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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국민의당 ‘사드 반대’ 당론 재검토, 진심인가 정략인가

북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의 피살 사건으로 안보 문제가 차기 대선판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자 국민의당이 다급해졌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반대 당론의 변경에 착수한 것이다. 같은 당 대선주자인 안철수 의원도 “국제적 상황이 바뀌면 입장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며 ‘사드 반대’ 입장을 사실상 접었다.



국민의당의 당론 변경은 박지원 대표가 반대하고 있어 오는 21일에 열리는 의원총회에서 어떤 결론이 날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그러나 주승용 원내대표가 당론 변경을 언급한 것 자체는 큰 변화임은 분명하다. 그 이유에 대해 주 원내대표는 “상황이 변해서 사드 배치를 반대할 명분은 많이 약해졌다”고 했다.



이를 두고 일단은 ‘정상적 판단’으로 돌아왔다고 좋게 평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왜 지금에야 그런 판단을 하게 됐는지는 납득하기 어렵다. 주 원내대표가 제기한 상황 변화란 북한의 IRBM(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독살이다.



그러나 ‘상황 변화’는 북한의 핵개발 이후 계속 있었다. 사드 배치 결정의 직접적 계기가 된 지난해 북한의 5차 핵실험도 IRBM 발사와 김정남 독살 못지않은 큰 상황 변화였다. 그때 국민의당은 사드 배치를 반대했다. 그때는 사드 배치를 반대해도 될 상황 변화이고 지금은 배치에 찬성해야 할 상황 변화라는 것인가?



일반인의 상식으로서는 구분할 수 없는 상황 변화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당의 당론 재검토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다. 바로 차기 대선에서 중도`보수층을 공략하기 위한 ‘우클릭’이 아니냐는 것이다. 안 의원의 입장 변화 역시 같은 맥락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지지율 하락을 반전시키기 위한 전략 수정이란 인상을 준다.



사드 말고는 북한의 미사일을 방어할 무기가 없는 현실에 비춰 당론 재검토는 칭찬받을 만하다. 또 ‘상황 변화’에도 여전히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비해서도 그렇다. 하지만 대선 전략 차원이란 점에서 진정성은 떨어진다. 국민의당이 신뢰받는 정당으로 뿌리내리려면 안보 문제에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2. 복지법인들의 도의회 금품 로비, 저급한 집단이기주의

최근 경북에서는 노인복지사업 이익단체가 경북도의회를 상대로 금품 로비를 벌여 말썽을 빚고 있다. 그런데 로비 내용이 비상식적이고 치졸하다. 자기 단체에 대해 추가 지원 또는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경쟁 사업자에 대한 지원을 끊어달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15일 경찰은 개인요양시설 지원 예산 삭감 명목으로 500만원을 주고받은 혐의로 경북 법인요양시설협회(이하 협회) 임원과 경북도의원을 각각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협회는 경북도가 올해 첫 편성한 사설 노인요양시설 근무자 수당 2억4천만원을 삭감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협회가 로비 자금 명목으로 회원들로부터 4천700만원을 거뒀으며 도의원 12명을 순차적으로 만나는 등 조직적으로 움직인 정황을 포착했다. 해당 도의원은 돈을 그 자리에서 돌려줬다고 주장해 향후 법정 공방이 예상되지만, 로비는 성공했다. 도의회가 사설 노인요양시설에 대한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이다. 반면, 법인요양시설에 대한 근무자 수당 14억여원은 그대로 통과시켜줬다.



경북에는 법인 147개, 개인 228개의 노인요양시설이 있다. 이 중 법인 사업자에 대해서는 국가가 무상으로 시설을 지어주고 근무자 수당 등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반면, 개인 사업자에게는 이렇다 할 혜택이 없다.



개인은 법인에 비해 규모 및 운영 여건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이다. 이는 개인 노인요양시설 이용자들에 대한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상대적 강자인 법인 사업자들이 개인 사업자를 견제하기 위해 도의회에 금품 로비를 벌였다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나며 집단 이기주의의 전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북도의회도 특정 단체의 이익에 앞장섰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또한 일부 복지단체들이 법인을 사실상 사유화하고 보조금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인데 적폐 해소에 나서기는커녕 대변자 노릇을 한 셈이다. 경북도는 부정 청탁에 따라 예산 삭감이 이뤄졌다는 세간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만큼 잘못에는 책임을 묻고, 삭감된 예산을 되살리는 등 후속 대책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3. 나토부터 시작된 미국의 방위비·FTA 압박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그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에 “방위비 지출을 늘리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했다. 매티스 장관은 브뤼셀의 나토 본부에서 28개 회원국 국방장관들에게 “그러지 않으면 나토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을 조정하겠다”고 사실상 ‘통보’했다고 한다.



다음주 초에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도 나토 본부를 찾는다. 역시 방위비 증액이 집중 논의 대상이라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방위비를 늘리지 않는 나토 회원국에는 동맹 관계의 변화 가능성까지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미국의 나토에 대한 방위비 증액 요구가 걱정스러운 것은 한국이 다음 ‘타깃’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해 당사국들에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발언을 잇따라 쏟아냈다. 나토에 대한 매티스 장관의 태도를 보면 트럼프는 취임 이후에도 일련의 과거 발언을 거두어들일 뜻이 전혀 없는 듯하다. 방위비는 나토 회원국은 물론 한국 및 일본을 당혹스럽게 하는 이슈다.



실제로 지난주 트럼프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정상회담을 가진 뒤 발표한 공동 성명에 “미·일 동맹은 일본에 더욱 큰 역할과 책임을 부과한다”고 명시했다. 경제적 부담을 뜻하는 문구가 없었음에도 ‘방위비 증액’을 뜻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적어도 방위비 문제에서 일본은 미국에 ‘백기투항’을 한 것과 다름없다.

한국에 가해지는 압박은 방위비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일성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이었다. 주지하다시피 트럼프는 후보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도 줄곧 강조했다.



우리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설립자인 에드윈 퓰너가 엊그제 “5주년을 맞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다시 들여다보고 필요하면 재협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보수 성향의 헤리티지재단은 ‘트럼프의 싱크탱크’로 불린다. 퓰너는 정권인수위 선임고문을 지낸 트럼프의 핵심 측근이다. 그의 주장은 ‘한국의 양보’를 전제로 한다. 결국 FTA 재협상으로 수확을 늘리겠다는 뜻이다.

미국은 지금 전방위 압박을 우리에게 가하려 한다. 당장은 황교안 대통령 대행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국익을 지키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의 안보는 현실적으로 미국의 방위력에 상당 부분 의지하고 있지만, 미국의 안보 역시 일정 부분 한국이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두 나라 이익에 공통으로 부합하는 사드 배치 결정이 대표적이다.



대선 후보들도 사드 문제는 심각하게 접근하기 바란다. 우리가 부담하는 방위비는 그 역할에 비하면 작지 않다. 그럼에도 증액을 요구한다면 온당한 처사일 수 없음을 설득해야 한다. 한·미 FTA 역시 재협상에 앞서 공생 방안을 고민하라.



4. 용의자 체포돼도 오리무중인 김정남 암살 배후

김정남 암살 사건이 국내외에서 큰 관심사가 되고 있지만 사건의 실체 확인이 늦어져 궁금증과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국내 거주 탈북자들은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고 확인되지 않은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어 국정원 등 정보 당국의 신속한 대처가 요구되고 있다.

사건 발생 나흘째가 되도록 김정남 암살 사건은 그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김정남은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마카오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다 여성 2명으로부터 독극물 공격을 받았고, 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여성 2명과 남성 용의자 1명을 체포했다. 우리 정부가 말레이시아 당국과 외교 루트로 접촉 중이겠지만 언론 보도 외에 불안하고 궁금한 이들에게 전달되는 정확한 정보는 거의 없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라 살해 사건의 배후와 이유 등이 밝혀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하지만 배후 세력 등 사건의 실체가 빨리 확인되지 않음으로써 불필요한 추측성 소문들이 확산일로에 있다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트위터로 불리는 웨이보(微博)에는 벌써 한국 음모론이 넘쳐난다고 한다. “김정남 피살 배후에 탄핵 국면을 전환하려는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있다”는 글들이 진실처럼 나돌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김정남은 박 대통령의 북한 비선이었다”는 말도 안 되는 루머까지 번지고 있다.

국정원은 “이번 사건은 김정은 집권 후 내려진 ‘스탠딩 오더’(취소할 때까지 유효한 명령)를 북한 정보 당국이 실행에 옮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김정남의 편지와 함께 2012년 이후 5년간 살해 시도가 있었다는 것도 밝혔다. 비교적 신속한 대응이라 할 수 있지만 사건의 실체에 얼마나 접근한 정보인지는 알 길이 없고 국민의 궁금증과 불안감을 해소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국정원, 외교부 등은 말레이시아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하루빨리 사건의 실체부터 확인해 정확한 사실을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그래야 정부도 또 다른 테러 가능성에 대비해 대응책을 세울 수 있고 탈북자 등의 신변 보호에 대한 경각심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리의 정보 수집 능력은 선진국들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안보의 바탕은 앞서가는 정보력이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과 외교 당국은 이럴 때 정보력을 발휘해야 한다. 국내외 언론 보도 수준의 정보 획득 및 분석 능력만으로는 존재 가치를 증명해 보일 수 없다.



[동아일보]

5. 한진해운 17일 파산, 해운·조선업이 울고 있다

국내 1위, 세계 7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오늘 법원에서 파산선고를 받는다. 1977년 설립된 한진해운은 2011년부터 해운업 불황과 고가의 용선료로 경영난에 시달리다가 지난해 9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수송보국’의 꿈을 뒤로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비싼 값에 배를 장기로 빌린 경영 실패와 금융 논리에 집착한 정부 판단이 초래한 비극이다. 

지난해 자구 노력을 전제로 채권단의 지원이 결정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구조조정과 올해 한진해운 파산으로 조선해운업이 기반인 부산 울산 경남의 한숨이 눈물로 변하고 있다. 대우조선 인원 감축의 여파가 중소업체로 확산되면서 조선업 전체에서 2만여 명이 실직했다. 퇴직금은 고사하고 월급도 못 받고 쫓겨난 퇴직자가 부지기수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핵심 기술을 보유한 인력이 일본 중동 등 경쟁국 조선소에 재취업하며 기술 경쟁력까지 훼손됐다. 1300명에 이르던 한진해운 직원은 지금 50여 명만 남아 가압류 재산을 정리하며 회사의 ‘장례’를 준비 중이다. 협력업체 직원 등 한진해운 파산으로 생긴 실업자가 전국적으로 1만여 명에 이른다. 

구조조정의 명분만 강조해온 정부가 뒤늦게 조선해운업 경쟁력 강화 방안이라며 자금 지원을 들고나오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올해 해운업에 지원키로 한 6조5000억 원은 당초 한진해운의 부족자금인 4조∼4조6000억 원을 넘어선다.



수출입 물동량의 99% 이상을 수송해 국가경제 운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해운산업이 무너지고 핵심 인재들은 외국으로 빠져나가는데 이제 와서 혈세로 현대상선 자본을 늘려주고 터미널 등 자산 인수자금으로 쓴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에 지원키로 한 4조2000억 원 가운데 3800억 원만 남은 상황에서 추가 자금 지원을 검토한다니 은행돈을 쌈짓돈으로 여기는 것인가.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다음 정부에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하는 등 정치권에서도 분노하고 있다. 당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문책이 아니라 죽어가는 산업을 살려 일자리를 만들고 국가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안이다. 이는 금융 논리만으로는 안 되고 해당 산업과 국가경제 전체를 고려한 초당적 결단이 있어야 가능하다.



6. 24일 헌재 최종 변론… 정치권은 심판 이후를 대비해야

어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4차 변론기일에서 “그동안의 절차를 통해 사실관계가 충분히 파악된 만큼 22일 증인신문을 모두 마치겠다”며 24일 최종 변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23일까지 국회 소추인단과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최종 입장을 문서로 제출하라는 주문이다. 최종 변론 이후 2주 정도의 결정문 작성 시간을 감안하면 탄핵심판 결정은 이 권한대행의 퇴임 예정일인 3월 13일 이전에 나올 것이 확실시된다. 

이 권한대행이 최종 변론 날짜를 못 박음으로써 정치 일정에 대한 불확실성은 해소됐다. 국회의 탄핵 소추로 박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지 오늘로 71일이다. 박 대통령 측이 이번 주 요청한 증인 8명 중 출석은 단 2명에 불과했다. 어제도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증인 요청을 유지하겠다며 시간적 여유를 달라고 반발했으나 ‘지연작전’은 더는 용납되기 어렵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보호무역 확산으로 인한 경제 악화 등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내외 상황을 고려하면 국정 공백 사태가 더 길어져선 안 된다. 

청와대가 진정 나라를 생각한다면 헌재의 일정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대통령이 최후변론에 직접 출석해 당당히 소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힌 만큼 최종 변론일에 직접 출석해 자신을 뽑아준 국민에게 예를 다해줄 것을 당부한다.

일각에선 대통령의 범죄 행위가 확정돼야 탄핵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렇다면 대통령 탄핵은 내란, 외환죄 외에는 불가능해지는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헌재가 헌법 논리와 헌법 가치에 따라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정치권은 정치적 선동을 해선 안 될 것이다. 박 대통령과 대선 주자들은 물론이고 촛불집회 참여자든, 태극기집회 참여자든 모두 승복하는 성숙한 시민정신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더는 흔들리지 않고 법치주의를 공고히 할 수 있다. 

박 대통령 탄핵 여부 못지않게 그 이후 상황도 중요하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내각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국정을 운영하는 데 목숨을 걸기 바란다. 헌재 심판 이후 정치권이 어떤 자세를 보이느냐에 따라 나라의 명운이 달라질 수도 있다.



[세계일보]

7. “정부가 김정남 암살 청탁”… 유언비어 도 넘었다

김정남 독극물 살해를 두고 ‘유언비어 고질’이 어김없이 또 도졌다. 인터넷과 SNS에는 황당한 거짓 주장이 나돌기 시작했다. 인터넷 딴지일보 게시판에는 “김정남 피살 사건은 우리나라 보수 세력이 주도한 쇼”라는 글이 올랐다. “정부가 탄핵 국면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김정남을 살해하고 언론에 흘린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오늘의 유머’에는 “탄핵 기각을 위해 별수 다 쓰다 결국 김정은에게 김정남 암살을 청탁한 것”이라는 글도 올랐다. “처음에는 독침에 맞아 죽었다고 하더니 이제는 독 스프레이로 죽었다고 한다. 외신에는 크게 언급도 안 되는 것 보니 우리나라 수구들과 언론이 짜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황당한 글도 있다.

이런 식의 유언비어는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천안함 폭침, 세월호 침몰 때의 판박이다. 당시에도 미국 핵잠수함 충돌설, 정부 공작설 등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지금도 그것을 철석같이 믿고 유포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중국 관영매체는 이번 사건에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중국 매체 주변에서는 김정남 독살 음모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인민일보 해외판의 소셜미디어인 샤커다오(俠客島)에는 그제 “한국이 일으켰을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글이 올랐다. 정세 분석을 가장해 국내 유언비어와 똑같은 내용을 늘어놓았다. 북한을 거드는 내용이다.



우리 내부에 ‘김정남 독살 배후에 우리 정부가 있다’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거짓이 난무한다면 북한과 중국이 이용하려 할 것은 너무도 빤한 일이다. 북한이 “남한이 저지른 일”이라고 덮어씌울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안보 상황은 엄혹하다. 거짓이나 퍼뜨리며 안보 위기의 격랑을 헤쳐갈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유언비어에 멍든 지 오래다. 최근에는 가짜뉴스까지 판친다. 그 결과 건강한 국민의식은 마비되고, 국론은 증오로 갈가리 찢기고 있다. 유언비어는 사회를 병들게 하는 독버섯이다.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정부는 더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하며, 인터넷 사이트는 자정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언비어를 배격하는 건강한 시민정신을 갖는 일이다.



8. 기후변화 대책 모범국이 ‘낙제국’으로 전락해서야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성적표’가 갈수록 후퇴하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 민간 환경보건단체 보건영향연구소(HEI)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의 인구가중치를 반영한 연평균 미세먼지(PM2.5) 농도가 29㎍/㎥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치 15㎍/㎥의 두 배에 육박한다. 터키를 제외하면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나쁘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1990년 미세먼지 농도는 26㎍/㎥였다. 2011년 한때 개선되는 조짐을 보였다가 점차 나빠졌다. 오염 농도가 개선된 OECD 국가들과는 정반대였다. 오존 농도도 덩달아 악화되고 있다. OECD 국가 평균치가 1990년 61㎍/㎥에서 2015년 60㎍/㎥으로 낮아졌으나 한국은 66㎍/㎥에서 68㎍/㎥으로 높아졌다. 오존 농도가 OECD 국가 중 4번째로 높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 규모는 5억7000만t으로 세계 7위이다. 석탄화력발전소가 몰린 충남의 경우 공기의 질이 좋지 않아 자주 경보음이 울린다고 한다. 당진, 태안, 보령, 서천 등 화력발전소가 있는 4개 시·군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9500만t에 달한다. 대기오염이 악화하는 것은 화력발전소와 대형 오염 배출사업장이 가동된 탓이 크지만 경유차 증가 등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기오염은 인체에 치명적인 위해를 불러온다. 미세먼지와 오존 등 대기오염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연간 사망자 수는 2015년 1만8200명이었다. 희생자가 1990년 1만5100명에서 크게 늘어난 것이다. 선진국들은 대기오염 희생자를 줄이고 있지만 우리는 희생자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녹색기후기금(GCF) 본부를 인천 송도에 유치하는 등 한때 기후변화 대책 모범국으로 꼽혔다. 하지만 정부가 바뀌면서 녹색정책이 휴지조각이 됐다. 2020년 파리협정이 발효된다. 우리를 포함해 197개 나라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기후·환경 개선은 국제적 의무일 뿐만 아니라 국민 생존권과 직결된 일이다. 정부가 국가 의제로 정해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석탄연료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범국가적 노력이 절실하다.



[매일경제]

9. 특검의 무리한 대기업 옥죄기 위험 수위 넘었다

특검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힌다는 명분으로 삼성 수사에 집중하면서 경제계의 피로도가 극에 달하고 있다. 특검은 국정농단 사건을 조사하다보니 삼성을 수사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두 번이나 구속 영장을 청구하는 등 '삼성 특검'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제공하고 최순실을 지원한 것은 누가 봐도 대통령의 강요에 따른 것이라는 정황이 강하다. 반면 대가성과 부정 청탁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검이 박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하겠다는 집착으로 사실관계나 확실한 증거 없이 한국의 간판기업들을 무리하게 옭아매는 것이라면 큰일이다. 이런 짜맞추기 수사로는 국정농단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국익과 국가 경제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경영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최소한의 정기인사만 단행하고 있을 뿐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 개편이나 신성장동력 발굴을 목적으로 하는 인수·합병(M&A) 또는 신규 투자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검이 이 부회장을 비롯해 대기업 총수들을 두 달 가까이 출국금지하면서 글로벌 전략에도 지장을 받고 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총수들의 발이 묶이고 국내외 투자가 지연되면 결국 대외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글로벌 시장에서는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경쟁에서 밀려나기 십상인데 기업들을 뇌물죄로 엮으려는 특검과 반기업 정서 등 대기업 뒷덜미를 잡는 국내 악재들이 쏟아지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우리 경제는 3년 연속 2%대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실업자도 지난달 7개월 만에 다시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선과 철강 등 주요 업종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터라 매서운 고용 한파가 몰아칠 가능성이 높다. 벼랑 끝에 몰리고 있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기업들의 경영 활동을 촉진해 일자리를 늘리고 돈을 돌게 하는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는 밝혀야 하겠지만 이를 빌미로 지나치게 대기업들을 옥죄는 것은 백척간두에 서 있는 우리 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삼성에 대한 특검의 수사는 위험 수위를 넘었다.



10. 40년만에 파산 한진해운이 남긴 뼈아픈 교훈

한때 국내 1위, 세계 7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오늘 법원 파산선고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수송보국(輸送報國)을 꿈꾸며 40년 세월을 견뎌온 한진해운의 침몰은 이 기업뿐 아니라 무역대국인 한국에 뼈아픈 교훈을 던진다. 

한진해운의 파산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비전문적인 오너 일가의 경영, 호황을 예측한 무리한 확장이 화근이었다. 최은영 전 회장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장이 침체되는 상황에서 시세보다 5배나 비싼 용선료로 선박 계약을 체결하는 등 확장 경영을 한 것이 위기를 불러왔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회사 상황을 늦게 파악해 자율협약 신청이 늦어진 데다 강도 높은 자구안을 내놓지 못한 것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정부와 금융권도 한진해운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마불사는 없다'는 구조조정 원칙을 지켰지만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의 현실을 간과한 결정이었다. 해운업이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것을 무시한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법정관리 이후 50만개가 넘는 컨테이너가 바다에 떠도는 물류대란이 발생했고,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는 등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 덴마크의 한 해운물류분석 업체는 지난해 말 "한진해운 같은 정기선사를 이런 식으로 파산시켜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제는 한진해운 파산이 끝이 아니라 해운업 위기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국내 수출입 화물의 99.7%를 담당하는 해운산업의 한 축이 무너지면서 화주들의 수출입 운송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한진해운 파산으로 6m 컨테이너 106만개를 운송할 수 있던 국내 선사의 선복량은 51만개로 반 토막 났다.



한진해운을 대신하겠다고 했던 현대상선의 선복량은 컨테이너 40만개에서 46만개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적 선사가 힘이 약한 상황에서 글로벌 선사들이 한국을 외면하면 운임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정부는 국내 해운업 회복을 위해 최대 20척의 선박 건조를 지원하고 국적 터미널운영사를 만들겠다고 15일 발표했다.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소 잃고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려면 한진해운 사태가 남긴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정부의 해운업 살리기는 국가경쟁력 향상이라는 긴 안목에서 이뤄져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조선일보][일사일언] 사랑니 뽑던 날

동네 치과에서 사랑니 하나를 뽑고 나왔다. 지뢰가 터진 듯 황망한 자리에 솜뭉치를 악물고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렸다. 사랑니를 처음 뽑는 것도 아닌데 이번엔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턱이 부서질 것 같은데도 새끼손가락 끝 마디만 한 것이 뽑히지 않았다. 통증을 참다 못해 두 번이나 의사의 손목을 잡고 "잠깐만요, 잠깐만요!"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사정을 했다.



​마취가 덜 풀린 눈으로 건너편 신호등을 보고 있을 때였다. 내 쪽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뭔가를 봤다. 본능적으로 머리를 숙였다. 그것은 급선회하며 길 건너편으로 날아가는 까치였다. 어릴 적 뽑은 젖니를 지붕으로 던지며 아버지 따라 외우던 주문이 생각났다. "까치야 까치야, 헌니 줄게, 새 이 다오."

 

집으로 가는 길엔 할머니들이 좌판을 깔아놓고 군것질거리며 채소를 팔고 있었다. 연탄 화덕에 얹혀 아득한 후각을 불러내는 번데기, 뜨거움을 견디다 못해 터지는 군밤, 종잇장이 된 쥐치는 생전의 제 모습을 기억할까? 의문이 드는 사이, 나물거리 푼 헌 보자기만큼 주름진 할머니 손등에서 진한 더덕 향내도 더듬었다. 좌판이 끝나는 부분에서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오던 길을 되돌아봤다. 치과 갈 때 걸어간 길인데 그때도 좌판이 있었나 낯설었다. 하긴, 연못에 떨어지는 빗줄기에도, 담장에 핀 찔레꽃에도 덤덤해진 요즘이 아니었던가.



​집에 돌아와 조간신문을 펼쳤다. 면면마다 볕바른 어제 하루의 소사(小史)가 빽빽하다. 며칠 뒤에도 이 이야기들을 다 기억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마취가 풀렸는지 솜뭉치를 물고 있는 자리가 아프다. 솜뭉치를 뱉고 어금니에 기대 투정 부린 사랑니의 빈자리를 더듬어 봤다. 지금껏 살아오며 소홀히 해온 많은 것이 불현듯 존재를 드러낸다.



2. [중앙일보][최민우의 블랙코드] 빈둥거림의 경쟁력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폐지설에 휩싸였다. 15일 한 인터넷 매체는 “‘스케치북’이 시즌제 프로그램으로 전환된다”며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는다고 보도했다. 이건 단지 TV 예능 하나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등 20년 넘게 이어져 온 정통 음악프로그램의 명맥이 끊긴다는 의미다.



KBS는 부랴부랴 “사실 무근이다. 계속 간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높은 제작비, 저조한 시청률 등 사정은 여전히 녹록지 않아 보인다. 담당 김호상 CP는 “요즘 시청자들은 오롯이 음악만 듣는 걸 지나치게 한가하게 여긴다”고 토로했다.

올해 들어 화제의 방송콘텐트는 단연 tvN 설민석의 ‘어쩌다 어른’이다. 강연 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으로 시청률 8%를 상회했다. 대통령 탄핵 정국과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새삼 환기된 데다 설민석의 스타성,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 등이 맞물린 덕이다. 여기에 달라진 시청 패턴도 한몫했다. “TV를 보면서 실컷 낄낄대 놓곤 오히려 찜찜해한다.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건 죄악이라며 놀면서도 지식·교훈 등 뭔가 남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교양예능·정치예능이 인기있는 이유”(성기완 계원예술대 교수)라는 진단이다.



언제부터 우린 노는 걸 폄하했을까. 근면·성실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 근대화의 산물일 것이다. 여기에 스마트 세상은 걸을 때도, 밥 먹을 때도, 심지어 잘 때도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낙오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쉬지 않고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의 일상화다.

그런데 혹시 아는가. 우리 뇌는 아무 것도 안 하고 멍 때릴 때조차 스스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2000년대 초반 미국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교수는 인간이 아무런 인지 활동을 하지 않을 때 더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위를 발견하고, 이 두뇌 회로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network)’라 명명했다. 역할은 창의성과 자아 성찰 지원. “문제를 안고 잠이 들었다가 답을 안고 깬다”는 속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셈이다. 통찰력의 근원이 휴식이라는 역설이다.

최근 미니멀 라이프가 트렌드다. 집안에 쓸모없는, 아니 설레지 않는 물건은 과감히 처분하라는 주문이다. 버려야 공간도 마련된다. 비움과 채움의 조화다. 마찬가지로 주말 하루쯤 뒹굴대도 괜찮지 않을까. 우두커니 음악만 들어도 된다. 멍 때림은 이제 낭비가 아닌, 시간의 여백이다. 빈둥거림은 최고의 창의성 훈련일지 모른다.



3. [매일경제][사랑에 대한 단상] 영화 '비포 미드나잇'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시리즈' 세 편은 청년들의 만남, 성숙한 남녀로서의 재회, 지극히 현실적인 부부가 된 남녀를 날 것 그대로 묘사한다. 우리는 제시와 셀린느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그들의 역사와 삶의 다양한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비포 미드나잇’은 비포 시리즈의 마지막 시리즈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첫 눈에 반했던 그들은 헤어졌고, ‘비포 선셋’에서 9년 만에 재회한다. 제시는 결혼한 상태이지만, 여전히 셀린느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비포 미드나잇’에서 우리는 부부가 된 제시와 셀린느를 만나게 된다.

영화의 첫 신은 제시가 공항에서 아들 헨리를 배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후, 제시는 셀린느가 기다리는 차에 탄다. 뒷좌석에는 쌍둥이가 잠들어 있다.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이내 작은 말다툼이 시작된다. 제시와 셀린느가 이전부터 줄곧 해왔던 대화 그 이상의 논쟁은 ‘비포 미드나잇’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제시와 셀린느는 각자의 방식대로 제법 똑똑한 삶을 살아온 인물들이다. 이는 ‘비포 선셋’에서 두드러진다. ‘비포 선라이즈’에서도 이들의 지식과 상식은 여과 없이 드러나지만, 특별함을 추구했던 그들도 결국 여느 직장인들처럼 비슷하게 취직하고 무언가에 쫓기듯 바삐 살아간다. 그야말로 너나 할 것 없는 전쟁 같은 현실 속 개인일 뿐이다.

셀린느는 하룻밤 사건으로 부엌데기가 된 자신을 한탄하고, 제시는 운명적인 사랑을 지켜내고자 과거의 무게를 감당해가며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제시와 셀린느의 그리스 휴가 속에서 별별 상황들을 다 본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서로를 헐뜯고, 각자가 망가져가는 둘의 모습은 무섭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기적처럼 사랑을 확인한다. 이들의 사랑은 환상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이다. 중년의 그들은 보다 행복한 부부가 되기 위한 방법들을 터득해나간다.

‘비포 미드나잇’이 여느 시리즈와 다른 점은, 현실성이 반영된 로맨스라는 것이다. '내가 비록 이 남자와 쌍둥이를 돌보느라 사색의 시간이라고는 회사에서 똥 누는 시간밖에 없다지만, 이 남자가 바로 그토록 하룻밤을 함께하고 싶었던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지!'라는 셀린느의 대사만으로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특히, 그리스 게스트하우스 파티에서의 다양한 연령대 남녀가 펼치는 이야기는 관객들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든다.

결국 제시와 셀린느는 서로를 인정하고 다독여준다. 이들이 깨달은 것은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좋은 관계를 이어 부부가 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게다가 우리는 일까지 해야 한다. 이 많은 역할들을 완벽히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아니,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그러다 보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불만을 표하고 비난할 경우도 생기게 마련이다.



사실 우리는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힘든 때일수록 함께여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곧잘 잊는다. 함께인 사람의 소중함을 말이다. 완벽하지 않은 개인이라도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나간다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사랑과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제시와 셀린느가 서로를 인정하고 화해한 것처럼, 상대와 갈등 중이라면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보자.



4. [매일신문][매일춘추] 냉정과 열정 사이

지하철 광경을 담은 동영상이 잊히지 않습니다.



대구 말씨의 한 할머니가 장황하게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중년의 아저씨가 그만하라고 합니다. 할머니가 요즘 사람들은 굶어보지 않아서, 보릿고개를 몰라서, 6`25전쟁을 겪지 않아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 아저씨 소리가 더 커집니다. 그만하라고. 여기 혼자 탄 것이 아니니 조용히 하라고 합니다. 언성이 높아지고 이야기가 서로 겉돌더니 급기야 욕설이 튀어나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습니다.



일촉즉발 더 험악해질 수도 있겠다 싶을 즈음 아저씨가 먼저 자리를 피해보지만, 할머니가 뒤따라갑니다. 승객들은 무표정한 듯 불편한 기색으로 묵묵히 있습니다. 할머니 목소리가 쩌렁쩌렁합니다. 아저씨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갑갑한 이야기 그만하라고 욕설을 섞어 소리 지릅니다. 끝까지 보지를 못하겠습니다. 거기까지만 봤습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정말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이 이렇게 쪼개지고 있습니다. 분노로 가득한 사람들이 두 편으로 갈립니다. 철천지원수처럼 대적합니다. 그러나 당연히 원수가 아닙니다.



살아온 궤적과 거기서 얻은 교훈이 다릅니다. 정보를 얻는 출처가 다르고 그것을 평가하는 잣대가 다릅니다. 사회적 경험과 지위, 삶의 과제와 자기표현 방식이 다릅니다. 생활 습관이 다르고 문화가 다릅니다. 굉장히 큰 ‘다름’이지요.



그렇다고 그것이 서로에게 서슬 퍼런 칼날을 들이댈 명분이 되지는 않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따로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속성을 가진 개별체인 동시에 공동체 일원입니다. 각자의 생각이나 행동이 자신이나 사회에 해가 가지 않는 한 각자의 것을 인정합니다. 인정한 후 이를 반영하거나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이번 경우도 그렇습니다. 할머니나 아저씨가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친 것은 없습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토론이나 연설은 서로 동의가 될 때 하는 건 어떨까요. 이참에 토론문화가 융성하기를. 나의 근거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나의 판단으로 진실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가짜 뉴스를 편식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다 해결될 일도 아니지요. 성조기는 또 얼마나 뜬금없나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지하철 할머니에게서 사랑하는 저의 어머니를 봅니다. 그 할머니가 나라 망할 징조라고 너무 걱정하지도 말고 몸 상하지도 말기를 바랍니다. 지하철 아저씨에게서는 저를 봅니다. 그 아저씨 역시 너무 속 끓이지 말고 이렇게 오래가리라고 생각지도 못했기에 절대 지치지도 말기 바랍니다. 제가 차마 보지 못한 결론은 묵묵히 있던 주변 사람들이 침착하게 두 분을 잘 보듬어 숨 고르게 하고 내릴 곳은 어딘지 물어봐 주는 것으로 끝났기를 바랍니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조르다노 브루노

16세기 종교개혁은 종교적 관용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성서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온갖 이설들로 뭉치고 흩어지곤 하던 르네상스의 종교적 활기는 마르틴 루터의 카리스마와 도그마 속에 급속도로 종적을 감춰 갔다. 1600년 2월 17일, 그 시대적 분수령 위에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의 화형대가 놓였다.

그는 ‘무한 우주론’과 ‘지동설’의 신봉자였다. 그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일 뿐이라는 코페르니쿠스적 우주론에서 나아가 우주는 무한하고 밤하늘의 뭇 별들이 모두 항성이며, 태양은 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와 유사한 주장은 15세기 철학자 쿠자누스 등에 의해서도 모색돼 온 것이었지만, 브루노의 시대는 신ㆍ구교가 종교 이념과 권력을 두고 전쟁을 하던 시대였다. 

직업군인의 아들로 1548년 태어나 10대에 나폴리에서 고전문학과 논리학 등을 공부한 그는 65년 도미니크 수도회에 들어 24세이던 72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던 아리우스파의 이단 학설을 탐구한 탓에 이단 시비가 일자 76년 로마로 피신했고, 북부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지를 떠돌다 칼뱅주의로 개종했지만, 역시 주류와의 불화 속에 신교 역시 비관용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등을 돌린다.



프랑스와 영국 등지를 주유하며 옥스퍼드대 등서 강의하며 자신의 우주론과 신학-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부정, 신비주의적ㆍ범신론적 사고, 마리아의 처녀성 부정 등- 이론을 펼쳤다.

종교재판에 회부된 그는 무려 8년 동안 심문을 받으면서도 끝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예수회 추기경 로베르토 벨라르미노가 사형을 선고하자 “내 형량이 선고되는 것을 듣는 당신들의 두려움이 나의 두려움보다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는 설이 있다.

그를 과학의 순교자로 보는 데는 이견이 있다. 그의 우주관은 근대적인 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과학과 거리가 먼 신비주의자였고, 마술이나 점성술 등에도 관심을 쏟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지적 탐구와 사상ㆍ신념의 자유, 다시 말해 저무는 르네상스의 어둠을 밝히고자 목숨을 바쳤다.

1899년 빅토르 위고 헨리크 입센, 바쿠닌 등이 로마 캄포데 피오레 광장에 그의 동상을 세우며 쓴 문구가 그러했다. “브루노에게- 그대의 몸에 지펴진 불로 시대의 미래가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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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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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특검팀은 왜 ‘이재용 구속’에 매달리는가

박영수 특검팀이 그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이미 영장이 기각됐던 1차 청구 때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가 적용된 것은 물론 국외 재산도피와 범죄수익 은닉 등의 혐의가 추가됐다. 이번에는 반드시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특검팀의 의도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오늘 열리는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결과에 따라 이 부화장과 삼성의 명운이 갈리게 된다.

그러나 이번 특검 수사가 엉뚱하게도 ‘삼성 특검’으로 변질된 게 아니냐는 점에서 우려를 감출 수 없다. 특검팀이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혐의를 밝혀내려는 과정에서 삼성을 너무 무리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촛불시위에서 드러난 일부 시위대의 ‘이재용 구속’ 구호에 은근히 편승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검 수사가 무분별한 반기업 정서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심지어 법조계에서조차 “특검이 이재용 구속에 모든 것을 걸은 것 같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이 부회장을 뇌물죄로 엮어 넣지 못한다면 박 대통령의 혐의가 입증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특검 수사도 실패로 귀결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특검은 이번 보강수사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새로운 혐의를 포착했다고 하지만 이들 기관의 해명과는 또 차이가 있다.

현재 특검팀이 어려운 여건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날짜가 잡혔던 박 대통령 대면조사가 청와대 측의 몽니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데다 법적으로 지정된 수사 기간도 이달 말로 끝나도록 돼있다. 특검팀의 심적 부담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과의 정면 대결로 마지막 승부수를 택한 것이라는 항간의 지적에 대해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 눈길은 다시 법원으로 쏠리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검찰이 제시한 혐의 사실에 대해 엄정한 법률적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삼성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잘못이 있다면 법에 의해 제재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 반대로 여론몰이에 따라 편향적인 결과가 빚어져서도 곤란하다. 누구라도 법 앞에 평등하기 때문이다.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2. 김정남 피살, 추후 도발이 더 걱정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됐다. 북한 공작원으로 보이는 여성 2명에게 독침을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고 한다. 김정은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다. 핏줄을 나눈 이복형까지 암살한 것은 김정은식 공포정치가 얼마나 반인륜적이고 포악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김정은의 철권통치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걸림돌이 될 만한 인물은 누구든 제거했다.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을 죽인 것은 물론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김용진 내각 부총리 등 그동안 당·군·정 간부 100여명을 처형·숙청했다. ‘3대 세습’에 비판적인 김정남을 암살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1%의 체제도전 가능성마저 없애기 위해 마지막 싹을 자른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사건의 배경에 북한 내부에서 모종의 상황이 벌어졌을 가능성이다. 김정남은 일찌감치 권력승계 구도에서 밀려나 여러 나라를 떠돌며 사실상 낭인으로 지내왔다. 그런데도 그를 제거해야 할 정도라면 김정은 정권의 권력 기반이 아직도 불안정하고 취약하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김정은의 폭압정치에 대한 불만세력이 점차 늘어나면서 내부 급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북한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가의 정권이다. 안개 속에 숨어 갖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경우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당장은 말레이시아 당국과 협조해 사건의 전모를 신속히 파악하는 것은 물론 안보태세를 강화하는 게 시급하다. 지난해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등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의 신변보호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내부 급변 및 무력도발 가능성에도 치밀한 대응태세를 갖춰놔야 한다. 북한이 신형 중장거리 미사일(IRBM)을 발사한 바로 다음 날을 택해 김정남을 제거했다는 사실에서도 앞으로 호전적인 도발을 펼칠 공산이 큰 것으로 우려된다. 당장 내달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앞두고 또 다른 도발을 감행하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도발이 이뤄진다면 강력히 대처한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신문]

3. 10대도 50대도 공직으로 몰리는 웃지 못할 현실

올해 9급 공무원 시험에 22만 8000여명이 몰렸다. 지난해보다 6500여명이나 늘어난 역대 최다 기록이다. 올해 지원자 중 20대(64%)가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30대(29.5%)다. 20~30대 응시생이 94%를 차지한다. 10대(3000여명), 50대(1000여명) 지원자도 있다. 청년 구직자들 사이의 공무원 열풍이 통계로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청년 취업난의 심각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공무원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 해 공시생 45만명 시대다. 그중 절반 가까이가 9급 공채에 몰린다. 공무원 되겠다는 이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것이 경기 침체로 청년들이 취업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줄었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정년이 보장되는 공직은 안정적인 직장임이 틀림없다. ‘흙수저’ 청년들에게는 오로지 시험 성적으로만 합격 여부가 판가름나는 것도 매력적일 것이다. 노후 대책으로도 공무원 연금만 한 게 없다.

하지만 국가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인적 자원이 한쪽으로 몰리는 것은 많은 문제를 낳는다. 다양한 직종에서 인재들이 고루 분포돼 각 분야를 발전시켜야 국가의 경쟁력이 확보된다. 그런데 현실은 패기 있고 똑똑한 젊은 인재들이 너도나도 공무원이 되겠다고 몇 년씩 고시촌에 들어박혀 ‘공시족’, ‘공시폐인’이 되고 있다. 사회적 비용도 막대하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불행한 일이다.

이제는 고교 졸업 후 대학을 포기하고 공무원이 되겠다는 10대들까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2012년에 비해 올해 3배나 증가한 3000여명이 9급 시험에 응시했다고 한다. 고교 졸업 후 부모에 등 떠밀려 대학에 가지 않고 자신의 진로를 찾는 10대들이 늘어난 것은 어찌 보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마저 요리사 등 수많은 직업이 있는데도 공무원이 되겠다고 목을 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도전보다 안정만을 추구하는 ‘늙은 사회’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지 못한 정부, 기업, 기성세대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대선 주자들이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로 공시족들만 양산하는 것은 국가 재정 부담이나 인적자원 배분 면에서도 올바른 방향은 아니다. 먼저 민간 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들이 공시 열풍에서 벗어나 창업 등 새로운 길을 가도록 도전하는 사회 풍토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4. 4강 공조로 김정은 예측 못할 돌출 행동 대비를

이복형 김정남을 독살한 북한 김정은에게서는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광기가 풍긴다.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지 하루 만에 반인륜적 행위를 저질렀다. 김정은이 국제사회의 비난과 고립을 자초하면서까지 예측 불가의 돌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와 국제사회를 향해 앞으로 무슨 짓을 더 할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또한 집권 5년에 접어들었지만 정권 내부가 아직 불안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김정은이 고모부인 장성택을 공개 처형한 데 이어 이복형까지 살해한 것은 장남인 김정남의 존재 자체가 김정은 정권에는 위협이 됐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면서 중국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자 중국이 김정남을 김정은의 대체재로 옹립할 것이라는 설이 끊이지 않았다. 김정은 입장에서 보면 체제를 위협할 후환을 제거한 셈이다.

체제 유지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겨지면 혈육이고 뭐고 가차 없이 피를 보고야 마는 김정은식 공포 정치의 끝이 어디인지 지금으로서는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다만 기습 도발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으며, 핵 불장난이 단순한 엄포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북극성 2형’ 시험발사가 ‘자위적 조치’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김정은 정권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북한을 아주 강력히 다룰 것”이라고 초강경의 태도를 보였다. 이에 김정은 역시 한 손엔 핵과 미사일로 국제사회와 맞서고, 다른 한 손엔 공포 정치를 틀어쥐고 내부 통제와 체제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어느 때보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커진 것이 사실인 만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도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내일부터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와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하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왕이 중국 외교부장,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등과 양자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조율 중이라고 한다. 북한의 핵 폭주를 저지하려면 무엇보다 국제적인 공조가 중요하다.



윤 장관은 다자 회의 참석을 계기로 미·중·일·러 등 한반도 주변 4강과 대북 압박의 새 틀을 짜야 한다. 김정남 독살에서 보듯 김정은 정권 내부가 요동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북한 권력층 내부의 이상 징후에 대한 정보교환 시스템도 구축돼야 한다.

김정은이 국내에서도 요인과 고위급 탈북 인사를 상대로 암살 기도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정남의 이종사촌 이한영 피살 사건에서 보듯 언제 어디서 경호에 구멍이 뚫릴지 모른다. 불순분자의 잠입을 막기 위해 공항만 경계와 국내 고정간첩들의 움직임에 대한 감시를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긴장의 끈을 늦춰선 안 된다.



5. ‘독도는 일본 땅’ 초·중 의무 교육화 나선 일본

일본 정부가 초·중학교 교과서의 지침이 되는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에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것을 의무적으로 교육하라고 명시하면서 악화일로의 한·일 관계가 더 꼬이게 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현행 일본 초·중학교 교과서 20여종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법적 구속력을 가진 지도요령에 이런 내용을 넣는 것은 처음이다.



지도요령은 교육 현장에서 지침을 강제하는 효력을 갖기 때문에 일본의 모든 초·중 학생은 2020년부터 독도가 일본의 땅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의무적으로 배울 수밖에 없다.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 아베 정권은 부산 소녀상 문제로 자국의 외교사절을 느닷없이 소환해 양국 관계를 얼어붙게 하더니, 이제는 독도 영토 문제로 전선을 넓히는 모양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시정 연설에서 “한국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언급했다. 이번 일로 그는 속 다르고 겉 다름을 한 달여 만에 드러내고 말았다.



그는 연초부터 개헌 추진을 공식화해 자위대에 무력 행사의 길을 터 놓았다. 한술 더 떠 독도 영유권 왜곡 교육을 의무화함으로써 극우 보수세력의 결집을 꾀하고 나선 것이다. 개헌 동력을 얻으려는 속셈이 뻔해 보인다.

정부는 그제 지도요령 개정안 고시의 즉각 철회를 촉구하고 “개탄을 금할 수 없는 일로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일본 공사를 불러 항의의 뜻도 전달했다. 그러나 공사를 불러 호통치고, 단호하게 대응한다고 으름장 놓는다고 해서 일본이 독도 도발을 멈추리라고 생각하는가.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에 개탄을 금할 수 없고, 단호하게 대응한다고 엄포를 놓아도 그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이란 점이 우리의 경험칙이다.

정부는 수세적·소극적인 태도를 그만둬야 한다.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한다는 것으로 더이상 위안 삼아서도 안 될 일이다. 아베 정부가 체계적으로 도발하는 것에 맞춰 하나씩 행동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여 줄 때가 됐다. 이런 맥락에서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이번 일을 계기로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려 주는 다국어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일본의 독도 정책을 다국어로 반박하는 영상을 담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기로 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정부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아베 총리는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국사 교과서에 명시하자’거나 ‘독도를 군사기지화하고 주변 해역을 당장 개발하라’는 한국 국민의 빗발치는 요구가 있음을 직시하기 바란다.



[동아일보]

6. 박 대통령은 왜 獨 도피한 최순실과 '대포폰' 통화했나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 농단 비선실세’인 최순실 씨가 지난해 4월 18일부터 10월 25일까지 570여 회나 차명 휴대전화로 통화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어제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압수수색·검증영장 집행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특검 측 대리인이 청와대 압수수색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공개한 내용이다. 이 중 127차례는 최 씨가 독일로 도피한 9월 3일부터 귀국 직전인 10월 25일까지의 국제전화였다. 

이때는 최 씨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운영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이어 대통령 연설문은 물론이고 국정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이 쏟아져 나온 시기다. 박 대통령이 최 씨와 대응책을 논의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다. 최 씨의 귀국도 두 사람이 논의한 결과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성매매 보이스피싱 등에 주로 사용되는 차명 휴대전화인 일명 ‘대포폰’은 개설, 이용 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특검팀은 두 사람의 수백 회에 걸친 ‘몰래 통화’가 국정 농단의 공모와 은폐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측은 대통령 일정상 매일 3회 이상 통화하는 것이 가능하냐며 특검 주장을 부인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국민은 더 궁금한 것이다. 내부고발자인 고영태 씨가 “VIP(대통령)는 이 사람(최순실)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라고 한 말이 과연 맞는지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고 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올해 1월 1일 기자간담회에선 “특검의 연락이 오면 성실히 임할 생각”이라고 말했으나 지금까지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 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지난해 10월 25일 1차 사과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모든 책임을 최 씨에게 떠넘긴 것도 최 씨와 통화해 논의한 결과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니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어 청와대 압수수색을 승인할 수 없다는 박 대통령 측의 주장도 믿기 어려운 것이다.



7. 김정은 ‘광기의 테러’로부터 우리는 안전한가

북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독살 사건은 김정은 집권 이래 지속된 ‘스탠딩 오더(명령권자의 취소가 없는 한 끝까지 수행해야 할 명령)’의 집행이었다고 어제 국가정보원이 밝혔다. 2012년 초 이미 한 차례 암살 시도가 있은 뒤 김정남이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서신까지 보냈지만 이 명령은 취소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김정은의 편집광적 성격에서 비롯됐다”는 게 국정원의 진단이다. 김정남 독살은 3대 세습왕조의 권력투쟁이 낳은 해외원정 테러 살인극이다.

이번 테러는 김정은 일파가 얼마나 광기 어린 야만집단인지 국제사회에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굶주린 인민들은 쓰레기를 뒤지는데도 극소수 집권층은 최고급 샴페인을 터뜨리고 자세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최고 엘리트마저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하는 ‘초현실 사회’ 북한의 실상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참수와 화형, 수장 등 온갖 야만적 살인 행위도 모자라 조직원을 해외로 보내 테러를 자행하는 이슬람국가(IS) 세력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다.

북한은 앞으로 이번 사건에 침묵하거나 발뺌할 가능성이 높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공항 폐쇄회로(CC)TV에 잡힌 여성 2명 등 용의자들을 추적 중이지만 붙잡힌 여성 한 명은 베트남인으로 드러나는가 하면 일부 외신에선 테러범들이 범행 직후 사망했다는 ‘자결설’도 나오는 등 사건이 자칫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김정남의 전처와 후처 두 가족이 베이징과 마카오에 버젓이 있는데도 말레이시아 측에 시신 인도를 요구하는 뻔뻔함까지 보이고 있다. 당장 시신이 그들에게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우리 외교력을 모아야 한다.

북한으로선 이미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같은 악명이 새삼스럽지 않다. 북한은 여기에 ‘테러광’이라는 낙인을 다시 추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KAL기 폭파 사건 이후 20년 넘게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랐다가 2008년에야 겨우 벗어났지만, 조만간 미 의회에선 테러지원국 재(再)지정 논의가 가시화될 공산이 크다. 김정남과 그 가족들을 보호해온 중국도 김정은의 잇단 도발 행위를 마냥 감싸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정남 독살은 우리 정부 요인 등 사회지도층은 물론 탈북자 사회 전체에 대한 공개적인 테러 협박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남파 공작원들이 부여받은 요인 암살테러 같은 ‘스탠딩 오더’를 철저히 봉쇄할 대테러 대책부터 재점검해야 한다. 정부가 김정남 피살 소식이 전해진 14일 밤 국가안전보장회의(NSC)까지 열 필요는 없다고 하다 어제서야 회의를 연 것은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운다. 국가 리더십 공백으로 불안한 국민을 더욱 걱정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세계일보]

8. "노조가 혁신 막는다"는 쓴소리, 정치권은 어찌 듣나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현대차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 개발로 자동차 조립 공정이 바뀌고 있지만 작업 규율은 1970, 80년대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송 교수는 “새로운 물건을 구시대적 조직이 만들어 내는 유례없는 모순에 봉착해 있다”고 꼬집었다. “노조 저항이 혁신을 막고 있다”고도 했다. 우리의 산업위기는 노조로부터 잉태된 것이라는 뜻이다. 그의 말이 천근 무게를 갖는 것은 1년간 울산 현대차 노동자 50여명을 심층 인터뷰해 내린 결론이기 때문이다.

강성 노조가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현대차 경영지표 몇 가지만 뒤져 보면 그 실상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통계에 따르면 국내 현대차가 자동차 한 대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15년말 현재 26.8시간이었다. 도요타 24.1시간, 폴크스바겐 23.4시간, GM 23.4시간보다 길다.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14.7시간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깝다.



하지만 국내 현대차 평균 연봉은 9400만원으로 도요타 7961만원, 폴크스바겐 7841만원보다 훨씬 많다. 이런 고질부터 고칠 생각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에도 “해외투자 시 노조의 동의를 받으라”는 억지나 썼다. 그런 노조가 작업 규율까지 장악해 혁신을 가로막으니 경쟁력이 살아날 턱이 있겠는가.

현대차가 이런 지경이니 다른 기업이 어떠할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GM 노조 간부들이 검은돈을 챙기며 ‘취업 장사’를 하는 모습에는 퇴락한 집단으로 변한 노조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취업 한파는 매섭다. 1월 실업자는 100만9000명으로, 7년 만에 100만명선을 다시 돌파했다. 이런 사태도 강성 노조를 피해 투자선을 해외로 돌린 기업의 선택이 한몫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수레바퀴는 빠르게 구르고 있다. 세계가 사활을 건 혁신에 뛰어든 것은 이 때문이다. 기업을 혁신하자면 전근대적인 노조의 고질부터 도려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첫걸음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정국을 맞아 노동개혁의 외침이 사라진 지 오래다. 대선주자치고 노동개혁을 부르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자리는 근로시간 단축이나 재벌 개혁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선주자들은 말로만 일자리를 외치기 앞서 당장 노동개혁 법안부터 처리하기 바란다.



9. '천부적 인권' 재확인한 대법원 한센인 국가배상 판결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단종(정관 절제)·낙태 수술에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처음 나왔다. 대법원은 어제 한센인 19명의 국가소송 상고심에서 낙태 피해자 10명에게 4000만원, 단종 피해자 9명에게 300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이들에게 시행된 수술 등을 “위법한 공권력 행사”라고 했다.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태아의 생명권, 행복을 추구할 권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결정은 한센인 강제 수술이 무지속에 이루어진 국가 폭력임을 인정한 것이다. 국가가 저지른 잘못을 국가 스스로 책임지도록 한 것은 당연하다. 정부는 2011년 손해배상 소송이 시작된 이후 지난 5년여간 수술 등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배상을 거부하며 한센인들을 좌절케 했다.



정부가 2007년부터 시작한 한센인 인권유린 실태 진상조사 결과 피해자는 6462명에 이른다. 그러나 국가가 배상을 거부하면서 한센인 540여명이 소송을 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나머지 소송에 대한 재판도 신속하게 마무리되기를 기대한다. 정부도 한센인들 배상에 적극 나서 이들이 평생 흘린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국회 차원의 입법 지원도 필요하다.

한센인들이 평생 안고 살아온 고통은 인간의 무지와 이기심이 빚어낸 현대사의 비극이다. 소록도에서는 일제 강점기인 1936년부터 1980년대까지 부부 동거의 조건으로 단종수술을 내걸었다. 소록도를 비롯해 인천, 익산, 칠곡, 안동 등지에서도 많은 한센인이 천부적 인권을 잃은 채 뱃속 아이를 떠나보냈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도 상상 이상이다. 소록도 사람들 스스로 “세 번 죽는다”고 말할 정도다. 한센병 때문에 고통 겪고, 죽어서 해부되고, 해부된 뒤 화장된다는 것이다. 사회의 차가운 시선도 국가 폭력 못지않은 폭력이다. 국가 배상금 몇 푼으로 이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다. 국가는 물론 사회도 함께 반성하고 이들을 보듬는 데 앞장서야 한다.



[매일경제]

10. 송호근 교수의 현대차 노조 질타, 핵심 짚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귀족화된 현대자동차 노조의 전횡과 나태에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지난 1년간 울산공장과 해외공장에서 50여 명을 심층 인터뷰해 쓴 책 '가 보지 않은 길'에서 그는 현대차의 혁신을 가로막고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노조를 질타했다.



송 교수는 "그들은 사실상 중산층이지만 일터에서는 노동자로 이중적 정체성을 지녔다"며 "이는 계급적 연대가 아닌 내부자 연대로 변질돼 갔다"고 쓴소리를 했는데 핵심을 잘 짚어냈다고 본다.

노조가 '일은 적게' '돈은 많이' '고용은 길게'라는 3가지 목표에 매달리면서 작업장의 권력을 장악하고 기업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기자동차·자율주행차 등의 신기술 개발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저항에 조립공정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권력화된 노조가 산업현장을 정체시키고 있는 것은 산업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간 걱정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현대차 노조가 귀족노조·강성노조라는 얘기가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연평균 소득이 9600만원으로 근로자 평균 연봉 3%에 속하지만 이들은 걸핏하면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줄파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파업횟수는 24회나 되고 이로 인한 손실은 총 3조1000억원에 달했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현대차 노조 파업에 중소기업 근로자들과 비정규직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노조가 약자이기는커녕 경영진을 뒤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노조는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받은 주식배당금의 20%(200억원)를 요구하는 등 본분을 망각한 행동을 자행했다. 마음대로 일을 당겨서 해치우고 퇴근하는 '야리끼리' 문화, 비정규직에게 일을 떠넘기는 군림문화 등도 있다니 내부에 도사린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 듯하다.

송 교수는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조선업과 같은 파국을 맞지 않으려면 불황에 대비해 미리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귀담아들어야 할 진단이다. 강성노조가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것은 시간문제다. 노조의 권력화를 막아야 비정규직 처우 문제도 개선될 수 있다. 채용장사, 고용세습 등 노조의 횡포를 막으려면 하루빨리 노동개혁에 나서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매일 600만 그릇 팔리는 '짜장면'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외식 메뉴는 아마도 짜장면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는 입학이나 졸업식 때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지만, 이제는 언제든지 쉽게 즐길 수 있는 국민 메뉴가 되었다.

짜장면은 원래 중국 산둥 지역의 작장면(炸醬麵)에서 유래하며, 우리나라에는 1900년대 초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짜장면은 6·25 전쟁 이후에 많은 양을 값싸게 제공할 수 있게 변형된 것이다. 우리식 짜장면은 춘장에 식은 면을 말아 먹는 중국식과는 달리 양파, 고기, 감자, 채소를 고루 넣고 볶은 뒤 전분을 풀어 묽게 끓여 뜨거운 면에 얹어 먹는다. 짜장 소스 위에 오이채나 완두콩을 얹고 입맛에 따라 식초, 고춧가루를 더하고 단무지, 양파를 곁들인다. 맛과 레시피가 우리 환경과 입맛에 맞게 놀라운 변신을 한 것이다.

짜장면에 얽힌 에피소드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예외가 아니다. 1997년 11월 IMF경제위기로 치닫던 당시 재정경제원 외화자금과장의 직책에 있었다. 매일매일을 사투를 벌이다시피 하던 시절인데, KBS 9시 뉴스에서 우리가 일하는 현장을 국민에게 소개하겠다고 강권해서 할 수 없이 응했던 적이 있다.



녹화가 막 끝난 저녁 즈음,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자동으로 미리 시켜 둔 짜장면이 배달되었다. 우리는 무심코 취재팀에게도 권하고 식사를 했다. 그런데 이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고 그대로 방송된 것이다. 참 계면쩍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TV를 보다가 갑자기 짜장면 생각이 나서 다음날 오랜만에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는 인사를 도처에서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짜장면은 과거 정부 시절 물가관리 대표품목이 될 정도로 국민 메뉴여서 수준급 식당도 곳곳에 많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곳을 몇 군데 소개하려 한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 이화여대 후문 쪽에 ‘효동각’이 있다. 메뉴는 짜장면뿐이다. 일·월요일은 휴무인 데다 평일에도 점심만 하고 그것도 3시까지만이다. 주인, 부인, 아들 세 사람이 하는 집이다. 주문 후 요리를 시작하므로 꽤 기다려야 한다. 면발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짜장 소스에 버섯이 들어가 식감이 좋다.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순한 맛인데도 이 집만의 특유의 풍미가 가득하다.



마포구 공덕동 효창운동장 뒷담 쪽에는 1981년에 문을 연 ‘신성각’이 있다. 테이블이 몇 개 안 되는 작은 집으로, 주방은 보조도 없이 주인 혼자서 하고 부인은 홀 담당이다. 메뉴는 짜장면 등 총 여섯 가지. 기다리는 동안 볼 수 있는 수타 모습은 감동마저 준다. 주인은 짜장면을 예술로 믿는다. 순수 그 자체의 맛이라는 것이다. 점심때 줄이 길다. 중구 명동 중앙우체국 옆에는 ‘개화’란 식당이 60년 넘게 자리잡고 있다. 화교가 하는 중국집인데, 다소 가는 면발에 걸쭉한 짜장 소스를 비벼 먹는다. 소고기를 다진 유니짜장을 많이 시킨다. 단맛이나 고소한 맛은 적으나 중독성 있는 특별한 맛이다.

마포 불교방송 건물 지하에는 1953년에 개업한 ‘현래장’이 있다. 인근 작은 건물에 있다가 재개발로 옆 건물로 이사했다. 이사 전에는 길에서 유리 너머로 수타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수타의 원조 격이어서 맛볼 만하다. 용산 삼각지 전쟁기념관 옆에는 ‘명화원’이 있다. 테이블이 몇 개 안 되는 작은 점포로, 얼마 전 가게를 새로 단장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줄이 길어졌다. 메뉴는 짜장면, 탕수육 등 다섯 가지뿐이다. 탕수육과 군만두도 유명하다.

졸업과 입학 시즌이다. 이 시절이면 가족들과 함께 즐기던 옛날의 그 짜장면 생각이 절로 난다. 얼른 가서 한 그릇 사 먹어야겠다.



2. [서울신문][정찬주의 산중일기] 사립문과 고드름

부산 사상구에 거주하는 문화탐방팀 100여명이 내 산방을 다녀갔다. 폭설이 내린 뒤끝이라 눈길이 걱정됐지만 버스로 온다고 해서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내 산방에서 5리 일대의 응달은 한 번 눈이 내리면 며칠 동안 위험한 빙판길이 되기 때문이었다. 사상구에서 온 문화탐방팀원들은 계절마다 전국을 답사하는 모양인데, 이 또한 우리 선조의 멋이었던 풍류(風流)가 아닐까 싶다.



걸림 없는 바람의 흐름처럼 뜻 맞는 사람끼리 가고 싶은 명산명소를 찾아다니는 답사도 우리의 문화 전통인 것이다. 문화탐방팀 손님들이 내 산방을 보고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은 사립문이었다. 사람들은 사립문 앞에서 기념사진부터 찍었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대나무문을 떠올리는 듯했다.

추억을 되새기게 해 주는 것은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3년마다 썩은 대나무와 지지대를 바꾸어 왔지만 아직도 사립문을 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립문을 새로 교체할 때마다 그 번거로움이란 정말 머리를 무겁게 한다.



대나무는 누런빛을 띠는 묵은 것이 습기에 강하다. 지지대는 산속을 뒤지며 강도가 센 노간주나무를 구해야 한다. 나의 이런 진정성이 이 지역 사람들에게 읽혔는지 어느 날인가는 사립문에 느티나무로 만든 ‘집필중’이란 작은 피객패(避客牌)가 걸려 있었다. 글 쓰는 이의 산방이니 무례하게 방문하지 말라는 뜻의 나무패였다. 하긴 나도 오전 중에는 밀린 청탁 원고를 해결해야 하니 웬만하면 손님을 받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멀리서 온 손님을 어찌하랴. 더구나 오는 손님 막지 않고 가는 손님 잡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세워 놓은 원칙이다. 한 번은 피객패를 보고 돌아가는 손님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문득 미안한 생각이 들어 뒤쫓아 나갔다. 그런데 그 손님이 “이 집 주인 성은 ‘집’씨이고 이름은 ‘필중’인가 보다” 하고 나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분이 다시 찾아온다면 요즘 즐겨 마시는 따뜻한 발효차 한 잔 올려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서재 방문에도 종이에 쓴 피객패가 있는데 그분이 본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서재의 피객패에는 ‘집필 중’이라고 띄어쓰기가 돼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집 주인의 성은 ‘집필’씨이고 이름은 ‘중’이라고 할 것만 같다.

부산에서 온 문화탐방팀 손님들에게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 또 하나는 추녀 끝에 매달린 고드름이었다. 나 역시 땅꼬마 시절에 냇가 버들강아지 잔가지 밑에 달린 수정고드름을 마치 얼음과자인 양 따먹은 기억이 있다. 내 산방이 북향집이기 때문에 고드름이 잘 열리는 것 같다. 햇볕이 잘 드는 남향집에서는 고드름이 금세 녹아 버린다고 한다.



법정 스님께서 살아생전에 내 산방에 오셔서 “왜 북향집을 지었소?”라고 물은 적이 있다. 고찰이 내려다보이는 서향집을 짓지 않고 앞산이 첩첩한 북향집을 지었으니 의아하셨으리라. 상량문에도 나는 ‘백두산 천지 향해 이불재(耳佛齋)를 앉히다’라고 북향집임을 밝혔다.

내가 솔직하게 “천년 고찰을 내려다보고 사는 게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랬습니다. 아래 절 풍경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피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법정 스님께서 “잘했소. 절이 보이게끔 지었으면 절을 지키는 경비초소가 될 뻔했어요”라고 나의 의도에 동조해 주셨다.

나는 이와 같은 사연도 문화탐방팀원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더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친김에 한마디 더 보탰다. 우리가 진정 사랑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소유하려 하거나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끔 한 번씩 목말랐을 때 그리움으로 만나야 한다. 소유와 집착은 사랑이 아니다. 나는 바닷가에 통유리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의 취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라면 5분, 10분 걸어야만 바다가 보이는 그런 곳에 오두막집을 마련할 것 같다. 바다를 옆에 두고 사는 부산의 문화탐방팀 손님들이 모두가 내 말에 공감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이제 내 산방의 겨울철 특산물로 추녀 끝에 매달린 동장군의 긴 칼 같은 고드름이 하나 더 추가되지 않을까 싶다.



3. [서울신문][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바닷가에서

'기탄잘리'는 인도의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타고르(1861~1941)가 1909년에 157편의 시들을 묶어 벵골어로 발표한 시집이다. 위 시집에 실린 시 53편과 그의 다른 시집에서 추린 50편의 시들을 시인 자신이 영어로 번역한 ‘Gitanjali’란 제목의 시선집이 1912년 런던에서 출판되었다. ‘기탄잘리’는 벵골어로 “바치는 노래들”을 뜻하는데, 우리말로는 ‘신에게 바치는 노래’가 적당한 번역이리라.

영어판 기탄잘리 시집의 초판본에 서문을 쓴 사람은 시인 예이츠이다. 무슨 서문이 이리 긴가. 지금 내 눈엔 다소 장황스러워 보이는 예이츠의 서문을 읽노라면, 어느 낯선 인도인의 언어가 유럽인의 가슴에 일으킨 파문을 짐작할 수 있다.

“타고르의 번역시들이 내 피를 휘젓고 있다. 요 몇년간 그 어떤 것에도 지금처럼 동요한 적이 없었다.”

예이츠가 인도 출신의 여행자에게 타고르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뛰어나, 그의 노래들은 인도의 서쪽지방에서부터 버마까지, 벵골어를 사용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불리고 있다. 그는 첫 소설을 쓴 열아홉 살 때부터 이미 유명했다. 그가 쓴 연극들이 지금도 콜카타에서 무대에 오른다.… 그는 하루 종일 명상에 잠겨 정원에 앉아 있곤 한다. 스물다섯 살 무렵부터 서른다섯 살까지 깊은 슬픔을 경험하고 우리 언어로 된 가장 아름다운 연애시를 썼다.”

예이츠에 의하면 “인도 문명 그 자체와도 같은 타고르는 영혼을 발견하고 자신을 그 영혼의 자발성에 맡기는 데 만족해 왔다.



”예이츠의 긴 서문은 기탄잘리 60을 인용하는 것으로 끝난다. 어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타고르의 시도 기탄잘리 60인데, 한국에서는 ‘바닷가에서’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산문시를 한글로 옮겨 적는다.

기탄잘리 60
-타고르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입니다. 한없는 하늘이 머리 위에 멈춰 있고 쉼 없는 물결은 사납지요.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소리치고 춤추며 모입니다.

그들은 모래로 집을 짓고 빈 조개껍질로 놀이를 합니다. 시든 가랑잎으로 배를 만들고 웃으며 이 배들을 넓고 깊은 바다로 띄워 보내지요. 아이들은 세계의 바닷가에서 놀이를 합니다.

그들은 헤엄치는 법을 알지 못하고, 그물을 던지는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진주잡이 어부들은 진주를 찾아 물에 뛰어들고, 장사꾼은 배를 타고 항해하지만, 아이들은 조약돌을 모으고 다시 흩뜨립니다. 그들은 숨은 보물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물을 던지는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바다는 웃음소리를 내며 끓어오르고 해변의 미소는 희미하게 빛납니다. 죽음을 흥정하는 물결은 아이들에게 뜻 없는 노래를 불러 주지요, 아가의 요람을 흔드는 어머니처럼. 바다는 아이들과 놀고, 해변의 미소는 희미하게 빛납니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입니다. 폭풍은 길 없는 하늘을 떠돌고, 배들은 흔적 없는 물 위에서 난파하고,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 아이들은 놀고 있습니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의 위대한 모임이 있습니다.



*
애써 모은 조약돌을 다시 흩뜨리는 아이들. 아이들은 소유하지 않는다. (어른들처럼 재화를) 축적하지도 않는다. 욕심 없는 아이들과 욕심 많은 어른들, 순수한 동심과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을 아름답게 대비시켰다.

굽이치며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웃음에 비유했다. 희미하게 빛나는 ‘해변의 미소’는 해변에 닿아 부서지는 하얀 물거품을 떠올리면 되리라.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의 위대한 모임을 들여다보다, 2월의 어느 날 고등학교 졸업식에 다녀왔다. 고2 때 터진 메르스 사태 때문에 수학여행도 못 가봤다는 조카가 딱했다. 어려서부터 공부 공부…. 이 나라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입시학원들이 번창한다. 입시와 취업에 짓눌린 한국의 아이들. 바닷가에서 친구와 놀아보지도 못하고 학창 시절을 마감해야 하는 청춘이 불쌍하다.

학원 간판이 한 개도 보이지 않는 서울을 보고 싶다. 모래로 집을 짓고 가랑잎으로 배를 만드는 아이들이 춤추고 떠드는 바닷가. 끝없는 하늘이 머리 위에 멈춰 있는 해변을 아이와 걷고 싶다. 언제 우리는 죽음의 교육을 끝내고, 바다와 아이를 되찾을까.



4. 경향신문][역사와 현실] 왕의 측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텔레비전 사극에 국왕이 가까운 신하와 독대하는 장면이 가끔씩 나온다. 이런 일은 조선시대에 실제로 가능하지 않았다. 국왕은 복수의 사람들에게 늘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 각자의 임무와 성격이 달랐는데, 그 임무와 성격의 구성이 조선왕조 권력의 단면을 보여준다. 왕 주변에는 크게 5개 그룹이 있었다. 왕이 심정적으로 가깝게 느끼는 순서로 따지면 내시, 승지, 대신, 언관, 사관이 그들이다.

내시(內侍)는 원칙적으로 국왕의 사적 요구에 응하는 존재였다. 국왕의 개인적 사정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왕에게 ‘노(No)’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들에게는 어떤 공적 역할도 맡겨지지 않았다. 국왕에 대한 사적인 보필 이외에 그들은 아무런 책임도 요구받지 않았다.



승지(承旨)는 승정원에 소속되었고 모두 6명이었다. 정3품 벼슬이고, 요즘으로 말하면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들이다. 이들 임무는 ‘국왕의 말을 정부조직과 연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6명의 승지는 정부조직인 6조 중 하나씩과 연결되었다. 수석승지인 도승지는 이조, 좌승지는 호조, 우승지는 예조와 연결되는 식이다. 조선시대에 내시나 승지들이 일으킨 정치적 물의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의 ‘정치적’ 역할이 전혀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물의를 일으켰다는 기록은 눈에 잘 안 띈다.

대신(大臣)은 주로 3명의 정승과 6명의 판서를 가리킨다. 각각 정1품과 정2품의 최고위 관직자들이다. 관직자들로서 국정현안을 실무적으로 책임지는 사람들이었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 사이에 대과(大科)에 합격한 후, 말단에서 시작하여 적어도 50세가 넘어야 도달할 수 있는 자리이다. 이들 역시 가능하면 국왕 의견을 존중했다. 하지만 이들의 임무는 내시는 물론이고 승지와도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들은 때로 왕의 의견에 반해서 ‘안됩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국왕의 명령이기에 따랐다고 말하는 것으로 자기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국왕과 의견이 다르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조선 조정의 원칙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이 어찌 그때만의 원칙이겠는가. 자기 몫의 책임이 있기에 안 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선이 남긴 방대한 기록 덕분에 왕에게 영합하여 책임을 못한 대신이 누군지 지금도 확인이 가능하다.

내시, 승지, 대신이 정도 차이는 커도 국왕 의견을 존중하는 쪽이라면, 언관과 사관은 국왕에게 불편한 존재들이다. 언관(言官)은 명칭 그대로 바른말 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관리로, 사간원과 사헌부 관원을 말한다. 지금으로 치면 강경한 야당 성향 언론, 검찰 및 감사원에 해당한다. 지금과 다른 것은 대신과 국왕에 대한 비판이 언관의 중심 업무였다는 점이다.



두 기관의 중추는 4~6품 정도의 관리들이다. 이들은 거의 대과 출신 엘리트들이고, 나이는 주로 30대가 중심이었다. 대신과는 부모·자식 정도의 나이 차이가 났다. 이들은 그 나이와 스펙으로 인해서 무례할 정도로 원칙적이었다. 그들은 아직 젊고, 승진 때문에 높은 사람에게 신세진 적이 없고, 똑똑한 젊은이가 대개 그렇듯 이상적이었다. 국왕의 주변에는 늘 그들이 있었다.



조선은 언관을 왕 옆에 둠으로써 권력에 대한 견제와 국정운영 원칙에 대한 끊임없는 환기를 제도화했다. 연산군 대에 사간원이 폐지되고 사헌부 기능이 크게 위축되었던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조선 조정을 구성하는 중요한 기관들에는 그 운영과 회의를 꼼꼼하게 기록하는 사관(史官)이 있었다. 국왕이 참석하는 모든 자리에도 그들이 있었다. 사관의 중심축을 이루는 관리들은 이제 막 대과를 통과한 7품에서 9품까지의 관리들이었다. 그들은 언관들처럼 국왕을 상대로 언성을 높이지도 집요하지도 않았다. 다만 국왕의 말과 행동을 묵묵히 기록했다. 그 기록은 매년 차곡차곡 쌓였지만 국왕은 그 기록을 보지 않았고, 사관들도 왕에게 보고할 의무가 없었다.

사관의 기록 행위는 언관의 발언 못지않게 국왕을 강력히 견제했다. 연산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책뿐이다. 사관은 정부 관련 일만 기록해야 한다. 임금과 관련된 일을 기록하는 것은 마땅치 못하다. 이제 이미 사관에게 임금에 관한 일을 쓰지 못하게 했지만 아예 역사가 없는 것이 더욱 낫다.”(<연산군일기>12년 8월14일) 연산군이 이 말을 하고, 보름쯤 후에 중종반정이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언관 조직이 복구되었고 그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조선 국왕은 이런 사람들에 둘러싸여 왕 노릇을 해야 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을 만약 조선의 왕이 듣는다면 무슨 뜻인지 잘 모를 것이다. 그런 덕분에 조선은 장수할 수 있었다. 14세기에 성립하여 20세기까지 지속된 왕조는 세계적으로도 조선이 거의 유일하다.



5. [매일경제][세상읽기] '검은 코끼리'와 운명의 시계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근작 '늦어줘서 고마워요(Thank you for beinglate)'라는 책에서 지구를 변화시키는 세 가지 힘으로 기술, 글로벌라이제이션 그리고 기후변화를 손꼽았다. 2007년 스티브 잡스의 스마트폰으로 시작된 21세기형 기술혁명은 이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연결되며 4차 산업혁명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 끝을 알 수는 없으나 기계지능의 총량이 인간지능의 총량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속속 다가오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는 요즘이고 보면 기술이 인간 세상을 바꾼다는 그의 지적은 당연히 공감이 간다. 

'세계는 평평해졌다(the World is flat)'며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위력을 갈파하던 프리드먼은 브렉시트와 같은 '반동의 힘'과 더불어 지구적 차원의 '경제적 불평등'에도 주목하는데 어쨌든 '세계화'는 앞으로도 강력한 변화의 동력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구글 비즈니스 X 공동창업자 서배스천 스런은 여기에 '대중화(democratization)'의 힘이 가세하며 변화의 가속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갈수록 어지러운 세상을 보면 이 또한 동의하게 된다. 

그렇다면 기후변화는 무엇일까? 프리드먼은 이를 '검은 코끼리(Black Elephant)'에 비유한다. 

검은 코끼리는 '검은 백조(Black Swan)'와 '방 안의 코끼리'를 합성한 말이다. 검은 백조는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인데 실제로 발생해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오는 사건을 뜻한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킨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월가의 그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장담하며 자신들의 잇속을 챙겼던 그 사건 말이다. 

방 안의 코끼리는 이미 커다란 코끼리가 눈앞에 보이는데도 못 본 척하며 행동을 미루는 경향을 뜻한다. 그 이유가 관성이든, 부정이든, 두려움이든 코끼리가 온 집안을 풍비박산 낼 때까지 모른 척한다는 것인데 기후변화의 경우 이미 방 안의 코끼리처럼 눈앞에 와 있는데도 검은 백조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같이 무시하다가 더욱 크게 당할 '검은 코끼리'가 되리란 것이다.



2009년 필자는 프리드먼을 한국에 초청해 '기후변화와 녹색성장'에 관한 회의를 가진 바 있다. 당시 그는 기후변화야말로 인류가 겪어보지 않은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라 역설했는데 이번에 펴낸 책을 보면 기후변화라는 코끼리는 그사이 더욱 커졌고 더욱 가까이 왔다는 걸 절규하듯 웅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얼마 전 과학자들이 만든 '운명의 시계(Doomsday Clock)'는 인간문명이 종말을 고할 시간까지 불과 2분30초 남았다고 발표했다. 1953년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경쟁으로 치달은 이래 운명의 시간까지 가장 가까이 다가간 기록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운명의 시계를 앞당긴 건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보다 정확히는 세계 1위의 슈퍼파워 미국이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석탄을 비롯해 온실가스의 근본 원인인 화석연료의 과거로 회귀해 인류를 살릴 글로벌 리더십에 커다란 위기가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엑손모빌 사장을 국무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석탄업계 로비스트를 환경청(EPA) 수장으로 둔 사례를 거론하며 "미국 정치는 이제 세계 최대의 비상장 기업이자 (연매출 100조원의) 화석연료기업 코크 인더스트리가 소유하게 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색스 교수는 "트럼프는 유엔을 비롯해 (그를 반대하는) 세계를 하나로 뭉치게 한다"며 "트럼프는 결코 시저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그가 재임하는 한,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검은 코끼리는 더욱 커져갈 것이란 우려는 가시지 않을 듯하다. 적어도 미국 안에서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적어도 두 마리의 검은 코끼리는 확실히 커나가고 있다. 세계 평균 두 배 이상의 기후변화를 겪고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많이 석탄발전소를 증설하는 한국.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냉전지대로 세습왕조의 핵무기 위협을 머리에 이고 사는 한국…. 그러고 보니 몇 마리 더 있는 듯도 하다. 경제는 계속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안에다 총질하듯 네 편, 내 편하며 싸워대는 걸로 허송세월하는 우물 안 구체제 정치. 이러다 남의 집 코끼리를 걱정할 여유는 영영 없어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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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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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국민일보]

1. 김정남 피살, 정부는 상황 관리에 한 치 오차 없어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13일 오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됐다.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여성 2명이 독침으로 살해했다. 15일 새벽까지 우리 정보 당국의 공식 확인은 없지만 곧 발표할 예정이다. 북한 공작원의 김정남 살해는 김정은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의 공포정치가 장성택 등 친인척에 이어 이제는 형제도 살해할 만큼 잔인해졌다는 뜻이다.



뒤집어보면 김정은 정권이 매우 취약하다는 정황이기도 하다. 김정남은 그동안 동남아와 유럽 등 해외로 떠돌면서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기도 했다. 김정은이 혈육까지 살해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몰두하는 것을 보면 북한 정권이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 상태인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이번 살해 사건으로 한반도 안보 불안이 한층 높아졌다. 김정은이 또 어떤 무모한 짓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가는 국내외 정황상 한반도는 안보 취약기에 해당한다. 국내는 대통령 탄핵 절차 진행으로 혼란스럽고, 미국은 막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공 정책이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북한이 엊그제 신형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분명히 북한은 크고 큰 문제”라며 “북한을 아주 강력히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취임 이후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대북 경고 메시지다. 국무부와 국방부도 “북한 위협을 격퇴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강경책이 김정남까지 살해한 북한 정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밀히 분석하고 우리 국익에 맞게 조정할 것은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도 신경 써야 한다. 미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은 사드 배치 문제로 몽니를 부리고 있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도발적 행위를 시도한다면 제어할 곳은 사실상 중국밖에 없다. 사드 문제와는 별도로 우리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만 하는 이유다. 이렇듯 미국과 중국 등 한반도 주변이 어느 하나 우리에게 편안하게 돌아가는 구석이 없다.

우선 안보 문제 만큼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정부와 정치권, 국민이 굳게 뭉쳐야 하겠다. 군은 흔들림 없는 안보태세를 갖춰야 한다. 국내 정치가 다소 여의치 않더라도 본연의 임무 수행에 한치의 오차도 없게끔 해야 하며, 이런 자세를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특히 외교안보부처는 가장 높은 긴장감을 갖고 한반도 안보상황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한·미는 모든 정보를 공유하며 대비할 필요가 있다. 외교 당국은 중국에도 북한에 대한 상황관리를 요구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 절차가 진행되더라도 안보는 굳건히 해야 한다. 정부가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연합뉴스]

2. 해외 떠돌다 살해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이 오랜 세월 해외를 떠돌다 결국 살해됐다. 정부 소식통은 14일 "김정남이 현지시간으로 13일 오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공항에서 살해됐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공항 쇼핑구역에서 신원 미상의 여성 2명에게 독침을 맞고 쓰려져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사망한 북한 남성의 신원이 김정남으로 확인됐다고 말레이시아 경찰을 인용해 보도했다. 다만 김정남의 구체적 사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외교부는 김정남 피살설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김정남은 김정일과 첫째 부인 성혜림 사이에서 출생했고, 김정은은 김정일의 셋째 부인 고영희에게서 태어났다. 김정남은 '백두혈통'의 장남으로서 한때 김정일의 후계자로 거론됐다. 그러나 2001년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적발된 사건 이후 북한 권력의 중심에서 서서히 밀려났다고 한다. 그 후 마카오와 베이징 등지를 오가면서 해외생활을 해왔다. 특히 그의 후견인 역할을 해온 고모부 장성택이 2013년 12월 처형된 뒤로는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주로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장성택과 함께 북한의 대표적인친중파 인사로 꼽혔다. 김정남이 이번에 말레이시아에 간 이유는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2014년 1월 쿠알라룸푸르의 한식당에 모습을 드러냈고, 같은 해 5월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레스토랑에서 30대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김정남 피살이 북한의 소행으로 최종 확인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해외생활을 해온 그가 결국 김정은 공포정치의 희생양이 됐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독침 암살은 북한 공작원이 자주 쓰는 수법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2010년 아사히TV와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한다"고 발언하는 등 한때 북한의 권력 세습에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김정은이 자신의 체제를 한층 공고히 하기 위해 잠재적 위협요소인 이복형을 제거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남이 김정은의 소환 명령에 불응해 살해됐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동안 김정남에 대한 북한의 암살기도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김정은의 친족이 해외에서 살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정일의 처조카이자 김정남의 이종사촌인 이한영은 한국으로 망명했다가 1997년 2월 북한 공작원에게 암살됐다. 

이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최종 확인되면 여러 가지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 다른 나라 수도의 국제공항에서 백주에 암살 테러를 자행했다는 점에서 북한 정권의 무모한 호전성과 폭력성을 다시 한번 만천하에 보여준 만행이다. 북한이 신형 중장거리 미사일(IRBM)을 발사하고 이틀 만에 이런 일이 다시 터져 뭔가 북한 내부에 이상기류가 있는 것 아닌지 우려되기도 한다. 일시적으로 북중 관계가 불편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이번 사건이 한반도 안보 상황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기민하고 차분하게 대처하기 바란다. 외교 안보 당국은 말레이시아 당국과 긴밀히 협조해 사건의 전모를 신속히 파악해야 한다. 경찰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요 탈북인사의 신변보호를 한층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데일리]

3. 미국 ‘선제 공격론’에 대한 대책 있는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북한을 “아주 강력히 다룰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이처럼 직설적인 표현으로 흥분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틀 전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만찬을 즐기던 도중 북한의 ‘북극성 2형’ 발사에 관한 급보가 전해지자 예정에 없던 심야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을 강력 규탄했다. 북한의 신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 발사에 대해 우리보다 미국이 더 긴장한 분위기다.

트럼프가 지난달 취임 이후 ‘반(反)이민 행정명령’과 멕시코와의 장벽 건설 등을 밀어붙였던 만큼 북한에도 초강수를 둘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주목되는 것은 기존 ‘세컨더리 보이콧’과 더불어 북한 핵시설을 먼저 공격하는 ‘선제 타격론’이 점점 힘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미 의회 역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뜻하는 ‘코리아 시나리오’를 공공연히 거론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거드는 분위기다.



​미국이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용도 폐기했다면 우리의 대응도 달라져야 하지만 실상은 영 딴판이다. 미국은 일찌감치 작년 가을 주한 미국 민간인 소개훈련까지 마쳤으나 우리는 천하태평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판결이 빨라야 한 달이고 더 늦춰질 경우도 배제할 수 없으나 온 나라가 조기대선 구도에 함몰돼 북한 미사일에는 안중에 없는 듯하다. 대선주자랍시고 어중이떠중이 다 나서서 표심몰이에 열을 올리지만 평양의 도발에는 거의 오불관언이다.

지금 상황이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와 전혀 다르다는 게 문제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북한 영변을 폭격하려던 미국을 가까스로 막아냈으나 지금은 핵전쟁 예방 차원에서 북한 지도부나 핵기지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을 말리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유력하게 제기되는 국면이다.

그렇다고 순식간에 대재앙을 초래할지 모르는 한반도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만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고질병인 안보불감증 해소가 급선무다. 아울러 탄핵정국의 대통령권한대행 체제로 한계가 있겠지만 때를 놓치기 전에 미 행정부 및 의회와 다각적인 대화 창구를 확보해야 한다. 미국이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최대한 지킬 수 있는 방안을 관철시켜야 할 것이다.



4. 낙제점에 그친 ‘박근혜 표’ 경제정책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이 낙제점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로 마무리되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대해 이데일리와 기획재정부가 공동으로 평가한 결과다. 그것도 100점 만점에서 38점에 그쳤다면 이만저만한 실패가 아니다. 의욕적으로 제시됐던 목표들이 대부분 겉핥기로 끝났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떠나 경제 분야에서도 적잖은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더구나 이번 평가는 정부 공식 통계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당초 정부가 내걸었던 16개 성과지표 가운데 현재 목표가 달성된 것은 공공기관 부채비율 등 6개에 불과하다. 잠재성장률이 2%대로 떨어진데다 고용률은 60.4%, 국민소득은 2만 7000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른바 ‘4·7·4’라는 목표가 하나의 신기루였던 셈이다. 담당 부처들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목표를 높여 잡았다고는 하지만 격차가 너무 크다.

처음부터 백화점식 정책 나열로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던 상황을 감안하면 이러한 결과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정책끼리 서로 충돌하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청년·여성 고용률이 목표에 미달했으며,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갈수록 치솟고 있다. 지난해 파업에 따른 근로손실일수가 역대 최장을 기록했다는 점에서도 사회 갈등이 더욱 심해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의 역대 경제팀이 직접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현오석·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물론 현 유일호 부총리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최 전 부총리의 경우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며 어설픈 접근 방식을 내세워 경제 체질을 더욱 엉망으로 만들었다.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감이 허물어진 지도 오래다. 경제정책의 실패가 잘못된 인선에서 비롯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문제는 다음 정권을 맡을 주체에 있어서도 정책 비전이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조기 대선에 나선 주자들마다 경제활성화 방안은 제쳐놓고 퍼주기식의 포퓰리즘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려는 움직임이다. 이래서는 나라 살림이 거덜나는 것도 시간문제다. 정책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앞서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동아일보]

5. 대통령 탄핵심판 변호인단 법리도 품격도 없다

선진국에 비해 길지 않은 헌정사에 2004년에 이어 10년여 만에 다시 대통령 탄핵심판을 맞은 것은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그럼에도 대통령 탄핵심판은 그 희소성과 중대성으로 우리 헌정사는 물론 사법사(司法史)에 길이 기록될 재판이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재판에 응하는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이 치열한 법리 다툼은커녕 가볍고 수준 미달의 행태를 보여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어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공개변론에서 대통령 측 서석구 변호사는 변론 시작 전에 태극기를 펼쳐 보였다가 헌재 경위의 제지를 받았다. 서 변호사는 처음 대통령 변호를 시작할 때부터 ‘촛불 민심은 민심이 아니다’라며 박 대통령을 박해 당한 소크라테스와 예수에 비유하는 황당한 인식을 드러냈다. 매번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그는 최근 집회에선 “이 집회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보고 있다”고 한 뒤 갑자기 영어로 연설하기도 했다. 변호사가 대통령을 법리로 방어하는 게 아니라 장외 여론전에 기대 지지층 결집에 골몰하고 있다.

대리인단 이중환 변호사는 지난번 변론에서 최순실-고영태 불륜설을 제기하며 대통령이 고영태에게 억울하게 당했다는 인식을 드러내 재판부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불륜설은 사실 여부도 확실하지 않을뿐더러 사건의 본질과는 무관하다. 어제 국회 측 요청으로 헌재에서 공개된 고영태 녹음파일에는 “VIP(대통령)는 이 사람(최순실)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발언이 들어 있었다.



대통령에게 불리한 녹음을 증거로 신청하겠다고 먼저 밝힌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대통령 측이었다. 녹음파일의 유·불리도 따지지 않고 파일이 증거로 채택되면 검증기일이 늘어나 재판이 연장될 것이라는 점만 고려하다가 오히려 대통령을 불리하게 만들었다. 일반 사건이라면 의뢰인이 변호인을 해임할 사유다.

후대에 남을 탄핵심판은 국회 측과 대통령 측 대리인단 모두 최고의 법리와 풍부한 판례로 재판관들을 설득해야 한다. 어제 첫 변론에 나선 대리인단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은 “권력 주변에 기생하며 호가호위하는 무리가 있었고 그들을 사전에 제거하지 못한 대통령의 잘못은 따끔히 나무라야 한다”면서도 “그런 과오가 헌법상 임기가 보장되는 대통령직에서 파면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연한 변론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들릴 정도였다. 돌발행동이나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저급한 폭로로 되지도 않을 지연작전이나 펴는 것은 옳지 않다. 대통령 대리인의 변호는 격(格)이 있어야 한다.



[매일경제]

6. 고영태 사단의 기획폭로 의혹 간단히 넘길 일 아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고발자 격인 고영태 씨와 주변인 간 통화녹음 파일이 탄핵심판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헌법재판소는 14일 13차 변론에서 전체 2300여 개 파일 중 녹취록 29개를 증거로 채택했으며 앞으로 더 많은 파일이 추가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 

공개된 녹음 파일 내용을 보면 괴이쩍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최순실 사건 이전 고씨 측근 중 한 명이 녹음한 이 파일에는 고씨가 문제의 K스포츠 재단을 장악하고 정부 예산을 빼돌리려고 한 정황이 담겨 있다. "나하고 소장(최순실)과 관계가 끝나더라도…. 끝날 때가 됐어" 등 고씨가 최순실과의 관계 정리에 대비하는 얘기도 나온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언론을 통해 사건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는 한편 자신들이 관련된 증거 인멸을 모의한 정황이다. 

고씨 측근 이 모씨는 "월요일부터 기사가 계속 나올 거야"라며 이메일 삭제, 휴대폰 해지와 유심칩 폐기를 지시하고 있다. 실제 이 통화가 있은 지 10여 일 후 모 종편방송에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박태환 선수에게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 포기를 종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최초 보도였다. 

탄핵 반대 진영에선 이 녹음 파일을 "고영태가 사실을 과장·왜곡하는 기획 폭로로 사건을 국정농단으로 몰고 갔음을 보여주는 핵심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국회 소추위원단은 "고씨가 최순실의 약점을 이용해 뭔가 시도하다 실패한 사건일 뿐 탄핵소추 사유와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드러난 증거만으로는 어느 쪽이 맞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에 제기된 여러 혐의 중 상당 부분이 고씨 측 폭로가 발단이 된 것은 사실이다. 최씨 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법원에서 사실관계 다툼이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고씨 측 폭로의 의도와 진실성을 검증하는 것은 최종적 진실 규명에 있어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그런데 검찰이 "사건과 별 상관없다"며 넘긴 녹취록 외 나머지 녹음 파일에서 고씨 등이 증거 인멸을 의논한 흔적이 발견되는 등 수사 신뢰성까지 의심받고 있다. 이 의혹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는 탄핵심판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7. 만시지탄 자율주행차, 핵심은 생태계 조성이다

국토교통부가 그제 2020년까지 부분적인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위해 법·제도를 정비해 나가겠다며 정책 로드맵을 제시했다. 현대자동차도 기존 자율차 조직을 통합 확대하고 GM에서 세계 최고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자율주행차 개발에 가속 페달을 밟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뒤늦게라도 자율주행차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본격 시동을 건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올해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의 주인공도 단연 자율주행차였다. 겉은 자동차지만 인공지능(AI), 센서, 초정밀지도, 빅데이터 처리, 클라우드컴퓨팅,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이 집약된 4차 산업혁명의 총아라 할 만하다. 자율주행차 비율은 2035년에는 75%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된다. 세계 각국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미래 성장성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2020년 목표로 하는 자율주행차 수준은 기술단계 중 '레벨3'로 돌발 상황에 대비해 운전자가 타고 있어야 하는 '조건부 자동화'다. 그런 점에서 완전한 자율주행차인 '무인주행차'를 꿈꾸고 있는 구글, 도요타 등과 격차가 상당히 크다. 2009년부터 '자율주행차 프로젝트'를 시작한 구글의 누적 주행거리는 지난해 10월 기준 200만마일(약 322만㎞)을 돌파했다.



도요타는 구글의 하도급 업체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지난해부터 자율주행 AI에 1조원 이상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 7년여간 구글이 축적한 기술이나 2020년 도쿄올림픽을 정조준해 투자에 나선 일본을 한번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겠지만 최대한 속도를 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주도해 시장을 끌고 가려고 해선 안 된다. 핵심은 생태계 구축이다. 도로 인프라 구축과 더불어 대학과 공공기술연구소의 협업, 기존 자동차 업체와 전기전자, 통신 보안, 디지털맵, 노변 장치, 빅데이터 등 중소 업체들의 기술 융합이 가능한 개방형 산업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조율과 지원이다. 구글, 도요타 등의 무인화 추세에 적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산업 생태계 주체간 협력을 유도하고 신기술과 충돌하는 규제부터 선제적으로 걷어내야 한다.



[서울신문]

8. 김정남 피살, 극에 이른 김정은 공포 정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그제 오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집권 후 김정남이 북한의 권력 세습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 안정을 위해 이복형을 암살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김정남이 현지에서 여성 간첩 2명의 독침으로 살해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북한 전문가들은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의 직접 지시나 승인 없이 이복형의 제거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의 소환 명령에 불응에 살해됐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해외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북한군 내 정찰총국이나 보위부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야 하지만 김정남의 죽음은 김정은 정권의 공포정치와 숙청 통치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김정남은 처형된 장성택 등과 함께 북한의 개혁·개방을 지지했던 인물로서 김정은 체제에 비판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아 해외에서 여러 차례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김정남 제거가 중국을 향한 메시지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은 그동안 ‘백두혈통’으로 개혁·개방 정책에 우호적인 김정남을 음으로 양으로 돌보면서 북한 권력 내부의 변고에 대비해 왔다. 대표적인 친중파였던 장성택을 전격 처형할 당시에도 김정남과의 연계설이 끊이지 않았다.

김정남은 김정일과 본처 성혜림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오랫동안 권력 승계 수업을 받았던 인물이다. 1990년 조선컴퓨터센터(KCC) 설립을 주도하면서 정보기술(IT) 분야와 군사 분야의 주요 직책을 맡았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성격과 돌출 행동 때문에 김정일 눈 밖에 났고 2001년 5월 도미니카 가짜 여권을 소지한 채 일본에 입국하려다 체포·추방된 이후 권력에서 밀려났다.

김정은의 공포정치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자신의 3대 세습정권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은 가차없이 제거해 왔다. 군부 실세로 꼽히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을 시작으로 김정일 장례식 때 영구차를 호위했던 김정각 등 ‘군부 4인방’도 숙청됐다. 권력 2인자이자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2013년 12월에 전격 처형해 국제적인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후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재판 절차도 없이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했고 김용진 내각 부총리 역시 불량한 자세로 앉았다는 이유로 처형해 공포정치를 이어 가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이 최근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 도발이나 김정남 암살처럼 앞으로도 가공할 모험주의적 도발을 집요하게 펼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당장 지난해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등 고위급 탈북자들에 대한 신변보호를 강화하는 것도 급선무다. 북한의 호전적인 도발에 대해 정부 당국은 국제사회와 긴밀한 공조가 시급하다.



[세계일보]

9. 헌재 출석 우습게 여기는 안봉근·고영태

국정농단 사태 핵심 증인들의 헌법재판소 우롱이 도를 넘고 있다. ‘문고리 3인방’ 중 1명인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어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에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5일과 19일에도 뚜렷한 사유를 밝히지 않고 증인 출석을 거부했다. 어제 탄핵심판 13차 변론에선 증인 4명 중 3명이 불참했다. 헌재는 불출석자들에 대한 증인 채택을 취소했다. 

박 대통령 역시 두 차례나 헌재 출석 요구를 거부했다. 비선실세 최순실씨는 물론이고 정호성 전 비서관도 어김없이 불출석한 전력이 있다. 이재만 전 비서관의 경우 헌재가 경찰에 소재 탐지까지 요청했으나 결국 출석요구서를 전달하지 못한 상태다. 무더기 증인 신청과 특검 소환조사 거부 등처럼 지연작전의 일환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최씨의 비리를 폭로한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의 행태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고씨는 거주지 불명상태를 유지하면서 헌재의 증인출석 요구서 수령 자체를 거부해 왔다. 헌재가 고씨의 증인 출석이 점쳐진 형사법정에 직원들을 보내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지난해 말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해 국회 청문회 출석 요구를 피했던 방식 그대로다.



고씨는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함께 최씨를 도운 핵심인물로 국정농단 전모 파악에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다. 그런데도 잠적 상태에서 특검과 연락 채널만 열어놓고선 헌재 출석을 피하고 있으니 떳떳하지 못하다. 태극기 집회 현장에서는 고씨도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구호가 나오고 있다.

헌재의 탄핵심판은 현직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짓는 국가 중대사다. 공정한 결정을 위해선 사실관계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런 판국에 핵심 증인들이 줄줄이 증언을 거부한다면 진실 규명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증인의 헌재 출석을 담보할 수 있는 법제 정비가 시급하다. 물론 헌법재판소법 심판 규칙상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는 증인은 강제구인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불출석 사유서 제출에 대한 시한이 없다 보니 변론 개시를 바로 앞두고 사유서를 내더라도 실질적으로 구인영장을 발부하기가 쉽지 않다. ‘국회에서의 증언 및 감정에 관한 법률’에 비해 형량이 낮은 불출석 증인에 대한 처벌 조항도 손질할 필요가 있다.



[매일신문]

10. 구제역 난리통에 도박판, 나사 빠진 공무원

온 나라가 구제역으로 난리통인 와중에 축산 농가가 많은 안동지역 간부 공무원이 도박판을 벌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구제역 방역 업무를 지휘해야 할 면장과 축산 관련 부서 간부가 포함돼 있어 어처구니가 없다.



지난 12일 안동시 간부 공무원이 건설업자 등과 180만원대 도박을 벌이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단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이날 오후 6시부터 4시간 동안 속칭 ‘훌라’ 카드 도박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공무원 중에는 면장과 축산 관련 부서 계장이 포함돼 있었다. 구제역으로 안동시 전 공무원 비상근무 명령이 떨어진 상황에서 구제역 방역 관련 부서 간부들이 한가롭게 도박을 했다는 점은 놀라울 정도다.



잘 알려졌다시피 안동시는 구제역 상흔이 깊게 팬 곳이다. 2010년 11월 발생한 구제역으로 지역 축산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방역 및 살처분 비상근무에 나섰던 공무원 3명이 과로로 숨지고 여성 공무원이 낙태를 겪는 등 물적`정신적 피해는 재앙 수준이었다. 충북 보은 등지에서의 구제역 발생 소식이 전해진 직후 안동시는 ‘구제역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전 공무원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다. 모든 농가를 대상으로 긴급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공무원들에게 방역소초 주`야간 3교대 근무 명령을 내렸다.



안동시는 결기를 보였지만 일부 간부 공무원은 일탈 행위를 벌였다. 구제역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안동시의 다짐은 결과적으로 구두선(口頭禪)이 돼버렸다. 일부 공무원의 부적절한 행동은 구제역 방제 업무로 고단한 대다수 공무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공무원에 대한 국민 불신을 낳는다.



문제는 더 있다. 청탁금지법 발효 이후 공무원들은 직무 관련자와 3만원 이상 식사를 하는 것 자체가 금지돼 있는데 어떻게 간부 공무원이 업자와 은밀한 장소에서 만나 도박판을 벌일 생각을 한 것인지 개탄스럽고도 석연찮다. 경찰은 도박이 일회성이었는지, 상습적이었는지 낱낱이 수사해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안동시도 경찰 수사를 토대로 엄중한 징계를 내려서 기강을 잡아야 할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머니투데이][우보세] 초콜릿을 특별하게 먹어야 하는 이유

5살 난 딸아이는 초콜릿을 보면 몸을 비튼다. 한 입만 먹여도 눈을 가늘게 뜨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 부부는 그런 아이를 보며 ‘취한 사람 같다’고 놀린다. 2600년 처음 초콜릿을 먹었다는 마야 사람들도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밸런타인데이 전날,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에서 초콜릿 두 개가 나왔다. 친구들이 줬단다. 1개는 곧바로 냉장고에 넣고 1개는 아이의 선물이라며 남편한테 줬다. 아이가 말없이 눈빛으로 아쉬움을 호소했지만, 무시했다. 초콜릿은 ‘착한 일을 했을 때의 보상’이자, ‘아주 특별한 날의 상징’으로 남겨둬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한테 습관 들이기에 초콜릿은 여러모로 부적합한 음식이다. 2000년대초 가나, 코트니부아르의 카카오 농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알려지면서 초콜릿 산업은 아동노동 착취산업이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그 후 초콜릿 제조업체들은 일명 ‘코코아 협약’을 맺었다. 이것이 서아프리카 아동노동 근절을 위한 ‘하킨-엥겔 협약’(Harkin-EngelProtocol)이다. 카카오를 공급받는 농장을 대상으로 아동노동 근절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고 감독, 개선을 지속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래도 가나, 코트니부아르에선 많은 아이들이 카카오 농장에서 일한다. 이 지역에선 온 가족이 일하지 않으면 생계 유지가 안 된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하루 평균 임금이 코트디부아르는 0.34달러, 가나는 0.45달러란다. 코트디부아르의 6인 가족 하루 평균 임금은 1달러에도 못 미친다. 먹고 살려면 부모들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대신 코코아 농장에 보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안전장비나 보호구 없이 코코아의 단단한 껍질을 벗기기 위한 큰 칼, 강력한 살충제 따위에 노출된다. 

전 세계 대부분의 초콜릿 제조업체들이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에서 코코아를 제공 받는다. 몇%일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가 편하게 살 수 있는 초콜릿엔 아동노동이 들어가 있다. 아이가 초콜릿 맛에 빠져 슈퍼마켓에 들어갈 때마다 ‘초콜릿 사줘’를 외친다면 난 매번 죄책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초콜릿은 특별한 날에 먹는 특별한 음식’이라는 편견을 주입해버렸다. 

실은 아동노동 없는 초콜릿을 먹이는 길이 있긴 하다. 아름다운커피나 아름다운가게,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 같은 공정무역업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주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배송에 걸리는 2~3일은 지금 당장 초콜릿을 먹기를 바라는 아이한테는 이해할 수 없이 긴 시간일 것이다. 초콜릿은 이래저래 내 아이의 일상엔 적합하지 않은 음식이다. 

공정무역 제품으로 한정해 말하자면, 초콜릿은 어른들한테는 특별하게 챙겨 먹을 만한 음식이다. 정기적으로 초콜릿을 먹는 사람들은 뇌졸중, 심장병 같은 성인병 발병 위험이 줄더라는 연구가 있다. 공정무역 카카오농장에서 일하는 어른들한테는 아이들을 학교를 보낼 만한 소득을 준다. 

이따위 소비자들의 사소한 고민, 강제성 없는 협약이 세상을 얼마나 바꿨으랴 싶어 국제노동기구(ILO) 홈페이지에서 아동노동 통계를 검색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노동하는 아동의 숫자는 2000년 2억4600여만 명에서 2012년 1억68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소녀들의 노동은 40%가 줄었다.



2. [서울신문][이호준의 시간여행] 난로가 있는 교실 풍경

한파가 한풀 꺾이면서 ‘봄’이라는 단어가 부쩍 자주 들린다. 하지만 봄은 결코 쉽사리 오지 않는다. 도시를 배회하는 찬바람은 여전히 옷섶을 헤치고, 따사로운 햇살은 남쪽 섬을 맴돈다. 돌아보면 한겨울보다는 봄이 오기 직전이 더 추웠다. 교실이나 군 내무반에서 난로를 땔 무렵이기 때문이다.

추억은 ‘과장’(誇張)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몇십 년 전의 겨울은 요즘보다 훨씬 더 추웠던 것 같다. 실제로 기온이 낮은 탓도 있겠지만 부실한 옷차림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지금도 칼날 같은 바람이 쌩쌩 부는 신작로를 달음박질치던 어린 날을 생각하면 몸이 옹송그려지고는 한다.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십리가 넘는 먼 길이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면 밤새 몸을 얼린 바람이 달려들어 뺨을 할퀴고는 했다.

방학이 끝난 이 무렵의 등굣길은 고통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아이들이야 눈구덩이 속에서도 끄떡없을 만큼 따뜻하게 입히지만 그때는 어림도 없었다. 조금 여유 있는 집 아이들이나 솜 누비옷에 내복이라도 입었지, 홑겹 옷으로 겨울을 견디는 아이들도 없지 않던 시절이었다.

학교에 도착해도, 유리창이 깨지거나 구멍이 숭숭 뚫린 교실은 한데보다 별로 나을 게 없었다.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얼른 난로를 피우는 것이었다. 조개탄을 타오는 것이 당번이 맨 먼저 할 일이었다. 저학년 아이들은 선생님이 대신해 주기도 했지만 일꾼 하나 몫을 하는 고학년들은 스스로 피워야 했다. 곱은 손을 호호 불며 양동이를 들고 창고로 가면 하루 분량의 장작과 조개탄을 나눠 줬다.

난로를 피울 땐 불쏘시개로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장작이 타오르면 조심스럽게 조개탄을 올린다. 조개탄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 교실에 조금씩 온기가 돈다. 아이들이 하나 둘 문을 열고 들어설 무렵이면 교실은 제법 훈훈해져 있었다. 난로가 달아오르면 주전자에서도 물이 펄펄 끓어올랐다.

난로와 떼어놓을 수 없는 ‘찰떡궁합’이 있었다. 바로 ‘벤또’라 부르던 도시락. 4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면, 선생님이 문을 나서기도 전에 아이들은 도시락을 꺼내 들고 부리나케 난로가로 달려갔다. 칠이 벗겨지고 찌그러진 도시락들이 난로의 열기를 흠뻑 품을 무렵에는 온갖 냄새의 향연이 펼쳐졌다. 반찬째 올려놓은 도시락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 밥이 눌어붙는 구수한 냄새….



그 냄새들은 아이들의 뼈에 새겨져 어른이 될 때까지 추억이 되고 그리움이 됐다. 그렇게 겨울을 난 아이들은 꽃이 필 무렵이면 초겨울에 새로 입은 바지가 발목까지 올라올 만큼 훌쩍 자라 있고는 했다.

지금도 어쩌다 만나는 드럼통 난로나 시골 이발소를 지키고 있는 무쇠난로 앞에 서면 마음부터 훈훈해진다. 이어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리던 어릴 적 친구들이 떠오른다. 빨간 손 호호 불며 난로를 피우던 아이, 난로에 가래떡이나 고구마를 올려놓고 침을 삼키던 아이. 하나뿐인 나일론 양말을 말리다가 호르르 태워 먹고 울먹이던 아이….

얼마나 아름다운 날이었던지. 보석은 보석함이 아니라 가슴에서 빛나는 법이다. 그때마다 생각하고는 한다. 추위에 노출될 새도 없이 온실 속에서 자라는 요즘 아이들의 겨울은 무슨 추억으로 채색될까. 찬바람에 뺨 한 번 붉힐 새 없이 보내는 겨울이 무조건 행복한 것일까. 끝내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3. [경향신문][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당신의 글은 참 좋았습니다

그곳에 그는 없었다. 그는 그곳에 당당히 있어야 했다. 그의 작품이 상을 받아서 북 콘서트가 열린 자리였으니까.

7년 전 그를 처음 봤던 곳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상식 자리였다. 오래되어 언저리만 남은 희미한 기억 속에서 스물다섯 살의 그는 쑥스러워하며 배시시 웃는 모습이다. 취업을 하지 못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첫 작품으로 상을 탄 그는 담담했다. 첫 발걸음을 뗀 그의 모습은 금방 잊혔다. 그가 그 뒤로 세상에 내놓은 작품은 얼굴 붉히는 볼 빨간 이십대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폭력 앞에 무참히 짓밟히고 깊은 절망에 빠진 소년의 이야기를 밑바닥까지 끌고 내려간 작품에서 그는 분노한 소년이었고, 평생 농사를 짓다가 상경해서 대학교 청소노동자가 된 노인의 이야기를 넉살 좋게 풀어 놓은 작품 속에서 그는 모진 풍파를 이겨낸 위풍당당한 할머니였다. 세상을 관조하며 인간 군상의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날카롭게 읽어내는 그의 노련함이 놀라웠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쓴 걸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는 사람을 통 만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그를 만나는 편집자만이 간간이 소식을 전해줬다. 그의 안부는 한결같았다. 쓰고, 또 쓰고 그리고 쓰고 있었다. 그래서 다행이다 싶었다. 젊은 작가는 그렇게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겠구나. 그가 묵묵히 걷고 있는 곳이 거대한 도시인지, 광활한 우주인지, 무엇인지 작품을 통해 알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는 작년에 원고지로 3000장이나 되는 긴 작품을 썼다. 묵직한 책을 받고는 도무지 작가의 얼굴이 짐작되지 않았다. 경구처럼 잇닿는 문장과 무섭게 파고드는 집요한 인물들 속에서 그는 어디쯤 있는 걸까. 궁금해도 그를 만나 물어볼 수는 없으려니 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를 만날 줄 알았다.

그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북 콘서트가 치러지는 날, 그의 빈자리가 가슴 아팠다. 그의 작품을 얘기하고 작품 속 문장을 읽으면서 그의 부재가 와 닿았다. 나는 그에게 당신 글이 참 좋다는 말을 끝내 못하고 말았다.



폭력 앞에 무참히 짓밟히고 깊은 절망에 빠진 소년의 이야기를 밑바닥까지 끌고 내려간 작품에서 그는 분노한 소년이었고, 평생 농사를 짓다가 상경해서 대학교 청소노동자가 된 노인의 이야기를 넉살 좋게 풀어 놓은 작품 속에서 그는 모진 풍파를 이겨낸 위풍당당한 할머니였다. 세상을 관조하며 인간 군상의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날카롭게 읽어내는 그의 노련함이 놀라웠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쓴 걸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는 사람을 통 만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그를 만나는 편집자만이 간간이 소식을 전해줬다. 그의 안부는 한결같았다. 쓰고, 또 쓰고 그리고 쓰고 있었다. 그래서 다행이다 싶었다. 젊은 작가는 그렇게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겠구나. 그가 묵묵히 걷고 있는 곳이 거대한 도시인지, 광활한 우주인지, 무엇인지 작품을 통해 알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는 작년에 원고지로 3000장이나 되는 긴 작품을 썼다. 묵직한 책을 받고는 도무지 작가의 얼굴이 짐작되지 않았다. 경구처럼 잇닿는 문장과 무섭게 파고드는 집요한 인물들 속에서 그는 어디쯤 있는 걸까. 궁금해도 그를 만나 물어볼 수는 없으려니 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를 만날 줄 알았다.

그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북 콘서트가 치러지는 날, 그의 빈자리가 가슴 아팠다. 그의 작품을 얘기하고 작품 속 문장을 읽으면서 그의 부재가 와 닿았다. 나는 그에게 당신 글이 참 좋다는 말을 끝내 못하고 말았다.



4. [매일신문][매일춘추] 정월대보름

한 무리의 걸립패가 들이닥쳤다. 새끼줄을 매단, 깃대를 든 남정네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나는 얼른 방방이 문을 열어젖힌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도 들뜬 표정으로 방문을 연다.



우리 집에 언제 이렇게 많은 이웃이 왔었던가. 사람 사는 집에, 사람 소리가 나야 제대로 된 집이라던 이웃 어르신들의 말씀처럼, 우리 집은 지금 흥에 겨워 있다. 열댓 명 남짓한 걸립패가 들어서니 온 집안이 야단법석이다.



우리 집은 지금, 정초에는 온 집안을 한바탕 떠들썩하게 해야 바깥의 액운이 집 안으로 미치지 못한다는 세시풍속을 치르는 중이다. 
징과 북, 꽹과리 소리가 땅과 하늘까지 닿도록 거하게 놀고서야 멈췄다. 상쇠가 거실에 차려진 제상 앞으로 나온다. 대주인 남편이 쌀 그릇에 꽂힌 초에 불을 붙이고, 두어 번 절을 올리자 상쇠의 고사축원이 이어진다. 한 해 동안 이 집안에 액운이 들지 않도록 좋은 기운을 북돋아 달라며 터줏대감과 여러 신에게 고하는 말인 듯싶다.



고사축원이 끝나자 다시 요란하게 풍물이 시작되고, 남편은 쌀과 봉투 하나를 새끼줄에 엮는다. 물이 오른 걸립패들은 거실을 몇 바퀴 돌고서 큰방, 작은방, 부엌, 화장실, 창고까지 온 집안을 벌집 쑤시듯 휘저은 후에야 대문을 나선다. 오랜만에 집안에 화색이 돈다. 간소한 상차림과 간소한 의식 속에 우리의 일 년 치 액막이가 모두 해결되었으리라.



양말 공장에서는 양말 두어 묶음을, 과일상회에서는 과일 몇 소쿠리를, 노령연금을 받아 근근이 생활하는 노인은 천원짜리 지폐 두어 장을 내어 놓고 걸립패들을 불러 액막이굿을 했다.



걸립패들은 액막이굿을 원하는 집이면 일정한 금도 없이 어디든 찾아들었다. 온 종일 이집저집 신명나는 소리로 동네가 들썩였다. 까마득히 먼 옛날의 ‘쓰잘데기 없는 미신’ 즈음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액막이를 했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은, 일 년 내내 한결 가볍고 평안하리라.



문명의 밝은 불빛 아래 사는 우리. 우리는 살면서 과연 얼마나 달을 올려다볼까. 바쁘고 지친 삶 속에, 우리의 어머니들이 그토록 간절히 소원을 빌던 보름달의 의미를 우리는 얼마나 알까. 선조는 또 하나의 명절로 여겼다던 정월 대보름. 비록 그 의미는 바래지고 희석되었다지만, 문명의 뒷골목에선 아직도 세시풍속을 행하며 마음을 다잡는 소박한 이웃들이 있다.



삭막해진 세상 속에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고, 불안한 마음을 대신 풀어주는 액막이굿을 보며, 맑고 부드럽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조상의 메시지를 읽는다. 오늘은 이웃들과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가가호호 인사를 나누었던 것 같다.



나는 질문이 많아진 작은아이를 업고 도란도란 정월 대보름을 이야기한다. “망월(望月)이야~ 망월이야~ 망월이야~” 빈 하늘을 향해, 21세기 아이가 목청껏 외치고 있다.



5. [아시아경제][초동여담] 막걸리와 좋은 소식

"주종(酒種)은 가리지 않습니다." 어쩌다 저녁 자리에서 어떤 술을 좋아하냐고 상대방이 묻는 경우 곧잘 하는 답이었다. 제법 주당인 양 호방하게 보이고 싶어서다. 그러면 대개는 소주나 맥주를 시키기 마련이지만 사실 가장 선호하는 술은 막걸리다.



막걸리를 마시자면 왠지 비라도 내려야 할 거 같고, 파전이라도 부쳐야 어울리겠는 생각이 언뜻 든다. 하지만 종종 찾다 보니 막걸리만큼 아무 것에나 잘 어울리는 술이 있을까 싶었다. 본디 곡기를 대신하는 술이다 보니 그저 반찬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술상을 차릴 수 있었고 과해도 다음날 속이 부대끼는 일이 적었기 때문이다.

막걸리의 다양한 종류에도 관심이 생겨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막걸리를 늘 경험하곤 했다. 그렇다고 각 지역 양조장을 꿰고 그 특징과 맛을 구분할 수준에는 미치지는 못한다. 막걸리 전문점에서 짐짓 다 안다는 듯이 "송막 주세요" 하는 정도다.

송막은 전라북도 정읍의 한 양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 이름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감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 깨끗한 맛이 특징이다. 막걸리계의 평양냉면이랄까. 하지만 서울서 취급하는 곳은 드물고 있더라도 가게에서 주문하면 가격이 제법 나간다. 막걸리는 자고로 벌컥벌컥 마셔야 한다고 배웠는데 더 시키고 싶어도 계산하는 사람 눈치가 여간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제대로 맛을 보기 위해선 양조장에서 직접 주문해 먹어야겠다는 장한 생각에 이르게 됐다.

문제는 택배로 받아 볼 수 있는 최소 단위가 한 상자, 스무 병이라는 점이다. 한 병에 900㎖, 생막걸리니까 10일 안에 먹어야 한다. 잔치라도 벌일 생각이 아니라면 엄두가 나지 않는 양이다. 하지만 삶은 늘 잔치 같아야 하니까. 머뭇거리다 어느 날 기어코 주문을 하고야 말았다.

냉장고 한 칸을 다 비우고 갓 만들어 배송된 생막걸리 스무 병을 차곡히 채우는 기분은 해 본 사람만 안다. 옛날 곳간에 쌀가마깨나 쌓아 본 부농의 마음이 이럴까. 바라만 봐도 든든해 자꾸 냉장고 문을 열게 된다. 그렇게 10여 일 동안 냉장고 문을 여닫으며 돼지고기를 삶고, 묵은 김치를 썰었다. 두릅을 데치고 감자전도 부쳐 가족들과, 친구, 선배, 후배들과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선물도 했고, 주말여행을 갈 때 들고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막걸리는 더없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껏 시킬 수밖에 없어 여럿이 나눠야 해 더욱 돈독해지는 관계, 이런 것을 말 하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좋은 소식, 화장실 가고 싶을 때 "소식이 온다"고 말하는 바로 그 소식 얘기다. 잘 발효됐기 때문인지, 유산균이 워낙 많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막걸리를 마신 다음날 화장실에 가 일을 보면 관장이라도 한 것처럼 속이 개운했다. 경험한 사람은 안다. 축복의 양은 체중이 감소한 것이 아닐까 우려될 정도였다.

올해 정월대보름을 맞아 '귀밝이술'로 막걸리를 주문한 것도 좋은 소식 때문이었다. 이번엔 울산에 있는 한 양조장에서 손으로 빚는다는 막걸리를 선택했다. 한 병에 요구르트 100병 분량의 유산균이 들어 있다는 말에 혹했다. 정월대보름의 귀밝이술은 귀가 밝아지라는, 그래서 한 해 동안 좋은 소식만을 들으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한다. 마시면서 기원했다. 정말 올해는 좋은 소식만 듣기를, 숙변 같은 이 정국 깨끗이 내려 보내는 좋은 소식만 들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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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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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서울신문]

1. 감동 없는 ‘자유한국당’의 새 출발

새누리당이 어제 상임전국위원회를 열고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새로운 출발에 나섰다. 하지만 국민 눈에는 ‘그 나물에 그 밥’으로 감동을 주기는커녕 관심을 끌기에도 역부족이었다. 건강하고 합리적인 보수 세력들을 품을 보수 정당으로서의 새로운 면모라기보다는 ‘박근혜 흔적 지우기’에 급급한 것으로 비친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새누리당은 창당 이래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바꾼 당명을 5년 만에 폐기 처분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만신창이 신세가 됐다. 지금 판세로는 차기 대선의 승리는 언감생심이고, 향후 당의 존립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박근혜당’의 색채를 털어 내고자 고육지책으로 당명 교체라는 응급조치를 취했으나 앞으로 한국당의 위기탈출 여부는 오로지 당이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려면 무엇보다 최순실 사태에서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참회가 선행돼야 한다. 오늘부터 과거 ‘천막 당사’의 정신을 계승해 ‘버스 당사’를 운행해 당 지도부와 대선 주자들이 전국을 돌며 ‘반성 투어’를 하겠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취한 행보일 게다.



하지만 이인제 전 의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 새누리당 대선 주자들을 비롯해 윤상현, 조현진, 김진태 등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박 대통령 탄핵 반대를 주장하며 엇박자를 내고 있다. 탄핵 정국에 숨죽여 있다가 태극기 민심에 올라타 보수층 결집으로 당의 지지율을 올려 보겠다는 꼼수에 보수의 품격이라고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

지금 보수 세력은 찍을 만한 대선 후보나 정당이 없어 고민이다. 새누리당에서 뛰쳐나간 바른정당 역시 개혁 보수를 표방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한국당이라도 건전한 보수 세력의 마음을 붙잡도록 환골탈태해야 하거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야당에서 당명 교체를 두고 “호박에 줄 긋기이고, 도로 친박당일 뿐”이라며 비웃을 만하다.



당명 교체가 수세에 몰린 국면 타개를 위한 정치적 카드가 아니라 백년 지속 가능한 보수 정당으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 되려면 보수 정당의 정체성 재확립, 웰빙당의 체질 개선, 패거리 정치 등 적폐 청산이 이뤄져야 한다. 개혁·혁신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보여 줘야 한다.



2. ‘북극성 2형’ 위협에도 中 사드 보복 계속할 텐가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기존 시스템의 개량형 정도로 분석했던 우리 군은 어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기술을 적용한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이라고 밝혔다.

북한 매체들도 ‘북극성 2형’의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면서 고체 연료와 이동식 발사 차량을 이용한 ‘새로운 전략무기 체계’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아직 명확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북한이 새롭게 개발하고 있는 탄도미사일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련이자 숙제를 던진 것이다. 우리 군의 분석이 맞다면 SLBM 기술은 우리의 북핵·미사일 방어 체계인 ‘킬체인’을 비롯한 한국형미사일방어(KAMD)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 킬체인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지, 이동식 미사일 탑재 차량 등을 탐지하고 타격 무기를 선정해 발사 전 타격하는 시스템이다.

사전에 탐지할 수 있는 액체 연료 주입 절차가 없어서 은폐, 엄폐할 수 있는 장소에서 이동식 발사 차량으로 탄도미사일을 쏘면 속수무책이다. 더욱이 북한은 100여대의 이동식 발사 차량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위협 수준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북한 탄도미사일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 탐지 요격 능력을 키우려면 정찰위성을 조기 전력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탄력을 받는 이유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북한의 새로운 도발로 사드 배치 명분이 강화되는 반면 중국의 반대 논리가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북극성 2형의 추정 사거리는 2500~3000㎞ 정도로 이 미사일의 시험발사 당시 최대 속도가 마하 10(음속의 10배)으로 분석됐다.

현재 한국군과 주한 미군이 보유한 요격 체계인 패트리엇 시스템으로 요격이 불가능하다. 사드의 경우 마하 8의 속도로 요격할 수 있고 정면으로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은 마하 14까지 대응할 수 있다고 한다.

중국 당국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며 한류 금지령을 시작으로 양국 항공업계에 전세기 운항을 불허했고 비관세 장벽을 통해 한국산 제품의 중국 내 판매를 억제하고 있다. 이번 설 연휴에 중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어든 것도 같은 이유다. 중국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활용해 미·일 군사동맹과 대항하는 것은 자국의 국익을 위한 안보 전략이라고 하더라도 사드 배치 결정을 이유로 한국을 압박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느슨하게 관리하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간접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비난에도 자유로울 수 없다. 중국의 언론 매체들도 “북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사드 배치에 명분을 줄 것”이라고 했지 않은가. 북한의 도발에 대해 국제적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중국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운운하는 것은 누가 봐도 이율배반적이다.



3. 기업이 청년 고용 늘리도록 멍석부터 깔아 줘야

청년실업률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5∼24세 청년실업률은 10.7%로 전년보다 0.2% 포인트 상승했다. 청년실업률이 통계로 작성된 2000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다. 미국(10.4%)보다 높고 일본(5.2%)의 두 배 수준이다.



OECD 35개 회원국 중 최근 3년 연속 청년실업률이 오른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6개 나라뿐이다. 특히 니트족, 비자발적 정규직 등을 포함하면 체감 청년실업률은 통계청 수치보다 훨씬 높다. 이러다가는 그리스, 스페인 등 일부 남유럽 국가들처럼 고질적인 청년 실업 국가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실제로 청년실업률은 2000년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런 나쁜 흐름에 제동을 걸 만한 뚜렷한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해운·조선을 비롯해 산업계 전반에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에다 대선을 앞두고 기업들이 잔뜩 몸을 사리고 있어서 당분간 고용 한파는 계속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부의 대책이라고 해 봐야 일자리 창출이 아닌 일자리 나누기에 집중돼 있고, 대선 주자들이 저마다 일자리 대통령을 강조하고 있지만 내놓는 해법이라는 것이 지극히 원론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청년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있다. 청년 일자리는 누누이 강조했지만 경기 활성화를 통한 민간 부문에서 창출하는 것이 정석이다.



투자가 바탕이 돼야 일자리가 나오는 법이다.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과 당근책을 확대해야 한다. 미국이 최악의 청년취업률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도 민간 기업이 고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를 타고 있지만 우리만 낙오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시적일지라도 법인세 인하 같은 특단의 대책도 검토할 만하다.

청년 실업 문제는 국가 미래를 위한 중대한 과제다. 정부와 정치권은 청년 실업 문제를 국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특히 대선 주자들은 선거 때 잠깐 표만 얻고 보자는 포퓰리즘적, 단기적 처방으로는 이 난제를 풀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실현 가능하고 실효성 있는 공약으로 검증을 받아야 하며, 이를 통해 수권 능력을 보여 줘야 한다.



청년 취업률과 취업의 질을 높이려면 제대로 된 체감실업률을 바탕으로 청년층의 목소리를 고용 정책에 담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 또한 위기를 기회로 삼아 우리 산업과 고용시장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



[이데일리]

4. 증폭되는 ‘4월 위기설’ 심상치 않다

항간에 ‘4월 위기설’이 증폭되고 있다. 미국이 오는 4월 발표하는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고, 대우조선해양이 4월로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를 갚지 못해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우리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정부는 “근거가 불확실한 시나리오”라는 입장이지만 대내외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에서 위기가 현실화하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스러운 게 사실이다.

위기설의 배경 자체가 그리 간단치 않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중국, 독일, 일본과 함께 한국을 잠재적 제재대상으로 지정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엄포도 비슷하다. 그런 만큼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다분하며. 그렇게 될 경우 우리에게도 불똥이 튈 우려가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대우조선이 처한 상황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4월 만기되는 회사채 4400억원은 어떻게든 막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오는 7월(3000억원)과 11월(2000억원)에도 계속 만기분이 다가오고 있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최근 자금지원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근본적인 유동성 해결책은 쉽지가 않다.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인 셈이다. 게다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가능성, 중국의 사드 보복, 소비절벽 등이 맞물려 위기설은 점차 확대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정부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수출이 지난달로 3달 연속 늘어나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경상수지도 지난해 12월 기준 58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게 근거다. 외환보유액도 1월 말 현재 3740억 4000만 달러로 넉넉한 편이다. 따라서 위기설에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기는 하지만 너무 안이한 판단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경제는 심리다. 위기설로 인한 심리적 불안이 시장의 혼란을 부채질해 실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우리 경제는 지금 대내외 악재가 겹쳐 조그만 외부 충격에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위기설에 대해 “걱정 말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만은 아니다.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별로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등 위험 요소에 선제적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5. 여야 '탄핵심판 승복' 합의 지켜본다

여야 정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에 승복하기로 합의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4당 원내대표가 어제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의 회동에서 이같이 결정했다는 것이다. 헌재에서 진행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인용이든 기각이든 어느 쪽으로 결론 내려지더라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이다. 헌재의 결정이 점차 가까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한편으로는 이처럼 서로 손을 맞잡고 약속을 해야 하는 모습에서 국론분열에 처한 우리 현실을 새삼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굳이 약속하지 않더라도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주말만 해도 서울 도심에서는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 민심’과 그에 맞불을 놓는 ‘태극기 민심’이 서로 대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느 쪽으로 결정이 내려지든지 간에 반대편은 불복종운동에 뛰어들 것이라는 우려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측 진영의 기세 다툼에 여야 정당이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소속 의원들은 물론 조기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일부 주자들까지 공개적으로 시위에 뛰어들고 있다. 심지어 시위참가를 독려하는 총동원령을 거론함으로써 헌재를 압박한 경우도 없지 않다. 당초 순수성을 인정받았던 시위대의 집단 의사가 갈수록 의심받게 된 것이 그런 결과다.

여야가 탄핵심판 결정에 승복키로 했다면 이번 주말 집회부터 참석을 자제해야 한다. ‘촛불 집회’든 ‘태극기 집회’든 시위에 가담한다는 자체가 헌재에 압력을 행사하려는 의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압력은 압력대로 넣으면서 그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헌재가 공정하고도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정치권은 물론 시위대도 상식적인 범위 안에서 자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헌재 결정에 따르겠다는 여야의 약속이 과연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감추기 어렵다. 그동안 굳게 약속을 해놓고도 자기에게 불리해지면 온갖 핑계를 들어 약속을 깬 사례가 적지 않은 탓이다. 기왕이면 약속의 확실한 담보를 위해 대선 출마 선언자들도 스스로 약속에 가담하기를 기대한다. 헌재의 결정도 중요하지만 그에 승복하려는 분위기에 따라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6. 北 신형 미사일 사드만 요격 가능, 대선 주자들 입장 뭔가

북한이 12일 발사한 신형 탄도미사일은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을 육상 발사형으로 개량한 것으로 드러났다. 군사적으로 효용성이 더 높은 고체연료를 쓴다. 북한이 이를 고각(高角) 발사할 경우 남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으며 탄두 낙하 속도가 마하 10에 달해 우리 군과 주한 미군이 보유한 패트리엇3 체계로는 요격할 수 없다. 유일하게 사드만이 이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고도화하고 다양화하자 지난해 7월 사드를 신속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야당에서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논리로 반대하면서 올해 배치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들이 사드에 대해선 여전히 부정적 논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사드 배치 '재검토와 공론화'를 주장하다가 최근엔 차기 정부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한·미 협상을 통해 결정된 것은 존중한다"면서도 배치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사드 배치는 한·미가 사실상 종속 관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북핵·미사일을 외교 협상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하다.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대화가 성공하려면 북이 군사적 수단으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해야 한다. 김정은이 가진 미사일에 한·미가 완전히 무방비라면 타협할 리가 없다. 협상이 아닌 굴종을 요구하게 돼 있다. 외교는 군사적 대비가 된 뒤에 하는 것이다. 인류 갈등 역사에 예외가 없다.



이미 패트리엇으로는 북의 기존 노동급 미사일도 요격할 수 없다. 거기에 이번 신형까지 더해졌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한쪽은 무기를 계속해서 늘리는데 다른 한쪽은 무방비라는 것은 사실상 국방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은 핵도 미사일도 포기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는 "북에 10조달러를 줘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야당의 대선 주자들은 이 상황에서 사드에 대한 입장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유권자들은 이 중대한 안보 문제에 대한 대선 주자들의 입장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만 한다.



북이 신형 미사일을 발사하자 함께 있던 트럼프 미 대통령과 아베 일 총리는 현지 시각 밤 10시 35분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우리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 총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지 않았다. 황 총리는 안보실장에게 보고받고, 원래 일정대로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AI) 점검 회의에 참석했다.



총리실은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땐 NSC 의장인 대통령이 주재하고, 그 외에는 안보실장이 회의를 소집하는 지침을 따랐다고 했다. 평상시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 비상 상황이다. 대통령직은 비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미국은 정권 초반이다. 더구나 북의 이번 도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6차 핵실험의 예고편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엄중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북의 도발을 마치 남 일 쳐다보듯 하고 있다. 대선 주자들은 선거용 언급을 날리는 것으로 끝났다는 식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이 한반도 문제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듯한 정세가 펼쳐지고 있다. 모두 정신을 바로 차리지 않으면 권력을 잡아도 소용없는 사태가 닥칠 수 있다.



7. 자유한국당, 지지율 '0' 가까운 대선 주자가 10여명

새누리당이 13일 자유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만들었던 '새누리당' 당명은 5년 만에 폐기됐다.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반드시 보수 정권을 창출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선지 지금 자유한국당에선 대선 출마를 하겠다는 사람이 넘쳐난다. 출마 선언을 했거나 준비 중이라는 국회의원과 전·현직 광역단체장이 줄잡아 10여명이다.



대선 도전은 자유다. 하지만 그들 중 지지율이 8위권 내에 들어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제일 높은 사람이 1% 안팎이다. 출마 여부가 불확실한 황교안 총리를 제외하면 뚜렷한 경쟁자가 없는 지금 자유한국당이 마치 무주공산(無主空山)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심지어 정치 경험이 전무(全無)한 사람까지 나선다고 한다.



​충정(衷情)도 있겠으나 대부분 나름의 계산이 있다고 한다. 박 대통령 탄핵 심판의 결론이 어떤 식으로 나든 보수가 재결집할 것이니 지금 이름이라도 걸어놔야 그 이익의 한 조각이라도 먹을 수 있고 다음 총선, 지방선거 때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수의 부정적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만 같다.



​자유한국당은 지지율은 전성기의 4분의 1토막이 났지만 아직도 95명의 국회의원이 소속된 제2당이다. 바른정당과 함께 보수 정당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정당에서 들려오는 얘기는 무언가 희망적인 것은 없고 이상하거나 쓴웃음을 짓게 하는 것뿐이다. 두 보수 정당 모두 존재감마저 잃어가고 있다. 최순실 사태 이후 희생한 사람은 거의 없이 지금도 모두 제 살길 찾기에 바쁘다. 대통령부터 초선 의원까지 다 그러니 지지율 '0'의 보수 '잠룡'은 10여명이 아니라 더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8. 대통령 조사도 못하고 삼성에만 집착하는 특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어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다시 소환 조사했다. 특검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의 업무 수첩이 추가로 발견돼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 삼성그룹이 순환출자 해소 차원에서 처분해야 할 삼성SDI 보유의 삼성물산 주식을 1000만 주에서 500만 주로 줄여준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해 최순실 씨 딸에 대한 승마 지원 형태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구속영장 재청구를 검토 중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첫 구속영장 청구 당시 법원은 혐의 소명이 불충분하다고 봐 기각했다. 특검이 새 혐의를 추가했음에도 혐의가 더 소명됐는지는 의문이다. 삼성 측은 합병으로 중복 계상된 부분이 있어 처분할 주식은 500만 주라는 법무법인의 자문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영장기각 주요 사유였던 박 대통령 대면조사 미비도 달라진 것이 없다. 대



면조사 지연에 대한 책임이 어느 쪽이 크건 뇌물수수 혐의자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이재용 구속영장 발부에 집착하는 특검은 이달 말 1차 수사시한이 다가오고, 수사 연장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증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특검 내부에서도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는 리스크가 크다는 우려의 소리가 들린다. 재청구된 영장마저 기각된다면 특검은 무리한 표적수사를 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수사는 더욱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그럼에도 특검이 재청구를 검토하는 것은 이 부회장을 구속하면 사실상 박 대통령을 구속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둔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 기각된 영장을 범죄혐의가 더 소명됐다고 보기 어려운데 다시 청구하는 것은 집착에 가깝다. 특검이 뇌물죄를 확신하면 불구속으로 기소해 법정에서 다투면 된다.

특검은 이 부회장 외에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 등 서너 명의 고위임원까지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에 대해서만 영장이 발부돼도 삼성그룹의 조직적인 판단에 따라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소명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최근 촛불집회에서 이 부회장을 구속하고 청와대를 압수수색하라는 구호가 난무한다. 이 부회장의 첫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는 격렬한 인신공격에 시달렸다. 특검이 촛불집회에 기대 무리수를 둔다면 특검답지 못하다.



[중앙일보]

9. 미국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현재 트럼프 정부의 대부분 인사들은 북핵 문제에 대해 매우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상원 인준 청문회 당시 답변 자료에서 “북한은 역내 및 국제 안보에 최우선적 위협 중 하나”라고 명시했을뿐더러, 11일 상원 외교위 인준 청문회에서는 북한을 이란과 함께 미국의 적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나아가 그는 “군사적 위협부터 외교적 문호 개방까지 모든 옵션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사적 조치까지 고려한다는 점에서 틸러슨은 미국 정치계에서 확산되고 있는 북핵 시설 ‘선제타격론’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셈이다.



​'미친 개'(Mad Dog)라는 별명을 가진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역시 대북 선제타격론에 대해 “어떤 것도 논의 테이블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내정된 마이크 폼페오도 상원 정보위 인준 청문회에서 북한을 러시아·중국·테러리스트와 함께 4대 당면 위협으로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2000년 개혁당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북한 핵 원자로 시설에 대한 정밀타격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한반도 전쟁 위험성 등을 고려할 때 선제타격은 쉽지 않아 보인다. 틸러슨 장관은 ‘세컨더리 보이콧’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는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기관을 직접 제재하는 정책이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9월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물자를 거래했던 중국의 훙상그룹을 처벌한 바 있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북핵을 막기 위한 보다 현실적인 방안으로 꼽힌다.



[매일경제]

10. 우버 도입후 오히려 일자리 늘었다는 옥스퍼드대 연구

스마트폰 앱으로 택시기사와 승객을 연결해주는 우버가 도입되면서 일자리가 늘었다는 논문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마틴스쿨 연구진은 지난달 23일 발표한 논문에서 우버가 등장한 이후인 2010년부터 2012년까지 회사 택시 공급은 8%, 개인택시 공급은 45%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일자리도 늘었다는 주장인데 우버 같은 공유경제가 기존 산업을 위협하며 고용을 축소할 것이라는 우려와 상반된 결과다. 이번 연구는 공유경제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 창출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표준화된 제품을 대량생산해 싸게 공급하는 기존 시스템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구글과 GE,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인공지능(AI)과 로봇, 사물인터넷(IoT)과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신기술 개발과 혁신 벤처기업 인수·합병(M&A)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는 것도 지속적인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저성장에서 탈출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우리도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와 기득권층의 반발로 혁신 기술과 제품, 서비스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버만 해도 택시업계 반발과 운수사업법으로 영업에 제한을 받고 있다.

자율주행차나 드론은 안전과 보안 관련 규제에 묶여 중국 등과의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고, 의료용 로봇은 세계 3위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공산품으로 분류돼 시장 선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환자에게 편익을 주는 원격진료도 사정은 비슷하다. 4차 산업혁명의 속도를 빨리 따라잡아도 모자랄 판에 규제 때문에 혁신이 지연되고 신규 일자리를 막는 꼴이니 답답할 뿐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낡은 것을 고집하면 결국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승리자가 되려면 이제부터라도 안 되는 것만 규정하고 나머지는 풀어주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저성장 터널에서 벗어나 꽉 막힌 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주요신문칼럼



​1. [매일경제][매경프리미엄]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치밀하고도 지적인 복수

첫 시퀀스부터 압도적이다. 예술적인 동시에 충격적인 비주얼은 ‘녹터널 애니멀스’가 톰 포드의 연출작임을 명징하게 확인시켜준다. 핏빛 가득한 첫 신의 끝자락에 비춰지는 아름다운 여인, 수잔. 그녀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이 상징적인 시퀀스는 앞으로 닥칠 사건들을 암시한다.

사업가로 성공한데다, 부유하며 잘생기고 능력있는 남편을 둔 수잔. 하지만 그녀는 지금 한없이 외로운 상태에 처해있다.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으로 보여지지만, 정작 그녀의 내면은 공허하다. 어느날 그녀에게 헤어진 연인, 에드워드로부터 소포 하나가 도착한다. 바로 그의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다.

소설의 줄거리는 끔찍하고 잔혹하다. 소설의 기획부터 이것이 수잔의 손에 쥐어지기까지의 과정은 수잔에 대한 에드워드의 치밀한 복수다. 에드워드와 수잔은 깊이 사랑했지만 이별했다. 물론 이별의 원인을 일방에서 찾을 수만은 없지만 결정적인 이별의 원인은 수잔에 있다.

소설을 통한 지적인 복수는 수잔에게 심장을 후벼파는 공포를 선사한다. 가히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며 연신 놀라는 수잔. 하지만 소설 속 살인마들만이 잔혹한 악인이며 가해자일까? 에드워드에게 씻을 수 없는 잔혹한 이별을 안겨준 수잔은 소설 속 살인마들보다 괜찮은 인물이라 할 수 있을까?

‘녹터널 애니멀스’가 긴장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소설 안팎을 넘나드는 속도감 있는 연출이다. 더하여 캐릭터들 간의 연계성을 자연스럽게 상징화한 것도 인상적이다. 에드워드가 선택한 치밀하고도 지적인 복수처럼, 영상미 역시 우아하다. 수잔이 감상하는 예술 작품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부여돼 있다.

이 영화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시사적이다. 사랑을 비롯한 관계성이 상대적으로 헐거워진 현 시대를 풍자하는 ‘녹터널 애니멀스’는 관객들에게 '당신 역시 야생 동물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수잔이 뼈저리게 느낀 것처럼, 관객들도 영화 속 소설을 통해 성찰의 기회를 얻게 된다. 잔혹하고 끔찍한 방식으로 풀어낸 멜로드라마. 이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보길 권한다.



2. [한국일보][삶과 문화] 물건들

한밤중에 고속도로 휴게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인형 뽑는 기계가 놓여 있었다. 투명한 통 밑바닥에 인형들이 겹겹이 깔려 있고, 버튼을 눌러 조종하면 아래위 양 옆으로 움직이는 갈고리가 매달려 있는 기계. 나는 좀 난데없다는 생각을 하며 인형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엎어져 있거나 널브러져 있는 노랑, 분홍, 파랑 봉제 인형들은 대체로 동그란 눈에 펑퍼짐한 코를 지녔다. 입은 대부분 달려 있지 않지만, 입이 있는 것들은 모두 입 꼬리를 끌어 올린 채 영혼 없이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평일 밤 늦은 시각이라 휴게실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특유의 시끄러운 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불이 꺼져 있는 구역도 있었다. 

그때 소풍이라도 갔다 온 것처럼 들떠 보이는 두 사람이 나타났다. 부스럭거리며 지폐 한 장을 기계에 집어넣었다. 그들은 어느 인형을 뽑을 것인지 갈고리를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 의논하면서, 깔깔거리기도 하고 짧은 탄성을 내지르기도 하면서, 한 동안 기계에 매달려 있었다. 인형을 잡거나 떨어뜨릴 때마다 나도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았다. 마침내 두 사람의 환호성과 함께 인형 하나가 출구로 굴러 나왔다. 커피를 다 마신 구경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인형 기계 근처 탁자 위에 곰인지 토끼인지 혹은 고양이인지 알 수 없는 분홍색 물건이 놓여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아까 기계에서 뽑혀 나온 인형이 틀림없었다. 왜 두고 갔을까? 화장실 가는 길에 웃음 섞인 말소리를 얼핏 들었던 것도 같다. 너무 못 생겼어... 짝퉁이잖아... 그래도 함께 애쓰며 즐거워하던 시간의 흔적인데 설마 두고 갔을까. 혹시 잃어버린 건 아닐까?



손을 뻗어 인형을 만져보려다 그만 두었다. 가져갈 생각도 없는 사람의 손을 타봤자 인형으로서는 두 번 버림받는 꼴이다. 걸어가다가 인형 뽑는 기계를 돌아보았다. 투명한 벽 너머 환한 불빛 아래 앉아 있고 고꾸라져 있는 인형들. 세상에는 물건들이 너무 많다.

그날 방문했던 집에서 본 물건이 떠올랐다. 집 주인의 어머니가 쓰던 낡은 반닫이였는데, 장식이 거의 없고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소박한 물건이었다. 집 주인은 자기가 어렸을 때 반닫이에 자꾸 낙서를 해서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곤 했는데, 낙서를 지운 흔적이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 있어서 이따금 만져보기도 하고 들여다보기도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잠시 어지러웠다.



먼 옛날 누군가가 어떤 물건에 남긴 흔적이, 그 속에 영혼처럼 스며든 이야기가, 겹겹이 쌓인 시간의 결이 해일처럼 내게 밀어 닥쳤다. “저 속에는 우리 집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만 넣어두었지요. 어머니께 소중한 것, 나에게 소중한 것. 그런 것들만 저 속에 들어갈 자격이 있어요.” 왜 아니겠는가. 물건에도 자격이라는 게 있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것이 사람과 다른 생물 사이에, 사람과 물건 사이에도 오고 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생물과 물건 또한 나와 시간을 나누고 있으니까.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나를 세상 속에 있게 하는 것들이니까. 오래 사용했던 물건, 소중히 여겼던 물건이 낡고 망가져도 버리기 힘든 것은 그 속에 내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한낱 물건이라고 해서 함부로 만들어서 소유하고, 함부로 내버릴 일이 아니다. 나를 품은 채 버려진 물건들이 어디로 가서 무엇이 될 것인지 생각해 본다면. 

커다란 양팔 저울의 한쪽 끝에 내 삶을 올려놓고, 반대편에는 내 손을 거쳐 갔고, 거쳐 갈 물건들을 쌓아놓는다고 상상해 본다. 아. 물건들이 너무 많다. 저울이 기울어 자꾸 미끄러지고 무너져 내린다. 쓰레기 더미 속에 묻혀버린 균형을, 대칭을, 존중을 되찾고 싶다.



3. [서울신문][김용석의 상상 나래] 인문학적 고민이 궁극의 사물인터넷 시대를 연다

지난 6년간 우리의 문화를 바꿔 왔던 스마트폰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서서히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다. 스마트폰 성장률은 최근 빠른 속도로 낮아지고 있으며, 반면 사물인터넷(IoT) 시장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사물인터넷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물들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인터넷으로 사물들을 연결할까. 모든 사물이 연결되면 데이터 수집, 분석, 처리가 가능해지고, 기계가 지능을 가지고 스스로 학습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의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사물들이 인간을 위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만보기는 단순히 걸음 수를 재는 용도였다. 체중계도 단순하게 체중을 잘 재는 기기였다. 그런데 기존의 하드웨어에 인터넷을 연결하고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플랫폼을 연결하면 개인의 건강을 측정, 예측이 가능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사물인터넷 기술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의미 있는 정보들을 수집해야 하므로 센서가 있어야 한다. 그다음은 데이터를 전달하기 위한 통신 네트워크,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클라우드 환경 및 빅데이터, 지능형 플랫폼이 필요하고 보안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술은 우리의 삶으로 활용될 때 의미를 갖는다.

지금의 사물인터넷은 일상생활에 체감을 주는 수준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일부 얼리어답터(신제품을 먼저 접하고 구매하는 사람)의 관심거리로만 머물러 있다. 아직도 기술을 개발자나 기업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1등 기술이 최고가 아니다. 기술은 목적이 아니고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수단이다.

논어에 ‘수기안인’(修己安人)이라는 말이 나온다. 공자는 군자를 일컬어 ‘자신을 갈고 닦아서 남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군자의 마음으로 기술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인간을 편안하게 하고 행복을 위한 기술이야말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사물인터넷 사업은 철저하게 인간 중심으로 보아야 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인문학을 다시 꺼내어 생각해 본다.

인문학은 문학, 역사, 철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문학은 ‘인간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의 이해를 높이는 것이고, 역사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살펴보는 학문이다. 철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근본적인 이유를 던지고 탐색한다. 인문학의 요체는 인간의 가치와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는 것, 즉 비판적 사유에 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심을 하고 전혀 새롭게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 핵심이다. 인문학적 고민을 통해 창의적인 생각, 상상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필자가 어느 기업과 함께 개발해 상용 서비스하고 있는 사업화 사례를 들어 본다. 박물관에 가면 유물이나 그림에 관해 상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 한다. 기존에는 돈을 내고 별도의 기기를 빌려서 활용했다. 물론 큐레이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편하고 효율적이긴 하다. 좀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 볼 수 있다.



‘돈을 내는 것이나, 빌리는 것도 귀찮다’, ‘나의 스마트폰으로 유물이나 그림의 자세한 설명을 알 수는 없을까?’, ‘어린아이들이나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퀴즈를 내거나 간단한 질문을 통해 즐겁게 배울 수 있게는 못 하나?’라는 식의 전혀 다른 관점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 회사는 이러한 고민을 비콘이라는 가까운 거리 통신이 가능한 작은 블루투스 모듈을 이용해 해결해 냈다. 작은 하드웨어에 인터넷을 연결하니 스마트폰으로 유물이나 그림 정보를 얻는 새로운 부가가치가 생겨났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관람객들에게 편리함과 즐거움을 주는 큐레이팅 서비스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지금의 사물인터넷은 사업적으로 보면 극소수의 성공 사례와 많은 실패 사례가 공존하는 단계다.

인문학적인 고민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행복을 위한 서비스를 발굴해야만 고객은 감동하고 시장은 확대된다. 사람들을 편리하고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물인터넷을 통해 행복한 미래를 꿈꾸어 본다.



4. [서울신문][이상욱의 암 연구 속으로] 암 환자 방사선 치료의 미래

인간의 상상력은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이 이룩한 현재의 문명은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이 분명하다. 스티브 잡스의 상상력이 아이폰을 만들었듯이 연구자들의 풍부한 상상력은 과학이 지금과 같은 수준까지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의사의 상상력은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사의 상상력의 원천은 환자가 완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창조적 활동은 필요에 의해 시작되고, 바라는 일의 긍정적인 효과를 머릿속에서 그려보고 기뻐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무성영화를 만들던 시기에도 인간이 상상했던 이상적인 영화는 시각, 청각, 촉각, 후각까지 만족시키는 오늘날의 4D 입체영화와 같은 형태였다.

1895년 뢴트겐이 엑스선을 발견한 이후 방사선은 암 치료에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의사들이 원하는 방사선 치료기기의 이상적인 모델은 이미 100년 전부터 의사들의 머릿속에서 완성돼 있었다.

의사들이 꿈꿨던 이상적인 치료기기에 거의 근접한 방사선치료 장비가 현재 개발돼 보급되고 있다. 방사선 세기 조절, 환자 동조, 초정밀 방사선량 전달 등 첨단 기술들이 적용된 선형가속기에서 발생하는 엑스선을 이용해 현재 대부분의 방사선 치료가 시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이미 최첨단 기술이 적용되고 있는 방사선치료는 더이상 발전할 여지가 없는 것일까. 인간의 상상력이 과학을 발전시켜 왔듯이 더 나은 방사선 치료법을 계속 고민한다면 치료 장비도 계속 발전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중입자 치료기’일 것이다. 사실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선형가속기의 발전은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고, 앞으로 방사선 치료의 주된 발전 방향은 개량된 선형가속기보다는 새로운 중입자 치료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입자 치료는 가속한 원자핵을 종양조직에 조사해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방식이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입자 치료법은 수소원자핵인 ‘양성자 빔’을 이용한 치료다. 양성자 빔은 방사선량을 종양에 집중시킬 수 있지만 기존 선형가속기를 이용한 세기 조절 방사선 치료 기술과 효과가 유사하고, 암세포를 살상하는 능력은 거의 같다. 이에 반해 암세포 살상능력이 몇 배 더 강력한 중입자 치료는 양성자보다 몇 배 무거운 원자핵을 가속해 암치료에 이용하는 방법이다.

전 세계적으로 치료 의학은 미국이 가장 앞서 있지만 중입자 치료 분야만큼은 일본과 독일이 단연 앞서가고 있다. 독일에서는 하이델베르크를 포함한 2곳, 일본에서는 이미 5곳에 중입자치료기가 설치돼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11곳에서 중입자 치료가 시행되고 있다. 2015년까지 중입자 치료를 받은 암환자 수는 2만명을 넘었고 학계에 발표된 치료성적도 매우 우수하다.



탄소핵을 이용한 중입자 치료는 암세포를 살상할 수 있는 능력이 엑스레이나 양성자에 비해서 2~3배 가까이 높아 기존 방사선 치료에 저항성을 나타내는 종양에도 적용 가능하다. 이 때문에 의료 관광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이나 독일로 중입자 치료를 받으러 가는 국내 환자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사들이 암 환자의 완치를 상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조만간 국내에서 중입자 치료가 실현될 것으로 기대하며, 이를 통해 보다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받을 것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국내에서 중입자 치료기보다 더 나은 방사선 치료기를 개발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5. [매경이코노미][무비클릭] 컨택트(원제 : Arrival) 지구에 ‘도착’한 외계 생물체의 메시지는?

영화 ‘컨택트’의 원제는 ‘어라이벌(Arrival·도착)’이다. 어라이벌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가장 일반적인 뜻은 도착이다.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컨택트’는 외계인 그리고 미확인비행물체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우리는 원제인 ‘도착’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껏 영화사에서 외계인의 지구 착륙은 조우(encounter)나 침공(attack)이라는 제목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미지와의 조우’나 ‘화성침공’이 그 대표적 예시다. 

그런데 ‘컨택트’는 외계인의 방문을 도착이라고 표현했다. 도착이란 무엇인가? 의지를 갖고 출발한 자들의 목적이자 여정의 종결이 바로 도착이다.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도착, 어라이벌의 의미 중 하나가 번역에 특화돼 쓰이는 용어라는 점이다. 번역에서 번역 대상이 되는 언어가 출발어라면 번역돼야 할 결과어가 바로 도착어다. 가령,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데보라 스미스의 영어로 도착하는 것이다. ‘컨택트’에서 언어가 무척 중요한 메타포로 쓰이고 있음을 생각해보자면 ‘도착 : 어라이벌’이란 제목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컨택트’의 표면적 주제 중 하나는 바로 번역이다. 주인공 루이스(에이미 아담스 분)가 언어학자로 설정된 이유다. 뛰어난 언어학자 루이스는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 목적을 알기 위해 작전에 투입된다. 지구의 열두 곳에 도착한 비행물체 셸(shell)에 탑승한 외계 생물체는 무엇인가 메시지를 전송하려 한다. 

언어학자 루이스와 물리학자 이언(제레미 레너 분)은 ‘헵타포드(7개의 발을 가진 외계인)’에 접촉해 그들이 지구에 도착한 의도를 탐구해가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단지 조사를 하는 게 아니라 탐구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외계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여러모로 ‘컨택트’는 인문학적인 작품이다.



언어의 문제를 다뤄서만이 아니다. ‘컨택트’가 심각하게 다루는 것은 언어가 드러내는 사고의 방식이다. 즉 우리가 직선적인 언어를 쓴다면 그것은 우리가 직선적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헵타포드들은 원형적이며 입체적인 언어를 쓴다. 그들의 시간관은 그래서 입체적이며 원형적이다. 헵타포드들의 언어가 미래와 닿아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 속에 제시된 헵타포드어는 단음절어며 원형이고 표의어다. 즉 한 글자 안에 시제와 의미, 문법 구조를 전부 표현하는 매우 진화된 형태의 경제적 관념 체계다. 이는 곧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인지 구조 그리고 과학 기술이 모두 다 매우 진화된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중요한 것은 루이스가 헵타포드어를 배워가면서 점점 어떤 이미지의 간섭을 받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녀가 가진 능력이기도 하며, 영화의 비밀이자 중축이고 반전의 열쇠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기억이자 무의식이고 다른 관점에서는 예지력이다. 이 두 관점의 충돌 가운데서 ‘컨택트’는 진정한 의미와 매력을 발산한다. 

드니 빌뇌브는 전작들처럼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전체 이야기의 큰 그림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이 조감도를 맞이해,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지적 쾌감과 미학적 감동을 얻게 된다. 

무엇보다 감동을 주는 것은 결국 루이스의 선택이다. 이 선택의 감동은 그녀가 인간이기에 그리고 여자이기에, 엄마이기에 해낸 것이라 더욱 뭉클하다. 뜨겁고 뭉클한 작품, ‘컨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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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뉴스 큐레이션
2017년 2월 14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1. 여야 4당 원내대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에 승복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여야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결과에 승복한다는 구두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합의는 ‘자유’지만 ‘바른’ 생각은 아닌 거 같아 ‘국민’이 빠지면 ‘민주’가 아니자나...

2. 특검팀이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청와대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을 맡을 재판부가 결정됐습니다. 특검팀의 공식 수사종료일이 이달 28일까지라 시일이 촉박한 점을 고려했을 때 법원도 최대한 빠른 판단을 내놓을 것으로 보입니다.
청와대는 박근혜의 명동성당이나 조계사 쯤 되는 모양이야... 기도 중일라나?

3. 헌법재판소장에 낙마했던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으로 정식 합류했습니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 대리인단과 국회 소추위원 측 대리인단을 통틀어 처음으로 전직 헌법재판관이 공식 합류하게 됐습니다.
저런 양반이 헌법재판소장이 되었으면 어땠겠어? 가슴이 다 철렁하다 야~

4.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 실무 역할을 했던 전경련 직원이 청와대 지시로 초반 검찰 조사에서 허위 진술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전경련 이모 전 사회공헌팀장은 최순실, 안종범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 같이 증언했습니다.
청와대가 모든 악의 축인 게 확실하다니까... 이러고도 버티니 용타 용해~

5. 특검팀이 공정위가 삼성을 도운 정황을 확보한 데는 실무자의 메모가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상식 밖의 상부 지시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작성한 메모와 녹음파일이 핵심 단서가 된 것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특징인 셈입니다.
수첩 공주에게 수첩이 독배가 될 줄이야... 하긴 뭔 소리를 하는질 알아야지~

6.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대선 주자들의 예능 TV 출연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실제 유력 대선 후보들이 KBS의 대표 예능프로인 ‘해피투게더 3’ 섭외를 받고 출연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친근감이 들어서 좋기는 한데... 검증은 없고 웃다가 끝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7. 최근 뜬금없는 '대북 선제 타격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탄핵 상황에서도 정권 유지에만 골몰하는 보수 세력이 또 다른 '북풍 카드'를 내미는 것으로 이들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역시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성조기를 흔들고 난리를 죽이는 거야? 쪽 팔려서 원~

8. 자유한국당이 횃불 로고를 공개했습니다. 이승만의 자유당에 이어 신한국당과 태극기를 연상시켜 보수층을 결집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이는 가운데 보수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횃불이 북한 '봉화탑'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빨간 횃불 보면 가히 혁명적... 하는 짓 보면, 이승만의 자유당~

9. 바른정당이 '벼랑 끝 전술'을 내놨습니다. 탄핵이 기각되면 전원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결의를 하면서 대신 탄핵이 인용되면 자유한국당 의원 전원이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새누리당에서 나온 지 얼마라고 야당 코스프레를 하는지... 다 그놈이 그놈이구만...

10.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생존자 40분 중 34분의 피해자와 가족들이 합의를 받아주는 결단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한일 위안부 합의는 역대 어느 정부도 상상하지 못했고 그만큼 어려운 난제였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런 병세를 봤나. 그러게 왜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않는 멍청한 짓을 하냐고...

11. 정치적 견해에 따라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는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방지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민주당 유은혜 의원은 ‘정치적 견해에 따라 문화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내용을 새로 담은 문화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서글픈 현실이로고... 헌법 하나만 잘 지켜도 될 일을 말야...

12. 오는 4월부터 4대강에 녹조가 발생하면 최대 15일간 대량 방류가 실시되고, 보 수위는 '지하수 제약수위'까지 낮아집니다. 이는 MB정부가 4대강 사업을 강행하며 홍보해온 '치수' 기능이 사실상 틀렸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한 셈입니다.
이명박근혜가 온 나라를 오염시키니, 보를 트는 게 아니라 민심이 터진 게지...

13. 육아휴직의 확산으로 육아휴직자가 크게 늘고 있지만, 절반 가까이는 휴직 기간 중이나 복직 후 1년 이내에 원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육아휴직의 연장만으로는 경단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육아휴직 후에 대안도 안 만들어 놓고 결혼하고 애 좀 낳으라고 하기 있기 없기?

14. 전국 도시철도 운영기관 16곳이 정부가 65세 이상 무임승차 등으로 인한 손실액을 보전해야 한다며 헌법소원을 낸다고 합니다. 도시철도 무임수송은 국가의 보편적인 복지정책인 만큼, 정부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합니다.
취지는 알겠는데, 스스로 절감할 건 없고? 그게 좀 궁금하네...

15. 취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트럼프 미 대통령의 '중도 퇴진'을 점치는 도박사들이 늘고 있습니다. 영국의 온라인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는 사임이든 탄핵이든 중도 퇴진 배당률을 11 대 10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래도 트럼프는 아직 지지율이 40%나 되지... 우리는 5%로 버티고 있는데 뭘~

16. IS의 불법자금 처리 비용에 투자하면 거액을 주겠다고 꾀어 1억여 원을 가로챈 국제 사기단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경찰은 라이베리아 국적의 2명을 구속하고 한국계 미군 여장교를 사칭해 SNS로 접근한 주범 1명을 추적 중입니다.
어쩐지 페북에 미군 여장교가 페친 신청을 무자게 하더라... 영어가  안 돼서 미안~

17. 애완동물이 있는 빈 집에 불이 날 경우 애완동물이 방화 용의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소방당국은 반려동물이 전기레인지 등 버튼을 누르지 못하도록 보호 장치를 하거나, 외출 시는 아예 콘센트를 뽑을 것을 권했습니다.
애들이 무슨 죄... 콘센트 뽑고 나가면 전기 요금도 덜 나옵니다요~

18. 보건복지부가 부작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의료광고를 하는 행위를 집중 단속합니다. 이번 단속은 성형·미용 분야 가운데 전신마취가 필요하고 부작용 위험이 큰 양악수술, 지방흡입술, 유방 확대술, 종아리 근육퇴축술 등이라고 합니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가 틀린 곳 두가지... 화장실이랑 수술 방이 아닐까 하는...

@손학규, ‘안희정이 언제 중도였냐’. 님은?
@고영태. ‘난 의인 아니지만 쓰레기도 아냐’. ㅇㅋ.
@특검 ‘이재용 영장 빠른 시일 안 결정’. 퀵~
@'포켓몬고' 열풍 주춤 52만 명 감소. 추워~

오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선물한다는 ‘발렌타인데이’라지요?
초콜릿을 팔아먹기 위한 상술이다 뭐다 하지만, 달콤한 초콜릿 하나 부담 없이 나누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누구보다 많이 나누고 베푸는 달콤하고 멋진 당신의 모습 기대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기본 아니겠어요?
고맙습니다.

[류효상의 고발뉴스 조간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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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국민일보]

1. 김정은, 미사일 도발로 얻을 것 절대 없다

북한이 12일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군은 무수단 개량형 미사일로 추정하면서도 새로운 종류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이 미사일은 500여㎞를 비행했다. 지난해 6월 무수단 미사일 발사 당시 400여㎞인 것과 비교해 8개월여 만에 비행거리가 100여㎞나 늘어났다. 미사일 발사 능력이 비교적 안정적 수준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고각 방식으로 쏜 것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 성능 개선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조만간 북한의 ICBM 발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대한 탐색적 도발 성격이 농후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지 20여일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ICBM 대신 저강도 도발을 선택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으로선 핵보유국 입장에서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앉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대목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75주년 생일인 광명성절(2월 16일)에 앞선 세리모니 성격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내부의 결속을 다지며 주민들의 충성을 끌어내려는 전략이다. 사드와 개성공단 문제 등으로 여론이 갈린 남한 내부의 안보 불안을 조성해보려는 목적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 같은 의도를 갖고 도발했다면 말 그대로 오판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국제사회는 대화보다 제재 쪽으로 더욱 기울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강경 기조를 확고히 하는 계기만 될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곧바로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한 대목에서 알 수 있다. 미국 조야 일각의 선제타격론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최대 후원국인 중국 입장에선 북한을 옹호할 명분을 더욱 잃게 됐다.

북한은 이번 도발로 상황이 여의치 않게 흘러간다고 판단할 경우 다음 달 미국 전략무기가 대거 투입될 키리졸브 연습을 전후로 해서 ICBM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 한·미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북한의 도발 의지를 꺾을 수 있는 강력하고 단호한 대응을 해야 한다. 사드 연내 배치도 속도를 낼 필요성이 높아졌다.



[조선일보]

2. 北 미사일 도발에 즉각 공동성명 낸 美·日 정상

북한이 어제 4개월 만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10일 아베 일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포기를 촉구한 지 28시간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관련, "매우 매우 우선순위가 높다(very very high priority)"고 했었다. 북한은 이를 보란 듯이 무시하고 최고 550㎞까지 올라간 후 500㎞를 비행해 동해상으로 떨어지는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위협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아니지만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하겠다는 뜻을 내보인 것이다. 한·미·일은 김정은이 오는 16일 김정일의 출생 75년과 4월 15일 김일성의 출생 105년을 맞아 더 큰 전략적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이 시기가 한·미 양국 모두에게 정치적으로 취약한 기간이란 점이다. 우리의 경우 조기(早期) 대선이 확정되면 나라는 온통 대선으로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 이때에 북이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 도발처럼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각종 정책에서 비롯된 혼란과 내부 반목이 쉽게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8년 전 오바마 정부 출범 당시 미국 여기자 2명 억류→개성공단의 한국인 억류→장거리 미사일 발사→핵실험 도발을 잇달아 일으켰다. 북은 이를 '성공'으로 자평(自評)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이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도발을 반복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와 아베 총리는 워싱턴 DC에서 정상회담 후 플로리다주의 트럼프 별장으로 옮겨가 골프와 만찬 회동으로 우의를 다지는 중이었다. 그러다 북 미사일이 발사되자 즉각 그곳에서 공동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아베의 북한 비판에 트럼프는 100% 일본 지지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처럼 미·일은 차후 두세 달 사이 있을지 모를 북의 연쇄 도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트럼프의 아베에 대한 남다른 예우와 두 정상의 기민한 대응을 보면서 우리 일이 마치 남의 일처럼 된 작금의 상황을 더욱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일보]

3. 세계 흐름 거스르고 기업 심리 꺾는 상법 개정안

정치권이 상법 개정안 손질에 나서고 있다. 경영권 전횡을 막으려면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면서다. 이를 위해 여야 4당은 지난 9일 전자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제 등 상법 개정안 일부를 이달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킨다는 데 잠정적으로 합의했다.

최근 국정 농단 사태를 보면서 재벌 개혁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정치권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한국을 가장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로 만들어 자칫 국내 기업을 해외로 내몰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기업은 경영권이 흔들리면 자기 보호를 위해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치중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도입하려는 제도 상당수는 이미 박근혜 대통령 취임 1년차에 경제민주화 차원에서 논의됐지만 현실성이 없어 폐기된 것들이다.

경영권에 허점이 생기면 헤지펀드 같은 기업사냥꾼은 금세 냄새를 맡고 달려든다. 정치권은 외환위기 직후 SK와 KT&G에서 뭉칫돈을 뜯어간 소버린과 칼 아이컨을 벌써 잊었는가. 당시 대주주는 3%룰에 묶여 의결권이 제한되고 이들은 대여섯 개의 헤지펀드로 지분을 3% 미만씩 분산해 경영권을 위협했다.

정치권이 상법을 건드려 기업을 개혁하겠다는 발상은 반(反)기업 정서에 편승한 선명성 경쟁으로밖에 볼 수 없다. 집중투표제는 부작용이 많아 미국에서도 자율에 맡기고 있고 일본에서는 오래전 폐지됐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역시 기업사냥꾼만 좋아할 일이다. 전자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제도 굳이 의무로 강제할 이유가 없다. 이런 제도는 세계의 추세와도 역행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장기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장기 주식 보유자에게 1주당 1표 이상의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고 있다.

정치권은 기업을 옥죌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기업의 투자심리를 자극하는 방안부터 팔을 걷어붙여야 할 것이다. 일자리를 수만 개 만들어낼 수 있는 규제프리존법과 서비스산업기본법부터 통과시켜 소비를 살리고 청년이 취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4. 헌재, 후임 재판관 인선 서둘러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말 박한철 소장의 퇴임 이후 8인 재판관 체제로 진행되고 있는 건 정상적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3월 13일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마저 퇴임하고 나면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 이끄는 7인 재판관 심리체제로 접어들게 된다. 이런 상황은 대한민국 법치에 재앙이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인으로 구성한다’는 헌법 111조를 두 번이나 위반하는 것이라서다.

안타깝게도 ‘법치 재앙’의 현실화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헌재가 이달 22일까지 증인 신문을 차질 없이 마무리해야 3월 13일 이전에 최종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측의 특검 수사 및 탄핵재판 비협조로 인해 심리일정이 조금만 틀어져도 이 시한을 넘기게 된다. 문제는 탄핵심판에 중대 변수들이 자꾸 생겨나고 있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헌재 최후변론을 예고하는 데다 지난주말에는 고영태와 지인 간의 녹음파일 2000여 개가 등장했다. 일단 헌재는 양측에 “23일까지 종합의견서를 내라”고 통보해 조기 선고 가능성을 열어 뒀다. 하지만 헌재가 ‘사안의 중대성과 재판의 공정성’을 이유로 추가 심리를 결정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탄핵재판은 단심(單審)인 만큼 헌법이 정한 9인 체제에서 신중하게 심판하는 게 옳다. 7인 재판관 체제에선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한쪽이 승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건 헌법재판관 결원사태가 공정하게 재판받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초부터 헌재는 다른 사건 심리를 전면 보류 중이다. 매년 접수되는 2000여 건의 위헌 및 권한쟁의 사건 등이 올스톱돼 있다.

이처럼 헌재의 후임 재판관 인선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대통령 지명 몫’인 박한철 전 소장 후임은 ‘현 대통령 권한 정지’에 가로막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대법원장 지명 몫’인 이정미 재판관의 경우 양승태 대법원장이 후임을 당장 선임하는 게 마땅하다. 정치권도 국민 기본권 보장 차원에서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함은 물론이다.


[매일신문]

5. 대선주자들, 북한 미사일 도발에도 사드 배치 반대할 텐가

북한이 12일 노동급 미사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북한이 노동급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지난해 9월(3발) 이후 5개월여 만이다. 노동미사일 사거리는 1천200여㎞로 일본 전역까지 사정권이다. 이날 북한 미사일은 최대 고도 550㎞까지 올라가 500여㎞를 날아갔다. 발사 각도를 조정하면 남한 전역은 당연히 타격 대상이 된다는 얘기다. 북한의 미사일 능력은 이미 고도화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남한은 이를 막을 무기가 없다.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가 구축되고 있지만 2020년 중반이 돼야 완성된다. 그때까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방어할 수 있는 무기는 없다. 패트리엇 미사일 등 지대공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지만, 북한의 미사일을 요격할 능력은 없다. 결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그나마 해법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이번 미사일 도발은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재확인시켰다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야당의 대선주자들은 사드 배치에 부정적이거나 미온적이다. 대선주자들은 이날 일제히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규탄한다고 했다. 하지만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만이 “여야 정치권과 대선주자들은 배치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사드 배치를 하루속히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사드가 북한 미사일을 100% 막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북한 미사일의 방어 무기로 사드만 한 것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대선주자들은 이런 냉정한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아니 보려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제재와 대화의 병행’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남북 모두의 대화 노력’ ‘자주국방 능력 확립’ 등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상론에 불과하다.



북한의 미사일 능력 고도화는 그 자체로 대화의 실패를 말해준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도 중국의 ‘뒷문 열어놓기’로 인해 효과가 의심되는 실정이다. 대북 제재에도 북한 경제가 좋아졌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최근 보고서는 이를 방증한다. ‘자주국방 달성’도 현재로선 가능하지 않은 얘기다. 대선주자들은 현실에 눈뜨기 바란다.


6. 불황이라고 아우성인데 ‘나 홀로 세수 호황’ 누리는 정부

불황 속에서 지난해 정부의 세금 수입 증가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금 곳간을 두둑이 채운 정부는 ‘표정 관리’라도 해야 할 판이다.



경제가 좋아져서 세금이 많이 걷혔다면야 반가운 일이지만 날로 악화되는 경제 상황에서 정부 세수만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총국세 수입은 242조6천억원으로 전년도 217조9천억원보다 24조7천억원 늘었다. 세수 증가율도 11.3%로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법인 실적 개선 및 부동산 시장 호조, 근로자 임금 상승 등이 세수 증가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말을 듣자니 마치 우리 경제가 요즘 크게 개선되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든다. 그러나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6%에 불과하다. 지난해 정부는 경제성장률 대비 4배를 웃도는 세금을 국민으로부터 거둔 셈이다.



‘유리 지갑’ 근로소득자들은 이번에도 ‘봉’이었다. 지난해 근로소득세는 14.6% 늘었고 징수 총액도 사상 처음으로 30조 원을 넘어섰다. 10조 원을 거둔 2005년 이후 12년 만에 징수액이 3배로 불어난 것이다. 지난해 명목임금 상승률이 4%이고 취업자 수가 3% 증가한 데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근소세가 15% 가까이 불어난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현 정부는 ‘증세는 없다’고 했지만 지난해 근로자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변경하고 담뱃값을 인상했으며 과세 당국이 세무 행정을 강화하는 등 세수 증대를 위한 여러 ‘꼼수’를 썼다.



과다하게 세금을 거두면 민간에서 돌아다니는 돈이 그만큼 공공으로 귀속되기 때문에 안 그래도 어려운 경기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세수 예측 실패라고 판단하기에는 지난해 세수 증가의 규모 및 내용에 문제점이 많다.


 세금이 이렇게 많이 걷히는데도 정부는 돈이 부족하다며 예산 타령을 하고 있다. 국가 부채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세금은 경제 사정에 맞게 적절히 거둬야 한다. 가혹한 세금이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이데일리]

7. 급변하는 국제정세, 한국만 왕따 될라

최근 들면서 국내외 정세가 요동치는데도 한국은 탄핵정국에 손발이 묶여 허둥대고 있다. 탄핵정국이 끝난다고 해서 곧바로 대내외 도전에 맞설 태세를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하든 기각하든 국론 분열에 따른 극심한 국정 혼란은 불 보듯이 뻔하다.

지금 세계의 눈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온통 쏠려 있다. 지난달 취임 이후 ‘반(反)이민 행정명령’ 등으로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서더니 지난주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만나 경제·안보 공조를 확인했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겐 ‘하나의 중국’ 원칙 재확인이란 선물을 안겼다. 공개적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말할 만큼 러시아에도 우호적이지만 우리에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통화하면서 “미국은 언제나 100% 한국과 함께 할 것”이라고 입발림한 게 고작이다.

한반도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중·일·러의 합종연횡이 활발한 가운데서도 정작 당사자인 우리만 속수무책의 외톨이 신세다. 중국은 외교·경제·문화·관광 등 전방위에 걸쳐 사드 보복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데다 일본은 나가미네(長嶺安政) 주한대사를 한 달 넘도록 귀임시키지 않은 채 “반년이든 1년이든 상관없다”며 오만한 자세다.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환율전쟁도 근심거리다. 불똥이 중국과 독일, 일본을 건너 우리에게도 튀어오는 건 시간문제다. 그런데도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이 겁나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간 모처럼의 수출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기 십상이다. 

아무리 권한대행 체제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 황 대행은 대선출마 여부에 대해 질문 받을 때마다 “지금은 국정에 전념할 때”라고 대꾸하지만, 정말로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당장 이번 주 독일에서 개막되는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서 4강 외교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역시 독일에서 다음 달 열리게 되는 G20 재무장관회의는 통화전쟁 대응책을 모색하는 경제외교 역량의 시험대다. 구제역 확산과 생활물가 급등 등 국내 상황도 자못 심각한 와중에 북한은 어제 탄도미사일을 쏘는 도발을 또 감행했다. 정치권이 황 권한대행 체제를 흔들기만 할 게 아니라 국내외 도전에 효과적으로 맞서도록 협력하는 대승적 자세가 긴요한 국면이다.


[한겨레]

8. 이재용 영장 재청구 방침, 짙어지는 박근혜 혐의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13일 소환한 뒤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방침이라고 한다. 법원이 지난달 19일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 소명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기각하자 추가 수사를 통해 이번 주중 뇌물공여 등 혐의로 다시 영장을 청구하기로 한 것이다.


2015년 7월 ‘박근혜-이재용 독대’ 뒤인 10월 삼성이 최순실씨의 차명회사 코어스포츠에 정유라 승마지원비를 보내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뒤 신규 순환출자 조사에 나선 공정거래위에 청와대가 외압을 행사한 정황 등을 대가성의 증거로 보강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 기각 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편의 등의 ‘대가’를 얻은 것은 물론 여러 차례 말 바꾸기와 위증을 한데다 기업조직을 동원한 은폐 등 ‘증거인멸’ 우려도 큰 점을 간과했다는 비판이 적잖았다. 보완 수사를 통한 영장 재청구는 적절하고 당연한 조처다.

이는 뇌물을 받은 박 대통령의 혐의 역시 뚜렷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유라를 콕 짚어 지원하라고 했다는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의 증언이나 재벌 총수 독대 전 ‘말씀자료’들, 추가 확보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 39권, 공정위의 ‘외압일지’ 등 증거와 증언들은 차고 넘친다. 대통령의 혐의는 뇌물수수뿐만이 아니다. 공문서 유출과 블랙리스트를 통한 직권남용 등 형사범죄 이외에 법치주의와 시장경제질서, 언론자유 등 헌법 원칙을 유린한 것을 포함하면 그 죄악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증거가 뚜렷해지자 박 대통령 쪽은 막가파식으로 나오고 있다. ‘중대한 국익 침해’가 아니면 거부할 수 없는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마저 막무가내로 막아서고, 특검 수사에도 불응하면서 탄핵심판은 시간 끌기로 대응하고 있다.

지도자로서의 책임의식이나 공직자 윤리는커녕 인간의 도리마저 내팽개친 행태다. 수개월째 국민이 엄동설한에 주말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도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며 제 한 몸 빠져나갈 방법만 찾고 있다. 줄줄이 구속되고 있는 측근과 참모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헌재 의견서를 보면 과연 인간의 심장을 가진 존재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공문서 유출은 내가 시키지 않았으니 정호성 비서관, 블랙리스트는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김기춘-조윤선 라인에 책임을 돌렸다. 경제·안보 위기를 수습해 나가야 할 귀중한 시기를 낭비하게 하고, 극단세력을 사주해 정치적 욕심만 채우려는 철면피 행위다.


[서울신문]

9. 경제·안보 철저히 실리 챙긴 美·日 정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0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가진 정상회담은 여러 시사점을 던진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우선순위가 매우 매우 높다”고 밝혀 대북 강경 의지를 시사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한·일 순방 때도 확인한 바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천명함으로써 의미가 가중됐다.


미국에서 일고 있는 대북 선제타격론으로 접합될지는 미지수이긴 해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미적지근한 북한 다루기와 달리 강온 전략을 구사해 한반도 위기를 적극 관리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당연한 귀결로 한·미·일 3국 협력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둘째로는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지적해 온 미·일 통상 불균형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는 점이다. 아베 총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경제협력안을 들고 갔다. 그러나 구체적인 협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에 맡기기로 했다. 아베 총리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필요성을 전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TPP 탈퇴를 공식화했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염두에 둔 무역협력을 강조했다.


다자 간 무역협정보다는 미국의 우월적 지위를 강제할 수 있는 양자 협의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의 대대적인 수정을 요구해 올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일본 총리를 다루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즈니스맨다운 수완이 놀랍기만 하다.

셋째, 중국의 남·동 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해 미·일의 공조를 확인했다.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이 있는 일본 오키나와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 안보조약 5조의 대상이라고 성명에 넣었다. 일본이 가장 강력히 요구했던 내용이 적시된 것이다. 아울러 양국은 중국을 겨냥해 남중국해에서의 ‘항해의 자유’를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겠다고 밝힌 직후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도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미·중 갈등이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선물을 들고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까지 함께한 아베 총리의 행보를 ‘조공’이라 비웃지만 국익을 챙기는 외교는 평가할 만하다. 탄핵·조기 대선 정국에서 외교가 휘청거리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동맹의 기축에서 통상분쟁을 최소화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촘촘한 전략이 차기 대통령에게 절실하다는 점을 잘 보여 준 정상회담이다.


[연합뉴스]

10. 1천조 넘은 단기부동자금, 경고음 제대로 들어야

단기 부동자금이 사상 처음 1천조 원을 넘어섰다. 단기 부동자금이란 현금화하기 쉬운 대기성 자금을 뜻한다. 이런 자금이 많아지면 시중 유동성의 경제 선순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단기 부동자금은 1천10조3천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통화량(M2·광의통화)의 42% 수준이다.


 유형별로는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이 49.3%로 거의 절반이었고 나머지는 요구불예금(20.9%), 현금(8.6%), 머니마켓펀드(6.1%), 6개월 미만 정기예금(6.0%), 증권사 투자자예탁금(2.2%) 등이었다. 단기 부동자금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반 통화량처럼 경제 규모에 비례해 늘어난다. 예컨대 성장률이 2.3%였던 2012년에는 단기 부동자금도 2.5% 증가에 그쳤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서는 2013년 7.0%, 2014년 11.5%, 2015년 17.2%, 지난해 8.5% 늘었다. 지난 4년 간 단기 부동자금 증가액이 343조9천억 원(51.6%))에 달했다.

저금리 정책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012년 7월부터 작년 6월까지 0.25%씩 8차례 인하됐다. 그동안 기준금리는 연 3.25%에서 연 1.25%로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 논란이 종종 벌어졌다. 정부와 여당이 공공연히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물론 저금리 정책으로 풀린 돈이 소비나 장기투자로 이어지면 단기 부동자금이 이렇게 급증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고 불확실성도 어느 때보다 커진 상태다. 이럴 때 과도하게 풀린 돈은 선순환 흐름을 만들지 못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작년 12월 현재 우리 경제의 대내외 불확실성은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때 수준으로 나빠졌다"면서 "환율, 변동성지수(VIX) 등 11개 지표로 산출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 지수가 48포인트로, 유럽 재정위기 때(52.8포인트)에 근접했다"고 밝혔다. 

단기 부동자금의 급증은 국가 경제에 아주 나쁜 신호다. 일부 전문가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한다. 유동성 함정은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제시한 이론이다. 돈을 아무리 많이 풀어도 통화정책의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한국 경제가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맞지 않으려면 정부와 통화 당국의 현명한 판단과 대처가 필요하다. 우선 단기 부동자금이 왜 이렇게 증가하는지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너무 장기간에 걸쳐 느슨한 통화정책을 썼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랜 숙제지만 한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인정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도 문제지만 정치권까지 나서 한은을 흔들면 안정적인 통화정책을 기대할 수 없다.





주요신문칼럼



1. [한국경제][천자칼럼] 고독한 미식가

‘혼자 먹는 밥(혼밥)’ 열풍을 몰고온 일본 만화 《고독한 미식가》. 주인공인 잡화수입상 이노가시라 고로는 도쿄의 오래된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혼밥을 즐긴다.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며 결혼도 하지 않고 매장도 운영하지 않는 그에게 가장 특별한 즐거움은 ‘먹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급 레스토랑이나 소문난 식당을 찾아다니는 건 아니다. 아담하고 정겨운 집에서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혼자만의 행복에 젖어든다.

음식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대부분 요리사나 레시피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먹는 사람의 관점과 미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메뉴도 특별하지 않다. 야근 중에 사먹는 편의점 도시락, 입원해서 먹는 병원밥까지 포함된다. 맛있다는 표현을 할 때도 밍밍할 정도로 담백하다. 눈이 휘둥그레진다든지 하는 오버 액션이 전혀 없다.

드라마로 인기를 끈 요인도 다르지 않다. 그냥 일 끝나고 배가 고파서 식당을 찾아 들어가 주문하고 맛있게 먹은 다음, 나오면서 ‘아재(아저씨) 유머’ 같은 말 몇 마디를 남기고 떠나는 게 전부다. 셰프의 기상천외한 요리비법이나 식당 주인의 눈물겨운 사연을 곁들일 법도 하지만 그건 관심 밖이다. 이 단조로운 스토리가 한·중·일 시청자들을 끌어당긴 인기 비결이다. 과잉 이미지와 과장된 화법 대신 절제된 미식의 아름다움이 돋보인 것이다.

이 작품을 그린 만화거장 다니구치 지로(谷口 ジロ-)가 그저께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 데뷔한 그는 작품 주인공처럼 혼밥을 즐기기도 했지만 남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일본 문호 나쓰메 소세키 얘기를 그린 《도련님의 시대》로 일본 최고 문화상을 받은 데 이어 프랑스 정부의 슈발리에 훈장까지 받았다. 이젠 저승에서 ‘먹는 사람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음식을 즐길 수 없다면 최고의 요리라 한들 무슨 소용이오’라고 읊조릴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도 혼밥이 흔해졌다. 혼술(혼자 마시는 술)에 혼여(혼자 하는 여행)까지 즐기는 ‘혼족(나홀로족)’ 시대가 됐다. 이들을 위한 개별 테이블과 1인용 식당도 늘고 있다. 아직은 햄버거나 분식, 중식이 대부분이지만 메뉴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곧 스테이크와 직화구이 고기가 1인 메뉴로 등장할 모양이다. 일본에선 이미 일상화된 모습이다. 혼자이지만 편하고 여유있게 즐기는 음식. 이제 혼밥은 더 이상 ‘쓸쓸하고 목이 메는’ 밥이 아니요, 옛날처럼 ‘먹어도 우울하고 배 고픈’ 밥이 아니다.



2. [매경이코노미][고재윤의 ‘스토리가 있는 와인’] 입학·졸업식에 어울리는 ‘꿈’ 와인

2월은 입학과 졸업의 계절이다. ‘형설의 공을 통한 새로운 시작’이란 점에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자 출발점이다. 입학·졸업을 맞는 대학생에게 줄 선물로 케이크와 와인이 빠질 수 없다. 가성비가 좋고 맛있으면서 스토리가 있는 특별한 와인을 선택해보자. 

와인 초보자에게는 칠레, 아르헨티나, 남아공, 호주 등의 신흥국 와인이 무난하다. 평소에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와인이 무난하다. 단 변화를 주고 싶다면 그루지야, 몰도바, 그리스,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 와인도 이색적이다.

레드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로 만든 게 무난하지만, 와인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고 특히 타닌 성분이 강해 와인 초보자나 여성은 별로 안 좋아할 수 있다. 때문에 메를로 포도로 만든 칠레나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을 추천한다. 특히 칠레산 메를로 와인은 부드러운 타닌과 적당한 산도를 갖고 있어 누구나 마시기 좋다.



화이트 와인은 이탈리아 모스카토 포도나 독일의 리슬링 포도로 만든 와인을 추천한다. 샤르도네 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도 좋지만 가격이 비싸고, 혹여나 드라이한 것을 싫어하는 부모님과 가족이 함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보다는 약간 단맛이 있는 이탈리아의 모스카토 와인과 독일의 리슬링 아우스레제(Auslese) 와인이 가족끼리 마시기에 좋다. 

입학·졸업식에 어울리는 축배주는 단연 프랑스 샴페인이다. 그러나 가격이 비싸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럴 땐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생산되는 카바, 독일 모젤 지방에서 생산되는 젝트, 이탈리아 아스티 지방에서 생산되는 스푸만테가 좋은 대체재다.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의미를 담은 스위트 와인도 괜찮다.



프랑스 보르도 소테른 지역의 귀부 와인 샤토 디켐보다는 헝가리의 토카이 와인이, 독일 아이스바인보다는 아우스레제의 리슬링 와인이 가성비가 좋다. 직장을 다니면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졸업생에겐 칠레 마이포 밸리의 모란데 와인과 프랑스 랑그독 미네르부아의 로스탈 까즈 에스티발 와인을 추천한다. 각각 주경야독(晝耕夜讀)과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의미가 담겼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이번 입학·졸업식에 권하고 싶은 와인은 국내 충북 영동 여포농장의 ‘꿈’ 와인이다. 가족, 친지, 친구들로부터 축하의 인사를 받을 때 장래의 꿈과 소망에 대해 얘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여포농장은 우리나라 대표적 와인 산지인 충북 영동에 2000평의 포도밭을 운영하고 있다. 1997년 주류 제조면허를 취득한 철도공무원 여인성 대표가 어린 시절 별명 ‘여포’를 브랜드로 사용해 부부가 함께 와인을 만든다. 대표 포도 품종인 캠벨얼리를 필두로 산머루, 알렉산드리아, 메를로, 산지오베제, 버팔로 등의 다양한 포도 품종을 실험 재배하고 있다. 

여 대표는 와인 선진국인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미국, 일본 등 여러 와인 생산지의 양조시설을 벤치마킹한 후 세계적인 와인 양조가의 꿈을 갖게 됐다. 그래서 와인 이름도 ‘꿈’으로 정했고,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국내 대회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2014년 제1회 한국와인대상에서 ‘꿈’ 로제 와인이 다이아몬드상을 받았고, ‘꿈’ 화이트 와인은 2015년 농림수산식품부 주최로 열린 ‘우리술품평회’에서 우수상을, 2016년 광명시에서 개최한 품평회에서는 ‘광명동굴 최고의 와인’으로 선정됐다.

‘꿈’ 화이트 와인은 알렉산드리아 품종과 몇 종류의 포도 품종을 소량 블렌딩했다. 살구, 복숭아, 배꽃, 흰 꽃 향이 섬세하고 풍부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며, 약간 달콤해 마시기에 편하다. 적절한 산도와 보디의 균형감이 뛰어나고, 절제된 긴 여운도 나무랄 데 없다. 음식과의 궁합은 불고기와 잘 어울리며 디저트로 한과, 강정, 곶감 등과 함께 마셔도 좋다. 가격은 화이트 와인 375㎖ 기준 2만원이다.

이번 입학·졸업식에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꿈’ 와인을 마시면서 서로의 꿈이 이뤄지기를 축원해보자.



3. [매일신문][기고] 신라의 향가

세계사에 유례가 드문 천 년의 왕국 신라가 막을 내린 지 다시 천 년이 지나서야 ‘신라 천 년의 역사와 문화’란 이름으로 신라사 30권이 간행되었다.



이 중 제16권이 ‘신라의 언어와 문학’이다. 신라의 문학은 한자로 기록된 신라한문학, 구전되다가 후대에 기록된 구비문학, 향찰로 기록된 향가문학이 주를 이루는데, 여기서는 한국 시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향가문학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향가는 한자를 차용한 향찰문자(표기법)로 우리말을 기록한 신라시대 시가 작품들을 총칭한다. 향가문학은 우리나라 시가문학 사상 최초의 정형시로, 장형인 10구체(10행시), 8구체(8행시), 4구체(4행시)가 있다. ‘삼국유사’에 실린 작품들은 모두 배경설화를 가지고 있기에 역사적, 서사문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그러나 고구려나 백제의 향가 작품과 ‘삼대목’ 등의 향가 작품집들이 전해오지 않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자의 음(音`소리)과 훈(訓`뜻)을 차용해 우리말을 표기한 향찰의 발명은 인류문화사에 있어 대단한 업적이다. 한자를 사용하여 자국어를 표현하려는 의식은 이웃인 일본과 중국의 소수민족 백족(白族), 베트남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자를 차용한 향찰식 표기법은 동양 문자 발달의 한 양식이 되어 일본의 ‘만엽집’을 표기한 만엽가나로, 백족의 백문(白文)으로, 베트남의 쯔놈문자로 발달하였다.



일본의 ‘만엽집’엔 4천여 수의 노래가 전하나 우리의 향가는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보현십원가’ 11수가 전할 뿐이고, 진위 여부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 실린 미실의 ‘풍랑가’ 1수, 그리고 고려시대 예종이 김낙과 신숭겸 두 장군을 추도한 ‘도이장가’(悼二將歌) 한 수를 더 보탤 수 있다.



신라시대의 언어를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 작품이 많이 남아 전하는 일본에서조차 만엽가 해독이 완전하지 않으니, 20여 수밖에 전하지 않는 우리 향가 작품의 해독 또한 아직 논란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현재까지 전하는 향가 작품들은 대부분 경주를 중심으로 한 경상도 일원에서 창작되었으니 그 언어 또한 신라어, 곧 경상도어로 해독함이 마땅할 것이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향가 작품들을 보면, 600년 전후 진평왕 시절에 선화공주를 얻고자 맛동(백제 무왕?)이 아이들에게 부르게 한 ‘서동요’와 융천사가 지은 ‘혜성가’가 있고, 7세기 선덕여왕 때 ‘풍요’, 문무왕 때 ‘원왕생가’, 효소왕 때 득오가 화랑 죽지랑을 그리워하며 지은 ‘모죽지랑가’가 있다. 8세기에 가장 많은 향가 작품이 창작되었는데, 성덕왕 때 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수로부인을 위하여 꽃을 바치며 ‘헌화가’를 불렀고, 효성왕 때 신충이 임금을 원망하여 ‘원가’를 지어 잣나무에 붙였다.



경덕왕 때 월명사가 일찍 타계한 누이를 위해 ‘제망매가’를 짓고, 조원전에서 ‘도솔가’를 지어 하늘에 두 해가 나타난 재앙을 물리쳤다. 충담사는 일찍이 화랑 기파랑을 추모하는 ‘찬기파랑가’를 지었으며 경덕왕의 요청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노래 ‘안민가’를 지었고, 다섯 살 된 아이와 어머니(희명)가 아이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분황사 관세음보살에게 ‘도천수대비가’를 지어 기도했다.



또한 지리산으로 가던 영재 스님이 도적들을 만나 ‘우적가’를 지어 그들을 불교에 귀의하게 하였다. 9세기에는 울산 개운포에서 헌강왕을 따라온 처용이 ‘처용가’를 불러 역신을 물리쳤다. ‘균여전’에 실린 향가로는 고려 초 10세기에 균여 대사가 불교 포교를 위해 지은 ‘보현십원가’ 11수가 있다.

 경주시에서는 ‘신라의 문학’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향가는 한국인의 문학과 음악, 무용, 민속 등 한국 예술의 기원으로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야 할 문화 콘텐츠의 보고임에 틀림없다.



4. [중앙일보][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잘 알아보고 있습니까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경험이 꽤 된다. JTBC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 1회를 보다가 흥행이 될 리 없다며 채널 돌렸음을 고백한다. 노래의 장르는 애매하고 유행이 지난 것처럼 보였다. 웬만한 사람은 다 감동 받은 후인 지금, 우승자도 알면서 복습 시청하며 죄값을 치른다. 사실은 드라마 ‘도깨비’도 그랬다. 뿐만 아니라 SNS가 처음 나왔을 때는 부질 없어 보였고, 누가 저걸 하랴 싶었다.

어떻게 작품을 알아볼 수 있을까. 어떤 흥행은 나 같은 사람을 아찔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지난해 3월 스위스 제네바의 한 공연에서 이 곡이 연주됐다. 바이올리니스트는 바딤 글루즈만(44)이라는 한창 때의 연주자다. 무엇보다 그의 악기가 중요했는데, 1690년 만들어졌고 레오폴트 아우에르(1845~1930)라는 연주자가 쓰던 것이었다.



아우에르는 누구인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가로부터 헌정 받고도 “기교적으로 도저히 연주할 수 없어 문제가 많다”며 외면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 이 곡은 연주할 때마다 천둥 같은 박수를 이끌어내는 흥행 만점의 작품이다. 지난해 제네바의 공연에서도 그랬을 거다. 아우에르의 악기만이 겸연쩍게 침묵했을 것이다.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기교적으로 뛰어난 연주자들이 나오기 전까지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또한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작곡가에게 작품을 헌정받은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1831~81)은 어떤 가치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메가 히트한 이 곡은 이제 길 가는 초등학생에게 들려줘도 알아차릴만큼 유명해졌다. 아우에르와 루빈스타인 모두 차이콥스키가 찾아가 작품을 바칠 정도로 당대를 휩쓸던 연주자들이었다.



이들이 허투루 작품을 폄하했을 리는 없고, 아마도 차이콥스키의 혁신성을 담아내기 버거웠을 것이다. 미래의 청중을 불러모으는 것 또한 그 혁신성이고 말이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오프닝 때문에 비판을 많이 들었다. 피아니스트에게는 음악적이라기보다 체력적으로 한계를 시험하는 곡이다)

이런 처지를 겪은 게 어디 차이콥스키 뿐인가.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1번, 베토벤 교향곡 7번,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도 거센 비판을 이겨내고 우뚝 섰다. 작품과 작곡가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후회도 막심해졌을 연주자나 평론가들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초연에서 받은 비판으로 치면 이 곡을 따라올 수 없다.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당시 청중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만큼 앞서 가버린 작품이었다)

예술 작품이 살아남거나 인기를 얻는 데에 훨씬 많고 복잡한 조건이 붙은 시대다. 우리는 어떻게 가치를 알아보고 예측할 수 있을까. 내 취향이 아니라고, 혹은 명백히 촌스럽다는 이유로 어떤 것들을 외면하다가도 문득 뒷덜미가 서늘하다.



5.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이차크 펄만

악기 특성상 앉아서 연주할 수밖에 없는 첼로와 달리 바이올린은 대개 서서 연주를 한다. 그렇다고 언제나 서서 연주하는 것은 아니다. 독주나 협연과 달리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 연주를 할 때는 앉아서 한다.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임에도 늘 앉아서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다. 유태계 바이올리니스트 이차크 펄만(Itzhak Perlman, 1945년~)이다. 

펄만은 핀커스 주커만, 기돈 크레머, 정경화와 함께 20세기 중반 이후를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다. 1945년 이스라엘 야파에서 태어난 이스라엘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인 그는 4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에 불편함을 겪기 시작한다. 목발에 의지해 이동할 수밖에 없는 그가 바이올린을 하게 된 건 5세. 남다른 재능을 인정받아 10세 때 이스라엘 방송 관현악단과 공연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3세던 1958년 미국의 유명한 TV쇼 ‘설리번쇼’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유태계 음악가들의 대부인 아이작 스턴의 후원을 받았다. 

본격적인 데뷔는 1963년 카네기홀. 1964년 리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무대에도 이름을 알렸다. 이후 당대를 대표하는 명바이올리니스트로 현재까지 군림하고 있는 그는 바이올린 음악의 성서로 꼽히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전 6곡,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치오’ 같은 난곡에서 특히 뛰어난 연주를 하는 거장이다. 

펄만의 음색은 두텁고 밀도 있는 비브라토에 바탕을 둔 따뜻한 사운드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기술 때문에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는 연주자’로 유명하다. 그 어떤 난곡이나 어려운 부분에서도 펄만의 표정은 평화롭고, 너무나 편안하고 쉽게 연주를 한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연주하기 만만하다는 착각을 줄 정도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는 드물게 타 연주자에 비해 큰 손을 갖고 있는 것도 펄만의 특징이다. 4개의 현 위에서 정확한 음을 짚어내며 화려한 기교를 펼치기에 크고 두툼한 손은 사실 큰 단점이다. 하지만 펄만은 그 두툼한 손으로 섬세한 음들을 편안하게 구사하며 타 연주자에게 볼 수 없는 특유의 부드러운 비브라토를 구사한다. 게다가 음색 또한 온화한 표정만큼이나 깊고 따스하다. 오히려 다른 연주자에 비해 큰 손으로 포지션 이동을 적게 하고도 하이포지션 음을 소화해낸다. 

클래식 외에도 펄만은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고 있다. 재즈에 관심이 커서 재즈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과 함께 음반을 내기도 했고, 영화 음악의 연주에도 참여해 존 윌리엄스가 음악감독이었던 1993년작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메인 테마를 연주해 아카데미 최고 영화 음악 부분을 수상한 바 있다. 

펄만의 연주를 보기 위해선 인내가 필요하다. 그가 목발을 짚고 나오는 시간, 그리고 휠체어에 앉아 그의 활을 들고나온 지휘자로부터 활을 넘겨받아 숨을 고르는 시간, 관객들은 경건하게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본다. 하지만 펄만은 이내 유쾌한 웃음을 활짝 보이며 그야말로 아무렇지 않게 연주를 시작한다. 휠체어를 한 바퀴 휙 돌려 보이기도 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앉아 있는 거인’. 평화로움 자체기도 하고. 이 거장에게 세계가 존경과 사랑을 보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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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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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세계일보]

​1. 대선주자들, 박세일 ‘애민 메시지’ 어찌 읽고 있나

지도자의 자질과 덕목은 무엇인가. 지난달 세상을 떠난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도자의 길’이란 명쾌한 해답서를 우리 사회에 남겼다. 박 교수는 “아무나 지도자의 위치를 탐하여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치열한 준비도 없이, 고민도 없이 나서는 것은 역사와 국민에 대단히 무례한 일이다. 아니 죄악이다”라고도 했다. 그는 A4용지 17장 분량의 유작을 임종하기 전에 지인들에게 보냈고 어제 세계일보 지면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박 교수의 목소리는 최순실 사태를 맞아 온 국민이 신망 있는 지도자를 갈구하는 현실에서 울림이 크다. 그는 소신과 원칙으로 올곧은 삶을 살고자 노력해온 사람이었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던 2005년 박근혜 대표가 행정부의 세종시 이전에 찬성하자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며 금배지를 내던지고 정계를 떠났다. 이후 시대적 과제인 ‘선진화’와 ‘통일’ 전략을 연구하고 설파하는 데 여생을 바쳤다. 자신의 아호도 ‘천하는 공공을 위한 것’이라는 중국 고전 예기의 문구에서 따와 위공(爲公)으로 지었다.

그는 유작에서 “우리 사회에 지도자가 되고 싶은 욕심은 많은데 지도자의 자질과 능력, 덕성을 키우는 노력은 많이 부족하다. 그러니 안민도, 경세도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지도자의 자질과 덕목으로 4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지도자는 애민정신을 가져야 하고 자기수양에 앞장서야 한다”며 애민과 수기(修己)를 꼽았다.



두 번째 요건은 비전과 방략(方略)으로 “공동체가 나아갈 역사적 방향과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와 해결방식에 대한 나름의 확고한 구상”을 내세웠다.



세 번째로는 현명한 인재를 구하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구현(求賢)과 선청(善聽)을 강조했다. 마지막 덕목으로는 “성취는 국민과 역사에 돌리고 실패와 반성의 책임은 자신만이 가지고 가야 한다”며 후사(後史)와 회향(回向)을 들었다. “지도자는 역사에 큰 기여를 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해야 하며 일이 끝나면 빈손으로 가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박 교수가 제시한 4가지 기준으로 거르면 아마 살아남을 정치 지도자가 거의 없을 것이다. 맨 먼저 꼽은 애민에서부터 불합격 판정을 받은 정치인들이 속출할 게 뻔하다. 입으로 국민을 외치고 있으나 실제 마음속에 사심으로 가득한 까닭이다. 그런데도 사탕발림 공약을 내걸고 너도나도 대선판에 뛰어드는 형국이다. 나라를 이끌 적임자라고 큰소리치지만 국가를 경륜할 전략도, 공동체를 위한 희생정신도 없다. 자기 개혁도 하지 못하는 협량으로 국가 개혁을 요란하게 떠벌리는 이들이 즐비하다.

천상의 노 교수가 전한 메시지는 보수든 진보든 다 같이 시대적 화두로 되새길 어록이다. 나라 사랑에는 좌우가 있을 수 없다. 대선주자들부터 지도자 요건을 제대로 갖췄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라. 그런 자질과 고민 없이 나선다면 역사와 국민에 죄를 짓는 일이다.



2. 북 위협 안중에 없는 정치권의 개성공단 재가동 주장

개성공단에서 기계 소리가 멈춘 지 오늘로 꼭 1년이다. 작년 초 북한이 4차 핵실험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나서자 우리 정부는 2월10일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발표했고, 북한은 다음날 개성공단 폐쇄와 공단 내 남측 인원 추방으로 맞대응해 남북경협이 올스톱됐다. ‘남북교류 최후의 보루’로 불리던 개성공단은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진전이 없어 재가동 전망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대선주자들은 대부분 개성공단 재가동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반대하고 있고, 안희정 충남지사가 재개 조건으로 비핵화 협조 등을 거론하고 있을 뿐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다른 주자들은 무조건 재개를 주장한다. 재가동 문제는 개성공단의 상징성과 입주업체들의 사정도 살펴야겠지만 한반도 정세 등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마당에 개성공단을 재가동하면 우리가 제재의 틀을 허무는 꼴이 된다. 점증하는 북한 위협을 감안할 때 재가동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어제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280㎏과 플루토늄 52㎏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했다. 최대 45기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북한 고농축우라늄 보유량이 758㎏에 달한다는 보도도 나온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위협과 더불어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쏟아내는 이유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상원 인준 과정에서 서면답변 자료를 통해 군사적 위협이나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도입 등을 포함한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국제사회 등을 설득할 논거가 부족한 처지인 만큼 정치권은 개성공단 재가동 언급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섣불리 주장했다간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고, 우리의 안보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 국가 안보에 대한 대선주자들의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이데일리]

3. CJ·GS홈쇼핑 재승인에 관심 갖는 이유

내달로 GS홈쇼핑과 CJ오쇼핑에 대한 사업승인 기한이 만료됨에 따라 정부의 재승인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지에 눈길이 쏠린다. TV홈쇼핑에 적용되는 재승인 기준이 과거보다 한층 엄격하게 설정됐기 때문이다. 홈쇼핑 채널의 공적 책임과 공공성 심사 기준이 까다로워졌으며 특히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다각적으로 심사가 이뤄지게 된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TV홈쇼핑 회사들에 대한 일제 점검을 통해 시정명령과 함께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한 2년 전의 공정거래위원회 조치가 어떻게 반영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그때 CJ오쇼핑과 GS홈쇼핑도 각각 46억원, 2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판매촉진비를 납품업체에 부당하게 떠넘기는 등 고질적인 ‘갑질’ 행위의 결과였다.

미래부가 불이익 결정을 내린 전례도 없지 않다. 롯데홈쇼핑에 대해 지난해 9월부터 6개월 동안 프라임타임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 것이 그것이다. 그 직전 현대·롯데·NS홈쇼핑 등 3개사의 재승인을 허가했으면서도 롯데홈쇼핑에 대해서는 제재 조치를 부과했다. 물론 롯데 측의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본안소송이 진행되고 있으나 미래부가 이번에도 느슨하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이번 재심사에서 ‘최순실 게이트’의 여파가 어떻게 작용할는지도 관심 사항이다. CJ그룹의 경우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과 K컬처밸리에 대한 투자가 이재현 회장의 사면복권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GS홈쇼핑도 이른바 ‘최순실 화장품’으로 알려진 ‘존 제이콥스’의 제품 판매와 관련해 구설수에 올라 있다. 더욱이 이번 심사부터 총점 기준이 아닌 각 항목별 커트라인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심사 결과가 미리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TV홈쇼핑 업계의 매출액은 연간 12조원 안팎에 이름으로써 1995년 출범 이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내부 경영에 있어 아직도 적잖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소기업 제품 판매를 위한 홈앤쇼핑과 공영홈쇼핑 등 후발주자의 참여가 허용된 것이 그런 때문이다. GS홈쇼핑과 CJ오쇼핑에 대한 재승인 심사를 떠나서도 홈쇼핑업계가 건전한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4. 탄핵심판이 ‘괴담’으로 얼룩져선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리를 두고 항간에 ‘탄핵 기각설’과 ‘탄핵선고 연기설’ 등 온갖 뜬소문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탄핵심리가 막바지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2월 판결’이 사실상 어려워진 데 따른 반응이라 여겨진다. 심지어 “헌법재판관 2명이 탄핵 기각을 지지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수자로 그럴듯하게 포장한 내용이나 계엄령 선포 같은 위험한 소문까지 떠돌아다닐 정도라면 가볍게 흘려들을 상황이 결코 아니다.

뜬소문의 진원지가 대부분 정치권이라는 사실이 문제다. 정국을 유리하게 이끌 수만 있다면 근거가 있든 없든 마구잡이로 생산·유포·증폭시키는 후진 정치의 고질병이 탄핵심판을 계기로 되살아난 것이다. 이달 말이나 내달 초 탄핵 인용 결정을 기정사실화하고 일찌감치 ‘벚꽃대선’에 뛰어든 야권은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그제 3당 대표회담을 전격 소집하고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퇴임 이전에 탄핵심판을 끝내도록 촉구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헌재를 더욱 몰아붙일 요량으로 ‘촛불 총동원령’도 내렸다. 앞서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밖에 없다”며 군중의 힘으로 정부를 무너뜨리겠다고 겁박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발언에 비춰 보면 이러한 총동원령은 예행연습에 불과하다. 하긴 박 대통령도 지난달 보수성향의 인터넷TV인터뷰에서 본인에 대한 루머들을 일축하며 언론 보도와 검찰·특검 수사를 통해 이미 확인된 혐의들마저 전면 부인하는 수법을 구사했으니 소문이든 괴담이든 자기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는 셈이다.

하지만 나라의 명운을 가르는 대통령 탄핵심판이 자꾸 괴담으로 얼룩져선 곤란하다. 설령 야권이 성난 파도와 같은 여론몰이에 힘입어 탄핵 인용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더라도 최종 판단은 헌재에 맡겨야 한다. “국민의 헌법의식이 헌법”이라는 문 전 대표의 궤변은 대의민주주의를 짓밟는 말장난일 뿐이다.

헌재의 증인 신문이 오는 22일까지 이어지고 연장될 여지도 없지는 않다. 헌법재판관 전원이 판결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평의와 판결문 작성에도 보통 2주일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어느 재판관은 인용하고 다른 누구는 기각할 것”이라는 식으로 예단하며 헌재 결정에 영향을 끼치려는 것은 또 다른 국정농단에 지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매일경제]

5.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0건, 이또한 비정상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신청을 놓고 교육 일선에서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9일까지 연구학교 신청을 한 학교는 단 한 곳도 없다. 당초 이달 10일이었던 응모 마감일을 15일까지 5일 연장했으나 지금 같아선 신청 학교가 나올 것 같지 않다. 국정교과서에 매력을 못 느껴 응모 학교가 한 군데도 나오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다. 

울산 울주군의 한 중학교는 지난달 중순 교사회의에서 연구학교 지정을 신청하기로 의견을 모으고도 결국 운영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하지 못했다. 이달 초 전교조 울산지부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찾아와 연구학교 응모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곳 외에도 유무형의 압력을 받았다는 학교가 여러 곳이다. 대다수 학교는 국정교과서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논란의 중심이 되는 것이 두려워 연구학교 응모를 외면하는 실정이다.



교육기관 특성상 구설에 오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학교 지정 과정에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 재직하고 있는 13곳이 공식적으로 비협조 의견을 밝혔다. 대구 경북 울산 대전 등 나머지 4개 교육청에선 전교조 등이 조직적으로 일선 학교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민주시민을 길러내야 할 교육현장에서 자율과 다양성이 이런 식으로 말살된다는 것은 개탄할 일이다. 

국정교과서 반대 진영은 '친일·독재 미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주관이다. 주관으로 말하자면 기존 검정교과서의 '반국가적 자학사관'에 대해서도 상대 진영에서 얼마든지 할 말은 있다. 이들은 또 국정교과서에 수백 건의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는데 기존 검정 8종 교과서의 경우 2013년 이후 지금까지 총 5066건의 오류가 발견됐고 계속 시정돼 왔다.



세상에 오류 없는 교과서는 없고 오류는 수정하면 된다. 무서운 것은 자신은 무오류이고 반대 진영은 무조건 악이라는 흑백논리다. 이런 논리를 기저에 깐 검정교과서를 일부 이념편향적 교사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국정교과서 논의는 출발했다. 과연 그 문제의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최근의 사태는 보여주고 있다.



6. 대우조선 추가 자금 지원 앞서 구조조정 고삐 더 좨야

유동성 위기에 빠진 대우조선해양이 올해 첫 선박 수주 계약에 성공했다. 미국 LNG(액화천연가스) 업체인 액셀러레이트에너지에 17만3400㎥급 부유식 LNG 저장·재기화설비(FSRU) 7척을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전체 수주액은 16억달러로 한 푼이 아쉬운 대우조선해양으로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번 계약만으로 70일 이후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상환 등 필요 자금을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대우조선이 올해 갚아야 할 회사채는 4월에 4400억원을 비롯해 총 9400억원에 달하고 월평균 운영자금도 최소 8000억원에 육박한다. 2015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의 자금을 수혈했는데 현재 3조5000억원을 소진했고 남은 돈은 7000억원에 불과하다. 회사채 상환은커녕 운영자금도 턱없이 모자란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최근 몇 년간 수주 실적이 저조해 이번에 가까스로 유동성 위기를 넘긴다 해도 자금 부족 사태가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당장 지원을 끊기도 어렵다. 대우조선의 수주 잔고는 114척에 달해 선박 건조를 중단하면 계약 위반에 따른 매몰 비용과 협력업체가 받을 대금, 연관산업 종사자 임금까지 약 57조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금융당국이 신규 자금 투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여기에 대규모 실업과 지역경제 침체 등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산업은행은 자금 지원과 채무 삭감을 동시에 진행하는 조건부 자율협약을 검토한다는데 국민혈세와 채권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우조선의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이다. 지난해 서울 사옥과 자회사 등 적지 않은 자산을 매각하고 3000명이 넘는 인력을 감원하는 구조조정 성과를 냈지만 고삐를 더 조여야 할 필요가 있다. 불요불급한 인력과 경비는 과감하게 줄이고 루마니아 망갈리아 조선소 등 굵직한 자산 매각에도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미 많은 혈세가 투입됐고 추가 지원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대우조선 경영진과 노조는 분골쇄신의 각오로 위기 극복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7. 反기업정서 극복이 먼저라는 매경 경제위기 대토론회

매일경제가 그제 개최한 '경제위기 극복 대토론회'에서 팽배해진 반(反)기업 정서를 속히 해소하지 않으면 일자리도 경제도 못 살린다는 지적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국내 산업이 경쟁력을 높이려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야 하는데 반기업 정서에 발목을 잡혀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얘기였다. 

어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최 최고경영자 연찬회에서는 세금을 써서 만드는 일자리가 아니라 오래 지속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규제를 풀어 기업 투자가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을 이뤘다. 경직된 노동법제를 고치고 기업에 대한 반감을 풀도록 여건을 조성해 국내에서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투자 활동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안팎으로 높아진 불확실성을 헤쳐나가기 위해 어느 때보다 구조조정에 먼저 나서야 한다고 했는데 맞는 진단이다. 부실기업과 우량기업을 구분한 뒤 부실기업 정리를 통해 성장성 있는 기업의 활동 여지를 넓혀 일자리를 늘리는 효율적인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모두 허용하면서 예외적인 일부 사항에만 규제하는 방식인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조언에도 귀를 기울여 즉각 실행에 들어가야 한다.

유병규 산업연구원장은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미루는 바람에 그 여파로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업까지 생산성이 최근 10년 사이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2011년만 해도 80%를 웃돌았던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2016년 말 72.4%로 떨어졌다. 전체 산업의 30%가 공급 과잉 상태에 빠져 있으며 신성장동력을 창출하는 산업은 전체의 1%에 미치지 못한다니 심각한 상황이다.

작금의 경제 상황을 위기로 단정하는 데는 이론이 적지만 탈출 해법에는 여러 의견이 맞선다. 경제 위기 진단과 극복을 위한 해법 제시도 이미 넘치도록 반복돼왔다. 문제는 실천이다. 상시 구조조정으로 한계기업을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고통 분담과 양보를 이끌어낼 사회적 대타협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반기업 정서를 해소하고 기업들이 활발하게 투자에 나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를 빨리 이뤄내야 한다.



[서울신문]

8. 개성공단 폐쇄 1년, 협력업체 지원 속도 내야

개성공단이 오늘로 가동을 중단한 지 꼭 1년을 맞는다. 북한의 4차 핵실험(2016년 1월 6일)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2016년 2월 7일)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지난해 2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 교류의 상징으로 불렸던 개성공단을 전격 폐쇄 조치했다. 개성공단 폐쇄는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화라는 명분으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초강경 대응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 해결에는 별 진전이 없었다. 지난 1년간 북한의 5차 핵실험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위협 등 최근까지 도발이 끊이지 않았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억제에 별 효과가 없었지만, 우리 기업들의 피해는 너무나 컸다.



123개 입주 기업 가운데 11개는 완전 휴업을 했고 나머지 기업들도 베트남이나 중국 등 해외 진출을 모색 중이다. 당시 정부가 피해보상금을 유동자산의 70%까지, 업체당 지원 한도를 22억원 이내로 제한하면서 토지·건물 등 투자 자산과 영업 손실 등은 고스란히 입주 업체의 몫이 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5000여개의 중소 협력업체들이다. 정부의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 상황에서 입주 업체로부터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한 기업이 부지기수였고, 하루아침에 판로가 끊겨 휴업과 파산은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개성공단 입주· 협력 업체의 고통에 비해 정부의 관심과 지원은 미흡했다.



정부는 충분히 지원했다고 하지만 비상대책위는 전체 피해액 1조 5000억원 가운데 32%인 4838억원만 지원받았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정책으로 피해를 본 국민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한반도 문제는 남북 주도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흔들릴 수 없는 원칙이다. 북핵 문제 해결이 당면한 중대 사안이지만 이를 이유로 남북 관계 자체가 파탄 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핵 자체가 남북 주도로 주변 강대국들과 함께 풀어 가야 할 국제적 문제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개성공단 폐쇄 등의 충격 요법에서 해법을 찾는 것은 성급한 측면이 있다.



개성공단은 남북의 긴장 완화와 교류협력, 통일시대 대비라는 차원에서 남북 간에 합의한 윈윈 모델이었던 만큼 그 의미는 여전히 살아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태도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개성공단 재가동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더 긴 호흡으로 그 명분을 살려 갈 필요가 있다.



9. 졸렬한 中 ‘한국 흔들기’에 입다문 대선 주자들

중국 당국이 지난해 12월 말 롯데그룹의 중국 선양 ‘롯데타운 프로젝트’ 핵심 사업인 테마파크 조성 공사를 소방 안전에 문제가 있다며 중단시켰다고 한다. 앞서 지난해 11월 말 이후 상하이 롯데그룹 중국본부를 시작으로 베이징의 롯데제과 공장과 청두·선양 등의 롯데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였다. 또 베이징·상하이·청두 등 중국 내 롯데 매장의 소방안전 점검과 위생 점검을 200여 차례나 했다.



중국의 이도 저도 아닌 부인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롯데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 대체 부지로 경북 성주 골프장을 국방부에 제공하기로 한 것에 대한 압박성 보복이란 점은 명백해 보인다.

중국은 지난해 11월에 이어 또다시 한국산 화장품 수입을 막고 한국산 반도체 업계를 정조준해 ‘반독점법’ 정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씨와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에 이어 국립발레단 김지영 수석무용수의 4월 중국 공연도 뚜렷한 이유 없이 불발됐다. 유커(관광객)의 한국행 축소와 전세기 항공노선 불허, 배터리 탑재 차량의 보조금 지급 배제, 비자 발급 규제 등 보복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종잡을 수 없다. 중국의 야비한 ‘한국 흔들기’를 봐주는 인내심이 이제 임계점에 도달했다. 더이상 질질 끌려다닐 수 없는 노릇이다.

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으로 일관하는 저자세를 벗어던지고 그 치졸함을 강력히 따져 묻는 동시에 중국 당국의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해야 한다. 그런 일 하라고 정부가 있는 것이고, 나라 간에 외교 관계를 맺는 것 아닌가. 주중 한국대사는 베이징에서 무슨 일을 하고 지내는지 궁금하다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점을 알기 바란다. 온갖 외교적 수단을 동원하되 끝내 여의치 않으면 우리도 ‘카드’를 꺼내 들어야 한다. 예컨대 중국산 불량 농산품의 시중 유통에 대한 단속의 강도를 크게 높이거나 검역·통과를 강화하는 내용의 상징적인 대응책을 강구할 만하다.

대선 주자들이 중국의 사드 보복에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것은 온당치 않다. 예민한 문제라고 해서 하나같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앞으로 나라를 이끌겠다는 정치인으로서 책임 있는 처사가 아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과 중국의 졸렬한 보복에 대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마치 ‘정부가 자초한 일이니 알아서 하라’ 식의 인식 수준이라면 이런 면피성 태도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



[매일신문]

10. 되풀이되는 구제역, 문제에 맞는 해결책 마련할 때

충북 보은 젖소 농장에서 지난 5일 발생한 구제역이 전북 정읍과 경기 연천으로 확산되면서 경북의 지방자치단체마다 비상이다. 보은과 맞붙은 상주는 물론 지난 2010년 11월 구제역 파동에 휩싸였던 안동 등 경북지역이 전국 최대 한우 생산지인 탓이다. 구제역은 축산 농가는 물론 국가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되풀이되는 구제역에 발생 원인별 대처 필요성이 나오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구제역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진화를 거듭하는 바이러스 차단은 쉽지 않다. 그러나 친환경적 사육 조건을 조성해 구제역 바이러스를 견뎌내는 면역력을 기르는 일이 급하다.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는 이 같은 방식의 사육 환경을 도입하는 중이다. 구제역을 막겠다는 목적도 있지만 동물복지 차원에서의 대응이기도 한 셈이다. 장기적으로는 달라진 사육 환경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마땅하다.



다음으로 구제역 항체 형성률을 높이는 문제다. 이번에 구제역이 발생한 정읍 한우 사육 농가의 경우 항체 형성률은 5%였다. 또 처음 구제역이 일어난 보은군 젖소 농장의 항체 형성률이 겨우 19%였고, 인근 두 농가의 항체 형성률 조사 결과 20~40%에 불과했다. 이 밖에 여러 곳에 대한 조사에서도 낮은 항체 형성률을 보여 이를 높이는 일은 발등의 불이다. 안동시가 항체 형성률이 소 80%, 번식돈`염소 60% 등 현행 기준에 못 미치는 농가에 과태료 부과 등 불이익을 주기로 한 이유이다.



항체 형성률 검사 표본을 늘리는 일도 과제다. 지금은 정해진 기준에 따라 임의의 농가당 1마리씩에 대한 항체 형성률 결과를 모아 전체를 집계한다. 이는 농가의 전체 사육 수의 일부여서 정확성이 떨어진다. 전북의 한우 항체률은 96.5%였으나 구제역 농가 항체률은 5%였던 사실이 증거다.



지난해 경북도 내의 소 평균 항체 형성률 96.2%도 전체 69만6천563마리 중 4천994마리의 검사 수치일 뿐이다. 농장의 철저한 백신 접종 실천도 살펴야 할 점이다. 형식적인 접종과 정량에 못 미치는 주사, 백신 기피 등은 농장주 스스로 피하고 경계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경향신문][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그릇도 맛을 낸다

옛 그릇을 보고 사서 쓰는 게 취미다. 福(복)자가 새겨진 밥주발이나 국그릇, 막걸리 잔이다. 내 손에 들어온 낡은 그릇에는 이력서가 없다. 누가 이걸로 밥을 먹었을까, 쌀은 제대로 넣어서 지은 밥일까, 이 작은 종지에 넣은 건 무슨 반찬이었을까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동시에 처연해지기도 한다. 주인 잃은 그릇, 대개는 버림받아서 결국 내 수중에 온 셈일 테니까. 거기에 옛사람들의 궁핍했을 삶까지 겹쳐서 마음이 짠해진다.



이런 그릇 구하기는 몇 해 전까지는 상당히 쉬웠다. 한번은 전주 한옥마을 근처의 골동가게에서 그릇을 골랐더니, “그냥 한 박스 가져가. 막걸리값이나 주고” 이러신 적도 있다. 요즘은 제법 멋을 낸 그릇들(더러 금박을 두른 대접도 있다)은 몇 만원도 나간다. 울퉁불퉁하고 색깔도 고르지 않은, 그저 실용적인 용도에 최소한의 치장을 한 그런 그릇에 국을 담고 밥을 푸면 마음도 편해진다. 일본의 도자기를 이르는 야키(燒)들은 아름답고 예술적인 경우가 많은데, 놓고 감상하기는 몰라도 시금치와 김치를 담자면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어색하다.

옛 그릇이라고 해서 사기나 도자기만 있는 것도 아니다. 스테인리스강, 그냥 일제강점기식 언어로 치면 ‘스뎅’인 금속 그릇도 옛 물건에 든다. 우리 옛 그릇 문화를 몰아낸 주범(?)이며 멋대가리 없는 소재라고 비난받기도 하지만 나는 이것조차도 옛 멋이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것들은 다 아쉽고 따뜻한 영혼이 깃드는 것 같다. 스테인리스 그릇도 잘 보면 오래된 흔적을 가질수록 멋이 깊다. 소재 특성상 고급할 수 없어 더 애착이 간다. 정릉동의 숭덕분식은 40년이 넘은 초등학교 앞 떡볶이집이다. 이 집의 명물은 즉석떡볶이를 담아주는 스테인리스 그릇이다. 오래되어 반질반질하고 편안한 그릇에 어린 학생들이 떡볶이를 담아 먹는다.



스테인리스는 원래 크롬과 철의 결합이다. 단단하고 녹이 안 스는 데다가 가벼워서 총신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전쟁물자가 사람의 생활을 이롭게 하고 있는 셈이다. 이 금속은 전방위로 우리 생활에 들어왔다. 제기(祭器)가 바뀌었고 앉은뱅이 식탁이 되었으며, 수저도 모두 바뀌었다. 요즘 스테인리스는 가벼워서 경박하다. 예전 것은 상당히 무거운데, 이는 얇게 철판을 제조하는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스테인리스 그릇을 제조했던 장인들을 만났더니 이것도 현장의 역사가 있었다. 양은과 놋쇠를 밀어냈는데, 멜라민에 치여서 찬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용으로 쓰이는 속칭 ‘뱅뱅들이’(둥근 스테인리스 그릇 제조방법) 주발과 국그릇, 냉면 그릇 등을 만들면서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중국산 수입품이 들어오면서 이 산업도 큰 타격을 받은 상태다.

봄이 되면 마산 진동면의 삼거리식당을 가야지, 하고 벼른다. 이 집에서 제철에 맞춰 해주는 미더덕요리도 좋은데, 특히나 낡은 스테인리스 그릇이 좋기 때문이다. 던져도 깨지지 않고, 위생적으로 잘 닦이고, 그래서 고단한 시장거리 아주머니들의 선택을 받았던 스테인리스 그릇들이야말로 얼마나 장한 존재인가 싶어진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 목화 꽃다발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인도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간디라면 물레를 돌리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물레를 돌리는 것과 저항 운동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야생 목화는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지만, 일찍부터 섬유로 만들어 이용한 것은 인도라고 한다. 그런데 영국의 침략 이후 세계 최대의 면화 생산지인 인도는 원료 공급지이자 완제품 시장으로 전락하고 만다. 간디의 물레질은 인도의 자력갱생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목화를 처음 들여왔다는 문익점 선생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목면시배유지기념관은 문익점 선생이 중국에서 목화를 처음 들여와 심고 기른 것을 기념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곳에 가면 목화가 어떻게 이 땅에 들어왔고, 널리 퍼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문익점이 태어난 배양마을은 목화 재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00평 남짓한 목화밭 한쪽에는 ‘삼우당 선생 면화 시배지’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오리털이며 거위털처럼 추위를 막아 주는 재료가 넘쳐나는 오늘날은 목화와 목화를 가공한 면화의 중요성에 둔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목화에서 비롯된 솜과 면직물이 존재하기 이전의 인류는 끔찍한 추위에 떨어야 했던 것이 사실이다. 문익점 선생을 추앙하는 것도 국가의 양대 과제였던 추위와 배고픔을 해소하는 데 목화가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목화의 역사’라는 책을 쓴 프랑스 작가 자크 앙크틸에 따르면 목화를 가공해 만든 면은 비단, 모직과 함께 ‘인류 3대 직물’의 하나다. 그런데 비단과 모직이 어느 나라에서나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면 면은 서민에게도 혜택을 주는 ‘직물의 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익점 선생이 목화를 들여오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에서도 귀족층이 아닌 대부분은 삼베로 지은 홑저고리로 겨울을 나야 했을 것이다.

조선 태종은 ‘문익점은 충성과 효성이 모두 온전하고 학문이 순수하고 발랐으며 백성에게 옷을 입힌 공로가 있어 만세로 그 혜택이 변치 않고 있다. … 그의 자손들은 문관·무관에 다 진출하도록 하되 서열에 구애받지 말고 발탁하라. … 이후 억만대 동안 이 법전을 바꾸지 말라’고 전교했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백성을 먹이고 입히는 것이라면 목화의 도입을 곧 ‘추위의 해결’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목화 꽃다발이 화제다. 각급 학교 졸업식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린 TV 드라마에서 외로운 여주인공이 받은 것이 바로 목화 꽃다발이었다는 것이다. 목화꽃의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물론 꽃다발이 아니라 목화의 열매 다발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전통 사회에서 목화와 목화로 만든 실의 의미는 부모님의 무병장수였다. ‘어머니의 사랑’이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건 좋은 일이다.



3. [부산일보사][박태성의 예술과 삶] 헤르만 헤세

가끔 우리의 삶이 서글퍼지고 팍팍해질 때, 독일 남부 소도시 칼프에서 만났던 헤르만 헤세의 동상 하나를 떠올린다. 칼프는 헤세의 고향이다. 헤세는 동네 아저씨 같은 포근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다가선다. "내가 언제 다시 여기 올 수 있을런가"라고 적혀 있는 동상 곁에서 사진도 찍었다. 헤세가 적은 여행일기에서 '나는 여름의 따뜻한 어느 날 저녁 시간에 태어났다. 나는 그 시간의 온도를 알게 모르게 평생 좋아하며 찾아다녔다"며 향수를 표현했다.

그는 세상과 끊임없이 불화를 일으켰다. 말년에 적은 에세이 '저녁 구름'이다. "나는 저 밑 세상을 보며 생각한다. 누가 내게서 너를 훔쳐 가도 좋다고. 나는 이 세상에서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세상에 잘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세상도 나의 혐오에 충분히 앙갚음했다." 

그가 그린 그림에서조차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다. 유일한 것은 그의 모습을 묘사한 '정원사 헤세'다. 헤세의 시 '안개 속에서'다.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모든 나무 덤불과 돌이 외롭다./ …//어둠을, 떨칠 수 없게 조용히/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갈라놓는/어둠을 모르는 자/정녕 그 누구도 현명치 않다.//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삶은 외로운 것/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누구든 혼자이다./ 

하지만 헤세는 정체 모를 관념에 침잠한 작가는 절대 아니다. 1차 대전 이후 '양심의 정치' '전쟁과 평화' 같은 정치적 성향의 글을 연거푸 발표한다. 독일의 이성 잃은 국가주의를 비판했다. 정부와 마찰을 겪고 스위스에 정착했다. 억압에 대한 저항 정신은 고독, 구름, 하늘, 바람, 꽃 같은 단어들을 노래하던 그의 비현실적인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모순의 현실을 견제하고 비판할 수 있는 건 결국 '비현실' 아니겠는가.

세상이 어지럽고 삶의 주름살들이 늘어난다. 헤세가 지냈던 어느 하룻날같이 언덕에 올라서 온종일 뜬구름만 바라보고 싶다. 그리하여 세상의 변혁을 소망하는 낭만 가객이 되어 보련다.



4. [아시아경제][초동여담] 칼(부엌칼)을 잡은 이유

'앗!~' 기어코 피를 보고 말았다. 붉은 피가 뚝뚝 도마로 떨어졌다. 저녁으로 닭볶음탕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오랜만에 두 딸도 집에 있어 앞치마를 두르고 솜씨 좀 부려 보려던 참이었다. '탁 탁 탁 탁~' 리드미컬하게 재료가 다듬어지는 요리사들 칼질을 흉내 낸 게 화근이다. 양파는 보기 좋게 다듬어졌지만 단단한 감자가 문제였다.



양파와 감자를 같은 칼질로 허세를 부리려 했으니 될 리가 만무했다. 칼(부엌칼)을 잡은 지 1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칼질은 무섭고 어렵다. 자취와 캠핑까지 섭렵한 경력에 라면 좀 끓여 본 내공(?)인데도 말이다. 마눌님의 번개 같은 응급조치(상처와 닭볶음탕)에 주방은 다시 안정을 찾았지만, 딸들에게 점수 좀 따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곧잘 실수를 하긴 하지만 주방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20여년이 넘은 결혼생활 동안 꼬박꼬박 아침밥을 먹고 다녔다. 간 큰 남자란 소리를 수도 없이 듣고 살았지만 그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어느날, 가족이 둘러앉아 텔레비전(TV)을 보고 있을때다. 일명 '요섹남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 이라 불리는 연예인들이 출연한 쿡방ㆍ먹방 프로그램이다. TV속에 등장한 멋진 남자들이 주방에서 능숙하게 맛깔스런 요리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속으로 남자 망신시킨다며 눈을 살짝 흘기기도 했지만 솜씨들은 신기할 만큼 대단했다. 맛을 본 출연자들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 바빴다.

작은딸이 한마디 한다. "아빠도 저렇게 만들 수 있어요?" 순간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허풍이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당연한 거 아냐. 저 사람들보다 더 맛있게 만들지"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었다. 후회막심이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그럼 일요일마다 아빠가 요리 하나씩 만들어 주세요." 딸은 카운터펀치까지 한 방 날렸다. 

세월이 흘렀다. 피(?)나는 노력 덕분에 그나마 맛볼 수 있을 만한 음식(요리라고 말할 순 없다)들이 만들어졌다. 그래봐야 비슷비슷한 음식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허풍 덕분에 음식 만드는 일이 재미있다. 이번엔 무엇을 만들어볼까 고민하는 시간도 재밌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것도, 도마 위에 재료를 펼쳐놓고 하는 칼질도, 중간 중간에 하는 실수도, 완성된 음식을 그릇에 옮겨 담아 놓는 것도 재밌다. 이보다 더 재미난 것은 가족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휴일 저녁, 어김없이 가족들은 식탁에 모여 앉는다. 어떤 음식을 내놓아도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준다. 칭찬은 코끼리도 춤을 추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게다. '아빠 최고' '대단하다' 라는 한마디에 다시 부엌으로 향하게 되니까.

혼밥, 혼술 …. 혼자 하는 일이 많은 세상이다. 세태를 반영하듯 식당에는 벽을 마주보고 앉는 1인 좌석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제 '밥은 함께 먹는 것'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일반적이지 않다. 하지만 옛날 어르신들은 "식사는 사람들과 어울려 먹어야 맛있는 것" 이라고 했다. 나 또한 그런 세대다. 혼자 먹자고 음식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음식을 준비한다. 그 시간이 즐겁고 재밌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허풍으로 시작된 부엌일이 지금은 가족에게 내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어 버렸다. 

손가락 피 좀 보고, 주부습진(요즘 나타난 증상) 좀 생긴다고 뭐가 대수겠는가. 가족들과 나눌 수 있는 저녁 있는 삶이 있다는 게 더 소중한 일인걸. 부엌데기가 된 것이 즐겁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

스티븐 스필버그의 2015년 영화 ‘스파이 브릿지’로 알려진, 냉전시대 소련 첩보원 루돌프 에이블(Rudolf Abel, 1903~1971)과 미국 CIA U-2 첩보기 조종사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FrancisGary Powers, 1929~1977)의 포로 교환이 1962년 2월 10일 동독 베를린 글리니케 브릿지(Glienicke Bridge)에서 이뤄졌다. 

영화가 보여주듯, 그 전후 사건의 주인공은 단연 포로 교환을 성사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미국 변호사 제임스 도노번(James Donoban, 1916~1970)과 사형 선고에도 끝내 스파이로서의 자존심과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았던 에이블이었다. 파워스의 존재감은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리 크지 않았다. 포로 교환이 이뤄지던 그 날, 파워스의 심정은 어쩌면 착잡했을 것이다. 

그는 CIA 첩보원 지침을 지키지 못했다. 그가 몰던 비밀 병기 U-2 첩보기의 성능과 재원이 적국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지대공미사일 공격으로 비행이 불가능해지자마자 기체와 함께 자폭했어야 했다. 적어도 자신은 기밀 유지를 위해 사전에 지급받은 극약을 먹었어야 했다. 그는 작전에 실패했고, 비겁하기까지 했다. 미국이 포로가 된 그를 구한 것은,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 군사 기밀을 누설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파워스는 켄터키주 젠킨스의 탄광촌 광부의 6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들이 자신처럼 광부로 늙지 않도록 아버지는 그에게 공부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는 테네시주 밀리건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50년 6월 미 공군에 입대했다. 그의 비행 기술은 탁월했고, 그 덕에 56년 1월 CIA에 발탁됐을 것이다.



그는 석 달 뒤 결혼했고, 대위로 예편해 민간인 신분으로 U-2 첩보기 조종 훈련을 받았다. 소비에트의 방공망이 미치지 못하는 21km 고도를 비행하며 최첨단 영상장비로 적국의 군사기지 등을 정밀 촬영하는 임무. 56년 9월부터 60년까지 이어진 U-2첩보작전은 소련과 중동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수에즈위기 당시의 이스라엘 등 우방국을 대상으로도 이뤄졌다. 그는 60년 5월 1일 소비에트 영공에서 지대공미사일에 격추됐지만 “탈출의 희망을 놓지 못해”살아남았다. 

포로교환으로 풀려나기까지 그는 1년 9개월 10일을 모진 고문을 받으며 버텼다. 그리고, 그 역시 U-2의 비행 고도 등 1급 군사기밀을 끝내 누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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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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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세계일보]

​1. 1년 남은 평창올림픽, 국민 참여 없이 성공 어렵다

지구촌 겨울 스포츠 축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1988 서울올림픽 이후 꼭 30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열리는 올림픽이다. 내년 2월9일부터 17일간 평창 강릉 정선에서 나뉘어 열린다. 대회 규모도 역대 최대이다. 7경기 15개 종목, 102개 세부종목이 열려 역대 겨울올림픽 최초로 세부종목 100개를 넘어섰다. 참가 선수단도 95개국, 6500여명으로 2014 러시아 소치올림픽 때를 능가한다. 참가 인원은 선수단과 국제스포츠 관계자, 취재진을 합쳐 5만여명이 예상된다.

대회 준비는 비교적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12개 경기장 가운데 6개 경기장은 새로 짓고, 6개는 기존 시설을 고쳐서 쓴다. 오는 10월까지 경기장 공사를 마무리하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겐 국제대회 경험도 많다. 1988년 하계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축구, 2011년 세계육상 선수권대회를 치러봤다. 동계올림픽을 포함해 ‘세계 4대 스포츠 대회’를 치러본 나라는 5곳밖에 없다. 우리가 여섯 번째가 된다.

그러나 평창올림픽이 성공하려면 경기장 준비와 대회 운영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적 관심과 참여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성공 개최를 장담할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이다. 최순실 사태로 평창올림픽에 각종 의혹의 시선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권을 노린 최씨 일가의 놀이터가 됐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장·차관이 구속된 문화체육관광부와 조직위원회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고, 국민적 관심이 식었다. 기업의 후원도 예전 같지 않다. 국민의 역량을 하나로 모을 정부와 국회의 관심과 지원, 국민의 참여가 필요하다.

평창은 두번의 실패를 겪고 세번째 도전 끝에 유치에 성공했다. 좌절하지 않고 끝내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인내와 끈기’ 덕분이었다. 그리고 당시 우리가 평창 지지를 호소하면서 세계인에게 던진 메시지는 ‘꿈과 희망’이었다. 그 꿈과 희망이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큰 상처를 입은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됐다.



평창올림픽 슬로건은 ‘하나된 열정’이다. 하나된 열정으로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준다면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가꿔갈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년. 6년 전 평창 대회 유치 때 보여준 뜨거운 열기와 높은 관심을 다시 한번 쏟아부을 가치는 충분히 있다.



2. 정치권, 삼권분립 짓밟는 ‘헌재 흔들기’ 중단해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3월 이후로 미뤄지자 야권이 ‘탄핵 위기론’을 제기하며 일제히 촛불집회 독려에 나섰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제 “11일 정월 대보름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조기 탄핵을 촉구하는 총력투쟁을 국민과 함께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추 대표 등 야3당 대표는 회담을 갖고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퇴임일인 3월 13일 이전에 탄핵심판을 인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아예 발 벗고 뛰어들었다. 문재인 전 대표는 그제 기자 간담회에서 “정치권은 좀 더 탄핵 정국에 집중하고 또 촛불 시민도 촛불을 더 높이 들어서 탄핵이 반드시 관철되도록 함께 힘을 모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선동했다. 앞서 문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린다면 다음은 혁명밖에는 없다”고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헌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헌재는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고 소리쳤다. 이들은 그동안 헌재의 대통령 탄핵 결정을 전제로 조기 대선을 준비해왔다. 그러다 탄핵안 기각 가능성이 흘러나오자 헌재를 압박하며 선명성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당도 오십보백보다. 정우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어제 “어떤 정치세력도 헌재 심판에 영향을 끼치려 해선 안 된다. 민주당은 정신 차리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야권에 손가락질하기 전에 자기부터 돌아볼 일이다. 친박계 의원들은 보수단체들이 주최하는 태극기 집회에 수시로 참석해 탄핵 무효를 외치고 있다. 이들의 행동을 제지하기는커녕 방조해온 게 새누리당 지도부가 아닌가.

헌재의 탄핵 결정 시기가 가까워지면서 탄핵 찬반을 둘러싼 갈등이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탄핵에 찬성하는 촛불집회 세력과 반대하는 태극기집회 세력이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서 대치하고 있다. 이런 처지에서 여든, 야든 군중을 자극하고 집회를 선동하는 행위는 백 번 비난 받아 마땅하다.

대통령 탄핵 결정은 공정하고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헌법의 가치와 규정에 따라 엄정하게 심리·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헌재의 몫이다. 정치권력이 군중의 위력을 동원해 헌재를 압박하는 태도는 명백한 삼권분립 위반이다. 법치의 생명인 재판의 공정성을 해치는 짓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라면 누가 승복할 수 있겠는가. 정치권의 무책임한 장외 선동은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만 키울 뿐이다. 정치권은 헌재 흔들기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동아일보]

3. 朴과 野의 조직적 헌재 압박, 심판결정 불복 신호탄인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 대표는 어제 오후 국회에서 만나 헌법재판소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 만료 전에 탄핵심판을 인용하라고 촉구했다. 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청와대 압수수색을 조건 없이 승인하라고 요구했다. 야3당이 탄핵심판 결과를 ‘인용’으로 결론 내리고, 헌재에 그대로 결정하라고 요구한 것은 3권 분립과 법치주의에 대한 명백한 침해다.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이 가까워지면서 헌재를 압박하기 위한 야권의 선동이 조직화하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그제 “촛불을 더 높이 들어야 한다”고 선동한 데 이어 어제도 “국민이 다시 힘을 모을 때”라고 강조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11일 정월 대보름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조기 탄핵과 특검 연장을 촉구하는 총력투쟁을 국민과 함께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 측의 반발도 노골화하고 있다. 언론에 특검의 박 대통령 조사 날짜가 보도됐다는 이유로 특검과 합의한 9일 조사를 거부했다. 앞으로 응할지도 불투명하다. 대통령이 끝내 조사를 거부한다면 특검은 강제할 방법이 없다. 대통령은 일반인과 달리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도록 헌법 84조는 규정한다. 강제구인이나 긴급체포가 불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특검) 조사에 응하려 한다”고 한 만큼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정국은 ‘촛불’과 ‘태극기’가 어디서 불꽃 하나만 튀어도 폭발할지 모를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그래서 탄핵심판 이후가 더 걱정이다. 박 대통령의 탄핵심판 대리인인 손범규 변호사는 7일 페이스북에 “새누리당은 탄핵기각TF(태스크포스)를 만들고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며 조직적 개입을 ‘지시’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이 어제 ‘4월 퇴진, 6월 대선’이라는 ‘질서 있는 퇴진론’을 다시 들고나온 것은 탄핵 심판 절차를 송두리째 흔드는 행위다.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박 대통령의 취임 4주년인 25일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양측 집회의 참가 규모가 이제는 비슷해진 데다 ‘태극기’ 역시 맞불집회로 대응할 예정이어서 불상사도 우려된다. 특정 세력의 강압이나 여론에 의해 헌재가 흔들린다면 우리는 자식들에게 법도, 질서도 없는 불안한 나라를 물려주게 될 것이다.



[서울신문]

4. 여야, 장외 투쟁 말고 헌재 결정 승복 선언하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과 관련해 여야 정치권이 다시 술렁이고 있다. 무엇보다 헌재가 그제 열린 탄핵 심판 11차 변론에서 대통령 측이 신청한 증인 17명 중 8명을 채택하고 22일까지 증인을 신문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심판 일정이 불확실해진 이유가 크다.

헌재는 최종 변론기일을 확정하지 않았다. 설령 22일 변론이 종결된다 해도 헌재 재판관들이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빨라야 2주가량 걸리는 까닭에 2월 최종 선고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재로선 2말 3초(2월 말, 3월 초)로 관측되던 선고일은 3초 3중(3월 초, 3월 중순)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최후 변론에 직접 출석하는 지연 전술을 시도하고, 헌재가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이를 수용할 땐 선고일뿐만 아니라 선고 결과 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자칫 이정미 헌재 소장 대행의 퇴임일인 3월 13일을 넘기면 ‘7인 재판관’ 체제에서 탄핵 여부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은 어제 대표 회담을 갖고 헌재의 결정 지연 조짐에 맞서 조기 탄핵을 위해 ‘촛불 집회’에 힘을 기울이기로 했다. 탄핵 위기론까지 제기하며 헌재의 압박에 나서는 것과 같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나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총력 투쟁을 요구하며 헌재를 몰아붙였다. 자숙해도 부족할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들은 지난 주말 보란 듯이 ‘태극기 집회’에 참가해 탄핵 반대를 외쳤다.

여야 정치권은 헌재의 심리가 막바지로 치닫는 상황을 고려해 최종 결정을 차분히 기다릴 필요가 있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집회 참석을 독려하고 집회에 직접 나가 탄핵을 하라, 하지 말라고 선동하는 행위는 자제해야 마땅하다. 촛불 집회든 태극기 집회든 집회에 기대어 탄핵 정국을 주도하려는 시도는 더는 없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이제 뒤로 물러나 탄핵정국 이후에 대비하는 게 맞다. 탄핵을 정치 싸움으로 몰지 말고 질서를 지키며 오직 법과 원칙에 근거한 헌재의 판단을 지켜보는 게 해야 할 일이다.



헌재가 공정성을 전제로 가능한 한 신속하게 결론을 내린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헌재의 빠른 결론이 국정 공백을 최소화할 사실을 모를 국민은 없다. 다만 신속성에 너무 얽매여 절차적 정의를 훼손하면 또 다른 혼란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도 더이상 헌재의 심판 일정을 흔드는 꼼수를 부려서는 안 된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헌재의 결정을 모두 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정당이나 대선 주자들도 마찬가지로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약속하라. 그것이 헌재 결정 이후 나타날 수 있는 국론 분열과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그렇지 않다면 헌재의 결정이 내려진 이후 대한민국은 더 큰 혼란에 빠져들 수도 있다.



5. 월성 원전 무리한 수명 연장에 제동 건 법원

법원이 경북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가동 연장에 제동을 건 것은 시대정신의 변화를 상징한다. 그동안에는 잠재적 위협에도 원전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하지 않으냐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이 적지 않게 늘어났다.



외부적으로는 일본 후쿠시마원전 사태가, 내부적으로는 한반도가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준 울산·경주의 지진이 변화의 계기를 제공했다. 더구나 월성원전은 아직도 여진(餘震)에 시달리는 경주에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서울행정법원 판결이 내려지자 애초 ‘월성 1호기 10년 연장’을 허가했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한편으로 정부는 항소심에 명운을 걸기보다 장기적 에너지 수급 방안을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산업통상부는 “당장 전력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지는 않겠지만 대안 없이 원전 수명을 연장하지 않으면 앞으로 전력 수급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고 한다. 당장은 전력예비율에 여유가 있지만 설계 수명이 끝나는 원전에 잇따라 같은 판결이 내려진다면 전력 수급 차질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설계 수명 30년으로 2012년 11월 가동이 중단됐던 월성 1호기는 2015년 2월 원자력안전위의 10년 수명 연장 결정으로 2022년 11월까지 가동이 보장돼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원전 25기 가운데 8기의 수명은 2023∼2027년에 끝난다. 정부가 수립한 제6차 전력 수급 계획은 2027년까지 설계 수명이 만료되는 원전의 수명 연장을 전제로 세워졌다고 한다. 결국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법원이 아니라 정부다.

서울행정법원이 ‘연장 취소’를 결정한 이유도 정부는 되새겨 봐야 한다. 재판부는 “원안위가 수명 연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원자력안전법령이 요구하는 ‘변경 내용 비교표’를 제출하지 않았고, 운영 변경 허가와 관련한 주요 사항을 위원회 과장의 전결로 처리했으며, 의결에 참여한 원안위 위원 가운데 2명은 결격 사유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절차도 못 지키고 섣부르게 밀어붙인 결과 오히려 조기 가동 중단을 부른 꼴이다.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도 원전이 국민의 마음을 얻기는 쉽지 않은 시대가 됐다. 당국은 가동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는 원전만큼은 안전하다는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자세부터 바꾸어야 한다.



[매일신문]

6. 수억대 대구 알바 임금 안 주고 입으로만 사과한 이랜드

대구알바노조 등 청년 단체들이 7일 대구 중구 동아쇼핑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랜드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대구지역 외식업체 9개 매장에서만도 2억7천만원이 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 임금 체불이 있었다면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또 매장 360곳 4만4천360명, 83억7천여만원의 아르바이트생 임금 체불에 대한 당국의 조사 결과와 회사 측의 사과 및 대책 발표에도 여전한 임금 체불과 근무시간 조작 등도 폭로했다.



이날 대구 도심에서의 외로운 외침은 먼저 국내 대기업의 부당 노동행위에 대한 말뿐인 사과 행태에 대한 대구 시민들의 분노의 한 단면을 드러냈다. 또 노동자의 아픔은 외면하고 무관심한 우리 노동 당국에 대한 항변이었다. 무엇보다 이날의 분노는 일자리에 목마른 청년층과 비정규직에라도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수많은 근로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한 채 기업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의 부도덕성 때문이다. 아울러 근로자를 기업의 기둥인 제 식구로 보듬기보다 한낱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기업주의 경영 철학 부재와 기업 윤리의 실종에 대한 배신감도 있다.



이미 국민들은 지난달 5일 정의당 이정미 국회의원의 폭로로 당국의 조사 결과 이랜드가 법규 위반으로 83억원이 넘는 근로자 임금 체임 사실을 알았다. 국민적 비난을 의식한 경영진은 곧바로 다음 날 그룹 차원의 사과문 발표와 체불 임금 해결과 아르바이트 직원의 정규직 전환 추진 등 직원 처우 5대 혁신안을 내놓았다. 대국민 사과와 약속 후 한 달이 지났는데도 이날 대구 도심에서 터진 절규는 체불 문제와 근무시간 조작 등의 부당 노동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제 할 일은 분명하다. 노동 당국의 적극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한 고유 권한의 행사뿐이다. 이랜드의 대국민 약속의 이행 점검과 불법 사실 규명과 처리 행정만 남았다. 눈치 보거나 좌고우면할 필요조차 없다. 이랜드도 사과의 진정성을 보일 때다. 기업은 근로자의 땀과 소비자의 호응 없이는 잠시는 몰라도 오랜 생존은 없는 법이다. 굳이 이를 외면한다면 이랜드의 앞날은 자명할 따름이다.



7. 월성 1호기 재가동 취소 판결, 이참에 폐로 하는 게 맞다

서울행정법원이 경주 월성원전 1호기에 대해 재가동 결정 취소 판결을 내린 것은 유례가 없는 사건이다. 가동 중인 원전에 대해 사실상 가동 중단을 의미하는 판결이 나왔다는 점에서 향후 한국 원전정책의 궤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이는 2년 전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월성 1호기 재가동 승인 과정을 지켜봤더라면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판결 결과도 놀랍지만, 판결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훨씬 놀라게 된다. 법원은 재가동 승인 과정에서 빚어진 위법 사항 여러 개를 적시했는데,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승인 과정이 얼마나 허술하게 처리됐는지 알 수 있다. 위법 사항으로 ▷운영 변경 허가 사항 전반에 대한 ‘변경 내용 비교표’를 제출하지 않았고 ▷허가 사항에 대해 원안위 과장이 전결로 처리했고 ▷원안위 위원 2명은 법률상 결격 사유가 있고 ▷계속운전을 위한 안전성 평가 때 최신 기술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월성 1호기가 월성 3`4호기와 비교해 차이 나는 설비임에도 수명 연장 허가를 내줘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것으로 봤다. 법원은 원전 인근 주민들이 제기한 재가동 과정의 문제점을 상당 부분 인용해 월성 1호기가 더는 가동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안전 문제에 관해선 한 치의 소홀함이나 눈속임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월성 1호기는 2015년 재가동 승인 과정에서 노후 원전의 위험성과 기술적 미비점 등을 이유로 몇 차례 결정이 연기되는 파란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당시 가동 중단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많았지만, ‘폐로 했다간 향후 원전을 지을 수 없다’는 명분론이 힘을 얻으면서 가까스로 수명이 연장됐다.



한수원은 가동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판결의 사회적 파장과 의미를 볼 때 쓸모없는 고집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월성 1호기는 지난해 경주 지진 때 연약 지반에 자리 잡은 사실이 밝혀져 큰 우려를 안겨준 원전이다. 전력 수급이 부족하지 않으니 이참에 가동을 중단하고 폐로 절차를 밟는 것이 옳다. 2022년 11월에 수명이 끝나는 만큼 5년 남짓 남은 기간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안전 문제에 허점을 보인 만큼 폐로가 순리일 수밖에 없다.



[이데일리]

8. 정규직 장사, 어디 한국GM 노조뿐일까

한국GM 노조 간부들과 임원들이 돈을 받고 협력업체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는 ‘채용 장사’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노조와 경영진이 한 통속이 돼 뒷돈을 받고 정규직 자리를 판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처지를 비관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부도덕한 행태다. 채용비리를 저지른 회사의 잘못도 크지만 무엇보다 근로자 권익을 보호해야 할 노조 간부들이 채용을 미끼로 뒷돈을 챙기는 데 앞장섰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검찰은 그제 이 회사의 전·현직 노조 간부와 임직원 50여명을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특히 노조지부장을 지낸 정 아무개씨는 2012년부터 4년 동안 협력업체 직원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1인당 많게는 7500만원까지 받아 모두 8억 7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집 화장실에서 현금 4억원이 발견됐을 정도다. 경영진도 노조 청탁을 들어주고 지원자의 성적 조작에 가담했다. 정규직 전환자 346명 중 123명(35.5%)이 부정합격자라고 하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기업 노조의 채용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기아차 광주공장 노조 간부가 취업사기로 거액을 챙겼다가 쇠고랑을 찬 게 불과 2년여 전의 일이다. ‘채용 장사’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고용 세습제도 고질이다. 근로자 1000명 이상 대기업의 35%가 단체협약에 노조원 자녀의 우선 특별채용을 보장하는 고용세습 조항을 두고 있다. 비정규직 보호는 말뿐이고 기득권을 지키려고 고용세습에 정규직 장사까지 하는 게 권력화한 대기업 노조의 실상이다.

채용 장사나 고용세습이나 모두 취업 준비생들의 희망을 짓밟는 파렴치한 범죄 행위다. 정규직을 꿈꾸는 비정규직 근로자에게도 마찬가지다. 공정 경쟁을 어지럽히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반사회적 행위이기도 하다. 이번 기회에 한국GM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에도 비슷한 사례가 없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부패한 노조 권력은 일벌백계로 엄중 처벌해 비리를 뿌리 뽑아야 한다.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노동계의 횡포로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다.



9. 파키스탄보다 뒤져서야 후회할 텐가

우리가 경제적으로 나이지리아나 파키스탄과 비교되는 상황이 온다면 달가워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경기가 침체됐을망정 마음속으로는 국민소득 3만 달러 목표를 이뤄 선진국들과 나란히 어깨를 겨루는 모습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이지리아나 파키스탄은 우리의 상대가 못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나타난 경제 지표들에서도 분명히 확인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추세가 그대로 지속될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질 것이라는 게 외부에서 바라본 인식이다. 2050년에는 우리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8위로 나이지리아, 이집트, 파키스탄 등보다 낮아질 것이라는 회계컨설팅 네트워크 PwC의 전망이 그것이다. 앞으로 30여년 뒤의 얘기라고 남의 일처럼 간주할 것도 아니다. 지난 30년이 훌쩍 지난 것을 생각하면 다음 30년도 금방이다.

PwC의 전망에 따르면 현재 세계 13위인 우리의GDP가 2030년엔 14위, 2050년에는 18위로 하락할 것으로 분석됐다. 그때쯤에는 이집트와 나이지리아가 급격한 성장을 이뤄 우리보다 앞설 것이라는 얘기다. 이집트가 현재 21위, 나이지리아가 22위라는 점에서 격차가 그렇게 작은 것도 아니다. 세계 경제 성장세에 맞춰 브라질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도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신흥국 중에서는 우리가 현저하게 뒷걸음질 칠 것이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그런 조짐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우리 경제의 성장·생산·투자가 정체된 가운데 소비마저 얼어붙은 모습이다. 최근 수출이 약간의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지만 아직 궤도를 잡아나가려면 한참 멀었다. 여기에 가계부채 부담이 누적되고 있으며 국가부채도 위험수위에 점차 다가가는 상황이다. 전망이 밝기보다는 어두운 게 사실이다. 정치·사회적인 여건도 우호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처럼 위험 상황을 알리는 경고등이 곳곳에서 계속 깜빡거리고 있는데도 정작 우리 내부에서는 별다른 대책이 마련되지 못하는 게 더 심각하다. 정치인들도 저마다 입으로는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생색을 내면서도 실제로는 딴전이다. 서로 힘을 모아도 부족한 판에 패를 갈라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만 열중하는 분위기다. 파키스탄보다 뒤지고 나서야 정신들을 차릴 것인지 우려스럽기만 하다.



[매일경제]

10. 손발 묶인 545조원 국민연금 운용 차질 걱정된다

요즘 증권시장에서는 최대의 큰손 국민연금이 제대로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국내 주식에만 100조원가량을 굴리니 국민연금의 행보는 단연 시장의 주목 대상이다. 주요 기업들이 지난해 4분기 실적을 기대 이상으로 올리며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오는데도 국민연금이 미적대고만 있어 투자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거래소 통계를 보면 지난 6일까지 올해 들어 연기금은 유가증권시장에서 2097억원, 코스닥시장에서 190억원 각각 순매도를 기록했으니 연기금 투자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국민연금의 소극적인 흔적을 읽을 수 있다.

국민연금의 투자 위축은 한마디로 운용 인력 이탈 때문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찬성 결정을 둘러싼 최순실 특검 수사로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압력 행사 혐의를 받고 있는 문형표 국민연금 이사장이 구속됐고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기소 여부도 곧 결정된다. 이를 둘러싼 조사 과정에서 실무 운용 인력들이 줄줄이 그만두고 떠나고 있다. 

여기에다 이달 말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 때문에 운용역들의 사표 행렬이 가속하고 있다. 지난해 28명이 그만뒀고 올해 들어서도 8명이 더해졌다는데, 전주행 전후로 20여 명이 더 그만둘 예정이어서 최근 1년 새 260명의 운용 인력 가운데 50여 명이 떠난 상황이다. 전주 이전 후에도 6개월 이내 계약이 만료되는 운용 인력이 50명인데 이 가운데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떠날지 가슴만 졸이고 있다니 걱정스럽다.

국민연금 총자산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 545조원으로 전 세계 연기금 가운데 네 번째 규모다. 매년 50조원씩 기금이 추가로 쌓이는 데다 100조원의 국내 주식 투자에 맞춘 포트폴리오 비율을 감안하면 올해 주식시장에 10조원가량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운용 인력 대규모 이탈은 본연의 업무인 기금 운용에 막대한 차질을 줄 수 있으니 실질적이고 강도 높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금운용본부는 이주비 지급과 전용 숙소 마련 등 처우 개선이나 신규 운용역 추가 채용으로 빈틈을 막겠다는데 땜질 대책밖에 안 된다. 차제에 기금운용본부를 공사로 분리 독립해 운영하는 방안을 포함해 근본적인 개선책을 강구하는 게 맞는다.





주요신문칼럼



1. [동아일보][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 베버 신부와 ‘고요한 아침의 나라’

1973년 봄, 파독 광부 출신의 유학생 유준영은 독일 쾰른대 도서관에서 ‘한국의 금강산에서’란 책을 읽게 되었다.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장이었던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1870∼1956)가 1927년에 쓴 독일어 책. 거기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의 그림 3점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한국미술사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던 그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준영은 곧바로 수도원에 정선의 그림이 있는지 수소문했다. 하지만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2년 뒤인 1975년 3월, 그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뮌헨 인근의 오틸리엔 수도원을 찾았다. 놀랍게도 거기 정선의 그림이 있었다. 그것도 한두 점이 아니라 아예 화첩 형태였다. ‘금강산내전도(金剛山內全圖)’ ‘압구정도’ ‘함흥본궁송도(咸興本宮松圖)’ 등 21점이나 들어 있는 ‘겸재 정선 화첩’이었다. 

이 그림들을 수집해 오틸리엔 수도원으로 가져간 사람은 베버 신부였다. 그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11년. 서울 수원 해주 공주 등지를 둘러보면서 한국인의 일상과 종교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 기억을 담아 1915년 독일에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출간했다. 그는 한국 여인의 장옷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부드럽고 연한 초록색 비단 장옷의 붉은 옷고름은 펄럭이는 옷자락 사이에서 얌전하게 내비치어 그 보색 대비가 마술처럼 조화를 이룬다.’ 

베버 신부는 1925년에도 한국을 찾아 금강산을 기행했다. 이때 정선의 그림들을 수집해 화첩으로 꾸민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또 무비카메라를 갖고 와 ‘한국의 결혼식’ 등의 기록영화를 촬영했다. 

정선 화첩은 1975년 이후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1990년대 독일 유학 중이던 왜관수도원 소속 선지훈 신부는 오틸리엔 수도원 측에 화첩의 한국 반환을 조심스레 요청했다. 하나둘 준비작업이 진행됐고 드디어 오틸리엔 수도원의 결단을 이끌어 냈다. 2005년 10월, ‘겸재 정선 화첩’은 우리나라에 돌아왔다. 오틸리엔 수도원이 경북 칠곡의 왜관 수도원에 영구 대여한 것이다. 조국을 떠난 지 80년 만의 귀환이었다. 

오틸리엔 수도원은 화첩을 경매에 부치게 해달라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회사의 거듭된 요청을 물리쳤다고 한다. “한국의 문화유산을 돈 받고 거래하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벽안(碧眼)의 이방인 베버 신부로부터 시작된 한국과의 인연, 벌써 100년이 넘었다.



2. [서울신문][문화마당] 조카 돌잔치에 다녀왔다

​지난해 첫 장편 영화를 개봉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왜 계속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드는가’였다. 사실 영화를 만드는 동안은 그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한동안 나름 진지하게 지난 작업들을 돌아보며 그 어떤 심리적이고 철학적이며 사회적이고도 예술적인 이유를 찾아보려 애를 썼다. 하지만 정말 솔직한 대답은 한 가지뿐이었다. 그냥 내가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게 즐거워서 그랬다고.



이제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은 ‘도대체 왜 그렇게 아이를 좋아하는가’다. 나는 더욱 당황해 있는 말 없는 말 그러모아 아무 대답이나 해 본다. 아이들의 끝없이 솟구치는 에너지가 좋다. 그 단순한 마음과 직관적인 움직임은 완벽하다. 무한한 가능성과 마법 같은…. 하아. 정말 어려운 문제다. 생각할수록 모르겠다. 이유야 수백 개도 찾을 수 있겠지만, 또 하나도 없기도 하다. 본능적으로 작동하는 마음의 원리를 설명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고.

각설하고 어쨌든 난 아이들이 좋다. 그런 날 잘 아는 지인들은 종종 자신들이 사랑하는 아이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내온다. 내가 그들과 함께 감동받고 기뻐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오지로 배낭여행을 떠났던 한 친구는 장기간 머물던 마을에서 친해진 아이들의 사진으로 안부 인사를 대신했고, 첫아이를 낳고 감격한 또 다른 친구는 종일 먹고, 싸고, 자기만 하는 갓난아이의 일상을 몇 달간 생중계하기도 했다. 심지어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와 거의 모든 작품을 함께해 온 김 피디가 또 조카 사진을 보내왔다. 저 조카 바보는 수년 동안 정말 많은 조카 사진을 내게 투척했는데, 그만큼 봤으면 나도 고모라고 우길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제 고백해야겠다. 그동안 나는 그들의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온전히 느껴 본 적이 거의 없다. 세상은 넓고 예쁜 아이는 얼마나 많은데! 뭐 가끔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번진 적도 있다. 하지만 이미 나의 유튜브 즐겨찾기에도, 그런 꿀 떨어지는 영상이 백만 스물다섯 개쯤은 있었다. 그래서 혼자 몰래 투덜거렸다. 대체 저 정도 귀여움이 뭐 대단하다고 저리 호들갑일까? 그랬다. 나는 그들이 진짜 전하려던 게 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게도 정말 사랑하는 아이가 생겼으니깐.

그렇다. 드디어 내게도 조카가 생겼다. 그리고 지난 주말엔 무려 아이의 돌잔치에 다녀왔다. 놀라운 속도였다. 목도 가눌 수 없어 눈만 꿈벅이던 작은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몸을 뒤집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더니, 어느덧 직립보행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 년 동안 나는 한 인간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고 함께 체험했다.



아이의 도전은 나의 도전이 됐고, 아이의 성취는 곧 나의 성취가 됐다. 아이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건 단지 귀여운 얼굴만이 아니라, 스스로 몸을 일으켜 세계와 처음 만나고 반응하는 생명 자체를 말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어쩌면 그들이 정말 전하고 싶었던 것도 이런 놀라운 감동이 아니었을까. 카메라로는 절대 포착할 수 없을, 기적처럼 쌓아 올린 그 모든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아, 우리 조카는 돌잡이에서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돈을 번쩍 집어 들어 모두를 안심시켰다. 역시 다방면에서 너무나 예쁘고 완벽한 아이다. 당장 김 피디에게 돌 사진을 보내 칭찬을 강요해야겠다. 오직 조카 바보만이 또 다른 조카 바보를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깐.



3. [경향신문][문화와 삶] 가슴에 새겨진 사랑

나는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는지 잘 모른다. 내 기억력이 유독 허약해서였는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내가 다섯 살 무렵에 돌아가셨다는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아도 생판 모르는 남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었을 거라는 짐작이 짐작으로 그치지 않고 확고한 이미지로 내 가슴에 남은 이유는 작은할아버지 때문이었다. 

다른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는 누가 형제 아니라고 할까봐 부러 유세라도 하듯 답답할 만큼 무던한 성격이며 잔입이라고는 모르는 과묵함 등이 판박이였다고 한다. 아마도 그런 말에 익숙해진 터라 아직 살아 계신 작은할아버지에게서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찾아내려 했을 테고 부지불식간에 할아버지를 보듯 작은할아버지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중학생 시절까지 내가 지켜본 작은할아버지는 측은하기 짝이 없는 분이었는데 그렇게 여기게 된 이유는 작은할머니 때문이었다. 작은할머니는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근동에서도 따라올 자가 없을 만큼 뜨르르한 욕쟁이였다. 첫닭이 울고 나면 작은할머니의 사나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목소리는 하루 종일 내가 어디에 있든 환청처럼 들려왔으며 밤이 이슥해져서야 겨우 잠잠해졌다.



작은할머니의 삿대질과 바가지 욕설을 누군들 피해갈 수 있었으랴만 하물며 매일처럼 밥상에 마주 앉아야 했던 작은할아버지가 어떠했을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작은할아버지는 가히 성불에 가까울 만큼 초연했는데 어쩌면 작은할아버지의 그런 태도가 작은할머니의 부아를 돋웠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되도록 작은할머니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기척만 들려도 도망가거나 피해 다니기에 바빴다. 할머니마저 돌아가신 뒤로는 일가붙이 가운데 가장 큰 어른이 작은할아버지와 작은할머니 내외였던지라 시늉일지언정 어려운 어른 대하듯 조심스러워서가 아니라 기가 막히게도 야단칠 꼬투리를 잡아내는 작은할머니가 무섭고 지긋지긋해서였다. 언젠가는 머리에 키를 쓰고 소금을 얻으러 갔다가 작은할머니의 부지깽이에 호되게 얻어맞기도 했던 터라 일가 어른만 아니었다면 나 역시 동네의 다른 아이들처럼 등 뒤에서 주먹감자를 날리는 졸렬하고도 통쾌한 짓을 서슴지 않았을 거다. 

중학생이었던 어느 여름날 어머니가 등을 떠미는 바람에 더위 먹어 골골대는 작은할아버지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보건소에 다녀와야 했다. 무엇 때문에 심사가 뒤틀렸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척 귀찮고 짜증이 났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좁다란 신작로에서 마주 오는 차를 비켜 가다 논두렁에 처박힐 뻔한 위태로운 순간을 겪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어쨌거나 뙤약볕을 맞으며 먼 길을 갔고 링거 주사를 맞으며 잠든 작은할아버지를 두 시간 동안 지켜보다 다시 오토바이에 태워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기진맥진해 잠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해질 무렵이었다. 자박자박 마당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방문이 벌컥 열렸다. 작은할머니였다. 보건소 댕겨오느라 욕봤다. 아나, 아이스께끼 사 먹어라. 꼬깃꼬깃 접힌 지폐가 내 앞에 툭 떨어졌다. 펴보니 삼천원이었다. 부라보콘을 열다섯개나 까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세뱃돈으로 오백원짜리 동전 한 번 준 적 없던 당신이었는데 말이다.

그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아 작은할머니는 마을 근처 솔밭에서 솔가리를 긁다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문상객으로 북적이던 작은집에서 시중을 들다 아랫방 문을 벌컥 열었던 나는 어두운 방에 홀로 앉은 작은할아버지를 보았고 그 순간 무언가가 내 가슴을 슬쩍 베고 사라졌다. 

이듬해에는 작은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냥 허깨비처럼 살다 가셨다. 그 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내 가슴을 슬쩍 베고 사라졌던, 내가 방문을 열었을 때 그 안으로 스며든 빛낱이 작은할아버지의 눈물에 닿아 번득였을 그 날카로운 그리움에 머물러야 했다.



4. [한국경제][천자 칼럼] 애플 신사옥

지상에 내려앉은 UFO, 거대한 도넛, 우주선 캠퍼스 …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건설 중인 애플 신사옥은 커다란 원반 모양이다. 외면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곡면 유리로 장식한다. 건물 한가운데는 공원과 숲으로 꾸민다. 사옥과 주차장 지붕은 태양광 패널로 덮는다. 전력을 자체 조달하는 건 물론이고 인근 마을에도 공급한다. 수용 인원은 1만3000여명. 건설비 6조원의 대공사다.

당초 예정보다 2년 늦었지만 아직도 완공 시기는 미정이다. 올해 안에는 공사가 끝날 것이라지만, 업계에서는 생전 스티브 잡스의 깐깐한 요구를 다 충족시키려면 언제 완공될지 모른다고 한다. 사옥 이름은 ‘애플 캠퍼스 2’다. 창의력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구글도 사옥을 ‘캠퍼스’라고 부른다. 구글 사옥은 놀이터 같다. 직원의 행복감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때론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니 더욱 그렇다. 잘 지은 사옥에서 일하는 직원의 창의성이 더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사옥 디자인은 오피스 건축 설계의 총아로 불린다. 1900년대 전반에는 대부분 고전적 형태의 건물을 높게 지었다. 뉴욕의 명물 크라이슬러빌딩은 에펠탑보다 높게 지어달라는 주문에 따른 것이었다. 20세기 후반엔 디자인 흐름이 달라졌다. 1958년 위스키업체 시그램이 창사 100주년을 맞아 뉴욕에 지은 사옥은 외피를 유리로만 덮었다. 이른바 ‘커튼 월’을 완벽하게 구현한 첫 사옥이다.

기업의 이미지와 문화를 강조하는 사옥도 속속 등장했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바람을 일으킨 뉴욕AT&T 빌딩이나 자동차 실린더 형태로 표현한BMW 사옥이 대표적이다. 1930년대 미국 존슨 왁스 사옥은 위와 옆으로 넓게 트인 내부 공간에 커다란 버섯 모양 기둥이 숲처럼 들어찬 디자인으로 이목을 끌었다. 수제 바구니를 만드는 회사 롱거버거는 거대한 바구니 모양, 명품 기업 루이비통은 커다란 가방 형태로 사옥을 지었다.

가장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인 건 역시 IT기업들이다. 애플이나 구글처럼 페이스북도 파격적인 디자인을 도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의 페이스북 신사옥은 ‘거대한 원룸’이다. 축구장 7개 규모의 세계 최대 개방형 오피스. 사장실도 따로 없다. 국내의 네이버 분당 사옥 그린팩토리와 제주도의 다음 본사 사옥 스페이스닷원도 포털 사이트 특성에 맞는 ‘열린 디자인’을 활용했다. 사옥이야말로 기업의 철학과 정체성, 조직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디자인 결정체다. 결국 사람은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



5. [한국일보][기억할오늘] 헨리 해리슨

미국 제9대 대통령 윌리엄 헨리 해리슨(WilliamHenry Harrison)은 몇 가지 이채로운 기록으로 기억된다. 그는 대영제국 식민지 시절 태어난 미국 마지막 대통령이자, 31일의 최단기간을 재임한 대통령이고, 대통령 집무실에서 숨을 거둔 첫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근대적 의미의 대통령 선거 전략을 구사한 첫 대통령이기도 했다.

해리슨은 1773년 2월 9일 대농장주이자 유력 정치인이던 벤저민 해리슨의 7남매 중 막내로 버지니아주 버클리에서 태어났다. 유년 교육은 가정교사에게 받았고,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18세에 부친이 사망하자 공부를 중단하고 육군에 입대했다. 그는 인디언 토벌 전쟁에서 큰 전공을 세우며 유명해졌고, 그 덕에 25세이던 1798년 존 애덤스 대통령에 의해 노스웨스트 준주 장관과 인디애나 준주 지사(1800~1811)를 지냈다. 그의 정치 이력은 그 기간에도 점령지 인디언 통치와 ‘티피카누 전투’ 등 토벌전쟁의 승리로 두툼해져 갔다. 

그는 1836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민주당 마틴 밴 뷰런(Martin Van Buren, 1782~1862)에 패했지만, 4년 뒤 다시 맞섰다. 뷰런 진영은 67세의 상대적 고령인 해리슨을 “행정부 각료회의장보다는 오두막집에 앉아 사과주나 마시는 게 어울리는 고루하고 현실감각 없는 늙은이”라고 공격했다.



해리슨은 거꾸로 오두막과 사과주를 캠페인 상징으로 채택해 경기 침체기 ‘서민(commonman)’의 이미지를 적극 부각함으로써 부유한 정치 엘리트 뷰런에 맞섰다. 그는 “정부 정책들은 부자를 더 부유하게, 빈자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데만 동원되고 있다” “제약 없는 권력만큼 우리의 가장 고결하고 섬세한 천성을 더럽히는 것도 없다” 같은 말들을 남겼다. 뷰런 재임기 경기침체 덕이 컸지만 선거 전략도 주효. 그는 9대 대통령이 됐다.

41년 3월 4일 취임식 날은 춥고 비가 왔다. 취임 선서와 연설을 하는 동안 그는 외투도 모자도 쓰지 않았고, 마차 대신 말 안장에 앉아 퍼레이드를 했다. 게다가 그의 취임연설은 미국 헌정사상 가장 길어 2시간 가까이(8,445단어) 이어졌다. 어쩌면 그는 건재한 체력을 과시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3월 26일 병석에 누워 4월 4일 별세했다. 당시 알려진 사인은 폐렴, 훗날 밝혀진 바 장티푸스에 의한 패혈성 쇼크가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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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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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촛불’도 ‘태극기’도 헌재 결정 승복해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를 놓고 국론 분열이 빚어지는 터에 헌법재판소 결정에 무조건 승복하자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잇따라 제기되는 것은 고무할 만하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어제 임시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모든 정당이 헌재 판결에 대한 승복을 약속하자”고 제안했다. 인용이 되든, 기각이 되든 헌재의 결정은 헌법정신의 최종 확인이므로 누구나 승복하는 게 옳다는 취지다.

앞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지난 2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헌법기관인 헌재의 결정이 내려지면 여야를 포함해 모두 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바른정당의 대선주자 중 한 명인 유승민 의원은 더 나아가 이에 대한 대선주자들의 확약을 요구하고 나섰다. 헌재의 결정이 어떤 식으로 내려지든지 간에 반발이 작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내다본 제안들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난 1월 말 박한철 헌재소장 퇴임에 이어 내달 13일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임기가 끝나면 헌재 정원 9명 가운데 결원이 2명이나 생긴다는 사실이다.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으로 결정이 이뤄지는 헌재로서는 비상 국면이 아닐 수 없다.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이 이 재판관 퇴임 전인 내달 초에 마무리될 것으로 점쳐지는 이유다.

하지만 ‘촛불 민심’과 ‘태극기 민심’이 격렬히 맞선 지금의 상황에 비춰 헌재 판결로 사태가 깨끗이 정리될 것 같지 않다는 게 문제다. 한동안 촛불 집회가 위세를 떨쳤으나 요즘엔 태극기 집회가 목소리를 점점 돋우며 맞서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정치인들도 저마다 선동적 발언으로 ‘진영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탄핵 인용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든, 기각으로 박 대통령의 임기가 그대로 지속되든 극심한 국론 분열이 빚어질 게 뻔하다.

지금까지 사실로 드러났거나 가능성이 큰 혐의는 최순실씨의 광범위한 국정농단, 정부의 블랙리스트 작성, 재벌들에 대한 박 대통령의 기금출연 강요 등이다. 한편에서는 헌법질서 위반이므로 마땅히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 정도는 탄핵감이 못 된다고 항변한다. 헌법 해석은 오롯이 헌재 몫이다. 자기 뜻과 다르다고 해서 헌재 결정에 불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독선이요, 헌법질서 위배다. 대선주자들과 여야 정당이 헌재 결정에 승복함으로써 탄핵 정국을 마무리하는 게 최선의 방안이다.



2. SRT의 떨림 현상 안전에는 관계없는가

수서고속철도(SRT)의 객실 진동이 심하다며 이용객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열차가 흔들리는 바람에 노트북을 사용하기 어렵다거나 선반에 올려둔 가방이 떨어질 뻔했다는 민원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울렁증을 느낀 사람까지 있었다니 마치 시골버스가 비포장도로를 덜컹대며 달리는 듯한 장면이 연상된다. 운영사인 (주)SR도 문제점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고 한다.

민원이 제기되면서 선로의 상태, 바퀴 밀착력, 충격흡수 장치 등의 여러 요인을 놓고 조사를 벌였으나 아직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점도 찜찜하기만 하다. 진동이 심한 옥천, 구미남, 대구남, 신경주 등의 구간에서 속도를 낮추는 정도로 임시조치를 취하고 있다니, 개통 2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입장에서 부끄러운 일이다. 차량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코레일이 내달까지 차륜의 삭정작업을 하도록 돼있다는 점에서 일단 결과를 지켜보고자 한다.

단지 승차감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구간을 운행하는 기존 KTX와 비교해서도 진동이 크다는 지적이고 보면 어딘가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개통 전 시승행사 때나 개통 직후에는 없었던 진동 현상이 갑자기 나타난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열차 운행이 본격화되면서 바퀴가 마모됐다는 이유도 제기되지만 개통 2달 만에 진동을 느낄 만큼 바퀴가 마모됐다면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기존 KTX에 있어서도 여전히 여러 종류의 사고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전력설비 고장으로 열차 운행이 차질을 빚는가 하면 통신 장애를 일으키거나 운행 구간의 구조물 붕괴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더구나 열차 바퀴가 선로를 이탈하는 아찔한 사고까지 벌어진 마당이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감안해서라도 SRT만큼은 최대한 사고를 줄여나가야 한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SRT가 KTX와 경쟁체제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고객 서비스를 높이고 경영 효율화를 기한다는 기본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제살을 깎는 무리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을까 노파심이 앞선다. 자칫 사고 요인을 감추면서 운영 경쟁을 벌이는 경우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객실의 진동을 단순히 민원 차원으로만 간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매일신문]

3. AI에다 구제역까지…축산 겹재앙 대책 없나

충북 보은 젖소농장에서 구제역이 올겨울 들어 처음 발생한 데 이어 전북 정읍에서 구제역 의심 신고가 들어왔다. 보은과 접해있는 상주와 김천 등 경북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고통받은 축산농가들로서는 악재가 겹치는 상황이다.



지난해 AI 발생 당시 초기 대응이 미온적이었던 것과 달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구제역 발생 직후 신속한 대응에 나섰다. 구제역 사상 처음으로 전국에 일시이동중지 명령이 내려졌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전국 지자체들은 기존 재난안전본부를 ‘구제역 및 AI 방역대책 재난안전본부’로 보강하고 충북과 전북의 유제류 반입을 금지했다.



경북은 2011년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 사태로 악몽을 겪은 바 있기 때문에 상주와 김천은 물론이고 안동`의성`봉화`영천 등 지역에서 소독과 항체 형성 검사, 백신 접종 등 구제역 유입 방지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당국이 적극 나서고 있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이번에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는 기존에 국내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와 다른 유전형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바이러스가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이다.



이번 구제역 역학조사 결과 모럴 해저드로 의심받을 만한 정황이 나온 점도 그렇다. 서류상으로는 5개월 전 모든 소들의 백신 접종을 마친 것으로 돼 있는 한 피해 농가를 상대로 이번에 조사했더니 항체 형성률이 5%에 그치더라는 정부 관계자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거의 매년 되풀이되는 가축 전염병으로 사회적`재정적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살처분 보상금의 경우 2011~2015년 1조8천500억원이 투입됐지만, 가축 전염병의 발생 주기는 오히려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게다가 가축을 키우기보다 살처분하고 보상금을 받는 게 속 편하다며 평상시 방역을 소홀히 하는 농가도 없지 않다. 이는 소독, 백신 접종, 살처분 및 보상 등으로 이어지는 현행 체계가 가축 전염병 확산 방지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환기시켜준다. 가축 전염병 방지에 대한 근본적인 발상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4. 집권 전제해 총리 ‘후보’에게 각료 제청권 주자는 민주당

변재일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10여 명이 국무총리 후보자도 대통령에게 장관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인용돼 재선거로 대통령이 선출될 경우 그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 후보자가 장관 등 국무위원 후보자를 제청하도록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취지는 재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 새 내각을 신속히 구성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현행 법률은 재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됐을 경우 국무위원을 어떻게 임명하는지에 대한 규정이 없다. 이에 따라 신임 내각 구성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현행 법률상 국무총리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후보자’ 꼬리를 떼야 국무위원을 추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실질적인 이유도 있다. 현행 헌법상 각료 제청권자는 ‘국무총리 후보자’가 아니라 ‘국무총리’이다. 이에 따라 새 총리 후보의 각료 제청은 헌법상 불가능하다. 이는 현행 헌법하에서 새 대통령의 각료 제청은 국무총리직을 겸하고 있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개정안 발의의 속뜻은 이런 ‘사태’를 막자는데 있다. 집권은 ‘굳은자’란 얘기다.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를 떠나 새 내각을 전 정부의 총리가 추천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도 맞다. 하지만, 개정안은 하위 법률을 개정해 헌법을 우회하려는 것으로 위헌 논란을 피할 수 없다. 민주당이 개정안을 통과시키려면 위헌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야당은 바로 이런 이유로 지난해 11월 당시 임종룡 경제 부총리와 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의 지명을 무효라고 했다. 두 사람을 지명한 이가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총리 후보자가 국무위원을 추천할 수 있게 됐다고 치자. 그런데 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을 경우 그가 추천한 국무위원은 어떻게 되나? 새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가 없는가? 참으로 복잡한 문제다. 이에 대한 민주당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결국 개정안 발의는 내 편한 대로 아무 법이나 마구 찍어내는 의회 만능주의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바로 청산해야 할 적폐다.



[세계일보]

5. “인적 청산 다 했다”는 새누리당, 아직 멀었다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어제 바른정당을 향해 “우리 당의 인적 청산이 안 돼 분당했다고 그러는데 그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그분들이 분당해야 되는 이유가 없어졌다”며 “그냥 우리 당으로 들어오면 될 것 같다”고도 했다. 바른정당과의 연대 문제를 놓고 당대당 합당론을 일축하며 입당론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그 전제부터가 잘못됐다.

그는 지난해 12월23일 비대위원장에 내정된 뒤 인적 청산을 하겠다며 법석을 떨었으나 결과는 초라하다. 일부 핵심 친박계 의원의 당원권을 정지(서청원·최경환 3년, 윤상현 1년)하는 징계조치를 내린 것이 전부다. 비박계 대거 탈당에 따른 분당 사태가 벌어진 건 인 위원장과 당의 쇄신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지지율을 합치면 50%가 넘는다. 2007년 대선을 한나라당이 주도한 것처럼 이번 대선이 ‘야와 야의 대결’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보수 진영은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활로를 모색해야 할 절박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럴 각오가 안 보이는 새누리당은 되레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간 새누리당이 보인 행보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아직 변변한 대선 주자 한 명 없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중도하차하니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영입하려고 기웃거린다. 당 소속 대선 주자라는 인사들은 전혀 존재감이 없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 이인제 전 최고위원 등이 대통령 탄핵 반대를 위한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건 전통 지지층을 결집해보자는 퇴행적 셈법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의 기본 가치인 책임·희생이 없는 한 새누리당 몰락은 시간문제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보수의 이념과 가치에 뜻을 같이하는 모든 사람과 세력은 보수 적통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메아리가 없다. 최순실 사태로 무너진 보수의 가치를 어떻게 재건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건지 제시하지 못한 탓이다. 고작 한다는 게 당명 개정이다. 새 당명으로 ‘자유한국당’ ‘보수의 힘’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비전 없이 이름이나 바꾼다고 당이 회생하고 탈당한 의원들이 돌아오겠는가. 마치 식당 메뉴는 바꾸지 않고 간판만 바꿔 단 꼴이다.

집권여당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겨우 10%를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왜 국민으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눈가림식 ‘신장개업’을 한다면 당의 재건은 백년하청이다.



6. ‘교육 공약’ 논의는 반갑지만 추진은 신중하게

대선 정국을 맞아 정치권에 교육 공약이 홍수를 이룬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그제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현재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미래에 대비할 수 없다”며 “교육부를 폐지해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지원처 체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학제를 ‘2년(유치원)-5년(초등학교)-5년(중·고등학교)-2년(진로탐색 또는 직업학교)’으로 변경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교육부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는 안을 내놨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사교육 전면 폐지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했다.

대선 주자들이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교육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표만 의식해 비현실적인 공약을 남발해서는 곤란하다. 향후 시행 과정에서 야기되는 부작용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정권마다 반짝하는 일회용 정책이 돼서는 안 된다.

교육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령모개식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비일비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교육공약으로 선행학습 금지, 고교 무상교육, 반값 등록금 등 굵직한 정책들을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에 공교육 강화를 통해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장담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들 공약은 결국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교육정책은 정권 출범에 맞춰 바꾸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립돼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현재 거론되고 있는 국가교육위원회가 매년 향후 10년의 계획에 합의하고 교육지원처가 이를 지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판단된다. 교육계획의 수립에도 정부의 일방적 결정 방식을 탈피해 교사, 학부모, 여야 정치인들을 참여시킨 점도 주목할 만하다.

유독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교육공약은 국민적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의 관점에서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 교육정책이 5년 단위로 출몰을 거듭하는 구태를 답습해선 안 된다. 이번 대선 주자의 공약에서도 아직 설익은 주장들이 적잖게 눈에 띈다. 학제 개편, 사교육 전면 금지 등이 대표적이다. 앞으로 대선 과정에서 논의는 더욱 활발히 하되, 추진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서울신문]

7. 특검, 기한 내 끝낸다는 각오로 수사하라

특검이 최근 수사 기한 연장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이규철 특검보가 최근 “14개 수사 진행 상황이 부족하다고 판단돼 수사 기간 연장 승인 신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힌 것이다. 특검법상 1차 수사 기간은 오는 28일까지인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승인한다면 한 달간 연장이 가능한 상황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실태를 파헤치고 있는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 의혹과 문화계 블랙리스트, 비선 의료 농단은 물론 ‘세월호 7시간’ 의혹까지 수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여기에 삼성과 롯데, SK등 뇌물공여 혐의 기업들이 대가성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검 수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검으로서는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응해 박 대통령 대면 조사로 보강한 뒤 대가성 거래 의혹을 받는 다른 기업들도 본격 수사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2월 말 또는 3월 초로 예상되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시기를 고려해 박 대통령의 신분 변화에 따른 조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로선 특검 수사 기한 연장 여부는 승인권자인 황 대통령 권한대행의 의지에 달려 있는 듯하다. 황 대행 측은 “특검의 요청이 오면 그때 검토할 것”이라고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그가 특검 수사에 부정적인 보수 강경론자와 행보를 같이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야권은 현행 70일에서 120일로 수사 기간을 연장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특검 수사 연장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탄핵 정국에서 자칫 민심이 요동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안의 중대성이 있다. 박 대통령과 변호인단이 지속적으로 특검의 수사를 방해하고 지연하는 전략을 쓴다는 인상이 강하다. 3번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검찰 수사 협조를 약속했지만 보란 듯이 거부했고 국정 농단 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이다.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마저 무산돼 특검 수사가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선 박 대통령의 수사에 대한 태도가 특검 수사 기한의 연장 여부의 키를 쥐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대면 조사 등에 당당하게 임하면서 특검의 부당성을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검 역시 국정 농단 실체 규명이란 역사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1차 수사 기한 안에 끝낸다는 각오로 수사에 박차를 가하길 당부한다.


8. 한국 조폭 사살하겠다는 두테르테의 언어도단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최근 자국 내에서 활동하는 한국 조직폭력배들을 필리핀인 마약사범처럼 사살할 수 있다고 경고해 비난을 사고 있다. 두테르테는 지난 4일 자신의 고향인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조폭들이 세부에서 매춘, 마약, 납치에 관여하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받았다”면서 “불법을 자행하는 한국인은 외국인이라고 특권을 누릴 수 없고 내국인 범죄자들과 똑같은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현지 한 언론이 보도했다.


필리핀은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살인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다. 매년 10여명이 필리핀에서 희생된다고 한다. 이쯤 되면 필리핀의 최고 권력자로서 한국민을 향해 백배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외려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언어도단이 따로 없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 보호해야 하는 주권국가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조직폭력배라고 해도 그들을 마음대로 죽일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오로지 법에 따라 사법 처리할 뿐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다. 더구나 지금 인권을 중시하는 전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사형제도를 채택한 나라도 무기징역 등으로 사형제를 대신하는 추세다. 그런데 필리핀 대통령이 남의 나라 국민을 자국민 마약범처럼 재판도 없이 ‘묻지마 현장 사살’을 한다니 제 정신인가.

사실 그는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수천여명의 마약범죄자들을 죽여 필리핀 내 인권단체는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비난받는 처지다. 그는 범죄자들에게 최소한의 변론권과 재판 기회조차 박탈하는 반인권적인 통치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죽이지 않고는 전쟁을 할 수 없다”며 초법적인 범죄 소탕 작전을 계속 벌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필리핀에서 지난해 10월 한인 사업가가 필리핀 경찰에 납치·살해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한인 관광객 3명은 불법 도박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경찰에 8시간 동안 구금됐다가 700만원의 몸값을 주고 풀려난 적도 있다. 한국인을 상대로 금품 갈취도 모자라 살인까지 일삼는 것이 필리핀 경찰의 민낯이다. 그러다 보니 두테르테의 한국 조폭 사살 발언도 범죄집단으로 전락한 필리핀 경찰의 한국인 살해 사건의 물타기 시도로 해석될 만하다. 외교부는 즉각 두테르테의 발언 진위를 파악해 그 발언이 사실이라면 정부 차원에서 강력 대응에 나서야 한다.


[매일경제]

9. 차기 정부 칼질 대비해 공무원 미리 늘려 놓는다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무원 수가 늘어나는 구태가 박근혜정부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경제가 행정자치부와 일선 부처를 통해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정원을 집계했더니 이달 현재 총 9만6532명으로 지난해 말보다 무려 1230명이나 증가했다. 공무원 정원은 박근혜정권 초기였던 2013년부터 꾸준히 늘었지만 올해 증가 폭이 가장 컸다.


그 배경에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단행될 조직 개편에 대비해 미리 몸집을 키워 놓으려는 부처 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달 탐사 사업을 추진한다며 연구 인력이 아닌 일반직 공무원을 뽑은 미래창조과학부를 비롯해 일부 부처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증원에 나서고 있다니 무책임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 임기 말 공무원 수가 큰 폭으로 늘어나는 현상은 거의 모든 정권에서 되풀이됐다. 행자부가 관리하는 정부조직관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노무현정부 첫해인 2003년 충원된 공무원은 182명에 불과했지만 정권 말인 2007년에는 5758명에 달했다. 이명박정부 때는 임기 내내 공무원 수가 줄었지만 박근혜정부로 바뀌자마자 증가세로 돌아섰다.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둔 레임덕 시기에 집중적으로 공무원 몸집 부풀리기가 이루어진 셈이다.

이런 병폐가 반복되는 이유는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각 부처가 조직 축소를 사전에 막기 위해 신규 사업과 업무 보강을 이유로 인력 확보에 나서면서 전체 공무원 수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증원 명분을 만들려는 정부발 조직 진단 용역 발주가 정권 3~4년차에 몰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니 한심할 뿐이다.

행정서비스 수준은 공무원 수가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조직이 비대해지면 옥상옥 구조를 만들어 오히려 행정 처리를 지연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국가 발전과 국민 편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인력은 보강해야 하겠지만 부처의 덩치를 키우려는 목적의 인원 늘리기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수한 행정서비스는 공무원 수가 아닌 전체 정부 조직의 효율성에서 나온다.


차기 정권은 조직 개편을 단행할 때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을 위한 행정시스템 구축은 뒷전에 두고 집권 세력의 이념이나 색깔에 따라 정부 조직을 바꾼다면 정권 말 공무원 수가 급증하는 고질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0. 이정미 헌재 재판관 후임, 양승태 대법원장은 인선 서둘러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인으로 구성한다'는 헌법 111조를 또다시 위반하는 일이 지속되고 있다.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1월 말 퇴임한 데 이어 3월 13일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까지 퇴임하면 7인 체제로 바뀌게 된다. 이 같은 헌재 재판관 결원 사태는 명백한 헌법과 법률 위반이고 공정하게 재판받을 국민 권리를 침해하는 일인데도 후임자 선정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우리 헌법 113조는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 탄핵 결정을 할 때 재판관 6인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관이 7~8명으로 줄어들면 심판정족수를 채우기 힘들어져 심판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 이런 점을 우려해 '헌재 재판관은 임기 만료일 또는 정년 도래일까지 후임자를 임명해야 한다'고 헌법재판소법 6조에 명시해두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빌미로 박한철,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 인선을 하염없이 미루고 있으니 걱정이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국회·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박 전 소장의 후임은 대통령 지명 몫이니 '대통령 권한정지'에 막혀 있다고 치자. 이정미 재판관 후임은 대법원장 지명 몫이니 당장 후임자 선정에 나서야 한다. 지금 지명해도 청문회를 거치면 보통 임기 시작까지는 30~40일이 걸린다.


이 재판관이 6년 전 1월 말에 지명됐던 사실을 감안해도 이미 후임자 선정 시기가 늦었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 이런저런 억측이 나돌지만 누구에게 유리 또는 불리한지 한마디로 말하기 힘들다. 헌법재판소는 이 재판관의 후임이 누가 되든 법과 원칙에 따라 탄핵심판을 진행해 나가면 될 일이다. 

헌법재판소에는 매년 2000건에 이르는 위헌, 권한쟁의 소송이 접수되는데 박 대통령 탄핵심판으로 이 모든 사건들이 보류된 상태다. 사건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재판관 7인 체제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헌재 파행 운영은 심각한 국민 기본권 침해를 부를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당장 이 재판관 후임자 인선을 서둘러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조선일보][신화로 읽는 세상] 도깨비장난에 당했다고? 내가 쌓은 業일 뿐

한밤중에 나그네가 숲길을 걸어간다. 달빛 닮은 여인이 나타나 그를 유혹한다. 그녀의 오두막에서 기분 좋은 하룻밤을 보낸 나그네, 아침에 일어나니 부지깽이 한 자루를 안고 있었다. 지난밤 그를 유혹한 아름다운 여인은 백 년 묵은 여우 혹은 도깨비였다. '옛날 옛날에'로 시작되는 이 땅의 이야기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많았다. 캄캄한 밤이 만들어낸 환상은 얼마나 찬란하고 쓸쓸한가.


화제의 드라마 '도깨비'가 최근 끝났다. 도깨비가 있을까, 저승사자·귀신이 있을까 화제도 만발했지만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것을 어찌 있다 할 수 있을까.


그러면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존재, 명명할 수 있는 존재만 살고 있다 해야 할까. 나는 그 가설이 더 답답하다. 삼국유사에는 경주 황천의 언덕에서 밤마다 귀신들과 놀던 신라의 귀신 대장 비형랑 이야기가 나온다. 진평왕의 명령을 받아 귀신을 동원해 다리를 놓기도 했던 그는 귀신들의 리더였다. 그 다리는 귀신들이 놓았다고 해서 귀교(鬼橋)인데, 귀교라는 이름에 걸맞게 하룻밤 사이에 생겨났단다.


인생엔 정말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하룻밤 사이에 다리가 건설되기도 하고, 하룻밤 사이에 막강했던 권력이 무너지기도 한다. 하룻밤 사이에 이름을 얻기도 하고, 하룻밤 사이에 감옥 갈 일이 생기기도 한다. 하룻밤 사이에 누가 이런 일을 만드는가. 그러니 귀신 곡할 노릇이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그런 일은 귀신의 도움 혹은 저주, 다시 말해 귀신의 장난이 아닐까, 하여.


귀신들을 이끌고 하룻밤 사이에 다리를 놓았던 비형랑의 아버지는 신라 25대 진지왕이었다. 왕은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었다. 사량부에 사는 도화 부인의 자태가 도화꽃처럼 아름답다는 거였다. 보지 않고도 욕망은 커질 수 있는 것이었다. 젊은 왕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도화 부인을 불러들였다. 여자는 남편이 있다며 단호하게 왕을 거절했다.


권력이 매력이라고 착각한 왕은 분명 어리석었으나 그 민망한 상황에 화나 내는 졸장부는 아니었나 보다. 그는 싫다는 여자를 일단은 존중해서 돌려보냈다. 그리고 집요하게도 여자의 약속을 받아냈다. 남편이 없으면 그를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이었다.


진지왕은 그해 폐위되고 죽었다. 당연히 여자는 그 약속을 지웠을 것이었다. 그리고 2년 후 여자는 남편을 잃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죽은 왕이 여자를 찾아와 까맣게 잊고 있었을 그 약속을 상기시켰다. 삼국유사는 이렇게 전한다. '왕은 7일간 머물렀다. 그동안 오색구름이 집을 덮고 향기가 방에 가득했다. 7일 후 왕은 사라지고 여자의 몸엔 태기가 생겼다.


죽어서도 죽지 않는 것이 있나 보다. 다 태우지 못한 진지왕의 염원 같은 것. 그래서 법구경은 재산도 벼슬도 모두 쓸고 가는 죽음 후에도 남는 것을 업(業)이라 했다. 죽어서도 죽지 않은, 지극할 수도, 끔찍할 수 있는 그것!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 그 아버지가 어떻게 통치했는지 보인다. 절대 권력 아버지의 권위적 태도만 닮은 딸을 보며 업 혹은 삶의 태도가 어떻게 남는지도. 자식이 부모의 운명을 반복하는 것은 부모에게서 살아가는 방식이나 태도를 배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기치 않고 기대치 않은 사건을 도깨비장난이라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의 원인은 '나',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겠다. 하룻밤 사이에 권력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하룻밤 사이에 드러났을 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듯 스스로 망치는 자를 망친다. 그러니 함부로 살 수 없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하늘이므로. 한 걸음 한 걸음이 '나'를 낳는 것이므로.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도깨비장난의 원인일 테니.


2. [동아일보][조경란의 사물 이야기] 에코백

나는 세 종류의 일간지를 읽는데 그래서 날마다 놀라고 배우고 생각하게 되는 일들이 더 생긴다. 최근에는 일회용 제품들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기사들을 여러 번 보았다. 카페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컵들이 하루 5t 트럭 한 대 분량이나 되고, 종이컵은 안쪽에 폴리에틸렌으로 코팅돼 있어서 쉽게 썩지도 않으며, 비닐봉지는 흙으로 변하는 데 무려 30∼40년이 걸린다는 믿지 못할,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 이번에는 특히 유리병에 관해 읽고 더욱 놀랐다. 맥주나 소주병을 재활용하지 않고 버리면 흙으로 분해되는 데만도 100만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니.

일회용 컵을 쓰는 게 언제부터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고 텀블러는 ‘에코백’으로 불리는 천 가방에 넣어둔다. 가방(bag)과, 생태나 환경과 관련됨을 나타내는 에코(eco)의 결합으로 만들어졌을 단어, 에코백의 시작은 영국의 한 디자이너가 천으로 만든 가방에 ‘I‘m not a plastic bag’(나는 비닐 가방이 아닙니다)이란 문장을 새기고 판매한 후부터라고 한다.

2년 전 가을, 프랑스 북부 도시 릴의 문화축제에 참가하게 된 적이 있다. 며칠 동안 시간을 함께 보냈던 통역가가 헤어지는 날 나에게 “이거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라면서 차곡차곡 접은 에코백 세 개를 선물로 주었다. 그녀 역시 어깨에 그런 소박한 가방을 메고. 가볍고 실용적인 모양의 에코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광장이나 서점, 시장에서 몇 년 사이에 부쩍 많이 보게 된 것 같다. 내 눈에는, 우리는 이 ‘환경’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거주’하고 있으며 그래서 소중히 보살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면 지나칠까.

오랜만에 만난 제자에게 작은 에코백에 문학계간지 한 권을 담아 주었다. 책도 읽고 에코백도 어딘가에 다시 써 주겠지. 며칠 전에는 조카들이 수십 조각의 젱가 놀이 원목 조각을 담아놓았던 종이상자가 망가졌다면서 곤란해하기에 오래 써서 부들부들해진 천 가방 하나를 꺼내 주었다. 그사이 꽤 다양한 에코백들을 갖게 되었다. 그 여러 개 중에서 내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것은 독일 예나대에 갔을 때 얻은 얇고 누런 천 가방이다. 종탑과 보리수나무가 밤색으로 프린트된. 다른 사람의 에코백을 볼 때도 앞뒷면의 글자와 그림들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다. 그중 잘 아는 출판사 로고나 책 제목이 번듯하게 새겨진 가방을 발견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학교 가는 날에는 광목으로 만들어진 튼튼한 에코백에 출석부와 책들을 넣어 갖고 다닌다. 언젠가 한 문학 기관에서 받은 가방이며 앞에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Korea is coming.’


3. [조선일보][태평로] 프랑스식 사랑

정치 신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 대선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나라 대선은 두 달 보름 남았는데, 마크롱은 후보 지지율에서 둘째다. 결선에 가면 지지율 1위인 마린 르펜을 더블 스코어로 눌러 이긴다는 분석이 나왔다. 프랑스는 여론조사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나라다.


프랑스 대선은 대개 1차 때 극좌에서 극우까지 15명 안팎 후보가 출마하지만 결선투표는 으레 보수와 좌파가 맞붙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화당도 사회당도 가망이 없다. 극우인 르펜도 온건 중도를 표방한 마크롱에게는 양자 대결에서 진다.


마크롱에게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또 있다. 부인이 스물다섯 연상이다. 둘이 함께 있는 사진을 보면 모자(母子)지간 같다. 부인 브리지트 트로뉴는 마크롱이 열다섯 살이었을 때 그에게 문학을 가르치고 연극반을 지도하는 교사였다. 아이가 셋이고 남편도 있었다. 프랑스 북부 소도시 아미앵에 살던 트로뉴와 마크롱은 매주 금요일 대본을 들고 따로 만났고 연인 관계로 발전해갔다.


부모가 깜짝 놀라 마크롱을 파리로 유학 보내 둘 사이를 떼어놓았다. 그러나 마크롱은 트로뉴에게 "꼭 다시 돌아와 선생님과 결혼하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트로뉴도 이혼하고 아예 파리에 교사 자리를 구했다.


이들은 10년 전 결혼했다. 마크롱은 자신을 받아준 트로뉴의 자녀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올해 마크롱은 서른아홉, 트로뉴는 예순넷이다. 짓궂은 사람들은 뒤에서 쑥덕거렸지만 여론은 마크롱에게 열광하고, 드디어 30대 대통령이 탄생하는가에 관심을 쏟을 뿐이다.


소설 '연인'으로 유명한 여성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서른여섯 살 연하인 작가 얀 앙드레아와 16년을 연인으로 살았다. 알코올중독에 시달렸던 뒤라스는 앙드레아가 없었다면 1996년 세상 뜰 때까지 인생 마지막을 더 고통스럽고 힘들게 보냈을 것이다. 두 사람 얘기는 '이런 사랑(Cetamour-la)'이란 영화로도 나와 있다.


미테랑 대통령은 중년 이후 삶을 혼외 연인인 안 팽조 여사와 함께했다. 딸까지 두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미테랑은 마흔다섯, 팽조는 열아홉이었다. 스물여섯 살 차다. 미테랑의 부인 다니엘은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관저인 엘리제궁에서 살지 않고 따로 아파트를 얻어 지냈다. 미테랑 장례식 때 검은 상복을 입은 다니엘 미테랑과 안 팽조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무척 낯설었으나 프랑스인들은 담담하게 바라봤다.


프랑스 사람은 사랑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 사회적 평판이나 주변 눈치를 괘념치 않는다. 트로뉴가 말한 것처럼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을 놓치면 내 인생을 놓치는 것인지", 그것만 중요하다.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 진실한 사랑인지 묻고 확인할 뿐이다. 언론도 유권자도 그걸 인정해준다. 유명 정치인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갖다 댄다.


나라마다 독특한 문화가 있다. 무조건 닮자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저녁 삶을 누리고, 어떤 사람과 사랑하는지, 그런 부분이 본질을 흐리면 안 된다고 보는 것 같다. 당사자의 정치적 이념과 태도를 사생활과 섞지 않는다. 중심과 주변을 혼동하지 않는다. 이런 '프랑스식 사랑'이 그들의 힘일까.


4. [세계일보][신병주의역사의창] 임금님의 선물 한강 얼음

최근 연이은 추위로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 한강의 일부가 얼어붙어 있다. 올겨울 들어서 한강은 지난달 26일 공식적으로 결빙됐다. 한강의 결빙은 1906년부터 노량진 앞 한강대교 남단에서 둘째와 넷째 교각 상류 100m 부근의 결빙을 기준으로 관측하고 있다. 즉, 이 지점에 얼음이 생겨 물속을 완전히 볼 수 없는 상태를 한강의 결빙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전통 시대에 한강의 결빙을 누구보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사람들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겨울철 한강의 얼음을 떠서 동빙고와 서빙고에 보관했고, 궁궐 내에도 두 곳에 내빙고(內氷庫)를 설치해 왕실에서 사용하는 얼음을 공급했다. 정조 때에는 얼음 운반의 폐단을 줄이고자 내빙고를 양화진으로 옮겼다.


동빙고는 한강변 두뭇개, 지금의 성동구 옥수동에 있었고, 서빙고는 지금의 서빙고동 둔지산(屯智山) 기슭에 있었다. 19세기 서울의 관청, 궁궐 풍속 등을 정리한 ‘한경지략(漢京識略)’의 궐외각사(闕外各司) 조항에는 ‘빙고(氷庫)’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동빙고가 두뭇개에 있다. 제사에 쓰는 얼음을 바친다. 서빙고는 둔지산에 있다. 궁 안에서 쓰이고 백관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할 얼음을 공급한다. 이들 빙고는 개국 초부터 설치돼 얼음을 보관하고 공급하는 일을 맡았다. 동빙고에 옥호루(玉壺樓)가 있는데 경치가 뛰어나다”고 하여 동빙고의 얼음은 주로 제사용으로, 서빙고 얼음은 관리들에게 공급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서빙고의 얼음은 한여름인 음력 5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종친과 고위 관료, 퇴직 관리, 활인서의 병자, 의금부의 죄수들에게까지 나눠 줬다.

얼음을 뜨는 것은 한양 안 5부의 백성들에게 부과된 국역(國役)으로, 이를 장빙역(藏氷役)이라 했다. 얼음은 네 치 두께로 언 후에야 뜨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난지도 등지에서 갈대를 가져다가 빙고의 사방을 덮고 둘러쳐 냉장 기능을 강화했다. 얼음을 뜰 때에는 칡으로 꼰 새끼줄을 얼음 위에 깔아 놓고 사람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했다. 얼음을 뜨고 저장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고 일이 끝나면 포상이 따랐다. ‘세종실록’에는 장빙군(藏氷裙)에게 술 830병, 어물 1650마리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나타나 이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했음을 알 수가 있다.

얼음을 빙고에서 처음 꺼내는 음력 2월 춘분에는 개빙제(開氷祭)를 열었다. 얼음은 3월 초부터 출하하기 시작해 10월 상강(霜降) 때 그해의 공급을 마감했다고 한다.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으면 사한단(司寒壇)에서 추위를 기원하는 기한제(祈寒祭)를 올렸는데, 영조는 기한제 이후 얼음이 꽁꽁 얼자 제관(祭官)들에게 상을 내리기도 했다.


나라에서 설치한 빙고가 있었지만, 어물전이나 정육점 같은 곳이나 빙어선(氷漁船) 등에 활용되는 얼음이 크게 늘어나면서 공급이 부족하게 됐다. 18세기에 이르면 사적으로 얼음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돼 한강 근처에만 30여 개소의 빙고가 설치될 정도였다. 얼어붙은 한강에서 썰매와 스케이트를 타고, 얼음을 채취하는 모습은 이제 사라졌지만 1970년대까지 얼음이 채취됐음은 빛바랜 흑백 사진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5. [국민일보][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입을 여는 순간

타국의 식당이나 가게에 들어갔을 때 한눈에 한국인 인증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백발백중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한국인인 나를 한국인으로 본다. “어디에서 왔니?”라든지, “너 한국인이니?”라고 확인하는 절차가 전혀 없이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 있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건넨다. 그럴 때면 나 혼자만 식스센스급 반전에 휘말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저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그래서 한번은 물어봤다. “내가 한국인인 걸 어떻게 알았어?” 하와이의 빅토리아시크릿 매장에서 직원이 다가와 “한국 사람들은 이 제품을 좋아해. 이 제품도”라고 말했을 때였다. 외모로 국적을 가늠한다는 것이 내게는 영 어려운데, 그는 수많은 사람을 보다 보니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피부 톤이 다르고, 메이크업과 패션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건! “일행이 있을 경우에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좀 듣는 거야. 한국어인지 일본어인지는 구분할 수 있으니까.” 좀 허무해질 만큼 단순한,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정답’이었다. 왜 ‘말’을 잊고 있었지? 혼자 다닌 적을 제외하면 나도 끊임없이 동행에게 말을 하고 있었고, 그건 당연히 한국어였다. 생각해보면 말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계속 흘리고 있는, 가장 중요한 증거였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태국의 한 호텔에서 TV 채널을 돌리다가 자꾸 시선이 가는 배우를 보게 되었고, 그가 한국 배우 ‘지성’을 닮았다고 생각했으며, 결과적으로 그는 진짜 ‘지성’으로 밝혀졌다. 우습게도 태국어 더빙 덕에 나는 그가 한국 배우라는 것을, 그게 한국 드라마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사람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내 둔함을 감안하더라도, 드라마의 배경조차 너무나 ‘태국’적으로 느껴졌던 건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쯤 되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말이란 게 참 요물이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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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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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경제 불평등, 결국 성장에서 해답 찾아야

국내 상·하위 계층 사이의 소득 집중도가 자꾸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소득 상위 1%가 국민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2%(2015년 기준)로 역대 최고다. 상위 10%의 소득 비중도 48.5%를 차지하고 있다. 모두 세계 주요국 가운데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수준이다. 소득 불평등이 한계 상황에까지 이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물론 양극화 현상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달 ‘다보스 포럼’에서도 앞으로 10년간 지구촌을 위협할 3가지 리스크의 하나로 경제적 불평등이 꼽혔을 만큼 산업화 사회에서는 일반화된 현상이다. 하지만 정도가 너무 심하다.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가 일본(42.0%)이나 영국(39.1%), 스웨덴(30.7%)보다도 훨씬 높다는 점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심화 속도도 가파르다.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는 1995년 34.7%에서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13.8%포인트나 높아졌다. 그동안 성장의 과실이 국민 전체에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 상위 계층에 집중됐다는 뜻이다. 갈수록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비정규직 확산에 부동산·금융자산에 따른 비급여 소득의 불평등까지 맞물린 결과다. 잎으로도 이런 추세가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문제다.

이런 사정이니 만큼 조기 대선이 다가오면서 유력 주자들이 경제·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부자 증세, 법인세 인상 등에서 보듯이 대체로 포퓰리즘 성격의 ‘분배’에 방점이 찍혀 있다.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 저소득층의 소득을 보전하는 식의 정책도 필요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근본 해결책은 못된다.

우선은 성장 정책이 필요하다. 성장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근로자 소득을 증대시키고 비정규직 차별을 줄여나가는 구조적 개혁이 중요하다. 성장과 고용 창출은 기업의 몫이다. 시류에 편승한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기업을 옥죄려는 시도는 좋은 방도가 아니다.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고용을 창출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정책 지원 등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선 과제다.



[매일신문]

2. 가시적 성과 없는 박영수 특검, 우병우 수사에서 승부 내라

박영수 특검팀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특검은 우 전 수석 아들의 ‘운전병 보직 특혜’ 의혹에 대한 이석수 당시 특별감찰관의 조사가 조직적인 방해를 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방해의 지휘부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라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특검은 이를 포함해 우 전 수석의 각종 혐의에 대한 사전 조사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금주 중 우 전 수석을 소환한다는 방침이다.



특검법상 우 전 수석과 직접 관련된 혐의는 세 가지다. 최순실 씨 비리에 관여한 의혹, 이 특별감찰관 해임에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 그리고 증거인멸 시도 또는 교사 의혹 등이다. 특검은 이와 함께 우 전 수석 가족회사인 ‘정강’이 이우환 화백의 그림을 포함, 4억4천만원어치의 그림을 구입하면서 횡령과 탈세 혐의가 있는지도 조사 중이다.



특검이 규명해야 할 우 전 수석의 비리 혐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얀마 대사 교체 과정에서 우 전 수석이 개입한 정황이 새로 드러났다. 민정수석실이 이중국적 자녀를 둔 외교관을 재외공관장에 임명할 수 없도록 한 인사 지침을 작성해 최순실 씨가 추천한 외교 비전문가를 대사로 앉혔다는 의혹이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급 간부 4, 5명의 좌천성 인사를 지시한 혐의도 밝혀내야 할 사안이다.



특검이 이렇게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높이는 것은 수사가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검은 활동 기간의 절반 가까이를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의혹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대통령을 뇌물 수수로 묶으려는 전략이었으나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특검은 아까운 수사 기간만 허비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특검이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 규명이란 특검법의 본류(本流)에 충실해 우 전 수석을 수사의 앞순위에 올렸다면 어땠을지 궁금하다. 특검의 공식 수사 기간은 오는 28일까지로, 21일밖에 남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수사 기간을 연장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과연 남은 기간에 이런 의혹 모두를 수사해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지 못하면 박영수 특검은 특검의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된다. 특검이 다급하게 됐다.



[서울신문]

3. 첫 구제역 확진, AI 방역 실패 되풀이 안 된다

올겨울 첫 번째 구제역이 충북 보은의 젖소 농장에서 확인됐다고 한다. 사상 최악이라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꼬리를 완전히 내리지 않은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는 구제역이 발생한 것이다.



방역 당국은 보은 농장에서 사육하고 있던 젖소 195마리를 모두 살처분했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전국 10개 시·도, 41개 시·군에서 발생한 AI로 매몰 처분된 닭·오리·메추리는 모두 279만 마리에 이른다. 가금류 사육 농가에 이어 우제류 농가의 걱정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 축산의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또한 높아지고 있다.

구제역은 겨울철이면 찾아온다. 낮은 온도에서 활동성이 높아지는 구제역 바이러스의 특성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례행사가 되다시피 하고 있다면 방역 체계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농림축산식품부는 소와 돼지 사육 농가에 구제역 백신 2회 접종을 지키라고 당부하기는 했다. 농식품부 조사 결과 보은 농장의 경우 접종이 충실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접종 기록은 있지만 적은 개체만 항체가 형성돼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정부가 책임을 농가에 떠미는 것에 불과하다.

공기 전파에 따른 전염력이 높은 구제역은 방역 당국의 권고가 아니더라도 백신 접종은 필수다. 하지만 접종했다고 100% 항체 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백신 유통 및 접종 과정에서도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농가가 실제로 백신을 접종하고 당국에 신고했다고 해서 안전해진 것은 아니다. 결국 접종 이후 항체 형성 여부도 중요하다. 농식품부는 구제역 발병 확인 이후 보은 지역 소와 돼지 5만 5000마리에 긴급 예방 접종을 하기로 했다. 뒷북 행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전염병은 아예 일어나지 않도록 처음부터 철통 봉쇄하는 것이 최선이다. 따라서 올해 구제역 방역은 일단 실패한 것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방역 당국은 전국으로 확산된 AI의 재판(再版)이 되지 않도록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난해 10월부터 특별방역 대책 기간을 운영해 구제역 백신 항체율이 소 97%, 돼지 75%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농식품부는 AI방역에서 잃어버린 신뢰를 구제역 방역에서 되찾아야 할 것이다. AI 초동 방역에 소극 대응해 실망을 주었던 일부 지방자치단체도 이번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 달라.



4. 저소득층 학생 성적 끌어올린 고려대 장학금

고려대가 지난해 1학기부터 도입한 보상이 아닌 지원 차원의 장학금 제도 혁신이 시행 1년을 맞았다. 고려대는 국내 대학 처음으로 성적장학금을 폐지했다. 당시 염재호 총장은 “성적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대학 장학금 가운데 비중이 큰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을 없애고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생활장학금을 늘리기로 한 것이다.



해외 대학들이 성적을 기준으로 한 장학금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 것과 같다. 포상 성격에서 벗어나 연구와 체험 등을 지원하는 장학금 제도로의 개편은 아름다운 실험이었던 까닭에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학생들의 등록금에 목매는 국내 사립대의 현실에 비춰 볼 때 참신한 시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학업에만 전념해 뛰어난 성적으로 장학금을 타 온 학생들에게는 마뜩잖은 개선인 탓에 불만의 목소리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관행을 깨고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데 따르는, 즉 창조적 파괴를 위한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대는 지난해 폐지한 성적장학금 34억원을 저소득층 장학금, 학생자치 장학금, 해외탐방 프로젝트 등에 배분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저소득층 장학금은 91억 1500만원으로 2015년에 비해 14억원 늘었다. 등록금 전액 장학생도 가장 소득 수준이 낮은 1~2분위에서 1~5분위로 확대했다. 나아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방학을 포함해 매월 3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했다. 기숙사를 사용하면 생활비에다 20만원을 더 줬다. 이로써 2015년 1학기 저소득층 장학금 수혜 학생이 2401명에서 지난해 1학기 3383명으로 크게 늘었다.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돈과 시간적 여유를 제공한 것이다.



[조선일보]

5. 朴 대통령 774억 왜 최순실에 맡겼는지 설명할 때 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가 제시한 대통령 탄핵 사유에 대한 의견서를 지난 3일 헌법재판소에 냈다. 대통령이 대리인단의 답변서 형식이 아니라 본인 명의 입장을 헌재에 낸 것은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의견서에서 일부 기초적 사실관계는 인정했지만 예상대로 공무상 기밀 누설 의혹,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 의혹 등에 대해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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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탄핵 사유 중 핵심은 대통령이 대기업들로부터 걷은 재단 출연금 774억원을 왜 공공기관이 아니라 깜냥이 될 수 없는 사인(私人) 최순실씨에게 맡겼느냐는 것이다. 대통령은 답변서에서 기업들이 문화·체육 진흥을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냈을 뿐 자신은 재단 설립에 관여하지 않았고 최순실씨에게 재단 운영을 부탁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지금까지 나온 증거나 증언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재단 모금에 관여한 안종범 전 수석은 헌재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임원 명단을 박 대통령이 불러줬다"고 했다. 그 명단은 최씨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보낸 것이었다. 이 명단에 있었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최씨의 단골 스포츠마사지센터 운영자였다. 미르재단 이사장은 최씨 측근인 차은택씨의 은사였다. 최씨는 두 재단 명칭과 사무실 위치까지 지정했다. 774억원 두 재단과 관련해 '최순실→박 대통령→안종범 전 수석'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사실(事實)로 다 드러났다. 박 대통령이 부인할 단계가 지났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문화와 스포츠 융성을 위해 재단을 설립한 것은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왜 최씨 일당에게 맡겼느냐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박 대통령 탄핵 여부도 이 핵심 문제에 대한 설명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고려대의 도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때 반발했던 학생들도 공감하고 있다. 바람직하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학생들이 공부할 시간을 가짐으로써 성적이 올라가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경험도 풍부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 탓에 학업에 열중하지 못해 성적이 나쁘고, 좋지 않은 성적 때문에 취업이 잘 안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 꿈도 못 꿨던 해외 대학의 교환 학생으로 다녀온 저소득층 학생도 있다.

다른 대학들도 장학금 지원 형태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꼭 필요한 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기 위해서다. 소득계층 간의 격차를 해소할 뿐만 아니라 정부와 대학 간의 등록금 문제를 완화할 수도 있다. 빚을 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학생들을 줄이는 방안이기도 하다. 한국장학재단의 소득연계형 국가장학금 제도 역시 같은 취지다. 경제적 사정 때문에 학업에 충실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 “힘내라”라는 말 대신 실질적인 힘을 주는 것도 대학의 사회적 책무이자 역할이 아닐 수 없다.


6. '도덕적 해이' 그대론데 구제역 백신 무슨 소용인가

사상 최악의 AI(조류인플루엔자) 사태에 이어 충북 보은군에서 올 들어 첫 구제역까지 발생했다. 작년 3월 구제역이 발생한 지 11개월 만이다. 6일 전북 정읍에서도 구제역 의심 신고가 들어왔다. 정부는 이날 오후 6시부터 30시간 동안 전국 축산 농가 등 22만곳에 긴급 이동 중지 명령을 내렸다. 소나 돼지, 염소처럼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에서 발생하는 구제역은 공기로 퍼져 전염성이 무척 강하다. 정부는 AI 때 초동 대응 미흡으로 사상 최악의 살처분 파동을 초래했다. 그 실패가 구제역 방역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AI에 이어 구제역까지 연중행사처럼 발생하고 피해는 갈수록 심해지는 걸 보면 우리 방역 체계에 뭔가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전국 축산 농가에 구제역 백신 접종은 의무화돼 있다. 농식품부는 작년 10월부터 올 5월까지가 '구제역 특별방역대책기간'이고 작년 말 기준으로 소는 97.5%, 돼지는 75.7%의 백신 항체 형성률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정부 발표를 그대로 믿기 힘들다. 당장 이번에 구제역이 발생한 충북 보은 젖소 농가만 해도 작년 10월에 백신을 접종한 기록이 있다는데 항체 형성률은 19%에 불과했다. 일부 축산 농가는 백신을 사놓고도 접종을 미룬다고 한다. 젖소나 비육우는 백신을 접종하면 일정 기간 사료를 덜 먹는다. 그만큼 우유나 고기 생산이 줄어들기 때문에 축산 농가들이 백신 접종을 미룬다는 것이다. AI때도 일부 농가와 관계자들의 무책임한 행태가 사태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최근 50명 넘는 사상자를 낸 경기도 동탄신도시의 66층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 화재는 철거 공사의 안전수칙을 어긴 데다 스프링클러와 화재경보기까지 꺼져있는 바람에 인명 피해가 커졌다. 그렇게 큰 사고가 연발해도 도무지 나아지는 것이 없다. 작은 이익을 탐하다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도덕적 해이, '설마'하는 안전 불감증이 대한민국의 불치병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 병을 고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서 좋은 시설을 하고 좋은 약을 사놓아도 소용이 없다.


[동아일보]

7. 18명 구속됐는데 20년 보좌 정호성에 책임 떠넘긴 대통령

어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 씨의 9차 공판에는 최 씨의 대통령 연설 수정을 처음 폭로한 고영태 씨가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고 씨는 “더블루케이의 실질 운영자는 최순실 씨로 내 회사라면 내가 왜 (최 씨에게) 잘렸겠냐”고 반문하며 자신이 ‘실질 운영자’라는 최 씨 주장을 반박했다. 더블루케이는 재벌들로부터 288억 원을 거둔 비영리법인 K스포츠재단의 돈을 자연스럽게 빼먹기 위해 최 씨가 설립한 컨설팅업체다. “최 씨는 40년 지기로 평범한 주부로 생각했다”고 밝힌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과 천양지차다. 

고 씨는 최 씨가 운영하는 의상실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도 “최순실이 차은택에게 장관이나 콘텐츠진흥원장 자리가 비었으니 추천해달라고 해서 그게 이뤄지는 것을 보고 또 예산 같은 걸 짜기 시작했는데 그 예산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을 봤을 때 겁이 났다”고 증언했다. 박 대통령은 최 씨의 국정 개입에 대해 ‘문화 쪽 인사만 추천했고, 그 추천도 다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인사와 예산에 대한 최 씨의 입김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 씨는 또 문화체육관광부 간부뿐 아니라 외교부 대사나 심지어 민간기업 인사까지 전방위로 간여한 사실이 특검 조사를 통해 이미 확인됐다.

박 대통령은 3일 자신의 탄핵 심판과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13쪽짜리 의견서에서 국회에서 지목한 13가지 탄핵 소추 사유는 물론 4개월에 걸친 검찰 및 특검의 수사 내용까지 모두 부인했다. 그럼 최근까지 18명의 구속자를 포함해 검찰 및 특검에 의해 형사 처벌된 22명이 모두 억울한 누명을 썼단 말인가. 그렇게 떳떳하다면 청와대의 압수수색도 거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청와대 자료를 자진해서 제출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의 각종 기밀자료가 유출된 데 대해 “정호성 비서관에게 연설문, 말씀자료 이외의 다른 자료를 최서원(최순실 씨의 개명 후 이름)에게 보내도록 포괄적으로 위임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국가기밀 유출은 정 비서관의 ‘과잉 충성’이 빚어낸 일이지, 대통령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20년 가까이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정 비서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은 참으로 볼썽사납다. 국민은 정직과 책임을 잃은 최고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거둘 수밖에 없다. 



[매일경제]

8. 성장 지체가 한국병 첫째 원인이라는 진단

청년 실업, 빈부 격차 확대, 계층 간 무한 갈등 등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 '성장 지체'에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매일경제신문이 한국의 위기 진단 및 활로 모색을 위해 진행 중인 '제2 한국보고서' 프로젝트에 참여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내놓은 진단이 그렇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국가 경제가 경제를 넘어 정치·사회적 갈등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인데 공감이 가는 지적이다. 

한국 역사상 대학 졸업장이 곧 취업을 보장하던 시절, 매년 임금은 오르고 중산층 비중이 70%대 중반을 넘나들던 시절, 민간소비 증가가 내수 팽창으로, 이것이 대기업의 양질 확대로 이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먼 얘기가 아니다.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10여 년, 그러니까 불과 20년 전 일이다.



그때는 그때대로 경제가 고민이었고 정치·사회적 모순과 갈등의 골도 존재했지만 고민의 질이 지금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올해보다 내년이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 지금보다는 다음 세대에 더 근사한 나라가 돼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폭넓게 공유되던 시대였다. 그래서 그 시절을 한국 자본주의의 짧았던 황금기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런 믿음은 꿈처럼 아득해졌다. 대학은 백수 전락이 두려워 졸업을 유예하는 학생들로 넘쳐나고 본인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응답 비율은 20%대로 줄어들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한 후 10년째 3만달러 달성에 실패하면서 어쩌면 영원히 선진국에 이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좌절감이 우리 공동체 전반에 감돌고 있다. 그런 좌절감은 집단 간, 계층 간 갈등으로 전이되고 있다. 재벌에 대한 분노, 기득권에 대한 불신, 정규직에 대한 질시가 하늘을 찌른다. 

이 모든 문제들은 20년 전 연평균 7~8%에 이르던 경제성장률이 2%대로 고꾸라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일각에선 저성장 시대를 인정하고 여기에 적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아직 선진국 문턱도 넘지 못한 한국에는 해당이 안 되는 얘기다. 중진국 함정에 빠져 선진국 진입에 실패한 국가 중 중진국 지위나마 지킨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이 한국이 저성장 늪에서 빠져나와 재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세계일보]

9. 44년 만에 최저 어획고가 가르쳐준 '불편한 진실'

우리나라 어업 생산량이 4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연근해 어업 생산량은 지난해 92만3000t에 그쳐 전년보다 12.7% 줄었다. 197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고 생산량을 기록한 1986년 173만t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이러다간 물고기 씨가 마를 것”이라는 우려가 결코 엄살이 아님을 보여준다. 어선 한 척당 연간 어획량도 연안어업의 경우 1972년 10.1t에서 6.2t으로 감소했다. 지난 수십년간 어선의 성능이 좋아졌는데도 어민들의 생계는 오히려 내리막길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연근해 어업 생산량이 반토막 난 가장 큰 이유는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과 남획 때문이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은 서해5도뿐만 아니라 남해와 동해 등 우리나라 전 해역에서 기승을 부린다. 최근에는 점차 조직화·흉포화되고 있는 양상이다.KMI는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에 따른 수산자원 손실이 연간 10만~65만t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통계는 주로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의 불법조업에 따른 손실을 따진 것일 뿐이다. 동중국해와 동해 북한수역에서 우리 수역으로 이동하는 어미·새끼 물고기를 싹쓸이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그 피해액은 얼마에 이르는지 추정하기조차 힘들다. 우리 어민의 남획과 온난화에 따른 어장 변화도 어족자원 고갈을 가속화하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은 역시 중국발 요인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방치하면 바다 황폐화를 막을 길이 없다. 수산정책은 그동안 미온적이었다. 해양수산부는 1986년 설립 후 부처가 폐지된 이명박정부 5년을 빼더라도 25년간 수산 진흥을 외쳤다. 결과적으로 말만 요란했을 뿐이다. 해수부가 설립된 해부터 어업 생산량은 되레 감소했다. 황폐화하는 바다를 먼 산 보듯 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됐는지 되묻게 된다.



해수부는 다음주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어린 물고기 남획을 막고 ‘알 밴 생선’ 소비 자제 캠페인도 벌인다고 한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빤한 대책으로 어족자원 고갈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해수부는 전방위 대응에 나서야 한다. 중국, 일본과 어족자원 고갈을 막을 협상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 바다가 사막화하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다.



10. 나라를 어떻게 이끌지 ‘대선 논쟁’ 뜨거울수록 좋다

나라를 어떻게 이끌 방법론을 두고 대선주자들의 논쟁은 더 뜨거워져야 한다.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탄핵심판을 인용해 전례없는 조기 대선이 실시되면 정책토론을 벌일 새도 없다. 차기 정부는 역대 정부와 달리 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범하므로 시간이 여러 모로 부족하다. 깜깜이 선거가 되지 않으려면 정견과 정책에 대한 토론이 활발해져야 한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의회와 행정부가 협치해야 한다”며 연일 불을 지피면서 야권주자들 간 신경전이 첨예해지고 있다. 대연정은 이념이 다른 원내 1, 2당이 연합해 국정을 이끄는 방식이다. 집권을 위한 구상이긴 하지만 의회 협치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정책 제안으로 봐도 무방하다. 15년 전 노무현 후보가 내건 수도이전론 같은 대형이슈가 될 조짐도 있다. 유사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규모와 성격에서 좀 차이가 나지만 20여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념에서 반대인 자민련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DJP연대’를 통해 나라를 운영한 경우도 있다.

갈등과 대립을 배제하고 타협과 협치를 하는 정치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탄핵정국으로 나라가 두 동강난 현실을 타개하려면 통합과 협치의 정신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미래의 비전으로 이만한 것도 없지만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야권 내 반발이 논의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선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친박근혜 세력에 대한 대청소론을 주장하고 있어서인지 “대연정은 어렵다”고 일축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촛불에 대한 배신”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자신의 주장과 차이가 난다고 경쟁자의 정견과 정책을 백안시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대선주자들이 내놓은 일자리와 4차 산업혁명, 규제개혁론 등 미래 먹거리와 관련된 대책은 토론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문 전 대표의 일자리 130만개 창출과 군복무 단축 약속,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3년 육아휴직제와 칼 퇴근법 등은 진영을 떠나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두고 문 전 대표의 정부주도론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민간주도론으로 반박했다. 대선주자가 박수를 받으려면 이런 정책 공방을 많이 벌여야 한다. 

나라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대선주자라면 어떻게 국정을 끌고 갈 것인지를 놓고 밤을 새우며 토론하는 의지와 실력을 갖춰야 한다. 다만 무조건 비판하거나 일회성 정책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내놓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포퓰리즘 공약 역시 경계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한국경제][천자칼럼] 간장게장

달큰하고 진한 간장에 은은하게 삭힌 게살의 쫀득하고 탱탱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칠맛. 쪽쪽 소리를 내며 연신 빨아먹고 집게다리 속살까지 발라먹은 뒤 게딱지 내장에 윤기 나는 밥 한 술 비벼 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앉은 자리에서 밥 두 그릇 정도는 게 눈 감추듯 해치우는 ‘밥도둑’의 대명사 간장게장.

조선시대 ‘게장 마니아’ 서거정은 ‘눈 내린 강 언덕에 얼음 아직 남았는데/ 이 무렵 게장 가격은 더욱 비싸구나/ 손으로 게 발라 들고 술잔을 드니/ 풍미가 필탁의 집게를 이기는구나’라고 노래했다. 필탁(畢卓)은 유난히 게를 좋아하던 중국 진나라 시인. 중국에선 기원전 7세기부터 게장을 천제에 썼다니 오래 전부터 귀하게 대접받은 진미였던 모양이다.

옛날에는 게를 소금에 절여 먹었으나, 점차 간장을 써서 염분은 줄이고 맛은 더 살렸다. 조선시대에는 민물게로 담근 참게장을 주로 먹었다. 임진강변 파주 참게 맛이 좋아 수라상에 올렸다고 한다. 참게는 추수기 논에서도 난다. 알이 많고 내장이 기름져 으뜸으로 쳤다. 가을에 담가 이듬해 여름에 먹느라 조금 짠 게 아쉽긴 하다. 호남에선 벌떡게(민꽃게)로 만든 벌떡게장을 즐겼다. 간장에 재워 1~2일 만에 먹는데 신선하고도 달콤한 맛이 백미였다. 금방 ‘벌떡’ 먹어치워야 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요즘은 민물게가 드물어 서해안과 남해안 일대에서 나는 바닷게를 주로 이용한다. 대표적인 게 암꽃게로 담근 꽃게장이다. 봄에 잡은 꽃게는 살이 부드럽고 비린내가 적으며 알도 풍부하다. 조리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그러나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든다. 우선 꽃게 위에 파, 마늘, 생강 넣고 끓인 간장을 식혀서 듬뿍 붓는다. 2~3일 뒤 간장을 따라내 다시 끓이고 식혀 붓는데 이걸 3회 반복하는 걸 ‘삼벌장’이라고 한다. 남은 간장물은 장조림이나 물김치에 활용한다.

꽃게에는 무기질과 아연, 칼슘과 철분 등이 많아 성장발육에 좋다. 타우린 성분은 간 해독을 돕는다. 콜레스테롤을 낮춰 동맥경화 같은 성인병도 예방한다. 신선한 재료와 영양 성분만큼 중요한 게 또 있다. 바로 장맛이다. 오랜 발효 과정을 거친 조선간장 특유의 깊은 미감이 어우러져야 최고의 간장게장이 완성된다.

최근 외국 관광객이 우리 간장게장집을 앞다퉈 찾고 있다. 지난해 미식평가서 ‘미슐랭 가이드-서울편’에 경복궁 옆 간장게장 전문점이 별 1개를 받은 뒤 더욱 그렇다. 이들을 사로잡은 맛의 비결 역시 청정 꽃게와 300년 대물림한 조선간장이라고 한다.



2. [NEWSIS][흙과 생명 이야기] 조선시대 꽃 기르기

'자연은 힐링이다.' 
언제부턴가 해가 바뀌고 계절이 변할 때마다 경이로움과 함께 다가오는 느낌이다. 

저 흙 속에서 한 움큼의 햇살, 한 줄기 바람과 더불에 피어나는 생명 때문일 것이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대지 위로 솟아오르는 그들의 이야기가 지친 우리의 일상을 위로하고 내면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우주 만큼의 사연과 신비로움이 그득한 탓이리라. 

혼돈의 시대, 힐링과 지혜에 대한 갈급함이 크다. 뭇 생명들을 가까이에서 접하는 농촌진흥청 연구사들의 이야기를 매주 시리즈로 연재한다.

얼마 전 국민여가활동조사가 발표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취미부문을 보니 반려동물 기르기는 포함되어 있지만 식물 기르기는 빠져있다. 일본의 여가활동백서를 보면 전 국민의 4명 중 한명이 꽃·식물 기르기를 한다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꽃 기르기를 싫어하나?

조선시대 꽃은 격물치지(格物致知)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즉, 꽃을 기르거나 감상하는 것이 세상을 이치를 알아가는 계기라는 것이다. 꽃 기르기에 조예가 깊었던 가드너로서 조선 전기 화훼원예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을 저술한 강희안(1417∼1464)은 꽃기르기가 격물치지할 수 있는 계기, 즉 꽃을 기르면서 세상의 이치를 알아간다고 했다.

조선 전기 성리학의 정립에 기여한 이언적(1491∼1553)도 꽃을 심으면서 ‘대자연의 이치를 더듬고’자 했으며 17세기 문신 황혁은 ‘천성을 기르는 것과 꽃을 기르는 것은 다르지 않다’고 하면서 꽃기르기가 격물치지의 수단임을 강조하였다.

전란으로 혼란스러웠던 조선 중기 일본에 간 강항(1567 ~ 1618)이나 청나라에 간 김상헌(1570~1652)에게 담장 밑에 부모님과 심었던 꽃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의 상징이었다. 왜란 중 의병장으로 활동하다가 귀향한 조호익(1545∼1609)이나 정경세(1563∼1633)가 심은 장미나 석창포는 평화의 상징이었다. 그 피폐했던 생활 속에서도 꽃은 언제나 그들 곁에 있었던 것이다!

18세기 이후 사회가 안정되면서 조선에도 가드닝 붐이 일어나게 된다. 조선 후기 16주제의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의 저자 서유구(1764∼1845)는 ‘오관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사람에게 입(口)만 기르는 일에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허(虛)를 기르는 것이야말로 실(實)을 기르는 근원이다’라고 하면서 농학(본리지)과 채소원예학(관휴지) 다음으로 화훼원예학(예원지)을 저술했다. 즉, 쌀과 채소로 실용적인 생활이 가능한 후에는 꽃기르기를 통하여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인간의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가드닝 마니아였던 정약용(1762∼1836)은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이기는 하지만, 꽃을 보고 기르는 것은 마음을 기르는 일로서 아무리 과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고 ‘열매가 있는 것은 입과 몸을 길러주고, 열매가 없는 것은 마음과 뜻을 즐겁게 해주어 이 모두가 사람을 길러준다. 굳이 형체만 기른다면 정신이 굶주리게 된다’ 하면서 취미로 꽃식물기르기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근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화훼의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얼마 전 모은행 앞에는 선물로 화분을 받지 않겠다는 글귀도 등장했다고 한다. 화훼 이용의 활성화를 위해 시급히 도입해야 할 방안이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이런 때 일수록 화훼의 이용확대를 위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차근차근 해나가야 할 것이 있다. 무엇보다 국민의 취미나 문화생활 속에 꽃기르기가 정착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만 주는 이의 소중한 마음을 담은 선물로 분화나 절화를 자연스레 구입할 것이고 집안이나 사무실의 생활 속에서 꽃을 기르거나 즐기기 위해서 화훼를 사게 될 것이다. 

또한, 꽃으로 장식된 상업공간의 가치를 인정하는 소비자의 심리가 생겨야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화훼장식을 하게 될 것이며, 꽃이 가진 심신의 치유 가치를 사회 전반이 공유하고 있어야만 원예활동이나 산물을 활용하는 의료복지기관이 늘어날 것이다.

조선 말기의 궁핍과 식민지 경험, 한국전쟁의 참화 후 목표만을 좇는 경제개발 과정에서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것(養口體)’에 치우치다가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마음을 기르는(養神心) 꽃기르기’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다시금 우리네 생활 속에 자리 잡아서 국민의 아름다운 마음과 심신 건강을 가져다 주게 될때 화훼산업은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 속에서 ‘꽃들에게 희망’의 싹을 찾아보자.



3. [매일신문][세계의 창] 고골의 '외투'와 나의 목도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넵스키 거리
작가 고골의 작품 생각하며 걸어가
어느 틈에 바짝 따라붙은 소매치기
10년 전에 산 낡은 목도리만 빼내가

지난 4일 오전 9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눈발이 날렸지만 두툼한 외투를 챙겨 입은 덕분인지 생각보다 춥지 않다. 우버 택시를 부를까 하다가 호텔 체크인하기에도 이른 시간이라 버스와 지하철로 천천히 숙소를 찾아가기로 한다. 일정이 바쁘거나 짐이 많을 땐 꿈도 못 꿀 일이지만, 문학연구소만 방문하면 되는 짧은 일정이라 등에 멘 배낭과 작은 캐리어가 전부다.



지하철을 타고 넵스키 대로에서 내렸다. 푸시킨과 고골,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가이다. 수백 년 동안 도시의 상징이었던 이 거리에는 멋진 건축물과 조각들, 욕망을 자극하는 유럽의 명품 상점들이 죽 늘어서 있다. 이제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호텔에 도착한다. 운하를 지나 걸어가니 오른쪽으로 고골의 동상이 보인다. 넵스키 거리의 인간 군상들을 흥미롭게 그려냈던 작가이니 이 거리의 파수꾼으로 제격이다.



동상을 보면서 작가의 유명한 단편 ‘외투’를 떠올렸다. 주인공 아카키는 가족도 친구도 희망도 없이 공문 정서만 하면서 살아가는 중년의 초라한 말단 관리였다. 그런데 그에게도 마침내 삶의 의미가 생겼다. 계속 수선해 입던 헌 외투가 더 이상 손도 못 댈 정도로 낡아 버리자 재봉사가 새 외투를 맞추라고 제안한 것이다.



박봉에 새 외투 구입을 꿈도 못 꿨던 주인공은 마침내 결심을 하고, 몇 달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모은다. 옷감도 사고, 무슨 털을 붙여서 어떻게 외투를 만들지 재봉사와 의논하니 흡사 새 인생이 시작된 것 같다. 그렇게 완성된 외투를 입은 아카키, 살을 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추위도 남의 일이다. 세상을 다 가진 듯 어깨가 펴지고, 미녀도 상냥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것 같다. 난생처음으로 동료의 저녁 초대도 받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 아카키. 그러나 집으로 가던 중 넵스키 거리에서 외투를 강도당하고 만다. 경찰서를 찾고 유력 인사에게 탄원도 하지만 관료주의의 높은 벽을 실감할 뿐, 외투를 찾지 못한 주인공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린다.



약간은 허무한 이 결말에 작가는 아카키의 유령이 넵스키 거리에 출몰해서 사람들의 외투를 벗겨간다는 에필로그를 덧붙였다. 시대의 부조리를 잘 파악했던 천재였지만 황제로부터도 인정받고 싶어 했던 고골다운 비현실적인 결말이다. 추운 겨울, 가난한 관리에게 외투 하나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넵스키 거리는 여전히 아름답고도 비정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광기에 차서 원고를 불태우고 굶어 죽었던 작가 고골의 최후를 떠올리면서 동상을 지나갔다. 이제 저 모퉁이 약국에서 우회전해서 50m만 더 가면 호텔이다. 캐리어를 끌면서 걸어가는데 어쩐지 뒤가 서늘하다. 건장한 남자 두세 명이 아까부터 내 뒤에 붙어서 오고 있다. 배낭을 등에 멘 것이 마음에 걸린다. 슬쩍 돌아보니 약국 문 여는 시간표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멀쩡한 신사들이다.



그런데 모퉁이를 돌아 호텔에 거의 다 도착할 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내 뒤에 오고 있다. 바로 옆 이탈리아 명품 가게 유리창에 흘깃 비춰보니 배낭이 열려 있다. 황급히 돌아보니 남자들은 저만치 돌아서서 가고 있다. 한발 늦었다. 안에 들어 있던 지갑과 여권, 휴대전화는 이미 저들의 손에 있을 것이다. 고골을 생각하느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악명 높은 소매치기들에 대해 잊고 있었다니.



자책하면서 호텔 로비로 들어와 배낭에 손을 넣어 보니 지갑도 휴대전화도 노트북도 그대로이다. 내 배낭을 열었던 자들이 꺼내 간 것은 10년 전에 산 목도리 하나였다. 생각보다 안 추워서 둘둘 말아 배낭 맨 위에 넣어 둔 긴 목도리를 눈치 못 채게 꺼내느라 시간을 다 써 버린 소매치기들은 정작 그 아래 있던 지갑과 휴대전화를 빼낼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다. 고골 이후 200년이 지난 지금도 넵스키 거리는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면서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그들이 가져간 것이 새 외투가 아니라 낡은 목도리일 따름에 안도하면서 말이다.



4. [머니투데이][광화문] 뉴욕 첼시마켓과 한국 전통시장

2013년부터 2년간 뉴욕 특파원 생활을 할 때 가끔 들린 시장이 있다. 한국 관광객들의 뉴욕관광 필수코스가 된 '첼시 마켓(Chelsea Market)'이다. 당시 이 곳과 '하이라인 파크'를 방문한 후 '옛 것' 멋 살린 뉴욕 명소라는 주제로 기사를 쓴 적도 있다.



3년여가 지난 지금 뉴욕 '첼시 마켓'이 다시 떠올랐다. 대형 마트 규제와 전통시장 보호 문제가 최근 수면 위로 또 부상했기 때문이다. 

'전통시장 활성화'. 역대 정부마다 많은 예산을 들여 추진했던 정책이다.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도 곳곳에서 추진됐다. 하지만 이 사업이 성공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대부분의 국내 소비자들이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 등을 선호하기 때문에 전통시장 활성화는 늘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그런데도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보호'는 올해 대선에서 주요 화두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표'와 직결되는 문제여서 대선 주자들이 외면할 수 없어서다. 이 때문에 유통업계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새로운 규제가 도입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그토록 오랫동안 정치권과 정부가 '상생'을 외치면서 '대형 마트 규제와 전통시장 보호대책'을 추진했는데, 나아진 건 없고 되돌이표만 반복되는 걸까.

'첼시 마켓'은 우리에게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만이, 전통시장 보호만이 답이 아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첼시마켓은 '오레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자를 만들던 100여년된 과자공장의 시설물들을 그대로 활용했다. 에이미스 브랜드, 엘레니스 쿠키, 사라베스 베이커리, 팻 위치 베이커리 등 유명 식료품점과 '랍스타 플레이스'(The lobsterplace), 델리 등이 들어서 있다. 

100여년 된 폐공장의 모습을 그대로 살렸기 때문에 첼시 마켓에 들어서면 솔직히 대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마켓 곳곳을 걸으면서 부서진 듯한 벽돌벽, 슬레이트 지붕, 감각 있는 소품, 색다른 인테리어들을 보면 독특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물려받은 유산을 재활용하면서 현지인의 경제 생활에 도움을 주고, 관광특수까지 이끌어내는 '일석 삼조'의 효과를 거둔 것이다. 

첼시 마켓에서 또 하나 눈에 띈 점은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해 화장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이다. 이를 보면서 국내 전문가들이 소비자가 재래시장을 찾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화장실 문제를 꼽았던 게 생각났다. 첼시마켓에서 관광객들과 뉴요커들은 화장실 이용의 불편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했다.

물론 첼시 마켓을 우리 전통시장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오래된 공장을 마켓으로 성공적으로 변모시켜 관광지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장의 경쟁력은 '맛'과 '멋'이며, 옛 것을 부수고 화려한 새 건물을 짓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외면한 채 '보호'와 '활성화'라는 단어만 앞세워서는 우리 전통시장을 살릴 수 없다. 정책의 중심에 '소비자'를 둬야만 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유력 대선주자를 비롯한 정치권은 아직도 "종합 쇼핑몰과 대형 마트의 입점을 규제하면 전통시장 상권을 살릴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유통과 IT가 결합되고 있는 시대에 규제는 다 같이 죽는 길로 갈 가능성이 높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유통업계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이갑수 이마트 대표가 "인구구조 변화, 온라인 채널 성장으로 오프라인 유통업 성장이 자동적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규제가 필요하냐"고 지적한 것을 흘려 들어서는 안된다. 지금은 규제가 아닌 시장의 '맛'과 '멋'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5. [동아일보][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 방치된 공백, 채워가는 여백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천재였습니다. 박학다식했던 화가는 단순 기술에 머물던 미술을 정신과 학문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공헌을 했지요. 

화가는 스무 점도 되지 않는 그림을 남겼습니다. 게다가 몇 점은 미완성이기도 했습니다. ‘모나리자’도 완성이 덜 된 그림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림의 모델은 리자 게라르디니로 추정됩니다. 이탈리아 피렌체 실크 상인의 아내였지요. 당시 초상화 주인공은 주문자였던 소수 권력자들이었어요. 미술가가 모델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기는 제한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화가는 주문자의 신분이 높다고 해서 초상화 주문을 모두 받지는 않았습니다. 인품까지 참고해서 이례적으로 신흥 상인의 아내 초상화를 수락했다지요.

인간 가치에 새롭게 주목했던 시대 인식을 서둘러 그림에 충실히 반영하려 했겠지요. 그림은 명료한 윤곽선이 강조된 당대 초상화의 전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얇은 붓으로 덧칠을 반복해 입체감과 공간감을 사실적이며 신비롭게 표현해 냈지요. 그림 속 미소가 인간을 철저히 감정적 존재로 선언하고 있군요. 또한 화가는 인물을 강조하고자 당대 초상화가 깨끗이 비워두었던 배경에도 풍경을 정성껏 그려 넣었습니다. 인간을 작은 우주로 여기고 인체와 자연을 유기적으로 이해했던 화가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지요.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그림은 투철한 정신과 열정적 탐구의 산물이었습니다. 화가는 관찰에서 얻은 정보를 정확히 형상화하려 노력했습니다. 과학적 지식을 활용했고, 해부학적 지식도 동원했습니다. 예술가를 절대 정신에 다가가는 창조자라 믿었지요. 미술을 이성적 사고와 초월적 사유를 캔버스 위에서 결합시키는 행위이자 실천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니 작업 속도가 더딜 수밖에요. 

1503년 피렌체에서 그리기 시작한 그림은 주문자에게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1516년 노화가가 채 완성되지 않은 그림을 들고 새로운 후원자가 있는 프랑스로 떠났거든요. 타국에서도 그림은 마무리되지 못했습니다. 혹자는 그림이 완성되지 못한 원인을 화가 말년의 오른손 마비에서 찾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미완의 걸작은 돌이킬 수 없는 실패가 아니라 기억해야 할 결실로 평가됩니다. 우리가 함께 채워 나갈 빈칸이 무책임과 변명으로 방치된 공백이 아닌, 가능성과 성취로 채워 나갈 여백이면 좋겠습니다. 치열하게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화가의 캔버스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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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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