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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국가 운명 결정할 ‘마지막 1주일’을 맞아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시한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헌재가 지금의 ‘8인 재판관’ 체제에서 탄핵심판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의 임기가 만료되는 오는 13일 이전에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9일이나 10일쯤 최종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내다보는 전망이 우세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남은 기간은 길어야 나흘 정도다.

탄핵 심판대에 오른 박 대통령으로서는 직무에 다시 복귀할 수 있느냐 하는 여부가 가려지게 되는 것이지만 대한민국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그 이상이다. 지난 주말 서로 촛불과 태극기를 앞세워 광화문과 시청앞 광장 일대를 비롯한 서울도심 곳곳에서 마지막 여론 총력전을 펼친 시위대의 행렬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두 패로 확연히 갈라져 헌재에 대해 각각 탄핵 인용과 기각을 주장하는 민심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라면 최종적으로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지 간에 어느 한쪽은 불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다. 여론을 주도하는 정치권마저 대선주자들을 중심으로 극도의 발언을 쏟아내며 민심을 자극하는 양상이다. 양쪽 진영 사이에 치유하기 어려운 감정의 골이 이미 깊어진 게 아닌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가뜩이나 국정공백이 길어짐으로써 대내외적인 불안 요인에 적극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가적인 위기만 키울 뿐이다.

헌재 재판관들은 이미 최종 결정을 내리기 위한 평의를 진행하고 있다. 탄핵심판 쟁점을 정리하고 법리 적용에 문제가 없는지를 검토하는 작업이다. 내일쯤에는 선고 날짜가 미리 발표될 것이라는 추측도 전해진다. 최종 선고 초읽기에 들어간 헌재의 긴박한 분위기를 짐작하게 된다. 헌재로서도 이번 선고가 뒤탈을 남기지 않도록 최대한 공정한 자세에서 마무리 작업에 임해 주기를 기대한다.

마지막 관건은 민심의 향방이다. 국론분열 사태만은 막아야 한다. 그것은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일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의 사드보복과 북한 핵개발, 일본의 위안부 공세 등으로 나라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도 마찬가지다. 헌재 판결로 탄핵 정국의 갈등을 끝내야 한다.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헌재의 최종 판결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제 길어야 불과 사나흘밖에 남지 않았다.



2. 말레이 정부의 북한대사 추방 당연하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김정남 독살 사건’과 관련해 자국 주재 강철 북한 대사에 대해 오늘 오후 6시까지 말레이를 떠나라고 요구했다. 사실상 강제 추방이다. 비자면제협정 파기를 선언한지 불과 이틀 만에 취해진 강경 조치다. 말레이가 지난달 20일 모하맛 니잔 평양주재 자국 대사를 불러들인 상황에서 강 대사가 추방되면 양국의 공식 외교 채널은 마비된다. 말레이 당국은 이번 조치가 “관계 재검토 절차의 일부”라고 밝힘으로써 북한과의 ‘외교관계 단절’ 이라는 초강경 카드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말레이의 강 대사 추방 결정은 북한이 김정남 독살 사건에 대한 말레이 경찰 수사를 ‘허위 날조’라며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는 데 따른 경고 조치다. 북한은 강 대사의 기자회견 등을 통해 말레이 당국의 수사결과 발표를 ‘속임수’, ‘모략’이라며 비난해 왔다. 말레이가 한국과 야합해 북한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궤변까지 늘어놓았다. 북한의 이 같은 무례한 태도에 말레이 내부에서는 북한과의 단교를 촉구하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강 대사 추방은 북한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김정남 독살로 국제사회는 김정은 정권의 반인륜적인 잔혹한 공포정치에 분노하고 있다. 남의 나라에서, 그것도 외국 여성을 이용해 대량파괴무기(WMD)인 신경성 독가스 VX로 테러를 자행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국제사회의 제재는 당연하다. 말레이가 북한과 단교한다고 해도 부정적으로 볼 나라는 없을 것이다. 1983년 아웅산 폭탄테러 당시 미얀마 정부도 북한과 단교한 바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커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북한은 여전히 발뺌으로 일관하는 중이다. 최근 열린 제네바 군축회의에서도 김정남 살해사건 연루 사실은 물론 화학무기 보유 및 사용 자체를 부인했다. 화학무기로 테러행위를 저지른 것은 물론 생떼와 억지로 본질을 호도하려는 술책은 참으로 경악스럽다. 북한은 이제라도 사건의 전말을 시인·사과하고 핵·화학무기 폐기와 추가 도발 중단 등 응분의 책임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더욱 고립될 뿐이라는 사실을 김정은 정권은 직시해야 한다.



[매일신문]

3. 서민 살림 가뜩이나 팍팍한데 물가까지 비상이면

1월에 이어 지난달 소비자물가도 2% 가깝게 올랐다. 2개월 연속 한국은행 물가 안정 목표(2%)에 근접해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2월 물가 상승을 이끈 것은 석유류와 교통 물가 인상이다. 그동안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이던 신선식품 등 농산물 물가가 한 자릿수로 돌아선 반면 석유류`교통 물가는 5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면서 물가 상승을 주도했다.



통계청의 ‘2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9%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0.5% 선에 그쳤다. 하지만 하반기부터 오르기 시작해 올해 1월에는 2.0%로 4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 오름세가 이어지자 소비자들도 장바구니 물가에 부담을 느끼면서 소비 심리가 더욱 움츠러들고 있다.



국제 유가 오름세로 인해 2월 석유류 가격은 13.3% 뛰면서 전체 물가를 0.54%포인트 밀어 올렸다. 2011년 11월 16.0% 인상 이후 가장 큰 폭의 석유류 가격 상승이다. 게다가 열차`시내버스 요금까지 올라 교통(6.0%) 물가 또한 2011년 12월(6.3%)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이를 모두 포함하면 전체 물가에 미친 영향은 0.64%포인트에 달했다.



조류인플루엔자(AI)`구제역 등으로 농축수산물 가격이 크게 오른 데 이어 석유류`교통 물가가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올 들어 물가 오름세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불황에 소득은 정체되거나 떨어지는데도 물가만 거꾸로 오르면서 소비자물가 불안 심리가 계속 높아진다면 한국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클 수밖에 없다. 

  
특히 1천3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에다 올해 미국의 연속적인 금리 인상 움직임과 국제 유가 상승 등 서민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이 한둘이 아니다. 정부가 2% 내외의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한 것도 그만큼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많다는 뜻이다. 소비자 부담이 커지지 않도록 가격 동향을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가격 안정 대책을 세워야 한다. 경제가 어려운데 물가마저 고삐가 풀린다면 서민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는 점에서 비상 대책에 집중해야 할 때다.



4. 한반도 겨눈 중 미사일엔 입 닫고 사드 정보 밝히라는 야당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대한 보복을 노골화하고 있지만 야당은 오히려 우리 정부를 향해 사드 배치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안보 주권을 지키려면 일치단결해도 모자랄 판에 중국에 겨눠야 할 화살을 국내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 44명이 사드 배치와 관련한 미국과 협의 과정에 대한 정보 공개와 국회 보고 절차를 요구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의 요구는 국가 안보와 군사상의 비밀을 완전히 공개하라는 것과 같다. 국가 안보를 위한 결정 내용과 과정을 전면 공개하는 나라는 지구 상 어디에도 없다. 야당의 요구대로 하면 사드 배치의 전략적 유효성은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그 비밀을 훤히 아는 무기는 무기로서 가치가 없다. 자유한국당이 이들의 요구에 “과연 대한민국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것인지. 북한의 알 권리를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할 만하다.



중국은 한반도 내 미군기지나 전략적 요충을 겨냥한 공격용 미사일을 대거 배치하고 있다. 중국은 백두산 인근 지린(吉林), 산둥(山東), 랴오닝(遼寧)성에 사거리 600~1천800㎞의 단`중거리 미사일 600여 기를 배치해 놓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못지않게 중국의 미사일도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야당은 이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더 한심한 것은 중국에 대한 굴종적 자세이다. 중국의 보복에 대한 야당의 태도는 과연 대한민국을 위한 야당인지, 중국을 위한 야당인지 되묻게 한다. 지난해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야당은 지금까지 중국을 두 차례나 방문해 중국 정부의 눈치를 살폈다. 이들은 사드가 북한 핵과 미사일의 방어 무기라는 우리 정부의 설명은 거부하고 사드는 중국의 이익을 해친다는 중국 정부의 일방적 주장에만 귀를 기울인다.



중국이 사드 배치에 대한 비이성적 보복에 나선 것은 우리가 만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것은 사드 배치를 놓고 우리가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분열은 바로 야당이 조장하고 있다. 야당에 묻는다. 지금 중요한 것은 중국인가 우리의 안보인가.



[서울신문]

5. 대학 신입생 행사에 술 8000병 구입한 총학

지성의 전당인 대학 캠퍼스가 이맘때면 잡음으로 얼룩진다. 학생회관에 소주 상자가 가득 쌓여 있는 광경은 속사정이 어떻든 혀를 차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달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를 가던 중 버스 사고를 당해 수십명이 다쳤던 금오공대가 또 말썽이다. 학교 현장을 점검했더니 행사를 기획한 총학생회가 소주 7800병과 페트병에 든 맥주 960병을 사서 학생회관에 상자째 쟁여 놓았던 모양이다. 만약 버스 사고가 없어 신입생 환영회를 진행했더라면 그 많은 술을 학생들이 하룻밤에 다 마셨을 것으로 보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아찔하다.

이즈음 대학가는 오리엔테이션 등 신입생맞이 행사가 한창이다. 아찔한 풍경은 어느 한 대학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대학가에서 성추행이나 폭행 등의 불미스러운 사고가 가장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시기가 이때라고 한다. 학업에 찌들어 있다가 풀려난 신입생과 선배들의 음주 강요 문화가 뜻하지 않은 돌발사고를 빚는 결과다.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가 일어난 이후 정부는 대학의 신입생 행사를 각별히 단속하고 있다. 교육부는 되도록이면 신입생 행사를 학내에서 해결하도록 권장하고도 있다. 그런데도 이런 대책이 현장에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달 말에는 신입생 환영회에 참가한 여학생들이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하는 경악할 일이 터졌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신입생은 승강기 기계실에 들어갔다가 손가락이 잘리는 변을 당하기도 했다. 이 말고도 상식을 넘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심심찮게 확인된다.

이런 악습들이 다른 데도 아닌 상아탑에서 손쓸 수 없는 고질이 돼 간다면 큰 문제다. 힘겹게 입시 관문을 통과한 신입생들에게 교수와 선배가 고작 흥청망청 술판이나 차려 줘서야 말이 되겠는가. 행사 비용에 학부모 주머니가 털리기도 한다니 기가 막힌다.

총학생회만 탓할 게 아니라 이를 지도·단속하지 못한 대학 측도 책임이 크다. 학교 행사의 안전관리에 실패한 대학과 총장은 어떤 방식으로든 엄격한 제재를 받아야 한다. 안전 매뉴얼을 만들어 성폭력 등 인권침해 교육을 몇 배 더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부는 대학을 엉뚱한 일로 간섭하거나 옥죄지 말고 이런 안전사고부터 예방하고 단속하는 데 소매를 걷어야 한다.



6. 中 옹졸한 사드 보복, 충분히 이겨 낼 수 있다

중국 랴오닝성 검역국이 수입된 한국 식품에 대해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통관을 거부했다고 한다. 중국이 5월 개최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신실크로드 경제권) 정상회의에 60여개국 정상·각료급 인사를 초청했으나 한국은 아직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한국은 일대일로와 밀접한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출자액 규모 5위인 주요 창립 회원국인데, 우리 측을 초청하지 않는다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한 보복이라고 간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높다고들 한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의 전체 수출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6.0%이고 수입은 20.7%이다. 중국의 전체 수출 중 한국의 비중은 미국, 홍콩, 일본에 이어 4.4%, 수입은 10.9%로 1위이다. 이런 수치로 미뤄 대중국 의존도가 높다고도 할 수 있지만 한·중 경제가 떼려야 뗄 수 없는 협조체제로 얽혀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중국이 사드 보복으로 한국 경제를 옥죄려 하면 중국 경제도 타격을 받는 것은 필지의 사실이다. 2012년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이) 국유화 파동 때 중국이 일본에 각종 보복 조치를 가했을 때 일본은 꿋꿋이 버텨 냈다. 중·일 무역이 동시에 줄고 일본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동남아로 이전하면서 1년 만에 위기를 넘긴 사례가 그것을 증명한다.

사드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 측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롯데마트, 롯데백화점, 롯데슈퍼가 고용한 현지인이 2만명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2만 5000여개가 고용한 중국인은 수백만명이다. 자국민을 볼모로 한 중국의 옹졸한 보복을 지나치게 겁내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불안해하는 우리 모습은 중국 측 보복의 강도를 높일 뿐이다. 세계 10위권 경제규모인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중국 측 보복의 물결을 이겨 낼 체력이 충분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도, 2008년의 리먼브러더스 사태도 이겨 낸 우리가 아닌가.

중국은 어제 개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6.5%로 제시했다. 지난해 6.7%에 이어 중속 성장에 들어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이 실행되고 한·중 무역이 축소되면 중국의 핵심이익인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 리커창 총리가 전인대에서 “보호무역을 반대하고 이웃나라와 화목하게 지내겠다”고 강조했다는데, 말처럼 사드 보복은 대국답게 접어야 할 것이다.



7. 자살률 1위 국가에서 자살 브로커까지 활개 친다니

섬뜩한 세상이다. 경찰이 3일 사회관계서비스(SNS)를 이용해 자살 방법 등을 알려주고 돈을 받은 ‘자살 브로커’ 2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트위터 계정으로 ‘고통 없이 죽는 법, 100% 확실한 자살’이라고 광고까지 했다. 가스통과 호스, 가스조절기, 타이머, 신경안정제 등으로 ‘자살 세트’와 ‘자살 텐트’를 꾸며놓고 돈벌이에 나섰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해 12월에는 50대로 추정되는 남성의 집으로 찾아가 가스통을 설치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자살 실험을 위해 애완용 햄스터 2마리를 구매해 가스를 주입해 죽이기까지 했다니 놀라울 뿐이다.

인터넷 등을 활용한 자살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상에는 같이 자살할 사람을 모으거나 자살을 돕고 방법을 알려주는 글과 영상이 넘쳐난다. 초등학생이라도 몇 번의 클릭으로 자살 도구나 방법 등을 알아낼 수 있다. 당국이 자살을 조장하거나 미화하는 웹사이트를 폐쇄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요즘에는 개인 간 SNS를 통해 은밀히 정보를 주고받다 보니 단속의 손길이 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자살공화국’이란 오명을 안고 있는 처지다. 2003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자살률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인구 10만명 자살률은 28.7명으로 2위인 일본의 18.7명과도 크게 차이가 난다. 정부와 사회단체에서 자살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별 효과가 없다. 사회 양극화와 청년 실업, 급속한 고령화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무엇보다 자살에 관용적인 사회풍토가 온상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자살은 자신의 생명을 끊는 엄연한 살인행위다.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자살을 예방하려면 자살에 대한 이런 사회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사의 자살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



[한겨레]

8. 탄핵 반대 집회에 청와대가 개입한 짙은 의혹

청와대 인사들이 친박 보수단체 대표들과 수시로 통화하거나 문자를 주고 받은 사실이 특검 수사에서 확인됐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국정농단 사태가 본격화한 이후에도 통화와 문자 주고받기가 계속된 점으로 미뤄 양측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개최를 위해 입을 맞추는 등 ‘관제 데모’를 기획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탄핵 반대 집회가 청와대의 요구에 따른 관제 데모로 밝혀진다면 이는 여론을 왜곡하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짓밟는 심각한 문제다. 따라서 청와대와 해당 인사들은 통화 내용을 상세히 공개하고 의혹을 분명하게 해명해야 한다.

한국일보 보도를 보면 허현준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청와대에 재직 중이던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월 초까지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를 비롯해 박찬성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표, 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 신혜식 신의한수 대표 등과 지속적으로 통화했다고 한다. 이들은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할 뿐 아니라 특검 사무실과 박영수 특검 자택 앞에서 위압적 시위를 하고 과격한 언어로 특검 관계자들을 위협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박 특검이 이들을 상대로 ‘집회 및 시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을 정도니 이들의 위협이 어느 정도인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특검은 이들이 허 행정관뿐 아니라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지낸 정관주 전 국민소통비서관 등과 통화한 내역도 확인했다고 한다. 양측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가깝다면 청와대가 친박 단체의 탄핵 반대 집회에 개입했을 개연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

청와대가 관제 데모를 기도했다는 증언은 진작에 나온 바 있다. 지난해 4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뒷돈을 대며 어버이연합을 친정부 집회에 동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던 당시 청와대가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집회 개최를 보수단체에 지시했다는 증언이 함께 나온 적이 있다. 허 전 행정관은 당시 친정부 집회 개최를 친박 단체에 지시한 인물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렇듯 관제 데모를 지시하고 특검을 협박하는 것은 사회를 혼란으로 내몰 뿐 아니라 민주주의 정신을 부정하는 심각한 문제다. 도덕적으로도, 법적으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따라서 청와대 인사가 그런 일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면 묵과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심판을 앞두고 있다 해서 유야무야 넘어갈 게 아니라 그럴수록 엄중하게 다루어야 마땅하다.



9. ‘탄핵 뒤에도 철저 수사’하라는 국민 뜻

국민의 뜻은 여전히 엄정했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목전에 둔 3~4일 <한겨레>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탄핵 뒤에도 철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는 응답이 절대다수였다. 그 뜻이 왜곡되면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절대다수는 진실 규명과 엄중한 처벌을 원하고 있다. 헌재의 탄핵 인용 뒤 대통령 수사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3명 중 2명꼴로 ‘탄핵 뒤에도 검찰이 철저히 수사하고 요건이 충족되면 구속해야 한다’고 답했다. ‘철저히 수사하되 구속은 안 하는 게 좋다’는 응답 17.6%까지 합치면 85.4%가 탄핵 뒤에도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원했다. 탄핵 뒤 대통령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은 고작 9.5%였다. 정치적 합의로 대통령의 처벌을 면제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그동안 없진 않았지만, 여론은 그런 정치적 절충에서 이미 멀찍이 떨어져 있다. 대통령이 탄핵 선고 전에 자진해서 사퇴하더라도 탄핵심판이 계속 진행돼야 한다는 응답 역시 3명 중 2명꼴이니 국민의 뜻은 더할 나위 없이 강하고 분명하다. 특검의 수사를 이어받은 검찰이 좌고우면할 이유도 없다.

박 대통령이 탄핵당해야 한다는 여론도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 당시의 80%에 육박하는 75%로, 여전히 절대다수였다. 탄핵 찬성 여론은 반대 여론보다 4배 이상 높다. 박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라는 대구·경북이나 60대 이상 연령층에서도 탄핵 찬성이 반대보다 많다. 나라가 탄핵 찬반으로 양분됐다는 일부 언론의 ‘양비론’은 진실을 호도하려는 거짓 주장일 뿐이다.

국민의 압도적인 뜻이 거부됐을 때의 반발은 짐작대로다. ‘헌재 결정이 뜻과 다르면 수용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3.9%가 ‘수용 못 할 것’이라고 답했다. 탄핵에 찬성한 응답자 가운데 ‘내 뜻과 다르면 수용 못 할 것’이라는 답변은 60% 이상이었다.



탄핵 인용에 대한 확신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겠다. 반면에 탄핵 기각을 바라는 응답자 가운데 ‘수용 못 하겠다’는 응답은 33.2%였고, ‘수용하겠다’는 응답이 54.2%였다. 자유한국당 지지층도 수용하겠다는 응답이 절반 이상이었다. 친박 세력이 집회에서 탄핵 결정에 대한 불복을 외치고 있지만, 탄핵 반대층에서도 동조는 크지 않은 셈이다. 혼란을 부추기려는 선동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국민일보]

10. 최순실 일가 불법 재산 끝까지 추적해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90일간 벌인 수사 결과를 6일 공식 발표한다. 이 자리에서 박 특검은 직접 단상에서 피의자로 입건된 박근혜 대통령의 혐의를 구체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최순실씨가 박 대통령의 집값을 대신 내는 등 두 사람이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수사 결론도 함께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될 내용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최씨 일가와 주변 인물들의 재산 추적 결과다.

특검은 출범과 동시에 전담팀을 꾸려 최씨 일가와 관련자들의 재산 내역을 추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최씨의 재산은 200억원대 수준이다. 특검은 최씨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미승빌딩과 강원도 평창 땅, 예금(17억원) 등을 합해 총 228억원(거래신고가 기준) 상당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했다. 최씨 일가와 주변 인물 약 40명을 상대로 한 재산 추적에서는 총 2200억원대 재산을 보유한 사실도 밝혀냈다. 이 가운데 최씨의 동생인 최순천씨의 재산이 1600억원대로 가장 많았다.

특검은 최씨 차명재산 등을 일부 밝혀내고 최씨 일가의 수상한 부동산 거래 정황을 포착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지만 불법 재산 축적 여부에 관해선 아직 눈에 띌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최씨 일가의 재산 규모와 재산 형성 과정이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얘기다.



특검과 법무부에 따르면 최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 조력자들은 독일 등 유럽 각국에 스포츠·부동산 분야의 페이퍼컴퍼니 수백개를 설립했다고 한다. 이들 유령회사는 독일을 비롯해 스위스 등 주로 조세도피처로 알려진 곳에 만들어져 현금과 부동산 등의 형태로 재산을 은닉했을 가능성이 있다.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거액의 차명 재산을 숨겨놓았을 것으로 특검은 보고 있다.

최씨 일가의 부정 축재는 국정농단 못지않은 단죄의 대상이다. 검찰은 특검이 하지 못한 최씨 일가 재산 형성 과정의 전모를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하게 파헤쳐야 한다. 그리고 뇌물을 받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이 있다면 반드시 몰수 등의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적용할 법이 없다면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환수해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최씨 일가의 재산 형성 과정에 관련이 있는지도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주요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신동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 세계 3대 블루치즈 ‘고르곤졸라’ 달면서 톡쏘는 오묘한 맛 ‘푸른곰팡이 마술’

고르곤졸라 하면 피자나 스파게티를 떠올리는 분이 꽤 있다. 반면 “그게 뭐야?”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고르곤졸라는 푸른곰팡이균을 이용해 만든 블루치즈 종류로 이탈리아 요리에서 각광받는 식재료다. 정확한 기원은 문서로 남아 있지 않지만, 밀라노 외곽에 있는 고르곤졸라 지역에서 처음 생산됐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고르곤졸라가 위치한 포밸리 지역은 소의 방목이 활발하게 이뤄지던 곳으로 매년 봄이면 소떼들이 목초지를 찾아 평지에서 산으로, 가을에는 산에서 평지로 대이동을 했다. 소떼의 대이동 중 잠시 쉬어가는 마을 중 하나가 고르곤졸라였다고 한다. 매년 이 시기가 되면 고르곤졸라에 신선한 우유가 넘쳐났기에 이 우유를 버리지 않고 저장할 목적으로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르곤졸라의 탄생 배경으로 재미있는 러브스토리가 전해져 내려온다. 15세기경 고르곤졸라 마을에서 치즈를 생산하던 한 젊은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날 생각에 빠져 치즈를 만들기 위해 우유를 응고시켜놓은 커드(curd)를 밤새 그대로 내버려두고 말았다. 청년은 자신의 실수가 들통날까봐 이 커드를 버리지 않고 새로 만든 커드를 그대로 덮어 숙성을 시켰다. 그 후 몇 주가 지나자 망친 줄로만 알았던 치즈에 푸른색 곰팡이가 피어났고 의외로 맛도 훌륭했다나. 

이후 고르곤졸라는 롬바르디아와 피에몬테 지방을 중심으로 서서히 퍼져 나갔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인근 유럽 국가로 수출되기 시작했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생산되는 고르곤졸라의 약 30%가 해외로 수출된다. 유럽연합에서는 원산지 명칭 보호법에 따라 고르곤졸라와 인근 교외 일부에서 제조된 치즈만 고르곤졸라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고르곤졸라는 미색 바탕에 푸른색 곰팡이가 마치 혈류가 흐르듯 마블링돼 있다. 단맛이 돌고 크림처럼 부드러운 돌체(dolce, sweet)와 블루치즈 특유의 톡 쏘는 맛이 강한 피칸테(picante, spicy)의 두 종류로 나뉜다. 가장 무난하게 먹는 고르곤졸라 돌체의 숙성 기간은 약 60일 정도며 식감이 부드러워 그대로 빵에 발라 먹거나 가볍게 무화과나 배에 곁들여 먹는다. 냄새나 맛에 민감해 그냥 먹기에 꺼려진다면 파스타나 스테이크 소스 등 열을 가하는 재료로 활용하면 특유의 향이 약해져 먹기에 좋다. 피칸테는 청록색의 곰팡이가 피고 숙성 기간이 보통 1년 이상으로 길며 비교적 질감이 단단해 잘게 부서진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고르곤졸라 피자 위에 뿌려지는 치즈는 대부분 피칸테다. 이외에 리소토나 파스타의 소스로 활용하거나 샐러드에 곁들여 먹는 등 쓰임새가 다양하다. 피칸테는 꿀을 곁들여 먹으면 특유의 강한 맛과 향이 중화된다. 

영국의 스틸튼, 프랑스의 로크포르와 함께 세계 3대 블루치즈로 손꼽히는 고르곤졸라는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하고 단백질을 듬뿍 함유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치즈에 비해 지방 함량은 적은 편이다. 

특히 고르곤졸라가 가진 블루치즈 특유의 맛과 향은 담즙과 췌장액의 분비를 자극해 지방과 단백질의 소화를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고르곤졸라를 많이 먹은 사람의 소화 기능이 우수하고 건강해 장수한다는 설이 전해진다.

예전에는 하루 전날 만든 커드와 새로 만든 커드를 섞어 반죽하고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천연동굴에서 이를 숙성시켜 자연스럽게 푸른곰팡이가 피도록 했지만, 오늘날에는 치즈 장인들이 페니실린 곰팡이(Penicillium) 포자를 사용해 고르곤졸라 치즈를 만든다. 플레밍에 의해 발견된 페니실린 곰팡이가 인류를 더 건강하게 지켜주는 비밀의 열쇠가 된 것이다. 

고르곤졸라는 곰팡이가 피어 있는 치즈므로 먹을 만큼만 사서 되도록 빨리 소비하는 것이 좋다. 냉장고에 너무 차게 두면 맛이 더 강해지므로, 먹기 전 적어도 30분 정도 상온에 꺼내둔다. 회색이나 핑크빛이 도는 외피는 먹지 않으며 산화돼 푸른곰팡이가 노랗게 변한 부분은 잘라내고 먹으면 된다. 

필자는 수많은 치즈 중 고르곤졸라를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상한 음식인 줄 알고 입에 넣자마자 바로 뱉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마치 상한 두부 같은 느낌이랄까? 그때를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어쩜 그리 맛이 없던지! 만약 외국인이 난생처음 청국장을 먹었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 상상이 될 것이다. 필자가 처음 고르곤졸라를 먹었을 때 바로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고르곤졸라의 참맛을 알았을 때는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치즈가 있어’라며 미소를 짓게 됐다. 

영국의 스틸튼·프랑스의 로크포르와 함께 세계 3대 블루치즈
고르곤졸라펜네 잘하는 집 올림픽공원 ‘마시떼’ 추천

고르곤졸라는 대개 리소토나 피자에 많이 이용되는데, 그중 필자가 가장 사랑하는 요리는 고르곤졸라펜네다. 펜네란 곱창처럼 가운데 구멍이 뚫린 파스타인데, 고르곤졸라와 만났을 때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파스타가 완성된다. 일반 스파게티로 할 때는 그렇게까지 맛있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참 신기한 일이다. 

만드는 법도 간단하다. 버터와 생크림, 우유 그리고 고르곤졸라를 함께 녹여 펜네를 넣어 함께 잘 저어준다. 농도와 맛이 잘 스며들면 접시에 담아 통후추를 갈아 뿌려서 마무리해준다. 펜네의 식감이 수제비 같으면서 농후한 맛의 치즈가 어우러져 환상의 하모니를 이룬다.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고르곤졸라펜네를 잘하는 집으로 올림픽공원에 있는 ‘마시떼’라는 파스타집을 추천한다. 작고 아늑한 분위기에 연인끼리 가볍게 와인 한잔하기 너무 좋은 곳이다. 파인다이닝 형태의 맛집은 아니지만 가성비와 음식 맛이 좋고 처음 가는 분들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이곳 고르곤졸라펜네는 너무 러블리하다. 고르곤졸라와 트러플오일 그리고 모차렐라, 그라노파다노치즈 등 여러 가지 치즈의 오묘한 맛을 한입으로 즐길 수 있다. 치즈가 많이 들어가 느끼한 맛의 파스타라고 상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다. 느끼함보다는 깊고 진한 맛의 맛있는 파스타를 만날 수 있다. 

요즘엔 세계 각국의 재료와 음식들을 한국에서도 손쉽게 맛볼 수 있기에 너무 행복하다. 먹는 즐거움이 행복을 부른다. 그렇기에 맛있는 음식은 제로칼로리다!



2.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사라 장(장영주) 한국이 낳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지난해 음악 좋아하는 이들 가운데 이런 농담이 유행했다. 자녀를 음악가로 성공시키려면 아들은 ‘성진’으로, 딸은 ‘지영’으로 지어야 한다는.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문지영이 부조니 콩쿠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임지영이 우승하면서 나온 유쾌한 농담이었다. 2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이름이 아닌 성이 유행이었다. 한국이 낳은 신동 장영주와 장한나 때문이었다. 즉, 아이를 음악가로 키우려면 성이 ‘장’ 씨여야 한다고. 갑자기 장 씨 성을 가진 남성들의 인기가 폭주한다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장영주(Sarah Chang, 1980년~). 그녀의 이름은 ‘신동’으로 시작했다. 한때 ‘장 씨’ 붐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불과 10살에 거장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 필과 협연으로 데뷔하며 세계를 놀라게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됐다. 

2년 후 12살에 EMI에서 세계 최연소 음반이 발매됐고, 13살에 그라모폰 선정 ‘올해의 연주자상’을 받았다. 협연자를 까다롭게 고르기로 유명한 베를린 필과 음반 3개를 녹음한 유일한 한국인이다.

신동이 재능을 성인이 될 때까지 무사히(?) 이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장영주는 사람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신동에서 정상의 프로페셔널 바이올리니스트로 우뚝 선 연주자다. 일 년에 100여개 연주회를 소화하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연주자’로 꼽힌다. 2008년에는 세계경제포럼에서 선정한 ‘세계의 젊은 리더’로 뽑히기도 했다. ‘사라 장’이란 이름이 음악가로서뿐 아니라 ‘음악계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인 부친과 작곡가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음악은 당연히 그녀의 일상생활이 됐다. 특별한 재능을 인정받은 6살 때 줄리어드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도로시 딜레이의 제자가 됐고 8세 때 주빈 메타에게 보내졌다. 메타는 그녀의 연주를 듣고 바로 다음 날 자신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협연자로 세웠다. 이후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자로 서면서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신동’이 됐다.

장영주는 더 이상 ‘신동’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넘어 완벽하게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는 정상의 연주자로 우뚝 섰다. 

그녀와 연주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는 일일이 거론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아직까지도 사라와 협연하지 않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를 찾아보는 편이 빠를 것이다. 음악팬으로서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또 나날이 변화하고 성숙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언제까지고 응원하며 ‘존재 이유’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그런 인물이 됐다. 

고맙게도 올해 그녀의 무대를 한국에서 만날 수 있다. 어느새 30대 중반의 원숙한 경지에 이른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보여줄 음악은 또 어떨 것인가? 기대와 설렘이 그녀를 기다리게 한다. 기분 좋은 기다림이다.



3. [매일신문][매일춘추] 인문학으로 나를 찾는 책 쓰기

‘나는 누구인가’로 검색을 하면 이미 동명으로 출간된 책들이 쏟아진다. 2000년 이후로 더욱 두드러지는 이 현상은 ‘나를 찾고자’ 하는 욕구의 표출로, ‘나 상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말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출항과 동시에 사나운 폭풍에 밀려다니다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같은 자리를 빙빙 표류했다고 해서, 그 선원을 긴 항해를 마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긴 항해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랜 시간을 수면 위에 떠 있었을 뿐이다." 그의 말처럼 생존하기만 할 것인가, 내적으로 성장하는 인생을 살 것인가.



하버드대학에서 내세운 교양 교육의 목표는 ‘추정된 사실들을 동요시키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며 현상들 배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폭로하고, 젊은이들의 방향 감각을 어지럽혀 그들이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는 ‘독서와 글쓰기’에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겠다.



나를 찾기 위한 방편으로 책 쓰기를 권한다. 글을 쓰고 싶다는 그들을 만나보면 왜 글을 쓰고 싶은가에 대한 대답이 ‘나를 찾고 싶어서’인 경우가 다수이다. 실제로 자아 성찰적 글쓰기는 자신을 이해하는 나침반 역할을 하며 문학치료학이 나올 정도로 글쓰기는 자기 치료의 측면도 갖는다. 책을 쓴다는 것은 나의 지배가치를 이해하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찾아나서는 과정이다.



채사장은 자신을 성장시킨 책을 소재로 ‘열한 계단’이라는 인문학적 수필을 내놓았다. 그는 세상에는 익숙한 책을 선택하는 사람과 불편한 책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고 주장하며 개인적으로는 불편한 책을 읽을 것을 권장한다. 또한 ‘어떤 책 속에서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당신이 방금 새로운 대륙에 도착했다는 존재론적 신호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당신은 어떤가, 불편함을 즐기고 있는가.



어느 날, 필이 꽂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깊이 꽂아야 한다. 하지만 불만족스러운 무언가가 항상 나를 붙잡고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불편함을 견뎌보라. 그것이 바로 나를 찾는 길의 열쇠다. 작가는 어차피 아무나 하는 것과 아무나 하지 못하는 것 사이의 적정선을 걷는 것이다. 인생은 경험과 사유의 반복을 통한 깨달음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성장한다. 쓰면 쓸수록 자신만의 색깔이 나온다. 자신을 믿고 원하는 길을 가라. 책 속에 길이 있다.



4. [조선일보][일사일언] 말러와 친해지기

"말러는 역시 음악 하는 사람을 위한 음악인 것 같아. 나는 영 모르겠더라."


최근에 처음으로 말러 교향곡 1번을 들어본 친구가 말했다. 그는 음악을 전공한 아내에게 끌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연주회에 다닌다.



 "모르겠다는 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뭔가 형태를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냥 쾅 쾅 어쩌고 뿐이고, 곡이 끝나면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흠…. 나는 과연 말러를 아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었다. 음악을 안다는 게 뭔가 싶기도 하다. 당장 나도 오늘 연주하고 있는 곡을 잘 모른다. 내가 맡은 부분만 아는 상태로 연주하고, 끝나면 얼마 못 가서 잊어버리는 곡들도 많다. 그런가 하면 비교적 잘 아는 곡들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반복해서 연주하고, 듣고, 연습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작곡가의 한 작품을 알고 좋아하게 되면 그의 다른 작품도 찾아 듣게 되고, 그와 음악적 영향을 주고받은 다른 작곡가도 친숙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하다 보면 끝없이 넓은 음악의 세계 안에서 발걸음을 내디딜 방향을 가늠하는 자기만의 지도가 생긴다. 내 경우, 바그너와 브루크너의 작품을 몇 곡 연주하고 나니 말러가 훨씬 친숙하게 느껴졌다. 말러는 영 모르겠다는 친구도 다양한 음악을 접하다 보면 어느 날 자연스럽게 말러의 세계로 통하는 길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소리가 끝나자마자 사라지는 데다가 가장 추상적인 예술이라 당연히 기억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요즘은 녹음을 구하기가 쉬워져서 뭐든 다시 반복해서 들을 수 있다. 나는 모르겠으면 한 번 더 들어보고, 다음 기회에 또 한 번 들어본다. 익숙해지면 즐기게 되고,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5. [중앙일보][김호성의 왜 음악인가] 클래식 강국? 글쎄요

올해 서울의 공연장은 마치 수문장 교대식장 같다. 우선 베를린 필하모닉의 현재 수장인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필과 함께 11월 내한한다. 또 베를린필을 내년에 넘겨받을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는 다른 오케스트라와 함께 9월 한국에 온다. 베를린필의 현직·차기 지휘자가 서울에서 공연하는 것이다.



이번엔 런던심포니를 중심으로 보자. 수석 객원 지휘자인 대니얼 하딩이 지난달 런던심포니와 내한했다. 런던심포니를 2015년까지 이끌었던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12월 한국에서 공연한다. 내년부터 런던심포니를 맡을 지휘자는 11월에 오는 사이먼 래틀이다. 런던심포니의 전직·현직·차기 지휘자가 모두 한국에서 연주한다.

세계적 오케스트라의 미래가 궁금한 이들에게 서울 방문을 권해도 될 만한 해가 올해다. 뉴욕 필하모닉을 내년에 맡을 지휘자 얍 판 츠베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2020년부터 이끌 야닉 네제 세갱도 한국에 온다. 명문 악단인 로열 콘세르트 헤보의 2년차 상임 지휘자 다니엘레 가티의 실력이 궁금한 이도 11월 서울에 오면 된다. 한국은 정말 세계 클래식 중심지가 된 것일까? 한눈에 보면 확실히 그렇다. 거의 모든 세계 일류 오케스트라, 관계된 대부분의 지휘자가 서울에 온다. 뿌듯해하는 게 맞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오케스트라, 특히 유럽의 교향악단은 돈이 급하다. 지난해 말 독일 일간지 디벨트는 베를린필의 심각한 재정 상황을 보도했다. 시 예산과 도이체방크, 폴크스바겐의 후원을 받아왔지만 세 곳 모두 장기적인 지원 약속을 하지 못한다. 베를린필이 독일 정부 산하로 들어갈지 모른다는 추측이 나왔다.



이럴 때 그나마 믿을 만한 수입원이 해외 투어다.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지역의 순회 연주로 벌어들이는 돈은 오케스트라 수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국내 오케스트라 공연 기획자는 “세계적 오케스트라들의 한국 공연 제안 자체가 부쩍 늘었고, 웬만한 오케스트라는 개런티 협상도 원활해진 편”이라고 했다.

그들이 서울을 자꾸 찾는 건 기자회견장의 박제된 답변인 “한국 청중은 우호적이고 뜨거워서 좋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아시아 도시들은 그들의 중요한 재정 공급원이 돼가고 있다. 베를린필은 1878년 창립 후 1984년에야 첫 내한했다가 21년 후인 2005년 두 번째로 들어왔다. 그 후 12년 동안 세 번 내한했다. 세계 톱 오케스트라들이 점점 촘촘한 간격으로 한국을 찾는다. 한국이 클래식 강국이 됐기 때문일까? 글쎄, 현실은 생각보다 늘 냉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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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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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신문사설

 

​[세계일보]

1.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천막, 왜 법의 잣대 다른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광장에 불법 설치된 탄핵반대 텐트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예고했다. 박 시장은 어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능한 한 설득해 보고 여러 경고를 하고 그러고도 안 되면 행정 대집행이라든지 허용돼 있는 조치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제 철거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이다. 불법 텐트에 대한 이번 서울시 조치는 어느 때보다 신속하면서도 강경하다. 서울시는 이미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대표 권모씨 등 7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한 상태다.

탄기국 등 보수단체는 지난 1월21일 서울광장에 신고 없이 무단으로 텐트 40여개를 세워 놓고 불법 농성 중이다. 촛불집회에 대항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태극기집회 지휘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자진철거 요청과 행정 대집행 계고장 송부, 광장 무단 사용에 대한 변상금 부과 등 행정조치를 차례로 밟아왔다.

서울광장 불법텐트는 철거되는 게 마땅하다. “서울광장은 우리 시민 모두가 이용을 해야 될 그런 광장”이라는 박 시장 지적은 백번 옳다. 난민촌을 연상시키는 텐트들이 도심 한복판을 차지하는 건 미관상 볼썽사납다. 박 시장의 논리는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텐트 등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세월호 텐트 3개로 시작한 광화문광장의 텐트는 현재 65개로 불어났다. 박 시장은 서울광장 탄핵반대 천막을 광화문 세월호 텐트와 비교하는 시각에 대해 “세월호 천막은 중앙정부까지 서울시에 협조를 요청했던 사안으로, 정치적 조치가 아니라 인도적 조치였다”고 했다. 법 집행자로서 공정성을 잃은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한쪽에는 예외를 인정하고 다른 쪽엔 단속의 칼날을 들이댄다면 법치는 굴절되게 마련이다. 법치가 아니라 정치일 뿐이다. 백번 양보해 세월호 텐트가 인도적 조치라고 해도 장기간 광장의 한쪽을 점령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3년이 다 된 세월호 텐트는 감싸고 돌면서 한 달 조금 지난 탄기국 텐트는 당장 철거할 듯 나선다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광장을 점거한 세력들도 무엇이 국가와 사회를 위한 길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탄핵 찬반 양측은 그동안 충분히 제 목소리를 낼 만큼 냈다. 이제는 양쪽 모두 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주고 헌재의 결정을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



2. 증오와 분열 부추기는 막말 정치인 퇴출시켜야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어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그동안 소녀상에 대한 일본 폭거에 뒷짐만 지고 있더니 이제 대놓고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도 했다. 그의 비판은 “한·일 양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실천해야 한다”는 황 권한대행의 3·1절 기념사를 겨냥한 것이다. 4류 정치인에나 어울리는 부적절한 언행이다.

한·일 양국 정부가 2015년 12월 타결한 위안부 합의는 찬반 논란으로 여태껏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연말 부산 소녀상 설치와 일본의 대사 귀국 조치 등 반발로 한·일 관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실질적인 국정 책임자로선 이런 상황을 감안해 일본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려고 위안부 합의를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합의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고 반대하는 입장에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앞잡이’와 같은 치욕적 언사를 동원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용납될 수 없다.

상대를 향한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는 막말은 중독성과 전염성이 강하다. 또 다른 막말을 부르고 갈등과 분열을 부추긴다. 사회통합을 깨뜨리는 막말의 악순환은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암적 존재다. 친박계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그제 태극기 집회에서 “망나니 특검이 짐을 싸 집으로 가 정말 시원하다”고 했다. 그러자 김성태 바른정당 사무총장은 어제 “망나니 친박들은 태극기를 몸에 둘러서 안 된다”고 응수했다.

최근에는 대선주자들도 막말 대열에 동참하는 모습이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지난달 28일 “지금 민주당 1등 하는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을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비서실장이 그 내용을 몰랐다면 깜이 안 된다”고도 했다. 조직폭력배에게서나 들을 법한 험한 투의 발언으로 문재인 전 대표는 물론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욕보인 것이다.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홍 지사의 의도는 뻔하다.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인지도를 올리겠다는 계산이다. 자신의 존재감은 커졌을지는 몰라도 그가 소음을 쏟아낸 우리 사회는 어찌 되겠는가. 유권자들의 자세가 중요하다. 막말 정치인은 지지를 보내지도, 표를 주지도 않아야 한다. 막말 정치인은 정치권에서 반드시 추방해야 할 ‘퇴출 1순위’다.



[중앙일보]

3. 거리의 선동 정치인은 대통령 될 자격 없다

국가는 다양한 성향의 국민들로 이뤄져 있다. 보수나 진보 등 이념적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세대 간에도 생각이 다르고 지역별로 다른 기질을 보일 수 있으며 소득수준에 따라서도 소구하는 바가 상반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결코 우열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이념을 가졌든, 나이가 많든 적든, 어느 지역 출신이든, 재산이 많건 적건 모두가 국가가 굴러가기 위해 꼭 필요한 국가 구성원들이다.

따라서 국가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특정층의 지지를 받는다 해서 그들의 요구에만 매몰돼선 안 된다. 이념과 세대, 지역 간 갈등이 있다면 기꺼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쪽에 가서 설득하고 갈등을 완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대선 후보들마다 부르짖는 국가 결집이요, 국민 통합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후보들이 지지층만 편들고 다른 목소리를 외면하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런 편중을 개선하지 못해 끝내 국민 통합을 이뤄내지 못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성공한 대통령을 갖지 못한 이유가 다른 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엊그제 3·1절에 보여준 일부 대선주자들의 모습은 실망을 넘어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은 태극기가 둘로 갈린 참담한 3·1절에도 분열을 해소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분노를 부추기는 모습을 보였다. 거의 매번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일에도 광화문 광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어 SNS에 “적폐 청산을 위해 해를 넘기면서까지 촛불을 밝히고 있다”는 글을 올려 사실상 집회 참여를 독려했다. 함께 참석한 이재명 성남시장은 “기각해도 승복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헌법재판소 결정에 불복하겠다는 입장을 숨기지 않는다.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헌재가 탄핵돼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며 시위대의 분노를 조장했다.

대통령 탄핵 여부로 나라가 거의 둘로 쪼개진 지경인 데다 탄핵심판 이후의 재앙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태도는 대선후보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국민들이 반목하건 말건, 국가가 골병이 들건 말건 자신의 대선가도에 유리하기만 하면 된다는 얄팍한 정치 계산만 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국가와 국민 통합을 위해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런 점이 불안해 반대쪽 진영의 유권자들은 더욱 더 반대 쪽으로 똘똘 뭉치는 것이다. 그러니 대선이 끝나고 나서도 양쪽 진영으로 나뉜 극한 투쟁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가 누누이 주장하듯 시위 불참과 헌재 판결 승복을 선언하고 차분히 결과를 기다리는 게 국가를 위한 태도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유난히 돋보이는 대목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3·1절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고 대신 통합을 역설했다. 이들 후보가 당장은 지지율이 더 낮을지 몰라도 대선후보로서의 자격은 더욱 갖추고 있다는 것을 유권자들은 모르지 않는다.



4. 저출산 고령사회 전담부서부터 만들어야

최근 속속 발표되고 있는 인구통계는 우리의 암울한 미래를 앞서 보여준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겨우 40만 명 턱걸이(40만6300명)에 그쳤고, 혼인건수(28만1700건)와 사망건수(28만1000건)가 비슷해졌다. 올해 인구문제의 관건은 출생아 수 40만 명 지키기가 가능하냐는 것 정도이고, 사망건수가 혼인건수를 추월하고 고령 인구가 유소년 인구의 수를 앞서는 인구지진(Age-quake)은 예고된 대로 진행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올해를 기점으로 저출산·고령사회의 충격이 경제 전반에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해 왔다. 한국경제학회가 올해 처음 개최한 경제정책 세미나에서도 한국 경제 위기의 중요 요인으로 인구 고령화 현상을 논의했다. 이현훈 강원대 교수는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유럽과 북미의 사례를 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10%포인트 증가하면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3.5%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고령화 사회 자체가 경기침체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제 느슨한 인구정책으론 우리나라의 인구 위기를 넘을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최근 차기 정부에 대해 정부조직 안에 인구부총리 혹은 인구부 신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그동안 저출산·고령화 사회 정책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5년 저출산·고령화 사회 기본법을 제정한 이래 100조원 이상의 예산을 쏟아부었고,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설치했지만 정책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회의 한 번 열리지 않은 해가 있을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낮았고, 총괄부서가 없다 보니 부처마다 끼워넣기식 대책을 내놨다. 다양성은 있었지만 선택과 집중이 되지 않아 효율이 낮아진 것이다.



앞으로 인구문제가 우리 경제와 미래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강력하고 효율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독립 부처를 출범시키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향후 5년을 책임지겠다는 대선주자들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5. FTA 재협상, 사드 보복… 한국경제 또 샌드위치 되나

한국에 대한 미국·중국의 경제적 압박이 갈수록 태산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일(현지시간) 의회에 제출한 ‘무역정책 보고서’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USTR은 “2011~2016년 사이 미국의 대한 수출은 12억 달러 줄어든 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130억 달러 증가했고, 대한국 무역적자는 배 이상이 됐다”며 “이는 미국인들이 기대한 결과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공언해 온 한·미 FTA 재협상을 정부 차원에서 공식화한 셈이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28일 한국산 철강제품인 인동에 대해 예비판정의 두 배가 넘는 8.43%의 반덤핑 관세를 확정하기도 했다. 동맹은 동맹, 무역은 무역이라는 트럼프의 대외정책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우회 보복’도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중국 내 주요 온라인 쇼핑몰들이 잇따라 롯데관 폐쇄와 서비스 계약 해지에 나섰다. 지난달 28일 해킹으로 롯데그룹의 중국 홈페이지가 마비된 데 이어 어제는 중국발로 추정되는 디도스 공격으로 국내 롯데면세점 홈페이지가 3시간여 동안 다운됐다. 방송은 물론 인터넷에서 한국 드라마가 사라지고 연예인과 예술인 공연마저 막힌 상태다. 한국 상품에 대한 세관의 트집 잡기도 날로 심해지고 있다.

한국의 대중 교역 비중은 23%에 이른다. 대미 교역 비중도 12%다. 무역흑자도 주로 두 나라에서 나온다. 양국과의 관계 악화로 수출과 경제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어렵고 힘들어도 설득과 소통을 통해 마찰을 줄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상황 관리가 절실하다.



두 나라를 자극하거나 스스로 과민반응을 보이는 일은 삼가야 한다. 안보와 경제 부처가 긴밀히 협력해 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우리 목소리를 전할 창구를 넓혀야 한다. 정치권의 협력과 지원은 필수다. 대선주자들도 한·미, 한·중 관계는 물론 미·중 관계와 세계 정세까지 감안한 고도의 대응전략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서울신문]

6 박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승복하자고 호소해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이제 열흘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지금 상황으로는 둘로 갈라진 여론이 쉽게 합쳐질 것 같지는 않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5일 “최순실의 의견을 듣고 연설문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사과한 이래 두 차례 더 국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검찰과 특검의 대면 조사도 거부한 데다 헌재의 최종 변론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청와대 압수수색도 막았다. 지난달 27일 최종 변론에서는 변호인단이 대신 읽은 의견서를 통해 속내를 드러냈다. 미르·K스포츠재단, 최씨의 인사 개입 등으로 인한 탄핵소추안에 대해 “억울하다”, “모른다”며 국정 농단 자체를 부인했다.

이런 것들로 볼 때 박 대통령의 심정은 알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어쨌든 현재의 탄핵과 국론 분열 상황은 박 대통령이 촉발한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국가의 앞날을 먼저 생각해 쪼개진 여론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게 국가 지도자로서의 도리다. 도리어 지지자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 분열을 조장하는 듯한 행동은 대의가 아니다.

광화문 집회 현장에 나가서 국론 분열이 어떤 상황인지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물론 박 대통령도 TV를 통해 작금의 사태를 봤을 것이다. 탄핵 기각,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은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 “탄핵당하면 내란 상태로 들어갈 것”이라는 등의 섬뜩한 협박과 선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관들마저 위협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일부 의원들은 탄핵을 찬성하는 쪽을 “친북 좌파”, “종북 세력”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박 대통령은 늘 법치를 강조해 왔다. 법치주의란 법의 심판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통령 자신이 임명장을 수여한 재판관들의 심판마저 부정하는 것은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다. 수사나 재판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피의자나 피청구인에게 보장된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헌재의 심판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면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고 만다.

박 대통령은 설혹 자신이 헌재의 심판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억울한 심정이더라도 지지자들에게 결과에 승복하자고 호소하고 설득해야 한다. 승복과 무죄 주장은 다른 문제다. 박 대통령의 한마디는 ‘태극기’ 쪽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촛불’ 쪽 지지자들이나 정치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겉으로는 승복을 외치면서 사실은 군중을 선동하는 여야 정치인들도 동조할 것이다. 헌재의 심판 결과와 관계없이 그래도 국민 앞에 마지막 희망을 보여 준 대통령으로 기억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법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잘되는 세상을 소망한’ 대통령으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다.



7 법 감정 무시한 아동·청소년 성폭행 32% 집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성폭행을 저지른 범죄자 10명 중 3명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가족부가 2015년 아동과 청소년 대상 성범죄로 확정 판결을 받은 신상 정보 등록 대상자를 분석한 결과다. 성폭행범 733명 가운데 최종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례는 32.3%나 됐다. 이 수치는 2013년 36.6%였다가 해마다 미미하게나마 감소 추세이기는 하다. 하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의 죄질을 고려하면 여전히 용납하기 어려운 처벌 수준이다.

조사에 따르면 성범죄 피해자의 약 23%가 13세 미만이었다. 이 어린 피해자들의 절반 이상이 평소 잘 아는 사람한테서 범행을 당했다. 여러 설문조사에서 아동 성폭행을 우발적인 살인보다 더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는 대답은 변함없이 압도적으로 많다.

아동 성범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다. 인간의 삶을 한순간에 송두리째 짓밟는 만행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선진국들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성범죄에 물렁물렁한 처벌을 하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새 양형 기준을 만들기도 했으나, 국민의 법 감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솜방망이 처벌을 지켜본 사람들이 “제 가족의 일이었어도 저런 판결을 했겠나”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재판부에 쏟아붓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연예기획사 대표가 15세 여학생을 수차례 성폭행해 임신하게 했는데도 지난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해 시민사회를 들끓게 한 사건은 최근의 대표 사례다.

아동과 청소년을 노린 성범죄는 해마다 3000건 넘게 발생하고 있다.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자는 취지에서 범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응책이 꾸준히 나오고는 있다. 법으로도 형량의 수위를 높여 놨지만 이전 판례 등을 의식해 소극적인 판결로 마무리되는 사건이 여전히 너무 많다. 재판부의 관대한 처분이 아동 성범죄를 뿌리 뽑지 못하는 큰 패착으로 지적된다.

검찰은 여성과 아동 대상의 폭력 범죄는 초범이라 하더라도 선처하지 않고 기소하기로 했다. 실질적인 반성을 유도하고 추가 범죄를 막기 위한 대책이다. 검찰의 이런 노력만으로 사회적 약자를 유린하는 악성 범죄가 줄어들기는 어렵다. 성범죄만큼은 반드시 엄단하겠다는 의지가 사법부 전반으로 확산돼야 한다.



8 수출 증가세 내수 살릴 밑거름 되길

지난달 수출 실적이 전년 동기보다 20.2% 늘었다고 한다. 5년 만의 가장 높은 증가율로 4개월 연속 상승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승세가 석 달 이상 지속되면 의미 있는 변화로 본다. 수출만큼은 부진에서 벗어나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 경제는 수출과 내수 모두 최악의 곤경에 처해 있었다. 청년실업률이 크게 높아지면서 미래의 희망조차 가물가물해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조차 깊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축(軸)인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은 가뭄의 단비만큼이나 반갑다.

사실 수출은 지난 1월부터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본격적인 상승세에 접어들었는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반도체 수출이 64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낸 데 따른 일시적 반등이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2월 수출 실적은 질적으로도 다르다.



13개 주력 품목 가운데 10개 품목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가운데 석유화학이 2014년 10월 이후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부진에 빠져 있던 자동차도 증가세로 전환됐고, 화장품·의약품·농수산식품도 힘을 냈다고 한다.

수출이 반등세를 보일수록 다른 한 축인 내수가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지난 1월 기준으로 수출 증가와 일정 부분 궤를 같이하는 전(全) 산업생산이 1.0% 늘어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소비를 뜻하는 소매판매는 전달보다 2.2%나 감소한 결과를 보였다. 3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 11월과 12월에도 각각 0.3%와 0.5%가 감소한 데 이어 1월에는 4배 가까이 확대된 것이다. 수출과 내수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데 경기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다.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에 따른 경제적 요인과 최순실 사태에 따른 사회적 요인이 맞물리면서 경쟁국보다 큰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재계는 움츠러들지 않고 과감하게 추진력을 발휘하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우리 경제를 짊어지고 있다는 책임감을 갖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수출 증가세가 소비 진작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에 훈풍이 다시 불도록 특히 대기업이 앞장서야 한다. 미뤄 뒀던 신입 사원 채용 계획을 다시 세우고 투자도 획기적으로 늘리는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그것이 최순실 사태로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는 길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9. 중국 의존도 못 줄이면 한국 얕보는 횡포 계속된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이 본격화되고 있다. 예견된 일이다. 시진핑 주석이 공개적으로 '반대'를 밝혔기 때문에 1인 독재 체제의 특성상 상당 기간 보복이 이어질 것이다. 롯데면세점 홈페이지가 중국발(發)로 추정되는 해킹 공격에 다운되고, 중국의 온라인 쇼핑 사이트들은 검색어에서 '롯데'를 차단했다, 한류(韓流)를 규제하는 '한한령(限韓令)'이나 한국산 제품 통관 차별, 전세기·비자 규제 같은 이른바 '준법 보복'도 시작됐다. 공산당 선전기관들은 '단교(斷交)에 준하는 제재'를 주장하며 "한국 기업들을 벌(罰)해서 교훈을 주자"고 불매 운동을 선동하고 있다. 정상적인 국가 관계에선 있을 수 없는 감정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다.


현 지구 상에서 중국은 정치적 목적으로 노골적 경제 보복을 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센카쿠섬 분쟁 상대인 일본에 희토류(稀土類) 수출 중단으로, 반체제 인사에 노벨상을 준 노르웨이엔 연어 수입 금지로 보복했다. 대만·프랑스·필리핀·몽골 등도 비슷한 이유로 중국의 보복을 당했다. 중국의 보복 외교는 이미 악명이 높다.


우리를 향한 사드 보복은 더 집요할 가능성이 있다. 시진핑이 직접 나서 체면이 걸린 데다 단순히 사드 반대를 넘어서 이 기회에 한국을 길들인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있는 대로 다 건드리겠다고 작정했을 수 있다. 다른 기업도 공격할 것이다. 대국(大國)이지만 삼류에 불과한 국가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이웃을 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중국의 협박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사드 배치는 북핵·미사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취하는 방어적 조치이며 이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고유한 주권이다. 원칙을 지키면 일시적 곤란을 겪을 수 있으나 결국 옳았던 것으로 판명 나는 법이다. 중국이 이러는 것도 한국을 '원칙 없이 흔들리는 나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두고두고 화근이 된다. 사드 배치를 조속히 완료해 가동해야 한다.


중국의 보복으로 한국 경제가 입을 피해는 상당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견디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일부 중국 미디어도 지적했듯이 한국 기업을 제재하면 중국에도 손해다. 중국은 한국에서 부품·소재를 들여다 가공해 재수출한다. 중국 안에 설립된 2만3000여개의 한국 기업이 만들고 있는 일자리도 있다. 중국에 오는 외국 여행자 중에도 한국인 비중이 12%로 가장 많다. 중국도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작지 않다.


중국의 보복은 정치적 이유로 무역을 제한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 중국 측은 정부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뻔한 거짓임을 모두가 안다. 국제사회는 중국을 지켜보고 있으며 자신들도 언제든 중국에 당할 수 있다고 느낄 것이다. 중국의 보복은 하면 할수록 스스로에게도 부담이 된다.


중국은 사드가 아니라도 걸핏하면 경제 보복 카드로 위협할 것이다. 한국이 자신들 시장(市場)에 의존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 수출의 25%와 외국 관광객의 47%를 중국에 의존한다. 우리는 이제서야 중국이란 나라에 근본적으로 불투명한 정책과 정치 리스크가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그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


중국 의존도를 지금부터 차근차근 줄여나가야 한다. 연어 수입 제한 보복을 당했던 노르웨이는 유럽연합(EU) 등의 신시장을 개척했다. 일본 역시 중국 비중을 줄이고 동남아·인도 등으로 다변화하는 정책을 폈다. 대만도 마찬가지다. 반면 우리는 2000년 중국산 마늘 분쟁 때 그렇게 당하고도 중국 위주 전략을 수정하지 못했다.


중국 시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 이상 매력 덩어리는 아니다. 인건비가 급등한 '레드 오션'으로 바뀌었다. 이미 화장품 업계는 중국 대신 중동과 동남아 시장 쪽으로 눈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심각한 '중국 리스크'를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 한국을 얕보는 중국의 횡포는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



[동아일보]

10. 한미 FTA 재검토한다는 미국에 죽은듯 엎드린 정부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 방침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USTR는 1일(현지 시간) 공개한 ‘2017년 무역정책 의제’에서 “한미 FTA로 인해 미국의 대한(對韓) 무역적자가 2배 이상 증가했고 이는 미국인이 기대한 결과가 아니다”라며 한미 FTA를 포함한 기존 협상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때부터 예견돼 온 ‘미국 우선주의’의 보호무역 정책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USTR가 한미 FTA ‘재협상’을 직접 언급하거나 당장 재협상을 요구한 건 아니라며 의미를 축소했지만 안일한 대응이다. 336쪽에 이르는 방대한 USTR 보고서를 보면 미국이 FTA재협상 요구안에 대한 검토를 이미 끝냈다고 판단해야 옳다. USTR의 무역정책 의제가 매년 나오는 연례 보고서라 해도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며 무대응 전략으로 나가겠다는 것은 공직자의 자세를 의심케 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9일 국회에서 “현재 실무 레벨에서 한미 FTA가 양쪽에 다 윈윈이라는 점을 설득하면서 대응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거짓이었단 말인가. 

유 부총리는 트럼프 정부 출범 전인 1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선제적으로 알리기 위해 방미했으나 당선자 측 관계자를 만나지 못한 채 귀국한 바 있다. 경제 컨트롤타워가 제 역할을 못 해 ‘무대응이 상책’이라는 황당한 방침을 강조하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유 부총리가 17, 18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을 만난다 해도 한미 FTA 재협상 문제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할 건지 궁금하다.

미국의 정책 변화를 기화로 한국은 진작부터 서비스업으로 성장 동력을 키우고 노동 개혁으로 인적자원의 이동을 촉진해야 했으나 정부의 무능과 정치권의 발목잡기 때문에 실기(失期)한 측면이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미 FTA 재협상 시 2017∼2021년 수출 손실 269억 달러, 일자리 손실이 24만 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는 이제라도 여러 부처에 흩어진 통상업무를 총괄하는 범정부 조직을 만들어 시나리오별로 치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이 사드 배치 결정으로 한미동맹에 기여한 점을 강조하는 등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세계일보][이태형의 우주여행] 제2의 지구 어떻게 찾았을까

지난 2월 말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지구에서 약 39광년(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날아가는 거리) 떨어진 작은 별에서 지구와 비슷한 일곱 개의 행성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하나의 별에 제2의 지구가 될 가능성이 있는 행성이 일곱 개나 존재한다는 것은 천문학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대단한 발견이었다. 지구 지름은 태양의 10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수십광년 떨어진 곳에서 어떻게 지구 크기의 행성을 일곱 개나 발견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행성이 지구와 비슷한 환경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태양계 밖에서 지구 크기의 외계 행성을 직접 관측할 수 있는 망원경은 아직 없다. 이번에 발견된 행성은 트라피스트-1이라고 불리는 작고 희미한 별의 둘레를 돌고 있다. 트라피스트-1은 태양 질량의 약 8%밖에 안 되는 붉은색의 작은 별로, 태양보다는 목성 크기에 더 가깝다. 지구에서 볼 때 행성이 별의 앞을 지나게 되면 별빛을 살짝 가리게 된다. 이때 별빛이 흐려지는 정도를 분석하면 행성의 겉보기 크기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별빛이 흐려지는 주기를 측정하면 행성의 공전 주기를 알 수 있다.

별에 가까운 행성일수록 공전주기가 빠르기 때문에 공전주기를 알면 별과 행성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 행성의 실제 크기는 행성의 겉보기 크기와 별까지의 거리를 통해 알게 된다. 행성이 움직이는 동안 중심의 별도 행성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흔들린다.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동안 지구가 달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흔들리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행성의 질량이 클수록 별이 흔들리는 정도는 더 커진다. 결국 행성의 질량은 별이 흔들리는 정도를 정확히 분석해 알아내게 된다.

이렇게 밝혀낸 행성의 질량과 크기를 통해 행성의 밀도를 계산하고, 그 밀도를 기초로 행성의 상태를 알아낼 수 있다. 이번에 발견된 행성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지구처럼 딱딱한 암석으로 이뤄져 있고, 별로부터의 거리로 봤을 때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온도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행성은 별에 가까운 순서로 b, c, d, e, f, g, h의 알파벳 이름이 붙여진다. 트라피스트-1b가 가장 안쪽의 행성이고 트라피스트-1h가 가장 바깥 행성이다. 

그렇다면 이 일곱 개의 행성이 모두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곳일까. 아직까지 밝혀진 것은 없다. 만약 이들 행성에 대기가 있다면 별빛이 대기를 통과할 때 대기 성분에 의해 빛의 일부가 흡수된다. 따라서 대기를 통과한 별빛의 아주 작은 변화를 분석할 수 있다면 행성 대기 속의 수증기와 산소, 메탄가스 등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허블 우주망원경을 포함한 거대한 망원경이 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이들 행성에 물과 적당한 대기가 있다고 해도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그곳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나사의 이번 발표를 통해 우주에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무수히 많고, 그 어딘가에 어떤 형태로든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먼 훗날 인류는 태양계를 벗어나 더 먼 우주로 나아갈 과학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지구에 살아야 하고, 따라서 지구를 최대한 잘 가꾸고 보존해야 한다.



2. [경향신문][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나 자신을 아는 것

“자기 자신을 시험에 부치지 않는 삶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없다.” 소크라테스는 앎과 삶을 일치시키고자 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스스로를 시험에 처하게 하는 것이었을 테다. 이는 그 유명한 델포이 신전의 전언, “네 자신을 알라”의 구체적 지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를 시험에 처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루소의 말처럼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그렇게 따르기 쉬운 격언이 아니다. 루소는 <고백>을 쓰면서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여러 번 토로한다. 사실 안다고 믿는 자기 자신은 연출되거나 위장된 자기 자신일 확률이 높다. 우리는 우리이길 원하는 나를 나라고 믿는다. 매일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 속에서는 자신을 돌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어쩌면 스스로 시험을 자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릇 사람이란 일상의 반복을 행복이라 여기며 지내지 않던가? 과연 누가 굳이 닥치지 않은 위험을 연상하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불편을 상상해서 자신을 고민하려 할까?



영화 속의 많은 주인공들이 삶의 위기에서 출발하는 이유도 아마 여기 있을 것이다. <비긴 어게인>의 남자 주인공 댄(마크 러팔로)도, <러덜리스>의 주인공 샘(빌리 크루덥)도 그렇다. 그들은 삶이라는 항해에서 처참한 난파선이 된 채 관객들과 만난다. 댄은 음악계에서 거의 추방된 상태이고, 샘은 예상치 못했던 아들의 사고로 삶의 중심을 잃어 버렸다. 최근에 개봉한 한국 영화 <싱글라이더>의 주인공 강재훈(이병헌)도 삶의 벼랑 끝에 서 있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남편 그리고 꽤나 성공적인 직장인으로 살았던 그는 그동안 쌓아왔던 삶 전부가 거절되는 시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세 주인공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그들이 성공한 사회인이기 이전에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새인가 아버지가 가족 내 구성원이 아니라 일종의 직업이 된 것은 아닌가 싶다. 결혼도 선택, 출산도 선택이 된 게 특별한 일이라기보다 보편적 상황이 되었음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어느새, 아버지가 어느 정도 나이가 찬 남성에 대한 일반적 호칭이 아니라 특수한 처지를 가리킬 수 있는 언어가 되었다. 어쩌면, 한 이십년 후쯤이면 길에서 만난 중후한 장년을 무턱대고, “아버님”이라고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싱글라이더>는 아버지라는 직업을 가졌으나 미처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증권 회사 지점장으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중요한 것은 돈과 숫자였다. 얼마나 많은 투자자를 모으고, 얼마나 큰 이익을 얻는지, 숫자로 확인되지 않는 것들은 그에게 무의미하거나 쓸모없는 것에 불과했다.



당연히 가족은 숫자로 환산될 수 없다.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내가 얼마나 필요한지의 문제는 결코 증명 가능한 숫자나 교환 가능한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다.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가치이기에 그에게 가족은 점점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고 따라서 그다지 생각나지도, 그렇다고 마음이 쓰이지도 않는 대상이 되고 만다. 그는 아버지이긴 했으나 아버지는 아니었던 셈이다. 

결국 삶의 중대한 위기에 봉착하고 나서야 그는 겨우 가족을 둘러본다. 아니 엄밀히 말해 그제서야 겨우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자신의 가치와 의미, 위치를 가족 가운데서 찾아보게 된다. 자아는 발견되어야 소유될 수 있다. 그리고 참 역설적이게도 자아를 갖게 되면 그 순간부터 자아는 요령부득의 못 믿을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의 안락을 위해 최대한 의심의 순간을 미룬다. 그러니 우리는 대개 너무 늦게 자신을 돌아본다. 

나이가 마흔이 넘도록 이십년이 넘게 매달 월경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정확한 날짜를 몰라 허둥지둥하기 일쑤다. 예고된 변화이고 반복된 신체적 반응이지만 아직 그조차도 미지수에 가깝다. 이러다 덜컥 폐경이 온다고 해도 아마도 그때도 나 자신에게 속았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신체도 그런데 영혼과 정신이야 어떨까? 반복도, 패턴도 그렇다고 예고나 지표도 없는 영혼으로서의 나란 얼마나 미지수이던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알 수 없는 게 더 많고, 가장 알 수 없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과연, 나란 사람은 어떤 존재일까? 

나 자신을 알고 싶지만 그것이야말로 늘 만시지탄일 듯싶다. 사람은 살면서 자기 자신을 알아야만 하지만 결국 너무 늦게 자신을 알려 하거나 알고 나면 대개 너무 늦다. 아니 너무 늦은 순간에도 여전히 스스로를 모르는 건 아닐까 싶다. 문학과 영화, 철학이 삶에 어떤 힘을 준다면 그건 다름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위험에 처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편안한 이 삶 속에서 닥쳐서야 느끼게 되는 그런 수동적 위험이 아니라 상상으로 미리 닿아 볼 수 있는 개연적인 위험. 닥치지 않은 위험을 상상해 그 가운데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만이 지닌 능력이 아닐까? 너무 편안하다면 오히려 불안해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건 우리가 무엇인가 괄호에 넣은 채 잊고 산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3. [한겨레][문화 현장] 곤잘레스-토레스와 로스

벽에 나란히 걸린 두 개의 원형 시계가 정확히 같은 시간, 분, 초를 가리키며 움직인다. ‘무제(완벽한 연인들)’(1987-1990)는 쿠바 태생의 미국 남성 작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가 그의 연인 로스의 투병 기간 동안 만든 작업이다. 두 개의 시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어긋나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키게 될 것이고, 둘 중 하나는 결국 먼저 멈추게 될 것이다. 연인의 죽음과 이별에 대한 작가의 절망과 두려움을 엿볼 수 있다.



다른 작업 ‘무제(로스모어 II)’(1991)는 로스가 죽기 직전의 몸무게인 34㎏만큼의 사탕을 갤러리에 쌓아 놓고, 관객이 가져갈 수 있게 설치해 놓은 것이다. 사탕은 같은 무게만큼 계속 다시 채워진다. 로스모어(Rossmore)는 곤잘레스-토레스와 로스가 함께 살던 아파트가 있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제 거리 이름으로, 문자 그대로 더 많은 로스(more Ross)를 의미한다. 사탕의 포장지는 로스모어 거리의 잔디색으로, 항상 푸른 초록이다. 곤잘레스-토레스의 로스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절절한 그리움이 드러난다.



‘무제’(1991) 역시, 로스와 함께 자고 일어난 빈 침대의 사진을 거리의 빌보드에 크게 설치한 작업이다. 텅 빈 하얀 침대 위에 눌려 있는 베개와 흐트러진 이불이 로스의 부재와 그로 인한 작가의 깊은 상실감을 표현한다.곤잘레스-토레스의 대부분의 작업은 연인 로스에 대한 것으로, 자전적인 요소를 지니지만 자폐적이지 않다. 둘의 시간은 멈췄지만, 시계는 새롭게 맞춰져 관객의 현재에서 다시 돌아간다.



로스는 죽었지만, 그의 몸을 상징하는 사탕은 관객들 입속에서 녹아 그들 몸의 일부로 흡수된다. 두 연인의 침대는 매번 다른 도시의 빌보드판에서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사라지거나 멈추는 작업의 재료들은 죽음의 속성을 닮았지만, 다시 채워지고, 옮겨지고, 새롭게 설치되면서 다시 부활하고 계속 순환한다. 작품의 내용과 형식, 작가의 의도가 잘 맞물려 있어 단단하다. 곤잘레스-토레스의 로스를 향한 깊고 따뜻한 감정은 더 이상 작가 개인의 것에 머물지 않는다. 이들의 사랑은 관객의 현재에서, 개별적 순간으로 경험되고 먹먹히 공감된다.

그런데 곤잘레스-토레스는 동성애자이다. 따라서 그가 그렇게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로스는 동성의 남자 애인이다. 로스는 에이즈로 1991년에 사망했고, 곤잘레스-토레스도 5년 뒤에 죽었다. 작가의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은 작업에 정치적인 의미를 추가한다. 이들의 사랑에 대한 공감은 동성애 관계에 대한 이해의 거리를 좁히고, 이들이 받아온 차별과 소외를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 동성애 차별에 대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반대 측에 이용당하고 빼앗길 것이 없다. 그래서 더 설득의 가능성을 갖는다.

로스를 향한 곤잘레스-토레스의 시린 그리움 앞에서, 이들의 사랑이 이성 간의 것이 아니라서 거짓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들이 동성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앞에서 느꼈던 공감과 감동이 부정되는가? 그래서 이 연인들은 배척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나는 나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둘의 사랑 앞에서 고약한 부정의 말을 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어서 이 지겨운 어두움이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환한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가 생각하는 환한 세상은 나의 가치관만 옳다고 고집부리며 남의 생각과 사랑을 배척하고 차별하는 세상이 아니라, 남의 다름과 감정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곤잘레스-토레스와 로스가 봤던 하늘의 따뜻한 빛을 ‘무제(환영幻影)’(1991)와 함께 느낄 수 있는 그런 사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차별 금지법에 대해 ‘나중에’라는 대답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함께’라는 대답을 듣고 싶다.



4. [매일경제][매경춘추] 그대 앞에 봄이 있다

사무실 창문 바깥으로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겨울 내내 앙상한 몸으로 찬바람을 맞고 있던 나무에 어느새 물이 올라왔다. 새롭게 손을 내민 가지에는 벌써 파릇한 순이 돋아났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새순이 돋기까지 나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만일 나무가 지난겨울의 힘든 시간을 견뎌내지 못했다면 이 봄도 맞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무에서 새로 나온 가지는 인내와 희망의 상징이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랜 경기침체, 청년실업, 양극화에 정국 불안까지 겹쳐 서민들의 삶은 날로 팍팍해지고 있다. 지방행정의 일선에서 그동안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나 양재R&CD특구 조성과 같은 굵직한 현안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올 한 해는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산 정약용은 혹정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체험하고 목민관에게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당부한 바 있다. 다산이 특별히 돌봐줄 것을 당부한 대상에는 양로(養老), 자유(慈幼), 관질(寬疾) 등이 포함된다. 요즘 말로 하면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 지속적인 보호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이들, 신체적으로 제약이 있는 장애인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다산의 당부는 서초구의 여러 정책에 녹아들어 있다. 효도 간호사, 늘봄 발달장애인 카페, 반딧불센터, 모범어린이집, 느티나무쉼터, 안전 어린이공원 사업 등이 그것이다. 점심 저녁시간에는 영세 음식점 앞 주차단속을 하지 않는 것도, 청탁금지법 이후 시름이 가득한 화훼농가를 위해 '1Table1Flower' 운동을 하고 있는 것도 다산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사업들이라고 하겠다. 한 사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다시 창밖의 나무를 바라본다. 긴 겨울을 견딘 나무가 말을 건네는 듯하다. 희망찬 봄을 맞이하려면 추운 겨울을 견뎌내라고. 아무리 힘들어도 서로 보듬고 위로하며 기다리다 보면 봄은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 나무들이 두 팔을 쭉 뻗고 심호흡을 한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5. [한국경제][천자 칼럼] 라이언 중사

“라이언의 업적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는 전사이며 영웅이었습니다. 그의 친구, 그의 국가, 우리의 자유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라이언을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대테러 작전 중 전사한 윌리엄 라이언 오언스 중사의 이름을 일곱 번이나 불렀다. 라이언은 최근 예멘에서 알카에다 격퇴 작전을 벌이다 목숨을 잃은 미 해군 특공대원(네이비실). 트럼프는 맏딸 이방카 옆에 앉은 라이언의 부인 캐린을 소개한 뒤 “누구도 제복을 입고 미국을 위해 싸우는 사람보다 용감할 순 없다”며 두 차례나 감사의 뜻을 전했다.

지켜보던 상·하원 의원들과 군 수뇌부, 대법관, 청중 모두가 벌떡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기립박수는 2분 넘게 이어졌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듯 감정을 추스르던 캐린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미국 언론은 “정치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라며 “트럼프가 (진정한) 대통령이 됐다”고 호평했다. 트럼프와 사사건건 충돌했던 공화당 1인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환상적”이라며 극찬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트럼프는 “우리는 하나의 목적지를 가졌고, 같은 피를 나눴고, 같은 국기에 경례를 한다”며 모두가 하나가 돼 분열의 위기를 극복하자고 호소했다. “이제는 우리의 가슴을 채울 꿈들을 공유하고 희망과 꿈을 행동으로 전환할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66분간의 연설 내내 그는 ‘함께’ ‘통합’이란 단어를 반복했다.

CNN 긴급조사에서 시청자의 78%가 “아주 좋았다”고 답했다. 트럼프의 지지도가 40% 안팎에 머물던 점을 감안하면 두 배로 뛴 셈이다. 국방예산을 10% 늘려야 한다고 역설한 대목에서도 자연스레 호응이 이어졌다. 그가 ‘가짜 뉴스’라고 맹비난한 민주당 성향의 ‘동부 언론’까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모처럼 만의 호평에 트럼프도 자신의 트위터에 “생큐”라며 화답했다.

격변기의 갈등을 ‘감동’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는 그의 정치력을 보면서 우리를 돌아본다. 2002년 제2 연평해전 영결식뿐 아니라 이후 기념식 때도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던 게 우리다. 2012년이 돼서야 현직 대통령(이명박)이 처음으로 참석했다. 서해교전이라는 표현이 연평해전으로 격상된 것도 그때였다. 그동안 전사자와 가족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의회 연설에서 라이언을 호명하며 “위대한 미국을 함께 만들자”고 호소하는 트럼프가 더욱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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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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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준단교’까지 거론한 이성 잃은 중국 언론

롯데가 국방부와 주한 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부지를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중국 관영 매체들이 한국 상품 불매 운동 등 경제 보복을 촉구하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한국과의 ‘준(準)단교’까지 거론하며 강경 대응을 촉구했고 롯데는 물론 삼성과 현대 등 한국의 글로벌 기업까지 불매 운동 대상으로 삼겠다는 위협성 보도도 서슴지 않는 분위기다.

중국 언론들의 공세에는 주로 당·정부 기관지들이 앞장서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사드 배치로 한국 자신을 한반도의 화약통으로 만들었다. 중국의 전략 안보 이익을 함부로 침해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인민일보의 소셜 미디어 매체인 ‘협객도’는 “한·중 관계는 단교에 준하는 가능성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협박성 사설을 실었다.

민족주의 성향을 노골화하고 있는 환구시보 역시 “롯데를 공격해 한국을 벌하는 것밖에는 중국이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이 없다”고 전제한 뒤 한국산 상품 불매 운동을 촉구했다. 환구시보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한술 더 떠 “중국은 삼성과 현대의 가장 큰 시장이며 한·중 갈등이 지속되면 이들 기업도 조만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한국 내 기업들을 조준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최근 사드 관련 질문을 받고 “중국에서 외국 기업의 경영 성공 여부는 최종적으로 중국 시장과 중국 소비자에 달려 있다”고 밝힌 것은 롯데에 대한 불매 운동을 용인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중국 정부의 통제하에 있는 주요 언론들을 동원해 경제 보복을 선동하는 것은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중국의 경제 보복은 언론 공세에 그치지 않고 현실화되고 있다. 이른바 ‘준법 규제 보복’을 통해 한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난 것이다. 한류 확산을 막는 한한령(限韓令)이나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차별, 한국 관광 통제, 대중 수출 통관 지연 등이 대표적이다. 한반도 내 사드 배치는 주지하다시피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의 국익과 국민을 지키기 위한 자위권을 발동한 것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기에 앞서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김정은 정권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중국의 잘못된 경제 보복들은 결국 한국 국민의 반중 정서를 초래해 장기적으로 양국 관계를 훼손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2. 새로운 길 선택한 삼성, 글로벌 도전 이겨 내야

삼성이 그룹의 두뇌이자 핏줄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다. 최순실 사태로 인한 그룹 이미지 실추와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에 대한 책임을 지고 최지성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차장(사장) 등 핵심 수뇌부 퇴진 선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점쳐졌던 인적 쇄신도 미전실 팀장 전원 퇴사라는 예상치 못한 카드를 꺼냈다. 이렇게 극약 처방을 하지 않고서는 고치는 시늉만 했을 뿐 속은 그대로라는 호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뉴삼성’의 출발선에 설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 전 계열사의 전략·기획·홍보·인사지원·법무·경영진단 등의 기능을 담당했던 컨트롤타워를 해체했다는 것은 삼성이 선장 없이 항해에 나섰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새로운 길로 들어선 삼성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중심으로 자율 경영에 나선다고 한다. 삼성의 변화는 이미 예고됐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에 참석해 이병철 창업주 이래 58년간 그룹을 움직였던 미래전략실 해체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특히 한두 사람 잘라서는 근본적인 변화를 꾀할 수 없다고 보고 ‘이병철-이건희 체제’를 유지해 준 그룹 작동 시스템 자체를 바꾼 것이다. 이러한 삼성의 도전에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총수 1인 지배로 인한 문제점도 없진 않았지만 그룹 차원의 대규모 신사업 진출, 장기 미래 투자, 효율 경영 등 장점도 적지 않았다. 사실 재벌은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를 현재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공신이며, 다른 나라의 글로벌 기업도 우리의 이런 장점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인 동시에 연매출 400조원에 이르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다. 이런 삼성이 정치적 사건에 연루돼 휘청대거나 좌초하는 것을 바랄 국민은 없다고 본다.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이 급변하고 있고, 삼성을 끌어내리려는 글로벌 경쟁자들의 거센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그룹 컨트롤타워 해체가 삼성의 의지만은 아니겠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이를 계기로 삼성은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삼성은 미전실 해체와 함께 정부와 정치권의 소통 통로였던 대관 업무까지 폐지했다. 이 부회장의 구속 등 삼성의 불행이 정경유착에서 비롯된 만큼 앞으로는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이 각자의 길을 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 시련과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초일류 삼성의 밝은 모습을 기대해 본다.



[동아일보]

3. 보수 품격 떨어뜨린 홍준표, 제 허물부터 보라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지난달 28일 “지금 민주당 1등 하는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말한 데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홍 지사는 “바로 옆에 있던 비서실장이 그 내용을 몰랐다면 (대통령)감이 안 된다”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에 대해선 “2등 후보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고 나왔다”고 비난했다. 거친 표현도 듣기 거북하지만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홍 지사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1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홍 지사는 지난달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마자 대선 출마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1심에선 징역 1년 6개월의 유죄로 나왔고, 검찰이 곧바로 대법원에 상고해 홍 지사는 지금 피고인 신분이다. 홍 지사로선 자신의 출마 자격 시비를 의식해 문 전 대표와 안 지사의 ‘자격’을 거론했을지 몰라도 대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 단언하기 어렵다. 홍 지사가 문 전 대표나 안 지사보다 도덕적, 법률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기 힘든 이유다. 

홍 지사가 왜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난 직후 ‘막말’을 쏟아냈는지 경위도 궁금하다. 인 위원장이 홍 지사에게 당원권을 회복시켜 대선 출마의 길을 터주기 위해서 만났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원은 기소와 동시에 당원권이 정지된다’고 당헌에 규정해 놓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당원권이 정지된 홍 지사는 현재 당의 공천을 받아야 하는 대선 후보도 될 수 없다. 

홍 지사가 보수 세력의 대안으로 나서려면 먼저 자신의 허물부터 말끔해진 다음이어야 할 것이다. 보수가 중시하는 가치는 예의와 품격, 도덕성이다. 홍 지사가 거친 말로 관심과 인기를 끌 수 있을지는 몰라도 보수의 가치까지 훼손해선 안 될 일이다.



4. 탄핵심판 이후의 나라 위한 행동에 나설 때다

대한민국은 어제 ‘태극기’와 ‘촛불’로 두 동강이 난 채 98주년 3·1절을 보냈다. 약 한 세기 전 일제에 맞서 온 겨레가 분연히 하나가 돼 독립을 외친 뜻깊은 날에 후손들이 대통령 탄핵을 놓고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어느 쪽이라도 나라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이었다고 믿고 싶다. 충돌이나 불상사 없이 행사가 끝난 것도 다행스럽다. 

“오등(吾等)은 자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는 기미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기독교, 천도교, 불교에서 각 16, 15, 2명이 참가했다. 이들이 종교 지역 이념을 따지며 적전분열(敵前分裂) 했다면 그날의 독립선언은 없었을 것이다. 대의(大義)를 위해 함께 뭉쳤기에 거사가 가능했다. 대의를 위해 소아(小我)를 희생하는 정신이 지금처럼 절실한 때도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서면으로 제출한 헌법재판소 최후진술을 통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위해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모아 지금의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선의까지 왜곡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에 편지를 보내 지난달 2일 자신의 생일에 받아든 ‘백만 통의 러브레터’에 대해 “고맙고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박사모 측에 “큰 격려가 되었다”고 밝힌 것은 탄핵 반대에 더욱 열심히 나서달라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시위 참가를 자제하고 차분하게 헌재 심판을 지켜보면서 결과에 승복하자고 했다면 국민을 감동시킬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탄핵 찬성 측과 반대 측은 이달 4일과 11일에도 주말집회를 이어간다고 한다. 탄핵이 기각될 경우 민주노총은 총파업, 농민단체는 농기계 시위, 학생들은 동맹휴업 등 강력한 항의행동을 예고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자유청년연합 대표라는 사람은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의 집주소를 공개하고 단골 미용실과 슈퍼까지 언급해 테러를 선동하는 듯한 행위를 했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반민주적 폭력 기도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대선 주자들과 정치권, 사회 원로들은 탄핵심판 이후의 대한민국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미국이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헌법주의와 법치주의가 있었다. 2000년 대통령선거에서 사실상 이기고도 패배를 선언한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결단은 헌법주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어 가능했고, 이를 통해 국민적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어제 태극기와 촛불시위가 입증하듯 국민의식은 정치인들의 의식보다 한 수 위다. 탄핵심판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가 흔들릴 이유는 되지 못한다. 정치권과 각계 지도자들이 만나 탄핵심판 이후에도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나라를 위해 큰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



[이데일리]

5. 팽배한 ‘특검수사 피로감’ 모르는가

야권이 특검법 개정을 공동 추진키로 했다고 한다. 2월말로 끝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가 미진했다는 인식 하에 기존 70일로 돼있는 수사 기간을 30일 더 연장토록 하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야 4당은 그제 이러한 내용의 특검법 개정안을 제출하고 정세균 국회의장에 대해 오늘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이 개정안을 직권상정해 달라고 정식 요청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팀의 수사 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한 데 대한 정치 공세다. 특검 수사의 필요성을 계속 제기함으로써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 책임을 환기시키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헌재가 탄핵인용 결정을 내릴 경우 앞당겨 실시될 조기 대선에 있어서도 야권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특검의 추가 수사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수사가 끝내 불발됐다는 자체에서도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에서부터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특혜입학 의혹, 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에 이르기까지 특검팀은 광범위한 수사 성과를 얻었다. 영장을 재청구하면서까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하기도 했다.

오히려 특검 수사가 전방위로 전개되면서 이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이 팽배해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비리 의혹은 당연히 밝혀야 했지만 피해자인 기업인들에 대해서까지 혐의를 두고 무리하게 수사가 확대됨으로써 기업 활동을 위축시켰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심지어 “특검팀이 공명심을 너무 앞세웠다”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항간에 나도는 ‘특검 무용론’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특검 수사가 종료됐다고 해서 관련 수사가 함께 끝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미진한 부분에 있어서는 검찰이 수사를 이어받으면 될 일이다. 특검팀이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박 대통령을 기소중지하지 않고 입건으로 처리한 것도 그런 취지다. 검찰에 맡겨도 되는데도 굳이 특검 수사에 의존하려는 분위기가 공연히 특검팀의 공명심을 부추기고 과잉수사를 초래하는 요인이다. ‘최순실 게이트’ 특검팀의 역할은 그제 발표된 수사 결과만으로도 충분하다.



6. 해마다 반복되는 대학가 얼차려 추태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과 단합대회(MT)에서 불상사가 잇따르고 있다. 대학 새내기들의 합류를 축하하는 자리가 만취사고와 군기잡기 등으로 얼룩지고 있는 것이다. 성추행도 빠지지 않는 항목이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술에 취해 불행한 사고를 당하는가 하면 강압적인 체벌이 예사로 행해지는 악습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지방의 어느 명문대학 신입생 MT에서 선배 남학생이 신입 여학생 두 명에게 성추행과 성폭행을 잇따라 저질러 물의를 빚은 것이 며칠 전의 일이다. 그제는 OT에 참가한 신입생들이 선배의 강요로 단체 얼차려를 받는 모습이 유튜브에 올라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환영행사에 참가한 신입생이 만취상태로 승강기 기계실에 잘못 들어갔다가 연결 와이어에 손가락 3개가 끊어지는 위험천만한 사고도 벌어졌다.

신입생 환영행사는 새내기들에게 대학생활의 적응을 돕고 선후배간 유대를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교류의 모임이다. 하등 나무랄 게 없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교육 목적은 사라져 버린 채 새내기들에게 강제로 술을 먹이고 성희롱을 자행하거나 체벌을 가하는 변태적 작태의 난장판으로 변질돼 버렸다. 사회 일각에서는 물론 대학 내부에서조차 OT 무용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개선안이 논의된 것도 사실이다. 폭설로 행사장 지붕이 무너지면서 환영행사에 참석했던 신입생 10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다친 2014년의 부산외대 마우나리조트 참사가 하나의 계기였다. 그러나 안전사고와 음주·폭행·성추행 등의 예방을 위한 안전지침이 만들어지고도 불상사는 여전하다. 이런 식이라면 더 큰 희생과 슬픔이 예고없이 불쑥 찾아올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신입생 군기잡기와 폭탄주 강요 등을 마치 자랑스런 전통인양 고집하는 일부 대학사회의 그릇된 인식이 문제다. 다른 어느 사회보다 자율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할 대학에서 강제와 일탈의 반지성적 행태는 추방돼야 마땅하다. 문제점을 뻔히 알면서도 남의 일처럼 뒷짐 지고 있는 교수들을 포함해 대학 당국의 책임도 크다. 이참에 OT와 같은 집단 행사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근본적으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매일신문]

7. 해고 칼날에 떠는 아파트 경비원, 고용 안정책 필요하다

사회의 대표적 약자로 꼽히는 아파트 경비원들의 처지가 갈수록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올 들어 최저임금이 7.3% 인상되면서 인건비 절감과 무인자동화 시스템 도입 명목 등으로 경비원들이 대량 실직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최근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경비 용역업체가 전체 경비원의 절반인 8명을 한꺼번에 해고했다. 해고 경비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채용된 지 1년이 채 안 된다는 이유로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경비원 몫으로 아파트 측이 월별 선지급한 퇴직적립금은 업체 차지가 됐다. 일각에서는 퇴직금이 집단 해고의 배경이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지만, 해당 업체 측은 정당한 업무 능력 평가 결과 기준점에 미달한 경비원들을 내보냈을 뿐이며 퇴직금이 해고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진위가 어쨌든 간에 위 사례에서 보듯 아파트 경비원들은 고용시장에서의 법적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19만 명으로 추산되는 전국의 아파트 경비원들은 대부분 노령층 퇴직자들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파트 경비원들의 평균 연령은 63세이고 하루 15시간씩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 있다. 이들은 본연의 업무인 경비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 내 궂은 잡일까지 도맡아 하는데다 감정노동에도 시달리고 있다.



아파트 경비원 대량 해고는 이들에게 최저임금제가 100% 적용된 2015년 이후 본격화됐다. 아파트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관리비를 더 부담해 경비원 해고를 막는 사례도 있지만, 대량 해고를 선택하는 아파트들이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최저임금 시행 이후 아파트 경비원 고용 안정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경비원 처우 개선에 나선 일부 지자체의 사례는 귀감이 될 만하다. 충남 아산시는 경비원 고용 안정을 위해 임금의 일부를 직접 지원하고 있으며, 부산시 기장군도 ‘경비원 고용 유지 및 창출을 위한 특별지원 조례’를 지난달 24일 제정했다.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정부는 경비직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8. 애국지사 묘역 방치한 정부, 국립묘지 승격해야

국내 유일의 애국지사 묘역인 신암선열공원이 정부와 대구시의 무관심 속에 철저하게 외면받았다니 한숨만 나온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독립을 위해 몸바친 애국지사 묘역이 체계적인 관리는커녕, 허술하게 방치됐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대구시 동구 신암동에 자리 잡은 신암선열공원은 애국지사 52분의 봉분을 모시고 있어 국내 최대 독립운동가 묘역이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1987년 대구경북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가 묘지를 모아 선열(先烈)공원으로 개장했지만, 그 취지에 맞지 않게 관리`운영이 엉망이었다. 대구시가 관리하는 현충시설에 머물다 보니 갖가지 문제가 빚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신암선열공원은 관리 부실로 봉분이 훼손되거나 무너지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잔디가 없는 민둥묘가 허다했고, 묘역 주변에 잡초와 잡풀이 무성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 사비를 들여 봉분을 보수하는 일도 있었다. 후손들이 얼마나 분개했으면 “묘지를 옮기고 싶다”고 했을까. 본지가 2015년 신암선열공원의 봉분 훼손 실태를 보도하고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는 바람에 뒤늦게 대구시가 전체 개보수 공사에 나설 정도였다.



습관적으로 예산`인력 핑계만 대는 대구시에 더는 선열공원 관리를 맡겨서는 안 된다. 선열공원에 책정된 올해 대구시 예산이 1억1천700여만원이고, 인건비를 빼면 시설 및 일반 운영비는 2천500만원에 불과하다. 부잣집의 저택 관리비 정도밖에 안 되는 돈으로 3만6천800㎡에 이르는 호국시설을 관리했다고 하니 기가 찬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순국선열의 나라 사랑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후손들의 무성의와 태만을 보여주는 ‘산 교육장’이라고 할 만하다.



정부가 신암선열공원을 국립묘지로 지정해 체계적인 관리를 하는 것이 맞다. 신암선열공원의 존재 의의와 상징성, 교육적인 가치는 다른 국립묘지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 정태옥`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립묘지 승격을 위한 법안 마련에 나섰다고 하니 아주 다행스럽다. 이제라도 신암선열공원을 올바르게 관리해 순국선열의 뜻과 정신을 알리는 교육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중앙일보]

9. 집회 전날 지지층 결집 부추긴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팬클럽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드린다”는 서신을 보냈다고 한다. 박사모가 박 대통령의 생일(2월 2일)을 축하하는 편지를 보냈기에 답장을 한 것이란 게 청와대 설명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3·1절을 맞아 대규모 촛불·태극기집회가 열리기 하루 전날 대통령이 지지층을 향해 “결집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청와대 비서관이 28일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운동 본부(탄기국)’ 대변인을 맡고 있는 박사모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고생 많으셨다”는 대통령의 뜻을 전한 것도 그런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답답하고 안타깝다. 98주년을 맞는 이번 3·1절엔 올 들어 가장 많은 인파가 쏟아져 나와 탄핵 찬반 맞불 집회를 열 것임이 예고돼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임박하면서 양측이 막판 총력전에 나선 것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박 대통령이 집회 전날 박사모에 편지를 보내고, 그 사실을 공개한 건 탄핵반대 세력을 통해 헌재를 압박하려는 은근한 ‘선동’이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 농단 혐의를 규명하기 위한 검찰과 특검, 헌재의 출두 요청을 모두 거부했다. 대신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와 보수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방적으로 무죄를 주장하더니 급기야 지지층에게 “집회에 많이 나가 잘 막아 달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메시지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법질서를 강조하고 법조인을 중용해온 박 대통령이 아니던가.

박 대통령은 나라가 두 동강 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지층의 행동을 부추긴다 해도 헌재의 탄핵 결정을 늦추거나 향배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오히려 헌재의 반발 심리를 자극해 대통령이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만 커진다. 본인의 무책임한 언동으로 나라가 파국으로 치닫는 건 박 대통령 자신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흥분한 지지층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동성 발언 대신 자제를 호소하며 헌재의 결정을 차분하게 기다려야 할 것이다.



10. 현실로 떠오른 중국 리스크, 수출 다변화 계기 돼야

한국이 주권적 선택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배치하기로 한 걸 놓고 중국이 본격화하고 있는 한국 기업 때리기가 점입가경이다. 평소 과도한 애국심 선동으로 유명한 중국 공산당 기관지들이 연일 파상공세를 펴고 있다.



먼저 인민일보의 해외판 공식 SNS 뉴스 계정인 샤커다오(俠客島)가 ‘단교’라는 말로 포문을 열더니 그제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롯데를 중국 시장에서 축출하자”고 수위를 높였다. 그 영문판인 글로벌 타임스는 ‘한국, 쓴맛 봐야’라는 어제 기사에서 “한국이 무릎 꿇을 때까지 우리 주장을 계속할 것”이라며 “삼성과 현대도 곧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또 전문가 입을 빌려 ‘성주 타격’을 거론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의 거친 표현은 한·중 수교 이후 지난 25년간 누적된 ‘중국 리스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수출 비중 25%를 차지할 만큼 한국에 큰 시장이다. 한국은 진작에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적 관점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여 왔어야 했다. 저렴한 인건비와 높은 성장성을 내다보고 진출했던 중국 상황이 이제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중국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2005~2016년 사이 세 배 뛰면서 멕시코·브라질보다 50% 높아졌고 성장률은 6%대로 둔화됐다.

더구나 중국은 수입대체산업을 본격화하면서 비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다. 통관을 불허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고, 전기자동차 배터리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삼성SDI·LG화학을 제외하는 등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한 차별적 행위도 노골화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이 본격화하고 미·중 간 무역 갈등이 불붙으면 한국의 수출 환경은 더욱 악화할 수 있다.



어제 삼정KPMG 경제연구소는 2012~2016년 한국을 겨냥한 외국의 비관세 수입 규제 증가율이 45.7%에 달해 세계 평균의 배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중국 관영 언론의 거친 주장은 수출 다변화를 통한 특정 국가 의존도 완화와 제품 경쟁력 강화를 통한 무역장벽 돌파가 한국 기업의 미래 살길이란 점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주요신문칼럼



1. [경향신문][미래의 눈] 인간, 창조품에 적응할 수 있는 존재

찬우는 갓 여섯 살이 된 딸 서영이 가볍게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찬우의 아내인 연희는 남편의 마음이 불안해지면 곧장 알아채는지라 딸이 듣지 못하도록 작은 소리로 물었다.

“또 그 생각이야?”

찬우는 대답하는 대신 가볍게 웃어보였다. 연희는 짜증을 내거나 잔소리를 하는 대신 찬우의 팔에 살짝 손을 얹었다. 

세 식구를 서울에서 부산까지 태우고 가기 위해 옅은 잿빛 차량이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찬우 부부가 함께 기록하고 있는 일정표 출발 시각과 단 1초도 다르지 않은 때부터 그렇게 서 있었을 것이다. 

연희는 뒷좌석을 아동용 안전좌석 모드로 바꿨다. 딸 서영의 성장에 따른 사이즈 변화는 홈 데이터에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그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되어 있는 가족용 차량은 안전좌석의 크기와 안전벨트 길이를 늘 자동으로 조정해주었다. 연희는 딸이 몸에 두른 안전벨트가 거북하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조수석 문을 열었다.

찬우는 운전석 문을 열어둔 채로 머뭇거리고 있었다. 연희가 물었다. “내가 운전석에 앉을까?” 찬우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아내와 자리를 바꿨다.

가끔 오늘 같은 날이 있었다. 분명 식구는 셋이지만 누군가, 무언가 네 번째 식구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느낌이 드는 날이 있었다. 그 네 번째 식구는 가족의 일정을 모두 알고 있고, 누구든 건강 상태가 이상 수준에 도달하면 가장 먼저 알아채고, 늘 먹는 음식 재료가 떨어지면 제일 먼저 알려주었다. 주문까지 알아서 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차에 타고 이동해야 할 때, 찬우는 네 번째 식구의 존재를 가장 강하게 느꼈고 그만큼 심기가 편치 않았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자율적으로 조종하는 인공지능을 흔히 카텔이라고 줄여 불렀다. ‘카’와 ‘인텔리전스’라는 단어를 합친 조어였다. 카텔이 스마트 하이웨이와 완전히 연계될 경우 교통사고 발생률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건 이미 상식이었다. 차를 몰고 이동하는 것을 표현하던 ‘운전’이라는 단어도 ‘승차’에 흡수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차를 새로 구입하면서 이른바 ‘카텔 각서’를 쓰고 있었다. 각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본인은 운전을 완전히 카텔에 맡기고 수동 운전을 포기합니다. 포기함으로써 발생하는 책임은 모두 본인 및 본인과 계약한 보험사가 맡습니다. 단 카텔 시스템의 오류나 문제점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는 예외로 합니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경우 관할 민사 법원의 판단에 따릅니다.’

서명은 강제가 아니었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여겼다. 그 나머지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찬우였다. 지인들은 그런 찬우를 옛사람이나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여겼다.

‘아이를 태우고 가다가 사고가 났을 때 저도 모르게 발에 힘을 줘서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어떡하려고?’ 

‘자율 주행 차량은 모든 사람이 수동 운전을 포기할 때 효율이 높다고.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단 말이야.’ 

‘너 당뇨 있잖아. 만에 하나 저혈당 쇼크로 정신이라도 잃으면 어떡할 건데?’

지인들의 말이 하나같이 옳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수동 운전을 포기하고 카텔에 몸을 맡기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찬우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들이 아니라, 가족이 살아가며 해나가는 크고 작은 일과 판단을 가져가버린 네 번째 식구였다. 그 식구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만질 수 없는 건 물론이고 대화조차 할 수 없었다.

찬우와 같은 소수를 가리키는 용어가 있었다. ‘인공지능 공포증 환자.’ 인공지능 공포증이 정말로 병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찬우 아내인 연희는 남편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녀는 인간이 인공지능과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인공지능은 소프트웨어가 변경되면 즉시 바뀐 점을 반영하겠지만 사람은 그럴 수가 없었다. 연희는 인공지능 프로그래머이기 때문에,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연희는 남편이 안심할 수 있도록 차량 운전석에 앉아 반자동 모드를 켰다. 그러자 내장되어 있던 리본 모양의 운전대가 천천히 튀어나왔다. 남편은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긴장을 풀었다. 물론 연희는 카텔을 완전히 믿었다. 부산까지 가는 도로 위에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운전대를 꽉 움켜쥐고 긴급 수동 모드를 작동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남편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면 작은 연극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생각이었다.

뒷좌석에서 유아 교육용 인공지능 인터페이스와 놀고 있는 딸 서연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지만, 남편에겐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인류는 도구를 만들고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 주장을 조금 확장하면 또 다른 쓰임새가 생긴다. 인간은 끊임없이 도구를 만든다. 그러면서 다시 도구에 적응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우리를 영장의 자리에 올려놓는 건 바로 그런 수용능력이 아닐까?



우리는 도구가 발전한 끝에 지능을 획득하고 스스로 판단을 내려 행동하는 예를 최근 들어 여러 차례 보았다. 그런 도구는 단순한 필요를 넘어서 인간의 호기심과 창조 욕구 때문에 등장했고, 앞으로는 도구에서 새로운 존재로 바뀌어 우리 곁에 서 있을 것이다.

문을 열고 올라타기만 하면 나머지를 전부 알아서 해주는 자동차는 그런 존재들 가운데 아주 원시적인 형태다. 마냥 마음대로 부릴 수 없는 존재가 등장하면 머뭇거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존재들과 나란히 서서 걷지 못한다면 더 넓은 세상도, 변화도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고 인정할 시간을 주는 것 역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2. [경향신문][기자칼럼] 4대강의 오류

빵집 아들이 자기집 유리창을 깼다. 빵집 주인이 아들을 심하게 탓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그렇게 볼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빵집 주인이 새 유리를 사면 유리창 수리 업자는 돈을 벌게 된다. 수리업자는 그 돈을 다른 곳에 쓸 것이고, 그러면 또 다른 곳에서 소득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빵집 아들은 마을의 소득과 고용창출에 기여했다. 그러니 창을 깬 것은 마을경제로 보면 잘한 일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빵집 주인은 신을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리창을 사느라 신을 사지 못했다. 아들이 유리창을 깬 것은 빵집 주인의 지출 방향만 바꾸었을 뿐 새로운 소득을 창출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신발장수는 신발을 팔지 못했으니 오히려 손해를 봤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라고 명명된 유명한 경제학의 우화다. 프랑스 경제학자인 프레데릭 바스티아가 1850년에 쓴 에세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나오는 얘기다.

아직도 4대강 사업이 좋은 사업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4대강 사업으로 금융위기 당시 고용이 창출됐다거나, 백제보를 통해 가뭄이 심각한 충남 보령댐에 물을 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만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전형적인 주장이다. 바스티아는 이런 사람들을 ‘사이비 경제학자’라고 말했다.

강 정비의 필요성을 전면 부인하자는 게 아니다. 정비가 필요한 강에는 그 수요에 맞게 돈을 썼으면 됐다. 10분의 1인 2조원 정도였다면 차고도 남았을지 모른다.

말이 쉬워서 1조원이지, 1조원은 작은돈이 아니다. 한 사람이 하루 3000만원씩 쓴다고 해도 무려 100년간 쓸 수 있는 돈이다. 그런 돈 22조원을 강바닥에 썼다. 그것도 국채를 발행해 빚까지 내서 말이다. 그 돈은 시급히 써야 할 데가 많았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 간부는 “김대중 정부 때 인터넷 인프라를 까는 데 47조원을 썼고, 그 덕에 IT강국이 됐다”며 “4대강 대신 신성장동력에 과감하게 투자했더라면 지금쯤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래, 그까짓 것 한번 질펀한 돈잔치를 벌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다. 4대강 사업이 완공된 2012년 이후 유지비로 매년 5000억원씩, 이미 2조5000억원을 더 썼다. 수자원공사가 빌린 8조원의 이자, 생태하천 등 4대강 사업 구간 관리, 준설토 관리 등을 합친 액수다.



예정에 없던 새 계산서도 제출됐다. 녹조 관리다. 거기다 향후 지출이 확정된 비용 등을 모두 따지면 전체 사업비는 30조원에 이를 수 있다. 차라리 보를 부수고 물길을 터주자고 애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안된다고 한다. 이미 쓴 돈이 얼마냐는 것이다. 이면에는 4대강 사업 실패를 인정할 수 없는 자존심도 있다.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는 경제성이 없었다. 연료소모량은 많고 탑승인원은 적었다. 하지만 콩코드를 만든 영국과 프랑스는 운항을 중단하지 못했다. 콩코드는 양국의 자존심이었다. 개발에 많은 자금도 투자됐다. 2003년 콩코드는 운항 27년 만에 중단을 선언했다. 누적된 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콩코드의 오류’라 부른다. 매몰비용(이미 쓴 비용)에 집착하다 상황을 더 악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로 시작한 4대강 사업은 ‘콩코드의 오류’로 넘어가고 있다. 정부가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4대강 사업은 새 경제용어를 남길지도 모르겠다. 깨진 유리창과 콩코드, 두 오류를 합친 ‘4대강의 오류’라고 말이다. 4대강 사업은 시작도 잘못됐고, 끝도 잘못되고 있다.



3. [경향신문][역사와 현실] 돈키호테

멀리 스페인을 다녀왔다. 여행 중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는데, 건망증 탓에 금세 다 잊었다. 뇌리에 아직 남아 있는 것은 겨우 두어 가지뿐이다. 우선 인구에 관한 소감을 적어보자. 스페인 면적은 한국의 5배 이상이지만 인구는 4800만명에 불과해, 우리보다 300만명이 적다. 비행기가 스페인 북부 지방을 지날 때부터 실감이 났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듬성듬성한 마을풍경이 더없이 한가로웠다. 스페인의 인구밀도는 한국의 5분의 1에 못 미친다.

1㎢에 평균 470명이 살아야 하므로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사람 값은 헐하고 물건 값은 턱없이 비싼 것이 당연하다. 우리도 스페인만큼 성긴 인구밀도를 갖게 될 날이 있을까? 그렇게 되면 많은 문제들이 저절로 풀릴 것이다. 주거, 환경, 취업 문제가 쉽게 개선되고, 식량자급률이 100퍼센트를 회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당장 인구가 급감하면 연금과 건강보험 등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하나 큰 틀에서 보면 인구감소가 해로운 일만은 아니다.

뇌리를 스쳐간 또 한 가지 생각은 국운의 성쇠에 관한 것이다. 알다시피 스페인은 16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그들이 ‘레콘키스타’ 곧 영토회복을 내걸고 이슬람세력으로부터 국토를 되찾은 것은 1492년, 그때부터 스페인은 ‘대항해’의 시대를 열었다. 콜럼버스와 그 후계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차례로 정복해 국고를 금은보화로 가득 채웠다. 지중해의 한 변방국가가 유럽의 최강자로 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의 영광은 짧았다. 1588년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한 뒤 그들의 역사는 내리막길을 치달았다. 네덜란드, 프랑스와의 대결에서 연신 고배를 마시더니, 1898년에는 미국에도 졌다. 스페인제국의 자랑스러운 이름은 역사에서 지워지고, ‘유럽의 후진국’이란 오명만 남았다.

17세기 이후 스페인이 장기침체의 늪에 빠졌을 때 그들의 왕은 무기력했고 귀족들은 부패했다. 지역갈등도 도를 넘었다. 죽어나는 것은 인구의 대다수를 점하는 빈농이었다. 이러고도 어찌 망하지 않을 도리가 있었을까?

한국의 역사도 스페인과 닮은 점이 있었다. 15세기 전반 우리에게도 짤막한 황금기가 있었다. 한글이 창제되었고, 천문, 과학, 농업, 의료, 군사 등 여러 방면에서 굵직한 성과가 많았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한국사의 흐름은 답답하였다. 외침이 연이었으나 왕과 귀족들은 무능하고 무책임하였다. 권세가는 부패했고, 지방에서는 서원이 위세를 부렸다. 서북인에 대한 차별은 폐습으로 굳었고, 영호남에 대한 견제도 지나쳤다. 우리 조상들은 대부분 소작농으로서 연명하기조차 어려웠다. 날이 갈수록 희망의 빛줄기는 약해졌다.

망조가 들면 누군가는 반드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옳은 소리를 낸다. 17세기 초, 스페인에서는 세르반테스가 포문을 열었다. 그는 <돈키호테>를 통해 세상의 환부를 드러냈다. 훗날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날카롭게 분석하였듯, 돈키호테와 그 하인 산초는 스페인 사람들의 자화상이기도 하였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동안 나는 카잔차키스가 말한 돈키호테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내게 돈키호테는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는 ‘스페인의 혼’이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스페인 사람들에게 희망과 의지를 일깨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뜻은 옳게 전달되지 않았다. 당시 스페인의 위정자와 대중들은 돈키호테에 환호했으나, 그들이 받아들인 돈키호테는 해학과 유머가 넘치는 구시대의 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작가는 소설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피하고자 수사의 장막을 쳤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 장막에 갇혀버렸다.

20세기 초, 돈키호테는 400년의 기다림 끝에 찬란하게 부활했다. 스페인 사회도 잠에서 깨어났다고 할까. 파블로 피카소는 돈키호테와 산초를 한 장의 그림에 담아, 시대의 사명을 두 어깨에 걸머진 세르반테스의 노고를 기렸다.



현대 스페인의 사상가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더욱 진지한 어조로 돈키호테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돈키호테에게서 도전과 신념의 인간, 영원한 스페인의 이상을 재발견했다. 돈키호테라는 인간상을 창조해 스페인을 위기에서 구하려 했던 선각자 세르반테스, 이 위인을 향한 가세트의 존경심은 끝도 없었다. 가세트와 피카소 두 사람은 20세기 스페인의 불의하고 폭력적인 현실권력과도 대결했다. 그들은 19세기 스페인 내전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군국주의자 프랑코 총통을 강하게 비판했다.

몰락을 거듭하던 조선후기 사회에도 양심적인 지식인이 적지 않았다.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담헌 홍대용 등의 이름이 떠오른다. 그들 역시 집권층의 독단과 오류를 낱낱이 비판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노력만으로는 기울어진 역사의 저울대가 바로 서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세상의 이치를 헤아리는 식견이 조금이나마 있다면, 무엇을 어디서부터 바꾸어야 할까. 가슴을 치며 다짐하는 소리가 터져 나와 이제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바꾸어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4.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한국인 지혜·생활 담긴 비빔밥

비빔밥은 대접에 밥과 갖은 나물무침을 담고 계절과 지역에 따라 다양한 식재료를 더해 비벼서 먹는 음식이다. 그 유래는 명확하지 않지만, 옛날 제사 후 음식을 골고루 섞어 나누어 먹었고, 가정에서 남은 반찬을 밥에 비벼서 밤참으로 먹기도 했으며, 또 일터에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식사를 해결하는 음식으로 활용되기도 했던 것이 비빔밥이어서, 그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만들기가 쉽고 영양을 고루 섭취할 수 있는 건강식일 뿐 아니라 여러 재료의 맛이 어우러져서 오묘한 맛을 내는 맛깔스러운 음식이어서 한국인의 솔푸드로 일찌감치 자리잡은 것이다. 1990년대 초 항공사에서 기내식으로 제공하면서부터는 외국인들의 입맛도 사로잡아 세계음식으로 등극했다.



비빔밥은 재료나 요리 방법에 따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 육회, 산채, 콩나물, 부추, 멍게, 튀각 등 밥에 얹는 특이한 재료에다 ‘비빔밥’을 붙이면 그게 곧 이름이 된다. 지역명도 마찬가지다. 콩나물, 황포묵, 육회 등으로 무장한 전주비빔밥, 숙주 등 나물을 색감 있게 올리는 진주비빔밥, 기름에 볶은 해주비빔밥, 미역, 파래 등 해조류가 들어가는 통영비빔밥, 멍게젓갈을 넣는 거제비빔밥 등등 다양하다.



그중 재미있는 것이 경상도 지방의 ‘헛제삿밥’이다. 그 옛날 제사 때나 돼야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해 상을 차리던 시절에 제사 때가 아니지만 제사 핑계를 대고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제사 때처럼 흰 쌀밥에 삼색 나물을 더해 간장에 비벼 소고기, 돔배기(상어고기), 고등어, 전이나 산적, 그리고 탕국과 함께 먹는다.

비빔밥은 밥솥과 냉장고만 열면 쉽게 만들 수 있는 대표적인 간편한 메뉴다. 그렇다 보니 누구나 나름대로 독특한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비빔밥으로 이름을 내고 있는 식당을 찾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서울 명동에 전주 전통비빔밥집 ‘고궁’이 있다. 전주에서 50년 이상 해 온 집의 서울 점포다. 커다란 놋그릇에 육회, 콩나물, 호박, 무채 등 각종 나물과 계란, 황포묵 등이 놓이고, 그 위에 양념고추장이 화려하게 얹어져 나온다. 밥을 약간 되게 하여 잘 비벼지게 한 것이 입맛을 더하게 한다. 외국 손님도 많으며, 인사동에도 점포가 있다.



신사동에는 깔끔하게 단장한 진주비빔밥 음식점 ‘하모’가 있다. 각종 나물과 육회를 얹어 정갈하게 나온다. 소고기 무탕국과 함께 먹는다. 헛제삿밥도 하는데, 밥에 다진 소고기를 얹고 6가지 나물이 따로 나온다. 간장으로 비비므로 정갈한 재료의 본맛을 즐길 수 있다. 을지로입구에는 멍게비빔밥을 하는 ‘충무집’이 있다. 큰 대접에 밥을 담고 멍게젓갈, 무순, 김만 얹어주는 간단한 비빔밥이다. 바다 냄새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음식으로 중독성이 있다. 따로 파는 멍게젓갈을 사서 집에서도 쉽게 해먹을 수 있다.

청담동에 있는 ‘새벽집’은 고깃집으로 유명하지만, 막상 비빔밥 손님이 더 많다. 포이동, 군자동에도 점포가 있다. 푸짐하게 얹혀 나오는 육회와 각종 나물, 김 등에 고추장 양념을 입맛에 따라 더해 먹으면 된다. 함께 나오는 뚝배기 선지국도 일품이며, 구운 김으로 비빔밥을 싸서 먹어도 별미다. 효자동 주민센터 인근에는 ‘가진화랑’이 있다. 가정집을 개조해 화랑 겸 음식점으로 예쁘게 단장했다. 비빔밥정식을 시키면 접시에 각종 나물을 담고 찌개, 전 등 반찬도 정갈하게 내어온다. 깔끔한 맛이다.

비빔밥은 재료를 모두 섞지만, 각각의 재료 맛은 살아 있고 또 비벼진 새로운 맛도 같이 느낄 수 있는 오묘한 음식이다. 무엇보다 여럿이 나누어 먹기에 좋다. 한국인의 지혜와 생활이 담긴 음식이다.



5. [한국일보][삶과 문화] 우울과 분노의 시간들

​내가 공부해온 상담학은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인의 심리ㆍ마음ㆍ정신이 주요 관심사다. 삶의 많은 문제들은 결국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을 지지해 왔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전 미국의 한 대학에서 사회심리학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개인의 삶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사회로부터 영향 받는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사회적 접근이란 어떤 문제에 대해 사회적 요인을 중시하고 이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해법을 강구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자살은 개인적 현상이자 사회적 현상이다. 개인의 심리적 위기가 자살을 낳지만 이 위기를 낳은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그 개인이 놓인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다.

‘개인이냐 사회냐’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결국 개인적 접근과 사회적 접근을 모두 중시하는 복합적 관점일 것이다. 이 복합적 관점은 개인과 사회 간의 상호작용을 주목한다. 예를 들면, 경제적 빈곤이라는 사회적 요인은 자살이라는 개인적 행위의 사회적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경제적 빈곤에 처한 사람들 모두가 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사회적 조건에 놓인 개인들이라 해도 그 선택이 다른 것은 심리ㆍ마음ㆍ정신의 차이와 같은 개인적 요인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얼마 전 접한 한 통계 때문이다. 지난달에 발표된 세계보건기구(WHO)의 ‘세계 정신건강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전 세계 인구 4%인 3억 2,200만 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 통계에서 내 시선을 특히 끈 것은 그 규모가 10년 전인 2005년보다 18.4% 증가했다는 점이다. 대체 10년 동안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왜 이렇게 늘어난 것일까.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원인은 2008년부터 시작된 지구적 경제 위기다. 경제적 어려움은 많은 이들의 삶을 고단하게 하고, 이 고단함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증가시킨다. 무기력, 불면, 식욕감퇴, 피로감, 의미상실, 그리고 자살 등이 우울증의 증상 및 결과들인데, 이러한 경향이 지난 10여 년간 지구적으로 강화돼온 셈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러한 흐름이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왔다는 점이다. 1997년 외환 위기를 거쳐 2008년 금융 위기까지 겪은 후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진 두 가지 심리적 흐름은 우울과 분노다. 먹고 살기가 갈수록 팍팍해진 사회 현실에 대해 개인들이 갖게 된 일차적 감정 상태가 다름 아닌 우울과 분노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우울에 빠지게 하고, 이런 현실에 대해 참기 어려운 분노를 느끼는 것은 일견 자연스러운 인과의 과정이다. 최근 ‘자살공화국’이나 ‘헬조선’이라는 말은 이러한 우울과 분노의 감정이 만들어낸 거친 표현들이다. 

우울증이든 분노유발이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차적으로 상처받은 개인들이 돌봄을 받아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억압됐던 상처나 절망감에 대해서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는 환경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다소 안정이 된 다음엔 냉정하게 자기 자신을 직면해야 한다. 이 자기 대면의 시간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해야만 자신과 타자, 그리고 사회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회의 변화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공정한 제도를 일궈가지 않으면, 우울과 분노의 시간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많은 이들에게 무기력과 상처를 안겨주는 사회라면 이 역시 체계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개인의 변화 없이 새로운 사회를 열어 가기는 어렵다. 동시에 사회의 변화 없이 새로운 개인이 탄생하기도 어렵다. 우울과 분노의 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개인적 처방과 사회적 해법을 결합한 복합적 대응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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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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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동아일보]

1. 특검도 제대로 못한 ‘우병우 수사’ 검찰이 하겠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기간 연장 신청을 거부했다. 황 권한대행은 “최순실 등 핵심 당사자의 기소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수준으로 수사가 이뤄진 만큼 특검법의 주요 목적과 취지는 달성됐다고 생각한다”며 “남은 수사는 검찰에서 충실히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불승인 배경을 설명했다.

황 권한대행의 결정은 연장 신청 11일 만에 나왔다. 특검 연장 여론이 70%에 가까워 고심이 많았을 것이다. 황 권한대행은 이날 “특검을 연장하면 수사가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정치권의 우려도 감안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이 황 권한대행의 탄핵소추까지 추진키로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 정지된 마당에 권한대행인 국무총리까지 탄핵하면 이번에는 유일호 경제부총리를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으로 세우겠다는 건가. 

특검은 적지 않은 성과도 거뒀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 문고리 3인방이 50여 대의 차명 휴대전화를 개설해 사용한 혐의와 청와대 블랙리스트에 따른 문화예술계의 편파 지원 사실 등을 새롭게 밝혀냈다. ‘법꾸라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구속한 것도 큰 성과다. 하지만 삼성 등 재벌 기업의 뇌물죄 적용에만 매달려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직권남용 등 혐의를 제대로 밝히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제 공은 검찰로 다시 넘어갔다.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 1차 수사 때 ‘권력 눈치보기’와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하다 결국 사건을 특검으로 넘기는 불명예를 안았다. 똑같은 사건을 다시 넘겨받은 검찰은 이제 조직의 명예를 걸고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 무엇보다 검찰 내 ‘우병우 사단’ 때문에 손대지도 못했던 우 전 수석 사건을 파헤쳐야 한다.



2. 탄핵사유 끝까지 부인한 박 대통령, 헌재 승복 밝히라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단 한 번도 저의 사익을 위해, 또는 특정 개인의 이익 추구를 도와주기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거나 남용한 사실이 결코 없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최종변론에서 대리인단 소속 이동흡 변호사가 대신 읽은 최후진술 의견서를 통해 이같이 국정 농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다만 “주변을 제대로 살피고 관리하지 못한 불찰로 인해 국민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린 점에 대해서는 송구스럽다”고 했다. 자신의 잘못은 단지 ‘주변 관리’를 잘못한 것뿐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미 검찰과 특검의 대면 조사를 거부했고, 헌재에도 불공정을 내세워 끝내 출석하지 않았다. 그동안 질문도 받지 않는 세 차례의 대국민 담화와 기습적으로 연 신년 기자간담회, 자신에게 우호적인 인터넷TV와의 단독 회견만 했을 뿐이다. 그 어떤 사법 절차에도 응하지 않으면서 일방적 주장으로 탄핵 불복의 배수진을 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사실상 마지막 대국민 소명 기회나 다름없는 헌재 최후진술마저 서면으로 대신했다. 어떤 구체적인 해명도, 필요 최소한의 설명도 없었다.

박 대통령은 각종 국가문서를 최순실 씨에게 유출하고 최 씨의 국정 개입을 허용함으로써 결국 사인(私人)에게 사실상 국정을 맡겨 국민주권주의 및 대의민주주의, 법치주의와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무를 위반했다는 탄핵 사유를 전면 부인했다. 최 씨에 대해 “지난 40여 년간 가족이 있으면 챙겨줄 옷가지나 생필품 등 소소한 것을 도와준 사람”이라며 자신도 최 씨에게 당한 것이라는 ‘피해자 논리’를 폈다.



연설문 유출도 국민 시각에 맞는 표현을 찾기 위해 조언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각종 정책이나 인사 자료, 심지어 민감한 외교 관련 문서까지 왜 최 씨에게 전달됐는지 전혀 설명이 없었다. 특히 최 씨 추천을 받아 공직자를 임명한 사실도 없다며 지난달 인터넷TV에 나와 “문화 쪽이 좀 있었다”고 인정한 대목마저 부인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이 최 씨로부터 재단 명칭과 이사진 명단, 사무실 위치까지 전달받아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에게 일일이 지시한 사실이 확인됐음에도 “제가 믿었던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선의가 왜곡됐다”는 한마디가 전부였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해선 “개입하면 구조작업에 방해만 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평소 차명 휴대전화로 측근들과 수시로 통화한 박 대통령이 그런 위기상황에서 왜 그렇게 서면보고만 기다리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아무 설명이 없었다.

대통령의 진술로 헌재의 최종변론도 끝났다. 이제 2주 뒤면 탄핵 정국의 마침표가 찍힌다. 하지만 그 2주 동안 우리 사회에는 거센 소용돌이가 몰아칠 것이다. 지난 주말에도 탄핵 찬반 진영 집회에선 각각 “기각 땐 폭동” “인용 땐 참극”이라는 협박이 난무했다. 당장 내일 3·1절에도 각각 최대 규모의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이렇게 2주가 지나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박 대통령은 ‘정치적 희생자’로 둔갑해 사실상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되는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어떤 상황이 오든 혼란을 극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누구보다 먼저 헌재 결정에 깨끗이 승복하고 지지 세력의 반발도 설득하겠다고 분명히 밝혀야 한다.



[서울신문]

3. ‘무한도전’ ‘런닝맨’까지 가로막는 중국

중국 당국이 롯데그룹과 국방부 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부지 교환 계약을 체결하기 직전에 우리나라 인기 동영상물의 인터넷 사이트 상영을 막은 것은 분노가 치밀게 한다. 롯데는 어제 이사회를 열어 경북 성주 골프장을 사드 배치용 부지로 정부에 내주고 대신 경기 남양주 군용지를 받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정치권의 이견으로 사드 배치 시기를 예단할 수는 없으나 최대 걸림돌이었던 부지 문제는 해결된 셈이다.

그런데 중국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국의 동영상 사이트 업체들에 ‘무한도전’, ‘런닝맨’, ‘1박2일’ 등 한국의 최신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한류 프로그램을 많이 시청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예 인터넷에서 한류 흔적을 지우려는 기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치졸한 금한령이 갈 데까지 갔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증좌인 것이다. 오죽했으면 자국의 네티즌들이 한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금지 조치에 반발하고 나섰겠는가.

국방부와 롯데 사드 부지 계약으로 중국의 롯데에 대한 보복은 더 노골화할 것이다. 롯데는 중국 현지에서 유통 부문을 중심으로 12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 해 매출이 3조 2000억원에 이른다. 중국은 지난해 롯데 계열사의 세무조사를 한 데 이어 선양 ‘롯데타운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인 테마파크 조성 공사를 중단시켰다. 지난주 관영 환구시보는 ‘롯데가 입장을 바꿀 수 없다면 중국을 떠나야 한다’며 오만을 부리기도 했다. 다음달 15일 ‘소비자의 날’을 맞아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의 판매 상품을 문제 삼을 움직임까지 감지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19일 왕이 외교장관을 만나 정부 각료급 접촉에서는 처음으로 사드 보복에 공식 항의한 적이 있다. 그런 노력이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 졸렬한 보복의 부당성을 따져 묻고 철회를 요구하는 당당함을 부단하게 보여야 한다.



그래도 멈추지 않으면 중국 농산물의 검역·통관·유통을 엄격하게 심사하는 상징적 행동에 나설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더 만만히 보일 수 있다. 중국 당국도 롯데가 그들의 등쌀에 밀려 현지에서 철수하거나 사업을 접게 되면 중국인 10만명의 좋은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점을 깊이 새기기 바란다.



4. 검찰, 존폐 걸고 특검 수사 이어갈 각오 돼 있나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연장 불승인으로 오늘 종료된다. 황 대행은 특검 1차 수사 시한을 하루 앞둔 어제 “특검의 목적과 취지가 달성됐다”며 불승인 사유를 밝혔다. 특검 연장에 여야가 합의하지 못한 만큼 국정 안정을 위한 판단이라고도 덧붙였다. 황 대행은 특검이 요구한 연장 카드를 열흘 넘게 주물렀다. 막판 결정이 과연 국정 안정을 위한 최선의 처방이었는지 진정성은 의문스럽다.

당장 야당 쪽의 반발이 극심하다. 야권은 황 대행의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강력 카드를 꺼내 들었다. 3월 임시국회에서 새 특검법을 국회의장 직권상정해 특검 수사를 연장하겠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야권의 반발 자체가 아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특검 연장은 국민 10명 중 7, 8명이 희망했던 사안이다. 연장이 불발되자 반발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이러니 야당으로서는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열차에 올라탄 처지다.

여론을 묵살한 황 대행도 그렇지만 야당의 초강수 대응도 위태롭다. 황 대행 탄핵을 밀어붙인다면 조기 대선과 맞물려 국정 혼돈은 심해질 것이 뻔하다. 특검 연장 불승인을 비판하는 여론 중에도 야권의 강경 처방에 고개를 젓는 신중론이 적지 않다. 분명한 사실은 야당도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특검은 거대한 국민적 요구로 출발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 농단 의혹을 파헤치는 특검법이라면 수사 연장을 수사 대상인 대통령에게 승인받는 합의는 애초에 패착이었다. 황 대행의 불통과 야권의 무능에 민심은 지금 두 배로 고달프다.

박영수 특검팀은 과거 어느 특검도 견줄 수 없는 수사 성과를 거뒀다. 국민 지지를 한몸에 받은 이유다. 성역 없는 수사를 과연 검찰이 이어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권력 입맛이나 살핀 무기력한 검찰에 얼마나 분통이 터졌었나. 특검의 과속·과잉 수사가 지적되기도 했으나, 그런 트라우마 때문에 압도적 여론이 특검 연장을 지지했다.

특검이 못다 한 수사는 산적해 있다. 박 대통령 대면 조사는 불발됐고 세월호 7시간과 비선 진료 의혹은 안갯속이다. 삼성을 뺀 재벌 기업들의 뇌물죄 의혹은 손도 못 댔다. 구속망을 빠져나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국정 농단 방조 의혹을 이번에는 봐주기 없이 파헤칠 각오를 검찰은 하고 있는가. 특검의 거침없는 수사 의지와 성과를 국민은 똑똑히 지켜봤다. 검찰은 존폐의 명운을 건다는 결기로 특검 수사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중앙일보]

5. 롯데, 사드 부지 제공 … 총력 외교로 중국 핍박 막아야

롯데가 어제 이사회를 열고 자사 소유인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용 부지로 제공하기로 확정했다. 롯데는 중국 사업의 불이익을 우려해 그간 의사 결정을 미뤄 왔다. 이에 따라 롯데는 이달 안에 국방부와 최종 계약을 맺고 성주골프장을 경기도 남양주 군용지와 맞교환하게 됐다. 부지 문제가 일단락되면서 한·미 양국은 이르면 상반기, 늦어도 올해 안에 사드를 배치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롯데가 이로 인해 중국으로부터 온갖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다만 눈여겨볼 대목은 롯데의 사드 부지 제공과 관련한 중국 측의 최근 반응이 엇갈린다는 사실이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중문판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롯데가 입장을 바꿀 수 없다면 중국을 떠나야 한다”는 사설을 실어 강경론을 대변했다.



하지만 인민일보의 영문판 자매지인 글로벌 타임스는 평론에서 “양국 경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보복은 중국에 ‘양날의 칼’과 같다”며 신중론을 제기했다. 롯데가 중국에 투자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는데 중국이 롯데를 압박하면 중국 기업과 노동자들도 영향을 받게 된다며 현명한 대응을 주문했다. 우리는 중국에서 이런 합리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상황에 주목한다.

실제로 한국과 중국의 경제는 상호 시너지를 내며 발전해 왔다. 중국 정부가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적 명분으로 민간 기업을 압박할 경우 양국 경제가 그 악영향을 짊어져야 한다는 점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더구나 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독살 테러 등 북한의 도발이 갈수록 노골화되면서 북한 미사일로부터 한반도를 지키기 위한 사드에 중국이 반대할 명분은 약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롯데를 핍박하면 한국에서 반중 정서가 확산될 가능성도 염려된다. 이는 양국 모두에 실익이 없다. 한국 정부도 민간 기업 롯데에 모든 후유증을 떠넘겨선 안 된다. 우리의 주권적인 결정 때문에 민간 기업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국가 차원에서 중국을 설득하는 등 총력 외교전을 펼쳐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6. 5대 한국병 치유 못하면 국가 몰락 부른다는 경고

한때 포용적 성장의 모범 국가였던 한국이 정치 갈등과 저성장 등 많은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며 실패한 국가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는 충격적이다. 매일경제가 정치·경제 전문가 10인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비포용적 정치 체제와 무분별한 포퓰리즘, 산업 경쟁력 추락, 정부의 무능, 저출산 정책 실패 등 5대 한국병이 국가 실패 징후로 꼽혔다.



이는 2012년 매경 세계지식포럼에 강사로 참석했던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사례로 언급된 로마와 베네치아의 몰락 원인과 너무 유사해 놀랍다.

애쓰모글루 교수에 따르면 기득권층이 권력과 부를 독점하려고 비포용적 제도를 실시하면서 사회 갈등이 극에 달하고 국가는 실패의 길로 접어드는데 현재 한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촛불과 태극기 세력으로 갈라져 사생결단의 대결 구도가 형성돼 있고, 경제적으로는 3년째 성장률이 2%대에 그치는 침체를 겪는데도 신성장동력을 찾으려는 노력은커녕 산업경쟁력 회복을 위한 구조조정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오직 표심을 의식한 포퓰리즘 입법이 쏟아지는가 하면 기득권층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과 제도 도입을 막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상위 20%의 월평균 소득이 2.1% 늘어나는 동안 하위 20%는 5.6%가 감소하는 등 양극화가 심해졌다. 여기에 우리 경제를 견인하는 기업을 옥죄는 법안과 반기업 정서가 판을 치고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 확산, 인구절벽 등 난제들이 산적해 있으니 한숨만 나온다.

애쓰모글루 교수의 용어를 빌리자면 지금 한국은 국가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결정적 분기점'에 서 있다. 하루빨리 비포용적 제도를 혁파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능력을 발휘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기득권을 보호하는 관행과 법을 손보는 한편 노동과 교육 등 전 분야에 걸친 제도 개선도 시급하다. 무엇보다 개혁을 추진하며 생기는 갈등을 최소화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 포용적 리더십이 절실한 때다.



[매일신문]

7. 대출금리 올라 위험 커진 자영업,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불황에다 대출금리 상승으로 지역 자영업이 큰 어려움에 처했다. 경기 침체로 매출은 갈수록 줄어드는 데 반해 금리는 거꾸로 오르면서 은행 빚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어서다. 자칫 부실 대출 관리에 실패할 경우 지역 경제 상황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권의 적극적인 대응과 위기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1월 시중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평균 금리는 4.32%로 나타났다. 작년 10월 4.10%와 비교해 0.22%포인트 올랐다. 신용한도 대출금리도 5.10%로 0.28%포인트 상승했고, 보증서 담보대출 또한 평균 3.62%로 0.24%포인트나 올랐다. 여기에다 올해 미국이 몇 번에 걸쳐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여 국내 대출금리도 지속적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대구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자영업자 비중이 가장 높다는 점에서 가파른 금리 인상은 곧바로 부실 위험도를 높이는 구조다. 2016년 기준 대구의 자영업자 수는 모두 29만 명에 이른다.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3.2%로 광역시 평균(18.0%)은 물론 전국 평균(21.4%)을 훨씬 웃돈다.



게다가 자영업자 증가 폭도 크다. 최근 1년 새 2만8천 명 늘었다. 은행 대출 규모도 크게 불어나 작년 9월 기준 전체 자영업 대출이 31조3천억원에 달했다. 2012년(15조5천억원)보다 두 배 증가한 규모다. 2014년 말과 비교하면 2년도 안 돼 대출금이 11조원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대출금리가 0.1%만 올라도 자영업 폐업률이 10% 상승한다고 분석한다. 자영업 비중이 높은 대구 입장에서 금리 상승은 그야말로 직격탄이다. 빚을 갚지 못할 만큼 벌이가 시원찮다면 결국 폐업으로 이어지고 은행의 대출 부실 등 지역 경제 전반에 큰 먹구름이 되는 것이다. 이런 파국을 막기 위해서라도 합리적인 채무 조정 등 부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면밀히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비 올 때 무턱대고 우산을 빼앗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파장이 만만찮은 만큼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 상환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리스크를 낮추고 선제적인 대응으로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8. 비공개 입시 정보 공유, 학력 신장 위해 필요한 일이다

대구경북지역 고등학교에서 서울대와 경북대에 진학하는 학생 수와 대구경북 내 대학의 의학계열에 대한 합격자 수가 각 지역별로는 물론 학교 간에도 큰 격차를 보였다. 또 달라진 입시제도를 활용한 일부 학교에서는 이들 대학 진학에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학생들의 희망 대학 진학을 돕기 위한 학교 간 정보 공유와 교육청`학교`교사들의 혁신적인 노력이 절실한 것으로 지적됐다.



본사 교육팀이 대구경북 고교 진학 성과 심층분석의 결과이다. 무엇보다 지역과 학교별 격차의 문제다. 2017학년도 서울대 진학의 경우, 대구에서는 수성구와 비(非)수성구 지역으로 구분할 만큼 지역별 격차가 분명했다. 그러나 2016학년도보다 비수성구 학생의 서울대 진학이 약진하면서 지역적인 격차가 줄어드는 균형화 현상을 보였다. 경북은 시(市) 단위 지역과 자사고와 특목고가 강세였다.



2017학년도 대구경북지역 대학의 의학계열 진학은 지역별 격차가 더욱 분명했다. 수성구 학교 학생들이 전체 합격생 154명의 63%(97명)나 차지했고 학교 간 격차도 컸다. 경북지역 합격생 18명 가운데 칠곡 한 곳을 빼면 모두 시 단위 학교 출신이었다. 의학계열의 특정지역 강세는 대구경북이 똑같다. 2017학년도 경북대 합격생 경우 전체 1천903명 중 대구는 수성구 학생이 40%(759명)로 가장 많았고, 경북은 역시 시 단위 학교가 많고 학교 간 격차도 컸다.



이번 분석을 통해 드러난 과제는 분명해졌다. 먼저 지역별 학교 간 격차의 완화나 해소 문제다. 교육청과 교사들이 간담회에서 대책 마련의 필요성에 공감한 까닭이다. 이를 위한 자료의 공개와 공유는 필수이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제대로 된 입시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아울러 대구의 비수성구 지역 학교의 뚜렷한 약진이 가능케 한 혁신적인 노력은 공유하고 배워 전파할 일이다.



이제 교육 당국이 나설 일이다. 학교 간 벽을 허물고 이 같은 폐쇄적인 입시 관련 정보의 공유는 학교, 교사들만의 노력으로는 어렵다. 교육 당국의 관심과 정책적,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는 학생뿐만 아니라 학교와 학부모 나아가 지역사회를 위한 일이어서다.



[이데일리]

9. 학교급식 뒷거래, 대상·동원F&B뿐일까

학교급식 납품업체로 지정받기 위해 초·중·고교 담당 영양사들에게 상품권이나 현금성 포인트를 건네준 식재료 제조업체들이 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대상과 동원F&B 등 2개 회사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에 적발돼 불공정관행 시정명령 또는 과징금 부과 처분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제조업체인 CJ프레시웨이와 푸드머스 등에 대해서도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니 결과를 주시하고자 한다.

이번 적발된 회사들이 평소 영양사들에 대해 전방위로 접근했다는 사실부터가 눈길을 끈다. 대상의 경우 2014년 2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모두 3197개교 영양사들에게 접근했다니 웬만한 학교는 거의 건드려본 셈이다. 동원F&B도 비슷한 기간 중 499개 학교의 영양사들에게 제품 구매실적에 따라 상품권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의 냉동·육가공 제품을 써 달라는 우회적인 유도 방법이다.

문제는 이처럼 영양사들에게 지급된 상품권이 학교 식당으로 납품되는 식재료의 내용에 그대로 반영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영양사들이 상품권을 받는 만큼 식재료는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점심시간마다 식판에 햄이나 소시지, 어묵 등 반찬을 받고는 맛이 없다며 불평을 늘어놓는 이유다. 음식물 찌꺼기통이 버려진 반찬으로 수북이 쌓이곤 하는 것이 학생들의 공연한 반찬 투정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영양사들이 개인별로 받은 상품권 액수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해서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구매액수에 따라 캐시백포인트와 상품권의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한 납품업체들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그동안 학교급식이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으면서도 개선되지 못했던 까닭이다. 이러한 뒷거래를 막으려면 학교급식 납품 대리점 선정과정에 학생들이나 학부모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한창 성장해야 할 시기에 있다는 점에서도 학교급식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식성이 왕성한 청소년기인데도 급식 불량으로 점심식사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커다란 손실이다. 이제 다시 새학기를 맞으며 학교급식과 관련한 불평·불만들이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납품업체들에 대한 당국의 끊임없는 단속이 요구된다.



10. 탄핵정국의 종착역 과연 어디인가

지난 몇 달 동안 온 나라를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탄핵정국이 드디어 종착역을 향해 마지막 줄달음을 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최종변론을 끝낸 데다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도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기간 연장을 불허함으로써 변수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젠 헌재가 이정미 소장권한대행의 임기 만료일인 내달 13일 이전에 내리는 최종 판결만 남아 있다.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인 권성동 법사위원장은 어제 최종변론에서 대통령의 직책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린 일련의 행위가 탄핵 사유라며 “정의를 갈망하는 국민이 승리했음을 선언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법률대리인단이 대독한 최후진술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이 문화융성 차원에서 기업들과의 공감대 속에서 이뤄졌을 뿐 개인적인 이익을 본 것은 없다며 뇌물수수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끝내 법정에 나서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현직 대통령의 사상 첫 헌재 출두에 대한 부담과 송곳 신문에 잘못 응수할 경우의 역풍을 감안한 계산일 것이다. 헌재의 탄핵심리가 불공정하다며 여론전을 노린 재판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 본인의 직접 해명을 원하는 압도적 여론을 외면한 것은 대통령답지 못한 처신이다.

특검수사에 있어서도 황 권한대행은 핵심 당사자와 관련자 기소 등 특검법의 목적과 취지가 이미 달성됐고, 정치권이 특검 연장이나 특검법 개정에 합의하지 못했음을 들어 수사연장을 불허했다. 조기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특검팀은 즉각 유감을 나타내며 반발했으나 ‘정치특검’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운지 스스로 되돌아볼 일이다. 야권이 황 권한대행에 대해 탄핵을 거론하며 전면적인 정치공세에 나선 것 역시 바람직하지 못하다.

국민들도 그동안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어 극한대결을 빚었지만 막상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야권으로서야 보수세력을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는 탄핵정국을 어떻게든 대선 국면까지 끌어가고 싶겠지만 지금은 국정 안정이 최우선이다. 헌재가 마지막 탄핵결정을 내리기까지 서로 겸허한 자세로 기다려는 것은 물론 기각이든 인용이든 무조건 승복으로 국민 대통합에 앞장서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칫 정치권의 선동으로 나라의 명운이 갈릴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인식하기 바란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식품 속 과학] 유통기한 지나면 버릴 것인가

집에서 냉장고를 열어 보니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두부가 보인다. 지난번 마트의 ‘1+1 행사’ 때 사서 하나는 그날 먹고 하나는 깜박하고 이제 발견했다. ‘미련 없이 버려야겠지’ 생각하다 포장을 뜯어 보니 상하지 않은 것 같다. 먹어도 될지 고민에 빠진다.

사회적으로 식품안전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각종 홍보를 통해 소비자들은 식품을 구입할 때 반드시 유통기한을 확인하게 됐다. 일부 소비자는 유통기한이 지나면 못 먹는 것으로 판단해 버리곤 한다. 과연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못 먹는 것일까.

유통기한이란 식품의 제조일부터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이다. 여기서 소비가 허용되는 기간, 즉 먹을 수 있는 기한이 아닌 판매가 허용되는 기간임에 주목해야 한다. 제조자는 유통기한을 정할 때 먼저 해당 제품 제조공정의 위생수준, 포장재질, 포장방법, 저장·유통·진열과정 등을 고려해 제품 고유의 풍미와 성분함량, 안전이 유지되는 기간을 정한다. 식품이 생산돼 소비자가 섭취하기까지 단계가 복잡해지면서 일반적으로는 이 기간의 70% 정도에서 유통기한을 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먹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식품의 품질이나 안전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식품의 수분, 효소, 미생물, 보관과정에서의 산소량이나 온도 등이 있다. 특히 수분활성과 보관온도가 높거나 산소가 많으면 미생물이 증식해 식품이 변질되기 쉽다. 자연산물도 효소가 많아 변질되기 쉽다. 반대로 수분을 제거한 식품, 가열살균한 진공포장식품, 냉장·냉동식품, 가공식품은 보존성이 좋아진다. 설탕, 소금과 같이 변질되지 않는 것은 유통기한의 의미가 없어 표시를 의무화하지 않는다. 얼마 전 대한민국 명품 식품전에서 100년이 된 간장이 고가에 팔리기도 했듯이 오히려 오래 보존한 것일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발효식품도 있다.

한편 냉장식품을 상온에 장시간 보관하거나 우유를 개봉해 입을 대고 먹고 방치한다면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았다고 해도 변질돼 먹을 수 없게 될 수 있다. 집에서 만든 음식을 살펴보자. 바로 먹는 음식도 있지만 김치, 멸치볶음 등 밑반찬, 장아찌, 된장, 간장, 장조림, 잼 등은 오래 두고 먹는다. 주부 스스로 식품의 맛, 풍미, 식감 등 일종의 오감을 이용해 상태를 확인하고 먹고 있다.



이런 경험과 지혜로 유통식품에 대해서도 먹을지, 버릴지에 대해 한번 더 판단해 본다면 식량 자원에 대한 낭비문제 해소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유통기한은 제조자가 자사 제품의 특성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하나의 정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그러나 식품을 먹을지 말지에 대해서는 먹는 사람의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 가정방문

일본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다. 10년 전쯤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이 담임 선생님의 편지를 가져왔다. 집을 방문하려는데 편한 날과 시간을 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선생님은 약속한 날 수업을 마치고 집을 찾았다. 차와 과일을 냈다. 딸의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은 외국 생활의 어려운 점과 한국의 교육을 궁금해했다. 딸의 방도 둘러봤다. 30분가량 지나 선생님이 일어섰다. 이듬해 딸의 담임 선생님이 바뀐 뒤 또 가정방문이 있었다. 가장 최근에 겪은 가정방문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상담을 위해 학교에 간 적이 있다. 1970년대엔 가정방문은 비교적 정기적으로 이뤄졌다. 교사가 학생의 가정 형편과 주변 환경 등을 직접 파악할 수 있는 효율적인 생활지도의 한 방편으로 자리 잡았었다. 가정과 학교, 중요한 두 축을 이어 주는 소통 방식이었다.

어릴 적 동네 어귀에서 가정방문에 나선 선생님을 기다리다 맞았다. 부모님과 선생님과 함께 앉아 있던 그 시간은 참 길게만 느껴졌다. 생각하면 그나마 사제(師弟)의 정이 묻어나던 시절이다. 당시 시골에도 영화 ‘선생 김봉두’(2003년)에서처럼 학부모로부터 계란 몇 줄 받은 선생님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가정방문은 1980년대 사회 부조리의 하나로 낙인찍혔다. 치맛바람과 함께 돈봉투와 연결된 탓이다. 학교에 따라 교사가 가정방문을 나서려면 ‘교장에게 미리 통보, 허락을 받은 뒤’라는 조건을 달았다. 교육 당국도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심하게 규제했다. 사실상 금지다.

가정방문은 사라졌고 잊혔다. 세상의 흐름 속에 교사, 학생, 학부모 등 교육 구성원 간의 인식도 변했다. 교사는 교사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힘들고 번거로운 부담으로 여겼다. 내켜 하지 않았다. 가정방문의 필요성을 나름 인식하면서도 누구도 쉽게 입에 올리지 않은 이유다.

가정방문이 되살아났다. 학교와 가정의 가교, 학부모의 교육 참여라는 순수한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 다음달 1일부터 의무교육 과정인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이틀만 무단결석하면 출석을 독촉하고 필요하면 가정방문도 할 수 있게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한 것이다. 학교 및 가정폭력을 막기 위한 조치다. 가정방문의 첫 법제화다. 지금껏 행정 지침으로만 다뤄 의무 사항이 아니었다.

교사들의 책무가 커졌다. 가정방문의 성공이 교사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학생들에 대한 더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요구되고 있다. 교사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를 금지한 김영란법은 오히려 방패막이다. 당당할 수 있다. 읍·면·동을 비롯한 경찰 등 지역 사회의 지원이 뒤따라야 함은 당연하다. 교육이 학교 테두리에서만 이뤄지지 않아서다. 가정방문이 학교 안과 학교 밖의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3. [서울신문][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중국으로 간 도산서원

지난주에 중국 장시성·후난성·허난성 일대를 다녀왔다. 중국에 갈 때마다 여전한 대규모 개발과 발전에 놀란다. 그런데 올해도, 실은 필자가 중국 답사를 다닌 지난 22년 동안 좀체 나아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관광지 안내판의 한국어 번역이 그것이다. 며칠 동안 안내판의 엉터리 한국어를 보며 씁쓸해하다가 후난성 헝양(衡陽)시에 있는 석고(石鼓)서원에서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거 자동번역기 돌린 거죠?” 그는 겸연쩍어하며 그렇다고 고백했다.

1992년 8월 수교 이후 한국과 중국 사이에 봇물 터지듯 문화 교류가 일어났다. 그런데 상호 대등한 교류라기보다 주로 한국에서 중국으로 흘러들어 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 연예, 방송 등의 분야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큰 덕을 보았다. 또한 한류가 지속되면서 중국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이런데 중국 관광지에는 오역된 안내판이 널렸으니 어찌된 일인가. 한국어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만 있어도 아직 갈 길이 먼 자동번역기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이 정도는 우리가 어렵지 않게 도울 수 있었을 텐데.

하루는 후난성 창사(長沙)시에 있는 중국서원박물관에 들렀다. 대형 현대 건물에 중국 서원에 관한 많은 자료를 소장, 전시하는 곳이다. 이 박물관은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규모 서원으로 뒤에 후난대학의 모태가 된 악록(嶽麓)서원 구내에 있다. 평일에다 비가 뿌리는 음산한 날씨 때문인지 박물관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 전시실의 가운데에 관람객들이 모여 있어 가 보니 어느 서원의 정교한 모형이 놓여 있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중국 서원이 아니라 한국의 안동 도산서원이었다.

도산서원의 모형이 어떻게 중국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일까. 도산서원의 이동구 유사에게서 들은 경위는 이렇다. 2014년 11월 안동시 공무원, 도산서원 유사,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관계자, 모형회사 직원 등 모두 8명이 도산서원 모형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포장한 짐을 조심스럽게 들고 비행기를 탔다. 그들은 중국서원박물관으로 가서 모형을 조립해 설치했다. 이렇게 모형을 기증하게 된 것은 그전에 이 박물관에 전시됐던 도산서원 모형 때문이다. 그것은 영락없는 중국 건물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안동시가 모형 제작비 3000만원을 전액 지원하고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에 모형 제작을 위탁했다.

귀국 전날 저녁 호텔방에서 요즘은 어떤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나 TV 채널을 돌려 보았다. 수십개 채널을 다 돌렸는데도 한국 드라마를 하는 곳은 없었다. 매년 중국 답사 때마다 저녁 시간이면 어느 지역에서도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었는데 뜻밖이었다.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보복으로 이른바 한한령(限韓令)이라는 것이 있다더니 사실이었다.

문화는 정치에서 가장 먼 분야이지만 정치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분야이기도 하다. 대국이 왜 이러나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현대 국제 정치의 속성상 한한령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이에 대한 해답은 엉터리로 번역된 안내판과 중국서원박물관의 도산서원 모형이 함께 말해 준다.



상대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 없이 일방적으로 시장을 개척하는 전략으로는 문화 교류를 지속하기 어렵다. 서로 문화와 현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서로 돕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호 부조의 문화 교류에 외교적 규제를 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두 나라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역된 관광지 안내판들은 지난 사반세기 동안 한국과 중국 사이에 그러한 상호 부조의 문화 교류가 부족했음을 방증한다. 이에 반해 중국의 도산서원 모형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서원은 다 같으리라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고, 남송대 주희의 백록동(白鹿洞)서원을 모델로 받아들여 16세기에 꽃피우기 시작한 한국 서원의 고유한 매력을 보여 준다. 허난성 정저우(鄭州)에서 인천 오는 비행기가 만석이다. 승객 대부분은 20대 중국 여성이다. 이들 가운데 도산서원의 멋진 모형을 보고 한국에 이끌린 이가 있지 않을까.



4. [중앙일보][삶의 향기] 대화의 레벨

내 포켓몬고 레벨은 33이다. 이거 매우 높은 레벨이다. 그동안은 한국에서 포켓몬고 서비스가 안 되는 바람에 영 이야기할 기분이 안 났는데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에서도 이 게임의 인기는 선풍적이었다. 한동안 사람들이 손에 전화기를 들고 어정어정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멈춰서 손가락으로 전화기 화면을 휙 긁어 올리는 모습을 꽤 볼 수 있었다.

시작은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를 위해 게임에 필요한 아이템이나 몬스터를 잡아 주다가 어느덧 매우 열을 올리며 이 게임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됐다. 어느날 기차 안에서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노인이 지금 하는 것이 그 포켓몬 어쩌고 하는 거냐,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 왔다. 간략히 설명해 주자 집중해 듣던 노인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내가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설명해 줬다 하더라도 그 노인에게는 똑같이 들렸을 것이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인 게다. 그러고는 웃으며 요즘은 사람들이 다들 아주 이상하다고 장탄식을 했다.

저 노인 세대란 그야말로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 왔다. 컴퓨터 인터넷에 더해 문득 스마트폰이라는 물건까지 나타나더니만 급기야는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데 괴물(몬스터)이 나타났다며 멀쩡한 어른들이 전화기 화면에 코를 박고 길바닥을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고야 만 것이다. 그러니 다들 이상해 보이고 못마땅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저 ‘당신들’이 이상하다는 말 속에는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섞여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해할 수도 없이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선도는커녕 선뜻 어울리지도 못하고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면서 살아가야 하는 마음 말이다.

그 마음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하고, 얼마나 궁금했으면 은근히 낯을 가리고 예의범절 따지는 영국 노인이 나에게 저런 것들을 물어볼까 싶어 마주 웃어 주고 나서 또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노인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상냥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은 노인의 태도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만일 노인이 다짜고짜 그런 쓸모없는 짓에 왜 시간낭비를 하고 있느냐는 식의 거친 언사를 보였다면 나 역시 설명은 고사하고 다른 자리로 옮겨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요즘 세상이라는 것이 다들 같은 것을 같이 느끼고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곳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그저 시공간만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면 이다지도 다른 상대에게 말을 걸거나 더 나아가 무언가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고 싶다면 예의를 챙겨야 한다. 이는 우선 대화의 기술에 해당하는 부분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고방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타인의 선택과 취향과 생각과 기타 등등, 타인을 나와는 다른 개별적 인격으로 총체적으로 존중하는 사고방식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부당함은 상대가 가족이라고 해도, 행동의 동기가 ‘선의’라고 해도 다를 바 없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한국 소설 <채식주의자>를 보면서 매우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채식주의를 선언한 주인공에게 그 아버지가 성인인 딸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폭력을 행사해 억지로 고기를 먹이는 것이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채식주의자가 되든, 같은 성별의 사람을 사랑하든, 허공 중에서 괴물을 잡겠다고 전화기 화면을 북북 문질러대든 그건 어디까지나 타인의 몫 아닌가.

그러니 지하철이나 길에서 자기 주장을 소리 높여 외치거나 특정 종교나 정치관을 강요하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식의 태도는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반감만을 일으킬 뿐이다. 그게 자식과 같이 느껴져서라거나 후손들과 나라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렇다. 사실 이쯤 되면 대화나 소통이 목적이 아니지 않나 싶어진다.



현실 공간에서뿐 아니라 SNS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는 비단 나이든 세대에게만 보이는 것도 아니다. 하기야 예의와 존중을 습득하고 시정하기란 포켓몬고 레벨 올리기보다도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일이긴 하다.



5. [매경이코노미][무비클릭] 싱글라이더

‘싱글라이더’는 눈이 즐거운 영화다. 우선 호주 시드니의 이국적 풍광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두 번째는 연기력이다. 이병헌이 특정 캐릭터가 아니라 배우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모히또에 가서 몰디브나 한잔 하자”며 의수를 흔들던 ‘안상구(내부자들)’, 희대의 사기꾼 ‘진현필(마스터)’도 아니고 칼잡이 카우보이(매그니피센트7)도 아닌 한 남자로 돌아왔다. 흔들리는 걸음과 허망한 눈빛, 우리가 사소하게 지나쳐버린 그 순간을 잡으려 하는 남자, ‘싱글라이더’는 배우 이병헌의 영혼 일부를 보여주는 작품인 셈이다.

배우가 워낙 유명해지고, 해외에까지 진출한다는 건 개인적으로나 한국 영화계로나 반가운 소식이지만 큰 영화, 상업적인 대중영화에서는 개인의 내면 표현을 그다지 요구하지 않는다. 좀 더 유형화된 인물들이 어떤 캐릭터, 어떤 역할로 등장해 단순하고 강렬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싱글라이더’는 배우 이병헌이 오랜만에 연기다운 연기를 한 작품이다. 오랜만에 드라마 장르로 복귀한 이병헌에 대한 호기심이 클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감독 역시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활용에 무척 공을 들인다.



앞만 보고 달려오던 남자에게 닥친 어마어마한 시련, 그 시련을 마주하고서야 겨우 가족을 돌아보게 된, 돌아온 탕아 같은 남자, 이병헌은 그런 복잡한 심경을 가진 남자 강재훈 역을 연기한다. 여기에 아내 역을 맡은 공효진이 일상성이 담뿍 묻어나는 안정적 연기를 보탠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머무는 여대생 역할을 맡은 소희도 나름의 적합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의외로 ‘싱글라이더’에는 반전주의, 스포주의라는 꼬리말이 따라붙는다. 인생 모든 것을 잃은 남자의 갱생기로 예측되는 드라마에 무슨 반전이 있고, 스포일러가 있을까. 사실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나뉜다면 이 반전 때문일 듯싶다. 시종일관 섬세한 호흡과 사려 깊은 발소리로 일관하던 영화의 흐름까지도 반전되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싱글라이더’는 반전을 빼고 좀 더 사실적이고 건조한 이야기로 끝을 냈어도 꽤나 그럴 듯했을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시 시작하고 싶은 욕망은 꼭 반전을 통해서만 이뤄낼 일은 아니다. 반전에 지나치게 힘을 모으다 보니 그 반전에 시시함을 느낄 관객들도 있을 법하다. 오히려 반전보다는 삶의 하나하나, 세부를 훑어나가고자 하는 여성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오랜만에 감정 연기로 돌아온 이병헌의 연기는 무겁지만 세련되고 사실적이다. 영어로 주고받는 대사에서조차 이병헌은 외국어의 이질감이 아니라 감정의 밀도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강재훈의 아들로 나오는 여덟 살 진우 역을 맡은 아이의 연기도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주는 데 한몫을 거둔다. 그런 아역들을 보자면, 연기란 저렇게 천진한 피조물들에게 허락된 재능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있을 때 잘하자. 말은 쉽지만, 말처럼 쉬웠다면 속담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격언이 되기까지엔 수많은 사람들의 실패가 있었을 터다. 가족이야말로 곁에 있을 때 그 소중함을 느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너무 가깝고 살가워 잊고 지내기 일쑤다. 그런 가족의 소중함을 안고 돌아설 수 있는 영화, ‘싱글라이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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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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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경향신문]

​1. 헌재도 특검도 안 나가겠다니 이 나라 대통령 맞나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사건 최종변론에 출석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제 “대리인단이 헌재에 박 대통령이 나가지 않는다는 입장을 통보한 것으로 안다”면서 “대리인단도 기자회견 같은 것을 할 예정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어이가 없다. 결국 박 대통령에게 헌재 출석 카드는 탄핵심판의 시간을 끌기 위한 꼼수에 불과했다. 헌재는 물론 시민과 국회도 박 대통령에게 철저히 농락당한 셈이다.

헌재 불출석 방침으로 유추해보면 박 대통령은 스스로 켕기는 게 많은 모양이다. 떳떳하다면 헌재 재판관들과 국회 소추위원 측의 질문이 두려울 이유가 없다. 헌재 변론은 말주변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앞서 대리인단은 박 대통령이 헌재 법정에 나와 최후진술만 하고 퇴장할 수 있는지 물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하고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헌재는 법에 명시된 대로 ‘출석 시 질문을 피해갈 순 없다’고 선을 그었다.

최순실씨 공범으로 뇌물수수 피의자인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도 거부했다. 지난해 11월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며 눈물로 대국민사과를 했지만 검찰 수사가 예상 밖으로 강도 높게 진행되자 곧바로 검찰을 비난하며 말을 바꿨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받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대면조사 일정이 일부 언론에 공개됐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댔다. 청와대 압수수색도 받지 않았다. 최씨와 무자격 의료진에게는 무시로 개방한 청와대를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특검 수사진은 물리력까지 동원해 막았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직무정지 상태이지만 박 대통령은 여전히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 

수사기간이 연장되지 않으면 특검 수사는 내일로 끝이다. 연장 지지 여론이 압도적이지만 결정권을 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금까지도 가타부타 말이 없다. 국정농단의 부역자인 황 대행이 수사기간을 연장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박 대통령과 황 대행 등은 일말의 책임감이나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고 있다.



국정공백 장기화로 한국 사회 전 분야에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국정농단 세력을 단죄하고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민주주의를 구할 곳은 헌재밖에 없다. 헌재는 법과 원칙에 따라 박 대통령 탄핵 여부를 최대한 신속하게 결정해주기 바란다.



2. 헌재 재판관·특별검사의 신변보호까지 해야 하는 나라

경찰이 그제부터 박영수 특별검사팀을 상대로 신변보호에 들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하는 단체 회원들이 박영수 특검의 집 앞으로 몰려가 “몽둥이맛을 봐야 한다”고 위협한 데 따른 조치다. 경찰은 앞서 22일부터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 헌재 재판관 전원을 대상으로 밀착경호하던 터라 더욱 긴장하고 있다.



그제는 한 20대가 ‘박사모’ 홈페이지에 이 소장대행을 해치겠다는 글을 올렸다가 수사가 시작되자 자수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평화적인 촛불집회로 세계의 찬사를 받은 나라에서 최고재판소의 재판관들과 특검이 테러 위협에 시달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친박세력의 헌재 재판관과 특검팀에 대한 위협은 위험수위를 넘은 지 오래다. 정광용 박사모 회장은 그제 탄핵반대 집회에서 “박 대통령이 탄핵되면 아스팔트에 피를 흘릴 것”이라며 “문재인이 혁명을 말했는데 우린 혁명을 넘어서는 참극을 일으킬 것”이라고 외쳤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대놓고 이정미·강일원 재판관을 겨냥해 “당신들의 안위를 누구도 보장해주지 못한다”고 협박했다. 이쯤 되면 단순한 말뿐인 위협으로 넘길 수 없다.



이정미 헌재 소장대행 살해 위협도 구체적인 범행 계획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실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말려야 할 탄핵반대 단체 지도부가 오히려 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 어디서 폭력사태가 일어날지 모를 만큼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헌법재판관과 특검에 대한 위협은 용납할 수 없는 반사회적, 반문명적 행위이다. 친박단체들이 자신들의 탄핵반대 논리가 빈약하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격이다. 이상한 것은 정부의 태도이다. 불법적 행태에 대해 자제를 요청하고 엄단을 경고해야 마땅한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틈만 나면 법질서를 강조하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도 침묵하고 있다. 방조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탄핵심판 선고일이 다가오면서 수구단체 집회장에서는 테러를 부추기고 내란을 선동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친박단체들은 오는 3·1절에 총동원령을 내린 상태다. 이미 친박단체 집회 현장에서는 심심찮게 폭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참가자 수가 훨씬 많아지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다. 정부는 더 큰 혼란이 벌어지지 않게 극우세력의 망동을 제지해야 한다. 유신의 망령을 불러낸 것도 모자라 우익 테러를 자행하던 해방 후로 시대를 되돌리자는 건가.



[세계일보]

3. 교통사고 사망자 급감… 아직 갈 길 멀다

지난해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12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고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작년 한 해 교통사고로 4292명이 숨지고 33만1720명이 다친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자는 전년보다 7.1% 감소했다. 2004년(9%) 이래 감소 폭이 가장 크다. 특히 음주운전사고 사망자는 전년보다 17.5%(102명)나 급감했다. 검찰과 경찰이 음주운전을 방조한 동승자까지 처벌하고, 음주운전 전력자가 재범하면 차량을 몰수하는 등 강력 대응한 덕분이다.

우리나라 교통사고는 1991년 1만3429명으로 정점을 기록하면서 세계에 ‘교통사고 왕국’이란 오명을 남겼다. 이후 사망자 수는 1998년 9000명대로, 2014년 4000명대로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사망자 수가 25년 전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무엇보다 안전띠 착용이 의무화되고 과속 단속기가 설치되는 등 교통 규칙과 여건이 크게 강화된 영향이 컸다.

지난해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사망자는 8.4명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5명보다 많이 높다. 그동안 사망률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교통사고 사망률은 수십년째 OECD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2.46명으로OECD 평균 1.1명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처지다.

교통문화 역시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호위반, 꼬리물기, 끼어들기와 같은 교통 무질서가 다반사로 이뤄진다. 보행 사망자와 어린이 사망자가 여전히 많고, 안전띠를 매지 않아 숨지는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안전띠는 생명띠이고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에도 안전띠 착용률은 선진국에 비해 낮다. 최근 고속도로에서 안전띠 착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운전석 95.4%, 조수석 86.9%에 뒷좌석은 48.3%에 그쳤다. 게다가 사고를 유발하는 도로 설계와 주먹구구식으로 설치된 안전시설도 여전한 실정이다.

교통사고 예방은 제도나 법규도 중요하지만 안전의식이 우선이다. 귀찮다거나 불편하다는 사소함에 집착해 생명을 희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운전자는 교통법규를 지키고 보행자는 보행자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중앙일보]

4. 내수 살리려면 일자리·소득 대책에 집중해야

지난해 가계소비지출이 통계청의 이 분야 집계(2003년) 이후 처음으로 줄었다. 물가상승분을 감안한 실질 소비지출은 전년 대비 마이너스 1.5%였다. 가계 실질소득이 줄어든(-0.6%)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소득감소의 내용은 더 좋지 않다. 전체 소득의 67%에 달하는 근로소득에서 실질 근로소득 성장률이 0%로 근로자들의 소득이 정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임금상승폭이 낮아진 것뿐 아니라 지난해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불어닥친 실업과 고용한파가 직격탄을 날린 여파다.

일자리 불안이 가계 소득 정체와 소비 침체로 이어지는 구조적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는 신호다. 여기에 국민들도 초절약에 돌입했다. 술·담배·세금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소비지출을 줄였다. 먹는 것, 입는 것, 문화생활 등 전 생활영역에서 지갑을 닫은 것이다. 이에 가계 평균 소비성향은 71.1%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100만원이 있으면 71만1000원만 쓰고 나머지는 저축했다는 뜻이다. 소득이 줄어듦에 따라 소비는 더 줄이고, 이로 인해 저축이 증가해 가계수지 흑자가 늘어나는 전형적 불황형 흑자가 고착화하는 양상이다.

최근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소비 침체가 이렇게 우리 가계 경제의 구조적 악순환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이젠 대증요법식 내수활성화 정책으론 소비를 진작시킬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부의 정책은 땜질식 처방을 나열하고 있어 안타깝다. 지난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내수활성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내놓은 한가한 대책이 대표적이다. 평일 30분씩 더 일하고 금요일 두 시간 일찍 퇴근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날’, 고속철 조기 예약 시 요금 할인 등은 소비욕구가 있을 때 먹히는 정책이다.

지금은 소비욕구를 잃은 현실을 타개할 근본적이고 섬세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 선두엔 일자리 정책이 서야 하고, 노후 불안과 교육비 지출을 줄이는 등의 구체적 대안이 나와야 한다. 자칫하면 우리도 ‘잃어버린 20년’을 맞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높여야 할 때다.



5. 북한의 VX 암살, 대량살상무기 차원에서 제재할 때

말레이시아 보건당국이 김정남의 사망 원인이 화학무기인 신경작용제 VX 중독이라는 부검 결과를 지난 25일 최종 확인했다. 다중이 이용하는 외국 공항에서 화학무기를 인명 살상용으로 버젓이 사용한 것에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화학무기를 반인륜적·반인권적 대량살상무기(WMD)로 규정한 지 오래다. 1997년의 화학무기금지조약(CWC)에서부터 개발·생산·비축·사용을 금지했으며 미국과 러시아도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다양한 생화학무기 제조 능력을 보유한 데 이어 이미 수천t을 비축해 실전에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는 물론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새로운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CWC는 물론 전시 생화학무기 사용을 금지한 1925년 제네바 의정서에도 가입을 거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화학무기 사용 전력이 있는 시리아 정부군 등 반인륜적 집단에 화학무기를 확산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국제사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 정권을 철저히 제재해 화학무기 확산은 물론 생산과 비축도 포기하도록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 마침 윤병세 외교장관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이사회와 제네바 군축회의에 파견됐다. 윤 장관은 다자외교 무대에서 북한의 화학무기 사용을 새롭게 의제화해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 정부는 미국과도 협조해 2008년 11월 삭제했던 테러지원국 명단에 북한을 새롭게 올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북한 정권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금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해 2회의 핵실험과 24회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이어 올해 초에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데 일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발생한 쿠알라룸푸르 공항의 VX 테러는 국제사회가 더욱 강하게 손잡고 대북제재에 나서야 할 필요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국제사회는 핵과 미사일에 이어 화학무기까지 만지작거리는 북한에 대해 이제 WMD에 대응하듯 행동으로 응징해야 한다.



[서울신문]

6. 수사 시한 하루밖에 안 남은 특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 기한이 만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특검은 주말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소환했고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수사 기한이 연장되든 안 되든 끝까지 고삐를 죄겠다는 태세다. 지난 두 달 동안 특검이 거둔 수사 성과에는 누구도 이견을 달기 어렵다. 이런 사정이니 수사 기간 연장을 놓고 시시각각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특검의 연장 여부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 국회 특검법 개정안, 국회의장 직권상정 등의 연장 카드가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모두 무산되면서 며칠째 국민은 황 대행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특검이 연장을 공식 요청한 지도 열흘이 넘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특검 연장에 찬성하는 국민은 10명 중 7명꼴이다.

이번 특검은 과거 어느 특검보다 큰 수사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검이 꾸려지기 전까지 검찰은 정권 눈치만 살피는 무소신의 극치를 보였다. 답답증에 시달린 국민에게 휴일도 반납하며 성역 없는 수사에 매진한 특검은 막힌 속을 뚫어 주는 ‘사이다’나 다름없었다.

특검 연장을 다수 국민이 지지하는 이유는 수사의 거침없는 외형에만 있지 않다. 특검은 갈 길이 아직 멀다. 국정 농단의 정점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약속을 깨고 특검 조사를 끝까지 무시하고 있다. 청와대 압수수색이 막힌 통에 국정 농단의 막후 핵심인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구속을 모면했다. 삼성을 뺀 나머지 재벌 기업들의 수사에는 손도 못 댔다.



특검의 서슬퍼런 결기에도 사정이 이런데, 검찰로 수사가 넘어가면 가까스로 벗겨진 진실마저 흐지부지 덮이지 않을까 걱정이다. 만약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다면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특검이 연장되든 검찰로 넘어가든 수사가 대선 기간과 맞물려 정국의 혼돈은 불가피하다. 어차피 그런 혼란을 피할 수 없다면 기왕에 수사에 가속을 붙인 특검에 맡겨 두는 편이 효율적이다. 압도적 민심이 특검 연장을 고대하는 까닭이다.

야권은 황 대행이 연장을 승인하지 않으면 탄핵도 불사하겠다고 벼른다. 현실이 된다면 가뜩이나 불안한 탄핵 정국에서 국가적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황 대행은 한가하게 ‘권한대행 기념시계’ 논란의 주인공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특검의 역사적 의미와 절박한 민심을 분초를 다퉈 살피고 결단해야 할 마지막 순간이다.



7. 삼성의 쇄신, 투명 경영 확산 계기 되길

변화를 향한 삼성의 몸부림이 예사롭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탈퇴에 이어 10억원 이상의 후원금과 사회공헌기금은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했다.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 온 미래전략실 해체와 강도 높은 인적 쇄신도 준비하고 있다. 삼성의 이 같은 혁신이 재계 전반에 투명 경영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삼성전자 이사회가 지난 24일 기부를 포함한 10억원이 넘는 후원금과 사회공헌기금 등에 대해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의무화한 결정은 재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동안 기부금이 500억원 이상일 경우에만 경영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쳤던 것을 감안하면 기부금 지출 기준을 50배 이상 강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모든 후원금과 사회공헌기금에 대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공시하고 사전 심사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 등 혐의로 구속된 초유의 사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삼성의 자구책인 셈이다.

삼성은 한발 더 나아가 그룹의 경영은 물론 대외업무 등을 총괄해 온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는 데다 인적 교체 등을 포함한 강도 높은 그룹 쇄신안을 다음달 발표하기로 했다. 대국민 사과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 내겠다는 의지로 보여 준 전경련 탈퇴 선언에 이어 투명 경영을 위해 환골탈태하겠다는 삼성의 방향은 바람직하다. 한층 높아진 국민의 눈높이에 경영 투명성을 높이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함의 반영이다. 글로벌 시대의 요구이기도 하다.

다른 기업들도 예외일 순 없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드러난 기업들의 주먹구구식 경영 형태를 바꾸지 않고서는 정경유착은 말할 것도 없고, 기부금 등을 강요하는 권력의 관행을 끊어 낼 수 없다. 다행히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도 지난주 열린 이사회에서 기부, 후원금, 출연금에 대한 의결 기준을 명확히 했다.



지금까지 기부금과 후원금 등을 경영진 전결로 처리해 온 롯데, LG, 한화 그룹 등에서도 삼성이나SK와 비슷한 수준의 조치들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해체 압박을 받고 있는 전경련도 혁신안 구상에 돌입했고,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보다 강력한 윤리강령의 실천을 다짐했다. 재계의 쇄신 움직임이 몸사리기식의 일과성 대응책이어서는 결코 안 된다.

정치권과 정부도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구본무 LG 그룹 회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입법을 통해 출연금 등 준조세를 막아 달라”고 호소했다. 기업의 노력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공익을 내세우며 기부, 후원 등을 요구하는 각종 외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기업은 별로 없다.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이유다. 기업 또한 투명 경영을 내세워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일은 없도록 살펴야 할 것이다.



8. 윤 외교, ‘김정남 독살’ 대북 공조 끌어내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오늘과 내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제34차 유엔 인권이사회와 제네바 군축회의 고위급 회기에 참석한다. 김정남 독살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에서 윤 장관의 제네바 방문은 시의적절하다. 정부는 두 회의에 당초 차관을 파견할 예정이었다. 평양 지도부가 제3국 국제공항에서 대량파괴무기(WMD)인 신경성 독가스 VX를 사용한 테러를 자행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정부는 우리측 참가자를 격상해 100여명의 각국 대통령·장관급 등 고위 인사에게 북한의 인권 상황과 화학무기 문제를 쟁점화하게 된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는 참가국들이 북한의 인권침해를 비난하는 새로운 결의안을 낼 계획이다. 3월 23, 24일 채택할 결의안에 김정남 독살 문제를 담을 수 있도록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윤 장관은 군축회의에서도 북한이 핵 능력 고도화를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북핵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는 물론이고 사용이 금지된 맹독성 무기를 테러에 사용한 북한의 행위를 명백히 하고 규탄의 목소리를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과 화학무기 테러 위협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는 별도로 국제사회의 공조도 가시화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가 3월 1, 2일 뉴욕에서 개최 예정이던 ‘북·미 트랙 1.5’(반관반민) 대화에 참여할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주국장의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국무부가 사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지난 12일의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김정남 독살 사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려는 의회의 움직임에 발맞춰 미 국무부도 이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정부도 최상의 보안을 필요로 하는 자국 공항에서 화학무기로 살상을 저지른 북한에 외교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4일 말레이시아 경찰이 암살에 쓴 화학물질을 VX로 특정한 데 이어 보건장관까지 나서 이를 확인했다. 말레이시아의 격분한 시민단체들이 북한과의 외교 관계 단절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데, 자국의 안방에서 테러를 저지른 잔인무도하고 깡패 같은 국가에 대한 징벌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김정남 독살은 세계 3위의 화학무기 보유국인 북한의 위험성을 재확인해 줬다. VX를 장착한 스커드 미사일 한 발이면 서울에서 12만명을 살상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세계 192개국이 회원국인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에 가입하지 않은 북한의 폭주를 좌시해서는 안 된다.



[이데일리]

9. 중소기업 살려야 청년실업 해결된다

중소기업 직원들의 월평균 임금(2015년 기준)은 306만원으로, 대기업(561만원)의 54.5%에 불과하다고 한다. 특히 금융 공기업에 비교하면 채 40%가 안 된다는 게 고용노동부의 집계 결과다. 사정이 이러니만큼 어느 구직자가 선뜻 중소기업의 문을 두드리려 하겠는가. 청년 실업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도 정작 중소기업은 일 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로 인한 일자리 편중현상, 이른 바 고용시장의 부조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청년층 취업 선호도 6.1%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기관(23.7%)이나 대기업(18.7%)에 훨씬 못 미친다. 중소기업들이 인력난에 부딪친 이유다. 중소기업의 80.5%가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나마 채용해도 80%가 1∼2년 내에 그만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중소기업연구원의 분석이다.

중소기업은 국내 기업의 99%, 고용률 88%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중소기업이 무너지면 경제도 위태로워지고 일자리도 사라진다는 얘기와 같다. 독일의 경우 대기업 임금이 100이라면 중소기업은 90으로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도 최악의 청년실업을 개선하고 중소기업 인력난을 해소하려면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게 시급한 과제다.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 향상과 자생력 강화를 위해 기술개발 및 금융지원 등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중요하다. 실질 임금이 많아지도록 성과급 세액공제 등 중기 직원에 대한 세제혜택을 검토할 만하다. 대기업들도 적정 납품단가를 보장해 이익을 나누는 자세가 필요하다. “중소기업에 다니면 맞선 보기도 힘들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중기에 다니면 은근히 낮춰보는 사회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젊은이들도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 당장은 처우가 좋지 않더라도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보람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장점도 없지 않다. 대기업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간다는 도전정신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취업의 문도, 성취의 길도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10. 드디어 최종변론에 이른 탄핵심판

오늘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마지막 재판이 열리도록 예정된 가운데 최종 결정까지 무사히 이를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퇴임일인 내달 13일 이전까지는 최종 선고를 내린다는 게 헌재의 방침이어서 불과 2주간 밖에는 기간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탄핵심리가 막판에 이를수록 온갖 변수가 돌출하면서 탄핵열차의 진로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헌재 재판관들에 대한 신변 위협이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의 헌재 압박 움직임이 가열되면서 자칫 특정 재판관에 대한 물리적인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20대 남성이 박 대통령 지지자들의 온라인 카페에 “이 권한대행을 살해하겠다”는 글을 올렸다가 수사 착수에 따라 자수한 것이 하나의 사례다. 경찰이 헌재 재판관들에 대해 24시간 밀착 경호에 들어갔지만 돌발 상황에 대해서도 만반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지연작전도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대리인단은 국회에서 의결된 탄핵소추 절차와 헌재 ‘8인 재판부’ 선고의 문제점을 거론하며 그동안 진행된 탄핵심판 과정이 잘못됐음을 강변한다. 구체적인 혐의 내용을 두고 다투다가 심리가 막바지에 이른 단계에서 다시 원론적인 문제를 끄집어냈다는 자체가 지연책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오늘 최종변론에 박 대통령이 직접 출석하지 않기로 한 것도 유감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헌재가 앞으로 최종 결정을 내리기까지 탄핵을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도심 집회가 더욱 극렬해질 것이라는 게 문제다. 박 대통령의 취임 4주년을 맞던 지난 주말 도심에서 서로 세과시를 했던 양측은 이틀 뒤인 3·1절 공휴일에도 총동원령을 내려놓고 있다. 헌재에 대한 압박인 동시에 최종 결정이 자기들의 뜻과 어긋난다면 승복하지 않겠다는 예고편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재판부가 이미 예고했다시피 오늘 일정으로 탄핵심판 변론은 모두 마무리된다. 그리고 열흘여 뒤에는 최종 결정이 내려지게 될 것이다. 마지막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탄핵 지지자들이나 반대자들의 자제하는 모습이 요구된다. 대권주자들을 포함한 여야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헌재가 외부 압력에 떠밀려 결정을 내린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고재윤의 ‘스토리가 있는 와인’] ‘트럼프의 와인’ 블랙 스탤리온 에스테이트

유명 VIP가 마시는 와인은 언제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지난 1월 20일 거행된 제45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만찬에 등장한 음식과 와인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의 미식가와 와인 애호가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의 미(味)적 감각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공식석상의 와인은 리더십과 정책 비전 등 여러 상징적인 뜻이 담겨 있어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트럼프 대통령은 와인과 위스키를 포함해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자신의 취임식에는 의전에 따라 와인을 제공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동부 버지니아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트럼프 와인’, 그리고 트럼프 소유 기업에서 생산한 음식과 식자재가 있지만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이날 공식 메뉴에선 배제됐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는 스파클링 와인,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이 각각 1종씩 선정된다. 이번 취임식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그대로 반영하듯,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만 3개가 선정됐다. 

특히 스파클링 와인 ‘코벨 스페셜 인아우구랄 퀴베(Korbel's Special Inaugural Cuveé)’가 화제가 됐다. 캘리포니아 러시안 리버 밸리 지역에서 생산되는 ‘캘리포니아 샴페인(CaliforniaChampagne)’인데, 2006년 미국과 유럽연합 간 체결된 협정 규정상 미국 스파클링 와인에 샴페인이란 이름을 사용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 샴페인’이라고 해서 프랑스와 마찰을 빚은 와인이다. 

화이트 와인은 만찬에 나온 바닷가재와 새우 요리에 어울리는 ‘제이 로어 아로요 비스타 샤르도네(J. Lohr Arroyo Vista Chardonnay) 2013년산’이 제공됐다. 레드 와인은 미국산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와 조화를 이룬 ‘블랙 스탤리온 에스테이트 카베르네 소비뇽 2012년산 한정판(BlackStallion Estate Winery's Limited ReleaseCabernet Sauvignon)’이 나왔다. 두 와인은 모두 미국 현지에서 약 2만5000원 내외에 판매되는 대중적인 와인이다. 이들 와인은 재벌 대통령의 권위적이고 사치스러운 이미지를 벗고, 대중에 친근하게 다가가는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취임식 공식와인 3종 모두 미국산…‘아메리카 퍼스트’ 반영

그중 블랙 스탤리온 에스테이트 카베르네 소비뇽 2012년산 한정판 와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블랙 스탤리온은 미국에서 3대에 걸쳐 85년 이상 와인 양조를 한 인델리카토 가족(Indelicatofamily)이 2010년 5월에 인수한 와이너리다. ‘우아하고 차별화된 고품질 와인이면서도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란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나파밸리 오크놀(Oak Knoll) 지역에 있는 과거 승마경기장을 개조해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주로 카베르네 소비뇽, 말벡, 샤르도네 포도 품종을 유기농 재배하며 모든 포도 농사뿐 아니라 양조도 수작업으로 하고 있다. 2007년 7월 나파밸리의 권위 있는 와이너리 컬렉션에 선정돼 유명세를 탔다.

블랙 스탤리온 에스테이트 카베르네 소비뇽 2012년산은 100%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 품종을 사용해 만든 와인이다. 검은색을 띤 체리 컬러, 코코아, 딸기, 블랙베리, 커피, 계피, 향신료향이 나는 우아한 와인으로, 균형 잡힌 타닌과 과일향이 오랫동안 여운을 준다. 쇠고기 스테이크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며, 로즈마리와 검은 후춧가루를 입힌 쇠고기 갈비 로스트 또는 어린 양고기 스테이크와도 절묘하게 어울린다.



2. [매경이코노미][HEALTH] 소리 없는 실명 ‘녹내장’ 당뇨·고혈압 있다면 조기 검진·관리해야

당뇨병 진단을 받고 나면 꼭 정밀검사를 통해 발병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안질환이 있다. 녹내장이다. 녹내장은 눈으로 받아들인 빛을 뇌로 전달하는 시신경에 이상이 생겨 시야가 점점 가려지는 질환이다. 중증으로 발전하면 눈동자가 뿌옇게 변해 녹색빛을 띠며 그대로 두면 결국 실명하게 된다.

녹내장 유병률은 약 3~4%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해마다 환자 수가 늘고 있다. 녹내장으로 진료받은 환자가 2010년부터 2015년 사이 약 73%나 증가했다. 녹내장 발생 가능성이 높아 정기적으로 진료를 보는 이들을 추산하면 10명 중 1명꼴이라고 하니 녹내장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질환임을 알 수 있다. 

박가희 순천향대부천병원 안과 교수는 “요즘은 라식이나 라섹 등 수술을 하면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일찍이 녹내장을 발견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유병률도 점차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고도근시가 있을수록 녹내장이 생길 위험이 커진다. 가족력도 영향을 미친다. 박 교수는 “당뇨병과 녹내장의 연관성에 대해선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당뇨병을 앓는 사람의 녹내장 발생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약 1.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녹내장은 크게 그 종류가 개방각 녹내장(급성)과 폐쇄각 녹내장(만성)이 있다. 이 중 폐쇄각 녹내장은 눈의 구조상 안구가 비교적 작은 사람들에게 많이 생긴다. 또 체구가 작은 중년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편이다. 개방각 녹내장은 특별히 환자들의 특성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녹내장에서 문제가 되는 시신경의 손상은 주로 안압이나 혈류가 정상적이지 못할 때에 발생한다. 박 교수는 “안압이 높다고 꼭 시신경이 죽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안압만 재는 일반적인 건강검진에서 녹내장이 발생한 것을 놓치고 지나갈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녹내장을 치료하는 방법은 약물 치료, 레이저 치료, 수술 치료가 있다. 세 가지 모두 눈의 안압을 낮춰 더 이상 시신경의 손상이 진행되는 것을 막는 것이 핵심 관건이다. 

약물 치료는 점안제나 먹는 약을 처방받는 것이다. 점안제 사용으로 눈에 이물감을 느낄 수 있으며 오랜 기간 사용하면 눈 주변 피부에 착색이 될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레이저 치료는 방수(눈 속에서 만들어지는 물)가 눈 안에서 순환하는 통로에 레이저를 쏴 그 길을 넓혀주는 방법이다. 합병증이나 부작용이 적어 약물 치료의 보조 치료나 수술 전 단계로 사용된다. 수술 치료는 아예 구멍을 뚫어 새 통로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안압을 적정한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을 성공이라고 볼 때 수술 치료의 성공률은 보통 70% 정도다. 수술을 해도 별로 안압이 떨어지지 않거나 혹은 너무 많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녹내장은 증상을 잘 느끼지 못해 소리 없는 실명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병이다. 눈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의 시야부터 문제가 생기다 보니 잘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증상을 느낄 때쯤이면 말기인 환자들을 많이 본다. 40대 이후에 조금이라도 앞이 뿌옇거나 초점이 안 맞는 증상이 있다면 정확히 눈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박 교수의 조언이다.



3.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핀커스 주커만

20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이 영국 실내 관현악단(The EnglishChamber Orchestra) 지휘자로서 처음 독일 연주에 나선 무대였다. 지휘자 겸 독주자로서 주커만이 무대에 등장해 단원들과 튜닝을 하고 있을 때, 한 청중이 “집어치워라”라고 고함을 쳤다. 연주자와 관객 모두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이때 주커만이 객석을 향해 돌아서서 그 난동꾼(?)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여기에 왔다. 당신의 입장료를 돌려줄 테니 당장 나가시오! 나는 수없이 많은 곳에서 연주했다. 독일을 포함해 내 생애를 통틀어 당신 같은 청중은 처음이다.”



청중들은 응원의 박수를 보냈고, 문제의 사나이에게 조용히 퇴장할 것을 요구했다. 무대 위의 단원들 역시 그 청중에게 퇴장할 것을 손짓으로 표현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느닷없는 이 사태의 원인에 대해선 알 수 없다. 굳이 떠올린다면 그곳이 독일 땅이고, 주커만이 유대인이라는 것 정도만 유추할 뿐. 당당하게 자신의 무대를 지킨 주커만은 오히려 이 일을 통해 음악가로서 자신의 긍지와 인상을 강렬히 심어줬다. 

주커만은 그와 동시대 라이벌이자, 같은 스승의 제자며 같은 유대인인 이작 펄만과 비교된다. 펄만과 나란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태계 바이올린 주자의 전형적인 한 조류를 잇는 이스라엘 출신 바이올리니스트인 그는 역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예후다 주커만’의 아들. 

부친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바이올린을 하게 된 주커만은 13세에 아이작 스턴과 카잘스에게 인정받아 줄리어드 음악학교에 들어갔다. 데뷔 후 레벤트리트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의 정경화와 공동 우승했다. 이후 건강 문제로 연주를 할 수 없었던 스턴을 대신해 몇 차례 협연하면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정경화, 이작 펄만과 함께 20세기 후반 3대 바이올리니스트로 자리매김했다.



펄만이 바이올린 특유의 예민하고 날카로운 성격과 연주 기법에 충실한 기교파라고 하면 주커만은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풍성한 음색의 소유자다. 바이올린과 함께 비올라도 연주하는 멀티 플레이어다. 

펄만과 달리 지휘자로서도 활동했다. 그는 1960년대 후반,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했던 영국 실내 관현악단과의 연주에서 악장 자격으로 바흐와 비발디 작품을 연주할 기회를 갖게 되면서 지휘자의 길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결국 1974년 이 오케스트라에서 공식 지휘자로서의 데뷔 무대를 갖는다.



이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국립교향악단,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같은 세계 정상급 교향악단의 객원 연주자로 활동했다. 1998년부터는 캐나다 오타와의 국립예술센터 오케스트라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지휘자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주커만은 바이올리니스트나 비올리스트인 솔로 연주도 인상적이지만 여러 연주자가 함께하는 실내악 연주에서 특히 더 빛난다. ‘협업(協業)’의 매력과 의미를 잘 터득하고 있는 흔치 않은 솔리스트라 할 수 있겠다.



4. [강원일보사][대청봉] 벤저민 프랭클린 효과

사회 심리학자인 레온 페스팅거가 제기한 인지부조화 이론이 있다. 사람은 인식과 현실의 사이, 즉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모순된 믿음을 갖게 되는 난감한 상황에 자주 처하곤 한다. 이럴 때 인식과 현실 간의 불일치한 믿음이 불편한 만큼 불일치를 제거하려 애쓰게 된다는 것이 인지부조화론의 골자다. 간단히 말해서 일종의 자기합리화다. 

인지부조화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다. 흡연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흡연자는 흡연이 건강에 나쁘다고 인식하면서도 금연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이때 `윈스턴 처칠은 하루에 담배를 3갑 이상 피우고도 장수했다' `흡연은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인지부조화를 해소한다. 여기에서 간접흡연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볼멘소리하는 비흡연자에 대한 생각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찬반을 두고 국민들이 촛불과 태극기로 쪼개져 집회를 열며 극한 대립을 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많은 사람은 박 대통령이 오직 국가만 생각하는 애국자이자 욕심조차 없고 나라와 결혼한 성녀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특검의 수사를 통해 그녀가 직권 남용, 직무 유기에 이어 뇌물죄의 피의자라는 혐의가 점차 사실로 드러나자 그들은 인지부조화라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결국 그들은 `박 대통령은 피해자' `누군가의 기획에 따른 음모'라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생각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학자들 대부분은 개인적 차원의 경우 자기의 정체성 확보를 위한 아집이든, 자기 합리화든 인지부조화를 극복하고 인지조화를 얻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공적 차원에서 이 현상을 방치하면 대중을 파괴하는 독소로 큰 사회적 문제가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적 영역에서는 결정을 내린 일이라고 하더라도 판단이 잘못됐다면 합리화하는 쪽으로 몰아가기보다는 그 결정을 서둘러 철수하는 노력이 정책 효율화나 사회 통합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시점에 벤저민 프랭클린 효과를 통해 개인 간 불화를 해소하고 사회적 통합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와닿는다. 19세기 중반, 미국의 저명한 정치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자신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의원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상대 의원에게 소장하고 있는 책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1주일이 지난 후에 프랭클린은 상대 의원에게 호의에 감사하는 편지를 보냈고, 그 후 상대 의원이 프랭클린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정중한 행동을 보이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현상이 프랭클린 효과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먼저 양보의 손길을 내미는 게 소통의 출발점이라는 말일 것이다. 사회적 갈등이나 개인적 반목 대부분이 인지부조화에서 출발한다고 할 때 프랭클린 효과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양극단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바가 많다.



5. [한국일보][삶과 문화] 봄맞이 때청소

3월이 성큼 다가왔다. 묵은 때를 벗기려고 어머니를 모시고 목욕탕엘 갔다. 성인 5,000원 소인 3,000원 하는 동네 목욕탕. 오렌지 빛깔 타월을 두 장씩 받아 들고, 신발은 벗어 신발장에 넣고, 허술한 커튼을 젖혔다. 탈의실 겸, 매점 겸, 간이 식당이자 메이크업 룸인 내실 한가운데는 널찍한 평상이 놓여 있고, 한 쪽 벽에는 옷장들이 아래 위 두 줄로 서 있다. 옷장 옆 선반에는 단골들이 맡긴 알록달록한 목욕바구니들이 나란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평상에서는 언니, 동생으로 서로를 부르는 주인과 손님들의 수작이 재미나다. 반짝이가 붙어 있는 하나도 안 예쁜 옷을 예쁘다 입어 보라 권하고, 과일을 깎아 나눠 먹고, 뚱뚱한 어깨에 부항을 붙여 주며 ‘아랫배가 홀쭉하네잉~’ 거짓말을 한다.

“따님이랑 같이 오셨네요? 난 아들만 둘이라… 부러워요.” 처음 만난 머리 허연 아주머니가 말을 건넨다. “그러게요, 딸이 있으니 좋네요. 그래도 아들이 있어야 든든하죠.” 딸도 있고 아들도 있는 우리 엄마, 공연히 으쓱한 기분이 되어 아들만 둘인 아주머니를 위로 한다. 

목욕탕 안에는 할머니 따라온 두어 살 뽀얀 아기가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다 마신 빈 우유통이 아기의 손에서 배가 되어 대야 위를 떠다녔다. 구석에서는 가슴 막 자라기 시작한 처녀 아이 둘이 소곤대며 몸을 씻고 있다. 

“엄마 때밀이 아줌마한테 때 밀래요?” “미쳤어? 왜 그런 데 돈은 써?” 엄마의 지엄한 말씀에 나는 엄마의 등에 비누칠을 하고, 엄마는 내 등을 연두색 이태리 타월로 문지르신다. 오래 전 초등학교 때 나의 단골 세신사는 7번 아줌마였다. 엄마가 목욕탕에 동행할 수 없을 때는 7번 아줌마를 찾아 몸을 씻었다. 그 시절 대중목욕탕에는 빨래를 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아무렇지도 않게 붙어 있었다.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는 빨래비누를 문질러 벗은 속옷과 수건을 빨았다. 두꺼운 겨울 내복을 빨지 않는 것 정도가 예의를 차리는 것이었다.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목욕탕을 나왔다. 엄마의 발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걷는데 들어갈 때보다 햇살이 좀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아직 바람 쌀쌀하고 수은주는 자주 영하에 머물고 있지만 봄을 이기지 못하는 겨울은 물러날 채비를 하고 있다. 봄을 맞으러 어디 남도에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봄기운 오르기 시작한 들판을 자동차로 드라이브 하며,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노래하던 어느 타이어 광고가 떠올랐다. 아니 그 광고 속 싸이의 노래가 생각났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Song) 까만 밤을 지나야 해가 뜨듯이/ 차디찬 겨울 지나야 봄이 오듯이/ 고통의 시간을 지나/ 그래 보자 누가 이기나/ 끝내 좋은 날이 온다 반드시/ 걱정 말아요 그대/ 반드시 이유가 있겠지/ 실패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인생 다시 살어/ 좋은 날이 올 거야/ 인생 우는 만큼 웃는 거야 (금호타이어 영상광고카피)

가수 싸이와 금호타이어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지난 해 4월 만들어진 이 광고는 일상에 지친 젊은이들이 위로 받고 기운 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광고 카피는 싸이의 ‘좋은 날이 올 거야‘라는 노래 가사로 거의 채워져 있다. 함께 녹음한 로커 전인권의 목소리가 삶이 힘든 이들을 토닥토닥 위로한다. 

솔직히 말하면 겨울 뒤에 봄이 올 것을 알면서도 겨울을 견디는 일이 쉽지는 않다. 유독 내게만 기나긴 겨울이 계속될 것 같은 때도 있다. 그러나 결국 봄은 오고 지천에 겨울을 이긴 봄꽃이 활짝 피어날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묵은 때 활활 벗긴 내 몸에도, 여든 네 번의 길고 추운 겨울을 넘긴 우리 엄마의 몸에도 싱그러운 봄기운이 넘칠 것이다.



겨울 내내 그렇게 한마음으로 촛불을 밝혔으니 3월엔 광장에도 환한 꽃소식이 들릴 것이다. 촛불 대신 축하의 불꽃이 봄하늘을 가득 채울 것이다. 어느 때보다 간절히 새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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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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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80조원 쓰고도 40만명까지 떨어진 신생아 수

젊은층이 결혼과 출산을 꺼린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정부가 혼인율과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그간 내놓은 대책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온갖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갔다. 통계청이 어제, 그제 내놓은 지난해 출생·사망·인구 동향은 우리 사회의 저출산과 혼인 기피 현상이 위험 수위를 넘어 국가의 미래 운명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임을 여실히 보여 준다.

지난해 출생아는 40만 6300명으로 전년보다 3만 2100명(7.3%)이나 줄었다고 한다. 1970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소치다. 2002년 처음 50만명대가 무너지더니 14년 만에 40만명 선마저 위협받게 생겼다. 출산율은 1년 새 1.24명에서 1.17명으로 추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평균 1.68명에 한참 못 미친다. 혼인 건수도 전년(30만 2828건)보다 2만건 이상 줄어든 28만 1800건에 그쳤다. 30만건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00년 월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혼인·출생 동반 감소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2006년 이후 저출산 대책 관련 예산으로 80조원가량을 투입했지만 이 기간 출생아 수는 오히려 42만명이나 줄어들었다. 80조원이면 5000만 국민에게 1인당 160만원씩 돌아가는 돈이다. 그런 막대한 예산을 쓰고도 정부 저출산 대책이 헛바퀴를 돈 것은 정책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거나 근본 대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 아니겠는가.

이제 와서 출산율과 혼인율이 왜 떨어지는가에 대해서는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그 원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선 10년간 80조원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평가부터 해야 한다. 객관적인 기관의 주도로 백서를 펴냄으로써 관련 정책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인구정책개선기획단’을 만들 계획이라고 하나 그 정도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혼인 기피와 출산율 저하는 고용, 주택, 보육·교육 문제가 얽혀 생기는 것인데 그동안 각 관련 부처가 생색내기식으로 대책을 따로 내놓다 보니 효과를 보지 못한 측면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차기 정부 부처 통폐합 과정 때 출산·혼인 전담 부서를 신설할 것을 제안한다. 새 부서가 부처별로 분산된 정책을 하나로 묶어 국정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되 고용부·국토부·교육부·여성가족부 등과 긴밀한 협의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찾기 바란다.



2. 돈 쓸 시간과 여건을 만들어 줘야 내수가 산다

정부가 내수 진작책을 발표했다. 소비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그나마 지갑을 채워 주는 소득 확충 방안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아 미봉책이란 지적이다. 고용불안, 가계부채 등 국민이 지갑을 닫을 수밖에 없게 하는 현실을 타개해 줄 근원적인 해법을 찾는 데 정책적인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어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내수 활성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대략 200여개나 되는 내수 활성화 대책이 나왔다. 정부가 사용할 카드는 다 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가 올 초 소비 제고 방안을 내놓은 지 2개월 만에 다시 꺼내 든 정책이다. 그만큼 내수 둔화세가 심상치 않다는 뜻이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전망했지만 소비가 지속적으로 둔화하면서 1분기 성장률이 예상치를 밑돌 가능성이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대책은 소비심리 회복과 세액 감경 등으로 요약된다. 특히 매월 금요일 하루를 ‘가족과 함께하는 날’로 정하고 2시간 일찍 퇴근토록 하는 유연근무제 도입에 관심이 쏠린다. 가족이 쇼핑, 외식 등을 즐기게 하고 소비도 함께 늘려 보겠다는 것이다. 영세 자영업자에게는 연 2.39%의 금리로 업체당 7000만원까지 빌려주기로 했다.



부자들은 돈을 쓸 수 있게 하고, 소득이 낮은 가계는 생계비를 절감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해외 골프 수요를 국내로 돌리기 위해 세 부담을 줄이고 규제도 풀어 주겠다는 방안은 그래서 주목된다.

문제는 의도대로 효과를 거두려면 먼저 소비 심리가 살아나야 하는데 그럴 기미가 별로 없다는 데 있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93.3)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데다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대내외의 불확실성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탄핵 정국으로 약화된 국가 리더십이 상반기 내내 지속될 가능성이 큰 데다 미국, 중국 등의 보호무역주의 경향마저 우리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조선업 구조조정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고용불안과 생활물가 상승은 가계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해 소비 여력을 높이기란 만만치 않다. 1300조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도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국내 정치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법 개정 등 관련 절차를 마무리하고 시행하기까지는 하세월이라는 데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대책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행정력을 높여야 한다. 소비 진작에는 타이밍과 심리가 중요하다. 미래가 희망적이어야 소비가 늘고, 경기가 활성화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일자리 창출과 내수 진작 효과가 큰 서비스 산업을 활성화하고 가계소득을 늘릴 수 있는 적극적인 정책적 뒷받침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3. 정치폭력 그림자 드리운 2017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이 어제부터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사건 이후 처음으로 경찰의 24시간 근접 신변보호를 받고 있다. 헌재가 경찰에 개별 경호를 요청한 데 따른 조치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일부 극우 진영의 테러 움직임이 있다는 첩보에 따라 자체 경호를 강화했다. 다음 달 초로 예상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을 앞두고 정치적 선동이 도를 넘어서면서 헌재 재판관과 유력 정치인의 신변 안전까지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서울 종로구 재동의 헌재 주변은 평일에도 수많은 경찰과 버스로 둘러싸여 있다. 정문 앞에선 각기 탄핵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는 피켓 시위가 계속된다. 퇴근 시간이면 탄핵 기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관용차로 나오는 재판관을 향해 태극기를 흔들면서 고함을 치는 바람에 재판관들은 지하에서 차를 타고 정문이 아닌 옆문으로 나간다고 한다. 이번 주말 대규모 시위대가 몰려들고 만약의 사태로 재판관 2명 이상이 사고라도 당하면 현재 8인 체제인 헌재가 6명이 돼 심판 절차가 중지될 수도 있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열린 22일 변론기일에서 박 대통령 대리인단 김평우 변호사는 “헌재가 (공정한 심리를) 안 해주면 시가전이 생기고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란 극언을 퍼부었다. “대통령파와 국회파가 갈려 이 재판은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내란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 영국 크롬웰 혁명에서 100만 명 이상 죽었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헌재 결정 이후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이 낳을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라지만, 너무 섬뜩하다. 폭력과 테러를 예고하는 선동을 길거리 시위도 아닌 재판정에서 쏟아놓은 것이다. 오죽하면 김 변호사가 회장을 지낸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이를 비판하는 특별성명까지 냈을까. 대한변협 차원의 징계는 물론이고 법정모욕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우리 국민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성난 민심에 거대한 촛불을 들면서도 질서 있고 평화로운 시위문화로 한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특히 과거 무질서가 난무하던 광장에서 폭력의 어두운 그림자를 물리치고 새로운 광장민주주의로 승화시킨 데 대해 세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만에 하나 법치주의를 유린하는 정치폭력이 일어난다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시킨 세계 10위권 대한민국의 정치문화는 좌우 테러가 횡행하던 해방공간 시절로 추락하는 것이다. 헌재 심판 선고까지 앞으로 20일도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떤 불상사도 없이 승복과 화해의 새 역사를 써 나가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4. 김정남 암살 南에 떠넘긴 北, 천안함 때와 똑같다

북한이 어제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첫 반응을 내놨다. 예상한 대로 뚜렷해지는 북측 책임에 대해 ‘오리발’을 내놓은 데다 ‘한국 정부의 대본에 따른 음모 책동’이라고 남측에 책임을 떠넘기기까지 했다. 북은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말레이시아에서 외교 여권 소지자인 우리 공화국 공민이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갑자기 쇼크 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사망한 것은 뜻밖의 불상사”라고 주장했다.

북은 이 담화에서 김정남의 이름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공화국 공민의 쇼크사’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명백히 남조선 당국이 이번 사건을 이미 전부터 예견하고 있었으며 그 대본까지 미리 짜 놓고 있었다”고 억지를 부렸다. 한국 정부가 ‘쇼크사’까지 예견하고 각본까지 짰다는 것인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은 김정남 부검에 대해서도 ‘공화국의 자주권에 대한 노골적 침해이고 인권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가 자국 공항에서 발생한 의문사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부검을 실시한 것은 주권에 속하며 국제적 관행에도 부합한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22일 2차 발표를 통해 현지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과 고려항공 직원도 이번 사건의 용의자라고 지목했다.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면 관련자들부터 내놓아야 한다. 북은 암살에 사용된 독극물의 성분 파악에 시간이 걸리자 “사건 발생 열흘이 지나도록 말레이 경찰은 어떤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다”며 영구 미제 사건화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1983년 아웅산 테러와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때도 북이 ‘허위 날조’라며 부인했지만 결국 그들 소행임이 드러났다. 중국이 이번에도 이 사건에 대해 침묵하며 북을 내심 편들고 있지만 국제사회가 북의 상습적인 거짓말에 농락당할 리 만무하다.

북은 한국 내부에서 “(이번 사건으로) 이득을 보는 세력은 박근혜와 자유한국당 국가정보원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 가고 있다”며 남남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번에 체포된 베트남 여성 용의자가 작년 11월 제주도를 다녀가고 평소 한국인과 교류가 많았던 것을 북이 책임 전가에 악용할 수도 있다.



천안함 폭침 사건 때도 범행을 부정하며 ‘남한 자작극’이라고 강변한 북에 동조했던 일부 세력이 이번에도 준동할까 봐 걱정이다. 탄핵 심판으로 국론이 심각하게 분열된 이때, 북의 남남 갈등 술책에까지 휘둘려선 안 된다. 안에서는 다툴지언정 밖으로는 미국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등을 통해 국제사회가 북을 엄중히 단죄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이데일리]

5. 전경련, 임원들 ‘퇴직금 잔치’ 벌이는가

오늘 전경련 정기총회를 마지막으로 물러나는 이승철 상근부회장의 퇴직금이 20억원 규모에 이를 것이라는 소식이다. 기획본부장을 시작으로 지금껏 18년 동안 임원으로 재직했기 때문에 퇴직금 규모가 이처럼 늘어났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전경련 내규상 상근부회장은 해마다 월평균 임금의 3.5배를 퇴직금으로 받도록 돼있다는 점에서도 그의 퇴직금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 직장 풍토에서 평소 열심히 근무한 데 대한 보상의 의미와 함께 노후생활을 보장한다는 의미까지 지닌 것이 바로 퇴직금 제도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경우는 이런 의미로 받아들이기에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대기업 강제모금을 주도함으로써 ‘최순실 게이트’의 단초를 제공했고 결과적으로 전경련 조직을 해체 직전까지 몰고 온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퇴직금이란 게 액수의 많고 적고를 떠나 전적으로 개인 프라이버시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 부회장이 그동안 전경련의 발전을 위해 공헌한 측면이 적지 않으리라는 점도 충분히 인정한다. 20년 가까이 임원을 지냈다는 사실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지금 상황에서 그에게 막대한 퇴직금을 지급하는 게 옳으냐 하는 논란이 제기되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더욱이 현재 전경련이 자칫 간판을 내릴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에 몰려 있으며, 그것이 이 부회장의 불찰로 야기됐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삼성과 LG, SK, 현대차 등 4대그룹이 전경련 탈퇴를 공식화하면서 다른 기업들의 이탈 움직임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이 청와대의 압력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다. 그가 이런 사태에 책임지지는 못할망정 두둑한 퇴직금 봉투까지 챙기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다.

또 다른 문제는 이렇게 과도한 퇴직금 산정이 가능하도록 이 부회장 자신이 미리 내부 규정을 바꿨을 것이라는 의혹이다. 전경련이 회원사들의 회비로 운영되면서도 임원들끼리 퇴직금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면 ‘도적적 해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전경련이 전열을 가다듬고 회생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이런 식이라면 국민적 동의를 받기도 어렵다. 이에 대한 전경련의 명쾌한 해명을 듣고자 한다.



6. 탄핵심판 다가올수록 후폭풍 걱정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가 마무리 국면에 돌입했다. 헌법재판소는 그제 증인 신문을 모두 끝내면서 당초 오늘로 잡았던 최종 변론기일을 27일로 늦췄다. 내달 초로 연기해 달라는 대통령 대리인단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되 늦어도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임기가 끝나는 내달 13일까지는 결판을 내려는 취지로 읽힌다. 업무일로 따지면 겨우 하루 늦춘 데 불과하지만 재판부로서도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제는 헌법재판관 전원의 의견을 집약하는 평의를 거쳐 결정문을 작성하는 일만 남겨놓고 있다. 박 대통령의 최종변론 출석 여부가 변수로 남아 있긴 하지만 헌재가 결정문의 기초가 되는 사실관계와 법리, 증언 등의 정리에 이미 착수한 만큼 다소 빡빡하더라도 가능한 일정이라 여겨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도 최종 변론기일에서 판결까지 2주일 걸렸다.

그러나 재판이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면서 재판부와 대통령 대리인단 사이에 험한 말과 고성이 오가고 주심 기피신청 사태까지 빚어진 것은 유감이다. 특히 그제 재판에서는 대통령 대리인인 김평우 변호사가 국회를 ‘야쿠자’로 몰아붙이고 뜬금없이 ‘약한 여자’ 운운하며 법리 논쟁에서 벗어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도 기피신청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재판관으로서 꼬투리 잡힐 언행은 절대 금물이다.

문제는 여야 정치권의 분위기가 헌재 결정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내려지지 않을 경우 거세게 저항할 것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심지어 헌재 재판에서 “탄핵심판을 국민이 결정하도록 맡기면 양측이 전면 충돌해 서울 아스팔트길 전부 피와 눈물로 덮일 것”이라는 변론이 등장할 정도가 됐다. 헌재 결정에 따라 민란이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대선 주자들의 선동적 발언부터가 문제다.

헌재가 오로지 헌법 정신에 근거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확실한 증거와 명쾌한 법리로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게 헌재의 책무다. 후폭풍을 막고 헌정질서를 유지하려면 국회가 헌재 결정에 대한 무조건 승복을 결의하고 모든 정당과 대선주자가 여기에 동의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박 대통령도 나중에 뒷말하지 말고 최후 변론에 나와 할 말을 하는 당당한 자세가 바람직하다.



[매일신문]

7. 서문 야시장 내달 3일 재개장, 차질 없게 잘 준비하라

서문시장 야시장이 다음 달 3일 재개장한다. 대구 중구청은 내달 1일부터 서문시장 4지구 주변 야시장의 도로점용을 허가한다고 23일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말 서문시장 4지구에 큰불이 나면서 야시장 문을 닫은 지 꼭 석 달 만이다. 이번 화재로 크게 훼손된 4지구 건물이 붕괴 우려가 높은데다 또 철거 작업 시 진`출입로 확보 등의 문제로 야시장 개장을 미뤄오다 이날 재개장 일정을 확정한 것이다.



그동안 야시장 재개장을 놓고 이르면 2월 중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관할 중구청이 “아직 검토할 것이 많다”는 이유로 계속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야시장 개장 일정이 불투명했다. 재개장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100여 야시장 상인들의 불만도 덩달아 높아졌다. 석 달째 생업에 손을 놓으면서 당장 생계가 곤란해지는 등 어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고 직후 화재 원인을 둘러싸고 야시장에 대한 4지구 점포 상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애꿎은 야시장 상인들의 속앓이만 깊어지고 재개장의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섣불리 재개장을 요구했다간 자칫 상인 간 반목과 대립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하면서 오해도 풀리고 서로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게 되면서 함께 뜻을 모아 다시 개장하게 된 것이다.



어떻든 상인들이 한마음이 되고 재개장에 합의한 것은 잘된 일이다. 야시장 재개장 여부는 100여 야시장 상인들의 생계뿐만 아니라 화재 이후 계속 침체되어온 서문시장 활성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다만 중구청이 안전과 절차를 이유로 ‘눈치 행정’을 펴온 것은 분명히 잘못됐다. 관할 구청으로서 행정 리더십을 발휘해 면밀히 재개장을 검토하고 일정을 좀 더 앞당겼더라면 불필요한 오해나 상인들의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중구청이 앞장서서 야시장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면밀히 뒷받침하고 마음가짐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상인들도 화재 등 안전에 보다 신경을 쓰고 불편한 환경도 감내해야 한다. 그래야 서문시장이 다시 활기를 되찾고 시민이 즐겨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8. 주민 등 떠미는 염색산단 악취, 근본 대책 세울 때다

대구염색산업단지의 악취 등 공해로 인근 주민들이 뭇 질병을 호소하고 심지어 다른 곳으로 떠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행정 당국이 내놓은 대책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미봉책에 그치는 등 만족할 만한 결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염색단지의 유해물질이 다른 곳보다 많고 암 같은 중병(重病)을 호소하는 주민도 있다. 주민들로서는 하루하루가 고통의 나날이다.



문제는 염색산단 주변에서 이 같은 고통을 가장 많이 호소하는 대구 서구 비산7동 등의 피해 주민만 무려 1만 가구, 2만여 명에 이른다는 점이다. 이곳 주민들은 지난 1980년 염색산단 조성 이후 지속적으로 공해에 시달린 삶을 이어왔다. 염색산단에서 매일 뿜어내는 유해공기를 마시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특히 가을과 겨울철 바람을 타고 주택가로 몰려드는 염색산단의 나쁜 공기는 피할 수조차 없어 주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주민 고통은 국립환경과학원의 2014년 조사에서도 증명됐다. 조사 결과, 염색산단과 서대구산업단지, 대구3공단 등 산단 주변 주민들의 만성 기관지염 발병률이 대구시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 남성은 27%, 여성은 13% 높다. 급성 기관지염은 남성이 7%, 여성이 20% 높다. 염색산단 유해 화학물질 배출량도 많아 2010년 조사에서 톨루엔은 3공단의 5배, 클로로폼은 7배나 됐다. 모두 호흡기와 심장, 신장 등에 해로운 물질이다. 염색산단 인근 주민의 호흡기 질환과 건강 이상에 대한 호소가 마땅한 까닭이다.



행정`환경 당국이 할 일은 분명하다. 먼저 지난해 12월 구축해 가동 중인 악취 감시 시스템이 과연 제대로 가동되는지 점검하는 일이다. 기준을 넘는 유해물질 배출 여부에 대한 감시 감독 강화와 위반 업소에 대한 엄격한 조치도 필요하다. 아울러 업체들이 악취와 공해 배출을 낮출 수 있는 기술 개발과 투자에 나서도록 설득해야 한다. 서둘 일은 각종 질병과 고통을 심하게 호소하는 주민들에 대한 행정 서비스 제공이다. 즉 필요할 경우 역학조사를 통한 고통 원인 규명과 함께 해법의 도출이다. 떠나지도 못하고 남은 주민부터 살려야 할 일이다.



[중앙일보]

9. 이정미 재판관 후임 지명, 빠를수록 좋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를 다음주 지명키로 한 것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 선고의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간 양 대법원장이 선뜻 후임자 인선에 나서지 않았던 명분은 “탄핵 선고 지연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고영한 법원행정처장 국회 답변)였다. 하지만 그제 헌재가 최종변론기일을 오는 27일로 확정하자 결정 선고가 임박했다고 보고 후임자 지명에 나선 것이다. 다소 늦었지만 옳은 결정이다.

사실 다음달 13일에 퇴임하는 이 재판관의 후임 인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난 1월 말 박한철 헌재 소장 퇴임 직후부터 국회 소추위원단과 대통령 대리인단 측에서 동시에 나왔다. 물론 속내는 달랐다. 국회 측은 재판관 공백의 장기화에 따른 헌재 사건 심리 부실을 걱정한 반면 대통령 측은 짧은 심리로 인한 재판의 공정성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양 대법원장은 굳이 서둘러서 지명하다 보면 그게 헌재에는 이 재판관 임기 이후로 탄핵 선고를 미뤄도 된다는 무언의 압력이 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숙고하는 양 대법원장을 두고 최고 사법기관의 수장이 법대로 안 하고 좌고우면한다는 비난도 나왔다.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법치주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옳다.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차대한 사안은 헌법 111조에 따라 9인 재판관의 완전체가 결정해야 정당성이 확보되는 게 맞다. 다만 현실적으로 대통령 몫인 헌재 소장 후임자 임명은 박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라 어렵다. 대법원장 지명 몫인 이 재판관 후임자를 임명해 재판관 공백 상태를 최소화하는 게 차선이다. 7인 체제에선 헌재 결정의 권위와 정당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지난해 국회의 탄핵안 가결 이후 다른 사건 심리는 전면 보류 중이다.

양 대법원장이 후임자를 지명하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신속히 임명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도 국가적 위기 탈출이라는 대국적 견지에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검증의 모범을 보여주길 바란다.



[세계일보]

10. 가시화한 한·미 FTA 재협상, 정부 대책은 뭔가

숀 스파이서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그제 “미국이 체결한 모든 자유무역협정(FTA)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무역전쟁의 포성이 드디어 울린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 관계자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며 일축했다. 통상협상을 책임진 산업통상자원부 당국자는 “상황을 봐가며 미 동향에 촉각을 세우고 조용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안일한 현실 인식이 아닐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유세 때 FTA에 대해 “총체적 재앙”이라고 소리쳤다. 당시에는 대미 흑자국 1∼4위인 중국 일본 독일 멕시코만 해당되고 대미 무역흑자 7위인 우리는 재협상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란 기대가 없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은 앞으로 모든 FTA가 논의 테이블에 오를 것임을 공식화했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일부 협정은 10∼20년이나 됐다”며 불평했다. 2007년 타결된 한·미 FTA는 이제 10년이 흘렀다. 당시 우리의 협상 전략이 먹혀들어 한국에 비교적 유리하게 타결됐다. 이 때문에 미국 재계에서는 여러 차례 의회에 불만을 제기했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재협상을 요구해왔다. 

산업부가 다급함을 못 느끼는 이유는 따로 있다. 10여년 전 한·미 FTA를 이끈 곳은 외교통상부의 통상교섭본부였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통상교섭 업무는 산업부로 이관됐고, 장관급인 본부장은 차관보급으로 낮아졌다. 당시 협상을 담당한 외교관들은 산업부로 가지 않았다. 협상 주역인 외교관들은 은퇴했거나 해외로 나갔다.



산업부에는 한·미 FTA 협상과 관련해 깊숙이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 거의 없다. 한·미 FTA 재협상이 시작될 경우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 파악조차 안 돼 있다는 뜻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국 통상정책의 이면을 꿰뚫어볼 수 있는 안목과 정보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의 안일한 대응 자세가 지속된다면 미국의 협상 전략에 질질 끌려가다 엄청난 손실을 보는 국가적 재앙을 맞을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반이민법처럼 무리한 협상안을 꺼내들고 우리를 압박할 수 있다. 국회라도 나서야 한다. 산업통상위와 외교위를 동시 소집해 정부에 위기감을 불어넣고 두 부처가 공동 대응하도록 해야 한다. 가시화한 무역전쟁 앞에선 정부와 정치권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주요신문칼럼



1. [매일신문][기고] One Table One Flower(실천으로 생활 속에 꽃 소비를!)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150일이 되어간다. 청렴하고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이 법을 시행했다. 이 법은 장점이 많지만, 농축산 부문에서는 피해가 큰 것도 사실이다. 소고기 등 축산물은 올해 설 대목에는 지난해에 비해 24.5%, 인삼과 버섯 등 특산품은 23% 감소했다. 과일도 20.2% 매출이 줄었다고 한다. 업체 체감 감소율은 30%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화훼류 가운데 승진 등 축하 선물용으로 애용하는 난류 타격이 큰 상황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관계자는 “청탁금지법으로 인사철, 각종 행사 때 선물용으로 나가는 난은 가격도 큰 폭으로 감소하고 물량도 대폭 줄어 난 재배 농가가 큰 손해를 입고 있다”고 한다. 물량 자체가 줄어들다 보니 화훼류 경매 횟수도 주 1회로 줄었다고 한다.



화원협회에서 1천200개 업체를 조사한 결과 꽃다발, 화환, 난류, 관엽류 등 분화류 거래 금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5.8%까지 급락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예측에 따르면 난류 재배는 청탁금지법 영향으로 40%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국내 경기 침체, 청탁금지법 등 각종 악재에 따른 소비 감소로 생산자의 두려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생산 농가나 화초를 연구하는 기관에서는 생산비를 절감하고 우수 꽃 종자를 개발하는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또한 10만원짜리 3단 화환부터 5만원 이하 2단 경조사 화환 유통 등 유통 단위를 줄여서 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통을 잘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화훼 소비가 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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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하고 밝은 사회를 만들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하자면 현재로서는 청탁금지법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이 제도로 관련 산업이 타격을 받고 있으니 이 또한 무시할 일이 아니다. 자칫 산업에 피해가 심각해지면 ‘청탁금지법’의 선의가 왜곡될 수 있고, 과거로 회귀하자는 목소리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화훼 분야 불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는가? 농식품부는 ‘꽃 소비를 생활화하자’는 사무실 꽃 생활화(one table one flower)운동을 제안하고, 지난 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와 ‘국회 꽃 생활화 운동’ 출범식을 가졌다. 국회의원들이 앞장서서 힘든 우리나라 화훼산업을 살리겠다는 각오가 인상 깊다. 경북에서는 칠곡군이 주도해 사무실 책상마다 꽃을 놓아 근무 분위기를 바꾸고 지친 심신을 힐링하자는 일상생활 속 꽃 소비를 실천하고 있다.



최근 농협중앙회 대구본부는 꽃 소비 확대를 위해 직원들이 화분을 직접 구매해 우리 꽃을 생활 속으로 파고들 수 있도록 운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나라가 혼미하고 경기가 침체해 내수가 불안하다. 또한 현대는 매우 복잡 다양해 심신이 피로해지기 십상이다. 이럴 때 우리는 꽃을 곁에 두고 생활하는 우리 꽃 소비운동, ‘one table one flower’를 추천하고 싶다. 한 달에 약정해 적은 돈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 사무실로 꽃을 배달오게 함으로써 항상 싱싱한 꽃을 곁에 둘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앞서 언급한 몇 곳에서만 하는 것은 효과가 극히 적다. 서울, 대구, 부산 등 대도시뿐만 아니라 시`군과 읍`면 관공서나 사무실에서 광범위하게 실천했을 때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우리 꽃 소비운동을 이제는 폭넓게 실천할 때다. 화훼산업도 살리고 심신도 힐링하는 일거양득을 거두어 보자.



2. [매일신문][매일춘추] 십 대가 궁금하다

세월호 학생들과 깔창 생리대 청소년. 이들은 지금 한국 10대를 상징한다. 우리의 아픈 손가락들이며 허망한 사회구조와 시스템의 치명적 피해자들이다. 덫은 ‘누군가’ 발목 걸려 넘어지지 않는 이상 거기 있다는 것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누군가’가 이미 확정되었다는 것. 여러 측면에서 사회적 약자라는 점이다. 어른 세대를 믿고 기다렸을 10대들.

10대라고 할 때 연상될 다른 아이콘이 생겼다. 한 국회의원 아들 이야기다. 성매매를 암시하는 글을 쓴 까닭이 갈등과 치기 때문이었다고 해명하면서 일단락된 듯하다. 나는 이 상황에서 10대 성문화가 궁금해졌다. 동년배의 아들을 두었기에 혼란스럽고 마음이 급하다. 이 청소년이 10대 성의식을 대변한다고 할 수 없다. 여러 변수가 작용했을 테지만 다 알 수도 없다. 다만, 그의 성매매 제안을 보면서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느낌이다.



침소봉대하여 개인의 파문을 통해 사회 현상을 들여다봐야겠다. 다른 영역의 욕망과 불만이 성(性)의 얼굴로 위장하기도 한다. 이 일을 계기로 10대 성문화 혹은 (성)의식이 어디까지 왔는지, 이들에게 어떤 성교육을 해야 하는지 확인할 필요성에 대해 깊은 공감대가 있으면 싶다. 기존 세대가 상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10대를 보내고 있을 청소년들. 

20년 전만 해도 성교육은 성폭력 예방 차원이었다. 성폭력 피해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래서 피해 심각성을 알리고 치유책을 찾는 동시에 성폭력 범죄를 예방하자는 문제의식이 절박한 시절이었다. 성폭력은 줄지 않았고 남성다움/여성다움의 고정관념은 비대하다. 게다가 여성 혐오의 송곳은 더 거칠어졌다. 놀랍게 달라지기도 했다. 작은 목소리이긴 하지만 성 소수자의 권리를 말한다. 인권의 문제다.



한편, 성을 소비하는 방식은 나날이 고도화하고 생활로 침투해 발랄해지고 탈신비화되면서 거리낌이 없어졌다. 10대가 툭 던질 만큼 성매매가, 아니 성매매의 인용이 일상화되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나 관계에 대한 책임과 의미는 달라졌다. 10대와의 대화가 단절되어서일까. 대안으로 제시한 성교육 핵심은 금욕으로 회귀했다. 시대착오적이니 꼰대 소리나 듣는다. 

10대에게 자기 이야기를 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들은 또래가 감당해야 했던 희생을 목격하면서 이미 기존 세대에게 실망하고 분노한다. 기존 세대에게 익숙한 틀이 이들에게 맞을 리도 없다. 그러니 더욱 10대와 소통해야 한다. 이들이 자기 속내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10대를 이해해야 한다.



3. [한겨레][조한욱의 서양 사람] 사랑과 냉담

조지아 오키프는 꽃을 확대해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과 뉴멕시코의 풍경화로 잘 알려진 화가로서 ‘미국 모더니즘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화가를 꿈꿨지만 전문적 교육을 받을수록 정해진 틀을 모방만 해야 하는 토양 속에서는 그림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그 꿈을 포기하기도 했었다.

4년 동안 붓을 잡지 않다가 다시 화폭 앞에 선 그에게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목탄화 몇 점을 지인에게 보냈는데 그가 그 작품들을 명성이 높은 사진작가 앨프레드 스티글리츠에게 보낸 것이었다. 스티글리츠는 화랑 ‘291’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사진 작품을 전시하면서 사진을 다른 예술에 버금가는 분야로 정착시켰고, 또한 당시로서 가장 전위적인 유럽 예술가들의 작품을 미국에 첫선을 보이던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마티스, 로댕, 세잔, 피카소 등의 작품이 이곳을 통해 미국에 소개되었다.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작품이 가장 순수하고 가장 훌륭하다고 극찬하면서 10점을 ‘291’에서 전시했다. 이렇게 그 둘은 만나게 되었고 사랑에 빠졌다. 남부에 살던 오키프가 뉴욕을 방문하면 곧 둘은 하나가 되었다. 2층까지 올라가는 시간도 기다리지 못하고 사랑을 나눴다. 스티글리츠는 누드를 포함한 많은 사진 속에 오키프를 담았고, 그것을 전시해 스캔들이 일기도 했다. 스티글리츠가 23살 연상의 유부남인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침내 이혼이 성사되자 4개월 만에 그들은 결혼했다.

흔히 쉽게 끓어오르는 사랑이 쉽게 식듯, 그렇게 결혼했지만 결혼 후 그들은 각기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오키프는 뉴멕시코에서 그림을 그렸고, 스티글리츠는 뉴욕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선 모든 일이 한마디 말도 없이 거래처럼 이루어져 서로 맞서기보다는 회피하기를 택했다. 오키프는 훗날 “사진 속의 인물은 내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참으로 많은 삶을 살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을 정도였다.



4. [경향신문][이기호의 미니픽션] 이사

침대에 까는 얇은 요를 바닥에 펼쳤다. 요는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웠다. 진만은 그 요 한가운데 차곡차곡 개킨 티셔츠와 바지 몇 벌, 양말 몇 켤레, 수건 네 장과 담요 한 장, 대학 1학년 때 엠티 가서 찍은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러곤 다시 요의 네 귀퉁이를 가운데로 모아 신발 끈처럼 단단하게 묶었다. 커다란 북극곰 엉덩이만 한 보따리 하나가 완성되었다. 이로써 이삿짐은 얼추 다 싼 셈이었다. 진만은 그 보따리를 다시 어깨에 동여매고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진만을 보면서 정용이 툭 한 마디 던졌다.

누가 널 보면…, 전쟁 난 줄 알겠다….



대학 졸업식은 2월23일이었지만, 정용과 진만은 이틀 전 서둘러 기숙사 짐을 빼기로 했다. 어차피 졸업식엔 참석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편이 더 나아 보였다. 진만과 정용은 졸업 후에도 같은 방에서 살기로 결정했다. 서로 전에 없던 뜨거운 우정이 생겼거나, 함께 공동 창업 같은 것을 모색하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건 순전히 월세 부담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그들은 대번에 채무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냥 조용히 대학만 다녔을 뿐인데도 정용이 800만원, 진만이 1200만원 빚이 생겼다. 아니, 우리가 무슨 경마장을 다닌 것도 아니고…. 진만은 혼잣말처럼 그렇게 뇌까린 적이 있었다. 이건 4년 내내 경마장을 냅다 달리다가 은퇴한 ‘3번 마’한테 이런, 미안하지만 자네 빚이 좀 생겼네, 말하는 거나 똑같은 거잖아. ‘3번 마’에게는 건초라도 공짜로 주기나 했지, 나는 누가 등 한 번 두들겨준 적 없는데….

진만과 정용은 다행히 광역시 외곽에 있는 보증금 없는 월세 30만원짜리 방을 하나 구했다. 원래 모텔을 하다가 폐업한 건물인데, 마침 그곳 반지하방이 벼룩시장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 냉큼 계약한 것이었다. 당분간 그곳에서 살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얼마간 학자금 대출금을 갚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정용과 진만은 그렇게 계산했다. 어쨌든 지금은 그것이 급하니까. 제아무리 경마장에서 여러 차례 우승한 ‘3번 마’라 할지라도 빚이 있으면 아르바이트를 해야지 어쩔 것인가? 관광지에서 마차라도 끌어야지.

정용도 제 몫의 이삿짐을 들고 일어섰다. 정용은 그나마 낡고 오래된 캐리어가 있어서 한결 짐 싸기가 수월했지만 문제는 컴퓨터였다. 본체와 모니터를 들고 캐리어까지 끌자니 손이 모자랐다. 정용은 진만에게 모니터라도 부탁할까 싶어 힐끔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그는 이미 두 손에 다른 것을 들고 서 있었다.

오쿠 중탕기.

진만의 손엔 그것이 들려 있었다. 본체는 빨갛고, 냄비는 스테인리스 재질로 되어 있는, 전기밥솥보다 조금 큰 오쿠 중탕기. 진만은 그것을 이 년 전 중고나라 사이트에서 10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맥반석 달걀도 해 먹고, 우유를 넣어 요구르트도 해 먹겠다는 생각으로 구입한 오쿠 중탕기. 실제로 정용은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기숙사 방으로 돌아올 때마다 빨갛게 타이머가 켜진 오쿠 중탕기에서 진만 몰래 맥반석 달걀을 빼 먹기도 했다. 그때마다 기숙사 방이 아닌, 어디 찜질방이라도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은 아르바이트해서 컴퓨터를 사거나 핸드폰을 바꾸는데, 진만은 오쿠 중탕기를 샀다. 컴퓨터 사용하듯 오쿠 중탕기의 전원을 켰다.

그거 갖고 가려고?

정용이 진만에게 물었다.

그럼. 갖고 가야지. 내 재산 목록 1호인데.

정용은 할 수 없이 우체국에서 커다란 박스를 구입해 그곳에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를 담았다. 두 손으로 박스를 들고 일어섰더니 저절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그래도 가야지, 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자취방까지 가기 위해선 시외버스를 타고 광역시까지 나간 후,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그들은 광역시 인근 한 중학교 버스정류장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겨울의 끝자락, 마지막일지도 모를 한파가 버스정류장 간판 아래 매달려 있었다. 정용은 컴퓨터가 든 박스를 무릎 앞에 내려놓은 채 한껏 몸을 옹송그렸다.



진만은 오쿠 중탕기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두 손을 겨드랑이 사이에 넣고 연신 비벼댔다. 그게 더 춥다며, 등에 동여맨 이불 보따리는 풀지 않았다.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았고, 정류장에는 그들과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한 분만이 서 있었다.

이거 좀 먹지 않을래?

진만이 오쿠 중탕기의 뚜껑을 열면서 정용에게 말했다. 중탕기 안 게르마늄 용기에는 갈색으로 변한 달걀 8개가 수줍은 얼굴로 누워 있었다.

내가 어제 마지막으로 삶은 달걀인데, 아직 따뜻해.

진만은 슬쩍 웃으면서 달걀 하나를 정용에게 내밀었다.

정용은 처음엔 그것을 먹지 않으려고 했다. 아무리 한적한 정류장이라고는 해도, 그래도 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낡은 캐리어와 커다란 박스, 커다란 이불 보따리를 등에 멘 채 달걀을 먹는다는 게 좀….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지웠다. 이제 앞으로 이거보다 더 창피할 일을 많이 당할 텐데…. 정용은 진만을 따라 달걀 껍데기를 깠다. 진만의 말처럼 달걀엔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렇게 둘이 앉아서 달걀을 여섯 개쯤 까먹었을 때, 정류장 한편에서 힐끔힐끔 그들을 바라보던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곤 우뚝, 그들 앞에 멈춰 섰다. 정용과 진만은 달걀을 한 손에 든 채 할머니의 눈치를 봤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내려다보다가 주섬주섬 외투에서 5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그러곤 휙 진만의 무릎 위에 놓인 오쿠 중탕기 스테인리스 냄비 안으로 던져넣었다.

집에들 들어가, 어여.

할머니는 그렇게 말한 후 천천히 택시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진만과 정용은 오쿠 중탕기 냄비 속에 살포시 놓인 오천 원짜리 지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또 다른 날의 시작이었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클라라 프레이저

클라라 프레이저(Clara Fraser, 1923~1998)는 미국의 트로츠키주의자로, 워싱턴주 시애틀을 중심으로 1960~80년대 급진주의 여성운동을 이끈 페미니스트이자 정당인이고, 조직활동가였다. 그는 초콜릿과 담배와 추리소설을 좋아했지만, 무엇보다 좋아한 것은 여성들의 일자리를 구해주고, 보다 나은 일자리를 얻게 하고, 그들이 직장에서 차별 받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그는 러시아 이민자로 여성복노조 활동가였던 어머니와 라트비아 출신 아나키스트 트럭기사의 딸로 미국 LA에서 태어났다. 44년 UCLA를 졸업하고 극작 일을 하던 그는 트로츠키의 사회주의자노동자당(SWP)에 가입해 조직가로 활동했고, 23살이던 46년 시애틀 지부 창립 임무를 맡아 워싱턴주로 이주했다. 

프레이저는 청년 시절부터 식당 웨이트리스, 상점 판매원, 버스 세차원, 전기공, 택시 기사, 식자공, 비서 등등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일부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한 거였고 일부는 노동자 조직을 만들기 위해 가담한,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위장취업’이었다.



프레이저는 중앙당과의 노선 갈등으로 65년SWP 시애틀 지부를 해산하고 자유사회주의자당(FSP)을 설립했고, 67년 저 유명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그룹 ‘Radical Women’을 결성했다. 그는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 권익과 흑인ㆍ성소수자 인권에 힘을 쏟았다. 74년 시애틀 전기회사(SCL) 파업을 주동한 그는 이듬해 “경비 절감을 위한 경영상의 판단에 따라” 해고됐지만, 성ㆍ이념 차별이라며 소송을 걸어 7년 만에 승리했다.



그와 같은 일들을 그와 그의 RW는 수많은 여성들을 위해 해냈다. 정치적 동지이자 남편인 리처드 프레이저(1913~1988)와 이혼한 뒤에는 워싱턴주 이혼 개정법안 개정운동을 벌였고, 주 최초의 낙태권 운동을 조직하기도 했다.

1988년 시애틀타임스 인터뷰에서 그는 청년 활동가들에게 이상을 포기하지 않을 책임을 일깨우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며 “자기 문제에만 빠져 사는 삶은 사회적 재앙”이라고 말했다. ‘낙담하지 말고, 조직하라(Don’t mourn. Organize)’는 건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시애틀 RW의 조직가 앤 슬레이트(Anne Slater)의 말처럼 “쉼 없이 밀고 가야 한다”는 교훈을 유산처럼 남긴 클라라 프레이저가 1998년 2월 24일 폐기종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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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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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쌀 직불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가

정부가 쌀 생산농가의 소득 보전을 위해 지급하는 쌀 변동직불금이 올해 1조 4900억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작년(7257억원)의 두 배가 넘는 금액으로 2005년 이 보조금 제도를 도입한 이후 최대 규모다. 변동직불금은 쌀값이 목표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그 차액의 85%를 보전해주는 제도다. 쌀 공급량은 늘어나고 있는 데 반해 소비는 위축되면서 쌀값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이다. 언제까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예산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인지 우려가 크다.

쌀 공급과잉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계화와 재배기술 향상에 힘입어 지난해 우리나라 쌀 생산량은 420만t에 육박하는 등 4년째 대풍을 이어갔다. 연간 적정 수요량보다 25만t가량 초과하는 수준이다. 반면 쌀 소비량은 꾸준히 줄어드는 데다 그 추세도 빨라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당 쌀 소비량은 2010년 72.8㎏에서 지난해 61.9㎏으로 줄었다. 1980년(132.4㎏)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쌀이 남아돌면서 쌀값이 떨어지고 직불금은 증가하는 악순환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쌀 직불금 제도는 쌀값 안정을 위한 근본 해결책이 못 된다. 일본은 이미 2014년 변동직불금 제도를 폐지했다. 정부 지원이 농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 공급 과잉인 벼농사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요인이라는 비판도 간과할 수 없다. 과격한 농민들은 풍년으로 쌀값이 떨어지면 논을 갈아엎거나 트랙터를 몰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곤 한다. 그러면 정부는 수매량을 늘리고 국회는 예산을 증액한다. 이 같은 비정상적인 일이 무작정 반복돼서는 안 될 것이다.

쌀 수매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추세를 막기가 힘든 현실에서 공급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합리적 대안이다. 절대농지를 해제해 농지 면적 자체를 줄이거나 농지에 벼가 아닌 다른 작물을 심어도 보상금을 주는 ‘생산 조정제’를 도입해 벼 재배면적을 줄이는 방안을 고려해봄 직하다. 직불제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등 손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도 표를 의식해 농민 편만 들 게 아니라 농정 구조조정을 위한 제도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2. ‘분노의 정치’는 보복의 악순환 초래할 뿐

조기 대선 분위기가 가열되는 상황에서 ‘분노의 정치’가 새로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야권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과연 어떠한 기조로 우리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면서 정국을 이끌어가야 하는가 하는 논란이다. 탄핵정국이 이어지는 와중에서 야권이 차기 정권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우리 정치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담론이기도 하다.

논쟁이 야권에서 벌어지는 것이 그런 때문이다. 그것도 현재 지지율 1~2위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주자들 간의 논쟁이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사람의 마음은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언급한 데 대해 문재인 전 대표가 “말 속에 분노가 담겨 있지 않다”고 공격했으며, 안 지사가 다시 “지도자의 분노는 단어 하나만 써도 피바람을 불러온다”고 응수한 것이 지난 며칠 사이의 일이다.

야권이 정권을 차지할 경우 과거 정권의 적폐를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 할 것인지가 논쟁의 배경을 이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문 전 대표가 “분노는 정의의 출발”이라고 지적한 것이 그런 때문일 것이다.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어야만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안 지사는 “광화문 광장에 앉아있을 땐 열을 받지만 대한민국을 이끌어야 될 지도자로서 분노라는 감정은 너무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안 지사가 처음 논쟁을 유발한 ‘선의’라는 표현에 대해 결국 사과의 뜻을 표명한 상황에서도 ‘분노의 정치’ 논쟁은 수그러들 기미가 아니다. 현재 검찰·특검 수사로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례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다. 보수성향 지지표가 상당 부분 야권으로 기울고 있는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정권 비리에 대한 민심의 동향을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정의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법치주의가 그 근간이 돼야 한다. 그동안 정의가 허물어진 데는 법치주의가 제대로 가동하지 않은 탓이 크다. ‘분노’의 감정을 완전히 억눌러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감정이 앞세워질 경우 필연적으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따라서 보복의 악순환을 초래할 뿐이다. 분노를 최대한 조절하면서 법과 제도 안에서 정의를 세우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보수·진보 정권이 마찬가지다.



[매일신문]

3. 일본의 계산된 독도 도발, 흥분 앞서 제대로 알기부터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22일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억지 주장을 했다. 앞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21일 독도가 국제법상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발언했다. 일본 정부는 또 22일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독도에 대한 일본의 명칭)의 날’ 행사에 차관급인 내각부 정무관을 파견했다. 이처럼 독도에 대한 일본 각료의 억지 영유권 주장과 망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본의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이자 국제사회에서 분쟁화의 희생물로 삼아 독도를 차지하겠다는 검은 흉계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들어 일본의 독도 영유권 획책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독도 부근 해상에 일본 순시선이 사나흘에 한 번꼴로 나타나는 것도 그렇다. 게다가 한발 더 나아가 미래 세대에게 강제로 독도가 그들 영토라는 주장을 머리에 새겨넣으려는 학생 세뇌교육으로 이어지고 있다.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을 마련한 까닭이다. 아울러 독도의 날 행사에 차관급 참석을 2013년부터 5년째 이어가는 행동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 정부 차원의 독도 침탈의 거대한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분위기이다. 

  
사실 일본의 나라 밖 영토 야욕은 이미 역사가 증명한 터다. 한반도에 대한 오랜 약탈과 침략은 물론, 무력에 의한 중국 대륙 진출과 양민 학살과 같은 지난 죄악들은 이를 밝히고도 남는다. 지금 일본은 마치 강자의 힘만이 선(善)이 되는 약육강식의 옛 제국주의적 작태를 답습하려는 듯하다. 평화헌법 무력화와 군사대국화의 우익화는 좋은 증거이다. 그래서 일본이 러시아 등 강대국과의 영토 분쟁 회오리에 독도를 끼워 넣어 끝내 제국주의적 힘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와의 흥정과 거래에 나설 것이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이제 할 일은 분명하다. 일본의 계산된 도발에 흥분할 필요가 없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과 함께 국민들의 독도 사랑을 굳혀야 한다. 지속적인 관심과 교육을 통해 논리적인 무장도 갖춰야 한다. 모르고 맞설 수는 없다. 서경덕 교수와 배우 조재현이 유튜브에 올린 ‘다케시마의 날, 무엇이 문제인가’와 같은 영상물도 적극 개발, 활용할 때다. 독도 제대로 알기는 말보다 실천이 더욱 절실하다.



4. 안희정, 골수 지지층만 보지 말고 잠재적 지지자를 보라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기각을 결정할 경우 승복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안 지사는 22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헌재가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리면 조건 없이 승복하겠느냐”는 패널의 질문에 “기각을 상정했을 때 국민이 가질 상실감을 생각한다면 법적인 결정이니 헌재의 판결을 존중하겠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답변했다.



이어 한 패널이 “조건 없이 승복할 건가, ‘예’ ‘아니오’로 답해달라”고 하자 “현재로선 그 질문 자체가 예, 아니오로 답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며 “헌법적 질서는 질서대로 잡더라도 민주사회에서 국민의 분노와 상실감은 표현돼야 한다. 헌재가 국민의 압도적 다수와 압도적 의원들이 가결한 결정을 존중하길 바란다”고 했다.



전형적인 모순어법이다. 헌법적 질서를 잡아야 한다면서 기각 결정은 존중하기 어렵다니 무슨 말인가? 헌재가 어떤 판결을 내리든 존중하는 것이 바로 헌법적 질서를 잡는 일 아닌가? 국회의 탄핵 의결은 정치적 결정이고 헌재의 탄핵심판은 헌법적 결정이다. 정치적 결정은 법률적 결정에 종속돼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이를 준수하는 것은 대통령 자격의 첫 번째 판정기준이다. 이에 비춰 봤을 때 지금까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모두 대통령 자격이 없다. 그들 중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안 지사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기대됐다. 안보, 재벌개혁, 복지문제 등 국가적 현안에서 다른 대선주자들과 달리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견해를 밝혀왔기 때문이다. 안 지사가 진보진영이면서도 보수진영의 지지를 받는 이유다.



물론 안 지사가 그렇게 발언한 것은 민주당 지지층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보수`중도층의 실망을 불러와 그의 정치적 외연 확대 노력을 무위로 돌릴 수 있다. 헌재의 어떤 결정이든 승복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국민에게 안 지사를 믿고 나라를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각인시킬 것이다. 승복 약속을 할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안 지사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5. 지방분권 개헌,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지방분권 개헌은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마침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해소해야 한다며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펼쳐지는 등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대한민국 시도지사 협의회를 비롯한 지방 4대 협의체 대표들이 모임을 갖고 개헌 논의에서 지방분권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방분권 개헌은 시대적 요구이자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중앙정부와 수도권 언론 등 기득권자들에 의해 철저히 외면받아왔다. 1995년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중앙집권적 권위 의식과 제도적 한계에 번번이 부딪혀 ‘2할 자치, 무늬만 자치’라는 한계성을 노출해왔다. 이렇게 된 결정적 이유는 현행 헌법에 있다. 헌법에서 지방자치에 관한 최소한의 원칙과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채 지방자치제도의 주요 내용을 법률에 위임함으로써 중앙정부에 재정과 권한이 편중되고 지방자치권도 제한받아 왔다.



수도권 집중화와 양극화에 따른 국가 전체의 비효율성은 임계 상황을 넘은 지 오래다. 우리나라가 선진 문화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정 운영 기조를 중앙집권체제에서 지방분권체제로 대폭 바꿔야 하는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이자 풀어야 할 첫 단추는 지방분권 개헌이다.



따라서 개헌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과 동시에 지방분권국가임을 선언하는 형태로 진행돼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방분권공화국임을 헌법 전문과 총강에 천명하고 기본권으로서의 주민자치권을 반드시 헌법 조항에 명시해야 한다. 이런 방향으로 헌법 개정이 이뤄지면 지방분권 원리가 국가 주요 정책 결정 및 입법의 근본 권리로 작동할 수 있게 된다.



거의 모든 대선 주자들이 지방분권형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하지만 막상 지방분권 개헌이 구체적으로 추진될 경우 수도권론자들의 저항과 기득권 세력의 조직적 반발이 거셀 것임에 분명하다. 쇠뿔도 단김에 빼고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했다. 지방분권 개헌은 지금이 바로 골든타임이다.



[동아일보]

6. 박 대통령, 헌법재판소까지 농단해선 안 된다

헌법재판소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의 최후변론 기일을 24일에서 27일로 3일 늦췄다. 재판부는 탄핵심판 16차 변론기일에서 “박 대통령이 26일까지 출석을 통보한다면 27일 오후 2시에 최후진술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며 마지노선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대통령의 출석 여부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의 퇴임일인 3월 13일 이후로 선고를 늦춰보자는 대리인단의 지연전술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재판에 임하는 박 대통령 측 대리인의 수준은 상식 이하다. 대리인단은 어제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에 대해 기피신청까지 냈다. 김평우 변호사는 강 재판관이 재판을 불공정하게 진행했다며 “국회 측 수석대리인”이라고 독설까지 퍼부었다. 법리를 따져야 할 심판정에서 수세에 몰린다고 극언까지 퍼붓는 것은 변호인의 격(格)을 드러낸다. 이정미 권한대행이 ‘감히 그런 말을 하느냐’며 기피신청을 각하한 것은 당연하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이날 20여 명의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했다가 모두 기각당했다. 김 변호사는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뒤늦게 각하(却下)를 주장하며 정세균 국회의장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를 관련 증인으로 신청했다. 2개월 전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결된 탄핵소추안에 하자가 있었다면 당시 반대한 새누리당부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겠는가. 심지어 박한철 전 헌재 소장까지 증인으로 불렀다. 단순한 지연 전략을 넘어 ‘탄핵심판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를 하겠다는 것이다.

헌재는 그동안 무차별 증인신청을 하는 박 대통령 대리인 측의 ‘오버’에도 인내심을 갖고 신중하게 탄핵심판을 진행해왔다. 지금까지 신문을 완료한 28명의 증인 가운데 박 대통령 대리인 측 신청자가 16명으로 청구인 측 12명보다 많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헌재에 나올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탄핵심판에서 피청구인인 대통령의 최후변론은 유세의 자리가 아니다. 피청구인은 자신의 하고 싶은 변론을 하고 재판관으로부터 신문을 받으러 나오는 자리다. 국가 사법체제의 수호자인 대통령이 아무리 직무가 정지됐다고 해도 이렇게 사법절차를 희롱해선 안 된다. 대통령을 강제로 출석시킬 법적인 수단이 없다고 검찰은 물론 특검에 이어 우리 사법체계의 최종 판단기관인 헌재의 출석마저 거부한다면 끝까지 법치를 외면하고 인치(人治)에 사로잡힌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7. “대통령 명령대로 했으니 무죄”라는 박근혜 정부 관료들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21일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청와대에서 근무해 보면 안다. 거기선 대통령이 곧 법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했는데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등의 혐의가 무슨 말이냐는 방어 논리다. 덕분에 구속을 면했을지는 몰라도 청와대가 법치 아닌 어명(御命)을 받드는 전근대적 왕조시대처럼 작동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우 전 수석뿐이 아니다. ‘최순실 국정 농단’에 연루된 박근혜 정부의 상당수 공직자가 “대통령 지시대로 따랐는데 죄가 되느냐”는 취지로 진술했다. 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은 대통령 지시로 비밀문건 47건을 포함한 180건을 최 씨에게 넘겼다고 했다. 안종범 전 정책수석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낼 대기업과 구체적인 액수까지 지정했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두



 사람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라서 대통령 지시를 무작정 따랐다고 치자. 오랜 관료생활을 한 조원동 전 경제수석과 최상목 전 경제금융비서관(현 기획재정부 1차관)까지 민간인이 보기에도 옳지 못한 일을 대통령 지시라고 무조건 따랐다. 아무리 ‘관료는 영혼이 없다’지만 최고의 엘리트 공무원까지 이러는 건 공직사회가 심각하게 고장 나 있다는 증거다.

국가공무원법 1조는 국가공무원을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 규정하고 있다. 설령 권력자가 시켰다고 해도 불법, 부당한 일이라면 대통령으로부터 ‘나쁜 사람’으로 찍혀 쫓겨난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처럼 옳고 그름을 따졌어야 했다.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형법은 공무원이 ‘상관의 적법한 명령’을 수행하면 ‘위법성 조각사유(불성립)’를 인정한다. 즉, 상관의 명령이라도 적법하지 않은 명령을 수행했다면 처벌을 면할 길이 없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국무회의가 받아쓰기나 하는 ‘어전(御前)회의’처럼 됐다는 지적은 박근혜 정부 출범 초부터 나왔다. 근대국가가 ‘왕의 말이 법’이었던 왕정시대와 달라진 것은 제왕의 권력을 법으로 제한한 법치주의 때문이다. 공무원은 임용 때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선서를 한다. 헌법과 법령이 아니라 권력이나 상관의 충복이 되는 순간 공무원 자신은 물론 나라와 국민의 불행이 시작된다.



[중앙일보]

8. 북한, 외교관까지 연루됐는데도 암살 발뺌하나

말레이시아의 칼리드 아부 바카르 경찰청장이 어제 김정남 암살사건 연루자로 북한대사관 소속 2등 서기관과 고려항공 직원을 지목하며 이들을 사실상 ‘공개수배’했다. 북한의 현직 외교관은 물론 국영항공사로 실질적으로 정부 통제를 받는 고려항공 소속 직원까지 연루됐다는 사실은 북한대사관의 모르쇠와 발뺌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의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2014년 6월 8일 쿠알라룸푸르에서 고려항공의 마지막 비행편이 떠나고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북한 항공기의 이착륙 및 영공 통과조차 금지하는 말레이시아에 항공사 직원이 계속 상주하고 있었다는 사실부터 여간 미심쩍은 게 아니다.

이번 조치는 사건의 성격에 대한 결정적인 전환점이다. 말레이시아 당국이 이번 사건을 북한인이 연루된 살인사건에서 더 나아가 북한 정권에 의한 ‘국가범죄’로 의심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현직 외교관과 국영항공사 직원이 암살에 개입하고 그 배후가 북한 정권임이 확인되면 외교적 입지는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북한은 면책특권을 지닌 외교관들의 지위를 악용해 불법 무기 거래나 영리활동 등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재외공관 직원 수를 축소하라는 제재를 받고 있다. 여기에 현직 외교관을 동원해 암살까지 벌인 것으로 확인된다면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기피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외교적·경제적 고립이 가중되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특히 북한은 물론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돈줄인 석탄을 수입하지 않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북한에 석유 수출도 하지 말라는 국제사회의 요구가 빗발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을 신의로 대했던 말레이시아의 실망과 배신감도 극에 이를 것이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이날 새로 공개한 혐의자 2명과 이미 평양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진 4명을 포함한 북한 국적 용의자들에 대한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이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당연한 조치다. 북한이 강철 주말레이시아 대사를 통해 밝혀 온 것처럼 그렇게 떳떳하다면 협조 요청에 응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더욱 진창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세계일보]

9. 김정남 독살 테러에 북한대사관이 개입했다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사건에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 소속 외교관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사관이 ‘테러의 온상’이었다니 말문이 막힐 뿐이다. 북한 정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저지른 범죄라는 게 기정사실로 굳어진 셈이다.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5명의 북한 국적자를 쫓고 있는데 이 중 4명은 이미 평양에 도착한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나머지 1명과 또 다른 북한 국적자인 북한대사관 2등서기관 현광성,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은 말레이시아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북한 국적 용의자는 붙잡힌 리정철을 포함해 모두 8명에 이른다. 베트남·인도네시아 국적 여성의 경우 맨손에 독극물을 묻혀 김정남 얼굴에 문질렀고 “얼굴을 덮는 공격을 하도록 이미 훈련을 받았다”고 했다. 김정남 아들 김한솔 입국설을 부인하고 “유족이 오면 보호해 주겠다”며 시신 신원 확인을 위한 DNA 샘플 제출을 요구했다.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은 그동안 사건 진상에 발뺌으로 일관해 왔다. 강철 대사는 말레이시아가 한국과 결탁해 북한을 궁지로 몬다는 억지 주장까지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아니파 아만 말레이시아 외무장관은 그제 필리핀에서 열린 아세안 외무장관 회의에서 “김정남 살해는 독살이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사건) 배후는 북한이라는 것이 틀림없이, 확실시되는 그런 상황”이라고 했다. 북한은 이런 명백한 증거를 보고도 생트집을 잡을 셈인가. 북한대사관은 말레이시아 경찰의 현광성·김욱일 면담 요구에 응하고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북한 당국은 평양으로 도주한 용의자 4명을 말레이시아로 돌려보내 현지 경찰의 조사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독살 사건의 배후가 드러난 만큼 테러 세력에 대한 강력한 응징에 나서야 한다. 평양 주재 자국 대사를 귀국시키는 수준의 제재로는 안 된다. 북한과 체결한 무비자 협정을 파기하고 단교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북한은 1983년 아웅산 테러로 미얀마에 의해 단교당한 전례가 있다.



국제사회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중심으로 대북 인권제재에 나서는 한편 김 위원장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유엔은 북한인권결의를 통해 안보리가 북한 인권상황을 ICC에 회부하고 인권유린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권고해 왔다. 북한 인권유린의 정점에는 김 위원장이 있다. 국제사회가 테러 세력 축출에 행동으로 나서야 할 때다.



10. 진실 규명 위한 대통령의 ‘헌재 출석’ 촉구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기일이 24일에서 27일로 사흘 늦춰졌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어제 “대통령 측 대리인들께서 준비시간이 부족하다고 말씀을 해 재판부에서도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했다”며 “27일 최종 변론기일을 열겠다”고 밝혔다. 변론기일이 연기됐으나 이 권한대행 퇴임일인 3월13일 이전에 선고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종 변론 뒤 시작하는 재판관회의(평의)가 2주일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13일 전 선고는 가능하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3월13일을 넘기면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어제 16차 변론에서 지연작전을 폈다. 헌법학자 등 20여명을 증인으로 신청하고 탄핵심판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에 대한 기피 신청을 냈다.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김평우 변호사 등 4명이 두 시간 넘은 발언을 이어가며 시간을 끌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강 재판관을 겨냥해 “오해에 따라서는 청구인(국회)의 수석대리인이 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가 이 권한대행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헌재 심리가 공정하고 충실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 측이 그간 변론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를 보면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리인단의 언행과 돌출 행동이 헌재 심판의 공정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최종 변론기일의 연기는 대통령의 헌재 출석을 끌어내기 위한 포석으로 판단된다. 이 권한대행은 대통령 측에 “최종 변론기일 하루 전까지 (대통령의 출석 여부를)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박 대통령의 헌재 출석 최종 시한이 이제 사흘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법으로만 따지자면 대통령이 반드시 헌재에 출석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동안 자신의 약속을 뒤엎고 특검과 검찰의 조사에 응하지 않은 만큼 헌재에 나와 사건의 진상을 국민 앞에 밝힐 필요가 있다. 누구보다 사실관계를 잘 알고 있는 대통령이 자세히 털어놔야 진실이 규명될 수 있다. 작금의 탄핵 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진상 규명이다. 진위가 가려져야 헌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결정 후의 승복도 가능하다. 국가 지도자로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





​주요신문칼럼


1. [동아일보][2030 세상] 인형뽑기 중독자의 고백

내가 어렸을 땐 ‘정글짐’이 유행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키즈카페 같은 곳인데 당시엔 부잣집 친구들이 생일파티를 할 때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승합차가 데리러 와, 다같이 우르르 타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곳의 메인은 플라스틱 공으로 꽉 찬 공 풀장인데 친구가 별로 없던 나는 거기서 혼자 놀다가 지쳐 잠들곤 했다. 졸다 깨는 순간엔 늘 기분이 안 좋았는데 혹시 친구들이 날 두고 집에 갔을까 하는 걱정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가끔 그런 기분으로 잠에서 깰 때가 있다. 내 좁은 침대가 인형으로 가득 찬 공 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거다. 요즘 들어 많이 보이는 인형뽑기방. 처음엔 나도 누가 이런 걸 하나 싶었다. 오락을 좋아하지 않아 그 흔한 애니팡 한 번 해본 적 없고 요행을 바라는 걸 즐기지 않아 로또 한 번 사본 적 없는 나였다. 그랬던 내가 인형뽑기에 중독된 걸까. 올 1월 31일, 세뱃돈으로 받은 현금이 주머니에 있었던 게 발단이었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혼자 집으로 가는데 저 멀리 하얀 불빛 아래서 환호성이 들렸다. 새로 생긴 인형뽑기방이었다. ‘어라? 저게 진짜 뽑히기도 하나 보네’ 하며 호기심이 생겼다. 평소 ‘난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이 많았는데 저들을 보니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옆집 사는 희철이도 요즘 들어 프로필 사진이 인형으로 바뀌는 걸 보니 여기서 했나 보다. 나도 해 봐야지.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10분 만에 1만5000원을 날렸다. 

화가 나서 괜히 희철이에게 연락해 성을 냈다. “너같이 손재주 없는 애도 뽑길래 나도 한번 해봤는데 돈 다 날렸다. 책임져라.” 그러자 희철이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비법이 궁금하냐고 했다. “비법? 뭔데?” 

그가 가르쳐준 비법은 우선 입구 부근에 인형이 쌓여 있는 기계만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 하는 사람들은 입구 바로 옆에 있는 인형부터 시도하곤 하는데 걔들은 잘 안 된다고. 이건 뽑기방 사장님에게서 들은 말인데 입구 근처에 있는 인형을 할 때와 입구 멀리에 있는 인형을 할 때와는 집게 힘이 다르다고 한다.



따라서 입구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고 들기 쉽게 누워 있는 애들을 공략해야 한다. 걔들은 어지간하면 입구 탑(인형들이 탑처럼 쌓여 있다고 해서 탑이라 부른다)까지는 가져다 놓는데 그럼 게임은 끝난 거다. 그렇게 탑 위에 놓인 인형들을 입구 쪽으로 살살 끌고 가서 톡 떨어뜨리거나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입구에서 먼 쪽을 잡고 뒤집어 올려 입구로 골인시키는 거다. 

솔직히 이걸 카톡으로 설명해줄 때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다음 날 정말 우연히 길에 있는 인형뽑기 기계 앞을 지나는데 어라? 왠지 어제 친구가 설명한 그 상황이 눈앞에 있었다. 누군가가 탑 위에까지 올렸다가 돈이 없어서 더 안 하고 그냥 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봤는데 이럴 수가! 인형이 너무나 부드럽게 입구로 쏙 떨어져서 나에게로 온 것이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심장박동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나에게도 생기는구나! 그날 눈이 뒤집힌 거지…. 대체 왜 한 걸까 싶으면서도 이 정도의 중독력이라면 뭐라도 해볼 수 있겠다 하는 희망이 생겼다.

그렇게 해서 한 달 동안 뽑은 인형은 자그마치 22개. 이 정도면 강원랜드 한 번 갔다 온 걸로 쳐야 할까. 다행인지, 아쉬운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그 열렬한 마음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질릴 때까지 해야 그만둘 수 있다는 지인의 조언을 듣고 7만 원으로 인형 8개를 뽑고 나니 정말 마법처럼 그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몇 번 하기는 했지만….

올 듯 말 듯하지만 결국 나에게 와 줄 때의 그 행복감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선사해준 인형뽑기에게 진실로 고마움을 느끼며 이제 안녕이야! 난 이제 더 강한 자극을 찾아 떠날 테야! 그동안 내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PS. 그런데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에게 중독이 시작되면 어쩌죠? 난 책임 못 져….



2. [경향신문][문화와 삶] 이상이라는 이름

20세기 음악사를 다룬 알렉스 로스의 저서 <나머지는 소음이다>에 소개된 뜻밖의 사실 한 가지.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을 점령한 미군정(OMGUS)이 다름슈타트 국제 신음악 하계음악제가 출범할 때부터 예산의 20%가량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다름슈타트의 하계음악제는 이후 아방가르드 현대음악의 국제적 산실이 된다. 슈토크하우젠, 불레즈, 존 케이지와 같은 굴지의 현대음악가들이 이 음악제를 거쳐갔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윤이상도 예외가 아니다.



미군정이 현대음악을 지원한 것은 독일의 ‘탈나치화’를 위한 이른바 ‘심리전’의 일환이었다. 이해가 쉽고 집단적 정서에 호소하는 조성음악 대신에 개인화된 자유로운 아방가르드 음악의 미학적 가치를 우위에 둠으로써 전체주의의 발흥을 저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것은 물론 소련과 현실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있었다. 로스에 따르면, “OMGUS의 뒤를 따라 중앙정보국(CIA)이 가끔씩 심히 복잡한 아방가르드 작품들이 포함된 축제의 자금을 지원했다.”

위와 같은 사실은 한국의 냉전 정치세력들이 작곡가 윤이상을 대해왔던 방식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196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과 중앙정보부는 이른바 ‘동백림 사건’의 간첩 혐의로 윤이상을 독일에서 국내로 납치해와 고문을 자행하고 2년 가까이 교도소에 감금했으며, 세계적 비난 여론이 들끓자 마지못해 석방한 뒤 추방했다. 미국 정부와 CIA라면 음렬기법과 무조성을 고수했던 윤이상의 아방가르드적 현대음악을 오히려 지원했을 것(최소한 공산주의자로 몰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1980년대 이후로 특히 자주 있었던 윤이상의 방북 활동은 한국 내 냉전세력들이 최근까지 그의 이념을 문제 삼도록 만든 빌미가 되었다. 남한 입국이 거부되어 있던 당시에 윤이상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조국 방문’이었음을 고려해야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북한 정권은 왜 윤이상과 그의 음악을 받아들였을까? 윤이상의 난해한 현대음악은 ‘인민이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전체주의적 기조로 삼는 북한의 관료화된 문예정책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동백림 사건’이 없었다면, 북한 정권이 윤이상의 급진적 현대음악을 지원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사실상 ‘남한 정부의 정치적 핍박을 받고 있는 세계적 명성의 작곡가’라는 윤이상 카드를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는 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북한 정권의 환영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윤이상의 음악 그 자체는 대중적 조성음악 언어로 바뀌지 않았다는 점, 즉 그의 음악은 단 한번도 ‘친북적’이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윤이상의 한국 방문이 시도됐다. 하지만 “지난날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는 것과 앞으로는 예술에만 전념하시겠다는 뜻을 밝혀” 달라는 당시 이홍구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의 서신을 전달받고 윤이상은 정중히 한국 방문을 거절했다.



이듬해에도 방한 기회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주사파 성향의 활동가들이 그를 찾아가 한국 방문을 강행할 경우 공항에서 분신자살이 행해질 것이라고 협박했다. ‘통일운동가’라는 이들의 위선적 행태에 실망한 나머지 윤이상은 이날 심장 발작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고 한다. 그해에 윤이상은 고향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독일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사후 고향 통영에서는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최근 ‘윤이상 콩쿠르’의 지원금 중단 해프닝에서 볼 수 있었듯이 그는 여전히 누군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조차 종종 “예술에만 전념”이라는, 작곡가 자신이 모욕을 느꼈던 누군가의 바람을 넘어서지 못하는 듯하다.



윤이상의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찬 한국의 현대사이자 냉전의 세계사 그 자체다. 탄생 100주년, 윤이상을 기억하는 일이 작곡가로서 그의 세계적 명성이나 순수음악적 가치를 재확인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되는 이유다. ‘윤이상’이라는 이름은 한반도 평화의 미래를 향한 미학적·정치적 공감의 교두보다.



3. [중앙일보][분수대] 아버지의 짐

소설가 김훈의 신작 『공터에서』에는 거지대장 박영철 얘기가 나온다. 6·25 당시 ‘구걸의 자유’를 찾아 대구로 피란 간 인물이다. 남하한 이유가 희비극이다. 텅 빈 서울에서 공산당이 거지들은 기생충이라며 한강에 쓸어 넣겠다고 협박하자 박씨는 40여 무리를 이끌고 주 활동무대인 청계천을 떠났다. 그는 자유대한의소리 방송 인터뷰에서 “그리운 청계천으로 돌아가 자유롭게 구걸할 날을 고대한다”고 말했다.

아나운서의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자유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루속히 청계천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씁쓸했다. 몸뚱이밖에 없는 거지가 구걸할 자유를 호소하는 게 우스꽝스러웠고, 또 고귀한 자유가 눈앞에 있다는 아나운서의 말이 꺼림칙했다. 서울이 다시 위태로워지자 피란을 가려면 질서를 지켜 문명한 국민의 성숙도를 보여 달라는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나온 무렵이었다.

전쟁이 끝난 지 64년이 지났다. 하지만 소설 속 이 장면은 마치 오늘을 비추는 듯하다. 대통령 탄핵 무효를 외치며 서울시청 광장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이들을 떠올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모든 생명이 위협받는 전화(戰火) 속에서 생뚱맞게 걸인의 자유를 부르짖거나, 국정 농단 증거가 속속 나왔는데도 ‘멸공의 횃불’을 틀어대는 심정은 어쩐지 닮은꼴이다. 태극기·성조기 현장을 둘러봤던 작가는 ‘기아의 정서’ 한마디로 표현했다. “엔진이 공회전하듯 해방 후 70년간 같은 자리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공터에서』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가장자리다.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현대사의 변두리 인물을 돌아본다. 시대를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린’ 사람들이다. 그들의 고달픈 일상은 ‘아버지의 짐’으로 요약된다. 그토록 부정했던 아버지로부터 달아나려 했지만 질긴 인연의 사슬에 묶여 있는 지금 우리들의 자화상 같다. 촛불과 태극기의 어불성설 충돌은 그 짐의 결정판이다.

올해 일흔인 작가는 소설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낸 아들의 입을 빌려 고백한다.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아버지가 한평생 끌고 온 시간과 지고 온 짐이 소멸할 수 있을까.” 우연인지, 의도인지 주인공의 아버지가 세상을 등진 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측근의 총에 쓰러졌던 79년 겨울이다. 구체제의 틀을 깨려고 용틀임하는 오늘 우리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또다시 아버지의 짐을 대물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4. [서울신문][정준모의 영화 이야기] 세상의 황금시대는 어디에

정녕 좋은 시절이란 유한한 것일까. 연이은 테러와 폭동으로 파리의 관광객을 찾아보기 힘들고 루브르의 관람객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는 우울한 소식을 들은 날 모두가 동경하는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를 떠올리며 문득 든 생각이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낭만과 사랑 그리고 예술의 도시로 파리가 자리잡은 것은 산업혁명 이후 프로이센과의 전쟁을 끝낸 1871년부터이다. 이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이 몰려와 예술지상주의에 빠져들었고, 이런 분위기는 대공황이 일어나기 전인 1930년대까지 이어진다. 역사가들은 특히 1871년부터 1914년까지를 ‘황금시대’라 명명했다.

이 시절 파리는 경제적 풍요로 낙천적 분위기와 힘찬 시대적 에너지가 넘쳐났다. 문화예술계에서도 데카당스한 댄디보이들이 세기말의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이들은 병적인 상태를 탐하고, 기괴한 주제와 소재를 반기며, 관능적이고 과민한 자의식으로 현실에 대한 반감을 감추지 않았다. 현실을 부정하고 도피를 위해 예술을 위한 예술을 강조하며 자연미를 거부했다.

우디 앨런은 이 시기의 파리를 찬미하고 그리는 영화를 만든다. 바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다. 이 영화도 산만하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다큐 ‘우디 앨런:우리가 몰랐던 이야기’에서처럼 복잡하고 산만한 구성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독특한 구조를 지닌다. 하지만 영화는 보다 더 몽환적이며 환상적이다. 그는 시간을 거스르는 시간여행을 통해 행복하고 낭만적인 그때의 파리로 데려간다. 그리고 관객들의 ‘파리앓이’가 시작된다.



누구에게나 황금시절은 있는 법이고 오늘보다는 지난 과거를 대부분 황금기로 여긴다. 그래서 추억은 아름답다고 했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오늘이 지나면 어제가 된다는 사실을 잊고 언제나 사람들은 오늘은 힘들고 어렵고, 지금보단 어제가 좋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까칠하고 섬세한 우디 앨런은 ‘옛날도 좋았지만’ 가장 ‘좋은 시절’은 ‘지금’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오언 윌슨이 연기한 ‘길’이다. 소설가를 원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영화대본을 쓰는 그는 자신의 재능을 몰라 주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서 우상인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1920년대를 동경한다.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약혼녀 ‘이네즈’는 매우 현실적이다. 이렇게 생각이 다른 한 쌍이 파리를 여행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영화의 줄거리다. 아니 영화의 전부다.

파리의 낭만을 즐기려는 길은 쇼핑을 하고 싶어 하는 이네즈를 두고 혼자 나왔다 길을 잃고 만다. 낯선 파리의 밤거리를 헤매는데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더니 그 앞에 1928년 나온 멋진 구형 푸조 ‘랑듀레 184’가 나타난다. 멋진 자동차에 몸을 맡기고 얼떨결에 도착한 곳은 전설적인 작곡가 콜 포터가 피아노를 치고 노래 부르며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 부부가 헤밍웨이와 잡담하는 그곳, 1920년대 파리의 한 파티장이다. 즉 황금시대의 중심인 것이다.



그 후 길은 자정만 되면 버릇처럼 1920년대로 길을 나선다. 이곳에서 마크 트웨인을 만나 작품 얘기를 나누고 당대 최고의 비평가이자 소설가며 시인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그의 작품을 읽고 칭찬해 준다. 피카소의 연인인 아드리아나와 만나 현실의 연인 이네즈를 잊고 환상 속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우디 앨런이 영화라는 장치를 통해 1920년대 파리를 동경하고 사랑했던 모든 예술가들을 불러모아 연 파티가 바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이다. 이 시절 파리는 인간상실의 시대에 절망한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욕망과 탐욕의 시대를 벗어나 이룬 ‘해방구’였다.



“선한 미국인은 죽어서 파리에 간다”고 했던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특히 많은 미국의 문인, 예술가들은 파리로 떠났고 일부는 그곳에서 살고 뼈를 묻을 만큼 파리는 동경의 땅이자 예술적 열정으로 가득한 땅이었다. 그리고 파리는 시대적 아픔을 치유, 아니 잊을 수 있는 낭만적 도피처이기도 했다. 그래서 수많은 카페와 바 그리고 아틀리에를 전전하는 파티는 초라했지만 매일매일 토론과 열정으로 잘 차려진 성찬이었다.

이렇듯 미국의 지식인·예술가들에게는 뜨거운 파리였지만 토박이들에게는 권태롭기 그지없는 공간이기도 했다. 우울하고 염세적인, 그러나 피는 뜨거웠던 ‘파리의 황금시대’를 매우 적나라하게 그려 낸 로트렉이 스케치를 하고 있는 물랭루주의 한 바에 나타난 드가에게 고갱이 한마디 날린다. “이 시대는 공허하고 상상력이 없어. 르네상스 때야말로 최고의 시대였지!”라고.



우디 앨런은 현실에서 작품을 인정받지 못해 불만인 길에게 1920년대 문화예술의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파리도 당시 고갱에게 불만이었던 것처럼 “지금, 여기”와의 대비를 통해 ‘현실도 꽤 괜찮은 살 만한 곳’이라는 쪽지를 슬그머니 손에 쥐여 준다.

영화 속 황금시대의 파리는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이 운집해 있다. 장 콕토, 투우사 벨 몬테, 모딜리아니, 계속해서 코뿔소를 외치는 달리와 그의 친구인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 사진가 만 레이, 시인 T S 엘리엇, 조세핀 베이커, 주나 반스, 코코 샤넬 등등이 마치 20세기 초를 구가한 문화예술인 인명사전의 색인처럼 등장한다. 이 시절 파리로 모였던 많은 화가들을 ‘에콜 드 파리’라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파리의 몽파르나스는 이민 또는 난민 화가들의 천국이었다. 파리는 모두에게 열려 있었고 누구든 ‘톨레랑스’라는 이름으로 받아 주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모딜리아니, 러시아의 샤갈, 리투아니아의 수틴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전쟁을 피해 파리로 스며들어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시대를 거스르는 연어처럼 펄떡이며 자신의 예술혼을 불살랐다. 내일은 없다는 듯 보헤미안처럼 그날그날에 충실했다. 멜랑콜리한 정서와 반항적인 기질, 감상적인 성격과 취향이 같았던 이들은 로맨틱하고 서정적이거나 우아한 애수가 함께하는 섬세한 관능미를, 때로는 분노와 열정을 자제함이 없이 화폭에 폭발적으로 펼쳐내기도 했다.

이들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카데미즘을 일거에 무너뜨린 야수파, 입체파, 미래파이다. 각기 다른 다양한 작품의 바닥에는 불안과 고뇌라는 공통점이 도사리고 있었고, 여기에 샹송을 보태며 그들은 더욱더 충실하게 오늘을 살았다. 영화에서 포크너는 말한다. “과거는 절대 죽지 않는다”고. 하지만 우디 앨런은 “그래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바로 황금시대”라고 말한다. 아마 그가 한국인이라면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했을 터이다. 그렇다. 어지러운 세상이다. 하지만 굴러 보자. 황금시대는 다시 올지니.



5. [조선일보][일사일언] 사연 은 동백꽃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꽃이 있다. 장미, 백합, 혹은 안개꽃. 누군가는 샐비어를 좋아한다. 유년 시절엔 꽃을 따서 단물을 빨아 먹곤 했다. 그때는 사루비아라고 불렀다. 추억의 꽃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꽃이 뭐냐고 묻는다면 동백이라고 답한다. 동백에 '필이 꽂힌' 데엔 전남 영광 출신 친구가 한몫했다.


대학 신입생 때다. 하숙 룸메이트가 영광 출신이었다. 낯선 전라도 사투리가 갑자기 일상이 됐다. 가끔은 다른 문화에 불편해하기도 했지만 돈독한 우정을 쌓았다. 막 스물을 넘긴 시절이다. 이듬해 2월 전라도 영광 땅을 난생처음 밟았다. 요즈음 세대에게는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가난했던 그 시절, 먼 남녘으로 여행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은 금호고속으로 이름이 바뀐 광주고속 버스를 타고 갔다. 차창 너머 보이는 넓은 호남벌은 산간벽지에서 자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친구는 집 근처 안흥사 동백이 장관이라며 나를 끌었다. 그날 본 풍경이 어제 같다. 핏빛 꽃들이 늙은 동백나무를 뒤덮고 있었다. 장엄하다 못해 비감스러웠다.



동백꽃은 사연이 많다. 뇌쇄적인 아름다움에 비해 긴 세월 천대를 받아 왔다. 꽃봉오리 전체가 어느 순간 '툭' 떨어지는 모습이 불길하다고 해서 지배층의 외면을 받았다. 불길한 일들이 갑자기 생기는 것을 동백꽃 춘(椿) 자와 일 사(事)를 조합해 '춘사(椿事)'라고까지 표현한다. 일본도 비슷하다. 사무라이들은 질색한다.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칼날에 사람 목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해서 아예 마당에 들여놓지 않았다. 서양에서도 장미 못지않게 사연이 많다. 그래서 베르디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운의 여주인공 비올레타 가슴에 동백꽃을 달았다.



동백꽃 소식이 들리면 문밖은 봄이다.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서정주 '선운사 동구' 중에서). 하지만 조숙한 동백은 이미 바람결에 떨어진다. 그날 그곳의 동백꽃은 지금쯤 다시 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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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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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4대강 수질 개선 노력은 이어져야 한다

4대강 사업 이후 매년 되풀이되는 수질 악화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결국 보(洑) 방류량을 늘리기로 했다. 수자원공사(이하 수공)도 4대강 사업으로 나빠진 하천 수질을 개선하겠다며 전국에 인공 저류지 10곳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민들의 젖줄인 4대강의 수질 악화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상황 인식에 따른 고육책이라 하겠다.



정부는 지금까지 홍수 방지를 위해 여름철에만 제한적으로 방류량을 늘렸지만 앞으로는 연중 필요할 때마다 물을 흘려보내기로 최근 결정했다. 방류량이 늘어나 유속이 빨라지면 녹조의 원인인 남조류가 증식할 시간도 줄어들고 수질 및 시각적 개선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수공도 달성보 등 전국 10개 보 주변에 다목적 인공 저류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모래 여과와 생태 처리 기능을 갖춘 인공 저류지를 하천변에 조성한 뒤 물을 정수해 하류로 흘려보내거나 상수원수로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수공은 녹조 현상이 심각한 강정고령보(낙동강)와 승천보(영산강) 등 2곳에서의 시범사업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이 홍수 및 가뭄 피해를 줄이는 긍적적 효과를 거뒀지만 녹조 현상 및 수질 악화를 빚었다는 점에서 보의 방류량을 늘려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이 있었고 보를 전면 해체하라는 환경단체들의 주장까지 나온 점을 감안하면 정부와 수공의 이 같은 조치는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취지는 맞지만 정부와 수공의 계획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보의 방류량을 늘리면 강 주변 지하수 수위가 낮아져 농업용수 확보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고 보에 설치된 어도(물고기 길)의 기능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인공 저류지를 만드는 방안 역시 발상은 좋지만 사업비가 무려 2조2천억원에 이른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렇다고 수공의 계획을 헐뜯고 아무 일도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녹조 현상은 지류로부터 오염원을 차단하지 못한 영향이 크다. 저류지 사업은 친환경 여과시설을 만들어 오염을 줄여보려는 노력이다. 덮어놓고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녹조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서울신문]

2. 안희정, 중도 확장 노선 구체적 청사진 밝혀야

안희정 충남지사는 어제 논란이 된 자신의 ‘선한 의지’ 발언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는 지난 19일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선한 의지로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는데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아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해 야권 내부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특히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인 같은 당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로부터 “불의에 대한 분노심 없이 어떻게 정의를 바로 세우겠나”라는 공격을 연이어 받았다. 보수·중도층 공략을 위해 오른쪽 행보를 하던 안 지사의 중도 노선은 이번 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검증대에 오르게 됐다.

안 지사는 어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상대방을) 선한 의지로 받아들여야 대화도 되고 문제도 해결된다는 취지로 말씀드린 것”이라며 “국정 농단에 이르는 박 대통령 예까지 간 것은 많은 국민께 이해를 구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사과했다. 안 지사가 진보 진영이면서도 보수·중도층의 지지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사드 배치와 재벌개혁 등 안보·경제 부문에서 다른 후보들과 달리 안정감 있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사실 상당수 국민은 어느 대통령이든 처음부터 ‘악의’를 갖고 ‘나쁜 정치’를 지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안 지사의 ‘선한 지도자’ 인식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지지율이 치고 올라오는 안 지사에 대한 정치 공세로도 볼 수 있다.

더구나 안 지사는 보수·진보의 이분법적인 정치 구도를 깨겠다며 ‘대연정 카드’를 내놓은 이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야소야대의 현 정치 지형에서 대연정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선한 의지’ 발언은 대연정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이 발언이 문제라면 그가 앞서 밝힌 “박·이의 정책도 계승하겠다”고 한 발언부터 두들겨 맞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확고한 소신을 밀고 나가다 3일 지나 뒤늦게 사과함으로써 그의 발언에 대한 진정성마저 의심받는 처지가 됐다. 그의 사과는 ‘선한 의지’ 발언이 대화와 통합의 정치를 위한 정치철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지지층 확장을 위한 득표용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상승세인 지지율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산토끼 사냥에 나섰다가 당 안팎의 비난이 거세지자 집토끼라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계산으로 읽힌다. 이제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통합의 정치라는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그의 일련의 행보는 중도 확장을 위한 선거 전략으로 폄하될 수밖에 없다.



3. 상법 개정, 균형 있는 논의 필요하다

여야가 이번 임시국회에서 원칙적 처리 방침을 정한 상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상법 개정은 기업 경영의 안정성 확보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성격이 판이한 두 개의 명제가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사안을 다룬다. 따라서 각론에 들어가면 여야, 그리고 재계와 시민단체의 대립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야가 팽팽히 맞서는 집중투표제는 주총 때 주주들이 선호하는 이사 후보자에게 의결권을 몰아주는 것으로 지배 주주와 기타 소수 주주들 간에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자는 취지다. 그렇지만 지분율이 높지 않은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특정 인물’에 표를 몰아 줄 우려가 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이 시빗거리다. 감사위원은 선임 때부터 대주주로부터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취지이지만 최대 주주만 의결권을 제한받고 2대 주주는 제한이 없다는 게 문제다. 재계는 투기 자본에 의해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반발한다.

재계는 외국계 헤지펀드인 소버린과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으로부터 경영권을 공격당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2005년 소버린은 SK 주식을 사들여 2대 주주가 된 후 경영권 퇴진을 요구하다 1조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뒤 발을 뺐다. 2006년 칼 아이칸은 기습적으로 KT&G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다 1500억원의 매도 차익을 내고 철수한 적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상법 개정안이 기업 경영의 자율성이나 경영정보 보호 등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재계의 주장에 충분히 일리가 있다. 동시에 그간 투명 경영에 힘쓰지 않은 재계가 상법 개정에 마냥 반대하는 것 또한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더구나 최순실씨가 실소유주인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자한 대기업들에서 이사회의 후진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지 않았는가.

우리는 상법 개정은 예정대로 추진하면서 경영권 보호 장치를 함께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여야는 충분한 논의를 거쳐 개정법의 보완점을 마련하되 차등의결권과 같은 경영권 보호 장치 마련을 공론화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길 당부한다. 상법 개정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해 경제민주화의 첫발을 내딛는 한편 한국이 투기 자본의 놀이터가 되지 않도록 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식은 옳지 않다.



[이데일리]

4. ‘교학사판 사태’ 재연된 국정교과서 선택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된 학교가 경북 경산시 문명고교 단 한 곳에 그쳤다고 한다. 그동안 교육부가 신청을 받는 과정에서 몇 개 학교가 더 신청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끝내 1개교에 그친 것이다. 전국 5564개 중·고교 가운데 단 1곳만 국정교과서를 채택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 교육계가 이념 대립에 의해 짓눌리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냈다.

더욱이 문명고교가 연구학교로서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재학생과 학부모들이 반발 집회를 여는 등 내부 갈등의 확산으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취소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연구학교로 존속한다면 아예 전학을 가겠다는 학생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연구학교 지정 철회를 위한 학생회의 서명운동에도 동참자가 몰리고 있다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학교 당국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연구학교로 신청하는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학내에서 반대 의견이 많았는데도 그 의견을 무시한 채 연구학교로 신청했으며, 반대한 교사들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학생들이 바깥 여론에 휘둘려 반대운동을 펴는 것이 잘못이듯이 학교 재단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태도에도 찬성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태가 이렇게까지 이른 배경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진보성향 교육감들의 노골적인 협조 거부에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연구학교로 신청하려는 학교에 집단 압력을 넣은 결과다. 좌편향적인 기존 검인정 교과서들의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국정교과서가 대안으로 마련된 것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하는 사람이 없다. 우리 일선 교육계가 직면한 서글픈 현실이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획일적인 내용의 역사교육이 학생들의 가치관을 그르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국정·검인정의 혼용까지 반대하면서 내세우는 논리로는 자가당착이다. 국정교과서 집필 작업을 밀실에서 진행한데다 내용상 적잖은 오류를 낸 교육부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보수성향 필진들이 집필한 한국사 교과서가 친일·독재를 미화했다는 이유로 배척됐던 3년 전의 ‘교학사판 사태’에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에 무기력함을 느낀다.



5. “김정남이 죽은 게 아니다”는 북한의 궤변

북한과 말레이시아가 김정남 암살사건을 놓고 정면충돌 양상을 빚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그제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를 외교부로 불러들여 수사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를 따지는 한편 평양주재 자국 대사에게 귀국 명령을 내렸다. 말레이시아 내부에서 양국 간 무비자 협정을 재고하라는 주장이 나오는 등 북한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면서 단교라는 최악의 상태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북한은 1983년 아웅산 테러로 미얀마에 의해 단교당한 전례가 있다.

북한의 독선적인 태도가 갈등의 발단이다. 강 대사는 기자회견에서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사망자 신원은 여권에 명시된 대로 김철”이라고 생떼를 썼다. 김정남 독살설 자체를 아예 부인하려는 속셈이다. 그는 적반하장으로 “한국과 말레이시아 정부의 결탁이 이번 사건의 배후”라며 한술 더 뜨기도 했다. 남한 당국이 최순실 사태에서 벗어나려고 사건을 꾸몄다는 얼토당토않은 논리로, 국내 일각에서 나도는 음모론을 잽싸게 끌어댄 모양새다.

말레이시아가 발끈한 것은 당연하다. 나집 라작 총리까지 나서서 “경찰의 수사결과를 절대 확신한다”고 맞받아쳤고 외교부는 “외국 정부와의 결탁설은 말레이시아를 심각하게 모욕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비단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북한의 ‘반인륜적 테러’ 규탄에 동참하고 나섰다. 중국은 북한의 최대 돈줄인 석탄 수입을 연말까지 동결했고, 국제사회는 테러지원국 재지정과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등의 대북 제재 논의를 구체화하는 분위기다.

북한 강 대사는 쿠알라룸푸르공항 CCTV 녹화 장면과 이번 사건에 행동책으로 동원된 동남아 출신 여성들의 증언 등 명백한 증거들도 깡그리 외면했다. 그러나 금명간 시신 부검과 최종 수사결과가 나오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라도 사건의 실체를 솔직히 시인하고 말레이시아와 국제사회에 진심으로 사죄하는 동시에 재발 방지를 굳게 다짐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국내 정치권 인사들도 사건을 얼버무리는 듯한 모호한 화법으로 북한의 소행을 외면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이번 사건을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명백히 깨닫기 바란다.



[조선일보]

6. '정치'와 '지역'에 휘둘린 555조 국민 노후자금

국민 노후자금 555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25일부터 나흘에 걸쳐 서울에서 전북 전주·완주 혁신도시로 이전한다. 기금 운용 인력 200여명 가운데 작년부터 올해까지 50명 넘게 사표를 냈거나 사표 제출 의사를 밝혔다. 8명의 실장급 가운데 지난 8개월 새 6명이 그만뒀다. 요즘은 하루 한 명꼴로 사표를 내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6개월 이내에 계약 만료되는 운용역만 50여명에 달하는데 공백을 쉽게 메우기 힘들다고 한다. 기금 운용 인력은 비교적 우수하다. 대우는 민간 펀드매니저의 60~65% 수준이지만 금융 네트워크와 큰돈을 굴리는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우수 인력을 유치할 수 있었다. 이들이 금융 중심지인 서울을 떠나기보다는 직장을 바꾸는 결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당초 국민연금공단 본부 인력 550여명만 옮기고 기금운용본부는 서울에 남겨두었다. 그러자 전북 지역 의원들이 "정부가 국민연금에서 500조원 알맹이는 쏙 빼놨다" "500조원이 옮겨오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한테 몰릴 것"이라는 식의 논리로 지역 민심을 부채질해 이전을 끌어냈다. 마치 실제 돈이 500조원 오는 것처럼 부풀려 놓았다. 민주당 대선 후보 한 사람은 "서울에 남는 걸 내가 막았다"고 자랑했다.



지역에서는 기금운용본부가 이전되면 거래 기관에서 매달 수천명이 찾아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다.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낭비가 너무 크다. 국민연금은 2043년이면 적자로 돌아선다. 555조원 자금을 우수 인력에게 맡겨 수익률을 1%포인트만 높여도 연간 5조5000억원을 벌고, 고갈 시기를 7~8년 늦춘다. 지역에 사람 더 찾아와 밥 먹어 생기는 경제 효과와는 비교할 수 없는 국가 이익이다. 나라가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모두 속수무책이다.



[동아일보]

7. 우병우 前민정, 검찰 치욕의 역사로 남을 것

서울중앙지법이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해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오늘 기각했다. 우 전 수석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해 직무유기, 직권남용, 특별감찰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어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최 씨는 모르고, 모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민정수석만 제대로 역할을 했어도 최 씨의 국정 농단 사건이 번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판에 영장 기각은 납득하기 어렵다. ‘법꾸라지’ 우 전 수석에 대해 특검이 수사 막바지에 형사처벌 절차를 밟은 것도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특검에 따르면 우 전 수석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과 김성우 전 홍보수석이 지난해 10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및 모금에 관여했으며 최순실 씨가 깊숙하게 개입했다”며 자문하자 ‘미르·K스포츠재단 문제는 최 씨가 돈을 빼돌렸으면 횡령죄가 되지만, 돈을 건드리진 않았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보고서를 써줬다.



국정 농단이 본질인 두 재단 문제를 최 씨의 횡령 유무로 프레임을 바꾼 것이다. 2014년 우 전 수석이 민정비서관이었던 당시 ‘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지자 ‘문건 유출은 국기 문란’이라고 ‘물타기’를 해 국민의 의혹을 비켜 갔던 것과 같은 수법이다. 

우 전 수석은 미르·K스포츠재단 임원 검증에도 민정수석실 직원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가기관의 민간인 사찰은 중대 범죄다. 민정수석실이 남의 뒷조사나 해주는 흥신소와 다를 바 없었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 최 씨가 검찰 경찰 국세청 수장의 인사 자료를 수집했고, 이 중 5명은 실제로 임명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최 씨가 사정기관 수장 임명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어떤 불법행위를 저지른들 두려웠을 리 없다. 

민정수석실은 공직인사 검증은 물론이고 대통령 측근 비리를 감시하는 자리다. 우 전 수석은 최 씨의 비리를 묵인하고 방조한 것도 모자라 보좌를 했고, 이런 민정수석을 감찰하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거꾸로 몰아내기까지 했다. 검찰 인사권을 틀어쥐고 검찰의 독립성과 자존심을 무너뜨리며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간 ‘우병우 사건’은 검찰 역사에 치욕으로 남을 것이다.



8. 박근혜 정부가 키운 사상 최대 가계부채

지난해 연간 가계부채 증가액이 141조 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어제 한국은행이 밝혔다. 2015년 말 1203조1000억 원에서 1년 만에 11.7% 급증해 가계부채 잔액도 사상 처음 1300조 원을 넘어선 1344조 원이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 출범 4년간 가계부채가 380조 원이 늘어나 이명박 정부 5년간의 증가액(298조 원)을 넘어서는 불명예를 기록하게 됐다. 

특히 최근의 가계부채 증가세는 대출금리가 높고 저신용자들이 많은 제2금융권에서 주도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정부는 작년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로 카드 결제가 늘고 2금융권 중 금리가 낮은 편인 생명보험회사 대출이 증가했다고 발표했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다.



부동산 경기에 민감한 중도금 집단대출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관련 금리가 최고 연 5%까지 오른 것은 그만큼 부실 우려가 커졌다는 뜻이다. 어제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가계대출이 급격히 확대되는 2금융권에 대해 엄중 조치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나간 대출을 엄포만으로 관리할 수는 없다. 

1300조 원의 가계부채는 ‘집값은 오르기 마련’이라는 한국적 상황에서 경기를 띄우기 위해 부동산 부양정책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정부 탓이 크다. 특히 2014년 7월 취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며 부동산 대출 규제를 대거 해제하는 등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을 폈다. 현 정부의 초대 경제수장이었던 현오석 전 부총리나 지금의 유일호 부총리는 가계대출을 관리하는 시늉만 했을 뿐이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주요 과제였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목표치(160%)를 넘어선 지 오래지만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정부가 가계부채 증가세를 방조한 것은 자신의 임기 내에만 폭탄이 터지지 않으면 된다는 님토(NIMTO·Not In My Term of Office) 현상 때문이다. 어제 금융위는 ‘정부 대책에 따라 부채 증가 속도 및 부동산시장이 안정되는 모습’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평가를 내놓았다. 공무원들의 폭탄 돌리기는 이미 시작됐다. 한국의 부채에 대해 낙관적이던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작년 8월부터 대출의 구조적인 위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미국발 금리인상과 과도한 분양물량 때문에 집값이 급락한다면 가계부채가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중앙일보]

9. 교육부·미래부, 왜 해체 공약 나오는지 되새겨 보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 유력 대선주자들이 내놓은 정부조직 개편 공약이 관가를 강타하고 있다. 현 정권 4년 동안 국민 혼란만 초래했거나 국정 농단 사태 등에 연루된 정부 부처들은 비상이다. 해체나 축소 대상으로 거론된 교육부·미래창조과학부·여성가족부·방송통신위원회 등은 특히 동요하는 모습이다. 어수선한 정국에 공직기강이 풀렸다는 비판이 거센데 공무원들이 눈치만 보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각 대선 캠프에 총력 로비를 펼친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물론 대선주자들이 집권 시 정부조직 구성 방안을 밝히는 건 바람직하다. 조직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정책의 성패와 국가 경쟁력이 달려 있어서다. 더욱이 이번 대선은 정상 상황도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인용할 경우 60일 이내에 선거를 치르면 곧바로 차기 정권이 출범한다.



종전처럼 두 달여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간 중 청사진을 만들 시간이 없다. 대선주자들이 정부조직 구성 방향을 미리 내놓는 게 당연한 이유다. 하지만 국정 운영에 대한 비전과 철학 없이 국민 정서에만 기댄 포퓰리즘식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 정권 과시용으로 5년마다 조직을 ‘뗐다’ ‘붙였다’ 하는 악습을 되풀이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해체’ 도마에 오른 부처들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상당하다. 교육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그렇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교육부 해체·폐지’를, 안희정 충남지사는 합의제 기관으로의 기능 전환을 약속했다. 초·중등 교육은 지방교육청, 교육정책은 국가교육위원회(가칭)로 넘긴 다음 교육부가 대학에서 손을 떼도록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교육부가 이런 운명에 놓인 것은 자업자득이다. 국정 역사 교과서 강행으로 인한 혼란, 잦은 입시 변경에 따른 학생·학부모들의 고통, 이화여대 사태 등 연간 2조원의 재정사업을 미끼로 한 대학 옥죄기 등 숱한 난맥상으로 이미 국민적 신뢰를 잃었다. 교육 대계(大計)의 막중한 소명을 저버리고 조직의 안위에만 급급했던 탓 아닌가.

미래부 또한 다르지 않다. 4년간 대기업과 자치단체를 윽박질러 실체가 모호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전국에 난립시키고, 연구개발(R&D)의 국제경쟁력만 떨어뜨렸다. 전국 19곳의 창조센터 중 상당수는 문패만 걸었을 뿐 개점휴업 상태다. 게다가 국내 총생산(GDP) 대비 R&D 정부 예산 비중이 4.23%(연 19조원)로 세계 1위인데도 국제경쟁력은 세계 11위에서 19위로 후퇴했다. 미래 먹거리와 기초과학의 핵심인 창의·융합·개방·자율형 생태계 조성은 뒷전으로 미룬 채 규제와 간섭만 즐겼던 것 아닌가. 비전 없이 시키는 일만 해온 미래부의 오늘이다.

교육부와 미래부는 통렬히 반성하고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교육과 과학 분야의 혁신 없이는 결코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서 나갈 수 없다. 대선주자들도 더 구체적인 비전과 실행 가능한 개혁안을 마련해 국민의 평가를 받기 바란다.



[세계일보]

10. 출산 외치기 앞서 척박한 육아환경 돌아봐야

우리나라에선 아이를 낳아도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 세계일보가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의뢰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현실적인 제약이 없을 경우 아이 양육을 누구에게 맡기겠느냐’고 물었더니 응답자 10명 중 7명이 ‘본인’을 들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아예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 울며 겨자 먹기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보육시설에 맡길 수밖에 없다.

육아휴직 제도는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회원국 중 유급 남성 육아휴직 기간이 52주로 가장 길다. 부모가 모두 직장인이라면 아빠와 엄마가 1년씩, 총 2년의 육아휴직을 쓸 수가 있다.



제도는 선진국 수준이지만 현실은 후진국에 머문다. 직장에서 동료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인사상 불이익 등을 감수해야 한다. 그나마 여성 직장인의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은 크게 개선됐다지만 남성 직장인들은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처지다. 2015년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7%에 그친 현실이 생생한 증거다.

부모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에 아이를 맡기려 해도 마땅치 않다. 툭하면 보육시설 내 아동학대나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고 안전사고도 비일비재하다. 그나마 안심할 만하다는 국공립 보육시설은 태부족이다. 아이를 임신하자마자 대기순번을 받아놓더라도 보낼 수 있을까 말까다. 정부가 저출산 해소를 위해 2006년부터 쏟아부은 돈은 80조원을 웃돈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을 맴돈다. 아이를 키울 여건조차 제대로 만들어 놓지 않고 아이 낳으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제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부담이 아니라 축복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해 말 대기업 최초로 남성 직원들에 대해 1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의무화한 롯데그룹처럼 기업들이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다. 정부 차원에서 세제 혜택 등 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육아휴직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젊은 부부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외치기 전에 척박한 육아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동아일보][황광해의 우리가 몰랐던 한식] '한 상 차림'와 '한정식'

우리 밥상은 ‘한 상 차림’이다. 한 상에 모두 차려 놓고 골고루 섞어 먹는다. 우리는 한 상 차림 밥상을 받고 당황하지 않는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당황한다. 갑자기 여러 가지 반찬, 밥, 국이 한꺼번에 놓인 밥상을 받으면 당황한다. 어느 것부터,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묻는다. 한 상 차림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은 ‘일괄 타개’ 협상 방식을 좋아한다. 한 상에 모두 차려 놓고 한꺼번에 해치우는 것이다. 섞어 보니 손해와 이익이 균형을 이룬다. 

한식은 평(平)의 음식이다. 밥과 국, 반찬을 골고루 섞어 평으로 먹는다. 먹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짜면 싱거운 것을 섞고, 매우면 심심한 것을 더한다. 평이다. 음과 양을 섞어 평을 향한다. 1795년 봄, 수원 화성에서 혜경궁 홍 씨의 환갑날 밥상이 마련되었다. 조선시대 가장 화려한 밥상. 음이 8기(器), 양이 8기, 평이었다. 한식에 보양식은 없다. 한식은 음양이 조화를 이룬 평의 음식이다. 

한정식(韓定式)은 ‘한식+코스 요리’다. 한식이라는 몸에 서양식 코스를 입혔다. 한정식은 한식의 변종이다. 불과 40년. 한정식이 우리 음식이 될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외식업체의 고급 밥상은 한정식인데 가정의 밥상은 여전히 한 상 차림이다. 바탕이 한 상 차림인 나라에서 뿌리 없는 코스 요리가 얼마나 버틸까. 음식의 생명력은 핏속에DNA로 새겨진다. 정권 차원에서 진행하는 한식 세계화는 한정식이다. 수백 년 이어 온 한 상 차림 밥상이 해외 행사 몇 번으로 한정식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한정식은 슬프다. 억지 춘향이다. 죽과 의미 없는 샐러드, 여러 요리를 쭉 나열하고 마지막에 한 상 차림 백반을 내놓는다. 그 이전의 화려한 음식은 무엇일까. 술안주다. 음식 값을 높이기 위한 쇼다. ‘한식 디저트’는 코미디다. 억지 춘향으로 단맛을 내놓는다. 지나친 단맛으로 평준화하는 사회는 후진적이다. 코스 음식, 서양식 코스 요리는 마지막의 단맛 디저트로 앞의 모든 음식을 부정한다. 숭늉의 구수함이 차라리 고급스럽다. 

한 상 차림 한식을 ‘기생집 술상’이라고 폄훼하는 이도 있다. 시작은 ‘궁중 요리’다. 존재하지도 않는 궁중의 요리를 ‘명월관’(1903년 설립)의 안순환이 팔았다. 밥집이 아니라 술집이었다. 궁중에서만 먹었던, 궁중에서만 사용한 조리 기법으로 만든 궁중 요리는 하나도 없다. 고종이 커피를 마셨다고 커피가 궁중 음식은 아니다.



당뇨 환자로 추정되는 고종이 배가 많이 들어간, 다디단 냉면을 먹었다고 고종의 냉면이 궁중 냉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안순환이 내놓았던 명월관의 궁중 요리는 한 상 차림이었다. 화려한 한 상 차림이 기생집 술상이라면 그 음식들을 하나씩 흩어 코스대로 내놓아도 마찬가지, 술상의 안주일 뿐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만났다. 노학자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음식에 대해서도 명쾌했다.

“한식은 한 상 차림이다.”

밥과 국, 나물 반찬과 각종 젓갈, 생선, 고기가 한 밥상에 자리한다. 조촐한 밥상일지라도 먹는 순서에 따라 숱한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한 상 차림 한식은 먹는 이가 고르고, 섞는다. 한 상 차림의 수저는 한 벌이다. 숟가락 하나로 밥도 뜨고 국도 뜬다. 한 벌의 젓가락은 수많은 반찬을 오간다. 밥과 국, 반찬이 뒤섞인다. 

섞지 않는 서양 코스 요리는 8벌의 포크와 나이프를 내놓기도 한다. 서양 음식은 단절이다. 앞 음식의 찌꺼기가 묻은 나이프, 포크는 사라진다. 새로운 음식에는 새로운 나이프, 포크가 필요하다. 마지막 디저트는 단맛으로 모든 것을 뒤덮는다. 식사 후 디저트의 단맛만 기억한다. 서양 음식은 섞임, 충돌, 융합을 싫어한다. 앞의 음식은 뒤를 짐작하지 못하고 뒤의 음식은 앞을 알지 못한다. 

한식의 바탕은 한 상 차림이다. 한 상 차림의 여러 요소가 입안에서 충돌, 화합, 융합한다. 한 상 차림이 한식의 기본인 까닭이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졸업, 이 아름다운 축제

졸업생 사이에 큰아이가 있다. 3년 전 앳된 얼굴로 중학교에 입학했고, 거침없이 2학년이 되었고, 무게감 있게 3학년을 보냈다. 그간 말수가 줄고, 목소리가 낮아졌으며, 교복 바지가 서너 번 바뀌었고, 무엇보다 제 소유의 면도기가 생겼다. 보이지 않게 성장을 거듭하며, 스스로 제 할 일을 찾고, 미래를 준비할 나이가 된 듯하다.



오늘이 지나면, 지금 이 순간 함께 있는 아이들은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식순에 따라 송사와 답사, 교장선생님의 회고사와 시상이 엄격하게 거행되던 무대가 환해진다. 이내 금빛 옷을 화려하게 입고, 호피무늬 목도리를 부티 나게 두른 한 학생이 무대 위로 나와 춤을 춘다. 관중의 박수, 갈채가 터져 나온다. 흥이 오르자 “친구들아, 도와줄 거지!”라는 금빛스타의 말과 함께, 교복을 입은 서너 명의 학생들이 합류한다.



금빛스타를 중간에 두고 무대는 한껏 물이 오른다. “구OO! 잘한다!! 파이팅!!”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한다. 얌전하고, 숫기가 없어 방 안에서 늘 혼자 시간을 보내던 아이였다. 무대 위의 저 능수능란한 금빛스타가 바로 큰아이라니. 자신들을 이만큼 보듬어주신 선생님께 감사를, 그리고 후배들에게 두려워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라고 외치는 졸업생들의 메시지가 건강하다.



친구들과 화합하여 수많은 사람 앞에서도 당당하게 제 끼를 발산하는 저 자신감을 나는 여태까지 왜 눈치 채지 못했을까. 마냥 어린 줄만 알았고, 부모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내 걱정이 모두 쓸데없었다는 것을 느낀다.



교복을 발기발기 찢고 '졸업빵'이 당연한 관행처럼 번지던 졸업식들과는 확연히 다른, 지금 이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꾸민 졸업식이 얼마나 건강하고 아름다운지를 보라. 마냥 어른들의 걱정 속에서 터지고 깨지기만 하는 사고뭉치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미숙하지만 최선을 다해 삶의 한 단계를 건강하게 넘어온 아이들이 대견하다. 낯선 조직생활 속에 나를 찾고,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극복하며 ‘우리’를 형성하려 애썼던 시간 동안, 아이의 생각과 마음은 더 깊고 견고해졌으리라.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제 끼를 펼치는 모습을 보며, 걱정하고 초조해하던 어른스럽지 못한 나를 반성한다. 지혜를 찾고, 혜안을 찾아, 스스로 젊음을 즐기는 저 어린 청춘들에서 사제, 친구, 선후배의 인간관계에 깃든 푸른 향기가 난다. 전통으로 남아도 좋겠다. 참으로 아름다운 축제다. 졸업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자장면 한 그릇씩 나누었다 한다. 앞으로 다양한 삶들을 살아가겠지만, 오늘의 이 건강한 축제, 이 유쾌한 졸업식의 회상 속에 모두는 늘 ‘하나’로 뭉쳐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또렷이 기억하리라.



3. [중앙일보][마음산책] 자기만의 색깔을 갖는 사람들

나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을 좋아한다. 2000년대 후반 ‘별일 없이 산다’ ‘싸구려 커피’와 같이 특이한 제목을 한 노래들을 선보일 때부터 관심이 갔다. 고시원에서 살면서 그냥 막 나온 듯한 평범한 복장과 부스스한 수염을 한 리드보컬 장기하의 모습은 대형 소속사를 통해 데뷔하는 가수들의 잘 가꾸어진 외모와는 크게 차이가 났다.



게다가 노래하는 스타일도 독특해서 노래를 ‘부른다’는 표현보다 가사에 감정을 담아 읊조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았다. 이렇게 기존의 가수, 음악과는 차별되는 그들만의 스타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가만히 보면 장기하와 얼굴들과 같이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이 있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이나 글, 미술, 건축, 음식은 잠시 동안 보거나 듣거나 읽거나 맛보아도 금방 그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 그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갖게 된 것일까? 우리도 그들처럼 각자의 분야에서 나만의 색깔로 인정받고 싶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일단 많은 예술가들은 데뷔 전부터 자신이 열광하는 우상을 갖고 있다. 장기하만 보더라도 신중현과 산울림 음악의 팬이었으며, 만화를 확대한 그림으로 유명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경우엔 어린 시절부터 피카소가 우상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프카와 케루악 등 서양 작가들의 글을 탐독했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아방가르드 미술가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우상이었다. 자신이 존경하는 우상은 훗날 작품 활동을 하는 데 큰 영감을 주고 결국엔 본인이 넘어야 하는 산이 되기도 한다.



맨처음엔 대부분이 취미 정도로 자기 분야의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장기하의 경우 2002년 대학교 밴드에 들면서 드럼 치는 것으로 음악을 시작했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서양문학 책을 보는 취미를 갖다가 본인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이 29세부터였다. 하지만 이들은 곧 이 일이 취미가 아닌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분야의 전문 교육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리히텐슈타인은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미술을 석사 학위까지 공부했고 뉴욕에서 성공한 셰프 데이비드 장은 뉴욕의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요리 교육을 받았다.

물론 공부를 했다고 해서 자기만의 색깔이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색깔을 찾기 위해선 학교가 아닌 실제 현장에 뛰어들어 온몸으로 배워야 한다. 데이비드 장과 같은 셰프들은 자신의 식당을 열기 전에 유명 셰프가 있는 곳에 들어가서 일을 직접 배운다. 장기하는 대학 밴드의 앨범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좋아했던 작가 류시화 시인도 자신의 시집을 내기 전에 인도 성자들의 수많은 명상 서적들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친다.

개인마다 과정에 얽힌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이렇게 자기 분야에서 충분한 수련 과정을 거치고 나면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감이 붙는 것 같다. 이때부터는 기존에 배운 방식이 아닌 자기 방식으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함께 올라온다. 즉 자기 분야의 규칙을 다 배운 이들이 어느 선에서는 그 규칙을 깨고 넘어서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자기 일이 어떻게 하면 같은 분야 선배들의 마음에 들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컸다면 이때부터는 관심의 초점이 남이 아닌 자기로 돌아와 본인이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작품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규칙을 깨고 자신만의 색깔로 새롭게 만드는 동력은 바로 각 개인의 아주 사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듯하다. 리히텐슈타인은 아버지는 만화를 못 그릴 것이라는 어린 아들의 말에 영감을 얻어 팝아티스트가 됐다.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은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천자문을 물방울과 함께 넣는 ‘회귀’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데이비드 장도 뉴욕에서 처음 모모후쿠 레스토랑을 열 때 프랑스 요리가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일본식 라멘이나 떡볶이와 같은 음식을 자기 스타일대로 만들어 뉴요커에게 선보였다.

이들의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사적이기 때문에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왜냐면 인간의 삶은 누구나 다 사적이고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적인 이야기를 대중과 솔직히 나누기에 친숙하게 다가온다. 장기하의 지난해 앨범이 떠오른다.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라는 곡에서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고백하듯 이렇게 노래한다. “남의 연애에는 이런저런 간섭을 잘해. 감 놔라 배 놔라 만나라 헤어져라 잘해. … 근데 니가 토라져버리면 나는 그냥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하겠어.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부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자신의 분야에서 자기만의 색깔로 언젠가는 인정받으시길 기원한다.



4. [중앙일보][분수대] 고양이 와인이 대박난 이유

​“왜 혼술을 해?(Why Drink Alone?)”

한국에선 요즘 혼술(혼자 술 마시기)이 유행이라는데 미국에선 이런 도발적인 광고카피로 뜻밖의 성공을 거둔 스타트업이 있다. 아폴로 피크라는 고양이 와인(cat wine) 회사다. 말 그대로 고양이가 먹는 와인을 만들어 2016년 50만 달러어치나 팔아 치웠다. 포도 품종 피노 누아에서 이름을 따온 ‘피노 미아우(Meow·야옹)’나 카베르네 소비뇽을 연상시키는 ‘캣베르네(Catbernet)’ 등이 인기 상품이다. 사업 전망이 좋아보였는지 캣 와이너리라는 똑같은 콘셉트의 경쟁사까지 나왔고, 최근엔 ‘샤독네이(CharDOGnay)’ 등 개 와인으로 상품을 확장했다.



이 회사가 성공을 거둔 건 절대로 와인 품질이 좋아서가 아니다. 일단 알코올이 든 진짜 와인도 아니다. 캘리포니아산 유기농 비트와 콜로라도산 캣닙(고양이가 좋아하는 허브)을 넣어 만들었다는 일종의 고양이 음료인데, 뉴욕타임스가 고양이 카페 등에서 실험을 해봤더니 정작 고양이들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선 이 와인을 마시는 고양이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양이가 좋아하든 말든 주인 입장에서 고양이와 함께 와인 마시는 맛, 다시 말해 혼술 말고 누군가와 대작하는 맛에 235ml짜리 미니어처 한 병에 1만~2만원 하는 고양이 와인을 산다는 얘기다.

사람끼리 하듯 술을 주고받으며 진짜 대작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술을 가운데 놓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사람들은 굳이 반려동물을 술 친구로 삼는 걸까. SNS상에 고양이와 함께 와인 마시는 사진을 올려놓은 수많은 반려동물 주인들은 “친구나 가족 같은 존재”라는 이유를 댄다.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진정한 반려이니 술을 함께 마시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주장이다. 밸런타인 데이에 고양이와 함께 와인 마시는 장면을 찍어 SNS에 올린 사진을 보면 정말 애완동물이 아니라 사람처럼 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반려동물을 사람처럼 대하는 건 반려동물을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 위로받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정치나 종교 얘기뿐 아니라 날씨 얘기조차 쉽게 논쟁으로 번져 분위기를 망쳐 버리는 요즘 같은 시절엔 말 많은 사람보다 입 다물고 술 한잔 같이 해주는 고양이가 차라리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고양이 와인의 대박, 사람에 지치고 동물에 위로받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어쩐지 좀 짠하다.



5. [경향신문][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세운상가 백발의 라디오 수리공

허물어뜨린다, 존치한다 말이 많던 세운상가는 여전히 건재했다. 겉으로는 그랬다. 세월에 깎이고, 파이고, 무너지는 것들을 쇠기둥으로 떠받치며 보수 중이었지만, 그래도 멀쩡해 보였다. 1층 가전제품을 꽉꽉 채워놓은 가게들도 문을 열었으며, 2, 3층에는 이런저런 전자기기를 파는 작은 가게가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 가게들 틈바구니에서 몇십 년을 버틴 담뱃가게도 그대로다.



이곳은 그대로인데, 변한 건 세상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변하는 세상에 순응했다. 사람들은 전자제품 하나 살 요량으로 발품 팔면서 세운상가를 찾지 않는다. 카세트 레코더 하나 사겠다고 기차 타고 전철 타고 이곳에 와서 온종일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다가 멀건 설렁탕으로 허기를 채우고는 해 질 녘에 기껏 비디오테이프 몇 개 사서 집으로 돌아가며, 다음에 또 오리라 다짐하던 이들은 이제 없다.



세계의 기운이 다 모일 거라는 세운상가의 명운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사람도 있다. 그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세운상가에 들어왔다. 50여 년 전 일이다. 세운상가 한구석 손바닥만 한 가게에서 라디오를 조립해 팔던 소년은 흰머리의 노인이 되었다. 그는 서너 사람 들어서면 옴짝달싹하기 어려울 것 같은 작은 방에서 오래된 전축이나 라디오를 고친다.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세상과 뚝 떨어져 과거의 소리에 붙잡혀 있는 이들은 행여나 그가 세운상가를 떠날까 봐 두려워한다.

“이런 걸 고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백 년도 넘은 전축을 들고 오는 사람도 있어요.” 돈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다. 노래방 기계를 차에 싣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정말 돈을 벌 만큼 벌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는 한 번도 돈 때문에 일을 하지 않았다. 복잡한 기계를 들여다보고, 만지는 게 좋아서 그는 세운상가를 떠나지 못한다.

퇴근만 하면 종로에 있는 음악 감상실로 달려가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그는 요즘은 일 끝내고 친구들과 막걸리 마시는 재미로 산다. 주문한 진공관 라디오를 찾으러 갈 때는 설렁탕집에서 막걸리 한 잔 따라드릴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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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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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경제]

1. 대통령·헌재 대립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퇴임일인 다음달 13일 이전에 끝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드러냈다. 헌재는 어제 열린 탄핵심판 15차 변론에서 불출석 증인 채택을 취소하고 대통령 측이 신청한 증거 조사도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달 2~3일로 최종변론 기일을 연기해 달라는 대통령 측 요청도 다음 기일인 22일까지 박 대통령 출석 여부를 확정해 주면 검토해 보겠다며 결정을 유보했다. 헌재법 제49조에 따라 재판관과 소추위원이 박 대통령을 신문할 권리가 있다는 원칙을 재확인하고 변론 종결 후에는 대통령 출석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대통령 측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대통령 측은 즉각 반발했다. 헌재가 일정을 촉박하게 잡는 바람에 공정성에 상당히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유감을 표명한 것이다. 대통령 대리인단 이중환 변호사는 변론을 하겠다는데 헌재가 못하게 막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날을 세웠다. 지난달 25일 변론에서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다음달 13일 이전까지 탄핵심판 선고를 내려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하자 대통령 대리인단은 '전원 사퇴' 같은 중대한 결심을 할 수 있다며 반발했는데 양측 대립이 해소되지 않으면 이런 불미스러운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걱정이다.

대통령 측과 헌재가 최종 변론 기일과 증인 채택 등을 놓고 충돌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렇지 않아도 광장에서는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 집회와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가 주말마다 열리며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여기에 자중해야 할 정치권과 일부 대선주자들이 부화뇌동하는 상황에서 공정성 시비까지 생긴다면 국론 분열은 더 커질 것이다.



이 권한대행은 지난 1일 재판장으로 처음 주재한 10차 변론에서 "사건의 국가적·헌정사적 중대성과 국민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과 중요성을 모두 인식하고 있다"며 "심판 과정에서 공정성과 엄격성이 담보돼야 심판 결과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헌재는 이 말을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 측도 뚜렷한 증거와 합당한 논리로 헌재를 설득해야지 억지 지연작전은 오히려 불리한 심판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2. 상법개정안에 대한 유일호 부총리의 우려 일리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어제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최고경영자 조찬 강연에서 국회에서 논의 중인 상법개정안과 관련해 던진 언급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유 부총리는 발의된 상법개정안이 투기자본의 이사회 장악 등 경영권 안정을 위협하는 부분이 있다며 경영권 방어에 필요한 조항도 같이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무역협회가 무역업체 대표 7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상법개정안에 반대한다 51%, 신중해야 한다 32%로 부정적인 견해가 많게 나온 걸 보면 경영 현장에서의 우려는 더 큰 듯하다. 대한상의는 이미 지난 8, 9일 상법개정안을 발의한 야당 의원들을 직접 찾아가 재계의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전달하면서 2월 임시국회 처리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현재 국회에는 23건의 상법개정안이 계류 중이고, 이 가운데 11건이 기업 경영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분류된다. 재계는 사외이사를 겸하는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도입을 가장 걱정한다.



또 1주1표의 원칙에 따라 개별 이사를 뽑는 게 아니라 1주에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현재보다 더 강력한 형태의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에 우려를 표한다. 집중투표제나 다중대표소송제를 강화하면 한국을 해외의 기업사냥꾼들이 마음껏 뛰어놀 놀이터로 만드는 꼴이라며 적대적 인수·합병(M&A)에 기업들을 내몰 것이라고 재계는 반박한다.

상법 개정은 경제민주화라는 명분에만 빠지지 말고 실제 기업 활동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현행 기업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집중투표제나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겠다지만 기존 경영진이 반발한다면 이들에게 효율적인 방어수단이 될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 같은 다른 제도도 같이 검토해야 한다.



​유 부총리의 어제 언급은 이런 차원일 것이다. 반(反)기업 정서에 편승한 선명성 경쟁은 지양해야 한다. 상법 개정이 쇠뿔 고치려다 소를 잡는 교각살우(矯角殺牛)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말을 국회의원들은 경청하기 바란다.



[동아일보]

3. 삼성 10년치 자료 요구한 野… 언제까지 ‘기업 때리기’인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최근 삼성전자에 대해 10년 동안 고용노동부와 주고받은 공문, 반도체 생산공정, 하청업체 목록 등 100여 건의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 자료를 토대로 반도체 공정과 백혈병 발병 사이의 관계를 입증해 아직 구제받지 못한 피해자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2007년 삼성전자 기흥공장 근로자의 사망으로 시작된 ‘백혈병 논란’은 작년 초 조정위원회의 합의로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청문회를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야당은 백혈병에 걸린 근로자 중 상당수가 보상을 받지 못한 만큼 추가 조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난해 대법원은 백혈병에 걸린 근로자에 대해 산업재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상황에서 야당이 기밀자료까지 요청하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 중국 등 경쟁국 기업에 기업의 생산 노하우가 담긴 영업기밀이 통째로 넘어간다면 국가적 손실이다. 야권이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기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삼성 길들이기’를 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문이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도덕적 해이 등으로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커진 것도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도 정치권이 감정적으로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것은 진실 규명과 상관없는 소모전이다. 청문회 자료의 범위를 명확히 하고 관련 자료를 제대로 분석해야 백혈병 피해자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삼성의 브랜드 평판이 지난해 세계 7위에서 올해 49위까지 떨어졌다는 미국 여론조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한국 대표 기업을 보는 세계의 시각이 빠르게 식고 있어 국가 신인도 추락을 각오해야 할 판이다. 1월 대기업 취업자 수도 6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이기 시작해서다.



야권이 기업에 호통을 쳐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근시안적인 사고다. 비뚤어진 시장의 기능을 바로잡아 전체 국민의 복리후생을 늘리자는 공정사회의 가치를 정치권 스스로 훼손할 수도 있다.



4. 박 대통령의 헌재 진술, 국민은 듣고 싶다

헌법재판소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 최종변론 출석 여부를 22일까지 밝히라고 대통령 측에 요구했다. 지난주 변론기일에서 ‘24일 대통령 최종변론’을 못 박았던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3월 2, 3일로 변론 종결을 늦춰 달라는 대통령 측 요구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의 출석 의지를 보고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측의 심판 지연책에 끌려 다니지 않고 3월 13일 이전에 최종 선고를 내려 국정공백 사태를 마무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날 대통령 측은 “대통령이 최종변론에서 신문을 받지 않고 진술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헌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법 49조 2항은 ‘소추위원은 심판의 변론에서 피청구인을 신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권한대행이 “재판부와 소추위원 쪽의 질문에 적극 답변하는 게 피청구인이나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듯이 국민은 박 대통령에게 듣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하더라도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신문에 답하지 않으면 헌재도 어쩔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기자간담회 등에서 드러난 대통령의 화법을 보면 박 대통령은 ‘불편한 진실’을 캐묻는 질문에는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모니카 르윈스키 사건 대배심(우리의 검찰 조사에 해당) 때 백악관에서 폐쇄회로(CC)TV를 통해 비공개로 증언한 바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자신이 약속했던 특검 조사마저 거부하고 있다.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도 탄핵 심판정에 나오지 않았지만 소추 사실은 모두 시인한 바 있어 박 대통령과는 차이가 있다. 

대통령 측은 “대통령이 법정에 나와 신문을 받는 게 국가 품격을 위해서 좋겠느냐”고 항변했으나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만으로도 이미 나라의 품격은 떨어졌다. 차라리 대통령이 성심껏 최후변론을 하는 것이 일말의 품격을 지키는 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헌재는 대통령 측의 연기 요청을 합리적인 범위에서 수용하되 필요하다면 진술은 공개, 신문은 비공개로 하는 절충안이라도 짜낼 필요가 있다. 

헌재의 최종변론은 박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태의 전말에 관해 진솔하게 털어놓음으로써 자신을 뽑아준 국민에게 예를 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무엇보다 작년 10월 첫 대국민 사과 때는 ‘보좌진이 갖춰질 때까지 최순실의 도움을 받았다’더니 작년 4월 18일부터 10월 26일까지 570여 회, 심지어 최 씨가 독일로 도피하고 나서도 하루 세 번 이상 통화해서 무엇을 그렇게 물어봤는지 국민은 알고 싶다. 세월호 참사 때의 행적을 포함해 “헌법을 준수하고…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는 취임선서를 왜 어겼는지 박 대통령은 역사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



[이데일리]

5. 대학 졸업생들 취직할 자리가 없다

직원 300인 이상 대기업의 취업자 수가 지난달 241만 6000명으로 1년 전보다 4만 6000명 줄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4년여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선 데 이어 2010년 9월 6만명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경영환경 악화로 상당수 대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미루고 있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나라 안팎의 불확실성과 반기업 정서가 기업 활동을 옥죄면서 대기업발(發) 고용한파가 현실화할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은 앞으로 더 나빠질 조짐이다. 대학 입학생이 36만명 수준으로 가장 많았던 10~14학번들이 올해부터 쏟아져 나오면서 졸업생이 향후 3년 동안 사상 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300인 이상 기업의 상반기 채용계획은 3만명으로 지난해보다 8.8% 감소했다. 공급은 늘어나는데 수요는 되레 줄어드는 것이다. 지난해 올해는 청년실업률이 10%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문제는 이마저도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상당수 대기업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투자·채용 등 경영전략 수립이 모두 중단된 상태다. 10대 그룹 중 채용 일정을 확정한 곳은 SK와 한화, GS 등 몇 개 기업에 불과하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삼성은 통상 해오던 3월 공채를 미룰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현대차와 LG, 롯데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치권은 재벌개혁을 외치며 상법 개정안 등 기업활동을 옥죄는 법안 만들기에 여념이 없고 특검도 대기업 수사로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있으니 정상적인 경영이 가능할 리 없다.

혼란한 탄핵정국에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암살 등으로 안보도 불안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 중국의 ‘사드 보복’ 등으로 대내외 불확실성은 자꾸 커지고 있다. 경제위기설이 괜스레 나오는 게 아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기업 활동을 지원해 주지는 못할망정 훼방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사내유보금이 많다는 사실을 들어 투자와 고용 등 기업의 책임을 다하라고만 다그칠 계제가 못 된다. 기업들이 스스로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도록 경영환경을 개선해 주는 것이 정치권이 먼저 할 일이다.



6. 안희정 지사의 지지율 상승을 지켜본다

조기 대선 가능성을 앞둔 상황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의 지지율 상승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연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시위가 처음 시작될 무렵만 해도 다른 주자들에 비해 훨씬 뒤처져 있었으나 시일이 흐르면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진보 성향을 표방하면서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중도 사퇴 이후에는 보수진영 지지표까지 부분적으로 흡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안 지사의 지지율은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20% 선을 넘으면서 같은 당 소속인 문재인 전 대표와의 격차를 좁혀가는 모습이다. 물론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아직 월등한 차이로 앞서 나가고 있지만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결국 당내 경선이 선거판의 흐름을 결정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경선 선거인단 모집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200만명을 목표로 지난 15일부터 시작된 선거인단 신청인 수는 닷새 만인 그제 47만명을 넘어섰다. 이들 대부분이 당원들이지만 보수 측 성향의 유권자들도 적잖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안 지사를 선택하려는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당내에서 ‘역선택’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 그런 때문이다. 결국 역선택을 막으려고 당원들의 신청이 더욱 늘어나는 조짐을 보이면서 이번 경선에 최대의 관심이 쏠린다.

이처럼 안 지사의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보 및 경제 문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포퓰리즘에 근거한 다른 주자들보다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에 있어 한·미동맹의 기본 정신에 입각해 찬성의 뜻을 밝혔고 노동개혁에 대해서도 이념·진영 논리가 아닌 산업구조의 현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내세우는 대연정론도 우리 정치 여건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안 지사가 대통령에 당선돼 청와대까지 입성할 수 있을 것인지는 다음 문제다.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국을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시각이 퍼주기식의 포퓰리즘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대선을 떠나서도 “국민이 바라는 ‘새로운 정치’는 오로지 국익을 위해 달라는 것”이라는 안 지사의 정치 신념에 새삼 주목하게 된다.



[매일신문]

7. 해경, 직원 비리 감찰보다 제보자 색출에 관심 가졌나

동해안 홍게잡이 어선의 실질적 선주가 포항해경 간부라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 해경 상급 부서가 감찰에 들어갔다. 감찰의 핵심 대상은 해경 간부 2명이 어선을 불법으로 운영했는지 여부를 규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현지 어민들 사이에서는 해경이 진상 조사보다 비리 제보자 색출에 관심이 더 많은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동해해양경비안전본부(이하 동해본부)는 최근 감찰관 2명을 포항으로 내려 보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감찰관들은 포항해경 간부들이 가족 명의로 구입한 어선과 어획물 운반선 4척을 어떻게 운영했는지 조사하는 한편 어민들을 상대로도 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물론, 비위를 밝혀내는 데 꼭 필요하다면 피해 사례에 대해 조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처벌보다 제보자 색출에 혈안”이라는 오해까지 받아가면서 해경이 그럴 필요는 없다. 해경의 비위 사실을 누설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함부로 입을 열 수 없는 어민들의 입을 통해 결정적 증거를 찾겠다고 기대하는 것도 무리이다. 해경이 정말로 피해 내용만 알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반응이 어민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가 된 배들의 조업으로 인해 받은 어민 피해는 감찰 대상이 아니다. 해경 간부가 어민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형사처벌 대상이므로 이 사안은 제3의 수사 기관에게 맡겨야 하며 그래야 공정성 시비도 없다. 감찰의 목적이 공무원 비위에 대한 징계를 결정하는 것인 만큼 해경은 해당 간부의 국가공무원법(겸직금지) 위반 여부에 집중해야 한다.



제 식구 감싸기나 비리 제보자 색출은 용납될 수 없는 행위이다. 비위를 묵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동해본부와 포항해경의 감찰 부서가 감찰에 나선 것을 신뢰할 수 없다는 어민들의 주장을 해경은 새겨들어야 한다. 해경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바닥에 떨어진 상태다. 철저한 감찰을 통해 징계를 결정하고 불법 사실에 대해서는 제3기관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엄정하게 대처해야 신뢰를 어느 정도나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8. 헌재, 탄핵심판 공정성 의심의 빌미 줘서는 안 된다

헌법재판소는 20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5차 변론에서 고영태 전 블루K 이사 등 박 대통령 측의 증인 신청과 고 씨의 통화 내용 녹취록을 심판정에서 재생해보자는 증거조사 신청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대통령 측의 ‘지연 전략’으로 의심되는 신청 모두 거부한 것이란 관측이다. 박 대통령 측이 반발했지만 헌재는 듣지 않았다. 이를 두고 헌재가 탄핵심판 결론을 다음 달 13일 이전에 내리겠다는 뜻을 재확인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3월 13일은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퇴임하는 날이다. 그전에 결론을 내지 못하면 재판관 7명이 결론을 내야 한다. 심판 최소 정족수는 유지되나, 1명이라도 사퇴하면 탄핵심판 자체가 무산된다. 이것이 헌재가 3월 13일 이전에 결론을 내려는 이유다. 그래서 이날 헌재는 이미 오는 24일로 예정했던 최종 변론 날짜를 확정하지 않고 유보했지만, 어쨌든 ‘3월 13일 이전 결론’이란 시나리오에 맞춰 최종 변론기일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탄핵심판 결론을 반드시 3월 13일 이전에 내리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이다. 물론 헌재가 그렇게 하려는 이유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탄핵심판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으니 그렇다. 하지만 박 대통령 측의 지연작전에 끌려다녀서도 안 되지만, 날짜를 정해놓고 탄핵심판을 밀어붙인다는 인상을 줘서도 안 될 일이다.



그런 인상이 굳어질 경우 헌재의 결론은 공정성을 의심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탄핵심판의 결론 날짜를 3월 13일 이전으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헌재가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그에 맞춰 탄핵심판을 진행한다는 의심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은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과정이다. 법률적 판단의 흠결은 물론 심판의 절차적 흠결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 나아가 그런 의심과 불복의 빌미를 줘서도 안 된다. ‘촛불 세력’과 ‘태극기 세력’을 포함해 모든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결론을 내는 것은 대통령 탄핵 사태에 따른 국정 공백의 신속한 해소 못지않게 중요하다. 헌재가 ‘3월 13일’이란 날짜에 구속돼서는 안 된다.



[서울신문]

9. 국제 협력 강화해 김정남 암살한 北 고립시켜야

김정남 암살이 북한 정권 소행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제3국이 관련된 만큼 조심스러웠던 정부도 어제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나서 “사건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로 말레이시아 당국의 수사 상황을 보면 북한을 주범으로 지목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현지 경찰은 리정철을 체포한 데 이어 다른 북한 국적 용의자 4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한다. 현지 언론은 리정철이 북한의 대표 정보기관인 정찰총국 소속이라고 전하고 있다. 사건 당일 말레이시아에서 출국한 용의자들의 귀국 루트도 사건과 관련돼 있음을 증명할 뿐이다. 이들은 쿠알라룸푸르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사흘 만에 평양에 도착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사건의 전모는 조만간 드러날 것이다. 그럴수록 북한 정권이 아니라면 누구도 김정남을 암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을 암살한다는 것은 북한의 속성상 최고 지도자의 직접적인 지시 없이는 생각조차 가능하지 않다.



막무가내식 핵·미사일 개발로 김정은에 대한 국제사회의 따돌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더구나 최근 ‘북극성 2형’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시험 발사 이후 ‘김정은 정권을 더 두고 봐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크게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결국 김정남 암살 사건의 본질은 ‘김정은을 대신할 지도자’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세계 최악의 인권 부재(不在) 국가’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핵심 간부를 잇달아 숙청한 것도 모자라 고모부인 장성택을 고사총으로 잔인하게 처형하는 공포 통치를 자행해 왔다. 이미 유엔은 안보리가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총회 결의안까지 통과시켰지만, 중국 등 일부 상임이사국의 반대로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김정남을 암살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누구도 ‘북한 인권의 ICC회부’를 반대할 수도 없고, 반대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정부는 국제사회와 합심 협력해 지구촌의 안정을 해치는 북한 정권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제사회에 핵과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돈줄’이 열려 있고, 무슨 일을 저질러도 감싸고 도는 ‘비호세력’이 존재하는 한 북한 정권은 변하지 않는다. 북한 근로자를 수입하는 나라들도 스스로 북한 공작원을 불러들이는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말레이시아도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짐작도 못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김정은은 국제사회의 ‘북한 정권 교체’ 분위기에 김정남을 암살했지만, 역설적으로 ‘북한 정권 교체’를 가속화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깨닫고 깊이 반성하라.



10. ​SK, 현대차만 신규 채용안 내놓은 현실

청년 일자리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 30대 그룹 가운데 올해 신규 채용 및 투자 계획을 확정한 곳은 단 4곳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그룹 중에는 현대차와 SK그룹만이 채용 계획을 내놓았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으로 총수 부재 사태를 맞은 삼성그룹은 해마다 3월 실시하던 그룹 공채 계획을 아직까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3월 공채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기업이 취업문을 열지 않으니 취업준비생 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준비생 수는 69만 2000명으로 지난해보다 8만 3000명이 증가했다. 취준생 숫자가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고용 시장이 악화됐다는 것을 뜻한다. 대기업이 취업문을 열지 않고 머뭇거리는 데는 지금의 혼란스런 탄핵 정국 탓도 크다.

경기가 좋아져야 투자와 고용이 일어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경기는 심리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대기업들이 채용·투자 계획을 확정 짓지 못한다는 것은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총수들을 겨눈 특검 수사는 종료되지 않은 데다 국회의 상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와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등 대외적 변수 또한 정리된 게 없다. 게다가 박근혜·최순실 사태를 통해 반기업 정서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몇 명을 뽑고, 얼마를 투자하겠다고 확실하게 밝힐 수 있겠는가. 반기업 정서가 고용·투자 한파로 이어질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SK가 8200명을 신규 채용하고 사상 최대인 17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는 청년들의 간절한 열망에 대한 화답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청년 실업은 미래 우리 경제와 사회에 엄청난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기업들이 청년 고용에 더 힘써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차기 정권이 들어서면 ‘선물’로 내놓기 위해 채용 계획 발표를 미루는 게 아니냐는 항간의 의구심은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기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회적 공헌은 다름 아닌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 30대 그룹은 하루빨리 채용 계획을 발표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도 합리적인 입법과 정책을 통해 뒷받침해야 함은 당연하다.





주요신문칼럼



1. [동아일보][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 평범한 날의 승자

이탈리아 출신 존 싱어 사전트(1856∼1925)는 프랑스에서 교육받았고, 스페인 미술에 관심이 많았어요. 고국인 미국을 무척 사랑했고, 예술적 명성은 영국에서 얻었지요. 하지만 어디서든 화가는 초상화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인상주의 미술이 한창이었습니다. 화가는 관습적 주제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초상을 그리면서도 동시대 미술을 예의 주시했습니다. 교류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빛의 표현에 관심도 가졌지요. 나무가 울창한 숲, 아침 산책길, 돌풍 불어오는 들녘 등을 야외에 나가 직접 제작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바람이 일렁이고,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완성된 그림은 인상주의 미술과 예술적 결이 달랐습니다. 

화가는 초상화로 주목받던 시기에 황급히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프랑스 사교계 여성을 그린 초상화가 스캔들을 일으켰기 때문이었어요. 실험적 표현과 퇴폐적 분위기의 초상화에 쏟아진 미학적, 도덕적 비난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거지요. 

영국은 유럽에서 초상화 전통이 깊은 나라입니다. 이런 곳에서 자신을 새롭게 알려야 했으니 심적 부담이 컸을 것 같습니다.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는 영국 미술계 진출을 위한 야심 찬 데뷔작이었습니다. 그런데 화가는 소녀들을 그림 주인공으로 선택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렸던 열정적인 스페인 무희나 화려한 백작 부인들과 달리 평범한 꼬마들이었지요.

해질녘 어스름과 중국식 등불, 만개한 꽃과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전하는 평온함은 예술적 철저함의 산물이었습니다. 화가는 매일 낮이 밤으로 바뀔 무렵 미술 도구를 챙겨 야외에 나갔습니다. 어둠과 함께 아련해지는 세상 빛을 날카롭게 포착해 신비롭게 재현하려 했습니다. 그 사이 여름은 가을로 변했고, 정원 꽃은 조화로 대체되었습니다.



직사각형 캔버스도 왼편을 잘라 완성 최종 단계에서 그림은 정사각형으로 바뀌었습니다. 치열하게 그린 평범한 일상은 꼭 필요한 순간 화가에게 승리를 안겨주었어요. 그림은 가장 영국적이라는 테이트 갤러리에 소장되었고, 화가도 영국 화단의 자랑스러운 일원이 되었지요. 

고단했지만 보잘것없던 하루가 지나고 또 새날이 밝았습니다. 피곤함과 허전함이 교차하는 아침,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그림에 위로를 받습니다. 어제와 다를 바 없을 오늘을 감당할 만큼의 힘을 얻고, 흩어진 일상을 다시 차곡차곡 모을 정도의 용기도 내봅니다.



2. [중앙일보][삶의 향기] 우리 집 까미와 이암(李巖)의 개

파드닥 파드닥 문 긁는 소리. 현관의 도어록을 해제할 때마다 매번 듣는 환청이다. 우리 집 까미가 죽은 지 열흘이 지났다. 여전히 그 늠름한 개는 집에 들어서는 나를 꼬리쳐 맞을 것 같다. 그러나 그 개는 없고 온 집안이 적막강산이다. 까미는 단순한 개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제 몫을 했었다. 검게 윤이 흐르는 털이 온몸을 덮고 목에서 가슴을 타고 배 쪽으로 난 새하얀 털이 그의 자존심처럼 꼿꼿했다. 잘생긴 청년의 모습으로 매번 우리 자매를 설레게 했고, 충직한 기사가 돼주었다. 외진 산책길엔 기꺼이 우리를 호위했다.

까미는 백일도 안 된 갓난 강아지로 우리 집에 왔다. 부모님한테는 손자로 우리 자매에게는 아들이 되었다. 40여 년째 아기 울음소리 그친 집안에 까미의 입양으로 활기가 돌았다. 온 가족은 강아지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쳤다. 까미가 제 몸을 뒤집었다는 둥, 베란다에 변을 예쁘게 봤다는 둥 그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와 분탕질에 우리 가족은 넋을 빼앗겼다. 나는 까미를 통해 미혼인 내 가슴속에도 강한 모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밖에서 일을 볼 때 한순간도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끼니와 산책시간을 체크했다. 내 모든 일과는 까미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남자친구의 애정 어린 선물보다 까미의 살뜰한 꼬리짓과 껑충거림이 훨씬 더 뿌듯했을 정도다. 일일이 챙겨야 하고 보살펴야 함에도 개를 향한 기꺼운 관심과 집중. 이기적인 줄 알았던 나의 이면에도 무한한 이타심이 있다는 것을 일깨웠다.



열한 살 나이로 죽은 까미의 어릴 적 모습을 나는 이암(李巖·1499~?)의 ‘모견도(母犬圖)’에서 본다. 휴식을 취하는 어미 개와 세 마리 강아지들의 그림이다. 젖을 찾아 어미의 품으로 파고드는 검둥 강아지의 털 빛깔과 총명한 눈빛이 까미랑 꼭 닮았다. 이 그림은 TV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사임당과 그 자녀들이 궁핍하지만 오붓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화가 이겸(송승헌 분)이 그린 것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이암은 고조부가 세종이었던 만큼 종실(宗室)의 일원으로서 직업적인 화원화가들과 신분부터 다르다. 개를 그릴 때도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 김두량, 김홍도, 신윤복과 같은 조선의 많은 화가가 개가 지닌 동물의 속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과 대비된다. 이암의 모견도는 나무 아래에 쉬는 어미 개와 강아지들로 채워진다. 한없이 너그럽고 정겨운 풍경이다. 어미 개의 깊은 모성과 그 안에서 마냥 걱정 없는 강아지들의 행복이 느껴진다.

반려견의 죽음은 아마 그런 모성, 태초의 행복과의 이별일지 모른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사람이 느끼는 스트레스 순위를 조사해 발표한 적이 있다. 배우자의 죽음-이혼-별거-가족의 죽음-교도소 수감-질병-해고-퇴직-임신 출산-친구의 죽음 등의 순이었다. 나는 반려동물의 죽음도 이 순위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국의 반려동물이 1000만 마리를 넘는다. ‘팻 로스(pet loss)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반려동물의 죽음 자체를 부정하거나 더 잘 보살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우울증에 빠지는 것이다. 동물학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외환위기 직후인 2000~2005년 고독을 달래기 위해 1차 반려동물 붐이 일었다고 한다.



우리 집 까미처럼 그 당시 입양한 개와 고양이가 12~15년의 평균수명을 다하고 죽는 것이다. 반려동물의 고령화 사회가 성큼 다가온 셈이다. 반려동물은 단순한 소유물이거나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수단이 아니다. 오랜 시간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가족과 다름없다.

사람과 개가 공유하는 본성이 모성이다. 나는 우리 곁에 왔다가 가버린 까미를 통해 내게 잠재한 헌신과 희생의 에너지를 확인했다. 인구의 5분의 1이 반려동물에게 의존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암의 그림은 묻는다. 그대는 그대의 반려견에게 헌신하듯 그대가 사랑하는 이를 대하는가? 그대는 그대의 반려견이 그대를 대하듯 그대가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가? 나는 모견도를 보며 팻 로스 증후군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그리고 아파트 곳곳에 남아 있는 숱한 풍경과 기억속에 우리 집 까미는 여전히 살아 있다.



3. [서울신문][김 태의 뇌 과학] 뇌 활동에서 리듬을 찾다

인간의 뇌는 약 860억개의 신경세포로 이뤄져 있다. 올해 세계 인구가 75억명이라고 하니 우리 뇌에는 세계 인구의 12배에 가까운 신경세포가 살고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많은 뉴런이 어떻게 조직화돼 감각, 운동, 사고, 감정을 통합해 기능하는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1920년대 독일 예나대의 정신과 의사인 한스 베르거는 세계 최초로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작용을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뇌파 측정기’를 개발했다. 후두엽에서 생기는 ‘알파파’, 깊은 수면 중 발생하는 ‘델타파’와 렘수면에서 생기는 ‘세타파’, 각성 시기에 뚜렷한 ‘베타파’, 선택적 집중 과정에 나타나는 ‘감마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뇌 활동의 리듬이 밝혀졌다.

여기서 감마파 영역의 뇌 활동은 인지기능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정신질환과도 관련돼 있어 주목할 만하다. 감마파는 대뇌피질의 ‘억제성 신경세포’와 ‘흥분성 신경세포’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며, 특히 억제성 신경세포의 기능이 떨어질 때 생성 능력이 감소한다. 뇌 과학은 억제성 신경세포가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뇌세포들이 일제히 억제되고 일제히 활성화되는 동기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필자는 이런 관점에서 전두엽 아래쪽의 ‘기저전뇌’에서 특정 억제성 세포군이 대뇌피질의 감마파를 조절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낸 바 있다. 오케스트라처럼 대뇌피질의 신경세포가 리듬을 이뤄 작동하도록 돕는 ‘지휘자 신경세포’가 존재하는 것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리후에이 차이 박사팀은 최근 ‘광유전학’을 이용해 치매 치료 가능성을 실험했다.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부위의 억제성 신경세포에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 ‘채널로돕신’을 발현시킨 뒤 40㎐의 빛으로 자극을 준 것이다. 예상대로 뇌파에서 40㎐의 리듬이 증가하는 소견이 발견됐고, 치매 유발물질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은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뇌 속에서 이물질을 제거하는 ‘미세아교세포’가 함께 활성화됐고 이 세포가 다량의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포식하고 있는 것이 포착된 것이다. 연구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외부 조명으로 40㎐의 뇌파 리듬을 주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실험해 보기로 했다.



실험 생쥐를 40㎐로 깜빡이는 조명을 설치한 상자 안에 두고 하루 1시간씩 일주일간 노출시키는 실험을 수행했다. 이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아직 낙관하기에는 이르지만, 뇌 리듬을 활용해 치매를 비롯한 신경정신과 질환의 치료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뇌파 리듬은 사람과 첨단 공학기술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로 이용되기도 한다. 즉, 뇌파 리듬을 분석해 어떤 행동을 하려는지, 어떤 말을 하려는지 미리 알아낼 수도 있다. 이런 기술을 응용해 뇌와 기계 또는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해 작동시키는 첨단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심전도가 1자를 그리면서 ‘삐’ 소리를 내는 장면으로 죽음을 표현하는 것을 흔히 본다. 하지만 심전도가 정상이라도 뇌파가 리듬을 보이지 않고 일자를 그린다면 의학적으로는 뇌사의 증거로 판단한다. 어쩌면 우리는 삶과 죽음을 구별하는 중요한 단서를 리듬에서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리듬은 ‘시간’이라는 변수와 ‘반복성’을 주요 요소로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시간 축을 향한 반복적인 활동이 바로 건강의 지표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심장과 뇌가 그러하듯 외부 조건의 변화에도 리듬을 잃지 않고 조화롭게 반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하다 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4. [매경이코노미][무비클릭] 그레이트 월 | 판타지·과장 총동원 중국판 블록버스터

장이머우는 중국 5세대 감독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연출자다. ‘붉은 수수밭’이나 ‘국두’ ‘홍등’이 그려냈던 중국의 근현대사는 매우 사실적이었다. 이 사실성은 한편 강렬한 메시지와 문학성이기도 했다. 그의 영화들이 대개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무관하지는 않다. 

그런데, 그런 장이머우 감독이 베이징 올림픽 개폐막작 총연출을 맡았다. 지금 장이머우를 보자면 전혀 어색하지 않지만 데뷔 초반, 국제영화제를 휩쓸던 작가주의 장이머우 감독을 생각하면 무척 어색한 일이다. 그 장이머우 감독이 이번엔 할리우드 배우를 주인공으로 미국의 자본, 투자 배급 시스템과 손잡고 대형 블록버스터를 만들었다. 중요한 건 그 블록버스터가 본고장인 미국 스타일이 아니라 완전히 중국식 그리고 장이머우식 스타일의 블록버스터라는 사실이다. 

영화 ‘그레이트 월’은 만리장성이 생긴 신화와 그 신화의 일부를 다룬다. 이미 이 신화성을 영화가 시작되기 전 알려줌으로써 영화는 장르와 성격을 분명히 한다. 아니나 다를까, ‘반지의 제왕’에나 등장할 법한 난폭한 괴생물체가 등장하고, 만화나 게임에서 쓰일 법한 무기와 병법이 등장한다. 그러니까, ‘그레이트 월’은 작정하고 영화적 허구와 환상, 과장을 맘껏 활용하는 작품인 셈이다.

장이머우는 그런 점에서 미국과는 다른 중국식 과장과 확장의 문법을 구축한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연출을 맡았던 ‘황후화’와 같은 작품이 대표적일 것이다. 황제와 황후 사이에 놓인 깊은 감정의 골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국화와 화분, 하녀와 같은 물리적 소재를 사용해 갈등을 입체화했다. 그뿐 아니다. 일사불란하게 모였다 흩어지는 사람들을 컴퓨터 그래픽이나 영상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매스게임처럼 통제해 영화적으로 재현해냈다.

이 장대한 인해전술은 이번 영화 ‘그레이트 월’에서도 유효하다. 마치 남아도는 게 사람이라는 것처럼 ‘그레이트 월’은 중국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한, 통일성 있는 군집성을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인다. 영화가 시작할 때, 색깔별로 구분된 군인들의 주특기나 거의 아크로바틱 수준으로 보이는 무술과 액션 장면을 넣은 것만 봐도 그렇다.



중력이 간섭하는 현실의 세계에서야 전혀 불가능한 일이지만 영화에서는 못할 것도 없다. 사실 이 못할 것 없다는 배짱이야말로 중국적 과장의 핵심이다. ‘그레이트 월’은 이 배짱에 중국의 역사를 보탠다. 종이도, 화약도 모두 중국에서 만든 것이다. 중국은 이익에 연연하는 속물이 아니라 의와 신뢰를 중시하는 사회라는 정신적 강점까지 부어 넣는다. 

처음으로 판타지 영화에 출연하는 맷 데이먼의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괴물에 맞서 싸우는 장면의 어려움도 있지만 이는 한편 지금껏 극사실주의 영화와 동의어 역할을 해온 맷 데이먼의 필모그래피가 주는 어색함이기도 하다. 

물론, 영화는 마땅히 가야 할 결말과 갔으면 좋겠을 소박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관객들이 즐기는 요소는 바로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낭비되는 이미지들이다. 불빛이나 의상, 무기 등을 최대한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표현함으로써 대륙적 장쾌함이 가득한, 화려한 눈요기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영화 보기가 유용한 킬링 타임의 수단이라면 너무 길지 않은 러닝 타임이나 지루할 틈 없이 변주하는 시각적 자극이라는 점에서 무리가 없는 작품이다.



5. [한국경제][천자칼럼] 수목원의 봄

바람끝이 맵지만 햇살은 벌써 봄이다. 우수(雨水) 지난 들판에 노루귀가 솟았다. 변산바람꽃과 명자꽃도 피었다. 보송보송한 갯버들의 솜털이 앙증스럽다. 올해는 봄꽃 피는 시기가 며칠 앞당겨졌다. 꽃샘추위가 남았지만 2~3월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 꽃마중도 빨라질 모양이다.

눈을 뚫고 피는 복수초는 서울까지 올라왔다. 복수초는 복(福)과 장수(長壽), 부와 행복을 상징하는 봄꽃의 대명사다. 눈과 얼음 사이를 뚫고 핀다 해서 ‘얼음새꽃’ ‘눈새기꽃’으로도 불린다. 꽃잎을 둥글게 펼치고 집광판처럼 빛을 모으며 제 몸의 온도를 높이기 때문에 주변의 눈을 녹인다. 가는 털로 온몸을 감싸는 노루귀와 스스로 열을 방출하는 앉은부채도 일찍 꽃을 피우는 ‘봄의 전령사’다.

제주한라수목원을 비롯한 전국의 수목원은 봄꽃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명소다. 전남 완도수목원에도 벌써 봄소식이 당도했다. 국내 최대 난대림(暖帶林) 자생지인 이곳에서는 분홍 애기동백을 비롯해 개나리, 수선화, 목련 등이 4월까지 지천으로 핀다. 순천 미림수목원과 진주 경남수목원, 부산 화명수목원·금강수목원 등 남해안 일대의 수목원도 한창 물이 올랐다.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과 청산수목원, 공주 금강수목원 등 서해안 지역에도 봄빛이 완연하다. 해양성 기후로 겨울에도 추위가 덜하고 따뜻한 봄바람이 일찍 부는 환경 덕분이다. 오후 3시쯤 활짝 피었다 해가 저물면 잎을 오므리는 복수초, 혹한에서도 탈 없이 견디는 설강화 등 봄맞이 향연을 즐길 수 있다. 조금 있으면 600여종의 목련이 잇달아 핀다. 최근엔 노약자나 유모차,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무장애탐방로 ‘다함께 나눔길’이 완공됐다. 꽃길과 바다, 숲과 노을을 한꺼번에 감상하기에 좋다.

산림청에 등록된 국·공·사립수목원은 광릉·홍릉 등 전국 51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부산화명수목원, 대구수목원, 한라수목원, 인천수목원, 황학산수목원, 부천무릉도원수목원, 한밭수목원, 강릉솔향수목원, 경북수목원 등 13곳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사립인 아침고요수목원(가평)의 봄꽃축제도 화려하다.

야생화 이름을 몰라도 문제 없다. 내달부터 희귀한 야생화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검색하면 인공지능(AI)이 해결해준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카카오와 손잡고 펼치는 꽃검색 서비스다. 기초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집단지성을 활용한 정보까지 찾아 알려준다. 이젠 ‘이름 모를 꽃’이라는 낡은 표현도 없어질 것 같다. 이번 주부터 들로 산으로 봄마중을 나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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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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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기업활동 가로막는 상법 개정안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이 재벌개혁을 명분으로 기업 대주주의 권한을 축소하는 상법 개정안을 이번 임시국회에서 강행처리할 방침이라고 한다. 개정안은 감사위원을 일반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이사 선임 때 주식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집중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 전자투표 의무화 등이 골자다. 하나같이 대기업 경영의 근간을 흔들 소지가 다분한 민감한 내용들이다.

재벌 오너의 전횡을 막는다는 취지에서 불합리한 지배구조 개선의 당위성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규제는 독이 된다는 점이 문제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가 도입되면 외국계 헤지펀드가 국내 10대 대기업 가운데 6곳의 감사위원을 싹쓸이할 것이라는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이 단적인 예다. 집중투표제 역시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미국계 해지펀드 칼 아이칸이 KT&G에 사외이사 1명을 내세워 부동산 매각, 자사주 소각 등을 요구하며 수천억원의 차익을 챙긴 2006년의 사례가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개정안이 규제 대상으로 삼은 상장회사 가운데 대기업은 14%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중소·중견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재벌을 개혁한다며 재벌개혁과는 거의 연관이 없는 중소·중견기업들을 먼저 죽이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이 개정안에 반대한 것이 이 같은 정황을 잘 말해준다. 개정안이 재벌개혁이라기보다는 반기업 정서에 편승한 일방적인 기업 때리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일본·영국 등 선진국은 대주주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차등 의결권 제도 등을 도입하고 있다. 워런 버핏의 클래스A 주식은 의결권이 1만개라고 한다. 집중투표제의 부작용으로 미국에서는 이를 의무화한 주가 7개 주에 불과하며, 일본도 1974년 자율화로 전환했다고 한다. 우리는 거꾸로 가는 셈이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과잉 규제는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뿐이다. 야권이 수적 우세를 믿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처리할 일이 아니다. 개정안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살펴 재검토하길 바란다.



2. 북한 소행으로 좁혀지는 김정남 암살사건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일어난 김정남 살해사건이 북한 지령에 의해 수행됐을 것이라는 정황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현장에서 독극물을 뿌린 2명의 여성 용의자에 이어 이들을 조종한 북한 국적자 리정철이 은신 중 체포됨으로써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현지 경찰 당국도 어제 첫 기자회견을 통해 도주한 공범들이 모두 북한인들이라며 북한 연계 가능성을 적극 시사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검거된 범인이 약학 전문가라는 점이다. 북한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1년여 동안 인도 연구소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만큼 이번 범행에 사용된 신종 독극물 제작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제 그가 북한으로부터 지시 받았다는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작업이 남아 있다. 이미 도주한 공범들의 행적도 계속 추적할 필요가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기대한다.

애초 짐작대로 이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이복형인 김정남이 정권 유지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해 직접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쿠알라룸푸르에 주재하는 북한대사가 시신 인도를 요구하며 부검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미리부터 연막을 치는 것도 그런 배경으로 이해한다. 오히려 “남한 정부가 정치 스캔들에서 벗어나려고 북한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며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테러 공격에 더욱 경각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마찬가지다. 단순히 얼굴에 뿌리는 정도만으로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가는 신종 화학물질이 개발된 데다 내막도 제대로 모르는 외국인들을 끌어들여 마치 장난치는 것처럼 꾸며 암살극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북한이 우리 사회에 불안감을 조성하기 위해 그동안 온갖 공작과 술책을 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 한반도 정세는 매우 유동적인 국면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개발 실험을 거의 마무리해가고 있으며, 이에 대해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전에 없이 강력한 제재수단을 동원한다는 방침이다. 김정은이 김정남 살해를 모의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사회가 탄핵정국의 와중에서 ‘촛불 민심’과 ‘태극기 민심’으로 찢어져 서로 다툴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매일신문]

3. 이러려고 국정 역사교과서 강행 무리수 뒀나

전국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채택하기로 희망한 학교는 단 1개교다. 경산 문명고가 유일하지만, 그것마저 확실하지 않다. 문명고 측이 안팎의 반발로 “23일에 최종 결정하겠다”고 유보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운명이 ‘1개교’ 아니면 ‘없음’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니,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이를 두고 1년 넘게 소모적인 논란과 대립을 빚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못한’ 결과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추진한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문제이긴 하지만, 집필`배포`채택을 주도한 교육부의 책임도 그 못지않게 크다.



당초 교육부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올해 3월부터 전국 중`고교에 일괄 적용할 계획이었다가 반대여론에 밀려 희망 학교에 한해 시범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희망 학교가 전국 중`고교의 20%가량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결국에는 모든 학교가 외면하는 정책을 추진했다니 이런 분들에게 아이들의 교육을 맡겨야 할지 걱정할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이런 상황에 대해 교육청과 전교조의 비협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댔다. 그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일 수 있지만, 수준 이하의 엉성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지난해 11월 현장 검토본이 공개되자마자, 수백 건의 내용 오류 및 편향 기술, 오탈자, 비문 등이 발견돼 부실 제작 비판이 일었다. 진보`보수를 떠나 현장 교사들이 부실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전혀 신뢰하지 않았기에 처참할 정도로 외면받게 된 것이다. 결국, 국정 역사교과서는 출발부터 제작, 배포까지 상식과 순리를 따르지 않았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이제 역사를 대통령이나 특정 정파의 시각에 맞춰 기술하겠다는 전근대적 발상은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없음을 알게 됐다. 그렇더라도, 역사교과서에 대한 좌우편향 논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의 사회적 논란과 대립은 없어야 한다. 편향성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역사교과서를 다양한 해석이 담긴 토론형 자료로 다시 개발하는 방안이 필요한지 모른다.



4. 일본 순시선의 잦은 독도 출몰, 경계할 흉계다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 홍익태 본부장이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연간 100여 회 즉 사나흘에 한 번꼴로 독도에 오고 있으며 이는 분쟁에 대비해 기록을 남기고 명분을 쌓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순시선이 마치 독도를 제집 드나들 듯이 하는 셈이다. 민간 선박이 아닌 일본 정부 함선의 잦은 독도 출몰이 예사롭지 않다.



무엇보다 일본 순시선의 의도적인 독도 주변 해상 출몰은 그의 분석처럼 혹시 뒷날의 분쟁을 대비한 활동임이 분명하다. 거꾸로 이를 근거로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과거 일본이 여러 분쟁과 침략에서 익히 써먹은 사례가 증명한다. 일본의 기록 정신과 자료 축적은 잘 알려진 터이다.



국제적인 분쟁과 갈등은 당사국 외에는 원인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왜곡 또는 날조된 거짓 자료와 기록이 흔히 동원되는 까닭이다. 제3국을 설득하고 제편으로 이끌 수 있어서다. 일본의 꼼수이자 노림수다. 독도 출몰 역시 같은 맥락이다. 숱한 사실(史實)의 왜곡과 날조도 모자라 없던 역사조차 만들던 일본이어서 더욱 그렇다.



이런 활동과 함께 최근 두드러진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압박도 심상치 않다. 일본은 이미 지난달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설치 소녀상을 빌미로 주한 일본 대사를 불러들였다. 또 한`일 간 ‘통화 스와프’ 논의도 중단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 14일 초`중학생들에게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왜곡된 영토 교육을 강화토록 하는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을 마련해 고시했다.



우리의 독도가 자신들의 고유 영토라는 억지 내용을 의무적으로 가르치도록, 말하자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학습지도요령에 이를 명시했다.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이 같은 일련의 일들이 불안한 국내 상황과 맞물려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기간에 걸친 탄핵 정국에다 정치권 분열과 갈등, 남북 긴장 등 여러 악재가 겹겹인 ‘불난 집’ 같은 어수선한 이웃나라의 틈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의도임이 틀림없다. 평화 시 분열하는 우리 약점을 지렛대 삼아 의도한 목표를 이루려는 흉계(凶計)의 전조(前兆)일 수 있다. 우리가 되새겨 경계할 일이다.



[서울신문]

5. 2단계 추락한 수출, 신성장 동력으로 활로 뚫어야

수출대국 한국의 위상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수출액은 4955억 달러로 전년보다 5.9% 줄었다. 재작년 8% 줄어든 데 이어 2년째 뒷걸음질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세계 수출 순위도 세계 주요 71개국 중 8위로 전년도 6위에서 2단계 더 추락했다. 올해도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로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더 낄 수밖에 없어 걱정이다.

우리나라 수출이 2년 연속 감소한 것은 1956년 통계 작성 이래 58년 만에 처음이다. 그만큼 수출 부진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사실 수출 감소가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은 다소 위안을 준다. 지난해 세계 무역규모가 줄어들면서 세계 각국의 수출도 재작년 11%, 지난해 2.6% 각각 감소했다. 10대 수출대국 중 6개국의 수출이 줄었다. 그렇다 해도 우리의 수출 하락폭이 세계 무역 감소의 폭보다 크고 가파르게 감소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저성장과 보호무역주의 부상에 따른 세계무역의 부진이 우리 수출 감소의 첫 번째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런 외적인 환경에서만 이유를 찾는다면 수출 부진의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 어렵다.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독일과 일본의 수출액은 전년보다 1%와 3.2%나 각각 늘어난 것은 기업의 혁신 등으로 극복했기 때문일 게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소득의 절반 이상을 수출이 차지하다 보니 수출에 따라 경제 기상도가 확 바뀐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환경에 취약한 우리의 경제구조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 없이는 수출대국의 위상은 언제든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세계 경제는 이미 미국 트럼프발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불확실성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무역전쟁에서 우리가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정교한 정책이 필요하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고환율 고수, 저리의 자금 지원 등 대기업 중심의 수출 지원책에 치중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균형 성장을 초래했다.



이제는 대기업 중심에서 벗어나 중소기업의 수출 지원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이 제시돼야 한다. 신성장 동력을 확보해 수출품목의 다변화 추진도 서둘러야 한다. 과감한 규제 혁파 등의 수출 환경개선과 함께 일본처럼 새로운 무역 환경에 대비한 통상조직 등의 재정비도 시급한 과제다. 정부와 무역업계가 한 몸으로 수출 활로 모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6. ‘사드 보복’ 철회 정식 요구한 한·중 외교 회담

중국이 어제부터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중국 상무부는 홈페이지 공고를 통해 유엔 안보리 2321호 결의와 중화인민공화국 대외무역법 등에 근거해 북한산 석탄 수입을 올 연말까지 전면 중단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역대 최고 수위의 대북 제재로 평가된다. 석탄은 북한의 최대 수출품으로 전체 중국 수출에서 40%에 달해 북한에 엄청난 압박이 될 전망이다.

중국의 초강경 대북 제재는 그동안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중국이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국제적 논란을 잠재우는 동시에 계속된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라는 분석이 많다. 북한의 북극성 2형 등 중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은 물론 최근 친중파로 알려진 김정남의 피살사건까지 터지면서 중국이 북한 김정은 정권의 도발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핵·미사일 도발은 물론 전통적인 북·중 우호 분위기마저 건드리며 마지노선을 넘는 북한에 대한 최고 수위의 불만 표시로 볼 수 있다.

중국의 대북 제재 강화가 북한에 대한 석유 공급 중단이라는 마지막 수단까지 동원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중국이 의장국인 6자 회담을 거부하고 북·미 회담을 고집하다가 대북 석유공급 중단에 직면한 사례도 있기 때문에 북한의 추가 핵실험 시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이번 강경 조치를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한다.



지난해에도 중국 정부가 다양한 대북 제재안을 발표했지만 단둥을 비롯해 압록강 접경 지역에서 금수 물자의 밀거래가 성행했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김정은 정권은 마지막 남은 우방국마저 초강경 제재에 나서는 국제 정세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해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중국은 대북 강경 조치와 달리 주한미군 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우려된다. 윤병세 외교장관과 왕이 외교부장이 그제(현지시간) 독일에서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다. 왕 부장은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중국 정부의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 사드 배치를 서두르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에 윤 장관은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한 ‘자위적 방어조치’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면서 양국 간 갈등의 골을 확인했다. 하지만 윤 장관은 최근 경제와 문화, 인적 교류 분야에서 중국의 보복성 조치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명했고 보복 조치의 철회를 요구했다. 이는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에 대해 공식적으로 철회를 요구했다는 의미가 있다. 중국 당국은 자국의 국익을 위해 이웃 나라에 부당하게 가하는 보복 조치가 양국 관계를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세계일보]

7. 북한 석탄 수입 금지한 중국, 이번엔 ‘어물쩍 제재’ 말라

중국 상무부가 유엔 대북제재 결의 이행을 위해 19일부터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입 중단 조치는 올해 12월31일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만시지탄이다. 이번 조치는 ‘친중파’ 김정남 독살과 탄도미사일 도발을 잇달아 감행한 북한을 제재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한국에 사드 배치 철회를 압박하기 위한 다중 포석으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미국의 압박이 컸던 것도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중국이 북한 석탄 수입을 끊으면 중국에 전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북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포기하도록 숨통을 조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중국이 유엔 제재의 ‘뒷문’을 번번이 열어둔 행태에 비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발동된 지난해 북·중 무역이 전년보다 7.3% 증가했다는 통계가 웅변해준다.



최근에는 중국이 북한과 4000t 규모의 액화석유가스(LPG) 수입 계약을 맺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중국 같은 뒷배가 버티고 있으니 국제사회가 아무리 칼을 뽑아들어도 북한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이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그제 독일 뮌헨에서 가진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서두르지 말라”고 한국을 압박했다. 사드 배치에 부정적인 야권 대선주자들의 부정적 기류를 감안한 조치로 해석된다. 자국 이기주의에 기반한 내정 간섭이 아닐 수 없다. 사드 배치는 대한민국이 생존권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추진하는 방어적 조치다. 만약 중국의 안보가 적국의 핵·미사일 공격에 완전히 노출된 상황이라면 자국 안전을 위한 대응 조치를 다음으로 미룰 수 있겠는가.



왕 부장은 한국을 겨냥해 “국가의 안전은 다른 나라의 안전을 희생하고 달성해서는 안 된다”고 훈계까지 했다. 우리가 중국에 하고 싶은 말이다. 사드 배치를 철회하라는 것은 중국의 안전을 위해 한국의 안전을 희생하라는 억지 주장이 아닌지 묻고 싶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왕 부장에게 “모든 가용한 수단을 동원해 안정을 저해하는 북한의 행동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은 겉으로 대북 유엔 제재에 동참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걸맞은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 예전처럼 제재 시늉만 한 채 어물쩍 넘기려 해선 안 된다.



8. 김정남 ‘청부살해’ 북 정권, 국제사회 철저 응징해야

말레이시아 경찰이 어제 수사 발표를 통해 김정남 피살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공식 거론했다. 17일 체포한 리정철(또는 리종철)을 비롯해 신원이 확인된 남성 용의자 5명의 국적이 모두 북한이라는 것이다. 4명은 사건 당일 말레이시아를 출국했다. 경찰은 또 다른 북한인 3명도 연루자로 추적 중이라고 한다. 현지 언론은 리정철이 북한의 대표적인 대외정보공작 기관인 정찰총국 요원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리정철은 북한 소행을 입증하는 ‘스모킹 건’일 개연성이 짙다. 리정철은 북한 외교관조차 집단생활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 수년간 쿠알라룸푸르에서 별도로 가족을 동반해 생활했다고 한다. 그가 말레이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해외 정보를 수집하는 스파이였을 공산이 크다.

이번 사건은 치밀하게 준비된 조직적 테러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 요원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을 감추기 위해 다국적 여성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남에게 쉽게 접근하면서 동시에 그의 여성 편력을 부각시켜 테러 의혹을 희석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경찰에 체포된 여성들은 한결같이 “장난인 줄 알았다”, “몰래카메라 촬영으로 알았다”고 진술했다. 사건 전에 현장을 찾아 스프레이를 뿌리는 예행연습까지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정찰총국이 개입했다면 김정남의 이복동생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모른 채 이뤄졌을 리가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리 정보당국은 사건 초기부터 김 위원장의 ‘스탠딩 오더’에 따라 북한 정보당국이 실행했을 것으로 의심해 왔다. 하지만 북한은 억지와 발뺌으로 일관한다. 김정은에 대한 부검에 반대하고 시신 인도를 요구하더니 의사가 관철되지 않자 말레이시아 당국의 부검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친다. 강철 주말레이시아 대사는 남측의 공작 의혹까지 제기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다.

북한 배후설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면서 북한의 잔학성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이복형제까지 살해하는 정권임이 분명해진 것이다. 미국 의회에서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만큼은 북의 만행을 묵과해선 안 된다. 반인륜적 테러의 배후를 끝까지 추적해 배후를 밝혀내야 한다. 국제사회가 테러를 일삼는 북한 정권을 단호하게 응징해야 한다.



[매일경제]

9. SNS의 사회적 책임 강조한 저커버그의 결단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가족과 친구들을 연결하는 지금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넘어 전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겠다고 최근 선언했다.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글로벌 공동체 건설(Building GlobalCommunity)'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자유와 번영을 확산하고, 평화와 이해를 증진하고, 가난에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 등 반세계화로 치닫고 있는 '트럼피즘'에 대한 일침일 뿐 아니라 최근 가짜 뉴스로 훼손된 페이스북의 역할과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쇄신하기 위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지난 10년간 친구와 가족을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 페이스북은 전 세계 18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해 세계 최강의 파워를 가진 SNS로 성장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가짜 뉴스 확산의 온상이라는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가짜 뉴스에 엄청난 리액션과 댓글이 달렸을 뿐 아니라 전통 미디어 뉴스의 조회 수를 초월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연결된 세상'이라는 좋은 비전에도 불구하고 반대 의견이 충돌하면서 가짜 뉴스의 범람 등 분열이라는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저커버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팩트체크로 가짜 뉴스 퇴치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플랫폼을 세계화를 위한 사회기반시설로 재구성하겠다는 새로운 비전을 꺼내든 것인데 SNS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가짜 뉴스의 생성과 유통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페이스북, 구글 등이 가짜 뉴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엉터리 뉴스들이 SNS를 타고 무한대로 퍼지면서 사회를 혼란과 분열로 몰아넣고 있다. 4월 대선을 치르는 프랑스, 9월 총선을 앞둔 독일 등 전 세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가짜 뉴스와 SNS의 악성 댓글은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분열시키는 흉기가 될 수 있다.

저커버그는 "현재 우리는 더 연결된 세상으로 갈지, 아니면 단절된 세상으로 갈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했다. 고립주의를 막고 세계화를 추구하는 그의 큰 도전이 성공하려면 현재 페이스북 등 SNS가 직면하고 있는 가짜 뉴스라는 독버섯을 뿌리 뽑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10. 북한핵과 김정남 암살이 별개라는 안일한 안보의식

김정남 암살에 북한 비밀요원들이 개입한 정황이 말레이시아 경찰 수사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최근 검거된 리정철을 비롯해 북한 국적 용의자가 모두 5명이며 이 중 4명이 범행 당일 말레이시아를 출국하는 등 암살 배후에 북한이 있는 것으로 본다고 19일 밝혔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지난 12일 이동식 발사대와 고체연료를 이용해 한미 양군의 '킬체인'을 무력화하는 '북극성 2호' 미사일을 쏘아올렸고 14일엔 이복형(兄) 김정남을 말레이시아에서 독살했다. 두 사건은 김정은 정권의 모험주의적 위험성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 일부 세력은 '김정남을 북한이 죽였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며 북핵은 북핵, 김정남은 김정남이라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에 대한 경계를 허물려는 의도적 외면이 아니면 국가안보 인식 부재에서 비롯된 안이함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선 '대북 선제타격론'이 여러 차례 흘러나왔다. 김정은은 몸을 사리기는커녕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도발을 서슴지 않는다. 북한 정권의 판단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징후로 읽힌다. 과거 김일성과 김정일은 국제사회를 상대로 공갈과 협박을 일삼았지만 지금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나름의 전략적 스케줄과 철두철미 계산된 노림수에 입각해 행동했다. 또 미국 국내 상황과 정권 성격을 고려해 완급 조절도 했다. 그 결과 국제사회 입장에선 북핵을 초기에 억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결정적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그만큼 낮았다. 김정은은 노회했던 전임자들과 달리 휘발유통 옆에서 계속 성냥을 그어대는 객기를 보여주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이 서울 한복판을 향해 날아드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김정은의 암살 지령이 남한에서 활동하는 고위급 탈북 귀순자들을 겨냥할 가능성 역시 배제돼서는 안된다. 국가안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함으로써 그것이 현실화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의 모험주의보다 소위 '북풍'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더 힘을 얻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주요신문칼럼



1. [중앙일보][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쓸데없는 짓을 합시다.

종영 전 한 번 더 보겠다며 찾아간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사진) 상영관에서 말로만 듣던 ‘혼모노’를 만났다. 올 초 국내 개봉해 360만 명의 관객을 모은 이 영화와 함께 떠오른 신조어 ‘혼모노(本物)’란 무엇이냐. ‘진짜, 실물’이란 뜻의 일본어로, “말로만 듣던 ‘진짜’ 오타쿠(광팬)가 여기 있었네”라는 의미를 담아 사용한다.

앞줄에 나란히 앉은 10대로 보이는 남학생 3명이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부른다. “다음 생에는 도쿄의 꽃미남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라는 여주인공의 대사를 성우보다 더 크게 외칠 땐 귀가 멍멍. 어리둥절해 극장을 나오다 ‘합창상영’이라는 안내 문구를 발견했다. 이 작품 광팬들의 ‘만행’이 속출하자 극장에서 따로 이들만을 위해 마련한 상영회였던 것. 같이 간 친구가 감탄과 비아냥을 함께 담아 말한다. “쓸데없는 짓을 참 열심히들 하고 있네.



”이런 장면, 애니메이션 팬들에겐 이미 익숙하다. 3년 전 개봉한 디즈니의 ‘겨울왕국’도 주제곡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관객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며 영화를 보는 ‘싱어롱(sing a long)’ 상영회를 연 적이 있다. 노래만으론 심심하지. 한·일 합작 애니메이션 ‘꿈의 라이브 프리즘스톤’의 극장판인 ‘킹 오브 프리즘’이 지난해 한국과 일본에서 개봉했을 땐 관객들이 아예 야광봉을 하나씩 들고 영화관에 들어갔다. 실제 공연장에 온 것처럼 “꺄~” 비명을 지르며 화면 속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즐긴다. “자, 너희에게 할 말이 있어”라는 화면 속 캐릭터의 오글오글한 대사에 관객들이 한목소리로 답한다. “뭔데~?”

고백하자면 요즘 ‘하이큐’라는 배구 애니메이션을 보며 내 안에도 ‘혼모노 본능’이 꿈틀댐을 알았다. 극 중 한 배구팀의 팬이 되어 “고고레츠고레츠고~” 하는 만화 속 응원 구호를 따라 외치고 있는 나. 지난 1월 ‘하이큐’ 극장판이 개봉했을 땐 관람객들이 아예 좋아하는 팀별로 나눠 앉아 실제 배구 경기를 보듯 응원하며 영화를 보는 행사도 열렸다고 한다. 아, 얼마나 신났을까. 아쉽고 아쉽도다.

쓸데없는 짓을 좋아한다. 도무지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런 쓸데없음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누구도 상상치 못한 기발한 무언가가 나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생각한다. 꼭 뭔가 이뤄내지 못하면 어떤가. 소소한 것에서 나만의 재미를 찾아내 즐길 줄 아는 능력, ‘혼모노 정신’이 없이는 좀처럼 행복해지기 힘든 요즘이다.



2. [아시아경제][여성칼럼] 삶은 어디에나

톨스토이는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사람은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속에 존재하는 사랑 때문에 행복해진다. 그러므로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니콜라이 야로센코(러시아 화가, 1846-1898)는 이 소설에 깊은 감흥을 받는다. 그리고 <삶은 어디에나>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정의를 화폭에 담고자 한다. 

러시아 차르에 반대해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정치범들의 열차 안에도 삶이, 생명이 있음을, 형극의 수형길 앞에서도 잠깐의 햇볕을 즐기며 새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나눠줄 수 있는 여유가 있음을, 많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사랑의 실천이 아님을, 빵 조각을 나눠주는 고사리 손을 통해 일깨워준다. 화려하지 않아도 빛날 수 있고 가난할지라도 풍요로운 영혼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엄마의 품에 안겨 미소 짓는 아기의 천진한 얼굴에서 우리는 순수의 절대 정의를 읽을 수 있으며, 혹한의 현실 앞에 굴하지 않고 찰나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혁명가들의 풍요로운 영혼을 통해서 미래의 희망찬 역사를 점칠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삶은 어디에서나 아름답게 빛날 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말한다. 그리고 삶에 겸손하고 진지해지며 작은 사랑일지라도 실천할 것을 그림이 가르친다. 

삶이 절망적일 때가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삶의 무게에 허덕일 때, 그 슬픔이 쓰나미처럼 밀려들 때 모두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현실을 이겨낸다.

난 그림을 본다. 그림 속에 내 슬픔을 올려 놓고 어두운 현실을 어루만지다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에 마음이 정화되고 그렇게 그림으로 치유받는다.



17년 전 모스크바에 첫발을 내디딘 후 쓰지도 읽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서른 살의 아기였던 나는 깊은 절망을 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두려워하던 내게 야로센코의 이 그림이 말을 걸어오더라. 삶에 허덕이지 말고 현실에 발을 디디고 겸손하게 살아가라, 어떤 척박한 상황에도 삶은 존재하는 것이니 세상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라 그림이 가르쳐 주었다.



삶의 궁극적 목적은 화려함에 있지 않고 진솔한 모습으로 현실을 대면하며 작은 실천을 이뤄갈 때 빛을 발한다 일러준다. 지금의 절망이 마지막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거름이란 것을 전율로 느끼게 해 준 야로센코의 <삶은 어디에나>.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상에서 삶의 기본자세를 가르쳐 준 소중한 그림이다. 그렇게 러시아 그림과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에 이런 구절이 있다.

<감동이 발작처럼 갑자기 그에게 복받쳐 올랐다. 한꺼번에 그의 마음은 녹아 내렸고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서 있던 모습 그대로 땅에 엎드렸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센나야 광장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는 달콤한 쾌감과 행복감을 느끼면서 더러운 땅에 입을 맞추었다.>

야로센코의<삶은 어디에나>를 처음 만난 그날, 나도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되어 그렇게 러시아 그림과 깊은 입맞춤을 나누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 사랑은 풍요로운 아름다움이라 표현될 수 있으며, 영원히 이별하지 않을 거라 자신한다. 20년 가까이 내 삶의 터전이 되어 준 러시아 그림 사랑이다.



3. [중앙일보][중앙선데이] 봉인이 열리면 추억도 새록새록

사람에게 출생연도가 있듯 와인에는 빈티지가 있다. 빈티지란 포도를 수확한 해를 의미한다. 와인에 있어 빈티지는 중요하다. 특히 신대륙보다 구대륙에서는 빈티지에 따라 품질 차이가 심해 가격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빈티지를 잘 따지는 것은 시음 시기나 보관 기간을 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빈티지는 와인의 품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우선 포도의 품질이다. 인간이 10개월 동안 어머니 몸속에서 영양을 공급받으며 자라는 것처럼 포도는 사계절 동안 포도나무로부터 모든 공급을 받는다. 때문에 포도나무가 자라는 주변 자연 환경(전문 용어로 떼루아)이 무척 중요하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수확이 이루어지는 순간까지 포도나무가 자연으로부터 얻은 모든 기록이 포도 속에 저장된다. 이런 것들이 양조 과정을 거치면서 그 해만의 개성을 가진 와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빈티지의 특성이 되는 것이다.

필자가 강의 중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와인의 오픈 시기다. 수많은 와인이 존재하는 만큼 하나하나 오픈 시기를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와인마다 품종이 다르고 또 빈티지에 따라 차이가 많기 때문이다. 같은 빈티지라 해도 소위 그랑 크뤼를 생산하는 포도밭에서 나왔는지 등급이 없는 포도밭에서 생산된 것인지에 따라 오픈 시기가 몇 년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다. 같은 와인을 한 박스 구입해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한 병씩 오픈 해 마셔보고 기록해 놓으면 좋지만, 단점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와인 평론가들의 자료를 참고하는 일인데, 100% 신뢰할 수는 없지만 많은 도움이 될 수는 있다.

대부분 와인은 2~3년 내에 빈티지의 특성과 품질을 알 수 있지만 10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좋은 와인들은 이 정도 시간에는 자신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최고의 빈티지는 어떤 것인가. 완벽하게 익은 최상의 포도로 만든 최고의 빈티지는 다른 빈티지에 비해 오랫동안 좋은 풍미를 유지한다. 사람으로 이야기하면 지성과 미모를 모두 갖추고 아름답게 오랫동안 살면서 우아하게 늙어가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지성은 있으나 미모가 없고 미모는 뛰어나나 지성이 모자라면 세월과 더불어 불균형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처럼, 와인은 향과 색과 맛으로 그 조화로움과 모자람을 보여준다.

요즘에는 인공위성의 도움으로 물 주는 구역과 시기를 조절하고는 있지만, 변화무쌍한 사계절을 거치며 생존한 포도의 맛은 이보다 다양할 수밖에 없다. 과학의 힘으로 어느 정도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닌 것과도 같다. 맛의 평준화로 많은 사람이 가격과 품질에서 혜택을 보는 반면 개성 있는 맛은 그만큼 줄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와인은 수 년에서 수십 년 숙성을 통해 완성되는 산물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와인 병 속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변화를 인간은 아직 알 수 없다. 오직 인내하고 기다렸다가 마셔보는 수밖에.

고대 그리스의 알카이오스는 “와인에는 진실이 있다”고 했다. 와인의 빈티지엔 그 해만의 진실이 담겨 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오랫동안 간직했던 와인을 어느 날 오픈하면 아름답고 싱싱했던 옛 시절을 추억할 수 있다. 와인 빈티지엔 한 해의 자연 특성과 그 해 인간의 기억을 회상할 수 있는 모든 진실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4. [부산일보사][아침향기] 세상에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웠다는 그날, 대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나왔다. 방학 중이라 늘 한산한 편이었지만 그날은 날씨 탓인지 도서관 앞 광장에서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길에 거의 사람이 없었다. 종종걸음을 하며 주차장으로 가고 있는데 한 여자가 주차장 언덕에 멈춰 서서 가방을 열고 있었다.



여자가 가방을 다 열기도 전에 고양이가 두 마리 나타났다. 예쁜이, 삼색이 왔구나, 여자는 물병과 먹이를 꺼내며 고양이를 반겼다. 햇반 빈 용기에 물과 먹이를 나눠 주자 고양이가 더 나타나 네 마리가 꼬리를 세우며 밥그릇에 코를 박고 있었다. 그르릉 그릉, 바람결에 기분 좋은 고양이의 목 울림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금련산 골짜기를 빠져나온 바람이 얼마나 찬지 골이 얼얼한데도 여자는 바람에 날리는 외투 깃을 여미지도 않고 검정코는 왜 보이지 않냐고 묻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한 걸음씩 여자와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내가 다가가자 눈도 마주치지 않고 허겁지겁 가방을 추려 경사로를 따라 올라갔다. 십여 미터쯤 올라가 다시 고양이를 만난 여자는 가방을 열어 물과 먹이를 담아 주고 있었다. 추웠지, 입으로 들어온 바람에 심장까지 얼 것 같은데도 여자의 목소리에는 사랑과 반가움이 담겨 있었다. 헐벗고 굶주린 듯한 고양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여인과 딸 통해 만난 고양이 
늘 자신이 중심이지만 사람과 닮아 
한 편 영화에서 바라본 생명의 의미 
길고양이는 아마도 우리의 이웃

몇 년 전 딸아이가 태어난 지 2주일 됐다는 고양이를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원룸 주인이 못 키우게 한다는 것이다. 남편은 당장 반대했다. 나도 키우고 싶지는 않았지만 일단 데려오라고 했다. 그건 꼭 고양이의 문제가 아니라 딸이 부모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신호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대학생이었던 딸은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부녀는 얼음처럼 단단하고 냉정하게 맞섰다. 남편은 딸이 객지에 나가 얼마나 고생할까 하는 것보다는 보내는 돈의 액수에 더 예민했고 딸은 그런 남편의 말 이면의 사랑과 걱정을 애써 외면하려는 것 같았다. 가족 간의 갈등이 대개 그렇듯이 나는 두 사람의 시시비비를 도저히 가릴 수 없었다. 

겨우 남편을 설득해서 고양이를 키우기로 했다. 키우지 않으면 아이는 더 멀어질 것 같다는 말에 남편도 더 반대를 하지 않았다. 그 후 아이는 고양이를 보러 오는 건지 부모를 보러 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자주 왔다. 그리고 더 오래 머물다 고양이와 긴 작별 인사를 했다.

고양이는 개처럼 꼬리를 흔들지도 집에 왔다고 반갑게 맞이하지도 않는다. 늘 혼자 어슬렁거리다 푹신한 곳에서 실컷 자고 난 후 목청을 돋워 운다. 그때 잠자리가 달린 장난감 낚싯대를 들고 놀아주면 끝이다. 늘 거리를 유지하고 깨끗하고 조용하고 빠르다. 처음엔 무척 독특해 보였지만 몇 년 데리고 사니까 사람과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다. 고양이도 따뜻한 데를 좋아하고 깨끗한 물을 먹고 전용 변기에 용변을 보고 배고프면 울고 심심하면 같이 놀자고 조른다. 사람의 호의에 고마워하고 기쁨을 드러내는 것도 닮았다. 그런데, 언제나 중요한 건 밥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 자신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사람과 가장 닮은 점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에 우연히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란 일본 영화를 보았다. 뇌종양으로 죽게 되는 주인공에게 악마가 거래를 시작한다. 주인공이 소유한 뭔가를 없애면 하루씩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전화, 영화, 시계를 차례대로 지우고 자신의 삶을 3일 연장한다. 4일째 되는 날 악마는 고양이를 없애자고 한다.



주인공은 고민하다 고양이는 놔두라고 한다. 왜 고양이는 놔두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밝히지 않지만, 그 이유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죽기 전에 그는 고양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아버지에게 간다. 아버지는 아마 아들이 맡긴 고양이를 키울 것이다. 개도 마찬가지겠지만, 고양이는 누군가에겐 가족인 것이다. 그러면 길고양이는? 아마도 우리의 이웃일 것이다.



5.[아시아경제][초동여담] 솔로몬의 판결

공돈이 생기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것이 부정한 돈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최근 자그마치 30만원이라는 공돈이 생겼다. 회사에서 중학생이 되는 자녀가 있으면 교복비 명목으로 중학교 입학 축하금을 준다는 것이다. 사규를 본 적도 없어 이런 제도가 있는 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술자리에서 딸내미가 벌써 중학생이 된다고 했더니 회사 동료가 귀띔해 줬다. '자식 키우는 보람'이 이런 걸까, 용돈은 되겠다 싶어 은근히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솔직한 것도 때론 병이 된다고 했던가. 최근 가족과 시장을 보던 길에 이 얘기를 꺼내고선 후회가 바로 밀려왔다. 공돈 30만원의 기쁨이 '말짱 도루묵'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를 먼저 제기한 것은 딸아이였다. 딸은 "비록 아빠 회사에서 나오는 돈이지만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지 않았으면 아예 받지도 못했을 돈이니까 당연히 내가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공돈에 대한 지분을 주장했다. 이럴 때 또 가만있으면 지분 강탈은 불 보듯 뻔한 일. "틀린 말이 아니긴 하지만 애초에 아빠가 이 회사를 다니지 않았으면 그 돈은 생기지도 않았을 거니까 당연히 아빠가 챙겨야지"라고 응수했지만 딸은 자신의 논리를 굽히지 않았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는 고금으로부터 내려오는 해묵은 인과관계의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네가 누구 덕에 태어났느냐'고 태생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나이깨나 먹은 어른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다.

추후 딸과 조용히 재협상을 해보려고 넘어가려는 찰나, 부녀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마눌님이 드디어 말을 꺼냈다. "아니 교복값은 내가 치렀는데 왜 두 사람이 나서는 거야?" 아내는 회심의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아내는 "교복 맞추는 데 딱 28만원이 들었는데 회사가 얼추 교복값에 맞춰 지급한 게 용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뿔사. 아마도 이 돈은 보나마나 아내 수중으로 고스란히 들어가겠구나. 딸내미가 손꼽아 기다리던 방탄이들(방탄소년단) 새 앨범을 선물하는 것으로 퉁쳤으면 무마됐을 텐데 일이 커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뒷거래는 언젠가 들통나는 법.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듯이 '웬 강남 아주머니'가 청와대의 '그 분'과 공모해 국정농단을 일으킨 사태가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니던가.

아내의 판단은 이랬다. 모름지기 엄마와 아빠는 성인인데다 돈의 출처와 쓰임이 모두 두 사람에게 달렸으니 14만원씩 나눠 갖고 나머지 2만원은 딸이 갖는다. 교복값 절반을 부부가 나눠 낸 것으로 갈음하고 나머지는 딸의 용돈으로 주자는 것이다. 아내는 이미 지불했던 교복값의 절반을 환급받는 느낌이고 나로서는 공중에 증발해버리나 싶었던 돈을 절반 가까이 챙겼으니 나름 흡족한 결말이다.



딸은 딸대로 한달 용돈에 버금가는 돈을 받게 됐으니 흔쾌히 만족할 수밖에. 세 식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솔로몬의 판결이었다. 공돈 30만원 착복 미수사건은 그렇게 종결되고 말았다.

그나저나 이번 월급날에 문제의 그 '공돈'이 함께 나온다는데 이 글을 보고 하이에나(?)들이 덤비면 안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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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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