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세계일보]
1. 홍준표의 시한 3분 전 지사 사퇴, 꼼수 아닌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가 공직자 사퇴시한을 불과 3분 남기고 경남도지사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그제 밤 11시57분 경남도의회에 사임통지서를 전자문서로 보냈다. 1분 뒤에는 인편으로 통지서를 보냈다고 한다.
공직선거법은 지방자치단체장 보궐선거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연도의 경우 대선일 30일 전까지 실시 사유가 확정된 선거를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남도선관위는 홍 후보가 지사직을 사퇴한 다음날인 어제 사퇴 통보를 받았다. 사퇴 통보 시점이 선거 29일 전이 되면서 보궐선거를 치를 수 없게 됐다.
홍 후보는 어제 도지사 퇴임식에서 “(경남지사 보궐선거에 따른) 300억원 대 혈세 낭비와 혼란이 있게 되고, 도민들은 제대로 검증도 못해 보고 도지사나 시장군수를 뽑아야 한다”며 늑장 사퇴의 이유를 설명했다. “도정은 세팅이 다 되어 있기 때문에 권한대행체제로 가도 도정공백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일견 납득이 가는 점이 없지 않지만 꼼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홍 후보의 ‘3분 전 사퇴’는 현행 법 위반이 아닐지라도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그의 지연 사퇴로 다른 국민이 경남지사 후보로 나설 수 있는 피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 홍 후보는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201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면서 사퇴한 뒤 대선과 함께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그런 홍 후보가 다른 사람의 도지사 출마를 막았으니 곱게 비쳐질 리 없다.
경남도는 홍 후보의 지사직 사퇴로 내년 6월 지방선거 때까지 행정부지사 대행체제로 운영된다. 홍 후보가 경남지사 보궐선거로 혈세 낭비가 걱정된다면 진즉 대선후보 경선에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성완종 뇌물 리스트로 재판을 받고 있는 형사피의자 신분이다. 스스로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처지라는 뜻이다. 한밤중에 벼락치기로 사퇴서를 제출하는 장면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다. 그런 행위를 하고도 국민의 지지를 받기를 바랄 수는 없다.
[중앙일보]
2. 미세먼지에 마스크 쓰고 수업 … 이게 나라인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미세먼지 예보부터 본다. 가슴이 답답하고 코와 눈이 가렵다는 아이들을 문 앞에서 배웅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전국의 학부모들은 어린 자녀를 간신히 달래며 유치원과 학교에 보낸다. 해가 바뀔수록 ‘봄의 불청객’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지만 정부는 헛발질만 거듭해 답답할 뿐이다. 올해는 1~3월 전국의 미세먼지 주의보가 최근 3년래 가장 많은 86회나 발령됐다.
그러자 “더 이상 못 참겠다”며 학부모 등 7명이 한국과 중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냈다. 국민의 건강권을 책임지라는 경고였다. 원성이 들끓자 서울시교육청이 어제 독자적인 대응 방안을 내놨다. 미세먼지 농도가 보통(31∼80㎍/㎥) 수준이라도 50㎍ 이상이면 야외수업을 실내수업으로 대체하고, 마스크를 쓰도록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전문가·교육청 등이 참여하는 ‘학교 미세먼지 관리위원회’를 가동하고 교실에 공기정화장치도 보급하기로 했다.
솔직히 이런 게 제대로 된 대응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미래세대를 위해 미세먼지 자체를 줄이기는커녕 마스크만 씌우고 공기정화기만 돌리겠다니 말이다. 예전에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이 빈발하자 교육당국이 교실 창문 크기를 줄이겠다고 한 것이나 뭐가 다른가. 중앙 정부가 국가와 국민 생존 차원에서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 대책이라곤 지난해 9월 취임한 조경규 환경부 장관이 미세먼지 발령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한 게 고작이다. 미세먼지의 발생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건 더 심각한 문제다. 환경부는 80% 이상을 중국 탓으로 돌리지만 외국 전문가들은 20% 정도로 분석한다. 말로만 외쳐온 한·중 환경외교가 겉돈 탓이다. 실효성 있는 대중 환경 외교, 석탄·화력과 경유차 축소 등 총체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대선주자들부터 당장 “마스크를 쓰고 수업하는 게 나라냐”는 학부모들의 외침에 응답해야 한다. 미세먼지를 우리의 미래와 국민의 삶을 파괴하는 국가 재난으로 접근해야 한다. 제대로 된 인식이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든다.
[조선일보]
3. 박빙 대선, 이기고 보자는 포퓰리즘 창궐할 수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10일 중소기업 취업 청년들 임금을 대기업의 80% 수준으로 맞추는 '청년 고용 보장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 보조금으로 청년 1인당 월 50만원씩 연간 10만명을 지원하면 청년 취업난과 중소기업 구인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9일 '달동네'로 불리는 노후 주거지를 개선하는 '도시 재생 뉴딜 사업'을 발표했다. 동네마다 아파트 단지 수준의 주차장·어린이집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전국 500곳의 낙후 지역을 재정비하겠다는 것이다.
이 정책들의 취지는 다 필요한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청년 고용 보장제는 연 수조원, 도시 재생 사업엔 연 10조원이 든다고 한다. 대상을 선정하는 것부터가 문제인데 어떤 대형 부작용을 낳을지 검토했다는 흔적도 없다.
2002년 대선에서 지지율 3위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놓은 게 '충청권 행정수도' 공약이다. 이로 인한 갈등과 국가적 낭비·손실은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대로다. 1987년 대선 1주일 전에 나온 '새만금 개발' 공약의 경우 3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실현도 안 되면서 막대한 세금만 들어갔다.
영국 옥스퍼드 이코노믹스가 올해 초 낸 보고서는 20대 경제 선진국 중 11곳에서 2~3년 내 포퓰리즘 정권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으며 한국을 그중 네 번째로 꼽았다. 이번 선거는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이다. 충분한 검토 없는 마구잡이 공약이 쏟아질 수 있다. 특히 문재인·안철수 후보 간 박빙의 경합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후보 진영이 일단 이기고 보자는 포퓰리즘을 들고나올 조건이 다 갖춰진 셈이다.
4. "기득권과 대결"이란 文, "편 가르기 끝낸다"는 安
문재인·안철수 양자 구도가 뚜렷해짐과 동시에 이 두 후보가 무슨 기치로 이번 대선을 치를 것인지도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 문 후보는 여러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이 '부패 기득권 세력과의 대결'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국민의당 안 후보는 "편 가르기 정치를 끝내겠다"고 했다.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제1 메시지가 이것이라는 것이다.
문 후보는 탄핵 과정에서 '적폐 청산' '국가 대청소' 같은 구호를 내세워 왔다. 문 후보가 지지율 선두를 달렸지만 어느 한계를 넘지는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문 후보는 그러나 한때 검토하는 듯했던 외연 확대가 아니라 기존 지지층 강화라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안 후보를 향해 "정권 연장을 꾀하는 부패 기득권 정치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문 후보는 자신들은 선(善)이자 정의(正義)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에도 국민들은 심각한 부정부패와 특권적 갑질을 목격했다. 많은 사람은 문 후보 아들 취업, 노 전 대통령 사돈 음주 소란 문제 등도 그런 적폐의 일단으로 보고 있다. 나는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이분법 전략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알 수 없으나 이 편 가르기를 진보좌파 기득권의 아전인수 격 독선으로 느끼는 유권자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들을 비난하는 것은 정치인의 도리가 아니다.
안철수 후보는 5년 전 대선 때부터 '경제 진보·안보 보수', 이념을 뛰어넘는 새 정치를 주장해왔다. 그가 작년 총선을 통해 재기한 것도 많은 사람이 '편 가르기 정치 청산'에 공감해 중간 지대를 선택한 때문이다. 하지만 안 후보 역시 편 가르기 정치 청산이 말뿐이고 국민에게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협치(協治)가 펼쳐질 것이란 큰 그림은 제시돼야 한다. 편 가르기 싸움은 우리 정치의 고질이다. 우리 인식, 습성, 관습에 뿌리 박고 있다는 뜻이다. 이 고질은 안 후보가 당선되는 것만으로 고쳐지지 않는다. 구체적인 내용을 채우지 못하면 공허하다는 말이 나오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제 대선 메시지 구도는 '적폐 청산' 대(對) '편 가르기 청산'으로 선명해졌다. 유권자들은 앞으로 한 달 동안 이 중에서 무엇이 나라에 필요하고 도움이 될지, 과연 문·안 두 사람이 그것을 감당할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5. 선제타격보다 美 대북 정책 유턴 더 주목해야
미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대북(對北) 선제타격 가능성을 잇달아 시사하면서 우리 내부에 구체적 날짜까지 지목한 '북폭설'이 퍼지고 있다. 항모 칼빈슨호가 한반도 인근 해역에 다시 배치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달이 뜨지 않는 27일 선제타격설까지 나도는 것이다. 일본 대사가 한국에 귀임한 것이 일본인 대피를 위한 것이라는 언론 보도도 이를 부추겼다. 국내 외국계 기업 철수설, 김정은 망명설을 담은 SNS도 떠돈다. 한마디로 근거 없는 소문들이다. 군사 공격 날짜가 미리 알려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대북 선제타격은 트럼프 행정부의 여러 대북 옵션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굳이 확률을 따지자면 역대 미국 행정부 중에서 이를 사용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군사작전을 위해선 목표가 분명해야 하고, 타격 이후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현 상황에서의 대북 선제타격은 이 둘 모두가 불확실하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어제 "우리 입장에서는 선제타격이 가져올 다른 여러 문제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미 국방장관은 대북 선제타격 옵션을 미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 반드시 이로 인한 부정적 효과도 강조해왔다. 선제타격은 그 가능성을 '0'이라고 할 수 없고, '0'으로 만들 필요도 없지만 아직은 명백하게 외교적 압박의 영역 안에 있다.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떠드는 것은 지나친 과잉, 과장 반응일 뿐이다.
오히려 지금은 한반도 위기가 고조됐다가 미국과 북한이 전격 대화에 들어갔던 20여 년간의 패턴이 다시 작동할 가능성을 주목해야 할 때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9일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은 비핵화된 한반도를 원하지만 북한 정권을 교체할 목표는 없다"고 밝혔다. 또 "북한과 대화의 전제조건은 모든 무기의 시험과 개발을 중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이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 '폐기'가 아닌 '동결'을 전제로 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어느 정도 무게를 실어 발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변화다. 지난 90년대 초 시작된 북핵 위기는 북한의 합의 파기→핵·미사일 도발→ 한반도 긴장 고조→협상 및 타협→보상의 악순환이 계속돼 왔다. 이는 미국이 근본 해결이 아니라 정권의 단기적 필요에 따라 문제를 다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그런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라면 불길하다.
지금은 유엔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하고 강력하게 이행해야 할 시점이다. 중국도 북핵으로 인한 자신들의 국익 피해를 피부로 느끼도록 해야 한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는 북한 체제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대북 조치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되 당장은 인내심을 갖고 제재와 압박에 총력을 다할 때다.
[매일신문]
6. 누가 ‘북폭설’ 유언비어를 양산해 국민 불안을 부추기나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는 ‘북폭설’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급격히 확산되면서 불안해하는 국민이 많다.SNS 등에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며 북폭이 일어날 것처럼 떠드는 이들이 늘어나자, 일부에서는 ‘비상식량을 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북폭설’은 전형적인 ‘가짜 뉴스’다. 시국이 어수선해지면 유언비어, 가짜 뉴스, 헛소문이 활개를 치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는 만큼 현혹될 이유가 없다.
소셜미디어에 ‘북폭설’이 등장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함께 북한 선제타격설이 고개를 들더니 지난 6일 미국의 시리아에 대한 공격 직후부터 ‘4월 북폭설’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SNS와 일부 뉴스는 북폭설의 근거로 미국이 칼빈슨 항모의 경로를 변경해 한반도 인근 해역에 배치했고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를 일본에 전진 배치한 점 등을 들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미`중의 북한 제재 합의 실패 등으로 한반도 주변 정세가 불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폭’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현재로선 북폭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미국 정부와 전문가들이 북한에 대한 군사 행동은 ‘최후의 옵션’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폭론’을 두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까지 나서 근거 없는 북폭론을 일축하기에 이르렀다. 통일부는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력해 북한 핵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선제타격론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크게 우려하실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정국이 어지러울 때마다 불안을 부추기는 개인이나 집단이 등장하곤 했다. ‘북폭설’도 탄핵과 대선을 틈타 사회 분열을 획책하거나 국민 혼란을 부추기려는 일부의 ‘작품’임이 분명하다. 이럴 때 일수록 각종 유언비어나 가짜 뉴스에 현혹되지 말고, 단호하게 거부하고 배척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 안보 상황의 엄중함을 잊지 않으면서도 올바른 뉴스를 가려듣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7. 국보급 훈민정음 해례본, 이제 세상의 빛을 보게 할 때다
국보급으로 평가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실물 사진이 배익기 소장자에 의해 8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008년 상주본의 존재가 첫 공개된 이후 자취를 감춘 지 9년 만이다.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상주본 실물 사진은 12일의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배 소장자가 국회의원 재선거 후보라는 공인(公人)의 입장에서 공개한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끈다.
이번에 드러난 실물 사진은 보는 국민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500년 세월을 견디다 지난 2008년 처음 선보였을 때 모습보다 보관 상태가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2015년 3월 26일 소장자의 집에서 일어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화재 탓인 듯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실물 존재 자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된 일은 다행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학자들이 주장하는 33쪽짜리 해례본과는 달리 처음부터 24쪽짜리로만 존재했던 해례본 7쪽 공개 부분은 일부 테두리 외에는 온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주본은 이미 전문가 감정에서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 중인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본)보다 높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판정됐다. 문화재청의 감정 가치만으로도 1조원이라는 이야기가 나돌 만큼 귀중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소중한 문화유산이 소유권 소송과 국가 헌납 여부를 둘러싼 소장자와 당국과의 줄다리기 등으로 조금의 진척을 보지 못했다. 당당하게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음지에서 몰래 보관되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기회가 해결의 돌파구가 되길 기대한다. 소장자의 행동도 기대감을 갖게 하고 있다. 먼저 이번에 실물 사진을 공개해 상주본의 존재를 알렸다. 또 당선되면 국가 헌납도 공약했다. 보상가 1천억원을 달라던 종전 입장과 다르다. 재선거 후보라는 공인으로서 한 언행인 만큼 문제를 풀 실마리로 삼기에 충분하다. 존재 여부도 몰라 협상할 수 없다던 당국도 이제 다른 접근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소장자나 당국 모두 당당하게 문제를 풀 때다. 해례본은 불순하게 뒷골목에서 거래할 흥정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와 겨레의 보편적인 자산이어서다.
[서울신문]
8. 지사직 사퇴 꼼수 쓴 洪, ‘법치’ 말하지 말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가 어제 경남지사 퇴임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대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그제 밤 대선 출마를 위한 공직 사퇴 시한 3분을 남기고 도지사직을 사임했다. 정상적인 수순이라면 3월 31일 한국당 경선에서 최종 후보로 공식 선출된 직후 도지사직을 관뒀어야 했다.
그러나 도지사직 사퇴를 둘러싼 논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을 끌다 그제 밤 11시 57분 사퇴함으로써 도지사 보궐선거를 무산시켰다. 경남도의회 의장은 자정을 넘겨 전자문서로, 경남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아침에서야 사임 통지를 받았다. 경남도는 다음 지방선거까지 1년 2개월 동안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홍 후보는 철저한 계산 아래 도지사직을 내놨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34조에 따라 보궐선거를 실시하려면 30일 전인 그제 선거를 공고해야 했다. 하지만 홍 후보가 고의로 그제 밤 12시에 임박해 사퇴함으로써 공고를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사임 통보를 받은 날을 ‘선거 실시 사유가 확정된 때’라는 보궐선거 성립 조건인 30일 이전 사퇴가 아닌 29일 전 사퇴한 셈이기 때문이다. 법의 허점을 개인적으로 이용해 보궐선거를 못 치르게 공고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홍 후보의 보궐선거 훼방에는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 물론 법 위반은 아니다.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법을 제정할 때 홍 후보와 같은 술수가 나올 줄 상정조차 못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법률가인 자신의 지식을 악용한 악질적인 전형적 화이트칼라 범죄”라는 등의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는 “법률을 전공했다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법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우병우와 다를 게 뭐냐”라며 ‘홍준표 방지법’의 제정을 들고나왔다.
홍 후보는 애당초 “보궐선거 실시로 안 써도 되는 세금 수백억이 낭비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한대행에게 맡겨도 도정 공백이 없다는 입장까지 내놓았다. ‘경남도를 건드리지 말라’는 안하무인 격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발상 자체가 위험천만이다. 그 결과 도민들은 직접 도지사를 선출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보궐선거를 염두에 뒀던 사람들의 출마 기회도 앗아갔다.
헌법이 보장한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행사를 방해한 처사다.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사람에 대해서는 유권자가 심판할 것이다. 아울러 홍 후보의 꼼수를 막기 위한 선거법 개정이나 ‘홍준표 방지법’ 제정은 지금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
9. 제자 인건비 착복 도저히 못 끊는 관행인가
한 국립대의 교수 6명이 산학협력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4억 8000만원의 연구비를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짐작했던 것처럼 착복한 연구비는 대부분 소속 학과 학생들에게 나눠 줘야 할 인건비였다. 학생들로부터 아예 통장을 넘겨받거나, 연구비를 일단 지급했다가 돌려받는 수법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제자들을 상대로 저질렀다는 점에서 파렴치하기 이를 데 없는 범죄행위다. 그럼에도 대학 사회에서는 별다른 죄의식도 없이 당연시되고 있는 듯하다. 인천대 사례도 각각의 교수가 별개의 연구 과제에서 부정을 저지른 것이라고 한다. 교수들의 제자 인건비 착복이 얼마나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교수가 제자 인건비를 착복했다는 뉴스는 이제 놀랍기보다는 식상할 지경이다. 이러다가 우리 사회 전체가 도덕 불감증에 걸리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적발된 교수들은 대부분 “다른 교수들도 마찬가지인데 나만 걸려들어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국가연구 용역을 수행하면서 인건비를 제대로 주지 않아 실형을 선고받은 또 다른 국립대 교수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현금을 줘 받았을 뿐”이라고 변명했다고 한다. 시장 상인들을 공포로 몰아넣고는 “자발적으로 돈을 걷어 준 것”이라는 조폭과 다르지 않다.
교수 사회도 이제는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주도해 외부에서 연구용역을 따왔으니 관련 비용은 내 맘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부터 떨쳐야 한다. 무엇보다 제자들에게 마치 “이런 게 사회생활”이라는 듯 범죄행위부터 가르치는 것은 인생 선배로서의 도리도 아니다. ‘대학원에 들어가 제일 먼저 배우는 게 가짜 영수증 끊는 법’이라는 불행한 우스개는 사라져야 한다.
최근 줄지어 적발된 연구비 착복 교수는 대부분 국립대 소속이다. 국가가 발주하는 연구용역을 국립대 교수가 수행할 경우 나름대로 감시는 이루어진다. 하지만 민간 기관과 사립대학의 연구용역이라면 상황은 다르다. 이제 국·공립대는 물론 사립대도 제자들의 인건비를 빼돌린 교수를 반드시 퇴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청렴성이 요구되는 자리가 아닌가. 교육부는 각 대학이 이런 학칙을 만들어 시행하는지 철저히 지도하고 감독하라. 부정과 비리가 판치도록 방치하는 대학은 제재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데일리]
10. 대기업 취업에만 매달릴 때가 아니다
국내 대기업 200곳 가운데 45곳(22.5%)이 이번 상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줄이거나 한 명도 뽑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200개 기업으로부터 응답을 받은 결과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채용축소 또는 안 뽑겠다고 밝힌 응답(11.5%)에 비해 2배로 늘어난 것이다. 대졸자들의 취업이 더욱 어려워졌음을 말해준다.
지난해보다 채용 규모를 늘리겠다고 답한 기업이 22곳(11%)으로 나타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해와 비슷하다고 답한 기업도 59개(29.5%)로, 지난해 조사(27.2%)보다는 조금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기업 전체로는 신규채용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국내외 경제 여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투자 및 고용 확대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졸자들의 취업이 어려워진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위해 다시 전문대에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들린다. 지난 주말 9급직 국가 공무원을 뽑는 시험에 전국적으로 22만명 이상이 응시했다는 사실에서도 요즘의 취업난 실태를 실감하게 된다. 설사 대기업들이 제대로 인력을 충원한다고 해도 대학 졸업생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취업 준비생들의 입장에서도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앞으로 취업난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로지 대기업 취직에 인생의 승부를 거는 것은 지나친 모험이다. 혹시 1~2년을 늦춰서라도 대기업에 들어가게 되면 그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지만 그러다가 자칫 취업 시기를 놓치게 된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취업 준비생들이 대기업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월급이 많고 후생복지 지원도 월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업이 아니라도 특화 분야에 있어서는 오히려 대기업보다 근무조건이 좋은 경우가 적지 않다. 근무조건과 대우를 떠나서도 중견·중소기업을 선택해 장차 굴지의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도 아쉽기만 하다. 대졸자들의 취업 지원에서부터 개성과 소질을 살리는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주요신문칼럼
1. [매일신문][기고] 에밀 타케와 왕벚나무
여기저기 봄 소식이 한창이다. 아침저녁 쌀쌀함이 남아 있지만 하얀 냉이꽃 사이로 노랑 나비 나풀거리는 모습은 겨울이 저만치 갔음을 이야기한다. 매년 이 계절이 되면 남쪽 바다 진해에서부터 서울 여의도까지 전국이 벚꽃 이야기다. 대구만 해도 두류공원이나 팔공산의 벚꽃길이 유명하고, 동구의 금호강변이나 달성군 용연사 가는 길의 벚꽃들도 볼만하다.
이들 벚꽃 길에 심어진 나무는 벚나무 중에서도 꽃이 크고 개화 수량도 많아 벚꽃 중의 왕이라는 왕벚나무가 대부분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고 꽃이 만개했을 때 하얀 구름을 뒤집어쓴 것같이 화려하여 가장 선호하는 품종이 된 것이다.
지금은 벚꽃 구경을 봄날의 낭만으로 쉽게 이야기하지만, 한때는 일본 문화를 상징한다 하여 사쿠라로 낮춰 부르며 미움과 배척의 대상이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왕벚나무 자생지가 우리나라 제주도임이 알려지면서 벚꽃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곳곳에 벚꽃길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벚꽃을 찬미하는 노래가 이 계절 빠질 수 없는 레퍼토리가 된 것만 봐도 왕벚나무의 위상이 높아진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왕벚나무 자생지가 대한민국임을 밝혀 국민적 사랑을 받게 한 이는 한국인이 아니다. 선교사로 구한말 우리나라를 찾은 푸른 눈의 이방인 에밀 타케(한국명 엄택기, 프랑스 출생) 신부가 그 주인공이다. 초기에는 마산, 제주도, 목포, 나주 등 우리나라 남쪽지방에서 활동하다 1922년부터는 대구 남산동에 있는 성유스티노신학교(현 대구가톨릭대학 유스티노캠퍼스)에서 근무했다. 이후 1952년 이국 땅에서의 삶을 마무리할 때까지 30여 년간 그에게 대구는 삶의 터전이고 고향이었다.
에밀 타케 신부가 식물학자로 명성을 쌓은 시기는 제주도에서 활동할 때다. 온주밀감을 처음 도입하여 감귤농업의 기반을 열었으며, 1만여 종의 식물을 채집하여 영국, 미국, 프랑스 등으로 보내어 우리나라 식물들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채집된 식물 중 하나가 왕벚나무이다.
1908년 4월 15일 제주도 한라산 북편 해발 600m 지점에서 채집된 벚나무 표본이 독일 베를린대학으로 보내지고 왕벚나무로 인정됨으로써 그 자생지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이다. 벌써 110년 전의 일이지만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시대 상황과 식물에 대한 무관심으로 지나치다 근래 들어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것이다.
대구 중구 남산동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내에는 오래된 왕벚나무 몇 그루가 있다. 왕벚나무를 세상에 알린 에밀 타케 신부와의 관련성이 언급되어 수목 전문가들이 조사했다. 나이테 검사 결과 가장 오래된 것이 수령 90살 정도로 1920년대 에밀 타케 신부가 신학대학에 근무할 때 심었던 나무(교구청 내 안익사 옆)다.
오래된 세월의 흔적으로 여기저기 갈라지고 썩은 부분이 있어 치료도 하고 주변을 정비하였다. 부러질 우려가 있는 가지는 지주목을 세우고, 울타리도 만들어 답압에 의한 피해도 없도록 하였다. 그리고 왕벚나무 자생지를 알린 일을 기억하고자 에밀 타케와 왕벚나무라는 이름으로 안내판도 설치하였다. 올해부터는 투어 코스도 만들어 식물학자로서의 업적과 대구의 근대 여명기 우리와 고락을 함께한 그의 발자취를 만나는 자리도 마련한다고 한다.
해마다 만나는 벚꽃이지만 한 번쯤은 사람에 치이는 번잡함을 벗어나 에밀 타케의 왕벚나무를 만나 보는 것은 어떨까? 남산동 교구청 내에는 숲을 이룰 정도로 많은 양은 아니지만 군데군데 벚꽃들이 피어나고, 새소리 바람 소리는 덤으로 만날 수 있다. 고즈넉한 한옥을 배경으로 떨어지는 벚꽃 잎에서 에밀 타케의 미소를 만난다면 이번 봄은 좀 더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2. [경향신문][청춘직설] 슬프면서 좋은 거
권여선의 단편 ‘손톱’에는 소희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소희 곁에 있어야 할 대상들은 다 떠나버리고 소희는 빚만 떠안은 채 성인이 된다. 스물한 살의 소희가 갚기엔 만만치 않은 액수다. 그녀는 이십만원으로 한 달을 살고 있고 출퇴근 시간을 급여로 환산해 머릿속으로 계산해볼 만큼 꼼꼼하다. 아니, 절박하다. 친구도 못 만나는 삶, 섣불리 친구도 못 만드는 삶이다.
방세가 오르거나 병원에 가는 일이 없다면, 착실하게 돈을 모아 스물여덟에는 빚을 다 갚을 수 있다. 그게 소희의 유일한 희망이다. 성실함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한없이 불투명한 희망.
소희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돌아보고 자신이 처하게 될 미래를 내다보다 건물 쇼윈도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만다. “내가 어쨌다고? 내가 뭘, 뭘, 뭘? 뭘? 뭘? 뭘?” 그녀에게 삶은 단 한번도 개척해나가는 것이나 누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늘 ‘처하는 것’이었다.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태.
이쯤 되면 소희는 ‘헬조선’을 살고 있는, 아니 헬조선에 처해 있는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모른다.” 우리 중 대부분은 모르는 채로 내일을 맞이할 것이다. 각박한 현실 앞에 놓인 ‘왜’라는 질문은 너무 커다래서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무거울 때 이 소설을 읽어서인지 나는 펑펑 울고 말았다. 소설이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아서, 행복할 거라는 암시조차 주지 않아서, 그런데 그게 더없이 적확한 현실이라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잘될 거라는 확언이나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그 말을 듣는 당사자에게는 멀리 있는 말, 아득한 말이다. 마치 ‘미래(未來)’라는 단어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뜻인 것처럼. 나의 눈물은 위안의 눈물이라기보다 공감의 눈물에 더 가까웠다.
공감은 자기 자신도 그렇다고 느끼는 기분이다. 자기 자신도 그런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다는 데서 오는 마음의 끄덕임이다.
공감에 시공간의 제약이 있을 리 없다. TV로 딱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을 보며 전화기를 집어 드는 것도, 대형 참사 앞에서 함께 눈물 흘리는 것도 우리가 공감하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문학작품을 많이 읽으면 공감 능력이 커진다.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기도 하고 때로는 그가 내 손을 잡아주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공감은 불러일으키는 것에서 가는 것, 마침내 도달하는 것이 된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
정신없이 바쁠 때일수록 나는 더 갈급이 나서 문학을 찾았던 것 같다. 내가 바랐던 게 위안인지 격려였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나는 늘 문학작품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안도했다. 그것을 단순히 요새 유행하는 ‘힐링’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나는 그저 세상에 있는 단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며 경건해졌다.
세상에 누구도 같은 사람은 없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산다. 그의 삶과 나의 삶에서 공통된 감각을 찾고 결이 유사한 순간을 발견하면 누구든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 흔들림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공감하는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
문학작품은, 아니 좋은 문학작품은 무턱대고 “힘내”라거나 “잘될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여기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모르지만, ‘슬프면서 좋은 거’ 때문에 우리는 역설적으로 내일을 생각할 수 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 나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함께 앓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은 절로 뜨거워진다. 그것은 빤한 위로나 날카로운 조언보다 힘이 된다. 공감이 위안에 가닿는 놀라운 순간이다.
손톱은 손가락을 보호하지만, 손 전체를 보호해주지는 못한다. 인간이 손을 내밀고 맞잡는 존재인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문학작품 속에는 당신의 손을 기다리는 무수한 손들이 있다. 슬프면서 좋은 거, 그게 바로 문학이다.
3. [경향신문][전우용의 우리 시대] 스타의 시대
한국어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기운 또는 기세를 뜻하던 ‘인기(人氣)’라는 단어가 ‘자기 주변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기운’이라는 의미로 변질된 것은 일제 강점 이후이다. 이 무렵부터 대중 연예인은 가장 두드러진 ‘인기인’이었다.
조선물산공진회 등의 대규모 행사 때 서울시내 각 권번(기생조합 겸 기예학교에 해당) 기생들이 무리를 이뤄 거리로 나서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려고 서로 밀치곤 했다.
시내의 각 권번들은 소속 기생의 사진과 프로필, 장기 등을 적은 팸플릿을 만들어 돌렸고, 이를 통해 기생들은 ‘유명인’의 반열에 올랐다. 연흥사, 장안사, 조선극장 등 신파극이 상연되는 극장 앞에는, 막이 내리기도 전에 기생들이 보낸 인력거들이 모여들어 서로 주연 배우를 모셔가려고 다퉜다. 대중 사이에 한 사람의 시선과 관심을 차지하려 수많은 사람들과 다투는 경험이 쌓여 갔다.
배우, 가수 등의 대중 연예인에게 ‘스타’라는 칭호를 헌정하기 시작한 것은 1925년께부터다. 이해 이경손 감독이 <심청전>을 제작하여 개봉했는데, 몇몇 신문은 이 영화에서 심청 역을 맡은 함흥 출신 배우 김우연에게 ‘스타’라는 명사를 덧붙였다. 밤하늘에서 빛을 발하며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별. 볼 수는 있으나 만질 수는 없는 존재. 스타는 사진 인쇄술의 발달과 대중예술 공간의 증가가 만들어낸 특별한 인간이었다.
1926년 봄, 작은 극단에 소속되어 함흥에서 공연 중이던 15세 소녀 신일선은, 눈에 띄게 예쁜 배우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나운규에게 캐스팅되어 바로 영화 <아리랑>의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쳤고, 전국 방방곡곡에 신일선의 이름이 알려졌다.
그가 거리에 나서면 고등보통학교(요즘으로 치면 중학교)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젊은 남자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했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들이 보내온 수십 통의 팬레터를 읽지도 않고 휴지통에 버리는 건 그의 일상이 되었다. 당대의 미남이자 한량으로 소문난 박모라는 사람이 자기를 향한 연정을 주체하지 못해 달리는 기관차에 뛰어들어 투신자살했다는 소문으로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호시탐탐 그에게 접근할 기회를 노리는 남자들을 처리하는 것은 그의 오빠 몫이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오빠의 강권을 못 이겨 호남의 한 부호 유부남과 결혼했고, 이 일을 계기로 ‘스타성’을 잃었다. 결국 그는 매니지먼트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되었는데, 이는 이 시점에 이미 스타란 ‘타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관리되는 인격체’였음을 알려준다.
스타의 짝은 당연히 ‘팬’이다. 광신도를 뜻하는 영단어 fanatic에서 유래한 ‘팬’도 ‘스타’라는 단어와 함께 유입되었다.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에게서 ‘지고지선(至高至善)’을 보며, 그래서 종종 스타를 어떤 인간적 흠결도 지니지 않은 신(神)처럼 숭배한다. 1972년 6월, 당대 최고의 인기 스타였던 가수 나훈아가 공연 도중 괴한에게 습격당해 부상을 입었다. 대중은 물론 언론조차도, 나훈아의 라이벌이었던 남진의 열성 팬이 저지른 소행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이는 후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스타는 신이고 팬은 신도라는 종교적 인식 태도는 이 무렵에 이미 일반화한 상태였다. 이교도를 원수처럼 대하고 이교도 박멸을 순결한 신도의 책무로 인식하는 중세 종교적 태도는, 스타와 팬의 관계를 통해 현세에 부활했다.
개별적으로 스타를 흠모하던 팬들이 ‘팬클럽’이라는 조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70년께부터다. 초기의 팬클럽이 순수 동호인 단체에 가까웠다면, 컬러TV 시대인 1980년대 중반에 출현한 ‘박수부대’는 자기들의 세력을 과시하고 확장하기 위한 전투적 선교조직에 가까웠다. ‘박수부대’는 얼마 후 ‘오빠부대’로 이름이 바뀌었고, 더불어 어떤 스타의 팬을 ‘~빠’로 칭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인터넷이 보급되자, 팬클럽들은 수십만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가상 교회를 세웠다. 이와 더불어 자기들이 숭배하는 스타를 찬양하고 다른 자들의 스타를 폄훼하는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인터넷상에서는 때때로 팬클럽들 간의 ‘종교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요즘에는 어떤 아이돌 스타의 생일을 맞아 대형 축하 광고판을 내거는 팬클럽들을 쉽게 볼 수 있다. 2000여 년 전 옥합에 담긴 귀한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의 갸륵한 마음과 이들의 순수한 마음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스타를 숭배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이것이 포괄하는 영역도 연예 오락 스포츠를 넘어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정치인에게 스타라는 칭호를 헌정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5공비리 청문회’ 때부터였다. 팬클럽과 비슷한 지지자 모임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최초였던 듯하고.
이제 각 정치인들의 열성 지지자들은 옛날처럼 유세장에 가서 머릿수나 채워주고 투표장에서 도장이나 찍어주는 수동적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비방하는 ‘이교도’들을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전사들이다. 개별 정치인이나 정당의 사주만으로는 이런 ‘전사형 지지자’들을 대량 생산할 수 없다.
이들을 낳은 것은 스타 숭배를 확산시키는 사회적 기술적 시스템이다. 그런데 스타 숭배 문화에 포획된 정치가 과연 건강할 수 있을까? 스타를 향한 ‘팬심’과 정치인에 대한 ‘지지’는 달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역사의 시곗바늘은 자칫 정교분리 이전의 시대로 향할 수 있다. 비판 없는 지지가 추종이다.
4. [한국일보][삶과 문화] 무대 아래 대기실 풍경
무대 위에 서는 모든 출연자는 짧은 순간의 공연을 위해 긴 대기 시간을 갖는다. 정상급의 출연자로 갈수록 대기 시간은 짧아진다. 그건 그 사람이 유명하거나 시간이 모자라서이기도 하지만 그 동안 그만큼 많은 대기 시간을 쌓아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막 공연 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행사장의 공기도 몇 시간 전에 도착해서 많이 마시는 게 좋다.
행사장 마다 무대 위에 흐르는 느낌과 객석에서 원하는 것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라디오 주파수 맞추듯 조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음향 관계자들은 이것을 직접적으로 느낀다. 행사장의 구조, 객석의 배치, 그날의 날씨 등에 따라 소리는 변화무쌍해지기에 많은 시간을 들여 그 공간과 친해지려고 애를 쓴다.
리허설이 끝나고 관객들이 입장하기 시작하면, 출연자들은 대기실에 머문다. 물론 행사장 마다 대기실의 형태는 다양하다. 메이크업까지 가능한 번듯한 대기실도 있고, 겨우 몸을 구겨 넣는 공간도 있고, 아니면 아예 객석 앞자리에 앉아서 대기하는 경우도 있다.
작은 규모의 행사일수록 대기실 없이 객석에서 무대로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장시간 경직된 자세로 있다가 목청과 몸을 풀지 못하고 그냥 올라가게 된다. 이런 저런 형태의 대기실에서 출연자들은 대기 시간을 저마다 다르게 활용한다. 나는 수년간 공연 활동을 하며 대기실 풍경을 유심히 관찰해 왔는데, 대기실에서의 모습과 무대 위의 모습 사이에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최근 참여했던 행사의 대기실에는 내 창작곡을 부를 가수, 뮤지컬 배우,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자가 있었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국내 최고의 음대를 나오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외국의 학교에서 공부한 정상급 연주자였다. 그녀의 순서는 오프닝과 맨 마지막 두 번이었는데 대기하는 한 시간 반 동안 한 번도 악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계속 바이올린의 지판을 누르거나 손가락으로 악보를 튕기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아까 리허설을 보니 그녀는 악보를 거의 다 외우는 상태였다. 그녀의 엔딩 연주는 전율을 안겨주었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내 창작곡을 부를 가수는 리허설을 무난하게 끝냈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내내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내가 며칠 전 보내준 악보와 반주음악으로 얼마나 연습을 했으면 저렇게도 여유를 가질까?’ 나는 그가 해온 만반의 준비와 무대 앞에서의 여유가 부러웠다. 그러나 정작 그의 순서가 되었을 때 노래의 핵심부분을 관객이 다 알 정도로 틀려버렸다.
2주간 밤을 새며 만든 노래는 빛을 보지 못하고 엉망이 되었다. 옆에 있던 뮤지컬 배우 역시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더러는 긴장을 푸는 방법으로 활용하기도 한다지만 무대와 객석을 생각하며 폭풍 같은 교감을 대기실에서부터 미리 일으키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는 없는 걸까.
내가 봤던 가장 최악의 출연자는 대기실에서 휴대폰 게임을 하던 가수다. 무명이었지만 음반의 내용도, 노래 실력도 꽤 좋아서 앞으로 많은 활동을 같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대에서 진행자가 본인의 이름을 부르기 직전까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 생각을 접었다. 그녀는 헤어지면서 본인이 출연료가 꽤 비싼 사람이라고 자랑했다. 그 뒤 몇 년이 흘렀지만 그녀가 간절히 바라던 큰 무대로 나아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아니, 간절함은 아예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대기실에서 한가하지 않다. 우선, 행사 전체의 흐름을 보며 잘 되고 있는 것과 미흡한 점을 살핀다. 그것은 내 순서에서 만들어 낼 감동의 증폭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이어질 다른 행사에서 나의 가치를 높일 방법을 찾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 번째 하는 일은 위에 말한 바이올린 연주자와 같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커트 보니것
페미니스트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가 지난 3월 영국 방송 ‘채널 4’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 살아온 시스젠더(cisgender) 여성과 다르다’고 말한 게 논란이 됐다. 그는 “모든 젠더 문제는 우리의 경험, 세상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과 관련된다”며 “세상이 남성에 부여한 특권을 갖고 살다가 젠더를 바꾼 사람의 경험이 처음부터 여성으로 살아온 이들과 동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성 정체성의 차이와 구분을 상시적 억압과 차별로 경험해온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그의 말에 분노했고, 페미니즘 진영 안에서도 아디치에의 말에 당혹해 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아디치에의 말이 트랜스젠더의 성 정체성에 불완전함의 낙인을 찍었다고 여겼고, 페미니스트들은 새로운 억압과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 논란은 한편으로, 모든 성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젠더 관념의 관성으로부터 누구도 완벽히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드러낸 계기였다. 아디치에도 “다양성(diversity)이 분할(division)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고 완곡하게나마 그 관성을 비판했지만,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다양성은 차이와 분할을 전제한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미국 오리건주의 한 지방법원은 지난달 말 시민의 청원을 수용해 ‘무성(無性ㆍagender)을 법적 성별로 인정했다. 무성은 남성이나 여성 어디에서도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사람으로, 간성(inter sex)이나 양성(binarysex), 트랜스젠더와 다르다. 21세기의 앞선 세계는 그렇게, 남녀 외에도 4개의 성이 더 존재한다.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1922~2007)의 ‘제5 도살장’은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나치 포로로 독일 드레스덴의 수용소에 갇혔던 작가의 체험- 수용소와 드레스덴 폭격의 체험 등-을 SF적 기법으로 쓴 대표작이다. 소설에는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의 외계인에게 납치됐다가 시간여행 능력을 얻게 된 주인공 빌리가, 외계인들이 지구인의 성을 7개로 분류하는 데 충격을 받는 대목이 나온다.
남성과 여성, 남ㆍ녀 동성애자, 65세 이상 남ㆍ녀와 갓난아이. 보니것이 SF적으로 우회한 성 분류는 오늘날의‘젠더 분류’와는 기준과 의미 면에서 다르긴 하지만, 웃음 안에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든 슬픔과 분노까지 담아낼 줄 알던 저 작가는 오래 전부터 성의 이분법을 의심했고 무엇보다 따분했던 듯하다.
커트 보니것이 2007년 오늘(4월 11일)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