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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아직도 ‘안전불감증’ 화재 사고인가

그제 오전 11시께 경기 화성 동탄의 메타폴리스단지 상가건물에서 불이 나 4명이 숨지고 47명이 다쳤다. 불은 4층짜리 상가건물 3층 264㎡ 넓이의 점포에서 철거작업 중에 일어났다고 한다. 동탄 메타폴리스는 66층의 초고층 주상복합건물로, 만약 불이 상가동에서 연결통로를 따라 주거동으로 번졌다면 자칫 엄청난 인명피해가 날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작은 점포 하나가 탔는데도 5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화재 현장에서 용접장비와 가스용기 등이 발견된 점을 들어 용접 도중에 불이 났을 것이라는 게 소방당국의 추정이다. 용접할 때는 분말소화기와 불티받이포 등을 비치하고 화기 감시자를 배치해야 하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안전사고 예방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는 화재 안내방송이나 경보음을 듣지 못해 대피가 늦어졌다는 일부 피해자들의 증언에서도 잘 드러난다. 점포 내부에 스티로폼 등 가연성 소재가 많아 불이 나자 유독가스가 순식간에 뿜어져 나왔다는 것도 늘 지적돼 온 문제점이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경보장치와 미흡한 유독가스 피해 대책 등이 인명 피해를 키운 셈이다.

지난해 11월 대구 서문시장에 이어 새해 들어서도 여수 수산시장에서 불이 나는 등 최근 화재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전통시장은 점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므로 일단 불이 나면 쉽게 잡을 수가 없다. 갈수록 늘어나는 초고층 건물도 마찬가지다. 화재진압 장비가 건물의 고층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다 미관을 고려해 화재에 취약한 마감재를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진화가 어려울수록 대형 참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2015년 120여명의 사상자를 냈던 의정부 10층짜리 대봉그린아파트 화재사고가 단적인 예다. 

그런 점에서,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사고는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크다. 안전수칙을 지키는 일은 불편하고 비용이 따른다. 하지만 편의성과 효율성만을 좇아 안전을 소홀히 하면 그 대가는 끔찍하다. 재앙이 닥쳤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아직도 안전불감증으로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뿐이다.



2. 박 대통령, 자꾸 부인만 할 것은 아니다

박영수 특검팀의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가 다가오는 가운데 박 대통령 측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에 대해 눈길이 쏠린다. 특검팀이 지난 3일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했다가 군사상 기밀유출 우려를 내세운 청와대 측의 거부로 불발된 상황에서 대면조사가 특검 수사의 정점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도 대면조사를 피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박 대통령 측이 특검팀의 공세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할 것이라는 분위기는 벌써부터 충분히 감지된다. 특검팀이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에 박 대통령을 뇌물수수 및 직권남용 혐의의 ‘피의자’로 명시한 점을 놓고도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된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출입기자단 신년인사회에서나 보수성향 인터넷TV 인터뷰에서 밝힌 입장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특검수사 결과가 현재 고비를 향해 치닫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심리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 측이 대면조사를 앞두고 다각적인 대응 논리를 마련하고 있는 이유다. 특검의 증거 제시에 그대로 밀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특검이 주장하는 사실관계나 법리 해석에 잘못된 점이 있다면 박 대통령 측으로서 자기 입장을 내세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그동안 진행된 헌법재판소 심리와 특검 수사를 지켜보면서 박 대통령이나 이미 구속된 그 측근들에 대해 실망감을 감출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서로 자신에게 쏠리는 혐의를 벗어나려고 ‘모른다’, ‘아니다’는 식으로만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로 굳어진 블랙리스트 존재가 하나의 사례다. 서로 부인하다 보니 ‘확신범’은 없고 대부분 ‘파렴치범’으로 전락한 상태다. 차라리 “정부 시책에 반하는 작가들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한정된 재원에서 정부의 고유 권한”이라고 말하는 게 훨씬 떳떳할 뻔했다.

박 대통령도 무조건 ‘아니다’고만 할 게 아니다. 자기 스스로 임기 도중에 물러나겠다며 국회에 그 시기를 정해 달라고 했던 입장이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하지만 사실로 드러난 문제에 있어서까지 부인으로 일관해선 곤란하다. 그럴수록 자신의 입지는 좁아지고 나라꼴은 우스워지기 마련이다. 박 대통령의 정치철학에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에게도 실망감만 안겨줄 뿐이다.



[매일신문]

3. 소아청소년과 의사 집단 이기심에 갈 곳 잃은 어린이 환자

어린이 환자를 위해 야간`휴일에 진료하는 ‘달빛어린이병원’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올해부터 병원 지정 요건을 완화하고 진료비 수가를 크게 높였으나, 참여하려는 병`의원이 거의 없다. 참여 의향을 밝혔다가 막판에 철회하는 곳도 여럿이다. 그 이유가 개원의의 조직적인 반발 때문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달빛어린이병원은 2014년 처음 도입돼 전국에 11개 병원이 운영 중이고, 올해 7개 병원이 추가 지정됐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가 사전 수요조사를 통해 최소 30개, 최대 40~50개 기관이 추가 지정될 것으로 전망한 것에 비해 초라한 결과물이다. 보건복지부가 이용자의 높은 만족도를 바탕으로 시`구`군별로 1개씩 지정하려 했으나, 서울과 경기`충북 등에서 일부만 추가하는데 그쳤다.



대구`경북에도 추가 지정된 곳이 없다. 기존에 운영 중인 대구 남구의 한영한마음병원, 경북의 김천제일병원 두 곳뿐이다. 보건복지부는 이 제도를 강하게 반대해온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조직적인 방해 행위 탓으로 보고 있다. 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달빛어린이병원 확대로 동네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몰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야간`휴일 진료비를 달빛어린이병원에만 지원하는 정부 정책은 오후 8시까지 야간 진료를 하는 소아청소년과 병`의원들과 형평성이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항변은 이해할 만하지만, 국민 정서와는 전혀 맞지 않는 논리다. 아픈 아이 때문에 한밤중이나 휴일에 황급하게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은 경험이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의사들의 이기주의를 탓할 것이다. 마치 의사들이 야간 진료는 싫고, 환자는 빼앗기기 싫다는 식으로 보일 수 있다.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어느 때든 저렴한 가격에 전문의 진료를 받고 싶은 욕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달빛어린이병원은 취지와 목적이 좋은 제도다. 의사회가 더는 보건복지부와 대립하지 말고 개원의와 국민, 모두가 유리한 점을 찾아 협상에 나서는 것이 옳다. 의사회가 현재의 입장을 고수하다간 자칫 국민 건강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 챙기려 한다는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4. 사드 부지 제공 미루는 롯데, 중국에 만만하게 보일 뿐

한미 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한국의 차기 정부 출범 이전에 배치하기로 합의했으나, 부지를 제공하기로 한 롯데 측은 결정을 미루고 있다. 사드 배치 부지로 예정된 경북 성주 스카이힐골프장 소유주인 롯데상사는 3일 이사회를 열어 부지 제공 문제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에 앞서 정부와 롯데는 성주골프장과 경기도 남양주 군용지를 맞교환하기로 합의했으며, 현재 정부는 지난달 상순에 나온 부지 감정 결과를 롯데 측이 승인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롯데 측이 부지 제공 결정을 미룬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국방부는 지난 1월 중으로 교환계약이 체결된다고 했지만 무산됐다. 롯데의 미온적 태도 때문이었다. 당시 중국은 국방부와 롯데 간의 부지 맞교환 합의 직후 중국에 진출한 롯데 관련 기업에 대해 세무조사와 위생`소방점검을 벌였다. 롯데로서는 이런 보복이 확대될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이번에 부지 제공 결정을 미룬 것 역시 같은 이유일 것이다. 여기에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유력 대권주자들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고 있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중국 내 사업이 차질을 빚을 수 있고, 유력 대권주자들의 사드 배치 반대 주장을 모른 체 할 수도 없는 노릇임은 이해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롯데 측의 이런 행태는 하나를 지키려다 둘을 잃는 것임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정부와의 합의도 합의이다. 합의 이행은 가장 기초적인 기업 윤리이다.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 기업은 아무도 상대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에 우습게 보이는 길을 자초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방부와의 합의 미이행은 롯데를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기업으로 각인시킬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사드 부지가 제때에 제공되지 못했을 때 우리에게 몰아칠 후폭풍이다. 차기 정부 출범 이전에 사드 배치가 되지 않으면 사드 배치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는 기업의 이윤 논리에 국민의 생존권과 국가 안보가 희생당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롯데는 자신을 포함한 국민을 지킬 수 있는 국가가 있어야 장사도 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서울신문]

5. 신축 건물서 경보기도 제때 안 울린 동탄 화재

지난 주말 대낮에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 랜드마크인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메타폴리스’ 부속 상가에서 불이 나 50여명의 사상자를 낸 것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안전불감증이 빚은 참사일 공산이 크다. 메타폴리스는 최고 66층(248m)의 건물로 1266가구가 살고 경기 남부권 최대 복합쇼핑몰이 들어선 곳이다. 게다가 준공된 지 6년 4개월밖에 되지 않은 건물이다. 우리나라에서 몇 되지 않는 이런 초고층 신축 건물에서 불이 났다는 사실이 우선 어이없고 안타깝다. 만에 하나 더 큰불로 번졌더라면 어찌 됐을까 하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현장에서 용접 장비와 가스 용기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내부 철거공사 용접 과정 중 불꽃이 가연성 소재로 튀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한다. 2008년 12월에도 경기 서이천물류창고에서 용접 작업 도중에 불꽃이 가연성 소재에 옮겨붙어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를 경험한 적이 있다. 2014년 5월 70여명이 사상한 경기 고양터미널 상가 화재 역시 용접 작업을 하다가 불씨가 천장 가연성 소재에 옮겨붙어 발생한 사고였다. 언제까지 후진적 안전관리로 인한 참사를 두고 봐야 하는가.

안전관리 강화는 윗선에서 아무리 외쳐 봤자 현장 근로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공염불일 뿐이다. 더구나 규모가 작은 공사에는 원가절감 차원에서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무자격 일용직 노동자를 현장에 투입한 사례가 적지 않다. 현장 근로자의 안전관리 감시 소홀로 발생한 화재에 대해서는 책임자를 가중 처벌하는 쪽으로 법과 제도를 과감히 손질해야 한다.

메타폴리스 화재 현장에서 제때 대피 안내방송이 안 나오고 경보음이 울리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밖에 검은 연기가 퍼지고 엘리베이터 내부에 검은 연기가 가득 찼는데도 불이 난 지 10분이 지나도록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메타폴리스 측이 정상적인 소방시설을 갖추고 영업을 했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메타폴리스는 과거 화재 감지가 안 되는 ‘불량 불꽃감지기’를 설치해 소방당국으로부터 교체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교체 했는지 여부는 조사를 통해 확인해야 할 사안이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수도권과 부산 지역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의 방재 관련 시설에 대한 전면 재점검 작업이 이참에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6. 靑, 특검 대면조사 응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청와대 압수수색이 성사되지 못하면서 주말 내내 여론은 들끓었다. 청와대는 특검과 5시간이나 대치했고, 군사 기밀 보호를 사유로 끝내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빈손으로 돌아서는 특검을 보면서 조속한 진상 규명을 기대했던 많은 국민들은 허탈해했다. 압도적인 민심은 국정 기밀을 민간인 비선 실세에게 무방비로 넘긴 책임이 청와대에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청와대가 국가 안위를 사유로 정식 영장을 발부받은 특검을 가로막은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특검은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의 유효 기간을 오는 28일로 전례 없이 길게 받아 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혐의 입증에 강도 높은 압박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특검은 즉각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압수수색 승낙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기대하는 답변을 얻기는 어렵다. 상황이 이러니 여론의 관심은 이번 주 후반으로 예정된 특검의 박 대통령 대면조사로 쏠릴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놓고 민심은 더 뒤숭숭하다. 특검의 수사에 비협조적인 청와대의 일관된 태도로 미뤄 봐서는 대면조사인들 제대로 응할 것인지 의심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진상을 하루빨리 밝혀 국정의 안정을 되찾으려면 특검의 수사 일정이 순탄하게 진행돼야만 한다.

특검의 수사는 다음달 13일 이전에 결론이 날 공산이 커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검의 전방위 압박에 박 대통령이 위기감을 크게 느끼고 있을 것은 당연하다. 설 연휴를 앞둔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억지로 엮은 것”이라며 수사의 부당함을 재차 주장했었다. 그 억울함을 입증해 보일 지름길은 청와대 압수수색을 부분적으로라도 당당하게 특검에 허용하는 것이다. 뒤질 테면 어디 한번 뒤져 보라는 선명한 태도를 지금이라도 보이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지 않고서 박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특검의 조사에 지체 없이 임하는 것뿐이다. 장외에서 밑도 끝도 없이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말만 자꾸 하지 말고 움직일 수 없는 반박 증거와 법리로 특검의 주장을 꺾어 보길 바란다. 청와대 압수수색을 원천 봉쇄했다고 해서 박 대통령이 얻은 것은 없다. 현실적인 부담은 오히려 더 커졌다. 이달 말 종료되는 특검을 연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당장 커지고 있다. 아예 국회가 특검법을 개정해 연장하자는 주장도 있다. 국정 혼란을 질질 끌어서는 박 대통령의 설 자리도 점점 좁아진다.



[세계일보]

7. 박 대통령, “특검 조사 받겠다” 약속 성실히 이행해야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진실 규명에 미온적이었다. 지난해 검찰의 압수수색과 조사에 불응했고, 지난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청와대 압수수색도 거부했다. 특검이 압수수색 재시도를 거론하고 있지만 청와대가 거부하는 한 성사되기 어렵다.

특검은 오는 9∼10일 중 박 대통령 대면조사를 위해 일정과 장소를 조율하고 있다고 한다. 조사 장소는 청와대 인근 안가, 연무관, 삼청동 금융연수원 등이 후보로 꼽힌다. 현직 대통령이므로 경호와 예우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수사에서 드러난 혐의를 규명하는 엄정한 조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특검은 미르· 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거두고, 삼성이 최순실씨를 지원하도록 한 혐의(제3자 뇌물수수 및 뇌물수수),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등에 대해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번 특검 조사만은 거부해선 안 된다. 진실을 밝힐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특검과 검찰에 구속된 대통령의 측근, 참모, 현 정부의 장·차관 출신이 10명에 가깝다. 이것만 해도 대통령으로서 큰 책임을 느껴야 한다. 최씨는 문화·체육계뿐 아니라 외교관 인사까지 주무른 것으로 특검 조사에서 드러났다. 국정이 불·편법과 비정상으로 운영됐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기자간담회와 인터넷TV를 통해 “거짓말로 쌓아 올린 거대한 산이고 엮어진 것”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대통령의 말대로 거짓이 산처럼 쌓였다면 특검이든 헌법재판소든 공적인 장소에 나와 소상히 진위를 밝히는 게 옳다.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이 이달 말 혹은 3월 초 내려질 것으로 전해지면서 찬반 시위는 더욱 거칠어지고 있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탄핵정국의 후유증이 예상되는 엄중한 상황이다. 양측이 충돌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최씨 농단사태의 전모를 털어놔야 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박영수 특검을 임명하면서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본격적인 특검수사가 시작되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특검의 직접 조사에도 응해서 사건 경위에 대해서 설명할 예정”이라고 악속했다. 당시 “특검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사건의 모든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이 가려지길 희망한다”고 밝힌 만큼 진위가 명명백백하게 가려지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약속과 희망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8. 중국, 유엔 대북제재 ‘뒷문’ 열어놓고 사드 비판하나

개성공단 폐쇄와 유엔 대북제재에 직면한 북한 경제가 예상과는 달리 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이 ‘KDI북한경제리뷰’ 1월호에 게재한 ‘총괄: 2016년 북한경제 동향 평가와 설명 가설’에 따르면 지난해 북·중 무역 규모는 58억3000만달러로 전년보다 7.3% 늘었다. 2014, 2015년에 감소했던 북·중 무역이 지난해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북·중 무역은 북한 대외무역의 90%를 차지한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지난해 연초부터 제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강력한 대북제재에 돌입했다.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 결정을 내렸고 미국과 일본도 독자 제재에 나섰다. 북한 경제가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상은 거꾸로였다. 

지난해 대중 수출은 6.1%, 대중 수입은 8.3% 증가했다. 대중 수출을 견인한 것은 대북제재의 핵심인 무연탄 등 지하자원 품목이었다. 무연탄 수출의 경우 대북제재가 실시된 지난해 중반에 잠시 주춤하다가 하반기에 빠르게 늘었다. 대북제재가 북한의 대외 상품교역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이 대북제재 시늉만 낸 채 뒷문을 활짝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중국은 북한 위협에 맞선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협박과 경제 보복을 서슴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한민구 국방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연내 사드 배치에 합의하자 묵과하지 않겠다는 경고성 발언을 쏟아냈다. 루캉 외교부 대변인은 3일 “우리는 한·미의 사드 배치 추진이 중국의 국가 전략 안전과 이익을 파괴하며 지역 전략 균형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 문제 해결과 평화,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고 압박했다.



관영매체인 환구시보는 “이대로라면 한국이 미국의 바둑돌로 전락할 것이고, 이는 한국인은 물론 동북아의 비극이 될 것”이라는 막말까지 했다. 통일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7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한국을 겨냥해 취한 보복성 조치가 43건에 이른다. 경제에서 문화 교류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이다.

중국이 핵·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북한에는 뒷문을 열어주면서 자위권 차원의 사드 배치에 보복과 협박을 일삼는 행위는 명백한 이중잣대다. 한·중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에 금이 가게 하는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중국은 사드에 딴죽을 걸기에 앞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부터 충실히 이행하기 바란다.



[서울경제]

​9. 정부의 ‘갑질 근절’ 일회성으로 끝나지 말아야

범정부 차원의 갑질 퇴치작전이 시작됐다. 정부는 지난주 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사회적 약자 보호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갑질문화 근절대책을 확정했다. 항공기 내에서 소란을 피우면 3년 이하 징역에 처하고 이유 없이 음주 후 아동·여성·장애인 등에게 폭력을 쓰면 구속 수사한다는 게 골자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에 원부자재 구매를 강요하거나 청년을 다수 고용하면 심층 조사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갑질이 경제·사회 전반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황 대행의 지적처럼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갈등을 키운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갑질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배금·물질만능주의가 왜곡된 행태로 표출된 병리 현상이다. 그만큼 완전히 뿌리 뽑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의미다.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열정 페이’ 논란이 식기도 전에 대기업 계열사가 아르바이트생을 상대로 수백억원의 임금을 떼먹는가 하면 ‘땅콩 회항’의 기억이 생생한데도 오너 2·3세의 난동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하청기업에 대한 원청업체의 횡포, 가맹점에 불리한 계약조건을 강요하는 프랜차이즈는 아예 뉴스 거리도 안 된다. 이러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지수가 일곱 번째로 높을 수밖에 없다.

만연한 갑질에 정부가 단기간 안에 일회성 조치로 대응하려 한다면 큰 판단착오다.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립서비스’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효과가 있으려면 좀 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관리 감독과 단속 같은 일회성 조치 외에 수직적인 대·중소기업 협력관계를 수평적으로 바꾸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를 줄여 갈등을 완화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오너의 자녀라도 능력에 맞는 지위를 부여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기업평가 시스템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매년 3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사회적 갈등 해소에 쏟아붓지 않아도 된다.



10. 원화가치가 올들어 세계 두번째 상승률이라는데

원화 환율이 수직 하락(원화가치 상승)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달러당 1,207원70전을 기록했던 원·달러 환율은 3일 1,147원60전까지 떨어졌다. 원화가치가 불과 한달 만에 5.2%나 상승한 것이다. 이는 주요 국가 가운데 호주(6.2%)에 이어 두 번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발언 이후 주요국 통화들이 대부분 달러화 대비 강세를 보였지만 원화의 절상폭은 유독 심한 편이다. 원화가치 상승폭은 대만달러(3.9%)나 엔화(3.3%), 유로화(2.6%) 등 수출 경쟁국에 비해서도 훨씬 크다. 

그러지 않아도 트럼프 미 대통령의 환율 관련 발언 수위가 심상치 않다. 대선 전부터 중국과 일본·한국 등 대미 무역흑자국을 상대로 공격에 나섰던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들어서는 아예 무역 당사국들을 특정하면서까지 비난 강도를 높이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조만간 환율조작국 지정 등 후속 조치를 통해 통화전쟁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우리도 통화전쟁의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미 재무부가 발표한 환율관찰 대상 국가에 포함돼 있는 만큼 환율조작국의 불똥이 언제 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불안한 움직임이 원화 환율에 그대로 반영되는 셈이다. 

급격한 원화가치 절상은 올 들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수출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들어 세계 제조업 경기는 미국과 일본·유럽 등의 회복에 힘입어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의 호전이야말로 우리 수출기회를 최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원화가치가 급격히 상승할 경우 눈앞의 기회도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만에 하나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등 인위적 조치가 겹칠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제품 품질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출국을 다변화하는 등 환율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배가돼야 할 시점이다.





주요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신동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어만두’ 생선을 포 떠서 만두피로 사용하는 별미

설날이면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풍경이 하나 있다. 어머니가 도마 소리를 내면서 하얀 가래떡을 써는 모습이다. 그리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만두를 빚었다. 펄펄 끓는 뽀얀 사골 국물에 떡만둣국을 끓여주시면 그 맛있는 한 그릇으로 나이 한 살 더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하얀 가래떡은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만두는 복을 상징한다고 하니, 떡만둣국 한 그릇에도 한 해의 행복을 기원했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만두는 원래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전해진 음식으로,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소를 넣고 먹기 좋게 아물려 만든다. 추운 겨울철 잘 익은 김치를 넣고 만두를 만들면 별미 음식으로 식구들이 참 좋아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야 그 김치만두가 전부인 줄 알았지만 음식을 공부하면서 껍질과 소의 재료, 조리법과 빚는 모양에 따라 아주 다양한 만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만두소의 주재료에 따라 김치만두, 호박만두, 고기만두, 버섯만두 등 다양한 만두가 있다. 조리법에 따라 음식 이름이 붙여지기도 한다. 만두를 빚어서 더운 장국에 넣고 끓인 것은 만둣국, 차게 식힌 장국에 넣은 것은 편수라고 부른다. 빚는 모양에 따라서는 세모 모양으로 빚은 변씨만두, 해삼 모양으로 빚은 규아상 등이 있고, 작은 만두 여러 개를 싸서 만든 대만두도 있다. 요즘엔 퓨전요리로 비빔만두, 잡채만두튀김, 과일탕수만두 등 무궁무진하게 만두가 응용된다. 

만두피는 대부분 밀가루로 만들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메밀이 많이 나는 지역에서는 메밀가루로 만두피 반죽을 하기도 했다. 메밀가루와 밀가루를 같은 비율로 섞어 익반죽을 한 뒤 질지 않게 반죽을 해 곱게 치대어 소를 넣으면 맛있는 메밀만두가 된다. 밀가루 대신 생선을 포 떠서 만두피로 사용하는 어만두(魚饅頭)도 있다. 어만두 하면 이름부터 좀 생소하게 느껴진다. 어만두는 서민층보다는 양반가에서 별미로 먹던 음식으로, 임금님 수라상에도 오를 만큼 귀히 여겼다. 

조선시대 반가(班家) 조리서의 대표적인 문헌인 ‘음식지미방’ ‘시의방’ 등에 보면 어만두에 대한 자세한 조리법이 나와 있는데 손이 무척 많이 가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생선살을 소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밀가루 반죽 대신 만두피로 사용하기 때문에 만드는 데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소는 기존 만두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만들고 겉을 얇게 뜬 생선포로 감싸서 쪄내는데, 생선포를 최대한 얇게 뜨되 쪘을 때 살이 부스러지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만두용 생선은 민어, 숭어, 도미, 광어, 병어, 준치 등 흰 살 생선이면 어느 것이나 좋다. 봄에는 준치나 도미, 여름에는 민어가 대표적으로 쓰였다. 만드는 법은, 먼저 흰 살 생선의 살을 7∼8㎝ 길이로 얇게 포를 뜬다. 이때 얄팍하고 일정하게 떠야 모양이 예쁘게 만들어진다. 생선포에는 소금과 후춧가루를 뿌려 밑간을 해둬야 맛있다. 소는 대개 다진 쇠고기와 채 썬 표고, 석이를 양념하여 볶고 오이도 채 썰어 절인 후 볶는다. 데친 숙주와 볶은 오이, 볶은 쇠고기 등을 섞어 소를 만든다.



만두를 빚을 때는 포 뜬 생선의 안쪽에 녹두녹말을 뿌린 뒤 소를 한술씩 떠 넣고 잘 아물려 겉에도 녹두녹말을 씌워준다. 이것을 김이 오르는 찜통 속에 넣고 찬물을 뿌려 찐다. 찔 때나 꺼낼 때 찬물을 뿌리면 윤기가 나서 좋다. 쪄낸 뒤에는 가위로 가장자리를 만두 모양으로 다듬는다. 

어만두와 함께 곁들이로 홍고추, 표고버섯, 석이버섯 등을 골패 모양으로 썰어 녹말에 굴려 끓는 물에 데친 다음, 찬물에 헹궈 접시에 함께 담으면 색감이 예쁘고 담음새도 푸짐해진다. 어만두는 초간장이나 겨자즙과 함께 내는데, 주로 교자상이나 주안상 등에 올려져 양반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사실 요리사인 필자 또한 어만두를 많이 접해보지는 못했다. 어린 시절 이모께서 어만두 먹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식 요리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었던 이모는 나름 한식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대단했다. 손맛이 특히 좋았던 이모는 음식을 만들어 내놨을 때 가족들의 반응이 좋으면 정말 해맑게 미소를 짓곤 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은 사람이 즐거워할 때의 그 기분이란! 요리사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때 이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생선포를 최대한 얇게 뜨되 살이 부스러지지 않게 해야 성공
홍대 ‘편의방’ 중식당 눈이 휘둥그레지는 어만두 인기

이모는 흰 살 생선에 고기와 야채를 넣어 만든 만두를 내오셨다. 그때는 끓는 물에 삶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찜통에 살이 부서지지 않게 찐 것이었다.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느낌은 입안에서 그냥 사르르 녹았다. 얼마나 부드러웠는지 어떻게 이런 만두가 있는지 감탄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최근 홍대에 맛있는 어만두가 있다고 해서 가봤다. 편의방이라는 간판을 보니 중국집이다. 중식당이기에 생선에 만두소를 넣고 기름에 바삭 튀길 거라 상상했다. 손님이 많아 좀 대기하다 들어가 보니 자장면이나 짬뽕을 드시는 분이 꽤 있어서 일반 중식당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군데군데 찐만두인지 물만두인지 하얀 만두를 손님들이 맛있게 먹고 있었다. 혹시 저 만두인가 생각하는 순간 주문한 어만두가 나왔다. 배가 고파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오! 이 맛은 뭐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부드러운 생선 속에 고수의 향이 은은히 올라오면서 입안에서 행복이 요동쳤다. 겨자소스를 곁들여 먹으니 어만두 맛이 한층 더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단 만두피가 살짝 두꺼워 따로 도는 느낌이 조금 있었는데, 바로 만든 어만두였다면 소와 더 잘 어우러졌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많은 음식을 내는 식당에서 이 정도 수준이라면 정말 대만족이다. 

지난해에 필자 또한 손님을 위해서 어만두를 만들어 드린 적이 있다. 물론 한국의 어만두를 일본식 요리로 변형시켜 완성했다. 민어를 얇게 포 떠 새우와 시소 그리고 쇠고기를 조금 넣어서 어만두를 만든 다음 담백하면서 깔끔한 오완(국물요리)으로 완성했더니 반응이 참 좋았다. 그 맛은 감칠맛이 듬뿍 담긴 육수에 입에서 녹아 없어지는 생선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상상이 되실 듯. 

이번 설에는 집에서 일반 만둣국이 아닌 어만두로 더욱 특별한 새해맞이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2. [조선일보][일사일언] 음악이 건네는 위로

영국 오케스트라 협회의 리더십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수업을 받고 있다. 오케스트라 행정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업계에 대해서 배우고, 오케스트라의 사회적 역할과 음악의 미래를 생각한다.


요즘 가장 관심이 가는 분야는 청중이다. 공연장에 오는 사람만이 아니라 집에서 라디오를 듣는 사람,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을 부는 초등학생도 다 청중이다. 오케스트라는 늘 어떻게 하면 좀더 많은 사람에게 음악을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전체 인구에 비해서 음악을 누리는 사람의 숫자는 미미할 정도로 적다. 더구나 연주회는 그 시간 그곳에 함께 있는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경험이다. 공연장에 올 만한 여유가 있는 소수의 사람과만 그 순간의 특별함을 나눌 수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사실 음악 하는 사람도 공연에 자주 못 간다. 음악 하는 사람이 먹고살기 바빠서 음악을 못 듣는다고 하면 역설적이지만, 저녁과 주말이 없는 직업을 가졌고 다들 그렇듯 집에도 할 일이 산더미인데 내가 하는 일 외에 다른 공연을 듣고 보러 가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최근에 본 공연도 워낙 지친 상태로 가서 자리에 앉을 때까지도 그냥 밥이나 먹으러 갈 걸 후회했다. 프로그램은 무반주 사중창으로 부르는 17세기 초기 음악이었다. 그런데 성악가들이 입을 여는 순간 그야말로 천상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눈이 번쩍 뜨이고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 온 듯하면서 어느새 마음이 개운해졌다. 음악에는 그런 힘이 있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좋은 공연에 가면 새 기운을 얻는다. 각박한 삶이 정서적으로 잠시나마 풍요로워진다. 나는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세상을 살아갈 힘을 줄 수는 있다고 믿는다. 연주자는 청중이 음악을 들을 때 그 아름다움에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기를 바라면서 무대에 선다.



3. [매경이코노미][신병주의 ‘왕의 참모로 산다는 것’]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 관상만으로 왕이 될 재목 알아본 ‘외교통’

태종은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 정몽주를 제거했고, 1398년 왕자의 난 때는 정도전과 방석이 희생됐다. 

태종이 피를 흘려 왕이 되는 과정에서 많은 참모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인물이 바로 하륜(1347~1416년)이다. 태조에게 정도전이 있었다면 태종에게는 하륜이 있었다. 하륜은 태종을 왕위에 올리는 데 기여하고, 왕이 된 태종을 보필하면서 마지막까지 ‘태종의 남자’로 살아갔던 인물이다.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 하륜이 정평에서 졸하였다. 부음이 이르니, 왕이 심히 슬퍼해 눈물을 흘리고 3일 동안 철조(撤朝·나라에 변고가 생기거나 국상(國喪)을 당했을 때에 조회를 멈추던 일)하고 7일 동안 소선(素膳·육류를 금함)했다. 쌀·콩 각각 50석과 종이 200권을 치부(致賻·임금이 특명으로 신하에게 부의를 내려 주던 일)하고 예조좌랑 정인지를 보내어 사제(賜祭·임금이 죽은 신하에게 제사 지내는 일)하게 했다.”

1416년(태종 16년) 11월 하륜이 사망했을 때의 기록이다. 하륜에 대한 태종의 신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륜의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 본관은 진주다. 순흥부사를 지낸 하윤린의 아들이다. 공민왕이 본격적으로 개혁정치를 펼치던 1360년(공민왕 9년)에 국자감시(國子監試·고려시대 진사를 뽑는 시험), 1365년에 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진출했다. 이인복과 이색의 문하에 들어가 신흥사대부의 길을 걸었다. 1367년 신돈의 측근 비행을 탄핵하다가 파직되기도 했지만 고려 말 공민왕, 우왕대에 주요 관직을 두루 지냈다. 

하륜에게 정치적 위기가 온 것은 1388년 최영이 주도한 요동(遼東)정벌에 반대해 양주로 유배됐을 때다. 이후 복권돼 1391년(공양왕 3년)에 전라도 도순찰사가 됐다가 조선 건국 후에는 경기좌도 관찰출척사가 돼 부역제도를 개편, 전국적으로 실시했다.

조선 건국 후 하륜의 활약이 가장 돋보인 것은 새로운 도읍지 선정 과정에서였다. 처음 태조는 신도(新都)를 계룡산 일대로 정하고자 했으나, 하륜이 강력히 반대했다. 

“태조가 계룡산에 도읍을 옮기고자 했는데, 감히 간하는 자가 없었다. 헌데 하륜이 힘써 청해 계룡산 도읍 이전이 무산됐다.”

하륜은 안산을 주산으로 해 현재 신촌 일대인 무악을 새 도읍지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태조는 결국 한양 천도를 주장한 정도전과 무학대사 등의 의견을 수용해 1394년 10월 북악을 주산으로 하는 한양으로 새 도읍지를 정했다. 1394년에는 명나라에 표전문을 보내는 문제로 정도전과 충돌하기도 했다. 당시 명나라에서는 조선에서 보낸 표전문의 내용이 불손하다며 그 중심에 있던 정도전을 명나라로 보낼 것을 요구했다. 대부분이 이를 반대했지만 하륜은 외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누군가 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정도전을 대신해 직접 명으로 가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다. 

태조의 신임을 받던 하륜이 본격적으로 태종의 남자가 된 과정에는 ‘관상’에 관한 일화가 있다. ‘태종실록’ 총서의 기록에는 하륜이 본래 관상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친구이자, 태종의 장인인 민제에게 “내가 관상을 많이 보지만 공의 둘째 사위 같은 사람은 없었소. 내가 뵙고자 하니 공은 그 뜻을 말해주시오”라고 부탁했다. 민제의 주선으로 태종을 만난 하륜은 마음을 기울여 섬기게 됐다. 관상을 본 하륜이 이방원의 풍모를 보고 먼저 접근했다는 것은 킹메이커로서 하륜의 자질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정적 정도전의 존재가 두 사람을 확실히 결속시켰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당시 왕자였던 이방원은 태조의 절대적인 신임 속에 세자 방석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정도전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컸다. 하륜 또한 정도전의 미움을 받아 충청도관찰사로 내려갔던 만큼 정도전을 껄끄럽게 여겼다. 15세기 학자 성현이 쓴 ‘용재총화’에는 하륜이 충청도관찰사로 내려가면서 베푼 환송연에서 일부러 이방원의 옷에 술을 쏟고 사과를 핑계로 이방원과 정도전 제거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한 장면이 소개돼 있다. 

특히 1398년 왕자의 난 때 하륜은 태종에게 정도전과 방석에 대한 선제공격을 제안함으로써 태종이 주도권을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왕자의 난이 성공한 후 태종은 거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실질적인 맏형 방과(후의 정종)를 왕위에 올렸다. 정종이 왕위에 오르자 하륜은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제수받고 정사공신(定社功臣) 일등에 오른다. 이어 1400년 11월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하자, 다시 좌명공신 일등에 봉해진다. 두 번 연속 일등공신이 되면서 하륜은 태종의 참모로서 그 역할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1402년(태종 2년) 하륜은 명나라 황제 영락제의 등극을 축하하는 사절로 명나라를 방문해 태종의 지위를 확실히 인정받는 성과를 얻었다. 이듬해 4월 명나라 사신 고득 등과 함께 황제의 고명과 인장을 받들고 온 것이다. 태종은 하륜에게 특별히 토지와 노비를 하사해줬다. 

태종의 남자로서 하륜이 보여준 대표적인 업적은 ‘연려실기술’에 기록돼 있다. 태종이 왕에 등극한 뒤, 태조는 고향인 함흥으로 돌아갔다. 태종은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러 번 사신을 보냈지만, 태조는 오히려 이들을 죽이는 것으로 반감을 표시했다. 바로 ‘함흥차사’다. 태조 주변 인물의 설득으로 태조는 마음을 바꿔 서울로 돌아오고 태종은 아버지를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하륜은 태조의 분노가 아직도 풀리지 않는 것을 의식해 장막의 기둥을 크게 만들자고 제안했다.



놀랍게도 태조가 태종을 향해 쏜 화살은 하륜이 미리 대비한 나무 기둥에 박혔다. 그뿐 아니라 옥쇄를 전해줄 때도 태조는 쇠방망이를 소매 속에 숨겨뒀지만 하륜은 태종에게 “직접 받지 말고 내시를 시켜 받도록 하십시오”라고 조언함으로써 태종을 구했다. 이에 태조는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다”라며 태종을 인정했다. 하륜의 기지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신문고 설치와 저화 유통과 같은 주요 정책 결정에도 태종 곁에는 늘 하륜이 있었다. 1401년 태종은 백성들의 민원을 듣는 신문고 설치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조정 신료들 다수가 우려를 표방했으나, 하륜은 신문고의 적극적인 시행을 주장했다. 

“신문고를 치는 법이 사실이면 들어주고, 허위면 죄를 주고, 월소(越訴·하급 관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직접 상급 관아에 소송을 내던 일)로 치는 자도 또한 이같이 하는 것입니다. (중략) 관리가 백성의 송사를 결단함에 있어 왕에게 아뢸까 두려워해 마음을 다해 세시하게 해서, 결국 백성이 그 복을 받으니, 실로 자손 만세 좋은 법입니다.”

비록 제대로 유통되진 못했지만 지폐인 저화(楮貨)의 유통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하륜이 추진한 정책 대부분은 태종의 왕권 강화를 위한 것으로 그의 구상에는 왕권이 튼튼한 조선 만들기가 있었다. 하륜은 태종의 뜻을 받들어 ‘고려사’와 ‘동국사략’ 등의 역사 사/서 편찬 작업에 착수했으며, 1408년에는 태조가 승하하자 ‘태조실록’ 편찬에 나서 5년 뒤 완성했다. 

태종의 절대적인 신임 속에 하륜은 1412년 8월에 다시 좌의정이 되고 1414년 4월에 영의정부사가 됐다. 이 무렵 하륜은 70세를 바라보는 원로대신이었는데 70세가 되던 1416년 선왕의 능침을 순시하러 함길도에 들렀다가 병을 얻어 객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태종의 참모로서 그 역할을 다했다.

실록의 졸기에는 하륜에 대해 ‘책략가면서 언행은 신중했던 인물’로 묘사한다. 성리학 이외 다양한 학문에도 정통했으며 음양, 풍수지리에도 해박했다.

참모로서 하륜은 특히 외교 부문에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명나라와 외교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시점에 외교 문서 작성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고, 직접 명나라에 들어가 외교 현안을 여러 차례 해결했다. 

하륜은 고려 말 관직 생활을 시작했지만 조선 건국 후 태조와 태종의 연이은 신임을 받아 조선 건국 주역 중 한 명으로 활약했다. 정몽주, 정도전, 최영, 이성계, 이방원 등 여말선초를 이끌어간 쟁쟁한 인물에 비해 인지도는 낮지만, 참모로서의 위상은 결코 낮지 않았다.



4. [한국일보][우리말 톺아보기] ‘김밥’의 발음, 어떻게 할 것인가

밥은 한국인의 주식이기 때문에 한국어에 밥과 관련된 어휘들이 많이 있다. 새벽밥부터 아침밥, 점심밥, 저녁밥까지 밥 시간대 별로 밥들이 있고 밥을 만드는 재료에 따라 쌀밥, 오곡밥, 잡곡밥, 팥밥, 나물밥, 메밀밥, 콩나물밥, 콩밥, 계란밥, 약밥, 쑥밥, 굴밥, 쌈밥, 김밥 등이 있으며 밥을 만들거나 담는 형식에 따라 비빔밥, 고봉밥, 사발밥, 한솥밥, 덮밥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밥들을 발음할 때 [밥]으로 발음할지, [빱]으로 발음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먼저 받침 ‘ㄱ, ㅂ, ㅌ, ㅍ’ 뒤에 연결되는 ‘ㄷ’은 자연스럽게 된소리로 발음되기 때문에 새벽밥, 저녁밥, 오곡밥, 잡곡밥, 팥밥, 약밥, 쑥밥, 한솥밥, 덮밥 등은 [빱]으로 발음하면 된다. 

문제는 받침 ‘ㄴ, ㄹ, ㅁ, ㅇ’ 뒤에 오는 밥을 어떻게 발음할 것이냐 하는 것인데, 표기상으로는 사이시옷이 없더라도, 관형격 기능을 지니는 사이시옷이 있어야 할 합성어의 경우에는 뒤 단어의 첫소리 ‘ㅂ’을 된소리로 발음한다는 규정에 따라 아침밥, 점심밥, 비빔밥, 고봉밥, 사발밥 등은 [빱]으로 경음화시켜 발음해야 한다. 

그러나 쌀밥, 나물밥, 메밀밥, 콩나물밥, 콩밥, 계란밥, 굴밥, 쌈밥, 김밥 등은 관형격 합성어가 아니라 밥을 만드는 재료와 관련된 합성어이기 때문에 표기대로 [밥]으로 발음한다. 

따라서 ‘김밥’은 [김:밥]으로 발음해야 하지만 대다수의 언중들이 [김:빱]으로 발음하면서 괴리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립국어원은 2016년 3분기 국어심의회의 결정으로 [김:밥/김:빱] 복수 발음을 허용하게 돼 이제는 어느 것으로 발음해도 무방하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영국의 여성 참정권

1918년 2월 6일 영국 의회가 30세 이상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운동은 저 사진 속 여성들이 태어나기도 전이었을 1860년대부터 시작됐다. 

옥스퍼드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여성 참정권운동가 에밀리 데이비슨(Emily W, Davison, 1872~1913)이 런던 인근 엡섬다운스 더비에 출전한 국왕 조지5세의 경주마가 결승점으로 질주하던 순간 몸을 던져 숨진 게 불과 5년 전인 13년 6월이었다. 그의 외투에는 ‘Votes ForWomen’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저 사진의 삼각 깃발에 새겨진 문구도 그거였다. 

여성운동 지도자 에멀린 팽크허스트(EmmelinePankhurst, 1858~1928)는 서명과 의회 청원으로 참정권법을 얻으려다 잇달아 실패하자 1903년 ‘여성사회정치연맹(WSPU)’을 조직, 비합법 투쟁을 시작했다. 런던 도심의 진열장 유리창 부수기부터 국립미술관 작품 훼손, 전철이나 유명 정치인의 집 방화 등 그들의 투쟁은 가히 무정부주의자들의 그것을 방불케 했다.



데이비슨도 서프라제트(Suffragette, 온건파 운동가 Suffragist와 구분해 전투적 참정권 운동가를 지칭하던 말)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장례식은 격렬한 항의 시위로 번졌고, 체포와 구금, 투옥과 단식투쟁이 뒤따랐다. 

1918년의 참정권은 하지만 여성의 1차 대전 전시체제 협력의 보상이기도 했다. 팽크허스트는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의 참전을 지지하며 여성들의 협력을 적극 독려했고, 남성 의회는 그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이 21세 이상 참정권을 온전히 인정한 것은 또 10년 뒤인 1928년 7월이었다. 

여성 참정권을 최초로 인정한 국가는 1893년의 영국령 뉴질랜드였고, 유럽에서는 1906년 핀란드가 문을 열었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 획득은 북유럽과 소비에트연방, 캐나다보다도 늦었다. 하지만 서프라제트의 투쟁과 성취는 세계 여성 참정권운동의 분수령이 됐다. 미국의 참정권운동도 거기서 자극 받아 확산됐고, 1920년 수정헌법 19조로 결실을 맺었다. 그 힘이 저 웃음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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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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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황교안 권한대행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대권구도가 요동치면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보수의 대안으로 급부상하는 모양새다. 가뜩이나 ‘최순실 게이트’로 여권에 불리하게 돌아가던 대권 판도가 야권으로의 쏠림이 가속화하면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독주가 굳어질 공산이 커졌다. 말하자면, 반 전 총장의 중도 사퇴로 구심력이 크게 떨어진 보수층의 위기의식이 ‘황교안 대안론’의 배경인 셈이다.

그제 반 전 총장의 전격 사퇴발표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황 권한대행이 문 전 대표에 이어 2위로 뛰어오른 것도 그래서다. 유승민 의원도 반사이익을 누린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새누리당은 반색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보수·중도를 아우르려는 반 전 총장 영입에 회의적이던 차에 그의 지지층 상당수가 황 권한대행에게 돌아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인명진 비대위원장도 “당연히 우리 당 후보가 됐으면 좋겠다”며 노골적인 추파를 던졌다.

야권이 진작부터 황 권한대행 견제에 안간힘을 쓴 것도 그의 잠재력을 간파했던 때문일 것이다. 전례에도 없는 권한대행의 국회 대정부질문 출석을 강요하고,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라는 생뚱맞은 호칭을 떠안겼다. 대권도전 의사가 없다는데도 출마 여부를 줄기차게 캐물은 것만 봐도 그에 대한 알레르기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된다. 반 전 총장 영입에 공을 들이던 바른정당도 ‘권한대행의 대행체제 초래’ 운운하며 황 권한대행의 정치적 행보를 경계하기에 바쁜 모습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라고 대선에 나가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탄핵심판이 인용된다면 대선이 보궐선거로 치러지게 되므로 황 권한대행은 대선 30일 전까지만 옷을 벗으면 된다. 그가 출마하면 헌법에 따라 경제부총리가 대행직을 승계한다. 정치권이 뭐라든 유권자가 원하면 그만이다. 때로는 본인의 의지도 접어야 하는 게 정치다. 최순실 사태 책임분담론 등의 비판도 전적으로 본인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다만 탄핵심판이 아직 진행 중인 만큼 섣부른 언행은 금물이다. 무엇보다 “심판이 선수로 뛰는 격”이란 구설에 오르지 않도록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에 매진하는 게 요긴하다. 황 권한대행이 정치권을 기웃거려도 될 만큼 지금의 나라꼴이 한가하지 않다는 엄중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2. 국내 첫 인터넷은행의 순항 기대한다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인 K뱅크가 어제부터 실거래 운영 점검에 나섰다고 한다. 내부적으로 금융결제원의 금융공동망과 연결해 계좌 개설, 여·수신 상품 가입 등 거래업무 테스트를 시작한 것이다. 서비스와 보안성 등을 최종 점검하는 ‘베타 테스트’ 점검이다. K뱅크는 점검이 끝나는 대로 이달 말께 정상 영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소비자들의 편의 증진과 금융산업 혁신이라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설립 취지를 살려 순항하기를 기대한다.

인터넷전문은행은 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을 통한 ‘무(無)점포 비(非)대면’ 거래가 특징이다. 기존 은행과 달리 사실상 점포 없이 인터넷과 모바일, ATM 등 전자매체로 영업이 이뤄지게 된다. 지점과 창구 직원이 없으니 인건비와 부동산 비용 등을 줄일 수 있다. 절감한 비용으로 각종 수수료는 낮추고 예금금리는 높여 소비자 혜택을 늘린다는 장점을 지닌다.

은행산업의 경쟁을 촉발하는 ‘메기’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정보통신기술과 융합된 간편 결제 및 송금, 모바일 자산관리 등 창의적이고 특화된 서비스로 은행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금융 혁신과 핀테크 생태계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선발주자인 K뱅크가 순조롭게 정착해야 하는 이유다.

인터넷전문은행은 미래 성장동력이자 핀테크 산업의 총아로 불린다. 미국(1995년)과 일본 (2000년) 등이 일찌감치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 온 배경이다. 미국의 경우 현재 20개 이상이 성업 중이며, 일본도 8개사가 연평균 30%의 성장률을 기록 중이라고 한다. 중국도 텐센트와 알리바바 등이 설립한 위뱅크, 마이뱅크 등 5개가 하루가 다르게 영역을 확대하는 추세다.

우리는 K뱅크에 이어 카카오뱅크가 상반기 출범 예정으로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다. 시작이 늦은 만큼 조기에 안착하려면 대규모 자본 확충과 투자 등 적극적 육성이 절실하다. 하지만 주력 주주인KT(K뱅크)와 카카오(카카오뱅크)가 비금융 주력기업으로 의결권 있는 지분을 4%밖에 가질 수 없는 ‘은산(銀産) 분리제도’가 걸림돌이라고 한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순조로운 정착을 위해 족쇄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



[매일신문]

3. 안희정의 ‘합리적 진보’, 가능성을 넘어 실현을 기대한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합리적 진보’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안 지사는 2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뒤 기자간담회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 교체를 향해 도전하겠다”고 했다. 의미는 분명하다. ‘투쟁의 시대’와의 결별이자 ‘화합과 미래로의 전진’이다.



그는 “젊은 시절 화염병과 짱돌을 들고 많이 싸워봤고, 30년 정당인으로서 비타협적 투쟁도 무수히 해봤다. 그러나 투쟁으로 풀리지 않는 현실을 목격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과거를 갖고 싸우는 정치로는 미래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 제 확고한 의지”라고 말했다. 진영 논리에 매여 있는 야권의 다른 대선주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유연하고 합리적인 접근 방식이다.



이런 접근 방식은 다른 중요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노동시장 유연화는 보수와 진보가 합의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대해서도 여러 번 말을 바꾼 문재인 전 대표와 달리 처음부터 “이미 결정된 사안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대선주자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포퓰리즘 공약에 대해서도 “국민은 공짜밥을 원하지 않는다”며 거부한다. 군 복무 단축 공약도 “표를 의식하는 정책 공약으로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없다”고 비판한다.



민주당 ‘진영’에서 보자면 모두 거꾸로 가도 한참 거꾸로 가는 ‘소신’이다. 대선 본선은커녕 경선에서 떨어지려고 작정했다는 소리까지 나올 만하다. 안 지사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길이 “전통적인 여야 지지 기반으로부터 버림받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의 길”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점이 안 지사를 다른 대선주자들보다 더 돋보이게 한다. 자기 진영에서 버림받을 수 있음에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용기는 국가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래야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모두를 아우르는 정치적 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 지역 간, 세대 간,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이 임계점으로 치닫는 우리의 현실은 이런 덕목을 더욱 필요로 한다. 안 지사에게서 그런 덕목을 갖춘 지도자 출현의 희망을 본다.



4. 취지는 좋은데 불법 양산하는 ‘세림이법’, 보완책 서둘러라

취지는 좋지만 현실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지거나 부작용을 빚는 법이 있다. 지난달 29일 전면 시행된 속칭 ‘세림이법’(개정 도로교통법)이 그렇다. 어린이 통학 차량의 동승 보호자 탑승을 의무화한 세림이법이 시행됐지만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일이 허다하며 이해 당사자인 학원 업계는 벌써부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세림이법은 지난 2013년 충북 청주에서 당시 3살이던 김세림 양이 통학 차량에 치여 숨진 사건이 계기가 되어 개정된 도로교통법이다. 통학용 차량 신고, 동승 보호자 필수 탑승과 통학 차량 운전자`교사 교육 확대 등이 골자이다. 세림이법은 지난 2015년 1월 29일 첫 시행됐지만, 15인승 이하 승합차를 운용하는 소규모 학원의 경우 2년의 유예기간을 줘 지난달부터 전면 확대 시행됐다.



이 법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동승 보호자 필수 탑승 조항이다. 이제 학원들은 13세 이하 아동이 타는 통학 차량을 운행할 때는 운전자 외에 보호자를 탑승시켜야 하지만 인력을 고용할 형편이 안 된다는 이유로 가족을 동승 보호자로 태우거나 아예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규정 위반으로 단속되더라도 과태료 20만원 처분을 받는 것이 전부여서, 사람을 쓰느니 과태료를 물겠다는 기류마저 학원 업계에서 형성되고 있다. 심지어는 골치 아픈 통학 차량을 없애고 자가용으로 학생들을 실어나르는 학원들도 일부 생겨나고 있어 이 법이 도리어 아동들을 안전 사각지대로 몰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아동들의 안전을 돈 문제로만 결부시키는 학원 업주들의 인식에도 문제가 있지만, 현실 적용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이 2년 유예기간 동안 수립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세림이법은 또 하나의 탁상행정 사례로 꼽힐 만하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가 추진하는 대안은 벤치마킹할 만하다. 경기도는 만 60세 이상 어르신이 통학 차량 안전지도사로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연계사업을 추진키로 했는데, 교통안전도 확보하고 노인 일자리도 창출한다는 점에서 도랑치고 가재도 잡는 격이다. 정부와 지자체, 교육 당국은 세림이법 시행에 따른 후속 보완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서울신문]

5. 美 의회서 공론화된 북한 선제타격론

미국 의회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이 공론화한 것은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탄핵 소추입네, 조기 대선입네 하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둔감해진 것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발족과 더불어 미국의 대북 위기감은 시시각각 긴장도를 더하고 있다. 미국 상원은 지난달 31일 이례적으로 북핵 청문회를 열었다.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조차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다는 방증으로 봐야 할 것이다.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은 “북한의 위협은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라면서 “미국이 발사대에 있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선제 공격할 준비를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비록 반문의 형태이긴 했지만, 명백히 대북 선제타격론을 들고 나섰다.

대북 선제 타격은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영변에 있는 핵시설을 선제적으로 파괴한다는 빌 클린턴 미 행정부의 계획이었다. 뒤늦게 알아챈 김영삼 정부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 남한의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점을 들어 미국을 설득해 중단시켰다.



당시 미군이 행한 모의실험으로는 개전 24시간 안에 군인 20만명을 포함해 수도권 중심으로 150만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전쟁 1주일을 넘어서면 약 500만명의 사상자가 나온다고 하는데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런 실험 결과를 미국이 모를 리 없겠지만 한국으로서는 선제타격론이 미국에서 구체화하지 않도록 미국 전략자산의 상시 배치가 더 효율적임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 정책을 담당하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이 모두 대북 강경파라는 점이다. 어제 트럼프 행정부의 각료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매티스 국방장관만 해도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대북 선제타격론에 대해 “어떤 것도 논의 대상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가능성을 열어 뒀다.



오늘 열리는 한·미 국방장관의 의제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의 인식 공유와 한국과 미국의 강력한 대응 의지가 될 것이라고 한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굳건한 한·미 군사동맹을 확인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미국에서 일고 있는 선제타격론의 진의에 대해 매티스 장관의 의중을 떠봐야 할 것이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의 이지용 교수는 어제 발표한 보고서에서 실행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해법으로 선제적 타격론을 제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 경우 중국과 북한의 강력한 반발과 함께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지적처럼 북한·북핵 문제는 남북 관계를 통해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관리해야 할 영역이다. 이 같은 인식과 함께 선제 타격이 불러올 한반도의 비극적 참화는 다시는 있어서 안 될 일임을 미 행정부와 의회에 각인시켜야 하겠다.



6. 혼돈의 대선, 표심만 노리는 이합집산 안 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대선 구도는 다시 혼돈으로 치닫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대세론 확산에 주력하고 있고, 다른 여야 후보들은 반문(反文·반문재인) 세력 결집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형국이다. 반 전 총장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제3지대론이나 빅텐트론은 주춤하고 있지만 세 확산을 위한 목적의 이합집산 움직임은 더욱 거세지는 조짐이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번 대선도 시간에 쫓겨 알맹이 없는 선거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국민이 많아지고 있다. 선거공학적 이합집산이나 짝짓기식 세 불리기 경쟁은 결국 한국의 정치문화를 후퇴시키고 선진국을 향해 가는 동력마저 차단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대선이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고 치유하기 어려운 분열로 몰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직면한 모순과 굴곡들이 쟁점이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논쟁과 해법이 제시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동안 대선 주자들이 중구난방식으로 발표한 정책과 공약의 질도 문제가 많다. 우선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정책들도 눈에 보인다. 화두로 던지는 양극화 문제나 중산층 복원, 재벌 개혁과 복지 확대 등의 내용을 보면 2012년 대선 당시와 거의 같다. 한마디로 재탕 삼탕식 공약이 쏟아지는 느낌이다.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설익은 공약도 이미 봇물을 이루고 있다. 서울대·수능 폐지, 재벌 해체, 모병제 도입 등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성장론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책 공약으로 포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드러난 국정 운영의 문제점들을 개혁하자는 것이 국민의 열망이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어 이합집산의 정치쇼를 벌이는 것에 국민은 더이상 속지 않는다. 국민의 가슴에 와 닿는 대한민국 적폐 청산과 새로운 국가 개혁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대선에서는 저급한 인기몰이식 경쟁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를 질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시대정신이자 국민의 간절한 바람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평화적 촛불시위를 통해 부정한 권력을 끌어내릴 정도로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은 성숙해 있다. 대선 주자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대목이다.



[조선일보]

7. 구조조정커녕 세금으로 부실大 연명시킨 엉터리 행정

2015년 교육부 평가에서 D등급을 받은 26개 대학의 2016년 예산 지원이 전년보다 오히려 더 늘었다. 지난해 이들 대학에 들어간 나랏돈은 2729억원으로 전년도 2520억원보다 209억원이 많다. 26개 대학 가운데 16곳이 부실대 판정을 받은 후 예산 지원을 더 받았다고 한다.


정부는 대학들을 A~E 다섯 단계로 평가해 최하위 D·E등급에 대해선 정부 재정 지원 사업 참여를 박탈한다고 2014년 발표했다. 부실 대학을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부실 판정을 해도 타 부처나 지자체에서 예산 지원을 한 경우가 많았다. 부처 간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교육부는 타 부처에 '부실대 재정 지원을 자제해달라'는 협조문을 보낸 게 다였다. 그나마 지자체에는 공문조차 보내지 않았다. 교육부 스스로도 부실대에 세금을 퍼줬다. 3~5년에 걸쳐 추진된 재정 사업의 경우 중간에 부실 판정을 받더라도 예산 지원을 계속했다. 이런 식으로 2014년부터 2년간 D등급 받은 대학에 들어간 국민 세금이 600억원이다.


저출산 여파가 곧 대학으로 몰아친다. 2023학년에는 대학 정원에서 무려 11만명이 모자랄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 있다간 상당수 대학이 도산해 학생들만 피해를 입는다. 그 전에 구조조정을 하자고 해놓고 실제로는 엉터리 행정을 편 것이다. 부실 대학들이 국민 세금으로 연명한 사이 우리 대학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더 떨어졌다.


최근 몇 년간 중하위권 대학에서는 경쟁적으로 교육부 퇴직 관료들을 보직교수로 영입했다. 이 퇴직 관료들이 부실 대학에 세금을 끌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부실 대학들은 세금을 끌어올 수 있으면 교육부 아닌 다른 부처 관료들도 데려간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하려면 정부부터 배제해야 한다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다.



8. 美 국방장관 첫 방문국이 한국이 된 의미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어제 방한해 황교안 총리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을 만났다. 오늘은 한민구 국방장관과 회담한다. 미국의 새 대통령 취임 2주 만에 국방장관이 전 세계 국가 중에서 한국을 가장 먼저 방문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새겨봐야 한다.



​ 일단 매티스 장관은 트럼프 임기 초반에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을 현장에서 평가하고 이에 대응할 한·미 연합 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서울을 첫 방문지로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 초기에 일어났던 북한의 도발이 재현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2009년 3월 미국 여기자 두 명 억류, 4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 5월 핵실험으로 오바마 정부를 뒤흔들었다.


미국 새 정부는 오바마 정부와는 다른 대북 접근법을 모색할 가능성도 크다. 그 가능성 중에 군사적 선택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열린 미 상원 외교위원회 북한 청문회에서 이런 분위기가 나타났다. 이 청문회에서 미 상원의원들은 "북한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 "김정은을 암살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냐" 는 등 군사적 함의를 가진 이례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미국은 한국의 비상한 정치 상황도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조만간 등장할지 모를 한국의 새 정부가 사드 등 한·미 동맹 의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심각한 문제다. 매티스 장관 방한에 맞춰 일레인 번 전(前) 미 국방부 부차관보가 "우리가 동맹국 중 누구를 걱정하는지, 동맹국은 무엇을 할 것인지 등을 놓고 재평가해야 한다"고 한 것은 곱씹어봐야 할 언급이다. 매티스 장관은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사드는 오로지 방어 시스템으로 한·미가 사드 배치를 논의하는 것은 북한의 도발 위협 때문"이라고 했다.



한·미 간에는 내년 중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예정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 한국의 분담금이 부족하다는 언급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이임한 리퍼트 전 주한 미 대사는 "한국인들은 절대로 '무임승차자'가 아니다"며 평택 기지의 건설 비용 중 "96%를 한국이 부담하고 있다"고 했다.



한·미와 같은 혈맹 사이에도 돈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다만 이 문제가 필요 이상으로 부각되는 것은 양측 모두 피해야 한다. 다행히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후에는 한국에 부정적 언급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비상한 시기에 한·미 동맹에 요구되는 것 역시 지혜와 현명함일 것이다.


[매일경제]

9. 2월국회 재벌개혁만 거론말고 노동개혁 진전시켜야

2월 임시국회가 야권의 경제민주화법 '떨이처리' 국회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실상 대선 전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이번 국회에서 한번에 털고 가자는 전략인 듯한데 그렇게 쉽게 처리할 법안들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이번 국회에서 처리할 개혁입법을 지난달 일찌감치 선정했다. 여기에는 상법개정안 등 재벌개혁 목적의 법안들이 공통적으로 포함됐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재벌개혁은 정치·경제 권력의 부정한 결탁과 국민 피해를 막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며 소액주주 권리보호를 위한 전자투표제와 집중투표제 도입·감사위원의 독립성 확보·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을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 통과를 역설했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전경련 해체도 주장했다.

상법개정안에 대해서는 그 부작용을 염려하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 왔다. 보유한 주식 수에 뽑아야 할 이사 수를 곱한 수만큼 의결권을 주고 이를 한곳에 몰아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집중투표제의 경우 소액주주 보호가 명분이지만 실제는 외국계 자본의 이사회 장악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그룹 지주회사 지분을 1% 이상 확보하면 전체 자회사를 상대로 경영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외국계 펀드의 악의적 소송에 무방비 노출될 위험이 있다.

현재 국회 야당 의석은 3분의 2가 넘기 때문에 야당이 뜻을 모으면 상법개정안 등의 통과는 매우 유력한 상황이다. 이미 바른정당은 민주당 등과 협의해 이들 법안을 처리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일자리 창출을 위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정부가 읍소해온 노동개혁 4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파견법)은 이번 국회에서도 통과가 불투명해 보인다.



새누리당은 파견법을 제외한 나머지 3법이라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대선을 앞두고 노동계 눈치를 봐야 할 야당이 과연 협조할지 알 수 없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법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금 국회 상황을 보면 소수파인 여당은 실력이 안 되고 다수파인 야당은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그 와중에 시류영합형 법안은 별 고민 없이 통과되고 국가 경제에 숨통을 틔워야 할 '응급 법안'들은 기약 없이 밀려날 판이다. 그 후유증을 누가 감당할지 걱정이다.



10. 반기문 테마주 폭락, 코미디 같은 주식시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이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1일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반기문 테마주들이 급전직하하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다른 대선 주자 관련주도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종목은 특정 대선 주자와 무관하다는 공시까지 했는데도 테마주로 분류돼 주가가 널뛰기하고 있다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이러다가는 관련 기업은 물론 회사의 가치를 보고 주식을 산 투자자들도 피해를 입을까 걱정이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 테마주가 들썩거리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년 전인 1997년 15대 대선에서 본격 등장해 선거가 있을 때마다 문제가 됐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청권 수도이전 공약으로 이 지역에 연고가 있는 기업들이 주목을 받았고,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운하 건설 공약에 따라 건설주들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2010년 지방선거와 18대 대선, 19대와 20대 총선 때도 유력 후보를 중심으로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정치 테마주는 증시를 투전방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감시와 투자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대부분의 정치 테마주는 기업의 사업 내용과 실적 등 본질가치에 근거하기보다 뜬소문에 따라 급등락한다. 이를 이용해 시세조종세력 등 투기꾼은 한몫 챙기려하고 개인들은 투자금을 날리기 십상이다.



이는 한국거래소가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정치 테마주 16개 종목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본질가치와 관계없이 대선 후보의 학연과 지연 등 풍문으로 주가가 단기적으로 올랐다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개인투자자 10명 중 7명 이상이 손실을 본 것이다. 

정치 테마주가 근절되지 않는 원인은 단기간에 큰돈을 벌려는 투자자 책임도 있지만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작전세력 탓이 큰 만큼 이들에 대한 집중 감시가 중요하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9일부터 정치 테마주 특별조사반 운영에 들어갔는데 이상 급등 종목이나 징후가 발견되면 즉시 조사에 착수하고 시장에 알려야 한다. 투자자들도 작전세력의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냉철한 투자 자세가 필요하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윤제림의 행인일기 30] 새우소녀 이야기

휴게소에서 우동을 먹고 있는데, 문득 한 소녀가 생각났습니다. 뜬금없이 떠올랐습니다. 저와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만난 적도 없는 여자애입니다. 가까이 모시는 어른께 들은 이야기의 주인공일 뿐입니다. 어른께서 팔십이 넘으셨으니 그녀도 그럴 것입니다.

무엇이 그녀를 생각나게 했을까요. 우동에 든 새우튀김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만치에 놓인 TV 뉴스화면에 비치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삼척동자도 아는 일을 끝끝내 '모른다' 하고, 증거가 즐비한데 한사코 '아니다' 우기는 이들 말입니다.

어른께 들은 이야기. "부산 피난 시절이었어. 그녀는 포장마차로 생계를 꾸리는 소녀가장이었지. 많은 남학생들이 흘끔대며 지나다닐 만큼 예뻤어. 어느 날, 그 애한테 새우튀김 하나를 사먹게 되었지. 그런데 맛이 영 수상쩍더라고. 재료가 신선하질 않았던 거야.



입에 넣었던 튀김을 뱉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지. '야, 이거 상했잖아!' 잔뜩 인상을 쓰고 눈을 부라리면서. 그 애는 겁에 질려 말도 못하고 오들오들 떨기만 하더군. 나는 더 기세등등해져서 언성을 높였지. '상한 것 맞지? 이런 걸 어떻게 팔 생각을 한 거야.'



​이쯤 되면, 그 시절 음식장사들은 대개들 이렇게 나왔지. '무슨 소리요? 여태 아무 일 없었는데. 돈 안 받을 테니 썩 가시오.' 그런데 얘는 고개도 못 들고, 그저 좌불안석이야. 눈망울엔 눈물이 그렁그렁 열리고. 내 말이 옳다는 거지. 잘못을 안다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순순히 인정하더군. '네 …'



기어들어가는 소리였지만, 발음은 또렷했어. 그런데 이상하지. 오히려 내가 당혹스러워지더군. 금세 물렁물렁해졌어. 한껏 치밀었던 분노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라고. 탁자라도 내려치려고 움켜쥐었던 주먹은 스르르 풀리고. 여태껏 살아오면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대신하는 한 마디를 들은 적이 없어.

'맞아요, 새우는 상했어요.'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요.'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이해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 한 글자가 그렇게 많은 말들을 품고 있었던 거지. 말의 힘? 아니야. 그것은 '진실의 힘', '고백의 힘'이지.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어. 순순히 튀김 값을 내고 슬그머니 뒷걸음쳐 나왔지.

그게 끝이야. 그 뒤로는 포장마차도 여학생도 볼 수가 없었어. 어쩌면 내가 그 애를 볼 용기가 없었는지도 몰라. 한동안 그 길로 다니질 않았으니까. 요즘도 가끔 그 얼굴 그 표정이 떠올라. '새우소녀'. 이름도 성도 모르니까, 그냥 내가 그렇게 지어서 부르는 거야. 에이, 싱거운 이야기 또 했군."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실 때, 이 분의 표정은 결코 싱겁지 않습니다. 느릿하지만 묵직한 어조(語調)에서 아련한 향수가 느껴지고, 첫사랑에 대한 미련처럼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그래서 모종의 호기심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쩌면 소설 '소나기' 같은 '기-승-전-결'이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새우소녀가 '네 …!'라고 말하는 대목은 영화의 한 장면을 닮았습니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평화로 바꾸는 돌연한 반전(反轉)의 '컷'입니다. 이쪽이 아무리 감정을 증폭시켜보아야 저쪽은 아무런 응전(應戰)의 의사가 없다는 표시입니다. 조건 없는 투항입니다. 단두대에, 죄인 스스로 목을 들이미는 형국입니다.

물론 그렇게 잘못을 인정했다고 해서 상한 새우가 신선한 상태로 되돌려지진 않습니다. 그러나 손님의 상한 마음은 어느 정도 돌아섭니다. 호되게 물리려던 죄(罪)값에서 얼마쯤은 에누리를 하게 됩니다. 형편없이 후려치려던 사람값도 아주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은 면하게 합니다.

이 사람 역시 누군가의 자식이고 부모임을 생각하게 되면 더 그렇습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요즘 우리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도 자식 눈치는 보더군요. 어떤 어미는 수의(囚衣) 입은 모습을 아들이 볼까 전전긍긍한다고 들었습니다. 더 큰 죄인 한 사람은 딸 얘기만 나오면 눈물부터 흘린다는 기사도 읽었습니다.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당신들 자식의 눈만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TV만 켜면 나오는 당신들 얼굴을 온 나라 아이들이 보고 있다. 당신들의 거짓말은 이 땅의 모든 아이들 여린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 당신들이 '예'라고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거짓말 하는 어른들의 나라가 되고 있다." 

죽는 날까지 반성과 회한(悔恨)이 많았을 사람, 춘원 이광수(李光洙)의 문장 하나가 의미심장하게 떠오릅니다. "나의 가장 심각한 '참회(懺悔)'는 어린 자식이 아픈 것을 볼 때에 온다." 당신들이 이제라도 '새우소녀'처럼 '예'라고 말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당신의 아이가 더 아파하고,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더 아파지기 전에.



할머니가 되었을 '새우소녀'도 그 한 마디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네 …."



2. [경향신문][먹거리 공화국] 황혼의 밥상

어린 우리들을 한 달에 한 번 괴롭히는 일이 있었으니 학교에서 폐품 모으는 날이었다. 바닥에 바짝 붙어 먼지를 마시며 밥을 버는 부모님은 신문을 보시지 않았다. 게다가 학교에 폐품을 갖다 내야 할 형제가 많으니 어쩔 수 없이 엄마가 큰맘 먹고 청량음료 한 병씩 사주고 그 빈 병이라도 갖다 내라셨다. 

공중전화기 부스에서 전화번호부 뜯어오지 말라는 학교 가정통신문도 기억난다. ‘88 꿈나무’인 우리더러 21세기를 책임지라더니 그 꿈나무들을 넝마주이로 내몰던 시절이었다.



이제 그 꿈나무들은 출근길에 아파트 재활용 코너에 간단하게 폐품을 던진다. 이제 넝마주이가 사라졌는가. 그것도 아니다. 폐지를 주워 한 끼를 버느라 노구를 움직이며 새벽부터 길거리를 헤매는 노인들이 2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폐지 가격 중에서 가장 높게 쳐주는 것은 신문지이고 그다음엔 골판지다. 1㎏당 각각 100원, 80원가량. 노인 한 명이 거머쥘 수 있는 폐품의 양이 적어 하루 5000원의 소득을 올리는 일도 쉽지 않다.



우리 동네 한 식당은 폐지를 일부러 내놓는데, 폐지를 걷으러 온 할머니께 믹스커피 한 잔도 꼭 드린다. 그 믹스커피 한 잔은 기호식품이 아니라 할머니의 점심 한 끼다. 식당에서 밥을 한 끼 그냥 드리려 하지만 끝내 거절하신다. 믹스커피 딱 한잔은 할머니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서울 모처의 경로당 내에서 이루어지는 식사를 관찰하고 기록한 소준철·이민재의 ‘빈곤한 도시노인과 지역 내 자원의 흐름’이란 연구 발표를 들었다. 연구자들이 찍어온 경로당 밥상 사진은 스산하기 이를 데 없다. 밥과 김치, 계란찜(이제 계란 값도 올랐는데), 동태찌개가 차려진 날이다. 그날은 동태 중간 토막을 차지하는 것 때문에 할머니들 마음이 서로 상한 날이기도 했다. 반찬이 부족하니 밥양은 성인 남성들이 먹는 양을 웃돈다. 사과 한 개도 정확히 등분한다. 갈등의 요인이 되곤 해서다.



지자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경로당에 지원하는 쌀은 읍·면·동의 경우 1년에 120㎏에서 140㎏ 정도. 연구자들이 관찰한 경로당엔 평균 30명의 노인들이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필자의 아버지가 다니는 인천의 한 경로당에서도 30명 정도의 노인들이 점심을 드신다. 30명 기준으로 하루에 소비되는 쌀이 1.6㎏ 정도. 그러니 저 정도 지원받는 쌀로는 100끼니 정도를 겨우 채운다.



나머지 부족분은 각자 노력으로 메워야 한다. 종교시설에 가서 한 끼를 때우기도 하고 경로당 임원들이 주민센터에 쌀과 김치 지원을 요청하기도 하면서 가급적 모든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자신의 한 끼이자 공동의 식사를 해결하느라 분주하다.

한국에는 650만명의 노인들이 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중위소득에 못 미치는 빈곤 상태다. 여성노인의 빈곤 비율은 더 높다. 그나마 경로당에 가서 스산한 밥상이라도 받을 수 있는 노인들은 사정이 낫다고 해야 할지. 한 달에 3000~5000원 하는 경로당 회비도 버거워 발길을 끊는 노인들도 많다. 당장 급한 것이 집세이니 오늘도 폐지를 그러모으며 믹스커피로 한 끼를 넘기는 노인(할머니일 확률이 더 높다)들이 곳곳에 넘쳐난다.



이 추운 겨울, 저 어르신들의 저녁 밥상에 동태 한 토막이라도 올라갔는지 안부를 묻기조차 면구스럽다. 왜 하필 경로당의 경은 ‘공경할 경(敬)’자인지. 이 겨울 온기 있는 밥상은 누가 받고 있는가. 소년과 청춘, 그리고 황혼의 밥상마저도 차다.



3. [경향신문][문화중독자의 야간비행] 문화전쟁의 종착역

여기는 미국 워싱턴. 국회 사무실로 우편물이 날아든다. 그 속에는 도널드 와일드먼(DonaldWildmon)이라는 근본주의 목사의 분노에 찬 글이 실려 있었다. 때는 1989년 4월5일. 이른바 ‘문화전쟁(Culture War)’이라 불리는 극우 정치가와 예술가의 한판승부가 벌어진 것이다. 청와대발 예술인 블랙리스트 파동이 한창인 지금, 미국발 문화전쟁 사건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전쟁의 주인공은 뉴욕에서 태어난 안드레 세라뇨(Andres Serrano)란 사진작가다.



그는 1965년 출범한 미국 문화예술지원기관(NEA)에서 책정한 예산 지원하에 전시회를 열던 중이었다. 시비의 근원은 종교, 죽음, 섹스를 주제로 다루는 안드레 세라뇨의 작가정신이었다. ‘오줌 속의 예수(Piss Christ)’라 불리는 사진은 작가의 오줌, 정액, 피가 섞인 통에 빠진 십자가를 표현한 작품이다.



이를 기독교에 대한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하는 종교인의 일갈은 미국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공화당원들의 좋은 요릿감이 된다. 그들은 서둘러 ‘헬름스 수정조항(Helm’s Amendment)’이라는 악법을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서 NEA의 예술지원 기준을 강화하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섹스와 종교에 대한 불경, 동성애 등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명 ‘예술가 탄압법’은 예술가와 자유주의자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 사건은 결국 헌법 수정조항 제1조인 언론, 집회, 청원의 자유, 즉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예술가 집단의 판정승으로 끝난다. 여기서 예를 들어 보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섹스에 대한 불경이라고 못박는다면 인간의 나체를 소재로 한 수많은 걸작들이 화형식을 치러야만 할 것이다. 제임스 헌터(James Hunter)는 저서를 통해 이러한 현상을 ‘냉전시대보다 더 심각한 문화전쟁의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예술의 생명은 누가 뭐라 해도 표현의 자유가 최우선이다. 1950년대 이후 동구권으로부터 문화후진국이라 손가락질을 받았던 미국은 늘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패권주의를 신봉하는 타락한 파란 눈의 정치인들에게 예술가란 눈엣가시와 다름없는 존재였다. 따라서 민심을 조장하려는 권력자의 의중을 간파한 예술가들의 일상은 그리 자유롭지 못했다. 미국 예술후원기관이 프랑스보다 무려 40년이나 늦게 만들어진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모든 예술작품이 사회정치적 이슈를 담을 필요는 없다. 이 또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역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일그러진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예술혼을 탄압하는 사회는 후진국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21세기판 예술가 탄압의 증거인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명단만 존재할 뿐 이를 지시, 작성, 보고한 자가 없다던 혐의자들의 주장이 모두 허구였다는 특검의 발표가 새해 벽두를 장식했다. 통쾌하기보다는 안타까운 기류가 시야를 어지럽힌다. 한국발 문화전쟁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지원은 고사하고 창작자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려는 정부의 태도가 출발역이라면, 모든 창작자가 마음껏 상상력을 표출하는 공정사회가 종착역일 것이다. 

예술가란 정치적 자기검열의 틀에 갇히는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유리벽 같은 존재다. 예술가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그곳은 뇌사상태에 빠진 권력자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와 다를 바 없다. 천국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예술과 삶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공간. 그곳을 우리는 천국이라 부른다. 예술다운 예술이 존재하는 참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야간비행을 시작한다.



4. [서울신문][데스크 시각] ‘속초 유학파’의 서울 광화문 포켓몬고 체험기

​‘쥬피썬더.’ CP 1239. SS급 포켓몬. 특성 10만V 전기. 출신 대한민국 강원도 속초시. 탄생 2016년 7월 27일.

내 휴대전화에 CP 랭킹 1위를 장식한 포켓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다. CP는 공격력·방어력·체력 등의 총합이다. 쥬피썬더는 포켓몬 ‘이브이’의 진화체다. 얼마 전 ‘체육관’에서 다른 포켓몬들과 전투를 시켜 보니 ‘매우 효과적인 공격’을 했다. 이브이를 총애하다 보니 CP 랭킹 2위도 쥬피썬더이다.SS급보다는 능력이 덜한 A급 이브이가 진화했다.



CP 1226이다. 랭킹 2위 쥬피썬더 출신지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다. 2017년 2월 1일 포켓볼 보급소 격인 포켓스톱이 20~30m마다 깔린 ‘천국’ 서울 광화문에서 잡아 진화시켰다. 오늘 출근길에 포켓몬 500마리를 잡았다는 축하 메달도 받았다.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랭킹 1위와 2위 쥬피썬더는 탄생 시점에 7개월의 공백이 있다. 출신 지역도 속초와 서울로 서로 다르다. 이런 차이는 포켓몬고의 한국 정식 출시가 올 1월 말에 된 탓이다. 지도 반출 문제로 게임 출시를 못 한다더니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고 해명해 사실 어리둥절하다.

포켓몬고 게임과 관련해 이른바 ‘속초 유학파’로 불린다. 지난해 여름휴가 때 속초에서 포켓몬고 게임을 했다는 의미다. 당시 속초는 재밌었다. 포켓몬고 게임이 증강현실(AR) 게임이라고 했으나, 오히려 현실이 가상현실(VR)에 발목 잡혀 있는 것 같았다. 이 게임은 걸어다녀야 하는 탓에 승용차에 탑승했을 땐 보행자처럼 GPS를 속이려고 운전 속도를 줄인다.



​운전자들은 갑자기 출현한 포켓몬을 잡으려고 급브레이크를 잡기도 했다. 그때 속초에서는 서울·경기 등 타 지역에서 온듯한 승용차들이 천천히 달리다가 급브레이크를 잡는 일이 적지 않았지만, 경적을 울리고 화를 내기보다는 속내를 서로 이해한 듯 웃어넘겼다.

또 속초의 ‘포켓몬고 성지’에서는 배터리팩을 휴대전화에 연결한 젊은이들이 신주 모시듯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들고 좀비처럼 어슬렁거렸다. 게임에 동참하지 않았더라면 ‘뭐하는 거냐’며 손가락질했을지도 모르겠다. 1박2일 속초 여행에서 ‘팀 미스티’ 소속으로 레벨 13으로 돌아왔다.

7개월 만에 다시 포켓몬을 잡고 CP값이 낮은 포켓몬을 ‘박사에게 보내’ 사탕으로 갈아서 1·2단계 진화시키는 과정에서 상당한 시행착오를 발견했다. 진화 사탕 50개·100개를 써 진화시켜 놓았더니 “좀처럼 활약이 어려워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체육관에서 전투를 벌이면 쉽게 진다는 의미다. 그 이유를 모르다가 최근 알았다. 포켓몬들의 능력을 분석하는 아이브이고(IV GO)를 최근 설치한 덕분이다.

CP값이 높은 포켓몬을 포켓볼 십여 개나 낭비하면서도 잡아도, 근본이 틀렸으면 별 볼일 없는 포켓몬인 거다. 아이브이고는 포켓몬 개체를 SS-S-A-B-C-D로 평가했다. SS급이 가장 전투력이 좋고 진화에도 유리하다. 포켓몬마다 CP값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내재적 가치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진화시킨 나의 쥬피썬더가 SS급인 것은 그저 행운이었다.

게임조차도 엄격하게 내재적 가치를 평가한다. 겉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흔히 사람을 평가할 때 번드르르한 겉만 평가하기 쉽다. 경력이 어떠냐, 외모가 어떠냐, 집안이 어떠냐 등등. 그래서 ‘꽃길’만 걸었던 인물에게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곤 한다. 그러나 꽃길만 걸은 인물이 그 꽃길을 조성한 평범한 사람들의 성실과 노력은 잊었다면 그 인물은 원래 큰 인물이 아닐지 모른다. “내가 잘나서 출세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영 별로인 거다.



5. [매일경제]{매경춘추] 사투리의 힘

부산에서 태어나 스무 살까지 살았던 나는 당연히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이후로 서울에서 더 오래 살았지만, 대학 졸업 직전에 아나운서가 되면서 의식적으로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아무리 표준어를 구사해도 내 말에서 고향의 억양이 미묘하게 배어나온다는 것을 나는 안다. 특히 내 고향 사람들은 어김없이 내가 그쪽 사람임을 알아본다.



나 또한 연기자든 아나운서든 경상도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경북 쪽인지 경남 쪽인지, 유년시절만 잠깐 살았는지 성년에도 살았는지까지 얼추 맞히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완벽하게 사투리를 쓴다. 그들에게는 어차피 어색하게 들릴 낯간지러운 표준말을 버리고 속시원하게 고향 말을 쓰는 게 즐겁고 후련하니까. 

얼마 전에는 그 즐거움과 후련함을 방송에서도 맛보았다. 이제는 아나운서가 아니라 소설가로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내 작품 일부분을 낭송할 때 주인공의 대사를 사투리 그대로 읽었던 것이다. 고향의 말을 쓰는 내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전국에 생방송되는 건 생각보다 짜릿한 일이었다. 비로소 가면을 쓰지 않은 진짜 목소리로 말하는 느낌이었달까. 

그 무렵 여고 졸업 30주년 행사에서 옛 친구들을 만나 허물없이 얘기하며 공감했던 경험은 또 어떠했던가. 각자 그동안 살아온 세월을 털어놓다가 누군가 툭 던진 "산다고 욕봤다!"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졌던 우리. 사투리라는 훌륭한 도구를 통해 우리는 직관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함께 웃었다. 그리고 뒤늦게 참석한 국민학교 동창회에서도 전설처럼 아득해진 추억 속에 어색하게 마주한 남자 동창들과 진한 사투리로 말을 하기 시작하자 단숨에 지난 세월을 뛰어넘는 마법 같은 경험을 했다. 군더더기 없이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 

행복이란 결국 자기 만족이므로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행복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편안할 때,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해질 때, 그때 내가 어떤 말을 쓰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은 스스로를 이해하는 하나의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또다시 고향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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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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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끝내 중도사퇴로 마감한 반기문 전 총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결국 대권도전 의지를 접고 말았다. 어제 기자회견을 갖고 불출마 방침을 전격 선언했다. 그는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지극히 실망했다.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는 실망감의 표현으로 국내 정치 풍토에 그 이유를 돌렸다. 유엔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나 지난달 12일 귀국과 함께 본격 행보를 해오다가 불과 20일 만에 포기 선언에 이른 것이다. 

반 전 총장이 바로 전날만 해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개헌추진협의체 구성 방안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갑작스런 중도 사퇴는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지난 설날 연휴를 전후로 여러 정치인들을 만나면서 보폭을 넓혔던 상황이다. 최근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긴 하지만 선거판에 늦게 뛰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완주할 만한 여건이었다. 하지만 역전이 어렵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처럼 사태가 돌변하기까지는 처음부터 반 전 총장이 국내정치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판단한 측면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냈으므로 귀국하게 되면 여야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았는데도 보수진영을 대표해 지지도가 다른 예비후보들보다 높게 나왔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지난 연말 ‘최순실 게이트’가 확대되기 전까지의 분위기가 그러했다.

그러나 정치 현실은 냉혹했다. 그가 개헌을 매개로 삼은 ‘빅텐트’ 구상으로 여야를 아우르려 했지만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하는데 한계를 실감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일정에 따라 조기 대선 시계가 빨라지는 판국에 개헌을 먼저 하자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이었다. 여기에 자신의 과거 의혹을 검증하겠다고 달려드는 눈초리들도 차마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반 전 총장은 처음부터 출마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게 바람직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그냥 사회 원로로 남아 있는 편이 훨씬 좋을 뻔했다. 그의 높은 뜻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우리 정치판도 문제지만 그 역시 정치 현실을 너무 쉽게 여겼다는 질책을 피할 수는 없다. 앞으로 대선 판도가 확연히 달라지게 됐다는 점을 떠나서도 중도 사퇴에 이른 그의 정치 행보가 아쉬운 이유다.



2. 모처럼의 수출 호조, 그러나 낙관은 이르다

수출이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전년 동월 대비 2.3%, 12월 6.4% 증가로 회복 기미를 보이더니 1월에는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며 3달 연속 늘어났다. 두 자릿수 증가율은 2013년 1월 이후 무려 4년 만이다. 우울한 우리 경제에 모처럼 단비 같은 소식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월 수출은 전년 동월보다 11.2% 늘어난 403억 달러를 기록했다.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상품과 석유화학제품이 증가세를 주도했다. 수입도 18.6% 늘어나 371억 달러를 나타냈지만 무역수지는 32억 달러 흑자다. 60개월이나 연속 흑자 행진중이다.

고무적인 것은 ‘사드 보복’의 한한령(限韓領)으로 상황이 어려워진 중에도 중국 수출이 13.5%로 3년 5개월 만에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동남아, 일본, 유럽연합, 인도 등 대부분 지역에서 증가세가 이어진 것도 긍정적이다. 화장품·의약품 등 새로운 효자 품목의 등장과 중소·중견기업의 선전도 의미가 크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는 2년 연속 깨졌던 무역 1조 달러 회복도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 낙관은 이르다. 두 자릿수 증가는 지난해 1월 수출이 가라앉았던 기저 효과의 영향이 크다. 게다가 수출 환경은 온통 먹구름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와 미·중간 무역 분쟁이 본격화하면 우리가 희생양으로 직격탄을 맞을 공산이 크다. ‘한한령’이 본격화되면 중국 수출도 한순간에 꺾일 수 있다. 영국의 ‘하드 브렉시트’ 추진, 북한 핵 등도 우리 수출엔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수출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다. 정부를 비롯한 모든 주체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 살아나기 시작한 수출 회복의 불씨를 살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통상외교를 강화하고, 기업은 수출 품목 및 시장의 다변화 등 수출 구조의 혁신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현재 58%인 수출의 부가가치율을 미국과 일본처럼 80% 이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제도 남아 있다.



정치권도 이번 임시국회에서 경제활성화 관련법안 처리로 수출 진흥을 뒷받침해야 함은 물론이다. 대권 주자들도 수출을 늘리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내놓고 경쟁하기를 바란다.



[매일신문]

3. 제 편하자고 지역 중소업체 입찰 막은 경북개발공사

경북개발공사가 안동 도청 신도시 공공임대주택 건립 공사에 지역 중소시설 업체의 입찰을 가로막아 말썽이다. 경북개발공사는 전기`통신`소방시설 등의 공사를 분리 발주하지 않고 통합 발주해 사실상 대기업에 공사 전체를 몰아주려 한다는 것이다. 경북도 산하 공기업이라면 지역 중소업체의 어려움을 헤아려야 하는데도, 입찰 기회조차 차단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경북개발공사가 지난해 말 입찰 공고를 낼 때부터 말썽은 예견돼 있었다. 경북개발공사는 입찰을 ‘기술 제안’ 방식으로 하고 참가 자격도 시공 능력 공시액 1천억원 이상 업체로 정했다. ‘기술 제안’ 방식은 상징성`기념성`예술성 등이 필요하거나 어려운 기술이 필요한 시설물 공사에 적용하는 것인데, 임대주택 공사에 반드시 필요한지 의문스럽다.



불합리한 입찰 방식에 지역의 전기`통신`소방시설 업체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역 중소기업의 입찰 자격을 박탈하고 건설 분야 대기업의 배만 불리는 방식”이라는 중소업체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중소업체들은 가뜩이나 불경기로 일감이 없는 상황에서 공기업의 입찰마저 가로막혔으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경북개발공사는 적법한 입찰 방식이라며 고칠 생각이 없다. 경북개발공사 측은 “공사를 관리`감독할 만한 담당자가 한두 명뿐이어서 설계부터 시공까지 한몫에 해결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해명했다. 이는 대기업에 일괄 발주하면 편하게 관리`감독할 수 있는데, 굳이 소규모 업체에 발주해 불편함을 떠안기 싫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기업이라면 모를까, 공익을 우선하는 공기업의 해명치고는 너무나 저급하다.



경북개발공사는 도청 신도시의 땅장사를 벌여 지난해 상반기에만 2천억원 가까운 순이익을 얻었다. 그 엄청난 수익에 비해 전기`통신`소방시설의 공사비 총액이 236억원에 불과해 푼돈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영세업체에는 사활이 걸린 금액이다. 입찰 마감일이 13일까지라고 하니 입찰 방식을 고쳐야 한다. 지역 중소업체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공기업은 존재 의미가 없다.



4. 신라왕경 복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천년고도 경주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문화의 국격을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특별법 제정이 드디어 가시권 안으로 들어왔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특별법’이 가결 정족수를 넘는 공동 발의자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김석기 새누리당 의원(경북 경주)은 신라왕경 복원 특별법 발의를 위한 국회의원 서명을 163명 받아냈다고 1일 밝혔다. 전체 국회의원 수 300명의 54.3%에 해당하는 숫자다. 공동 발의자 수가 가결 정족수를 넘어섰기 때문에 특별법이 발의돼 상정되기만 하면 국회 통과는 따 놓은 당상인 셈이다.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는 지역 최대 현안 중 하나로 꼽힌다. 신라 왕궁 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적임에도 불구하고 여태것 체계적 복원`정비가 이뤄지지 않았다. 유적 복원에 대한 마인드가 결여된 탓도 있지만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경주시 등은 2025년까지 9천450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되는 신라왕경 복원 계획을 수립했다. 왕궁인 월성과 황룡사`월정교 복원, 쪽샘지구 발굴`정비 등 모두 8개 부문에 이르는 대규모 국책 사업이다. 그러나 워낙 대형 프로젝트인지라 지방자치단체의 역량만으로는 추진에 한계가 있었고 안정적 사업비 마련도 불투명했다. 따라서 사업 추진을 위한 법적`제도적 토대 마련을 위한 특별법 제정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부의 무관심 속에 진척이 없었다.



이번에 신라왕경 복원 특별법이 160여 명의 공동 발의자를 확보한 데에는 김석기 의원의 역할이 컸다. 당론으로 발의한 법안이 아닌, 개별 의원 법안에 대한 공동 발의자 수로는 역대 최고라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탄핵이라는 정국 혼란 속에서 지역 현안 해결에 적극 나서서 성과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신라왕경 복원 특별법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잇따른 지진 여파로 가뜩이나 고초를 겪고 있는 경주 시민들에게 모처럼 전해진 낭보가 아닐 수 없다. 늦었지만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사업을 촉진해 경주가 세계 최고의 역사 문화자원 도시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매일경제]

5. 반기문 대선 불출마를 바라보는 아쉬움, 씁쓸함, 다행스러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대통령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비정치인으로서 기성 정치권에 새바람을 불어넣어줄 것이란 기대가 무너진 데 대한 아쉬움이 우선 크다. 반 전 총장은 "정치권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가짜 뉴스가 판치는 우리 정치권이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다. 정치판을 새롭게 개편하려던 그의 시도가 좌절됐다 해도 정치권 개혁 노력은 중단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반 전 총장 지지율은 한때 25%에 육박하기도 했지만 귀국 후 줄곧 하락하다가 15% 선으로 추락했는데 그가 자초한 측면도 크다. 정치 교체와 국민 대통합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어느 정당이든 모셔가 주기만 바라는 듯한 이른바 꽃가마 타기 전략을 엿보이기도 했는데 냉엄한 정치판에서 보자면 허황돼 보이는 모습이다.



설을 전후해 여야 지도자들을 두루 만나는 자리에서도 정책과 비전을 뚜렷이 제시하지 못하다 보니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정립하지 못하고 부평초처럼 겉돌기만 했다. 현실 정치의 높은 벽을 극복하기에는 결기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은 다행스러운 측면도 지닌다. 그는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됐다"고 했는데 말 그대로다. 처음부터 논란이 됐던 일이다. 유엔은 창설 초기인 1946년 '여러 나라 비밀을 취득할 수 있는 사무총장은 퇴임 직후 개별 회원국 정부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 후 실제로 역대 사무총장 7명 중 퇴임하자마자 곧바로 반 전 총장처럼 자기 나라 공직선거에 뛰어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 전 총장은 이 결의안의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왔는데 설혹 그렇다 해도 국제사회에서 신사협정을 어기는 행위는 우리나라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늦었지만 다행스럽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이제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을 계기로 보수 진영은 보수 진영대로, 진보 진영은 진보 진영대로 정책·비전 경쟁을 통해 조속히 후보를 결정해 국민의 선택에 도움을 줘야 할 일이다.



6. 트럼프의 환율전쟁…글로벌 금융시장 혼란을 주시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글로벌 환율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저께 백악관에서 제약업계 경영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과 일본이 수년간 무슨 짓을 했는지 보라"며 "이들은 시장을 조작했고 우리는 얼간이처럼 지켜보고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이 유로화 가치를 절하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장은 화들짝 놀랐다. 달러화 가치는 두 달 만에 최저로 떨어졌고 엔화 가치는 급등했다. 달러 대비 원화값은 어제 개장 초 12원 넘게 뛰었다 장 후반 상승 폭이 줄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중 줄곧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불공정 무역을 응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제 일본과 독일을 비롯해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큰 주요 교역 파트너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맹렬한 통상 공세를 예고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10월 이 세 나라와 더불어 한국, 대만, 스위스를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연간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달러를 넘고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시장 개입 규모가 각각 국내총생산(GDP) 대비 3%와 2%를 넘으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데 한국은 시장 개입 규모가 작아 가까스로 환율조작국 오명을 피했다. 

하지만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곧 파상적으로 퍼부을 통상 공세의 주요 타깃 중 하나다. 우리는 2013년부터 4년 내리 연간 200억달러가 넘는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한 만큼 대미 교역과 투자 전략의 근본적인 재조정을 통해 흑자 규모를 적절히 관리해야 통상 압력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GDP 대비 7%가 넘는 경상수지 흑자를 장기균형(3~4%) 수준으로 줄여갈 수 있도록 내수 부문을 더 키우는 것도 긴요하다.



또한 트럼프발 환율전쟁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대혼란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대비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환율 변동성이 지나치게 커지거나 급격한 자본 유출입이 국내시장을 교란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복잡한 글로벌 교역 구조를 고려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중에는 달러 가치가 되레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컨틴전시플랜을 짜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7. 최순실, 다른 해외 이권 넘본 것은 없나

최순실씨가 유재경 주(駐)미얀마 대사를 임명하는 데 관여했다는 특검 발표에 기가 막힌다. 삼성전기에서 일한 것이 유일한 경력인 유 대사다. 자격 미달에 가까운 ‘자기 사람’을 특정 국가 대사로 보낸 이유가 해외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서 뒷돈을 챙기기 위함이었다니 더욱 개탄스럽다.



최씨가 문화체육관광부 장·차관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의 인사에 개입했다는 것은 특검 수사에서 드러난 바와 같다. 대사급 외교관 인사마저 좌지우지했다니 박근혜 대통령 위에 최씨가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지 않으면 비정상일 지경이다.

직업 외교관이 아닌 사람을 해외 공관장에 임명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대사 후임에 투자회사 대표인 윌리엄 하가티를 기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케네디 대사도 이전에는 외교와 무관한 직함을 가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어느 때보다 미·일 동맹을 굳건히 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에는 15명 남짓한 특임 공관장이 있다. 그런데 전대주 전 베트남 대사에 이어 유 대사마저 비선 실세가 임명했다는 의심이 깊어진다. 이쯤 되면 최씨와 관련 없는 특임 공관장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특검의 시각은 이렇다. 정부는 760억원을 들여 양곤에 컨벤션센터를 지어 한류의 거점으로 삼는 ‘K타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최씨는 사업을 주도한 업체의 지분을 차명으로 받아 이권을 챙기려 했다. 처음부터 타당성이 부족했던 사업은 결국 무산됐지만, 유 대사 임명은 이 사업을 본궤도에 오르게 하려는 포석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특검의 추정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다른 나라의 비(非)외교관 출신 해외 공관장들이 국익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 우리 특임 공관장은 비선 실세의 돈주머니를 채우고자 여념이 없었던 꼴이다.

최씨의 이권 개입이 다른 사업도 아닌 ODA를 노렸다는 것은 당황스럽다. 결과적으로 적지 않은 기대를 가졌을 상대국과 그 국민을 기만했기 때문이다. ODA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 및 복지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유·무상 원조를 말한다.



올해 우리나라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거쳐 집행하는 원조는 아시아·태평양,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중앙아시아 지역을 합쳐 3354억원에 이른다. 미얀마에는 170억원이 편성돼 있다. 최씨가 넘본 이상 ODA를 포함한 정부의 해외 사업 전반에 의심스러운 대목이 없는지 철저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8. 속속 드러나는 박 대통령의 ‘커다란 산’ 같은 거짓말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의 ‘헌법재판소 흔들기’가 도를 넘고 있다. 박 대통령 측 이중환 변호사는 어제 열린 10차 변론에서도 박한철 전 헌재 소장의 ‘3월 13일 이전 선고’ 발언을 거론하며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재벌 그룹 회장 등 15명의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하면서 “헌재가 대통령 측이 신청한 증인을 채택하지 않고 검찰 수사기록에 의존하는 것은 국회 측에는 예리한 일본도를, 대통령 측에는 둔한 부엌칼을 각각 건네며 공정한 진검승부를 하라는 것과 같다”는 말까지 했다. 이미 증언한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까지 ‘재탕 신청’한 것은 누가 봐도 ‘탄핵심판 지연 전술’에 해당한다.

박 대통령은 특검 조사까지 거부할 명분을 찾는 모양새다.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특검에 구속 기소된 인사들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과의 공모 혐의가 적시돼 있다는 이유로 대면조사를 위한 사전 협의를 불편해한다고 한다. 지난달 25일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특검 조사에는 임할 생각입니다”라는 답변과는 영 딴판이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압수수색도 거부하고 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지만 피의자 신분이라는 걸 망각한 듯한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탄핵심판 지연 전술이 유리하다고 볼지 모르나 특검의 조사가 진행될수록 박 대통령의 거짓 해명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인사 추천’이 문화 쪽 외에는 없었다고 강조했으나 특검은 최 씨가 유재경 주미얀마 한국대사의 임명에 깊숙이 개입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를 “거짓말로 쌓아올린 커다란 산”이라고 주장한다. 이만저만한 적반하장이 아니다.

박 대통령 측은 또 “최 씨와 고영태 씨의 불륜이 이번 사건의 발단이며 고 씨가 자기 이익을 위해 (언론에) 왜곡 제보했다”는 주장도 폈다. 박 대통령과 대리인단은 3월 13일과 이달 말을 학수고대하는 모양이다. 3월 13일이 지나면 헌재 재판관 2명만 기각해도 탄핵은 기각된다. 이달 28일이면 특검의 1차 수사기간이 만료된다. 하지만 박 대통령 측의 지연 전술이 계속되면 야당의 특검 연장 요구도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일보]

9. “광장 불법 점유” 서울시 주장, 왜 공허하게 들리나

서울광장의 천막 설치를 놓고 서울시와 일부 보수단체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강태웅 서울시 대변인은 그제 “(보수단체 천막과 분향소는) 신고도 하지 않고 광장을 점유하고 있다”며 “행정 대집행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양측의 대립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50여개 보수단체가 참여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가 지난달 21일 서울광장에 천막 40개동을 설치해 천안함 희생자 등을 추모하면서 시작됐다. 30일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무효를 요구하며 투신한 조모(61)씨의 분향소를 추가로 설치하는 과정에서 이를 저지하는 서울시 측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서울시는 “광장은 한 단체가 아닌 여러 시민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광장을 사용하려면 ‘서울특별시 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등에 따라 사용 신청을 해야 한다. 서울광장은 2월에만 6건의 사용 신청이 들어온 상태다. 일부 보수단체가 설치한 천막은 서울시로부터 사용 허가를 받지 못한 만큼 명백한 위법이다.

하지만 “서울광장 분향소는 불법”이라는 서울시 지적은 어쩐지 공허하게만 들린다. 사실 세월호 천막들로 난민촌을 연상시키는 광화문광장의 어지러운 모습은 서울시가 자초했다. 2014년 7월 세월호 유족들이 국민적인 추모 열기에 힘입어 무허가 천막 3개를 세웠을 때 철거하기는커녕 추가 설치를 지원하기까지 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묵인해줘 버린 것이다.

물론 국가적 책임이 있는 세월호 참사를 투신 자살한 60대의 사망 사건 등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국민적 상처로 자리 잡은 안타까운 사고는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치유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3년 가까이 광화문 광장을 점거하고 있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광장은 특정 단체가 아니라 전체 시민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서울시의 주장은 광화문 광장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 진영 논리에 따라 예외를 두게 되면 법치는 무너진다. 서울광장에 무단으로 천막을 설치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 그런 처지에 불법을 저지른 당사자들이 거꾸로 서울시를 향해 삿대질을 해댄다. 이런 모순이 없다. 서울광장 천막 논란은 법치의 원칙이 무너지면 어떤 사태가 일어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경향신문]

10. 2월 국회는 구체제 청산 개혁입법에 집중하라

2월 임시국회가 문을 열었다. 이번 회기에서 제 정당이 할 일은 명백하다. 현재 국정 마비 상황을 불러온 과거 적폐를 해소할 개혁입법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100일 가까이 계속된 촛불집회의 명령이다. 더욱이 2월은 정치 일정이 거의 없어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는 데 적기다.



여야 모두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개혁입법 처리를 공언해왔다. 막상 1월 들어서면서 새누리당에서는 분당 사태가 벌어져 바른정당이 떨어져 나왔다. 국민의당은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느라 바빴다. 주요 개혁입법 처리 ‘0건’이라는 성적표는 촛불시민 앞에서 내밀기에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대선 구도의 불확실성도 줄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받아들여질 경우 치르게 될 다음 대통령을 뽑기 위한 절차가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후 60일 동안 정치권은 물론 시민 시선도 대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사이에 낀 2월 임시국회는 적폐해소의 골든타임이다. 어떤 개혁안을 처리할지도 대체로 드러나 있다.



 대통령 탄핵 사태를 불러온 구시대적 관행과 잘못을 바로잡는 게 먼저다. 정치·재벌·검찰·언론이 바로 서지 않으면 현 상황은 재연될 것이다. 재벌개혁을 위한 경제민주화 법안, 검찰개혁을 위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법, 세월호 침몰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 등 되풀이되는 사회적 참사를 막을 특별법 등이 우선이다. 정권만 바뀌면 언론의 인사와 논조가 뒤집히는 사태를 막기 위한 언론장악방지법, 정치개혁에 물꼬를 틀 선거연령 18세로 하향 조정 등도 처리해야 한다.

우려스러운 쪽은 여당이다. 촛불집회와 개혁입법에 거부감을 가진 친박계만 남은 새누리당이 2월 임시국회에 협조하지 않을 태세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어제 라디오에 출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허탈감을 갖고 실망해서 처음에 나온 촛불이 지금 다른 단체라든지 어떤 다른 세력에 의해 작동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진 분도 많이 계신 것 같다”고까지 말했다.



다만 야당 172석과 개혁적 보수를 자처하는 바른정당 32석을 합치면 204석으로, 재적 과반이다. 이들이 합의하면 23일과 다음달 2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개혁법안들을 처리할 수 있다. 연인원 1100만 촛불시민의 요구를 법과 제도로 완성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을 정치권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초동여담] 소시지, 똥개, 心

소시지 하나에 하나 더. 녀석은 결국 소시지 두 개를 날름 잡수고서야 손, 아니 발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소시지 하나에 왼발, 또 하나에 오른발인 셈이다. 손! 손! 손!을 외치던 우리 가족은 그제야 미소를 찾았다. 

설 연휴에 찾은 목포 누이집에서다. 오랜만에 해후한 녀석은 쌀쌀맞았다. '똥개가 비싸게 굴기는 ….' 녀석이 삐질까봐 입 밖으론 꺼내지 않았다. 누이 주장대로 진돗개 후손이라는 녀석은 눈치 백 단이다. 그나마 '천하장사' 소시지여서 두 개로 끝난 거다. 입에 안 맞는 '꼬마장사' 소시지면 세 개쯤 들이밀어야 겨우 마음을 열어줄 터. 그러니 '두 개로 끝내줘서 고맙다'며 넙죽 절이라도 올려야 하나.



실은 이게 다 헛수고다. 이제 헤어져 다시 만날 때면 녀석은 또다시 쌀쌀맞게 굴 것이다. 눈치 백 단이 하품을 해댄다. '개 마음을 얻기가 어디 그리 쉬운지 알았어' 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마음이란, 어쩌면 돈으로 겨우 살 수 있는 것. 견심(犬心)뿐 아니라 인심(人心)도 그렇다. 머리 굵은 조카들은 세뱃돈을 넉넉히 쥐어줘야 조금은 살가운 척한다. '그래, 요즘 뭐하고 지내니 …' 따위의 질문은 장문이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네, 아니오' 단문이다. 그마저도 몇 차례 오가면 침묵이 끼어든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소원한 관계'를 탓할 일도 아니다. 한 집에서, 한 방에서 뒹구는 자식들도 아빠와 엄마에게 내비치는 마음의 크기가 다르다. 초승달(아빠)과 보름달(엄마)이랄까. 장난감이 아쉬울 때는 아빠에게 달라붙지만 졸음이 몰려올 때는 엄마 품을 파고든다. 용돈이 궁할 때는 "아빠 돈 좀 …"이라고 말을 걸지만 대화가 궁할 때는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간다. 이것이 이 땅의 애비된 자들의 숙명이다. '배 아파 낳지 않았을 뿐 내가 어찌 지들을 키웠는데 …'라며 서운해봤자다. 생물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엄마보다 마음을 덜 쓴 탓이니 어쩌겠나.

마음이란, 어쩌면 돈으로도 결코 살 수 없는 것. 구복심불복(口服心不服)이라고, 우리 삶이 그렇다. 입은 열되 마음은 쉬이 열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강자 앞에서는 누구나 머리를 조아리지만 마음까지 허락하지 않는다. 권력자에게 자신의 운명을 잠시 의탁해도 언제든 때가 되면 제 갈 길을 찾는다. 그러니 인재를 구하려면 마음부터 얻어야 하는 법. 

유비는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을 끌어안았고, 유방은 한신을 곁에 두고서 천하를 품을 수 있었다. 반면에 피카소는 11명의 공식ㆍ비공식 연인들을 뒀음에도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 '뿌리 없는 삶'을 살았다. 스페인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사람을 얻는 240개의 마법>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나의 마음을 열어 상대방의 마음을 잡아라"다.

연말 조직 개편 이후 기업마다 연초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새로운 만남은 으레 불편과 불안을 동반하지만 그 '마음'에 따라 표정이 엇갈린다. 마음이 통하는 선배(또는 상사)를 만난 후배들은 발걸음이 가볍다. 마음을 닫은 선배와 일해야 하는 후배들은 출근길이 지옥길이다. 그러니 뒷담화는 기본이요 '마음 속 사표'는 옵션이다. 그런 조직이 제대로 항해할 리도 없다. 

그래서다. 좋은 조직의 필수조건은 무소불위의 권위도, 임전무퇴의 추진력도, 군계일학의 아이디어도 아니다. 결국은 아랫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이를 위해 윗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기꺼이 내주는 것. 그러지 않고서는 권위도, 추진력도, 아이디어도 무용지물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곧은 진리다.



2. [아시아경제]일터삶터] 삼계탕과 닭도리탕

​"누나, 저도 삼계탕 좋아하는데 …". 삼계탕도 아닌 닭도리탕을 해먹는데 불현 듯 귓전에 돋아난 음성. 별 친분도 없던 20대 초반의 청년. 여럿이 함께한 한 번의 식사와, 수업 사이 마주침에 호응했던 짤막한 인사. 

여행을 위해 탐색한 곳의 체류를 늘리고 목적을 어학연수로 변경했다. 애써 가라앉히던 생존강박이 잠시 수면위로 나온 것이다. 깊은 고민 없이 선택한 어학원에는 나와는 이십 년 가까운 터울의 타국과 한국 청년들로 그득했다. 

오래 앓아 온 내 지병 중엔 '상상공감'이란 게 있다. 깊이 사정을 알지 못함에도 저간의 상황과 상상으로 입장을 가늠해보다 덜컥, 때로 지나치게, 공감을 품게 되는. 그러니까, 타국의 어학원에서 다양한 타국 청년들 사이 빛나던 한국 청년들에게도 그랬던 것이다. 그 명민함들이 뿌듯했고 밝음이 부러웠고 고민들이 보여 안쓰러웠고 너무나 건실함에 착잡했다.



​한창 무모할 수 있는, 무모해야 할 20대가 아닌가. 타국의 또래들은 저토록 마음껏 무모하고 스스럼없이 무례한데, 이런 규수들과 샌님들이라니. 그다지 다르지 못한 내 20대가 겹쳐져 괜히 더 안타까웠을 게다. 

'안녕하세요. 언니~', '안녕하세요. 누나~'. '세상에 공짜 없다'를 몸소 마음속 겪어온 나로선 그들의 무상(無償) 예의에 나보다 힘든 사람의 것을 얻어 쓰는 듯 겸연쩍었다. 빚이 이래저래 늘어가는 기분이었다. 당시 나름의 빚 갚는 방식은 음식을 해서 나눠 먹는 것이었다. 아직은 요리가 익숙지 않을 나이에 타국에서 스스로 매 끼니를 해결한다는 게 쉬울 리가 있나.



내 것을 만들 때 양을 더해 같은 숙소에 머무는 어린 친구들과 나눠 먹곤 했다. 기회를 만들어 몇몇을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했다. 타국 친구들을 부르기도 했지만, 한국 친구들이 우선이었다. 

친한 녀석들의 배고프단 말에 흔들려, 혼자 몸보신할 요량으로 한국서 가져간 백숙용 약재를 죄 털어 넣어, 삼계탕 파티를 연 적이 있다. 다음날, 어학원에서 마주친 H가 다짜고짜 서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누나 저도 삼계탕 좋아하는데 …", "아 미안, 다음엔 초대할 게." 덜컥 미안했다가, 이내 볼멘 심상이 생겨났다. '어떻게 수십 명을 다 불러?' 

'다음엔 초대할게'란 의례적인 말은 '닭도리탕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변해 마지막까지 압박이었다. 유례없이 푹푹 찌는 긴 여름은 그곳도 마찬가지였고 에어컨도 없이 오래 불을 쓰고 파티를 한다는 게 도무지 말이 안 돼 냉국수나 만들어 몇몇과 식사만 몇 번 하고 말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일주일 후, 페이스북에 연결된 친구를 통해 H의 포스팅이 떠올랐다. 그가 아닌 그의 누나가 올린 것이었다. "2016년 9월 00일. 너무 예쁘고 의젓하고 착한 OO이가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 횡경막께가 잠시 일렁였다. 

'아까워라 …' 도무지 무엇이 아까운지 분명치 않은 채 머리와 입안을 맴돌았다. H의 페이스북 담벼락엔 애통함이 담긴 친구들의 애도 글 아래, 불과 얼마 전 그가 포스팅한, 청년답게 개구진 글들과 여행지의 사진들이 있었다. 사진 속 그는 여전히 생생한 
눈빛으로 화면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리움을 영사할 기억 하나 없고 비통할 수 있는 친분도 관계도 아닌, 그저 '아는 청년'의 비보였다.



명절은 신정에 이미 지냈으니, 설 연휴기간 먹을거리를 위해 장만 미리 봐 뒀다. 연휴 중 하루, 냉장고 속 재료를 꺼내 닭도리탕을 만드는데 불쑥 H가 떠올랐다. 우연인지 어떤 무의식이 작용했던지, 그 9월 이후 삼계탕도 닭도리탕도 해먹지 않고 있었고, 그날이 처음이었다. 

손질한 재료를 냄비에 넣어 불 위에 올리고 불 조절을 위해 서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유리 너머에 까닭 흐린 '아까움'이 보글거렸다.



3. [조선일보][일사일언] 수의엔 주머니가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난 연말이다.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바쁜 세밑, 왕복 하루가 꼬박 걸리는 지방에까지 오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알게 된 지인들이 죄인을 만들었다고 원망한다. 부친상만큼은 알리는 게 도리라고 했다. 그런 원망을 들으면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아버지와 유난히 친했다. 평생 싫은 소리를 안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며느리들에게까지 인기가 좋았다. 그런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늘 원망과 한숨의 대상이었다. 나는 안다. 살아오면서 온갖 궂은일은 어머니 몫이었다. 유산 갈등에서도 아버지는 당신의 형제에게 대폭 양보했다. "장남이 책임만 지고 권리를 포기했다"며 어머니는 두고두고 원망하셨다. 일평생 샌님처럼 곱게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는 요즈음 통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버지의 무게는 컸다. 해마다 명절엔 부자지간 산행을 나섰다. 막걸리라도 한잔 걸치면 무척 행복해 하셨다. 몇 년 전 힘에 부쳐 산행 중단을 선언했을 때 우리 형제는 할 말을 잊었다. 영원한 이별이 가까워 왔음을 눈치 챈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몸을 소진시켜 우리를 키워내셨다. 일과도 바뀌었다. 마당 잔디는 걷히고 고추 묘목이 대신했다. 우렁찬 자목련은 고추밭에 그늘이 진다는 이유로 싹둑 잘렸다. 우리가 불평이라도 하려 치면 가만히 응답했다. "세월이 답이다. 늙어봐라. 꽃보다도 고추·상추 키우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뜨거운 불이 들어가는 것을 오열 속에 지켜보길 두어 시간, 유골함이 전해졌다. 당신의 마지막을 담은 상자는 놀랍도록 가벼웠다. 선산으로 가는 길, 내 몸에 전해지는 유골함의 따뜻함에 진저리쳤다. 천붕(天崩)이라고 하는 이유를 비로소 알았다. 잠을 설친 새벽,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손에 쥔다. 학창 시절 의미도 모르고 읽었던 책이 왜 위대한 고전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황제가 그토록 강조했던 진리를 아버지의 죽음으로 오늘 문득 깨달았다. 우리 모두 언젠가 빈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수의에는 주머니조차 없다.


4.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얼큰하고 시원한 ‘대구탕’

대구(大口)는 회유성 한류 어종으로, 입과 머리가 크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겨울철 산란장인 가덕도, 진해만 등 동남해안에서 11월 하순에서 2월 중순까지 많이 잡힌다. 예전에 참으로 흔했던 대구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해 서민 밥상에 오르기 어려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민과 당국의 오랜 노력으로 이제는 어획량이 늘어나 대구를 먹을 기회가 많아졌다. 대구는 회, 찜, 탕, 구이, 조림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알, 창자, 아가미로는 맛깔난 젓갈을 만들고 내장 곤이는 탕을 끓일 때 넣은 고급 재료로 대접받는다. 그래서 대구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버릴 것이 없다고 한다.


대구 요리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메뉴가 대구탕이다. 해장국으로도 손꼽히는 메뉴다. 멸치 육수에 손질한 대구와 곤이, 무를 푸짐하게 넣고 소금, 간장 등으로 간을 해 끓인 다음 식성에 따라 미나리, 콩나물 등 야채를 넣고 파, 마늘, 고추, 양파 등 양념을 더하면 시원한 대구탕이 완성된다. 다대기를 풀어 얼큰한 매운탕으로도 즐길 수 있다.

대구탕으로 이름난 식당들은 주변에 꽤 있다. 생대구를 쓰면 맛이 더 낫다고 하지만, 한철 음식인 데다 가격도 높다. 그래서 굳이 생대구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러시아 캄차카 해역 등지에서 잡아 즉시 냉동하는 냉동대구로도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해동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로 대구탕은 이제 계절 불문하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대구탕을 맛깔스럽게 끓여내는 음식점도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별관 뒤편 정우빌딩 지하 1층에 ‘뒤풀이’라는 대구탕집이 있다. 이름 그대로 아침 해장 손님이 많다. 대구 뼈와 머리로 국물을 우려내 얼큰하고 시원하다. 큰 양푼대접에 식감 좋은 대구 살이 푸짐하게 나온다. 마니아들은 대구머리탕을 선호한다. 시원한 국물은 무한 리필이다. 값싸고 푸짐해서 가성비에 감동하게 되는 집이다.


여의도역 인근 신송빌딩 지하에는 ‘신송한식’이라는 또 다른 대구탕 맛집이 있다. 큰 양푼대접에 대구, 무 그리고 파만 약간 더해 나오는데, 대구 육질이 좋고 국물도 칼칼하고 시원하다. 식사는 물론 해장국으로도 일품이다. 머리탕, 내장탕도 있다. 점심시간에는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


삼각지역 인근 대구탕집이 모여 있는 골목 안에 ‘원대구탕’이 있다. 1975년 개업한 삼각지 대구탕의 원조집이다. 처음에는 국방부, 육군본부가 인접해 있어 군인들이 많이 찾았다. 넓적한 냄비에 탕을 담아 식탁에서 직접 끓여 준다. 대구, 내장, 미나리, 콩나물 등에 매운 양념을 더해 다소 진한 맛이다. 매운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에게는 지리로도 요리해 준다. 대구 아가미 젓갈 등 반찬도 괜찮다. 밥을 볶아먹기도 하나, 탕 국물에 말아 먹는 것도 별미다.

서울역 바로 건너편 동자동 골목길에는 ‘맛고마 대구탕’이 있다. 전남 함평 출신의 1965년생 사장이 1999년 개업한 집이다. 고향에서 어머니가 깻잎, 김치 등 밑반찬을 지금도 보내 주신다. 뚝배기에 졸깃한 대구살과 맑은 국물의 대구탕이 나온다. 대구 머리와 뼈로 낸 육수는 시원하고 담백하고 깔끔하다.

차가운 바람이 유난히 더 차갑게 느껴지는 올겨울이다. 대구탕은 이제 사철음식이 됐지만, 그래도 역시 겨울에 먹어야 제격이다. 요즘처럼 이런 날씨에는 더욱 그렇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버트런드 바셀의 '사랑'

95세의 버트런드 러셀은 자서전(1967~69년 출간,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프롤로그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의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마치 거센 바람과도 같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나는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 그 첫째 이유는 사랑이 희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단한지 그 기쁨의 몇 시간을 위해서라면 남은 여생을 모두 바쳐도 좋으리라 종종 생각한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랑이 외로움- 이 세상 언저리에서, 저 깊고 깊은 차가운 무생명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몸서리치도록 만드는 그 지독한 외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인들과 시인들이 그려온 천국의 모습이 사랑의 결합 속에 있음을, 그것도 신비롭게 축소된 형태로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추구한 것이며, 비록 인간의 삶에서 찾기엔 너무 훌륭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나는 결국 그것을 찾아냈다.”

일전에 본 스탕달과 달리, 그는 4번의 결혼(3번의 이혼)을 포함, 여러 다채롭고 격정적인 연애를 경험했다. 그 연애들 사이사이 공백기를 그는, 노벨 문학상(1950) 작가의 저 실감나는 외로움의 묘사에서 엿보이듯, 힘겨워했다. 물론 그 고통의 시간은 대개 그리 길지 않았고, 그는 외로움에 앙갚음하듯 뜨겁게 사랑했다.


뿌리가 휘그당의 처음에 닿아 있는 자유주의 전통의 백작가 차남으로 태어나 근대 100년을 거의 채워 사는 동안, 수학자로, 철학자로, 역사가로, 그리고 반전ㆍ반핵 평화운동가로 인류 지성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그였다. 초년의 스승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의 첫 영역으로 꼽았던 내면적 의식의 자유, 즉 양심과 생각과 감정과 의견과 주장의 자유를 그는 생애 내내 실천했다. 

그런 그가 생의 말년 자서전의 첫 줄을 저렇게 시작한 것은, 사랑에 대한 사랑 고백이었을 것이다. 그의 자서전은 스탕달의 연애론보다 훨씬 알찬 연애론이기도 하다. 그건 이성이 경험을 통해 감성과 결합함으로써 빚어낸, 좌절과 성취의 고백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1970년 2월 2일 98세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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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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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국정 교과서 논란 이쯤에서 끝내자

​정부가 어제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을 발표하면서 검정교과서 집필기준도 함께 제시했다. 무엇보다 국정에서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하면서도 검정에서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란 표현을 허용한 대목이 눈에 띈다. 작년 11월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 이후 교사, 학자, 전문가, 시민 등의 의견 수렴과정에서 가장 많이 지적된 건국시기 서술 기준을 완화한 것이다. 국정 도입에 따른 논란을 줄이되 학문의 다양성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작년 말 국정교과서 현장적용 방안 발표 때만 해도 ‘대한민국 수립’은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명시된 표현인 만큼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교육부로서는 한발 물러난 것이다. 이와 함께 국정 최종본에도 각계 의견을 반영해 친일·반민족 행위, 위안부, 제주 4·3사건 등에 관한 서술을 보강하고 과거 정부 주도로 추진된 새마을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내용 등을 추가했다.

이 정도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진보진영의 주장이 상당히 반영된 셈이다. 국정교과서 적용 시기도 당초 계획보다 1년 늦췄다. 이제는 논란을 접고 국·검정 혼용 체제를 시도해 볼 만하다는 얘기다. 금년에는 자원하는 곳만 ‘연구학교’로 지정해 국정교과서를 공급하고, 내년부터 각 학교 자율로 국정이나 검정을 택일하게 한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그런데도 진보성향 교육감들이 ‘국민의 뜻’을 내세워 국정교과서 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데다 검정교과서 일부 집필진은 집필거부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이란 도대체 누구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동안 검정교과서의 좌편향 행태를 거세게 질타했던 국민들의 지적을 애써 외면해선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최근 법사위원회로 넘긴 ‘역사 교과용 도서의 다양성 보장에 관한 특별법’(국정교과서 금지법)은 이율배반이며 자가당착이다. 겉으로는 학문 다양성 보장이란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는 자기들의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국정교과서를 원천 봉쇄하려는 기도다. 서로 시각이 다른 역사교과서를 학생들에게 함께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다.



2. 대선 출마 선언자들, 깜냥이나 되는가

이번 대선에서 잠룡의 한 명으로 꼽히던 원희룡 제주지사가 어제 불출마를 선언했다. 현직 지사로서 현안 업무와 대선 출마를 병행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는 이유다. 도정에 더욱 충실히 매달리겠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이에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도 며칠 전 불출마 선언을 했다. 박 시장 역시 “다시 시민 속으로 들어가 서울을 안전하고 시민들이 행복한 도시로 만들겠다”며 의지를 밝혔다.

이로써 유력 후보군에 포함돼 있던 사람들 중에서는 불출마 선언자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에 이어 4명으로 늘어났다. 대선 가도에서 역부족을 느낀 때문이겠지만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적잖이 고민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특히 박 시장은 “그동안 열심히 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런 반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앞서가는 가운데 여야 후보들의 출마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 유승민 의원이 이미 예비후보 대열에 합류했으며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출마선언만을 남겨놓고 있다. 여기에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포함해 다른 5~6명도 출마선언을 했거나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러다간 예비후보들이 20명 가까이 이를 전망이다.

솔직히 말해서,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 판국에서 역설적인 현상이다. 그렇다고 누구는 출마해도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누구라도 국가를 이끌어갈 비전과 능력이 있다면 출사표를 던져 국민의 뜻을 물어볼 수 있는 것이 민주사회의 장점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 바로 그런 본보기다. 물론 대통령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것이냐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출마 선언자 가운데서도 도중에 탈락하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고 나섰는지는 금방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일단 지지율 경쟁에서 대략적인 우열이 가려지게 된다. 깜냥이 안 되는 사람들은 제풀에 지쳐 떨어져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빨리 포기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꼴뚜기에 망둥이까지 마구 나대는 선거판이 돼서는 곤란하다. 불출마 선언자들의 뒷모습이 새삼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다.



[매일신문]

3. 일제 농간으로 개교일 바뀐 초교는 올바른 역사 되찾아야

일제(日帝)의 농간으로 전국 상당수 초등학교의 설립 시기가 바뀌었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 충격적이다. 일제가 구한말 고종 때에 세운 학교를 마치 자신들의 시혜품처럼 왜곡시킨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 한국 사회가 아직도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우리 자신의 역사조차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리진호 지적박물관 관장이 1895년부터 1910년 한일강제병탄까지 발행된 구한말 관보와 조선총독부 관보를 확인하니 전국 103개 초교의 설립 시기가 잘못 기록돼 있었다. 이들 초교는 1895년 고종의 조칙에 따라 관공립 소학교로 설립됐는데도, 1906년 일제 통감부가 ‘보통학교령’을 공포하면서 소학교를 그 이후의 날짜로 등록하게 했다는 것이다. 일제가 구국을 위해 애국지사와 지방 유지들이 설립한 사립학교를 공립보통학교로 전환하면서 그 이전의 학교 역사를 깡그리 말살한 사례도 많았다. 

  
이들 학교는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 이상 개교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정확하다. 대구경북에만 16개 초교가 개교일을 잘못 알고 각종 기념식과 행사를 가져왔다고 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일제가 마치 한국 국민을 위해 학교를 설립한 것처럼 꾸며놓은 일을 아직까지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 스스로 반성할 점이 적지 않다.



뒤늦게나마 이 사실을 알게 됐으니 반드시 바로잡고 넘어가야 한다. 일부 초교 관계자들이 학교와 동창회, 교육 당국과 협의해 개교일을 고치겠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경북고가 지난해 개교 역사를 100주년이 아니라 117주년으로 바로잡은 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북고는 1916년 관립대구고등학교로 출발한 때를 개교일로 보지 않고, 1899년 영남지역 최초 근대학교로 문을 연 달성학교를 효시로 보고 역사를 고쳤다.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자부심과 민족정기 고양을 위해서는 꼭 해야 할 일이다. 독도, 위안부 같은 거대 담론도 중요하지만, 학교 역사 왜곡 같은 잔재는 우선적으로 없애야 한다. 왜곡되고 뒤틀린 학교 역사는 졸업생과 구성원 등이 뜻을 모아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4. 먹고살게 해달라는 설 민심, 대선주자들은 깊이 새겨라“제발 먹고살게 해달라.”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이 청취한 지역의 설 민심은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 그만큼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고 어렵다.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국민경제 전체가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경제의 3대 축인 내수`투자`수출 모두 부진의 터널에 꼼짝 못하고 갇혀 있다. 경제성장률이 3%대를 지나 2%대로 내려앉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산층 이하 소득 감소와 빈부 격차 확대는 그 필연적 결과다.

 
이런 난국을 해결하는 길은 국민경제의 규모를 키우는 것밖에 없다. 경제가 성장해야 돈이 돌고, 돈이 돌아야 서민의 삶이 나아진다. 참으로 단순`명쾌한 사실이다. 그러나 대선주자들은 이런 진실을 외면한다. 2%대 저성장 기조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고, 그저 표를 모으기 위한 ‘표퓰리즘’ 공약의 남발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G20(주요 20개국) 가운데 가장 빨리 불어나고 있는 국가 채무의 심각성엔 입을 닫고 있다.



대선주자들의 공약을 보면 다음 정권은 누가 잡든지 국민은 잘살게 될 것처럼 보인다. 공무원을 81만 명이나 늘린다고 하니 일자리 걱정은 놓아도 된다. 청소년`노인`장애인 등 2천800만 명에겐 매년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도 연간 30만원의 토지배당금을 준다고 한다. 징병제도 모병제로 바꾸거나 군 복무 기간을 10개월로 단축하겠다고 하니 젊은이들도 살판나게 생겼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 올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런 좋은 세상은 공짜로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금을 더 걷거나 그것이 안되면 빚을 내야 한다. 우리 경제 상황에서 세금을 더 걷는 것은 무리다. 결국 국민이 세금을 더 낼 수 있을 만큼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 한 ‘솜사탕’ 공약은 빚을 내야만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부채는 이미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빚을 내는 것은 국가 파산을 앞당기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대선주자들은 이런 불편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런 기만적 사탕발림을 가려낼 주체는 국민이다. 그들이 약속하는 좋은 세상은 지속 가능하지 않는 사상누각임을 국민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서울신문]

5. ​8인 체제 헌재, 신속·공정성 잃지 말아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어제 퇴임했다. 박 소장은 퇴임식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에 대해 “대통령의 직무정지 상태가 두 달 이어지고 있는 상황의 중대성에 비춰 조속히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점을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3월 13일 이전의 조속한 탄핵 결정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제 헌재의 탄핵 심판은 재판관 9명이 아닌 8명 체제로 진행된다. 공석인 소장 자리는 선임인 이정미 재판관이 권한대행을 맡는다.

탄핵 심판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심판 결정이 늦어지고 빨라지는 것이 누구에게 유불리한가를 따지는 게 아니다. 오직 공정하고도 엄격한 탄핵 심리를 위한 것이다. 지금 헌재는 소장의 공석으로 인한 8명 체제로 이마저도 다음달 13일 이정미 재판관이 물러나면 7명 체제가 된다. 이들 중 뜻밖의 사고로 추가 공석이 생긴다면 헌재는 모든 심리가 중단되는 헌법적 유고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재판관이 7명 이상일 때만 심리가 가능하고, 대통령 탄핵 심판은 6명 이상이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판관 1명의 공석이 주는 의미는 심판절차상 차질을 빚는다는 점 외에도 사건 심리와 판단에 영향을 주면서 심판 결과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가능한 한 8명 체제에서 결론이 나는 것이 마땅한 이유다. 더구나 비상시국이 길어질수록 나라 꼴은 더 험하게 돌아갈 게 뻔하다. 지금 광장의 촛불과 태극기 집회 간의 반목과 갈등 심화로 잇단 자살과 분신 등으로 나라가 분열되고 있다. 나라 안팎의 경제·안보의 위기까지 생각한다면 온 나라와 국민이 언제까지 탄핵 정국에 발목 잡혀 있어야 하는가.

상황이 이런데도 박 대통령은 ‘헌재 흔들기’ 행보로 국민을 더욱 실망시키고 있다. 지금 탄핵 심판이 몇 달 뒤로 한참 늦어지고 혹여 탄핵이 기각된다고 하더라도 박 대통령은 이미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할 권위를 상실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결론이 어떻게 나든 대통령이라면 하루라도 비정상적인 시국을 종식시켜야지 하는 마음으로 헌재의 심판에 최대한 협조하는 것이 도리다.

대통령이 보수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음모론’ 같은 황당한 주장을 펴며 동정 여론 조성과 지지층 결집에 나서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대통령 측 변호인단도 정공법 변론이 아닌 ‘중대결심’을 운운하며 탄핵 결정을 지연시키려는 ‘꼼수’ 전략을 접어야 한다. 헌재 역시 신속함은 물론이고 어떤 시빗거리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을 정도로 엄격하고도 공정한 심리를 진행해야 한다.



[경향신문]

6. 시대착오적인 청와대·삼성·극우단체의 3각 커넥션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극우 단체 10여곳의 ‘관제 데모’에 삼성 등 재벌이 기획 단계부터 적극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의 고위 임원은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마련한 회의에 직접 참여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동안 삼성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댔다며 피해자를 자처했는데 이번 청와대, 극우 단체의 3각 커넥션 의혹에는 뭐라고 변명할지 궁금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구속영장 청구에 극우 단체들이 ‘경제 위기’ 운운하며 강하게 반발한 것도 지금 보니 이해가 된다.

특검 등에 따르면 청와대와 재벌, 극우 단체의 유착은 2014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아 정무수석실 주도로 관제 데모 기획 회의가 열렸다. 삼성 측은 부인하지만, 회의에는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외에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전무 등이 참석해 집회 주제와 일시, 장소, 지원 단체, 지원 금액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그 결과 지난 3년간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재벌에서만 70억원가량이 건네졌다. 이 돈으로 극우 단체들은 박근혜 정권을 위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과 세월호 유족 비난 집회를 열었고, 삼성 등을 위해 재벌개혁 반대와 노동법 개정 찬성 구호 등을 외쳤다. 노인을 앞세운 극우 단체 시위는 막무가내였고, 박근혜 정부하에서 불가침의 성역이나 다름없었다. 뒤를 봐주는 정권과 재벌을 믿고 그랬던 것 같다.



검찰도 손을 놨다. 작년 초 어버이연합이 청와대 행정관을 통해 전경련 자금을 우회적으로 지원받아 관제 데모를 벌인 단서를 확보했지만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권력과 금권을 이용한 여론 조작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역시 이들 극우 단체가 적극 참여하고 있다. 참가자들 일당은 통상 2만원이지만 추운 날은 6만원, 유모차를 끌고 나오면 15만원을 준다는 관계자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됐지만 박 대통령은 이를 자신의 방패막으로 활용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그분들이 눈 날리고, 추운 날씨에 계속 나오시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법치를 수호하기 위해 고생을 무릅쓰고 나오는 것 같습니다. 가슴이 좀 미어지는 심정입니다”라고 했다. 재벌 돈으로 관제 데모를 열고 이를 건전한 여론인 양 호도했다.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다.



7. 원칙도 명분도 없는 ‘텐트론’ 언제까지 매달릴 건가

설 연휴를 지나며 정치권에 온갖 이합집산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을 ‘3월13일 이전’으로 천명하며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자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진 분위기다. 빅텐트론(論)은 친박근혜(친박)·친문재인(친문)계를 제외한 나머지 세력들이 제3지대에서 하나의 정당으로 모이자는 주장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기존 정당에 합류하지 않은 채 개헌과 패권주의 청산을 고리로 추진해왔으나 벽에 부닥친 상태다. 다급해진 반 전 총장은 31일 “모든 정당·정파 대표들로 개헌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개헌을 내세워 어떻게든 빅텐트를 세워 볼 심산이지만 개헌은 오갈 데 없는 정치인들이 정략적으로 추진할 일도 아니고, 추진되어서도 안된다. 

스몰텐트론은 빅텐트론이 사실상 실패하자 여권은 반기문·유승민·남경필 등이 모여 보수연합으로, 야권은 안철수·손학규·정운찬 등 비문 세력끼리 별도로 뭉치자는 구상이다. 여야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을 빼고 각자도생의 길을 찾는 것이다. 모두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한마디로 말장난이요, 구태 정치다. 원칙도 명분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문재인 대세론’에 맞서기 위한 정치공학적 연대를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로 대표된다. 정치는 정당을 중심으로 정책과 노선, 정체성을 놓고 서로 경쟁하며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권력을 좇아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것은 정당정치를 후퇴시키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사람들에겐 누구를 위해, 왜 정치를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이번 대선은 짧은 선거기간으로 뚜렷한 비전과 정책보다 세력 간의 짝짓기로 흐를 것이 우려됐다. 대선에 나선 정당과 그 대표 주자는 분명한 정책과 확고한 국정운영 철학을 유권자에게 보여주는 게 당연하다. 정체불명의 이합집산이나 표를 노린 선거용 수사(修辭)는 정의 실현을 위한 적폐청산이란 대의명분과는 거리가 멀다. 

촛불민심은 여야를 포함해 정치권 전체의 반성과 변화를 촉구하는 엄중한 항의였다. 정치인은 시민 앞에 먼저 고개 숙여 자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도리다. 그런데도 촛불을 아전인수 격으로 왜곡하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세력 확장이나 주도권 다툼에 골몰한다면 더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촛불시민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뒤늦게 숟가락을 들고 나타나 ‘내 상이니 네 상이니’ 하며 다툼을 벌이는 꼬락서니를 더는 두고 볼 수가 없다.



[한국경제]

8. 더 미룰 수 없는 방폐장, 국회의 직무유기다

30년 넘게 논란만 거듭해온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부지 선정 문제가 또 다음 정부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5월 산업통상자원부가 2028년 부지 선정, 2053년 본격 가동을 골자로 하는 로드맵을 제시하고 관련 법안(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 절차 및 유치지역 지원법안)을 11월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는 감감무소식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탄핵정국으로 해당 법안이 의원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탓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그게 이유가 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시간적으로 보면 올해부터 정부가 부지 선정작업을 시작한다고 해도 지역 주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게 전문가의 우려다. 이런 판국에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로 첫 단추조차 끼우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이러다 대선정국이 조기에 닥쳐오면 민감한 사안은 미루자며 법안 처리가 아예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다음 정부에서 법안이 처리된다는 보장도 없다. 야당은 탈핵을 부르짖는 데다 여당 또한 영화 ‘판도라’ 등 반(反)원전 분위기에 몸을 사리는 눈치다. 이런 식이면 차기 정부 또한 방폐장 문제를 무기한 연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그러는 사이 고준위 방폐물의 포화 시계는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2019년 월성원전을 시작으로 2024년 한빛·고리원전, 2037년 한울원전, 2038년 신월성원전이 차례로 포화상태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정부는 각 원전에 임시저장시설을 확충해 당장 급한 불을 끈다지만 방폐장 건설이 지연될수록 임시저장시설도 곧 한계에 이를 것은 자명한 일이다. 원전 인근 주민들의 아우성이 점점 고조되고 있는 점도 큰 부담이다.

정치권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방폐장은 찬핵, 탈핵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원전을 기동하는 상황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설령 향후 원전을 폐로한다고 하더라도 방폐장은 피해갈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고 미룰수록 손해다. 국회는 지금이라도 방폐장법을 통과시켜라.



[세계일보]

9. ‘합리적 진보’ ‘개혁적 보수’가 주목받는 이유

세계일보 창간 28주년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 추이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안희정 충남지사와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의 상승이 주목받고 있다. 안 지사는 야권 대선후보 적합도에서 12.7%로 2위를 차지했다. 1위 문재인 전 대표의 31.3%보다는 크게 떨어지지만 이재명 성남시장(11.1%)보다 약간 앞섰다. 유 의원은 여권 대선후보 적합도에서 13.4%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14.7%)과 비슷하다. 

안 지사와 유 의원은 공통적으로 ‘합리적 개혁’을 표방하고 있다. 시대교체를 주창하는 안 지사는 ‘노무현의 적자’이면서도 ‘국익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통합과 협치를 외치고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을 존중한다”며 외교안보의 초당 대처를 강조하고 “지난 여섯 명의 대통령이 펼친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했다. “천지창조 하듯 경제공약은 하지 말자”며 포퓰리즘을 반대한다. 이런 안정적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보수층의 지지를 끌어내고 있다. 개혁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유 의원은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용감한 개혁’을 주장하고 “경제는 살리고 안보는 지키겠다”고 했다.

이번 조사에서 문 전 대표는 여전히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지만 과거의 낡은 사고에 얽매여 미래를 보지 못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젊은 층과는 달리 50,60대에서 불안감이 여전한 이유다. 반 전 총장 역시 자신이 외친 ‘정치 교체’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귀국 후 지지율이 계속 내리막길로 향하는 까닭을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안 지사와 유 의원은 아직 1위와 차이가 큰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합리적 진보’ ‘개혁적 보수’를 지향하며 실용적 개혁의 길을 걷는 것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이들의 원칙과 용기가 진영 논리에 빠진 구태 정치를 청산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동아일보]

10. 트럼프 측근의 대외정책

1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12일이 지났다. 세계는 여전히 그의 정책, 정신세계, 화법에 적응하느라 고심 중이다. 재임 기간 1460일의 0.8%에 불과한 12일 동안 벌어진 혼란을 생각하면 앞으로 4년을 어떻게 보낼지 아찔하다. 

대통령의 핵심 참모는 자신의 보스를 대변한다. 아산정책연구원이 1월 추천 도서로 ‘Death byChina’를 선정한 이유다.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은 피터 나바로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썼다. 나바로는 트럼프 행정부가 백악관에 신설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이 된 인물이다. 아산연구원은 “동맹국에 더 많은 방위비 분담금 지불을 요구하고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주장하며 중국을 적대시하는 트럼프의 모든 언동이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이 책으로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책과 다큐멘터리의 핵심은 ‘중국이 미국의 이익을 갉아먹고 있다.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이다.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로 캔자스 주(州)를 사버릴 수 있으며 월마트에서 중국 제품을 살 때마다 미국인 일자리가 하나씩 없어진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중국이라는 탐욕에 맞서지 않으면 우리는 물론이고 후손의 삶도 곤궁해진다”는 경고와 함께.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중국의 부상(浮上)에서 비롯됐으며 중국의 군사력 증강도 경제 성장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인권 문제도 경제 관점에서 본다. 중국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 환경, 저임금이 중국 제품의 원가 절감과 가격 경쟁력의 토대가 되므로 개선돼야 한다는 식이다. 중국의 보조금과 싼 임금을 노리고 산업시설을 옮겨 간 보잉, 제너럴일렉트릭(GE) 같은 미국 기업도 ‘나쁜 놈’으로 규정됐다. “우리는 전투기도 중국산 제품 없이는 못 만든다”는 구절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결론은 “잘못된 통상 정책을 바로잡아 중국이 더 이상 미국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익을 취하지 못하도록 하겠다”이다. “우리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불사할 준비가 돼 있다”는 대목도 나온다. 아산연구원은 “트럼프는 무역에서 취한 이익을 기반으로 중국이 미국에 군사 도발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의 통상 정책과 외교안보 정책은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분석했다. 

왜 트럼프가 대선 과정에서 한미 FTA(경제)와 방위비 분담(안보) 문제를 꺼냈는지, 이제 그림이 그려진다. 그에게 안보는 경제이고, 경제는 안보다. 중국만큼은 아니겠지만 트럼프는 한국도 나바로가 해석하는 프리즘을 통해 쳐다볼 가능성이 높다. 상대의 인식이 그런 만큼 우리의 대처도 상대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어야 한다. 외교는 경제처럼, 경제는 외교처럼 해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과 같은 부처별 제각기 대처로는 마땅치 않다. 그래서 당사자가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가 실현될까 봐 두렵다. 경제부총리가 경제-외교를 총괄하기에도 역부족인 상황에서 대선 관리까지 맡기겠다는 건, 해도 너무한 일이 아닐까 싶다.





주요신문칼럼



1. [한국경제][천자 칼럼] 스마트 안경

안경을 발명한 장인이 누군지는 기록에 없다. 단지 13세기 말 이탈리아 베네치아인이라는 사실만 확인될 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베네치아는 유리 제조 기술에선 독보적이다. 무색투명 유리도 그곳에서만 만들어졌다.



그 기술자는 광학적 원리를 유리 기술에 접목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안경을 발명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를 꺼렸다. 마녀사냥이 판치던 당시 유럽에서 안경은 초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악마의 유물로도 여겼다. 광학적 원리를 밝힌 철학자 베이컨조차 마술을 부리는 이단아로 마녀 사냥을 당할 뻔했다는 기록이 있다. 장인이 자신의 이름을 비밀로 한 배경이다.

하지만 이 ‘신물(神物)’은 급속히 퍼졌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구였던 것이다. 1445년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개발하면서 그 필요성은 점점 확산됐다. 안경 장인들로 구성된 안경 길드는 엄청난 부와 힘을 갖게 됐다. 16세기 들어 이들 길드가 모인 독일 뉘른베르크에선 대량 생산이 이뤄졌다. 외알 렌즈나 뿔테안경 등도 대중화됐다.



독일은 지금도 안경산업에 경쟁력을 갖고 있다. 정작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선 안경 발전이 더뎠다. 귀족층의 애호물이자 표상으로만 활용됐다. 스페인 여성들이 수다를 떨 때 안경을 착용했다는 점도 이채롭다.

우리나라에서도 17세기 이후 안경이 유행했지만 주로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다. 안경은 눈을 가리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무례한 것으로 인식됐다. 양반층만 착용할 수 있다는 예법까지 있었다. 조선 말기가 돼서야 일반인이 쓸 수 있었다. 20세기는 패션과 디자인 시대였다. 새로운 스타일이 사람들의 구매력을 집중시켰다.

구글은 6년 전 안경에 디지털기술을 접목해 스마트 안경 시대를 열었다. 안경의 기능성을 확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제품이 나올 때부터 의문이 따랐다. 무거운 게 치명적이었다. 팀 쿡 애플 CEO는 “안경이 필요 없는 이들이 구글 안경을 쓰려고 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결국 구글은 구글식 스마트 안경을 포기했다.

최근 카를로스 마스트라제로 미국 유타대 교수팀이 자동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스마트 안경을 개발했다고 한다. 착용자가 보고 있는 물체와의 거리를 적외선으로 측정해 렌즈가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다. 다초점 안경 등의 불편이 줄어들 모양이다. 지금도 라식이나 노안 수술 등에는 인공수정체가 활용되고 있다. AI(인공지능)형 렌즈가 사람 눈에 들어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안경의 진화는 끝이 없다.



2. [한겨레][곽병찬의 향원익청] 조선의 하늘을 그린 ‘별그대’ 류방택

홍건적이 1362년 2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침입했다. 개경이 함락되고 왕은 남쪽으로 피난 갔다. 강화도로 피신했던 류방택은 달력을 제작해 강화병마사에게 제공했다. 전란 속에서 조정은 국가의 달력조차 만들지 못했고 백성은 시도 때도 절기도 모른 채 살아야 했다. 그제야 그의 천문지식이 조정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도비산으로 돌아가 나오지 않았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은 1985년 국보 228호로 지정됐다. 2006년엔 보현산 천문대에서 발견한 소행성의 이름을 ‘류방택 별’이라 하였고, 2007년엔 만원권 지폐의 도안을 바꾸면서 뒷면에 천문시계인 혼천의와 보현산 천문대 천체망원경 그림을 넣고, 바탕은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깔았다. 낮을 지키는 건 세종대왕이지만 밤을 지키는 건 류방택이다.



서산군 부석면과 인지면에 걸쳐 있는 도비산,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은 새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지금은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형편없이 쪼그라들었지만, 이전만 해도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 천수만은 도비산을 삼면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팔봉산으로 흘러가는 나지막한 구릉 때문에 간신히 뭍으로 이어져 있었다. 평지돌출인지라 도비산에선 어디로든 망망무제였다. 소년 류방택이 별을 헤아리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다.

6대조 서령부원군 류성간 이래 할아버지(류굉, 상호군), 아버지(류성거, 전객령)까지 모두 고려의 당상관에 오른 집안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등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낮에는 과거와 무관한 경서나 주역을 읽고, 해 지면 쏜살같이 들이나 산에 올라 별을 보았다. 사실 별을 보고 헤아리는 건 서산 갯마을 사람들의 일과였다. 바다로 나가건 들로 나가건 그들은 별을 보고 방위를 가늠하고, 별을 살펴 내일의 날씨를 예상했다.

봉화대가 있는 도비산 산마루에선 별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별들의 운행이 한눈에 들어왔다. 북두칠성은 하룻밤에 한 번씩 북녘 하늘을 한 바퀴씩 돌았다. 할머니는 북두칠성 일곱 개 별들이 인간의 수명과 길흉화복을 주관한다고 했다. 그런 북두칠성은 한 번도 북극성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북두칠성은 하늘의 임금 곧 천제가 순라를 돌 때 타는 수레라고 했다.

별들은 계절에 따라 저마다 짝을 이뤄 온갖 형상을 드러냈다. 봄부터 여름까지 도비산 남쪽 하늘에선 청룡 형상의 별들(서양에선 전갈자리)이 무리지어 떠오르고, 가을 겨울엔 호랑이 형상의 별무리(서양에선 오리온자리)가 떠올랐다. 북두칠성 국자 밑에는 별 두 개씩 계단 모양을 이루는 삼태육성이 있었다. 탄생과 생육을 관장한다 하여 할머니들이 치성 드리는 별자리였다.

소년은 성년이 되어 예조판서 손애의 맏딸과 결혼했다. 하지만 그의 일과는 바뀌지 않았다. 낮에는 주역과 경서를 읽고 밤에는 별자리를 헤아렸다. 이웃에는 20대 초반에 출사한 사촌 류숙이 살았다. 그는 공민왕이 왕자 시절(강릉대군) 인질로 원나라에 갈 때 그를 시종해 4년간 살기도 했다. 그 인연으로 중국을 드나들게 된 류숙은 올 때마다 새로운 책들을 가져왔다. 준기지학(천문학) 관련 서적도 포함돼 있었다.

류방택은 32살(1352년)이 되어서야 환로에 오른다. 종8품 섭산원. 7년 만에 한 품계 오른 수직랑이 되었으니, 벼슬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1359년 침입했던 홍건적이 1362년 2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침입했다. 개경이 함락되고 왕은 남쪽으로 피난 갔다. 강화도로 피신했던 그는 사력(개인이 제작한 달력)을 제작해 강화병마사에게 제공했다.



전란 속에서 조정은 국력(국가의 달력)조차 만들지 못했고 백성은 시도 때도 절기도 모른 채 살아야 했다. 강화병마사는 월과 일, 절기와 일식 월식, 물의 들고 남을 따져 군령과 군정에 이용했다. 그제야 그의 천문지식이 조정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도비산으로 돌아가 나오지 않았다.

중국 천문학은 음양오행설과 결합돼 하늘의 뜻을 읽고 땅의 도리를 전해주는 제왕의 학문이었다. 제왕은 하늘의 명을 받아 제위에 오르고 백성을 다스리는 존재였다. 천체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천문도는 왕조의 정통성과 권력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증거였다. 하늘을 공경하고 부지런히 백성을 보살핀다는 경천근민(敬天勤民)은 제왕의 기본 책무였다.

그러나 전통사회에서 천체의 변화를 읽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춘분점과 추분점이 매년 서쪽으로 미세먼지만큼 이동하고 별자리도 바뀐다. 별의 위치도 2만6000년을 주기로 순환한다. 언젠가 북극성도 그 이름을 잃어버리리라. 그건 자전축이 23.5도 기운 채 돌아가는 지구의 세차운동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류방택의 눈에 그런 변화가 들어왔다. 초저녁과 새벽 자오선을 지나 남쪽에 걸리는(남중) 별들이 고구려 때 다르고 고려 때 달랐다. 대제학을 지낸 정이오는 그런 그에 대해 “낙구의 이치와 천체의 운행을 꿰뚫어 통하지 않음이 없었다”(금헌 류방택 행장)고 했다.

전통천문학은 하늘을 3원 28수로 나눠 관찰했다. 자미궁, 태미궁, 천시궁이 3원이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자미궁은 천상의 권부로, 천제와 종실이 거주하는 정궁이다. 태미원은 북두칠성 뒤편 남쪽 하늘에 위치한, 인간 역사를 관장하는 정무궁으로, 태미오제라는 다섯 천제가 번갈아가면서 주인 구실을 한다. 은하수를 끼고 있는 천시원은 하늘의 도시이자 시장이다. 천구를 둘러싼 하늘엔 28개 구역이 있고 제각각 대표 별자리(28수 수거성)가 있었다. 하늘은 1개의 특별시와 2개의 직할시 그리고 28개의 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태미오제는 수덕 화덕 금덕 목덕 토덕을 가진 다섯 천제로, 오덕의 운행에 따라 대위에 올라 세상을 관장한다. 누가 오르느냐에 따라 세상도 그에 맞는 덕의 소유자가 나라를 열고 제위에 오른다. 수덕이 화덕을 이기고, 화덕이 금덕을, 금덕이 목덕을, 토덕이 수덕을 딛고 일어섬에 따라(오행상승설) 나라의 흥망성쇠가 이루어진다.

1367년 12월 조정의 부름에 따라 서운관에 들어가고, 1375년 실무책임자인 부정(종4품)이 되고, 1379년 원윤으로서 서운관을 총괄하는 판서운관사를 겸직한다. 예감대로 왕씨는 저물어가고 이씨가 일어서고 있었다. 1392년 공양왕이 왕위를 이성계에게 선위했다. 역성혁명이었지만 선위의 형식을 취했기에 고려의 서운관 일관들은 길일을 잡아 태조가 즉위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서운관 책임자 류방택은 “천시를 점쳐서 대위에 오를 일시를 선택”(<태조실록>)했고, 그 공로로 원정공신에 책봉됐다. 그러나 다시 도비산으로 숨는다.

새 왕조는 피의 숙청을 통해 권력은 장악했지만 백성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부패하고 무능한 고려왕조에 등은 돌렸지만 신생 조선 또한 미덥지 않았다. 그런 백성의 마음을 잡아야 했다. 그러자면 조선의 개국과 이성계의 즉위가 ‘천명’에 따른 것임을 세상에 알려야 했다. 아울러 경천근민의 의지를 천명해야 했다.

마침 고구려 초기 제작된 옛 천문도 탁본이 입수됐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되어 별의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관측과 계산을 통해 천문도를 다시 작성해야 했다. 서운관 관원들은 말했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류방택뿐입니다.’ 태조는 서산으로 사람을 보냈다. 얼마나 급했던지 태조가 몸소 예산 연봉장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고민 끝에 류방택은 부름에 따른다. ‘이것 또한 저의 운명’이었다. 그는 서운관 책임자(제조)가 되어 한양을 기준점으로 삼아, 고구려본과 비교하며 별자리의 위치 변화를 관찰했다. 우선 절기별로 초저녁과 새벽녘 남중을 하는 별을 헤아려 남중 시각과 거극도(천구 북극으로부터 거리 값)를 계산해 혼효중성도수를 완성했다.



아울러 28수 수거성들 사이의 거리인 수거도를 계산해 천문도를 다시 그렸다. 을해년 작성된 류방택 천문도에는 3원 28수의 별 1467개가 포함됐다. 그가 작성한 혼효중성도수와 천문도는 <신법중성기>라는 이름으로 1395년 6월 태조에게 보고됐다. 태조는 돌에 새겨 소실되거나 인멸되지 않도록 명했다. 그것이 ‘석각 천상열차분야지도’였다.

그 직후 다시 잠적한 그는 82살 송도 취령산 밑 어디에선가 눈을 감았다. 두 아들에게 “나는 고려 사람으로 개성에서 죽으니, 내 무덤을 봉하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금헌 공 행장’)고 유언했다. 별에서 내려와 다시 별이 되어 올라간 그였으니, 이 땅에 무덤을 둘 이유가 무엇일까.

가로 122.5, 세로 211, 두께 12㎝의 흑요석에 새겨진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은 1985년 국보 228호로 지정됐다. 2006년엔 보현산 천문대에서 발견한 소행성의 이름을 ‘류방택 별’이라 하였고, 2007년엔 만원권 지폐의 도안을 바꾸면서 뒷면에 천문시계인 혼천의와 보현산 천문대 천체망원경 그림을 넣고, 바탕은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깔았다. 낮(앞면)을 지키는 건 세종대왕이지만 밤(뒷면)을 지키는 건 류방택이다.



3. [한국일보][편집국에서] 문화는 무엇으로 사는가

몇 년 전 한 무명배우와 술자리를 함께 했다. 상업영화에선 단역에 그쳐도 독립영화계에선 주연급으로 활동하는 배우였다.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상까지 받은 영화에 출연한(그가 연기한 장면은 다 편집되고 그는 사진으로만 등장한다)이력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했다.



저예산 독립영화를 활동 근거로 삼으니 그의 생계는 간단치 않았다. 그는 주차장에서 주차관리 일을 하며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고 했다. 언제 출연 제의를 받을지 몰라 당장 그만둬도 고용주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일거리만 찾는다고 덧붙였다. 이후 그가 출연하는 영화를 1년에 한 두 편 꼴로 마주하고 있는데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힘겨운 삶을 잘 버텨내며 자기 길을 꿋꿋이 걷는 듯해서다.



그가 등장하는 영화 대부분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지원으로 만들어졌거나 영진위의 지원을 받는 독립영화전용관에서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화에 대한 공공지원이 무명배우의 활동에 작은 응원이 된 셈이다.

문화를 만드는 이의 삶은 종종 고통스럽다. 시장의 논리는 비정하여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허름한 연극 무대든 문화계 어느 곳에나 예외 없이 적용된다. 아니 저예산이나 예술 등의 수식이 붙는 문화 활동일수록 시장은 더 가혹하게 작동한다. 제작비 1억원을 들인 영화가 100억원짜리 블록버스터보다 자본을 회수하기 어렵고, 무명배우들로 진용을 꾸린 연극이 아이돌을 앞세운 뮤지컬보다 물질적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작다. 문화계에 대한 공공 지원이 낮은 곳으로 향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야 아귀가 맞는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난 뒤 문화계 여러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내놓는 반응이다. 지원사업에 신청을 했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밀려난 관계자일수록 복잡다단한 심경을 비춘다. 자신들의 작품이 열등해서가 아니라 정부에 ‘찍혀서’ 지원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 안도하면서도 황당해 하고, 앞으로의 삶에 막막해 한다.

문화계라는 테두리 안에서 삶을 일궈가는 사람들은 전복적 기질이 다분하다. 예술은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과 반발을 에너지 삼아 전진한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조직적으로 네 편 내 편을 확연히 가르고 정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지원을 하겠다는 발상부터가 반달리즘과 다름없다.

2011년 가을 프랑스 출신의 유명 영화감독 뤽 베송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베송은 영화학도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 연출 강의를 한 뒤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한 일본 청년이 기가 죽은 목소리로 시작해 울먹임으로 끝나는 질문을 했다. “(그 해 봄 발생한)동일본 대지진의 충격이 워낙 커 미래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는 하소연이었다. 베송은 “그 힘든 감정을 영화에 담으라”고 격려했다. 상처가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는, 상투적인 답변이었으나 일본 청년은 큰 위안을 얻은 표정이었다.

지난해 12월 개봉해 일본영화 역대 한국 흥행 기록을 매일 갈아치우고 있는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영진위 집계 30일 기준 342만5,904명)을 보며 저 장면을 떠올렸다. 질문을 던진 일본 청년은 아니어도 일본 영화인들은 대재난으로 마음을 크게 다친 일본 국민에게 이 영화로 따스한 위안을 건넨다. 죽은 자들이 살아 돌아온다는 판타지가 한국 관객의 목젖까지 뜨겁게 한다. 세월호 참사가 연상돼서일 것이다.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너의 이름은’의 시나리오를 쓰던 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소식을 연일 접했다”며 “그 때 느낀 것들이 이 작품에 어느 정도 녹아 들어 있다”고 밝혔다. 지원금을 무기 삼아 문화인들을 일렬종대로 세우려 하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지지한 문화인들에게 불이익을 주려 한 정부의 국민으로서 부끄러울 뿐이다. 한국에서 문화는 무엇으로 사는가, 과연 문화로 살 수는 있는 것인가, 문화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근원적인 질문을 자꾸 던지게 되는 요즘이다.



4. [경향신문][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할머니와 온천

한때 그곳은 휴일이면 관광버스가 줄지어 드나들던 이름난 온천이었다. 그곳에서 맨 먼저 생겼다는 목욕탕의 이름은 그냥 온천탕이었다. 온천탕은 사시사철 몰려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손가락 끝이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탕 안에 들어가 앉아 있다가 나온 사람들은 목욕탕 안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유황 냄새나는 물을 물통에 받느라 줄을 서곤 했다.



그 동네에서 나고 자란 할머니는 으리으리한 목욕탕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도 허름한 온천탕으로 다녔다. 할머니는 늘 설을 쇠러 온 손녀들한테 솜을 두껍게 넣고 누빈 버선을 신겨 온천탕에 데려갔다.



평생 농사를 지은 할머니의 손힘은 어찌나 억센지 손녀들의 등짝을 시뻘겋도록 밀고서도 끄떡없었다. 목욕을 다 하고 나오면 할머니는 유황 냄새나는 약수를 질색하는 손녀들한테 우유를 하나씩 사서 쥐여줬다. 볼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손녀들은 우유 하나를 먹고 목욕탕에 올 때처럼 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데, 1시간은 족히 걸어야 했다.



흙탕물이 밴 지저분한 눈은 바짓부리에 엉겨 붙어 걸음을 뗄 적마다 어석버석거렸다. 성미 급한 할머니는 휘적휘적 저만치 앞서 걸었다. 손녀들이 힘들다고 해도 쉬어가는 법이 없었다. 신작로에서 샛길인 자드락길로 들어서면 할머니는 그제야 뒤를 힐끗 돌아보며 돌부리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일렀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신 지 오래되었고, 고향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할머니가 등을 밀 때마다 아프다고 짜증 내던 손녀가 반백년을 살았으니, 설음식 만드느라 목욕탕 갈 틈도 없이 며칠 동안 부엌에서 종종걸음치던 새파랗게 젊었던 내 어머니는 할머니가 되었다.

내 어머니는 설 쇠고 온 딸을 내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산 너머 온천에 데려갔다. 앉을 틈도 없는 곳에서 빈자리를 잘도 찾아낸 어머니는 맨 먼저 딸의 등을 밀었다. 얼마나 세게 미는지 쭈그리고 앉아 있던 딸은 그만 제 나이를 잊고 아파 죽겠다고 몸을 뒤틀 뻔했다. 따끔거리는 등에 차가운 물을 끼얹다 설핏 보니 내 어머니는 내 할머니와 닮아 있었다. 할머니는 떠나셨지만, 여전히 내 등을 밀어줄 어머니가 그곳에 있었다.



5. [서울경제][만파식적] 항공로 트래픽 잼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아니라 불과 30년 전만 해도 아무나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1983년 여권 발급제한이 풀리기는 했지만 해외여행을 떠나려면 통장에 200만원이 1년 동안 예금돼 있어야 했다.



당시 돈 200만원은 대학교 1년 치 등록금. 외화 낭비를 막겠다는 취지였다. 봄·가을철 제주행 비행기를 타면 온통 신혼부부 일색이었던 것도 그래서다. 제주에는 늘 정장을 차려입은 신랑과 연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신부로 넘쳐 났다. 

그랬던 해외여행의 빗장이 풀린 것은 1989년 1월1일.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른 뒤다. 은행에 돈이 없어도 빚을 내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일종의 ‘여행독립일’인 셈이다. 다만 하루 동안은 반드시 반공교육(1992년 폐지)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해외여행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항공여객 수는 1억391만명. 1948년 민간항공기가 최초로 취항한 후 68년 만에 처음으로 1억명을 넘어섰다. 1987년 1,000만명을 넘긴 후 5,000만명을 태우기까지 무려 20년(2007년 5,732만명)이 소요됐는데 1억명을 넘기기까지는 불과 9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노선별로도 지난해 국제선 여객 7,300만명, 국내선 여객 3,091만명으로 국제선 여객이 국내선을 압도한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비행기를 타다 보니 이제는 하늘길마저 막히는 시대가 됐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73만대가 넘는 항공기가 운항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가장 붐볐던 시간대는 오전10시로 시간당 평균 147대가 운항했다고 31일 밝혔다. 차량의 월요일 출근 시간, 평일 퇴근 시간처럼 항공로의 교통체증(트래픽 잼) 시간대인 셈이다.



공항별로 가장 붐빈 시간대는 인천공항 오후3시, 제주공항 오후7시, 나머지 13개 공항은 오전이었다. 이를 해소하려면 하늘길도 고속도로처럼 확장해야 한다니 격세지감이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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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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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서문 야시장 2월 재개장, 상인 화합의 값진 전기 삼자

서문시장 야시장이 이르면 내달 중순쯤 재개장할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말 화재 피해를 입은 4지구 대체 상가로 베네시움 쇼핑몰이 최근 확정되면서 4지구 상인들이 그나마 여유를 되찾고 야시장 재개장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다. 화재 이후 야시장을 둘러싼 부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생업에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야시장 상인들이 근 석 달 만에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피해 상인 모임인 4지구 비상대책위원회는 그제 “생업 터전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됐지만 그동안 야시장 상인들의 고충도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설 연휴 직후 야시장 재개장에 관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야시장 상인들도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면 언제든 찾아가겠다”며 환영의 입장을 내놓았다. 다소 늦은 감도 있으나 뜻하지 않은 불행한 사고를 겪은 상인들이 더 이상 시민에게 불편이 가지 않도록 뜻을 하나로 모은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무엇보다 사고 이후 4지구 상인들과 야시장 상인 간에 알게 모르게 쌓였던 감정의 앙금을 빨리 털어내는 일이 급선무다. 시장의 발전과 번영은 하나의 터전에서 늘 부대끼며 살아가는 상인이 먼저 화합하고 서로를 존중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화재 이후 피해 상인을 돕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많은 성금을 모금해 보낸 데는 자기 입장과 이득만 따지지 말고 서로 단합해 불행한 사태를 빨리 털고 일어서라는 뜻도 포함돼 있다.



이제 재개장의 운은 뗐지만 협의가 원만히 마무리되고 야시장 영업 준비 등 환경 재정비까지 다소 시일은 걸릴 것이다. 야시장이 이전처럼 활기를 되찾을 때까지 시민 모두가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서문시장이 대구 최고의 관광 명소로 제대로 자리매김하고 그 명성이 날로 높아지는 것은 상인만의 몫은 아니다. 서문시장에 대한 대구 시민의 애정과 아끼는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시와 관할 중구청도 빠른 시일 내 야시장을 다시 시민에게 선보일 수 있게끔 차질 없이 준비해야 한다. 야시장 정상화에 필요한 행정적인 지원과 홍보`마케팅 등에도 적극 힘을 보태줄 것을 거듭 당부한다.



2. 거세지는 중국의 사드 보복, 우회 전략 등 대책 찾아야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무역 보복이 최근 무차별 확대되고 있다. 전세기 운항 불허로 시작된 보복 움직임은 배터리와 화장품, 공기청정기, 비데 양변기 등으로 계속 번지는 추세다. 심지어 삼계탕 수출까지 막히는 등 압박 강도가 세지고 있다. 한국 소비재 상품과 서비스`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보복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련 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난해 10월 중국 당국이 양국 항공업계에 전세기 운항을 불허하면서 운항 철회가 잇따른 것은 보복의 신호탄이다. 표면적으로는 ‘저가관광 근절’을 내세웠지만 사드 보복 차원임은 부인할 수 없다. 당시 양국 관광업계에는 중국 정부가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를 20% 줄이라는 구두 지침을 내렸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이번 춘제(설) 연휴 제주를 찾은 유커 수만 봐도 얼어붙은 양국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올해 춘제에 제주를 찾은 유커 수는 지난해 대비 16.6% 감소했다. 음식숙박업 등 관광업계 피해뿐만 아니라 유커 매출액 비중이 70%가 넘는 면세점들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는 등 피해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보복에는 대구경북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대구공항 국제선 항공 여객 비율은 2015년과 비교해 106% 증가했다. 계속 적자를 봤던 대구공항이 처음 흑자로 돌아선 것은 국내 여객 수요 증가 탓도 있지만 지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증가와 환승 확대 등 유커의 몫이 컸다. 하지만 이런 실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드 갈등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유커가 큰 폭으로 줄 수밖에 없어 타격을 피할 수 없다. 화장품`식품 등 중국과 소비재 상품을 거래하는 지역기업 피해도 커지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우리가 꺼내 들 대응 카드가 극히 적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발 무역 보복에 정면으로 맞설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장벽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중국 소비자 심리를 정확히 파악해 해외직구 확대 등 우회 전략도 한 방법이다. 정부와 업계는 이런 허점을 잘 살펴보고 돌파구를 찾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서울신문]

3. 설 민심은 ‘팍팍한 삶’ 타개할 대선 주자 원해

설 이후 정국 흐름이 대선 국면으로 본격 전환될 전망이다. 특검이 박근혜 대통령의 조사를 준비하고 있고,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을 서두르고 있어 정국 일정 역시 바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선 주자들은 예상되는 조기 대선에 승부수를 띄울 태세다. 그러나 민심은 무엇보다 팍팍한 삶의 현실을 해결해 주길 원했다. 대선 주자들의 대선 올인을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지만 경제를 살리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다.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는 데는 명절만 한 날도 없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유력 대선 주자들은 한결같이 지역민들을 만나 민심을 청취하느라 분주했다. 대선 주자들은 국정농단으로 야기된 정국 불안을 하루빨리 끝내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었을 것이다. 탄핵정국을 빨리 끝내고 경제를 살리라는 질타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 빈부격차 등을 앞장서 해결해 주길 바라는 국민들의 간절함도 느꼈을 것이다. 개중에는 4차 산업혁명에 적극 대처하라는 주문도 들었을 것이다.

국가 안위에 대한 걱정도 만만치 않았다. 북한이 연초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가 실험 등을 호언하고 있는 데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마저 자국 우선주의로 선회해 언제 우리에게 압박을 가할지 모를 상황이 됐으니 국민들의 우려는 당연하다.



일본은 설 연휴 기간 동안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가르치도록 유도하는 초·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을 내놓았다. 소녀상에 이은 도발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 배치 결정을 빌미로 경제적 압박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녹록지 않은 대내외 여건이다.

대선 주자들은 국내외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연히 과거의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리더십은 필수다. 미래의 먹거리를 찾기 위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수 있는 추진력을 가져야 함도 물론이다. 국방과 외교 문제를 지혜롭게 풀 수 있는 역량도 마찬가지다. 원칙과 소신 아래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국가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지도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 주자들은 설 민심에서 드러났듯 국민들의 정치 피로도와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 자기만 옳다고 헐뜯고 비난하는 대선 주자들의 모습에 국민들은 신물이 날 정도로 지쳐 있다. 대선 공약도 민심을 제대로 읽고 국내외 경제·안보 등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토대 위에 마련돼야 할 것이다.



4.韓美 전화외교, 관건은 동맹강화 내용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어제 전화통화를 갖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언제나 100% 한국과 함께할 것이며, 한·미 관계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좋을 것”이라고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다. 백악관도 어제 발표한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억제 확대와 모든 군사 능력을 사용해 한국 방위에 대한 철통같은 수호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신행정부가 한·미 동맹 강화 기조 속에서 대북 제재 등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최우선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밝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동맹의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토대로 양국의 우호 관계를 강화할 것이란 의지를 밝힌 것은 최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노골화하는 시점에서 시의적절하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후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미 행정부의 대(對)한국 외교안보 정책이 보다 구체성을 띠었다는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음달 2일 방한할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과의 협의 과정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은 보다 확실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한·미 간 동맹강화 원칙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천명한 미국 우선주의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통상과 안보에서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동맹 관계의 재편 등을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년간 지속된 안보 동맹과 자유무역 등의 세계 질서가 격변할 것이란 경고나 다름없다. 발등의 불인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사드 배치 등의 현안에서 오바마 정부와 사뭇 다른 행보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협상의 대가답게 화려한 수사적 발언 뒤에 전략적 측면이 숨어 있다.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를 토대로 굳건하게 우리의 외교안보 현안을 풀어 나가야 하지만 한·미 동맹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키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동맹은 어느 일방의 희생을 전제로 성립되지 않는다.



한·미 동맹 역시 호혜적 국익을 바탕으로 이뤄진 만큼 미국의 시혜적 성격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시대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고 사드 배치에 따른 비용 문제도 포괄적 수준에서 우리 정부가 분담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동맹 강화라는 총론 아래 각론이 더없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 정치권은 트럼프 시대에 펼쳐질 미국 우선주의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온통 대선에 쏠려 있다. 국내외적으로 격변기인 만큼 정부는 안보와 경제의 흥망을 좌우할 현안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정교한 대책을 마련해 적극 대처하는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경향신문]

5. 버티는 대통령 때문에 시민이 불행해진다

​언론 보도와 특검 수사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는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애먼 시민이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설인 지난 28일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박사모’ 회원 조모씨가 투신해 사망했다. 조씨는 탄핵 반대 집회에서 사용하는 손태극기 2개를 든 채 몸을 던졌고, 태극기에는 ‘탄핵가결 헌재무효’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박사모 활동 때문에 가족과 불화가 있었다. 유족을 상대로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달 7일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는 한 스님이 박 대통령 체포 등을 요구하며 분신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두 사람의 극단적 선택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죽음은 박 대통령 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 정상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 대통령 지지자로 보이는 조씨의 투신에는 설 직전 박 대통령이 “최순실 사태는 거짓말로 쌓아올린 거대한 산”이라며 허위 내용으로 극우 언론인과 인터뷰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박사모의 탄핵 반대 집회를 ‘태극기 집회’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대통령직 유지를 국가 수호와 연계하는 극단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나 국가와 정부는 다르다. 정부는 국가와 주권자인 시민을 연결하는 매개체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 박근혜 정부가 중도에 해체되더라도 주권자가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를 세우면 된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박 대통령이 궤변으로 혹세무민하며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나라는 더욱 엉망이 되고 있다. 시민들의 피로감과 스트레스도 임계치에 이르렀다. 설 연휴 모처럼 일가 친척이 모인 자리의 대화 주제도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분노와 나라 걱정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최씨는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다. 특검과 헌법재판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수구 보수층을 내세워 재기를 모색해보려는 꼼수에 시민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특검은 청와대 압수수색 등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내고, 헌재는 탄핵 결정을 앞당겨 하루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6. 일자리 문제 해결 없이 저출산 막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출산율 올리기’ 사업이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입법조사처는 30일 펴낸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보고서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정부는 합계출산율 1.27명, 출생아 수 44만5000명을 목표로 삼았지만 결과는 합계출산율 1.15명, 출생아 수 40만명에 그칠 것으로 추산됐다. 앞



서 정부는 2005년부터 5년씩 1, 2차 기본계획을 만들어 80조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오는 2020년까지 100조원이 넘는 돈을 투입해 합계출산율 1.5명, 출생아 수 48만명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지만 지금 추세대로라면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다.

정부는 출산율 제고를 미래가 걸린 문제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해 왔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동안 벌인 사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이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성이 생겼다. 더이상 미룰 수 없게 된 정부 대책의 문제는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머리 행정’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출산 적령기 시민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출산을 꺼리는 이유’ 중 다수가 ‘경제·사회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시민은 고용불안에다 주거대책까지 막막한 상황이어서 출산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런데 정부의 대책은 가려운 데를 긁어주지 못했다.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을 장려하기 위한 ‘아빠의 달’ 확대를 비롯해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난임시술 지원 확대 등은 출산율 제고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쉬운 해고’ 등으로 청년 일자리가 만들어져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불안한 일자리는 고용불안을 키워 오히려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만든다. 

저출산 대책은 구태의연한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무모할 정도로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힘들어 아이 낳기를 꺼린다면 현금 지원을 해서라도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놀랄 정도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육아수당’ ‘영아보육수당’ ‘가족수당’ 등 직접적인 지원방안을 검토하자는 얘기다.



여성만 출산과 육아를 책임지는 관습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구난방인 보육 관련 대책을 통할하는 컨트롤타워도 필요하다.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책임지고 키운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한 출산율 제고는 요원하다.



[서울경제]

7. 구조조정 미루면 日전철 밟는다는 IMF경고 새겨야

우리나라가 기업 구조조정과 구조개혁을 서둘지 않으면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보고서가 나왔다. 기업부채 급증, 노동시장 균열,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와 인구감소 등 최근 한국이 경험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20년 전 일본과 비슷하다는 게 IMF의 지적이다.



잠재성장률도 노동력과 자본투입, 생산성 감소로 1991년 8%에서 2015년 2.9%까지 급격히 떨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예상보다 크고 빠르게 허약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적어도 3%대는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던 기대가 무색해졌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더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계는 내 집을 사느라고 1,300조원을 넘는 빚을 졌는데 집값 상승세는 눈에 띄게 둔화됐다. 가계부채 경고음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경기침체가 심화하면서 비정규직 비율이 빠르게 늘어가는 것도 걸림돌이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정규직 임금의 절반밖에 못 받으니 성과가 제대로 날 리 없다.



IMF가 노동시장 이중성을 생산성 향상의 적으로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기업 구조조정은 해운을 제외하고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자금흐름 왜곡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IMF는 위기탈출 해법으로 좀비기업의 신속한 정리와 노동시장 이중성 해소를 통한 불평등 완화, 서비스 규제 개혁을 꼽았다. 모두 현 정부에서 기업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구조개혁, 서비스산업발전법의 형태로 추진했던 과제들이다. 기존에 추진했던 정책들만 제대로 해도 일본이 겪었던 시련을 피해갈 수 있다는 의미다.



더구나 ‘철도·가스·전력 등 인프라 분야에서 규제를 완화하면 생산성이 0.25%포인트씩 높아진다는 IMF의 분석까지 나온 판이다. 사회경제적 비효율성을 없애고 떨어진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해법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8. 일본 제치고 터키서 4조 공사 따낸 SK·대림의 낭보

SK건설과 대림산업이 일본을 제치고 터키에서 약 4조원 규모의 초대형 교량사업을 수주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한국 건설사들은 세계 24개사가 뛰어든 차나칼레 현수교 프로젝트에서 16년2개월의 최단 운영기간을 제시해 유력 경쟁자였던 이토추상사를 꺾고 설 연휴에 승전보를 전해왔다.

터키 수주 소식은 한국 기업들이 투자부터 시공·운영의 모든 단계를 총괄해 사업 수익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내 건설사들이 저가 수주경쟁에서 벗어나 고도의 금융기법을 활용해 사업비까지 조달하고 운영수익까지 확보함으로써 선진 건설시장에 진출하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한국이 사실상 일본과의 국가 대항전에서 이겼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터키 측과 수차례 정상회담을 열어 입찰마감 직전에는 주무부처 장관까지 급파할 만큼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이에 반해 우리는 예비조사에 4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담당국장이 파견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우리 기업들이 악조건을 뚫고 해외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며 값진 성과를 이뤄냈으니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올해 초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철도·에너지·플랜트 등 해외 인프라 수주에 적극 나서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가시적인 지원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해외 인프라 사업은 성장 한계에 직면한 우리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할 분야다. 일본이 해외 인프라 사업 수주에 5년간 2,000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취약한 금융 부문에 대한 지원을 늘리면서 해외 진출기업을 대상으로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경제외교를 펼치는 것도 절실한 과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마음 놓고 뛸 수 있도록 발목을 잡지 않는 일이다. 그래야만 우리 수출전사들이 더 많은 승전보를 전해올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9. 직장인 근소세 2년 만에 100만 원 늘었다니

지난 연말에 나온 ‘2016년 국세통계연보’ 분석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2013년에서 2015년 사이 국내 직장인 1인당 평균 근로소득세(근소세)가 약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이상으로 불과 2년 만에 50%, 100 만원 이상 폭증한 것이다.



물론 직장인이라고 모두 근소세를 내지는 않는다. 전체 근로소득자 1,733만 여명 중 48%에 이르는 면세자를 제외한 922만 명이 낸 근소세를 1인 평균으로 역산해 보니 그런 결과가 나왔다. 요컨대 근소세를 낼 만한 직장인, 곧 중산층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소득세 폭증의 부담을 대부분 떠안았다는 얘긴데,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근소세 폭증은 기본적으로 복지예산 등 재정수요에 맞춰 세수를 확대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2014년 정부가 연말정산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한 효과가 컸다. 사실상 근소세 감면을 축소한 세액공제 적용으로 1인당 평균 근소세가 즉각 90만 원 이상 뛰었다.



그때 근소세를 내지 않는 면세자가 530만명(2013년)에서 802만 명(2014년)으로 급증한 점을 감안하면 저소득 근로자에 대한 근소세 면제 확대 부담을 중산층이 떠안은 셈이다. 하지만 과세대상 직장인들의 임금은 2015년 중 명목으로 1.68% 오르는데 그쳐 중산층 가구의 실질소득은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복지혜택만큼 조세부담이 느는 건 당연하다. 지난해 근소세수는 3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돼 과세대상 직장인 1인당 평균 근소세액은 더욱 늘어났다. 문제는 불공평한 부담 지기다. 2013년 이래 지난해까지 근소세수는 54% 이상 늘었다.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같은 기간 법인세수는 12% 증가에 그쳤다. 사업소득자의 과세비율 역시 여전히 70%에 못 미치는 현실을 감안하면 세목별 불균형은 심각하다. 근소세목 내에서도 면세자 비율이 48%로 미국(35.8%) 캐나다(33.5%)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10% 포인트 이상 높은 것도 문제다.

조세 증가 부담이 중산층 직장인에 지나치게 집중되면 가처분소득 감소로 내수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이미 서민은 물론, 가계부채 증가와 주거비 상승 부담에 시달리는 중산층 소비도 붕괴한 상태다. 따라서 향후 증세를 겨냥한 세제개편은 근소세 면세자 비율 축소하는 ‘넓은 세원 확보’, 법인세 재산세 등과 근소세 등 세목별 형평성 제고, 부자 증세 등을 통한 조세 증가 부담 분산 등이 우선돼야 한다. 그런 전제 없이 부가세 인상 등에 대한 국민적 동의도 얻기 어렵다.



10. 지친 설 민심이 묻는다, "당신은 지도자 깜냥인가"

정치권과 언론이 전하는 설 민심은 탄핵 촛불정국의 조속한 정상화와 민생안정으로 모아진다. 특검의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조속히 마무리돼 지난해 가을 이후 계속돼온 국가 리더십 공백과 국정 혼란을 끝내고 조기대선을 통해 전환기적 위기국면을 타개할 새 리더십을 서둘러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 측의 헌재 심판 지연책과 탄핵기각 기대 등으로 대선일정이 유동적이지만 정치권은 물론 대다수 국민도 '벚꽃 대선'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여야 정치권이 특히 경청해야 할 대목은 리더십 부재의 혼란 상황 장기화와 진영대결 첨예화에 따른 국민의 피로와 정치 불신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민심은 단지 민생의 어려움이나 안보 불안 토로 차원을 넘어 국가의 미래비전 및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토대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으로 표출된다. 유독 정치권 전체의 반성과 책임을 주문하는 여론이 많았던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대통령 탄핵파동에 기대어 그 반사이익만 챙기겠다는 행태로는 보수든 진보든 차기 리더십 근처에 가기 힘들다는 경고로도 들린다.

본보가 대학교수 등을 상대로 파악한 지역별 표심은 설 전후 실시된 여론조사와는 흐름이 다르다. 조사결과만 보면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우세가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를 부인하기 힘들지만, 그 이면을 파고들면 전략적 투표를 고심하거나 콕 집을 대상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유권자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여권은 '보수세력의 환골탈태와 대통합을 통한 재집권'이 민심이라고 주장하고, 야권은 '보수 10년의 부패와 반민주를 심판하는 정권교체'가 표심이라고 강조하지만 양쪽 모두 아전인수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그래서 당내경선에서 본선으로 이어지는 대선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 더구나 이번 게임은 최단 시일 내에 최적의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는 고난도 정치이벤트다. 그런 만큼 출마자들의 정치적 정책적 역량과 자질을 검증하는 토론과 공론의 장이 어느 때보다 넓고 깊게 이뤄져야 한다.



일부 진영에서 기득권이나 지역정서에 근거한 대세론이나 대망론을 내세워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으나 그런 시도는 거품에 불과함을 그들 스스로도 잘 알 것이다. 최근 문 전 대표의 KBS토론 기피가 유감스러운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부실검증을 자초한 맹목적 지지로 대통령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을 선택한 업보로 나라와 국민이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 새삼 되돌아볼 일이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살며 생각하며] 한양도성길, 바쁨 속에서 느긋함을 찾아가다

오전 10시 종로구 부암동 창의문 입구에서 모이기로 했다. 목적지 입구의 건널목에는 A군이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길 옆으로 커피숍이 있고 그 뒤편 언덕 위에는 만두집 간판도 보인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 부록에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다는 식당을 따로 모아놓은 ‘빕 구르망’에도 이름을 올렸다. 

성문의 현판글씨는 창의문(彰義門)이다. 그런데 대부분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부른다. 딱딱한 그리고 조선의 이데올로기인 의(義)자가 들어간 규격적인 이름은 별로 인기가 없었던 모양이다. 성문 위에서 보랏빛까지 머금은 아름다운 저녁노을(紫霞)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았던 자리인지라 모두가 자하문으로 불렀다. 생각은 또다른 생각으로 이어진다.



​해인사 일주문의‘홍하문(紅霞門)’편액도 떠오른다. 작은 세로글씨를 숨기듯이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붙여 놓았다. 아름다운 붉은 노을빛(紅霞)을 감상하기 좋은 자리임을 알리는 가이드 노릇까지 맡겼다. 유가와 불가의 표면적인 엄격함 뒤로 항상 이런 감성적 언어가 같이 했다. 예(禮, 위계질서)가 있으면 악(樂, 함께 즐김)도 있고 긴(緊, 팽팽함)이 있으면 완(緩, 느슨함)도 함께 있어야 사람사는 곳인 까닭이다. 

동시에 세 명도 모이기 어렵다는 20대가 10여명 모였다. 교통 환승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을 미리 보낸 마지막 인물까지 도착했다. 덕분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도록 설계한다는 공학적 의도가 가미된 딱딱한 나무의자가 대부분인 커피숍에서 덤으로 젊은이들의 상큼한 수다를 듣는 기쁨을 쏠쏠하게 누렸다. 시험공부에 취업준비에 정신이 없다고 한다. 그 사이에 또 짬을 내서‘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알기 위해 ’알바를 해야 한다면서 미간을 찌푸린다.



‘인류보존을 위해 ’데이트도 해야 한다면서 멋쩍게 웃기도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이들과 함께 나들이 목적지를 한양도성으로 정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가깝기 때문이다. 모두 시간이 없어서 멀리 못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시간 답사 후 점심 먹고 2시쯤 헤어지는 스케줄로 짰다.

서울성곽은 오백년 동안 자기 몫을 충실히 다했다. 한양을 지켜준 울타리였다. 이 정도의 높이와 시설로 수도를 방어할 수 있는 그런 시절도 있었다니. 호랑이 담배 먹던 때도 아니고 불과 일백여년 전까지 그랬다. 예나 지금이나 성곽은 그대로 변함없는데 무기가 창칼에서 총과 대포로 바뀌면서 그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내가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주변이 변해버린다면 나 역시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산성도 군사용에서 관광용으로 완전히 용도가 바뀌었다. 

옛사람들은 약 20km인 한양도성 전체를 봄 여름이면 무리를 지어 성을 한 바퀴 돌면서 주변의 경치를 감상했다고 유본예(1777~1842)는『한경지략』에서 기록했다. 이른 아침 첫걸음을 떼면 해질 무렵 출발지로 되돌아왔던 순성(巡城)길이다. 그때도 살벌한 군사적 목적 외에 훈훈한 관광용을 겸했던 것이다.



산성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요즘 바다도 그렇다. 군항인 동시에 크루즈선 정박을 겸하는 그런 항구는 더 친밀감을 줄 것 같다. 지방에 있는 공항들도 군용과 민간용을 겸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다용도일 때 공간의 효율성이 더욱 높아지는 까닭이다.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경사면이 좀 가파르긴 했지만 잘 닦여진 길도 “바빠서” 운동량이 부족한 탓인지 모두가 힘들어 한다. 산성 따라 줄을 지어 걷는 이들은 대부분 등산복으로 무장한 중년층이었다. 익숙한 자세로 날렵한 걸음이다. 우리 팀이 제일 젊은 것 같은데 쉼터마다 쉬어야 했다.



이마에 땀을 훔치며 말바위에 도착한 후 삼청공원 방향으로 내려왔다. “바쁘다”는 B가 식당에 앉자마자 점심을 후다닥 먹고는 알바 때문에 먼저 가야한다며 자리를 뜬다. 두 번째 답사일정은 동대문 근처 낙산공원에서 말바위 쪽으로 오는 한 시간짜리 길을 선택했다. 이런 식이라면 12번은 와야 성곽길을 한 바퀴 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야말로 슬로우시티가 되는 것이다. 올가을의 취업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그룹스터디에 참여하느라 “바빠서” 두 번째 답사는 참석이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C의 말도 얼마 전에 듣게 되었다. 

그들도 여러가지 일로 바쁘지만 필자도 하는 일 없이 바쁜 사람이다. 게다가 우리가 서로 이해관계로 엮인 사이도 아니다. 그러하니 답사의 지속성도 쉽지는 않겠다. 그래도 인생선배로서 “바쁨” 못지않게 “휴(休, 쉼)”의 중요성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발동한다.


묘안을 짰다. 오프라인이 어려우면 온라인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다. 그래서 통으로 묶어 이른바 ‘밴드’를 만들었다. 언제나 스마트폰을 쥐고 사는 세대이니만큼 사이버공간을 이용하여 대면하는 것이 최적의 대안이라고 옆에서 조언했기 때문이다. 조언자는 밴드 관리까지 맡겠다고 나선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다. 

밴드 형식을 갖추어도 채울 내용은 더 문제다. 먹방처럼 부암동의 만두가 맛있다는 잡담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모두를 묶을 만한 공동관심사를 발굴해야 한다. 병역의무를 마친 예비역까지 있으니 나이 편차도 있고 성별은 말할 것도 없고 전공도 다르고 출신지역도 각각이다. 궁리 끝에 보편적 공감대로서 ‘여행’을 설정했다.



여행을 싫어하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문득‘여행’보다는‘답사’라는 단어가 더 좋아 보여 밴드이름을 “답사만리”라고 붙였다. 여행과 관련된 짧은 글을 퍼 날랐다. 읽기만 하고 “조금 바빠서” 조용히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덜 바빠서” 더러 댓글도 붙는다. 댓글에 또 댓글을 또 달며 추임새를 넣어주며 머리를 식히는 ‘휴(休, 쉼)파’도 생겼다. 

이래저래 젊은이들이 바쁘다. 바쁘니까 또 아프다.‘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위로해도 그 순간뿐이다. 힐링을 위해 명상수행센터를 찾고 템플스테이와 함께 참선을 해도 잠시 그때뿐이다. 제자리로 돌아오면 또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녹록치 않은 현실이 “아프게” 또 “바쁘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2. [중앙일보][삶의 향기] 함께 걸어가는 사이

살고 있는 동네에 자주 보던 노인 커플이 있다. 남자 노인은 양복을 입고 여자 노인은 무릎 길이의 치마를 입고 추우면 그 위에 모직 코트를 입은 늘 비슷한 차림이다. 늘 비슷한 시간에 느릿하되 일정한 걸음으로 20여 분을 걸어 수퍼마켓에 갔다가 하루 치 장을 봐서 나눠 들고는 다시 집으로 걸어간다.

두 사람이 손을 잡거나 이야기를 하며 가거나 하는 일은 없는 걸로 보아 오래 산 부부인가 하고 짐작한다. 자식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독립해 떠났을 것이다. 대개는 둘 사이에 한 뼘 정도의 공간을 두고 보조를 맞춰 나란히 걸어간다.



이게, 두 노인이 다투거나 하여 서로 심기가 좋지 않으면 대뜸 알 수 있는 것이 두 사람이 걸어가는 그 사이의 공간이 평소보다 넓다. 때로는 여자 노인 쪽이 1m쯤 앞서 걸어가는 일도 있는데 필시 화가 난 것일 게다. 그러면 두 노인이 걷는 속도도 전체적으로 평소보다 조금 빠르다. 그래도 늘 둘이 같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 

10년 가까운 세월을 봐 왔는데 근래엔 두 노인이 같이 걸어가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여자 노인이 안 보이는 일이 좀 잦아졌구나 싶더니 지난해 가을 무렵부터는 부쩍 등이 굽은 남자 노인이 혼자서 같은 길을 간다. 늘 둘이 같이 가다가 혼자 걸어가는 길. 보는 내가 다 쓸쓸하다. 

생각해 보면 부부(영국이라면 같이 살되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동거인이나 동성 커플도 부부에 준하는 관계이지만 한국의 경우 아무래도 이성 부부의 형태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으니 부부라고 그냥 쓰기로 하고)란 꽤나 신기한 관계다. 둘은 원래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족 중 피를 나누지 않은 사이는 부부뿐이다.



생판 남이랑 만나 평생을 보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용감하게도. 그러니 그 용기가 다하거나 참을성이 사라지면 헤어질 수도 있는 사이고. 헤어지면 도로 남이 되는 사이고. 그런 두 사람이 만나서 같이 살고 같이 늙어 가는 거다. 꽤나 감사하고 조심해야 할 관계라는 느낌이 들지 않나. 

말로는 제일 중요한 것이 부부지간이고 늙어 서로의 곁에 남는 것도 배우자뿐이라고들 하지만 부부 사이는 둘이 만났기 때문에 부수적으로 생겨난 것이되 무시하거나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다른 관계들에 의해 참 많이도 휘둘린다. 내가 선택한 건 오로지 저 사람 하나였던 건데 그의 가족이 와장창 딸려 왔더라, 아니면 상대방의 가족 안으로 후루룩 끌려갔더라 이런 상황.



저 사람과 살기로 하면서 원한 건 아내(또는 남편)라는 역할이었을 뿐인데 정신 차리고 봤더니 덕분에 해내야만 할 역할이 며느리·동서·올케, 심지어 조카며느리 등등(또는 그에 해당하는 남자 쪽 역할) 너무 많고 버거워 아내(또는 남편) 노릇을 확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 상태. 설 동안 그런 마음이었던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연휴라지만 쉬지 못하고 막히는 길을 오래 오가고, 불편한 자리에서 불편한 이야기를 듣고,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거나 돌아가신 지 오래인 조상님들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손에 익지 않은 가사 노동을 하는 것들. 이 모든 게 둘이 좋아서 같이 재밌게 한세상 잘 보내자고 결심했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돼 버린 것 아니던가. 그런데 그 때문에 상처를 받고 그로 인해 얻은 스트레스나 마음의 상처를 서로에게 배설해 버린다. 그러고는 둘 사이가 마구 나빠진다. 이거 뭔가 앞뒤가 바뀐 거 아닌가. 진정 중요한 것은 둘이 잘 살아가는 것이라면 말이다. 

즐겁고 신나야 할 명절이로되 몸과 마음이 아주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을 수도 있겠다. 결혼을 두 집안의 결합으로 봐 왔던 한국 사회에서 그 복잡한 관계의 그물에서 단숨에 벗어나기란 사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부부의 본질은 엄연히 두 개인의 만남이다. 따지고 보면 집안이라는 것도 여러 부부 관계의 확장이고.



그러니 서로의 집안 때문에 부부 관계가 상하기보다는 집안이 부부 관계를 응원하도록 변해 가는 게 사리에 맞을 것이다. 결국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동네 가게를 같이 오가는 부부 아니겠는가. 때로는 손이라도 잡고 가면 더 좋을 것이다.



​3. [서울신문][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명절, 오래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설 명절을 쇠고 정유년을 맞았다. 이번 설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의 오래된 집을 찾았다. 30여 년 전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을 국가 사업에 빼앗긴 나처럼 실재하는 고향이 없거나 여건이 안 되었던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나마 그리운 옛집을 찾았으리라.



설이나 추석 다음에 연휴라는 말이 따라붙지만 명절은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보통 연휴와는 반대로 오래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계절에 따라 날을 택해 시간이 바뀌는 것을 기념하는 명절에 고향의 옛집을 찾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번 설에도 고속도로는 꽉 막혔다. 길이 아무리 막혀도 명절에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줄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근대기 이후 인류는 약 1만년 전 신석기시대에 시작한 정착생활에서 벗어나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 다니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혹은 꿈을 따라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과 집을 떠나 먼 곳에 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20세기 후반의 급격한 도시화와 대규모 재개발로 많은 사람들이 농촌 혹은 도시에 있는 옛집을 떠났다.

무슨 일이든 한 번 해 보면 다음은 쉽다. 집을 한 번 떠난 사람은 쉽게 또다시 집을 옮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황당하게도 이사가 가장 수익성 좋은 경제활동이었다. 따라서 정착이라는 말은 점점 낯설어지고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원주민이라는 말이 일상생활에 등장했다. 이렇게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현대인의 모습은 사냥 도구 대신 디지털 기기를 들었을 뿐 유목민과 다를 바 없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유목민은 자유로운 대신 하나의 큰 문제를 안게 된다. 자신이 누군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일관되게 인식하는 자기 정체성이란 내가 오래 거주한 장소, 그리고 내가 속한 지역공동체와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영혼이 육체에 관련되듯 정체성은 존재의 물리적 환경에 관련된다. 자신의 기억이 새겨진 집,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장소인 마을이 없이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유목민이 된 우리가 역사상 어느 시기보다도 오래된 집을, 그 집이 속한 마을을 그리워하는 것은 자신을 알고 싶은 욕구 때문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오래된 집을 떠남으로써 비로소 집과 마을이 무엇인지, 왜 소중한지 인식하고 이해하게 됐다. 이런 인간 본연의 욕구 앞에 그곳에 이르는 데 몇 시간이 걸리는지, 얼마나 지루하고 힘든지는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설에 찾은 고향의 옛집은 오랜 기억을 일깨워 준다.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 집으로 올라가는 골목, 마당, 우물, 흙바닥의 부엌, 온돌방, 마루, 다락, 집 옆 채소밭까지 곳곳에 나의 쓸쓸하거나 명랑한 기억이 묻어 있다. 오랜만에 집을 한 바퀴 둘러보자면 기억들이 도깨비 바늘이 되어 내게 달라붙어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일깨워 준다.

세상과 맞서느라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언제나,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있는 듯한 고향의 옛집에서이다.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그 소중한 장소에서 오랜만에 자신으로 돌아온 나를 발견하고 모처럼 안도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새집보다 허술하고 작은 오래된 집에서 나는 더욱 보호받는 듯하다. 명절에 돌아온 옛집은 세상으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을 때, 바깥의 바람이 차가울 때 더욱 따뜻한 곳이 되어 나를 감싼다.

우리는 다시 오래된 집을 나서 거친 세상 속의 새집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유목민의 숙명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전과 동일하지 않으며 세상 또한 전과 같지 않다. 내가 변하면 내가 인식하는 세상도 변하는 법이다. 실제로 또는 상상 속에서 옛집을 찾은 우리는 한층 좋게 바뀌었을 것이다.



미국의 농부 작가 웬델 베리가 말했듯이 소중한 장소로 되돌아감으로써 우리의 부분성과 유한성에 대해 새롭고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었고 서로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치유와 기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순진함과 공포, 슬픔은 알 수 있을지라도 비극과 기쁨, 위안, 용서 또는 속죄는 알 수 없었으리라.



4. [경향신문][황대권의 흙과 문명] 피크 소일

명절이 되면 나는 전남 영광에서 부모·형제가 있는 서울로 역귀성을 한다. 한 해 동안 크지 않은 농지에서 수확한 이런저런 농작물을 승용차에 싣고 잘 닦인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명절로 인한 설렘은 어느덧 사라지고 끝없이 늘어선 차량 행렬과 사통팔달 연결된 도로망에 둘러싸인 땅을 보며 나도 모르게 욕을 쏟아낸다.



우선 4차선 고속도로가 교차하는 곳은 마을 몇 개가 들어서고도 남을 만큼의 땅이 버려진 채 도로를 떠받치고 있다. 저런 교차로로 인해 버려진 땅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 하고 헤아리다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다.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도로면적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끊임없이 도로 건설을 하고 있다. 2012년에 이미 도로점유 면적이 사람의 주거면적을 넘어섰으며 고속도로의 밀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약 7배에 달한다고 하니 이 나라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임이 분명하다.

도시 아파트에 갇혀 지내다가 고속도로로 나온 도시인이 광활한 논밭 사이를 뚫고 시원하게 달리면 스트레스가 날아갈지 모르겠으나 산중에서 한 뼘의 흙이라도 유실될까 싶어 밭둑을 돌과 나무로 둘러치고 잡초 한 포기라도 제자리에서 생을 마감하도록 배려하며 농사를 짓는 내 눈에 고속도로 주변의 논밭은 녹색사막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 논밭을 경작하는 사람들을 농부로 부르지도 않는다. 그들은 도시에 몰려 사는 90%의 인구에게 화학약품에 찌든 식량을 공급하는 식량공급자일 뿐이다. 그것도 돈 대는 사람, 경작하는 사람, 수확하는 사람이 다 따로 있다. 자연히 사람들은 토양이 유실되든 오염되든 크게 개의치 않는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슈퍼마켓의 환한 진열대에 올릴 번듯한 물건만 만들어내면 그만이다. 만약 토지에서 만들어내는 생산비가 감당 안 되는 시점이 오면 언제라도 농지를 팔아버리고 도시 인근에 빌딩농장을 지을 사람들이다.

글을 쓰다 보니 마치 농사짓는 사람들을 욕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는데 사실 그들은 체제가 요구하는 대로 했을 뿐이다. 농지를 버리고 모두들 도시로 가서는 깨끗하고 번지르르한 농산물만 찾으니 남아 있는 사람들에겐 선택권이 없다. 기계로 땅을 갈아 농약 치고 대량으로 재배해서 영혼 없는 생산물을 상인들에게 넘겨주면 그만이다. 농업뿐만 아니라 산업자본주의 체제 아래 모든 분야가 사정은 같다. 자본주의가 잘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땅은 망가지고 토양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잠이 쏟아지는 바람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잠시 눈을 붙이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보충하는데 간판이 재미있게도 S-oil(에쓰오일)이다. 처음에 이 간판을 보았을 때 무슨 친환경 기름을 파는 회사인 줄 알았다. ‘소일’은 영어로 흙이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쌍용정유의 첫 글자를 영문으로 표기한 것이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곰곰 따져보니 참으로 묘하다. 환경론자들이 석유문명의 종말을 얘기하면서 흔히 쓰는 용어에 ‘피크 오일(peak oil)’이라는 말이 있다. 석유 생산이 정점에 이르러 이제부터 에너지원을 바꾸지 않으면 큰 위기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피크 오일을 패러디해서 생겨난 말이 ‘피크 소일(peak soil)’이다. 지구 토양의 생산력이 지구 인구를 안정적으로 먹여 살릴 수 없을 만큼 악화되는 최고점을 이르는 말이다. 피크 소일은 토질이 악화되거나 인구증가가 토양 생산력을 앞지를 경우 나타나는데 지금은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상태가 심각하다. 

문명의 몰락을 설명하는 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거의 모두가 동의하는 한 가지 요인이 있다. 바로 지력 고갈이다. 나뭇가지로 땅을 파서 농사를 짓던 원시농업시대건 농업 비중이 1%도 안 되는 현대 산업사회건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의 먹을거리는 거의 전부 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육지보다 넓은 바다가 있지만 바다에서 얻는 칼로리는 육지 생산물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식량 생산과 뭇 생명의 터전인 땅을 망가뜨리고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을 ‘발전’으로 생각하고 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땅을 파괴하는 데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지만 그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데는 몇 천 년이 걸린다. 한 연구기관의 보고에 의하면 현재 지구의 표토는 생성되는 속도보다 20배나 빠르게 없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인류의 문명은 몰락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니까 몰락을 피하기 위해 모두들 농사를 짓자고 주장하려는 것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대답은 “그렇다 아니다”다. 사실 지구의 토질은 지금으로부터 약 8000년 전 인간이 우연히 곡물을 발견하여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나빠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연농법’을 제외하고 모든 농법은 땅에 투입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근대 이전에는 인구가 적어 지력 고갈이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흥과 함께 생산력이 고도화되고 동시에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자 지력도 같은 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문명의 몰락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하나가 인구 증가의 억제이고, 또 하나가 지력 증강이다. 인구문제는 너무도 복잡하므로 다른 자리에서 말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토지문제만 집중하기로 하자. 우선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절대농지는 무조건 확보해야 한다.


다음으로 많은 농학자들이 산업적 방법으로 지력을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지만 나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산업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지력 보전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가는 굉장히 난해한 논쟁이 되겠지만 일단 지력이라는 것은 생명 대 생명의 교감을 통해 아주 천천히 향상되는 것임을 말해 둔다.


5. [경향신문][이굴기의 꽃산 꽃글] 백서향

밤이 아니라 낮이다. 덕분에 사방이 잘 보였다. 경사가 있었다. 미끄러지면 곧바로 바다로 풍덩, 빠지는 곳이었다. 물은 물렁물렁해서 나비만 한 체중이 아니라면 그냥 그대로 푹 꺼질 것이다.


나무들은 가파른 비탈 따위는 간단히 제압하고 지구의 중심을 향하여 뿌리를 뻗고 있었다. 바다와 면한 곳이지만 나무가 먹는 건 짠물이 아니었다. 여기는 거제도 벼락바위 근처, 우리 국토의 최남단 한 자락이다. 아직은 한창 겨울인가.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지만 그건 달력 속의 사정이다. 남해안 바닷가 언덕에는 정유년의 봄꽃들이 벌써 피어나고 있었다.


뫼제비꽃, 붉은대극, 복수초를 눈으로 만지고 손으로 접촉해 보았다. 신기한 감정이 일어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또 시작이군, 이렇게 밑바닥에서부터.

이곳은 겨울에도 그리 춥지가 않아서 나무가 낙엽을 만들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어도 잎을 바꿀 필요가 없는 상록수들. 그처럼 육중하게 자신만의 한 세계를 이룩한 나무들 사이로 작은 나무가 있다. 다 자란다 해도 겨우 허리춤을 찌르는 정도이다.


짓궂게 장난을 친다면 한달음에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나무도 있다. 키가 작아서 아주 다정하고 몸피가 작아서 아주 다감한 나무. 제주도에도 있지만 뭍에서는 단지 몇 군데에서만 관찰되는 아주 희귀한 나무. 백서향이다.

백서향은 거제도 맨 아래쪽 바다와 인접한 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한두 포기가 아니라 무리지어 띄엄띄엄 사이좋게 산촌(散村)의 인가처럼 흩어져 있다. 

다른 나무들이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는 동안 백서향은 깨어 있었다. 꽃이 활짝 핀 것이다. 줄기를 따라 어긋나게 달리는 잎들. 둥근 계단처럼 오른 끝에 십자 모양의 꽃들이 야무지게 다발을 이루고 있다.

올해 처음 만난 나무의 꽃이 백서향이라서 좋았다. 이름에서부터 그윽한 향기를 자랑하더니 실제로 코끝을 접근하자 은은한 향이 풍겨왔다. 향기도 담겠다는 태세로 카메라들 들이대던 한 꽃동무의 속삭임이 나비처럼 날아와 딱딱해진 내 가슴을 벼락처럼 때렸다.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사랑의 감정이 녹아 솟아나오는 향기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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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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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헌재의 탄핵심판, 신속하되 공정성 시비 또한 없어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을 3월 13일 이전에 내려야 한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3월 13일은 이정미 선임재판관이 퇴임하는 날이다. 그리고 박 소장은 이달 말로 퇴임이 확정되어 있다. 따라서 3월 13일 이전에 헌재가 탄핵심판 선고를 하지 않으면 이후 탄핵심판을 심리하는 재판관은 9명에서 7명으로 줄어든다. 박 소장의 발언은 이런 상황이 현실화될 경우 심판 진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박 소장의 걱정은 일리가 있다. 탄핵심판 결정을 위한 최소 정족수는 재판관 7명이며 탄핵안 인용이든 기각이든 7명 중 6명이 의견을 같이해야 한다. 문제는 남은 재판관 7명 중 한 명이라도 사퇴한다면 탄핵심판 자체가 무산된다는 점이다. 최소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 소장이 탄핵심판 선고 데드라인을 3월 13일 이전까지로 제시한 것은 그런 사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는 해도 박 소장의 발언은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가 탄핵심판을 신속히 진행하고는 있으나 아직 정해진 절차의 반도 소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결론을 내야 할 시점을 서둘러 제시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심판 종료 기일을 미리 밝히는 것 자체가 헌재가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그 방향으로 탄핵심판을 몰고 가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을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박 대통령 탄핵에 따른 국정 공백을 하루라도 빨리 해소하기 위해 헌재가 신속히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헌재도 이에 깊이 공감해 지난해 12월 9일 탄핵심판 사건 접수 이후 휴일도 없이 재판 준비와 심리 진행에 진력해왔다. 헌재의 그런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2. 100억원 불법 조업 이득에 1천만원 벌금, 누가 법을 지킬까

대구지법 포항지원 형사2단독은 18일 선미식 불법 조업과 싹쓸이 조업 등으로 100억원이 넘는 부당 이익을 챙긴 선주와 선장에 대해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법원은 검찰이 재발 방지 등을 위해 선주들에게 100억원 넘는 부당 이득 추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범법자들이 불법 조업으로 부당 이익을 거두고 동해안 어족 자원은 황폐화되고 법을 지킨 어민들은 피해를 봐도 법원이 이를 외면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판결 주문과 법 개정을 통한 규제 강화 목소리가 높은 것은 마땅하다.



이번 판결은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동해안 중형 트롤어선 선주와 선장은 2010년부터 3년간 275차례 140억원의 불법 조업 이득을 올렸지만 고작 벌금 1천만원만 선고받았다. 또 다른 선주는 중형 트롤어선과 대형 트롤어선으로 동해안 불법 조업으로 122억원 상당의 오징어 등 어류를 잡았으나 벌금은 1천500만원에 그쳤다. 그나마 이들에게 검찰이 각각 청구한 140억원과 120억원의 추징금도 법원이 인정하지 않았다. 불법 조업에 대한 처벌이 그야말로 솜방망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 동해안 어민들은 갈수록 나빠지는 조업 환경에 불안해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지구와 바다 환경의 변화에다 중국 어선들의 동해안 점령으로 어족 자원이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어족 남획을 부추기는 불법 조업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어 가뜩이나 힘든 어민들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그런데다 불법 조업으로 단속되더라도 이번처럼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친다면 불법 조업 선주와 선장만 배를 불릴 뿐 불법 조업을 막을 수는 없다. 오히려 엄청난 이득을 보장하고도 남는 불법 조업을 부채질할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이번 같은 판결이 이어지는 한 불법 조업 근절은 말 뿐이다. 지금 규제로는 불법 조업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현재 당국이 적용한 관련 법의 한계다. 파괴된 환경의 복원에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은 고려조차 않은 비현실적인 법 규정을 손질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징벌적 처벌을 포함한 현실적인 법 마련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하지만 속전속결만이 최선은 아니다. 탄탄한 법 논리로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것도 신속함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니 신속한 심판보다 공정한 심판이 더 중요하다. 공정하지 않다는 시비에 휘말리면 탄핵을 결정한 국회는 물론이고 헌재까지 ‘정당성’을 의심받게 되는 최악의 사태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속도를 위해 공정을 희생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이데일리]

3. 반기문, 대권 의지 있다면 제대로 해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어제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정치 교체의 필요성을 내세우며 자신의 대권 도전 이유를 강조했다. “우리 현실에서 성장동력이 약해지고 양극화현상이 심화되며 이념대립이 격화되는 모든 문제의 근원에 ‘나쁜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려면 이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 체제를 청산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반 전 총장은 정치 교체를 위한 방안으로 헌법 개정을 내세웠다. 현행 헌법의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는 지난 30년 동안의 폐해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으며, 다음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또다시 불행한 대통령으로 그칠 뿐이라는 것이다. “개헌을 통해 대선과 총선의 주기를 하나로 맞춰야 하며, 패권과 편가르기식 정치에서 분권과 협치의 ‘좋은 정치’로 가야 한다”고도 했다.

총론적인 관점에서는 대체로 타당한 진단이다. 그러나 각론에 이르러서는 수긍할 만한 처방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선거 진용을 어떻게 꾸릴 것인지에 대한 방안이 부족하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코앞에 닥침으로써 조기 대선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제3지대’에 머무르는 상황이다. 아직 합류할 정치 세력을 정하지 못했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본인으로서는 정파와 이념을 아우르는 거창한 정치 통합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12일 귀국하고 열흘여가 지나는 동안 보여준 행보에서도 그런 의지가 읽혀진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스스로의 정치적 지향점이 퇴색하면서 오히려 대선 도전의 추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측근들이 “중도사퇴는 있을 수 없다”고 얘기하는 데서도 반 전 총장이 처한 지금의 어정쩡한 위상이 느껴진다.

그의 이러한 인식과 행보는 국내 정치판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데서 연유했다고 간주할 수밖에 없다.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한 경력을 앞세워 출마선언을 할 경우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쇄도하고 따라서 저절로 통합의 깃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혹시 여야 주변의 일부 세력과는 통합의 명분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력 주자들마다 연달아 대권도전 선언을 하고 나서는 마당에 그런 정도로는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4. 대한체육회가 "개념 없다" 비난 듣는 이유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선수단 숙소가 문제가 됐다. 객실에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역사왜곡 서적을 비치해 물의를 빚는 일본 호텔체인 아파(APA)에 우리 선수단 일부가 묵을 예정이라는 것이다. 대회 조직위원회 배정에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이용금지 지침을 내린 중국팀의 대응과 대비된다. 게다가 이 호텔의 극우서적 비치는 그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조직위의 숙소 배정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대한체육회의 무신경을 탓하는 비판의 소리가 크다.

체육회에 따르면 다음 달 열리는 제8회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출전 선수 230명 중 100여명이 다른 나라의 2000여명과 함께 삿포로 아파호텔 체인점에 묵게 된다. 문제는 이 호텔의 모든 객실에 역사를 왜곡하는 극우성향의 책들이 비치돼 있다는 사실이다. 호텔 CEO인 모토야 도시오(元谷外志雄)가 쓴 ‘아무도 말하지 않는 국가론’, ‘자랑스러운 조국 일본’ 등이 그것으로 위안부 존재와 난징대학살 사건 등을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은 자국 국민들에게 호텔 이용금지 지침을 내리는 등 즉각 대책을 내놨다. 중국 선수단도 이 호텔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반면 우리 정부나 체육회의 대응은 너무 굼뜨다. 선수단이 ‘역사왜곡 호텔’에 묵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는 입장이다.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조직위는 2015년 선수촌 숙박을 타진하면서 호텔에 해당 서적 제거를 의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때 이미 극우서적 비치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우리는 조직위에 숙소배정 변경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은 최근 부산 일본총영사관 인근 위안부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대사를 본국으로 귀국시키는 등 한·일 간 외교갈등이 고조된 상황이다. 스포츠와 정치는 분리하는 게 맞다. 하지만 ‘위안부 강제동원’의 엄연한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하는 행태는 결코 두고 볼 수 없다. 체육회가 어제 조직위에 극우서적 비치에 우려를 표하고 시정조치를 요청한 것은 늦었지만 당연한 조치다. 문제의 책들을 치우지 않는다면 숙소를 변경하는 등의 합당한 조치가 취해지기를 기대한다.



[서울신문]

5. 사드에 순수예술 빗장 건 중국의 자해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싼 중국 정부의 불만이 급기야 순수예술 분야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양상이라고 한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소프라노 조수미를 비롯한 한국 음악가의 중국 공연이 잇달아 취소됐다는 것이다. 백건우는 구이양 심포니 오케스트라, 조수미는 차이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로 했었다.



​중국은 사드 배치 문제가 불거진 이후 대국(大國)의 체모를 조금도 보이지 못하면서 비관세 장벽을 쌓아 올리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한국 연예인의 중국 영화 및 TV 출연과 대중 공연을 막는 이른바 한한령(限韓令)을 일찌감치 발동했다.

낡고 투박한 중국 대중문화가 오늘날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과정에 한류(韓流)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그럼에도 일종의 산업으로 대형화한 외래 문화에 경계의 눈초리를 보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순수 문화까지 걸어 잠그는 것은 한마디로 무지에 따른 오류일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벌써 관영 매체를 동원해 논리 부재(不在)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이 위협으로 일관하는 주장을 펴왔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사설에서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에 동의한 것은 호랑이를 키워 우환을 만들고 이리를 집에 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강변했다. 인터넷 관영 매체인 환구망은 아예 “사드 배치는 한국 연예 산업을 침체하게 할 것”이라고 썼으니 대놓고 협박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후 사드 보복의 여파가 산업 전반과 관광 분야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중국의 음력설인 춘제(春節) 연휴에 한국 관광을 예약한 유커(遊客)는 최고 50%나 줄었다고 한다. 정부 차원의 한류 규제령이 아니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외교 사안을 통상 문제로 확대한 접근 방식 자체도 문제는 작지 않다. 나아가 자국민의 정신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순수예술마저 막아서는 것은 도무지 이해 불가(不可)다.

중국 정부의 조치는 적지 않게 실망스럽다. 백건우나 조수미가 중국에서 공연을 하지 못한다고 대한민국이나 대한민국 국민이 보는 피해는 거의 없다. 한 차례 연주회가 취소됐다고 일년 내내 연주 일정이 빽빽한 두 음악가가 어려워지는 것도 아니다. 대신 중국 정부의 의식이 이런 수준에 머물고 있다면 이 나라의 문화 발전이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중국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 인류 역사에서 미사일 배치가 불만스럽다고 피아노 연주회를 막은 나라가 더 있는지 중국 정부는 확인해 보기 바란다.



6. 기업 일자리 늘리는 美, 공공부문 늘리겠다는 韓

‘고용 절벽’은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최근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거 유세 기간 내내 일자리 창출을 외쳐 당선된 것도 이런 흐름을 제대로 읽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정부나 대선 주자들이 하나같이 일자리 만들기를 들고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국과 우리를 비교하면 고용 절벽의 해법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민간 기업에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열을 올리는 데 반해 우리는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막말과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비호감의 요소가 많은 트럼프이긴 해도 순전히 미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잘한다고 여겨지는 대목이 있다. 바로 제조업의 부활을 통한 일자리 창출 유도책이다. 트럼프가 어제 포드 등 미국 자동차 제조 3사의 최고경영자들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여 고용을 창출하라고 압박을 가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미국에서 더 많은 자동차가 생산되고, 더 많은 직원이 고용되며, 더 많은 공장이 새로 건설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와 세금 혜택의 당근도 제시했다. 앞서 트럼프는 도요타 등 외국 기업들에도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해 미국 내 신규 투자 약속을 받아 냈다.

어디 그뿐인가. 트럼프는 그제 국방·치안 분야를 제외한 공무원의 신규 채용을 못 하도록 하고, 공무원 업무의 아웃소싱조차 허용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작은 정부’의 공약을 취임하자마자 실행에 옮긴 것이다. 업무 중복 등으로 빈둥거리며 세금만 축내는 공무원들에 대한 반감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다를 바 없다 보니 그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경제가 어렵기는 우리가 미국보다 심각한데 허리띠를 졸라매는 미국 정부와 달리 우리는 거꾸로 행보를 보여 걱정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최근 “정부가 공공부문의 일자리 확대를 선도하겠다”고 했다. 공공부문의 일자리 증원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청년 실업 등으로 희망을 잃은 이들을 생각하면 공공부문에서라도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일자리 만들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일자리 예산에 쏟아부은 예산만 72조원에 이르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냈지 않은가.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공약이 비판받는 이유다. 정부는 이것도 모자라 올해 공무원 봉급을 3.5%나 올리는 민심 역주행을 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일자리 만드는 일이야 누구든 할 수 있는 하수(下手) 대책이자 미봉책일 뿐이다. 새로 고용되는 공무원들이야 ‘철밥통’ 세계의 편입에 좋겠지만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국민에게는 부담만 늘어날 뿐이다. 제조업 등 경제를 살려 민간 기업에서 고용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획기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7. 황기철 전 해참총장 무죄와 언론

잘못을 알아도 반성하고 사과할 줄 모르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다른 사람의 명예를 짓밟아 놓고도 모른 채 넘어가는 것은 더욱더 중대한 문제다. 권력의 그늘에 숨어 자성할 줄 모르는 무책임한 조직이 정의 추구라는 공통의 목적을 가진 언론과 검찰이다.

모든 언론, 검찰이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사례가 있다. 통영함 납품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가 무죄가 확정된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사건이다. 황 전 총장은 2009년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으로 재직하다 성능이 떨어지는 부품이 납품되도록 허위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2015년 4월 구속 기소돼 검찰로부터 징역 5년을 구형받았다. 그러나 1, 2심에 이어 지난해 9월 대법원은 그에게 죄가 없다며 혐의를 벗겨 주었다.

검찰은 무리라는 지적에도 아랑곳없이 수사를 밀어붙였다. 황 전 총장이 4성 장군이었기에 검찰에겐 좋은 ‘먹잇감’이었다. 문제는 무죄 판결이 난 다음이었다. 황 전 총장 수사 과정을 검찰의 말만 믿고 여과 없이 보도한 언론은 무죄 판결이 난 후에는 모른 척하다시피 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반성과 사과는 고사하고 무죄를 받았다는 점을 비중 있게 보도하지 않았다.



검찰이 과잉 수사를 하기는 했지만 언론은 검찰에 모든 잘못을 떠넘기고 아무런 책임이 없는 듯 입을 다물었다. 수사 당시 억울한 누명을 쓴 황 전 총장에 관해 보도한 기사는 600건이 넘는다. 그러나 그의 무죄 확정을 다룬 기사는 10분의1인 60여건에 그쳤다. 사실 확인을 위한 언론의 노력은 매우 부족했고 검찰의 설명에 의존해 ‘아니면 말고’ 식 보도를 한 셈이다. 피해자들의 상처는 상상 이상이다. 변호사 비용 5억원을 마련하고자 온 가족이 나서야 했다.

문제는 그런 사례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점이다.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이나 최종 판결이 나지는 않았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부는 명예회복 차원에서 황 전 총장에게 보국훈장을 수여했지만 37년간 국가를 위해 복무하며 쌓아 온 그의 명예와 자부심을 되살려 주기엔 너무나 미흡하다. 황 전 총장이 원하는 것은 보상용 훈장이 아니라 언론이나 검찰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일 것이다. 언론의 이름으로 황 전 총장과 비슷한 아픔을 겪은 피해자들에게 자성과 유감의 뜻을 전한다.



[세계일보]

8. 최순실 “억울하다”면 국민은 억장이 무너질 판

국정농단의 몸통으로 불리는 최순실씨가 어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출두하면서 “특검이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 너무 억울하다”고 고성을 질렀다.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최씨는 그간 7차례나 특검의 소환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단 한 차례만 출석했고, 나머지 6차례는 소환에 불응했다. 최씨는 소환에 불응한 사유로 ‘건강상의 문제’, ‘정신적 충격’, ‘재판 일정’ 등을 제시했다. 어제도 소환에 불응하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특검에 의해 서울구치소에서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강제구인됐다.

최씨가 특검의 수사 과정에 불만을 품을 수는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피해자처럼 행세하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하기 힘들다. 국민은 최씨의 전횡으로 국정이 유린됐다는 사실에 공분하고 있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온 사람이건, 집에서 뉴스를 보고 있는 사람이건 국가 정책이 비선실세에 농락당한 점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기고 있다.



국가적으로도 대통령 탄핵이 추진되고 국정이 마비되면서 엄청난 진통을 겪는 중이다. 그런 국민을 향해 가슴 깊이 사죄하기는커녕 억울하다고 되레 소리치는 것은 도저히 정상이 아니다. 장막 뒤에서 비민주적 갑질을 일삼은 최씨가 민주주의를 들먹이는 행태는 자가당착이나 진배없다. 그는 민주주의를 들먹일 자격이 없다.

최씨는 자신의 전횡으로 처벌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한 번이라도 헤아려 본 적이 있는가. 그의 딸 정유라씨의 대학 입학·학사 특혜와 관련해 구속된 이화여대 교수만 4명이다. 문화융성을 외치던 문화체육관광부는 전·현직 장관의 구속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기업인들도 정씨 승마 지원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으로 특검에 불려다니는 신세다. 최씨가 억울하다면 이들은 아마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최씨는 온 나라를 뒤흔드는 사건을 저지르고도 진실 규명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그는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끝내 나오지 않았다. 특위 위원들이 하는 수 없이 구치소를 찾아 비공개로 면담을 했을 정도다. 헌법재판소에 출석해서도 국회 소추위원단의 질문에 “모른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국민을 향해 고성을 지르기 전에 자신의 언행부터 돌아볼 일이다. 그런 ‘안하무인’ 최씨에게 한 나라가 흔들렸다니 딱하고 한심할 뿐이다.



9. 박 대통령, 헌재의 ‘탄핵심판 신속 심리’에 응답해야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이 어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9차 변론에서 “헌재 구성에 더 이상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늦어도 3월13일 전까지 최종 결정이 선고돼야 한다”고 했다. 박 소장의 임기가 이달 31일이고 이정미 재판관은 3월13일 임기가 끝나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박 소장은 “두 분 재판관 공석으로는 심판 결과를 왜곡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심리와 판단에 막대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현행법상 탄핵심판 결정을 위해선 최소한 7명의 재판관이 심리에 참여해야 하고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3월13일 이전에 탄핵이 인용되면 헌법에 따라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대선이 4월 말에서 5월 초에 실시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심리가 전 국민의 관심을 받으며 진행된 지 오늘로 58일이 됐다. 헌재 재판관 9명은 탄핵심판의 중요성을 감안해 휴일 없이 강행군을 하고 있다. 박 소장은 “지난해 12월9일 대통령 탄핵 사건이 접수된 이후 우리 헌법 질서에서 갖는 중차대한 의미를 고려해 재판관들은 단 하루 휴일도 없이 공정하고 신속한 심리를 위해 불철주야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다”고 했다. 심리 일정을 보면 헌재 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 측의 태도는 무성의하기 짝이 없다. 증인 39명을 무더기 신청하는가 하면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난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시간을 질질 끌며 최대한 버티려는 속셈으로 비쳐진다. 이중환 변호사는 어제 박 소장의 ‘신속 심리’ 입장 표명을 문제 삼는가 하면 “박 소장과 이 재판관의 후임을 임명해 심판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 측은 ‘태극기 집회’를 부추기며 이념 대결로 몰아가려는 듯한 언동도 서슴지 않는다. 대통령 탄핵심판에 성실히 응하는 자세로 볼 수 없다.

최순실 사태의 철저한 진상 규명과 함께 국정 공백의 최소화가 급선무다. 검찰 수사에 이은 특검 수사와 재판, 헌재 심리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최씨의 헌정유린과 국정농단의 참담한 실상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의 상처도 깊어지고 있다. 그럴수록 국정 혼란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탄핵심판을 서둘러야 한다. 공정하면서도 신속한 결정이 이뤄지도록 당사자들이 협조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국정농단 사태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로서 적극 협조할 의무가 있다.



[매일경제]

10.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은 `경제살릴 리더`다

국민이 원하는 차기 대통령은 '경제를 살릴 리더'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본지가 빅데이터 분석업체인 아르스프락시아와 공동으로 네이버에 게재된 정치 성향 댓글 117만건을 분석한 결과 대통령이 갖춰야 할 리더십의 3대 조건은 첫째 경제정책 능력, 둘째 개혁성, 셋째 도덕성으로 나타났다.

2007년 대선 당시 대통령의 리더십 조건 중 1위로 꼽혔던 경제정책 능력이 10년 만에 다시 중요한 자질로 부각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2년 대선 때 대통령의 리더십 주요 덕목으로 거론됐던 서민 이미지, 안정적 안보관 등은 뒤로 밀렸다. 이 결과는 경제가 국민에게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지를 웅변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분노한 민심의 이면에는 경제불황, 치솟는 물가, 실업 등으로 인한 불만과 고통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 경제는 2년 연속 2%대 성장에 그치며 '저성장 터널'로 본격 진입했다. 지난해 4분기는 전 분기보다 0.4% 성장하는 데 그쳤고 연간 성장률은 2.7%에 머물렀다. 잠재성장률도 곧 2%대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대외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세계적인 저성장 추세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움직임 등은 한국 경제의 위협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소비 활성화 정책, 건설 투자 촉진 등으로 간신히 버텼지만 불확실성 고조에 따른 기업 투자 위축으로 올해는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제 대통령'이 시대적 요구가 된 것은 저성장으로 인한 고용 악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8%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취업준비생, 학원 수강생 등을 포함한 '사실상 백수'는 450만명에 달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로 비난을 사고 있지만 미국인들에게 일자리에 대한 꿈을 갖게 했다는 점에서는 박수를 받고 있다. 그는 향후 10년간 일자리 2500만개, 연평균 경제성장률 4%를 공약했다. 그러나 우리 대선주자들의 공약 초점은 성장과 일자리 문제에서 비켜나 있으니 답답하다.

국민이 원하는 지도자상이 '경제 대통령' '일자리 대통령'으로 확인된 만큼 대선주자들은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지 정교한 비전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황인숙의 해방촌에서] 달걀의 추억

닭의 해를 앞두고 조류 전염병이 도는 지역의 수많은 사육 닭이 일제히 ‘처분’당했다. 두어 해 전 구제역이 돌아 돼지들이 몰살당했을 때, 돼지 사육업자들이 경제적 손실로 인한 비탄에 빠졌으며 멀쩡히 살아 있는 동물들 ‘살처분’을 담당한 이들이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어차피 닭이나 돼지의 입장에서는 사는 것 같지도 않게 숨을 잇다가 조금 일찍 숨이 끊어진 것일 뿐이다. 그렇더라도 털이 짧아 분홍빛이 비치는 살갗의 몸집 커다란 생명체들이 집단으로 구덩이에 파묻히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그들의 공포와 고통에 전율하게 된다. 그 전율이 켜켜이 스며 있는 시인 김혜순의 시집들, ‘피어라 돼지’와 ‘죽음의 자서전’이 떠오른다.

육류 섭취가 불가피하다면 우리 인간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사육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잡아먹히기 위해 키워지는 동물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생명을 구가하도록 애써 줘야 한다. 생명에 대한 그 도리를 지키지 못하게 하는 건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육식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기를 정말이지 너무 많이 먹는다. 그래서 피터 싱어는 명저 ‘동물해방’에서 말한다. 지나친 육식 수요가 부른 공장식 사육을 하는 오늘날 우리가 고기를 먹는 건 그들이 겪은 지옥을, 고통을 먹는 거라고. 고통의 독으로 쩐 고기라니 우리 몸 건강에도 좋을 게 없을 테다.

한 친구가 제 신기한 경험을 얘기해 줬다. 언제부터인가 입에 당겨도 두드러기와 구토로 못 먹던 닭고기와 달걀을 여행지 터키에서 먹었는데 멀쩡했다는 것이다. 자유로이 놓아 길러진 터키의 닭이 그에게 독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그의 알레르기 원인은 닭고기 자체가 아니라 닭 사육 환경일 테다. 오늘의 사태를 거듭 발생시키는 그 환경을 고치는 게 동물 복지뿐 아니라 인간 복지를 위한 길이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이 진지하게 했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대부분의 사람이 이번의 사육 닭 ‘집단 살처분’ 여파를 달걀 가격으로 체감하는 나날, 2000원대였던 열 알들이 한 팩에 ‘4500원’ 딱지가 붙었던 게 한 달 전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 몰라요. 달걀이 떨어질지도 모르고요. 공급업자 말이, 달걀이 있어야 더 올리든지 말든지 한다고 하네요.” 동네 단골 가게 주인 말에 평소보다 적게 놓인 달걀 코너에서 나는 얼른 한 팩을 더 집어들었다.



과연 그 다음주에는 5500원이 됐다. 냉장고에 달걀이 충분함에도 나는 세 팩을 더 샀다. 이리 달걀이 귀해지는데 얼마나 좋은 선물감이 될까 하는 생각으로 내 사재기 행태의 부끄러움을 덮으면서. 관심도 없던 달걀과 그 가격이 중요 관심사가 된 것이다. 그동안 달걀값이 싸기도 쌌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동물의 몸에서 어떻게 이리 정교한 세공품 같은 형태가 빚어져 나왔는지. 단단한 껍질로 둥그스름하게 둘러싸인 아름다운 생명체를 헐하기도 헐하게 소비해 왔구나. 이제야 비로소 다소 제값을 치르는 듯했다. 어른들이 남의 집 방문을 할 때 달걀 한 꾸러미가 버젓한 선물이었던 그 옛날이 생각난다. 설탕 한 봉지, 정종 한 병이 기꺼운 선물이었던 그 시절의 짚으로 엮은 꾸러미에는 달걀들이 마치 둥지 에인 듯 포근히 담겨 있었다. 필시 유정란들이었을 테다.

물자가 귀했던 시절에는 많은 것이 선물이 됐다. 이웃이었던 한 아저씨가 ‘에노그’라 불렸던 그림물감 한 통을 선물로 들고 찾아왔던 생각이 난다. 라면 몇 개를 갖고 오신 적도 있었다. 살기 힘들어져 가족도 뿔뿔이 헤어진 그 아저씨가 당신 아이들 또래들이 있는 우리 집에 어렵사리 마련한 선물을 갖고 찾아오셨던 걸 생각하니 가슴 시리다. 그 뒤 그 가족은 다들 어떻게 살았는지…. 아저씨는 이미 세상을 뜨셨을 것 같다.

한 해에 첫날을 두 번 맞이하는 것은 좋은 점이 있다. 새해 계획을 세울 새 없이 해가 바뀐 사람들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설날을 앞두고, 새해에는 반듯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반듯하게 살기’에 내가 담은 뜻은, ‘바르게’와 더불어 삶에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되어 가는 대로 살지 말고, 생각을 하면서 살자는 거다. 다들 뜻한 바 이루시고, 행복한 새해 되세요.



2. [서울신문][문화마당] 굳세어라 책들아

해마다 말일이면 고심하여 노래 한 곡을 고른다. 해마다 첫날이면 고심하여 노래 한 곡을 고른다. 해를 보내고 해를 맞으며 내가 고른 내 노래 속에 나를 넣고 3분가량이라도 내게 집중하는 시간을 좀 가져 보자 소소하게 벌여 온 일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난 말일에는 ‘태평가’를, 올해 첫날에는 ‘옹헤야’를 들었던 나였다.

왜 하필 타령이었냐고 누군가 묻기에 일거의 망설임도 없이 그랬다. 가사가 죽이잖아. 짜증을 내어서 무엇 하나. 성화를 받치어 무엇 하나. 속상한 일이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아아, 사는 게 내내 짜증 더미여서 내가 작년에 ‘태평가’를 즐겨 들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잘도 한다, 옹헤야 그러니까 올해는 잘도 하고 싶어서 ‘옹헤야’를 집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그 많던 민요 가사책은 다 어디로 사라졌나 문득 그 책자들에 대한 호기심이 이는 것이었다. 기타 치는 동네 오빠네 집에 하도 넘겨 봐서 두툼하게 불어 있던 팝송대백과도, 동아리방마다 책장 간간이 코딱지 같은 게 붙어 있던 민중가요집도 어느 한순간에 애초에 없던 존재들처럼 자취를 감춘 듯했다. 노래지만 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훌훌 읽히던 그 읽음의 순간들을 우린 분명 경험한 게 맞는데 우린 언제 다 잊은 사람이 되었던가.

벽두부터 출판계는 송인이라는 대형 도매상의 부도를 직격탄으로 맞았다. 나 역시 소규모의 한 출판사를 꾸려 가는 일원으로 원치 않은 손해를 감수하게 되었지만 여기서 뻥 저기서 뻥, 크고 작은 피해를 본 출판인들의 사정이 서로 각기 처참하니 우리가 이러려고 책을 만들었나 하는 유행어를 한숨처럼 남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종이책 시장이 현격히 줄어든 마당이라 더이상 책에 날개가 달릴 거라는 꿈도 꾸지 못하는 마당에서 맞닥뜨린 도산이라는 위축은 막막한 우리의 내일을 더욱 깜깜하게 칠해 버리는 검은 손만 같았다.

자, 그렇다고 한다면 신간은 줄고, 신간을 기획하는 이도 감감무소식이어야 하고, 신간을 기다리는 독자도 나 몰라라 그런 패턴이어야 하고, 이 모든 책을 팔려는 서점들도 자취를 점점 감춰 가는 게 빤한 계산법일진대 어라, 이게 또 그렇지가 않더란 말이다.



책이 안 팔린다 하면서도 나는 새로 나올 책의 교정지를 겹겹이 쌓아 놓은 채 편집에 바쁘고, 그것도 모자라 책을 새로 하자며 필자들을 따라다니느라 호들갑이고, 그 책 나온다더니 언제 나오냐며 회사로 신간 문의를 해 오는 독자들과 목청 터지게 통화도 하고, 동네 서점 주인들과 소소한 이벤트를 모색하며 커피를 마시느라 속이 쓰리니 대체 한국에서 이 ‘책’이라는 물건을 어떤 조화로 읽어 내야 비교적 온당할지 자꾸만 헷갈리는 것이다.

세상 그 어떤 물건이 돈 앞에서 자유로울까마는 돈의 더러운 속성에서 어쩌면 가장 멀리 던져진 것이 책이리라. 그 외따로운 곳곳에서 배곯는 두려움에도 자기만의 건강한 싹을 자유로이 틔우는 것이 유일하게 책이리라. 사고파는 논리만을 따진다면 이 땅의 무수한 활자들이 과감하게 책의 배내옷을 입고 아이처럼 쏟아질 수 있을까. 우리에게 지금껏 책이 존재할 수 있었던 데는 어쩌면 책이 가진 저돌적인 무모함, 책만의 순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다분히 해 보게도 되는 요즘이다.

비록 이 착각이 내 발등을 찍는다 한들 책이니까, 책은 도끼보다 덜 아프니까. 번화한 술집 거리를 통과한 다음날 유독 주머니 속에는 반으로 접힌 전단지가 가득이다. 이 종이 한 장 쓰레기통에 내버리기에도 죄책감이 드는 걸 보니 아직은 나 ‘책 할’ 때인가 보다.



3. [아시아경제][초동여담] 카메라 든 손이 부끄럽지 않았으면

'아! 저 나무만 없다면 좋겠는데, 이런! 건물과 전봇대도 너무 걸려 ….' 여행취재를 다니다보면 이런 소리를 입버릇처럼 한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 속에는 없었으면 하는 것들이 참 많다. 가끔 사진 욕심에 '나뭇가지라도 치워볼까' 라는 헛된 생각이 들어 깜짝 놀라기도 여러 번이다. 그러기에 사진은 더하기가 아니라 하나하나 빼나가는 뺄셈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이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좋은 피사체를 만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기도 한다. 떼로 몰려와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에다 떡 하니 삼각대를 세워 두는 건 비일비재하다. 사람들이 렌즈 앞으로 지나가기라도 한다면 큰 소리를 친다. '상식이 없다, 구도가 망가졌다, 피사체를 방해했다' 등 주객이 전도된 꼴불견을 연출한다. 

지난 21일 새벽 태백산에서 겪은 일이다. 영하 15도를 넘는 매서운 겨울날씨와 싸우며 천제단 아래 주목군락지에 당도했다. 그만 그곳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족히 50여명은 될 것 같은 '사진가'들이 주목을 둘러서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받쳐놓고 있었다. 눈 덮인 주목을 배경으로 일출을 담기 위해 오른 이들이다. 사진 한 장 찍자고 엄동설한 칼바람 몰아치는 산에서 해 뜨길 기다리는 모습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일출을 기다리는 사진가들 사이에서 수시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미리 자리 잡은 이와 새로 들어온 이들 사이에서 자리싸움이 치열했다. 눈에 발자국을 남겼다, 방해 말고 비켜라 등 서로를 책망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때 산을 오르든 등산객 랜턴불빛이 주목을 비추고 말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불을 꺼라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애먼 등산객은 주목 한 번 보려다 봉변을 당한 꼴이다. 분위기가 이러니 정작 일출을 보러 온 등산객들은 서슬 퍼런 사진가들에 놀라 주목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멀찌감치 물러선 채 머뭇거리기만 했다. 

이뿐만이 아니였다. 사진가들 주변에는 텐트가 버젓이 설치되어 있었다. 텐트 안에선 버너를 사용해 끓인 라면냄새가 진동했다. 국립공원에서 야영과 취사 금지라는 안내문은 이들에겐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급기야 사단이 나고 말았다. 가스통에 불이 붙어 눈밭에서 불을 끄는 촌극도 벌어졌다. 그나마 겨울이라 빠른 조치가 가능했지만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사진가들의 헛된 욕심은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다. 몇 해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금강송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는다는 한 사진가가 금강송을 무단으로 베어버려 비판을 받았다. 그것도 울진군 삼림보호구역 내 금강송 10여그루를 말이다. 잘린 금강송은 220년간 그 자리에 뿌리 내리고 있었다. 그 사진가는 자신이 찍고 싶은 금강송을 가린다는 이유로 그런 몰상식한 행동을 한 것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나뭇가지에 어린 새들이 앉아 있고 어미새가 먹이를 주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전문가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사진가가 새끼 다리에 접착제를 칠해 나뭇가지에 붙여 놓은 것이란 지적을 받아 논란이 일었다.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고, 남들과 다른 사진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야 왜 모르겠나. 그러나 그런 욕심이 금강송을 자르고 본드칠을 해서 어린 새를 붙이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욕심과 무례함으로 똘똘 뭉쳐있는 일부 사진가들 의식이 바뀌어야 할 때다. 이러다 카메라 들고 다니는 게 부끄러운 일이 될까 두렵다.



4. [아시아경제][이명재 칼럼] 고통에 대하여, 희망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는 시 ‘귀향’에서 '오너라, 오랜 고통이여‘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타향에서 나그네 노릇을 하고는 훨씬 평온해졌지만, 고통을 다시 원한다’고, ‘우리는 다시싸우려고 한다’고 ‘가슴을 부딪치고 다투련다’고 말한다. 그에게 돌아가야 할 고향은 고통이다. 고통과 싸우는 것이 귀향인 것이다(조동일 교수).



고통이라는 고향. 고통과 고난은 인간을 가르치는 스승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참인간에게 하는 것이다. ‘잘 성장했다는 것은 큰 결점이다. 그것은 한 사람을 너무 많은 것으로부터 차단시켰다는 뜻이 된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많은 걸 가졌다는 것, 부족할 게 없고 고통 없이 살았다는 건 살아가는 데 거쳐야 할 것들의 결핍이기도 하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 문학의 폭과 넓이가 깊어지고 넓어졌던 것도 뇌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들로 인한 고통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깊은 성찰, 시대의식으로 확장된 데 있었으니 겐자부로에게 아들 히카리는 그 이름의 뜻처럼 그야말로 ‘빛’이었던 것이다. 인도 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현자 크리슈나가 “군주는 지옥을 경험해야 한다”고 했고,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 유협이 “마음 속에 맺힌 것이 못 견디고 밖으로 뛰쳐 나올 때 그 사무치고 절절한 것이 가슴을 울리는 글이 된다”고 했지만 그 지옥과 고통이 군주와 작가에게만 필요한 것이겠는가. 

우리의 삶에 희망이란 게 있다면, 우리가 어떤 희망을 찾으려 한다면 그건 고통과의 대면에 있을 것이다. 고통이 없는 것이 희망이 아니라 고통을 받아내며 고통을 견뎌내며 고통을 이겨내려는 것, 그것이 곧 희망이 아니겠는가.

돌아보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고통과 눈물과 한숨으로 이뤄져 있는가. 아침 6시를 갓 넘긴 시각, 충무로 지하철 역을 나오면 만나는 작은 천막. 겨울 새벽의 오싹한 한기를 막기에는 너무도 힘에 부치는 듯한 비닐 가리개 안에 앉아 쭈글쭈글한 손으로, 그러나 웃는 얼굴로 천원에 세 개인 붕어빵을 건네주는 50대 여인. 대체 몇 시에 집을 나서야 할까.



그곳을 지나면 이미 불을 밝히고 문을 연 커피 가게 젊은 아가씨의 가여운 어깨. 간밤부터 내내 불을 끄지 않았을 편의점 카운터를 지키고 서 있는 중년의 사내. 5시도 안 된 시각에 회사로 나갈 때, 아직 여명도 비치지 않는 새벽에 이미 절반가량의 좌석을 채우고 있는 이들의 허름한 옷차림, 그 삶의 주름살들. 

새벽을 여는 사람들, 하루의 시작을 마련해주는 이들이다. 나의 일터에도 그런 분들이 계시니 내가 아무리 이른 시각에 나오더라도 이미 사무실 바닥을 쓸고 쓰레기통을 비우며 화장실을 닦는 아주머니들. 어머니의 마음으로 수십 명의 아들과 딸들을 챙겨주는 그 정성. 

그것을 나는 ‘빛’이라고 해야겠다. 가족을 먹이고 키워주는 빛, 대한민국을 비추는 빛이라고 해야겠다. 궤변을 늘어놓는 이가 가진 권력이니 금력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빛이라고 해야겠다. 광화문(光化門) 광장이 그 이름처럼 촛불의 빛(光)으로 광명을 펼쳐주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아침마다, 또 어디에서든 만나는 빛들이라고 해야겠다.

내일부터 설 연휴다. 그러나 빛을 뿜어내는 많은 이들에게 우울한 명절이다. 바닥의 불경기에 취업난, 불안한 미래, 거기에 권력의 무능과 타락이 현실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불혼(不婚) ·불임(不姙)’의 젊은이들은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다.

그러나 설은 대지에 새 기운이 오르는 것을 자축하는 새 생명의 시간. 그 생명의 명절에 우리는 애써 우리의 희망을 찾는다. 새벽이면 충무로 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 커피집과 편의점과 거리에서, 새벽과 밤과 한낮에 우리 옆에서, 우리 자신에게서 만나는 빛. 그래서 우리는 고통이여 오라, 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희망이여 오라, 라고 말한다.



5. [동아일보][다니엘 린데만의 비정상의 눈] 두 번 있는 새해 첫날 또 한번 결심할 기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합기도와 피아노 연주다. 이 때문에 야성과 감성의 취미를 동시에 즐긴다는 소리를 듣는다. 둘 다 잘하진 못하지만 고수를 목표로 수련하고 있다. 쉽지 않은 길이다.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진다. 고수가 되려면 평생 수련해도 모자란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어떤 분야든 고수가 되려면 먼저 기본자세부터 충실하게 배우고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의미에서 연습 전의 준비도 필수다. 피아노를 잘 치려면 매일 연주 연습에 앞서 손가락부터 풀고 유연성과 감각을 키우기 위한 기본 동작을 되도록 많이 반복해야 한다. 무도인 합기도도 마찬가지다. 기본 동작으로 몸을 적절하게 풀지 않고 바로 본동작에 들어가면 다치기 쉽다. 체력적·정신적으로 충분히 준비되지 않으면 고수가 되기는커녕 가진 실력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재능 탓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재능은 같은 양의 연습을 했을 때 좀 더 앞설 수 있는 ‘작은 선물’일 뿐이다. 피아노든 합기도든 연습이 따르지 않는 재능은 아무 소용이 없다. 재능이 있는데도 일찍 포기하는 사람을 지금까지 많이 봤다.



어떤 재능도 연습을 이길 수 없다. 연습의 핵심은 습관적으로 매일 하는 것이다. 피아노와 합기도는 물론 한국어 같은 외국어를 익힐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에 몰아서 연습하는 것보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꾸준히 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다.



어려서 독일에서 피아노를 배울 때 연습하기 싫은 날이 많았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강제로 연습시키는 대신 오늘 하기 싫다면 일단 15분 정도만 연습하고 쉬라고 했다. 대신 다음날 한 시간 반이나 두 시간 정도 연습하게 했다. 몸 상태가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을 수 있으니 이런 방법이 효과적일 것이다.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고수가 되려면 연습과 반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물론 합기도든 피아노든 어떤 분야에서 정말 완벽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계속 연습하는 이유는 이렇게 완벽함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이 계속 발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연습은 기술 연마를 넘어 인간이 완성되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다가오는 토요일이 설날이다. 또 하나의 새해다. 1월1일의 결심을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면 새롭게 재출발할 기회다. 이런 기회는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독특한 선물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고 도전을 반복하는 것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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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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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대선 후보들의 지방분권형 개헌 공약에 주목한다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 대부분이 지방분권형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방분권형 개헌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공감대를 넓혀가면서 시대적인 대세로 자리 잡아 가는 분위기다. 그 어느 때보다 지방분권 개헌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후보마다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과감하고 파격적인 내용을 대거 담고 있어 흥미롭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헌안에 ‘지방분권형 국가’임을 명시하자고 주장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지역 균형 발전은 물론이고, 경찰, 조세, 교육권까지 지방에 이양해 국가 구조를 연방 형식으로 개편하자고 제안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지역균형주의 철학을 강조하며 지방분권 개헌에 앞장서고 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지역 균형 발전론의 신봉자다. 문 전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보다 더 강력한 지방분권 정책이 필요하며 입법권, 행정권, 재정권, 인사권, 복지자치권을 포함한 강력한 분권이 지방을 살리고 대통령제의 폐단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남경필 경기지사는 국회, 청와대는 물론이고 대법원`대검찰청 등도 세종시로 이전할 것을 공약했다. 둘 다 지방분권 개헌에도 찬성 입장이다.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도 통일과 경제 회복,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서는 분권형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선 후보와 정치 지도자들이 일제히 지방분권형 개헌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으니 좋은 징조임이 분명하다.



대선 후보들이 중앙집권과 수도권 중심주의가 더는 효율적이지 않고, 국가 발전을 저해하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대구경북이 2002년 지방분권운동의 기치를 든 이래 그 결실을 수확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개헌으로 연결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들의 공약이 빈말이나 헛공약으로 그치지 않을지 감시해야 하고, 수도권 중심주의자나 기득권 세력의 발호도 경계해야 한다. 지방분권형 개헌이 실현되는 그날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할 것이다.



2. 공공기관`기업 지역 인재 채용 할당제 의무화해야

지방이 고사(枯死)하고 있는 원인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일자리 부족이다. 지방을 살리는 가장 실효적인 해법은 지방 소재 공공기관`기업들이 해당 지역 인재를 많이 채용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지방 소재 공공기관들 사이에서 지역 인재를 우대 채용하는 풍토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대치에는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제정된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 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은 공공기관과 기업이 직원 신규 채용 때 지역 인재를 35% 이상 뽑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권고사항일 뿐이어서 이를 제대로 지키는 곳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구혁신도시로 이전한 한국감정원 정도만 지역 인재 우대 정책을 가장 모범적으로 펴고 있다. 이 기관은 올해 50명 안팎의 직원을 신규 채용하는데 이 중 40%를 지역 인재로 뽑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30% 목표를 세웠던 것보다 진일보한 자세이다.



한국감정원을 제외한 역내 대부분의 공공기관과 기업들은 지방대육성법 권고 사항을 지키지 않고 있다. 그나마 올해 채용 계획 70명 중 30%를 지역 인재로 뽑기로 한 한국전력기술(김천혁신도시)이 35% 권고 사항에 근접한 수치이다. 매일신문 취재팀이 2016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35% 권고 사항에 부합한 계획을 내놓거나 시행한 곳은 대구`경북 혁신도시 내 공공기관 17곳 중 6곳에 불과했다.



지방 인재 우대 권고 사항을 지키지 않는 것은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대구은행의 경우 워낙 대구`경북 출신 입사 지원자들이 많아 별도의 지역 인재 우대책이 필요 없을 정도지만, 포스코의 경우 고졸사원 지역 인재 우대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과 달리 대졸사원에 대해서는 형평성 시비를 이유로 우대 제도를 운용하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 및 기업의 지역 인재 채용 풍토가 제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행 권고 사항으로 돼 있는 지역 인재 채용 규정을 의무 규정으로 바꿔야 한다. 아울러 지방 이전 공공기관과 해당 지역 소재 대학 간의 협력을 강화해 수도권 소재 대학과 지방대학 출신자들 사이의 취업 기회 격차를 해소하는 것도 병행해야 한다.



3. 국가 돈 빼먹고 제자를 노예 삼은 교수, 발 못 붙이게 하자

대구지검 특수부가 학생 연구원에 줄 인건비를 챙기거나 가짜 출장비 청구 등의 방법으로 국가 연구개발 보조금을 가로챈 혐의로 국립대학 교수 2명과 사립대학 교수 1명을 적발했다. 특히 이들은 연구원에게 인건비의 20~30%만 주거나 일부 학생 연구원에게는 아예 한 푼도 주지 않고 떼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제자를 기르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에 적발된 교수들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서 발주한 의료정보서비스 관련 7개 연구과제 등을 공동 수행하면서 4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범죄 수법은 대학교수의 행위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치졸하다. 먼저 인건비를 삼킨 일이다. 이들은 연구원들의 도움을 받아 연구를 진행했다. 교수들을 믿고 맡은 일을 한 연구원들에게 인건비 지급은 마땅하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기본마저도 내팽개쳤다. 연구원들을 노예처럼 부린 셈이다. 대학교수로서는 도저히 해서는 안 될 갑질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사기와 같은 행태도 놀라울 뿐이다. 연구에 참여하지도 않은 학생을 연구원으로 둔갑시켜 인건비를 타냈다. 비리 기업주들이 흔히 써먹는 저질스러운 수법이다. 이도 모자라 열차 승차권을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취소해 돌려받은 뒤 환불 전 승차권 영수증을 허위로 제출해 보조금을 가로챘다. 이는 확인된 사례만 92차례 1천400만원에 이를 정도로 상습적이었다. 이렇게 비양심적인 방법으로 타낸 보조금을 ‘비상준비금’이라는 비자금으로 조성해 주식 투자 등의 개인 용도로 1억원 이상을 쓴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 돈을 빼먹는데 교수가 앞장선 일은 용납할 수 없다. 아울러 일만 시키고 인건비조차 가로챈 비양심적 작태는 썩은 대학교수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참담할 따름이다. 비리 교수들이 다시는 대학 사회에 남을 수 없도록 엄정한 법 적용이 필요하다. 당국과 발주처는 비리로 잘못 집행된 나랏돈은 전액 환수해야 한다. 아울러 그들이 떼먹고 가로챈 연구원들의 인건비를 조속히 정상 처리해야 한다. 이런 비리의 재발 방지를 위한 용역 발주 이후의 허술한 관리 감독도 점검해야 한다.



[서울신문]

4. 소비를 살려야 경제가 산다

소비의 중요성을 멀리서 구해 볼 것도 없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제가의 ‘우물론’에서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우물을 퍼 올려 사용하면 계속 채워지지만 퍼 쓰지 않으면 말라 버린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소비의 의미는 그만큼 중요하다. 물건을 소비하면 자본이 환원돼 계속 생산하지만 소비하지 않으면 생산도 중단된다.

소비는 심리다. 소비는 사람이 하고 사람의 심리가 소비를 결정한다는 말이다. 설이 코앞인데 꽁꽁 얼어붙은 소비 심리가 도통 풀릴 기미가 없다. 한국은행이 어제 발표한 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3.3으로 전월보다 0.8포인트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75.0) 이후 최저치다. CCSI가 기준선인 100을 넘으면 경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가 낙관적임을 뜻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올 1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도 4년 만의 최저치인 89로 떨어졌다.

소비, 즉 내수가 살아나야 경제가 활성화된다. 소비를 살리는 길이 경제를 살리는 길인 셈이다. 내수 확대를 위한 좀더 효과적인 정책 처방이 필요하다. 2월 말까지 열리는 ‘코리아 그랜드 세일’ 행사 같은 소비촉진 행사는 꾸준히 열어야 한다. 주요 품목의 개별소비세 인하와 재계가 요구하는 접대비 한도 확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식사와 선물 한도를 정한 김영란법 시행령의 개정도 여론의 눈치만 볼 일이 아니다. 또한 소비 심리를 저해하는 생활물가를 잡는 것도 시급하다.

단기 부양책에만 집착해서도 안 된다. 멀리 내다보고 좀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가계 평균 가처분소득은 2015년 3927만원에서 지난해 4022만원으로 겨우 95만원 증가했다. 반면 가계 평균 부채는 6256만원에서 6655만원으로 399만원 폭증했다.



소득을 늘리려면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생산성을 높여 근로소득을 늘려 줘야 한다. 비정규직 등 질 낮은 일자리는 질 높은 일자리로 바꿔야 한다. 기업소득을 가계로 돌려 민간 소비로 선순환시키는 것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바란다.



특히 중요한 것이 구매력이 있는 유효 수요다. 고소득층의 세율을 높여 중산층과 저소득층 복지로 돌려야 한다. 소비와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이다. 장·중·단기 정책을 혼용해 구사해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야 정책의 효과는 빠르고 크다. 정부는 재정을 조기 집행하고 기업은 고용 확대에 힘쓰는 한편 투자에도 과감해야 할 것이다. 저성장의 길을 먼저 걸어온 일본을 참고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 아베 총리의 재정확대, 금융완화, 구조개혁은 임금 인상과 설비투자를 유도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금요일 퇴근을 오후 3시로 앞당겨 돈을 쓰게 하겠다는 ‘프리미엄 프라이데이’ 정책도 벤치마킹해 보기 바란다. 수출에 이어 내수마저 죽는다면 우리 경제는 정말 답이 없을지 모른다.



5. 도를 넘어선 재야 작가의 박 대통령 누드 풍자

지난 20일부터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곧, 바이! 展’이라는 시국 비판 풍자 전시회에 등장한 박근혜 대통령의 누드 풍자 그림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그림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것으로 세월호가 침몰하는 모습 앞에 나체 상태의 박 대통령이 편안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다. 박 대통령 복부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초상 사진과 ‘사드’라고 적힌 미사일이 그려져 있다. 박 대통령 옆으로 ‘주사기 다발’을 들고 있는 국정 농단의 사태의 중심축인 최순실씨도 보인다.

우리는 이 풍자 그림이 도를 넘어선 지나친 표현 방식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비록 국정 농단 사태로 인해 직무정지 상태이긴 하나 싫든 좋든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이다. 이런 직설적이고 외설적인 대통령 풍자 그림을 ‘민의의 전당’에 꼭 내걸어야 했을까. 전시회는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더 확산되는 양상이다. 공론장이 돼야 할 국회가 개인의 신념을 홍보하는 공간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민주당이 어제 표 의원을 윤리심판원에 회부하기로 한 것은 사안의 폭발력이 만만치 않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도 “대단히 민망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재빠르게 선을 긋고 나섰다. 물론 아직 당사자들의 말이 달라 이 문제가 누구 잘못이라고 섣불리 판단할 계제는 아니다. 전시회 측 관계자는 표 의원은 전시회 주최자가 아니라 토크콘서트에 참여하는 게스트일 뿐이라는 입장이고, 표 의원은 전시회를 열겠다고 작가들이 요청해 와 도와준 것이지 작품을 직접 고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예술인들의 정치 패러디는 지금껏 있어 온 한 장르이고,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존중돼야 마땅하다. 풍자는 풍자일 뿐인데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기도는 정도가 아니다. 예술인들의 건전한 시국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도를 넘어서면 분노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일각에서는 풍자를 빙자한 인격 모독과 여성인권 유린 문제까지 거론하는 상황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본질을 흐려 초점을 분산시킬 수도 있는 사안이다. 뭐든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6. 미국발 통상전쟁 영향 최소화에 힘 모아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 곧바로 나설 것이라고도 밝혔다. TPP는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국이 참여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NAFTA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사이의 자유무역협정이다.



지난 대선 기간 내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불리한 무역협정을 바로잡겠다”고 공언한 트럼프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위협적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이다. TPP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치명상을 안기는 것은NAFTA 재협상이다. 트럼프는 멕시코에서 생산된 공산품의 유입을 막아 미국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멕시코산 제품에 35% 관세를 공약했다.NAFTA 체결을 계기로 멕시코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 온 우리 기업들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멕시코에서는 현재 183개 한국 기업이 한 해 220억 달러(약 25조 7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코트라(KOTRA)는 설명한다. 미국발 통상전쟁의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지혜를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NAFTA 재협상의 다음 차례는 한·미 FTA가 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한국은 2013년 이후 4년 연속 200억 달러 이상 대미(對美) 무역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대선 당시 “한·미 FTA로 미국의 일자리 10만개가 날아갔다”고 말한 적도 있다.



무엇보다 정부는 미국이 대한(對韓) 교역에서 적자를 기록하는 것은 한국의 불공정 무역 때문이 아닌 만큼 미국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무리 트럼프의 목소리가 커도 일방적 양보가 아닌 두 나라가 합리적으로 ‘윈윈’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취임으로 통상 분야는 이미 세계 대전이 불붙은 것과 다름없다. 기업도 스스로 활로를 개척하는 데 갑절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전술전략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짤 수밖에 없다. 좁은 내수시장에서 벗어나 세계시장에서 승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경제에 주어진 숙명과도 같다.



눈앞에 닥친 미국발 통상전쟁의 피해는 당연히 최대한 줄여야 한다. 나아가 관련 부처는 ‘트럼프 위기’를 ‘트럼프 특수’로 바꾸어 놓겠다는 자신감으로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벌써부터 조직 개편을 들먹여 바쁜 정부의 발목을 잡는 정치권은 자중하라.



[매일경제]

7. 트럼프의 통상 압력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수도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말을 빌리자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스스로 미국을 보호무역주의의 어두운 방에 가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계획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선언한 지 하루 만이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 전략을 상징하는 TPP를 "미국에 잠재적 재앙"이라며 공격했던 트럼프는 백악관을 차지하자마자 미국 우선주의 공약을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다. 대선 기간 중 그가 기존 무역협정을 뒤집겠다고 공언할 때만 해도 막상 대통령이 되면 온건한 실용주의 노선을 걸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이런 기세라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는 트럼프의 으름장은 빈말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수출의 25%와 13%를 받아주는 중국과 미국이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대미 무역흑자가 많은 나라들을 차례로 재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트럼프 행정부는 결국 한국을 직접 겨냥한 통상 압력을 가해올 것이다. 그 시기는 예상보다 빨리 닥칠 수 있고 압력의 강도도 우리 예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



대선 당시 트럼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미국의 일자리 10만개가 날아갔다"고 한 적이 있다. 빼앗긴 일자리를 되찾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2013년부터 해마다 200억달러 넘는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을 가만둘 리가 없다. 

우리가 트럼프식 통상 공세의 예봉을 피하려면 훨씬 정교하고 입체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균형 있는 대미 교역 구조를 만들어가기 위해 올해부터 연간 280만t의 미국산 셰일가스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하면 대미 흑자를 10억달러쯤 줄일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한국은 중국 일본 독일 대만과 함께 미국의 환율 관찰 대상국에 올라 있기 때문에 외환시장 개입과 대미 흑자 관리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한미FTA 재협상에도 대비해 최선의 협상 전략을 세워 두어야 한다. NAFTA 시대에 멕시코에 집중됐던 해외직접투자도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



8. 문재인의 맞춤형 협력외교 실현될 수 있을까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서 24일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이 주최한 간담회에서 외교안보에 관한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국익 우선 외교, 맞춤형 협력외교, 책임안보를 위한 외교와 함께 통상외교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했는데 말로는 쉽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으로 북핵 문제 해법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문제는 국익 우선 외교를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문 전 대표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북한이나 미국 어디든 갈 수 있다면 어디부터 가겠는가'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말한다. 북한 먼저 가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로 인해 그의 안보관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그는 '욕만 하면서 북핵을 그냥 두고보자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이것이야말로 실용주의적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실용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이념적으로만 북한을 대하다 보니 타도 대상으로만 삼게 된다고 했다.



그럼 이제 그가 주장하는 책임안보를 위한 외교가 국익 우선 실용주의 원칙에 부합하는지 묻게 된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안보를 우리가 책임진다'고 하는데 그 명분이나 방향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 전 대표는 맞춤형 협력외교를 추진해야 한다고 언급했는데 이 역시 말로는 쉽지만 어떻게 실천할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앞으로 동북아시아에서 미·중 갈등이 더욱 커질 수 있는 가운데 70년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발전시키면서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도 지속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모호함을 유지하는 것이 이런 원칙을 뒷받침하는 것인지 묻게 된다. 의사결정 없이 언제까지 모호함을 유지할 수는 없다.



사드 배치 여부에 명확한 태도를 표명하는 것이 국론 분열을 막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불확실성을 줄여 나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속에서 통상외교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백번 맞는 말이다. 이 또한 기업들이 사업을 확장해 나갈 의욕을 갖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고 그런 정책들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향신문]

9. 극우단체 뒷돈 대서 여론조작·민의왜곡 했다니

박근혜 정권이 벌인 ‘관제 데모’ 실상이 드러났다. 청와대가 기획하면 재벌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자금을 대고, 극우단체가 움직이는 구조다. 세월호 유족을 조롱하는 집회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집회 등이 이런 식으로 열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공작을 주도한 인물은 다름 아닌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전직 청와대 직원으로부터 김 전 실장이 2013년 말에서 2014년 초 극우단체에 자금 지원을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 전 실장의 지시에 따라 정무수석실은 전경련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전경련은 극우단체에 차명으로 돈을 보냈다.



진보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를 탄압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극우단체를 키운 것이다. 특검은 김 전 실장 등이 2014년 6월 극우단체를 동원해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는 집회를 열게 한 구체적인 정황도 포착했다.



단식 농성 중인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인 극우단체의 패륜에 시민들이 충격을 받고 의아해했는데 이제야 의문이 풀린 것이다.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극우단체 대표들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도 적극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대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이 청와대 지시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집회를 벌인 정황도 있다. 뉴시스에 따르면 자유총연맹의 관제 데모를 지시한 사람은 허현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이다. 허 행정관은 2015년 하반기 자유총연맹 고위 관계자에게 ‘세월호 진상조사 반대 집회’와 ‘국정교과서 찬성 집회’를 열어달라고 연락했다고 한다. 허 행정관은 전경련을 통해 극우단체 어버이연합 차명계좌에 수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고, 참가자 1인당 2만원씩 줘 관제 데모를 열게 한 배후자로도 지목받고 있다. 

권력과 돈으로 민의를 왜곡하고 여론을 조작한 관제 데모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안이다. 그것도 김 전 실장 등과 청와대가 조종했다니 어이가 없다. 그런데도 김수남 총장 체제의 검찰은 손을 놓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에 돈을 대고 청와대가 시위를 사주했다는 의혹을 지난해 4월부터 수사하고 있지만 지금껏 감감무소식이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의 동생이 김 총장 부속실에 근무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관제 데모 의혹 역시 특검이 풀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전경련, 극우단체 간 유착 관계를 밝히고, 검찰의 직무유기 행위도 파헤쳐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10. 언제까지 정치공학인가, 이젠 정책 논쟁 하자

여야 유력 정치인들이 속속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앞선 주자는 대세론을 주장하고, 후발 주자들은 ‘제3지대’ 연합이니 야권 공동경선 등을 제안하고 있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 등 젊은 후보들은 세대교체와 정책 중심의 경쟁을 외치지만 정국을 주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슈퍼우먼방지법’ 공약과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육아휴직 3년 보장법’, 이재명 성남시장의 기본소득 정책 등도 이목은 끌었지만 의제로 떠오르진 못했다. 오히려 유력한 대선주자들일수록 특정 지역에 한정된 약속들만 내놓고 있다. 현안에 대한 해법이나 국가 미래를 좌우할 정책 제안보다는 유리한 경쟁 구도 만들기에 집중하는 상황이다.

대선은 정당과 후보들이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해법을 공약으로 제시해 대결하는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선 공약의 기조는 당면한 안보·경제 위기를 극복하면서 재벌과 검찰, 언론 개혁 등 과제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급선무로 떠오른 저출산 문제와 교육 정상화, 일자리 창출, 복지 강화 등에 대한 종합적인 해법도 필요하다.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은 난제들이다.



게다가 이번 대선은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돌발 상황에서 치러진다. 촛불민심으로 표출된 시민들의 요구도 대통령이나 집권 정당을 바꾸자는 수준을 넘어섰다. 박근혜 정권의 실정과 국가와 시장의 실패를 넘어설 대안을 구현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좋은 정권 교체’를 위한 집권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가 후보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촉박한 대선 일정으로 정책 검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심지어 특정 후보가 정책 토론을 회피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대로라면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정책이 뭔지 제대로 평가하지도 못한 채 기표소에 들어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당선된 대통령은 인수위원회에서 정책을 조율할 틈도 없이 곧바로 집무를 시작해야 한다. 

공약과 도덕성, 자질을 검증하지 못하면 또다시 실패한 정권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졸속으로 만들어 낸 공약으로 선거를 치른다면 그 길을 피하기 어렵다. 공약 없이 이미지로 선택받겠다는 것처럼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은 없다. 후보들 간 활발한 정책 경쟁을 기대한다.




주요신문칼럼



1. [동아일보][조경란의 사물 이야기] 일기장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해가 바뀌면 ‘새해 결심’이라고 몇 가지 정도는 일기장이나 다이어리에 적게 된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올해 첫 일기를 들춰보니 ‘일기를 더 자주 쓰고 휴대전화 보는 시간 줄이고, 더 많이 읽고 쓰는 그런 한 해를 만들어야지’라고 써놓았다.



사전적 의미대로 일기는 ‘개인의 기록’이라 나는 정말 마음 가는 대로 쓰고 있다. 그날그날의 푸념과 반성이 빠질 수 없어 다시 읽으면 유치하고 감상적으로 느껴져도 어쩔 수 없다. 일기가 아니라면 어디에다 그런 문장들을 끼적거려 놓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카프카나 존 치버의 일기처럼 훗날 출판이 되는 일기도 있는데 그런 건 역시 대가들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

고백소설의 범주 안에 편지나 일기 형식으로 쓴 소설들이 있다. 많은 소설들 중에서도 다니엘 페나크의 ‘몸의 일기’가 지금은 가장 먼저 떠오른다. 80대에 이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딸에게 쓴 일기 형식의 소설. 제목처럼 오로지 자신의 몸에 관한 일기다. 한 남자가 태어나서 죽음을 맞기 직전까지 자신의 몸을 통해 겪었던 2차 성징, 구토, 불면증, 건망증, 노안, 전립샘 비대증, 치매….

그러니까 ‘존재의 장치로서의 몸’에 관한 세세한 일화들. 기록(記錄)의 의미는 읽는 사람의 생에 대한 갈망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건 아닐까. 언젠가 일기 형식의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 지키지 않고 기록을 남기지도 않으니 순간순간들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만다.

지금 쓰고 있는 검은색 일기장 앞에는 WRITE라고 새겨져 있다. 줄이 쳐져 있고 눈을 피로하게 하지 않는 미색 종이이며 잉크를 잘 흡수하고 크기나 색이 두드러지지 않아 책들 사이에 대충 세워 놓아도 가족들 눈에 띌 염려도 적다. 먼 데서 지인이 보내준 데다 내가 원하는 일기장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어 애착이 간다. 

조카들도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는데 최근에 5학년짜리 조카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제목으로 쓴 일기를 읽게 되었다. 아직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모르지만 그건 창피한 게 아니라 책에서 읽은 대로 ‘모든 것을 꿈꾸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꿈을 찾는 그날까지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기다리자고 말이다. 초등학생의 그런 내면의 일기를 교정봐 주고 있자면 나 또한 무언가 쓰고 싶어지는 마음이 인다. 수수한 공책 같은 걸 머리맡에 두고 있으면 불현듯 써보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처럼. 

사람은 나이가 드는 만큼 덜 기대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없음의 감정’은 보다 커진다고. 두려운 말이다. 올해 일기장에는 기대하는 것, 원하는 것, 이루고 싶은 점들을 더 적어보는 것도 괜찮겠지.



2. [동아일보][황광해의 우리가 몰랐던 한식] 제사음식

명절 무렵이면 제사 음식에 대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받는다. “바나나도 제사상에 올릴 수 있느냐”는 애교 섞인 물음도 있다. 바나나를 제사상에 올리지 못할 이유는 없다. 돌아가신 조상이 바나나를 좋아하셨으면 바나나 사용이 흉은 아닐 것이다. 수박, 참외 등은 없었던 과일이다. 그러나 제사상에 수박, 참외를 사용한다고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다. 사과는 꾸준한 품종 개량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나타난 사과도 쓰는 판에 바나나를 피할 이유는 없다.

제일 자주 받는 질문이 “제사 음식은 어떤 걸로, 어느 정도 차리면 좋으냐”는 것이다.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다”고 눙친다. 제사상은 각자 형편 따라 차릴 일이다. 집안 문제다. 남이 참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엉터리 이론도 있다.

제사상에 오르는 과일 순서를 ‘조율이시(棗栗梨枾)’라고 표현한다. 언제, 누가 제안한 것인지 근거는 없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없는 표현이다. ‘가정의례준칙’(1969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조율이시는 대추, 밤, 배, 감이다. 모두 조선시대에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과일이다. 대추도 과일인지 의문은 든다. 만약 조율이시의 순서로 과일을 놓는다면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참외, 수박, 사과, 귤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홍동백서(紅東白西)도 근거 없는 표현이다. 붉은 과일은 제사상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둔다는 뜻이다. 녹색의 수박, 노란색 참외, 붉거나 푸른 사과, 노란 귤은 어디에 둘 것인가. 의미 없는 표현이다. 제사는 정성이다. 형식만 따지고 정작 중요한 의미는 잃어버린 것이 문제다. 상(喪)은 고인의 신분에 맞추고, 제사는 후손들의 신분에 맞춘다는 표현이 있다. 제사는 후손들의 경제적 정도에 맞춰야 한다. 정성이 으뜸이다. 

제사가 화려해진 것은 신분제도의 붕괴와 관련이 깊다. 조선 후기 신분제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양반 수가 급격히 늘었다. 갑오개혁(1894년)으로 신분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도 반상에 대한 의식은 남아 있었다. 여전히 “우리 집안은…”이라고 뻐기는 이가 많았다. 결혼식, 초상, 제사 등을 통해 자신들의 부와 신분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들의 화려한 행태를 따라갔다. 제사 음식이 화려해진 이유다.

좌포우해(左脯右해)는 기록에 남아 있다. 좌포우해와 우포좌해(右脯左해) 중 어느 쪽이 정확한지 묻는 내용이다. 좌포우해는 왼쪽에 고기 포를, 오른쪽에 육장(肉醬·젓갈)을 둔다는 뜻이다. 육장은 고기 장조림과 비슷하지만 다른 음식이다. 해(해·육장 등 젓갈)와 음료 식혜(食醯)를 혼동하기도 한다. ‘오른쪽에 식혜를 둔다’는 표현도 있다. 엉터리다. 식혜는 단술(감주)이다. 

유교 사회에서 귀하게 여기는 제사 형식은 모두 네 가지다. 천신(薦新)은 새로 난 작물들을 조상에게 먼저 올리는 것이다. 궁궐의 종묘(宗廟)천신과 가정의 가묘(家廟)천신이 있었다. 천신은 거의 사라졌다. 사시제(四時祭)는 사계절에 한 번씩 지내는 제사다. 제사와 비슷한 상차림을 마련했다. 역시 사라졌다. 오늘날 사시제를 모시는 경우는 드물다. 

차례와 제사는 남아 있다. 차례를 ‘명절 제사’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틀린 표현이다. 명절에는 제사가 아니라 차례다. 차례는 새해 첫날을 알리는 신고식 정도다. 차례상은 매년 돌아가시는 날 모시는 제사상보다 소박한 것이다. 조선은 농경 기반의 유교사회였다. 이제는 농경, 유교국가가 아니다. 유교, 농경국가의 제사를 그대로 되살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름다운 전통은 형식이 아니라 정성에서 찾아야 한다.



3. [경향신문][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머나먼 남쪽 그 소년

남쪽 끄트머리에서 보내온 짤막한 메일을 받고 그날이 떠올랐다. 2015년 늦가을 어느 날이었다. 하늘은 푸르렀고, 바람은 푸근했다. 그래도 천장이 높은 학교 강당은 썰렁해서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한 학년이 모두 나왔다고 하니 200여명이 넘었다. 그들은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자마자 하나같이 지쳐 있었다. 지루하고 시시할 게 뻔한 시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학생들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강연이고 뭐고 슬그머니 도망가고 싶었다.



그때 나타난 학생이었다. 사회를 맡았다고 인사하면서 밝게 웃던 모습. 책을 낭독하면서 어색한 연기를 태연하게 잘 해내던 모습. 메일을 보낸 학생이 선명하게 떠올랐지만, 곧 안부 인사는 잊혔다.

그런데 그 학생은 까맣게 잊히지 않을 만큼 메일을 보냈다. 어느 날은 심야자습반에 들어가 오로지 공부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나름대로 학교생활을 즐겼는데, 대입이라는 벽 앞에 서니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막막하다는 말끝에 내 안부를 물었다. 나는 이리 답장을 보내고 싶었다. 나도 그러하다, 빈 종이에 첫 줄을 시작해야 하는 막막함을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힘내라는 의례적인 답장을 했고, 벽 앞에 선 소년은 또 한참 만에 대수롭지 않은 일상을 적은 메일을 보냈다. 

지난가을에는 첫사랑의 아픔을 길게 적어 보냈다. 메일 몇 번 주고받았을 뿐인데, 그의 절망과 슬픔이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그 순간 “너희 모두 다른 빛깔을 갖고 있는 별이다”라는 말이 비로소 가슴에 와 닿았다. 강연 때마다 나는 그 말을 입으로만 떠들어댔던 것이다. 성적에 짓눌린 채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학교로 학원으로 쓸려 다니는, 요즘 것들이라고 싸잡아 말하며 한 명 한 명의 목소리와 웃음과 아픔은 보려고도 하지 않았구나. 나도 그런 어른이었구나.

지난가을 내내 머나먼 남쪽에서 홀로 분투하고 있을 소년이 생각났다. 수능을 치르면 찾아올 테니 밥 한 끼 같이 먹자고 한 소년은 아직 소식이 없다. 이제 스무 살이 되었을 그를 잠자코 기다린다. 혼자 서울까지 올 수 있으려나, 꼰대 같은 걱정을 하면서….



4. [한국일보][삶과 문화] 일 잘하기 5계명

새해다. 올해는 일을 좀 더 잘해보기 위한 ‘일 잘하기 5계명’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1. 납기와 아웃풋 준수가 가장 기본이다
일 잘하는 가장 기본은 해야 할 업무의 아웃풋(Output)과 납기를 정하는 것이다. 일 잘하는 비결은 거창한 게 아니다. 구성원 간에 ‘무슨 일’을 ‘언제’까지 하겠다라는 것만 지키면 그만이다. 말은 쉽지만 현실은 어렵다. 우선 리더가 기대하는 업무의 아웃풋을 잘 정의해야 한다.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부족하다.



“마케팅 전략 중 제품 추천율을 높이기 위한 할인 프로모션 전략 A,B,C 안에 대해 이번 주 금요일까지 최종 결정을 합시다.” 등과 같이 최대한 구체적 가이드를 제시해야 한다. 뜬구름 잡는 아웃풋이나 무리한 납기가 아닌, 합리적 방식으로 설정해야 한다. 

2. 에스컬레이션으로 우선순위를 조정하자
납기와 아웃풋을 합리적으로 정의했다면, 이제는 실행의 몫이다. 수많은 업무들의 우선순위를 리더와 조율해야 한다. 대부분 실무자들의 가장 큰 실수는 한 번 지시 받은 업무를 마치 절대명령처럼 여기며 일주일이 넘도록 혼자 끙끙대다가 일을 뭉개는 것이다. 도중에 궁금한 점이나 이슈는 재빠르게 에스컬레이션(Escalation, 리더에게 이슈 제기하기)해야 한다. 이슈에 대해 에스컬레이션 하는 순간 그 책임은 다시 리더에게 넘어간다. 그



러나 에스컬레이션 하지 않고 혼자 뭉개고 있다가 나중에 구멍을 낸다면 실무자 탓이다. 이슈가 있다면 빨리 리더에게 공을 넘겨라. 리더에게 자주 물어보는 것은 죄가 아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진짜 일을 잘하는 것이다. 

3. 두 시간 걸릴 일을 한 시간 만에 하도록 자동화하자
일을 하다 보면 매번 반복되는 업무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두 시간 걸릴 일을 한 시간 만에 끝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가장 흔한 방법은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객의 CS 업무를 할 경우 처음에는 다양한 문의사항에 대응하느라 두 시간이 걸리지만, 나중에는 80%는 비슷한 유형의 이슈가 발생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럴 때 겹치는 유형의 대응방안을 매뉴얼로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 또한 기존의 업무 프로세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분석하고 어느 부분을 더 줄이고 자동화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엑셀로 데이터를 관리하고 주요 지표를 설정하여 분석하는 습관을 들이자. 

4. 회고 (Postmortem ; 사후검토)는 필수다 
많은 사람들이 계획은 거창하게 수립하지만, 막상 결과 리뷰는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회고야말로 일을 더 잘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바빠서 리뷰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도끼날을 갈지 않고 나무를 베는 것과 같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또는 주간/월간 등 정기적으로 내 업무의 잘된 점, 아쉬운 점, 향후 반영할 점 등을 점검해야 한다. 이러한 지표를 정례화하여 아웃풋과 납기를 다시 설정하고 그 결과를 다시 회고하는 사이클을 반복한다면 업무 품질이 빠르게 향상될 수 있다. 

5. 리더십과 팔로워십의 본질을 직시하자
리더십의 본질은 모든 탓을 리더에게 귀속하는 것이다. 리더는 말 그대로 책임과 권력을 모두 쥐고 있는 자이다. 본인이 시키는 일인데 남 탓을 해서는 리더라고 할 수 없다. 팔로워십(Followership)의 본질은 리더가 말하는 것을 잘 지키는 것이다. 군대식 문화가 아니라 최소한 리더가 말한 것에 대해서는 성실하게 납기와 아웃풋이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신뢰할 수 있는 리더일 경우에 한해서다. 리더가 불합리한 지시를 한다면 이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업무는 수직적이나 관계는 수평적이어야 한다. 

리더와 팔로워가 이 두 가지를 구분하고 서로 신뢰할 수 있다면 올해는 보다 일 잘하는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벌지 전투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남은 전력(戰力)을 긁어 모으다시피 해서 전개한 마지막 대반격이 1944년 12월 16일의 이른바 ‘벌지(Bulge) 전투’다. 그 작전을 입안한 독일 서부전역사령부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원수의 이름을 따 ‘룬트슈테트 공세’라고도 하고, 전선의 지명인 벨기에 아르덴에서 따 ‘아르덴 전투’라고도 한다.



‘벌지’는 ‘코처럼 돌출돼 있다(nose likesalient)’는 뜻. 독일 기갑사단의 기습 진격으로 전선 모양이 주머니처럼 볼록해진 형상에 빗대 미군측이 붙인 이름이다.

노르망디 상륙전으로 승기를 잡은 연합군은 유럽 전역으로 전선을 확장하며 나치를 몰아 붙였고, 동부전선의 러시아까지 상대해야 했던 나치는 44년 들면서 기세가 꺾였다. 하지만 확장된 전선 보급로 확보를 위해 그 해 9월 연합군이 벌인 이른바 ‘마켓가든 작전’의 참패로 전황은 주춤했다.



히틀러는 그 상황을 반전의 기회라 판단했다. 정예 기갑사단을 벨기 아르덴 삼림지대에 집결시켜 숲을 뚫고 네덜란드 안트베르펜까지 진격한다는 구상. 성공할 경우 서부전선 북부 연합군을 포위할 수 있고, 연합군 보급로를 장악함으로써 막대한 군수물자를 얻게 된다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성패는 기습과 전격전에 달려 있었다. 12월까지 기다린 것도 동절기 숲의 안개를 이용하기 위해서, 즉 부대 이동을 최대한 감추고 제공권을 장악한 연합군 폭격을 모면하기 위해서였다. 방어전인 양 위장하기 위해 독일이 붙인 작전명은 ‘라인을 수호하라’였다.

방심했던 연합군, 특히 그 전선의 주력이던 미군은 전투 초기 연패하며 큰 희생을 치렀다. 하지만 아이젠하워의 판단과 실행력은 독일 전차의 진격 속도보다 빨랐다. 그는 연합국 수뇌와의 협의 절차를 무시한 채 전력을 즉각 이동 배치해 방어선을 쳤고, 대대적 반격에 나섰다. 연료와 탄약마저 부족한 상태로 오직 연합군 군수창고와 보급로만 보고 덤벼들었던 독일은 밀리기 시작했다. 전투는 바스토뉴 공성전 직후 사실상 끝이 났다. 독일군에게 그건 전략의 패배가 아니라 기량과 군비의 패배였다.

독일군 사령부는 45년 1월 23일 작전 중지 결정을 내렸고, 1월 25일 전투가 끝났다. 미군은 전사 1만 9,000여 명, 부상 4만 7,000여 명의 피해를 입었고, 독일군은 약 6만~12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벌지 전투로 인해 나치독일의 패망이 6개월 가량 앞당겨졌다는 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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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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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조류인플루엔자 후속 오염 걱정한다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로 지난 2개월 동안 전국에서 도살 처분된 닭·오리가 3260만 마리에 이르러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하루에 50만 마리씩 산 채로 땅속에 묻혔다는 얘기다. 초동 단계에서부터 안일하고 미숙한 대응이 불러온 재앙이다. 살처분된 가금류가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자체가 부끄러울 뿐이다. 설날을 앞두고 초유의 ‘계란 파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그 결과다.

이로 인해 자칫 연쇄적인 ‘2차 피해’가 일어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게 더 심각하다. AI 확산에 대응하려고 닭·오리를 무더기로 살처분하는 바람에 매몰지의 입지나 적정성을 제대로 따져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규정을 지키지 못했다면 매몰지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로 주변 토양이 오염될 수밖에 없다. 사체가 썩으면서 악취가 풍겨나올 수도 있다.

AI로 살처분이 이뤄진 이후 악취 민원이 제기되고 있는 전남 해남 지역이 혹시 그런 경우가 아닌지 조사가 진행됐다고 한다. 동물 사체 썩는 냄새로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주민들의 불만이 접수됐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육용 오리 1만 3500여 마리를 미생물 처리한 왕겨에 묻는 새로운 방식이 채택됐다고 하는데, 이 방식에 허점이 없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과거처럼 일반매몰 방식으로 사체를 처리한 지역이다. 전국 매몰지 430여 곳 가운데 100여 곳이 이런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구덩이 바닥에 비닐을 깔고 사체를 묻은 뒤 그 위에 흙을 덮는 방식이다. 2010~2011년 구제역 때도 모두 이 방식으로 처리됐으나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흘러나오면서 환경재앙에 대한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이번에는 매몰 방식을 대폭 바꿨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앞으로 겨울 날씨가 풀리고 비가 쏟아지게 되면 관련 민원이 더 많이 제기될 수 있다. 얼어붙었던 땅이 녹으면서 매몰지 토사가 쓸려 내려가거나 봉분이 내려앉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농림수산부와 환경부 등 관련 당국은 후속 오염 사태를 미리 방지함으로써 주민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AI 처리 과정의 잘못은 역대 최대 살처분 기록만으로도 충분하다.



2. 황교안 권한대행 흔들리면 안 된다

요즘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의 ‘광폭 행보’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회원로들을 비롯해 청년, 취약계층, 탈북자 등 각계각층을 두루 만나며 하루 4∼5건의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는 것을 보면 진짜 대통령 못지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옛말처럼 이쯤 되면 ‘권한대행’ 꼬리를 아예 떼어내고 싶은 욕심이 솟구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도 하다.

더구나 황 권한대행은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꾸준히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일부 조사에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이어 3위에도 올랐을 정도다. 예상과 달리 ‘반기문 바람’이 미풍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여권의 대안으로 급부상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황 권한대행의 어제 신년 기자회견에서 올해의 국정 방향은 제쳐놓고 “출마에 대한 입장이 뭔가”,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생각하겠다는 건가”라는 등의 질문이 쏟아진 것도 그래서일 게다.

황 권한대행은 대선 지지율이 본인의 뜻과 무관하다고 못 박았다. “권한대행으로서 국내외 어려움을 극복하고 국정을 안정시키기 위한 모든 방안을 강구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지금의 최우선 과제는 탄핵정국의 슬기로운 극복이고, 그러려면 무엇보다 국민 대통합이 절실하다.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나 트럼프 행정부 출범, 중국의 사드 보복 같은 현안에서 드러난 어설픈 대응이 되풀이되지 않게끔 국정을 제대로 통할해야 한다.

국민과 정치권도 황 권한대행이 국정의 정상화에 매진할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모두 보태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권한대행 체제를 흔들려는 불순한 기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엄연한 반국가적 반칙이기 때문이다. 규정과 관행도 무시하고 그를 국회로 불러내 “촛불에 불타고 싶은가”, “권한대행은 잘할 필요가 없다”라는 한심한 질문을 퍼붓는 저질 정치야말로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반드시 청산해야 할 적폐다.



국민들은 황 권한대행 체제가 탄핵정국이 마무리될 때까지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데 우리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크다”는 황 권한대행의 절박한 호소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우리 주변이 온통 낭떠러지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3. 부당한 지시 제어할 정부 매뉴얼 만들어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관리하는 데 관여한 혐의로 전직 장·차관이 대거 구속된 문화체육관광부가 어제 국민에게 사과했다. 장관 직무대행을 맡은 송수근 1차관을 비롯한 실·국장 이상 간부 전원이 국민에게 머리를 숙인 것이다.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문체부는 조윤선·김종덕 전 장관과 정관주 전 1차관, 김종 전 2차관이 구속됐다. 문제는 이들에 그치지 않는다. 이날 ‘국민께 드리는 반성과 다짐의 말씀’이라는 사과문을 읽은 송 직무대행을 비롯해 문체부 그 누구도 파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송 직무대행은 재발 방지 대책으로 “부당한 간섭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부당한 간섭’의 주체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청와대를 지칭한다는 것을 짐작 못할 사람은 없다. 그럴수록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는 여전히 감당이 불가능한 문체부 차원이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송 직무대행은 “예술 표현의 자유와 창의성을 지키는 보루가 돼야 할 문체부가 공공 지원에서 배제되는 예술인 명단으로 공정성 문제를 야기한 것에 대해 너무나 참담하고 부끄럽다”고 했다. 이번 일을 뼈아픈 자성의 계기로 삼아 문화예술 정책과 지원의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문화행정의 제반 제도와 운영 절차를 과감히 개선하겠다고도 했다.



우리는 송 직무대행을 비롯한 문체부 구성원들의 절절한 반성을 가감 없이 수용하고 싶다. 심기일전해 문화예술 지원 정책의 틀을 공정하게 다시 짜겠다는 약속에도 진심이 담겨 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문체부 구성원들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는 대통령이고 청와대가 아닌가. 부당한 정치적 지시가 내려지면 따르거나, 옷을 벗고 나가는 모습을 그동안에도 지켜봐야 했던 문체부 구성원들이다. 스스로 다짐하는 것만으로 지킬 수 있는 약속이 아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책무는 과도기의 합리적 국정 관리다. 지금은 청와대가 정치적 이유로 행정 부처와 관료를 범죄로 내모는 행위를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적기다. 행정 조직을 정치적 수단으로 삼는 불합리를 제어하는 장치가 없다면 제2, 제3의 ‘블랙리스트’ 파문은 언제든 불거질 것이다. 장·차관이 줄줄이 사법 처리되는 모습 또한 어느 부처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황 대행은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4. 건보료 개편, 실질소득 파악에 성패 달렸다

불합리한 정책의 대명사로 꼽혀 온 국민건강보험료 부과 체계가 개편된다. 보건복지부는 어제 국회 공청회를 열어 고소득자의 건보료 무임승차를 막는 정부안을 내놨다. 정부가 직무 유기라는 지탄을 받으면서도 뭉갰던 건보료 체계를 수술하겠다니 늦었지만 다행스럽다.

설문조사를 해 보면 우리 국민 3명 중 2명꼴은 건보료를 실질소득 중심으로 부과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현행 체계가 지역 가입자들의 과도한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에 대다수 국민이 문제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정부의 개편안대로라면 ‘송파 세 모녀’ 같은 저소득 지역 가입자의 보험료는 2024년까지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당장 내년부터는 연소득 100만원 이하 가구는 1만 3100원의 최저보험료만 내면 된다. 개편안은 실질소득의 반영도를 높이는 것이 골자다. 그런 만큼 현재와는 달리 이자와 연금소득이 많으면 보험료도 올라간다. 지금은 금융소득, 공적 연금, 근로·기타 소득 등이 각각 연간 4000만원 이하이면서 과표 재산 9억원 이하라면 자녀나 친척의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



개편안은 이런 허점을 막기 위해 내년부터는 직장 가입자의 피부양자라도 연간 합산 소득 3400만원을 넘으면 지역 가입자로 전환한다. 건물을 몇 채나 가진 재력가가 직장 가입자인 가족에게 얼렁뚱땅 얹혀 가는 모순을 손보겠다는 의지다.

이번 개편안은 3단계에 걸쳐 추진되는 얼개다. 2018년, 2021년, 2024년으로 단계를 나눠 소득 반영률을 꾸준히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무엇보다 지역 가입자에게 재산이나 자동차를 기준으로 매기던 보험료의 비중을 점차 줄여 가겠다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소득은 없는데 주택이나 자동차를 보유했다는 이유로 뭉칫돈을 내는 현행 체계는 손질이 하루가 급한 현실이다.

현행 건보 체계는 1989년에 다듬어졌다. 근 30년이 지나면서 취약계층의 보험료 부담을 덜어 주고 무임승차하는 고소득 피부양자를 줄여야 한다는 형평성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현 정부도 출범 초부터 개편 의욕을 보이더니 2015년 초 연말정산 파동으로 여론이 민감해지자 아예 없던 일로 돌렸다. 개편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표심만 살펴 온 것이 정부와 여당의 태도였다.

저항이 따르지 않는 개혁은 없다. 어렵게 칼을 뺐으니 이번만큼은 눈치 살피지 말고 개편을 마무리해야 한다. 정부는 오는 5월 국회에 확정 개편안을 내겠다지만 간단치 않은 일이다. 당장 야당들은 부과 기준을 소득으로만 일원화하자고 주장한다.



​소득을 완벽히 파악하기는 어려운 만큼 야당의 주장이 다소 현실성은 떨어지긴 해도 새겨들을 사안임에는 틀림없다. 지역 가입자들의 소득을 면밀히 파악하는 작업에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종 개편 단계인 2024년에는 해마다 2조원이 넘는 보험료 손실분을 어떻게 메울지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



[매일신문]

5. 나랏빚 심각성에 입 닫고 퍼주겠다는 대선 주자들

국가재정이 요란한 경고음을 내고 있다. 23일 오후 9시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합한 국가 채무는 641조2천512억6천123만원으로 국민 1인당 1천251만원 꼴이다. 더 가공스러운 것은 증가 속도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추산에 따르면 국가 채무는 올 연말에는 682조4천억원까지 불어난다. 1초에 139만원, 하루에 1천200억원씩 늘어난다는 얘기다.



이 속도대로라면 국가 채무는 내년에 700조원을 돌파하고 2020년에는 800조원에 육박하게 된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도 위험 수위인 40%에 육박하게 된다. 이런 증가 속도는 제대로 된 나라 꼴을 갖춘 국가 가운데 최고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우리의 정부 부채 증가율은 지난 5년간 66.7%로 G20(주요 20개국) 가운데 가장 빠르다.



여기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뻔하다. 빚을 내 흥청대다 거덜이 난 그리스의 뒤를 밟아갈 것이다. 그런 운명을 피하는 방법은 씀씀이를 줄이는 것 하나뿐이다. 저출산`양극화 해소 등 꼭 지출해야 할 부문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문에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한다. 빚을 내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이미 낸 빚도 부지런히 갚아가야 한다. 이는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나 파산하지 않으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저마다 퍼주지 못해 안달이 난 듯한 이른바 대선 주자들의 행태는 더 가관이다. 이들은 저마다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며 감언이설을 쏟아낸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30만원까지 기초소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하며, 이재명 성남시장은 “연간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모병제 전환’을 약속했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일자리를 늘린다며 “공무원 81만 명을 증원하겠다”고 한다. 이를 실천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데 어떻게 조달할지는 하나같이 불투명하다.



더 무책임한 것은 국가 채무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공약이 국가 채무 규모와 증가 속도에 비춰 실현 가능한 것인지, 가능하다면 어째서 그런지 확실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아직 이런 요구에 응답한 대선 주자는 하나도 없다. 아니 빚을 내야만 가능한 솜사탕 공약은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들이 대권 주자라는 현실이 한심하고 서글프다.



6. 정부 곳간만 불린 담뱃값 인상, 흡연 인구 감소 근본책 있어야

탈출구가 안 보이는 경제난과 국정 혼란 등으로 국민 스트레스 수치가 늘어나면서 담배를 다시 피워 무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담뱃값 인상으로 주춤했던 담배 소비도 다시 가파르게 증가해 가격 인상 전의 85% 수준까지 올라갔다.



22일 시장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담배 판매량은 729억 개비로 전년(667억 개비)보다 9.3% 증가했다. 담뱃값 인상 전인 2014년 판매량(853억 개비)의 85.5%에 육박하는 수치다. 담배 세수도 지난해 12조원이 걷혀 담뱃값 인상 첫해인 2014년(6조9천억원)보다 5조원이나 늘어났다. 대구시의 경우 올해 담배소비세 목표 세입을 1천408억원으로 전년(1천160억원)보다 21% 늘려 잡았다.



세수 증대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표정관리’라도 해야 할 판이지만, 금연치료 지원사업은 시늉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올해 금연 관련 사업으로 1천479억원을 편성했지만, 이는 올해 국민건강증진기금 총액(3조2천927억원) 대비 4.5%에 불과한 수치이다. 국제보건기구(WHO) 분담금, 건강도시연맹총회 지원 등 국민건강증진과 무관한 곳에도 국민건강증진기금은 사용되고 있다.



그나마 금연치료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금연 성공률을 보면 민망스럽다. 국민건강보험공간이 실시하는 금연치료 프로그램에서 총 참여자 대비 금연 성공률은 0.5%에 그쳤다.



담배의 중독성은 헤로인, 코카인, 아편 못지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값을 인상해 흡연 인구를 줄이겠다는 발상은 실패가 예고된 탁상행정이었다.



담뱃값 인상은 결과적으로 정부 곳간만 채웠다. 그 곳간을 채우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경제적 고통을 받는 이들은 저소득층과 청년층, 노년층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흡연 인구 감소에 대한 대대적인 정책 재검토와 방향 재설정이 필요하다.



[경향신문]

7. 지연책 쓰는 박근혜, ‘빠른 탄핵’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늦추기 위해 갖은 꼼수를 부리고 있다. 박 대통령 측은 어제 헌재에서 열린 탄핵심판 8차 변론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무려 39명의 증인을 추가로 신청했다. 검찰과 특검의 조사 결과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관련자들을 직접 불러 얘기를 들어보자는 것이다.



증인 1명 심문에 적어도 1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재판이 2주 이상 늘어질 수 있다. 그런데 김 전 실장이나 우 전 수석은 이미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모든 사안에 ‘모른다’고 답한 인물들이다.



헌재 출석 요구를 받은 청와대 ‘문고리 3인방’도 모두 불응했다. 나라가 결딴나든 말든 조금이라도 더 대통령 자리에 앉아 반전의 기회를 노리겠다는 속셈이다.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나 주권자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다. 

박 대통령은 특검 수사도 훼방을 놓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박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보도한 언론사와 기사에 언급된 ‘익명의 특검 관계자’를 고소했다. 자중해야 할 피의자가 수사 주체를 고소해 처벌하겠다니 어이가 없다. 대면조사나 청와대 압수수색 등 향후 특검 수사를 거부하기 위한 명분을 축적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최순실씨도 막무가내로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특검의 소환 통보를 6차례나 거부해 수감 중인 최씨의 체포영장을 법원에 청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정 공백이 길어지면서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물가와 실업률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가계부채와 나랏빚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탄핵 국면에 대한 피로도도 높아지고 있다. 나라 바깥도 어지럽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전 세계가 대격변의 소용돌이에 들어갔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위중하다.



헌재가 일단 내달 1일 김 전 실장과 김규현 외교안보수석 등을 심문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헌재의 최종 결론은 8명의 재판관이 내리게 됐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오는 31일 퇴임한다. 9명의 재판관 중 6명 이상 찬성에서 8명 중 6명 이상 찬성으로 탄핵 조건이 변해 박 대통령은 그만큼 유리해졌다. 박 대통령은 이런 걸 노렸을 것이다. 헌재는 무책임한 박 대통령의 재판 지연 술책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선고 일정 등을 가능한 한 일찍 알려 시민들이 대통령 선거 등 향후 정치 일정 등을 예측할 수 있게 해야 한다.



8. 건보료, 소득중심 단일 부과체계로 바꿔야

보건복지부가 어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내놨다.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건보료 부담은 낮추고, 고소득 직장인과 피부양자의 건보료는 올리는 게 개편안의 골자다. 복지부는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를 2018년부터 2024년까지 3단계에 걸쳐 소득에 부과하는 건보료 비중은 단계적으로 높이고, 재산에 부과하는 건보료 비중은 낮추기로 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소득이 일정 기준 이하인 지역가입자에게는 최저보험료가 부과된다. 또 연소득 500만원 이하 지역가입자에게 성과 연령, 소득, 재산을 기준으로 건보료를 부과하던 ‘평가소득’은 폐지하고, 재산과 자동차에 붙는 건보료는 단계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소득이 없는데도 주택이나 자동차가 있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건보료를 내도록 한 부과체계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진 송파 세 모녀는 반지하 셋방의 보증금 500만원이 재산이라는 이유로 매달 5만원의 건보료를 내야 했을 정도로 부과체계가 불합리했다. 

개편안은 소득이 있는데도 직장가입자인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재돼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았던 연금소득자나 임대업자 등을 지역가입자로 전환해 건보료를 내도록 했다. 지난해 직장가입자에 얹혀 건보료를 면제받은 피부양자는 2600여만명으로 이 중에는 집을 3채 이상 가진 자산가도 67만명에 달해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하는 주된 요인이 됐다.

그러나 복지부의 개편안은 여전히 건보료 부과체계의 기본 취지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합리적인 건보료 개편안은 직장과 지역의 구분을 없애고, 파악할 수 있는 모든 소득에 건보료를 부과하는 것이다. 복지부는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이 낮아 소득중심의 단일 건보료 부과체계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세청 과세자료를 100% 공유하면 소득파악률이 95%까지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한국보다 소득파악률이 낮은 대만도 소득중심의 건보료 부과체계 전환에 성공한 바 있다. 

복지부가 소득중심의 단일 건보료 부과체계 도입을 꺼리는 것은 건보료 인상과 고소득층의 반발 때문이다. 건강보험은 많이 내든, 적게 내든 똑같은 서비스를 받기에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갖고 있다. 여·야·정은 양극화에 따른 사회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소득중심의 단일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연합뉴스]

​9. '갤노트7 사태' 전화위복 될 수도

삼성전자가 지난해 발생한 갤럭시노트7의 발화 사고 원인을 배터리 결함으로 결론지었다. 문제가 생긴 배터리는 삼성SDI와 중국 ATL이 만든 제품이었다.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은 23일 기자회견에서 "두 종류의 배터리에서 각기 다른 원인으로 소손(燒巽·불에 타서 부서짐)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했다"며 갤노트7 본체에는 결함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는 스마트폰 20만 대와 배터리 3만 개가 사용됐다고 한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엑스포넌트, UL 등 해외 인증기관 관계자들도 삼성전자의 조사 결과와 같은 의견을 보였다. 물론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삼성전자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 사장도 "배터리 설계와 제조 공정상의 문제점을 제품 출시 전에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배터리 업체들에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한 것도 그런 취지인 듯하다. 결국 최종적인 책임은 삼성전자가 지겠다는 뜻이다. 

작년 8월 출시된 갤노트7은 연이은 발화 사고로 대규모 리콜을 거쳐 단종됐다. 발화사고는 출시 엿새 뒤부터 국내외에서 동시다발로 보고됐다. 삼성전자는 사태 초기에 삼성SDI가 공급한 일부 배터리 불량을 발화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에 따라 판매된 제품 250만 대를 전량 회수하고 대신 ATL배터리 탑재 제품으로 무상 교환해주는 파격적인 리콜을 단행했다. 그러나 ATL 배터리가 사용된 제품에서도 발화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결국 삼성전자는 출시 70일 만에 갤노트7의 완전 단종을 결정했다. 삼성전자의 손실은 막대했다. 리콜과 재고 처리비용만 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정상적으로 제품을 팔지 못한 것까지 따지면 추정 손실은 7조 원으로 늘어난다. 무엇보다 소비자 신뢰의 추락이 삼성에는 뼈아픈 타격이었다. 갤노트7의 발화 사고는 단순한 품질 불량을 넘어서 제품 안전성 문제로 우려를 낳았다. 현대인의 일상생활에 필수품과 같은 스마트폰에서 안전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고강도 재발 방지책도 내놨다. 우선 배터리 안전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8단계로 구성된 배터리 검사 프로세스를 도입했다. 또 제품 기획 단계부터 안전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 다중 안전장치를 적용키로 했다. 핵심 부품 설계와 공정 관리는 신설된 '부품 전문팀'이 맡는다고 한다. 충실한 제품 점검을 위해 차기작인 갤럭시 S8의 발표 일정도 늦출 계획이다.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이 같은 노력이 결실을 보면 삼성전자에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제품의 안전성 보장은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기본 중 기본이다. 삼성전자가 갤노트7 사태로 떨어진 국내외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고 국가 경제를 견인하는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서울경제]

10. 수출 호조라지만 배경 제대로 분석해야

수출이 오랜만에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22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수출액은 276억1,3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0%나 늘어났다. 이는 2011년 8월(25.5%) 이후 6년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월별 증가율이다. 지난해 10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를 보이다가 11월 2.5%, 12월 6.4%로 두 달 연속 늘어난 데 이어 올 들어서는 증가세가 더욱 가팔라지는 모양새다. 조업일수를 감안한 하루 평균 수출액을 비교해봐도 13.3% 증가했다. 악재가 켜켜이 쌓여 있는 우리 경제에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경제를 먹여 살려온 수출은 최근 2년간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15년 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19개월 연속 전년 대비 감소하면서 사상 최장기간 연속 감소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8월 2.6% 증가하면서 연속 감소 행진을 종결했지만 9월과 10월에 다시 줄었다. 이 때문에 연간 수출도 58년 만에 처음으로 2년 연속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수마저 얼어붙었으니 경제가 위기국면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수출회복세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 너무 특정 제품에 의존한 탓이다. 1월 석유제품 수출은 유가 상승으로 단가가 높아진 덕분에 86.0%나 급증했고 반도체도 사물인터넷(IoT) 등의 수요 증가에 힘입어 52.5% 늘어났다. 여기에 지난해 1월 수출이 워낙 저조해 조금만 늘어도 증가율이 크게 높아지는 기저효과 영향도 크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올해 수출환경도 녹록지 않다. 그렇더라도 수출회복의 불씨를 반드시 살려 탄력을 붙여나가야 한다. 경쟁력이 떨어진 주력제품의 고부가 전환을 서둘러 추진하고 고급 소비재 및 서비스 산업 수출도 확대해야 한다. 우리 수출의 부가가치율은 58% 수준으로 80%가 넘는 미국과 일본에 크게 뒤지는 상황이다. 기업은 수출의 본질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김태의 뇌 과학] 렘수면 행동장애

60대 초반의 부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병원으로 들어간다. 부부의 사이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부인이 한밤중에 남편에게 맞아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이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남편은 50대 중반부터 잠꼬대가 늘었다고 한다. 한밤중에 큰소리로 싸우는 듯 잠꼬대를 하는가 하면 손발로 허공을 휘젓기도 했다. 수면다원검사를 받은 후 남편은 ‘렘수면 행동장애’로 진단을 받는다. 가상의 사례이지만 정신건강의학과에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병의 양상이다.

‘렘수면’이란 수면 중 뇌활성이 각성 상태와 비슷하게 변화하면서 안구의 빠른 움직임이 나타나는 시기를 가리킨다. 전체 수면 시간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보통 이 시기에 꿈을 꾼다. 꿈속에서 달리고 싸우고 도망가는 등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의 뇌는 이런 내용들을 생생하게 경험하면서 움직이도록 명령하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는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잠을 자고 있는 것일까. 해답은 렘수면 때 일어나는 특별한 현상에 있다. 바로 ‘렘수면 무긴장’이라는 현상이다. 렘수면이 존재하는 동물들은 모두 렘수면과 함께 근육의 긴장도가 사라져 축 늘어진 상태가 된다. 즉, 렘수면이 시작되면 뇌신경에서 어떤 운동명령이 떨어져도 그 신호가 최종 목적지인 근육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이제 독자들도 눈치챘을 것이다. 렘수면 무긴장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병적 증상이 바로 렘수면 행동장애인 것이다. 1986년 카를로스 솅크 박사와 마크 마호월드 박사가 최초로 렘수면 행동장애에 대한 공식적인 학술보고를 한 이래로 병의 경과와 치료에 대해 많은 보고들이 이어졌다.



​프랑스 리옹 뇌과학 연구센터의 파트리스 포흐 박사팀은 중뇌덮개의 한 영역에서 ‘글루타메이트’라는 물질 분비를 억제하자 실험쥐가 렘수면 단계에서 눈을 감은 채로 음식을 찾거나 먹는 시늉을 하고 뛰거나 점프하려는 동작까지도 보였다고 보고했다.

최근 수면의학자들은 렘수면 행동장애가 있는 상당수의 환자에서 파킨슨병이나 루이체 치매 등의 신경퇴행성 질환이 나타나는 현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와 미국, 캐나다, 스페인 등 세계 각지에서 이 질환에 대한 추적관찰이 이뤄졌는데 진단 5년 뒤에 18~35%의 환자에서 신경퇴행성 질환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10년 이상의 관찰에서는 80% 이상의 환자가 신경퇴행성 질환을 경험했다.

필자가 국내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5년째는 18%로 외국에 비해 낮지만 6년째는 35%로 급격히 높아졌다. 이처럼 렘수면 행동장애는 그 자체도 위험하지만 5~10년 뒤에 파킨슨병 등 신경퇴행성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렘수면 행동장애의 증상 자체는 약물치료를 통해 조절할 수는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까지는 신경퇴행성 질환으로의 이행을 예방할 수 있는 약은 개발하지 못했다. 다만 살충제, 흡연, 허혈성 심장질환, 스테로이드 흡입제 사용 등의 외적 요인들이 신경퇴행성 질환으로의 이행을 촉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렘수면행동장애는 단순히 잠꼬대가 심한 상태가 아니며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중추신경계의 질병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아직은 병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한 이해가 완전하지 않지만 임상의학과 뇌과학이 융합해 질환 극복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기에 머지않은 미래에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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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일보][일사일언] 삶의 무대에 단역은 없다

할머니 댁은 6시간 넘게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시골이었다. 그래도 가는 길이 힘들지 않게 느껴진 까닭이 있었다. 밤만 되면 사랑방에 모이는 동네 할머니들이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들의 기억은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변형시키곤 했다. 구렁이가 한 사람만 더 잡아먹으면 사람이 되려는 찰나, 억울하게 연못에 빠져 죽은 색시의 원을 풀어 주었던 사또가 등장해 판을 깨는 식이다. 여우가 재주를 넘는 결정적 순간에 "그래서 어떻게 됐더라?" 하고 되묻기도 하셨다. "조금 있으면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두꺼비 앞에서 재주를 넘겠구먼." 다른 할머니들이 추임새처럼 말을 잇는다.

 

기승전결 희미한 이야기들을 머릿속에 한가득 이고 서울로 돌아오면 나는 그걸 또 재구성하고 각색했다. 동네 친구들에게 들려주기 전날 밤이면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 주느라 밤을 꼴딱 새우기도 했다. '옛날 옛적 동네에 한 총각이 있었는데…' 대부분 이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를 "옛날 옛적 구운리라는 곳에 똘이라는 총각이 살고 있었어." 이런 식으로 바꾸고, 지나가는 마을 사람 한 명 한 명에게도 정성을 들여 이름을 만들어주곤 했다.


이 버릇은 커서 연극을 할 때도 계속 됐다. 마을 사람 1, 직원 2…. 잠시 나오는 역할에도 이름을 넣어 주자며 작가를 조르거나 여의치 않으면 우리끼리라도 지나가는 역할에 이름을 붙여 주곤 했다.


무대에 등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이유 없이 나왔다 들어갔다면, 그 공연은 좋은 공연이라 할 수 없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 사람의 이름이 무언지 관객은 굳이 몰라도 된다. 잠깐의 등장이지만 '지나가는 사람 1'이 등장한 연극과 제 각각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등장한 연극은 공연의 풍성함에 분명 차이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마찬가지 아닐까. 매일매일 스치는 수많은 사람, 그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엄연하게 자신만의 이름이 있고 각자 삶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기억하자. 누군가를 쉽게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일이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3. [중앙일보][삶의 향기] 손글씨, 또 다른 나

가슴이 철렁한다. 내 남자 친구의 책갈피에서 낯선 여자의 글씨를 발견하는 것은 그 둘의 다정한 사진을 보는 것보다 더 잔혹하다. 그 글씨는 그녀의 체온과 성격이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부재의 자리에 필체로 제 존재를 알리는 신호, 그것이 손글씨다. 최근 젊은 세대에서 손글씨가 인기다. ‘육필’이라는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없는 ‘손글씨’라는 말이 왜 그들 사이에 유행할까.

지난주 가수 비(정지훈)가 배우 김태희와 결혼했다. 이들이 더 아름답게 비치는 것은 비가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결혼을 알리는 손편지다. 그 편지에서 비는 제 연인이 ‘최고의 선물’이라고 적는다. 월드스타의 결혼에 한류 팬들은 뜨겁게 축하했다. 해외 팬들은 그 편지로 한국 남자의 손길로 촘촘히 쓰인 한글이 사랑스러운 형태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어느새 손글씨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사회적 시선에 예민한 연예인들부터 손글씨가 대세다. 비와 김태희처럼 손으로 쓴 편지로 결혼을 알리는 경우가 흔해졌다. 잘못을 사과할 때도 손글씨는 진실돼 보인다. 예전에는 연예인이 물의를 일으키면 소속사들이 변호사를 대동하고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당사자가 손글씨로 쓴 사과문을 SNS에 올리는 게 공식처럼 됐다. 직접적인 데다, 그래서 따뜻한 반응을 이끌어내기에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필기구도 화려하게 부활했단다. 디지털·모바일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하는 현대인이 많아졌다. 최근 반복적인 업무와 딱딱한 디지털 인쇄체에 지쳐 손글씨를 쓰거나 그림에 색을 직접 칠하는 것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힐링족이 늘어나는 중이다. 그 바람을 타고 100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필기구에 대한 수요도 커졌다. 얼마 전 읽어 본 신문기사에 따르면 연필과 샤프, 지우개 등 필기구 판매량이 전년 대비 80%나 증가했다고 한다.

복고풍 만년필에 대한 수요는 놀랍다. 독일 몽블랑사는 매년 판매액이 늘어난다고 자랑한다. 국내 만년필 생산 업체들도 손글씨·캘리그래피의 바람을 타고 만년필 매출이 20%나 늘었다. 디지털 세대에게 손글씨와 필사가 새로운 놀이가 되기도 한다. 젊은 세대의 이용자가 많은 인스타그램의 경우 손글씨란 주제어로 올라온 사진이 90여만 장에 이르는 모양이다. 흠모하는 시인을 공유하는 동호회 사람들은 그 시인의 시를 베껴 써서 그들의 홈페이지에 자랑한다.

나의 하루는 붓에 먹을 적셔 쓰고 그리는 일로 시작한다. 내가 주로 쓰는 붓은 동양화 붓이다. 그것은 서양화의 붓과 달리 털이 곱고 너무나 부드럽다. 하지만 그 붓이 나의 손과 만나면 단단한 뼈보다 강직하고 칼날처럼 예리해진다.


나뿐만 아니라 동양화를 훈련한 대부분의 화가들은 그 유연한 털로 바위를 뚫는 정보다 더 강하고 날카로운 힘을 매번 느낄 것이다. 그것도 붓자루의 맨 위를 가볍게 잡고 손목과 팔꿈치에 아무런 받침 없이 일정한 속도로 그어 가는, 그 흐름에 온 정신과 몸을 내맡긴다. 나의 스승님은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면서 단 한 자의 글씨라도 매일 써 보라 권하셨다. 심신의 단련에 이만한 것이 없다.

그림은 대개 드로잉·회화·그래픽으로 그 형식을 분류한다. 드로잉은 선으로 표현되고 회화는 칠로, 그리고 그래픽은 도식으로 표현된다. 이들은 또한 유아가 성장 과정에서 그 표현을 알아 가는 단계이기도 하다. 이 중 드로잉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본능적인 몸짓의 표현에 해당한다. 획을 드러내는 글씨, 휘갈긴 낙서, 빙판을 가르는 스케이트의 경로 등은 사람의 몸짓을 고스란히 기록하는 원초적 행위다.

손글씨는 드로잉처럼 가공의 여지가 거의 없다. 그래서 글씨를 쓴 사람 고유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매체이자 그가 존재하는 굳건한 증명이 된다. 손글씨는 또 하나의 나인 셈이다. 돌아보면 나도 혹여 나의 손글씨 때문에 다른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은 없었을까.


4. [세계일보][이동식의小窓多明] 온돌이 하고 싶은 말

옛말에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고 하면 여름에 화로 신세요, 겨울에 부채 신세라고 해서 철 지나면 찬밥이 되는 것을 말하는데 한겨울 추위가 닥칠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은 화로 같은 ‘등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얼마 전 여름에 느닷없이 온돌난방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와 있는 한 외국인이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이란 책에서 ‘유기농법’과 ‘선비정신’과 함께 ‘온돌난방’을 세계에 자랑할 우수한 문화라고 지적한 것이 다시 알려지면서였다.


대체로 서양에 살다 온 사람들은 히터로 대변되는 서양식 난방이 얼마나 영양가가 없는지를 안다. 난방 열기가 위로 그냥 날아가면서 실내가 여전히 춥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방의 밑에서부터 열이 골고루 위로 올라가는 우리의 온돌을 그리워하게 된다. 탐구정신이 강한 서양인들이 벌써 그들의 건축에 온돌난방을 채용한다는 소식도 있다. 적어도 열효율 면에서는 온돌이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으니 우리가 조금 더 머리를 써서 현재의 시스템을 더 편리하게 개량하면 ‘한류’ 바람이 온돌에서부터 불어나오는 ‘온풍’이 될 수도 있겠다.

이런 전통적인 생활문화의 우수성이 이제 다시 언급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전통의 가치, 특히 건축이나 주거문제에 있어서 조상들이 왜 이런 문화를 지녀왔던가에 대한 연구와 활용이 미진했거나 부족했음을 느끼게 된다. 우리보다 앞선 것으로 보였던 서양의 논리, 서양의 방법론을 따라오는 과정에서 건축이나 주거문화도 우리 것은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던 때문이 아니겠는가.


조선시대에 도읍인 한양이나 각 지방 고을은 지역의 등뼈라 할 진산(鎭山)을 뒤에 두고 그 앞 평지에 남향으로 자리 잡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전통건축은 지형에 알맞게 터를 잡고 바람과 햇빛을 최대한 활용하는 자연순화적인 방법이었는데, 갑자기 도시가 팽창하면서 도시의 전망을 높은 아파트들이 다 가리게 돼 어느 지역, 어느 도시건 그 나름의 자연적 풍광과 지형적 이점이 다 죽어버린 것을 요즈음 우리들은 후회한다.


집이나 공공건물을 짓는 것도 전통적인 양식이 무시되고 일찍이 일본이 받아들인 서양식 건물, 그리고 해방 이후 미국식이 가미된 성냥갑 같은 얼치기 사각형 건물들이 고을과 도시의 얼굴을 덮었다. 물론 요즈음에야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이미 일그러진 도시 전체의 얼굴을 다시 찾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지경이다.


새로 만든 경상북도 도청이 우리의 전통 건축양식을 응용했다고 하는데 그런 작은 성과를 넘는 걱정거리이자 부끄러운 일은 전국 곳곳에서 특정 건축가를 서로 모셔가려고 경쟁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안도 다다오(安藤忠雄)라는 일본의 한 건축가는 노출콘크리트의 묵직함과 빛·그림자, 물을 활용한 검박한 스타일로 ‘일본성’을 구축함으로써 세계 건축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가 일본의 어느 섬에 설계한 지중미술관 등이 한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가 돼 있기는 하지만, 전국의 지자체나 기업들에서 무슨 새로운 건물을 세운다며 다투어 그에게 설계를 의뢰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그러다가 자칫 잘못하면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그 사람 작품만이 서 있는 경우가 되지 않을까.

일본은 지난해에도 이공 분야에서 또 수상자를 내는 등 노벨상을 다투어 수상했고, 건축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일컫는 프리츠커 상도 우리들은 아직 수상자가 없지만 일본의 건축가들이 10명 가까이 수상하고 있어 문화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데 그게 그냥 거저 되는 것인가.


노벨상에서 일본이 많은 수상자를 낼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기초학문 연구가 철저한 데다 남의 생각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사고방식과 독창적 연구방식으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자연스레 따라온 성과라는 분석이 많았다. 마찬가지로 건축 분야에서도 수상자를 다수 낼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전통적인 건축관을 바탕으로 현대라는 환경에 맞추어 잘 풀어내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의 건축가와 건축문화를 살릴 생각 대신에 너도나도 외국 유명 건축가에게 몰려가는 것은 이 시대 또 다른 문화 사대주의이자 문화 맹종이라고 비난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국 건축가들의 작품도 여러 작가의 장점을 취사선택해서 우리의 것으로 재탄생시켜야지 무조건 특정 작가에게 몰려가는 것은 오직 일등만을 찾고 추구하는 우리의 일류병에다, 외국의 좀 좋다는 것이라면 무조건 따라가는 병폐의 재발이 아닐 수 없다.


5. [경향신문][이유미의 나무야 나무야] 뿌리 깊은 나무

날씨가 춥다. 대한이 지나고 나서 더 추워진 날씨에 몸과 마음이 모두 춥다. 내린 눈이 쌓여 며칠씩 머무는 것이 참 오랜만이다. 그나마 때 묻지 않고 희게 쌓여 있는 눈으로 기분이 좀 나아지기도 한다.


국립수목원의 박물관 앞에는 기온에 민감해 간혹 일 년에 두 번씩 꽃을 피우기도 하는 독특한 벚나무 품종이 있는데 한동안 따뜻했던 겨울 날씨에 그만 꽃봉오리를 내보내 버렸고, 추위에 피지 못한 채 얼어 버렸다. 아깝기도 하여라!


추위에 피해를 입는 것은 항상 추울 때가 아니라 갑자기 추위가 닥쳐올 때이다. 비바람이 불어도, 혹독한 가뭄이 들어도, 예측하고 준비하여 적응된 나무들은 잘 견뎌내는데 이 나무들은 대개 뿌리를 땅속 깊이 단단하게 박고 있다.춥기는 나라의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이 초유의 어려움들은 물론이고, 핵으로 위협하는 예측불허의 북한이 있고,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한 미국, 힘과 생각이 특별한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이 있고, 외환의 동향에 따라 함께 휘청거리는 산업구조 등등. 세상의 바람과 추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참 어렵고도 고독한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땅속에 얼마나 깊고 굵은 뿌리를 뻗고 있는 것일까! 저력이 있어도 뿌리째 흔들리면 나무는 살기가 참 어려운데….

뿌리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식물의 밑동으로서 보통 땅속에서 식물체를 떠받치고 수분과 양분을 빨아올리는 기관’으로 정의되어 있다. 세 번째 정도에는 ‘사물이나 현상을 이루는 근본을 비유하는 말’이라는 뜻도 있다. 보이지 않아도 나무를, 혹은 우리를 지탱하는 뿌리는 수관이 울창한 만큼, 어려운 환경을 견뎌낸 만큼 깊고 견고하다. 나무에 비료를 줄 때 밑동 근처만이 아닌 나무줄기가 펼쳐진 곳만큼, 널찍하게 주는 이유는 그곳까지 뿌리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굵고 단단한 나무뿌리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원뿌리에서 분지한 곁뿌리, 다시 여기서 나온 잔뿌리들이다. 잔뿌리 끝의 표피세포는 머리카락처럼 신장된 뿌리털과 생장점, 생장점을 덮어 보호하는 뿌리골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면적을 증가시켜서 물과 무기물을 흡수함으로써 나무를 살아 있게 하는, 진짜 중요한 역할이 이토록 작고 섬세한 부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간혹 우리는 커다란 암벽 틈새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소나무를 보면서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하곤 한다. 하지만 이 바위를 뚫는 강건함도 그 시작은 어린 나무의 여리고 가는 뿌리 끝이 바위틈 어딘가에 나 있는 틈새를 찾아내 들어가는 일이다. 아주 빨리 자라는 경우 시간당 1㎜, 그러니까 하루에 2~3㎝나 자라기도 하는 이 뿌리털은 점차 굵은 뿌리로 자라 그 터에 자리를 잡게 된다. 표면적을 넓히므로 효과적으로 물을 흡수하여 나무에 생명을 유지한다.


호밀 뿌리로 실험을 한 결과 5ℓ 정도의 부피를 차지하는 뿌리에 달리는 뿌리털의 표면적이 테니스 코트 2개에 깔아놓을 만큼 넓었다고 한다. 또 어떤 식물의 뿌리에서 하루 동안 자라는 뿌리털의 길이를 모두 더하면 9㎞에 달한다고 하니 정말 여리고 가늘어도 일선에 있는 이 존재들의 힘은 보통 국민들의 힘만큼이나 놀랍다.

나무만 그런 것이 아니다. 풀도 만찬가지이다. 이른 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대개 꽃이 아름답고, 잎보다 꽃이 먼저 피며 키가 작은 특징을 가진다. 다른 풀들이나 큰 나무에 햇볕이 가리기 전에 부지런히 살아가는 전략을 가지기 때문인데, 이런 풀들의 공통점은 뿌리가 깊다는 점이다.


예전에 이른 봄에 꽃이 피는 ‘앉은부채’라는 식물을 연구한 적이 있다. 보통 이 풀의 꽃색은 자갈색(정확히는 꽃을 둘러싼 포의 색이다)인데 노란색을 가진 개체들이 아주 드물게 있었다. 이 색의 차이가 서로 다른 종(種)이기 때문인지 그저 변이에 지나지 않는지가 학술적인 논란이었다.


곁에서 관찰하기 위해 한 포기를 캐기 시작했는데 지상부 꽃의 높이는 10㎝ 미만이었지만 뿌리가 1m에 달해 하루 종일 진땀을 흘린 경험이 있다. 언 땅을 녹이고 꽃을 피워낸 저력이 바로 이 깊고 굵은 뿌리에서 기원하였던 것이다.

뿌리는 때론 변신을 하기도 한다. 뿌리에 특별히 양분을 저장하고 싶을 때는 덩이뿌리를 만드는데, 바로 우리가 겨울철 맛있게 먹는 고구마가 그 경우이다. 대기 중에 공중습도가 많을 때에는 공기 중에 뿌리를 내리기도 하는데 이를 기근(氣根)이라 하며 열대우림에 나무에서 줄줄이 내려오는 뿌리가 바로 이것이다. 기근은 낙우송처럼 물속에 잠겨 숨쉬기가 어려울 때 땅 위로 올려보내기도 한다. 때론 뿌리 끝에 뿌리혹박테리아가 공생하도록 허락하면서 공중의 질소를 양분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한다.

나무가 이유 모르게 죽어가는 경우를 가끔 만나는데 그 원인을 찾다보면 물빠짐이 안돼 고인물에 뿌리가 썩어가거나, 몰래 묻어둔 쓰레기나 폐기물 등에 뿌리 끝이 닿아 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눈으로는 안 보였던 이 근본적인 문제를 바로잡는 일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굵은 뿌리와 실뿌리가 연결되어 어떤 어려움도 버텨내며 생명의 물이 순환되어 살아가는 뿌리깊은 나무이길, 봄이면 어김없이 싱그러운 새순이 돋고 여름엔 녹음이 우거져 풍성하며 가을이면 아름답게 물들고 겨울을 굳건히 견뎌 매년 새봄을 맞는 영원히 무궁한 나무이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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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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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선거판 휘젓는 '가짜 뉴스' 뿌리 뽑아야

​중앙선관위가 ‘페이크 뉴스(가짜 뉴스)’와의 전쟁에 나섰다. 전국 17개 시·도 선관위에 ‘비방·흑색선전 전담 TF팀’을 편성해 가짜 뉴스에 의한 의도적인 여론 왜곡 움직임에 적극 대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유권자들의 뉴스 소비가 온라인 중심으로 이뤄질 테고 이미 우리 사회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일상화한 만큼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릴 우려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가짜 뉴스는 사실 여부를 가리기도 전에 SNS 등을 통해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지게 된다는 점에서 영향력이 작지 않다. 폐해 역시 심각하다. 일단 나돌면 기정사실화된 상태에서 확대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는 9월 총선을 앞둔 독일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관련한 가짜 뉴스가 판을 치면서 독일 정부가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퇴주잔 음복 소동’, ‘턱받이 앞치마 논란’ 등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둘러싼 인신공격성 비방이 대표적이다.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는 유엔협약 위반”이라는 가짜 뉴스도 시중에 나돌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나주 남평 문씨 빨갱이 설’도 마찬가지다. 벌써부터 혼탁선거를 부채질하는 가짜 뉴스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마구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선관위는 가짜 뉴스를 만들거나 유포하는 경우 공직선거법을 적용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하는 등 엄벌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가짜 뉴스’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데다 사전 예방보다는 사후 규제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불순한 의도로 은밀하고 교묘하게 만들어 퍼뜨리는 가짜 뉴스를 차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조만간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면 각 후보 진영 간의 무분별한 폭로와 인신공격이 격화하면서 가짜 뉴스가 더욱 범람할 공산이 크다. 애초 가짜 뉴스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뿌리부터 잘라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후보 진영은 ‘페어플레이 공동선언’으로 공명선거를 실천에 옮기도록 하고 선관위는 예방 대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유권자들 역시 섣불리 가짜 뉴스에 휘둘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2. 640조원의 국가채무 누가 갚을 것인가

국가채무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600조원을 돌파해 현재 640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정부 지출이 최근 10년간 2배 이상 늘어난 결과다. 국민 1인당으로는 1250만원꼴이다. 신생아들도 태어나자마자 그만큼의 나랏빚을 떠안게 된다는 점에서 이미 대한민국의 재정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다시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가채무의 심각성은 국회예산정책처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국가채무시계에 잘 나타나 있다. 지금도 1초마다 139만원씩 늘어난다는 것이니, 하루 지나면 1200억원씩 쌓이게 된다. 국회에서 확정된 예산 규모에 따라 올해 말에는 국가채무가 682조 4천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따른 계산이다. 결국 국민들이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금액이라는 점에서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금방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부가 무분별하게 선심정책에 나선 탓이다. 우리 사회의 빈곤·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불가피한 일이지만 불요불급한 분야에까지 자꾸 눈길을 돌리다 보니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허투루 새나가는 누수 규모도 적지 않을 것으로 지적된다. 예산집행 담당자들이 자기 돈이 아니기 때문에 적당히 처리한 때문이기도 하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올해 조기 대선 출마를 선언한 대부분의 주자들마다 온갖 포퓰리즘 공약을 늘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를 살려 재정을 뒷받침할 방안을 찾기보다는 빚을 내서라도 여기저기 더 나눠주겠다는 발상이다. 곶감을 당장 빼먹기는 쉽지만 그 뒷감당이 어려운 법이다. 최근 국가부도 사태에 이르러 사회적 혼란을 초래했던 그리스의 경우를 떠올리기만 해도 아찔하다.

우리도 일찌감치 20년 전 국가부도 사태를 경험한 바 있다. 그때는 ‘금 모으기’ 운동으로 위기를 극복했지만 앞으로 다가오는 위기 상황에서는 더 큰 희생을 치러야만 한다.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는 국가채무 규모가 그것을 말해준다. 더 늦어지기 전에 국민 모두가 허리띠를 한 눈금씩 졸라매겠다는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 정치인들도 포퓰리즘 공약에 있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3. 반 전 총장, 동생들 비리 명확히 해명해야

미국 검찰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친동생 반기상씨를 체포해 보내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는 것을 지켜보는 국민의 심정은 난감하면서 착잡하다. 우리가 사건에 주목하는 것은 반 전 총장이 유력 대선 후보인 데다 불과 한 달여 전까지만 해도 유엔 수장으로 세계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사의 친인척이 이런저런 이유로 비리 의혹을 사는 것은 국격과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지난 10일 공개된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의 공소장에 따르면 반기상씨는 아들 주현씨와 함께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경남기업 소유 건물 랜드마크72의 매각을 중개하는 과정에서 뇌물공여 등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관련 혐의 4개와 돈세탁 관련 혐의 2개 등 모두 6개의 혐의로 미국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한국 법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이미 지난해 10월 “반주현씨는 경남기업에 6억여원의 계약금을 돌려주라”고 판결한 바 있다. 반 전 총장의 둘째 동생인 반기호씨도 2015년 미얀마에서 사업할 때 유엔 대표단 직함을 사칭하고 유엔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구설에 시달린다. 반 전 총장은 “기호가 광산사업을 한 적도, 유엔 직원 명함을 사용한 적도 없다”고 부인하고 나섰다.

반 전 총장은 “(반기상 사건은) 전혀 아는 바 없다. 엄정·투명하게 절차가 진행돼 궁금증을 한 점 의혹 없이 해소되길 희망한다”는 답변만 내놓고 있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히 풀릴 성격도, 상황도 아니다.


흑색선전이나 네거티브 공세와는 성격이 다른 팩트인 만큼 있는 그대로 국민 앞에 소상히 밝혀야 한다. 지난 10년간 그의 활동 무대였던 뉴욕 한복판에서 일어난 동생과 조카의 비리를 전혀 몰랐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국민이 얼마나 될까. 더욱이 우리는 지금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부정부패로 외국의 비웃음을 사고 있는 처지 아닌가.

반 전 총장이 비리 사실을 알고 방치했어도 문제이지만, 설령 몰랐다고 해도 수신제가(修身齊家)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반씨 일가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적으로도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다. 대한민국은 부패한 리더십에 신물이 나고 있다. 물론 반 전 총장으로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저 “모른다”고 선 긋기로 일관할 게 아니고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책임이자 도리다.


4. 현실화된 ‘미국 우선주의’, 대응 고삐 바짝 죄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세계의 우려 속에 그제 출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새로운 비전이 미국을 다스린다. 그것은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무역과 세금, 이민 정책, 외교 문제에 관한 모든 결정은 미국의 노동자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 선거 때 익숙히 들었던 말이지만, 몇 차례나 연설에서 강조한 만큼 미국 우선주의는 적어도 4년간 미국의 정책을 결정하는 최상위 키워드가 될 것이다.


우리는 미국 우선주의가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가져올 부정적인 영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통상 면에서 보면 “미국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해외 기업을 겨냥한 압박은 현대자동차의 미국 31억 달러 투자 계획,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100억 달러 투자, 포드의 멕시코 공장 설립 취소 등으로 가시화했다. “미국 공장이 차례차례 문을 닫았다”는 말에 굴복이라도 하듯 자동차 회사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는 행동에 나선 것이다.

백악관은 홈페이지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와 캐나다, 멕시코 등과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천명했다. 일본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 남짓한 TPP 경제권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으려 했으나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미국은 1980~90년대 중국, 일본, 멕시코와의 무역전쟁을 재현하고 양자 통상교섭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들 것이다. 한·미 자유무협협정(FTA) 파기 위협이 그것이며, 중국을 겨냥한 보호무역 강조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사람과 물건과 돈의 자유로운 왕래를 통해 경제가 발전하고 부가 축적됐으며, 미국 주도의 질서야말로 그 같은 자유스러운 무역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희생을 통해 타국이 풍요롭게 됐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며, 국제 분업이 진행되고 상호 의존이 심화돼 있는 게 국제경제의 현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은 자칫 투자환경 악화, 생산성 저하, 고물가를 유발해 미국의 경제상황을 후퇴시키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점을 미국에 인식시키고 한국의 미국 경제 기여도를 충분히 설명하는 한편, 통상 타격이 예상되는 다른 나라들과 긴밀히 공조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로서는 미국의 고립주의가 초래할 한·미 동맹의 약화도 걱정스럽다. 그런 점에서 어제 마이클 플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통화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구면인 두 사람은 “한·미 동맹이 강력하고 긍정적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얘기했다는데, 커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한·미 군사 관계의 필요성을 재확인하고 공고한 틀을 짜겠다는 노력을 트럼프 행정부와 공유해 나가야 할 것이다.


5. 포퓰리즘 빠진 대선주자들, 600조 나랏빚 보라

나랏빚이 빠르게 늘고 있다. 22일 국회예산정책처의 국가채무시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640조 8700억원으로, 최근 10년간 2배 이상 증가했다. 국가채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중앙은행이나 민간 또는 해외에서 빌린 돈으로, 갚아야 할 빚이다. 다소 빚이 있어도 갚을 수만 있다면 큰 걱정이 안 되겠지만 우리의 사정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수년째 2%대의 경제성장률이 말해 주듯이 우리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으며,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경기 부진으로 세수 확대는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복지 등 써야 할 곳은 늘어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3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15%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무상보육, 기초연금 시행으로 한 해 복지 지출이 100조원을 돌파한 상황임을 고려하면 결코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이런 추세라면 2060년 국가채무 비율은 GDP 대비 157.9%로OECD 회원국 가운데 빚이 가장 많은 나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가 나온다. 곳간은 비고 부채만 늘어 각종 연금 등 복지지출에 차질을 빚지 말란 법이 없다.

나랏빚이 급속한 속도로 불어나는 것은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포퓰리즘에 빠진 정권과 정치권에 그 책임이 있다. 이들의 포퓰리즘 합작은 당장 먹기엔 곶감이 단 것처럼 입에 잘 맞을지 몰라도 미래세대에게는 무거운 짐을 안기는 행위이다. 복지 포퓰리즘으로 실패한 유럽 여러 나라가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우리는 똑똑히 보고 있다.


그런데도 집권에 마음을 빼앗긴 유력 대선 주자들은 공공부문 일자리 수십만개니, 기본소득제니 하는 솜사탕 같은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지금과 같은 불황에서 세금이 잘 걷힐 수 있을지, 세수 확대는 가능할지 등 돈 나올 구멍을 살펴보고 하는 말인지 궁금하다.

현재의 상황이 어렵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보니 이런 공약에 군침이 도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세수 확보가 전제돼야 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대선에 뜻을 뒀다면 퍼주기식 공약보다 현재와 미래세대가 공존할 수 있는 국가경제시스템 구축에 고민해야 한다. 유권자인 국민은 이제 말도 안 되는 유혹을 구별할 줄 안다. 실현하기도 어려운 공약에 한두번 속아 왔는가. 천문학적인 예산이 드는 공약을 해 놓고 당선돼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식언을 하는 행위가 더 반복되어선 안 된다.


[세계일보]

6. 김기춘·조윤선의 입과 안종범의 입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지난 주말 나란히 구속됐다. 구속 직후 사표가 수리된 조 전 장관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장관 신분으로 구속된 불명예도 안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구속된 뒤에도 블랙리스트 관여 의혹을 계속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은 검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뒤 지난 50년간 모두가 부러워하고도 남을 출세가도를 달렸다. 검찰총장에 법무부 장관, 3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대통령 비서실장을 끝으로 공직을 마감했다. 변호사 출신인 조 전 장관도 국회의원을 거쳐 여성가족부 장관, 정무수석, 문체부 장관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고위 공직자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반정부 성향의 인사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다는 혐의를 받는 것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특히 문체부는 조윤선·김종덕 전 장관, 김종·정관주 전 차관 등 전현직 장차관이 모두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쑥대밭이 됐다. 국정기조로 내건 문화융성은 고사하고 의혹의 중심에 서면서 신뢰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최순실씨 국정농단 의혹 수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지시 사항이 자세히 적힌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 김 전 실장의 지시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는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핵심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 이들 자료는 관련자들의 진술과 증언 등과 함께 국가권력이 비선실세에 의해 어떻게 철저히 농락당했는지를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김영한 비망록을 두고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잡은 것과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안 전 수석은 “내 업무수첩은 증거가 안 된다”고 주장했다가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그는 재판에서 “대통령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묵비권까지 생각했다”면서 “변호인들이 역사 앞에 섰다고 판단하고 반드시 진실을 이야기해야 된다고 해서 고심 끝에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하고 수사에 성실히 임했다”고 했다. 개인의 의리보다 국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은 역사의 법정에서 진실을 밝힌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무조건 모른다고 잡아떼선 안 된다. 사실 관계를 명명백백 밝혀야 국정 혼란의 조기 수습이 가능하다.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 국가가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통제해 내편 네편으로 가르는 잘못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7. 국정 혼탁할수록 안보만큼은 정부가 중심 잡아야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심상치 않다. 20일 정오부터 전투동원태세에 들어간다는 인민무력성 명령이 모든 북한군 부대에 하달됐다고 한다. 북한이 최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2기를 제작해 이동식발사차량에 탑재한 정황이 포착된 이후 도발 움직임이 더욱 가시화하는 형국이다.


지난해 탈북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경제 병진노선은 핵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로 한국을 불바다로 만들어 한국군을 순식간에 무력화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 핵무기가 남한을 겨냥한 것이라는 경고다.

미국은 북의 도발에 대비해 최근 해상 기반 X-밴드 레이더를 서태평양 해상으로 이동시켰다. 한·미·일 해군은 20∼22일 이지스함을 동원해 북한 미사일을 탐지·추적하는 미사일 경보훈련을 실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직후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린 주요 정책 기조에서 “이란, 북한 같은 국가들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최첨단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핵·미사일을 중대한 위협으로 여긴다는 방증으로, 한반도 안보환경의 변화가 예상된다.

한·미 간 대북공조를 보다 긴밀하게 다질 시점이다. 마이클 플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어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의 통화에서 “미국 새 행정부하에서 한·미동맹 관계가 강력하고 긍정적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라며 “함께 주요 안보 현안에 관해 긴밀한 공조를 해 나가자”고 했다. 청와대와 백악관 간 채널 가동을 계기로 고위 외교채널 구축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는 한·미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한·미 외교장관 회담도 조기에 개최해야 할 것이다. 

한·미 동맹은 우리 안보의 기본 틀이다. 대통령 탄핵소추로 국정 혼란과 정상외교 공백이 초래된 만큼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첫 단추를 잘 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따른 안보위기 상황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다.


정부가 중심을 잡고 헤쳐 가야 한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 방안을 미국에 제시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주한미군 배치 등 한·미동맹 강화 움직임에 대해 국내 일각에서 무작정 시비를 거는 일은 옳지 않다. 국정 혼란기에 안보를 정략적으로 접근하면 국가가 위험에 처한다.


[매일신문]

8. 반환점 도는 박영수 특검, 법치에 굳건히 서라

최순실 씨가 박영수 특검팀이 강압 수사를 한다며 또 출석을 거부했다. 이번으로 모두 네 번째다. 이유도 가지가지다. 지난달 27일에는 ‘건강 악화’, 4일과 9일에는 ‘정신적 충격’과 ‘재판 출석’이었다. 피의자가 사정이 있어서 출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출석을 거부한다면 필시 ‘숨은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 특검 수사에 차질을 주려는 ‘시간 끌기’라고 의심할 만하다.



이에 대해 특검은 속을 부글부글 끓이고 있다. 박영수 특검은 “최 씨에 대해서는 정말 용서할 생각이 없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심경 이해가 간다. 최 씨의 지연작전으로 수사가 차질을 빚을 수도 있으니 그렇다. 하지만 ‘용서’ 운운 발언은 ‘오버’다. 용서하고 말고 할 게 무엇이 있나? 법률에 따라 수사하고 법률에 맞게 처벌하면 된다. 전자는 특검이 할 일이고 후자는 법원이 할 일이다. 특검은 제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용서할 생각이 없다’는 말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박 특검의 ‘오버’는 특검팀의 수사가 ‘용서할 수 없다’는 정서적 접근으로 흐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을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는 그 방증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법리’가 아니라 ‘반(反)재벌’ 여론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를 무시한 결과가 영장 기각이다. 법리를 구성하는 사실관계 다툼에서 진 것이다.


‘촛불’이 요구하는 ‘사회정의’와 ‘법리’는 다르다. 사회정의는 법리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실현된다. 이것이 바로 법치이다. 법치는 까다롭다. 촛불이 ‘국정 농단’ 피의자들의 엄중한 처벌을 요구해도 그들의 범죄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구속하거나 기소할 수 없다. 법치의 함정이자 ‘현실적’ 한계이다. 하지만 법치를 지향하는 한 어쩔 수 없다. 특검도 이런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특검은 이를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박 특검팀은 23일로 공식 수사기간(70일)의 절반을 지나게 된다. 앞으로 많은 피의자들을 수사해 구속하거나 기소할 것이다. 법치에 굳건히 선 박 특검의 활약을 기대한다.


[한국일보]

9. 블랙리스트 대통령 지시인지 증거 토대로 밝혀야

블랙리스트 작성ㆍ관리를 주도한 혐의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동시에 구속돼 특검 조사를 받고 있다. 앞서 법원은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며 두 사람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와 국회 위증 혐의로 청구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현직 장관 최초로 구속된 조 전 장관의 사표는 즉각 수리됐다.

김 전 실장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고, 조 전 장관은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 리스트를 확대 작성해 관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약 1만 명에 이르는 이 명단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에 전달돼 집행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특검 조사에서 혐의를 계속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문화예술계 좌파의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김 전 실장의 발언을 담은 김영한 전 정무수석의 비망록이나 문체부 전ㆍ현직 관계자의 증언을 감안할 때 특검이 사실을 입증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주목할 것은 탄핵심판대에 올라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을 알았거나 지시했을 가능성이다. 특검이 두고 있는 이 같은 혐의는 박 대통령이 ‘좌파’가 문화예술계를 주도한다는 인식 아래 이를 적극적으로 저지하려 든 정황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자신을 풍자한 코미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노무현 이야기를 다룬 ‘변호인’ 등의 영화를 만든 CJ 회장에게 “CJ 영화ㆍ방송은 좌파 성향”이라는 말을 했고, 이와 관련해 CJ 부회장 퇴진을 요구한 것이 대표적이다.

‘7시간’ 해명 요구 등으로 박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하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부를 비판한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를 통한 지원 배제 명단에 대거 포함된 것도 이런 의혹을 더한다. 세월호 참사 관련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을 억제하고 반정부 여론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통령 지시에 따라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다고 특검이 보고 있다는 일부 보도도 같은 맥락이다.

탄핵심판 변호인단은 박 대통령의 블랙리스트 개입을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향후 특검 블랙리스트 수사의 핵심은 이 대목일 수밖에 없다. 블랙리스트는 ‘표현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한 것으로서, 대통령의 헌법 위반 여부를 심리하는 탄핵심판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검이 분발, 김기춘ㆍ조윤선의 혐의는 말할 것 없고 박 대통령 관련 여부까지, 엄밀한 증거를 바탕으로 낱낱이 밝힐 수 있기를 기대한다.


[경향신문]

10. 2호선 잠실새내역 화재사고가 남긴 것

지하철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어제 오전 6시28분쯤 서울지하철 2호선 잠실새내역으로 진입하던 열차 2번째칸 아래 단류기함에서 화재가 발생해 20여분 만에 진화됐다.


천만다행으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서울메트로는 화재 초기 승객들에게 대피하라는 내용 없이 “차량 이상으로 정차했으니 열차 내에서 대기하라”고 3차례 안내방송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선실에서 기다리라”고 안내방송을 한 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대형 참사가 빚어진 것을 연상케 했다.

객차 앞쪽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창문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직접 비상 코크 레버를 돌려 열차 문을 열고 자력으로 대피했다. 서울메트로 측은 “화재 초기 기관사가 차장에게 ‘열차 내에서 대기하라’는 내용의 안내방송을 지시했으나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대피 안내방송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때는 열차 앞쪽 승객들이 이미 자력으로 대피한 뒤였다. 차량 뒤쪽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연기를 보지 못해 대피가 늦었다. 화재가 난 때가 휴일 아침 이른 시간이어서 승객이 많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승객을 콩나물시루처럼 태운 출퇴근 시간대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화재가 나자 승객들이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을 믿지 않고 자력으로 대피했다는 것은 시민들이 더 이상 공공안전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증좌이기도 하다. 신뢰 결여는 공공안전 시스템이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믿음을 강화하고 이는 다시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현상이다. 

서울지하철 1~4호선 이용객은 하루 평균 500만명에 육박하지만 툭하면 크고 작은 고장이 발생해 언제 대형사고로 이어질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직장인들이 목숨을 걸며 ‘사고철’을 타고 출퇴근한다는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수박 겉핥기식 안전점검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으로 안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조선일보][일사일언] 바이올린 켜는 셜록 홈스

영국 작가 코난 도일의 '명탐정 셜록 홈스'를 새로 각색한 드라마가 요즘 한국에서도 인기라고 한다. 주인공인 셜록 홈스는 예리한 관찰력과 논리적 사고를 통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도일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하는 그의 취미는 뜻밖에도 바이올린을 켜는 것이다. 셜록은 정열적인 음악가였고 바이올린을 잘 켰을 뿐 아니라 직접 작곡도 했다고 하니 그의 연주 솜씨나 작품이 궁금해진다.


가상의 인물인 셜록 말고도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라면 상대성이론으로 잘 알려진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떠오른다. 그는 복잡한 문제와 씨름할 때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해답을 찾곤 했다고 전해진다. 셜록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적 두뇌가 아니라도 악기를 연주하다 보면 좋은 생각, 또 엉뚱한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 음악에는 어딘가 직관과 상상력을 일깨우는 힘이 있어서다. 음악을 듣다가 다른 생각에 빠져서 나중에는 음악을 전혀 듣고 있지 않더라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집중해서 들으려고 애써 보지만 잠이 들기도 한다.


한데 악기를 직접 연주하게 되면 내가 음악을 만들어내는 주체인 만큼 생각에 완전히 나를 맡길 수는 없다. 온몸이 악기 연주에 집중하는 동시에 음악을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듣게 되는데, 이때 마술적인 일이 벌어진다. 느낌이 강렬해지고 생각이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음악 자체라기보다는 음악을 들으면서 일깨워진 내 감정이다. 떠오르는 생각도 음악과 직접 관련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즐거움은 이렇게 음악을 통해서 정신의 활력을 얻는 데에도 있다. 이번 주에는, 이번 주가 바쁘다면 다음 달에는 마음에 드는 악기를 하나 골라서 불거나, 치거나, 켜 보시길 권한다.


2. [경향신문][별별시선] 가족 같은 장의사

장례는 순조로웠다. 상제들은 마음을 다치지 않았다. 허투루 쓰이는 돈이 적었고, 마음에 없이 예를 차리지도 않았다. 길고도 짧았던 이틀밤 동안 큰소리도 한번 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병원에 실려 가신 것도, 그리고 그 다음 일도 모든 것이 급작스러웠던 까닭에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순조로웠다’라고 적어 둘 수 있을 것이다.


장례 문화를 바꾸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연명치료에 대한 뜻을 미리 밝혀 놓듯이 자신의 장례를 치르는 절차를 미리 적어 두거나, ‘조문보’, ‘엔딩 노트’ 같은 것을 만들거나, 무엇보다 ‘작은 장례’라는 이름으로 장례식에 드는 시간과 돈을 줄이려고 하는 것들이다. 서울 서대문구는 지자체가 나서고 있고, 몇몇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 가운데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이름을 알고 있어서 이곳에 장례를 맡겼다.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 그곳에서 이어지는 장례 절차는 2박3일 동안 거침이 없다. 전국 어디를 가나 별로 다르지 않다. 장례식장 안에서는 그렇다. 그리고 흔히 상제들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은 그 모든 절차마다 장사치들의 뻔한 수작질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부모가 돌아가신 사람을 앞에 두고, 그 마음을 휘젓고 긁어서 돈을 뽑아낸다.


앞서 다행이라고 한 것은 장례를 맡긴 조합이 그런 수작질만큼은 하지 않으려는 곳이어서였다. 조합에서 나온 장의사(장례지도사)의 말투는 차분했고, 공손했다. “수의는 평소에 아끼던 옷이 있으시면 그것으로 하셔도 좋습니다.”, “여기 장례식장이나, 납골당 비용에서 저희 조합으로 나중에 리베이트가 오는데요, 그런 것은 모두 돌려 드립니다.”


무엇도 권하는 투로 말하는 것이 없었고, 하나하나 내가 처음 듣고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여유 있고 꼼꼼하게 설명을 했다. 납골당에서 장의사는 관리인에게 리베이트에 해당하는 금액을 아예 할인해서 계산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30만원이 줄어들었는데, 며칠 지나서 장의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쪽에서 제 말을 잘못 알아들었나 봐요. 30%라고 했는데, 30만원만 깎고 나머지는 여기로 보냈더라구요. 이 돈은 오늘 보내 드릴게요.”

발인날 새벽, 장의사는 작은 종이 가방을 들고 왔다. 긴 밤을 보낸 상제들과 친척들이 탁자 사이에 몸을 누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장의사는 제단 앞에 서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는, 한 송이씩 꽃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철끈으로 꽃송이 몇 개씩을 묶어서는 어버이날 가슴에 달 만한 크기로 꽃다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조금 더 큰 것도 몇 개 만들고, 아주 큰 것도 하나. 그새 잠에서 깬 우리집 아이들은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는 저들도 하나씩 꽃다발을 묶었다. “납골당에 가셔서 상제분들이 하나씩 놓아 드리면 좋을 것 같아서요. 꽃이 싱싱하고 좋네요.”

그날의 일을 되짚어 글로 쓰는 동안 절로 고마운 마음이 되살아난다. 거의 모든 일을 장의사에게 맡겨 두었고, 특별히 장례 절차를 치르는 일로 마음고생, 돈고생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고마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장례를 치르는 다른 숱한 사람들이 어처구니없는 사기와 기만을 당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지난해에 마을에서 상을 치르면서 두 번쯤 무덤에 뗏장을 입히는 데에 손을 보탰다. 일을 마치고 어른들과 밥을 먹는 사이, 돌아가신 분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둘 오고 갔다. 젊어서 결혼하고 아이들 낳아 살았던 이야기,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이야기, 여기서 한마디 하면, 옆에서 한 자락 받아서 덧붙이는 식으로. 흙으로 덮일 만큼 떼를 눌러 주어야 떼가 잘 퍼진다면서, 이제 그만해도 될 성싶은데도 무덤가에 오랫동안 둘러서서는 이야기도 그만치 흘러나왔다.


죽은 이 곁에 산 사람이 둘러앉아 서로 그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이 장례의 마지막이라는 듯, 이야기가 얼마큼 차올라서야 사람들이 일어섰다.


3. [경향신문][이문재의 시의 마음]다니엘 블레이크와 ‘물고기 잡는 법

’눈물에도 맛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이십여 년 전, 소설 쓰는 선배가 들려준 말인데 요즘도 가끔 생각난다. 화가 나거나 슬플 때 솟구치는 눈물은 짜다고 한다. 반면, 기쁠 때 나오는 눈물은 달다고 하는데, 이건 문학적 과장으로 들린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눈물 맛을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 간혹 눈물을 쏟을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누선을 자극한 격한 감정으로부터 한걸음 떨어지기가 힘들다.


얼마 전에도 기회를 놓쳤다. 혼자 극장에 갔다가 눈시울이 뜨뜻해져서 혼이 났는데 이번에도 눈물 맛을 볼 겨를이 없었다. 지인들이 적극 추천한 영화였다.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를 보지 않았다간 지인들이 사람 취급을 하지 않을 태세였다. 대강의 줄거리는 알고 있었다. 감독에 대해서도 조금 알고 있는 터여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보신 분들은 새삼스럽겠지만 영화는 드라마라기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수년에 걸쳐 사전 조사를 마친 뒤 촬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무대는 영국 뉴캐슬. 병을 앓던 부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중년의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데다 실직 상태다. 다니엘이 지원금을 받기 위해 관청을 찾았다가 런던에서 이사 온 케이티와 마주친다. 케이티는 홀로 두 자녀를 키우는 ‘싱글 맘’인데, 말 그대로 무일푼이다.

첫 장면부터 강렬하면서도 익숙하다. 의료 전문가가 질문을 퍼부어대고 다니엘은 말문이 막혀 어처구니없어 한다. 의료 전문가는 국가-갑으로서 충실하고 다니엘은 국민-을로서 왜소해진다. 다니엘과 케이티는 국가가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제도와 절차 앞에서 서서히 무너진다. 다니엘은 상담 창구와 인터넷 사이트, 이력서와 청구서 앞에서 매번 절망한다. 생리대 살 돈조차 없는 케이티는 급기야 매춘굴에 한발 들여놓는다. 영화는 다니엘이 구직센터 외벽에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고 쓰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실직자 다니엘과 케이티가 영국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인간은 없고 제도만 있는, 국민은 없고 국가만 있는, 시민은 없고 공무원만 있는 영국의 사회복지 제도가 우리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촛불 정국이 아니었다면, 두 실직자가 국가로부터 배제되는 과정에 집중했을지 모른다. 국가의 합법적 폭력에 초점을 맞췄을지도 모른다. 나는 영화에서 우리의 ‘촛불’을 보았다. 내게는 다니엘과 케이티를 앞세운 켄 로치의 영화가 ‘있지만 없는’ 국민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자 곧 탄생할 시민을 위한 출정가로 보였다.

다니엘이 ‘자존심을 잃으면 사람이 아니다’라며 관청 흰 벽에다 자기 이름을 쓰는 장면. 분노와 모멸감의 끝에서 다니엘이 뿌리는 스프레이가 곧 촛불이었다. 다니엘의 1인 시위를 향해 환호하며 동참하는 행인들 또한 엄연한 촛불이었다. 촛불은 최근의 대한민국에만 국한된 예외적 상징이 아니었다.


영화는 다니엘의 초라한 장례식에서 끝나는데, 다니엘이 관청에 제출하기로 했던 항고이유서가 유언처럼 낭독된다. 케이티가 대신 읽은 다니엘의 메시지는 “나는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로 요약되는 인간 선언이었다. 신자유주의 종주국 중 하나인 영국에 대한 비판이자, 반드시 되찾아야 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옹호였다.

영화가 장례식 장면으로 끝나는 것이 의미심장했다. 다니엘의 장례는 시장 전체주의 아래서 신음하는 전 세계인(소비자)들을 위한 ‘주권자 선언’이었다. 다니엘이 외쳤듯이 우리는 개가 아니다. 그렇다면 케이티를 포함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촛불이라면,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대의제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생산력 우선주의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시장 논리로부터 인간을 구출할 수 있는가. 오직 생산과 소비 능력만으로 인간의 가치를 따지는 산업자본주의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는가.

극장을 나오면서 떠오른 것이 기본소득이었다. ‘개가 아닌 인간’의 사회, 주권자로 거듭난 시민들의 공동체로 가는 가장 빠른 길 가운데 하나가 기본소득이다. 마침 ‘녹색평론’ 최근호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관점과 만났다.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기본소득의 가능성을 확인한 인류학자 제임스 퍼거슨의 <분배정치의 시대>라는 책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지 말고 ‘물고기’ 자체를 주라, 그것도 현금으로. 퍼거슨 교수가 제시하는 대안이다. 

퍼거슨 교수는 생산이 분배의 토대가 아니라, 분배가 생산의 토대일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 자녀를 교육시키는 부모를 보라는 것이다. 일자리가 생긴다 해도 대부분의 노동과 임금이 더 이상 생존의 요건이 되지 못하는 시대, 99%가 잉여로 전락하는 시대다. 인간을 재정의하지 않고서는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상황이다. 인간은 원래부터 상호의존적 존재이며, 사회는 공감과 연대에 의해서만 지속가능하다는 ‘오래된 미래’를 지금 여기로 초청해야 한다. 그러면 국가 전체가 생산한 부를 모든 국민이 떳떳하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퍼거슨 교수의 저서가 켄 로치의 영화처럼 눈물샘을 건드릴 리 만무하다. 하지만 노동이 아니라 사회에서, 탐욕이 아니라 도덕성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는 ‘분배정치’가 도래한다면, 그때는 정말 다디단 눈물이 뉴캐슬과 광화문뿐 아니라 전 세계 광장을 가득 메울 것이다.


4. [매경이코노미][Health] 심해지는 안면홍조, 겨울철 피부관리는…화장품 개수 줄이고 외출 때 선크림 필수

겨울철에 추위에 떨다 따뜻한 곳으로 들어오면 뺨 주위가 빨갛게 되는 때가 있다. 매운 음식을 먹거나 화가 날 때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이 같은 안면홍조는 누구나 다 겪는 생리 증상이다. 또 폐경기를 전후로 얼굴에 홍조 증상이 자주 나타나기도 하는데 전문가들은 “대부분 일시적인 것일 뿐 질환으로 볼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같은 안면홍조 증상이 계속 지속된다면 그건 문제다. 또 그 부위가 따끔거리고 아프며, 고름집이나 뾰루지가 자주 생겨 스스로 불편함을 느낀다면 이것은 단순한 안면홍조가 아닌 ‘주사’ 질환의 증상으로 봐야 한다. 남재희 강북삼성병원 피부과 교수는 “안면홍조 자체가 병은 아니다. 다만 혈관질환인 주사로 인해 나타난 증상이라면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주사는 피부질환이긴 하지만 전신질환이 피부로 드러난 것일 수 있어 제대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사는 얼굴의 피부 혈관이 팽창돼 다시 줄어들지 않는 질환이다. 우리 몸속 여러 세포가 지나가는 통로인 혈관이 늘어난 채로 유지되면 염증이 반복해서 생기고 그에 따라 고름집이나 뾰루지가 생겨난다.

주사에는 네 가지 타입이 있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코가 빨간 ‘딸기코’가 가장 흔한 타입. 또 양쪽 뺨이 붉어지고 실핏줄이 밖으로 보이는 형태, 뾰루지나 고름집이 생겨 피부가 울퉁불퉁한 타입, 안구에 반복적으로 염증이 생겨 눈이 빨개지는 ‘안구주사’도 있다.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가장 많은 것은 유전적 원인이다. 얼굴에 서식하는 모낭충에 과민한 면역 반응을 보이는 것도 원인으로 본다. 당뇨, 고혈압 환자의 경우 주사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또 주사는 혈관염증질환의 일종으로 뇌혈관계 질환인 파킨슨병과 상관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치료는 어떻게 이뤄질까. 환자에 따라 치료가 잘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호전되지 않아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남 교수는 “단순한 피부질환이라기보다 혈관에 연관된 문제가 있다 보니 치료가 쉽지 않아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가 많다”고 전했다. 

증상이 가벼운 경우에는 특별한 치료 없이 생활습관을 교정하는 것이 일순위다. 기초화장품 종류를 너무 많이 사용하거나 자극감이 큰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찜질방이나 온천 등에서 과도한 열에 피부를 노출시키는 것도 좋지 않다. 평소 자외선 차단제를 꼼꼼히 발라주는 것도 중요하다. 겨울철에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주사는 자외선에 노출되면 악화되는 만큼 신경을 써야 한다는 조언이다.


남 교수는 “타이타늄 다이옥사이드나 징코 다이옥사이드가 들어간 자외선 차단제 사용을 추천한다. 피부에 자극 물질이 스며들지 않고 자외선을 제대로 막아줄 수 있다”고 말했다. 생활 교정만으로 조절이 안되거나 증상이 심하다면 먹는 약이나 바르는 약을 쓴다. 그것도 안 될 때는 혈관 레이저로 염증을 조절하는 치료를 받는다.

“얼굴에 건조하다고 미스트를 뿌릴 때가 많은데, 되레 미스트가 증발하면서 피부 건조를 악화할 수 있으므로 주변에 가습기를 두거나 미스트 이후에 보습 크림을 덧바르는 것을 추천한다. 자외선 차단제는 SPF지수 15 이상이 좋으며 실내에 있어도 자외선A가 창을 통과하므로 실내에 있다고 해서 자외선 노출을 간과해선 안된다.” 남 교수의 당부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스탕달

근 300년 먼저 산 프랑스 작가 스탕달(Stendhal, 1783~1842)의 ‘연애론’(김현태 옮김, 집문당)이 21세기의 우리에게 선사할 ‘연애의 기술’은 많지 않을지 모른다.


사랑에 빠지면 아무리 현명한 남자(혹은 여자)라도 상대의 호의를 과대평가하고 자신의 장점을 과소평가하며 “그리하여 (사랑의) 불안과 희망이 일종의 소설적인 요소를 띠게 된다”거나, 사랑은 늘 얼마간의 혼란을 수반하므로 “그들은 뜻하지 않은 우연적인 말로만 자기 감정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마음의 울부짖음”이라는 말, 또 “현대의 결혼에서 일어나는 죄와 불행의 원인은 P(로마 가톨릭)이다. 그것은 결혼 전의 처녀에게서 자유를 빼앗고, 그녀가 선택을 그르친 후에는 이혼을 금하고 있다”는 통찰은, 여전히 우리를 울렁거리게 한다.

배울 게 많지 않다는 건 그의 허술함 탓이 아니라 오늘의 연애 상식이 그만큼 두터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두터움이 늘 풍성한 연애 혹은 건강한 연애의 밑천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비단 연애뿐 아니라, 앎에만 머물기 쉬운 인간의 여러 지식의 한계일 것이다. 

오해일 수도 있지만, 스탕달은 좋은 연애를 거의 못 해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폴레옹 패전 직후 이탈리아로 이주해 사는 동안, 밀라노의 한 장군의 아내에게 마음을 빼앗겨 열렬히 구애했으나 철저히 외면당하고 도망자 신세로 쫓겨난 게 경험의 전부라는 말도 있다. 그러니 그의 연애론은 몸이 아닌 머리, 이성의 시뮬레이션으로 깨어난 감성이 이성의 통제를 받아가며 쓰여진 글일 것이다.


대표작 ‘적과 흑’의 쥘리앵 소렐과 레날 부인의 그 뜨거운 사랑이, 소렐과 마틸드의 아쉬운 사랑이 그렇게 쓰여졌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그 사랑이, 글이 더 강렬하고 애틋할 수도 있다. 

문학사는 그를 발자크 등과 함께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양대 거장으로 꼽는다. ‘적과 흑’에서 그는 나폴레옹 시대 전후 왕당파와 공화파, 보나파르니스트가 각축하던 정치구도를, 귀족과 사제, 신흥 부르주아와 평민 등 집단의 문화와 윤리를, 신분제 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한 시대 인간들의 출세를 향한 욕망과 위선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나폴레옹을 추종하며 보나파르티스트로 살았던 스탕달은, 어쩌면 연애에서처럼, 이국의 먼 발치에서 그의 시대를 관찰했을 것이다. 그의 문학, 그의 사실주의는, 경험의 양이 예술(혹은 연애)의 질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슬프게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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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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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헤럴드경제]

1. 일자리 대책은 정부와 기업의 합작품이어야 한다

정부가 18일 새해 첫 경제관계장관 회의에서 ‘일자리 창출 총력전’을 천명했다.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고 청년 실업률이 두자리수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일자리 대책이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는 당위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부는 올 일자리 예산의 3분의 1 이상을 1분기에 집중하고 공공부문에서 수요 인력의 절반 가량인 3만명을 상반기에 조기 채용키로 했다. 이와 함께 정규직 고용시 세액공제를 확대해주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2월 중 국회에 제출하는 등 고용지원 세제도 강화한다. 김영란법으로 위축된 화훼, 과수, 외식 분야의 발전전략도 3월까지 마련키로 했다.



일자리 포털 구축과 분야별 채용행사 확대 등 일자리 중개인 역할도 강화한다. 신규 벤처펀드를 역대 가장 큰 3조5000억원 규모로 조성하고 창업도약 패키지 지원 기업은 지난해 160개에서 올해 1000개로 늘리는 등 기술 기반 창업 활성화 방안도 마련된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18일 30대 그룹 인사담당 CEO 간담회를 열고 청년채용 확대와 중소ㆍ협력업체 근로조건 개선에 대한 선제적 노력을 부탁했다.

무엇보다 3월중 고용부에 전담조직을 신설, 185개의 일자리 사업을 정밀하게 평가한 후 통합효율화 작업을 진행키로 한 것이 반갑다. 모든 부처에 일자리책임관을 지정하고 일자리 효과가 큰 주요과제 20여개를 집중관리해 나가기로 했다. 각 부처 산발적이던 일자리 사업의 실효성이 높아지길 기대한다.

하지만 정책은 어디까지나 보완적 수단이다. SOC투자를 앞당겨 일용직 근로자를 양산하는 등의 억지 공공일자리는 잠시 목을 축여줄 수는 있지만 갈증 자체를 해소시키지는 못한다. 진정 늘려야 할 것은 지속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다. 그것은 사업의 확장이나 창업 등 기업의 가치창출 수요에서 나온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스타트업 벤처간 상생과 협업이 그 핵심이다. 결국 좋은 일자리의 원천은 기업이란 얘기다.

이를 위한 규제를 풀고 기득권 보호막을 걷어 내는 것이 일자리 대책의 근간이 돼야 한다. 국회가 고용의 숨통을 틔워줄 노동개혁 입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특별법 입법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기업들도 사람줄이는 일을 우선적인 비용 축소 방법으로 생각하는 시각을 바꿔야 함은 물론이다.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철폐에도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정책 호응도를 인정받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깊어진 반기업, 반시장 정서를 되돌리는 길이다.



2. 임대주택에 억대 소득자 수두룩, 입주자격 개선 시급

공공임대주택에 무자격자가 넘쳐나는 등 운영과 관리가 너무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이상 장기 임대되는 공공주택 5채 가운데 1채에는 월평균 430만원이 넘는 중산층이 살고 있을 정도다.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이다.



조세재정연구원 최성은 연구위원이 주거실태조사 데이터(2014년 기준)를 토대로 장기공공임대주택 거주자를 소득 분위별로 분석한 결과가 그렇다. 공공임대주택은 저소득층 주거 지원을 위해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지어 임대료가 주변 시세보다 한결 싸다. 그 혜택마저 일부 양심불량 무자격자들이 앗아간다면 취지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것이다. 참으로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더 놀랍고 충격적인 것은 그 중에는 연간 소득 1억원(월 973만원)이 훨씬 넘는 소득 최상위층인 10분위도 상당히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부류에 속하는 거주자가 1.61%에 이른다. 대략 임대아파트 한 동에 한 가구는 억대 연봉자가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고급 외제차를 굴리면서 서민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소문이 무성했는데 결코 헛소문이 아니라는 게 거듭 확인됐다.

정부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매년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12만5000가구 이상을 공급했고, 올해도 그 정도 더 짓는다는 게 국토교통부 계획이다. 2013년 6조8815억원이었던 관련 예산도 크게 늘어 2015년 7조5800억원까지 뛰었고, 올해 역시 약 7조8260억원이 책정된 상태다. 하지만 아무리 예산을 들여 공급을 늘려도 실제 필요로하는 수요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애초 입주자 선정이 더 치밀해야 한다. 물론 지금도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려면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소득과 재산을 고의로 숨기고 서류상 요건만 갖춰 자격 심사를 통과하면 적발할 재간이 없다는 게 문제다. 정부 공동전산망 활용 등 입주자 선정 방식 개선이 절대 필요하다. 그런 정도의 시스템은 이미 갖춰져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보다 중요한 건 입주 이후에도 자격 심사를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다. 부적격 입주자들이 노리는 것은 일단 입주만 하면 그 뒤에는 소득이나 재산이 늘어나도 다시 따지지 않는다는 제도적 맹점이다. 재심사를 강화해 부적합 입주자를 솎아내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부정 입주자들에 대한 징벌적 이익환수는 기본이다. 복지는 전달체계가 잘 갖춰져야 본래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



[서울신문]

3. 대선 검증대에 사실상 먼저 오른 문재인

탄핵 정국이 대선 정국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여부와 관계없이 대선 주자들의 움직임이 한층 분주해졌다. 지난 12일 귀국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광폭 행보가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선 주자 중 지지율이 선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제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 답하다’ 출판기념회에서 사실상 차기 정부의 비전과 구상을 내놓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 논란과 북핵, 개헌에서부터 경제민주화 및 양극화, 대학 서열화, 국민 통합, 군 복무기간 단축 등에 이르기까지 현재 진행되는 쟁점과 미래의 과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공약이나 다름없다. 문 전 대표는 스스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개혁의 적임자, 이미 검증이 끝난 사람이라고 내세웠다.

문 전 대표는 다른 주자들보다 앞선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검증대에 먼저 올라선 셈이다. 다른 주자들도 순서만 다를 뿐 절대 예외가 될 수 없다. 국민은 박 대통령을 통해 확인했듯 철저한 인물 및 정책 검증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확실하고 꼼꼼한 검증만이 탄핵과 국난의 악순환을 막는 지름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가 밝힌 대한민국 청사진인 ‘상식과 정의로 움직이는 나라’는 자기 표현대로 보편적이고 소박하다. 매주 타오르는 촛불 민심을 반영한 결과라고 평가할 만하다.

선거는 표다. 표심을 잡기 위해 인기에 영합하는 공약도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까닭에 공약에는 반드시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돼야 하는 것이다. 문 전 대표는 국공립대의 공동대학, 공동학위제를 제안했다. 뿌리 깊은 대학 서열화를 없애거나 완화시키고,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일찍이 이전 정권에서도 검토됐다. 현실적으로 난제가 많았던 탓에 접었던 정책이다. 현행 21개월에서 18개월로 군 복무 기간을 단축하는 안은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에게 솔깃한 정책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왜 지금은 실행에 옮기지 못했는지를 포함해 국방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따지지 않으면 안 되는 엄중한 사안이다.

문 전 대표는 사드 배치에 관한 한 명확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배치 결정 초기엔 ‘재검토’를 주장하더니, ‘다음 정부로 넘기라’고 말했다가 어제는 ‘무조건 취소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실론을 폈다.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말 바꾸기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선거를 겨냥한 데다 미국 및 중국과 얽힌 관계를 고려한 전략적 발언일 수 있겠지만 대선 주자로서 국가 안보관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쟁점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게 책임있는 자세다. 더욱이 일관성, 신뢰성과 직결되기 까닭에서다. 국민의 선택 기준도 전과 다르게 까다로워졌다.



4. 설 물가 급등, 가격담합·사재기 단속부터 하라

당정이 어제 민생 물가 점검회의를 열고 설 전에 농수산물 공급을 두 배 이상 늘리기로 한 것은 때가 늦었긴 하나 다행이다. 당정의 정책 책임자가 머리를 맞댄 사실만으로도 시장에 주는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 6일과 16일 물가관계 차관회의를 가진 데 이어 2013년 2월 6일 이후 4년여 만에 내일 물가관계 장관회의를 열기로 한 것도 물가를 잡으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본다.

그러나 당정이 어제 점검회의에서 내놓은 서민 물가 대책은 현장감과 구체성이 떨어진 뒷북 처방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누누이 강조한 대로, 농축산물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르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사재기나 담합 등 왜곡된 유통구조 탓에 가격 상승세가 가팔라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공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통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는 이유다.



정부는 ‘달걀 대란’과 관련해 최근 두 차례에 걸친 합동점검에서 사재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로 공급량이 30%가량 줄긴 했지만 생산량에 비해 소비량이 85% 수준이어서 공급 대란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런데도 가격이 두 배나 뛴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중간 상인의 사재기 행위가 개입됐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 아닌가. 정부는 중간 도매상들의 사재기 현장에 대한 점검을 대폭 강화하고, 소비자단체와 감시 활동을 강화해 적발된 가격담합 등 불공정 행위는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단속 인력이나 행정력 부족 문제는 ‘사재기 제보 핫라인’을 운영해 해결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회의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협의해 공공요금 인상 자제를 유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지만 서울 하수도요금은 이미 지난 1일부터 평균 10% 올라 버린 상황이다. 서울시는 이미 오래전에 각 가정에 공지문까지 보내 놓았다.



​고양과 부천, 안양 등 경기도 15개 시·군도 이미 하수도료를 인상했다. 상수도 요금도 경기와 충북도를 중심으로 적게는 9%, 많게는 18%까지 올렸다. 사정이 이럴 진대 중앙정부가 뒤늦게 지방정부와 뭘 협의해 요금 인상을 억제하겠다는 소리인가. 모처럼 열린 당정 물가점검회의가 현실과 크게 동떨어진 탁상행정, 뒷북행정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유 부총리를 포함한 정책 담당자들은 책상머리를 떠나 오늘이라도 재래시장이나 대형마트를 꼭 한번 찾아보길 바란다.



5. ‘블랙리스트’ 피의자로 소환된 조윤선·김기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책임이 있는 윗선으로 지목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어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직권남용과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이었으니 지켜보는 국민은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화려한 공직 경력을 이어 왔다지만 특검 청사에 모습을 드러낸 조 장관은 초췌하기만 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김 전 실장 역시 “김기춘을 구속하라”고 외치는 시위대와 맞닥뜨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특검은 블랙리스트의 책임을 따지다 보면 더 윗선이 개입한 흔적이 드러날 수도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럴수록 법률 지식을 총동원한 책임 회피로 일관해 ‘법(法)꾸라지’라는 별명을 얻은 김 전 실장의 개입 여부를 밝히는 데 명운을 걸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 양극화가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것은 새삼 재론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정부 차원의 블랙리스트가, 그것도 자유로운 사고가 무엇보다 중요한 문화예술 분야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어떤 정부보다 창조 정신을 강조한 박근혜 정부의 정신적 자폭행위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특검이 조사 과정에서 블랙리스트가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폭넓게 작성됐다는 정황을 포착했다는 소식도 들려오니 놀랍다.



그럼에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의혹의 당사자들은 제 한 몸 빠져나가기에 급급한 모양새니 국민은 분노를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김 전 실장은 그렇게 소신껏 일했다면 “나라를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고 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나. 조 장관도 국회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했으면 장관 자리에서는 벌써 물러났어야 했다. 그는 특검에 출석하며 “진실이 특검 조사에서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운용한 부처의 책임자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장관 자리에 앉아 있을 자격이 없다.

특검 조사는 단순히 두 사람의 구속과 처벌이 목적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옥죄고, 뒷걸음치게 만든 블랙리스트의 진상을 낱낱이 국민 앞에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이미 특검은 이 사건으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구속했다.



김 전 실장은 물론 조 장관도 법률 지식으로 중무장한 변호사 출신이다. 특검은 두 사람이 노련한 법테크(法Tech)로 죄가 있음에도 빠져나가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수사하라. 김 전 실장의 혐의조차 밝혀내지 못한다면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 아닌가.



[동아일보]

6. 상품권 미끼로 파업 참여하라는 현대중 노조

현대중공업 노조가 11일 총파업 뒤 집회 참가자 1200여 명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상품권을 경품으로 나눠줬다. 전체 조합원 1만5000여 명 중 참가자들이 10%에도 못 미치자 ‘파업 보너스’를 준 셈이다. 

지난해 5월부터 2016년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 중 파업 45회, 총파업 16회를 주도해온 현대중 노조는 파업 참가를 독려하기 위해 임·단협이 끝나면 참가자들에게 상품권을 주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회사에 대해서는 파업하겠다고 위협하고, 조합원들에게는 ‘파업 대가’를 주는 것은 귀족노조가 아니면 휘두를 수 없는 무기다.

현대중 노조는 호봉 승급분과는 별도로 매달 임금 9만6712원 인상뿐 아니라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권 인정, 징계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 성과연봉제 폐지, 연 100명 이상 해외연수 등 ‘배부른 요구’를 하고 있다. 회사가 6개 사업부문별로 분사하기로 한 구조조정 결정에도 반대한다. 12년 만에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다시 가입해 설 이후에는 상위 산별노조의 힘을 빌릴 작정이다.

작년에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지옥 문턱까지 갔다가 간신히 돌아왔고 많은 중소 조선사는 아예 돌아오지 못했다. 현대중은 철저한 자구 노력으로 3조5100억 원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작년 말 절반 정도만 달성했을 뿐이다. 회사의 안간힘에 동참해도 모자랄 판에 노조는 ‘무(無)노동 유(有)상품권’을 내걸고 파업 참가를 유인하고 있다.

현대중 노조는 2015년에도 파업 참가자 4000여 명에게 전통시장 상품권을 지급해 약 2억 원어치의 조합비를 쓴 전력이 있다. 노조 측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식사비 조로 지급하는 것이고 지역사회를 돕는 차원”이라고 합리화하지만 ‘돈으로 파업을 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선업 불황과 구조조정으로 설을 앞두고 상품권은커녕 통장 잔액이 바닥난 협력업체 직원들이 어떻게 볼지 생각해봐야 한다.



[문화일보]

7. 국정농단에 발목 잡힌 삼성의 신뢰 추락과 國內外 우려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이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뇌물죄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이후 국가대표 기업의 국내외(國內外)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세계 최대 스마트폰 업체 리더가 부패 스캔들에 걸려들었다”고 전했고, CNN은 “갤럭시노트7의 굴욕적 낭패 이후 회사 이미지가 더욱 손상됐다”고 평가했다. 외신들은 대부분 삼성이 향후 신뢰도 하락과 경영 공백으로 곤경에 처할 것으로 우려했다. 삼성전자는 다보스포럼이 17일 발표한 글로벌 지속가능 경영 100개 기업에서도 4년 만에 탈락했다.


삼성이 수사 대상에 오른 이후 신년 경영계획, 정기 인사, 올해 채용일정 등 그룹의 핵심 스케줄은 줄줄이 연기됐다. 삼성 계열사는 물론, 4300여 협력사와 대졸 취업준비생들도 혼란을 겪는 상황이다. 그룹 총수의 글로벌 경영 행보는 진작 발이 묶였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가 주재한 ‘테크서밋’에 외국기업 경영자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았으나 특검의 제동으로 가지 못했다. 팀 쿡 애플 CEO 등 IT 거물 14인이 참석한 이 회동은 한국 기업인이 트럼프와 직접 대면할 첫 기회였으나 이를 날려버린 것이다.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한 이재용식 혁신 전략도 18일 영장심사 결과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된다.


특검이 뇌물죄로 엮으면서 삼성은 글로벌 무대에서 ‘비리 기업’으로 낙인 찍힐 처지다. 주요 선진국과 국제기구는 부패 행위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미국만 해도 외국 부패 기업과 기업인에 무거운 벌금과 징역형을 가하는 해외부패방지법(FCPA) 적용을 확대하는 기류다. 삼성전자는 수출의 20%를 점하는 등 한국경제에서 비중이 막대하다. 국정농단의 실체는 명백히 밝혀야 하지만, 본말이 전도된 기업 단죄 드라이브는 이미 교각살우로 빗나가고 있다.


8. 최악 安保위기 속 軍복무 단축 公約경쟁 개탄한다

군(軍)복무기간을 줄이겠다는 대선 공약(公約)이 쏟아지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7일 자신의 저서 출판행사에서 “참여정부 때 국방개혁안은 18개월까지 단축하는 것이었다”며 “1년 정도까지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곧 출간될 저서 ‘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에서 10개월로 줄이자고 했다. 현행 21개월(육군 기준)에서 절반 수준으로 다시 줄이자는 것이다.


이러한 획기적 군 복무 단축 주장은 입대를 앞둔 청년과 그 부모들에게는 달콤하게 들릴 수 있으나,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국가 안보를 해칠 심각한 안보(安保) 포퓰리즘이다.


첫째, 현재 북핵 위기가 고조되고 미·중 대립이 심화하는 등 최악의 안보 위기로 치닫고 있다. 한가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다. 둘째, 군 전시 작전통제권은 회수하겠다면서 전력 증강 계획을 세워도 시원찮은 판에 군 복무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셋째, 그러지 않아도 저출산에 따른 인구절벽으로 현재 병력조차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다. 넷째, 종심(縱深)이 짧은 한반도 상황에선 여전히 병력 규모와 보병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섯째, 군 복무를 단축하면 숙련도에 문제가 발생, 첨단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기 힘들게 된다. 여섯째, 군 복무 단축에 따른 첨단 무기 도입과 직업군인 증가를 위해선 국방예산의 대폭 증가가 불가피하다. 일곱째, 북한 급변 사태 시 안정화 작전을 위해선 많은 병력이 필요하며, 한·미 동맹 유지를 위해서도 일정 병력 유지가 필수적이다. 이미 미국 일각에서는 한국군은 감축하겠다면서 주한미군 감축은 반대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대한민국 안보는 대한민국이 책임져야 한다. 우리가 국방 의무를 소홀히 할 때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안보 상황이 개선된 뒤에도 군 복무 단축은 잠재적 위협까지 고려하며 신중히 추진할 문제다. 눈 앞의 표만 의식해 안보를 도외시한다면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개탄할 일이다.


[조선일보]

9. 한국 정당名 중 最古는 3년 된 정의당이란 희극

새누리당이 17일 당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설 명절 전에 국민 공모에 들어가기로 했다 한다. 19대 총선 두 달 전인 2012년 2월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개정한 지 5년 만이다. 당이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당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에서 당 이름이라도 바꿔 살아남아보겠다는 몸부림일 것이다.


새누리당이 당명을 바꾸면 현재 존재하는 원내(院內) 정당 가운데 정의당이 가장 오래된 정당 이름이 된다. 정의당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태 후 주사파 세력을 남겨두고 떨어져 나와 2013년 7월 출범한 당이다. 3년 5개월 된 당이 가장 오래된 정당이라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나라 정당 정치의 참담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 40% 가까운 지지율로 가장 당세가 강한 더불어민주당은 합당과 분당을 끊임없이 반복해온 정당이다. 2012년 이후에만 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을 거쳐 20대 총선 전인 2015년 12월에 지금의 당이 됐다. 그때 친문(親文)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쪼개져나간 국민의당, 한 달여 전 새누리당에서 갈라져 나온 바른정당을 포함해 모든 정당이 새로 만들어진 당이다. 끝없는 분열과 변신이 한국 정치의 고유한 특징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정당이 정책 중심이 아니라 대선 주자 중심의 패거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력자 한 명과 소수 추종 세력이 당을 장악하고 거기에 작은 줄이라도 대야 한자리 차지할 수 있는 후진적 정치가 반복되고 있다. 그러다 그 권력자가 무너지면 당 전체가 와해되면서 분열하거나 이름을 바꾼다. 2000년대 이후만 봐도 노무현당, 이명박당, 박근혜당이 집권했다가 없어졌거나 그 일보 전이다.


이번 대선은 후보를 내겠다는 정당만 5개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또 이리저리 합치자는 얘기나 반대로 사퇴하라는 압력이 커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선 후에 없어지는 정당, 이름을 바꿔 분칠이라도 하려는 정당이 또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 기세를 올리는 더불어민주당도 몇 년을 가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정당이 허약하면 군중이 나서게 되고 결국 대의(代議)정치의 위기가 온다. 군중 정치의 피해는 군중이 본다. 어렵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선진국형 정당을 육성해야 하고 그 첫발은 '누구의 당'이란 체질부터 없애는 것이다.


10. 편 가르기 말자는 文, 본인부터 실천하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새 저서에서 "편 가르기 정치가 없어지면 극단적 대결도 해소될 수 있다"며 통합의 정치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 중의 하나가 국민 편 가르기를 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된 단계를 통합 민주주의라고 한다"며 "혐오를 끝내고 진정한 화쟁(和諍)의 시대로 가자"고 했다.


문 전 대표는 어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나라가 이념, 지역, 세대, 계층으로 갈가리 찢긴 상황에서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가 통합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나라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이 소망하는 게 바로 '편 가르기 없는 사회'다.


하지만 정작 문 전 대표는 이 책에서 기득권 세력, 친일 세력, 독재 군부 세력 청산을 거론했다. 기득권이란 사전적으로는 '개인이나 국가가 정당한 절차를 밟아 이미 차지한 권리' 정도로 풀이되는 말이지만 우리 사회에선 부유층·고위층·엘리트층 등을 비난할 때 주로 쓰이고 있다. 문 전 대표가 지금 부유층 등을 싸잡아 청산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편 가르기 말자'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문 전 대표가 말하는 친일 세력과 독재 군부 세력이 누구를 지칭하는지도 알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면 친일 세력을 할 이유가 없다. 만약 한·일 관계를 합리적으로 풀어보려 고민하는 사람들을 친일파로 부르는 것이라면 할 말이 없다. 독재 군부 세력도 사라진 지가 30년이다. 수십 년 전 과거의 인물 중에 지금 활동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만약 지금 여당을 독재 군부 세력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라면 정치의 상대를 인정조차 않겠다는 것이다.


편 가르기를 가장 자극적으로 시작한 것이 문 전 대표가 몸담았던 노무현 정권이었다. 노사모의 홍위병 행태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분열됐는지를 돌이켜 보게 된다. 이들의 편 가르기는 지금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같은 민주당 내에서도 문 전 대표를 비판하면 곧바로 '문자 폭탄 테러'와 '18원 테러'가 쏟아진다. 많은 사람이 문 전 대표가 집권하면 '제2의 노사모'가 또다시 편 가르기에 나설 것으로 걱정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17일에는 친노 지지자들이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 현장까지 찾아가 갖은 비아냥을 퍼붓는 일이 일어났다. 문 전 대표는 이런 극성 지지자들에게 "조금 더 통합적인 자세를 가져주기를 간절히 간곡하게 당부한다"고 했다. 문 전 대표 자신도 열흘 전 구미에 갔다가 반대자들에게 막혀 20여 분간 차량 속에 갇힌 일이 있었다. 이 편 가르기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지지율 1위인 문 전 대표가 먼저 나서야 한다. 문 전 대표가 '청산한다' '청소한다'고 하면 극성 지지자들은 그 행동대로 나서기 마련이다. 만약 문 전 대표가 30~40년 전 운동권 같은 언행을 끊으면 그날부터 우리 사회의 편 가르기 병폐는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일터삶터] 차 한 잔 하세

내 일과 삶에 공통으로 쓰이는 물건이 있다. 차(茶)라는 물건이다. 마시는 음료인 차를 업으로 하고 있고, 생활 속에 늘 차가 함께한다. 차는 본래 생활 음료였다. 동양에서 차는 밥과 같이 생활에서 중요했다. 지금은 어떤 차이든, 언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사회적인 조건이 되었다. 문제는 내가 어떻게 즐길 것인가 하는 이해와 실행에 달려 있다.


일터의 연장인 한국의 차 산업은 녹록치가 않다. 그래도 차는 미래 산업을 지탱할 수 있는 기본 산업이 될 것이다. 음료는 음료인데, 사람의 몸을 자연과 친하게 할 수 있는 음료이기 때문이다.


차는 일반 음식 제조와 비슷하다. 찻잎을 따서 바로 마시기 위한 차와 오랜 세월 숙성시켜 마시려는 차로 구분됐다. 전자가 약발효에 해당하는 녹차 종류이고, 후자는 보이차와 같은 미생물발효차에 속한다. 또한 전자는 발효 정도를 중간 정도로 조정한 차(우롱차 종류)와 완전히 산화시킨 홍차로 분화 발전한다. 우롱차와 홍차가 등장한 것은 대략 400년 전 쯤이다.


홍차가 처음 등장했던 곳은 중국 황실에 차를 공납하던 푸젠성(福建省) 무이산. 이곳의 정산소종(正山小種)이라는 홍차는 17세기 유럽에 첫 선을 보인 후, 차이나 열풍의 주인공이 되었다. 영국에서 홍차는 생활음료가 되었고, 은을 주고 정산소종을 사 왔다. 재정적인 부담이 커진 영국은 다른 수를 냈고, 아편을 매개로 정산소종을 가져 왔다. 그러다 전쟁이 터졌고, 아편전쟁 이후 차 산업의 주도권도 유럽으로 넘어갔다.


영국은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인도와 스리랑카와 케냐 등지에 차나무를 심고 유럽식 홍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각성에 탁월한 효과가 있었던 커피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유럽 홍차는 전 세계 차 시장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커피는 세계 음료를 대표하고 있다.


최근 세계 음료 시장에 변화가 생겼다. 차의 귀환이 두드러진다. 이 현상 가운데 하나는 중국의 굴기(屈起)가 있고, 다른 하나는 커피와 콜라에 지친 소비자가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차는 산업과 문화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커피가 서구식 자본주의의 상징이라면, 현재 중국은 동양의 차를 가지고 서구 물질문명과 다른 문화적 품격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스타벅스는 티바나라는 차 체인점 사업을 시작했다. 콜라 회사들도 거대한 차원(茶園)을 조성하고 있다. 커피에 지쳐가는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한 움직임이다. 이제 세계 차 시장의 판도는 삼족정립의 형세를 보이고 있다.


이 열풍 사이에 한국과 한국인의 차도 자리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차는 역시 산업이면서 생활이고 문화이다. 21세기 한국인과 한국사회에 차는 어떤 얼굴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현대사회는 개방성이 특징이고, 현대인은 개성을 강조한다. 밖으로 열고 드러내야 할 내 개성은 안으로 다져야 할 기본과 장단을 맞출 필요가 있다. 삶과 일은 내 생활의 안팎이기도 하다. 내 안팎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방법이 있었다. 여기에 사용됐던 물건 가운데 하나가 차라는 사실! 이차정심(以茶靜心)이차정신(以茶正身)! 차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차를 가지고 몸을 바르게 할 수 있다. 차 한 잔 하세! 이 말에 담긴 속내가 본래 그것이었다.


2. [한국일보][삶과 문화] 세한정을 찾아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가 양평군 두물머리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만나는 곳이다. 두물머리에 가면 들르는 곳이 세미원이다. 여름에 가면 연못에 가득한 연꽃들이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답다. 여기 세미원에는 ‘세한정(歲寒庭)’이란 곳이 있다. 국보 제180호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조성한 정원이다. ‘세한도’의 두 주인공인 추사와 제자 이상적의 의리를 기리는 글과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세한도’는 추사가 정치적으로 좌절한 제주도 유배 시절에 그린 작품이다. 그의 쓸쓸한 마음과 그 쓸쓸함을 견뎌내려는 의연한 정신이 잘 담겨 있다. 작품 속 소박한 초옥 한 채와 소나무.잣나무 몇 그루가 고적한 한겨울의 느낌을 안겨준다. 동시에 삶의 고난을 극복하려는 고결한 기품을 떠올리게 한다. 의연한 정신과 고결한 기품은 이 작품을 감싸 도는 아우라를 이룬다.

작품 뒷면에는 추사가 적은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권력이 있을 때는 가까이하다가 권세의 자리에서 물러나면 모른 척하는 것이 보통이다. 내가 지금 절해고도에서 귀양살이하는 처량한 신세인데도 이상적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런 귀중한 물건을 사서 부치니 그 마음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권력이나 재물을 잃은 때에도 나를 좋아하고 곁에 있어 주는 이가 진정한 친구다. 추사에겐 제자인 역관 이상적이 그런 인물이다. 중국에서 귀한 책을 구한 이상적은 그 책을 권력자가 아닌, 귀양살이를 하는 스승에게 선물했다. 추사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앞서 인용한 구절에 이어 다음과 같이 적었다.

“공자는 ‘세한연후(歲寒然後) 지송백지후조(知松柏之後凋)’라 했으니, 그대의 정의야말로 추운 겨울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조(節操)가 아닐까.”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란 추운 계절이 돼야 소나무.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논어’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찾아오는 이 거의 없는 제주도 대정으로 유배 와서야 추사는 새삼 권력과 인간과 의리에 대해 깨닫게 된 듯하다. 그리고 소나무.잣나무 같은 제자 이상적의 아름다운 절조를 칭찬하고 있다.

나는 전통사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조선 시대의 가부장주의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한도’에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까닭은 어려운 시절에 나누는 의리와 사랑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은 누구나 견디기 어려운 일을 겪게 될 때가 있다. 고통을 겪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여전히 내 곁을 지켜주는 존재다. 지지해 주고 위로해 주는 친구가 있는 사람은 고통 가운데서도 힘과 용기를 얻지만, 함께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들은 낙심과 절망의 정도가 몇 배 더해진다.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넘치는 것은 아는 이들과의 관계다. 문제는 아는 사람이 많아도 친한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정보사회의 진전이 가져온 역설적인 사회적 결과다. 휴대폰 전화부에 아는 이들의 연락처가 빼곡히 저장돼 있어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들은 갈수록 줄어드는 ‘과잉 연결 속의 과소 친밀’이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인간은 본래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다. 이 외로움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넘치는 과잉 연결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인간적 친밀성이다. 친밀성은 추상적인 게 아니라 구체적인 것이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외로울 땐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의 속 깊은 마음을 나누는 것만큼 좋은 치유는 없다. 너무나 많은 연결은 때로는 우리를 지치게 하고, 외려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정말 중요한 존재는 어떤 순간에도 내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벗이 아닐까.

한겨울의 절정이다. 온기가 그리운 시간이다. 휴대폰을 꺼둔 채 친구와 함께 세한정으로 바람을 쐬러 가고 싶은 날이다.


3. [한국일보][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언제나 우리를 발끈하게 만든다.


신문이나 TV를 통해 본 가슴 아픈 사연들, 우리의 친구와 가족이 겪은 억울한 사연들, 또 나 스스로 겪은 불공평한 일들까지 떠올리며 왜 법은 늘 있는 자의 것이냐며 분노한다. 그럼에도 언론은 동네 체육대회에 나온 응원단마냥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부추기느라 볼썽사나운 엉덩이춤을 추는 중이다.


뉴스를 보니 참 가관이다. “이재용 구속되면 미래사업 동력 상실 우려”“이재용 구속 위기에 삼성 글로벌 암운”“벼랑 끝 내몰리는 기업, 수난 언제까지” 이 정도만 해도 분통이 터진다. 도대체 이 나라의 정경유착은 어디까지인가 싶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국민을 겁주기까지 한다.


“이재용 유죄 확정되면 미국서 벌금 물고 판매 차질 가능성도”“범법 기업 낙인, 이재용 유죄가 몰고 올 후폭풍” “삼성전자 200만원 돌파 멀어지나?” 국민의당 어느 의원은 SNS의 글을 통해 이재용 구속수사를 반대하며, “오늘 아침 딸기 농사 짓는 분을 만났는데 예년과 다르게 찾는 고객들이 푹 줄었다고 한숨을 쉬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이재용이 구속되면 이처럼 국민들이 고생을 하게 될 거라는 그의 시선이 참으로 우습다. 아직도 그런 말로 우리를 설득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저들의 눈에 우리는 여태 개ㆍ돼지다. 죄를 지은 부자가 감옥에 간다고 국가 경제가 휘청일 거라는, 콩죽 먹던 시절의 이야기는 이제 그만. 정 국가 경제가 걱정되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 11조에 대한 헌법소원부터 제기하든가. 위헌 결정이 나면 그때 다시 이런 소릴 하시든가.


4. [한국일보][아침을 열며] 한미일 ‘찰떡’은 없다

“한미동맹은 찰떡 공조다.” 최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트럼프 백악관의 안보보좌관 마이클 플린이 이렇게 말했다면서, 한국과 미국은 중국이 뭐라 해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할 것이라고 호기롭게 밝혔다.


“외교공관 앞에 어떤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국제사회의 일반적 입장이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위안부를 기리는 소녀상을 ‘어떤 조형물’이라고 부르면서 일본 입장을 거드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거의 ‘실패한’ 정권으로 판명된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관료들은 조만간 물러날 마당에 왜 이렇게까지 대못을 쳐두려 하는가.

시시비비는 차치하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들이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고수하려 한 것은 미국을 정점으로 한 한미일 3각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이 그렇게 싫어하는 사드 배치를 밀어붙임으로써 한미동맹을 다져두고, 국내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는 위안부 합의를 어떻게든 안착시켜 한일관계를 묶어두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사람들은 한미일 3각 공조를 매개하는 핵심고리인 사드와 위안부를 지켜내어 미국 주도의 3각 관계를 강화하는 것만이 한국의 살길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다.

한미일 3각 관계가 오랫동안 한국 안보에 중대한 역할을 해왔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이 관계는 변신을 거듭해왔다. 1990년대 초 세계적 냉전이 종식됐음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는 ‘지역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되살아났다.


여기서 ‘안정’이란 미국의 안정적 패권 유지와 사실상 동어반복이다. 그러더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대두하면서 이 3각 관계는 북한이라는 ‘괴물’을 빌미로 중국 팽창을 견제하기 위한 안보 프레임으로 둔갑해갔다. ‘아시아 회귀’로 대변된 오바마 정권의 지역 군사화 전략에 한일 양국의 보수정권이 합세함으로써 이 프레임은 점점 가시화했다.


2015년 일본의 안보법제 개정과 한일 위안부 합의, 여기에 지난해 사드 배치 결정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등이 일사천리로 추진됐다. 이 와중에 한미일 보수세력은 이 3각 관계를 마치 냉전시절 반공주의처럼 이데올로기화하게 된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봐도 한미일 3각 공조의 한계는 금세 드러난다. 미국이 한미일을 군사적으로 묶으려는 이유가 미국에 ‘맞서는’ 중국과 ‘겁 없는’ 북한을 억지하는 데 있다는데, 이에 대한 3국의 이해관계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특히 한국은 한미동맹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중국을 봉쇄하는 군사 블록에 대놓고 가담해서는 낭패를 보게 된다.


핵 장난을 멈추지 않는 북한을 혼내줘야겠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3각 관계의 자력(磁力)에 휘말려 전쟁을 불사할 수는 없다. 군사화한 한미일 3각 공조는 북한과 중국을 ‘공통의 적’으로 삼을 수는 없는 한국에겐 매우 어색하고 불편한 옷인 것이다.

더욱이 이 3각 관계의 앞날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동맹관계를 희생해서라도 미국을 우선하겠다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데다, 북한 때리기에만 몰두하며 평화를 방치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몰렸다. 여기에 들불처럼 일어선 한국의 촛불 민심은 부패한 보수에 대한 질타와 더불어 구시대적 냉전적 안보관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출했다. 일본의 보수정권이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국제관례 운운하며 한국 때리기에 나선 것도 한국의 3각 관계 이탈 가능성에 대한 우려 혹은 위기의식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분명 ‘한미일’이라는 프레임은 익숙하고 편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적 가치가 될 수 없고, 돼서도 안 된다. 특히 한국이 군사화한 한미일 3각 공조의 틀에 하위파트너로 들어가게 되면 북핵 문제 해결은커녕 분열과 안보불안의 질곡은 가중될 수 있다. 옷이 맞지 않으면 수선하거나 새 옷을 장만해야 하듯이 한미일 3각 공조라는 ‘신화’도 합리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3각 공조는 어디까지나 선택사항이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얀 팔라흐

체코 프라하 찰스대에서 역사와 정치경제학을 전공하던 21세 얀 팔라흐(Jan Palach)가 1969년 1월19일 숨졌다. 그는 16일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 인근 체코국립박물관 앞에서 분신했다. 그의 분신은 동기 등을 둘러싼 몇 가지 엇갈린 해석을 낳았고, 그 의문들로 체코 시민들을 더 아프게, 더 분노하게 했다. 

한 해 전인 68년 8월 바르샤바조약군이 프라하를 점령했다. 두브체크 등이 주도하던 개혁ㆍ개방의 ‘프라하의 봄’이 그렇게, 7개월 만에 짓밟혔다. 팔라치의 분신은 소련, 곧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억압에 대한 항의의 희생이라 알려졌다. 시민ㆍ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약 한 달 뒤 팔라치가 쓰러진 같은 자리에서 또 한 명의 대학생 얀 자이츠(Jan zajic)가 분신했고, 두 달 뒤에도 프라하 남동쪽 비소치나 주 이흘라바에서 에브젠 플로첵(Evzen Plocek)이 목숨을 내던졌다. 그들 앞에는 외국 군대의 탱크들이 버티고 있었다.

찰스대 병원으로 후송된 팔라치를 경찰이 뒤따랐다. 배후와 동조자를 캐내기 위해서였다.팔라치가 가담한 비밀 분신조가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진위는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를 담당했던 의사 야로슬라바 모셀로바(JaroslavaMoserova)는 팔라치가 소비에트보다 체코 시민들에게, 그들의 무기력에 항의하기 위해 분신한 거였다고 말했다.


모셀로바는 “패배만 한 게 아니라 포기해버린(notonly giving up, but giving in) 듯한 시민들의 풀죽음(demoralization)에 저항하고자 그는 제 몸을 불사른 거였다. 슬픈 눈과 무거운 얼굴로 조용해져 버린 거리의 시민들을 보면, 모든 고귀한 사람들이 현실과 타협하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이 정말 팔라흐의 뜻이었는지, 모셀로바의 해석이었는지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체코 시민들도 그(들)의 죽음을 무겁게 간직했다. 그들은 잊지 않았다.

팔라치가 숨지기 직전 여자친구와 학생운동 지도자를 병실로 불러 “더 이상의 희생은 없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유언처럼 남겼다는 말도 있지만, 그 역시 확정적인 사실은 아니다. 그게 가능한 일인지도 의문이다. 그는 당일 오후 3시 30분 별세했고, 벨벳 혁명 이후 체코 시민들의 뜻으로 광장의 얼굴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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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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