ‘정강’”이라며 “특별감찰 활동의 만기가 19일인데 우 수석이 계속 버티면 검찰이 조사하게 넘기면 된다”고 알렸다는 취지의 소셜네트워크(SNS)를 인용한 보도가 나온 것이다. 어제 이 특별감찰관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검찰도 (의혹을) 덮고 특별감찰관도 조사를 못 한다면 특검을 도입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혀 정치권으로 문제가 확대될 조짐이다.

특별감찰관법은 감찰 내용은 물론 감찰 착수 및 종료 사실도 공표하거나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맹점’을 포함하고 있다. 이 특별감찰관이 우 수석의 비위 의혹을 밝혀냈거나 혹은 제대로 밝혀내지 못해 그냥 덮는다고 해도 이 법대로라면 국민은 아무것도 모르고 넘어갈 공산이 크다. 만일 이 특별감찰관의 발언대로 우 수석이 ‘아직 힘이 있다’는 이유로 ‘버티면서’ 감찰에 협조하지 않고, ‘경찰도 눈치 보고’ 있다면 법의 허점을 이용해 국민을 우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 수석에 대한 의혹은 1300억 원대의 강남역 부근 처가 부동산의 넥슨 매매 의혹을 비롯해 지난해 2월 진경준 검사장 승진 당시 인사 검증 소홀, 우 수석 부인의 농지법 위반 혐의, 의경으로 입대한 우 수석 아들의 운전병 보직과 관련한 서울지방경찰청 인사 개입 여부, 직원과 사무실도 없는 가족 회사 ‘정강’의 돈 2억여 원을 개인적 접대비 교통비로 쓴 의혹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우 수석 아들과 ‘정강’에 관련해선 우 수석이 현직에 있을 때 일어난 일이므로 성실한 답변과 자료 제출로 감찰에 응했어야 옳다.

지난해 1월 말 민정수석으로 승진한 우 수석은 뇌물 혐의로 구속된 진 검사장의 인사 검증을 소홀히 했다는 책임을 비켜 갈 수 없다. 그는 진 검사장이 넥슨의 비상장주를 보유해 100억 원 넘는 대박을 터뜨린 사실을 알면서도 문제 삼지 않았고, 올해 4월 진 검사장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자기 돈 주고 산 것이 무슨 문제냐’는 반응을 보였다. 진 검사장이 우 수석 처가와 넥슨 사이의 부동산 거래에 다리를 놔준 ‘특수 관계’여서 우 수석이 봐준 것은 아닌지 의심할 여지가 충분하다.

특별감찰관은 범죄행위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범죄행위가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특별감찰관법에 나와 있는 그대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야만 한다. 검찰은 특별감찰관의 수사 의뢰 즉시 수사에 착수해 추상같은 자세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9. 원샷법 잘 정착되도록 정부의 탄력적 법 운용 절실

원샷법으로 불리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 시행 첫날인 지난 16일 신청 업체가 4개나 됐다는 것은 산업계의 자발적 구조 개혁에 대한 높은 기대를 여실히 반영한다. 17일에도 1곳이 추가로 신청했다. 첫 신청의 주인공인 한화케미칼은 가성소다 분야 국내 1위로 염소·가성소다 공장을 화학업체 유니드에 매각하려 한다.

가성칼륨 1위인 유니드는 한화케미칼 공장을 인수해 가성칼륨 공장으로 개조할 계획인데 두 기업 간 인수·합병이 이루어지면 화학 분야의 성공적인 구조조정 사례가 될 것인 만큼 기대가 크다. 정부가 심의 후 늦어도 60일 이내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니 이르면 다음달에 첫 원샷법 적용 기업이 탄생할 수도 있을 듯하다. 

한국 경제는 이미 구조조정에 들어간 조선과 해운 외에도 철강, 석유화학, 건설 등 많은 중후장대 산업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공급과잉에다 중국의 추격으로 경쟁력마저 떨어져 있는데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까지 겹치니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으면 아예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이다. 정부는 이미 위기에 빠진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통합도산법과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마련해 적용하고 있다.

행에 들어간 기업활력법은 위기 기업이 아닌 정상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다. 미리 구조조정에 나서고 개별 기업을 넘어 해당 산업 자체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사업재편에 도움을 주도록 상법·세법·공정거래법 등 관련 절차와 규제를 간소화하고 세제와 연구개발 및 고용 안정 등을 한번에 지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샷법으로 통한다.

기업들 사이에는 원샷법 적용 신청에 나서면 경영난에 빠진 것으로 찍혀 오히려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인식도 있다는데 안 될 말이다. 정부와 금융회사들이 세제와 금융 지원을 확실히 보장해 이런 우려를 불식해줘야 한다. 우리가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일본의 산업활력재생법은 1999년부터 시행된 후 648개의 정상 기업들이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왔고, 2014년엔 산업경쟁력강화법으로 확대 개정했다. 시행에 들어간 기업활력법이 기업들에 자발적인 구조조정에 나설 촉발제이자 디딤돌이 되도록 운용의 묘를 최대한 살리기 바란다.

[세계일보]

10. 체제 홍보하던 고위외교관 탈북, 북은 엄중히 받아들여야

제3국 망명 신청설이 나돌던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최근 가족과 함께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밝혀졌다. 태 공사는 북한대사관 내 서열 2위다. 지금까지 탈북한 북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이다. 그는 북한 외무성 유럽연합(EU) 담당 과장, 구주국장 대리 등을 지낸 서유럽 전문가로, 그동안 북한 체제를 서방에 홍보하는 선전 업무를 수행했다. 한 강연에서는 “북한에 무상 교육, 무상 주거, 무상 의료가 제공되는 것을 안다면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될 것”이라며 “서방 언론의 왜곡 보도 탓에 북한이 잘못 알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랬던 그가 귀순한 것이다. 통일부는 탈북 동기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와 장래 문제”라고 했다. 그는 북한 내부 실상과 위장 선전 공세 간 괴리가 크다는 사실 때문에 절망했을 것이다. 올여름 평양에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고 고뇌 끝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은 올 들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주민들에 대한 공개처형을 대폭 늘리고 공포정치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 결과 전체 탈북자 수뿐 아니라 엘리트층의 탈북도 급증하고 있다. 4월과 5월에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집단 탈북했고, 북한 외교관 여러 명이 입국했다는 얘기가 나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 체제가 과거보다 점점 내부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 당국에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대남 도발 위협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반면 북한 간부와 주민에게는 ‘새로운 한반도 통일시대’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치 않다. 엘리트층의 이반 현상을 계기로 북한 최고 지도부를 고립시키려는 정책구상으로 풀이된다.

영국 주재 대사관은 북한 외교관의 엘리트 코스로 꼽힌다. 태 공사의 탈북은 북한 당국에 큰 충격을 줬을 것이다. 외교관 등 해외 근무자들을 비롯한 북한 엘리트층에 엄청난 심리적 혼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 도미노가 본격화하는 징후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럼에도 북한 당국은 여전히 주민들의 불만을 외면하고 핵·미사일 개발에서 살길을 찾으려 한다.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열성적으로 체제를 옹호한 고위 외교관까지 등을 돌리는 이유부터 되새겨야 할 것이다.



주요 사설칼럼


1. [중앙일보][다니엘 린데만의 비정상의 눈] 매년 광복절 돌아오면 자유의 가치 생각하자

사흘 전이 광복절이었다. 매년 찾아오는 8월 15일은 공휴일이란 것 말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날 나도 쉬엄쉬엄 일을 좀 보다가 저녁에 JTBC ‘비정상회담’에 함께 출연했던 멤버들과 즐거운 모임을 열었다. 공휴일을 맞아 이처럼 가족·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매년 광복절에 그 의미를 다시 한번 기억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945년 4월 30일 아돌프 히틀러가 지하 벙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나치 독일이 무너졌고, 8월 15일엔 일본까지 무조건 항복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이 침략해 식민지나 점령지로 삼았던 조선·대만·만주와 동남아시아 각지는 전쟁이 끝나면서 오랫동안 잃었던 가치를 회복했다. 바로 자유다. 조선은 남북으로 분단됐지만 자기 언어와 문화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게 됐다. 광복절은 자유를 상징하게 됐다.


한국은 지금 독재가 아닌 민주적인 정치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국민에게 자유는 너무나도 당연한 기본 권리다. 하지만 아직도 지구상에는 자유를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문명이 충돌하고 테러가 잦아지며 나라뿐 아니라 종교와 사상도 서로 갈등하기 일쑤인 ‘극단의 시대’의 피해자들이다.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 때문에 차별당하고 노예나 인질로 잡혀가거나 목숨을 잃는 시리아·이라크 국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더 나은 미래를 찾으려고 고향을 떠나는 난민도 마찬가지다. 테러단체 보코하람에 납치돼 팔려 가는 아프리카 여성들도 비극적이다. 독립을 이뤘지만 내전으로 고통받는 남수단 국민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가까운 북녘 땅의 동포들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 많은 사람에게 언제쯤 진정한 자유가 찾아올까?

진정한 자유란 다른 사람의 자유를 해치지 않으면서 내 인생과 관련한 모든 선택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한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억압하고 자유를 뺏을 권리는 없다. 자유가 최고 가치인 미국에서 한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면 앞으로 무슬림(이슬람 신자)의 출입국을 금지하겠다고 하는데 그에겐 그런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강한 사람이 권력을 앞세워 약자의 자유를 억압하면 악당이 되지만 약자의 자유를 지켜주면 전설이 된다. 광복절을 자유의 가치를 생각하며 모든 사람의 진정한 자유를 얻을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는 가치 있는 날로 만들었으면 한다.


2. [연합뉴스]<윤고은의 참새방앗간> 이 여름, 올림픽이 드라마를 못 이기네

"에휴 이번 올림픽 최악이구만 왜 결방하는 거야"(네이버 아이디 'whdt****')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드라마를 못 이기고 있다. 

시청자들이 "올림픽이 재미없다"며 정규 프로그램 결방에 대한 불만을 토해내면서 지상파 방송 3사가 편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4년마다 한번 열리는 올림픽은 태생적으로 많은 이야기와 드라마를 안고 있어 시청자에게도 환영받는다. 꼭 "대~한민국!"을 외치지 않더라도, 우사인 볼트나 마이클 펠프스의 경기를 지켜보는 데 있어 시청자의 국경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방송사로서도 정규 편성 대신 올림픽 중계방송을 하는 게 웬만하면 '남는 장사'가 되곤 했다. 올림픽 중계방송 광고 특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리우 올림픽은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으니, 바로 한국과 정반대의 시간표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주요 경기가 '모두 잠든 후에' 펼쳐지니 광고가 잘 붙을 리가 없다. 이미 '사상 최악의 올림픽 광고 판매 실적'이란다.


이런 상황에서 밤 9~12시나 아침 7~9시에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잡히면 방송사로서는 절체절명의 기회가 된다. 그나마 사람들이 깨어있고, 특히 밤 10시 전후는 '프라임타임'이라 한국 선수들이 선전만 해준다면 예년만 못한 올림픽 열기를 후반부에라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한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폭염이라 시청자들이 밤잠을 설칠 준비가 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대표팀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방송사로서는 막판 반등도 꾀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16일 밤 10시부터 방송 3사는 일제히 드라마를 결방하고 여자배구 8강전을 중계했다. 한국 대표팀이 네덜란드에 패하자, 동시 중계에 대한 시청자의 비난을 무릅쓰고 올림픽을 선택했던 방송 3사에는 원성이 밀려들었다. 특히 시청률 20%를 넘나들고 있는 '닥터스'를 결방한 SBS에 비난의 포화가 집중됐다. 

지난 14일 오전 7시부터 펼쳐진 남자축구 8강전은 더 뼈아프다. 일요일 아침이고, 한국 대표팀 경기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에 승리했다면 이후 올림픽 중계방송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는 분기점이었다. 

하지만 한국팀은 온두라스에 패했고, 방송 3사 동시 중계의 시청률 총합이 무려 30.5%에 달했음에도 시청률에서 확인한 이날의 열기는 뒤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렇다보니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결방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진다. 방송 3사가 나란히 같은 경기를 중계하는 것에 대한 원성도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듯 하다. 우리 선수들의 승전보가 잇따랐다면 그러한 목소리는 인터넷에서도 설 자리가 넓지 않았을 것이다. 

잠 못 이루는 이 더운 여름밤 지구 반대편에서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소식이 팡팡 터져주면 좋으련만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이 한국의 드라마를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현재 방송 3사 드라마들의 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3. [서울신문][문화마당] 공부합시다!/김민정 시인

한동안 제목에 ‘공부’가 들어가는 책이 유행이었다. ‘공부’가 얼마나 어마무시한 단어냐면 어떤 제목에 끼워 넣든 보는 즉시 자세부터 고쳐 먹게 만드는 뉘앙스를 가졌다는 걸 그때 톡톡히 알았던 듯싶다. 예컨대 편집자인 내가 만든 책을 재미삼아 예로 들어 살짝 변주해 봐도 이런 쓰임이 나온다. 공부가 선생이다, 오늘 공부가 좋아서, 공부하기 좋은 책, 공부의 정거장, 나의 사적인 공부, 엄마의 공부, 생각하는 공부…. 왠지 책 몇 권은 너끈히 기획할 수 있겠다 싶은 자신감을 자만처럼 거만하게 갖게 하는 데는 아마도 ‘공부’라는 단어의 그 끝 간 데 없는 깊이와 넓이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온몸으로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공부, 학문이나 기술을 배운다는 말이 그 공부라 할라치면 우리는 그 누구도 평생 공부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는 평생 공부로부터 모자란 사람이고 그렇듯 모자란 채이니 평생 실수를 반복하며 살다갈 수밖에 없음이 당연하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실수하는 사람의 모든 실수를 그때마다 이해하고 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소한 제 밥벌이를 걸었을 때의 실수는 확실히 지적하고 단호하게 책임을 물어야 함이 옳다. ‘나’를 넘어서서 ‘우리 모두’에게 폐해를 끼칠 수 있다면 그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수백 권의 책을 만들면서 십수 년을 출판사에서 일해 왔지만 여전히 나는 편집일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조판을 마친 작가들의 원고가 백지에 얹어져 내 책상 위에 올려져 있을 때의 설렘도 잠시, 연필을 쥔 채 교정과 교열을 해 나가면서 내가 놓친 단어와 문장이 없나 자꾸만 되짚다 보면 잦은 한숨이 절로 새어나오며 앞서 이 일을 장인처럼 해내던 선배들의 굽은 등이 태산처럼 점점 부풀려져 보인 적 많았었다.

그 긴장감을 평생 등뼈처럼 곧추세워야 한다는 일침인지 책이 나온 뒤에 눈 밝은 독자들의 전화를 종종 받게 된다. 작가와 몇몇의 편집자가 뜯어먹을 지경으로 달라붙어 훑은 원고인데도 여지없이 오타가 나오고 비문이 나오고 미처 잡지 못한 오류가 발견되니 흔히 책은 끝나도 영영 끝나는 게 아니라는 말도 상투적으로 통용된다지만 그때마다 독자 게시판에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음을 안내하면서 일견 고마운 마음에 안도하게 되는 것도 솔직한 속내다. 내 사소한 실수를 사실로 받아들여 평생을 잘못된 정보 속에 살아갈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내가 끼친 악행은 얼마나 큰 것이런가.

지난 광복절에 대통령이 경축사를 읽으며 큰 실수를 했다. 하얼빈 감옥과 뤼순 감옥을 어떻게 헷갈릴 수 있었는지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지만 뭐 인간은 타고나기를 실수할 수밖에 없다고 줄곧 얘기해 왔으니 나름의 이해라는 걸 해보려 하는데 이제 남은 건 아무래도 사과이며 바로잡음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일로 밥벌이를 삼은 이들도 물론이거니와 그들이 준비해 온 바를 아무런 의심 없이 낭독하기에 바빴던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모자람에 잘못했습니다, 머리 숙임과 동시에 모두 앞에 그 실수를 인정함으로써 이참에 다같이 역사 공부 한번 제대로 해보자 하는 건강하고 열린 결말을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최소한 지금 우리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저마다 공부란 걸 하고 있는지 제 밥벌이를 걸고 스스로를 한번 들춰 볼 필요는 있겠다. 1983년에 발표된 윤시내의 노래 ‘공부합시다’가 그 시절엔 히트곡으로, 이 시절에는 명곡으로 왜 회자되는지 그 안팎의 의미는 다들 한번씩 새겨 볼 필요는 있겠다.


4.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막국수, 향토 음식에서 국민메뉴로

막국수는 메밀이 많이 나는 강원도의 향토 음식이다. 원래는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칼국수처럼 얇게 밀고 칼로 썰어 면을 만들어서 끓는 물에 삶은 후 식힌 다음 김치 국물에 말아 먹거나 매운 양념장에 비벼 먹었던 음식이다. 지금은 메밀가루에 밀가루나 전분 등을 섞어서 반죽한 후에 기계 국수틀에서 눌러 뽑아 사리를 만들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더 쫄깃한 면발을 즐길 수 있다.


면 위에 양념을 더하고 지역 특성에 따라 김치, 오이, 삶은 계란, 가자미, 명태, 닭고기, 김, 깨 등 다양한 고명을 얹는다. 국물은 동치미 국물 또는 소뼈, 멸치 등으로 고아낸 육수를 사용하거나 섞어 쓰기도 한다. 그대로 먹으면 비빔막국수, 육수를 부으면 물막국수가 된다.

막국수를 주 메뉴로 하면서 면을 만드는 국수틀이 있으면 대체로 기본에 충실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집이다. 그래도 굳이 더 맛을 따진다면 이름난 집들이 있다. 막국수 하면 춘천 막국수가 떠오를 정도로 막국수의 역사는 강원도 일대에서 시작되었다. ‘샘밭 막국수’는 춘천의 3대 막국수집으로 꼽히는 막국수계 원조 명가 중 하나로 3대가 46년째 이어 오고 있다. 메밀을 많이 쓰고 전분이 아닌 곡식을 섞어 메밀향이 좋다. 여기에 열무김치를 곁들이면 시원하게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사골을 우려내어 동치미 국물과 섞은 육수가 일품으로, 그 맛을 못 잊어 그쪽으로 갈 일이 있을 때는 조금 돌더라도 들렀던 집이다. 멀리서 오는 단골손님이라고 해서 기념으로 막국수 대접을 선물 받은 적도 있다. 서울에도 진출해서 서초동에 지인이 경영하는 ‘샘밭 막국수’가 등장했다. 춘천 막국수집의 할머니가 재료를 갖고 직접 다니면서 맛을 지도했다고 한다.


을지로4가역 좁은 골목 안쪽에 또 다른 막국수 명가 ‘춘천산골막국수’가 자리잡고 있다. 1952년 춘천에서 개업해서 서울로 이사 왔다. 전분을 섞어 면을 쫄깃하게 뽑아 낸다. 메밀 함량을 더 높이고 싶어도 식감을 즐기는 손님들이 꺼려해 예전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고명으로 얹어 주는 매콤한 닭무침은 막국수와 궁합이 잘 맞는다. 큰 주전자에 주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부어 먹으면 제격이다. 막국수 외에도 미리 주문해야 하는 토종닭을 비롯해 감자전, 닭무침 등 메뉴가 다양해 싸고 맛있게 손님 접대를 할 수 있다. 단, 저녁때는 엄청 왁자지껄한 분위기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서울 통인동 서촌에 ‘잘빠진메밀’이라는 자그마한 지하 막국수집이 등장해서 마니아들을 즐겁게 한다. 메밀, 물, 소금만 써서 젊은 주인(민성훈)이 직접 반죽하는 100% 메밀면을 쓴다. 메밀은 제분한 지 2주일을 넘기지 않는다. 육수는 메밀, 채소, 사골을 각각 끓여 깊은 맛을 낸다. 비법은 강원도 양양의 유명한 막국수집에서 사장이 직접 배워 왔다고 한다.

이제 내공 있는 막국수집들이 동네마다 생겨나고 있다. 막국수의 고유한 풍미를 보여 주고 있는 서민 식당들이 전국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막국수는 강원도 향토 음식에서 한국인이 즐겨 찾는 대표 음식의 하나가 됐다.


5. [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탁구의 ‘우리 영식이

여자배구 대표팀 주장인 김연경(28)은 누리꾼들 사이에 ‘우리 누나’로 통한다.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국내 팬들이 애정과 친근함의 표시로 ‘우리 형’으로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은 한일전에서 30점을 기록하며 역전승을 이끈 ‘우리 누나’에 이어 ‘우리 동생’을 배출했다. 남자 펜싱의 박상영 선수(21). 

펜싱 에페 결승전에서 10 대 14로 뒤진 상황, 그는 “할 수 있다”고 혼잣말을 한 뒤 내리 5득점을 따내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카메라에 잡힌 ‘할 수 있다’ 장면은 온 국민에게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역전 드라마의 기적을 만든 ‘긍정 청년’은 그때 이후 ‘우리 동생’으로 통한다. 이제 ‘우리∼’ 시리즈의 새 가족으로 ‘우리 영식이’가 합류했다. 

탁구 대표팀의 정영식 선수(24). 남자 단식 16강전에선 세계랭킹 1위 마룽 선수에게 역전패한 데 이어, 남자 단체 준결승전에선 랭킹 4위 장지커 선수에게도 패했다. 경기에 지고도 핑퐁 스타로 주목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탁구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지금까지 금메달 30개 중 26개는 중국 차지였다. 패배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우리 영식이가 거침없는 투지로 밀리지 않는 경기를 펼쳐 세계 최강팀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올해 나이 스물넷이니 4년 뒤엔 한국 탁구가 만리장성을 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사람들은 결과로도 환호하지만, 과정으로도 감동한다. 정영식 선수의 투지와 근성, 정말 멋졌다. 내가 꼭 이기고야 말겠다,TV 너머로까지 느껴지는 투지에 나도 무언가를 위해 저렇게 열심히 간절히 바란 적이 있었나 생각했다.” 누리꾼은 ‘외계인 중국에 맞서는 지구 대표’라며 우리 영식이의 패기와 근성에 환호했다. 정 선수는 말한다. “주변에서 중국 절대 못 이긴다는 말을 하지만 솔직히 한계가 어디 있나 싶다.” 훈련장에 제일 먼저 나와 불을 켜고, 가장 늦게 불을 끄는 선수가 바로 우리 영식이다. 지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진정한 올림픽 스타들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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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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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7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김영란법’ 앞서 청와대 식단부터 바꿔야

지난주에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의 호화 오찬 논란은 진위 여부를 차치하고 국민들에게 씁쓰레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그 자리에서 마침 서민들의 전기요금 누진세 인하 문제가 논의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전기료 폭탄이 겁나서 살인적 폭염에도 에어컨을 마음대로 못 켜는 서민들로서는 청와대의 호화 오찬 메뉴에 실망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꼈을 게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복심으로 알려진 이정현 의원이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신임 대표로 선출되자 이틀 뒤 새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당선을 축하하면서 물냉면과 능성어찜을 대접했다. 호남 출신인 이 대표에 대한 배려였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바닷가재, 훈제연어, 송로버섯, 캐비어 샐러드, 샥스핀찜, 한우갈비 등이 줄줄이 오른 초호화 식탁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특히 ‘식탁의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송로버섯은 크기와 품질에 따라 값이 수백만원에서 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요즘 같은 혹서기에는 왕조 시절의 임금님도 반찬 가짓수를 줄여 백성들의 고통에 동참했다는 옛 사례도 모르느냐는 힐난이 쏟아질 만도 하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송로버섯과 캐비어는 그만두시고 전기료 누진제라도 조정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며 대놓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청와대는 송로버섯을 주재료가 아닌 향신료로 조금 썼을 뿐이라고 해명한다. 유명 요리사들도 이에 동의하며 1인당 식사에 포함된 송로버섯 비용이 기껏 몇천원 정도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송로버섯을 제외한 나머지 식단만으로도 핀잔을 듣기에 충분하다. 높으신 분들께서는 이렇게 산해진미를 즐기며 전기료를 몇천원씩 깎아준다고 생색을 냈으니 서민들의 화가 치솟는 것도 당연하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그날의 식사비용이 김영란법 시행령에서 규정한 1인당 식사접대비 상한선 3만원은 훌쩍 뛰어넘었을 게 틀림없다. 청와대나 국회의원들이나 당연히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다. 시행까지는 아직 한달 넘게 남았지만 청와대부터 솔선하지 않고 국민에게만 법 준수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값비싼 수입 식재료가 다수 포함된 것도 거슬린다. 청와대는 차제에 식단을 바꾸는 방안을 심각히 고려해야 마땅하다.

2. 정책 실패가 초래한 미분양 아파트 사태

아파트 업계에 공급물량 누적에 따른 미분양의 연쇄 파열 우려가 눈앞에 닥쳐오고 있다. 그동안의 분양 실적이 실수요를 반영하기보다 정부의 경기활성화 정책에 따른 과열 투자였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고도 실제로는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겉으로는 활황세를 보이던 부동산 시장의 어두운 속사정이다.

국토교통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모두 6만 가구로 나타났다. 전월(5만 5400가구)보다는 8.2%, 지난해 같은 기간(3만 4000가구)에 비해서는 무려 76.1% 늘어난 수준이다. 또 다른 지표인 민간아파트 초기분양률도 지난해 2분기 92.2%를 기록한 이래 줄곧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전국적으로 비슷한 현상이지만 그중에서도 수도권이 더욱 심각하다.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고 있는 데는 정부와 업계가 공동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정부는 건설경기를 살리려고 신도시를 무리하게 확장했고, 업체들은 이에 편승해 분양 물량을 쏟아냈다. 청약자들에게는 주택대출 혜택을 부여하기도 했다. 전세난이 길어지면서 실수요자들의 투자심리가 표출됐던 것도 분양물량 확대를 부추긴 하나의 요인이다.

미분양이 쌓이면서 실수요자들도 오히려 청약 의사를 거둬들이는 실정이라고 한다. 앞으로 주택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그동안 치솟던 전셋값이 현재 안정세로 돌아섰다는 점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한다. 정부가 미분양 주택을 해소하려는 차원에서 특단의 세제 혜택을 제시할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건설업체들이 미분양 주택을 할인가격에 내놓으면서 기존 입주자들과 불화를 빚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런데도 아파트 공급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1~2년 뒤에 부동산 시장이 전체적으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자칫 건설업체들은 경영난에 처하게 될 것이고, 주택 구입자들도 은행대출 부담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문제가 터지고 나면 해결이 더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당장 미분양 아파트를 해소하기 어렵다면 신규 공급 물량이라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서울신문]

3. 양보하고 대안 찾는 8월 임시국회를 기대한다

8월 임시국회가 오는 31일까지 보름 일정으로 어제 막을 올렸다. 헌정 사상 최악의 무능 국회 평가와 함께 국민의 심판을 받았던 19대 국회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20대 국회의 두 번째 임시국회다. 6월 임시국회를 통해 30년 만에 가장 빠른 개원(開院)을 이끌어 내는 등 ‘협치’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준 여야 3당은 ‘본게임’의 1라운드라고 할 수도 있는 이번 임시국회를 통해 진짜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줘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임시국회에는 쟁점 현안들이 즐비한 만큼 국민이 ‘매의 눈’으로 여야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여야는 이번 임시국회를 통해 정부가 제출한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심사·처리하기로 했다. 또한 이른바 ‘서별관회의 청문회’라고도 불리는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관련 청문회도 회기 중 진행한다. 구체적 사항을 원내대표 간 협의로 일임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기간 연장 문제와 야권이 추경안 처리의 선결조건으로 내걸었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대책특위 등도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복병들이다. 모두 여야 간 견해차가 큰 안건들이어서 위태롭기만 하다. 그럼에도 여야는 협치와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 원만한 결실을 보길 바란다.

사사건건 대립과 정쟁으로 점철해 임시국회 때마다 ‘빈손’에 그쳤던 19대 국회 당시의 여야와 지금의 여야는 확연히 바뀐 정치 지형만큼이나 인식이나 가치관 등이 자못 긍정적으로 바뀐 것이 사실이다. 각 당 지도부에서 대립보다는 협치, 정쟁보다는 상생을 언급하는 빈도가 높지 않은가. 그런 여야가 국민의 기대감을 저버리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여야 각 당이 이번 임시국회를 자신들의 수권(受權) 능력을 국민에게 내보이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 달라고 제안하는 바다. 이미 각 당 모두 사실상 대선 준비를 시작한 것 아닌가.

혹독한 추경안 심사와 청문회를 벼르고 있는 두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나 ‘호통·망신주기 청문회’가 아닌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놓거나 잘못된 정책을 시정할 수 있도록 청문회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여당도 무조건적인 정부 옹호가 능사가 아니다. 미진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정책 책임자들을 과감히 질책하고,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을 제시해야만 한다. 여당은 방어하고, 야당은 공격하는 구태로는 국민에게 수권 정당이라는 믿음을 줄 수 없다. 이번 임시국회부터 수권 능력 경쟁이 시작돼야만 한다.

4. 소폭 개각이었지만 국정 쇄신 계기로 삼아야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3개 부처 개각을 단행했다. 4·13 총선 참패 이후 집권 후반기의 국정 운영을 위한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개각에 대한 국민의 요구와 기대가 컸지만 결과는 소폭 부분 개각에 그쳤다. 공격적인 국정 운영보다는 안정적인 성과 중심의 국정 관리 쪽에 무게를 뒀다. 내용과 규모에서 최소에 그친 탓에 특징을 찾기가 어렵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 환경부 장관에 조경규 국무조정실 2차장을 내정했다. 4명의 차관급 인사도 함께 실시했다.

그러나 진경준 검사장의 인사 검증 실패를 비롯한 갖가지 의혹에 휩싸여 특별감찰까지 받아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거취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이런 까닭에 야권이 “국정 쇄신 의지와 거리가 먼 오기, 불통, 찔끔 개각”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조만간 후속 인사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박 대통령은 이번 개각을 통해 임기 말 국정 운영의 원칙과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하지만 총선에 따른 민의를 충분히 수용하고 공직 기강을 다잡기 위한 최선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1일 박 대통령에게 건의한 ‘탕평·균형·소수자 배려’, 즉 안배 인사와도 거리가 멀다. 조윤선 후보자는 여성 배려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현 정부에서 이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정무수석비서관까지 맡았던 데다 4·13 총선에 나섰다가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측근 중의 측근이다. 김재수 후보자는 경북 영양, 조경규 후보자는 경남 진주 출신으로 전·현직 관료다. 측근 및 관료 출신들의 포진을 통한 친정체제 강화나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의 의중은 인적 개편으로 정국을 돌파하기보다는 현행 내각의 보완을 통해 지금껏 진행해 온 국정 과제의 결실을 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 임기 말 레임덕(권력누수) 차단에 효과적이라는 판단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현 정권 출범 때부터 함께해 온 윤병세 외교부 장관, 창조경제를 이끄는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사드 배치 문제를 다루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유임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외교안보, 창조경제 정책을 비롯한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개혁을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추진하는 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제 광복절 경축사에서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함께 가자’는 공동체 의식으로 함께 노력하면 우리는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8·16 개각은 끝났다. 비록 소폭이지만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는 인사들로 새 진용이 짜였다. 이제 얽히고설킨 국정 현안을 풀어 가는 데 전념해야 할 때다. 박 대통령은 또한 국민이 ‘할 수 있고, 함께 나가도록’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보여 줘야 한다. 그래야 소폭 개각에 대한 의미가 살 수 있다.

5. 아파트·공공기관 ‘주차장 공유’ 의미 있다

공유경제는 잘 알려진 대로 하나의 제품을 여럿이 나눠 쓰는 생산 및 소비 활동을 뜻하는 개념이다. 굳이 개인이 소유할 필요 없이 필요한 만큼 빌려 쓰고, 필요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면 된다. 주거 공간이나 자동차를 공유해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경제활동 방식은 갈수록 우리 생활 속으로 깊이 파고들고 있다.

물론 새로운 일부 공유경제 서비스가 기존 질서와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공유경제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문제는 새로운 개념의 수요·공급 시스템을 창출해야만 공유경제라는 착각이 오히려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 부천시의 사례는 공유경제가 무슨 엄청난 첨단 아이디어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이 도시의 상동 복사골 문화센터는 지난 3월 이웃 아파트 단지와 주차장을 나눠 쓰는 협약을 맺었다. 공공기관 주차장은 이용객이 몰리는 낮시간에 가장 혼잡한 반면 아파트 주차장은 주민들이 돌아온 밤이 피크타임이다. 6월에는 중4동과 상2동·괴안동·성곡동의 행정복지센터와 부천보건소, 원미2동 주민자치센터도 이웃 아파트 단지들과 주차장을 공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해당 공공기관의 이용료도 할인받는다니 이익은 두 배로 돌아온다.

부천시는 지난달 3개의 구청을 없애는 행정 개혁을 단행하기도 했다. 기존 시·구·동 3단계의 행정 체계를 2단계로 단순화한 것이다. 부천시는 행정 개혁으로 사라진 원미구의 옛 청사를 경기일자리재단과 가칭 경기벤처창업지원센터에 내놓았다. 경기도가 가장 역점을 두어 설립을 추진하는 기관이라고 한다. 경기도는 도민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한 자리에 센터를 열게 됐고, 부천시는 중량급 공공기관을 유치한 것은 물론 청년 구직자들에게는 어느 자치단체보다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이 또한 공유경제의 모범 사례로 기록해도 좋을 것이다.

부천시의 사례는 공유경제가 지방자치단체에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공직자들이 공유경제적 사고를 하는 것만으로도 주민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부천시는 실증했다. 다른 지자체들도 주차장 공유 같은 아이디어는 따라 해도 주민들에게서 박수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공유경제적 사고를 경쟁적으로 가속화해 부천시를 뛰어넘는 사례를 줄지어 내놓기 바란다.

[중앙일보]

6. 중금리 시장 활성화 불 지핀 어느 핀테크 업체의 실험

우리 경제의 고질병이 된 가계부채는 양과 질, 양쪽의 질환을 앓고 있다. 올 3월 기준 1223조원이란 엄청난 양이 우선 문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주 “가계부채 증가 추세가 꺾이지 않고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증가 추세가 꺾였다”며 반박했지만 그렇다고 양의 문제가 본질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7월 가계대출은 6조2000억원으로 6월의 6조5000억원보다 증가세가 줄긴 했다. 2월부터 은행권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은행 돈줄이 막힌 가계는 저축은행 등 비은행권으로 내몰렸다. 올해 5월까지 비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액은 15조9000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상반기(8조8000억원)보다 7조원 넘게 늘었다. 이른바 풍선효과다.

가계부채가 비은행권으로 쏠리면 질의 문제가 불거진다. 고금리로 가계의 이자 부담이 크게 늘기 때문이다. 우리 대출시장은 은행권의 연 6% 이하 저금리와 비은행권의 연 15% 이상 고금리로 양극화돼 있다. 은행 돈줄이 조여지면 서민 가계의 상환 부담이 급증하는 구조다. 연 7~15%의 중(中)금리 시장 활성화가 시급한 이유다.

마침 핀테크 업체이자 업계 선두 P2P(개인 대 개인 대출) 회사인 8퍼센트가 지난주 금융권 최초로 ‘최저금리 보상제’를 내놓았다. 더 싸게 돈을 빌려주는 곳이 있으면 10만원을 보상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P2P 업체들이 늘어나자 일부 저축은행과 캐피털 회사도 중금리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업계에선 “실질적 금리 인하 경쟁이 시작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금리 시장은 그간 은행이나 금융 당국이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돈 안 되고 관리가 힘들다며 방치했던 분야다. 이걸 핀테크 업체가 뛰어들어 바꾸고 있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그간 P2P 업체를 ‘금융의 변방’쯤으로 취급해 왔다. 관리·감독 대상이 아니라며 방치해 왔다. 그러나 P2P 업계는 스스로 핀테크야말로 가계부채의 뇌관을 제거할 수단이자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임을 증명해가고 있는 것이다.

[매일경제]

7. 세계 11위 오른 한국 경제 더 힘든 고비 넘어야 한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1조3779억달러로 세계 11위였다. 한 해 전보다 두 계단 올라선 것이다. 반세기 동안 숨 가쁘게 질주한 한국 경제는 2005년 세계 10위까지 뛰어오르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에는 15위까지 되밀렸지만 그 후 조금씩 실지를 회복했다. 인구 대국도 자원 부국도 아닌 나라로서는 이미 놀라운 성취를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작년 한국 경제 순위가 오른 건 우리가 잘해서라기보다 글로벌 저성장 탓에 자원 부국인 러시아 경제가 급격히 쪼그라들고, 호주 경제도 뒷걸음질했기 때문이다. 벌써 성장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한국 경제가 이대로 가면 세계 10위권에 안착하지 못하고 급부상하는 신흥국들에 추월당할 수 있다. 

지구촌의 경제력 순위는 각국의 인구 증감과 혁신 능력에 따라 금세 뒤바뀐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13위에 머물렀던 인구 대국 인도는 그동안 한국을 제치고 7위로 뛰어올랐으며, 25위에서 16위로 도약한 인도네시아는 21세기 초 어느 시점에 우리를 제칠지 알 수 없다. 반면 경제 위기를 겪은 스페인은 10년 새 9위에서 14위로 떨어졌다. 

한국 정부는 한때 세계 7위 경제강국 목표를 내걸기도 했다. 우리가 곧 인도에 밀려 7위로 내려앉을 프랑스 경제(작년 GDP 2조4216억달러)를 10년 안에 따라잡으려면 프랑스보다 해마다 6%포인트 가까이 빨리 성장해야 한다. 잠재성장률이 이미 3% 안팎으로 떨어졌고 2030년대에는 1%대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경제로서는 참으로 버거운 일이다. 

우리가 무섭게 추격해오는 신흥국들을 따돌리면서 캐나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같은 선진국들을 따라잡으려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20세기 후반 빠른 추격자의 전략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하지만 21세기에는 혁신적인 선도자로 거듭나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인구, 창조적 파괴를 가로막는 낡은 규제와 공장식 교육 체제로는 한국 경제의 퀀텀점프를 이룰 수 없다. 21세기 경제 전쟁에서 이길 새로운 국부론을 쓰지 못하면 어렵게 되찾은 세계 11위 자리조차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8.  일본의 내수진작 노력 한국도 적극 벤치마킹해야

일본이 극심한 침체에 빠진 내수를 살리기 위해 금요일 조기 퇴근과 외국인 관광객 사전입국심사제 등 다양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도 소비 절벽이 좀처럼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사전심사제는 외국인 관광객이 출발지에서 입국심사를 받도록 하는 제도로 내년에 한국과 대만에서 실행될 것이라고 한다.

이 제도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에서 시행됐고 2005년부터 대만으로 확대했다가 2009년 중단됐는데 아베 신조 정권이 들어선 뒤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며 일본 내 공항이 혼잡해지자 다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2012년까지만 해도 900만명 미만이었으나 지난해 1947만명으로 급증했다. 사전심사제가 시행되면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내수 진작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일본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재계가 함께 추진하는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도 내수 살리기 차원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퇴근 시간을 오후 3시로 앞당겨 여행과 외식·쇼핑 시간을 늘리자는 게 주요 내용이다. 오는 10월 민간 기업부터 도입한 뒤 공공기관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는데 벌써부터 관련 업체들은 2박3일 주말 여행 상품을 구상하는 등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정책들이 성과를 거두면 2020년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연 4000만명에 달하고, 현재 300조엔의 개인소비가 360조엔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내수를 살리기 위한 시도 자체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우리 정부도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와 임시공휴일 지정,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등 다양한 내수 활성화 정책을 내놓았지만 일시적인 효과에 그쳤다. 소매판매와 소비자심리지수 등 내수 관련 지표도 대부분 부진하다. 이런 소비 절벽을 극복하려면 전반적으로 경기가 좋아져 개인들의 소득이 늘어야 하겠지만 소비 환경을 우호적으로 조성하는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일본이 시도하는 다양한 소비 진작 노력을 적극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매일신문]

9.  대구 폭염, 또 다른 기회로 삼을 방법을 찾자

대구기상지청이 올 8월 15일까지 날씨를 관측한 결과, 대구에서 밤~아침 사이 최저기온 25℃가 넘는 열대야가 나타난 날이 9일이다. 낮 최고기온도 달성 현풍의 39.5도를 비롯해 대구지역 대부분이 35~39도를 넘나들었다. 낮 최고기온 33도 이상인 폭염 날씨만 13일이다. ‘대구 아프리카’ 즉 ‘대프리카’라는 말이 실감 나는 날씨다. 

무더운 대구의 여름 날씨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한반도의 아열대화 현상의 영향이다. 아울러 분지인 대구의 지형지리적인 요인도 있다. 생태 환경을 무시한 무계획적 도시개발에 따른 바람길 봉쇄와 같은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말하자면 중층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대구의 폭염은 수치로도 분명하다. 폭염 일수를 보면 2015년 7~8월 두 달 동안 17일(1년 전체는 21일)에 불과했다. 올 들어서는 7월 한 달간 10일과 8월 15일까지만도 13일로 모두 23일이다. 지난해 17일을 이미 넘어섰다. 무더위가 이어지면 올해 폭염 일수 기록 경신 행진은 자명하다.

문제는 이 같은 대구 폭염의 일상화다. 인적 물적 피해도 피할 수 없다.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대구가 처한 자연적이고 인공적인 요소가 결합된 결과물이어서다. 관련 학계를 중심으로 폭염 피해 감소와 활용 방안 마련의 필요성이 나오는 까닭이다. 폭염 위기의 자원화 이야기다. 방안으로는 태양열과 복사열의 흡수 장치 마련으로, 나무 등 식물자원과 물(수)자원의 이용이 있다. 건물 벽면 등 옥상의 녹화(綠化) 및 방수재 변화로 방출 온도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도로 포장재료의 변화로 온도를 낮추는 기술도 있는데, 현재 상당한 기술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대구는 폭염 극복의 성공적 경험도 있다. 2008년부터 3년 동안 들안길에서 열린 대구폭염축제나 올해로 4년째인 치맥축제가 그렇다. 폭염의 관광자원화 사례다. 이와 다른 차원이지만 폭염의 산업화 시도는 분명 가치가 있다. 19일의 ‘시민과 함께하는 대구 국제폭염대응포럼’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대구의 폭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바꿈은 물론 폭염의 자원화라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셈이다. 모두의 지혜가 절실한 때이다.

10. 비정상적인 대구 시내버스, 놀림감 된 이유 알고 있나

늦은 밤 시간대 불합리한 대구 시내버스 운행 방식에 대해 시민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오후 11시 30분이면 운행을 종료해 대중교통에 의존해야 하는 서민의 부담이 큰데다 종료 시점을 이유로 승객을 중도에 내리게 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어서다. 혈세로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고도 시민 편의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이 같은 운행 방식에 버스 준공영제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통상 시내버스는 시간에 관계없이 시점에서 종점까지 운행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대구에서 막차 시내버스를 타는 시민은 목적지에 가지도 못하고 쫓기듯 버스에서 내려야 한다. 기사 근무 종료시간에 맞춰 중도에 차고지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 까닭은 1990년대 한 노선을 여러 버스회사가 함께 운영하는 공동배차제 당시의 ‘중간 기점 방식’이 관행으로 굳어져 계속 이어진 때문이다. 막차 운행 시간이 단축되면 업체 운영은 수월하겠지만 정작 시민 불편은 거꾸로 가중되는 이상한 구조가 된 것이다. 

타 도시와 비교해봐도 대구 시내버스는 시민 편의가 아니라 버스업계의 입맛에 맞춘 방식임을 알 수 있다. 시-종점 방식인 창원 시내버스의 경우 막차가 종점에 도착하는 0시 30분까지 하루 최대 19.5시간 운행한다. 반면 대구는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18시간에 그친다. 이 때문에 대구 시내버스를 두고 타 지역민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것도 모자라 놀림감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대구시는 심야시간 이용 시민이 많지 않고, 막차 시간을 연장하면 노선당 2억원의 예산이 더 들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버스 노사 단체협약 개정도 이유로 들고 있다. 그렇다면 공익성을 강조한 버스 준공영제 도입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시는 2006년 버스 준공영제 도입 이후 9년 동안 모두 7천억원을 업계에 지원했다.


지금도 전체 1천521대의 시내버스 운영에 연간 1천30억원이 들어간다. 막대한 예산 지원에도 시민 불편은 그대로라면 분명 문제가 있다. 제주시의 사례처럼 공영버스 심야 운행 등 보다 합리적인 방식을 검토하고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매일춘추] 현실동화-미녀와 야수

“아니야!!!!!” 그녀는 한달음에 달려가 침대 위에서 울부짖고 있는 그를 끌어안았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그녀를 밀어내며 계속 소리를 질렀다. “거울!” “쉬… 진정해요.” 그는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한달음에 옆방으로 달려갔다. 그가 방문을 열자 가라앉아 있던 먼지가 내려진 커튼을 뚫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햇빛의 공간 사이로 뿌옇게 떠올랐다.


그녀가 그를 뒤쫓아 들어갔을 때 그는 장막으로 가려진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그가 장막을 열어젖히자 순간 거울 위로 반사된 햇빛이 두 사람의 눈 위를 고통스럽게 훑고 지나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거울 속에는 한 마리의 야수와 마른 빗자루가 서 있었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내려쳤다. 마치 그 야수를 죽이고 싶은 사람처럼.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무너지는 그의 옷 속으로 손을 넣고 아이를 달래듯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자 그는 익숙한 듯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이건 악몽이야. 깨지 않는 꿈.” “진정해요.” “마녀가 사랑을 찾으라 했지만 난 사랑이 뭔지도 몰라… 이런 내가 불쌍하지 않아?” 그녀는 말없이 땀으로 젖은 그의 털을 부드럽게 넘겨주었다.

조용한 아침의 햇살로도 녹일 수 없는 차가운 겨울의 서리가 유리창 위에 눈꽃 모양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공간 속에 서로를 끌어안은 두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그의 사랑이 될 수 없었다. 장미가 시들고 나면 그는 사랑을 모르는 채 영원히 괴물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었다. 그건 자신에게도 내려진 저주였으나 그녀는 자신이 이 저주가 풀리길 원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그녀는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정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천천히 그의 등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집사인 촛대 뤼미에르가 성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누군가 오고 있어요!” 두 사람은 일어나 서리가 내려앉은 창을 문질러 밖을 내다보았다. 하얀 말을 탄 사람이 성 앞의 정원에 도착해 있었다. 말에서 내려 머리 위에 쓴 긴 망토의 모자를 벗자 아름다운 아가씨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오랜 세월 동안 굳어 있던 그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반짝이는 것을 본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마른 그녀의 나무 손가락이 퍼석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분명 그 도둑놈의 딸이겠지. 겁만 주고 쫓아내야겠어. 저런 인간들은 딱 질색이니까.”

그는 어느새 거울 앞에 서서 잠시 털들을 쓸어 넘기더니 어느새 성큼성큼 회랑으로 통하는 계단 쪽으로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왜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2. [서울신문][공희정 컬처 살롱] 땀의 의미

염천(炎天)에 무엇을 한들 제정신이겠는가.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온몸을 적시고, 나무 그늘에라도 의지해 흐른 땀 식히다 보면 옷 위로 소금꽃이 피어오른다. 에어컨이든 선풍기든 켰다 껐다 하는 것도 지쳐 차라리 시원한 커피숍으로 피서나 가야겠다는 마음에 집을 나섰다.


달아오른 지열로 발바닥이 뜨거워질 즈음 어른거리는 태양의 열기 사이로 사람들 무리가 보였다. 줄지어 선 커다란 트럭들과 연예인들이나 타고 다닐 듯한 자동차도 몇 대 보였다. 문 열린 트럭에서 내려지는 기계들을 보아하니 촬영 장비였다. 무엇을 찍나 궁금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더위에 여러 사람 고생이구나 싶었다.

하기야 “낮 기온이 연일 35도를 넘어 제작진들이 더위 먹고 쓰러질까봐 당분간 쉬겠습니다”라며 TV를 끄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무더위라도 방송은 정해진 일정대로 진행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카메라의 자리를 잡고, 출연진들의 동선을 확인하고, 지나가는 행인들 통제할 준비까지 마쳤다. 감독의 사인에 조명이 켜졌다. 일순간 모두의 숨소리는 잦아들었다. 현장 제작진들의 온몸엔 땀만 비 오듯 흘러내렸다.

구경도 계절 좋을 때 하는 것, 거리의 더위를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아 서둘러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바람에 행복한 베짱이가 돼 유유자적 놀다 집에 오니 여기도 올림픽, 저기도 올림픽. TV가 분주했다. 어린 시절만큼 올림픽 경기에 넋을 빼앗기진 않지만, 그래도 선수들의 선전은 언제나 감동적이었다.

자신의 기록을 뛰어넘으며 메달을 목에 건 선수를 보면 뿌듯하고, 예상치 못한 실수로 아쉬운 눈물 흘리는 선수를 보면 안타깝다.

어느 나라 선수든 올림픽이란 무대 위에 오른 선수 모두는 최선을 다한다. 경기장 곳곳은 이들이 흘린 땀으로 젖고, 그 땀은 관중석의 뜨거운 응원으로 씻겨진다.

금은동 메달을 획득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미 수없이 많은 관문을 통과하며 한계를 뛰어넘은 선수들이었기에 메달은 좀더 화려한 영광의 상징일 뿐이다. 올림픽이 처음 시작된 아테네 파나티나이고 경기장에 섰던 선수들부터 서른한 번째 세계인의 축제가 열린 리우 마라카낭 경기장에 오른 선수들까지 근대올림픽 120년 역사 속 모든 선수들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습장을 흥건히 적실 만큼 땀을 흘렸다.

모든 프로그램이 시청률 대박의 기록을 가질 순 없다. 시청률은 시청자의 주관적 선호도를 측정한 결과일 뿐 그 차이가 프로그램의 완성도나 제작진의 노력을 논할 수 있는 절대 기준은 아니다. 방송은 시청자와의 약속이다. 어지러울 정도의 더위 속에서도 제작진들이 현장의 카메라를 끄지 않은 것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운동 경기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1등일 수는 없다. 경기라는 것이 앞서는 사람이 있으면 뒤지는 사람도 있다. 성적은 참가자들의 기록일 뿐이다. 모두가 동등하게 겨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선수들이 해야 할 것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과 정정당당하게 싸우겠다는 대중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말복이 지났다. 이 더위도 곧 시들해지겠지만, 염천에 흘린 땀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뜨거운 마음의 표시이기에 쉬이 식지 않을 것이다.


3. [서울신문][씨줄날줄] 팩션과 왜곡/손성진 논설실장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 팩션(faction)은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장르를 말한다. 1990년대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했고 2003년 3월 출간된 ‘다빈치 코드’의 성공은 팩션의 확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소설의 한 기법이었던 팩션은 영화와 드라마, 게임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광해군을 닮은 천한 인물이 잠시 광해군의 대역을 했다는 줄거리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대표적인 팩션 영화이며 ‘바람의 화원’, ‘대장금’, ‘주몽’ 같은 드라마도 팩션이다.


팩션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건조한 역사적 사실에 작가들이 흥미로운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과 픽션을 혼합하기 때문에 팩션은 늘 역사 왜곡의 도마에 오른다. 문제는 극적인 줄거리 전개를 위해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진실까지 왜곡한다는 점이다. 마치 팩션은 아니지만 영화 ‘내부자들’이 언론의 어두운 모습을 지나치게 과장해 관객의 눈길을 잡으려 한 것과 비슷하다. 그 목적은 물론 흥행이다.

4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덕혜옹주’도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을 여러 곳에서 왜곡했다. 덕혜옹주를 다룬 서적은 10종이 넘게 나와 있다. 그중에서 일본인 여성학자 혼마 야스코가 쓴 ‘덕혜옹주’는 발로 뛰고 근거 자료를 찾아 구성한 인물 평전이다. 권비영의 소설 ‘덕혜옹주’는 100만권이 넘게 팔렸는데 사실에 픽션을 더한 팩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권씨의 소설은 혼마의 평전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영화 ‘덕혜옹주’는 권씨의 소설이나 혼마의 평전을 원작으로 했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내용도 다르다. 내용 중에서 옹주가 어머니 한씨의 장례는 물론 영구 귀국 때까지 조선 땅을 한번도 밟지 못했다는 부분은 진실과 다르다. 옹주가 항일운동을 한 것처럼 표현한 부분도 사실이 아니며 정신병이 발병한 시점도 평전의 내용과는 같지 않다. 한글학교를 세운 적도 없다. 왕족들은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으며 감시를 받았지만 풍족한 생활을 했다. 덕혜옹주가 원치 않게 일본으로 가서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됐다는 점이나,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조현병에 걸려 불우한 인생을 살았다는 건 맞지만 있는 사실을 왜곡해서는 곤란하다.

작가의 상상력은 자유이고 한계도 없다. 그러나 역사를 다룬 팩션에서는 넘어서는 안 될 경계가 있다. 역사적으로 분명하지 않은 부분과 명백한 진실 사이의 경계다. 무수리 출신인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를 다룬 드라마 ‘동이’를 왜곡이라고 할 수는 없다. 최씨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기에 작가의 상상의 영역이다. 그러나 사진과 기록으로 남아 있는 덕혜옹주의 조선 방문을 없었던 것으로 그리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거짓이 주는 감동은 의미가 없다. 진실보다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4. [동아일보][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수첩

한 주 동안 ‘굴드의 피아노’라는 책에 빠져 지냈다. 이 책은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사망한 후 캐나다 국립도서관에 그의 유품들이 도착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유품 중에는 그 유명한 ‘난쟁이 의자’도 있었다. 1953년에 아버지가 만들어준, 굴드가 ‘평생 애착(愛着)을 지녔던 물건’이며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어디를 가나 가지고 다녔던 의자다. 

애착의 사전적 의미는 ‘사랑하고 아껴서 단념할 수가 없음’이다. 나에게도 그런 사물들이 꽤 있다. 그저 사랑하고 아끼는 것도 있지만 대개는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중에 하나가 수첩이다. 럭셔리한 다이어리 말고, 크기는 손바닥을 넘지 않는 정도에 적당히 얇고 커버가 두껍지 않고 나긋나긋하여 가방이나 주머니 어디에라도 쏙 들어갈 수 있는, 문방구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수첩.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은 데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문장이나 단어들을 적어두지 않으면 불안해져버리는 사람이라 가방마다 제각각 다른 수첩들을 갖고 다니고 침대 옆, 식탁, 책상에 수첩을 올려두고 있다. 재능이 없는데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느냐고 물어오는 분들이 종종 있다. 딱 부러지는 대답은 할 수 없지만 이렇게 생각해본다. ‘오래전부터 내가 메모하는 습관을 갖지 않았고 저 쓸모없어 보이는 수첩들을 박스를 채울 정도로 갖고 있지 않았어도 작가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며칠 전에 저녁 모임에 나갔다가 이비인후과 의사와 젊은 목수가 나누는 직업적 이야기들이 재미있어 조용히 수첩을 꺼내 들고 메모를 했다. 옆에 있던 목수가 내 수첩을 보더니 “작은 것을 좋아하시는군요”라고 하기에 그렇다고 했다. 작아 보이지만 그게 언제 어디에 쓰일지 모를 이야기의 씨앗을 품고 있는, 그렇게 적어두는 것만으로 휘발돼 버리지 않는 단편적인 것들로 빼곡한 얇고 큰 것을.

신문에서 이번 양궁 개인전에서 값진 동메달을 딴 기보배 선수의 수첩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늘 몸에 지니고 다닌다는 그 선수의 수첩에는 심플하게 활을 쏠 것과 자신의 자세 기술을 믿는다는 것, 그리고 ‘긍정적인 루틴만’이라고 쓰여 있었다. 경기 전 일종의 자기주문 같은 것이겠지. 수첩에 적힌 기보배 선수의 동글동글한 글씨를 보는데 그만 마음이 울컥해져버렸다.

‘문구의 모험’이란 책을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생각하기 위해, 창조하기 위해 우리는 뭔가를 적어두어야 하고 생각을 체계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구가 필요하다’고. 나는 시장도 가고 백화점도 가고 헌책방도 가지만 도시 어딜 가나 문방구에 들른다. 아끼고 실용적이기까지 해서 단념할 수 없는 사물들로 가득 찬 곳으로. 갖가지 개인적 애착이 그곳에 있다.


5. [동아일보][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비빔밥

비빔밥? 혼란스럽다. 비빔밥의 다른 이름은 ‘혼돈반(混沌飯)’이다. ‘혼돈스러운 밥’이다.

‘한 대접에다가 생선과 채소를 섞어 세상에서 말하는 이른바 ‘혼돈반’과 같이 만들어 내놓으니, 전임이 두어 숟갈에 그 밥을 다 먹어 치웠다.’

조선 중기 문신 박동량(1569∼1635)이 쓴 ‘기재잡기’의 내용이다. 엄청난 양의 ‘밥=혼돈반’을 먹어 치운 주인공은 조선 전기의 무관 전임(?∼1509)이다. 그가 먹은 것은 밥에 생선과 채소를 넣은 것이다. ‘혼돈반=비빔밥’이다. ‘혼돈’은 뒤섞여 어지러운 상태다. 혼란, ‘골동(骨董)’과도 비슷하다. ‘혼돈반’이란 표현은 ‘기재잡기’의 시대인 17세기 초반에 사용했다. 비빔밥은 그 이전인 전임의 시대, 15세기에도 있었다.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은 ‘성호전집’에서 “골동은 내가 싫어하지 않지만, 배를 불리기는 국밥이 최고”라고 했다. 이 시의 제목이 ‘국밥’인 걸 보면 내용 중 ‘골동’은 골동반(骨董飯), 즉 비빔밥이다. 비빔밥을 ‘혼돈반’이 아니라 ‘골동(반)’이라고 표현했다. 1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비빔밥은 ‘혼돈반’에서 ‘골동반’으로 바뀐다. 

비빔밥을 두고 혼란스럽다고 하는 것은 ‘골동’ 혹은 ‘골동반’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기록에 나타나는 비빔밥의 공식적인 이름은 ‘골동반’이다. 19세기 말 기록물로 추정하는 ‘시의전서’에서 ‘골동반=부Z밥’이라고 표기하기 전에는 대부분의 기록에 골동반만 나타난다. 

“골동반은 중국 음식이고 우리 비빔밥과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식 골동반은 그릇에 미리 쌀 등 곡물과 채소, 어육 등을 넣고 밥을 짓는다. 비빔밥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밥을 지은 다음 밥 위에 조리한 채소, 고기, 해물 등을 얹고 비벼 먹는다. 비빔밥은 먹기 전, 각종 고명을 마음대로 빼거나 더할 수 있다. 중국식 골동반은 일본식 솥밥인 ‘가마메시(釜飯· 부반)’ 혹은 우리의 무밥, 콩나물밥과 닮았다. 다만 일본식 솥밥을 우리 콩나물밥처럼 비벼 먹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골동’ ‘골동반’이란 표현은 중국에서 건너왔다. 명나라 초기인 1414년에 완성된 ‘성리대전’에 이미 ‘골동반’이 나타난다. ‘골동(汨董)은 골동(骨董)과 같은 말로, 잡되다는 뜻이다. (중국) 강남 사람들이 물고기, 채소 등을 함께 넣고 끓인다. 즉, 골동갱(骨董羹)이다.’

중국 명청시대 속어사전인 ‘이언해’에서는 ‘물고기, 고기 등을 밥에 넣고 만든 것이 곧 골동반’이라고 했다. 뒤섞어 혼란스럽다는 뜻인 ‘골동’은 그 뿌리가 깊다. 중국 송나라의 소동파도 이미 ‘골동’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실학자 이규경(1788∼?)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어떤 사람은 (골동이란 단어가) 소동파의 골동갱에 근원하고 있는 것이라 하지만, 소동파의 골동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소동파는 문집 ‘구지필기’에서 ‘라부돈의 노인이 음식을 여러 가지 모아서 함께 끓였다. 곧 골동갱이다’라고 했다. ‘골동’의 시작이다. 

조선 초기에도 민간의 자연발생적인 비빔밥은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집 안에서, 제사 후에, 혹은 일터인 들판에서 밥과 나물을 비벼 먹었을 터이다. 조선 후기부터 중국에서 받아들인 ‘골동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뿐이다. 비빔밥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비빔밥, 혼돈반, 골동반 등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뿐이다. 

조선 후기에도 ‘골동’이란 표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정조 7년(1783년) 7월, 공조판서 정민시의 상소문에 ‘(나라가) 어둡고 어지러워져 허위가 판을 치는 골동(骨董)과 같은 세상’이라는 표현이 나타난다(조선왕조실록). 골동은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조선 후기부터는 ‘시의전서’의 표현대로 ‘골동반=부Z밥=비빔밥’이 된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오늘날 우리도 쉽게 만나기 힘든 여러 가지 비빔밥(골동반)이 나타난다. ‘비빔밥, 채소비빔밥, 평양 것을 으뜸으로 친다. 다른 비빔밥으로는 갈치, 준치, 숭어 등에 겨자 장을 넣은 비빔밥, 구운 새끼 전어를 넣은 비빔밥, 큰 새우 말린 것, 작은 새우, 쌀새우를 넣은 비빔밥, 황주(황해도)의 작은 새우젓갈 비빔밥, 새우 알 비빔밥, 게장 비빔밥, 달래 비빔밥, 생호과 비빔밥, 기름 발라 구운 김 가루 비빔밥, 미초장 비빔밥, 볶은 콩 비빔밥 등이 있다. 사람들 모두 좋아하고 진미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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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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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6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레일리]

1. 성공신화 쓰려면 박 대통령이 솔선해야

박근혜 대통령의 8·15 경축사는 우리가 광복 이후 이룩한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제2의 도약’ 발판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시대정신을 담아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성취한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반세기 전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의 최빈국 대열에서 벗어나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으며, 우리의 발전 과정을 배우려는 개도국들의 발길이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비단 경제만이 아니다. 한류는 대중음악에서부터 의료, 음식, 패션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세계인이 열광하는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는 나라가 늘어나고 있는데다, 세계인 가운데 다음 세상에서 태어나고 싶은 나라로 한국을 꼽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세계 중심국가의 하나로 대접받는 것이 단군 이래 처음이라 해도 지나친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그릇된 풍조로 인해 사회 전반에 패배의식이 팽배하는 추세다. 박 대통령도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을 개탄했지만 ‘헬조선’, ‘지옥불반도’, ‘망한민국(亡韓民國)’ 등 국적 불명의 용어들이 온라인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화면이나 신문 지상에서 활개치고 있다.

패배의식을 담은 이들 신조어가 고약한 것은 청년실업, 자살, 노인 빈곤, 경제 양극화 등의 사회 부조리에 빗대어 정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부조리가 없으면 더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부조리 없는 사회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을 마치 ‘지옥’이나 ‘망한 나라’로 전락시키며 ‘떼법문화’를 조장해서야 사회적 비용 증가와 대외경쟁력 추락을 초래할 뿐이다.

박 대통령은 내부 분열과 반목에서 벗어나 긍정의 정신을 되살리자고 호소했다. 그러려면 본인부터 솔선해야 한다. 임박한 개각이 첫 가늠자다. 또다시 ‘수첩공주’에 만족한다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일개 계파 수장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는 엄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리우올림픽 양궁 전 종목을 석권한 우리 팀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파벌이 통하지 않는 능력위주 선수 기용이 비결이었다. 과감한 탕평인사로 대한민국 성공신화를 다시 쓰는 발판을 놓기를 기원한다.

2. 조의금 500만원 봉투가 예사였는가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인 정운호씨의 구명청탁 로비가 현직 부장판사에게까지 이른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김모 부장판사 계좌에 정씨 명의로 발행된 수표 500만원이 입금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돈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청탁은 없었다며 부인하고 있다지만 수사 결과에 따라 정확한 진상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정씨가 지난해 12월 상습도박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 재판부에 접촉을 시도하던 중이었다는 점에 눈길이 쏠린다. 항소심 재판부와 연관이 있는 김 부장판사를 지목해 의도적으로 접근한 게 아니냐는 심증을 굳혀주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를 연결해준 성형외과 원장 이모씨는 김 부장판사에게 전달하겠다며 정씨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어제 구속됐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절제를 모르는 김 부장판사의 개인적 처신이다. 정씨와 서로 어울려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으며, 그의 딸이 정씨가 후원한 미인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는 등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씨가 타던 외제차를 시세보다 싸게 인수하기도 했다고 한다. 겉으로는 근엄한 법관들이 이렇듯 업자와의 교류가 분방한 것인지 묻고자 한다.

수표로 전달된 문제의 500만원의 성격을 두고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김 부장판사는 이 돈이 조의금 명목으로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조의금 봉투에 담겨 받은 돈이라고 해도 그것이 순수한 뜻의 조의금이라고 하기에는 낌새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부장판사 정도라면 500만원의 조의금은 예사롭게 주고받는다는 얘길까.

지금 우리 사회는 부정부패의 늪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내달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이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식사 접대비와 선물값에 경조사비까지 엄격 제한하게 된다. 하지만 지도층 인사들의 기본 의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어떤 규제로도 공염불로 끝나기 십상이다. 일반 직장인들은 경조사 봉투에 5만원을 넣을지, 10만원을 넣을지 망설이는 판국에 고위층 사이에서는 500만원 봉투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고 있었다는 사실에 박탈감을 감출 수 없다.

[서울신문]

3. 북핵 내려놓고 통일로 가는 기회의 창 열어야

어제는 제71주년 광복절이었다. 일제에 빼앗겼던 국권을 되찾은 지 어언 71년이 됐지만, 아직 우리가 갈 길은 멀어 보인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이 광복의 감격을 누렸던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게 엄혹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남북 간 분단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한 광복은 미완성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도 어제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 측에 “한반도 통일시대를 여는 데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을 법하다.

우리는 북한 당국이 민족의 공멸을 초래할 핵·미사일 개발을 멈추고 통일로 가는 기회의 창을 함께 열어젖히길 간곡히 권고한다. 그 길이 남북으로 흩어진 한민족이 광복의 기쁨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지름길인 까닭이다.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한 근인(根因)이 뭐겠나. 세계 열강이 이 땅에서 각축전을 펴는 동안 국력을 키울 생각은 않고 외세에 기대 생존을 도모하려 했기 때문이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대 강국이 한반도 안팎에서 대치 중인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박 대통령의 말마따나 강대국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비관적 사고부터 떨쳐 내야 한다. 미국과 중·러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우리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데다 국수주의로 치닫고 있는 아베 내각이 이끄는 일본은 우리 국회의원들의 독도 방문에까지 시비를 걸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주체적 사고와 국가적 역량의 결집이 절실한 시점이다. 누란(卵)의 위기에서 친일·친중·친러 등으로 우리끼리 편을 나눠 싸우던 구한말의 행태를 답습해서는 안 될 말이다.

더욱이 한민족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남북 분단의 장기화만큼 불행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광복 후 최빈국에서 출발해 현재 경제 규모 세계 11위인 중견국으로 우뚝 섰다. 남북 간 소모전이 발목을 잡지 않았다면 벌써 선진국 대열에 올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면 우리의 반쪽인 북한의 보통 주민들은 아직도 하루 끼니를 걱정할 정도가 아닌가. 북한 주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제2의 광복’이 통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게다.

그런 맥락에서 어제 경축사에서 박 대통령의 중층적 대북 제안이 주목된다. 즉 북한 정권에는 핵·미사일 개발 중단을 촉구하고 최고위층이 아닌 간부와 주민들에게는 “차별 없이 대우받고 행복을 추구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통일 국가의 미래상을 밝힌 대목이다. 북한 지도부에 대화를 통해 통일의 길로 나설 기회를 주되 김정은 정권이 끝내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정권과 주민을 분리해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신호다. 이는 우리로선 바라진 않지만 결단해야 할 상황에선 피할 수 없는 고육책일 게다. 김정은 정권이 동족의 선의를 무시하면서 핵 개발을 고집함으로써 국내외적 고립을 자초해 자멸의 길을 걷지 않기를 거듭 당부한다.

4. 쓰레기 더미에 파묻힌 항일 유적지

광복의 영광은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던지고,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친 애국 열사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독립운동가들의 항일 유적지가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곳은 자전거 주차장으로 방치돼 있다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광복절에 마주한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항일 유적지가 훼손된 채 방치됐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저 멀리 중국과 일본의 외딴곳도 아닌 서울 도심 속에 위치한 독립운동가들의 기념비와 흉상 등이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홀대받고 있다는 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해외의 항일 유적지도 우리가 챙겨야 하거늘 서울 한복판에 있는 중요한 역사의 현장을 훼손하는 것은 과거 역사를 짓밟는 삼류 시민들이나 할 짓이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14일 서울 중구의 ‘이회영·이시영 6형제 집터’ 표지석과 이회영 선생의 흉상 주변에 담배꽁초와 음료수병 등 각종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이회영 선생과 그 형제들은 1910년 조선이 일본에 합방되자 이 땅에서 더이상 독립운동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만주로 건너갔다. 광복군의 전신인 신흥강습소 건립 등 독립운동 자금은 이들이 재산을 급히 헐값에 처분해 마련한 것이었다. 그들이 현재 명동 일대에 소유했던 땅은 당시 가치로는 40만원, 현재 가치로는 6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형제 지사들의 애국정신을 기리지는 못할망정 유적지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니 씁쓸하기만 하다.

1909년 친일파 이완용을 칼로 찌른 독립운동가 이재명의 의거지를 기리는 표지석 주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시민들이 표지석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버리는 모습을 본 명동을 찾은 중국인과 일본인 등 관광객들도 덩달아 따라 했다니 과연 그들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독립회관 터의 표지석은 자전거 받침대로 사용되고 있다니 독립투사들에게 죄스러울 뿐이다.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잘못된 역사를 후세에 가르치겠다며 역사 왜곡까지 일삼고 있다. 항일 유적지만큼 생생한 역사의 교육장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제 침략에 대한 역사의 현장마저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고 있다. 항일 유적지도 못 챙기면서 일본을 비난할 수 있겠나. 말로만 역사를 바로 세울 수는 없다. 역사의 가르침이 대대손손 후대에 전해지도록 정부와 지자체는 지금부터라도 항일 유적지의 체계적인 관리에 나서야 한다.

[동아일보]

5. 이정현의 ‘슈스케’식 대선후보 경선, 여당 내분 키우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경선 때 공약으로 내건 ‘슈퍼스타K(슈스케) 방식’의 대선 후보 경선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 신인 가수 선발 오디션처럼 대선 후보들이 3∼5개월 정책 경쟁을 벌인 뒤 한 사람씩 여론조사를 실시해 2, 3명을 남기고 전당대회에서 최종 선출하자는 것이다. 당 안팎의 숨은 인재 발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때그때 분위기에 휩쓸릴 수 있는 여론조사로 대선 후보를 뽑는 것이 적절하겠느냐는 우려가 당 안팎에서 제기된다.

이 대표가 “지금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은 제로”라고 말한 것처럼 야당에 비해 경쟁력 있는 후보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오디션 방식이 후보군의 외연을 넓히고 유권자들의 관심을 높이는 효과는 있을 듯하다. 그러나 비박(비박근혜)에서 “당 대표가 대선 후보를 뽑는 방식에 대해 개인 의견을 여과 없이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한다. 친박(친박근혜)이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염두에 두고 이 방식에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비박이 수긍하지 않는 경선 방식을 강행하면 당내 분란이 초래될 뿐 아니라 비박이 그 결과에 흔쾌히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 당헌은 국민참여선거인단 투표 80%, 여론조사 20%를 합해 최다 득표자를 대선 후보로 한다고 정했다. 당헌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을 놓고 이 대표가 불쑥 자기 생각을 꺼낸 것은 사려 깊지 못했다. 경선 후보 때야 아이디어로 말할 수 있지만 당 대표에 취임한 이상 당내 여론수렴을 거쳐야 한다. 당 대표가 됐다고 해서 슈스케 방식까지 추인받은 것은 아니다.

과거 총선 대선 때도 여론조사는 신뢰도가 낮고 조작될 소지도 많아 후보 결정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대표는 어제 기자회견을 자청해 “문호를 개방하고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것 외에 어떤 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며 말을 바꿔 신중하지 못했음을 자인했다. 여론조사는 참고 자료로만 활용하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6. ‘헬조선’ 비판한 8·15경축사, 자긍심 키울 리더십이 빠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광복절 71주년 경축사에서 ‘국민’이라는 단어를 20회 언급하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가는’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며 ‘헬조선’류의 자기비하 풍조를 비판했다. 또 “우리의 운명이 강대국들의 역학관계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피해 의식과 비관적 사고를 떨쳐내야 한다”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의 당위성도 역설했다. 

한국의 발전상에 비해 ‘헬조선’과 ‘흙수저’ 같은 신조어에서 자조(自嘲)가 지나치다는 대통령의 인식에 동의한다. 안보·경제·국론분열의 복합 위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국민적 단합과 공동체 의식을 국정 운영의 동력으로 삼아 임기 후반 여소야대(與小野大) 난국을 헤쳐 나가고 싶을 것이다. 국민 마음속에 자신감과 공동체 의식을 절로 우러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리더십이고, 지도자의 역할이다. 

박 대통령이 자동차 철강 선박 스마트폰 같은 제품과 케이팝 한류를 예로 들며 “여러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오늘의 대한민국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낀다”고 평가했듯이, 외국에서 한국 제품과 한류 스타를 보며 자부심을 느끼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지난해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급부상했고, 무능한 불통 정부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지난 4·13총선에서 정부 여당에 대한 심판으로 귀결된 점을 떠올린다면 신조어만 탓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정부인데 대통령은 이것을 모르는 것 같다. 

한국 정부는 스마트폰처럼 우수하거나 신뢰받는 수준이 아니고 케이팝 스타 같은 환호를 받는 정치인도 없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긴 2015년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140개국 중 26위지만 정책 투명성(123위)과 규제 부담(97위) 등 정부 경쟁력은 최하위 수준이다. 박 대통령은 “모두가 남 탓을 하며 자신의 기득권만 지키려 해 공동체 의식이 실종됐다”고 지적했지만 경축사부터 ‘남 탓’만 있고 박근혜 정부와 대통령 자신에 대한 자성(自省)이 빠진 것이 아쉽다. 

박 대통령은 “법을 불신하고 경시하는 풍조 속에 떼법 문화가 만연했다”고 했으나 불신풍조를 만든 것은 특권 의식과 도덕적 해이에 빠진 사정·사법기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정수석 우병우-검사장 진경준-넥슨 김정주’의 특권 커넥션 의혹은 법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아이콘이 됐다. 

아직도 ‘정피아’ 낙하산을 내려보내는 대통령에게 '할 수 있다' 같은호소를 들어야 하는 국민은 피곤하다. 박 대통령이 ‘역전의 드라마’로 소개한 리우 올림픽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파벌이나 학연, 지연, 금수저 봐주기 없이 공정하게 실력으로 승부했다. 공정하게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사회로의 개혁이야말로 지금 정치 리더십이 해야 할 일이다.

[중앙일보]

7. 올림픽 중계,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야

스포츠는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한다. 특히 올림픽은 국가대항전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이는 스포츠와 올림픽의 여러 속성 중 하나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올림픽에서 자국 선수 응원을 넘어 다양한 국가와 종목의 선수들이 빚어내는 환희의 드라마도 함께 즐긴다.

그런데 국내 방송사들의 이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중계는 한국 선수가 출전하는 경기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양궁이나 사격 같은 메달 유망 종목은 여러 채널에서 중복 편성하기 일쑤다. 시청자들은 선택권이 빼앗긴 느낌을 갖게 마련이다. 이러다 보니 다양한 종목과 국가의 경기를 보여주는 해외 중계 사이트를 찾는 사람이 하루 평균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방송 3사가 합계 440억원이라는 거액의 중계권료를 한국 선수단의 활약상만 중계하려고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중복 편성을 지양하고 다양한 올림픽 경기를 즐기고 싶어하는 시청자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 일부 올림픽 중계진이 양성평등과 인간존중이라는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차별적 막말을 일삼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자 역도 경기 중계 중에 “남자선수도 아니고 여자선수가 이렇게 한다는 건 대단합니다”라고 하고 다른 나라 여자 유도 선수에게 “보기엔 ‘야들야들’한데 상당히 경기를 억세게 치르는 선수”라고 성차별적인 막말까지 했다. 참으로 낯 뜨거운 일이다. 오죽하면 ‘리우 올림픽 성차별 보도 아카이빙’이란 제목으로 이런 무례한 사례를 모으는 곳이 인터넷에 생겼겠는가.

올림픽에서 나라를 대표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남녀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들은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과 동료와의 경쟁에서 이긴 결과 국가대표 선수로서 리우에서 뛰고 있다. 그런 선수들에게 차별적인 발언을 일삼는 것은 스포츠와 미디어의 품격을 동시에 떨어뜨리는 행위다. 방송사는 막말 중계인들을 솎아내야 한다.

시대는 저만치 앞서 가는데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해야 할 미디어가 이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올림픽이 끝나면 각 스포츠 협회가 내부 성평등 교육을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스포츠인은 자라나는 청소년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매일경제]

8. 최강 한국양궁 비결은 파벌 없는 공정한 선발

한국 양궁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전 종목 석권'이라는 신화를 썼다. 지난 13일 구본찬이 남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한국 양궁은 남녀 단체전과 개인전에 걸린 4개의 금메달을 모두 휩쓸었다. 여자 양궁 단체전은 양궁이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1988년부터 8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탄탄한 실력과 불굴의 정신력으로 전대미문의 역사를 쓴 선수들은 뜨거운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한국 양궁이 28년 동안 세계 최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저절로 된 게 아니다. 파벌 없이 오직 실력으로만 선수를 뽑는 공정한 선발 원칙이 지켜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녀 각각 120명을 추려 6개월간 실시하는 평가전은 리그, 토너먼트, 슛오프 등 다양한 상황에 대비한 복잡한 배점 방식으로 최강자를 가린다. 최종 남녀 3인의 국가대표가 되려면 1인당 4055발의 화살을 쏴야 하고 표적지 확인 후 사선을 왕복하는 거리가 182㎞에 달한다.

여기에 학연, 지연, 원로 추천 등 파벌이 끼어들 틈은 없다. '조별리그전'에서 감독의 명령이나 뒷거래 등을 통해 같은 팀 선수 간에 짬짜미 경기가 발생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같은 팀 선수는 1회전에서 맞붙도록 하는 원칙까지 두고 있다. 이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이 같은 경쟁 원칙에서 예외가 없다보니 2012 런던올림픽 국가대표 6명 중 기보배 선수 빼고 5명은 모두 탈락했다. 원칙이 까다롭지만 투명하게 운영되니 모두가 깨끗이 승복한다. 멘탈 관리를 위한 번지점프, 최전방 철책 훈련,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한 소음 많은 야구장 연습 등 훈련도 지독하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일어나면서 경쟁력이 유지되는 것이다. 

서거원 전 양궁 국가대표 감독은 "불안해도 원칙을 굳게 지켜왔기에 한국 양궁이 오늘 세계 정상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는데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직 실력만으로 승부를 가리는 원칙이 신뢰를 형성하고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계파 갈등으로 바람 잘 날 없는 정치권, 부정부패가 판치는 공직사회는 최강 양궁의 비결인 공정함, 투명함에 대해 곱씹어볼 만하다.

9. 노동시간 OECD 2위면서 생산성은 최하위권인 한국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이 2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위를 기록하면서 생산성은 하위권이라는 통계는 우리 경제의 슬픈 자화상이다. OECD가 매년 내놓는 고용동향에서 나온 수치로 2015년 기준 한국 노동자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멕시코(2246시간)에 이어 두 번째였다.

OECD 회원국의 평균인 1766시간과 비교하면 하루 법정 노동시간 8시간으로 환산할 때 43일 더 일한 셈이다. 토·일을 쉬고 한 달에 평균 22일 정도 일하는 것으로 계산할 경우 OECD 다른 회원국 노동자들보다 우리가 두 달을 더 일한 꼴이 된다. 평균 노동시간이 가장 적은 독일(1371시간)과 비교하면 한국 노동자들은 무려 넉 달을 더 일하는 것이니 심각한 수준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일을 하면서도 우리의 임금(구매력 평가기준)은 OECD 국가 가운데 중하위권에 그치고 있으니 더 심각하다. 우리 노동자들의 연간 실질임금과 시간당 실질임금은 1인당 연간 1790시간으로 우리보다 두 달가량 일을 덜하는 셈인 미국 노동자에 비해 각각 56%, 48%밖에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생산성은 OECD국가중 하위권인 22위로 미국의 60%, OECD 평균의 80%에 그치고 있으니 노동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절실하다.

풀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법정 노동시간인 하루 8시간을 뛰어넘는 장시간 노동에다 점심식사 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계약직이나 비정규직 현장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지난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노동개혁법안 가운데 우선순위를 갖는 법안부터 다시 추진해 노동개혁의 단추를 하나씩 채워가야 한다. 

일본에서는 소비 촉진을 위한 방안이라지만 매월 마지막 금요일 퇴근시간을 오후 3시로 앞당기는 프리미엄 프라이데이 도입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일과 휴식,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어야 노동이 진정한 가치를 부여받는다.

[매일신문]

10. 국회의원들의 독도 방문, 더 이상 뉴스거리 되지 않아야

여야 국회의원들이 15일 광복절을 맞아 독도를 방문했다.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을 단장으로 한 ‘국회 독도 방문단’ 소속 여야 의원 10명이 헬기편으로 독도를 찾은 것이다. 현직 국회의원의 독도 방문은 지난 2013년 8월 14일 항일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손녀인 새누리당 김을동 당시 의원 이후 3년 만이다. 국회의원들은 독도에서 만세 삼창을 하고 독도경비대 내무반에 태극기를 전달했다. 오랜만에 이뤄진 국회의원들의 이벤트성 독도 방문은 뉴스거리가 됐다. 

국회의원의 독도 방문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8년엔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도부가 일본 중등교과서 독도 영유권 표기에 항의하는 뜻에서 독도를 찾았고, 2010년 4월엔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이 현직 의장으로는 처음 독도를 방문했다. 2011년에는 ‘독도를 지키는 국회의원들의 모임’이 독도에서 ‘아름다운 우리 땅 독도 음악회’를 갖기도 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독도를 방문할 수 있다. 지난해 독도를 찾은 국민이 17만8천745명에 이른다. 일본인이라면 우리나라 입국 심사부터 받아야 한다. 이는 독도가 우리 땅이고 이 땅을 우리나라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국회의원 역시 우리나라 국민이다. 그러니 국회의원들이 독도를 방문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독도 방문이 뉴스거리가 되는 것은 탐탁지 않다. 이들이 헬기를 동원해 독도에 잠시 들르는 것은 이벤트에 가깝다. 일반 국민들이 독도를 찾아 조용히 우리 땅임을 되새기고 돌아가는 것과 사뭇 다르다. 뉴스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란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일본이 이를 두고 유감까지 표명한 것은 어이없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일본의 반발을 의식해 독도 방문을 하지 않거나 꺼린다면 더 어이없다. 국회의원들의 독도 방문은 뉴스를 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국회의원 역시 일반 국민에 섞여 지속적이고 자연스레 독도를 찾아야 한다. 그러면서 말없이 독도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국회가 뒷받침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의 독도 방문이 더 이상 뉴스거리나 시빗거리가 되지 않을 때 독도 영유권은 더욱 공고해진다.



주요 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초동여담] 담임선생님 재입대 취소 사건

아이 방학이 시작되면서 나의 가장 큰 관심은 초등학교 6학년인 딸내미 담임 선생님의 군 입대였다. 선생님이 반 아이들을 모아 두고 올 여름에 군대에 다시 가게 됐다고 선포한 것인데 입대일이 여름 방학식 즈음이라고 못 박았던 것이다. 선생님을 잘 따랐던 아이는 두어 달 전 이 얘기를 거내면서 벌써 이별이 떠오르는지 눈망울이 커지고 벌겋게 달아오르기까지 했다.

집안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졌음은 당연하다. 그래 쓸 데 없어진 기자정신을 이때라도 발휘해보자. 팩트 확인이 필요해. "선생님, 군필 아니셨나?" "응? 군필?" "군대 갔다 오신 거 아니냐고?" "군대 이미 갔다 오셨는데 이번에 재입대 하신대." "머 '진짜 사나이' 일반인 편 같은 프로그램 만드는 거 아냐?" "아니 진짜 군대 다시 가신대. 장교로."

아이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내가 옆에서 거든다. "그거 참 이상하네. 사모님이 지금 둘째까지 임신하셨는데." "그러면 더더욱 이해가 안되는데. 아니 선생님이 싸이도 아니고 군대를 두번 씩이나 간다고?"

군대에서 축구하던 얘기로 술자리를 파하면서도 꿈자리에서 군대 얘기만 나와도 악몽이라고 하는 게 보통의 남자들 아니던가. 혹시나 싶어 장교 출신인 회사 선배에게 재입대 가능성을 물었지만 그 선배도 그런 제도는 금시초문이란다. 살기가 팍팍해졌다고는 하지만 선생님들까지 영향을 받나. 교원 연금보다 군인 연금이 혜택이 더 큰가. 요즘 얘들이 얼마나 유난스러웠으면 어지간한 사람들이 모두 선망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박차려는 걸까. 하기야 세상 일은 모르는 것 천지다. 별의별 상상을 해보아도 뚜렷한 답도 없고 해서 선생님의 재입대 건은 그대로 묻혀버렸다.

한동안 기억 속에서 잊혀졌던 선생님 재입대 미스터리가 최근에야 풀렸다. 지난 주말 저녁 자리에서 불현듯 생각나 선생님 소식을 묻자 아이와 아내가 배꼽을 잡는다. 알고보니 이 모든 게 선생님과 엄마들이 '짜고 친 고스톱'(?)이었단다. 사건의 경과는 이렇다.

 
어느날 선생님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왔더니 아이들이 '선생님 군대 가냐'고 묻더란다. 그래서 퍼뜩 이벤트를 꾸민 것이었다. "스승의 날 아이들이 즐거운 이벤트를 해줘서 저도 방학식 때 군복을 입고 나타날까 합니다. 그때까지 기밀을 유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선생님은 자초지종과 함께 비밀 유지를 해달라는 장문의 메시지를 엄마들에게 보냈다. 그런데 엄마들과 선생님의 단체 카톡방을 몰래 엿본 한 여학생에게 전모가 발각(?)되면서 선생님의 군 입대 이벤트는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기밀을 알게 된 여학생 몇몇을 햄버거까지 사주며 입막음에 나섰지만 이를 빌미로 선생님과 협상을 하려는 통에 군복 이벤트는 방학식을 기다릴 것도 없이 접기로 했단다. 아무튼 담임 선생님의 재입대는 어느새 취소 사건으로 바뀌어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났다.

학교가 혁신학교여서 혁신적으로 공부를 안 시킨다고 농을 쳤는데 이런 담임 선생님의 혁신이라면 초딩 때 공부 그까짓 것 좀 덜 하는 게 무슨 대수랴. 비록 재입대 이벤트는 실패로 끝났지만 아이들 마음 속엔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가 새록새록 기억에 남지 않을까.


2. [매일신문][양희창의 에세이 산책] 더운 데 이건 아니잖아요

“너무 덥지? 아이스크림 사 줄게. 자 천원 줄 테니까 네가 좋아하는 오백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 사 오는 거야. 그럼 거스름돈이 얼마 남을까?” 한참 생각하던 네 살짜리 아이는 “그냥 남는 대로 하나 더 사면 안 돼?” “아니, 그게 아니고 얼마가 남는지 잘 생각해 봐. 맞히면 하나 더 사 줄게. 얼마가 남을까?” 아이는 딱하다는 듯이 엄마를 쳐다보며 “가게 아저씨가 주는 대로 받아 오면 돼. 엄마, 아저씨 못 믿어? 좋은 사람이야.”

이 더운 날에도 조기교육에 여념이 없는 엄마의 바람과는 전혀 관계없이 아이들은 맘껏 뛰놀고 세상과 호흡하고 싶어 한다. 방학 때 몰리는 학원 행렬 속에 스마트폰 든 좀비가 바로 자기 아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야만 선행 학습을 포기하고 조기교육 아닌 적기 교육을 비로소 생각하게 되는 걸까? 어디 캠프라도 보내서 실컷 놀게 내버려 두면 좋을 텐데.

너무 더우니까 사소한 일에도 욱하고 짜증을 내게 된다. 하긴 성인 절반 이상이 부정적 감정을 처리하는데 미숙한, 그러니까 분노조절장애를 갖고 있다고 하니 열 받은 상태에서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하는 건 당연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자기 차 앞질렀다고 쫓아가서 몽둥이로 차를 부수는 건 너무 하지 않은가,

횡단보도에서 담배 피우는 아저씨께 어린아이가 유모차에 타고 있으니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꺼 달라는 말에 격분해서 아기 엄마 뺨을 갈기는 50대 아저씨의 기사는 이 더운 날 우리를 욱하게 만든다. 물론 흡연자의 설움, 50대 중년의 고뇌, 그날도 있었을 스트레스를 짐작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않은가. 자기 딸이 그렇게 당했다면….

이 더운 날 그늘도 없는 땡볕에서 기름 넣는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대학생, 그래 봐야 학비는커녕 용돈도 채 되지 않는데, 실수로 기름이 약간 땅바닥에 흐르자 호통을 치며 당장 나가라며 월급에서 제하겠단다. 우린 이 더운 날 자신보다 약하게 보이는 이들에게, 이렇게 더운 게 다 ‘네 탓’이라고 화풀이를 하고 있는 거다. 

누구도 이 더운 날, 욱할 권리는 없는 거다.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 화산이 지금 폭발하려고 하는구나 먼저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일단 거기를 벗어나 혼자가 되어 자신의 감정을 살펴보는 거다. ‘아, 내가 이렇게 열 받아 있구나. 쟤가 잘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내가 이미 상태가 안 좋은 거구나’하고 말이다. 

이 더운 날, 나는 누군가에게 시원한 그늘이 된 적이 있었던가? 오늘도 날 잡아먹으려고 으르렁거리는 아재들에게 시원한 아재 개그 하나 선사해주면 안 될까? ‘사우나에서 왜 싸우나, 차이나에서 연애하면 차이나?’ 더운 데 썰렁하지 않은가.


3. [매일신문][매일춘추] ‘소통’을 향한 금메달을 바라며

올림픽은 세계인의 ‘화합’과 ‘소통’을 추구하는 행사로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바와 동일하다. 이런 이유로 올림픽마다 많은 예술가들의 활약을 접한다. 특히 예술 올림픽으로 유명했던 2012 런던 올림픽에는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의 올림픽 상징조형물 ‘오빗’, 하워드 호지킨의 올림픽 포스터, 건축가 자하 하디스의 아쿠아틱센터 등 다수의 현대미술가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리우 올림픽을 보며 88 서울 올림픽을 수놓았던 예술가들 중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올림픽을 기념하며 제작했던 위성 프로젝트 ‘손에 손잡고’(wrap around the world)와 비디오 로봇 ‘쿠베르탱’이 떠오른다.

비디오 아트는 ‘비디오’를 매체로 하는 ‘영상예술’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영상에 담아 제시하는 미술 장르이다. 백남준은 “저는 장벽을 부수는 데 공헌하고 싶었어요. 텔레비전에서 낯선 것을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70퍼센트는 이해하게 되거든요. 텔레비전은 모든 것을 번역해 주죠. 텔레비전은 새로운 에스페란토(세계공용어)예요”라 말했듯이 기술과 인간의 관계가 심화되어 가는 시대 상황을 예술에 적극 반영하여 집집마다 있는 텔레비전을 통하여 지구촌 전체가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믿었다. 

‘손에 손잡고’는 백남준의 인공위성 3부작 프로젝트 중 88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여 진행했던 위성 쇼로, 참가국 미국, 브라질,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일본 등을 연결하여 동서양인의 지역적, 이념적 소통의 문제를 예술과 스포츠 같은 인간 문명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는 의미를 전달했다. 백남준은 1977년 제6회 카셀 도큐멘타의 개막식 행사에서 전위예술가들과 여러 장소를 연결한 ‘위성 원격 생방송’을 진행한 것을 모태로, 위성아트 3부작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 바이바이 키플링(1986), 손에 손잡고(1988)로 연결국가를 확대시키며 선보인 바 있다.

로봇형 설치작품 ‘쿠베르탱’은 국민체육공단 소속 소마미술관이 백남준 작가에게 의뢰하여 제작되었다. 네온조명, 전자우산, 오륜기, 모니터 등을 재료로 움직이는 신체구조를 네온 색채와 영상을 통해 조형성 있게 표현하였다. 프랑스 남작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근대올림픽 창설을 통해 인류 공존과 소통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백남준은 스포츠와 예술의 공통된 지향점이 있다고 보았다.

올해는 백남준 타계 10주년을 맞이하여 추모 특별전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올 초 세종문화회관의 <백남준 그루브 흥>전부터, 백남준 아트센터의 특별전 <다중시간>, 서울시립미술관의 <백남준 10주기 추모전>, DDP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백남준 쇼>까지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 영국 런던의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Electronic Superhighway 2016-1966>전에서 1983년에 제작된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상영되고 있어 그의 기발함에 혀를 내두른 기억이 난다. 오늘따라 미술관 로비에 설치되어 있던 백남준 작가의 ‘고대 기마인상’(Robot on a horse)이 새삼 특별하게 느껴진다.


4. [동아일보][챈들러의 한국 블로그]한국 강아지와 인종차별

지난주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할 겸 동네 산을 오르고 있었다. 너무 귀여운 강아지가 지나가길래 한번 쓰다듬으려고 하는 순간 주인이 내 얼굴을 보더니 “어, 만지지 마세요! 강아지가 외국인을 싫어해서 물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너무 당혹스러웠다. 강아지로부터 인종차별을 받은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 이후 나는 한국에 살면서 차별당했던 순간들이 계속 떠오르게 되었다.

인종차별 관련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미국에서 온 내가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경험한 차별은 그에 비하면 미미한 편이다. 술 취한 아저씨들이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서투른 영어로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지나가면서 어르신들이 나를 오랫동안 쳐다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은 나이 많은 세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미군으로 한국에 파병 나와 있었을 때의 일이다. 흑인 해병대 친구와 같이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영화관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뒤에 서 있던 세 명의 대학생이 내 친구를 보고 “원숭이같이 생겼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들은 물론 우리가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했겠지만 군대에서 한국어를 오랫동안 공부한 우리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너무 기분이 나빴고 나는 내 친구가 상처를 받았을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서울 강남역을 지나가다가 영어 선생님을 찾는 광고를 하나 발견했는데 그 광고지 제일 밑에 백인만 찾는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도 피부 색깔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한국에서 외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차별을 당한 경험들은 들어보면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다. 이전에 술 취한 아저씨가 나에게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 지르는 경우만 보아도 미군 장갑차 사건이나 쇠고기 파동 이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거리를 두는 것은 외국인이어서라기보다는 동서양의 문화 차이가 더 크기 때문에 생기는 일일 수도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 지내는 외국인들은 한국에 오기 전 이곳의 문화와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미리 알고 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서 차별당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을 것이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에서 소수민족인 한국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한국인 친구들은 심지어 여행을 다닐 때도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차별하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내가 미국인으로서, 백인으로서 차별받는 것보다 다른 나라,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받는 차별이 더 심한 것 같다.


한국은 특히 한민족 국가이고 내가 느끼기에는 신분 지향적인 사회인 것 같아, 어렵게 이주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저임금으로 생활하면서 힘든 부분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생김새도 다르고 부모가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해서 학교 안에서 따돌림도 많이 당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요즘엔 다문화를 인정하고 홍보하는 공익 광고도 많이 나오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양한 것 같다. 한국은 한민족 국가이며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외부로부터의 침략이 많았고 유교 사상이 강하다. 게다가 1980년대까지 외국인의 방문이 그리 많지도 않았고 또한 한국 사람들의 해외여행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국가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국 사람들도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과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

외국인을 차별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오히려 더 포용하고 다른 인종과 문화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한국의 일상생활에서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과 차별을 느끼고 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여 한국 그리고 다른 국가에서도 편견과 차별이 사라지길 바란다. 나 또한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를 더욱더 이해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5. [동아일보][한옥에 살다/차장섭]나를 비우는 공간, 한옥의 壁

역사학자로서 한국 가족사를 연구하기 위해 전국에 산재해 있는 종가를 조사하던 중 한옥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한옥은 현대 건축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한옥의 벽은 비대칭의 균형, 자유로운 면 분할, 여백의 아름다움 등 독특한 예술혼이 살아 숨쉬고 있다. 

한옥은 비대칭이다. 전통 건축물의 배치를 살펴보면 궁궐, 사찰, 서원, 향교 그리고 민간주택 등 모든 건축이 좌우 비대칭이다. 서양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의 건축물이 대칭 구도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서양 건축은 강박관념에 가까울 정도로 대칭을 선호한다. 

비대칭의 구성은 건축물의 배치뿐만 아니라 한옥의 벽면에서도 나타난다. 한옥의 벽은 다양한 크기와 다양한 모양의 면들이 모여서 하나의 통일체를 이룬다. 그러나 가운데를 기준으로 대칭을 이루는 벽면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언뜻 보면 대칭처럼 보이는 벽면도 양쪽에 다른 형태의 문을 배치하거나 그 크기를 달리함으로써 비대칭을 추구한다. 그리고 완벽한 대칭을 이룬 벽면에서는 작은 소품을 다르게 설치하는 등 결코 경직되고 긴장감을 주는 대칭은 피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 한옥의 벽면이다. 

비대칭은 좌우가 달라 균형감을 상실할 수 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듯한 모양새는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한옥 벽의 비대칭은 언제나 균형과 비례감을 가지고 있다. 대칭을 통해 균형과 비례를 이루는 것은 단순하고 쉬운 일이지만 비대칭이면서 균형과 비례를 이루는 것은 한 차원 높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한옥의 비대칭은 산만한 혼란을 야기하는 무질서와는 다르다. 한옥의 벽면은 다양한 모습의 벽면과 문이 만들어 내는 공간 구성을 통해 서로 경쟁하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감싸 안는 조화를 이룬다. 서양의 건축이 대칭을 통한 외형적인 질서라면 한옥은 비대칭의 조화를 통한 내재적인 질서라 할 수 있다. 

한옥의 벽면은 자유로운 면 분할로 아름다운 한 폭의 추상화가 된다. 흰 회벽을 바탕으로 짙은 색 기둥과 보가 가로세로로 그어지고, 그 사이에 크고 작은 문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와 같은 면 분할은 장인의 솜씨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벽체 위에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이렇게 표현된 벽면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정갈하고 담백하다. 차갑고 기하학적인 서양 미술의 추상화와는 대조적으로 한옥의 벽면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따뜻하고 인간적인 추상이다. 몬드리안의 추상은 치밀한 계산 위에 재고 따져서 정교하게 작도한 추상이라면 한옥 벽면의 추상은 살기 위해 집을 짓고 문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활의 흔적이다.

여백은 단순히 비어 있음을 뜻하는 공백과는 구분된다. 여백은 빈 것처럼 보이지만 무엇인가 있음을 암시하는 공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백은 언제나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의 정신이다. 비어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가능성은 희망이다. 가득 채워져 있다면 이제는 지워지기를 기다릴 따름이다. 여백이 뭔가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이라면 채워진 공간은 더 나아갈 수 없는 절망이다. 

한옥의 벽이 가지는 여백은 단순함으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단순함은 절제의 구현으로서 부분을 이루는 각각이 전체적인 하나의 통일된 주체 안에서 파악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옥 벽의 색도 가장 단순한 흑백이다. 모든 색을 더하면 흑(黑)이다. 모든 색을 빼면 백(白)이다. 서양화가 컬러 유화라면 우리 미술은 흑백의 수묵화이다. 흑백은 여백의 허실(虛實)과 같은 것이다. 이처럼 한옥의 벽은 단순함이 주는 아름다움, 비대칭이 주는 편안함, 균형이 주는 안정감, 여백이 주는 여유로움,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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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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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2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가계부채 시한폭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갈수록 늘어나는 가계부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어제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나고 마련된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 증가세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이 총재가 그 전에도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몇 차례 우려를 나타내긴 했지만 이번에는 그 수위가 더욱 높아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총재의 지적이 아니라도 가계부채는 지난 1분기에 1223조원을 넘어서면서 임계점을 향해 줄달음치는 상황이다. 2013년 2분기부터 11분기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 빚을 갚기 위해 이자로 지출되는 액수만 해도 연간 40조원 규모에 이른다. 이런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면 연쇄적인 파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가계부채 시한폭탄’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면서 통화정책이 크게 제한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더 심각하다. 통화정책을 느슨하게 운용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가계부채가 늘어난다는 게 이미 경험적으로 증명됐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돈을 풀고 싶어도 쉽게 결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얘기다. 어제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연 1.25% 수준에서 동결한 것도 가계부채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정부가 이에 대해 과연 어떠한 대응책을 내놓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정부 당국도 가계부채를 주의 깊게 보고 있고 관계부처끼리 조치를 협의 중”이라는 이 총재의 언급에서도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대책 마련에 들어갔음을 짐작하게 된다. 여러 대책 중에서도 부동산대출 억제 방안이 첫손에 꼽힌다. 그동안 부동산대출 확대가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이다. 상황에 따라 강도가 약하고 강해질 수는 있겠지만 정책 방향이 왔다갔다 해서는 시장에 혼란만 줄 뿐이다. 정책 효과를 얻기도 어렵다. 지금 부동산 시장이 공급 과잉인데도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과열 현상을 빚고 있는 것이 그런 결과다. 부동산시장 과열과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결연한 정책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대책 마련이 지체될수록 효과도 반감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2. 여당 회의가 ‘어전회의’ 돼서는 안 된다

어제 오찬을 겸해 열린 새누리당 새 지도부와 청와대의 첫 상견례는 대화 내용 못지않게 회동 시점과 격식에 관심이 쏠린 특이한 자리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당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가 꾸려진 지 이틀 만에 이정현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들여 그가 좋아하는 냉면으로 오찬을 함께한 후 독대도 했다. 마치 가족모임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김무성 전 대표 때와는 사뭇 달라진 대접이다. 박 대통령은 김 전 대표가 선출되고 두 달이 지나서야 첫 만남을 허락한 데다 회동 횟수도 2년 동안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도 늘 냉랭한 분위기였다. 어쨌든 이 대표 체제가 원만한 당·청 관계 회복과 박 대통령의 최대 약점인 ‘불통’ 해소에 기여한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격식이다. 대통령이 듣기 싫어하는 얘기도 가감 없이 전달해 국민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 게 집권당 대표의 역할이다. 뻔한 건의에 뻔한 수용 같은 짜고치기 방식은 안 통한다. 박 대통령과 이 대표가 과거처럼 주군-복심 관계로 머무르며 가족잔치 기분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얘기다.

자기 방식을 좀처럼 바꾸려 들지 않는 박 대통령이나 ‘그의 남자’임을 자처하는 이 대표에게 획기적 변화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지 모른다. 이 대표가 주재한 첫 최고위원회의 작품이 발표창구를 당대표와 원내대표 및 대변인으로 제한한 ‘언로(言路) 봉쇄’라는 점이 그런 사례다. 최고위원들끼리 언성을 높이던 김 전 대표 시절의 ‘봉숭아 학당’을 지양한다지만 그때 당대표를 물어뜯던 최고위원의 한 명이 본인이었음을 벌써 잊었는가.

“대통령과 맞서는 것을 정의로 여긴다면 여당 의원 자격이 없다”는 주장 역시 올챙이 시절 모르는 개구리 노릇이다. 이명박 정부를 누구보다 앞장서서 몰아붙인 이가 바로 이 대표다. “권력에 줄서는 수직적 질서를 수평적 질서로 바꾸겠다”던 전당대회 출마변은 어느새 온데간데없고 ‘비박(非朴)에 재갈 물린 어전회의’, ‘내시 대표’ 등의 비아냥이 난무한다. 박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 스스로 일개 계파 수장에 머무르려 한다면 정치가 실종되고 국민이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그들만의 리그’라고 외면받지 않으려면 비박은 물론 야당과도 소통하고 국민과 폭넓게 대화하려는 자세가 요긴하다.

[서울신문]

3. 전기료 누진제, 땜질 아닌 전면 개편 필요하다

정치권이 결국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의 전면적인 개편에 나섰다. 기록적인 폭염에 지치고, 열대야에 밤잠을 설치는 국민의 원성에 밀려 전기요금 누진제를 생활 변화에 맞게 고치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어제 “좋은 방안” 마련을 약속했다. “4인 가구가 하루 3시간 30분만 에어컨을 틀면 큰 부담이 안 된다”며 개편 불가론을 펴 한껏 불쾌지수를 높였던 산업통상자원부도 이날 땜질 처방으로 7~9월까지 누진제를 대폭 완화했다.

정치권도 정부도 누진제에 관한 한 참으로 우직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42년 전 공장을 돌리는 데 안정적으로 전력을 확보하는 대신 가정의 절전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한 누진제를 제대로 손 한번 안 댔다. 물론 국민의 아우성을 해마다 반복되는 한철 행사 정도로 치부하며 넘겨 왔기에 가능했다.

누진제가 불합리하다는 근거는 충분하다. 전체 전력 수요의 15%인 가정용 전기 요금은 1단계가 당 60.7원으로 싼 편이지만 최고인 6단계는 709.5원으로 1단계의 11.7배에 달하고 있다. 더욱이 전체 전력 수요의 54%인 산업용은 누진제 적용 대상이 아니다. 산업용과 상업용은 계절별 요금 폭도 훨씬 제한적이다.

하지만 가정에선 소비량에 따라 요금이 급증하는 탓에 전기요금 폭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스탠드형 에어컨을 하루 3시간 30분 틀면 14만 5000원, 12시간은 47만 8000원, 24시간은 94만 7000원이라니 가히 ‘에어컨 공포’가 아닐 수 없다. 또한 평균 가구원 수가 2.7명인 상황에서 1~2단계의 요금 혜택을 받는 가정이 모두 저소득층이라고도 할 수 없다. 1인 또는 맞벌이 가구도 많아서다. 국가 전력 수급을 고려하는 정부의 고민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국민에게만 고통을 전가하는 식의 정책은 옳지 않다.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대통령의 지시를 기다렸다는 듯 임시 대책을 내놨다. 7·8·9월에 한해 현행 6단계의 폭을 50씩 넓혀 월 19.4%의 요금 부담을 덜 수 있도록 결정했다. 국민이 들고 일어서기 전에 진작에 취했어야 할 조치다. 이젠 누진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작업에 들어갈 차례다. 6단계 구간을 3~4단계로 줄여 배율 차를 낮추든, 구간을 해마다 손봐 2~3단계로 줄이든 다각도로 검토해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야당도 누진제를 고치는 데 적극적이다. 민생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면 누진제의 전면 개편을 더는 늦출 수 없다.

4. 유엔 성명 무산시킨 中의 본말전도적 ‘사드 몽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북한의 최근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성명 채택을 추진했으나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를 반대하는 문구 삽입을 요구하는 바람에 끝내 무산됐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3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북한의 노동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성명 채택을 추진했지만 중국이 난데없이 사드 배치가 북한의 미사일을 촉발한 이유라며 사드 반대 문구가 들어간 수정안을 제출하면서 대북 성명 채택 자체를 무산시켰다. 중국은 이에 앞서 북한이 감행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스커드·노동미사일 도발에 대한 국제적 규탄 성명을 무산시키면서 북한을 노골적으로 감싸고 있다.

한국의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보복 조치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완화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중국은 지난 3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조치로 중단했던 북한 나진과 중국 상하이를 연결하는 화물운송 사업을 최근 5개월 만에 재개했다. 북한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자 사실상 유일한 우방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이 북한의 숨통을 틔워 준다면 대북 제재의 효과는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가 결의한 대북 제재를 중국이 앞장서 무력화시키는 상황이다.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사드 배치와 연계해 국제적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나 다름없다. 일부 중국 언론들은 사드 보복 조치로 경제 분야는 물론 영해, 영공 등을 포함한 외교적·군사적 압박까지 거론하고 있다.

한국이 사드 배치를 결정한 것은 북핵과 미사일 위협 때문이다. 북핵 및 미사일 위협만 사라진다면 사드는 배치할 필요도 없다. 중국이 군사주권과 자위권 차원의 사드 배치에 날을 세우고 공격용인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오히려 감싸고 있다. 중국은 북핵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라고 촉구하면서도 정작 사드 문제에 대해서는 공격 일변도의 자국 중심주의를 노골화하고 있다.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한술 더 떠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대륙의 전략적 이익에 악영향을 끼치고 동북아 정세를 격화시킨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대북 제재 중단을 촉구하는 상황까지 치닫고 있다. 이는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이 진정으로 ‘책임 있는 대국’이라면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한의 도발을 절대 용인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중국은 ‘사드 몽니’를 중단하고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책임을 다해야 할 때다.

5. [동아일보]통계청 통계 믿다가 나라살림 구멍날라

통계청이 5년 단위로 추정하는 장래인구추계가 평균 10% 적게 계산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어제 보고서에서 “2026년 국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통계청 추계보다 107만 명(약 10%) 더 많은 1191만 명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초연금 대상자가 당초 정부 예상보다 70만 명 늘어나 복지 부담도 커지므로 인구 예측 방식을 고치고 재정 안정화 장치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계청은 “KDI의 고령 인구 오차율이 과장됐다”며 실제로는 최대 18만 명 늘어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반박했으나 정부 통계가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노인 인구가 통계청 추계보다 10%나 많아지면 당초 예상과 달리 소비지출 감소, 투자와 자본시장 위축, 저축 감소에 따른 경상수지 악화와 성장 지체가 연쇄적으로 초래되지만 정부는 미리 대비하지 못해 재정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로 인한 재정 부담이 2020년 국내총생산(GDP)의 0.1% 수준이라 해도 2060년에는 2.8%로 점점 벌어지게 된다. 

국가 통계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한두 번 나온 것은 아니다. 통계청은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35만5000원이라고 했지만 초중고교생을 둔 도시근로자 가구의 실제 사교육비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양극화 현상에 대해서도 통계청은 상위 10%의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22%라고 밝혔으나 국제통화기금(IMF) 연구 보고서는 45%로 파악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8월 기준 청년 체감실업자가 179만 명으로 체감실업률이 34.2%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통계청의 공식 청년실업률은 8%였다. 

이러니 청와대가 고용동향이나 가계동향 등 공식 통계를 토대로 경제정책의 성과를 홍보해도 딴 세상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왜곡된 통계로 만든 정책이 당초 기대했던 효과를 낼 리도 없다. 유경준 통계청장은 민간 연구소의 통계 오류 지적에 “신중하라”고 발끈했지만 현실을 분식하는 ‘통계 마사지’가 없었는지 꼼꼼히 들여다보는 게 먼저다.

[매일경제]

6. 돈줄 마른 북한 동해 NLL 조업권까지 팔았다니

북한이 서해에 이어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 조업권도 중국에 팔아넘겼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 동해 NLL 근처에서 1000척가량의 중국 어선이 조업하는 게 확인됐다. 정보 당국은 북한이 동·서해 조업권을 넘기고 7500만달러(약 820억원)를 챙긴 것으로 추산한다. 이 돈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통치자금으로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고질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김정은은 주민 생활 개선을 내세우며 수산물 증산을 독려하고 있다. 그런데도 북한이 조업권까지 팔아넘기는 건 그만큼 체제 유지를 위한 외화 벌이가 급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NLL 근처 조업권까지 팔아넘김에 따라 중국 어선의 마구잡이 싹쓸이 조업으로 동·서해 어족 자원이 고갈될 것이다. 우리 해군과 해경, 어민들이 NLL을 넘나들며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들을 막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물리적 충돌이 빚어질 수도 있다. 정부는 우리 어선과 수자원 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하며 NLL 해역의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 

북한의 돈줄은 갈수록 말라가고 있다. 지난해 북한의 수출은 27억달러로 한 해 전보다 15% 줄고 수입은 35억5000만달러로 20%나 감소했다. 올해 1월 4차 핵 실험 후에는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가 더욱 촘촘해지면서 북한은 달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개성공단 폐쇄로 줄어드는 달러 수입만 1억달러에 이른다. 전체 교역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대중 교역도 2분기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러니 통치 자금 마련에 혈안이 된 북한이 광물 자원과 조업권도 팔고 무기 거래나 밀수까지 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외화 벌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돈줄을 차단하려는 대북 제재가 어느 정도 효력을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북한 경제와 주민 생활은 더욱 피폐해지고 체제 불안을 느낀 김정은 정권이 더욱 극단적인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궁지에 몰린 북한이 초래할 여러 가지 리스크에 더욱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7. `항생제 공화국` 오명 벗도록 내성관리 확실히 하라

정부가 5개년 '국가 항생제 내성관리대책'을 수립한 것은 항생제 오·남용으로 인한 내성균 문제가 인류 생존을 위협할 만큼 심각해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2020년까지 감기에 대한 항생제 처방을 현재의 절반으로 낮추고 내성균 확산을 막는 한편 사람·동물·환경 간 내성균 전파 통합감시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항생제 오·남용에 대한 경고에 화답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은 심각한 수준이다. 의사들이 과다 처방을 할 뿐 아니라 병이 잘 낫는다는 이유로 환자들이 처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 우리 국민 1000명당 매일 항생제를 복용하는 사람은 31.7명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23.7명)보다 35% 높다. 감기에 대한 항생제 처방은 2002년 73.3%에서 현재 44%로 떨어지긴 했으나 4년간 44~45%로 정체돼 있다. 축사나 양식장 등에서 항생제를 대거 사용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항생제를 오·남용할 경우 세균 일부 중 유전자 변이가 발생해 내성이 생기고, 항생제 내성균인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되면 치료할 약이 없어지게 된다.

전문가들은 '항생제의 역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공포스러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국 정부가 발간한 짐 오닐 보고서에 따르면 항생제 내성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2050년 연간 1000만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암으로 인한 사망자 820만명을 넘어서는 충격적인 수치다. 

항생제 페니실린은 '기적의 약'으로 불리며 감염질환 치료의 새 장을 열었지만, 항생제를 오·남용하다가는 결국 치료법이 없던 암흑시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항생제 내성균 유행이 신종 감염병의 파급력과 비슷한 것으로 보고 글로벌 행동계획을 제시했으니 우리도 국제공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정부는 항생제 사용 줄이기와 내성균 감염 관리에 만전을 기해 이번 기회에 '항생제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도록 하라.

[매일신문]

8. 김영란법 파도 넘을 경북도 TF 운영, 국회보다 낫다

경북도가 9월 28일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 따른 농축수산물 수요 및 농어업인 피해 감소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린다. 법 시행과 함께 출범할 TF는 4개 팀 18명으로 구성한다. 20대 국회가 바로 직전 국회 때 만든 법을 시행도 하기 전에 틀을 고치려는 움직임과는 사뭇 다른 조치다. 법 정착과 피해 최소화를 향한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경북도의 TF 운영은 잘한 결정이다. TF 활동은 법 취지를 살리면서 농수축산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소비시장을 만들어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두고 봐야겠지만 새로운 방안으로 소포장 포장재 개발과 같은 당장 급한 일부터 학교 급식 체계의 활용, 축산물 공급 체계의 점검 등 신규 사업이 전망된다. 이번 TF 구성은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피해 현실화를 두고 볼 수 없어서다.

특히 경북은 다른 지자체와 달리 전국에서도 농축산물 생산이 앞선 농도(農道)인 까닭에 발 빠른 선제적 대책 마련 노력은 마땅하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제대로 결실을 거두려면 농축수산인은 물론 다양한 관련기관과 단체의 적극적인 협조와 공조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는 TF의 몫이다. 경북의 24개 농업 분야 기관`단체도 최근 모여 피해와 우려의 공감대 형성에 한목소리를 낸 것처럼 TF 운영의 성공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반면 국회의 움직임은 실망스럽다. 법에 정한 음식물 3만원, 선물 5만원 한도를 각각 5만원과 10만원으로 올리는 법 개정에 나서면서 법의 무력화를 꾀하고 있다. 법에 대한 전폭적인 국민의 지지조차 무시하는 이런 시도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소비절벽과 농어업인 피해 예방 등 그럴듯한 주장은 변명과 다름없다. 자신에게 미칠 피해를 줄이겠다는 핑계와 같다. 이는 원안에 포함된 국회의원을 적용 대상에서 뺀 장본인이 바로 자신들인 데서도 알 수 있다.

경북도는 TF 운영 시기를 앞당길 필요도 있다. 굳이 법 시행일에 맞출 일은 아니다. 국회보다 앞서 법의 조기 정착과 피해 최소화를 위해 내린 결정인 만큼 행동은 빠를수록 좋다. 투명하고 공정한 미래를 앞당기고 국민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9. 대구공항 통합이전 합의, 지속적인 관심 가질 때

대구공항 통합이전의 추진 방식과 일정, 재원 조달 방안 등이 윤곽을 드러냈다. 통합이전 후보지가 연내 선정되고 민간 대구공항 이전 시 예산이 부족하면 국비 지원도 가능해진다. 이전 대구공항은 대구 경북 지역의 미래 항공 수요를 충족시키는 수준에서 지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1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3차 대구공항 통합이전 TF 회의에서 정부`대구시가 합의해 내놓은 결과다.

군공항(K-2)과 민간공항을 통합이전하되 군공항은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민간공항은 국토부 사업으로 각각 추진하되 동시에 이전을 완료하기로 했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대구시가 그동안 줄곧 주장해 왔던 것이기도 하다. 건의서 평가, 조사 용역 등을 빠른 시일 내 마무리하고 금년 내 이전 후보지를 선정하기로 한 것도 대구공항 통합이전 의지를 확고히 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공항 규모에 있어서는 대구공항을 지역 거점 공항으로, 장래 항공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규모로 건설한다는 데 합의했다. 향후 확장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그동안 통합이전 TF 회의는 두 차례 열렸지만 주관 부처인 국방부 국토부, 대구시 간 서로 입장이 달라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전 주체를 누구로 하느냐가 달랐고, 이전 비용 조달에 대한 입장도 서로 어긋났다. 과거 부시장이 참석하던 TF 회의에 권영진 대구시장이 직접 참석해 타협을 이끌어낸 것은 앞으로 사업 추진 과정에도 시사하는 바 크다.

첫 단추는 끼웠지만 아직 대구시로서는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올해 안에 부지를 확정 짓는다고 했지만 어디로 정하느냐의 문제가 크다. 이전지 선정에 앞서 해당 주민들과의 상생 협력 방안 등에 대해 검토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공항 이전 작업이 순조로울 수 있다. 비록 합의는 했다지만 재원 마련 문제 역시 지속적으로 공항 이전의 발목을 붙들 수 있다. 공항 확장 가능성도 아직은 장담할 수만은 없다. 이번 합의 자체는 고무적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언약한 ‘제대로’ 된 공항을 짓는지 지켜볼 일은 남았다.

[조선일보]

10. 이대·동국대 분쟁, 대학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다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이화여대 학생들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동국대 학생들도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철회를 요구하는 농성에 돌입했다. 두 대학의 학내 분쟁은 표면적으로 평생교육대학 프로그램의 수용을 둘러싼 갈등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국내 대학들이 처해 있는 위기 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대학들마다 재정은 극도로 악화됐다. 게다가 학문적 성과를 거두지도, 학생들을 제대로 취업시키지도 못한 채 그저 돈벌이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팽배한 것이다.


대학들이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 중 하나는 재정난이다. 재정이 튼튼해야 안정적으로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우리 대학들은 극심한 수입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가 2008년 이후 7~8년째 등록금을 동결하도록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록금 의존율이 65%를 넘는 사립대학들이 허덕이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사립대학들은 10조원의 기금 적립금을 갖고 있지만 저금리로 이자 수입마저 크게 감소했다.


대학들도 건물 신축 등 외형적인 성장에만 매달린 나머지 무리한 과잉투자로 재정난을 자초했다. 또 개혁을 하려고 해도 교수와 학생들은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겠다며 저항하고 있다. 학생들은 학생대로 변변하게 취업조차 못 하는 대학 졸업장이 무슨 소용 있냐고 불만이다. 대학 구성원들이 제각각 자기 논리에 빠진 나머지 지방대학은 물론 수도권 명문 대학들도 골병들어가고 있다.


정부는 국·공립대와 사립대를 합해 매년 10조원 가까이를 대학에 지원하고 있다. 이 중 교육부가 연간 1조5000억원에 이르는 재정 지원 사업을 미끼로 대학들을 줄세우기 하는 것이 대학가 갈등을 촉발하는 자극제 역할을 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대학들이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부실대 구조조정을 서둘러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 학생 숫자가 줄고 있는 현실을 언제까지 모른 척하고 갈 것인가. 국회는 하루빨리 부실대학들이 자발적 퇴출이나 기능 전환을 할 수 있도록 대학구조개혁법을 처리해야 한다. 정부가 대학 등록금을 동결하려면 다른 대안으로라도 숨통을 터주어야 한다.


기금 적립금 사용이나 대학 소유 부동산 매각에 대한 자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재정 건전화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재정 지원을 핑계로 교육부 공무원들이 대학 줄세우기를 즐기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보조금으로 대학을 통제하는 정책은 대학의 숨통을 더욱 조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대로 가면 대학가 전체가 몰락하는 수밖에 없다. 대학 전체가 부실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대·동국대 같은 내부 갈등이 대학가 전체로 확산될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매일춘추] 1000번지에 머물다

언덕배기 빽빽한 집 주변을 진땀에 절어 헤매는 꿈을 꿀 때가 있다. 벌써 삼십 년쯤 되어 가는 일인데 낯선 지역에서 추운 밤 긴장에 싸여 헤맨 고달픔 때문인지 잠재의식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대학 1학년 때 지역 자치센터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번지가 표시되어 있는 구역도를 보았다. 거기서 번지가 정해지는 규칙을 대강 터득하고 우리나라 어디든 주소만 있으면 찾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끔 편지가 오는 언니의 주소는 부산에 있는 수정동 1000번지였다. 편지가 올 때마다 1000을 부여받은 그 집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궁금했다. 

겨울방학이 되자 그 주소를 찾아 떠났다. 언니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익산에서 강경 가는 버스를 타고 강경에 내려 대전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그리고 서대전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대전역에서 내린 후 막무가내 부산행 기차를 탔다. 부산역에 내렸을 때 겨울 해는 이미 저물어 앞이 캄캄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 맵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 찾기 쉬운 일인데 주소밖에 단서가 없으니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 수정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비탈진 도로를 달리는 버스에서 지레짐작한 정류장에 내렸다. 발을 디딘 곳은 하늘에 있는 무수한 별 무리 중 일부가 지상의 불빛으로 내려와 정착한 듯한 동네였다. 근처 가게에 있는 주인에게 서 있는 곳의 번지를 물어 1000번지가 되는 곳의 좌표를 찾아 내려갔다. 이따금 다닥다닥 붙은 문패를 살펴보며 내리막길을 불안하게 걸었다.

마침내 좁은 골목에서 그 집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설움에 북받쳐 목이 메었다. 밤이 이슥한 시각 추위 속에서 두려움에 한참을 오그렸던 발은 무감각했다. 언니는 과감하고 엉뚱한 나를 웃으며 맞아 주었다. 언니가 사는 집주인 할머니는 혈육 없이 홀로 늙은 분이라 그런지 아주 까칠했다. 마당에 머리카락 한 오라기라도 떨어져 있으면 지저분하다고 혀를 끌끌 차는 분이라 마당을 지날 때면 긴 머리를 감싸 쥐고 다닐 지경이었다. 하지만 견디다 못해 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살지 못하면서 세는 왜 놓는지 모르겠다고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느 날 할머니는 뜬금없이 웃는 얼굴로 찾아와 자기 방으로 와 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우리나라에 일가친척이 없고 한글도 모른 체 사는데 연변에 사는 친척에게 자기 소식을 알리는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 부탁한 것을 토대로 따뜻한 안부를 보태어 편지를 쓰고 읽어 준 일이 있은 후 할머니는 나를 유별나게 깍듯이 대해 주었다. 1000번지를 까맣게 잊고 살다가 언니랑 같이 살았던 동생에게 들으니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전 재산을 자치센터에 기부했다는 말을 했다. 세 들어 사는 사람들에게는 늘 인색하고 화초를 돌볼 때만 숨겨둔 향낭에서 미소를 풀어놓은 듯 딴사람이던 할머니가 기부로 삶을 정리했다는 소식은 특별하면서도 조금은 씁쓸했다.


2. [머니투데이][기고]'화해'와 '치유'의 길

지구 반대편에서 세계 축제인 올림픽이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여자배구팀의 한일전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스쳤다. 일상에서 잊고 지내다가도, 한일 간 경기가 있을 때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마음에 경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감정이 복받치기도 한다. 그것에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여러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감정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이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던 2005년 말, 필자는 위안부피해자 지원 업무를 총괄하는 국장으로 있었다. 당시 한 해에만 피해자 할머니 열여덟 분이 돌아가시는 상황을 겪었다. 그분들이 마음의 고통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나시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질문을 스스로 던지곤 했다. 

1993년,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생활이 어려운 피해자를 국가가 직접 보호, 지원하기 위해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이 법 제정 이후 정부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이번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4년부터는 피해자별로 전담 공무원을 지정해 피해자 할머니를 수시로 방문, 생활불편이나 위험요인 등을 꼼꼼히 챙기고 있으며, 주택 개·보수, 틀니, 도배·장판, 휠체어 지원 등 피해자 할머니 한분 한분을 위한 맞춤형 지원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중국에서 갑자기 다치신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와서 4개월여 동안 병원 치료와 정서, 심리적 안정을 도와드렸다. 현재는 다소 안심할 수 있는 상태로 호전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 조각의 위안을 얻고 있다. 하지만 현재 피해자 할머니들이 워낙 연세가 많고 최근 10년 동안 매년 열 분 가까이 영면하시는 모습을 생각하면 이제 한 분이라도 살아 계시는 동안 더 늦기 전에 그분들의 아픈 상처를 보듬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양국 정부 간 합의는 이런 시급성이 고려된 것이다.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공식적 사죄 표명, 일본 정부 예산의 출연금이 포함된 이번 합의가 성실히 이행되어서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그분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야겠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7개월의 준비 끝에 지난달 28일 '화해·치유재단'이 공식 출범했다. 재단 출범 전, 재단 준비위원회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본 결과 상당수 할머니들이 재단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의견을 표명하셨다. 이제 재단이 적극적인 활동으로 할머니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부도 할머니들을 위한 생활안정과 치료, 맞춤형 지원을 계속 확대해나갈 것이다. 또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인류 보편의 여성인권 문제인 만큼 미래세대가 교훈으로 삼고 기억할 수 있도록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 운영과 역사교육도 계속해 갈 것이다. 

다만, 재단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려면 국민들과 시민단체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피해자들을 위한다는 마음만큼은 정부와 국민, 화해·치유재단과 관련 시민단체들이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단의 문은 늘 열려 있다. 이제는 위안부 피해자를 보듬는 일에 마음을 모아야 한다. 이것이 '화해'와 '치유'의 길이다.


3. [매일경제]“木(목)청껏 질러라” 평일 공연관람 꾀하는 움직임, 크라우드펀딩으로 극대화한다

미국 뉴욕에 유니온스퀘어가 있다면, 서울에는 홍대 앞이 있다. 공연문화를 위한 생산과 유통의 인프라가 자발적으로 형성된 곳. 음악과 그림을 한다는 이들이 모여 영감을 주고 받는 커뮤니케이션 토대가 탄탄한 곳. 예나 지금이나 홍대 앞이다.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웨스트브릿지 라이브홀은 인근에서도 손꼽히는 공연시설을 갖췄다. 만석 시 150석이 꽉 차고, 서서 관람할 경우 3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게다가 음향시설이 훌륭해 홍대를 기점으로 삼는 뮤지션이라면 욕심 낼 만한 무대다. 현재 홍대에 위치한 공연장은 소규모 라이브클럽까지 더해 결코 적지 않다. 그 중 절반이 1년에 200일은 공연 없이 개관한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만 공연이 몰리는 탓이다. 시설이 남다르다는 웨스트브릿지 라이브홀 같은 공연장조차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한가롭다. 연말 등 성수기를 제외하고 일주일 내내 이틀만 북적대는 공연장 풍경이 가끔은 신기루 같다.


화요일과 목요일이 가장 비수기 … 공연 건수 증가해도 시설 매출액과 관람객 수는 감소 

공연장 관계자에 따르면, 일주일 중 화요일과 목요일은 대관신청이 가장 뜸하다고 한다. 월요일은 주말 직후라 의외로 여유롭게 공연을 보러 오는 이들이 있고, 수요일은 문화관광부처가 매월 마지막 주를 ‘문화가 있는 날’로 지원하며 할인혜택을 주므로 공연을 즐기려는 관람객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화요일과 목요일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애매한 공연일자로 여겨져 확보되는 관람객 수가 많지 않으니 자연스레 해당 요일에는 비는 공연장이 늘어난다. 공연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 분명하고 시설이 넉넉해도 공연을 보려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함께 진행한 ‘2015 공연예술실태조사(2014년 기준)’를 살펴보면, 2014년 공연시설 수는 1,030개, 공연장 수는 1,280개로 전년 대비 각각 5.1%, 4.3%가 증가했다. 또한 전국 공연장에서 2014년 한 해 동안 진행된 공연 건수는 총 4만7489건, 공연 횟수는 20만228회로 전년 대비 각각 5.1%, 0.9% 증가했다. 반면, 공연시설 매출액은 3,690억 원으로 전년대비 10.9% 감소했다.


주 원인은 대학로와 민간(대학로 외) 공연장 등의 매출액 감소로 분석될 수 있는데, 공공 공연장의 매출 규모는 전년 대비 약 1.5% 증가해 상대적으로 경기 영향에 둔감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관람객 수는 3,767만 명으로 전년과 비교해 5.0% 감소했다. 공연시설 및 단체 수, 공연 건수 및 횟수 등 양적 지표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티켓 판매 수입을 중심으로 민간 공연장의 총 매출은 20.6% 줄어들었다.  


상생하는 문화생태계를 만들어가는 ‘크라우드 펀딩’


주말에만 공연이 편중화되어 있으면, 평일에 공연장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공연수익이 줄고 뮤지션도 설 무대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불타는 금요일과 주말을 넘어, 평일에도 관람열기를 확산하고자 하는 문화예술산업 내의 목소리는 사실 꾸준히 이어져왔다. 올해로 13년째 주말과 월요일로 이어지는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 월요공연 활성화라는 기치를 내걸었고, 홍대 터줏대감이라 꼽히는 라이브클럽 ‘에반스라운지’는 ‘먼데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평일 공연 활성화에 앞장서왔다.


얼마 전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로 시작된 ‘유캔스테이지(UCANSTAGE)’는 사단법인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L.I.A.K)과 총 15개 팀을 선정해, 오는 11월까지 매주 또는 격주 목요일마다 뮤지션의 공연이 홍대 웨스트브릿지 라이브홀에서 개최될 수 있게끔 후원금을 모은다. 

크라우드 펀딩은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터(Starter)들이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할수 있는 지름길이다.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아 한 사람의 꿈을 이루게 하거나 공공의 목표를 달성하는 ‘꿈지원금’ 구실을 한다. ‘평일 공연 활성화’라는 공동목표 달성에 관심 있다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활용해 실질적인 후원(Funding)으로 이어지는 움직임에 동참할 수 있다. 기존에는 공연을 하고픈 뮤지션이 대관과 티켓판매수수료, 마케팅 등 전반적인 운영비용을 부담하고 공연 개최 후 남은 수익만을 간신히 보전해왔다. 하지만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하면 모객이 어려워 적자에 허덕였던 악순환을 방지할 수 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하면 1차적으로 목표한 자금을 마련해 콘서트를 여는 대안적 실현이 가능하다. 펀딩에 실패할 경우, 모아진 금액은 후원자에게 되돌려지고 콘서트는 아예 열리지 않기 때문에 모객이나 대관비용 선납에 대한 부담감이 적다. 공연관람을 원하는 사람은 펀딩에 참여하여 후원금액에 따른 관람티켓을 리워드형으로 제공 받고,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한 금액은 고스란히 뮤지션과 공연시설주에게 수익으로 돌아간다. 콘서트뿐 아니라, 연극, 뮤지컬, 인형극, 코미디 등에도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 이처럼 보다 많은 사람이 주말 외 평일에도 즐길만한 공연이 활성화되고 이를 기반으로 공연장 매출이 함께 증가하는 선순환의 문화생태계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구축될 수 있다.


4. [한국일보]클레오파트라

고대 그리스 작가 플루타르코스(46~120)는 그리스ㆍ로마의 위인 50명의 이야기를 23편의비교 열전과 4편의 전기 형식으로 남겼다. ‘영웅전’이라 알려진 제목처럼 그들은 모두 빼어난 남성들이었다. 그는 자기보다 100년 남짓 먼저 태어나 만 39년을 살다간 이집트의 여성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7세(B.C 69~ B.C 30)의 이야기를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의 이야기 속 엑스트라로 언급했다. 

클레오파트라는 근 300년간 이어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마지막 파라오였다. 선왕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둘째 딸로 태어난 그는 춤과 노래 등 예능에 능했고, 왕조의 여성 군주로선 처음으로 문자를 익혀 집권 후 궁정 토론을 주도할 만큼 교양 있는 여성이었다고 전해진다. 미모와 재치, 섬세한 정치 감각이 그의 매력을 더했을 것이다. 

그는 파란의 시대 약소국의 군주로서 탁월한 정치력으로 한때나마 오리엔트의 통치권을 쥐었던 탁월한 군주였다. 옥타비아누스의 누나와 결혼한 유부남 안토니우스와 중혼, 쌍둥이 아들을 낳았고, 안토니우스가 파르티아 원정으로 획득한 키프로스, 리비아, 시리아 등 오리엔트의 통치권을 넘겨받아 통치했다. 

카이사르의 적자이자 배신당한 누나의 동생인 옥타비아누스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가 죽었다는 소문에 실의,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사실을 안 클레오파트라 역시 미리 마련해둔 자신의 영묘에 남편의 시신을 먼저 안치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악티움 해전 직후인 B.C 30년 8월 12일이었다. 

역사의 패자(敗者)로 스러진 탓이 크겠지만, 남성 권력자들의 게임에 뛰어든 여성의 재능과 야심은 장점이 아니라 자멸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예가 흔하다. 후세는 클레오파트라를, 제국의 영웅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호려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하고 스스로도 파멸한 요부로 기록했다. 

그가 정말 미인이었는지 이설이 많고(장애나 유전적 기형의 신체를 지녔다는 설도 있다), 통념처럼 정말 뱀에 물려 자살했는지도 불확실하다. 그의 무덤을 찾는 일은 고대이집트를 연구하는 학계의 숙원 중 하나이고 무덤이 열리면 진실의 일부도 확인될 테지만, 그런다고 팜므파탈의 전설이 금세 대신 묻힐 가능성은 없다.


5. [서울신문][기고] 학교 교실에서 어항을 보고 싶다/윤학배 해양수산부 차관

유년 시절 학교에 가면 교실마다 작은 어항이 하나씩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빨갛고 하얀 금붕어들이 유영하는 것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매일 당번을 정해 한 명은 어항을 깨끗이 씻고, 다른 한 명은 비닐봉지에 금붕어를 담아 손에 꼭 쥐고는 혹시라도 바닥에 떨어뜨릴까 노심초사했다. 행여 물 관리를 잘못해 금붕어가 죽으면 온 반이 난리가 나고 선생님께 크게 혼이 났다. 콩나물시루 같이 빽빽한 교실에서 물고기 한두 마리는 모두에게 위안을 줬다.

학교에는 비단잉어들이 노니는 연못도 하나씩 있어 하교 후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친구들과 함께 연못가에 둘러서서 잉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1980~90년대에는 가정에도 어항이 보급돼 집집마다 금붕어나 열대어를 키웠다. 그러나 사회가 점차 서구화되면서 개와 고양이가 관상어의 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사회 전반적으로 여유가 사라지면서 가정과 학교의 어항은 점점 자취를 감췄다. 사람들은 일부러 돈과 시간을 들여 아쿠아리움이나 큰 공원, 빌딩으로 가야 물고기를 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최근 관상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해양수산부가 실시한 관상어에 대한 관심도 조사에 따르면 ‘관상어에 관심이 있다’는 응답이 ‘관상어를 키워 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수치와 같은 53%로 나왔다. 1500여개 관상어 온라인 동호회에는 동호인 수가 70만명을 넘는 등 관상어 마니아 층이 형성돼 있다. 관상어 산업도 조금씩 활성화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유통되는 관상어는 대부분 수입산이다. 국내 관련 산업도 이런 수입산 관상어와 수입 기자재의 유통에 치우쳐 있다. 정부는 관상어 문화의 활성화와 산업 발전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2014년 2월부터 ‘관상어 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관상어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깨지지 않는 안전한 수조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개발 투자도 추진하고 있다.

해수부는 지난해부터 관상어 산업박람회를 열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1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했고 관상어 품평회에는 해외 우수 출품작도 참가하는 등 국제산업 박람회로의 성장 가능성을 보였다.

요즘 아이들은 홀로 스마트폰과 게임을 즐기고, 방과 후 여러 학원을 전전하면서 정서적으로 위태로운 시기를 보낸다. 내 어린 시절 그랬듯 지금의 아이들도 관상어를 키우면 정서가 안정되고 아동 발달에도 도움을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미국 코네티컷주에서는 어린이들의 발달과 사회성을 길러 주기 위한 관상생물 교감 프로그램을 운영해 효과를 거뒀다고 한다. 우리 농어촌 지역 복지 시설에도 관상 수조를 보급한 결과 아이들이 하교 후 TV가 아닌 관상어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관상어 수조는 실내 습도를 유지시켜 감기 등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하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국민들의 관심과 정부의 지원이 합쳐져 관상어 산업이 화려하게 부흥하고 가정과 학교에 다시 색색의 관상어가 사는 어항이 놓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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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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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1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국민 상대로 전기요금 재미보려는 건가

현행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에 대한 정부의 방어 의지가 대단하다. 전력 사용량에 따라 6단계의 누진제가 적용됨으로써 요즘 같은 찜통더위에 에어컨을 자주 켰다가는 요금폭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개선안을 내놓을 기미조차 안 보인다. 각자 알아서 참으라는 투다. 산업부 채희봉 에너지자원실장의 “현행 누진제를 개편하지 않을 방침”이라는 언급에서는 단호한 의지마저 엿보인다. 누진제로 모든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라는 게 그 이유다.

지금의 주택용 전기요금 자체가 원가 이하로 공급되고 있다는 것이 산업부의 설명이다. 따라서 제도를 개편하게 된다면 오히려 서민층의 전기료 부담이 늘어나고 부유층에 대해서는 감세 효과가 따르게 된다고 주장한다.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산업·일반용은 제외해 놓고 주택용에만 적용되는 누진제가 얼마나 경제적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전력요금 원가가 투명하게 공개된 것도 아니다.

한전의 지난해 8월 주택용 전력판매 수입이 8850억원으로, 다른 달의 1.5배에 이르렀다는 점을 하나의 단서로 삼을 필요가 있다. 무더위로 인해 누진제 적용을 받는 주택용 전기 사용량이 그만큼 늘어난 결과다. 올해는 이러한 차이가 더 벌어질 것이 틀림없다. 그야말로 요금폭탄인 셈이다. 한전에 피해소송을 진행 중인 소비자들은 실질 누진율이 41.6배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누진제가 40여년 전부터 시행돼 온 구시대 제도라는 사실부터 솔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더구나 국제유가가 오르면 전기요금도 따라 올랐으면서 유가가 내린 마당에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은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요금수입 재미를 보려는 의도라고밖에 간주하기 어렵다. 한전이 지난해 영업이익 11조 3400억원, 당기순이익 13조 3100억원이라는 최대 흑자를 내고도 요금을 내리지 않는다면 잘못이다.

현 새누리당 의원인 윤상직 전 산업부 장관도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필요성을 인정했고, 주형환 현 장관도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누진제를 개편할 수 있다는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이미 소비자들의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데다 여야 정당에서도 개편안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가 언제까지 개편을 미룰 것인지 지켜보고자 한다.

2. 보신탕 논란, 사회적 공론에 부쳐보자

말복을 앞두고 ‘개고기 식용’ 논란이 뜨겁다. 엉뚱하게도 리우올림픽 양궁 여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기보배 선수가 중심에 선 모양새가 됐다. 기 선수가 과거 보신탕을 먹은 사실을 두고 배우 최여진 씨의 어머니 정모 씨가 인스타그램에 ‘대가리에 똥 찬 X’ 등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은 것이 발단이다. 파문이 커지자 정 씨는 글을 삭제하고 공개 사과했지만 이를 계기로 “개고기를 먹는 게 과연 잘못이냐”는 원초적 논쟁이 다시 불거진 것이다.

개고기 식용 문제는 오랫동안 찬반이 맞서 온 해묵은 주제다. 동물보호 단체들은 반려견 1000만 마리 시대에 동물복지 차원에서라도 식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개고기 식용을 ‘미개인’이나 ‘야만’으로 취급하는 국제사회의 부정적 기류도 가세하고 있다. 이탈리아 여성 의원의 ‘2018년 평창올림픽 보이콧’ 주장이나 영국 의회의 ‘한국 개고기 거래금지 촉구’ 청원에 10만명 이상이 서명한 사실이 그것이다. 개고기 식용금지를 법제화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반론도 만만치는 않다. 보신탕이 조상 때부터 즐겨온 ‘전통 음식’인데다 소나 돼지고기는 먹으면서 개고기만 금지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국제사회의 지탄 역시 문화 차이를 들어 남의 나라 음식문화에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맞선다. ‘식용견’과 ‘반려견’은 차이가 있는데다 보신탕 산업에 100만명 이상이 종사하는 현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 위생적인 관리를 위해 소, 돼지처럼 개 도살과 유통판매도 양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개고기는 합법도 불법도 아니다. 개가 가축의 도살 및 식육의 유통 등을 정하고 있는 축산물위생관리법에 ‘가축’으로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개 식용을 합법화하면 동물보호단체의 반발과 국제사회의 지탄이 클 것이라는 점을 우려한다. 반대로 법으로 금지하면 밀도살 행위가 성하고 종사자들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어느 일방의 편을 들기가 부담스럽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합법도 불법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개고기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공론에 부쳐보자.

[서울신문]

3.  부산청장 손도 안 댄 ‘학교경찰 성추문’ 징계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로 끝났다. 지난 6월 부산 스쿨폴리스(학교 전담 경찰관) 성관계 사건은 큰 충격이었다. 학생들을 살피라고 학교에 투입된 경찰관들이 여고생과 성관계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던 데다 경찰의 조직적 은폐 의혹까지 겹쳐 기가 막혔다. 그런 경악할 사건이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이 어물쩍 마무리됐다. 사건을 보고받고도 덮었다는 의혹을 받는 이상식 부산지방경찰청장 등 고위 간부 6명은 서면 경고만 받았다. 인사고과에 벌점을 받긴 하지만 1년만 지나면 소멸된다. 세상에 이런 낯 뜨거운 면죄부 잔치가 또 없다.

입에 담기 민망한 사건은 전직 경찰 간부가 페이스북에 고발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힐 뻔했다. 부산경찰청은 사건이 폭로되기 한 달 전 이미 아동보호기관에서 관련 사실을 전달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음주운전으로만 걸려도 윗선까지 즉각 계통을 밟아 보고되는 것이 경찰 조직의 생리다. 소문날까 봐 쉬쉬한 정황이 누가 봐도 뻔했다. 악화된 여론에 떠밀려 경찰이 특별조사단을 꾸렸을 때부터 끼리끼리 면죄부는 사실상 예견됐다. 경찰의 뒷북 ‘셀프 감찰’에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겼다는 걱정이 좀 많았나.

강신명 경찰청장을 비롯해 대한민국 경찰 수뇌부들의 의식 수준이 궁금해진다. 명색이 학교 경찰관들이 여고생을 농락한 사건을 과연 어느 정도 수위로 보고 있는지 대답을 듣고 싶다. 단순 교통사고나 소매치기쯤으로 생각하지 않고서야 국민의 눈이 무서워서라도 이런 솜방망이 처벌로 뭉갤 수는 없다고 본다. 일차적 책임자인 이 부산청장도 경찰 최고 간부의 명예를 누릴 자격이 없다. 은폐 의혹도 그렇거니와 지역 치안을 총괄하는 책무를 무겁게 인식한다면 누가 말려도 스스로 합당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옳다. 불리한 일에는 면죄부를 챙기겠다면 자신이 누리고 행사하는 명예와 권한을 먼저 반납해야 한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한숨이 들린다. 수뇌부들의 어물쩍 보신주의가 뿌리 깊어서야 경찰 조직의 기강을 누가 무슨 수로 세울 수 있을지 걱정스럽고 한심스럽다. 민중의 지팡이로서 경찰 조직 성패의 관건은 첫째도 둘째도 추상같은 기강이다. 강 청장은 열흘쯤 뒤면 임기를 ‘무사히’ 채우고 떠난다. 민생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대다수 경찰의 사기와 위상을 동반 추락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4. 당·청 관계 재정립에 이정현號 성패 달렸다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 체제가 공식 출범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이 대표를 비롯해 총선 공천 과정에서 ‘진박(진정한 친박) 감별사’ 별칭을 얻었던 조원진 최고위원, 충청권 대표 친박 이장우 최고위원 등 새 지도부를 친박계 인사들이 장악함에 따라 일각에선 ‘도로 친박당’이란 비판도 나온다. 이 대표는 그제 수락 연설을 통해 “지금 이 순간부터 새누리당에는 친박, 비박, 그리고 어떤 계파도 존재할 수 없음을 선언한다”고 했지만 강력한 솔선수범이 없다면 공허한 말장난에 그치고 말 것이다.

사실 이번 당 대표 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의 고질적 계파 갈등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비박계는 단일 후보를 만들어 가며 친박계의 총선 패배 책임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총선 참패 후 외부 인사들을 영입해 구성한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계파 해체를 공식 선언했지만 오히려 계파 실력자들이 세몰이 등을 통해 계파 갈등을 조장해 온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파국·분당도 불사할 듯 감정적 대결로 치달았던 두 계파의 누적된 앙금을 하루속히 걷어 내는 것이 이정현호(號)의 최대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친박계 일색의 새 지도부가 과연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새누리당은 헌정 사상 최초의 호남 출신 보수 여당 대표 선출을 ‘외연 확대’로 평가하지만 오히려 친박계 일색으로 당이 오그라들었다는 비판도 엄존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 ‘도로 친박당’이라는 다소 비아냥 섞인 표현에는 과거 친박 체제의 구태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겨 있다. 당이 청와대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비정상적인 당·청 관계의 부활도 핵심적인 우려 사항 가운데 하나다.

이 대표는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2013년 박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불통’ 지적에 “국민 전체에 더 큰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것을 방해하고 욕하는데 그것도 불통이라면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 했을 만큼 박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확신하고 있다. 취임 첫날인 어제는 또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굉장히 긴 기간”이라면서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가와 국민, 민생, 경제, 안보를 챙기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물론 박 대통령의 성공적 직무 완수는 국가적 차원에서나 국민을 위해서나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 대표는 이제 박 대통령과의 ‘특수관계’를 의도적으로라도 잊어야 한다. 이 대표가 인정할지 모르지만 많은 국민이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를 비롯해 박 대통령의 소통 부재 리더십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임기 말 집권 여당의 대표는 청와대와 정부를 이끌며 국민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수평적 당·청 관계 수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에게 민심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을 넘어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노”를 외쳐야 한다. 오늘 박 대통령과의 오찬 회동을 그 시험대로 삼기 바란다.

5. 일자리 창출 못하면 ‘400조 예산’ 의미 없을 것

내년도 정부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 각 부처가 요구한 내년 예산은 400조원에서 1조 9000억원이 모자라는 398조 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조선·해운 등의 구조조정 및 실업대책, 양극화 해소를 위한 긴급 복지 예산 등 재정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 최종 정부안은 4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 정부 예산이 386조 4000억원이니 각 부처가 요구한 예산은 11조 7000억원 늘어난 셈이다. 현재 국회 심의 중인 추가경정예산 11조원을 반영하지 않은 올 예산 대비 증가율은 3% 정도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복지 분야와 군인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국방 예산이 각각 5.3%씩 증가했다. 누리과정 예산 등 교육부문과 창조경제를 뒷받침하는 연구개발(R&D) 예산은 3%가량 늘리겠다고 한다.

그러나 도로나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15.4%, 외교통일 분야 예산은 경색된 남북 관계를 반영해 5.5%나 줄었다. 내년도 예산의 특징은 재정 건전성을 고려한 점이 눈에 띈다. 최근 몇 년 동안 정부 부처가 요구한 예산 증가율은 연평균 6%에 육박했다. 아울러 정부 각 부처가 새로운 사업보다는 현상 유지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반영됐다. 이는 SOC 사업예산의 축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복지 분야와 국방 분야 예산의 증가는 우리나라가 직면한 현안이라는 점에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

내년도 예산에서 가장 역점을 둬야 할 분야는 누가 뭐래도 복지 분야, 이 가운데서도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 창출은 비단 청년들에 국한된 문제라기보다는 국민 모두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생존의 문제다. 이는 또한 양극화 해소와도 맞닿아 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 정책이 주로 인력 양성에 맞춰져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일할 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교육 훈련을 받는다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을 육성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회 통과가 더욱 어려워진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통과시키는 게 중요하다. 정부, 여당과 야당은 양보할 건 양보하면서 협치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출산장려금 확대 등 재정 지출 외에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하기 전에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책이 중복되고 미흡한 부분이 없는지 예산안을 세밀하게 검토하기 바란다.

[동아일보]

6. 더민주 문재인, 사드 배치 현실화 인정하는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와 관련해 8일 트위터에 “배치가 ‘현실화’하더라도 중국과의 관계 악화는 막아야 한다”고 했다. 측근 김경수 의원은 “외교적 노력을 외면하는 정부를 비판한 데 무게중심이 가 있다”고 했지만 평소 사드 반대를 표명했던 문 전 대표가 이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언급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문 전 대표는 사드 문제가 불거진 2014년 이후 줄곧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의 대가 차원에서 미국 방침에 떠밀려 가는 것” “주권 국가라 말하기에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라며 반대했다. 입지(立地) 발표 수 시간 전인 13일엔 “정부가 본말 전도, 일방 결정, 졸속 처리 3대 잘못을 했다”며 “득보다 실이 많은 사드 배치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거듭 반대했다. 더민주당의 최대 지분을 가진 그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이후 당론을 정하지 않겠다며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하던 더민주당 내에서 강한 반대 목소리가 잇달아 터져 나왔다. 

천안함 폭침 때 5년 만에 북한 소행을 인정한 문 전 대표가 사드와 관련해선 한 달여 만에 사드 배치 현실화를 애매하게나마 언급한 것이 안보와 국익에 대한 성찰에서 나온 것이라면 다행이다. 2012년 대선에서 그의 패인 중 하나가 대형 안보 이슈마다 친노의 친북(親北) 이미지 각인 때문이라는 점을 본인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왜 사드 배치에 대한 견해를 바꿨는지 이렇다 저렇다 할 설명이 없어 여전히 의구심은 남는다. 국민 생존이 걸린 안보 문제에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언행을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맹목적인 반대에서 슬며시 말을 바꾸는 자세로는 지켜보는 국민만 혼란스러울 뿐이다. 

문 전 대표는 별 성과 없이 귀국한 더민주당 초선 의원 6명에 대해서도 “(이들을 비판한 정부가) 한심하다”고 오히려 편들었다. 이들의 중국 체류 기간 중 중국의 관영 언론들은 한국 정부를 조롱하고 사드 반대 논리를 확산하는 데 6명을 이용했다. 관영 환추시보는 “의원들이 정부를 의식해 위축이 돼 제대로 의견 표명을 못 했다”며 한국 정부를 걸고넘어졌다. 

문 전 대표가 진정으로 사드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면 애매한 수사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라 그 이유를 국민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옳다. 아직도 사드에 반대한다면 대선 출마 시 공약으로 내세울 뜻을 확실하게 밝혀라. 그래야 국민들이 군통수권을 맡길 만한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7. 임종룡의 대우조선 감독 부실, ‘서별관 청문회’로 규명하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어제 정례 브리핑에서 검찰 수사 등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 살리기를 계속할 뜻을 밝혔다. 대우조선 고재호 전 사장이 5조4000억 원 규모의 회계 부정을 지시하고 현 경영진이 1200억 원대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가 최근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그럼에도 금융위는 대우조선 파산 때 경제에 미치는 충격, 조선업에 미치는 영향, 채권보전 가능성 등을 고려해 정상화 추진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임 위원장의 발언은 기업 비리를 처벌하는 것과 기업 정상화는 분리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우조선의 비리가 과거 경영진 시절에만 저질러졌고 현 경영진은 이를 수습하는 ‘선한 관리자’라는 전제가 성립돼야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정성립 사장은 과거의 부실을 털어내겠다고 공언해 작년 말 4조2000억 원의 국민 혈세를 지원받고도 올 초 회계사기를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정 사장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회사 정상화를 지휘할 수 있을지,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대우조선을 세금까지 쏟아부어 살려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대우조선의 대주주인 KDB산업은행과 산은을 감독하는 금융위가 현 경영진의 회계 부정을 알고도 묵인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는 판이다.

현 경영진 수사가 대우조선의 수주에 차질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정부에서 나온다지만 그렇다고 비리를 그대로 묻어둘 수는 없다. 정부-국책은행-자회사로 이어지는 카르텔을 보호하려는 방어 논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대우조선을 워크아웃 대상인 C등급이나 법정관리 대상인 D등급이 아닌 정상 기업으로 분류한 것에 대해 임 위원장은 “이미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어서”라고 답했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 특혜 금융을 부실기업에 집어넣는 방식을 강한 구조조정이라고 봐줄 수는 없다.

대우조선에 대한 금융위의 감독 부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도 ‘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열 필요가 있다. 추경자금 11조 원의 17%인 1조9000억 원이 조선업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대우조선에 대한 의혹이 커지는 상황에 무조건 돈만 집어넣을 수는 없다. “민생만큼은 야당 시각에서 접근하겠다”고 한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대표가 앞장서 서별관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

[중앙일보]

8. 매년 바뀌는 미래 신성장동력 프로젝트

정부가 미래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9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10일 열린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선정된 이번 프로젝트에선 인공지능(AI)과 가상·증강현실(VR·AR) 등 최근 관심이 높아진 기술이 포함됐으며, 10년 안에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도 제시됐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세계적 트렌드와 국정철학을 반영해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 과학계에선 비판적 시각이 우세하다. 미래 신성장동력 사업이 수시로 바뀐다는 게 가장 큰 불만이다. 실제로 이번 발표는 박근혜 정부 들어 세 번째다. 정부 미래 전략이 미래 사회에 대한 큰 그림이나 중장기적 관점이 아니라 매년 그때그때 유행하는 기술 등을 나열해 전시성 행정에 치우치고 있다는 게 과학계의 지적이다.

또 과거 이명박 정부가 신성장동력으로 추진했던 녹색성장 중심의 각종 프로젝트는 정권이 바뀌면서 시들해져 버렸다. 10년 앞을 내다보고 추진해야 할 신성장동력이 매년 유행에 따라 바뀌는 것도 문제지만 정권이 바뀌면 과거 정권 사업은 연구비가 끊기고 실체가 모호해져 기술 축적이 안 된다는 것도 고질병으로 지목된다. 이렇게 미래산업 전략이 유행 따라 바뀌는 바람에 국내 과학 연구 풍토 역시 단기적으로 끝낼 수 있는 ‘번트’ 수준에서만 맴돈다는 게 과학계 인사들의 자체 평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국경제보고서’에서도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비가 세계 1위이고, 절대금액에서도 6위에 달하지만 R&D 생산성은 미국의 3분의 1 수준으로 효율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 주도의 창조경제에 대해서도 정부가 특정 산업을 정해서 장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그런 일은 시장을 볼 줄 아는 기업과 산업에 맡기라고 조언했다. 정부는 AI·AR 등 개별 기술 확보가 아니라 5~10년 후 우리 사회가 도달해야 할 기술 수준 등 큰 그림을 제시하고 낮은 R&D 투자효율을 높일 혁신안을 내놔야 한다는 과학계의 제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매일경제]

9. 재정건전성 유지 법보다 정부 실천의지에 달렸다

정부가 10일부터 입법예고한 재정건전화법을 보면 재정의 중장기 안전성을 도모하겠다는 뜻을 일단 읽을 수 있다. 여태까지는 말로만 외쳐왔다면 이제부턴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니 차원을 달리하는 건 분명하다. 법에서는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45%,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3% 수준을 각각 넘지 않도록 관리목표를 설정했다. 재정투입이 필요한 법안을 제출할 때는 재원조달 방법을 의무화하는 페이고(pay-go) 원칙을 적용토록 했다. 설정한 관리목표는 5년마다 재검토하고 장기재정 전망도 수립하도록 했다.

국가 재정을 둘러싼 여건은 갈수록 악화 일로를 걸을 게 뻔하다. 구조적인 저성장 추세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재정총량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나라 곳간을 채우기 위해 하염없이 빚을 늘려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당장 정부와 새누리당이 검토에 들어간 내년도 예산만 봐도 올해보다 3~4% 늘어나 4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렇게 규모는 커져도 복지 등 의무지출 때문에 경기 대응에 긴요하게 쓸 돈이 넉넉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부 지출의 성장기여도는 2014년 0.3%포인트, 2015년 0.8%포인트 등으로 빠르게 높아지는데 증세는 않기로 해 세원 확충 방안은 없으니 옴짝달싹 못 할 수밖에 없다. 

재정건전성 악화를 얘기하며 선거 때마다 포퓰리즘성 퍼주기 공약을 쏟아내 재정을 축낸 정치권만 탓할 게 아니다. 정부가 먼저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급조한 부양책으로 경기를 끌어올리려는 단기 대책에 기댔던 점을 준열하게 반성해야 한다. 국가부채비율 수치에만 연연해 마른 수건 짜듯 재정지출만 줄여놓아 꼭 집행해야 할 복지 지원에 차질을 빚는다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역행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져보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자체의 성장 활력을 회복시켜 세수를 늘리는 길이 더 근본적인 재정건전성 제고 방안일 것이다. 여하튼 다음달 국회에 제출될 재정건전화법이 재정건전성을 지키려는 정부의 강한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그렇게 해서 우리 세대가 만든 빚을 다음 세대에 그나마 덜 떠넘기게 되기를 기대한다.

10. 언제까지 `기업이 농업하면 안된다`고 할 건가

LG그룹이 새만금 산업단지에 대규모 스마트팜(Smart farm)을 조성할 계획을 발표했으나 농민단체들이 집단 반발하면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사업을 주도한 LG CNS 측은 주민들을 설득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대기업의 농업 진출 반대'에 가로막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LG CNS가 해외 투자자금 3800억원을 유치해 설립하려는 76ha 규모의 '스마트 바이오 단지'는 농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첨단 농장이다. 재래식 농업에서 벗어나 선진국형 창조농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농민들은 이를 외면한 채 반발만 하고 있으니 실로 답답하다.

LG 스마트팜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은 동부팜한농의 유리온실 사업 무산을 연상시킨다. 동부팜한농은 2012년 말 경기도 화성에 대형 유리온실을 짓고 수출용 토마토를 생산하려 했지만 농민들의 반대로 사업을 접어야 했다. LG 측은 해외 전문 재배사가 생산에 참여하고 생산품을 전량 수출한다는 방침을 분명히했지만 농민들은 "대기업이 시장을 잠식해 생존권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기업형 농업, 스마트 농업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네덜란드는 스마트팜으로 농업 2위 국가가 됐고 미국의 몬산토, 중국의 신젠타 등 매출이 10조원이 넘는 종자기업들이 출현했다. 이런 마당에 달콤한 농업지원금에 안주하며 영세하고 낙후된 농업을 지속하겠다는 농민들의 인식은 안일하기 그지없다.

농가의 낮은 생산성 탓에 젊은 층이 농업을 외면하면서 지난해 농업종사자의 평균 연령은 63.7세로 상향됐다. 일본도 농업인구 고령화를 극복하기 위해 로봇 기술 등을 활용하는 스마트 농업을 추진 중인데 우리도 첨단화가 시급하다.

농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키우려면 기업 투자 없이는 불가능하다. 농민들의 반발에 밀려 매번 농업을 업그레이드할 기회를 잃는다면 대한민국 농업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동부팜한농의 유리온실에 이어 LG 새만금 스마트팜마저 무산된다면 어떤 기업이 농업에 투자하겠다고 나서겠는가.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민들의 눈치만 볼 게 아니라 한국이 스마트팜이라는 대세에 편승할 수 있도록 농민단체들을 설득해야 한다. 또 농민들에게 휘둘리면 한국 농업은 후퇴밖에 없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경제]영화 ‘비거 스플래쉬’, 이 죽일 놈의 `욕망`

눈부시고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사랑을 나누는 남녀. 그 어떤 구애도 받지 않고 오로지 둘만의 사랑이 온전히 느껴지는 도입부. 영화 ‘비거 스플래쉬’는 그렇게 '밝게' 시작된다. 뙤약볕마저 이들의 사랑을 녹일 수 없을 것만 같은 기운이 감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 마리안은 목소리에 무리가 간 상태다. 목소리를 잃고 그로 인해 일도 잠시간 중단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남자친구 폴과 함께하는 시간은 마냥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도 잠시. 마리안의 옛 연인이자 음반 프로듀서 해리가 그의 딸 페넬로페를 데리고 등장하면서 평온함과 달콤한 행복의 순간은 금세 깨어지고 만다.

반가운 사람이 찾아왔다면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만, 마리안 커플에게 있어 해리와 그의 딸은 불청객과 다름 없다. 한때 친밀한 관계이기도 했지만, 마리안과 폴, 그리고 해리는 '복잡한' 관계, 즉 얽히고 설킨 관계에 놓인 인물들이다. 물론, 해리와 그의 딸 사이에도 미스터리한 부분들이 있다. 도입부와는 달리, 평온을 깨뜨리는 불청객으로 인해 영화의 분위기는 갑작스레 변한다.


물론 이 분위기에는 수다스럽고 부산한 해리의 역할이 크지만, 왠지 모르게 네 명의 인물들 내면 기저에는 불안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정도는 다르지만, 불편한 관계 위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안함과 서로를 탐하려는 욕망이 네 명의 인물들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그 욕망이 '언제' 겉으로 드러날지에 대한 궁금증과 그로 인한 서스펜스가 ‘비거 스플래쉬’가 지닌 재미 요소다.

인간의 욕망은 타인과 함께일 때 진가를 발휘한다. 비교의 대상이 생김으로써 질투가 유발되고, 타인이 있기에 사랑이 싹튼다. 이미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 할지라도, 관계는 어떠한 상황과 시간 속에 놓이는가에 따라 충분히 변할 수 있다. 그만큼 관계는 복잡하며 쉽사리 변할 수 있다. 관계의 핵심이라 볼 수 있는 욕망은, 굉장히 충동적이며 따라서 '가벼운' 것일 수 있다. 욕망을 억누름으로써 관계의 도리를 이어나가는 것이 인간이라지만, 욕망이 앞설 때, 즉 이성보다 행동이 앞설 경우 벌어지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대개의 경우가 그러하듯, ‘비거 스플래쉬’에서도 욕망이 행동으로 빠르게 변질된 대가로 인물들은 수렁에 빠지고 만다. 황홀경으로부터 시작된 풍경은 삽시간에 진흙탕으로 변하고 만다. ‘비거 스플래쉬’에는 온갖 가벼운 것들이 등장한다. 그 가벼운 것들이란, 결국 인간의 욕망을 뜻한다. 이 욕망이 충동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때 어떠한 참혹한 결말로 이어지는지. 영화는 이 점을 낱낱이 보여준다. 솔직해서 발가벗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인물들의 노출 신들로 인해 오히려 그 기분이 담담하게 받아들여지는 묘한 감정 변화에 휩싸이기도 했다. 위트 있는 풍자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2. [매일신문][목요일의 생각] ‘삼시세끼’ 감상법

요즘 한 케이블 TV의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인간이 발 딛고 살아가는 이유는 먹기 위해서다’는 명제를 입증하듯 한 끼 밥을 위한 네 남자의 활약이 펼쳐진다.

‘대본도 어떤 설정도 없다’는 나영석 PD의 연출법도 우리를 TV에 붙잡아 두는 요소다. 약간의 노동과 부식거리를 교환하며 밥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때론 진지하게 그려낸다.

세끼의 공간이 되는 집 구조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잘 먹자’는 프로인데 요리를 위한 집안 구조는 최악이라는 점이다. 밥은 마당에서 짓고, 설거지는 부엌 앞 수돗가에서 하며, 요리는 대청마루에서 하는 식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세끼’ 집안의 구조는 범죄(?) 수준의 동선이다. 한 끼를 위해 주부들은 마당, 수돗가, 대청, 텃밭을 끊임없이 왕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레인지에 3분만 돌리면 요리가 튀어나오고 반경 2, 3m 안에 모든 조리시스템이 갖춰진 요즘 세상에선 딴 나라의 일처럼 느껴진다.

요즘엔 ‘새벽밥’이라는 단어에 감흥이나 감동이 별로 없다. 입식(立式) 부엌이 드물던 20, 30년 전 우리 어머니들이 한 끼 식사를 위해 새벽부터 온 집안을 돌아다녀야 했던 과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류는 편안함에 빠져들며 노동의 가치나 수고의 소중함 같은 건 점차 퇴색됐다. 

우리를 게으름에 길들이게 한 문명의 이기(利器)는 또 있다. TV 리모컨이다. 옛날의 TV는 모두 사람의 손이 닿아야 작동했다. 켤 때 온`오프 스위치를 누르고, 로터리 채널을 돌려야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었으며 콘트라스트나 밝기 같은 미세 조정도 모두 손으로 직접 해야 했다. 바람에 안테나가 흔들려 방향이 바뀌면 지붕이나 담장으로 올라가 방향을 맞추느라 애쓰는 것도 흔한 풍경이었다. 

소파에 기댄 채 리모컨 하나로 수백 개의 채널을 손끝으로 불러내는 세상에 30년 전 TV 시청을 위한 수고담은 먼 나라 얘기로 들린다.

이렇게 우리가 편리에 길들여지는 동안 많은 걱정과 재앙도 같이 따라왔다. 비만과 성인병과 영양 과잉 같은 것들이다. 한 문명학자는 서구의 몰락을 예견하며 그 근거로 비만과 영양과다를 들었다. 커피를 들고 도심을 걷는 수많은 뚱보, 마트에서 허겁지겁 식품을 챙기는 비만 여성들을 보며 장차 닥쳐올 불행을 예고했던 것이다.

갈라파고스 가마우지의 일화도 떠오른다. 부두에서 어부들이 던져주는 물고기에 길들여진 가마우지들이 날개가 퇴화해 결국 비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다.

한번 편리함에 길들여진 인류가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전자레인지, 오븐이 있는 주방에서 장작을 팰 수 없듯 말이다.

듣기에 거실에 리모컨만 없애도 뱃살의 20%는 잡을 수 있고, 청소기 대신 비질과 걸레질만 해도 허리두께를 반 뼘쯤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차승원의 현란한 요리 솜씨 뒤에 숨어 있는 수고와 노동의 미덕(한 끼 밥을 위한)을 읽어냈다면 당신은 진짜 ‘세끼 팬’이다.


3. [서울신문][서동철 칼럼] 리우에서 평창 올림픽을 바라본다

리우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이 남녀 모두 금메달을 확정 지은 이튿날이다. 한 동료는 “이러다 올림픽 종목에서 양궁이 아예 없어지는 것 아니야?” 하고 조금은 진심이 어린 듯한 농담을 했다. TV는 잇따라 한국이 단체전에 이어 개인전까지 양궁에 걸린 금메달 4개를 휩쓸 가능성이 크다고 흥분하고 있었다. 세계 양궁계는 그동안 한국을 견제하고자 끊임없이 룰을 바꾼 것도 사실이다. 여자 양궁 단체전은 올림픽 8연패라고 하지 않았나.

다음날 남자 양궁의 세계 랭킹 1위인 김우진 선수가 개인전 32강전에서 탈락했다. 그는 올림픽 개막 직전 세계신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니 실망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상대가 한국에 적지 않은 이주근로자와 결혼이민자가 있는 인도네시아 선수라는 소식은 다소 위안이 되기도 했다. 예선 33위가 세계 최강을 꺾었으니 인도네시아 국민에게는 큰 격려가 됐을 것이다. 게다가 김 선수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승윤 선수가 16강에 진출했으니 우리에게는 금메달의 희망도 여전하다. 인도네시아는 런던올림픽에서 역도에서만 은·동메달을 한 개씩 따는 데 그쳤다.

개인적으로 리우올림픽 중계방송을 역대 어느 올림픽의 그것보다 마음 편하게 시청하고 있다. 역시 세계 랭킹 1위에 올라 있던 남자 유도 선수들이 줄줄이 금메달에서 멀어지는 장면도 웃으며 볼 수 있게 됐다. 선수와 그 가족, 그리고 지도자의 원통함은 뼈에 사무치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고국의 시청자들은 매운 고추처럼 당찬 여자 유도 정보경의 은메달과 두 아이의 엄마라는 윤진희의 역도 동메달에서 더 큰 보상을 받고도 남았다.

올림픽에 목숨을 건 듯 침을 튀기는 사람도 중계방송을 하는 아나운서와 해설자 말고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성적에 완전히 초연해 즐기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아직 과장이다. 하지만 경기를 치른 선수는 물론 국내에서도 아까운 패배에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던 과거와는 다르다. 이만큼 의젓하게 올림픽과 만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분명히 우리 사회가 진보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올림픽을 즐기게 됐다는 것은 오로지 ‘나’에서 벗어나 ‘주위’를 바라보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공기권총 10m에서 한국인 박충건 감독이 지도한 호앙쑤안빈 선수가 베트남에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겼다는 소식은 매우 뜻깊다. 물론 이 종목 3연패를 노리던 진종오 선수가 5위에 그친 안타까움은 별개다. 베트남 며느리의 기쁨은 남달랐을 것이다. 그 2세가 자부심을 갖고 자라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이미 다문화 사회에 접어든 한국이다. 다문화 인구의 출신 지역이 대부분 아시아 국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이 아니더라도 아시아 선수라면 ‘이웃’을 넘어 ‘사돈’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한국·중국·일본을 제외하면 아직은 목숨을 걸다시피 해도 올림픽에서 성적을 내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후년 평창올림픽을 연다. 서울올림픽에 이은 동계올림픽의 개최는 변방의 한국 스포츠가 세계 중심으로 확고하게 진입함을 알리는 일종의 세리머니다. 그런 점에서 평창에서는 ‘성적’에 대한 강박을 떨치고 ‘공헌’을 목표를 삼아 보면 어떨까. 넓게는 세계인, 좁게는 아시아 이웃에 대한 공헌이다. 리우올림픽을 느긋하게 즐기는 국민의 모습에서 여건은 성숙하고도 남았음을 확인한다.

평창올림픽이 아시아 이웃들을 동계 스포츠 불모지에서 벗어나게 하는 노력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개·폐회식 행사도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도 초점을 맞추었으면 한다. 평창을 ‘아시아 동계 스포츠 지원센터’의 본부로 공표하면 그 이상 좋은 일은 없다. 평창, 정선, 강릉에 들어서는 동계 스포츠 인프라를 아시아 각국을 위해 쓰겠다는 선언이다.


한편으로 막대한 비용을 들인 시설을 올림픽 이후에도 놀리지 않는 길이다. 외교력을 발휘해 아시아 각국이 모두 참여하는 동계 스포츠 진흥기구를 조직하고 중국과 일본에는 비용을 분담케 하는 방안도 있다. 금메달 몇 개를 더 따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4.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원조를 뛰어넘은 한국형 판메밀국수

메밀은 추운 지방,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는 곡식으로 바이칼 호수 일대와 중국 동북부가 원산지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평안도, 강원도 등지에서 많이 생산되었던 곡식이다. 척박한 곳에서 쉽게 재배되어 구황식품으로도 역할을 했던 메밀은 칼로리가 낮고 좋은 단백질이 많아 혈관을 맑게 유지해 주는 식품으로 알려지면서 갈수록 인기를 끌고 있다.

메밀을 이용한 면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각종 메밀국수, 냉면, 막국수 등 다양한 향토 음식들이 특색 있는 먹을거리로 등장했다. 이 중 판메밀국수는 메밀가루로 만든 면을 차갑게 하여 장국에 찍어 먹는 일본식 요리 ‘소바’에서 유래했다.

한국형은 일본 소바에 비해 면의 식감이나 장국 맛 등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맛의 국수다. 차가운 물에 갓 씻어낸 싱싱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면과 심심하고 약간 달짝지근한 장국이 그 특성이다. 장국에 간 무와 잘게 썬 파를 넣고 겨자를 가미한 후 면을 장국에 담그거나 듬뿍 찍어 먹는다. 이에 비해 일본식은 메밀향은 진하지만 다소 건조한 느낌의 면에 짠 ‘쓰유’(간장)를 살짝 묻혀 먹는 스타일이다. 필자에게는 한국형 메밀국수가 훨씬 입맛에 맞다. 오랜 입맛 때문인가? 어린 시절 서울에서 공부하던 형이나 누나들이 방학 때 집에 오면 기분 내며 쏘던 귀한 메뉴가 메밀국수였다.


메밀국수를 잘하는 식당들이 도처에 있으나 습관적으로 찾게 되는 집들이 있다. 예전에 서울 서초동 옛 제일생명 뒷골목에 70년 전통의 ‘제남’이라는 조그만 집이 있었다. 몇 년 전 주인아주머니가 돌아가셔서 없어졌지만 지금도 그 동네를 지날 때마다 생각난다. 일제 강점기에 개업해 1990년쯤 서초동으로 옮겨 온 집으로, 거의 하얀색의 면에 멸치만 쓰는 장국맛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우리 부부가 ‘외식’하면 가장 많이 갔던 곳이다. 얘기를 즐기시던 주인아주머니의 메밀면과 장국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장국을 그렇게 아껴서, 남기면 우동이라도 찍어 먹으라고 권할 정도였다. 오랜 단골들 때문에 문을 못 닫고 어려운 장사를 한다고 했다.

1954년 개업한 ‘미진’이란 곳이 있다. 학창시절에 돈 생기면 가던 곳으로, 얼마 전 피맛골 재개발로 인근 오피스텔로 이전했다. 부드러운 면발과 장국맛이 자랑으로, 점심때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남대문시장 인근 북창동에도 ‘송옥’이라는 메밀전문집이 있다.


1961년 광화문에서 창업해 1970년 지금 이곳으로 옮겨 왔다. 면발이 굵어 식감이 좋고 장국은 약간 달큼하면서 진한 맛이다. 점심때 줄 서고 합석하는 것은 기본이다. 서소문 덕수궁 옆에도 1962년 문을 연 ‘유림면’이라는 집이 있다. 깨끗하게 단장한 집이다. 면발이 가늘고 쫄깃해 특별한 식감을 자랑한다. 여의도에도 주인장이 직접 면을 뽑고 직장인들이 줄 서서 먹는 ‘청수’라는 곳이 있다.

판메밀국수는 이제 일본의 ‘소바’를 넘어선 고유의 한국형 메뉴가 됐다. 애호가가 나날이 늘고 있고 역사와 맛을 자랑하는 식당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을 나면서 음미해 보기를 권한다.


5. [중앙일보][마크 테토의 비정상의 눈] 한국의 정원에서 삶의 교훈을 얻다

최근 부모님을 모시고 한국과 중국 곳곳을 여행했다. 그중 가장 큰 울림을 준 곳이 한국식 정원이었다. 그곳에서 인생에 관한 작은 교훈을 얻었다. 창덕궁 후원(비원)을 거닐면서 나무와 돌 사이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아담하면서도 절제된 느낌의 건축물들에 감동했다.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양식의 정원이었다. 유럽 정원은 대부분 뜰 안쪽이나 건물 뒤편에 별도로 자리 잡는다. 중국에서 본 안마당 정원(courtyard gardens)에는 대개 독특한 암석과 물건이 전시돼 있었다. 그러나 창덕궁은 숲처럼 드넓은 정원이 언덕과 바위를 따라 자연스럽게 펼쳐지면서 그 속에서 아담한 궁궐이 마치 자연과 하나인 듯 녹아 있었다.

안내인은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에서 정원이란 사람들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종의 통로입니다. 건물이나 건축물은 정원과 자연스럽게 동화되죠. 이런 면에서 일본이나 중국 정원과도 다릅니다. 일본은 인위적인 작업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려 하죠. 중국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과장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안내인은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 마당을 둘러볼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분은 박물관 가장자리의 낮은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마당이 건물 끝자락인 여기서 끝난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길 건너편의 나무들이 보이나요? 저쪽에는 산도 있죠? 사실 우리는 여기서 보이는 나무와 산을 모두 마당의 일부로 여긴답니다.”

이 경험은 내게 ‘인생에서 누구도 혼자 살 수 없다’라는 교훈을 줬다. 사람들은 세상과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나 자신을 가장 올바른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느냐다.

안내인은 이런 말도 했다. “마당은 계절마다 바뀝니다.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죠. 가을에 오면 산에 단풍도 볼 수 있고 가을 새들의 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겨울엔 하얀 풍경화처럼 보일 것이고요. 한국에선 이를 보고 ‘친구집을 계절마다 가보지 못했다면 그 집을 진짜로 방문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도 역시 나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 우리 삶에도 계절이 있으며 내가 지금 어느 계절에 속했는지를 파악하고 이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주변의 인간관계도 똑같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들이 겪은 삶의 계절을 모두 지켜보지 않고서야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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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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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0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與 새 지도부, 계파 늪 벗어나 미래 비전 보여 주길

4·13 총선에서 참패한 새누리당이 어제 전당대회에서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이장우·강석호·최연혜 최고위원 등 새 지도부를 선출했다. 구원투수 격인 이 대표는 차기 대선까지 당을 진두지휘한다. 여당의 운명이 그의 어깨에 걸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와 이주영·주호영·한선교 등의 후보가 벌인 대표 경선은 그런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엔 퍽 실망스러웠다. 친박(친박근혜)·비박 간 고질적 계파 싸움을 하느라 나라의 미래 비전은 보여 주지 못하면서다. 새 지도부는 전당대회가 끝난 마당에 고만고만한 후보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했다는 혹평에 연연할 이유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집권당이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지 못했음을 뼈아프게 여기고 이제부터 심기일전하기 바란다.

이 대표가 호남 출신으로 첫 보수 여당 대표가 된 의미는 적잖다. 그러나 강 최고위원을 제외한 지도부가 친박 일색으로 구성됨으로써 국민 화합 이전에 당내 통합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낳게 한다. 이는 총선을 전후해 여당의 계파 간 막장극에 넌더리를 냈던 국민을 다시 실망시킨 꼴이다. 이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계파 해체와 ‘섬기는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러나 당 대회 과정에서 보스급 인물들이 뒷전에서 계파 정치를 부추기는 선거전을 목도한 국민의 눈엔 만시지탄으로 비친다. 선거전 막판 특정 친박 후보를 찍으라는 ‘오더 투표’ 의혹까지 제기됐다면 말이다.

국민이 어제 끝난 여당 전당대회나 진행 중인 더불어민주당의 당권 경쟁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근본 이유가 뭐겠나. 목전의 승리에 눈이 어두워 국가 백년대계를 도외시하는 데 국민인들 감동할 리가 없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를 둘러싼 양당 당권 주자들의 접근 행태를 보라.

더민주의 경우 당을 장악한 문재인 전 대표가 일찌감치 사드 반대를 천명한 탓인지 동조하는 ‘친문 후보’들끼리 선명성 경쟁에 급급한 인상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신중론은 씨도 먹히지 않았다. 여당 후보들의 모습은 더 한심해 보였다. 여당답게 사드 배치와 같은 안보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성주 지역민의 눈치를 보며 아예 ‘침묵의 카르텔’에 빠진 듯했다. 당원 자격으로 전당대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단합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라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자고 주문했다.

작금의 범여권 지리멸렬상에 청와대의 책임도 없진 않겠지만, 일단 당정이 공유해야 할 메시지는 던졌다고 본다. 우리 앞에는 사드 문제뿐만 아니라 보호무역 바람이나 고용 없는 성장 기조 극복 등 현안이 쌓이고 있다. 새 지도부의 최우선 과제는 국민이 희망을 걸 수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 청사진을 내보이는 일이다. 그 전제조건이 계파의 소리(小利)에서 헤어나 안정적 성장과 단계적 복지 확대라는 여당다운 정체성의 재구성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새 지도부는 누구를 대선 후보로 내세우든 재집권이 쉽지 않으리라는 엄중한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2. 신용등급 상승, 한국 경제 재도약 발판 삼아야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사상 최고등급으로 상향 조정했다. S&P가 그제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A’로 한 단계 올리고 등급 전망도 ‘안정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AA 등급은 전체 21개 신용등급 중 세 번째로 높은 것으로 일본보다는 두 단계 높고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수준이다. S&P로부터 한국보다 높은 등급을 받은 나라는 미국, 독일, 캐나다, 호주 등 6개국에 불과할 정도다.

S&P가 우리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한 이유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6% 수준으로 0.3∼1.5% 수준인 선진국보다 높다는 점과 지난해 대외 순채권국 상태로 전환된 데다 통화정책이 견조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지원해 왔다는 점을 들었다. 이번 신용등급 상승으로 해외 자금의 국내 유인에 도움이 되는 등 국제 금융시장에서 돈 빌리기가 쉬워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가 채무의 상환 능력을 가리키는 신용등급이 높아졌다고 해서 우리 경제가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올 성장 목표를 2.8%로 낮출 정도로 우리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 우리의 경제 기반인 수출은 19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하고 있고 가계부채 증가로 소비와 투자도 회복이 어려운 상황이다. 조선 등 취약 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실업률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고 청년 실업 문제 역시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보호무역의 파도가 거세지고 있고 중국의 사드 보복 가능성도 언제 현실화될지 모르는 등 글로벌 경제 환경은 갈수록 악화일로다.

S&P가 신용등급 상향의 근거로 제시한 경상수지 흑자조차 사실상 수입 감소에 따른 불황형 흑자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산업 전반의 경쟁력은 추락하고 조선 등 주요 업종은 구조조정 없이 회생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신용등급 상향이 사면초가에 빠진 한국 경제에 모처럼 호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냉혹한 경제 현실이나 체감경기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노동개혁 등 경제 체질 개선의 고삐를 더욱 죄는 동시에 신성장산업 발굴 등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번 신용등급 상향을 국가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3. 불합리한 전기요금 누진율 조정해야

불볕더위가 계속되면서 그제 순간 전기 사용량이 역대 최고치인 8421만㎾를 기록했다고 한다. 에어컨 등 냉방기기 사용이 급증한 탓이다. 전기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전기 요금 폭탄을 맞은 시민들이 한국전력을 상대로 소송전에 참여하는 등 전기요금 누진제 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야당은 현재 6단계인 누진 구간을 3단계 또는 4단계로 조정하자는 안을 제시했고, 정부는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며 일단 난색을 보이고 있다.

2007년 전기요금 누진 구간을 6단계로 나누면서 저소득층을 우선적으로 배려했다고 한다. 정부 여당이 국민적 공감대를 내세우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 달에 100 이하를 사용하는 저소득 가구에는 전기생산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당 60.7원을 적용하고, 100에서 200 이하 구간에서는 125.9원을 적용하는 등 구간별 요금 누진제를 6단계로 나눴다. 그러다 보니 500 이상 6단계 구간에서의 요금은 709.6원으로 1단계보다 11.7배나 높아졌다.

전기요금 관련 민원이 급증하는 가장 큰 원인은 가구당 평균 전기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잘게 쪼개진 높은 단계의 누진요금을 적용받는 가구 수가 많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2007년에는 가구당 월평균 전기사용량이 163였으나 지난해에는 223로 증가했다. 여기에 국제 유가 인하와 석탄화력발전소 설립, LNG 발전소 건립 등으로 전기 생산 단가가 크게 떨어진 것도 요금 조정 요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실제 한전이 민간 전기사업자에게서 사들이는 전기 도매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은 2013년 당 158원대이던 것이 성수기인 최근에는 당 65원과 66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2009년 이후 여름철 SMP 가격으로는 최저치다. 이는 한전이 66원에 전기를 사들여 2단계보다는 두 배, 6단계 요금보다는 10배 이상 비싸게 판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한전의 영업이익이 11조 3000여억원을 기록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저소득층을 배려하면서도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조정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 우리나라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 사용량이 전체의 13.6%에 불과해 전력수급에는 큰 차질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가구당 전기 사용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이하로 국민이 충분히 아껴 쓰고 있다. 전기를 낭비하는 사태를 우려할 필요는 없다. 한전의 수익성 악화가 문제라면 산업용 전기요금을 소폭 올리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4. 400조 육박하는 2017년 예산안 ‘재정 중독’ 아닌가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사상 처음 4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어제 정부와 새누리당은 첫 예산안 당정협의에서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39.3%인 국가채무비율을 40% 선으로 유지하는 데 맞춰 내년 예산안을 올해 예산(386조4000억 원)에서 3∼4% 늘린 400조 원 안팎(398조∼402조 원)으로 편성하기로 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자리 창출, 신성장 산업 육성, 민생 안정에 역점을 두겠다”며 ‘확장적 재정 운영’ 방침을 분명히 했다.

당정은 과거 증가율 수준에 맞춘 예산 규모라고 했지만 내년 경제가 3∼4%나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기 부진으로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으면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정부는 중장기 재정건전성을 훼손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재정을 퍼붓고도 정책 효과를 장담할 수 없는 구태의연한 사업이 수두룩하다. 어제 여당은 청년일자리 예산 확대를 주문하면서도 지금까지 백약이 무효였던 청년고용대책을 어떻게 개선할지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저출산 해결을 위해 출산 장려금 확대를 주장하며 전남 해남군 사례를 들었지만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장려금만 준다고 출산율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정부가 재정으로 국가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정부 돈으로 경제성장률을 사는 ‘재정 중독’에 빠진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경제 수장이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나라살림을 운영할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유 부총리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중심으로 창조적 콘텐츠를 만들고 문화산업을 지원해 신성장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최경환 당시 부총리도 “(새누리)당이 제시하는 민생사업을 예산안에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했으나 결과는 부양책 남발로 인한 ‘재정 절벽’과 총선 참패였다.

박근혜 정부의 남은 한 해, 민간부문에서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획기적 기업 투자 유인책과 경제 체질 개선이 없으면 재정 중독은 다음 정부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국회에 넘어가 있는 추가경정예산안을 포함해 슈퍼 예산 속에 재정이 새는 구멍이 없는지 여야가 ‘정치적 고려’ 없이 깐깐하게 살펴야 한다.

5. 이정현 새 대표, ‘대통령 내시’ 벗어나 보수혁신 이끌라

새누리당의 새 당 대표에 호남 출신 3선인 친박(친박근혜) 이정현 의원이 선출됐다. 민주화 이후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사에서 호남 대표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최고위원에는 강석호 이장우 조원진 최연혜(여성) 유창수(청년) 후보가 뽑혔다. 이 대표는 11년 만에 부활된 단일지도체제의 수장을 맡아 내년 대선을 치르는 등 2년간 당을 이끌게 됐다.

이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이 순간부터 새누리당에는 친박, 비박 그 어떤 계파도 존재할 수 없음을 선언한다”며 ‘유능하고 따뜻한 혁신 보수당을 만드는 정치 혁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역대 당 대표들도 당선될 때마다 화합과 계파 청산을 외쳤으나 보혁(保革)이 뒤섞인 ‘짬뽕 정당’의 태생적 한계에 막혔다. 친박 패권주의 때문에 4·13총선에서 참패하고도 이번 지도부 선거에서 강석호 최고위원 1명을 제외하곤 친박이 싹쓸이한 것을 보면 새누리당이 정신을 차렸는지도 의문이다. 

이 대표가 진정 계파를 청산하려면 서청원 최경환 의원 같은 친박 좌장은 물론이고 주군(主君)인 박근혜 대통령까지 ‘극복’해야 할 것이다. 먼저 우병우 민정수석을 감싸며 국민의 소리에 귀를 닫는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함으로써 정국 수습을 위한 개각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 대표는 경선 과정에서 “나를 대통령의 내시라고 해도 부인하지 않겠다”며 친박에 구애했다. 지금도 ‘하청 정당’ 소리를 듣는 당을 ‘내시 정당’으로 전락시켰다간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친박에서는 이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대선 후보가 되는 시나리오대로 됐다는 소리가 나온다. 이 대표가 대선 후보 경선 관리를 ‘편파적’으로 하기로 작당이라도 한 듯하다. 그러나 이 대표가 “정권 재창출 가능성은 지금 제로”라고 말했듯이, 새누리당을 뼛속까지 개혁하지 않고는 ‘보수 집권 8년’에 실망한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 이 대표는 “비주류 비엘리트 소외지역 출신이 집권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는 대한민국은 기회의 땅”이라고 감격했지만 적잖은 국민에게는 ‘금수저’와 ‘헬조선’으로 대표되는 ‘양극화의 나라’일 뿐이다. 기득권 계층의 대변자 같은 새누리당, 특히 친박부터 기득권을 포기해야 국민의 마음도 돌릴 수 있다.

작금의 새누리당은 어떤 혁신의 칼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단단한 웰빙과 무사안일 체질로 동맥경화에 걸려 있다. 영국 노동당은 1994년 수구좌파 노선을 버리고 ‘제3의 길’로 집권의 발판을 다졌고, 보수당은 2005년 ‘온정적 보수주의’ 노선을 세워 정권을 되찾았다. 이 대표가 ‘새누리당은 죽어야 사는 당’이라고 진단한 만큼 당 노선도 시대정신에 맞춰 새롭게 정비해 보수 혁신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이 대표는 유세 과정에서 “내년 대선 때 호남에서 20%의 지지를 받아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정권 재창출을 하려면 지역 표심 공략 같은 정치공학 아닌 집권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북핵·미사일 위협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따른 안보 및 국론 분열 위기, 장기 불황과 기업 구조조정 같은 경제 과제를 해결해 나갈 큰 그림을 제시하고 당이 국정 운영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 이 대표가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에서 이를 어떻게 관철하느냐에 박근혜 정부의 성패, 보수 정당의 미래가 달려 있다.

[중앙일보]

6. 무서운 결핵, 허술한 결핵 관리

지난달 이화여대 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와 삼성서울병원 소아병동 간호사가 결핵 확진 판정을 받은 데 이어 7일에는 고려대 안산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가 의심환자로 신고됐다. 의료진 결핵 감염은 자칫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고령자·환자의 병원 내 집단발병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적극적인 관리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전국 병·의원에서 신고된 의료진 결핵 감염 건수는 2013년 214명에서 2014년 294명, 지난해 367명으로 증가일로다.

한국은 ‘후진국 병’이라는 결핵의 후진국이다. 1996년부터 결핵 3대 지표인 인구 10만 명당 발생률·유병률·사망률 모두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다. 매년 3만 명이 넘는 환자가 새로 발생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결핵관리 수준이 허술할뿐더러 지난 20년간 개선을 위한 노력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핵을 퇴치하려면 우리 사회의 무관심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는 결핵예방법을 개정해 이달부터 의료기관·학교 등 결핵 확산에 취약한 집단시설 종사자들의 결핵·잠복결핵 검진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올해 예산뿐 아니라 추가경정예산에도 필수적인 검진비용을 빠뜨려 법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정부는 2025년까지 결핵발생률을 10만 명당 12명(2014년 86명) 이하로 떨어뜨린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걸었다. 하지만 이런 무책임한 자세로는 목표달성은커녕 외려 더 확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집단시설 종사자에 대한 결핵·잠복결핵 의무 검진은 환자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익적인 보건사업이다. 건강보험재정 투입 등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올해 안에 검진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산후조리원·노인요양시설 등 면역력이 떨어지는 아이·노인과 관련 있는 시설 종사자들을 두루 검진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아이를 병원이나 학교에 보내기가 두렵다는 부모들을 안심시키고 결핵 감염으로부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결핵은 무서운 병이다.

[매일경제]

7. 현대상선 `공매도 폭탄` 개인투자자 보호방안 찾아라

현대상선 구조조정을 위해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공매도 폭탄'이 쏟아져 주가를 교란시키고 있다. 현대상선 주가가 한 달 사이 반 토막 났는데 외국인·기관투자가는 공매도로 차익을 챙긴 반면 유상증자에 참여한 개인투자자는 속수무책으로 손실을 봐야 했다. 개인투자자들은 관리종목 공매도를 할 수 없기 때문인데 현행 공매도 제도에서 드러난 허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현대상선은 6월 초 채권금융회사·선주회사가 참여하는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할 때만 해도 주가가 1만8450원이었다. 7월 중순 유상증자 신주 가격을 주당 9530원으로 산정한 뒤 채권금융회사 외에 개인투자자로부터도 400억원 청약을 받았다. 그런데 현대상선 주가는 9일 7150원으로 떨어져 유상증자에 참여한 개인투자자들은 한 달 사이 25%에 이르는 손실을 보게 됐다.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 사이에 정보 차이와 공매도를 할 수 있는지 여부가 희비를 불렀다. 현대상선 유상증자에서 채권단·선주회사가 출자한 1조4000억원 중 선주회사 유상증자 물량은 보호예수 없이 이달 3일부터 매도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3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증권신고서 한쪽에 적혀 있어 개인투자자들은 알기 힘들었다. 2000억원 규모 CB발행 내용도 구조조정 계획에는 포함돼 있었지만 2일에야 공시됐다. 외국인·기관투자가들은 이런 물량이 쏟아질 것을 알고 지난달 중순부터 공매도에 나섰고, 이달 2일에는 현대상선 전체 거래량에서 공매도 비중이 37%까지 급등하고 공매도 잔액도 294만주까지 불어났다. 

결국 유상증자 신주 물량이 쏟아지기 시작한 3일 현대상선 주가는 27.9% 폭락했고 이날 공매도 잔액을 45만주 청산한 외국인·기관투자가만 큰 수익을 챙겼다. 

유상증자·CB 발행 조건 중 주가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내용은 확정과 동시에 별도로 요약 공시하고 관리종목에 대해선 유상증자 발표 후 신주 상장까지 공매도를 제한하는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매일신문]

8. 새로 도입한 소방 관리 시스템 오류, 그냥 두면 화 키운다

경북도소방본부가 얼어붙은 소화전으로 화재를 제때 진압하지 못해 피해를 키운 실수를 막으려 새로 도입한 ‘전자식 소화전 관리 시스템’의 효율성이 논란이다. 새로 도입한 시스템의 잦은 오류 때문이다. 정작 화재 때 새 시스템이 오류로 무용지물이 되면 치명적인 인적 물적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자칫 아까운 예산만 날릴 시스템 오류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과 보완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까닭이다. 

경북본부가 이런 새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지난해 10월부터다. 3개월 동안 2억7천600만원을 들였다. 새 시스템은 경북도 내 소화전 8천324개소와 급수탑 74군데에 전자태그(FRID)를 붙여 이들 시설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화재 현장에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화재 시 이들 시설 가운데 화재 현장에서 진압에 쓸 주변의 적합한 소화전과 급수탑을 파악해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사실 이번 시스템 도입은 지난해의 뼈아픈 경험 결과다. 지난해 1월 영주의 한 철물점 화재 진압 과정에서 소방 당국은 화재 현장의 소화전이 얼어 물 공급을 못 해 다른 곳의 소화전을 찾아 쓰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그 사이 불길은 인근 상가로 번져 점포 10여 곳을 태웠다. 화재 현장 주변 소화전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조기 진압에도 실패하고 화재 피해만 키운 꼴이었다. 

그런데 도입 취지와 달리 새 시스템을 3개월 운영해 본 결과, 전자태그 인식률이 60% 수준에 그쳤다. 부착 태그를 아예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 과정에서 오류 발생 등의 사례가 40%나 됐다. 이대로면 정작 화재 발생 시 전자태그 부착 시설들의 이용 여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첨단 시설은 무용지물이다. 새 시스템 도입으로 화재 진압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취지가 무색해진 셈이다. 

원인은 여럿이다. 우선 오류를 일으키는 부착 장비와 프로그램 자체의 문제다. 새 시스템의 사용과 활용을 위한 소방관 교육 홍보의 불충분도 있다. 부착 전자태그를 읽는 장비(리더기) 부족도 과제다. 본부도 인정하듯 새 시스템 도입에 따른 전문가 자문과 검수를 않은 점 등 더 늦기 전에 드러난 문제와 오류를 막을 대책을 세울 때다.

9. 혁신창업 비중 크게 뒤떨어진 대구, 문제점 점검할 때

대구의 창업 환경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나 청년창업 비중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혁신창업이 활발한 서울`경기는 물론 대전`부산과 비교해도 창업 열기가 뒤처졌다. 창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인재 유입을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인 창업 생태계 조성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 대구본부가 최근 발표한 ‘창업 활성화 요인 및 시사점’ 보고에 따르면 대구는 혁신창업 생태계가 미약해 창업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전국 도시 중 최초 창업 지역 비중을 보면 대구는 고작 2.9%로 서울(58.3%), 경기(19.0%), 대전(4.9%), 부산(3.1%)에 비해 낮았다. 경북은 더 낮은 1.1%에 불과했다. 이는 창업 기반이 약한 대구경북에서 창업이 쉽지 않음을 말해준다. 이 보고서는 인재 육성이나 협업 공간 등 인프라, 스타트업 투자자`전문가의 네트워크 등에서 대구가 매우 열세라고 분석했다. 

최근 몇 년 새 창업 지원 기관이 속속 등장해 지역 창업 생태계가 조금씩 틀을 갖춰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스마트벤처창업학교, 창조경제혁신센터 C랩, 크리에이티브팩토리, 청년ICT창업성장센터 등 창업 인큐베이터가 그 나름의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창업도시 대구’ 이미지가 낮은 데다 창업 시스템도 제대로 탄력을 받지 못해 20~34세 청년층 인구의 순유출(1.75%)이 타 광역시보다 훨씬 많았다. 

이런 현실을 이겨내고 대구가 ‘창업이 용이한 도시’로 자리매김하려면 무엇보다 도시 브랜드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뉴욕의 경우 ‘테크 시티’ 등 캠페인을 통해 도시 이미지를 브랜드화하고 스타트업`투자자를 유인하는 정책을 꾸준히 펴왔다. 2003~2013년 뉴욕시에 몰린 벤처 투자 금액만도 3조달러를 넘는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구도 청년 창업 열기를 확산시키고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창업 프로그램과 정책 지원 등 창업 시스템 점검이 필수다. 인재, 인프라, 네트워크 등 혁신창업 생태계의 핵심 요소 중 하나라도 뒤떨어지면 창업 활성화는 어렵다. 대구시와 창업 지원 기관은 현재 대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면밀히 살펴보고 빠른 시간 내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

[조선일보]

10. 訪中 의원들, 중국 뜻 증폭시켜 전달하는 역할 맡을 건가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6명이 9일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싱크탱크인 판구(盤古)연구소와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에는 중국 전문가들이 참석해 "한국이 지나치게 미국 입장을 따라가는 것 아니냐"며 '사드 반대' 논리를 강하게 주장했다고 의원들이 전했다.


중국 측은 "한국에 가장 안 좋은 것은 중국이 북한과 다시 혈맹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며 사드로 인해 동북아가 신냉전 체제로 갈 수도 있다"는 발언도 했다고 한다. 김영호 의원은 "중국은 사드가 한국의 안보 수요를 넘어서고 그 뒤에 미국이 있다고 생각하더라"고 했다.


더민주 의원들이 베이징까지 가서 확인했다는 중국 전문가들의 견해는 중국 관영 매체를 통해 수없이 나온 내용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토론해보니 중국의 반대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베이징대 교수와 판구연구소 연구진은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학자들이 아니라 당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중국을 오래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그들이 중국 정부·군과 미리 의견을 조율하고 나왔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 뭘 바라고 베이징까지 달려가 중국 정부에 멍석을 깔아주었는지 모를 일이다. 의원 6명 중 2명은 중국 유학파라고 한다. 그러고도 대외 문제에 관한 한 중국 학자들에겐 표현의 자유가 없다는 기본 사실조차 몰랐단 말인가.


사드 이슈의 핵심은 사드 배치가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방어적 조치라는 것이다. 방중 의원들이 이 점을 중국 측에 납득할 만하게 설명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곧 제재 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등 중국 측의 협박성 발언을 증폭해 국내에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외교 안보 문제는 무엇보다 국익 차원의 판단이 필요한 분야다. 그래서 어느나라나 의원 외교는 정부와 충분한 조율을 거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외교 경험도 없는 초선들이 정부의 공개적 반대를 묵살하고 방중을 강행했다. 문재인 전 대표와 더민주 지도부도 도리어 정부를 비판하면서 방중 의원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앞으로 의원 6명이 중국에서 들은 중국의 뜻을 어떻게 국내에 확대 전달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최재석의 동행> 사람은 본 만큼 느낀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 중인 어머니 곁에서 여름 휴가의 마지막 3일을 보냈다. 6인실 병실 한쪽 끝 침대에 작은 몸을 뉜 어머니는 인공 고관절 수술 후 각종 후유증으로 거동을 못 한다. 24시간 옆에서 누군가 돌봐야 한다. 코에는 음식과 약을 주입하는 관이 끼여져 있다. 원래 가뜩이나 마른 데다 석 달째 병상에 있다 보니 이제는 뼈만 남은 듯했다. 90평생을 살아온 어머니의 앙상한 몸뚱어리를 보다 순간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병실 풍경은 정겨웠다. 80대 할머니 환자를 돌보는 60대 딸은 '방장'을 자처하며 다른 환자 보호자에게 이래저래 싱거운 농담을 건넨다. 그 덕에 잔뜩 침울할 수 있는 병실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지곤 했다. 치매 증상으로 요양원에 있다 갑자기 몸이 아파 입원한 할머니 환자는 50대로 보이는 딸이 병구완했다.


딸은 안타까운 마음에 어머니에게 계속 말을 시켜보지만, 그 어머니는 눈만 멀뚱멀뚱할 뿐 딸의 바람에 호응을 못 한다. 수술 후 혼자 거동이 가능해서인지 보호자 없이 지내는 60대 환자는 한마디로 점잖은 분이다. 내가 서울에 산다는 얘기를 듣고KTX를 타고 서울 근교의 딸 집에 갔던 이야기를 수줍게 했다. 빈 침대 2개는 새 '주인'을 기다렸다.


지난 6일 밤에는 리우 올림픽 여자 배구 한일전을 함께 봤다. 내가 해설자로 나서 병실 가족들에게 간간이 경기 내용을 설명했다. 다들 경기 규정은 잘 몰랐지만, 일본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면서 '한국의 딸들'을 열심히 응원했다. 경기가 끝나고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보호자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어머니 침대 옆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누웠지만 통증에 끙끙 앓는 어머니의 신음에 신경이 곤두서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3시가 넘어서인가 살짝 잠에서 깨보니 그제야 어머니도 가볍게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그간 어머니를 돌보느라 응급실이나 6인실 병실에서 지낼 때 병원이 돌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간호사들의 친절하고 헌신적인 근무 태도에 감사했고 때론 놀라기도 했다. 그러다 사무적으로 보이는 의사들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들이 어머니를 치료하고 있지 않은가. 환자 보호자에겐 병원과 의사는 이른바 갑을관계로 보면 '갑' 위치에 있다. 병실 침대에 붙은 이름표에는 환자명과 주치의 이름이 병기돼 있다. 그런데 주치의는 자주 볼 수가 없다. 대신 주치의 밑에서 전문의 과정을 밟는 젊은 의사만 가끔 볼 수 있을 뿐이다.

환자 보호자들은 답답하고 궁금하다.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앞으로 어떻게 치료하는 건지. 어디 가서 속 시원히 들을 수 없다. 그래서 주로 마음씨 좋아 보이는 간호사에게 묻지만, 그들도 단편적인 내용밖에 알지 못한다. 이번에는 간호사에게 어머니 주치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 주치의는 아니고 전문의 과정 의사와 전화로 연결해줬다.


여느 보호자답지 않게 꼬치꼬치 물으니 전화상으로 들리는 젊은 여자 의사의 목소리에 건조함과 짜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참아야지 싶었다. 격무에 시달리는 데다 수많은 환자를 대해야 하는 의사들이 환자 보호자의 심정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어머니가 수많은 환자 중의 한 명이겠지만 나에겐 하나뿐인 어머니다. 

어찌 보면 세상의 이치가 다 그렇다. 한 사람에겐 일상적이고 하찮은 일도 다른 사람에겐 특별하고도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언론사 사회부에는 때론 업무가 힘들 정도로 많은 민원 전화가 온다. 그때마다 기자들은 사연을 귀담아듣기 보다는 잘 설득해 전화를 빨리 끊게 하려는 경우가 많다. 물론 민원 전화가 특종 기사를 낳은 경우도 있다. 나도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언론사 입장에선 수많은 민원 전화 중의 하나일 수 있지만, 어느 한 사람에겐 절박하고 억울한 일로 큰맘 먹고 전화를 걸었을 수 있다는 걸 그땐 잘 몰랐다. 그러니 나도 의사를 탓할 자격이 없다. 사람은 보고 경험한 만큼 느낀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파 누워서까지 자식에게 깨달음을 준다. 병원에서 보낸 '3일'은 세상의 갑을관계, 의료진과 환자 관계, 노인 간병과 의료비 문제 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값진' 휴가였다. 정말이지 이번에 엄청난 병원비 보고 놀랐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현실동화-신데렐라

초인종이 울리자 모두 그녀에게 소리쳤다. “왜 꾸물대고 있는 거야? 어서 내려와서 준비해야지!” 그녀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요정은 번민에 가득 찬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실한 사랑일지라도 때로는 무섭고 두려운 순간이 찾아오지.”

꿈 같은 시간이었다. 몸에 잘 맞는 화려한 드레스는 그녀를 돋보이게 했다. 그가 다행스럽게도 그녀에 대해 크게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시종일관 그의 스텝에 발을 맞춰 춤을 출 수 있었다. 유리구두가 커 조금 아프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반짝이는 눈동자는 마치 열정에 타오르는 불꽃 같았고 그녀는 금세 빠져들었다.


그러나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그녀는 돌아가야 했다. 그가 원하는 건 꿈속의 공주님이었지만 자신은 그저 먼지투성이일 뿐이었다. 도망치던 그녀의 구두 한쪽이 벗겨졌다. 발뒤꿈치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그는 남겨진 구두를 손에 든 채 그녀를 부르려 했으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며칠 후 그녀는 그가 자신이 도망친 그 무도회에서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여자는 바로 자신의 배다른 동생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그가 동생을 데리러 오는 날이었다. 손과 발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지만 그녀는 천천히 문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그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온 가족은 두 사람의 사랑을 진심으로 축복했다.


그는 그녀의 동생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달콤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한 당신에게 내 사랑을 바칩니다.” 그러고는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무릎을 꿇었다. “나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그가 꺼낸 건 그녀가 잃어버린 유리 구두였다. 동생은 그 신발에 발을 넣었다. 신발은 아주 꼭 맞았다. 

그녀는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온 세상이 아름다운 두 연인을 축복하는 떠들썩한 축제 한가운데에 혼자 섬처럼 서 있었다. 그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나마 달콤한 이야기를 속삭이던 두 사람이었지만 남보다 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녀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요정이 위로하기 위해 다가오자 그녀는 뿌리치며 소리쳤다. “왜! 어째서?” 요정이 말했다. “이 세상 모든 여자는 자신이 공주라 믿지. 하지만 현실엔 너만을 위한 동화는 없어. 그는 네가 아니라 저 아가씨를 선택했을 뿐이야.”

그녀가 눈물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게 날 위한 동화가 아니라면 날 여기서 빼내주세요!” 요정은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지팡이를 흔들었다.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거센 바람이 들이닥쳤다. 모두가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그녀의 몸이 붕 뜨며 안개 속에 휩싸였다. 누군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신데렐라!” 

순간, 그녀는 그대로 사라졌다. 먼지가 되어.


3.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 도전하라, 도전하라, 또 도전하라

고난의 시대일수록 대중은 영웅을 기다린다. 기원전 13세기 그리스에는 숱한 영웅들이 탄생했다.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이아손, 테세우스,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등이 그들이다. 그리스인들은 문명의 이 여명기에 갖가지 자연의 야수들을 물리쳐야 했고, 식량과 주석 획득을 위해 척박한 그리스 땅을 떠나 흑해와 지중해 연안 각지로 교역로를 개척해야 했다.

영웅이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불확실한 미래에 목숨을 걸어야 했고,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험난한 모험과 시련을 이겨내야 했다. 당시 그리스 청년들은 당돌하리만큼 도전적이고 진취적이었다.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모험의 여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난 극복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탁월함을 입증하는 것을 영웅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로 여겼다.

야수 같은 헤라클레스도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용렬했던 에우리스테우스의 종이 되어 10년이 넘도록 12고역을 과업으로 받아 수행했다. 인간이 성취하기 어려운 고역을 이겨내야만 신이 될 수 있다는 신탁이 그에게 영웅적 도전을 부추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아손 역시 숙부에게 찬탈당한 왕위를 되찾기 위해 살아 돌아올 수 없으리라는 흑해 연안 콜키스 왕국으로 황금양털을 구하러 항해를 떠났다. 이 모험담을 아폴로니오스 로디우스(BC 295?~215?)는 서사시 ‘아르고나우티카’로 전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연상시키는 대모험이야기다.

흥미로운 것은 이아손이 이 ‘죽음의 항해’에 동행할 벗들을 공모하자 그리스 전역에서 날고 긴다는 영웅들이 54명이나 몰려들었다는 점이다. 살아서 돌아오면 그나마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야만족의 손에 죽게 될 상황이 불 보듯 예견됨에도. 황금양털을 탈취해오면 이아손은 테살리아 왕이 될 자격을 얻겠지만, 동료에게 주어질 보상은 아무것도 약속된 것이 없었다.

그리스의 영웅들을 가슴 뛰게 한 유인책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땅을 향해 거센 파도와 풍랑을 이겨내고 거칠고 용맹한 야만족을 물리쳐 영웅이 되는 것. 그들은 그것이야말로 단 하나뿐인 목숨을 걸 만한 명예로운 일이라 생각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 이아손은 콜키스 왕국의 공주 메데이아의 사랑을 얻고 그녀의 마술의 도움을 받아 황금양털을 획득한다. 이아손은 과업을 달성하고 귀환했다. 하지만, 그는 메데이아의 계략으로 숙부 펠리아스를 죽이고도 왕위를 이어받지 못했다. 2% 부족한 영웅 이아손. 이아손은 주체적으로 고난을 극복해내지 못해 대중의 폭넓은 인심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요즘 청년들이 지나치게 안전한 직업에 몰리고, 가족과 주변, 사회와 국가의 도움에 의지하려는 풍조가 커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인생을 열어가려는 진취적 도전 정신이 아쉬운 때다.


4. [동아일보][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어쩌다 한 번 보는 사람이 중요하다

다음에 옮길 직장에 대한 중요한 정보는 누가 내게 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실험을 한 학자가 있다. 현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이면서 가장 인용이 많이 된 사회학 논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약한 연대의 강점(The Strength of Weak Ties)’의 저자 마크 그래노베터이다.


1973년 ‘미국 사회학 저널’에 실린 이 논문은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를 기준으로 ‘자주’(적어도 1주일에 두 번은 보는 관계), ‘어쩌다’(1년에 한 번 초과 1주일에 두 번 미만 보는 관계), ‘거의’(1년에 한 번 이하로 보는 관계)로 나눈 뒤, 새로운 직장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경로가 어느 쪽인지를 보았다. 결과는 ‘자주’로부터 얻는 경우가 16.7%였으며, ‘어쩌다’가 55.6%, ‘거의’가 27.8%였다. 논문 제목이 알려주듯,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는 약한 연대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 논문의 중요한 발견 중 하나이다.

생각해 보자. 직장에서 매일 만나는 동료의 경우 그들이 알고 있거나 생각해 본 아이디어는 나도 알고 있거나 생각해 봤을 가능성이 높다. 유사한 환경에서 비슷한 정보를 받아 보고 회의 등을 통해 공유하기 때문이다. 회사 동료들끼리 브레인스토밍을 해도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설사 내 동료가 나는 모르는, 하지만 내게 중요할 수 있는 정보를 가졌을 때 그는 나와 공유하지 않을 가능성이 약한 연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내가 잠재적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사람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 정보가 내게는 신선하고 좋은 정보일 가능성이 있다. 출판된 지 40년이 지난 이 논문은 약한 연대와의 소통이 활발해진 소셜미디어 시대에 여전히 많이 읽히고 있다.

이 연구는 직장인들에게 중요한 네트워킹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네트워킹이란 무엇일까. 직장 선후배들과 1주일에도 몇 번씩 술잔을 기울이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번 기회에 다시 생각해 보자. 네트워킹이란 약한 연대에 있는 사람들과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차 한 잔을 두고 서로 덕담만 나누는 표피적인 대화 말고, 정보와 생각을 나누며 의미 있는 대화를 하는 것이다.


좋은 정보나 아이디어가 네트워킹을 통해 내게 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보면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가 ‘설득의 심리학’에서 말한 상호성의 법칙을 떠올리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좋은 정보나 아이디어를 주기를 바란다면 내게 그런 정보나 아이디어가 있을 때 먼저 상대방에게 주라는 것이다. 투자가 있어야 수익을 거둘 수 있듯, 관계에서도 먼저 신뢰를 보여주고 도움을 주면 시간이 지나서라도 직간접적으로 본인에게 도움이 되어 돌아온다.

올 3월 미국 출장 중 워크숍에서 우연히 프로 재즈 뮤지션인 마이클 골드 박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했다. 재즈의 즉흥연주가 비즈니스에 주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후 나는 한국의 한 세미나에서 발표를 의뢰받고는 그를 떠올렸고, 주최 측에 추천을 하여 한국에서 올 6월 공동으로 발표를 했다. 이번 주에는 그가 미국에서 발표를 하는 자리에 나에게 공동 진행의 기회를 주었다. 이제 우리는 한국에서 또 다른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이뿐 아니다. 일자리나 사업의 기회가 있을 때 사람들은 종종 약한 연대의 지인 중 최근에 만났거나 그와 나눈 인상적인 대화가 기억이 나서, 혹은 그 사람이 도와주었던 것에 보답하고자 전화기를 든다. 나이가 들고 사업 경험이 쌓일수록 소개와 추천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몸으로 느끼게 된다.


네트워킹을 하라는 것이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고 더 자주 술이나 밥을 먹으라는 것은 아니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사람들과 가능하면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만약 내가 갖고 있는 정보나 기술로 큰 부담 없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당장 내게 돌아오는 것이 없더라도 먼저 베풀라는 것이다. 약한 연대의 인연에게 베푼 작은 도움이 때로는 내 다음 직장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5. [동아일보][조경란의 사물 이야기]부채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 오후에 인사동에 갔다. 아는 이의 전시도 보고 오랜만에 인사동 길을 좀 걸어 다녀 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쏟아지는 햇볕 때문에 미술관에서 나오자마자 에어컨이 켜져 있을 카페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관광객들, 상점 앞의 사람들 틈에서 무언가 팔락거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둥글고 납작한 모양의 둥글부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쥘부채들. 외국인 관광객들은 대개 태극선이 프린트된 둥글부채를 들고 있는 것 같다.

올여름 휴가도 동생이 살고 있는 도쿄에서 보냈다. 한여름의 도쿄라면 더위뿐만 아니라 말도 못하게 높은 습도에도 익숙해지지 않으면 곤란하다. 지하철을 타고 있을 때나 우에노 공원 같은 데를 어슬렁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행인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각자의 방식대로 더위를 참고 이기고 있는 사람들을. 일단 손수건은 기본, 그 다음은 부채. 보통은 쥘부채들이다. 땀이 나면 손수건으로 꾹꾹 눌러 닦고 손목을 약간씩만 움직여 열기로 달아오른 얼굴에 대고 부채를 부친다. 

‘단오 선물은 부채, 동지 선물은 달력’이라는 속담도 있고 임금이 단옷날 신하들에게 부채를 선물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지만 부채는 이제 너무 흔해져버렸거나 대접받지 못하는 사물이 돼버린 감이 없지 않다. 교실에 선풍기 한 대만 간신히 털털거리며 돌아가던 때가 있었다. 체육 시간을 마치고 나면 책받침으로 부채질을 하거나 다 쓴 연습장을 한 장씩 찢어 같은 간격으로 앞뒤로 착착 접어 종이부채를 만들어 부치곤 했다. 그래서인가 나는 지금도 어디선가 홍보용으로 공짜 부채가 놓여 있으면 일단 하나는 챙기고 본다. 햇빛도 막고 얼굴도 가리고 모기도 쫓고. 

관측사상 서울 최고 기온을 기록했던 1994년 여름의 38.4도의 더위도 잊을 수 없다. 간절히 원해서 스물여섯 살에 대학에 입학한 해였다. 여름방학이었고 방에서 쭈그리고 앉아 습작 소설을 쓰고 있는데 떨어진 땀이 노트에 번져서 더 이상 유성 펜을 쓰지 못하고 연필로 바꿔 들어야 했다. 연신 땀을 훔쳐가면서 한 손엔 부채를, 한 손으론 연필을 쥐고 글을 써나갔다. 그 습작 소설이 내 등단작을 만들어내게 될 거라고는 그때 알 리 없었지만.

최근에는 이런 부채를 봤다. 초등학생 조카들이 여름방학 전날 학교 앞에서 받아 온 것인데 활짝 웃는, 꼭 ‘철수와 영희’ 같은 소년 소녀의 얼굴이 앞뒤로 그려져 있고 이렇게 크게 쓰여 있다. ‘아이고 신나라.’

나에겐 아직도 여름의 필수품인 부채를 든 채 정현종의 시 제목 일부처럼 ‘태양이 떵떵거리’고 있던 인사동 길을 잠시 걸어 다니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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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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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9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에너지 빈곤층 위한 폭염 대책 시급하다

전국이 보름 넘게 찜통이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연일 폭염주의보가 이어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지난달 22일 이후 단 이틀만 빼고는 매일 밤 열대야 현상이 나타났다. 1973년 이후 열대야 발생 일수는 두 번째로 많은 해로 기록된다. 밤잠을 설치게 하는 기록적인 더위에 시민 건강에도 전례 없는 비상이 걸렸다. 열사병, 열탈진 등 온열병 환자 수는 두 달 남짓 동안 1000명을 넘었다. 이 가운데 10명은 목숨을 잃었다. 이쯤 되면 손 놓고 기록만 세고 있을 단순 폭염이 아닌 것이다.

이런 이상 고온 속에 하루를 일년보다 더 힘겹게 넘겨야 하는 이들은 에너지 빈곤층이다. 에너지 빈곤층은 소득의 10% 이상을 냉난방비로 써야 하는 계층으로 전국에 약 150만 가구가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만 해도 이들은 전체 가구의 10%를 웃돈다. 이들의 60%는 10평도 안 되는 좁은 집에 살고 있으며, 80%는 선풍기에만 의존해야 한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가구의 대부분이 70세 이상 노인이라는 것이다. 빈곤층 독거 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등 취약 계층에게는 폭염이 재난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폭염은 태풍이나 홍수보다 인명 피해를 더 많이 내는 기상재해로 분류된다. 한국기상학회는 최고 기온이 35도를 넘는 날에는 60대 이상의 사망자 비율이 68%까지 늘어난다고 경고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경로당이나 복지관, 주민센터 등을 무더위 쉼터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취약 계층을 챙기는 작업은 서둘러야 마땅할 서민지원 정책이다. 자칫 그런 배려조차 받지 못하고 방치된 쪽방촌이나 달동네의 빈곤층은 없는지 더욱 세심히 살펴야 한다. 거동이 불편해 온종일 집안에만 머물면서도 전기요금이 겁나 선풍기조차 마음 놓고 틀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니 걱정이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한반도의 여름철 폭염은 앞으로도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봄과 가을이 짧아지는 아열대성 기후로의 변화를 해마다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 폭염 대비책을 지자체에만 맡겨 둘 일이 아니라 이제는 정부 차원에서도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빈곤층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에너지 바우처 제도부터 손질돼야 한다. 겨울철 난방연료 지원으로만 국한하지 말고 당장 내년부터라도 여름철 냉방비 지원으로 범위를 확대할 일이다.

2. 지친 국민에게 희망 안겨 준 리우의 태극전사들

제31회 리우 올림픽에서 전해지는 낭보가 소나기처럼 열대야를 순식간에 날려 버리고 있다. 한국과 12시간의 시차가 나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스포츠 제전에서의 승전보는 얽히고설킨 국내외 문제에 힘겨운 국민 모두에게 청량제나 다름없다. 침체된 경기에 지치고, 사드 배치를 둘러싼 국제 관계에 혼란스런 상황에서 갈고 닦은 기량을 한껏 펼치는 선수들의 도전에 위안을 삼고, 희망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의 환한 미소에 함께 웃고, 땀의 결실을 못다 이룬 선수들의 아쉬움을 달래며 계속되는 경기에서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다. 한국 선수들에게 패한 다른 나라 선수들의 집념에도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여자양궁 한국 대표팀의 장혜진·기보배·최미선이 그제 단체전 결승에서 러시아를 꺾고 금메달을 땄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여자양궁 단체전이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여덟 번째다. 올림픽 8연패의 위업은 전 종목 통틀어 세 번째다. 결승전 동안 불어닥친 강풍도 태극 낭자들의 투혼에는 미풍에 지나지 않았다. 3세트 마지막 주자인 최미선의 활이 바람을 타고 표적 10점에 꽂힘에 따라 승리를 결정지었다. 한국 남자양궁은 여자양궁에 하루 앞서 미국과의 단체전에서 8년 만에 금메달을 다시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참으로 장하고 멋지다.

리우에서 한밤중에, 새벽에 한국 선수들이 보여 주는 감동은 양궁만이 아니다. 축구 대표팀의 두 번째 경기였던 독일과의 승부는 치열한 공방 끝에 3대3 무승부로 끝났다. 후반 추가 시간의 프리킥 골을 허용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독일팀의 골망을 세 차례나 통쾌하게 흔들었다. 1승1무로 8강이 눈앞이다. 여자 유도 48㎏급에서 은메달을 딴 정보경의 경기는 153㎝ ‘작은 거인’의 반란이었다. 한국 여자 유도가 20년 만에 은메달을 거머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보경이 무릎을 끓고 엎드려 한참 눈물을 흘릴 때도, “져서 많이 슬프다”며 도복으로 눈물을 훔칠 때도 “20년 만에 일냈다”며 함께 눈물짓고 위로할 수 있었다.

사격 황제 진종오, 마린보이 박태환, 미녀 검객 신아람, 유도 60㎏ 김원진 등은 예상 밖으로 부진하긴 했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랑스럽다. 경기는 초반전에 불과하다. 양궁, 배드민턴, 여자골프, 태권도, 레슬링, 유도, 사격 등은 한국의 강세 종목이다. 더위를 조금이나마 식힐 상쾌한 승전보를 기대하며 태극전사들의 아름다운 도전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3. 中, 본말전도 ‘사드 언론플레이’ 중단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야권 일각의 ‘사드 반대론’에 직접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박 대통령은 일부 정치인들이 북한의 주장과 같은 맥락의 황당한 주장을 하거나 중국의 입장에 동조하면서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고 지적한 뒤 “여야를 막론하고 이런 때일수록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국가 안보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국민을 대신해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의 기본적인 책무”라고 밝혔다. 중국 관영 매체들의 도를 넘은 사드 배치 비난 공세에 빌미를 주고 있는 ‘남남갈등’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깊은 우려 속에 중국 방문을 강행한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6명은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고 했지만 중국 관영 매체들이 어떻게 이들의 방중 활동을 왜곡할지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가 이들의 방중과 관련된 우리 내부의 잡음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1면에 왜곡 보도한 전력에 비춰 보면 방중 자체를 이슈화할 가능성이 크다. 모쪼록 방중 의원들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국익을 먼저 생각하면서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만 할 것이다.

중국 관영 매체들의 몰지각한 보도 행태에 대한 지적도 빠트릴 수 없다. 중국 언론들은 우리의 사드 배치 결정 직후부터 사설, 기사, 기고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비난의 십자포화를 쏟아붓고 있다. 특히 우리 내부의 ‘사드 반대론’ 등 입맛에 맞는 글과 인터뷰만 골라 게재하면서 우리의 분열을 조장하거나 자기들의 반대 논리를 정당화해 왔다. 점증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위권 차원에서 사드를 배치할 수밖에 없는 우리 입장은 안중에도 없다. 사드 배치를 초래한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직접 입장을 표명하기 껄끄러운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자 할 때 종종 관영 매체를 이용해 ‘언론플레이’를 해 왔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우리 군이 서해상에서 대규모 해상 사격훈련을 실시하자 환구시보는 “지금까지 좋은 말로 한국을 타일러 왔는데 한국이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다”며 “중국이 한국을 손봐 줘야 한다”는 오만방자한 사설을 게재한 바 있다. 당시에도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비판하지 않았다. 역시 본말이 전도된 ‘언론플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본질을 무시한 중국의 행태는 소아병(小兒病)적인 자국이기주의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중국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사드 배치 등을 비난하면서 북한의 도발을 외면하는 사이 오히려 이나다 도모미 신임 일본 방위상의 언급처럼 일본의 핵무장 등 더 큰 화근(禍根)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무턱대고 북한을 감쌀 일이 아니다. 중국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해야만 한다.

[동아일보]

4. 日王 퇴위로 아베의 군국주의 개헌에 제동 걸리나

아키히토 일왕(日王)이 어제 국민에게 보내는 비디오 영상메시지를 통해 “차츰 진행되는 신체의 쇠약을 생각할 때 몸과 마음을 다해 상징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하는 것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물러날 뜻을 전했다. 일왕이 살아 있는 동안 퇴위 의사를 밝히고 양위하는 것은 에도시대 후반기인 1817년 이후 약 200년 만에 처음이다. 

올해 83세인 아키히토 일왕이 지난해 공식 행사에서 순서를 헷갈리는 등 건강 이상 증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사를 하면서 일본 헌법하에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천황의 바람직한 위상이 어때야 할지를 날마다 생각해왔다”는 대목을 보면 또 다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일왕이 조기 퇴임 의사를 밝힘으로써 아베 신조 총리가 추진 중인 개헌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일왕이 세상을 떠난 뒤에만 후임자가 즉위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왕실전범(典範)의 개정 작업에 들어가면 개헌은 아베 총리 임기 내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일본 헌법 1조는 ‘일왕을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9조에서 ‘전쟁 포기’를 명시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2013년 12월 팔순 기자회견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소중한 것으로 삼아 일본국 헌법을 만들었다”며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개헌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그러나 개헌안은 일왕을 ‘국가의 원수(元首)’로 명문화하는 등 정치성을 부여하고 교전권(交戰權)을 명시해 평화헌법을 무력화할 태세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아베 내각이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과거 국가 총동원체제로 돌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1989년 즉위 이후 일본사회 일각에서 과거 침략전쟁의 역사를 부정하는 풍조에 우려를 표명해왔다. 1990년에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우리나라(일본)로 말미암은 불행한 시기에 귀국이 고통을 맛본 걸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길 없다”고 밝혔다. 일왕가(家)의 핏속에 백제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할 만큼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감추지 않았던 아키히토 일왕이다.

아베 총리는 일왕의 메시지를 진심으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과도한 우경화로 과거 군국주의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주변국들을 자극하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이데일리]

5. 의료진도 자꾸 감염되는 '결핵 후진국'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료진의 결핵 감염 사례가 자꾸 나타나 걱정이다. 이번에는 고려대 안산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결핵 감염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확진 판정은 아니라지만 앞서 삼성서울병원과 이대목동병원 간호사의 결핵 감염에 이어진 세 번째 사례다. 보건당국의 결핵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다간 오히려 병원에서 병을 얻는 게 아니냐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특히 이번 사례가 드러난 3곳의 감염자가 모두 소아환자 담당 간호사라는 사실부터가 문제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감염이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3월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결핵에 감염돼 어린이 등 20여명에게 세균을 옮긴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결핵은 감염자의 기침이나 재채기에 의해 전염되는 것이 보통이다. 공기 중에 떠돌던 결핵균이 호흡기를 통해 체내에 침투함으로써 전염된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우리나라의 결핵 발생률이 1996년 OECD에 가입한 이래 회원국 중 줄곧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4년의 경우 인구 10만명당 감염자가 8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2명)에 비해 무려 7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결핵 후진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자부하는 입장에서 낯 뜨거운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결핵 후진국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데는 허술한 방역대책에 근본 원인이 있다. 한때 결핵 감염자가 줄어들게 되면서 보건소가 담당해 오던 환자 관리업무가 1989년 민간에 넘겨졌지만 2000년대 들면서 환자가 다시 늘어났다. 잠깐 방심한 탓에 관리가 부실해진 결과다. 이에 정부는 2025년까지 결핵 발생률을 OECD 평균 이하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정책이 헛돌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부터라도 결핵을 확실하게 관리하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그 첫 번째로 의료진의 결핵 감염 확산부터 막아야 한다. 특히 신생아나 소아, 노약자 등을 담당하는 의료진은 특별관리를 해야 한다. 병원이 결핵을 옮기는 경우만큼은 막아야 할 것이다.

6. ‘낙하산 인사’ 유혹 떨쳐버리지 못하나

역대 정부가 공공기관 및 산하기관 낙하산 인사 관행을 없애겠다고 굳게 약속했지만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갈수록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사례로는 대우건설의 경우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내부 공모를 통해 최종면접까지 진행된 사장선임 절차가 돌연 백지화되고 재공모 절차를 밟은 끝에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이 단독 후보로 추천됐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을 통해 외부 압력이 들어왔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현재 재공모 절차에 들어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이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사장 자리도 마찬가지가 될 것으로 주변에서는 의혹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특히 수자원공사의 경우 전임 최계운 사장이 임기를 6개월 남기고 사임하면서 외압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결국 정권 실세가 뒤를 돌봐주는 인물이 낙점될 것이라는 추측이다. 지난 총선에서 떨어지거나 공천 받지 못한 여권 인사들도 공공기관 자리를 노리고 있다.

문제는 낙하산 인사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농어촌공사와 마사회, 도로공사, 무역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등 대규모 공공기관 기관장들의 임기가 연달아 끝나가기 때문이다. 기관장을 포함해 감사, 비상임이사 등을 포함하면 그 자리가 100개도 훨씬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한국증권금융 감사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조인근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의 경우도 경력과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눈총을 받고 있다.

공공기관장 선임 절차가 형식적으로는 정해진 기준에 따라 진행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평가 항목과 점수를 바깥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각 후보들이 어떤 항목에서 어떻게 평가를 받았는지 알 수가 없다. 선임 절차가 공정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외부 입김에 의해 최종 후보자가 결정된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무능한 사람이 정치적 영향력을 앞세워 자리를 차지할 경우 조직을 거덜내게 된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조직 관리보다는 자신을 뒷바라지해 준 사람에 더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권력에 의해 임명된 기관장들이 각종 경영 비리에 연관됐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의 자율적인 발전을 기대한다면 낙하산 인사 관행을 끊어야만 한다.

[매일경제]

7. 속도 내는 美보호무역 미리 대비하는 수밖에

미국 상무부가 국내 철강업체들에 때린 고율의 반덤핑 관세 폭탄을 보면 거세지는 신(新)보호무역주의 바람이 코앞에 다가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지난 5일 부과된 조치는 열연강판 수출 1위인 포스코에 반덤핑관세율 3.9%, 상계관세율 57% 등 총 61%, 현대제철에는 반덤핑 9.5%, 상계 3.9% 등 13.4%의 관세 부과다.

상무부의 결정에 대한 미국국제무역위원회(USITC)의 최종 판정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관세폭탄을 맞으면 해당 제품 수출은 사실상 끝나는 셈이다. 지난달 한국산 냉연강판에도 최대 65%의 관세 부과 판정을 내렸는데 열연강판은 냉연강판 등 다른 제품에 비해 수출 비중이 훨씬 큰 점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는 한층 심각하다고 봐야 한다.

올해 상반기에 벌써 미국은 한국산 제품에 철강·금속 18건, 전기전자 2건, 섬유 1건 등 모두 21건의 수입규제를 취했다. 우리 업체의 북미 세탁기 점유율이 올라가자 미국 1위 업체인 월풀의 문제제기 형식을 빌려 중국산 삼성전자와 LG전자 가정용 세탁기에 대해 각각 반덤핑 예비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는 값싼 수입품으로부터 자국의 제품을 보호하기 위해 매기는 관세다.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무관세 시대를 열어놓고도 내놓고 보호주의로 빠져드는 것이니 공개적인 불공정무역과 다름이 없다.

미국은 경기 침체 때나 정권 교체기에는 강도 높은 보호무역 정책 기조를 되풀이해 왔다. 2001년 조지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직후 한국산 철강제품 등에 발동한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가 대표적이다. 오는 11월 치를 대선에서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간에 신보호무역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한·미 FTA를 포함한 양자 간 FTA뿐 아니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같은 다자무역협정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우리 정부는 미국 측의 공세를 업체들 간의 싸움이라며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후의 수단으로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법적 조치까지 강구해야겠지만 국내 기업 피해가 커지기 전에 양국 정부 간 채널을 총동원해 사전에 풀어나가야 한다.

[매일신문]

8. 교통지옥 뻔한 동대구환승센터, 대책 없는 대구시

사상 최대 규모의 백화점`종합버스터미널이 들어서는 동대구복합환승센터가 올해 말 완공된다. 축구장 40개와 맞먹는 연면적 29만㎡에 지하 7층 지상 9층의 환승센터가 문을 열면 하루 3만 대 이상의 교통량이 늘어난다. 출퇴근 시간이면 가뜩이나 막히는 인근 도로는 교통지옥으로 변할 것이 뻔하다. 대구시가 교통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동대구역 고가교 확장 공사마저 계속 미뤄져 더욱 걱정스럽다.

대구시건설본부는 동대구역고가교(동대구역네거리~파티마삼거리) 확장 공사의 준공 예정일을 올 연말에서 내년 10월 말로 연기했다. 이유는 고가교 상판 공사를 열차가 다니지 않는 새벽 시간대에만 할 수 있는 데다, 공사 승인권을 가진 한국철도공사가 제대로 협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경부고속철 대구 도심 통과 구간의 개통이 늦어지면서 고가교 확장 공사도 연쇄적으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공사는 기존의 왕복 6차로(48m)를 왕복 10차로(126m)로 확장해 환승센터로 인한 주변 교통 혼잡을 완화하기 위한 핵심 대책의 일환이었다. 공사 지연으로 인해 올 연말 환승센터 준공 이후 10개월 이상 교통 혼잡이 더해져 시민 불편이 엄청나게 클 것으로 보인다. 

대구시는 지연 이유를 한국철도공사의 비협조와 경부고속철도 대구 도심 통과 구간 공사의 지연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대구시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 신세계가 환승센터를 착공한 지 2년 6개월이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고가교 확장 공사가 늦어진다고 하니 설득력이 떨어지는 핑계일 뿐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긴 하지만, 교통 대책을 전혀 세우지 않은 채 환승센터를 유치했다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주말`휴일이 되면 중구의 현대백화점 대구점으로 인해 달구벌대로 전체가 교통 체증에 빠진다. 환승센터의 신세계백화점 영업 면적이 현대백화점의 2배에 달하고 고속`시외버스의 진출입으로 인한 혼잡까지 고려하면 너무나 끔찍한 교통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다. 대구시는 하루라도 빨리 고가교 확장 공사를 마무리 짓고 교통 혼잡을 피하기 위한 대책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환승센터가 재앙 덩어리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완벽한 교통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9. 투자 유치한다며 개인 사업에 혈세 퍼준 울릉군

울릉군이 기업 투자 유치를 명목으로 특정 리조트 운영업자에게 수억원의 사업 보조금 특혜를 준 것도 모자라 산림 무단 훼손, 허위 공문서 작성 등 수차례 법을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정부나 지자체의 각종 보조금을 몰래 빼먹는 비리가 도처에서 적발되고 강력한 조치가 뒤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울릉군의 경우처럼 공무원이 앞장서서 거액의 보조금 특혜를 주면서 위법 행위도 서슴지 않은 것은 보기 드문 사례다. 

울릉군은 2013년 이 사업을 처음 진행하면서 리조트 마당에 블록을 까는 데 4억2천여만원, 성인봉 계곡물을 리조트에 공급하기 위한 간이 상수도 시설 공사비로 3억5천여만원을 지원하는 등 모두 7억8천여만원의 도비`군비 예산을 지원했다. 게다가 관계 당국의 사업 계획 변경 승인도 받지 않고 사업 구역과 내용을 임의로 변경해 공사를 강행했다. 

감사원은 2014년 이런 비위 의혹에 대해 감사를 벌여 울릉군의 부적절한 사업 진행과 위법 사실을 확인했다. 행정자치부는 후속 조치로 해당 사업비만큼 10억원의 지방교부세 삭감을 통보했다. 결국 울릉군의 잘못으로 군민이 큰 손해를 입은 것이다. 더욱이 울릉군은 이 과정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소명 자료를 행자부에 보내 비위를 숨기려 했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특정 개인의 사업에 혈세를 퍼주고 공무원이 법을 어기면서까지 사업 편의를 봐준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투자 유치를 통한 지역 발전이 중요한 과제라 해도 이는 상식에 어긋난다.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지방세 감면 등 적정 수준의 지원은 용인하는 추세다. 하지만 혈세로 특정인의 배를 불리거나 공무원 신분을 망각한 채 법을 어기면서까지 뒷배를 봐줬다면 이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 같은 특혜에 대해 울릉군 주민들은 “울릉군 공무원이 무슨 약점을 잡혔거나 뒷거래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울릉군은 혈세 낭비도 모자라 위법 행위마저 감수하고 사업을 강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숨김없이 공개해야 한다. 사법 당국도 리조트 사업 과정에서 관`민 유착 등 비리는 없는지 조사해 전모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조선일보]

10. 朴 대통령과 與野 새 지도부가 안보를 위해 해야 할 일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6명이 8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다. 외교 경험이 없는 그들이 만날 현지 인사들은 중국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주장하는 관변(官邊) 학자들이다. 언행에 신중하겠다고 했지만 중국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 더민주당은 '사대(事大) 외교' 논란에도 이들의 방중을 막지 않았다. 전날과 어제,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이 이들의 방중(訪中)을 비판하자 오히려 출국 의원들을 옹호하는 의원들이 더 늘었다. 전형적인 한국형 정쟁(政爭)이다.


더민주당의 8·27 전당대회에 출마한 당대표 후보 세 명도 모두 사드 반대론자이다. 이들은 대여 관계에서도 강경론을 펴고 있다. 전제 조건을 달긴 했지만 '대통령 탄핵' 얘기를 꺼낸 후보까지 있었다. 후보들 간 선명성 경쟁으로 사드 문제가 정부에 대한 반감과 뒤섞이는 양상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누가 새 대표로 선출되든 더민주가 사드 반대로 급격히 쏠릴 소지가 크다. 사드 당론 채택을 미뤄온 현 김종인 대표에 대한 불만도 이미 새 나오기 시작했다.


야당이 사드를 정치적으로 접근한다면 그만큼 안보·국방의 논리가 고려될 공간이 좁아지는 것이다. 지금도 사드를 반대하는 더민주당 의원들은 중국과의 관계 악화만 강조할 뿐 군사적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드 문제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중국은 내부적으로 남중국해 장악 시도가 국제법상 불법으로 결정된 문제를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다. 민주 국가였으면 정권이 흔들렸을 사안이다. 중국은 지금 국내 불만 여론의 불길을 나라 밖으로 돌리려 부심하고 있고 때마침 사드가 그 대상이 돼 있다. 우리 국내에서도 야권 전체에서 사드 문제로 현 정권을 흔들 수 있다고 판단하는 세력이 커지고 있다.

이미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 중에는 사드 반대 의사를 밝힌 사람도 있다. 우리 정치권은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사드 정쟁이 아니라 그 이상 무슨 짓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경북 성주 주민들의 집값, 참외값 반발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중국은 내년 말 사드가 배치되더라도 한국의 정권 교체 뒤 사드를 철수시킬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할지 모른다. 심각한 일이다.


사드는 기왕에 있는 국내 미사일 기지에 버스 한 대보다 작은 레이더와 요격 미사일을 배치해 북한의 탄도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는 무기체제이다. 이것이 마치 엄청나게 거창한 시설이 오는 것처럼 부풀려져 있다. 순전히 북핵 미사일을 막자는 방어적 조치에 국론이 분열될 경우 득(得)을 보는 것은 국제 제재로 사면초가에 몰린 북한과, 미국에 대한 불신으로 우리 측 설명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중국밖에 없다.


어제 박 대통령은 "아무리 국내 정치적으로 정부에 반대한다 하더라도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며 초당적 협력을 요청했다. 사드 배치를 공식화한 지 한 달 만에 나온 언급이다. 그간 박 대통령이나 정부는 야당을 설득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 것이 없다.


새누리당은 오늘, 더민주는 27일 새 지도부를 선출한다. 대통령이 여야의 새 지도부를 만나 안보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기 바란다. 야당을 설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만나라는 게 아니다. 생각이 달라도 서로의 입장을 명확히 안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우리 앞엔 사드보다 훨씬 더 크고 중요한 문제들이 놓여 있다. 미 대선으로 촉발된 보호무역 바람,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장기 불황과 기업 구조조정 등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현안이 한둘이 아니다. 이 마당에 국민이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일지 대통령과 정치권 모두가 숙고했으면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독도에서 떠올린 반크의 꿈

1998년 빌딩 청소를 하며 야간대학에 다니던 가난한 대학생이 인터넷 활용수업 과제로 외국인과 교류하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세계 여러 대학의 동아시아 관련학과 1천여 곳에 편지를 띄웠다. 한국을 알고 싶은 외국인들에게 한국 친구들을 소개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가운데 10분의 1가량 되는 100여 곳에서 답장이 왔다. 이들과 대화하며 한국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주려다 주요 사이트에 잘못된 내용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는 1999년 1월 1일 한국을 알리는 전용 사이트를 만들고 주요 사이트를 운영하는 기관에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다케시마' 대신 '독도'로 표기해야 한다거나 '일본해'에 '동해'를 병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단순한 두 나라의 다툼이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 과정에서 왜곡된 과거사를 바로잡는 일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2000년 세계적 명성의 잡지와 방송 채널을 소유한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동해'를 병기하겠다고 응답해왔다. 그때부터 자신감을 얻었고 함께하는 회원도 부쩍 늘어났다. 그 대학생의 이름은 박기태(42)였고, 그 펜팔 사이트가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의 머리글자를 딴 '반크'(VANK)의 모태였다.


반크는 '사이버 외교사절단'이라고 불린다. 사이버 공간을 무대로 한국을 올바로 알리는 민간외교관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기태 단장이 반크를 결성했을 당시 세계지도에서 동해를 병기한 비율은 3%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제는 30%에 이른다. 반크 회원들의 노력에 힘입어 엔사이클로피디아 등 주요 백과사전 사이트는 고조선을 누락한 채 고구려를 한국 최초의 국가라고 소개했다가 정정했고, 미국 중앙정보국(CIA) 월드 팩트북은 대한민국이 1천 년간 독립국가였다고 기술한 대목을 '수천 년에 달하는 오랜 독립 역사를 지닌 한국'으로 고쳤다. 영국 국립중앙도서관과 호주 머큐리인쇄박물관은 구텐베르크에 앞서 한국이 금속활자를 발명했으며 직지심체요절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명기했다. 

반크의 활동 영역은 한국 관련 오류를 바로잡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13만 명의 반크 회원은 한복이나 김치 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가 하면, 한반도 통일이 가져올 미래를 펼쳐 보이며 설득에 나서기도 하고, 유엔이 지구촌 문제 해결을 위해 정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의 달성을 위해서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반크를 두고 국수주의 단체라거나 지나치게 민족주의를 앞세운다는 등의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독도 영유권, 동해 표기,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에 매달리고 '21세기 신(新)헤이그 특사단'이라는 이름으로 홍보사절단을 파견하다 보니 반일단체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심지어 일부 일본인은 사이버 테러단체라고도 부른다. 특정 사이트에 집단으로 '이메일 폭탄'을 보내 압박하거나 해외 대학 도서관의 장서에 'Dokdo'나 'East Sea'라고 적힌 수정 스티커를 마구 붙이는 일이 일어나다 보니 반크가 배후로 의심을 사는 일도 있었다.


박 단장은 "도서관 장서를 훼손하는 행위 등은 같은 한국인으로서 이해되는 측면은 있으나 오히려 한국인의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우리는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그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정을 유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반크의 목표는 일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고 진정한 한일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 동북아 평화시대를 열어가는 것이며, 우리의 활동이 국수주의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전 세계 외국인들과 우정을 나누는 데 힘쓰고 있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반크 회원들은 희생자를 추모하고 이재민을 돕는 캠페인을 전개하며 성금 모금에 나서기도 했다.

반크 활동의 중심에는 독도가 있다. 반크는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 독도의 진실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야말로 한일 간의 과거사 논쟁을 해결하고 남북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디딤돌이라고 여기고 있다. 독도 우표나 엽서를 발행하고 청소년들을 디지털 독도 외교대사와 글로벌 독도 홍보대사로 양성해온 것도 그러한 노력의 하나이다. 2009년부터는 경상북도와 함께 해마다 우수 회원을 초청해 독도 탐방 캠프를 열고 있다.

지난 4일 독도평화호를 타고 독도에 도착해 동도의 구석구석을 둘러본 반크 회원들은 감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맨눈으로 보는 독도는 사진으로 대할 때보다 훨씬 아름다웠고, 발을 내딛는 감촉도 평소와 달리 정겹게 느껴졌다는 소감을 앞다투어 털어놓았다. '한국령'(韓國領)이라고 적힌 표석이나 동도 정상에 새겨진 태극기 그림과 마주할 때는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독도의 풍경은 무척 평화로웠다. 쾌청한 하늘 아래 바람은 고요하고 물결도 잔잔해 바다 밑이 훤하게 들여다보였다. 독도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괭이갈매기는 한가롭게 날갯짓을 하고, 사람 말고는 이곳에 사는 유일한 포유류라는 삽살개 '수호'와 '천사'도 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소총으로 무장한 경비대원이나 사방을 향해 설치된 각종 무기가 오히려 어색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독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는 전혀 평화롭지 못하다. 아베 신조 총리의 집권 이후 노골적으로 과거 회귀 본능을 드러내는 일본은 최근 방위백서를 통해 12년 연속 "독도는 일본 땅"이라며 억지를 부렸다. 중국은 남중국해 섬들의 영유권을 놓고 주변국들과 갈등을 빚는데 이어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에 거세게 반발하며 한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한때 지켜주지 못한 대한민국의 최동단 영토 독도에 또다시 아픔을 주지 않으려면, 그리고 최소한 반크 청소년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2. [매일신문][세계의 창]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와 한 국제구호단체가 최근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세계 12개국의 만 8`10`12세 아동의 행복감에 대한 연구 조사 결과 한국 어린이들이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낮게 나타났고, 특히 중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12세에서 행복감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한다. 중학생들은 가족과의 좋은 관계를 행복의 주요 조건으로 꼽았지만, 공부 때문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고, 부모님은 학업에 대해서만 궁금해하면서 대화가 줄고 사이가 나빠진 사례도 나왔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러한 현상을 과연 ‘교육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는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오래전 경상북도에서 ‘창의적이고 정직한 인간’을 교육 구호로 내걸고 각급 학교마다 정문에 현수막까지 내다 건 적이 있다. 시의적절하고 제대로 된 표어였다. 딸아이가 다니던 모 고등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 모인 수백 명의 학부모와 교장, 교감 선생님이 합의한 것은 “외부에는 적당히 둘러대고 우리끼리는 영어, 수학 수업을 더 많이 하자”였고, 무슨 수업료 영수증은 이중으로 발행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다 같이 조작해서 우리 자식들 대학에 많이 합격시키자는 것이었다.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40년여 년 전에도 음악, 미술, 체육 시간 대신 국`영`수 과목을 변칙 편성하는 이중 시간표가 만연했고, 담임 선생님은 장학사가 오면 원래 시간표대로 수업한다고 답하라는 지침을 하달하였다. 이런 해묵은 조작과 거짓말은 하도 만연되어서 모든 것이 ‘교육열’이라는 말로 미화되고 칭찬받는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학생들의 적성과 취향보다는 일류 학교 합격자 수를 늘리는 진학지도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입시 성적이 좋으면 명문학교라 불러주고 언론은 그 결과만을 갖고 학교 서열을 매기고 경쟁을 부추긴다. 

이러다 보니 전교 1등을 놓쳤다고 2등 한 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비극적 사건도 있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대학에서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검사가 되어 세상 떠들썩한 부정을 저질러 감옥에 간 최근의 사례를 무슨 특별한 예외적인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공부만 잘하면, 성적만 좋으면 모범생이라고 상장을 주는 일을 아직도 하고 있지 않은가? 대학도 자의건 타의건 서열화되고,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 선정 순위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교육을 잘하기 위해서인데 그것을 위한 행정업무에 힘을 쏟아야 하는 일도 다반사다.

미국에서는 교육 현장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분야에서 거짓말을 가장 큰 죄로 치고, 제도적으로도 거짓말에 대해 엄청난 불이익을 안긴다. 다인종, 다문화 국가인 거대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여러 공식석상에서 한국의 교육을 예로 들면서 미국도 이를 본받자고 한 적이 있다.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이 한 말이니 일부 지당한 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과연 그가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수많은 비교육적 처사를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매사 순위를 매기고, 1등만을 지향하는 이런 것은 이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우리 사회에서 지양할 때가 되지 않았나? 모든 분야에서 평가의 잣대로 서열 매겨서 상주고 벌주는 일이 업무 성과의 극대화를 기여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웃사촌의 정’이 유별난 한국인 공동체에 끼치는 악영향도 무시할 수가 없다. 

개인주의가 뿌리내린 서양식 평가제도를 우리는 너무 급속히, 그리고 너무 쉽게 적용하려다 보니 곳곳에서 부작용이 일고 있다. 지금 브라질에서 올림픽 경기가 한창이다. 국가대표로 출전한 우리 선수들은 다 최고의 기량을 가진 사람들이다. 은메달, 동메달도 세계 2, 3위인 굉장한 성과다. 괜히 그들이 죄를 지은 것처럼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올림픽 참가 선수뿐 아니라 1등 지상주의가 상존할수록 우리 사회에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만 길러질 뿐이다. 최근 몇몇 대학에서 성적 장학생을 줄이고 공동체 기여 및 참여 장학금을 주는 제도를 도입한 것도 ‘교육과 행복’의 정비례를 위해 좋은 착안이라 본다.


3. [매일신문][기고] 태극기 사랑, 나라 사랑의 길

지난 7월 17일 제헌절 날 풍경은 많이 아쉬웠다. 대구 시내 중심가에는 높은 빌딩이 많은데, 건물에 태극기를 내건 곳은 달랑 4, 5곳이 전부였다. 태극기는 어디로 갔을까. 태극기로 대변되는 나라 사랑은 어디로 갔을까.

어린 시절 자주 불렀던 노래가 있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풀거리며 행진 놀이하던 때가 눈에 선한데, 이제는 그런 날들은 언감생심이다. 88세 노인이 된 나라도 손에 태극기를 들고 아파트촌 노인들을 불러 모아 소꿉장난이라도 해볼까.

평소 늘 느끼던 일이지만 요즘은 아파트와 단독주택을 불문하고 국가기념일에 태극기를 게양한 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생활이 풍요롭고 자유로워진 까닭에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도와야 한다는 생각, 나라 사랑, 이웃 사랑이 식어버린 탓일 게다. 그러나 그럴수록 허리띠 졸라매고, 근검절약하고, 나라 사랑하며 지내온 날들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조금 잘살게 되었다고 나라와 이웃은 뒷전이고, 각자가 자기 목소리만 내세우는 모습이 참으로 아쉽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삼시 세 끼 죽으로 겨우 연명하던 가난의 시절, 주린 국민의 배를 채우고,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고, 해진 허리띠에 낡은 구두를 신고, 밀짚모자 쓰시고, 논에 들어가 농부들과 함께 모심기를 하고, 막걸리를 드시던 그 어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뜻을 이어받아 우리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해온 덕분에 이제는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배불리 먹으며 살고 있다. 우리 후손들뿐만 아니라 이제는 동남아, 아니 세계로 우리나라의 발전 모델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잘살게 된 것은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고, 똘똘 뭉쳐 함께 해보자는 굳건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잘살게 되었다고 이웃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잊는다면 언제 다시 가난과 질곡의 세월로 떨어질지 모른다.

국민들께 호소드린다. 이제부터라도 모두가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국경일에는 반드시 국기를 게양하자. 이제 며칠이 지나면 8`15 광복절이다. 그날에는 아파트고 단독주택이고 한 집도 빠짐없이 태극기를 달자. 북한에서는 남남갈등을 일으키려고 온갖 책동을 주저하지 않는데, 그 장단에 놀아나지 말고, 마음 단단히 잡자.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일본과 중국, 러시아에 끼여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뒤지지 않고 우뚝 서서 세계 강국들과 대등하게 정치외교를 펼치고 있으니 자랑스럽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해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우리 정부는 그것을 막기 위해 사드를 배치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내부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바로 북한이 노리는 남남갈등일 것이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하루빨리 정치권과 국민이 뜻을 모아 논란을 마무리하고, 국민의 마음을 안정시켜야 한다. 이것은 여야의 문제, 정쟁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운명,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문제다.

우리 국민들은 국가의 번영과 국민 생활의 안정, 즉 평화 자유 민주를 갈망할 뿐이다. 다가오는 광복절에는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아 온 나라 안에 태극기가 휘날리도록 하자. 그래서 북한이 아무리 남남갈등을 조장해도 우리는 결코 분열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자. 그래서 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을 후세 만대에 물려주도록 하자. 

광복절은 우리 민족이 다시 태어난 날이다. 이번 광복절에는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한 집도 빠짐없이 대문마다, 창문마다 태극기가 휘날리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4. [동아일보][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어머니, 나의 어머니

‘검정색과 회색의 배치―화가의 어머니’는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1834∼1903)의 대표작입니다. 그림 속 화가의 어머니는 절제되고, 명예로운 삶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화가는 달랐습니다. 아름다운 여성과 호화로운 식기가 있는 삶을 탐했지요. 

21세 화가는 홀로 프랑스로 미술 공부를 떠났습니다. 이후 어머니와의 재회는 더 큰 자유를 찾아 정착한 영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미국에서 발발한 시민전쟁을 피해 어머니가 아들집에 왔거든요. 아들은 어머니의 재등장에 긴장했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했지요. 친구들에게 어머니 성품을 알렸고, 실내 장식도 검소하게 바꾸었어요. 

훗날 미국 최초 어머니의 날 기념우표를 장식할 그림은 이 시기에 탄생했습니다. 1871년 가을, 청교도였던 어머니를 모델로 자유분방한 아들이 붓을 들었습니다. 그림 속 67세 노모는 지금까지 미술 속 어머니들처럼 미소가 자애롭지도, 눈길이 인자하지도 않습니다. 평소 모습 그대로 책임감과 도덕성으로 무장한 모습이었지요. 여기에 일본에 관한 화가의 관심도 엿보입니다. 그림 속 어머니는 기모노 천이 드리우고, 다다미가 깔린 방 안에 미동조차 없이 앉아 있습니다.

건강상의 문제로 어머니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화가는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해방감을 만끽하느라 안부조차 묻지 않았지요. 그리고 2년 뒤 어머니의 부고가 전해졌습니다. 그토록 벗어나려 발버둥 쳤던 어머니의 죽음이 화가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모처럼 어머니와 의기투합해 완성한 그림 판매를 보류할 만큼 죄책감에 시달렸지요. 화가에게 어머니는 부담스러운 존재인 동시에 부정할 수 없는 생명의 근원이었지요. 

노숙인 인문학 종료 후 전시를 하기로 했습니다. 수업 중 여러 차례 그린 자화상을 선보이기로 했지요. 마지막 시간, 40대 수강생이 지금껏 그려왔던 자화상에 머리 모양과 옷 색깔만 바꾼 그림을 제출했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랍니다. 자신의 모습에 곱슬머리를 붙여보고, 여자 옷도 입혀보며 어머니를 상상해 왔답니다.


자화상 대신 어머니 초상화를 전시해도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원망과 그리움의 존재, 어머니를 그렇게라도 불러보고 싶었겠지요. “왜 안 되겠느냐”고 답하며 화가의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누구든 어머니는 멋지게 그릴 것이다.’ 하지만 그림에 쏟아진 세상의 찬사에 겸손하게 화답했던 화가에 대한 말은 차마 전하지 못했습니다.


5. [동아일보][림펜스의 한국 블로그]휴가철 베스트셀러에 숨겨진 이야기

여름 휴가철이라 책 얘기를 하고 싶다. 출판사에서 일하다 보면 독자 반응이 예상과 다르게 나오는 경우를 흔히 경험한다. 그럴 때 출판사 대부분은 실망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해외 문학을 적극적으로, 많이 내는 편인 한국 출판사들은 외서를 기획할 때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하겠지만 가능한 한 많은 독자들한테 책을 소개하는 게 목적이면 해외 트렌드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나도 규칙적으로 미국 프랑스 독일 등 대표 서양 출판 시장의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검토한다. 물론 책에 대한 반응이 나라마다 상당히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만일 해외 베스트셀러들만 계약하려고 하는 출판사가 있다면 결국 망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어느 나라의 문학과 책 시장을 조사할 때 그 나라에서 어떤 도서가 잘 나가는지, 어떤 책이 화제가 되는지 고려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어느 도서가 한국에서 먹힐지는 미리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작품마다 수십만 부씩 팔리는 인기 작가들은 거의 모두 조만간 한국에 소개되는데 한국어판도 잘 나간다고 말할 수 있는 작가가 별로 없다. 마크 레비, 프레드 바르가스, 다비드 포앙키노스, 미셸 뷔시 등은 한국에서 반응이 밋밋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인기를 끌었다. 그런 상황에 직면하는 작가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반면 희한하게도 자기 나라에서는 별로 주목을 못 받았는데도 번역판이 잘 나가는 외서가 드물지 않다. 예를 들어 최근에 열린책들이 출간한 소설 ‘모든 일이 드래건플라이 헌책방에서 시작되었다’(셸리 킹 지음·이경아 옮김)는 미국에서 나오기도 전에 10개국의 편집자들한테 마음에 들어 널리 계약되었다. 나중에 미국판이 나온 후 미국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해 출판사가 좀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한국에서는 반응이 괜찮은 편이다.

누구나 말하는 ‘국제 베스트셀러’도 당연히 있다. 세계적으로 소개되었으며 거의 모든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 말이다. ‘반지의 제왕’ ‘장미의 이름’ ‘해리 포터’ ‘다빈치 코드’ ‘밀레니엄’ 등 누구나 들은 적이 있는 책이 그런 부류다. 2010년대 대표적으로 국제 베스트셀러로 성공한 책의 저자로는 요나스 요나손, 프레드릭 배크만 등이 있다. 

밀리언셀러의 발행인한테 물어보면 “이 정도 판매될 줄 알았다”고 대답하지 않는다. 책마다 독자 반응에 대한 예감이 있는데 예측은 하기 어렵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출판사에 책을 10권, 20권, 30권 맡겨봐야 그중에 하나가 베스트셀러가 될 기회가 생긴다. 운이 좋지 않으면 100권 출판해 봐야 소용없다.


잘 팔리는 책만 출간하는 출판사는 없다. 물론 의욕이 넘치는 출판인이 어느 타이틀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낼 자신이 있다면 그만큼 투자해서 온갖 마케팅을 통해 책을 주목받게 할 수 있는 경우가 있지만 홍보비가 장난이 아니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위험한 장사다. 

그래서 베스트셀러란 게 참 기이한 것 같다. 도서는 대중한테 관심이나 호감을 일으킬 만한 요소들이 워낙 많은 특별한 제품이다. 그중에 조절할 수 없는 요소가 꽤 있다. 그래서 베스트셀러는 절대 합리적이지 않은 현상이다. 출판사 사람들에게는 괴로운 사실이지만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정해진 공식이 있었으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 같은 불합리성은 독자에게 좋은 일이다. 성공적으로 출판하는 과정이 정밀과학이 아니기에 출판계는 열정과 독창력을 갖추려고 한다. 번역가, 편집자, 디자이너, 제작자 등 각자 자기 나름대로 늘 최선을 다해서 가능한 한 질이 높은 책을 내도록 노력해야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최선을 다했다면 독자들로부터 반응이 없어도 결국 좋은 책을 만든 보람만은 남는다. 그런 경우 출판인들은 아까운 책이 많아도 후회할 게 없다. 무더운 여름 많은 책을 펴낸 출판계 사람들은 마음을 졸이지만 독자들은 그만큼 넓은 독서 선택 폭을 갖고 더 재미난 휴가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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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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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8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야당 역할론’, 국가 안보 훼방놓자는 건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싸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터져 나오는 파열음이 심상찮다. 오늘 방중을 강행하는 당내 초선의원 6명에 대해 우상호 원내대표는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정치논쟁으로 삼아선 안 된다”며 감싸고 나섰으나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중국에 이용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총선 승리 이후 그런대로 순항하던 더불어 지도부가 사드 문제로 엇박자를 내며 충돌하는 양상이다.

그동안 더민주는 김 대표 주도로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 입장을 정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당내에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차기 당권주자들도 동조하면서 반대 당론이 공식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김 대표조차 대안 없이 반대만 일삼던 과거 야당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도로 민주’에 대한 우려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정도다.

민주국가에서 각 정당이 어떤 당론을 채택하느냐 하는 것은 자기들의 자유다. 그러나 국가안보가 걸린 문제에서 몽니를 부려선 안 된다. 당리당략에 앞서 국익을 먼저 따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방중단에 포함된 김영호 의원의 ‘야당 역할론’이 어처구니없게 들리는 것도 그래서다. 여당이 못하는 한·중 우호관계의 다리 역할을 야당이 떠맡겠다는 것이니, 지금이 너도나도 나서서 중구난방 외교를 펼칠 때란 말인가. 안보외교를 정부 따로, 야당 따로 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공연한 침소봉대로 중국이 자신들의 방중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우려가 커졌다며 오히려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에 화살을 돌린 김 의원의 주장은 중국 관제언론의 논리와 똑같다. 이미 중국 언론들은 이들의 방중 방침을 대서특필하며 사드 반발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오죽하면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한 국민의당마저 사드 반대 공조와 더민주 의원들 방중은 전혀 별개라며 비판의 날을 세우겠는가.

중국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한국 인사들의 기고나 인터뷰를 관제 언론에 게재하며 남남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야당의원들마저 집단으로 중국의 선전 술책에 놀아나는 우를 범해선 곤란하다. 적어도 수권정당임을 자임하는 제1야당이라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이들의 방중을 놓고 칭찬을 바란다면 철부지일 뿐이다.

2. 에어컨 놔두고 선풍기 틀어야 하는 현실

아침부터 푹푹 찌는 한여름의 폭염보다 더 겁나는 게 전기요금이라고 한다.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가 누진제로 돼있어 전기를 평소보다 조금만 더 사용해도 요금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집안에 에어컨을 갖추고 있더라도 요금 걱정에 마음대로 틀지 못하는 이유다. 흘러내리는 비지땀을 부채와 선풍기로 버티면서 공연히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현재 적용되는 요금 누진율이 전기 사용량에 따라 가파르게 늘어난다는 게 문제다. 6단계로 시행되는 누진제의 최고구간 요금이 최저구간에 비해 무려 11.7배나 된다. ‘전기요금 폭탄’이라는 표현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찜통더위가 이어지면서 이러한 누진제를 손봐야 한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올해도 소비자들의 누진제 폐지 청원이 시작됐다고 한다.

물론 현행 누진체계가 나름대로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당초 저소득층의 요금 부담을 줄이고 고소득층에 대해서는 전기 사용을 억제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전기 요금을 통해 소득 재분배 효과를 낸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 체계가 2007년 도입된 이래 10년 가까이 흘렀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그동안 전력사용 행태가 크게 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에게 여전히 더위를 참도록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다.

시내 대형상가마다 에어컨을 펑펑 틀어놓은 채 문을 열어놓고 손님을 받는 상점들과도 비교가 된다. 산업용 전기요금에는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전기를 마음대로 써도 되고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요금폭탄을 감수해야 한다는 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문을 열어놓고 손님을 받는 상점에 대해 단속활동을 벌이다가 올해는 묵인하는 듯한 당국의 태도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제는 전기요금 체계를 바꿀 때가 됐다. 전기요금이 물가와 가계경제, 신재생 에너지사업 등 여러 분야에 얽혀 있기 때문에 쉽게 개편할 수 없다는 주장은 핑계일 뿐이다. 누진제를 유지하더라도 가구당 전력소비가 늘어난 데 맞춰 누진구간 및 누진 배율의 조정이 필요하다. 무더운 날씨에도 전기요금 걱정에 에어컨을 켜지도 못하고 집안에 그냥 모셔둬야 하는 상황만큼은 개선돼야 할 것이다.

[매일신문]

3. 거대 야당, 경기 살리자는 추경안마저 정쟁 대상 삼나

구조조정 지원과 일자리 만들기, 민생안정 등을 위한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벽에 부딪히고 있다. 여야는 당초 오는 12일을 처리 시한으로 합의했지만, 아무리 빨라도 오는 20일 전후로 처리가 미뤄질 수밖에 없게 됐다. 그 이유는 야당이 여야의 의견이 엇갈리는 현안을 자신들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처리해야만 추경안 통과에 협조할 수 있다고 고집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권 3당은 지난 3일 ‘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 개최, 누리과정에 대한 정부 재정 투입, 세월호특별조사위 활동기간 연장,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사드`검찰개혁특별위원회 설치 등 8개 사안에 공조하기로 합의했었다. 야당은 이들 8개 항을 추경안 처리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지겹도록 보았던 ‘끼워넣기’ 전술이 도지는 형국이다.

이들 8개 항을 놓고 여야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조속한 처리가 필요한 것도 분명히 있다. ‘공수처’ 신설이나 검찰개혁특별위원회 설치, 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현안들은 별개로 다루어야 할 사안이지 추경안 심사와 연결시킬 것이 아니다. 추경안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추경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것은 ‘다수의 횡포’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이번 추경이 야당이 먼저 제안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 놓고 8개 항의 선결을 내세워 추경안 심사를 지연시키는 것은 추경안을 정쟁화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4`13 총선에서 민심이 ‘여소야대’를 만들어 준 것은 여야가 대화하고 타협해서 ‘협치’를 하라는 것이지 이렇게 머릿수의 우위를 내세워 제멋대로 하라고 한 것이 아님을 야당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번 추경은 속도가 생명이라고 한다. 경기둔화세를 멈추려면 속전속결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야당은 추경안과 관계없는 사안을 내세워 추경안 처리를 늦출 일이 아니다. 그런 구태의연한 ‘야당질’은 야당이 입만 떼면 강조하는 민생을 오히려 어렵게 할 뿐이다.

[서울신문]

4. 현 경영진 비리 드러난 대우조선, 지원 명분 없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영 비리가 갈수록 가관이다. 도대체 부패의 검은 사슬이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말문이 막힌다. 전 경영진의 비위와 부실운영도 기가 막힌데 쇄신 플랜을 가동한다기에 믿었던 현 경영진조차 조직적인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 회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 김열중 부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연일 조사했다. 이런 정신 나간 조직에 공적자금을 이미 3조원이나 밀어 넣었으니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는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김 부사장은 지난 1~3월 작성한 사업보고서에서 지난해 영업손실 규모를 1200억원가량 축소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손실 규모를 속여 회사의 적자 폭이 전체 자본금의 절반을 넘지 않도록 회계 조작을 했다. 적자가 자본금의 50%를 넘으면 증시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채권단의 지원도 받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런 분식회계를 한 것이다. 검찰은 정성립 사장도 조만간 소환 조사할 계획이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사실상 공기업이나 다름없는 회사가 비리 소굴로 전락했는데도 피 같은 세금을 뭉텅이로 밀어 넣어 주고 있는 꼴이다.

지금까지 검찰은 노무현·이명박 정권이 선임한 남상태·고재호 전 사장의 비리와 분식회계를 집중 수사해 왔다. 현 경영진의 비리까지 더해지면 2006년 이후 대우조선은 조직적 비리 속에서 10년을 한결같이 허우적거렸다는 얘기다. 이 지경인데도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니 더욱 개탄스럽다. 대우조선을 관리해야 했던 산업은행은 꼬박꼬박 배당금을 챙겨 주고 눈먼 낙하산 자리만 만들어 주면 감독할 의지도 없었다. 이런 난파선 수준의 회사에 지원 결정을 내린 정부도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책임 소재에 관해서는 구린 입조차 떼지 않으니 검찰이 과연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나 있을지 의문스럽다.

아무리 절박한 사정이 있더라도 비리 난장판인 회사에 혈세를 계속 퍼줄 수는 없다. 국민 정서를 살핀다면 정부는 최악의 경우 대우조선 회생 카드를 접을 각오까지 해야 할 것이다. 엄중한 수사를 하는지 검찰의 칼끝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까닭이다. 검찰은 곤두박질친 위신을 추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5. 포퓰리즘의 산물 48% 면세자, 국회가 책임지라

과다한 근로소득세 면세자 축소 문제가 ‘뜨거운 감자’다. 2014년 기준으로 근소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은 면세자 비율이 48.1%에 이르면서 조세 왜곡 현상을 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다. 여야 3당 모두 그 당위성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증세에 가장 적극적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경제통인 최운열 의원이 지난주 “근로소득자 중 48%가 근소세를 납부하지 않는 것은 비정상적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근로자 면세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0% 포인트 높다면 공평과세의 원칙에 어긋날뿐더러 늘어가는 복지 예산을 충당하기도 어렵다. 선거를 앞두고 늘 무원칙한 세금 감면 조치를 남발했던 정치권이 자신의 원죄를 깨닫고 결자해지할 때다.

그런데도 여야 3당이 또 차기 대선에서 표를 의식해 주저하고 있는 게 문제다. 면세자 비율을 낮춰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서로 ‘고양이 목에 방울은 네가 달아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소비 위축이 심각한 현 상황에서는 무리라는 핑계를 대고 있다. 제1야당인 더민주는 “정부가 먼저 면세점(상향)과 관련한 대안을 가져와야 한다”며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2013년 정부가 근로자 연말정산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꾸는 과정에서 연봉 3450만원 이상의 세액 부담이 다소 늘자 “중산층에 세금 폭탄” 운운하며 ‘융단 폭격’을 하더니 이제 안면을 싹 바꾼 형국이다.

물론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부의 재분배 기능에 초점을 맞춘 조세 정책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민주가 마련한 세법 개정안대로 연봉 5억원 이상 과세표준을 새로 정해 세율 41%를 적용하더라도 늘어나는 세수는 연 6000억원 정도라고 한다. 부자를 혼내 생색을 내는 의미 이상의 복지 재원 조달 효과는 없는 셈이다.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의장이 언급한 대로 “고소득층에 대해 증세를 추진하는 데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포퓰리즘 차원서 남발한 조세 감면 거품부터 걷어내야 할 이유다.

현재 근로자 중 48%, 다시 말해 2명 중 1명꼴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면? 이는 조세 정의의 실종이라는 원론을 넘어 장기적으로 국민경제의 건강을 해치는 영양제 주사만 과잉 처방하는 꼴일 게다. 이는 역으로 국민개세주의 원칙에 따라 세원은 넓히고 세율 인상은 적정선을 지켜야 할 근거다. 그래야만 장기적으로 중산층을 두껍게 하는 경제 체질 개선과 복지 재원 확보를 위한 안정적 세수기반을 구축할 수 있음을 여야는 유념하기 바란다.

[동아일보]

6. 국회, 낡은 생각을 바꿔 제할일 찾아라

혹독한 무더위다. 카페, 은행, 도서관으로 피난 가는 사람도 많다.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부조리다.

오직 주택용에만 적용되는 징벌적 요금 체계는 전력이 부족하던 시절, 가정에 근검절약을 강요하고, 전력 소모가 많은 가전제품이 별로 없던 시대의 유물이다. 산업용보다도 더 저렴한 주택용 1단계 요금은 복지제도가 빈약하던 시대의 복지 수단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런 전기요금 체계를 정당화하던 모든 조건이 변했다. 당연히 언론과 국회 상임위 등에서 오래전부터 지적해 왔지만 꿈쩍하지 않는다. 기득권을 잃는 집단의 반발을 견뎌 낼 소신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전기요금은 정치와 정부가 통제하는 수많은 가격의 하나다. 여기서 보여준 부조리와 무능, 무책임은 거의 모든 정부 통제 가격에서도, 국가 규제와 예산에서도 반복된다. 의료 수가, 철도·지하철 요금, 공무원 임금·연금, 진흥·육성 명목의 예산 등에는 오래전에 유효기간이 끝났지만 기득권 집단의 반발이 무서워 손을 못 대는 부조리가 많다. 특히 국회가 권한을 주로 상대 견제, 저지용으로 사용하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못 해도, 남이 하고 싶은 것은 확실히 막아낼 수 있는’ 비토권만 비대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기업인들이 “13억 중국은 안 되는 게 없고, 5000만 한국은 되는 게 없다”고 통탄하는 이유다.

한국 정치는 있어야 할 곳에는 없고, 없어도 될 곳에는 있다. 국회의원의 임무를 아예 정부가 차려온 밥상 앞에서 반찬 투정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의원도 많다. 집안 살림 형편, 식재료 수급 사정, 식구의 영양 상태 등을 고려하여 법령, 정책, 예산과 같은 식단의 기준과 원칙을 내놓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라는 생각 자체가 없다. 

간절한 소명의식과 준엄한 책임의식은 없는데, 대통령과 행정부에 비해 국회의 권한이 적다면서 권한 확대 요구는 질기게 한다. 하지만 이미 쥐고 있는 입법, 예산, 감사 등 거대한 권한은 제대로 사용하지도, 위임하지도 않고 그냥 썩힌다. 협치는 원래 여야 간 협력은 기본이고, 핵심은 그 권한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단위를 구성하여 권한 자체를 위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협치 개념 역시 축소되고 변질되었다.

정치와 정부가 유능해지려면 국회의원과 관료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유능한 국회의원과 관료를 선출·선발하고, 정당의 정책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다당제까지 추가해도 여전히 부족하다.

핵심은 자신이 관여해 결정할 사안과 그렇게 하면 안 될 사안을 구분하는 것이다. 국회나 정부나 자신이 비록 법적인 결정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보다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단위를 구성하여, 숙의를 통해 나온 권고안에 대해 가부만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예컨대 국회의원과 정당이 핵심 이해관계자인 선거제도, 헌법 개정 등은 추첨으로 선발된 보통 시민 300명의 원탁·숙의 테이블에 권고안 작성을 의뢰하고, 국회는 가부만 판단하는 식이다. 

전기요금, 의료 수가, 공무원 임금 및 연금도, 더 나아가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노동, 공공, 금융, 교육, 규제, 지방자치제도 개혁 방안도 공공성, 중립성, 전문성을 담아내는 기구를 여야 합의로 구성하여, 그 숙의 결과에 대해 가부만 판단하는 식으로 처리할 수 있다. 물론 이 기구는 여야 일방의 확실한 대변자, 나팔수 노릇을 할 전문가를 배제하는 상호 제척권 행사를 통해 구성되어야 한다. 진짜 내려놓을 국회의 기득권은 제대로 행사하지도 못하면서 움켜쥐고 있는 권한이다. 진짜 발휘할 지혜는 자신이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분별하는 것이다.

[중앙일보]

7. 새로운 한·러 관계 열 정상회담을 기대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달 2∼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되는 제2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결론부터 말해 잘한 결정이며, 이번 회담을 계기로 보다 가깝고 실질적으로 협력하는 새로운 한·러 관계를 기대해 본다.

사실 우리는 한반도 주변 4강 중 러시아를 비교적 소홀히 대해 온 측면이 없지 않다. 문화적 이질감이 다소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의 갈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우리의 외교적 여력이 부족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는 우리에게 더욱 크게 다가온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러시아는 북한의 핵 도발과 이로 인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결정으로 꼬인 한·중 관계의 비상구가 될 수 있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긴 하지만 러시아는 북한의 핵 무장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중국에 비해 훨씬 비판적인 입장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에 대처한 우리의 불가피한 선택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다면 충분히 협조를 얻어낼 수 있다. 러시아가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발 수위도 낮아질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중요성도 안보 문제에 못지않다. 러시아 정부는 최근 극동 지역을 개발하는 신동방정책을 최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의 대러 제재로 유럽 쪽 통로가 막힌 상황에서 극동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발현된 것이 곧 동방경제포럼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 일대 15개 항구를 자유항으로 지정하고, 10개 선도개발구역(TOR)까지 열어 한국과 일본 등의 투자를 기다리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번 포럼에 참석하는 것도 이 지역의 잠재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관심은 지나칠 정도다. 이 지역을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출발지로 선포한 중국은 훈춘까지 완공된 철도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중국 지린성 당국은 2018년을 목표로 자루비노항을 연간 물동량 처리능력 6000만t 규모의 다목적 항만으로 공동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진출이 활발하다 보니 극동러시아의 먹거리는 이미 중국 농산물이 장악한 상태다. 위기감을 느낀 러시아는 한국과 일본에 손을 뻗고 있다.

우리도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단독 또는 합작투자를 통해 극동러시아의 지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극동러시아 투자는 궁극적으로 북한과 상생을 위한 출구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은 북한 도발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었지만 제재 국면이 해소된다면 중단된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재개해 나진을 동북아 교역 허브로 만들고, 극동러시아 가스관을 유치해 중·일·러·남·북이 참여하는 동북아 에너지 거점도시로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경제]

8. 연일 살인적 폭염, 정부 제대로 된 안전대책 세워라

연일 계속되는 찜통 더위로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가축과 농작물 피해가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의 안전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달 22일부터 어제까지 서울에는 열대야 현상이 15일이나 이어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 열대야 발생일수가 5일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기록적 폭염이다. 광복절인 15일까지 무더위가 계속될 것이라고 하니 걱정이다. 

인명과 재산 피해도 커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5월 23일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가동한 이후 이달 5일까지 열사병과 열탈진 등 온열질환자가 1016명에 달했고, 이 중 1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폭염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지난달 말 이후 발생했다.

이처럼 폭염 피해가 심각한데도 정부의 안전대책이나 구호활동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국민안전처는 올해 폭염이 관측 이래 최고 수준이며 재난에 준해 관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주의보·경보 발령에 그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도 예방 수칙만 공지할 뿐 실효성 있는 안전대책은 전무하다. 이는 폭염이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상 자연재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이다. 단순한 자연 현상이기 때문에 정부의 피해 대책이나 보상책 마련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를 보완해서라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일반 가정의 냉방비 부담을 완화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현재 6단계로 돼 있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누진제는 말 그대로 전기를 많이 쓸수록 요금단가가 가파르게 높아지는 구조를 말한다. 가정용 전기요금은 1단계에서는 킬로와트시(kwh)당 60.7원이지만 6단계에서는 709.5원으로 11.7배가 올라간다.

전기요금이 무서워 찜통 더위에도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 가정이 적지 않다고 하니 전체 전기요금 체계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누진구간이나 배율을 일부 재조정할 필요는 있다. 앞으로도 폭염 피해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부는 폭염을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닌 재난이라는 관점에서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하길 바란다.

[세계일보]

9. 야당 의원 6명의 중국 방문을 온 국민이 주시한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6명이 오늘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김영호 박정 신동근 소병훈 김병욱 손혜원 의원은 2박3일 일정으로 베이징을 방문해 한·중 학자좌담회 등에 참석한다고 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와 관련해 의견을 듣는다는 게 방문 목적이다. 방중을 기획한 베이징대 출신 김영호 의원은 중국에 경제적 보복 자제 요구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하기 어려운 일에 야당 의원들이 나서 준다면 바람직한 의원외교 활동이다.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의원들의 방중 목적과 의지와 상관없이 중국에 이용만 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관영매체들의 보도 행태를 보면 야당 의원들이 어떤 대접을 받을지도 짐작이 간다. ‘한국 때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중국 환구시보는 야당 의원들의 중국 방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더민주가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고 방중하는 의원들은 사드에 대한 중국 측 입장을 듣길 바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는 어제 야당 의원들의 중국 방문 계획 재검토를 촉구했다. 앞서 새누리당도 ‘굴욕외교’, ‘사대외교’라는 거친 표현까지 쓰면서 이들의 중국 방문을 비난했다. 손혜원 의원은 곳곳에서 걱정과 비판이 쏟아지자 “우리가 중국에 나라라도 팔러 간답니까”하고 발끈했지만 그렇게 보는 시각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한·중 관계가 사드 문제로 악화되고 있는 민감한 상황에서 야당 의원들의 중국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이 중국 입장을 옹호하고 한국의 결정을 반대하는 중국 측의 선전선동에 이용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중국 언론에서 사드에 반대하는 한국 의원들이 왔다고 보도할 것이 아니냐”고 우려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국민 대표인 의원들의 활동에 국익이 걸려 있다. 국가 위신을 추락시키고 미국 일본 등 국제사회에도 잘못된 신호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국의 외교적 공세에 악용되는 일도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된다. 가능하다면 출국하기 전이라도 마음을 바꿔 방중을 취소하는 결단을 보고 싶다. 의원들의 중국 방문은 대단히 경솔한 결정이고 취소해야 한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가야겠다면 말과 행동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온 국민이 의원 6명의 말과 행동에 주시하고 있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자칫 ‘조공외교’라는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대한민국의 국민대표로서 언행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매일신문]

10. 동해안 원전의 유해물질 배출, 원전 불신 키우는 화근 된다

경주 신월성 1`2호기와 부산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온배수 거품 제거제(소포제)로 쓰이는 유해물질인 ‘디메틸폴리실록산’을 바다로 배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은 해양경찰이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가 이 물질을 지난 2011년부터 5년 동안 500t가량 배출한 것으로 보고 최근 수사에 나서면서 밝혀졌다. 이들 시설을 관리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소포제 사용을 즉각 중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수원의 신뢰는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원전시설 등 발전시설은 전기생산 과정에서 생기는 열을 식히는 데 바닷물을 쓴다. 이들 시설이 경주를 비롯한 동해안 지역에 집중적으로 들어선 까닭이다. 또 발전소는 열을 식히고 따뜻해진 바닷물을 다시 바다로 내보낸다. 이런 과정에서 거품이 생긴다. 문제는 거품을 없애기 위해 유해물질로 분류된 ‘디메틸폴리실록산’을 쓰고 바다로 흘려보낸 사실이다. 해양자원과 해양환경을 해치는 것은 물론, 인간의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는 유해물질인데도 말이다.

또 다른 궁금증은 거품 제거 장치를 이용하면 소포제를 쓰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유해물질을 쓴 이유다. 이들 시설과 달리 한울원전과 한빛원전, 월성원전 1`2발전소(월성 1`4호기)는 거품 제거 장치를 쓴 탓에 아예 소포제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를 비교하면 의문 제기는 마땅하다. 비록 한수원이 조치를 했다지만 원전시설 운영과 체계적인 관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업무를 두고 원전시설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한 것과 다름없다. 

한수원의 뒤늦은 소포제 사용 중단 조치도 문제가 불거진 뒤 이뤄진 만큼 신뢰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하다. 수사가 없었다면 계속적인 유해물질의 바다 배출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원전의 안전한 가동은 절대적이다. 원전시설로 인한 바다의 생태계 파괴 방지와 주변 주민들의 안전확보도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다. 한수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유해물질 소포제 사용량, 배출량의 파악과 함께 재발 방지에 나서야 한다. 유해물질 사용의 철저한 점검과 관리 강화도 필요하다. 원전시설에 대한 불신의 화근을 없애고 신뢰 회복을 위한 한수원의 각성이 절실한 때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경영칼럼] 국가브랜드 재정립한 뉴질랜드 성공스토리

2010년 10월 미국의 패션 브랜드 갭(GAP)은 전통적인 글씨체의 로고를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새 로고가 발표되자마자 소비자들의 혹독한 비난이 쏟아졌다. 전화, 이메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전 디자인이 훨씬 낫다’ ‘아마추어가 대충 만든 것 같다’는 등 거침없는 항의가 이어졌다. 결국 갭은 로고 변경과 관련된 모든 계획을 철회했다. 

기업이 부딪히는 소비자의 실망과 질책은 애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브랜드 로고, 슬로건을 바꾸는 데 아무 반응이 없다면 그만큼 무관심하다는 이야기다. 

도시나 국가 브랜딩도 마찬가지다. 새로 선보인 국가 브랜드에 대한 국민의 싸늘한 반응은 국가를 향한 애정과 소속감의 얕은 수준을 보여준다. 국민과 기업, 다양한 조직의 열망을 제대로 드러낼 때 국가 브랜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진다. 그런 면에서 뉴질랜드의 브랜드 전략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1999년 시작된 ‘100% 순수 뉴질랜드(100% Pure New Zealand)’ 캠페인은 뉴질랜드가 관광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자연환경을 체험할 수 있다는 가치를 전파해 해외 관광객 53%, 와인 수출액 7배 증가라는 성과를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안홀트-GfK, 퓨처브랜드 같은 국가 브랜드 평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2013년부터는 존 키 뉴질랜드 총리의 주도 아래 국가 브랜드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뉴질랜드 스토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뉴질랜드가 매력적인 관광지일 뿐 아니라 얼마나 선진적인 기업 경영 환경을 제공하는지, 무역 대상국으로 얼마나 경쟁력을 지니는지를 알리는 데 중점을 뒀다. 홈페이지, SNS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직접 겪은 뉴질랜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프리미엄 유기농 차를 재배·판매하는 질롱(Zealong), 세계적인 럭셔리 요트 제조회사 맥멀린앤드윙(McMullen&Wing), 영화 ‘반지의 제왕’을 제작한 파크로드포스트(Park Road Post) 등의 사례도 소개된다. 

뉴질랜드 스토리의 근간에는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 ‘뉴질랜드다움(New Zealandness)’이 깔려 있다. 뉴질랜드다움의 핵심 가치는 국민, 기업, 자연에 대한 국가의 책임감을 표현하는 ‘카이티아키(Kaitiaki·수호자를 뜻하는 마오리족 용어)’, 신뢰와 겸손을 중시해 함께 일하기 좋은 뉴질랜드인의 ‘진정성(integrity)’, 창조적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자원의 풍부성(resourcefulness)’으로 요약된다. 전 세계 경영자들이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경영 무대로서 뉴질랜드의 경쟁력을 강조한 것이다.

뉴질랜드 토종 양치식물의 잎 모양을 응용한 ‘펀마크(FernMark)’도 제작해 정책 활동은 물론 기업 마케팅, 스포츠 행사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다. 뉴질랜드 정부는 펀마크 허위 사용과 오용을 방지하기 위해 상표를 등록해 파트너를 엄선하는 라이선싱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국가 브랜드 상징물에 대한 엄격한 보호와 관리는 그만큼 개인과 조직이 뉴질랜드에 소속돼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는 효과를 창출한다.

기업이든 국가든 브랜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유행하는 문구, 눈에 띄는 디자인을 찾기보다 변하지 않는 본질적 특성을 독창적인 스토리로 풍부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일방적인 스토리텔링이 아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공감하고 동참하도록 협조를 구해야 한다. 충성고객이 중시하는 핵심 가치를 잊고 디자인 트렌드만 좇아 실패했던 갭, 다양한 구성원의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담아 브랜드 리포지셔닝에 성공한 뉴질랜드가 주는 교훈들이다.


2. [연합뉴스]<김종현의 풍진세상>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

대지를 태울듯한 불볕더위의 여름 극장가에서 두 영화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 

인천상륙작전은 평론가와 언론이 '철 지난 반공영화'라고 혹평했음에도 관객들이 쇄도했다. 덕혜옹주도 스토리의 흡인력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에 힘입어 호응이 뜨겁다.

재미있는 건 정치권의 반응이다. 여권 지도부는 인천상륙작전, 야권은 덕혜옹주를 감상했다고 한다. 각자 코드에 맞는 영화를 보고 정치적 메시지를 전했다. 

여당 원내대표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 속에서 굳건한 한미 동맹의 유지와 만반의 대비 태세가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했다. 

야당 원내대표는 위정자들이 제대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해 식민지배의 나락에 떨어지면 결국 고통은 국민이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야 지도부가 바쁜 시간을 쪼개 영화를 감상하고 교훈을 얻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 정치는 너무 삭막하다. 상소리와 파열음이 난무하는 정치는 품격 잃은 이전투구일 뿐이다. 국회의원들이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많이 둔다면 거칠기 짝이 없는 정치 언어도 한결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인천상륙작전은 적의 침략을 받아 기울어진 전세를 뒤집기 위해 유엔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주도한 작전에서 산화한 이름없는 영웅들의 이야기이다. 덕혜옹주는 몰락한 조선 왕조의 딸로 태어나 어린나이에 강제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제의 내선일체(조선의 일본화) 정책에 따라 지방 백작과 정략결혼 했으나 정신이상 증세를 일으켜 불행하게 삶을 마감했다. 두 영화의 내용은 다르지만 맥락은 같다. 나라를 잘못 타고난 젊은이들의 비극적 서사라는 점이다.


덕혜옹주는 황녀라고 하지만 일제 강점기인 1912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대한제국의 황제에서 나라를 강탈당하면서 전직 왕으로 전락한 고종의 딸일 뿐이다. 권력을 거세당한 채 뒷방으로 물러난 왕의 금지옥엽이었기에 이미 태어나는 순간 굴곡진 일생이 준비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덕혜옹주 불행의 연장선에 인천상륙작전이 있다. 외세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은 일본 군국주의의 패망으로 1945년 8월 15일 벼락처럼 떨어진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곧바로 주변 강대국의 개입으로 팔다리가 찢기듯 좌우 두 나라로 갈려야 했다. 급기야 북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이 빚어졌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선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해야 했다. 영화는 그 작전에 투입된 한국 해군 첩보부대원들의 헌신적 활약과 장렬한 최후를 그렸다. 

두 영화는 모두 8월 15일을 겨냥한 애국 마케팅이다. 덕혜옹주에서 덕혜는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지만 창덕궁 낙선재에서 남긴 사실상의 유서가 "대한민국 우리나라"였다. 인천상륙작전에서 첩보부대 책임자였던 장학수 대위는 숨을 거두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조국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다. 

국권을 상실한 나라는 덕혜옹주를 지켜주지 못했다. 힘이 없는 나라는 젊은이들을 강자의 노예나 전쟁의 제물로 바쳐야 한다. 나라를 잃어버린 황녀나 징용으로 끌려간 백성, 이념이 다른 적의 손에서 국토를 지키겠다고 목숨을 내놓은 젊은이들은 시대의 희생자들이다. 나라의 안위가 경각에 달렸을 때 국가는 젊은이들에게 피를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위기가 오지 않도록 국가 경제나 안보를 단단하게 다져놔야하는 건 국가의 책임이다.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나이에 어울리는 삶과 꿈을 주지 못하고 목숨을 요구해야 한다면 그 건 이미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우리의 현실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정치도, 경제도, 안보도 겉돌고 있는 느낌이다. 여야 정치인들은 4ㆍ13 총선 이후 협치를 공언했지만, 헛소리가 됐다. 경제는 추진력이 고갈돼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둘러싼 격심한 국론 분열에서 보듯 안보에서는 제 앞가림도 못 하고 있다. 

우리의 힘이 국권을 잃은 1910년이나 6ㆍ25가 발발한 1950년에 비해 경이적으로 커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이나 내부 분열은 우리의 자생력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여야 대표는 두 영화에서 각각 굳건한 안보와 국가 리더십의 절실함을 읽었다.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가 부실하면 나라가 바로 서기 어렵다. 부국강병은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추진이 가능하다. 강한 지도력은 국민적 지지에서 나온다. 헌신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몸을 사리면 국가는 쇠락한다. 

북한은 미사일을 펑펑 쏘아 올리고, 중국은 사드 보복을 해대겠다고 기관지들을 총동원해 연일 협박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이고 있다. 공격용도 아닌 방어용 무기 체계 하나에 이렇게 나라가 흔들려서야 진짜 안보 위기가 닥쳤을 때는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우리의 오늘이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을 묻고 있다.


3. [서울신문][이현청 교육산책]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젊은이들이여, 미안하다. 오죽하면 ‘흙수저’를 이야기하고 ‘오포세대’, ‘칠포세대’ 심지어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팔포의 세대’가 되었는가 생각할 때,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다. 그들의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절망이 어느 정도인지, 치유책은 없는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 젊은이들에게 안타까움과 함께 감히 조언하고 싶다. 포기는 새로운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어느 시대든 젊은이들에게 큰 희망은 있었지만, 가시적인 해답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알기 원한다. 아버지 세대가,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가 그러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단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아버지 시대와는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안다. 세기적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지식정보화사회를 넘어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과 산업구조와 직업의 대변혁에 따라 기존 직업지도의 커다란 변화가 이루어지고 예측 자체조차 어렵다는 것도 안다.

또 하나는,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인간의 직업이 인공지능 로봇이나 지능형 콘텐츠에 뺏기고 직업이 줄어드는 ‘직업 없는 사회’가 확산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보다도, 절대적 빈곤감보다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서로 비교하면서 아파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도 젊은이에게는 젊다는 특권이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젊은이에게는 도전의 기회, 재생의 기회, 학습의 기회, 창조의 기회 등이 나이 든 사람들보다 많다는 점을 기억하기를 원한다. 선진국의 경우 환경은 다르지만 30대에 백만장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기 바란다.

미국 UCLA 대학 앳킨슨 교수가 젊은이의 고뇌를 “꿈과 영웅이 죽어갔을 때”라고 표현했듯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꿈도 영웅도 죽어간 이 시점에 절망만 쌓여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희망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할 때인 것은 분명하다. 직업이 최대의 청년복지라는 것을 안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감히 말한다. 21세기는 어디서 사느냐,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젊은이들의 고민을 이민이 해결하는 것도, 직업이 해결하는 것도 아니다. 아픔 속에서도 세상을 다시 보는 기회와 한국에 있는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 미래를 꿈꾸는 새로운 비전이 될 것이다.

21세기는 무한도전의 세기이다. 변화가 변화를 낳고, 창조가 창조를 낳고, 도전이 새로운 도전을 낳는 세기이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아르바이트를 서너 군데 뛰어도 88만원 세대밖에 되지 않는 그 절망이, 세계로 도전하는 도전의 세기가 될 수도 있으며 암흑같이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도, 새로운 길을 향해 달릴 수 있는 미래가 될 수 있다. 좌절과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에게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만이 없는 길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현실의 아픔이 너무 크기에 미래를 향해 감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내가 처한 환경을 들여다봤을 때, 절망밖에는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거듭 말하거니와 21세기가 젊은이들에게는 최대 위기의 세기이지만, 그와 함께 도전의 세기이고, 기회의 세기라고 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그래도 세계 강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미래의 주역들이고 세계 곳곳을 누비는 한류의 자부심도 함께 가질 수 있는 기둥들이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세대가 되기를 바란다.

젊음은 잠깐이다. 긴 듯하지만 길지 아니하고, 할 수 있는 듯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아름다워지기 원하나 아름다워지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다. 젊음은 자기 안에 영원히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아픔의 세대인 한국 젊은이들이 희망을, 자그만 불빛 같은 희망을 잃지 말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인생을 살아 보면 누구에게나 반드시 때가 주어지고 그때에 꾸준히 준비해 온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라 했지만 아픔을 지우고 살아야 청춘인 것이다.


4. [동아일보][박윤석의 시간여행]암울했던 80년 전 올림픽

8월 8일 오후 올림픽촌. 세 선수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마라톤이 열리기 전날이었다. 1936년의 베를린이었다. 마라토너 손기정과 두 동료였다. 사토 코치는 “세 선수 모두 컨디션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말했다. 연습 후 세 국가대표는 코치를 가운데 두고 잔디밭에 둘러앉아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는 국과 스키야키로 영양 공급을 마침으로써 9일의 전투 준비는 만사 OK, 기다리는 것은 오늘 오후 3시의 출발뿐.’ 일본 통신사의 특파원이 보낸 기사가 조선과 일본의 신문에 실렸다(동아일보 1936년 8월 10일자 호외).

베를린으로부터의 급보가 날아든 서울은 심야였다. 

‘9일 오후 3시(조선 시간 오후 11시)에 올림픽 경기장을 출발한 마라톤에서 우리 대망의 손기정 군은 30여 나라 56명의 선수를 물리치고 당당 우승을 하였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비를 맞으며 신문사 정문 앞에 운집해 기다리던 군중들은 시시각각 들어오는 소식들을 전해 들었다. 호외가 제작되는 시간이었다. 신문사 안에는 체육계 및 각계 인사들이 모여 현지 소식을 청취하는 중이었다. 다음 날 신문은 이렇게 썼다. 

‘우리의 손기정은 이겼다. 조선은 너무나 오랫동안 숨어 살았다. 또 너무나 오랫동안 기운 없이 살았다. 손기정 남승룡 두 용사는 시드는 조선의 자는 피를 끓게 하였고 가라앉은 조선의 맥박을 뛰게 하였다. 한 번 일어서면 세계도 손안의 것이라는 신념과 기백을 가지도록 했다.’

그날 새벽에 받아 본 호외 뒷면에 작가 심훈은 즉흥시를 썼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깊은 밤 전승(戰勝)의 방울 소리에 터질 듯 찢어질 듯/침울한 어둠 속에 짓눌렸던 고토(故土)의 하늘도/올림픽 횃불을 켜든 것처럼 화다닥 밝으려 하는구나’

아돌프 히틀러 총통의 개막 선언으로 시작된 올림픽이었다. 당시 일본은 메달 순위에서 8위였다. 일본의 금메달 6개 중 하나와 동메달 8개 중 하나는 한국인이 획득한 것이었다.

머나먼 고국의 환호와는 대조적으로 시상대에 선 사진 속 손기정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침울해 보이기조차 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를 손기정은 8개월 전에 한 바 있다. 1935년 11월에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 선발전에서 이미 세계 기록을 경신하고 난 뒤였다.

“초인적 신기록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피곤할 대로 피곤한 몸으로 동경의 그라운드 한 구석에서 수많은 사람 속에 둘러싸여 환호와 갈채를 받던 그 순간, 나는 어쩐지 마음 한 구석에 서운하고 쓸쓸한 생각이 일어나며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물이 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많은 기자들이 와서 감상을 말하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인을 받아가기도 하고 카메라를 돌리기도 하였습니다. 더없는 영광이요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군중들 가운데 나는 한 사람의 조선말 하는 사람을 못 만나 보았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쓸쓸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월간 ‘삼천리’ 1936년 1월호)

그로부터 80년이 흐르는 동안 한국은 독립을 쟁취한 뒤 올림픽도 개최하고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도 배출했다.


5. [동아일보][표정훈의 호모부커스]자서전

‘뉴욕제과점은 우리 삼남매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필요한 돈과 어머니 수술비와 병원비와 약값만을 만들어내고는 그 생명을 마감할 처지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며칠에 한 번씩 팔지 못해서 상한 빵들을 검은색 봉투에 넣어 쓰레기와 함께 내다버리고는 했다. 예전에는 막내아들에게도 빵을 주지 않던 분이었는데.’

김연수의 자전적(自傳的) 단편 ‘뉴욕제과점’의 일부다. 작가 김연수는 실제로 ‘김천 역전 뉴욕제과점 막내아들’이었다. 

김원일의 자전적 장편 ‘마당 깊은 집’에서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가족의 생계를 잇는다. 김원일은 이 작품을 “나의 어머니의 바느질 이야기”라고 말하면서 어머니의 말씀을 추억했다. “일아! 내 눈 어두버져 바느질도 몬하게 되믄, 그때는 집안 장자인 니가 우리 식구 먹여 살리야 된데이.”

우리 역사에서 문학적 자서전이자 회고록의 백미로 손꼽히는 작품은 정조의 생모이며 사도세자의 빈,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閑中錄)’이다. 정사(正史)를 보조하는 사료적 가치도 지니지만 소설로 볼 수도 있을 만큼 생동감과 박진감이 있다. 역사학과 국문학이 공유하는 대표적인 텍스트다. 특히 1762년 7월 사도세자가 부왕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난 임오화변(壬午禍變)을 자세히 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페인의 작가이자 철학자 미겔 데 우나무노는 “모든 소설은 자서전”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바탕으로 “모든 소설은 자서전적이며 모든 자서전은 소설적 허구”라는 말도 생겼다. 이청준 소설 ‘자서전들 쓰십시다’에서 자서전 대필로 먹고사는 주인공이 이렇게 말한다. “늘 과거를 미화하고 과장하려는 사람의 습성 때문에 기술(記述)의 공정성을 잃기 쉽다는 게 자서전 집필의 일반적인 해로움입니다.”

그 해로움을 극복한 것으로 평가받는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은 자서전을 문학 장르로 확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루소는 과장이나 미화를 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표명했다. “나는 결코 전례가 없었고 앞으로도 모방할 사람이 없을 일을 구상하고 있다. 나와 같은 인간들에게 한 인간을 완전히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주려 하는데, 그 한 인간은 바로 나다.” 

자서전 쓰기 강좌와 교육 프로그램, 자서전 쓰기 대회와 공모전이 성황이다. “내 인생을 책으로 쓰면 대하소설이 될 것”이라는 사람도 많다. 대하소설 분량이든 단편 분량이든 숨김없이 솔직하게, 거짓이나 꾸밈없이 정직하게 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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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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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5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추경 정치현안 연계, 협치 부합하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이 정부가 국회에 제출안 추가경정예산안의 처리와 조선·해운 구조조정과 관련한 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사실상 연계하기로 했다. 야 3당은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기획재정위원회와 정무위원회에서 각각 이틀 동안 여는 것을 전제로 추경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국회에 검찰개혁위원회와 사드 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우선 추진한다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국정 발목 잡기’라는 정부·여당의 비난이 아니더라도 앞뒤가 크게 뒤바뀐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침체된 민생 경제의 활력 회복을 위한 과감하고 신속한 추경의 필요성을 먼저 제기한 것은 야당이다. 그런데 막상 추경안이 제출되자 다른 정치 현안의 처리를 반대급부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심각한 자가당착이다.

우리 경제는 지금 청년 일자리 확충이 기대보다 더딘 상황에서 조선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고용 여건은 더욱 악화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어느 때보다 서민 고통을 덜어주는 데 초점을 맞춘 추경은 신속히 집행돼야 효력을 발휘한다. 정부·여당은 추경안이 12일쯤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골든타임’은 놓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추경안을 받아든 야 3당은 정부 여당의 다급함을 정치 현안 관철에 철저히 활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야 3당 원내대표가 그제 만나 사실상 추경안 처리의 전제로 내세운 것은 앞선 요구에 그치지 않는다. 세 사람은 내년 이후 예산 편성에서 누리과정 대책과 세월호 특조위 활동 연장을 위한 원포인트 국회, 민노총 시위 과정의 경찰 폭력 청문회, 어버이연합 불법 지원 청문회 등 8개항에도 합의했다고 한다. 추경안을 처리할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는지 묻고 싶다.

야 3당 원내대표는 추경안과 정치 현안의 연계에 합의하고는 환히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추경안 처리가 미뤄진다면 돈만 쏟아붓고도 서민 경제 활력 회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때는 결코 웃을 수 없다는 것을 야당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11조 원 규모의 추경안은 민생 경제의 활력을 한꺼번에 일으켜 세우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그럴수록 실기(失期)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야는 제20대 국회 개막을 즈음해 한결같이 외쳤던 ‘협치의 정신’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야 3당은 적어도 추경안만큼은 볼모로 삼지 말아야 한다. 새누리당도 줄 것은 준다는 자세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2. 공직자의 비상장 주식 보유, 엄한 잣대 필요하다

진경준 검사장의 ‘120억 주식 대박 사건’ 이후 공직자의 비상장 주식 보유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곱지 않다. 서울신문 취재 결과 진 검사장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고위 공직자들이 비상장 주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의 1급 이상 고위공직자 721명 가운데 96명이 총 59억여원어치의 비상장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지난 3월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재산 내역을 전수조사한 결과다. 변윤성 한국석유공사 상임감사가 가장 많은 14억여원어치를 갖고 있었다. 이들 중엔 황찬현 감사원장,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 등도 포함돼 있다.

이들이 법을 위반하지 않은 이상 주식 보유 자체를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비상장 주식은 재산 신고 시 액면가 기준이기 때문에 사실상 축소신고 수단이 될 수 있다. 변 감사의 경우 보유 주식의 실제 가치가 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직무와 관련된 주식을 보유한 공직자는 고급 정보를 이용해 주식 가치를 높이려 시도할 수도 있다. 이번에 드러난 주식 보유 공직자 중에서도 일부는 직무 관련성이 의심된다.

이런 문제 때문에 미국에선 공직자 지명 시 ‘윤리동의서’에 서명하고, 3개월 이내에 업무와 관련된 보유 재산 처분이나 ‘직무회피’를 권고받는다. 이마저도 어려우면 백지신탁을 통해 처분을 맡기도록 하고 있다. 캐나다에선 공직자로 지명되면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국가 정책에 영향받는 재산은 매각 또는 백지신탁해야 한다. 직무 관련성이 없으면 주식을 보유할 수 있는 우리와 차이가 있다.

우리의 공직자윤리법도 백지신탁제도는 두고 있다. 직무와 관련된 보유 주식 가액이 3000만원을 초과하면 대상이 된다. 하지만 비상장 주식은 백지신탁하더라도 처분하기가 어려워 퇴직 시 고스란히 돌려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제도는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고위공직자의 비상장 주식 보유를 보다 엄격하게 보완할 필요가 있다. 재산 신고를 액면가가 아니라 실제 가치로 하도록 하고, 백지신탁한 재산은 수탁기관이 정보공개를 통해 반드시 매각도록 해야 한다. 이번에 밝혀진 주식 보유 고위공직자 중 직무 관련성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선 적절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언제든지 제2, 제3의 진 검사장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3. 中 ‘사드 보복’ 거두고 국제적 책임 다해야

중국 당국이 한국인의 상용비자 발급에 필요한 초청장 발급 대행 업무를 독점하던 자국 업체의 자격을 취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 파트너를 통해 정상적으로 초청장을 받아야 하는 등 앞으로 한국인의 중국 상용비자 발급 절차가 매우 번거롭게 됐다고 한다. 중국 측의 이번 조치가 우리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에 대응한 보복의 일환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경제 활동을 위한 한국인의 방중 문턱이 높아졌으니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잖아도 ‘사드 보복’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고, 한류 콘텐츠 방영 제한 등 흉흉한 소문도 퍼지고 있는 상황 아닌가.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를 필두로 중국의 관영매체들은 사드 배치에 대한 비난의 십자포화를 연일 퍼붓고 있다. 인민일보는 그제 사설격 필명칼럼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한국의 지도자는 나라 전체를 최악의 상황에 빠뜨리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해 (사드)문제를 처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신문은 박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을 비꼬기까지 했다. 합법을 가장한 치졸한 사드 보복 신호탄을 쏘더니 아예 노골적으로 주변국 지도자를 상대로 협박하는 꼴이다.

우리 정부가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사드 배치는 순전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자위적 조치다. 사드가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북한의 도발을 효율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면 우리는 주저 없이 도입할 수밖에 없다. 이런 주변국의 고충을 이해하기는커녕 위협받지도 않는 자국의 안보 이익을 내세우며 겁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입이 닳도록 ‘대국’(大國)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허언(虛言)에 불과했단 말인가.

우려했던 대로 중국과 러시아의 사드 ‘몽니’에 편승한 북한은 어제 또다시 노동미사일 2발을 발사하는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비웃듯 추가 도발에 몰두하고 있다. 어제 발사한 미사일 중 한 발은 1000㎞를 날아가 일본 해안에서 250㎞ 떨어진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떨어졌다. 북한 미사일이 일본 EEZ에 떨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은 북핵 및 미사일 위협이 이처럼 가시화됐는데도 사드 배치에 어깃장을 놓을 셈인가.

사드 배치를 부른 것은 북핵 및 미사일 위협이다. 북핵 및 미사일 위협만 사라진다면 사드는 배치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중국은 방어용에 불과한 사드에는 날을 세우고, 공격용인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오히려 감싸고 있다. 본말전도가 아닐 수 없다. 어제 긴급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중국 대표는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어떤 행동도 안 된다”는 하나 마나한 얘기만 했다고 한다. 중국이 진정으로 ‘책임 있는 대국’이라면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한의 도발을 절대 용인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중국이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책임을 다해야 할 때이다.

[동아일보]

4. 더민주, ‘면세자 48%이면 비정상’ 지적에 귀 기울여야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이 어제 “근로소득자 중 48%가 근로소득세를 납부하지 않는 것은 굉장히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며 “헌법에 납세의무가 있고, 소득이 있는 곳은 1원이라도 세금을 내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했다. 경제학 교수 출신인 최 의원은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의 ‘경제 브레인’으로 지난 총선 때 더민주당 경제공약을 진두지휘했다. 당 정책위 부의장인 그가 당내 세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면세자 축소를 주장했는데도 실제 개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은 더민주당 안이 지극히 ‘정치적’임을 의미한다. 

더민주당 개정안의 핵심은 부자 증세다. 현재는 과세표준 1억5000만 원 소득에 최고세율 38%를 적용하는데 더민주당은 연봉 5억 원 이상 과세표준을 신설해 세율 41%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상위 0.1%를 공격해 표를 얻겠다는 의도로 ‘징벌적 효과’는 있지만 증가 세수는 연 6000억 원에 불과하다. 조세 전문가들이 공평과세의 원칙으로 한결같이 강조하는 ‘과세 기반 확대’와도 거꾸로 가는 방향이다. 내년 대선을 의식해 면세자 축소 원칙을 포기한 더민주당이 앞으로도 표를 겨냥한 포퓰리즘 경제정책을 쏟아낼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더민주당의 전신인 민주당은 2013년 8월 정부가 근로자 연말정산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꿔 연봉 3450만 원 이상의 소득세 부담이 늘게 되자 “중산층 세금 폭탄”이라며 공격했다. ‘증세 논란’에 박근혜 대통령이 수정을 지시했고, 10월 재·보궐선거를 의식한 정부는 닷새 만에 ‘증세 기준선 연봉 5500만 원’을 발표했다. 2013년 32.5%이던 근로자 면세 비중이 이 바람에 2014년 48.1%로 치솟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10%포인트 높은 왜곡된 구조다. 

앞서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16년 세법 개정안에도 면세자 감축 방안은 없다. 저소득층에 대한 세금 경감은 필요하지만 이는 최 의원 말대로 ‘1만 원 세금을 내면 여기에 얼마를 더해 돌려주는’ 근로소득장려세제 등으로 보완하는 것이 조세정의에 맞다. 과세 형평을 외면하고 고소득자만 공격하는 ‘갈라치기 세법 전쟁’으로는 사회 분열만 조장할 공산이 크다.

[이데일리]

5. 독극물을 바다에 흘려버린 발전소들

이번에는 화력·원자력발전소가 유해물질 배출 혐의에 올랐다. 한국동서발전 소속 울산화력발전소가 2011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디메틸폴리실록산이 섞인 냉각수를 바다에 몰래 쏟아버린 사실이 적발된 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바다에 유해물질을 쏟아부은 발전소가 비단 울산화력발전소만은 아닐 것이라는 게 정부의 자체 판단이다. 결과적으로 해양 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됐을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바닷물을 냉각수로 활용하는 전국 모든 발전소에 대해 유해물질 방류 여부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게 된 배경이다. 화력·원자력발전소 외에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하는 복합발전소도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는 게 산업통상자원부의 발표다. 가습기 사건으로 국민들이 유해물질에 대해 민감해진 현실을 반영한다. 자칫 관심이 소홀한 틈을 노려 건강에 치명적인 위해가 끼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울산화력은 온배수의 거품을 없애기 위해 디메틸폴리실록산을 투여한 다음 바다에 방류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발전소가 해안에 위치한 만큼 바닷물을 끌어들여 발전설비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고 그 온배수를 다시 바다로 흘려보내게 된다. 온배수가 방출되면 바닷물과의 온도 차이로 인해 거품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거품 제거제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거품 제거제로 사용되는 디메틸폴리실록산이 인체에 노출될 경우 호흡기를 손상시키고 태아 생식능력까지 해칠 만큼 독성이 강하다는 게 문제다. 이처럼 치명적인 물질을 바다에 쏟아내는 것은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주변 어민 생업에 타격을 미치게 된다. 명백한 범죄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사태에 처해서도 당사자인 동서발전은 핑계에만 급급하다. 연매출 4조원에 직원 2000명이 넘는 울산 지역의 대표 공기업으로서 도덕불감증이 안타까울 뿐이다. 무엇보다 공익성을 추구해야 하는 공기업 존립 근거에도 어긋나는 처사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양 오염수 배출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통해 불법행위를 막고 해양 생태계 오염 방지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유해물질 분류 및 관리·감독 규정도 시급히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번 조사 결과를 유심히 지켜보고자 한다.

[중앙일보]

6. 청년수당 충돌 서울시와 복지부 볼썽사납다

청년수당 현금 지급을 둘러싼 서울시와 보건복지부의 정면충돌이 볼썽사납다. 청년 일자리 창출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따로 있을 수 없는데 서로 갈등만 키우더니 급기야 법정 싸움까지 벌이게 됐다.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악인 10.3%까지 치솟은 마당에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공했다. 박 시장은 지난해부터 ‘청년활동지원사업’이란 명칭의 청년수당 사업을 밀어붙였다. 서울에 1년 이상 거주한 만 19~29세 청년 가운데 주 근무시간이 30시간 미만인 이들을 뽑아 최장 6개월간 월 50만원을 구직 활동비로 주는 내용이다. 선정·지급 방식과 효과도 불명확한 전형적인 포퓰리즘 행정이란 지적과 새로운 복지실험이라는 평가가 엇갈렸다.

현행 사회보장기본법(26조)에는 자치단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변경할 때는 정부와 사전 협의하도록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서울시의 일방 독주에 제동을 걸고, 그간 수차례 협의와 공방을 벌였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 시장이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정진엽 복지부 장관 등과 설전을 벌인 뒤 하루 만인 3일 기습적으로 사업을 단행했다. 선정된 3000명 중 약정서에 동의한 2831명에게 첫 달 활동비 50만원씩을 지급한 것이다. 야권의 대선 주자 행보에 나선 박 시장이 정부와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운 모양새다.

그러자 복지부가 강경하게 나왔다. 어제 사업 직권취소(무효) 처분을 내리고, 이미 지급한 14억1550만원도 모두 환수하라고 전격 통보했다. 이에 서울시가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고 대법원에 제소하겠다며 반발해 청년수당은 법의 도마에 오르게 됐다. 구직을 돕기는커녕 돈을 받았거나 신청한 젊은이를 울리는 ‘정치·이념적 탈선’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사실 서울시 청년수당은 중앙·지방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새 복지정책을 짜는 좋은 선례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청년을 볼모로 한 박 시장의 정치적 행보와 정부의 강경 대응이 엉켜 구직자들에게 상심만 안겨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정부와 박 시장은 반성하고 조속히 후유증 최소화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7. 외국서 인정 한국형 원격의료 국내선 안 되는 현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충남 서산효담요양원을 찾아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같이 병원에 다니기 힘든 분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원격의료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현재 시범사업 중인 원격의료 서비스는 참여자 80% 이상이 만족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외국에서도 한국형 원격의료 서비스는 높은 평가를 받아 페루, 브라질, 콜롬비아, 볼리비아, 파라과이, 중국, 필리핀, 몽골 등 많은 나라들이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최근에는 르완다에 원격의료 시스템을 수출하는 양해각서(MOU)가 체결되기도 했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세계 원격의료 시장은 매년 큰 폭으로 성장해 2020년에는 43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원격의료를 위한 통신과 장비, 소프트웨어 등 관련 산업까지 합치면 엄청난 부가가치와 일자리가 생긴다. 세계 각국이 원격의료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미국은 1997년 원격의료 서비스를 도입했다. 일본도 비슷한 시기에 원격진료를 시작해 그 범위를 확대하고 있으며 현재 스마트폰을 통해 원격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까지 선보였다. 

중국도 2013년 원격의료를 허용한 바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첨단 원격의료 시스템을 수출하고 있음에도 정작 국내에서는 의료계의 반발로 합법화되지 못하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기간 만료로 자동 폐기됐고 20대 국회에서 다시 제출됐는데 의료계와 야당의 반대로 통과가 불투명하다.

의료계는 원격의료를 허용하면 오진 위험성이 높아지고 동네 병원의 생존권을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기득권을 지키려는 옹색한 논리에 불과하다. 개정안은 서비스 대상을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질환자와 오지 거주자, 거동이 어려운 노인·장애인 등으로 국한하고 원격의료 대상도 동네 의원으로 명시하고 있다. 

원격의료는 의사와 환자가 더 자주 볼 수 있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오진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 원격의료 서비스는 세계적인 추세다. 수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성장 산업인 만큼 조속히 실시될 수 있도록 여야와 관련 업계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8. 한류 제재·비자 강화 中사드 몽니 외교로 맞서야

한반도 내 주한 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다방면에 걸친 딴지 걸기가 거의 몽니 부리는 수준이다. 주한 중국대사관이 한국인에 대한 상용 복수비자 발급을 돌연 중단한 것은 업무를 위임한 대행사 자격 취소 형태를 띠지만 공문도 안 보낸 채 이뤄진 갑작스러운 조치인 데다 향후 계획 언급도 없어 명백하게 정무적으로 내려진 결정으로 해석된다. KOTRA나 중국 상대 무역업계 쪽에서도 지난달 8일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 발표 후 음으로 양으로 조여지는 중국 측의 비관세 장벽이 늘고 있다고 얘기한다.

문화교류에서 한류에 대한 규제는 확연하다. 한·중 양국에서 동시 방송 중인 KBS 드라마 주연 배우들의 팬미팅이 6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연기됐다. 중국 측 행사 주최사는 '불가항력적 이유'라고만 얘기하고 있어 정부 차원의 제동 아니냐는 추측만 키우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 국제적인 요인을 이유로 향후 일정 기간 한국 연예인의 중국 내 활동을 규제할 방침이라고 보도하며 바람을 잡고 있다. 

중국 당국은 공식 입장을 확인하지 않는 데다 우리 외교부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만 되뇌이고 있어 불확실성만 크다. 그 바람에 중국 관련 한류 콘텐츠를 제작하는 연예기획사 주가가 출렁이는가 하면 화장품과 다른 연관 업체들도 긴장하고 있으니 직간접적인 파장이 커지는 중이다.

중국은 인민일보에서 4차례 걸친 사설로 박근혜 대통령까지 언급하며 사드 배치에 강도 높게 비판 공세를 펴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로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인민일보가 이 정도로 나선 데다 한류 제재나 비자 발급 강화 등 일련의 조치를 보면 사드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그런데도 외교부는 공식 논평이나 발표는 안 한 채 유감 표명에만 그치고 있다. 

하지만 다음달 4~5일 중국 항저우 G20 정상회의가 잡혀 있는 데다 그 직전 박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으니 사드 설득을 위한 외교전이 불가피하다. 우리도 군사주권 차원의 사드 필요성을 밝히는 대중 외교 총력전을 강력하게 펼쳐야 한다. 필요하다면 박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직접 만나 정상외교로 일을 푸는 것도 방법이다.
 

[매일신문]

9​. 안동호 동물 수난이 주는 경고, 예사로이 넘길 일 아니다
올 들어 경북야생동물구조센터에 접수된 야생동물의 폐사체 발견 및 구조신고가 230여 건에 이르렀다. 전체 신고 가운데 백로와 왜가리 등 조류만도 150여 건으로 절반을 넘었다. 특히 안동호를 낀 안동시 와룡면과 도산면 등지의 신고는 40여 건이고, 30여 건이 조류여서 경북에서 가장 많았다. 안동호 주변 야생동물 중에서 조류 생태계 문제가 심상찮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문제는 먹이 부족으로 보인다. 구조센터에 따르면 이들 야생 동물은 대체로 먹이를 구하지 못한 데 따른 영양실조나 탈진으로 폐사했다. 아니면 거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구조의 손길이 닿았다. 안동호 주변의 사정은 경북 어느 곳보다 심하다. 과거와 달리 야생동물의 먹이사슬 파괴와 먹이 수급 불균형으로 더 이상 야생동물의 터전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야생동물 중 조류가 직면한 상황은 더욱 위험해 보인다. 안동호 주변에서 신고 접수된 40여 건 가운데 고라니 등과 같은 포유류는 10여 건에 그쳤다. 나머지 대부분은 백로와 왜가리 등의 조류였다. 이들 조류는 주로 물고기와 벌레 등을 먹이로 하는데 낙동강과 안동호 주변은 새들에게는 좋은 먹이 서식처다. 하지만 이번 일로 안동호 주변의 자연환경 조건이 야생동물 중에서도 특히 조류에게는 어느 때보다 나빠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해졌다. 

이런 먹이사슬의 파괴 원인으로 낙동강 상류의 오염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낙동강 상류에서 붕어와 잉어 등 물고기가 집단폐사한 일이 여러 차례 빚어졌다. 새들이 오염된 하천의 물고기나 집단폐사한 물고기를 먹이로 할 경우 그 피해는 자명하다. 게다가 낙동강 상류 석포제련소 같은 시설로 인한 하천오염을 의심케 하는 흔적은 여럿이다. 새들의 폐사 사례는 또 다른 증언과 다름없다. 

안동호와 낙동강 상류의 환경 문제를 그냥 둘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 동물과 새, 물고기의 잇따른 폐사 위기는 바로 사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경북도는 환경 당국 등과 함께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늦을수록 3차 피해는 사람, 특히 경북도민의 몫이라는 자연의 경고를 잊으면 안 된다.

10. 권영진 대구시장, 제대로 된 신공항 만드는데 정치 생명 걸어야

K2(공군기지)와 통합이전하는 대구공항 규모에 대해 대구시와 정부의 입장이 아주 다른 것 같다. 대구시는 증가하는 항공 수요에 대비해 현 대구공항보다 규모를 키운 거점 공항 건립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지금과 비슷한 규모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대구시가 신공항 건설에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현재와 같은 시골 공항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부의 입장은 국방부가 지난달 28일 발주한 ‘통합이전 후보지 조사 연구용역’ 제안 요청서를 통해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이전하는 민간공항의 부지와 주요 시설(여객터미널, 계류장, 주차장 등)을 현재와 같은 규모로 설정해 연구용역을 맡긴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확장성이나 발전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공항을 이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대구공항의 여객터미널 시설 용량은 연간 375만 명에 불과해 2040년에 예상되는 연간 수송 인원 500만 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의 활주로 길이(2천750m)와 비슷하게 건설하면 중`장거리 노선 취항이 불가능해져 공항 이전 효과는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신공항 규모에 대해 낙담할 상황은 아니다. 정부가 국방부의 용역 발주를 입지 선정을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는 만큼, 신공항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정부와의 협상력을 발휘해야 할 대구시의 자세다. 과거처럼 안이하고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거나 정부에 질질 끌려가선 안 된다. 대구시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시민의 염원을 해결할 책임이 있다. 

권영진 시장은 제대로 된 신공항 건설을 위해 정치 생명을 걸 필요가 있다. 권 시장은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이 일부 있는 만큼, 신공항 규모를 키우는데 모든 것을 내던질 각오를 해야 한다. 대구에서 공항 문제만한 관심사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시정의 최우선 현안을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면 시민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대구의 100년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마음으로 거점 공항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매일춘추] 우는 여자

열기를 떠도는 미립자에게 내어준 거리는 온통 속수무책이다. 숨조차 가누기 힘든 날씨에 설상가상 발을 옥죄는 하이힐 때문에 가야 할 목적지는 뒷전이고 어디든지 자리가 보이면 앉을 궁리를 했다. 다행히 그늘에 있는 벤치가 눈에 띄었다. 혼자 멀거니 앉아 있으면 멋쩍을 텐데 모시옷을 차려입은 중후한 여인이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있어 안심하고 다가갔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앉는 것이 망설여졌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실례인 줄 알지만 더 이상 걷거나 서 있을 수가 없는 처지여서 울음이 깔린 자리를 뭉개고 앉았다. 그 여인에게 우는 까닭을 물을 수도 없고 위로하기도 난감하나 최소한 예의가 있는 행동이라면 슬픔의 종류는 다르겠지만 내게 슬픔을 주었던 일을 떠올리며 눈빛으로 동조해 주는 일일 것이다.

옆자리에 앉자마자 들키지 않게 그녀가 왜 우는 것일까 이유를 추측해 보았다. 차림새나 생김새를 보면 아름답게 나이를 먹고 부유해 보여 울 일이 없을 것 같은데 곁에 사람이 다가와 앉는데도 불구하고 흐느끼는 것을 보면 체면 따위는 아랑곳없는 깊은 슬픔이 있나 보다. 문득 그녀가 부러워졌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고 슬픔에 푹 빠져 눈물샘에서 연신 길어 올리는 그녀의 눈물은 삶의 진정성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눈물이 희박해진 나를 알아차렸다. 그래서 내 삶이 행복한 일만 계속되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기쁨과 얼마나 많은 슬픔이 대기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리석게도 그동안 감정을 지나치게 억눌러 기쁜 일은 들뜨지 않게 기뻐하고, 슬픈 일에는 울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방습제로 도포해 버렸다.

나도 때로 미어지게 가슴이 아프고 슬플 때 그녀처럼 눈물을 펑펑 흘려버리고 싶다. 좁은 어깨를 들썩이며 흘린 눈물이 드넓은 땅을 적시지는 못할 것이다. 지나가던 바람이 금세 말려버릴 것이고 때로는 빗물이 은닉해 줄 것이니 누구의 눈에 띌 리 만무하다.

몇 해 전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에서 아프리카 수단의 아이들이 처절하게 열악한 환경에 살면서도 눈물 흘리는 법을 모르고 살다가 삶에 희망과 깨달음을 준 이태석 신부가 돌아가셨을 때 슬픔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울 때까지 울어 눈물의 끝을 본 사람이라면 눈물에 닦인 뜨거운 삶의 길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울보 시인 박용래는 눈물이 삶의 충실한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 더위에 우는 일이라면 회색빛 구름 뭉치처럼 무겁고 우울한 일이다. 하지만 그 구름을 한 칼의 번개로 관통하여 열병을 앓고 있는 도시에 소나기를 퍼붓듯 내면에 쌓인 찌꺼기를 씻어내는 눈물이라면 얼마든지 속 시원히 울어도 될 만하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 영화속 맥아더와 ‘생얼’/구본영 논설고문

이재한 감독의 ‘인천상륙작전’이 흥행몰이 중이다.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 사령관이 지휘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이 영화에 대해 상당수 평론가들이 ‘국뽕(애국심을 비하하는 표현) 영화’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관객들은 ‘의외로’ 호평하면서 벌써 4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단다.


어느 평론가는 “맥아더를 존경받아 마땅한 대상으로만 그린 연출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한 네티즌은 “맥아더보다는 6·25 전쟁 중 우리의 숨겨진 영웅들을 보여주는 영화”라며 반박했다. ‘괜히 우리를 가르치려 하지 말라’는 투다. 관객과 평론가들의 시선은 엇갈리지만, 주연급 조연인 맥아더의 존재가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 것은 사실일 듯싶다. 맥아더로 분한 할리우드 스타 리엄 니슨의 싱크로율은 꽤 높아 보였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삐딱하게 쓴 모자와 옥수숫대 파이프, 그리고 짙은 선글라스까지….

‘맥아더 영화’가 처음 나온 건 아니다. 명우 로런스 올리비에가 출연한 ‘오! 인천’이 1981년에 개봉됐고,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1977년 작 ‘맥아더’도 있다. 조지 마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등 그와 동시대를 산 미국 전쟁 영웅 중 영화 주연으로 제작된 인물은 맥아더뿐이었다. 아마 맥아더가 배우 못잖게 ‘포토제닉’한 데다 정치적 쇼맨십이 뛰어난 캐릭터였기 때문일 게다. 군인으로서 그의 부하였다가 나중에 대통령이 된 아이젠하워는 맥아더에 대해서 묻자 “나는 7년 동안 그의 휘하에서 연기를 배웠다”고 토로했단다.

사실 맥아더는 생전에도, 사후에도 늘 논쟁을 몰고 다니는 ‘문제적 인물’이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나 해리 S 트루먼 등 미 대통령들이 그의 능력은 인정했지만, 오만한 스타일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렇지만 그는 부하들에게는 매우 다정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일본의 항복 이후 연합군 사령관 집무실에서 뒷짐을 진 채 차렷 자세의 일왕을 접견해 ‘천황의 인간선언’이라는, 일본 국민들에게 굴욕적 장면을 연출했다. 그러나 전범들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했다는 평판도 얻었다.

그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유엔군에게 불리해지자 6·25 전쟁을 조기에 끝내기 위해 만주 폭격론을 제기했다. 세계 대전으로 확전을 우려한 트루먼 당시 대통령에게 공공연히 반기를 들면서다. 그가 호전적이란 비난을 산 배경이다. 격분한 트루먼이 국방장관이었던 마셜에게 “그 개자식을 당장 해임시키겠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는 전장이 한반도로 고착돼 한국인들의 희생이 집중되는 상황을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

그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50년 넘어 국산 영화에서 부활한 요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중국이 우리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는 탓일까.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맥아더의 구상대로 유엔군이 6·25전쟁을 끝냈더라면”이라는 가정을 해보게 된다.


3. [이데일리][목멱칼럼] 연예계는 '무고 광화국'

배우 박유천 성폭행 피소 사건이 결국 무고(誣告)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 다음엔 배우 이민기 성폭행 피소 뉴스가 터졌는데 이 사건도 무혐의로 정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자 처음엔 연예인들의 성(性)윤리를 개탄하던 여론이 성범죄 무고를 남발하는 여성에 대한 규탄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여론이 반전될 즈음에 이진욱이 성폭행 혐의로 피소됐다. 네티즌은 이번엔 처음부터 무고를 의심했다. 박유천 사건에서 당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피해 여성은 자신이 꽃뱀이 아니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파파라치 매체에서 여성의 상처사진을 공개하자 사람들은 ‘이번엔 진짜 성폭행인가’라고 이진욱을 의심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결국 무고로 결론이 나는 분위기다. 

세 번이나 연속해서 연예인 성폭행 사건이 무혐의로 정리되는 것을 보면서 무고에 대한 일반인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박유천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 한류 톱스타였던 그가 과연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이민기는 이번 일로 출연이 유력시됐던 드라마 캐스팅에서 제외됐다. 이진욱은 이미 촬영까지 끝마친 CF가 날아가 멜로 스타 자리를 회복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아니면 말고식’ 무고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잇따른 무고에 따른 피해자는 연예인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정말로 보호를 받아야 할 성범죄 피해 여성들이 모두 피해자가 될 상황이다. 여성이 성범죄 피해를 주장했을 때 대중이 ‘또 꽃뱀인가’라는 생각부터 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한 대중의 의심이 성범죄 피해 여성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것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성범죄 피해 여성들에게 꼬치꼬치 물어보면서 자신의 피해를 정확히 증명하라고 요구하게 될 것이고 조금이라도 미흡하면 성범죄 피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정말 보호 받아야 할 성범죄 피해자가 보호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대중의 따가운 의심이 두려워 성범죄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공론화하길 꺼리게 될 수도 있다. 

이번에 잇따른 성폭행 고소-무고 사건에서 ‘성범죄는 은밀하게 일어나는 범죄이기 때문에 객관적 증거 없이 피해자 진술만으로도 증명될 수 있다’며 사건 초기부터 일방적으로 여성의 편을 든 수많은 방송 패널들도 타격을 입었다. 앞으론 성범죄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을 쉽게 두둔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무고죄 여성들은 정말 엄청난 일을 저지른 셈이다. 

문제는 무고가 너무 쉽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검경에 접수된 무고 사건이 2010년 3332건에서 2014년 4859건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일단 무고가 그리 큰 죄가 아니라는 인식이 원인이다. 거기에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말로는 ‘10년 이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는 중범죄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가벼운 처벌에 그칠 때가 많다. 2009년 7월부터 2010년 말까지 무고죄 유죄 사건 중 65.1%가 집행유예, 21.5%가 벌금형이었다. 누군가를 고소했다가 무혐의가 됐지만 아예 무고죄로 걸리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러니 아니면말고식 무고가 끊이지 않는다. 

무고죄는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 악질적이고 반사회적 범죄다. 당연히 엄벌에 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성폭행 무고는 성폭행 유죄로 받을 처벌보다 훨씬 강력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연예인은 구설수 자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무고에 대해 돈으로 합의할 가능성이 높고 성범죄는 둘 사이에 은밀하게 벌어지기 때문에 객관적인 증거가 드물어 무고로 진흙탕 싸움을 만들기 좋다. 이래서 연예인과 성범죄 관련된 무고가 양산된다. 엄한 처벌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고가 창궐하는 무고공화국에서 살게 될지 모른다.


4. [동아일보][허문명의 프리킥]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저널리스트

도쿄의 7월도 무덥고 습했지만 하늘은 눈부시게 파랬다. 서울을 떠날 때부터 슬픈 마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일본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비행기를 탄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일반인들에겐 생소하지만 한일 언론인들에겐 익숙한 이름이다. 그와의 인연은 3년 전 오피니언팀장으로 그의 칼럼을 싣는 편집자로서 맺었다. 같은 업(業)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고인의 투철한 저널리스트적 사명감과 안목, 용기에 매료됐다. 

그가 베이징에서 유명을 달리한 게 4월 말이니 석 달이 지났다. 지난달 29일 아사히신문사 주최로 마련된 추도식장은 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동료 선후배들은 물론이고 전직 총리 등 일본 정관계 주요 인사에 한국에서 날아온 전직 주일 대사들과 언론인까지 섞인 행사장은 또 다른 뜨거운 한일 교류의 현장이었다.


하늘나라에서 “나야말로 가장 행복했던 저널리스트였다”고 말하는 고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얀 국화꽃에 둘러싸인 환한 웃음의 영정 사진을 보고 있자니 인생무상이 주는 허무감이 사라졌다. 몸은 비록 가고 없지만 그의 영혼이 뿌리고 간 씨앗이 한국과 일본의 단단한 우정으로 꽃피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인을 키운 아사히신문사라는 매체의 힘도 대단해 보였지만 기자 한 사람이 신문사를 또 얼마나 빛나게 할 수 있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현장을 누비던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 기자들이 “후배들에게는 더이상 갈등으로만 얼룩지는 한일 관계를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맹세와 다짐을 했다고 들었다. 그 정신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두 신문사의 유대가 한일 교류의 발판이 되고 있었다. 선배들의 노고에 새삼 고개가 숙여졌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담화의 주인공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은 추도사에서 “고인처럼 두 번이나 한국에 유학을 하면서 한글로 강의할 정도로 한국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고인은 단순한 ‘지한파’가 아니었다. 아베 내각의 군국주의 부활을 일관되게 반대했으며 전시(戰時) 일본 언론들이 “전리품을 더 따내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 결국 ‘한국병합’이나 ‘대륙침공’에 탄력을 주었다면서,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을 부끄러워했던 양심적 지식인이었다. 일본 극우들은 매일같이 신문사 앞에 가두 선전차를 세워놓고 “국적(國賊)” “매국노”라 외쳐댔고 ‘와카미야는 할복하라’란 단체까지 생기는 바람에 고인 집 앞에 경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이렇게 위험한 삶을 살았지만 그는 수줍음이 많고 겸손했으며 유머가 가득했다. 43년간 일했던 직장에서 은퇴한 후에도 배낭 하나 메고 서울 도쿄 베이징을 오가며 취재수첩을 놓지 않았다. 세상을 떠나기 3일 전 “서울에서 곧 다시 만나자”며 헤어졌던 저녁 자리가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그가 묵었던 베이징 호텔 책상에는 다음 날 발표할 원고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생애 마지막이 되어 버린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일중한(日中韓)이 대립하거나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는 거기에만 눈길을 주지 않고 ‘유대’에도 눈길을 주고 있다. 환경문제를 시작으로 북핵문제 등 공통의 고민도 많다… 3국 사이에 국적을 초월한 신문을 만드는 꿈을 꾸고 있다.” 

북한 미사일이 일본 코앞에 떨어진 그제, 그의 꿈이 단지 꿈으로만 끝나지 않게 일본의 양심적 저널리스트들과 함께 동북아 평화를 위해 고인이 걸었던 길을 이어받아야겠다고 감히 다짐해 보았다.


5. [중앙일보][중앙시평] 제주를 가라, 제주에서 배우라

인류사를 묵상하면 할수록 훗날 세계를 이끄는 주요 사상과 종교는 대부분 문명과 문명 사이의 변경지역·경계(境界)국가·교량국가·전방국가에서 탄생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을 고리로 세계가 연결되고, 그들을 넘어야 경계 저편으로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피해는 늘 세계에서 가장 컸다. 자신들의 고난을 넘으려는 고투 속에 그들은 마침내 혼융과 통합, 용서와 화해, 평화와 생명을 향한 세계 보편의 대실천과 대사유를 빚어낸다. 변경이 곧 중심인 까닭이다.

올해 제주도는 도 승격 70주년, 특별자치도 실시 10주년을 맞았다. 2년 후에는 한국전쟁을 제외하고는 최대 인명피해를 기록한 제주4·3사건 70주년을 맞는다. 군부정권 시절 제주4·3을 공부하러 처음 찾은 이래 자주 방문하는 제주는 이제 용서·화해·상생의 세계 최고 배움터로 다가온다. 필자는 지금 특별한 행사에 참여하려 제주에 머무르고 있다.

처음 제주를 찾았을 때 돌·바람·여자가 많은 삼다도는 한과 가위눌림과 침묵의 삼다도로 변해 있었다. 4·3광풍으로 인한 시체·피·눈물의 삼다 때문이었다. 인간사회에 정말 이런 비극이 있을 수 있는가? 인간으로서 차마 들을 수 없는 참상이었다. 제주4·3은 (그리고 한국전쟁은) 세계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갈라지는 세계 분단의 과정에서 발생한 경계국가 한국의 대비극이었다. 특히 세계 분단과 한국 분단 과정에서 제주는 중앙에서 가장 먼 이중경계 지역이었다.

공포와 질곡으로 재생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제주는 오늘날 전혀 다른 삼다도로 변모되고 있다. 용서와 화해와 상생(생명)의 삼다도를 말한다. 민주화와 탈냉전 이후 제주의 자기극복 과정은 인간정신의 대비약과 대도약이었다. 용서와 화해, 해원과 상생의 제주는 4·3의 충격 못지않은 인간영혼의 가장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4·3으로 인해 마을 이름 자체가 사라질 정도로 절대비극을 체험했던 하귀리는 2003년 영모원(英慕園) 위령단을 설립해 애국절사 영현비(英顯碑), 호국영령 충의비, 4·3희생자 위령비를 한 곳에 건립했다. 각각 항일인사, 전몰인사, 4·3희생자 영령들을 모신 것이다. 건립의 마음과 과정은 마을의 정체성 회복과 마음화해, 역사통합의 과정 자체였다. 특별히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절대용서의 비문 앞에선 세계 종교와 사상의 근본 가르침인 사랑과 관용, 치유와 회복을 ‘현실에서’ 체험하며 무릎 꿇는다.

영모원은 서로 다른 죽음을 표상하는 명부와 영혼들을 한 곳에 모셔서 마침내 유공과 희생, 가해와 피해를 함께 기리겠다는, 죽음의 대통합을 통한 삶의 대화해의 절정이다. 매년 치르는 합동위령제는 경이적인 하나됨이다. 그 시각 그곳에서 과거의 삶과 죽음, 원한과 적의는 마침내 후대들에 의해 한 영혼이 된다.

지난 2일의 제주4·3희생자 유족회와 제주경우회(警友會)의 화해·상생 공동추모 행사는 놀라움 자체였다. 당일 모든 행사를 두 단체와 동행하며 필자는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뜨며 이 장면이 실제 현실임을 확인해야 할 만큼 놀랍고 놀라웠다. 4·3문제를 둘러싸고 가장 반목과 갈등이 심했던, 전직 경찰 조직과 희생자 유족 조직은 3년 전 ‘화해·상생 선언’ 이래 매년 충혼묘지와 평화공원을 공동참배·공동헌화·공동분향하고 있다. 우리는 묘지에의 참배와 분향과 헌화의 깊은 뜻을 잘 알고 있다. 평화공원과 충혼묘지는 이제 애국·용서·화해·상생의 공동 상징이 되었다. 이들은 한국과 해외의 충혼과 위령 시설도 함께 참배한다. 하여 제주경우회는 화해·상생 노력으로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이중변경 지역이었던 제주의 세계 중심으로의 진입, 즉 전체 제주와 영모원과 유족회-경우회의 용서·화해·상생·평화의 보편 경로는 한국과 세계에 보고·교육되어야 한다. 세계 어디에서도 아직 대비극의 상호 가해와 피해, 진압과 저항, 민과 관이 하나가 된 곳은 거의 없다. 그 점에서 제주인들은 지금 한국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성직자요 철학자이며, 시인이고 교육자들이다.

한국과 세계가 이념 대결의 가장 큰 희생자들이 써 가고 있는 대용서와 화해, 대평화와 상생의 실제 여정으로부터 배워 끝내 제주가 세계 모델과 세계 보편으로 상승되길 소망한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 특히 북한·일본·중국·세계의 지도자들이 제주 정신과 제주 모델을 깊이 배우기를 호소한다.

제주민들과 같은 세계 선각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희망이 있고 한걸음씩 발전한다. 세계 화해와 평화 정신을 앞서 실천하고 있는 제주민들에게 세계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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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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