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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조선업의 몰락, 일본에도 다시 밀린다니

국내 조선업이 극심한 수주 절벽에 내몰리며 수주잔량에서 일본에 17년 만에 따라잡혔다. 진작 중국에 1위 자리를 넘겨준 데 이어 2위마저 일본에 추월을 허용한 것이다. 더구나 조선업 구조조정 와중에 퇴직 핵심인력의 일본 유출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조선업이 처한 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난 충격적 사건들이다.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한국의 수주잔량(잠정치)은 1991만 6852CGT으로 일본(2006만 4685CGT)보다 15만여CGT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확정치가 아니어서 약간의 가변성이 있다지만 수주잔량에서 일본에 뒤진 것은 1999년 12월 말 이후 17년 만이다. 호황이던 2008년 8월 말 일본보다 수주잔량이 무려 3160만CGT이나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 조선업의 몰락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위기에 몰린 조선업계가 인원 감축에 나서면서 퇴직한 핵심인력의 일본 유출현상도 걱정스럽다. 현재까지 100여명이 일본 조선업체에 취업했다고 한다. 국내 업계가 올해도 인력을 추가로 줄일 가능성이 있어 일본뿐 아니라 중국 등 해외로의 인력 이동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핵심인재 유출은 경쟁 상대국으로의 기술 유출을 의미한다. 부메랑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대응은 미덥지가 못하다.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조선업의 구조조정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에 수조원을 쏟아부어 연명시키는 등 구조조정의 원칙이 심하게 흔들림으로써 시장 혼란만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자발적으로 사전 통폐합 구조조정을 이룰 경우 선박 가격의 80%까지 낮은 이자율로 금융을 지원하는 등 파격적으로 업계를 뒷받침한 일본 정부와 대비된다.

조선업은 국내의 주력 산업 중 하나다. 수출 비중도 크고 고용 창출도 생산 10억원 당 10명으로 자동차(8.8명), 반도체(3.8명)보다 훨씬 많다. 조선소들이 몰려 있는 거제와 울산, 군산 등의 지역 경제는 지금 거의 빈사지경이라고 한다. 구조조정의 고삐를 다잡아 조선업을 다시 살리고 지역 경제와 나라 경제도 살려야 한다. 퇴직한 핵심 인력의 활용 방안도 마련해야 함은 물론이다.



2. 더불어민주당이 문재인 개인 조직인가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최근 작성한 ‘개헌 저지 보고서’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내에 여러 계파가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에서 보고서의 내용이 전적으로 문재인 전 대표의 입장을 거들고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문 전 대표의 개인 조직이냐”는 반발과 함께 이른바 ‘친문’과 ‘비문’ 성향 의원 사이에 마찰이 불거지고 있는 이유다.

이 보고서가 문 전 대표 진영의 입장과 거의 일치한다는 게 문제의 초점이다. 국회 개헌특위에 4년 중임제에 긍정적인 의원들 중심으로 참여시키되 적극적 개헌론자나 이원집정부제 주장자들의 참여는 소폭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이 하나의 사례다. 개헌을 매개로 ‘제3지대’가 구축될 경우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전략에 위협이 될 것이므로 이러한 움직임이 ‘촛불 민심’에 반하는 야합임을 각인시켜야 할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실제로 문 전 대표의 개헌 전략이 이 보고서에 따라 이뤄지는 정황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동안 개헌에 대해 완강한 움직임을 보이던 그가 “대통령이 되면 4년 중임제 헌법을 1년 안에 끝내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도 보고서에 들어 있는 ‘출구 전략’의 일환인 셈이다. 이 보고서가 조기 대선을 앞두고 쟁점으로 부각된 개헌 논란에 있어 문 전 대표를 위한 맞춤형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계파와 의견이 존재하는 정당에서 석연치 않은 일이다.

당내 ‘비문’ 성향 의원들의 반발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정당의 공조직이 특정 견해를 옹호함으로써 당의 분열을 자초하는 행위로 비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추미애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이에 대해 “지시한 적이 없다”거나 “참고용”이라고 해명하고 나선 모습도 옹색하기만 하다. 유사 사례의 재발 방지를 위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도 미지수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문 전 대표가 차기 대선의 유력 후보로 꼽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야권을 통틀어서도 가장 앞섰을 뿐만 아니라 여권 후보로 거론되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비해서도 지지율이 오히려 앞서 있다. 하지만 아직은 후보 지명이 공식 이뤄진 단계가 아니다. 원칙이나 상식을 무시하는 조직에서 일어날 수 있는 행태가 이번에 더불어민주당에서 버젓이 일어난 것이다. 실망스럽기만 하다.



[매일신문]

3. 미세먼지 예보, 환경부 발표는 못 믿겠다

연초부터 중국발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도, 환경부의 미세먼지 예보와 실제 지역별 대기질이 다른 경우가 너무 많다. 오보율이 30~40%에 달할 정도로 높은 점도 원인이긴 하지만, 동네에 상관없이 지역 평균값으로 발표해 지역별 차이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기상청과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관리공단에서 발령하는 예보를 믿고 안심하다간 미세먼지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니 어이가 없다.



지난 2일 기상청과 한국환경공단은 대구의 미세먼지 농도(PM-10)를 ‘보통’ 단계라고 예보했다. 실제로는 대구시가 운영하는 북구 노원동의 측정소에는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단계까지 치솟았는데도, 정부의 예보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나쁨’ 단계는 장시간 바깥 활동 자제를 권하는 수준인데도, 이곳 주민들에게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대구에서 정부의 예보가 실제 동네별 미세먼지 농도와 달랐던 날은 지난해 12월 한 달 가운데 열흘이나 됐다고 하니 엉터리 예보나 다름없다. 그 이유는 대기질 예보가 동네에 상관없이 지역 전체 평균값으로 결정되다 보니 오차가 크기 때문이다. 대구만 해도 공단지역과 분지 지형, 중심가 등의 미세먼지 농도가 천차만별인데도, 현 예보시스템으로는 획일적인 예보만 받을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살고 있는 동네의 대기질 정보를 상세하게 알고 싶으면 대구시와 경북도에서 운용하는 실시간 대기정보시스템을 확인하는 것이 훨씬 나은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환경부는 예산 및 인력 탓을 하면서 동네별 예보시스템 구축을 지자체에 미루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지역별로 미세먼지 예보시스템을 갖추려다 유보한 것에서 보듯, 지자체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소지역별 동네별 예보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다. 

  
환경부는 예보 정확도를 끌어올리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예보 정확도가 미세먼지는 62~63%, 초미세먼지 69~70%에 불과하다고 하니 기가 찬다. 예보 정확도를 몇 년 내에 선진국처럼 70% 후반대로 끌어올리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지만, 국민 건강을 위해 그 시기를 앞당겨야 할 것이다.



4. 영덕군산림조합의 뭇 의혹, 수사로 특혜나 비리 밝혀야

영덕군산림조합의 송이버섯 유통 과정에서 1t 넘는 물량이 사라졌다는 의혹에 이어 소유 부동산 처분에서도 공매 절차상의 하자가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의 조합 총회와 감사자료를 통해 불거졌다. 이번 일은 조합의 투명하지 못한 운영과 같은 후진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사법 당국의 진상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영덕군산림조합에 대한 의문은 두 가지다. 먼저 지난해 9~11월 수집된 영덕 송이의 경매 전후 물량의 큰 차이다. 조합이 송이 생산자로부터 모은 물량은 114t인데 반해 경매 물량은 112t이었다. 이는 통상적인 경매 과정에서의 중량 감소를 가정한 113t보다 무려 1t 이상이 없어진 셈이다. 조합 수익금은 줄 수밖에 없다. 결산 결과, 2억원 이상이 모자라는 것으로 집계됐다. 생산자의 의심처럼 경매 전에 송이가 몰래 빼돌려졌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다음은 부동산 처분이다. 산립조합은 지난해 10월 조합 소유 부동산 15만5천여㎡를 8억5천만원에 팔았다. 그런데 파는 과정이 의문투성이다. 이사회의 심도 있는 논의도 없었고 매각 예정 가격도 8억9천만원에서 수천만원 낮게 바뀌었다. 해당 땅은 공시지가 상승으로 지난해는 전년 대비 22% 폭등했다. 또 땅을 팔며 영덕군 내 거주자로 제한 입찰을 했고, 땅을 산 법인은 조합의 부동산 매각 결정 이틀 뒤 설립됐다. 비정상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들 두 사안은 누가 봐도 이상하게 여길 만하다. 거래 과정의 투명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조합 내부에서조차 반발하고 규정을 위반했다고 인정하는 까닭이다. 특히 부동산 거래에 대한 감사자료는 “사실상 수의계약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할 정도로 무늬만 입찰일 뿐, 특정인을 위한 거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이번 일은 하나같이 조합원의 이익을 분명하게 해치는 일로, 비리와 특혜 의혹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수사 당국은 조합에 대한 여러 의혹을 수사로 밝혀야 한다. 흘린 땀의 대가를 송이 생산자가 아닌 다른 업자가 챙기고 조합원 이익을 갉아먹었다면 그냥 둬선 안 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면 역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서울신문]

5. 자고 나면 치솟는 생활물가, 서민은 힘들다

새해 들어 교통비, 하수도 요금 등 각종 공공요금의 인상이 잇따르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의 확산으로 계란 값이 치솟는 등 지난 연말부터 장바구니 물가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어 서민들의 살림살이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김영란법 등으로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된 내수 시장의 활성화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공공요금과 장바구니 물가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공공요금 인상 움직임은 전국의 각 지방자치단체(지자체)들이 불을 댕겼다. 서울시는 하수도 요금을 올해부터 평균 10% 올리기로 했다. 2019년까지 매년 10%씩 추가 인상할 계획도 마련했다. 서울시 대부분의 자치구는 20ℓ짜리 종량제 쓰레기봉투 가격을 장당 440원에서 490원으로 올렸다. 인천과 대구시는 시내버스 요금을 150원씩 인상했다. 이 밖에 부산시와 경기도, 세종시, 제주 등 상당수 지자체도 지하철 요금을 비롯해 각종 공공요금의 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다.

이들 지자체의 공공요금 인상은 비록 10~20% 내외의 소폭 인상이라 할지라도 소득이 낮은 계층에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또 대중교통비 등 공공요금의 성격상 아껴 쓰거나 대체재를 사용하는 등의 다른 방법으로 요금 인상의 파고를 피해 갈 수도 없다.

계속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는 불경기를 무색하게 한다. 서민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지난달 중순 대표적인 서민 기호식품인 라면 값이 평균 5.5% 인상됐다. 오비맥주도 출고가 기준 평균 6% 인상한 데 이어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도 인상 대열에 동참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AI 확산으로 계란 값은 이미 2배 가까이 치솟아 정부가 무관세 수입이라는 긴급 처방에 나선 상태다.



지난해 하반기 산유국의 감산 합의 이후 국제 유가도 10% 이상 치솟고 있는 데다 미국발 금리 인상에 따른 불안감마저 확산되고 있어 서민들의 체감 경기는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럽다.

민생 안정은 어제부터 시작된 정부 부처의 신년 업무보고의 핵심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공공요금과 장바구니 물가의 인상 분위기를 가라앉히지 못한다면 민생 안정이라는 정부의 정책 목표 달성은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6. 방중 민주 의원단 사드 보복 중단 요구하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송영길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방중 의원단에 사드 배치에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송 의원 일행의 방중은 지난해 8월 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사대·조공외교’ 논란이 불거진 이후 대선을 앞둔 미묘한 시기에 이뤄져 관심을 끌었다.



송 의원 일행도 이런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베이징으로 떠나기에 앞서 “양국 간 경제적 교류 상황 악화,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 같은 문화적인 문제, 중국 정부의 전세기 취항 불허와 같은 안 좋은 문제들을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을 중국 측에 전하고, 자제를 촉구하려고 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양국간 난맥상을 푸는 의원외교 차원의 방중이라고 했지만 중국 측의 반응은 전과 달라진 게 없음이 확인된 자리였다.

민주당 의원들의 이번 방중은 중국 측의 태도가 예상됐다는 점에서 우려가 적지 않았음이 사실이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은 우리 정부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으며,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수교 이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압박의 강도를 높여왔다. 최근 우리나라 전세기의 중국 취항을 거부한 중국은 삼성SDI와 LG화학 등이 생산한 자동차용 배터리에 대해 보조금 지급 중단 조치까지 내렸다.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반감이 치졸한 무역보복 형태로 노골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 기업이 보는 피해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며, 이런 중국의 공세는 심화·확대될 개연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국가 안보가 걸린 사드 문제를 중국의 입맛대로 해줄 수는 없다. 중국의 전방위적 공세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해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안보와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송 의원 일행도 이번 방중에서 사드 반대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충분히 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이 최근 진행 중인 각종 사드 관련 제재 조치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중단을 요청해야 한다. 정부가 사드 배치를 결정한 마당에 야당 의원들이 딴 목소리를 내선 곤란하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중국 측에 동조하거나 사드 배치는 다음 정부로 미뤄야 한다는 식의 잘못된 신호를 줘선 안된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송 의원 일행에게 말한대로 한중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기를 원한다면 자국의 이익만을 고집해서는 안된다. 송 의원 일행도 한중관계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면 귀책사유가 어느 쪽에 있는지를 잘 헤아려야 한다. “오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왕이 부장의 립서비스에 현혹돼 그들의 의도에 말려들거나 장단에 맞장구를 쳐서는 안 된다.



7. 북핵의 중국 역할 강조한 트럼프 발언 주목한다

연초부터 북핵 문제를 둘러싼 국제 기류가 심상치 않다. 적대 관계인 미국과 북한이 본격적인 기싸움에 돌입했다. 대중 강경 노선을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에게 중국이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면서 양국 사이의 입씨름도 거칠어지고 있다. 급변하는 한반도·동북아 외교·안보 환경 속에서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허둥지둥대는 정부의 모습에 우려가 앞선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통해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라며 핵 공세의 수위를 높이자 트럼프 당선자는 즉각 “북한이 미국 땅에 닿을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엄중 경고를 했다. 한술 더 떠 “미국과의 무역에서 엄청난 돈을 버는 중국이 정작 북핵은 돕지 않는다”고 밝히자 중국 언론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중국 때문이라는 생떼를 쓰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는 형국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중국 역할론을 강화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트럼프 당선자의 접근법이다. 중국이 북핵 문제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자신도 중국의 ‘하나의 중국’ 문제에 협조할 수 없다는 발언과 연장선상에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모든 외교 사안을 거래로 생각하는 정치인에 속한다. 중국의 민감한 고리인 대만 문제를 건드려 중국과의 무역 문제와 북핵 문제를 동시에 풀겠다는 의도다.



트럼프 당선자의 미국 우선주의는 모든 국제관계에서 손을 떼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판을 짜겠다는 신외교 정책으로 봐야 한다. 트럼프 당선자 특유의 협상식 담판 외교인 것이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언론들조차 트럼프 개인은 물론 ‘트럼프 돌풍’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편향적으로 지지하는 미국의 유력 언론들에 편승해 트럼프의 막말에 초점을 맞췄고 낙선을 예상할 정도로 안이했다. 미국의 새 대통령은 대부분 전 정권의 외교 안보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



‘핵 포기 없이는 결코 북한과 대화가 없다’는 오바마의 대북 정책에 비판적인 트럼프 당선자는 대북 외교에서 차별적인 새로운 안보 전략을 수립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위원장을 빗대 미치광이라고 부르면서도 햄버거 협상을 언급한 것이 바로 트럼프 당선자다. 앞으로 대북 외교 정책이 강온 양면의 협상 전술로 옮겨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한·미 동맹 위주의 4강 외교에 안주해 온 우리 외교로선 새로운 도전일 수밖에 없다. 외교는 국가 생존, 번영과 직결되는 국가적 책략을 관철하는 수단이다. 미·중 간의 복잡한 외교 전략이 새롭게 가동되는 상황에서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에 대비해 보다 유연한 국익 극대화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동아일보]

8. 국회, 18세 투표권-결선투표제 도입 함께 논의하라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원내대표는 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대선에 앞서 선거연령을 현행 만 19세에서 18세로 낮추는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어제 “18세 투표권 보장과 결선투표제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간다”고 호응했다. 야권은 젊은층으로 갈수록 지지도가 높다고 본다. 개혁보수신당도 어제 18세 투표권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가 일부 의원의 반발로 보류하긴 했지만 찬성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18세 투표권은 과거 정치개혁특위에서도 여러 차례 논의됐으나 젊은층으로 갈수록 지지도가 낮은 새누리당이 반대해 무산됐다. 18세면 고등학교 3학년이다. 일각에서는 18세 투표권이 도입되면 고3 교실까지 정치판으로 만들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한국만 선거연령 하한이 19세이고 세계 147개국이 18세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학제가 같은 일본도 지난해 18세 이상으로 바꿨다.

국민의당과 정의당 등은 결선투표제의 도입을 함께 요구한다. 최초 투표에서 과반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1, 2위 후보만으로 투표해 당선자를 결정하는 것이 결선투표다. 이번 대선은 새누리당의 분열로 보수진영도, 제3지대도 단일화의 필요성이 커졌다. 결선투표를 도입하면 지난 대선의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처럼 인위적 단일화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지지도에서 1위를 달리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진영은 말로는 결선투표제를 지지한다고 하지만 “개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사실상 반대한다. 결선투표제를 개헌 사안이라고 보는 측은 대통령 후보 중 최고 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에서 당선자를 선출한다고 한 헌법 조항을 근거로 든다.



​이 조항은 최고 득표자가 1명일 때는 그를 당선자로 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이 선거를 꼭 한 차례에 국한한다고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결선투표제는 당선자의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는 것이므로 헌법의 명문(明文)에 배치되지 않는다면 개헌 없이도 도입하는 쪽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18세 투표권과 결선투표제 논의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지속을 막기 위한 개헌론을 물타기하는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러나 대선까지 몇 달 남지 않은 시점에서 성사를 보장할 수 없는 개헌만 추진하고 있을 수는 없다. 법률 개정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해가면서 개헌 논의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상충한다고 볼 수는 없다.



[매일경제]

9. 회복세 돌아선 수출 희망의 불씨 살려나가야

한국은행이 어제 내놓은 작년 11월 국제수지 통계를 보면 수출이 다시 성장 엔진 구실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작년 11월 수출액은 464억6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7.7% 늘었다. 월간 수출이 전년 동기보다 늘어난 건 2014년 6월 이후 2년5개월 만에 처음이다. 파업과 태풍에 따른 생산 차질로 급감했던 자동차 수출이 살아난 데다 글로벌 수요가 호조를 보인 반도체와 화공품, 단가가 오른 철강도 수출 회복을 이끌었다.

한은은 상품의 통관이 아니라 소유권 변동을 기준으로 수출입 통계를 낸다. 따라서 해외에서 이뤄지는 가공·중계무역도 통계에 포함된다. 이에 비해 산업통상자원부는 통관 기준 무역 통계를 내는데 이미 작년 12월 실적까지 나왔다. 통관 기준 수출액은 작년 11월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한 데 이어 12월에도 6.4% 늘었다. 작년 8월 일시적으로 2.6% 늘어난 걸 제외하면 줄곧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던 수출이 두 달 내리 증가한 건 2년2개월 만에 처음이다.

지난해 통관 기준 수출액은 총 4955억달러로 한 해 전보다 5.9% 줄었다. 그러나 4분기 들어서는 회복세가 뚜렷했다. 특히 12월에는 반도체, 유화, 철강을 중심으로 수출 단가가 크게 오르고 원화 기준 수출액도 2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7.3%)을 기록했다. 그만큼 수출 수요와 채산성이 높아진 것이다. 정부는 올해 수출이 작년보다 2.9% 늘어난 51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수입(4350억달러)도 7.2% 증가해 불황형 흑자 구조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는 수출 부문에서 모처럼 나타난 희망의 불씨를 잘 살려가야 한다. 그동안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이끌었던 내수가 급랭할 가능성이 큰 만큼 수출의 성장기여도를 반드시 플러스로 돌려놓아야 한다. 2015년부터 3년 내리 무역 1조달러 고지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은 뼈아프지만 잘만 하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13대 주력 품목의 수출 비중(77%)이 여전히 높은데 화장품과 의약품을 비롯한 유망소비재 수출에 박차를 가하면서 4차 산업혁명 핵심 분야의 기술 경쟁력 제고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10. 트럼프 첫 외교과제 된 북핵, 한미공조 더 긴요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새해 벽두부터 내놓은 대북 메시지를 보면 취임 후 북핵 문제를 최우선 순위로 삼겠다는 것으로 읽혀 다행스럽다.



트럼프는 지난 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북한이 미 본토에 닿을 핵무기 최종 개발 단계라고 주장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올렸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가 마감 단계라고 주장한 데 대한 반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정보기관에 브리핑을 요청한 첫 주제가 북핵과 미사일 개발에 관한 것이었고 최근 실제 기밀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북핵 문제를 외교정책 가운데 주요 과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보인 것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지난해 대선 캠페인 기간 중 좌충우돌에 가까운 북핵 관련 주장을 내뱉었다가 지난해 11월 선거 승리 후에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새해 첫 일성으로 강도 높은 경고를 내놓으며 동시에 대북 제재 이행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중국을 함께 비판해 주목된다.



중국 외교부가 트럼프의 비판에 대해 대변인 브리핑 방식으로 '중국은 한반도 평화 안정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추진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반박할 정도였다. 북한 대외 교역량의 90%를 차지하면서 사실상 북한 경제의 목줄을 쥐고 있는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을 펴겠다는 것으로도 읽히는 만큼 트럼프 새 행정부의 북핵 문제를 둘러싼 대북·대중 전략의 일단을 잘 보여준 셈이다.

외교부는 어제 가진 2017년도 업무계획 보고를 통해 북한에 대한 석탄 수출 차단을 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321호의 철저한 이행 등 압박과 제재로 북한의 자금줄을 차단해 비핵화를 끌어내겠다고 밝혔다. 6자회담 방식의 해법이 답보 상태인 상황에서 북핵 문제는 한미 간 철저한 공조 위에 중국, 일본 등 주변 당사국의 협력을 더해 풀어갈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 새 외교안보 진영과 굳건한 네트워크를 유지하면서 북한의 추가 도발을 차단하고 대비해야 한다.이를 위해 한미 간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등 다양한 채널의 한미 공조를 강화해 가는 것이 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화살과 노래

화살과 노래(The Arrow And The Song)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화살을 허공에 쏘아 보냈지.
땅에 떨어졌겠지만, 어딘지 알지 못했어;
너무 빨리 날아가는 화살을,
내 눈이 좇아갈 수 없었지.
노래를 허공에 띄워 불렀지.
땅에 떨어졌겠지만, 어딘지 알지 못했어;
누가 날아가는 노래를 따라갈 만큼
예리하고 강한 눈을 갖고 있겠어?
오래, 오래 뒤에, 어느 참나무에서
아직도 부러지지 않고 박혀 있는 화살을 보았지;
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의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어.



꽤 알려진 작품이지만 오랜만에 다시 읽어 보니 좀 심심하다. 시의 메시지가 도식적이고 표현도 단순하다. 세계의 명시라고 하기엔 부족하나, 영어가 쉽고 전달력이 뛰어나 대중에겐 호소력이 있을 터. 인간관계의 폭이 넓지 않은 내게도 이맘때면 송년회와 신년 하례식을 알리는 문자가 서너 개 오는데, 내가 참석한 모임은 단 하나였다.



얼마 전에 고려대 언론대학원 제46기 언론AMP과정 종강파티에 갔다. 가을에 문학 강의를 맡은 인연으로 초대받은 자리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다음주에 있을 수료식에서 시 낭송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지만, 돌아서서 생각하니 딱히 떠오르는 시가 없었다. 뛰어난 연애시는 수두룩한데, 우정을 노래한 괜찮은 시는 드물다. 롱펠로(1807~1882)의 ‘화살과 노래’는 그리 심오한 작품은 아니나, 여럿이 만나고 헤어지는 자리에서 낭송하면 어울릴 것 같다.

심오하지 않다고 내가 폄하한 이유는 이 시에서 말하는 ‘변치 않는 무엇’을 내가 믿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그 변함없는 무엇을 확인하는 화살과 노래가 낡았기 때문이다. 부러지지 않은 화살이 박힌 참나무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롱펠로 시인이 어린 시절을 보낸 19세기 초엽의 미국 포틀랜드에서는 참나무가 흔했겠지만, 지금 참나무를 보려면 차를 타고 한참 달려야 한다.

화살보다 빠른 속도로 문자를 주고받는 21세기에, 친구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내 노래를 발견할 시간이 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옛날 노래를 들을 여유가 있을까.

소통 과잉의 SNS 시대에 친구는 많아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외롭지 않나. 전화도 번거로워 문자와 카톡으로 새해 인사를 날려 보내는 요즘, 소꿉친구와 낙엽을 줍던 시절이 그립다. 내 놀던 동산에 올라가 나도 유년의 화살을 찾고 싶다. 화살을 찾으면 옛 동무의 이름도 기억날지 모른다.

다사다난했던 2016년을 보내는 12월 31일 오후, 카톡 채팅방에서 친구들과 송박영신(送朴迎新)을 비는 메시지를 주고받은 뒤,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경복궁 근처 찻집에서 팥빙수를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을 친구들이 부럽다. 어서 나오라고 꼬드기는 벗들에게 “어머니 병원에 가서 저녁 먹여드려야 돼요. 내일까지 쓸 글도 있고…제 몫까지 재미있게 노세요.”

이런 한심한 문자를 날리고, 롱펠로의 인생을 들여다보았다.

1807년 미국 동부의 포틀랜드에서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난 롱펠로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는 몽상가였다. 포틀랜드 항구를 떠도는 외국선원들로부터 스페인어, 불어, 독일어를 주워듣고 ‘아라비안 나이트’나 ‘로빈슨 크루소’ 같은 이국의 모험담을 즐겨 읽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 삼년간 유럽에 나가 외국어를 공부하고 돌아온 롱펠로는 모교인 보드윈대학의 선생이 되었다.

1831년 동창생인 메리와 결혼하고 그가 출간한 첫 책은 시집이 아니라 기행문이었는데 불어로 ‘Outre Mer’(Overseas)라 붙여진 제목만 봐도 그의 유럽 취향을 짐작할 수 있다. 1835년 두 번째 유럽여행 중에 임신한 그의 아내가 유산 끝에 죽었다. 비교적 평탄했던 롱펠로의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가 덮쳤다.

아내가 죽은 이듬해 펴낸 첫 시집 ‘밤의 목소리’ 그리고 두 번째 시집 ‘Ballads and OtherPoems’(1841년)에도 역경과 싸우는 인간이라는 주제가 반복해 나타난다. 그의 시가 보여 주는 긍정과 낙천성은 시련을 극복하려는 시인의 안간힘이 아닌지. 젊은 대륙의 독자들에게, 고군분투하며 나라의 기초를 세우려는 미국인들에게 롱펠로의 교훈적인 시는 상당히 유용했고, 그는 미국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남북전쟁이 시작된 1861년에 롱펠로의 두 번째 부인 프란시스가 드레스에 불이 붙어 죽는 어이없는 사고를 당한 뒤 그는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 이후에는 의미 있는 작품을 생산하지 못했지만, 런던에서만 24개의 출판사들이 그의 저작물을 출판했다니 시인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롱펠로는 새로운 시적 실험보다는 관습에 충실했던 안전한 시인이었다. 지적으로 세련된 독자들에게 도덕 교과서 같은 그의 시는 매력이 없을지도 모르나 ‘인생찬가’처럼 쉬운 시에도 보석처럼 빛나는 경구가 숨어 있다.

아무리 즐거워도 미래를 믿지 말라!
죽은 자들이 죽은 자들을 매장하게 하라!



2.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서민의 겨울 보양식 ‘닭곰탕’

따끈한 닭곰탕은 삼복더위에 먹기도 하지만 그래도 찬바람이 부는 겨울철에 더욱 잘 어울리는 보양식이다. 닭곰탕은 소고기 곰탕에 비해 값도 저렴하고, 집에서도 요리하기가 비교적 손쉬운 가정 메뉴다. 그 옛날 어머니들이 손맛을 자랑하며 식구들에게 특별식으로 내어놓던 추억의 음식이기도 하다.



레시피도 그리 복잡하지 않아 가족의 건강을 챙기는 초보 주부나 모처럼 나서서 솜씨를 발휘하려는 아빠들의 실전메뉴로도 추천할 만하다. 먼저 생닭을 손질해서 삶은 후 물을 한 번 버려 기름기를 덜어낸다. 삶은 닭과 함께 파, 양파, 생강, 마늘 등을 넣고 잘 삶은 뒤 닭을 국물에서 건져 내어 잘게 찢어 소금, 후추 등으로 간을 한다. 닭 국물에 다시 닭살을 넣고 부추 등을 더해 한 번 더 끓이면 완성이다. 입맛대로 매콤한 다대기나 파, 후추 등 양념을 더해서 즐기면 된다.

닭곰탕은 여느 음식에 비해 비교적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은 대중식당 메뉴다. 1990년대 초 식당에서 2000원 했는데 지금도 6000~7000원 수준이다. 그럼에도 어떤 탕 종류에도 지지 않는 맛을 자랑하는 닭곰탕을 내어놓는 집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닭곰탕 하면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곳이 있었는데, 1980년대 이름을 날리던 서울 중구청 인근 광희동에 있었던 ‘버드나무집’이다. 웬만한 사람은 다 알았었고, 젊은 시절에 꽤나 다녔던 추억의 집인데 아쉽게도 오래전에 없어졌다.

물론 지금도 주변 곳곳에 닭곰탕의 맛과 역사를 이어오는 명가들이 적지 않다. 남대문시장 갈치골목 초입에는 55년 된 원조 닭곰탕 전문 식당 ‘닭진미’가 있다. 옛날 ‘강원집’에서 이름을 바꿨다. 복잡한 시장통에 자리잡은 옛날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가게다. 주문을 하면 양푼냄비에 닭다리와 고기가 듬뿍 들어 있는 탕과 김치, 깍두기, 마늘이 나온다. 국물이 담백하고 개운하다. 고기를 찍어 먹는 양념장과의 궁합도 최고다. 시장상인과 고객들이 찾는 쉼터다.



마포 대흥동에는 ‘마포닭곰탕’이 있다. 24시간 영업하는 기사식당이다. 원래 안주인이 시작했는데, 바깥주인도 외환위기 이후 모범택시를 그만두고 본격 영업에 나섰다. 프랜차이즈로 시작했지만 곧바로 독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맑은 국물에 닭고기를 푸짐하게 넣어 든든한 한 끼 보양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다대기를 넣어 매콤하게 먹는 것도 별미다. 오래전부터 영업해 온 가게 건물이 헐리는 바람에 이곳으로 옮겼다. 기사식당이라는 이름대로 술은 팔지 않는다. 반입도 물론 못한다.



을지로 3~4가 사이 인현상가 앞에 자리잡은 ‘황평집’은 가게 모습대로 50년 역사를 자랑한다. 원래 주인부부가 황해도, 평안도 출신이어서 황평집이란 상호로 30년 가까이 경영하다 은퇴했고, 지금 주인이 이어받은 지도 20년이 됐다 한다. 담백한 국물, 쫄깃한 닭고기, 닭 껍질이 조화를 이룬다. 매콤한 닭 무침도 인기 있는 메뉴다. 점심때는 많이 기다려야 한다.



이 집에서 200m 떨어진 같은 인현동 골목 안쪽에는 ‘호반집’이 있다. 20여년을 해 온 전 주인으로부터 수년 전에 이어받아 총 30년 가까이 됐다. 커다란 대접에 깔끔한 국물과 닭고기를 듬뿍 넣어 준다. 쫄깃한 닭 껍질은 씹는 맛이 있다. 부추, 마늘, 다대기로 국물 맛을 내면 좋다.

요즘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에 그런지 손님이 줄었다는 주인들의 걱정이 많이 들린다. 푹 끓여 삶는 닭곰탕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말이다. 아무쪼록 닭요리의 진미를 이어온 많은 가게들이 힘을 내도록 성원하는 마음으로 이번 글의 테마를 닭곰탕으로 선택해서 소개한다.



3. [아시아경제][일터삶터] 거울의 목소리
여왕이 거울을 들여다 보며 물음을 하고 거울이 대답을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동화 속 거울문답이다. 흔히 ‘여성의 다른 여성을 향한 질투와 불안’의 상징으로 치부되는데, 이번엔 좀 다르게 들여다보자. 여왕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물었다. 대답은 ‘거울의 목소리’가 한다.



자, 이제 상상력을 발휘할 때다. 거울의 목소리는 누구의 것일까? 거의 예외 없이, 묵직한 음성의 남성을 떠올릴 것이다. 여성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여성들을 비교하는 목소리의 타자성이 우리에겐 여전히 자연스럽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조차 타인이 평가하는 삶은 얼마나 피곤한 것인가. 본인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그런 삶은 분명 폭력적 환경에 있는 것이다. 누구도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순 없지만, 거울 속 나를 볼 때조차 타인의 취향과 안목에 크게 영향 받아야 하는 건 분명 자존을 방해한다.

객관적 미의 기준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취향을 단단히 지닌 존재는 그 자체로 빛날 수 있음을 영화 ‘Me Before You’를 통해서도 감흥하게 된다. 우스꽝스럽다는 타인의 평에도 자신의 패션감각을 결코 굽히지 않는 ‘루이자’는 영화가 흐를수록 더욱 반짝이는 존재가 돼 보이며, 불의의 사고로 자존을 완전히 상실한 ‘윌’의 자존을 찾는 마지막 여정에 빛이 되어 준다.

외양에 관한 얘기만이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거울문답에는 ‘질문하는 목소리’와 ‘대답하는 목소리’가 공존한다. 질문하는 목소리가 다양하다는 건 자신을 다양한 각도와 깊이로 들여다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양한 목소리를 구하기 위해, 우리는 호기심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외부의 자극에 열린 자세로, 독서와 여행 등으로 견문을 넓히고 타인과 꾸준히 교류하는 셈이다.



이런 다양한 자극들이 나와 나 자신을 매개하는 거울을 끊임없이 연마하고 단련시킨다. 중요한 건, 거울 속 자신의 눈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을 때에야 연마된 거울이 ‘반추와 사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거울의 반추와 사유에 자신이 생길수록, ‘대답하는 목소리’는 점점 내 것에 가까워진다.

만약 대답하는 목소리와 질문하는 목소리 모두 자신으로만 한정되면, 독선과 오만 혹은 자폐의 굴레에 걸려들게 된다. 또한, 대답하는 거울의 목소리가 연신 타인의 것이라면, 타인의 취향에 맞추는 시늉을 하고 타인의 흉내를 내다 결국 내 삶이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살면서 자신의 내면을 향한 문답을 좀처럼 하지 않는 사람과는 상대를 안 하는 게 상책이다. 그런 이와는 애초부터 교감이 불가할 것이다. 교감이 가능하고 깊이 교감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내 거울과 그의 거울을 번갈아 함께 보자. 거울 속 눈을 서로 응시하고 질문하고 대답하기를 주고받자. 내 거울이 그의 것에 비해 오목하거나 볼록할 수도 있고, 어느 특정 부분이 왜곡되어 있을 수도 있다. 상대로 하여금 내가 바라보는 나를 보게 해주는 것, 상대가 바라보는 그를 내가 봐주는 것. 그것이 공감을 이루고 역지사지를 가능케 한다.



서로 이런 노력을 다하다 어찌할 수 없는 벽에 부딪혀 중단한 교감(이별)이라면 상호가 미련에 허덕일 여지도 없다. 미련이란 대체로 자신에 대한 후회나 상대에 대한 원망의 사생아이지 않은가. 그게 상처로 남는 것이고.

보이고 싶은 모습뿐 아니라, 내가 아는 나를 드러내고 상대가 자신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을 때, 교감의 건강한 싹이 움트고 온전히 자라게 된다. 내가 상대의 훌륭한 거울이 되고 상대가 나의 훌륭한 거울이 되어주는 것처럼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관계는 더 없을 것이다.

솔직하자면, 내면의 거울이나 이상적 교감 등의 어려운 수준은 미뤄두더라도 내 외양을 비추는 거울의 목소리라도 온전한 내 육성이기를, 새해 들어 바래본다. ‘이상’의 시, ‘거울’의 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라도했겠소.”
< 이상의 시 ‘거울’ 중 >



4. [서울신문][손성진 칼럼] 책의 위기

택시 기사들이 택시 안에 책을 갖고 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니라 프랑스 파리의 얘기다. 사르트르 같은 어려운 책도 그들은 읽는다. 책을 갖고 다니며 읽는 기사가 욕설을 하거나 승차 거부를 할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발견하기가 ‘옷 벗고 춤추는 사람’보다 발견하기가 어려운 지경이 됐다. 20년 전만 해도 책이든 신문이든 인쇄된 활자 매체를 보는 사람들이 십중팔구였다. 지금은? 2015년 1인당 평균 독서 권수는 9.3권이란다. 2004년과 비교하면 33%나 줄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말초적인 인터넷 게임, 웹툰 따위다.

이런 조사도 있다. 대학생들은 5명 중 1명은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단다. 취업과 학업에 치여서 그럴 것이다. 그 대신에 하루 113분을 인터넷을 쓰는 데 할애한다. 독서의 질도 떨어진다. 마음의 양식(良識)에 보탬이 되는 인문학 서적은 거의 보지 않는다. 심심풀이로 만화책이나 월간지를 볼 뿐이다.

선진국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지만 우리는 심하다. 매일 또는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독서를 하는 ‘습관적 독서’ 인구의 비율이 2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나이가 들수록 책을 더 멀리한다. 먹고살기 바빠서다. 생존이 급한데 책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책은 정신을 갈고 닦은 결과를 한 곳에 모아 놓은 집합체다. 활자의 마력과 종이의 향기는 일상에 지친 신경의 안정제 역할을 한다. 그런 책을 읽는 사람에게 서점은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하지만 책을 멀리하며 서점은 하나둘 사라져 갔다. 서울 도심에서는 종로서적, 을지서적 같은 대형 서점이 10여년 새 문을 닫았다. 대학가의 서점들도 카페에 자리를 내주었다. 동네 서점의 운명이야 말할 것도 없다. 1996년 5378개로 정점을 찍었던 서점 수는 지금 1500여곳밖에 안 된다.



한마디로 책의 위기다. 책의 위기를 실감케 한 출판계의 사건이 며칠 전 있었다. 업계 2위인 대형 책 도매상인 송인서적이 1차 부도를 낸 것이다. 전자책의 보급과 온라인 도서 판매의 성장, 서점의 대형화라는 배경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근본적 원인은 독서 인구의 감소다.

책의 위기는 넓게 보면 인문학의 위기다. 인문학은 글을 읽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의 쇠퇴는 바로 정신적 황폐화를 의미한다. 인간이 중심이 돼야 할 사회에서 인간은 점점 소외받고 있다. 산업화, 기계화는 인간의 본성을 말살하고 있다. 인간은 그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하나의 부속품이 돼 간다. 곧 들이닥칠 인공지능 사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도 싫다.

이기주의, 위선, 부도덕이 판을 치는 사회를 바로잡는 수단은 관심 밖으로 내팽개쳐진 인문학이다. 공동체 사회의 형성과 유지를 위해선 물에 빠진 인문학을 건져 올려야 한다. 책 읽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책을 많이 읽는 핀란드나 일본과 같은 나라의 도덕과 교양 수준이 높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 나라들의 범죄율은 아주 낮다. 일본과 범죄율을 비교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인구 10만명당 범죄 건수는 보통 우리가 일본의 4~5배다. 책의 위기는 곧 사회의 위기다.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는 인문학을 되살릴 수 없다. 읽지도 않는 책을 허위로 써 넣은 생활기록부에 점수를 주는 제도 아래에서는 희망이 없다. 공공도서관부터 늘려야 한다. 1개 도서관당 인구는 5만 9123명으로 독일의 5.7배나 된다. 범국민적인 독서 운동이나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필요하다.

2002년 문을 닫은 종로서적의 부활은 가뭄 속의 단비 같은 소식이다. 그곳은 정신을 살찌우는 공간이었다. 특히 문인들에겐 영혼의 요람이었다. 장석주 시인은 “내 영혼이 숙성된 곳, 정신적 부표가 된 장소”라고 했다. (원래의 창업주와 다툼은 있지만) 토론의 광장으로 만들고 책 팔아 돈 벌 생각이 없다는 새 주인의 생각도 가상하다. 구순 고령에 한두 주일에 영문서적 한 권을 읽는 노학자를 본 적이 있다. 우리가 진정 존경하고 본받아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그런 사람들이다.



5. [매일신문][매일춘추] 어머니의 전화

우리 나이의 가장들이 지난 한 해를 반추하며 새 희망을 설계할 연초에 나는 홀로 계신 내 어머니 생각에 잠겨 있다네.

내 어머니 이야기이니 그냥 한 번 읽어나 주시게. 마침 수업이 없어 창밖의 봄볕을 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전화를 한 거야. 안부도 묻지 않고 대뜸 경북대학교병원인데 위암이라서 내일 수술한다고 하더라. 청천벽력이 여러 번 일어날 일을 참 쉽게도 말하고는 전화를 끊는 거야.

병원에서는 더 가관이었어. 수술실에서 나오자마자 마무리 못 한 집안일들을 열거하며 의사가 회진할 때마다 퇴원시켜 달라 조르는 거야. 대단한 내 어머니가 결국 이겼고 퇴원 날짜도 일주일 정도 앞당겨졌다네.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집에 왔는데 그때가 어머니가 우리 집에 두 번째 오는 길이었다네. 언제나 어머니가 부르면 주말마다 내가 시골집에 갔으니까. 어머니는 포항 우리 집에 오자마자 피곤해서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거야. 나는 어머니가 쉬거나 졸거나 제대로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네.



아마도 어머니의 신조는 ‘기대지 말자, 눕지 말자’일 거야. 어머니가 나를 시골로 부를 땐 “누구네 아들과 사위는 감나무에 약 벌써 다 쳤다”고 하거나 “감 따기가 늦어 우리 밭 감만 홍시 다 됐다”고 하지. 내가 시골에 가면 어머니는 횡재하는 날이야. 다음 날이 시골장이 서는 날이면 더 그렇지. 새벽까지 준비한 어머니의 보따리들을 주섬주섬 내 차에 싣고 ‘풍각장’이나 ‘청도장’으로 가는 거야. 시골집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시장에 내다 팔 푸성귀를 다듬거나 그것들을 쉴 새 없이 여러 보퉁이에 나눠 담고 있다네.

아픈 몸으로라도 어머니가 우리 집에 왔으니 나는 장남 노릇을 제대로 하고 싶었다네. 그런데 웬걸! 3일째 되던 날 어머니는 갖고 갈 보따리를 다 챙겨서 새벽 댓바람부터 나를 깨우는 거야. 시골로 가는 도중엔 먼 친척이 하는 미나리 밭으로 가자더라.

어머니는 타고난 장사꾼이라네. 시골 논밭에서 나는 온갖 것들이 5일장의 훌륭한 돈벌이가 되니까. 문제는 혼자 농사지으며 미나리 밭, 마늘 밭을 전전하며 일당벌이를 한다는 거야. 돈 벌어 뭐 하냐 물었더니 병원비에 쓴다고만 하더라. 시골 농산물 판로는 어디 많더냐? 그러니 어머니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에게 반강매를 시키거나 며느리를 감 장사로 둔갑시키거나 지난번처럼 우리 동기들한테 감 팔아 달라 고구마와 마늘도 팔아 달라 사정한다네.

사실 어머니는 지난가을 경운기 사고로 지금 대구 여동생 집에서 쉬고 있다네. 결국 몸이 다치니까 쉬는구나 하며 민망스러워하는 어머니한테 매몰차게 핀잔을 줬지. 두서없는 글 이만 줄이겠네. 자네나 나나 올해는 효도 좀 하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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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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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대통령 탄핵심판, 신속·공정이 관건이다

헌법재판소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심판의 첫 변론기일을 열고 국회가 제기한 탄핵소추 사유에 대한 심리에 돌입했다. 박 대통령의 운명이 이제 박한철 헌재 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 9명의 손에 달린 셈이다. 그러나 첫 변론기일은 박 대통령이 재판정에 출석하지 않는 바람에 박 소장이 “신속하고도 공정한 심리를 진행하겠다”는 대원칙을 밝히는 선에서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끝나 버렸다.

따라서 본격 심리는 내일과 오는 10일에 각각 열리는 2차 및 3차 변론기일로 미뤄졌다. 2차 변론기일에는 청와대 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과 윤전추·이영선 행정관이 증인으로 나오고, 3차에는 최순실씨를 포함해 안종범 전 정책수석과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이 소환된다. 앞서 헌재는 이번 탄핵심판의 쟁점을 국민주권·법치주의 위반과 대통령 권한 남용, 뇌물수수 등 크게 다섯 항목으로 정리했다.

국회 소추위원단과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앞으로 이들 쟁점을 둘러싸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법리 다툼을 벌이게 됐다. 이미 박 대통령은 지난달 9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침묵을 유지하던 데서 벗어나 전면적인 ‘장외 변론’에 나선 모습이다. 정초부터 휴일인데도 예정에 없던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를 갑자기 열어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 혐의들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억울하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주장이다. 뇌물죄에 대해서는 “완전히 나를 엮은 것”이라며 결백을 주장했고, 세월호 사고 당시 7시간의 행적에 대해서도 “대통령으로서 할 일은 다했다”며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을 모두 부인했다. 헌재는 이러한 장외 변론에 별 의미를 두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박 대통령이 추후에도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밝힐 것은 밝힌다는 입장으로 전해짐으로써 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지금 돌아가는 여론은 탄핵 지지가 압도적이지만 그렇다고 촛불에 휘둘린 여론재판은 금물이다. 두고두고 뒤탈을 낳기 마련이다. 박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했더라도 법적인 방어권만큼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는 얘기다. 박한철 소장의 표현대로 지금은 ‘헌법적 비상상황’이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만큼 국민의 눈길이 헌재를 향하는 것은 당연하다. 헌재가 ‘신속’과 ‘공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내는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 서울대 출신들의 ‘부끄러운 동문상’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진행되는 ‘부끄러운 동문상’ 후보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인물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그들이다. 나름대로 국가와 사회의 동량임을 자부하는 서울대생들이 부끄러운 동문에 대해 투표를 하고 있다는 자체가 이 시대의 상징적인 풍경화다.

분명한 것은 능력 있고 똑똑하다고 인정받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회적 역할에 소홀하다는 점이다. 제 역할은커녕 오히려 권력에 빌붙어 해악을 끼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서울대 출신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앞서의 인물들 말고도 이번 ‘부끄러운 동문상’ 후보에 국회의원과 병원장, 기업인, 법조인, 학자에 이르기까지 유명 인사들이 두루 이름이 오른 데서도 확인되는 일이다.

특히 법조인 출신인 김 전 비서실장과 우 전 수석의 경우 지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법률의 허점을 자기 방어에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국민적인 공분을 샀다. 오죽하면 ‘법률 미꾸라지’라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을까. 박근혜 대통령을 가까이 보필하던 입장에서 탄핵사태에 대해 진정성 있는 책임 표명도 없었다. 오직 입신영달을 위해 달려온 사람들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이러한 출세지향적 처세술이 이들 몇 사람의 경우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 이번에 드러났듯이 규정을 무시하고 박 대통령의 비선 진료에 관여한 의혹이 있거나 공짜로 거액의 주식을 챙긴 경우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도층 인사들이 이처럼 자기들끼리만 주고받는 식이어서는 나라가 제대로 서기도 어렵고, 사회가 방향을 찾아 굴러가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지도층 인사들에게 바라는 게 거창한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상식과 규정에 따라 일을 처리해 달라는 수준이다. 그 정도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폐습과 부조리는 거의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능력껏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됨으로써 ‘최순실 게이트’는 발도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서울대 출신만이 아니라 이 시대 우리 사회의 모든 지도층 인사들이 함께 유념해야 할 교훈이다.



[서울신문]

3. 헌재, 신속하고 공정하게 탄핵심리 진행하라

박근혜 대통령의 운명을 가를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의 첫 공개 변론이 어제 오후 열려 9분 만에 끝났다. 공개 변론은 피청구인인 박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조기 종료됐지만 역사적인 탄핵 심판의 첫발을 뗀 것이다. 지난해 12월 9일 탄핵소추안 가결로 박 대통령의 대통령 권한이 정지된 지 25일 만이다.



헌재는 이미 세 차례에 걸쳐 탄핵 심판을 위한 준비절차기일까지 가졌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모두 발언에서 “엄격하고 공정하게 최선을 다해 심리할 것”이라고 탄핵 심판의 대원칙을 밝혔다. 또 “헌법 질서에서 가지는 엄중한 깊이”라며 사건의 의미를 규정했다. 박 소장은 그제 시무식에서도 “공정하고 신속한 결론”을 강조했다. 헌재는 헌법 정신에 따라 최대한 빨리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권한 정지에 따른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중차대한 사안임을 직시해야 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미 대리인을 통해 밝혔듯 공개 변론에 출석하지 않았다. 대리인단의 변론만으로도 충분한 만큼 굳이 당사자 출석이 불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범죄 피의자로 비칠 수 있는 박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한 판단일 것이다. 2004년 3월 30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탄핵 심판 첫 변론에 불출석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 쟁점 5가지는 선거중립 의무 위반으로 집약될 수 있는 노 전 대통령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등 비선 조직에 의한 국정 농단,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미르·K스포츠재단 불법 모금 등 어느 것 하나 인정하는 게 없다. 특검의 수사 과정에서 속속들이 드러나는 혐의마저도 철저히 부인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의혹을 해명하고, 혐의를 부인하고 변호할 권리가 있다. 권리에는 당연히 책임이 따른다. 박 대통령은 특검에 앞선 검찰의 수사 요청을 거부하더니 헌재의 소환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일방적으로 해명한데 이어 앞으로도 더 그런 기회를 가질 뜻도 내비쳤다.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다. 누구보다 헌법을 수호하고 법을 존중해야 할 대통령으로서 공권력과의 맞대결, 장외투쟁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새해가 밝았는데도 혼란스런 시국을 걱정하는 국민을 저버리는 행태와 같다.

박 대통령은 헌재의 심리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모든 의혹이나 혐의를 부정하려면 헌재에 당당하게 나와 “철학과 소신을 갖고 국정을 운영했다”고 밝히는 게 옳다. 특검의 수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헌재는 다음달까지 1주일에 한두 차례씩 집중 심리를 진행할 계획이다. 박 대통령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되 수용하지 않는다면 원칙에 따라 신속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다. 국민이 바라는 바다. 박 소장이 모두 발언에서 언급한 아주 공평하고 지극히 바르다는 대공지정(大公至正)의 길이기도 하다.


4. 27개월 만에 2순위 총장 임명된 경북대

​경북대 총장 임명을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다. 총장 공백 27개월 만에 1순위 총장 후보가 아닌 2순위 후보인 김상동 교수가 그제 총장에 취임하자 1순위이던 김사열 교수가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임명권의 잘못된 행사를 문제 삼아 소송을 준비한다고 한다.



이 문제는 특히 문화계에 이어 교육계에서도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돼 학내 문제를 넘어 정치 문제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청와대가 정부에 비판적인 교수들을 국립대 총장 임명에서 배제하기 위해 총장 자리를 공석으로 두거나 2순위자를 ‘거꾸로 임명’하는 교육 농단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장·차관급 공무원 신분인 국립대 총장은 대학이 직·간선으로 후보 1·2순위 2명을 뽑아 교육부 장관이 한 명을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인사권은 대통령이 가진 고유 권한이기에 후보 1·2순위가 최종 뒤바뀐 것 자체를 놓고 비판할 수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중앙 부처의 고위직 공무원들도 검증 과정에서 결격 사유가 드러나 후순위 후보가 1순위로 올라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교육 분야의 경우는 다르다. 헌법에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아탑마저 정치권의 영향력 아래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 헌법 정신이다.

김사열 교수에게 부적격 사유가 없는데도 정부가 1순위 후보를 퇴짜 놓고 2년여 동안 손 놓고 있다가 2순위 김상동 교수를 총장에 임명한 것은 누가 봐도 석연치 않다. 그러니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개입설’이나 교육부 고위 간부의 ‘청와대 오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 서울대 총장 임용도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일지의 ‘서울대 총장 선임 역임(거꾸로 임명)’이라는 기록만으로도 청와대 개입 의혹을 살 만하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순실 청문회에서 충남대 총장에 한양대 출신의 2위 후보가 낙점된 것은 당시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 이재만 전 비서관 등 한양대 인맥이 개입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주대 등 4곳은 현재 총장이 없다. 경북대 등 5곳은 총장 공석이다가 정부가 대학이 추천한 1순위 후보가 아닌 2순위 후보를 총장으로 임명했다. 이 정부 들어 유난히 국립대 총장 임명을 놓고 뒷말이 많다. 총장 후보들의 사상 검증을 위한 블랙리스트에 근거했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전국국공립대교수연합회는 “파행적인 총장 임용에 국정 농단 세력이 개입한 의혹이 짙다”며 특검에 수사를 요청했다. 특검에서 그 진상을 철저히 가려야 한다.



[서울경제]

5. 탄핵심판, 헌재는 오로지 사실만으로 판단해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헌재는 3일 오후2시 박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1차 변론기일을 열고 국회 측이 주장한 탄핵소추 사유에 대한 구체적 심리에 돌입했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심리에 앞서 “엄격하고 공정하게 최선을 다해 심리하겠다”고 헌재의 각오를 밝혔으나 첫 변론기일은 탄핵 대상인 박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9분 만에 종료됐다. 

탄핵사유를 둘러싼 국회와 박 대통령 간의 본격적인 대결은 2차(5일), 3차(10일) 변론기일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2차 때는 안봉근·이재만 등 전 청와대 비서관과 대통령 수행 행정관 등을 출석시켜 박 대통령의 권한남용 쟁점을 심문한다. 3차에는 최순실과 안종범 전 수석, 정호성 비서관 등 비선실세 의혹 당사자들에게 국민주권주의 훼손 여부 등을 따지게 된다. 헌재는 앞서 이번 탄핵심판의 쟁점을 국민주권·법치주의 위반, 권한남용, 언론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뇌물수수 등 형사법 위반으로 정리했다.

헌재의 이번 탄핵심판은 한국 사회에 여러 의미를 던질 것이다. 헌재는 국가 최고권력인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것 못지않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실체적 진실을 국민 앞에 명명백백히 밝혀야 하는 역사적 책무가 있다. 이번 탄핵심판을 촉발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10월 말 처음 제기된 뒤 2개월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추가 의혹들이 계속 보도되면서 국민은 혼돈과 혼란을 겪고 있다.

헌재는 앞으로 심리과정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사실과 본질에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탄핵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헌재의 판단은 국민적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다. 헌재는 앞으로 재판 진행과정에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관련 의혹을 정리하고 사실관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탄핵에 대한 최종 판단을 해야 한다. 이번 대형사건에서 우리 사회가 어떤 교훈을 얻을지는 헌재의 심리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6. 속 보이는 새누리당의 포퓰리즘 정책 경쟁

정치권의 ‘개혁 선명성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2일 야당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최저임금 인상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3일에는 재벌개혁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이현재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재벌의 경영 투명성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커지면서 재벌개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며 “9일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해 조속히 당론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에서 분리된 개혁보수신당에 맞서 새누리당도 개혁입법 경쟁에 가세한 모양새다.

그동안의 새누리당 같지 않은 이런 정책변화는 보수신당에 밀리거나 촛불민심을 외면하고서는 존립기반 자체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 인적청산의 고삐를 죄면서 좌클릭으로 정책변화를 추진하는 이유다. 정우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촛불 민심이 요구하고 있는 각종 개혁입법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모두 개혁 선명성 경쟁에 나서면서 포퓰리즘 정책이 만연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여전히 노동계편향적인 상황에서 보수신당도 ‘안보는 보수, 경제는 개혁’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정강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새누리당도 개혁경쟁에 가세했으니 갈수록 민심을 사기 위한 포퓰리즘 경쟁이 가열될 게 뻔하다.

우리는 이미 정치인들이 포퓰리즘 정책에 매달리다 값비싼 대가를 치른 사례를 수없이 경험했다. 최저임금이 높게 조정되면 영세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고 재벌개혁은 성장잠재력을 훼손시키고 기업가정신을 약화시킨다. 자칫 가뜩이나 취약한 경제를 망치는 지름길일 수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 없이 정당만을 유지하기 위해 개혁을 외친다면 너무 염치없는 짓이다.



[매일신문]

7. 열악한 지역 서점 생존권 빼앗는 ‘유령 서점’ 뿌리 뽑아야

대구의 공공도서관과 학교 등의 도서 납품 입찰 과정에 유령 서점이 마구 참여해 거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가뜩이나 경영난에 시달리는 동네 서점의 목줄을 죄고 있다. 이는 현 제도로는 실제 서점 사업자 외에 유령 업체 참여를 막을 방안이 없는 탓이다. 또 유령 업체는 납품 자격을 돈을 받고 실제 서점에 판권을 팔아 이익까지 챙기고 있다.



이런 문제는 지난해 11월의 학교 도서관용 도서 납품 입찰 참여 서점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2015년 기준, 대구의 서점은 184곳이지만 입찰 참여 업체는 무려 300곳이었다. 실제 서점보다 116곳이 많다. 이들은 본 사업 외에 사업자등록증에만 서점업을 넣은 유령 서점일 가능성이다.



서류상 업체들이 학교 급식 업체 입찰 과정에 무더기로 참여해 거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과 다름없는 현상이다. 이는 가짜 급식 업체를 들러리로 세워 진짜 급식 업체의 낙찰 가능성을 높이지만 유령 업체의 도서 입찰은 실제 서점의 낙찰 기회를 빼앗고 판권을 팔아넘긴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하지만 공정한 입찰의 방해는 같다.



특히 유령 업체의 입찰 참여가 끼치는 해악은 골목 서점의 열악한 영업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 ‘2016년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대구지역 서점은 2005년 324곳에서 2015년 184곳으로 140개(43%)가 없어졌다. 전체의 절반 정도가 문을 닫거나 영업을 포기했다.  



​이 같은 대구의 영세한 중소 서점 경영난과 폐업은 대형 서점의 잇따른 진출과 매장 확장 등 공격적 영업 전략의 영향도 크다. 그렇지만 유령 업체의 입찰 비리에 따른 골목 서점의 영업 환경 악화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도 수사 당국은 이를 막을 적극적인 활동도 않고 대구시와 대구시교육청 같은 입찰 관련 행정 당국조차 손을 놓고 있다. 

      
만연한 유령 업체의 마구잡이 입찰 참여와 실제 서점 간의 판권을 둘러싼 짬짜미 같은 거래 관행을 그냥 두고 동네 서점을 구할 마땅한 대책은 쉽지 않다. 따라서 우선 행정 당국은 입찰에서 유령 업체를 가려낼 서점인증제 등 장치를 마련하고 사법 당국도 수사에 나서야 한다. 동네 서점도 살리고 불공정 거래 근절을 위해서 빠를수록 좋다.



8. 천정부지 계란값, 정부가 근본 대책에 손 놓은 결과다

지난해 11월 중순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계란 가격이 급등해 소비자 부담과 시장 혼란이 커지고 있다. 12월 들어 닭`오리 도살처분이 본격화하면서 계란 가격이 뛰기 시작해 한때 특란 30개 한 판에 1만원을 웃돌았다. 지금도 평소와 비교해 소비자 가격이 50%가량 높은 등 사실상 가격 통제가 불가능한 ‘계란 대란’ 상황이 여전하다. 게다가 수급 불안정이 올 한 해 내내 지속될 전망이어서 보다 적극적인 수급 방안과 AI 방지를 위한 근본 대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4일 신선란과 계란 가공품 등 8개 품목의 무관세 수입 등을 내용으로 한 계란 수급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오는 6월까지 수입 절차 간소화와 수입 대상국 확대 등을 통해 계란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또 앞으로 2주간 계란 사재기 관련 합동현장점검도 진행한다고 밝혔다.



당장은 수입을 통해 공급량을 늘려 사태를 진정시키는데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계란 가격과 시장 상황을 되돌려 놓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무엇보다 AI 피해가 거의 매년이다시피 반복할 경우 소비자와 농가, 유통 업체 모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계란 수입 등 임시방편은 방편대로 추진하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다. 무엇보다 이번 AI 사태가 최단 기간에 최대 피해로 예상되고 있다는 점에서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근본 대책이 시급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일 기준 도살처분된 닭`오리 가금류는 3천33만 마리로 국내 전체 사육량의 20%에 가깝다. 특히 알 낳는 닭인 산란계는 사육량의 30% 넘게 피해를 입었다. 이 때문에 피해 보상금 등으로 최소 3천억원이 넘는 정부`지자체 재정을 지출해야 하는 등 손실이 이만저만 아니다.



정부는 보다 실효성 있는 방역체계 구축과 계란 유통 구조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3, 4단계를 거치는 유통 구조를 단순화해 유통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전국 약 50곳에서 운영 중인 공판장 개념의 계란유통센터를 더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더는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항구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9. 말 따로 행동 따로인 민주당의 안보 행보

더불어민주당의 ‘안보 강조’ 행보가 부쩍 잦아졌다. 추미애 대표는 3일 전방 부대를 방문해 “안보 없는 평화도 있을 수 없고, 평화 없이는 민생도 경제도 작동되지 않는다”며 안보를 강조했다. 문재인 전 대표도 북한 김정은의 신년사에 대한 2일 성명에서 “(북한이) 올해 우리 정국의 변화기를 틈타 과거처럼 불순한 의도로 허튼짓을 하려 한다면 우리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말 대로라면 민주당은 ‘확실한 안보 정당’이다.



하지만 실제 행보는 정반대다. 송영길 의원 등 민주당 의원 8명이 중국 정부와 공산당 고위 관계자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4일부터 6일까지 중국을 방문하는 것이 그 증거다. 이들이 내세우는 방문 목적은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민간 차원 보복 문제의 해결이다. 그러나 중국 고위 관계자들과의 논의가 그런 것에 국한하지는 않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문 전 대표가 제기한 ‘사드 배치 연기’와 관련해 중국과 민주당 간의 ‘의미 있는 소통’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민주당의 행적은 이런 추측을 잘 뒷받침한다. 지난해 사드 배치 결정 후 민주당은 일관되게 반대해왔다. 당시 민주당 초선 의원 8명은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뜻을 물어보겠다며 굴욕적인 중국 방문을 강행했다. 그러나 사드가 안 된다면 무엇으로 1천여기에 달하는 북한의 미사일을 막을 것인지는 제시하지 않았다. 무책임하고 무능한 ‘반대를 위한 반대’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사드 배치를 다음 정부로 넘기라고 했다. 그 뜻이 단순한 ‘배치 연기’가 아니라는 것은 국민 누구나 안다.



누구나 추 대표나 문 전 대표처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안보는 말만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 중 하나가 사드다. 이젠 다시 얘기하기도 지겹다. 사드도 안 된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결국 민주당의 ‘안보 행보’는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 국민을 계속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오산이다.

[동아일보]

10. 탄핵심판 불출석한 朴 대통령, 헌재 권위 무시하나

박근혜 대통령은 예상대로 탄핵심판정에 나오지 않았다. 어제 오후 2시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첫 변론은 박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9분 만에 끝났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의결돼 헌법이 상정하는 통치구조에 변동을 초래하는 위기 상황임을 인식하고 있다”며 “대공지정(大公至正·매우 공평하고 지극히 올바름)의 자세로 엄격하고 공정하게 최선의 심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헌재는 박 대통령에게 5일 출석할 기회를 더 줬지만 변호인들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불출석 전례를 들먹였다. 앞으로도 나오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엔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이 없었다. 노 대통령의 선거 중립 위반은 당사자의 소명이 없어도 재판관들의 판단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게 걸린 헌법과 법률 위반 행위는 9가지나 된다. 박 대통령 대리인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세월호 7시간 자료’를 철저하게 준비 중”이라고 밝혔지만 박 대통령 외에는 진실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박 대통령이 심판정에 직접 출석해 소명해야 하는 이유다.

탄핵심판 청구인인 국회 측은 1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있었던 박 대통령의 발언에 비선 실세 최순실 씨를 지원한 정황이 들어있다고 보고 기자간담회 전문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심판정 밖에서 자기변호를 하고 있다. 신년 간담회에서 “(뇌물죄 의혹은) 나를 완전히 엮은 것”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피청구인인 대통령이 심판정 밖에서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헌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의 특검 진술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근무하는 대한항공 지점장의 인사 문제까지 부탁했다고 한다. 측근들은 사법기관에서 박 대통령의 죄를 지목하는데, 대통령 혼자 나는 아니라고 여론전을 펼쳐서야 되겠는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법사위원장으로 국회 측 소추위원이었던 김기춘 의원은 “대통령의 불출석은 헌재의 권위와 국민을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그의 말은 부메랑이 되어 박 대통령에게 돌아왔다. ‘최순실 없는 국정조사’에 이어 ‘박근혜 없는 탄핵심판’이 돼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은 장외 여론전을 펼칠 게 아니라 심판정에 나와 법리 공방을 벌여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마지막 기대에 답하는 길이다.





​주요신문칼럼



1. [동아일보][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장애가 있는 친구와 내 아이

​학교에서 돌아온 민수(9)는 거실에 가방을 탁 던지며 “엄마, 은호 때문에 너무 짜증 나. 정말 같이 못 놀겠어”라고 말한다. 은호는 자폐 증상을 가진 같은 반 남자아이다. “그렇게 말하면 못써. 나쁜 사람이야. 은호는 아픈 아이잖아. 엄마가 그런 친구는 잘해 줘야 한다고 했잖아.” 엄마의 말에 민수는 억울한 듯 소리를 질렀다. “잘해 줬다고! 알림장 적는 것도 도와주고! 놀아도 주고! 근데 미니카 접어주고 있는데 갑자기 내 색종이를 죄다 가져다가 찢었단 말이야!” 

통합교육을 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이럴 때 부모들은 대부분 “네가 참아야지. 그런 걸로 힘들어하면 안 돼”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정말 힘들다. 본인도 어리고 미숙한데 무조건 이해하고 참고 도와주는 것은 솔직히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이럴 때는 우선 아이의 힘든 감정부터 수긍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맞아. 힘들지. 이해해”라고 말해준다. 아이가 “난 걔가 우리 반인 것이 싫어!”라고 말해도 “너 그러면 나쁜 사람이야”라고 혼내지 말고 “그런 마음도 들지. 이해는 해”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 다음 아이의 눈높이와 입장을 배려하여 어떻게 대처할지를 알려주는 것이 맞다. 그 친구가 소리 지르고 달려들거나 꼬집거나 때린다고 하면, 그때도 ‘그냥 참아라’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싫지. 피해. 네가 어떻게 그걸 다 참고 천사처럼 버티니? 엄마는 그러라고는 말 못 해. 억지로 같이 놀아주라고도 안 해. 그 친구를 위해서는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많이 애쓸 거야. 그 친구 엄마도 그 친구가 좀 더 잘 클 수 있도록 노력할 거야. 네가 무조건 참고 노력할 필요는 없어. 다만 엄마가 너에게 바라는 것은, 그 친구를 적어도 싫어하거나 미워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이야”라고 진지하게 말해준다. 그러면 아이가 그 친구를 조금 덜 힘들어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장애를 가진 친구’를 말할 때, ‘나와 다른 어려움이 있는 친구’라고 한다. 우리는 그런 친구를 말해줄 때, 애써 도움이 필요한 친구, 아픈 친구, 좀 모자란 아이, 돌봐주어야 할 대상, 장애우라는 말들을 쓴다. 그런데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이미 그 친구를 내 아이와 평등한 관계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주면 아이는 그 친구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키가 유난히 작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큰 사람도 있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못하는 사람도 있다. 화를 잘 참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사람은 다 다르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어려움 또한 다 다르다. 그 어려움이 조금 더 강하고 많아서 더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을 가지고 있든, 그 강도가 어떠하든 그들도 우리와 똑같다. 아이에게도 장애가 있는 친구를 이렇게 설명해줘야 한다. 장애를 가진 친구는 나와 가지고 있는 어려움의 종류가 다른 것뿐이라고.



 다 양보하고 받아주라는 것은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줘도 좋고 싫으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줘도 된다. 그래야 아이가 그 친구를 편안하게 ‘우리 반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아이가 그 친구와 놀 수 없어서 불편하다고 하면, “너, 너희 반 아이들이랑 다 친하고 다 잘 놀아?”라고 물어준다. 대부분 아니다. “그 친구도 그런 거야. 다른 친구랑 똑같아. 그 친구랑 놀고 싶으면 노는 것이고 놀기 싫은 날은 안 놀아도 좋아. 그렇다고 그 친구를 따돌리면 안 되는 거지. 같이 살아가는 거야.”

좀 큰 아이들에게는 이런 얘기도 해준다. “모기가 옮기는 지카 바이러스 알지?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머리가 작게 태어난 아이는 생각하는 것이나 공부하는 것이 좀 어려울 수 있어. 그런데 그건 그 아이 잘못이 아니잖아. 얼마나 억울하겠니? 이건 누가 잘났고 못났고 노력하고 노력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야.”



더 큰 아이에게는 “예기치 않게 사고가 많이 나잖아. 사람은 어려움이 없다가 생기기도 해. 어제까지는 멀쩡했지만 다칠 수도 있는 거야. 어려움이 있건 없건 모든 인간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라고 말해준다. 

장애를 가진 친구를 이해하고 돕도록 하는 교육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사람은 모두 각기 다른 어려움을 갖고 있으며, 어떤 종류의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건 하늘 아래 모두 평등하며, 서로 존중하며 어울려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가치를 먼저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다.



2. [동아일보][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 토마토와 소스

한여름 날 오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는 하얀 설탕이 곱게 뿌려진 토마토 슬라이스를 준비해 주셨다. 촉촉하고 달콤했던 토마토는 그 시절 최고의 간식이었다. 내가 살던 오키나와는 2차 세계대전 말 전쟁의 후유증으로 모든 것이 넉넉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간 레스토랑에서 처음 먹어 보았던 오므라이스. 불룩한 모양에 빨간 토마토케첩으로 줄이 그려져 있고, 어느 나라인지도 모를 국기로 중앙을 장식한 요리는 황홀했다. 오므라이스가 오믈렛과 라이스의 합성어인지조차 모르는 나이였다.



식물학적으로 나눠 볼 때 토마토는 과일류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는 채소로 알고 있다. 1893년 미국 대법원에서 토마토가 과일이냐 채소냐를 놓고 싸움이 벌어졌는데 당시 토마토가 디저트가 아니라 요리의 재료로 주로 사용된다는 이유로 채소로 구분됐고 억울하지만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어린 시절 토마토를 마치 과일처럼 설탕 뿌려 내주었던 어머니는 토마토가 과일이라는 걸 아셨던 걸까. 하지만 그 시절 내가 먹었던 토마토는 싱싱한 야채 맛에 가까워 설탕의 달콤함만 기억나게 한다. 

우리가 먹는 토마토는 파란 상태로 따 진열대에서 숙성된 게 대부분이다. 제대로 익은 상태에서 딴 토마토는 풍기는 향부터 다르다. 생으로 먹든, 조리를 하든 최고의 식재료가 주는 맛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미각의 시작이다.

1975년 내가 처음 남미로 배낭여행 갔을 때였다. 콘 토르티야와 함께 먹은 토마토살사(다진 고수와 향신료, 양파와 라임주스를 짜 넣은 잘게 썬 토마토 요리)는 남미의 태양열을 흠뻑 맞은 것 같은 자연의 맛과 상큼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27세가 돼서야 제대로 된 토마토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그후 미국 뉴욕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시절, 주방은 전 세계에서 몰려온 요리사들로 북적였다. 보통 식당은 점심 서빙 시간이 끝나고 오후 3시쯤 직원 식사가 시작된다. 각국 요리사들이 한 번씩 돌아가며 준비하는 요리는 요리학교가 아닌 그들의 엄마나 할머니가 해주던 토속적인 요리가 대부분이었다. 때로는 손님들에게 나가는 요리를 제쳐두고 직원 식사에 더 열을 올리며 동지애를 키우고 주방에서 일하는 기쁨을 찾았다. 

특이한 소스나 맛있는 요리를 먹을 때에는 침을 튀기며 칭찬을 했다. 비위를 잘 맞춰 기분이 좋아지면 으쓱대며 자기 집안의 숨겨온 레시피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알게 된 레시피를 사용할 때면 요리했던 친구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비슷한 요리라도 만드는 개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완성되는 게 손맛이다. 나라와 지역에 따라 미트소스조차 다 다르다. 어떤 요리사는 고기 덩어리를 통으로 토마토소스에 넣고 3∼4시간 끓여 익힌 후 고기는 애피타이저로 먼저 꺼내 먹고 고기즙이 진하게 우러난 소스에 파스타를 넣는다. 이게 나폴리탄 토마토소스다. 다진 고기를 뭉치고 소스와 함께 맛을 낸 미트볼 파스타, 부스러기 고기조각을 손으로 다지고 익혀서 라사냐나 볼로녜세 파스타를 만들기도 한다. 

멕시코의 살사는 소스라는 뜻으로 여러 요리에 사용된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 생선, 여러 가지 주재료와 곁들어지는데 메인 요리뿐 아니라 아침식사로 달걀과 함께 곁들여지기도 한다. 토마토는 그 색이 강렬해 영화의 음식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특히 나는 ‘대부’라는 마피아 영화를 좋아하는데 영화 속에서 가족 식사를 준비하고 먹는 장면을 보면 우리 요리사들이 직원 식사를 준비할 때 “우리 엄마가 최고의 요리사”라고 자랑하며 흥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손에서 손으로 대를 이어 만들어진 토마토소스는 모든 세계 요리의 기본이고 중요한 소스의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인스턴트의 나라 미국에서는 케첩을 능가하는 토마토소스는 없다. 그들은 말한다. “맛이 없으면 케첩을 뿌려라”라고.



3. [동아일보][조경란의 사물 이야기] 탁상시계

사발시계라고 아시는지. 둥근 사발 모양의 탁상시계. 새해 첫날을 작업실 청소를 하면서 보냈다. 책장 먼지를 털고 마른 걸레로 책등도 문지르고, 그러다가 눈에 띄는 책들을 꺼내 몇 장씩 읽느라 시간을 다 보내버리고 말았지만. ‘방망이 깎던 노인’으로 잘 알려진 윤오영 선생 수필 ‘사발시계’도 오랜만에 읽었다.



‘철화로, 사발시계, 이것이 내가 갓 세간 나서 내 손으로 처음 장만한 세간이었다. 장롱 위의 똑딱똑딱 시계 소리를 들어가며 우리 젊은 내외는 철화로 가에서 밥을 먹었다. 새벽녘이면 따르릉 시계 소리에 아내는 부엌으로 나갔고 나는 비를 들고 마당으로 내려갔다’라고 시작하는. 

나는 아직 세간을 나 본 적은 없지만 이 작은 작업실을 얻게 되었을 때 꼭 그런 기분이 들었다. 처음 장만한 세간들은 책상과 의자. 그러곤 벽에 못을 치고 가느다란 괘종이 달린 시계 하나를 걸었다. 그래도 무엇인가 부족한 것 같아 테이블 위에 장만해 놓은 게 알람 기능이 있는 은색 탁상시계.

깨끗해진 책상 앞에 앉았다. 새 탁상달력을 놓고 나니 비로소 2017년이라는 게 실감 났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것일까 하는 진부한 말은 하지 않고 싶은데 그러기가 참 어렵다. 그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옛날 옛날에 시간을 피하는 데 자신이 가진 시간들을 다 쏟아부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구의 중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시간이 더디 흘러간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젊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은 산 위로, 더 높은 곳으로 집을 옮겼다. 그 높이가 지위의 상징이 되기도 했단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 ‘몇 초 빨리 늙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다행히 자신들이 왜 높은 데만 고집하고 있는지, 거기서 더 좋은 게 뭐가 있는지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 다시 평지에서 산책을 하고 미소 짓게 되었다. 그리고 차갑고 공기도 희박한 산꼭대기에 계속 남아 있던 사람들은 제대로 나이가 들기도 전에 앙상하게 늙어갔다는 이야기. 

과학자이자 작가인 앨런 라이트맨이 과학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시간의 유형에 관해 쓴 짧은 소설들 중 한 편이다. 그 책 ‘아인슈타인의 꿈’은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시간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시계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 이야기로 새버렸다. 가차 없이 또 한 해가 시작되었기 때문인가 보다. 그동안 어떤 시간을 살았나. 게으른 천성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매우 느리게라도 ‘오늘’에 성실하고 싶다. 작업실을 얻고 알맞은 자리에 시계들을 가져다 놓을 때의 첫 마음으로. 지금도 똑딱똑딱, 저 시간의 둥근 본질은 내일로 흐르는 데 있을 것이다. 아무려나 내가 알기로 분과 초가 생긴 것은 시계가 발명되고 난 후라고 한다.



4. [중앙일보][시선 2035]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지난해 한 달간 점심시간에 클래식 수업을 들었다. 토스카니니, 카라얀, 클라이버 등 대표 마에스트로들을 알아보는 수업이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일주일 중 하루 샌드위치를 먹으며 들은 강의였다.



당시 담당 출입처 관계자도 수업을 듣길래 반가움에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그의 수강 사실은 우리만 아는 암묵적 비밀에 부쳐졌다. 다른 관계자와 함께한 자리에서 ‘점심시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고 말을 꺼냈다가 그가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서다. 휴게시간인 점심시간에, 일주일 중 단 한 시간 듣는 수업을 그는 왜 숨기려 했을까.

궁금증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의 수강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대부분 “요새 일이 편한가 보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고 싶은 걸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대견해하는 선배도 있었지만 많지 않았다. 심지어 동기와 친구까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나도 안다. 이들도 우스갯소리로 건넨 말이다. 하지만 가치관은 원래 공론의 장에서 한 발언보다 말랑한 일상 속 농담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공사(公私)의 명확한 구분과 여유에 대한 반감을 스스로 확대재생산하고 있는지 모른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분한 키팅 선생은 시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 학생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다. 의학·법률·경제·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은 삶의 목적이다.”



우리는 어떤가.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채 하루를 견뎌 내고 있지 않을까. 이력서 ‘취미란’에 쓸 게 없다는 어른들의 숱한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일·가정 양립이 안 되면 출산율이 낮아진다는데, 일·자아 양립이 안 되는 우리는 무엇을 낮추고 있을까.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2017년에 주목해야 할 키워드 중 하나로 ‘욜로(YOLO)’를 꼽았다. ‘너는 인생을 단 한 번만 산다(You Only LiveOnce)’의 앞 글자를 딴 이 말은 ‘현재를 즐기라’는 의미쯤 된다. 지난해 유난히 유행했던 사축(社畜·회사의 가축)·직장살이·쉼포족 등 자조 섞인 신조어에 대한 답인 것 같아 반갑다.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다만 ‘나’부터 바뀌지 않으면 결국 바뀌지 않는다. 새해를 맞아 일상에 변화를 줘 보면 어떨까. 노래방 아닌 현실에서 ‘브라보 마이라이프’를 불러 보는 거다. 나는 1월부터 아내의 허락하에 주말 기타 강습을 받기로 했다. 숨은 여유를 찾아 뭔가 시작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1월이다.



5. [매일신문][매일춘추] 새날을 시작하며

새벽, 인적이 드문 언덕배기에 오른다. 어둠 속에서 바람이 분다. 소금기와 비린내가 서린, 섬(울릉도)에서 맞는 지극히 평범한 바람이다. 오래도록 동으로 트인 허공을 바라본다. 묵직하게 불어오는 저온의 바람을 맞으며 나는 해를 기다린다. 금방이라도 무엇인가가 툭 튀어오를 것만 같은 수평선을 따라, 날것의 붉은 기운이 얼비친다. 사위는 아직 어둑한데 아주 먼 곳에서부터 차분하게 밀려오는 아침놀은 숨이 막히도록 붉다.

해가 솟는다. 촘촘히 도열하는 빛이 눈부시다. 민낯을 물들이며 별 볼일 없는 무명의 한 사람을 도드라지게 비춘다. 까마득한 정적 속에 나는 혼자 서 있다. 온 세상이 질서 있게 눈을 뜬다. 주변 풍경이 선명해지고 새날을 맞는 섬 기슭 민가들이 두루두루 환하다. 빈부와 학식, 귀천의 차별 없이 상서로운 기운이 고르게 흩어진다. 무결하고 복된 새해 맞으라는 덕담들이 금빛 윤슬이 되어 바다에서 섬으로, 섬에서 바다로 뻗어간다.

지난한 시간, 아쉬움은 뒤로하고 이제 우리 넉넉히 행복하였으면 좋겠다. 냉기에 온몸이 얼었다 한들, 매일 새날을 부여받으며 우리 이 땅 위에서 대대로 평온하지 않았던가. 사람과 풍경이 어우러져 대대로 이토록 고왔으리라. 이 밝은 빛을 위안 삼아 서로 등줄기 기대고 힘차게 힘차게 일어서던 우리. 새날의 아침을 맞는 이 땅의 민중들에게 빛은 참으로 공평하게 내린다. 질서 있게 세상을 비추는 이 평범한 빛들의 잔치, 남은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장엄한 희망이 되리라. 

처음이다, 이런 느낌. 평생 잊지 못할 굉장한 오늘이다. 녹록지 않았던 날들이 저만치 멀어진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뜨겁게 달아오른다. 처음처럼 설레고, 마지막인 것처럼 못내 아쉬운 아침이다. 숨이 멎을 만큼 열정적으로 달려들어 뒤 돌아보지 않는 나의 오늘이 웅장하게 시작되고 있다. 큰 밝음을 향해 새로운 미지를 향해 육중한 열정으로 내달리는 나의 오늘들이 더 이상 무의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올해는 내 삶에 꽤 괜찮은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새해를 빌려 가장 ‘나’다운 삶의 전환을 꿈꿔본다. 설레고 새롭고, 아침 해처럼 가장 말간 영혼의 소유자이고 싶었다. 몇 해를 돌고 돌아 다시 꿈을 꾼다. 어렸을 적 출발선에서 신호음을 기다리며 긴장하던 천진한 꼬마는 벌써 마흔이 되었다. 정유년 아침, 마흔의 나는 다시 꼬마가 되어 ‘처음’을 위한 엄숙한 의식을 마치고 언 땅을 밟고 조심스레 언덕을 내려간다.

치부까지도 다 묻어줄 것 같은 눈부심, 밝게 떠오른 빛을 보며 처음으로 따뜻해지고 싶은 욕망을 품는다. 내려오는 길은 꽁꽁 얼었으나 바람 하나 없이 지극히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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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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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해외서 체포된 정유라 강제송환 차질 없어야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덴마크에서 체포되면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에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정부 당국은 덴마크 쪽에 긴급 인도 요청을 통해 정씨를 하루빨리 귀국시키겠다는 움직임이다. 특검 수사가 한창이지만 정씨의 신병 확보가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던 게 사실이다. 뻔뻔하게 모르쇠로 일관하는 최씨의 태도에 어떻게든 변화의 조짐이 있을 거라는 점에서 정씨의 소환은 이래저래 숨통이 트이는 소식이다.

최근 정씨는 유럽 현지에서 변호사를 선임해 국내 송환이나 강제 수사에 대비하고 있다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영주권이 없는 데다 돈세탁 혐의로 현지 수사기관의 압박을 동시에 받고 있어 귀국 카드가 외통수일 수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정씨의 압송을 한시라도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정 농단의 시발점이자 최대 수혜자가 다름 아닌 그다. 이화여대 부정 입학으로 공정사회의 마지막 보루인 입시마저 의혹의 뻘밭으로 전락시킨 장본인이다.



입시 의혹 속에서도 “돈도 실력.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페이스북 글로 또래들을 좌절시킨 맹랑한 인물이기도 하다. 최씨의 변호인은 한때 그를 두고 “세상 풍파를 견딜 나이가 아니다”고 두둔했다. 이런 발언은 국민 분노에 오히려 불만 더 댕겼다.

국정을 농단하며 온갖 특혜를 받게 한 딸이 특검의 추궁을 받는 상황은 최씨에게는 치명적 아킬레스건이다. 정권 실세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설 같은 특혜를 챙겨 준 교수들의 파렴치 행태, 그들을 조종한 권력의 민낯은 속속들이 까발려져야 한다. 교육부 감사에서 고발 조치 등을 당하고서도 이대 교수들은 청문회에서 오리발만 내놓았다.



그뿐인가. 소설가로 이름 날리던 류철균(필명 이인화) 이대 교수의 몰락은 기가 찬다. 조교에게 정씨 이름으로 허위 답안지를 만들도록 협박해 구속까지 됐다. 권력이 촉수를 뻗친 자리가 얼마나 기괴한 모습으로 일그러질 수 있는지 두말 필요없는 사례를 남긴 셈이다.

그러나 정씨가 즉시 송환될지는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정부는 덴마크 정부와 빈틈없는 공조로 정씨가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최씨가 해외에 은닉한 재산이 어마어마해 수조원대가 넘는다는 일부 보도도 있었다. 최씨 모녀의 불법적인 재산 형성과 입시 부정 등은 그들의 입을 통해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2. 박 대통령, 헌재·특검에서 숨김 없이 진실 밝히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 간담회가 국민을 분노케 한다. 비밀 작전처럼 전격적으로 이뤄진 지난 1일 청와대 출입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는 물론 세월호 7시간, 미르·K재단 불법 모금 등 제기된 각종 범죄 혐의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국회 탄핵소추안 처리 이후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박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됐는지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박 대통령은 자신의 혐의와 의혹을 해명하고 변호할 권리가 있다. 또 억울한 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회 탄핵소추안에 적시된 13개의 헌법·법률 위반은 물론 그동안 수사에서 드러난 사실조차도 모두 부인했다. 삼성 합병 지원 의혹에 대해 “완전히 엮은 것”이라며 특검을 비난했고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통령의 지시’로 각종 불법에 개입했다는 당사자 진술조차도 부정했다.



심지어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해서도 “공모하거나 봐준 일이 없다”고까지 했다. ‘대통령으로서 철학과 소신을 갖고 국정을 운영해 왔다’는 발언은 통치 행위를 앞세워 불법과 탈법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이런 모습은 국민을 아연실색하게 한다.

이번 간담회가 부적절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정황에서 드러났다. 시기적으로 헌재의 탄핵 심판과 특검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혐의 사실을 부인하는 일방적인 간담회였다. 청와대 측은 촬영과 노트북 사용 등 언론의 핵심적 요소를 금지하는 조건으로 간담회 15분 전에 청와대 출입기자단에 통보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막고 유리한 내용만 국민에게 알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동시에 지지 세력을 결집해 특검과 헌재를 압박하려는 정치공학적 셈법이 숨어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청와대의 공식 조직을 지휘하거나 조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법률 규정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이런 맥락이다.

박 대통령도 억울한 점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럴수록 대통령으로서 당당하게 처신해야 한다. 검찰과 특검이 자신을 엮어 누명을 씌웠다면 헌재에 출석하거나 특검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소명하면 될 일이다. 탄핵 심판의 당사자인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세 차례나 거부한 채 스스로 국가 통치 시스템을 무력화하면서 언론을 이용해 항변하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처사다.



3. 차기 대통령의 최고 덕목은 ‘소통과 통합’

새해 벽두부터 19대 대통령 선거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높다. 본래는 12월에 치러질 대선이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리를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서는 상반기 중으로 실시될 가능성도 크다. 여러 언론도 조기 대선을 고려해 연말연시에 대선과 관련한 여론조사를 쏟아냈다. 눈길이 먼저 가는 것은 역시 가상 대결 지지도에서 누가 1위이고 누가 2위를 차지했느냐일 것이다.

하지만 놓쳐서도 잊어서도 안 될 것은 향후 5년간 중차대한 국정을 이끌어 갈 지도자의 덕목이다. 서울신문이 전국의 남녀 1009명을 대상으로 지난 연말 실시한 여론조사(2017년 1월 2일자 보도)를 보면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덕목 1위로는 ‘소통 및 사회통합 능력’(34.3%)이 꼽혔다. 연합뉴스와 KBS의 여론조사에도 응답자의 41.0%가 ‘민주적 소통 리더십’을 차기 대통령에게 필요한 자질이라고 답했다. 소통은 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국정 농단 사태를 야기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돼 온 불통(不通)의 반대 개념이다.



박 대통령의 불통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각 부처의 장관들과 대면 보고를 기피하는 불통의 자세가 급기야는 탄핵 사유의 하나가 된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낳았다. 청와대의 수석들은 물론이고 비서실장조차도 제대로 대면 보고를 할 수 없었다니 국민은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국민과의 간접 소통이기도 한 기자회견조차 취임 후 서너 차례밖에 하지 않았다.



불통의 정치는 결국 비선 실세를 키우고, 그 비선 실세가 국정을 좌지우지하게 만들어 대한민국의 국격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게 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국민의 마음은 내 고통을 살피고 헤아리는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과거 대선을 보면 대통령의 덕목도 시대적 변천을 보였는데, 15대 때는 ‘신뢰성’이 으뜸으로 꼽히는가 하면 17대 때에는 ‘경제발전 능력’이 최우선으로 꼽혔다. 소통과 통합이 최고의 덕목이 된 것은 18대 때부터다. 이념 갈등, 세대 갈등, 지역 갈등, 소득격차 갈등 등 한국 사회에 내재화한 크고 작은 갈등이 분출한 것이 지난 대선이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고, 공존과 상생의 문화를 정착시킨다”는 취지로 국민대통합위원회를 만들었지만 국민통합위가 갈등을 조정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탐욕에 찬 강남 아줌마 최순실과 그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과 기업의 승마 훈련 지원 등에서 우리 사회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을 뿐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2강을 비롯한 대선의 유력 주자들이 지금 대선 대장정의 출발선에 섰다. 앞서 지적한 ‘소통과 통합’이란 미완의 시대적 소명은 물론 ‘청렴성’, ‘경제 활성화 능력’, ‘외교·안보·통일 능력’도 주요한 덕목으로 국민이 생각한다는 점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이데일리]

4. AI 인체감염 가능성 정말 없는 건가

고양이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된 사례가 확인됐다. 사람에게도 전염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최근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타났다는 소식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출현한 H5N6형 AI에 감염돼 10명이 숨졌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인체 감염 가능성을 마냥 배제할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최근 경기 포천의 한 가정집에서 발견된 고양이 2마리의 사체에서 H5N6형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이 바로 엊그제의 일이다. 당국은 일단 조류→고양이→사람으로까지 연쇄 감염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판단이다. 세계적으로 H5형 바이러스가 고양이에게서 인체로 감염된 사례는 단 1건도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문제의 고양이와 접촉했던 12명도 아직까지 모두 이상 반응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유전자 유형은 한국 것(H5N6)과 달랐지만 지난달 미국에서 한 수의사가 고양이로부터 H7N2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특히 국내에서 이번에 처음 발견된 H5N6형은 이전의 H5N8형보다 병원성이 강력하다는 점에서 인체 감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실제 H5N6형은 2014년부터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유행하며 지금까지 중국에서 17명이 감염돼 10명이 숨졌다. 불안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나치게 공포에 떨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 분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닭·오리 등 가금류 외에 사람이 AI에 걸린 적은 없다. 중국의 AI 사망자들의 경우 대부분 농가의 불결한 위생 상태와 미흡한 예방조치 등이 원인이라고 한다. 중국과 사육 환경이 다르고 상대적으로 방역 체계가 잘 갖춰진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인의 인체감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특히 H5N6형은 유전자 변이가 심하다는 게 문제다. AI 초동 대처의 실패를 거울삼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방역에 철저를 기함으로써 인체 감염 우려에 대한 불안을 불식해야 한다. 자칫 낙관하고 소홀히 대처하다가 뒤늦게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진정 기미를 보이는 AI 사태가 다시 확산될 가능성에도 대비하길 바란다.



5. ‘새판을 짜라’는 국민의 요구 새겨야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 사회의 골격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에게 위임된 국가 최고 권력이 자기통제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끝내 탄핵 사태까지 이른 데 대한 반사적인 교훈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물론 각 부처나 정부 산하기관의 고위 관계자들이 권력농단에 가세했고, 기업들은 꼼짝없이 끌려다녀야 했다. 심지어 진리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조차 무분별한 전횡이 꿈틀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본지가 새해 들어 ‘대한민국 새판을 짜라, 체인지 코리아’ 연중기획을 시작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구석구석 은폐돼 있는 구태를 바로잡지 않고는 결코 도약할 수 없다는 반성의 공감대가 폭넓게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도약은커녕 그동안 이룩해 놓은 모든 성과들이 자칫 일순간에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엄습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대통령이 공조직을 제쳐놓고 비선실세를 동원해 국정을 주무르고 있었는데도 아무런 견제기능이 작동하지 못했다. 경우는 약간씩 다를지언정 역대 정부에서 거의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탄핵 사태는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나 다름없다. 여야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민의를 대표한다고 하면서 기득권 지키기에 더 관심을 쏟고 있으며, 불법 정치자금 물의가 끊이지 않는다.

올해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개헌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 그런 때문이다. 무소불위한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한편 국회를 포함한 정치권과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새로 골격을 짜야 한다. 대선에 앞당겨 개헌을 실시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다음 대통령 임기 중에는 개헌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언제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고 내다보기 어렵다.

기업에 있어서는 오너들이 마음대로 자금을 빼낼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역대 정권에서 위기를 초래했던 각종 ‘게이트’가 기업 비자금과 관련돼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각 분야별로 자율성 보장과 동시에 스스로 비리를 척결할 수 있는 방안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시간적 여유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다. 더 늦어지기 전에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새판을 짜야만 한다.



[매일신문]

6. 어두운 새해 지역 경제 전망, 혁신`경쟁력으로 뛰어넘자

대구와 경북 각 기관단체와 기업이 2일 시무식을 갖고 새해 업무를 시작했다. 해마다 희망찬 새해를 입에 올리지만 올해는 정치`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희망 섞인 전망을 찾기 힘들만큼 가라앉는 분위기다. “1997년 IMF 금융 위기에 버금가는 경제 위기를 맞닥뜨릴 수 있다”는 비관적인 진단까지 더해지면서 새해 초부터 550만 대구경북민 어깨가 움츠러들고 민생 불안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올 한 해 대구경북이 처한 경제 여건과 환경을 아무리 따져봐도 지난해보다 더 나을 것 같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수출 감소와 소비 부진 등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금리`환율 등 대외 변수도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그만큼 지역의 미래와 지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비례해 지역 경제 활성화와 민생 안정 대책을 놓고 지방정부의 강한 리더십을 촉구하는 여론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듯 대구시와 경북도는 올해 경제 화두로 청년 일자리와 미래 성장 동력 확충을 꼽았다. 권영진 시장과 김관용 도지사는 신년사에서 ‘청년 시대’와 ‘지역 미래성장 산업육성’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약점과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 않는다면 민생 불안과 지역사회 위축이 심화될 것이라는 진단에서다. 하지만 말만으로는 현실을 뒤집을 수 없다. 시`도정 최고책임자가 앞장서고 2만 공무원과 기업, 시도민 모두가 재창조의 각오로 힘을 보태야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지역 발전과 경제 성장의 핵심 관건은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다. 대구는 역점사업인 물`의료`에너지 등 친환경 첨단산업 구조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경북도 탄소섬유`스마트기기`백신 등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준비와 기반 마련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한다.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렵다고 우리 앞에 놓인 가시밭길을 훌쩍 뛰어넘을 방도는 없다. 걸림돌을 하나씩 걷어내고 한 걸음씩 전진한다면 길이 보이고 미래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올 한 해 이런 마음가짐으로 지역 발전과 경제 활력 찾기에 매순간 최선을 다하기를 당부한다.



7. 초·중·고생 독감 대유행…방학 중 학원에서도 전염 예방 힘써야

초`중`고생 사이에 독감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7~18세 층이 전체 독감 환자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초`중`고생의 발병률이 매우 높다. 초`중`고생은 밀집한 공간에서 생활해 전염 확률이 높고, 영유아`노인층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예방접종을 소홀히 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각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 그나마 전염 확률이 현저하게 낮아졌지만, 학생들이 몰리는 학원, 공공장소에서의 전염 가능성은 여전히 높아 우려스럽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8~24일의 독감 의심 환자는 외래환자 1천 명당 86.2명이고 이 가운데 초`중`고생(7~18세)은 외래환자 1천 명당 195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3년 독감 표본감시 체계가 정비된 이후 최고치다.



대구시교육청이 지난 한 달 동안 집계한 독감 의심 학생 수가 1만6천344명에 달했다고 하니 유행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방학 직전 대구시내 초`중`고교에는 한 반에 서너 명씩 독감에 걸려 수업에 빠졌을 정도였다.



방학 기간 중에는 아이들이 많이 찾는 학원, 공공장소에서의 전염 우려가 높지만, 별다른 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학원 특성상 학교와는 달리 독감 환자의 출입을 제지하거나 격리할 방법이 없어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화장실에 손 씻는 세정제는 물론이고 비누조차 비치하지 않거나, 위생이나 독감 예방을 위한 인식조차 없는 학원이 수두룩하다. 이 때문에 학원을 두고 ‘감염 사각지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차원의 대책이라고는 지난달 28일 ‘인플루엔자 예방 국민행동요령’을 학원, 교습소 등 7천500곳에 배포한 것이 고작이다. 교육청은 학원에 독감 감염자 수를 확인하거나 강제로 학원 운영을 막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학생 스스로 개인위생에 힘쓰면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밖에 없다. 미리 예방접종을 받거나 자주 30초 손 씻기를 하는 것이 우선이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는 것도 확실한 예방법이다. 학원에서도 아이들의 전염을 막기 위해 예방교육을 하고, 손 씻기를 권장하는 교육에 힘써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8. AI 방역 실패와 계란 대란

이번 AI 대란이 최악인 이유는 컨트롤타워 부재로 인해 초동 대응도 실패하고 농가의 방역도 허술해졌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 간의 불협화음으로 AI 확진 판정을 위해 소요되는 시간이 늘어진 것도, 농가에서 사용한 소독약이 맹탕이나 다름없는 불량 소독약이라는 점도, 사료 차량과 달걀 운반 차량이 전파의 매개체가 되었을 것이라는 검토 의견도, 살처분 물량이 폭주함에 따라 묻을 땅과 소각시설이 부족하여 지역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현장 증언도 문제의 원인을 이해하는 단서들이다.

계란 파동이 현실화되자 AI는 경제난의 첫 신호탄이 되었다.



이번에 살처분된 가금류 중 닭이 80%를 차지하고, 알 낳는 닭인 산란계는 30%에 해당한다. 달걀 품귀현상은 예정되어 있었다. 달걀 1판의 전국 평균 소매가는 47.5% 인상되었고, 달걀 유통업체의 10%가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 주부들은 명절 차례상을. 제과제빵 업계는 물량 확보를 걱정한다.



한 달 만에 전국 닭·오리 취급점에서는 평균 매출이 54.8%나 감소했다. 현재 국내 닭의 14%, 오리 25%가 살처분으로 사라졌고 앞으로 5000만 마리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 정부와 농가의 직접 손실은 8573억원, 육가공업과 음식업 등 간접 손실은 1조4769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도 보고되었다.



[매일경제]

9. 한국 경제 회복에 5년 이상 걸린다는 LG경제硏 경고

매일경제신문과 LG경제연구원은 지난해 말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경제 인식 조사를 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2017년 한국 경제가 작년보다 더 나빠질 거라는 응답이 64%나 된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거라는 전망은 7%가 채 안 된다.



올해 경제가 현상 유지에 그치거나 더 나빠질 것으로 보는 871명에게 경제가 언제쯤 회복될 것으로 보느냐고 물어보니 더욱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경제가 회복되는 데 5년 넘게 걸릴 것이라는 응답이 52%에 달했다. 1~2년 안에 회복될 수 있으리라고 보는 이들은 열 명 중 한 명에 그쳤다. 국민 대다수는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다.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정부 목표치(2.6%)에 이른다 하더라도 한국 경제는 3년 내리 2%대 저성장을 기록하게 된다. 2012년부터 성장률이 3%를 웃돈 적은 2014년 한 차례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지금 같은 저성장이 5년 넘게 이어진다면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일본식 장기 불황의 어두운 터널에서 헤매게 된다는 이야기다. 역대 최악의 경제 성적표를 낸 현 정부에 이어 차기 정부까지 이런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경제 개발이 시작된 후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잃어버린 10년을 겪을 수밖에 없다.

경제는 소비하고 투자하는 이들의 심리에 크게 좌우된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 중 40%는 올해 소비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장기 불황에 대비해 허리띠를 졸라매려는 것이다. 한국 경제에 대한 암울한 전망은 실제로 소비와 투자를 얼어붙게 하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수 있다. 대다수 국민이 한국 경제의 잃어버린 10년을 걱정하고 있다면 실제로 그와 같은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더 늦기 전에 각 경제 주체들이 한국 경제의 회복력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특히 정치적 혼란과 생산가능인구 감소, 신성장동력 부재가 경제 회복의 걸림돌로 꼽혔는데 이는 정부와 정치권이 함께 근원 처방을 마련해야 할 사안들이다.



10. 국민이 원하는 개헌, 정치권은 응답하라

2017년을 맞아 언론이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 기대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 매일경제와 MBN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여론은 76%에 달했다. 

새해엔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든 안 되든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된다.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만 하면 국가는 환골탈태하고 우리가 노출해온 문제점들은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인가? 개헌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법치국가다. 대통령은 헌법이 정한 법률과 절차 내에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그 헌법이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개정된 이후 30년째 그대로다. 급변하는 외교·안보정세와 경제·기술 환경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이 헌법으로 대통령 6명을 뽑았는데 그때마다 권력 집중과 부정부패로 제왕적 대통령제 한계를 노출해왔다.



헌법을 개정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수정하자는 데 찬성하는 의견이 반대보다 2배 이상 높게 나타난 여론조사 결과가 그에 대한 민심을 보여준다. 다만 개헌 시기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데 이는 정치권에 대한 신뢰 부족 탓이라고 본다. 대통령 4년 중임제, 내각제 등을 놓고 정치권이 대타협을 이룰 수 있겠느냐는 의심에서부터 정계 개편을 통해 대선 판을 흔들려 한다는 의구심까지 깔려 있는 탓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987년 헌법은 기본권 조항부터 개정해야 한다며 개헌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다음 정부 초기에 개헌하면 된다"고 하는데 모든 일은 그 시기가 중요하다고 본다. 국가 백년대계를 결정하는 큰 그림은 지금처럼 국민적 에너지가 결집된 기회에 그려야 한다. 국회가 지난 연말 헌법개정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는데 말싸움만 지속할 것이 아니라 이제 대한민국의 갈 길과 국정운영 새 틀을 하루빨리 국민들 앞에 내놓아야 한다.



대학 교수들은 2016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君舟民水(군주민수)'를 꼽았다. '민심은 강물과도 같아서 화가 나면 배나 정권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국정농단 게이트에 성난 민심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도록 거세게 끓어오른 상황을 표현했겠지만 정치권은 개헌에 대해서도 '군주민수'의 교훈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중앙일보][삶의 향기] 웃긴 이야기를 해 봐

서울에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유학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았고 아이가 젖먹이였다. 주변에서 여러 사람이 애써 도와준다고는 해도 늘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심각하게 피곤했다.

어느 날 영어 면접 준비를 위해 다니던 어학원의 영국인 강사가 나에게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 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웃기는 이야기라고는 정말이지 단 한 가지도 떠오르지 않는 거다. 그날 신문에서 틀림없이 뭔가 유머 비슷한 것을 읽은 것 같은데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잠시 보고 있던 강사는 저런 요구를 들었을 때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도 생각해 내지 못한다면 면접관이 나를 너무 심각한 사람으로 볼 거라고 했다. 유머 감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는 나는 지쳐 있는 사람이었던 거다. 웃기는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걸 기억해서 이야기하기에도 너무나 지치고 피곤한 사람.

서로를 늘 보다시피 한국 사람들은 매우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심지어는 화난 것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저렇게 다들 딱딱한 얼굴들을 하고 있는 와중에 영국식으로 미소를 띠고 눈인사라도 하면 이건 약간 정신이 멀쩡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겠구나 싶을 정도다. 모르는 사람과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 같은 것은 더구나 찾아보기 어렵다. 서로 할 말만 하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 하물며 발을 밟거나 부딪쳤을 때 미안하다거나, 문을 잡아 주거나 자리를 양보했을 때 고맙다거나 하는 등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말도 하지 않으니 말해 무엇하겠나.

나는 이 역시 서울의 사람들이 지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입도 떼기 싫을 정도로 지쳐 있는 게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들이 미처 내리기도 전에 더구나 옆 사람들을 밀치며 뛰어 들어가 잽싸게 자리를 차지하고 잠을 자 버리는 지하철 풍경이 있을 수 있겠는가. 길기로 유명한 한국의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위며 게다가 통근 시간의 경우 OECD 국가 26곳 평균의 2배가 넘는다. 몸과 마음이 지치는 것도 당연하다.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휴가 때 잠시 서울에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는데 한 역에서 누군가 때문에 지하철 문을 닫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다른 역보다 오래 정차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거 내리세요!” 하는 긴박한 안내방송이 들렸다. 또다시 “내리세요!” 하는 외침이 들리더니 지하철 문이 닫힘과 동시에 “저걸 콱 그냥…” 하고 말하는 소리가 아무런 여과 없이 지하철 내에 울려퍼졌다. 얼결에 험한 언사를 듣고 말았다. ‘저걸’ 콱 그냥 어쩌겠다는 말인지. 그러나 사고가 발생하거나 운행 지연이 되는 경우 기관사가 겪을 고생을 생각해 보면 이런 상황에서 여유 있는 태도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유머는 언감생심이고 말이다.

그래도 영국에서라면 저 상황에서 썰렁한 유머를 하나 구사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차 출발해야 하니까 산타한테 태워 달라고 하라거나 하는 식의 농담. 생각해 보면 영국도 몇 년 사이에 매우 분위기가 삭막해졌다. 모르는 사이에 당연히 던지는 아침 인사나 마치 아는 사이처럼 농담 섞은 수다를 한참 떨다가 각자 갈 길 가는 풍경들이 그리 썩 흔한 것은 아니게 되었다. 여기고 저기고 다들 점점 고되어 가는 일상뿐 아니라 넘쳐나는 온갖 좋지 않은 뉴스 때문에도 지쳐 가는 것이리라.

하지만 힘든 때일수록 일상 속 작은 웃음은 큰 힘이 될 수 있다. 주위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스스로에게도 말이다. 시스템이 당장 바뀔 것을 기대할 수 없으니 더 그렇다. 평생 온갖 고난을 다 겪은 간디는 “유머 감각이 없었더라면 나는 진작 자살했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새해 인사로 가벼운 유머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남들의 유머에 친절히 웃어 주기만 해도 좋을 것이다.



2. [동아일보][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52>첫날, 처음을 떠올리며

어떤 사건은 한 사람의 운명 전체를 지배하기도 합니다. 1925년 9월 프리다 칼로(1907∼1954)가 당한 대형 교통사고가 그러했지요. 전교생 중 여학생이 30여 명에 불과했던 멕시코의 명문 국립예비학교에 다닐 때 일이었습니다.

비극적 사고로 건강뿐 아니라 미래도 타격을 입었습니다. 의사를 꿈꿨던 소녀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습니다. 영민함과 발랄함으로 반짝였던 삶은 이제 과거일 뿐입니다. 이런 딸을 바라보는 부모 또한 상심이 컸겠지요. 하지만 이들은 한숨을 거두고 딸에게 미술 도구를 마련해 주고 침대 천장에 거울도 달아 주었습니다. 미술은 이렇게 불쑥 낯선 손님처럼 소녀를 찾아왔습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혼자 그리던 소녀는 평생 55점의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자화상 속 화가는 자주 상처받은 모습입니다. 가시 목걸이를 한 채 피를 흘리기도 하고, 가위로 긴 머리를 자르며 혼란스러워하기도 합니다. 9개 화살이 몸통 이곳저곳에 꽂혀 있기도 하고, 보조기로 간신히 몸을 지탱한 채 울기도 합니다. 남편의 외도와 아이 유산, 32차례의 대수술과 오른쪽 다리 절단 등 고통스러운 현실을 반영한 자화상들이었지요. 그런데 좀 예외적인 자화상이 있습니다.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입니다. 버거운 삶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림 속 창백한 낯빛과 붉은 포도주빛 의상을 걸친 화가는 우아합니다. 가늘고 긴 목과 얇은 드레스 아래 몸매도 매력적입니다. 그림은 사고가 난 다음 해에 제작되었습니다. 사랑이 식어버린 남자친구에게 애절한 연애편지와 함께 전해줄 목적이었지요. 고혹적인 자화상 선물로 떠나가는 사랑을 붙잡고자 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첫 자화상이어서일까요. 화가 특유의 개성적 표현은 다소 흐릿합니다. 그 대신 자신이 존경했던 르네상스 미술가 보티첼리의 영향이 살짝 엿보입니다. 풋풋한 시절의 사랑이어서일까요. 관계 지속을 위한 태도도 세련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마침내 실패한 사랑을 위해 처음 완성한 화가의 자화상이 저는 참 좋습니다.

어수룩해 허술함과 속마음을 들키기 일쑤였던 제 인생의 첫날들과 닮아서겠지요. 대부분의 투박함과 어설픔에서만 확인 가능한 진심과 순수가 느껴져서겠지요. 새해 아침, 강렬함과 강인함으로 회자되는 화가 자화상 중 대표작보다 첫 작품이 기분 좋게 떠올랐습니다.



3.  [연합뉴스][윤고은의 참새방앗간] 조지 마이클도, 레아 공주도 안녕

"송구영신"의 계절이지만, 언제 이별해도 아쉬운 것은 있다. 2016년의 끝자락에 우리 곁을 떠난 팝스타 조지 마이클과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는 많은 이들에게 유년과 청춘의 동의어로 기억된다. 1970~80년대를 상징하는 이들이 잇따라 세상을 뜨면서 한 시대가 저물었음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알렸다.



조지 마이클이 몸 담았던 왬(Wham)의 '라스트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 뮤직비디오를 보면 그 촌스러운 패션에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웨이크 미 업 비포 유 고고'(Wake me up before you go go) 뮤비의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 내용에는 폭소가 계속 터져 나온다.

이들 뮤비는 당시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음을 떠올리게 하면서 우리를 추억 속으로 이끈다. 아무리 유행은 돌고 돌고, 복고풍이 심심치 않게 인기를 끈다지만 우리가 그 시절 왬의 뮤비 속 모습을 따라 할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지 마이클과 왬이 남긴 많은 명곡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현재형으로 사랑받고 있고, 앞으로도 스테디셀러의 위용을 자랑하며 후배 가수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스타워즈' 4~6편에서 레아 공주를 연기한 캐리 피셔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보무도 당당한 생명 연장 행진과 함께 우리의 영원한 레아 공주가 됐다. 

레아 공주는 1977~1983년에 개봉한 '스타워즈' 4~6편에서는 젊고 앳된 모습으로, 2015년 개봉한 '스타워즈' 7편에서는 환갑을 앞둔 노년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최근 전세계에서 개봉한 '스타워즈' 시리즈의 번외편 '로그 원:스타워즈 스토리'의 마지막에는 젊은 시절의 레아 공주가 CG로 등장한다. 예고도 없이(?) 불쑥 커다란 화면에 등장하는 앳된 레아 공주의 모습에 반가움이 절로 솟는다.

내년에 개봉할 '스타워즈' 8편에서는 다시 노년의 레아 공주가 나온다고 한다. 캐리 피셔가 '스타워즈' 8편을 유작으로 남기고 떠나는 것이다. 

이렇듯 40년에 걸친 세월 동안 SF 영화의 고전이자, 최신작으로 군림해온 '스타워즈' 시리즈 덕에 레아 공주는, 캐리 피셔는 수많은 스타워즈 팬들의 가슴에 반짝이는 아이콘으로 새겨졌다. 

이제 조지 마이클도, 레아 공주도 '안녕(goodbye)'이다. 하지만 이들이 남긴 노래와 영화는 내일도 '안녕(hello)'일 것이다.
최근 전세계에서 개봉한 '스타워즈' 시리즈의 번외편 '로그 원:스타워즈 스토리'의 마지막에는 젊은 시절의 레아 공주가 CG로 등장한다. 예고도 없이(?) 불쑥 커다란 화면에 등장하는 앳된 레아 공주의 모습에 반가움이 절로 솟는다.

내년에 개봉할 '스타워즈' 8편에서는 다시 노년의 레아 공주가 나온다고 한다. 캐리 피셔가 '스타워즈' 8편을 유작으로 남기고 떠나는 것이다. 

이렇듯 40년에 걸친 세월 동안 SF 영화의 고전이자, 최신작으로 군림해온 '스타워즈' 시리즈 덕에 레아 공주는, 캐리 피셔는 수많은 스타워즈 팬들의 가슴에 반짝이는 아이콘으로 새겨졌다. 

이제 조지 마이클도, 레아 공주도 '안녕(goodbye)'이다. 하지만 이들이 남긴 노래와 영화는 내일도 '안녕(hello)'일 것이다.



4. [동아일보][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 안전문과 사갈

‘안전문이 열립니다.’ 

2016년 마지막 날, 잊고 살던 산을 찾아가던 중 전철 안에서 들려온 안내방송이다.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와 같은 국적 불명의 안내 방송에 거북해하던 터라 귀가 번쩍 뜨였다.

‘안전문.’ 승강장과 전동차가 다니는 선로 사이를 차단하는 문이다. 평상시에는 닫혀 있어 승객이 선로에 떨어지는 사고를 막아준다. 이 낱말, 국립국어원이 2004년 스크린도어를 순화한 것이다. 뜻이 분명하고 친근감을 줘서인지 요즘 들어 입길에 부쩍 오르내린다. 허나 아직까지 표제어에 오르진 못했다. 

눈 덮인 겨울 산을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얼음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아이젠’을 등산화 밑에 덧신었다. 등산객이라면 누구나 알 만큼 친숙한 용구인 아이젠은 실은 우리말 ‘사갈’을 사전 속에 박제화한 주범이다. 그래서일까. 독일어 아이젠(Eisen)을 우리말로 그대로 읽은 이 낱말을 대할 때면 스크린도어와 입말 경쟁 중인 안전문이 떠오른다. 

사갈이라고 하면 흔히 뱀과 전갈을 아울러 이르는 사갈(蛇蝎)을 떠올릴 것이다. 남을 해치거나 심한 혐오감을 주는 사람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 말이다. ‘사갈시하다’도 그렇다. 어떤 대상을 몹시 싫어하는 걸 말한다.

하지만 순우리말 사갈은 뜻이 전혀 다르다. ‘산을 오를 때나 눈길을 걸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굽에 못을 박은 나막신’ 또는 ‘눈이나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굵은 철사 같은 것으로 뾰족하게 만들어 끝이 땅에 박히도록 만든 것’이다.

사갈의 뜻풀이를 보고 설피(雪皮)를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것이다. 설피는 산간 지대에서 눈에 빠지지 않도록 신 바닥에 대는 넓적한 덧신을 말한다. 칡이나 새끼 따위로 얽어서 만든다. 또 있다. 얼음이나 눈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 바닥에 박는 뾰족한 징은 ‘재리’다. 

당장 아이젠 대신 사갈을 쓰자고 주장하는 건 물론 아니다. 말이라는 건 언중들에게 한번 잊히면 되살리기가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언중의 말 씀씀이에 힘입어 ‘인터체인지’와 ‘IC’가 ‘나들목’으로, ‘휴게소’가 ‘쉼터’로 바뀐 것이 이를 증명한다.

붉은 닭의 해, 정유년(丁酉年)이 밝았다. 새해에는 안전문이 표제어로 오르고, 사전 속에 갇혀 있는 사갈 같은 순우리말들이 힘찬 기지개를 켜며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5. [한국일보][기억할오늘] 미니크레이그

미국 정치인 미니 D. 크레이그(Minnie D. Craig, 1883~1966)가 1933년 1월 3일 여성 최초로 주 하원 대변인으로 선출됐다. 그는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 지 3년 뒤인 1923년 노스다코다 주 하원의원에 당선돼 39년까지 16년간 연임했다.

그는 탁월한 입법가이자 전투력 있는 정치인으로서 큰 인기를 누렸다. 1927년 보도된 바 그는 “모든 요소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펴 파악한 뒤 동료 의원 누군가가 주제넘게 나설 경우 즉각 반격할 태세를 갖춰, 위협적인 시선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하곤 했다”고 한다. 

메인주에서 태어난 그는 뉴잉글랜드 뮤직컨서바토리를 졸업한 뒤 교사로 일하다 1908년 은행가 에드워드 크레이그(Edward Craig)와 결혼하면서 노스다코다 에스먼드로 이주했다. 부부는 사회당 계열의 초당파농민동맹(NPL, Non PartisanLeague) 당원이었고, 미니는 맹렬한 페미니스트였다. 그는 초당파농민동맹 노스다코다주 의장 등을 지내며 자신의 정치 경력을 관리하는 한편 다른 여성들의 정치 활동을 격려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그가 했다는 말이다. 

“정치는 여성이 활약하기에 적합한 거대한 장이다. 여성이 정치를 하려면 가부장적 남편 앞에서 약한 척하는 습관은 버려야 한다. 남성들은 여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여성을 덜 지적인 존재로 여기며, 우리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무해하고 쓸모 없는 듯 존재할 때 더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여성은 남성이 지니지 못한 특별한 재능이 있다. 예컨대 여성은 (남성들은 지니지 못한) 섬세한 면까지 챙기는 능력이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파이를 만들거나 바느질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재능과 훈련 덕에 여성은 정치를 남자들보다 훨씬 잘 해낼 수 있다.”일반화할 수 있는 주장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는 동료 남성 정치인들을 압도했던 듯하다. 그 결과가 33년 미국 대의정치 역사상 첫 여성 대변인 피선이었다. 

그는 39년까지 의회 내 요직을 두루 거쳤고, 공황기 연방 위기관리위원회 주 행정관으로도 활약한 뒤 1966년 7월 2일 별세했다. 유엔이 ‘국제여성의 해’로 선포한 1975년, 노스다코다 주는 미니 크레이그를 추모하고 업적을 기리는 성대한 행사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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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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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1. 새해 첫날부터 국민 분노 지수 높인 박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인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 인사회를 갖고 자신에 대한 혐의와 의혹들을 전면 부인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9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이후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이날은 작심한 듯 모든 의혹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가장 중점적으로 해명한 것은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대해서다. “그날 일정이 없어서 관저에서 일을 챙기고 있었다”며 “정상적으로 계속 보고 받으면서 체크하고 있었다”고 했다. 사건 당시 대통령으로서 할 일을 다했다는데도 ‘밀회를 했다’ ‘굿을 했다’ 등의 온갖 소문이 돌더니 급기야‘성형 수술’ 의혹이 제기됐다며 기막혀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임기응변식 대응으로만 일관해 ‘7시간’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때 머리 손질에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 못했으면서도 대통령으로서 할 일 다 했다고 강변하는 것은 정말 염치없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을 둘러싼 뇌물죄 의혹, 최순실씨의 각종 이권개입에 대해서도 “공모나 누구 봐주기 위해 한 일은 손톱만큼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미르ㆍ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 역시 문화융성이나 창조경제를 위한 정부 시책에 기업이 공감해 자발적으로 동참했다는 식으로 비켜갔다. “나를 완전히 엮은 것”이라고도 했다. 관련 혐의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 메모 등 객관적 증거와 뚜렷한 정황 등으로 뒷받침되는 것을 무시한 억지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건 국정농단의 장본인으로 지목되어온 최순실씨에 대한 변명이다. 최씨를 “몇 십 년 된 지인”이라면서 “그렇다고 지인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 않나”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에 비춰 최씨는 결코 단순한 지인이 아니었다. 그가 국정을 좌지우지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 국민들을 참담하고 분노하게 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몰려나오게 만든 것은 바로 최씨의 국정농단이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서 가려질 리 없다. 박 대통령은 반성하고 자숙하면서 특검의 수사와 헌재의 판단을 기다리는 게 옳다.



[중앙일보]

2. 국민 분노에 불지른 대통령 신년 간담회

박근혜 대통령의 1일 청와대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는 여전히 민심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현실 인식을 보여줬다. 임기를 끝까지 채우고 싶다는 오기만 부렸다. 탄핵안 가결 이후 누그러질 조짐을 보여온 국민의 분노에 새해 벽두부터 기름을 부은 것이나 다름없다.

탄핵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이 불과 23일 만에 공개일정을 가진 것부터 부적절했다. 더욱 우려되는 건 박 대통령이 간담회에서 드러낸 상황 인식이다. 진정성 있는 반성은커녕 모든 의혹에 변명과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인(私人) 최순실과 한 몸이 돼 국정을 농단한 의혹에 대해 “최와 공모하거나 봐준 일은 손톱만큼도 없다”며 부인했다. 삼성 합병 지원 의혹에 대해선 “완전히 엮은 것”이라며 특검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청와대 지시로 한 일”이라 증언했는데도 무조건 아니라고 잡아뗀 것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도 “모르는 일”, 차은택씨의 인사개입 의혹엔 “누구와 친하다고 누구 봐줘야 되겠다고 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나 정황은 제시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 농단 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검찰·특검·국회·헌재의 출석요구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그래 놓고 돌연 ‘3금(촬영·노트북·메모 금지)’을 조건으로 기자 간담회를 자청했다. 불리한 보도는 막고, 하고 싶은 말만 퍼지게 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가 묻어난다. 나아가 특검과 헌재를 압박해 탄핵을 기각시키고, 임기를 채우겠다는 속내가 엿보인다면 과장일까.

박 대통령은 26년 만의 보수여당 분열에 대해 “말하기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자신의 실정으로 보수가 추락한 데 대한 책임론을 피하려고 말을 자른 듯하다. 세월호 7시간 동안 ‘관저에 외부인이 들어왔다’는 의혹에도 “기억을 더듬어보니”라는 표현을 쓰며 부인했다. 자신의 해명을 뒤집는 증언이 나올 가능성에 대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느낌이다. 이런 식의 해명을 진정성 있다고 믿어주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박 대통령의 인식이 이런 수준이니 새누리당 친박 지도부가 민심에 아랑곳없이 버티기로 일관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1일 인적 청산 범위에 대해 “언론에서 보도되듯 확대된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본인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어 사회봉사를 10시간 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국정 농단을 묵인·방조한 책임이 큰 여당의 지도자가 ‘봉사 10시간’으로 때우고 가겠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인적 청산의 ‘범위’가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면 ‘리셋 코리아’의 주도권은 야권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지금 박 대통령이 할 일은 기자들의 펜과 카메라를 뺏은 뒤 자기변호를 위한 간담회를 여는 것이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새누리당을 떠나 당과 국회가 개혁될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국정 농단의 오점을 조금이나마 씻고 국민의 용서를 구할 여지가 생길 것이다.



3. 올해도 핵 위협과 대남 선동에 골몰하는 김정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초부터 핵카드로 협박하고 나와 걱정이다. 김 위원장은 어제 육성으로 읽은 신년사에서 “지난해에 (북한이) 동방의 핵강국으로 솟구쳐 올랐다”며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는 “적들(한국과 미국)의 무분별한 침략과 전쟁도발 책동을 단호히 짓부시자”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과 선제공격 능력을 계속 강화해나갈 것”이라며 위협했다.



김 위원장의 올해 신년사는 예년보다 노골적이다. 그는 지난해 신년사에서는 ‘남북관계 개선도 적극 추진’이란 표현으로 우리를 안심시켰다가 닷새 만에 4차 핵실험을 기습적으로 실시했다. 일종의 기만책이었다. 북한은 지난해 5차 핵실험까지 강행해 이제 핵무기 실전배치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처음부터 강경하게 나왔다. 문제는 그의 정세 오판이다. 그릇된 자신감에 찬 김 위원장의 목소리가 올해 또다시 북한의 군사도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신년사에서 미국에 대한 대결적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미국을 타격 목표로 하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준비사업이 마감(완료) 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북한은 ICBM을 개발하면 미국과의 군축협상 카드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앞으로 북한의 ICBM 시험 발사 때마다 ‘미국 최우선’을 모토로 하는 미 트럼프 행정부의 거센 저항에 부딪힐 게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김 위원장은 섣불리 위험을 자초하지 않도록 도발을 자제하고 핵을 포기하기 바란다.

북한의 신년사는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대한 시각에서도 시대착오적이다. 촛불집회가 새로운 민주정치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인데도 김 위원장은 “반인민정책, 사대매국, 동족대결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라고 왜곡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 민족적 투쟁을 벌여야 한다”며 우리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

올해 김 위원장의 신년사는 공격적이며 심상치 않다. 우리 정치권과 군 당국은 대화 창구는 열어두되 핵을 앞세운 북한의 협박과 선동에 비상하게 대처하기 바란다.



[매일신문]

4. 세밑 한파 녹인 영천 10억원 장학금 익명 기부

경북 영천시가 지난 2002년부터 시작해 2020년까지 조성하기로 한 영천시장학금 200억원 목표를 지난해 달성했다. 매년 10억5천여만원씩 19년을 모으면 2020년까지 이뤄지지만 계획보다 3년 앞당겨 목표를 채웠다. 이번 일은 몰래 지난해 두 차례 8억원을 장학금으로 전달한 의(義)로운 한 남매 가족의 기부로 가능했다.



이번 기부는 세밑 한파를 녹이고 어두운 연말 정국에 빛난 촛불같이 밝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부 주인공인 조(曺) 씨 3남매는 지난 2015년 10월 장학기금 10억원을 기탁하기로 뜻을 모으고 지난해 4월 5억원을 전달하고 12월에 3억원을 맡겼다. 올 상반기에 나머지 2억원마저 내놓기로 했다. 영천의 단일 기부로는 최고지만 이들 남매는 이름조차 밝히지 말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이들의 조용한 기부도 관심이지만 얽힌 사연은 더욱 그렇다. 이들 기부에는 3남매 중 먼저 떠난 누나의 ‘사람이 태어나서 세상에 좋은 일 하고 가자’는 생전 결의와 함께 영천시의 고마움을 갚는 보은의 뜻이 서려 있어서다. 바로 400년 전, 임진왜란 때 유배에서 풀려나 의병을 모아 왜적 토벌에 나선 선조 조호익(曺好益)을 모신 도잠서원을 시에서 관리하며 보살핀 데 대한 감사의 정성을 담은 탓이다.



대가를 바라거나 널리 알리는 일이 흔한 요즘 보기 드문 기부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공적 있는 옛 사람을 마땅히 관리하는 행정 당국에 보은까지 했으니 특별한 기부임이 틀림없다. 기탁자도 조상 이름으로 대신하면서 선조를 다시 드러냄과 함께 영천의 옛 인물 선양사업까지 빛냈으니 명분과 실리가 맞는 새로운 기부다. 남은 일은 3남매는 물론 수많은 기탁자의 뜻을 제대로 살린 장학금 운영이다. 이는 당국의 몫인 만큼 영천시는 되새겨야 한다.



5. 미래 전기차 도시 대구, 충전소 확보에 달렸다

대구시가 내년에 전기차 2천400대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는 정부가 내년에 우리나라 전체에 공급하겠다는 전기차 1만4천 대 보급 목표의 17%에 이르는 규모다. 이를 위해 대구시는 새해 전기차 보조금을 전기승용차는 2천만원, 전기화물차는 2천200만원으로 올린다. 친환경 자동차는 세계적 추세인 만큼 대구를 친환경 전기차 도시의 이미지로 바꿔나간다는 전략은 긍정적이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 수소전지차, 하이브리드카 등 친환경 자동차 중심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특히 전기자동차에 대한 선호는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할 정도로 폭발적이다. 유럽에서는 아예 가솔린 자동차를 금지하자는 논의가 시작됐을 정도로 전기차에 대한 선호도가 급증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15년 말 전 세계 전기자동차 보급 대수는 처음으로 100만 대를 넘어 126만 대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올 들어 이런 추세는 더욱 강화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전기차는 충전소 부족, 오랜 충전 시간, 비싼 가격 등 상용화에 많은 걸림돌을 안고 있다. 대구시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야심찬 전기차 보급 계획이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환경부는 올해 국내에 1만 대의 전기차 공급 목표를 세웠지만 12월 8일 현재 보급된 전기차는 4천622대에 불과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지난해 2천821대에 대비해선 64% 증가한 것이다.



미래 전기차 도시를 꿈꾼다면 걸림돌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야 한다. 가솔린 차량에 비해 비싼 가격은 보조금 지급으로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충전 시간 단축은 국가와 업체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대구시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할 우선 과제는 충전소의 확대 보급이다. 일반 주유소는 곳곳에 널려 있지만 전기차 충전소는 찾기 어렵다. 시는 내년에 171기의 충전기를 확대한다지만 이 계획이 실현되더라도 충분하지 않다.



충전에 장시간이 소요되는데다 충전할 곳이 마땅찮으면 전기차는 계륵이 되기 쉽다. 전기차를 구입한 사람들이 충전할 곳이 마땅찮아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면 더 이상 확대 보급도 어렵다. 미래 전기자동차 선도 도시를 노리는 대구의 계획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대구시는 전기차 충전소 확보에 ‘미래 전기자동차 선도 도시’라는 대구시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한국경제]

6. 경제적 자유가 죽고 있다…한국 위기의 본질이다

2017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새 아침이지만 한가한 덕담이나, 무책임한 낙관론을 말할 수는 없다. 올 한 해 대한민국은 어떤 비전과 어떤 희망으로 재도약과 회생의 발판을 마련해낼 것인가. 미국과 일본은 벌써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낙관론으로의 전환점을 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 비관론의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 광장의 한쪽을 채운 비판의 촛불도, 광장의 또 다른 쪽을 채우기 시작한 반론의 태극기도 절망과 위기감을 노래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치적 격돌이 국민을 분열시키는 가운데 경제 분야에서는 더욱 음습한 곰팡이처럼 비관론이 번져나가고 있다.

정치가 폭발하고 광장의 여론이 드높아질수록 법치와 경제적 자유는 필연적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것이 우리 시대에 던져진 질문의 요체다. 자유민주의 헌법 정신에 부합하고 창의적 시장시스템을 존중하는 본질적 의미의 ‘경제할 자유’는 도처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그게 우리가 새롭게 맞은 2017년 앞에 던져진 진정한 위기다.



19대에 이어 지난해 출범한 20대 국회가 제안·제정한 입법 대부분은 경제적 간섭과 사회주의적 입법으로 도배질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를 살리는 자유의 입법은 한 건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할 정도다. 시장거래를 착취요 죄악으로 보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기업경영의 손발을 다 묶은 채 무방비로 한국 대표기업을 헤지펀드 먹잇감으로 내던지자는 공정거래법과 상법 개정안이 다 그렇다. 경제 문제를 넘어 개인의 일상사까지 법으로 일일이 규정하겠다는 김영란법도 그렇다. 법정까지 대중의 눈치를 살피는 반(反)자유주의적 기류는 이제 사법부에서도 만성적인 현상이 됐다.

정치권의 반시장적 좌경화 경쟁은 자유의 가치가 무너져 내리는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자유경제원과 한경이 공동 분석한 소위 대선 주자들의 이념성향을 보면 이런 현상은 더욱 극명하다. 자천타천 16명의 후보 중 무려 12명이 좌파 또는 중도좌파다(본지 2016년 12월31일자 A6면 참조). 그나마 스스로 우파라고 외치는 4명도 결국 중도우파 정도로 매겨질 뿐 자유의 가치를 중시하는 정통 우파라고 볼 만한 인물은 없다. ‘사회적 경제’ ‘재벌개혁’ ‘증세’를 내세우며 새누리당에서 분당한 ‘개혁보수신당’조차 버젓이 보수라고 외치니 자유는 이미 잊혀지거나 사라진 것은 아닌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이런 정치판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청사진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의 헛된 망상처럼 돼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슬프게도 ‘2017년 한국 이데올로기’다. 우리는 이 사실을 차마 부인할 수 없다.

표만 되면 어떤 레토릭도 불사하는 것 또한 한국적 정치 전통이라 하겠지만, 최근의 좌편향은 그 정도가 심각하다. 10년째 국민소득 2만달러대의 늪에서 탈출해 4만~5만달러에 도달하려면 그에 맞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아비투스(habitus)가 절실하지만 한국 사회는 2만달러의 아비투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회와 거리의 대중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오히려 5000달러의 퇴행적 아비투스로 되돌아가려는 판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의 결과는 단순히 국정의 중단이나 파행이 아니었다. 광장의 정치는 그것이 우익적인 것이든, 좌익적인 것이든 필연적으로 반자유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2017년은 그런 집단적 광기와 격정을 억누르고 이성과 합리, 개인주의와 법치에 기반한 진정한 자유를 조금이라도 회복하느냐가 한국 민주주의의 시금석이 될 수밖에 없다. 법치가 아니라 광장을 민주주의라고 우기는 거리의 선동가들이 정치를 장악하는 한 미래는 절망적이다.

새해 아침이다. 자유를 향한 위대한 노정의 새 출발을 결심할 때다. 다가오는 대선도 자유냐, 반자유냐의 싸움이 될 것이다. 자유의 반대편에 있는 포퓰리즘은 그럴싸한 레토릭으로 전환기적 불안심리를 한껏 자극해갈 것이다. ‘포용 성장’도, ‘공정 경제’도, ‘빈부격차 완화’도 충분한 성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어떤 나라도 가난의 질곡 속에서 민주주의와 사회발전과 균형성장을 달성하고 있는 나라는 단연코 없다. 그런 것은 환상이다. 후진적 농업사회는 결국 계급사회로 우리를 인도해갈 뿐이다. 충분히 성숙한 산업사회도 경제적 자유 없이는 불가능하다. 경제적 자유가 풍전등화로 벼랑 끝에 내몰린다는 것, 그것이 한국 위기의 본질이다. 자유를 향한 투쟁의 깃발을 올려야 할 때다.



[이데일리]

7.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시름과 격정 속에서 새해를 맞는다. 정유년(丁酉年)의 새 아침이다. 오늘의 태양이 어제나 그제와 다를 바 없건만 시간의 분절(分節)로 인한 새로운 출발선 위에 선 것이다. 각 개인과 가정, 기업에 있어서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다시 한 해의 여정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이 아침, 조용히 옷깃을 여미고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새해엔 과연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또 무사히 헤쳐나갈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분노와 좌절로 얼룩졌던 지난 달력을 떼어내고 새해 달력을 거는 마음은 이렇듯 염려가 앞선다. 새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왜 없으련만 국내외 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엄혹하기 때문이다. 

우리 내부의 정치 일정을 떠올리기에도 숨이 벅찰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국정농단 탄핵심리가 새해 벽두부터 시작되며, 그 결과에 따라 조기 대선도 치러야 한다. 국회의 개헌 논의도 대선 일정과 맞물려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게 틀림없다. 가히 대한민국의 명운이 달린 한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다음 대통령만큼은 제대로 뽑아야 한다.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국정 혼란이 잘못된 정치 리더십에서 비롯됐음을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선실세를 동원해 기업과 공조직을 주무른 처사는 국정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희망을 여지없이 날려 버렸다. 이 기회에 국민 위에 전횡하는 제왕적 리더십을 근절하고 국민과 더불어 소통하고 호흡할 수 있는 민주적 리더십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일반 유권자들의 시민의식이 크게 높아졌다는 점이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든 참가자들이 보여준 질서의식이 그것이다. 수많은 인파가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으로 시위를 끝냈다는 한 가지만으로도 과거의 혼란 양상과 뚜렷이 대비된다. 이처럼 성숙한 시민의식이 다가오는 대선에서는 물론 우리의 고질적인 정치 풍토를 바로잡는 토양이 되기를 기대한다.

당장 시급한 것은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문제다. 이미 경제가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들어 생산·소비·수출이 동반 위축되고 있다. 기업 투자도 주춤한 상태여서 청년 일자리 창출은 물론 전반적인 고용시장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 미국의 금리인상 움직임은 또 다른 불안 요인이다.

그런데도 탄핵 사태의 여파로 국정공백이 이어지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조류인플루엔자의 초동 대처에 실패함으로써 ‘계란 파동’이 확대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정책을 추진하는 위아래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부가 새해 예산을 조속히 집행하는 방법으로 경기에 군불을 지피겠다고 하지만 과연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지레 걱정되는 것이 그런 때문이다.

대외적인 여건도 불확실성을 더해가는 중이다. 브렉시트 결정에 이어 미국 트럼프 정권의 등장으로 국제정세가 혼란을 겪고 있다. 사드 배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등 국내 정세에 미칠 파장이 작지 않은데도 우리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조만간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감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처럼 새해를 맞는 여건은 오히려 비관적 상황에 더 가깝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눈보라 속에서도 보리싹이 돋아나듯이 스스로 새해의 희망을 싹틔워야 한다.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고 새벽길을 떠나는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8. 새누리당, 인적쇄신 없이는 미래도 없다

새누리당이 신년 벽두부터 당내 쇄신을 둘러싼 심각한 내분에 휩싸였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친박계’를 겨냥해 꺼내든 인적청산 카드로 인해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한다. ‘비박계’의 집단 탈당으로 가라앉는 듯했던 갈등이 재연된 셈이다. 새누리당이 그동안 집권당으로서 보여줬던 일련의 무책임한 행태에 비춰 응분의 정상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 비대위원장의 추진 방향이 전적으로 옳다. 새누리당이 다시 국민들의 지지를 얻으려면 신뢰를 회복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가 있는 사람들 스스로 거취를 표명하는 게 먼저다. 당과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으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한 사람들과 지난해 4·13총선 당시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당사자들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인 비대위원장이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대상자가 어떤 사람들인지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친박계 맏형 노릇을 해 온 서청원 의원과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최경환 의원, 청와대 정무·홍보수석을 지낸 이정현 전 대표 등이 지목된다. 당사자들이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려는 것이냐”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지만 자신들의 처신에 대해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기회에 박 대통령의 탈당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미 탄핵추진 논의가 나돌 때 본인 스스로 결단했어야 할 문제다. 더구나 헌법재판소의 탄핵심리가 진행되는 상황인데다 탈당·분당으로 새누리당이 소수당으로 전락한 만큼 이제 집권당으로서의 의미도 퇴색한 마당이다. 아울러 이명박 전 대통령이 조만간 새누리당을 탈당키로 했다는 발표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을 위해서라기보다 정치인들 자신의 기득권을 위한 정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새누리당의 쇄신 논의가 내분에 부딪친 것도 그러한 풍토에서 비롯된다. 새누리당이 쇄신을 하든 말든 전적으로 내부 구성원들이 결정할 문제다. 하지만 인적청산 결과가 유권자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할 경우 다음 선거에서 더욱 처절한 절패감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9. 치졸하고 무례한 중국의 ‘사드 보복’

중국이 한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을 한층 노골화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한국의 3개 항공사가 신청한 1월 중 중국~한국행 8개 노선의 전세기 운항을 뚜렷한 이유 없이 불허했다. 우리 정부에 전세기 운항을 신청했던 중국 항공사들도 신청을 갑자기 철회했다고 한다. 1~2월은 국내 관광업계가 ‘중국 특수’를 누리는 춘제(春節·설) 기간이다. 중국 당국이 전세기 운항을 불허해 유커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사드 흔들기에 나선 조치라고 간주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사드 반대’ 압박은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이 사드 배치를 결정한 지난해 7월 이후 덤핑규제 강화 등 한국 기업 및 제품에 대한 압박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한류를 제한하는 한한령(限韓令)에다 롯데그룹의 중국내 매장과 공장에 대한 세무조사 등 직접 제재도 가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달 자국 여행사들에 대해 한국행 여행객 수를 20% 줄이라는 구두 지침을 내린 데 이은 이번 전세기 불허 조치는 그 연장선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의 안보문제를 민간교류와 경제를 무기로 보복하는 치졸한 행태다. 

더 나아가 외교적 결례도 서슴지 않는 게 중국이다. 중국 천하이(陳海)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이 지난주 우리 정부와 협의 없이 방한해 여야 정치인들과 중국 진출 대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사드 배치 반대’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 그것이다. 우리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입국해서는 국론 분열을 획책하고 다닌 것이다. 김장수 주중 대사의 중국의 한국 여행 제한, 한류 제한조치 등과 관련한 면담 요청에는 한 달 넘게 답이 없는 상태다. 한국을 깔보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외교적 무례요 오만이다. 

사드 배치는 북한 핵 위협에 노출돼 있는 한국의 안보를 위한 자위 조치다. 중국이 현재 남중국해 영유권이나 대만 관련 문제를 ‘핵심 이익’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외교 현안을 민간 교류나 경제 제재를 통해 보복하려는 움직임은 옳지 않다. 더구나 경제 교류는 상호이익을 위한 것이다. 한국 기업과 한국 제품에 대한 압박과 제재는 중국 기업에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대국으로 대접받으려면 대국답게 처신하는 것이 마땅하다. 중국은 치졸하고 무례한 사드 보복 조치를 당장 중지하기 바란다.



[연합뉴스]

10. 1천만 명 넘긴 '촛불'과 법치주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불이 붙은 '촛불집회' 참가 인원이 구랍 31일 10차 집회로 1천만 명을 넘어섰다. 서울 808만, 지방 195만 등 연인원 1천3만여 명이 촛불을 들었다고 이 집회를 조직해온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측이 밝혔다. 대한민국 역사상 단일 사안을 놓고 벌어진 최대 규모의 연속집회라고 한다. 지금의 헌법체제를 만들어낸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연인원이 적게는 300만 명, 많게는 500만 명이었다고 한다. 이번 촛불집회의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최순실 씨 등 박근혜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국정 농단에 분노한 촛불은 두 달 남짓한 기간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수많은 촛불로 모아진 열기 속에서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박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됐으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체제가 들어섰다.



국정 농단의 중심에 있는 최순실 씨는 물론 청와대의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과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광고감독 차은택 씨 등 조력자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최 씨에 대한 의혹 등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도 전례 없는 기개와 속도로 주목받고 있다. 특검팀은 여러 의혹이 쏠려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자택을 전격 압수수색하는 등 출발부터 과거 특검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서울의 광화문 광장 등 전국 주요 도심에서 벌어진 촛불집회는 폭력과 충돌을 극도로 자제했다는 점에서 집회 문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시민들이 망가진 민주주의를 대규모 집회로 바로잡았다"(AP통신)와 유사한 외국 언론의 호평도 이어졌다. 특히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많을 때 170만 명(주최측 추산)이 모였으나 걱정할 만한 물리적 충돌은 한 건도 없었다. 처음 몇 차례 집회에서 과격한 일부 참가자들이 어린 의경들에게 폭력을 쓰려 하는 장면이 TV화면에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다수의 평화적 참가자들이 즉각 제동을 걸어 불미스러운 충돌 상황까지 가지 않았다.



오히려 집회 횟수가 늘어나면서 분노의 기운이 점차 줄어들고 집회를 즐기려는 분위기가 고조됐다. 특히 7차부터 10차까지는 폭죽이 등장할 정도로 축제장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한다. 매주 집회 현장에서 록콘서트 등 대규모 공연이 이어지고 '만두노총' '한국곰국학회' 같은 유쾌한 풍자도 속속 등장했다. 평화적인 일반 참가자들이 늘면서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집회장소에 나온 부모들도 적잖게 눈에 띄었다. 이런 시민들에게 촛불집회는 더이상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는 민주주의 교육현장이었다. 법원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100m 앞까지 대규모 시위대 접근을 허용한 것도 '평화를 중시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보수·진보 양 진영이 집회 규모로 세를 과시하면서 보혁 갈등이 급격히 고조될 조짐을 보인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보수 단체들의 '맞불 집회'가 커지고 있다. 구랍 31일에는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주최 측 추산 72만여 명(최대운집 시 경찰추산 2만5천명) 모였다. 아직 진보 진영이 주도하는 광화문 집회(주최 측 100만. 경찰 6만5천)에는 미치지 못하나 일방적으로 밀리던 초중반과는 판이하다. 만에 하나라도 물리적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양측 모두 최대한 자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헌법재판소 앞에서 집회를 벌이는 것은 보수든 진보든 모두 지양해야 한다.



헌재는 이제 막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본격적인 심리 절차에 착수했다. 헌재를 겨냥한 시위는 어떤 형태로든 재판부를 압박할 수 있다. 이번 촛불집회는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됐다.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민주주주 수호의 최후 보루가 '법치주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좋은 대학

수시 합격자 발표가 지난주로 끝나고 지금 정시 원서 접수가 한창이다.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자신의 수능 점수로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원서 접수 상황을 보면서 눈치를 보는데, 요즘은 점수가 많이 남더라도 자기가 생각하는 ‘좋은’ 대학을 가려고 하는 것도 하나의 흐름으로 정착되고 있다.



여기서 따옴표를 친 ‘좋은’은 같은 말이지만 의미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앞의 ‘좋다’는 대상이 다른 것과 비교해서 수준이 높거나 가치가 있는 경우를 뜻하는 것이다. 이때 대학의 좋고 나쁨의 기준은 입시 기관들에서 내놓는 배치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사람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학부모나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학생들은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이런 주문처럼 외우는 대학 서열을 대학의 좋고 나쁨의 기준으로 생각한다. 학벌주의가 우리 사회를 불공정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내세울 것이 학벌밖에 없는 사람들은 그런 비교에 집착을 한다.



이에 비해 뒤의 ‘좋다’는 대상의 성질이나 내용 따위가 보통 이상의 수준이어서 만족할 만한 경우를 뜻하는 것이다. 이때 대학의 좋고 나쁨의 기준은 직접 대학에 가서 교수들의 수업을 듣고, 다른 학생들과 교류하고 생활하면서 자기가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지잡대라고 비하해도 대학 공부를 재미있어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대학은 자기가 있는 대학이 된다.


올해 구미에 있는 4년제 대학 입시 설명회에 갔더니 학교 홍보물에 우리 학교 출신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고등학교 시절 아주 착실하고 나름 열심히 하는데도 성적이 잘 안 나와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렇지만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명문대에 진학한 친구들보다도 먼저 취직해서인지 인물도 아주 훤해 보였다. 이 학생이 군대 가기 전 학교에 왔을 때 이야기가 전공 공부도 재미있고, 교수님들도 잘해 주셔서 아주 만족한다고 그랬었다. 이 학생에게 ‘좋은 대학’의 기준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남들과 비교해서나 자기 스스로 느끼기에나)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물론 위의 학생의 예는 특수한 경우고, 확률적으로 보면 남들이 보기에 ‘좋은 대학’이 학생들이 느끼기에 ‘좋은 대학’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은 대학에서 잘 가르쳐서라기보다는 학생들의 자존감이 높은 데서 생기는 영향이 크다. 고착화된 대학 서열이 없는 상태에서 교육력으로만 승부한다면 ‘좋은 대학’에 대한 순위는 지금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배치표의 상위권에 있는 대학은 너무 쉽고 안일한 방법으로 ‘좋은 대학’의 이름을 얻고 있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함께 가야 멀리 간다

군주민수(君舟民水). 전국의 교수들이 선택한 2016년을 가리키는 사자성어다.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 전국 각지 촛불집회의 열기로 뜨거웠던 2016년을 보내며 더욱 달아오른 새해를 맞고 있다. 아이에서 노인까지 수백만 명이 결집한 촛불집회는 평화적 연대를 통한 시민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음으로 서로 손을 잡아주자 모르쇠로 정치판을 뒤덮은 제로섬(zero-sum)의 모략을 넘어 나의 이득이 너에게도 이득이 되는 플러스섬(Plus-sum)의 협력과 공존이 자리를 밝혔다.



인문학 연구공동체 ‘수유너머’가 그러했듯이 책을 통해 서로 손을 잡아준 이들이 있으니 ‘출판연구 동행325’다. 지난해에는 전국에서 7천여 명이 모이는 ‘책 그리고 인문학’ 전국 책축제에 시민 부스를 열었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 방황하던 그들이 처음으로 글을 쓰고,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책 한 권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꿈으로 17명이 모여 만든 ‘따로 또 같이’를 시작으로 벌써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무것도 못 써요” 하던 사람들이 책을 쓰고 등단을 하고 출판사를 차리기도 했고, 그 미미한 출발이 40여 권이 넘는 책 출판으로 이어졌다.



과거를 돌아보면 매순간이 소중하고 그립다. 하지만 멋지게 성공한 사람들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아리고 아린 손가락들이다. 초등학교 4학년이 공부의 전부인, 아내의 암 투병에 눈물짓는, 언제나 낮은 곳으로 눈길을 돌리다 뇌경색을 맞은, 세 번의 낙상사고를 당한, 매번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는 초보 작가들이지만 누구의 아픔보다 덜하지 않은 아픔으로 책을 썼다.



죽기 전에 내 책 한 권 써보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 있어도 정작 한 줄도 못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엇이 문제일까? 가장 큰 걸림돌은 스스로 자신의 발목을 잡는 자존감이다. 걱정과 불안이 클수록 완벽하고자 하는 욕망은 더욱 커지고, 알을 깨고 나와 다른 세상을 볼 수 없게 한다.



사람들은 재능 없는 일에 섣불리 도전하지 않는다. 무엇에 도전하든, 이미 그 재능이 흐르고 있다. 멀리 가려거든 손잡고 함께 가라. 천천히 가든 빠르게 가든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함께 가야 멀리 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함께 걸어가겠다는 믿음을 주는 것, 그것이 서로의 불안을 잠재우고 그 믿음이 다시 부메랑이 되어 각자의 믿음을 일깨운다.



‘혼자만의 꿈도 함께라면 현실이 된다.’


3. [매경이코노미][HEALTH] 부정맥의 증상과 치료…이유없이 심장 ‘두근’대면 빨리 약물처방

추운 날씨에 돌연사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부정맥. 부정맥은 심장 박동이 정상을 벗어나 너무 느리거나 빠르거나 혹은 불규칙한 상태를 이르는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1분에 60번에서 100번 정도 뛰어야 정상 맥박으로 본다. 빠르게 달릴 때에는 그보다 훨씬 빨리 뛸 수 있고, 또 수면 상태에선 훨씬 느려질 수 있다. 하지만 부정맥 환자들은 가만히 있는 상태인데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호소한다. 

정보영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자다가 심장이 두근대서 깼다거나 계단을 내려가다 살짝만 헛디뎌도 심장이 쿵쾅거린다는 환자도 있다. 반대로 맥박이 느리게 뛰어 답답하고 어지러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달리기를 하면 맥박수가 올라가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아서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부정맥이 와서 실신 또는 급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부정맥 종류 중 가장 흔한 것은 ‘심방세동’이다. 심방세동은 심장 위쪽 부분을 뜻하는 심방에서 부정맥이 오면서 심장이 부르르 떨리는 것. 심방세동 환자 중에선 초기에는 증상을 느끼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모르고 방치했다 뇌졸중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드물게 ‘심실세동’이 생기는 환자도 있는데 심실세동은 심장 아랫부분인 심실에 부정맥 증상이 온 것이다. 심실세동은 부정맥 중에서도 특히나 치명적인 것으로 꼽힌다. 심실세동이 오면 급사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부정맥은 너무 덥거나 추울 때 발생 가능성이 증가하며 또 낮보다는 아침 시간, 특히 자고 일어났을 때 생기는 경우가 많다. 주로 고령일수록, 또 고혈압을 앓는다면 부정맥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정보영 교수는 “심실세동 환자들은 새벽에 증상이 나타나는 일이 많으며, 급사할 가능성이 높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몸속 교감신경이 활성화돼 부정맥이 오기 쉬운 상황이 된다. 부정맥은 기온으로 인한 혈관 수축이나 교감신경과 관련이 깊다”고 설명했다.

부정맥은 왜 생기는 것일까. 부정맥은 심장 속 수많은 심근 세포를 타고 흐르는 전기 자극이 갑자기 비정상적으로 흐르면서 발생한다. 정 교수는 “심장은 자율신경계의 분포상 1분에 60~100번 정도 뛰도록 만들어져 있다. 신경계에 이상이 생기거나 혹은 심장 내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부정맥이 나타난다. 갑자기 심장 일부가 막혀 전기가 흐르지 못하면 속도가 느려지고, 그때 전기가 회오리를 쳐 비정상적인 박동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정맥 치료는 초기 약할 때는 약물치료를, 약물로 개선되지 않을 때는 전기충격치료를 하게 된다. 그래도 재발하거나 악화되면 고주파도관절제술을 하게 된다. 고주파도관절제술은 심장에 가느다란 관을 넣은 후 고주파를 이용해 문제가 되는 세포를 지져 없애는 방법이다. 

“부정맥 치료를 위해 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부정맥 진단을 정확히 받은 후 약물치료를 시작하면, 이후 뇌졸중 등 위험한 합병증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질환 초기에는 대부분 후유증 없이 치료가 가능하다. 부정맥 예방을 위해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잘 조절하고 평소 잘 관리하면서 악화되기 전에 사전에 치료할 것을 권한다.”


4.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정명훈 일본서 뉴스타트하는 한국의 거장

2017년 정유년(丁酉年)이다. 클래식 음악계는 2017년에도 여러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그나마 방한할 스타 연주자와 연주팀이 예정돼 있어 위안이 된다. 2018년 베를린 필을 사임하는 사이먼 래틀이 마지막으로 베를린 필을 끌고 내한한다. 또 래틀의 뒤를 이을 키릴 페트렌코가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와 한국을 찾는다. 

이외에도 거장 지휘자들의 내한은 계속 이어진다. 다니엘 하딩, 엘리아후 인발, 필립 헤레베헤, 리카르도 무티, 발레리 게르기예프를 2017년에 만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이 거장들의 행렬 속에 정명훈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서울시향을 떠난 정명훈은 2016년 9월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명예음악감독(honorary music director)이 됐다. 

1911년 나고야에서 창단한 도쿄 필은 일본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오케스트라다. 명예음악감독은 오케스트라에 공적을 남긴 지휘자에게 부여하는 영예로운 직책. 도쿄 필 역사상 명예음악감독은 정명훈이 처음이다. 정명훈과 도쿄 필의 인연은 2001년 도쿄 필의 특별고문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정명훈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도쿄 필은 일본 교향악계의 상징이었던 NHK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인기를 뛰어넘었다. ‘일본 지휘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오자와 세이지의 인기를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 

당초 도쿄 필은 2016년을 끝으로 서울시향 예술감독을 사임한 정명훈을 음악감독으로 초빙하려 했다. 하지만 정명훈이 “너무나 큰 책임이 따르는 음악감독은 맡고 싶지 않다”고 거절해 명예음악감독으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함상으로는 명예직이지만 현재 예술감독·상임지휘자가 없는 이 오케스트라의 사정상 정명훈은 도쿄 필 실질적인 최고 사령탑이다. 

문제는 서울시향 사태 후 그를 붙잡은 것이 도쿄 필이었다는 점. 한편으론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한 정명훈의 마음이 읽혀지기도 하고.

탱고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이쯤에서 떠오르는 건 그래서일까? 그는 오늘날 조국 아르헨티나의 탱고 음악을 전 세계가 사랑하는 음악으로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작 조국은 그가 펼치는 탱고를 그리 반가워하지 않았다. 결국 피아졸라는 조국을 떠나 먼 이국땅을 떠돌며 조국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서울시향 문제로 한참 시끄러울 때 정명훈은 기자들 앞에서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했다. 하지만 ‘음악밖에 모른다’는 마에스트로와 ‘음악 외의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기자들 사이에서 ‘트로이메라이’의 선율은 먼지처럼 흩어져버렸다. 

아시아가 배출한 2인의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오자와 세이지. 세이지의 조국 일본에서도 정명훈은 일본의 지휘자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정명훈을 그의 조국 한국은 언제쯤 불러줄 수 있을까. 그가 도쿄 필보다는 한국의 오케스트라, 일본 음악계 발전보다는 한국 음악 발전에 더 집중했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 건 하릴없는 욕심일까? 음악평론가인 필자로서는 새해 첫머리 가장 먼저 생각하는 염원이다. 그가 지휘하는 말러와 베토벤, 헝가리 무곡을 자주 한국 무대에서 만나기를 고대하며.


5. [경향신문][산책자] 가난한 마음

몇 년 전 경북 청도 운문사에서 하룻밤을 지낸 적이 있다. 비구니 절로 유명한 운문사이지만 여러 칸의 객방이 따로 있어서 가끔은 남자 손님도 재워준다. 절 사진을 찍느라 거기 오래 묵고 있는 작가를 만나러 갔던 건데, 그는 앉은뱅이책상과 조그만 반닫이 하나가 있는 방에서 조촐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아무런 장식도 기물도 없이 텅 빈 그 방은 얼마나 고졸하던지!


그 겨울밤 우리는 둘이 누우면 꽉 차는 방에서 창호 두 짝을 통해 쏟아지는 별을 보며 자연과 인간과 세상살이를 밤새 이야기했다. 그 뒤로 절에 갈 때마다 나는 대웅전, 극락전 같은 웅장한 공간보다 ‘요사채’라 부르는 승방을 기웃거리곤 한다. 대개는 나 같은 잡인들이 얼씬 못하게 닫혀 있지만 텅 빈 수도의 공간을 훔쳐보는 건 남모를 즐거움이다.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에 가면 ‘홀로코스트 타워’라는 공간이 있다. 차디찬 콘크리트 벽과 캄캄한 어둠에 갇혀 있는 그 방은 방형(方形)이 아닌 날카로운 예각으로 모서리를 만들어 공간에 들어선 사람을 몸서리치게 한다. 나는 일부러 그 공간에 오래 머물러 보았다. 뾰족하게 이어진 천장에서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이 전부인 공간은 참혹했고, 마치 실존의 극한에 선 듯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인간의 날 것 같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화려한 대웅전보다 담백고졸한 승방을 더 좋아한다고 했지만, 같은 이유로 나는 절보다 서원이 좋다. 무소유를 말하는 사찰이 우습게도 금칠한 불상과 화려한 기물들로 사람들의 복락을 비는 데 몰두하는 반면, 서원은 유교의 오랜 청빈 사상을 구현하듯 결벽하고 단정한 공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서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안동에 꼭 가볼 일이다. 지난여름 나는 안동에 갔다가 전에는 놓쳤던 경험을 몇 가지 얻고 돌아왔다. 유명한 도산서원, 병산서원, 하회마을보다 퇴계 선생의 자취들만을 따라가 본 덕분이다. 퇴계 선생은 50세 되던 해에 풍기군수를 사직하고 안동의 한미한 냇가로 물러나 계상서당을 연다. 두 칸의 코딱지만 한 공간인데, 1000원짜리 지폐에서도 이 서당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유성룡, 김성일 등 20여 명의 제자들을 가르쳤다니 선생의 앎은 공간의 크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모양이다. 젊은 율곡은 오래도록 흠모하던 퇴계를 만나러 계상서당에 찾아와 시를 바친다.

“시냇물은 수사(洙泗)에서 갈라져 나왔고/ 봉우리는 무이(武夷)처럼 드높도다/ 제가 바라는 것은 도를 묻는 일이오니/ 반나절 헛되이 보낸다 생각지 마소서.” ‘수’와 ‘사’는 주자가 살던 복건성의 물 이름이고 ‘무이’는 산 이름이니, 퇴계의 거소가 공자와 주자의 학문을 잇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칭송이었다.

그러나 퇴계도 계상서당이 비좁은 것을 안타까워한 제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말년에는 도산으로 서당을 옮긴다. 우리는 도산서원의 위용에 찬탄을 보내지만 사실 서원의 정수는 초입에 자리한 도산서당에 있다. 겨우 세 칸짜리 초옥인데도 선생은 서당을 새로 지은 후 걸핏하면 건물이 너무 넓다 불평을 했단다. 여기서 100여 명의 제자가 늘 배웠다니 공간의 쓰임이 놀랍다. 퇴계가 허용했던 것은 이 공간뿐이고 서원의 나머지 웅장한 건물은 후대에 지은 것들이다. 그렇게 안동은 점점 예법과 격식만을 좇는 공리공담의 중심지가 되어 간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환경과 단 몇 평의 공간에서도 우리는 생각의 깊이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아쉬울 게 없이 갖춰진 궁궐, 관저, 저택은 사람을 가두고 생각까지 가두는 법이다. 퇴계의 서당은 바깥의 자연과 세상에 바로 이어져 있었다. 수용소의 유대인은 아마도 차디찬 콘크리트에 갇혀 있었을지언정 그의 영혼만큼은 새처럼 자유롭게 바깥을 날았을 것이다.

파리의 화려한 ‘파사주’를 물신적 소비가 들끓는 공간으로 명민하게 관찰했던 발터 벤야민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경험 속의 가난이 빈자에게 무슨 작용을 하는가? 그것은 그로 하여금 처음부터 시작하도록,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조그만 시도를 공들여 하도록, 조금을 가지고 시작해 더 크게 키우도록 만든다.” 

가난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성이라는 얘기다. 성서 역시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거니와 그것은 가난한 마음이야말로 우리 존재에 부족한 무엇인가를 찾고 갈구하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2017년 새해에는 서로의 행운과 복을 빌어주되 그것이 더 많은 소유와 소비에 대한 갈망이 아니기를 빈다. 모두들 생각과 마음의 성장을 이루는 한 해가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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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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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혼돈과 아쉬움 속에 한 해를 보내며

세밑이면 흔히 동원되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표현이 올해처럼 딱 들어맞는 해도 별로 없을 듯하다. 지금 같은 엄청난 정치·사회적 혼돈과 아쉬움으로 한 해를 보내기는 아마도 6.25 이후 처음일 게다. 한 해 내내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나라 안팎에서 연이어 터졌고, 국민들은 그때마다 가슴을 졸여야 했다.

신년 벽두부터 잇따라 감행된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도발이 험난한 여정의 신호탄이었다.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라는 초강수에 이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대응 수단으로 제시했으나 격렬한 찬반 논란 끝에 갈등의 불씨를 안은 채 새해를 맞게 됐다. 조선·해운 구조조정 등으로 경제가 어수선한 가운데 치러진 4·13 총선은 이른바 ‘친박(親朴) 패권’에 염증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로 새누리당이 참패하면서 16년 만의 여소야대 국면을 연출하게 됐다.

뭐니뭐니 해도 압권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다. 지난 9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관여 의혹으로 언론에 처음 등장한 최씨는 상상을 초월하는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비선실세’로 지목되면서 국민적 분노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 헌정 사상 2번째로 탄핵 심판대에 오르는 신세가 돼 버린 것이 그 결과다.

사태가 이어지면서 국정은 순식간에 엉망진창으로 변하고 말았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 등으로 포퓰리즘이 국제사회를 휩쓸며 우리 안보와 경제를 위협하는데도 외교는 구심점을 잃은 채 허둥댔고, 중국의 사드 보복에도 손을 못 쓰는 딱한 처지에 이르렀다. 수출·소비·투자가 절벽에 부딪혔고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을 초토화해도 당국이 제대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바람에 국민들이 우려와 혼란에 빠져 있다.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박 대통령 잘못이다. 혈세로 움직이는 정부의 공조직을 제쳐두고 한낱 시정의 여인네에게 휘둘리며 불통으로 일관한 오만은 어떤 변명으로도 수긍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권 쟁취에 눈멀어 청와대의 실정을 방조하고 나아가 화를 더 키운 데 있어서는 정치권도 오십보백보다. 위정자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위정자를 걱정하는 상황이 또다시 되풀이돼선 대한민국에 희망이 없다. 정치권의 맹성을 촉구한다.



2. ‘시한부 정책’으로 위기 극복할 수 있겠나

내년 경제가 걱정이다. 정부는 어제 발표한 ‘2017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내년 경제성장률을 기존 3.0%에서 2.6%로 0.4%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2%대 전망은 외환위기 때인 1999년 이후 처음이다. 정부 예상대로라면 지난해와 올해 연속 2.6%에 이어 내년까지 3년 연속 2%대의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모양새다. 취업자 증가 폭도 30만명에서 26만명으로 낮춰 잡았다. 모든 전망을 올해보다 비관적으로 내다본 정부 예측은 우리 경제의 암울한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부는 공격적 경기부양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재정지출 13조원, 정책금융 8조원 등 20조원 이상 규모의 재정을 투입하기로 했다. 내년 전체 예산의 31%를 1분기에 조기 집행하는 등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한다는 것이다. 17조원을 투입해 6만명의 공공부문 신규채용을 비롯해 청년·여성에 대한 고용 인센티브 강화로 일자리도 크게 늘리기로 했다.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면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 미래 성장동력도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면서 장기적으로 미래 성장기반을 확충하겠다는 정책방향에는 일단 찬성할 만하다. 하지만 현재의 절박한 위기상황을 극복하기에는 미흡하다. 저성장 고착화를 탈피할 큰 그림도 보이지 않고, 획기적인 소비 및 투자 활성화 대책도 눈에 띄지 않는다. 내수와 수출회복 방안 등도 늘 듣던 얘기들이다. 내년 새 정부가 들어서면 경제정책의 밑그림 자체가 바뀔 가능성을 염두에 둔 ‘시한부 정책’임을 자인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글로벌 저성장 추세에 미국의 금리인상과 보호무역주의 기조 강화, 중국의 성장 둔화 등 대외 여건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여기에 탄핵정국 불안이 겹치면서 기업들은 투자를 꺼리고 수출 부진을 보완해주던 내수 회복세도 주춤하고 있다. 유가상승, 가계부채 상환부담, 부동산 활력 약화 등도 악재다. 경제 앞날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럴 때일수록 경제 리더십이 중요하다. 유일호 경제팀은 자리에 있는 날까지 경제만큼은 살리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경기회복과 민생안정에 집중하길 바란다.



[서울신문]

3. 외풍에 흔들리는 국민연금 독립성 강화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을 하도록 압박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이라 장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국민연금 운용을 주도했던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으로부터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보건복지부의 압력이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합병 찬성을 가결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들도 반드시 찬성 가결돼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의결권을 행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위원회 회의는 ‘너는 찬성하고 너는 반대하라’는, 사전에 정해진 대로 각본에 따라 움직인 것으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삼성그룹의 숙원이었던 ‘이재용 체제’로의 경영권 승계를 수월하게 해 주는 절차였다.

합병이 성사된 다음날 삼성은 최순실 모녀 소유인 독일 법인 코레스포츠와 220억원 상당의 승마 계약을 맺었다. 국민연금이 삼성의 고민을 해결해 줬고, 삼성은 최씨 모녀에게 거액을 제공한 셈이다. 삼성이 “합병 건은 경영권 승계와 상관없이 경영 논리에 기반을 둔 결정”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으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찬성이 ‘윗선’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외압의 진원지는 곧 밝혀질 것이다. 특검이 칼끝이 문 전 장관과 안종범 전 수석을 넘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이런 ‘거래’에 국민연금이 동원됐다는 사실이 기가 막힌다. 국민연금은 노후를 걱정하는 국민이 기댈 마지막 의지처다. 서민 목숨 줄 같은 기금을 정경유착의 도구로 사용했다니 국민의 공분을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참에 정권의 돈주머니쯤으로 여기는 국민연금의 운용 체계를 혁신해야 한다. 특검 수사에서 밝혀지고 있듯이 수백조원의 국민연금 기금을 주무르는 기금운용위원회는 기금 운영 전문가도 없을뿐더러 정부안 거수기에 불과하다. 기금을 제대로 운용하려면 무엇보다 조직이 독립돼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전문가를 데려와도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에 불과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기금운영본부를 독립시켜 자본시장 논리에 따라 투자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공단 이사장, 복지부 장관,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3중 구조다. 조직 독립과 함께 임기를 보장하고 성과만 갖고 따지는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4. 민관 협력으로 과도기 경제 난국 헤쳐 나가야

​정부가 어제 1999년 이후 처음으로 2%대 성장 전망을 내놨다. 정부가 내놓은 ‘2017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애초 제시했던 3.0%에서 2.6%로 0.4% 포인트 하향 조정한 것이다. 전망대로라면 한국 경제는 2015년 2.6%, 올해 2.6%에 이어 3년 연속 2%대 저성장에 머물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수준으로 후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구조조정과 미국 금리 인상 등 대내외 위험 요인에 대응하면서 민생을 안정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일단 정치권에서 요청한 내년 상반기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은 없던 일로 했지만 내년 초에 가능한 모든 재원을 동원해 21조원 이상 규모의 재정을 집행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정부가 조기 대선 가능성까지 고려되는 불확실한 정치적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비정규직 안정화 대책이나 고용 확대 투자 시 세액 공제를 확대하는 등 다양한 경제 활성화 조치를 내놓고 있지만 기존의 정책들을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재정의 조기 집행에 방점을 찍은 내년도 경제정책은 조기 대선을 겨냥한 것으로 자칫 경기가 반짝 회복했다가 2분기에 꺼질 우려도 있다. 2분기 이후로 예산이 부족해 경기가 반 토막 나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내년 중 정부가 바뀔 가능성이 있는 만큼 차기 정부와의 정책적 연속성에 신경을 써야 한다. 자칫 정책의 초기 단계에서 중단돼 예산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그나마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 신성장 동력 확충 방안에 공을 들인 흔적은 있다. 민관 합동으로 ‘4차 산업혁명 전략위원회’를 신설해 경제·사회 전반의 혁신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전시성 행정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경제가 일시적 경기변동상의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경쟁력 상실로 인한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두 축인 수출과 내수의 동반 침체는 소비와 생산의 부진으로 이어져 장기 불황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과 세계적 보호무역 추세도 우리 경제에 커다란 위험 요소다. 저출산·고령화로 경기 활력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산업 전반에 대한 구조 개혁이 절실하다.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이 등장하지 않는 한 지속적인 성장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난해 막대한 적자재정을 통한 단기 경기부양과 통화정책을 펼쳤지만 근본적 위기 극복에 실패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산업 재편 등을 통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시행하면서 새로운 고부가가치 분야로 투자와 생산을 늘려야 한다. 우리 경제는 지금 비상사태나 다름없다. 관료 조직은 정치적 과도기에 중심을 잡고 적극적 정책 대응에 나서야 하고,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경제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5. 대·중소기업 고용 미스매치 대책 고민하라

고용절벽이 깨지고 취업 한파가 풀릴 날을 기다리기조차 버거운 현실이다. 청년 실업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국내 사정은 경기 악화 속에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데다 혼란스런 정국까지 맞물려 대기업들의 긴축 경영이 노골화되고 있다. 반면 뿌리 산업을 지탱하는 중소기업들은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힘겨워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인력 양극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고용노동부가 그제 내놓은 ‘2016년 10월 기준 하반기 직종별 사업체 노동력 조사’를 보면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대기업의 시장 분위기는 어둡기 짝이 없다. 300인 이상 기업의 4분기와 내년 1분기 채용 계획은 3만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9%인 3000명이 줄었다. 대기업의 문턱을 넘기 위한 경쟁이 올해보다 더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중소기업은 30만 4000명으로 1만 2000명 증가했다. 수치만 본다면 긍정적이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의 적극적인 구인 활동과는 달리 인력을 충원하지 못하는 비율이 14.3%에 이르고 있다. 대기업 미충원율 5%의 거의 세 배다.

무엇보다 대기업들이 대내외 나쁜 여건 속에 잔뜩 움츠리고 있다. 투자 예측이 어려운 이유다. 올해 투자는 지난해보다 20% 넘게 감축된 탓에 현 수준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채용 규모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실업률 증가는 가계소득 감소로 이어져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린다. 정부가 내년도 성장 전망치를 2.6%로 낮춘 것도 이런 요인을 고려해서다.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들은 최순실 국정 농단에 휘말려 조직 개편과 인사까지 미루고 있다. 내년 채용 계획도 세우지 못한 곳도 있다. 까닭에 대기업의 문을 두드리려는 젊은이들의 속은 타고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 취업자들의 장기 근속을 유도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선 대기업과의 임금 수준 등 근로 조건의 격차를 최대한 좁힐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중소기업의 인력 충원이 안정화될 수 있다. 대기업들은 어렵더라도 신규 투자를 늘려 고용을 확대하는 적극적 경영이 궁극적으로 시장 수요를 키워 수익을 증대시키는 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따로 없다.



[동아일보]

6. 적극적 경기부양 예고한 정부, 위기관리부터 철저히 하라

​정부는 어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 경제장관회의에서 ‘2017 경제정책방향’을 확정하고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 6월 내놓은 3.0%보다 0.4%포인트 낮은 2.6%로 하향조정했다.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2%대로 제시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 전망치대로라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15년부터 내년까지 3년 연속 2%대 저성장에 그친다. 탄핵 정국에 따른 정치적 경제적 불확실성까지 감안하면 내년 2.6% 성장도 가능할지 의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소비 투자 수출 일자리의 동반 부진과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대두 등에 따른 복합적 경제 난국에 대응하기 위해 내년 초부터 적극적 경기부양책을 쓰겠다고 밝혔다.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조기집행, 공공기관 투자, 정책금융 확대 등을 통해 21조 원 규모의 ‘재정 보강’을 시행하고 1분기 재정 집행률을 사상 최대치인 31%까지 높이기로 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재정 보강이 가져올 경기부양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내년 상반기 추가경정예산 편성 불가피론도 나오지만 나랏빚을 늘리는 ‘추경 중독’은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소추와 경제부총리 혼선으로 예년보다 2주가량 늦게 발표된 내년 정책방향에서 과감한 규제 혁파나 진입장벽 철폐를 통해 경제 회생에 도움을 줄 획기적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기존에 발표된 정책의 재탕도 많았다. 규제 완화와 구조 개혁을 통한 경기 활성화가 어려운 것은 정부 탓만도 아니다.



국회에 제출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특별법, 노동개혁법안만 통과되더라도 소비와 투자 심리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한 발짝도 못 나가는 것이 현실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계획이 그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불허 결정으로 사실상 무산된 것도 안타깝다. 미국 스위스 중국 일본 등 해외 각국이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곳곳에 산악 케이블카를 설치해 운영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2017년은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은 지 꼭 20년이 되는 해다. 각종 경제지표가 나빠지고 있는 가운데 노동 개혁이나 산업구조 개혁이 표류하고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는 모습도 비슷하다. 여기에 해외발(發) 악재까지 덮치면 ‘제2의 외환위기’ 같은 심각한 국가적 경제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독자적으로 가능한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라도 잠재성장률 제고에 힘쓰면서 무엇보다 위기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외풍(外風)에 취약한 경제구조를 감안할 때 해외발 위기 발생 시 최후의 방파제인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과의 통화스와프 재개나 연장, 외국인 투자가의 대거 이탈 방지책을 추진하면서 경제외교에도 한 치의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7. 반기문 향해 “말년 험하게…” 협박한 국정원 출신 의원

국가정보원 출신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민주당 서울시당의 팟캐스트인 ‘서당캐’에 출연해 내년 대선에 출마할 예정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입에 담기 힘든 협박성 발언을 쏟아냈다. 김 의원은 “말년 험하게 되고 싶지 않으시면 명예를 지키는 게…괜히 저를 나쁜 놈 만들지 마시고…전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조폭의 협박성 발언처럼 들린다.

김 의원은 국정원에서 인사처장을 지내는 등 20년간 인사 관련 업무를 다뤘기에 국내 주요 인사들에 대한 많은 비밀 정보를 알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직원법은 ‘직원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한 후에도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며 이를 위반할 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 의원이 함부로 누설했다간 국회의원직을 잃게 되는 법적 처벌을 각오해야 한다. 법 위반 여부를 떠나 국가의 재산인 정보를 사적으로, 그것도 사악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공직 윤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 의원은 4·13총선 당시 문재인 전 대표에 의해 영입된 ‘문재인 키즈’다. 그는 팟캐스트에서 “저보고 알아주는 문빠라고 그러는데, 맞습니다”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가 그를 발탁한 것은 대선을 염두에 둔, 정보맨으로서의 활용 가치 때문일 것이다. 김 의원의 반 총장 관련 발언도 결국 그에 대한 보답 아니겠는가. 최근 대선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반 총장이 문 전 대표를 누르고 1위로 올라서자 여기저기서 검증을 명분으로 금품 수수와 가족 관련 숱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 직원은 뜨거운 애국심과 열정으로 국가안보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일을 최우선 임무로 삼아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정치로부터 초연해야 한다. 현직 직원의 정치 개입은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퇴직 직원의 정치권 진출도 제도적으로 제어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이 국정원 출신을 마구잡이로 발탁하고 국정원 출신이 특정 정치세력의 ‘사냥개’ 노릇을 한다면 정보기관의 정치 오염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매일신문]

8. 야당의 전직 대통령 묘역 ‘선별 참배’, 배제와 분열의 정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내년 1월 1일 서울 국립현충원을 방문하면서 현충탑과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만 참배한다고 한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은 참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이유에 대해 양당 관계자들은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촉박한 일정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수긍하기 어렵다.



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해 2월 당 대표로 선출된 뒤 이`박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고, 추미애 대표 역시 지난 8월 취임 뒤 같은 묘역을 찾았으며, 국민의당도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지난 1월 당 대표로서 첫 행보로 전직 대통령 묘역을 모두 참배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촉박한 일정’이란 이유를 내세우지만 ‘선별 참배’로 바뀐 데에는 분명한 ‘정치적 의미’를 읽을 수 있다. ‘탄핵 정국’으로 보수층이 분열되고 힘이 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보수층을 끌어안기 위한 행보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쯤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야당의 전`현직 대표가 이`박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것은 마음에도 없는 ‘퍼포먼스’였으며, 거기서 한 말 역시 진심이 아니었다는 얘기가 된다. 당시 문 전 대표는 “전 대통령 묘역 참배를 둘러싼 갈등을 끝내고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추 대표도 “독재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게 하되, 공과를 그대로 존중하는 것은 바로 국민 통합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야당의 이런 변덕은 경박함을 넘어 문 전 대표와 추 대표의 말 그대로 국민 통합을 저해하는 것이다. 이`박 전 대통령을 싫어하는 국민도 있지만 존경하는 국민도 있다. 두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지 않겠다는 것은 이들 두 국민의 분열을 앞장서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야당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은 대선 전략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4당 체제로 대선이 치러질 경우 표가 분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른바 ‘집토끼’만 잡으면 이길 가능성이 높다. 야당이 ‘선별 참배’로 돌아선 것은 이를 계산한 것이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집토끼의 입맛에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배제와 분열의 정치는 수권 능력과 자격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밖에 없다. 야당의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9. 서문야시장 영업 재개, 순리대로 원만하게 풀어야

서문시장 4지구 화재가 발생한 지 30일로 꼭 한 달째다. 지난 한 달 동안 당국의 화재 원인 조사와 발표, 4지구 철거와 신축 계획, 대체상가 논의와 결정 등 많은 일들이 진행됐다. 하지만 이번 화재로 피해를 입은 4지구 상인들의 충격은 여전하다. 이들의 허탈한 심정은 대구 시민이면 누구나 충분히 이해하고 또 공감한다. 그러나 새해를 코앞에 두고 이제는 피해 상인도 허탈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기운을 내 복구에 힘을 내야 할 단계임은 분명하다.

 
야시장 재개장 문제도 그중 하나다. 80여 개 점포 200명의 야시장 상인들은 화재 직후 피해 상인과 아픔을 함께하는 뜻에서 영업을 중단했다. 하지만 공백이 길어지면서 야시장 상인들마저 생계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또 다른 후유증을 낳고 있다. 다시 문을 열자니 야시장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냉랭한 시선 때문에 곤란한 처지에 놓인 것이다. 

 
야시장이 생기면서 심야 시간대 화재 위험이 커졌다는 4지구 상인의 주장도 무리는 아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야시장 상인들이 모은 성금을 거절한 것은 불편한 감정 표현의 측면도 있지만 보다 철저한 안전대책을 요구하는 뜻도 담겨 있다. 이 점은 앞으로 야시장 상인과 대구시가 경각심을 갖고 안전대책을 확실히 한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화재는 불행한 일이나 문제는 순리대로 풀어야 한다. 감정대로 마냥 야시장을 외면한다면 상인 간 불화의 골이 깊어지는 등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그동안 서문시장 화재 피해 복구를 위해 전국 각계각층에서 수십억원의 성금을 모았고 계속 성금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대구 시민뿐 아니라 온 국민이 피해 상인과 아픔을 함께한다는 뜻이다. 이제 4지구 상인들도 야시장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은 만큼 따뜻한 정을 나눠야 할 때다.

 
많은 국민들이 피해 상인의 고통을 안타깝게 여기고 복구 성금을 모아 보내는 마당에 야시장 영업 재개를 백안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피해 상인과 아픔을 함께하는 시민의 뜻과 여론을 잘 살필 필요가 있다. 대구시도 입장을 빨리 정리해 새해에는 많은 시민이 야시장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적극 중재하고 결단해야 한다.



[중앙일보]

10. 국민의식과 거꾸로 가는 수준 낮은 정치들

촛불혁명의 성공 요인은 사실성·평화성·제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최순실이 사용한 태블릿PC를 증거로 제시하고(사실성), 수백만 군중이 두 달간 모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며(평화성), 헌법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진행되는 탄핵(제도성)이 국민의 높은 정치수준을 보여줬다. 그런데 세밑 정치권은 사실보다는 음해, 평화보다는 파괴, 제도보다는 편의에 따라 춤추고 있다.

서울 서초갑의 이혜훈 의원은 엊그제 “(자신의 지역구 경쟁자인) 조윤선 문체부 장관이 최순실을 여왕님처럼 모시고 다녔다는 재벌 사모님들의 증언을 들었다”고 폭로했다 조 장관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조 장관은 “천번 만번 물어봐도 내 대답은 같다. 최순실이란 사람을 알지도 못하고 얘기해 본 적도 없다”고 반발했다. 3선 의원과 현직 장관이 ‘여왕님처럼 모시고’라든가 ‘천번 만번 물어봐도’ 같은 극단적 표현을 동원해 싸움하듯 달려드는 건 민망하기 짝이 없다.



이 의원의 주장은 사실 여부를 떠나 제보자의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아니라면 당신이 증거를 대보라’는 식의 폭로라는 점에서 음해 정치의 냄새를 남긴다. 또 충북 음성이 지역구인 새누리당 경대수 의원은 “반기문 유엔 총장이 정하시는 길로, 공산당만 아니라면 어디로든 따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자신의 정치적 진로를 국익이나 정책 철학이 아니라 특정인에 대한 충성심에 따라 정하겠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새해 첫날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을 참배 대상에서 빼겠다고 한 것도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지지층 결집이 손쉬워지자 친일·독재 청산 프레임으로 대선을 치르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수권정당을 자임하면서 대한민국 역사성과 국가의 계속성을 부정하는 자가당착일 뿐이다. 지난 8월 추미애 대표가 국민통합을 위한다며 이승만·박정희 묘소를 참배했던 건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민주당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편의적 태도에 역겹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주요 신물칼럼


1. [이데일리][목멱칼럼] '영화 속 주인공' 당당해질 때

영화가 어떻게 변주되는지 짚어보는 것도 재밋거리이다. 서부영화가 그렇다. 한때 세계는 정의의 총잡이가 무법자와 비장한 대결을 벌이는 미국 영화에 열광했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도 최측근과 함께 서부영화 보기를 즐겼다.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1954년에 서부영화의 구도를 16세기 말엽 일본에 투사해서 ‘7인의 사무라이’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거꾸로 할리우드의 흥미를 끌었고, 그 결과 나온 작품이 배경과 장소를 19세기 미국으로 변주해서 존 스터지스 감독이 율 브리너 등 당대의 최고 흥행배우 7명을 동원해 만든 ‘황야의 7인’이다. 동서양 대중문화가 경계를 넘나들며 영향을 주고받은 행복한 사례일 것이다.

1960년에 나온 ‘황야의 7인’이 올해 ‘매그니피센트 7’이라는 리메이크로 환생했다. 두 영화 사이의 간격이 두 세대에 가까우니,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변주가 없을 수 없다. ‘황야의 7인’은 백인 일색이지만, 매그니피센트한 7인에는 흑인, 멕시코인, 인디언, ‘동방에서 온 신비한 남자’가 끼어 있어서 백인이 오히려 소수파다. 그 ‘동방에서 온 신비한 남자’가 이병헌인 까닭에, ‘매그니피센트 7’는 작품의 완성도에 상관없이 우리의 이목을 끄는 영화가 되었다.

할리우드 영화에 한국 영화인이 나온다고 호들갑을 떠는 게 어느새 촌스러워 보일 만큼 한국 영화인의 세계 진출이 많이 이루어졌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은 아예 외국에서 영화를 만들고 한국이나 한국인 배우가 비중 있게 나오는 외국 영화가 속속 선을 보인 터이다. 워쇼스키 감독의 2008년 작품 ‘스피드 레이서’에 비(정지훈)이 등장했고, 2012년에 ‘어벤져스 2’에서는 주인공들이 아예 서울에서 악당과 대결을 벌이는 판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한국 배우의 캐릭터에 서양의 편견이 배어 있다며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뤽 베송 감독이 스칼렛 조핸슨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만든 2014년 작품 ‘루시’에 최민식이 미스터 장이라는 악랄한 한국인 마약범죄조직 두목으로 나온다. ‘매그니피센트 7’만 해도 이병헌은 총알이 빗발치는 서부에서 어색하게도 칼을 쥐고 싸우는 캐릭터였다. 동양인이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 개봉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서 중국 배우 견자단은 비슷한 맥락에서 중무장 돌격대원 십수 명을 막대기 하나로 단숨에 때려눕히는 무예의 달인이면서도 굳이 장님으로 나온다. 동양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타자는 대중 문화매체에서 나쁜 악한, 아니면 알 수 없는 신비한 존재로 묘사된다.

한국인을 부정적으로 그린 영화는 적지 않다. 조엘 슈마커 감독이 마이클 더글러스를 주인공으로 세워 1993년에 만든 영화 <폴링다운>에서 로스앤젤레스의 한국인은 돈만 밝히는 한심한 존재로 나온다. 2007년에 나온 <철없는 그녀의 아찔한 연애 코치>라는 영화에도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한국인 마사지숍 장면이 있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묘사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문화 매체에서 우리와 다른 존재, 우리 건너 편에 있는 존재가 과연 제대로, 있는 그대로 그려지는지 돌이켜보면, 갑자기 멋쩍어진다.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서구인은 늘 거들먹거리고 동남아 사람은 늘 꾀죄죄하고 일본인은 늘 간사하다. 한국전쟁 영화에서 인민군은 철모가 아닌 헝겊모자를 쓰고 전투에 나서고, 중국군은 전략전술 없이 인해전술만 구사하는 개미떼로만 나온다. 임진왜란 영화의 왜군 장수들은 하나같이 죄다 인격이 망가진 조울증 환자이다.

김한민 감독이 2011년에 내놓은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만주족 장수 쥬신타(류승룡 분)는 악역이지만 나름대로 멋진 캐릭터여서 그가 주인공 남이(박해일 분)와 벌이는 대결이 더 재미있고 박진감이 넘쳤다. 하지만 김한민 감독의 2014년 작품 ‘명량’은 캐릭터 면에서 꽤 아쉬웠다. 왜군 장수 구루시마 미치후사(류승룡 분)는 새된 소리만 내는 싸이코에 지나지 않아 이순신과 벌이는 대결이 제대로 된 긴장감을 주지 못했다.

대중 문화매체의 완성도는 타자가 뒤틀리고 정형화된 이미지로 나올수록 떨어진다.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를 시장으로 삼는다면 흥행에도 좋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인식이 뒤틀린다는 데 있다. 나를 제대로 안 보는 남을 탓하기에 앞서 내가 남을 제대로 보는지 짚어보아야 한다.



2. [한국일보][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아이 셋 엄마

S가 아기 옷을 두 상자나 보내왔다. 원피스는 못해도 열댓 벌은 되었고 아기 내복에 신발도 열 켤레가 넘었다. 딸 둘을 키우던 S는 얼마 전 막내아들을 낳았다. 아들에게 물려줄 수 없는 여자아기 옷들로만 골라 내게 보내온 것이다. 그녀가 나에게 상자를 보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내 출산을 앞두고 그녀는 신생아 옷과 천기저귀를 보내주었다. 딸 둘을 키워낸 천기저귀는 매일매일 삶아 빨아 보들보들했다.



백일 즈음 쓰기 좋은 아기 의자도 보내줬는데 뒤늦게야 막내를 임신한 걸 알게 되어 나는 우리 아기 백일이 지난 다음 의자를 도로 보내야 했다. 번역가인 그녀는 첫 아기를 낳으러 가던 순간까지 원고를 부여잡고 있었다. 번역을 다 끝내고 출산을 하는 편이 나았지만 진통이 심해지자 더는 참지 못하고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저히 안 되겠어요. 아기 낳고 와서 마저 할게요.” 편집자는 기겁을 했다. 번역이고 뭐고 당장 병원에 가라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펄펄 뛰었단다. 한 번도 아이 셋의 엄마가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던 그녀는 이제 농담처럼 자신과 닮은 아이 셋을 데리고 산다.



아이들은 꼭 한꺼번에 아파서 그녀는 새벽부터 혼자 병원엘 가서 예약을 미리 해두고 시간이 되면 아이를 업고 안고 걸리면서 병원에 다시 간다. 아이들을 입원실에 누여놓고 그녀는 아이고, 지겨워, 내가 이러려고 그 먼 독일까지 가서 공부를 하다 왔나, 한숨을 쉬지만 나는 남의 속도 모르고 그녀가 그렇게나 부럽다. 이렇게 아기가 예쁠 줄 알았으면 나도 하나 더 낳을 걸.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또 하나, 또 둘 더 있다면 얼마나 감동스러울까 말이다.



3. [서울신문][씨줄날줄] 옛 선박의 부엌/서동철 논설위원

지난여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신안 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 특별전은 충격이었다. 신안선은 1323년 중국 저장성 닝보에서 일본 하카타를 거쳐 교토로 가던 중국 무역선이었다. 1977~1983년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2만점의 도자기와 28t의 동전, 700점의 금속용구가 수습됐다. 무려 1만 2000점의 송·원대 도자기를 화물선 선적 당시처럼 포개어 놓은 특별전의 시각적 효과는 압도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신안선의 부엌에서 수습한 유물들도 인상 깊었다. 웍(wok)이라 부르는 중국식 튀김 냄비와 프라이팬, 주전자, 양념단지로 썼을 법한 항아리와 단지, 그리고 칼과 도마가 눈길을 끌었다. 오늘날 주방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주방용품들의 크기였다. 신안선에는 50~60명이 탔을 것으로 추정한다지만, 조리도구들은 많아야 6~7인 정도의 식사를 감당할 수 있는 크기였다. 화주(貨主) 쪽 승선 인원을 제외한 선원들만의 부엌이 아니었을까 싶다.

신안선 발굴이 이루어진 뒤 고려시대 이후 우리 선박도 다양하게 조사됐다. 대부분의 화물선에서 선상 생활 유물이 다수 출토됐다. 특히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마도 1, 2, 3호선에서는 고려시대 음식 문화를 재구성할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이 수습됐다. 세 선박은 목간(木簡)에 적혀 있는 명문(銘文)으로 난파 시점을 짐작할 수 있다. 1호선은 1208년 안팎, 2호선은 1219년 이전, 3호선은 1265~1269년으로 추정한다. 일반적으로 대나무로 만들었던 목간은 화물의 꼬리표였다.

음식 문화와 관련된 세 배의 공통점은 주방시설이 선박 중앙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 선박을 건조할 당시부터 부엌을 염두에 두고 불을 지필 수 있는 시설을 갖추지는 않았다. 대신 외부에서 널찍한 돌을 가져다 쌓아 불을 피울 수 있게 했다. 주방으로 추정되는 공간 주변에서 석탄과 솔방울이 집중 출토된 것은 석탄을 취사용 연료로 사용하면서 솔방울을 불쏘시개로 썼다는 증거다.

한두 가지 다른 양상이 보이기는 하지만, 철제 솥과 도제 시루, 철제 및 목제 국자, 도제 저장용기, 접시와 대접, 청동 숟가락과 청동제 및 목제 젓가락이 나온 것도 비슷하다. 높이가 80㎝에 이르는 도제 용기는 선상 생활에 필요한 담수를 저장하는 그릇이었을 것이다. 당시 젓가락이 널리 쓰였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다. 고려시대 전기 및 중기 무덤에서는 그동안 젓가락이 출토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전남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전시관에서는 ‘솥, 선상(船上)의 셰프’ 테마전이 열리고 있다. 수중고고학의 성과로 다양한 침몰선에서 수습한 솥이 어떻게 시대별로 변화했는지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발굴 이후 보존 처리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뒤늦게 공개된 솥으로 지나간 시대 음식 문화의 일단을 짐작해 보는 기회다.



4. [서울신문][데스크 시각] 쓰촨 요리, 미국과 대만/이지운 국제부장

‘촨차이’(川菜)는 쓰촨(四川) 요리(菜)를 말한다. ‘매운 요리’가 특색으로, ‘훠궈’(火鍋)도 대표 음식의 하나다. 훠궈가 지금은 중국의 국민 음식이지만, 채 40년도 안 된 일이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에야 사람과 물산의 이동이 가능했고, 훠궈도 함께 쓰촨을 벗어날 수 있었다. 신장위구르 지역의 양고기 꼬치도 이무렵 상경(上京)한다. 덩샤오핑의 공이 한둘이 아니다.

1970년대 말 훠궈가 베이징에 처음 등장했을 때를 기억하는 중국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베이징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1호점이 생겼길래 한턱 내야 할 친구들과 호기 있게 찾아갔다가 음식 대부분을 남겼다고 했다. 욕에 욕을 하고 식당을 나왔는데, 얼마 안 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후 ‘현지화’한 싱거운 훠궈가 나왔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요즘 중화권에서 촨차이는 쓰촨 요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이 우선 첫 음절 ‘촨’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떠올리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어로 ‘촨푸’(川普)로 읽히는데 발음이 좀 이상하긴 하다. 중국의 매체들도 ‘터랑푸’(特朗普)가 더 맞을 것 같은데 왜 촨푸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1차적으로는 티읕(ㅌ·t)과 치읓(ㅊ·ch)의 차이점을 짚은 것이다. 아마도 구개음화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하고 중국인들은 받아들이고 있다. 나무, 트리(Tree)가 ‘추리’쯤으로 발음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구개음화를 한국말과 영어, 중국어에서 모두 찾을 수 있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트럼프의 발음에 구개음화가 적용된 데 대해 중국 매체들이 “대만식 표기법인 것 같다”고 해석한 것은 아이러니다. 두 번째 음절도 음식 ‘차이’(菜)와 같은 발음의 차이(蔡), 즉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촨차이가 트럼프와 차이잉원을 의미하는 ‘촨·차이’(川·蔡)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세계사의 숙명이 아닌가 싶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차이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한 뒤로 베이징은 크게 자존심이 상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만큼은 중국 공산당에는 밑바닥 자존심의 문제다. 중국도 항모를 띄워 처음으로 서태평양까지 나가 무력 시위를 해 보긴 했지만, 매우 당황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니 그저 당하고만 있을 중국이 아니다. 이 다음부터는 워낙 많은 전망과 가설이 나와 있으므로 굳이 보태지 않겠다.

한국은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쓰촨 현지의 훠궈를 찾아 한번(다시) 맛보길 권한다. ‘매운 것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는 말을 거듭 실감할 것이고, ‘촨·차이’에 대한 베이징의 느낌을 확실하게 체감하게 될 듯하다. 지금 베이징은 40년 전 쓰촨에서 올라온 정체 모를 매운 맛보다 훨씬 더 강한 ‘촨·차이’를 경험하고 있다.

베이징은 이 강한 ‘통증’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연말 베이징의 중간급 간부 하나가 서울로 들어와 대기업 사장급을 만나 사드를 ‘협의’하고 주요 정치인들에게 ‘조언’을 주고 있다 하니, 이 역시 통증에 대한 반응 중 하나일 것이다.

통증이 강할수록 반응은 여러 갈래일 수 있다.

2017년 어느 날 서울을 향해 갑자기 손을 내밀게 되는 ‘극단’도 우리는 대비해야 할지 모른다. 이럴 때 덥석 잡아야 하는지, 잠시 쭈뼛거리다 살짝 잡아야 하는지, 단호하게 거절해야 하는지도 궁리해 놓아야 한다.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장면일 수도 있어서다.



5. [서울신문][열린세상] 2017년, 어느 봄날의 편지/서동욱 서강대 철학과 교수

사랑하는 당신, 오래 소식 전하지 못했습니다. 겨울이 물러가고 2017년에도 봄은 왔군요. 지구의 공전처럼 필연성에 대해 의문을 허용하지 않는 질서가 이 봄을 불러왔다는데 생각이 미치면, 봄을 얻은 일은 필연적 진리가 실현된 일처럼 감동적입니다.

탄핵의 오랜 과정 끝에 드디어 통치자가 파면됐습니다. 난데없는 기적 같은 게 아니라, 필연적인 봄의 행진 같은 일이지요. 헤아려 보면 지난해 끝자락부터 매주 광화문의 성벽 앞에서 이루어진 촛불집회는 멋진 공성전 같았습니다.

물론 폭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우애와 질서와 평화를 무기로 삼은 공성전이었지요. 이런 멋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게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공성전을 줄곧 ‘맥베스’, ‘스피노자’, ‘아이들’이라는 단어를 맴돌며 체험했습니다. 이 세 단어는 제가 과거, 현재, 미래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과거.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정치 드라마가 아닌 것이 없지요. 특히 ‘맥베스’가 그렇습니다. ‘맥베스’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올 법한 암살 음모를 담고 있는 드라마죠. 이 연극을 보다 보면 라면, 마티즈, 등산 등등의 단어가 마구 떠오릅니다.

결국 조국을 무덤으로 만들어 버린 투명하지 않은 권력은 온갖 폭력적인 술수로 자신을 보호하려 하다가 파멸합니다. 성에 고립된 맥베스가 최후의 국면으로 전진해 가며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이여!” 이렇게 말할 땐 이 말을 우리의 촛불 물결 앞에서 사라져 가는 통치자의 절규로 착각하게 되기도 하는군요. 성 안에 숨은 자의 잠 못 이루는 심리를 알려면 ‘맥베스’를 꼭 펼쳐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스피노자는 ‘정치론’에서 많은 시민의 공분을 야기하는 일에 대해서는 국가의 권리가 거의 미치지 못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공분 앞에서 권력은 정지돼야 하고 탄핵을 통해 사라져야 했던 것이겠지요. 그런데 제가 깜짝 놀랐던 것은 바로 이 공분 앞에서 통치자와 그의 변호사들이 가졌던 태도였습니다.

이런 식의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법은 이성 및 인간에게 공통된 감정에 의해 지지되는 경우에만 파괴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 이성에 의해서만 방어되면 그것은 반드시 약해지고 쉽게 파괴된다.’ 이성과 더불어 법을 지지하는 인간의 저 공통된 감정을 우리는 민심(民心)이라 부릅니다. 통치자와 그의 변호사들은 이성의 장난(즉 궤변) 아래 숨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듯 처신했지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지난 정권들도 그랬다, 양으로 따지면 얼마 안 되는 잘못이다,



​쟤가 그랬대요 식의 남의 탓, 세월호 때도 할 일 다 했다 등등. 저들은 법이 논리적 힘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인간에게 공통된 감정에 의해 지지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른 듯합니다. 요컨대 법은 수학처럼 논리적이지만, 인간의 정서 없이도 작동하는 수학과 달리 인간학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을 모른 듯합니다. 법으로 입문해 정치로 나오는 자들 가운데 괴물들이 넘쳐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겠지요.

미래. 그러나 저는 아이들 때문에 절망하지 않고 나날을 징검다리처럼 건너왔습니다. 저는 촛불을 통해 통치자로부터 주권을 돌려받은 사건이 유년과 청년기의 기억에 깊게 뿌리 내린 아이들, 부모나 친구들과 광화문으로 토요일 나들이를 나온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겁니다. 자격 미달의 통치자로부터 위임했던 주권을 취소하고 회수하는 체험은 드문 것이죠.

저는 ‘국민이 주권자다’라는 가르침을 어린 시절 사회 수업에서부터 배워 왔지만 실은 잘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말만 국민 주권이고, 오히려 통치자가 주권자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주권을 정당한 이유로 직접 회수함으로써 바로 스스로 주권자임을 입증하고 체험한 세대가 탄생한 것입니다. 주권을 직접 회수해 본 경험을 지닌 젊은이들은 4·19세대가 선물받았던 추동력 이상의 거대한 힘으로 향후 오랜 세월 우리 공동체를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저는 할 수만 있다면, 이 편지를 2016년의 막바지에서 절망하고 놀라워하고 힘들어하는 당신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조금만 더 참으세요. 모든 일은 잘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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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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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한겨레]

1. 대통령의 뇌물수수 도운 ‘영혼 없는 공무원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그런 압력이 있었기에 국민연금이 수천억원의 손실이 예상되는데도 무리하게 합병에 찬성했던 것이겠다.

문 전 장관은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삼성의 합병 방침 발표 직후인 지난해 6월에 이미 합병에 찬성할 방법을 강구하라고 보건복지부 간부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국민연금 의결권전문위원회의 성향 조사를 지시했고, 직접 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합병 찬성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런 압박에도 전문위원회가 합병을 반대할 것으로 보이자, 문 전 장관은 전문위원회 대신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에서 합병 찬성 결정을 내리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홍완선 당시 기금운용본부장은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 간부로부터 합병 찬성 요구를 받았다고 특검에서 진술했다. 투자위원회 개최 전에 위원이 교체되기도 했다. 그렇게나 무리수를 거듭한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연결고리는 이미 여럿 드러났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보건복지부에 지시하고 직접 지휘했다는 증언은 진작에 나왔다. 관련 문건도 확보됐다고 한다. 안 전 수석이 “단 하나도 내가 판단하고 이행한 것이 없고 박근혜 대통령이 모두 지시했다”고 밝힌 터이니, 누가 ‘찬성 강행’을 정했는지도 뻔하다.

이권 제공의 맞은편인 대가 수수 과정도 확연하다. 지난해 7월10일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고 7월17일 합병안이 주총에서 통과된 뒤, 7월25일 박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독대했다. 독대 직전인 7월20일께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과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이 만나 정유라씨 지원에 대해 논의했다. 이어 삼성은 8월 말 최순실씨의 독일 현지법인을 통해 220억원 규모의 지원을 시작했다. 국민연금-보건복지부-청와대-삼성-최순실·정유라 모녀로 이어지는 ‘제3자 뇌물수수’ 관계다.

국민의 노후자금 수천억원이 그렇게 날아가 버리는 동안 공무원들은 제지는커녕 적극적으로 방조했다. 눈앞에서 불법이 벌어지고 위법인 지시가 내려오는데도 그저 따랐다. ‘위에서 지시하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변명할 일이 결코 아니다. 불법에 동조한 대가로 승진하고 영전한 ‘영혼 없는 공무원’들은 불법행위의 공범일 뿐이다.



[이데일리]

2. ‘계란값 파동’에 뒷북만 치는 정부

계란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그제 기준으로 중품 특란 한 판(30개)의 평균 소매가격이 7940원으로 한 달 전(5410원)보다 46.8%가 올랐다는 게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조사 결과다. 전날 1996년 집계 이래 최고가(7510원)를 기록한 지 하루 만에 또 갱신한 것이다. 동네 마트에서는 1만원 넘는 곳도 있으나 그나마 구하기조차 힘들다고 한다. 가히 ‘계란 대란’이다.

직접적인 원인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여파로 알을 낳는 산란계를 대량 살처분한 때문이다. 지금껏 살처분된 산란계는 1964만 마리로 전체 사육 규모의 28%에 달한다. 이로 인해 AI 발생 전 하루 4200만개씩 공급되던 계란이 최근 3000만개 이하로 크게 줄었다. 하루 수요량이 평균 4000만개 수준인데 비해 1000만개 가량 공급이 부족해진 것이다. 물량이 달리면 값이 뛸 수밖에 없다.

유통과정에서의 부조리도 지나칠 수 없다. 가격급등 배경에 국내 물량의 65%를 처리하는 수집판매상들의 담합이나 사재기 행위가 개입됐을 공산이 작지 않다. 물량 방출을 하루나 이틀씩 늦추는 등의 방법으로 가격 구조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계란을 하루만 늦게 풀어도 가격이 한 판에 50원 이상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뒤늦게 계란 수입관세 일시면제, 운송비 인하, 사재기 실태 점검 등 수급 안정화 방안을 내놨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어제는 AI 발생 농가 주변에 내려진 계란 반출금지 명령을 하루 동안 일시 해제했지만 이 역시 임시미봉일 뿐이다. AI 초동진압에 실패한 뒤 계속 뒷북만 치는 꼴이다.

내달 설을 앞두고 계란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알 낳는 씨닭인 산란종계가 병아리를 낳고 그 병아리가 산란계가 되는 데까지 6개월, 산란계가 알을 낳기까지는 또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당장 AI 사태가 끝난다 해도 계란 대란이 길게는 1년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당장 급한 불을 끄는 것은 물론 사태의 장기화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3. 고은 시인도 옭아매려던 ‘블랙리스트’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고은 시인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박근혜 정부의 우파적 취향에서 벗어난 것이 주된 이유라고 한다. 올해 소설 ‘채식주의자’로 영국의 세계적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 작가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정부가 겉으로는 문화융성을 부르짖고 있었으면서 실제로는 선별작업으로 재갈을 물리려 한 것이다. CJ 이미경 부회장도 비슷한 이유로 퇴진 압박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 마당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강제모금에서 비롯된 국정농단 사태의 여파가 이처럼 문화예술계까지 들이닥쳤다. 각종 폭로가 이어지면서 의혹이 일파만파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정부 노선에 맞지 않는 진보적 문화예술인들을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법으로 작품 활동에 불이익을 주려고 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문화계 인사들을 편가르기 하는 방법으로 정권 유지에 이용하려 했던 셈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에 대해 전방위 수사에 착수한 만큼 조만간 정확한 진상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해 김종덕·조윤선 전·현직 문체부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등이 두루 수사 대상에 올랐다. 특검팀은 어제도 김상률 전 교문수석을 소환 조사했으며, 역시 교문수석 출신인 모철민 주프랑스 대사에 대해서도 소환을 통보한 상태다.

이미 유력한 단서도 확보된 상태라고 한다.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 “사이비 예술가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문화예술가의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고 적힌 상부의 지시 내용이 그것이다. 박 대통령과 마찰을 빚어 2014년 퇴진한 유진룡 전 문체부장관도 “퇴임 한 달 전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직접 봤다”고 폭로했다. 그 대상자가 1만명 안팎에 이를 것이라는 게 문화계 내부의 판단이고 보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명단 작성에 국정원이 개입했는지도 명백히 가려야만 한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이나 문체부 조직만으로는 방대한 명단 작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사실로 드러날 경우 민간인 사찰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의혹이 역대 정권마다 누적돼 왔다는 점에 대해서도 반성이 필요하다. 문화인들 스스로 정권의 도구가 되기를 자처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점에 대해서다.



[서울신문]

4. 1조원대 퀄컴 과징금, 한·미 통상 갈등은 경계를

공정거래위원회가 휴대전화 칩셋 특허권 보유사인 미국 퀄컴에 이동통신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혐의로 시정 명령과 함께 1조 300억원의 역대 최대 과징금을 물린 것은 ‘특허 공룡’의 갑질 횡포를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뜻에서일 것이다. 퀄컴이 그간 절대적인 칩셋 시장지배력을 내세워 휴대전화 제조사들에 자사의 칩셋 관련 특허권을 일괄 제공하는 대가로 이들의 이동통신 관련 필수특허를 무차별적으로 끌어모은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제조사들은 휴대전화에 꼭 필요한 퀄컴의 칩셋을 공급받으려고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개발한 특허권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퀄컴은 또 휴대전화 제조사들로부터 단말기 가격의 5%에 해당하는 특허권 사용료를 받아 챙겼다. 국내 제조사들이 퀄컴에 지급하는 특허 사용료는 연간 1조 5000억원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원성이 자자했다. 이번 공정위 결정에 십년 묵은 체증 내리듯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이 통신제조업계에서 나오는 것은 십분 이해가 간다.

퀄컴 측은 “수십 년간 문제가 되지 않았던 라이선스 관행에 대한 전례 없는 결정”이라며 즉각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 모바일 통신산업과 무선인터넷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면서 “국외 기업의 지적 재산권을 규제하려는 결정이 국제법과 갈등을 빚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예정된 수순으로,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글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퀄컴 측의 횡포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에 과징금 폭탄을 때리면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을 자극하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이 또한 제재 결정이 원칙대로 이뤄진 만큼 문제의 소지는 없다고 본다. 아직 한국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가 가시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통상 갈등을 점치는 것은 지나친 기우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미국 측에서 이번 제재를 달갑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만에 하나 불필요한 통상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대비할 필요는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련 조항이 있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적기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미리 갖춰야 할 것이다.



5. 과거사 반성 없이 진주만 찾은 아베 日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7일(현지시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기습 공격한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찾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희생자 추도 시설인 애리조나기념관을 방문해 공동 헌화한 것이다. 아베의 진주만 방문은 한마디로 오바마 대통령의 조력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정치성 이벤트에 불과하다. 아베는 이 자리에서 이른바 ‘부전(不戰)의 맹세’를 공표할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우리는 전후(戰後)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를 만들고 법의 지배를 존중하고 부전의 맹세를 견지했다”는 발언에 그쳤다. 미래에 대한 약속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약속을 잘 지켜오지 않았느냐는 일종의 자화자찬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전쟁의 참화는 두 번 다시 되풀이하면 안 된다”는 아베의 발언에는 그 주체조차 명시하지 않았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제국주의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아시아 각국이 볼 때는 입 밖에 내놓지 않은 것만도 못한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아베는 이날 과거사에 대한 사죄는 물론 반성하는 뜻도 일언반구 내놓지 않았다. 대신 ‘희망의 동맹’이라며 과거 적국이었던 미국과 일본 두 나라의 ‘화해의 힘’만을 강조했다. “여기서 시작된 전쟁이 앗아간 모든 용사의 목숨, 전쟁으로 희생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영혼에 영겁의 애도의 정성을 바친다”는 대목 역시 ‘애도의 대상’은 미군과 일본군에 그쳤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전쟁의 상처가 우애로 바뀔 수 있고, 과거의 적이 동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맞장구를 쳤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이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고통쯤은 눈감을 수 있다는 뜻이라면 지극히 실망스러운 일이다. 더욱 참담한 것은 아베의 진주만 방문 직후 이마무라 마사히로 일본 부흥상이 제2차 세계대전 전범(戰犯)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찾았다는 것이다. 이마무라의 야스쿠니 참배 시점은 철저히 계산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에 맞서는 동맹의 확고함을 과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하는 듯하다. 하지만 위안부 강제 동원에서 난징 대학살까지 과거사를 언급하지 않는 아베의 모습은 국제사회에 더 큰 걱정거리를 안겨 주었다. 아시아 각국은 누구도 ‘부전의 맹세’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본은 알아야 한다. 과거의 악행을 반성하지 않는 미래의 약속은 손바닥 뒤집듯 뒤집을 수 있는 허언(虛言)에 불과하다. 미국도 피해자들에게는 실망만 안겨 주는 아베의 이벤트에 더이상은 멍석을 깔아 주지 말라.



[조선일보]

6. 국민연금 의혹 철저히 수사하되 꿰맞추기는 안 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가한 혐의로 문형표 국민연금 이사장(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긴급 체포했다. 특검은 문 이사장이 복지부 장관이던 지난해 두 삼성 계열사의 합병에 사실상 찬성하라는 압력을 가했다는 복지부 관계자들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합병 반대 의견이 나올 가능성 있는 의결권 전문위원회에 안건을 올리지 말고 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용본부 차원에서 독자 결정하라는 취지로 주문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의 개별적인 의결권 행사에서 복지부 장관이나 관료들이 개입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복지부는 기금운용위원회를 통해 기금 전체의 운용 틀을 정하는 데만 관여하고 일상적인 기금 운용은 기금운용본부에 맡겨왔다. 그렇다고 문 전 장관이 안건을 의결권 전문위에 올리지 말도록 지시한 것 자체를 법적으로 문제 삼긴 쉽지 않다. 복지부 장관은 관련법상 기금 운용의 최종 책임자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안건 처리 절차에 관한 의견을 제시할 법적 권한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문 전 장관이 삼성 측 청탁을 받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합병을 성사시킬 목적을 갖고 개입했다면 범죄 행위가 된다. 특검은 이런 의혹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죄 수사로 가기 위한 전 단계로 문 전 장관을 긴급 체포했다는 것이다. 특검의 수사 방향대로 입증된다면 중범죄가 아닐 수 없다. 개별 기업의 사적(私的) 이익을 위해 국민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이 동원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사건 처리가 국민 정서에 휩쓸려 포퓰리즘으로 흐를 위험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7월 삼성 합병 당시 압도적 다수의 전문가들과 투자기관, 언론이 합병을 지지했다. 미국계 투기자본 엘리엇 펀드가 주도한 합병 반대론이 국익을 해친다는 논리에 이의를 다는 여론은 소수에 불과했다. 실제로 국민연금 말고도 외국인과 소액 투자가를 포함한 대부분의 주주가 합병 찬성에 표를 던졌다. 순수 기금운용 논리로 보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정책적 판단을 사후적으로 문제 삼는다면 그것은 대중의 분노에 올라탄 마녀사냥일 뿐이다.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고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특검은 국민연금이 삼성 합병에 찬성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외압이나 로비가 있었는지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다만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다른 가능성에는 눈을 감은 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우(愚)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7. 벤처가 만든 일자리 삼성전자 7배

우리나라 벤처기업 3만1260개(2015년 말 기준)가 지난해 올린 매출 총액이 215.9조원으로 집계됐다. 대한민국 1위 기업 삼성전자의 작년 매출액(200.6조원)을 웃돈다. 주목할 점은 이 벤처기업들이 대기업보다 성장성도 높고 기술 혁신에도 투자를 많이 하며 일자리도 더 많이 창출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청과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벤처기업당 작년 매출액은 전년보다 평균 8.6% 늘어나 같은 기간 매출액이 4.7% 감소한 대기업보다 성적이 훨씬 좋았다. 아직 역사가 짧은 벤처기업의 특성상 영업이익률은 대기업에 못 미치지만 연구·개발에 더 많이 투자하고 있어 앞날도 밝다. 국내 대기업이 매출액의 1.5%를 R&D(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동안 3만여 벤처기업은 매출액의 평균 2.4%를 R&D에 투자한다. 그 결과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자금, 판로 등 넘어야 할 난관은 많지만 벤처기업의 절반가량은 자사의 기술이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응답했고, 다섯 기업 중 한 기업꼴로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자신했다.



실제로 이 벤처기업들의 72.6%가 자체 연구소나 연구 전담 부서를 갖고 있으며 1사당 평균 4.5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또한 3만여 벤처기업에 종사하는 인력이 72만8000명이다. 비슷한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삼성전자가 국내서는 10만 명 정도만 채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일자리를 제대로 못 만들어내는 대기업에 비해 벤처기업의 고용 기여도가 7배나 된다. 벤처기업 중 절반 가까이는 내년까지 평균 2.4명을 신규 채용할 계획이라니 벤처 분야에서만 새 일자리가 3만2000개 넘게 생겨날 전망이다.



한국 경제는 삼성·현대차 등 일부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다. 삼성전자 하나의 시가총액이 전체 유가증권시장의 20%를 차지한다. 청년들은 전체 기업 수의 1%에 불과한 대기업 취업만 선호하고 중소기업은 가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기업 못지않은 기술력을 갖고 쑥쑥 성장하는 벤처기업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유망 벤처기업을 1만 개 만들면 청년층 일자리가 24만 개 더 생긴다. 한국 경제의 활력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는 답이 쉽게 나온다.



[매일경제]

8. 기업하기 얼마나 싫으면 돈이 그리 남아돌까

지난 3분기 국내 기업과 가계의 자금 흐름을 살펴보면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기업들이 지난 석 달 동안 장단기 차입과 주식·채권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은 모두 5조3000억원에 그쳤다. 기업들은 보통 분기마다 20조~30조원씩 자금을 조달한다. 많게는 60조원 넘게 조달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지난여름부터는 조달액이 급격히 줄었다.



지난 분기에는 기업 부문의 자금 조달보다 운용액이 4조5000억원 더 많았다. 그만큼 여윳돈이 생겨 금융자산 형태로 쌓아두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이 새로운 기준으로 자금순환 통계를 낸 2009년 1분기 이후 기업 부문에서 자금이 남아돈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반적으로 가계는 번 돈 중 일부를 저축하고 기업은 그 돈을 빌려 투자를 한다. 하지만 요즘은 기업이 돈을 쓰지 않고 되레 저축을 한다. 가계의 자금 잉여는 보통 분기마다 20조원을 넘었지만 지난 분기에는 2조원에도 못 미쳤다. 소규모 자영업자를 포함한 가계 부문 금융부채는 석 달 동안 38조원 가까이 늘어 1500조원을 넘어섰다. 반면 기업 부채는 17조원 줄었다. 주식 시가총액 기준 100대 기업의 잉여현금 흐름은 3분기 말 55조원을 넘어 한 해 전(25조원)의 두 배로 늘었다. 이쯤 되면 기업들이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에 거의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 빈자리를 가계가 빚을 내 메꾸는 건 분명 한계가 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총투자율(국민총처분가능소득 대비 총자본형성)은 40%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은 30%에도 못 미친다. 한국이 아시아의 호랑이가 된 건 기업가들의 야성적 충동이 한껏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기업들은 잔뜩 움츠리고만 있다. 기업가정신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매일경제신문이 한국경제연구원에 의뢰해 기업가정신의 변화를 지수화해보니 1980년대 말 220에 이르렀던 이 지수는 지금 역대 최저 수준인 86으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기업가정신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3위에 그쳤다. 우리 경제가 구조적 저성장의 늪에 빠진 데다 탄핵과 대선 정국의 혼란까지 겹쳤으니 기업하려는 의욕은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무슨 수를 쓰든 이 상황을 반전시켜야 한다.



[중앙일보]

9. 관광 한국, 언제까지 싸구려 쇼핑인가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하루 종일 서울 시내 면세점·건강식품점 등 여섯 군데 ‘뺑뺑이 쇼핑’에 끌려다닌다는 어제 보도를 보니 어이가 없다. 한국 고유의 향취가 나는 관광상품을 서둘러 개발하고 유·무형의 관광 인프라를 쌓아 나가도 시원찮을 판에 눈앞의 이익만 쫓는 일부 여행사들이 ‘관광 한국’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

우리 관광산업은 중국인 관광객의 급증 덕분에 외형성장을 거듭해 왔다. 문제는 그런 호황에 안주하는 바람에 오히려 관광품질 제고 노력은 퇴보한 것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갈등이 관광에까지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을 발동케 했다는 분위기도 있지만 사드 타령만 할 계제가 아니라고 본다. 여행사 난립과 과당경쟁을 구조조정하는 것은 물론 이번 기회에 ‘관광 한국’의 근본적 청사진을 다시 짜야 한다.



우선 국내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중국인인 상황에서 국적의 다변화가 중요하다. 또한 대도시와 인접 지방자치단체를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역마다 관광 특화상품으로 삼아야 한다. 깃발 앞세우고 수십 명씩 몰려다니는 유커(遊客)보다 삼삼오오 소규모 싼커(散客)의 개별여행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전통시장·역사탐방 같은 ‘다품종 소량’ 체험형 상품도 시급하다.

이웃 일본이 좋은 귀감이다. 관광입국 정책 드라이브가 효과를 내면서 한국에 오던 유커까지 일본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일본은 불법입국 폐해보다 관광객 증대로 인한 이득이 크다고 보고 비자 규제를 과감히 푸는 전략적 용단을 내렸다. 아베 총리가 일머리를 잡고 외무·법무 등 관련 부처 관광대책회의를 주도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즉시환급형 사후면세점을 대폭 늘린 것도 주효했다. 올해 일본의 외국인관광객이 2000만 명을 돌파한 것도 부럽지만, 이들이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가게 한 지혜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관광은 서비스산업 중에서도 외화가득 및 고용유발 효과가 큰 편이다. 경기침체기 내수를 살찌울 효자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도 관광 한국의 업그레이드는 시급한 과제다.



[한국일보]

​10. 젊은 리더의 고품위 정치, 모든 정치세력이 배워야

안희정 충남지사와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 여야의 젊은 리더들이 보수신당 창당과 관련해 덕담과 애정 어린 비판을 주고받아 어수선한 정국에 신선함을 던졌다. 정치적 책임의 정도를 감안하지 않고 견제 일색인 여야의 야박한 정치행태에 비추어 이들의 유연성과 포용력은 한층 돋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안희정 충남지사는 보수신당 창당 선언이 있던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경필 원희룡 유승민 등 젊은 지도자들이 새로운 보수, 진정한 보수의 출발점을 만들어 달라”며 “색깔론과 특권, 반칙의 기득권, 영남 패권정치를 끝내고 자기 책임성과 애국심에 기초한 새로운 보수의 길을 개척하기 바란다”고 덕담과 주문의 응원을 보냈다. 안 지사는 “견해가 다르더라도 진심으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정치, 타인의 비난이 아닌 자신의 꿈을 말하는 정치가 국민이 바라는 새정치일 것”이라며 “그런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 보자”고 건승을 기원했다.

안 지사는 자기 반성과 진보 혁신의 다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독선적 정의감, 배타적 선민의식에서 벗어나 유연하고 합리적 진보의 길을 열기 위해 송영길 김부겸 등과 함께 노력하겠다”며 “민주당을 새로운 진보의 정당으로 혁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보수신당과 라이벌 정치인에 대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응원 메시지는 그의 진정성을 엿보게 한다. 이에 원 지사는 “공격적 비난보다 더 아프다”며 “개혁보수신당은 안 지사의 덕담성 질타를 무겁게 새겨야 한다”고 수긍했다. 남 지사 역시 “애정 어린 조언에 무거운 책임감도 느낀다”며 “20년 정든 집을 떠나오면서 되새겼던 새정치에 대한 다짐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보수신당에 대해 새누리당은 물론 야권과 대권주자들이 일제히 견제에 나선 것과 크게 대조적인 장면이다. 예상보다 줄어든 탈당의원 숫자를 들어 “보수신당의 실패”로 규정한 새누리당 반응은 차치하더라도, “박근혜 정권의 공범”“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될 수 없다”는 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 측의 비판은 경직되고 성마른 견제에 지나지 않는다. ‘죽기 살기’식의 천박한 경쟁과 거친 막말에서 벗어나 상대에 대한 존중과 건강한 경쟁에 터잡은 격조 높은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우리 정치의 해묵은 과제만 일깨운다. 

앞으로 대선 경쟁에서는 격한 비난과 폭로가 난무할 게 뻔하다. 불안정한 여야 4당 체제가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젊은 정치 리더들이 보다 나은 정치의 희망을 안겨 주니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주요 신문칼럼



1. [동아일보][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 싱거 미싱과 이매방의 춤

이매방은 한 시대를 풍미한 전통 춤꾼이었다. 일곱 살 때부터 춤을 배워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살풀이의 예능보유자(일명 인간문화재)가 되었다. 지금까지 두 종목을 보유한 인간문화재는 그가 유일하다. 이매방이 2015년 타계한 뒤 최근 유족들이 그의 유품을 전북 전주에 있는 국립무형유산원에 기증했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이 유품들을 토대로 ‘명무, 이매방 아카이브로 만나다’라는 기획전을 열고 있다. 

기증 유품은 공연 영상과 사진, 공연 의상과 소품, 각종 편지 등 다양하다. 그런데 그중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오래된 재봉틀이다. 춤꾼과 재봉틀이라니. 이매방은 자신이 직접 무복(舞服)을 지어 입었다고 한다. 이매방 재봉틀은 1920년대에 생산된 ‘싱거(Singer)’ 모델이다. 이매방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하니 일제강점기 때 한국에 들어왔을 것이다. 싱거는 재봉틀에 있어 세계 최고 브랜드의 하나로 꼽힌다. 그 역사도 깊다. 우리나라에 재봉틀이 도입된 건 1900년경 일본을 통해서였다. 예전엔 재봉틀을 미싱이라 불렀다. 재봉틀은 영어로 ‘소잉 머신(sewingmachine)’. 일본인들이 여기서 소잉을 떼내고 머신을 미싱으로 불렀고 그게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 

지금은 집에서 재봉틀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재봉틀을 갖고 있는 가정이 적지 않았다. 재봉틀을 이용해 옷 수선은 기본이고 치마 바지 버선 등 일상복을 직접 만들어 입었다.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도 많았다. 재봉틀은 생계를 위한 중요 수단이었다. 그래서인지 재봉틀은 인기 있는 혼수품으로 꼽혔다. 6·25전쟁 때 재봉틀을 등에 지고 피란 간 사람도 많았다. 

이뿐 아니다. 재봉틀은 1960, 70년대 봉제 섬유산업의 필수품이었다. 우리의 근대화 산업화의 숨은 역군이었던 셈이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1989년)에 나오는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는 가사에 미싱의 역사와 애환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매방은 어려서부터 바느질을 잘했다고 한다. 그 재주로 싱거 미싱을 돌려가며 열심히 무복을 만들었다. 자신의 무복뿐만 아니라 제자들 것까지 만들어 주었다. 어찌 보면 재봉틀은 이매방 춤의 동반자였다. 그 덕분에 승무와 살풀이가 우리에게 잘 전해 올 수 있었으니, 흥미로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2. [동아일보][@뉴스룸/김창덕] 라이벌 구도가 바뀐다

‘참이슬 경쟁 상대는 파브? 엔씨소프트 맞수는 미드?’

2009년 5월 20일자 동아일보 2면에 실린 동료 기자의 기사 제목이다.

동종 제품 및 서비스 간 시장쟁탈전을 넘어 전혀 다른 산업에 속한 기업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게 요지였다. 퇴근 후 여가(餘暇)를 공략해야 하는 소주 회사는 일찍 귀가해 영화나 드라마를 보도록 유인하는 TV 제조사와 경쟁해야 한다는 식이다.

당시로서는 매우 신선한 시각이었고 또 화제도 됐었다.

지금은 어떨까. 이종 산업 간 경쟁은 산업경계의 파괴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융합’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변화가 가장 활발한 곳은 자동차산업이다.

자동차에 전자장비가 하나둘 얹히기 시작한 것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다양한 정보기술(IT)이 적용되면서 자동차는 어느덧 거대한 IT 기기의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다. 글로벌 IT 업체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건 당연한 얘기다. 구글은 이미 자율주행차 기술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삼성전자도 미국 하만을 인수하면서 자동차 전장부품 업체들에 선전포고를 했다. 일부 전문가는 지금과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은 IT로 완전히 넘어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기존 완성차 및 자동차부품업체들도 IT와 융합한 차세대 자동차에 미래를 걸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지금까지 부품을 납품하는 수천 개의 협력업체에 ‘산업의 주인’으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전혀 다른 세계에 있던 소프트웨어(SW) 괴물들이 자동차산업에 속속 뛰어들면서 위기감은 점차 커지고 있다. 자동차 핵심 기술로 ‘숨은 강자’ 역할을 해왔던 보쉬, 콘티넨탈, 덴소 등 글로벌 자동차부품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와 IT 간 융합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도 주목되지만 두 산업 간 주도권 쟁탈전의 향방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디트로이트에서 각각 열리는 ‘국제가전전시회(CES)’와 ‘북미국제오토쇼’는 큰 관심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개최 시기가 비슷한 것 외에는 서로 무관해 보이던 두 전시회는 어느덧 서로를 닮아 가고 있다. 올해 CES 기조연설은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이, 디트로이트 모터쇼 기조연설은 구글의 자율주행차 자회사인 웨이모의 존 크래프칙 최고경영자(CEO)가 맡는다. 독일 BMW, 보쉬 등은 자동차와 연관된 첨단 IT를 CES에서 선보이고, 구글과 IBM 등은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신기술 발표 무대로 삼을 예정이다.

미래 자동차산업을 둘러싼 자동차 업체와 IT 업체 간의 경쟁은 1990년대 글로벌 스포츠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종격투기’를 연상시킨다. 주짓수, 유도, 복싱, 레슬링 등 다양한 종목에 기반을 둔 격투가들은 ‘챔피언 벨트’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경쟁을 펼친다.

이종격투기 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어느 종목이 실전에 가장 강한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과연 미래 자동차산업에서는 누가 챔피언이 될까. ‘한국 챔피언’을 기대할 수는 있는 것일까.



3. [세계일보][공감!문화재] 문화재 보존 인간 넘을 수 없는 AI

한국은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빠른 정보기술(IT)의 중심국가로 자리 잡았고 줄기세포, 배아복제라는 단어를 전 국민이 알 정도로 생명공학기술(BT)에도 익숙한 나라가 되었다. ‘알파고’(AlphaGo)의 등장으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발달된 인공지능기술은 문화재 보존과학(Conservation Science)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보존과학은 문화재의 보존을 위해서 과학과 기술을 활용한다.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에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존과학연구실이 생기면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재질로 이루어진 문화재를 훼손되지 않게 보존하는 것이 목적인데, 이를 위해 다양한 과학분야의 융복합적 적용이 필요하다.

인공지능기술이 문화재 보존과학에 적용되면 어떨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가 입력된 인공지능 컴퓨터는 스스로 터득한 기술을 적용하고, 문화재의 기대 수명을 예측해서 보존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결과 값을 제시할 수 있을까. 물론 어느 정도의 예상 범위는 정할 수 있겠지만, 문화재 보존의 역할을 인공지능 컴퓨터에게 온전히 넘겨줄 수는 없을 것이다. 문화재는 과거나 현재나 사람의 정밀한 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문화재는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고 지극정성으로 다루어야 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감성과 섬세함을 대신할 수 없는 분야가 있는데 문화재 보존과학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인공지능기술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다수의 과학자들은 미래사회에는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직업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 보존과학분야에 인공지능기술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보존과학자를 꿈꾸는 이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문화재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인간의 두뇌와 섬세한 손기술이 필요하다.



4. [아시아경제][일터삶터] 주름살의 향방

올해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나의 주름살이다. 잔주름에 불과하던 것이 올해를 기점으로 그야말로 ‘인상’깊이, 남았다.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면서 궁금하거나 의심하거나 골똘해질 때 입가에 바짝바짝 힘을 주는 버릇이 생긴 탓이다. 일 핑계를 댔으나 주름이 놀라울 나이는 아니라, 더욱더 일 핑계를 대는 중이다.

평소 사람의 얼굴을 보는 편이다. 관상을 볼 줄 안다거나 루키즘을 신봉하는 건 아니고 나이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지라는 옛말을 (내가) 나이 들수록 실감한다는 뜻이다. 얼마나 칠하고 가꾸느냐와 상관없이, 사람의 얼굴이 무심코 귀띔해주는 정보에 덕을 볼 일이 점점 많아진다. 누구나 각양으로 타고난 이목구비를, 각색으로 쓰며 산다. 태어나기는 제 의지가 아니지만 쓰는 동안에는 제법 의지가 깃든다.

회자되는 말에서는 나이 마흔부터 책임지랬던가. 좀 무섭다.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무엇을 보며 살았는지, 무슨 말을 하며 살았는지를 얼굴이 알려준다니. 어떤 근육을 많이 써서 어디에 주름이 깊은지, 사물을 볼 때 눈동자를 어떤 각도로 사용하는지, 입을 열 때와 다물 때 어느 방향으로 입매가 기우는지가 세월과 함께 누적된다. 단순히 웃는 상이니 좋은 인상, 그래서 좋은 사람이라는 식은 아닐 것이다.



사실 좋은 사람이란 말처럼 영문을 알 수 없는 말도 없다. 뭐가 좋은 사람인가. 나의 은인이 누군가에게는 죽일 놈인데.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그냥, 모두에게 좋은 소리 듣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좋은 인상도 마찬가지. 적절히 지긋한 나이에 매양 맑고 청순하기만 한 인상처럼 기이한 것도 없다.

내가 본 ‘어른의 얼굴’은 대체로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모질었는지, 거기에 어떤 마음보로 맞섰는지를 귀띔해주었다. 그 와중에 자존을 잃지 않으면서도 내려놓아야 할 때 내려놓는 슬기를 부렸는지도. 얼굴에 남는다면, 당연히 몸에도 있을 거다. 걸음걸이, 앉는 자세, 손짓, 어깨와 발뒤꿈치조차 한 사람이 지나온 길을 재생한다. 몸과 마음은 대체로 분리되지 않는다.

온갖 군상의 얼굴이 떼로 나오는 청문회를 보고 있자니 여간 공력이 드는 게 아니었다. 들어주기 힘들어 소리를 꺼놓고 보아도 얼굴들에 밴 악취(또는 향취)가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살면서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일에 대해 어리광 이상으로 대처해본 적이 없을 한 여성의 미간엔 오랜 신경질이 가득했다. 저와 제 가족의 안위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해본 적이 없는 주제에 공부머리 하나 믿고 사방을 호령하려 들던 한 남성의 눈동자엔 사특한 기운이 스쳤다.

그러나 명료한 문장만을 똑똑 끊어 말하던 한 여성의 단호한 입매에 나는 반했고, 재벌 총수의 뒤통수를 가로지르는 한 남성의 형형한 눈빛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리고 새삼, 이 모든 난장의 한복판에 계신 그분을 볼 때마다 얼굴에 무슨 이렇다 할 향기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단정한 이목구비를 가졌으면서도 단 한 번도 오롯한 자신의 주름으로 살아본 적 없는 공허한 얼굴. 그게 철벽같은 이미지 관리 때문인 줄만 알았지, 진짜 마리오네트의 얼굴인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다.

해가 바뀌면 나이가 더해지는 나라에 살고 있으므로 올해의 나이로 살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새해에는 머릿속에 강령을 하나 새기고 맘을 다잡으려 한다. ‘(올해부터) 주름살의 향방은 주름살 주인에게 달려 있다.'



5. [경향신문][문화와 삶] 밥 딜런과 ‘세월엑스’

올해 문화예술계의 빅뉴스 가운데 하나는 모던 포크 가수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었다. 수상 소식이 알려진 이후에도 밥 딜런이 과연 이 상의 수상자로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는 가수인가, 시인인가? 분명한 것은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대변되는 시대정신이 ‘읽는 텍스트’에서 ‘듣는 텍스트’로의 문화사적 전환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듣는 텍스트’란 말하듯 쓰여지는, 혹은 실제로 말을 하는 언어 텍스트를 뜻한다. 우리는 온갖 사적인 감정과 뉘앙스가 표현된 카톡 메시지와 페북 메시지를 ‘읽지’ 않고 사실상 ‘듣는다’. 같은 은유적 맥락에서 우리는 신문기사를 읽는 것보다 그 아래 어딘가에 모여서 분노하거나 빈정거리고 있는 댓글의 ‘목소리’를 더 즐겨 ‘듣는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손가락 끝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소리가 나는 동영상 속 메시지들을 우리는 실제로 듣는다.



발터 베냐민이나 월터 옹과 같은 이들이 ‘기술복제시대’와 ‘2차적 구술시대’라고 일컬었던 새로운 시대의 본격적 개막은 20세기 말까지도 지체되다가 ‘디지털혁명’을 겪은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그 잠재력을 활짝 발휘하고 있다. 그 핵심에는 수평적으로 만나 감성적으로 대화하는 언어가 있다.

듣는 텍스트의 시대에 모든 언어는 노래가 된다. 전통적으로 노래의 정치적 힘은 특유의 공유가능성과 전달력에 있었다. 노래 속 언어는 쉽게 기억되는 운율을 통해 의도된 메시지를 더 많은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보다 훨씬 간편하고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 수단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전통적 노래 형식을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최근의 촛불 정국에서 새로운 민중가요가 예전처럼 활발하게 만들어지거나 불리지 않는 이유도 부분적으로는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를 수단으로 한 정치적 메시지는 더 이상 노래가 아니라 감성적 언어 그 자체로도 널리 퍼져나갈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 링크된 동영상 속 누군가의 정치적 발언, 재치와 풍자를 담은 시국 관련 편집 영상들은 수천 수만명이 공유하는, 그 자체로 새로운 ‘민중가요’다. 그것은 디지털 플랫폼에서 새롭게 불러지고 들려지는 ‘밥 딜런의 노래’인 셈이다.

전통적 노래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감성적 언어라고 해서 논리나 과학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유튜브로 공개된 ‘자로’의 다큐멘터리 ‘세월엑스’는 이 새로운 감성적 언어의 불온함이 오히려 합리성과 상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이 다큐멘터리의 화자는 흔한 내레이션을 쓰지 않고 자막의 텍스트만으로 우리에게 친밀하게 말을 건다.



대화체의 반말을 쓰는 파격과 함께 그는 다음과 같은 다큐 제작의도를 밝힌다. “미리 하나 말해둘게. 나는 세월호 사고 원인을 잠수함 충돌로 단정하는 게 절대 아니야. ‘외력’ 존재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절실함을 느끼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과 위험을 무릅쓰고 이 다큐를 만든 거야.” 이어서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이 자막으로 한 단어씩 조심스럽게 ‘들려온다’. “하지만/ 솔직히/ 너무 두려워.” 러닝타임이 무려 8시간49분에 달하는 ‘세월엑스’는 듣는 텍스트 시대의 방대한 연구 논문인 동시에 새로운 양식의 감성적 서사시이자 서정가요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이 새로운 디지털시대의 ‘밥 딜런’들이 내는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들이 요구하는 ‘합리적 공감’의 장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서글픈 일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듣는 힘이 약해진다. 청각이 노화되어 높은 주파수의 음들이 잘 들리지 않는 것이 한 가지다. 하지만 그런 생물학적 차원에서만 못 듣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사회적 청력은 더욱 감소한다. 옛 성현들은 이 사실을 간파했던 것 같다. 오죽하면 ‘성인(聖人)’이라는 한자에 ‘귀’ 모양을 새겨 넣었을까? 위기 상황에서도 ‘서면보고’를 고집하고 질문과 대답을 회피하던 대통령, 은밀하게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청와대 비서진과 공직자들, 그 구태를 청산하고 한국인들 모두 새해에는 잘 듣고, 터놓고 대화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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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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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국정 역사교과서 벌써 폐기 수순인가

교육부의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적용 방안은 줏대없는 교육정책의 현주소를 다시금 드러냈다는 점에서 적잖이 실망스럽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어제 국정교과서 전면 적용시기를 당초 예정했던 내년에서 내후년으로 1년 연기하되 기존 검정교과서와 혼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희망하는 학교는 연구학교로 지정해 내년부터 새 교과서를 쓰게 한다는 구상도 내놨다. 한마디로 전면 폐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면 채택도 아닌 어정쩡한 절충이다.

국정교과서는 좌파 진영의 극렬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인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이다. 기존 검정교과서들이 좌편향 일색이어서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누적된 데 따른 정권 차원의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자라나는 미래세대에 균형 잡힌 역사관과 올바른 국가관을 심어 주는 게 역사교육의 목적이라면 이념에 찌든 기존 교과서들에 대처할 새 교과서를 펴내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전면 시행을 연기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정책추진 동력이 떨어진 터에 자칫 새 교과서의 생존 자체를 우려해야 할 형편이다. 더욱이 내후년이면 정권이 바뀐 뒤다. 지금도 어려운 것을 그때 가서 전면 시행하겠다는 것은 포기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차라리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명칭을 쓰지 않았다면 덜 어색할 뻔했다.

다만 국·검정 혼용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학문의 다양성도 고려해야 하지만 강력한 반대가 존재하는 현실을 완전히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성향 교육감들이 미리부터 국정교과서 신청을 취소하도록 일선 학교에 압력을 가하는 움직임이어서 걱정이다. 역사 교육을 획일화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허구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꼴이다.

일부 사립학교 단체를 중심으로 국정교과서에 대한 긍정 평가가 나오긴 했으나 실제로 채택하는 학교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3년 전 교육부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교과서를 일부 학교가 채택하려 하자 우편향이라는 이유로 전화 및 온·오프라인 시위로 무차별 공격 끝에 채택을 무산시켰던 ‘교학사 파동’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이제 선택은 학교와 담당 교사의 몫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좌편향이든, 우편향이든 일방적인 교육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2. 국민들의 노후 걸린 국민연금 운용 내막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찬성 경위에 대해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이 어제 특검팀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것이 그것이다. 삼성그룹에 대한 특혜 여부를 떠나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지고 있는 국민연금이 섣불리 기업 이해관계에 끼어들었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이 문제를 전문가 위원회에 넘기지 않고 자체 회의에서 처리했다는 사실부터가 의문이다.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그 무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면담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문 이사장이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여기에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느냐는 게 특검팀의 관심이다. 합병 찬성에 대한 압력 대가로 연금공단 이사장을 맡게 됐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기금운용본부가 정치적 여건에 따라 휘둘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결과다. 회의 형식도 허술하다. 기금운용위원회가 해마다 평균 5회 안팎 열리고 있으나 식사를 하면서 2시간 남짓 안건을 논의한다는 것이니, 내실있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기금 규모가 550조원에 이른 국민연금 운용의 한심한 내막이다.

위원으로 위촉됐으면서도 정작 회의에 관심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당연직인 정부부처 차관급 위원들 중에서도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회의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다른 위원들 가운데서도 비전문가가 수두룩하다고 한다. 서로 관심이 모자란 상태에서 젓가락질을 하며 회의가 진행되곤 했으니, 기금운용위원회가 ‘거수기’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문제는 한순간의 판단 잘못으로 국민연금 기금이 순식간에 쪼그라들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사실이다. 현재 2177만명에 이르는 연금 가입자들의 노후 생계가 달린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가 고령화단계에 접어들면서 이미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이 의문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주먹구구식 운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니 더욱 걱정이다. 국민연금이 결코 권력자들의 쌈짓돈이 아니라는 인식부터 새겨야 한다.



[서울신문]

3. ‘블랙리스트’ 다시는 발 못 붙이게 해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와대에서 작성했다는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일부를 확보해 수사하고 있다고 한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장관직에서 물러나기 한 달 전쯤 블랙리스트를 봤다”고 존재를 확인하기도 했다. 유 전 장관은 인사 등의 문제로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다 2014년 7월 면직된 인물이다.



그럼에도 김 전 실장이나 조윤선 문체부 장관 등은 부인으로만 일관했으니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실이 작성하고 문체부가 관리했다는 ‘블랙리스트’에는 그동안 소문처럼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것으로 분류된 문화예술인과 문화예술단체가 대거 포함됐다고 한다. 문명사회, 그것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권력의 횡포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참담하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 국가에서 어떤 가치보다도 앞선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더구나 문화예술 활동의 핵심 가치가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념을 기준 삼아 국민을 반쪽으로 가르는 ‘블랙리스트’는 우리 사회 어떤 분야라도 용서할 수가 없다.



하물며 ‘문화융성’을 ‘4대 국정지표’의 하나로 내걸었던 박근혜 정부가 같은 시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해가 불가능하다. 지원해야 할 문화예술인과 지원하지 말아야 할 문화예술인을 철저히 가리는 문화예술 정책은 결국 반쪽짜리 문화, 반쪽짜리 예술만 남긴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묻고 싶다. 다양한 사고를 가로막는 문화예술 정책은 필연적으로 상상력 빈곤을 낳을 수밖에 없다. 빈 껍데기만 남을 문화예술 콘텐츠로 어떻게 창조경제 문화산업 강국이 될 수 있다는 뜻인지 답답한 일이다.

특검팀은 ‘블랙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김기춘 전 실장의 자택과 문체부 조윤선 장관 및 정관주 전 차관의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직권남용죄와 권리행사방해죄 등의 혐의가 적시됐다고 한다. 특검은 이들이 우리나라 문화예술을 피폐하게 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1만명에 육박한다는 리스트의 실체를 모두 밝히는 것도 특검에게 주어진 소임이다. 한편으로 블랙리스트가 실제 문화예술 지원 정책에 어떻게 악용됐는지도 속속들이 조사하기 바란다.



무엇보다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앞으로 어떤 정부도 기본권 침해 범죄는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준엄한 제재가 이루어지기 바란다.



[조선일보]

4. 野 햇볕론자들, 태영호 공사 증언 듣고 있나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27일 망명 이후 첫 기자 간담회를 갖고 김정은 체제의 핵 위협을 끝내는 방안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그는 "김정은의 핵 개발을 포기시키는 것은 그 어떤 인센티브(대북 지원)의 질과 양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고 단언하고 "김정은 정권=핵무기이며, 김정은이 있는 한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1조, 10조달러를 준다고 해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는 태 전 공사처럼 북에서 살면서 체험하고 체득한 고위 인사 얘기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햇볕론자라고 하는 맹신자들이다. 북에 돈과 쌀을 주면 핵을 포기할 것이란 단선적 논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지역감정과 정치 논리까지 합쳐져 이제는 거의 무슨 종교처럼 굳어져 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한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사람이 다 바뀌고 새 대북 정책을 시도할 것이란 계산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김정은은 햇볕론자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북 제재를 무너뜨리고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다시 돈과 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을 것이다. 실제 지지율 1·2위를 다투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당선되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고 했다. 개성공단은 다시 돌려 북에 달러가 들어가게 만들고 사드는 재검토한다고 했다. 국민의당도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이다.


햇볕론자들은 대북 제재는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태 전 공사는 "대북 제재가 북한 주민 심리를 바꾸고 김정은의 경제정책을 물거품으로 몰고 갔다"고 증언했다. 그는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한 것도 북의 외교를 심각하게 위축시켰으며 김정은이 겁내고 있다고도 증언했다. 햇볕론자들 주장의 허구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태 전 공사는 북핵을 없애기 위해선 김정은 1인 체제를 붕괴시키는 것만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외부 정보가 유입되는 날 북 체제는 물 먹은 나무처럼 허물어질 것"이라고 했다. 태 전 공사는 "북에서 저 때문에 피해를 볼 사람들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그러나 방구석에 앉아서 눈물이나 흘리고 가슴 쥐어뜯는다고 달라질 것이 없었다"고 했다.


햇볕론자들은 태 전 공사의 이 증언도 무시하고 듣지 않을 것이다. 1997년 귀순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북에 대한 환상을 깨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햇볕론자들이 득세하면서 좌절했다. "문제는 북한 인민들이 아니라 남한 사람들"이라는 말이 생전 그의 입에서 나왔다. 태 전 공사의 충정도 좌절할 수 있다. 정치와 정권의 오염으로부터 안보와 통일을 지켜야 하는 것은 결국 국민 뿐이다.


[세계일보]

5. 개혁보수신당에 보수의 미래 걸렸다

새누리당이 두 동강 났다.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의원 등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29명이 어제 새누리당을 뛰쳐나와 ‘개혁보수신당’(가칭) 창당을 선언했다. 내년 1월24일 창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3당 체제가 4당 체제로 재편하게 됐다.

새누리당 분당은 사필귀정이다. 친박계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친박당은 국민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비박계 대거 탈당에도 개헌 저지선 101석에 2석 모자란 99석으로 원내 제2당의 지위를 지키고 있지만 앞날을 장담하기 어렵다. 전국당의 면모를 잃고 ‘TK·충청당’으로 쪼그라들었다. 의원 99명 가운데 서울은 2명, 수도권은 17명뿐이다. 그나마 대선정국과 맞물려 정계 개편과 보수 재편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면 존립을 낙관할 수 없다.

개혁보수신당은 창당 선언문을 통해 “진정한 보수의 구심점이 되겠다”고 했다. “새누리당을 허문 자리에 따뜻한 공동체를 실현할 진정한 보수정당의 새로운 집을 짓겠다”며 법치주의 실천, 시장경제 발전, 안보와 국정·민생의 안정을 약속했다. 신당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호의적인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야당에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새누리당의 ‘위성정당’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는 따위의 반응이 쏟아졌다. 신당 대열에 동참하기로 했던 새누리당 의원 6명도 눈치를 보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보수의 정통성을 유지하면서 개혁을 담아가는 방향을 좀 더 지켜보겠다”고 했다. 신당의 정체성에 그만큼 많은 물음표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신당이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의원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의구심은 씻어내면 된다. 신당이 가겠다는 진짜 보수의 새 길은 가보지 않은 길이다. 비박계에게도 박근혜정부의 헌정 유린과 국정농단에 대한 책임은 있다. 참회의 자세로 보수 가치를 바로 세워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면 된다. 특정인 중심의 사당화를 경계하고 인맥 중심의 정치, 지역주의 정치를 추방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보수 정당의 정통성을 인정받으려면 진짜 보수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사상 첫 보수의 분당은 보수에게 위기이자 기회이다. 새누리당 구원투수로 나선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는 “법적, 도의적,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며 친박 청산 의지를 밝혔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혁명 수준의 변화와 혁신을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개혁보수신당과 새누리당의 ‘보수 적통’ 경쟁이 건강한 보수를 정립시키고 정치 수준을 끌어올리기를 기대한다.


[중앙일보]

6. 미진하나마 주목할 아베의 진주만 방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6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 하와이 진주만을 방문하는 것은 미·일 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진주만은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미·일 모두에게 역사적인 곳이다. 이번 진주만행이 지난 5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원폭기념관 방문에 대한 답방 성격이긴 하나 미·일 밀월관계를 만방에 보여주려는 강한 의지가 작용한 게 틀림없다.

사실 진주만을 찾은 일 총리는 아베가 처음은 아니다. 1951년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를 시작으로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가 이곳을 방문했다. 하지만 아베는 27일 오후(한국시간 28일 오전) 침몰 함정 위에 세워진 애리조나기념관을 찾는다. 현직 총리로서는 처음이다. 기념관 밑에는 1100여 명의 미군이 아직도 영면하고 있어 이곳은 미국인에겐 무척이나 신성한 장소다. 이런 곳에 일본 총리가 방문한다는 것은 국내 강경 우파의 목소리를 감안한다면 아베로서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정치적 부담을 각오하고 이곳을 찾은 것은 세계 전략 차원이다. 무엇보다 미·일 동맹의 토대를 흔들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차기 대통령을 의식한 행동이 분명하다. 비록 지난 미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지만 일단 트럼프가 이기자 아베는 즉각 뉴욕으로 날아가 누구보다 빨리 그를 만났다. 이 같은 아베의 기민성을 우리 정치인들도 새겨 봐야 한다.

한편 아베 총리는 진주만 방문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데 대한 사죄나 반성의 말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한국과 중국 등 일본의 침략으로 엄청난 피해를 본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미국에만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면 눈앞의 국익만 좇는 속 좁은 행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아베 총리는 지난 25일 미국과 일본의 역사학자 50여 명이 발표한 공개 질문서에 대답부터 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일본이 공격했던 장소는 진주만뿐만이 아니다”며 “한반도와 중국, 아시아 각국의 2차 대전 희생자도 위령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매일경제]

7. 신문 3개법 제·개정안 언론자유 침해소지 크다

언론 자유를 침해하고 광고 유치 등을 제약하는 신문 관련 3개법 제·개정안이 잇따라 국회에 제출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법률 제정안,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그것으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이들 법안에는 독소조항이 대거 담겨 언론활동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노웅래 의원이 7월 대표발의한 정부광고법 제정안의 취지는 현행 정부기관 등의 광고 시행근거가 법률이 아닌 국무총리 훈령이고, 광고업무를 한국언론재단에서 대행하면서 일부 매체에 광고가 편중되고 있어 이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법안은 △정부광고시행 심의위원회 신설 및 국회의장이 3인 추천 △위원회가 정부광고의 매체별·지역별 배분 원칙 수립 △광고 배정 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유가 판매부수, 구독·광고수입 신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일부 매체에 정부 광고가 편중 집행됐다"는 전제부터 사실과 다르다. 발행·유가부수 상위 20개사의 2013년, 2014년 광고실적을 보면 전체 시장점유율에 비해 정부 광고 점유율은 낮게 나타났다. 국회의장이 심의위원 3인을 추천하는 것은 정치적 개입이 우려되고 매체에 경영 자료를 요구한 것도 영업권 침해다. 또한 나눠먹기식 광고 배분은 유사 언론의 난립을 부채질할 수 있다. 

신문법 개정안(7월 노웅래 의원 발의)은 인터넷 신문의 정의 규정 중 대통령령에 위임한 '독자적 기사 생산과 지속적인 발행' 등을 삭제하려는 게 핵심이다. 현재 인터넷신문의 자체 생산 비율은 30%밖에 안되는데 아예 요건을 없애는 것은 사이비 인터넷 언론의 난립을 부를 수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10월 곽상도 의원 발의)은 개인이 인격권을 침해받았을 때 언론중재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원본 기사의 수정·보완·삭제 등을 할 수 있도록 해 언론의 자유, 알권리 침해 소지가 크다.


한국신문협회 등 3개 단체는 "사실인 기사까지 수정·삭제하도록 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며 개정안의 폐기를 촉구했다. 민주정치에서 언론 자유는 필수불가결한 것인데 이를 옥죄는 법안들이 쏟아지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다.


[서울경제]

8. 미군사령부 마비시킬 北 사이버능력, 우리 대응책은

북한의 사이버전 능력이 하와이의 미군 태평양사령부 지휘통제소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미국 국방부가 최근 북한의 사이버전 능력을 모의실험해보고 내린 결론이다. 방위사업청 산하 국방품질연구원이 ‘국방과학기술조사서’를 통해 소개한 북한의 사이버전 전력은 이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조사서에 따르면 북한의 전력은 태평양사령부 지휘통제소를 마비시키고 미국 본토의 전력망에 피해를 줄 만큼 발전했다. 미국 사이버 전문가들마저 ‘상당히 우려할 만하다’고 평했을 정도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북한의 사이버전 전술이 목표 시스템에 은밀하고 지속적인 공격을 가하는 형태로 갈수록 지능화·고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6,000명에 이르는 사이버전사를 이용해 첨단 악성코드를 통한 기밀정보 수집은 물론 악성코드 분석을 못하도록 코드 가상화 기법까지 적용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사이버전 대응능력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북한의 사이버 테러에 무방비 상태로 번번이 뚫리고 있는 판이다.

이달 초에도 국군 사이버사령부 서버가 해킹당해 내부 전용회선인 국방망(網)이 악성코드에 감염되고 군사기밀이 유출되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해킹 주체가 북한일 가능성이 큰데도 군은 어떤 군사기밀이 유출됐는지를 한동안 파악조차 못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군과 정부는 사이버전 전력 강화를 강조하지만 피부에 와 닿는 변화가 없다. 컨트롤타워 부재 운운하기 일쑤다. 이런 상태인데 북한과의 사이버전쟁에서 이기기를 기대하는 것은 힘들다. 

북한에 완패당하지 않으려면 이제는 실천해야 한다. 마침 사이버 안보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국가사이버안보위원회 설치를 담은 법안이 2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사이버전을 지휘할 중심축이 생겼으니 북한을 압도할 수 있는 전력 구축에 나서야 할 때다.


9. 관광 수요 고민 없이 공급과잉 부추긴 호텔특별법

서울 시내에 우후죽순으로 지어진 호텔들이 애물단지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서울경제신문 27일자 보도에 따르면 2012년 7월부터 시행된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고도 착공하지 못한 서울 시내 호텔은 물론 일반 호텔마저도 대거 매물로 쏟아지고 있다. 정부의 당근책에 돈이 된다 싶어 경쟁적으로 호텔 건설에 나섰지만 공급과잉과 대체 숙박시설 증가로 수익률 맞추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탓이다. 앞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 등으로 관광객마저 줄어들 경우 큰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서울 시내 호텔 수는 9월 말 기준으로 329개, 객실 수는 4만5,551실로 2011년 말에 비해 두 배가량 늘어났다. 특히 특별법 시행 이후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은 호텔이 서울 시내 126개, 2만5,822실에 이른다. 대부분 특별법 혜택을 겨냥해 호텔 건설에 나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문제는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그만큼 급격히 늘어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게스트하우스나 숙박 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앤비’ 등 새로운 숙박 형태가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외국인 관광객이 1,700만명을 넘어 사상 최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데도 호텔 수요가 크게 늘지 않는 이유다. 관광호텔과 모텔 등 숙박시설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에서도 20만원대 이상 고가와 6만원대 미만이 초과 공급된 것으로 나타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숙박 수요에 대한 이런 미스 매치는 정부의 주먹구구식 수요관리 체계에서 비롯됐다고밖에 볼 수 없다. 더구나 특별법까지 마련했으면서도 정작 관광호텔은 문체부에서, 모텔과 분양형 호텔은 보건복지부에서 관리하면서 전체 호텔 공급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니 한심할 따름이다. 이제부터라도 정확한 수요예측과 엄격한 관리로 그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

10. 부업을 허용하는 일본의 새로운 취업규칙에 주목한다

일본이 정규 사원의 부업이나 겸업을 ‘원칙 허용’키로 하고 이를 골자로 한 ‘모범 취업규칙’을 연내 개정한다는 보도다. ‘모범 취업규칙’은 강제성은 없지만 중소기업 대부분이 이를 그대로 취업규칙으로 쓰고 있어 파급력이 크다. 부업·겸업 허용은 경제활동인구가 급감하고 있는 일본이 짜낸 고육책이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1995년 8700만여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줄어들어 2013년에는 32년 만에 8000만명 아래로 떨어졌고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력이 되는 근로자들이 주된 직장 말고 다른 회사에서도 일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노동력 부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희망자도 많다. 일본 중소기업청 조사에 따르면 부업 희망자가 전체 취업자의 5.7%인 370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종신고용’ ‘평생직장’의 상징이던 일본의 새로운 선택이라는 점에서는 적잖은 충격이다. 일본의 ‘회사인간’들이 이제 다른 직장에도 다니고 집안 부업도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부업이나 겸업은 여전히 낯선 풍경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재직자가 벤처창업을 원할 때 겸직을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정도다. 중국은 한 직장 급여만으로는 생계를 해결할 수 없어 겸업이나 부업을 하는 직장인이 실제 많지만 법으로 허용하지는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부업·겸업이 논의조차 된 적이 없다. 구직자는 넘치는 반면 일자리가 여전히 부족해서다.

일본은 노동력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주부나 장애인들이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텔레워크’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고 현재 64세까지인 생산가능인구 연령을 69세까지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그중 가장 먼저 실현되는 부업·겸업 허용은 노동시장 유연화의 사례요, 시장 변화의 반영이다. 지금이야 일본도 취업규칙을 만들어 제시하고 있지만 노동시장의 변화가 더 빨라지면 회사와 근로자 간 개별 계약을 최우선으로 삼는 관행이 늘어날 것이다. 노동개혁이란 판만 거창하게 깔아놓고 한 발짝도 못 나간 우리 현실에선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매일춘추] 새벽의 시간

새벽 다섯 시, 누군가에는 이르고 누군가에게는 늦은 시간이다. 어릴 적 부모님이 새벽기도를 나서며 문을 ‘삐걱’ 열던, 그 소리에 어렴풋이 깨어 보면 시곗바늘이 향해 있곤 하던 그 시간. 어른이 된 아이는 그 시간에 새벽기도를 가기 위해 깨어나지는 못하고, 반대로 밤샘으로 그 시간까지 깨어 있는 일이 종종 있다.



밤샘을 하다 보면 보통은 새벽 두세 시가 고비인데 아무래도 밖에 나가기 애매한 시간이라 그냥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곤 한다. 문을 걸어 잠근 박물관 2층 테라스에서 밖을 내다보면, 길고양이들이 담벼락과 지붕 위를 유유히 활보하며 다니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고물상에 옮겨놓는 넝마주이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분명 어딘가에 있었을 텐데, 낮 동안은 눈에 띄지 않던 이들이 존재감을 발한다.



새벽은 그런 시간이다. 낮과 밤의 동선이 교차하면서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차원이 슬며시 열리는 듯한. 무언가 다가오면서, 지나간 것이 희석되는, 그래서 어제인지 오늘인지 헷갈리는 미로 같은 시간. 거기서 우리를 이끄는 유일한 지표는 꾸준하고 정확한 어떤 일상의 약속들이다. 예를 들면 새벽시장 같은.



달성공원 앞, 과거에 ‘삼공오번지’라 불리던 복개도로 위로 두어 시간 동안 펼쳐지는 장에 가 본 적이 있는지? 새벽 5시, 각종 먹거리와 막걸리까지 준비된 테이블에서 누군가는 막일을 나가기 전 이른 아침을 먹기도 하고, 바닥에 펼쳐놓은 채소바구니 사이를 오가며 누군가는 하루의 찬거리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디서 나타났나 싶은 풍선 실은 리어카가 길 한가운데로 지나가기도 한다.



누구보다도 빨리 아침을 시작하는 이곳의 사람들을 보노라면, 어쩐지 시간의 구분이 명료해지는 느낌이 든다. 반쯤 잠에 취해 좀비 상태로,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장을 봐 집에 오기도 한다. 깻잎 1천원어치, 오이 2천원어치. 뭐라도 해 먹으리라 다짐하며 사 놓은 야채들은 물론 냉장고 밖 구경도 못한 채 세상과 하직하기 일쑤지만, 부지런한 사람들 대열에 올라탄 느낌이 들어 시장 구경은 그 자체로 즐겁다.



이렇게 새벽을 담고 귀가를 하면 피곤하지만, 무척이나 풍족한 느낌이 든다. 미로를 헤매다 출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안도감이 들면서도, 그 미로에 언제라도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설레기도 한다. 이렇게 새벽에 대한 낭만적 감상과 현실적 감각 사이를 오가면서 양가적 감정을 느끼는 것이 어쩐지 이중적인 것 같다가도, 이게 나라는 인간의 모습인가 싶기도 하다.



그만큼 새벽은 모든 게 용인되는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호한 시간이자, 기도의 시간이며, 잠의 시간이고, 시작과 끝의 시간인 새벽. 우리는 아직 이 새벽에 대해 충분히 사유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2. [서울신문][박형주 세상 속 수학] 가상과 실물이 만나다

이 엄중한 때, 세계사에서도 흔치 않은 격랑의 와중에서도 언론사마다 송년 특집이나 신년 특집에서 앞다투어 4차 산업혁명과 교육 및 일자리 문제를 다루는 중이다. 어쨌든 우리는 먹고살아야 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해야 하지 않는가. 산업의 급격한 변화 양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분명하고,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와 일자리 문제에 대한 진지한 담론은 형성되고 있다.

증기기관이나 전기의 도입이라는 기술적 혁신은 노동생산성의 획기적 증대로 이어지며 1차 및 2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변화를 낳았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만들어 낸 가상 세계의 혁신은 인간의 삶의 방식과 일자리의 양상을 크게 바꾸어 디지털 혁명 또는 3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린다. 여기에 몇 번의 빙하기를 겪은 인공지능기술이 마침내 혁신에 성공하며 가상 세계는 새로운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런 가상 세계가 로봇이나 자동차 같은 실물 세계와 연결되자 이전에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의 생산성 증대가 일어나는 중이다. 가상 세계와 실물 세계의 결합이라는 이 추세는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린다. 과격한 수준의 일자리 변화를 동반할 것으로 예측돼 우려도 크지만, 그래서 준비해야 하는 것이리라.

이러한 결합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 중에는 수학적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게 놀라울 정도로 많다. 문제의 성격과 필요에 따라 순수 수학의 전 영역을 활용하는데 산업수학이라 부른다. 이러한 방식의 성공 사례로 주목받는 미국 스타트업 아야스디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비슷한 생체 데이터를 가진 환자들인데도 추가 암 검진이 필요한지를 구별해 낸다. 기본적인 생체 데이터로부터 당뇨병 유무와 유형까지 자동으로 알아낸다. 위상수학이라고 하는 수학 이론으로 이런 결과를 냈다.

산업수학은 사회 문제 해결의 주요 도구가 되기도 한다. 201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수학자 로이드 섀플리의 알고리즘을 공립학교 배정에 적용한 뉴욕시에서는 원하지 않는 학교에 배정된 학생이 적응하지 못해 중간에 전학을 가는 경우가 크게 줄었다.

산업과 과학기술 영역에서 빅데이터 등의 이슈가 쏟아지지만, 이미 개발된 수학적 도구를 기업이 활용하는 게 쉽지는 않다. 결국 협업이 답이다. 다행히 시작이 늦은 우리나라도 빨리 따라잡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나오는 많은 문제를 수학적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 수학자들과 협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이런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도 빠른 속도로 마련되고 있다.

딥러닝 방식을 에너지 관리에 적용해 건물의 전기 비용을 크게 줄인 국내 스타트업이 출현했고 위상수학 빅데이터를 사용해 조류독감의 감염 경로를 알아낸 기업도 나왔다. 의료 및 영상 처리를 위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도 기업과 수학자들의 협업이 진행되는 중이고, 대형 병원과 함께 심장 문제를 연구하는 수학자도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속성을 가지려면, 수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학계뿐 아니라 산업계에 진출해 기업의 난관을 수학적 방식으로 돌파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과 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젊은이들의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다.

수학을 어려워하는 초중고 학생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배워서 어디 쓰는지를 몰라서 관심도 떨어지고 싫어하게 됐다는 경우가 잦다. 모든 학생에게 수학의 우아함과 언어적 측면을 이해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와 산업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사례를 학생들이 함께 접한다면 수학 학습의 새로운 동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3. [동아일보][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 지금 나를 어디에 투자하고 있는가

경영의 대상은 기업만이 아닌 나의 삶도 해당한다.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파괴적 혁신 이론으로 유명한 경영학 분야 대가인 클레이턴 크리스텐슨이 쓴 책이다. 그는 위암 선고를 받고 경영이론을 우리 삶에 적용하여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강의했는데 이 내용을 풀어 책으로 냈다. 2012년 이 책을 처음 읽은 뒤로 매년 12월이 되면 나는 이 책을 반복해서 읽으며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계획한다. 이 책은 삶에 대해 폭넓게 바라보고 있는데 직업적인 측면에서 다가오는 부분은 세 가지이다.

첫째, 만족과 불만족은 서로 다른 기준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연봉이 높으면 삶이 만족스럽고 낮으면 불만족스럽다고 생각하면서 만족과 불만족을 하나의 축에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동기이론의 전문가인 프레더릭 허즈버그의 이론을 인용해 위생 요인과 동기부여 요인을 설명한다. 위생 요인은 불만족을 좌우하는 것으로 지위, 보상, 고용안정이나 직무조건 등이 해당한다. 이들이 충족되지 못하면 불만족스럽지만, 충족된다고 해서 만족하고 동기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물론 이러한 조건 등이 충족될 수 있도록 요구하고 노력해야 하지만 이러한 조건이 삶의 만족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 동기부여 요인은 무엇일까? 일에서 의미를 찾고, 보다 도전적인 과제나 책임을 맡는 과정에서 전문가로 성장하며 인정받는 것 등이 해당한다. 당장 회사 내부의 상사나 임원들을 생각해 보면 이들은 나보다 보상이나 지위 같은 위생 요인이 높지만 그들 사이에도 동기부여에는 큰 차이가 나며, 나보다 동기부여가 낮은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 항공기에서 술에 취해 폭행을 하다 논란이 된 부잣집 아들은 위생 요인은 충족되었을지 모르지만, 자기 삶에서 동기부여는 충족되지 않았을 수 있다. 이 이론이 우리 삶에 주는 중요한 교훈은 돈이나 직책과 같은 위생 요인만을 우선순위에 두고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우리는 삶에서 의미와 만족을 잃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내 삶이 어디로 가게 될지 알고 싶다면 나의 미래 계획을 살펴보는 것보다는 내가 현재 시간, 돈, 에너지 등 나에게 주어진 자원을 어디에 할당하고 있는지 보면 된다. 자원 할당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가족이나 친구 관계, 건강, 책 읽기나 자기계발 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자원을 근무시간뿐 아니라 저녁이나 주말에도 회사 일에 투여한다. 

여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크리스텐슨이 지적하듯 배우자나 아이들과 당장 저녁을 함께 먹지 않는다고 관계가 나빠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족에게 할당하는 자원을 서서히 줄여 나간다. 크리스텐슨은 경고한다. “피와 땀과 눈물을 투자할 장소에 대해 내리는 결정이 스스로 되고자 갈망하는 사람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결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다.”

셋째, “나는 경험의 학교를 다니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자신이 존경하는 최고경영자(CEO)인 놀런 아치볼드의 일화를 소개한다. 그는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 중 최연소 CEO가 되어 24년 동안 자리를 지켰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임금이나 직책보다는 성공한 CEO가 되기 위해 미리 경험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즉, 직장을 선택할 때 그는 늘 “내가 여기에서 배울 수 있는 경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크리스텐슨은 단순히 이력을 관리하려 하지 말고, 자신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경험과 기술을 따라가라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단순히 “듣기 좋거나” “뻔하거나”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받아들이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책 후반부에 이에 대해 중요한 말을 던진다. 인생에 뚜렷하고도 제대로 된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면 어떤 경영이론도 가치를 갖기 힘들다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은 시간을 내어 자신의 인생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 해를 마감하며 송년회도 좋지만 나만의 시간을 내어 내 인생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지 깊이 있게 한번 고민해 보자.


4. [동아일보][조경란의 사물 이야기] 슬리퍼

연말까지 약속이 몇 개 있으니 머리를 짧게 자르지 말고 다듬어 달라고 하자 헤어숍 주인이 송년 모임이냐고 물었다. 그렇기도 하고 생일이 아직 안 지나서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사각사각, 내 머리칼을 자르면서 아주머니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런지 자신의 생일이 되면 유난히 엄마 생각이 난다고 했다.


만약 살아계셨다면 생일에 엄마한테 선물을 드렸을 것이라고. 무슨 선물을요? 지금껏 내 생일에 엄마에게 선물을 드려 본 적이 없는 나는 그렇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낳아주셔서 고맙다고요. 늘 너무 수다스러워서 헤어숍을 옮길까 말까 고민하게 만드는 주인아주머니는 머리를 다 자를 때까지 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달 전인가, 시내에 나갔다가 유니클로에 들렀다. 실내용 슬리퍼를 고르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관절이 안 좋은 데다 기온이 내려가면서부터는 발가락까지 마디마디 시린 것 같다는. 그날 두툼하고 푹신푹신한 초록색과 빨간색 체크무늬 슬리퍼 두 개를 사갖고 와 엄마에게 한 켤레 드렸다. 생각해 보니 엄마께 드린 선물이라면 그게 가장 최근의 것이고, 슬리퍼라면 나도 선물을 받은 적이 있었다. 

2년 전 이맘때 로마의 오래되고 추운 숙소에서 지냈다. 사피엔차 대학에서 한국문학으로 논문을 쓰던 이탈리아 학생과 가깝게 지냈는데 어느 날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종이로 둘둘 만 꾸러미를 내게 주었다. 몇 번인가 내 숙소에 와 본 적이 있던 그녀 눈에 거실의 차가운 돌바닥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종이엔 부직포로 만든 슬리퍼 한 켤레가 싸여 있었다. 그 후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만날 때마다 눈여겨보게 되었다. 로마를 떠나기 전날 3개월 동안 읽었던 한국 소설과 시집들을 모두 그녀에게 주었다. 선물이라고 새로 산 것은 하나도 없어서 그녀가 그 책들을 받고 좋아하던 표정을 더 잊을 수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주는 것보다 누군가에게서 받는 것이 항상 더 많은” 거라고, 그러한 선물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가쿠타 미쓰요의 ‘프레젠트’라는 따뜻한 책이 떠오른다. 아마도 우리는 지금은 잊어버린, 수없이 많은 선물을 받으면서 자랐고 나이 들어가는 것일 테지. 

빨간색 체크무늬 슬리퍼를 신은 엄마가 청소를 하느라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인다. 그 9900원짜리 슬리퍼를 사면서 실은 기분이 조금 좋았던 것 같다. 받는 사람한테 꼭 필요한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생일까지 며칠 더 남았으니 일단 엄마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주의 깊게 살펴볼 생각이다. 그리고 송년모임에서 만날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작고 쓸모 있는 ‘프레젠트’에 관해서도.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네팔 민주화

2007년 12월 28일 네팔 왕정이 폐지됐다. 1768년 통일 왕정국가가 수립된 이래 절대왕정과 영국ㆍ인도의 외세 지배 하의 허수아비 왕정, 입헌왕정, 절대왕정 회귀 등,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시기 구분이 무색할 만큼 정체가 오락가락했던 네팔의 정치가 비로소 공화정 체제로 자리 잡았다. 정치적 혼란과 극심한 빈부격차, 힌두 전통의 사회ㆍ문화적 카스트 등 네팔 민주화의 길은 아직 멀지만, 다수가 2007년 말을 네팔 민주화 원년으로 꼽는 까닭은 적어도 왕실의 전횡으로부터는 자유로워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네팔의 대규모 민주화 운동은 1990년에 일어났다. 72년 왕위에 오른 비렌드라 국왕의 전횡이 극심했다. 그는 어용의회 ‘판차야트’를 앞세워, 입법ㆍ사법ㆍ행정을 좌지우지한 사실상의 절대군주였다. 판차야트는 직접선거로 선출된 112명과 국왕이 임명하는 28명 등 140명 의원으로 구성된 대의기구지만, 국왕이 주재하는 국가회의 감독아래 놓인 명목상의 기구였다. 국왕이 판차야트 의원 가운데서 총리를 비롯한 각료를 임명했고, 대법원장을 비롯한 판사도 국왕이 뽑았다. 군 통수권도 당연히 국왕이 쥐고 있었다. 정치ㆍ언론ㆍ교육 등 반체제 인사에 대한 영장 없는 구금ㆍ재판, 납치ㆍ고문ㆍ암살이 빈번했고 농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국민은 절대빈곤에 허덕였다. 

그 끝에 터져 나온 게 1990년 2월 이후 8주간 이어진 민주화 운동이었다. 판차야트 해체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시민 수천 명이 투옥되고 수백 명이 군과 경찰의 총에 희생됐다. 하지만 시민들은 승리했고, 비렌드라는 다당제 의회민주주의 도입과 헌법 개정, 총선 실시 등을 골자로 한 입헌군주제 도입에 약속했다. 

야당인 우파 네팔의회민주당(NCP)과 좌파연합전선 연립 정부는 하지만 내부 알력과 부패로 온전한 민주화를 성취하지 못했다. 와중에 96년 공산당계열 ‘마오이스트(NCP-Maoist)의 무장투쟁이 시작됐고, 2001년에는 황태자가 국왕을 비롯한 왕실 일가 7명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건까지 빚어졌다. 새 국왕이 갸넨드라였다.


그는 2005년 2월 반군 진압에 대한 내각의 무능 등을 들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 내각을 해산하고 주요 정부기관과 언론을 장악했다. 절대군주제 회귀를 위한 사실상의 왕실 친위 쿠데타. 그에 맞선 시민 항쟁과 마오이스트의 무력 투쟁. 왕은 2007년 12월 28일 권좌에서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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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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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공무원 봉급 인상에 서민들은 심란하다

정부가 공무원들의 내년 봉급을 평균 3.5% 올린다는 소식이다. 공직사회의 사기 진작과 물가 인상 등을 감안한 조치라는 게 인사혁신처의 발표다. 이런 내용의 ‘공무원 보수규정’ 개정안이 어제 정식 입법예고된 만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국무회의를 거쳐 내년 1월부터 곧바로 시행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길은 그리 편안하지가 않다. 무엇보다 요즘과 같은 경기 침체기에 3.5% 인상은 지나치다. 그 기준이 되는 물가 인상률만 따져봐도 공무원들이 봉급 책정에 있어 우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공무원 봉급이 2015년부터 연속 3년간 3%대의 인상률을 유지하게 되지만 기껏 1%대에 그치고 있는 물가 인상률에 비해서는 월등한 수준이다.

현행 공무원들의 봉급 체계가 일반 직장에 비해 불리한 것도 아니다. 대기업에 비해서는 부족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해도 웬만한 중소기업과는 거의 엇비슷한 수준이다. 게다가 신분도 안정돼 있다. 걸핏하면 구조조정에 의해 길거리로 내몰리는 직장인들 신세에 비해 공직사회는 ‘지상 낙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채용 급수를 가리지 않고 갈수록 치솟는 공직시험 경쟁률이 그것을 말해준다.

세금을 내는 일반 국민들의 생활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영세 상인들은 은행 이자나 임대료조차 물지 못해 죽을 맛이다. 크리스마스 경기는 물론 연말 경기도 이미 꺾여 버린 실정이다. 내년이라고 형편이 더 나아질 조짐이 아니다. 공무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봉급을 올린다는 조치가 서민들에게는 상대적인 신세 한탄과 푸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공무원 봉급 인상률은 정부 산하단체 봉급 체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도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더욱이 지금은 탄핵 정국이다. 나라가 온통 어수선한 상황에서 공무원들 봉급을 우선적으로 올리는 것이 적절한지는 재고돼야 한다. 그렇다고 사병 봉급이나 경찰·소방직을 포함해 위험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의 봉급 인상까지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처지에서도 묵묵히 본분을 다하는 공직자들에 대해서는 마땅한 보상이 따라야 할 것이다.


2. 대선 후보들의 혹독한 검증 필요하지만

내년의 조기 대선 참여를 공식화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불법자금 수수설로 대선주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 국면에 돌입했다. 반 총장은 2005년 외교부장관 공관 만찬 때와 2007년 총장 취임 직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각각 20만 달러, 3만 달러를 받은 의혹에 휩싸였다.

반 총장 측은 이에 대해 “완전히 근거 없는 허위”라며 해당 내용을 폭로한 언론사에 사과와 기사 취소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 역시 “말도 안 되는 기사”라고 부인했고 공관 만찬 참석자들도 자금 수수 개연성을 일축했다. 박 회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일가를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에게 돈을 뿌렸다가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로까지 이어진 ‘박연차 게이트’의 주역으로, 당시 검찰 수사 책임자는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로써 정치권은 반 총장에 대한 비난과 ‘네거티브 공세’라는 비호가 엇갈리며 상호 검증 국면에 휘말리는 분위기다. 탄핵 정국으로 논란이 주춤해지긴 했으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때 북한의 사전 결재를 받아 기권했다는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의 증언이 큰 부담이고, 이재명 성남시장도 가족 간 이전투구가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조기 대선이 확실시되는 만큼 후보들에 대한 검증을 더 이상 미루기는 어렵다. 유력 후보일수록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지난 대선 때 ‘최태민 의혹’을 둘러싼 박근혜 후보의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지금과 같은 탄핵 사태는 막을 수 있었으리란 아쉬움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다만 검증을 빙자한 치고 빠지기 식 정치공작은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정치공작이 판치는 한 공정하고 엄정한 후보 검증과 올곧은 지도자 선출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 민주당은 이른바 ‘병풍(兵風)’ 의혹과 ‘이회창 후보 20만 달러 수수설’ 등의 흑색선전으로 대선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전력이 없지 않다. 법원이 발설자에 대해 뒤늦게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선거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고 주모자로 처벌됐다가 정권의 ‘보은 사면’으로 풀려나 국회의원으로 복귀한 뒤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인사도 있다. 혹독한 후보 검증을 보장하면서도 사악한 정치공작꾼은 정치권에서 영구 추방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절실하다.


[한겨레]

3. 도마 위에 오른 국정농단의 ‘또다른 주범’ 김기춘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6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문체부 실·국장 6명 해임 과정에서 직권남용 혐의 등을 수사하려는 것이라지만, 규명해야 할 의혹은 이것만이 아니다.

김 전 실장이 직권남용의 책임을 모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는 2014년 10월 당시 문체부 1차관에게 “1급 실·국장 6명으로부터 일괄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관계자의 증언이 엄연한데도 그는 국회 청문회에서 “자르라고 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뻔한 거짓말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석 달 전인 그해 7월4일 김 전 실장이 ‘주요 부처 실·국장 동향파악-충성심 확인’을 지시했음을 보여주는 메모가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에서 발견됐다



 그 직후 문체부 실·국장 성향 조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이어 실·국장들이 일괄 사표를 냈고 3명이 실제로 해임됐다. 그 뒤 문체부에선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나돌고 최순실·차은택씨 등의 이권 챙기기와 국정농단이 아무런 제지 없이 벌어졌다. 김 전 실장은 그런 일이 가능하도록 사전 정지 작업을 한 셈이다. 그 자체로 직권남용일뿐더러 최씨 등의 국정농단을 지원·방조한 범죄행위다.

김 전 실장의 혐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최씨와 함께 국정농단의 한 축으로 의심된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을 보면, 김 전 실장은 검찰·법원 등 공직사회는 물론 언론과 시민사회까지 전방위로 감시하라고 독려하고 지휘했다. 곧 ‘사찰’과 ‘불법 통제’의 주범이다.

검찰에 대한 간섭과 수사방해 의혹이 대표적이다. 그가 김진태 당시 검찰총장과 매일같이 전화 통화를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김 전 총장이 최순실씨의 전남편 정윤회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터진 2014년 말, 정씨 집을 압수수색 대상에서 제외하라고 수사팀에 지시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가 국정농단 대신 문건 유출로 수사 초점을 바꿨다는 의혹은 이미 파다한 터다. 정씨에 대한 본격 수사를 접은 검찰의 결정이 김 전 실장의 지시에서 비롯됐다면, 이는 이번 같은 국정농단 사태를 진작에 규명하고 멈춰 세울 기회였던 검찰 수사를 결정적으로 방해한 것이다. 엄정한 조사와 처벌이 따라야 한다.

김 전 실장은 법의 허점과 수사의 맹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이번에는 그가 그런 ‘기술’을 동원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특검의 주도면밀한 수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4. 보수신당 앞에 놓인 새로운 보수의 길

이른바 비박(非朴)으로 이루어진 가칭 개혁보수신당 창당추진위원회가 오늘 새누리당 탈당을 선언하고 국회 교섭단체로 등록할 것이라고 한다.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보수신당 창당에 참여할 의원은 일단 30명 안팎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으로 꾸려졌던 3당 체제가 막을 내리고 보수신당이 가세한 4당 체제가 본격 출범하는 것이다.



개혁보수신당의 창당은 분명히 보수 정치세력의 분열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보수진영 내부에서조차 신당 창당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은 것은 친박(親朴)이 주도하는 새누리당의 현실적 한계 때문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부른 결정적 책임을 박근혜 대통령과 나눠 져야 할 친박 새누리당이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스스로 권력을 재창출할 가능성은 전무(全無)하다. 그런 점에서 보수신당의 창당은 보수진영의 위기이자 기회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신당이 표방하는 ‘개혁보수’는 우리 정치사에서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다. 최근의 각종 선거에서 보수진영은 새로운 정치적 비전을 제시해 지지층의 외연을 넓히기보다는 이념공세로 ‘집안표’ 단속에 급급했다. 이런 선거 전략은 진보도 다르지 않아 양 진영이 국민의 절반을 무 자르듯 갈라놓은 이념의 양극화는 사회 발전의 가장 큰 저해요소로 떠오르기도 했다. ‘개혁보수’라는 개념 역시 새누리당 탈당파가 현재의 곤경에서 벗어나 활로를 찾으려는 정치적 제스처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를 인정치 않는 기존의 ‘완고한 보수’에서 벗어나 진보 진영에서도 이해할 수 있는 ‘상식이 통하는 보수’를 지향하는 것이라면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보수신당의 목표는 무너진 보수세력을 다시 끌어모아 보수의 가치를 되살리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이념이 다른 사람들도 끌어안는 ‘통합의 정치’를 고민해야 한다.

개혁보수신당은 내년 1월 귀국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대선 후보로 영입하는 것이 최대 희망사항인 듯하다. 하지만 마음이 바쁠수록 ‘대선용 급조 정당’의 이미지만 짙어진다는 사실을 신당 추진 세력은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신당에도 해당한다.



반 총장 영입은 현실화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특정 후보 영입이 목표인 정당의 앞날이 밝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은 ‘개혁보수’의 비전을 정립하고 국민의 신뢰를 쌓는 데 전력투구해야 할 때다. 선거보다 미래를 먼저 말하는 개혁보수신당의 모습을 보고 싶다.



[조선일보]

5. 이제 내놓고 '세월호 잠수함 충돌' 주장하나

한 네티즌이 제기한 '세월호의 잠수함 충돌 침몰설'에 대해 26일 국방부가 직접 해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네티즌은 모 대학교수와 함께 분석했다며 잠수함과의 충돌로 침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잠수함 200만m 무사고 세계신기록을 세우기 위해 해군이 숨긴 것이라는 추정도 내놨다.



한 방송국이 25일 이 네티즌이 그와 같은 주장을 담아서 만든 다큐멘터리의 요약본과 인터뷰를 방영했다. 세월호 사고 당시에도 나왔던 괴담이 또 등장한 것이다. 결국 국방부가 "사고 해역의 평균 수심은 37m로 잠항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 인근 해역에서 잠수함 작전이나 훈련이 없었다"고 밝혀야 했다. 어이없고 한심한 일이다.



세월호는 배수량 6835t에 1000t이 넘는 화물이 실렸다. 이런 세월호가 7000~1만t급 미 핵잠수함과 충돌할 경우 잠수함도 커다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에 앞서 1만t급 잠수함이 수심 30여m에서 기동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 해군의 1200~1800t급 잠수함과 충돌했다면 잠수함은 견디지도 못했을 것이다. 잠수함이 침몰을 면했다 해도 대대적 정비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게다가 수십 명의 승조원과 해군 관계자들 수백 명의 입을 영원히 다 막아야 한다. 정말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는가.



그래도 이 근거 없는 얘기가 버젓이 횡행한다. 상당한 시청률을 기록했고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물론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큰 탓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심하다. 한·미 FTA, 광우병, 천안함 등 자해적 괴담이 때만 되면 등장해 세상을 어지럽힌다. 사드 레이더도 사람을 망칠 정도라더니 언제부턴지 쑥 들어갔다. 시민들이 용납하지 않아야 괴담을 막을 수 있다.



6. 결혼 5년 이하 부부 3분의 1이 아이 없다니

통계청이 최근 5년 이내에 결혼한 초혼 부부 117만9000쌍을 조사했더니 자녀를 출산하지 않은 부부가 세 쌍 중 한 쌍(35.5%)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결혼 3~5년 지나서도 자녀를 출산하지 않은 경우가 다섯 쌍 중 한 쌍(19.3%)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초혼 부부의 평균 출생아 수는 혼인 4년 차에 들어서도 1.10명에 불과했다. 결혼 자체를 기피하는 데다 결혼해서도 아이 낳기를 꺼리거나 한 자녀만 갖는 추세가 통계로도 드러난다.



정부가 지난 2006년부터 10년간 저출산 대책에 81조원을 쏟아붓고도 출산율은 더 떨어졌다. 이제 인구 절벽은 코앞에 닥쳤다.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올해 정점을 찍고 내년부터 줄어든다. 정부는 올 초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 계획'을 내고 저출산에 21조원을 투자해 올해 신생아 수를 44만5000명으로 늘리겠다고 했는데 첫해부터 허언이 됐다.



저출산 추세는 쉽게 되돌리기도 힘들다. 한 해 80만명씩 태어났던 세대가 부모가 되면서 1년에 신생아가 40여만명씩 태어났다. 한 해 60만명대로 태어난 1983년 이후 출생 세대가 지금 결혼 연령에 접어들었고 이들이 아이를 하나씩만 낳으면 조만간 신생아 수는 30만명대로 쪼그라든다.



이번 신혼부부 통계를 보면 주택 소유 여부보다 맞벌이 여부가 출산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맞벌이 부부 중 자녀가 있는 비중은 57.9%로, 외벌이 부부(70.1%)보다 훨씬 낮았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맞벌이 가정이 아이 낳아 키우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최근 결혼한 젊은 층은 맞벌이 비중도 높아 두 쌍 중 한 쌍꼴로 맞벌이였다.



정부의 저출산 대책도 이 젊은이들 현실에 맞게 전면 재검토해서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일과 가정 양립이 가능한 근로 환경을 정착하는 것이 시급하다. 취업, 사교육, 집 장만 문제 해결 등 아이 낳는 기반 환경 조성도 말할 것이 없다. 각종 저출산 대책은 세 자녀 가정에 혜택 주는 식으로 짜여 있다. 이 역시 둘째 자녀부터 각종 세제 혜택과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동아일보]

7. 모바일게임 톱10에 못 낀 한국… 게임강국 위태롭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슈퍼데이터의 ‘2016년 디지털게임 리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모바일게임 톱10에 한국 업체의 게임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반면 일본 믹시의 몬스터 스트라이크는 13억 달러(약 1조5625억 원)의 매출로 세계 1위를 차지했고 핀란드 업체의 게임이 2, 3위였다. 미국 인그레스가 일본 닌텐도와 손잡고 7월 출시해 전 세계에 스마트폰 증강현실(AR) 열풍을 일으킨 포켓몬고는 반년도 안 돼 7억88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려 6위를 기록했다. 중국의 모바일 게임 판매액도 7위와 10위에 올랐다.

올해 세계 전체 게임산업 매출액 910억 달러 가운데 모바일게임은 406억 달러로 PC게임(358억 달러)을 처음 앞질렀다. 한국도 PC게임 분야에서는 넥슨의 던전앤파이터와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스가 각각 2, 3위를 기록했다. 게임시장 규모에서 한국은 미국 일본 중국에 이어 세계 4위다. 그러나 급성장하는 모바일게임 분야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부가 게임산업의 문화 콘텐츠와 산업적 가치를 감안하지 않고 강제적 셧다운제(2011년)와 선택적 셧다운제(2012년) 같은 각종 규제 정책을 쏟아내면서 산업 전반이 위축된 결과다. 게임업체들이 모바일게임으로의 전환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탓도 있다. 2005년 게임을 ‘전자 헤로인’으로 규정했던 중국이 게임시장의 중요성과 규제 실효성의 한계에 눈떠 2010년 자율적 규제로 정책을 변경한 것과 대조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포켓몬고 열풍이 분 올 7월 청소년보호법을 일부 개정해 강제적 셧다운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게임산업의 국제경쟁력 회복과 경제성장 촉진,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과도한 게임산업 규제는 풀어야 한다.



[세계일보]

8. 한반도 안보질서 지각변동 감당할 준비 돼 있나

한반도 주변 정세가 심상치 않다.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호 전단이 23일 서해에서 첫 항모전단 실전훈련을 벌인 데 이어 24일 처음으로 서태평양에 진입해 원양훈련을 실시했다. 한·미·일 등을 겨냥한 무력시위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의 친대만 행보와 한·미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결정에 대한 경고로 풀이된다. 미국은 태평양 제해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 중국은 최근 영유권 분쟁 수역인 남중국해에서 미 해군 수중 드론을 나포했다가 돌려줬고 남중국해 인공섬에 최대 500기가량의 최신예 대공미사일 배치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간에는 핵 갈등 조짐이 불거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 “전략 핵무기부대의 전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자, 트럼프는 “미국은 세계가 핵무기에 관한 분별력을 가질 때까지 핵 능력을 강화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미·러 간에 핵무기 경쟁이 재연되면서 새로운 냉전이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낳는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중국도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며 핵전력 강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북한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핵 보유국 지위를 굳히려 하고 있다. 통일부는 어제 내놓은 ‘2016년 북한 정세 평가 및 2017년 전망’ 보고서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고도화를 추진하면서 내년에 핵탄두 모형 탑재 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적 도발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는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이 내년에 추가 핵실험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북한이 사실상 핵 보유국이 되면 한반도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된다. 핵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 북한 핵개발을 막지 못하면 동북아 평화는 막을 내리는 것이다.

내년 1월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취임하면 한반도 주변 4강이 모두 강성 지도자들로 채워진다.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언제든 ‘강대강’ 대립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북핵 문제와 맞물리면 우리 정부는 외교안보의 고차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린다. 한반도 주변 안보질서의 지각변동은 이미 시작됐다. 국정농단 사태로 들어선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한반도 주변 안보환경 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돌발사태에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대선 주자들이라면 흔들리는 예측불허의 안보지형에 맞설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매일신문]

9. 울진 군 활주로 이전 폐쇄, 주민 안전 위한 일이다

서울 공군회관에서는 지난주 울진군 죽변면 주민들의 민원 문제를 다루기 위한 모임이 열렸다. 이날 자리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주재로 울진에 신설되는 신한울 원전 1~4호기와 가까운 곳에서 1978년부터 운영되는 죽변비상활주로의 이전·폐쇄 관련 민원의 조정을 위해 마련됐다. 국방부와 공군 등 관련 부처·기관들이 협의체 구성을 골자로 하는 조정서 서명으로 원만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다행이다.



두 시설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모두 필요하고 중요한 시설이다. 40년 가까이 운영 중인 비상활주로 시설은 적의 공격으로 인한 공군기지 활주로 파손에 대비해 길이 2.8㎞, 폭 47.5m 규모로 설치한 군사시설이다. 국가 안보상 필요한 군사시설이다. 신한울 원전 역시 국가산업 발전과 국민 생활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에너지 시설이다. 두 시설은 그만큼 필요한 국가 시설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문제는 울진에 1988년 첫 한울원전 1호 시설이 들어서면서부터 생겼다. 원전이 없던 시절 만들어진 활주로가 주변에 원전 시설이 건설되면서 안전 문제의 장애물로 부각됐다. 특히 기존 원전과 달리 활주로에서 불과 3㎞쯤 떨어진 곳에서 공사가 완공 단계인 신한울원전 1호기를 비롯, 현재 공사 중이거나 계속 건립될 2~4호기는 활주로 관련 사고 시 심각한 안전 문제를 갖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주민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민원으로 2013년 이뤄진 항국항공대학교 항공우주정책연구소의 ‘죽변비상활주로 이전타당성 연구용역’ 결과도 안전을 문제로 삼았다. 용역 결과, 규정에 따르면 ‘원전 주변 8㎞ 이내에 군사비행장을 설치할 수 없도록 돼 있는’ 등의 이유로 ‘비상활주로와 원전의 상호 공존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나왔다. 두 시설은 처음부터 함께 할 수 없는 시설이라는 판단인 셈이다.



물론 잘못은 원전 쪽이 크다. 첫 원전 건립 때 없던 관련 규정이 뒷날 마련됐음에도 활주로 감안 등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았음이 분명해서다. 그럼에도 주민 안전 등 대승적 차원에서 이뤄진 이날 협의체 구성 합의는 잘한 일이다. 안전이 먼저인 만큼 이제는 원만한 폐쇄와 이전까지 협의체 구성원의 협조와 인내가 필요할 때다.



10. 언제까지 방폐장·원전 지원금을 ‘눈먼 돈’처럼 낭비할 건가

경주시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 유치에 따른 특별지원금 3천억원을 소모성 주민지원사업에 다 써버렸다. 방폐장 설치에 따른 보상금 형태의 돈인 만큼 소진한 것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지금까지 써온 용처를 살펴보면 한숨이 나온다.

  
특별지원금은 지금까지 경주 각 가정에 주거용 전기요금 2천500원, TV수신료 2천500원 등을 지원하는 데 쓰였다. 그러다가 지금은 특별지원금 원금을 다 써버린데다 방폐장 반입 수수료까지 줄어들어 내년 2월부터 전기요금과 TV수신료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지자체가 특별지원금을 시민들에게 큰 선심을 쓰듯 마구 뿌리다가 그것마저 재원 부족으로 더는 못 줄 형편이 된 것이다.



전기요금과 TV수신료 지원은 저소득 가정에는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겠지만, 상당수 가정에서는 혜택을 받았다고 느끼지도 못하는 사업이다. 그 돈을 지역 발전이나 미래 먹거리 사업에 투자할 생각은 없고, 소모성·일회성 사업에 쏟아부었다고 하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가장 큰 원인은 지자체장과 의회가 특별지원금을 정부에서 주는 ‘눈먼 돈’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큰돈을 미래 투자개념의 사업에 쓰기보다는 눈앞의 이익과 편의에 따라 낭비한 것이 현실이다. 

  
비슷한 성격의 원전 특별지원금도 마찬가지다. 경주·울진 등 원전 보유 지자체는 매년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특별지원금을 받고 있지만, 민원 해결, 주민복지사업 등에 쓰고 있을 뿐, 일자리 창출과 미래산업 등을 위해서는 투자할 생각도, 계획도 없다. 방폐장과 원전이 있으면 계속 돈이 나올 텐데 미래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이 때문에 지원금 횡령, 주민 자생력 결핍, 지자체장 선거용 논란 등의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경주의 방폐장 특별지원금은 다 써버렸고, 더는 어찌할 수 없는 문제다. 이제라도 여타의 특별지원금에 대해서는 효율적인 사업이나 미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곳에 쓰일 수 있도록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 만큼 특별지원금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처럼 ‘갈라먹기’나 일회성 사업에 소진해서는 미래가 없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산타라는 알리바이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선물’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선물이 ‘선물’로 주어지려면 어떤 상호적 관계나 교환, 부채 의식 등이 존재해서는 안 되는데 어떤 선물도 무의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내가 그에게 주었던 것을 나에게 다시 돌려주거나 내게 고마움을 느끼거나, 혹은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나와 그 사람 사이에는 선물이 오고 간 것이 아니라 단지 선물로 포장된 ‘거래’나 ‘뇌물’이 오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물이 진정한 선물이 되기 위해서는 일방적이어야 한다. 진정한 선물이 되려면 선물을 받는 쪽에서뿐만 아니라 선물을 주는 쪽에서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까지도 망각해야 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산타라는 알리바이가 필요한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산타는 아빠의 선물을 뇌물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 등장시키는 것이다. 아이들이 부모가 아니라 ‘산타’가 선물을 준다고 믿는 이상 ‘크리스마스 선물’은 실패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신이 자는 사이에 다녀가는 산타에게 아무리 선물에 대해 보답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산타가 선사한다고 믿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채무 상환의 의무가 없는 완전한 선물이다.



‘울면 안 돼! 누가 착한 애인지 나쁜 애인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대!’라며 부르는 캐럴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담고 있는 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울어도 된다. 착하지 않아도 된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대가 없이 주어지는 대문자의 ‘선물’이니까.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산타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아. TV나 어린이집에서 본 산타는 산타를 흉내 낸 것이지 진짜 산타는 아냐. 산타는 이번에도 선물을 주셨지만 그 이유는 아빠도 몰라.”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공부를 잘해야 하고, 밥을 먹었으니 일을 해야 하고, 울지 않은 착한 아이이기 때문에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세계에는 행복이 없다. 돈을 받고 특혜를 주고, 청탁을 위해 명품가방을 건네는 것 뒤에는 호의를 가장한 지배욕이 웅크리고 있다. ‘대가 없는 선물’, 선물을 뇌물이 아니라 ‘선물’로 주겠다는 의지는 지배의 의지가 아니라 사랑의 의지다. 그것이 신이 인간으로 태어난 사건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정신일 것이다.



내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던 이유는 단지 선물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분위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 세상이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였고 나는 그 온기가 좋았다.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뚜렷한 목적 없이, 예상되는 시간과 장소까지도 벗어난 선물을 누군가에게 해보면 어떨까? 그 선물이 이 세계를 우리 모두에게 조금은 더 따뜻하고, 우호적인 공간이 되도록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2. [머니투데이][우보세] AI와 계란 대란, 그리고 상생의 의미

최근 점심에 지인을 만나 낙지볶음을 먹었다. 그런데 평상시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계란말이가 눈에 들어왔다. 한 접시에 5000원. 주위를 보니 대부분 낙지볶음과 계란말이를 함께 시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날 각 테이블에 놓인 계란말이 접시는 평소보다 많았다.



계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계란이 귀하다는 뉴스를 접한 터라 괜히 계란말이가 더 먹고 싶어졌다. 그날따라 계란말이는 더 맛있었다. 반면 계란말이 주문을 받는 가게 주인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산란계(알 낳는 닭) 농가를 중심으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되면서 살처분 가금류가 2600만마리를 넘어섰다. 무엇보다 계란 수급 문제와 직결되는 산란계는 전체 사육 대비 26.9%에 해당하는 1879만 마리가 도살됐다.

그나마 생산된 계란마저 AI여파로 지역간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계란 공급량은 평소 대비 60~70%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로 인해 계란 가격은 '금값' 수준으로 치솟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계란 한 판(30알) 가격은 지난 23일 기준 전달(5420원) 대비 31.4% 오른 평균 7124원을 기록했다.

계란 대란이 발생하자 도매상들조차 계란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매상들은 그나마 어렵게 구한 계란을 영세자영업자 대신 구매력이 큰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공급하는 상황이다.

이들 대형마트들은 계란을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한다. 하지만 계란 품귀 현상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곳은 동네빵집 등 영세자영업자들이다. 사실 일반 가정에서는 (지금과 같은 대란이 벌어진 상황이라면) 굳이 당분간 계란을 먹지 않아도 된다. 계란을 대체할 치즈, 버터, 우유 등을 소비하면 그만이다.

반면 동네 빵집, 토스트가게 등 영세자영업자들은 계란 수급에 생계를 걸고 있다. 이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계란값은 차치하고, 아예 계란을 구하지 못해 일손을 놓고 있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도 계란 얘기가 나왔다. 그는 "계란 수급 상황 점검을 위해 서울에 있는 400여개 도매상 중 일부를 방문했다"며 "계란을 공급해 달라는 자영업자들의 전화가 빗발쳤지만 공급할 계란이 없는 상황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지자체나 중앙 정부가 직접 나서 계란을 자영업자에게 강제 할당하면 좋겠지만 이는 불가능하다"며 "대형마트가 확보한 계란의 일정 부분을 자영업자에게 판매하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듣는 순간 무릎을 쳤다. 이런 비상 상황이라면 대형마트가 확보한 물량의 절반(?) 정도를 누구보다 계란이 절실한 영세자영업자에게 우선 할당 판매하는 게 상생의 의미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3. [서울신문][씨줄날줄] 키친 캐비닛/박홍기 논설위원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중국 고사성어가 있다. 회수(淮水) 남쪽의 귤을 회수 북쪽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로 변한다는 말이다. 기후와 풍토에 따라 과일의 맛도 달라지듯 인간의 성질도 주위 환경에 따라 바뀐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정치적 행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해 최근 ‘키친 캐비닛’(kitchen cabinet)이라는 생소한 정치적 용어가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키친 캐비닛은 본디 ‘대통령의 식사에 초청받을 정도로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들로 대통령에게 격의 없이 여론을 전하는 통로’다. 사적 이해나 정치적 관계에 얽혀 있지 않은 ‘비공식 자문단’이다. 미국 제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재임 1829~37)으로부터 비롯됐다.


잭슨 대통령은 존 캘훈 부통령과 마틴 밴 뷰런 국무장관의 갈등으로 내각이 힘을 못 쓰자 비공식적인 측근과 자문단에 의지했다. 민병대 지휘관 시절 병참 장교와 조카도 들어 있지만 브레인 트러스트(brain trust)라고 할 수 있는 분야별 전문가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중 정치에 적잖이 기여했다. 하지만 잭슨 대통령과 마찰을 빚던 쪽에서는 이를 ‘키친 캐비닛’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키친 캐비닛의 시작이다.

미국 대통령에게 키친 캐비닛은 자연스러운 정치적 활동이다. 제40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1981~89)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마를 종용하고 대통령 당선까지 도운 막역한 지인들을 비공식 라인으로 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1월 공개적으로 키친 캐비닛의 회원 100여명을 위촉했다. 명단 중에는 한국계 이홍범 헌팅턴 커리어대학장,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등 저명인사에서부터 은퇴한 수학교사 등 평범한 시민까지 포함돼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지층을 결집하는 차원에서 ‘키친 캐비닛 명예회원’이라는 증서까지 수여했다.

국내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때 키친 캐비닛이 ‘식사정치’에 비유돼 잠깐 회자된 적이 있다. 노 대통령은 2004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치인과 원로들을 자주 청와대로 초대해 저녁식사를 하는 것을 두고 ‘식사정치’라는 비판이 나오자 잭슨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 “보통 사람(common man)이라는 별명이 붙은 잭슨이 대통령이 된 뒤에 새로 생긴 버릇이 식당에서 각료들과 국정을 논의했다 해서 키친 캐비닛이라고 이름 붙여졌다”며 식사정치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부인하고 대중민주주의의 일환임을 역설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로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탄핵심판 답변서에서 ‘최순실씨를 키친 캐비닛’이라고 표현했다. 국정을 대통령인 양 주무른 비선 실세인 최씨를 키친 키비닛으로 규정한 것이다.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다 자기주장을 펴는 견강부회(牽强附會)이다. 키친 캐비닛의 왜곡이 아닐 수 없다.


4. [서울신문][이은경의 유레카] 과학기술 유물 보전에 힘써야

박물관에서는 우리나라 문화 유적과 유물을 만날 수 있는데 과학관에서는 서양 과학기술 유물의 복제품밖에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역사와 문화는 국가별로 다르지만 과학기술은 어디서나 똑같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나라는 서구의 과학기술을 뒤늦게 따라가느라 이거다 하고 내세울 유적이나 유물이 별로 없어서일까.

둘 다 정답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성과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부족하고, 그렇기 때문에 전시 가능한 유물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우리나라는 가치 있는 유형, 무형의 유산들을 보존하기 위해 문화재 제도를 운영 중이다. 우선 유적이나 유물을 일정한 평가 기준에 따라 국보, 보물, 사적 등으로 등록하고 관리하는 지정 문화재 제도가 있다. 지정 문화재의 대부분은 전통 시대의 유산이다. 또 일제강점기 이후의 유산들 중 생성된 지 50년이 지났고 보존 가치가 있는 대상을 위해서는 등록 문화재 제도가 있다.


최근 우리 문화에 관심이 높아지고 답사와 탐방 문화가 성숙하며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하는 등 요인들 덕분에 문화재는 한국의 역사, 문화,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매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근현대 과학기술의 성과는 주로 등록 문화재 제도와 관련돼 있다. 2016년 8월 기준으로 등록 문화재는 672종이다. 개항 이후의 건축구조물이 절대 다수이고 자동차, 철도, 통신 분야 유물과 여러 분야의 문헌자료, 영상자료 등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과학기술 관련 등록 문화재로는 대한제국 시절 경인철도 레일,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과학잡지 ‘과학조선’, 1호 국산 항공기 ‘부활’,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 국산 금성 라디오 A501,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 등이 있다.

그러나 등록 문화재에서 과학기술 유물의 비율은 절대적으로 낮다. 현재 등록된 것만이 근현대 과학기술 주요 성과의 전부일 리가 없는 것은 확실하다. 결국 많은 과학기술 유물이 이미 소실되었거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선진국을 추격하던 시기를 지나 대등하게 경쟁하거나 일부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이야말로 그 기반이 되었던 원로 과학기술자들의 성과를 오롯이 보여주는 유물을 수집, 관리, 보전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할 때다. 과학기술자의 세대 교체, 시설물과 연구 장비의 노후화, 전통적인 연구 영역의 쇠퇴 등 과학기술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소실되거나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과학기술 유물에 관심을 갖고 보전하려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역사를 연구할 기본 사료가 되기 때문이다. 기록과 자료, 유물이 없이는 역사 연구 자체가 매우 어렵다.

둘째 사람들은 실물과 진품이 가진 힘, 즉 아우라를 통해 과학기술에 매력을 느끼고 관심을 갖게 된다. 왓슨·크릭의 DNA 이중 나선은 대중에 가장 익숙한 과학용어 중 하나다. 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런던 과학박물관에는 금속판 조각을 철사로 엮어 만든 이중 나선 모형이 전시되고 있다. 투박한 그 구조물이 바로 왓슨과 크릭이 DNA 분자구조를 파악하느라 끙끙대면서 직접 금속판을 자르고 깎아서 끼워 맞춘 바로 그 모형이라는 설명을 읽고 나면 관람객들은 ‘아하’ 하고 감탄한다. 그리고 이 모형 너머의 현대 생명과학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간다.

공병우 타자기와 한글 1.0 패키지는 한글의 기계화와 새로운 인쇄 문화로, 이호왕의 현미경과 논문은 바이러스 과학과 백신 연구로 우리를 흥미롭게 인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역사가 짧은 분야의 과학기술 유물은 몇 십년 뒤의 미래의 과학으로 우리를 데려갈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스페인 민주화

1978년 12월 27일 스페인이 국왕 위에 헌법을 둔 입헌군주국이 됐다. 1936~39년 스페인내전과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의 군사독재로부터 40여 년 만에 벗어난 거였다. 그 심란한 역사를 큰 잡음과 희생 없이 민주주의의 궤도로 전환한 정치의 중심에 전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1938~)가 있었다. 

16세기 대항해시대를 이끈 주역도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의 제왕” 펠리페 2세 등 스페인 왕실과 가톨릭 교회였다. 왕실 군대와 교회는 아프리카와 중ㆍ남미를 휘어잡던 시절 이래 내전과 독재의 스페인 정치를 떠받친 물리력과 물질적ㆍ정신적 기둥이었다.


프랑코가 등장한 것은 1930년대 제1공화정 시기. 스페인 육사를 나와 32세에 장군이 된 그는 36년 총선거에서 좌파 인민전선파가 승리하자 쿠데타를 일으켰다. 3년 여의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그는 유일 정당 팔랑헤(Falange, 49년 민족해방당으로 개칭)당의 당수이자, 총독(국가원수 겸 수상)으로 이후 38년간 독재했다.


2차 대전 초기 추축국의 일원으로 연합국에 맞서다가 43년 독일이 수세에 몰리자 재빨리 중립노선으로 발을 뺌으로써 종전 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스페인은 국제적으로 고립됐다. 냉전 덕에 10년 뒤인 55년,유엔 가입을 승인 받았지만, 스페인은 20세기 유럽의 마지막 파시스트 국가라는 오명을 견뎌야 했다. 

69년 프랑코가 31세의 왕족 후안 카를로스 1세를 후계자로 낙점한 것은 권력의 정통성을 강화하고 정적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카를로스 1세는 프랑코 사후 국왕에 즉위, 더디지만 확고한 민주화 정책을 단행했다. 그는 군부와 교회 중심의 극우 프랑코주의자들과 좌파 반군, 특히 바스크ㆍ카탈루냐의 분리독립파의 틈바구니에서 아돌포 수아레스 내각을 앞세워 정치개혁 입법을 단행했고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양원제 의회를 출범시켰다. 정치범 사면, 비밀경찰 해산, 군부 견제, 노조 합법화…, 그리고 헌법 제정. 81년 프랑코파 군부가 의회를 점거한 채 구체제 복원을 요구하는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그들을 설득해 무혈 진압한 것도 카를로스 1세였다. 

뮌헨 올림픽 요트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할 만큼 활동적이던 그는 말년의 코끼리 사냥과 호화 여행, 자녀의 공금횡령 등으로 여론이 악화하자 2014년 6월 전격 퇴위, 아들 펠리페 6세에게 왕권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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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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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치솟는 생활물가 깊어지는 서민 시름

오랜 경기침체로 실질소득은 뒷걸음질인데 생활물가는 치솟고 있어 서민들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의 와중에 맥주, 라면, 빵, 콜라, 과자 등 서민이 즐겨 찾는 식품 가격이 줄줄이 올랐다. 여기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계란 대란’이 겹치고 작황부진으로 당근, 양배추 등 채소가격도 뛰었다. 설상가상으로 도시가스, 시내버스, 상·하수도 등 공공요금도 들썩이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27일부터 맥주 출고가격을 평균 6.3% 올린다. 오비맥주는 이미 지난달에 평균 6% 인상했다. 농심은 20일부터 18개 라면의 권장소비자가격을 평균 5.5% 올렸다. 파리바게뜨는 이달 초 빵값을 평균 6.6% 인상했고 스낵류 등 과자값도 지난 7월부터 많게는 11.4% 올랐다. 

AI 확산에 계란값도 천정부지다. 1판(30알) 가격이 7000원선으로 불과 2주 사이 17%나 뛰었다. 당근, 양배추, 무 등 월동채소가격도 작황부진으로 1년 전보다 평균 20% 올랐다. 서민을 울리는 것은 ‘장바구니 물가’ 뿐만이 아니다. 내년 1월부터 도시가스 난방 요금과 서울, 부산, 대구 등 지자체 시내버스, 상·하수도 등 공공요금도 인상될 것이라고 한다. 국제유가와 원화 환율 상승으로 수입 물가도 오를 전망이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에 따르면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44만5000원으로 1년 전보다 0.7% 증가했다. 하지만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소득은 되레 0.1% 줄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 영향으로 국내 시중 금리는 오름세다. 가계부채 이자 부담이 커지면 생활고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으로 실업대란이 우려되는 데다 내년 경제도 어렵다고 한다. 이래저래 서민들은 죽을 판이다. 

탄핵 정국 혼란 속에 정부 관리가 느슨해진 틈을 타 ‘서민 물가’를 올리는 행태를 그냥 놔둬선 안 된다. 정부는 잇단 인상 행렬에 가격 담합은 없었는지, 유통과정에서 매점매석 행위는 없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해 생활물가 고삐를 잡아야 한다. 공공요금도 관련 기관 및 지자체와 협의해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도록 해야 한다. 설령 요금을 올리더라도 시기와 폭을 조절해 서민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2. 국가재정 멍드는데 '추경'만 바라봐서야

중앙·지방정부와 비금융공기업 빚을 더한 공공부문 부채가 사상 최초로 1000조원을 돌파해 국가재정 상황에 빨간 불이 켜졌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공공부문 부채는 지난해 말 1003조5000억원을 넘어 전년보다 무려 46조2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빚이 1300조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가뜩이나 안 좋은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공공부채마저 급증해 국가, 공기업, 가계를 가릴 것 없이 모든 경제주체가 빚더미 위에 올라앉은 모습이다. 

그러나 부채 급증에 대한 정부 인식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공공부채 증가 속도가 둔화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이 64.5%에서 64.4%로 감소해 재정건전성이 양호하다는 게 정부측 설명이다. 그러나 실질 경제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경상 성장률이 3%대였지만 공공부문 부채는 경상 성장률보다 3배나 빠른 속도로 늘어난 그냥 지나치기엔 문제가 심각하다. 

문제는 나랏빚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이 추가경정 예산안을 내년 2월까지 편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적자를 감수하고라도 대규모 추경 예산안을 짜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 등 정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정치권이 추경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경기가 어려운 것과 추경을 편성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추경이 왜 필요하고 법률상 추경 편성 요건에 해당하는지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나랏돈부터 풀자는 생각은 다소 무책임한 처사다. 

만일 정부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내년에 선심성 사업을 펼칠 생각이라면 이는 미래세대에 부담만 주고 나랏빚만 늘리는 꼴이 된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 나라 안팎의 경제여건이 녹록치 않은 가운데 정부가 재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우리 경제는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 필요한 조치는 나랏돈만 풀기 보다는 내수와 수출을 살리고 일자리를 더 늘려 경제 주체들이 빚을 갚아 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경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고강도의 구조개혁과 구조조정도 함께 펼쳐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서울신문]

3. 한반도 비핵화 위협하는 미·러의 핵 경쟁

미국과 러시아의 지도자들이 경쟁적으로 핵무기 강화 의지를 밝히고 있어 파장이 크다. 핵무기 확산을 억제해 세계 평화와 안전을 담보해야 한다는 국제적 공감대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다. 파장이 만만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는 “미국은 세계가 핵무기에 대한 분별력을 갖게 되는 시점까지는 핵 능력을 큰 폭으로 강화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최근 국방 관련 연설에서 “전략 핵무기 부대의 전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지도자의 발언은 핵 정책을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의 기싸움 성격도 있지만 핵무기 확산을 억제해 세계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려는 그간의 국제적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 걱정이 크다. 전 세계 핵무기의 90%를 보유한 두 나라의 핵 증강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전 지구적인 핵 경쟁 현상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최근 ‘하나의 중국’ 원칙을 둘러싼 미·중 간 힘겨루기가 진행되면서 중국은 항공모함을 서해에 이어 서태평양까지 진출시키며 무력시위에 나서고 있다. 남중국해를 비롯해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 대결의 에너지가 높아지는 형국에서 핵무기 강화론은 중국을 자극할 소지가 다분하다. 중국이 세력 균형을 이유로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에 나설 경우 사태는 꼬이게 된다. 북핵 위협에 노출된 한국과 일본 역시 핵무장을 강요하는 국내적 압박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전체가 냉전시대보다 훨씬 참혹한 핵 군비경쟁에 휩싸일 수 있다는 의미다.

더 큰 우려는 미국과 러시아의 핵 경쟁은 핵 능력 고도화에 나선 북한에 숨통을 열어 주면서 자칫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핵 경쟁에 나선 상황에서 북핵 문제 해결 의지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고 미국의 대중 포위전략에 맞서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여기는 중국 역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약해질 것이 뻔하다. 그 때문에 핵무기 개발과 확대를 규제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역행하는,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강화론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결연하게 반대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외교·안보 환경에 직면해 있다. 한·미 동맹과 4강 외교에 안주해 온 우리에게 작금의 국제정세는 분명히 위기다. 더 창의적인 시각에서 새로운 국제환경에 맞는 국익 극대화 전략이 시급하다.



4. 최순실 일가 불법 재산 환수법 통과시켜야

최순실씨 일가의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가운데 특검이 최씨의 해외 재산 추적에 나섰다. 최씨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특별검사팀은 지난주 최씨 일가의 국내외 재산 형성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별도 전담팀을 발족했다고 밝혔다.

재산추적팀은 최씨와 박근혜 대통령 사이의 금전거래 내역은 물론 독일에 은닉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외 재산 조성 과정 등에 대해 수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과는 별도로 독일 헤센주 검찰도 최씨 관련 회사의 돈세탁 의혹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의 재산 규모와 재산 형성 과정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최씨 일가의 재산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최씨의 아버지 최태민씨가 구국봉사단 총재로 박 대통령과 자주 접촉하던 1970년대 중·후반부터로 알려졌다.



특히 1990년대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있던 시절 재단 자금을 빼돌렸을 것이라는 혐의도 받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1979년 10·26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 관저에 있던 현재 가치 2000억~3000억원 규모의 재산을 박 대통령이 최태민에게 넘겼고, 그 돈이 종잣돈이 됐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최씨 일가의 재산 규모는 알려진 몇 천억원이 아니라 최고 10조원이라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특검은 먼저 최씨 일가의 차명 재산을 포함한 모든 재산을 파악하고 재산 형성 과정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최씨가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고 국내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면 이는 몰수나 추징도 가능하다. 해외로 빼돌린 자금이 국내에 신고된 적이 없다면 탈세 혐의도 적용할 수 있다. 국내 재산이 공직자나 공익재단 등을 통해 형성한 것이라면 배임이나 횡령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재산 형성 시기가 오래전이라면 특별법을 제정하지 않으면 추징은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 출신 심재철 국회 부의장이 최근 최순실 특별법을 발의했다.

이에 앞서 국민의당은 ‘민주헌정침해행위자의 부정축적재산 환수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특별법 제정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고 있다. 박 대통령의 재산과 최씨 일가의 재산을 구분해 내는 일도 중요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에 비추어 박 대통령은 자신의 모든 금전 관리를 최씨에게 맡겼을 가능성이 크다. 재산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부정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최씨가 대통령의 옷이나 가방을 살 때도, 미용시술비를 지불할 때도 한꺼번에 수천만원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등 주로 현금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자금 출처와 사용처를 숨겨야만 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물을 받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은 반드시 추징해야 한다. 전두환추징법처럼 적용할 법이 없다면 제정을 해서라도 단죄해야 국정 농단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5. '北 대선 前 6·7차 핵실험', 누가 어떻게 대처하나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국회 증언에 따르면, 지난 5월 김정은은 파키스탄·인도 식으로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은 뒤 대화를 재개해 문제를 풀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이를 위해 한국 대통령선거 전에 6·7차 핵실험을 할 테니 준비하라는 공문을 해외 공관에 보냈다고도 한다. 김정은이 핵전략을 내년 한국 대선에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대선이 내년 상반기로 앞당겨질 경우, 북한의 추가 핵 도발이 앞으로 수개월 내에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북을 억제해야 할 국제사회에서 예기치 못한 이상 징후가 겹쳐 일어나고 있다. 지난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략 핵무기 부대의 전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자,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즉각 "핵 능력을 큰 폭으로 강화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전 세계가 두 지도자의 발언에 놀라자 측근들이 진화에 나섰지만 그 파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미·러도 가입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은 핵 보유를 인정받은 5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도 핵을 줄이는 노력을 하도록 했다. 미·러 두 나라의 '핵 능력 고도화'는 이런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NPT 정신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다.



미·러 핵 경쟁 재연이라는 난데없는 사태가 벌어지면 북의 핵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억제가 이완될 수밖에 없다. 당장 북핵을 제재하는 기반이 됐던 NPT 체제의 실효성과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핵 보유국 지위를 노리는 김정은에게 날개를 달아줄지도 모른다. 미·러의 이런 입장은 중국을 자극함으로써 핵 도미노 상황이 발생해 북핵은 후순위로 밀려날 수 있다. 이 와중에 중국이 북을 전략적으로 필요한 자산으로 보는 입장을 더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만에 하나 김정은이 원하는 대로 북이 인도·파키스탄처럼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되면 미·북 간 평화협정과 한·미 동맹 종료 논의 대두 등 한반도 정세는 격변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지각 변동 속에서 대한민국은 종속 변수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이 우리 대선을 핵 도발의 기회로 삼으려는 것은 그때가 우리의 취약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정상적 선거가 아닐 가능성까지 높다. 북이 내년 초 잇달아 6·7차 핵실험을 감행한 후 전격적으로 핵 모라토리엄(동결)을 선언하며 미국과 협상에 나설 경우엔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상 정부 공백 상태에서 미증유의 외교·안보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단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중심으로 청와대 국가안보실·국정원·외교부·국방부가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관가(官街)마저 나태에 빠져 있다고 하지만 이 외교·안보 부처들만큼은 예외가 돼야 한다.



6. 이러다 평창올림픽 국제 망신·재앙 된다

개막을 1년 2개월 앞둔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순실씨 주변 인물들이 올림픽을 표적으로 삼아 이권을 노린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민적 관심과 지지가 싸늘하게 식고 있다. 1년밖에 남지 않은 올림픽이 화제조차 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열린 일부 비인기 종목의 테스트 이벤트 입장권 예매율은 20%도 안 됐다고 한다.



정부와 기업의 관심도 크게 떨어져 있다. 조직위원장은 대통령 눈 밖에 나 갑자기 경질됐다. 주무 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최씨 사건 늪에 빠져 있고 이 사건에 덴 여러 기업도 후원 계약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한다. 올림픽 운영 예산 2조8000억원 중 4000억원은 어떻게 마련할지 계획조차 못 세웠다고 한다. 심지어 올림픽 운영비 관리와 입장권 판매 업무를 담당할 주거래은행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몇 달 후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개막식 시나리오를 제출해야 하는데 현장을 지휘할 총연출자는 공석이다. 문화·환경 올림픽을 외치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변변한 콘텐츠 하나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최악 올림픽의 오명을 쓰고 국제 망신을 사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경기장 사후 활용 계획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애초 강릉스피드스케이팅장(건설비 1264억원)과 강릉하키센터(1064억원)는 막대한 건설비가 들지만 사후 효용성이 적어 올림픽이 끝나면 철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올해 초 돌연 존치하는 것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최씨 조카 장시호 구상이란 말이 파다했는데 이제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올림픽 이후 해마다 수십억원 적자가 쌓일 것이라고 한다. 평창올림픽 개최는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재앙이 될 수 있다.



[세계일보]

7. 개혁 간판 밑의 포퓰리즘 경쟁 경계한다

여야가 어제 성탄절을 맞아 달콤한 말(감언)들을 쏟아냈다. 새누리당 김성원 대변인은 “정치권이 국민을 위한 희망의 산타가 될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새롭고 정의로운 나라를 건설하라는 광장의 주문”을 말했다. 새해가 눈앞이다. 앞으로 대선 기류는 더 거세지고, 감언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어제 화두는 성탄절이었지만 요즘 상시적인 화두는 ‘개혁’이다. 개혁을 앞세운 정치권의 감언 경쟁도 불을 뿜는다. 민주당은 최근 1월부터 검찰·재벌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 2월 국회 때 관련 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새누리당 분당과 함께 원내 1당에 올라서고 대선 기호 1번도 되는 민주당부터 개혁 깃발을 흔들며 흥행에 나서는 것이다. 비박계는 새 당명을 아예 ‘개혁보수신당’(가칭)으로 정했다. 대선 잠룡들 또한 각종 개혁 간판을 내걸고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 국가 사회도 그렇다. 물을 잘 흐르게, 썩지 않게 하는 개혁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포퓰리즘 경쟁인 사례가 수두룩하다. 명(名)과 실(實)이 다른 것이다. 민주당이 얼마 전 내놓은 ‘촛불시민혁명 12대 입법·정책과제’도 예외인지 의문이다. 기업 출연금으로 기금 1조원을 조성해 농어민을 지원한다는 법안 등에 대해선 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누가 봐도 바람직한 제안이라면 이렇게 될 까닭이 없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무늬만 개혁’ 사례가 너무도 많다.

근래 자주 거론되는 ‘기본소득제’도 같은 범주다. 이 제도는 혁명적이다. 소득 수준과 근로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일정액을 지급하는 새 분배체계를 뜻하기 때문이다. 기존 조세·복지 시스템을 전면 재조정하지 않고서는 도입할 길도 없다. 범사회적인 중장기 논의를 요하는 사안인 것이다. 그런데도 경솔하게 거론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차기 대선가도에 기본소득제가 본격 등장하고, 유권자 주목까지 받는다면 차기 선거는 포퓰리즘 광풍으로 뒤덮일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제만이 아니라 다른 ‘퍼주기 공약’들도 앞다퉈 나올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기본소득제 찬성론자들은 적어도 차기 대선 전에는 자중할 필요가 있다.

개혁을 말하기는 쉽다. 지상낙원을 말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문제는 공허한 약속이 국가와 민생을 지켜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경구를 거듭 되새겨야 한다.



[중앙일보]

8. 너무 빠른 원화 값 하락, 위기관리 허점 없어야

원화가치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주말 달러당 1203원까지 떨어져 심리적 저지선인 1200원이 무너졌다. 지난 3월 이후 9개월 만의 최저치다. 하락 속도 역시 심상치 않다. 지난 14일부터 8거래일 새 36원이나 떨어졌다. 트럼프 당선과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 여파다.

다행히 원화가치 하락의 영향은 아직 제한적이다. 11월 증권·채권 시장에서 3조원 가까이 빠져나갔던 외국인 투자자금은 미국 금리 인상 이후 오히려 순증세로 돌아섰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이달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풍부한 외환유동성과 외환보유액 등으로 대외 건전성이 양호해 당장 급격한 자본 유출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환율은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 경제의 체력을 상징한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모두 외환시장을 통해 파장이 증폭됐다. 더구나 달러 강세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미국 기준금리는 내년에 많게는 세 차례까지 인상될 전망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 움직임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는 원화가치 하락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당장 국내외 증권사들은 내년 4분기 달러당 원화 값이 1300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채권 금리는 이미 임계점에 근접했다. 이달 들어 미국 10년 및 5년물 국채 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졌다. 시장에선 미국이 한 차례만 더 금리를 올려도 ‘외국인 자금 엑소더스’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빈틈 없는 위기 관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얼어붙은 가운데 탄핵으로 국가 리더십에도 공백이 생겼다. 원화 값·유가와 같은 변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악영향이 커지고 전체 경제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 최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 같은 국제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조정할 계획이 없다”면서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에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그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책임이 정부와 여야 정치권 모두에게 있다.



[매일경제]

9. 黃대행, CEO 비어있는 공공기관 인사하는게 맞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조만간 신임 기업은행장을 임명할 예정이라고 한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23일 권선주 현 행장의 후임으로 김도진 기업은행 부행장을 기업은행장으로 임명제청한 데 따른 것이다. 국책 은행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이니 황 권한대행이 임명권을 행사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야당이 황 권한대행의 인사권 행사에 또 반발하고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황 권한대행은 지난 16일 한국마사회장에 이양호 전 농촌진흥청장을 임명하면서 첫 인사권을 행사했는데 이때도 야권은 "대통령 행세를 한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하지만 지난 9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황 총리가 권한대행이 된 이상 대통령 역할을 하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야당이 '대통령 코스프레' 운운하며 황 권한대행의 행보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것이 되레 이상하다. 특히 임기 중인 공공기관장을 갈아치운 게 아니라 공석이 된 CEO 자리를 채우는 인사를 한 것은 국정 공백 최소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다.



현재 CEO 임기가 끝났거나 만료를 앞둔 공공기관은 한국도로공사, 한국무역공사 등 20여 곳에 달한다. 기관장의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조직의 기강 해이, 사업 차질 등 부작용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황 권한대행은 "공공기관장 인사는 반드시 필요한 경우 법령 등의 정해진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실시하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탄핵 정국의 느슨해진 공공기관 직원들의 기강을 잡기 위해서라도 밀고 나가야 한다. 2004년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도 감사원 감사위원 등 차관급 4명,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장을 비롯해 공공기관장 4명의 인사를 단행했다.

야권은 국회와의 협치, 낙하산 투입 우려 등을 들며 인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 까지 무작정 공공기관 기관장 인사를 미루는 것은 국정 혼란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 야당은 황 권한대행이 산적한 국정 현안에서 손을 떼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인가.



최근 황 권한대행을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하라고 압박해놓고 막말을 쏟아부은 국회의원들이다. 황 권한대행에게 협치를 요구하면서도 여야 지도부의 갈등으로 '여야정협의체'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국회다. 그러면서 황 권한대행의 국정수행에 딴지를 거는 것은 실로 무책임하다.



[경향신문]

10. 여론 지배하는 네이버, 그 네이버를 통제하는 권력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가 지난 19일 네이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해 놀라운 사실을 공개했다. “네이버가 정부의 요구에 의해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실검)를 제외할 수 있다는 지침을 가지고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동안 ‘실검 조작’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그때마다 네이버는 실검 순위를 인위적으로 조정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네이버는 국내 최대의 검색 업체인 동시에 사실상 최대의 언론기관이다. 유·무선시장 조사기관인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지난 6월 현재 네이버의 검색 점유율은 74.4%에 달한다. 절대적인 점유율을 가진 ‘공룡 포털’이다. 뉴스 인터넷기사의 이용자 점유율도 55.4%에 이른다. 시민 다수가 네이버로 검색을 하고 뉴스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는 단순 기사 전달자를 넘어 편집, 배포라는 언론의 기능을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영향력에 걸맞은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그러나 시민들이 보는 기사의 묶음이나 편집을 어떤 기준으로 하는지 밝힌 적이 없다. 

인터넷 자율기구의 실검 관련 발표는 이 같은 네이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네이버는 올 1~5월에만 1408개를 임의로 실검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특정한 집단의 요구에 따른 실검 제외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네이버는 ‘법령에 의거해 사법·행정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제외할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외부간섭을 정당화했다. 네이버 측은 “자율기구와 함께 규정을 만들었고 아직 한번도 당국의 요청으로 제외한 적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믿기지 않는다. ‘자동완성’ ‘연관’ 검색어도 하루에 수천건씩 제외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숫자로만 발표된 ‘실검에서 제외한 키워드’와 ‘제외 사유’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차제에 실검 폐지도 검토해야 한다. 실검 내용은 연예인의 신변잡기가 대부분이다. 사소하고 찰나적인 것들로 도배된 실검을 통해 무엇을 얻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새로운 민주주의가 실험되고 있다. 온라인이나 모바일에서 실시간으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토론을 통해 정책으로 입안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 같은 디지털 민주주의 시대에 온라인의 뉴스와 검색어를 포털의 자의적 해석으로 재단하거나 정부의 입김에 의해 누락하는 행위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공론의 장을 지키지 않으면 민주주의도 없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매일춘추] 뿌리내리고 싶어라

더워서 울었다. 더위가 내 집을 부순 것도 아니고, 더위가 내 밥벌이를 망친 것도 아닌데, 더워서 울었다. 오로지 덥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럽게 울다니,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2012년 초가을에 내려와 멋모르고 건너뛰었다가, 이듬해 5월부터 맞이하게 된 대구의 여름은 그만큼 혹독했다. 나는 한참 동안 진심으로 후회했다. '괜히 내려왔어!'라고.

하지만 그 더위만 제외하면 대구의 날씨는 대체적으로 밋밋하기 그지없다. 비는 드물고 천둥은 멀리 있으며 벼락은 흐릿하다. 그나마 최근 들어 흰 눈이 좀 무거워졌다고들 하는데, 그게 무거운 거라면 경기도에서 난 벌써 깔려 죽었다. 격동적인 날씨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날씨로 인한 자극이 약하다는 것은 재해에서 비켜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겠다. 실제로 대구가 천재지변이나 자연재해로 고생했다는 소식은 웬만해선 듣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사람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많은 것은? 한마디로 대구는 자연에서 멀어진 대신 사람과 지나치게 가까워진 도시로 보인다. 밖을 경계할 일이 없으면 모든 시선과 관심이 안으로 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말이다. 하여 대구가 뉴스나 검색어에 오르내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는 대구 사람들이 서로에게 품고 있는 냉정한 치열함이 버거워진다. 

그런 대구에 살기 시작한 지 이제 4년하고도 넉 달째다. 그리고 난 여전히 대구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다. 발목을 잡아주는 것이 없으니 당연히 힘도 없어서, 별거 아닌 것 같은 바람에도 사정없이 휘청거린다.

프랑스 작가 장 폴 뒤부아의 책 '프랑스적인 삶'에 보면 나무에 대한 서사가 퍽 구체적으로 읊어져 있다.

'첫 바람에 넘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낙관적인 나무들이 있었다. 척박한 땅에서 힘겹게 자라는데 익숙한 근엄한 나무들도 있었다. 죽은 자의 왕국인 땅속 깊이까지 뿌리를 내린 견고한 성처럼 흔들리지 않는 나무도 있었다. 기름진 땅의 산물인 풍족한 나무는 초록빛으로 넘쳐났고 그 풍요한 모피를 펼쳤다. 이 세상에는 아주 드물지만, 날씬한 몸매에 항상 꼭대기가 하늘을 향해 있는 몽상가 같은 나무도 있었다.



오래된 의혹으로 둥글게 감고 있는 옹이가 많은 나무, 뒤틀린 나무, 위태로운 나무가 있었다. 알파벳 소문자 'i'처럼 곧고 조금은 건방지고 묘하게 거만한 귀족적인 나무도 있었다. 나뭇가지로 아낌없이 그늘을 만들어주는 너그러운 나무도 있었다. 쉬지 않고 땅을 붙들어 놓고 일하느라 바쁜, 줄지어 선 옹색한 나무도 있었다.' 

과연 나는 어떤 나무인 건가. 나무라고 할 수는 있는 건가. 아, 뿌리내리고 싶다.



2. [서울신문][길섶에서] 희망의 끈/오일만 논설위원

최근 친구에게 들은 슬픈 사연이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 지인의 아들이 우울증에 빠져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한다. ‘공부하라’고 질책했던 그 부모 역시 죄책감에 삶의 희망이 꺾였다고 한다. 5년 전인가, 한 중학생이 부산의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꽃 같은 삶을 마감한 사건이 오버랩됐다. “성적 때문에 비인간적 대우를 받는 이 세상을 떠난다”는 그 학생의 절규에 가슴이 미어졌던 기억이 새롭다.

성적 지상주의가 판치는 공간에서 극소수를 제외하곤 아마도 대부분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어렵사리 대학에 들어가도 암울한 미래에 절망하고 좌절의 고통 속에서 신음한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도 도무지 희망의 출구가 없다.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사회다.

우리 기성세대는 ‘아픈 것이 청춘’이라고 청년을 위로한다.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고 설득해도 그들이 직면한 현실은 너무도 암담하다.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단순한 위로 대신, 좌절에서 벗어날 ‘희망의 사다리’를 내려주는 것이 순서다. 희망의 끈과 사다리를 구체적으로 연결해 주는 것, 이것이 못난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3. [매일신문][기고] 젊은 그대 ‘달성’

한 해를 마감하는 송년. 누구나 저마다의 회한이 있고, 저마다의 환희가 있을 터이다. 그 회한과 환희 속에 저마다의 살맛들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98세까지 장수했던 수필가이자 영문학자였던 피천득 선생도 ‘송년’이라는 글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은 40부터도 아니요 40까지도 아니다. 어느 나이고 다 살만하다”고 했다. 하필 40을 내세운 것이 무척 의미심장하다. 마흔에 생각이 헛갈리지 않는다는 공자의 ‘불혹’을 염두에 둔 글귀랄까.



불혹에 이르려면 서른의 ‘이립’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서른. 삶의 튼실한 궤적을 그리기에 더없이 좋은 나이다. 용기 있고 활기차고 직감하기에 좋은 세대다. 달성군 화원읍이 외가인 영원한 가객 김광석도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라며 ‘서른 즈음에’서 아쉬운 듯하면서도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하고는 서른 청춘의 이미지를 가슴 꽉 차게 에이듯 쟁쟁하게 노래 불렀다. 그런 서른이다.



달성이 젊어졌다. 올해 달성군민의 평균연령이 38.6세로 30대 후반이다. 대구시민의 평균연령 41세보다 무려 2.4세나 젊다는 통계다. 젊은 도시의 이미지가 확 풍긴다. 사관생도의 걸음걸이에 버금갈 만큼 활기찬 달성군의 평균연령치다. 이런 젊음에 다들 놀라고 있다. 물체가 구부러지면 그 그림자도 구부러지는 법, ‘형왕영곡’(形枉影曲). 원인과 결과는 늘 일치한다는 열자의 말이다.



달성의 젊음도 그렇게 된 원인과 결과가 뚜렷하다. 경제와 산업을 뒷받침하는 대구테크노폴리스 등 첨단과학단지의 상승세에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면서 정주 여건이 확연히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꾸준한 인구 유입으로 군 단위 기초 지방자치단체로는 인구 전국 1위 자리에 오를 날도 머잖다. 이미 23만 명을 향해 하루가 멀다 않고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도시철도 1호선 화원 구간도 연장됐다. 대구테크노폴리스로도 개통돼 현풍 쪽의 교통 접근성이 엄청 수월해졌다. 사통팔달의 교통망에다 단단한 기반시설 확충으로 살기 좋은 도시로서의 위상이 젊은이들을 부르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자연환경이 주는 매력을 더한다. 아파트값이 저렴하고 장학재단 등 교육 환경까지 튼튼하다. 이만하면 아이들 많이 낳아 올곧게 키우기에 더없이 좋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달성군은 어딜 가나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하는 젊은 부부들이 많다. 특히 연령대가 낮은 유가면과 다사읍은 평균이 30대 초`중반이고 논공`화원읍은 30대 후반. 덩달아 밝고 맑은 아이들 소리가 도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당연히 문화관광이 빠질 리 없다. 비슬산 대견사와 낙동강 사문진 주막촌에 이어 대구의 새로운 관광명승지로 떠오른 송해공원에는 주말이면 힐링을 겸한 나들이객들로 북적인다. 이를 위해 군민들은 공직자들과 한마음으로 뛴다. 올 한 해도 지자체 생산성 대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16개의 큼직한 상을 수상했다.



이 모두 젊은 달성의 열정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군민으로서의 자긍심이 있기에 ‘젊은 도시`젊은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강정 디아크와 군립도서관은 물론 역사와 전통이 숨 쉬는 도동서원, 마비정 벽화마을, 육신사 등에도 젊은 군민들의 열정은 녹아 있고, 살피고, 보듬느라 여념이 없다. ‘현혹’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카네티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세계의 중심, 세계가 이런 중심들로 가득 차 있어 세계는 귀중한 것”이라고 했듯이 지금 달성군이 귀중해진 것은 젊음이 달성의 중심에 우뚝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4. [서울신문][나태주 풀꽃 편지] 딸에게

딸아, 예전엔 그래도 가끔 너에게 편지글을 썼는데 요즘엔 통 그러지 못했구나. 실상 글이란 것은 읽어야 할 특정한 상대방이 있다 해도 우선은 글을 쓰는 사람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거나(내려놓거나) 다잡거나(결심하거나) 그러기 위해서 쓴다. 그러니까 글의 일차적 효용이 글 쓰는 자신에게 있고 가장 우선적인 수혜자가 자신이란 것이지.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이 글을 쓴다.

딸아. 아주 오래전 네가 우리에게로 왔을 때 우리 집은 매우 가난했고 우리 가족의 삶은 곤궁했다. 그렇지만 너는 어려서부터 예뻤고 영특했으며 부모의 말을 잘 들었고 학교생활도 잘했고 공부 또한 다른 애들한테 뒤지지 않게 잘했다. 그래서 너는 엄마와 아빠의 기쁨의 원천이었고 자랑의 일번 항목이었다. 마음속으로 ‘우리 딸!’ 그런 다짐 같은 생각을 늘 놓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엄마는 그러한 너를 생각하거나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간질간질하다고 표현하곤 했단다. 그건 아빠한테도 마찬가지지. 네가 있어서 나는 세상의 그 어떤 예쁜 여자를 보아도 마음이 설레지 않았단다. 그래, 나에게도 예쁜 딸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살아가기 힘든 날에도 용기가 생겼고 가슴이 펴졌고 다리에 힘이 주어졌지. 정말로 나에게 네가 없었다면 세상은 얼마나 썰렁하고 적막하고 답답한 것이었을까. 너로 하여 나의 세상은 무채색의 세상에서 유채색의 세상으로 바뀐 것이다. 실상은 딸도 이 세상 이성의 한 사람. 그러나 딸은 보통 이성과는 또 다른 이성이라고 볼 수 있고 이성 너머의 이성이라고 볼 수 있지. 바라만 보고 생각만 해도 좋은 이성.

딸아. 너를 생각하기만 하면 가슴속에 끝없이 흐르는 어떠한 미지의 강물을 느끼곤 했었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나라의 하늘을 꿈꾸었고 그 하늘의 별이며 구름을 또한 내 것으로 할 수 있었지. 이것은 살아 있는 목숨의 축복. 딸을 통해서 아버지 된 사람들은 진정한 부성의 의미를 깨닫는다고 본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느냐.



실상 딸은 누구나 아빠 된 사람에게는 현실이 아니고 하나의 환상이며 동경 같은 존재. 이제 너도 자랄 만큼 자라 성인이 되고 좋은 사람 만나 아내가 되고 이미 엄마가 된 지 오래구나. 공부 또한 하고 싶은 만큼 하여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구나. 그만큼 세월이 흐른 것인데 흐른 세월 뒤에 감사한 마음과 다행스러운 마음이 겹치는구나.

아빠 또한 시 쓰는 사람으로서 모국어로 수없이 많은 시를 썼고 아주 많은 책을 냈으니 여한이 없는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도 이제는 예부터 드문 나이라는 70을 넘겼으니 세상에 남을 날이 많지 않음을 느낀다. 언젠가 몸과 마음의 끈을 놓으면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생자필멸이라 했으니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

비록 그날이 온다 해도 딸아. 너무 슬퍼하지 말고 힘들어하지 마라. 아빠 대신 아빠가 남긴 시들이 세상에 살아남아 숨 쉴 것이며 네가 있으니 또 너를 통해 아빠는 여전히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부모와 자식이 무엇이겠느냐? 자식은 부모의 몸과 마음의 일부를 이어받아 부모 대신 계속해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자식이란다.

그렇지만 살아가다가 정말로 힘든 날이 있거나 숨이 막힐 것 같은 날이 있거든 하늘을 올려다보기 바란다. 거기 바람으로 흰 구름으로 달이나 별빛으로 아빠가 너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때 아빠를 가슴으로 맞아 생각해 주기 바란다. 길을 가다가 만나는 새소리 하나, 길가에 피어 있는 풀꽃 한 송이 속에도 아빠의 마음은 살아 있을 것이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고달픈 것. 고난의 날들. 그러기에 서로 위로가 필요하다. 도움이 필요하다. 아무리 힘든 날이라도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내 곁에 누군가 함께 가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쯤 그 힘겨움과 고달픔은 가벼워질 것이다. 딸아, 어떠한 순간에도 네 곁에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딸아. 고달픈 인생길, 끝까지 우리 함께 견디자.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박싱데이(Boxing Day)

영국 등 영연방 국가들은 크리스마스 다음날을 ‘박싱 데이(Boxing Day)’라 부른다. 특히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이날이 공휴일이어서 주말이 겹칠 경우 다음 월요일을 쉰다. 물론 근래에는 미국과 거의 전 유럽이 ‘박싱 데이’라는 말을 쓴다. 연말 빅세일이 절정에 이르는 날이다. 

유래는 확실치 않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교회들이 이날만큼은 헌금함을 교회 바깥에 두고 교구민이 넣은 돈을 교구의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더 설득력이 있는 건, 귀족들이 크리스마스 파티 뒤치다꺼리에 지친 하인들에게 휴가를 주는 관습에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파티의 남은 음식을 상자에 담아 각자 집에 가서 가족들과 나눠먹게 했다는 것. 음식 외에 선물이나 보너스가 담기기도 했다고 한다. 더 오래 전 봉건시대의 농노들이 이날 영주의 성으로 몰려가 옷이나 곡물 등 선물을 받곤 했는데, 그건 시혜가 아니라 일종의 의무여서 선물의 질과 양에 따라 영주에 대한 평가가 갈리곤 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상인들이 크리스마스 다음날 버려진 선물 상자들을 수거해가는 전통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아일랜드의 경우 소년들(렌보이, Wren Boy)이 얼굴을 분장하고 호랑가시나무 가지와 헌금함을 들고 각 가정을 돌며 기부를 받기도 했다. 그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다. 

가톨릭 전통의 영향이겠지만 이날은 말의 수호성인 성스테파노의 날이기도 해서, 말과 사냥개를 동원한 여우사냥 축제가 벌어지기도 했다. 2004년 여우사냥이 법으로 금지되면서 얼음수영 등 다양한 형태의 스포츠 행사와 음악회 같은 문화행사가 열리는데, 대부분 자선모금 행사다. 크리스마스가 가족과 가까운 이웃들끼리 뭔가를 나누는 날이라면 박싱 데이는, 유래가 뭐든 그 취지는 마음을 더 널리 전파하는 날이었다. 그 전통이 제국주의에 섞여 영연방 국가로 먼저 확산됐다. 

근년의 박싱 데이는, 블랙프라이데이나 사이버먼데이처럼, 제조ㆍ유통 기업들의 재고 떨이 세일로 더 떠들썩하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최근 기사에서 이 날을 ‘소비주의의 축제일’이라고 썼다. 통상 1월 신년 세일을 벌이던 백화점 등이 할인 행사의 기점을 박싱 데이로 잡아 크리스마스 재고를 대폭 할인해 판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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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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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연세대조차 학사관리가 엉망이었다면

연세대의 체육특기생 학사 비리로 국내 사학(私學)의 엉터리 실태가 또 다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현재 국정농단의 주역으로 재판 받는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1998년 승마특기생으로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한 후 학사경고를 3번 받고도 무사히 졸업했다는 게 그것이다. ‘학점이 평균 1.75 미만이면 학사경고하고 학사경고 3회 이상은 제적한다’고 규정한 학칙이 한낱 휴지조각이었다는 얘기다.

교육부 감사 결과는 더 황당하다. 1996~2012년 기간에 연세대 체육특기자 685명 중 115명이 학사경고를 3회 이상 받고도 졸업했다. 6명 가운데 1명꼴로 특혜를 받았다면 학사 관리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고를 10회나 받은 학생을 포함해 8회 이상이 11명에 이르며 5~7회 경고를 받은 경우도 36명이라니 장씨의 경우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인 셈이다. 재학생들이 “이러려고 연대생 됐나”며 허탈 속에 분노를 터뜨릴 만도 하다. 

이미 이화여대도 최씨 딸 정유라씨의 입학 및 학사관리에 특혜를 준 사실이 들통나 최경희 총장이 물러난데다 관련 교수들이 무더기로 징계를 당했고 정씨는 입학 자체가 취소됐다. 연세대나 이화여대 같은 명문대학들이 이 정도라면 다른 대학들은 보나마나다.

하긴 체육특기자 제도에 대한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실력이 월등하지 않더라도 돈이나 연줄이 있으면 뽑힌다는 것이고, 일단 뽑히기만 하면 백지 시험지를 내도 학점을 받을 정도로 학사관리가 엉망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번 연세대의 사례로 명백히 증명된 셈이다.

교육부는 대학들에 대한 전수조사로 실태를 파악한 뒤에 연세대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번번이 일이 터진 뒤에야 허둥대는 ‘뒷북 행정’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참에 체육특기자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보는 게 바람직하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학력과 출석률이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졸업장을 주지 않도록 못 박고, 입시비리를 원천 봉쇄할 별도의 관리기구 설립도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물의가 끊이지 않는 예능계 대학과 의·치대 등의 허술한 입시와 학사관리에 대해서도 억울한 학생들이 생기지 않도록 실태 조사와 대책 수립을 서둘러야 한다.



2. 우병우 전 수석에게 휘둘린 ‘맹탕 청문회’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어제 청문회에 얼굴을 드러냈지만 그의 답변을 듣는 국민들은 오히려 답답한 심정이었다. 한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었으면서도 국정농단 사태를 초래한 책임에 대해 남의 일처럼 답변하는 모습에서 분노를 느껴야 했다. “송구하다”는 입장 표명이 없지 않았지만 원론적 차원의 유감 표명에 불과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추궁하는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자기변명뿐이었다.

우 전 수석은 국정농단의 핵심인물인 최순실씨와의 관계에서나 가족회사의 자금 유용 등에 대해 “모르겠다”거나 “아니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의원들의 질문 공세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또렷한 목소리로 답변을 이어간 것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경우와 비슷했다. 자신은 민정수석으로서 맡은 바 업무에 충실했다는 당당한 태도였다. 일부 의원들이 질문 도중 할 말을 잃고 한숨을 내쉰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토록 당당하고 잘못이 없었는데도 그동안 청문회 출석을 피하려고 교묘히 거처를 숨기며 피해 다녔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집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으나 수긍하기 어렵다. 연일 자신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기사가 언론을 장식하고 있었는데도 법적인 허점을 이용해 청문회 출석을 기피했다면 그 자체로 공인 자격에 미치지 못한다.

어쩌면 우 전 수석에 대한 의혹이 사실 이상으로 부풀려진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민정수석이라는 직책상 그에게 의혹의 눈길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실제로 의혹을 살 만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발뺌하는 그의 모습에서 어떻게든 책임지지 않으려는 우리 공직사회의 단면을 바라보게 된다.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현행 청문회 제도가 지닌 문제점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이번에도 어제까지 모두 5차례의 청문회가 열렸지만 국정농단 의혹 규명은 부족했다. 핵심인물인 최씨조차 출석을 거부한 탓이다. 더욱이 국정조사특위 의원들 사이에 위증교사 의혹까지 불거져 특검에 수사가 의뢰된 마당이다. 이런 식의 ‘맹탕 청문회’라면 열지 않는 게 낫다. 설령 구치소를 찾아가 최씨의 증언을 직접 듣는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을 것이다.



[서울신문]

3. 국정 과도기 공직범죄·복지부동, 엄단해야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촉발된 국정 혼란기에 공직자들의 범죄와 비리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 한 외교관의 추태뿐만이 아니다. 공직자들이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흉기 난동, 폭력, 음주운전 등 갖가지 범죄를 저질러 구속 기소되거나 수사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자지단체장부터 수습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지위고하를 막론한다.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그럴수록 공직사회가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실상은 그 반대라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어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 현안 장관회의에서 전 칠레 주재 외교관의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각 부처 장·차관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직 기강을 철저하게 확립해 달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지금 공직사회의 일탈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정 혼란을 틈타 공무원들의 비리가 전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최근 한 직원의 승진을 위해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나 검찰에 고발됐다. 김모 광주시장 전 비서관은 광주시 납품 계약 과정에서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경북 성주군 공무원 20명은 군의원들과 대낮에 7시간 넘게 술판을 벌였다. 강원도 춘천시청 한 수습 공무원은 출근 첫날 회식 자리에서 상사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며 난동을 부렸다.

사실 공무원들의 이런 비리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시기에 발생한 공직자들의 비리와 부정부패이기에 예사롭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김영란법’으로 바짝 긴장하던 공직사회가 이제 조였던 나사가 풀린 듯 점차 느슨해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공직사회가 전반적으로 무너져 버린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전국적으로 번진 AI가 ‘계란 대란’으로 이어진 것도 공직 기강의 해이가 빚은 인재(人災)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지금 라면 등 각종 생필품 가격이 상승하고, 일부 지자체의 공공요금 인상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등 서민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민생 챙기기로 불안해하는 민심을 다독거려야 할 공직자들이 오히려 각종 비리나 복지부동으로 국민의 염장이나 질러서야 되겠는가.

지금 정치권은 계파 싸움을 벌이며 개헌 타령을 하며 국민의 생활과는 아무런 관계 없는 권력 다툼에 열중하고 있다. 국민이 기댈 곳은 정부밖에 없다. 국가적 위기의 극복을 위해 관가가 투철한 소명의식으로 재무장하지 않으면 자칫 나라가 휘청할 수 있다. 비리로 적발된 공무원에게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해 일벌백계로 다스려 국정 공백과 정책의 표류를 막아야 하는 이유다. 그 중심에 황 대행이 있다. 황 대행은 이번이 마지막 공직이라는 각오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길 바란다.



4. 막 오른 4당 체제, 대결 아닌 협력의 정치로

새누리당의 비박계 의원 33명이 집단 탈당을 선언했다. 이들은 오는 27일 탈당계를 내고 이른바 비박 신당 창당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보수 정당의 창당은 기존 보수 정당의 분열을 의미하는 동시에 정치 구도의 4당 체제 재편을 뜻한다. 보수 정당 분열의 직접적 이유가 박근혜 대통령이 공범으로 지목된 ‘최순실 게이트’라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박 대통령 탄핵안’을 헌법재판소가 심의하고 있는 마당에 친·비박계가 정치적 소신을 같이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노릇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국정 운영을 정상화해 민생 경제의 활력을 되찾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새누리당의 분당(分黨)은 정치와 경제의 조기 원상 회복을 가로막던 정치적 불확실성 한 가지가 해소되는 부수 효과도 없지 않다. 3당 체제에서의 불안이 4당 체제에서는 지속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눈앞에 닥친 4당 체제에 정치권은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유불리(有不利)를 셈하며 각기 다른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 분당으로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이합집산이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를 먼저 왈가왈부하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다. 국민의 대표를 자처하는 정치인이라면 지금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민생 대책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다. 그럴수록 4당 체제에 적극적인 환영의 뜻을 밝힌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의 설명에는 한번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박 원내대표는 “의회에서도 거대 정당이 지배하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오히려 4당 체제는 협상과 대화, 국회 본연의 정치를 찾아서 협치 시대를 열어 갈 수도 있다”고 했다. ‘국회 본연의 정치’나 ‘협치’의 궁극적 목적은 당연히 민생이어야 할 것이다.

4당 체제에서는 ‘협력의 정치’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더불어민주당의 121석도 원내 제1당으로는 결코 충분치 않다. 더구나 새누리당에서는 1차 탈당에 이어 많으면 30명 안팎의 2차 탈당마저 이야기되고 있다.



새누리당을 제외한 3당이 뜻을 모으면 국회선진화법을 돌파하는 것은 물론 개헌마저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념 간극이 넓지 않을 비박 신당과 국민의당의 새로운 협력도 가시화될 수 있을 것이다. 구시대적 대결 구도는 3당 체제의 종식과 함께 막을 내려야 한다. 정치권은 4당 체제의 출범과 함께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상생의 정치 구도를 펼쳐 보이기 바란다.



[조선일보]

5. 백악관 무역委長은 FTA 반대론자, 中은 또 사드 보복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국가무역위원회(NTC)를 백악관에 신설키로 하고 위원장에 반(反)중국 강경론자인 피터 나바로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를 내정했다. 나바로 내정자는 '중국 위협론'을 주장하는 보호무역 매파(派)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실패한 협상"이라며 재협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중국은 물론 한국까지 겨냥한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공세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미국만이 아니다. 중국 국영기업 하나가 한국 기업과 맺은 투자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면서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이유로 들고나왔다. 중국은 그동안 '한한령(限韓令·한류 규제)' 등의 비공식 보복 조치를 취해왔지만 사드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의 양대 강대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서슴지 않고 통상의 칼날을 휘두르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1960년대 '수출 입국(立國)'을 내걸고 개방 무역 노선을 달려온 이래 이렇게 어려운 통상 환경에 처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통상 위기에 대처할 우리 내부 역량은 역대 최악이다. 국정 리더십 공백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며 사드나 미·중 관계 등 대외 이슈에서 내분을 겪고 있다. 통상 담당 조직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일개 부서로 쪼그라들었고, 담당 공무원들은 전문성 부족과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다.



그래도 미·중에 통상·외교 교섭단을 보내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 트럼프 진영은 한·미 FTA가 미국에 손해라고 오해하고 있다. 한·미 간 자유무역은 누구에게도 일방적이지 않다. 설사 일부 불균형이 있어도 과도기일 뿐이다. 중국은 무역 보복으로 한국의 안보·군사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오해를 갖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드는 북핵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으로서 경제보다 위에 있는 생존의 문제다. 중국 지도부의 인식을 바꾸는 데 외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다음 대통령은 통상 문제를 국정 과제의 맨 위 순위에 올릴 필요가 있다. 환경이 너무나 급변하고 있다. 새 통상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집행할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통상과 외교에서 나라의 크기는 중요하기는 해도 전부는 아니다. 싱가포르·네덜란드 같은 소국(小國)도 고도의 국가 전략을 통해 통상·외교 강국이 될 수 있었다. 관건은 정밀한 전략을 만들고 일관되게 실천하는 국가 의지다.



6. 안철수의 2018년 개헌 국민투표 제안도 주목한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개헌은 대선 공약으로 내걸어 2018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를 하는 것이 실행 가능한 합리적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은 앞서 아예 2020년 21대 총선 때까지로 다음 대통령 임기를 단축해서라도 개헌을 해야 한다고 했다. 비박(非朴)계 신당도 개헌에 적극적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개헌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여야 정당과 정파가 개헌으로 국가 틀을 시급히 바꿔야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국민들 60~70%가량이 개헌에 찬성한다. 최순실 사태로 시대착오적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국민이 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확신까지 퍼지고 있다. 국민과 정치권이 모두 개헌에 찬성하는 지금이야말로 1987년 이후 30년 만에 찾아온 개헌 기회다.



개헌은 속성상 여건이 무르익었을 때 신속하게 하지 않으면 아예 없던 일이 되기 쉽다. 지금까지 여러 대통령이 개헌 공약을 했다가 권력을 잡고 나면 그 단맛에 취해 모른 척했다. 집권 여당도 누릴 만큼 누리다 힘이 떨어질 때쯤 국면 전환용으로 개헌 카드를 던지곤 했다. 지금은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된 상태다. 개헌을 악용할 최고 권력이 없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다시 주어지지 않을 개헌 적기라 할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개헌을 하고 새 대통령을 뽑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개헌 저지 의석(100석)을 쥔 민주당(121석) 주류가 반대하고 있다. 이들이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개헌을 추진할 수는 있어도 성사시키기는 어렵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시기 등 정치 일정상의 불투명성도 장애 요소다. 분권형 권력 구조라는 큰 방향의 공감대는 있지만 구체적 내용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당장 개헌하는 것이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대선 주자들이 개헌 시기를 구체적으로 못박아 공약하도록 한 뒤 집권 후 도저히 번복할 수 없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2018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는 재·보궐선거를 제외하고는 다음 대선 후 열리는 첫 전국 단위 선거다. 오는 1월부터 열리는 국회 개헌특위에서 만든 개헌안을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은 무리 없는 합리적 방안으로 보인다. 다만 대통령과 여당이 또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탄핵에 버금갈 타격을 각오해야 하는 강제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너 죽고 나 살자'식 무한 투쟁 정치는 이제 여기서 끝나야 한다.



[동아일보]

7. ‘주폭’에 대처 못한 대한항공, 테러범이면 어쩔 뻔했나

20일 베트남 하노이를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오던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술에 취한 30대 승객이 옆자리 승객과 여자 승무원들을 폭행하는 난동을 부렸다. 이 사건은 유명한 미국 팝스타 리처드 막스가 페이스북을 통해 소개하면서 비로소 알려졌다. 막스는 “혼란스럽고 위험한 상황이었는데도 여성 승무원들이 이 사이코를 어떻게 제지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도 못했고 교육도 받지 않았다”며 “나와 다른 승객들이 나서 제압했다”고 말했다. 나라 망신이 따로 없다.

여자 승무원들과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탑승한 대한항공 남자 정비사 등이 난동 승객을 결박해 최종 제압하기까지는 한 시간이나 걸렸다. 대한항공 측은 “여승무원들이 테이저건 발사 준비를 하는 등 규정대로 적절히 대처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현장사진 분석 결과 테이저건은 아예 쏠 수도 없는 상태여서 ‘거짓 해명’ 논란에 휩싸였다. 

기내 술주정을 ‘준(準)테러’로 간주하는 미국 항공사는 이 정도 난동은 대부분 5분 이내에 진압한다. 그러나 대한항공 기내에는 조종사를 빼곤 남자 승무원이 한 명도 탑승하지 않았다. 항공보안요원 탑승을 의무화한 미국처럼 우리도 보안요원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을 계기로 올 1월부터 기내 소란행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으나 벌금이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늘었을 뿐이다. 외국에 비하면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이다. 올 4월 부산에서 괌으로 가던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던 40대 한국인 치과의사는 미국에서 징역 3년형을 받았다. 경찰은 이번 난동 승객에 대해 “술에 취해 조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일단 불구속 입건한 뒤 귀가 조치했다.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기내 폭력과 난동은 무관용 원칙으로 엄벌해야 한다.



[매일경제]

8. SK하이닉스의 2조원대 투자 다른 기업도 따라했으면

SK하이닉스가 어제 충북 청주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2019년까지 2조2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제시한 46조원 규모의 중·장기 로드맵에 따라 청주공장을 증설하는 것인데 글로벌 경기침체와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비슷한 시기에 9500억원을 투자하는 중국 우시 공장의 2배가 넘는 금액이라는 점에서 내수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SK하이닉스는 2012년 SK그룹에 편입된 이후 매년 3조~6조원대 투자를 이어오고 있는데 이는 낸드플래시 등 첨단 메모리 반도체 수요 급증에 대응하는 차원을 넘어 무섭게 추격하는 중국 후발 업체를 따돌리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문제는 SK하이닉스같이 꾸준히 국내 투자를 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산업은행이 355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해 설비투자는 지난해보다 0.8% 감소한 179조4000억원에 그쳤다. 연초에는 182조원 이상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잡았지만 실제 실행된 투자액은 이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축소하는 이유는 최근 3년 연속 2%대 저성장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데다 수출 둔화와 내수 불황이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과 철강 등 주요 산업의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증가, 정치적 불안 등 악재가 많아 내년에도 올해 이상으로 투자를 늘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규제프리존법 등 기업 투자를 유도하는 정부 정책들은 탄핵 정국에 추진 동력을 잃었고 국회에서는 투자를 가로막는 반기업적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 각국이 투자 유치를 위해 법인세율을 낮추고 규제를 과감하게 풀고 있는 추세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정세가 불안하더라도 정부와 국회는 기업 투자 활성화를 통해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노동시장의 고질적 고비용 구조를 개혁하고 기업 활동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거나 없애야 한다. 국내에 투자하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SK하이닉스같이 국내에 투자하려는 기업이 많아질 것이다.



[중앙일보]

9. 일본처럼 비정규직 살리려면 노동개혁이 우선이다

일본 정부가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한 행정지침 을 마련했다. 현재 정규직 대비 60%인 비정규직의 임금을 80%로 끌어올리는 게 골자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고, 업무평가가 같다면 임금과 복지수준을 동일하게 책정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일본 정부가 이런 조치를 취한 이유는 간단하다. 비정규직의 근로의욕을 높여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그들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서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경제의 활력을 높이려면 고용시장의 이중구조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심지어 2013년 2월 비정규직 차별금지를 담은 법을 만들었다. 지침으로 시행하는 일본보다 한 발 앞선 선제조치를 취했다. 그런데도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연공서열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호봉제 때문이다. 1~2년 단기 근무를 하는 비정규직은 호봉제의 틀에 갇혀 아무리 일을 해도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정규직은 성과나 직무, 역할과 상관없이 해만 바뀌면 임금이 오른다. 출발이 같아도 몇 년 뒤면 격차가 벌어지고, 이걸 좁힐 수 있는 길이 없다. 이래서야 법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무용지물이다.

문제는 임금체계를 바꾸면 정규직 중심의 노조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강하게 주장하던 노동계가 최근 들어 그 목소리를 낮추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정규직 노조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정치권도 비정규직 차별금지법이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노동시장의 토양을 정비해야 한다. 일본보다 뒤처져서야 되겠는가. 임금체계 개편이나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퇴직금 지급과 같은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당장 나서야 한다. 이는 정치적 구호나 흥정의 대상으로 삼을 사안이 아니다. 640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고, 한국 경제의 활력을 꾀하는 출발점으로 인식해야 한다.



[경향신문]

10. 청년을 77만원 세대로 전락시키는 불평등 사회

국내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아르바이트·단시간 일자리 등은 청년층으로 채워진 지 오래다. 낮은 임금, 낮은 고용의 질, 낮은 삶의 질 등은 청년층을 지칭하는 사회적 용어가 돼 버렸다. 소득양극화와 취업난, 주거난에 시달리는 청년층은 ‘N포 세대’를 넘어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21일 내놓은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는 청년세대가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지난해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하위 20%)의 한 달 소득은 80만7000원으로 집계됐다. 취업난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탓이다. 한때 저소득 청년층을 일컫던 ‘88만원 세대’가 ‘77만원 세대’로 대체될 시점이 머지않은 것이다. 

청년 가구의 소득불평등도 심화돼 최상위 20%와 최하위 20%의 연평균 소득 격차는 9.56배에 달했다. 가계빚도 2년 새 900만원 넘게 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대 청년층 2명 중 1명꼴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겼다고 체념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 가구의 경제난은 출산율 하락과 맞물리면서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정부는 실효성 있는 청년고용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뒷짐만 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고용률 70% 정책은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것으로 변질됐다. 청년고용할당제는 공공기관에서 민간기업으로 확대되지 않아 ‘반쪽 대책’에 그쳤다. 내년 최저임금을 고작 7.3% 오른 시급 6470원으로 결정한 정부는 미취업 청년들에게 최장 6개월간 일정액을 지급하는 서울시와 성남시의 청년수당·배당 사업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무능한 정부가 보인 옹졸함의 극치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기본급·상여금·수당 차별을 없애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일본 정부는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비정규직의 저임금 문제를 해결해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청년세대가 꿈을 잃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나라의 미래는 기대할 게 없다. 청년세대가 광장에서 촛불을 든 것은 불평등한 사회를 바꿔보려는 간절함 때문이란 것을 정부와 정치권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매일신문][야고부] 독감(毒感)

과학자들은 ‘인플루엔자’를 역사상 가장 지독한 감염병으로 꼽는다. 1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사람이 대략 1천500만 명인 데 비해 1918~1920년에 유행한 ‘스페인 독감’(인플루엔자 A형 H1N1)으로 전 세계에서 약 5천만 명이 사망했다. 유럽 인구 4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1346~1352년 페스트 창궐이나 천연두도 가공할 감염병이지만 14세기와 20세기 인구 차이를 감안해도 인플루엔자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1918년 3월 미국 시카고에서 처음 나타났다. 미국에서만 55만 명, 인도는 1천250만 명이 희생됐다. 흔히 ‘무오년(戊午年) 독감’으로 불린 이 독감에 우리도 740만여 명이 감염돼 14만여 명이 죽었다. 인플루엔자 A형의 창궐로 전 세계 인구의 약 3~6%가 목숨을 잃었다. 포화에 휩싸인 유럽에 독감까지 겹치자 참전국들은 서둘러 전쟁을 끝냈다. 결국 대포가 바이러스에 투항한 셈이다.



스페인 독감 사망자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조류 독감 바이러스 유전자가 섞인 변종 바이러스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감기 증상을 보이다가 폐렴으로 발전해 2~3일 만에 죽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감염자 상당수가 손 쓸 새도 없이 사망한 것이다. 독감 예방 접종이 시작된 것도 스페인 독감이 남긴 교훈이다.



올겨울 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로 비상이 걸린 가운데 A형 독감 바이러스까지 급속도로 번지자 병의원마다 독감 백신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다. 지난주 전국 초중고교 독감 의심 환자 수는 1천 명당 152.2명으로 2주 전보다 4배 가까이 늘어 역대 최고치다. 대구경북에서도 학생 1만6천여 명이 독감에 걸리면서 각급 학교가 조기 방학을 서두르고 있다.



감기와 독감은 전혀 별개의 질환이다. 원인부터 다르다. 대개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감기는 원인 바이러스가 워낙 많아 예방 백신을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홍역이나 콜레라, 인



플루엔자 등 ‘대중성 질병’(crowd disease)은 면역력이 떨어지는 65세 이상 노인과 6~12개월 유아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메르스로 인한 최종 사망자 수는 38명이었다. 반면 매년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는 최대 2천 명이 넘는 수치다. 메르스 사망자의 50배가 넘는다. 독감을 그저 독한 감기로 생각하면 큰코다친다고 의사들이 경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 [매일신문][매일춘추] 감각적인 인간

내 친구 K는 다른 사람과 같은 방에서 잠자는 일이 없다. 자기 귀 때문이다. 함께 자는 사람의 코골이가 문제인 것도 아니고, 또 이를 가는 소리 때문도 아니다. 그는 옆 사람의 숨소리 때문에 잠자리에 들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쥐의 귀를 가졌다고나 할까? 이런 그를 주위에서는 별나다고 한다. 다른 친구 P도 있다. 그는 귀가 아니라 유난히 발달한 눈썰미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찬사도 받으면서 별나다는 말도 함께 듣는다.



두 친구는 좀 극단적인 사례에 들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감각 기관의 발달 정도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감각이 좀 예민한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그저 별나다고 할 뿐이다. 실은 대부분의 예술가는 이런 차별화된 감각 기능 덕분에 그들의 재능을 도드라지게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런 별난 사람들을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나의 아둔한 감각을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이다. K를 데리고 무용 공연에 갔다. 공연이 강조하는 것은 음악과 소리라서 귀가 예민한 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특별한 언어를 갖지 않은 소리를 출연자가 표현할 때 나는 잘 알아듣지 못한다. 그런데 K는 그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은 다음 일일이 해석해 내게 설명을 해 준다.



몇 년 전 P와 함께 관람한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P는 공연 내내 출연자들의 몸동작을 보며, 가령 곡선 위주로 표현하는 출연진과 직선 위주로 표현하는 출연진을 구분해 그들이 보여주는 세세한 동작들을 분석해줬다. 더 나아가 그들이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지 해석해줬다. 게다가 내 전공이라고 늘 자부심을 가져 온 의상 색깔과 질감에 대해서도 ‘매의 눈’으로 느낌과 의미를 분석해냈다.



최근에서야 나는 무용복을 디자인하고 재단을 할 때 시각 및 청각적 느낌을 어떻게 살릴지 고민한다. 참 재미있는 작업이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가 조지훈의 시 ‘승무’의 느낌은 물론, 김광균의 시 ‘설야’의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는 시구의 느낌도 채취한다.



내가 만약 K나 P처럼 예민해진다면 오히려 생활을 하는 데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내 고객들을 위해 보다 나은 무용복을 만들 수만 있다면, 그런 불편은 감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면 눈을 감고, 천의 종류에 따라 어떤 청각적 느낌을 낼 수 있는지 생각하며, 손으로 직접 천을 비벼보기도 한다.



이런 ‘감각적인 인간’, 확실히 매력적이다. 만약 숨소리를 음악으로 들려주고 또 들을 수 있다면, 사랑이 싹틀 수도 있지 않을까?



3. [서울신문][길섶에서] 동묘 벼룩시장/박홍환 논설위원

처음엔 무슨 대단한 보물찾기를 하거나 길에 뿌려진 임자 없는 돈을 경쟁적으로 줍기라도 하는 줄 알았다. 사람들이 머리를 처박고 무엇인가를 찾는 모습이 흡사 그러했다. 서울 동묘 담벼락 밑에서 비라도 오지 않는 한 매일같이 펼쳐지는 풍경이다. 수북하게 쌓아 놓은 헌 옷더미 속에서 취향대로 골라 한 장에 단돈 1000원. 옷가지들이 헤쳐질 때마다 묵은 먼지가 폴폴 인다.

동묘 벼룩시장에서는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번쩍이는 네온사인도, 화려한 간판도 없이 남루한 좌판들뿐이지만 오후만 되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손때와 먼지의 속 사연을 들춰내며 ‘득템’을 기대하는 이들이다. 어느 여인이 ‘폼나게’ 입었을 티셔츠는 구겨진 채 나뒹굴고 있다. 뒷굽이 반쯤 닳아 버린 구두는 어느 집 가장의 딱딱해진 발바닥을 감쌌을 것이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는 뚜껑조차 사라졌다.

온 국민이 7년 이상 입고도 남을 재고 의류가 창고마다 가득 차 있으니 이만한 ‘풍요의 시대’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런데도 동묘 벼룩시장은 어제처럼 오늘도 인산인해다. 지갑은 너무 가볍고, 그래서 삶은 더욱 무겁다.



4. [세계일보][이태형의우주여행] ‘베들레헴의 별’ 정말 있었을까

1년 중 어린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 중 하루가 바로 성탄절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도 밝고 정의로운 세상을 기대하며 예수가 탄생한 성탄절을 기념한다.

예수의 탄생과 관련돼 가장 잘 알려진 것 중 하나가 바로 ‘베들레헴의 별’이다. 사실 ‘베들레헴의 별’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아니면 종교적인 상징물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예수의 탄생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단서 중의 하나가 베들레헴의 별이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이 별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베들레헴의 별’은 평소에 볼 수 없는 매우 특별하고 밝은 별일 것이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행성들이 모이는 현상이다. 최초로 이런 주장을 펼친 사람은 17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였다. 그는 BC 7세기에 목성과 토성이 달 지름 두 배 정도로 가까이 접근한 현상을 ‘베들레헴의 별’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의 천문학자들은 대부분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목성과 토성의 접근은 약 12년에 한 번씩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해와 달을 빼고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천체가 바로 금성이다. 금성의 밝기는 1등성이라고 불리는 가장 밝은 별보다도 무려 100배 이상 밝다. 그다음으로 밝은 천체는 목성이다. 목성도 1등성보다 10배 이상 밝다. 결국 금성과 목성이 같이 나란히 보인다면 그것만큼 더 화려하고 멋진 장관도 없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그럴듯한 ‘베들레헴의 별’ 후보도 바로 이 현상이다. BC 1년 6월 17일 저녁에 그런 일이 있었다. 이날 금성과 목성은 달 지름보다 가까이 접근했다. 그리고 그 두 행성이 보이는 위치는 바로 서쪽 하늘이었다. 동방 박사들이 페르시아 지역에서 두 행성이 모이는 것을 보고 출발했다면 당연히 서쪽으로 가야 했을 것이다.

가장 그럴듯한 현상이 목성과 금성의 만남이지만, 이 현상이 맞다고 해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두 별은 서로 멀어졌고, 결국 동방 박사가 따라 간 별은 더 밝은 금성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경우에도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그보다 남쪽으로 7㎞나 떨어진 베들레헴까지는 금성이 인도할 수 없다. 하지만 동방 박사들은 천문학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들이었다. 그해 가을 두 행성은 다시 새벽하늘에서 만나게 되고, 그 이후 목성은 새벽녘 남쪽 하늘에서 볼 수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목성을 따라 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이외에 ‘베들레헴의 별’이 헬리혜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아주 밝은 혜성이 나타났다면 무척 장관이었고, 눈에 띄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혜성은 천체가 아니라 단순한 대기 현상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한 혜성의 등장은 매우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기에 혜성을 예수의 탄생 징조로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와서 예수의 탄생을 알렸던 ‘베들레헴의 별’이 어느 별이었는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올 성탄절 저녁에는 서쪽 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금성을 볼 수 있다. 세상을 밝히는 ‘베들레헴의 별’이 다시 뜨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금성을 찾아보면 어떨까?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일제 전범 사형
도쿄 전범재판이라 불리는 극동국제군사재판의 A급 전범으로 사형을 선고 받은 7명 교수형이 1948년 12월 23일 오전 0시 1분부터 34분간 도쿄 스가모(현 히가시이케부쿠로) 형무소에서 집행됐다. 

도조 히데키(東條英機ㆍ당시 64세). 관동군 참모장을 지낸 일본 육군 대장으로 전시 내각 총리와 외무 문부 상공 군수대신을 겸직하며 진주만 공습 등 전쟁 전반을 지휘했다. “살아 포로가 되는 치욕을 당하지 말라”는 전진훈(戰陣訓)을 만들었던 그는 패전 직후 권총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 병원에서 체포됐다. 

도이하라 겐지(土肥原 賢二ㆍ65세). 중국 베이징 텐진 등지서 특무기관장을 역임하며 주로 정보ㆍ공작 업무를 맡았고, 만주사변의 원인이 된 펑텐(奉天)사건을 배후 조종했다. ‘만주의 로렌스’라는 별명으로 불린 육군 대장으로 싱가포르 제7방면군 사령관도 지냈다. 

히로타 고키(廣田 弘毅ㆍ70세). 교수형을 선고 받은 유일한 문관.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나와 외무대신과 총리를 지낸 일본 귀족(남작)이다.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 征四郞ㆍ63). 육군 대장. 관동군 참모장으로 만주사변을 주도했다. 조선군 사령관을 맡기도 했다.

기무라 헤이타로(木村兵太郞ㆍ60세). 육군 대장으로 만주 사령관 버마방면군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버마 철도를 건설하며 주민 수십 만 명을 학살, ‘버마의 도살자’라 불렸다. 말년에는 육군장관을 지냈다. 

마쓰이 이와네(松井 石根ㆍ70세).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하얼빈 특무기관장을 지낸 육군 대장. 난징 공격은 주도했으나 난징대학살 당시 와병 중이었고 이후 실상을 전해 듣고 황군의 불명예라며 부하를 꾸짖었다지만, 그가 책임자였다.

무토 아키라(武藤 章ㆍ56세). 유일하게 중장 계급으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이와네 휘하의 부참모장으로 난징대학살을 실질적으로 지휘했다. 44년 필리핀 제14방면군 참모장으로 있다가 종전을 맞아 필리핀에서 압송되었다. 

미군은 전범들의 시체를 화장, 유골을 도쿄만에 버렸지만 한 변호사가 그 일부를 빼돌려 인근 사찰에 맡겨 매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은 1978년 처형된 전범 7명과 옥사한 7명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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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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