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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전인권 적폐' 공격, 'DJ 골로 보내' …막가는 대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그나마 그 과정에서 이념과 지역감정이 많이 옅어졌다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대선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대선 후보와 각 당 캠프 및 지지자들이 막말과 색깔론, 지역감정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다시 구태의 정치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유권자 수준을 얕잡아 본 네거티브 공세일 뿐이다.

가수 전인권씨는 그제 자신의 공연을 홍보하는 자리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미국 애플사의 설립자인 스티브 잡스에 비유하며 칭찬했다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지지자들로부터 몰매를 맞고 있다. 전씨는 “안철수란 사람도 잡스처럼 완벽증을 갖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얘기가 안 통할 수는 있지만 나쁜 사람은 될 수 없다”고 했다. 문 후보를 비난한 것도 아니고 안 후보를 대놓고 지지하자고 선동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른바 ‘문빠’들은 “적폐 세력 전인권의 공연 예매를 취소하겠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나” 등 ‘문자폭탄’을 날리고 있다. 내 편이 아니면 적폐세력이라는 위험천만한 아집에 빠진 행태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다.

전씨는 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촛불집회에서 절절하게 애국가를 불러 감동을 줬다. 그는 촛불과 태극기 간의 충돌을 우려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박사모가 한 대 때리면 그냥 맞으세요”라고 외쳐 평화적 시위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를 칭송하던 이들 중에는 ‘문빠’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전씨를 불과 넉 달 만에 ‘적폐’라고 패대기칠 수 있나. 이러니 극성스러운 ‘문빠’가 반문 정서를 확산시키는 주범이라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선거판을 흐리게 하는 퇴행적 언행들은 다른 캠프도 마찬가지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17일 전주 유세에서 “문재인은 대북 송금 특검을 해서 김대중 대통령을 골로 보냈다”며 호남 홀대론을 제기했다. 호남을 볼모로 하는 지역정치에 기대어 표 구걸을 하는 것이 안철수 후보의 새 정치 철학은 아닐 것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막말 전도사’라고 불릴 정도로 하루 걸러 막말을 하고 있다. 17일 대구 유세에 나선 그는 “대구·경북은 보수우파의 상징”이라며 “선거에서 지면 낙동강에 빠져 죽겠다”며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그제 부산 유세에서는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사실상 대북 정책에 한해서 대통령은 김정은”이라고 ‘색깔론’까지 들고나왔다. 아무리 보수표 결집이 급했다고 이런 시대착오적이고 이념적인 공세가 먹힐 것으로 생각하는 그가 딱할 뿐이다.

여전히 선뜻 찍을 후보가 없다고 고민하는 부동층 유권자가 많은 것은 이런 저급한 정치 행태를 보이는 후보들에 대한 극도의 실망감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상대 후보들을 흠집 내는 데만 열을 올리는 것은 스스로 표를 갉아먹는 자해 행위임을 직시하길 바란다.



2. 사법개혁 당위성 확인한 진상조사위 발표

법원행정처가 진보성향 법관들의 사법개혁 움직임을 부당하게 견제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는 그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학술대회의 연기와 축소 압박을 가한 점은 적정한 수준과 방법의 정도를 넘어서는 부당한 행위”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의 조직적 관여를 부인했고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존재 의혹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추단하게 하는 다른 어떠한 정황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일각에선 부실 조사 논란도 일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사태의 발단이 된 판사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축소를 지시한 당사자는 대법원 고위 간부인 이모 상임위원으로 확인됐고 이를 근거로 법원행정처가 조직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상임위원은 행정처 차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학술대회 연기와 축소의 필요성을 논의했고 여기서 결정된 내용이 실제로 집행됐다고 한다. 적지 않은 판사들이 어제 내부 통신망 등을 통해 조직적 개입이 없었다는 조사위 발표에 의문을 제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연구회가 전국의 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작하자 법원행정처가 중복 가입 학회를 자동 탈퇴시키겠다고 공지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며 이 책임을 특정인에게 떠넘기는 것 자체가 꼼수라는 지적도 많다. 그동안 일선 판사들 사이에선 게시판 글이나 판결 등을 분석해 법관 인사나 연수자 선발 때 활용한다는 설이 무성했지만 이번 조사에서도 이런 의혹까지 해소하지 못했다.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자유로운 학술 활동을 견제한 것은 진상조사위가 지적했듯 사법행정권의 남용이 아닐 수 없다. 헌법상 보장된 학문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사법부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판사는 법률에 규정한 대로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껏 판결해야 한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사법 신뢰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33위다.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거세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민주적 운영 방안을 포함한 사법제도 개혁 논의가 공론화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국민이 신뢰하지 못하는 사법 시스템은 결국 국가 존립 자체를 뒤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

3. 국민에 해야 할 말은 일절 않고 '준다'고만 하는 후보들

대선이 20일 앞으로 다가온 19일에도 각 후보가 '무엇 무엇 해주겠다'는 공약 행진을 이어갔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부당한 강제 퇴직을 막는 법을 만든다는 등의 '5060 일자리' 공약을 발표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한국노총을 찾아 "비정규직을 대폭 줄이고 중소기업의 임금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듣기 좋은 얘기다. 그러나 두 유력 후보는 노동 개혁이나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처럼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진짜 필요한 과제들은 말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적도 거의 없다. 다른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후보가 기초연금을 올리고 아동수당을 도입한다는 등 수조, 수십조원이 필요한 복지 공약들을 하루가 멀다고 내놓으면서 일시적으로 고통스럽더라도 나라의 미래와 경제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쓴소리는 없고 입만 열면 오로지 '해준다' '해준다'뿐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세계 모든 나라가 천국이 됐을 것이다.

지금 경제를 살리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구조 개혁이다. 노동과 공공부문·금융 등의 낡은 제도와 관행을 고치고 부실화된 좀비 기업들을 정리해 새로운 산업의 싹이 트도록 해야 한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해 집단이 반발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은 조금 많은 숫자가 반대하면 거의 무조건 입을 닫거나 영합한다.



국회에 발목 잡혀 있는 노동 개혁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후보도, 노동계 반발로 벽에 부닥친 공기업·금융계 성과급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후보도 거의 없다. 13조원의 국민 세금을 지원받아 연명하는 대우조선의 노동자들에 대해 임금·인원 감축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분담하라는 당연한 말도 하지 않는다.

문 후보는 81만개의 공공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면서도 재원 대책에 대해선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국가 부채를 더 늘리든지 세금을 더 걷든지 둘 중의 하나일 테지만 문 후보는 입을 다물고 있다. 안 후보는 교육혁명을 10대 공약 중 하나로 내걸면서도 가장 시급한 대학 구조조정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반발이 있기 때문이다.

미세 먼지 문제가 심각해지자 각 후보는 석탄 발전 감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문 후보는 30년 이상 석탄발전소를 가동 중단하겠다고 했고, 안 후보는 석탄발전 쿼터제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결국 석탄 발전을 줄이는 만큼 원자력 발전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안 두 후보는 원전도 줄여가겠다고 한다. 유권자 귀에 쓴 소리는 하지 않으려다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자기모순에 빠져들고 있다.

모든 후보가 4차 산업혁명을 일으키겠다고 한다. 그러려면 규제 개혁이 필수다. 온갖 규제 때문에 드론·자율주행차·원격의료 같은 4차 산업혁명 분야의 비즈니스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낡은 규제를 풀기 위한 규제프리존특별법이나 의료법 개정안, 인터넷 전문은행 특례법 등이 국회에 발목 잡혀 있으나 이 법안들을 통과시키겠다는 말을 하는 후보를 보기 힘들다. 이 역시 이해 집단들의 반발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후보가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기업 활동을 일으킬 방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대신 대기업을 옥죄는 새로운 규제들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국내에선 대기업이라도 글로벌 시장에선 약자(弱者)에 불과하다. 재벌 오너의 전횡은 막아야 하지만 대기업들을 글로벌 경쟁에서 불리하게 만드는 한국식 규제는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후보가 대기업 때리기에만 열중하고 친(親)기업 정책은 말하지 않는다. 당장 머릿수 많은 쪽만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통스러워도, 그래서 선거에 손해 보더라도 국가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은 하겠다'는 후보가 단 한 명 없는 것은 유권자들이 그런 후보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나라의 장래는 유권자 손에 달린 것이다.



4. 시진핑 "한반도는 中의 일부였다" 이게 中의 對韓 인식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실질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한 말인데 정확한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떤 맥락에서 이런 말이 나왔는지도 확실치 않다. 하지만 많은 중국인이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은 2002년부터 5년간 '역사공정'이라는 국가사업을 통해 인접 국가 역사를 모두 중국사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한반도에 대해서도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했다. 중국인들의 이런 인식에는 20세기 이후 아시아에서 벌어진 엄청난 변화와 현실에 대한 반감과 인접 국가에 대한 전근대적 패권 의식이 담겨 있다.

중국은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국의 설명은 들으려 하지도 않은 채 무조건 거부하고 있다. 더 강력한 일본의 사드 레이더에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용도 자체가 다른 한국 사드만 물고 늘어지고 있다. 이제는 치졸한 보복까지 한다. 결국 사드 자체가 아니라 이 기회에 한국을 길들이고 한·미 동맹에서 조금씩 떼어놓겠다는 것으로밖엔 볼 수 없다. 그 뿌리에 '한반도가 중국의 일부였다'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내용을 밝힌 것을 보면 그가 한국과 한반도 역사에 무지(無知)하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런 미·중 두 나라 정상이 작지 않은 타국에 대해 왜곡된 사실을 주고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똑바로 뜨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동아일보]

5. “한국이 中 일부였다” 시진핑 인식, 한중관계 걸림돌 될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정상회담에서 “한국(Korea)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이다. 시 주석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용납할 수 없고,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여 인정했다고 해도 용납할 수 없다.

시 주석이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 주석은 2014년 서울대 강연에서 ‘바다 건너 제주도로 간 서복(徐福)’을 예로 든 적이 있다. 서복은 중국 진나라 진시황 때 불로초를 찾아 동방으로 갔다는 인물로,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온다. 서복이 제주도에 갔다는 건 전설에나 나오는 얘기다. 그러나 시 주석은 2006년 저장 성 서기로 있을 때 제주도를 방문한 이후 서복을 실존 인물로 여기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서복 이래 한반도가 중국의 일부였다고 여긴다면 큰 착각이다.

전근대(前近代) 시대 중국과 주변국은 조공(朝貢)관계를 맺고 있었다. 조공관계는 동아시아 역사에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보면 중국과 주변국이 마치 제국과 식민지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양에서 주권국의 외교관계와 다를 바 없다는 게 역사학계의 통설이다. 서구 강대국과 약소국에는 힘의 차이에 따른 불평등한 관계가 있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강대국이 약소국을 식민지처럼 부릴 수 없었다. 조공관계가 그랬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의 말만 듣고 중국과 한국이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에 있었던 것처럼 여기고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면 미국 대통령으로서 자질이 의심스럽다. 외교부는 어제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지난 수천 년간 한중관계의 역사에 있어 한국이 중국의 일부가 아니었다는 점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논평하는 데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외교 경로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수당(隋唐) 시절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참패한 이후 한반도 거주민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다. 그래서 고려 시대에도 조선 시대에도 중국의 일부로 삼지 않고 주변국으로 놔두고 조공관계에 묶어둔 것이다. 이제 보니 시 주석의 잘못된 역사 인식이 오늘날 북핵 해결과 남북통일에 장애가 되고 있지 않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데일리]

6. 한반도 급파했다던 칼빈슨호 오긴 오나

북한의 도발 위협에 맞서 지난주 초 한반도로 향했다던 미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이제야 동해를 향해 출발한다고 한다. 지난주까지도 호주군과 훈련을 위해 반대쪽인 호주 해상으로 이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가능성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태양절’(15일)에도 한반도에서 4800㎞나 떨어진 인도네시아 해역에 있었다고 한다. 10여일이 지나도록 우리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미국 군사 당국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미 태평양사령부가 지난 8일 칼빈슨호의 한반도 해역 이동 발표 때만 해도 상황은 긴박했다. 미국의 북한 선제타격론이 불거지면서 그야말로 당장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분위기가 흉흉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트럼프 행정부의 ‘거짓말’에 놀아나 소동을 벌인 꼴이 됐다. 미국은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앞뒤 사실 관계를 명확하게 해명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도 입장을 밝혀야 한다. 알면서도 말을 안 했다면 국민을 속인 것이고, 애초부터 몰랐다면 양국 군사정보 교류에 구멍이 뚫렸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한·미동맹 관계에 이상 징후가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터다. 며칠 전에도 사드 배치 시점을 놓고 혼선이 벌어졌다. 북핵 해법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미·중 빅딜설’의 실체도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동맹국으로부터 관련 정보를 신속·정확하게 제공받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한반도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나온 펜스 미 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주장도 시기적으로 동맹 가치를 훼손하는 부적절한 처사다.

펜스 부통령은 방한 중에 ‘코리아 패싱’은 없을 것이라며 ‘굳건한 한·미 동맹’을 거듭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행동과 실천이다. 동맹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의 약점을 틈타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식이라면 바람직한 동맹관계라고 보기 어렵다. 미국이 진정한 동맹국이라면 북핵 위기에 처한 우리 고민에 우선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대북 정책을 어떻게 추진하고 있는지 협의하는 것이 정상적인 관계다. 한반도로 급파했다던 칼빈슨호가 왜 지금에서야 이동을 시작했는지부터 밝혀야 한다.



[세계일보]

7. 미·중 북핵 공조 반갑지만 ‘한국 소외’ 없도록

미 항모 칼빈슨호가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한반도로 향하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해군이 지난 15일 공개한 사진 분석 결과 칼빈슨호가 싱가포르 남쪽 순다해협에 있으며 뱃머리가 인도양 쪽을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국방부는 그제야 “칼빈슨호는 호주 북서쪽 해상에 있다”며 “24시간 내에 동해를 향해 항해할 계획”이라고 했다.



칼빈슨호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 한반도에 급파할지 말지는 전술적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칼빈슨호의 움직임은 미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징후와 중국의 움직임 등 한반도 안보 변수와 민감하게 얽힌 사안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는지 여부다. 몰랐다면 한·미 공조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다. ‘4월 북폭설’까지 퍼질 만큼 한반도의 긴장 수위는 어느 때보다 높다.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고서야 위기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북핵 대응에서 소외된 것은 아닌지 우려를 하게 된다.

그런 우려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중국은 다음달 14∼15일 열리는 일대일로 국제협력정상회의에 우리나라를 초청하지 않았다. 이 회의에는 주요 20개국(G20) 정상과 110개국 각료급 인사가 참석한다. ‘옹졸한 중국’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미·중의 공조에도 불구하고 사드 보복 철회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제 “중국이 북한 문제에 협력하는데 중국과 무역전쟁을 해야 하느냐”고 했다. 중국 외교부는 어제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했다”고 했다. 미·중의 교감을 말해 주는 맞장구다. 우리에 대한 미국 태도는 다르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과 중국을 대하는 미국의 온도차가 느껴진다. 이런 움직임은 자칫 한반도 위기관리에 대한 주도권을 잃은 채 안팎곱사등이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한반도가 강대국의 놀음판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북핵 위기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중대 변수다. 북한뿐 아니라 미·중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 해결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미·중의 눈치나 보며 시혜를 구한다면 구한말과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8. ‘오염 범벅’ 미군기지, 美에 원상회복 요구해야

서울 용산 미군기지 지하수에서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환경기준치의 162배를 초과해 검출된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다. 환경부가 그제 밝힌 ‘녹사평역 인근 용산기지 내부 1차 지하수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14개 관측정 가운데 벤젠이 기준치보다 20배 이상 검출된 곳은 4곳이었다. 크실렌, 톨루엔, 에틸벤젠 등 신경독성 등을 일으키는 다른 유해물질도 기준치보다 최고 3배 넘게 나왔다. 

한·미 양국은 2015년 5월 용산 기지의 환경오염을 조사했으나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환경부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 조항을 근거로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소송을 제기해 이기면서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만시지탄이다.

서울 녹사평역 오염은 2001년 지하수에서 벤젠 등 석유물질이 대량 검출되면서 사회문제로 비화됐다. 하지만 주한미군의 비협조로 기지 내 조사가 이뤄지지 않다가 기지 반환을 앞두고 조사가 실시됐다. 미군이 기지 내 기름 유출사고를 우리 정부에 제대로 알리지 않고 방치하는 바람에 누수된 유류가 지하수를 타고 퍼져 피해 지역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군이 화학물질 등 유해폐기물을 매립하면서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주변 토지와 지하수를 오염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주한미군은 2012년 환경관리기준(EGS)을 개정하면서 유류로 오염된 토양처리기준(TPH) 조항을 삭제해 우리 정부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이를 근거로 기지 반환 때 오염을 정화하지 않고 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에 제대로 항의조차 못했다고 한다. 미군의 눈치를 보느라 저자세로 일관했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는 반환될 지역이 오염됐다면 주한미군에 당당히 원상회복을 요구해야 한다. 촉박한 용산 기지 이전 일정으로 인해 미군 측에서 단시일 내 복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향후 우리가 복구한 뒤 미군에게 청구서를 내미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미군도 체류국의 정당한 요구를 수용해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오염기지를 그대로 반환할 경우 한국인들에게 미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킬 우려가 높다.



발암물질 검출 지역은 향후 생태공원이 예정된 지역이다. 미군은 한국 국민이 용산 미군기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매일신문]

9. ‘빈익빈 부익부’ 위화감 조성하는 해외 수학여행

학생들에게 현장학습 기회와 추억을 제공하기 위해 대부분의 학교들이 수학여행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교에서는 과도한 비용이 드는 해외 수학여행을 강행해 학부모에게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 더구나 저소득층 가정과 학생들에게 해외 수학여행은 ‘추억’보다 ‘상처’를 남기는 학교 행사가 되고 있다.



대구 수성구의 한 사립 고교는 학생 475명과 교직원 등 모두 494명을 대상으로 3박 4일 일정의 수학여행을 보내기로 했는데, 학생 일 인당 비용이 오사카 115만원, 후쿠오카 105만원, 대만 95만원으로 책정돼 원성을 사고 있다. 숙소 등급과 식사의 질, 세부 프로그램에 따라 비용이 달라질 수 있지만, 유사 패키지 여행 상품이 70만~80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비수기인 6월에 494명이 단체여행을 가는 만큼 더 낮출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수학여행의 양극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5년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학생 일 인당 수학여행비가 가장 높은 고교와 가장 낮은 고교는 각각 448만원`2만5천원으로 격차가 무려 179배나 됐다. 상위 10개교와 하위 10개교의 평균 수학여행비도 232만원과 4만2천원으로 이 역시 55배 차이가 났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주춤했던 해외 수학여행을 재개하는 학교들도 늘어나고 있다. 학부모로서는 비용 부담이 크지만 자녀가 차별을 받을까 걱정돼 울며 겨자 먹기로 참가하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저소득층의 처지다. 저소득층에 10만~20만원 안팎의 수학여행비 보조금을 지원하는 지자체와 교육청`학교가 일부 있지만 이 금액으로는 해외는커녕 제주도도 못 보낸다.



교육 당국은 그래도 수학여행을 주저하는 저소득층 학생에 대한 수학여행 경비 지원액을 더 늘려야 한다. 교육청은 가이드라인을 정해 적정 수학여행 경비 책정과 집행을 관리`감독할 필요가 있다. 학교들도 무턱대고 고비용 해외 수학여행을 고집하기보다 교육`체험 효과가 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



10. 책을 읽지 않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23일은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성인 호르디 축일과 대문호 세르반테스의 사망일이 겹치는 이날,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장미를, 여자는 남자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하는 풍습에서 비롯됐다. 한국에서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등에 초콜릿, 사탕 따위를 선물할 뿐, 책을 선물하는 풍경은 보기 어렵다.



어딜 가더라도 책을 펴든 사람은 없고, 머리 숙인 채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사람만 가득하다. 스마트폰으로 채팅이나 게임을 하거나 연예`스포츠 기사를 보는 것이 전부지만, 저마다 진지하기 짝이 없다. 몇 년 전부터는 지하철`버스에서 책이나 신문을 보는 사람조차 보기 어려워졌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자 지식의 보고’라는 말은 구닥다리 유물이나 흘러간 옛노래처럼 느껴지는 시대다. 책을 기피하는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5년 전국 성인 65.3%가 1년 동안 1권 이상의 책을 읽었고, 평균 9.1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성인들의 독서량은 2010년 이후 매년 감소해 전 세계 192개국 중 166위 수준으로 아프리카 국가보다 못하다. 흔히 ‘문화 강국’이나 ‘노벨상’을 언급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나라에서 이를 기대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독서량은 문화 수준의 척도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국가의 미래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매일신문 19일 자 6면에 소개된 박시철 씨 가족 사례는 책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보여준다. 이 가족은 지난해 2천905권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가족 1인당 평균 581권을 읽었다고 하니 놀랍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고, 책 읽기와 도서관 프로그램을 통해 영어를 익히게 했고, 영재교육원에도 입학시켰다고 한다.



책 읽기는 일종의 습관이다. 그 습관을 어릴 때부터 길러줘야 생각하는 힘이 커진다. 자녀에게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은 부모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수불석권(手不釋卷)은 못 하더라도,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가짜 같은 진짜, 진짜 같은 가짜의 진실

세상에는 가짜 아니면 진짜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대종을 이룬다. 사랑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미술품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미술품 진위 문제는 원본도 보지 못한 채 진위를 말하는 자칭 전문가들까지 나타나 사람들을 블랙홀로 빨아들인다. 이런 세태 속에서 그림 감정을 업으로 살아온 버질(제프리 러시)이 정체 모를 여인 클레어(실비아 휙스)를 만나 미스터리한 밀고 당기기 끝에 사랑에 골인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자신이 평생을 모아온 미술관을 능가하는 그림들을 모두 잃고 마는 영화 ‘베스트 오퍼’(2013)는 진짜와 가짜란 모두 자신의 믿음에 달렸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수작이다.

영화 제목인 베스트 오퍼는 경매에서 진정 마음에 드는 물건이나 작품을 만났을 때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지불할 수 있는 최고가를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글쎄 세상 사람 중 몇이나 평생에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버질은 미술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감식안으로 감정 분야의 독보적 존재이자 세기의 경매진행사이다. 결벽증이 있는 버질의 유일한 취미는 아마추어 화가이자 친구인 빌리(도널드 서덜랜드)를 시켜 경매를 통해 여성의 초상화를 낙찰받아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방에 모셔두고 혼자 즐기는 것이다.



그의 컬렉션은 초상화미술관을 능가한다.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어린 소녀의 초상’, 프랑스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의 ‘비너스의 탄생’, 보카치오 보카치노의 ‘집시소녀’, 알브레히트 뒤러의 ‘엘스베트 투허의 초상’을 비롯해 라파엘, 티치아노, 브론치노, 모딜리아니, 르누아르 등이 망라돼 사조별로 각각 여성들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비교가 가능할 정도이다.



이런 세기의 명화들은 영화를 통해 예술품의 진위를 사랑과 대비시키려는 감독의 속셈의 산물이다. 감독은 그림과 오늘날 로봇의 전신이라 할 18세기 자동인형 ‘오토마톤’을 등장시켜 사랑과 예술 그리고 인생에 대한 절묘한 비유를 통해 제아무리 뛰어난 눈을 가졌다 할지라도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에 등장하는 많은 초상화들도 사실은 ‘눈속임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류의 그림은 인간의 눈의 한계를 최대한 이용한다. 매우 정밀하게 그려져 실제로 사물이 있는 것처럼 현혹시킨다. 관객들은 진짜인 줄 알았다가 속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요즘 난무하는 트릭아트도 이런 류다.



하지만 장 보드리야르 같은 이는 눈속임 그림을 ‘낯설음’이며, ‘아이러니한 모조물’이라고 보았다. 그저 사물과 똑같이 그려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이 전에는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라는 말이다. 과거 재현의 시각으로 본 눈속임이 아니라, 사물이 가지고 있는 관념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눈속임 회화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를 애써 무시했던 버질에게 클레어는 유산으로 받은 오래된 빌라와 그곳의 가구, 미술품, 조각상 등을 경매에 위탁하겠다며 접근한다. 어릴 때부터 은둔했다는 클레어에게 버질은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 같은 듯 다른 두 외톨이는 교감한다. 두 사람의 사랑이 절정을 향해 달릴 즈음 친구 빌리는 경매에서 놓쳤던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어린 소녀의 초상’을 되찾아온다. 북유럽 르네상스 시대 인물화의 대표작으로 미술사학자 조엘 업턴이 “검은 벨벳 쿠션 위에 놓인 유백색의 진주를 닮았다”고 평한 작품이다. 주인공이 관객을 바라보는 특이한 초상이다.

어느 날 클레어는 스스로를 감금했던 자신의 집을 보여주고 버질은 여기서 나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클레어는 마치 풀리지 않는 거미줄에 걸린 것 같다고 답한다. 물론 영화의 결말을 보면 버질이 거미줄에 걸린 셈이지만.

그 후 버질은 경매를 진행해야 하는 일정에도 불구하고 반지를 사들고 클레어의 집을 찾지만 그녀는 집에 없다. 부랴부랴 경매장으로 돌아와 실수를 연발하며 경매를 마친 버질은 사라진 클레어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뛴다. 그 와중에 빌리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이에 빌리는 “인간의 감정은 예술과 같아 위조할 수 있지. 보기엔 진품과 똑같아. 하지만 위조이고, 모두를 속일 수 있지. 기쁨, 고통, 증오, 병, 회복, 심지어 사랑도”라고 귀띔(?)한다.

사라진 클레어 걱정에 여인의 초상화가 걸린 방에서 상념에 잠겨 있던 버질은 클레어가 집안 비밀의 방에 있을지 모른다는 전화를 받는다. 버질은 집으로 뛰어가 클레어를 발견하고 처음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그녀를 찾았다가 괴한들로부터 테러를 당하고 클레어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실려가 살아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클레어는 세상 밖으로 나오고, 버질은 클레어를 초대해 자신의 결벽증을 고백하면서 그동안 바보처럼 살았다며 평생 모은 여인들의 초상화로 가득한 비밀의 방으로 안내한다.

클레어 빌라의 경매 도록이 만들어지고 경매일을 기다릴 무렵 돌연 클레어가 경매를 취소한다. 은퇴를 결심한 버질의 마지막 경매에서 빌리가 인사를 건네며 그림을 한 점 선물한다.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지만 클레어는 친구들과 외출한 상태. 빌리가 선물한 그림을 가져다 두려고 비밀의 방으로 간 버질은 텅 빈 방을 발견한다. “모든 위조품에는 진품의 미덕이 숨어 있다. 전적으로 동의해요. 당신이 그리울 거예요”라는 기계음만 반복되는 오토마톤만 남아 있다. 급하게 클레어의 집으로 향하지만 아무도 없다. 집 앞 카페의 왜소증환자는 자신의 이름이 클레어라며 저 집은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이렇게 끝에 가서야 또 다른 복선을 드러낸다. 클레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빌리가 준 그림에서 그의 사인을 발견하면서 그제야 속았음을 알아챈다. 버질은 신고를 위해 경찰서를 찾지만 곧 돌아서서 클레어와의 행복했던 날들을 회상하며 프라하로 떠난다. 전에 그녀가 말했던 카페에서 그녀를 기다릴 심산으로. 우리는 빌리처럼 가짜라고 알지만 진짜이길 원하는 마음이 워낙 커 알면서도 스스로 속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치 눈속임 그림처럼. 그래서 사기당할 사람은 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는 모양이다. 이번 대선엔 이런 과도한 믿음에서 벗어나 후보를 감정해 보자.



2. [매일경제][매경 프리미엄] 짐 자무쉬, 그만의 스타일이 가득 배인 영화 '미스터리 트레인'
‘미스테리 트레인’은 미국 테네시 주 멤피스를 배경으로 한 세 개 에피소드가 모인 옴니버스 영화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요코하마에서 멀리'. 엘비스 프레슬리를 찾아 멤피스를 찾은 일본인 커플 '준'과 '미츠코'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 커플이 바라보는 생경하고도 매력적인 도시 멤피스의 풍경들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단편들이 관객들에게 의외의 유머를 선사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유령'이다. 주인공 '루이사'는 비행기 운항 문제로 예상치 못하게 멤피스에 발이 묶인다. 루이사에게 멤피스의 하루는 영화 제목처럼 미스테리 그 자체다. 그녀의 발 닿는 곳곳마다 사람들은 그녀를 속여 돈을 뜯어낸다. 더할 나위 없이 고단한 그녀의 하루는 밤 늦도록, 아니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진다. 모텔에서 낯선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 루이사는 자신이 전해들은 엘비스 프레슬리 이야기를 낯선 여자에게 들려준다. 그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루이사는 다음날 새벽 엘비스 프레슬리의 유령을 보게 된다.

마지막 에피소드 '로스트 인 스페이스'는 앞선 단편들에서의 의문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앞선 두 에피소드에서의 공통점은 총소리로 종결된다는 것. 이 총소리에 대해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이 총소리는 큰 사건의 범인들과 연관돼 있다. 주인공들의 영향으로 필자 역시 총소리에 크게 집중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에피소드는 예상하지 못한 큰 반전으로 다가왔다. '로스트 인 스페이스'의 주인공은 두 명의 백인 남자들과 한 명의 흑인 남자다. 이들이 벌이는 예측 불가한 사건은 서스펜스와 유머라는 오묘한 조합으로 관객들에게 다양한 매력을 어필하기에 충분하다.

멤피스라는 도시 속 한 모텔을 찾은 다양한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그려낸 영화 ‘미스테리 트레인’. 제목만큼이나 영화 속 캐릭터들은 미스테리 그 자체다. 짐 자무쉬의 영화들에서는 사건보다 독특한 캐릭터들이 인상적인데, 이 영화 역시 그렇다.

결국 여느 옴니버스 작품들처럼 ‘미스테리 트레인’ 속 캐릭터와 사건들 역시 일정 부분 연관성이 있다. 연결고리가 전혀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은 저마다의 '멤피스 추억'을 안고 각자의 목적지로 향한다. 여행의 끝에 선 인물들은 나름의 감정이 있을 테다. 그들의 여행을 지켜본 관객들 역시 간접 경험을 통해 인생의 일부를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짐 자무쉬의 영화들을 볼 때마다 여행에 대한 욕구가 솟구친다. 물론 그가 여행을 소재화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외에도 새로운 경험을 자극하는 음악, 미술 등의 예술적 요소들이 여행욕구를 부추긴다.

세상의 모든 개별적인(다양한) 이야기들을 한 가지의 열매로 엮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이야기꾼, 짐 자무쉬. 그의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는 '짐 자무쉬 특별전 - All About Jim Jarmusch'가 오는 20일부터 진행된다. 재치 있는 이야기와 독창적인 스타일의 영화를 만나보고 싶었던 관객이라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3. [매일경제][매경프리미엄] 브라질은 바나나를 닮았다

휜 바나나의 모양은 브라질을 닮았다. 농장에서 넓은 잎의 바나나 나무들이 서로 엉켜서 자라는 모습은 여러 인종이 싸우지 않고 사는 브라질 같다. 여러 갈래로 시원스럽게 뻗은 바나나 나무의 큰 줄기와 우산만큼 큰 잎은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평화롭게 자란 모습이다. 인공적인 도움이 없이 한 뿌리의 나무에서 일 년에 세 번씩 수확할 수 있고 한 송이에 수십 개의 바나나가 알알이 커가는 모습은 풍요한 브라질의 상징이다. 척박한 땅과 혹독한 날씨를 극복하고 자란 광야의 가시 돋힌 잔목과는 애초부터 신분이 다르다.



바나나는 브라질 사람들을 닮았다. 겉과 속의 색이 크게 다르지 않다. 겉이 검게 변해도 속은 본래 그대로이다. 가시 돋힌 파인애플보다 안팎이 모두 부드럽다. 겉은 노란색 고무처럼 질겨 보여도 안은 한없이 부드럽다. 칼 없이 손으로 쉽게 껍질을 벗겨 먹을 수 있고, 씨와 심도 없어서 먹기에도 편하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게 친절을 베푸는 브라질 사람 같다. 바나나 킥을 잘 차는 브라질 축구는 세계 최고이다.

노란색은 브라질의 색이다. 브라질은 국기 한가운데 일찌감치 금을 상징하는 노란색을 넣었다. 국가대표 축구팀의 노란색 유니폼은 삼바축구의 상징이다. 화려한 삼바 축제에서도 노란색 옷과 치장이 가장 많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도 커가면서 점차 누렇게 변색된다. 

브라질 사람들은 흔한 바나나를 좋아한다. 시골에서 바나나는 한 송이에 1,000원도 안되기 때문에 브라질에서는 아주 값싼 것을 말할 때 “바나나 값이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브라질은 유럽계, 아프리카계, 원주민계, 아시아계, 중동계 등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었지만 바나나는 누구나 좋아하는 사회통합의 과일이다.



황량한 사막의 중동에서 말린 대추야자가 요긴한 에너지원이라면 브라질에서는 바나나 농축 젤리, 말랭이가 있다. 아침 식사에서도 바나나는 빠지지 않는다. 비타민도 풍부하고 포만감을 느끼게 해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애용식품이다. 튀기거나 삶은 바나나 요리는 브라질 뷔페에서 필수다.



바나나는 웃음을 주는 과일이다. 70년대 한국의TV 코미디 프로에서 코미디언들이 서로를 넘어뜨리기 위한 수단은 바나나 껍질이었다. 상파울루의 공원에는 작은 원숭이들을 사람의 손바닥, 어깨, 머리까지 유인하기 위해 손가락보다 조금 큰 바나나가가 핵심 수단이다. EU는 비정상적 재배를 막기 위해 판매용 바나나는 너무 휘어지면 안되고 4개 이상 달린 송이여야 한다는 규정을 갖고 있는데 영국은 EU 탈퇴를 선언하면서 “이젠 영국인 스스로 시중에 파는 바나나 각도를 결정할 수 있게 됐다.” 고 기뻐하기도 했다.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말도 있다. 바나나 등 1차 산품을 수출하여 먹고 사는 가난한 중남미 나라를 일부 선진국들이 폄하하는 말이다. 바나나가 나지 않는 나라가 바나나를 조롱할 자격은 없다.



4. [경향신문][문화와 삶] 클래식 음악의 앞날

따뜻한 봄날이 오면 만개한 꽃들만큼이나 여러 공연장에서 음악회가 한창이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각자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음악회를 골라 다닐 수 있을 만큼 주제와 내용도 다양하다. 탄탄한 팬층을 보유한 개성 있는 젊은 연주자들 덕에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는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는 듯 보인다.



이런 국내 상황과 달리 이미 최고 전성기를 맛본 유럽과 미국의 클래식 음악 시장은 오래전부터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젊은층이 유입되지 않는 클래식 청중의 고령화, 부유층을 위한 음악이라는 인식을 타파하는 것이 시급했다. 2002년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에 부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이 청소년 프로젝트였음은 잘 알려진 얘기다.



​안무가 로이스터 말둠과 함께 베를린의 청소년 250명을 데리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무대에 올린 건 그중 하나다. 소외계층 아이들이 5주간의 연습 과정에서 겪는 변화를 담담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 <리듬 이즈 잇>은 클래식 음악이 어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 음악교육의 성공 사례인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19세기 유럽 근대사회의 산물인 음악회장 문화는 20세기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공연과 음반 산업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르러 클래식 음악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고,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자구책을 모색해야 했다.



베를린 필은 ‘디지털 콘서트홀’을 열어 전 세계 클래식 음악 팬들을 끌어들이고, 유명 오페라 공연들은 영상으로 제작되어 극장에서 상영되며, 심지어 젊은이들이 가는 클럽에서 클래식 음악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소셜미디어가 음악가와 청중의 소통을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클래식 음악의 존재방식은 시대에 맞게 변모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2016년 봄 뉴욕대학교의 국제 고등연구소는 세계 음악계 주요 인사 22명이 참여하는 ‘클래식 음악의 미래’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휘자이자 작곡가 에사 페카 살로넨,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 작곡가 진은숙 같은 음악가와 세계 주요 음악단체장, 교육기관장, 학자와 비평가 그룹이 3년간 클래식 음악의 현주소를 다각도로 진단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할 것이라 한다. 미래를 예측할 순 없겠지만 클래식 음악이 처한 현재 모습을 성찰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중요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오랫동안 쌓여 온 폐단을 없애고 공정하고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요구가 절박하게 대두되고 있는 때에 클래식 음악계는 어떠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해방 이후 50년간 클래식 음악은 줄곧 주류사회의 지배 문화로 특권을 누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역량 있는 음악가들이 대거 등장하며 향유층도 넓어졌다. 온갖 비리와 부조리가 만연한 가운데에도 기본과 상식을 지키며 힘든 음악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최근 들어 흥미롭고 유의미한 기획과 완성도 높은 연주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단체와 음악가들이 늘어가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우호적이지 않음은 여전히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그들만의 리그’로 비치기 때문일 것이다.

클래식 음악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마련될 수 있을까? 음악을 통한 공감과 설득이 가능한 순간은 그 음악을 하는 인간에게서 열정과 진심이 전해질 때이다. 그런 순간은 서울의 대형 공연장에서만이 아니라 섬마을의 회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은 과거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감성을 담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창작곡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클래식 음악의 앞날이 어떠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음악이 누군가에게는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데 위로와 용기가 되기도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모르그 가의 살인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모르그 가의 살인(The Murders in the Rue Morgue)’이 1841년 4월 20일 그가 부주간으로 일하던 ‘그레이엄스 매거진(Graham’s Magazine)’에 발표됐다.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의 철학콩트 ‘자디그Zadig’(1747) 등을 앞세우는 이들도 이도 있지만, 다수는 ‘모르그’를 본격 근대 추리소설의 효시로 꼽는다. 포의 탁월한 추론가(탐정) 오귀스트 뒤팽(Auguste Dupin)이 그 작품을 통해 데뷔했고, 추리소설의 원형적 서사 기법이 또 거기서 탄생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가 활약하던 19세기 말 이전, 그러니까 탐정이란 말 자체가 거의 쓰이지 않던 시절의 뒤팽은 전문 탐정이라기보다는 지적 퍼즐 풀이에 심취한 추론가다. ‘모르그’의 명문장 중 하나로 꼽히는 도입부의 이런 문장, “제대로 추론했는지보다 정확하게 관찰했는지에 따라 손에 쥐는 정보에는 수준 차이가 생긴다.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은 무엇을 관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분석가는 자신에게 어떤 한계도 두지 않는다. (카드 게임을 할 경우) 게임 자체가 목적이라 할지라도, 게임 외적인 것이 주는 정보를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같은 문장은 당대의 과학 정신이 압축돼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포는 앞서 ‘낸터킷의 아스 고든 핌의 이야기’(1838) 등을 통해 SF소설 기법을 구사하기도 했다.



두뇌 천재들이 흔히 그렇듯, 뒤팽은 은둔적이고 사교적이지도 못하다. 그런 그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화자 ‘나’와 친구가 돼 우연히 신문을 통해 알게 된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 추리를 시작하고, 그의 불친절한 추리 여정을 화자가 관찰자로서 해설해주는 기법은 홈즈와 왓슨의 파트너십으로 이어졌다. 

포는 미국 최초의 전업작가 중 한 명이기도 했다.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가 집 나가고 이듬해 어머니까지 숨지면서 고아가 된 그는, 부유한 상인 부부에게 사실상 입양됐지만, 청소년기부터 내내 양부모와 불화하며 대학(버지니아대)도 중퇴했다. 그는 잡지에 시와 산문을 기고해 원고료로 먹고 살았고, 내내 가난했고, 말년까지 공무원이 되고자 지인들에게 청탁을 하고 다녔다. 아마도 그는 스스로를 무직자로 여겨, 자신이 험난한 전업 작가의 첫 길을 여는 중이란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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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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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조선일보]

1. 법원에도 정치 바람 불기 시작한 건가

지난 3월 판사들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판사들을 상대로 사법부 개혁 관련 설문을 진행해 외부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려 했다. 일부 언론은 이 대회를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 고위 관계자가 막으려 했고 여기에 반발한 이모 판사의 행정처 인사 발령이 취소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일로 '고위 관계자'로 지목된 임종헌 행정처 차장이 사퇴하고 진상조사위까지 만들어지는 등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진상조사위가 어제 발표한 결과를 보면 사퇴한 임 차장은 이 일과 직접 관련이 없고 대법원 양형위원회 이규진 상임위원이 "학술대회를 내부 행사로 치르고 비보도로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전임 회장이었던 이 위원은 행정처 회의에서 관련 보고도 했다고 한다. 또 여기에 부담을 느낀 이 판사가 사의를 표명하자 행정처 발령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평소 일선 판사들에게 위압적으로 대한다는 불만, 고질적인 판사들의 인사 불만 등이 겹쳐져 일이 커졌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는 9월 양승태 대법원장이 퇴임하는 사법부 수뇌부 교체기와 정권 교체기를 앞두고 이런 소란이 벌어진 바탕에는 법원 내부의 진보·보수 세력 갈등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진보적 성향 판사 모임이었던 옛 '우리법 연구회' 출신들이 국제인권법연구회 모임 설립을 주도했다는 말도 나온다. 판사들 내부도 좌·우로 나뉘어 정권 교체기마다 음해하고 비난하면서 패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것인가. 우리 정치 풍토로 볼 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다.



2. 복지 경쟁 大選 몇 번 더 하면 나라 거덜나지 않겠나

대선 후보들이 연간 10조원도 더 드는 현금 주는 복지를 하겠다며 경쟁적으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월 20만원 주는 기초연금을 내년부터 월 25만원으로, 2021년부터 월 3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연평균 4조4000억원이 추가로 들 것이라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소득 하위 50%에 대해 월 3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다른 정당들도 비슷하다.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아무도 현실적인 답을 내놓지 않았다. 문 후보는 말을 하지 않았고 안 후보는 재정지출 합리화와 같은 상투적인 설명을 했다. 복지 부담은 지자체도 분담해야 하는데 과연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기초연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때 써먹은 복지 공약이다. 월 9만6000원 주던 기초노령연금을 월 20만원으로 올리면서 올해에만 예산이 10조6000억원 들어간다. 이걸 내년부터 25만~30만원으로 올리면 추가로 4조~8조원이 든다. 이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700만명쯤 되는 65세 이상 인구가 2020년에 813만명, 2033년에는 1400만명으로 불어난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월 10만원 증액으로도 기초연금 예산이 2021년에 18조~20조원 들고, 2030년이면 80조원 필요하다. 불과 13년 뒤의 일이다. 복지 전문가들은 선거를 치를 때마다 기초연금이 10만원씩 오를 것이라고 예언했다. 정확히 들어맞고 있다.

안 후보는 0~11세가 있는 가정 중에 소득 하위 80%까지 10만원씩, 문 후보는 0~5세에 월 10만원씩을 약속했다. 아동수당도 공약 따라 연 2조6000억원에서 6조9000억원이 든다. 주요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제도이니 우리도 신설하자고 한다. 이미 우리에게도 '아동수당'이라는 이름만 없다 뿐이지, 0~5세 아동에게 보편 복지가 시행되고 있다. 현재 0~5세 아동에게는 보육료, 양육수당, 유아학비라는 각기 다른 이름으로 복지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그 위에 현금 제공을 더하자는 것이다.

올해 예산 400조원 중 3분의 1(130조원)이 복지 예산이다. 65세 이상에겐 기초연금을 포함해 총 12조7700억원, 0~5세에겐 12조4000억원가량의 복지 예산이 지원된다. 합쳐서 25조원 넘게 주는데 10조원가량의 현금성 복지를 무차별로 더 주자는 것이다. 가장 시급하고 효율적인 복지인가를 따진 것이 아니다. 표 많고 표 매수 효과가 큰 곳을 겨냥했을 뿐이다.

우리 복지비 지출은 GDP의 9.7%(2014년)로OECD 국가 평균(21.1%)에 크게 못 미치는 건 맞는다. '저(低)부담-저(低)복지' 국가에서 이제 '중(中)부담-중(中)복지'로 넘어가는 단계다. 그런데 저출산 고령화로 복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복지 예산 늘어나는 속도는 가파르다. 지난 5년간 복지 지출이 연평균 7.4%씩 늘어왔다. OECD 국가들의 2배 가까이 된다. 선진국들이 50년 넘게 걸린 길을 압축해 따라가는데 그 방향과 속도가 잘못되면 나라가 돌이킬 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국민들에게 공짜로 준 돈을 도로 줄이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복지 국가는 집 짓는 과정과 비슷하다. 설계도부터 제대로 그려야 하고 기초공사를 단단히 해야 하며 집 치장은 그 이후 일이다. 형편에 맞지 않게 집을 너무 크게 지을 수도 없다. 하지만 복지 정책이 선거판에만 올라가면 설계도와 기초공사가 생략되고, 형편에 맞지도 않게 크고 화려한 집을 돈 안 들이고 지을 수 있다는 집장수들만 설친다.



대한민국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고민이 없는 대선 주자들이 '이 한 판만 먹고보자'는 노름판 심리의 포로가 돼 있다. 누가 '100 준다'고 공약하면 다른 후보는 '나는 100 받고 100 더'라고 나온다. 이른바 '미 투(metoo)' 전략이다. 이런 대선(大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하고 싶어도 못 할 것이고 그 시기는 그리 머지않았을 것이다.



[중앙일보]

3. 한반도 불안감 부추기는 일본, 호들갑 자제하라

최근 일본이 한반도 위기를 틈타 도를 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우리 외교부 대변인은 어제 “가상 상황을 전제로 오해를 야기하거나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언급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교부가 한반도 유사시 과도한 대응을 시사한 일본 측 발언에 유감을 표시한 건 마땅한 일이다.

일본이 자국민 보호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하는 건 당연하다. 이 땅에 체류 중인 일본인이 5만7000명을 넘는다니 아베 정권이 대피 대책을 세우는 것도 정당하다. 하지만 우익 언론은 그렇다 치고 내각의 2인자라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에 이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까지 나서 위기 상황을 요란하게 떠드는 것은 한반도에 대한 불안감만을 부추길 뿐이다. 필요한 대책이라면 조용히 세우고 철저히 수행하면 될 일이다.

특히 아베 총리의 거듭된 발언은 모종의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낳는다. 그는 지난 12일 한반도 유사시 “북한 납치 일본인 피해자를 구하도록 미국 측의 협력을 요청 중”이라고 했다. 남의 불행을 틈타 실속을 챙기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게다가 그는 다음날 “북한이 사린가스를 미사일에 장착해 발사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확인 안 된 사실을 거론하며 군사력 증강을 합리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살 발언이다.

더 문제는 아베 총리가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해 “상륙 절차와 수용시설 설치 등과 관련, 일본 정부가 보호해야 할 사람인지 스크리닝하는 방안을 생각 중”이라고 한 것이다. 전쟁 발발을 전제로 한국인들이 난민으로 변해 몰려오는 상황을 상상한 것이다. 옆 나라 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호들갑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소녀상 갈등으로 돌아갔던 일본 대사가 막 귀국해 한·일 관계가 겨우 봉합되려는 시점이다. 일본은 한·미·일 3각 동맹의 한 축을 담당하는 우방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대한 지나친 불안감이 형성되지 않도록 적극 도와도 모자랄 판 아닌가. 이제 아베 정권은 사태의 엄중함을 깨닫고 언행에 신중을 기해 주길 바란다.



[동아일보]

4. 언제까지 ‘미세먼지 동굴’ 지하철 이용해야 하나

전국 6개 도시 지하철 중 작년에 인천의 지하역사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가 m³당 80.9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으로 가장 나빴고 서울이 그 다음이었다고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인천은 측정지점 14곳 중 절반인 7곳이, 서울은 11곳 중 4곳이 연평균 ‘나쁨’(81∼150μg)에 해당됐다. 나머지 광주 대전 대구 부산에서도 연평균 미세먼지 수치가 ‘좋음’(0∼30μg)을 나타낸 곳은 한 곳도 없었다.

환경부는 550개가 넘는 전국 지하철 역 중 39개 역에 설치된 47개의 자동측정기로 미세먼지를 측정한다. 2013년 국립암센터 등이 서울 지하역사 100곳의 미세먼지를 측정한 결과 1∼4호선 모두 평균 90μg을 넘어 이번 수치보다 훨씬 나쁘게 나왔다. 환경부 수치가 더 좋게 나온 것은 제한된 측정 방식 덕분일 수 있다.

열차가 진입하는 승강장 앞쪽은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151μg 이상)일 때가 많다. 철로의 마모 등으로 생기거나, 외부에서 유입된 터널 안 미세먼지가 열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밀려 한꺼번에 몰려든다. 승객들이 알아서 피하는 방법밖에 없다. 객실의 미세먼지는 터널 안 미세먼지 때문에 역사보다 2배 가까이 높다. 하지만 현재 객실의 미세먼지를 측정해 알려주는 시스템은 운영되지 않는다.

올 3월 서울 미세먼지 농도는 작년보다 25%나 더 높았고 작년에 한 번도 없었던 초미세먼지 주의보는 3차례나 발령됐다. 지하역사 공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 악화됐을 것이다. 환경부는 어머니들이 분노하자 이달 초에야 수도권 공공차량 2부제를 강화하는 미세먼지 대책을 내놓았다. 이런 환경부가 올해 말 지하역사 미세먼지를 보통(31∼80μg) 범위인 m³당 70μg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달성할지 미덥지 않다. 강력한 지하철 미세먼지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정부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5. 북핵 억제 대가로 한미FTA 청구서 들이민 트럼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어제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검토해 개선(review and reform)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펜스 부통령은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미국의 무역적자가 한미 FTA 발효 이후 2배 이상 증가했다는 사실”이라며 “미국 산업이 진출하기엔 너무 많은 진입장벽이 있다”고 했다. 미국의 최고위 인사가 한국 방문에서 직접 FTA 개정을 언급함으로써 한미 FTA 재협상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바로 전날 “미국은 100% 한국 편에 설 것”이라고 말한 펜스 부통령이 하루 만에 한미 FTA 개정을 피력한 데 대해 귀를 의심하는 건 어쩌면 한국적 정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협상의 달인인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미국이 북핵 위협을 막는 대가로 무역 역조를 해소하는 것은 당연한 ‘기브 앤드 테이크’일 수도 있다. “중국이 미국을 강간하고 있다”며 대중(對中) 무역역조를 비판했던 트럼프가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북한 압박 대가로 환율조작국 지정을 면제해주는 것과 같은 논리다. 

한국으로선 트럼프가 선거 유세에서 한미 FTA에 대해 “미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 킬러”라고 비난했을 때부터 FTA 재협상이 예고된 것으로 보고 대비했어야 옳다. 최근 5년 동안 글로벌 경기 침체로 세계 교역은 연평균 2% 감소했지만 한미 간 교역은 오히려 1.7% 증가했다는 무역협회의 3월 발표도 미국에 알렸어야 했다.



그러나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3월 한미 FTA를 포함한 기존 협상을 재검토할 것이라는 자료를 내놨을 때도 산업통상자원부는 한미 FTA ‘재협상’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이번에도 산업부와 외교부는 재협상이 아닌 ‘미세조정’이라는 안이한 인식이다. 

‘미국 우선주의’ 공약으로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대외정책에서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트럼프 행정부에 공짜 점심은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70만 개 일자리 창출과 70억 달러의 인프라 투자라는 선물 보따리를 들고 워싱턴에 날아갔고, 그 대가로 미일방위조약 강화 약속을 받아냈다. 정부는 더 이상 팔짱만 끼고 있지 말고 한미FTA가 한미 양국에 ‘윈윈’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012년 대선 때 한미 FTA가 한국에 불리한 독소조항이 많다며 재협상을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 때 타결한 한미FTA를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자 입장을 뒤집었다. 문 후보는 미국이 손해를 보고 있다며 재검토를 요청한 지금은 어떤 입장인지 밝히길 바란다.



[매일신문]

6. 뜀박질하는 소득세`건보료에 국민 허리가 휜다

장기 불황으로 소득 증가가 거북이걸음질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소득세 및 건강보험료 징수율은 뜀박질하고 있다. 소득 증가 속도를 훨씬 웃도는 세금`건보료 인상은 소비 여력을 떨어뜨려 다시 경기 침체를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18일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근로자의 평균급여가 지난 10년간 21% 오르는 동안 소득세는 75%나 올랐다. 2006년 4천47만원이던 근로자 평균연봉이 2015년 4천904만원으로 857만원(21%)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근로소득결정액은 175만원에서 306만원으로 131만원(75%) 늘어난 것이다. 세금 증가율이 근로소득 증가율보다 3.57배 높은 셈이다.



정부 곳간을 채우는 데 돈을 더 부담한 쪽은 기업이 아니라 가계였다. 지난해 정부는 당초 예상보다 14.6%(1조8천억원)를 초과하는 세금을 소득세로 거둬갔다. 민간 부문에서는 돈 가뭄 아우성인데 정부 곳간만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가계 돈줄을 죄는 데에는 사회보험료도 한몫 거들고 있다. ‘유리 지갑’으로 불리는 직장인의 건강보험료 징수액은 2001년 5조2천408억원에서 2015년 38조9천659억원으로 7.4배 늘어났다. 지역가입자 건보료 징수액도 같은 기간 3조6천154억원에서 8조1천177억원으로 2.2배 증가했다.


이처럼 가계에서 비명이 나오는 데도 정치인들은 재정지출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선심성 공약 발표에만 관심을 둘 뿐 세금 및 사회보험료의 공정한 부과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돈을 쓰겠다”는 공약은 난무하지만 “과세 체계를 합리화해 가계 고통을 경감하겠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거시경제적인 안목에서도 세금 및 사회보험료의 브레이크 없는 인상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선진국에서 시행되는 ‘세금 물가 연동제’ 같은 방안의 도입을 이제 심각히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연간 50조원 이상의 급여를 지급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회계도 중앙정부 기금 예산에 귀속시켜 국회 통제 아래 두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



[경향신문]

7. 유승민, 당 안팎 수구세력에 맞서 새로운 보수로 승부하라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를 두고 당 안팎에서 사퇴를 거론하고 있다. 그제는 이종구 당 정책위의장이 기자들과 만나 “오는 29일 이전에 의원총회를 열어 대선 전략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며 사퇴론에 불을 댕겼다. 대선 투표용지 인쇄가 시작되는 29일까지 당이 원하는 지지율이 나오지 않으면 사퇴나 후보단일화 등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내 몇몇 의원들도 사퇴를 거론했다고 한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도 심심하면 유 후보의 사퇴론을 제기하며 자기 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압박하고 있다.

유 후보와 당이 처한 상황이 엄중한 것은 사실이다. 당과 후보 모두 지지율이 2~5%에 묶여 좀처럼 뜨지 않고 있다.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은 이해한다. 득표율이 10% 미만에 그치면 100억원이 넘는 선거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후보의 사퇴는 명분이 없다.



여론조사 지지율 1·2위 후보를 남기고 모두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처사이다. 다른 당과의 후보단일화는 사실상 하나의 당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창당대회를 연 지 석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하나의 당으로 뭉치겠다는 발상은 시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더구나 자유한국당은 ‘친박근혜 새누리당’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유 후보는 지난주 원내 5개 정당 후보들 간 TV토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더불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유 후보의 지지율 정체가 유 후보 개인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님을 말해준다. 그보다는 바른정당이 내세운 보수의 가치에 부합하면서 바르게 서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른정당은 건강한 보수, 따뜻한 보수의 기치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된다. 유권자들은 지금 바른정당이 진정한 보수의 대표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없는지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당이 정당한 절차를 통해 선출한 후보를 스스로 흔든다면 그것처럼 낡은 행태는 없다. 바른정당이 선거자금을 아끼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리어카를 끌며 선거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의 재집권도 천막당사에서 시작됐다. 지금 바른정당이 할 수 있는 것은 유 후보를 중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바른정당과 유 후보가 진보적 시민들까지 맘껏 지지할 수 있는 합리적 보수정당을 만들기 바란다.



8. 중국발 미세먼지와 국제법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대기오염 피해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도 있을 것이므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줄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중국도 중국발 미세먼지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함께하여야 한다. 그러나 만일 중국 정부가 중국발 미세먼지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고 계속해서 한국에 미세먼지로 인한 손해를 발생하게 한다면 국제법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먼저 참고할 만한 국제분쟁의 사례로 1941년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트레일 제련소(TrailSmelter) 사건’ 판결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중재재판소는 캐나다 트레일 지역의 제련소에서 넘어온 아황산가스로 인해 미국 워싱턴주의 과수농장 등이 입은 피해를 배상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은 국제법상 ‘초국경 환경피해 방지 원칙’을 적용하였다. 이 원칙에 따르면 어느 국가도 자신의 관할권 내에서의 활동으로 다른 국가 또는 자국 관할권 바깥 지역에 환경피해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트레일 제련소 사건 판결 이후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채택된 ‘인간환경에 관한 유엔회의 선언’(스톡홀름 선언)의 제21원칙과 1992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 선언’의 제2원칙이 초국경 환경피해 방지 원칙을 선언한 바 있다. 

그리고 국제사법재판소(ICJ)도 초국경 환경피해 방지 원칙이 국제관습법이라고 확인한 바 있다. 따라서, 중국은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국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할 국제법상의 의무가 있다.

또한, 초국경 환경피해 방지 원칙은 우리나라와 중국이 모두 당사국인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제194조 2항에도 규정되어 있다. 이 조항은 “각국은 자국의 관할권이나 통제하의 활동이 다른 국가와 그 국가의 환경에 대하여 오염으로 인한 손해를 주지 않게 수행되도록 보장하고, 또한 자국의 관할권이나 통제하의 사고나 활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오염이 이 협약에 따라 자국이 주권적 권리를 행사하는 지역 밖으로 확산되지 아니하도록 보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해양법협약은 기본적으로 해양환경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제194조 2항은 각국이 “다른 국가와 그 국가의 환경”에 대하여 손해를 주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해양환경에 대한 손해를 발생시키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중국발 미세먼지가 우리나라와 우리나라의 환경, 즉 해양환경이나 대기환경 등에 손해를 주고 있고, 중국 정부가 미세먼지의 역외 확산을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중국 정부가 유엔해양법협약 제194조 2항을 위반하고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다음으로 중국이 제194조 2항 등 유엔해양법협약을 위반하고 있다면 우리나라는 중국의 협약 위반사항에 대해 어떤 수단을 활용할 수 있을까? 유엔해양법협약은 분쟁 당사국 간의 분쟁 해결을 위해 의견교환, 조정뿐만 아니라, 중재재판이나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등을 통한 분쟁 해결 수단을 규정하고 있다. 즉, 중국이 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가 요청하면 중재재판소를 설립하여 이 문제를 다룰 가능성도 남아 있다. 최근에는 필리핀이 중국과의 남중국해 관련 분쟁을 유엔해양법협약상의 중재재판에 회부하여 유리한 중재 판정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중국이 유엔해양법협약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중국발 미세먼지로 인한 손해를 입증하여야 하는 과제가 있고,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도 예상할 수 있다.

2007년 우리 환경부의 한 연구보고서도 황사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에 대해 국제법상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며 환경협약 체결 등을 통한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현재도 황사뿐만 아니라 중국발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을 볼 때, 중국에 대해 유엔해양법협약 등의 위반을 이유로 국제법적 책임을 묻는 방안을 심각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황사와 미세먼지, 발해만의 해양오염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과 환경협약을 새로 체결하는 방안을 계속하여 추진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아울러 우리나라와 중국 간에 현재 적용될 수 있는 국제협약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하여야 한다. 

미세먼지의 해결을 위해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매일경제]

9. 잇단 성장률 상향, 그러나 여전히 불안한 내수침체

한국은행에 이어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며 모처럼 우리 경제에 청신호가 켜졌다. KDI는 어제 발표한 '2017년 상반기 경제전망'에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지난해 12월 발표했을 때보다 0.2%포인트 높인 2.6%로 조정했다. 지난 13일 한국은행도 3년 만에 성장률 전망치를 1%포인트 올린 바 있다.



성장률의 잇단 상향 조정은 미국과 신흥국을 중심으로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수출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 일부 업황이 개선되며 수출은 5개월째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이에 따른 투자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라니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경기 회복을 낙관하기에는 복병이 많다. 특히 내수불황이 깊은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 걱정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민간소비 성장률은 2.0%로 지난해 2.5%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KDI도 올해 총소비 증가율이 2.3%에서 2.2%로 하락할 것으로 보았다. 내수침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수경기를 살릴 호재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13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가 민간소비 여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는 데다 기업들이 사람을 뽑지 않으면서 고용 환경도 나빠지고 있다. 조선을 비롯한 주력 업종 구조조정이 진행되며 실업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으니 내수를 활성화할 묘책이 보이지 않는다.



KDI는 성장률 상향 조정이 경기가 치고 올라갈 모멘텀은 아니라며 섣부른 기대감을 경계했고, 이주열 한은 총재 역시 "실질구매력이 크게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아 빠른 경기 회복을 제약하는 요인이 많다"고 지적했는데 옳은 말이다.

견고한 경제성장 기반을 구축하려면 내수경기가 뒷받침돼야 한다. 국내 여행과 소비를 유도하는 단기 처방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갈수록 늘어나는 가계부채를 해소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늘리도록 규제를 과감하게 풀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래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면서 소비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10. 통합 외치는 한편으로 지역감정 부추기는 선거운동

19대 대선은 보수 대 진보 공식이 깨지면서 과거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던 영·호남 지역 대결구도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유세장에서는 한동안 잠잠하던 지역주의 망령이 고개를 들고 있다. 각당 후보들이 통합과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캠프 일각에서는 지역주의에 기대 표심을 자극하려는 움직임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17일 전북 전주를 찾아 "안철수가 대통령이 돼야 전북 출신 인사가 차별을 안 받는다"며 '호남 차별론'을 쏟아냈다. 박 대표는 또 "문재인이 대북 송금 특검을 해서 김대중 대통령을 완전히 골로 보내버렸다"고 주장하며 호남 민심을 자극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국민이 이깁니다'라는 선거 슬로건을 내걸고 통합과 미래, 새 정치를 얘기하고 있지만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 대표는 구시대적인 지역주의 전략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17일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경북대 유세에 앞서 지원 유세에 나온 조응천 의원도 경북 출신임을 강조하며 "왜 민주당이 전라도 당이냐, 국민의당이 전라도 당이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등장한 문 후보가 "전 지역의 환영받는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주장했으니 엇박자가 난 꼴이다. 

새누리당 조원진 후보도 대구·경북 지역감정에 불을 지르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이 물밑 합의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박지원 당과 연대·연합하는 순간 보수지역인 대구·경북이 다 죽는다"며 지역주의를 꺼내들었는데 시대착오적인 발상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사는 영·호남 지역 대결구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치인들은 겉으로는 고질병인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지역감정을 부채질하기에 바빴다. '보수=영남, 진보=호남'으로 편을 가르고 정책보다는 지역색으로 표를 구걸해왔다. 하지만 특정 정당 깃발만 꽂으면 표를 몰아주는 후진적인 지역주의는 청산해야 할 구태다.



특히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을 바꿔야 한다는 국민의 열망으로 치러지는 만큼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역사에서 사라지게 할 절호의 기회다. 대선 후보들이 앞장서 지역주의 극복을 선언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 정치에 희망이 생기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주요신문칼럼



1. [매일경제][매일춘추] 피그말리온 효과

조선왕조실록에서 가장 비극적으로 그려진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영조와 그의 아들 사도세자 이야기이다. 뒤주에서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영조. 이 부자의 이야기는 조선 역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런 비극의 주인공이 됐을까.

영조는 조선시대 왕 중 가장 재위 기간이 길었고,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열었다고 할 만큼 많은 업적을 남긴 왕으로 평가받는다. 또 채식을 즐기고, 상에 반찬을 많이 두지 않았으며, 청렴한 삶을 산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에게 사도세자는 첫째 아들을 잃은 후 늦은 나이에 얻은 귀한 자식이었다. 그만큼 영조는 사도세자에 대한 기대가 컸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2세 때 세자로 책봉하고 3세 때부터 교육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 사도세자는 기대에 걸맞은 자질을 보이며 영조를 기쁘게 했다. 하지만 욕심이 과했던 것일까. 영조는 사도세자를 엄하게 대했으며,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을 때는 세상 누구보다 무섭게 사도세자를 대했다. 

이런 교육관은 세자에게 큰 부담이 됐고, 점점 학문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엇갈린 이들의 운명은 훗날 많은 사건과 서로에 대한 오해를 거치며 아비가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기대만큼 자식을 엄하게 대했고, 기대에 이르지 못한 자식은 엇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를 이끌 왕을 교육시키는 것은 평범한 교육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었겠지만, 단순히 교육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영조에게는 조금 다른 교육관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시대 부모들에게 필요한 교육관은 무엇일까. 많은 교육적 이론이 있을 수는 있지만, 무엇을 이뤄야 한다는 성취를 중시하기보다는 자신과 삶에 대한 긍정적 마인드를 심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긍정의 힘은 의외로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긍정적인 기대나 관심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피그말리온효과는 이를 가장 잘 입증해주는 이론이다.



평범한 아이들에게 IQ가 높다는 칭찬으로 긍정의 마인드를 상기시켜 줬더니 실제로 성적이 올랐다는 실험결과를 보면 긍정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긍정의 마인드는 아이들의 삶을 이끌어 가는 데 있어 가장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넘어진 아픔을 보듬어주는 것보다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칭찬해 준다면 아이들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 [조선일보][만물상] 0교시 체육

미국 시카고 근처 네이퍼빌 센트럴고교에서는 매년 9월 독특한 신입생 신고식이 열린다. 오전 7시 졸음 덜 깬 눈으로 등교한 아이들에게 교사가 소리친다. "지금부터 운동장에 나가 트랙(400m) 네 바퀴를 달린다. 마지막 한 바퀴는 숨이 차오를 때까지 전력 질주!" 이 학교의 전통인 '0교시 체육' 수업이다. 격렬한 운동으로 학생들 뇌를 깨운 후 교실로 보낸다. 이 수업을 받은 학생은 읽기 능력과 문장 이해력이 17% 향상했다고 한다.



학창 시절 운동장에서 땀 흘리고 나면 공부 잘됐던 기억이 있다. 과학자들은 "당연한 현상"이라 말한다. 1995년 UC 어바인 연구팀은 운동하면 뇌에서 학습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뇌세포가 자극받는다고 발표했다. 2007년 독일 학자들은 운동 후 어휘 습득 속도가 20% 빨라진다고 했다. 매일 40분 신체 활동을 하면 뇌가 자극을 받아 학습 능력이 오르고 집중력·창의력이 향상된다는 하버드대 연구도 있다. 



꼭 공부 때문에 스포츠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19세기 영국 사립학교에선 폭력·음주 문제가 심각했다. 혈기 왕성한 사춘기 소년들이 기숙사 생활로 쌓인 스트레스를 술과 주먹으로 풀었다. 고민하던 학교는 학생들을 럭비 구장으로 불러냈다. 땀 흘리고 뛰면서 소년들은 패기와 협동과 배려심을 익혔다. 웰링턴 장군은 "워털루 전쟁의 승리는 이튼스쿨 운동장에서 쟁취했다"고 했다. 한 사회 인재들의 책임감과 정의감은 운동장에서 길러진다.



​한국의 학교에선 체육이 천덕꾸러기 신세 된 지 오래다. 고교에서 체육 수업을 하면 학부모들이 "왜 아이들 뺑뺑이 돌리느냐"고 항의한다. 입시 설명회에선 "아이들 운동시키지 마세요. 피곤해서 잠만 자요" 하는 요구가 쏟아진다. 지난해 한 조사에선 고교생 절반이 "1주일에 땀 흘리는 운동 시간이 1시간 이하"라고 답했다. 5년 전 서울대가 신입생 체력 검사를 했더니 남학생 체지방률이 55~64세 수준이었다. 근력은 55~59세, 유연성은 40~49세와 맞먹었다. 청년이 아니라 장년이 지난 몸으로 대학에 들어온다.



10여 년 전 네이퍼빌에서 시작된 학교 스포츠 혁신은 미국 내 6만여 학교로 확산됐다. 이 운동을 펼치는 존 레이티 하버드 의대 교수는 그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온종일 학교와 학원에 앉아 지내는 한국식 교육은 학생들 능력과 창의력을 끌어내린다"고 말했다. 입시 만능 교육에 대한 뼈아픈 경고다. 마라톤같이 긴 인생을 살 아이들이다. 문제 한둘 푸는 것보다 삶을 완주해 낼 생각의 힘과 정신력, 체력을 키워줘야 한다. 우리는 반대로 하고 있다.



3. [한국일보][편집국에서] '진격'의 넷플릭스, 뒤로 가는 국내 방송

2010년 개봉한 영화 ‘하녀’는 기획 단계부터 영화계와 방송계의 주목을 받았다. ‘시청률 연금술사’였던 김수현 작가가 시나리오를 맡아서였다. 김 작가는 ‘바람난 가족’과 ‘그때 그 사람들’의 임상수 감독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여의도 대표 작가와 충무로 유명 감독의 만남이 어떤 조화를 이뤄낼지 호기심을 불러 모았다.



달콤한 결과로 이어지리라 여겨지던 두 사람의 조우는 쓴맛만 남기고 끝났다. 김 작가의 시나리오를 임 감독이 수정한 것을 두고 갈등이 불거졌고, 결국 김 작가가 하차를 선언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작가 위주의 방송계 문화와 감독 중심의 영화계 관행이 충돌하면서 파국을 불렀다고 해석했다. 김 작가와 임 감독의 악연은 영상언어를 토대로 한 방송과 영화가 업계 생리 때문에 국내에선 융합할 수 없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얼마 전 흔하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김은희 작가와 김성훈 감독의 의기투합이었다. 지난해 두 사람은 각각의 행보로 대중의 마음을 훔쳤다. 김 작가는 드라마 '시그널'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고, 김 감독은 영화 '터널'로 700만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그 동안 일해왔던 사람들과 차기 작을 궁리해도 아쉬울 것 없을 두 사람은 내년 방송 예정인 사극 ‘킹덤’으로 만난다. 조선을 배경으로 좀비를 등장시키는 이색 소재다. 8부작이 될 이 드라마는 제작비로 수백억원이 들어갈 예정이다. 김 작가와 김 감독의 협업을 주선한 쪽은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다.



190여 개국에서 가입자가 9,400만 명이나 되는 미국 공룡기업이다. 가입자당 적어도 월 9.9 달러(약 1만1,200원)를 받으니 매달 1조 원 이상을 꼬박꼬박 벌어들이는 회사다. 넷플릭스의 자본력과 거대한 전달망이 국내 방송과 영화의 합작이라는 흔치 않은 사례를 만들었다. 넷플릭스의 공격적 행보는 ‘킹덤’에 그치지 않는다. 만화가 천계영의 인기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을 원작으로 한 동명 드라마도 만들어진다.

넷플릭스의 야심과 스케일은 최근 공개한 다국적 서바이벌프로그램 ‘비스트마스터: 최강자 서바이벌’에 잘 반영돼 있다. 한국과 미국 독일 일본 브라질 멕시코에서 온 참가자 12명의 대결을 그려낸 이 프로그램은 앞의 6개국 방송인들이 각기 자신의 나라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따로따로 진행을 한다.



한국에선 박경림 서경석이 진행자인데, 넷플릭스는 각 나라 참가자를 중심으로 한 6개 편집본을 따로 만들어 나라별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국적을 따지면 미국이지만 한국 등 다른 5개국 프로그램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글로벌 하다. 올해만도 자체 콘텐츠 확보에 60억 달러를 쓰겠다는 기업다운 면모다.

전통적인 TV시장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콘텐츠 소비 행태를 만들어가는 넷플릭스의 모습은 두렵고도 두렵다. 방송법에 따라 해외 자본의 국내 방송사 소유는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이제 이런 보호막은 국내 방송산업에 별 위안이 되지 못한다. 방송지형을 뒤바꿀 대지진이 일어날 조짐인데, 태풍이나 수해 대비만 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할까. 넷플릭스 국내 가입자는 아직 10만 명 이내로 추산되나 과연 5년 뒤에도 이 정도 수치에 머물까.

방송업계의 현실을 돌아보면 위기 불감증이 뚜렷하다. 여전히 지상파TV와 케이블채널, IPTV 등 구별 짓기에 여념이 없고,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이끌 강력한 정책조차 보이지 않는다. 특히 지상파TV, 그 중에서도 공영방송의 운영 행태나 전략은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최근 대법원은 원래 직종과 무관한 부서로 부당 전보된 MBC PD와 기자 9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전보발령 무효확인 소송에서 PD와 기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보도 업무를 담당해온 중견 직원들에게 5년 가량 스케이트장 관리나 협찬 영업을 시킨 게 잘못됐다는 취지다. 국내 방송의 콘텐츠 강화 운운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국내 방송계에 묻고 싶어진다. 한국 방송, 정말 살아남을 생각은 하고 있나요?



4.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 배은망덕의 세 가지 원인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은혜를 흔쾌히 받고 그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일도 아름다운 일이다. 공개적으로 은혜를 입는 일이 부끄럽다면 그 은혜는 차라리 받지 않는 게 낫다. 이는 은혜 입은 것을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이에게 공개적으로 존경을 표하지 않는 것은 그에게 자신이 예속되어 있다는 평판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리라.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BC 4년?~AD 65년)는 ‘베풂의 즐거움’에서 은혜를 기꺼이 베풀고 흔쾌히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따뜻한 사회를 희구했다. 하지만 현실은 은혜를 주고받은 이들의 아름다운 사연보다 배은과 갈등의 사례를 더 많이 보여 준다. 세네카는 배은망덕을 특히 경계했다. “자신에게 가장 큰 은혜를 베푼 이를 가장 심하게 비난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은 자신이 빚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욕적인 언사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은혜를 망각한 이들에게 은혜를 기억하게 환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세네카는 배은망덕을 하게 되는 원인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 번째는 지나친 자만심 때문이다. 이런 이들은 자신이 입은 은혜를 자신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외려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며 불평하고 배은하게 된다. 자신에 대한 평가가 후한 사람들이 자주 겪는 오류다.

두 번째는 탐욕이 배은망덕으로 이끈다. 인간의 욕망은 끝없이 뻗어나가려 하므로 은혜로 얻은 어떠한 재물과 권력, 명예도 잠시 감사할 뿐 더 많은 것을 욕구하면서 배은에 빠진다. 호민관이 된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르고 치안관의 자리에 더 빨리 오르지 못한 것을 불평하고, 정작 치안관이 되면 집정관이 되지 못한 것을 불평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나친 탐욕은 대중의 기대와 은혜를 가벼이 여기고 자신만의 성공을 추구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이끄는 가장 난폭하고 심각한 악덕은 질투다. 자신이 받은 은혜보다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은 것이 주어졌다며 시샘하면서 배은망덕의 길로 빠진다. 다른 이들의 상황과 매력을 세심하게 살피고 관대하게 평가하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앞세우기에 생기는 일이다. 자신이 받은 은혜가 다른 이들에 비추어 보잘것없다는 질투는 은혜 베푼 이를 원망하게 만든다. “질투의 시선이 갈기갈기 찢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은혜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숱한 배은망덕의 사례들은 어느 경우에 속할까. 어떤 은혜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불평할 소지가 항상 있게 마련이다. 각자의 상황과 운명에 맞게 누군가의 배려와 은혜를 감사하게 여기는 품성을 갖출 때만 배은망덕의 악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사만물에 깊이 감사하자.



5. [서울신문][박형주 세상 속 수학] 천재들의 브로맨스

얼마 전 런던에서 만개를 앞둔 봄꽃을 보며 잠시 망중한을 누린 런던대학 근처의 공원 이름은 러셀 광장이었다. 이 공원 옆 드모르간 하우스는 수학적 귀납법을 체계화한 영국 수학자의 이름을 땄다. 이 건물의 주인은 런던수학회이고 건물 안에서 가장 큰 회의실은 하디 룸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러셀과 하디라는 두 이름을 한 골목에서 보는 호사를 누렸다.



하디는 최근 개봉됐던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에서 인도 수학 천재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친구로 나와 국내에 알려졌다. 인도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며 교육도 변변히 받지 못한 라마누잔을 케임브리지대학에 초청해 천재성을 꽃피게 해 준 바로 그 사람이다. 하디 자신도 수학적 엄격함을 영국에 도입한 훌륭한 수학자였지만, 자기 평생의 가장 큰 성취는 라마누잔을 발견한 것이었다고 털어놓곤 했다. 그래서 천재와 교수의 브로맨스를 다루는 이 영화는 맷 데이먼이 주연한 영화 ‘굿 윌 헌팅’의 실화 버전에 가깝다.

버트런드 러셀은 할아버지가 영국 총리를 두 번 역임한 명문 집안에서 태어났다. 비유클리드 기하학 논문을 쓴 수학자였고, 칸토르 집합론의 한계를 넘기 위해 러셀 패러독스를 창안한 논리학자였으며, 화이트헤드와 함께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를 저술한 철학자였다. 하지만 정작 그의 1950년 노벨상은 정력적인 저술 작업에 대한 문학상이었다.

러셀과 하디와 라마누잔은 5년의 기간 동안 영국에서 여러 갈래로 얽힌다. 라마누잔이 인도를 떠나 케임브리지에 도착한 건 1914년이었고 박사 학위를 받은 건 1916년, 영국왕립학회의 역사상 최연소 펠로로 선출된 건 1918년인데 같은 해에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가 됐다. 교수가 된 것이다.



러셀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평화운동을 벌이다 1916년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 교수 직에서 해임됐다. 하디는 러셀 구명 운동에 나서지만, 결국 라마누잔이 1919년에 인도로 돌아가자 옥스퍼드로 자리를 옮긴다. 하디가 트리니티를 떠난 이유는 분명치 않다. 러셀이 없는 곳, 라마누잔도 떠난 곳에 더 머무르기 싫어서였을까. 하지만 1931년에 하디는 케임브리지 교수로 되돌아간다.

런던수학회는 왜 학회 건물에서 가장 큰 방을 하디 룸이라고 했을까. 대개 학문 분야에서는 학자들의 결사체가 있어서 학문적 진전의 확인과 기록, 그리고 난제 해결을 위한 생각의 교환 매체 역할을 한다. 수많은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논문지를 발간해서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정리하고 드러낸다. 보통은 각 나라 수학자들의 모임이라는 성격 때문에 미국수학회나 대한수학회처럼 국가 이름이 앞에 붙는다.

반면에 영국은 런던수학회나 에든버러수학회같이 도시명이 붙은 수학회가 몇 개 있다. 오랜 영연방 역사의 산물인데, 통상적으론 런던수학회가 영국수학회 역할을 한다. 하디는 70세의 나이로 1947년 사망할 때까지 독신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재산을 런던수학회에 기부했다. 덕분에 수학자들이 내는 연회비에 의존해서 근근이 살림을 꾸려 나가던 런던수학회는 건물을 샀고 건물 내 일부 공간을 타 학회에 대여해 안정된 재정 구조를 가질 수 있게 됐다. 학술지 발간 등의 활동에서 세계적으로 드문 규모와 수준으로 성장하는 동력이 됐음은 물론이다.

런던의 어느 작은 골목에서 본 학자들의 선의와 지적 우정의 흔적은 러셀 광장의 봄꽃만큼이나 여운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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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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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동아일보]

1. 朴 구속 기소가 차기 대통령에 주는 메시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제 592억 원의 뇌물 수수와 직권 남용, 공무상 비밀 누설 등 18가지 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과 검사들에 의해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검찰은 특검이 적용한 삼성의 433억 원 외에도 롯데에서 받았다가 돌려준 70억 원, SK그룹에 요구한 89억 원도 뇌물 혐의에 포함했다.

대한민국 최고위 공직자인 대통령이 공직범죄 중 죄질이 나쁜 뇌물수수 혐의로 피고인석에 서는 장면을 바라봐야 할 국민은 착잡하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18가지나 되는 혐의가 적용됐지만, 불행한 사태의 근본 원인은 국리민복을 위해 사용하라고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최순실 같은 사인(私人)의 이익을 위해 썼다는 점이다.



대통령 주변에서 이를 감시하고 견제했어야 할 사람들은 한통속이 되거나 방조자 역할을 했다. 대선을 향해 뛰는 각 당 후보들은 지금은 남의 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당선되는 후보는 전직 대통령이 형사피고인 신분이 된 오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을 구속 기소하면서 정작 국정농단을 감시할 자리에 있었음에도 묵인·방조·은폐 혐의를 받는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한 것은 검찰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다. 우 전 수석은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비리 감시를 위해 설치한 특별감찰관제도 무력화시켰다. 특임검사를 임명해 우 전 수석을 다시 수사하라는 여론을 무시하고, ‘봐주기 기소’를 강행한 것은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이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한 기도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안철수 등 차기 대선후보들은 모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검찰 개혁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금 검찰은 차기 정권의 우병우 특검과 개혁의 칼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차기 대통령도 청와대에 검사들을 파견 받아 민정수석실을 꾸리면서 검찰을 정권의 시녀로 쓰는 악습의 고리를 끊어야 할 것이다.



2. 한미동맹, 정권 따라 흔들리지 않는다는 상호신뢰 있어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17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회담을 갖고 북한을 향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결의를 시험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고 경고했다. 최근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보여준 트럼프 대통령의 무력 행동이 북한을 향한 메시지였음이 분명하며 북한도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미국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압박이다. 그는 비무장지대(DMZ)를 찾아서도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있다”며 미국의 대북정책이 인내에서 개입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한반도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에서 그의 방한은 시의적절했다. 2월 방한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공동발표는커녕 만찬도 하지 않고 떠난 것에 비해 펜스 부통령은 2박 3일 체류 동안 굳건한 한미동맹 의지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2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3월 틸러슨 장관에 이어 이번엔 행정부 2인자를 서울로 보냈다. 짧은 기간에, 그것도 한국 정치 리더십이 공백인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펜스 부통령이 서울로 오는 전용기에서 백악관 외교고문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완료와 운용은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 것은 미묘한 파장을 일으킨다. 펜스 부통령은 어제 ‘사드 배치는 변함없이 추진할 것’이라며 “대선 결과가 어떻든 미국의 한국의 안전 안보에 대한 의지는 철갑처럼 확고하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럼에도 백악관 고문이란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꺼냈을 리는 없다는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 이후 ‘미중 빅딜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아무리 혈맹이라도 미국이 한국을 건너뛰는 ‘코리아 패싱’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동맹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태도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한미동맹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미국에 주어야 한다. 틸러슨 국무장관이 ‘일본은 동맹, 한국은 파트너’로 우리의 격을 낮춘 것을 말실수로만 치부할 일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반미면 어때’식 외교로 한미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우리 안보의 근간은 한미동맹이다. 그러나 동맹의 우산에 숨어 자강을 소홀히 하는 것은 미국도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이데일리]

3. 시작된 대선, 유권자들이 두눈 부릅떠야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전이 드디어 시작됐다. 투표 전날인 내달 8일까지 22일 간에 걸친 공식 선거운동이다. 어제 첫날이 지나갔으니 이제 21일이 남은 셈이다. 남은 기간도 순식간에 지나가게 될 것이다.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이 나라를 이끌어갈 적임자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마지막 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두 눈을 부릅뜨고 쭉정이와 알맹이를 가려내야 한다.

중앙선관위에 등록한 후보가 모두 15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는 자체에서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혼란상을 읽게 된다. 전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상황에서 후임자를 선출하는 선거라는 점부터가 그렇다. 탄핵과정에서 극심하게 부딪쳤던 ‘촛불’과 ‘태극기’ 민심의 괴리는 여전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기 상황이다. 선거전 역시 최대 혼전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국방·안보의 위기다. 핵·미사일 개발에 집착하고 있는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로 한반도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무력충돌 위기에 휘말려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여차하면 강공책을 구사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에서도 북한 지도부는 도발 야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안보 문제를 원활히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을 다음 대통령으로 선택해야 한다.

경제 문제도 만만치 않다. 최근 지표상으로는 경제가 회복되는 과정임을 말해주고 있지만 체감 경기로는 아직 멀었다. 기업들은 여전히 신규 투자·고용을 꺼리고 있으며, 청년실업 문제도 쉽게 해결될 기미가 아니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일단 다행이지만 금리 인상에 따른 장기적인 파고에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중국의 사드보복 조치도 금방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선 후보들마다 인기에 영합하려는 포퓰리즘 공약에 골몰하고 있으니 걱정이다. 퍼주겠다는 정책으로는 나라를 거덜내기 십상이다. 포퓰리즘 약속으로 민심을 자극할 게 아니라 굳건한 믿음을 주는 리더십으로 민심을 얻어야 한다. 후보들마다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안으로는 나라 살림을 키우고 밖으로는 우리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4. 정부는 국민연금에 눈독 들이지 말라

국민연금공단이 정부의 대우조선 채무 재조정안에 찬성하면서 연금기금 운용의 독립성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대우조선은 한고비를 넘기게 됐지만 정작 국민연금은 거센 후폭풍에 직면한 것이다. 정부 압박으로 회생 전망이 불확실한 기업에 국민 노후자금을 퍼주느냐는 비판 여론이 그것이다. 현 상황에서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 방안을 택했다고 하지만 일련의 과정에 정부 입김이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민연금 의사결정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찬성이 대표적이다. 특검 수사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이다.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도 연금에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초 국민 노후자금의 손실을 우려한다며 반대했던 이번 결정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법정관리인 ‘P플랜’으로 가면 손실률이 50%에서 90%로 더 커질 수 있다는 현실론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사안이 아닌데도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한 고통분담이라는 명분으로 윽박지른 탓에 결국 손을 들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생활을 지탱할 마지막 보루다. 권력이나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맘대로 돌려쓰는 쌈짓돈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연금을 틀어쥐고 있는 현행 구조 아래서는 언제든 이런 사태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유력 대선 후보가 “보육, 임대주택, 요양 분야 국공채를 발행하는 경우 국민연금이 적극 투자하도록 하겠다”는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국민연금은 560조원의 막대한 기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운용은 이처럼 구시대적이다. 자칫 기금이 조기에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제대로 운용하려면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차제에 정부와 공단의 지휘·감독을 받는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켜 기금 운용의 독립·투명·전문성을 확대해 정부와 정치권이 손톱만큼이라도 국민연금에 눈독 들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보건복지부 장관, 금융위원장 등이 국민연금 운용에 간섭하려면 먼저 자기 재산을 걸고 연명으로 보증을 서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5. "트럼프를 시험하지 말라"는 美 부통령의 경고

한국을 방문 중인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17일 "지난 2주 동안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택한 우리의 행동에 의해 전 세계가 새로운 (트럼프) 대통령의 힘과 결의를 목격했다"며 "북은 우리 대통령의 결의를 시험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이날 황교안 총리와 회담 후 공동 회견에서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원한다"면서도 군사적 해결책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명백히 했다. 그는 "(20년간의)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펜스 부통령은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 "한국의 방어 조치에 경제적 보복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중국은 방어 조치를 필요하게 만드는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만일 중국이 북한에 대처하지 못한다면 미국과 우리 동맹국들이 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도 상기시켰다.

펜스 부통령의 이날 회견은 미국의 정책 방향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줬다. 북이 추가 도발을 하면 반드시 징벌적 조치가 따를 것이고, 중국이 북을 제어하지 못하면 미국이 직접 할 것이며, 중국의 사드 보복도 이런 차원에서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황교안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한·미는) 북한의 추가 도발 시 (중국과의 협력을 토대로) 강력한 징벌 조치를 취해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대북 송유관 차단, 중국 정부의 대북 금융거래 단절, 북한인 노예 노동 금지와 같은 조치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이번만은 제재와 압박 수위를 높이는 듯하다가 적당히 물러서던 과거의 방식이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북 정권이 핵·미사일과 정권 생존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 한다. 중국이 나서지 않아 미국이 나서게 되는 일은 중국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일주일(4월 25일) 후면 북한군 창설 기념일이다. 북은 지금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대응 전략, 과거와 다른 중국에대한 대응 전략에 골몰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간 보기'와 같은 미사일 도발을 했다. 이제 6차 핵실험과 ICBM 발사 시험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면 "트럼프 대통령을 시험하지 말라"는 펜스 부통령의 경고를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한다.

이런 시점에 우리는 정치적 불확실성의 정점을 지나고 있다. 각 정당과 대선 후보들은 현 정세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을 촉구하되 불필요하고 과도한 불안감이 아닌 국민적 결의가 모아질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주기를 당부한다.



6. '한국 피란민 선별한다'는 아베의 치졸한 언행

아베 일본 총리는 어제 중의원에서 한반도 유사시 일본으로 피란민이 유입할 경우에 대한 대책을 질문받고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사람에 해당하는지 스크린하는 방식의 대응을 상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긴장을 부추기는 듯한 질문과 답변 모두가 수준 이하의 치졸한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일부 언론 매체는 마치 한반도에서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일본으로 철수했다가 슬그머니 돌아온 일본 대사는 국방장관 면담을 요청하는 엉뚱한 행동을 했다. 이 역시 일본인 피란 문제를 논의한다는 이유라고 알려졌다. 빈손으로 한국으로 귀환한 데 대한 일본 내 비난이 크자 일부러 이런 무례한 행동으로 만회하려는 것이란 얘기도 있다고 한다.

지금 한·일 간에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한국 내 반발과 소녀상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한국 내에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로 나아가기보다는 그 상처를 덧나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일본이 한국에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일본은 '언제까지 반성해야 하느냐'고 하지만 아무리 반성해 보았자 아베와 같은 사람들이 이런 저급한 언행을 하면 소용이 없다. 아베의 말은 소녀상에 대한 감정적 화풀이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한국 국회에서 '일본에 대지진이 발생해 한국으로 난민이 유입할 경우'에 대한 대책을 묻는 질문에 한국 공직자가 '스크린하겠다'고 답하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지금 일부 일본인 사이에 반한(反韓) 감정이 퍼져 있다고는 하지만 공직자들이 마치 옆 나라의 불행을 바라고 즐기는 듯한 언행으로 여기에 영합하려 한다면 양국 관계 정상화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신문]

7. ‘북 도발 시 징벌조치’ 확인한 황-펜스 공동발표

최근 주한 미군 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차기 정부로 연기될 수 있다는 미 외교 관계자의 발언이 주목을 받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방한에 동행한 백악관의 외교정책 고문의 발언이다.



그는 전용기에 탑승한 취재진에게 “사드 배치 문제는 한국이 5월 초 대통령을 뽑을 때까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며 차기 대통령의 결정으로 미뤄지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밝힌 것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무역과 북핵 문제를 주고받는 ‘빅딜’ 카드까지 꺼내 든 상황이라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어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방한 중인 펜스 부통령과 첫 회동을 하고 굳건한 한·미 동맹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사드의 조속한 배치와 운용 및 포괄적 대응능력 발전 의지도 밝혔다. 또 북한이 도발하면 강력한 징벌적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다만 미국과 중국이 북핵과 무역 문제를 주고받는 빅딜설이 제기된 상황에서 사드 배치를 놓고 양국이 무언가의 거래를 했을 것이란 추측도 있다. 펜스 부통령이 중국의 경제보복이 잘못됐다고 지적했지만 지난 6~7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는 거론조차 안 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중국이 최근 북한 관광을 중단하는 등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중국이 북핵 문제를 우리와 협력하는데 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부르겠느냐”는 의미심장한 트윗 글을 남겼다. 미국이 중국에 명분과 실리를 주기 위해 사드 배치 문제를 한국의 차기 정부 몫으로 돌렸을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우리로선 북핵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가 사드 배치 문제 때문에 훼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경제제재가 힘을 받기 시작하다가 지난해 7월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거센 반발과 함께 국제 공조가 흐트러진 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가 자신을 향한 미사일방어(MD)체계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면서 북·중 관계가 복원되는 조짐마저 보였다.



지난해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에도 북한은 사드를 둘러싼 한·중 간 갈등이 커지면서 중국의 대북 압박 강도가 수그러졌다. 북한의 유일한 후원국인 중국의 대북 제재 공조 이탈로 사실상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최대 현안이 북핵 불용이라는 측면에서 탄탄한 국제 공조를 통해 북한의 핵 개발 의지를 꺾는 것이 우선이다.



8. 대우조선, 국민연금 희생 안 되게 책임져야

법정관리의 갈림길에 섰던 대우조선해양에 숨통이 트인 것은 다행스럽다.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최대 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채무조정안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어제 열린 첫날 사채권자 집회에는 사학연금과 우정사업본부, 농협, 중기중앙회, 수협 등의 기관투자자가 참여해 국민연금과 같은 찬성 의견을 냈다고 한다. 사채권자들이 내일 열릴 사채권자 집회에서 내년 만기도래금에 대한 채무조정에 동의하면 대우조선은 살아날 기회를 잡게 된다.

그러나 아직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대우조선의 정상화 여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내년 조선 시황이 회복되지 않거나 자구노력이 지금처럼 계속 지지부진하면 대우조선은 정리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음이 시장에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내년 9월을 전후해 내년 수주 목표(54억 달러)의 절반 이상을 달성하지 못하면 또다시 유동성 위기에 빠지고, 그렇게 되면 ‘백약이 무효’라는 것을 정부와 대우조선도 잘 알고 있다. 대우조선이 수주전에 말 그대로 사활을 걸어야 하는 까닭이다.

대우조선의 자구노력은 기대치에 턱없이 못미친다. 지난해 자구계획 이행률은 29%에 불과했다. 현대중공업(56%)이나 삼성중공업(40%)에도 크게 못 미쳤다. 여론이 좋지 않자 직원 1000여명을 추가로 줄이고 임직원 급여 10%를 반납하겠다고 나선 것이 고작이다. 시늉만 낸 것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안일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대우조선 부실이 산업은행의 소홀한 관리·감독과 대우조선의 부실 경영이 낳은 총제적 산물이라는 감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산업은행이 퇴직 임직원들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면서 관리 감독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을 이제 하나하나 엄중히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대우조선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우리 국민의 ‘피 같은’ 국민연금의 희생이 컸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회사채 3887억원 중 절반을 출자전환하고, 나머지를 상환 보장받는 조건으로 만기 연장하지 않았으면 대우조선은 법정관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이 드물다. 대우조선은 2180만명에 이르는 국민연금 가입자를 생각하며 ‘국민의 노후가 우리에게 달렸다’는 비상한 각오로 회생에 나서길 바란다.



[세계일보]

9. 교육현장 미세먼지 기준 제각각… 아이 건강 지킬 수 있겠나

‘봄철 불청객’ 미세먼지 대책을 놓고 학교 현장이 혼란스럽다고 한다. 교육부가 지난 2월 권고한 매뉴얼에 따르면 현재 주의보(151㎍/㎥ 이상 2시간 지속) 이상인 경우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의 야외 수업 금지를 검토토록 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교육청이 지난 10일 미세먼지 종합관리대책을 발표하면서 교육부 매뉴얼보다 한층 강화된 기준을 발표했다.



보통 단계에서도 50㎍/㎥ 이상이면 야외수업을 자제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인천 등 다른 지역의 학부모들이 해당 시도교육청에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건강이 걱정되니 서울과 같은 기준을 강화해 달라는 것이다.

미세먼지는 ‘침묵의 암살자’로 불리는 1급 발암물질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4년 미세먼지에 따른 조기 사망자는 700만명으로 흡연 조기 사망자(600만명)를 웃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40년 뒤 한국이 대기오염에 따른 조기 사망률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미세먼지에 마스크 쓰고 수업한다’는 학부모들의 원성이 일자 야외 수업 허용 기준을 발표했다. 미세먼지가 50㎍/㎥ 이상이면 야외수업을 실내수업으로 대체하고 54만명에게 마스크를 쓰게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와 조율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조치였다. 처음부터 혼선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시교육청만 탓할 수도 없다. 올봄에 미세먼지 공포가 고조되고 있지만 교육부는 시도교육청과 변변한 협의나 회의를 가진 적이 없다. 일방적으로 기준을 정해 내려 보냈을 뿐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교육행정 그대로였다. 시도교육청들은 교육부가 ‘야외수업 자제’를 정확히 판단해 통보해주지 않는 이상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교육부를 비난하고 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미세먼지 대책을 놓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구태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 기준을 놓고 교육당국 간에 티격태격하는 행태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대선기간이라고 교육당국이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난도 나온다. 이제부터라도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머리를 맞대고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줄이면서 교육현장의 현실을 고려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중앙일보]

10. 박근혜의 '592억 뇌물'…기업-권력 관계 달라져야

4월 17일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긴 날인 동시에 그의 후임을 뽑는 대선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날이었다. 권력의 부침이 교차하는 묘한 뉘앙스를 남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기소(起訴)는 수사 결과에 대해 법원의 심판을 구하는 행위로 처벌의 가능성을 높게 본다는 뜻이다. 온 국민에게 ‘이게 나라냐’는 한탄과 분노, 배신감과 좌절감을 안긴 박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피고인 박근혜'의 전철을 밟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박 전 대통령의 범죄 사실 중 가장 눈에 띄는 혐의는 뇌물 부분이다. 검찰은 삼성의 433억원 외에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낸 70억원, SK에 추가로 지원하라고 요구한 89억원 등 모두 592억원을 뇌물에 포함시켰다. 실제로 오간 돈은 물론이고 약속이나 요구에도 뇌물죄를 적용한 것이다. 앞으로 이권을 둘러싼 대기업과 권력의 물밑 거래를 차단하려면 미리 강력한 주문으로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제 대기업들도 권력만을 탓할 게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과감하게 바로잡고, 권력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통령 기소를 끝으로 ‘국정 농단 수사’는 일단락됐다. 그 실체가 어느 정도 수면 위로 드러났고, 농단 세력들을 단죄하는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부실 수사는 면죄부만 줬다는 비판과 함께 검찰 수사의 오점으로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부패 혐의로 기소된 세 번째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남겼다. 공을 넘겨받은 법원은 기소 내용뿐 아니라 세월호 7시간의 행적 등 온갖 의혹과 국민의 궁금증을 풀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재판에 임해야 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도 의혹과 진실을 밝히는 역사적 재판이 되도록 자발적으로 나서 치열한 공방을 벌여주길 기대한다.





주요신문칼럼



1. [중앙일보][삶의 향기] 로즈힙, 장미의 큰 선택

손대기 애처롭다. 간밤 봄비가 거세었는데 내 작업실 뒷마당에 어린 장미의 몽우리들이 가지 끝에 돋았다. 새로운 계절에 거리낌 없이 피어나고 세상에 도도하게 제 모양을 뽐낼 준비를 하는 중이다. ‘메릴린 먼로 로즈’-화단에 꽂힌 푯말이 그 장미의 품종을 알려준다. 화려하게 살다가 젊은 날에 세상을 떠난 여배우의 이름이다. 그녀는 장미의 한 종류로 남아 영영 잊히지 않는 이름으로 이 뜰에서 자란다 싶다. 곧 화창한 날이면 골목골목마다, 아파트 울타리마다 장미 향으로 온 도시가 진동할 거다.

화가인 나에게 정치는 온통 색깔이었다. 대선이나 총선 때마다 황색 돌풍, 녹색 혁명, 청명한 파랑과 뜨거운 빨강의 대비가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특정한 색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한때 4월 대선 가능성에 맞춰 ‘벚꽃 대선’이라는 말이 나왔다. 지금은 오로지 5월 9일의 대선 날짜를 상징하는 ‘장미 대선’이란 단어가 온 사방을 도배하고 있다. 다양한 빛깔의 장미들이 다투어 피어오르는 모습이다.



미술에서도 장미는 중요한 소재다. 해바라기의 화가로 알려진 고흐는 알고 보면 장미의 화가이기도 하다. 고흐가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낸 프랑스의 프로방스는 장미의 고장이다. 그가 남긴 해바라기의 그림 수만큼 장미도 많이 그렸다. 그의 해바라기 그림의 열정적 붓 자국은 꿈틀대는 태양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반면에 고흐는 장미 앞에서 자신의 들끓는 개성과 기질을 누그러뜨리고 꽃이라는 대상을 더 존중하는 듯하다. 이처럼 장미는 천재의 광기마저 굴복시키는 마력의 꽃이다.

어느 때, 어느 지역에서든 장미들은 여자를 불러들이고 남자를 불러들인다. 나비며 벌 그리고 온갖 벌레를 모은다. 그들은 탐스러운 꽃잎을 따기 위해, 향을 좇아서, 달콤한 꿀을 얻기 위해, 그들 나름의 이해관계로 장미에게 간다. 고대 로마의 귀부인들은 화폐로 쓰기 위해 그 꽃잎을 땄고 클레오파트라는 그의 삶 사분의 일을 장미 속에 파묻혀 보냈다고 한다.

장미는 정치의 꽃이기도 하다. 1908년 3월 여성 섬유노동자 1만5000명이 뉴욕에 모여 “빵을 달라,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 세계 여성의 날이 시작되는 사건이다. 빵은 생존권을 그리고 장미는 참정권을 의미한다. 여기서 장미는 헌사와 대접의 상징으로 쓰였다. 장미를 받는 것은 존중과 귀하다는 인정이다. 그 노동자들은 장미를 받는 것으로 그들 스스로 세상의 일을 선택할 자격을 요구했다.

사람들이 장미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다. 장미는 꽃만 있는 게 아니다. 찬바람이 불고 모여들었던 열망들이 사라진 자리에 장미는 한 알의 열매를 맺는다. 이 장미의 열매를 “로즈힙(rose hip)”이라고 한다. 장미의 가장 큰 선택은 로즈힙이다. 이 열매를 맺기 위해 장미는 100여 일 이상 화려한 꽃잎들 속에 몰래 씨방을 숨기고 부풀린다. 물결치는 풍성한 치마 속에 숨겨진 엉덩이 같아서 그 이름이 로즈힙인가 보다. 장미는 화려한 날 그를 찾아왔던 열망들을 선택하지 않는다.

로즈힙에는 온갖 영양소가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여인들은 로즈힙을 사랑했다. 영국의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비가 세월을 역행하는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로즈힙 오일 덕분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군에게 비타민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로즈힙이 지급됐다고 한다. 젊음과 건강을 위하는 소수의 사람들 말고는 장미의 로즈힙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장미의 큰 선택은 그 꽃을 보고 달려드는 많은 열망에도, 그렇다고 그 열매를 찾는 소수의 사람에게도 있지 않다. 장미의 가장 큰 선택은 끊임없이 생명을 영속시키는 열매를 맺고 그 속의 씨앗을 땅에 떨구는 일이다.

내 작업실 마당에서 본 먼로 로즈의 여린 꽃봉오리가 활짝 필 때 우리는 우리대로 큰 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장미 대선이다. 형형색색의 장미들이 각기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무수한 기대와 열망들이 그들에게 이끌릴 것이다. 온갖 요란한 캠페인이 벌어질 것이고, 현란한 말들과 장밋빛 약속들이 우리의 신념을 부를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를 개척하고 밝혀 갈 제대로 된 선택에 올곧은 순리가 작용했으면 한다.



2. [서울신문][재미있는 원자력] 건강하게 쓸 수 있는 방사선

‘방사선’은 공포의 단어가 됐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국내 원전 비리부터 경주 지진, 지난해 말 개봉한 원전 사고를 주제로 한 국내 영화까지 공포를 가중시키는 요인들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방사선은 우리 일상생활 가까이 존재하고 있다. 일반 암석, 지표면, 콘크리트 등에서 일정량의 방사선은 끊임없이 방출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자연 방사선의 세기가 미미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공포의 대상인 방사선이 최근에는 일상 편의 영역까지 들어오고 있다. 건강 기능성 식품 원료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식물에서 유래한 ‘플라보노이드’라는 물질이다. 화학적 합성 기술의 발달로 식물성 플라보노이드를 대량 합성하기도 하지만 소비자들은 화학적으로 합성된 물질보다는 식물로부터 추출한 천연물질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화학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현재까지 화학적으로 합성이 어려운 천연물질들도 있다. ‘센티페드그라스’라고 불리는 잔디에 존재하는 메이신과 메이신에서 비롯된 유도체가 대표적이다. 메이신과 메이신 유도체는 당뇨 치료 효과는 물론 항암 효능 등이 있는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식물성 플라보노이드의 한 종류다. 그러나 그 구조가 복잡해 현재 화학적으로 합성이 불가능하다. 메이신 및 메이신 유도체는 식물 중에서도 오직 센티페드그라스와 옥수수수염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학적 합성이 어렵다면 식물성 플라보노이드의 추출 효율(수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방사선이다. 센티페드그라스에 방사선 처리를 하면 메이신의 함량이 2~4배 증가한다. 식물이 플라보노이드를 만드는 이유는 대부분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방사선 처리를 할 경우 식물 입장에서 방사선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으로 인지되기 때문에 플라보노이드의 생산이 평소보다 더 많아지게 되는데, 연구자들은 이런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건강검진 후 엑스레이가 몸에 남지 않고 햇볕에 말린 빨래에 빛이 저장되지 않듯 식물에 방사선 처리를 한다고 해서 방사선이 남진 않는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라도 안전을 무시할 수는 없다. 방사선 역시 영화 ‘판도라’처럼 안전을 무시하고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인간에게 커다란 재앙이 될 수 있다. 불을 발견한 인류가 이를 잘 활용해 문명을 일궈 왔듯 방사선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방사선 사용에 대한 제도를 공고히 하고 사용자의 안전의식 고취 방안을 꾸준히 고민한다면 원자력과 방사선은 우리에게 ‘이로운’ 물질이 될 것이다.



3. [서울신문][김주영의 구석구석 클래식] 봄에 듣는 브람스

교양이나 취미로 음악을 듣는 분들을 위해 강의를 하기 전 가끔 주최 측에서 부탁을 받을 때가 있다. “선생님! 주제는 자유롭게 정하셔도 좋은데, 가급적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의 이야기는 빼주세요. 너무 많이 나온 이야기래서요….”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부인 클라라, 함부르크에서 온 젊은 음악가이자 슈만의 후계자였던 브람스, 이들의 음악과 사랑 이야기는 확실히 언제 들어도 매력적이다. 거기에 세 음악가의 예술적 영감에 넘치는 작품까지 어우러지면 한 편의 영화 이상으로 흥미로운 음악사의 한 장면이 완성된다.

세 사람이 빚어낸 특이한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은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평생을 가슴앓이했던 브람스가 아닐까 한다. 올해는 요하네스 브람스가 세상을 떠난 지 120년이 되는 해다. 브람스 같은 대가의 음악을 특별한 이슈에 따라 들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위대한 걸작이 모두 그렇듯 듣고 또 들어도 익숙한 작품 가운데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기에 2017년은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된다.

클라라를 향한 동경에 가까운 짝사랑과 타고난 내성적 성격, 어딘가 우수 어린 멜로디와 고독한 분위기 때문에 브람스는 ‘가을의 음악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브람스의 음악이 마냥 쓸쓸하거나 슬프지만은 않으며 은근히 따사로운 햇살, 기분 좋게 살랑대는 바람의 계절 봄과 어울리는 작품도 많다.

먼저 그의 교향곡 2번 작품 73을 추천한다. 존경하던 베토벤의 교향곡과 맞먹는 작품을 남기겠다는 강한 의지로 43세라는 늦은 나이에 교향곡 1번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둔 브람스는 거기에 응원을 받아 이듬해인 1877년 바로 두 번째 곡을 완성한다. 이 곡은 알프스산맥과 가까운 페르차하라는 휴양지에서 쓰여서인지 편안하고 목가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전곡을 감싸는 행복한 기분도 인상적이어서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과 비교해 ‘브람스의 전원 교향곡’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이보다 4년 후인 1881년 완성된 피아노 협주곡 2번 작품 83 역시 낙천적이면서 외향적인 분위기로 브람스의 곡 가운데 밝은 색채를 지닌 대표적 작품이다. 작품의 성격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은 그가 처음으로 경험한 이탈리아 여행과 거기서 받은 밝은 정서였다.



브람스의 협주곡들은 모두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며 교향곡을 연상시키는 오케스트라의 커다란 스케일이 특징인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세 악장으로 꾸며지는 보통의 협주곡과는 달리 네 악장 구성으로 긴 연주시간과 탁월한 기교가 요구되는 난곡이나, 소박한 민요 선율과 사색적인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유명한 대학축전서곡 작품80은 작품이 발표된 이후 한 번도 그 인기가 식지 않은, 영원한 젊음의 고전이라고 하겠다. 브람스가 브레슬라우대의 명예 박사학위를 받는 일과 연관돼 만들어진 이 작품은 오페라 등과 상관없이 독립된 모습으로 만들어진 관현악곡으로, 약 10분의 연주시간 동안 시종 즐거움과 희망찬 활기가 넘친다. 독일인들에게 친숙한 행진곡, 민요와 학생찬가 등이 메들리 풍으로 엮이며 발전을 이루는 장대한 오케스트라의 음향이 멋지다.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헝가리 무곡집’ 역시 어느 계절에 들어도 좋은 음악이다. 브람스는 젊은 시절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와 함께 연주여행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 당시의 영향으로 집시 민족들의 전통 멜로디와 리듬을 스물한 곡의 춤곡으로 정리해 발표했다.

이 작품은 이전부터 내려오던 집시들의 가락을 사용했기 때문에 브람스의 순수한 창작은 아니지만, 뛰어난 작곡기법을 통해 춤곡들을 정리해 놓은 브람스의 공로도 매우 중요하다. 원곡은 피아노 연탄(한 대의 피아노에 두 명이 앉아서 연주함)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후 여러 가지 편곡들이 나오며 더욱 유명해졌다.



4. [서울신문][황인숙의 해방촌에서] 꽃 피는 재래시장

옥상에 나가 남산을 바라보니 한 폭 파스텔화 같다. 한창 흐드러졌을 꽃을 인 벚나무들이 줄지어진 저 능선은 남산도서관에서 서울타워로 이어진다. 처음 그 길을 걸었던 때는 나도 젊었고 나무들도 젊었다. 가지 여렸던 벚나무들이 늠름한 골격으로 바뀐 30여년 세월. 나의 연례행사인 남산 벚꽃 나들이를 언제부터인가 간간 거르고 산다.



어젯밤에는 집을 나섰다가 어디선가 훅 끼쳐오는 향기에 가슴이 철렁했다. 이것은 라일락꽃 향기! 그렇다면 벚꽃이 벌써 다 피었다는 거네. 이럴 수는 없어. 벚꽃 아래를 거닐어 보지 않고 봄을 보낼 수는 없어. 그러나 줄줄이 약속과 할 일이 있다. 그래도 케이블카 하우스에서 국립극장으로 이어지는 저 건너편 골짜기는 벚꽃이 늦게 피고 늦게 지니 한 주일쯤은 말미가 있을 것도 같고. 바람은 왜 저리도 부는 걸까. 벚꽃 다 떨어지겠네.



남산도서관과 하얏트 호텔 사이의 남산 순환도로에 보성여고 쪽으로 내려가는 비탈길이 있다. 30m쯤의 짧은 그 길 한편에는 이런저런 점포들이 자주 상호가 바뀌며 여전히 조랑조랑 매달려 있는데, 그 건너편은 화단이다. 그 화단의 폭은 저기 어떻게 여인숙이랑 레코드가게랑 밥집 등이 들어 있었나 싶게 좁다. 상호가 아마 ‘멜로디 레코드’였지. 운영자인 젊은 부부는 가게에 딸린 방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림도 살았다.



문화적 감수성과 현실의 간극이 큰 듯했던 그들에게 호시절이 주어져서 그 간극을 대폭 줄였기를! 비탈을 내려가면 바로 해방촌 오거리다. 그 오거리 중 두 거리 사이에 신흥시장이 있다. 내가 해방촌에 산 세월이 30년 훌쩍 넘었는데, 맨 처음 둥지를 튼 곳이 신흥시장 안이었다. 한 층 열 평 남짓의 3, 4층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서 종으로 횡으로 섰고, 이층 높이로 지붕을 이어 전체를 덮었다. 일층은 가게들, 위층들은 살림집들이었다.



나는 한 신발가게 집 3층의 부엌 딸린 한 칸 방에서 8년을 살았다. 거기 사는 동안 거의 밥을 해 먹지 않은 것이, 집주인 며느님이 끼니마다 나를 챙겨주셨던 것이다. 내 또래인 그이는 외로움 많이 타고 정 많은 사람이었다. 가난하고 젊은 내가 그이와 그 가족을 만나 따뜻하고 안전하고, 그리고 자유롭게 8년 세월을 지낸 걸 생각하면 두고두고 고맙다.

그 시장 이름을 나는 오랫동안 해방촌시장으로 알고 있었다. 신흥시장이라고 제대로 안 게 몇 년 안 되는데, 이미 시장이 망가진 뒤다. 지물포도 신발가게도 이불가게도 문을 닫은 지 오래고, 어물전이며 채소가게며 과일가게도 하나하나 사라져 휑하기 짝이 없었다. 가게가 거의 빈 재래시장은 쓸쓸했다. 그런데 한두 해 전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시장으로 회생한 건 아니지만, 드물게 남은 옛날 시장의 구조와 형태가 젊은이들에게 ‘핫한’ 공간으로 소문나서 공방이나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땅값이 엄청나게 올랐다니, 남은 희망이었던 재개발도 무산돼서 실의에 찼던 건물주들, 특히 내 옛날 집주인을 위해서 잘된 일이다. 부동산으로 부를 쌓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만, 그들 대개가 억척스레 살아오면서 그 작은 땅 하나 지킨 걸 아느니만큼 행운이 그들을 피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인적 없던 시장에 이제 젊은 사람들도 흔히 눈에 띈다. 사람뿐인가. 며칠 전에는 샛길을 통해 시장에 들어서 막 모퉁이를 도는데 어둠 속에서 한 동물의 실루엣이 어른거려 나는 흠칫했다. 그 역시 순간적으로 흠칫했으나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매대였던 낡은 판자때기 위에 흩뿌려진 뭔가를 열심히 먹을 따름이었다. 믿기지 않게도 그것은 나귀였다! 그 목덜미를 한번 쓸어보고 싶었지만 불쑥 만지면 싫어할 것이었다.



지그시 눈을 들여다보면서 “너를 한번 만져 봐도 괜찮겠니?” 양해를 구할 시간은 없었다. 맛있는 거라도 하나 주고 싶었는데 내 보따리에는 반추동물이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고양이 사료뿐이었다. 아, 물이라도 주고 올 걸 그랬네. 그나저나 웬 나귀가 혼자 거기 있을까. 걱정이 되고 궁금하던 차에 평상에 걸터앉은 청년을 만나 물어봤다. 다행히 그가 답을 알고 있었다. 시장에 책방을 냈다는 방송인 노홍철씨의 나귀라고 했다. 아, 예쁜 나귀, 또 보고 싶다. 



5. [매일신문][매일춘추] 자연이 주는 선물

눈을 뜨니 커튼 사이로 알맞은 햇살이 방안 가득 들어와 있었다.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한동안 몸살 기운 때문에 아침이면 밤새 목구멍이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말라 내 미간을 찌푸리게 했기 때문이다.



어찌 된 게 매년 더위가 심해지듯 매년 감기도 독해지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감기가 독하게 느껴지는 걸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헛웃음을 칠 만큼 일주일간 나를 괴롭힌 그 독한 감기는 오늘 아침 비가 갠 맑은 하늘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창가로 가서 문을 활짝 열었다. 감기 탓에 맡을 수 없었던 봄 향기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는 봄바람이었다. 식욕도 돌아와 커피를 한잔하며 늦은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구수한 된장찌개와 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들은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밥상이 되어 주었다. 적당히 부른 배는 내 의욕을 왕성하게 만들어 줬고 적당히 내 방과 집 주변 건물들을 비추던 햇살은 나를 집 밖으로 끌어내었다. 일주일 만의 외출이었다.



우선 가벼운 발걸음으로 느긋이 골목을 걸어 책방으로 향했다. 별거 아닌 외출인데도 봄이라 그런가? 설레었다. 무작위로 선곡된 음악도 오늘따라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나름 만족한 오후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서 컴퓨터 앞에 앉아 커피숍에서 읽다 만 책을 꺼내 들었다. 그때, 열어 둔 창으로 들어온 저녁 바람이 책장을 넘기는 내 손에 닿았다. 시선은 바람이 들어온 창밖으로 향했다. 어느 순간 창밖의 어둑해진 풍경은 낮의 들떠 있던 나의 설렘을 삼키고 없었다. 그 대신 밤의 쌀쌀하면서도 고독한 봄바람이 내 마음속에 조용하고도 쓸쓸한 기분이 되어 자리 잡았다. 낮의 설렘과 다른 감정이었다.



문득,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궁금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무언가 가슴 가득 수많은 감정이 오고 갔다. 그저 참 좋은 시간이었다. 어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평소보다 감성적이었다.



일주일간 내 몸의 감각들은 오로지 바이러스라는 감옥에 갇혀 아픔만을 느끼다 해방과 동시 밀려드는 오감에 감동했던 것일까? 그것만으로도 밀려드는 감정에 나의 행위들이 뜻있게 느껴지고 쓸쓸함마저 벅차게 느껴지게 했던 걸까? 잠시 책을 덮고 잔잔히 밀려드는 쌀쌀한 바람을 마주했다.



보고 듣고 숨 쉬고 느끼고 맛볼 수 있었던 감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큰일이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여긴 나의 오감이 오늘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것이고 어느 하나 빠지지 않음을 감사하게 여기게 해준 날이었다. 오늘 밤은 익숙해지면 잊힐 오늘의 감동을 오래 만끽하고 싶어 늦은 시간 동안 책을 내려놓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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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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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막 오른 5·9 대선, 유권자 판단 시간 22일간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오늘 시작됐다. 후보들은 대선 투표 하루 전인 5월 8일까지 자신이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할 것이다. 당장 오늘부터 각 후보의 선거사무소에 간판과 현수막을 붙이고, 신문과 방송에도 광고를 할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주말까지 8만 7000곳 남짓한 전국 주요 거리에 선거벽보를 붙일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확성기가 달린 각 후보의 유세차가 본격적으로 거리를 누비기 시작하면 대선 분위기는 더욱 달아오를 것이다.

이번 대선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이른바 대세론이 중반 들어 힘을 잃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양강(兩强) 구도로 탈바꿈하면서 전체적인 판도에서 흥미가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대선 사상 유례가 없는 5자 구도가 선거전 종반 재편될 수 있을지도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럴수록 이번 대선 결과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예측하기 어렵다고 선거 전문가들도 입을 모은다. 당사자들에게는 ‘결과가 뻔한 선거’가 아닌 데다 변수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끝까지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는 격전이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예상치 못한 정치적 환경이 만든 사상 초유의 대통령 보궐선거다. 보수 대표 후보와 진보 대표 후보가 호각지세를 이루며 막판까지 경쟁하던 과거 대선과는 달라도 크게 다르다. 진보·중도 진영의 두 후보가 선거전을 이끄는 것도 대통령 탄핵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보수 정당 후보들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보수 후보들은 지금도 ‘막판 역전’을 장담하면서 열세라는 사실을 애써 부인한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보수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일부가 ‘차선’을 고민하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찍을 후보가 없다”며 냉소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어쩔 수 없이 무비판적으로 투표하던 그동안의 관행에서 벗어날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 프레임이 사라지면서 정책 공약이 당락(當落)을 가르는 대선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보수 후보가 힘을 잃을수록 보수 유권자의 ‘몸값’은 뛰어올랐다. 보수 유권자의 표심(票心)이 선거 결과를 좌우한다는 것은 양강 후보 진영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됨에 따라 후보들은 준비한 정책 공약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5개 당의 10대 공약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정리한 엊그제 서울신문 보도는 유권자들에게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후보들의 정치적 환경이나 그동안 쌓은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의 삶’과 ‘우리의 삶’에 어떤 후보가 더 긍정적 영향을 미칠지 한 번쯤 깊이 고민해 보기를 유권자들에게 권한다. 나아가 진영 논리가 아닌 정책 공약이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첫 번째 대선으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그럴듯한 공약도 실현 가능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2. ‘황금연휴’ 中企 근로자도 혜택 볼 수 있도록

5월 황금연휴를 앞두고 직장인들의 마음은 벌써부터 설렌다. 정부가 대선일인 다음달 9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어지간한 대기업들은 열흘 안팎의 연휴를 보낼 수가 있다. 근로자의 날, 석가탄신일, 어린이날 등 징검다리 공휴일에 사이사이 휴가까지 붙이면 최장 11일을 쉴 수 있는 직장도 있다. 쉼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는 직장인들로서는 말 그대로 꿈의 휴식인 셈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도 징검다리 연휴 기간 근로자들의 연차휴가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국내 여행을 활성화해 내수 진작에 적극 협조해 달라고 회원사들에 권고하는 분위기다. 가뜩이나 얼어붙은 경제 사정에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으로 내수 경기마저 최악으로 쪼그라들어 있다. 정부든 재계든 내수 진작의 희망이 실낱만큼만 있어도 백방으로 나서야 할 위기 상황이다.

하지만 그런 취지의 시도가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깊은 골을 파 놓는 결과를 부른다면 문제가 없지 않다. 전례 없이 긴 황금연휴에 “공무원과 대기업 사원들에게만 좋은 일”이라는 푸념이 쏟아진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금요일 4시 퇴근제가 그렇듯 “그림의 떡”이라는 하소연들이다.

중소기업 근로자,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등에게는 사실상 소외감과 박탈감이 더 심해진다. 하루만 쉬어도 생산량에 크게 차질을 빚는 중소기업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다. 휴일근무 수당까지 지급해야 하니 임시 공휴일이 하루만 추가 지정돼도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맞벌이 부부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방과후 돌봄 교실, 어린이집 당번 교사 등의 배려를 받지 못하고서는 자녀를 맡길 데가 없어 식은땀을 흘려야 한다.

지난해 5월에도 정부는 하루를 임시 공휴일로 지정해 황금연휴를 만들었다. 그때도 사회 양극화 분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 부작용을 감수할 만큼 의미 있는 내수 진작의 열매를 거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올 연휴의 경우 이달 초 집계만도 지난해 연휴 때의 두 배 이상이 해외여행 상품을 예약했다고 한다.

연휴마저 양극화를 부추긴다면 심각하게 돌아볼 일이다. 휴식의 혜택을 보려야 볼 수 없는 다수를 위한 정책적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 임시 공휴일에 근로자를 쉬게 하는 중소기업에는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사회적 간극을 메울 조화로운 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조선일보]

3. 일대 모험이 될 '文, 국립대 공동입학' '安, 5-5-2 학제'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중앙선관위에 10대 공약을 제출했다. 두 후보 모두 교육 공약을 주요 이슈로 내세웠다. 문 후보는 국공립대 공동입학·공동학위제를 도입한다고 했고, 안 후보는 6-3-3학제(學制)를 5-5-2로 바꾸겠다고 했다.

문 후보의 국립대 공동입학·학위제는 서울대와 지방 국공립대 모두가 하나의 대학처럼 강의하고 같은 학위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문 후보는 "대학 서열화를 없애는 것은 우리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서울대를 폐지하는 것은 아니며 지방 국공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것"이라고 했다. 중대한 공약이다. 잘되면 대학 서열화가 줄어들어 교육이 악순환에서 선순환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지켜야 할 서울대의 능력과 잠재력만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프랑스가 이렇게 하고 있지만 대학 경쟁력은 떨어졌다.

안 후보의 학제개편은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5학년, 진로 탐색 또는 직업학교 2학년 과정을 마친 후 대학과 사회에 진출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안 후보는 "지난 66년간 현 학제로 창의적 인재를 기르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다 실패했다"면서 "12년간 대학 입시 준비만 하는 제도로는 아무것도 못한다. 교육의 틀을 바꾸자"고 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신·구 두 학제가 병존하는 10여 년간 교육 현장의 혼란을 극복해야 한다. 비용도 상당할 것이다.

문 후보는 2021학년도 수능부터 절대평가를, 안 후보는 수능 자격고시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지금의 객관식·주입식 수능은 힘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학생을 어떻게 뽑을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학부모들 견해가 갈라지고 불만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은 말을 않는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었다. 이번에도 공약대로라면 우리 교육은 또 한 번 격변이 불가피하지만 거듭되는 변화에도 우리 교육은 그대로다. 교육도 선거판에서 포퓰리즘화 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4. 美 부통령 訪韓, 中·北에 확실한 메시지 보내야 한다

북한은 15일 김일성의 105회 출생 기념 열병식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선보였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것도 있었다. 북한이 개발 중이거나 실전에 배치한 전략 미사일을 총출동시켰다. 김정은은 '미사일로 할아버지 김일성의 생일상을 차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이 행사에 신경을 썼다.



김정은은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탄 비행기가 서울로 향할 때를 노려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발사는 실패했다. 발사만 하고 고의로 자폭시켰다는 추측도 있지만 어쨌든 미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저항하겠다는 뜻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미국이 칼빈슨 항모 전단 외에 니미츠 항모 전단도 서태평양 해역에 추가배치하기로 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그렇게 되면 현재 일본 요코스카항에 정박 중인 로널드 레이건호를 포함, 항공모함 3개 전단이 한반도 인근 해역에 배치되는 초유의 실력 행사다. 이 엄중한 상황에서 오늘 황교안 대통령 대행과 펜스 부통령이 회담을 갖는다. 무엇보다 이 회담에서 대북 군사조치 여부에 대한 판단·실행에서 한·미 간에 철저한 사전 협의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군사조치를 하는 것보다 하지 않을 때 한국의 피해가 더 크다면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최종 결정은 한국이 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을 상대로 역대 최고의 '압박과 개입' 전략을 수립했다. 불가피한 전략이다. 그 목표는 핵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다. 그 길로 가기 위한 관문을 넘기 위해 경우에 따라선 중대한 결심과 결정적인 행동을 해야만 할 수도 있다.

에드윈 퓰너 전 헤리티지 재단 회장은 "틸러슨 국무장관이 중국이 북핵 해결을 위해 강력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핵무장한 한국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펜스 부통령과 동행한 백악관 당국자는 '한국에 핵을 재반입할 것이냐'는 질문에 '현재의 계획에는 없다'고 답했다. 비록 부정했지만 그 취지는 퓰너 전 회장의 전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5000만 국민이 북과 같은 폭력적 범죄집단의 핵 위협 앞에서 그냥 항복할 것으로 본다면 터무니없는 것이다.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 확실해질 경우 한국민은 미국의 핵을 공동 이용하거나 자체 핵무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상식이고 정당방위다.

중국은 평양에 취항한 유일한 외국 항공사인 중국 국제항공(Air China)의 베이징-평양 노선을 중단시켰다. 중국 대다수 여행사가 북한 관광을 전면 중단했다는 홍콩 언론의 보도도 나왔다. 나아가 중국은 대북 송유관을 잠그고 북한인 노예노동도 금지시켜야 한다. 북한이라는 화근(禍根)을 이제는 정상화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드 이상의 방어 조치가 시행될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한국·일본·대만 등 동북아시아의 핵 도미노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필연적 수순이다.



[세계일보]

5. 세월호 3주년… 아직 갈 길 먼 ‘안전 대한민국’

어제는 304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3주기였다. 경기도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거행된 3주기 추모행사 ‘기억식’에는 대선후보와 유가족,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희생자들을 기렸다. 진도 팽목항에서도 1000여명이 참석한 추모식이 열렸다. 세월호는 침몰 1091일 만인 지난 11일 목포 신항 철재부두 위에 거치됐다. 선체에 진입해 미수습자들을 수색하는 작업은 19일 시작된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 이후 우리 사회는 국가 개조를 다짐했다.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을 외쳤지만 그 자리를 ‘정피아’(정치인+마피아)가 대신 차지했을 뿐이다.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해 퇴직 공직자의 취업도 제한했다. 그러나 적폐 청산이라는 본질적인 개혁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 중요한 ‘안전 대한민국’ 건설에도 턱없이 미흡한 실정이다. 사고 후 정부는 늑장 구조 책임을 물어 해경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했다. 대형 참사에 대비한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매뉴얼을 만드느라 법석을 떨었다. 3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경주 지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전통시장 화재 등 크고 작은 재난에서 보듯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허둥대기 일쑤였다. ‘설마병’, ‘대충병’ 같은 안전불감증도 여전했다.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생산적인 대책보다는 소모적인 논쟁에 매몰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사고 원인을 둘러싼 끝없는 논란은 지금도 계속된다. 잠수함 충돌설 등 근거 없는 의혹으로 사회 갈등을 부채질하거나 유가족들의 상처를 헤집는 언행을 일삼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얼마 전엔 늑장 인양 시점을 두고서도 논란이 있었다. 이제 세월호를 둘러싼 반목과 갈등은 끝내야 한다. 정치권에서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일은 국민안전의 날이기도 하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어제 행사에서 “안전에 관한 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자세로 끊임없이 확인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 전반의 최우선 가치가 안전이 돼야 한다는 당부다. 제2세월호 참사와 같은 끔찍한 재앙을 맞지 않으려면 국민의 안전의식이 높아져야 한다. 특히 대선후보들은 어떻게 안전한 나라를 만들지 공약으로 내걸고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세월호가 남긴 숙제를 푸는 일에 다같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매일신문]

6. 전쟁에 대비하지 않으면 결코 전쟁을 막을 수 없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도를 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16일 오전 6시 20분쯤 또다시 탄도미사일 발사를 시도했다. 미사일은 발사 직후 폭발했으나, 미국의 군사 압박에는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한반도가 전화에 휩싸일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데도, 이를 지켜만 봐야 하는 우리로서는 공포와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선제타격하겠다는 강경 메시지를 연일 내놓고, 항모전단을 한반도 수역에 배치했다. 미군은 13일 아프가니스탄에 초대형 폭탄 GBU-43 한 발을 투하함으로써 북한에 경고를 날렸다. 북한은 15일 태양절 105주년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관 등을 공개한 지 하루 만에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행했다.


미국과 북한, 두 나라는 ‘힘과 힘’으로 맞서는 양상이어서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이나 ICBM 시험발사 등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기에 위기 상황이 누그러질 수 있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미국과 북한의 대치를 보면서 우리 운명을 우리 손으로 결정할 수 없는, 참담한 현실에 직면했다. 미국은 우리 정부와 협의를 한다지만, 한반도 주변에서 무력시위를 계속했고 북한은 ‘청와대와 주한미군기지 타격’을 협박하면서 한국을 ‘볼모’로 잡고 있다. 힘이 부족하고 방어`타격 수단이 거의 없으니 남의 손에 놀아날 수밖에 없다.



우리 군은 며칠 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한 ‘킬체인’(Kill Chain) 사업을 2020년대 초반으로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 핵`미사일 위협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5, 6년 후에 방어 수단을 만들겠다니 그간 무엇을 했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사회 일각의 ‘북한 낙관론’에 편승해 허송세월하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허둥대는 꼴이다.  



우리부터 각오를 새로이 하지 않고 전쟁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강대국의 손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북한과 대화하는 것과 전쟁에 대비하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일이다.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과업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보고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매일경제]

7. 17일 대우조선 사채권자 집회, 손실 최소화할 합리적 판단을

대우조선해양의 운명을 가를 사채권자 집회가 17일과 18일 열린다. 회사채 만기에 따라 5차례 열리는데 각 집회에서 참석자 채권액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하고, 전체 채권액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금융당국이 제시한 채무조정안이 통과된다.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대우조선은 곧바로 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에 들어간다. 사채권자 집회에 대우조선은 물론 금융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다.

대우조선 회사채 규모는 1조3500억원으로 국민연금이 가장 많은 3900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와 사학연금도 각각 1000억원어치 이상 들고 있지만 채무조정안 수용 여부와 관련해 국민연금에 동조할 확률이 높다. 사실상 국민연금 결정에 따라 사채권자 집회 방향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정부는 국민연금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지난 주말 회사채와 기업어음의 청산가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별도 계좌에 입금해 담보로 제공하고, 내년부터 해마다 대우조선을 재실사해 현금 흐름 등 여건이 좋아지면 회사채 전액을 조기 상환하겠다는 최종안을 제시했다. 다만 국민연금이 요구했던 회사채 상환 보장 확약서는 분쟁 소지와 위법성 등을 이유로 수용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산업은행이 제시한 조건을 놓고 막판까지 고심했는데 이런 분위기를 감안할 때 사채권자 집회 결과도 예측하기 힘들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어제 산은 등 관계 기관들과 P플랜 점검회의를 개최한 것도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오늘과 내일 집회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사채권자들은 최우선 목표를 손실 최소화에 두어야 한다. 채무조정안을 수용했을 경우와 P플랜으로 갔을 때 손실 금액을 합리적으로 따져보라는 것이다. 추가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손실은 더 커질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채무조정을 수용하는 게 유리하다.



채무조정안에 따르면 회사채 50%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는 3년 유예기간을 거쳐 받을 수 있는 반면 P플랜으로 가면 원금 손실액이 90%에 달한다. 사채권자들은 채무조정에 동의할 경우 손실 금액을 확정해야 하는 책임 때문에 쉽게 결정하기 힘들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철한 판단이 중요하다.



[중앙일보]

8. 북한이 레드라인 넘으면 중국은 대북 송유관 잠가야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자제하라는 국제사회의 경고를 비웃듯 어제 미사일을 또 쐈다. 그것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한국 도착 9시간 전에 이뤄졌다. 올해 들어 다섯 번째, 이달에만 두 번째다. 발사 직후 폭발해 실패로 끝났지만 미국의 무력시위와 중국의 만류에도 실험을 감행한 것은 북한이 또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에 나섰음을 의미한다. 



​북한의 6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번지면서 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유례없이 강력한 무력시위에 나섰다. 항공모함 칼빈슨함까지 한반도에 배치하며 추가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시험이 이뤄질 경우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기에 중국도 북한의 경거망동을 막기 위한 압박에 가세했다. 북한산 석탄 반송조치에 이어 15일에는 중국 항공사의 평양 노선을 끊었다. 지난 6~7일 열렸던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정상회담 때 논의됐던 대북제재조치가 가시화된 셈이다. 북한도 이런 미·중 양국의 강경자세를 의식한 탓인지 핵실험과ICBM 발사시험까지 감행하지는 않았다. 자칫하면 미국의 선제공격까지 각오해야 할 레드라인을 넘는 행위인 줄은 알았던 까닭이다. 

그런데도 이번 도발을 단순한 눈길 끌기용으로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미사일과 같은 첨단 무기가 군사적으로 의미 있는 전략적 자산이 되려면 수차례에 걸친 안정화 작업이 필요하다. 아직 정확한 실체가 파악되진 않았지만 이번에 폭발한 게 사정거리 3000㎞ 이상인 무수단(KN-07)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개량한 북극성-2형(KN-15)이라면 북한이 이들 무기의 개량에 총력을 쏟고 있음을 의미한다. 

105주년 태양절(김일성 생일)이었던 지난 15일 열병식 때 신형 ICBM처럼 보이는 초대형 미사일이 등장한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이를 두고 “완성되지 않은 모조품”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지만 그저 넘길 일은 아니다. 과거 북한이 가짜를 선보인 뒤 얼마 뒤 진짜 미사일 실험에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엔 핵실험이나 ICBM 발사가 없었더라도 북한의 위협은 나날이 커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간 갈피를 못잡던 트럼프 행정부가 ‘최고의 압박과 개입’ 전략으로 대북 정책기조를 결정했다고 한다. 미국이 ‘4월 전쟁설’까지 낳았던 선제타격론 대신 최대 압박전략으로 방향을 튼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로선 미국의 새 전략이 효력을 발휘하도록 북한을 강력히 압박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중국 역시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해 대북제재를 물샐 틈 없이 이행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을 현실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안은 중국이 대북 송유관을 걸어 잠그는 일이다. 중국 언론들도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송유관을 걸어 잠글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전 세계가 북한으로 가는 송유관 밸브를 잡고 고민하는 중국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다.



[경향신문]

9. 대우조선 추가 자금 투입, 정책금융 실패 책임 물어야

정부의 계획대로 대우조선해양에 채권단의 손실분담을 전제로 한 추가 자금 투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과 국민연금은 대우조선의 회사채 1조3500억원 처리와 관련해 50%는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50%는 3년 유예 뒤 상환하는 채무조정안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의 조건으로 산업은행은 별도 계좌를 만들어 회사채 만기 도래 전 원리금 전액을 예치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긴 상환 이행 확약서를 제출했다.



최종 채무조정안은 17~18일 채권단 집회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회사채가 가장 많은 국민연금이 긍정적이어서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대우조선에는 4조2000억원이 투입된 지 1년5개월 만에 다시 신규자금 2조9000억원, 출자전환 2조9100억원, 채무유예 8900억원 등 추가로 6조7000억원이 지원된다.

이에 따라 대우조선은 급한 불을 끄면서 생존할 기회가 다시 주어질 전망이다. 그렇다고 앞날이 보장됐다고는 할 수 없다. 조선 업황은 매년 나빠지는 형국이다. 당연히 수주 전망이 불투명해 낙관할 수 없다. 업황이 좋아지지 않으면 돈을 넣어 인력 및 사업 구조조정을 거친 뒤 매각한다는 정부 계획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추가 투입한 채 미지의 세계로 또다시 항해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정부는 파국을 막았다고 하겠지만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고온 장본인은 정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우조선의 1차 자금 투입이 실패로 끝난 것은 수주 오판, 관리 감독 실패 등 당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 당국은 이번에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우조선은 부도나고, 59조원의 국민경제적 부담이 발생한다며 벼랑 끝 전술을 구사했다. 특히 국민연금에는 합의하지 않으면 대우조선을 단기 법정관리에 보내겠다며 압박했다.



대우조선 회사채 처리는 국민연금이 판단할 몫이지,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사안이 아니다. 1차 실패에 대한 반성은커녕 국가경제 파탄 운운하며 책임을 돌리려는 태도는 온당치 않다. 금융당국이 대우조선을 살리려 애쓴 것은 국책은행 붕괴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우조선의 금융채무 21조6000억원 중 수출입은행과 산은 부담분이 15조3000억원이다. 정책금융·관치금융의 실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우조선 구조조정 과정을 반드시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서울경제]

10. 43조 퍼붓는 저출산 대책, 하나라도 제대로 실천하라

정부가 최근 5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첫 회의에서 올해 사업계획을 의결했다. 이번 회의의 분위기는 이전과 상당히 달랐던 모양이다. 민관 위원들이 총력대응 필요성을 공감하면서 비상한 각오를 가져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나오는 출산통계를 보면 우리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을 맴돌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지난달 발간한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5명으로 세계 224개국 가운데 220위였다. 고령화도 가파르게 진행돼 경제·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주고 성장잠재력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통계청이 13일 발표한 가구예측에 따르면 2045년에는 독거노인 가구가 전체 1인 가구의 절반에 육박하게 된다. 정부가 수시로 관련 회의를 열고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은 이런 위기감 때문이다. 

5기 위원회 회의에서도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다. 우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합해 지난해보다 8%가량 늘어난 43조여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지자체가 추진하는 사업만도 3,600개가 넘는다. 수치만 봐서는 당장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올 것 같다. 하지만 들이는 돈만 불어났을 뿐 내용은 과거 대책의 연장선에 머물러 있다. 대대적인 아빠 육아 캠페인 추진, 저출산 극복 전국 사회연대회의 활성화 등이 추가된 정도다. 

새로운 대안도 아니고 절박감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부처별 생색내기, 예산 퍼주기나 이벤트식이라면 결과는 뻔하다. 지난 2006년부터 150조원을 쏟아붓고도 출산율은 좀체 나아지지 않는 답답한 현실이 계속될 공산이 크다. 이제는 무작정 예산을 늘리기보다 제대로 쓰였는지 따져본 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제대로 된 성과 하나라도 내야 한다. 무엇보다 저출산·고령화는 주거·교육 등과 얽혀 있는 만큼 종합적인 접근을 해야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신동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 세상에서 제일 비싼 생선 '참치'

일본인은 생선을 정말 즐겨 먹는다. 회, 초밥, 구이, 조림 등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데 우리나라와는 먹는 종류가 좀 다르다. 흔한 예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갈치를 일본 생선가게에서는 거의 본 적이 없다. 대신 참치와 연어가 진열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일본의 한 조사에 따르면 생선 중에서 남성은 참치, 여성은 연어를 가장 선호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참치전문점에서 많이 먹지만 일본에서는 집에서도 참치를 많이 먹는다. 전 세계 참치의 반은 일본 사람이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참치 뱃살은 최상급 스테이크보다 비싸다. 물론 다른 유럽이나 섬나라에서도 참치를 많이 먹긴 하지만 일본 사람이 참치를 훨씬 선호하기에 다른 나라에서는 비싼 값에 참치를 일본으로 수출하느라 정작 자신들은 맛보지 못하는 실정이다.



전 세계에서 제일 비싼 참치는 12월 말에 잡히는 일본 오오마산 혼마구로다. 매년 새해가 되면 전 세계 방송이 앞다퉈 일본 수산 경매시장을 취재한다. 그해에 제일 비싼 참치를 공개하기 때문이다. 제일 비싼 참치는 3억원을 호가한다. 

참치는 고등어과 다랑어족에 속하는 물고기들을 일컫는 이름이다. 참다랑어를 비롯해 새치류를 통틀어 전부 참치라고 부른다. 그런데 왜 다랑어가 아니라 참치라고 부르기 시작했을까. 해방 후 해무청 어획 담당관이 당시 ‘참치’가 동해 연해안 사투리라는 사실을 모르고 보고서에 참치라고 표기하면서 비롯됐다고 한다. 사투리 ‘참치’가 ‘다랑어’를 실질적으로 압도하게 된 것은 1980년대 원양수산회사들이 다랑어를 통조림으로 상품화하면서 이를 ‘참치’로 소개한 때부터다. 

어릴 적 참치 통조림은 명절날 선물로 돌릴 만큼 인기가 좋았던 기억이 난다. 신선한 회보다는 통조림 참치에 더 익숙해 있던 필자는 일본 유학을 떠나고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참치의 진가를 알게 됐다. 

지금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류긴에서 일할 때였다. 야마모토 셰프가 “내일 새벽에 시간 되면 같이 참치 사러 츠키지 시장에 가보지 않을래?”라고 물었다. ‘언제쯤 참치 한번 보러가나’ 하며 기다린 터라 냉큼 가겠다고 대답했다. 

다음 날 새벽 츠키지 시장에 갔다. 일반 사람들은 참치가 놓인 공간에 들어오거나 만지지 못한다. 간혹 관광객들이 모르고 참치를 만지기라도 할라치면 시장 상인들이 큰소리로 지적한다. 하지만 필자는 유명 레스토랑에서 온 터라 출입증을 목에 걸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기분 좋게 참치를 구경할 수 있었다. 

좋은 참치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흥분되고 꼭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일본 식자재상들은 ‘최고의 재료는 최고의 셰프가 써야 된다’는 인식이 있어 아무한테나 물건을 팔지 않는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말 값비싸고 좋은 재료는 일반인이 보기 힘들다. 

참치 구경이 끝난 후 경매를 이끄는 분의 손동작과 목소리를 보고 들으면서 구경하는 것도 긴장되면서 재미있었다. 그날 우리가 아는 중간 상인이 운이 좋게도 평소 때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참치 한 마리를 구매했다. 그렇다고 절대 싼 금액은 아니었다. 중간 상인은 구매한 참치를 가게로 들고 와 참치 해체쇼를 시작했다. 이때 외국 관광객이 모여들어 사진을 찍거나 지나가던 사람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쇼를 즐긴다. 

모든 작업이 끝나고 야마모토 셰프가 중간 상인에게 “이 부위에서 이 부위까지 주세요”라고 하니 바로 잘라 종이로 정성껏 포장해줬다. 그것을 들고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했지만 비싸다는 생각보다는 좋은 재료를 손님들에게 제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행복해졌다. 

레스토랑에 돌아와 셰프가 참치 손질하는 모습을 유심히 구경했다. 그런데 갑자기 제일 비싸다는 참치 뱃살 부위 한 장을 썰더니 먹어보라고 주는 것이다. 정말 제대로 된 참치 뱃살을 먹는구나 싶어 날아갈 듯했다. 입안에 참치 뱃살을 넣는 순간 이거 뭐야? 그냥 스르르 녹아버렸다. 전혀 느끼하지 않고 깔끔하면서 산뜻한 맛이 일품이었다. 이래서 일본 사람들이 참치 뱃살을 그렇게 찾는구나 싶기도 했고.

한번은 일본 ‘스시큐베이’라는 긴자의 유명한 스시집에서 참치 뱃살 스시를 먹어봤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맛의 조화가 훌륭했다. 자세히 보니 아카미(붉은 속살)는 도톰하게 자르는데 뱃살은 좀 얇게 뜬다. 뱃살이 비싸니 얇게 써는구나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뱃살 쪽이 기름이 많아 스시 밥과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일부러 얇게 손질하는 것이다. 그래야 입안에 넣었을 때 맛과 밸런스가 제대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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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는 부위별로 맛의 특징이 다르다. 음식점에서 모듬 참치를 시키면 여러 부위가 섞인 참치를 내놓는다. 비교적 지방이 적어 담백한 맛이 나는 속살(아카미)부터 먹기 시작해 등살(새토로), 옆구리살(주토로), 대뱃살(오토로) 순으로, 지방이 많은 쪽으로 먹는 것이 참치의 여러 가지 맛을 느끼기에 제격이다. 

초밥을 즐기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다른 종류를 먹을 때는 중간에 초생강을 먹어 입을 헹구는 것이 좋다. 참치를 김에 싸서 먹거나 참기름에 찍어서 먹는 분이 많은데 그러면 참치 고유의 맛을 느끼기 어렵다. 가능한 생고추냉이를 참치에 살짝 바르고 회 전용 간장에 찍어 먹어야 참치 특유의 맛을 섬세하게 즐길 수 있다. 김은 입맛을 돋우는 용으로 따로 먹는 게 낫다. 냉동참치로 준비할 때는 언 상태보다 젓가락으로 집었을 때 약간 휠 정도로 거의 해동시킨 다음 먹어야 맛있다. 

한국에서도 지금 이맘때면 생참치가 많이 잡힌다. 단 사이즈가 작아서 정말 기름지고 맛있는 참치는 아니지만 나름 깔끔하면서도 신선하다. 

필자의 레스토랑에서도 좋은 참치가 들어오면 참치카이센동이나 참치지라시초밥 등을 만들어낸다. 날마다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죄송하지만 손님들은 그때그때마다 좋은 참치의 맛을 볼 수 있기에 더욱 좋아해 주신다. 간혹 좋은 참치가 들어오면 연락 달라며 명함을 주고 가시는 분들도 있다. 

필자도 참치를 너무 좋아하지만 선뜻 좋은 참치를 입에 대지 못한다. 손님에게 다 드리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기에 그런 것 같다. 셰프라면 다들 공감하지 않을까.



2. [매경이코노미][Health] 봄철 알레르기성 결막염 주의 꽃가루·미세먼지 조심

4월. 바야흐로 꽃봉오리가 열리고 봄나들이하기 좋은 시즌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맘때만 되면 꽃가루와 미세먼지 탓에 알레르기성 질환에 걸려 고생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주의해야 하는 질환 중 하나가 알레르기성 결막염이다.

알레르기성 결막염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증상이 비교적 경미한 ‘계절성 알레르기 결막염’이다. 또 다른 형태의 알레르기성 결막염 중에는 아토피 각결막염, 봄철 각결막염, 거대 유두 결막염 등이 있다. 

계절성 알레르기 결막염이 결막에 염증이 생기는 것으로 끝나는 데 비해 봄철 각결막염은 잘 낫지 않고 만성화되는 질병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알레르기성 결막염은 꽃가루, 먼지, 동물 비듬, 집먼지진드기 등이 눈의 결막에 닿아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고 그 결과 결막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신현진 건국대병원 안과 교수는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눈에 접촉하면 안구와 그 주변에 있는 면역세포인 비만세포에서 염증을 유발하는 물질이 나온다”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알레르기성 결막염 안약은 이 비만세포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알레르기성 결막염의 주된 증상은 반복적인 가려움증이다. 눈이 충혈되고 눈곱이 끼면서 붓는 것도 특징이다. 

알레르기성 결막염과 자주 혼동되는 것이 바이러스성 결막염. 전염 여부에 따라 옮는 것은 바이러스성, 그렇지 않은 것은 알레르기성이라고 보면 된다. 바이러스성은 알레르기성에 비해 눈곱이 끼고 충혈되는 정도가 더 심하다. 초기에는 이 둘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보통 알레르기성은 항히스타민제나 항생제 안약 처방만으로 2~3일 내에 낫지만 바이러스성은 잘 낫지 않고 오랫동안 계속된다. 

신현진 교수는 “눈이 빨갛게 된다고 해서 모두 옮기는 눈병에 걸렸다고 보긴 어렵다. 바이러스성 눈병이라고 해도 접촉에 의해서만 옮게 되므로 손으로 눈을 만지지 않고 세면도구를 구분해 쓴다면 옮을 염려는 없다”고 말했다.

알레르기성 결막염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손을 잘 씻고 눈이 가려워도 절대 만지지 않는 것이 첫 번째다. 또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야외 활동을 되도록 피해야 한다. 알레르기성 체질인 경우 집안 침구류를 자주 세척하며 애완동물은 키우지 않는 것이 좋다.

신 교수는 “알레르기성 결막염에 걸렸을때 식염수로 눈을 세척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눈의 눈물에는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좋은 영양 성분이 들어 있다. 식염수로 세척을 하면 이런 성분이 씻겨나가게 된다. 또 식염수가 오래돼 상한 것일 때는 예민한 눈을 자극할 위험성이 크다. 이물감 때문에 눈이 답답하다면 식염수가 아니라 인공눈물을 수시로 넣어주면 된다.”

매년 봄마다 알레르기성 결막염으로 고생하는 환자라면 미리 약물을 써서 예방하는 것도 방법이다. 알레르기 증상이 심해지고 나면 약을 써도 증상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수 있어서다. 매년 비슷한 시점에 증상이 재발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발병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의 1~2주 전부터 처방받은 안약을 넣어주면 된다. 신 교수는 “항히스타민 계열의 알레르기성 안약은 오랫동안 약을 써도 안전하므로 미리부터 약을 쓰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3. [중앙일보][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우리의 숨 막히는 공연장

클래식 공연장에서 떠드는 아이를 변호하려는 건 아니다. 그래도 지난 9일 미국 브루클린에서 생긴 일은 생각해 볼 만하다. 브루클린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한 남자아이가 떠들기 시작했다.

다음 곡인 림스키코르사코프 ‘셰헤라자데’를 시작해야 할 시점. 지휘자 데이비드 버나드가 뒤로 돌아 아이에게 말했다. “네 도움이 필요해. 이 곡에서 셰헤라자데가 몇 번 나오는지 네가 세어 줄래?” 천일야화로 만든 이 곡에선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가 주인공 셰헤라자데를 담당한다. 솔로로 셰헤라자데 테마를 연주하는 횟수를 세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아이는 4악장까지 조용했다고 한다. 영국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가 홈페이지에서 전한 이야기다.

서울로 돌아오자. 얼마 전 피아노독주회에서 내 옆자리에 아홉 살 청중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앞줄 관객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싫은 표정을 했다. 아이 숨소리가 크다는 뜻이었다. 아이 엄마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물론 조용할 땐 방해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떠드는 것도 아니고 숨소리인데 어쩌겠는가!



공연장 매너는 유식함의 척도가 아니다. “클래식 공연장은 숨 막힌다”는 사람들이 “박수를 언제 칠지 몰라 두렵다”고 할 때면 내 숨이 턱 막힌다. 부풀려진 엄숙주의 때문에 우리는 음악의 진짜 즐거움을 놓친다. 베토벤·쇼팽도 한 악장씩 떼어서 공연을 했으니 악장 간 박수는 당연했고, 음악회장에서 음악적 토론도 활발했다는 사실은 이제 식상할 지경이다.

기준은 명백하다.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는 것. 그러나 내가 방해받지 않겠다고 남을 멸시하지 않는 것. 음악회장 바깥의 규칙과 똑같을 뿐이다. 휴대전화는 반드시 꺼야겠지만 숨까지 못 쉴 필요는 없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베토벤·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총 6개 악장을 22일에 연주한다. 연주를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그는 “제 공연에서는 악장마다 박수 쳐도 됩니다”고 했다. 이 공연은 엄숙하진 않겠지만 본질적일 것이다. 연주자·청중이 지금보다 자유로웠던 시대를 떠올리게 할 것이다.

‘셰헤라자데’에서 셰헤라자데 테마는 크게 다섯 번 나온다. 브루클린 공연에서 떠들었던 아이가 정확히 맞혔다고 한다. 아이 엄마는 오케스트라에 감사편지를 보냈다. “저희 아이는 자폐가 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고 사랑이 많은 아이여서 남에게 해를 끼치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예외적인 사건이긴 하지만 우리가 관대해야 할 이유로는 충분한 일이다.



4. [서울신문][자치광장] 아이는 나홀로 크지 않는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 선조는 마을 공동체나 대가족 문화 속에서 육아를 함께 책임졌지만,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보육은 온전히 가정의 책임이 됐다. 상황은 또다시 달라졌다.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로 보육은 사회가 함께 나서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여성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를 위해서도 사회적 보육 시스템을 확립하는 일이 절실하다.

우리 중랑구는 사회적 보육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보육사업 5개년 계획’을 세워 2016년부터 ‘아이 키우기 좋은 중랑’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민선 6기 임기 내에 국공립어린이집 14곳을 확충할 계획이다. 지난 3월 신내3지구에 중랑구 최초로 민간자본으로 지은 국공립어린이집이 개원했고,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365일 열린어린이집’으로도 운영되고 있다. 5월부터는 ‘어린이집 등·하원 도우미제도’를 실시해 맞벌이 부부의 부담을 줄여 줄 계획이다.

‘공동육아방’ 6곳은 육아 품앗이와 자조 모임 장소로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고, ‘장난감 대여센터’ 두 곳도 성황리에 운영 중이다. 그뿐만 아니라 옹기테마공원과 중랑천 물놀이장, 유아숲체험장 등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체험도 하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늘려 가고 있다. 덕분에 중랑구의 보육정책은 대내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좋은 보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초자치단체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국가와 광역자치단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첫째, 아이들이 균등하게 보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누리과정 예산이 안정적으로 지원돼야 한다. 이를 위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등 관련법을 개정해 누리과정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국공립어린이집 대기자를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민간어린이집의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과 국공립어린이집에는 없는 부모 분담금 때문에 현재 중랑구에만 국공립어린이집 대기자가 1만 1000여명에 이른다. 정부 차원에서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대책을 강구하는 한편 ‘서울형어린이집’처럼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지원을 통해 민간어린이집 환경을 개선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육아휴직 정착, 직장어린이집 확충 등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환경이 하루빨리 정착돼야 한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절벽 시대의 위기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보육 시스템’ 확립은 정부와 정치인, 국민 등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국가의 당면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J. P. 모건

“질문: 찰리, 누가 세상을 창조했지? 대답: 하나님이 기원전 4004년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1901년 제임스 J. 힐(철도)과 존 피어폰 모건(금융), 존 D. 록펠러(석유)가 세상을 재창조했습니다.” 시사잡지 ‘라이프’에 실린 교리 문답 패러디 중에 저런 게 있었다고 한다. 20세기 세계 금융을 좌지우지한 J.P. 모건의 창립자 존 피어폰 모건(JohnPierpont Morgan)이 1837년 4월 17일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서 태어났다. 

모건이 회사 창립연도로 꼽는 것은 1838년이다. 부동산 투자와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한 아버지 J.S.모건이 미국인 조지 피바디가 미국 채권을 영국 투자가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런던에 설립한 은행을 사들인 게 1838년이기 때문이다. 모건이 물려받아 ‘모건 하우스’의 토대로 삼은 게 이 기업이었다.

모건 하우스의 역사는 전쟁과 경제공황 위에 씌어졌다. 대학 졸업 후 아버지를 돕던 모건은 1861년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뉴욕으로 진출해 본격적으로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낡은 카빈 소총을 3.5달러에 구입해 약간 손 본 뒤 22달러에 되파는 방식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한 그는 전쟁이 끝나자 철도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소규모 철도회사들의 인수ㆍ합병을 반복, 미국 굴지의 철도업자로 떠오른 모건은 이번엔 철도와 긴밀한 관계에 있던 통신산업으로 손을 뻗친다.



전신ㆍ전화 관련 기업들을 마구잡이로 매입해 업계를 장악한 뒤 그가 한 일은 통신 내용을 도청하는 것이었다. 전장에서 수십 배의 차익을 남기던 시절부터 모건은 정보가 곧 돈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목표를 이루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는 게 어리석은 짓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통신망을 타고 들어온 정보를 이용해 그는 투자계획을 세웠고 철강, 영화산업으로 발을 넓혀갔다.

1907년 대규모 금융공황이 일어났을 당시 모건의 입지는 가히 국가중앙은행에 비견할 만 했다. 기업들이 도산하고 주가가 폭락하자 모건은 무능한 정부 대신 직접 교통정리를 시작했다. 정부로 하여금 국립은행에 구제금융을 지원케 하고, 대형 은행은 투신사에 대출을 내주도록 해 한달 여 만에 경색을 해결했다. 

로마를 여행하던 75세의 모건이 숨진 게 1913년이었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탄생한 게 그 해 12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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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대선이 포퓰리즘 잔치여선 안 된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실현 가능성이나 효율성보다 ‘포퓰리즘’에 치우치는 경향이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어 걱정이다. 특히 후보들이 한결같이 ‘좋은 일자리 창출’을 집권 후 최대 과제로 꼽으면서도 막상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기업을 옥죄는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자기모순이 자심하다는 게 문제다.

초기 대선 판도에서 양강을 형성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포퓰리즘에서도 단연 강세다. 지난달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을 공약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문 후보는 그제 발표한 ‘J노믹스’를 통해 경제를 사람 중심의 성장구조로 바꾸겠다며 ‘사람경제 2017’을 선언했다. 4차 산업혁명 등 10대 분야에 집중 투자해 일자리를 연평균 50만개 이상 창출하되 재원은 5년간 세수 자연증가분 50조원과 법인세 실효세율 조정으로 충당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나랏돈 퍼부어 일자리 만들고 성장을 이끌겠다는 확장정책의 그럴듯한 포장일 뿐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로 세입을 늘려 135조원의 재원을 조달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가 흐지부지된 4년 전 박근혜 정부의 공약가계부를 쏙 빼닮은 기시감마저 든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증세 없음’을 못 박은 공약가계부와 ‘국민의 동의 아래 증세한다’는 단서를 내건 J노믹스의 수사법 정도다.

경제는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며 문 후보를 맹공하는 안 후보도 재정을 화수분으로 여기긴 매한가지다. 각종 청년취업대책,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상한제 등 조자룡 헌 칼 쓰듯 선심공세가 치열하다. 대기업과 차이가 심한 중소기업 임금을 신규 취업 청년들에겐 80%까지 끌어올리도록 5년간 한시적으로 보조하고 대학 입학금을 폐지한다는 등의 발상은 재원조달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정부가 나설 일인지조차 헷갈린다.

총론에선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한다면서도 각론에선 반(反)기업 정서를 자극하는 공약이 난무하는 것도 문제다. 선거 때마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적폐가 활개쳐선 곤란하다. 이럴수록 유권자들이 현명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깨어 있는 시민의식을 입증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2. 한은의 경기회복 전망 낙관은 이르다

한국은행이 어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5%에서 2.6%로 0.1%포인트 올렸다.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것은 2014년 4월 이후 3년 만으로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치와 같아졌다. 최근 국내 민간연구기관과 해외 투자은행(IB)들이 잇따라 성장률 전망치를 올린 데 이어 중앙은행인 한은도 가세함으로써 우리 경제에 대한 낙관론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대내외 악재로 경제 활력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한은이 전망치를 올린 것은 우리 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이주열 총재는 “수출이 세계경제 회복에 힘입어 개선세를 지속하고 내수도 회복세”라며 “앞으로 국내경제는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전망은 앞서 기획재정부가 최근 그린북에서 “수출 증가세에 힘입어 생산·투자·소비 등 경제 전반에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번 한은의 동조로 경기 호전론은 더욱 힘을 받게 됐다.

실제로도 지표상 흐름은 좋은 편이다. 3월 수출이 489억 달러로 1년 전보다 13.7% 늘어나는 등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째 증가세다. 소매 판매도 2월 들어 3.2% 증가로 반전한 데다 3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6.7로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79로 23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지난달 취업자수가 2626만 7000명으로 1년 전 같은 달보다 46만 6000명 증가하는 등 고용시장에도 봄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와 한은이 낙관적인 기대치를 제시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 낙관만 하기에는 이르다. 중국의 사드 경제보복과 북한 리스크 등 악재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도 변수다. 안으로는 대우조선해양 채무 재조정, 폭발적으로 늘어가는 가계부채와 청년실업 문제 등 언제든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들이 산적해 있다. 대선 주자들의 ‘묻지마 퍼주기’ 공약도 경제에는 걸림돌이 될 우려가 크다. 정부는 오랜만에 찾아온 경기 회복세가 꺾이지 않도록 대내외 리스크 관리에 철저를 기해야 할 것이다.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서울신문]

3. 中, 여차하면 송유관 막아 북핵 도발 저지해야

미국과 중국의 정상이 회담 나흘 만에 긴급 전화 통화를 갖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먼저 전화를 걸어 대화를 시도할 정도로 북한의 6차 핵실험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한반도로 급파하는 등 북한에 대한 무력 응징 의지를 보여온 미국은 경제 제재 카드마저 꺼내들며 전방위 압박에 나서고 있다.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독자 대응 카드를 꺼내들고 대중 압박도 병행 중이다.

미국이 군사 행동까지 포함한 대북 압박을 강화하면서 중국도 과거와 다른 행보를 보이는 등 전향적 자세로 돌아서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최근의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 행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체감하고 있다. 북의 추가 핵실험을 막지 못할 경우 한반도와 동북아에 어떤 파도가 몰아칠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미·중 공조를 통한 강력한 대북 제재 방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6차 핵실험이 북한에서 가장 큰 명절로 꼽히는 태양절(15일) 전후가 될 것이란 예상도 있다. 버튼만 누르면 될 정도로 핵실험 준비가 끝났다는 보도도 나온다. 미국은 핵실험을 탐지하는 특수기를 일본에 보냈다. 우리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때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신규 제재, 독자 제재, 전 세계적 차원의 대북 압박 등 모든 외교자산을 동원해 징벌 조치에 나설 방침이다.

중국은 북한의 6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막을 수 있는 실질적 수단을 갖고 있다. 2003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거부했던 북한에 대해 짧은 기간이지만 압력 차원에서 대북 송유관을 잠갔고 효과도 봤다. 1961년 체결한 북·중 우호협력 상호원조조약에 따라 미국의 대북 선제 타격 등이 현실화되면 중국 역시 군사적 개입이 불가피하다. 6차 핵실험 등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는 일은 중국으로서는 절박할 수밖에 없다. 결코 ‘강 건너 불구경’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북한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원유 공급 중단으로 북한의 격심한 반발를 초래할 수도 있지만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미온적인 중국의 대북 제재 의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동시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국제사회로 나오도록 설득해야 한다. 중국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 이번에는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4. 사드·미세먼지·대우조선에 정부가 안 보인다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권력 이양기에는 공직사회도 이런저런 이유로 평상심을 잃고 뒤숭숭해지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대통령 탄핵으로 몇 달째 권력 공백이 이어졌다. 이런 사정을 백번 접어 주더라도 최근 정부의 복지부동 행태는 도를 넘고 있다. “이러고도 나라가 굴러가는 게 신기하다”는 소리가 들릴 판이다.

정부의 무기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중국의 사드 보복 문제다. 중국의 야비한 행태는 갈수록 태산인데, 정부의 존재감은 느낄 수가 없다. 중국이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를 거의 초토화하고 있는 데도 정부가 피해 현황을 들여다본 것은 한참 만이다. 그러고도 지금까지 이렇다 할 조치를 내놓지 못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무슨 대책이라도 강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대응할 근거가 없다며 시간만 보내고 있는 현실이다.

국민 아우성은 높아가는데 정부의 강 건너 불구경은 미세먼지 문제도 다를 게 없다. 우리나라는 공기 질이 나쁜 나라로 최근 세계적 학술지가 주목할 정도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가까운 미래에 미세먼지 사망자가 급증할 거라는 경고가 이어진다. 이 지경인데도 정부는 개선책을 고민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주무 부처인 환경부가 내놓는 기본 자료마저 엉터리라고 개탄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국무총리실도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적자를 내고 표류하는 대우조선해양 사태도 정부의 무기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제 해결 방법을 머리 맞대고 찾아도 모자랄 판에 대우조선의 손실액 추정치조차 부처마다 제각각이다.

이번 대선은 비상상황에서 치르는 선거다. 새 정부는 따로 준비 기간 없이 선거 다음날부터 당장 정상업무를 이어 가야 한다. 제대로 굴러가는 정부 조직이라면 이런 비상상황을 고려해 지금쯤 한창 새로운 정책을 고민하고 있어야 정상이다. 민생과 나라 경제의 운명과 직결된 현안에 손 놓고 있는 것은 더는 묵과할 수 없는 공직 기강 해이다.



할 일은 제쳐놓고 유력 대선 후보에 노골적으로 줄을 대는 고위 공직자들도 기승을 부린다니 꼴불견을 넘어 망동(妄動)이다. 지금에라도 공직기강을 다잡아 국민 불안을 덜어줄 수 있는 정책 수행에 정신을 쏟아야 한다. 국록을 먹는 공직자로서 최소한의 양심이자 기본 도리다.



[중앙일보]

5. 이념 앞세워 21조 원전 수출 막는 국회의원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무소속 국회의원 28명이 참여한 ‘탈핵·에너지전환 국회의원 모임’이 최근 한국전력에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사업 참여 중단을 요구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도하는 이 모임은 사업비 150억 파운드(약 21조3000억원)의 이 원전 수출 프로젝트가 “문재인·안철수 등 주요 대선후보의 탈(脫)원전 정책에 반하는 것”이라며 한전을 압박했다. 

이 프로젝트는 총 발전 규모 3.8GW의 원전 3기를 짓는 사업으로 사업비가 2009년 수주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의 건설수주액 186억 달러(약 21조186억원)를 넘어선다. 바라카 원전 60년 발전소 위탁운영 계약도 따내면서 494억 달러(약 55조822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는데 이는 자동차 228만 대, 휴대전화 5200만 대 수출과 맞먹는 경제효과라고 한다. 

한국은 이를 공사비 증가 없이 정해진 시기에 완공해 세계 수준의 원전 건설 실력을 입증했다. 원전은 우리가 상당한 자체 기술·경험을 확보한 국가적 ‘지적자산’이다. 원전 건설 경험이 풍부한 공기업과 기술력 있는 민간업체, 그리고 금융기관이 손잡고 해외에 동반 진출하면 새로운 미래 수출산업으로 키울 수 있다.



무어사이드 원전사업은 우리의 잠재력을 활용하면서 중소·중견 협력업체 등에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젊은이들을 취업시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국회 차원에서 이런 사업을 적극 지원하지는못할망정 섣부른 정치 논리나 탈원전 이념을 앞세워 참여 중단을 요청하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발상인가. 대선을 치르기도 전에 마치 점령군이나 된 듯 공기업의 수출 사업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부터 유권자의 눈길이 곱지 않다. 

에너지는 종류별로 장단점·효율·환경영향이 서로 달라 합리적·효율적으로 종류별 비율을 정하는 ‘에너지믹스’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현재 한국 전체 에너지원의 30%를 차지하는 원자력을 아예 배제하려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정말 탈원전을 해야 한다면 경제성과 환경을 조화시켜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는 획기적인 에너지·환경 정책부터 내놓고 국민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6. 대선후보 TV토론, 보다 치열하게 검증하길…

대선후보들의 TV토론은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다. 후보들끼리 맞붙는 TV토론이 아니면 유권자들은 후보들이 준비한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받을 뿐 정책에 대한 이해나 실천 능력 등을 판단할 만한 정보를 얻기 힘들다. 특히 이번 대선처럼 검증과 판단의 시간이 짧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TV토론은 준비된 원고를 읽거나, 제한된 시간 내에서 기계적 균형을 추구하다 보니 제대로 된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지난 18대 대선 TV토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엇을 물어봐도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거 아닙니까”라고 답했지만 그 이상을 파고드는 토론이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한 검증 실패로 대한민국이 치른 홍역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어제 열린 첫 TV토론은 반론권을 제한하지 않아 나름 논쟁이 이어지는 등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팩트 확인 등 치열한 토론보다는 말싸움에 그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후보가 5명이나 되는 데다 안보와 경제 등 전반적인 주제를 다루다 보니 3시간 가까이 진행된 토론에도 불구하고 후보 검증에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좀 더 치열한 검증이 필요하다. 다행히 향후 세 차례의 선관위 주최 토론회는 정치와 경제·사회로 분야를 나눠서 치러지고 그중 두 번은 원고 없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스탠딩 토론이 벌어질 예정이다. 미국의 대선토론처럼 유권자들까지 질문자로 참여하는 형태는 아닐지라도 보다 치밀한 검증이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후보당 18분에 불과한 시간 제한 탓에 철저한 준비가 없다면 변죽만 울리는 토론을 피할 수 없다. 정확한 팩트에 입각한 송곳 같은 질문으로 상대 후보의 허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꼼꼼하고 혹독한 검증은 증거도 없는 네거티브로 상대에게 흠집을 내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스스로 준비된 후보임을 입증하는 것이고, 유권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대통령 탄핵·구속 사태라는 헌정사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길이다.



[매일신문]

7. 생명마저 위협받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들

지난해 12월 경산의 한 편의점에서 30대 아르바이트 직원이 5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고작 몇십원도 안 되는 봉투값 때문에 5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둘렀는데도 편의점 직원은 사방이 거의 막힌 편의점 계산대 구조 때문에 피하지 못해 참변을 당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이하 알바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의 을 중의 을이다. 최저 수준의 임금에다가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게다가 심야시간대 혼자 일해야 하는 근무 특성으로 인해 편의점 알바 노동자들은 범죄에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300~400건의 편의점 강력 범죄가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부분의 편의점들은 효과적인 공간 활용이라는 명목 아래 디귿자 모양의 계산대 안에서 근무자들이 일하도록 하고 있다. 위험이 발생해도 도망가기 마땅찮은 공간 안에서 알바 노동자들은 진상 고객은 물론이고 범죄자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현재 이들이 기댈 수 있는 안전장치라고는 경찰 신고와 CCTV가 고작이다.



이들의 인권 또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알바노조편의점모임이 지난해 알바 노동자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67%가 폭언`폭행을 당했으며 9%는 손님과 점주`동료로부터 성폭력`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편의점 본사들은 알바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거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대책에 관심을 쏟지 않고 있다.



경산 편의점 살인과 같은 범죄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 재발 방지책이 시급하다. 편의점 본사는 비상 탈출구와 아크릴 가림막, 내부 잠금형 계산대 같은 장치 설치 등 근로자 안전을 지키기 위한 대책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비상벨과 전화신고, CCTV만으로는 편의점 범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경찰도 추가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도 편의점 내에서의 인권 보장과 범죄 예방을 위한 대책을 입법 등을 통해 내놔야 한다.



[세계일보]

8. 정치권, 4·12 재보선 결과 아전인수하지 말아야

4·12 재보선 결과를 두고 각 당과 대선 캠프에서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았다. 더불어민주당은 경기 하남시장을 차지하고 부산·경남 11곳의 광역·기초 선거에서 5곳을 이긴 것을 두고 “촛불 민심이 반영된 결과”라고 했고, 국민의당은 호남지역 5곳 광역·기초 가운데 3곳을 건지자 “호남의 맹주자리를 지킨 것”이라고 했다. 자유한국당은 대구·경북(TK)에서 국회의원 상주·군위·의성·청송 선거에서 이기고 이 지역 광역·기초 5곳을 석권한 데 대해 “보수 결집의 신호탄”이라고 자찬했다.

작은 흐름이 확인된 것은 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대구·경북 지지세를 대부분 나눠가지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한국당 지지가 여전히 견고하다는 점, 두 선두 후보가 주도권을 두고 다투는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선전한 점은 눈에 띈다. 민주당이 수도권 기초단체장을 차지하고 부산·경남에서 약진한 것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촛불 민심을 갖다 대고 호남의 맹주 운운하며 자화자찬하는 것은 낯 간지럽다.

이번 재보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 이후 치러진 첫 선거다. 민심의 향배를 읽을 수 있는 단초는 된다. 그러나 지역선거 결과를 대선 후보의 지지로 등식화하며 확대해석하는 것은 어리석다. 지역 정서에 갇힌 눈으로 보다간 민심의 큰 흐름을 놓칠 수 있다.

잇단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듯 19대 대선은 과거의 대선과 사뭇 다른 점이 있다. 첨예한 영·호남 지역 대결 구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투표일에 이 흐름이 현실화되면 과거 고질적이던 지역별 몰표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 호남 출신 후보가 출마하지 않고 국정농단에 대해 반성하는 합리적 보수층의 부동표 현상 때문일 것이다. 이유가 뭐든 고질인 지역 대결 구도를 깰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몇몇 정당에서 과거의 낡은 시선으로 지역 정서를 부추기고 고착시키기 위해 재보선 선거 결과를 이용하는 것은 사라져야 할 구태다. 

지역정서를 불 질러 지지율을 올리겠다는 정당과 후보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매를 들어야 한다. 영·호남 유권자들이 지역 대결을 선동하는 후보와 결별하는 것이 과제다. 마음 둘 곳이 없어 지지 후보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보수층도 지역 대결 구도만은 벗어나도록 각성해야 한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우리가 남이가” 식으로 투표한다면 한국 정치에 미래가 없다.



[매일경제]

9. 김해신공항 100년 미래를 내다보고 제대로 만들어 보라

국토교통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7월부터 9개월 동안 김해신공항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를 한 결과 타당하다는 결론을 냈다고 지난 10일 발표했다. 이로써 2026년 영남권에는 연 3800만명을 수용하는 신공항이 탄생하게 된다. 이에 맞춰 어제 부산에서는 '2017 매경 원아시아 포럼'이 열렸는데 강동석 전 건설교통장관은 '김해신공항과 부산발전'이라는 주제 강연에서 귀담아들을 만한 의견을 제시했다.



요점은 대형여객기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현재 계획된 3200m 신활주로를 3400m까지 늘릴 수 있도록 지반공사를 하고, 새로 짓는 국제터미널은 면세점뿐만 아니라 다국적기업 아시아본부 사무실과 영화관 등 다양한 시설을 유치해 첨단 복합터미널로 개발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100년 미래를 내다보고 제대로 만들어 보라는 것인데 옳은 말이다.

영남권 신공항은 기존 김해공항만으로는 급증하는 영남권 이용객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관측에 따라 1990년대부터 필요성이 제기됐다. 지난해 6월 21일 김해신공항 사업이 확정되기 전까지 입지 선정을 놓고 극심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부산은 가덕도 신공항을 밀었고 경북 밀양도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국토부는 객관적인 사전타당성 조사를 위해 외부 전문기관인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에 연구용역을 맡겼다.



그 결과 김해공항에 활주로 1개와 국제터미널을 새로 건설하는 방안이 결정된 것이다. 비용과 이용자 편익 등 종합적 판단에 따른 것이지만 탈락 지역은 크게 반발했다. 이런 진통 끝에 건설되는 김해신공항인 만큼 기본계획 수립단계부터 주도면밀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는 게 문제다. 미주와 유럽으로 노선을 확대하려면 24시간 운영이 필요한데 공항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해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 6조원에 육박하는 건설비용과 주민 보상·이주 과정에서 나올 민원 대책도 세워야 한다. 강 전 장관은 신공항 주변을 공항특구로 지정해 다양한 인센티브와 특구 발전정책 수립을 제안했는데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한 아이디어다. 이제 막 닻을 올린 김해신공항 사업이 인천국제공항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허브공항을 만드는 대역사가 되길 바란다.



[서울경제]

10. 갈수록 늘어나는 1인가구···정책 패러다임 바꿔야

결혼기피 및 고령화의 영향으로 1인 가구가 빠르게 보편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통계청의 장래가구추계에 따르면 2015년 518만가구(27.2%)에 머물렀던 1인 가구는 2045년 809만8,000가구(36.3%)까지 불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세 집 중 한 집꼴로 본격적인 1인 가구 시대가 도래하는 셈이다. 

1인 가구는 이제 특정 연령이나 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에 폭넓게 퍼져나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생활상으로 정착됐다. 확산속도 역시 빨라지면서 머지않아 일본과 엇비슷한 수준에 오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주목해야 할 것은 1인 가구의 양대 축을 이루는 청년층과 노년층에 주거와 일자리 문제 같은 복지정책 지원이 집중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소득 및 자산수준이 낮아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일각에서는 1인 가구 지원이 출산율 저하를 부추긴다고 우려하지만 이는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단견일 뿐이다. 특히 가구주가 65세 이상인 가구가 2045년에 1,000만가구를 넘어선다는 점도 고령화 시대에 대비한 선제 대응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1인 가구 시대는 복지나 주택 등의 정책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공공임대주택의 입주조건을 놓고 혼선이 빚어진 것은 일관된 정책 부재에 따른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선주자들도 1인 가구와 관련해 여러 공약을 내놓았지만 단편적이고 개별 사안에 대한 임시처방에 머무를 뿐이다.



일본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 뒤 임대료를 할인해주고 미국은 다양한 방식의 주거 바우처 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한다. 1인 가구는 주거배경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지원정책 또한 세심하게 이뤄져야 비로소 실효를 거둘 수 있다. 갈수록 가팔라지는 가구 분화에 맞춰 중장기 종합대책은 물론 지역별·가구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대책을 서둘러 마련할 때다.





주요신문칼럼



1. [머니투데이][신혜선의 유감시대] 아이폰이 바꾼 룰 vs 넷플릭스가 바꿀 룰

아이폰 등장이 게임의 법칙을 바꿨다는 건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단말기 형태가 바뀌어 글로벌 통신단말기 제조사의 흥망성쇠 역사를 다시 썼을 뿐 아니라 장터(앱스토어·플레이스토어)가 만들어져 아이디어 하나로 창업해 도전할 수 있는 긴꼬리 경제학을 형성했다. 2000년 초반 불었던 벤처 창업 붐과는 또 다른 성격인 플랫폼 비즈니스 형태의 스타트 업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소비자의 서비스 이용 형태도 바뀔 수밖에 없다. 통신사가 제공하는 콘텐츠만 이용하던 데에서 자유롭게 장터에 올라간 앱을 내려받아 사용한다.

아이폰을 만든 애플이 21세기 게임의 법칙을 바꾼 1번 타자였다면, 그다음 순번은 글로벌 ‘OTT’(Over The TV, 인터넷으로 TV를 시청하는 유형의 서비스) 넷플릭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넷플릭스 등장 의미를 잘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다수 언론은 한국에 진출한 넷플릭스에 대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는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넷플릭스에 가입해 유료 콘텐츠를 시청하는 국내 이용자는 아직 10만도 안 되는 걸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넷플릭스는 아직 겸손하다. 토드 예린 넷플릭스 제품 혁신 부사장은 지난 MWC(모바일 월드 콩그레서) 2017에서 “한국에서 서비스한 지 겨우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며 “한국 사람들이 콘텐츠를 어떻게 소비하는지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답했다.

모르긴 몰라도 한국 내 저조한 실적은 유료 서비스의 장벽 그리고 하루면 불법으로 해당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환경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실제 “콘텐츠는 좋은데, 굳이 돈 내고” 라는 지인들이 주변에 꽤 된다. 주로 무료 체험 후 중단하는 이들의 변이다.

전적으로 한국 얘기다. 넷플릭스 서비스의 본고향 미국 상황은 전혀 다르다. 넷플릭스에 이어 구글이 ‘YouTube TV’를 내놨다. 당연히 유료다. 외신에 따르면 ‘구글은 지난 4월 5일(미국 현지시각) 주요 지역 방송 TV 네트워크를 포함한 50개 이상의 채널 패키지를 매월 35달러에 제공하는YouTube TV’를 시작했다. PC나 스마트폰에서 유투브가 직접 제공하는 채널을 이용해 전용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은 물론 클라우드 DVR 서비스를 제공해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9개월 동안 저장할 수 있다.

미국의 전통적인 방송사나 통신사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컴캐스트는 자사 X1 고객에게 넷플릭스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에서 넷플릭스 이용 가구는 대략 54% 정도로 추정된다. 컴캐스트는 X1 고객의 30% 이상이 넷플릭스 가입자임을 공개하고, 아예 협력 전술을 택한 것이다.

AT&T는 경쟁을 선언했다. 지난해 말 무료 인터넷스트리밍 서비스(VMVPD)인 '다이렉트TV나우' 서비스를 시작한 데 이어 OTT 서비스인 ‘다이렉트TV’ 서비스를 연내 시작한다고 밝혔다. 앞서 넷플릭스와 대적을 위해 타임워너 인수를 밝혔다.

이들이 제공하는 콘텐츠는 전용 콘텐츠 외에도 미국 대학 농구 경기 등 인기 최고의 스포츠 콘텐츠도 포함한다. 기존 유료방송을 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넷플릭스가 바꾸고 있는 변화 소식에 한국에 진출한 넷플릭스의 행보를 더 하면 그 조짐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적어도 한국의 콘텐츠 제작과 유통 시장을 먼저 바꾸려는 움직임은 놀라울 만큼 적극적이어서다.

이미 입소문이 난 영화 ‘옥자’가 대표적이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넷플릭스 전용 콘텐츠다. 영화관에서 맛보기 상영을 할 계획으로 알려졌지만, 그야말로 맛보기 수준일 거다. 한국 영화 사상 최대 규모의 제작비 5000만 달러(약 600억 원) 전액을 투자하는 넷플릭스는 '옥자'를 시점으로 넷플릭스 플랫폼의 맛을 보여줄 각오를 할만하다.

넷플릭스 전용 드라마 ‘킹덤’의 효과는 더 클 수 있다. 8부작 '킹덤'은 제작비만 약 200억 원, 역대 한국 드라마 제작비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증명받은 김은희 작가의 ‘스토리 맛’과 찔끔찔끔이 아닌 ‘TV 몰아보기’의 맛을 본 시청자라면 옥자보다 그 파급 효과가 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넷플릭스가 바꿀 게임의 법칙은 무엇일까. 그리고 바뀌는 법칙이 불러올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 긍정적인 모습을 보자면 우리가 만든 콘텐츠가 전 세계 이용자에게 선보일 기회가 열렸다는 점이다. 영화 ‘옥자’나 드라마 ‘킹덤’ 외에도 JTBC 새 드라마 ‘맨투맨’도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방영한다. 하지만 그 수익은 사실상 제작비 전액을 댄 넷플릭스 차지다.

국내 시장으로 국한하자면 우려의 평가는 커진다. 넷플릭스가 영화나 전통 TV 드라마의 제작방식은 물론 유통방식을 바꿀 가능성이 커서다. 

영화 유통방식은 대형 스크린을 가진 멀티플렉스 중심으로 상영한 후 유료방송(IPTV나 케이블TV)의 DVD 형태로 공급하는 식이다. 이 방식이 깨질 수 있다. 옥자처럼 극장 상영이 아닌 OTT 전용 영화 등장이 첫 번 째다. 이어 DVD 공급 주체가 국내 대규모 배급사가 아닌 넷플릭스로 바뀌는 변화다. 넷플릭스는 OTT 서비스 후, DVD를 출시하고, 유료 방송에 공급한다. 국내 영화 제작사 및 배급사는 긴장할 수밖에 없고, 영화 DVD 덕에 이제 웃기 시작한 IPTV 사업자들은 넷플릭스를 새 협상 주체로 만나야 한다.

스마트폰 생태계에서 확인한 스타트 업 출현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우려다. 수억 원도 아니고 수백억 원하는 거대 자본과 싸울 콘텐츠 전문 기업이 우리에겐 없다. 광고 급감으로 울상인 지상파나 보도에 급급해 콘텐츠 투자를 등한시하는 종편PP, 존재감 없는 케이블방송, 우리 OTT를 대표하는 지상파 연합군 ‘푹’이나 CJ그룹의 '티빙', 통신사들의 OTT 서비스에 넷플릭스는 이미 가장 큰 경쟁자다.

넷플릭스 등장이 가져올 궁극적인 변화는 결국 미디어 소비 방식이다. TV나 극장이 아닌 인터넷으로 모바일로, 편할 때 몰아보기로. 그리고 국산은 물론 경쟁력 있는 외국 콘텐츠 위주로.



박정호 SK텔레콤 대표는 MWC 2017에서 “옥수수(SKT OTT 브랜드)를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이형희 SK브로드밴드 사장도 “옥수수를 글로벌 한류 플랫폼으로 키운다”고 말했다. 아직은 의지만 읽히고, 후속 행보는 보이지 않는다. 옥수수 해지를 요구하는 고객에게 “무료인데 왜 해지 하십니까” 라는 수준의 마케팅 답변이 그 예다.

'옥자'를 시작으로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할 생각이다. 그러고 나니 해외 플랫폼 종속 우려, 해외 거대 자본 종속 우려, 5G(세대) 시대 콘텐츠 부재 우려 등 모든 우려가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이른다. 소비자는 기다리지 않고, 기업이 움직일 땐 이미 늦은 경우가 태반이라는 걸 경험했다. 아이폰 등장에 우리가 어떻게 허둥댔는지 다시 생각할 때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잉어찜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고등학생 때 부모님과 청송으로 1박 2일 짧은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조부모님과 6명의 고모, 삼촌들, 연년생의 오빠와 남동생을 가진 나에게는 이런 부모님과의 독대가 참으로 별스러운 기억인 셈이다.



물론 여행 목적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참으로 긴 부모님의 용무가 끝나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강가 ‘민물 매운탕’이라고 크게 적힌 흰색 간판 아래로 주말 저녁을 즐기러 나온 가족들의 왁자한 웃음소리와 자글자글 끓어오르던 매운탕의 열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의 메뉴는 잉어찜. 20여 년 전이라는 세월을 생각하면 꽤 비쌌던 3만원대의 특별 메뉴였다. 팔뚝만한 길이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잉어 위로 마늘, 고춧가루를 기초로 한 양념이 오르고 접시 바닥에는 잉어찜을 만들어내면서 자작하게 졸아든 국물이 깔렸었다.



젓가락으로 푹 찌르자 탄력이 느껴지는 흰 살을 양념에 찍어 입 안에 넣으니 고소하고 알싸한 맛이 입안 가득이었다. 생선을 뜯고 남은 양념을 국물 위로 떨어뜨려 비벼먹는 밥맛은 어찌나 좋았던지 보는 눈이 없었다면 접시를 핥아먹을 지경이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날의 기억을 끝으로 다시는 그 집에 가지 못했다.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고 시간이 흐르니 부모님도 그 집의 위치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일부러 그 집을 찾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첫사랑은 찾지 않는 것이란 말처럼 지금의 그 집이 예전의 그 집은 아닐 테니까.



2남 1녀의 둘째로 태어나 특출난 재능이 없던 나에게 엄한 부모님은 항상 어렵고 먼 존재였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나는 난생처음 부부의 재치 있고 명랑한 고명딸 노릇을 하며 1박 2일을 보냈고 그날 그 음식은 부모님의 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방증이었다. 설령 그것이 그냥 동네 중국집의 자장면이었대도 나는 아마 모든 것이 좋았을 것이다.



서로 지켜야 할 선 없이 너무나 가까워져 무시하고 뒤로 미뤄두기 쉬운 것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다. 일견 찌질하고 궁상맞아 보이는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야 일상 속에 묻혀 의미 없이 사라져간 시간을, 사람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사랑은 표현하는데 의미가 있다. 항상 옆에 있는 듯 보이기에 더욱 따뜻한 눈빛으로, 다정한 행동으로 “넌 내게 특별한 사람이야”를 표현해야 하며, 추억을 쌓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 모든 에너지들을 아까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모든 사랑받았던 기억과 추억은 앞으로 닥칠 모든 힘든 시간에 마술처럼 나타나 다시 꿋꿋하게 나아갈 힘과 용기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3. [매일신문][야고부] 고드윈의 법칙

나치가 학살한 유대인이 몇 명인지는 설이 분분하다. 정설은 ‘600만 명’이다. 하지만 당시 나치의 ‘처리 능력’은 이를 감당할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600만 명은 과장됐다는 주장도 있다. 이 중에는 희생자가 75만 명이라는 설도 있다. 지금까지 가장 사실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되는 수치는 미국의 저명한 홀로코스트 학자 라울 힐버그가 계산한 510만 명이다.



학살의 정확한 규모는 불확실하지만, 나치가 유대인을 가스로 학살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반유대주의자들은 이것도 부정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치가 처음 기획한 유대인 문제 해결책은 마다가스카르 섬으로의 추방이었다. 그러나 이는 프랑스와 영국에 대한 승리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1940년 영국 침공이 무산되면서 흐지부지됐다.



그 뒤 나치는 집단 학살로 전환한다. 그 방법은 처음에는 총살이었다. 그러나 처형 속도가 너무 느렸고, 탄약 소모도 심각했다. 더 큰 문제는 계속되는 처형이 부대원들에게 주는 심리적 스트레스였다. 학살 주모자인 히틀러도 처형 장면을 보고 불쾌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밀폐된 트럭에 희생자를 몰아넣고 자동차 배기가스를 주입해 질식시키는 새로운 방법이 도입됐다. 하지만 이 또한 마땅치 않았다. 트럭이 희생자의 토사물과 배설물로 불결했을 뿐만 아니라 연료 소모도 심각한 문제였다.



그래서 나온 ‘최종 해결책’이 가스 살인이다. 그 수단은 공기에 노출되면 강력한 살상력의 독가스로 변하는 살충제 ‘치클론-B’였다. 이것으로 몇 명을 죽였는지는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 백악관 숀 스파이서 대변인이 이를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이 민간인에게 가스 공격을 한 것을 비난하면서 “히틀러조차도 하지 않았던 화학무기를 사용했다”고 했다. 그는 서둘러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사퇴 요구까지 받고 있다.



그의 실언을 두고 ‘고드윈의 법칙’의 전형적 사례라는 소리도 나온다. ‘고드윈의 법칙’이란 1990년 미국 텍사스대 로스쿨 학생이었던 마이크 고드윈이 당시 PC통신 게시글을 분석해 도출한 결론으로 ‘논쟁이 장기화하면 상대방을 히틀러나 나치에 비유하는 발언이 나올 확률은 1(100%)에 수렴한다’ 는 것이다. 미국 정계에서는 그런 발언이나 비유를 회피하는 것이 불문율인데 스파이서가 이를 망각했다는 얘기다. 말이란 참으로 무섭다.



4. [한국일보][우리말 톺아보기] 꽃길

“포기 안 하려 포기해 버린 젊고 아름다운 당신의 계절, 여길 봐 예쁘게 피었으니까 바닥에 떨어지더라도 꽃길만 걷게 해 줄게요.” 꽃시절에 가시밭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이 꽃처럼 예쁘다. 이렇게 노래한 가수에게 누군가 이런 글을 남겼다. “앞으로는 꽃길만 걸으시기를....” 이들에게 ‘꽃길’은 ‘꽃이 피어 있거나 꽃으로 장식된 길’이면서 ‘순탄하고 행복한 삶’이자 ‘승승장구하는 화려한 스타의 삶’이다. 

‘꽃길’과 함께 떠올릴 수 있는 말로 ‘꽃보직’이 있다. “관직 생활 30년 동안 꽃보직으로 돌면서 꽃길만 걸어온 사람”은 별 어려움 없이 편안하고 화려한 관직 생활을 했을 것이다. ‘꽃보직’은 편안하되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만큼 화려하고 중요한 보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꽃보직’은 편안하고 좋다는 뜻만을 지닌 ‘꿀보직’과는 다르다. 이처럼 우리말에서 ‘꽃’은 ‘화려함, 아름다움, 중요함’을 상기시킨다. 

봄을 알리는 ‘꽃’은 신선함을 나타내는 데 쓰이기도 한다. ‘한창 젊은 여자의 나이’를 ‘꽃띠’라 하고, ‘젊고 활기 찬 시기’를 ‘꽃시절’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결혼한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을 ‘꽃잠’이라고도 한다. 젊고 신선함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이 말에 담겨 있다.

‘꽃’은 대상의 화려함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꽃단장’은 얼굴, 머리, 옷차림 등을 꾸미는 단장(丹粧)의 정도가 화려함을 뜻한다. ‘꽃분홍’과 ‘꽃자주’는 꽃 색깔과 관련 있는 ‘분홍’과 ‘자주’에 ‘꽃’을 붙여 색채의 짙고 화사함을 강조한 말이다. 그 자체로 화려하면서 가까이 있는 것마저 돋보이게 하는 꽃. 그런 꽃의 매력을 이 말들에서도 발견한다.



5. [한국일보][삶과 문화] 뒤늦은 ‘자아’ 이야기

우리 세대의 성장기에 ‘자아’라는 말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함께 도착했을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스무 살 무렵 1차 세계대전의 전쟁터에서 부상당해 야전병원에 누워 있는 장면에서 끝난다. 밝고 안정된 기독교 가정의 모범생으로 자라난 소년은 영혼의 안내인이자 자기 자신 속의 ‘참된 나’를 은유하기도 하는 데미안과의 만남을 통해 세계의 어둠과 밝음을 함께 껴안는 성숙한 젊은이로 성장해 있다. 육신은 신음하고 있지만 그는 한 세계를 깨뜨리고 나온 것이다. 그는 이제 자기 안에서 우러나오는 내면의 명령을 좇아 자기 자신만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얼마 전 근 40년 만에 ‘데미안’을 다시 읽으면서 규율과 강제의 대상으로 나 자신을 좁혀야 했던 숨 막히는 중고등학교 생활이 떠올랐고, 그런 거라면 그 시절 싱클레어에 대한 턱없는 동일시도 얼마만큼 이해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다분히 낭만적인 진정성의 자기 서사는 그 후로도 꽤 오래 내게 영향을 미쳤지 싶다.



내 대학 시절의 상위 이념은 ‘존재의 의식 규정성’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당시의 정치 상황에서 이를 애써 의식화하는 가운데 오히려 ‘자아’의 공간은 다시 한 번 실제 이상으로 과장된 채 남아 있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 불가피한 간극에 도덕적 윤리적 자기 명령이 들어오고 그것이 ‘실천’이라는 강요 사항이 되면서 사회학자 김홍중이 말한 ‘진정성의 체제’는 또 다른 낭만적 이상화의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너무 거창했던 것이 아닐까. ‘데미안’도 그렇고 80년대도 그렇고. 그런 점에서는 자아의 신화를 해체하고 인간 주체성에 대한 첨단의 수술로 치달았던 서양의 현대 철학이 지난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 급속도로 유입되어 온 과정에도 일종의 ‘거대담론적’ 편향이 존재했다는 느낌도 든다. 그 끝없는 언어와 사유의 반성의 절차 다음에도 남아 있는 실체로서의 자아, 미약한 대로의 주체성을 붙들고 우리는 대낮의 거리에서 만나고 살아간다. 객관적이고 자명한 세계와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다. 

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윌리엄 M. 레디는 <감정의 항해>(김학이 옮김, 문학과지성사)에서 감정 표현이라는 이모티브(emotive)가 가진 ‘자아 탐색’과 ‘자아 변경’의 수행적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우리의 ‘자아’를 포스트구조주의가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간 ‘주체성’이나 데카르트적 이분법의 틀 바깥에서 재건하고 재개념화할 방법을 찾는다. 기표와 기의의 무한한 미끄러짐 사이, 그 자의성의 감옥에 우리가 갇혀 있기만 한 것은 아닐 테다.



우리는 수시로 우리의 느낌을 발화하며 산다. 이때 많은 생각 재료들 중 어떤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고 선택하고 활성화하고 배열하는 작업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미결정적일 수밖에 없는 그 ‘번역’ 작업은 바로 그 미결정성을 통해 감정의 자유와 감정의 항해를 가능하게 하며, 그런 한 이곳은 주체성이 자신의 장소를 발견하는 장이고, 자유와 역사적 변화가 다시 의미를 획득하는 장일 수 있다.



감상주의라는 감정 체제의 관점에서 프랑스 혁명기 공포정치 전후의 역사를 설득력 있게 재조명하는 가운데 전개되는 그의 ‘이모티브 이론’이 이렇게 거칠게 요약될 수는 없겠지만, 자유와 주체성의 장소를 인간 개인의 자아 안에서 되찾으려는 그의 이론적 노력은 실질적인 인간 역사와 현실의 감각 위에 있는 듯했고, 그 점이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생각해보면 ‘데미안’은 유례없는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으며 ‘자아’의 근거를 한 순간에 잃어버린 당시의 독일 젊은이들에겐 너무도 절실한 책이었을 수 있겠다. 싱클레어-데미안 놀이를 하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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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서해 ‘꽃게 풍년’ 해경이 굳게 지켜야 한다

서해 꽃게 어장이 요즘 조용하다고 한다. 최근 봄철 꽃게 조업이 시작된 가운데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에서 불법 조업하는 중국어선들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해경에 따르면 어제 연평도 인근에는 중국어선이 한척도 보이지 않았다. 서해 5도 주변 전체적으로 이달 초만 해도 190여척에 이르던 중국어선이 최근에는 40여척으로 급감했다. 덕분에 작년 봄어기 380㎏에 그쳤던 꽃게 어획량이 올해는 9500㎏까지 급증했다. 꽃게 풍년에 어민들은 모처럼 함박웃음이라고 한다.

해경은 이를 지난 4일 창단한 서해5도 특별경비단의 효과로 분석했다. 400여명의 인력과 벌컨포 등을 갖춘 대형함정, 소방방탄정 등 12척의 함정으로 구성된 특경단은 창단 후 7일 동안 중국어선 5척을 나포하고 37척을 퇴거시켰다. 이전보다 한층 강력해진 단속에 중국어선이 70%가량 줄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6차 핵실험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국 칼빈슨 항공모함 전단이 한반도 주변에 재배치되는 등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얼어붙은 점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법하다.

이유야 어찌됐든 우리 어장을 휘젓던 중국어선이 사라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전에도 단속을 강화하면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대부분 반짝 효과에 그치곤 했다. 지난해 10월 폭력적인 중국어선들에 대해 M60 기관총 등 공용화기를 사용하는 강경대응 방침을 밝히자 한동안 줄어드는 기미가 보였지만 잠시뿐이었다. 교활하고 흉포한 중국어선들의 행태로 보아 단속이 자칫 느슨해지면 언제라도 다시 준동할지 모른다.

중국어선들의 불법조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서해뿐 아니라 최근에는 동해에까지 출몰하고 있다. 더구나 치어까지 싹쓸이하는 불법 남획으로 우리 바다에서 어족 자원의 씨를 말리고 있다. 머지않아 식탁에서 국내산 생선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사드 보복’의 치졸한 중국에 우리 어민들의 터전까지 내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무력 대처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 한척의 중국어선도 우리 해역을 넘보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2. 80세도 부양의무자로 보는 독소조항 고쳐야

이번 대선에서 눈길을 끄는 복지 공약 중의 하나가 부양의무제 폐지다. 부양의무제란 부모나 자녀의 재산과 소득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되는 제도다. 아무리 생활고에 시달려도 부모나 자식 중 누구라도 재산이 있거나 일을 하게 되면 정부로부터 생계비나 의료비, 교육비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러다 보니 생활고를 감당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나온다. 대선에 나온 문재인·안철수·유승민·심상정 후보가 의무부양제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들고 나온 이유다.

2000년 시행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서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의 선정 기준인 부양의무자 기준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기 어려워졌다. 경기 침체, 실업난, 물가난 등을 고려하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늘어나야 하는 게 정상이거늘 수급자가 감소하다가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은 부양의무제 때문이다. 이 제도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한 극빈층이 117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법과 현실의 괴리가 빚어낸 복지 피해자들이다.

이 제도에 따라 80세 딸도 100세의 어머니를 부양해야 한다. 어머니는 아무리 곤궁해도 자신 못지않게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처지인 80세 딸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경제력을 상실한 노인이 노인을 봉양해야 하는 구조다. 고령화의 한 단면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제도가 갖는 ‘독소 조항’ 탓이다.

과거에는 부모 봉양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세태가 야박해진 탓도 있지만 교육비와 주거비 등으로 자식들도 제 앞가림을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노인들이 나랏돈을 지원받으려면 자식이 부모를 방임한다는 사실을 재판으로 증명을 해야 한다. 복잡하고도 인륜을 저버리는 절차를 거쳐야 하니 노인들은 가난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노약자는 국가와 사회 공동체가 책임져야 한다. 가족에게 모든 책임과 의무를 떠맡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문제는 재원이다. 부양의무제 폐지 때 연간 10조원이 더 들어간다. 선의의 정책이라도 당장 도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단계적으로 폐지하되 그러지 못한다면 도움이 절실한 이들만이라도 부양의무에서 우선 면제하는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복지예산 130조원 시대에 극빈층을 복지 사각지대에 내몰아서야 되겠나.



3. 4차 산업혁명 토대 세울 후보 꼼꼼히 따져 뽑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4차 산업혁명의 성패는 19대 대통령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떤 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우리의 먹거리, 일거리가 차기 정부 5년 사이 대박을 터뜨릴 수도, 쪽박을 찰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들이 가장 역점을 들여 다듬고 있는 공약 중 하나가 4차 산업혁명 분야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을 일구는 방식과 어떻게 그 과실을 우리의 것으로 할 것인가 하는 각론에 들어가면 제각각이고 2% 부족하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를 만들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컨트롤타워로 삼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즉 정부 주도인 것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이들과 정반대이다. 미래 예측은 불가능하고 정부가 계획을 세워서 끌고 가면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있으므로, 민간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정부는 뒷받침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주도권을 쥐는 게 정부냐 민간이냐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5년 임기의 대통령이 만든 위원회가 성공한 사례가 없다면서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 담당 부처의 통합 또는 기능 조정을 통한 맞춤형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 주도형의 문 후보는 과학기술정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총괄하는 과학기술부의 부활과 중소기업청의 중소벤처기업부로의 승격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홍 후보는 새만금을 4차 산업혁명의 전진기지로 삼겠다고 밝히고 있다. 심 후보는 태양광, 해상 풍력발전, 전기충전 기술 같은 생태혁신 투자를 주도하겠다고 말했다. 민간 주도형의 안 후보는 창업중소기업부 신설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의 주도적 민간 기업에서 일할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해 내는 과감한 교육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후보들의 4차 산업혁명 청사진은 모두 장밋빛이다.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준다. 연구 개발 지원, 기술 개발에만 머물고 있는 공약에서 한걸음 나아가 경제적 성과로 연결하는 방법론이 보이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기술이 진보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일자리 감소 등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대안 제시도 미흡하다.



그런 점에서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어제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혁신으로 원치 않는 재취업을 했을 때 줄어든 소득의 일정 부분을 보전해 주는 임금보험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한 제안은 후보들이 참고할 만하다.

4차 산업혁명에 이르는 길을 주도하는 게 정부냐 민간이냐, 어느 쪽이 옳은지는 밟아 보지 못한 미지의 길이다. 따라서 정답은 없다. 5월 9일까지 후보 간 토론, 완성된 공약을 잘 따져 보고 유권자가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난마처럼 얽힌 규제를 과감히 풀어 창의가 춤추도록 한다는 대원칙만큼은 빼놓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4. 사드 철회만 종용하는 中 우다웨이

방한 중인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주요 정당 관계자 및 대선 후보들을 잇따라 만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철회를 요구했다. 지난 10일 우다웨이가 한국에 들어올 때만 해도 일각에서는 한반도를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는 북핵에 대한 양국의 공조방안이 논의의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사드 배치가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에 큰 피해를 준다”는 중국 당국의 주장을 릴레이 면담을 통해 되풀이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방한은 대선을 20여일 앞둔 한국 정계의 분위기를 탐색하기 위한 ‘엿보기 방한’ 성격이 짙다.

우리가 우다웨이의 방한에 일말의 기대를 건 것은 그가 중국을 대표하는 아시아통이고 북한의 6차 핵실험 징후로 한반도가 격랑에 빠진 상황에서 사드 보복으로 불편해진 한·중 관계에 새로운 국면을 여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 측 인사들에게 보여준 행보는 ‘중화 이기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치 앵무새처럼 자국의 안보 이익만 강조했을 뿐 우리의 안보 이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없었다. 경제보복 중단 요구에 대해 “중국 국민의 자발적 행동이고 정부의 행위가 아니다”는 노회한 발언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더구나 사드 배치와 관련해 우리 측 인사들을 균열 내고 이간질하는 듯한 행보는 황당하고 괘씸하기 짝이 없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단호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사드의 레이더가 중국 전체의 절반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우다웨이에게 “사드는 이미 설치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더이상 얘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한 김무성 바른정당 공동선대위원장의 응수는 높이 살 만하다. 국가 안보에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사드는 중국 안방을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 핵 공격에 대한 견제용이다. 딱 잘라서 얘기하는 것이 차기 정부가 출범한 뒤 중국과의 협상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타국의 안보가 걸린 중대 사안에 치졸한 경제 보복으로 대응하는 중국의 방식은 자충수가 되면 됐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의 무역 제한 조치는 우리에게 잠시 고통을 줄 수는 있겠지만 자국 업체에도 피해는 주는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뒤통수를 치는 중국의 예측 불가능한 외교정책은 투자환경을 해치며, 상대국에 적대감의 씨앗을 뿌리는 행위라는 사실을 우다웨이는 깨닫고 돌아가길 바란다.



[조선일보]

5. 조기 대선 무방비 상태서 맞은 한반도 정세 중대 고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미국에서 만난 지 5일 만인 어제 다시 전화로 회담했다. 중국 공산당 선전 기관들에 따르면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며 평화적 방법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고 미국과 소통, 협력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로 얼굴을 보고 만난 정상회담이 끝난 지 5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시 주석이 전화를 걸어야 했다면 뭔가 긴급하고 중대한 사정이 있거나 최소한 매우 우려하는 문제가 떠올랐다는 뜻이다. 일단 미국의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이끄는 전단이 한반도 인근 해역으로 이동 중이고 대북 선제 타격설, 북 미사일 요격설이 잇따라 나오자 시 주석이 직접 나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북핵을 막지 않으면 우리가 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혀왔다. 그는 어제도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큰 실수를 하고 있다"며 "미국은 강력한 무적함대를 (북한에) 보내고 있다"고 다시 경고했다. 미 당국자들은 대북 군사 조치를 선택에서 빼지 않고 있다고 거듭 언급하고 있다. 물론 대북 군사 조치는 쉽게 실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뉴욕타임스 보도대로 실질적 제약이 적지 않다. 한국에 거주하는 약 20만명의 미국인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은 지금 당장 군사 조치를 실행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실제 미국이 이지스함이 포함된 항모 전단을 한반도 해역에 배치하는 행동에 들어가자 트럼프 정부의 특성을 아직 잘 모르는 중국으로서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북 군사 조치는 확전 가능성을 안고 있다. 북은 이 가능성 때문에 국제사회가 어쩌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온갖 도발을 벌이고 있다. 중국도 북한과 같은 판단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이 미국 세력을 막는 완충 지대로서 가치가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라는 미지의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북한과 중국의 이런 판단에 불확실성이 생긴 것이 지금 정세다.

우리는 북의 확전 위협에 인질로 잡힌 것과 같은 처지다. 대북 군사 조치를 적극 추구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무조건 막고 나서 북에 행동의 자유를 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북한과 중국도 안심할 수 없게 만들지 않으면 북핵 위기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안전하고 피해 없는 길만 찾아다니다가는 진짜 위험한 막다른 골목을 만날 수 있다.

결국 중국이 큰 방향 전환을 할 수밖에 없다.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오직 중국만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는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한다면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사설을 썼다. 중국이 송유관을 잠그면 북한은 얼마 안 있어 마비된다. 손들 수밖에 없지만 북은 중국이 그럴 수 없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핵을 가진 북한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중국의 오랜 계산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믿는 것이다.



북의 이 확신과 믿음을 깨야 한다. 중국은 미국의 군사 조치를 우려한다면 대북 송유관을 막아 북이 기대고 있는 언덕을 송두리째 무너뜨림으로써 북의 전략적 셈법 변경을 강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제는 중국의 국익도 위태로워진다. 그게 '트럼프 시대'다. 중국이 대북 송유관을 그대로 두고, 중·북 국경의 밀무역을 방치하면서, 북한인 노예 노동으로 김정은에게 달러 수입을 안겨주면서 주장하는 '평화적 해결'은 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한반도 정세는 지금 우리가 잘 모르는 새 중대한 고비를 지나가고 있을 수 있다. 더구나 지금은 대통령이 부재한 가운데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무방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전쟁이냐 평화냐'는 국민 협박으로 정치적 득을 챙기려는 세력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직후 선거에서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대선 주자들은 어떤 목적에서든 국민에게 두려움을 줘 표를 얻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지도자 자질을 보여줘야 할 때다. 전쟁을 각오하고 전쟁에 대비하지 않는 국민은 전쟁을 막지 못한다는 것은 인류 역사의 진리다.



[동아일보]

6. 우병우 사건, ‘봐주기 기소’로 추가 수사도 못하게 되나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어제 법원에서 또다시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전담 판사는 기각 사유에 “범죄 성립을 다툴 여지가 있다”고 적시했다. 단순히 불구속 수사 원칙을 천명한 게 아니다. 한마디로 무죄가 날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뜻이다. 3번이나 한 검찰 수사가 얼마나 엉성했으면 판사가 이렇게 지적했을까 개탄할 수밖에 없다.

우 전 수석에 대한 첫 조사를 벌인 검찰 1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뒷북 압수수색’과 ‘황제 소환’ 등 시늉내기 수사로 일관했다. 특검은 우 전 수석이 지난해 7∼10월 김수남 검찰총장과 12회,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과 160회 등 검찰 간부들과 2000여 회에 걸쳐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은 사실을 확인해 2기 특수본에 넘겼다. 하지만 수사팀은 대상자 소환도 하지 않았다. 우 전 수석의 개인비리는 구속영장 혐의에 넣지도 않았다.

검찰은 2차례 영장 기각을 빌미로 우 전 수석을 불구속 기소하고 최순실 국정 농단 수사도 마무리할 모양이다. 하지만 이는 추가 수사마저도 가로막는 ‘봐주기 기소’다. 이러니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넘어 검찰 수뇌부가 우 전 수석에게 약점을 잡힌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 김 총장은 지금이라도 강골검사를 특임검사로 임명해 우병우 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 

최순실 씨의 딸 부정 입학 및 학점 특혜 비리로도 이화여대 총장 등 5명의 교수가 줄줄이 구속되는 판에 국정 농단을 묵인·방조한 혐의를 받는 ‘몸통’이 건재하다면 납득할 사람이 없다. 안철수 문재인 후보 측 모두 어제 검찰을 강하게 질타했다. 검찰이 더 머뭇거린다면 차기 정권에서 ‘우병우 특검’과 개혁의 칼날을 맞게 될 것이다.



[중앙일보]

7. 인형뽑기 열풍과 불황기 청년의 불안한 미래

인형뽑기 열풍이다. 동네 편의점뿐 아니라 대학가나 젊은이들의 거리엔 인형뽑기방 골목이 조성됐을 정도다. 중·고생부터 청년들까지 인형뽑기 삼매경에 빠졌고, TV 오락프로그램 출연자들도 “인형뽑기로 시름을 잊는다”고 공개했을 정도다. 또 연간 1만5000개의 인형을 뽑은 중국 남성이 유튜브에 올린 ‘인형잘뽑기 방법’에 대한 영상은 청소년들의 성지 영상으로 꼽히기도 한다.

인형뽑기는 1000원짜리 한 장으로 즐기는 게임으로 불황기 청년들의 얇은 주머니로도 일단 접근이 쉽고, 특히 요즘 젊은 층의 혼자놀기 문화에 딱 맞아떨어지면서 거의 광풍으로 확산됐다. 전업 뽑기방 수도 확확 늘어 올 2월 말까지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수는 1433곳으로 3개월 전인 지난해 11월(500곳)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상품도 다양화돼 포켓몬 등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물론이고 요즘은 드론까지 상품으로 내걸면서 청소년들의 발길을 잡는다. 

이에 한편에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뽑은 인형을 온라인 장터에서 팔아 게임비를 충당하는가 하면, 몇 만원씩 한자리에서 탕진하는 청소년들이 늘면서 사행성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도 상품 가격을 규제하는 등 단속 의지를 비쳐 업계와 갈등을 빚고 있다. 

하나 이 열풍에 가려진 더 큰 문제는 현재 뽑기방 공급 속도와 규모가 과잉 조짐을 보여 영세 청년자영업자 붕괴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험칙상 유행 게임의 열풍은 오래가지 않아 지속 가능성이 적은데 시장진입 인구가 지나치게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서다. 이에 인형뽑기방도 기존의 일시적 유행 아이템들이 걸어왔던 ‘과잉공급-경쟁 심화-부동산 비용 증가-수요 감소-폐업’의 길을 갈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뽑기방의 경우 기계 한 대당 200만원 안팎으로 큰돈이 들지 않고 관리도 무인시스템에 현금 장사라는 이점을 내세워 실업청년과 젊은 투잡족이 대거 유입되고 있어 이 시장이 내리막으로 달리면 청년층 자영업자들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벌써 업계에선 인형뽑기방 다음으로 작은 공간에 관리자 없이도 운영할 수 있는 혼놀족 아이템으로 ‘코인노래방’ ‘VR방’ 등이 거론되며 청년창업자들을 겨냥하고 있는 실정이다. 3월 청년실업률도 11.3%로 두 달 연속 두 자릿수다.



청년 일자리 대책 없이 ‘청년창업’을 격려하는 무책임한 사회풍조가 청년들을 뚜렷한 창업의 철학이나 경험도 쌓지 못한 채 창업시장으로 내몰아 실패를 조장하는 건 아닌지 되짚어봐야 할 때다. 또 이미 자영업자 수가 550만 명이 넘고 자영업자 빚이 500조원을 넘어 경제 뇌관이 된 상황에서 청년마저 영세자영업자로 전락시키는 창업 열풍은 바람직하지 않다.



8. 미·중 정상 통화가 말하는 급박한 한반도 정세

‘4월 위기설’을 증권가 등에 떠도는 한낱 찌라시(사설 정보지) 정도의 낭설로만 치부하기엔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긴박한 흐름이 심상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일 트위터에 “북한이 말썽이다. 중국이 돕는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돕지 않는다면 우리가 단독으로 해결하겠다”며 독자 행동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같은 날 숀 스파이서 미 백악관 대변인도 북한을 공습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통령은 행동할 준비가 돼 있고, 필요하다면 행동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이 독자적으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가 강력하게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건 어제 이뤄진 미·중 정상 간의 긴급 통화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박2일의 정상회담을 가진 게 지난주다. 한데 불과 나흘 만에 다시 통화를 가졌다. 극히 이례적이다. 특히 통화 내용의 핵심이 ‘미·중 정상이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는 것으로, 이는 양국 지도자가 한반도 정세를 얼마만큼 불안하게 보고 있는지 말해 준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등 쌍끌이 도발을 단행할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예단하기 힘든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도 어제 사설에서 “북한이 다시 핵·미사일 실험을 한다면 이는 대중 앞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뺨을 때리는 격으로 미국의 군사행동 가능성을 크게 높일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한반도가 자칫 무력 충돌의 혼란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피해야 한다. 전쟁을 부추기거나 근거 없이 불안을 조장하는 괴담도 막아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모든 가능성을 주시하며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행여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반도가 전란의 화마에 빠지지 않도록 모든 외교 역량을 동원해 미·중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동시에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한 방안을 다각적으로 강구하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매일신문]

9. 늘어나는 교권 침해, 교육 포기로 이어질까 두렵다

해마다 교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발표한 ‘2016년 교권 회복 및 교직 상담 결과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다. 지난해 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상담 사례는 572건으로 10년 전인 2006년의 179건보다 3배나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년도(488건)보다 17.2%가 불었다. 오늘날 우리 교육 현장에서 빚어지는 교권 침해의 슬픈 자화상이다.



교권 침해는 증가세였고 증가 폭도 컸다. 100건대의 교권 침해가 2007년 처음 200건을 넘었고, 2012년 이후 300건대, 2014년부터 400건대, 2016년 572건으로 늘었다. 교육부가 국회에 낸 2011~2015년 교권 침해 현황에 따르면 2만5천 건, 2011~2016년 상반기 현재 2만7천400여 건이다. 특히 교권 침해(572건)의 절반쯤인 267건(46.7%)이 학부모에 의한 피해였고, 학생과 제3자의 침해도 각각 58건(10.1%)과 32건(5.6%)이었다. 학부모`학생`제3자의 교육활동 침해가 전체의 62.4%(352건)였다.



이번 자료는 우리 학교 현장이 지금 학교 밖으로부터의 심각하고 일상화된 교권 침해로 몸살을 앓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아울러 학교 현장에서의 교권 환경이 날로 악화되는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한마디로 학교 교육 활동을 둘러싼 전통적인 신뢰 관계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전인 교육의 첨병 역할을 맡은 학교에서의 교권이 이처럼 침해받는 상황이라면 정상적인 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 교권을 침해받으면서까지 굳이 교육에 애정과 정성을 쏟을 교육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사실상의 교육 포기와 다름없다.


이에 따른 최대의 피해자는 바로 학생들이다. 이 때문에 당국에서는 교권 침해 학부모 등에게 과태료 부과 같은 처벌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대증 처방에 불과할 뿐이다. 무엇보다 학교에 대한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 교육 현장에서의 일탈(逸脫)도 곤란하다. 그렇지만 학부모 등 학교 밖의 교권 침해 행동은 더욱 삼갈 일이다. 교권 보호를 위한 학교장의 적극적인 역할도 절실하다. 이는 가장 중요한 교육 소비자인 학생을 위해서다.



10. 주목해야 할 ‘힘의 우위에 의한 무장평화’ 제안

‘4월 한반도 위기설’이 대선판을 흔들면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사드 배치에 긍정적 입장으로 선회한 가운데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무장평화”와 “공세적 국방 정책으로의 전환”을 들고 나왔다. 홍 후보는 1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포럼에서 “대선이 ‘탄핵 대선’에서 ‘안보 대선’ 국면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홍 후보는 이를 위한 방안으로 사드 배치는 물론 1991년 철수한 미군의 전술핵 재배치와 특수전 전문부대인 북한의 특수 11군단에 대응한 해병특전사령부 창설 등을 제시했다. 물론 이런 대책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중국을 설득하고 미국과는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는 외교`안보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제한적이나마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현재까지 대선판에서 거론되는 안보 대책은 사드 배치뿐이다. 그나마 ‘4월 위기설’이 터진 덕분이다. 그전까지는 다른 이슈에 밀려나 있었거나 ‘다음 정부에서 공론화’(문재인), ‘국가 간 합의는 존중’(안철수)처럼 사실상의 반대나 미온적 찬성의 틀에 갇혀 있었다. 대선 국면이 아니고 또 ‘4월 위기설’이 아니었다면 문 후보가 ‘사드 배치 불가피론’으로, 안 후보가 ‘사드 배치 반대 당론 철회’로 입장을 바꿨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야권 대선 주자들은 안보를 강조하면서도 그 실행 방법에는 말이 없다. 문 후보는 11일 “한반도에 참화가 벌어지면 저부터 총을 들고 나설 것”이라고 했다. 그런 정치적 수사(修辭)로는 전쟁을 막지 못한다. 안 후보도 원론적인 소리만 되풀이한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를 이뤄 핵무기도 없고 사드도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게 우리 모두의 지향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케 하는 수단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홍 후보의 제안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다른 후보들보다 진일보한 안보 대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다른 후보들도 홍 후보처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지층만 보지 말고 국가와 국민 전체를 보면 얼마든지 홍 후보보다 더 좋은 대책이 나올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씨줄날줄] 14세 테슬라의 질주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모터스는 지난해 3월 31일(현지시간) 모델3 블루스타를 전격 공개했다. 한 번 충전해 달릴 수 있는 주행거리는 356㎞로 기존 전기차의 두 배에 달했다. 가격은 3만 5000달러대로 8년 전 출시한 모델S에 비해 2만 5000달러나 낮췄다. 디자인도 파격적이었다. 앞 유리에서 지붕, 뒤 유리에 이르기까지 강화유리로 덮었다. 3일 만에 27만 6000대가 예약 판매됐다. 열광적이었다. 전기차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테슬라는 2003년 기업가이자 발명가인 일론 머스크와 엔지니어 마틴 에버하드, 마크 타페닝 등이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팰로알토에 설립한 자동차 전문회사다. 회사 명칭은 전기공학자 겸 물리학자인 니콜라 테슬라(1856~1943)의 이름에서 땄다. 2006년 전기 스포츠카인 로드스타를 시작으로 2012년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모델X, 2016년 프리미엄 세단 모델S를 내놓았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머스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캐나다계 미국인이다. 억만장자이자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괴짜 천재인 까닭에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우주여행 벤처기업인 스페이스 엑스의 CEO와 태양광 발전기업 솔라시티의 회장직도 맡고 있다. 앞서 온라인 결제전문기업 페이팔을 공동창업해 큰돈을 거머쥐었다. 그 때문에 억만장자 외에 몽상가, 혁신창업가, 미래설계자라는 등의 별칭이 붙어 있다.

머스크는 모델3를 선보이는 자리에서 “환경과 인류에 덜 해로운 교통수단의 시대를 앞당긴 차”라고 소개했다. 머스크의 말처럼 테슬라는 전기차의 한계 돌파와 함께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이른바 ‘게임 체인저’다. 테슬라의 가치는 주가를 통해 현실화됐다. 지난 3일 시가총액이 114년 된 원조 자동차회사인 포드를 뛰어넘더니 1주일 만인 10일 109년 된 제너럴모터스(GM)마저 제치고 1위에 올랐다. 515억 달러(약 59조원)를 기록한 것이다. 누군가는 ‘다윗과 골리앗’에 비유했다. 14년 된 신생 업체의 질주다.

테슬라의 거품론도 없지 않다. 지난해 6억 8000만 달러의 순손실을 보는 등 지금껏 적자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판매량도 7만 6000대에 불과하다. 실적으로 보면 과대평가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시가총액은 현재도 중요하지만 미래 가치의 반영이기도 하다. 테슬라를 스마트폰처럼 생활의 도구, 문화로 보고 있는 것이다. 테슬라의 저력은 끊임없는 도전, 혁신에 있다. 4차 산업혁명에 직면한 우리 현실에 던지는 테슬라의 메시지다.



2.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우리 곁을 오래 지켜온 생선구이

한국은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로, 전통적인 노르웨이와 일본을 넘어섰다. 우리 국민들이 생선을 워낙 좋아한다는 것인데, 생선요리 중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것이 생선구이다. 생선구이는 말 그대로 생선에 소금을 뿌리거나 양념장을 발라서 숯불이나 연탄불에 구운 음식이다. 가정에서는 가스 불 혹은 오븐에 굽거나, 프라이팬에 기름을 자작하게 두르고 굽기도 한다.



생선구이는 생선을 먹는 가장 오래된 방법으로, 선사시대까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적 방법인 소금에 절이거나 소금을 뿌려 구우면 담백한 생선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고, 간장양념을 쓰면 풍미를 더할 수 있으며, 고추장양념을 하면 생선의 맛이 새롭게 변신한다.

생선구이는 청어, 고등어, 삼치, 전갱이, 도미, 대구, 가자미, 꽁치, 전어 등 한반도 해역에서 나는 대부분의 어종을 재료로 해서 우리 식탁에 오른다. 그래도 구이로 가장 많이 먹는 생선은 국민생선이라 불리는 고등어가 아닐까 한다.



고등어는 제주도 남부에서 많이 잡히는데, 지금은 가두리 양식도 하지만 북유럽의 노르웨이 등지에서 수입해 오는 물량도 많다.

고등어는 선도가 급속히 떨어지므로 안동 등지에서는 예부터 상하기 전에 소금으로 절여서 꾸덕꾸덕하게 말려 자반으로 먹거나 유통해 왔으며, 제주도 등지에서는 배에서 잡는 즉시 염장해서 말려 뱃자반을 만들어 먹었다. 옛날에는 국내 자연산이 대세였으나, 이제 회감으로는 양식을 많이 쓰고, 식당에서는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구이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노르웨이산 냉동 고등어는 국내산에 비해 무늬가 짙고 몸통이 덜 통통해서 구별이 쉬운 편인데, 저렴하고 식감도 좋으며 품질이 균등해서 인기가 높다.



생선구이, 특히 고등어구이는 크게 비싸지 않아 집에서나 또는 식당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메뉴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도 맛깔나게 요리하는 주부들이 많고, 전문 음식점 또한 많다.

종로5가 동대문시장 통에는 연탄불 생선구이 가게가 모여 있는 골목이 있다. 원조로 알려진 1974년 개업한 ‘호남집’, ‘삼천포집’(구 대중식당), ‘전주집’, ‘나주식당’ 등 30~40년 이상 된 생선구이 전문 가게가 10여곳 모여 있다. 연탄불에 은은하게 생선 굽는 냄새가 그냥 지나치기 어렵게 한다. 각종 생선구이가 있으나, 고등어와 삼치가 인기다. 생선을 푸짐하게 주고 반찬도 깔끔하다.

종로3가에도 생선구이 골목이 있다. 대로에서 안쪽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한일식당’이 보인다. 고등어, 꽁치, 삼치 등 구이 종류가 다양하다. 가게 바깥에서 초벌구이를 해두었다가 주문받으면 연탄불에 한 번 더 구워준다. 옷에 냄새도 배지 않고, 구이 냄새로 손님 끌기에도 좋다. 저렴하지만 생선구이가 푸짐하게 나오고 무쇠돌솥밥에 여러 반찬도 정갈하다. 인근 ‘전주식당’도 30년 된 집으로 돌솥밥으로 준다.

삼각지 대구탕 골목 뒤편에 ‘대원식당’이 있다. 작은 집이나 생선구이 정식 손님으로 줄이 길다. 가게 입구에서 할머니가 소금간을 미리 해놓은 고등어를 연탄불에 굽는데, 33년 경력이라 하신다. 가게는 조카가 경영한다. 고등어는 간이 적당하고 촉촉하게 구워져 입맛을 돋운다. 총 11가지 반찬을 내어오는데 어느 것 하나 허접한 것이 없다. 숭늉까지 준다. 저렴하지만 정성스레 차린 한 끼 밥상을 받는 기분이다.

완연한 봄이다. 주말 나들이를 겸해서 오랜만에 종로통이나 동대문시장을 둘러보고, 옛멋이 살아 있는 생선구이 골목에서 한 끼 식사를 즐기는 호사를 누려 보려 한다.



3. [서울신문][김용석의 상상 나래] 기업의 창조와 혁신, 르네상스 시대에서 배우자

올 초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 등을 돌며 수많은 천재 예술가의 작품을 만났다. 옛 모습 그대로의 건물, 좁은 골목길을 누비면서 중세 시대에 와 있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많은 회화, 조각물을 보면서 든 생각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했을까’였다.



당시 작품에서 어떤 독창적인 것이 있었으며, 창의적인 생각은 어디서 나올 수 있었을까? 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인류 역사상 14~16세기 르네상스는 가장 창의적인 문화가 꽃피었던 시기로 불린다. 르네상스는 신 중심의 세계관이 인간 중심으로 바뀌면서 처음에는 문학, 미술, 건축 등에서 시작하였으나, 나중에는 사상과 생활방식이 바뀌게 되고, 그것이 과학혁명으로 이어졌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 무역업과 금융업의 중심지였고, 당시의 피렌체는 상인이 아니면 존경을 받을 수 없다고 알려진 최초의 현대도시였다.

특히 가장 영향력 있는 상인의 가문은 메디치가이다. 15세기 후반 피렌체 르네상스의 부흥은 메디치 가문의 300여년간의 지속적인 후원 덕분이었다.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간 이질적 집단의 교류를 통해 새로움을 창출해냈다. 레오나드로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갈릴레이, 마키아벨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히, 미켈란젤로는 15세 때부터 2년간 메디치 가문의 궁전에서 지내면서 성장했으니, 메디치 가문의 도움을 많이 받은 셈이다.

르네상스의 태동은 피렌체이었지만, 로마에서 더욱 발전했다.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많은 사람이 자리를 뜨지 못한다.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인 천지창조와 제단 위에 있는 벽화인 최후의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었지만, 발걸음을 베드로 성당으로 옮겨서, 미켈란젤로 나이 25세 때의 대작인 피에타를 만났다.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영감이 가장 크게 분출된 시기가 르네상스 시대가 아닌가 싶다. 요즈음으로 말하자면 메디치라는 기업이 미켈란젤로 같은 뛰어난 인재들을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기에 많은 걸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14세기나 지금의 21세기나 결국 시대를 이끌어 가는 것은 기업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렌체의 성공 요인을 한마디로 말하면, 창의적인 인재와 자본을 가지고 있는 기업과의 만남이다. 많은 창의적인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 인재들이 있었고, 이질적인 그들 간의 교류를 통해서 독창성 있는 예술품이 나올 수 있도록 기업은 지원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너무나 흡사하다. 개방된 지역 문화의 지역으로 전 세계의 다양한 우수인력이 몰리고, 성공한 수많은 벤처기업인이 벤처자본가로 활동하면서 우수 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우리나라는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업들의 고민은 깊다. 기업의 성장 동력이 줄어들고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창조와 혁신의 목소리가 크다. 피렌체에서 시작한 르네상스에서, 지금의 우리 기업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 회화의 원근법은 중세가 아닌 르네상스 시대에 발명되었다. 신에서 인간 중심으로의 변화이다.



중세의 화가는 상상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눈으로 그렸지만, 르네상스 화가는 자신의 눈, 인간의 눈으로 표현했다. 내 눈에 가까운 곳은 크게, 먼 곳은 작게 보인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인간의 문제를 가장 먼저 고민하고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 인간(고객)의 욕구를 이성이 아닌 감성에서 찾은 결과이다.

조각가인 미켈란젤로에게는 천지창조의 프레스코 그림을 맡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익숙지 않은 천정화를 그리느라 허리가 끊어지는 듯 고통을 이겨내며 혼자서 완성했다. 창조의 위대한 작품은 땀, 몰입, 열정에서 온다. 이러한 도전정신과 끈기를 기업은 배워야 한다. 또한 메디치 가문이 우수 인재를 발굴하고 장기적으로 키웠듯이, 기업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창의적인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장은 세상을 남들과 다르게 보는 데서 출발한다. 실패도 감수해야 한다. 개인과 조직의 창의, 혁신의 문화는 다양성, 자율성, 개방성에서 온다. 인간을 중시했던 르네상스 시대에서 배우고 실천하자.



4. [매일신문][매일춘추] 행간을 읽으면 그 내용이 보이죠

봄비가 창문을 두드린다. 세상이 온통 봄을 맞아 들썩이는데, 너는 무슨 일로 며칠씩 집안에 틀어박혀 외롭게 지내느냐고 가볍게 톡톡, 묻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받아둔 원고 청탁서가 한동안 나를 꼼짝없이 묶어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루 이틀 만에 끝이 날 수 있는 글 노동이 아닌데 말이다. 아! 이토록 어리석은 내 마음도 모르고 봄날은 자꾸 가려고만 한다.

정해진 약속 없이 혼자만의 외출에 새로운 매력을 느낀 것은 얼마 전부터다. 친구를 불러내어 만날 시간, 장소, 먹을 것까지 정하다 보면 이래저래 짧은 하루가 후딱 갈 것 같아 그저 편한 신 신고 가방 하나 메고 나는 가끔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 우리 푸른 시간이 곳곳에 배어 있는 익숙한 거리, 반월당에서 동성로를 향해 걷는 길은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이제는 단어조차 생소한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이 극에 달했던 그 시기에 미국 항공 우주국(NASA)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숨겨진 인물들' 어쩌면 '숨겨진 천재들'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흑인 여성 3인의 활약과 그녀들의 열정을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낸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를 보았다. 성차별, 인종차별, 거기에 신분과 학력차별까지 겹겹의 장애를 뚫고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여인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캐서린 존슨은 애초에 그녀를 무시해서 단순히 계산만을 하도록 하는 선임연구원의 요구에 굴하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해서 누구도 찾지 못한 답을 찾아낸다. 군데군데 가려진 숫자와 부족한 정보만으로 어떻게 이런 결과에 이르렀는지 의구심을 보이는 최고 책임자에게 "행간을 읽으면 내용이 보이죠"라며 차분히 설명을 더한다.



행간이란 '행과 행 사이' '글에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 글을 통하여 나타내려고 하는 숨은 뜻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란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더라도 주인공의 슬기로운 설명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것은 허를 찌르는 대답인 동시에 한 편의 시(詩) 속에 숨겨둔 행간의 의미보다 더 진한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천부적인 수학 능력을 가진 흑인 여성 캐서린 존슨, NASA 프로그래머 도로시 본, 흑인 여성 최초로 NASA 엔지니어의 꿈을 이룬 매리잭슨. 영화 속 그녀들처럼 사회적으로 잘못된 편견을 용기 있게 바로잡아 나가고 자신을 보호하려면 무엇보다 각자의 마음 근육을 단련시켜야 한다. 그 힘으로 지혜로운 심안(心眼)을 가져 깊숙이 숨어 있는 행간을 읽어내야 한다. 그러기에 좀 더 깊어져야 한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봄 햇살이 환하다.



5. [세계일보][공감!문화재] 하회마을·중국 홍춘 ‘세계유산 인연’

세계유산제도는 명실상부한 유산보호시스템으로 자리매김했다. ‘문화주권’은 그 나라의 독보적 문화가치를 세계인들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충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한국과 중국은 자연환경과 기후가 유사하고 한자문화권이라는 맥락을 통해 오랜 세월 밀접하게 관련돼 왔다. 이 문화적 유사성은 양국이 문화주권을 선점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아리랑’의 중국 등재 과정에서 보이듯이 가깝고도 먼 나라였던 것이다.

세계유산 등재에 한·중 양국이 협력해 좋은 결과를 얻은 훈훈한 사례가 있다. 바로 역사마을 하회(사진)와 양동, 중국의 시디춘(西遞村)과 훙춘(宏村)이다. 중국은 2000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한국은 10년 뒤인 2010년 등재에 성공했다.

하회마을 주민자치회장에 따르면 당시 공무원과 마을 주민들이 중국의 훙춘과 시디춘을 방문해서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사례와 등재 신청 과정의 노하우를 배우고 준비했다고 한다. 양국의 마을이 서로 협력한 결과가 세계유산 등재로 돌아온 것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세계유산 전문가들이 한국의 유산보호제도와 활용 사례를 보고 배우면서 당시의 고마움을 되갚게 되었다. 한국은 문화재청에서 유산등재를 일원화하고 지방자치단체는 관리에 힘쓰고 있다. 중국은 중앙정부의 역할이 지방자치단체에 비해 약한 편이고 조례 위주로 정책을 시행한다.



한국은 특별법인 문화재보호법의 규제가 엄격하지만, 중국은 관광 활용이 주는 경제적 효과에 치중하는 편이다. 이러한 상반된 정책 시행 과정에서 오는 교훈은 양국의 유산관리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역사적으로 유사한 문화를 지녀온 한국과 중국이 세계유산 보존·관리에서도 그 인연의 끈을 지속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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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北 6차 핵실험 중단이 위기설 잠재울 관건이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가 급격하게 불안해지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위협에 직면한 상황에서 미국이 칼빈슨 핵추진 항공모함 전단의 항로를 바꿔 한반도 해역으로 급파했다. 일본 기지에 있는 로널드 레이건 항모 전단도 급파될 태세고 대형 강습상륙함도 이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6차 핵실험 등 도발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담겨 있다.

미군의 가공할 전략무기들이 한반도로 속속 집결하는 것과 맞춰 시리아 폭격을 감행한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에 북한 폭격을 결행할 것이라는 루머가 난무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4월 북폭설’, ‘김정은 망명설’ 등 확인도 되지 않은 온갖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어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직접 ‘한반도 안보 상황의 과장된 평가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할 정도로 국민들이 동요하는 것도 사실이다.

작금의 상황은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불거졌던 한반도 위기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영변 핵실험 기지 폭파를 계획했다가 타협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국민이 겪었던 불안과 ‘코리아 리스크’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번엔 15일 태양절이나 25일 인민군 창건일에 맞춰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과 연관돼 있다.



실제로 1차 핵실험은 노동당 창건일에 맞춰 2006년 10월 9일 감행했고 5차 핵실험은 지난해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일에 결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측불허의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대응을 결정할 경우 호전적인 김정일 정권과의 무력 충돌 및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긴장 고조가 우발적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진행 중인 6차 핵실험을 전면 중단해 한반도 위기를 가라앉혀야 하는 1차적 책임이 있다. 김정은 정권의 목적은 자멸이 아니라 생존일 것이다. 북한이 도발을 통해 체제 결속을 강화하고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겠다는 속셈이지만 결국 정권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엄중한 상황 인식이 필요하다.

중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 반대에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북핵 문제의 본질을 깨닫고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확실한 수단을 제시하기 바란다. 미국은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해 무력 사용을 옵션에 두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 정부의 승인 없이 일방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30년 가까이 끌어 온 북핵 문제를 단시간 내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선제타격 등 무력 해법의 유혹이 크겠지만 북한의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한 금융 제재와 중국을 통한 대북 제재 강화 조치가 더 효율적이다. 수백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한반도가 전쟁터가 될 무력 충돌은 결코 북핵의 해법이 돼선 안 된다.



2. 안 후보 딸 재산 공개, 문 후보도 아들 문제 밝혀야

5·9 대선이 진흙탕 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양강 구도를 형성한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서로 흠집 내기 바쁘고, 다른 후보들도 이런 흐름에 뛰어들고 있다. 사상 유례없이 짧은 선거 기간에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커질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벌써 흑색선전과 흠집 내기 등 네거티브가 판치는 역대 최악의 선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두 후보 간 프레임 전쟁은 한마디로 상대를 거꾸러뜨리기 위한 네거티브 전쟁이다. 더불어민주당 문 후보는 국민의당 안 후보를 적폐세력과 연대한 ‘적폐후보’라고 공격하고 있고, 안 후보는 문 후보를 청산돼야 할 ‘계파후보’로 몰아치고 있다. 자식 문제까지도 공격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문 후보 장남의 고용정보원 특혜 채용 의혹과 안 후보 딸의 재산 형성 과정 등이다.

안 후보 측은 어제 딸 설희씨의 재산이 예금 1억 1200만원과 2만 달러 상당의 자동차 한 대라고 밝혔다. 재산 형성 과정도 “부모와 조모로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받은 것과 본인의 소득(원화 기준 연 3000만∼4000만원) 일부를 저축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문 후보도 아들의 채용 의혹에 문제가 없음을 스스로 입증해 보여야 한다.



기왕에 상대방 후보가 제기한 문제라면 후보 자신을 위해서도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맞다. 사실관계를 확인해 주지는 않고 무조건 의혹 공세라며 깔아뭉개고 상대 후보에 대한 역공을 펴는 태도는 옳지 않다.

정책과 비전을 도외시한 후보자들의 이런 네거티브 공세는 결국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가로막는다. 당선만 되고 보자는 식의 네거티브 프레임 전쟁으로는 밝은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우리는 국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와 헌재의 파면 결정 과정을 지켜보면서 도덕성은 물론 정책과 비전을 겸비한 유능한 지도자를 뽑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대선에서 네거티브가 전혀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갈라진 민심을 하나로 모아 우리 앞에 놓인 안팎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선거보다 중요한 선거다. 추잡한 네거티브 공세에 열을 올릴 게 아니라 정책과 비전을 놓고 양자든 3자든 대본 없이 끝장 토론을 벌여야 한다. 국가 안보와 경제, 인권과 복지, 통일과 개헌에 대한 자신의 정책과 청사진을 밝히는 것이 후보자들의 도리일 것이다. 국민도 누가 대통령감인지 알고 뽑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것이 국민의 알 권리다.



3. 훈민정음 상주본, 실물 확인과 보존 처리 시급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이 그제 사진으로 공개됐다. 9년 만에 나타난 상주본의 모습은 분노를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2008년 세상에 알려질 당시와 달리 아랫부분이 불에 그슬린 흔적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진만 있을 뿐 실재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존재를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으니 딱하다.

상주본은 국보 70호로 지정된 간송본과 함께 남아 있는 단 두 권의 훈민정음 해례본 가운데 하나다. 발견 당시만 해도 간송본에 비해 보존 상태가 좋고, 표제와 주석 등이 16세기에 새롭게 더해진 것으로 확인돼 학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더 큰 것으로 평가됐다. 당시 문화재청의 현장 조사 결과 서문 4장과 뒷부분 1장이 없어졌지만 간송본과 동일한 판본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판명됐다.

이렇듯 귀중한 문화재가 국가의 보호에서 벗어나 훼손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칭 소장자는 상주본이 공개된 직후 골동품상과의 소유권 분쟁에 휘말리자 실물을 감추고, 보관 장소나 상태 등을 일절 함구해 왔다. 법원이 “상주본을 골동품상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함에 따라 세 차례에 걸쳐 강제집행과 압수수색이 이뤄졌지만 책을 찾지는 못했다.



2015년 3월에는 자칭 소장자의 집에 화재가 발생해 상주본의 소실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실제로 이번에 공개된 사진의 불에 탄 자국은 당시 화재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법원의 판결을 거스르며 문화재를 훼손한 사람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화재청은 미비한 처벌 규정을 이참에 정비해야 한다.

상주본을 사진이나마 공개한 것은 자칭 소장자가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했기 때문이다. 그는 상주본을 1조원대 재산으로 신고했지만 선관위가 실물 존재에 의문을 표시하자 사진을 내보인 것이다. 문화재가 개인의 영달을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는 현실에 참담함을 금할 길 없다.

상주본은 2011년 대법원으로부터 소유권을 인정받은 골동품상이 국가에 무상 기증했다. 소유권은 이미 국가에 있다. 따라서 상주본의 소유자일 수 없는 자칭 소장자는 생떼를 쓰지 말아야 한다. 문화재청은 보존 처리로 더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서라도 실물의 존재부터 확인하라. 무엇보다 중요 문화재는 사유재산이더라도 당연히 공공성을 무시하면 안 된다. ‘제2의 상주본’이 나오지 않도록 소유권은 보장하되 횡포는 막는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조선일보]

4. 中, 6차 북핵실험시 '원유공급 중단' 이번만은 실행해야

중국 정부가 최근 북이 추가 도발을 감행할 경우 '양자(兩者)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의 뜻을 이미 북에 통보했다고 한다. 유엔 대북 제재와 관계없이 중·북 두 나라만 관련된 문제에 대해 모종의 조치를 한다는 것이다. 한·중 6자 회담 수석대표들도 10일 추가 도발 시 더 강력한 유엔 안보리 결의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함께했다. CCTV, 환구시보 등 중국 공산당 선전 기관들마저도 북이 전략적 오판을 한다면 미국의 군사 개입을 부를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중국이 북에 통보했다는 '양자 조치'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북한이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원유 공급 중단일 수도 있고, 중국에 나와 있는 북한 근로자 강제 송환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이번엔 그 양자 조치로 북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북의 내성(耐性)만 강화시켜 줄 뿐이다.



중국은 북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증강시켜 온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조금 조이는 듯하다가 슬그머니 풀어주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또 그렇게 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중국 정부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북은 김일성 출생 105년인 4월 15일과 군 창건 기념일인 25일을 전후한 시기에 6차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핵실험 준비는 이미 완료된 상태다.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이번 주말쯤 한반도 해역에 도착하고 미사일 탐지·추적 능력을 갖춘 이지스 구축함 2~3척을 추가로 배치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이에 대한 대비 차원이다.



북이 미사일을 쏠 경우 미국이 실제 요격을 시도할 것이라는 외신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북 미사일에 대한 요격이 성공할 경우 북이 군사적으로 우리에게 보복할 수 있다. 이것이 어떤 상황이라는 것을 중국도 잘 알 것이다.

중국은 지금도 매년 30만~50만t 규모의 원유를 북에 보내고 있다. 북의 원유 도입량 거의 전부다. 중국이 단둥 지역에서 북 신의주로 연결된 송유관을 잠그기만 해도 북은 오래 견딜 수 없다. 근로자 강제 송환을 통해 현금 유입을 막는 정도로는 북의 핵 보유를 막을 수 없다. 지금은 마지막 수단까지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다.



중국은 북핵 폐기보다 북한 정권 안정을 중요시하는 기본 방침을 갖고 있다. 이 기본 방침이 이 위험한 상황을 초래했지만 이젠 중국 국익을 송두리째 흔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이 북한 정권을 흔들 결심을 해야 북핵과 그로 인한 불행과 파국을 막을 수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북핵과 관련해 단둘만의 대화를 가졌다고 한다. 대북 원유 공급 중단도 논의됐기를 바란다.



5. 규제프리존法도 '적폐'라는 건가

규제프리존 특별법을 놓고 정치적 공방이 이어졌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국민의당은 규제프리존 특별법을 통과시키는 입장이나 민주당에서 막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문재인 민주당 후보 측은 "이 법은 박근혜 정부가 입법 대가로 대기업에 돈을 요구했다는 의혹을 받는 대기업 청부 입법"이라면서 "안철수 후보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 계승자임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규제프리존 특별법도 '적폐'라는 식이다.

규제프리존 특별법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에서 27개 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정부가 발의한 법안이다. 부산의 해양 관광과 사물인터넷 도시기반서비스, 전남의 드론과 에너지신산업 등 4차 산업혁명의 중심이자 미래 성장 산업들이다. 이 정책은 일본 아베 총리가 '일본 재생'을 목표로 2013년 도입한 국가전략특구 사업과 비슷하다.



일본은 이런 적극적인 시도와 규제 철폐로 경제 활력을 되살렸다. 2월 실업률이 22년 만에 가장 낮은 2.8%까지 내려갔다. 그런데 우리는 일부 제한된 지역에서나마 규제를 풀어 신산업을 육성해보자는 시도조차 1년 넘게 국회에 묶여 있고 심지어 정치적 먹잇감이 됐다.

만사를 이렇게 정치적으로 비틀고 왜곡해서 보는 사람들이 중소기업을 육성한다면서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시킨다고 한다. 정부 청(廳)을 부(部)로 바꾼다고 산업이 살아난다는 발상 자체가 70년대 사고방식이다. 문 후보나 안 후보가 중소기업 취업자에게 세금으로 월급을 보태준다는 것도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산업과 기업은 이윤을 내야 지속 가능하고 그러려면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세계 1위의 민간 드론 기업인 중국의 DJI만 해도 한 청년이 20대에 창업해 불과 10년도 안 돼 세계를 석권했다. 규제가 적은 중국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성공 기업들이 쏟아진다. 이 뻔한 답을 놓고 '대기업 청부 입법'이니 '무슨 정권의 계승자'니 하면서 정치놀음을 한다. 이대로면 희망이 없다.



[세계일보]

6. 美 전직 대통령들의 우정 행보가 부러운 이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텍사스 휴스턴 자택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양말 수집광인 부시 전 대통령에게 건강 회복을 기원하며 양말을 선물했다.

1992년 대선 때 맞붙었다가 패자가 된 부시는 백악관을 떠나면서 후임자 클린턴의 성공을 기원했다. 그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빌에게. 이 글을 읽을 때 귀하는 우리의 대통령일 것입니다. 귀하의 성공은 이제 우리나라의 성공입니다. 열심히 응원하겠소.” 패자가 손을 내밀자 승자도 맞잡는 것을 잊지 않았다. 클린턴은 6년 뒤 요르단 국왕 장례식에 가면서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부시를 초대했다. 22세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 두 사람은 친구가 됐다. 

지난해 9월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워싱턴의 국립흑인역사문화박물관 개관식 때 휴대전화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흑인 참석자들을 찍어주기도 했다. 부시가 등을 툭 치며 “사진 좀…”이라고 하자 현직 대통령이 흔쾌히 사진사 노릇을 한 것이다. 미셸 오바마 여사가 부시를 옆에서 껴안는 장면도 화제가 됐다. 미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했음은 물론이다. 전·현직 대통령들의 포용 행보에 국민들은 통합의 감동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어떤가. 국립현충원에 묻힌 전임 대통령의 묘소에 참배하는 것조차 좌우를 따진다. 전임 대통령을 포용이 아니라 청산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전임 이명박 전 대통령을 취임식 이후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별도의 자리를 마련해 의견을 교환하기는커녕 전임자의 흔적 지우기에 열중했다. 자원외교 수사와 4대강 사업 감사 등 전임자의 비리를 찾아내느라 권력을 동원했다. 이런 흔적 지우기는 매번 계속돼온 한국 정치의 폐습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 정권의 고위 공직자들이 쇠고랑을 차거나 정책이 뒤바뀌는 일은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풍경이다.

대선 후보들은 너나없이 국민 통합을 소리 높이 외친다. 그러나 통합은 말로만 되는 게 아니다. 국민 통합을 강조하기 전에 대통령끼리라도 포용하는 것이 먼저 아닌가. 전임자를 존중하고 감싸 안는 미국 전직 대통령들의 우정을 언제까지 부러워해야 하나.



7. 국민 혈세 축내는 선거보조금 먹튀 방지 서둘러야

2012년 18대 대선 때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중도 사퇴하면서 거액의 선거보조금을 챙기자 ‘먹튀’ 비난이 빗발쳤다. 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러 나왔다”고 했던 이 후보는 투표일을 사흘 남겨놓고 갑자기 사퇴했으나 공직선거법에 따라 나랏돈으로 지원하는 선거보조금 27억3500만원은 한 푼도 반납하지 않고 고스란히 가져갔다.



2014년 지방선거 때도 통진당 소속 단체장 후보들이 줄줄이 사퇴해 선거보조금 28억원, 여성 후보 추천보조금 4억8000만원 등 32억여원을 살뜰히 챙겼다. “국고보조금만 챙기는 정당”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은 선거법의 허점 탓이다. 선거법엔 모든 공직후보 등록 마감 후 이틀 내 지급 규정만 있고 후보 사퇴 시 반납 규정은 없다. 보다 못한 당시 새누리당이 후보에서 사퇴하면 선거보조금을 반환하도록 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중앙선관위도 개정 의견을 내놨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들의 비협조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런 혈세 낭비 현상은 대선뿐만 아니라 총선이나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선거보조금 먹튀’가 새삼 주목받는 것은 5·9 대선에서도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한 자릿수에 불과해 중도 사퇴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 5개 정당은 선거보조금 421억여원을 국회의원 의석비율에 따라 배분을 받게 된다. 민주당 123억여원, 자유한국당 119억여원, 국민의당 87억여원, 바른정당 63억여원, 정의당 27억여원이다. 혈세 낭비와 중도 사퇴에 따른 유권자의 혼란을 막기 위해선 ‘후보 사퇴 시 보조금 반환’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들 정당은 선거보조금과는 별개로 선거비용을 보전받고 있다. 득표율이 15% 이상이면 이번 대선 비용 제한액 509억원의 범위 안에서 선거비용 전액을, 15% 미만 10% 이상이면 절반을 보전받게 된다. 국고에서 선거보조금을 나눠준 뒤 선거비용을 썼다고 해서 다시 국고에서 채워 주는 것은 명백한 이중 지급이다. 선거공영제로 포장된 정치 적폐다. 이 또한 개정이 시급하다.



[매일경제]

8. 책임보다 손실을 택하는 국민연금의 비합리적 행동

대우조선해양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한 사채권자의 자율 채무조정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우조선 회사채 1조3500억원의 29%인 3900억원어치를 들고 있는 국민연금이 채무조정안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사채권자 측에 만기 연장 회사채 우선상환과 영구채 금리 인하 내용 등을 담은 채무재조정 수정안을 제안했지만 국민연금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제 개최될 것으로 예상됐던 투자위원회도 열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오늘과 내일 중에 투자위원회를 열어 최종 입장을 결정할 것으로 보이는데 반대 기류가 강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어제 "분석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자료를 근거로 채무조정안을 수용하라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정부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특정 기업을 다급히 살리기 위해 국민 노후자금의 손실을 감내하는 선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채무조정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위해 오는 17, 18일로 예정된 사채권자 집회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선업 경기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 정부 과실은 도외시한 채 사채권자들의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는 불만도 강한데 국민 노후자금을 책임진 국민연금이 제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했다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문형표 전 국민연금 이사장이 구속되는 등 곤욕을 치렀던 트라우마 때문에 채무조정안에 반대하는 것이라면 곤란하다. 사채권자의 자율 채무조정에 실패하면 대우조선은 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에 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법원이 주도하는 강제 채무조정이 불가피한데 국민연금 같은 회사채 투자자는 원금 손실률이 90%에 달한다.



반면 채무조정안에 동의하면 50%만 출자전환되고 나머지는 3년 유예기간을 둔 6년 만기 회사채로 바뀌지만 회수는 가능하다. 합리적 기준으로 보면 P플랜보다 채무조정이 유리한 셈이다. 결국 국민연금의 채무조정안 반대는 배임이나 직무유기 책임 논란을 피하기 위해 더 큰 손실을 감수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최순실 트라우마' 탓에 연금 가입자들은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 회생 가능성과 채무조정 조건 등을 깐깐하게 따져야 하겠지만 궁극적 목표는 '손실 최소화'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9. 사드·소녀상 윽박지르는 中·日 넛크래커에 낀 한국 외교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그제 임성남 외교부 1차관과 만났다.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 항의 표시로 자기 나라에 돌아갔다가 85일 만에 귀임한 뒤 우리 정부 관계자들을 차례로 면담하고 있는데 임 차관에 앞서 김규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도 만난 바 있다. 그는 임 차관과 면담 후 시리아와 북한 문제에 대해 한일 양국이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는데 소녀상 이전과 위안부 합의 이행 등 일본 측 요구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지만 계속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중이다.

중국 측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지난 10일부터 방한해 정부 쪽 업무 상대 외에 이번 대선에 나서는 각 정당의 유력 후보들을 만나고 다닌다. 어제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 오늘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자리를 같이한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각각 일정을 맞추지 못해 측근이나 선대위 관계자들을 대신 면담한다고 한다.



우다웨이의 각당 대선 후보 측과 면담 일정은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에 대한 중국 측의 반대 입장을 되풀이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실제로 유승민 후보가 사드를 방어용이라고 설명하자 헛기침하며 딴청을 부리거나 중국의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중단 요구에는 특별한 대답을 하지 않았던 걸 보면 우다웨이의 의도가 쉽게 확인된다.

나가미네 대사와 우다웨이 대표의 행보는 소녀상과 사드 등 관심 현안을 놓고 윽박지르며 일방적인 주장만 펼치는 전형적인 못된 강대국의 모습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나 막후 조율을 기본으로 하는 국가 간 외교에서 취해야 할 최소 요건마저 제쳐놓고 자기들 입장만 쏟아내는 것 아닌가.



현직 대통령 탄핵 후 최고권력 공백 상태인 우리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양면에서 눌러 호두를 까는 도구인 넛크래커에 낀 신세처럼 돼버렸다. 더욱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선제타격을 포함한 군사적 대응까지 검토 중이어서 한반도 문제를 쳐다보고만 있어야 하는 처지로까지 가고 있다.



아무리 정권 교체를 앞둔 과도기라 하더라도 외교 고립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 외교는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일이니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중심을 잡고 수행돼야 한다.



[한겨레]

10. ‘검찰은 개혁대상’ 재확인시켜 준 우병우 영장 기각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수사에 대한 직권남용 등 혐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또 기각됐다. 지난해 첫 수사 때부터 봐주기 논란이 일더니 결국 “100% 구속”이라던 박영수 특별검사의 큰소리도, “50명이나 조사했다”던 특별수사본부 관계자의 강변도 다 거짓으로 드러났다. 직권남용죄 자체가 까다로운 죄목이라고는 하나 검찰 조직에 손상이 갈 만한 대목을 피해 간 것도 영장 기각의 한 요인이 됐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룡 검찰’은 역시 개혁 대상임을 재확인시켜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우 전 수석 구속영장에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적용하지 않은 두 가지 혐의를 추가했다. 최순실씨의 이권 확보를 지원하기 위해 ‘케이스포츠 클럽’ 사업과 관련해 대한체육회를 감찰하려 한 직권남용 혐의와 세월호 참사 수사 외압 사실을 부인한 국회 청문회 위증 혐의 등이다. 대신 광주지검의 해경 압수수색을 방해한 혐의는 미수에 그쳤다는 이유로 제외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 감찰 역시 미수에 그쳤다는 것과 비교해보면 법리상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 때문에 세월호 수사 외압 행사에 개입한 검찰 고위층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특히 ‘검찰 농단’ 수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검찰이 과연 성역 없이 수사했는지 의문이다. ‘정윤회 문건’ 사건은 본말을 뒤집은 전형적인 왜곡수사였다. 관련 경찰관이 자살하고, 구속됐다 나온 경찰관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우 전 수석이고 서울중앙지검장이 김수남 검찰총장이다. 진실을 거짓으로 뒤집은 책임이 청와대와 검찰에 있다면 지금이라도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검찰은 그럴 의지가 안 보인다.

검찰이 은폐·조작한 사건은 한둘이 아니다. 대부분 권력과 연결돼 있음은 물론이다. 우 전 수석 비리를 수사하려 ‘윤갑근 특별수사팀’까지 꾸려놓고 발표조차 못하고 문닫은 일은 검찰 사상 전무후무한 치욕적 사례로 남아 있다. 당시 ‘우병우 수사를 우병우에게 보고하면서 했다’는 비아냥까지 들었는데도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법무부 검찰국장은 거의 매일,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은 중요한 국면마다 우 전 수석과 통화한 사실도 드러났다. 온 국민이 이런 검찰을 주시하고 있는데도 검찰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쪽을 택했다. 형사처벌 대상이 안 되면 외부 감찰이라도 자청해야 하는데 그냥 덮었다. 특별검사를 다시 임명해서라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검찰개혁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이호준의 시간여행] 개미마을의 봄

지하철 3호선 홍제역을 출발한 마을버스를 타고 10분쯤 달렸을까? 어느 순간부터 버스가 숨을 헐떡거린다. 급경사가 시작된 것이다. 창밖의 풍경도 조금씩 채색을 바꾼다. 언제 도심을 지나왔느냐고 시침 떼며 묻듯, 납작하게 엎드린 집들이 강낭콩처럼 박혀 있는 풍경이 이어진다.

여기는 서울시 홍제동의 언덕바지에 자리 잡은 개미마을. 이제는 서울에서 보기 드문 달동네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말 그대로 시간여행이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바꾸는 시간이, 개미마을에서는 벽마다 박제된 채 걸려 있다. 텅 빈 골목에는 병아리 닮은 노란 햇살이 게으르게 뒹굴고 있다. 주민들은 모두 일터에 나갔는지 안 보이고, 젊은 남녀 몇 명만 낯선 나라에 온 듯 이리저리 카메라를 들이댈 뿐이다.

개미마을의 유래는 6·25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휴전 후 폐허 속을 헤매던 사람들이 이 언덕에 올라가 천막을 치거나 판자를 엮어 바람을 피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처음에는 ‘인디언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옹기종기 들어선 천막이 서부영화에 나오는 인디언 마을 같아서였다나?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1983년부터는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동네의 중간쯤에서 언덕으로 올라가니 할머니 한 분이 텃밭을 매고 있다. 밭이래 봐야 손바닥만 하지만 거기서 소일도 하고 가족의 부식도 가꾸는 모양이다.

이 동네는 바늘 꽂을 만한 땅도 밭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아! 꽃도 피었다. 집집마다 벽화로만 꽃이 핀 줄 알았더니 밭둑에도 피었다. 여린 손을 내밀고 있는 돌나물 군락에 제비꽃들이 나란히 서서 봄을 노래하고 있다. 대처보다 조금 늦긴 하지만 이곳에도 완연한 봄이 온 것이다.

맨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니 마을 구조는 간단하다. 한가운데로 난 큰길을 중심으로 집들이 양쪽으로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중간중간에는 작은 골목들이 생선가시처럼 가지를 치고 있다. 그 작은 골목의 끝에는 어김없이 가파른 언덕이나 계단이 있다. 어느 계단은 얼마나 길게 뻗어 있는지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언덕 끝까지 차곡차곡 자리 잡은 집들은 형태도 다양하다. 제법 번듯해 보이는 집도 있지만 마지못해 모양만 갖춘 집들이 더 많다. 대개는 세월의 때가 켜켜이 얹혀 있다. 지붕은 요즘 보기 드문 슬레이트가 많다. 원래 기와였던 지붕도, 비가 새다 보니 여기저기 천막으로 메우는 바람에 아예 천막지붕이 돼 버렸다.

이 마을도 ‘재개발이냐 보존이냐 문화특구 지정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오고 간 지 오래다. 재개발을 주장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맞서는 형국이다. 문제는 가파른 산자락이고 용적률 확보가 안 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재개발을 추진할 만큼 경제적 가치가 없다는 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인들 시간의 덫을 피할 수 있을까. 머지않아 이 마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다. 아쉽다고 말하면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겠지? 황금색의 봄 햇살이 ‘누추’를 감싸는 마을을 천천히 벗어난다. 금세 질주하는 차들과 인파 속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떠나온 마을을 돌아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특별한 곳에 다녀온 게 아니야. 고작 몇십 년 전이었다고. 그 시절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다고….



2. [서울신문][씨줄날줄] 타르보사우루스 바타르

우리말 ‘배달’이 몽골어 ‘바타르’(bataar)와 깊은 연관 관계를 맺고 있다는 학설이 있다. 바타르라면 낯선 단어가 아니다. 몽골의 수도가 바로 울란바타르(울란바토르)다. 울란바타르는 ‘붉은 영웅’을 뜻한다고 한다. 바타르는 곧 영웅이다.



타르보사우루스 바타르는 7000만 년 전 후기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이다. ‘놀라게 하는 도마뱀’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10~12m의 키에 몸무게는 5~6t이었다. 몽골과 옛 소련 탐사팀이 고비사막에서 화석을 처음으로 찾아냈다. 학명에 바타르를 넣은 것은 몽골 땅에서 몽골인이 참여해 찾았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타르보사우루스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이라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고, 그림책으로도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타르보사우루스의 화석은 지금까지 몽골과 주변에서만 발견됐다. 한반도에서도 살았는지 아직은 확인되지 않았다.

타르보사우루스는 공룡의 대명사 티라노사우루스의 직전 시대를 살았던 공룡이라고 한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아시아에서 발견된 육식 공룡 중 가장 크다. 타르보사우루스는 티라노사우루스보다 조금 작다고 하지만, 종이 다른지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폭군 도마뱀’이라는 뜻을 가진 티라노사우루스는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에서도 타르보사우루스를 괴롭히는 공룡으로 나온다.

최근에는 한반도에서도 다양한 공룡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1972년 경남 하동에서 공룡 알 화석, 1973년 경북 의성에서 초식 공룡의 앞다리 뼈, 1982년 경남 고성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이 보고됐다. 1996년 전남 해남에서는 익룡과 새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됐다. 2000년대 이후에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화석들이 대량으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타르보사우루스 화석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높다.

검찰이 고비사막에서 도굴해 국내에 들여온 타르보사우루스 화석을 몽골에 돌려주기로 했다. 당연한 결정이지만, 또한 쉽지 않은 결정인 만큼 박수를 보낸다. 타르보사우루스에 가렸지만 프로토케라톱스 화석도 포함되어 있다. 키 1.8m에 180㎏ 남짓한 프로토케라톱스는 타르보사우루스의 먹잇감이었다고도 한다.

검찰이 몽골에 화석을 돌려보내며 도굴 과정의 현장검증을 고비사막에서 하면 어떨까 싶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주도하는 연구팀이 훼손된 화석 산출지를 정밀 발굴하면 더욱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문화재청은 해외 문화유산 보호 사업을 적극 펼치고 있다. 국가 신뢰도를 크게 높일 것이다.



3. [조선일보][일사일언] 신조어 '스몸비'

아내가 물었다. "스몸비 알아?" 영어 신조어는 꽤 친숙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 단어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듣자하니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걸어 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화창한 일요일 오후 왜 '스몸비'인지 궁리해보았다.

우선 '스비'가 아닌 이유. '스마트폰'은 네 음절이지만 'smartphone'은 두 음절이다. 영어에서는 '스마트'가 한 음절이기에 '스'만 떼어낼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한국어 '스몸비'는 세 음절이지만 영어 'smombie'는 두 음절이다. 즉, 한국어 '스몸비'에서는 '좀비'를 연상하기 힘들지만 영어 'smombie'는 'zombie'와 거의 비슷하게 들린다.

물론 'smartphone'과 'zombie'를 합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phombie' 'phonbie' 등도 구글에서 적잖이 검색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어가 주로 단어의 첫 글자를 합쳐 신조어('금사빠' '답정너')를 만드는 데 반해 영어는 'smombie'처럼 앞 단어의 첫 글자와 뒤 단어의 끝 글자를 합치는 경우가 많다(한국어로 치면 '뽀통령').



하긴 영어에서는 단어의 첫 자음을 치환하는 수법이 흔히 쓰인다('hokey-pokey' 'roly-poly'). 이것은 단어의 강세가 의미 구별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smartzom'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똑똑한 smart 뿌리줄기 rhizome'를 떠올리기 쉽다.



이렇듯 영어는 합성어를 만드는 방식이 한국어와 다르기에 영어 신조어가 유입되어도 입에 착 달라붙지 않을 때가 많다. 한국어의 조어법에 맞아야 확장성도 커진다. 이를테면 '셀카'는 '폰카' '몰카' 등과 짝을 이루지만, '셀피'는 한국어 생태계에 섞여들지 못한다[영어에서는 'helfie(머리카락 셀카)' 'belfie(엉덩이 셀카)' 등으로 확장된다]. '스몸비'도 한국어에 정착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스몸비는 중요한 사회 현상이어서 이를 일컬을 단어가 꼭 필요하다. '스마트폰'과 '좀비', 당신이라면 어떻게 합치겠는가?



4. [중앙일보][양선희의 시시각각] 연애세포는 동면(冬眠) 중

얼마 전 30대 후반의 전문직 미혼 후배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하루는 그녀의 어머니가 “지금 난자를 냉동보관해두면 어떻겠느냐”고 묻더란다. 나중에 결혼해 불임으로 고생할 가능성을 미리 대비하라는 거였다. 어머니는 친구들도 나이 들어 결혼 안 한 자녀들이 많다 보니 엄마들끼리 모이면 이런 정보를 교환한다고 하더란다. 후배는 “결혼할 생각은 없지만 후에 아이가 갖고 싶으면 기증정자로 아이를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에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고 했다.

요즘 우리 연배 엄마들끼리 모이면 하는 얘기가 자식들 연애 걱정이다. 연애를 안 해서다. 연애하는 자식을 둔 엄마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30대인데 첫 연애도 못했다거나 소개팅도 안 하고 소개해준대도 거부만 하는 자식들 때문에 속 터지는 부모도 많다.

통계적으로도 드러난다. 통계청의 자료(2015년 기준)를 보면 우리나라 20~30대 여성의 미혼비율이 해당 인구의 절반을 넘는 55.2%였다. 숫자로 보면 더 심각하다. 이 연령대 여성은 663만 명인데 이 중 결혼한 여성은 297만 명. 10년 전만 해도 440만 명(전체 765만 명)은 기혼이었다. 나이 50살까지 한 번도 결혼하지 않는 여성이 2025년엔 10명 중 한 명꼴(10.5%)이 될 거란다. 이웃 일본도 남성 4명 중 한 명, 여성 7명 중 한 명이 나이 50세까지 평생 미혼이다.

결혼과 연애를 포기한 청춘들을 일러 ‘N포 세대’로 부른 지는 꽤 됐다. 우리 사회는 불안정한 일자리, 높은 집값과 교육비 부담 등의 사회문제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그래서 해결책도 이런 사회문제를 해소하면 젊은이들이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서 저출산 문제를 해소할 것이라는 데로 모아진다. 정말 그럴까?

물론 사회여건 때문에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한데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너무 많다. 번듯한 전문직 남녀들도 결혼을 기피하고, 아예 혼자 살기로 작정하는 인구는 점점 늘어간다.

요즘은 ‘싱글 웨딩’ ‘비혼식’이라는 말도 있다. 아예 결혼 포기 선언을 하고, 평생 혼자 살 것을 다짐하는 의식이다. 주로 혼자 혹은 동성의 친구들끼리 드레스나 턱시도를 차려입고 촬영을 하는 싱글웨딩 사례가 늘면서 기존 웨딩스튜디오들도 ‘싱글웨딩 촬영 전문’ 간판을 내걸기 시작했다. 비혼식은 지난해 말 방송인 박수홍이 그동안 결혼식 축의금으로 낸 돈이 아깝다며 평생 독신을 선언하는 비혼식을 해서 축의금을 돌려받고 싶다고 말한 후 큰 호응을 얻는 화두가 됐다.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못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피하려는 경향도 보인다. 어쩌면 연애세포가 동면(冬眠) 중이거나 결혼하지 않는 게 시대의 풍조 혹은 문화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혼도 연애도 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이유를 물어봤더니 “귀찮다”는 대답이 많았다. 한 똘똘한 젊은이는 이런 농담인 듯 농담 아닌 농담 같은 말을 했다. 여성은 똑똑한 척하는 민폐형 여주인공에게 목숨 걸고 헌신하며 ‘X고생’ 하는 남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처럼 살고 싶어 하고, 남성들은 남자들만 나오는 요즘 영화처럼 여성은 없거나 조연인 세상에 살고 싶어해 만나지지 않는다는 거다.

남녀 간의 낭만적 감성은 TV 드라마를 통해서나 소비하는 세상이 된 건지도, 또 남녀 혹은 세대 간에 나름의 이유 있는 어긋남으로 인해 우린 결혼 없는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지도 모른다. 냉동난자와 기증정자로 아이가 태어나는 ‘결혼 없는 출산’이 이상하지 않은 세상을 조만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어쨌든 일자리와 소득 정책으로 결혼을 장려하면 출산이 늘 거라는 ‘낭만적’ 생각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개인의 행복과 가족을 보호하는 건 사회의 의무다. 청춘들의 연애·출산과 가족 등 행복과 직결된 인간의 자산을 보호할 방법을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인간관계에 대한 전통적 사고의 틀을 깨는 혁신적 발상이 요구되는 ‘4차 관계혁명’의 길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5. [국민일보][영화이야기] 장수 스타들

‘케 세라 세라’로 유명한 가수 겸 배우 도리스 데이가 지난 3일로 95세가 됐다. 1948년에 데뷔해 귀엽고 발랄한 모습으로 록 허드슨, 케리 그랜드 등과 짝을 이뤄 50∼60년대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으로, 또 따뜻한 목소리의 뛰어난 가창력을 갖춘 가수로 일세를 풍미한 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자신이 세운 ‘도리스 데이 동물재단’이 벌이고 있는 동물보호운동에 여념이 없었지만 이제는 캘리포니아주 카멜시의 자택에 칩거하면서 간혹 발코니에 나와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을 보일 정도라고. 그래서 측근들은 그가 100세까지 문제없이 살 것이라고 말한다.

하긴 이미 100살을 넘긴 스타도 있다. ‘할리우드 황금기 최후의 생존자’ 커크 더글러스는 지난해 12월로 100살을 맞았다. 1946년 데뷔한 뒤 9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그는, 대부분의 주연 배우가 만년에는 조연급으로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2004년의 마지막 출연작 ‘환상(Illusion, 마이클 구어지안)’까지 주연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이혼과 스캔들 투성이인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과 달리 두 번째 결혼한 부인 앤과 60년 넘게 잉꼬부부로 해로하는가 하면 장남 마이클 더글러스가 아카데미상까지 받는 등 자식농사도 잘 지어 더 부러울 게 없어 보인다.

이밖에도 장수하고 있는 할리우드 스타로는 커크 외에 100세를 맞은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멜라니역으로 유명한 그는 지난해 7월 만 100세가 됐다.



‘워터프론토(1954)’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에바 마리 세인트(93),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 앤젤라 랜스버리(92)와 노래, 춤, 연기 등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 디즈니 영화 ‘메리 포핀스(1964)’의 유쾌한 굴뚝청소부 딕 밴 다이크(91), 흑인 최초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 시드니 포이티어와 ‘칼립소의 제왕’으로 칭송되던 미성의 흑인 가수 겸 배우 해리 벨라폰테(이상 90) 등은 아흔을 넘었다.

장수한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스타들의 모습은 될 수 있는 한 오래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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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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