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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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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뜨겁지만 미흡했던 대선 선거운동

제19대 대선 선거운동이 오늘 저녁 자정으로 모두 막을 내린다.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사태에 따라 실시되는 조기 대선이 마지막 결승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후보자 등록이 끝나고 지난달 17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지만 이미 국회에서 탄핵이 거론되고 촛불시위가 이어지면서부터 사실상 선거 국면에 돌입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드디어 내일 선거가 실시되고, 모레는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새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다.

선거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주요 후보들 사이에 치열하게 물고 물리는 선거 판세는 막판까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시종 앞서 온 상황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역전 각축전이 시도되는 중이다. 막판에 터져 나온 바른정당 의원들의 집단탈당 논란이 보수성향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유권자들의 호응도 만만치 않다. 지난 4~5일 이틀 동안 실시된 사전투표 투표율이 무려 26.06%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107만 표가 이미 투표를 마친 셈이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대통령을 뽑기 위해 미리 한 표를 행사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라면 이번 투표율이 80%를 훌쩍 넘어설 가능성도 충분하다.



문제는 후보자들에 대한 인물·공약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느냐 하는 점이다. 주요 후보들이 참석한 가운데 모두 6차례에 걸쳐 TV토론이 진행됐지만 세부 검증이 이뤄지기에는 한계가 없지 않았다. 선거 막판까지 후보들에 대한 온갖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것이 그런 때문이다. 여기에 ‘투표용지 조작설’ 등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가짜뉴스까지 나돌고 있다. 열기는 뜨겁지만 올바른 선택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투표가 사분오열 찢어져 사표(死票)가 대거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만약 30~40%의 득표율로 당선자가 결정된다면 향후 국정운영에서 구심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는 결선투표제 도입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을 떠나 유권자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경향신문]

2. 조기 대선전, 성과 있었지만 과제도 많이 남겼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에 실시된 19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오늘로 끝난다. 이번 대선은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을 심판한 시민의 열기가 유지되면서 큰 무리없이 치러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심판론을 희석하는 개헌론과 특정인을 반대하기 위한 후보단일화는 힘을 얻지 못했다. 종북이니 주적이니 하는 색깔론도 먹히지 않았다. 촛불집회를 통해 각성한 시민들이 일부 정치집단의 구태에 놀아나지 않은 결과다.



시민들의 높은 관심 속에 6차례의 TV토론을 통해 후보의 자질과 정책을 검증하는 기회도 가졌다. 국정 현안에 대한 후보들의 이해 수준과 관점이 유권자들의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상대적으로 약세인 후보가 토론을 통해 선전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TV토론이 선거전을 진일보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유권자의 4분의 1이 사전투표에 참여하면서 촛불혁명을 정치 현실에 투영하려는 의지도 보였다. 

하지만 부정적 현상도 있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정책선거를 구현하지 못한 점이다. 국가 비전과 심화하는 양극화에 대한 대책, 그리고 이를 둘러싼 후보 간 토론이 어느 때보다 절실했으나 이런 의제들은 공약으로 내실 있게 제시되지 못했다.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 난무했다.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에도 분명한 재원 마련 방안이 없었다. 재벌·언론·정치 개혁 논의도 구체성을 띠지 못했다. 후보들이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기는 했지만 그에 관한 토론 대신 도덕성 검증을 빙자한 네거티브 선거전에 몰두했다. 

여론조사가 선거전을 지배한 것도 큰 문제였다. 참고사항에 그쳐야 할 후보 지지율에 관한 여론조사가 언론의 경마식 보도와 맞물리면서 선거전을 주도하고 정당 간 갈등을 부추겼다. 선거전의 주요 통로로 부상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기능도 긍정·부정적 평가가 교차한다. SNS 선거운동은 정당과 유권자들 간 쌍방향 소통을 유도하기도 했지만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통로로 기능하는 등 네거티브 선거전에 이용되는 단점도 노출했다.

이번 선거에서 크게 희석된 지역·이념 대결이 향후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명분 없는 개헌론과 후보 단일화를 차단한 민심이 정치권의 퇴행을 좌시하지 않을 것만은 분명하다. 각성된 시민의식은 정치권의 더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여론조사 정치, 네거티브 선거전을 넘어 정책선거와 정당정치를 강화하는 풍토를 확립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선거법도 개정해 여론조사 공표 제한 및 공약 비교 평가 금지를 없애고 18세 투표,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조선일보]

3. '미세 먼지' 새 정부 최우선 과제 돼야

중국 황사 영향으로 지난 주말 전국의 미세 먼지(입자 크기 10㎛ 미만) 농도가 크게 올라 전국 대부분 지역에 주의보가 내려졌다. 전국 지도에 나타난 빨간색 '매우 나쁨' 표시가 사람들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경기 안산은 6일 오후 한때 건강한 성인도 실외 활동을 피해야 하는 '매우 나쁨' 수준의 4배를 넘었다.


미세 먼지가 건강을 해치고 초미세 먼지는 암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안감은 크게 높아지고 있다. "도망갈 곳도 없다"는 비명이 나온다. "봄이 없어졌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운동회를 하는 사진이 시민들을 기막히게 한다. 공기청정기는 물론이고 한 번 쓰고 버려야 하는 마스크 값도 서민들에겐 작지 않은 부담으로 등장했다. 이제 미세 먼지 문제는 환경문제 중의 하나가 아니다. 온 국민이 위협을 피부로 느끼게 된 국가 최대 현안의 하나가 됐다.

미세 먼지 오염의 일정 부분은 중국 탓이다. 특히 황사가 그렇다. 그러나 미세 먼지의 상당 부분은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할 일만 제대로 해도 공기는 달라진다. 작년에 정부가 노후 경유차 수도권 운행 제한, 친환경차 보급 확대 방안 등을 특단의 대책이라고 내놓았지만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국민은 거의 없다.

대선 후보 대부분이 미세 먼지 대책을 '10대 공약'에 처음으로 포함시켰다. 그러나 듣던 얘기의 반복이거나 실현성이 떨어지는 내용이 많아 믿음이 가지 않는다. 각 후보는 석탄 발전 감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원전도 줄인다고 한다. 결국 이도 저도 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은 미세 먼지 때문에 아우성인데 선거 때만 넘겨보자는 식이다.

후보들은 미세 먼지를 한·중 정상급 의제로 격상(문재인), 중국과 환경 외교 강화(안철수), 한·중·일 정상회의체 운영(유승민) 등으로 문제를 풀겠다고 한다. 다 좋은 얘기다. 그러나 중국에 문제를 제기하려면 중국이 미세 먼지 배출원이라는 과학적 데이터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연구 자료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선 중국이 들어줄 리 만무하다.

새 정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연구 자료를 축적해 중국 환경오염이 미치는 피해에 대해 계속해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정부 외에 학계, 환경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중국도 공기 오염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으니 공동 연구가 가능하다. 국내적으론 가격이 너무 싼 전기값을 올려 발전소 가동을 줄여야 한다. 도심 경유차 운행과 노후 경유차 문제는 근본적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전문가 중에는 노후 경유차만 줄여도 공기가 달라질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에게 고통이 따를 수 있다. 국민도 미세 먼지 대책에 동참해야 한다. 다른 길이 없다.


4. 洪 후보의 친박 핵심 징계 해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그제 최순실 게이트로 친박(親朴) 핵심 인사 7명에게 내려졌던 당원권 정지 징계를 전격 해제했다. 또 바른정당의 탈당파를 포함해 국회의원 14명 등에 대한 일괄 복당 조치를 내렸다. 홍 후보는 '대선 후보는 당무에 관해 우선권을 가진다'는 당헌 규정을 활용해 아무런 절차 없이 직권으로 이런 조치를 내렸다.


홍 후보의 이 조치는 대선을 3일 앞둔 상태에서 보수 세력 결집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이 석 달 만에 도로 '양박'당이 됐다"고 했고, 국민의당도 "국정 농단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새 대한민국에 대한 열망을 잊었느냐"고 비판했다. 바른정당은 "구태로 돌아가는 것이고 한국당이 전혀 변화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친박 핵심 세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지난해 4·13 총선 때 공천의 기준을 '진박(眞朴)이냐, 아니냐'로 삼은 끝에 패배하려야 패배할 수 없는 선거에서 참패했던 책임도 함께 졌다. 지금 보수 정당이 분열돼 있는 것은 이 친박 의원들이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당이 비상체제로 들어간 뒤에야 당원권 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당시 이 징계는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보수 진영 전체를 붕괴시키다시피 한 사태의 책임으로는 가볍다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책임을 피하는 듯한 모습이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대선판을 만드는 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선거를 목전에 둔 홍 후보 입장에선 표를 모을 모든 조치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여론조사상 크게 뒤지는 상황에서 비상한 수단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친박이 징계받은 뒤 바뀐 사정이라곤 대통령 탄핵과 구속밖에 없다. 그런데 모든 징계가 해제되려면 투표가 눈앞이라는 것 이상의 명분이 필요하다.


홍 후보 측은 "홍 후보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갈등이 일거에 해결됐다"고 했다. 이번 조치로 한국당 기대대로 보수층이 결집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고 바른정당 집단 탈당 때와 같은 역풍이 불 수도 있다. 결국 유권자들이 판단을 내릴 것이다.


[중앙일보]

5. '구글세' 해외 확산, 우리도 조세주권 내세울 때

구글세가 유럽 주요국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은 이탈리아 국세청에 지난 10여 년간 미납 세금 3억600만 유로(약 3800억원)를 납부한다고 최근 밝혔다. 영국 정부가 지난해 초 이 회사에서 1억3000만 파운드(약 1900억원)의 세금을 추징한 데 이어 두 번째다.


구글세(稅)란 인터넷 등 정보통신(ICT) 기업들이 특정국에서 번 돈을 세율이 낮은 제3국 소재의 지사 몫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세 부담을 줄인 데 대해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구글뿐만 아니라 애플·아마존·페이스북처럼 독과점 이익을 오래 누려온 미국 간판 ICT 다국적 기업들이 표적이다. 이탈리아 당국은 구글이 자국 내에서 번 돈을 법인세율이 상대적으로 낮은(12.5%) 아일랜드로 돌린 혐의를 잡고 끈질기게 조사를 벌여왔다. 

구글세는 먼 유럽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이다. 구글·애플의 경우 인터넷·ICT 분야 강국인 우리나라 안방에 들어와 한 해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미국·일본에 이은 3위권 시장으로 꼽힌다. 그동안 법인세법을 비롯해 관련 법 개정 논의가 더러 있긴 했지만 국회나 정부 차원에서 구글세에 대한 뚜렷한 과세 의지를 밝힌 기억이 없다. 

디지털 기업은 무형의 콘텐트에 대한 저작권료·사용료가 주된 수익원이라 전통업종보다 조세 회피가 용이하다. 그만큼 앞선 세원 발굴 기법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내 ICT업체들이 과세나 인허가 면에서 외국계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민원도 제대로 풀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정부가 지구촌의 구글세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에 대비해 외교통상 방안도 마련해 둬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이 2015년 ‘국가 간 소득이전 및 세원 잠식(BEPS)’ 국제 공조에 나선 걸 계기로 구글세 도입은 대세가 됐다. 프랑스·스페인 등도 동참할 태세다. 구글세를 방치하는 건 우리의 조세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6. 처벌 강화해야 산불 재앙 막는다

​대형 산불은 비슷한 패턴을 밟아 왔다. 봄철 건조한 날씨와 강풍이라는 자연적 요인과 함께 사람의 부주의와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안일한 대응이라는 인위적 요인이 결합해 재앙을 불러왔다. 지난 6일 강원도 강릉과 삼척, 경북 상주에서 발생한 산불도 이러한 패턴을 벗어나지 않았다. 100㏊가 넘는 울창했던 산림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민가 30여 채를 집어삼켜 300여 명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이재민 구호와 피해 복구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더 이상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근본적 원인도 철저히 따져야 한다. 

봄철은 산불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계절이다. 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2000년 동해안 산불, '천년고찰' 낙산사를 폐허로 남긴 2005년 강원도 양양 산불도 봄철에 발생했다. 산불이 났을 때 바람이 불면 확산 속도가 26배 이상 빨라진다고 한다. 이처럼 자연적 요인이 크지만 연례행사처럼 사전에 예견되고 반복되는 일이라면 우리의 노력에 따라 산불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행정기관의 느슨한 자세는 빠지지 않는 고질병이 되다시피 했다. 이번에도 재난 안전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기상청·한국도로공사 등은 국민안전처에 재난 문자 발송을 요청하지 않았다. 국민안전처는 "관련 기관의 요청이 없어 문자를 발송하지 않았다"며 '네 탓' 공방만 하고 있다니 답답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인재(人災)라는 점이다. 강릉과 삼척, 상주 3개 지역의 산불은 모두 입산자의 실화 또는 논두렁 소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수'라고 너그럽게 봐주는 온정주의가 대형 산불을 만드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때다. 불이 날 수 있음을 뻔히 알면서 라이터 등 인화물질을 가져가거나 마른 나뭇잎을 곁에 두고 불을 피우는 행위는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에 해당할 수 있다.


산불의 원인 제공자와 부적절한 대응에 대해 가혹하게 처벌해야 사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불탄 생태계가 완전히 복원되기까지는 100년 이상이 걸린다. 예고 없는 재앙은 없다. 


[세계일보]

7. 대선후보, 나라 걱정하는 민심 무겁게 받아들여야

19대 대통령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오늘 밤 12시 종료된다. 후보들은 서울, 대전 등에서 마지막 유세를 갖고 22일간의 레이스를 마무리한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심판에 따른 조기 대선의 60일 대장정이 투표만 남기고 막을 내리는 것이다.

이번 대선은 기간이 짧은 탓에 후보 자질 검증과 공약 경쟁이 기대 이하였다. TV토론을 빼곤 후보의 장단점을 비교할 방법이 사실상 없었다. 대신 상호 비방, 흑색선전 등 네거티브가 판을 쳤다. 특히 표심을 왜곡하는 ‘가짜뉴스’가 SNS를 통해 무차별 살포됐고 최근엔 투표용지를 둘러싼 음모론도 제기됐다.

국민들은 그러나 거짓 선동에 현혹되지 않고 대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지난 4, 5일 이틀간 실시된 사전투표에 무려 1107만명이 참여했다. 전체 선거인 4248만명 가운데 26.06%가 투표장을 찾은 것이다. 어떤 투표소에는 사람이 몰려 100m 넘는 줄이 이어졌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국정 공백과 혼란을 하루빨리 수습하라는 민심의 반영으로 읽힌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려는 국민 열망이 그만큼 뜨거운 셈이다. 안보·경제 쌍끌이 위기가 고조되는 국가 비상시기이니 후보들의 자세가 과거와는 달라야 한다.

하지만 후보들은 사전투표 결과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기 바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쪽은 2030 젊은층이 대거 사전투표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보수층의 위기의식이 반영됐다며 어제 페이스북 글에서 “(문 후보를 앞지른) ‘골든 크로스’를 넘어 승리의 길로 가고 있다”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쪽은 지역 기반이 강한 호남의 투표율이 높았던 만큼 문 후보와 양강 대결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나라를 걱정하며 투표장으로 달려간 유권자들의 마음을 자기 편한 대로 떠들어대는 것은 옳지 않다. 국정을 똑바로 운영해 국가 위기를 극복하라는 민심의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게 후보들의 당연한 덕목이 아닌가. 대선에서 이기는 것을 무슨 전리품을 얻은 양 여겨선 곤란하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한 표 한 표를 소중히 받드는 자세가 필요하다.

후보들은 마지막까지 네거티브나 가짜뉴스 등을 통해 표를 얻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유권자들은 이제 그런 것에 속을 만큼 어리숙하지 않다. 깨끗한 경쟁으로 최선을 다한 뒤 겸허한 자세로 민심의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


8. 미·중 대북 압박 강화… 주도적 안보태세 갖출 때다

미국 의회와 정부가 대북 압박 강화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 하원이 4일(현지시간) ‘대북 차단·제재 현대화 법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북한의 원유 수입 봉쇄, 노동자 해외 송출 차단 등으로 자금줄을 전방위 차단하는 게 골자다. 북한 핵·미사일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미 의회의 의지가 담겼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미·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외교장관회의에서 대북 외교관계 중단·축소와 돈줄 차단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중국도 가세하고 있다. 중국의 북한산 석탄 수입 중단 조치로 3월 북한 석탄수출이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수개월간 대북 원유공급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북한 관영매체가 ‘중국이 북·중 관계의 레드라인을 넘어섰다’고 맹비난한 데 대해서도 신랄하게 반박했다.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북한 핵개발이 북·중상호원조조약에 위배된다고 질타했고, 인민일보의 소셜미디어매체는 ‘김일성이 한반도를 통일하려 했기에 중국군 수십만 명이 죽었다’며 새로운 양국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박을 무시하고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입장이다. 평안북도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인근에서 대규모 굴착공사 장면이 위성사진에 포착된 것에 비추어 핵·미사일 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서해 최전방 부대를 방문해 북한군의 새 화력타격 계획을 검토했다고 공개했다. 북한은 이어 김 위원장에 대한 한·미 정보기관의 생화학테러 모의를 적발했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반(反)테러 타격전을 벌이겠다고 위협했다.

국제사회는 10일 출범하는 한국 새 정부의 대북정책을 주시하고 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미국 전략이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고 전했다. 대북 압박에 중국까지 동참한 마당에 새 정부는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없다. 지금은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


최우선 과제는 북한 관련 협의에서 우리가 배제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없애는 것이다.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 국면이 열릴 때 새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떠맡을 준비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한반도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국제사회와 공유하는 일부터 서둘러야 한다. 우리가 주도적인 안보태세를 갖춰야 가능한 일이다.


[한국일보]

9. 일본의 저열한 유네스코 압박, 우리 정부 무능이 더 큰 문제

일본 정부가 위안부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막기 위해 올해에도 분담금을 무기로 유네스코를 압박하고 있다. 산케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정부는“유네스코가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여 최근 마련한 세계기록유산 심사의 투명성 확보 개선안을 즉시 적용할 것을 요구할 방침”이라며 올해 유네스코 분담금 34억8,000만엔(약 350억원) 지급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한다. 

일본이 유네스코 분담금을 내지 않겠다고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5년 난징 대학살 관련 자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자 “이 제도가 정치적으로 이용됐다”며 분담금 지급을 미루다 연말에서야 낸 적이 있다. 당시 일본은 난징 대학살 자료 등재 외에도 한국 중국 일본 네덜란드 등 8개국 시민단체가 위안부 관련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해 달라고 신청한 것에 대한 불만으로 분담금 지급 보류라는 일방적 조치를 들고 나와 큰 파문을 불렀다.


유네스코 분담금 부담 비율이 9.6%로 미국(22%)에 이어 세계 2위인 지위를 악용해 세계기록유산 심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겠다는 반역사적인 발상이다. 일본 내에서도 “돈을 앞세운 치졸한 짓”이라는 비판이 나왔을 정도다.

유네스코는 일본의 압박에 굴복해 견해 차가 있는 세계기록유산 신청에 대해 당사국 간 사전협의를 요구하는 내용의 심사제도 중간보고서를 최근 채택했고, 올해 10월 최종보고서가 나오면 공식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정부의 주장은 이마저도 시기를 앞당겨 지금 당장 시행하라는 것이다. 

2015년 12ㆍ28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에도 역사를 부정하는 퇴행적 망언을 거듭하고 있는 일본의 태도로 볼 때 유네스코를 상대로 벌이는 이런 작태는 새삼스러울 게 없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안이하고 무기력한 자세다. 정부도 아닌 여러 나라의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위안부 기록 등재를 일본 정부가 개입해 노골적으로 방해하는데도 마치 남의 나라 일인 듯 뒷짐만 지고 있다. 우리가 등재신청 지원을 하면 일본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12ㆍ28 합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본의 행동은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면서 우리의 눈과 입만 스스로 묶겠다는 것인가. 합의의 정신을 생각한다면 일본의 행태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시켜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렇잖아도 12ㆍ28 합의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높아지고 대선 주자들도 일제히 폐기ㆍ재협상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국의 각성을 촉구한다.


10. 일상이 된 미세먼지, 새 대통령 국가재난으로 관리해야

올 들어 최악의 미세먼지와 황사가 전국을 덮쳐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황금연휴 막바지 예정했던 야외모임을 취소하거나 마스크를 쓰고 길을 나서는 등 답답한 주말을 보냈다. 호흡기 질환과 각막 장애 등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미세먼지는 건강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까지 실질적 타격을 주고 있다. 당초 업계에서는 긴 연휴가 소비 회복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직격탄을 맞았다. 시민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와 레저, 서비스업 등 대부분의 내수 업종 매출이 급감했다. 2015년의 메르스 사태 때 소비가 곤두박질쳤던 상황을 연상케 한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올랐다. 실제 올해 1~3월 미세먼지주의보는 최근 3년래 가장 많은 86회나 발령했다. 서울의 초미세먼지 오염도는 평균 34㎍으로 연간 기준을 넘어선 것은 물론 미국과 일본 기준의 두 배를 초과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굼뜨거나 겉돌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고는 미세먼지 발령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한 게 고작이다. 연휴기간 기록적인 미세먼지 습격에 정부가 한 일은 야외 활동 자제와 외출 시 마스크 착용 권고가 전부였다. 오죽하면 “정부의 미세먼지 무대책에 이민 가고 싶다”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겠는가. 

미세먼지의 발생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것부터가 심각한 문제다. 상당부분 중국에서 유입된다고 하나 그게 어느 정도인지, 국내는 어디서 얼마나 나오고 있는지 아직도 명확하지가 않다. 미세먼지 대책을 놓고도 정부 부처간 엇박자가 나는 것도 한심하다. 한쪽에서는 미세먼지 저감조치를 내놓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신규 석탄발전소 증설 계획을 발표하는 식이다. 미세먼지 배출량이 적은 LPG 차량 규제 완화를 둘러싼 부처간 갈등과 교육부와 각 시ㆍ도교육청의 야외 수업 금지 기준이 제각각 인 것도 마찬가지다.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발표한 미세먼저 대책 공약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정부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거나 그간 논의돼온 대책을 취합한 수준에 머물렀다. 목표 제시에 그칠 게 아니라 실효성이 있고 실천 가능한 대책 마련이 우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40년 뒤 한국이 대기오염에 따른 조기 사망률 1위 국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새 대통령은 취임하는 즉시 미세먼지 대책을 대통령의 의제로 삼고, 국가적 재난으로 관리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경향신문][여적] 카네이션의 운명

카네이션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보내며 성모 마리아가 흘린 눈물의 흔적에서 핀 꽃이라고 한다. 15세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카네이션을 든 성모>를 그렸고, 16세기 산치오 라파엘로도 같은 이름의 작품을 남겼다. 모두 마리아가 한 손으로는 아기 예수를 안고, 다른 손으로는 카네이션을 쥐고 있는 모습이다. 카네이션은 마리아가 아기 예수에게 베푸는 모성애의 상징이다.

붉은색 카네이션의 꽃말은 사랑·존경, 분홍색은 열애, 흰색은 추모를 뜻한다. 어버이날에 붉은 카네이션을 부모님의 가슴에 달아드리는 전통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20세기 초 미국 필라델피아의 아나 자비스라는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 추모식에서 흰 카네이션을 교인에게 나누어주며 어머니의날 제정을 촉구한 것이 출발이다.


1914년 토머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5월 둘째주 일요일을 어머니의날로 정했다. 살아 계신 어머니에게는 붉은 카네이션을 선물하고, 돌아가신 어머니 무덤에 흰 카네이션을 놓는 전통의 시작이다. 한국에서는 1930년대 기독교 단체에서 5월 둘째주를 부모님 주일로 지켜왔으며, 1958년 정부는 5월8일을 ‘어머니날’로 정했다. 이어 1973년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를 포함하는 어른, 노인들을 공경하자는 취지의 ‘어버이날’로 거듭났다.

‘스승의날’에도 선생님께 카네이션을 선물한다. 스승을 존경하는 한국 문화의 산물이다. 1965년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15일을 기념일로 정했다. ‘사은의 선물로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다’는 기사(경향신문 1967년 5월15일)가 실린 것으로 보아 ‘카네이션 선물’은 스승의날 제정과 함께한 것 같다.

5월 특수를 누렸던 카네이션의 가격이 올해는 오르기는커녕 대폭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날을 앞둔 4월부터 밀려들던 주문은 자취를 감추었다. 지난해보다 출하물량을 줄였는데도 가격은 25% 이상 떨어졌다고 한다. 화훼농가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수요가 급감했다고 말한다. 5월 초 장기간의 황금연휴에 카네이션을 찾는 이는 더욱 줄었다. 카네이션에 먼지가 쌓인다. 하지만 부모와 스승을 향한 단심은 시들거나 변하지 않기를.


2. [서울신문][월요 정책마당] 진화하는 푸드트럭

푸드트럭이 진화하고 있다. 푸드트럭은 한국에서는 2014년 3월 처음으로 합법화된 새로운 자영업 사업 모델이다. 새로운 사업 모델은 언제나 시장 상황과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진화하면서 성공의 길을 걷거나 소멸의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그러면 푸드트럭은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진화를 거쳤을까. 우선 영업장소의 진화이다. 유원시설에서 시작해 도시공원, 관광단지, 공용재산까지 차례로 영업장소가 확대됐다. 이제는 일반도로에서도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곳이라면 푸드트럭 운영이 가능하게 제도가 개선됐다.

이처럼 영업장소를 차례로 확대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푸드트럭이 비즈니스 모델로 정착한 미국을 보면 모든 도시에서 푸드트럭이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로스앤젤레스가 푸드트럭에 가장 우호적인 도시인 반면 뉴욕은 가장 비우호적인 도시이다. 인구밀도가 높고 도로 여건이 비좁은 데다 상업지구가 도시 곳곳에 들어차 있는 뉴욕에서는 푸드트럭 영업장소를 찾아내는 게 쉽지 않다.


한국의 대부분 도시가 뉴욕과 비슷하다. 특히 어디에서든 기존 상권과의 마찰을 피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 또 도심 곳곳에 자리잡은 불법 노점상들 역시 푸드트럭의 실체적 경쟁자들이다. 그러다 보니 영업 가능한 장소를 단계적으로 늘릴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형태의 진화도 선보였다. 푸드트럭을 축제와 결합시킨 축제결합형 사업모델이 탄생한 것이다. 서울시가 성공적으로 출범시켜 이미 3년째를 맞은 서울밤도깨비 야시장이다. 지정된 영업장소를 제공하는 데 한계를 느낀 서울시는 야시장이라는 형태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등에서 야간축제를 개최하고 푸드트럭 사업자들을 초청해서 영업하도록 했다. 매년 3~10월 금·토요일 야간에 개최되는 이 축제는 영업시간의 제약에도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올해는 132대의 푸드트럭이 이 행사에 초대받았다.

또 하나의 진화 형태가 청년창업지원형이다. 이번엔 한국도로공사가 적극 나섰다. 고속도로 졸음쉼터에 매점이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 전국 곳곳 졸음쉼터의 평균 이용객 수를 파악한 후 14곳을 골라 푸드트럭을 넣었다. 그런데 특징이 있다. 바로 도로공사가 푸드트럭을 구입해 청년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2년간 임대한 것이다. 2년 동안 열심히 일해 창업자금을 마련해 독립하라는 뜻이다. 졸음쉼터 푸드트럭당 월평균 매출은 1500만원이다.

전통시장상생형도 자리를 잡았다. 전통시장은 야간에는 한산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전통시장을 외면한다. 경기 수원시가 이에 착안했다. 역시 청년창업의 일환으로 시가 푸드트레일러를 임대해 주고, 청년들은 전통시장 상인회에 상인회비를 내고 어엿한 상인으로 대접받는다. 18명의 청년이 각기 독특한 메뉴로 경쟁하면서 젊은이들을 전통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애초의 목적도 달성했다.

여기서 열거한 성공 사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푸드트럭을 청년 일자리 창출사업과 연계시킨 기관장들의 적극적인 자세이다. 서울시와 수원시에서는 시장이, 한국도로공사에서는 사장이 직접 나섰다. 경기도 역시 초기부터 푸드트럭 문화 창출에 적극적이었다. 경기도의 푸드트럭 숫자가 125대로 서울시 120대를 앞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서울 서초구에서는 이동영업 푸드트럭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푸드트럭 진화에서 중요한 요소는 바로 메뉴다. 밤도깨비 야시장에서 성공한 삐삣버거의 경우를 보자. 처음에 과일주스로 시작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이어 철판볶음밥, 철판스테이크 메뉴를 내놓았지만 이 역시 실패했다. 차별화된 메뉴가 아니면 성공하지 못함을 알게 됐다. 결국 전국의 수제버거 전문점을 5개월 동안 찾아다니며 찾아낸 것이 삐삣버거다. 헝그리베어라는 푸드트럭은 이태리식 피자를 직접 구워서 판다. 목살스테이크와 칵테일 버터갈릭핫도그를 파는 칠링키친은 이미 푸드트럭 5대 소유자가 됐다. 독립매장에서 파는 것과 경쟁해 맛과 독특함, 창의성으로 승부한다는 생각으로 메뉴를 진화시키지 않으면 푸드트럭은 성공할 수 없다.

푸드트럭 진화의 마지막 단계는 아마도 사유지에서의 영업을 허용하는 일일 것이다. 공공이 아닌 민간인도 곳곳에 수목원, 미술관, 테마공원들을 갖고 있다. 이러한 장소에서 부지사용계약을 통해 푸드트럭이 영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반드시 풀어야 할 푸드트럭 생태계 조성사업 중 하나이다. 또 미국식으로 푸드트럭 식재료의 전처리 가공을 한곳에서 할 수 있는 공동의 장소를 마련하는 것도 푸드트럭이 1000대 이상까지 늘어날 경우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3. [데일리안][하재근 문화평론가] 윤식당 한국인이 내지르는 비명의 판타지

tvN '윤식당‘이 다른 방송사들의 동시간대 프로그램 시청률을 일제히 끌어내리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5월 예능 프로그램 브랜드 평판에서 절대 강자인 ’무한도전‘에 이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라디오스타‘, ’복면가왕‘ 등 지상파 프로그램들까지 모두 제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느리다. 그것이 우리네 현실과 달랐다. 신구가 서빙을 시작했을 때 음식을 고르는 손님들 앞에서 기다렸다. 그러자 이서진이 그렇게 급할 거 없다고 천천히 하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이 한국 시청자들 가슴을 쳤다. ‘아, 세상을 그렇게 동동거리며 사는 길만 있는 건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이다.

우리는 여행조차도 전투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카메라를 들고 정신없이 일정을 소화하며 기념사진 ‘실적’을 올리는 것이다. ‘윤식당’ 속의 외국인 여행자들은 전혀 달랐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며 대화하고, 음식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맛을 음미했다. 왜 이렇게 음식을 늦게 주느냐고 타박하는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윤식당’ 출연자들만 바빴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음식이 너무나 늦게 제공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보통 10분 내외의 시간에 거의 모든 음식 차림이 완료된다. 이 프로그램에선 간단한 식사 종류가 수십여 분이나 걸렸다. 당연히 출연자들은 좌불안석으로 불안에 떨며 음식을 바삐 만들었다. 하지만 외국 손님들은 태평했다.

제작진이 해당 지역의 다른 식당에 가서 음식이 제공되는 시간을 측정했다. 놀랍게도 두 곳 모두에서 주문한 것들 중 첫 번째 음식이 나오는 데에만 30분 이상이 걸렸다. 우리로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곳. 시계를 들여다보며 사람을 닦달하고 얼굴 붉히지 않는 곳. 바로 그런 곳의 정취를 프로그램은 전해줬다. 여기에 한국 시청자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외국인이 한국 공사장 같은 곳에 취업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말 중의 하나가 ‘빨리빨리’라는 말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경주마처럼 달렸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도 가능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다음엔, 오히려 더 달렸다. 산업발전기엔 국가경제를 살리는 산업전사로서 달렸다면, 한강의 기적 이후엔 내가 죽지 않기 위해 달려야 했다. 외환위기로 죽느냐 사느냐의 극단적인 경쟁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2000년대까지는 죽을 각오로 달리면 한 밑천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닥친 건 한 밑천이 아니라 탈진 증후군이었다. 이제 아무리 동동거리며 일해도 경쟁의 승자가 되는 것이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패러다임 그 자체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간다.

‘윤식당’의 느림이 호응을 받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느림도 탈출이려니와, 외국에 식당을 열었다는 점도 역시 탈출이다. 정서적으로, 공간적으로, 모든 면에서의 탙출을 그린 것이다. ‘헬조선 탈출’ 트렌드하고도 맞물린다.

프랑스 철학자인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통해서 느림의 가치가 주목 받았었다. 일본의 환경운동가인 쓰지 신이치의 ‘슬로 라이프’를 통해 ‘캔들(Candle)족’이란 신조어가 알려지기도 했다. 캔들족이란 하루 한 번이라도 밤에 촛불을 켜고 삶의 여유를 음미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슬로비(Slobbie)족’도 있다. 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Slow ButBetter Working People)의 약칭으로 속도를 늦추고 성공보단 마음의 행복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신조어들은 세계가 무한경쟁 체제로 재편된 후 ‘피로사회’가 대두했고 어디서나 사람들이 느림을 꿈꾸게 됐다는 걸 말해준다. 우리에게도 그런 흐름이 전개되다가,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강해졌다. 피로가 울화가 되고 우울에 무기력으로까지 발전했는데, 그 댓가로 자신이 얻을 보상이 별로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림을 간절히 꿈꾸기는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실천하진 못한다. 한국사회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편의점 간편식 매출 상승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전히 사람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끼니조차 순식간에 때운다. ‘윤식당’이 판타지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윤식당’의 인기는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도록 헐떡거리며 뛰어야 겨우 밥벌이를 하는 한국사회의 비명인 셈이다.


4. [한국경제][천자 칼럼] 삼세판 증후군

현대 사법제도의 근간인 3심제(三審制)는 근대 유럽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1000여년 전부터 3심제가 있었다. 1047년 고려 문종은 ‘사수삼복계법(死囚三覆啓法)을 도입해 사형수에 한해 3복(3심)을 거치도록 했다. ‘인명은 소중하고 죽은 자를 되살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3복제는 조선으로 이어져 태종 때 《경제육전》(1397년), 성종의 《경국대전》(1485년)에 담겼다.

그렇다고 고려·조선에서 인권이 보장됐다고 보긴 어렵다. 신문고가 있었지만 널리 활용되지 못했고, 왕명에 따른 의금부 특수사건은 단심제였다. ‘네 죄를 알렸다’는 원님재판에다 연좌제로 범죄자의 처자를 노비로 만드는 일도 허다했다. 향리들의 전횡까지 더해져 민초의 삶은 늘 고달팠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억울함의 역사가 뿌리 깊어서일까. 오늘날에도 ‘사법 불복(不服)’이 두드러진다. ‘2016 사법연감’에 따르면 형사재판의 경우 1심 합의부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비율이 2006년 51.9%에서 2015년 68.1%로 뛰었다. 2심 상고율도 30~40%에 이른다. 심지어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범들도 2심 감형에도 모두 대법원에 상고했다. ‘밑져야 본전’이란 심리일 것이다.

언제부턴가 재판은 ‘웬만하면 삼세판’이 돼버렸다. 한 전직 대법원장은 “고려가 망한 이유 중에 하나가 과도한 사법비용”이라며 우리 사회의 삼세판 증후군을 우려하기도 했다. 한국인이 유독 숫자 3을 좋아해서일까. 승부는 적어도 세 번은 겨루고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재판 불복의 이면에는 사법 불신이 깔려 있다. ‘전관 변호사’를 잘 썼느냐에 따라 판결 결과가 달라진다고 믿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민사재판의 경우 항소심서 4건 중 1건이 뒤집히고 대법원에 가면 다시 7%의 결과가 바뀐다. 뭐든지 할 수만 있다면 대법원까지 끌고간다. 그 결과 대법관 1인당 하루 8건, 연간 약 3000건을 처리해야 할 정도다. 상고허가제나 상고법원(간단한 상고사건 전담) 도입이 대법원의 숙원인 이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3심제로도 만족 못 하면 헌법재판소로 달려간다. 한 해 약 2000건의 위헌심판, 헌법소원이 쏟아진다. 실질적으론 3심이 아니라 4심제라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어제 헌재가 결혼 전에 산 TV 모니터를 홧김에 부순 남편에게 재물손괴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발표해 눈길을 끈다. 다툼의 자초지종은 차치하고, 이런 일까지 헌재로 간다니 놀랍다. 승복 못 하는 사회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점점 커져간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앙투안 라부아지에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가 1794년 5월 8일 자코뱅 혁명정부의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그는, 이견이 없진 않으나 프랑스 민중의 고혈을 쥐어짜 축재한 세리(稅吏)그룹의 일원이었다.

부유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마자랭대학서 화학과 식물학, 수학 등을 공부했다. 당시 과학은 귀족 등 부유층의 취미이기도 해서, 그는 직업을 얻기 위해 법학을 따로 공부했지만 변호사가 되지는 않았다. 대신 벌이로 삼은 게 일종의 법인체인 수세조합(收稅組合, The Ferme Generale) 일원이 되는 거였다.


별도의 국세 징수기관이 없던 루이 16세의 프랑스는 징세 독점권을 팔았는데, 국가에 세액을 대납한 뒤 수수료를 얹어 세금을 징수하던 조직이 수세조합이었다. 세금에다 수수료까지 내야 했던 시민들은 고통스러웠지만, 귀족들은 국가가 보증한 그 짭짤한 독점 투자 수익을 누리며 좋게 말하자면 당대 파리의 패션과 예술과 과학을 성장시켰다. 세상이 그러했으니 라부아지에로선 자기 선택에 별 죄의식을 지니지 않았을지 모른다. 더군다나 그는 과학에 미쳐 있었다. 

그는 집에다 첨단 실험실을 갖추고 왕립 병기창 일을 도우며 양질의 화약 제조기법을 연구했다. 훗날 미국으로 이민 가 굴지의 화학회사 뒤퐁을 설립한 창업주가 그의 제자 중 한 명이었다. 화학실험에 정밀 천칭저울을 활용하며 정량 분석을 중시한 최초의 과학자 중 한 명이 그였다. 거대 확대경으로 다이아몬드를 연소시켜 기체로 변한 뒤의 무게가 처음과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고(질량 불변의 법칙), 고열을 이용해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리하고, 또 같은 질량의 수소와 산소 기체로 물을 합성하기도 했다.


물이 원소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원소의 화합물이란 사실이 그렇게 그의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호흡과 발효, 부패 등이 산소 작용의 동일 원리(연소이론)로 진행된다는 사실도 그가 이룬 업적 중 하나였다. 최초의 근대화학 교과서로 꼽히는 원소 목록과 화학물 명명체계 등을 정리한 그의 ‘기초화학 총설’이 대혁명의 해인 1789년에 출판됐다. 

그가 남긴 실험 자료와 연구성과를 정리해 세상에 내놓은 이는, 그의 둘도 없는 실험 조수이자 아내 마리 앤 라부아지에(1758~183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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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중앙일보]

1. 대선 사전투표 개시 … 소신있게 한 표 행사하자

제19대 대통령 선거(9일)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표심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많다. “지지후보를 정하지 않았다”는 응답자가 20%가 넘고, “지지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응답자까지 합하면 50%에 육박한다. 보통은 투표일이 다가오면 부동층이 줄어드는데 이번 대선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부동층의 규모도 역대 어느 대선보다 많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에 따른 돌발 선거라 유권자들이 후보들을 검증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나마 후보들의 능력을 판단할 잣대로 기대를 모은 TV토론도 네거티브와 상대방 헐뜯기로 메워졌다. “대통령감으로 믿고 딱부러지게 찍을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이 투표권 포기 사태다. 특히 보수 후보들의 분열로 표류 중인 보수층이나 노년층의 기권율이 높을 것으로 우려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는 무슨 이유로도 포기해선 안 되는 권리이자 의무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 심지어 차차선의 선택을 하더라도 “내 대통령은 내가 뽑는다”는 주인 의식 아래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비록 유권자가 던지는 한 표가 그가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을 이끌어내진 못하더라도 대선 뒤 국정에 나름의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낙선했지만 적지 않은 표를 얻은 후보의 존재는 그 자체로 새 대통령을 견제하는 효과를 낸다. “투표 용지는 총알보다 강하다”는 링컨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는 표 하나 하나가 등가의 지위를 갖는 게 본질이다.

투표를 포기하면 안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투표율이다. 어느 선거나 투표율이 높아야 하지만 이번 대선은 그럴 필요성이 더욱 크다. 땅에 떨어진 대통령과 정부의 권위를 되살려 국정이 제대로 굴러가게 만드는 계기가 돼야 한다. 투표율이 낮다면 당선자의 정통성과 대표성이 흔들려 대선 이후 정국이 수습되기는커녕 혼란이 더욱 가중될 우려가 생긴다. 그런 점에서도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가 절실하다.

때마침 대선 사전투표가 오늘(4일)과 5일 실시된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핵심 공약들을 꼼꼼히 살펴본 뒤 최선의 선택을 하기 바란다. 후보들의 공약은 선관위가 발송한 공보물이나 정책 공약 알리미 사이트(policy.nec.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국 3507곳의 사전투표장소도 휴대전화의 ‘선거정보’ 앱으로 금방 찾을 수 있다. 이번 대선은 응답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부실 여론조사와 가짜뉴스, 그리고 “누구 찍으면 누구 된다”는 식의 마타도어가 유달리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권자들은 이런 사술에 휘둘리지 말고 후보들의 공약과 인품에 대한 본인의 판단을 근거로 소신껏 한 표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2. 과거사 반성 없이 개헌 시동 건 아베를 우려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자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을 새 헌법 시행의 목표 연도로 제시했다. 아베 총리가 구체적인 개헌 스케줄을 처음으로 밝힌 것은 ‘전쟁할 수 있는 일본’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줄 개헌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침략으로 얼룩진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반성과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약속 없는 아베의 개헌 밀어붙이기는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가 우려하는 이유다.

더구나 아베가 “내 세대가 자위대를 합헌화하는 것이 사명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자위대 합헌을 개헌의 주요 과제로 내세운 것은 우려를 더욱 가중시킨다. 아베는 북한 정세가 긴박하고 안보 환경이 엄중해지고 있는 상황을 합헌화 추진의 배경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는 핑계일 뿐 실제로는 국제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북한 리스크를 자신이 원하는 개헌과 장기 집권을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는 “헌법 9조의 1항(무력 행사의 영구 포기)과 2항(육해공군 전력 보유 금지와 교전권 포기)을 그대로 두고 자위대의 존재를 기술하겠다”며 한발 물러나긴 했다. 하지만 이는 야당과 국민의 반발을 고려한 현실적인 일시 후퇴일 뿐이다. 그 본질은 지금까지 평화헌법에는 기술돼 있지 않았던 자위대를 새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합헌적 존재로 위상을 바꿔놓겠다는 것이다.



자위대는 1954년 창설 뒤 지속적인 전력 확충과 활동 영역 확장으로 실질적인 ‘보통 군대’가 됐음에도 헌법에 아무런 규정이 없어 ‘위헌’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자위대를 우선 합헌적 존재로 만들고 기회를 봐서 슬그머니 정식 군대로 바꾸겠다는 아베의 계산이 엿보인다.

어제로 공포 70주년을 맞은 평화헌법은 그동안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이끄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아베는 개헌 시도에 속도를 내기에 앞서 과거 침략 전쟁의 피해를 입었던 주변국의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불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부터 곰곰 생각해야 한다.



[이데일리]

3. 여전한 대·중소기업 갑을관계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우월한 지위를 남용하는 ‘갑을문화’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최근 학계 등 전문가 1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가 이러한 갑을관계 타파를 위해 동반성장 정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중에서도 ‘공정한 거래질서 준수’가 첫손에 꼽혔다. 불공정거래 행위가 그만큼 만연하다는 얘기다.

우리 현실에서 대·중소기업 간 수직관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밀어내기 강요, 하청 관계에서의 갑질 등 시장의 힘만으로 개선하기에는 골이 너무 깊다. 갑이 횡포를 부려도 을은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그냥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설, 유통, 식품 등 업종도 가리지 않는다.



지난 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일어난 크레인 사고도 따지고 보면 대·중소기업의 갑을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위험한 작업을 하청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업체 직원들만 피해를 입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근로자의 날’인데도 하청업체 직원들은 공기를 맞추려 출근했다가 변을 당하고 말았다.

비뚤어진 갑을문화가 존재하는 한 대·중소기업 상생은 요원하다. 대기업 책임이 크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솜방망이 처벌도 지나칠 수 없다. 불법행위로 얻는 이익이 과징금보다 크다면 누가 제대로 법을 지키려 하겠는가. 정부는 지속적인 관리·감독은 물론 엄중한 처벌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대기업들 스스로 잘못된 관행을 고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중소기업을 상생과 협력의 동반자로 여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4. 대선 후보들의 ‘도깨비 방망이’

제19대 대선이 불과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새 대통령 선출을 앞두고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크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당장 처리해야 할 국가적 과제가 쌓여 있는데도 후보들이 내세우는 공약은 우선 당선되고 보자는 차원을 넘지 못한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공약 처리에 허둥대다가 5년 임기를 보내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는 얘기다.

그제 실시된 마지막 TV토론회에서 논란이 됐던 공약들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거의 주먹구구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후보들이 내세우는 기본소득보장제나 서민복지정책, 사교육비 저감대책 등이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원론적으로는 대체로 타당하다. 우리 사회가 더욱 안정된다면 그런 정책들이 점진적으로 추진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물론 당장이라도 대학 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고 유치원 과정을 모두 무상으로 운영할 수는 있다. 국민연금 최저 수령액을 높이겠다는 방안도 마찬가지다.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열쇠다. 한번쯤 실시하다가 손을 들고 말 것이라면 차라리 실시하지 않는 게 낫다. 공연히 유권자들의 기대감만 부풀려 결과적으로 불만을 야기할 게 뻔하다. 선거가 실시될 때마다 생겨나는 사회적 부작용이다.

더구나 후보들마다 내세우는 공약이 한두 가지로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모두 해내겠다는 것이니, 오히려 믿음이 떨어진다. 마치 ‘도깨비 방망이’ 하나쯤은 남몰래 감추고 있다는 것일까. “돈 나와라, 뚝딱” 하고 주문을 외면 아무 때라도 돈이 쏟아지는 것은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장면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허황된 얘기일 뿐이다. 후보들이 먼저 꿈속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다. 그보다는 세계 속에 처한 우리 현실을 직시하면서 서로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 유권자들의 깨어 있는 의식을 기대한다.



[서울신문]

5. ‘평화헌법’ 수정, 2020년 새 헌법 시행 밝힌 아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전쟁 포기와 함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른바 ‘평화헌법’을 개정해 2020년에 시행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베는 헌법 제정 70주년을 맞아 우익 단체인 일본회의 등의 주도로 열린 개헌 행사에서 영상 메시지를 통해 “헌법 9조 1항(전쟁포기)과 2항(군사력 보유 금지)을 남기고 자위대를 명확하게 포함한다는 생각은 국민적 논의를 할 만하다”고 밝혔다.



“자위대 합헌화가 내 시대의 사명”이라고까지 강조했다. 당초 평화헌법을 상징하는 제9조 1항과 2항까지 손대려다 국민들의 거센 저항을 감안해 그대로 놔두면서 자위대를 명문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일단 개헌의 문을 연 뒤 제9조를 뜯어고치려는 구상이나 마찬가지다.

1954년 창설된 자위대는 자국 방어만을 목적으로 하는 역할을 점점 확대해 군대처럼 활동하고 있다. 자위대는 세계 10위권에 들어갈 만큼 막강한 육·해·공군의 전력을 갖고 있다. 특히 해상자위대의 전력은 세계 5위다.

일본은 지난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 안전보장관련법의 시행에 따라 ‘전쟁 가능한 국가’의 토대를 마련해 놓았다. 까닭에 지난 1일 해상자위대는 미군 보급함 방어를 위해 경항공모함 이즈모함을 출동시킬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이 승전국인 미군 보호에 나선 첫 군사작전이다. 아베의 의도는 헌법 조문을 고쳐 자위대의 현실적 한계를 해소해 분쟁 지역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터놓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일본 자위대의 지위를 ‘국방군’으로 재무장시키는 데 있다.

또 아베는 북핵과 미사일 도발로 인한 한반도의 안보 불안을 이용해 입지를 굳히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이럴 경우 동북아의 안보 긴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개헌 여부를 결정할 일본 국민들도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지난해 37%에서 올해 41%로 높아졌다. 반면 고칠 필요가 없다는 55%에서 50%로 줄었다. 제9조에 대해서는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63%다.

아베는 ‘평화헌법’이 제정된 경위와 가치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개헌이 ‘군국주의로의 회귀’라는 주변국들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는 한 전범국가라는 오명을 결코 지울 수 없다. 한반도의 위기를 핑계 삼아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꾀하려는 꼼수일 뿐이다. 아베 총리는 개헌을 밀어붙이기에 앞서 과거 국군주의 아래 저지른 만행부터 진정성을 갖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할 것이다.



6. ‘세월호 인양 거래說’ 대선 쟁점화 무리다

어제는 한 공중파 방송사의 보도로 하루 종일 논란이 일었다. SBS가 전날 ‘8시 뉴스’에서 세월호 인양이 늦춰진 배경에 정치적 거래가 있다는 투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SBS는 기자 리포트로 “해양수산부가 세월호를 뒤늦게 인양한 것은 차기 권력의 눈치를 본 것이라는 취지의 공무원 발언이 나와 관련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적 슬픔을 안겨 준 세월호 참사를 특정 후보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불의를 파헤친 기자와 매체는 찬사를 받아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차기 권력’으로 지목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진영은 즉각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또 다른 당사자인 해수부도 “왜 거짓말로 세월호 인양 작업을 한순간에 정치적 사안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SBS도 해당 뉴스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고 사과했으니 사실상 잘못을 스스로 인정했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뭐니 뭐니 해도 오는 9일 치러지는 대선이다. 2년 만에 인양된 세월호 선체 수색 작업의 진척 상황도 국민적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파괴력이 큰 이슈가 중첩된 내용을 다루는데 조금 더 사려 깊지 못했던 것을 보도 당사자들도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대선이 불과 닷새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근거가 부실한 문제 제기는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불러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SBS 보도 이후 자유한국당은 기자회견을 열어 ‘뒷거래 의혹’이라는 표현을 써 가며 ‘충격’이라고 민주당을 비난했다. 국민의당은 한 걸음 나아가 “문 후보의 즉각 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제라도 선거 보도 종사자들은 자신의 기사가 결과적으로 ‘가짜뉴스’가 되지 않도록 깊이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 인양 작업이 기술적 이유로 늦어지면서 상하이샐비지가 계약금액보다 훨씬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 등 고의 지연이 불가한 상황”이라는 해수부 설명에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반면 ‘정부의 고의지연설(說)’이 나돌 때는 인위적 조작 가능성을 극구 부인하던 일부 정치권마저 ‘특정 후보 연루설’에 맞장구를 치고 나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당연히 보도 내용의 진위는 밝혀져야 한다. 뉴스에 등장한 해수부 공무원이 실존 인물이라면 발언 경위도 조사해야 한다. 그럴수록 각 후보 진영도 높아진 유권자 수준을 감안해 대응해야 할 것이다. 



7. 국민은 내우외환 돌파할 ‘정치적 능력’ 원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후보를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 부동표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유권자들의 선택 기준은 보다 명확해지는 분위기다. 서울신문과 엠브레인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유권자들의 최우선 선택 기준은 정치적 능력인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2000명) 가운데 지지 후보 결정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으로 ‘후보의 정치적 능력’(33.0%)을 꼽은 것이다.



‘후보의 이념과 노선’(32.1%)과 ‘후보의 도덕성’(20.8%), 당선 가능성(6.7%) 등이 뒤를 이었다. 정치적 능력은 후보자의 자질과 리더십, 국정을 이끄는 통합 능력 등이 총망라된 의미를 담고 있다.

국민들이 후보 선택시 정치 능력을 최우선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은 대한민국이 직면한 엄중한 현실과 직결된다. 오는 10일 취임할 차기 대통령은 국내적으로 구조적인 부정부패 구조를 바로잡는 적폐청산에다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국가를 통합하는 막대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북핵·미사일뿐만 아니라 사드 문제로 얽힌 주변국들과의 관계 복원 등 한반도 안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하는 책무를 안고 있다.



저성장의 덫에 걸려 침체에 빠진 경기도 살려야 한다. 최악의 청년실업 등을 해결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4차 혁명을 이뤄내야 함은 물론이다. 국민들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국내외 현안을 풀어 가기 위한 후보 능력을 선택 기준으로 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국민들은 이념과 노선에 따라 서로를 맞상대할 수 없는 적으로 돌리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대한민국을 희망하고 있다. 갈등과 분열을 넘어 국민 대통합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 후보를 밝혔음에도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부유층(浮遊層)도 적지 않았다. 후보 난립에 따라 ‘흔들리는 표심’의 향배도 막판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대 차이를 떠나 국민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구태의연한 선거 관행으로 나타났다.



선거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37.9%가 ‘서로 비방하는 네거티브 전략’을, 19.4%가 실현을 위한 재원도 제시하지 못하는 ‘무분별한 공약 남발’을 지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확인과 검증할 시간이 없다는 점을 악용해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내지르는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심판할 수밖에 없다.

닷새밖에 남지 않는 선거일까지는 여론조사의 공표도 없어 판세를 파악하기 힘든 ‘깜깜이 기간’이다. 이 때문에 흑색선전 등을 담은 가짜뉴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층 기승을 부릴 것은 뻔하다. 국민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이듯 깨어 있는 유권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내 손에 있다는 자세로 후보자들의 자질과 능력 등을 꼼꼼히 따져 투표해야 한다.



[조선일보]

8. 해외 나간 일자리 109만개, 들어온 일자리는 7만개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에 투자해서 새로 만들어낸 일자리가 109만개나 된다. 반면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 투자해 신규로 창출한 일자리는 같은 기간 7만개에 불과하다고 대한상공회의소가 보고서를 냈다.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자 해외 투자와 현지 생산을 늘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기는 하다. 문제는 나가고 들어오는 것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국내 투자를 꺼리는데 외국인 투자 유치는 세계 37위 수준에 그친다.

지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자리 유치 전쟁을 미국 조사 기관 갤럽은 '3차 대전'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만큼 절박하고 치열하다는 뜻이다. 15세 이상 세계 인구 가운데 일하거나 일하고 싶어 하는 인구는 30억명인데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는 전 세계적으로 12억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규제를 풀고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외국 기업을 유치하고 해외로 나간 자국 기업까지 다시 불러들이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규제 하나를 신설할 때 규제 두 가지를 없애는 제도를 도입했다. 법인세를 35%에서 15%로 확 낮추겠다고도 했다. 일본의 아베 정부도 국가 전략 특구를 지정해 신산업 규제를 대폭 풀고 법인세를 낮춰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반대로 간다. 규제 혁신도, 노동시장 개혁도 헛돌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평가한 우리나라의 정부 규제 환경은 138국 가운데 105위다. 외국인 투자 규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국 가운데 30위다. 대한상의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새 정부가 파격적 규제 혁신에 나서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당선 유력 후보의 공약은 '세금으로 공공 일자리 81만개 만들기'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9.8%)이 전체 실업률(3.7%)의 2.65배로 높아졌다. 올 3월에는 이 비율이 2.74배로 더 높아졌다. 미·일의 경우 통상 청년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의 2배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만 해도 이 비율이 2배 미만이었다. 정치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이 비율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9. 바른정당 탈당 의원들이 맞는 逆風을 보며

집단 탈당한 바른정당 의원 12명이 역풍(逆風)을 맞고 있다. '보수 단일화'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불과 석 달 전에 탄핵을 주도하고 찬성했던 의원들, 탄핵에 반대하는 측과 당을 같이할 수 없다며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든 의원들이 갑자기 원래 당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데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추구하는 가치, 정강과 정책을 따라 모인 정당의 당원들이 자기 당 후보의 지지율이 낮다고 투표 며칠 전에 집단 탈당한다는 것도 아무리 별일이 다 있는 한국 정치라지만 전에 볼 수 없었던 일이다.

그런데 이들의 탈당 이후 예상치 못했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바른정당과 유승민 후보에게는 오히려 후원금과 격려 전화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유 후보의 개인 페이스북 친구도 하루 만에 1만명이 증가했다. 일부에서는 야권 지지자들이 보수 표심을 분리하려고 조직적으로 유 후보 지원에 나선 것이라고 한다.



그런 움직임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엔 민심 전체의 역풍이 예상을 넘어섰다. 실제 탈당한 의원 1명은 탈당을 철회했고 탈당을 검토 중이던 의원도 잔류를 선언했다. 탈당 철회를 고민하는 의원이 더 있다고 한다. 이 현상이 실제 투표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단정할 수는 없다. 어쨌든 홍준표 후보로 사실상 단일화되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고 오히려 유 후보가 지금의 5% 안팎을 넘어서 의미 있는 득표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정치를 바라보는 눈이 한층 매서워진 유권자들이다. 바른정당 의원들의 집단 탈당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인터넷에는 이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탈당 의원들의 명분 뒤에 있는 계산까지 다 읽고 있었다. 인터넷 공간이 야권 지지자들 마당이라고는 하지만 이 많은 목소리를 그렇게만 치부할 수는 없다.



이들이 분노한 것은 무엇보다 눈앞의 이익에 따라 처신을 180도 바꾸는 정치인의 행태였다. 앞으로 어떤 명분으로도 이런 행태는 통하지 않을 듯하다. 이제 유권자들은 낡은 정치 행태와 분명히 단절하기를 바라고 있다. 특정인을 맹종하는 시대는 끝나고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선을 1주일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벌어진 이번 사태에서 우리 정치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국민을 설득하는 절차를 무시한 정치인들의 일방통행은 이제 즉각 제동이 걸린다. 국민은 소신과 인내를 갖고 어렵더라도 자기 길을 걸어가는 정치인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보았다. 특히 위기에 빠진 보수 정치권이 이 교훈을 새기면 기회는 곧 다시 오게 될 것이다.



[매일경제]

10.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놓고 벌어진 무책임한 정치공방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 '잠수함 충돌설' '대통령 7시간' 등 악의적인 의혹제기와 유언비어가 지난 3년 동안 숱하게 쏟아져 국민들을 힘들게 했다. 세월호 선체 인양과 함께 스러지는 듯하던 그 망령이 대선을 며칠 앞둔 지금 정치권에서 되살아나고 있으니 황당하다. 

'세월호 인양 고의지연 의혹'을 둘러싼 공방이 그것이다.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을 고의로 지연하면서 차기 정권과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있다'는 이 의혹은 2일 저녁 어느 방송의 단독 보도가 발단이다. 이 방송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해수부 2차관 신설을 공약했다. 세월호 인양은 문 후보에게 갖다 바치는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익명의 해수부 공무원 발언을 소개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2014년 단식 농성까지 했던 문재인 후보 측은 즉각 이 보도에 항의하고 정정과 사과를 요구했다. "해수부 2차관을 약속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도 인양시기는 기술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됐을 뿐이라며 보도내용을 부인했다. 이철조 세월호 현장수습본부장은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해 고의 인양 지연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파문이 커지자 해당 방송사는 3일 "본래 취지와 다르게 오해가 빚어졌다"며 사과했는데 애초 더 신중한 확인 절차를 거쳤어야 할 의혹이다. 돌이켜보면 세월호와 관련해 아니면 말고식 '다이빙벨 구조론'처럼 국민 가슴을 멍들게 한 허황된 주장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도 정치권은 이런 의혹을 물 만났듯 기정사실화하고 증폭시키고 있으니 참으로 무책임하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온 국민이 경악했는데 문 후보가 사죄는커녕 언론에 보복과 고발 운운으로 맞선다"며 공세를 펼쳤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문 후보가 3월 팽목항을 방문해 '얘들아 고맙다'고 한 말뜻을 이제야 알겠다"며 의혹 부풀리기에 나섰다.



세월호 인양은 기술적인 한계나 전문가 진단을 통해 판단해야지 불쑥 터져나온 누군지도 모르는 공무원의 발언으로 따질 사안이 아니다. 3일부터 여론조사 결과 공표가 금지되는 '깜깜이 선거국면'이어서 그러잖아도 가짜뉴스 발호가 우려되는 판국이다. 엄격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는 언론과 이를 토대로 일단 의혹부터 확대 재생산하려는 정치권이 깊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주요신문칼럼



1. [연합뉴스][김은주의 시선] 흥사단과 도산 안창호

"조상 나라 빛내려고 충의 남녀 일어나서 / 무실역행 깃발 밑에 늠름하게 모여드네 / 맘을 매고 힘을 모아 죽더라도 변치 않고 / 한 목적을 달하고자 손을 들어 맹약하네."

도산 안창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한 민족운동단체 흥사단의 입단가 1절이다.

1913년 5월13일 청년 강영소의 집에서 흥사단 창립식이 거행됐다. 지방색을 없애기 위해 조선 8도에서 한 사람씩 지역대표를 뽑아 8도 대표가 창립위원으로 참여했다. 

안창호는 흥사단 약법에서 설립 목적을 "우리 민족전도의 대업의 기초를 준비함에 있음"이라고 밝혔다. '민족전도'는 민족부흥, 곧 민족의 독립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무실·역행·충의·용감의 4대 정신으로 무장, 덕성을 함양하고 신체를 단련하며 전문지식과 과학기술을 습득하고 건전한 인격을 기르고자 했다. 

1919년 3.1운동 이전까지 흥사단은 미주에서 단우 모집, 동맹수련, 인격수양, 재정적 기초를 만들기 위한 북미실업주식회사 사업 등에 주력했다. 그러나 미주동포 중에서만 단우를 선발할 수 있었고, 고학하는 유학생들과 이주 노동자 중심이었으므로 독립운동에 필요한 인재 양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3.1 운동 이후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흥사단은 1920년 상하이에 흥사단 원동위원부를 조직했다. 이어 1922년 서울에 수양동맹회, 1923년 평양에 동우구락부를 각각 창립했다. 국내의 두 단체는 1925년 수양동우회로 통합됐고 그 뒤 동우회로 개칭했다. 기관지 월간 '동광'을 창간해 40호까지 발행했다. 중국과 미주, 국내에서 흥사단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주요 사건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안창호는 1878년 11월9일 평안남도 강서의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출생했다.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국력배양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16세이던 1894년 상경, 이듬해 구세학당(언더우드 학당)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3년간 수학하며 서구 문물을 접했다. 그는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해 평양에서 관서지부 조직을 맡았다. 1898년 다시 서울로 올라가 만민공동회 청년 간부로 활약했으며 1899년에는 강서군 동진면에 강서지방 최초의 근대학교인 점진학교를 설립했다.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인 친목회를 조직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한인공립협회를 설립했다. 회원 교육을 위해 야학을 개설했고 공립신보를 발행해 교포들의 생활 향상 및 의식계몽에 힘썼다. 을사늑약 체결 소식을 듣고 국내에서 구국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1907년 귀국했다. 

안창호는 같은 해 윤치호, 이갑, 신채호 등과 비밀결사조직 신민회를 만든 뒤 대한매일신보를 기관지로 해 민중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1908년 평양에 대성학교를 설립하고 평양과 대구에 출판기관인 태극서관을 건립했으며 민족산업 육성을 위해 평양에 도자기회사를 설립했다. 1909년에는 박중화, 최남선, 김좌진, 이동녕 등과 함께 국내 최초의 청년운동 단체인 청년학우회를 조직, 민족계몽 및 지도자 양성에 주력했다.

1909년 10월 안중근 의거 배후 혐의로 체포됐다가 두 달 만에 석방된 후 1910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안창호는 민족지도자들과 함께 북만주에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만들어 영농과 군사양성을 기하려는 계획을 추진했으나 자금관계와 급진파의 반대로 실패했다. 이에 시베리아를 거쳐 1911년 미국으로 망명해 1913년 흥사단을 창설했다.

안창호는 3.1 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교민들이 모금한 돈을 갖고 상하이로 건너갔다. 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를 맡았으며 임시정부 내 계파 갈등이 심해지자 1921년 국민대표회의 소집을 주장했다. 1923년 상하이에서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어 부의장에 선임됐으나 63회 회의를 끝으로 결렬됐다.

1924년 만주 일대의 독립군 대표들과 회동하고 난징에 동명학원을 설립했다. 같은 해 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각지를 순행하며 국민회와 흥사단의 조직을 강화했다. 1926년 중국에 돌아와서 만주 지린(吉林)성 일대를 답사한 뒤 독립전쟁의 근거지를 만들기 위한 이상촌 사업을 추진했다. 

1929년 '미국에 재류하는 동지 여러분께'라는 글을 통해 흥사단은 단순한 수양단체가 아니라 한국의 독립을 위한 혁명 훈련 단체임을 천명했다. 1930년 다수의 흥사단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시영, 김구 등과 한국독립당을 결성했다. 1932년 4월 윤봉길 의거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서울로 압송됐다. 4년의 실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35년 2년 6개월 만에 가출옥하여 평안남도 대보산 송태산장에서 은거했다.

1937년 6월 동우회사건으로 다시 수감됐다가 같은 해 12월 병으로 보석됐고 이듬해 3월10일 경성대학부속병원에서 간경화증으로 사망했다. 안창호는 취조 과정에서 흥사단이 독립운동 단체라고 당당하게 진술했다. 

흥사단은 1937년 이른바 동우회사건으로 200여명의 회원이 검거되면서 강제로 해산됐다. 이때 수감된 안창호는 병보석으로 출감했다가 1938년 3월 경성대학부속병원에서 사망했다.



해방 후 흥사단은 1948년 8월15일 본부를 국내로 옮기고 미국에는 미주위원부를 개설하는 등 조직을 재정비했다. 5.16 군사정변이 일어날 때까지 시민 계몽을 위한 금요강좌를 운영했고 1963년에는 청년학생 아카데미를 발족해 대학생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청소년 리더십 캠프, 나라사랑 국토순례 등의 아카데미운동을 시작했다. 

현재 흥사단 산하 전국 25개 지부와 미국, 캐나다에 9개 지부가 활동하고 있다. 또 부설조직으로 민족통일운동, 투명사회운동, 교육운동 등 3개 운동본부와 청소년회관, 도산아카데미 등 22개 청소년 시설을 운영하며 지역사회 풀뿌리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나라 잃고 이국만리 서러운 삶을 영위하던 교민들이 민족의 독립을 열망하며 모여 만든 흥사단.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요구하는 흥사단의 역할도 달라졌다.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흥사단은 시민단체로 자리 잡았다. 100여 년 전 어느 봄날 저녁 가난한 한인 청년의 집에서 조촐하다 못해 초라하기까지 한 창립식을 가졌다. 이렇게 출범한 흥사단은 차츰 틀을 갖춰 중국과 미국, 국내에서 험난한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단우들은 직접 몸을 던져 싸웠는가 하면, 피눈물 나게 번 돈 한푼 두푼을 모아 독립자금에 보탰다. 이제 시대가 변해도 흥사단의 초심, 안창호의 그 뜨거운 조국 사랑은 기억해야 한다.



2. [서울신문][말빛 발견] 따라가지 못한 사람 '미망인'

‘영윤’은 중국 초나라 때 최고 직위의 관직이다. 초의 문왕이 죽자 당시 영윤이었던 자원이라는 사람이 문왕의 부인을 유혹하고 싶어졌다. 그는 궁 옆에 새 건물을 짓고 ‘만’(萬)이라는 의식을 치른다. 이것은 군대를 훈련할 때나 하는 행사였다. 이 소식을 들은 문왕의 부인은 이렇게 한탄한다. “영윤은 적을 치는 데는 생각이 없나 보다. ‘미망인’ 곁에서 이러고 있으니.”

‘춘추좌씨전’에 전하는 내용이다. 여기서부터 ‘미망인’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망인’은 이렇게 아주 오래된 말이다. 이천 년도 넘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리도 쓰게 되고, 의미에도 변화가 온다.

문왕의 부인은 ‘미망인’을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미망인’은 본래 이렇게 일인칭으로 쓰였다. 그것도 자신을 한껏 낮춘. 원뜻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아직(未) 따라 죽지(亡) 못한 사람(人)’이 ‘미망인’이었다. 문왕 부인은 ‘미망인’에 이런 뜻을 담았다. 당시의 풍습과 생각, 시대상을 보여 준다. 아내는 남편에게 딸려 있고 죽음도 같이해야 한다는 사고가 지배하던 시절이다.

지금 우리에게 ‘미망인’은 일인칭이 아니다. 제삼자를 가리키는 삼인칭으로 쓴다. 그러면서 고결함으로 포장된 말처럼 사용하려 하기도 한다. ‘과부’가 비하적이라면, ‘미망인’은 반대인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이천 년 전의 생각은 아직 강하게 묻어 있다. ‘미망인’에 대응해 남자를 가리키는 말은 없다. 남성 중심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오래 써 온 관습이어서 버리기는 만만치 않다.



3. [중앙일보][새미 라샤드의 비정상의 눈] 대중교통, 한국은 편리 … 이집트는 인간적 매력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살다 보면 여러 가지를 비교하게 된다. 일상생활과 관련 있는 대중교통은 자주 비교하게 되는 대상이다. 한국의 대중교통은 정보기술(IT)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편리하다. 이집트 대중교통도 나름 장점이 많다. 사실 버스·기차·지하철·전철 등 한국에 있는 대중교통은 이집트에서도 다 볼 수 있다. 한국보다 오히려 가격이 싸고 인간적인 매력까지 있다.

게다가 한국에 없는 독특한 대중교통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이크로버스다. 이름에 ‘마이크로’가 붙었지만 사실은 14명이 탈 수 있는 소형 승합차다. 한국에선 업무용으로 많이 쓰지만 이집트에선 개인이 운행하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주로 쓴다. 수도인 카이로 같은 대도시에선 국가 대중교통기관에서 운영하는 대형버스보다 더 인기를 끈다.

이집트 국민이 마이크로버스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적인 매력이다. 대형버스는 노선표대로 큰길만 다니지만 마이크로버스는 대형버스가 가지 않는 작은 길도 달려 동네 깊숙한 곳까지 운행한다. 승객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타고 내릴 수 있다. 심지어 타기 전에 운전기사와 협의만 하면 원래 운행하는 노선에서 조금 벗어나 원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도 있다.



마이크로버스의 가장 큰 장점은 24시간 운행이다. 국가 대중교통기관에서 운영하는 일반 버스는 자정 무렵에 운행을 종료하기 때문에 카이로에서 막차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탈 수 있는 대중교통은 개인이 운영하는 마이크로버스밖에 없다.

마이크로버스는 시골과 대도시를 연결하는 유익한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관광회사들이 운행하는 대형버스는 주로 대도시에서 대도시로, 큰 도로로만 다닌다. 하지만 마이크로버스는 소도시나 시골까지 데려다준다. 따라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든든하게 여기면서 믿고 타는 대중교통이 바로 마이크로버스다.

일부 운전기사는 슬그머니 요금을 올리려 하는데 승객들이 항의하고 흥정해서 낮은 요금에 합의하기도 한다. 마이크로버스 운전기사는 대개 14명의 승객이 모두 차기 전에는 출발하지 않는다. 그러면 미리 온 승객들이 요금을 조금 더 주겠다고 제안해 손님이 다 차기 전에 떠나기도 한다.

마이크로버스는 대중교통 수단일 뿐 아니라 이집트 사회와 사람들의 사고방식, 그리고 딱딱하지 않고 정이 많은 정서까지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한국은 첨단기술이 자랑이라면 이집트는 인간적인 매력이 장점이다.



4. [조선일보][양해원의 말글 탐험] 아울렛? 아웃렛!

얼굴도 몸집도 오동통해 떡보. 늘 불콰하고 화난 듯한 핏대. 퀭한 눈, 움푹한 볼이 만화영화 주인공 닮아 황금박쥐. 근엄한 분위기에 머리칼 치렁하다고 예수. 심심하면 "아시시(으스스)한 얘기 해줄까" 해서 아시시. 긴 턱에 부라린 눈으로 야단치는 품이 영락없이 악어. 눈썹 짙은 독일어 선생님 게슈타포….

교사(校舍)의 먼 불빛에 소리 죽여 농구하던 고교 시절. '야자' 시간 '땡땡이'라야 그게 고작이라, 성함(姓銜) 대신 별명으로 선생님들 흉보며 알량하게 스트레스 풀곤 했다. 그중 특히 잊지 못할 별명이 '사스콰치(Sasquatch)'. 하지만 아무도 그리 부르지 않았다. 사람 닮은 털북숭이로 전설 속에 살아 있는 괴물(怪物). 그 느낌 살리려면 '싸스콰치' 하고 된소리를 내야 했으니까.

소리 그대로 쓰면 법(法)에 어긋나는 줄은 나중에 알았다. 사람 혼내주는 법 말고 '외래어표기법'(실은 외국어도 포함) 말이다. 된소리 표기를 하지 않는 원칙(ㄲ→ㅋ, ㄸ→ㅌ, ㅃ→ㅍ, ㅆ→ㅅ, ㅉ→ㅊ) 때문인데.

이탈리아 상표 '구찌'는 그래서 '구치'가 원칙에 맞는다. 그 설립자 이름 역시 '구초 구치(GuccioGucci)'로 써야 한다. 구치가 만든 회사 '구찌'라…. 빵집 이름은 '파리 바게뜨'지만 일반명사인 프랑스 빵 이름은 '바게트'로 표기하게 돼 있다. 주로 고유명사에서 이렇게 외국어 표기가 뒤엉킨다. 규정 신경 안 쓰고 한글 이름을 붙인 탓. 문제는 된소리에서 그치지 않는다.

훼미리마트(패밀리마트), 휴렛팩커드(휼렛패커드), 폭스바겐(폴크스바겐), 크리스챤 디올(크리스티앙 디오르)…. 실제 표기와 원칙에 따른 표기(괄호 안)가 조금씩 다르다. 이런 게 한 기사에 같이 나오면 아주 골칫거리다.

'롯데아울렛 이천점은 어린이 공간 증축으로(…) 롯데몰 동부산을 제치고 국내 최대 규모 아웃렛으로 올라섰다.'

아웃렛(outlet)이 늘어나면서, 규정에 어긋나는 '아울렛' 표기가 주류를 이뤘다. 상호(商號)에 맞추자니 표기법이 무색해진다. 표기법에 맞추자니 남 이름 함부로 바꾸는 꼴이다. 법이 물렁한 탓일까, 지킬 만하지 못한 걸까.

외국어 표기에 정답은 없다. 다만 원칙과 약속, 합리성이 중요할 텐데…. 아무튼 이건 괜찮으려나,



5. [중앙일보][분수대] 조선시대 사랑가

‘뜨거운 사랑과 욕망의 노랫말들이 모여 있는 공간입니다. 청소년과 아이들을 인솔하는 부모님과 선생님께서는 각별히 신경 써 주세요’. 전시장 한쪽에 붙은 안내문구다. 이른바 ‘19금 노래’,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약간 엄포성이다. 표현 농도가 그리 진하지 않다. ‘사랑 사랑 긴긴 사랑 개천같이 내내 사랑. 구만 리 먼 하늘에 흩어지고 남는 사랑’은 곱고 예쁘기만 하다. ‘사랑이 어떻더냐 둥글더냐 넓적하더냐 길더냐 짧더냐’는 요즘 트로트 유행가 같다.

더러 농염한 대목도 있다. ‘들입다 바드득 안으니 가는 허리 자늑자늑’. 여인네 신체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다. ‘중놈도 사랑인 양하여 자고 가니 그립다’며 지난밤을 아쉬워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은 젊음의 상징일까. ‘진실로 나의 평생 원하기는 말 잘하고 글 잘하고 얼굴 단아하고 잠자리 잘하는 젊은 서방’이라고 고백한다. ‘샛서방 밥을 담다가 놋주걱을 부러뜨렸다’는 며느리를 시어머니가 위로하기도 한다. ‘저 아기 너무 걱정 말아라. 우리도 젊었을 때 많이 꺾어 보았노라’. 시쳇말로 쿨하다. 지금 봐도 낡지 않다.

위의 노래는 한글로 기록한 최초의 가곡 모음집인 『청구영언(靑丘永言)』에 등장한다. 1728년 가객(歌客) 김천택이 구전 노랫말 580수를 일일이 옮겼다. 그 원본이 요즘 서울 용산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일반에게 처음 공개되고 있다. 이방원의 ‘하여가’, 정몽주의 ‘단심가’ 등 교과서 단골 시조도 많지만 옛사람의 풍류·흥취가 담긴 노래가 정겹다. 세상살이 맨살을 드러낸다. “한때 입으로 불리다가도 저절로 드러나지 않게 돼 후에 연기처럼 사라짐을 면치 못하게 되니 어찌 슬프고 안타깝지 않겠는가”라는 김천택의 열정 덕분에 오늘에 전해지게 됐다.

전시장은 현대적이다. 옛 노랫말을 오늘날 도시 뒷골목 풍경과 겹쳐 놓았다. 『청구영언』 전체를 주제·작가별로 살펴보는 코너도 있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모습이 지금이나 300년 전이나 다름없다는 걸 일러 준다. 삶이 곧 노래요, 노래가 곧 시 아닌가.

나라의 평안을 비는 마음도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선인들은 ‘우리 동방 산하의 견고함이여 태평성대 풍속이 오래도록 이어질 성지(城池)’ ‘임금은 덕을 닦고 신하는 정사를 돌보니 예의 있는 동쪽 나라’가 되기를 희망했다. 요즘으로 따지면 사랑하기 좋고, 아이 낳기 좋은 곳이다. 나라 안팎으로 갈등과 위기의 시절, 철부지 사랑타령을 또 하나 꺼내 본다. ‘아마도 임과 외따로 살라 하면 그건 그리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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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 자산순위 1위 기업? → 삼성전자가 아니라 ‘LH공사’... 10대 공기업 자산 규모, 10대 기업보다 커. 2015년 기준. 공공부분 비대는 시장왜곡 우려도...(국민)▼

 



2. 공무원 시험에 직군 전문과목 도입 검토 →2021년 9급 공무원부터. 현재 세무직 9급 합격자75%가 선택으로 세법, 회계학 대신 사회, 과학, 수학 등 고교과목을 선택하는 실정...(한경)

 



​3. 노동절 → 1886년 5월1일 美노동총동맹의 행진에서 경찰에 의해 6명이 사망, 과격화... 주도자5명 교수형(1명은 집행 전 자살). 이날 기려 1890년 첫 노동절.(아시아경제)

*이승만 땐 한국의 노동절은 3월 10일, 박정희 정권에서는 이름도 ‘근로자의 날’... 1994년 노동절로 이름 되찾아.

 



4. 가계 이자 수지, 42년만에 첫 적자 → 통계 집계 이래 처음으로 국민이 이자로 낸 돈이 이자로 받은 수입보다 많아. 이자 지출 41조 7천억 > 이자 수입36조 1천억.(세계 외)

 



​5. 스포츠 → 류현진 시즌 첫승, 937일만에 승리.추신수 3호 홈런. 손흥민, 터지지 않는 신기록. 유럽무대 시즌 20골. 아이스하키 대표팀, 월드챔피언십 1부 리그 승격은 축구로 치면 월드컵 16강...(문화 외)

 



6. ‘대변’초등학교 있을까? → 부산 기장군 대변리에 있다. 1963년 개교. 어린이 부회장 학교이름 바꾸겠다 공약...(동아)

 



7. 대기업도 양극화? → 31개 대기업 집단... 삼성,현대자동차, SK, LG 4대 그룹이 전체 매출의 56%,순이익은 73% 차지.(국민)

*자산 순위도 고착화.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포스코’... 8년간 변동 없어.

 



8. 지난해 공공기관 임직원 정원 → 29만 9600여명.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 332개. 기획재정부 자료.(문화)

 



​9. 연휴 휴일 일하는 중소기업 비율 → 1일 노동절34.1%, 3일 석탄일 23.7%, 5일 어린이날 11.1%, 9일 대선 50.4%... 중소기업중앙회 250곳 조사.(중앙)

 



10. 국제핸드메이드페어 → 350팀의 1인 창작자,사회적 기업이 만든 핸드메이드 작품 전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5월 1일 ~ 5일.(세계 외) ▼사진은 출품된 손가락 크기 초소형 화분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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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중앙일보]

1. 삼성전자 ‘49조 주식 소각’을 바라보는 착잡함

삼성전자가 어제 이사회를 열어 40조원어치의 자사주를 소각키로 했다. 그동안 사들여 갖고 있던 보통주 1800만 주와 우선주 323만 주다. 전체 발행 주식의 13.3%에 달한다. 이 회사가 추가 매입 중인 9조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역시 소각될 예정이다. 지금의 주가로 치면 총 49조원어치가 사라지는 셈이다.



물론 자사주를 없앤다고 회사 가치가 쪼그라드는 건 아니다. 없어진 금액만큼 나머지 주식의 가치가 올라간다. 주주들에겐 그만큼 이득이다. 배당과 더불어 자사주 소각이 주주친화 경영의 주된 수단으로 자리잡은 이유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는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도 2.4% 올랐다. 

자본시장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 그동안 우리 증시에선 기업이 주주들에게 너무 인색하다는 비판이 일어왔다. 시가에 견줘 배당률이 너무 낮고 ‘박스피’로 불릴 만큼 주가도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활성화와 소비 심리 개선을 위해서라도 기업이 배당을 확대하고 주가를 부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근혜 정부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도입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주식 소각은 이런 분위기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국민경제적 관점에선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주식 소각은 기업이 성장기를 마무리했다는 불길한 신호다. 주식 소각이 당장의 주가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되지만 미래의 기업 가치를 향상시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주식 소각보다는 재투자와 연구개발(R&D)에 돈을 쓰는 게 고용과 내수를 살리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반도체 특수로 들어오는 막대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에 대한 회사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



사회적 분위기와 정책의 뒷받침도 필요하다. 기업의 잘못된 행위는 분명히 바로잡되 기업 활동의 족쇄는 풀어주는 균형점을 모색해야 한다. 같은 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법인세율을 15%로 내리는 획기적 감세안을 발표했다. 상황과 여건이 다르다지만 우리 기업들로선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신문]

2. 정책 정치 가능성 보여준 심상정의 약진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의 약진이 연일 돋보인다. 그끄저께 4차 대선 TV 토론 이후 여론조사에서는 심 후보의 지지율이 8%까지 수직으로 상승했다. 그의 지지율은 한 달 넘게 3% 박스권에 꼼짝없이 묶여 있었다. 그런 사정을 고려한다면 아마 자신도 놀랄 수치일 것이다. 정의당과 심 후보에게 지지와 후원 문의가 이어진다고 한다.

심 후보의 지지율 급등은 TV 토론을 통해 역량을 거듭 확인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4차 토론 직후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도 그는 토론을 가장 잘한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단지 언변이 좋아서 유권자들이 새삼 그를 주목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심 후보의 토론 자세와 내용에서 ‘정책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었다는 평가가 많다.

TV 토론을 볼 때마다 유권자들은 가슴에 체증이 더 쌓인다. 일자리·안보·저출산 등 기초 현안을 놓고도 원론적 답변으로만 쩔쩔매는 유력 후보들 탓이다. “저 정도로 준비가 덜 된 사람들한테 국정을 어찌 맡기겠나” 하는 답답증 속에서 심 후보가 숨구멍을 터 주는 셈이다. 불리한 문제에는 답변 회피 작전을 일삼는 유력 후보들과 달리 그는 논점을 꿰뚫어 알맹이 있는 답변을 제시했다. 후보들의 선심성 정책들에 재원 대책이 뭐냐고 구체적으로 따지는 내공도 보여 줬다.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진보적 가치를 유감없이 드러낸 것도 호감도를 확장하는 데 주효했다.



유권자들이 얼마나 짜증 날지는 아랑곳없이 후보들이 해묵은 대북 송금 공방을 벌일 때도 “앞으로 대통령 되고 뭘 할지를 물어봐야 한다”며 토론의 흐름을 튼 것도 그다. 어찌 보면 크게 대단한 요령도 없다. 그저 상식선의 국민 눈높이에서 대응하니 그의 역량을 다시 살피게 된 것이다.

진영과 정당의 기성 논리에 매몰된 나머지 어느 후보는 무슨 질문에 어떤 답변을 할지 빤한 게 현실이다. 지지 후보가 엉뚱한 대답으로 허방이나 짚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다. 그만큼 주요 후보들의 정책 논리는 빈약하며, 정치 철학과 정책 역량은 초라하게 비친다. 이야말로 정치 신인도 아닌 심 후보가 소속 정당에서도 예상치 못한 상승기류를 타는 배경이기도 하다.

오랜 고민과 정치철학으로 개발한 정책인지 아닌지는 유권자가 먼저 알아본다. 대선일이 고작 열흘 남았다. 이 파장 국면에 왜 지금 ‘심상정 현상’인지 주요 대선 주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아프게 새겨 보기 바란다.



3. 선거판 뒤흔드는 SNS 마타도어 중대 범죄다

대선을 열흘가량 앞둔 가운데 후보 관련 가짜 뉴스가 막판에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대선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다음달 3일부터 선거 당일인 9일까지는 온갖 가짜 여론조사가 판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대선 후보와 관련한 가짜 뉴스는 역대 최다인 3만 1000건을 웃돌았다. 2012년 18대 대선 전체 기간에 적발한 건수의 4배를 넘어선 것이다. 허위사실 공표와 불법 여론조사 공표, 후보자 비방이 전체의 97%를 차지했다. 네이버 밴드와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 4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된 불법 게시글이 77%에 이르렀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에 관련된 글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가짜 뉴스는 악의적 비방·흑색선전으로 여론을 왜곡·조작한다.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중대 선거범죄다. 이번 대선부터 누구나 자유롭게 사이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 SNS를 이용해 너도나도 상대 후보의 불법 낙선운동에 나서는 꼴이다. 후보 간의 네거티브 경쟁이 가짜 뉴스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가짜 뉴스로 발생하는 사회적 신뢰 저하, 정치적 극단주의 등의 피해가 연간 30조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선관위는 24시간 가짜 뉴스를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사이버 전문가 20여명의 인력으로 매일 많게는 수십억 건이나 되는 SNS 게시글을 걸러 내기 어렵다. 게다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과 같은 폐쇄형 SNS의 가짜 뉴스형 허위사실이나 비방은 내부 제보 없이는 적발하기 어렵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각 후보 진영에 SNS 전략을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로 바꾸길 기대하는 것도 순진한 발상이다.

포털 사이트는 이제라도 가짜 뉴스를 제공하는 매체와는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 현재 포털에는 무려 1000개가 넘는 언론매체 기사가 동시다발적으로 게재되고 있다. 그때그때 적발한 가짜 뉴스를 삭제하는 방식은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이제 5·9 대선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엄격한 법 적용 이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대선 이후 가짜 뉴스가 사회문제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시범적으로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 명예훼손’이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를 엄격히 적용하길 바란다. 대선이 끝나고 나서는 독일처럼 가짜 뉴스를 비롯해 ‘범죄적 내용’을 발견하고도 24시간 안에 삭제하지 않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 기업에는 거액의 벌금(독일은 최고 500만 유로)을 물리는 것을 입법화해야 한다.



[매일경제]

4. 65세 이상 버스기사는 적성검사 받는데 택시는 왜 거부하나

정부가 만 65세 이상 택시기사를 대상으로 내년부터 '자격유지 검사(운전적성 정밀검사)'를 도입하려는 데 반발해 전국의 개인택시 기사들이 다음달 2일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국토교통부는 자격유지 검사 도입을 위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입법예고를 3월 마무리하고 현재 규제개혁심사를 앞두고 있다.



65세 이상 택시기사는 3년에 한 번, 70세 이상은 매년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일정 점수 미달로 탈락할 경우 운전대를 잡을 수 없다 보니 고령 기사들이 집단적으로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택시기사들은 개인택시연합회 차원의 자율검사 권한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자격유지 검사는 횟수에 상관없이 재응시가 가능하므로 굳이 그렇게 해야 할 명분이 없다.

개인택시 기사 중 65세 이상 비율은 2015년 기준 25.9%에 달한다. 고령 택시기사들이 다 운전에 미숙한 것은 아니지만 신체·인지 능력 저하로 돌발 상황에서 대처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65세 이상 택시 운전자의 사고 건수는 주행거리 100만㎞당 0.988건으로 65세 미만 운전자(0.65건)의 1.5배 수준으로 사고율이 높다.

65세 이상 버스 운전자의 경우 지난해 1월부터 자격유지 검사를 시행 중이어서 형평성 차원에서도 택시기사에게 적용하는 것이 옳다. 정부가 버스에 먼저 적용하고 택시에 유예해준 것인데 직업권 침해, 차별이라며 반발하는 것은 승객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발상이다. 

일본은 사업용 운전자의 경우 65세 이상은 3년, 75세 이상은 1년 주기로 적성검사를 받고 있고, 영국은 65세 이상은 매년 의료보고서까지 제출해야 한다. 택시기사의 운전능력을 정기적으로 검증해 부적격자를 가려내는 것은 승객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일인 만큼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이데일리]

5. 훈풍 이어갈 성장전략 있는가

우리 경제에 모처럼 봄바람이 불고 있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보다 0.9% 상승했다는 게 한국은행 발표다. 수출 증가세가 5개월째 이어지고 건설·설비투자가 늘어난 덕분이다. 민간소비도 증가했다. 올 성장률이 한은 전망치 2.6%를 넘어설 것이란 기대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체감경기는 아직 겨울이다. 경기 회복세가 고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분기 실업률이 4.3%로 2010년(4.7%) 이후 가장 높고, 청년실업률은 10.8%로 몇년째 두 자릿수다. 물가도 1분기에 2.1%가 올라 가파른 상승세다.

대선 후보들은 이런 현실에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나랏돈으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등 눈앞의 표심 좇기에 급급할 뿐, 정작 곳간을 채울 방책은 공허하다. 후보들마다 성장전략을 내세우고 있지만 추상적인 데다 정책의 나열 수준에 그쳐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되레 성장 불씨를 꺼뜨리는 게 아닌가 미심쩍은 공약들이 쏟아진다. 법인세 인상과 상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미국이 법인세율을 35%에서 15%로 낮추기로 하는 등 각국이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인하하는데도 우리는 반대 움직임이다.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재벌개혁론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근본적인 성장전략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표심에 기댄 반기업 정서의 유혹을 떨쳐내고 기업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규제개혁과 혁신의 성장 로드맵을 내놓으라는 얘기다. 기업 발목을 잡으면서 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성장 없이는 분배도, 복지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6. 협상의 손 내민 美, 北이 답할 차례다

대북 강경노선으로 치닫던 미국이 돌연 협상 여지를 열어 놓았다. 틸러슨 국무장관과 매티스 국방장관 등은 그제 합동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방식은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동맹국 및 역내 파트너들과 외교적 조치를 추구함으로써 북한이 핵, 탄도미사일, 핵확산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성명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기조를 처음 제시한 것으로 경제 제재와 외교적 압박을 통한 문제 해결에 방점이 찍힌 게 특징이다. 성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은 한반도 안정과 평화로운 비핵화를 추구한다”며 “그 목표를 향해 협상의 문을 열어 두겠다”고 못 박았다.

올 1월 출범 이후 선제타격 등의 강경 발언과 핵항모 칼빈슨호의 한반도 배치 등 무력시위로 역내 긴장을 한껏 고조시킨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사뭇 달라진 태도다. 그렇다고 정책기조가 완전히 바뀐 건 아니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폐기를 거듭 선언함으로써 강온 양면작전을 구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결 유연해진 이 정책기조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신감이 뒷받침됐다고 봐야 할 게다. 무엇보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잦은 접촉 끝에 얻어낸 공조 약속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무역 보복, 환율조작국 지정 등을 들먹이며 으름장과 호소를 병행한 끝에 ‘6차 핵실험 강행시 대북 송유중단’,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타격 용인’ 등 예전에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반응이 중국 관영언론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그 방증이다.

공은 평양으로 넘어갔다. 중국의 인내도 한계에 다다른 터에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그야말로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꼴이다. 핵을 포기하고 미국이 내민 협상의 손을 잡는 것만이 남북의 공영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임을 왜 못 보는가. 아울러 대선에 뛰어든 유력 후보들이 어설픈 안보관으로 북한의 오판을 유발하는 것도 극력 경계할 일이다.



[세계일보]

7. 대선후보 눈에는 美 ‘법인세 파격 인하’ 안 보이나

미국 트럼프 정부가 파격적인 감세 정책에 들어갔다. 연방 법인세율을 현행 35%에서 15%로 내리고, 개인소득세도 과세구간을 7단계에서 3단계로 줄여 세율을 실질적으로 낮춘다고 한다. 유례 없는 기업 감세 정책이다. 감세 규모는 레이거노믹스가 한창이던 1986년 세제 개편 때보다 훨씬 크다. 10년간 덜 걷힐 세금은 2조2000억달러에 이른다. 천문학적인 세수 감소를 무릅쓰고 감세를 단행하는 것은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서다. 법인세 인하를 통해 경제를 ‘붐업’시키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법인세 인하에 관한 한 미국은 후발주자다. 세계 주요국은 법인세 인하 경쟁에 들어간 지 이미 오래다. 영국은 2008년 28%에서 재작년 20%, 2020년에는 17%로 낮추기로 했다. 일본은 조만간 20%로 낮추고, 독일은 15%까지 내린다고 한다. 인하 바람이 불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법인세율은 지난해 22.5%로 낮아졌다. 세계 경기침체에 맞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불씨를 댕기기 위한 전략이다.

우리나라는 거꾸로다. 정치권은 앞다퉈 법인세 인상을 외친다. 대선후보들이 내건 복지공약에 소요되는 200조원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을 상대로 세금을 더 걷겠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이미 대기업 법인세율을 22%에서 25%, 24%로 올리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이에 더해 대기업 감세를 없애 실효세율을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마찬가지다. 선진국들의 법인세 인하 경쟁을 빤히 보면서도 ‘부자감세 철폐’만 요란하게 외친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자본의 해외 탈출을 부를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조세재정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법인세율을 1%포인트 올리면 성장률은 1.13%포인트 하락하고, 고용은 0.3∼0.5% 줄어든다고 한다. 국내에 투자될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여전히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이 0.9%로 반짝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연간 성장률이 수년째 2%대를 맴돈다. 올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성장률 전망치 3.5%보다 크게 낮다. 규제와 강성 노조가 발목을 잡는 판에 법인세까지 올리겠다니 기업에서 어떻게 투자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대선후보들은 세계 각국이 왜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내리고 있는지 깊이 자문해 보기 바란다.



8. 무너진 양강구도… 안철수, 뭐가 문제인지 돌아보라

5·9 대선 판세에서 양강 구도가 무너지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독주 체제가 구축되고 있다. 문 후보와 자웅을 겨루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지지율이 계속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얼미터가 어제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는 지난주보다 5.6%포인트 떨어진 22.8%에 머물렀다. 문 후보(44.4%)와의 격차가 21.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앞서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문 후보가 안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따돌린 결과가 이어졌는데 이번 조사에선 그 격차가 더 커졌다.

후보 5명의 자질과 정책을 검증하는 TV토론이 지난 13일부터 25일까지 네 차례 진행되면서 안 후보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크게 늘었다. 북한 핵·미사일 도발 등 안보 분야를 비롯해 국정 전반에서 정책과 비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탓이다. 경쟁 후보와 정책 대결을 하기보다는 네거티브나 감정싸움에 치중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내가 갑철수냐”, “MB 아바타냐”는 엉뚱한 질문과 “실망입니다”, “아닙니다”라는 면박성 답변은 패러디와 풍자의 소재로 전락했다. 반면 TV토론에서 호평을 받은 심상정 정의당,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지지율은 올라갔다.

안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보여주지 못했다. 진보와 보수 양쪽의 표를 욕심내다 양쪽에서 모두 잃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사드 입장에서 드러난 ‘양다리 걸치기’식 전략이 대표적이다.

안 후보에게 실망한 보수층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옮겨간 것은 주목된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13%를 확보한 홍 후보는 안 후보를 추격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보수층에서 홍 후보(38.5%)는 안(25.1%), 문(18.0%) 후보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보·혁 대결 본격화에 따른 지지층 결집 효과가 TV토론 영향과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보수 표심의 향배가 향후 판세의 막판 변수로 떠오른 셈이다. 그런 만큼 오늘과 다음달 2일의 남은TV토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안 후보의 부진은 1강 문 후보에게도 거울이 돼야 한다. 25일 TV토론에서 보여준 고압적 태도는 유권자들의 표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심은 권력의 오만을 용납하지 않는다.



[매일신문]

9. 이제 사드 배치 논란 접고 중국 보복 대비에 힘 모으자

주한미군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핵심 장비를 성주기지에 반입한 지 하루 만에 작전 배치를 끝냈다고 한다. 그동안 미군이 다음 달 9일 대선 이전에 사드를 시험 가동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이를 뒤엎고 시험가동 없이 바로 실전 운용에 들어간 것이다. 이에 따라 사드 배치는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됐다. 이를 되돌리려면 한미 동맹의 균열이란 최악의 상황까지 감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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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이렇게 서둘러 사드의 실전 운용에 들어간 것은 그만큼 한반도의 안보 상황이 위중하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 전략 자산의 한반도 파견으로 ‘4월 위기설’은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김정은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6차 핵실험을 할 수 있는 게 지금의 안보 현실이다.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얘기다.



사드는 이런 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어무기다. 북한이 실전 배치한 1천여 기의 미사일 중 800여 기가 남한을 겨냥하고 있는 안보 위협을 타개하기 위한 첫 조치가 바로 사드 배치이다. 그런 점에서 사드 배치를 반대할 명분은 크지 않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줄기차게 반대해왔다. 사드가 안 된다면 어떤 대안이 있는지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제는 이런 안보 자해는 그만둬야 한다. 그럼에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7일 ‘국회 비준 등 공론화’ 주장을 되풀이했다. 또 “대통령이 되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 문제를 순리적으로 풀겠다”고도 했다. 사드 배치라는 현상의 변화를 시사한 발언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아직도 안보 현실의 위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실전 운용에 들어간 사드를 놓고 다시 배치할 거냐 말 거냐는 공론(空論)이 아니라 중국의 추가 보복 등 추후 발생할 사태에 대한 대비책 마련이다. 중국의 보복은 우리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대중 수출은 오히려 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국산 중간재 없이 중국이 만들지 못하는 완제품이 많아서다. 그렇다고 해도 피해를 입는 기업은 분명히 있다. 야당이 할 일은 이런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중국을 설득하는 일이다.



10. 행정 착오라며 무기계약 근로자 수당 떼먹은 영덕군

영덕군이 무기계약 근로자들의 연차수당은 물론 행정 착오로 지난 2014년부터 3년간 53명의 근로자에게 2억1천405만여원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영덕군이 근로자의 임금 체계를 바꾸며 행정 착오로 빚어졌다. 또한 급식비나 교통비 등을 통상 임금에 포함시키지 않은 잘못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뒤늦게 근로자들이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이런 행정상 착오와 잘못이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 포항지청의 정기 감독 과정에서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감독 결과, 영덕군은 무기계약 근로자 58명의 연차수당 360여만원을 주지 않았다. 재직자 65명의 연차 일수 수당 1천200여만원도 지급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의 감독으로 잘못을 지적받을 때까지 고스란히 모른 셈이었다. 고용노동부 지적이 없었으면 그냥 떼일 돈이었다.



영덕군의 문제는 또 있다. 통상 임금에 급식비와 교통비 등을 넣지 않았다. 이런 명목은 퇴직금이나 상여금 등을 줄 때 기준이 되는 통상 임금에 포함돼 근로자들의 임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영덕군이 최근 3년간 이런 식으로 53명에게 미지급한 돈은 2억1천405만여원에 이르렀다. 1인당 400만원이 넘는 적잖은 금액이다. 

  
고용노동부가 비록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이번 일은 영덕군의 허술한 행정의 단면을 드러낸 사례이자, 공무원들의 안이한 자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군청의 정규직 공무원들이 받을 돈이었으면 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거나 3년이나 그냥 두었겠는가. 허술한 업무 처리와 함께 주먹구구식 예산 운용도 짚어볼 문제이다. 현재로서는 근로자 미지급금을 주려고 해도 마땅한 예산이 없는 탓이다.



이번 일은 일자리 창출 과정에 따른 일로 치부하고 단순 행정 착오라는 군의 해명만으로는 해법이 될 수 없다. 한정된 군 예산을 고려하지 않은 일자리 창출 정책은 되새겨봐야 할 사안이다. 행정 착오를 3년이나 모른 점은 그냥 덮어둘 수 없다. 이런 문제에 대한 반성과 함께 군이 자초한 문제인 만큼 예산 타령에 앞서 임금부터 해결해야 한다. 미룰 일이 아니다. 일자리 행정도 현실성 있게 바꿔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윤제림의 행인일기 41] 달빛장터에서

해가 지자, 한강공원에 장이 섰습니다. 두리번대며, 기웃거리며 두어 바퀴를 돌았습니다. 이름부터 재미있습니다.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반포 낭만 달빛 마켓'. 푸드 트럭 수십 대가 광장의 울타리를 이루고, 가운데엔 갖가지 노점들이 빙 둘러앉았습니다. 저마다 직접 만든 물건을 들고 나와 파는데, 대개 수공예품들입니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무지개 분수, 황홀한 야경에 살랑거리는 봄바람. 또 하나의 강물로 넘실대는 젊음의 물결. 눈과 귀만 어지러운 게 아닙니다. 굽고, 찌고, 볶고, 삶고, 끓이고! 갖가지 냄새가 코를 간질입니다. 넓은 마당이 거대한 부엌입니다. 레스토랑입니다.

코너마다 장사진(長蛇陣)입니다. 음식 하나 사먹자면 인내력 테스트를 받아야 할 지경입니다. 참을성이 없으면 구경꾼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당연히 점포마다 즐거운 비명이지요. 만두, 핫도그, 스테이크, 감자튀김 …. 어느 줄이 더 긴가 시합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지루해하지 않습니다.

저는 비교적 짧은 줄을 선택했습니다. 떡을 파는 곳입니다. 인절미 예닐곱 개를 노릇하게 구워서 일일이 조청을 바르고 콩고물을 묻혀 줍니다. 연인들인지 신혼부부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주인 남녀는 지금 숨 돌릴 겨를이 없습니다. 찰진 솜씨로 한 사람은 굽고, 찰진 말씨로 한 사람은 팝니다. 

아무려나 '고마운 일'입니다. 이렇게 흥겨운 '청춘의 굿판'을 마련해준 사람들이 고맙고, 맛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젊은이들이 고맙습니다.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도 있을 작품들을 자랑스레 선보이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고맙습니다. 땀을 흘리며 '불'과 '연기'와 씨름하는, 저마다의 '신념'을 파는 젊은 그들이 고맙습니다. 

동시에, 미안한 생각도 고개를 드는군요. '저렇게 행복한 얼굴로 능력과 열정을 팔 수 있는 청춘들인데. 터가 없고 판이 없어서 젊음의 시간과 에너지를 놀리고 있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힘과 슬기는 넘치는데 쓸 곳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딱한 일인가.' 

'연부역강(年富力强)'. 시간 부자, 힘의 강자(强者)면 무엇 하겠습니까. 의자가 없고 멍석이 없는데, 시장이 없고 광장이 없는데, 극장이 없고 무대가 없는데.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는데, 눈높이를 맞춰줄 사람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목이 타는지, 슬픔의 근원이 무엇인지 관심 두는 이가 없는데.

청년실업은 통계전문가나 정치가들의 회의실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20세기 작도법(作圖法)으로는 그들이 그리워하는 세상의 지도를 만들기 어렵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 그들이 계속 우리처럼 살기를 주문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M1소총 교본으로 미래 전쟁의 전술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낮에 본 연극이 떠오릅니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 1949년에 초연된 작품인데, 감동의 공감대는 여전합니다. 평생을 성실히 살아온 주인공 '윌리 로먼'은 이땅에도 있을 법한 어떤 아버지의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더 이상의 '기회 없음'에 절망하며 자살로 삶을 마치는 가장이지요. 

그러나 죽음의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수입이 생길 때마다, 현관 계단을 만들고 지하실을 만들고, 욕실 하나 더 만드는 게 기쁨과 보람이었던 아버지. '시멘트 한 포대만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아버지. 그렇게 가정적이었던 사람답게, 누가 물으면 '아들이 얼마나 잘 나가는지' 허풍을 치던 아버지.

아버지는 두 아들이 번듯하게, 남부럽지 않게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 소망의 기준은 너무 오래된 것이었지요. 그가 지켜온 삶의 문법은 모범적일 뿐, 새로운 시대 질서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던 부자간의 갈등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은 모든 가치의 소멸이었습니다.

그는 두 아들, 비프와 해피가 자신의 보험금으로 희망을 찾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자식들도 아내 린다도 행복해지지 않았습니다. 큰 아들 비프의 대사가 의미심장합니다. 그가 좌절의 순간에 쏟아낸 말이지요. "왜 원하지도 않는 사람이 되려고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거야?"



아버지 친구 찰리가 장례식장에서 하는 얘기도 귀담아 들어야합니다. " …세일즈맨은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하늘에서 내려와 미소 짓는 사람이야. 사람들이 그 미소에 답하지 않으면, 그게 끝이지. (중략) 이 사람(윌리 로만)을 비난할 자는 아무도 없어. 세일즈맨은 꿈꾸는 사람이거든." 

청년이야말로 꿈꾸는 세일즈맨입니다. 물론 아무 거나 팔진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팝니다. 직접 만들어 팔 수 있는 물건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 거나 만들진 않습니다. 원하는 것을 만듭니다. 원료와 재료, 노하우와 레시피, 아이디어도 충분합니다. 

부족한 것은 달빛장터. 그리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미소' 지을 때, '미소에 답'해줄 사람들.



2. [아시아경제][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눈 먼 시계공

척수와 혈관이 목을 지난다. 중요한 기관이다. 기요틴이 작동해서 두 기관을 절단하면 곧바로 죽음이다. 나의 대학선배인 소설가 신상성(74)은 젊을 때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어 정글에서 백병전을 했는데, "목을 베어 머리가 달아나려는 것을 간신히 붙들어 꾹 눌렀더니 고대로 붙더라. 죽을 것을 살았다"고 침을 튀겼다. 오르한 파묵(65) 못잖은 입심이지만 그 거짓말을 누가 믿으랴.

신경과 혈관의 중요성이야 모를 바 아니다. 허나 생명유지를 위한 노동은 사실 식도와 기도가 한다. 숨을 쉬고 음식을 먹어야 생명을 부지한다. 식도와 기도가 하는 일이 엄연히 다른데, 가끔 헷갈려서 사고가 나기도 한다. 약하게 나면 사레가 들리고 심하게 나면 기도가 막혀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생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 최재천(63)은 2012년에 낸 '다윈지능'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그 옛날 우리가 물고기였을 때는 물속에서 아가미 호흡을 했다. 물고기가 포유류로 진화하면서 숨을 쉬기 위해 생긴 콧구멍은 배보다 등에 있어야 유리했다. 우리는 이때 엇갈린 두 관의 위치를 바꾸지 못하고 대대로 물려받았다. 그래서 코로 들이마신 공기는 목 앞쪽에 있는 기도를, 입으로 들어온 음식은 기도 뒤에 있는 식도를 통과하는 교차 구조가 되었다. 

이런 교차 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음식물을 삼킬 때 기도를 막아주고 숨을 들이마실 때 열어주는 '후두개'가 생겼다. 급히 음식물을 삼킬 때 등 실수로 후두개가 기도를 막아주지 못하면 말썽이 생긴다. 이러한 불완전성을 영국의 동물행동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TheBlind Watchmaker)에 비유했다.

윌리엄 페일리는 '자연신학'에서 복잡한 물건은 반드시 설계자가 있게 마련이라며 시계공을 예로 들었다. 페일리는 영국 성공회 신부로서 공리주의 철학자였다. 그는 '자연신학'을 통해 신의 존재에 대한 목적론적 논쟁을 해설했다. 도킨스는 페일리의 예를 꼬투리 잡아 '진화 과정에 설계자가 존재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눈이 먼 시계공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도킨스가 보기에 자연선택의 결과로 태어난 오늘날의 생명체들은 마치 숙련된 시계공이 설계하고 수리한 결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계공이 나름대로 고쳐보려 애쓰는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하다 가끔 요행으로 재깍거리며 작동할 뿐이다. '예수쟁이'인 나로서는 아주 집중을 해서 읽어야 할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가끔 세상이 복잡한 데 비해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이 이상할 정도로 적다든가 태양계와 은하계의 구조가 핵의 주위를 전자가 회전하는 구조와 다름없음을 보면서 "아, 신은 세상을 창조하는 데 그다지 많은 재료를 사용하지 않았구나. 역시 신이야"라고 생각해왔다. 인간과 원숭이의 유전자가 대부분 일치한다는 신비는 사실 구더기와도 유전자를 공유한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어찌 허풍을 치랴. 고개 숙여 세상을 만나고 섭리를 섬겨 차분히 살아갈 뿐. 인간은 섭리를 이해하고 겸손을 실천할 때 비로소 위대해진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정말 얼마큼 적으냐 …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3. [서울신문][In&Out] 좋은 농산물이 나오기 위한 세가지 조건

“어떻게 하면 음식을 맛있게 만들 수 있나요?”

요리사들이 자주 받는 질문 중의 하나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맛있는 음식의 시작은 좋은 식재료를 찾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 외국의 요리학교에서 공부할 때 요리사들이 지역에서 공급되는 신선한 식재료를 연구하고 조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식재료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다.

오너 셰프로서 레스토랑을 연 이후에는 한국의 제철 채소와 해산물, 육류, 장류 등을 전공인 프랑스 요리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좋은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지역 농산물들을 직접 살펴보기도 했다. 7년 전부터 제주도에서 영농조합원으로서 작게나마 농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농산물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몸소 깨닫게 됐다. 그러나 우리 농산물이 좋은 품질에 비해 제대로 값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가끔 안타까울 때가 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대목이다.

국산 농산물이 식재료로서 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농산물을 직거래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야 한다. 최근 로컬푸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농가와 셰프 간 직거래 교류가 더 늘었으면 좋겠다. 예컨대 셰프들이 ‘이런 사이즈와 모양으로 만들어 주면 쓰기 편하다’고 전달하면 농가는 해당하는 식재료 사양에 맞게 맞춤형 생산을 해주는 것이다.



고려닭과 청리닭 등은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토종닭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구할 수 없는 우리만의 특색 있는 닭고기다. 직거래를 통해 이런 소규모 고품질 식재료들이 더 많이 공급된다면 셰프들의 다양한 프리미엄 요리를 보다 쉽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판매 시스템을 시도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상품성이 떨어지는 채소나 과일도 버리지 말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팔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영국의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는 못생긴 채소와 과일의 소비를 촉진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농산물 가격 폭락을 막기 위해 대형 레스토랑과 연계하는 방법도 있다.



몇년 전 양파 파동 때처럼 갑자기 공급량이 늘어나면 식자재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대형 레스토랑에서 양파 메뉴를 개발해 소비를 늘리는 것이다. 원상태 그대로의 채소가 아니라 볶은 양파, 볶은 당근 등 한 차례 가공을 거쳐 파는 것도 많은 식당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바람이 있다면 소비자들의 인식도 조금씩 바뀌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못생긴 무나 당근은 상품성이 없어 대부분 수확한 밭에서 버려진다. 그러나 깍두기를 담그고 볶음밥에 넣는 재료로 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약을 쳐서 키운 것들이 겉모양은 예쁘지만 우리 몸에는 좋지 않다. 고기도 마찬가지다. 소비자 대부분이 소고기는 등심과 안심만, 돼지고기는 삼겹살과 목살 부위만 찾는다. 외국에서는 육류의 부위별 가격이 적정한 차이를 유지하지만 우리나라는 특정 부위에 대한 선호도가 너무 뚜렷해 어떤 부위는 지나치게 비싼 편이다.



거꾸로 소비자들이 찾지 않는 특정 부위는 가격이 너무 낮아지기도 한다. 베트남에서 돼지 목살을 주문하니 어깨살 부분까지 함께 파는 것을 봤다. 특정 부위의 쏠림 현상 때문에 도축 단계부터 붙여서 거래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를 국내에서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싶다. 정부나 관련 기관들이 연구해 보면 좋겠다.

우리 농산물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야 할 때다. 농산물이 가치를 인정받아야 우리 땅에서 좋은 품질의 다양한 농산물이 계속 나올 수 있다. 여기에는 생산자의 노력뿐 아니라 소비자의 인식 변화 그리고 합리적인 유통과 판매 시스템이 필요하다. 좋은 농산물의 생산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시작이자 활기찬 농촌,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기본이라고 믿는다.



4. [조선일보][일사일언] 사이버 청소부

2011년부터 디지틀조선일보에서 일하고 있다. 주 업무는 조선닷컴 100자평과 토론마당 모니터링. 댓글 창에 '관리자가 (비속어·비하·기타) 사유로 100자평을 삭제하였습니다'라는 빨간 문구가 뜨면 내가 다녀간 것이다. 그러니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무슨 기준으로 내 글을 삭제하느냐"는 불평. 볼멘소리에 이골이 날 만도 하건만, 막상 항의를 받으면 또 뜨끔해진다.

대통령 탄핵 이후 이런 항의가 급증했다.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보수신문이 변절했다"며 분개했고, 그 반대 진영에서는 "여전히 기득권을 대변한다며" 못마땅해한다. 몇몇 독자는 내 정치성향을 캐묻는다. '종북'과 '수구'라는 단어를 번갈아 들을 때마다 정체성에 혼란이 올 지경.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 사이트 댓글난으로 넘어가 보자. 거긴 말 그대로 가관이다. 욕설은 기본이요, 확인되지 않은 소문,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는 감정의 토로가 넘친다. 얼마 전 시조를 같이 공부했던 60대 문우(文友)를 만났다. "예전엔 기사 댓글이 소통의 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소통의 장벽 같다"고 했다. 현 세태에 목소리를 높이던 문우는 "소명의식을 가진 사이버 청소부가 돼 달라"고 부탁했다. "회색분자처럼 보일지라도 좌우에 치우치지 않아야 해요. 목소리 크다고 지면 안 되는 겁니다." 문우의 말에 공감하면서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좋아요'의 시대, 댓글은 영향력 있는 글이다. 그리고 변질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가짜가 진짜인 양 활개 치기도 하고, 괴담이 진실로 포장되기도 한다. 예의와 상식이 필요하다. 오늘도 나는 까다로운 관리자가 돼야겠다고 다짐한다. 융통성 없는 인간이라 비난받을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항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그러나 '청소부'로서 코 푼 휴지를 고귀한 보석으로 대접할 수는 없다.



5. [세계일보][세계에세이] 일력트릭 기타 도전기

어린 시절 양희은과 송창식의 노래를 좋아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앉아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즐거웠다. 그룹사운드도 좋아했다. 송골매, 휘버스, 블랙 테트라처럼 요즘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우리나라 그룹은 물론 레드 제플린, 이글스, 퀸과 같은 이국의 그룹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특히 기타리스트의 모습은 최고였다. 끊기듯 이어지며 절정으로 치닫는 아름다운 기타의 선율에 가슴이 다 졸아들었다. 나도 저렇게 기타를 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먹고사는 일은 늘 바빴다. 결국 기타를 배울 마음조차 먹어보지 못한 채 세월은 흘러갔다. 어느 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자동차 안 라디오에서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가 흘러나왔다. 노래 후반부에서 기타리스트는 어김없이 솔로 파트를 연주했다. 그래, 저거였어. 뒤늦은 깨달음에 마음이 급해졌다. 날이 밝자마자 서울 종로3가 낙원상가로 달려갔다. 가게 주인과 오랜 상담 끝에 초보자용 기타를 장만했다. 수소문해서 기타 선생님도 구했다.



실용음악을 전공한 아들뻘 선생님은 레슨 첫날 “통기타를 좀 치셨다니 금방 배우실 거예요”라고 격려해 줬다. 그런데 실력이 금방 늘리는 만무했다. 우선 연습시간이 늘 부족했다. 하루 한두 시간은 연습해야 한다고 과제를 내주면 뭐가 그리 바쁜지 일주일에 두 시간 하기도 어려웠다. 3개월이 지나도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매번 혼났다. “이 정도면 중고등학교 애들은 일주일이면 마스터한다고요.”

다음에는 손가락이 문제였다. 왼손의 네 손가락으로 기타 지판의 정확한 위치를 짚어야 했으며, 오른손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피크를 잡고 맞는 줄을 튕겨야 했다. 템포는 왜 그렇게 빠른지. 리듬에 맞추려고 허둥지둥 따로따로 노는 손가락으로 악보를 쫓다 보면 그 어설픔에 헛웃음이 나왔다. 손놀림이 둔한 내 몸이 원망스러웠고, 그러게 좀 젊었을 때 시작할 걸 하는 자책이 앞섰다.

그런 나를 선생님은 이해해 줬다. 진도도 천천히 나가는 걸로 은연중에 합의를 보았다. “기타를 잘 치려면 기타와 친해지는 게 중요해요. 친해지려면 같이 놀아줘야 해요”라면서 가능하면 매일 펜타토닉 스케일을 연습하는 게 좋다며 악보를 건넸다. 펜타토닉 스케일은 5음계 스케일인데 기타 지판의 전반을 거의 사용하도록 구성돼 있다. 그러니 이 스케일을 연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왼손과 오른손이 부드러워진다. 조금씩 연습을 계속하다 보니 기타를 다루고 있다는 실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타 연주기법도 하나씩 배워 나갔다. 생소한 기법을 배워 나가는 것은 고통이자 즐거움이었다. 레퍼토리도 하나씩 늘어났다. 에릭 클랩튼의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 밥 딜런의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Heaven)의 솔로 파트를 어설프게나마 흉내 내는 수준이긴 하지만 이제 1년이 돼 간다.

드디어 ‘호텔 캘리포니아’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실력도 좀 붙겠지. 그렇게 되면 밴드를 하고 싶다. 열정만 있고 실력은 형편없는 머리 하얀 기타리스트를 끼워 줄 밴드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작은 홍대 클럽을 빌려 친구들을 불러 모아 공연도 하고 싶다. 맥주를 들이켜며 그 옛날 추억의 레퍼토리로 신나는 밤을 보내야지. 한바탕 다 함께 소리 지르며 달리고 싶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할 만큼 했다. 그러니 이제는 좀 평소 하고 싶었던 일, 이런저런 이유로 밀쳐놓았던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럴 자격이 우리에겐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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