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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조선일보]
1. 대통령이 수석들 모아놓고 거짓말 모의했다니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16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공개 변론에 나와 "박 대통령이 작년 10월 12일 참모들과 면담 자리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자체를 전경련이 주도한 것으로 하고, (재단 일부) 인사는 청와대가 추천한 거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난다"고 증언했다. 그 자리엔 민정수석과 홍보수석도 참석한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안 전 수석이 그날 작성한 업무 수첩에는 '(재단) 모금 청와대 주도·개입 ×' '전경련 주도'라고 적혀 있었다.
작년 10월 12일은 최순실씨와 안 전 수석이 두 재단의 대기업 출연금 강제 모금과 관련해 검찰에 고발된 지 2주쯤 지났을 때였다. 검찰 수사를 앞두고 박 대통령이 참모들과 대책 회의를 열어 전경련이 두 재단을 주도하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낸 것으로 포장하려 한 것이다.
실제로는 대통령이 재단 명칭과 사무실 위치까지 지시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안 전 수석은 또 헌재 공개 변론에서 "대통령으로부터 '기업마다 재단 출연금 30억원씩 받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출연금 모금 액수도 대통령이 지정한 것이다. 이는 '대기업들이 선의로 냈다'는 박 대통령의 그간 해명과 반대다.
검찰이 안 전 수석 측에서 압수한 '압수 수색 대응 문건'에는 '(집에서 휴대폰을 파기하려면) 전자레인지에 돌리라'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청와대가 대통령 주도로 거짓말을 모의하고 증거인멸까지 시도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 100대 기업까지 일자리 줄이는 고용 빙하기
고용 한파가 이만저만 심각한 게 아니다. 국내에서 매출 상위 100위에 속하는 대기업 일자리가 1년 전보다 7000여명 감소했다. 일자리를 늘린 기업도 있지만 반대가 더 많다는 얘기다. 구조조정 중인 조선업계는 특히 심각하다. 빅3 조선사에서 나간 인원만 작년 9월까지 6000여명이다. 하도급 업체까지 합하면 실직자 수는 훨씬 많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조차 사업부 매각으로 1년 전보다 인력이 3000명 넘게 줄었고, 삼성물산·삼성SDI·삼성전기 등 삼성 계열사 7군데에서 줄어든 인원만 1만2000명이 넘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내 금융권에서 지난 3년간 줄어든 일자리도 1만2000개가 넘는다. 은행·보험·증권사 등 102개 금융사가 채용한 인원이 2013년만 해도 22만명을 넘었는데 이젠 20만명대로 5.6% 줄었다.
대기업과 금융권 근로자는 안정적인 중산층에 속한다. 이들마저 고용 시장에서 밀려나면 사회 불안이 증폭될 수 있다. 늘어나는 것은 대부분 주당 36시간 미만 일자리다. 제조업 취업자 수도 줄었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9.8%로 역대 최고였고 전체 실업자 수도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었다.
그러니 한때 줄어들던 자영업자 수가 도로 늘어 570만명이다. 한 집 건너 음식점이고 치킨집이다. 1300조원 넘는 가계 부채와는 별개로 자영업자 부채만 464조원이 쌓였다. 이 역시 한국 경제에는 불안한 뇌관이다.
고용 한파는 올해도 풀릴 것 같지 않다. 대외 악재가 많은 데다 탄핵 정국으로 체감 경기가 외환 위기 수준으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채용도 투자도 꺼린다.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와 신산업 투자 활성화를 고민해야 한다. 대기업들도 인력을 우선적인 비용 축소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헤럴드경제]
3. 유동성 함정에 빠진 한국경제, 돈 돌게할 방안 찾아야
시중에 풀려 유통되는 현금의 총량을 의미하는 화폐발행잔액은 작년 말 현재 97조4000억원이다. 1년새 10조6000억원, 10% 이상 늘어났다. 현금뿐 아니라 예금잔액 등을 합친 광의통화(M2)도 2400조원을 넘어섰다. 경제가 불과 2~3%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증가다.
하지만 이렇게 풀린 돈이 돌지를 않는다. 본원통화가 몇 배의 통화량을 창출하는지를 나타내는 게 통화승수다. 지난해 통화승수는 16.7로 역대 최저다. 10년 전만해도 25를 넘어 30까지 바라보던 수치다. 매년 1~2씩 떨어져 이렇게 됐다.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통화가 평균 몇 번 사용됐는지 가늠하는 수치가 통화유통속도다. 90년대엔 1.5에 달하던 통화유통속도 역시 최근 1년 이상 0.7 수준에 머문다. 예금회전율도 3.8회에 불과하다. 돈을 풀어도 은행에 되돌아와 고여버린다는 의미다.
심지어 돈이 제대로 돌지않는 상태를 넘어 아예 퇴장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작년 1년간 5만원권 발행량은 23조원으로 2009년 발행 후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하지만 환수된 건 11조원뿐이다. 절반이 넘는 12조원은 금고속으로 숨어버린 것이다. 미국이나 EU의 100달러, 500유로 고액권의 회수율이 70~90%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돈맥경화’ 현상이 어느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한국경제가 이처럼 심각한 돈맥경화에 빠진 원인은 여러가지다. 복합적이다. 우선 국민소득 증가속도가 통화량이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더 버는 돈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아무리 돈을 풀어도 기업이나 가계가 투자와 소비에 나서지 않는다.
돈은 경제의 피다. 빠르게 순환돼야 건강한 경제다. 금리를 내리고 통화 공급을 늘리면 총수요가 증가하고 경기가 회복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같은 통화정책 전달경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한국경제가유동성 함정에 빠졌다는 얘기다. 그건 경제의 중병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금융과 실물의 연계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시중에 크게 늘어난 돈이 투자와 소비로 흘러들게 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넘치는 건 덜어내고 없는 건 찾아내야 한다. 공급과잉을 해소하고 유효 수요를 만드는 일이다. 기존 생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고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깎아내리는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4. 무리한 이재용 영장청구, 법원이 냉정히 판단할 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뇌물공여와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그리고 위증이다. 하지만 혐의 자체부터 법리적 다툼의 소지가 너무 많고, 무엇보다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은데 꼭 구속 수사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설령 혐의 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 국내 최대 기업 오너인 점을 감안해야 했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결국 특검 수사에 무리수가 많아 보인다는 지적인 셈이다.
하긴 그런 소리가 나올만도 하다. 일단 특검 수사의 큰 그림은 삼성 수사 과정에서 윤곽이 대략 드러났다. 정권 차원에서 국민연금으로 하여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도와주게 하고, 그 대가로 삼성이 430억원 상당의 금전적 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 출연금도 대가성 뇌물로 본 게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는 누가 봐도 객관성이 떨어지고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당장 권력의 요구를 외면할 간 큰 기업은 없다는 우리 사회 관행을 간과한 듯하다. 만에 하나 거부할 경우 어떠한 결과가 초래되는지 누구보다 기업인들이 잘 알고 있다. 더욱이 이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승마협회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질책까지 받았다.
그런 압박을 이겨 낼 기업과 기업인은 단언컨대 1곳도, 1명도 없다. 삼성과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승마협회와 최순실 측을 지원했을 뿐 대가를 요구한 적은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건 이런 맥락이다.
특검이 내세운 ‘정의’라는 용어도 적절하지 못하다. 특검은 이 부회장 구속 영장을 청구하면서 “국가 경제 등에 미치는 영향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의와 불의가 사법 단죄의 요건이 될 수는 없다. 오직 법과 원칙에 근거한 판단이라야 한다. 이러니 특검 수사가 촛불 민심 등 사회 분위기를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오해를 불러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의 구속 영장 청구는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50여개의 기업들 모두가 사법 처리 대상이 된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아도 2%대 유지조차 우려될 정도로 침체 국면에 접어든 우리 경제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법원이 영장 실질심사를 통해 이 부회장의 구속 적부(適否)를 가릴 것이다. 사법부의 냉정하고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한국일보]
5. ‘이대 사태’ 부른 평단사업 재추진…15개 대학 230억 지원
정부가 지난해 ‘이화여대 본관 점거’ 사태를 불렀던 대학 평생교육 지원사업(평단사업)을 올해 다시 추진한다. 이대 사태를 감안해 ‘구성원 의견수렴’을 주요 선정 요소로 넣기로 했다.
교육부가 17일 발표한 ‘2017년 대학 평생교육체제 지원사업 기본계획(안)’에 따르면, 올해부터 평단사업과 평생학습 중심대학 지원사업(평중사업)을 통합, 15개 내외 대학을 선정해 총 226억원의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지난해 평단사업(9개 대학ㆍ255억원), 평중사업(37개 대학ㆍ131억원)과 비교하면 지원 규모와 대학 수가 모두 줄었다. 평단사업과 평중사업은 고졸 취업자의 ‘선(先)취업 후(後)진학’ 활성화와 성인 학습자의 평생교육 시스템 구축을 위해 진행된 사업으로, 사업 취지와 내용이 중복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교육부는 지역별 평생교육 우수 모델을 만들기 위해 5개 권역(수도권 충청권 호남ㆍ제주권 강원ㆍ대구경북권 동남권)별로 선정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 단과대 형태로만 운영했던 기존 평단사업과 달리 각 대학이 단과대, 학부, 학과, 컨소시엄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할 수 있다. 또 지난해 이대가 평생교육 단과대학 신설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농성으로 사업 참여를 철회하는 등 학내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았던 만큼 학내 구성원의 동의 등도 대학 선정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권성연 교육부 평생학습정책과장은 “신청서를 작성할 때 설명회ㆍ공청회 등을 통해 재학생들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했는지 명시하도록 했다”며 “이에 대한 평가 배점도 늘렸다”고 말했다.
사업 신청서 준비기간도 80일로 늘렸다. 참여를 원하는 대학은 4월6일까지 사업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5월 초 최종 선정 대학을 발표할 예정이다.
6. 경북경찰, 금품로비 의혹 도의원 사무실 압수수색
경북지역 법인노인요양보호시설의 예산삭감 금품로비의혹을 수사중인 경찰이 17일 의혹 당사자들에 대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경북 안동경찰서는 17일 금품로비 대상으로 지목된 박모 경북도의원의 도의회 사무실과 개인사무실, 주거지, 승용차 등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수사관 5명을 도의회 박의원 사무실에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서류 등을 확보했다. 자료분석 등을 마친 뒤 조만간 소환할 방침이다.
법인요양시설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4일 박 의원을 만나 500만 원을 전달했고 같은 달 23일 되돌려 받았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첫 만남에서는 법인요양시설 축대 등 시설보수 예산 반영을 요청했고, 두 번째 만남에서 개인 요양시설 요양보호사 수당으로 책정된 예산 2억4,000만 원을 삭감해 달라고 청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의원은 “두 차례 만난 사실을 있지만 23일 돈봉투를 가져왔길래 그 자리에서 돌려주었다”며 “예산은 예결위에서 삭감된 것이지 상임위에서는 정상적으로 통과시켰다”며 금품수수 사실을 강력 부인했다.
해당 예산은 행정보건복지위원회는 정상적으로 통과했으나 예결위원회에서 표결 끝에 전액 삭감, 결과적으로 법인요양시설 측의 로비가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부터 법인시설 종사자들에게만 수당을 보조해 온 경북도는 올해 처음으로 개인시설 종사자 수당 지원금으로 2억4,000여 만원을 편성했으나 전액 삭감됐고, 법인시설 종사자 수당 14억900여 만원은 정상적으로 통과됐다.
경찰은 법인시설 측이 상임위 로비가 실패하자 예결위에도 로비를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의외 안팎에서 강력하게 제기됨에 따라 예결위원 등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한편 경북도의회 일부 의원들이 지난해 말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법인노인요양시설 관계자가 개인노인요양시설 종사자 수당 예산을 삭감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박의원 등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경제]
7. 세계성장률 전망치 다 오르는데, 한국만 내려간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그제 내놓은 ‘세계경제전망 수정’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대로 하향 조정했다.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나라 중 성장률을 떨어뜨린 곳은 한국과 이탈리아뿐이다. 이탈리아는 정치적 문제와 은행 부실의 영향으로 종전 0.9%에서 0.7%로 내렸다고 전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성장률 수치나 하향 조정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IMF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지난번과 같이 3.4%로 전망하면서 선진국은 전보다 0.1%포인트 오른 1.9%로 예상했다. 반면 신흥국은 종전 4.6%에서 4.5%로 0.1%포인트 낮췄다. 한마디로 선진국 경제전망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바꾸면서 한국은 예외로 본 것이다. 실제 미국(2.2%→2.3%), 영국(1.1%→1.5%), 일본(0.6%→0.8%), 독일(1.4%→1.5%), 스페인(2.2%→2.3%) 등 주요 선진국의 성장률이 일제히 상향 조정됐다.
유독 한국을 떨어뜨린 것은 국내 주요 기관들이 줄줄이 성장률을 2%대로 내린 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한국을 보는 외부의 시각이다. IMF는 한국의 성장률을 적시하지 않은 채 그저 2%대로 낮아질 것이라고만 했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주말마다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데다 한국 대표 기업 총수가 구속 위기라는 소식 등이 들리니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고 막연히 예상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개방 경제인 한국으로서는 외부 시각이 특히 중요하다. 외국에 투자를 하고 교역하는 입장에서는 한 나라의 미래가 불확실해 보이면 그만큼 그 나라에 대한 투자도 줄일 수밖에 없다. 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중요한 것은 비록 정치 불안은 있지만 한국 경제는 건재하다는 걸 외부에 알리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여기저기서 입만 열면 한국 경제가 곧 망할 듯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소비자심리·체감경기 금융위기 후 최악’ ‘최악의 청년 실업률’ ‘제조업 매출전망 금융위기 후 최악’ 등이 그렇다. 물론 최근 경제상황을 좋다고만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주관적 지표가 아닌, 객관적 지표 중에는 호조를 보이는 것도 적지 않다.
마이너스 행진을 지속하던 수출은 감소폭이 점점 줄어들더니 올 들어 10일까지 무려 37.7%나 늘었다. 지난해 세수는 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3대 세수가 모두 호조를 보이며 전년 대비 24조원이나 늘었다. 지난해 코스피200 기업 순이익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용카드 해외 사용액은 매달, 매분기 사상 최고치를 이어가는 중이다.
긍정적 지표와 부정적 지표가 혼재하지만 많은 한국인은 부정적인 것만 믿으려 든다. 신용평가사 S&P, 무디스 모두 대통령 탄핵에도 한국 신용등급에는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10억달러의 외평채는 사상 최저 금리로 발행에 성공했다. 정작 외부에서는 괜찮다는데 한국에서는 탄핵사태로 경제는 무조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우울증이 과도하게 표현되고 주관적 비관론이 열병처럼 퍼진 결과다. 그러나 이런 패배적 사고는 IMF의 성장률 하향에서 보듯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 경기가 호조를 보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대규모 경기 부양을 약속한 지금은 어찌보면 큰 기회다. 괜한 비관론에 갇혀 있기보다는 물실호기(勿失好機)라는 생각으로 모두가 열심히 뛰어보자.
8. 경제 외교 꽉 막혔는데…이재용·트럼프 회동까지 막히다니
유일호 부총리는 지난주 의욕적인 방미길에 올랐지만, 트럼프 당선자 측으로부터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통상, 환율, FTA 등 산적한 현안을 풀어볼 요량이었지만 새 행정부의 누구도 유 부총리를 만나 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대형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에게 ‘한국이 무역흑자 축소방안을 검토 중임을 행정부에 꼭 전해달라’고 당부한 뒤 ‘빈손 귀국’했다. 외평채 발행에 성공했다지만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사령탑의 행보로는 미진했다.
정부로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트럼프 정부와 협상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지상과제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 이후 두 달여가 지나도록 연결고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상대가 일부러 피하는 듯도 해, 이러다 정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는 것 아닌가 하는 긴장감이 만만찮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상황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특검의 출국금지 조치 때문에 트럼프와 회동하지 못했다는 소식은 꽤나 충격적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초청 사실을 자진 통보한지 불과 몇시간 만에 특검은 전격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당시는 특검 수사가 개시되지도 않았고 도피 우려도 없었지만, 두 사람의 만남으로 여론이 수사에 불리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어느 나라 특검인지, 어떤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트럼프는 라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 내정자와 ‘실력자’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이름으로 14명의 실리콘밸리 CEO들에게 ‘테크서밋’ 초청장을 보냈고, 외국인 중에는 이 부회장이 유일하게 초대받았다. 이 만남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자,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내정자, 윌버 로스 상무장관 내정자, 세 자녀 등 최측근이 총출동했다. 트럼프는 모임에서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 내게 직접 전화하라’고까지 말했다. 이보다 더 좋은 비즈니스와 경제외교의 장은 없다 할 것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그를 만난 한국인은 정치인이든 관료든 전무하다. 부총리가 출동해도 미 정부 장관조차 못 만난 게 냉정한 현실이다. 그 사이 일본은 아베 총리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트럼프를 만났다. 중국도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양자회동으로 정부 간 냉랭한 분위기를 깨는 데 일조했다. 우리도 특검이 저지하지 않았다면 이 부회장이 정부의 메신저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새 정부 출범 외에도 지금은 국제 정세의 격랑기다. 영국이 ‘하드 브렉시트’를 공언했고, EU와 NATO의 미래에 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국은 브렉시트도, 트럼프 당선자도 전혀 준비하지 못하는 변방지대로 추락하고 있다. 최순실 막장 드라마에 빠져 있는 사이, 한국은 점점 골방의 낙오자가 돼 간다. 아무런 대책도 실력도 없으면서, 시시덕거리며 국내 정치에만 몰입해 세상일을 잊고 산다.
[파이낸셜뉴스]
9. 대선주자들은 경제회생 방안도 밝혀라
대선주자들이 경쟁적으로 대기업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진보는 물론 보수 진영까지 나서서 한목소리로 재벌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과 경제 회복을 위한 대안 제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반기업 정서에 기대어 오로지 구태만 되풀이하고 있다.
포문을 연 것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그는 지난 10일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소액주주와 소비자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4대 재벌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러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초과이익공유제 도입 등을 들고나왔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한 술 더 떠 재벌의 범죄수익을 환수하고 영업이익 500억원 이상 대기업의 법인세를 30%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권 대선주자들도 동참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재벌이 모든 걸 통제하니깐 중소기업이 살아날 길이 없다"며 재벌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경제분야는 좌클릭하겠다고 밝혔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수사 중인 특검도 기업을 옥죄는 데 한몫하고 있다. 특검은 16일 최순실씨와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뇌물죄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부회장은 18일 법원의 영장심사를 받는다. 이를 두고 삼성은 물론 재계에서도 특검의 영장청구가 지나치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은데 꼭 구속수사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특검이 본질을 벗어나 기업수사로 방향을 튼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은 모두 53곳이나 된다. 벌써부터 다음 수사 타깃으로 SK와 롯데, CJ 등이 거론된다. 기업 경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주 기자간담회에서 "재벌가와 대기업을 동일시해 결과적으로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국부 파괴"라고 말했다. 최근 쏟아지고 있는 반기업 입법과 재벌개혁 주장 등을 비판한 것이다. 이어 그는 "국민이 원하는 건 거대 담론이 아니라 장사가 잘되고 취직이 잘되는 세상"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기업인이 아닌 고위공직자 출신이다. 그의 쓴소리를 새겨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 기업들의 경영환경은 20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쁘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기업 경영활동을 옭아매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기업에 족쇄를 채우면서 고용과 투자를 늘리라고 한다. 이율배반이다. 기업의 손해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대안 없는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해결책이다. 그건 책임감에서 나온다. 대선후보들은 지금부터라도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보라.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10. '대통령 65세 정년' 주장은 어불성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16일 "대통령을 포함한 선출직과 정무직의 모든 공직자에게 65세 정년을 도입하자"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그래야 나라가 활력이 있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면서 청년에게 폭넓고 활발한 참여공간이 생긴다"라는 논거를 펴면서다. 하지만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공무담임권 조항에 어긋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연 수명은 길어지는데 사회적으로 원숙한 노년층의 참여를 막아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 헌법은 선출직 입후보 시 연령 하한선은 있지만, 이를 막는 상한선을 두지 않고 있다. 헌법 제67조 4항은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 만 63세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표 의원의 주장은 즉각 정치적 논란을 불렀다. 즉 '대통령 65세 정년' 발언이 현재 만 72세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겨냥했다는 해석을 낳으면서다.
그는 논란이 일자 다시 글을 올려 "반 전 총장 생각도 했지만 그분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의 주장은 자가당착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문 전 대표가 당선되더라도 1년도 안 돼 '정년퇴임' 결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혹여 이런 뜬금없는 주장을 일반화해 입법화하려 한다면 더욱 위험한 일이다. '100세 시대'가 눈앞인데 노년층이 국민의 심판을 거쳐 자신의 경륜을 펼칠 기회마저 박탈하는 게 온당한 일이겠나.
연령 상한선이 없는 공무담임권 규정 등 법리를 따지기 전에 그의 주장은 자연의 섭리에도 배치된다. 의학 발전과 식생활 개선으로 평균수명이 늘면서 노인연령기준 상향이 거론되는 추세가 아닌가. 만일 이런 문명사적 큰 흐름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65세 선출직 정년'을 거론했다면 "2004년 열린우리당의 노인폄훼 발언을 연상케 하는 포퓰리즘 정치의 전형"(새누리당 정우택 원내대표)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청년에게 일자리를 줘야 한다는 게 논리적 근거라면 임금피크제나 근로시간 단축 등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주요신문칼럼
1. [매일경제][사랑에 대한 단상]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갈등. 겪기는 싫지만 거쳐야만 성장할 수 있는 법이다. 갈등에 직면해야,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것을 극복(해결)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인기는 얻지 못했지만, 필자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좋아한다. 특유의 음울하고 차가운 분위기가 인상 깊었고, 그것 때문에 이따금씩 꺼내 보는 작품이다. 특히 늦가을 비 내리는 날 오전에 뜨거운 차 한 잔과 함께라면 최적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지석과 영신은 소통의 부재로 갈등을 겪고 있다. 둘은 이혼을 앞둔 부부다. 부부 간의 소통 단절은 얼마나 참혹한 상황인가? 하지만 돌이켜보면 가까운 관계일수록 우리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특히 지석은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감정을 자신 안에 꼭꼭 숨긴 채 좀처럼 표현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대중의 인기를 끌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를 얻기 위해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해 알기 위해 영화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내비치지 않는 인물들 때문에 답답하기 짝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지석과 영신의 소통 부재는 감상자들로 하여금 답답함 이상의 짜증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다. 둘이 함께하는 몇 시간만 지켜보는 것도 힘들진대, 영화 속 인물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내가 만약 영신이었다면?'이라고 가정해본다면 이혼으로의 행보를 당연시 여기지 않았을까?
영화 속 대부분의 상황은 철저히 밀폐된 공간에서 지석과 영신만이 함께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물론 정적을 깨는 상황이 몇 차례 있지만 오히려 그 상황(지극히 평범함에도 불구하고)이 어색할 정도다. 부부의 대화는 마치 처음 만난 사람들 간의 그것만큼 질서정연하고 딱딱하다. 마치 철제 상자 속에 갇힌 로봇들 간의 데이터화된 대화들만이 이어진다.
감정을 차단한 지석을 지켜보는 과정도 힘들고, 그 상황을 견뎌야만 하는 영신의 속내도 답답하겠지만 어쩌면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인물은 지석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볼 때 영신이 되어야만 한다. 영신이 되어 지석의 행동 이면의 속내를 알아내야만 한다. 초코 과자 CF 속 카피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야만 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고 생각되겠지만, 사실 이 '문제'는 스크린 밖, 우리의 현실에서도 종종 겪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들은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이는 타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나는 타인에게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가'라고.
정적을 깨고 영신은 지석에게 외친다. "내게 왜 화를 내지 않느냐" 울분이 폭발로 이어진다. 분명 화내야 마땅한 상황인 걸 아는 가해자가 (상대적)피해자에게 도리어 화를 낸다. 그에 대해 지석은 답한다. "화를 낸다고 해서 너의 결정이 바뀔 것 같지 않아. 네가 그 결정을 한 데는 내 잘못이 있겠지." 지석은 ‘천사표’인가, 희생양인가, 아니면 구원자인가? 하지만 그는 앞선 수식어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 지극히 '인간적인 인물'이다. 그는 화를 내고 슬퍼해봤자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숨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석의 방법은 옳은 것일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화 역시 감정의 표현이자 내면의 응어리를 배출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화를 삭인다'는 표현은 사실상 틀렸다고 본다.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화를 죽이고 없애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고 있다. 이 쌓임은 어느 순간 폭발하게 마련이다. 내면에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 죽을 때까지 분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속은 끓고 있을 게 분명하다. 화를 내는 것도, 그로 인해 싸우는 것도 싫다는 사람들은 '무기력증'을 겪는 것과 다름 없다. 무기력과 무관심은 살아감에 있어 최악이다. 죽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많은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크고 작은 다툼과 그로 인한 감정적 리스크는 상처가 된다. 하지만 상처와 갈등이 있어야만 성장하는 법이다. 화내고, 울고, 싸우는 과정 이후에야 화해와 갈등 해결이 오는 법이다. 따라서 우리는 감정을 표현해야만 한다. 물론 막무가내식 화내기는 좋지 않지만 감정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테니까.
결국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감정 표현의 중요성을 확인시키기 위한 작품이다. 감정 차단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를 감상자들에게 체감시킴으로써 감정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2. [아시아경제][초동여담] 굴과 편식
어릴 적부터 가리는 음식이 없었는데 유독 굴 하나만은 먹기를 꺼렸다. 처음에는 어린 입맛에 비릿한 맛과 물컹거리는 식감을 썩 내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못 먹는 것은 아니었지만 굴이 식탁에 올랐을 때 몇 번 손사래를 치니 가족들 사이에서도 "얘는 굴은 안 먹는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그러고 보니 도시에서 자란 아이답게, 못 먹는 음식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유년 시절 곧잘 "난 굴은 안 먹어"라고 얘기하고 다녔고 굴이 유일한 편식 목록에 올랐다. 그러면서 콩나물을 안 먹는 친구, 계란을 안 먹는 친구 등과 어울렸으니 어째 그 시절엔 애들이 다 그 모양이었지 모르겠다.
성인이 된 뒤에는 굴을 먹는다. 하지만 20여년을 멀리 했더니 즐겨 찾지는 않게 됐다. 생굴이 들어간 김장 김치, 잘 삶은 돼지고기 곁들인 굴보쌈,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굴짬뽕 등 모두 좋아하지만 굴전이나 굴무침, 굴튀김 등 굴이 주재료인 음식을 찾아서 먹지는 않았다. 단숨에 일을 처리해 마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남양 원님 굴회 마시듯 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아직 남양 원님처럼 먹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다 최근 남양 원님이었으면 반색할 상황과 맞닥뜨렸다. 상당한 양의 굴을 얻어 먹게 된 것이다. 제철 맞은 씨알 굵은 굴이 큰 봉지에 담겨 있었는데 물을 뺀 실제 양이 2~3㎏은 족히 돼 보였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인근에 논정마을이라는 곳이 있는데 예로부터 굴로 유명했다고 한다.
게서 서울까지 올라온 굴의 노고를 봐서라도 얼리기 전에 싱싱한 맛을 충분히 만끽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비록 즐기지 는 않지만 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의 안주로 대접 받고 있으니 핑계 삼아 집에서 굴 요리에 한 잔씩 마셔야겠다는 속내도 있었다.
그렇게 작정을 하고 며칠 동안 굴을 먹었다. 생굴을 초장에 찍거나 레몬 즙을 뿌려서 먹었고, 요즘 귀하다는 계란을 입혀 노릇하게 굴전을 부쳐 막걸리도 한 잔 마셨다. 무를 썰어 넣고 굴국을 끓였고 시원한 맛을 낼 거 같아 어묵탕에도 잔뜩 넣어봤다. 대파만 썰어 넣고 올리브유에 살짝 볶기도 했고 스파게티 면을 함께 버무려 굴 파스타도 만들었다.
싱싱한 생굴에서는 단맛이 돌았고 겨울 무와 함께 우러난 굴 국물에서는 간하지 않아도 감칠맛이 느껴졌다. 한껏 움츠린 익힌 굴도 진한 바다 내음을 품고 있었다. 굴을 돌에 핀 꽃이라는 의미로 '석화'라고 부르는 게 비로소 이해가 될 정도였다.
그렇게 먹다 보니 살면서 짧은 기간에 이렇게 굴을 많이 먹은 것은 처음이지 싶었다. 매일 굴 50개를 먹었다는 카사노바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왠지 기운이 나는 것도 같았다. 18세기 실존 인물인 지아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는 직접 쓴 책 '나의 편력'에 수많은 여인들과의 연애담과 함께 자신의 굴 사랑을 생생하게 고백한 바 있다.
어린 시절 편식을 하지 않았다면 카사노바처럼 어디서 얘기할 만한 편력을 갖게 됐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편견으로 멀리했던 것을 일부러라도 가까이 하니 그 매력을 새삼 느끼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비단 굴뿐만은 아닐 것이다.
3. [경향신문][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블랙리스트 춤꾼
낯선 도시는 황량했다. 뫼비우스 띠처럼 길게 이어진 건물이 불쑥 솟은 도시는 건물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에워싼 길을 돌고 또 돌아도, 블랙리스트 명단을 만든 이들을 구속하라고 소리쳐도, 건물은 뭣 하나 토해내지 않았다. 드나드는 이 없이 해가 지고 건물에는 불이 켜졌다.
마침 그날은 보름 전날이었다. 살짝 이지러진 달은 휘영청 밝았고, 맨땅을 무대로 삼은 이들의 노래는 아름다웠다. 노래를 들으며 울적했다. 멋대로 예술가를 솎아낸 이들의 뻔뻔함을 보면서 한 일도 없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들어간 나의 부끄러움과 마주해야 했다. 나 또한 이지러진 세상의 일부가 아닌가, 나는 대체 뭘 했는가 자괴감이 들 무렵 그가 나섰다.
맨발로 차가운 땅을 딛고 선 그는 음악이 나오자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어깨를 젖히고, 팔을 휘젓고, 등을 굽히고. 조심스러우면서도 격렬한 그의 몸짓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의 몸짓은 소리 없는 언어이고, 외침이었다. 누구인가? 얼핏 본 그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그의 춤이 끝나갈 무렵 광화문 문화예술인 캠핑촌에서 여러 번 마주친 남자 하나를 떠올렸다. 그를 단박에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의 얼굴이 무대에 오른 순간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니, 그는 춤사위에 따라 표정이 달라진다. 무대에서 나온 그는 수굿하게 걷다가 눈이 마주치면 따뜻하게 웃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존재가 예술일 수 있겠구나. 그러고 보니 주변에 있던 많은 이들이 그랬다. 노동자들이 싸우는 곳에서 늘 뭔가를 만들어 내는 판화가도, 부당한 세상에 맞서느라 시를 쓸 시간조차 없을 시인도, 겨우내 광장에서 깃발을 들고 서 있는 춤꾼도. 그들은 존재 자체가 예술이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만든 이들은 설마 그걸 알았던 것일까? 그 예술의 가치를, 그 예술의 힘을! 그걸 안다면 무엇으로도 그들의 발목을 묶어 놓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았을까? 블랙리스트 버스를 타고 세종시에 다녀오면서 생각했다. 블랙리스트 따위는 절대로 만들지 않는 세상을 못 만든다면, 제대로 맞서 보고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라도 하자고. 뻔뻔한 세상에 부끄러움 없이 맞서 보자고.
4. [국민일보][영화이야기] 중국의 실체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중국 영화 ‘나의 전쟁’(2016)이 그 답을 말해준다. 중국 최대 국영 영화사 중국전영집단공사가 홍콩 인기 상업영화 감독 팽순(옥사이드 팽)을 데려다 만든 전쟁영화다.
6·25전쟁에 민간 ‘지원군’이라는 명분으로 동원된 중국군이 미군과 싸우는 얘기지만 스토리나 장면 구성 등은 촌스럽다. 게다가 사실 왜곡도 많다. 6·25 당시 한반도에 온 중국군은 보급물자는커녕 총조차 변변치 않았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중국군 병사들이 경기관총으로 무장하고 미군과 대등한 화력으로 싸운다.
중요한 것은 6·25와 한반도를 보는 중국의 인식과 태도다. 영화 첫머리에 나오는 배경설명 자막은 이렇다. ‘1950년 6월 25일 남북한 사이에 대규모 내전이 발발했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이익을 지키기 위해 코리아 내전에 공공연하게 군사적으로 간섭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코리아 침공에 나섰다.’ 이게 중국이 보는 6·25다. 그러면서 ‘중국은 코리아정부의 요청에 따른 대응조치로 항미원조(抗美援朝)의 전략적 결정을 내리고 중국 인민지원군을 신속히 소집해 코리아전쟁에 참여했다’고 한다.
여기서 중국이 말하는 ‘코리아정부’나 ‘미국이 코리아를 침공했다’고 했을 때의 코리아는 문맥상 당연히 북한이다. 나아가 중국은 한국을 속국쯤으로 취급한다. 그렇지 않다면 6·25가 어떻게 해서 ‘중국인(나)의 전쟁’이 되는가. 한국을 속방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런 발상은 나올 수 없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한국에 대한 중국의 실체를 드러냈다. 적어도 중국은 한국의 ‘우방’이 아니다. 그런데도 중국이 한국 경제에 다소 도움이 된다고 해서 마냥 중국에 아부하고 눈치 보는 일부 정치지도자를 포함한 얼빠진 한국인들이 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만 걱정하지 말고 한국에 ‘상국(上國)’ 행세를 하면서 남북한을 상대로 이이제이(以夷制夷) 식으로 장난질 치는 중국의 대국놀음, 패권국가화를 더 경계해야 한다.
5. [한국일보][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엄마와 이별하는 시간
열흘 전, 엄마를 여의었다.
오래도록 곁에 머물기 원하는 가족의 소망을 뒤로 한 채 여든넷이 되는 새해 첫 일주일을 생의 마지막 주간으로 삼아 고이 떠나셨다. 허나 아직 믿을 수가 없다. 두 눈으로 당신의 끝 숨을 보고 경황없이 상을 치른 뒤 기어이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까지 지켜봤는데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지금도 “밥 먹어야지” 하시며 불쑥 밥상을 들이미실 것만 같다.
차라리 깨어야 할 헛된 꿈속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어머니라는 존칭보다는 늘 ‘엄마’라 부르며 지천명이 된 지금껏 당신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살아왔다. 엄마도 그리 불러주는 걸 한결 좋아하셨다. 이제 그 치맛자락도, 당신의 따사로운 체취도 다시 느낄 수 없는 이 현실이 무척이나 야속하고 원망스럽다. 그러나 무엇을 해도 후회될 일 또한 온통 머리를 쥐고 흔드는 걸 보니, 역시나 불효자를 면키 어려운 자식으로서 지난 무심함 들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며칠 전 무심코 자동차 트렁크를 열었다가 울컥 눈물을 쏟을 뻔했다.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엄마의 신발 때문이었다. 지난해 초가을 경 집을 나오셨다가 병 진단 후 바로 입원하셔야만 했던 엄마는 10월 중순 어느 날 일시적으로 퇴원하셨다. 그때 내 차에 신발을 포함한 당신의 짐들을 넣어두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병원을 나서면서 들뜬 기분을 감추지 않으셨던 엄마는 당일 저녁에 뇌졸중이 오면서 급히 119 구급차를 타고 재입원을 하셔야 했다.
그날 이후 엄마의 신발을 차 트렁크에서 내놓을 수 없었다. 다시 그 신발을 신겨드릴 날이 오기를 바랐다. 내 가슴에 품듯 내어놓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결국 엄마는 그 신발을 더 이상 신지 못하셨다. 엄마와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은 그렇게 다가왔다.
지난 해 가을, 엄마 온몸에 퍼진 암 덩어리와 동시다발적으로 찾아온 동맥박리, 뇌졸중 등 여러 합병증을 확인한 순간부터 이제 눈앞에 펼쳐질 상황을 인정해야만 했다.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이승의 연이 다 했음을 거부할 도리가 없었다. 생명연장을 위한 무리한 의료행위는 엄마의 고통만 가중시킬 뿐 의미가 없었다. 우리가 할 최선의 방편으로 가족들 모두 수다스러울 정도로 많은 얘기를 건넸다. 너무 애쓰셨다고, 너무 사랑한다고 끝없이 속삭이는 시간도 뒤를 이었다.
그와 더불어 나는 한없이 엄마의 눈빛과 온몸을 살폈다. 점점 흐릿해지는 눈동자를 보며 여전히 자식의 얼굴을 봐 주시니 슬픔보다는 그저 고마운 마음에 웃으려 애를 썼다. 퉁퉁 부은 손과 발등, 창백한 살갗에 눈을 두기보다는 여전히 유지되는 체온에 기뻐하며 매만지기를 반복했다. 아직 살아 숨 쉬고 계시다는 것에, 엄마의 온기가 남아 있음에 늘 감사해 했고 울컥거리는 심정의 일부나마 누를 수 있었다.
하루하루가 소중했던 그 시간 동안 나의 카메라에는 엄마의 모습들이 귀하게 담겼다. 당신의 온몸을 살피며 만지는 그 시간들은 나의 이별의식이었고 엄마의 존재의미를 깊이 되새기는 제례의 과정이었다. 사진을 찍는 시간이 아닌 엄마와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엄마의 영정사진 앞에 아침저녁으로 생전에 좋아하셨던 숭늉과 보리차를 번갈아 올려드리며 사진 속 엄마의 뺨을 두어 번 매만진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직접 찍은 사진 속 엄마의 표정은 한없이 자애롭고 평온하기만 하다. 평생 우리 남매들을 향해 주셨던 그 표정 그대로다.
병상을 지키던 지난 3개월의 틈새에서 아직 헤매고는 있지만, 당분간 훨씬 이전으로 돌아가 엄마와의 아름다웠던 지난 기억들을 하나하나 들추어보려 한다. 엄마와 이별을 준비했던 시간은 당신의 삶이 내게 가장 귀하고 아름다웠음을 증명하는 여정이기도 했던 탓이다. 무에 그리 서둘러 가셨느냐고 부질없이 들던 생각의 한 조각 정도는 이제 걷어내고 싶다. 엄마와 마주하는 또 다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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