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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조선일보] 

1. 대통령이 수석들 모아놓고 거짓말 모의했다니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16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공개 변론에 나와 "박 대통령이 작년 10월 12일 참모들과 면담 자리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자체를 전경련이 주도한 것으로 하고, (재단 일부) 인사는 청와대가 추천한 거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난다"고 증언했다. 그 자리엔 민정수석과 홍보수석도 참석한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안 전 수석이 그날 작성한 업무 수첩에는 '(재단) 모금 청와대 주도·개입 ×' '전경련 주도'라고 적혀 있었다.


작년 10월 12일은 최순실씨와 안 전 수석이 두 재단의 대기업 출연금 강제 모금과 관련해 검찰에 고발된 지 2주쯤 지났을 때였다. 검찰 수사를 앞두고 박 대통령이 참모들과 대책 회의를 열어 전경련이 두 재단을 주도하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낸 것으로 포장하려 한 것이다.


실제로는 대통령이 재단 명칭과 사무실 위치까지 지시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안 전 수석은 또 헌재 공개 변론에서 "대통령으로부터 '기업마다 재단 출연금 30억원씩 받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출연금 모금 액수도 대통령이 지정한 것이다. 이는 '대기업들이 선의로 냈다'는 박 대통령의 그간 해명과 반대다.


검찰이 안 전 수석 측에서 압수한 '압수 수색 대응 문건'에는 '(집에서 휴대폰을 파기하려면) 전자레인지에 돌리라'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청와대가 대통령 주도로 거짓말을 모의하고 증거인멸까지 시도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 100대 기업까지 일자리 줄이는 고용 빙하기

고용 한파가 이만저만 심각한 게 아니다. 국내에서 매출 상위 100위에 속하는 대기업 일자리가 1년 전보다 7000여명 감소했다. 일자리를 늘린 기업도 있지만 반대가 더 많다는 얘기다. 구조조정 중인 조선업계는 특히 심각하다. 빅3 조선사에서 나간 인원만 작년 9월까지 6000여명이다. 하도급 업체까지 합하면 실직자 수는 훨씬 많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조차 사업부 매각으로 1년 전보다 인력이 3000명 넘게 줄었고, 삼성물산·삼성SDI·삼성전기 등 삼성 계열사 7군데에서 줄어든 인원만 1만2000명이 넘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내 금융권에서 지난 3년간 줄어든 일자리도 1만2000개가 넘는다. 은행·보험·증권사 등 102개 금융사가 채용한 인원이 2013년만 해도 22만명을 넘었는데 이젠 20만명대로 5.6% 줄었다.


대기업과 금융권 근로자는 안정적인 중산층에 속한다. 이들마저 고용 시장에서 밀려나면 사회 불안이 증폭될 수 있다. 늘어나는 것은 대부분 주당 36시간 미만 일자리다. 제조업 취업자 수도 줄었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9.8%로 역대 최고였고 전체 실업자 수도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었다.


그러니 한때 줄어들던 자영업자 수가 도로 늘어 570만명이다. 한 집 건너 음식점이고 치킨집이다. 1300조원 넘는 가계 부채와는 별개로 자영업자 부채만 464조원이 쌓였다. 이 역시 한국 경제에는 불안한 뇌관이다.


고용 한파는 올해도 풀릴 것 같지 않다. 대외 악재가 많은 데다 탄핵 정국으로 체감 경기가 외환 위기 수준으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채용도 투자도 꺼린다.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와 신산업 투자 활성화를 고민해야 한다. 대기업들도 인력을 우선적인 비용 축소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헤럴드경제]

3. 유동성 함정에 빠진 한국경제, 돈 돌게할 방안 찾아야

시중에 풀려 유통되는 현금의 총량을 의미하는 화폐발행잔액은 작년 말 현재 97조4000억원이다. 1년새 10조6000억원, 10% 이상 늘어났다. 현금뿐 아니라 예금잔액 등을 합친 광의통화(M2)도 2400조원을 넘어섰다. 경제가 불과 2~3%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증가다. 

하지만 이렇게 풀린 돈이 돌지를 않는다. 본원통화가 몇 배의 통화량을 창출하는지를 나타내는 게 통화승수다. 지난해 통화승수는 16.7로 역대 최저다. 10년 전만해도 25를 넘어 30까지 바라보던 수치다. 매년 1~2씩 떨어져 이렇게 됐다.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통화가 평균 몇 번 사용됐는지 가늠하는 수치가 통화유통속도다. 90년대엔 1.5에 달하던 통화유통속도 역시 최근 1년 이상 0.7 수준에 머문다. 예금회전율도 3.8회에 불과하다. 돈을 풀어도 은행에 되돌아와 고여버린다는 의미다.

심지어 돈이 제대로 돌지않는 상태를 넘어 아예 퇴장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작년 1년간 5만원권 발행량은 23조원으로 2009년 발행 후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하지만 환수된 건 11조원뿐이다. 절반이 넘는 12조원은 금고속으로 숨어버린 것이다. 미국이나 EU의 100달러, 500유로 고액권의 회수율이 70~90%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돈맥경화’ 현상이 어느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한국경제가 이처럼 심각한 돈맥경화에 빠진 원인은 여러가지다. 복합적이다. 우선 국민소득 증가속도가 통화량이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더 버는 돈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아무리 돈을 풀어도 기업이나 가계가 투자와 소비에 나서지 않는다.

돈은 경제의 피다. 빠르게 순환돼야 건강한 경제다. 금리를 내리고 통화 공급을 늘리면 총수요가 증가하고 경기가 회복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같은 통화정책 전달경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한국경제가유동성 함정에 빠졌다는 얘기다. 그건 경제의 중병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금융과 실물의 연계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시중에 크게 늘어난 돈이 투자와 소비로 흘러들게 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넘치는 건 덜어내고 없는 건 찾아내야 한다. 공급과잉을 해소하고 유효 수요를 만드는 일이다. 기존 생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고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깎아내리는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4. 무리한 이재용 영장청구, 법원이 냉정히 판단할 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뇌물공여와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그리고 위증이다. 하지만 혐의 자체부터 법리적 다툼의 소지가 너무 많고, 무엇보다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은데 꼭 구속 수사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설령 혐의 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 국내 최대 기업 오너인 점을 감안해야 했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결국 특검 수사에 무리수가 많아 보인다는 지적인 셈이다. 

하긴 그런 소리가 나올만도 하다. 일단 특검 수사의 큰 그림은 삼성 수사 과정에서 윤곽이 대략 드러났다. 정권 차원에서 국민연금으로 하여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도와주게 하고, 그 대가로 삼성이 430억원 상당의 금전적 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 출연금도 대가성 뇌물로 본 게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는 누가 봐도 객관성이 떨어지고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당장 권력의 요구를 외면할 간 큰 기업은 없다는 우리 사회 관행을 간과한 듯하다. 만에 하나 거부할 경우 어떠한 결과가 초래되는지 누구보다 기업인들이 잘 알고 있다. 더욱이 이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승마협회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질책까지 받았다.


그런 압박을 이겨 낼 기업과 기업인은 단언컨대 1곳도, 1명도 없다. 삼성과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승마협회와 최순실 측을 지원했을 뿐 대가를 요구한 적은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건 이런 맥락이다.

특검이 내세운 ‘정의’라는 용어도 적절하지 못하다. 특검은 이 부회장 구속 영장을 청구하면서 “국가 경제 등에 미치는 영향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의와 불의가 사법 단죄의 요건이 될 수는 없다. 오직 법과 원칙에 근거한 판단이라야 한다. 이러니 특검 수사가 촛불 민심 등 사회 분위기를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오해를 불러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의 구속 영장 청구는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50여개의 기업들 모두가 사법 처리 대상이 된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아도 2%대 유지조차 우려될 정도로 침체 국면에 접어든 우리 경제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법원이 영장 실질심사를 통해 이 부회장의 구속 적부(適否)를 가릴 것이다. 사법부의 냉정하고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한국일보]

5. ‘이대 사태’ 부른 평단사업 재추진…15개 대학 230억 지원

정부가 지난해 ‘이화여대 본관 점거’ 사태를 불렀던 대학 평생교육 지원사업(평단사업)을 올해 다시 추진한다. 이대 사태를 감안해 ‘구성원 의견수렴’을 주요 선정 요소로 넣기로 했다. 

교육부가 17일 발표한 ‘2017년 대학 평생교육체제 지원사업 기본계획(안)’에 따르면, 올해부터 평단사업과 평생학습 중심대학 지원사업(평중사업)을 통합, 15개 내외 대학을 선정해 총 226억원의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지난해 평단사업(9개 대학ㆍ255억원), 평중사업(37개 대학ㆍ131억원)과 비교하면 지원 규모와 대학 수가 모두 줄었다. 평단사업과 평중사업은 고졸 취업자의 ‘선(先)취업 후(後)진학’ 활성화와 성인 학습자의 평생교육 시스템 구축을 위해 진행된 사업으로, 사업 취지와 내용이 중복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교육부는 지역별 평생교육 우수 모델을 만들기 위해 5개 권역(수도권 충청권 호남ㆍ제주권 강원ㆍ대구경북권 동남권)별로 선정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 단과대 형태로만 운영했던 기존 평단사업과 달리 각 대학이 단과대, 학부, 학과, 컨소시엄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할 수 있다. 또 지난해 이대가 평생교육 단과대학 신설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농성으로 사업 참여를 철회하는 등 학내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았던 만큼 학내 구성원의 동의 등도 대학 선정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권성연 교육부 평생학습정책과장은 “신청서를 작성할 때 설명회ㆍ공청회 등을 통해 재학생들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했는지 명시하도록 했다”며 “이에 대한 평가 배점도 늘렸다”고 말했다. 

사업 신청서 준비기간도 80일로 늘렸다. 참여를 원하는 대학은 4월6일까지 사업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5월 초 최종 선정 대학을 발표할 예정이다.


6. 경북경찰, 금품로비 의혹 도의원 사무실 압수수색

경북지역 법인노인요양보호시설의 예산삭감 금품로비의혹을 수사중인 경찰이 17일 의혹 당사자들에 대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경북 안동경찰서는 17일 금품로비 대상으로 지목된 박모 경북도의원의 도의회 사무실과 개인사무실, 주거지, 승용차 등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수사관 5명을 도의회 박의원 사무실에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서류 등을 확보했다. 자료분석 등을 마친 뒤 조만간 소환할 방침이다.

법인요양시설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4일 박 의원을 만나 500만 원을 전달했고 같은 달 23일 되돌려 받았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첫 만남에서는 법인요양시설 축대 등 시설보수 예산 반영을 요청했고, 두 번째 만남에서 개인 요양시설 요양보호사 수당으로 책정된 예산 2억4,000만 원을 삭감해 달라고 청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의원은 “두 차례 만난 사실을 있지만 23일 돈봉투를 가져왔길래 그 자리에서 돌려주었다”며 “예산은 예결위에서 삭감된 것이지 상임위에서는 정상적으로 통과시켰다”며 금품수수 사실을 강력 부인했다.

해당 예산은 행정보건복지위원회는 정상적으로 통과했으나 예결위원회에서 표결 끝에 전액 삭감, 결과적으로 법인요양시설 측의 로비가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부터 법인시설 종사자들에게만 수당을 보조해 온 경북도는 올해 처음으로 개인시설 종사자 수당 지원금으로 2억4,000여 만원을 편성했으나 전액 삭감됐고, 법인시설 종사자 수당 14억900여 만원은 정상적으로 통과됐다.

경찰은 법인시설 측이 상임위 로비가 실패하자 예결위에도 로비를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의외 안팎에서 강력하게 제기됨에 따라 예결위원 등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한편 경북도의회 일부 의원들이 지난해 말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법인노인요양시설 관계자가 개인노인요양시설 종사자 수당 예산을 삭감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박의원 등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경제]

7. 세계성장률 전망치 다 오르는데, 한국만 내려간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그제 내놓은 ‘세계경제전망 수정’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대로 하향 조정했다.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나라 중 성장률을 떨어뜨린 곳은 한국과 이탈리아뿐이다. 이탈리아는 정치적 문제와 은행 부실의 영향으로 종전 0.9%에서 0.7%로 내렸다고 전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성장률 수치나 하향 조정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IMF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지난번과 같이 3.4%로 전망하면서 선진국은 전보다 0.1%포인트 오른 1.9%로 예상했다. 반면 신흥국은 종전 4.6%에서 4.5%로 0.1%포인트 낮췄다. 한마디로 선진국 경제전망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바꾸면서 한국은 예외로 본 것이다. 실제 미국(2.2%→2.3%), 영국(1.1%→1.5%), 일본(0.6%→0.8%), 독일(1.4%→1.5%), 스페인(2.2%→2.3%) 등 주요 선진국의 성장률이 일제히 상향 조정됐다.

유독 한국을 떨어뜨린 것은 국내 주요 기관들이 줄줄이 성장률을 2%대로 내린 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한국을 보는 외부의 시각이다. IMF는 한국의 성장률을 적시하지 않은 채 그저 2%대로 낮아질 것이라고만 했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주말마다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데다 한국 대표 기업 총수가 구속 위기라는 소식 등이 들리니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고 막연히 예상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개방 경제인 한국으로서는 외부 시각이 특히 중요하다. 외국에 투자를 하고 교역하는 입장에서는 한 나라의 미래가 불확실해 보이면 그만큼 그 나라에 대한 투자도 줄일 수밖에 없다. 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중요한 것은 비록 정치 불안은 있지만 한국 경제는 건재하다는 걸 외부에 알리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여기저기서 입만 열면 한국 경제가 곧 망할 듯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소비자심리·체감경기 금융위기 후 최악’ ‘최악의 청년 실업률’ ‘제조업 매출전망 금융위기 후 최악’ 등이 그렇다. 물론 최근 경제상황을 좋다고만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주관적 지표가 아닌, 객관적 지표 중에는 호조를 보이는 것도 적지 않다.

마이너스 행진을 지속하던 수출은 감소폭이 점점 줄어들더니 올 들어 10일까지 무려 37.7%나 늘었다. 지난해 세수는 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3대 세수가 모두 호조를 보이며 전년 대비 24조원이나 늘었다. 지난해 코스피200 기업 순이익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용카드 해외 사용액은 매달, 매분기 사상 최고치를 이어가는 중이다.

긍정적 지표와 부정적 지표가 혼재하지만 많은 한국인은 부정적인 것만 믿으려 든다. 신용평가사 S&P, 무디스 모두 대통령 탄핵에도 한국 신용등급에는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10억달러의 외평채는 사상 최저 금리로 발행에 성공했다. 정작 외부에서는 괜찮다는데 한국에서는 탄핵사태로 경제는 무조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우울증이 과도하게 표현되고 주관적 비관론이 열병처럼 퍼진 결과다. 그러나 이런 패배적 사고는 IMF의 성장률 하향에서 보듯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 경기가 호조를 보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대규모 경기 부양을 약속한 지금은 어찌보면 큰 기회다. 괜한 비관론에 갇혀 있기보다는 물실호기(勿失好機)라는 생각으로 모두가 열심히 뛰어보자.


8. 경제 외교 꽉 막혔는데…이재용·트럼프 회동까지 막히다니

유일호 부총리는 지난주 의욕적인 방미길에 올랐지만, 트럼프 당선자 측으로부터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통상, 환율, FTA 등 산적한 현안을 풀어볼 요량이었지만 새 행정부의 누구도 유 부총리를 만나 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대형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에게 ‘한국이 무역흑자 축소방안을 검토 중임을 행정부에 꼭 전해달라’고 당부한 뒤 ‘빈손 귀국’했다. 외평채 발행에 성공했다지만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사령탑의 행보로는 미진했다.

정부로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트럼프 정부와 협상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지상과제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 이후 두 달여가 지나도록 연결고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상대가 일부러 피하는 듯도 해, 이러다 정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는 것 아닌가 하는 긴장감이 만만찮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상황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특검의 출국금지 조치 때문에 트럼프와 회동하지 못했다는 소식은 꽤나 충격적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초청 사실을 자진 통보한지 불과 몇시간 만에 특검은 전격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당시는 특검 수사가 개시되지도 않았고 도피 우려도 없었지만, 두 사람의 만남으로 여론이 수사에 불리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어느 나라 특검인지, 어떤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트럼프는 라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 내정자와 ‘실력자’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이름으로 14명의 실리콘밸리 CEO들에게 ‘테크서밋’ 초청장을 보냈고, 외국인 중에는 이 부회장이 유일하게 초대받았다. 이 만남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자,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내정자, 윌버 로스 상무장관 내정자, 세 자녀 등 최측근이 총출동했다. 트럼프는 모임에서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 내게 직접 전화하라’고까지 말했다. 이보다 더 좋은 비즈니스와 경제외교의 장은 없다 할 것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그를 만난 한국인은 정치인이든 관료든 전무하다. 부총리가 출동해도 미 정부 장관조차 못 만난 게 냉정한 현실이다. 그 사이 일본은 아베 총리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트럼프를 만났다. 중국도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양자회동으로 정부 간 냉랭한 분위기를 깨는 데 일조했다. 우리도 특검이 저지하지 않았다면 이 부회장이 정부의 메신저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새 정부 출범 외에도 지금은 국제 정세의 격랑기다. 영국이 ‘하드 브렉시트’를 공언했고, EU와 NATO의 미래에 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국은 브렉시트도, 트럼프 당선자도 전혀 준비하지 못하는 변방지대로 추락하고 있다. 최순실 막장 드라마에 빠져 있는 사이, 한국은 점점 골방의 낙오자가 돼 간다. 아무런 대책도 실력도 없으면서, 시시덕거리며 국내 정치에만 몰입해 세상일을 잊고 산다.


[파이낸셜뉴스]

9. 대선주자들은 경제회생 방안도 밝혀라

대선주자들이 경쟁적으로 대기업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진보는 물론 보수 진영까지 나서서 한목소리로 재벌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과 경제 회복을 위한 대안 제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반기업 정서에 기대어 오로지 구태만 되풀이하고 있다.

포문을 연 것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그는 지난 10일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소액주주와 소비자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4대 재벌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러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초과이익공유제 도입 등을 들고나왔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한 술 더 떠 재벌의 범죄수익을 환수하고 영업이익 500억원 이상 대기업의 법인세를 30%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권 대선주자들도 동참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재벌이 모든 걸 통제하니깐 중소기업이 살아날 길이 없다"며 재벌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경제분야는 좌클릭하겠다고 밝혔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수사 중인 특검도 기업을 옥죄는 데 한몫하고 있다. 특검은 16일 최순실씨와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뇌물죄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부회장은 18일 법원의 영장심사를 받는다. 이를 두고 삼성은 물론 재계에서도 특검의 영장청구가 지나치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은데 꼭 구속수사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특검이 본질을 벗어나 기업수사로 방향을 튼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은 모두 53곳이나 된다. 벌써부터 다음 수사 타깃으로 SK와 롯데, CJ 등이 거론된다. 기업 경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주 기자간담회에서 "재벌가와 대기업을 동일시해 결과적으로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국부 파괴"라고 말했다. 최근 쏟아지고 있는 반기업 입법과 재벌개혁 주장 등을 비판한 것이다. 이어 그는 "국민이 원하는 건 거대 담론이 아니라 장사가 잘되고 취직이 잘되는 세상"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기업인이 아닌 고위공직자 출신이다. 그의 쓴소리를 새겨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 기업들의 경영환경은 20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쁘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기업 경영활동을 옭아매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기업에 족쇄를 채우면서 고용과 투자를 늘리라고 한다. 이율배반이다. 기업의 손해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대안 없는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해결책이다. 그건 책임감에서 나온다. 대선후보들은 지금부터라도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보라.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10. '대통령 65세 정년' 주장은 어불성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16일 "대통령을 포함한 선출직과 정무직의 모든 공직자에게 65세 정년을 도입하자"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그래야 나라가 활력이 있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면서 청년에게 폭넓고 활발한 참여공간이 생긴다"라는 논거를 펴면서다. 하지만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공무담임권 조항에 어긋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연 수명은 길어지는데 사회적으로 원숙한 노년층의 참여를 막아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 헌법은 선출직 입후보 시 연령 하한선은 있지만, 이를 막는 상한선을 두지 않고 있다. 헌법 제67조 4항은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 만 63세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표 의원의 주장은 즉각 정치적 논란을 불렀다. 즉 '대통령 65세 정년' 발언이 현재 만 72세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겨냥했다는 해석을 낳으면서다.

그는 논란이 일자 다시 글을 올려 "반 전 총장 생각도 했지만 그분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의 주장은 자가당착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문 전 대표가 당선되더라도 1년도 안 돼 '정년퇴임' 결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혹여 이런 뜬금없는 주장을 일반화해 입법화하려 한다면 더욱 위험한 일이다. '100세 시대'가 눈앞인데 노년층이 국민의 심판을 거쳐 자신의 경륜을 펼칠 기회마저 박탈하는 게 온당한 일이겠나.

연령 상한선이 없는 공무담임권 규정 등 법리를 따지기 전에 그의 주장은 자연의 섭리에도 배치된다. 의학 발전과 식생활 개선으로 평균수명이 늘면서 노인연령기준 상향이 거론되는 추세가 아닌가. 만일 이런 문명사적 큰 흐름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65세 선출직 정년'을 거론했다면 "2004년 열린우리당의 노인폄훼 발언을 연상케 하는 포퓰리즘 정치의 전형"(새누리당 정우택 원내대표)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청년에게 일자리를 줘야 한다는 게 논리적 근거라면 임금피크제나 근로시간 단축 등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주요신문칼럼


1. [매일경제][사랑에 대한 단상]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갈등. 겪기는 싫지만 거쳐야만 성장할 수 있는 법이다. 갈등에 직면해야,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것을 극복(해결)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인기는 얻지 못했지만, 필자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좋아한다. 특유의 음울하고 차가운 분위기가 인상 깊었고, 그것 때문에 이따금씩 꺼내 보는 작품이다. 특히 늦가을 비 내리는 날 오전에 뜨거운 차 한 잔과 함께라면 최적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지석과 영신은 소통의 부재로 갈등을 겪고 있다. 둘은 이혼을 앞둔 부부다. 부부 간의 소통 단절은 얼마나 참혹한 상황인가? 하지만 돌이켜보면 가까운 관계일수록 우리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특히 지석은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감정을 자신 안에 꼭꼭 숨긴 채 좀처럼 표현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대중의 인기를 끌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를 얻기 위해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해 알기 위해 영화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내비치지 않는 인물들 때문에 답답하기 짝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지석과 영신의 소통 부재는 감상자들로 하여금 답답함 이상의 짜증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다. 둘이 함께하는 몇 시간만 지켜보는 것도 힘들진대, 영화 속 인물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내가 만약 영신이었다면?'이라고 가정해본다면 이혼으로의 행보를 당연시 여기지 않았을까?

영화 속 대부분의 상황은 철저히 밀폐된 공간에서 지석과 영신만이 함께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물론 정적을 깨는 상황이 몇 차례 있지만 오히려 그 상황(지극히 평범함에도 불구하고)이 어색할 정도다. 부부의 대화는 마치 처음 만난 사람들 간의 그것만큼 질서정연하고 딱딱하다. 마치 철제 상자 속에 갇힌 로봇들 간의 데이터화된 대화들만이 이어진다.


감정을 차단한 지석을 지켜보는 과정도 힘들고, 그 상황을 견뎌야만 하는 영신의 속내도 답답하겠지만 어쩌면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인물은 지석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볼 때 영신이 되어야만 한다. 영신이 되어 지석의 행동 이면의 속내를 알아내야만 한다. 초코 과자 CF 속 카피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야만 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고 생각되겠지만, 사실 이 '문제'는 스크린 밖, 우리의 현실에서도 종종 겪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들은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이는 타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나는 타인에게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가'라고.

정적을 깨고 영신은 지석에게 외친다. "내게 왜 화를 내지 않느냐" 울분이 폭발로 이어진다. 분명 화내야 마땅한 상황인 걸 아는 가해자가 (상대적)피해자에게 도리어 화를 낸다. 그에 대해 지석은 답한다. "화를 낸다고 해서 너의 결정이 바뀔 것 같지 않아. 네가 그 결정을 한 데는 내 잘못이 있겠지." 지석은 ‘천사표’인가, 희생양인가, 아니면 구원자인가? 하지만 그는 앞선 수식어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 지극히 '인간적인 인물'이다. 그는 화를 내고 슬퍼해봤자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숨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석의 방법은 옳은 것일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화 역시 감정의 표현이자 내면의 응어리를 배출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화를 삭인다'는 표현은 사실상 틀렸다고 본다.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화를 죽이고 없애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고 있다. 이 쌓임은 어느 순간 폭발하게 마련이다. 내면에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 죽을 때까지 분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속은 끓고 있을 게 분명하다. 화를 내는 것도, 그로 인해 싸우는 것도 싫다는 사람들은 '무기력증'을 겪는 것과 다름 없다. 무기력과 무관심은 살아감에 있어 최악이다. 죽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많은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크고 작은 다툼과 그로 인한 감정적 리스크는 상처가 된다. 하지만 상처와 갈등이 있어야만 성장하는 법이다. 화내고, 울고, 싸우는 과정 이후에야 화해와 갈등 해결이 오는 법이다. 따라서 우리는 감정을 표현해야만 한다. 물론 막무가내식 화내기는 좋지 않지만 감정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테니까.

결국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감정 표현의 중요성을 확인시키기 위한 작품이다. 감정 차단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를 감상자들에게 체감시킴으로써 감정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2. [아시아경제][초동여담] 굴과 편식

어릴 적부터 가리는 음식이 없었는데 유독 굴 하나만은 먹기를 꺼렸다. 처음에는 어린 입맛에 비릿한 맛과 물컹거리는 식감을 썩 내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못 먹는 것은 아니었지만 굴이 식탁에 올랐을 때 몇 번 손사래를 치니 가족들 사이에서도 "얘는 굴은 안 먹는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그러고 보니 도시에서 자란 아이답게, 못 먹는 음식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유년 시절 곧잘 "난 굴은 안 먹어"라고 얘기하고 다녔고 굴이 유일한 편식 목록에 올랐다. 그러면서 콩나물을 안 먹는 친구, 계란을 안 먹는 친구 등과 어울렸으니 어째 그 시절엔 애들이 다 그 모양이었지 모르겠다.

성인이 된 뒤에는 굴을 먹는다. 하지만 20여년을 멀리 했더니 즐겨 찾지는 않게 됐다. 생굴이 들어간 김장 김치, 잘 삶은 돼지고기 곁들인 굴보쌈,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굴짬뽕 등 모두 좋아하지만 굴전이나 굴무침, 굴튀김 등 굴이 주재료인 음식을 찾아서 먹지는 않았다. 단숨에 일을 처리해 마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남양 원님 굴회 마시듯 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아직 남양 원님처럼 먹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다 최근 남양 원님이었으면 반색할 상황과 맞닥뜨렸다. 상당한 양의 굴을 얻어 먹게 된 것이다. 제철 맞은 씨알 굵은 굴이 큰 봉지에 담겨 있었는데 물을 뺀 실제 양이 2~3㎏은 족히 돼 보였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인근에 논정마을이라는 곳이 있는데 예로부터 굴로 유명했다고 한다.


게서 서울까지 올라온 굴의 노고를 봐서라도 얼리기 전에 싱싱한 맛을 충분히 만끽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비록 즐기지 는 않지만 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의 안주로 대접 받고 있으니 핑계 삼아 집에서 굴 요리에 한 잔씩 마셔야겠다는 속내도 있었다.

그렇게 작정을 하고 며칠 동안 굴을 먹었다. 생굴을 초장에 찍거나 레몬 즙을 뿌려서 먹었고, 요즘 귀하다는 계란을 입혀 노릇하게 굴전을 부쳐 막걸리도 한 잔 마셨다. 무를 썰어 넣고 굴국을 끓였고 시원한 맛을 낼 거 같아 어묵탕에도 잔뜩 넣어봤다. 대파만 썰어 넣고 올리브유에 살짝 볶기도 했고 스파게티 면을 함께 버무려 굴 파스타도 만들었다.


싱싱한 생굴에서는 단맛이 돌았고 겨울 무와 함께 우러난 굴 국물에서는 간하지 않아도 감칠맛이 느껴졌다. 한껏 움츠린 익힌 굴도 진한 바다 내음을 품고 있었다. 굴을 돌에 핀 꽃이라는 의미로 '석화'라고 부르는 게 비로소 이해가 될 정도였다.

그렇게 먹다 보니 살면서 짧은 기간에 이렇게 굴을 많이 먹은 것은 처음이지 싶었다. 매일 굴 50개를 먹었다는 카사노바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왠지 기운이 나는 것도 같았다. 18세기 실존 인물인 지아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는 직접 쓴 책 '나의 편력'에 수많은 여인들과의 연애담과 함께 자신의 굴 사랑을 생생하게 고백한 바 있다.


어린 시절 편식을 하지 않았다면 카사노바처럼 어디서 얘기할 만한 편력을 갖게 됐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편견으로 멀리했던 것을 일부러라도 가까이 하니 그 매력을 새삼 느끼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비단 굴뿐만은 아닐 것이다.


3. [경향신문][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블랙리스트 춤꾼

낯선 도시는 황량했다. 뫼비우스 띠처럼 길게 이어진 건물이 불쑥 솟은 도시는 건물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에워싼 길을 돌고 또 돌아도, 블랙리스트 명단을 만든 이들을 구속하라고 소리쳐도, 건물은 뭣 하나 토해내지 않았다. 드나드는 이 없이 해가 지고 건물에는 불이 켜졌다.


마침 그날은 보름 전날이었다. 살짝 이지러진 달은 휘영청 밝았고, 맨땅을 무대로 삼은 이들의 노래는 아름다웠다. 노래를 들으며 울적했다. 멋대로 예술가를 솎아낸 이들의 뻔뻔함을 보면서 한 일도 없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들어간 나의 부끄러움과 마주해야 했다. 나 또한 이지러진 세상의 일부가 아닌가, 나는 대체 뭘 했는가 자괴감이 들 무렵 그가 나섰다.

맨발로 차가운 땅을 딛고 선 그는 음악이 나오자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어깨를 젖히고, 팔을 휘젓고, 등을 굽히고. 조심스러우면서도 격렬한 그의 몸짓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의 몸짓은 소리 없는 언어이고, 외침이었다. 누구인가? 얼핏 본 그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그의 춤이 끝나갈 무렵 광화문 문화예술인 캠핑촌에서 여러 번 마주친 남자 하나를 떠올렸다. 그를 단박에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의 얼굴이 무대에 오른 순간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니, 그는 춤사위에 따라 표정이 달라진다. 무대에서 나온 그는 수굿하게 걷다가 눈이 마주치면 따뜻하게 웃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존재가 예술일 수 있겠구나. 그러고 보니 주변에 있던 많은 이들이 그랬다. 노동자들이 싸우는 곳에서 늘 뭔가를 만들어 내는 판화가도, 부당한 세상에 맞서느라 시를 쓸 시간조차 없을 시인도, 겨우내 광장에서 깃발을 들고 서 있는 춤꾼도. 그들은 존재 자체가 예술이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만든 이들은 설마 그걸 알았던 것일까? 그 예술의 가치를, 그 예술의 힘을! 그걸 안다면 무엇으로도 그들의 발목을 묶어 놓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았을까? 블랙리스트 버스를 타고 세종시에 다녀오면서 생각했다. 블랙리스트 따위는 절대로 만들지 않는 세상을 못 만든다면, 제대로 맞서 보고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라도 하자고. 뻔뻔한 세상에 부끄러움 없이 맞서 보자고.


4. [국민일보][영화이야기] 중국의 실체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중국 영화 ‘나의 전쟁’(2016)이 그 답을 말해준다. 중국 최대 국영 영화사 중국전영집단공사가 홍콩 인기 상업영화 감독 팽순(옥사이드 팽)을 데려다 만든 전쟁영화다.

6·25전쟁에 민간 ‘지원군’이라는 명분으로 동원된 중국군이 미군과 싸우는 얘기지만 스토리나 장면 구성 등은 촌스럽다. 게다가 사실 왜곡도 많다. 6·25 당시 한반도에 온 중국군은 보급물자는커녕 총조차 변변치 않았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중국군 병사들이 경기관총으로 무장하고 미군과 대등한 화력으로 싸운다.

중요한 것은 6·25와 한반도를 보는 중국의 인식과 태도다. 영화 첫머리에 나오는 배경설명 자막은 이렇다. ‘1950년 6월 25일 남북한 사이에 대규모 내전이 발발했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이익을 지키기 위해 코리아 내전에 공공연하게 군사적으로 간섭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코리아 침공에 나섰다.’ 이게 중국이 보는 6·25다. 그러면서 ‘중국은 코리아정부의 요청에 따른 대응조치로 항미원조(抗美援朝)의 전략적 결정을 내리고 중국 인민지원군을 신속히 소집해 코리아전쟁에 참여했다’고 한다.

여기서 중국이 말하는 ‘코리아정부’나 ‘미국이 코리아를 침공했다’고 했을 때의 코리아는 문맥상 당연히 북한이다. 나아가 중국은 한국을 속국쯤으로 취급한다. 그렇지 않다면 6·25가 어떻게 해서 ‘중국인(나)의 전쟁’이 되는가. 한국을 속방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런 발상은 나올 수 없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한국에 대한 중국의 실체를 드러냈다. 적어도 중국은 한국의 ‘우방’이 아니다. 그런데도 중국이 한국 경제에 다소 도움이 된다고 해서 마냥 중국에 아부하고 눈치 보는 일부 정치지도자를 포함한 얼빠진 한국인들이 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만 걱정하지 말고 한국에 ‘상국(上國)’ 행세를 하면서 남북한을 상대로 이이제이(以夷制夷) 식으로 장난질 치는 중국의 대국놀음, 패권국가화를 더 경계해야 한다.


5. [한국일보][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엄마와 이별하는 시간

열흘 전, 엄마를 여의었다.

오래도록 곁에 머물기 원하는 가족의 소망을 뒤로 한 채 여든넷이 되는 새해 첫 일주일을 생의 마지막 주간으로 삼아 고이 떠나셨다. 허나 아직 믿을 수가 없다. 두 눈으로 당신의 끝 숨을 보고 경황없이 상을 치른 뒤 기어이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까지 지켜봤는데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지금도 “밥 먹어야지” 하시며 불쑥 밥상을 들이미실 것만 같다.


차라리 깨어야 할 헛된 꿈속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어머니라는 존칭보다는 늘 ‘엄마’라 부르며 지천명이 된 지금껏 당신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살아왔다. 엄마도 그리 불러주는 걸 한결 좋아하셨다. 이제 그 치맛자락도, 당신의 따사로운 체취도 다시 느낄 수 없는 이 현실이 무척이나 야속하고 원망스럽다. 그러나 무엇을 해도 후회될 일 또한 온통 머리를 쥐고 흔드는 걸 보니, 역시나 불효자를 면키 어려운 자식으로서 지난 무심함 들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며칠 전 무심코 자동차 트렁크를 열었다가 울컥 눈물을 쏟을 뻔했다.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엄마의 신발 때문이었다. 지난해 초가을 경 집을 나오셨다가 병 진단 후 바로 입원하셔야만 했던 엄마는 10월 중순 어느 날 일시적으로 퇴원하셨다. 그때 내 차에 신발을 포함한 당신의 짐들을 넣어두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병원을 나서면서 들뜬 기분을 감추지 않으셨던 엄마는 당일 저녁에 뇌졸중이 오면서 급히 119 구급차를 타고 재입원을 하셔야 했다.


그날 이후 엄마의 신발을 차 트렁크에서 내놓을 수 없었다. 다시 그 신발을 신겨드릴 날이 오기를 바랐다. 내 가슴에 품듯 내어놓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결국 엄마는 그 신발을 더 이상 신지 못하셨다. 엄마와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은 그렇게 다가왔다.

지난 해 가을, 엄마 온몸에 퍼진 암 덩어리와 동시다발적으로 찾아온 동맥박리, 뇌졸중 등 여러 합병증을 확인한 순간부터 이제 눈앞에 펼쳐질 상황을 인정해야만 했다.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이승의 연이 다 했음을 거부할 도리가 없었다. 생명연장을 위한 무리한 의료행위는 엄마의 고통만 가중시킬 뿐 의미가 없었다. 우리가 할 최선의 방편으로 가족들 모두 수다스러울 정도로 많은 얘기를 건넸다. 너무 애쓰셨다고, 너무 사랑한다고 끝없이 속삭이는 시간도 뒤를 이었다.


그와 더불어 나는 한없이 엄마의 눈빛과 온몸을 살폈다. 점점 흐릿해지는 눈동자를 보며 여전히 자식의 얼굴을 봐 주시니 슬픔보다는 그저 고마운 마음에 웃으려 애를 썼다. 퉁퉁 부은 손과 발등, 창백한 살갗에 눈을 두기보다는 여전히 유지되는 체온에 기뻐하며 매만지기를 반복했다. 아직 살아 숨 쉬고 계시다는 것에, 엄마의 온기가 남아 있음에 늘 감사해 했고 울컥거리는 심정의 일부나마 누를 수 있었다.


하루하루가 소중했던 그 시간 동안 나의 카메라에는 엄마의 모습들이 귀하게 담겼다. 당신의 온몸을 살피며 만지는 그 시간들은 나의 이별의식이었고 엄마의 존재의미를 깊이 되새기는 제례의 과정이었다. 사진을 찍는 시간이 아닌 엄마와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엄마의 영정사진 앞에 아침저녁으로 생전에 좋아하셨던 숭늉과 보리차를 번갈아 올려드리며 사진 속 엄마의 뺨을 두어 번 매만진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직접 찍은 사진 속 엄마의 표정은 한없이 자애롭고 평온하기만 하다. 평생 우리 남매들을 향해 주셨던 그 표정 그대로다.


병상을 지키던 지난 3개월의 틈새에서 아직 헤매고는 있지만, 당분간 훨씬 이전으로 돌아가 엄마와의 아름다웠던 지난 기억들을 하나하나 들추어보려 한다. 엄마와 이별을 준비했던 시간은 당신의 삶이 내게 가장 귀하고 아름다웠음을 증명하는 여정이기도 했던 탓이다. 무에 그리 서둘러 가셨느냐고 부질없이 들던 생각의 한 조각 정도는 이제 걷어내고 싶다. 엄마와 마주하는 또 다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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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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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새누리당의 당명 변경, 국민 눈속임이 아니어야

재창당을 추진 중인 새누리당이 당명과 로고, 당색을 모두 바꾸기로 하고, 설 연휴 전에 당명을 공개 모집하기로 했다. 이로써 지난 2012년 2월 2일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뀐 지 5년 만에 새누리당이란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변경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박근혜당’이나 마찬가지인 지금의 당명으로는 차기 대선 승리는 고사하고 당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당명 교체로 새누리당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회의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전례로 보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꿀 당시 한나라당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였다. 박희태 전 대표의 당 대표 경선 돈 봉투 사건이 터졌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저축은행 회장들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2011년 10`26 재보선에서도 패배했다.



이런 위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당명을 바꾸고 새 정강`정책도 만들었다. 하지만 국민은 바뀐 이름에 걸맞은 혁신을 체감하지 못했다. 간판만 바꿔단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당명 교체 후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52석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했고, 그 여세를 몰아 같은 해 12월 대선에서도 이겼다.



새누리당은 이런 기억을 깨끗이 잊어야 한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천양지차다. ‘최순실 사태’로 새누리당은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12월 대구경북시도당에서 시민들이 당 간판에 ‘내시환관당’ ‘정계은퇴당’ ‘주범이당’이란 스티커를 붙이며 조롱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새누리당의 ‘안방’이 이러니 다른 지역의 민심이 어떨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당명을 바꾼다고 해서 떠나간 민심이 되돌아올 리 없다. 오히려 얄팍한 국면전환용 분식(粉飾)으로 비칠 수 있다. 결국 관건은 당명 변경이 아니다. 진정으로 새로 태어나겠다는 의지와 그 실천이다. 지금까지 여야를 막론하고 당명을 바꾼 이유는 똑같았다. 대부분이 당장의 위기 탈출을 위한 신장개업(新裝開業)이었다. 새누리당의 당명 변경이 또 하나의 신장개업에 그친다면 새누리당의 운명은 보나마나다.



2. 롯데 사드 협약, 중국 눈치보다 나라와의 약속이 먼저다

국방부가 16일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위한 성주 롯데스카이힐골프장과 남양주 군용지를 맞교환하는 계약이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종전 올 1월 중 교환계약이 체결될 것이라고 했던 발표와는 다르다. 이는 최근 사드의 롯데 소유 골프장 배치와 관련, 중국 진출 롯데 관련 기업에 대한 중국 당국의 세무조사 등 일련의 보복 조치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롯데는 국가 경계를 넘어 여러 기업을 경영하는 국내의 대표적인 대기업의 하나이다. 그런 만큼 진출한 국가와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기업은 대규모 투자에 따른 위험 감수와 함께 이윤 창출에 목을 맨다. 중국에 여러 기업을 둔 롯데로서는 사드의 한국 특히 롯데 소유 골프장에 대한 배치를 반대하는 중국 입장을 나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세무조사와 같은 중국 당국의 직접적인 압박에 따른 손실과 기업 이윤의 침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탓이기에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롯데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제 나라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린다면 이는 심각히 받아들여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그럴 일은 없다고 믿고 싶지만 지금 정황을 살펴보면 롯데의 태도에 의심의 눈길을 감출 수 없다. 이미 롯데는 지난해 국방부와 사드를 배치할 성주 골프장과 남양주 군용지를 교환한다고 합의했다. 국방부 역시 지난해 11월 이런 사실을 공표하고 지난해 말까지 골프장을 인수받아 늦어도 올해 10월까지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나라 안팎에 공식 발표했다.



가뜩이나 국내 정치권에서는 사드 찬반으로 국가 안보를 담보하려는 정부를 어렵게 하고 있다. 롯데마저 국익보다 기업 이윤에 매몰돼 국가와의 공적인 약속조차 깨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는 지난해 롯데그룹 경영 비리 수사가 신격호 사주 일가의 불구속으로 마무리된데다 지금 대통령 업무정지의 국정 혼란을 틈탄 계산으로 비칠 수 있다. 그렇다면 분명한 오판이다. 제 나라와의 약속도 어기는 롯데 기업을 중국이 곱게 볼 턱이 없어 두 나라의 신뢰를 모두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가 현명한 판단을 할 때다.



[매일경제]

3. 삼성 신뢰도 추락에 대한 외신의 우려 착잡하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삼성의 글로벌 신뢰도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해외 언론들이 쏟아낸 삼성 가치 추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커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WSJ는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메이커의 리더가 한국의 부패 스캔들에 걸려들었다"며 "갤럭시 노트7 대량 리콜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삼성전자가 리더십 공백에 직면하게 됐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최소한 올해 말까지는 대규모 인수·합병(M&A) 결정을 미뤄야 할 것"이라면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와병으로 인한 경영 공백에 더해 또 하나의 거대한 충격"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삼성그룹의 승계와 리더십에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고, 니혼게이자이신문도 M&A 등 중요한 경영전략의 차질을 예상했다.

박영수 특검팀은 경제적 파장에 대한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국가 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구속 수사에 대한 이유로 정의 실현을 내세운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범죄 혐의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도주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는 글로벌 기업의 리더를 구속하려는 데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특검이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불구속 수사와 무죄추정원칙을 깬 것은 성과에 집착해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외신의 우려처럼 이 부회장이 구속될 경우 삼성의 초일류 기업 명성과 혁신의 이미지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지난해 500억달러를 돌파해 글로벌 시장에서 7위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만으로도 반도체, 스마트폰 등으로 공들여 쌓아올린 브랜드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실제로 구속된다면 삼성전자 매출 타격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기업이 정경유착 혐의가 있다면 수사를 받고 혐의가 입증되면 처벌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특검이 밝힌 뇌물공여액 433억원에 미르와 K스포츠재단 출연금이 포함된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오늘 법원이 영장 실질심사를 통해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를 결정할 텐데 오로지 법과 원칙에 입각해 판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4. 결국 `하드 브렉시트` 지구촌 고립주의 치닫나

영국 정부는 결국 유럽연합(EU)과 가장 거친 방식으로 갈라서기로 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어제 EU 탈퇴 계획을 밝히면서 이른바 하드 브렉시트(hard Brexit)를 천명했다.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완전한 홀로서기를 하겠다는 선언이다. 영국이 이민 통제와 무역협정 체결에서 더 이상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면 EU에 한쪽 발을 걸치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영국과 EU는 2년간 이혼 협상을 거쳐 2019년 봄에 완전히 갈라선다. 작년 6월 브렉시트 투표로 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된 후에도 시장에서는 영국이 이민 통제권과 단일시장 접근권을 놓고 어떤 식으로든 타협할 것이라는 기대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양측이 거칠게 헤어지게 되자 시장은 다시금 충격을 받고 있다.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급락했다. 브렉시트 투표 직전 1.5달러에 가까웠던 파운드화는 이제 1.2달러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하드 브렉시트는 글로벌 경제에 새삼 충격파를 몰고 올 수 있다. 금융 허브 런던의 위상이 흔들리고EU 역내 교역이 움츠러들면 한국처럼 금융과 실물 경제 개방도가 높은 나라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게 된다. 브렉시트가 세계 교역과 자본 흐름에 불러올 혼란은 단기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가장 걱정스러운 건 그러지 않아도 갈수록 거세지는 각국의 보호주의와 고립주의 물결이 브렉시트를 계기로 더욱 거칠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1957년 6개국으로 시작해 28개국으로 확장한EU의 60년에 걸친 통합 작업은 브렉시트로 확실히 제동이 걸렸다. 상품과 자본, 사람과 기술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구하는 세계화의 흐름은 이미 곳곳에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와 고립주의가 더욱 강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중국 시진핑 주석이 세계경제포럼이 열리는 다보스에서 세계화를 옹호하는 장면은 역설적이다. 우리로서는 유럽과 미국에서 갈수록 활개칠 보호주의와 고립주의의 충격에 대비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국가 발전 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5. 美대사관 벽에 레이저빔, 그곳이 한국대사관이라면

박근혜정부 퇴진을 요구해온 촛불집회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지난 14일 주한 미국대사관 벽에 'NOTHAAD'란 문구를 레이저 빔으로 비추는 일이 벌어졌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반대한다는 의미인데 촛불집회가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는 것도 걱정할 만하고 미국 대사관에 레이저 빔을 비추는 행위도 우려할 만하다.

민주주의 사회에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그런 의견들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을 존중하는 가운데 법과 규정 속에서 제시돼야 한다. 우리가 사드 배치를 결정한 이후 불만을 품은 중국이 온갖 보복 조치를 동원하고 있는데, 그런 조치들이 국제법을 위반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만약 중국인들이 베이징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이런 식으로 레이저 빔을 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레이저 빔과 3차원 홀로그램을 이용한 시위와 집회가 불법인지 아닌지를 놓고는 아직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외교공관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에 따라 대사관 주변 100m 내에서는 집회를 금지하는 취지를 감안하면 외교 결례라는 지적과 국제법 위반이라는 논란을 언제든 불러올 수 있다. 

그러잖아도 우리는 지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북핵 문제에서부터 경제 통상에 이르기까지 한미 양국 사이 정책을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조율해야 할 때다. 또 사드 배치에 반발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통해 국제 협정과 규범을 준수하도록 촉구하며 맞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롯데가 사드 배치에 용지를 제공하기로 했다가 지난해 11월 중국 현지에서 느닷없는 세무조사와 소방·위생점검을 당한 뒤 머뭇거리고 있는 것만 봐도 중국의 부당한 압박은 예사롭지 않다.

차근차근 국제 규범과 법률을 따져 대응해야 할 이 예민한 시기에 이른바 대선 주자들은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혼란을 오히려 가중시키고 있다. 여기에 촛불집회마저 국정농단 규탄이라는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사드 배치 반대를 내걸고 공연히 외교 결례와 국제법 위반 논란까지 초래한다면 참으로 걱정할 만한 일이다.



[세계일보]

6. 기업 총수 사면 뒷거래는 헌정 농단이다

국정농단 사태가 사면권 농단으로 이어진 사실은 충격적이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그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사건에 출석해 2015년 광복절 특사를 앞두고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최태원 SK 회장의 사면을 검토했고 SK 측에 미리 사면 사실을 알려줬다고 증언했다. 최 회장은 당시 횡령 등 혐의로 징역 4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었다.

안 전 수석은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국민감정이 좋지 않으니 사면 정당성을 확보할 만한 것을 SK에서 받아 검토하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청와대의 의도대로 SK그룹은 SK하이닉스의 3개 반도체 생산라인에 총 46조원을 투자한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최 회장의 사면을 위해 청와대와 SK가 ‘짜고 쳤다’는 얘기다.



안 전 수석은 최 회장의 사면을 사전에 알려준 뒤 최 회장 사면 당일인 2015년 8월 13일 김창근 당시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게서 ‘감사합니다. 하늘 같은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란 문자 메지지를 받았다. 최 회장은 사면된 뒤 박 대통령과 독대하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111억원을 냈다.

사면권은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본질적으로 사법권을 무력화하고 특정인에게 특혜를 주는 국가 권력이다. 대통령 개인의 권력이 아닌 만큼 대통령 마음대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 뚜렷한 원칙과 기준을 갖고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행사돼야 한다. 사면권을 남발하면 법치의 근간이 흔들린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사면권 행사는 민감한 문제다.

비록 사면권 행사가 정치적 흥정이나 정략적 차원에서 이뤄진다는 비판이 나왔어도 대통령 개인의 이익을 위해 악용되지는 않을 것이란 최소한의 믿음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면 뒷거래’ 의혹으로 이런 기본적인 신뢰마저 송두리째 무너졌다. 국민이 헌법의 이름으로 부여한 사면권을 대통령이 기업의 약점을 잡아 모종의 거래를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검찰 수사와 특검 수사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 실상만으로도 기가 찰 지경인데 사면권까지 거래 수단으로 삼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사면 뒷거래는 국민을 속이고 헌법을 유린한 중대 범죄다.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법치 불신이 또다시 고개를 들지 않을까 걱정된다. 진상을 철저히 밝혀 헌법과 법치를 우롱한 죄를 엄하게 물어야 한다.



7. 블랙리스트는 있는데 작성 지시한 사람 없다니

‘왕실장’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어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됐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관련 의혹을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무답’으로 일관했다. 조 장관은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특검은 김 전 실장이 정무수석실에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판단한다. 2014년 6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폭로로 드러난 블랙리스트는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지원에서 배제할 목적으로 작성한 명단이다. 이 리스트는 청와대 정무수석실과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로 전달됐다고 한다.



조 장관은 정무수석으로 일할 당시 김 전 실장의 지시를 받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의심을 받고 있다. 특검은 그가 블랙리스트에 관해 보고받는 등 작성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을 확보했다. 하지만 조 장관은 “블랙리스트를 본 적도, 만든 적도 없다”며 강력 부인하고 있다. 최근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으로부터 “지금도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18번이나 받고서야 마지못해 그 존재를 인정했을 뿐이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문화계 인사는 1만명에 이른다. 그런 광범위한 명단은 한두 부서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권력기관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는 정황이 곳곳에 포착된다. 그런 마당에 “나는 모른다”고 발뺌한다면 어떤 국민이 믿겠는가. 이미 조 장관이 정무수석 시절에 함께 일했던 비서관 2명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마당이다. 무조건 모르쇠로 부인할 일이 아니다.

한류문화로 빛나는 문화·예술의 저력은 자유로운 창의활동에서 나온다. 더구나 문화융성은 박근혜정부가 국정기조로 내세운 핵심정책이 아닌가. 그런 정부에서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탄압했다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이고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박 대통령마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작성에 박 대통령이 관여했는지에 관해서도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유신정권에나 있을 법한 블랙리스트의 망령이 다시는 살아나지 않게 하려면 특검이 진실을 가려 엄벌하는 수밖에 없다. 특검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8. 다보스 경고장, 우리 사회는 어찌 받고 있나

세계 각국의 지도층 1200여명이 참석한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이 어제 개막됐다. 올해 주제는 지난해와는 다르다.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다룬 지난해와는 달리 지구촌 위기를 주제로 삼았다. 다보스포럼은 ‘세계위험보고서’에서 “경제적 불평등, 사회 양극화, 환경위험 증대가 앞으로 10년간 지구촌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위험성에 적색 경고등을 켠 것이다.

부의 불평등은 전 세계적인 문제로 부상한 지 오래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이 발표한 보고서 ‘99%를 위한 경제’에 따르면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제프 베저스 아마존 창업자 등 세계 최고의 갑부 8명의 재산이 소득 하위 세계 50% 인구의 재산과 맞먹는다. 이들 ‘슈퍼리치’의 재산이 소득이 적은 36억명의 재산과 같다는 뜻이다.



부의 편중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1988~2011년 세계 최하위 10%의 소득이 매년 1인당 3달러(3500원) 증가하는 동안 최상위 10%의 소득은 매년 1만1800달러(약 1400만원)씩 불어났다. 상위층의 증가 속도가 하위층의 약 4000배나 된다. 이런 상황에서 협력과 공생의 싹이 움틀 수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지구촌의 갈등과 반목이 그런 산물이다.

경제적 양극화의 문제는 우리에게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빈부 격차와 사회 양극화는 이미 우리 사회의 고질이다. 최근 극심한 불황 속에 그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늘어난 자영업자가 4년여 만에 가장 많은 14만명에 달했다는 사실이 증표의 하나다. 직장에서 쫓겨나 생계를 잇기 위해 무작정 창업에 뛰어든 사람이 많다고 한다. 실업자는 지난해 12월 100만명을 넘어섰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백수의 멍에를 짊어진 청년실업자는 43만5000명에 이른다. ‘흙수저의 좌절’이 진하게 묻어나는 현실이다.

사회 양극화와 부의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려면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대선주자들이 쏟아내는 반값 등록금, 기본소득제, 군 복무 1년까지 단축 따위의 포퓰리즘 공약으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는 양극화 해소와 국민 통합이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되레 국론을 분열시키고 공동체 존속을 해칠 뿐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다보스포럼이 이번 의제로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을 정한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포럼은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포용적 성장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치 지도층의 자기반성과 성찰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데일리]

9. 연초부터 서민들 짓누르는 ‘물가 폭탄’

신년 벽두부터 곳곳에서 “물가 때문에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다. 달걀값 폭등은 조류인플루엔자(AI)라는 특수요인 때문이라 쳐도 각종 신선·가공식품 등의 생활물가와 공공요금까지 줄줄이 올라 서민들의 고통이 극심하다.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던 게 언제라고 이젠 ‘물가 폭탄’ 걱정이란 말인가.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는 탄식이 공연한 엄살이 아니다. 통계청이 어제 내놓은 가계수지 통계에 따르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작년 3분기 월평균 소득은 444만 5000원으로 1년 전에 비해 0.65% 증가에 그쳤다. 반면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에 이른다. 이 정도만 해도 물가 안정세가 여전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속사정은 딴판이다.

무, 배추, 당근 등은 예년의 2배 수준으로 가격이 치솟았고 다른 신선식품도 수십%씩 오른 품목이 수두룩하다. 소주와 라면, 빙과류, 과자 등의 가공식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선발업체가 앞장서면 후발업체들이 뒤따르는 식으로 가격인상 대열에 합류한 결과다. 여기에 외식비와 영화 관람료를 비롯한 서비스요금도 덩달아 뛰고 대중교통, 상하수도, 쓰레기봉투 등의 공공요금과 주민세가 나란히 올랐다.

어느 정부에서건 물가 안정은 최우선 국정과제다. ‘최순실 사태’로 식물정부나 다름없다는 변명은 안 통한다. 어설픈 초동대응으로 AI를 사상 최악으로 키운 것도 그렇지만 생활물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물가지표의 착시현상에 속아 지자체들이 공공요금을 앞다퉈 올려도 중앙정부는 보고만 있거나 외려 부추긴다는 대목에선 기가 찰 뿐이다. 국제유가가 오름세로 돌아섰고 탄핵정국이 끝나면 곧바로 대선 정국으로 이어져 한동안 사회 혼란이 지속될 게 뻔한 터에 더 이상 손 놓고 있다간 ‘물가 태풍’을 맞기 십상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제 민생물가점검 당정회의에서 신선채소 공급을 확대하고 가공식품에 대한 민관합동 감시를 강화하겠다며 설 물가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그 정도론 어림없다. 이제라도 공공요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고 비축물량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가능한 정책수단을 있는 대로 동원해 생활물가를 잡는 것만이 혹한에 처한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지름길이다.



10. 당명을 구멍가게 간판처럼 바꾸는가

새누리당이 당명을 바꾸기로 하고 이르면 설 연휴 전에 일반 공모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지금의 이름으로는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법하다. 이를테면, ‘박근혜 흔적’ 지우기다.



2012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지 5년 만에 다시 간판을 바꾸는 셈이다. 명색이 집권당인데도 당명의 유효기간이 5년밖에 안 된다는 게 대한민국 정치 현실의 씁쓰레한 단면이다.

이러한 당명 변경작업이 재창당 차원에서 이뤄진다는 사실부터가 눈길을 끈다. 걸핏하면 ‘재창당’을 들먹이지만 그때마다 땜질식 처방에 머물렀다는 게 문제다. 5년 전 당명을 바꿀 때도 기존 한나라당이 기득권에 집착하고 ‘부자 정당’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는 이유가 제시됐다. 그 전 신한국당이라는 이름에서 불과 2년 만에 한나라당으로 바뀔 때도 마찬가지였다. 말로만 재창당 정신을 앞세웠지 실제로는 바뀐 것이 없었다는 얘기다.

아무리 이름을 바꾸더라도 사람이나 생각들이 그대로라면 근본적으로 바뀔 수가 없다. 새누리당이 인명진 비대위원장 체제에서도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 등 친박계 핵심인물에 대한 인적 청산이 지체되고 있는 것이 그런 사례다. 당 운영에 있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인적개편 작업 없이 당 이름과 로고, 색깔을 바꾼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다른 정당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만 해도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창당되어 20대 총선을 앞두고 1년여 만에 바뀐 이름이다.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에 따라 당명도 자주 바뀌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여야 정당 간에 동원할 수 있는 용어들은 거의 당명에 동원한 상태다. 조기 대선이 다가오면서 정치인들이 헤쳐모이는 수순이 진행되면 또 새로운 당명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지금에 와서 이름에서부터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사례를 새삼 들먹일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도 같은 사례다. 그만큼 정당 내부적으로 자신이 있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이러한 ‘100년 정당’은 요원한 것인가. 이름을 자주 바꾸기보다는 올바른 정치를 펴겠다는 다짐을 제대로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이호준의 시간여행] 굴뚝이 상징하던 것들

할머니는 땅거미가 마당을 서성거릴 무렵이면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땟거리가 떨어져 빈속에 물을 채우고 잠들어야 하는 날에도 건너뛰는 법이 없었다. 가마솥의 물이 와글거리며 끓어오를 때까지, 땔감을 밀어 넣고는 했다. 그 순간, 당신의 표정은 황산벌로 떠나는 계백마냥 무겁고 경건했다.

겨울에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온기가 필요 없는 계절에도 불을 지피는 건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남의 산에서 ‘도둑나무’를 해 와야 하는 어린 손자에게는 속 터지는 일이었다. 왜 불을 때느냐고 물으면 “허리가 아파서”라거나 “방이 눅눅해서”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고는 했지만, 둘러대는 말이라는 것 정도는 금세 알 수 있었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니었거니와 아프다고 함부로 눕는 법이 없는 당신이었기 때문이다.

불을 지피는 걸로 그날의 ‘의식’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바깥마당 감나무 아래 서서 굴뚝마다 연기가 오르는 양짓말, 아니 그보다 먼 볏고개에 시선을 얹는 게 부엌에서 나온 할머니가 하는 일이었다. 작은 몸피가 어둠 속으로 조금씩 녹아들어가 어둠과 하나가 될 때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할머니의 그 ‘이상행동’을 이해하게 된 건 세월이 한참 지난 뒤였다. 당신은 소년 적에 집을 떠난 아들, 즉 내 삼촌을 기다린 것이었다. 객지를 떠돌던 아들이 지친 몸으로 돌아와 고갯마루에 섰을 때, 자기 집 굴뚝에서 연기라도 나야 한 달음에 달려올 거라 믿었던 것이다. 봉화를 올리듯, 아들을 부르기 위해 굴뚝에 연기를 피워 올렸던 것이다.

민초들에게 굴뚝은 연기를 배출하는 도구만은 아니었다. 내 할머니가 ‘봉화’로 삼았던 것처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들판에서 놀던 아이들은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에게 굴뚝의 연기는 ‘그리움’이라는 화인(火印)으로 찍히기 마련이었다.

굴뚝의 기억은 아이들이 자라 객지로 나간 뒤에도 고향을 상징하는 깃발로 가슴마다 펄럭거렸다.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어귀에 섰을 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이면 느닷없이 안도감에 휩싸이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아궁이에 묻어 두고 떠난 감자 익는 냄새라도 맡은 듯, 괜히 목이 메고 눈물마저 찔끔거렸던 것이다.

굴뚝에는 가난한 민초들의 삶이 투영되기도 했다. ‘굴뚝 보고 절한다’는 말은 빚에 쪼들려 야반도주하는 사람이 이웃에게 인사할 수 없어서 굴뚝을 보고 절을 한 뒤 떠난다는 데서 나왔다. 굴뚝에서 나는 연기를 보고 그 집의 상황을 판단하기도 했다. 연기가 난다는 것은 그 집이 끼니를 해결했다는 뜻이었다.

도시 빈민의 삶을 그린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는 난장이와 대비되는 거대한 굴뚝이 등장한다. ‘아버지’가 벽돌공장 굴뚝에 올라가 고단했던 삶을 마감함으로써 굴뚝으로 상징되는 산업화시대의 비극을 보여 준다.

시간은 언제부터인가 이 땅에서 굴뚝을 지워 버리기 시작했다. 난방과 취사 연료가 바뀌면서 굴뚝에서 오르던 연기도 사라졌다.

설이 가까워져 오면서 기억 저편에 물러서 있던 ‘할머니의 굴뚝’이 생각난다. 객지를 떠돌다가 돌아와 고갯마루에 선 아들은 이제 무엇으로 어머니의 기다림을 확인할까? 굴뚝도 연기도 없는 고향 집을 바라보다 쓸쓸히 발길을 돌리지는 않을까.



2. [매일신문][매일춘추] 이경종 선생님, 잊지 않겠습니다.

사흘 동안 내리던 눈이 그쳤다. 섬은 흑과 백의 대조를 이루며 한 폭의 수묵화로 남았다. 섬 곳곳에 햇살이 고르게 비추는 날, 우리는 섬의 북쪽 작은 초등학교 운동장에 서 있었다. 그리고 에메랄드 빛의 겨울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았다. 울릉도 천부의 바다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서른다섯 살의 선생님 이야기가 있다. 이미 사십여 년이 흘렀고, 수억 겁의 세월이 다시 흐른다 해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저기, 천부 앞바다에 서려 있다.

1976년 1월 17일, 울릉도에 폭설이 쏟아졌다. 동`서`남`북 한 치도 예상할 수 없는 섬의 일기 속에 선생님은 전날 벼랑길을 걸어 천부에서 30㎞ 떨어진 도동으로 향했다. 6학년 담임이었던 선생님은 학비가 없어 중학교 입학을 포기하려는 두 제자의 등록금을 내고, 17일 오후 4시 무렵 만덕호에 오른다. 만덕호는 57명의 사람과 생필품을 싣고 도동항을 출발해 섬의 북쪽 오지마을 천부를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천부 앞바다는 북서풍의 영향으로 파도가 높고 거칠었다. 겨우 6t 남짓한 만덕호가 천부 선착장을 눈앞에 두고 몇 차례 파도를 맞아 결국 전복되었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바다로 흩어졌다. 학창시절 수영선수로 활동했던 선생님은 무사히 선착장에 도착하지만,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두 제자를 보고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선생님도, 제자들도, 그리고 서른일곱 명의 사람들도 영원히 마을로 돌아오지 못했다. 2017년 1월 17일. 고(故) 이경종 선생님 41주기 추모식이 천부초등학교에서 열렸다.



​눈 덮인 운동장을 가로질러 우측 계단을 오르면 나무 그늘 아래 자리 잡은 작은 추모비를 만난다. 평소 입담이 없으셨다던 선생님의 모습처럼 추모비는 오랜 세월 저리도 조용히 자리를 하고 있다. 우리는 거룩하게 묵념을 올리고 새하얀 국화를 헌화한다. 무슨 말로도 감사함을 대신할 수 없지만 제자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던진 선생님의 숭고한 이야기를 영원히 잊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하얀 화강암 위에 반달형의 검은 돌이 동그란 두 개의 돌을 안고 있는 순직비의 형상은 바로 두 제자를 안고 있던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이다.



선생님! 듣고 계신가요? 비문을 낭독하는, 추모사를 낭독하는 목소리를요. 오늘 우리는 선생님의 거룩한 추모비 앞에서 눈을 감습니다. 그날의 이야기를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자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셨던 선생님의 이야기는 오늘에서 내일로, 또다시 내일로 우리의 입에서 입으로 영원히 퍼져 나갈 것입니다.



​-2017년 1월 17일 울릉도 북쪽 천부초등학교에서 참스승을 만나다.



3. [경향신문][정유진의 사이시옷] 일단, 미안합니다

지난해 여름, 페루에서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잉카트레일을 걸었을 때의 일이다. 3박4일 동안 산속에서 캠핑을 하며 해발 4000m 이상의 안데스 산맥 봉우리를 넘어야 하는 나름 험난한 여정이었다.



나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온 코트니라는 이름의 여성과 같은 텐트를 쓰게 됐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도 씩씩하게 잘만 걷던 그는 산소 부족으로 이미 절반은 초주검이 된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

“넌 결혼했니? 아님 싱글?”
“응, 나 싱글인데.”
“그렇구나. 애는 있고?”
“나 싱글이라니까.”
“그래 알아. 애는 있냐고.”

‘숨쉬기도 힘든데 왜 자꾸 같은 대답을 반복하게 하지?’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한 박자 늦게 깨달았다. 이 대화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대답했다. “응, 나는 싱글이고 아이는 없어.” 알고 보니 코트니는 귀여운 아들을 키우고 있는 이혼 여성이었다. 한부모 가족에 대한 기사를 그렇게 읽고 써 왔으면서도, 조금만 방심하면 이렇게 되고 만다. 도대체 나의 일상적 사고 속에 피부처럼 들러붙은 고정관념과 편견의 뿌리는 얼마나 깊은 것일까.

최근 방송인 이다도시가 TV에 나와 인터넷 쇼핑몰 회원가입 신청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혼 여성인 그는 ‘미혼’ ‘기혼’을 묻는 항목이 나오자 당연히 ‘미혼’에 체크했다. 그런데 ‘미혼’을 선택하는 순간 아래쪽에 있던 자녀 정보 기입란이 자동으로 사라져 버리더라는 것이다. 이다도시는 “이 나라에서는 아이가 있으면 미혼일 수 없다는 뜻 아니냐”라면서 “미혼으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나 혼자는 아닐 텐데, 그걸 보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코트니에게 했던 실수가 떠올랐다. 그리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설마 인터넷 쇼핑몰 개발자가 기술이나 시간이 부족해 미혼-자녀 정보 기입란을 못 만들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사회 전반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편견의 굴레는 나의, 그리고 우리의 무의식 속에 얼마나 깨알같이 침투해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 편견의 고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돼 있어서, 나는 가해자이면서 때로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소위 ‘결혼 적령기’를 넘긴 이 땅의 미혼 여성들은 몇년치 겪을 수모(!)를 한번에 당해야 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열렬한 시청자였다던 박 대통령의 병원 예약명이 ‘길라임’이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어떤 사람들은 “남편도 없고 애도 없으니 밤에 드라마나 보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결혼 안한 여자가 대통령이 되니 신통치 않다”는 ‘망언’을 남겼다. 아니, 그래서 ‘결혼한 남자’인 전 전 대통령 본인은 과연 신통한 대통령이셨나.

미혼인 지인들과 모일 때마다 서로 자신이 겪고 들은 차별적 언사들을 공유하며 한풀이를 하다가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아마 우리도 지금 이 입장이 아니었다면, 그게 상대방에게 차별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른 채 무심히 똑같은 말을 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 우린 불쾌하면 불쾌하다고 더 크게 말하고 다니자. 상대방이 알아차릴 때까지.”

예전에 테드(Ted)에서 들은 강연 내용이다. 흑인 여성과 백인 여성, 그리고 백인 남성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흑인 여성이 백인 여성에게 물었다. “넌 아침에 거울을 보면 뭐가 보이니?” 백인 여성이 대답했다. “한 명의 여성이 보여.” 흑인 여성이 말했다. “그게 너와 나의 차이점이구나. 나는 한 명의 ‘흑인 여성’이 보이는데.” 그렇다면 백인 남성은 거울에 무엇이 보인다고 말했을까. 답은 “한 명의 인간(Human being)”이었다.

사람은 원래 자신이 직접 경험해본 적 없는 굴레를 잘 보지 못한다. 백인 여성의 눈에는 인종이 보이지 않고, 백인 남성의 눈에는 인종과 젠더 모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환경이 존재를 규정하고,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중요한 건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언제든 무심코, 한 치의 악의 없이, 편견 어린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 아닐까.

지금의 한국은 그 누구에게도 미안해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 누군가가 불편함을 호소하면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돼 있는 편견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예민함부터 탓한다. 다수의 편견이 힘센 사회는 그로 인해 상처받은 소수에게 “소수의 관점을 다수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오히려 호통을 친다. 

자신이 언제든 상대방에게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내가, 우리가 변할 수 있다. 그래서 새해에는 나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기로 했다. 일단, 미안합니다. 그리고 노력하겠습니다.



4. [매일경제][필동정담] 사무라이 문화 속살

10년 전 미국 워싱턴 특파원 시절 교민 담당 총영사로부터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워싱턴 지역 경주향우회장 선거를 둘러싼 다툼이 미국 법원 소송으로 번졌는데 담당 판사가 총영사에게 "그런 일은 한국 사람들끼리 해결하라"는 전화를 해왔다는 것이다. 비슷한 소송이 비일비재한 데다 서로 한 치도 양보를 안 해 참다 못한 판사가 던진 말이었다. 취재해 보니 10만여 명인 워싱턴DC·북버지니아에 한인총연합회만 10개를 웃돌았다. 지역 향우회는 100여 개까지 헤아렸다. 

더 놀라운 건 5만여 명쯤 된다는 그 지역 일본 교민사회에는 단 하나의 일인회만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비슷한 명칭의 아류 교민회가 생겨나지 않는다. 먼저 한 단체가 생기면 대부분 그 우산 아래 들어가고 웬만해선 반기를 들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감투 쓰고 완장 차기를 좋아해서일까, 일본 사람들에겐 그런 근성이 없나, 궁금했다. 그러다 한 일본 학자에게서 들은 해석에 공감하며 무릎을 쳤다. 사무라이 문화 때문이었다. 주도권을 쥔 세력에 반기를 들려면 상대를 죽여야 할 뿐 공존은 없는 세계 말이다.



1868년 왕정 복고의 메이지유신 전까지 260개 번을 각각 다스리던 영주들을 떠받치던 사무라이들이 지배계급이었던 사회에서 민초들은 이기는 쪽 편을 드는 게 최적의 생존 방식이었다. 현대사회에서도 그들의 DNA에 이런 정신이 체화돼 있는 셈이다.

일본어엔 욕을 표현하는 단어가 딱 두 개밖에 없다고 한다. 지쿠쇼(짐승)와 바카야로(바보녀석)다. 이기지 못하면 죽음인 사무라이에게 싸움에서 진 자가 바카였다. 패배라는 수치를 당한 자보다 더 모욕적인 표현은 필요 없었던 것이다. 예의 바른 사람들이라 생긴 문화가 아니었다. 사무라이 문화에 전체가 뒤덮여 생긴 모습이다.

새삼 일본을 비교문화론 차원에서 짚어보는 건 최근 한일 갈등을 보며 우리의 일본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 부족했나 싶어서다.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를 둘러싼 일본 측의 무섭도록 치밀한 공세를 보면서 반(反)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쪽이 어쩌다 되레 주도권을 쥐는 형국에 도달했는지 기가 찬다. 외교가 상대와의 밀고 당기기 같은 줄다리기이지만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비교문화와 역사 등 다양한 방면의 연구가 동원되는 종합예술의 반영이어야 한다.

​ 

5. [머니투데이][웰빙에세이] 내 안의 달콤한 중심, 미묘하고 민감한 바로 그곳

나도 아름다운 道의 자리에 서고 싶다. 어떻게 서나? 몇 가지 이미지로 가늠해보자.

하나, 스윗 스팟(sweet spot). 테니스 라켓에서 공을 가장 잘 받아칠 수 있는 곳을 말한다. 가운데 부근의 단 한 곳이다. 너무 팽팽하지도 않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은 곳, 너무 많지도 않고 너무 적지도 않은 곳이다. 말보다는 감으로 찾아야 한다. 머리보다는 몸으로 익혀야 한다. 아주 미묘하고 민감한 바로 그곳! 거기가 테니스 라켓에서 道의 자리다. 달콤한 중심이다. 그곳은 당연히 라켓 안에 있다.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깊은 안에 있다. 누구든 그것을 밖에서 찾지 않으리라.

나의 道의 자리라고 다를 리 없다. 그것은 분명 내 안에 있다.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깊은 안에 있다. 나는 안을 살펴야 한다.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내 안의 중심에서 아주 미묘하고 민감한 그곳을 찾아야 한다. 말이 아니라 감으로 느껴야 한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익혀야 한다. 온몸으로 저리게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내 안을 살피고 있나? 오늘 하루 내 안을 바라본 적이 몇 번인가? 단 한 번이라도 내 안의 달콤한 중심을 느껴보았나?

나는 너무 바빠 그럴 시간이 없다. 할 일이 많아 그럴 여유가 없다. 먹고 살기 고달파 그럴 여력이 없다.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그럴 때가 아니다. 나는 오늘도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라.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프다. 정신 사납다. 나도 때가 되면 할 것이다. 여건이 되면 나설 것이다. 찬찬히 나를 돌아보고 둘러볼 것이다. 다만 지금은 밖의 일이 더 중요하다. 더 시급하다. 내 안은 그 다음이다. 나중이다. 밖에 정신 팔린 나에게 道의 자리는 멀다. 요원하다. 나는 아직 한 발도 내딛지 않았다. 내 안으로 한 걸음도 옮기지 않았다.

둘, 줄타기. 허공을 가르며 외줄을 타는 저 사람을 보라. 그는 온전히 깨어 있다.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는 집중과 몰입의 상태다. 그는 부드럽게 움직인다. 가볍게 나아간다. 흔들림에 순응한다. 기움을 이용한다. 왼편으로 기울면 그 힘에 기대어 오른편을 보탠다. 오른편으로 기울면 그 힘에 기대어 왼편을 보탠다. 그것이 한 가닥 줄을 따라 균형의 춤사위로 전개된다. 저 줄과 저 춤! 그 외에 무엇이 남았는가? 저항은 없다. 긴장도 없다. 그도 없다. 그는 줄이다. 춤이다. 균형이다.

미국의 명상가 마이클 싱어는 "道 안에 개인적인 것은 없다"고 한다. "당신은 어떤 개념도, 좋고 싫음도 가질 수 없다"고 한다. 道의 자리에서는 힘이 스스로를 돌보기 때문이다.

"道 안에 개인적인 것은 없다. 당신은 힘의 손아귀에 들려 있는 한갓 도구일 뿐으로, 균형의 춤사위에 참여하고 있다. 당신은 일이 어떻게 풀려가야 한다는 개인적인 선호가 아니라 오로지 균형에만 모든 주의가 머물러 있는, 그런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삶의 모든 것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 균형 속에서 일할 수 있게 되면 당신은 삶 속을 자유롭게 미끄러져 갈 수 있다. 道에 이르면 애씀 없는 행위가 일어난다. 삶이 일어나고, 당신이 거기에 있다. 당신이 그것을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아무런 부담도, 스트레스도 없다. 당신이 중심에 앉아 있는 동안 힘이 스스로를 돌본다. 그것이 道다. 그것은 삶의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자리다. 그것을 만져볼 수는 없지만 그것과 하나가 될 수는 있다."


만져볼 수 없지만 하나가 될 수 있는 아름다운 道의 자리! 그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매 순간 중심에서 중심으로 움직인다. 내 안의 道의 자리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삶 속에서 역동한다. 삶은 오른편과 왼편이다. 이쪽과 저쪽이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아름다움과 추함, 깨끗함과 더러움……. 삶은 양 쪽으로 갈려 쉼 없이 나를 흔든다. 어쩌랴! 삶이 그런 것을. 흔들리는 게 삶인 것을.

그러나 삶 속에 道가 있다. 태풍의 눈 같고, 바퀴의 축 같고, 시소의 정중앙 같고, 십자가의 교차점 같은 道의 자리가 있다. 흔들림과 엇갈림 속에서 피어나는 고요와 평화의 꽃이 있다. 상대의 세계를 멸하는 절대의 문, 모든 이분법을 녹이는 무경계의 나라가 있다. 삶이 없으면 道도 없다. 삶을 놓치면 道도 놓친다. 道란 삶과 함께 펼쳐지는 균형의 춤사위이기에. 

삶 속의 道는 외줄타기와 같다. 나는 온전히 깨어 있어야 한다. 집중하고 몰입해야 한다. 삶이 흔들려 어지럽더라도 그 흔들림에 순응해야 한다. 삶이 기울어 멀미가 나더라도 그 기움을 이용해야 한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균형의 춤사위를 위한 디딤돌이다. 나는 일이 어떻게 풀려가야 한다는 개인적인 선호를 넘어 오로지 균형에만 주위가 머무는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그런 경지에서 비로소 나는 삶 속으로 자유롭게 미끄러져 갈 것이다. 삶이 일어나고 애씀 없는 행위가 일어날 것이다. 나는 거기에 있고 아무런 부담도, 스트레스도 없을 것이다. 道의 힘이 스스로를 돌볼 것이다. 나는 삶의 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자리에 앉아 평화로울 것이다.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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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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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헌재에서도 모르쇠, 잡아떼기 일관한 최순실

국정 농단의 주범 최순실씨가 어제 헌법재판소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증인으로 나와 각종 의혹에 “모른다. 기억이 없다”며 모르쇠와 잡아떼기로 일관한 것은 어느 정도 예견했던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가 공개적으로 입을 연 것은 국정 농단 사태 표면화 이후 사실상 처음이어서 다소 기대감을 가진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변호인의 조력 없이 본인 목소리로 국회·대통령 측 대리인단에 어떤 답변을 내놓느냐에 따라 박 대통령의 헌법 유린 여부와 뇌물 혐의의 윤곽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결과는 실망 그 자체였다. 최씨는 후안무치한 태도와 앞뒤 안 맞는 답변으로 국민과 헌법기관을 다시 한번 농락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에는 철저히 잡아떼기로 맞섰다. 때로는 누가 증인이고, 누가 심문하는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당당하기까지 했다.



그는 청와대 출입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몇 차례 출입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왜 들어갔는지는 사생활이라서 말하기 곤란하다고 요리조리 답변을 피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으로부터 남재준 국정원장 등 17개 부처 장·차관 인사 자료를 넘겨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일 없다고 딱 잘랐다. 이 자료는 검찰이 최씨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것인데도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씨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추천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김 실장은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고, 고영태가 모든 것을 꾸몄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마치 ‘숨은 쉬지만 공기를 마신 건 아니다’라는 식의 답변 태도가 아닌가. 최씨가 “미르재단, 더블루K 어디를 통해서도 돈을 한 푼도 받은 적 없고, (정유라의 승마 지원 의혹과 관련해) 어떤 이득이나 이권을 취한 적도 없다”며 “그게 증거가 있나요”라고 작심한 듯 언성을 높이는 대목에서는 몰도덕의 끝을 보는 듯했다.

그가 시간을 끌기 위해 사법체계를 농락하고 있으며, 그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날 답변에서도 그는 ‘박 대통령 구하기’에 급급한 흔적을 곳곳에서 노정했다.

만에 하나 최씨가 시간이 지날수록 시중 여론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에서 계속 진실을 호도하려 든다면 그것은 대단한 오판이자 착각이다. 국민의 분노는 이미 극에 이르러 도저히 그를 용납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여행객 성폭행 피해 외면한 대만 한국대표부

대만을 여행하던 한국 여학생들이 현지 택시기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택시기사가 수면제를 탄 요구르트를 여학생들에게 권해 정신을 잃게 한 뒤 치밀한 계획에 따라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현지 경찰에 의해 밝혀졌다. 어제 현지 언론에서 피의자인 대만 택시관광 운전기사가 성폭행 사실을 인정했고 최고 종신형까지 가능한 중범죄라는 보도가 나왔다.

여행 도중 있어서는 안 될 범죄를 당한 것도 개탄스럽지만 문제는 성폭행을 당한 이후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의 대응이다. 피해자들이 14일 새벽 3시 40분 한국대표부에 전화를 걸자 담당자가 “신고 여부는 알아서 하라”고 응답했다고 주장했다. 전화를 걸었던 피해자 1명은 대만 여행 관련 사이트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전화했더니 ‘자는데 왜 이 시간에 전화를 하느냐’고 말했다”는 글을 게재했지만 외교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외교부는 해명 자료를 통해 “성폭력 피해에 대한 신고 여부는 당사자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날이 밝아 신고하게 되면 연락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알아서 하라’는 식의 황당한 대답을 들은 피해 여학생들이 한국대표부의 도움은 포기하고 결국 현지 교민들의 도움으로 경찰서에 직접 신고했다. 자국민 보호를 위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재외공관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회의가 드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 주칠레 공관에서 우리 외교관의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으로 국가 망신을 시키더니 이번에는 성폭행 여학생들이 절실하게 요청한 도움마저 외면한 것이다. 외교 당국은 피해자와의 통화 내용 등을 가감 없이 공개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하며 문제가 있다면 관련자는 물론 지휘 책임까지 물어야 한다.

재외 국민이 700만명을 넘어섰고, 해외 관광객 수도 한 해 1000만명을 돌파한 지 오래지만, 재외공관이 자국민 보호에 소홀하면서 높은 사람들의 의전에만 신경을 쓴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헌법 2조 2항에도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돼 있다. 국민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도 국가는 자국민 보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외교 당국의 통렬한 자성과 후속 조치를 기대한다.



3. 이재용 영장, 여론몰이식 수사는 경계해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장고 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 카드를 빼들었다. 이 부회장에게는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횡령,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죄) 혐의가 적용됐다.

특검은 이 부회장을 뇌물공여 피의자로 불러 22시간 동안 조사하고서도 나흘간이나 신병 처리를 결정짓지 못했다. 그만큼 사안이 복잡하다는 뜻이다. 한때 불구속 전망까지 나오기도 했으나 특검이 정공법을 택한 것은 이 부회장을 풀어 주면 자칫 이번 뇌물수사의 정점인 박근혜 대통령을 옭아맬 수 없다고 판단한 때문인 듯하다.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욱더 중요하다”고 한 특검보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특검의 결정에 대해 재계 등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검이 대통령 뇌물죄 처벌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자 기업인을 제물로 사용하는 ‘기업 특감’에 몰입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검이 이 부회장의 신병 처리를 쉽게 결정짓지 못한 것은 현 경제 상황과 각계의 우려를 들어 시간을 두고 충분히 고민했다는 일종의 명분 쌓기용일 수도 있지만, 뇌물죄 입증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다툴 부분이 많은 만큼 뇌물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는 이 부회장 측과 특검은 법원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청탁→합병 성사→최순실씨 모녀에 대한 지원’으로 일이 진행됐다고 특검은 보고 있다. 삼성의 최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지원이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이 합병 성사에 대한 대가성 뇌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 측은 대통령의 강요에 의해 낸 돈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상반된 주장을 하는 상황에서 영장 청구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특히 영장 청구가 마치 징벌의 수단으로 여겨져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신분이 분명하고 도주 우려가 없는 피의자는 불구속 수사하는 원칙도 세워야 한다. 모든 피의자에게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재벌 총수라서 봐줘서도 안 되지만 여론을 의식해 불이익을 받아서도 안 된다.

삼성이 최순실씨 모녀에게 돈을 지원한 시점이 합병 전이 아니라 합병 이후라는 점에서 먼저 뇌물을 주고 나중에 대가를 얻어내는 통상적인 뇌물 사건과는 다르다. 이를 근거로 삼성 측은 뇌물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검은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합병 이전에 최씨 일가 지원에 합의했는지, 합병 문제를 대통령과 논의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특검팀은 삼성 측과 법원에서 격렬하게 다툴 상황을 염두에 뒀는지 궁금하다. 특검이 이 부회장 구속에 성공하면 박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 역시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한다. 반대로 실패하면 최종 타깃인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매일신문]

4. 문재인, 사드 배치 입장 분명히 하고 국민 선택 받으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놓고 이른바 ‘잠룡’(潛龍)들이 확연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보수 진영 인사가 모두 찬성하고 있는 가운데 진보 진영의 안희정 충남지사도 같은 의견이다. 사드 배치에 동의하지 않지만 국가 간 협상을 뒤집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안 지사의 주장이다.



반면 진보 진영 인사는 모두 반대다. 그러나 약간씩 차이가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확실한 반대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반대에서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완성 때까지 시한부 배치’라는 조건부 반대로 바뀌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좀 혼란스럽다. 당론은 반대지만 안 전 대표는 “차기 정부에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검토하고 외교적 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연기론이다.



이런 가운데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찬성도 반대도 아닌 모호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 사드 배치가 확정된 직후 ‘재검토`공론화’에서 10월에는 ‘북핵의 완전 폐기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란 입장을 거쳐 12월에는 “다음 정부로 넘기라”로 바뀌었다. 하지만 지난 15일에는 “반드시 철회하는 것을 작정하고 (다음 정부로) 넘기라는 것이 아니다”며 다시 말을 바꿨다.



17일 정식 발간되는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에서는 더욱 헷갈리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어쨌든 지금은 한미 간 협의를 했고, 그나마 효과를 볼 수 있다면 북핵으로 불안해하는 국민에게 심리적 불안을 덜어주는 정도고, 북한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면 그런 정도로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선불교의 공안(公案)을 대하는 것 같다. 사드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아닌지 보통 사람의 문해력(文解力)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문 전 대표는 차기 대권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분명히 밝히고 국민의 선택을 받으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도 저도 아닌 말로 사드 배치 문제를 피해가는 행동은 비겁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5. 포스코건설의 이상한 중앙선 복선화 공사, 그냥 넘길 일 아니다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지만 회사 측은 마땅한 대책을 외면하고 있다. 게다가 회사 측은 당초 설계에 반영된 우회도로 개설을 하지 않아 공사비 사용을 둘러싼 의혹마저 사고 있다. 민원 해소와 설계 부정 등을 가리는 당국의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



포스코건설은 총연장 148.1㎞ 중앙선 복선화 공사 12개 공구 가운데 제11공구 시공사로, 군위군 고로면 화북2리 터널공사도 맡았다. 2013년 발주처인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설계`시공 일괄입찰(턴키) 방식으로 수주해 터널공사와 관련, 비포장 농어촌 도로 문제로 우회도로 개설을 설계했다. 하지만 공사 2년이 넘도록 우회도로 개설을 않고 농어촌 도로를 이용했다.



민원을 일으킨 설계 위반보다 더 이상한 점은 포스코건설의 설계 부실 의혹이다. 포스코건설은 2013년 2월 11공구 턴키입찰이 결정될 당시 농어촌 도로가 비포장이어서 우회도로를 내겠다면서 설계했다. 그러나 실제 농어촌 도로는 설계 당시 이미 전체 2.2㎞ 길이 중 440m만 남기고 2013년 완공됐다. 포스코건설이 공사 현장의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았으며 부실 설계를 했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런 부실 설계 의혹은 공사비를 둘러싼 또 다른 의혹을 낳고 있다. 우회도로 개설에 대한 공사비 반영이 빠질 수 없어서다. 그러나 설계와 달리 우회도로 개설을 하지 않았으니 공사비 행방이 문제일 수밖에 없다. 포스코건설 측의 “우회도로 개설 취소를 위한 설계 변경을 요구했으나 발주처에서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는 해명은 더욱 의심스럽다. 발주처와 시공사 간의 짬짜미 의혹도 충분하다. 포스코건설이 공사장 암석과 흙 등 야적과 농어촌 도로 이용 대가로 수억원을 썼다는 소문도 의혹을 부채질하고 남음이 있다.

 
농촌 주민을 무시하는 대기업 횡포에 따른 주민 피해 대책과 함께 우선 밝힐 일은 설계를 둘러싼 의혹이다. 이는 국민 세금의 낭비와 관련돼서다. 수사 당국이 나서서 뭇 의혹을 밝혀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이데일리]

6. 기댈 게 로또뿐이라는 '불황의 역설'

불황이 사행심을 자극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로또 판매량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는 게 그것이다. 복권위원회는 어제 지난해 로또복권 판매가 금액으로 3조 5500억원, 판매량 기준 35억 5000 게임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판매량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이고, 판매액은 역대 2위라고 한다. 경기 침체로 서민들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는데 복권사업자만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로또 판매 사상 최대 기록은 반갑지 않다. 오랜 불황 탓에 월급는 빼고 모든 것이 다 올라 미래가 불안해지자 ‘한탕’에 기대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경기가 나쁠수록 술·담배와 함께 복권이 많이 팔린다는 ‘불황의 역설’이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2조원대에 머물렀던 로또 판매는 불경기가 깊어진 2014년 3조원대로 늘어나더니 2015년(6.8%), 2016년(9%) 연속 증가세다.

로또가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없지는 않다. 판매액 중 당첨금과 수수료, 경비를 제외한 42%를 저소득계층 지원과 문화·예술·체육 진흥사업 등에 사용한다. 하지만 복권은 대개 서민들이 사기 마련이다. 정부가 해야 할 책무인 취약계층 주거안정이나 일자리 창출, 문화예술 진흥 등의 사업을 서민들 호주머니를 털어 해결하면서 생색을 내는 것은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다.

‘길 가다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도 낮은 814만 5060분의 1이라는 당첨 확률을 고려할 때 로또복권의 사행성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한탕주의는 잠시 희망에 그칠 뿐이다. 자칫 ‘대박 중독’에 빠져 삶이 더 망가질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인생 역전’의 허황한 꿈에 젖어 연간 3조원 이상의 복권이 팔리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소비와 투자, 수출이 동시에 가라앉으며 올해 성장률이 2%대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실업자는 이미 100만명을 넘어섰고 가계부채 폭탄은 언제 터질지 불안한 상황이다. 중국·일본과의 외교 갈등,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대외 여건도 심상치 않다. 이래저래 로또에 기대는 이들이 더 늘어나게 생겼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조기 대선에 눈이 팔려 민생은 뒷전이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7.특검팀, 재벌 총수들을 희생양 삼으려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어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인 최순실씨에게 모두 430억원을 지원했으며, 그것이 대가를 바란 행위였다는 게 박영수 특검팀의 판단이다. 경영권 승계 문제가 걸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결에서 국민연금의 지원을 받은 대가라는 것이다. 특검팀이 지난 12일 이 부회장을 소환해 밤샘 조사하고 사흘 만에 내린 최종 결론이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를 법리적으로 옳고 그르니 따질 생각은 없다. 법리에 누구보다 밝은 특검팀이 어련히 알아서 판단했으려니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부회장에 대한 사법처리로 인해 삼성전자는 물론 우리 경제 전반에 걸쳐 곧바로 들이닥칠 파장을 떠올리면 심정이 착잡하기만 하다. 삼성전자가 국내 간판기업으로서 세계 시장에서의 비중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진작부터 안팎의 눈길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식이라면 구속 대상이 이 부회장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것이 명백한 뇌물이라는 게 특검팀의 판단인 모양인데, 두 재단에 돈을 낸 기업이 어디 삼성전자뿐인가. 현대차그룹과 LG, 포스코, 한화, KT 등 모두 53개 기업에 이른다. 특검팀이 이와 관련해 조만간 SK와 롯데, CJ 등 다른 재벌 총수들에게로 수사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라는 얘기도 들려온다.

가뜩이나 우리 경제가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판국에 특검 수사까지 겹침으로써 총체적인 난국에 처하게 된 꼴이다. 기업 구조조정으로 실직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처지에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도 취직자리가 묘연한 실정이다. 기업 총수들을 엄격한 법 조항으로 옭아맨다면 투자는 더욱 제한될 테고 일자리 역시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그렇지 않아도 탄핵정국으로 미래가 불확실한 와중에 새해 들어서도 기업들의 경영계획 착수가 늦춰지는 분위기라 한다.

특검팀의 수사 방식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 혐의를 입증하려고 재벌 총수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특검 수사가 정상궤도를 벗어나 무리하게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특검팀으로서는 탄핵혐의 입증이 원래 임무인 만큼 여기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한다.



[세계일보]

8. 나사 풀린 근무기강으로 국가 외교 어찌 챙길까
피해 신고를 받은 현지 한국대표부 직원의 불성실한 대응이 더 충격적이다. 피해 여성은 대만 여행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대표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전화를 하자 ‘자는데 왜 이 시간에 전화를 하느냐’는 면박을 들었다고 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변을 당해 현지 공관에 전화했는데 이런 일을 겪는다면 누구나 재외 공관의 존재 이유에 의문이 들 것이다.

외교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당직 행정직원이 전화를 받고는 경찰 신고 절차를 알려준 뒤 “경찰에 신고를 하면 연락을 달라”고 했고, 신고 다음날 병원에서의 검사를 돕는 등 영사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수긍할 수 없긴 마찬가지다. 전화를 받는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피해자를 보살피는 게 정상적인 대처일 것이다. 알아서 신고하라는 얘기를 들으려고 현지 공관을 둔 게 아니다. 정부는 현지 공관 대처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 관련자를 엄단해야 한다.

외교부는 “해외에서 어려움이 생길 때 영사콜센터나 공관에 연락하면 도움받을 수 있다”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재외 공관원이 국민 보호를 소홀히 한 사례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멕시코에서 인신매매범 누명을 쓰고 1년째 복역 중인 30대 여성의 경우 사건 초기에 현지 공관이 도움을 주지 않았고 되레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한다.



외국에서 범죄자로 몰리고도 현지 공관 관계자와 면담조차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국민 보호에 무능할 뿐 아니라 현지 주민 대상 범죄까지 저지르는 판이다. 지난달 칠레 주재 외교관이 10대 여학생을 성추행한 게 현지 방송에 보도돼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지금 한반도의 주변 상황은 대전환을 예고할 정도로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제 미국·일본·중국·러시아의 주변 4강과 유엔 주재 대사를 긴급 소환한 것도 급박한 주변 정세에 치밀히 대응하기 위함일 터이다. 해외 공관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도 모자랄 판국에 직원들의 근무자세가 흐트러져 있으니 될 법이나 한 일인가. 정부는 나사 풀린 근무기강부터 조여야 한다.



9. 이재용 영장 청구… 사법처리는 법리에 충실해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어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혐의는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이다. 뇌물공여 액수는 430억원으로 산정됐다. 특검은 최순실씨의 독일법인인 코레스포츠와의 220억원대 컨설팅 계약,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16억원 후원,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204억원 출연 등을 모두 대가성 있는 뇌물로 봤다.

특검은 삼성과 박근혜 대통령을 특수한 관계로 설명한다. 이 부회장의 지원은 박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도와준 데 대한 답례로 보고 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15년 6월쯤 안종범 경제수석, 최원영 고용복지수석 등을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성사될 수 있게 잘 챙겨보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받아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의 사법처리를 놓고는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다. 특검이 12일 이 부회장을 소환해 조사한 뒤 나흘이나 장고에 들어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매출 300조원이 넘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 공백과 경제적 충격을 고려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나왔으나 특검은 법과 원칙에 따라 사법처리하는 쪽을 택했다.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국가 경제 등에 미치는 사안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특검의 사법처리는 재벌총수라 하더라도 ‘법 앞의 평등’이라는 대원칙을 재확인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사법적 단죄는 철저한 증거와 법리에 따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부회장을 사법처리하는 과정에서 애매한 구석이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뇌물죄의 주범 격인 박 대통령을 소환해 조사하지도 않은 마당에 이 부회장부터 사법처리한다는 것이 과연 법리적으로 타당하냐는 것이다. 권력의 압력에 저항할 수 없는 한국의 풍토도 고려해야 한다.



삼성은 박 대통령의 강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지원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한화로부터 승마협회를 넘겨받았으면 적어도 한화만큼은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책을 받고 승마 지원에 적극 나선 정황이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는 내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 판가름난다. 그의 사법처리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바람직하지 않다. 법원은 오직 구체적인 증거와 법에 따른 판단으로 세간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만약 박 대통령 처벌을 위한 짜맞추기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면 경제도 잃고 사법정의도 잃는다.



10. 모르쇠와 궤변으로 되레 큰소리친 최순실

어제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에 나온 최순실씨의 증언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는 국회 소추위원단 질문에 시종 “모른다”, “말하기 어렵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로 일관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을 묻자 “어제 일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 수사와 국회 청문회, 특별검사팀 수사로 드러난 사실까지 부정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나 다름없다.

헌재 대심판정에 선 최씨는 팔색조의 연기자 같았다. ‘모르쇠’ 작전을 쓰다가 신문조서 효력에 대해 “검찰과 특검이 너무 강압적이고 압박적이라 거의 죽을 지경이다”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소추위원 측이 이권 개입 여부를 추궁할 때에는 “한 푼도 받은 적 없다”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작 자신의 딸 정유라씨에게 승마 지원을 한 기업은 강탈당했다고 호소하는데 아무것도 받은 게 없다니 대체 말이 되는가.

변호인단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최씨 측 변호인단은 소추위원 측 질의에 대해 “수준 미달”이라고 비판했다. 자신들이 2차 변론 때 촛불 민심을 폄훼하고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들먹였다가 국민들로부터 ‘수준 미달’이란 평가를 받은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행동이었다.

최씨로서는 형사재판에 불리한 진술은 아예 하지 않겠다고 작심했을 수 있다. 탄핵심판을 지연시키고 박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속셈일지도 모른다. 의도야 어쨌든 간에 국정을 파탄 내고서 억지궤변만 계속 늘어놓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솔직히 털어놓고 국민에게 용서를 청하는 게 자신의 죄를 더는 일이다.

이제 진실 규명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박 대통령은 최씨가 부인한 국정농단의 실상을 자세하게 국민에게 털어놓아야 한다. 검찰 조사와 헌재 출석을 거부한 채 일방통행식 기자간담회를 열어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늦었지만 박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해 소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헌정질서의 수호자로서 최소한의 책무를 기대한다.





신문주요칼럼


1. [조선일보][일사일언] 버리는 연습

혼자서 여행을 다녀오셨다는 말에 함께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 눈이 동그래졌다.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우리가 기억하는 한 손숙 선생님 곁에는 항상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이런 날씨에, 요즘 눈도 잘 안 보이신다는 분이 나 홀로 여행이라니….


"버리는 연습을 하는 중이야." 담담한 어조로 미소 짓는 선생님 얼굴이 오랜 시간 맑은 냇물 속에 잠겨 있던 돌멩이처럼 말갛다. "어디에다 버리시게요. 주우러 가게요." 누군가의 농담에 혹시 건강상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닐까 걱정하던 사람들이 까르르 웃어댔다.


"물건도 물건이지만 사람들하고의 관계를 정리하고 있어. 인연이 끊어질까 걱정하고 의무적으로 인사를 건네고.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다 보니 서서히 진짜 소중한 것, 꼭 필요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신다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가진 것이 너무 없다고 툴툴대는 나로서는 선뜻 '저도 따라 해볼래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버려야 되는 이유는 별로 없는데 버리지 말아야 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은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여행 전 짐을 꾸릴 때 내 모습이 지금 딱 내가 사는 모습인 것 같다. 꼭 책 한 권을 가방에 우겨넣고, 혹여 무언가라도 쓸까 펜과 노트를 챙기고, 아로마 오일을 병째로 담아 넣고, 여름에도 시린 내 두 발을 위해 핫 팩까지 챙겨 넣는다. 내 방을 통째로 옮겨 넣는 게 빠를 판이다. 결국 가방이 닫히지 않는 상태에 이르면 그때부터 두고 가도 되는 물건을 골라내기 시작한다.


매번 가방을 챙길 때마다 이렇다. 두려움 때문이다. '혹시'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을 낳는다. 알면서도 나는 아직 꼭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저절로 되지는 않는 것 같아. 그래서 계속 연습 중이야." 환하게 미소 짓는 선생님 얼굴에 활짝 피어나는 주름 꽃이 아름답다. 그 미소가 미적거리던 내 마음을 단번에 바로잡아 줬다. 하루에 한 가지만이라도 버리는 연습을 나도 당장 시작해봐야겠다.


2. [동아일보][횡설수설] 굿바이, 지상 최대의 쇼!

1953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지상 최대의 쇼’는 화려한 서커스의 애환을 그린 영화다. 대형 천막 아래 위험한 묘기를 펼치는 곡예사들과 우스꽝스러운 피에로, 온갖 동물이 어우러진 서커스의 마법에 대한 아낌없는 경의를 담고 있다. 제임스 스튜어트와 찰턴 헤스턴 주연 영화다. 실제 모델은 링링브러더스 서커스단으로 당시 단원들과 동물들도 영화에 나온다.

146년 전통의 링링 서커스단의 규모와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19세기 중반부터 전용 열차를 타고 순회공연을 다녔는데 전성기엔 단원 1400명에 코끼리 수만 50마리를 헤아렸다. 그러나 TV 영화에 이어 게임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마침내 링링브러더스 앤드 바넘 & 베일리 서커스의 모회사인 펠드엔터테인먼트가 해체 결정을 발표했다. 관객 감소와 운영비 증가로 인한 경영난 끝에 5월에 고별 공연을 한다는 내용이다.

링링 서커스단 해체는 시대 변화에 따른 것이지만 결정타는 코끼리들의 출연 중단이었다. 1882년 코끼리 ‘점보’가 무대에 등장한 이래 코끼리 쇼는 서커스단의 상징이 됐다. 2000년대 들어 조련 방식을 둘러싸고 동물보호단체와 갈등을 빚으면서 긴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결국 작년 5월 모든 공연에서 코끼리를 빼기로 결정했다. 코끼리 43마리가 플로리다 주 보호센터로 보내진 뒤 관객이 격감했다. 서커스단 측은 “많은 사람이 코끼리가 공연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도 막상 코끼리가 나오지 않으니 서커스를 외면했다”고 탄식했다. 

동물보호단체는 “지상에서 가장 슬픈 쇼의 끝을 알리게 됐다”며 해체 소식을 반겼지만 문득 궁금해진다. 야생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코끼리들, 곡예단에서 보호센터로 이주해 얼마나 행복해졌을까. 소설 ‘책상은 책상이다’의 작가 페터 빅셀은 이런 말을 했다. ‘과거, 그러니까 옛날이 지금보다 나은 이유는 지금보다 뭔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추억이다.’ 아슬아슬한 긴장과 신나는 웃음소리로 가득한 지상 최대의 쇼가 막을 내린다.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도 함께 커튼 뒤로 사라지게 됐다.


3. [아시아경제][일터삶터] 스키도 정답이 있는가

겨울만 되면 온통 스키 생각뿐이다. 중년 스키어들 사이에 꽤 알려진 스키동호회 회장을 맡으면서 이번 시즌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스키 실력은 내로라하는 국내 상급 슬로프 어디든 어렵지 않게 내려올 수 있는 수준이다. 7년여 전 초급 슬로프에서조차 제대로 제어도 못 하는 왕초보였으니 크게 발전한 셈이다. 그럼에도 스키 고수들은 나의 폼의 허점을 지적하기 일쑤다. 제대로 안 타면 관광스키란다.



진정한 고수만 이런 식으로 지적하는 게 아니다. 자신을 스키어로 자처하는 자라면 누구나 자연스레 다른 스키어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어딘가 교과서적인 폼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우리 스키어들은 리프트만 타면 슬로프를 내려가는 다른 스키어들을 보게 된다. 그냥 보는 게 아니다. 폼을 본다. 슬로프에서도 이런 식의 관찰은 이어진다. 스키어들은 어느 정도 실력이 되면 중급 슬로프든, 상급 슬로프든, 짧든 길든, 일정 거리만 차근차근, 한 턴 한 턴 FM대로 타고 내려와서 고속도로 갓길로 여겨지는 슬로프 가장자리에 선다. 그러곤 다른 스키어들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평가한다. ‘턴은 잘 되는데 외향경이 전혀 없어.’ ‘저건 몸턴이야, 몸턴.' ‘잘 탄다 정말. 난 언제 저렇게 타나?’ ‘어, 저 사람, 언제 저렇게 실력이 는 거야? 강습 받나?’ 매번 이렇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늘 스키를 타고 있으면 타인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국내에서 스키 폼의 기준은 아무래도 대한스키지도자연맹(KSIA)이 채택한 스탠더드가 으뜸이다. 누구나 레벨 시험을 통해 레벨 1부터 3을 부여 받을 수 있다. 스키지도자 자격증이므로 강사를 목적으로 하는 이들도 당연 있지만 일반인도 흔히 시즌이 되면 가장 기초적 단계인 레벨 1에 도전한다. 여기에 KSIA는 매년 기선전을 통해 일정 숫자의 데몬까지 뽑는다.


말 그대로 demonstrator(데몬스트레이터)의 준말인 데몬은 시범자인 만큼 곧 살아 있는 교과서, 즉 ‘정답’으로 간주되는 폼의 표본을 데모할 수 있는 이들이다. 레벨 시험을 앞둔 지망생들은 이들의 유튜브 비디오를 밤새 돌려보기도 한다.

물론 슬로프에 나가서 연습도 틈틈이 한다. 레벨 테스트를 앞둔 스키어들이나, 시즌 강습을 받는 이들은 이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일반 스키어들 대다수도 스키를 탄다기보다는 연습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나도 본의 아니게 매번 연습만 하다 접는 듯하다.

그래서 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 스키에도 정답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스키에서도 정답을 찾는다. 늘상 이렇게 무엇이든, 어디서든 어김없이 ‘정답’을 찾는다. 

얼마 전에 평창에 있는 한 스키장에서 동호회 회원들과 한참 스킹하던 중 넘어져 있는 외국인 한 명을 발견했다.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고 보니 미국사람이었다. 짧은 잡담을 나눈 후 그가 동료들과 합류해서 타는 걸 지켜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맞다. 저들은 다르다. 우리는 연습하지만 저들은 스키를 그저 즐긴다. 과정을 즐기는 거다.

그 자리에서 내심 반성했다. 나는 너무나도 기준에 치우쳤다. 스키도 과정을 즐길 필요가 있다. 스키 자체를 즐기는 걸 목적으로 하자. 한국인과 서양인의 차이점은 여행만 놓고 봐도 대번 느낀다. 그들은 여행 과정 자체를 즐기지만 우리는 최대한 적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걸 보려 한다. 과정을 즐기지 못하는 까닭이다. 내가 기업 연수생들에게 말하지 않는가. 정확성보다 유창성이 더 중요하다고. 스키로 따지면 레벨 1 자격증을 따는 것보다 편하게, 안전하게 소위 관광스키라도 타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도 슬로프로 향한다. 연습하러. 평가하러. 정말이지, 나도 못 말린다.


4. [서울신문][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과학의 크로스오버

크로스오버(crossover)는 본래 장르가 다른 음악의 섞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흔히 연주자나 가수가 자신의 음악 장르와 다른 연주나 노래를 부르는 경우를 일컫는다. 조수미, 플라시도 도밍고 같은 세계적 성악가들이 팝이나 대중가요를 불러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던 일이나 국악과 클래식의 접목이 크로스오버의 좋은 예다. 최근 들어서는 다양한 분야로 그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자연의 이해를 위해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는 과학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학제 간 융합 연구는 학문 분야를 뛰어넘는 다양한 시도의 산물이다. 지진과 관련한 다양한 현상을 연구주제로 삼는 지진학에서도 다양한 크로스오버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유체역학에서 활용되던 수치모사 방법이 지진학과 결합되면서 정확한 전(全) 지구 지진파 전파 수치 모델링이 가능해지고 있다.

지진학적 연구기법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지진파(탄성파)는 성질이 다른 층을 만날 때마다 굴절과 반사를 거듭하는데 이 사실을 활용해 땅속 구조를 알아낼 수 있다. 탄성파를 활용한 석유 자원이나 광물 자원 탐사, 지하 공동 탐지 등이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뿐 아니다. 핵실험같이 강력한 지진파를 만들어내는 인공 폭발의 시간과 폭발량, 위치를 파악하는 데도 지진학적 기법이 쓰인다. 특히 핵실험 여부를 신속하게 판별하는 데 있어서 지진학적 기법 활용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 핵실험의 경우 폭발과 함께 발생한 지진파가 수천㎞ 떨어진 거리까지도 전파된다. 폭발 순간 다량의 에너지가 순식간에 방출되는 특성에 따라 인공 폭발에서는 특정 고주파수 대역에서의 증폭 현상과 강한 P파가 관측된다. 이러한 특성에 착안하여 은밀한 곳에서 행해지기 마련인 핵실험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탐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진학적 관측 기법이 각광을 받고 있다.

지진학적 기법은 사고 원인 조사에도 활용된다. 2001년 9·11 테러는 공중 납치된 두 대의 민간 항공기가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충돌한 사건이다. 항공기 충돌 후 두 빌딩은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 당시 비행기 충돌과 붕괴로 만들어진 지진파는 10여㎞ 떨어진 컬럼비아대학 부설 연구소의 지진계에 고스란히 기록되기도 하였다.


이후 미국 표준기술연구소는 항공기 충돌에 의한 빌딩 붕괴 원인 조사를 할 때 항공기의 충돌시각, 충돌력, 건물 붕괴 과정을 분석하는 데 지진파형 자료가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또 9·11 테러 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참혹한 테러사건인 1995년 미국 오클라호마 시청사 차량 폭탄 테러 사건 때도 인근에서 기록된 지진파형 분석을 통해 범인이 자백한 폭발물 양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분석에서 함정 침몰 원인과 침몰 위치 및 시간 확인에 백령도에서 기록된 지진파형 자료가 활용된 바 있다.


기후 변화 추이와 기상 모니터링에도 지진학적 연구 기법이 동원되고 있다. 온난화와 더불어 극지역 빙하의 용융과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빙하지진의 발생 횟수가 증가함에 따라 극지 온난화에 대한 효율적인 모니터링 방법으로 응용되고 있다. 태풍과 같은 급격한 기상상태 변화에 따라 지진계 배경 잡음의 증가에 착안해 태풍의 궤적과 태풍 강도를 추정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인간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극한 지역과 외계 행성의 연구에 지진학적 기법을 통한 다목적 연구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폴로 달 탐사 당시 인류는 이미 4대의 지진계를 운용한 경험이 있다. 지금까지 약 1만 2000회가량의 월진이 기록되었으며 이 자료는 달 연구에 있어 소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과학 분야에서 크로스오버는 자연과 세상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다양한 시도의 산물이다. 과학기술들 간 융합과 응용을 통해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는 더 큰 창을 만들어 가고 그동안 확인할 수 없었던 다양한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그란 콜롬비아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의 콜롬비아연방공화국 ‘그란(랑) 콜롬비아 Gran Colombia’가 1819년 1월 17일 건국했다. 국토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나마 전체와 코스타리카 페루 브라질 가이아나 일부였고, 수도는 보고타였다. 강력한 대통령제 국가로, 대통령은 헌법이 보장한 종신직이었다. 초대 대통령은 당연히, 독립 혁명전쟁을 이끌며 저 거대한 영토를 한 데 모은 시몬 볼리바르였다, 남미 민족ㆍ분리주의자들은 채 덜 끝난 독립전쟁을 위해 강력한 통일 국가와 볼리바르의 카리스마를 원했다.

스페인 식민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1783년 태어난 볼리바르는 부모의 유산과 친지의 보살핌 덕에 본국 귀족 수준의 좋은 교육을 받으며 식민지 엘리트로 성장했다. 프랑스대혁명 영향으로 진보 자유주의적 가치를 신봉하던 여러 걸출한 지식인 독립운동가들이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성인이 된 뒤 혼자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며 또 다양한 지식인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남미 현실과의 대비 속에 나폴레옹 절대권력에 대한 저항의식과 미 연방국가의 가능성을 살폈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남미로 돌아와 독립운동에 가담한 것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외사촌 마리아 테레사와의 짧은 신혼 끝에 사별한 직후인 1807년, 24세 때였다. 

그가 빼어난 전투 지휘관이었는지를 두고는 설이 엇갈린다. 그는 남미 여러 나라에서 숱한 전투를 치러 숱하게 승리했고, 괴멸적 패배를 겪기도 했다. 토착 군벌들의 지원을 받고 기사회생한 적이 적지 않았고, 스페인을 견제하기 위한 후발 제국주의국가들의 원조를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단일 국가 단위의 독립군이 아닌 남미 전역의 해방군 지휘자로 자신의 입지와 이미지를 굳혔다. 1819년 콜롬비아 해방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한 그는 잇달아 남미의 여러 나라를 독립시켰다.

그의 그란콜롬비아는 하지만, 독립 후 분리주의자들과의 알력과 내분으로 단명했다. 그는 1830년 대통령 직을 사임했고, 그란콜롬비아는 이후 약 1년 동안 4명의 임시ㆍ정식 국가수반이 교체되는 혼란 끝에 31년 12월 소멸, 개별 국가로 해체됐다. 볼리바르는 1830년 12월 17일 별세했다. 향년 47세. 그의 좌절된 이상은 남미인들의 아득한 염원으로 남아 20세기의 험한 수탈의 현실에 저항하며 연대하는 거멀못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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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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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담뱃세 빼돌린 KT&G의 몰염치

정부가 2015년 1월부터 적용한 담뱃세 인상 조치를 틈타 KT&G가 3300억원의 부당 이익을 챙겼다고 한다. 2억갑에 가까운 전년의 반출 재고분을 처리하면서 세금 인상분을 붙여 판매하고는 세금은 2014년 기준으로 낸 결과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이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KT&G의 뱃속을 채워 준 꼴이 됐다. 감사원이 기획재정부 등을 대상으로 담뱃세 관련 관리실태 점검 끝에 내린 결론이다.

담뱃세는 제조장에서 물류창고에 반출된 시점을 기준으로 세금이 붙도록 돼있다. 따라서 2014년 12월 31일 이전에 반출한 담배는 그 이후 판매하는 경우에도 세금 인상에 관계없이 기존 2500원의 가격을 적용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공급처나 시중 판매업소들은 2000원 인상된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웠던 것이다. 판매업소들이 미리 사재기에 나섰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런 사례는 외국계 담배회사들에 대한 지난해 감사에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 필립모리스와 BAT코리아가 재고를 쌓아놓고 기존 세율의 담뱃세를 납부한 뒤 2015년 이후 판매하면서 가격에 올라간 세율을 적용했다는 얘기다. 이렇게 외국 담배회사들이 올린 부당 이득만 해도 2000억원 이상에 이른다. 기획재정부가 세금인상 차액에 대한 환수규정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담뱃세를 올린 탓이다.

이처럼 부적절한 거래에 다른 업체도 아닌 KT&G까지 뛰어들었다는 사실에 서글픔을 금하기 어렵다. 건물 안에서는 진작 흡연 장소를 빼앗긴 채 길거리 모퉁이에 내몰려 연기를 뻐끔거리는 끽연가들의 안쓰러운 처지를 배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에서야 비로소 KT&G에 덤터기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 끽연가들의 입장에서는 담배 한모금마다 가슴이 타들어갈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담배제조 및 유통사에 담뱃세 인상차액 7940억원이 부당하게 돌아갔지만 아직 환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기왕에 기재부 담당자들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이 사후 조치를 제대로 취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외국계 담배회사들은 오히려 대형 로펌을 내세워 반박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주의깊게 추이를 지켜보고자 한다.



2. 미르·K스포츠재단 즉각 해산시켜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탄핵사태를 불러온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여전히 건재하다고 한다. 더욱이 기업으로부터 불법 모금한 774억원의 기금에서 매달 2억원 이상이 운영비 명목으로 술술 새나가고 있다. 설립의 정당성이 없는 데다 사실상 업무도 중단된 상태에서 자기들끼리 희희낙락 돈잔치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기금을 출연한 재벌 총수들이 청문회와 특검에 불려나가 닦달을 당하는 처지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감독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해산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팔짱만 끼고 있는 상태다.

미르·K스포츠 재단의 한 달 운영비는 사무실 임차료와 월급, 직원 복지비 등 줄잡아 2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 등 재단 이사진과 고위 간부들의 월급은 10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게다가 직원들의 휴대폰 구입비와 커피값까지 기금에서 빼내 쓴 것으로 드러났다. 마땅히 하는 일도 없는데다 존립 근거마저 의심받고 있는 두 재단이 이처럼 제멋대로 운영비를 사용하며 기금을 축내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가만히 드러누워 곶감 빼먹는 식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문체부는 지난해 12월 비용절감 방안을 보고받은 것 외엔 한 일이 없다. 최순실씨에 의해 임명된 정 이사장이 최근 자신의 측근들을 직원으로 뽑는 등 재단을 다시 장악하려 하는데도 수수방관이다. 재단 설립 때는 담당 공무원을 세종시에서 서울로 파견해 초고속 출장서비스까지 제공하더니 재단 해체에 대해서는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 재단에 적극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를 대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아직 박 대통령이나 최씨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냐는 지적에 대한 조윤선 장관의 답변을 듣고자 한다.

당초 재단 설립에 하수인 노릇을 했던 전경련은 지난해 9월 청와대 개입 의혹을 부인하면서 두 재단을 해산하고 새로운 문화체육재단을 설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전경련은 현재 자신이 해체될 위기에 처함으로써 그럴 힘이 없다. 재단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문체부가 나서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즉각 두 재단의 설립 허가를 취소하고 재벌들로부터 불법 모금한 출연금 중 남은 금액을 모두 국고에 귀속시키는 게 마땅하다. 해산 전이라도 기금을 더 이상 축내지 못하도록 자산 동결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매일신문]

3. 올해도 어려운 지역 경기 전망, 경쟁력이 해답이다

올해 대구 경제가 지난해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 기업이 열 곳 중 일곱 곳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상공회의소가 최근 대구 제조업 200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7 경제 전망’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결과다. 특히 고용을 더 늘리겠다고 응답한 기업이 고작 15.8%에 그쳐 기업들이 안고 있는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 66.5%가 매우 악화나 다소 악화될 것이라고 답해 올해 지역 경기 회복에 부정적이었다. 대내외 경제 상황이 불안정해 그만큼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말이다. 업종별로는 섬유업(78.4%) 전망이 가장 어두웠다. 자동차부품(66.7%), 전기`기계(57.1%), 금속가공(53.3%) 등의 순으로 경기 회복에 부정적이었다. 내수기업이 수출기업보다 현 상황을 더 비관적으로 보고 있어 심각한 소비 부진을 실감케 한다.



이 같은 고민은 대구경북연구원의 올해 대구경북 경제 성장 전망에서도 드러난다. 연구원은 올해 대구 성장 전망치를 지난해보다 소폭 하락한 2.4%, 경북은 비슷한 수준인 0.8%로 예상했다. 수출 감소와 소비 부진, 금융 불안정 등 대내외 환경이 단시간에 해소될 가능성이 낮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의 폭을 좁힐 지렛대 효과에 관한 분석도 있다. 연구원은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와 대구신세계 개점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확산된다면 대구가 2.9%까지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경북도 국제 유가 상승 등으로 이란을 비롯한 중동 지역 수요가 늘어날 경우 1.2%의 성장도 어렵지 않다고 전망했다. 이런 작은 불씨를 어떻게 살려내느냐에 따라 경기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올해 성장률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본격적인 경기 회복에 대비하려면 지역 기업이 풀어야 할 선결 과제도 많다. 주력 업종인 철강`전기전자 산업의 기술`가격 경쟁력을 지금보다 훨씬 높여야 한다. 수출시장의 다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맞춤형 성장 전략과 함께 위기 관리 능력을 키우려면 현재보다 갑절의 노력이 필요하다. 불리한 여건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경영`기술 역량을 최대한 키워나간다면 성장과 지역 경제 회복은 자연히 뒤따르기 마련이다.



4. 소녀상 철거가 대가라면, 10억엔 일본에 돌려줘라

일본의 ‘평화의 소녀상’ 때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소녀상 철거 요구 논리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출연금 10억엔 갹출이다. 후안무치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종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군의 조직적 관여 아래 다수 조선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깊게 훼손한 반인륜적 범죄다. 일본은 진정성 있는 사과는커녕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천박한 역사 윤리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8일 NHK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해 10억엔을 갹출했으니 한국 정부는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정권 아래에서 실행하는 것이 국가의 신용 문제라고도 언급했다. 외교적 수사로 에둘러 말했지만 “돈을 줬으니 딴소리 말고 우리 요구를 이행하라”는 말로 들린다.



일본이 위안부 협정을 돈 문제로 끌고 가는 데에는 우리 정부가 빌미를 제공한 감이 없지 않다. 10억엔 출연 요구를 우리 정부가 먼저 했기 때문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에서 이런 사실을 밝혔다. 그는 “협상 과정에서 출연금이 당연히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었다. 돈이 나와야만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 것이 된다”고 해명했다.



우리 돈 103억원을 받고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나라의 자존심을 바꾼 것은 우리 외교의 흑역사로 기록될 만하다. 위안부 협정의 이면 합의로 소녀상 철거가 포함돼 있기에 일본이 저렇게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끊이지 않는다.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사이에 야당은 강한 대응 자세를 주문하고 나섰다.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소녀상 철거가 일본의 요구라면 10억엔을 돌려주자”며 가세했다.



민간 차원에서 전개되는 소녀상 설치를 놓고 일본이 한국을 궁지로 몰고 가는 것은 우방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한 번 맺은 국가 간 협정을 파기하거나 무효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소녀상 설치와 합의금 10억엔 출연은 별개의 문제이기에 재검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일본이 소녀상 철거를 자꾸 요구한다면 10억엔은 돌려주는 것이 맞다.



5. 농민 뜻 묻지 않고 과수 벤 SK건설, 농촌 무시한 것 아닌가

SK건설과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중앙선 도담~풍기 금계동 복선 구간 노반 건설공사를 하면서 공사 구간 내 과수나무를 주인 동의도 없이 베어내 반발을 사고 있다. 자식처럼 돌보던 7~8년생과 20~25년생 사과나무 수천 그루가 사라졌다. 건설사는 정해진 행정절차조차 지키지 않았다. 피해 주민들로서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농민들이 진정서를 내고 경찰이 수사에 나선 까닭이다.



이번 일은 SK건설의 잘못이 원인이다. 먼저 절차 문제다. SK건설은 감정 평가를 통해 100% 나무값을 주는 방식으로 취득비 보상을 하고 공사를 위해 사과나무를 철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건설사는 여기부터 잘못했다. 공사 편입 토지가 공공사업을 위해 강제로 토지소유권을 취득하는 토지수용위원회의 절차를 밟아 수용재결되고 사과나무 보상이 결정됐지만 주민들은 이에 불복, 행정소송을 제기해 두고 있다. 소송 결과를 기다려 철거 여부를 결정해야 했지만 SK건설은 그러지 않았다.



SK는 또 사과나무를 철거할 경우 행정대집행하는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 게다가 사과나무 철거 때 아예 나무를 옮기지 않고 베어내는 잘못을 저질렀다. 토지수용위원회 결정에 대한 이의로 소송 중임에도 주민 동의도 없이 나무부터 벤 행위는 옳지 않다는 법률 전문가의 진단이 나오고 주민들이 절도라며 반발하는 이유다. 주민 동의를 받았다는SK건설의 주장과 달리 취재 결과, 주민들이 사과나무를 베도 좋다고 합의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일은 2014년부터 올해 6월 완공 예정으로 사업비 2천500억원을 들여 복선화 사업을 벌이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의 관리감독 문제는 제쳐놓더라도 대기업인 SK건설의 횡포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례이다. 내용적으로는 농촌에 대한 갑질로 농촌과 농민에 대한 무시가 배어 있다. 기업 이익을 위해 농촌 주민 이해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다.



지난해 포항 SK텔레콤 발주 공사장에서 2명의 근로자 목숨이 희생된 사고에 이은 이번 사태로 SK그룹의 경영 철학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법 적용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서울신문]

6. 최순실에 이어 박 대통령도 헌재에 나와야

박근혜 대통령이 설 연휴를 앞두고 기자간담회 등의 형식을 통해 자신과 관련한 의혹을 해명하거나 헌법재판소에 출석하는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박 대통령이 탄핵 소추의 사유가 된 사항에 대해 할 말이 있고, 주장하고 싶은 게 있다면 헌법재판소에 출석해 소명하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기습적인 간담회를 가진 바 있는데, 민심과 동떨어진 현실 인식과 주장으로 새해 첫날부터 국민들의 타오르는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그때 박 대통령은 “최순실은 지인일 뿐 누구를 봐줄 생각은 손톱만큼도 제 머릿속에 아예 없었다”라고 하거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에 대해서도 “완전히 (검찰이) 엮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라는 구중궁궐 속에 갇혀 진실에 눈을 감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변명을 거듭하는 모습에서 국민들 대다수는 분노와 함께 가소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 농단을 파헤치는 검찰의 수사나 헌재의 공개 변론 출석 요구에 한 번도 응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기자를 불러 특검과 헌재와 여론을 압박하는 장외전을 갖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탄핵 반대를 요구하는 친박 집회가 매주 계속되고, 새누리당에 이정현 전 대표를 제외한 핵심 친박이 온존하고 있는 상황에 박 대통령이 고무됐을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지금의 판을 어떻게 읽건 그건 자유이지만, 국민을 상대로 기만에 찬 피해자 코스프레는 온당치 않다.



연초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의 80% 전후는 탄핵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대부분은 최순실 국정 농단의 다른 주역인 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과이기도 하다. 혹여,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남아 있는 ‘박근혜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면 더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가 그 같은 의도로 간담회 등을 가지겠다고 한다면 언론사들의 신중한 대응이 요구된다. 박 대통령의 대리인들조차 헌재 출석을 권고하고 있다지 않은가.

국정 농단의 주범 최순실이 오늘 오전 헌재의 탄핵 심판 증인 신문에 출석한다고 한다. 헌재의 심판은 핵심 증인들의 불출석으로 변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피의 사실을 대부분 부인하고 있는 최순실이 과연 헌재에서 어느 정도까지 말할지 의문이지만 국민과 헌법 앞에서 증언하는 만큼 성실한 자세를 보여 주기를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박 대통령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당당하게 헌재의 심판정에 서야 한다. 국민에 대한 도리다.



7. 전통시장 잇따른 화재 총체적인 안전 점검을

전통시장에 화재가 잇따르고 있다. 침체된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많은 자금을 투입해 시설 및 제도의 현대화를 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재에 여전히 취약한 곳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관리를 책임져야 할 정부, 지방자치단체, 상인들의 안전불감증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못 고치는 격이다.

전남 여수시 교동 여수수산시장에서 어제 새벽 발생한 화재 사건은 여느 시장의 화재와 닮아 있다. 화재 원인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화재예방을 위한 시설 미비와 안전불감증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화재 당시 경보기의 작동 여부를 떠나 불이 난 지 7분쯤 지나 신고됐다. 불은 이미 시장 안의 점포로 번지고 있었다. 결국 화재 발생 2시간여 만에 120개의 점포 가운데 116곳이 피해를 입었다. 이 가운데 점포 58곳은 잿더미로 변했다. 인명 피해가 없었던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전통시장에서의 화재 위험성은 어제오늘 지적된 것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30일 새벽에 발생한 대구 서문시장의 불은 점포 600여곳을 삼켜 버렸다. 서문시장 상인들은 지금까지 생업을 이어 가지 못한 채 고통을 받고 있다.

전통시장은 정부, 지자체 등이 평소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는 화재 취약지구에 속해 있다. 여수수산시장도 서문시장 화재 이후 소방 관계자들로부터 안전 점검을 받았지만 화마(火魔)를 막지 못했다. 전통시장의 특성상 소규모 상가들이 지나치게 밀접해 있는 데다 전기시설은 거미줄처럼 빼곡히 뒤엉켜 있다.



사정이 이러니 화재 차단벽 등 화재 확산을 방지할 시설을 설치하기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전통시장은 화재 발생 시 소방차 접근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결과론적이지만 평소 안전시설에 대한 관심과 점검이 좀더 세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안전불감증을 지적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전통시장에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쇼핑하기 편리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다. 문제는 아무리 시장을 현대화하더라도 자칫 안전에 소홀해 화재가 나면 모든 게 헛수고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전통시장의 화재대응 체계를 총체적으로 점검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 재난예방대책과 복구 지원 시스템도 물론이다. 누구보다 상인들의 자구 노력이 절실하다. 안전 없이는 손님들의 발길도 담보할 수 없다.



[동아일보]

8. 합동소방점검 40일 만에 화재 발생한 여수수산시장

전남 여수수산시장에서 어제 새벽 화재가 발생해 100여 개 점포를 태웠다. 전통시장인 대구 서문시장에서 큰 화재가 발생한 것이 약 한 달 반 전인데 다시 전통시장인 여수수산시장에서 큰불이 났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재산 피해는 5억2000만 원으로 잠정 추산됐다. 여수수산시장은 여수 밤바다로 유명한 해양공원 등이 주변에 있어 하루 2000∼3000명이 찾는 관광명소다. 앞으로 영업하지 못하는 데 따른 피해와 설 대목을 앞두고 입은 손실은 훨씬 더 클 것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화재 발화 지점을 한 횟집 수족관의 산소공급기로 추정하고 누전에 의한 화재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서문시장 화재는 아직도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방화 가능성은 거론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을 폐지하고 신설한 국민안전처가 뻔히 예상 가능한 겨울철 전통시장의 화재를 막는 데도 연달아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수수산시장은 서문시장 화재 직후인 지난해 12월 5일 여수시와의 합동소방점검이 이뤄졌고 어제 화재 발생 시 스프링클러 옥내방화전 등도 모두 정상 작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초 신고자와 최초 현장에 도착한 화재진압 소방대원은 화재경보를 들었다고 안전처가 확인했다.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했는데도 누전이 큰 화재로 번지는 것을 막지 못했으니 이것이 더 큰 문제다.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고 시설이 낡은 전통시장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통상 하던 소방시설 점검만으로 내 할 일 다 했다고 하는 것은 소방방재청에서 한 단계 격상된 안전처의 자세가 아니다. 안전처는 전통시장의 무엇이 화재에 취약하게 만드는지 검토해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매일경제]

9. 타이밍 놓친 자영업자 대출강화 방안

금융위원회가 어제 치킨집 등 과밀업종 자영업자 대출을 강화하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내놓았다. 자영업자 대출의 39%를 점하는 부동산 임대업자에 대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적용 방침도 밝혔다. 주택담보대출과 더불어 가계부채의 또 다른 뇌관인 영세 자영업자 대출을 제한하겠다는 취지인데 진작 나왔어야 할 대책이었다.

현재 자영업자 실태를 보면 심각한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자영업자 가구 평균 소득증가율은 1.2%로 임시·일용근로자의 5.8%보다 훨씬 낮다. 자영업자의 5분의 1은 월 매출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렇게 된 것은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과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심해지고 내수 침체로 장사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창업 1~2년 안에 투자금을 몽땅 날리고 문을 닫는 자영업자도 적지 않다. 국세청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15년 이미 일평균 3000명이 자영업에 뛰어들고 2000명이 문을 닫은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권 대출을 받아 창업했다가 빚더미에 오른 자영업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141만명의 자영업자가 464조5000억원을 대출받았는데 이는 9개월 전에 비해 사업자금 대출은 13.4%, 생계비를 위한 가계대출은 14% 급증한 액수다.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의 대출 잔액도 2010년 말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하며 180조원을 돌파했다. 대출받은 자영업자 중에는 돈을 빌려 치킨집과 분식집 등을 차렸지만 고전하고 있거나 부동산 임대를 위해 거액을 빌렸는데도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사업자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들은 불황이 더 길어지고 금리가 오르면 가장 먼저 부실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측면에서 영세 과밀업종과 부동산 임대업자 등에 대한 대출 관리 강화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단순히 대출을 옥죄는 차원을 넘어 자영업자 폐업률을 최소화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정부는 자영업자 대출 현황을 토대로 상반기 안에 맞춤형 지원 방침을 발표하기로 했는데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처음 사업에 뛰어든 생계형 창업자에 대한 정보 제공과 컨설팅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10. 다보스포럼에서 부각되는 `책임 리더십`

오늘부터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2017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의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Responsive and Responsible Leadership)'이라는 의제가 작금의 한국 정치에 딱 맞는 과제를 던지는 것 같아 와 닿는다.



다보스포럼은 지난해 1월엔 제4차 산업혁명을 새 화두로 던져 온 세계를 흔들었는데 이번에는 각국의 정치 상황 변화를 압축적으로 반영하듯 책임 리더십을 주창하고 나섰다. 포럼 측 홈페이지에 게재된 설명을 보면 세계적인 보호주의와 포퓰리즘 확산 속에 4차 산업혁명 시대임에도 되레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와 불확실성 증폭이라는 정치적·경제적 배경 때문에 이런 의제를 택했다는 것이다.



오는 20일 취임식을 갖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새 행정부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과 함께 반(反)세계화와 자국 우선주의라는 극단적 포퓰리즘의 적나라한 표출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공공연하게 자유무역에 반대하고 배타적인 난민 정책으로 돌아선 현실을 보며 다보스포럼 측은 글로벌 차원의 책임 리더십을 강조하고 싶었던 듯하다.

학문적으로 책임 리더십은 스위스 명문 비즈니스스쿨 장크트갈렌대 토마스 마크와 니콜라 플레스 교수에게서 주창돼 확산됐다. 개인 수준에서는 자기만의 인적자본 향상을 넘어 사회윤리로 영역을 확장하고 비즈니스에서는 소비자와 협력업체 등 이해관계자들과의 사회적 약속 이행을, 사회적으로는 글로벌 시민의식 고양과 협력이다. 개인과 기업, 정치지도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나에서 우리로 패러다임의 기준을 바꾸자는 제안이다.

이번 다보스포럼에는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각 분야 지도자 2500여 명이 참여한다. 이들이 글로벌 차원에서 책임 리더십을 기반으로 협력과 소통을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포퓰리즘을 극복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개별 국가만의 나 홀로 생존 경쟁을 뛰어넘어 포용적 성장(InclusiveGrowth)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소통 부재가 부른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와 이로 인해 불가피해져 보이는 조기 대통령선거로 한국 정치권은 시대정신에 가장 잘 부합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정착시켜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 다보스포럼에서 제시한 책임 리더십을 어느 때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주요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신동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 일본에서 먹는 신년 요리 ‘오세치 요리ʼ…새해 기원하며 여러 음식 ‘찬합ʼ에 담아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더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소망한다. 새해 음식에도 이런 마음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는 하얗고 긴 가래떡을 엽전처럼 납작하게 썰어 떡국을 끓여 먹으면서 무병장수와 부를 기원해왔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새해에는 더 활기차고 복이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음식들을 즐긴다. 

미국 남서부 지방에서는 새해가 되면 ‘호핑존(Hopping John)’을 먹는다. 호핑존은 콩과 쌀, 고기, 베이컨, 푸른 채소 등을 넣고 끓여 만든 음식인데, 여기에 들어가는 푸른 채소가 지폐의 푸른 색깔과 비슷하다고 해 금전운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스는 새해에 ‘바실로피타’라는 케이크를 커피와 함께 먹는다. 케이크에 동전을 하나씩 넣어두는데 이 동전이 들어 있는 케이크를 먹는 사람에게 행운이 깃든다고 전해 내려온다.



이탈리아의 새해 음식인 ‘코테치노 콘 렌티치’는 돼지발로 만든 소시지에 렌즈콩을 얹은 음식이다. 이탈리아에서 돼지는 풍요를, 렌즈콩은 동전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 번영과 금전운을 상징한다고 한다. 멕시코에서는 특별한 새해 음식을 만들어 먹는 대신에 포도 12알을 먹는 풍습이 있는데, 포도 12알은 일 년 열두 달을 뜻하며, 포도 한 알씩을 먹으면서 새해 소원을 빈다. 

이웃나라 중국은 땅이 넓은 만큼 지역마다 새해 음식도 다르다. 북방 지역에서는 새해의 시작인 12시부터 물만두인 ‘자오쯔(교자)’를 먹는다. 전해에서 새로운 해로 바뀌는 교차점을 뜻하는 자오쯔와 발음이 같아서 생긴 풍습이다. 남방 지역에서는 녠가오와 탕위안을 주로 먹는다.



녠가오는 쌀떡에 팥소를 넣고 찐 다음 다시 튀긴 음식이다. 녠가오는 새해에 복을 비는 말과 발음이 같아 새해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탕위안은 우리나라의 새알심과 비슷한 음식이다. 일본에서는 아주 특별한 새해 음식, 오세치 요리를 준비한다. 자손의 번영을 뜻하는 청어알절임, 허리가 휠 때까지 장수를 바라는 의미에서 새우, 햇볕에 검게 그을릴 정도로 부지런히 일한다는 의미의 검은콩조림 등 새해 기원을 담은 여러 가지 음식을 찬합에 담아 먹는다. 이 찬합은 축복을 겹겹이 쌓는다는 뜻에서 대개 3단 혹은 5단으로 만드는데, 여러 사람들이 나눠 먹을 수 있도록 충분한 양을 준비하며, 먹을 때는 개인 접시를 준비해 찬합에 담은 음식들을 조금씩 덜어 먹는다. 

오세치 요리는 오래전 궁중에서 올리던 제사 풍습에서 비롯됐다. 세월이 흘러 궁중의 제사의식이 서민층에도 퍼지면서 섣달 그믐날에 온 가족이 모여 신전에 올렸던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풍습이 생겼다. 당시의 오세치는 ‘토시코시(年越し·섣달 그믐날 밤)’라 해 정월 초하루로 넘어가는 섣달 그믐날 밤에 먹는 음식이었다. 아직 홋카이도나 동북 지방 등 일부 지역에서는 섣달 그믐날 밤인 토시코시에 오세치를 먹는 풍습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 정월 초하루부터 3일 동안 오세치 요리를 먹는다. 

일본에서는 양력 1월 1일부터 3일까지 가족들이 모여 성대하게 신년을 축하하며 기념한다. 이날을 준비하기 위해 섣달 그믐에는 집안을 말끔히 청소한다. 이 기간 중에는 취사를 하는 등의 소음이나 냄새를 풍기지 않고 경건하게 보내는 풍습에 따라 미리 만들어두고 먹을 수 있는 오세치 요리를 충분히 준비해둔다. 

오세치 요리는 새해 3일 정도 오랜 시간을 두고 먹는 요리기에 보존성이 강한 조림이나 고온으로 완전히 익힌 튀김, 찜으로 하는 요리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제사 음식을 찬합에 담아낸 요리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3일 동안 손님이 방문하면 찬합에 이미 만들어진 요리를 차려내기만 하면 되고 명절 내내 취사를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여성들은 그 기간 동안 가사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셈이다. 

한국 차례음식 대행업체 유행처럼 일본도 오세치 음식 대행업체 늘어
일본 전통요리뿐 아니라 프랑스·중국 요리도 등장하는 추세

하지만 섣달 그믐에는 요리 만들랴, 대청소하랴, 너무나도 바쁘게 보낸 나머지 요통으로 고생하는 여성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고생도 이제 옛말이 됐다. 과거에는 섣달 그믐날에 집집마다 오세치 요리를 장만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요즘은 호텔이나 레스토랑, 식품회사가 만든 것을 사 먹는 가정이 늘고 있다. 일하면서 음식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고 외식 소비가 늘면서 요리를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저렴하게 음식을 해주는 대행업체가 흔해지고, 백화점에 가면 너무나 훌륭하게 음식들을 만들어 소비자의 주머니를 열게 만든다. 이런 흐름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것 같다. 연말쯤 일본 백화점에 가면 오세치 요리 예약을 많이들 한다. 싼 것은 몇 만원부터 비싼 것은 100만원이 넘는 것도 있다. 

필자가 처음으로 오세치를 경험한 때는 일본 유학 시절 2년이 되던 해였다. 첫해에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오세치를 사 먹을 정도로 주머니가 두둑하지 않았다. 2년 차가 되니 일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새해 첫날에 초대를 받게 됐다. 친구 집에서 가족을 위한 마음으로 정성을 가득 담아낸 오세치 요리를 받으면서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새우의 붉은색, 밤의 노란색, 하얀 연근, 거무스름한 조림 등등 형형색색 어우러져 눈으로 먼저 기분 좋아지는 음식이었다. 

한국의 김치는 수많은 재료가 들어가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힘든 요리다. 반면에 일본의 쓰케모노(절임음식)들을 보면 간단히 쌀겨나 소금으로 만드는 요리가 많아서 일본 음식은 한국 음식보다 단순한가 싶었다. 하지만 오세치 요리를 보면 한국 궁중요리 못지않게 다양하면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슬로푸드가 즐비하다.

옛날에는 일본 전통요리로만 오세치 요리를 만들어왔는데 지금은 프랑스 요리나 중식 요리를 쥬바코(찬합)에 담은 오세치 요리들도 등장했다. 

보기에도 화려한 데다가 다양한 나라의 맛까지 즐길 수 있으니, 오세치 요리를 고르는 일본인들의 재미가 쏠쏠할 듯싶다. 올 새해에는 우리 음식으로 한국식 오세치 요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찬합에 예쁘게 담아 가족과 함께 즐겨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2.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다니엘 하딩 | 영국이 배출한 차세대 마에스트로

지휘자 중에는 처음부터 지휘에 뜻을 두고 공부한 경우도 있지만 악기를 다루다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된 사람도 적지 않다. 카라얀, 아슈케나지, 정명훈 등은 피아니스트에서 지휘자로 변신한 예다. 카잘스, 로스트로포비치 등은 첼리스트면서 지휘자의 길을 걸었다.



좀 특이한 경우도 있다. 오는 2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LSO)와 함께 내한하는 다니엘 하딩(Daniel Harding)이다. 리코더로 시작해 바이올린을 거쳤다가 트럼펫을 전공하고 지휘자가 된 인물이다. 

다니엘 하딩은 1970년대생 지휘자 중 가장 빨리 성장한 사례로 꼽힌다. 일찍이 영국 음악계가 배출한 신동으로, 영국의 대표적인 차세대 지휘자가 된 그는 최연소 타이틀과 함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전현직 수장인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사이먼 래틀의 총애를 받은 인물로 유명하다.



트럼펫을 전공하던 그가 지휘자가 되길 결심하고 행동에 옮긴 것은 겨우 14세 때 일이다. 본격적으로 지휘자로서의 수업을 받은 것은 맨체스터 음악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마치 놀이처럼 작업한 현대음악 테이프를 사이먼 래틀에게 보내면서였다. 

당시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BirminghamSymphony Orchestra) 지휘자였던 래틀은 18살의 하딩을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 리허설 지휘대에 올렸다. 앳된 소년은 버밍엄 심포니 단원들로 이뤄진 현대음악 앙상블 팀을 훌륭하게 지휘하면서 정식 지휘자로 데뷔한다. 천재 지휘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은 빠르게 바다를 건너가고, 이를 눈여겨본 베를린 필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하딩을 초청했다. 

하딩은 1996년, 21살에 베를린 필을 이끈 최연소 지휘자라는 기록을 세우며 차세대 지휘자 1순위로 떠올랐다. 같은 해 런던 BBC 프롬스에서도 역대 최연소 지휘자로 데뷔한 그는 래틀 이후 영국이 낳은 최고의 지휘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게스트 지휘와 스웨덴 라디오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직을 겸하고 있다. 

오페라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는 하딩은 말러 챔버와 함께 매년 참가하고 있는 엑상 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 다양한 오페라를 선보이기도 했다. 

지휘자로서 하딩의 강점은 앞에 말한 스승(래틀과 아바도)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뛰어난 분석력과 함께 리더십이 훌륭하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해 파리 오케스트라와 내한한 바 있는데 이제 불혹을 갓 넘긴 영국인 지휘자와 개성 강하기로 유명한 파리 오케스트라는 전혀 이질감 없이 편안하게 일체감을 이루고 있었다. 그를 지켜본 많은 이들은 자신이 감독한 악단에서 음악과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하딩의 진지한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영국 최고 교향악단에 꼽히는 LSO는 ‘젊은 지휘자를 먹어치운다’는 평이 자자한 악단. 하지만 그런 LSO조차 하딩에게만은 유독 호의적이다. 현재 하딩과 LSO는 가장 호흡이 잘 맞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다. 2월 내한 무대에서 그가 LSO와 펼칠 무대는 말러 교향곡 4번이다. 젊은 마에스트로와 그의 평생지기인 LSO의 내한 무대에 국내 음악계 관심이 쏠린다.



3. [국민일보][살며 사랑하며-유형진] 마법사의 노동

쏟아지는 별빛을 덮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큰 교자상에 갈비찜과 톡 쏘는 양장피, 무를 넣어 조린 고등어와 고추장에 무친 시금치, 오징어 파래전 그리고 무국이 차려 있었다. 누가 마법을 부린 것일까? 마법사는 우리 외숙모들. 여기는 나의 외가 청양이다. 오늘 아침 밥상은 아흔네 번째 생신을 맞이한 외할머니의 생신상이었다.



지난밤, 자정까지 세 분의 외숙모들이 무를 씻고 야채를 썰고, 시금치를 삶고, 양념을 만들어 고기를 재워놓고, 파래를 헹구고, 오징어를 다지는 등 마법사의 전처리 과정을 수행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외삼촌, 외사촌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자정의 마법사들은 부엌에서 정연하게 움직이며 마법사들끼리만 통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간간이 웃음소리도 알맞게 흘렸다. 그 웃음소리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마법의 효과가 전혀 없다. 그저 허기를 채우기 위한 것일 뿐. 마법사의 남자들은 마루에 다소곳이 앉아 부엌에서 가져다주는, 마법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음식을 안주 삼아 잔을 기울인다. 때때로 시국을 개탄하고, 각자가 속해 있던 자리에서 횡행했던 적폐들에 대해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은 나도 마법사여서 내가 ‘ㅁㄴㄹ’라는 명찰을 달아야 하는 곳에 가서는 부엌에 있어야 했지만, 외가에서는 나의 위치에서 마법을 부리는 것은 월권행위다. 그래서 마법사들의 보조 아니면 설거지 정도밖에 허락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조금 폼 나는 일은 마법사들의 커피 물을 끓이는 정도. 

곧 설이다. 계란 값도 오른 상황이고, 무값도 세 배. 야채, 고기를 막론하고 모든 마법의 재료값이 엄청나게 뛰었다. 진짜 전국의 마법사들이 파업하고 싶을 정도로 그 어느 해보다 더 고될 마법의 전처리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시국을 개탄하고, 사회 곳곳의 적폐에 대해 논할 때, 누군가는 마법을 부린 것처럼 그 다음 날 뚝딱, 설 차례와 명절 음식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3. [한국일보][우리말 톺아보기] 얼레리꼴레리

어린아이들이 ‘누구는 누구를 좋아한대요’ 혹은 ‘누구는 오줌싸개래요’라고 또래 아이를 놀릴 때 ‘얼레리꼴레리’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얼레리꼴레리’는 무슨 뜻이고, 어디에서 유래한 말일까?

‘얼레리꼴레리’는 ‘알나리깔나리’의 변이형(變異形)으로 쓰이는 말인데, ‘얼레리꼴레리’ 대신 ‘알나리깔나리’가 표준어로 등재되어 있다. ‘알나리깔나리’는 어리고 키가 작은 사람이 벼슬한 경우를 놀림조로 이르던 말인 ‘알나리’에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깔나리’를 덧붙여 만든 말이다. ‘알나리’는 접두사 ‘알-’과 명사 ‘나리’가 결합된 말인데, 접두사 ‘알-’은 ‘작은’의 뜻을 더한다. 그래서 ‘작은 바가지’를 ‘알바가지’라고 하고, ‘어린아이의 오줌을 누이는 작은 요강’을 ‘알요강’이라고 한다. 

우리말에는 ‘알나리깔나리’와 같이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후렴처럼 다른 말을 덧붙여 쓰는 말들이 많이 있다. 

미주알고주알’은 항문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을 가리키는 ‘미주알’에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고주알’을 덧붙인 말이고 ‘휘뚜루마뚜루’는 ‘닥치는 대로 대충대충’이라는 뜻의 ‘휘뚜루’에 역시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마뚜루’를 덧붙인 말이다.

‘어중이떠중이’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쓸모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어중이’에 ‘떠중이’가 덧붙어 이루어진 말이고, ‘주저리주저리’ 역시 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주저리’를 겹쳐 쓴 말이다. ‘주저리’는 볏짚을 엮어서 김칫독에 씌울 때 쓰는 물건인데, 볏짚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모습에서 유래해 ‘주저리주저리’가 ‘너저분하게 이것저것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4. [조선일보][일사일언] 악보를 못 버리는 이유

주말에 이사를 했다. 책과 악보만 스무 상자가 넘었다. 크고 무거운 악보들을 하나하나 꺼내 상자에 넣는 노동을 몇 시간씩 반복하니 허리도 아팠다. 이걸 꼭 다 가지고 있어야 하나 하는 회의도 절로 들었다. 무거운 상자를 나르는 분들께도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이삿짐을 싸면서 보니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악보가 가득했다. 녹음을 듣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곡을 이해할 수 없어서 샀던 '시벨리우스 교향곡 3번'의 총보는 벌써 20년 가까이 가지고 있다. '엘가 교향곡 2번'은 런던에 처음 일하러 올 때 연주했는데 그전엔 들어본 적 없는 곡이라 나름대로 열심히 듣고 악보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밤낮으로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나 '봄의 제전'을 끼고 다니던 때도 있었다. 어느덧 그 악보들에는 음악만이 아니라 내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음악 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들은 음악을 쉽게 기억하는 편이 아니다. 소리는 나는 순간부터 사라져 가는 것이기도 하다. 악보를 한때 열심히 읽었다고 해서 꼭 지금 그 곡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시간을 그 악보와 함께 보냈는데도 지금 보면 내가 연필로 표시해놓은 것조차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런던의 지휘 선생님 한 분이 수업 중에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학생 시절 도스토옙스키 소설에 심취해 밥도 굶고 책을 읽을 정도로 그 세계에 빠져 지냈는데 지금은 책의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내용을 다 잊고 나서도 무엇인가는 분명 자신에게 남아 있다면서, "어쩌면 다 잊고 나서 남은 그것이야말로 진짜가 아닐까?" 하고 되물으셨다.


지난주에 무슨 곡을 연주했는지도 가물가물하다든가, 전에 연주했던 곡인데 처음 보는 것만 같은 악보를 앞에 놓고 망연(茫然)해질 때, 그 말씀으로 위안을 삼는다.


5. [동아일보][표정훈의 호모부커스] 타자기

전동 타자기를 산 청년은 노트에 적어둔 시들을 밤새 쳤다. 매일 밤 청년은 타자기를 갖고 놀았다. 이듬해 여름 폭우로 둑을 넘은 물이 마을로 밀려들 즈음 청년의 어머니가 집을 향해 내달렸다. 물이 차오르던 집에서 어머니는 타자기를 들고 나왔다. “아들이 집에 오면 이것만 갖고 노는데 없어지면 큰일 나지.”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1995년) 수록 시 대부분을 그 타자기로 쓴 시인 허연의 이야기다.

시인 안도현은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년)을 원고지에 썼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시집 ‘모닥불’(1989년), ‘그대에게 가고 싶다’(1991년)는 타자기로 쳤다. 컴퓨터의 ‘무진장 지웠다가 다시 쓸 수 있는 기능에 매료된’ 시인은 네 번째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년)을 286 컴퓨터로 입력했다. 프린터 출력 원고를 우편으로 보낸 것은 다섯 번째 시집 ‘그리운 여우’(1997년)가 마지막이었다. e메일 전송 시대가 열린 것.

작가 장정일은 1982년 설 하루 전날 클로버 타자기를 8만 원 주고 샀다. 작가는 이 타자기로 시집 여러 권에 나눠 실을 만큼 많은 시를 썼고, 중편소설 ‘아담이 눈뜰 때’를 썼다. 시인 기형도(1960∼1989)는 대학 시절 교내 문학공모에 당선된 후 상금으로 세계문학전집과 수동 타자기를 사고는 친구 성석제에게 ‘배부른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너도 상금 받으면 먼저 책하고 타자기부터 사.”

노벨 문학상 수상 시인이자 가수인 밥 딜런은 수동 타자기로 3년간 직접 자서전 원고를 썼다. 처음 타자기 앞에 앉았을 때만 해도 오래된 일을 떠올릴 자신이 없었지만, 일단 써 내려가기 시작하자 ‘기억의 창고’가 열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 

1873년 레밍턴사가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타자기를 내놓았다. 마크 트웨인이 ‘미시시피 강의 생활’(1883년)을 타자기로 쓴 이후, 한 세기 이상 이어진 ‘탁 타탁 타타탁∼’ 소리는 사실상 멈췄다.

“타자기는 인간이 말하는 방식 그대로 쓴다”고 말한 헤밍웨이, 타자기로 “시와 산문을 두드려 만든다”고 했던 영국의 계관시인 존 메이스필드, “잊어버린 추억을 불러내어 외솔타자기로 몸과 마음을 빚는다”고 한 시인 오탁번…. 소리의 리듬이 글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손끝의 느낌이 몸을 일깨우는 타자기는 단순히 글 쓰는 도구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이기(利器)를 대가로 치르고 이제 기억으로만 아득히 남은 것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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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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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특검의 마구잡이 재벌수사 우려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어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의 수뢰의혹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특검은 최순실이 주도한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다음주에는SK와 롯데 등 다른 재벌 총수들로 수사를 확대할 것이라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 부회장이 피의자로 불려나온 것은 2008년 조준웅 특검팀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 때에 이어 9년 만이다. 당시에는 불기소 처분으로 넘어갔으나 이번엔 법망을 빠져나가기가 어려워 보인다. 특검이 박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핵심 고리로 삼성과 이 부회장을 지목한 탓이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과 삼성의 정유라씨 지원에 박 대통령이 직간접으로 연루됐다는 게 특검의 인식이다.

재벌총수들과의 뒷거래만 입증된다면 수사의 큰 성과로 치부되고 나아가 박 대통령 탄핵은 따 놓은 당상이므로 특검이 사활을 걸 만도 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을 어떻게든 엮어 넣으려는 ‘짜맞추기 수사’라는 재계와 법조계 일각의 지적에는 뭐라고 대꾸할 텐가. 특검은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첫 독대가 합병 일주일 후에 이뤄진 만큼 합병 대가 운운은 어불성설이라는 삼성의 주장을 뒤엎을 명백한 근거부터 내놔야 한다. 지분이 국민연금의 2배가 넘는 소액주주의 과반수와 증권사 상당수가 합병에 찬성한 데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다.

수사 방식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죄가 있으면 마땅히 처벌해야 하지만 확정되지 않은 혐의를 언론에 흘리며 여론전을 펴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 더구나 삼성이나 다른 대기업들이 ‘뇌물기업’으로 규정되면 미국과 유럽 등에서 거액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어야 하고 신규계약 체결에도 막대한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피해는 이미 가시화됐다. 촌각을 다투는 재벌총수들이 한 달 넘도록 출국금지되는 바람에 ‘경제 유엔총회’로 불리는 다보스회의에도 가지 못하게 됐다. 특히 이 부회장의 경우 모처럼 얻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초대장도 무용지물이 되는 등 우리 기업들이 국제무대에서 왕따 신세로 변해가는 중이다. 특검이 후진적 수사 관행으로 세계 무대에서 한창 뻗어가는 우리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자해행위나 해선 곤란하다.



2. 의정부 경전철 파산 누가 책임질 건가

수도권 첫 경전철인 의정부 경전철이 개통 4년 반 만에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사업자인 의정부경전철(주)은 그제 이사회를 열어 서울중앙지법에 파산신청서를 냈다. 2012년 7월 개통한 후 승객 수가 예상 수요에 못 미치면서 쌓인 적자가 2400억원에 이르는 데다 앞으로도 매년 수백억원의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의정부시는 새 사업자를 찾아 운행 중단은 막겠다지만 엉터리 수요 예측을 근거로 사업을 벌인 결과는 고스란히 시민 피해로 돌아오게 됐다.

총 6767억원을 들여 건설한 의정부 경전철의 당초 예상 이용객은 하루 평균 7만 9000명이었다. 그러나 개통 첫해 하루 평균 이용객은 1만여명으로 예상의 20%에도 못 미쳤다. 수도권 환승할인 도입 등으로 최근 3만 5800여명으로 늘긴 했지만 여전히 손익분기점의 30%선 수준이다. 해마다 3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파산선고가 내려질 경우 민간사업자 투자비 중 약 2500억원을 환급해야 한다. 한 번 잘못 끼운 단추 때문에 시민들이 져야 할 짐이 너무 크다.

문제는 의정부 경전철과 같은 부실 사업이 전국적으로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용인 경전철도 올해 이용객이 적어 운임수익 80억원의 3배 가까운 230억원을 시에서 부담할 판이다. 김해 경전철도 수요예측 잘못으로 매년 400여억원을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853억원을 들인 인천의 월미은하레일은 고철이 돼버렸다. 경전철 10개 노선을 추진 중인 서울시도 오는 7월 개통 예정인 우이~신설선의 하루 이용객 수가 당초 예측한 13만명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벌써부터 차질이 우려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 없다. 지자체장이나 정치인들은 재선을 위해 ‘묻지마’ 개발사업을 일단 벌여놓고 보자는 식이다. 재정에 구멍이 나도 임기를 마치면 그만이고 뒷감당은 애꿎은 시민들이 져야 한다.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단체장 해임이나 납세자 소송 등 사업 관련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지자체 파산제 도입도 검토할 만하다. 무리한 사업을 사전 통제할 방안을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매일신문]

3. 반기문 전 총장, 대선 주자로서 혹독한 검증받아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귀국해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대선 후보 지지율 1, 2위를 오르내리는 반 전 총장의 귀국은 본격적인 대선 정국의 막이 올랐음을 의미한다. 그의 행보에 대선 정국이 크게 요동치고 정치 지형도마저 바꿔 놓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의 앞길에는 ‘꽃길’만 펼쳐진 것이 아니다. 대선 후보로서 자신의 도덕성과 정책을 혹독하게 검증받아야 하는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정치 환경은 반 총장에게는 아주 유리한 국면이다. 새누리당에서 바른정당이 분당해 4당 체제가 열리면서 보수와 진보의 틀이 흐릿해졌고, 촛불 민심과 탄핵 정국으로 새로운 리더십과 사회 변화에 대한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반 전 총장 영입에 사활을 걸고 있고, 국민의당 역시 전국 정당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영입에 적극적이다. 충청권 국회의원들과 ‘정치 낭인’으로 떠돌던 MB(이명박)계 인사들이 그에게 달려가고 있다. 그에게는 너무나 우호적인 정치 환경이 마련돼 있다고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는 ‘완성된’ 정치인이 아니다. 평생 외교관 생활을 한 만큼 정치철학과 정책은 불분명하고,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측근들이 전하길, ‘외교 안보는 보수, 경제 사회는 중도 성향’이라고 한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부분은 외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구체적인 철학과 이념이다. 그는 하루빨리 국가와 사회 현안에 대한 생각과 비전을 밝히고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할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두 가지 의혹도 해명해야 한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회장으로부터 23만달러를 수수했다는 의혹과 미국에서 뇌물죄로 기소된 동생과 조카와의 관계를 솔직하게 털어놔야 한다. 그는 이를 부정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뇌물과 친인척 문제는 대통령 후보의 자격 유무를 판단할 근거가 되므로 완벽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는 귀국길에 밝힌 대로 ‘포용적 리더십, 우리 사회의 통합과 안정’을 이룰 수 있는 인물인지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 그의 성패는 박근혜 대통령 이후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자질이 있는지에 달렸다.



4. 예천농협 하나로마트 부지 매입 의혹, 검찰은 철저히 규명하라

​현재 인구가 4천 명밖에 안 되는데 농협 대형마트 2개 건립이 추진되는 곳이 있다. 안동`예천 경북도청신도시가 바로 그곳이다. 부지 매입 과정에서도 불법 의혹이 불거져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예천농협은 지난해 5월 말 도청신도시 특화상업용지 3필지를 94억원에 사들였다. 예천농협은 여기에 150억원을 더 들여 하나로마트 및 금융점포 입점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 장소에서 1㎞도 안 떨어진 곳에 서안동농협이 파머스마켓과 금융점포 입점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청신도시는 10만 인구의 자족도시라는 계획 아래 조성됐지만 현재 상주인구는 4천 명에 불과하다. 앞으로 인구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은 되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과 부동산 시장 침체 등의 여파로 인구의 대거 유입은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더구나 예천농협이 사들인 땅은 대로를 통한 주차장 진`출입이 여의치 않은 등 설계상의 핸디캡마저 안고 있다. 부지 매입 후 예천농협은 예천군과 경북도에 진입로 확보를 위한 설계 변경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예천농협 하나로마트가 개장하더라도 신도시 내 고객들은 주차장 이용 등이 편리한 서안동농협 파머스마켓으로 몰릴 것이고, 예천농협은 무리한 하나로마트 건립으로 많은 적자 부담을 안을 가능성이 높다.


사정이 이런데도 예천농협이 250억원 가까운 돈을 투자해 대형마트를 지으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농협 직원이 시세보다 비싸게 낙찰받은 이 땅을 예천농협이 왜 사줬는지, 이 과정에서 조합 임원의 연루가 있었는지 규명돼야 할 것도 많다. 예천농협 하나로마트 부지 불법 매입 의혹을 수사한 예천경찰서는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사건 관련자를 검찰에 곧 송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갈 전망이다. 최근 서울에서도 예천농협과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바 있는데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대검찰청이 재수사를 지시하는 등 해프닝이 있었다. 예천농협 사건에서 유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검찰의 엄중한 수사와 기소를 주문한다.



[동아일보]

5. 미르·K스포츠, 해체커녕 매달 운영비 2억씩 쓴다니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난 단초를 제공했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아직도 해체되지 않고 매달 2억 원에 가까운 운영비를 쓰고 있다. 작년 9월 말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아 사업이 중단됐는데도 사무실 임차료와 급여 등을 꼬박꼬박 지출한다. 직원들은 검찰에 압수당한 휴대전화를 다시 구입했고 심지어 커피 값까지 법인카드로 내고 있다고 한다.

두 재단 설립의 ‘거간꾼’ 역할을 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작년 9월 청와대 개입을 부인하며 두 재단을 해산해 750억 원 규모의 문화체육재단을 세우겠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손을 뗐다.



그사이 대기업에서 뜯어낸 두 재단의 출연금 774억 원에서 남은 돈 750억 원은 평균 연봉이 9000만 원이 넘는 미르 직원들과 7000만 원에 가까운 K스포츠 직원들의 지원금이 돼버렸다.



인허가권이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는 작년 12월에야 비용 최소화 방안을 받아 점검하고 있다. 전경련은 해체 위기에 놓여 있어서 그렇다고 쳐도 이렇게 일 처리를 하는 문체부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검찰은 최순실 씨를 기소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두 재단의 설립과 작명, 이사진 구성, 자금 모금까지 일일이 챙겼다고 밝혔다. 두 재단의 실질적 소유주인 박 대통령의 지침이 없어서 문체부가 별다른 조치를 내리지 못하는 것인가.



문체부는 미르 승인 때 담당 공무원을 서울로 보내 ‘초고속 출장 서비스’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문체부가 재판과 특검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국민 분노는 안중에 없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어제 미르·K스포츠 해산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문체부의 방관자적인 태도를 규탄했다. 이대로 놓아두면 경실련의 우려대로 곶감 빼먹듯이 돈이 새나갈 수 있다. K스포츠 이사장은 이사회 해임 결의에도 버티면서 직원들과 싸우는 지경이다. 문체부는 지체 없이 두 재단을 해산하고 남은 출연금을 국고에 귀속시키는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6. ‘글로벌 리스크’가 된 양극화, 포퓰리즘으론 해결 못한다

향후 10년간 세계의 성장 발전을 결정지을 가장 중요한 트렌드로 ‘경제적 격차 증가’가 꼽혔다. 세계경제포럼(WEF)이 17일 연차총회(다보스포럼) 개막을 앞두고 정치 경제와 사회 등 각계 전문가 745명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2017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에서다. 2위는 기후변화이지만 3위는 사회 양극화다.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가 국수주의와 보호주의 같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이어지면서 세계적으로 공동 대처해야 할 위협 요인이 된 것이다.

글로벌 리스크로 떠오른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보스포럼이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을 올해의 주제로 삼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주제였던 4차 산업혁명은 세계화와 함께 증폭돼 테크놀로지와 교육, 수입 등에서 뒤처지는 사람들을 낳았다. 이들의 불만과 분노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치로 지난해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됐고,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올해도 4월 프랑스 대선, 9월 독일 총선에서 포퓰리즘 정치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작지 않다.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 문제는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세계 상위 소득 데이터베이스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2년 기준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44.9%였다. 아시아 주요 국가 중 가장 높고 전 세계 주요국 중 미국(47.8%) 다음이다.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으로 불평등과 양극화의 문제를 풀지 못하면 한국의 민주주의와 번영도 흔들릴 우려가 크다. 

탄핵 정국에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주요 대선 주자들의 포퓰리즘적 공약이 난무하는 것이 걱정스럽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제 반값 등록금 실현과 서울대 폐지 등을 계층 간 격차를 해소할 교육 공약으로 제시했다. 반값 등록금 실현에 필요한 예산만 적어도 5000억 원이 들지만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뿐 구체적 재원 마련 방안은 없다.



[매일경제]

7. 기업 규제가 이롭다는 국민 인식의 위험성

국민 대다수가 공익을 위해 기업을 규제하는 게 이롭다는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매일경제와 서울대 폴랩 한규섭 교수 연구팀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만 19세 이상 남녀 10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 규제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10명 중 7명이 넘었다.



기업들이 너무 많은 이윤을 챙기고 있다고 답한 사람도 79.8%에 달했으니 우리 사회에 반기업 정서가 얼마나 팽배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대한상의도 지난 3일 전문가 50인을 대상으로 비슷한 설문을 했는데 84.6%가 올해도 기업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이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기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우세한 배경에는 검찰이 '최순실 게이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경유착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기업들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경영하지 않고 여전히 편법과 탈법을 일삼고 있다는 여론이 확산됐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잊을 만하면 터지는 대기업 갑질 사건과 대선 주자들의 재벌개혁 공약까지 반기업 정서를 촉발하는 요인은 한둘이 아니다. 

문제는 기업 규제 여론이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도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오늘 올해 첫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새로 발표할 예정인데 지난해 10월에 제시한 2.8%보다 낮출 수도 있다고 한다. 수출이 다소 회복됐다지만 성장을 견인할 정도는 아니고 내수는 개선될 조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연구기관은 이미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대 초중반으로 내려잡았다. 지난해 연평균 실업자 수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고용 사정도 악화되는 추세다. 

사면초가인 우리 경제를 살리려면 정부 역할도 중요하지만 결국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하는데 국민 인식은 반대 쪽으로 가고 있으니 큰일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기업들이 여론의 눈치를 보고 각종 규제로 손발이 묶인다면 우리 경제는 위기 극복은커녕 더 큰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일부 대선 주자는 이미 지난해 6월 스위스가 국민투표에 부쳤다가 부결된 기본소득제까지 주장하고 있다. 클라우스 슈바프 다보스포럼 회장은 “리더십은 특권 위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신뢰를 얻기 위한 진지한 노력 위에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한국 정치권에서는 누가 이런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8. 특검 소환 이재용, 한국에서 기업한다는 것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2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을 뇌물공여 피의자 혐의로 소환해 밤늦게까지 조사했다. 특검팀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 국민연금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삼성이 비선실세 최순실 측에 수백억 원을 지원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삼성은 당시 지원이 대통령과 최씨의 압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이뤄졌으며 반대급부를 받거나 요구하지 않았고 따라서 스스로를 공갈 강요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삼성의 지원이 대가성을 전제로 한 뇌물인지 여부는 참·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법률적 판단의 영역이며 최종적으로는 법원이 결정할 일이다.

다만 이번 사태 전개를 바라보며 한국에서 기업하는 사람들의 '숙명'을 한 번쯤 생각하게 된다. 주요 그룹들은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에 수십억 원 이상 출연금을 냈다. 특검에 앞서 검찰이 먼지 털듯 조사했지만 정권에 특별한 민원이 있어 출연금을 낸 혐의를 포착하지 못했다.



박근혜정부 이전에도 정권 역점사업이라는 것은 존재했고 그때도 기업들은 이런저런 후원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정부 후원에 대한 반대급부로 무언가 얻어냈다는 기업을 들어본 적이 없다. 기업들이 정부 요구에 응하는 것은 무엇을 바라서가 아니라 눈 밖에 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정치권력은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멀게는 국제그룹이 5공 정권 눈 밖에 나 망했고 외환위기 와중에 대우그룹이 문닫는 과정에서도 정권에 밉보인 것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말이 있었다. 특정 정권 때 흥했던 건설사가 정권이 바뀐 후 망가진 사례는 한두 건이 아니다. 정권 실세의 요청에 '노'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 기업이 과연 있을까. 

삼성 같은 대기업은 일 년 열두 달 현안이 없는 날이 없다.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낸 후원금을 그때그때 현안과 결부시켜 '뇌물'로 규정하는 것은 마음먹으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공정한가. 기업활동 최대의 적은 불확실성이다. 한국은 정권이 기세등등할 때는 각종 준조세로 기업의 팔을 비틀고, 정권 말기가 되면 이를 정경유착으로 몰아 기업을 욕보이는 사회다. 그래서 '한국에서 기업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란 얘기가 나온다.



[세계일보]

9. 이재용 부회장 피의자 소환, 정경유착 끊는 계기 돼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어제 특검 포토라인에 섰다. 최순실 일가에 뇌물을 공여한 혐의와 관련한 피의자 신분이다. 이 부회장은 “국민께 정말 송구스럽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 수사는 박근혜 대통령을 제3자 뇌물 공여나 뇌물 수수 혐의로 조사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 해석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삼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지지를 얻는 대가로 최씨 일가에 현금 지원을 결정하고 실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15년 이뤄진 양사의 합병은 오너 일가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강화가 목적이라는 분석이 유력하게 돌았다.



삼성전자가 코레스포츠에 말 구입비 등으로 78억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여원을 지원한 것은 최씨의 영향력 행사에 따른 대가성 뇌물로 간주한다. 특검은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도 수사 대상이라고 했다. 

삼성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공갈·협박의 피해자이지 뇌물죄의 공범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대통령과 최씨의 압박에 의한 것일 뿐 어떤 금전적 이득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가성이 있는 뇌물이었다면 현금 흐름이 모두 드러나도록 최씨 측에 영수증까지 요구했겠느냐고 반문한다. 삼성물산 합병과 로비 부분도 선후 관계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은 2015년 7월10일이고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가 이뤄진 건 보름 뒤인 7월 25일이다.

대가성 여부는 삼성과 특검 간에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만에 하나라도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예단을 갖고 수사해선 안 된다. 특검이 박 대통령을 뇌물죄로 처벌하기 위해 어떤 프레임을 갖고 수사를 벌인다는 일각의 우려를 흘려들어선 안 된다. 철저한 증거에 입각해 단죄가 이뤄져야 한다.

세계 일류 기업인 삼성그룹의 수장이 피의자로 소환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정경유착의 고리를 확실히 끊어야 한다. 그러자면 기업 범죄에 대한 단호한 처벌과 함께 기업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쪽은 정치권이다. 권력이 갑이라면 기업은 을이다. 갑이 휘두르는 공권력의 칼날에 끝까지 맞설 수 있는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최순실 국정농단과 같은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대선 주자들부터 권력으로 기업을 농단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이 부회장의 소환은 본인은 물론 우리 정치권에도 반성의 기회가 돼야 한다.



10. 정치 역량 시험대에 선 대선주자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어제 귀국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부의 양극화, 이념·지역·세대 간 갈등을 끝내야 한다”고 밝혔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겪은 여러 경험과 식견 가지고 젊은이의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해 길잡이 노릇을 하겠다”고도 했다. 대권 도전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반 전 총장은 그동안 유엔 사무총장 직을 충실히 수행해 대한민국 국격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국민의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의 신분은 ‘평민 반기문’이 아니라 ‘대선주자 반기문’이다. 대선 행보를 공식화한 만큼 혹독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다투고 있는 그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검증을 받아본 적이 없다. 2004년 외교부 장관에 임명됐을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이 아니었고, 유엔 사무총장이 된 뒤엔 10년 동안 한국을 떠나 있었다.

우선 그를 둘러싼 뇌물수수 의혹이다. 반 전 총장은 어제 회견에서 ‘박연차 23만달러 수수설’과 관련해 “공직자로서 양심에 부끄러운 일 없다”고 부인했다. 자신의 동생인 반기상씨 부자가 미국 뉴욕 연방법원에 뇌물 혐의로 기소된 데 대해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런 소극적인 자세로 의혹이 말끔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의 혐의를 일축하면서도 검찰 고발과 같은 적극적인 노력은 하지 않았다. 국민이 납득할 수준의 조치와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반 전 총장은 국민 대통합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대통령 탄핵 사태로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 것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국민 화합은 구호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진정성 있는 실천이 담보돼야 한다. 반 전 총장이 출신지인 충청권 표심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면 또 다른 지역주의를 초래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반 전 총장 스스로 깊이 유념할 대목이다.

반 전 총장은 “정권 교체가 아닌 정치 교체를 이뤄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앞으로 어떻게 정치 교체를 이룰지 분명한 비전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지금 경제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위안부 문제로 주변국과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팍팍한 민생과 일촉즉발의 안보 불안을 덜어줄 구체적인 방책을 제시해야 한다. 꿈과 희망을 안겨주기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에 답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세계일보][양경미의영화인사이드] 일본애니 저력 ‘너의 이름은’

애니메이션 영화의 매력은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관객의 인기를 얻었던 애니메이션을 보면 영상으로 담기 힘든 장면을 구현해내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만든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은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영화다.

‘너의 이름은’은 지난 4일 개봉한 이래 박스오피스 1위를 꾸준히 유지하며 단기간에 관객 수 130만 명을 훌쩍 넘겼다. 애니메이션은 미취학 아동용이라는 인식을 깨고 성인관객들에게도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는 꿈속에서 몸이 뒤바뀐 도시 소년 다키와 시골 소녀 미쓰하가 만들어가는 기적과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서로의 몸이 뒤바뀐다는 설정은 새로울 것이 없지만 영화는 아름다운 영상미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신카이 감독은 전작인 ‘초속 5센티미터’와 ‘언어의 정원’을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그의 작품을 보면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사실적이다. 실사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의 경우 영상의 사실성이 배제된다면 관객들은 영화에 몰입할 수 없다. 신카이 감독은 사실적인 영상을 만들기 위해 배경이 되는 장소를 헌팅한 후 이를 영상으로 구현해낸다. 실제 장소인 시마노마치역 앞 육교, 도코모 요요기 빌딩, 스가신사 인근, 신주쿠 경찰서 뒤편 교차로 등을 싱크로율 100%로 표현해 냈다.



정교하고 세밀한 영상은 창조된 영상임을 상쇄시킨다. 이러한 방식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과 동일하다.

스토리 구조도 젊은 성인층을 공략한다. 청춘로맨스로 젊은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있으며 명장면마다 레드윔프스(Radwimps)의 OST가 흘러나와 분위기를 잡는다. 후반부엔 동일본 대지진을 삽입해 현실성을 높였다. 관객들은 지난날 겪은 여러 참사를 떠올리게 된다. 신카이 감독은 애잔한 정서를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며 국경을 초월한 감동을 전달했다. 그리고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도 잊지 않는다.

재패니메이션의 저력을 보여준다. 시청각과 스토리가 결합돼 하나의 사실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애니메이션은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면서 어느 하나라도 균형을 잃는다면 외면받기 쉬운 장르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실사영화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돼 제작자들이 선호하는 장르는 아니다. 또한 실사 영화같이 다양한 장르와 스타 배우가 부재하는 핸디캡을 태생적으로 지닌다. 감독은 이러한 핸디캡을 모두 극복하고 있다. 신카이 감독의 등장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은 더욱 번창할 전망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동화 기술력은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는다. 그러나 미흡한 스토리 개발 탓에 미국과 일본의 하청 수준에 머물렀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영상미와 사실성 그리고 스토리구조를 개선한다면 재패니메이션처럼 캐릭터를 판매하는 등 성장산업으로 성공할 수 있다. 흥행돌풍을 몰고 온 ‘너의 이름은’은 침체를 겪고 있는 우리 애니메이션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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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일보][일사일언] 시장통 극장의 추억

서울 상암동 영상자료원 1층에는 코끼리만 한 영사기가 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영사기에 눈이 갔다. 대구의 '코리아' 극장에서 쓰던 영사기라고 박혀 있었다. 전율이 일었다. 코리아 극장은 어린 시절을 함께한 공간이다.

 

추억은 흙바닥에 긴 예배당 의자가 놓여 있던 장면에서 시작한다. 가끔 쥐가 들락거려 또래 여자애들은 비명을 질렀고, 사내놈들은 슬그머니 바닥에 쉬를 했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시멘트로 바닥을 바르고 접이 의자로 바꾸었으나 여전히 변두리 삼류 극장이었다. 필름이 끊어지면 동네 형들은 휘파람을 휘리릭 불며 오히려 신바람이 났다. '총천연색' 영화가 등장한 초기에는 반은 흑백으로 반은 컬러로 찍은 영화도 보였다. 광복군이 말을 달려 일본군을 무찌르면 박수를 치고 발을 굴렀다. 영화는 그렇게 보는 걸로 알았다.


도시 변두리 방직공장 옆 배추밭을 지나 시장통에 있던 극장이었다. 동네 구멍가게 아주머니 손에 매달려 단골 관객이 되었다. 구멍가게 벽에 영화 포스터를 붙이게 하는 대신 초대권을 받았지 싶다. 미성년자 입장불가 영화도 아주머니 등에 업혀 들어갔다. 신영균, 황해, 박노식, 독고성, 허장강. 이들 '마초 배우' 중 실제로 누가 더 싸움을 잘하는지를 두고 동네 아이들과 꽤 다퉜다.



이제는 필름으로 영화를 찍지 않는다. 어느 감독은 N.G.가 날 때마다 스태프들을 집합시켜 "대한민국은 필름을 생산하지 않는다"고 복창을 명하더란다. 삽시간에 디지털 촬영으로 환경이 달라지면서 현상소가 모조리 문을 닫았다. 끝까지 버티던 영화진흥위원회 현상소도 고객이 말랐다.



영상자료원의 복원작업에도 '현상'이 필요하다. 영사기와 함께 박물관행이 될 뻔했던 현상설비와 인력을 영상자료원이 맡았다. 필름 촬영을 고집하는 외골수가 나타나 판을 뒤집을지도 모르니 비빌 언덕은 남겨두어야 했다.



필름 '현상'이라는 사소한 주제를 두고도 세상은 그렇게 손발을 맞춘다. 공공영역이 놀고만 있다고 우긴다면 많이 빗나갔다. 그런데, 구멍가게 그 아주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실까?



3. [연합뉴스][김길원의 헬스노트] 반려동물이 주는 슬픔 '펫 로스 증후군'

- 결혼 전에 키우던 강아지를 결혼해서도 데려와 키웠어요. 20대 후반부터 10년 넘게 키우던 강아지라 동생 같기도 하고 자식 같기도 했어요. 결혼 후 아이가 생기다 보니 강아지에게 좀 신경을 덜 쓸 때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아이가 더 좋아하더라고요. 둘이 죽고 못 살 정도였어요. 그런데 강아지를 먼저 보내고 나니 생각보다 힘들어요.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 데 내가 왜 이러나 싶기도 하고…. 차라리 아이처럼 강아지 살려내라고 조르고 엉엉 울면 편해질 것 같은데 어른이 돼서 그럴 수도 없잖아요. 아이 키우느라 강아지한테 신경을 못 써준 게 정말 미안하고, 못 해준 것만 생각나요. 

- 우연히 유기견 센터에서 강아지를 데려와 키우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제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이에요. 집에 돌아오면 유일하게 저를 반겨주죠. 저는 부모님이 어렸을 때 이혼해서 할머니 손에 자랐어요. 할머니도 자주 아프곤 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어렸을 때를 기억하면 항상 외롭고 혼자 있는 게 두려웠어요. 이제는 혼자 지내는 게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아이 없이는 못 살 것 같아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많이 아프네요. 병원에서 얼마 안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이 아이가 죽고 나면 저는 어떻게 살죠? 저 혼자 남겨지는 게 너무나 두렵고 무서워요.



앞선 사례처럼 요즘 '펫 로스(Pet Loss) 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족처럼 사랑했던 반려동물이 죽은 후 상실감과 우울감이 생겼다는 게 주요 증상이다.

이런 증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려동물을 좀 더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 반려동물의 죽음 자체에 대한 부정, 죽음의 원인(질병 또는 사고)에 대한 분노·슬픔에서 비롯된 우울증 등이 뒤섞여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우리나라는 다섯 집 가운데 한 집꼴로 개나 고양이를 기를 정도로 반려동물이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2015년 기준으로 발표한 '반려동물 사육·관리 현황' 조사 결과를 보면 반려동물을 둔 가정은 2012년의 17.9%보다 약 4% 포인트 높아진 21.8%에 달했다. 추세대로 라면 반려동물 사육 가정의 비율이 지금쯤 네 집 가운데 한 집꼴로 높아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반려동물의 죽음에서 비롯되는 아픔과 상실감을 겪는 사람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반려동물이 죽으면 그 주인은 평균적으로 10개월 정도 슬픔을 경험하며, 1년 정도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심한 경우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물론 자살까지 생각한다는 보고도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의 수명이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짧다는 점을 고려하면 살아가는 동안 반려동물의 죽음은 인정해야 할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미리 대비한다면 반려동물의 죽음이 불러오는 상실감과 우울감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물론 아직 우리나라 사회가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 상실감에 따른 감정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 대해 충분히 지지를 보내지 못하는 경향은 차츰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반려동물이 죽은 후 생길 수 있는 상실감과 우울감 등의 증상을 극복하는 요령을 삼성서울병원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전문가들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 자신이 겪고 있는 슬픔을 충분히 표현하라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죽음도 소중한 사람을 잃을 때처럼 충분한 애도 기간이 필요하다. 아내, 남편, 가족, 가까운 친구들에게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어려움, 죄책감 등을 털어놓고 지지와 위로를 받는 게 좋다.

경제적 여건이 된다면 장례식을 간소히 치르고 묘도 만들어주면 좋다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을 치르고 그것을 기념하는 게 남겨진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는 것처럼 반려동물 역시 장례식, 묘소 등을 통해 애도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른 반려동물을 바로 입양하기보다 애도 기간을 가져라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뒤 또 다른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게 어떨 때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운 반려동물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경우에는 소홀히 대하거나 슬픔으로 방치할 수도 있다. 또 상실감과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충동적인 결정으로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것은 좋지 않다.



자녀에게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라



아이들이 너무 슬퍼할 것 같다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반려동물의 죽음을 숨기거나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되레 죽음에 대한 개념이 확고하지 않은 어린 자녀들은 반려동물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고 느끼거나 심한 공포감 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솔직하게 자녀에게 반려동물의 죽음의 원인과 죽음에 관해 설명해주고, 그로 인한 감정과 생각들을 부모가 함께 공유해야 한다. 장례식을 함께 준비하고 치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반려동물에 대한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인정하라



 어떤 사람에게는 동물이 무섭기도 하고 한 번도 함께 지낸 적이 없을 수도 있다. 또 동물에게서 깊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고 경험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다. 따라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비난으로 받아들인다거나 반대로 그 사람을 비난해서도 안 된다.



4. [매일신문][기고] 신라사 연구와 금석문

‘신라사대계’ 30권이 발간되었다. 정확한 이름은 ‘신라 천 년의 역사와 문화’이다. 총서 22권, 자료집 8권이며, 5년 동안 힘을 기울여 완성하였다. 여기에 요약본 개설서 2권이 공간될 예정이고, 이를 중국어, 일본어, 영어로 번역하면 모두 38권이 된다. 동원된 필자만 136명이니 신라사를 연구하는 어지간한 학자들은 망라했다고 하겠다.



아마 이처럼 방대한 작업은 앞으로 50년 아니 100년 안에는 다시 할 수 없을 것 같다. 전공 분야에 맞게 필자를 위촉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서술 체제의 통일, 내용의 중복 방지, 이설의 조정, 쉬운 글쓰기 등 너무 많은 힘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16년 12월 8일 경주에서 경상북도가 발간을 선포한 신라사대계는 해방 후 70년간의 연구성과를 녹여낸 ‘쉽게 풀어쓴 21세기 새 신라사’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신라사대계를 간행할 만큼 신라사 연구를 촉발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대학이 늘어나면서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고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진 데에 일차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연구의 심화를 가져온 계기는 무엇보다 새로운 금석문의 발견이 아닐까 생각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중국과 일본의 한국 관련 문헌자료도 연구의 심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 사서는 2차 사료들이다. 신라 당시에서 수백 년 또는 1천 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 후대인의 인식과 생각이 많이 반영된 자료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해방 후 신라의 영역이었던 수도 경주와 그 주변 경상도 일대에서 이른 시기의 신라 금석문이 많이 발견된 점은 특기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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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한 것만 손꼽아 보아도 포항 중성리신라비, 포항 냉수리신라비, 울진 봉평리신라비, 영천 청제비, 경주 명활산성작성비, 대구 무술오작비, 울주 천전리서석, 단양 적성비 등을 열거할 수 있다. 대상 시기는 6세기 초반이 많아,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살아 있는 사료였던 것이다. 이들 금석문은 그 이전에 발견된 경주 남산신성비 제1비, 창녕 진흥왕 척경비, 황초령`마운령`북한산의 진흥왕 순수비 등과 함께 신라사 연구의 주요 사료였다.



이들 자료들을 통해 문헌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는 사실들을 새로 밝히거나 수정`보완할 수 있었다. 신라의 대외적 팽창 과정은 물론, 신라 6부의 운용, 갈문왕의 실체, 왕실 및 근시조직, 지증왕이 즉위 후 바로 왕을 칭할 수 없었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되었다.

 
또 각종 유적 발굴이 성행하면서 절터, 석탑, 산성, 고분 등지에서 많은 문자자료가 출토되었다. 이들 자료들은 새로운 정보들을 제공해주는 한편, 과제도 많이 남겨 주었다. 바야흐로 신라사 연구는 후대에 편찬된 2차 자료보다는 당대의 사람들이 남긴 1차 자료를 이용하여 연구하는 방향의 일대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새로 떠오르고 있는 목간 자료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고대 목간은 대략 600점 정도가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월지, 월성해자, 황남동, 경주박물관 부지 등 경주에서 발견된 것이 100여 점, 함안 성산산성에서 발견된 것이 308점, 그리고 울산, 창녕, 김해 등에서도 몇 점이 발견되었다. 함안 성산산성 목간에서는 낙동강 상류와 중류 지역에서 낙동강을 이용하여 쌀, 보리, 피 등의 곡식을 함안의 성산산성으로 운반한 사실이 밝혀졌다. 

 
경상도는 신라 금석문의 보고다. 경상북도에서 신라사대계를 발행하기로 한 데는 그곳이 신라의 옛터라는 점을 우선 고려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38권이라는 거질로 꾸밀 수 있었던 데는 가치 있는 새로운 금석문의 출현이 뒷받침되었던 것이다. 역사란 사실을 중시하는 학문이며, 재해석의 학문이다. 시대가 바뀌고 새로운 자료가 추가되면 종래의 해석을 다시 음미하고 새로 써야 한다. 신라사대계를 ‘쉽게 풀어쓴 21세기 새 신라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5. [세계일보][정여울의문학기행] 영혼의 옆구리를 만져보는 시간

흙수저와 금수저의 날카로운 구분에 설움을 느끼는 사람이 부쩍 많아진 요즘이다. 갑을관계의 감정노동에 지친 이들이 돈보다는 마음의 평화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도 잦아졌다. 재벌 자제들의 갑질 논란으로 세상이 시끄러운 요즘,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완전한 갑도 완전한 을도 없는 것 같다.



번쩍이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보통 사람들은 때로는 을도 되고 때로는 갑도 된다. 고용주의 눈치를 볼 땐 영락없는 ‘을’이지만, 물건을 살 때나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때는 ‘갑’ 행세를 하는 이들도 있다. 상사 앞에서는 꼼짝 못하면서,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대뜸 반말부터 던지는 이들도 있다. ‘갑의 자리’에 있을 때조차도 얼마나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가, 바로 그것이 한 사람의 진짜 인간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아닐까. 

김장호의 시 ‘나는 을이다’를 읽으며, 어쩌면 ‘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세상을 더욱 넓고 깊게 바라보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겨 본다.



“나는 을(乙)이다. 항상 부탁하며 살아가는/(…)/당신은 넘볼 수 없는 성체의 성주/당신 앞에 서면 한없이 낮아진다네/나를 사준다는 보장은 없지만/당신 눈도장 찍느라 하루해가 모자라네/(…)/그래도 한밤중에 목말라 자리끼를 찾다가/내 영혼의 옆구리를 한 번 만져본다네.”



항상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며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자존심도 구겨 넣고, 자존감도 숨겨두고, ‘나’라는 주어보다는 ‘여러분’을 위한 삶에 집중하게 된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자리끼를 찾다가 문득 내 영혼의 옆구리를 만져보는 시간. 그때가 바로 갑도 을도 아닌 나, 진정한 나 자신의 민얼굴을 만나는 시간이 아닐까. 



김희정 시인의 ‘아들아, 딸아, 아빠는 말이야’에는 이 땅에서 아버지가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가 가슴 시린 문장으로 그려져 있다.



“아들아, 딸아 아빠는 말이야/너희들이 태어나고, 제일 먼저/그림자를 버렸단다/사람들은 아빠보고 유령이라 말하지만/너희들이 아빠라고 불러줄 때마다/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단다/다음으로 버린 것은 남자라는 단어야/폼 잡았던 남자라는 옷 벗어 던지고/너희들이 달아 준 이름/아빠를 달고 세상을 향해 걷고 또 걷는단다/(…)/



다음은 지갑을 닫았단다/멋진 폼으로 친구들 앞에서/지갑을 열었던 날이 있었지/네가 태어났던 날이야/그날을 끝으로/먼저 지갑을 꺼내 본 적이 없단다/망설이다 망설이다, 버린 것이 자존심이야/너무나 버리기가 힘들어/마음 한 구석에 숨겨놓았지/(…)/지갑이 없다고 수군거려도/배알이 없다는 말로/심장에 비수를 꽂아도/나는 너희들의 아빠니까, 괜찮아/아빠니까 말이야.”

‘저 사람은 지갑이 없다’고 수군거려도, ‘배알도 없다’는 말로 심장에 비수를 꽂아도, ‘나는 괜찮다’고 느끼는 아빠의 마음. 그것이 오늘도 힘겹게 을의 자리에서 하루를 견딘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리하여 진짜 불행한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지켜야 할 사람, 사랑할 사람, ‘아무리 힘들어도 언제나 내 편’인 사람이 없는 이들이 아닐까. 아무리 세상이 우리를 구석진 을의 자리로 밀어붙이더라도, ‘아들아, 딸아, 아빠는 말이야’라고 기나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애틋한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을도 흙수저도 아닌, ‘행복한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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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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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1. 반기문, 친인척 단속 선언부터 해라

유력 대권주자로 꼽히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 임기를 마치고 오늘 귀국한다. 이미 귀국에 앞서 캠프를 차리고 대선 출전을 위한 사전 준비활동을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보좌진 진영의 윤곽도 일부 드러났다. 그를 영입하려는 여야 정당의 움직임도 덩달아 빨라지고 있다. 이제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돌입하는 분위기다.

아쉬운 것은 그가 ‘세계 대통령’을 지냈다고 하면서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려한 경력 위주로 유권자들을 설득하려는 것인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내일 국립현충원 참배에 이어 광주 5·18묘지와 대구 서문시장, 진도 팽목항, 봉하마을 등을 방문한다는 일정도 예상했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념과 지역을 아우르겠다는 ‘국민통합’ 메시지로는 너무 평범하다.



가장 중요한 경제 공약의 밑그림이 아직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도 미덥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측근들이 ‘따뜻한 시장경제’를 불쑥 내세웠다가 슬며시 꼬리를 내린 마당이다. 대기업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부자 증세를 검토하겠다는 얘기가 캠프 주변에서 나돌고 있지만 오히려 포퓰리즘에 영합하려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전체적인 국가이익 증진에서 벗어나는 공약이라면 하등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깨달아야 한다.

더구나 이러한 정책 공약보다는 친인척들의 이권개입을 분명히 막겠다는 약속이 먼저 필요한 처지가 됐다. 동생인 반기상씨와 조카인 반주현씨가 뇌물증여 혐의로 미국 맨해튼 연방법원에 기소됐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 부자가 경남기업이 베트남에 소유한 부동산을 매각하려는 과정에서 반 전 총장의 직위를 이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되는 중이다.

반 전 총장이 일찌감치 집안 식구들에게 대외활동의 신중한 처신을 당부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막내동생 반기호씨가 지난해 보성파워텍 부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 그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그것을 말해준다. 반 전 총장 자신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앞으로 선거운동 과정에서 어떠한 행보를 보여줄 것인지 주시하고자 한다.



2. 외국기업 횡포에 불매운동도 못하나

영국 버버리 회사가 최근 한국 시장에서 일부 제품값을 평균 9% 내렸다. 그러나 원화 대비 파운드화 폭락치(17%)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홍콩에서는 이미 지난해 9월 홍콩달러 대비 하락분(9.7%)을 넘어서는 수준인 10~15% 인하했다. 외국에서는 재빨리 통화가치 하락분보다 큰 폭으로 인하했으면서 국내에서는 뒤늦게 그것도 ‘찔끔’ 내린 것이다. 한국 소비자를 ‘봉’으로 여기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횡포에 은근히 분통이 터진다.

한국 소비자를 ‘호갱’으로 보는 외국 기업은 버버리만이 아니다. 폴크스바겐은 배출가스 조작으로 지난해 미국 소비자들에게 약 17조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했으면서도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뚜렷한 보상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케아도 지난해 ‘서랍장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미국, 캐나다 등에서 즉각 관련제품의 판매를 중단했지만 한국에서는 미적거리다 3개월이 지나서야 중지했다.

한국에서 폐 손상 가습기 살균제 판매로 2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고도 15년 만인 지난해야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한 옥시도 마찬가지다. 비자카드도 새해 들어 한국·중국·일본 가운데 한국 소비자의 해외이용 수수료만 1.0%에서 1.1%로 올렸다. 이밖에 샤넬·구치·루이비통 등 이른바 명품 브랜드의 국내 가격이 외국보다 훨씬 비싸다는 건 얘깃거리도 아니다.



유독 한국에서만 갑질을 해대는 외국 기업도 못됐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잘못도 크다. 값이 비싸도 무조건 수입 명품만 찾는 그릇된 소비의식이 문제다. 뭉텅이로 바가지를 쓰거나 늑장 리콜로 무시를 당해도 판매량이 줄기는커녕 자꾸 늘어난다니 호갱을 자처하는 꼴이다. 당국의 허술한 소비자 보호정책과 돈벌이에만 급급해 해외 유명 브랜드 유치에 혈안이 된 백화점·면세점 등의 한심한 행태도 한 원인이다.

소비자들이 각성해야 한다. 유명 브랜드에 맹종할 게 아니라 차별시정 요구, 집단 불매운동 등으로 오만한 기업을 퇴출시켜야 한다. 정부도 유명 브랜드 유통에 있어 폭리나 담합 등 불공정 거래행위가 없는지 정기적으로 조사해 부조리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외국 회사들에 대해서도 ‘소비자가 왕’이라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서울신문]

3. 日 정치인 도 넘는 망언 자제해야

일본 정치인의 연이은 막말식 발언이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최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부산 소녀상 설치와 관련해 염치없는 발언을 하더니 이번에는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나섰다. 그는 지난 10일 각의(국무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일 통화 스와프 협상과 관련해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빌려준 돈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며 “스와프 따위도 지켜지지 않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된다”고 말했다.

아소 부총리의 발언은 대한민국이 빌린 돈도 갚지 않는 신용 없는 국가라고 지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국가의 존엄을 무시한 모욕적 언사다. 국교를 맺은 이웃 나라에 대해 일국의 정치인이자 각료로서 해서는 안 될 발언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재무상을 겸하고 있는 아소 부총리가 통화 스와프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화 스와프는 외환 위기 등 비상시에 상대국에 자국 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나 달러를 받도록 하는 계약으로 상호 외환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국가 간에 돈을 빌려주고 받는 차관과는 개념이 다름에도 아소 부총리는 ‘빌려준 돈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몰상식적 발언을 한 것이다.

아베 정권의 2인자인 아소 부총리의 상식 이하 행동과 발언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는 2013년 4월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당시 우리 정부가 항의 표시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방일을 취소시켰다. 그해 6월엔 도쿄대 강연에서 일제의 창씨개명에 대해 “조선인들이 ‘성씨를 달라’고 한 것이 시발이었다”고 후안무치한 주장도 폈다.

외교부 대응도 문제다. 최근 일본 정부의 뻔뻔하고 강압적인 조치에 외교부는 대변인 명의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한·일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원론적 논평만 했다. 이번에도 고작 “부적절한 발언으로서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정도의 반박만 했다. 한·일 관계를 고려했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국익을 훼손하고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잇단 도발에 대한 대응으로서는 너무도 안이한 저자세다.

일본이 한국과의 지속적인 발전을 원한다면 일제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하는 것이 순서다. 지금처럼 국민의 감정을 격앙시키는 망언은 결코 양국 화해와 협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4. 생활 화학제품 유해성 상시 감독하라

환경부가 인체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정도의 화학물질이 들어간 생활 화학제품을 전량 회수하기로 했다.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 파동에 따라 탈취제, 방충제 등 시중의 화학제품 2만 3388개를 전수조사한 결과다. 18개 회수 품목에는 유한킴벌리, 홈플러스 등의 방향제와 스프레이 세정 제품도 포함됐다. 모두 부엌, 욕실, 차량 등 일상생활 속에서 광범하게 쓰이는 친숙한 제품들이다.

만시지탄이더라도 환경부의 전수조사는 재발 방지 차원에서 의미 있는 조치다. 전수조사 대상 가운데 위해 우려 제품으로 분류된 제품의 79%에서 살생물질이 발견됐다. 세정제, 방향제, 탈취제에서 특히 살생물질이 많았다. 이런 유해 제품들을 생활공간에 방치했다니 아찔하다.

살생물질 자체가 당장 인체에 치명적인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살생물질이 일정 수준 이상 함유된 제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심각한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진다.



국내 시장에서 쓰이는 화학물질은 4만 4000여종에 이른다. 해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것도 400여종이 넘는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화학물질 관리 수준은 걸음마 단계다.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재작년부터 시행에 들어갔으나 제 구실을 못 하는 현실이다. 법제화 과정에서부터 관련 업체들의 반발로 누더기법이 됐으니 손봐야 할 구멍이 많다.

정부의 엉터리 관리와 불량 기업들의 소비자 농단에 우리는 너무나 큰 대가를 이미 치렀다.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 된 이후 환경부가 집계한 사망자만도 113명이다. 정부와 검찰의 늑장 대응으로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의 존 리 전 대표는 지난주 무죄 판결을 받아 죗값조차 치르지 않고 빠져나갔다. 결국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피해자만 피눈물을 흘렸을 뿐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가습기 살균제처럼 인명 피해를 낸 제조사에는 손해액의 3배까지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악덕 업체도 문제지만 빤히 허점을 보면서도 관리감독에 눈감은 정부 당국의 책임도 크다. 이번 전수조사를 계기로 수십년 동안 사실상 방치했던 생활 화학제품의 관리에 고삐를 죄어야 한다. 당장 업체들이 제품의 모든 성분을 구체적으로 의무 공개하도록 법안을 다듬어야 한다. 허술한 관리로 소비자만 눈먼 장님으로 피멍 들이는 일은 다시는 용납받지 못할 것이다.



5. 반기문 입국으로 막 오른 대선 레이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오늘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반 전 총장의 입국으로 19대 대통령을 뽑는 대권 레이스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고 할 수 있다. 반 전 총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함께 양강 구도를 형성해 온 유력한 대선 예비주자다.



유엔이라는 세계 무대에서 활동했던 그는 단 한번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도 대선 주자 지지율 조사에서는 결코 빼놓지 않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 역사상 유례가 없는 장외의 대선 예비후보였다. 그의 입국은 전직 외교관, 전직 유엔 사무총장이 아닌 정치의 장으로 진입한 정치인 반기문의 출발이기도 하다.

반 전 총장이 최근 몇 년간의 지지율 조사에서 1, 2위를 기록한 것은 아시아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이란 점도 적지 않게 작용했겠지만, 새 정치를 원하는 국민의 희망과 갈구가 담겨 있는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지율은 지지율일 뿐이다. 장내로 들어온 정치 초보 반기문씨 앞에는 그가 대통령직에 걸맞은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가혹한 검증과 함께 숫자에 불과했던 지지율을 실존하는 지지자로 만들어 가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대변인의 발표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은 국립현충원 방문을 시작으로 ‘국민통합’의 메시지를 던지며 지방을 순회할 것이라고 한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한 해명을 귀국 일성으로 삼겠다는데, 그에 못지않게 시급한 사안이 있다.



반 전 총장도 잘 알다시피 한국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일본의 아베 총리의 강경외교라는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주변국이 흔드는 대로 흔들리는 초비상 상황이다. 2년의 외교장관을 포함한 36년의 외교관, 10년의 유엔 총장 경력에 걸맞게 그의 전공인 외교 현안에 대한 소신부터 밝힐 필요가 있고 국민은 듣고 싶어 한다.



특히 2015년 12월 28일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대선 예비주자 중 유일하게 ‘환영’을 표한 만큼 국익을 위한 소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지난해 3월 그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정부의 노력을 환영한 것일 뿐 합의 내용 자체를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는데, 표를 의식해 애매모호한 말을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단 한번도 입장을 밝혀 본 적이 없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도 마찬가지다.

반 전 총장 주변에는 그의 대통령 가능성을 보고 몰려든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지만 나중에 발목을 잡을 화근이 되지 않도록 잘 정리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를 끌어낸 촛불 민심이 요구하는 새로운 체제의 확고한 비전을 빠른 시일 안에 국민에게 제시하는 일이다. 이는 모든 대선 예비주자에게도 해당하는 주문이다.



[동아일보]

6. ​실업자 100만 명… 美오바마가 완전고용 이룬 비결

지난해 실업자가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9.8%로 역대 최고치이고, 연간 취업자 증가 폭은 30만 명대 밑으로 내려가면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수준으로 악화했다. 통계청이 어제 발표한 ‘2016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나타난 고용시장의 암울한 현실이다. 

불황과 실업률 증가의 원인으로 정부는 걸핏하면 글로벌 경기 침체 같은 대외 리스크를 꼽는다. 하지만 세계은행이 10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보면 올해 경제성장률 예상치가 2.7%로 지난해 성장률 2.3%를 웃돈다. 세계 교역량도 신흥국가들의 경제 회복에 따라 지난해 2.6% 증가에 이어 올해는 3.6%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경제는 우리나라처럼 불황에 허덕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월 취임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8년간 어떻게 경제를 살려놓고 20일 퇴임하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악의 침체로 10% 가까이 치솟은 실업률을 그는 지난해 말 완전고용 수준인 4.7%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최근 6년간 민간 부문에서 늘어난 일자리가 무려 1560만 개다. 

오바마는 취임하자마자 7872억 달러(약 942조 원)의 재정을 투입하는 ‘미국의 회복과 재투자법안(ARRA)’에 서명해 인프라 건설, 직업훈련과 친환경에너지 개발 등에 힘썼다. 야당인 공화당은 재정적자가 늘어난다며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는 통화정책에 반대했지만 오바마는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의회를 설득하는 데도 팔을 걷어붙였다. 퇴출 위기에 몰린 자동차 산업은 구제금융을 투입해 살려냈고,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월가에 대해선 규제의 칼을 빼들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역시 오바마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결국 투자와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세수(稅收)는 증가하고 재정적자가 줄어드는 두 마리 토끼가 잡힌 것이다. 이 덕분에 오바마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간) 고별연설에서 “여러분이 변화였다”라고 외칠 수 있었다.

달러를 한껏 찍어낼 수 있는 미국을 한국과 곧이곧대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오바마 정부처럼 경기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의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엔 국내 일자리를 미국에 갖다 바쳐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조기 대선 같은 정치 이슈에 일자리 정책과 법안이 밀리면서 일자리 죽이는 포퓰리즘 공약이 슬슬 나온다. 국가 지도자가 될 사람이라면 미국 경제를 살려놓은 오바마의 리더십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7. 금의환향 반기문, 친인척 뇌물 의혹 분명히 해명해야

유력한 대권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0년간의 사무총장 생활을 마치고 오늘 귀국한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의 금의환향은 미국 뉴욕 연방법원에 동생과 조카가 뇌물 혐의로 기소됐다는 뉴스가 어제 보도되면서 상당 부분 빛이 바랬다. 동생 반기상 씨 부자가 2014년 베트남에 있는 경남기업 소유의 72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을 중동의 한 국부펀드에 팔기 위해 그 나라 관리에게 50만 달러(약 6억 원)의 뇌물을 건네려 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측근과 공모한 비리 혐의로 탄핵 절차를 밟는 중에 유엔 사무총장의 친동생까지 국제적인 뇌물 스캔들에 휘말렸으니 보통 나라망신이 아니다. 경남기업은 고 성완종 씨가 회장으로 있던 기업이고, 성 회장은 충청포럼 회장을 맡아 반기문을 중심으로 ‘충청 대망론’을 띄웠던 사람이다. 반기상 씨가 한때 경남기업 고문을 맡은 것도 반 전 총장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 전 총장 측은 귀국길 공항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의 23만 달러 수수 의혹에 대해 직접 해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기상 씨 부자의 비리에 대해선 반기문 측 이도운 대변인이 어제 “반 전 총장은 전혀 아는 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어물쩍 넘어가서는 곤란하다. 23만 달러 수수가 사실이 아니라면 반 전 총장은 해명이 아니라 명예훼손 고소를 해서 진상을 밝혀야 한다. 친동생 부자의 뇌물 의혹과 관련해서는 반 전 총장 자신이 어디까지 알았으며 왜 막지 못했는지 분명히 해명해야 할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10년 경험은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였지만 대통령의 자질과 유엔 사무총장의 자질은 다르다. 반 전 총장은 때 묻지 않은 ‘정치 신인’이란 강점도 있지만 외교 관료로서 양지바른 곳만 골라 밟아왔다는 소리도 듣는다. 캠프에도 과거 역대 정부에 몸담았던 기득권 세력이 적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로 인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졌고 검증의 잣대는 엄격해졌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귀국하는 반 전 총장은 국민 통합이라는 막연한 슬로건이나 반문(반문재인) 정서에 기댈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경쟁력을 보여야 한다. 안팎으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대한민국호(號)를 위한 분명한 철학과 비전을 내놓지 않으면 ‘반기문 거품’은 붕괴할 수도 있다.



8. 무죄 나온 국민의당 리베이트 수사 ‘우병우 기획’이었나

​국민의당 박선숙 김수민 의원이 작년 4·13총선 홍보비를 리베이트로 돌려받아 정치자금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어제 1심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김 의원이 대표로 있던 브랜드호텔의 광고 전문가들로 꾸려진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이를 통해 인쇄업체 비컴과 TV 광고 대행업체 세미콜론으로부터 2억1000여만 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혐의를 자백한 비컴 대표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고, 브랜드호텔과 비컴·세미콜론 간 계약이 허위임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국민의당은 작년 총선에서 38석을 얻어 제3당으로 급부상했지만 두 달 만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고발로 리베이트 의혹이 불거지고 7월 두 의원이 기소되면서 정당 지지도 등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부패 범죄는 기소만 되면 책임을 진다는 당헌 규정에 따라 국민의당의 간판이었던 안철수 공동대표가 천정배 공동대표와 함께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1심이긴 하지만 국민의당 관계자들이 모두 무죄 선고를 받음으로써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검찰 수사는 편파적이기까지 했다. 검찰은 국민의당을 상대로는 속전속결로 수사를 진행해 한 달도 안 돼 관련자를 처음 구속한 것과 달리 선관위가 지난해 7월 고발한 새누리당 조동원 전 홍보기획본부장의 비슷한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를 미적거리다 지난해 12월에야 겨우 기소했다. 조 전 본부장은 선거용 TV 광고 동영상 계약을 맺으면서 4200만 원 상당의 인터넷용 홍보 동영상 36편을 무상 제공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당은 리베이트 형식으로 돌려받고 새누리당은 무상으로 제공받았지만 본질은 같다. 

안 전 대표는 법원의 무죄 판결 이후 “정권 차원의 안철수 죽이기란 것이 증명된 판결이라고 본다”며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상급심에서 1심 판결이 뒤집히지 않는 한 수사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검찰의 중립성을 보는 눈이 곱지 않은 상황이다. 정당을 상대로 한 검찰의 수사는 더욱 공정해야 옳다.
 

[세계일보]

9. 오바마 대통령의 고별 연설이 부러운 이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퇴임을 열흘 앞둔 어제 심금을 울리는 고별연설을 했다. 그는 시카고의 대형 컨벤션센터 매코믹 플레이스에서 변화를 위한 단합과 참여를 강조하며 민주주의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우리의 시간에, 우리의 손으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변화는 보통 사람들이 참여하고, 그것을 요구하기 위해 함께 뭉칠 때 일어난다”고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도중 여러 차례 기립박수를 받았고 일부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참석자들이 계속해서 박수를 치고 연호하는 바람에 행사가 늦어지기까지 했다. 지지자들은 “4년 더” “아이 러브 유” 등을 외치며 아쉬움을 달랬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지율이 임기 내내 40%대를 유지할 정도로 높은 지지를 받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이 55%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지지율 37%보다 높았다.

미국 국민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것은 단순히 8년간 국가에 봉사한 노고를 격려하는 차원이 아니다. 국가 지도자로서 품위를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한 데 대한 찬사이자 존경의 표시다. 오바마 대통령이 여러 실패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소통의 리더십, 탈권위적인 모습 덕분이다.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토론하고 설득하는 소통과 포용의 정치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름다운 퇴장은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린 한국의 정치 상황과 대비된다. 대통령이 환호를 받으며 등장했다가 야유를 받으며 퇴장하는 비극을 되풀이하는 후진 정치를 되돌아보게 된다. 국가 권력의 사유화와 민주주의 후퇴에 절망했던 광장의 민심은 이제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염원하고 있다.


조만간 치러질 대선은 우리가 맞게 될 미래의 향방을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정치권에는 국민 염원에 찬물을 끼얹는 독선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세력이 기웃거리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이 초심을 잃으면 비운의 종말은 피할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제 “그래,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는 말로 연설을 마쳤다. 그의 연설은 우리의 다짐이 돼야 한다. 정치권과 국민이 함께 노력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


10. 잇단 일본 망언, 한·미·일 공조 깨기로 작정했나

일본 정치인들이 우리 국격을 해치는 발언을 앞다퉈 쏟아내고 있다. 아소 다로 부총리는 그제 한·일 통화스와프를 거론하면서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빌려준 돈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며 “스와프 따위도 지켜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된다”고 했다. 집권 자민당 서열 2위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도 지난주 “한국은 협상하거나 논의하는 데 귀찮은 나라”라고 폄하했다. 국가 간의 품위를 벗어난 막말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는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지난해 11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등 한·일관계 개선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최근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대해 일본이 치졸한 보복에 나섰다. 시민단체의 소녀상 설치는 정부와 무관한데도 주한 일본대사를 일시 귀국시키고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을 중단했다.

한반도 주변의 안보 상황은 여간 심각하지 않다. 어제 국방부가 ‘2016 국방백서’에서 추정한 북한 플루토늄 보유량은 기존보다 10㎏ 증가한 50여㎏이다. 10개 안팎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앞으로도 국방력 강화를 위한 경이적인 사변들이 다계단으로, 연발적으로 펼쳐질 것”이라며 전략적 도발을 예고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위한 비밀 작업이 지금도 착착 진행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안보 협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방미 중인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차기 미 행정부의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와 만나 북핵 불용 원칙과 한·미 동맹 강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일본 정치인들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은 한·미·일 안보 공조에 금이 가게 하는 짓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그제 “상황 악화를 가져올 수 있는 언행은 자제하는 것이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밝힌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 외교부는 어제 아소 부총리 발언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으로서 유감스럽다”며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 정치인들이 깊이 유념할 말이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엉뚱한 곳으로 확산시키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한·미·일 대북 공조의 근간을 해치는 발언은 양국의 미래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주요신문칼럼


1. [매일신문][매일춘추] 작은 것이 좋다

우리 속담에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있다. 작은 몸집에 비해 야무지고 당찬 사람을 일컫는다. 이어령은 1982년, 작은 것을 잘 만들고 작은 것에 애착을 보여 왔던 일본 사람들을 축소 지향으로 해석했다. 독일의 경제학자 슈마허는 이보다 앞선 1973년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선언했다. 그는 작은 것을 단순한 크기의 축소가 아니라, 사회철학, 생태학 관점에서 들여다보았다. 무한성장의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어령식 축소와는 또 다른 차원의 작은 것 예찬이다.



최근 회자하는 인구절벽이란 용어처럼 우리도 2031년부터 총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유사 이래 처음으로 15~64세의 일할 수 있는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해이다. 일할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은 경쟁력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촌 사람과의 경쟁에서 점점 더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5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1인 가구 수는 전체의 27.2%로 2인 가구 수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혼자 사는 가구가 늘어나니 1회 소비량은 점점 더 줄어든다. 일례로 같은 해 8월부터 도매시장에서 15㎏ 사과 상자가 사라졌다. 핵가족화로 1회 과실 소비량이 감소한 때문이다. 도매시장에서는 10㎏ 사과 상자로 대체됐지만, 동네 가게에서는 이미 1~2㎏ 소포장 거래가 관행이다.  


1인 가구가 대세가 되는 시대를 맞아 소비자는 회당 점점 더 적은 양을 구매한다. 생산자는 이에 맞춰 더 작은 상품을 만든다. 작은 것이 더 큰 경쟁력을 가지는 시대, 작은 것을 새롭게 평가해야 한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될 때 작은 것은 더 큰 우위를 가진다. 과거에는 소비자가 기계의 방식에 맞춰졌다. 앞으로는 기계가 소비자의 취향을 이해해야 한다. 3D 프린팅은 맞춤형 상품을 만드는 기술이다. 나를 위한 단 하나의 상품을 만드는 인간형 기술이 주류가 될 수 있다.  


10㎏ 상자도 클지 모른다. 1㎏ 이하의 더 작은 상자가 필요할 수도 있다. 비싼 석유를 태워 먼 거리를 이동해온 대량의 농산물에는 수많은 탄소 발자국이 들어 있다. 이웃이 전해주는 작은 상자에 담긴 농산물에는 따뜻한 정이 담겨 있다. 작은 상품이 믿음이 가는 이유이다. 나는 작은 것이 좋다.


2. [서울신문][문화마당] 새해 결심을 했다

이상하게 연말이 되면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괴상한 용기가 솟구쳐 (평소보다 더) 막살게 된다. 올해도 여지없이 모든 계획들이 망해 버렸다는 비애감 때문일까. 아니면 곧 리셋 버튼을 누르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아무튼 이번 연말도 다 끝장났으니 될 대로 되라며 망연자실하고도 희망찬 기분으로 마구 폭주했다.


그러다 별안간 새해가 당도했다.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듯 눈을 뜨니 2017년이었다. 아아. 왜 새날은 늘 느닷없이 닥쳐오는 걸까. 피할 수 없이. 사람 당황스럽게.그러므로 새해 첫날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흥청망청 보냈던 부끄러운 12월을 반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이상한 점은 광기와 자기 파괴로 얼룩진 지난 연말을 마음 깊이 애도하다 보면 또 어디선가 알 수 없는 이상한 용기가 생겨난다는 거다. 신나게 놀았으니 이젠 죽도록 달려 보자는 각오와 함께 새로운 출발을 향한 놀라운 열정에 휩싸인다.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솟아오른다.


그렇다. 나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 그토록 부지런히, 온 정성을 다해 마구잡이로 살았던 것이다(웃기시네. 애초에 작정하고 엉망진창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이렇게 전투적으로 수습할 일도 없었을 걸).

여하간 새해다. 그리고 올해도 새해 첫날 나만의 새해맞이 연례 축하의식을 거행했다(가지가지 한다). 특별할 건 없다. 그저 정갈히 목욕재계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한 뒤, 광화문을 산책하면서 나에게 줄 선물을 하나 산다. 밤이 되면 좋아하는 영화를 한 편 보고, 차분히 책상 앞에 앉아 원대한 새해 계획들을 한가득 적고서 음미한다. 올해는 다를 것이다. 나도 달라질 것이다. 가슴이 뛴다. 이제 진짜 삶이 시작되는 거야! 다시는 지독한 운명(?)에 함부로 나를 내던지지 않겠어!


마음이 한껏 고양되고, 의식은 절정에 이른다. 드디어 대망의 피날레. 나는 떨리는 손으로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인터넷에 올라온 새해 별자리 운세를 모두 뒤져 정독한다. 나라별, 점술가별, 또 번역자별로. 아하! 올해는 여행이 좋단 말이지? 보자, 사랑의 순풍이 불어오는 때는….

나라는 사람이 이렇다. 이토록 분열적이다. 새 파이팅을 위해 남은 힘을 모두 탕진해 버리고, 계획을 만 가지쯤 세운 뒤 세상 진지하게 운세를 확인한다(심지어 나를 위해 샀던 새해 선물은 양자물리학 책이다). 어른이 되면 나든, 삶이든, 뭐든 분명하고 명확하게 보일 줄 알았는데, 웬걸, 더 모호해지고,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갈수록 더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창피한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다 보니 난생처음 좀 다른 생각이 든다. 늘 그렇게 살아왔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무탈하게, 또 가끔은 즐겁게 잘 지내 왔다면, 앞으로 계속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 아닐까 하는. 나이가 들면서 생긴 여유인지, 자포자기의 심정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 안심이 된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든다. 애초에 삶 자체가 불균질하고 모순투성이니까 나도 그런 삶을 닮아 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도 인생도 더 궁금해지고, 더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니깐.

그래서 다시 새해 결심을 했다. 올해는 딱 한 가지 목표에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또다시 소용돌이 같은 삶을 마주하겠지만, 진심을 다해 용감하게 돌파하기로. 두려움 없이 뭐든 저질러 보기로. 다시 두근거린다. 또 은근히 기대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어쩌면 이미 달성 중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지나치게 솔직하고 쓸데없이 용감한 글을 쓰고 앉아 있으니.


3. [중앙일보][새미 라샤드의 비정상의 눈] 소중한 이웃과 함께하는 새해

지난달 TV를 시청하다 우연히 전통음식을 만드는 시골 할머니를 보게 됐다. 소금이 떨어지자 촬영을 진행하던 PD가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괜찮아. 옆집에 가서 빌려 오면 돼”라며 옆집으로 향했다. 마침 옆집 사람이 밭에 일하러 나가고 없자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집 문을 열고 들어가 소금을 찾아 나왔다.

이 장면을 보면서 어렸을 적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살던 때가 떠올랐다. 내 할머니나 이모는 흔하게 이웃집 물건을 빌려 썼다. 이웃집의 또래 친구들이 접시에 맛있는 음식을 담아 와서는 “엄마가 오늘 이걸 만들었는데 너네 집에도 갖다주래”라며 전하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도시로 이사한 뒤로 이런 장면이 점차 추억이 되다가 나중엔 기억에도 희미해져 버렸다. 그랬던 것이 한국 TV에서 비슷한 장면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왜 이리 됐을까? 현대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거주 형태가 아파트라는 데서 답을 찾을 수 있겠다. 아파트는 시설이 좋고 편리해 특히 신혼부부에게 알맞은 주거 형태인 듯하다. 문제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끼리 서로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한국처럼 이집트에서도 이웃에 대한 정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과거 통신 수단이 별로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직접 만나서 대화하고 일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가까웠을까. 아니면 옛날 사람들이 현대인들보다 정이 더 많아서 그랬을까. 그랬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이슬람 문화권에선 이웃에 대한 가르침이 매우 엄격하다. 하나만 언급하면 “이웃 사람이 배고프다는 사실을 알면서 배부른 상태로 잠든 자는 진정한 무슬림(이슬람 신자)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 사람을 외면하고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슬람뿐 아니라 다른 종교·신앙에서도 이웃에게 잘해 주라는 가르침이 당연히 있다.

이웃은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사람에게 중요한 존재다. 내게 행복한 일이 있을 때 함께해 주고, 슬픈 일이 있을 때 위로해 주는 사람이 이웃이다. 친구도 마찬가지 존재다. 어떤 문화권이든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현대인들은 이웃과 친구의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된 것 같다. 어린이들에게 이웃을 소중하게 여기고 친구를 많이 사귀는 방법을 가르칠 때다. 새해는 이웃과 더 친해지는 한 해로 만들면 어떨까.


4. [서울신문][씨줄날줄] 메릴 스트립의 개념 발언

오드리 헵번이 나온 ‘로마의 휴일’은 195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최종 각본상을 받았다. 트로피는 각본을 쓴 이완 맥렐런 헌터가 받았다. 하지만 진짜 시나리오를 쓴 작가는 헌터의 친구인 달턴 트럼보였다.


1940년대 미국을 강타한 반공산주의 매카시즘의 광풍은 할리우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산주의자로 찍혀 ‘블랙리스트’에 오른 트럼보는 스타 작가에서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본명으로 글을 쓸 수 없었기에 그는 11개의 가명으로 글을 썼다. 어둠의 시절에도 재능은 빛을 발해 그는 가명으로 쓴 ‘로마의 휴일’, ‘브레이브 원’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두 차례나 받았다. 그의 수상으로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던 할리우드의 매카시즘에 균열이 생겼다. 그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트럼보’는 정치적 신념을 근거로 예술가를 억압하던 매카시즘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던 예술가들이 그려진다.

전통적으로 할리우드에는 민주당 후원자들이 많다. 톰 행크스, 조지 클루니, 스칼릿 조핸슨, 휴 잭맨 등 빅스타들이 지난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고 후원금을 냈다. 로버트 드니로는 지난해 10월 “트럼프를 개, 돼지, 사기꾼, 협잡꾼”이라며 “국가적으로 창피한 인물로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다”고 말해 논란을 일기도 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메릴 스트립은 지난해 7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행사에서 힐러리의 찬조 연설에 나설 정도로 골수 민주당 지지자다. 그가 최근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은 뒤 “무례는 무례를 낳고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지위를 다른 사람을 향한 공격에 이용하면 우리는 모든 걸 잃게 된다”고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가 장애인 기자를 조롱한 것을 비판했다. 또 “할리우드는 이방인과 외국인으로 가득하다”며 “그들을 추방하면 그건 예술이 될 수 없다”며 트럼프의 반이민자 정책도 비난했다. 동료 배우들은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할리우드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여배우들 가운데 한 명인 메릴 스트립은 나를 모른다”며 “그녀는 힐러리 아첨꾼”이라고 맞섰다. 취임을 막 앞둔 위세 등등한 트럼프를 대놓고 비판하는 할리우드 배우의 개념 발언이 부럽다. 대통령 당선자라는 사람이 한술 더 떠 배우를 향해 직접 날 선 공격을 하는 일 역시 품격이 떨어지긴 하나 어떤 측면에서는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며 대중과 소통하는 측면에서는 그리 비난만 할 일은 아니지 싶다.

배우 송강호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변호사 시절을 그린 ‘변호인’ 출연 후 몇 년간 작품 섭외 제안이 뚝 끊겼었다고 한다. 혹여나 스트립이 송강호의 길을 밟지는 않을까 걱정된다면? 이것도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의 트라우마인가.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해티 캐러웨이

1923년 미국 최초로 주 하원의원ㆍ대변인 미니 크레이그를 소개한 적 있지만, 1920년 수정헌법 19조로 여성 참정권이 보장된 뒤로도 여성의 의회 진출은 극히 예외적인 ‘사건’이었다. 의원인 남편이 임기 중 사망하는 등 직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경우, 보궐선거에 배우자(대부분 아내)를 후보로 내세우던 관행은, 차별 현실의 역설적 반영이었다. 그들에게 기대된 건 동정표로 당선돼 얼마 안 남은 임기 동안 충실한 거수기로서 기능해달라는 거였다.



미국 최초의 ‘정식’ 여성 상원의원 해티 캐러웨이(Hattie O. Wyatt Caraway, 1878~1950)는 그 관행을 깨부순 첫 정치인이었다. 그는 아칸소 주 상원의원이던 남편이 숨지자 보궐선거(32년 1월 12일)에 출마해 몇 달 일한 뒤 그 해 5월 차기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여성이라고 다른 누군가가 마련해 주고 앉혀 주는 자리에만 앉을 수 있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그의 당찬 선언에 루이지애나 출신의 자유주의 정치인 휴이 롱(Huey Long)이 화답했고, 그의 지지와 선거 지원 등에 힘입어 캐러웨이는 11월 당선했다. 


테네시주의 한 상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딕슨노멀 칼리지를 나와 교사로 일하다 1902년 대학서 만난 타데우스 캐러웨이(Thaddeus Caraway)와 결혼했다. 법률가였던 남편이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다 1912년 하원의원이 되고 21년 상원의원에 당선돼 정치적 야심을 펼쳐가는 동안, 해티는 세 아이를 키우며 살림과 가족 목화농장을 돌봤다. 


엉겁결에 시작한 정치였지만, 그는 적성과 재능이 있었다. 의원 시절 그의 별명은 ‘조용한 해티(Silent Hattie)’였다고 한다. 설은 엇갈리지만, 조용하기만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저렇게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한편 여러 여성 선출직 장벽을 낮추는 데 열성적으로 앞장섰고, 스스로도 43년 최초 상원 상임위(Committee on Enrollde Bills) 의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남부 민주당 의원으로서 ‘(흑인)반 린치법’ 등 인종 이슈에선 백인 편에 서서 반대했다. 그는 두 차례 연임하며 14년간 상원의원을 지냈고, 44년 낙선 후 루스벨트-트루먼 정부의 고용보장위원회 등에서 50년 초까지 일한 뒤 그 해 말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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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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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한국일보]

1. 헌재로부터 부실 판정받은 박 대통령 세월호 7시간 답변서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이 10일 헌법재판소에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 답변서를 제출했다. 국회가 헌법 10조에 규정된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을 박 대통령의 탄핵 사유의 하나로 제시한 만큼 이번 답변은 헌재의 탄핵 여부 판단에 중요한 잣대가 된다. 하지만 “사고 수습에 적극적 노력을 했다”는 박 대통령 측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 측이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는 15장 분량이지만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대리인단은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처음 인지한 것은 오전 10시께 국가안보실 보고라고 밝혔다. 헌재도 이날 변론에서 지적했듯이 참사 당일 오전 9시 직후에 TV 등을 통해 사고가 보도됐는데 왜 한 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첫 보고를 받았는지에 대한 해명이 없다.



지난 5일 변론에서 헬스트레이너인 청와대 윤전추 행정관이“당일 아침 관저에서 비공식 업무를 수행했다”고 밝힌 것과 무관치 않을 거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날 오후 2시50분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지시하고도 도착하는 데 두 시간 이상 걸린 경위에 대해서도 “경호상 기밀이라 얘기할 수 없다”며 빠져나갔다. 불리한 부분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은폐하고 있으니 헌재로부터 “답변서가 요구에 못 미친다”는 질책을 받는 게 당연하다.

박 대통령 측은 대면보고를 받지 않았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참사 당일 오전과 오후 안봉근ㆍ정호성 비서관의 대면보고를 받았다고 밝혔으나 구체적 시간과 내용은 적시하지 않았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과 오전에 두 차례 통화했다고 했지만 통화기록도 제시하지 않았다. 수십 차례 보고를 받고 지시를 했다고 장황히 나열했지만 정작 핵심 당사자로부터 어떤 내용의 보고를 받고, 구체적으로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참사 당일 관저 근무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박 대통령 측은 “청와대는 24시간 재택근무 체제이며,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도 관저 집무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과 전후나 휴일 등에 관저에서 집무했던 대통령들과 평일 낮에도 관저에 자주 머문 박 대통령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와 같은 1분1초가 아까운 그 절박한 순간에 재택근무를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세월호 답변서를 통해 박 대통령은 최고결정권자로서 국민 생명 보호의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수많은 어린 생명을 구하지 못한 자책 대신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행태가 뻔뻔스럽다. 그날의 행적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매일신문]

​2. 여전히 풀리지 않는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

박근혜 대통령 측은 10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세월호 7시간 행적’ 답변서에서 “그날 공식 일정이 없었고 신체 컨디션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관저 집무실에서 근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관저에서 보고받거나 전화로 지시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했으니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이 제출한 답변서는 청와대가 지금까지 밝힌 내용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그동안 국민과 유족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7시간 미스터리’가 ‘단순한 관저 근무’였다고 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답변서를 보면 ‘7시간 미스터리’가 일부나마 해명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궁금증을 키우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설명의 앞뒤가 맞지 않고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 대통령의 행적을 완전하게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거기다 당일 관저 출입자의 명단이 설명과는 달랐고,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과 참모와의 통화 기록도 빠져 있다. 답변서를 받은 이진성 헌법재판관이 오죽했으면 ‘헌재 요구에 못 미친다’며 보완을 요구했겠는가. 헌재는 이 답변서를 탄핵재판의 기초자료로 삼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박 대통령 측이 지난달 22일 헌재로부터 답변서 제출을 요구받고 19일 만에 이런 수준의 답변서를 제출했다고 하니 아직도 뭔가 감추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간이 충분했을 터인데 명쾌한 설명을 못 하는 것도 이상하고, 답변서를 부실하게 만든 것도 이상하다.



설령, 박 대통령의 주장대로 ‘관저 근무’가 사실이라면 진작에 국민과 유족에게 사과하고 진실을 알렸으면 될 일을 이렇게 큰 사건으로 키운 이유도 아리송하다. 2년여 동안 그날 행적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뒤숭숭할 정도였는데 대통령 체면이나 권위 때문에 이를 회피하고 모른 체 했다면 기가 찰 일이다.



박 대통령의 답변은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국민은 304명이 희생된 그날,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권리가 있다. 박 대통령이 진실을 털어놓으면 될 일인데 그럴 가능성은 없는 것 같고, 특검을 통해서라도 진실 규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3. 대책도 없이 '위안부 합의' 파기하겠다는 야당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10일 국무회의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상황 악화를 가져올 수 있는 언행은 자제하는 게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는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에 대한 일본의 무례한 외교 압박에 일침을 가한 것이지만 야당의 성급한 ‘위안부 합의 파기론’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다.



주한 일본대사와 총영사의 귀국 조치, 한`일 통화 스와프 협상 일시 중단, 한`일 고위급 경제 협의 연기 등 일본의 전방위적 외교 압박은 상식을 넘었다. 10억엔 출연을 위안부 소녀상 철거의 조건이라고 억지를 쓰기 때문이다. ‘위안부 협정’에서 우리 정부는 ‘철거’를 약속하지 않았다.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합의했을 뿐이다. 소녀상 문제는 말 그대로 양국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해야 할 문제다.



일본의 이런 생떼에 대해 우리는 냉철하게 대응해가야 한다. 흥분해서 분기탱천(憤氣撑天)하면 당장은 속이 시원하겠지만 얻을 것은 별로 없다. 이는 정부 측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차기 대선을 겨냥해 마구잡이로 국민감정을 부채질하는 야당도 새겨들어야 한다.



야당의 반응은 일본만큼이나 유치하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소녀상에 딴죽을 거는 아베에게 10억엔을 돌려주라”고 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기존 합의는 무효”라고 했다. 국민의당 장진영 대변인은 “정부 간 공식 협정이 아니라 양국 외교장관이 서명한 문서에 불과해 차기 정부를 구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두 합의를 없었던 일로 돌리자는 것이다.


국가 간 합의라도 잘못된 것이라면 파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후폭풍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치명적인 ‘외교 미숙’일 뿐이다. 국가 간 합의를 지키지 않는, 믿을 수 없는 국가로 찍히게 된다. 야당은 호기롭게 합의 파기를 얘기하지만 이런 사태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다. 그저 대선에서 표를 얻으려는 포퓰리즘 경쟁에 몰두할 뿐이다. 수권(受權)을 바란다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국민감정을 어루만지되 냉철한 현실 감각도 갖춰야 한다.



[세계일보]

4. 헌재로부터 "질질끌지 말라" 경고 받은 박 대통령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어제 탄핵심판 사건 3차 변론기일에서 “앞으로는 시간 부족 사유로 입증이 지연되는 일이 없도록 양측 대리인이 각별히 유념해 달라”고 요청했다. “양측 대리인에게 의문점 설명을 요구했고, 개별적·구체적 증거 설명과 의견 제시를 수차례 촉구했으나 일부분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그에 대한 설명이나 의견을 밝히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측의 비협조와 시간끌기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박 대통령 측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 답변서에서도 보완 요청을 받았다. 이진성 헌법재판관은 어제 “답변서는 상당 부분 대통령이 주장하는 세월호 참사 당일 보고 지시에 대한 것만 기재돼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의 기대 수준에 현격히 못 미치는 답변이라는 것이다. 답변서 내용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적 모순을 드러냈다. 중앙재해대책본부 방문이 지체된 이유에 대해선 ‘경호상 비밀’이라며 장막 뒤로 숨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헌재의 거듭된 출석 요구에도 불응으로 일관했다.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비서관은 아예 소식을 끊고 잠적했다. 증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헌재의 진실 규명은 어려워지고 탄핵심판 일정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 대통령이 진실 규명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납득할 수 없다. 일부 재판관들의 퇴임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전략이라면 국민의 반감만 부를 뿐이다.

헌재의 대통령 탄핵 결정은 신속하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국정농단으로 혼란에 빠진 정국을 조속히 수습하는 길이다. 대통령이 헌재 심리에 협조하는 것은 헌정 질서 수호자로서 당연한 책무다.



[서울신문]

5. 청문회 위증 등 35명 고발, 처벌 선례 남겨야

‘최순실 청문회’가 끝났지만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주요 증인들이 출석을 거부하고 위증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결국 진상 규명보다는 불신감만 키운 청문회였다. 열릴 때마다 이런 문제로 큰 소득도 얻지 못하고 헛바퀴만 돌리는 청문회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이른바 ‘최순실 청문회’는 7차 청문회를 끝으로 그제 막을 내렸다. 청문회가 시작될 때만 해도 최순실씨 모녀와 국정 농단 관련자들이 대거 증인으로 채택된 데다 특검수사까지 맞물려 어느 청문회보다 국민적인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진상을 규명하고 진실을 밝힐 수 있다는 기대감보다 상실감만 더 크게 안겨 줬다.



재벌 총수 9명이 증인으로 출석한 1차를 제외한 2차부터 7차 때까지 상당수 증인이 출석조차 하지 않은 맥빠진 청문회가 계속됐다. 더구나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 핵심 증인들이 출석을 거부하고 출석한 증인들조차 부실한 답변으로 일관해 ‘맹탕 청문회’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동안 증인이 청문회 출석을 거부하거나 위증을 해도 고발을 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처벌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제재 수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청문회 위증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형법의 위증죄보다 형량이 무겁다. 출석 거부도 국회 모욕죄를 적용할 수 있다. 국회는 이번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줬다. 국조 특위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롯한 35명을 국회모욕죄와 위증죄로 고발하기로 의결한 것이다. 사법부도 이들에게 엄한 처벌을 내리는 선례를 남겨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청문회에서의 위증과 불출석을 막을 수 있다.

국회의원들의 태도 또한 문제가 많았다. 출석을 거부한 증인들이 수감된 구치소까지 찾아간 열의는 인정한다 해도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준비 과정은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증인들에게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거나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면박주기식 막말과 호통, 자기주장만 쏟아냈다.

청문회의 목적은 핵심 증인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데 있다. 미국처럼 증인에게 증언 요지를 제출토록 하거나 전문성을 갖춘 조사관들도 청문회 위원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더이상 청문회 무용론이 불거지지 않도록 국회는 선진국의 제도를 참조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데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6. 中의 방공구역 침범, 정부 대응 너무 소극적이다

중국의 군용기가 그제 제주 남쪽 이어도 부근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수차례 침범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어제 밝혔다. 중국 군용기가 들어온 지역이 한국과 중국, 일본의 방공식별구역과 겹치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우리 측에 가해지는 중국의 각종 보복 조치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군사적인 행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중국 군용기의 비행항로를 보면 대마도 남쪽 대한해협 상공을 통과해 동중국해와 동해 사이를 왕복했다는 점에서 사드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은 물론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에 대해서도 경고성 메시지를 날렸다고 해석할 수 있다.



KADIZ에 들어온 군용기는 중국군의 훙(轟·H)6 폭격기 6대와 윈(運·Y)8 조기경보기 1대, 윈9 정찰기 1대 등 10여대로 우리 공군도 F15K 전투기 등 10여대를 발진시켜 대응 출격을 했다. 합참이 밝혔다시피 우리 KADIZ로 들어오는 중국 폭격기가 소수였던 과거와는 달리 그제는 무려 6대나 동원한 드문 사례라는 점도 의심을 증폭시킨다.

우리는 중국 군용기의 KADIZ 침범이 지난해 7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이 취해 온 서울안보대화 초청 거절이나 한국 국방대 안보과정 대표단의 중국 군부대 방문 불허 등 일련의 군사협력 중단 조치에 이어 발생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합참은 중국의 KADIZ 침범 의미를 축소라도 하려는 듯 “중국 군용기가 작년에 수십 차례 KADIZ로 진입했다”고 설명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KADIZ 침범이 갖는 의미를 군 당국이 부풀려서도 안 되지만 함부로 축소해서도 안 될 것이다. 또한 방공식별구역이 자국 영공으로 접근하는 군용기를 조기에 식별하기 위해 설정한 가상의 선으로 배타적인 개념의 영공과는 구별된다고 해서 그냥 흘려 넘길 일도 아니다. 더욱이 정부와 군 당국은 한·중 간의 외교적인 상황이 미묘한 지금, 오전 10시에 발생한 상황을 발표조차 하지 않고 쉬쉬하다가 밤늦게 언론 보도가 나자 확인을 해 주고 다음날 브리핑을 하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였다.

지금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진행되고 있어 국가 리더십이 일시적으로 공백이 된 비상 상황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내정을 비교적 잘 챙기고는 있다. 그러나 군사·외교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국민이 안심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안보 부서 장악력을 높여야 한다.



중국 측이 군용기의 방공식별구역 비행을 “자체훈련”이라고 했다지만 한국 겁주기인지를 정밀히 분석해 정말 그렇다면 강력히 대응해야 할 것이다. 황 권한대행이 위안부 소녀상을 둘러싼 한·일 갈등에 대해 “상황 악화를 가져올 수 있는 언행은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양측에 촉구한 점은 평가하고 싶다. 중국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는 게 권한대행의 역할이다.



[매일경제]

7. 특검 성과과시용 기업인 구속 수사는 자제해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검이 삼성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을 9일 소환해 10일 오전까지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했다. 조만간 이재용 부회장 소환 가능성이 점쳐지고 SK롯데 등 다른 기업으로 조사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방침이 정해진 것이 없다는 특검 측 부인에도 불구하고 주요 기업인 몇몇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이란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 소문은 뚜렷한 혐의에 근거하기보다는 "돈 준 쪽에서도 구속되는 사람이 나와야 수사의 구색이 갖춰지지 않겠느냐"는 다분히 정치적인 추론에 기반하고 있다.



만에 하나 특검 내부에 이 같은 기류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매우 위험한 접근법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 수사에 있어 그 성과를 구속자 머릿수로 판단하는 문화가 있다. 잘못된 관행이다. 형사소송법은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법원 판결로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 구속영장은 도주나 증거 인멸 등에 대한 합당한 의심이 제기될 때에 한해 청구하는 것으로 유무죄 판단과는 직접적 상관이 없다. 어느 수사가 됐건 구속 수사는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검 수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현직 기업 총수나 CEO들은 우리 사회에서 도주 우려가 가장 낮은 집단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모든 기반을 국내에 둔 그들이 도망갈 곳이 따로 있을 리 없다. 앞서 검찰과 특검은 수사 선상에 있는 기업들에 대해 수차례 강도 높은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채증 가능한 증거는 이미 확보됐을 것이고 아직까지 증거 인멸을 우려한다면 그건 수사 부실을 자인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정치권력과 기업은 절대 갑을 관계로 설명된다. 기업은 권력의 요청을 거부하기도, 지원 대가로 직접적 반대급부를 요구하기도 어렵다. 이들에 대가성을 전제로 성립되는 뇌물공여죄를 적용할지 말지는 특검의 판단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무리한 영장 청구로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것은 자제돼야 한다. 특검은 사실관계를 밝히고 그에 대한 처벌과 평가는 법원에 맡겨야 한다.



8. 걸핏하면 주변국 위협하는 중국은 대국 자격 없다

지난 9일 '훙-6(H-6)' 전략폭격기를 포함한 중국 군용기 10여 대가 제주도 남쪽 이어도 인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기습적으로 들어와 4~5시간 동안 날아다녔다. 우리 공군은 전투기 10여 대를 대응 출격시키고 중국 공군과의 핫라인을 통해 경고 메시지도 보냈다. 중국 군용기들이 동해의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으로 날아가자 일본 자위대도 전투기 20여 대를 출격시켰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제법상 영공 개념과는 다르다. 각국이 영공을 침범할 수도 있는 미상의 항공기를 조기에 식별할 목적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이어도 상공은 한·중·일 방공식별구역이 중첩돼 우발적 충돌이 빚어질 수도 있는 곳이다. 2013년 중국이 일방적으로 이어도를 포함한 항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하자 우리도 이어도 남쪽까지 확장된 새 KADIZ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중국 군용기가 이곳에 진입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최신형 장거리 전략폭격기가 떼지어 날아든 건 처음이다. 중국 측은 이번 위협 비행에 대해 '훈련 상황'이라고만 밝혔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여러 목적을 지닌 고도로 계산된 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자국과 대치하고 있는 미국, 동중국해에서 영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일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을 상대로 한꺼번에 무력시위를 한 것이다. 한·미·일 동맹 강화 움직임에 맞서 판을 뒤흔들어 보려는 조치다.

중국은 이처럼 걸핏하면 힘 자랑을 하며 이웃나라들을 위협한다. 틈만 나면 남중국해 주변 국가들과 대만을 겁박하던 중국은 이제 미국이 패권을 잡고 있는 서태평양까지 항공모함을 진출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사드 배치를 트집 잡아 노골적으로 무역 보복 조치들을 취하더니 이제 한반도 주변 수역에 폭격기까지 보내며 은근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아시아의 평화와 협력을 위해 책임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기는커녕 되레 역내 안보 불안과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으니 참으로 대국답지 못한 행동이다. 중국은 지금 같은 거친 무력시위가 오히려 장기적으로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해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9. 글로벌기업 끌어들이는 트럼프, 있는 기업도 옥죄는 한국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국회에서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포럼에 참석해 재벌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경제 분야 공약을 발표한 셈인데 출자총액제한제 부활과 금산분리 강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지주사의 자회사 지분 의무소유 비율 상향 등 대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들이 다수 포함됐다.



문 전 대표는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문제점과 삼성을 비롯한 4대 재벌로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일부 공약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소지가 있어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취지와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지나친 규제로 기업 경영에 지장을 준다면 그렇지 않아도 쪼그라들고 있는 고용 시장에 한파를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 대통령 당선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글로벌 기업을 끌어들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법인세 대폭 인하를 공약으로 내건 것도 모자라 최근엔 자신의 트위터에 특정 글로벌 기업들을 거론하며 미국 밖에 투자하면 엄청난 국경세를 내야 할 것이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미국 에어컨 업체인 캐리어와 포드가 공장 이전을 포기했고 피아트 크라이슬러는 미국 공장 증설에 총 10억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협박을 받은 도요타가 5년간 미국에 1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지난 9일 트럼프와 만나 10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각종 규제로 기업을 옥죄며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막는 우리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수출 부진과 내수 불황, 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고용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 말 9.9%까지 치솟은 청년실업률은 10%대 진입을 목전에 둘 만큼 심각하다. 이런 위기를 타개하려면 기업들이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자를 막고 있는 규제들을 과감하게 풀어 기업들이 마음 놓고 신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떤 개혁이나 정책도 일자리 창출이라는 최고의 복지를 막아서는 안 된다. 재벌개혁을 이유로 기업들을 오히려 해외로 내몰고 고용 시장에 한파를 불러온다면 우리가 원하는 경제성장은 요원할 것이다.



10. 親文의 문자테러, 反文의 폭력행사를 개탄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지자들의 '문자테러'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이들은 문 전 대표를 비판하거나 정치적 입장이 다른 비문계 의원들을 향해 수천 통의 항의 문자를 보내고 욕설 의미가 담긴 18원의 후원금을 입금하는 등 집단행동을 벌이고 있다. 여야 의원 가리지 않고 공격 대상을 정해 조직적으로 문자 융단폭격을 퍼붓고 있다. 

김종인 의원이 "노인 죽을 날 얼마 안 남았다"는 막말 문자를 받았는가 하면 민주당이 펴낸 '개헌 저지 보고서'를 비판한 김부겸 의원은 3000개가 넘는 인신공격성 문자테러에 시달린 끝에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기까지 했다니 어이가 없다. 민주주의 실현을 내세우고 있는 공당 지지자들의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극도로 선동적이고 비이성적이다.



이런 맹목적 지지는 '친문 패권주의'에 대한 반감만 키워 문 전 대표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뿐이다. 오죽하면 문 전 대표 열혈지지자들을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세력 탈레반에 빗대 '달레반'이라고까지 하겠는가.

이와는 반대로 경북 구미를 방문한 문 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25분간 발이 묶이는 일도 벌어졌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지난 8일 태극기를 흔들며 차량을 가로막고 "문재인 빨갱이" "탄핵 무효" 등의 구호를 외쳤다. 차량에 발길질을 가하는 등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개탄할 만한 장면이다.

문 전 대표 측은 이에 대해 "우리가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적폐이자 구악"이라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폭력 행위는 마땅히 엄벌해야 한다. 하지만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규정짓고 비난과 폭력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는 점에서 '친문의 문자테러'나 '반문의 폭력행사'는 '오십보백보'다. 국내 정치에서 몰아내야 할 적폐라는 점에서 둘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조기대선이 확실시되면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우상화하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맹목적 추종세력들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어 심히 걱정스럽다. 소위 '○○빠' '○○사모' 등 광신도적인 지지자들의 집단행동은 패권주의를 강화시켜 한국 정치에 독이 될 게 뻔하다. 대선주자들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패권주의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매일신문][매일춘추] 마흔, 꿈을 꾸다

어느 날 문득, 현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의 잔해들이 먼지처럼 일었다. 먹는 것과 숨 쉬는 것, 자는 것과 깨어 있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모든 삶에 의심이 생겼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 걸까. 두려웠다. 막막했다. 오래된 병이 서서히 뼈와 살에 깃들 듯 내면이 조금씩 분열하고 있었다. 가족을 사랑했지만 버거웠다. 허무했고 어디론가 내달리고 싶은 격정이 들끓었다. 너무 빠듯하고 조급했다. 무언가를 빨리 이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삶의 여유를 잠식했다. 솔직하게 이빨을 드러내는 감정에 적잖이 당황했다.



마흔에 찾아온 몸살은 낯설고 지독했다. 밥벌이의 절박함, 돈에 휘둘리는 사람들, 나도 똑같았다. 익숙해진 채, 꿈도, 희망도 뒷전으로 밀쳐두고 서서히 잊고 있었다. 무기력한 삶은 괜찮은 척하는 나를 거침없이 공격하고 흔들어댔다. “엄마는 꿈이 뭐야?” 아이의 질문에 서러우면서도 한없이 고마웠다. 밀쳐둔 꿈에서 오래된 냄새가 났다. 온몸의 진액을 쥐어짜며 지독하게 앓았던 꿈, 거짓과 계산 없이 좇아가던 꿈을 나는 언제부턴가 묵인했고, 치밀하고 정확하게 현실에 스며들어 생존해야만 했다.



구멍 뚫린 가슴으로 닿을 듯 말 듯한 꿈들이 들락거렸다. 도시의 최면에서 눈을 떴다. 도시는 더 이상 꿈의 도시가 아니었다.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일었다. 헤매기 시작했다. 꿈도 야망도 기계화시키는 허무한 도시, 더는 버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작정 연고도 없이 동해를 건넜다. 그러지 않으면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생떼를 쓰는 나와 그런 엄마를, 아내를, 며느리를 애써 이해하려 했던 가족들.



울릉도에 정착한 어느 밤, 마음이 가벼워지고 비로소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달빛에 투영된 민낯이 낯설지 않았다. 미친 듯 걷고, 혼자 말을 하고, 비를 맞고, 그리고 웃었다. 가슴 밑 구덩이에서 올라오는 유연하고 투명한 태초의 웃음. 그리고 힘겹게 달려온 시간을 기억하며 꿈을 꾸었다. 바다를 끼고 몽환적이고 신기루 같은 꿈을. 성큼성큼 꿈속으로 걸어가 묵은 숙제를 하듯 몰아의 경지를 탐닉했다. 요정이 되어 바다 위를 날고, 알 수 없는 전설의 사회에서 공주가 되거나,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하는 무사가 되기도 했다. 사무치고 사무쳐 가슴 서늘한 비움의 사색 속에 나는 오늘이 진정 아름다웠다.



허황한 꿈이면 어떠랴. 주어진 몫의 오늘이 기묘하고 애틋하게 바닷바람에 펄럭인다. 나는 오늘도 꿈을 향해 고독하지만 의연하게 순례의 길로 들어선다. 이상향이 존재할 것만 같은 간절한 오늘. 너른 바다를 끼고 나는 또, 현재진행인 꿈을 향해 하루를 시작한다.



2.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 스파르타의 자녀 교육법 

금쪽같은 자식 앞에 딸 바보, 아들 바보 아닌 부모가 어디 있으랴. 부모의 내리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를 막론하고 변함없다. 고대 그리스의 강소국 스파르타인들의 자녀 사랑방식은 다른 나라와 많이 달랐지만, 애틋함은 동일했다. 그들은 자기 자식들을 개개인의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국가 공동의 자식처럼 키웠다.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자녀를 공동의 자산처럼 여겼던 것이다. 아이들이 ‘공공재’(?)라는 이런 인식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테네의 장군이자 저술가인 크세노폰(BC 430?~355?)이 쓴 ‘라케다이몬 정체’에는 스파르타 시민들의 독특한 교육법이 나온다. 이들이 자녀를 공동체의 공동 자식으로 여긴 이유는 자기 자식과 남의 자식을 동등하게 대하도록 함으로써 시민들의 우애를 북돋우고 서로 어떤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인식으로 자식들을 대하는 사회문화가 만들어지자 다른 이의 자식에 대해서도 자기 자식을 가르치는 듯 훈육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식이 밖에서 누군가에게 얻어맞고 들어왔다고 해 보자. 우리나라 부모들의 전형적 대응 태도는 ‘왜 얻어맞고 다니느냐’고 나무라면서, ‘너도 상대를 한 대라도 때리고 왔어야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아이들을 다그치는 게 예사일 터다.

그런데 스파르타인들의 대응 방식은 우리와 매우 달랐다. 한 아이가 두들겨 맞고 와서 부모에게 일러바치면, 부모들은 오히려 그 고자질한 잘못을 들어 자기 자식을 더 두들겨 패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로 여겼다. 스파르타 시민 누구나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그릇된 짓을 시키지 않는다는 믿음을 모두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스파르타 시민들은 미래의 전사, 미래의 어머니가 될 아들딸들을 강인하게 키웠다. 남자의 신체가 유약해지는 것을 경계하여 가혹해 보이는 습관들에 익숙해지게 했다. 어려서부터 맨발로 다니도록 하여 발을 단련시켰고, 추위나 더위에 잘 견디도록 일 년 내내 옷 한 벌로 나도록 했던 것이다. 또 아무 음식이나 잘 먹을 수 있도록 허기를 채울 정도의 소식을 습관화시켰다.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달리기와 씨름 등 운동을 시켰다. 부모가 모두 튼튼해야 건강한 아이가 태어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남자들은 8세부터 20세까지 의무 집체교육인 아고게(Agoge)에서 공동숙식하며 체력단련과 군사훈련을 받았다. 왕이나 귀족의 자식도 시민들과 똑같이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내 자식만은 특별하게 키우겠다는 욕망은 자칫 내 자식을 위해 남의 자식을 부당하게 배제하는 불공정과 반칙에 둔감하게 만들 수 있다. 또 부모가 부와 권력의 힘으로 자녀가 무엇이든 쉽게 이루도록 해 주는 것은 참으로 그릇된 교육이다.



3. [중앙일보][시선 2035] 배려는 됐고, 돈으로 주세요

넉 달 전 방송한 코바코의 저출산 공익광고 ‘아이의 마음’편은 ‘출산지도’ 논란의 전조곡이었다. 광고는 임산부를 어린아이로 묘사한다. 미래의 아이를 위해 임산부를 배려하란 취지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일찍 퇴근을 시켜주고, 자리를 양보해 주고, 무거운 짐을 들어 주는 ‘배려’를 베풀 수 있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반발은 컸다. 여성을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아이를 낳을 존재로만 존중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비판만큼이나 나는 광고 카피가 마음에 걸렸다. “엄마가 되는 기쁨, 모두의 배려에서 시작합니다. 당신의 배려를 보여주세요.”

‘배려’란 단어가 걸쩍지근하게 전두엽에 남아있는 사이, 1년째 여행 중인 핀란드 기자와의 대화에서 이유를 깨달았다. 그녀는 5월 즈음에 돌아가면 여름휴가 대체근무가 쏟아지기 때문에 당장은 굶을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대체 인력이 보편적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름휴가 때문에 대체 인력을 고용한단 얘기는 가물가물했다. “직원이 육아휴직을 하거나, 병가를 내거나 휴가 시즌이 되면 회사는 대체 근무자를 고용하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구성원이 피해를 보잖아요. 한국은 그럼 육아휴직을 안 해요?” 핀란드인 에바에게 육아휴직은 대체인력 고용을 의미했다.

육아휴직의 장벽을 낮추는 건 직장 동료들의 배려가 아니다. 배려는 맨땅에서 생기지 않고 대가도 따른다. 업무 공백으로 일이 많아지면 불만이 쌓이는 게 사람이다. 선한 마음으로 이해하라는 주문은 먹히지 않는다. 쌓인 불만은 ‘여자들은 일을 안 한다’는 직장 신화와 낮은 평과 고과로 고스란히 돌아온다. 불만도 빚도 없는 ‘아름다운 휴직’은 회사와 정부가 추가 인력을 고용하거나 추가 업무만큼 수당을 줄 때만 가능하다.

어린이집 운영시간도 마찬가지다. 법적으론 저녁 7시30분까지 운영해야 하지만 어린이집은 오후 네다섯 시면 아이를 데려가라고 한다. 학부모들은 발을 동동 구르지만 8시간 치 월급밖에 못 받는 선생님들에게 ‘12시간 운영이 법’이라며 엄격하게 ‘직업정신’을 요구하진 못한다. 복지부는 매번 어린이집 단속에 나서겠다고 발표하지만 교사들에게 야간근무 보조금을 제대로 지급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럼 엄마들이 “7시30분이 법”이라고 먼저 당당하게 얘기하고 이들도 시간을 지킨다.

배려가 사람의 선한 마음에서 나온다는 건 환상이다. 돈에서, 시간에서 나온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인은 돈과 시간의 곳간이 텅텅 비었다. 당연히 인심이 나기 어렵다. 고위 공직자들이 “국민들 의식이 문제해결의 걸림돌”라고 얘기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진짜 걸림돌은 개개인의 배려로 문제를 때워보려는 정부 아닐까.



4. [경향신문][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붕어빵 할아버지

어릴 적 내 영웅은 짱가, 마징가, 태권V 따위였다. 이들 중 유일하게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태권V의 실체는 구체적이었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 눈에서 뿜어져 나온 레이저빔이 63빌딩에 반사되어 국회의사당을 비추면 둥근 돔이 열리면서 그가 등장할 거라고 했다. 꽤 오랫동안 63빌딩을 보며 발차기로 지구를 구할 거대한 존재를 떠올렸다.



허무맹랑하지만, 가슴 뿌듯한 이 판타지가 깨진 것은 우리 동네에 59층 아파트가 들어선 뒤였다. 배추가 새파랗게 자라고, 호박 넝쿨이 뻗치던 곳에 어느 날 우뚝 솟은 아파트의 위용에 익숙해지면서부터 63빌딩을 봐도 경이롭지 않았다. 그리고 정의를 수호할 존재에 대해서도 잊었다. 따지고 보면 고층 아파트 탓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 더는 꿈꾸지 않게 되면서 판타지 세상은 멀어졌다.

하지만 꿈꾸지 않는 것도 나이 탓은 아니다. 59층 아파트 입구에서 붕어빵 포장마차를 하는 할아버지는 여전히 새로운 꿈을 품고 있었다. 교직에 있었다는 그는 동네 아이들에게 한문과 영어를 가르칠 공부방을 열 생각이라고 했다.

단팥을 꼬리까지 꽉 차게 넣어주며 손님한테는 반드시 식지 않은 뜨거운 붕어빵만 판다는 그는 의기소침해 있는 청년들을 걱정했다. 나 같은 노인도 이렇게 하는데, 청년들은 못할 게 없다는 뻔한 말도 그의 형형한 눈빛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가장 뜨거운 순간을 세상에 내놓아도 외면당하는 청년들의 현실을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매번 다른 빛깔의 붕어빵이 나오는데, 더 구워지거나 덜 구워지는 것이 부지기수지요.” 그는 인생이란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달궈져야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는지 모르는 것. 인생은 붕어빵 틀이 아니라 무엇이 될지 모르는 쇳덩이를 올려놓은 모루와 같다는 것. 

우리 동네에는 태권V를 끌어낼 레이저빔 따위를 반사할 리 없는 고층 아파트가 있고, 그 아파트 아래에는 날마다 자신의 꿈을 달궈내는 붕어빵 포장마차가 있다. 그 포장마차 주인은 문제를 맞히면 한 개를 덤으로 준다. ‘붕어빵을 먹는 까닭은 ㄴㅁ이니까, ㅊㅇ이니까, ㄱㅇ이니까.’ 초성만 보고 낱말을 맞히면 된다.



5. [경향신문][송혁기의 책상물림] 거짓말과 개소리

맹자는 자신의 장점이 남의 말을 잘 아는 것이라고 했다. 말은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지만, 말이 그대로 그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음을 우리는 안다. 말을 아는 것 자체보다, 말을 통해서 그 사람을 아는 것이 관건이다. 맹자가 경계한 네 가지의 말은, 편견에 치우쳐서 객관성을 잃은 말, 무언가에 지나치게 빠져들어서 절제하지 못하는 말, 못된 마음을 품어서 도리에 어긋나는 말, 찜찜한 구석이 있어서 본질을 회피하려는 말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옳음과 틀림, 진정과 거짓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맞으면 저건 틀리고, 어떤 말에 진정성이 있으면 거짓이 아니라는 식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것과 저것 모두 맞을 수도 있고, 진정성만 있으면 맞고 틀리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현상이 팽배해지고 있다. 이런 추세를 가장 잘 이용하는 이들이 정치인들이다.



민생, 복지, 경제 민주화. 참 좋은 말들이다. 그런데 지향에 맞는 정책인지 따져 볼 겨를도 없이 자체 정합성마저 의심되는 말들이 진정성의 탈을 쓰고 호소된다. 겨냥했던 실체가 수시로 모양을 바꾸는 가운데, 이전의 기준과 방식으로 지적하고 비판하는 일은 점차 무력해진다.

철학자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OnBullshit)>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짧지만 묵직한 통찰을 던지는 글이다. ‘개소리’는 터무니없는 허튼소리 정도의 의미다. 의도적인 거짓말의 경우 거짓임을 증명할 방법이 있고 책임도 요구할 수 있는 데 반해서, 신념에 가까운 ‘진정성’을 내건 개소리는 객관적인 분석으로 거짓을 입증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애초에 ‘아님 말고’ 식의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상대하기 더 난감하다. 치밀하게 꿰맞춘 거짓말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의도를 감추고 떠벌리는 개소리다.

맹자가 경계한 네 가지 말 역시 의도적인 거짓말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진정성이 있든 없든 간에, 그런 말을 내뱉는 이들이 정치에 참여해서 중요한 결정들을 내릴 때 많은 이들에게 치명적인 해로움을 끼치기 때문에 잘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정치권력을 쥔 이들의 진정성을 문제 삼고 거짓말을 입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이 연일 양산하고 있는 개소리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새로운 지혜와 전략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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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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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부정청탁금지법은 성역이 아니다

설 명절을 앞두고 부정청탁금지법 시행령에 규정된 식사·선물·경조사비 허용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식사비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까지 허용하는 현행 가액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게 그 배경이다. 가뜩이나 경기가 침체된 터에 이 법이 서민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움직임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이에 직접 관심을 나타냈을 만큼 사회적인 논란이 뜨겁다. 황 권한대행은 지난주 열린 경제부처 업무보고 자리에서 관련 부처들에 대해 이 법의 시행령 개정을 포함한 제도개선 방안 검토를 지시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는다는 기본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이러한 논의는 지난해 9월 28일 부정청탁금지법이 전면 시행에 들어가면서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식사비 조항을 현실화하고 명절 선물에 대해서는 예외를 적용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경조사비와 화훼를 합쳐 10만원 상한을 둔 규정도 분리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법의 영향을 받고 있는 농림부와 해수부, 산업부, 중기청 등 관련부처들이 여러 방안을 놓고 국회와 입장을 조율하는 중이라고 하니 조만간 타당한 결론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려되는 것은 자칫 정부 내에서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와의 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권익위원회는 황 권한대행의 공식 지시에도 불구하고 “법이나 시행령 개정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가 “탄력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입장으로 바뀌긴 했지만 내부 분위기가 탐탁지 않은 것으로 비쳐진다. 법이 시행된 지 불과 100여일 만에 외부의 개선 요구가 거센 데 대해 그리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법 시행 초기부터 현장 사안에 대한 해석을 놓고 세 차례나 매뉴얼을 수정했을 만큼 법 적용이 애매모호한 것도 사실이다. 식사비 3만원 규정만 해도 14년 전인 2003년에 정해진 지침이다. 어떠한 법률이나 제도도 시행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난다면 고치는 것이 올바른 처사다. 정부 부처가 함께 머리를 모아 현명한 대책을 내놓기를 바란다.



2. ‘불가역적 합의’를 깬 건 일본이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또다시 억지를 쓰며 한·일관계를 벼랑으로 몰아넣고 있다. 일본은 우리 정부를 굴복시키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필두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발단은 한 시민단체가 작년 말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설치한 소녀상이다. 일본 정부는 항의 표시로 어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총영사를 소환했다. ‘일시 귀국’이라지만 양국의 통화스와프 협상도 일방적으로 중단한 것을 보면 작심하고 우리 정부를 길들이겠다는 속셈이 역력하다.

앞서 아베 총리는 지난주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의 움직임을 우려한다”는 지지성 발언을 끌어낸 뒤 “정권이 바뀌어도 합의는 이행돼야 한다”며 우리 차기 정권까지 압박하겠다고 나섰다. 유럽을 순방 중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도 가는 곳마다 “위안부 합의는 불가역적”이라고 강조하며 국제무대에서 피해자를 자처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목불인견이다.

재작년 말 양국이 체결한 ‘12·28 합의’ 어디에도 소녀상 철거나 추가 설치 금지를 못 박은 규정은 없다. 일본군의 관여로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데 대해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하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피해자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취한다는 게 핵심이다.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설치한 부산 소녀상에 대해 일본이 왈가왈부할 계제가 못 된다는 얘기다.

정작 ‘불가역적 합의’를 뒤집은 것은 우리가 아니라 일본이다. 아베 총리는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오히려 “사죄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속내를 뻔뻔하게 드러냈고 이후에도 같은 입장을 되풀이하며 합의의 진정성을 의심케 했다. 일본은 ‘불가역’ 운운하며 우리 정부를 압박하기에 앞서 양국 합의를 존중하려는 진정성이 추호라도 있는지부터 스스로 반문할 일이다.

우리가 피해자 입장인데다 인륜이란 보편적 관점에서 일본에 압도적 우위에 있으면서도 국제무대에서 밀린다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최순실 사태’로 국정이 마비되다시피 했다지만 이런 때일수록 국익 차원에서 단호하게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위안부 문제에서까지 밀려서는 한국 외교는 끝장이다.



[매일신문]

3. 경제 발목 잡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속도 내라

지역 중소기업 중 경영 부실로 어려움을 겪는 한계기업 비중이 매년 늘고 있다는 통계는 큰 충격이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사회적으로 긴급 현안이 된 가운데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의 증가는 성장과 일자리 등 여러 방면에서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역의 한계기업 비중은 국내 전체 평균보다 두 배가량 높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내 전체 산업에서 한계기업의 비중은 2011년 9.4%에서 2015년 12.7%로 크게 높아졌다. 한계기업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서비스 업종의 경우 절반이 넘는 56.0%가 부실한 것으로 판명났다. 제조업종도 34.68%가 부실로 허덕이고 있고, 건설업도 2011년 8.7%이던 한계기업 비중이 2015년에는 11.3%로 악화됐다.



무엇보다 지역 내 한계기업의 현실은 매우 심각하다. 대구경북 중소기업 중 기업 활동을 꾸려나가기가 벅찬 한계기업의 비중이 2009년 12.2%에서 2012년 15.3%, 2013년은 24.9%로 급증했다. 지역 기업 네 곳 중 한 곳꼴로 경영 부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소생 가능성이 희박한 기업이 속출할 전망이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한계기업은 우리나라 전체 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고용 불안 등 후폭풍이 만만찮다는 점에서 과감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가 지난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나서고는 있으나 여태껏 별다른 진척이 없다. 게다가 탄핵 정국의 혼란으로 경제팀 공백이 이어지면서 기획재정부와 금융 당국도 사실상 구조개혁에 손을 놓는 등 정책 의지마저 불투명하다.



좀비기업을 이대로 계속 방치할 경우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계속 시간을 허비할 경우 국가 전체가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 일각에서는 재기를 위해 혼신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제도적 지원책에 기대어 상황을 모면하려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당장 옥석을 가리지 않는다면 세금은 세금대로 들어가고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없다.



4. 힘으로 문재인 차량 막은 시위, 진정한 보수답지 않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탄 차량이 8일 오후 구미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떠나려다 시위대에 막혀 움직이지 못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단체 회원 등 200여 명의 시위 때문이다. 이들은 문 전 대표 일행이 탄 차량 앞에 앉거나 드러누워 차량 진행을 방해했다. 문 전 대표 일행은 30분간 꼼짝 못했다. 진정한 보수다운 모습은커녕 폭력 행사와 같아 우려스럽다.



시위대 일부는 “문재인은 빨갱이”라고 외치거나 욕설도 했다. 시위 현장에서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강제로 막을 방법도 마땅하지 않고 막을 수도 없다. 법 테두리를 지키면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는 보장된다. 하지만 물리력을 앞세운 폭력 시위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부터 시작돼 새해까지 계속된 최순실 국정 농단 규탄 촛불 민심이 나라 안팎에서 평가받는 까닭은 평화적 시위를 이어가서다.



이번 차량 방해와 같은 시위를 걱정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런 일은 바로 보수 세력에 대한 그릇된 평가와 역효과를 가져온다. 자신들과 다른 의견인 진영의 정치인과 그를 지지하는 정치 세력에 마음이 상할 수는 있다. 그래도 민주사회는 정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더욱 성숙된 정치 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공동체 삶터이다.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는 물론 다른 정치 성향조차 아울러야 진정한 보수이다.



특히 우리 지역민은 지난해 정부의 성주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시위와 시위 이후 빚어진 후유증과 갈등을 지켜봤다. 폭력이 난무한 그릇된 시위는 누구에게도 결코 도움되지 않는다는 뼈아픈 교훈만 남겼을 뿐이었다. 이번 구미의 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이는 또 다른 갈등의 악순환을 낳거나 지역 이미지를 훼손할지언정 지역사회에는 어떤 이익도 없음이 자명하다.



경북은 오랫동안 보수의 건전한 역할을 견지해 오기도 한 지역이다. 정치적 지지와 성향의 차이를 빌미로 폭력과 물리력 행사를 멀리한 곳인 셈이다. 이번 구미의 문 전 대표 차량 진행 방해 일로 경북은 다양성을 품은 역사적 고장이라는 점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랄 따름이다.



5. 포항 지곡동 롯데마트 부지 ‘주상복합 꼼수’ 통할까

롯데그룹(이하 롯데)이 포스코로부터 헐값에 사들인 포항 지곡동 롯데마트 부지에 주상복합건물을 지어 막대한 시세 차익을 거두려 한다는 소문이 포항지역에서 파다하다. 롯데는 이곳 땅을 포스코로부터 사들일 당시 5층 이상 건물을 짓지 않기로 약속한 바 있는데, 이를 파기하고 20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 신축을 추진할 공산이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이 지역에서의 난개발 우려는 물론이고 롯데의 기업 윤리에 대한 비난도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2만여㎡ 크기의 노른자위 땅인 지곡동 롯데마트 부지는 2014년 말 포스코가 현금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롯데에 매각한 곳이다. 그런데 당시 포스코는 이 땅을 시세의 30% 선에 팔았다. 이곳에서 난개발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지역 여론 때문이었다. 대신 포스코는 ‘5층 이상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포스코는 롯데가 약속을 어길 시 50억원의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단서까지 달았다.



포스코는 굴지 재벌의 도덕성을 믿었겠지만 순진한 기대였다. 롯데는 이 땅을 곧바로 자산운영사에 넘기는 방법으로 소유권에서 한 발 빼는 모양새를 만들었다. 장부상으로 현재 이 땅은 롯데 소유가 아니지만 실사검증작업 등을 롯데가 추진한 점 등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롯데가 위약금 50억원을 물더라도 주상복합건물을 지어 막대한 시세 차익을 거두겠다는 복안을 타진한다는 소문이 나도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주상복합건물 신축설은 헛소문”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도 의혹이 숙지지 않는 것은 롯데가 포항시 북구 두호동 롯데마트 입점 때 다른 회사명을 내거는 방법으로 주민 반발을 피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포항시는 롯데의 20층 주상복합건물 신축을 허용치 않겠다는 입장이다. 포항시가 최근 세운 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롯데마트 부지에는 7층 이하 상가만 가능하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포항시는 지구단지계획을 반드시 통과시킴으로써 난개발 방지 의지를 보여야 한다. 롯데 역시 재벌이 꼼수를 쓴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주상복합건물을 짓지 않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



[서울신문]

6. ‘블랙리스트’ 새 의혹에도 끝내 부인한 조 장관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를 별도 관리하는 ‘블랙리스트’ 의혹은 특검이 이미 사실로 확인했다. 이번에는 입에 올리기도 께름칙한 이른바 ‘적군리스트’ 의혹이 또 불거졌다. 문명천지에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통탄할 리스트를 만들었다는 말인지 기가 찰 노릇이다.

특검과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설령 여당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라 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면 적군리스트에 포함됐다. 리스트가 주무 부처인 문체부 공무원들까지 쥐락펴락한 것은 물론이다. 블랙리스트처럼 이 역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문건 작업을 총괄했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인 조윤선 문체부 장관이 실무를 맡은 의혹이 제기됐다.

모두 사실이라면 현 정권은 정부 비판의 ‘비’ 자만 꺼내도 백방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려 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비판을 수용해야 정책이 앞으로 나아가며,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른다는 순리마저 틀어막은 셈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더군다나 억압 대상이 유연한 사고와 비판 정신이 생명줄인 문화예술인들이다. 이래 놓고 어떻게 문화융성이라고 국정 간판을 걸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특검은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 내용을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에게 직권남용 혐의가 추가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블랙리스트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했던 박 대통령의 말은 또 거짓인 셈이다.

조 장관은 문건을 본 적도 없다고 하지만, 문체부 차관 등에게 블랙리스트 입막음을 하려 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관련 피해자들을 회유한 흔적이 특검에 꼬리를 잡혔다. 그런데도 어제 마지막 청문회에서까지 모르쇠로만 얼버무린 조 장관은 비선 권력 놀음에 복마전 소굴로 전락한 문체부를 추스를 수 있는 자격이 없어 보인다.



특검은 조만간 조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하겠다는 방침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가 힘들어진 상황이다. 조 장관은 어제 블랙리스트로 국가 지원에서 배제된 예술인들에게 주무 부처의 장관으로서 사과했다. 이제 와서 참 한가한 이야기다.

문화융성이란 이름 아래 퍼부은 예산이 수천억원이다. 누가 혈세를 권력 맘대로 국민 협박에 쓰라고 허락했나. 돈줄을 틀어쥐고 정권에 비판적 인사들을 길들인 저열한 행태는 다시 반복되지 않게 잔뿌리도 남김없이 뽑아내야 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련자들을 단죄해야 한다.



7. 中, 언제든 ICBM 쏘겠다는 北 묵과할 텐가

북한은 그제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최고 수뇌부가 결심하는 임의의 시각과 장소에서 발사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33번째 생일을 맞아 또다시 도발적인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곧바로 “우리 동맹을 위협한다면 격추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해 벽두부터 중국과 일본 탓에 가뜩이나 힘겨운 한국의 외교에 북한까지 끼어든 형국이다. 일본은 어제 부산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이유로 한·일 양국의 통화 스와프 협상을 중단하더니 대사와 총영사를 보란 듯이 귀국시켰다.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 배치 결정을 빌미로 일찍이 전방위적인 압박과 보복에 나선 가운데 여론전도 본격화했다. 탄핵 정국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북한이 ICBM과 관련된 발언의 수위를 높이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은 지난 1일 육성으로 발표한 신년사에서 “ICBM 시험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라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는 이튿날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의 ICBM 개발을 억제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표명했다. 북한의 외무성 담화는 결과적으로 트럼프 당선자에 대한 반격인 셈이다.



북한이 ‘임의의 시각과 장소’라고 강조한 만큼 이동식 ICBM의 발사 가능성을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에 맞춰 핵과 미사일 기술을 인정받기 위해 경거망동을 마다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1월 6일 4차 핵실험을 기습적으로 강행했다.

북한의 ICBM 발사 위협은 또 하나의 국제적 도발이다. 북한을 사사건건 감싸 온 중국의 외교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의 사드와 직결되는 까닭에 더욱 그렇다. 사드 배치 결정은 무엇보다 북핵 및 미사일에 대한 방어적 조치다. 북한이 ICBM으로 한국과 미국은 물론 세계를 조롱하는 판에 중국이 한국의 사드를 반대하고 철회를 강요하는 행태는 내정간섭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한·중 군사협력 및 훈련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관영매체를 동원해 ‘화장품 불매’까지 경고하고 나선 처사는 옹졸하게 비칠 뿐이다.

중국은 한국이 안보 차원에 결정한 사드 배치를 둘러싼 일체의 책략을 삼가야 한다. 핵과 함께 ICBM발사 등을 포기하도록 북한을 설득하는 게 우선이다. 오죽하면 트럼프 당선자가 “미국과의 무역으로 엄청난 돈과 부를 빼가고 있지만 북한(문제)을 돕지 않으려 한다”고 비꼬았는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사드는 동맹국인 미국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중국의 이간질에 휘말리면 한·미 동맹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때문에 대선 주자들이 외교안보 문제만이라도 당리당략을 떠나 초당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누가 뭐라 해도 외교의 철칙은 국익이다.



[세계일보]

8. 미·중 환율전쟁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 되지 말아야

중국 위안화 환율이 심상치 않다. 미국 금리 인상 등 긴축정책으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데다 내주 출범하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통상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관측이 위안화 약세를 부추긴다. 중국 당국은 위안화 약세가 외국인 투자자들의 증시 이탈과 주가 폭락을 야기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1년 전 위안화 평가절하가 국제금융시장을 질식시킨 ‘중국발 악몽’이 재현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어제 기준환율을 전 거래일보다 0.87% 올린 달러당 6.9262위안으로 고시했다. 위안화 기준환율이 올랐다는 것은 위안화 가치가 그만큼 절하됐다는 뜻이다. 인민은행은 지난 6일 위안화 가치를 0.97% 끌어올렸다. 거래일 기준으로 불과 하루 만에 큰 폭의 절하로 돌아선 것이다.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 환율이다. 

어제 절하 결정은 중국 당국이 시장에 굴복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최근 위안화 약세가 지속되자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풀어 방어에 나섰다. 그 여파로 한때 4조달러에 육박하던 외환보유액이 지난해 말 3조100억달러까지 급감했다. 당국의 방어조치에도 시장에서 환율이 정반대로 올라가자 결국 어제 환율을 인상하는 비상수단을 동원했다. 그동안 세계 최대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기반으로 ‘환율전쟁’을 주도했던 중국의 위상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국내 금융시장은 즉각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국제금융센터는 어제 보고서에서 “중국이 외환보유액 방어와 환율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하다”며 “금융불안 재연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 경제 불안은 한국 등 신흥국 전체의 불안으로 확산될 수 있다. 이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어제 달러당 1208.3원으로 치솟았다. 원화 환율이 상승세를 지속하면 물가 상승을 초래해 금융·실물경제 비용을 늘리는 데다 외국인 자금이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갈 가능성도 높아진다. ‘외환 방파제’도 충분치 않다.



작년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3711억달러로 6개월 내 최저수준이다. 주요국과의 통화스와프는 대부분 종료된 데다 일본과의 재개 협상은 중단됐고, 중국과의 연장 협상 전망도 불투명하다. 이제 정부 당국이 전면에 나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때다. 미·중 간 환율전쟁의 유탄을 맞는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



9. 불출석·위증으로 헛바퀴 도는 청문회는 이제 그만​

마지막 ‘최순실 청문회’도 결국 맹탕으로 끝났다.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위가 어제 7차 청문회를 실시했으나 증인 20명 중 16명이 불출석했다.



청와대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10명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고, 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 등 몇 명은 아예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특위가 불출석 증인 14명에 대한 동행명령장을 발부하자 그제서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2명은 오후 청문회에 출석했다. 7차 청문회는 이들을 포함한 증인 4명만 나와 맥없이 진행됐다.

지난해 12월6일부터 최순실 청문회가 시작될 때 대다수 국민은 국정농단의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청문회가 거듭될수록 진상 규명은커녕 의혹만 커졌다. ‘무늬만 청문회’가 지속된 것은 국정농단의 몸통인 최순실씨 등 핵심 증인이 빠진 탓이 크다.



국조특위는 최씨와 청와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이 두 차례나 출석을 거부하자 지난해 12월26일 수감 중인 구치소로 찾아가 ‘수감동 청문회’를 벌였다. 굳이 청문회란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하다. 최씨 등을 불러놓고 비공개 면담을 했으니 이런 코미디가 없다.

더 한심한 것은 청문위원들의 준비 태만이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증인들의 방패를 뚫을 송곳 질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구체적 증거를 토대로 날카로운 질의를 하기보다는 증인을 다그치거나 인신 모욕성 핀잔만 주는 데 급급했다. 우 전 수석과 조여옥 전 대통령경호실 간호장교만 출석한 5차 청문회가 대표적이다. 청문위원의 수준 낮은 질의가 되풀이되면서 증인이 오히려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미국 청문회는 정치 공세보다 현안 해결에 중점을 두는 실무형 문화가 정착돼 있다. 증인을 최소한으로 부르고 증언 요지를 서면으로 미리 제출받아 중복 질문을 피한다. 

청문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개선책이 절실하다. 불출석 증인을 강제소환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김성태 특위 위원장은 “고발을 통해 불출석 증인에게 불출석의 죄를, 동행명령을 거절한 증인은 국회 모욕죄에 대한 처벌을 반드시 받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위증 증인은 처벌받는 선례도 만들어야 한다. 이미 관련 내용의 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그동안 청문회 때마다 제도 개선 움직임이 일다가 흐지부지됐다. 이번에는 꼭 실행돼야 한다.



10. 포퓰리즘 안보관으로 북 도발 막을 수 있나김

관진 국가안보실장이 그제 황급히 미국으로 출국했다. 김 실장은 방미 목적이 대북공조 문제 협의라고 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 측 인사 가운데 “누구를 만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 안보상황이 왜 위기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준비사업이 마감단계”라고 위협하자 트럼프 당선자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받아쳤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그제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임의의 시각, 임의의 장소에서 발사될 것”이라고 예고했고,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우리나 우리 동맹을 위협한다면 격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미 간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국제사회의 견고한 제재이다. 대북 압박이 결실을 거두려면 중국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그러나 최근의 정세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미·중 간에 신 냉전기류가 형성되고 있고, 중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을 이유로 한국에게 전방위적인 보복을 가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이 대북 제재에 적극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제재의 뒷문을 열어놓고 시늉에 그칠 공산이 크다.

중국의 비협조로 북핵의 평화적 해결이 어렵다면 그다음 선택은 뻔하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로서는 한·미·일 3각 동맹체제를 견고히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3국 공조는 최근 금이 가는 소리가 역력하다. 위안부 소녀상 문제로 한·일 갈등이 깊어지고 있고 혈맹인 미국도 예전 같지 않다. 오는 20일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는 선거기간 중에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거론했다. ‘트럼프 리스크’가 대한민국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불 보듯 자명하다.

한반도 주변 상황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인데도 한국 정부는 국정농단 사태로 길을 잃고 있다. 정치권이라도 초당적으로 힘을 모아 헤쳐가야 하지만 제 발밑의 이익만 쳐다본다. 국민 정서에 편승한 사드 배치·위안부 합의 철회 주장 등이 그것이다.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중국의 장단에 맞춰 춤이나 추는 것은 수권정당의 자세가 아니다. “집권하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암담하다.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지도급 인사들이 안보를 정략적으로 농단한다는 얘기를 들어서야 되겠는가.




주요신문칼럼

 

1. [조선일보][일사일언] 떠나간 여인을 위하여!

"바로 이 자리예요." 마흔일곱 살 노총각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여기서 사랑한다고 고백했는데…. 미안하다 그러더라고요." 일본 후쿠오카의 자그마한 선술집에  앉아 있던 우리는 저마다의 탄성으로 그의 말에 응답했다. "저런, 쯧쯧쯧." "와, 진짜 허무했겠다. 일본까지 와서 고백했는데."


일본에 공연하러 왔다가 그곳 여배우에게 반한 그 친구는 한국에 돌아와서 일본말을 열심히 배웠다고 했다. 벼락 맞듯 사랑하게 된 여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어쩐지. 일본어 솜씨가 귀동냥으로 쌓인 실력은 아닌 것 같더라니." 그렇게 사랑의 힘으로 갈고닦아 놓은 일본어 실력 덕분에 편안하게 일본에서의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던 나는 내심 얼굴도 모르는 일본 여배우에게 감사하며 쪼르르 맥주 한 잔을 따라 그 친구에게 건넸다.


"울었어?" 옆에 있던 일행이 내 질문에 까르르 웃음을 쏟아냈다. "뭐야? 언니 유치하게." "울진 않고…. 술을 엄청 많이 마셨어요. 몇날 며칠 술만 퍼마시는데 다른 일본 배우들이 그러더라고요. 오히려 잘됐다고. 그 여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 그러더라고요." "진짜? 그 여자 나쁜 사람이래?" 울었느냐는 내 질문에 유치하다고 까르르 웃던 사람들의 관심은 단숨에 그 여자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옮겨갔다. 그 여자가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게, 한때는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던 사람에게 과연 위로가 될까?


나는 괜스레 가지런하게 놓인 명란을 젓가락으로 헤집으며 이제 막 실연의 아픔에서 허우적대며 빠져나오려 기를 쓰는 친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그 여자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내게 별 의미가 없어요. 그 여자 덕분에 공부하기 싫어하는 내가 단시간에 일본어를 마스터했고요. 없는 돈에 어떻게든 일본을 오가려고 일을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사랑이 내가 하지 못하던, 하지 않던 일들을 하게 만드는 기적을 만들어 주더라고요."

 

우리는 다소곳하게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건배! 한때 너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너를 수퍼맨으로 만들어주었던 떠나간 그 여인을 위하여!


2. [매일신문][매일춘추] 유머

‘아이스 브레이크’(Ice break)라는 말이 있다. 어원은 사람들 사이의 냉랭하게 얼어 있는 관계를 부숴 따뜻한 분위기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나 공식적인 행사에서 모두들 굳어 있어 긴장감마저 돌 때가 많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에 능숙한 유능한 리더는 이런 긴장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유머로 말을 시작한다.



특히 재미있는 유머나 조크를 할 때 사람들은 파안대소하면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문화 속에는 아직도 웃음을 억제하는 관행이 남아 있다. 특히 기업이나 공직사회에서는 유머나 조크에 대하여 보수적인 면이 많은 것 같다. 웃음이 많으면 가벼운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너무 오랫동안 갇혀 있어서, 공식적인 곳에서는 잘 웃지 않고 표정이 굳어 있어야 진지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지위가 낮은 사람이 먼저 유머나 조크를 한다는 것은 더욱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유명한 심리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유머는 유아기의 놀이적 마음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어른들의 해방감”이라고 정의했다. 대화에서 때로는 진지함보다는 지각 있는 익살과 은유가 더욱 효과적이다. 유머는 하나의 감성 커뮤니케이션이다. 유머는 이론이 아닌 즉각적인 경험으로 인간 지각의 변화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감성을 자극하면 상대방도 마음의 경계를 풀어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질 수 있다.



유머의 대표적인 예는 광고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광고에서 유머의 사용이 주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유머는 다른 광고 소재보다 주의 집중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현대와 같이 복잡한 사회관계에서 유머는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데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첫 만남, 첫인상에서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강한 끌림의 매력을 남긴다면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을 듯하다. 허무 개그가 아닌 의미 있고 품위 있는 유머라면 더 좋을 것이다. 따뜻한 인간미를 갖고 유머를 할 수 있는 리더가 요구되는 시대이다.



그러나 유머나 조크는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분위기를 밝게 해야 하는데 어설픈 유머를 구사하다가는 오히려 더 이상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유머는 길면 지루하다. 한입에 삼킬 수 있는 맛있는 간식처럼 간결하고 청량해야 한다.



유머는 누구나 듣고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한 단어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빵’ 터질 정도로 재미있어야 하는 게 핵심이다. 자연스럽고 상황에 잘 맞으면 금상첨화다. 유머 감각이 넘치면 놀라운 친근감을 이끌어내 대화의 고수가 될 수 있으며, 훌륭한 리더도 될 수 있다.


3. [경향신문][산책자] 자연사박물관에서의 하루

새해를 맞아 연재를 시작하는 코너의 이름이 ‘산책자’로 정해졌을 때 이곳저곳 어슬렁거린 기록을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요즘은 밖에서 살랑대는 바람을 맞으며 걷는 호사를 누리기 힘들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미세먼지의 습격은 밖으로 나설 용기를 꺾어 버린다. 하나의 크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을 터인데 엄청난 양의 먼지들이 하늘을 덮어 빛을 가리고 풍경을 찌그러뜨린다. 이런 때는 지붕 밑으로 피신하는 것이 상책이다. 피난처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은 자연사박물관이다. 그곳에 들러 공룡에게 인사하고 지구와 생명의 역사를 따라서 혹은 거슬러 산책을 하는 것은 늘 즐겁다.


나라 안이든 바깥이든 여행지에 자연사박물관이 있으면 꼭 찾아가 보려고 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설립된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은 1969년에 문을 열었으니 반세기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국가나 지자체가 설립한 종합자연사박물관은 2003년에 문을 연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이 처음이니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고성공룡박물관’,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장생포고래박물관’과 같이 특징 있는 박물관들이 속속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여전히 투자도 모자라고 인력도 부족해서 아쉬운 점이 많다.

내 생애 첫 자연사박물관은 뉴욕에 있다. ‘미국자연사박물관’. 여행 중에 무심코 들른 이곳에서 내 자연사박물관 사랑이 시작되었다. 자연사박물관이 주는 가장 큰 기쁨은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생산물들을 직접 만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그곳에는 300만점이 넘는 표본이 있고 그중 0.02%만 46개의 전시실에서 전시된다. 우리나라 자연사박물관에 가장 부족한 것은 표본의 숫자가 아닐까?


파리의 ‘국립자연사박물관’에는 1억점,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는 5000만점, 런던의 ‘자연사박물관’에는 3000만점의 표본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표본이 가장 많은 ‘국립생물자원관’에는 세계적인 박물관의 1% 정도에 해당하는 표본들만 있을 뿐이다. 그나마 인상적인 전시물들은 복제품이 많다. 여행안내책자들이 한결같이 먼지만 쌓여 있고 인적이 드물다고 소개하는 ‘상하이 자연박물관’에도 거대한 마멘키사우루스 화석을 필두로 인류 조상들의 뼈, 희귀 동물들의 박제를 직접 볼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현실은 안타깝다.

우리나라의 자연사박물관 산책에서 놀라운 물건들을 발견할 확률이 낮은데도 여전히 즐거운 이유는 그래도 조각에서 전체를 상상하면서 얻는 재미가 짜릿하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네 번째 시즌을 시작한 영국 드라마 <셜록> 팬들이 머리털 한 가닥, 타액 한 방울과 같은 희미한 조각에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진실의 퍼즐을 맞추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손에 땀을 쥐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공룡의 뼈 화석이 많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1973년 경북 의성군에서 공룡뼈 화석이 처음 발견된 이후 곳곳에서 발견된 화석들은 모두 원형의 15%에 못 미쳤다. 30% 정도가 최고. 하지만 공룡 발자국 화석은 1만여개를 훌쩍 넘는다.

직경이 80~90㎝에 이르는 발자국과 발자국 사이에서 공룡의 가랑이가 어디쯤인지 가늠해보면 아득하다. 너비 24㎝, 길이 32㎝의 작은 발자국들에 맞추어 공룡의 걸음걸이를 따라해 보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첫 발자국과 두 번째 발자국이 서로 평행을 이루지 않고 25도 정도 기운 발자국은 그 주인이 오리걸음처럼 뒤뚱뒤뚱 걸었다는 증거이다. 큰 발자국 옆에 모양은 같지만 작은 발자국이 찍혀 있다면 엄마 따라 산책 나온 아기 공룡을 만난 것이다. 어지럽게 찍힌 초식 공룡 몇 마리의 발자국과 그것을 따라가는 육식 공룡 발자국을 통해서 초식 공룡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것과 육식 공룡의 사냥 습관을 엿볼 수 있다. 평면에 찍힌 발자국에서 풍성한 볼륨의 공룡들이 걸어 나온다.

물론, 이런 상상이 근거 없는 몽상은 절대 아니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광물전시관에 있는 보잘것없는 돌마다 논문이 몇 편씩 붙어 있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수백명의 연구 인력들이 박물관의 표본들을 연구하고 있고 그 결과는 끊임없이 논문으로 보고되고 있다.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은 40억년 전, 생명의 탄생 때부터 지금의 생물들을 노아의 방주처럼 모아 전시를 하고 있다. 파리 기후변화협약 이후엔 기후변화를 반영한 기상 상태를 실내에서 재현한다. 인간이 초래한 변화 때문에 수십억년을 이어 온 생명들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험하다. 지구와 생명의 역사 사이를 산책하면서 시작한 상상이 걱정으로 끝난다.


4. [한국일보][삶과 문화] 깃털처럼 가벼운 심장

2016년의 끄트머리에 팔순 넘으신 엄마를 모시고 제주도엘 갔다. 트레킹 코스로 유명한 사려니 숲에 들었다. 눈에 보이는 오솔길들이 궁금해 앞장 서 걷는데 엄마는 금세 다리가 아프다고 하신다. 겨울 바다가 반가워 숙소 앞 해변에 나가자고 했다. 호텔 문을 열자마자 엄마가 뒤돌아 서신다. 세찬 바람이 무섭고 춥다고 로비에 앉아 기다리시겠단다. 내가 무럭무럭 늙고 있는 동안 우리 엄마 저렇게 힘이 빠지셨구나, 후회가 밀려 들었다. 

함께 간 여동생이 물었다. “엄마는 내년에 뭐 하고 싶어?” 엄마는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너희들은 뭐라 할 지 모르겠지만, 내년에는 죽고 싶어…”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였다. 최소한 증손자 볼 때까지는 살아야 하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화를 냈지만, ‘해 볼 것 다 해 봤고, 이제 더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엄마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나도 가끔 너무 오래 살까 봐 걱정이 되곤 하니까.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는 말 대신,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우리 엄마. 나는 엄마가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영원히 살 것처럼 엄마를 우선순위에서 미뤄 둔다. 짧은 여행 중에도 짜증을 내고 핀잔을 주고 다음에는 둘이서만 오자고 동생과 속닥거린다.

2006년 전파를 탔던 동양생명의 TV-CM은 말기암에 걸린 여성과 그것을 알면서도 그녀와 결혼한 남자가 주인공이었다. 그들이 결혼반지를 사고 삭발을 하고 웨딩 사진을 찍고 환자복을 입은 채 뽀뽀하는 스냅사진이 모여 한 편의 광고가 되었다. 그 사진들 중에는 액자에 검은 리본을 두른 그녀의 영정사진도 있었다. 광고가 나갈 때 이미 그녀는 하늘나라로 갔기 때문이다. 

(동양생명 TV-CM 카피)

자막)어느 날 찾아 온 말기암 판정,
그녀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녀가 삭발하기 전 날 그도 처음으로 머리를 밀고,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지만 
결혼반지를 사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갔습니다
웨딩사진을 찍기 전에 영정사진을 먼저 찍었습니다
사랑에는 시한부가 없음을 알려준 당신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에 사랑을 알고 갑니다

NA)당신이 천사입니다
자막)사랑의 힘을 믿습니다
두 분의 숭고한 사랑은 MBC휴먼다큐에 방송된 실제 이야기입니다.
고인이 되신 서영란씨의 삼가 명복을 기원합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죽으면 지하세계에 가서 심판을 받는다고 믿었다. 죽은 자가 저울 한 쪽에 자신의 과거를 모두 기억하고 있는 심장을 올려 놓으면 진실의 여신이 정의를 상징하는 깃털 하나를 반대편에 올려 놓고 무게를 잰다. 죄가 많으면 저울이 아래로 기울어저울 아래 있는 아무트라는 괴물에게 심장을 잡아 먹힌다. 심장을 잃은 사람은 영혼이 소멸해 영생의 기회를 잃어버린다. 죄가 없는 사람의 심장은 깃털과 균형을 이루고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신 오시리스에게서 영생을 보장 받는다는 것이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결혼하는 지극한 사랑과 죽을 것을 알면서도 받기만 하는 이기적인 나… 아마 나의 심장은 저울 아래로 툭 떨어져버릴 것이다. 새해가 되었다. 한 살 더 먹은 만큼 죽음에 한 살 더 가까워졌다. 새해에는 죽을 것을 알면서도 하지 않고 있는 일들을 해야겠다. 죽을 때도 가져갈 수 있는 것에 시간을 쏟아야겠다.


눈물, 웃음, 위로, 포옹, 촛불, 편지 같은 것들.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심장을 가볍게 할 것에게 마음을 줘야지. 주변의 마음 다친 사람들을 돌아보고, 다시 엄마 손을 잡고 나들이를 할 것이다.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샘내지 않고 축하하고 옛 친구에게 엽서를 띄우고 낯선 도시로 가는 기차표를 끊을 것이다. 

깃털처럼 가벼운 심장! 어떤 명품 매장에서도 살 수 없는 그것을 새해 내 버킷리스트 꼭대기에 올려둔다. 


5. [한겨레][야! 한국 사회] 대방어와 부리

며칠 전에 단골 일식주점에서 방어회를 맛있게 먹었다. 뱃살은 물론이고 등살도 기름지면서 담백했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개인 식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말엔 공감할 거다. 싱싱하고 저렴한 제철음식.


여기서 ‘저렴하다’는 건 중요하다. 저렴하려면 많이 나와야 한다. 많이 나와 많이 팔리면 문화가 된다. 비싸고 귀한 제철음식도 있지만, 그걸 먹는 것과 달리, 소비가 널리 퍼져 문화가 된 제철음식을 먹을 땐 남들과 뭘 나눈다는 축제의 기분이 든다.

겨울 방어회를 이렇게 널리 즐기기 시작한 게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요즘은 대다수가 방어와 부시리(히라스)의 차이를 안다. 일본에선 방어가 자라면서 크기에 따라 모자코, 히마치, 부리 등으로 이름이 바뀐다는 것도 많이들 안다.


일본인은 한국인보다 방어를 훨씬 더 좋아한다. 옛 기사를 찾아보니 1967년 7월에 일본 대마도에 방어 양식장을 만들고 한국에서 활방어를 수입하기로 했고, 같은 해 12월 한국에서 일본으로 방어 수출이 급증하는데 일본이 수입할당제를 운영해서 한국 업계가 이것의 완화를 요구했다고 한다. 한국 방어의 일본 수출이 많았고, 일본은 자체적으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방어 양식을 시작했다는 얘기다.

50년 지나 지난해 3월에는 한국에서 일본산 양식 방어를 한국산 방어로 속여 판 업자들을 적발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일본산 양식 방어는 가격이 싸지 않다. 어류 칼럼니스트 김지민씨에 따르면, 일본 양식 방어는 양식장이 일본 서남부에 있어 원전 피해로부터도 안전한 편이고 양식 기술이 발달해 맛도 좋아 값이 싸지 않지만 한국에서 방어가 달려 값이 뛸 때는 한국 대방어보다 더 쌀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겨울엔 방어가 많이 잡히지 않았다.

몇 해 전 나온 <한일 피시로드>(다케쿠니 도모야스 지음)를 보니, 수산물의 한일 교류가 생각보다 질적 양적으로 컸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명태, 도미, 갈치, 먹장어(꼼장어) 등이 수입되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광어, 바지락, 붕장어, 갯장어 등이 수출된다.


방어는 1970년대 들면서 일본에서 양식을 위해 치어(모자코)를 한국에서 수입했다. 한국 남해안에서 6월께 방어 치어를 잡아 가두리에 가두고 한두 달 키우면 일본 활어선이 와서 실어갔다. 이게 왕성해지자 한국의 자원고갈 문제가 생겼고 정부가 1976년에 치어 수출을 막았다.


한국에서도 방어 양식을 시도했지만 기후조건 때문에 아직 대방어 양식을 못하는 대신, 광어 양식은 성공해서 일본에서 소비되는 광어의 4분의 1이 한국산 양식 광어라고 했다.

이 책엔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부관페리호를 다리 삼아 한국과 일본 도로를 단숨에 내지르는 활어 트럭 운전사들의 이야기가 여러 개 나온다. 홋카이도 수조에서 트럭→배→트럭 타고 속초의 수조까지 오는 활가리비, 비행기 타고 교토로 가는 여수의 갯장어…. “먹장어는 일본 깃발이나 한국 깃발을 세우고 바닷속에서 ‘자신’을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


‘일본산’, ‘한국산’ 따위를 구별하기에 집착하는 존재는 우리 사람들뿐이다. 물고기들 입장에서 보면 어디나 다를 바 없는 그냥 ‘하나의 바다’인 것이다.”

공감 가는 말이다. 그럴수록 먹거리 관리가 중요할 텐데, 먹거리 관리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의심 많은 게 병? 갑자기 궁금해졌다. 혹시 며칠 전에 먹은 게 일본산 양식 방어? 주점에 전화해서 물어봤다. 한국산 대방어라고 했다. 지금은 일본산이 비싸면 비쌌지 싸지 않단다. 아직 한국산 대방어 못 드신 분들, 철 지나기 전에 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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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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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세월호 사태, 그 허망한 ‘1000일의 기억’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덧 1000일의 세월이 지났다. 인천항을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 여객선이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것이 2014년 4월 16일의 일이다.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해 300명 이상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슬픔과 분노의 경종을 울린 사고였다. 사망자들의 가엾은 영혼이 지금도 우리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어디엔가 떠도는 것만 같다.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지는 듯했던 이 사고가 다시 현실 무대에 되살아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탄핵사태로 인해 사고 당시의 ‘7시간 행적’이 새삼 주목받게 된 것이다. 청와대가 그때 제 역할을 했느냐는 의문이기도 하다. 유족들은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를 발족시켰으며, 정치권에서는 제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분명한 것은 당시 정부의 총체적인 부실 대응으로 인해 사고 피해가 커졌다는 점이다. 엉뚱한 교신으로 구조시간이 지체된 데다 현장에 출동한 해경도 사태 파악을 제대로 못한 채 머뭇거리다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 탓도 적지 않다. 이 사고가 최악의 인재(人災)로 기억되는 이유다. 그 증거인 세월호 선체는 아직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아 인양될 날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사고와 관련해 근거없는 소문들이 나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우리 사회의 피로감만 키울 뿐이다. 세월호가 미국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했다는 주장이나 세월호가 실제로는 국정원 소유이며 박근혜 정부와 국정원의 계획적 음모에 의해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문들이 그것이다. 세월호의 실소유주로서 사고 직후 도피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병언이 실제로는 생존해 있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이런 유언비어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도 밝혀지지 않은 원인이 있다면 끝까지 밝혀내는 게 옳다. 그러나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탄핵사태에 조기 대선까지 맞물린 상황에서 각 정파마나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가려는 조짐이 엿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1000일을 맞는 오늘 진도 팽목항에는 노란 리본을 단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질 것이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2. 재벌가 2세들의 ‘갑질 패악’ 근절책 없나

재벌가 자녀들의 ‘갑질 폭행’이 또 구설수에 올랐다. 이번에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3남 동선씨가 그 장본인이다. 서울 강남의 술집에서 종업원을 때리는 등 난동을 부린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2010년에도 용산 호텔 주점에서 유리창을 부숴 입건된 전력이 있다. 술에 취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본능이 불쑥 튀어나오는 모양이다. 오죽하면 평소 아들들을 극진히 아끼는 것으로 소문난 김 회장조차 “응분의 벌을 받으라”고 충고했을까 싶다.

재벌가 2~3세의 행패 소동은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곤 한다. 2014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으로 온 사회가 떠들썩했는데도 그 이후 나아진 게 별로 없다. 불과 며칠 전에도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의 장남 선익씨가 술집에서 술병을 깨는 등 소란을 피워 입건됐다. 그 직전에는 중소기업 두정물산 대표의 아들 임범준씨가 대한항공 기내에서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린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만 해도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만큼 재벌가 자녀들의 불미스러운 행패 사건이 줄을 이었다. 현대가 3세인 정일선 현대 BNG스틸 사장과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미스터피자 MPK그룹 정우현 회장, 김만식 몽고간장 회장 등의 사례가 그것이다. 운전기사나 빌딩 경비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2010년 SK계열 M&M의 최철원 전 대표가 저지른 ‘맷값 폭행’ 사건은 영화 소재가 되기도 했다. 1대를 때리는데 100만원을 주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재벌가의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갑질 패악은 ‘돈이면 다 된다’는 비뚤어진 천민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다. 기본적인 경영 능력이나 윤리의식, 인성 등을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고 무조건 자식들에게 부를 대물림하는 지금과 같은 ‘묻지마’ 승계 구조에서는 근절되기 어렵다. 대물림 회사의 정상적인 경영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오너가 견제를 위한 이사회 구조 개편 등 제도 개선이 따라야 한다. 

가장 큰 원인은 솜방망이 처벌에 있다. 운전기사를 상습 폭행하고도 기껏 벌금 1000만원 정도에 약식기소되는 상황이라면 충격 요법으로서도 부족하다. ‘금수저’들의 행패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다.



[매일신문]

3. 김영란법 시행 100일 만에 개정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5일 경제 부처 업무 보고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과 관련,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내수 부진을 이유로 김영란법을 뜯어고치겠다는 의미다. 법이 시행된 지 6개월이나 1년이 경과한 것도 아니고, 고작 100일 만에 기다렸다는 듯이 개정하겠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황 권한대행은 이날 외부 전문가의 건의를 듣고 답변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공식적으로 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식대 3만원은 2003년 기준이기 때문에 그동안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현실화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2003년에 누가 한 끼에 3만원 이상의 밥을 먹었는지 모르겠으나, 극소수 계층에 국한된 사례임이 분명하다.



정부가 여러 차례 김영란법 개정 의지를 밝혀왔기에 개정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정부는 김영란법의 규정을 여러 군데 손댈 것 같다.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의 상한액을 올리고, 화훼 및 설`추석 선물 등에 대해 별도의 상한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요식업계와 화훼 농가, 축산 농가 등의 매출 부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법을 섣불리 손대는 것은 법 취지를 훼손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숱한 부작용에도 이 법을 시행한 것은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국민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일시적인 부작용과 혼란을 이유로 법을 완화하면 법 자체를 유명무실한 상태로 전락시킬 위험성이 있다.



정부가 고작 몇 달간의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법을 고치겠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불경기와 경제정책 실패를 김영란법 때문이라고 호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한액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김영란법을 핑계로 대인 접촉이나 선물 등을 기피하거나 법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회 풍토가 더 문제다. 정부는 개정을 능사로 삼을 것이 아니라, 법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국민 홍보 및 법 운용에 나서야 할 것이다.



4. 치솟는 물가, 정부는 비상 대책 내놓아야

새해 벽두부터 물가가 심상찮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물가가 미쳤다”라는 말마저 나올 정도다. 더욱이 설을 앞둔 지금 채소, 과일, 수산물 등 생활필수품을 중심으로 가격이 뜀박질하다 보니 서민들의 시름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연초부터 물가가 급등하면서 경기 침체 속에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마저 생겨나고 있다.



요즘의 물가 상승 상황을 보면 저물가 시대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계란, 무, 당근 같은 농수축산물이 높게는 지난 5년 평균보다 2~3배씩 올랐다. 대구의 대형마트에서는 평년 가격이 2천911원 수준이던 당근(무세척 1㎏)이 9천400원까지 오른 곳도 있다.



식용유, 소면, 맥주, 소주, 라면, 과자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소비재들도 10% 안팎의 비율로 가격이 껑충 뛰었다. 지방자치단체마저 물가 상승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해 12월 말 버스 요금`도시철도 요금을 10% 이상 올렸으며, 대구의 도시가스료도 지난해 11월에 6.1% 올랐다. 오르지 않는 것은 오직 월급뿐이다.



물가가 폭등하고 있는 것은 국제 유가가 오름세에 있는 데다 지난여름 태풍 피해로 채소 작황이 나빴고 조류인플루엔자(AI)에 따른 계란 품귀 현상이 빚어지는 등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최근의 물가 폭등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최순실 사태와 대통령 탄핵 등 어수선한 시국으로 국정 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것을 틈타 대기업`중간상인 등 경제주체들이 잇속 챙기기에 나선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다.



정부가 물가를 원천적으로 관리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물가 관리에 실패한다면 정부의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 달성 자체도 불가능해진다. AI 사태와 관련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관계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와 영상 대책회의를 거의 매일 여는 등 기민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물가와 관련해서도 정부는 비상 경제 상황이라는 인식 아래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물가 잡기 태스크포스(TF)라도 구성하는 등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줘야 할 것이다.



[한겨레]

5. 박 대통령, ‘블랙리스트’ 관여만으로도 탄핵해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총사령탑은 역시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을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솎아내는 야만적인 계획에 박 대통령이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에게는 또다른 직권남용 혐의를 추가할 수밖에 없게 됐다.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했는지는 정확히 규명돼야 하겠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혐의만으로도 죄는 차고 넘친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대통령이라면 설사 참모들이 이런 안을 가져와 보고했다고 해도 강하게 질책하고 저지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보인 행태를 보면 블랙리스트 발상의 진원지는 바로 박 대통령 자신일 공산이 크다. 반대편을 포용하는 아량과 배려는 애초부터 박 대통령의 사전에는 없었다. 끊임없는 내 편 네 편 가르기,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과 단체에 대한 극도의 증오와 배척이 그가 줄곧 보인 모습이었다.



눈엣가시 같은 존재는 어떻게든 없애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박 대통령의 집착, 공안통치의 화신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그릇된 충성심, 위에서 시키면 무조건 따르는 영혼 없는 관료들의 무책임이 결합해 탄생한 괴물이 바로 블랙리스트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최순실씨가 개입했을 의혹도 더욱 짙어졌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문어발식 국정농단을 펼쳐온 최씨가 자신의 ‘전공 분야’인 문화예술계를 가만히 놔두었을 리 없다. 그 분야에서 한몫 단단히 챙기려던 최씨로서는 현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들을 사전에 제거할 필요성도 있었을 것이다. 최씨가 박 대통령을 배후에서 움직였을 소지가 다분한 만큼 앞으로 철저한 특검 수사가 요청된다.

그동안 블랙리스트 문건 자체를 몰랐다고 잡아떼온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들 텐가. 하지만 이들보다 가장 큰 비판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박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제22조를 정면으로 위반하며 나라를 다시 암흑세계로 되돌려 놓았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안 하나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탄핵당해야 마땅하다.



[서울신문]

6. 설 앞둔 물가 급등, 정부가 선제적 조치를

지난해 하반기 이후 라면 등 가공식품값이 훌쩍 뛴 데 이어 설을 앞두고 설상가상으로 밥상 물가까지 치솟으면서 물가 대란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로 품귀를 빚는 계란은 물론이고 무·양배추·당근 등 농산물 가격마저 예사롭지 않다. 과일과 육류, 어류도 예외가 아니다. 무·양배추·당근의 소매값이 평년의 두 배를 웃돌고 배추는 1년 전보다 96% 이상 올랐다고 한다. 한우·갈치·오징어 가격도 20% 넘게 뛰었다고 하니 주부들이 “봉급 빼고 안 오른 게 없다”고 푸념할 만하다.

연초 밥상 물가가 가파르게 오른 데는 지난여름 폭염과 가을 태풍 ‘차바’의 영향이 클 것이다. 농산물은 지난해 가을 잦은 비로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평균 기온이 낮아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해수온도 변화에 따른 어획량 감소와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도 수산물 가격 상승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농축수산물은 공급이 줄면 가격이 바로 오르는 것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시설재배 물량이 풀리는 봄까지 농수산물 부족 현상이 지속될 것이고, 온난화에 따른 수산물 개체수 감소는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사재기 등 유통구조 문제로 인해 서민 물가 상승 폭이 커지지 않았는지, 업체들이 혼란스러운 정국을 틈타 가격을 동시다발적으로 올리지는 않았는지, 당국은 과연 이를 제대로 감시·관리·감독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농식품부는 얼마 전 달걀값이 폭등하자 사재기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유통업체와 농가를 대상으로 현장 점검에 나섰지만 뚜렷한 위법 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달걀값의 고공행진 이면에 사재기 행위가 없었다는 당국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서민들의 신음이 크지만 정부의 뚜렷한 수급 대책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계란 수입을 위해 관세를 일시 없앤 것이 대책이라면 대책이다. 당국이 원자재값과 날씨 탓만 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유가 상승으로 물가 상승 압력은 더 높아질 것이다. 성장 없는 불황 속의 가파른 물가 상승은 소비심리를 더 위축시켜 내수 부진과 경기 침체의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 당국은 저성장·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되기 전에 물가가 더 오르지 않도록 담합과 사재기 감시, 생필품 수입 규제 완화, 공공요금 인상 억제 등 모든 수단을 서둘러 동원해야 한다.



7. 여·야·정 협의체 가동, 벼랑끝 민생부터 챙겨야

여야 정책위의장과 경제부총리가 참여하는 여·야·정 정책협의체 첫 회의가 어제 국회에서 열렸다. 탄핵정국 이후 외교·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국정을 책임지고 민생을 돌봐야 할 두 축이 서로 머리를 맞댔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고 기대 또한 큰 게 사실이다.

어제 회의에서는 우리 눈앞에 펼쳐진 국내외 주요 현안들이 거론됐고 이견도 노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정부는 정부, 정당은 정당대로 각기 처한 상황과 입장에 따라 처방과 견해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한 차례 만남으로 난제들이 술술 풀릴 리 만무하며, 첫 숟가락에 배부를 리 없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여·야·정 협의주체들은 풀기 어려운 정치적인 사안에 매달려 지지고 볶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에 집중해야 한다.

정유년 새해 벽두부터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도전과 시련 앞에 놓여 있다. 중국은 우리의 안보와 직결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구실로 갈수록 무역 보복을 노골화하며 우리의 국론 분열을 획책하고 있고, 일본은 아베 총리까지 나서 “위안부 소녀상에 한국이 성의를 보여야 한다”며 우리의 자존심을 짓밟고 있다. 눈을 안으로 돌리면 국내 문제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탄핵정국으로 빚어진 국정 과도기에 피폐해지고 있는 서민의 삶은 손을 놓고 바라볼 상황을 이미 넘어섰다.

설 물가만 보더라도 안 오르는 게 없을 정도로 뛰고 있다. 필수 먹거리로 소비자들의 체감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농축수산물 물가가 전체 물가상승을 주도하고 있어 걱정이다. 작년 이맘때 1300원 하던 무가 4000원, 배추 한 포기는 예년의 두 배인 4500원을 줘야 살 수 있다. 생활물가를 잡지 못하면 민생 안정은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협의체는 인식해야 한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새해 벽두부터 대출 금리가 들썩이고 있어 금리 및 가계부채 대책 마련 또한 서두를 때다. 조류인플루엔자 피해 농가 지원 방안과 확산 방지, 조기 종식에도 지혜를 모아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협의체는 사드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위안부 합의 같은 정부와 야당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을 놓고 다투기보다 발등의 불인 민생 현안부터 먼저 챙겨야 한다. 대외적인 문제는 차기 정부에 넘겨 논의해도 늦지 않으며 그것을 붙들고 늘어질 만큼 현 상황이 한가하지 않다. 협의체에서 모아진 의견은 즉각 시행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바라는 협치다.



[조선일보]

8. 특검 블랙리스트 확인, 최고 책임자가 누군가

​특검은 8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김종덕 전(前)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앞서 특검은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를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공식 확인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지시로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이 리스트를 만들고 교문수석실을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이 리스트를 만들고 교문수석실을 거쳐 문체부에 전달됐다는 것이다.



리스트가 만들어진 2014년 무렵 정무수석이었던 조윤선 문체부 장관과 김기춘 전 실장도 곧 소환할 방침이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예술인 수가 1만명 가깝다고 한다. 리스트 작성에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국정원, 문화체육부 장·차관 등 관련 국가 기관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특정인이 법률을 위반하지도 않았는데 그의 생각 때문에 국민 세금 지원을 차별한다는 것은 민주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는 문화예술이 숨을 쉴 수 없다. 이 정부가 내건 '문화 융성' 기치와도 거꾸로 가는 행태다. 박근혜 대통령은 블랙리스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시 없이 이렇게 광범위한 작업이 진행될 수 있느냐는 의문은 지워지지 않는다.


특검팀은 최순실씨가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을 통해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을 관리해야 한다"며 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단서도 포착했다고 한다. 특검은 김기춘 전 실장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사이비 예술가를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블랙리스트 작성 필요성을 꺼낸 배경을 밝힐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 지원에 대한 정치 개입은 이 정권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친(親)정권 예술인들을 집중 지원했다. 회원 수가 예총의 10분의 1에 불과한 민예총 지원 예산이 예총보다 많았던 적도 있다. 지금도 야당이 단체장을 맡은 지자체에선 각종 사업들이 친야 성향 문화예술인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에 우호적이냐 아니냐를 잣대로 지원하고 말고를 결정하는 반(反)문화적 행태를 이제 끝내야 한다. 정치 권력은 문화예술 지원 권한을 '전리품'처럼 여기고 몇 푼 안 되는 지원금으로 문화예술인들을 길들이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9. 대통령 하겠다며 외교 위기에도 일언반구 없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8일 미 트럼프 새 정부 인사들을 만나기 위해 출국했다. 그는 누구를 만나느냐는 질문에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 대답이 지금 우리 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이임 회견 직전에 갑자기 취소한 것도 석연치 않다. 미국이 한국 조기 대선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라면 한·미 관계의 불안정이 최소 4~5개월 이어질 수 있다.

 

일본 아베 총리는 어제 "(위안부 합의가) 정권이 바뀌어도 실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 부통령은 "한·일 정부가 책임을 갖고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사실상 일본 편을 든 것이다. 오늘 귀국하는 주한 일본 대사는 '일시 귀국'이라고는 하지만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중국이 며칠 안으로 또 무슨 압박 카드를 꺼낼지 알 수 없다. 미·중·일 3국과의 관계가 정상 궤도에서 다 벗어났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한국 정부가 배제된 가운데 북한 문제에 대한 틀이 바뀌는 상황이다. 미국에선 통상 새 정부가 들어선 후 대외 정책이 결정되기까지 6개월 정도가 걸린다고 하지만 그 전에 미·중 간에 타협이든 충돌이든 큰 방향이 결정될 수 있다. 1월 말 만나는 트럼프와 아베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어떤 얘기를 나눌지도 알 수 없다.

 

김정은은 트럼프의 정책을 지켜보다 시기를 골라 전략적 도발에 나설 것이다. 미국 본토까지 핵을 실은 미사일을 날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까지 도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란 게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말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스트롱맨들이 우리 머리 위에서 어떻게 공을 돌릴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 대선 주자들 중 어느 한 사람 이 상황의 심각성을 말하지 않는다. 여야정 안보협의체라도 만들자는 상투적 제안도 없다. 외교안보 문제조차 책임 없는 대중(大衆)의 뒤를 쫓아다니며 단세포적인 소리나 하고 있다.


10. 사회적 內戰 같은 전운 속 '조기 대선' 시동 건 민주당

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8일 당장 대선(大選) 경선 룰 준비를 시작하고 설(28일) 연휴 전까지 예비후보 등록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대선 시기는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의 결론이 언제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지만 민주당은 선거 준비를 공식화한 것이다. 이제 다른 당의 움직임도 빨라질 것이다. 여러 면에서 이번 대선은 정상적으로 치러지기 쉽지 않다. 그래도 국민들은 선거가 법에 따라 차질 없이 치러지고 제대로 다음 정부가 출범하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바람에 반(反)하는 현상들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좌우를 막론하고 사생결단식 대결 심리가 팽배해 있다. 과거 대선도 감정 대립이 심했지만 이번처럼 적대감을 실력 행사로 표출하는 가운데 치러지는 선거는 드물다. 이에 편승하는 차원을 넘어 부추기는 정치인까지 있다. 선거가 순조롭게 진행되겠느냐는 불안감과 이렇게 해서 출범한 새 정부가 안착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7일 SNS를 통해 "지난 대선은 3·15 부정선거를 능가하는 부정선거"라며 개표(開票)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중앙선관위가 "반민주적 행위"라고 개탄했지만 이 시장은 다른 글에서 "세월호 참사는 제2의 광주 학살"이라 했다. 선거에 나선 정치인은 자극적인 주장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해도 이 주장들은 너무한다. 문제는 이런 궤변과 선동이 먹히는 정치 상황이다. 우리 편이면 다 옳고 상대는 무조건 악(惡)이라는 패거리 의식이 만연한 탓이다. 친문(親文) 세력이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비판하는 의원들에게 '매국노' '기회주의자 ××' 같은 욕설·막말 문자와 '18원 후원금'으로 사이버 테러를 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헌재의 탄핵 심판을 기다리지 않고 주말마다 찬반 양측이 서울 여기저기서 실력 대결을 벌이고 있다. 헌재 앞 시위에 이어 특검 사무실 앞에서도 대형 스피커를 동원한 시위가 벌어졌다. 8일 경북 구미시청에서는 친박 수백 명이 문 전 대표 차량을 25분간 가로막고 '빨갱이' '간첩 잡아라'고 외쳤다. 7일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는 통일 운동 단체의 회원이라는 60대 승려가 '박근혜 체포'를 주장하며 분신(焚身)했다. 결코 '돌발 행동'들이 아니다. 앞으로 더한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 대선판은 휘발유가 엎질러져 있는 것과 같다. 기세등등한 친문 세력과 울분에 찬 친박(親朴) 세력 간 대립은 내전(內戰)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골이 깊다. 중간 세력은 사분오열돼 있다. 잘못하면 이번 대선은 두고두고 상처가 되는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정치인들이 먼저 자중(自重)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요요마, 정감있고 따뜻한 소통의 첼리스트

첼리스트 요요마(Yo-Yo Ma·馬友友)는 한국 음악팬과 꽤 친밀한 연주자다. 2017년에도 내한 계획이 잡혀 있다. 워낙 활발한 활동을 하는 첼리스트인 만큼 그의 음악적 특성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럴 때 필자는 그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어보라고 얘기한다. 첼리스트라면 언젠가는 도달해야 할 최고봉의 경지로 꼽히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첼리스트의 스타일과 기량을 비교할 때 적합한 음악이다.

요요마의 무반주 첼로는 우아하면서도 편안하고 행복한 소리를 풀어낸다. 요요마가 따뜻한 대화와 소통의 선율로 풀어내는 데는 성격도 한몫한다. 그는 항상 친절하고 겸손하며 상냥한 인물이다. 이름 때문에 요요마를 일본인으로 아는 이들이 종종 있는데 그는 파리서 태어나 뉴욕서 자란 중국계 미국인이다. 현재 국적은 미국이며 부모님은 중국인이다. 요요마의 음악에는 ‘글로벌 DNA’가 담겨 있다는 평이 따라다니는 것은 그의 태생적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인맥도 넓어서 2002년 미국 워싱턴의 한 시상식에서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피아노)와 협연하는 파격 무대를 꾸렸으며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연주를 맡은 바 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는 백악관 초청 연주를 전담하다시피 했으며 타계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 전 CEO와도 생전에 친분이 두터웠다. 데뷔 또한 8살 때 레너드 번스타인과의 무대가 TV로 중계되면서 본격적으로 스타덤에 올라 아이작 스턴과 카네기홀에서 함께 연주하는 등, 미국 전역에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후 1972년부터 말보로 음악제, 아스펜 음악제 등에 출연했고, 1977년부터는 유럽으로도 연주 활동의 폭을 넓혔다. 베를린 필, 빈 필 등 최고의 악단과 협연한 그는 1978년에는 잘츠부르크와 루체른 음악제에도 출연했다. 

요요마의 음악 행보 특징 중 또 하나의 중요한 줄기는 기존 클래식의 첼로 파트를 재해석하거나 여러 장르 음악에 첼로를 접목하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전적인 첼로 레퍼토리 외에 크로스오버나 현대음악에도 관심이 많다. 클로드 볼링과 함께했던 크로스오버 레코딩은 워낙 유명하며, 재즈계의 거장 스테판 그라펠리와 함께 콜 포터의 곡들을 연주한 음반은 미국 크로스오버 시장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탱고의 거장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의 탱고 음악을 연주한 음반도 같은 맥락이다. 문화 장벽을 넘어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음악 연구에 깊이 심취한 것이나 중국 전통음악과 고유 악기, 아프리카 칼라하리 부시먼 부족들의 음악과 같은 각양각색의 주제를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다. 

지금까지 요요마를 만든 가장 큰 힘은 앞에도 얘기했듯 낙천적인 성격과 긍정적인 태도다. 40여년 이상 연주 활동을 하면서 한 번도 대중에게 찡그린 얼굴을 보인 적이 없다. 나쁜 뉴스나 루머에 얽힌 적이 없다는 것 또한 놀라운 행보다. ‘따스한 심성’에 ‘남다른 인류애’까지 겸비한 진정한 멋쟁이. 요요마는 그런 첼리스트다.


2. [매경이코노미][고재윤의 스토리가 있는 와인] 반피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피렌체 평화’ 상징하는 이태리 대표 와인

이른 새벽, 붉은 수탉의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정유년의 해가 밝았다. 

2017년 새해에 어울리는 와인으로 카스텔로 반피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Banfi ChiantiClassico Riserva) 와인을 추천한다. 토스카나 지방, 그중에서도 이 와인이 생산되는 브루넬로 몬탈치노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다. 

일찍이 ‘와인 스펙테이터’는 “수많은 브루넬로 몬탈치노 와인이 있지만, 카스텔로 반피 브랜드는 오랫동안 ‘전 세계 최고의 브루넬로 몬탈치노 와인’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특히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 중 토양과 기후 조건이 가장 좋은 곳을 끼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라고 한다. 여기서 또 리제르바(Riserva)가 붙으면 오크 숙성을 포함해 2년 이상 숙성한 와인으로, 끼안티 등급 중에서 가장 높은 품질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반피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는 이탈리아의 최고 와인 중에서도 최고인 셈이다.


이 와인은 병목에 검은 수탉 문양(Galo Nero)의 엠블럼을 부착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연원은 13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피렌체와 시에나의 성주는 군사적 요충지인 끼안티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오랜 전쟁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속출하자 양측은 인명 피해 없이 전쟁을 끝내자고 합의한다. 두 도시는 휴전을 하면서 특정 날짜를 정하고, 각자가 선발한 수탉이 울면 기병이 달려가 서로 만나는 지점을 국경으로 하기로 했다.


피렌체는 자신들의 검은 수탉을 하루 종일 굶겨 시에나에서 매일 배불리 먹인 흰 수탉보다 먼저 울게 했다. 그 결과 시에나 지역의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됐고, 평화를 다시 찾게 해준 검은 수탉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와인을 만들었다.

반피(Banfi)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존 마리아니(John Mariani)가 1919년 미국에 설립한 와인 수입회사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전 세계 유명한 와인을 수입해 미국에 유통시켰다. 반피가 특히 주목한 와인은 몬탈치노에서 생산하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 레드 와인이었다. 이 와인은 1970년대 미국에서 인기가 많았던 명품 와인이지만 워낙 작은 마을에서 소규모 와이너리가 생산하다 보니 공급이 한계에 부딪혔다. 

이에 반피는 1978년 몬탈치노에 와이너리를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이방인인 반피가 몬탈치노에 들어와 중장비를 동원해 포도밭을 일구고 와이너리를 짓자 몬탈치노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나 39년이 지난 지금 반피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세계적인 와인으로 끌어올린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몬탈치노 와이너리들은 낙후된 시설에서 와인을 만들었지만, 반피는 이탈리아의 정통 방식에 미국의 현대적인 양조 기술을 접목했다. 또 몬탈치노 지역 테루아에 적합한 산지오베제 포도 품종을 개량해 와인 품질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반피의 대표 제품인 반피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는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됐다. 

휴전 후 수탉 울음으로 국경 정하고 평화 이어져

이 와인은 산지오베제 포도 품종으로, 8~10일간 포도껍질과의 접촉을 거치는 전통적인 양조 방식과 최첨단 현대적인 양조 기술을 접목해 만들며, 4년간 숙성시킨 후 출하하고 있다. 산지오베제 특유의 적절한 산도와 짜임새 있고 우아한 구조감이 입안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루비체리 빛깔에 체리, 자두, 바이올렛, 산딸기 향이 남기는 긴 여운이 돋보인다. 

음식과의 조화는 쇠고기 갈비찜, 양고기 스테이크, 양념한 돼지갈비 요리와 어울린다. 가격은 3만2000원. 정유년 새해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끼안티 와인처럼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국민의 얼굴이 환해지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3. [조선일보][일사일언] 새벽 출국장의 오케스트라

지난달 말 연주 여행을 다니면서 거의 매일 비행기를 탔다. 날마다 이동해서 연주하려면 전세기밖에 답이 없을 때도 있다. 어느 날 새벽에는 빈에서 출발해서 슈투트가르트 가는 비행기를 타러 갔다. 항공사 스크린에 '런던 필하모닉―슈투트가르트'라고 쓰인 곳을 찾아서 줄을 섰는데 바로 옆 스크린에는 '빈 필하모닉―파리'라고 쓰여 있었다. 그들도 아침 전세기를 타고 연주하러 가는 중이었다.

 

그쪽 줄에는 아무도 없길래 우리보다 늦게 출발하나 보다 했는데 웬걸, 출국장에 들어가 보니 게이트도 우리 바로 옆이었고 이미 수속이 다 끝나서 다들 비행기를 타려는 참이었다. 우리 플루트 수석이 마침 같은 악기 하는 동료를 만나서 얼싸안고 반가워하는 걸 보고 나도 오랫동안 못 본 친구를 찾아봤다. 둘러보니 악기를 메고 큰 가방을 들고, 아이와 통화를 하는지 전화에만 정신이 팔린 젊은 여자도 있었고, 물 한 병씩을 사 들고 전날 밤의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하품하는 중년 남자도 여럿 있었다.


빈 필은 음악 애호가 사이에선 꿈의 오케스트라로 통한다. 하지만 새벽 출국장에서 만난 빈 필 단원에게서 온 세계에 중계되는 신년 음악회의 화려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밤늦게까지 몸을 써서 일하며, 악기뿐 아니라 자기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사람들만 있었다. '빈 필하모닉―파리'를 봤을 때만 해도 우리도 슈투트가르트 말고 파리 가자고 실없는 소리를 했던 나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사는 건 다 똑같구나' 새삼 깨달았다.

 

휼륭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려면 악기를 배우는 데 오랜 세월을 바치고 피 말리는 오디션을 거치며 실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정작 어딘가에 소속이 되면 그때부터는 자기를 버리고 전체의 하모니를 위해 큰 그림의 일부로 존재하면서 맡은 부분에서는 매 순간 완벽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오늘 괜찮은 베토벤 교향곡이라든가 말러 교향곡을 들을 수 있는 건 이렇게 음악에 삶을 바치는 그들 덕분이다.


4. [매일신문][매일춘추] 따로 또 같이 

해마다 대입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수시와 정시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자녀의 성적이 부모의 성적으로 인식되는 현상은 자식을 위해 과한 희생값을 치르는 부모들에게서 나타난다. 전국을 강타하던 수능 한파는 주춤해졌지만 그들에게 이 시간은 혹독한 칼바람보다 처절하다.


EBS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P씨는 기러기 아빠 13년 차다. 기러기 아빠로 산 배경에는 자녀의 미래를 위한다는 거창한 명분이 있었지만, 그 뒤에는 솔로의 자유에 대한 갈망도 있었다. 이것이 화근인가. 어느새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고 결국 돌아온 건 이혼 서류와 남 같은 아이들이었다.


모처럼 딸과 함께 여행을 갔다. 흔들다리를 건너다 장난을 치는 P씨에게 퉁명스럽게 던지는 딸의 말. “걱정하는 척하지 마요. 짜증 나.” 강산이 바뀌는 시간을 넘어 만난 딸은 “말로는 우리 딸이라고 하지만 친해질 수 없어요”라며 벽을 친다. 높이를 가늠키 힘든 벽 앞에서 눈물 젖는 P씨는 억울하다.



한국인은 대가족 속 개인으로 태어나 한솥밥을 먹는 식구(食口) 형상을 삶의 표본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유전자 속에서 나를 찾고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대단히 이기적으로 치부된다. 특히 바깥일에 골몰하느라 대화마저 뜸해진 가장(家長), 세대 차이로 독립하는 자녀들 사이에서 빈 둥지만 남은 가정을 지키는 주부들에겐 더욱 그러하다. 심리적, 시간적 공허는 늦둥이 출산이나 알코올 중독, SNS 중독 같은 관계 중독으로 이어지지만 해결은 어렵다.



사람은 관계 맺기가 허술하면 불안해지고, 너무 치밀하면 억압과 희생으로 자신을 잃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안에 네가 있고 네 안에 내가 있는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건강한 관계 간의 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관계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 가고, 존재로서 ‘함께 있는’ 것이다. 함께할 누군가와 언젠가 같이할 거라는 믿음으로 위안을 삼고 혼자 견디는 힘, 고독력(孤獨力)을 키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자주, 더 길게 관계 속에서 종종 길을 잃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사적 공간을 보장하고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가 인기다. 출판의 경우도 여럿이 함께하는 공저 출판이 부담이 적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아이디어를 모으고 분량은 나누면 출판의 꿈이 이루어진다. 이때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는 ‘따로’의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로’가 없으면 나를 찾을 수 없고, ‘같이’가 없는 분화는 연결이 사라진다. ‘따로’와 ‘같이’의 시소를 잘 타야 관계가 즐겁다. 진정한 자유는 서로의 개성을 살려주면서 자신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5. [한국경제][천자 칼럼] 장래 희망

어릴 적 싫었던 것 중 하나가 장래희망을 써내는 일이었다. 뭐가 좋은지, 뭘 잘할지도 모른 채 막연히 과학자라고 적었다. 서슴없이 대통령, 장군을 써내는 친구들에 비해 좀 소심한 느낌도 들었다. 그 뒤로 장래희망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지금 글 쓰는 직업에 대체로 만족한다.

초등학교 이하 프리틴(preteen)은 생각이 여물 나이가 아니다.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지위·권력이 높거나 가까운 사람에게서 찾는다. 힘이 센 대통령, 인기 높은 연예인 운동선수, 자주 접하는 교사 의사, 멋져 보이는 경찰관 소방관 등 …. 그러나 중고생쯤 되면 부모 희망사항이 개입한다. 교사 공무원은 청소년의 꿈이라기보다 부모의 염원에 가깝다.

사회적 분위기도 어린이 장래희망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포브스지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남자 어린이 희망직업(dream job)은 운동선수, 파일럿, 과학자, 변호사, 우주인 순이다. 우주항공의 선도국가답다. 중국 어린이는 CEO를 첫손에 꼽는다. 국가적으로 창업을 권장하고 마윈 등 기업가 활동이 왕성한 분위기를 반영한다.

최근 일본 다이이치생명이 조사한 일본 어린이 희망직업을 보면 남아는 7년째 축구선수가 1위지만 학자·박사가 2위에 올라 있다. 노벨 과학상 연속 수상의 영향이다. 이어 경찰, 야구선수, 의사, 음식점 주인 순이다. 여아는 음식점 주인이 20년째 1위란다. ‘심야식당’, ‘카모메 식당’ 같은 작품을 보면 셰프나 파티셰가 멋져 보일 만도 하다. 유치원교사, 교사, 의사·간호사, 디자이너가 뒤를 잇는다.

한국 어린이는 어떨까. 1980년대 과학자, 90년대 교수, 외환위기 이후 의사 등 전문직이 인기였다. 지난해 교육부 장래희망 조사에 따르면 교사, 운동선수, 의사, 요리사, 경찰, 법조인, 가수 등의 순이다. 2012년엔 운동선수가 1위, 연예인이 4위였다. 최근 ‘먹방’ 영향으로 요리사가 껑충 뛰었다.

물론 꿈은 클수록 좋다. 어린이 장래희망이 자라면서 열정, 능력, 경력의 교집합과 일치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한 분야에 몰두하는 오타쿠 기질을 장래직업과 연관지어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한국 부모들은 무엇 또는 누구처럼 되라고만 할 뿐 어떻게 될 것인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오바마처럼 되고, 에디슨처럼 되길 바란다면 오바마가 성장기에 겪은 흑인으로서의 정체성 고민, 어린 에디슨이 낙제생으로 느낀 무력감을 어떻게 이겨냈는지도 함께 성찰하게 해야 마땅하다. 아이들은 부모가 키우고 싶은 대로 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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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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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1. 새해 첫날부터 국민 분노 지수 높인 박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인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 인사회를 갖고 자신에 대한 혐의와 의혹들을 전면 부인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9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이후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이날은 작심한 듯 모든 의혹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가장 중점적으로 해명한 것은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대해서다. “그날 일정이 없어서 관저에서 일을 챙기고 있었다”며 “정상적으로 계속 보고 받으면서 체크하고 있었다”고 했다. 사건 당시 대통령으로서 할 일을 다했다는데도 ‘밀회를 했다’ ‘굿을 했다’ 등의 온갖 소문이 돌더니 급기야‘성형 수술’ 의혹이 제기됐다며 기막혀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임기응변식 대응으로만 일관해 ‘7시간’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때 머리 손질에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 못했으면서도 대통령으로서 할 일 다 했다고 강변하는 것은 정말 염치없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을 둘러싼 뇌물죄 의혹, 최순실씨의 각종 이권개입에 대해서도 “공모나 누구 봐주기 위해 한 일은 손톱만큼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미르ㆍ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 역시 문화융성이나 창조경제를 위한 정부 시책에 기업이 공감해 자발적으로 동참했다는 식으로 비켜갔다. “나를 완전히 엮은 것”이라고도 했다. 관련 혐의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 메모 등 객관적 증거와 뚜렷한 정황 등으로 뒷받침되는 것을 무시한 억지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건 국정농단의 장본인으로 지목되어온 최순실씨에 대한 변명이다. 최씨를 “몇 십 년 된 지인”이라면서 “그렇다고 지인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 않나”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에 비춰 최씨는 결코 단순한 지인이 아니었다. 그가 국정을 좌지우지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 국민들을 참담하고 분노하게 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몰려나오게 만든 것은 바로 최씨의 국정농단이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서 가려질 리 없다. 박 대통령은 반성하고 자숙하면서 특검의 수사와 헌재의 판단을 기다리는 게 옳다.



[중앙일보]

2. 국민 분노에 불지른 대통령 신년 간담회

박근혜 대통령의 1일 청와대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는 여전히 민심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현실 인식을 보여줬다. 임기를 끝까지 채우고 싶다는 오기만 부렸다. 탄핵안 가결 이후 누그러질 조짐을 보여온 국민의 분노에 새해 벽두부터 기름을 부은 것이나 다름없다.

탄핵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이 불과 23일 만에 공개일정을 가진 것부터 부적절했다. 더욱 우려되는 건 박 대통령이 간담회에서 드러낸 상황 인식이다. 진정성 있는 반성은커녕 모든 의혹에 변명과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인(私人) 최순실과 한 몸이 돼 국정을 농단한 의혹에 대해 “최와 공모하거나 봐준 일은 손톱만큼도 없다”며 부인했다. 삼성 합병 지원 의혹에 대해선 “완전히 엮은 것”이라며 특검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청와대 지시로 한 일”이라 증언했는데도 무조건 아니라고 잡아뗀 것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도 “모르는 일”, 차은택씨의 인사개입 의혹엔 “누구와 친하다고 누구 봐줘야 되겠다고 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나 정황은 제시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 농단 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검찰·특검·국회·헌재의 출석요구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그래 놓고 돌연 ‘3금(촬영·노트북·메모 금지)’을 조건으로 기자 간담회를 자청했다. 불리한 보도는 막고, 하고 싶은 말만 퍼지게 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가 묻어난다. 나아가 특검과 헌재를 압박해 탄핵을 기각시키고, 임기를 채우겠다는 속내가 엿보인다면 과장일까.

박 대통령은 26년 만의 보수여당 분열에 대해 “말하기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자신의 실정으로 보수가 추락한 데 대한 책임론을 피하려고 말을 자른 듯하다. 세월호 7시간 동안 ‘관저에 외부인이 들어왔다’는 의혹에도 “기억을 더듬어보니”라는 표현을 쓰며 부인했다. 자신의 해명을 뒤집는 증언이 나올 가능성에 대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느낌이다. 이런 식의 해명을 진정성 있다고 믿어주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박 대통령의 인식이 이런 수준이니 새누리당 친박 지도부가 민심에 아랑곳없이 버티기로 일관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1일 인적 청산 범위에 대해 “언론에서 보도되듯 확대된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본인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어 사회봉사를 10시간 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국정 농단을 묵인·방조한 책임이 큰 여당의 지도자가 ‘봉사 10시간’으로 때우고 가겠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인적 청산의 ‘범위’가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면 ‘리셋 코리아’의 주도권은 야권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지금 박 대통령이 할 일은 기자들의 펜과 카메라를 뺏은 뒤 자기변호를 위한 간담회를 여는 것이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새누리당을 떠나 당과 국회가 개혁될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국정 농단의 오점을 조금이나마 씻고 국민의 용서를 구할 여지가 생길 것이다.



3. 올해도 핵 위협과 대남 선동에 골몰하는 김정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초부터 핵카드로 협박하고 나와 걱정이다. 김 위원장은 어제 육성으로 읽은 신년사에서 “지난해에 (북한이) 동방의 핵강국으로 솟구쳐 올랐다”며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는 “적들(한국과 미국)의 무분별한 침략과 전쟁도발 책동을 단호히 짓부시자”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과 선제공격 능력을 계속 강화해나갈 것”이라며 위협했다.



김 위원장의 올해 신년사는 예년보다 노골적이다. 그는 지난해 신년사에서는 ‘남북관계 개선도 적극 추진’이란 표현으로 우리를 안심시켰다가 닷새 만에 4차 핵실험을 기습적으로 실시했다. 일종의 기만책이었다. 북한은 지난해 5차 핵실험까지 강행해 이제 핵무기 실전배치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처음부터 강경하게 나왔다. 문제는 그의 정세 오판이다. 그릇된 자신감에 찬 김 위원장의 목소리가 올해 또다시 북한의 군사도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신년사에서 미국에 대한 대결적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미국을 타격 목표로 하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준비사업이 마감(완료) 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북한은 ICBM을 개발하면 미국과의 군축협상 카드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앞으로 북한의 ICBM 시험 발사 때마다 ‘미국 최우선’을 모토로 하는 미 트럼프 행정부의 거센 저항에 부딪힐 게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김 위원장은 섣불리 위험을 자초하지 않도록 도발을 자제하고 핵을 포기하기 바란다.

북한의 신년사는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대한 시각에서도 시대착오적이다. 촛불집회가 새로운 민주정치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인데도 김 위원장은 “반인민정책, 사대매국, 동족대결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라고 왜곡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 민족적 투쟁을 벌여야 한다”며 우리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

올해 김 위원장의 신년사는 공격적이며 심상치 않다. 우리 정치권과 군 당국은 대화 창구는 열어두되 핵을 앞세운 북한의 협박과 선동에 비상하게 대처하기 바란다.



[매일신문]

4. 세밑 한파 녹인 영천 10억원 장학금 익명 기부

경북 영천시가 지난 2002년부터 시작해 2020년까지 조성하기로 한 영천시장학금 200억원 목표를 지난해 달성했다. 매년 10억5천여만원씩 19년을 모으면 2020년까지 이뤄지지만 계획보다 3년 앞당겨 목표를 채웠다. 이번 일은 몰래 지난해 두 차례 8억원을 장학금으로 전달한 의(義)로운 한 남매 가족의 기부로 가능했다.



이번 기부는 세밑 한파를 녹이고 어두운 연말 정국에 빛난 촛불같이 밝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부 주인공인 조(曺) 씨 3남매는 지난 2015년 10월 장학기금 10억원을 기탁하기로 뜻을 모으고 지난해 4월 5억원을 전달하고 12월에 3억원을 맡겼다. 올 상반기에 나머지 2억원마저 내놓기로 했다. 영천의 단일 기부로는 최고지만 이들 남매는 이름조차 밝히지 말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이들의 조용한 기부도 관심이지만 얽힌 사연은 더욱 그렇다. 이들 기부에는 3남매 중 먼저 떠난 누나의 ‘사람이 태어나서 세상에 좋은 일 하고 가자’는 생전 결의와 함께 영천시의 고마움을 갚는 보은의 뜻이 서려 있어서다. 바로 400년 전, 임진왜란 때 유배에서 풀려나 의병을 모아 왜적 토벌에 나선 선조 조호익(曺好益)을 모신 도잠서원을 시에서 관리하며 보살핀 데 대한 감사의 정성을 담은 탓이다.



대가를 바라거나 널리 알리는 일이 흔한 요즘 보기 드문 기부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공적 있는 옛 사람을 마땅히 관리하는 행정 당국에 보은까지 했으니 특별한 기부임이 틀림없다. 기탁자도 조상 이름으로 대신하면서 선조를 다시 드러냄과 함께 영천의 옛 인물 선양사업까지 빛냈으니 명분과 실리가 맞는 새로운 기부다. 남은 일은 3남매는 물론 수많은 기탁자의 뜻을 제대로 살린 장학금 운영이다. 이는 당국의 몫인 만큼 영천시는 되새겨야 한다.



5. 미래 전기차 도시 대구, 충전소 확보에 달렸다

대구시가 내년에 전기차 2천400대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는 정부가 내년에 우리나라 전체에 공급하겠다는 전기차 1만4천 대 보급 목표의 17%에 이르는 규모다. 이를 위해 대구시는 새해 전기차 보조금을 전기승용차는 2천만원, 전기화물차는 2천200만원으로 올린다. 친환경 자동차는 세계적 추세인 만큼 대구를 친환경 전기차 도시의 이미지로 바꿔나간다는 전략은 긍정적이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 수소전지차, 하이브리드카 등 친환경 자동차 중심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특히 전기자동차에 대한 선호는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할 정도로 폭발적이다. 유럽에서는 아예 가솔린 자동차를 금지하자는 논의가 시작됐을 정도로 전기차에 대한 선호도가 급증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15년 말 전 세계 전기자동차 보급 대수는 처음으로 100만 대를 넘어 126만 대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올 들어 이런 추세는 더욱 강화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전기차는 충전소 부족, 오랜 충전 시간, 비싼 가격 등 상용화에 많은 걸림돌을 안고 있다. 대구시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야심찬 전기차 보급 계획이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환경부는 올해 국내에 1만 대의 전기차 공급 목표를 세웠지만 12월 8일 현재 보급된 전기차는 4천622대에 불과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지난해 2천821대에 대비해선 64% 증가한 것이다.



미래 전기차 도시를 꿈꾼다면 걸림돌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야 한다. 가솔린 차량에 비해 비싼 가격은 보조금 지급으로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충전 시간 단축은 국가와 업체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대구시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할 우선 과제는 충전소의 확대 보급이다. 일반 주유소는 곳곳에 널려 있지만 전기차 충전소는 찾기 어렵다. 시는 내년에 171기의 충전기를 확대한다지만 이 계획이 실현되더라도 충분하지 않다.



충전에 장시간이 소요되는데다 충전할 곳이 마땅찮으면 전기차는 계륵이 되기 쉽다. 전기차를 구입한 사람들이 충전할 곳이 마땅찮아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면 더 이상 확대 보급도 어렵다. 미래 전기자동차 선도 도시를 노리는 대구의 계획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대구시는 전기차 충전소 확보에 ‘미래 전기자동차 선도 도시’라는 대구시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한국경제]

6. 경제적 자유가 죽고 있다…한국 위기의 본질이다

2017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새 아침이지만 한가한 덕담이나, 무책임한 낙관론을 말할 수는 없다. 올 한 해 대한민국은 어떤 비전과 어떤 희망으로 재도약과 회생의 발판을 마련해낼 것인가. 미국과 일본은 벌써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낙관론으로의 전환점을 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 비관론의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 광장의 한쪽을 채운 비판의 촛불도, 광장의 또 다른 쪽을 채우기 시작한 반론의 태극기도 절망과 위기감을 노래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치적 격돌이 국민을 분열시키는 가운데 경제 분야에서는 더욱 음습한 곰팡이처럼 비관론이 번져나가고 있다.

정치가 폭발하고 광장의 여론이 드높아질수록 법치와 경제적 자유는 필연적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것이 우리 시대에 던져진 질문의 요체다. 자유민주의 헌법 정신에 부합하고 창의적 시장시스템을 존중하는 본질적 의미의 ‘경제할 자유’는 도처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그게 우리가 새롭게 맞은 2017년 앞에 던져진 진정한 위기다.



19대에 이어 지난해 출범한 20대 국회가 제안·제정한 입법 대부분은 경제적 간섭과 사회주의적 입법으로 도배질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를 살리는 자유의 입법은 한 건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할 정도다. 시장거래를 착취요 죄악으로 보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기업경영의 손발을 다 묶은 채 무방비로 한국 대표기업을 헤지펀드 먹잇감으로 내던지자는 공정거래법과 상법 개정안이 다 그렇다. 경제 문제를 넘어 개인의 일상사까지 법으로 일일이 규정하겠다는 김영란법도 그렇다. 법정까지 대중의 눈치를 살피는 반(反)자유주의적 기류는 이제 사법부에서도 만성적인 현상이 됐다.

정치권의 반시장적 좌경화 경쟁은 자유의 가치가 무너져 내리는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자유경제원과 한경이 공동 분석한 소위 대선 주자들의 이념성향을 보면 이런 현상은 더욱 극명하다. 자천타천 16명의 후보 중 무려 12명이 좌파 또는 중도좌파다(본지 2016년 12월31일자 A6면 참조). 그나마 스스로 우파라고 외치는 4명도 결국 중도우파 정도로 매겨질 뿐 자유의 가치를 중시하는 정통 우파라고 볼 만한 인물은 없다. ‘사회적 경제’ ‘재벌개혁’ ‘증세’를 내세우며 새누리당에서 분당한 ‘개혁보수신당’조차 버젓이 보수라고 외치니 자유는 이미 잊혀지거나 사라진 것은 아닌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이런 정치판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청사진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의 헛된 망상처럼 돼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슬프게도 ‘2017년 한국 이데올로기’다. 우리는 이 사실을 차마 부인할 수 없다.

표만 되면 어떤 레토릭도 불사하는 것 또한 한국적 정치 전통이라 하겠지만, 최근의 좌편향은 그 정도가 심각하다. 10년째 국민소득 2만달러대의 늪에서 탈출해 4만~5만달러에 도달하려면 그에 맞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아비투스(habitus)가 절실하지만 한국 사회는 2만달러의 아비투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회와 거리의 대중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오히려 5000달러의 퇴행적 아비투스로 되돌아가려는 판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의 결과는 단순히 국정의 중단이나 파행이 아니었다. 광장의 정치는 그것이 우익적인 것이든, 좌익적인 것이든 필연적으로 반자유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2017년은 그런 집단적 광기와 격정을 억누르고 이성과 합리, 개인주의와 법치에 기반한 진정한 자유를 조금이라도 회복하느냐가 한국 민주주의의 시금석이 될 수밖에 없다. 법치가 아니라 광장을 민주주의라고 우기는 거리의 선동가들이 정치를 장악하는 한 미래는 절망적이다.

새해 아침이다. 자유를 향한 위대한 노정의 새 출발을 결심할 때다. 다가오는 대선도 자유냐, 반자유냐의 싸움이 될 것이다. 자유의 반대편에 있는 포퓰리즘은 그럴싸한 레토릭으로 전환기적 불안심리를 한껏 자극해갈 것이다. ‘포용 성장’도, ‘공정 경제’도, ‘빈부격차 완화’도 충분한 성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어떤 나라도 가난의 질곡 속에서 민주주의와 사회발전과 균형성장을 달성하고 있는 나라는 단연코 없다. 그런 것은 환상이다. 후진적 농업사회는 결국 계급사회로 우리를 인도해갈 뿐이다. 충분히 성숙한 산업사회도 경제적 자유 없이는 불가능하다. 경제적 자유가 풍전등화로 벼랑 끝에 내몰린다는 것, 그것이 한국 위기의 본질이다. 자유를 향한 투쟁의 깃발을 올려야 할 때다.



[이데일리]

7.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시름과 격정 속에서 새해를 맞는다. 정유년(丁酉年)의 새 아침이다. 오늘의 태양이 어제나 그제와 다를 바 없건만 시간의 분절(分節)로 인한 새로운 출발선 위에 선 것이다. 각 개인과 가정, 기업에 있어서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다시 한 해의 여정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이 아침, 조용히 옷깃을 여미고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새해엔 과연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또 무사히 헤쳐나갈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분노와 좌절로 얼룩졌던 지난 달력을 떼어내고 새해 달력을 거는 마음은 이렇듯 염려가 앞선다. 새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왜 없으련만 국내외 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엄혹하기 때문이다. 

우리 내부의 정치 일정을 떠올리기에도 숨이 벅찰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국정농단 탄핵심리가 새해 벽두부터 시작되며, 그 결과에 따라 조기 대선도 치러야 한다. 국회의 개헌 논의도 대선 일정과 맞물려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게 틀림없다. 가히 대한민국의 명운이 달린 한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다음 대통령만큼은 제대로 뽑아야 한다.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국정 혼란이 잘못된 정치 리더십에서 비롯됐음을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선실세를 동원해 기업과 공조직을 주무른 처사는 국정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희망을 여지없이 날려 버렸다. 이 기회에 국민 위에 전횡하는 제왕적 리더십을 근절하고 국민과 더불어 소통하고 호흡할 수 있는 민주적 리더십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일반 유권자들의 시민의식이 크게 높아졌다는 점이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든 참가자들이 보여준 질서의식이 그것이다. 수많은 인파가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으로 시위를 끝냈다는 한 가지만으로도 과거의 혼란 양상과 뚜렷이 대비된다. 이처럼 성숙한 시민의식이 다가오는 대선에서는 물론 우리의 고질적인 정치 풍토를 바로잡는 토양이 되기를 기대한다.

당장 시급한 것은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문제다. 이미 경제가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들어 생산·소비·수출이 동반 위축되고 있다. 기업 투자도 주춤한 상태여서 청년 일자리 창출은 물론 전반적인 고용시장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 미국의 금리인상 움직임은 또 다른 불안 요인이다.

그런데도 탄핵 사태의 여파로 국정공백이 이어지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조류인플루엔자의 초동 대처에 실패함으로써 ‘계란 파동’이 확대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정책을 추진하는 위아래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부가 새해 예산을 조속히 집행하는 방법으로 경기에 군불을 지피겠다고 하지만 과연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지레 걱정되는 것이 그런 때문이다.

대외적인 여건도 불확실성을 더해가는 중이다. 브렉시트 결정에 이어 미국 트럼프 정권의 등장으로 국제정세가 혼란을 겪고 있다. 사드 배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등 국내 정세에 미칠 파장이 작지 않은데도 우리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조만간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감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처럼 새해를 맞는 여건은 오히려 비관적 상황에 더 가깝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눈보라 속에서도 보리싹이 돋아나듯이 스스로 새해의 희망을 싹틔워야 한다.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고 새벽길을 떠나는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8. 새누리당, 인적쇄신 없이는 미래도 없다

새누리당이 신년 벽두부터 당내 쇄신을 둘러싼 심각한 내분에 휩싸였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친박계’를 겨냥해 꺼내든 인적청산 카드로 인해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한다. ‘비박계’의 집단 탈당으로 가라앉는 듯했던 갈등이 재연된 셈이다. 새누리당이 그동안 집권당으로서 보여줬던 일련의 무책임한 행태에 비춰 응분의 정상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 비대위원장의 추진 방향이 전적으로 옳다. 새누리당이 다시 국민들의 지지를 얻으려면 신뢰를 회복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가 있는 사람들 스스로 거취를 표명하는 게 먼저다. 당과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으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한 사람들과 지난해 4·13총선 당시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당사자들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인 비대위원장이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대상자가 어떤 사람들인지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친박계 맏형 노릇을 해 온 서청원 의원과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최경환 의원, 청와대 정무·홍보수석을 지낸 이정현 전 대표 등이 지목된다. 당사자들이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려는 것이냐”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지만 자신들의 처신에 대해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기회에 박 대통령의 탈당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미 탄핵추진 논의가 나돌 때 본인 스스로 결단했어야 할 문제다. 더구나 헌법재판소의 탄핵심리가 진행되는 상황인데다 탈당·분당으로 새누리당이 소수당으로 전락한 만큼 이제 집권당으로서의 의미도 퇴색한 마당이다. 아울러 이명박 전 대통령이 조만간 새누리당을 탈당키로 했다는 발표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을 위해서라기보다 정치인들 자신의 기득권을 위한 정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새누리당의 쇄신 논의가 내분에 부딪친 것도 그러한 풍토에서 비롯된다. 새누리당이 쇄신을 하든 말든 전적으로 내부 구성원들이 결정할 문제다. 하지만 인적청산 결과가 유권자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할 경우 다음 선거에서 더욱 처절한 절패감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9. 치졸하고 무례한 중국의 ‘사드 보복’

중국이 한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을 한층 노골화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한국의 3개 항공사가 신청한 1월 중 중국~한국행 8개 노선의 전세기 운항을 뚜렷한 이유 없이 불허했다. 우리 정부에 전세기 운항을 신청했던 중국 항공사들도 신청을 갑자기 철회했다고 한다. 1~2월은 국내 관광업계가 ‘중국 특수’를 누리는 춘제(春節·설) 기간이다. 중국 당국이 전세기 운항을 불허해 유커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사드 흔들기에 나선 조치라고 간주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사드 반대’ 압박은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이 사드 배치를 결정한 지난해 7월 이후 덤핑규제 강화 등 한국 기업 및 제품에 대한 압박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한류를 제한하는 한한령(限韓令)에다 롯데그룹의 중국내 매장과 공장에 대한 세무조사 등 직접 제재도 가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달 자국 여행사들에 대해 한국행 여행객 수를 20% 줄이라는 구두 지침을 내린 데 이은 이번 전세기 불허 조치는 그 연장선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의 안보문제를 민간교류와 경제를 무기로 보복하는 치졸한 행태다. 

더 나아가 외교적 결례도 서슴지 않는 게 중국이다. 중국 천하이(陳海)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이 지난주 우리 정부와 협의 없이 방한해 여야 정치인들과 중국 진출 대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사드 배치 반대’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 그것이다. 우리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입국해서는 국론 분열을 획책하고 다닌 것이다. 김장수 주중 대사의 중국의 한국 여행 제한, 한류 제한조치 등과 관련한 면담 요청에는 한 달 넘게 답이 없는 상태다. 한국을 깔보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외교적 무례요 오만이다. 

사드 배치는 북한 핵 위협에 노출돼 있는 한국의 안보를 위한 자위 조치다. 중국이 현재 남중국해 영유권이나 대만 관련 문제를 ‘핵심 이익’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외교 현안을 민간 교류나 경제 제재를 통해 보복하려는 움직임은 옳지 않다. 더구나 경제 교류는 상호이익을 위한 것이다. 한국 기업과 한국 제품에 대한 압박과 제재는 중국 기업에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대국으로 대접받으려면 대국답게 처신하는 것이 마땅하다. 중국은 치졸하고 무례한 사드 보복 조치를 당장 중지하기 바란다.



[연합뉴스]

10. 1천만 명 넘긴 '촛불'과 법치주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불이 붙은 '촛불집회' 참가 인원이 구랍 31일 10차 집회로 1천만 명을 넘어섰다. 서울 808만, 지방 195만 등 연인원 1천3만여 명이 촛불을 들었다고 이 집회를 조직해온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측이 밝혔다. 대한민국 역사상 단일 사안을 놓고 벌어진 최대 규모의 연속집회라고 한다. 지금의 헌법체제를 만들어낸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연인원이 적게는 300만 명, 많게는 500만 명이었다고 한다. 이번 촛불집회의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최순실 씨 등 박근혜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국정 농단에 분노한 촛불은 두 달 남짓한 기간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수많은 촛불로 모아진 열기 속에서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박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됐으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체제가 들어섰다.



국정 농단의 중심에 있는 최순실 씨는 물론 청와대의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과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광고감독 차은택 씨 등 조력자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최 씨에 대한 의혹 등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도 전례 없는 기개와 속도로 주목받고 있다. 특검팀은 여러 의혹이 쏠려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자택을 전격 압수수색하는 등 출발부터 과거 특검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서울의 광화문 광장 등 전국 주요 도심에서 벌어진 촛불집회는 폭력과 충돌을 극도로 자제했다는 점에서 집회 문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시민들이 망가진 민주주의를 대규모 집회로 바로잡았다"(AP통신)와 유사한 외국 언론의 호평도 이어졌다. 특히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많을 때 170만 명(주최측 추산)이 모였으나 걱정할 만한 물리적 충돌은 한 건도 없었다. 처음 몇 차례 집회에서 과격한 일부 참가자들이 어린 의경들에게 폭력을 쓰려 하는 장면이 TV화면에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다수의 평화적 참가자들이 즉각 제동을 걸어 불미스러운 충돌 상황까지 가지 않았다.



오히려 집회 횟수가 늘어나면서 분노의 기운이 점차 줄어들고 집회를 즐기려는 분위기가 고조됐다. 특히 7차부터 10차까지는 폭죽이 등장할 정도로 축제장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한다. 매주 집회 현장에서 록콘서트 등 대규모 공연이 이어지고 '만두노총' '한국곰국학회' 같은 유쾌한 풍자도 속속 등장했다. 평화적인 일반 참가자들이 늘면서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집회장소에 나온 부모들도 적잖게 눈에 띄었다. 이런 시민들에게 촛불집회는 더이상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는 민주주의 교육현장이었다. 법원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100m 앞까지 대규모 시위대 접근을 허용한 것도 '평화를 중시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보수·진보 양 진영이 집회 규모로 세를 과시하면서 보혁 갈등이 급격히 고조될 조짐을 보인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보수 단체들의 '맞불 집회'가 커지고 있다. 구랍 31일에는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주최 측 추산 72만여 명(최대운집 시 경찰추산 2만5천명) 모였다. 아직 진보 진영이 주도하는 광화문 집회(주최 측 100만. 경찰 6만5천)에는 미치지 못하나 일방적으로 밀리던 초중반과는 판이하다. 만에 하나라도 물리적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양측 모두 최대한 자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헌법재판소 앞에서 집회를 벌이는 것은 보수든 진보든 모두 지양해야 한다.



헌재는 이제 막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본격적인 심리 절차에 착수했다. 헌재를 겨냥한 시위는 어떤 형태로든 재판부를 압박할 수 있다. 이번 촛불집회는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됐다.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민주주주 수호의 최후 보루가 '법치주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좋은 대학

수시 합격자 발표가 지난주로 끝나고 지금 정시 원서 접수가 한창이다.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자신의 수능 점수로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원서 접수 상황을 보면서 눈치를 보는데, 요즘은 점수가 많이 남더라도 자기가 생각하는 ‘좋은’ 대학을 가려고 하는 것도 하나의 흐름으로 정착되고 있다.



여기서 따옴표를 친 ‘좋은’은 같은 말이지만 의미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앞의 ‘좋다’는 대상이 다른 것과 비교해서 수준이 높거나 가치가 있는 경우를 뜻하는 것이다. 이때 대학의 좋고 나쁨의 기준은 입시 기관들에서 내놓는 배치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사람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학부모나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학생들은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이런 주문처럼 외우는 대학 서열을 대학의 좋고 나쁨의 기준으로 생각한다. 학벌주의가 우리 사회를 불공정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내세울 것이 학벌밖에 없는 사람들은 그런 비교에 집착을 한다.



이에 비해 뒤의 ‘좋다’는 대상의 성질이나 내용 따위가 보통 이상의 수준이어서 만족할 만한 경우를 뜻하는 것이다. 이때 대학의 좋고 나쁨의 기준은 직접 대학에 가서 교수들의 수업을 듣고, 다른 학생들과 교류하고 생활하면서 자기가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지잡대라고 비하해도 대학 공부를 재미있어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대학은 자기가 있는 대학이 된다.


올해 구미에 있는 4년제 대학 입시 설명회에 갔더니 학교 홍보물에 우리 학교 출신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고등학교 시절 아주 착실하고 나름 열심히 하는데도 성적이 잘 안 나와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렇지만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명문대에 진학한 친구들보다도 먼저 취직해서인지 인물도 아주 훤해 보였다. 이 학생이 군대 가기 전 학교에 왔을 때 이야기가 전공 공부도 재미있고, 교수님들도 잘해 주셔서 아주 만족한다고 그랬었다. 이 학생에게 ‘좋은 대학’의 기준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남들과 비교해서나 자기 스스로 느끼기에나)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물론 위의 학생의 예는 특수한 경우고, 확률적으로 보면 남들이 보기에 ‘좋은 대학’이 학생들이 느끼기에 ‘좋은 대학’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은 대학에서 잘 가르쳐서라기보다는 학생들의 자존감이 높은 데서 생기는 영향이 크다. 고착화된 대학 서열이 없는 상태에서 교육력으로만 승부한다면 ‘좋은 대학’에 대한 순위는 지금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배치표의 상위권에 있는 대학은 너무 쉽고 안일한 방법으로 ‘좋은 대학’의 이름을 얻고 있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함께 가야 멀리 간다

군주민수(君舟民水). 전국의 교수들이 선택한 2016년을 가리키는 사자성어다.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 전국 각지 촛불집회의 열기로 뜨거웠던 2016년을 보내며 더욱 달아오른 새해를 맞고 있다. 아이에서 노인까지 수백만 명이 결집한 촛불집회는 평화적 연대를 통한 시민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음으로 서로 손을 잡아주자 모르쇠로 정치판을 뒤덮은 제로섬(zero-sum)의 모략을 넘어 나의 이득이 너에게도 이득이 되는 플러스섬(Plus-sum)의 협력과 공존이 자리를 밝혔다.



인문학 연구공동체 ‘수유너머’가 그러했듯이 책을 통해 서로 손을 잡아준 이들이 있으니 ‘출판연구 동행325’다. 지난해에는 전국에서 7천여 명이 모이는 ‘책 그리고 인문학’ 전국 책축제에 시민 부스를 열었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 방황하던 그들이 처음으로 글을 쓰고,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책 한 권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꿈으로 17명이 모여 만든 ‘따로 또 같이’를 시작으로 벌써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무것도 못 써요” 하던 사람들이 책을 쓰고 등단을 하고 출판사를 차리기도 했고, 그 미미한 출발이 40여 권이 넘는 책 출판으로 이어졌다.



과거를 돌아보면 매순간이 소중하고 그립다. 하지만 멋지게 성공한 사람들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아리고 아린 손가락들이다. 초등학교 4학년이 공부의 전부인, 아내의 암 투병에 눈물짓는, 언제나 낮은 곳으로 눈길을 돌리다 뇌경색을 맞은, 세 번의 낙상사고를 당한, 매번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는 초보 작가들이지만 누구의 아픔보다 덜하지 않은 아픔으로 책을 썼다.



죽기 전에 내 책 한 권 써보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 있어도 정작 한 줄도 못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엇이 문제일까? 가장 큰 걸림돌은 스스로 자신의 발목을 잡는 자존감이다. 걱정과 불안이 클수록 완벽하고자 하는 욕망은 더욱 커지고, 알을 깨고 나와 다른 세상을 볼 수 없게 한다.



사람들은 재능 없는 일에 섣불리 도전하지 않는다. 무엇에 도전하든, 이미 그 재능이 흐르고 있다. 멀리 가려거든 손잡고 함께 가라. 천천히 가든 빠르게 가든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함께 가야 멀리 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함께 걸어가겠다는 믿음을 주는 것, 그것이 서로의 불안을 잠재우고 그 믿음이 다시 부메랑이 되어 각자의 믿음을 일깨운다.



‘혼자만의 꿈도 함께라면 현실이 된다.’


3. [매경이코노미][HEALTH] 부정맥의 증상과 치료…이유없이 심장 ‘두근’대면 빨리 약물처방

추운 날씨에 돌연사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부정맥. 부정맥은 심장 박동이 정상을 벗어나 너무 느리거나 빠르거나 혹은 불규칙한 상태를 이르는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1분에 60번에서 100번 정도 뛰어야 정상 맥박으로 본다. 빠르게 달릴 때에는 그보다 훨씬 빨리 뛸 수 있고, 또 수면 상태에선 훨씬 느려질 수 있다. 하지만 부정맥 환자들은 가만히 있는 상태인데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호소한다. 

정보영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자다가 심장이 두근대서 깼다거나 계단을 내려가다 살짝만 헛디뎌도 심장이 쿵쾅거린다는 환자도 있다. 반대로 맥박이 느리게 뛰어 답답하고 어지러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달리기를 하면 맥박수가 올라가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아서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부정맥이 와서 실신 또는 급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부정맥 종류 중 가장 흔한 것은 ‘심방세동’이다. 심방세동은 심장 위쪽 부분을 뜻하는 심방에서 부정맥이 오면서 심장이 부르르 떨리는 것. 심방세동 환자 중에선 초기에는 증상을 느끼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모르고 방치했다 뇌졸중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드물게 ‘심실세동’이 생기는 환자도 있는데 심실세동은 심장 아랫부분인 심실에 부정맥 증상이 온 것이다. 심실세동은 부정맥 중에서도 특히나 치명적인 것으로 꼽힌다. 심실세동이 오면 급사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부정맥은 너무 덥거나 추울 때 발생 가능성이 증가하며 또 낮보다는 아침 시간, 특히 자고 일어났을 때 생기는 경우가 많다. 주로 고령일수록, 또 고혈압을 앓는다면 부정맥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정보영 교수는 “심실세동 환자들은 새벽에 증상이 나타나는 일이 많으며, 급사할 가능성이 높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몸속 교감신경이 활성화돼 부정맥이 오기 쉬운 상황이 된다. 부정맥은 기온으로 인한 혈관 수축이나 교감신경과 관련이 깊다”고 설명했다.

부정맥은 왜 생기는 것일까. 부정맥은 심장 속 수많은 심근 세포를 타고 흐르는 전기 자극이 갑자기 비정상적으로 흐르면서 발생한다. 정 교수는 “심장은 자율신경계의 분포상 1분에 60~100번 정도 뛰도록 만들어져 있다. 신경계에 이상이 생기거나 혹은 심장 내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부정맥이 나타난다. 갑자기 심장 일부가 막혀 전기가 흐르지 못하면 속도가 느려지고, 그때 전기가 회오리를 쳐 비정상적인 박동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정맥 치료는 초기 약할 때는 약물치료를, 약물로 개선되지 않을 때는 전기충격치료를 하게 된다. 그래도 재발하거나 악화되면 고주파도관절제술을 하게 된다. 고주파도관절제술은 심장에 가느다란 관을 넣은 후 고주파를 이용해 문제가 되는 세포를 지져 없애는 방법이다. 

“부정맥 치료를 위해 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부정맥 진단을 정확히 받은 후 약물치료를 시작하면, 이후 뇌졸중 등 위험한 합병증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질환 초기에는 대부분 후유증 없이 치료가 가능하다. 부정맥 예방을 위해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잘 조절하고 평소 잘 관리하면서 악화되기 전에 사전에 치료할 것을 권한다.”


4.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정명훈 일본서 뉴스타트하는 한국의 거장

2017년 정유년(丁酉年)이다. 클래식 음악계는 2017년에도 여러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그나마 방한할 스타 연주자와 연주팀이 예정돼 있어 위안이 된다. 2018년 베를린 필을 사임하는 사이먼 래틀이 마지막으로 베를린 필을 끌고 내한한다. 또 래틀의 뒤를 이을 키릴 페트렌코가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와 한국을 찾는다. 

이외에도 거장 지휘자들의 내한은 계속 이어진다. 다니엘 하딩, 엘리아후 인발, 필립 헤레베헤, 리카르도 무티, 발레리 게르기예프를 2017년에 만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이 거장들의 행렬 속에 정명훈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서울시향을 떠난 정명훈은 2016년 9월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명예음악감독(honorary music director)이 됐다. 

1911년 나고야에서 창단한 도쿄 필은 일본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오케스트라다. 명예음악감독은 오케스트라에 공적을 남긴 지휘자에게 부여하는 영예로운 직책. 도쿄 필 역사상 명예음악감독은 정명훈이 처음이다. 정명훈과 도쿄 필의 인연은 2001년 도쿄 필의 특별고문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정명훈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도쿄 필은 일본 교향악계의 상징이었던 NHK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인기를 뛰어넘었다. ‘일본 지휘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오자와 세이지의 인기를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 

당초 도쿄 필은 2016년을 끝으로 서울시향 예술감독을 사임한 정명훈을 음악감독으로 초빙하려 했다. 하지만 정명훈이 “너무나 큰 책임이 따르는 음악감독은 맡고 싶지 않다”고 거절해 명예음악감독으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함상으로는 명예직이지만 현재 예술감독·상임지휘자가 없는 이 오케스트라의 사정상 정명훈은 도쿄 필 실질적인 최고 사령탑이다. 

문제는 서울시향 사태 후 그를 붙잡은 것이 도쿄 필이었다는 점. 한편으론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한 정명훈의 마음이 읽혀지기도 하고.

탱고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이쯤에서 떠오르는 건 그래서일까? 그는 오늘날 조국 아르헨티나의 탱고 음악을 전 세계가 사랑하는 음악으로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작 조국은 그가 펼치는 탱고를 그리 반가워하지 않았다. 결국 피아졸라는 조국을 떠나 먼 이국땅을 떠돌며 조국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서울시향 문제로 한참 시끄러울 때 정명훈은 기자들 앞에서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했다. 하지만 ‘음악밖에 모른다’는 마에스트로와 ‘음악 외의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기자들 사이에서 ‘트로이메라이’의 선율은 먼지처럼 흩어져버렸다. 

아시아가 배출한 2인의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오자와 세이지. 세이지의 조국 일본에서도 정명훈은 일본의 지휘자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정명훈을 그의 조국 한국은 언제쯤 불러줄 수 있을까. 그가 도쿄 필보다는 한국의 오케스트라, 일본 음악계 발전보다는 한국 음악 발전에 더 집중했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 건 하릴없는 욕심일까? 음악평론가인 필자로서는 새해 첫머리 가장 먼저 생각하는 염원이다. 그가 지휘하는 말러와 베토벤, 헝가리 무곡을 자주 한국 무대에서 만나기를 고대하며.


5. [경향신문][산책자] 가난한 마음

몇 년 전 경북 청도 운문사에서 하룻밤을 지낸 적이 있다. 비구니 절로 유명한 운문사이지만 여러 칸의 객방이 따로 있어서 가끔은 남자 손님도 재워준다. 절 사진을 찍느라 거기 오래 묵고 있는 작가를 만나러 갔던 건데, 그는 앉은뱅이책상과 조그만 반닫이 하나가 있는 방에서 조촐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아무런 장식도 기물도 없이 텅 빈 그 방은 얼마나 고졸하던지!


그 겨울밤 우리는 둘이 누우면 꽉 차는 방에서 창호 두 짝을 통해 쏟아지는 별을 보며 자연과 인간과 세상살이를 밤새 이야기했다. 그 뒤로 절에 갈 때마다 나는 대웅전, 극락전 같은 웅장한 공간보다 ‘요사채’라 부르는 승방을 기웃거리곤 한다. 대개는 나 같은 잡인들이 얼씬 못하게 닫혀 있지만 텅 빈 수도의 공간을 훔쳐보는 건 남모를 즐거움이다.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에 가면 ‘홀로코스트 타워’라는 공간이 있다. 차디찬 콘크리트 벽과 캄캄한 어둠에 갇혀 있는 그 방은 방형(方形)이 아닌 날카로운 예각으로 모서리를 만들어 공간에 들어선 사람을 몸서리치게 한다. 나는 일부러 그 공간에 오래 머물러 보았다. 뾰족하게 이어진 천장에서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이 전부인 공간은 참혹했고, 마치 실존의 극한에 선 듯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인간의 날 것 같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화려한 대웅전보다 담백고졸한 승방을 더 좋아한다고 했지만, 같은 이유로 나는 절보다 서원이 좋다. 무소유를 말하는 사찰이 우습게도 금칠한 불상과 화려한 기물들로 사람들의 복락을 비는 데 몰두하는 반면, 서원은 유교의 오랜 청빈 사상을 구현하듯 결벽하고 단정한 공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서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안동에 꼭 가볼 일이다. 지난여름 나는 안동에 갔다가 전에는 놓쳤던 경험을 몇 가지 얻고 돌아왔다. 유명한 도산서원, 병산서원, 하회마을보다 퇴계 선생의 자취들만을 따라가 본 덕분이다. 퇴계 선생은 50세 되던 해에 풍기군수를 사직하고 안동의 한미한 냇가로 물러나 계상서당을 연다. 두 칸의 코딱지만 한 공간인데, 1000원짜리 지폐에서도 이 서당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유성룡, 김성일 등 20여 명의 제자들을 가르쳤다니 선생의 앎은 공간의 크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모양이다. 젊은 율곡은 오래도록 흠모하던 퇴계를 만나러 계상서당에 찾아와 시를 바친다.

“시냇물은 수사(洙泗)에서 갈라져 나왔고/ 봉우리는 무이(武夷)처럼 드높도다/ 제가 바라는 것은 도를 묻는 일이오니/ 반나절 헛되이 보낸다 생각지 마소서.” ‘수’와 ‘사’는 주자가 살던 복건성의 물 이름이고 ‘무이’는 산 이름이니, 퇴계의 거소가 공자와 주자의 학문을 잇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칭송이었다.

그러나 퇴계도 계상서당이 비좁은 것을 안타까워한 제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말년에는 도산으로 서당을 옮긴다. 우리는 도산서원의 위용에 찬탄을 보내지만 사실 서원의 정수는 초입에 자리한 도산서당에 있다. 겨우 세 칸짜리 초옥인데도 선생은 서당을 새로 지은 후 걸핏하면 건물이 너무 넓다 불평을 했단다. 여기서 100여 명의 제자가 늘 배웠다니 공간의 쓰임이 놀랍다. 퇴계가 허용했던 것은 이 공간뿐이고 서원의 나머지 웅장한 건물은 후대에 지은 것들이다. 그렇게 안동은 점점 예법과 격식만을 좇는 공리공담의 중심지가 되어 간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환경과 단 몇 평의 공간에서도 우리는 생각의 깊이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아쉬울 게 없이 갖춰진 궁궐, 관저, 저택은 사람을 가두고 생각까지 가두는 법이다. 퇴계의 서당은 바깥의 자연과 세상에 바로 이어져 있었다. 수용소의 유대인은 아마도 차디찬 콘크리트에 갇혀 있었을지언정 그의 영혼만큼은 새처럼 자유롭게 바깥을 날았을 것이다.

파리의 화려한 ‘파사주’를 물신적 소비가 들끓는 공간으로 명민하게 관찰했던 발터 벤야민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경험 속의 가난이 빈자에게 무슨 작용을 하는가? 그것은 그로 하여금 처음부터 시작하도록,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조그만 시도를 공들여 하도록, 조금을 가지고 시작해 더 크게 키우도록 만든다.” 

가난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성이라는 얘기다. 성서 역시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거니와 그것은 가난한 마음이야말로 우리 존재에 부족한 무엇인가를 찾고 갈구하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2017년 새해에는 서로의 행운과 복을 빌어주되 그것이 더 많은 소유와 소비에 대한 갈망이 아니기를 빈다. 모두들 생각과 마음의 성장을 이루는 한 해가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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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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