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세계일보]

1. 홍준표의 시한 3분 전 지사 사퇴, 꼼수 아닌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가 공직자 사퇴시한을 불과 3분 남기고 경남도지사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그제 밤 11시57분 경남도의회에 사임통지서를 전자문서로 보냈다. 1분 뒤에는 인편으로 통지서를 보냈다고 한다.



공직선거법은 지방자치단체장 보궐선거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연도의 경우 대선일 30일 전까지 실시 사유가 확정된 선거를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남도선관위는 홍 후보가 지사직을 사퇴한 다음날인 어제 사퇴 통보를 받았다. 사퇴 통보 시점이 선거 29일 전이 되면서 보궐선거를 치를 수 없게 됐다.

홍 후보는 어제 도지사 퇴임식에서 “(경남지사 보궐선거에 따른) 300억원 대 혈세 낭비와 혼란이 있게 되고, 도민들은 제대로 검증도 못해 보고 도지사나 시장군수를 뽑아야 한다”며 늑장 사퇴의 이유를 설명했다. “도정은 세팅이 다 되어 있기 때문에 권한대행체제로 가도 도정공백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일견 납득이 가는 점이 없지 않지만 꼼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홍 후보의 ‘3분 전 사퇴’는 현행 법 위반이 아닐지라도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그의 지연 사퇴로 다른 국민이 경남지사 후보로 나설 수 있는 피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 홍 후보는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201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면서 사퇴한 뒤 대선과 함께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그런 홍 후보가 다른 사람의 도지사 출마를 막았으니 곱게 비쳐질 리 없다. 

경남도는 홍 후보의 지사직 사퇴로 내년 6월 지방선거 때까지 행정부지사 대행체제로 운영된다. 홍 후보가 경남지사 보궐선거로 혈세 낭비가 걱정된다면 진즉 대선후보 경선에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성완종 뇌물 리스트로 재판을 받고 있는 형사피의자 신분이다. 스스로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처지라는 뜻이다. 한밤중에 벼락치기로 사퇴서를 제출하는 장면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다. 그런 행위를 하고도 국민의 지지를 받기를 바랄 수는 없다.



[중앙일보]

2. 미세먼지에 마스크 쓰고 수업 … 이게 나라인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미세먼지 예보부터 본다. 가슴이 답답하고 코와 눈이 가렵다는 아이들을 문 앞에서 배웅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전국의 학부모들은 어린 자녀를 간신히 달래며 유치원과 학교에 보낸다. 해가 바뀔수록 ‘봄의 불청객’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지만 정부는 헛발질만 거듭해 답답할 뿐이다. 올해는 1~3월 전국의 미세먼지 주의보가 최근 3년래 가장 많은 86회나 발령됐다.

그러자 “더 이상 못 참겠다”며 학부모 등 7명이 한국과 중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냈다. 국민의 건강권을 책임지라는 경고였다. 원성이 들끓자 서울시교육청이 어제 독자적인 대응 방안을 내놨다. 미세먼지 농도가 보통(31∼80㎍/㎥) 수준이라도 50㎍ 이상이면 야외수업을 실내수업으로 대체하고, 마스크를 쓰도록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전문가·교육청 등이 참여하는 ‘학교 미세먼지 관리위원회’를 가동하고 교실에 공기정화장치도 보급하기로 했다.

솔직히 이런 게 제대로 된 대응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미래세대를 위해 미세먼지 자체를 줄이기는커녕 마스크만 씌우고 공기정화기만 돌리겠다니 말이다. 예전에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이 빈발하자 교육당국이 교실 창문 크기를 줄이겠다고 한 것이나 뭐가 다른가. 중앙 정부가 국가와 국민 생존 차원에서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 대책이라곤 지난해 9월 취임한 조경규 환경부 장관이 미세먼지 발령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한 게 고작이다. 미세먼지의 발생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건 더 심각한 문제다. 환경부는 80% 이상을 중국 탓으로 돌리지만 외국 전문가들은 20% 정도로 분석한다. 말로만 외쳐온 한·중 환경외교가 겉돈 탓이다. 실효성 있는 대중 환경 외교, 석탄·화력과 경유차 축소 등 총체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대선주자들부터 당장 “마스크를 쓰고 수업하는 게 나라냐”는 학부모들의 외침에 응답해야 한다. 미세먼지를 우리의 미래와 국민의 삶을 파괴하는 국가 재난으로 접근해야 한다. 제대로 된 인식이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든다.



[조선일보]

3. 박빙 대선, 이기고 보자는 포퓰리즘 창궐할 수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10일 중소기업 취업 청년들 임금을 대기업의 80% 수준으로 맞추는 '청년 고용 보장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 보조금으로 청년 1인당 월 50만원씩 연간 10만명을 지원하면 청년 취업난과 중소기업 구인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9일 '달동네'로 불리는 노후 주거지를 개선하는 '도시 재생 뉴딜 사업'을 발표했다. 동네마다 아파트 단지 수준의 주차장·어린이집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전국 500곳의 낙후 지역을 재정비하겠다는 것이다.

이 정책들의 취지는 다 필요한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청년 고용 보장제는 연 수조원, 도시 재생 사업엔 연 10조원이 든다고 한다. 대상을 선정하는 것부터가 문제인데 어떤 대형 부작용을 낳을지 검토했다는 흔적도 없다.

2002년 대선에서 지지율 3위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놓은 게 '충청권 행정수도' 공약이다. 이로 인한 갈등과 국가적 낭비·손실은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대로다. 1987년 대선 1주일 전에 나온 '새만금 개발' 공약의 경우 3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실현도 안 되면서 막대한 세금만 들어갔다.

영국 옥스퍼드 이코노믹스가 올해 초 낸 보고서는 20대 경제 선진국 중 11곳에서 2~3년 내 포퓰리즘 정권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으며 한국을 그중 네 번째로 꼽았다. 이번 선거는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이다. 충분한 검토 없는 마구잡이 공약이 쏟아질 수 있다. 특히 문재인·안철수 후보 간 박빙의 경합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후보 진영이 일단 이기고 보자는 포퓰리즘을 들고나올 조건이 다 갖춰진 셈이다.



4. "기득권과 대결"이란 文, "편 가르기 끝낸다"는 安​

문재인·안철수 양자 구도가 뚜렷해짐과 동시에 이 두 후보가 무슨 기치로 이번 대선을 치를 것인지도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 문 후보는 여러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이 '부패 기득권 세력과의 대결'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국민의당 안 후보는 "편 가르기 정치를 끝내겠다"고 했다.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제1 메시지가 이것이라는 것이다.

문 후보는 탄핵 과정에서 '적폐 청산' '국가 대청소' 같은 구호를 내세워 왔다. 문 후보가 지지율 선두를 달렸지만 어느 한계를 넘지는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문 후보는 그러나 한때 검토하는 듯했던 외연 확대가 아니라 기존 지지층 강화라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안 후보를 향해 "정권 연장을 꾀하는 부패 기득권 정치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문 후보는 자신들은 선(善)이자 정의(正義)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에도 국민들은 심각한 부정부패와 특권적 갑질을 목격했다. 많은 사람은 문 후보 아들 취업, 노 전 대통령 사돈 음주 소란 문제 등도 그런 적폐의 일단으로 보고 있다. 나는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이분법 전략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알 수 없으나 이 편 가르기를 진보좌파 기득권의 아전인수 격 독선으로 느끼는 유권자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들을 비난하는 것은 정치인의 도리가 아니다.

안철수 후보는 5년 전 대선 때부터 '경제 진보·안보 보수', 이념을 뛰어넘는 새 정치를 주장해왔다. 그가 작년 총선을 통해 재기한 것도 많은 사람이 '편 가르기 정치 청산'에 공감해 중간 지대를 선택한 때문이다. 하지만 안 후보 역시 편 가르기 정치 청산이 말뿐이고 국민에게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협치(協治)가 펼쳐질 것이란 큰 그림은 제시돼야 한다. 편 가르기 싸움은 우리 정치의 고질이다. 우리 인식, 습성, 관습에 뿌리 박고 있다는 뜻이다. 이 고질은 안 후보가 당선되는 것만으로 고쳐지지 않는다. 구체적인 내용을 채우지 못하면 공허하다는 말이 나오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제 대선 메시지 구도는 '적폐 청산' 대(對) '편 가르기 청산'으로 선명해졌다. 유권자들은 앞으로 한 달 동안 이 중에서 무엇이 나라에 필요하고 도움이 될지, 과연 문·안 두 사람이 그것을 감당할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5. 선제타격보다 美 대북 정책 유턴 더 주목해야

미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대북(對北) 선제타격 가능성을 잇달아 시사하면서 우리 내부에 구체적 날짜까지 지목한 '북폭설'이 퍼지고 있다. 항모 칼빈슨호가 한반도 인근 해역에 다시 배치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달이 뜨지 않는 27일 선제타격설까지 나도는 것이다. 일본 대사가 한국에 귀임한 것이 일본인 대피를 위한 것이라는 언론 보도도 이를 부추겼다. 국내 외국계 기업 철수설, 김정은 망명설을 담은 SNS도 떠돈다. 한마디로 근거 없는 소문들이다. 군사 공격 날짜가 미리 알려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대북 선제타격은 트럼프 행정부의 여러 대북 옵션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굳이 확률을 따지자면 역대 미국 행정부 중에서 이를 사용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군사작전을 위해선 목표가 분명해야 하고, 타격 이후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현 상황에서의 대북 선제타격은 이 둘 모두가 불확실하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어제 "우리 입장에서는 선제타격이 가져올 다른 여러 문제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미 국방장관은 대북 선제타격 옵션을 미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 반드시 이로 인한 부정적 효과도 강조해왔다. 선제타격은 그 가능성을 '0'이라고 할 수 없고, '0'으로 만들 필요도 없지만 아직은 명백하게 외교적 압박의 영역 안에 있다.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떠드는 것은 지나친 과잉, 과장 반응일 뿐이다.

오히려 지금은 한반도 위기가 고조됐다가 미국과 북한이 전격 대화에 들어갔던 20여 년간의 패턴이 다시 작동할 가능성을 주목해야 할 때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9일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은 비핵화된 한반도를 원하지만 북한 정권을 교체할 목표는 없다"고 밝혔다. 또 "북한과 대화의 전제조건은 모든 무기의 시험과 개발을 중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이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 '폐기'가 아닌 '동결'을 전제로 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어느 정도 무게를 실어 발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변화다. 지난 90년대 초 시작된 북핵 위기는 북한의 합의 파기→핵·미사일 도발→ 한반도 긴장 고조→협상 및 타협→보상의 악순환이 계속돼 왔다. 이는 미국이 근본 해결이 아니라 정권의 단기적 필요에 따라 문제를 다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그런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라면 불길하다.

지금은 유엔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하고 강력하게 이행해야 할 시점이다. 중국도 북핵으로 인한 자신들의 국익 피해를 피부로 느끼도록 해야 한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는 북한 체제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대북 조치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되 당장은 인내심을 갖고 제재와 압박에 총력을 다할 때다.



[매일신문]

6. 누가 ‘북폭설’ 유언비어를 양산해 국민 불안을 부추기나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는 ‘북폭설’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급격히 확산되면서 불안해하는 국민이 많다.SNS 등에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며 북폭이 일어날 것처럼 떠드는 이들이 늘어나자, 일부에서는 ‘비상식량을 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북폭설’은 전형적인 ‘가짜 뉴스’다. 시국이 어수선해지면 유언비어, 가짜 뉴스, 헛소문이 활개를 치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는 만큼 현혹될 이유가 없다.



소셜미디어에 ‘북폭설’이 등장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함께 북한 선제타격설이 고개를 들더니 지난 6일 미국의 시리아에 대한 공격 직후부터 ‘4월 북폭설’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SNS와 일부 뉴스는 북폭설의 근거로 미국이 칼빈슨 항모의 경로를 변경해 한반도 인근 해역에 배치했고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를 일본에 전진 배치한 점 등을 들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미`중의 북한 제재 합의 실패 등으로 한반도 주변 정세가 불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폭’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현재로선 북폭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미국 정부와 전문가들이 북한에 대한 군사 행동은 ‘최후의 옵션’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폭론’을 두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까지 나서 근거 없는 북폭론을 일축하기에 이르렀다. 통일부는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력해 북한 핵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선제타격론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크게 우려하실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정국이 어지러울 때마다 불안을 부추기는 개인이나 집단이 등장하곤 했다. ‘북폭설’도 탄핵과 대선을 틈타 사회 분열을 획책하거나 국민 혼란을 부추기려는 일부의 ‘작품’임이 분명하다. 이럴 때 일수록 각종 유언비어나 가짜 뉴스에 현혹되지 말고, 단호하게 거부하고 배척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 안보 상황의 엄중함을 잊지 않으면서도 올바른 뉴스를 가려듣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7. 국보급 훈민정음 해례본, 이제 세상의 빛을 보게 할 때다

국보급으로 평가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실물 사진이 배익기 소장자에 의해 8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008년 상주본의 존재가 첫 공개된 이후 자취를 감춘 지 9년 만이다.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상주본 실물 사진은 12일의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배 소장자가 국회의원 재선거 후보라는 공인(公人)의 입장에서 공개한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끈다.



이번에 드러난 실물 사진은 보는 국민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500년 세월을 견디다 지난 2008년 처음 선보였을 때 모습보다 보관 상태가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2015년 3월 26일 소장자의 집에서 일어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화재 탓인 듯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실물 존재 자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된 일은 다행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학자들이 주장하는 33쪽짜리 해례본과는 달리 처음부터 24쪽짜리로만 존재했던 해례본 7쪽 공개 부분은 일부 테두리 외에는 온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주본은 이미 전문가 감정에서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 중인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본)보다 높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판정됐다. 문화재청의 감정 가치만으로도 1조원이라는 이야기가 나돌 만큼 귀중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소중한 문화유산이 소유권 소송과 국가 헌납 여부를 둘러싼 소장자와 당국과의 줄다리기 등으로 조금의 진척을 보지 못했다. 당당하게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음지에서 몰래 보관되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기회가 해결의 돌파구가 되길 기대한다. 소장자의 행동도 기대감을 갖게 하고 있다. 먼저 이번에 실물 사진을 공개해 상주본의 존재를 알렸다. 또 당선되면 국가 헌납도 공약했다. 보상가 1천억원을 달라던 종전 입장과 다르다. 재선거 후보라는 공인으로서 한 언행인 만큼 문제를 풀 실마리로 삼기에 충분하다. 존재 여부도 몰라 협상할 수 없다던 당국도 이제 다른 접근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소장자나 당국 모두 당당하게 문제를 풀 때다. 해례본은 불순하게 뒷골목에서 거래할 흥정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와 겨레의 보편적인 자산이어서다.



[서울신문]

8. 지사직 사퇴 꼼수 쓴 洪, ‘법치’ 말하지 말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가 어제 경남지사 퇴임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대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그제 밤 대선 출마를 위한 공직 사퇴 시한 3분을 남기고 도지사직을 사임했다. 정상적인 수순이라면 3월 31일 한국당 경선에서 최종 후보로 공식 선출된 직후 도지사직을 관뒀어야 했다.



그러나 도지사직 사퇴를 둘러싼 논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을 끌다 그제 밤 11시 57분 사퇴함으로써 도지사 보궐선거를 무산시켰다. 경남도의회 의장은 자정을 넘겨 전자문서로, 경남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아침에서야 사임 통지를 받았다. 경남도는 다음 지방선거까지 1년 2개월 동안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홍 후보는 철저한 계산 아래 도지사직을 내놨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34조에 따라 보궐선거를 실시하려면 30일 전인 그제 선거를 공고해야 했다. 하지만 홍 후보가 고의로 그제 밤 12시에 임박해 사퇴함으로써 공고를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사임 통보를 받은 날을 ‘선거 실시 사유가 확정된 때’라는 보궐선거 성립 조건인 30일 이전 사퇴가 아닌 29일 전 사퇴한 셈이기 때문이다. 법의 허점을 개인적으로 이용해 보궐선거를 못 치르게 공고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홍 후보의 보궐선거 훼방에는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 물론 법 위반은 아니다.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법을 제정할 때 홍 후보와 같은 술수가 나올 줄 상정조차 못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법률가인 자신의 지식을 악용한 악질적인 전형적 화이트칼라 범죄”라는 등의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는 “법률을 전공했다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법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우병우와 다를 게 뭐냐”라며 ‘홍준표 방지법’의 제정을 들고나왔다.

홍 후보는 애당초 “보궐선거 실시로 안 써도 되는 세금 수백억이 낭비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한대행에게 맡겨도 도정 공백이 없다는 입장까지 내놓았다. ‘경남도를 건드리지 말라’는 안하무인 격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발상 자체가 위험천만이다. 그 결과 도민들은 직접 도지사를 선출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보궐선거를 염두에 뒀던 사람들의 출마 기회도 앗아갔다.



헌법이 보장한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행사를 방해한 처사다.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사람에 대해서는 유권자가 심판할 것이다. 아울러 홍 후보의 꼼수를 막기 위한 선거법 개정이나 ‘홍준표 방지법’ 제정은 지금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



9. 제자 인건비 착복 도저히 못 끊는 관행인가

한 국립대의 교수 6명이 산학협력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4억 8000만원의 연구비를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짐작했던 것처럼 착복한 연구비는 대부분 소속 학과 학생들에게 나눠 줘야 할 인건비였다. 학생들로부터 아예 통장을 넘겨받거나, 연구비를 일단 지급했다가 돌려받는 수법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제자들을 상대로 저질렀다는 점에서 파렴치하기 이를 데 없는 범죄행위다. 그럼에도 대학 사회에서는 별다른 죄의식도 없이 당연시되고 있는 듯하다. 인천대 사례도 각각의 교수가 별개의 연구 과제에서 부정을 저지른 것이라고 한다. 교수들의 제자 인건비 착복이 얼마나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교수가 제자 인건비를 착복했다는 뉴스는 이제 놀랍기보다는 식상할 지경이다. 이러다가 우리 사회 전체가 도덕 불감증에 걸리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적발된 교수들은 대부분 “다른 교수들도 마찬가지인데 나만 걸려들어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국가연구 용역을 수행하면서 인건비를 제대로 주지 않아 실형을 선고받은 또 다른 국립대 교수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현금을 줘 받았을 뿐”이라고 변명했다고 한다. 시장 상인들을 공포로 몰아넣고는 “자발적으로 돈을 걷어 준 것”이라는 조폭과 다르지 않다.

교수 사회도 이제는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주도해 외부에서 연구용역을 따왔으니 관련 비용은 내 맘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부터 떨쳐야 한다. 무엇보다 제자들에게 마치 “이런 게 사회생활”이라는 듯 범죄행위부터 가르치는 것은 인생 선배로서의 도리도 아니다. ‘대학원에 들어가 제일 먼저 배우는 게 가짜 영수증 끊는 법’이라는 불행한 우스개는 사라져야 한다.

최근 줄지어 적발된 연구비 착복 교수는 대부분 국립대 소속이다. 국가가 발주하는 연구용역을 국립대 교수가 수행할 경우 나름대로 감시는 이루어진다. 하지만 민간 기관과 사립대학의 연구용역이라면 상황은 다르다. 이제 국·공립대는 물론 사립대도 제자들의 인건비를 빼돌린 교수를 반드시 퇴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청렴성이 요구되는 자리가 아닌가. 교육부는 각 대학이 이런 학칙을 만들어 시행하는지 철저히 지도하고 감독하라. 부정과 비리가 판치도록 방치하는 대학은 제재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데일리]

10. 대기업 취업에만 매달릴 때가 아니다

국내 대기업 200곳 가운데 45곳(22.5%)이 이번 상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줄이거나 한 명도 뽑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200개 기업으로부터 응답을 받은 결과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채용축소 또는 안 뽑겠다고 밝힌 응답(11.5%)에 비해 2배로 늘어난 것이다. 대졸자들의 취업이 더욱 어려워졌음을 말해준다.

지난해보다 채용 규모를 늘리겠다고 답한 기업이 22곳(11%)으로 나타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해와 비슷하다고 답한 기업도 59개(29.5%)로, 지난해 조사(27.2%)보다는 조금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기업 전체로는 신규채용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국내외 경제 여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투자 및 고용 확대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졸자들의 취업이 어려워진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위해 다시 전문대에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들린다. 지난 주말 9급직 국가 공무원을 뽑는 시험에 전국적으로 22만명 이상이 응시했다는 사실에서도 요즘의 취업난 실태를 실감하게 된다. 설사 대기업들이 제대로 인력을 충원한다고 해도 대학 졸업생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취업 준비생들의 입장에서도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앞으로 취업난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로지 대기업 취직에 인생의 승부를 거는 것은 지나친 모험이다. 혹시 1~2년을 늦춰서라도 대기업에 들어가게 되면 그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지만 그러다가 자칫 취업 시기를 놓치게 된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취업 준비생들이 대기업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월급이 많고 후생복지 지원도 월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업이 아니라도 특화 분야에 있어서는 오히려 대기업보다 근무조건이 좋은 경우가 적지 않다. 근무조건과 대우를 떠나서도 중견·중소기업을 선택해 장차 굴지의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도 아쉽기만 하다. 대졸자들의 취업 지원에서부터 개성과 소질을 살리는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주요신문칼럼



1. [매일신문][기고] 에밀 타케와 왕벚나무

여기저기 봄 소식이 한창이다. 아침저녁 쌀쌀함이 남아 있지만 하얀 냉이꽃 사이로 노랑 나비 나풀거리는 모습은 겨울이 저만치 갔음을 이야기한다. 매년 이 계절이 되면 남쪽 바다 진해에서부터 서울 여의도까지 전국이 벚꽃 이야기다. 대구만 해도 두류공원이나 팔공산의 벚꽃길이 유명하고, 동구의 금호강변이나 달성군 용연사 가는 길의 벚꽃들도 볼만하다.



이들 벚꽃 길에 심어진 나무는 벚나무 중에서도 꽃이 크고 개화 수량도 많아 벚꽃 중의 왕이라는 왕벚나무가 대부분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고 꽃이 만개했을 때 하얀 구름을 뒤집어쓴 것같이 화려하여 가장 선호하는 품종이 된 것이다.



지금은 벚꽃 구경을 봄날의 낭만으로 쉽게 이야기하지만, 한때는 일본 문화를 상징한다 하여 사쿠라로 낮춰 부르며 미움과 배척의 대상이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왕벚나무 자생지가 우리나라 제주도임이 알려지면서 벚꽃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곳곳에 벚꽃길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벚꽃을 찬미하는 노래가 이 계절 빠질 수 없는 레퍼토리가 된 것만 봐도 왕벚나무의 위상이 높아진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왕벚나무 자생지가 대한민국임을 밝혀 국민적 사랑을 받게 한 이는 한국인이 아니다. 선교사로 구한말 우리나라를 찾은 푸른 눈의 이방인 에밀 타케(한국명 엄택기, 프랑스 출생) 신부가 그 주인공이다. 초기에는 마산, 제주도, 목포, 나주 등 우리나라 남쪽지방에서 활동하다 1922년부터는 대구 남산동에 있는 성유스티노신학교(현 대구가톨릭대학 유스티노캠퍼스)에서 근무했다. 이후 1952년 이국 땅에서의 삶을 마무리할 때까지 30여 년간 그에게 대구는 삶의 터전이고 고향이었다.



에밀 타케 신부가 식물학자로 명성을 쌓은 시기는 제주도에서 활동할 때다. 온주밀감을 처음 도입하여 감귤농업의 기반을 열었으며, 1만여 종의 식물을 채집하여 영국, 미국, 프랑스 등으로 보내어 우리나라 식물들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채집된 식물 중 하나가 왕벚나무이다.



1908년 4월 15일 제주도 한라산 북편 해발 600m 지점에서 채집된 벚나무 표본이 독일 베를린대학으로 보내지고 왕벚나무로 인정됨으로써 그 자생지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이다. 벌써 110년 전의 일이지만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시대 상황과 식물에 대한 무관심으로 지나치다 근래 들어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것이다.



대구 중구 남산동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내에는 오래된 왕벚나무 몇 그루가 있다. 왕벚나무를 세상에 알린 에밀 타케 신부와의 관련성이 언급되어 수목 전문가들이 조사했다. 나이테 검사 결과 가장 오래된 것이 수령 90살 정도로 1920년대 에밀 타케 신부가 신학대학에 근무할 때 심었던 나무(교구청 내 안익사 옆)다.



오래된 세월의 흔적으로 여기저기 갈라지고 썩은 부분이 있어 치료도 하고 주변을 정비하였다. 부러질 우려가 있는 가지는 지주목을 세우고, 울타리도 만들어 답압에 의한 피해도 없도록 하였다. 그리고 왕벚나무 자생지를 알린 일을 기억하고자 에밀 타케와 왕벚나무라는 이름으로 안내판도 설치하였다. 올해부터는 투어 코스도 만들어 식물학자로서의 업적과 대구의 근대 여명기 우리와 고락을 함께한 그의 발자취를 만나는 자리도 마련한다고 한다.



해마다 만나는 벚꽃이지만 한 번쯤은 사람에 치이는 번잡함을 벗어나 에밀 타케의 왕벚나무를 만나 보는 것은 어떨까? 남산동 교구청 내에는 숲을 이룰 정도로 많은 양은 아니지만 군데군데 벚꽃들이 피어나고, 새소리 바람 소리는 덤으로 만날 수 있다. 고즈넉한 한옥을 배경으로 떨어지는 벚꽃 잎에서 에밀 타케의 미소를 만난다면 이번 봄은 좀 더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2. [경향신문][청춘직설] 슬프면서 좋은 거

권여선의 단편 ‘손톱’에는 소희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소희 곁에 있어야 할 대상들은 다 떠나버리고 소희는 빚만 떠안은 채 성인이 된다. 스물한 살의 소희가 갚기엔 만만치 않은 액수다. 그녀는 이십만원으로 한 달을 살고 있고 출퇴근 시간을 급여로 환산해 머릿속으로 계산해볼 만큼 꼼꼼하다. 아니, 절박하다. 친구도 못 만나는 삶, 섣불리 친구도 못 만드는 삶이다.



방세가 오르거나 병원에 가는 일이 없다면, 착실하게 돈을 모아 스물여덟에는 빚을 다 갚을 수 있다. 그게 소희의 유일한 희망이다. 성실함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한없이 불투명한 희망.



소희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돌아보고 자신이 처하게 될 미래를 내다보다 건물 쇼윈도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만다. “내가 어쨌다고? 내가 뭘, 뭘, 뭘? 뭘? 뭘? 뭘?” 그녀에게 삶은 단 한번도 개척해나가는 것이나 누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늘 ‘처하는 것’이었다.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태. 

이쯤 되면 소희는 ‘헬조선’을 살고 있는, 아니 헬조선에 처해 있는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모른다.” 우리 중 대부분은 모르는 채로 내일을 맞이할 것이다. 각박한 현실 앞에 놓인 ‘왜’라는 질문은 너무 커다래서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무거울 때 이 소설을 읽어서인지 나는 펑펑 울고 말았다. 소설이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아서, 행복할 거라는 암시조차 주지 않아서, 그런데 그게 더없이 적확한 현실이라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잘될 거라는 확언이나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그 말을 듣는 당사자에게는 멀리 있는 말, 아득한 말이다. 마치 ‘미래(未來)’라는 단어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뜻인 것처럼. 나의 눈물은 위안의 눈물이라기보다 공감의 눈물에 더 가까웠다.

공감은 자기 자신도 그렇다고 느끼는 기분이다. 자기 자신도 그런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다는 데서 오는 마음의 끄덕임이다. 

공감에 시공간의 제약이 있을 리 없다. TV로 딱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을 보며 전화기를 집어 드는 것도, 대형 참사 앞에서 함께 눈물 흘리는 것도 우리가 공감하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문학작품을 많이 읽으면 공감 능력이 커진다.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기도 하고 때로는 그가 내 손을 잡아주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공감은 불러일으키는 것에서 가는 것, 마침내 도달하는 것이 된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

정신없이 바쁠 때일수록 나는 더 갈급이 나서 문학을 찾았던 것 같다. 내가 바랐던 게 위안인지 격려였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나는 늘 문학작품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안도했다. 그것을 단순히 요새 유행하는 ‘힐링’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나는 그저 세상에 있는 단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며 경건해졌다.



세상에 누구도 같은 사람은 없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산다. 그의 삶과 나의 삶에서 공통된 감각을 찾고 결이 유사한 순간을 발견하면 누구든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 흔들림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공감하는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

문학작품은, 아니 좋은 문학작품은 무턱대고 “힘내”라거나 “잘될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여기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모르지만, ‘슬프면서 좋은 거’ 때문에 우리는 역설적으로 내일을 생각할 수 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 나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함께 앓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은 절로 뜨거워진다. 그것은 빤한 위로나 날카로운 조언보다 힘이 된다. 공감이 위안에 가닿는 놀라운 순간이다.

손톱은 손가락을 보호하지만, 손 전체를 보호해주지는 못한다. 인간이 손을 내밀고 맞잡는 존재인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문학작품 속에는 당신의 손을 기다리는 무수한 손들이 있다. 슬프면서 좋은 거, 그게 바로 문학이다.



3. [경향신문][전우용의 우리 시대] 스타의 시대
한국어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기운 또는 기세를 뜻하던 ‘인기(人氣)’라는 단어가 ‘자기 주변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기운’이라는 의미로 변질된 것은 일제 강점 이후이다. 이 무렵부터 대중 연예인은 가장 두드러진 ‘인기인’이었다.



조선물산공진회 등의 대규모 행사 때 서울시내 각 권번(기생조합 겸 기예학교에 해당) 기생들이 무리를 이뤄 거리로 나서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려고 서로 밀치곤 했다. 

시내의 각 권번들은 소속 기생의 사진과 프로필, 장기 등을 적은 팸플릿을 만들어 돌렸고, 이를 통해 기생들은 ‘유명인’의 반열에 올랐다. 연흥사, 장안사, 조선극장 등 신파극이 상연되는 극장 앞에는, 막이 내리기도 전에 기생들이 보낸 인력거들이 모여들어 서로 주연 배우를 모셔가려고 다퉜다. 대중 사이에 한 사람의 시선과 관심을 차지하려 수많은 사람들과 다투는 경험이 쌓여 갔다.

배우, 가수 등의 대중 연예인에게 ‘스타’라는 칭호를 헌정하기 시작한 것은 1925년께부터다. 이해 이경손 감독이 <심청전>을 제작하여 개봉했는데, 몇몇 신문은 이 영화에서 심청 역을 맡은 함흥 출신 배우 김우연에게 ‘스타’라는 명사를 덧붙였다. 밤하늘에서 빛을 발하며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별. 볼 수는 있으나 만질 수는 없는 존재. 스타는 사진 인쇄술의 발달과 대중예술 공간의 증가가 만들어낸 특별한 인간이었다.

1926년 봄, 작은 극단에 소속되어 함흥에서 공연 중이던 15세 소녀 신일선은, 눈에 띄게 예쁜 배우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나운규에게 캐스팅되어 바로 영화 <아리랑>의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쳤고, 전국 방방곡곡에 신일선의 이름이 알려졌다. 

그가 거리에 나서면 고등보통학교(요즘으로 치면 중학교)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젊은 남자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했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들이 보내온 수십 통의 팬레터를 읽지도 않고 휴지통에 버리는 건 그의 일상이 되었다. 당대의 미남이자 한량으로 소문난 박모라는 사람이 자기를 향한 연정을 주체하지 못해 달리는 기관차에 뛰어들어 투신자살했다는 소문으로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호시탐탐 그에게 접근할 기회를 노리는 남자들을 처리하는 것은 그의 오빠 몫이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오빠의 강권을 못 이겨 호남의 한 부호 유부남과 결혼했고, 이 일을 계기로 ‘스타성’을 잃었다. 결국 그는 매니지먼트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되었는데, 이는 이 시점에 이미 스타란 ‘타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관리되는 인격체’였음을 알려준다.

스타의 짝은 당연히 ‘팬’이다. 광신도를 뜻하는 영단어 fanatic에서 유래한 ‘팬’도 ‘스타’라는 단어와 함께 유입되었다.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에게서 ‘지고지선(至高至善)’을 보며, 그래서 종종 스타를 어떤 인간적 흠결도 지니지 않은 신(神)처럼 숭배한다. 1972년 6월, 당대 최고의 인기 스타였던 가수 나훈아가 공연 도중 괴한에게 습격당해 부상을 입었다. 대중은 물론 언론조차도, 나훈아의 라이벌이었던 남진의 열성 팬이 저지른 소행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이는 후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스타는 신이고 팬은 신도라는 종교적 인식 태도는 이 무렵에 이미 일반화한 상태였다. 이교도를 원수처럼 대하고 이교도 박멸을 순결한 신도의 책무로 인식하는 중세 종교적 태도는, 스타와 팬의 관계를 통해 현세에 부활했다.

개별적으로 스타를 흠모하던 팬들이 ‘팬클럽’이라는 조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70년께부터다. 초기의 팬클럽이 순수 동호인 단체에 가까웠다면, 컬러TV 시대인 1980년대 중반에 출현한 ‘박수부대’는 자기들의 세력을 과시하고 확장하기 위한 전투적 선교조직에 가까웠다. ‘박수부대’는 얼마 후 ‘오빠부대’로 이름이 바뀌었고, 더불어 어떤 스타의 팬을 ‘~빠’로 칭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인터넷이 보급되자, 팬클럽들은 수십만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가상 교회를 세웠다. 이와 더불어 자기들이 숭배하는 스타를 찬양하고 다른 자들의 스타를 폄훼하는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인터넷상에서는 때때로 팬클럽들 간의 ‘종교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요즘에는 어떤 아이돌 스타의 생일을 맞아 대형 축하 광고판을 내거는 팬클럽들을 쉽게 볼 수 있다. 2000여 년 전 옥합에 담긴 귀한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의 갸륵한 마음과 이들의 순수한 마음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스타를 숭배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이것이 포괄하는 영역도 연예 오락 스포츠를 넘어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정치인에게 스타라는 칭호를 헌정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5공비리 청문회’ 때부터였다. 팬클럽과 비슷한 지지자 모임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최초였던 듯하고.

이제 각 정치인들의 열성 지지자들은 옛날처럼 유세장에 가서 머릿수나 채워주고 투표장에서 도장이나 찍어주는 수동적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비방하는 ‘이교도’들을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전사들이다. 개별 정치인이나 정당의 사주만으로는 이런 ‘전사형 지지자’들을 대량 생산할 수 없다.



이들을 낳은 것은 스타 숭배를 확산시키는 사회적 기술적 시스템이다. 그런데 스타 숭배 문화에 포획된 정치가 과연 건강할 수 있을까? 스타를 향한 ‘팬심’과 정치인에 대한 ‘지지’는 달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역사의 시곗바늘은 자칫 정교분리 이전의 시대로 향할 수 있다. 비판 없는 지지가 추종이다.



4. [한국일보][삶과 문화] 무대 아래 대기실 풍경

무대 위에 서는 모든 출연자는 짧은 순간의 공연을 위해 긴 대기 시간을 갖는다. 정상급의 출연자로 갈수록 대기 시간은 짧아진다. 그건 그 사람이 유명하거나 시간이 모자라서이기도 하지만 그 동안 그만큼 많은 대기 시간을 쌓아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막 공연 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행사장의 공기도 몇 시간 전에 도착해서 많이 마시는 게 좋다.



행사장 마다 무대 위에 흐르는 느낌과 객석에서 원하는 것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라디오 주파수 맞추듯 조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음향 관계자들은 이것을 직접적으로 느낀다. 행사장의 구조, 객석의 배치, 그날의 날씨 등에 따라 소리는 변화무쌍해지기에 많은 시간을 들여 그 공간과 친해지려고 애를 쓴다. 

리허설이 끝나고 관객들이 입장하기 시작하면, 출연자들은 대기실에 머문다. 물론 행사장 마다 대기실의 형태는 다양하다. 메이크업까지 가능한 번듯한 대기실도 있고, 겨우 몸을 구겨 넣는 공간도 있고, 아니면 아예 객석 앞자리에 앉아서 대기하는 경우도 있다.



작은 규모의 행사일수록 대기실 없이 객석에서 무대로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장시간 경직된 자세로 있다가 목청과 몸을 풀지 못하고 그냥 올라가게 된다. 이런 저런 형태의 대기실에서 출연자들은 대기 시간을 저마다 다르게 활용한다. 나는 수년간 공연 활동을 하며 대기실 풍경을 유심히 관찰해 왔는데, 대기실에서의 모습과 무대 위의 모습 사이에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최근 참여했던 행사의 대기실에는 내 창작곡을 부를 가수, 뮤지컬 배우,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자가 있었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국내 최고의 음대를 나오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외국의 학교에서 공부한 정상급 연주자였다. 그녀의 순서는 오프닝과 맨 마지막 두 번이었는데 대기하는 한 시간 반 동안 한 번도 악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계속 바이올린의 지판을 누르거나 손가락으로 악보를 튕기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아까 리허설을 보니 그녀는 악보를 거의 다 외우는 상태였다. 그녀의 엔딩 연주는 전율을 안겨주었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내 창작곡을 부를 가수는 리허설을 무난하게 끝냈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내내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내가 며칠 전 보내준 악보와 반주음악으로 얼마나 연습을 했으면 저렇게도 여유를 가질까?’ 나는 그가 해온 만반의 준비와 무대 앞에서의 여유가 부러웠다. 그러나 정작 그의 순서가 되었을 때 노래의 핵심부분을 관객이 다 알 정도로 틀려버렸다.



2주간 밤을 새며 만든 노래는 빛을 보지 못하고 엉망이 되었다. 옆에 있던 뮤지컬 배우 역시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더러는 긴장을 푸는 방법으로 활용하기도 한다지만 무대와 객석을 생각하며 폭풍 같은 교감을 대기실에서부터 미리 일으키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는 없는 걸까.

내가 봤던 가장 최악의 출연자는 대기실에서 휴대폰 게임을 하던 가수다. 무명이었지만 음반의 내용도, 노래 실력도 꽤 좋아서 앞으로 많은 활동을 같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대에서 진행자가 본인의 이름을 부르기 직전까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 생각을 접었다. 그녀는 헤어지면서 본인이 출연료가 꽤 비싼 사람이라고 자랑했다. 그 뒤 몇 년이 흘렀지만 그녀가 간절히 바라던 큰 무대로 나아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아니, 간절함은 아예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대기실에서 한가하지 않다. 우선, 행사 전체의 흐름을 보며 잘 되고 있는 것과 미흡한 점을 살핀다. 그것은 내 순서에서 만들어 낼 감동의 증폭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이어질 다른 행사에서 나의 가치를 높일 방법을 찾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 번째 하는 일은 위에 말한 바이올린 연주자와 같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커트 보니것

페미니스트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가 지난 3월 영국 방송 ‘채널 4’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 살아온 시스젠더(cisgender) 여성과 다르다’고 말한 게 논란이 됐다. 그는 “모든 젠더 문제는 우리의 경험, 세상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과 관련된다”며 “세상이 남성에 부여한 특권을 갖고 살다가 젠더를 바꾼 사람의 경험이 처음부터 여성으로 살아온 이들과 동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성 정체성의 차이와 구분을 상시적 억압과 차별로 경험해온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그의 말에 분노했고, 페미니즘 진영 안에서도 아디치에의 말에 당혹해 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아디치에의 말이 트랜스젠더의 성 정체성에 불완전함의 낙인을 찍었다고 여겼고, 페미니스트들은 새로운 억압과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 논란은 한편으로, 모든 성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젠더 관념의 관성으로부터 누구도 완벽히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드러낸 계기였다. 아디치에도 “다양성(diversity)이 분할(division)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고 완곡하게나마 그 관성을 비판했지만,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다양성은 차이와 분할을 전제한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미국 오리건주의 한 지방법원은 지난달 말 시민의 청원을 수용해 ‘무성(無性ㆍagender)을 법적 성별로 인정했다. 무성은 남성이나 여성 어디에서도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사람으로, 간성(inter sex)이나 양성(binarysex), 트랜스젠더와 다르다. 21세기의 앞선 세계는 그렇게, 남녀 외에도 4개의 성이 더 존재한다.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1922~2007)의 ‘제5 도살장’은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나치 포로로 독일 드레스덴의 수용소에 갇혔던 작가의 체험- 수용소와 드레스덴 폭격의 체험 등-을 SF적 기법으로 쓴 대표작이다. 소설에는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의 외계인에게 납치됐다가 시간여행 능력을 얻게 된 주인공 빌리가, 외계인들이 지구인의 성을 7개로 분류하는 데 충격을 받는 대목이 나온다.



남성과 여성, 남ㆍ녀 동성애자, 65세 이상 남ㆍ녀와 갓난아이. 보니것이 SF적으로 우회한 성 분류는 오늘날의‘젠더 분류’와는 기준과 의미 면에서 다르긴 하지만, 웃음 안에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든 슬픔과 분노까지 담아낼 줄 알던 저 작가는 오래 전부터 성의 이분법을 의심했고 무엇보다 따분했던 듯하다. 

커트 보니것이 2007년 오늘(4월 11일) 별세했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경제]

1. 롯데월드타워 오늘 개장, 사드 난관 뚫고 랜드마크로 우뚝 서길

국내 최고층 빌딩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오늘 공식 개장한다. 한국 대표 랜드마크를 목표로 세워진 이 건물의 개장은 롯데그룹뿐 아니라 국가적 경사이기도 하다. 

123층 555m로 세계 다섯 번째이자 아시아 세 번째 고층빌딩인 롯데월드타워는 1987년 사업지 선정 이후 개장까지 꼬박 30년이 걸렸다. 성남 서울공항 항공기 이착륙 문제 등에 발목이 잡혀 허가가 20년 넘게 지연됐고 착공에 들어간 것이 2010년 11월이었다. 이후 사업비 4조원, 연인원 500만명이 투입되는 6년3개월간의 대역사 끝에 올해 2월 서울시 사용승인을 받았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관광산업은 21세기 첨단산업"이라며 "서울에 오면 고궁만 보여줄 수 없다. 세계적 명소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롯데월드타워 건립을 밀어붙였다. 그와 후계자 신동빈 회장의 대를 잇는 집념이 없었다면 오늘의 롯데월드타워를 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롯데월드타워와 롯데월드몰에는 해외관광객 500만명을 포함해 연간 5000만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취업 유발 인원이 2만1000명, 경제 효과는 연간 10조원에 이른다. 랜드마크 빌딩이 관광산업을 부흥시킨 사례는 많다. 파리 에펠탑은 세워진 지 100년이 훨씬 넘었지만 여전히 유럽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세계 최고층 두바이 부르즈칼리파는 한 해 방문객 1000만명 유치를 통해 국내총생산의 5%에 달하는 50억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롯데는 지금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롯데월드타워가 자리를 잡는 데도 얼마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건물 내에 들어서는 최고급 오피스텔 '시그니엘 레지던스'는 중국인 투자자들이 몸을 사릴 경우 분양에 어려움이 예상되고 면세점 등 주변 상권 매출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건물을 세우기 위해 30년간 롯데가 들인 땀과 열정에 견주면 이 같은 문제는 사소한 것이다. 모쪼록 안전관리와 운영에 만전을 기해 서울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이자 관광한국의 중추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이데일리]

2. 케이뱅크 출범, ‘은산분리’ 족쇄 풀어야국

내 첫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가 오늘 공식 출범한다. 우리나라에도 인터넷은행 시대가 비로소 막을 여는 셈이다. 미국(1995년)과 일본 (2000년) 등에 비하면 한참 늦은 출발이지만 금융혁신 아이콘으로서의 기대는 결코 작지 않다. 낙후한 금융시장에서 미꾸라지들을 자극하는 메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시장엔 벌써 긍정적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케이뱅크의 강점은 ‘무(無)점포 비(非)대면’ 거래로 인한 가격 경쟁력이다. 시중은행에 견줘 돈을 싸게 빌려주고 예금 이자는 더 많이 준다는 얘기다. 신용대출 금리는 시중은행보다 1~2%포인트 낮게, 예금 금리는 0.3∼0.7%포인트 높은 수준으로 책정했다고 한다. 긴장한 시중은행들은 가격경쟁력을 키우려 군살을 빼고 모바일 앱 전용 상품을 늘리는 등 고객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자칫 반쪽짜리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된다. 조기에 안착하려면 대규모 자본 확충 및 투자가 절실하지만 ‘은산(銀産)분리’ 규제에 발목을 잡혀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한도가 10%(의결권 지분 4% 포함)로 묶여 있어 증자가 어렵기 때문이다. 족쇄를 풀어주려고 인터넷은행에 한해 한도를 34~50%로 늘려주자는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의 반대에 부딪쳐 있는 상태다.

케이뱅크는 초기 자본금 2500억원 중 절반 이상이 시스템 구축과 인건비 등으로 투입됐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지키면서 원활한 영업을 하려면 올해 말까지 대략 2000억∼3000억원 규모의 자본금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증자가 안 되면 영업에 차질을 빚을지도 모르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곧 본인가를 받을 카카오뱅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은 기존 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 등 야권 대선주자들은 경쟁적으로 4차 산업혁명과 핀테크를 통한 금융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혁신을 선도하겠다면서 인터넷은행의 발목은 놓아주질 않고 있다. 낡은 규제를 깨뜨리려면 말보다 실천이 앞서야 한다.



[서울신문]

3. 보수 단일화 앞서 공통분모 보여 달라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어제도 통합을 두고 설전만 벌였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바른정당을 향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문에 분당했는데, 가출 원인이 없어졌으니 돌아오는 것이 순리”라고 했다. 반면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은 ”대통령을 잘못 모셔 보수가 처참하게 실패했는데도 반성 안 하고 다시 정권을 잡겠다는 자유한국당이 배신자“라고 일갈했다.

홍 후보가 “TK(대구·경북) 정서는 살인범도 용서하지만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는다”고 바른정당을 비난한 데 따른 역공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경선을 치를수록 세를 불려 가며 대세론이 허구가 아님을 보여 주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경선을 압도적 승리로 마무리해 가면서 당내에서는 ‘연대론’마저 수그러드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보수진영을 양분하고 있는 두 당은 지리멸렬한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냉정하게 표현해 자유한국당 홍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를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판을 이끌어 가는 상수(常數)로 분류하기는 이르다. 그럴수록 진보 진영에 맞설 이른바‘ 반(反)문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두 후보가 의미 있는 변수로 작용해 달라는 것이 보수·중도 진영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국민의당 안철수,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대선 결과는 이미 예정돼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선 구도를 진보 후보 대(對) 중도·보수 후보의 양자 대결로 몰고 가지 않는 한 승산이 없다는 것은 세 당과 후보 모두 잘 알고 있다고 본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의 잦은 회동 역시 ‘단일화 후보‘를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국민 생활이 안정된 선진국은 대부분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자칫 세력 균형이 깨졌을 때 강한 쪽은 전횡을 저지르고, 약한 쪽은 논리 없는 극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은 우리의 정치 역사에서도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략적 사고로 단일화에 전력투구해야 할 보수 진영이 감정적인 설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통합정부를 만들려면 공동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김종인 전 대표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이제라도 보수·중도 각 정당은 정책과 비전의 공통분모부터 제시하기 바란다.



4. 北 옥죄는 美, 정상회담서 中 동참 끌어내야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최근 행정명령 13382호, 13687호, 13722호 등에 의거해 북한 기업 1곳과 북한인 11명을 미국의 양자 제재 대상에 새로 추가하는 내용의 대북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관여해 온 북한 관련 기관과 인사들을 포함시켰다.

재제 기업에 포함된 백설무역은 중국 동북부 다롄에서 위장회사를 차리고 석탄을 북한에 수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만을 대상으로 한 제재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처음이다. 북한이 비핵화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음을 깨닫도록 하겠다는 미국 측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 줬다는 평가다.



미 행정부가 행정명령을 발동하기 전 미 하원 역시 석유 금수를 비롯한 강력한 신규 대북제재 법안(HR 1644)을 통과시켰다. 북한의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북한의 추가 전략도발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자칫 북한의 오판이 국제사회의 더욱 강력한 제재·압박에 직면할 것이라는 단호한 경고 메시지로 볼 수 있다.

군사적 압박도 병행하고 있다. 일명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미 장거리 전략폭격 B1B 랜서가 지난달 15일부터 보름간 다섯 차례 한반도에서 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밝힌 것처럼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계적으로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의미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최근 미 공군의 군사훈련을 핵 폭탄 훈련으로 지칭하고 ‘파국적 후과는 전적으로 미제 호전광들이 지게 될 것’이라고 맹비난한 것도 북측의 위기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의 강력한 대북 압박은 오는 6~7일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메시지를 중국에 보낸 측면도 있다. 북한과 거래하는 기업의 90% 이상이 중국 기업인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묵인 없이 북·중 무역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미국 행정부의 확고한 인식이다. 북한의 4, 5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의 강력한 대북 경제제재가 겉돌고 있는 것 역시 북한의 유일한 우방인 중국이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북핵·미사일 문제는 남북 문제인 동시에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국제적 사안이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간 첨예한 대립의 근저에는 미·중의 힘겨루기와 연관된 사안이다. 미국은 이번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핵·미사일 도발 억제를 위한 중국의 확고한 협력을 끌어내야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미국의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 결정된 주한미군 내 사드 배치와 이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 문제도 반드시 정상회담에서 거론돼야 한다. 중국의 사드경제 보복 중단를 촉구하는 미 하원 결의안을 미 행정부가 실행에 옮기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국민들은 한·미 동맹의 진정성을 믿을 것이다.



5. 엄혹한 남북 관계서 주목받는 스포츠 교류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남북 관계의 경색 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남북 간 민간 스포츠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 주목된다. 6·15 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는 어제 평창동계올림픽 테스트이벤트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여자아이스하키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북한선수단을 위한 남북공동응원단 발대식을 가졌다.



다섯 차례 열리는 북한 선수들의 모든 경기를 응원한다는 것이다. 북한도 평양 원정 우리 여자 국가대표축구단의 신변 안전과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담보서를 아시아축구연맹(AFC)을 통해 대한축구협회에 전해 왔다. 오는 7일 남북 맞대결 성사가 유력하다고 한다.

현재의 남북 관계는 과거 진보정권 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최악의 상황이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이 10년 가까이 중단되고 있고,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2월 장거리 로켓 및 광명성 4호 발사로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운명을 맞았다.



남북 관계가 이처럼 강대강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국민의 안위와 민족의 생존을 도외시한 채 체제 유지를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골몰하는 북한 정권 탓이 크다. 중국과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역시 원인 제공자는 다름 아닌 북한 김정은 정권이다.

외교·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에 이르기까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위기 상황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대화 창구는 완전히 닫혀 있다. 정부 누구도 관계 개선의 ‘관’자도 꺼내지 않고 있다. 정치·경제·외교적으로 압박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엄혹한 현실 속에서 정치와 무관한 스포츠계가 중심이 돼 교류의 끈을 다시 잇는다는 것은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 관계 개선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핵과 미사일로 위협하는 것도 모자라 핏줄마저도 독살하는 정권과 대화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주변 동맹국의 입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지만 현안 해결을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서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해야 한다. 한반도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남북공동응원단은 ‘우리는 하나다’를 외친다고 한다. 남북 경색을 푸는 대화의 기회로 작용되길 바란다.



[매일신문]

6. 포스코, 흑자 5조원 달성과 함께 지역 기여도 더 높여라

포스코 권오준 회장은 지난달 30일 서울의 최고경영자 포럼에서 2019년 영업이익을 현재의 2배 수준인 5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권 회장의 발언은 CEO의 자화자찬 수준이 아니라, 포스코 경영 상태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포스코가 그간의 비상경영 체제에서 벗어나 순조롭게 항해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포스코는 본사 주소를 포항에 두고 있는 지역 기업이다. 포항에 본사 기능이 있는지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지역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다. 이런 포스코가 몇 년 동안 경영 부진과 정권과의 유착, 비리 수사 등으로 큰 혼란을 겪어왔기에 적잖은 우려를 자아낸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만 해도 포스코에 대한 극단적인 비관론이 횡행했지만, 권 회장의 뛰어난 경영 능력으로 이를 잠재웠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권 회장이 취임한 2014년 이후 포스코는 점차 과거의 위상을 회복하고 있다. 권 회장이 ‘철강사업 고도화’ ‘비철강사업의 구조조정과 수익 향상’으로 목표를 정하고 포스코의 고유한 강점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이는 전임 정준양 회장이 ‘탈(脫)철강사업’을 시도하다가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것에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포스코는 서서히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정작 ‘포스코의 터전’이라 할 수 있는 포항은 엉망진창이다. 포스코가 최근 몇 년간 구조조정과 경비 절감 등을 단행하면서 포항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철강 관련 기업은 부도났거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서민 경제마저 휘청거리고 있다. 포항 경제에 포스코의 비중이 절대적임을 감안하면 포스코의 책임은 엄중하다. 그 와중에 포스코건설 등 일부 계열사가 인력과 조직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다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포스코가 흑자 5조원을 목표로 하는 것은 축하받을 일이다. 그렇지만, 국민기업 포스코가 지역의 희생을 발판 삼아 자기 살길만 찾는다는 비판을 듣는다면 고 박태준 회장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부터 포항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기여도를 높여가야 할 것이다. 지역과 기업은 함께 살아야 그 의미가 커진다.



7. 낙동강 물로 가뭄 해결, 꼼수 소리 안 나오게 제대로 해야

농어촌공사 경북본부가 4대강 사업으로 준공된 낙동강의 다기능 보(洑)의 물을 상습적인 가뭄지역에 농업용수로 대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북 일부에서 이상 기후와 가뭄의 상시화로 빚어지는 극심한 농업용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여기에는 낙동강 보에서 가뭄지역을 잇는 관로 설치로 많은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 제2의 4대강 사업이라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이다.



농어촌공사가 추진 중인 사업은 정부의 ‘하천수 활용 농촌용수 공급사업 계획’이라는 가뭄 정책과 궤를 함께 하는 일이다. 즉 4대강에 설치된 16개 다기능 보 가운데 11곳의 보유 여유 수량으로 상습 가뭄지역에 용수를 공급하는 것이다. 특히 경북에서는 상주와 김천 등 낙동강 상류지역을 비롯한 상습 가뭄지역에 필요한 사업이다. 낙동강 보의 물로 만성적인 가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어서다.



상주의 일부 지역은 이미 농어촌공사가 지난해 전국 처음 상주보 물을 이용하는 사업을 마쳐 상주 사벌면 일대 배 농사 농가 등 798㏊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받는 혜택을 누렸다. 이에 농어촌공사는 추가로 구미보 물을 공급해 인근 농경지 4천565㏊에 물 부족 피해를 없앨 계획이다. 아울러 정부가 현재 진행 중인 전국 17개 지구에 대한 하천수 활용 농촌용수 공급사업의 경북 유치에도 나섰다.



이명박정부 시절 전국 4대강 사업으로 모두 16개의 다기능 보가 설치됐지만 환경 파괴 논란은 여전하다. 심각한 녹조현상 등을 들어 보 해체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4대강 공사의 긍정적인 효과 또한 분명하다. 특히 반복적인 풍수해 재난 피해의 최소화나 가뭄 해소 기여가 그렇다. 다기능 보의 부작용을 줄이되 보유 수자원의 활용은 필요하다. 

  
경북은 어느 곳보다 농업 비중이 크고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곳이다. 게다가 낙동강에는 대구경북 구간 6개 등 모두 8개의 다기능 보가 있다. 낙동강 보에 확보된 강물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곳이다. 낙동강 물의 효율적인 활용과 효과의 극대화로 제2의 4대강 사업이라는 의혹이 없게 해야 한다. 돈만 까먹고 쓸모없는 꼼수 사업이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도록 제대로 해야 한다.



[중앙일보]

8. 뻔뻔한 김정남 암살 부인, 자멸의 길이다

김정은 정권의 나팔수인 일본 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어제 “김정남 암살의 북한 배후설은 모략”이라는 억지 주장을 폈다. 조선신보가 북한 입장을 대변해온 점으로 미뤄 지난달 31일 평양에 도착한 김정남의 시신을 이용해 김정은 정권이 어떤 장난을 칠지 두렵다.

지난 2월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이 북한 공작원의 사주로 변을 당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말레이시아 당국이 밝혔듯 10명의 용의자 중 독극물을 뿌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성 2명을 제외한 나머지 8명 전원이 북한인이라는 사실은 이를 웅변해 준다.

그런데도 말레이시아 당국이 김정남의 시신뿐 아니라 용의자들의 신병도 북한에 넘긴 것은 전적으로 인질 협박 때문이었다.

북한은 사건의 배후 문제로 논란이 일자 외교관 등 자국 거주 말레이시아인 9명을 평양에 억류했다. 결국 조기 총선을 앞둔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가 정치적 타격을 걱정한 나머지 북한의 위협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김정남의 시신과 용의자들이 북한으로 넘겨지면서 세계적 이목을 끌었던 이번 사건이 미궁에 빠질 게 거의 확실하다. 이는 북한에 막무가내식 인질 협박도 통한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몹시 우려스럽다. 자국민의 안전이 달린 일이기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해도, 말레이시아 정부가 그토록 무력하게 백기를 들었다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비록 당사국은 아니지만 남북 문제와 관련된 김정남의 중요성을 고려해 볼 때 우리 정부도 사태가 이렇게 안 되도록 모종의 역할을 해야 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물론 가장 비난받아야 할 건 김정은 정권이다. 인질 협박이란 비열한 방법으로 잠시 사건을 덮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격이다. 아무리 북한이 우겨도 국제사회는 누구의 소행인지 뻔히 알고 있다. 백주 대낮에 천인공노할 암살 사건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인질 협박으로 이를 호도하려는 뻔뻔스러운 행위는 북한 정권의 고립과 멸망을 자초할 뿐이다.



9. 검찰, 우병우-고영태 의혹 확실히 풀어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음에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최순실의 측근이었던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 관련 의혹들은 속 시원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우 전 수석이나 고씨에게 비리가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을 수사하는 검찰에 켕기는 것이 있어 유독 그 칼날이 무딘 탓일까.

우 전 수석은 대통령의 신임을 등에 업고 최씨의 국정농단을 비호·방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했다가 기각된 구속영장에는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급 5명과 공정거래위 전 국장, 외교부 공무원들에 대한 ‘표적 감찰’을 지시하고 외교부 인사에 개입한 혐의(직권 남용) 등이 포함돼 있다. 그는 2014년 ‘정윤회 문건’ 사건을 기밀 유출 사건으로 축소토록 검찰에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만약 그때 우 전 수석과 검찰이 제 역할만 했더라면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이런 악성종양이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제는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우 전 수석이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합동수사단’의 요직에 측근을 앉히려 한 것 등 새 혐의를 조사 중이긴 하다. 그러나 우 전 수석이 지난해 말 검찰 수사를 전후해 김수남 검찰총장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등과 수차례 통화한 의혹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진실 규명에 적극 나서는 것만이 검찰 조직이 살길이다.

더 이상 검찰은 고영태 녹음파일도 외면해선 안 된다. 고영태씨가 최씨의 일을 처리하며 각종 이권에 개입했는지, 회사 자금을 횡령했는지, 국정농단 사건 폭로에 배후가 있는지 등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고씨는 정부가 추진한 ‘미얀마 K타운 프로젝트’와 인천세관장 인사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비록 ‘내부 고발자’일지라도 개인 비리나 음모가 있다면 찾아내 엄벌해야 정의를 바로세울 수 있다. 국민적 의혹이 너무 커져 버린 이상 검찰이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그냥 덮고 지나갈 일이 아니다.



10. 언제까지 ‘박근혜 사면’ 같은 네거티브에 매달릴 건가

나라가 융성하려면 지도자의 리더십이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정책과 비전으로 국민의 마음을 살 줄 알아야 큰 지도자다. 사소한 것을 트집 잡아 경쟁자의 약점을 침소봉대해선 안 된다. 19대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은 딴판이다. 느닷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론을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후보와 주변 인물들의 시대착오적 수준을 말해주고도 남는다.

안철수 국민의당 경선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된 지난달 31일 “박 전 대통령 특별사면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기자 질문에 “대통령이 사면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위원회를 만들어서 국민의 뜻을 모으고 투명하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기자가 재차 “박 전 대통령도 사면위원회에서 검토할 여지가 있다는 건가”라고 묻자 안 후보는 “국민의 요구가 있다면 사면위원회에서 다룰 내용”이라고 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안 후보 발언은 원론적이다. 사면을 대통령이 임의적으로 해선 안 되며 시스템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후보 측 박광온 수석대변인은 “청산해야 할 적폐 세력에 대한 구애 신호가 아니길 바란다”고 공격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발상과 뭐가 다르냐”고 비난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좌파와 얼치기 좌파가 우파 동정표를 노린 것”이라고 양당을 함께 비난했다. 최근 지지세가 급등한 안 후보에게 정치적 상처를 주겠다는 치졸한 의도가 엿보인다. 

대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정책과 비전 대결을 벌이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다. 조기 대선으로 차기 정부는 정권 인수위도 없이 5월10일 출범해야 한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대통령이 파면당하고 구속까지 당하는 불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에야말로 철저한 검증으로 반듯한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국민의 입장에선 각 후보가 비선인물은 없는지, 어떤 사람으로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갈 것인지를 두고 평가하기에도 바쁘다. 국민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정책에 대해 후보들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고, 잘 설명하는지 누가 그 정책을 주도할지를 듣고 싶어 한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소모적 ‘네거티브 캠페인’과 과감히 결별하는 결단력을 보여줄 지도자가 필요하다. 

차제에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에 대한 엄격한 제도적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지 논의해야 한다. 안 후보는 “비리 정치인과 경제인에 대한 사면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문재인 후보는 취재진의 질문에 “사면 기준을 명료하게 정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고 답했다. 말만 늘어놓을 일 아니다. 사면권 행사 개선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해 국민 심판을 받아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편집장 레터] '빈 교실 어린이집'와 '동네 돌보미' 

“우리 큰아들 이번에 국공립어린이집에 드디어…. 에헤라디야!!! 그런데 무려 6년을 기다렸어요. 맞벌이에 다자녀인데….”

지난해 초등학생 수는 총 267만명으로 5년 전 313만명보다 18% 줄었다. 그만큼 초등학교 빈 교실은 늘어났다. 반면 국공립어린이집은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보육의 질이 높아 많은 부모들이 선호하지만, 전체 어린이집의 7%에 불과하다. 최근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 13명이 남는 교실을 국공립어린이집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발의한 배경이다.



그러나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강경한 반대 입장이다.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별도 건물이 아닌 경우 영아 우는 소리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초등학생 학습권이 침해당할 수 있다는 이유다. 

학부모 입장에서 판단하기에 ‘쌈박한’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국공립어린이집을 늘리자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방법론에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보육 수요가 가장 많은 서울에도 과연 남는 초등학교 빈 교실이 있을까? 몇 개나? 인근에 위치한 곳이 아니라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 뿐이다. 

‘어느 날 부르고뉴 와인 한 잔이…’라는 책이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박재화 씨의 에세이집이다. 2010년 한국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G20 비즈니스 서밋’에서 제공된 와인이 바로 그녀가 만든 ‘루뒤몽 크레망’이었다. 그녀가 만든 또 다른 화이트 와인 ‘루뒤몽 뫼르소 2007’은 와인 만화책 ‘신의 물방울’에 실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프랑스까지 날아가 일본인 남자와 결혼해 둘이 함께 부르고뉴 와인을 만든다’는 독특한 인생 스토리에 끌려 읽은 그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러나 와인 관련 내용이 아니었다. 잠시 스쳐 지나가듯 서술된 프랑스 육아 시스템에 관한 부분이었다. 

프랑스에는 ‘Assistant Maternal’이란 제도가 있다. 120시간의 교육을 받고 PMI(ProtectionMaternelle et Infantile)라는 기관에서 허가를 받으면 본인 집에서 최대 4명까지 아이를 돌볼 수 있다. 자기 집에서 돌보는 것이 여의치 않으면 여러 명이 집을 하나 빌려 각자 돌보는 아이들을 함께 돌볼 수도 있다. 동네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일명 ‘동네 돌보미’다.

다수 맞벌이 부부들이 “버는 돈의 대부분을 육아 비용으로 써버리는 것은 감내할 수 있다. 다만 믿을 수 있는 아줌마를 구하기 너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생판 낯 모르는 사람을 이런저런 통로로 찾아 말도 못하는 어린아이를 맡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경험해보지 않은 이도 모두 공감할 터다.



그런데 그 맡기는 사람이 동네에 사는 아주머니라면? 아파트를 오다가다 얼굴을 본 적 있는 같은 아파트 주민이라면? 입주 돌보미가 아니니 비용은 훨씬 적게 들고, 같은 지역이니 아침에 아이 맡기고 저녁에 찾아오는 것도 크게 힘들지 않고, 더더군다나 안심할 수 있으니, 이렇게 ‘딱’인 해법도 없다. 

일거리를 찾고 싶어도 엄두를 못 내는 중년 여성이나 경력 단절 여성에게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가계소득과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는 효과는 덤이다. 

‘선진 외국의 저출산 대응정책 현황 파악 및 사례 연구에 관한 출장보고서’가 한둘이 아니다. 무얼 보고 와서 무슨 사례 연구를 하고 어떻게 벤치마킹했길래 지금 이 모양인지 궁금하다. 5월 ‘장미대선’을 앞두고 장관들 해외 출장이 잦아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정권 말 도덕적 해이에 기댄 외유든 뭐든, 가서 이런 거 하나라도 정확하게 보고 와서 적용한다면, 그나마 내 세금이 덜 아깝겠다.



2. [매경이코노미][신병주의 '왕의 참모로 산다는 것'] 죽음으로 단종을 지킨 성삼문

1456년 2월 세조를 제거하고 상왕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거사가 사전에 누설됐고 주모자들은 줄줄이 압송됐다. 거사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은 성삼문(成三問, 1418~1456년). 그와 뜻을 같이했던 핵심 인물 6명은 ‘사육신(死六臣)’으로 불리며 지금도 충신의 대명사로 인식된다. 

성삼문은 충청도 홍주(지금의 홍성) 적동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창녕. 자는 근보(謹甫), 호는 매죽헌(梅竹軒)이다. 단종 복위운동에 함께 참여했던 도총관 성승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현감 박첨의 딸이다. 1435년(세종 17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8년에는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으며, 1447년에 문과중시에 장원급제했다. 세종이 집현전을 설치한 후 인재를 모을 때 집현전 학사로 뽑혔으며, 세종의 총애 속에 홍문관 수찬·직집현전(直集賢殿) 등의 직책을 지냈다.



1442년에는 오늘날 유급휴가 제도의 기원이 된 사가독서(賜暇讀書·관리들에게 휴가를 줘 독서에 전념하게 하던 제도)를 북한산의 진관사에서 했고, 세종 곁에서 주요한 정책 과제를 연구했다. 세종이 훈민정음 28자를 만들 때 성삼문이 주도적으로 참여했음은 세종실록 기록에도 잘 나타나 있다. 

1443년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1446년 반포되는 과정에서 명나라 요동을 13번이나 왕래하며 유배 중인 명나라의 한림학사 황찬을 만나 훈민정음을 정교히 완성하는 데 기여했다. 병으로 고생하던 세종에게 성삼문은 늘 곁에 두고 싶은 신하였다.

세종 사후에도 성삼문은 문종과 단종을 보필하며 ‘세종실록’ ‘역대병요’의 편찬 등 주요 사업을 수행했다. 특히 어린 단종을 부탁한 문종의 유명(遺命)은 성삼문에게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성삼문의 인생은 1453년 10월 10일에 일어난 계유정난으로 큰 전환을 맞이한다. 

1453년(단종 1년) 좌사간으로 있을 때,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황보인·김종서 등을 죽이고 정권과 병권을 잡았다. 정변의 성공으로 수양대군은 영의정 이하 모든 권력을 차지했지만 여전히 왕은 단종이었다. 수양대군은 김종서나 황보인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젊고 명망 있는 관리로 성삼문을 주목했다. 성삼문은 세종대부터 함께 중요한 국책 사업을 해온 동료기도 했다. 성삼문이 직접 계유정난에 가담하지 않았음에도 수양대군은 그에게 정난공신(靖難功臣) 3등의 칭호를 내리며 포섭하려 했다.



성삼문은 이를 사양하는 상소를 올렸지만 결국 공신에 책봉됐다. 단종이 여전히 왕이었기에 성삼문의 관직 생활도 계속됐다. 1454년에 집현전 부제학이 되고 예조참의를 거쳐 1455년에는 예방승지가 된다. 예방승지는 성삼문에게 가혹한 운명을 예고하는 직책이었다. 1455년 윤 6월 수양대군의 압박 속에서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던 날 성삼문은 바로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상징하는 옥새를 전해주는 비서의 자리, 즉 예방승지의 직책에 있었다. 

“세조가 선위를 받을 때에 자기는 덕이 없다고 사양하니, 좌우에 따르는 신하들은 모두 실색해 감히 한마디도 내지 못했다. 성삼문이 그때에 예방승지로서 옥새를 안고 목 놓아 통곡하니, 세조가 바야흐로 겸양하는 태도를 취하다가 머리를 들어 빤히 쳐다봤다.”

연려실기술에 담긴 내용이다. 향후 두 사람의 갈등을 예고한 장면이다. 

성삼문은 직책상 수양대군에게 어쩔 수 없이 옥새를 전달했지만 그의 마음은 더 이상 세조의 신하가 아니었다. 성삼문은 집현전에서 동문수학했던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등 뜻이 맞는 동지들을 규합하기 시작했고 무인인 유응부도 거사에 합류했다. 

성삼문 등 단종 복위운동을 주도한 이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1456년 6월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자리에 세조는 단상에서 왕을 호위하는 별운검을 세우기로 하고 성삼문의 아버지인 성승과 유응부를 적임자로 지목했다. 시해를 모의한 주동자들이 직접 세조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성삼문 등은 이날을 거사일로 잡고 세조와 세자(세조의 아들), 세조의 측근들을 제거하기 위해 보다 치밀하게 계획을 준비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한명회 등이 연회 장소인 창덕궁 광연전이 좁고 더위가 심하다는 이유로 별운검을 세우지 말고 세자도 오게 하지 말 것을 청하자, 세조가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거사 주모자들 간에는 의견이 엇갈렸다. 유응부 등은 일이 누설될 가능성을 염려하면서 계획대로 일을 추진하자 했고, 성삼문과 박팽년은 ‘별운검을 세우지 않고 세자가 오지 않는 것은 하늘의 뜻이니 거사 날짜를 다시 계획하자’고 했다. 

결국 거사는 연기됐고 유응부 등의 우려대로 내부의 밀고자가 나타났다. 거사가 연기되면서 불안해진 김질이 장인인 정창손을 찾아가 상왕 단종 복위운동의 전말을 알린 것이다. 정창손은 그길로 사위와 함께 궁궐로 달려가 세조에게 사실을 알렸다. 즉시 성삼문 등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졌고 단종 복위운동에 참여한 인사들이 줄줄이 압송됐다.

세조는 친히 국문을 하면서 이들을 협박하고 회유하려 했으나, 이들은 세조의 왕위 찬탈 부당성을 공격하면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성삼문은 “상왕이 계신데 나리가 어떻게 나를 신하로 삼을 수 있는가”라며 세조를 자극했다. 

성삼문이 형을 당한 뒤 그의 집을 살펴보니 세조가 준 녹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을 뿐 가재도구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방바닥에 거적자리만 깔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성삼문의 동지인 박팽년은 세조를 일컬을 때마다 ‘나리’라고 했고, 세조 재위 시절 충청도관찰사로 있으면서 올린 문서에는 ‘신(臣)’이라는 용어를 쓴 적이 한 번도 없음이 조사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그만큼 세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사육신을 비롯한 거사 참여자들 대부분은 엄청난 고문을 당했다. 성삼문은 모진 고문 속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세조의 불의를 나무라고 또한 신숙주에게는 세종과 문종의 당부를 배신한 불충(不忠)을 크게 꾸짖었다.



격노한 세조가 무사를 시켜 불에 달군 쇠로 그의 다리를 태우고 팔을 잘라내게 했으나 그의 안색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형장에서 성삼문은 사지를 찢기고 목이 잘려 전신이 토막 나는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1456년 6월 7일이었다. 

성승도 아들과 함께 참형을 당했다. 성삼문의 동생 삼빙(三聘)·삼고(三顧)·삼성(三省)과 아들 맹첨(孟瞻)·맹년(孟年)·맹종(孟終)과 갓난 아들, 손자 헌택(憲澤)까지 모두 죽음을 당했다. 성삼문 가문은 ‘멸문의 화’를 겪었으며, 성삼문의 처와 딸마저 노비로 팔려가는 비운을 당했다.

단종 복위운동 사건에 연루돼 죽음을 당하거나 화를 입은 인물은 사육신을 비롯해 권자신, 김문기 등 70여명에 이르렀다. 당시에는 역적이었으나, 16세기 이후 이들이 보인 충절과 의리는 후세 귀감이 된다. 사육신의 충절을 따르려는 사람들은 중앙 관직을 버리고 대부분 지방으로 돌아가 성리학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이면서 조선 전기 사림파의 뿌리를 형성한다.



우리가 흔히 ‘사육신’으로 알고 있는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 6명이 사육신으로 지칭되기 시작한 것은 남효온이 ‘육신전’을 저술한 것에서 비롯된다. 남효온의 문집을 통해 수양대군의 불법에 맞서 저항한 이들의 명성은 재야의 사림(士林)을 중심으로 널리 전파됐다. 남효온은 김시습, 원호 등과 함께 몸은 비록 살아 있어도 정신은 사육신을 계승한다는 뜻에서 ‘생육신’으로 불렸다.

성삼문 등이 공식적으로 복권된 것은 단종 복위운동이 일어난 후 230여년이 지난 조선 후기 숙종 때였다. 숙종은 1691년(숙종 17년) 사육신의 관작을 회복하고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숙종은 사육신에 대해 ‘당세에는 난신이나 후세에는 충신’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사육신을 처형한 세조 입장도 적절히 고려하면서 성삼문 등 사육신을 복권한 것이다. 

사육신 복권과 함께 1694년(숙종 24년) 11월 6일 노산군에게는 단종이라는 묘호가 올려졌다. 단종이 공식적으로 왕의 위상을 회복한 순간, 성삼문은 238년간 응축했던 울분을 사후에서 조금이나마 풀 수 있지 않았을까.



3. [매경이코노미][Health] 불면증·수면무호흡·과다수면 수면장애 탈출하기

입시, 취업, 과중한 업무, 퇴직, 노후 등 삶에 대한 중압감이 현대인의 정상적인 수면을 방해하고 있다. 수면장애를 경험하는 이들의 증가 속도를 보면 상황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수면장애 환자는 72만명을 웃돈다. 2010년 46만여명이던 수면장애 환자는 2013년 60만명을 넘어섰고 2015년에는 72만1000명으로 5년 사이 56% 이상 급증했다. 수면장애의 원인은 유형별로 조금씩은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관련이 많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수면장애는 그 유형이 다양하다.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도, 반대로 과하게 잠을 많이 자는 것도 수면장애다. 즉 정상적인 생체의 리듬을 이어갈 만큼의 적절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수면장애라 할 수 있다.



가장 흔한 수면장애 유형이 일차성 불면증이다. 쉽게 말해 밤잠을 설치는 유형이다. 여기서 ‘일차성’의 의미는 우울장애나 다른 신체 질환 등 특별한 요인이 없는 불면증이란 뜻. 이 같은 불면증은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높인다. 서울대병원 수면의학센터 정도언·이유진 교수팀이 서울대병원을 방문한 수면장애 환자를 분석한 결과, 불면증 환자(661명)는 수면장애가 없는 군(776명)에 비해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8.1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진 교수는 “수면 중에는 정상적으로 깨어 있을 때에 비해 10~20% 정도 혈압이 떨어지면서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린다. 불면증 환자는 숙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정상적인 혈압의 감소 없이 교감신경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따라서 불면의 밤을 반복해서 보내다 보면 심혈관 질환의 위험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다음은 수면무호흡증이다. 수면무호흡증은 잠을 자는 동안 호흡이 자주 끊기면서 몸속 산소 농도가 부족해지고 결국 고혈압·당뇨병·심근경색증·부정맥·뇌졸중·치매 같은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전날 밤에 잠을 충분히 자도 낮에 잠이 쏟아지는 과다수면증 역시 수면장애의 유형이다. 정상적인 수면 시간은 7~8시간 정도. 9시간 이상의 수면을 취하고도 졸린 증상이 지속된다면 과다수면증을 의심해야 한다. 그 밖에 꿈을 꾸는 중에 소리를 지르는 ‘렘 수면 행동장애’나 급작스럽게 잠에 빠져드는 ‘기면증’도 증가하는 추세다. 

수면장애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우선 자신의 증상을 제대로 알고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이 필요하다. 일시적인 불면증은 1~2주간 전문의 처방을 통해 수면제를 복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수면제에 의존하게 되면 불면증이 오히려 악화되고 만성화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향운 이대목동병원 수면센터장은 “심리적 스트레스가 해결되고 마음이 안정된 후에도 잘못된 수면 습관으로 잠들기가 힘들고 자주 깨는 일이 있다면, 불면증에 대한 인지행동치료를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또 기본적으로 수면장애 예방과 극복을 위해서는 규칙적인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것이 권장된다. 잠자리의 소음을 없애고 조명을 안락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낮잠은 15분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좋다.



4. [강원일보][발언대] 위험한 봄바람

“봄이 되면 온갖 초목이 물이 오르고 싹이 트고 한다. 사람도 아마 그런가 보다.” 춘천 출신 소설가 김유정의 단편소설 `봄봄'에서 봄의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하지만 소방공무원인 내가 정의해야 하는 봄은 따뜻한 기온과 건조하고 강한 바람이 많이 불어 화재가 발생하기 좋은 최상의 조건이 형성되는 시기이며, 관광이나 수학여행, 지역별 행사가 늘어나면서 안전사고가 증가하는 시기다. 

최근 3년간 화재발생 현황을 보면 도내 화재의 34.7%, 전국 대비 29.6%로 봄철 발생률이 가장 높고, 특히 3월은 농산폐기물 소각에 의한 화재 증가로 임야나 야외화재가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2017년 봄철소방안전대책의 중점은 우선 기후적 요인으로 산불이 최우선이고, 두 번째는 공사장 및 부주의 안전관리, 세 번째는 석가탄신일 및 지자체 행사의 안전관리와 갑자기 대두된 대통령선거 안전대책이라고 하겠다. 우선 산불예방활동은 산림청 `산불조심기간' 공고에 따른 소방대책으로 논·밭두렁 및 쓰레기 소각행위 금지, 담배꽁초 무단투기 및 불법소각 행위 단속, 산불 예방을 위한 유관기관 공조태세 구축이다. 

두 번째 공사장 안전관리 및 부주의 안전대책은 용접작업이나 화기취급시 안전수칙을 준수하도록 계도해 대형화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신학기 방과 후 이용시설의 소방특별조사와 국가안전대진단을 통해 부주의에 의한 화재발생을 차단하는 것이다. 

또한, 여행주간인 5월 1~14일에 강원도를 찾은 수학여행 학생들이 다시 평창동계올림픽의 붐 조성에 동참할 수 있도록 각 학교에서 수학여행지 숙박시설의 안전점검을 관할 소방관서에 요청하면 소방관서에서 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해 주는 `안심 수학여행 준비제'를 통해 손님맞이 채비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끝으로 석가탄신일과 어린이날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연휴에는 야외활동 안전과 사찰 등 목조문화재 자율안전관리 기능을 강화하는 등 대응체계를 구축할 것이며, 같은 기간 대통령 선거 안전대책도 병행해 추진하고자 한다. 

연일 계속되는 산불과 사고소식이 잦아들게 하려면 유관기관 협업과 대국민 협조가 절실하며, 2017년 봄철소방안전대책은 소설의 결말과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점순이와의 봄장가, 봉필의 풍년 논농사처럼 모두 해피엔딩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리드비터 주머니쥐

지리 조건 덕에 특별한 동물들이 많은 호주의 각 주는 저마다 상징 동물들을 정해두고 있다. 퀸즈랜드의 코알라, 뉴사우스웨일즈의 오리너구리, 남호주의 웜뱃(Southern Hairy-nosed Wombat), 서호주는 넘뱃(Numbat, 주머니개미핥기), 태즈매니아는 태즈매니아 데빌(주머니 곰), 노던테리토리는 붉은 캥거루, 수도 준주는 갱갱앵무새(Gang-gang Cockatoo)…. 대부분 멸종 위기종이거나 생존 기반이 취약한 종이다. 빅토리아주가 1971년 3월 선택한 건 ‘요정 주머니쥐’로도 불리는 리드비터 주머니쥐(Leadbeater’s Possum)다. 역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등급 분류상 ‘심각한 멸종위기종(CR)’이다.

리드비터 주머니쥐는 꼬리까지 몸 길이가 평균 33cm에 불과한 유대류로, 주머니하늘다람쥐과에 속하지만 활강을 못한다. 2000만 년 전부터 진화해온 원시 잔존 호주 고유종으로, 현재 빅토리아주 중부 고원 유칼리 숲의 제한된 지역에서만 서식한다.

화석으로만 존재하던 리드비터 주머니쥐가 학계에 처음 존재를 드러낸 건 1867년. 하지만 농지 개간 등으로 1900년대 들면서 대거 사라졌고, 1939년 대화재 이후 완전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다 호주 박물학자 에릭 윌킨슨(EricWilkinson)에 의해 1961년 4월 3일, 빅토리아주 캠바르빌 인근 숲에서 다시 발견됐다. 대중적으로야 도도새나 매머드에 비길 수 없겠지만, 학계는 마치 화석이 환생한 듯 기뻐했다. 생태 연구를 병행한 섬세한 보호정책이 진행됐다. 

나무 구멍을 집 삼아 사는 리드비터 주머니쥐는 늙은 숲과 40년생 안팎의 젊은 숲이 어우러진 곳을 선호하며, 지표에서 6~30m 고도에 머무는 야행성 잡식 동물이다. 1년에 한 번 번식하며 한 번에 많아야 두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보호활동 덕에 80년대 최대 7,500마리까지 불어났으나 제한된 생존 공간과 자연 화재 등으로 개체수가 다시 급감, 현재는 약 1,500마리 가량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계는 향후 50년 내 리드비터 주머니쥐의 서식 생태계가 붕괴될 확률이 92%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한 생물종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도 거대한 자연 순환의 일부여서, 늘 용의자로 꼽히는 인간이 억울할 때도 때로는 있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세계일보]

1. 소송으로 번진 미세먼지 피해,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중국발 미세먼지 피해에 대해 한국과 중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됐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와 안경재 변호사 등 7명은 그제 한·중 정부를 상대로 각각 300만원의 정신적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미세먼지 피해와 관련해 양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최 대표 등은 소장에서 “현재 (중국발) 미세먼지 오염 정도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미세먼지 70∼80%가 중국에서 날아오는 상황에서 국내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행동으로 피해구제를 호소한 것이다. 

올해 국내 대기질은 ‘숨이 막힐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서울의 일평균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나쁨’(1㎥당 50㎍ 이상) 이상을 기록한 날이 17일로, 초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한 2014년 이후 가장 많았다.



같은 기간 전국 초미세먼지 주의보 발령 횟수는 86회로, 전년 동기(47회)보다 82.9% 증가했다. 여기에다 5월까지는 미세먼지 고농도 현상이 자주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여간 우려스럽지 않다. 

중국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태도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측의 미세먼지 문제 제기에 대해 “중국 대기오염이 주변국에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인 전문적 입증절차가 필요하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한·중 양국이 주한미군 사드 배치 문제로 갈등을 빚는 터라 환경당국이 대응을 머뭇거린다고 한다. 한심한 일이다.



국민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문제인 만큼 뒷짐 지고 있어선 안 된다. 사드 여파로 중단된 미세먼지 한·중 공동 연구 재개를 위한 외교 노력을 펼쳐야 한다. 차제에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법적 효력이 있는 양국의 환경기구 설치도 추진해야 한다.

우리 정부와 민간 부문의 안일한 인식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육 현장이 대표적 사례다.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 중인데도 일선 학교에선 강당과 체육관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무방비 상태에서 야외 체육활동을 하곤 한다.



지난해의 경우 16개 시·도교육청 중 5곳은 학생 실외활동이 곤란한 상황에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백 가지 미세먼지 저감 대책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정부는 미세먼지 실태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동아일보]

2. 우병우 세 번째 소환한 檢, ‘봐주기 수사’ 넘어설 수 있나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어제 검찰에 3번째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광주지검에 외압을 행사해 해양경찰의 부실 구조 수사를 방해한 혐의가 이번 조사의 핵심이다. 청와대와 최순실 씨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등 불법을 저지른 정황을 알고도 덮었을 뿐 아니라 되레 진상 은폐를 주도한 혐의에 대해서도 검찰은 강도 높은 조사를 했다고 한다.

우 전 수석에 대해 2월 박영수 특검은 공무원 좌천 인사를 주도하고 민간인을 사찰한 혐의 등으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된 바 있다. 이후 특검 수사에선 우 전 수석이 김수남 검찰총장과 지난해 7, 8월 12차례에 걸쳐 2시간 18분이나 통화한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엔 가족회사 정강 등 우 전 수석 자신의 사건에 대해 통화했을지 몰라도 평소엔 청와대의 주요 관심 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민정수석이 ‘대통령 뜻’을 내세워 정의로워야 할 검찰의 칼을 비틀었다면 ‘법 앞에 평등’이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검찰이 우 전 수석과 통화한 검찰 고위 간부들의 소환조사를 외면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이 이르면 오늘 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라지만 이번엔 구속만을 목표로 해선 안 될 것이다. 적당히 구속만 시켜 국민의 눈을 가릴 속셈으로 면피성 수사를 할 것이 아니라 우 전 수석과 관련한 의혹을 샅샅이 파헤쳐야 한다.

검찰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은 제 식구인 우 전 수석에 대해 유독 ‘봐주기 수사’를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검찰엔 30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우병우 사단’이 건재하다. 지난해 우 전 수석을 무혐의 처리한 검찰이 또다시 제 식구 봐주기를 한다면 차기 정권에서 개혁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검찰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이번엔 반드시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놔야 한다.



3. ‘가짜 뉴스’ 판치는 세상, 신문의 역할 더 중요해졌다

오늘은 ‘신문의 날’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 창간기념일(1896년 4월 7일)에 맞춰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이날을 제정한 지 올해로 61회째다. 독립신문이 창간 사설에서 ‘백성이 정부 일을 자세히 알고, 정부에서 백성의 일을 자세히 아시면 피차에 유익한 일이 많이 있을 터’라고 밝혔듯이 공정한 보도로 권력을 감시하고 건강한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민주사회의 공론장 역할을 하는 신문의 사명을 되새기는 날이다. 그러나 독자의 알 권리를 위협하는 ‘가짜 뉴스(FakeNews)’가 판치는 현실에서 ‘신문의 날’을 맞는 심정은 그 어느 해보다 착잡하다. 

5월 9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가짜 뉴스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짜 뉴스란 저널리즘 양식을 빌려와 정치적, 상업적 이득을 취하는 거짓 정보를 말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카카오톡 대통령선거 관련 ‘오픈 채팅방’ 10곳을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5일까지 집중 분석한 결과 7곳에 가짜 뉴스가 뜬 것으로 나타났다. 카카오톡 참여자라면 익명으로도 쓸 수 있는 오픈 채팅방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맥을 타고 가짜 뉴스를 전방위로 확산시키는 신(新)유통 경로로 부상한 것이다. 

가짜 뉴스는 과거 ‘카더라’식의 흑색선전과도 다르다. 언론에 보도됐다거나 유명 인사가 말했다는 식으로 공신력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대(對)국민 사기나 다름없다. 작년 미국 대선을 계기로 페이스북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된 가짜 뉴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나온다. 9월 총선을 앞둔 독일에서 가짜 뉴스 같은 유해 게시물을 방치하는 SNS 기업에 최고 5000만 유로(약 600억 원)의 벌금을 물리는 법안을 준비 중인 이유다. 

탄핵정국에서 경험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가짜 뉴스의 폐해가 심각하다. 한국언론재단의 지난달 말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 남녀 중 76%가 가짜 뉴스로 인해 진짜 뉴스를 접할 때도 가짜로 의심한다고 답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가짜 뉴스로 인한 신뢰 저하 등 사회적 피해 비용이 연간 30조 원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카카오톡에서는 가짜 뉴스 방지를 위해 오픈 채팅 이용자가 가짜 뉴스 유포자를 신고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지만 익명의 공간인 만큼 유포자 색출도 쉽지 않다.

가짜 뉴스의 범람은 역설적으로 신문의 역할과 중요성을 각인시킨다. 가짜 뉴스를 가려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신력 있는 신문이 보도한 내용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신문의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와 독자의 올바른 판단이 합쳐질 때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가짜 뉴스를 물리칠 수 있다. 우리는 사회적 공기(公器)이자 깨어 있는 파수꾼으로 팩트를 존중하고 진실을 찾는 저널리즘 본연의 책임을 다할 것이다.



[조선일보]

4. 대선 판세 급변, 文·安 민심 제대로 읽으라

대선을 32일 앞두고 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간 양강(兩强) 구도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달 초 안 후보가 앞서는 양자 대결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더니 4~5일 실시된 다른 조사에서도 그런 흐름이 확인됐다. 그 격차도 다소 벌어지는 양상이다. 5자·6자 등 다자 대결에서는 문 후보가 여전히 안 후보를 앞섰지만 여기서도 차이가 전보다 확연히 좁혀졌다. 탄핵 정국에서 굳건히 유지됐던 '문재인 대세론'이 흔들리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문재인 후보가 스스로 만든 결과다. 탄핵 바람 속에서 쉽게 승리할 것으로 보고 '대청소, 적폐 청산'과 같은 구호에 주력했다. 많은 국민이 통합을 원하는데 문 후보는 반대로 갔다. 문 후보 주변의 완장 찬 듯한 오만한 언행, 상대를 증오하고 적대시하는 행태는 노무현식 편 가르기 정치가 재연될 것이란 우려를 낳았다.



북한 김정은의 이복형 독살, 이어지는 탄도미사일 도발 속에서도 문 후보는 사드 배치 국회 결정,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를 주장했다. 열성 지지층은 좋아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문 후보의 지지율은 줄지도 늘지도 않고 거의 비슷하다.

안철수 후보의 급부상은 '문재인은 안 된다'는 유권자들이 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가장 가능성이 큰 안 후보 쪽으로 몰린 결과일 것이다. 반사이익이다. 어제 관훈토론회에서 안 후보는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강점으로 '안보'와 함께 4차 산업혁명에 가장 잘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나 안 후보가 미·중·일·러 정상들을 상대할 만한 외교적 식견이 있는지는 전혀 검증된 것이 없다. 안 후보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지지율이 10% 선에 묶여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새겨야 한다.

어제 안 후보는 비문(非文) 연대에 대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과의 연대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후보 단일화 아닌 정책 연대까지 반대한다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 말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선거 구도는 거의 확정돼가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엔 촛불과 태극기 대결이 만들어 놓은 분열의 골을 메우는 대통령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민이 통합돼야 안보도 경제도 대처할 수 있다. 문 후보의 재도약과 안 후보의 역전승도 여기에 달렸다. 자기 걱정이 아니라 나라 걱정을 더 하면 자연스레 큰 민심, 진짜 민심이 보일 것이다.



5. 유승민 "NATO식 核 공유 추진" 다음 정부 검토할 만하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지난 5일 발표한 안보 공약에서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전력을 한·미가 공동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미국에 요구해나가겠다고 했다. 지금이 6·25 이후 최대 안보 위기 상황이라며 '한·미 핵 공유'가 군사 주권 확대와 북핵 억지력 강화를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했다.

미국이 '핵 공유'를 제공하고 있는 군사 파트너는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유일하다. 미국을 제외한 NATO 18개 회원국 중 5개국에 배치된 전술핵(B61 핵폭탄 200여 기)을 실제 사용하게 될 경우 결정도 공동으로 하고 해당 국가 전투기만 이용하도록 하는 협정을 맺었다. 소련의 핵 위협을 받은 서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핵우산 약속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고 하자 나온 방안이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국제사회에서는 이것을 미·NATO 동맹 결속력의 상징으로 본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는 아·태 지역 핵심 동맹이라고 하면서도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핵만이 아니라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 중량까지도 통제하고 있다. 지금은 북의 핵 위협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바뀌고 있다.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고 이것을 실어나를 미사일이 미 본토를 위협하는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북핵이 코앞에 온 지금 최대 피해자인 우리가 생존을 미국의 구두 약속에만 의존하고 있다면 안보를 '설마'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서유럽 국가들은 미국에 '당신들 본토 희생을 각오하고 우리를 지켜주겠느냐'고 물었다. 우리도 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핵 공유가 가능하게 되면 우리가 필요로 할 때 핵전력을 요구할 수 있고 필요치 않을 때 거부할 수도 있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주장이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의지에 의해 바뀌는 것이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미사일 지침' 개정을 요구해 3년 만에 사거리를 300㎞에서 800㎞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그때도 과연 가능하겠냐는 얘기가 많았다. 이번에 우리 군이 북한 전역을 사정권으로 두는 사거리 800㎞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한 것도 지침 개정 덕분이었다. 현재로서는 유 후보의 집권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북(對北)만을 전제로 한·미 핵 공유 추진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울신문]

6. 수출 호조 내수 살릴 마중물로 삼자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경상수지 흑자 폭이 크게 늘어나는 등 최근 들어 각종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지난해만 해도 수출과 내수의 동반 위축으로 찬 바람이 쌩쌩 불던 우리 경제에 봄기운이 일면서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다소 회복되는 것 같아 반갑다.

수출은 지난해 11월 이후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2월 수출은 432억 달러(통관 기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넘게 늘었고 3월에는 14% 정도 늘어난 489억 달러로 집계됐다. 애초 우려했던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수출에 큰 충격을 주지 않은 것은 매우 다행스럽다.



지난 2월 수입이 24%쯤 늘었는데도 경상수지 흑자가 84억 달러로 지난 석 달 동안 증가 폭이 가장 큰 것은 특히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간의 경상수지 흑자가 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 나타나는 이른바 ‘불황형 흑자’의 고리에서 벗어나 정상적 흑자 패턴으로의 방향 전환을 예고해 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 1~2월 생산과 투자가 모두 증가하면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중심으로 성장률 전망치를 올려 잡을 움직임까지 감지되고 있다. 지난주 한국경제연구원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2.5%로 0.4% 포인트 올린 데 이어 KDI와 한국은행도 상향조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우선 경제지표 호전은 지난해 실적이 워낙 저조한 데 따른 기저효과(基底效果)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미국이 앞장서 글로벌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면서 수출이 계속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당장 다음주에는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를 담은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가 기다리고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중국의 사드 보복도 진행형이다. 무엇보다 체감경기가 냉골인 것이 걱정스럽다. 수출 대기업들과 달리 내수에 의존하는 영세 자영업과 중소기업, 서비스업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출 증가가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은 탓이다. 가계부채에 발목 잡힌 서민들은 6개월째 상승행진을 하는 생활물가 탓에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은 윗목의 수출 온기가 아랫목까지 이어지도록 내수에 힘쓰는 일이다. 그 해답은 일자리 창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모처럼 만들어낸 경기 회복의 ‘마중물’ 환경을 재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여기엔 대선 주자를 포함한 정치권도 힘을 보태야 한다.



7. 문 후보, 통합 막는 패권·분열정치 종식 약속해야

19대 대통령 선거가 본격화되면서 2강 3약의 구도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급속한 상승세를 타면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위협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후보 등은 비장한 출사표에도 불구하고 아직 폭발적인 세를 얻지 못한 것이다. 문 후보가 여전히 지지율 1위임은 틀림없지만 절대 찍지않겠다는 비토 세력 또한 만만치 않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오차범위 내로 안 후보가 따라붙을 정도로 대세론이 흔들거리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문 후보와 관련된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문 후보 아들 준용씨와 관련된 채용 의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06년 고용정보원 채용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공고 기간 단축은 물론 응시원서 위조 의혹까지 번지고 있다. 문 후보나 캠프 측은 특혜는 있을 수 없고 이미 노동부의 감사까지 받아, 해명된 사안이라고 주장하지만 적지 않은 국민은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선관위가 어제 문 후보의 아들 준용씨를 채용했던 한국고용정보원에 관련자료 제출을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최근엔 노무현 정부 당시 문 후보가 민정수석으로 재직할 때 노 전 대통령 사돈의 음주운전 사고를 은폐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안 후보의 국민의당 등은 일제히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 사태를 묵인 방조한 우병우 전 수석의 행태와 뭐가 다르냐”는 날 선 공세를 펴고 있다.

문 후보는 억울한 측면도 있겠지만 ‘대세론’을 굳히려는 지지율 1위 후보로서 피할 수 없는 검증 절차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문 후보가 안희정 지사와 이재명 시장과의 당내 경선에서 압승했다지만 이 역시 비당원을 포함해 고작 선거인단 214만명의 투표 결과인 것이다. 문 후보는 이제 당원이 아닌 국민 그것도 과거 당내 패권주의와 분열 정치를 모질게 비판했던 보수·중도세력들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문 후보가 민주당의 공식 대선후보가 됐지만 이는 상당 부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보여준 촛불 민심에 편승한 측면도 있다. 문 후보가 국가 리더로서 당당하게 서려면 탄핵 정국에서 보여준 적폐 청산의 의지 이외의 능력과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우선 비판자들을 포용하고 함께 끌고 갈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시중에서 회자되듯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식’의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최근 문자폭탄에 대해 ‘선거의 양념’이라고 발언했다가 문 후보가 결국 사과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우리 국민은 제대로 검증받지 않고 당선된 대통령으로 인해 이미 큰 상처를 입었다. 선거 전략에 따라 상대편 진영에서 행하는 부풀리기식 의혹일 수는 있지만 그 의혹의 진위와 해소 여부는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문 후보의 눈 높이는 이제 당원이 아닌, 국민에게 맞춰야 한다.



8. 공시생 25만, 국가손실 17조란 우울한 현실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이른바 ‘공시생’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2011년 18만 5000명에서 지난해 25만 7000명으로 38.9%나 증가했다. 경기 침체와 취업난이 맞물린 상황에서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한 젊은이들의 몸부림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더욱이 학벌과 스펙이 채용 과정에서 영향을 미치는 현실에서 공무원을 향한 도전은 비록 합격률이 낮지만 자기 실력만으로 공정한 경쟁에 뛰어들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기에 공직 특권을 좇는 공시생이라고 결코 깎아내릴 수 없다. 우리가 맞닥뜨린 사회의 단면인 까닭에서다.

문제는 젊은 인재들이 공무원 시험 준비에 능력을 집중시키는 데 따른 국가적 손실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그저께 ‘공시의 경제적 영향 분석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공시생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순손실을 연간 17조1429억원으로 추산했다.



시험 준비 과정에서 지출하는 학원비·교재비 등을 경제적 순기능으로 보면 4조 6260억원인 반면 일을 하지 않아 사회에 끼친 역기능은 21조 7689억원에 이른다. 순기능과 역기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인 것처럼 국가 차원에서는 엄청난 인적자원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젊은이들의 공직 선호에는 달리 이유가 없다. 정년이 보장되는 데다 공무원 연금이라는 노후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있어서다. 뿌리 깊은 사농공상의 직업관 탓에 공직 자체를 사회적 권위이자 힘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또한 민간 기업들과는 달리 고교 졸업, 지방대 출신 등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지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내일 치러지는 올해 9급 공무원 공채시험에 무려 22만 8368명이 응시했다.

공시생들이 늘어나는 원인은 질 좋은 일자리의 부족이다. 쉽지 않은 해법이지만 그렇다고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정부는 우선 공시생을 포함해 청년 실업의 심각성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일부터 나서야 한다. 젊은이들이 일을 찾을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해서다.



정책을 세우되 가능한 것부터 순차적으로 풀어갈 필요가 있다. 기업들도 사회 기여와 책임 차원에서 정규직 채용을 늘리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선 후보들은 너나없이 뚜렷한 실행 계획 없이 일자리 대통령만을 외치고 있다.



[매일신문]

9. ‘병원 맘대로’ 비급여 진료비, 취약 계층 의료권 위협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의 진료비가 병원마다 제각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의 비급여 진료비 부담도 늘어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높고 환자가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진료비가 병원마다 들쑥날쑥한 것은 의료계에 대한 불신을 낳고 취약 계층의 의료권을 위협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은 최근 ‘2017년 의료기관별 비급여 진료 비용’을 인터넷과 모바일앱으로 공개했다. 2013년부터 기관별 비급여 진료비를 공개하다가 올해부터는 대상 기관과 공개 항목을 1.8배, 2.1배로 각각 확대했다. 자료에 따르면 대구에서도 비급여 진료비는 병원마다 천차만별이다. 위 진정내시경의 경우 4배, 경부 초음파 검사료는 7배 차이가 난다. 대학병원보다 비급여 진료비를 높게 받는 병원급 의료기관도 있다.



비급여 진료비가 제각각인 것은 병`의원이 임의로 가격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기관마다 의술과 장비`시설 수준이 다른 만큼 비급여 진료비를 획일적으로 정하라고 강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동일 항목의 진료비 차이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준을 넘어선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바가지’를 썼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번에 심평원이 비급여 진료비 공개를 확대한 것은 바람직한 조치이다. 그러나 의료 주 소비층인 노령층의 컴퓨터 및 스마트폰 활용 능력을 고려할 때 이것만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됐다고 볼 수 없다. 실제로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가 절실한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비급여 진료비 부담이 역주행하고 있다.



2014년 우리 국민이 지출한 비급여 진료비가 11조2천억원으로 2009년 6조2천억원보다 두 배 가까이 불어난 것만 봐도 그렇다. 같은 기간 건강보험보장률은 65%에서 63%로 오히려 낮아졌다. 이는 OECD 평균치 80%에 크게 밑도는 수치다.



상대적으로 고비용인 비급여 진료비는 실손보험에 가입할 여력이 없는 취약 계층의 의료권을 위협한다. 비급여 진료비 부담을 줄이고 건강보험 보장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건강보험 정책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10. 지역 국회의원, 지방분권형 개헌 의지 있기는 한가

대구경북지역 국회의원들은 지방분권형 개헌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었으나 자신들의 입지에 영향을 미칠 내용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거부감을 나타낸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24명의 지역 의원들을 대상으로 본지가 조사한 결과이다. 그러나 8명은 이런저런 이유로 아예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아 평소 개헌을 외치던 모습과는 다른 이중적인 행동을 보였다.



이번 조사 결과는 한마디로 지역 의원과 지배 정당의 지방분권형 개헌에 대한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먼저 조사 불응 의원이 8명이고 특히 자유한국당 소속이 7명이나 된다는 점이 그렇다. 이유는 가지가지다. 당직 이유에서부터 정당 간 협상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거나 답변하기 곤란한 내용 때문이라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만큼 분권형 개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나 제대로 된 연구가 없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또 응답자 상당수가 자신들의 입지에 미칠 사안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점도 분권형 개헌 의지의 빈곤을 엿보게 한다. 지역 대표로 구성된 상원 신설과 국민소환제`국민발안제(법률) 도입을 반대한 의원이 응답자 16명 중 각각 11명과 9명을 차지한 까닭이다. 이는 쉽게 말해 자신들의 권한은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집단이기적 속내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들 밥그릇만큼은 손대지 않는 그런 개헌을 바란다는 뜻이다.



아울러 지방자치의 중대 요소인 지방정부의 조직 구성과 지방세 부과와 관련한 전권을 지방정부가 갖도록 하기 위해 헌법 조항을 바꾸는 내용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점도 지방분권을 바라는 국민들 생각과 달랐다. 원론적인 입장에서 찬성한 지방분권형 개헌 주장이 자칫 알맹이 없는 공허하고 선언적인 외침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대구경북은 우리나라 분권운동의 출발지다. 그런 만큼 지역 의원들의 분권형 개헌에 대한 보다 치열한 고민과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 아울러 지방분권형 개헌에 대한 분명한 밑그림부터 갖고 개헌에 나서야 한다. 또한 자신의 권한 침해에 대한 걱정 같은 소아적인 사고의 틀도 깨트릴 때다.





주요신문칼럼



1. [경향신문][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귓속말’, 우리 시대 악에 대한 냉철한 탐구

어둑어둑한 새벽의 낚시터에서 한 남성이 살해된다. 그는 국내 최대 로펌과 방산업체의 비리 사건을 은밀히 취재하던 방송국 기자 김성식(최홍일)이었고, 그와 만나기로 약속했다가 시신을 발견하고 신고한 동료 신창호(강신일)는 오히려 살해 용의자로 몰려 긴급 체포당한다. 신창호는 김성식과 함께 같은 비리 사건을 추적하다가 정치적 압력을 받은 전력이 있는 전직 기자였다.



이 정도면 상식적으로 살인 사건의 배후에 대해 충분히 의문이 생겨날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수사팀은 신창호만을 집중 추궁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언론에서는 그가 언론노조 파업을 주도하다 해직 당하게 된 배경은 숨긴 채 사측 입장의 ‘전과 2범’이라는 수식어만을 강조해 보도한다. 끝까지 유일한 용의자였던 신창호는 어떠한 변호도 받지 못한 채 징역 15년을 선고받는다.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은 부패한 권력에 의해 입을 가로막힌 이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방산비리를 파헤치려던 기자는 잔혹하게 살해당했고 그와 더불어 진실을 알리려던 동료 기자는 살해 누명을 뒤집어썼다. 이보다 앞서서는 보도하려던 방송이 검열당하고 이에 저항하는 기자들은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해고당하는 언론 통제가 먼저 있었다. 해직기자 신창호는 그 직접적 피해자다.



​김성식 살인 사건 발생 뒤 신창호에게 전과자 프레임을 씌우고 진실 은폐에 협력했던 기사들은 그러한 언론 통제의 병폐를 정확히 보여준다. 주인공 신영주(이보영)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부친 신창호와 살해당한 김성식을 대신해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사건의 진상을 폭로하려 나선다. <귓속말>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발언권을 독점하는 거대권력의 크고 강압적인 목소리와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작은 속삭임으로 거대한 함성을 만들어내려는 이들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귓속말>을 쓴 박경수는 시대의 악에 대해 뛰어난 성찰을 보여온 작가다. 그의 명성을 확실히 각인시킨 첫 작품 <추적자>를 비롯해 <황금의 제국> <펀치>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최후에 정의의 손을 들어주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정의와 상대하는 악이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얼마나 교묘한 흡인력을 지닌 것인가를 동시에 그리고 있다.



실제로 <추적자>의 국내 최대 재벌 서 회장(박근형), <황금의 제국>의 재벌 형제 최동성(박근형)과 최동진(정한용), <펀치>의 검찰총장 이태준(조재현) 등 세 작품에서 각각 ‘최종 보스’에 해당하는 악역들은 모두 주인공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전쟁통의 피란길에서 너무나 배가 고팠던 나머지 몰래 숨어 고구마를 먹다가 가족을 잃고, 꽁꽁 언 칡으로 허기를 달래야 했을 정도로 처절한 생존 본능이 온몸에 각인된 이들은 시청자들에게 분명 강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이 절실한 생존 본능이 타인을 짓밟고 더 잘살기 위한 상위포식자의 욕망으로 변질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어쩌면 그 분기점이 되는 첫 선택은 사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괴물은 한순간에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의 비윤리적인 선택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박경수의 악역들은 그렇게 평범한 악의 기원을 대변하기에 지극히 현실적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추적자> 서 회장의 가장 유명한 대사 하나를 살펴보자. “이 나라 국민들이 동윤이에게 속고 있다고 생각하나? 한오그룹 사위가 서민을 위해서 정치한다고 하는데 이 나라 국민들이 그걸 진짜 믿고 있다고 생각하나? 동윤이 공약을 한번 보래이. 집 가지고 있는 놈은 집값 올려준다하지, 땅 있는 놈 땅값 올리준다카제, 월급쟁이한텐 봉급 올리준다하제? 다 즈그들한테 이익이 되니까 지지하는기다. 그런데 집값 올려준다고 해서 지지한다고 하면 지가 부끄러운기라. 그래서 개혁의 기수다 뭐다 해서 지지하는 기다. 국민들은 자기가 자길 속이고 있는 거다.” 서 회장의 대사는 그들의 악마성이 실은 우리 모두의 일그러진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점을 통찰하고 있다.

박경수 작가는 이처럼 늘 이득을 얻는 비윤리적 삶과 아무 이득 없는 윤리적 삶 가운데서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질문을 던져왔다. <귓속말>에서도 이러한 질문은 여전하다. 이는 신영주가 정의의 판사에서 ‘법비’의 일부로 타락한 이동준(이상윤)에게 일갈한 대사를 통해 나타난다. 한 번의 잘못을 두고두고 참회하겠다는 그에게 영주는 냉소한다.



“입시부정에 가담한 교수가 있어요. 그 덕에 학과장이 됐죠. 한 번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모를 한 번의 타협…. 그런데 어떡하지? 입시는 해마다 돌아오는데. 처음엔 가담만 했던 사람이 공모를 하고, 주도를 하고. 총장 취임식날 내가 체포했어요. 열 명, 아니 백 명도 말해줄 수 있어, 당신 같은 사람.”

그리고 <귓속말>의 세계관이 더 비관적인 이유는 지금 이 시대가 오히려 이러한 비윤리적 선택을 합리화하는 시대라는 인식에 있다. 신창호와 같은 불의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탄압한 결과는 악의 논리가 진리가 된 세상이다. 한마디로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지옥도다. 정의는 그 지옥도를 다시 비정상적인 것으로 되돌리는 냉철한 현실인식에서 시작된다. 그런 측면에서 박경수식 악의 묘사는 최근 쏟아져 나오는 비슷한 소재의 사회파 드라마들이 거대한 공적을 설정하고 그 적이 얼마나 악마적이고 천박한가를 묘사하는 데 몰두하며 말초적 혐오와 분노를 자극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 부조리한 현실의 일부인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2. [경향신문][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식빵의 역사

요즘 동네마다 식빵만 파는 가게가 생기고 있다. 식빵 전성시대다. 이것저것 많은 빵과 과자를 갖추는 게 보통의 전통적인 제과점이자 제빵점이었다. 장비와 노동이 많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런 시장은 거개 대형 프랜차이즈 회사가 먹어버렸다. 개인 제빵사들이 한 가지 품목만 다루면서 비용을 줄이고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식빵전문점으로 나서고 있는 셈이다. 큰 욕심 안 부리고 적게 버는 대신 더 많은 개인의 자유를 누리려는 새로운 가치관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는 식빵의 원조 국가 중의 하나인 일본의 영향이 작용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국가 모델이었던 영국을 통해 빵을 받아들인다. 이때 식빵이 등장했다. 식(食)빵이라는 일본어(‘쇼쿠팡’) 자체에 그 역사가 들어 있다. 간식으로 먹는 달콤한 빵의 대척점에 있는 빵이란 뜻이다. 식빵은 일본의 근대와 개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나중에 건빵이 제조되고 군국주의의 식량이 되어 악명을 떨친 것도 아는 바와 같다.



일본의 빵 문화는 한국에 그대로 이식되었다. 근대가 식민지를 통해서 강제 이식된 것처럼. 해방 후 적산(敵産)이 된 제과점이 우리 현대 제과제빵 역사의 시작이 된 건 물론이다. 새로운 제빵 세대들이 유럽에서 빵 문화를 직수입하기 시작한 2000년대 전까지는 그랬다.

옛날, 미제장수가 드나드는 부잣집 친구네 가면 땅콩버터가 있었다. 식빵에 발라먹으면 최고였다. 마가린을 듬뿍 바르고 설탕을 왕창 뿌려서 먹는 방법도 있었다. 씹을 때마다 설탕 가루가 사각거렸다. 한때 ‘곱빼기’라는 이름의 빵이 있었다. 공장제품이었는데, 식빵의 양 옆면 그러니까 갈색으로 탄 부분만 세 장을 넣어서 파는 ‘빅사이즈’ 빵이었다. 보들하고 하얀 빵은 두 장을 겹쳐서 잼을 발라 파는데, 이건 어차피 값어치가 덜 나가는 부위여선지 세 장이 들어 있었다. 배고픈 시절에는 역시 양이 최고. 인기 있었던 식빵으로 기억한다.



부언하지만, 사실 갈색 부위의 양면 식빵이 제일 맛있는 부위다. 빵은 기름을 넣어 굽게 되는데 갈색으로 타면서 ‘마이아르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고기나 빵 등을 맛있게 만드는 과학적 방법이다. 제과점에서 식빵을 먹는 법도 있었다. 요즘 같으면 턱도 없을 일인데, 대여섯명의 청소년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자르지 않은 식빵 한 덩어리를 시킨다. 포크를 하나씩 들고 찢어낸 식빵에 설탕을 찍어 먹었다. 돈 안되는 손님이 와도 아무 말 없이 빵을 내주었던 그 시절의 마음씨 좋은 주인들 생각이 난다.

전 대통령의 구치소 수감 후 이틀 연속 아침식사로 식빵이 배급되었다고 한다. 구치소 납품용의 거친 빵을 어떻게 넘기셨나 모르겠다. 부디 그 식빵 맛에 익숙해지시길 바란다. 우리는 범죄혐의자에게도 적절한 식사를 제공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프랑스 혁명기 마리 앙트와네트(‘말이 안통하네트’가 아니다)가 했다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란 발언은 실은 케이크가 아니라 ‘브리오슈’라고 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식빵의 원조다. 식빵을 두고 두 여인의 운명이 다시금 겹쳐진다.



3. [국민일보][색과 삶] 립스틱 효과

소위 ‘불황형 소비품목’이라 불리는 립스틱 매출이 늘고 있다고 한다. 1930년대 미국 경제공황 시기에 유독 립스틱 매출만 오르는 기이한 현상을 두고 학자들은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라고 했다. 립스틱만 발라도 기분을 바꾸는 효과가 최근의 소비 트렌드로 등장했다는 의미다. 위축된 소비심리를 작고 값싼 물건으로 극복해보려는 행동의 일종이다. 넥타이 효과, 매니큐어 효과와 같은 말들도 일맥상통한다. 

값비싼 승용차는 사지 못하더라도 한 끼의 럭셔리 음식, 고급 초콜릿 구매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와는 반대 경우인 과시욕구로 고가 상품이나 명품 구매가 늘어나는 ‘베블런 효과’도 공존하다보니 소비 패턴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생물학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짝짓기와 싸움 그리고 먹이활동을 보다 정교하게 진화시켜 왔다. 종족 번식을 위해 잠재적 배우자를 유혹하는 행동 또한 교묘해졌다. 이런 측면에서 화장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성이 아름답게 보이고자 하는 욕망은 수백만 년 진화 과정에서 유전자로 물려받은 본능이다. 모든 생물은 자신의 능력을 성장과 종족 번식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인간 또한 좋은 배우자를 선택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성이 립스틱을 바르는 행동은 남성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욕망 이전에 젊고 건강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립스틱이란 물건은 타인에게는 단정한 인상을, 자신에게는 활력을 불어넣는 작고 아름다운 사치품이다.

최근 들어 특히 빨간 립스틱이 잘 팔리는 현상은 투자 대비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의상과 헤어컬러에 따라 효과가 다르긴 하지만, 검은 피부에는 밝고 선명한 빨강 립스틱이 잘 어울린다. 흰 피부 얼굴에 보라색이나 와인색 입술은 창백해 보일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붉은 피부에는 오렌지색이 좋은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여성에 해당하는 황갈색 피부에는 레드나 핑크가 무난하다.



4. [매일경제][매경프리미엄] 죽음을 그린 영화 '크로닉'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간다. 우리의 시간은 죽음보다 삶에 집중된듯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살아가는 만큼 죽어가고 있다. 애석하게도 이것이 인간사의 순리다.

그 누구도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아무리 숱한 간접 경험들과 이론적인 학습을 선행해도 막상 죽음 앞에 선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진다. 죽음과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명확한 징후는 병이다. 그 어떤 방법을 총동원해도 나을 수 없는 병에 걸린 인간은 곧 죽게 마련이다.

영화 ‘크로닉’ 속 '데이비드'는 호스피스 간호사다. 그는 죽음을 앞둔 다양한 환자들의 집에 머물며 그들의 최후까지 함께 한다. 데이비드는 헌신적인 간호사 이상으로 환자들과 가까이 지낸다. 환자들에게 소홀한 그들 가족들에 반해, 데이비드는 환자들의 일상을 공유하며 친가족처럼 생활한다. 따라서 데이비드는 누군가의 친구이자 연인, 또는 동생이기도 한 셈이다.

데이비드의 헌신은 다양한 모습들로 표출된다. 간호 외에도 환자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다 해주려 노력한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데이비드의 모습은 어떨 때는 환자들보다 더 서글퍼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데이비드의 삶 역시 고달프다. 타인의 가족 역할은 곧잘 해내는 그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의 진짜 가족과는 멀어진 상태다. 이혼 후 친딸과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데이비드의 삶은 모순적이다. 하지만 이 모순은 데이비드의 삶만이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데이비드가 돌봐온 환자들의 가족처럼,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과 가장 먼 심적 거리를 두는 모순을 행하고 있다.

‘크로닉’은 관계의 모순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삶의 끝에 놓인 환자들은 신체적 통증보다 관계의 단절에서 더 깊은 고통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신체의 고통과 함께 삶의 끝을 맞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관계의 고통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관계의 고통은 노력으로 덜 수 있다.

데이비드의 삶은 신체의 고통보다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관계의 단절 속에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죽은 것과 다름 아님을 인지시켜주는 영화 ‘크로닉’. 수많은 환자들의 죽음보다 더 저릿한 삶을 살아가는 데이비드의 일상을 통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덕목을 일러주는 작품이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전함 야마토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해군력의 중요성을 실감한 전승국들은 너나없이 전함과 항공모함 증강 경쟁에 나섰다. 더 크게 더 많이…, 군비경쟁은 재정 압박으로 이어졌고, 미국 영국 등 5개국이 급기야 1921년 11월 미국 워싱턴DC에 모여 군축협상을 시작했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그렇게 체결됐다. 전함 수와 크기를 총 배수량(배를 띄워 밀려나는 물의 중량, 즉 배의 중량) 및 전함당 기준배수량으로 제한한 거였다.



전함 한 척의 기준 배수량 한도는 3만 5,000톤, 총배수량은 일본의 경우 30만톤. 예컨대 배수량 3만톤 규모의 전함을 최대 10척까지 보유할 수 있게 한 거였다. 배가 커질수록 주포 등 함포가 커진다. 함포가 클수록 화력과 방어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게 그 무렵의 상식이었다. 

1930년대 침략전쟁에 열 올리던 제국 일본의 세계 최대 전함 야마토(大和)호 건조 계획(1934)이, 워싱턴 조약을 무시한 채 극비리에 추진됐다. 전함 크기는 기준배수량 6만5,000톤, 주포도 조약 기준(16인치 이하)보다 큰 18.1인치였다. 야마토는 1940년 8월 진수해 42년 2월 태평양 전쟁에 투입됐다.

하지만 2차대전의 해전 양상은, 항공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전함간 함포 공방이 아닌 항공모함 함재기 기동공격으로 변해 있었다. 세계 최대 전함 야마토는 뾰족한 전과를 올리지 못했고,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연료 등 군수물자 부족 탓에 섣불리 움직이지도 못했다. 

오키나와 전투(45.4.1~6.23)가 시작되자 일제는 야마토의 출진을 결정했다. 편도 항해에 필요한 연료만 채운 야마토에는 최대한 긁어 모은 포탄 등 화약과 군인 3,300여 명이 승선했다. 돌아오지 못할 항진을 시작한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미 함대를 격파한 뒤 오키나와 섬 앞바다에 좌초해 해안포대가 되라’는 거였다.

하지만 미 항모 USS베닝턴과 호넷은 야마토의 거대 주포로도 미치지 못할 거리에서 함재기로 야마토를 공략했고, 야마토의 대공포는 비행기를 잡기에 너무 느렸다. 45년 4월 7일, 전함 야마토는 어뢰와 함재기의 급강하 폭격에 전투 5시간여 만에 항해 불능상태에 빠졌고, 자체 폭발로 큐슈 남서쪽 200km 해상에서 침몰했다. 승선 군인 중 포로로 살아남은 이는 269명에 불과했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세계일보]

1. 우병우 수사는 검찰 개혁 의지의 시험대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오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다. 지난해 검찰 특별수사팀과 지난 2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이어 세 번째 소환이다. 앞서 특검팀이 우 전 수석에게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된 바 있다. 지난달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국정농단 핵심 관련자 가운데 구속을 면한 이는 우 전 수석뿐이다. 그에 대한 소환조사는 국정농단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검찰이 정권의 ‘실세 중 실세’였던 그를 이번엔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을지에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다. 

우 전 수석의 혐의는 직권남용과 직무유기가 핵심이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급 5명과 공정거래위원회 전 국장, 외교부 공무원들에 대한 ‘표적 감찰’을 지시하고 인사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아울러 가족회사 ‘정강’ 횡령 혐의, 의경 아들 보직 압력, 세월호 수사 외압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2014년 ‘정윤회 문건’ 사건을 기밀 유출 사건으로 축소토록 검찰에 압력을 가한 의혹도 있다. 그때 대통령 주변을 관리·감시하는 민정비서 역할을 제대로 했더라면 대통령 탄핵과 구속이란 헌정사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박영수 특검은 지난달 “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면 100% 발부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검찰은 우 전 수석 소환에 앞서 “세월호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당시 광주지검장인 변찬우 변호사를 불러 조사하는 등 한 달간 50여명의 참고인 조사를 마쳤다”며 영장 재청구에 자신감을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그간의 검찰 수사 행태를 보면 미덥지가 않다. 우 전 수석이 지난해 청와대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벌어질 당시 김수남 검찰총장 등 검찰 고위층과 집중 통화한 의혹에 대한 수사는 감감무소식이다. 최초 검찰 수사에서도, 특검수사에서도 그가 살아남은 이유는 검찰 내 ‘우병우 라인’이 건재하기 때문이라고 많은 이들이 믿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박 전 대통령 수사보다 더 어려운 게 우병우 수사”라고 말할 정도다.

검찰이 이번에도 미적댄다면 국민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시중엔 “우 전 수석이 ‘몇 년 정도 감옥에 들어가도 상관없으니까 다 끌고 들어가겠다’며 검찰을 협박했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이런 마당에 국정농단 수사 ‘마지막 퍼즐’인 우 전 수석 처리에 좌고우면해선 안 된다. 이번엔 반드시 혐의를 밝혀내야 한다. 검찰 스스로 개혁 의지를 증명할 때다.


2. 시리아 화학무기 공습 참사, 반인륜적 전쟁범죄다

6년간의 내전으로 생지옥이 된 시리아에서 또다시 참상이 벌어졌다. 4일 시리아 북부 칸셰이칸 지역 주택가에서 화학무기 공습으로 어린이 11명을 포함해 주민 58명이 숨졌다고 한다. 사망자만 100명이 넘는다는 얘기도 있다. 현지 구호단체들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창백한 얼굴에 눈을 뜬 채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의식을 잃었다. 증상으로 볼 때 화학무기인 염소가스나 사린가스에 노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장기 내전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참혹한 땅이 된 것도 모자라 독가스로 오염되고 있으니 끔찍하다.

국제사회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이 저지른 소행으로 보고 있다. 시리아 정부는 화학무기 공격을 부인하지만, 아사드 정권의 독가스 공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유엔이 공식 파악한 것만 해도 세 차례나 된다. 국제사회가 보복과 제재를 추진했으나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번번이 제동이 걸렸다.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를 응징하는 것마저 강대국 논리에 휘둘리고 있으니 어처구니없다. 이 같은 묵인 내지 방조가 화학무기 사용을 부추겼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각성과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국제사회는 이번 만행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과거와 같이 ‘정황’을 파악하는 데 그친다면 모르쇠로 버티는 한 책임을 추궁할 도리가 없다. 발뺌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를 찾아내 누구의 소행인지를 가려야 한다. 유엔 시리아 조사위원회(COI)는 화학무기 공격을 ‘전쟁범죄이자 인권법의 심각한 위반’으로 규정하고 진상 조사를 시작했다. 시리아 정부를 비호하는 러시아·중국도 조사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인류 존립을 위협하는 전쟁범죄를 모른 척한다면 자국 내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테러범죄를 비난할 자격도 없다.

한국은 시리아 사태를 강 건너 불로 볼 처지가 아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김정남 암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사용했다. 그것도 많은 사람이 붐비는 외국의 국제공항에서 벌인 테러다.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면서 ‘불바다’ 운운하는 마당에 남한 땅에 독가스를 퍼뜨리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일도 아닐 것이다. 2016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2500~5000t의 화학무기를 지녔으며 탄저균, 천연두, 페스트 등 다양한 종류의 생물무기를 자체 배양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서울신문]

3. 中, 北의 철없는 장난 방치해 ‘불량 형제’ 될 텐가

북핵을 주요 의제로 다룰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북한이 어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한 발을 쐈다. 이 미사일은 북한이 지난 2월 발사에 성공한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북극성 2호로 일본과 괌 미군기지를 사정권에 둔 전략무기로 추정된다.


북한이 발사 준비 시간이 짧고 탐지가 어려운 이 전략무기를 사용해 무력시위에 나선 것은 ‘무역과 북핵’을 고리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빅딜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대응 성격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핵을)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가 하겠다”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혹시 흔들릴지도 모를 중국에도 경고한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체제 유지를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핵을 움켜쥐고 고비고비마다 벼랑끝 전술을 구사해 왔다. 국제사회에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며 생떼를 쓰고 있다.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이번 미사일 발사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이 같은 협박은 스스로를 옥죌 뿐이며, 한반도를 전화(戰火)의 위기로 몰아넣는 위험천만한 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번 미사일 도발로 북·미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행동을 포함한)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며 사실상 무력 충돌 가능성을 열어 놓은 상태다.

미·중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전략을 가다듬는 시점에 뒤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으로 인해 중국의 체면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에서도 수세적인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다. 난처한 입장에 빠진 중국은 북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현재까지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비록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그동안 일관되게 유지해 온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었는지를 분명하게 확인했을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중국의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와 미국이 혈맹관계이듯 중국과 북한 역시 혈맹관계다. 한국전쟁에 참가해 전사한 마오쩌뚱의 아들이 북한에 묻혀 있고, 중공 정권 수립 후 어려울 때 북한으로부터 경제 원조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북핵을 용인하거나 방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남으려면 북한의 불장난을 멈추게 해야 한다. 그것이 똑같은 ‘불량 형제’로 찍히지 않는 길이다.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면 유엔 대북 제재의 완벽한 실행은 물론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지원해 온 도움도 모두 끊어야 한다.


4. 복지 포퓰리즘에 되레 뒷걸음질한 국민 행복도

지난 5년 동안 우리 국민이 느끼는 행복도는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4개 회원국을 조사했더니 우리 국민의 행복도는 2011년 30위였던 것이 지난해 33위로 뒷걸음질쳤다. 그사이 행복도가 크게 높아졌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꼴찌 수준이라니 착잡하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 자체는 2011년 23위에서 지난해 21위로 약간 올랐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측정한 활력도와 재정 지속 가능성, 복지 수요 등은 소폭이나마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각종 포퓰리즘 정책이 정쟁의 소재가 됐던 현실을 감안하면 맥이 풀리는 성적이 아닐 수 없다. 정부든 정치권이든 복지를 입으로만 떠들었지 정작 실속은 없어 국민 일상의 만족도는 후퇴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무형의 행복을 순위로 매기는 조사에 일희일비할 일은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국민 행복도의 하락에 한숨이 나오는 까닭은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개선될 여지가 없을 거라는 낭패감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쏟아져 나오는 포퓰리즘 공약들에 국민 불신은 극으로 치달을 판이다. 표심을 현혹하려는 사탕발림 공약들이 난무한다. 부채 탕감, 기본소득제, 국민 유급 안식년제 등 말만 들어도 귀가 솔깃할 복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수십조원 규모의 개인 부실 채권을 정리해 주겠다는 장밋빛 공약이 달콤하지만, 과연 그 재원을 어디서 마련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도 없다.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막연한 공약에 상실감만 더 커지지 않을지 벌써 걱정스럽다.

무차별 복지 행정이 국민 행복도를 높이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번 조사 결과의 의미는 거기에 있다. 국가 예산 중 복지 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보건·복지·노동 분야를 포함하면 30%를 넘는다. 올해만 해도 복지 관련 예산은 130조원이나 된다.

여러 형태의 복지 정책 논란이 언제부턴가 기대보다는 피로감을 높이고 있다. 그 까닭이 무엇인지 대선 주자라면 백번 천번 따져 봐야 할 일이다. 불요불급한 선심성 정책에 알토란 같은 복지 예산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새나가고 있지나 않은지, 다수 국민의 행복 효용치를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데 밤잠을 설쳐도 모자란다.


[조선일보]

5. 중대한 美·中 회담 '제2 얄타' 안 된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트럼프 미 대통령이 4일 "북한은 정말 인류의 (가장 큰) 문제"라며 김정은 정권 문제를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제기하겠다고 재천명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도 "이번 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미·중 관계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정상회담은 우리 시각으로 7일 미국에서 열린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가 이렇게까지 큰 의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회담 결과에 따라선 한반도 정세가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사전 브리핑에서 "(북한 문제 관련) 이제 시간이 다 소진됐고,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했다.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북한 선제 타격 옵션은 그동안 미 국방부 한반도 정책 담당자의 서랍 속에만 있는 것이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이후엔 한 번도 제대로 검토한 적이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다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국이 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런 상황에 따라 미국 주요 방송인 NBC가 지난 3일 간판 앵커를 오산 미군 기지로 보내 메인 뉴스를 진행했다. 최근 한반도 상황을 심각하게 보는 미국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NBC는 이날 톱뉴스를 북한 문제로 시작해 8분 동안 한반도가 위기 상황임을 강조했다. 북한이 어제 동해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도 이런 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없어진 지가 벌써 5개월이 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기간에 취임했다. 그가 주한 미 대사를 인선하지 않고 있는 것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중국은 사드 보복 중이다. 정상 상황이라면 미·중 정상회담 전에 한·미가 중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단을 놓고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지금은 모든 것을 미국에 맡겨놓고 기다리는 것 외에 할 게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이번 회담을 우리 없는 자리에서 한반도 운명이 결정된 얄타 회담에 비유하기도 한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 지도를 놓고 얘기하는 대국이다. 한반도 운명이 어느 순간 바뀔지도 모른다. 이번처럼 중대한 회담을 넋 놓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존 매케인 미 상원 군사위원장 등 상원의원 26명은 4일 중국에 대한(對韓) 사드 보복 중단을 요구했다. 사드는 일차적으로 주한 미군과 증원 전력 보호를 목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물론 주한 미군 보호는 우리 안보와 직결되는 것이지만 사드가 미국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이 한국에 보복하면 결국 미국과 대결하게 될 것이란 점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지금 선거판의 대선 후보들은 한 달 뒤에는 청와대에 들어가 국가를 이끌겠다는 목표로 나온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토록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상황과 미·중 정상회담을 제대로 쳐다는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6. 검증 회피하려는 대선 주자는 후보 자격 없다

노무현 청와대의 민정수석실이 2003년 4월 노 전 대통령 사돈 배병렬씨 음주 교통사고의 전모를 확인해 놓고도 음주 사실을 부인(否認)했다고 문화일보가 5일 보도했다. 음주 사고 당일 민정1비서실 보고 문건에는 사고 경위, 술 취한 배씨가 파출소 안에서 소란을 피우는 상황 등이 담겨 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민주당 문재인 후보였다.


이 문건이 맞는다면 당시 청와대가 대놓고 거짓말을 한 것이고 문 후보는 그 핵심 당사자가 된다. 문 후보 측은 "일반적 동향 보고라 민정수석에게 보고되지 않고 이호철 민정1비서관 선에서 종결 처리한 사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 사돈에 관한 일을 민정수석이 몰랐다는 해명을 그대로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사고 자체가 큰일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가 숨기고 거짓말하는 것은 문 후보가 청산한다는 '적폐'다.

어제 자유한국당은 문 후보 아들의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2006년 12월 한국고용정보원에 제출된 응시 원서와 이력서의 필적 감정 결과를 근거로 대필(代筆)·가필(加筆) 의혹을 제기했다. 문 후보 측은 "진본임을 알 수 없는 출처 불명 문서"라고 했으나 바른정당 쪽에서 "2012년 원본을 복사해 진본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10년 전 시작된 이 의혹이 계속 살아 있는 것은 문 후보 측 설명이 부족한 탓도 있다. '이제 그만하자'고만 할 문제는 아니다.

국민의당이 흥행 성공을 자랑했던 광주 경선에서 렌터카 17대를 동원해 선거인단 130여 명을 투표장으로 실어 나르고 운전자들에게 수당 221만원을 제공했다는 선관위 고발 사건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민주당 동원 의혹을 비판했던 국민의당이다. 남을 비판한 잣대는 자신에게도 들이대야 한다.

대선 후보 검증은 필수적이다. 특히 탄핵 이후 벌어지는 이번 선거는 더 그렇다. 일부러 근거 없는 의혹을 만들어내면 제기한 쪽이 책임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동문서답으로 피하지 말고 솔직하게 해명하는 게 낫다. 유권자가 다 쳐다보고 있다.


[매일경제]

7. ​전교조 볼모로 전락한 교육감, 직선제 폐지해야 한다

전교조 활동을 위해 무단결근한 교사를 두고 시·도 교육청의 '전교조 눈치보기' 행태가 도를 넘어선 수준이다. 전교조 도움으로 당선된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내년 교육감 선거에서 또다시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현행 법률마저 무시하는 지경이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전교조는 현직 교원에게만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도록 하는 교원노조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하다가 1심과 2심 재판에서 잇달아 '법외 노조' 판결을 받았다. 이로 인해 단체협약 교섭권, 노조 전임자 파견권 등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됐음에도 전교조 전임자 13명이 무단결근하며 수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 그런데도 서울·강원·경남교육청은 전교조 전임자에게 휴직을 허용해 교육부로부터 위법한 행정행위라는 지적과 휴직취소 요구를 받고 있다.


또 경기교육청은 무단결근한 교사 3명을 '직무 수행능력 부족'이라는 엉뚱한 이유로 직위 해제해 솜방망이 처분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래 '중징계 사유'를 들어 직위 해제하면 월급의 70%를 주게 되는데 엉뚱한 이유를 적용하다 보니 월급 80%를 지급하고 또 이와 관련한 징계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위법행위를 시정하라는 정부 요구를 막무가내로 거부하다가 법외노조 판결을 받았는데 최근에는 아예 우리 사법체계를 인정하지 않는 주장까지 일각에서 쏟아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했으니 전교조 법외 노조도 무효'라는 얼토당토않는 주장이다. 

엄정한 법률 집행으로 맞서야 할 교육감들이 그들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이는 2007년 도입된 교육감 직선제가 그 원인이다. 교육감 직선제는 어떤 사람이 후보인지도 모른 채 투표한다고 해서 '깜깜이 선거'라 불리기도 하고 기호 1번을 당첨받으면 유리하다고 해서 '로또선거'로 불리기도 한다.


과열선거에 따른 후유증으로 교육감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걸핏하면 교육감 임기가 중단되기도 했고 선거가 끝나면 보은 인사로 교육계가 조각조각 분열되기도 했다. 한때 일선 교사 70% 이상이 '직선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한 설문조사가 있을 정도로 교육감 직선제의 폐해는 이미 드러날 만큼 드러났다. 시도지사와 러닝메이트로 선출하거나 아예 임명제로 전환해야 한다.


8. 한국 이민정책, 외국인에 취업문 활짝 연 일본서 배워라

이민과 외국인 노동자 고용에 저항감이 컸던 일본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2014년 '50년 후 인구 1억명 사수'를 천명하며 이민 억제 정책 탈피를 선언한 이후 취업 이민 우대, 외국인 인재 영입, 유학생 확대 등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노동 인력 감소와 아베노믹스로 경기가 살아나면서 일손이 크게 부족해진 때문이다. 

일본의 대졸 취업률이 무려 97.3%(2016년 기준)에 달하자 일본 기업들은 글로벌 인재에 취업문을 활짝 열고 있다. 그 덕에 IT와 영어에 경쟁력 있는 한국 청년들이 대거 취업해 올해 1월 기준 4만812명이 일본에서 근무 중이다. 

특히 일본은 연구·기술자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외국인에 대한 영주권 발급기간을 1년으로 단축하는 등 대대적인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 3월 말 아베 신조 총리가 확정한 9개 분야 노동개혁 방안에도 '외국인 인재 영입 장려'가 포함됐다. 비숙련 노동자에 대한 이민 절차는 아직 까다로운 게 사실이지만 생산가능인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본의 취업 문호 개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합계 출산율이 1.25명으로 일본(1.41명)보다 더 취약한데도 저출산 고령화의 열쇠가 될 수 있는 이민정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해 "2017년 중장기 외국인 이민정책 방향을 수립하겠다"며 사실상 논의를 1년간 미뤄둔 상태다. 지난 4일 법무부 주최로 열린 이민정책 국제 심포지엄에서는 "잘 관리된 이민정책을 통해 저출산과 경제적 경쟁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체계적인 이민정책 수립에 나서야 할 때다. 

국내 등록 외국인은 2000년 49만명에서 지난해 205만명으로 4배 급증했다. 이 중 취업자는 96만명인데 전문·숙련 인력은 5만여 명에 불과하다. 외국인 200만명 시대를 맞아 노동시장과 사회 통합 등을 고려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되 비숙련자의 경우 사회적 비용이 커지는 만큼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또한 이민정책 수립의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무부,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문화관광부 등 4개 부처에 분산돼 있는 업무를 통합적으로 추진할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


[이데일리]

9. ‘쇼핑 뺑뺑이’ 덤핑관광 퇴출시켜야

중국의 한국관광 금지령으로 유커(遊客) 방문이 급감하면서 수면 아래 숨어 있던 ‘관광 한국’의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인두세 관광’이 대표적이다. 관광객을 유치하는 대가로 국내 여행사들이 중국 여행업체에 유커 한 명당 적게는 5만원에서 많게는 14만원까지 ‘세금’을 떼어준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왕복 항공료에 불과한 덤핑상품도 수두룩하다니 ‘관광 대국’ 구호가 낯 뜨겁다.

싸구려 덤핑관광은 필연적으로 ‘쇼핑 뺑뺑이’와 ‘바가지’로 이어진다. 웃돈을 얹어 주었으니 그 비용도 메우고 돈까지 벌려면 쇼핑을 강요하고 저질 숙식으로 덤터기를 씌울 수밖에 없다. 2015년 외래 관광객 실태조사에서 “한국 관광은 쇼핑이 전부(71.5%)”라는 응답이 나온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다.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나라”라는 오명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관광객 숫자에 집착한 정부와 눈앞의 이익만 좇아 과당 경쟁을 벌이는 관광업계의 합작품이다. 정부는 관광대국을 지향한다는 거창한 구호를 앞세워 관광객 유치에는 힘을 쏟았지만 정작 숙박·음식·교통 등 기초 인프라 개선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업계는 업계대로 가격경쟁에 치우친 나머지 양질의 상품 개발이나 서비스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은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본은 우리와 달랐다. 2012년 우리나라 외래 관광객이 1100만명일 때 일본은 830만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4년 후인 지난해 2400만명으로 우리의 1720만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2015년 총리를 의장으로 하는 ‘관광 비전회의’를 발족시키고 관광정책에 드라이브를 건 것이 주효했다. 비자 규제를 과감히 푸는 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고품격 상품을 개발하는 등 민관이 총력을 펼친 결과다.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유커 단체여행에 의존해 온 관광산업은 지금 위기다. 하지만 체질을 다질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사드보복 탓만 할 게 아니라 ‘덤핑관광’, ‘뺑뺑이 쇼핑’을 뜯어고쳐야 한다. 저질 싸구려 구조를 제값을 받을 수 있는 고품질 구조로 탈바꿈시키고 동남아와 중동 지역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 ‘관광 한국’의 미래 전략을 새로이 짜야 할 때다.


10. 슬그머니 서울에 복귀한 일본 대사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일본대사가 그제 서울로 귀임했다. 주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일본 정부가 전격 소환을 결행한 지 85일 만에 이뤄진 조치다. 양국 간 국교가 정상화된 1965년 이래 주한 일본대사가 임지인 한국을 떠나 있었던 기간으로 따져도 최장 기간이다. 그가 굳은 표정으로 출국할 때와 달리 이날 슬그머니 입국한 모습부터가 대조를 이룬다.

나가미네 대사의 복귀로 양국 간 마찰관계가 조만간 정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주는 것만으로도 일단 다행이다. 외국에 파견된 자국 대사를 소환한다는 자체가 상대국 정부에 대한 강력한 불만의 표시임은 물론이다. 대사의 공백 상태가 이어지면서 자칫 외교단절에 버금가는 단계까지 사태가 악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던져준 것이 그런 때문이었다.

양국 관계가 최악의 사태는 면했다고 하지만 아직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마찰의 빌미가 된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이 시민단체에 의해 설치된 것이므로 우리 정부 차원에서 적극 개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일본 정부는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해당 지자체가 소녀상을 철거했으나 다시 설치된 데다 우리 외교부도 지자체와 시민단체 등 관련 당사자들에 대해 소녀상 철거를 요청하지 않은 게 아니다.

나가미네 대사는 귀임하면서도 소녀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거듭 밝혔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직접 만나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을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가 이달 중 채택 예정인 2017년판 외교청서에도 관련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내달 대선에서 집권하는 차기 정부에 대해 계속 압력을 넣겠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현재 양국 관계는 통화스와프 협상이 중단된 데다 고위급 경제협의가 연기되는 등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자칫 독도 영유권 문제도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그러나 다툴 것은 다투더라도 협력할 것은 협력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동북아에서 중국이 패권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집착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국 대사를 소환하는 식으로 투정을 부린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여건이 아님을 깨닫기 바란다.



주요신문칼럼


1. [중앙일보][다니엘 린데만의 비정상의 눈] ‘딱딱한’ 독일인들이 봄이면 즐기는 것들

두꺼운 겨울옷을 접어 서랍 속에 넣으니 봄이 온 게 실감이 난다. 주말엔 친구들과 어울려 여의도에 가서 벚꽃놀이를 할까 싶다. 경리단길이나 홍대입구·연남동 같은 서울의 이른바 ‘핫플레이스’ 맛집은 봄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붐빌 것이다.

한국 친구 중에는 ‘딱딱하다’라는 이미지의 독일인들도 봄놀이를 즐기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4계절이 뚜렷한 곳이라면 나라와 지역에 상관없이 봄놀이를 즐기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독일에선 봄이 오면 집 밖으로 나가 자연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우선 프륄링스푸츠(Fruehlingsputz)로 불리는 ‘봄맞이 대청소’를 하고 나서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호수나 숲, 바다나 강으로 가서 자연 속에서 봄을 맞는다.


내 고향 랑엔펠트엔 호수가 많은데 봄이 오면 주민들이 호숫가에서 바비큐를 하고 맥주를 마시며 밤이 이슥할 때까지 여유를 즐긴다. 한국의 한강변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 그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러나 뚜렷한 차이점이 하나 있다. 독일인들은 음식을 준비해 가지 치킨을 배달시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독일에는 더욱 역동적으로 봄날을 즐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프륄링스뮈디히카이트(Fruehlingsmuedigkeit)라 부르는 ‘봄 피로감’을 없애려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상당수다. 독일 어디를 가도 호수와 강, 그리고 넓고 깊은 숲이 많아 자전거 타기에 안성맞춤이다. 자전거뿐만 아니라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도 다수다. 나는 열일곱 살 때 첫사랑과 첫 데이트를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면서 했다. 두 시간 동안 이를 탄 뒤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고 오후 내내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독일 소도시나 시골에선 조경을 하며 봄을 맞는 어르신을 쉽게 볼 수 있다. 독일인은 한국인처럼 일부러 벚꽃 구경을 가지는 않지만 꽃을 사랑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원마다 아름다운 꽃과 식물을 볼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선 란데스가르텐샤우(Landesgartenschau), 즉 ‘주(州) 조경박람회’를 열어 다양한 화초를 대규모로 전시한다. 고양 꽃박람회와 비슷하다.

독일인 중에는 약간 딱딱한 성격의 사람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독일인도 한국인처럼 봄만 되면 가슴이 설레고 표정이 밝아지며 걸음걸이가 생생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번 봄, 모든 사람이 사랑하고 아끼는 이와 함께 꽃을 즐기며 아름다운 봄놀이를 즐길 여유를 가지길 기원한다. 봄은 가만히 보내기엔 너무도 아까운 계절이니까.



2. [매일신문][매일춘추] 기억의 현장

겨울 끝자락에 아들과 싱가포르로 여행했다. 대학 진학 후 줄곧 서울에서 생활했고, 제대하고 어학연수 등으로 떨어져 지내다가 모처럼 시간이 맞아 갑작스레 출발했다. 아빠가 함께하지 못해 못내 섭섭한 눈치지만 나야 일상을 벗어날 절호의 기회인지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나섰다.



아들은 겨울방학 중에 교환학생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과 학교 근처 숙소에서 생활하며 우리 문화를 알리고 안내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짧은 기간에 서로 꿈과 고민을 나누며 친해진 외국친구들, 그들과 다시 만날 약속을 해서 하루는 엄마 혼자 여행을 해야 하는데 괜찮겠냐고 거듭 물었다. 아이 셋을 당당하게 키운 대한민국 엄마를 어찌 알고 이런 걱정을 하는지….



출발부터 귀국까지 특별한 계획 없이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여행은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자정 넘어 도착한 ‘창이’ 국제공항은 조명 탓인지 낯설었고, 한 무리의 단체 여행객이 빠져나간 이국의 대기실은 더운 나라에 미처 적응 못 한 피부처럼 바닥부터 번들번들 겉돌았다. 공항에서 도심에 이르는 길은 바다를 메워 건설된 동쪽 해안도로와 연결되어 밤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도시풍경이 신선했고 친절한 택시기사의 미소처럼 편안했다.



관광산업이 발달한 도시국가답게 외국인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잘 만들어진 안내 표지판, 그때그때 가고 싶은 곳은 MRT(도시철도)와 버스, 택시를 이용하고 웬만하면 걸어서 이동했다. 현지 친구들이 추천한 곳도 구석구석 찾아서 보고, 듣고, 먹고, 즐겼다. 가족이 함께라면 더없이 행복하겠지만 둘만이라도 떠나자. 타지에서 마주하며 동시에 느끼는 공감이란 단어, 어느 것에도 견줄 수 없는 단단함이 있다.



여행의 끝은 늘 그렇듯이 아쉽고 돌아갈 일상의 막연한 걱정으로 쉬 고단하다. 새벽 1시 30분, 출발이 지연되어 게이트가 제시간에 열리지 않았다. 서로만 믿고 조금 뒤에 확인한다는 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깜빡 잠이 들었다. 짧은 순간 안내 방송으로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닌가!



비몽사몽 내 이름은 지나쳤으나 다행히 엄마 귀에 걸린 이름, 부리나케 아들을 깨우고 신발 벗어들고 체면 따위 아랑곳 하지않고 달려갔지만, 자꾸 멀어지는 거리는 불가항력이었다.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는데 저 멀리 앞서간 아들이 전동카트를 타고 손을 흔들며 되돌아오는 영상, 믿을 수가 없었다. 공항직원의 도움으로 도착해 티켓체크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까지도….



늦은 탑승, 이전에 두어 번 목격했던 어처구니없는 광경이 그날 내게도 일어났다. 이제껏 보살펴주던 엄마에서 보호받는 엄마로 역할이 바뀌는 자리, 내게는 소중한 기억의 현장이었다.



3. [서울신문][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세기의 사랑’으로도 미화할 수 없는 비극

세월호가 304명의 생명은 바다에 버려두고 험한 몰골로 저 혼자만 돌아왔다. 가슴이 멍하고 짠하다 못해 쓰리다. 이렇게 허망하게 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건은 인간의 오만과 방종에 노여워진 신의 경고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신은 이렇게 엄청난 죽음을 허용한단 말인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년)나 ‘타이타닉’(1997년)도 이런 질문인 동시에 재해로부터 방심하지 말라는 경고 또는 교훈의 의미로 제작됐을 터이다.



1912년 4월 14일 하느님도 가라앉히지 못할 배라고 불렸던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는 첫 출항에서 빙산을 만나 두 동강이 났다. 배는 승선자 2200여명 중 1500여명을 4000m나 되는 깊고 어두운 대서양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73년이 지난 1985년 바닷속에서 선체가 발견됐고, 이를 계기로 영화화됐다. ‘비극 속에 침몰한 세기의 사랑’을 보태 흥행에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이 엄청난 재난이 미화될 수는 없다.



1908년 미국의 1만 5000여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정치적 평등과 노동조합 결성,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일 정도로 열악했던 여성의 지위는 오히려 상류층으로 갈수록 더 남성 중심이었으며 여성은 종속적이었다. 이런 시대에 가부장적 질서에 숨막혀 하는 미국 상류층 로즈(케이트 윈즐릿)는 사교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머니와 권위적인 귀족 약혼자 칼(빌리 제인)과 함께 미국으로 향하는 타이타닉호 1등실에 타고 있다. 배가 출발하기 직전 부두의 선술집에서 도박으로 3등실 표를 얻은 가난한 화가 지망생 잭(리어나도 디캐프리오)도 영화처럼 가까스로 배에 오른다.



우연하게 잭은 바다에 투신하려는 로즈를 구하고 지상의 천국 1등실에 초대를 받는다. 허위와 허영, 허세로 가득한 저녁식사가 역겨웠지만 무사히 넘긴다. 그리고 로즈를 현실 세계인 3등실로 초대해 자유롭고 거칠 것 없는 파티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둘은 사랑에 빠지고, 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뱃머리 신으로 그들의 사랑과 운명을 암시한다.

이렇게 여객선이 아니라면 결코 한데 어울릴 수 없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한배를 타고 있다는 것은 세상의 축소판을 의미한다. 잭과 로즈, 칼은 전혀 만날 일조차 없는 사람들이지만 한배에서 만나 서로의 삶을 엿보게 된다. 잭은 가진 것 없지만 자유분방하다. 로즈는 답답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칼은 물려받은 부와 권세로 세상을 조롱하고 거들먹거리는 재미로 산다. 그는 부자일지언정 교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년)은 이런 세상의 다양한 삶과 부류를 보여 주기에 아주 적합한 그림이다. 그가 매우 어려웠던 시절 소위 삐걱거리는 마루 때문에 세탁선이라 불렸던 작업실에서 제작한 이 그림은 5명의 벌거벗은 여인이 등장한다. 여인들은 각각 다른 방향에서 본 모습들이 한 화면을 이룬다. 배경을 분할하는 윤곽선이 입체적인 공간을 만들어 준다. 가운데 두 여인은 구상적이지만 얼굴과 몸은 보는 각도가 다르다.



양쪽의 세 여인은 오른쪽에서 본 모습과 왼쪽에서 본 모습이 섞여 있다. 또 왼쪽 눈은 정면을 보지만 오른쪽 눈은 옆을 쳐다본다. 앉아 있는 여인은 뒷모습이지만 얼굴은 정면을 향한다. 이렇게 피카소는 다빈치가 발명해서 미술사를 바꾸어 놓은 원근법과 명암법을 무시하고 한 사람을 정면과 측면, 뒷면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한 그림 속에 그려넣어 마치 펼친그림처럼 조합해서 보여준다. 그의 유명세는 이렇게 한 방향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각각 보고 이를 조합해서 한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데서 기인한다.

타이타닉에 타고 있는 영화 속 사람들은 피카소의 그림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하나의 세상을 그려낸다. 당시 부호들은 여행을 다닐 때도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가지고 다녔고 자신이 묵는 호텔이나 선실에 소장품을 걸어 장식을 했다고 한다. 예술을 사랑하고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떤 이는 자신의 부와 예술적 소양을 드러내려는 속물근성 때문이기도 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며 칼은 “피카소라니, 내 장담하지만 돈 한 푼 안 될 거요”라고 말한다. 그는 모든 것을 돈으로 보았다. 로즈의 어머니는 금광을 개발해서 갑작스레 큰돈을 번 몰리에게 ‘뉴 머니’라고 경멸하며 우월감을 느낀다. 칼과 어머니의 그런 속성에서 요즘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일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기시감 때문일까.



하지만 이런 칼과는 달리 로즈는 피카소의 ‘볼라르의 초상’을 보며 “꼭 꿈속에 있는 것처럼 진실은 있지만 논리는 없지요”라고 말한다. 이는 현대미술을 보고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세상을 지탱하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은 유지된다. 끝까지 배를 지키는 스미스 선장이나 배를 설계한 토머스 그리고 선원 조지프 G 벨과 배가 가라앉을 때까지 연주를 멈추지 않던 지휘자 월리스 하틀리,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 페기 구겐하임의 아버지 벤저민 등이 그들이다. 그들의 존재는 참사 속에서도 세상의 도리와 원칙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적어도 인간에게 명예와 책임 그리고 도리라는 것을 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돌아온 세월호가 우리에게 회한과 울분만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적어도 타이타닉에는 있었던 그들이 너무도 적었던 때문이다. 게다가 믿었던 국가가 개개인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믿기지 않았던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는 피카소의 입체파풍의 그림처럼 우리 사회의 번지르르한 앞면보다 옆면과 뒷면을 우리에게 동시에 보여 주었다. 하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아직도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랑이라도 처절한 결말은 결코 어떤 사건도 미화할 수 없다. 문득 “무엇을 더 원합니까? 여기까지 올 동안 당신 도움 받은 적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얼마나 더 죽어야 합니까? 얼마나 더 목숨이 필요합니까? 이제 여기엔 겨우 일곱 명이 남았을 뿐이니, 그렇다면 내 목숨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저들은 살려주십시오”라던 ‘포세이돈 어드벤처’의 스콧 목사의 절규가 떠오른다. 이렇게 외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진정 차기 대통령감이 아닐까.



4. [서울신문][문화마당] 22년 지기 친구를 만났다

현정이를 다시 만난 건 고등학교 졸업 이후 무려 7년이 지나서였다. 우리는 중학교 내내 붙어 다니며 별별 파란만장한 역사를 함께 써 나갔고, 그런 우정으로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해 같은 동아리까지 들어 또 3년을 함께 보낸 절친한 사이였다. 그런 친구와 단지 각자 사는 게 빠듯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오랫동안 못 만나게 될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우연히 연락이 닿아 대학로 한복판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여전히 내가 진심으로 믿고 좋아했던 단짝의 모습 그대로였다. 십대 시절 마치 세상의 주인인 양 함께 깔깔거리며 소리치다 또 아무도 모르게 소곤소곤 비밀을 나눴던 우리는, 오랜만의 해후가 무색하게 꼭 어제 만난 것처럼 웃고 떠들며 그간의 은밀한 상처들을 조용히 털어놓았다.



​그리고 앞으로 아무리 바빠도 자주 연락하자고, 이렇게 우리 우정의 새로운 챕터를 다시 써 나가자고 굳게 약속하고 헤어졌다. 하지만 이후 우리는 만나지 못했고, 영화처럼 또 7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3년 전 여름 첫 장편영화 촬영을 앞둔 나는 유년 시절을 보낸 성북구의 주택가들을 종일 이리저리 배회하며 돌아다녔다. 영화의 또 다른 얼굴이 될 로케이션 헌팅은 캐스팅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특히나 저예산 독립영화의 프로덕션에서는 감독이 직접 발로 뛰며 찾는 게 여러 모로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로 멋지게 포장했지만, 사실 속내는 그저 괴롭고 속상했기 때문이었다.

예산은 빠듯한데, 준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시나리오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들었다. 오랜 시간 꿈꿔 온 일을 너무나 제한적인 상황에 맞춰 얼렁뚱땅 해치워 버리는 느낌만 들었고, 그 어떤 과정도 즐겁지 않아 더더욱 괴로운, 그래서 할 수 있는 게 오직 걷는 것밖에 없었던. 그런 시기였다.

그날도 그렇게 잡다한 상념에 사로잡혀 종일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동네 떠나갈 듯 큰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 젖혔다. 바로 현정이었다. 작은 승용차에 너댓 살쯤 되는 딸과 친구들을 가득 실은 그녀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언제나 밝고, 명랑하고, 기운찼던, 그 시절 내 단짝의 얼굴 그대로였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하며 어쩐지 기묘해 보이는 각자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는, 금세 다시 볼 것처럼 기쁘게 헤어졌다. 이후 우리가 잠시나마 스치듯 인사할 기회를 잡았을 때는, 여러 우여곡절 끝에 내 첫 영화가 개봉한 무렵이다. 다시 영화처럼 순식간에 2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며칠 전 그런 현정이와 오랜만에 감격스러운 상봉을 했다. 제대로 약속을 하고 만나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건 대학로에서의 만남 이후 10년 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말의 어색함도 없이 꼭 중학생 때처럼 떡볶이와 김밥을 입속에 잔뜩 욱여넣은 채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이미 수십 번은 곱씹었을 그 시절 사건 사고들을 새로운 무용담처럼 늘어놓는가 하면, 또 난데없이 탄핵 인용을 축하하며 정체성을 숨긴 급진좌파로 마주해야 했던 고통스럽고 웃긴 일화들에 대해 경쟁적으로 털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한순간 시간에 쫓겨 이젠 정말 자주 보자고, 꼭 열다섯 살 소녀들처럼 온 마음으로 활짝 웃으며 헤어졌다.

이제 우린 또 어떤 세월을 지나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까. 아직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먼 훗날의 만남을 고대하며, 나는 오늘 하루 또 이렇게 힘이 난다. 더 잘 살아야겠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멀 해거드​

지난 해 세상을 뜬 뮤지션 중에는 데이비드 보위, 프린스 외에도 ‘컨트리 뮤직의 전설’ 멀 해거드(Merle R. Haggard)가 있었다. 그는 1937년 4월 6일 태어나, 79세 생일이던 2016년 4월 6일 별세했다. 역사상 가장 강렬한 전쟁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베트남전 3부작 1편 ‘플래툰’의 마지막 장면, 네이팜 탄으로 불바다가 된 전장을 나는 군 수송헬기의 프로펠러 소음을 덮듯 흐르던 배경음악 '오키 프롬 머스코기Okie from Muskoqee’의 그 가수다.

‘머스코기에서는 마리화나도 LSD도 하지 않고, 큰길에서 징집영장을 태우는 짓도 하지 않지… 샌프란시스코 히피들처럼 머리카락 치렁치렁 너절하게 기르지도 않으며… 머스코기 출신 오키란 걸 자랑으로 여기지.’ 오키(Okie)는 1930년대 대공황기에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 등 대도시로 이주한 오클라호마 출신 농업노동자들을 일컫는 말. 원래는 ‘촌놈’처럼 조롱 섞인 말이었지만, 그들은 ‘방탕한’ 진보ㆍ자유주의자들과 달리 윤리와 전통을 중시하는 중남부 보수주의자들의 자부심을 저 단어에 입혔다.



1969년 해거드가 저 노래를 발표할 무렵은 베트남전 반대운동이 활발했고, 포크 가수들의 반전 평화 노래들이 거리를 휩쓸던 때였다. 해거드의 저 경쾌하고 반듯한 노래는 이를테면 반전운동에 대한 보수ㆍ애국주의자들의 ‘성가(聖歌)’였다. 평화주의자 올리버 스톤이 영화 끝 배경음악으로 저 노래를 택한 건, 일종의 아이러니였을 것이다.

해거드는 34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오키의 3형제 중 막내로, 베이커스필드 외곽 컨테이너 집에서 태어났다. 45년 아버지가 뇌출혈로 숨진 뒤 어머니가 가족을 부양했고, 어린 해거드는 절도와 폭력 등으로 청소년 교화시설을 들락거렸다. 형이 쓰던 기타를 독학해 연주하고 노래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지만, 그 취미를 직업으로 택한 건 강도 혐의로 감옥살이까지 한 뒤인 1960년이었다. 

그런 그의 이력 탓에 69년 저 노래가 발표되자 ‘진의’를 두고 말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2001년 인터뷰에서 “당시 못 배운 미국인들의 진솔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했고, “나보다 그 전쟁에 대해 모르는 시위대들의 주장에 화가 나기도 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클린턴과 오바마를 위해 노래한 민주당 지지자였고, 40대 때부터 거의 말년까지 마리화나를 즐겼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한국일보]

1. 용산기지 기름유출 미군은 은폐하고 정부는 방조했다

서울 용산의 주한미군기지 일대에 90건가량의 기름 유출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녹색연합 등 환경ㆍ시민단체들이 미 국방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그동안 정부가 통보받은 유출사고 건수(5건)는 물론이고 언론, 국회를 통해 알려진 기름 유출사고 건수(13건)보다 훨씬 많다. 주한미군이 사고 대부분을 은폐했고, 우리 정부는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기름 유출사고 내용을 보면 더욱 충격적이다. 주한미군 기준으로 ‘최악의 사고’에 해당하는 1,000갤런 이상의 사고가 7건이나 발생했다. 미군은 그 중 2건만 한국 정부에 알리고 나머지 5건은 숨겼다. 또 ‘심각한 사고’(110갤런 이상~1,000갤런 미만)에 해당하는 유출 사고도 25건이나 됐다. 피해 규모가 워낙 커서 사실상 용산 미군기지 전체가 오염된 상태라는 게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용산 미군기지 기름 유출로 인한 주변 토지와 지하수 오염은 심각한 상태라는 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지난해 서울시 검사결과, 녹사평 인근 지하수에서는 1군 발암물질인 벤젠과 중추신경계 손상을 초래하는 석유계 총탄화수소가 허용치의 500배를 초과해 검출됐다. 비난 여론이 일자 환경부는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미군기지 내부 조사를 했으나 조사 결과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조사 결과 공개를 요청하는 소송을 내 1,2심에서 “용산 미군기지 내 지하수 오염 결과를 공개하라”는 결정이 나왔는 데도 요지부동이다. “자료를 공개할 경우 부정적 여론이 형성될 우려가 있다”는 주한미군의 요청을 받아들인 때문이다.



이번 시민단체 발표도 정부가 자료 공개를 거부하자 미국 정보자유법(FOIA)에 따라 미 국방부에 해당 자료를 요청해 받은 것이다. 국민의 안전보다 주한미군의 처지를 더 중시하고 있으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주한미군의 사고 은폐가 가능했던 것은 느슨한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환경조항’탓이다. 현행 조항은 오염사고 시 한국 당국에 대한 통보가 의무화되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한미 간 협의를 통해 불합리한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현재 한미 간에는 올해 말까지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는 용산 미군기지 환경오염을 누가 책임질지 여부가 쟁점으로 남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972년 채택한 환경정책 지침에 따라 국제사회에서는 오염자 부담 원칙이 통용되고 있다. 마땅히 주한미군 측이 정화책임을 져야 한다.



[연합뉴스]

2. 우병우 소환한 검찰, 더 물러날 데가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로 지목돼온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다시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는다. 최순실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에 6일 오전 출두할 예정이다. 물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등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이다. 우 전 수석은 지난해 11월 검찰의 1기 특수본에 처음 소환됐다.



당시 검찰 수사는 한마디로 허무맹랑했다. 점퍼 차림에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우 전 수석 앞에, 검사가 두 손 모으고 서 있는 사진이 언론에 보도됐다. 만약 검찰의 치욕사를 쓴다면 앞자리에 오를 만한 장면이었다. 우 전 수석은 지난 2월 18일 박영수 특검에 두 번째로 소환됐다. 특검은 이튿날 직권남용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시간에 쫓긴 특검이 혐의사실을 충분히 소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순실 사태가 표면화한 이후 우 전 수석이 검찰에 불려 나가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검찰의 명예 회복을 기대하는 마음이 앞선다. 

오래전부터 검찰 내부에 '우병우 사단'이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럴 만큼 우 전 수석은 박근혜 정권의 실세 중 실세로 꼽힌다. 최순실 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우 전 수석은 이런저런 추문에 휘말렸다. 대표적인 것이 작년 7월의 진경준 전 검사장 사건이다. 재력가로 알려진 우 전 수석의 처가와 게임업체 넥슨 사이에 수상한 부동산 거래가 있었고, 우 전 수석과 가까운 진 전 검사장이 이를 도와줬다는 의혹이었다.



이와 관련 이석수 전 청와대 감찰관은 우 전 수석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도 우 전 수석과 부인,장모를 검찰에 고발했다. 평소 같으면 큰 파문이 일었을 만하지만, 지금은 관심권 밖에 있다. 그만큼 최순실 국정농단의 '쓰나미'가 너무 엄청났다.

이번에 검찰이 먼저 밝혀야 할 혐의점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 관한 것이다. 우 전 수석은 처음 이 의혹이 제기됐을 때 진상을 덮으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요지의 '대응 문건'을 만들어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작년 10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문건에 의존해 그런 발언을 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 주변 비리 차단에 앞장서야 할 민정수석이 이런 짓을 했다면 직무유기 혐의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으론 우 전 수석이 주도적으로 만들었다는 이 '대응 문건'이 사태 초기의 청와대 대응을 엉뚱한 방향으로 오도했을 가능성도 주목된다. 아울러 우 전 수석은 청와대 지시를 따르지 않는 문체부 등의 공무원을 표적 감찰하고 퇴출 압박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부분은 박영수 특검도 영장에 적시했던 내용이다. 아울러 2014년 4월 세월호 사고가 터진 후 검찰의 해양경찰 수사 과정에 외압을 행사했는지도 검찰이 주목하는 대목이다.

검찰은 우 전 수석을 소환하기에 앞서 50명 가까운 참고인을 조사했다고 한다. 그중에는 세월호 사고 당시 변찬우 광주지검장과 윤대진 광주지검 형사2부장도 포함돼 있다. 변 전 지검장은 세월호 관련 수사를 총괄 지휘했고, 윤 부장검사는 전담 수사팀을 이끌었다. 검찰로서는 우 전 수석 소환에 앞서 나름 열심히 준비한 것 같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결과다.



우 전 수석은 해경 본청을 압수 수색하는 수사팀에 '해경 상황실 전산 서버를 제외하라'고 압력을 넣은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그런 우 전 수석이지만 검찰에 나와 순순히 혐의 사실을 인정할 것 같지는 않다. 검찰이 반증 자료를 얼마나 충실히 준비했는지가 관건이다. 검찰 조직은 그동안 우병우 전 수석으로 인해 수모를 당할 만큼 당했다.



어떤 경우에는 불가항력이었지만 어떤 것은 자초하기도 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우 전 수석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자 '나중에 검찰이 다시 영장을 청구하면 100% 발부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단순히 검찰에 대한 믿음을 표시한 것 같지는 않다. 검찰 혼자 모르고 있을 수도 있지만, 이젠 더 물러날 데가 없다.



[경향신문]

3. '작계 5027’까지 해킹당한 군의 안보 무능

지난해 12월 군 전산망 해킹사건 이후 군 당국이 수사를 진행한 결과, 1급 군사기밀인 ‘작전계획 5027’도 함께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는 그젯밤 작계 5027이 해킹당했다는 KBS 보도가 나간 후 입장자료를 내고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광범위하게 수사 중이며, 수사가 끝나는 대로 내용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작계는 북한의 선제공격에 대비한 한·미 연합군의 전시 군사작전 계획이다. 여기에는 국면별, 상황별 한·미 양국의 군사 대응뿐 아니라 양국군 부대의 배치와 진격 경로 등 극비 정보가 들어있다. 일부만 적에 유출돼도 군 작전의 근간을 바꿔야 하는 군사 기밀자료가 실제로 유출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창군 이래 초유의 정보 유출을 대하는 국방부의 대응이 영 이상하다. 국방부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들어 추가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한·미 양국군의 전쟁 계획을 폐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정보유출을 확인하고, 수사가 막바지라면서도 유출된 자료가 무엇인지는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기밀 유출을 시인하면 북한이 작계 등 기밀자료를 확보했을 경우 그 내용이 진짜 기밀이라는 점을 확인해주는 셈이 된다는 이유도 댔다. 기밀이 유출된 것도 황당한데 북한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진실을 밝히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신뢰를 잃은 국방부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당혹스럽다. 

군 당국은 지난해 9월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해킹 시도를 처음 발견해놓고도 한 달 반 동안 기밀 유출 사실을 인지하지조차 못했다. 군 당국은 군 전산망이 내·외부망으로 엄격히 분리돼 있기 때문에 작계 등이 들어있는 내부망은 안전하다고 해명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 군의 안보 무능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이다. 

국방부는 안보 현실이 엄중하다며 시민이 반대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는 서두르면서 정작 컴퓨터 안에 들어있는 1급 기밀도 지키지 못했다. 군의 무사안일과 직무태만, 비밀주의 등을 더 이상 방치·허용해서는 안된다. 사이버 안보의 중요성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다. 국방부는 반년 이상 수사를 진행해놓고도 해킹의 전모를 밝히지 못했다. 이런 국방부의 능력과 의지로는 사이버 안보를 지켜낼 수 없다. 국회나 다른 국가기관이 직접 나서 진상을 밝히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매일경제]

​4. 석달만에 슬그머니 돌아온 日대사 한일관계 여전히 복병많다

부산 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일본으로 귀국했던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어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9일 소녀상 문제로 주한 일본대사 일시 귀국 조치라는 초강수를 두었지만 석 달 만에 나가미네 대사를 슬그머니 복귀시킨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지난 3일 나가미네 대사의 복귀 배경을 설명하며 한국 대통령 선거 관련 정보 수집과 차기 정권에 대한 대비, 북한 핵과 미사일 대응을 위한 한일 간 긴밀한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바람직한 견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주한 일본대사의 귀임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한일 관계에는 여전히 많은 복병이 도사리고 있어 걱정스럽다. 가장 민감하면서도 풀기 힘든 사안은 2015년 12월 양국 정부가 발표한 위안부 합의 문제다. 일본은 한국의 차기 정부도 위안부 합의를 계승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등 유력 대선주자들은 재협상 또는 협상 파기를 주장하고 있으니 이 문제로 한일 관계가 다시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국민 여론을 이유로 재협상을 요구하고 일본 정부가 이를 거부한다면 양국 관계는 위안부 합의 이전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위안부와 소녀상 외에도 일본 각료들의 끊임없는 독도 망언과 역사 교과서 왜곡, 일본의 우경화 등 한일 관계를 위협하는 악재는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협력과 연대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핵과 미사일 위협은 물론 중국의 패권주의에 맞서려면 한일 양국의 공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최근 6차 핵실험을 강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일 열리는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다룰 예정이라 한일 공조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안보 문제뿐만 아니라 한일 양국은 다른 분야에서도 협력할 여지가 많다. 우선 소녀상 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진 한일 통화스왑 협상과 고위급 경제협의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 나가미네 대사 복귀를 계기로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를 진전시켜 한국의 차기 정부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5. 미세먼지 원인 오락가락, 이래서야 제대로 된 대책 나오겠나

봄기운이 완연해졌지만 하늘을 뿌옇게 뒤덮은 미세먼지 때문에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올해 들어 3월 말까지 전국 미세·초미세먼지 주의보 발령 횟수는 총 130회로 지난해보다 71.7% 늘어났다. 전 국민이 미세먼지로 불편을 겪고 있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세먼지 주요 원인이 중국 탓인지 국내 탓인지도 각종 통계와 연구자료가 나올 때마다 매번 달라 답답하기만 하다.

환경부는 대기질 예보모델을 돌려본 결과 지난달 17일부터 21일까지 수도권 상공을 채운 미세먼지 중 중국에서 유입된 양이 80%를 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지난해까지 미세먼지 발생 원인이 국내 영향 50%, 국외 영향 30~40% 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최근 조사 결과 초미세먼지의 경우 국내 유발 요인이 더 컸다. 정부의 대응을 보면 미세먼지에 대한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6월 정부가 내놓은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은 화력발전소 감축, 친환경차 도입 확대 등 중국발 미세먼지 차단과는 거리가 먼 국내용 유발 요인 차단에 집중됐다. 중국 요인이 훨씬 큰데 원인 규명을 제대로 못하거나 외교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우려해 중국에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세먼지 저감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미세먼지의 배출원과 배출량을 확실히 파악하는 것이 필수다. 제대로 된 원인 규명 없이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겠는가.

최근 중국발 미세먼지로 인해 한국과 일본에서 2007년 한 해 3만여 명이 조기 사망했다는 국제공동연구진 연구 결과도 나왔다. 정부는 최근 미세먼지 명칭을 변경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을 뿐 정작 미세먼지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중국발 미세먼지 저감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는 중국과의 공동연구를 확대해 원인을 찾고 국내외 미세먼지 기여율 분석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미세먼지 집계에 있어 누락되고 있는 사업장, 공사장, 건설폐기물 노천소각 등의 배출량을 반영해 통계의 정확성을 높여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년 뒤 한국이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률 1위 국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를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중앙일보]

6. 전시작전계획까지 북한 사이버 해킹으로 빼앗기다니

북한의 해킹으로 국방전산망에 있던 전시작전계획이 탈취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국방부는 지난해 12월 초에 국방전산망이 해킹당한 것을 파악했지만 지금까지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말을 아껴 왔다. 그러다가 언론 보도로 작전계획 유출이 확인된 것이다. 작전계획은 북한의 침공에 대비한 군사 2급 비밀로 전시에 우리 군의 행동요령이 담겨 있는 중요한 문서다. 그런 비밀자료가 북한에 빠져나갔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만 있는 국방 당국의 행태는 한심한 수준을 넘어 안타깝다.

북한의 국방전산망 해킹은 지난해 9월 23일 시작됐다. 국방부가 인지한 것은 12월 5일이었다. 국방부는 두 달 이상 까맣게 몰랐다. 북한의 악성코드에 감염된 군 PC는 국방망에 연결된 내부용 700대와 외부 인터넷용 2500대 등 5000대 이상이라고 한다. 이 중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PC도 포함돼 있다. 악성코드에 감염된 PC는 북한이 원하는 자료를 외부로 유출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국방부는 얼마나 많은 군사비밀이 빠져나갔는지 입을 다물고 있다. 공개될 경우 국민 비난과 국제 망신을 우려해서인가.

해킹 과정을 보면 절로 혀가 차진다. 사이버 보안 절차인 ▶인터넷과 국방망 분리 ▶보안점검 ▶전산망 관제 등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이 가운데 하나만 이뤄졌어도 해킹을 막을 수 있었다. 해킹이 시작된 곳도 모든 정보를 보관하는 국방통합데이터센터(DIDC)였다. 이 때문에 국군기무사 등이 DIDC를 관리하는 사이버사령부만 집중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은 국방부 장관이다. 그동안 사이버 능력 향상에 소홀해서다.

사이버사령부가 창설된 2010년 이후 사령관만 여섯 번째다. 그것도 곧 전역할 사이버 문외한을 사령관에 임명해 왔다. 사이버 작전을 해야 할 사이버사령부는 엉뚱한 보안을 맡고 있다. 중국군은 사이버 인력이 10만 명이고 북한도 6000명이지만 우리 군은 고작 600명이다. 사이버 전력을 육성하지도 않았다. 국방부의 사이버 정책도 사이버 작전에 어두운 정보화기획관에게 맡겨 두고 있다.

장차 전쟁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자동화·무인화·로봇화로 이뤄진다. 모두 해킹 대상이다. 북한의 사이버 해킹도 지난해 두 배로 증가했다. 중국은 사이버를 핵처럼 활용하는 추세다. 이제부터라도 국방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이버 보안과 정책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기 바란다. 어느 때보다 사이버 리더십이 중요한 시기다.



7. 공무원·군인연금에 치인 나랏빚

나랏빚이 처음 1400조원을 넘어섰다. 기획재정부의 4일 국가결산 자료를 보면 지난해 중앙·지방 정부의 국가채무에다 공무원연금·군인연금 충당부채 등을 더한 광의의 국가부채는 1433조원으로 집계됐다. 경부고속도로(약 11조원)를 131개 팔아야 갚을 수 있다.

좁은 의미의 국가부채, 즉 국가채무의 증가 속도부터 심상찮다. 지난해 627조원으로 2011년 400조원 돌파 후 5년 만에 600조원을 넘어섰다.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르다. 박근혜 정부가 툭하면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 경기부양에 나서고 증세 없는 복지정책을 고집한 결과다. 물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아직 40%를 밑돌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못 미치는 게 위안이다. 하지만 수년간 증가 속도를 감안하면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더 큰 위기는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적자 구조다. 두 연금의 수입·지출의 틈을 메우기 위해 앞으로 들어갈 세금은 현재가치로 752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국가채무 규모를 능가하는 데다 전체 나랏빚 증가액 140조원의 3분의 2를 두 연금 충당액이 차지했다. 두 연금의 불합리한 수급 개혁이 얼마나 절박한지 수치로 보여준다. 향후 정부 씀씀이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저성장·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복지 수요는 팽창하고, 13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가 부실화돼도 공적자금으로 메워야 한다.

재원 마련 대책 없이 공무원 일자리 늘리기 같은 포퓰리즘 퍼주기 공약을 남발하는 대선을 앞두고 있어 더욱 걱정스럽다. 예산 지출을 통제하는 재정건전화법도 시급하지만 공무원을 함부로 늘리지 못하게 하는 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매일신문]

8. 계속된 가짜 기름 유통, 단속 강화와 막을 제도 서둘러야

대구와 경북경찰이 최근 대구경북에서 많은 양의 가짜 기름을 만들어 차량과 연료용으로 판매한 혐의로 주유소 업주와 석유 판매업자 등을 구속하거나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단속된 이들은 기름값 인상으로 부담을 느낀 차량 운전자나 기름 사용자들에게 값싼 가짜 기름을 수십억원어치 팔아 수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 가짜 석유는 판매자나 사용자 모두 가짜 기름 사용에 따른 뒷감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에 짬짜미했다. 가짜 기름은 주로 경유에다 값싼 등유를 섞은 가짜 경유였다. 지난해 김경수 국회의원이 2012년부터 2016년 8월까지 적발된 1천282건의 가짜 석유제품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도 그렇다. 단속된 가짜 석유제품 1천282건 중 가짜 휘발유는 74건에 그쳤다. 가짜 경유는 1천238건으로 전체의 96%였다.



가짜 경유의 유통도 다양하다. 가짜 경유를 주유소에 대는 흔한 방법 외 이번 적발 사례처럼 불법 개조 차량을 몰고 다니며 팔고 있다. 가짜 경유 제조도 더욱 정교해 단속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정품 경유보다 절반 가까이 싼데다 판매 방법과 가짜 경유 제조 기술의 진화로 가짜 경유 제품 수요와 공급을 효율적으로 막을 방법이 마련되지 않으면 가짜 경유의 유혹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가짜 경유 등 가짜 기름의 악영향은 분명하다. 그런 만큼 당국은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가짜 기름 사용으로 차량 엔진 손상 등에 따른 차량 수명의 단축과 같은 개인적인 손실은 제쳐놓고라도 사회적 해악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무엇보다 환경오염이 그렇다. 가짜 기름을 쓰면 일산화탄소와 총탄화수소와 같은 유해성 대기오염 물질 배출이 5~25% 증가한다. 이를 제대로 걸러낼 수 없어 기준치를 넘는 매연 배출은 피할 수 없다. 게다가 가짜 기름 유통은 불법이다. 수십억원의 거래에도 탈세를 막기 어렵다.



공유 자원인 환경을 미래 세대로부터 빌려 쓰는 입장이라 제조자와 사용자의 자제를 바라고 싶지만 어찌 이를 바라겠는가. 방법은 제조자와 사용자에 대한 단속`처벌 강화 그리고 가짜 기름 제조를 막을 기술적 장치 마련뿐이다. 이는 당국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9. 무섭게 늘어나는 나랏빚…국가 파산, 남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가 부채가 1천400조원을 넘어섰다. 2016년 한 해 140조원가량 늘어 정확히 1천433조원이다. 국가 부채는 국가 채무에다 4대 연금 충당 부채, 공기업 부채 등을 합한 총량 개념이다. 여기에서 공무원`군인연금 충당 부채를 제외하면 반드시 갚아야 하는 국가 채무는 627조원이다. 전년 대비 35조7천억원 늘었다. 국민 1인당 1천224만원의 빚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2016 회계연도 국가결산’을 보면 매년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게 확연하다. 나라 살림살이의 지표인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전년 대비 15조원 감소한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세금 등 세입은 늘었어도 지출은 예상보다 감소한 탓이다.



이처럼 국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은 공무원`군인연금 충당 부채가 90조원 이상 늘어난 데다 재정지출을 메우는 국채 발행이 증가한 때문이다. 그런데 증가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 2011년 국가 채무는 400조원이었다. 5년 만에 200조원이 늘어 이제 600조원을 돌파했다. 증가율로 따지면 G20 국가 중 한국의 부채가 가장 빠르게 늘었다.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해 아직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는 정부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가 어려운 이유다.



더 큰 문제는 나랏빚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이다. 고령화와 저출산, 일자리 예산 등 매년 복지 지출이 늘면서 돈 쓸 데가 수두룩하다. 세금이 덩달아 늘어나지 않는 한 적자는 기정사실이다. 흥청망청 예산 등 재정 누수도 심각하다. 정치권도 혈세 쓰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이러다 ‘쌍둥이 적자’로 허덕이는 미국 꼴 나지 말라는 법 없다.



“2033년쯤 되면 국채로 복지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는 국가재정 파산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한 국회 예산정책처의 분석이 섬뜩하다. 지금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빚으로 떠받치는 사회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예산을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법으로 감시`통제해야 한다. 지난해 입법예고 해놓고 그대로 밀쳐놓은 ‘재정건전화법’ 처리도 급하다. 장기적으로 공적 연금에도 다시 손을 대야 한다. 빚더미 위에 올라앉은 뒤에 허둥지둥하면 이미 때는 늦다.



[이데일리]

10. 빚쟁이 정부, 빚쟁이 국민

지난해 재무제표상 국가부채가 140조원이나 급증하면서 전체 1433조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상 처음으로 1400조원을 넘어선 것이다. 정부가 어제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한 ‘2016 회계연도 국가결산’ 결과다. 이런 추세라면 국가부채가 국가자산(현재 1962조원)을 잠식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비슷한 규모에 육박하고 있는 가계부채와 함께 이른바 ‘쌍끌이 부채’ 위기에 직면한 셈이다.

장부가액이 아니라 실제 현금주의에 입각한 중앙·지방정부 채무(D1)도 627조원 규모를 나타냈다. 2011년 400조원, 2014년 500조원을 넘은 데 이어 다시 2년 만에 600조원을 돌파한 것이다. 국민들이 가계부채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1인당 약 1224만원에 해당하는 국가채무 부담까지 떠안고 있다는 얘기다. 그야말로 ‘빚쟁이 정부’에, ‘빚쟁이 국민’이다.

이처럼 급증하는 국가부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이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라는 사실도 심각하다. 지난해만 해도 90조원 이상 늘어남으로써 전체 부채의 절반이 넘는 752조원에 달했다. 공무원·군인연금 제도가 근본적으로 고쳐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국가부채 누적 속도는 더욱 빨라지게 될 것이다. 신규 임용자가 계속 추가되면서 충담 부담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직 국가부채가 견딜 만하다며 느긋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정부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재정 건전성이 양호한 수준이라고 하지만 안심만 하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지난해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전년보다 15조원 이상 줄어든 것도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더 많이 거둬들였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국민들은 계속되는 불황 속에 마른 수건 쥐어 짜이듯이 이래저래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앞으로 국가재정 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대권 경쟁에 나선 후보들마다 돈을 풀겠다는 복지공약으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하는 중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뚜렷한 복안도 없이 일단 쓰고 보자는 심산이다. 한 번 시행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것이 복지정책이다. 지금 이 순간도 국가부채가 늘어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초동여담] 두릅을 사야 할 때

봄이 오면 생각나는 음식이 여럿 있다. 만물이 깨어나고 활력을 되찾는 계절이라 식욕도 막 생동하고 그러나 보다. 식욕만큼은 겨울잠에서 깨지 않으면 좋으련만, 매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기란 쉽지 않다. 봄이 제철인 음식은 싱그럽게 입맛 돋우는 것들이 많다. 그중 제일 앞줄에 서는 것이 두릅이다. 이맘때 시장에서 두릅을 팔고 있는 가게를 만나면 이제 완연한 봄이구나 싶다.



좌판에 가지런히 놓였지만 제법 기운차게 뻗은 두릅의 싹을 보면 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저것들이 겨우내 움츠려있다 저렇게 솟았구나. 괜스레 쌉쌀한 맛이 입안에 도는 것 같아 침을 꿀꺽 삼키기도 한다. 이걸 살까 말까 머뭇거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데친 두릅을 초장에 찍고 있다. 이렇게 두릅 파는 가게 앞에서 서성이는 발걸음은 이미 봄나들이다.

그런데 팔고 있는 두릅들을 보니 종류가 다양하다. 땅두릅, 참두릅에 개두릅까지 있다. 봄기운을 흠뻑 느끼고 싶은데 자칫 엉뚱한 것을 사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선다. 차이는 뭘까. 두릅은 두릅나무에 달리는 새순을 말한다. 두릅나무 중 독활이라는 나무의 어린 순은 땅에서 난다. 이게 땅두릅이다. 이와 구분하기 위해 나무에서 나는 순은 참두릅이라고 한다. 개두릅은 엄나무의 순이다. 세 가지 두릅에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고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공통된 맛은 쌉쌀함이다. 이 맛이 봄의 기운을 북돋는다. 몸에 활력을 주기 때문에 봄철 춘곤증에도 좋다.

두릅은 주로 회로 먹는데, 회라고 해서 날로 먹는 것이 아니라 데친 두릅을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것이다. 이렇게 먹는 두릅회는 막걸리와 궁합이 잘 맞는다.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을 마신 뒤 잘 데쳐 연한 두릅을 초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고 씹으면 두릅의 싱그러운 쓴맛과 초고추장의 새콤한 맛에 막걸리의 취기가 어우러져 제대로 봄의 정취가 느껴진다. 그 한입에 두릅이 왜 '산채의 제왕'이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다.

느긋한 주말 오후 공기 좋은 산자락에 자리 잡은 집 앞 마당에서 먹는다면 그 느낌은 더욱 강렬할 것이다. 하늘은 파랗고 볕마저 따사롭다면, 그래서 누구나 눈 지그시 감고 고개 주억거리는 완벽한 봄날이라면, 그 한입에 가늠할 새도 없이 혀 위로 쏟아지는 봄기운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한 날이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였고, 싱싱한 참두릅이 있었고, 정읍에서 공수한 막걸리가 있었다. 그날 숯 피워 한우 등심도 굽고 장어도 구웠는데 또렷하게 기억에 아로새겨진 것은 두릅이 준 봄의 맛이다. 무르지 않게 두릅을 살짝 데쳐 냈고 초장은 따로 만들었다. 준비를 마쳤다면 두릅의 쌉쌀함과 초장의 새콤함에 막걸리의 적당한 산미가 어우러질 차례다.



여기에 피부에 와 닿는 봄기운 보태려면 밖으로 나서야 한다. 소박한 돗자리면 충분하다. 이 음식과 자연의 조화는 다음 한입, 다음 한 잔을 부른다. 그러다보면 봄에 취한다는 말이 실은 이렇게 봄기운 흠뻑 담은 음식 곁들이면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을 줄인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날 봄에 취한 아내의 얼굴, 그 해사하게 웃던 모습은 매년 봄이 오면 생각나는 장면이 됐다. 두릅은 몸에 활력을 주고 피로를 풀어준다. 독특한 향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백설희는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고 노래했지만 매년 봄은 오고 그 봄날의 느낌은 언제까지나 선연할 것만 같다. 그래서 봄은 스트레스에 지친 아내를 위해 두릅을 사야 할 때다.



2. [세계일보][신병주의 역사의 창] 문종이 앵두나무 심은 뜻은…

오늘은 식목일이다. 식목일은 2006년까지 공휴일이었으나,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가장 만만한(?)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다. 아무래도 국토 황폐화를 막기 위한 산림녹화 사업이 어느 정도 정착되어 식목일을 따로 지정할 필요성이 사라진 것도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식목일에 나무 심기가 전국적으로 장려되던 시기 필자도 초등학교 4학년 식목일에 작은 동산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은 것이 특히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그 나무를 자신의 나무로 정해주고 매일 물을 주게 했는데, 졸업 후 30여 년 만에 찾은 그곳에 무성히 자란 나무를 보고 큰 보람을 느낀 적이 있다. 

‘문종실록’에는 문종이 왕세자 시절 한 그루의 앵두나무를 심은 기록이 나온다. 앵두는 앵도(櫻桃)라고도 하는데, 꾀꼬리가 잘 먹고 생김새가 복숭아와 비슷하다 하여 ‘앵도’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효심이 뛰어난 문종은 세종께서 몸이 편안하지 못하자 친히 복어(鰒魚)를 베어서 올려 세종이 이를 맛보게 하였고, 세종은 기뻐하여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문종은 또 경복궁 후원(後苑)에 손수 앵두나무를 심어 직접 물을 주면서 정성껏 길렀다. 그리고 앵두가 익는 철을 기다려 세종께 올렸다. 세종은 이를 맛보고서 “외간(外間)에서 올린 것이 어찌 세자가 손수 심은 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며 앵두를 즐겁게 먹었다고 한다. 

문종의 효심이 깃든 나무여서인지 창덕궁과 창경궁에도 앵두나무가 많이 심어졌고, 눈이 밝은 관람객이라면 현재도 궁궐 곳곳에 숨어있는 앵두나무를 찾을 수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현재의 궁궐 과수원에 해당하는 장원서(掌苑署)에서도 앵두를 수확해서 주로 종묘 제사에 올리는 데 활용하였다. 성종 때에는 장원서에서 수확한 앵두가 ‘살이 찌고 윤택하지 않다’는 이유로 담당 관리가 문책을 당하기도 하였다. ‘중종실록’에는 1512년 여름에 ‘앵두를 승정원, 홍문관, 예문관에 내렸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앵두 수확은 궁궐 신하들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문종은 8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어 29년간 세자로 있으면서, 질환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세종을 잘 보필하면서 많은 업적을 만들어 낸 숨은 공로자였다. 세종의 업적으로 알려진 측우기 발명, 4군6진 개척에 활용한 화차(火車) 발명, ‘고려사’ 편찬은 실상 문종이 주도한 것이었다. 1450년 2월 세종이 승하하자, 문종은 예법을 다해 헌신적으로 2년3개월간의 삼년상을 치렀다. 그러나 이것은 건강 악화로 이어졌고, 문종이 3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문종실록’에도 “세종이 병환이 나자 근심하고 애를 써서 그것이 병이 되었으며, 상사(喪事)를 당해서는 너무 슬퍼하여 몸이 바싹 여위셨다. 매양 삭망절제(朔望節祭)에는 술잔과 폐백을 드리고는 매우 슬퍼서 눈물이 줄줄 흐르니, 측근 신하들은 능히 쳐다볼 수가 없었다”는 기록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식목일인 오늘 아버지 세종을 위한 문종의 효심을 떠올리면서, 주변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3. [중앙일보][취재일기] 유임만 있고 개선은 없는 슈틸리케 경질 논란

한국 축구는 더 이상 ‘아시아의 호랑이’가 아니다. 프로축구 무대에선 천문학적인 자금을 앞세운 중국과 중동에 사실상 주도권을 내줬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9회 연속 본선 진출은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아시아 최종예선에 참가 중인 한국의 현재 상태는 ‘빨간불’이다. 7경기를 치른 현재 4승1무2패, 승점 13점으로 이란(17점)에 이어 A조 2위다. 본선 자동 진출이 가능한 순위(각 조 2위까지)라지만 3위 우즈베키스탄(12점)과는 승점 1점 차라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경기력은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원정 3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1무2패에 그쳤다. 홈에서 열린 4경기는 모두 이겼지만 매번 한 골 차 박빙의 승부였다. 앞으로 3경기를 남겨 둔 우리나라가 조 2위를 지킬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단조로운 전술과 뻔한 선수 기용, 남 탓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울리 슈틸리케(63·독일) 축구대표팀 감독에 대해 경질 여론이 들끓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의 판단은 달랐다. 3일 기술위원회에서 난상토론 끝에 유임을 결정했다. 이용수(58) 축구협회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은 “2년7개월의 재임기간 중 최근 몇 경기만으로 감독의 지도력을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문제는 슈틸리케 감독의 지도력에 대해 축구협회와 대표팀 구성원들의 해석이 다르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표팀 관계자는 “선수들은 툭하면 남 탓하는 감독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전술과 선수 선발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축구협회 설명과는 달리 지난 2년여 동안 감독과 선수 간 불신의 골만 깊어졌다. 감독 교체를 통해 선수단 내부에 퍼진 부정적 분위기를 일신할 기회가 있었지만 축구협회는 이를 거부했다.

축구협회는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코치진 보강, 대표팀 운용방식 개선, 체계적 지원 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프로축구연맹의 협조를 얻어 대표팀 소집기간을 며칠 늘려 보겠다”고 밝힌 게 전부다.

월드컵 본선 진출은 한국 축구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일각에서는 월드컵 본선행이 좌절되면 축구협회 예산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K리그 흥행도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슈틸리케 유임을 결정한 뒤 “한국 축구는 지금껏 위기상황을 잘 극복해 왔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축구협회의 현실 인식이 그래서 걱정스럽다.



4. [매일신문][매일춘추] 심리분석과 60갑자의 재조명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그레고리력)은 조선 말 갑오경장부터 사용되고 있다. 그 이전에는 이 땅에는 두 가지의 달력이 사용됐다. 날짜를 표시하는 태음력과 농사를 짓고자 24절기를 기준으로 하는 태양력이다. 60갑자는 태음력과 태양력이 함께 표시되는 동양의 달력 구조인데 그 역사는 정확하지 않다.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부터라고 하는 것을 보면 기원이 정확하지 않지만 5천여 년 전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



현대사회에서는 60갑자의 달력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할머니`할아버지들을 위한 큼직한 글씨의 달력 속에 일진(日辰)이라는 것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 현대의 농부들은 과학적 영농법을 사용하므로 더는 60갑자의 달력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60갑자의 달력을 사용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데 바로 역술인들이다. 그들은 연월일시를 60갑자로 표현된 것을 사주(四柱)라고 하여 인생의 길흉화복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세상의 구조가 복잡해져서 사주에 나타난 길흉화복의 내용만으로 다 설명이 어려워지면서 신뢰가 떨어지고 심지어 미신이라고 폄하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같은 사주의 소유자(1962년 9월 25일 申시 출생)는 전국에 약 100여 명이 있는데 그들이 같은 길흉화복을 겪을까? 

필자는 ‘시대가 달라지면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60갑자를 재조명하는 것으로 온고지신(溫故知新)에 의미를 둔 작은 실천을 하고 있다.



농작물은 봄`여름`가을`겨울에 따라 싹이 트고 성장하며 열매를 맺어 마지막에는 잎사귀가 다 떨어지고 겨울을 지난다. 그런 과정의 이치가 60갑자에 담겨 있으므로 그것을 사람의 심리구조와 연결하면 각 개인에 고유한 성격의 특성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분석을 정확하게 하면 강점을 통해 직업이나 진로를 알 수 있고 보완점을 인식해 아동의 학습지도법과 개별적 심리치유의 방법과 대안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심리분석법의 주류는 서양의 MBTI 방식인데 각자 사람이 가진 성격 구조를 몇 가지 유형별로 통합적이고 획일화된 내용으로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정확할까? 인문학에 대한 깊이는 동양이 서양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은 서양에서도 인정하는 추세가 아닌가? 

동양의 많은 정신적 문화적 유산이 서양문물에 가려져서 빛을 잃는 경우가 많다. 옛것이라고 오래된 구식이라고 함부로 버리지 말자. 오천 년 역사와 함께 온 것이라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고 어쩌면 그 속에는 세상을 보는 지혜가 담겨 있을 수 있다.



이런 문구가 떠오른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5. [한국일보][고은경의 반려배려] 남극 생선 '메로' 씨 말리는 한국

일식집에 가면 ‘메로’구이 메뉴가 있다. 부드러운 흰색 속살에 달콤한 양념이 더해져 입맛을 돋운다. 반찬으로 나오는 경우엔 머리 부위가 나와 살이 많지는 않다. 따로 주문하려고 가격을 보면 다른 생선구이보다 비싸 망설여진다. 워낙 비싼 생선이다 보니 지난해 가을에는 메로 가격 5분의 1에 불과한 기름치를 메로로 속여 팔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메로가 비싼 이유는 그만큼 귀한 생선이기 때문이다. 남극 심해에 사는 메로(파타고니아 이빨고기)는 멸종위기종으로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가 어획량, 조업지역을 정해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대략 9∼20㎏ 나가지만 최대 2.3m 길이에 200㎏까지 자라기도 하며 수명은 50년쯤 된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먹던 메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얼마 전 방문한 인천 송도에 있는 극지연구소에서 우리나라가 메로에 미치는 영향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오는 11월 남극 장보고 기지에서는 처음으로 펭귄을 비롯한 남극 야생 생물 서식 연구를 시작할 예정인데, 여기에는 우리나라가 메로를 남획하는 점이 일조했다.



우리 어선들은 지난 2011년부터 남극해에서 메로와 크릴을 불법으로 조업해 2013년 예비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됐는데 해양 보전과 연구에 기여하고, 불법조업을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노력으로 2015년 4월에서야 해제됐다. 즉 남극 생태계 보전을 위한 연구는 선택이 아닌 의무였던 것이다.



우리가 왜 파타고니아 이빨고기를 메로라고 부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언뜻 들으면 일본어 같기도 하다. 실제 일본에서도 메로로 통용된다. 하지만 메로는 일본어가 아니라 스페인어로 지중해에 주로 사는 농어과 식용어를 뜻한다. 주 어획국인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는 메를루짜 니그라(Merulza Negra.검은 대구)라고 불린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일본판에 따르면 일본에선 2003년 이전 긴무츠(銀ムツ. 은 게르치)라는 이름으로 유통됐는데 다른 게르치과와 혼동된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대신 남미 국가의 영향을 받아 메로라고 부르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이재봉 박사는 우리나라도 어선들이 거래하는 남미 국가들이 메를루짜, 메로라고 부르는 데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 어선들이 불법어업국이라는 오명을 쓸 만큼 메로를 많이 잡는 것에 비해 우리 밥상에 자주 오르지 않는 이유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잡은 메로의 대부분을 미국이나 일본에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메로의 몸통을 주로 스테이크로 먹고 있다고 한다. 고급 식당에 갔을 때 메로 머리구이만 나오는 게 그제야 이해가 됐다. 

일본과 미국에서 주로 먹는 메로 소비량의 80%는 불법 어획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조사가 있다. 우리나라는 주 소비국은 아니지만 수익을 위해 불법어업국이라는 낙인이 찍히면서도 두 나라의 소비를 가능하게 해 메로의 멸종을 앞당기고 있다. 미국에선 소비자들의 구매가 해양생태계를 보존할 수 있다며 메로 불매운동도 벌인 바 있다. 이제는 우리도 메로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잡혔는지 제대로 알고 먹어야 한다. 또 외화벌이 품종이라며 메로를 마구잡이로 잡아 수출할 게 아니라 오히려 보존하는 데 힘을 써야 할 때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저속하고 경박한 야당 전·현직 의원의 박 전 대통령 조롱

한국 정치인이 뱉어내는 말의 저속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 저속한 말이 나올 때마다 여론의 비판이 뒤따랐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저속한 말이 마치 재치와 유머라도 되는 듯 착각하는데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과 정청래 전 의원의 박근혜 전 대통령 조롱 발언은 이를 잘 보여준다.



안 의원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진행 중이던 시간에 인터넷TV와 인터뷰에서 “그분은 변기가 바뀌면 볼일을 못 본다. 서울구치소장이 오늘 빨리 변기 교체를 해놔야 한다.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니라, 인도적 차원이다”라고 했다. 같은 당 송영길 의원이 인천시장으로 있을 때 국정간담회 참석차 인천을 방문한 박 전 대통령을 위해 시장실 변기를 청와대가 교체했다는 일화에 빗대 박 전 대통령을 조롱한 것으로 보인다. 송 의원도 이 일화를 전하면서 박 전 대통령을 ‘변기 공주’라고 한 바 있다.



정 전 의원은 영장 발부 뒤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이) 제일 괴로운 과정은 머리핀을 뽑는 것이 아닐까 싶다”며 안 의원의 조롱에 맞장구를 쳤다. 박 전 대통령이 평소의 헤어스타일인 올림머리를 풀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을 희화화(戱畵化)한 것으로, 대통령에서 수인(囚人)으로의 전락을 고소해하는 듯한 인상을 물씬 풍긴다.



이런 말들은 안 의원의 말이 폭소를 자아낸 것처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는 환영받거나 유머 감각이 있다는 호평을 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로 대두한 국민 통합에 역행하는 저급한 정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을 받고 구치소에 수감된 것은 개인적 불행을 넘어 국가적 불행이다. 국민 통합을 위해서는 국민의 정신적 상처를 덧나게 해서는 안 된다. 안 의원과 정 전 의원의 말은 그 상처를 더 깊이 후벼 판다. 이렇게 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안 의원과 정 전 의원은 자신의 말들을 재치있는 유머로 여길지 모르지만 국민에게는 그들 심성의 저속`경박`황폐함을 재확인해줄 뿐이다. 비판하고 조롱하되 격과 품위가 있어야 한다. 그런 것 없는 비판과 조롱은 ‘언어 살인’이다.



2. 뚜렷한 수출 회복세 반갑지만 아직 갈 길 먼 경기 회복

올 들어 수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15년과 지난해 2년 연속한 수출 감소로 성장에 발목이 잡혔지만 올해는 석 달 연속해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일 만큼 수출 증가세가 뚜렷하다. 특히 3월 수출액이 489억달러를 기록해 2년 3개월 만에 최대 실적을 냈다. 오랜 부진을 완전히 털어낸 것인지는 더 두고 볼 일이나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 연속 수출이 증가한 것은 반가운 신호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 호조세에 힘입어 1, 2월 대구경북의 수출도 모두 증가했다. 모처럼의 훈풍이다. 무역협회 대구경북본부가 2일 발표한 ‘2월 수출입 동향 보고’에 따르면 대구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9.6% 증가한 5억6천만달러를 기록했다. 산업용 기계와 공구, 자동차부품, 직물 부문이 수출을 견인했다. 경북 수출액도 21.4% 증가한 34억8천만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수출 증가세 하나만으로 한국 경제 전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섣부르다. 꽃망울을 터뜨렸다고 완연한 봄을 말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사드 배치를 겨냥한 중국의 무분별한 경제 보복과 미국의 금리 인상, 보호무역 기조 등 대외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또 5월 조기 대선과 맞물려 정부의 리더십 약화와 흐트러진 공직사회 기강도 경기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다. 이런 변수들을 완전히 뛰어넘거나 그 파급력을 최소한으로 낮추지 않는 한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말하기가 힘든 이유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말해주듯 2%대에서 제자리걸음을 할 가능성이 높다. 10%를 넘나드는 높은 실업률과 과도한 가계 부채, 가계소득 감소, 얼어붙은 소비 심리 등 곳곳에 경기 회복을 가로막는 암초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던 수출이 유일하게 회복 기미를 보여 약간이나마 숨통이 트이기는 했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입에 올리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수출뿐 아니라 소비, 기업 투자, 고용, 가계소득 등 경제 전반에 골고루 햇살이 들도록 지금부터 분위기를 바꿔 나가야 한다. 정부는 정치 일정과 상관없이 경제 활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정책 발굴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이데일리]

3. 치졸한 사드보복, ‘깡패’ 중국의 민낯이다

우리 정부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방침에 반발한 중국의 보복조치가 갈수록 치졸해지고 있다. 비타민 성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사탕을 의약품으로 재분류하라며 통관을 거부하고 수출품에 붙은 부산의 영문 표기를 ‘PUSAN’이 아니라 ‘BUSAN’으로 바꾸라며 통관을 지연시키는 등 억지를 부리고 있다. 심지어 날짜 표기(10-03-2017)에서 하이픈(-)도 빼라는 등 막무가내라고 한다. 국제사회에서 리더국인 ‘G2’라고 부르기 민망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덩치만 큰 ‘깡패국가’의 민낯이다.

뿐만이 아니다. 롯데마트의 75개 지점 영업정지 처분 기한이 속속 끝나 가지만 영업정지를 풀기는커녕 또 다른 꼬투리를 잡아 재차 연장하고 있다. 게다가 오는 16일 열리는 제7회 베이징 국제영화제에서는 아예 한국 영화를 상영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간 협력을 위한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베이징시장 면담계획이 중국 측의 갑작스러운 거부로 무산되기도 했다. 한한령(限韓令), 관광중단, 기업 옥죄기 등에 이어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도 막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제품 불매운동과 반한(反韓)시위도 날로 험악해지고 있다. 일부 중국 유통업체는 한국 신제품 입점을 거부하고 있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시위와 불매운동에 동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진다. 랴오닝성 선양의 한 호텔에는 태극기를 바닥에 깔아놓고 “한국인을 밟아 죽이자”는 팻말을 세웠다고 한다. 시위가 자유스럽지 않은 중국에서 당국의 묵인 없이는 어려운 과격한 행동들이다. 누가 봐도 당국이 뒤에서 부추긴 사드 보복임에 틀림없다.

문화 교류를 막고 경제적 보복조치를 통해 사드배치를 철회시키겠다는 중국의 소아적 발상은 강대국으로서의 품격에 상처만 남기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정부는 중국에 대해 치졸한 보복조치를 즉각 중단하도록 엄중히 경고하는 등 전면 대응에 나서야 한다. 불법적인 보복행위를 세계무역기구(WTO)의 안건 제기에 그치지 말고 정식 제소해야 한다. 이틀 뒤로 다가온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북핵 억제를 위한 중국의 협력을 끌어내는 것은 물론 사드보복 문제도 반드시 거론하도록 외교적 노력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4.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 대한 기대와 우려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 후보로 정식 선출됐다. 어제 열린 수도권 순회경선에서 60.4%의 득표율로 누적 과반을 채움으로써 후보로 최종 결정된 것이다. 이미 탄핵정국이 시작되고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면서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다른 경쟁자들보다 월등한 차이로 앞서 왔다는 점에서 진작부터 예견된 결과다. 이번 후보 지명으로 대권 고지에 한 발 더 성큼 다가선 셈이다.

그래도 아직은 후보로서 더 가다듬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이제 불과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마지막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검증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대한민국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갈 것이냐 하는 미래 청사진이다. 문 후보가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데다 지난 대선에도 출마했었다는 점에서 국정에 대한 식견이 탄탄한 것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땅바닥에 떨어진 국정 리더십을 회복하고 정부 기능을 효율화하는 방안이 시급하다. 그런 점에서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도 좀 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세금을 들여 공공 일자리를 만드는 방안은 어차피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분배 정책도 중요하지만 성장 정책에 근거한 발전 전략의 뒷받침 없이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문 후보로서는 국방·안보 분야에 대한 일반의 부정적인 인식도 조속히 가라앉혀야만 한다. 특히 사드 배치에 따른 논란과 중국의 보복조치가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국방·안보에 있어서만큼은 여야와 정당의 구분 없이 일치된 목소리가 요구된다. 문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를 거둔다 하더라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다.

대선이 본격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반문(反文)’ 연대 움직임이 거세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상대 진영의 후보단일화 작업이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해도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바짝 추격하고 있는 모습이다. 문 후보가 그동안의 우세를 지켜 선거에 승리하려면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매일경제]

5. 마침내 문 연 인터넷은행 한국 금융의 진짜 메기 되게 하라

국내 첫 인터넷은행 케이뱅크가 어제 문을 열었다. 카카오뱅크도 곧 뒤따를 것이다. 2015년 11월 예비인가를 받은 후 거의 1년 반이 지나는 동안 산고도 컸다. 하지만 1992년 평화은행 이후 사반세기 만에 처음 보는 새 은행이라 기대가 크다.

인터넷은행은 전통적인 은행들과 유전자부터 다르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서비스를 할 수 있으며, 지점과 창구 인력을 없애 원가를 줄인 만큼 예금 금리는 높이고 대출 금리는 낮출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경쟁력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맞춤형 서비스를 개발하고 기존 금융회사들이 소홀히 했던 청년, 소상공인, 서민층 대상 중금리 대출로 틈새 시장을 파고들 수도 있다. 

이러한 인터넷은행은 한국 금융을 휘저을 메기가 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인터넷은행들은 정보기술과 금융을 접목한 과감한 혁신을 통해 오랫동안 매너리즘에 젖어 있던 기존 업계의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해야 한다. 인터넷 은행들이 촉발한 새로운 차원의 경쟁이 금융의 판을 흔들고 비효율을 제거해 한국 경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자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인터넷은행의 빠른 착근을 위해서는 우선 비대면 실명 확인과 간편한 인증, 24시간 서비스 과정에서 정보 보안 문제나 시스템 불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또한 핀테크 기업으로서 성장을 가속화하려면 단순히 기존 시장을 잠식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혁신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인터넷은행들이 진짜 메기가 되도록 하려면 제도적 보완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과감한 초기 투자와 튼튼한 자본력 확보를 위해서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제한(은산분리) 완화가 시급하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정보통신 기업들(KT와 카카오)의 의결권 지분을 지금처럼 4%로 묶어두면서 인터넷은행들이 금융의 메기가 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국회는 더 이상 인터넷은행의 발목을 잡지 말고 산업자본의 의결권 지분 한도를 34~50%로 늘려주는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6. "북핵 우리가 해결하겠다"는 트럼프, 의논 대상도 못되는 한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 것"이라고 중국에 최후통첩성 경고를 했다. 한반도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랑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는데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미·중 양국이 두는 바둑 행마를 지켜만 봐야 하니 딱한 노릇이다. 

트럼프 발언은 오는 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왔다. 북핵 문제가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카드를 슬쩍 내비친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전해지는 트럼프의 대북 상황인식은 매우 명확하다. 그는 중국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미국 단독으로 북한을 상대할 것이냐는 질문에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전적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미국은 이미 북한을 어떻게 다룰지 구체적인 옵션까지 마련한 단계로 보여진다. FT에 따르면 미 국가안보회의(NSC)는 트럼프가 취임 직후 주문한 '대북옵션 리뷰'를 막 완료했다고 한다. 

이 리뷰에 담긴 옵션이 어떤 내용일지는 섣불리 예상하기 어렵다. 미국 조야에서 줄기차게 거론돼 온 대북 선제타격이 포함됐을 수도 있고 아니면 협상테이블을 미·북 양자 간 담판 구조로 가져가는 내용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심대하다. 문제는 한반도 운명을 좌우하는 이 중차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과연 우리 의견이 반영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 후 누차에 걸쳐 북한 문제를 거론하면서 한국을 주요 당사자로 언급한 적이 거의 없었다. 주로 중국의 책임을 강조하고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는 일본에 대한 지지를 먼저 언급했다. 지난 2월 북한이 북극성 2형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트럼프의 첫 반응은 "일본을 100%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과거 미국 대통령들은 최소 형식상으로는 한국을 최우선 당사자로 대우했다. 북한 핵시설 폭격을 검토했던 빌 클린턴 행정부는 김영삼 대통령의 반대 의견을 존중해 계획을 접기도 했다. 지금은 의견 반영은 고사하고 미국 쪽 기류가 한국 측에 그때그때 전달되는지도 의문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최근 방송에 나와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은 들어본 적이 없는 용어"라고 했는데 그 자신감의 근거를 알 수가 없다.



[중앙일보]

7. 인터넷은행의 ‘은산분리’ 족쇄부터 걷어내야

연중무휴 24시간 영업하는 국내 제1호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가 출범했다. K뱅크는 계좌를 개설할 때도 은행에 갈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에 신분증만 찍어 올리면 공인인증서 없이 계좌를 만들 수 있어서다. 경조사비를 보낼 때도 좋다. 상대방 계좌번호를 몰라도 ‘퀵송금’ 서비스를 통해 문자메시지만으로 상대방 계좌에 송금할 수 있다.



현금을 찾을 때는 은행보다 더 많은 전국 1만여GS25 편의점에 가면 된다. 체크카드 없이도 계좌번호만 입력해 입출금하는 무카드 서비스도 있다. 인터넷은행은 점포와 창구인력이 없으니 시중은행보다 예·적금 금리가 높고 대출금리는 낮다.

이렇게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잘 굴러갈지는 미지수다. ‘은산(銀産)분리 족쇄’에 사로잡혀 있어 자본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K뱅크는 자본금 2500억원으로 출범했지만 시스템 구축 등에 이미 상당액을 썼기 때문에 곧 증자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은행에 대한 산업자본의 소유한도 10%(의결권은 4%)에 묶여 있다. 재벌의 계열 은행 돈 빼먹기를 방지한다는 취지에서 정치권이 은산분리 원칙을 고수하면서다.

하지만 이런 규제는 시대착오적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금융산업에도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한 핀테크(금융+기술)가 본격화하면서 금융서비스의 디지털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미국은 인터넷은행이 20개가 넘는다. 일본도 오래전에 인터넷은행이 출범했고, 중국에서도 지난해부터 인터넷은행이 잇따라 출범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ICT 기업만이라도 보유지분을 50%까지 허용해 달라는 법안이 발의돼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 변화에 따른 시대적 대세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본금 확충이 어려우면 운영자금 부족으로 자칫 대형 금융사고가 날 수도 있다. 과도한 금융 규제가 국내 은행 경쟁력을 우간다보다 뒤떨어지게 만들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이 금융후진국에서 맴돌지 않으려면 인터넷은행만이라도 규제의 족쇄부터 풀어줘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8. 하루라도 일해 보고 싶다는 ‘청년 탈진세대’

취업 경험이 한 번도 없는 20, 30대가 올 2월 11만2000명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99년 이래 최대로 나타났다. 작년보다 5.7% 늘었고,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과 비교해도 35%나 많다. 취업난에 빠진 20대는 전체 연령대 중 정서적 탈진이 가장 심하다는 것이 동아일보 ‘2020 행복원정대’ 취재팀의 분석 결과다. 

취업 무경험자가 늘어나는 것은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이다. 단시간 아르바이트나 이른바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 중소기업, 비정규직에 지원한다면 취업률이 일시적으로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딱 하루만이라도 번듯한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것이 청년들의 바람이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기성세대의 주문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때 통할 수 있다. 

청년 실업의 심각성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노동시장 개혁과 직업교육 확대, 서비스산업 활성화 등이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4월 23일 1차, 5월 7일 결선 투표가 예정된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공무원을 줄이고 그 예산으로 직업교육을 늘리자는 에마뉘엘 마크롱 무소속 후보가 ‘청년을 위한 대통령’이라고 소개했다.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을 지지하는 청년들이 많지만 공공부문 확대 공약은 되레 취업을 더 어렵게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한민국의 차기 정부를 이끌 대통령은 청년에게 당의정 같은 공약이 아닌 지속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비전을 보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조선일보]

9. 주한 일본 대사 85일 만의 복귀

부산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일본으로 돌아갔던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 대사가 오늘 복귀한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은 3일 "한국 대선 정국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한·일 위안부 합의 준수를 직접 요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가미네 대사의 귀임은 일시 귀국 85일 만이다. 양국 갈등으로 인한 일본 대사 공백으로는 최장 기간이다.



부산 소녀상 설치는 우리 민간단체 차원에서 진행된 것으로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기는 원천적으로 어려운 문제였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대사 소환이라는 극단적 처방을 통해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아베 총리 지지율 제고를 위해 한국 때리기가 이어졌다. 그런데 북한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면서 한국과의 안보 협력 필요성이 높아졌고,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으로 양국 관계 앞날이 불투명해지자 슬그머니 입장을 바꿨다. 두 나라 관계가 이렇게 가벼워서는 안 된다.



한·일은 지난 4년여간 단절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왔다. 전적으로 일본만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친일 대 반일'의 단선적 접근으로는 일본과의 다층적 관계, 격변하는 동북아 질서에 제대로 대처해 나갈 수 없다. 그런데도 유력 대선 주자들은 그런 한계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지금 보수·진보 후보를 막론하고 위안부 합의 파기 또는 재협상을 주장한다. 한번 맺은 국가 간 합의가 정권이 바뀐다고 뒤집힌다면 그것도 큰 문제다.



일본 대사와 함께 주한 미국 대사가 석 달째 공석인 것도 비정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러·일 대사를 이미 지명하고도 한국 대사만 내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 가운데 그 누구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서울신문]

10. 늘어나는 정신질환자 범죄 대책 지체 말아야

지난주 인천에서 10대 소녀가 초등학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인 이 소녀는 조현병 환자였다. 우울증이 심해 고교를 자퇴했는데 최근에는 조현병으로 악화돼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앞서 지난 2월 조현병을 앓는 10대 아들이 어머니에게 흉기를 휘둘러 존속살해 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도 했다.



잔인한 범죄 행위를 보면 도저히 어린 10대들의 범죄행위라고 여길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그 원인이 온전치 못한 정신에서 비롯됐다고 하나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결과를 보면 시민들의 불안감은 클 수밖에 없다.

조현병이란 환청이나 망상 등의 증상을 보이는 정신분열증이다. 정신질환자 중에는 약물치료 등으로 효과를 보기도 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적절한 치료를 거부하거나 제때 관리를 받지 못해 사회활동에 지장을 받거나 심하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나 사회의 특단의 선제·예방 조치가 필요하다.

검찰청에 따르면 범죄로 기소된 정신질환자는 2006년 2869명에서 2015년 3244여명으로 10년 사이 13% 증가했다. 살인·강도·성폭력 등 강력 범죄로 재판에 넘겨진 정신질환자만도 160명에서 358명으로 123%나 급증했다. 이런 통계가 아니더라도 지난해 5월 서울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범인도 조현병 환자였음을 온 국민이 기억한다. 지난해 5월 수락산 여성 살인 사건, 10월 서울 오패산 터널 인근 경찰관 살해 사건 등도 조현병 환자의 범죄들이다.

하지만 조현병 환자들도 보호받을 인권이 있고,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렇기에 조현병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격리시킬 수도 없다.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서도 안 된다. 문제는 충돌 조절에 실패한 이들이 공격적·극단적인 행동을 벌여도 우리 사회가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를지 아무도 모른다. 환자 자신도 모를 것이다. 환자 가족에게만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정부가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애꿎은 피해자들만 나올 수 있다. 정신질환자들은 용서 못할 살인죄를 저지르고도 무죄 판결을 받거나 감형되기도 한다. 피해자 유족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일이다. 더구나 다음달부터 정신질환자들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도 어려워진다. 병원이나 시설에 입원해 있던 정신질환자들도 상당수 사회로 복귀할 것이다. 정신질환자들의 관리 대책을 더 지체할 수 없다.





주요신문칼럼



1. [매일경제][사랑에 대한 단상] 영화 '러빙'

영화 ‘러빙’은 사랑으로 꽉 들어차 있다. 1958년, 미국 버지니아 주에 살았던 한 부부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에는 울분과 애틋함, 감동이 뒤섞여 있다.

백인 남성 리차드 러빙과 흑인 여성 밀드레드는 당시 위헌이었던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을 저지른다. 워싱턴 D.C에서 결혼하고 돌아온 둘에게 주 법원은 25년 간 버지니아를 떠나라고 명령한다. 둘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불안한 삶을 이어간다. 몇 차례 귀향을 시도하지만 금세 체포되기 일쑤다.

이 부부의 삶은 위태롭고 어둡다. 지인은 물론 가족들의 미움까지 받는 이들의 삶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큰 땅 위에 집을 짓고 살겠다던 러빙의 꿈이 물거품화된 것처럼, 아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누리고픈 결혼 생활의 로망도 전무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빙과 밀드레드의 사랑은 변치 않는다.

부부는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인권 운동의 끈을 놓지 않는다. 결국 이들의 노력으로, 1967년 타 인종 간의 결혼금지법이 위헌으로 폐지된다. 이는 사랑의 승리다.

이 사건이 있었던 당시보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인종 차별은 존재한다. 여전히 부당한 대우와 그에 따른 심신의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러빙’ 속 러빙 부부는 끊임없는 외부 공격들에 시달리면서도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았고, 승리를 이뤄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연거푸 등장하는 사랑의 훼방꾼들 때문에 지치기 일쑤였다. 실제 러빙 부부는 어땠겠는가. 하지만, 이 모든 어둠을 겪었기에 승리의 빛을 맛볼 수 있었던 거다.

‘러빙’은 막강한 사랑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름도 낭만적인 러빙이 위헌을 합헌으로 바꾼 힘 역시 사랑에 있다. 사랑은 죄가 아니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죄다. 아름답고 위대한 실화를 다뤘다는 것만으로도 ‘러빙’의 감상 이유는 충분하다. 진한 러브 신(scene) 하나 없이도 충분히 가슴 벅찬 로맨스를 느끼게 만들어준 이 영화, 감격이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 광화문 멧돼지와 북한산 들개

언제부터인가 개를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장난감이나 소유물의 개념인 애완동물이 아니라 가족 또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대접한다는 의미다. 대선 주자들은 반려동물을 위한 공약까지 내걸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대선 때 이미 동물복지 공약을 했다.



손학규, 이재명, 안희정 등 대부분의 대선 주자도 반려동물의료보험 도입 등 동물복지를 위한 공약들을 내놓았다. 이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일 수 있겠지만, 유권자들의 상당수는 동물을 소중한 생명체로 여기며 애정을 쏟고 있음은 틀림없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인간에게 착취당하던 동물들이 돼지의 지도로 혁명을 일으켜 인간들을 내쫓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지만 또 다른 독재를 낳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 출신의 철학자 마크 롤랜즈는 ‘동물의 역습’이란 저서에서 “동물들도 아픔을 느끼고, 슬픔과 기쁨 등 인간과 똑같은 희로애락을 느낀다”며 동물을 해치는 행위를 비판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행위가 동물을 사랑하는 행위인지, 학대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시한다.

개와 고양이가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면? 서울 북한산 인근에는 주인 잃은 반려견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등산객과 주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밤이면 주택가로 접근하는 개들도 있다. 전염병도 우려된다. 들개의 수는 족히 100여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한 자치구는 마취총을 사용, 한 마리를 잡는 데 50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붙잡힌 들개는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2주 동안 주인을 기다리다 대부분 안락사된다.

그저께에는 서울 인왕산에서 내려온 멧돼지 한 마리가 서울경찰청, 외교부 청사, 광화문광장 근처를 배회하다 택시에 치여 죽었다. 지난해 10월 종로구 사직터널 인근으로 내려온 멧돼지 한 마리는 사살되고, 다른 한 마리는 도주했다. 최근 5년간 서울에서만 1300회가 넘는 멧돼지 출몰 신고가 접수됐다. 지방의 도시들은 더 심하다. 먹이를 찾거나 세력 다툼에서 밀려난 멧돼지들이라고 한다. 멧돼지는 힘이 세고 난폭해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데다 농작물 피해도 엄청나다.

동물의 권리와 복지를 중시하고 반려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이럴 때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다 같을 수는 없다. 결국은 인간과 함께 살아갈 방도를 찾아가는 게 답인 것 같다. 멧돼지는 개체수를 조절해야 하고 들개나 길고양이도 중성화 수술과 입양을 통해 숫자를 줄여 나가야 한다.



3. [중앙일보][문유석 판사의 일상] 82년생 김지영들이 사는 세상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각종 통계와 분석기사를 인용하면서 보편적인 한국 여성의 생애사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보편적인 수준 이상으로 운이 좋은 여성이다. 중산층이고 평균 이상으로 배려심 있는 남편과 살고 있으며 평균 이상으로 이해심 많은 부모 밑에서 자랐고 평균 이상으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했다.



이 소설의 가장 무시무시한 순간들은 치한, 갑질하는 거래처 부장 등 종종 맞닥뜨리는 평균 이하의 못된 인간들과의 조우가 아니다. 비교적 괜찮아 보이는 주변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들이다.

김지영씨를 계속 괴롭히는 짝꿍을 따끔하게 혼내준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짝을 바꿔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못되게 구는 거라며 웃는다. 머리를 말끔하게 빗어넘긴 할아버지 택시기사님은 원래 첫 손님으로 여자 안 태우는데 면접 가는 것 같아 태워 준 거라고 말한다. 여직원들의 화장실 몰카 사진을 성인 사이트에서 발견하고는 자기들끼리 돌려 본 남자 직원들을 경찰에 신고한 여성에게, 평소 감각도 생각도 젊던 대표는 업계에 알려지면 회사는 어쩌라는 거냐, 가정 있는 남자들 인생을 망쳐야 속이 시원하냐고 타박한다.



큰집에서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편한 시댁, 시어머니는 며느리 김지영씨와 함께 종일 정성스레 명절 음식을 만들어 친정 오자마자 뻗어버린 시누이에게 먹인다. 김지영씨가 깎는 배를 먹으며 고생스럽게 음식 만들지 말고 사다 먹자는 시누이에게 시어머니는 자기 가족 먹이려고 음식하는 게 뭐가 고생이냐고 묻는다. 평균 이상으로 배려심 많고 다정한 남편은 출산과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김지영씨에게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는 걸 생각해 보라며 말한다. “내가 많이 도와줄게.”

예외가 아니라 평균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가 사회를 규정한다. 덴마크·노르웨이라고 성범죄가 없겠으며 가정폭력이 없겠는가. 그 사회의 평균과 상식이 앞서 있기에 부러워하는 것이다. 악의 없이 준 상처라는 말은 변명이 못된다. 세상의 죄 대부분은 악의가 아니라 무지에서 비롯된다.



더불어 살려면 타인의 입장을 알 의무가 있다. 옛날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는데 배부른 소리라는 말을 들으면 반문하게 된다. 아니 원시시대보다 훨씬 안락한데 토굴에 살지 집은 왜 구하시나. 예전보다 좋아졌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 우리는 매순간 현재를 산다. 평등을 넘어 역차별 시대라고 소리 높이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4. [매일신문][매일춘추] 모든 것의 시작

봄비가 내렸다. 촉촉하게 젖은 대지는 태초의 향을 남발하며 가는 길마다 그리운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봄의 시작. 그 시작과 함께 첫 글을 무엇으로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매일 같이 쥐어짜는 고된 작업 속에 결국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며칠 뒤 있을 모교 수업을 위해 어머니가 계신 고향집으로 향했다. 어느덧 도시를 벗어난 버스. 새벽 차에 몸을 싣고 나는 숱한 전쟁을 치른 고된 병사처럼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빗방울이 부딪치는 버스 창. 뿌옇게 서리 낀 창문. 그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익숙한 고향의 모습. 버스에 내려 숨을 들이마시자 내 몸을 감싸던 차 안의 온기는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차갑고 익숙한 공기가 머릿속까지 채워져 갔다. 봄의 향기. 아니, 봄을 품은 고향의 향기였다. 그 향기를 따라 늘어진 발걸음으로 어머니가 계신 미용실을 향해 걸었다. 얼



마 만에 이렇게 걸어봤던가. 가는 길목,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한 간판들과 골목 풍경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알 수 없는 기분을 안고 미용실 문을 열자 익숙한 (코를 찌르는) 파마약 냄새가 맞아주었다. 익숙함, 변하지 않는 것들의 향수. 그런 것들이 있었던가?



계절은 수십 번 바뀌고 세상은 믿지 못할 일들로 시끌벅적하다. IT 시대에 맞춰 시대의 흐름은 초고속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 속도를 따라가려고 우리는 얼마나 뛰었던가. 열정과 순수함으로 도시라는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뛰어든 앳된 소녀는 어느새 현실의 고난과 역경이란 전쟁을 치르는 상처투성이 병사로 변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변한다. 그게 이치다.



하지만, 그 이치를 벗어나는 것이 존재했다.



세상이 뒤집혀도 나만을 향해 온 정성으로 온기를 주는 사람. 자기 삶의 중심이 나를 향해 있는 사람. 내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나를 위해 살아준 사람. 변화란 이치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위대한 사람.



나의 “어머니”.



미용실 문을 연 병사는 세상 가장 기쁜 목소리로 불러주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어느덧 작은 소녀가 되었고 어머니라는 대지의 품에 봄비처럼 스며들었다. 무언가의 시작. 그래. 나의 시작엔 항상 어머니가 있었다.



긴 고민의 끝은 언제나 처음이듯, 나의 시작은 어머니. 이 글의 시작을 ‘어머니’께 드린다. 자식을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되길 주저하지 않은 분. 그러기에 가장 고귀한 분. 어머니.



-태양이 있는 곳은 언제나 따뜻하고 어머니가 있는 곳에서 자식은 행복하다- 러시아 속담.



5. [매일신문][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책에 대한 존경

언제나 아버지는 생일선물로 전집을 사다주셨다. 1학년 생일에 받은 책은 한국편 32권, 외국편 32권으로 구성된 금성사 ‘소년소녀위인전기’였다. 2학년 생일에는 70권짜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받았다. 선물이라 좋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아, 이걸 다 언제 읽나’ 그런 생각뿐이었다. 생일 때마다 전집이 생겼지만 당연히 수백 권에 이르는 책을 다 읽지 못했다. 그중에선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한 것도 있는데, 바로 4학년 때 받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라는 28권짜리 전집이었다.



이 책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께서 내 생일 한 주 전 전집류를 주로 취급하는 외판원을 집으로 부르셨다. 아저씨는 여러 상품 중 유독 이 전집을 권했다. 좀 비싸더라도 아이가 평생 보게 될 책이라며 영국과 미국의 무슨 책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마도 ‘브리태니커 사전’, ‘아메리카나 사전’이었던 것 같다.



일찍 학업을 중단하신 아버지도 무슨 책인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매년 거래해오던 외판원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으셨고, 결국 책이 배달되었다. 책은 이전에 나로선 한 번도 보지 못한 크기, 두께였고 벽돌보다도 무거웠다. 아버지는 집에 막 도착한 책을 책장 한쪽에 한 권씩 꽂아 넣었다. 책장은 무겁고 짙은 고동색으로 채워졌다.



내게 책에 대한 ‘원체험’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 책들을 아버지와 함께 책장에 꽂아 넣은 그날의 경험이었다. 집에는 늘 책이 있었고, 매일 책을 읽었지만 이 백과사전이 들어온 그날부터 다른 책들은 책으로 보이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도 손길이 가지 않았지만 나는 ‘권위적인’ 책을 바라보며 “내가 어려서 읽을 수 없을 뿐 저 책엔 아마 어마어마한 내용이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비싼 전집에는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와 욕심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본인은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책에 대한 경외와 존경도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우리 부모님들은 그런 믿음을 가진 세대였을 것이다.



지금도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더 많지만, 책장의 책들은 단지 존재만으로도 내가 인간의 지적 유산에 대한 동경을 키우도록, 때로는 내게 책을 더 읽도록 해주는 압력이 되었다. 프랑스혁명이 계몽사상가들이 만든 ‘백과사전’이 있었기에 촉발되었다지만 혁명을 주도하던 이들이 백과사전을 다 읽었을 리 없다. 대신 ‘책에 대한 존경’이 ‘왕에 대한 존경’을 이길 때 변화가 일어났다.



아버지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시간 책을 읽었겠지만 나는 아버지만큼 책을 존경하고 있을까? 책에 대한 존경은 단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생겨나지 않는다. 이 우주 속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는 그 순간 생겨난다. 짙은 고동색 백과사전 전집이 어린 내겐 그 우주였던 것이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