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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25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北 핵실험 하면 할수록 파멸만 재촉할 뿐

북한이 언제든 기습적으로 핵실험을 감행할 준비를 갖췄다고 한다. 이르면 북한군 창건일인 오늘이나 늦어도 제7차 당대회가 예정된 다음달 초를 전후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가 떨어지기만 하면 5차 핵실험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 정보 당국은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동향을 면밀히 관찰해 왔으며 최근 들어 새로운 핵실험을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유례없이 포괄적이고 강력한 제재를 받으면서도 5차 핵실험을 감행하려는 북한의 만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북한의 무모함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최근 들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쏴대는가 하면 핵탄두부터 대기권재진입체까지 죄다 공개하며 핵과 미사일 능력을 자화자찬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제도 또다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기습 발사하지 않았는가. 이 모든 게 “핵 공격 능력의 믿음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김 제1위원장의 무모한 지시에 따른 것이니 더욱 기가 찰 노릇이다. 당과 군의 핵심 기관들이 그의 지시를 관철하는 데에만 매달리고 있을 뿐 주민들의 피폐한 삶에 대한 고민은 안 보인다.

무리수를 두다 보니 실패도 잇따른다. 지난 3월 18일 발사한 노동미사일은 얼마 날지도 못하고 공중 폭발했는가 하면 지난 15일 처음 발사한 무수단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또한 몇 초 만에 폭발해 발사 인력 등이 그 자리에서 폭사(爆死)했다. 그제 발사한 SLBM은 최소 비행거리인 300㎞에 크게 못 미치는 30㎞를 날아가는 데 그쳤다고 한다. 김 제1위원장이 지켜본 탓에 북한은 ‘대성공’이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전력화까지는 3~4년 정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북한은 이처럼 핵 위협 극대화를 위해 총력적으로 핵 투발수단 다양화에 매달리고 있다.

뉴욕을 방문하고 있는 리수용 북한 외무상은 그제 AP통신과의 회견에서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중지하면 핵실험을 중단할 준비가 돼 있다”며 핵실험 중단의 전제조건으로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앞서 그는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고 위협한 바 있다. 애당초 성격이 달라 흥정 대상이 될 수 없는 한·미 군사훈련과 핵실험을 연계한 이번 발언도 핵실험 중단에 방점이 찍혔다기보다는 5차 핵실험을 위한 ‘명분 쌓기’ 공산이 크다. 북한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준비를 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5차 핵실험은 북한 정권의 재앙이 될 것이다.

이미 한·미·일 3국을 비롯해 국제사회는 5차 핵실험 이후의 추가 제재 방안 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대북 원유수출 완전 차단, 고려항공 영공통과 금지, 북한 근로자들의 대북 송금 차단 등이 추가 제재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차 핵실험에 따른 제재로 북한 주민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것은 지난번 중국 내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집단탈출 사실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국제사회는 지금보다 더욱 강력한 제재에 나설 수밖에 없다. 김 제1위원장은 스스로 파멸의 길을 재촉하지 않길 바란다.

2. 폐 손상이 황사 때문이라는 뻔뻔한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의 최대 책임 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에 대한 소비자들의 원성이 자고 나면 더 커지고 있다. 사망자의 70%가 사용한 제품을 만든 책임이 밝혀졌는데도 무성의한 발뺌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이제라도 피해 수습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도 시원찮을 판에 피해자들의 폐 손상이 황사 때문일 수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고 있다. 검찰의 본격 수사로 꼼짝없이 책임을 물어야 할 상황이 닥치자 대형 로펌인 김앤장의 도움을 받아 이런 의견서를 새로 제출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매를 번다”며 격분하고 있다.

영국에 본사를 둔 옥시의 무책임한 처사에 국내 소비자들은 온라인 불매 운동을 펼칠 조짐이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지 며칠 전에도 옥시는 무성의하기 짝이 없는 이메일 사과문을 내놨다. 그러면서 말 바꾸기를 하는 것은 책임을 최대한 회피하고 검찰 수사에 물타기를 하려는 꼼수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옥시는 문제의 제품과 인체 피해의 연관성을 실험하는 연구용역을 진행하면서도 파렴치한 술수를 부린 의혹이 속속 불거지고 있다. 연구용역을 조작하게 뒷돈을 줬다는 의심을 받는 데다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연구 결과는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는 의혹까지 터져 나왔다.

검찰은 영국 본사로 수사를 확대하고 전·현직 임원을 소환할 방침이다. 정화조 청소용으로 쓰는 화학물질이 소비자의 생명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돈벌이만 생각했던 기업이라면 어떤 사정에서라도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 당국의 대응과 수습 태도에도 각성이 필요하다. 다국적 기업 옥시의 오만하고 몰염치한 태도가 그동안 우리 당국이 일관해 온 소심하고 수세적인 대처 탓과 무관하다고는 보기 어렵다. 안이한 대응으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이 정부한테도 크다는 사실을 국민이 잘 알고 있다. 문제의 제품들을 오랫동안 사용한 소비자들의 걱정이 심각하다. 폐 말고 만성 비염, 천식 같은 호흡기 질환도 살균제 탓이 아닌지 불안에 떨고 있다. 환경부는 다음달부터 피해 사례를 추가로 접수하기로 했다. 폐질환 이외의 추가 피해 여부를 따져 피해 진단 기준과 지원책을 마련하는 데 속도를 내야 한다. 그래야 국민 집단 불안증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다.

3. 마지막 임시국회 면피성 법안 처리 안 돼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어제 만났다. 3당 원내대표는 ‘청년 일자리 창출 등 민생·경제 법안을 최우선 처리하고,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무쟁점 법안도 우선 처리한다’는 합의문도 내놓았다. 합의문에는 ‘19대 국회가 마지막 임기까지 최선을 다하여 대화와 타협, 상생의 정치로 가능한 입법을 최대한 실천하겠다’는 구절도 들어 있다. 임기 내내 정쟁만 일삼고 민생 현안은 내팽개치다시피 했던 제19대 국회가 마치 회개한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4월 임시국회가 개회하고 사흘이나 지나 법안 처리를 논의했다는 것 자체가 순서가 뒤바뀐 일이다. 총선 민심이 ‘경제 살리기’에 있다고 입을 모은 3당이었으니 임시국회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임시국회에 임하는 3당의 자세에선 현안을 해결하겠다는 적극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최소한의 제스처로 욕이나 먹지 말자는 이심전심만 보인다.

3당 원내대표는 노동개혁 4법과 서비스발전기본법 등은 합의하지 못했다. 하지만 규제프리존특별법에는 의견이 상당 부분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별 특화 산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 주고 세제에서도 혜택을 주는 내용으로, 투자 확충과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전국 14개 시·도가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공동건의문을 냈을 만큼 지역 공통 현안이다. 야당이라고 큰 틀에서 반대할 이유는 없다. 여기에 상임위 심의를 거쳐 법사위에 넘겨진 93개에 법안 가운데 상당수는 무쟁점 법안이다. 일회용 주사기의 재사용을 금지하는 의료법 개정안과 ‘신해철법’으로도 불리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 개정안,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야가 정쟁을 벌이느라 처리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런 법안을 통과시키고 업적이라고 내세운다면 낯부끄러운 일이다.

4월 임시국회는 3당 원내대표의 합의문 수준을 뛰어넘어야 한다. 합의문 내용의 이행에 그친다면 제19대 국회에는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그저 무쟁점 법안을 통과시키는 절차가 남아 있을 뿐이 아닌가. 한 달 남짓이면 국회가 여소야대로 재편될 상황에서 야당이 반대하는 여당의 개혁 법안 처리가 쉽지 않다는 것은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법안들이 국회에서 정쟁이 아닌 경제 효과 차원에서 치열하게 논의가 오가는 모습을 국민은 보고 싶다. 경제 살리기에 대한 각 당의 관점이 구체적으로 제시됐을 때 제20대 국회도 시간 낭비 없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이데일리]

4. 거듭되는 열차사고 안전불감증 걱정된다

전남 여수에서 22일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해 기관사가 숨지고 승객 8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로 기관차와 객차 4량이 탈선했고 사고 구간 열차 운행이 전면 중단되는 등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가 진행중이지만 기관사가 선로 변경 구간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과속 운행을 한 데 따른 전형적인 인재임에는 틀림없다. 다행히 새벽시간대여서 탑승 승객이 27명에 불과해 사상자가 많지 않았지만 자칫 초대형 참사로 이어질뻔 했다. 

지난달 11일 경부선 신탄진역 부근에서 화물열차 탈선사고가 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또다시 열차사고가 난 것은 코레일의 안전관리 체계 전반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사고 지점은 상행선으로 달리다 다시 하행선으로 바뀌는 곡선 구간으로 기관사가 속도를 시속 50㎞ 이하로 줄여야 하는데도 127㎞로 달렸다고 한다. 기관사가 소중한 승객의 목숨을 담보로 마치 곡예 운전하듯 하니 사고는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기관사 교육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코레일은 이번 사태의 책임이 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국토교통부 역시 코레일에 대한 관리 감독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점에서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탈선사고가 최근 잇따른 데에는 최고경영자 공백에 따른 코레일 전체 조직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최연혜 전임 사장이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기 위해 물러난 후 사령탑 부재에 따른 고질적인 안전불감증과 기강해이가 사고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의 안전을 챙기는 막중한 자리를 걷어차고 금배지를 달기 위해 사퇴하는 모습도 볼썽사납지만 최고경영자 공백에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코레일의 위기관리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2년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정부당국은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외쳤다. 그러나 탈선사고가 잇따르는 것은 구호만 요란했을 뿐 바뀐 것은 거의 없음을 보여주는 예다. 이번 열차사고도 기관사가 안전관리 매뉴얼만 철저히 지켰어도 예방할 수 있었다. 코레일은 해이해진 조직 기강을 하루빨리 바로잡아 안전관리 체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5. 흡연 경고그림 담뱃갑 상단에 둬야

정부의 ‘흡연 경고그림 담뱃갑 상단 배치’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는 최근 본회의를 열어 흡연 폐해 경고그림 위치를 담뱃갑 상단으로 규정한 건강증진법 시행령 개정안 조항을 철회할 것을 권고했다. 권고가 받아들여지면 경고그림 위치는 담배회사 자율에 맡겨진다. 매출에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정부 방침에 반대해 온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규개위 권고는 재고돼야 한다. 경고그림 부착은 흡연자에게 혐오감과 경각심을 주어 금연을 유도하려는 의도에서다. 효과를 높이려면 경고그림이 눈에 잘 띄도록 하는 게 당연하다. 하단에 두면 경고그림이 진열대에 가려져 효과가 반감될 게 뻔하다. 규개위 권고는 담배회사의 반발을 의식한 눈치 보기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규개위는 ‘경고그림 상단 배치’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상단 배치의 효과가 좋다는 입증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경고그림을 도입한 80개국 중 51개국, 63.8%가 상단 배치를 명시했다. 올해 새로 도입하는 21개국 중 18개국도 상단에 넣기로 했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경고그림을 위쪽에 두는 게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성인 남성 흡연율은 43.1%(2014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국민 건강과 흡연에 따른 경제·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금연은 중요한 정책 과제다. 금연정책은 담뱃값을 올리는 가격통제 위주였다. 하지만 지난해 담뱃갑을 2000원이나 올렸지만 담배 세수가 전년보다 3조5608억 원이나 늘어난 데서 보듯 가격 정책은 한계가 있다. 

2020년까지 성인 남성 흡연율을 OECD 평균(29%) 수준으로 낮추려면 비가격 정책이 중요하다. 경고그림 도입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관련 법안이 첫 발의된 2002년 이후 14년 만이다. 정부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유해 경고그림의 상단 배치를 관철시키길 바란다. 현재 담뱃갑 면적의 50% 이상인 경고그림 넓이를 캐나다(75%), 호주(95%)처럼 더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만하다.

[한겨레]

6. 검찰과 법원의 '좌익효수' 감싸기

‘좌익효수’란 아이디로 인터넷에 악성 댓글 등을 단 국가정보원 직원 유아무개(42)씨에게 최근 법원은 모욕 혐의만 인정하고 국가정보원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그가 익명으로 몰래 쏟아낸 각종 악성·저질 정치개입 발언의 ‘죄상’에 비하면 너무 가벼운 판결이다. 그런데 법원의 ‘면죄부 판결’ 뒤에는 검찰의 ‘봐주기 기소’가 있었다. 검찰과 법원이 힘을 합쳐 국정원 직원의 명백한 불법행위를 눈감아주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지난해 11월 유씨를 불구속 기소하면서 애초 국정원 댓글 특별수사팀이 발견한 유씨의 선거 개입 게시물 등 수백개의 글을 제외한 채 10개의 글만 기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별수사팀은 유씨가 2011~2012년에 당시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였던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를 비난하는 글을 비롯해 선거 개입 게시물과 댓글을 수백건이나 올린 것을 파악하고 상세한 수사기록까지 남겼으나, 정작 기소 단계에서는 이런 혐의가 모두 빠져버렸다.

검찰은 애초부터 유씨 비호에 급급했다. 유씨한테서 입에 담지 못할 수치스러운 모욕을 당한 인터넷 방송 진행자 ‘망치부인’ 이경선씨가 고소장을 냈는데도 검찰은 2년간이나 수사를 질질 끌었다. 검찰이 좌익효수의 신원확인조차 하지 않던 사이에 이씨는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좌익효수가 국정원 직원이라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패소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검찰은 이미 유씨의 범죄행각을 속속들이 알면서도 뭉그적댔고, 마지못해 기소하면서도 중대한 범죄혐의를 모두 빼버린 것이다. 이러고도 검찰이 법과 정의를 외칠 수 있는지 한숨만 나올 뿐이다.

검찰의 알맹이 없는 ‘축소 기소’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법원의 면죄부 판결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이창경 판사는 판결문에서 “유씨가 선거와 관계없이 매우 저속하고 과격한 표현으로 비방 댓글을 지속적으로 달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으니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다. 다른 사건과 비교해볼 때 형평성도 없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페이스북에 박원순 서울시장을 지지하는 글을 올린 서울시 공무원이나,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시국선언 전교조 교사 등에 대해 법원은 어김없이 유죄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여권 편향’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좌익효수 엉터리 기소 사실이 드러난 이상 관련자들과 검찰 지휘라인에 대한 철저한 문책이 뒤따라야 한다. 또 검찰은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마땅히 추가 기소를 해야 한다. 검찰과 법원의 국정원 감싸기는 법치주의의 기본을 뒤흔들고 사법기관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는 행위다. 

[중앙일보]

7. 대주주도 구조조정의 고통을 분담하라

구조조정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면서다. 새누리당은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대표는 “정부가 청사진을 그려주면 협력할 것은 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대통령과 정부, 여야 국회가 미래를 준비하는 산업구조개혁의 청사진을 함께 만들자”고 했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입장 차가 적지 않다. 실업자 대책, 고통 분담, 국민 세금 지원 등 합의가 어렵거나 정치력을 동원해 풀어내야 할 난제가 첩첩산중이다. 이걸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구조조정은 물론 대한민국 경제의 성패가 갈릴 것이다.

그 시금석이 해운업종이다. 해운업은 조선업과 함께 세계 경제 불황의 직격탄을 맞았다. 매출은 줄고 용선료 부담은 늘었다. 빚을 빚으로 갚는 악순환이 8년째 이어져 왔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부채는 각각 4조8000억원, 5조6000억원에 달한다. 지난달 29일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한 현대상선에 이어 한진해운도 지난 주말 이사회를 열어 자율협약 신청을 의결했다.

자율협약이란 채권 금융회사들이 빚 상환을 연기해 주면서 부실기업을 회생시키는 절차다. 보통은 부실기업 측이 경영권 포기각서와 사재 출연 등 자체 경영 정상화 방안을 내놓고 채권단과 물밑 조율을 거친다. 한진해운은 그러나 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전혀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 일각에선 사재 출연 압박 등을 피하기 위해 한진 측이 선수를 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산은 측은 “사전에 경영권 포기각서를 제출하고 진정성 있는 자구 노력을 보여준 현대상선과 비교된다”고 꼬집었다. 현대상선 현정은 회장은 지난달 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했다.

대주주 일가의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은 두 딸과 함께 보유 중인 한진해운 주식 97만 주(약 27억원)를 자율협약 발표 하루 전인 21일까지 모두 팔아치웠다. “원래 계획된 일정”이라고 해명했지만 석연치 않다. 한진해운 주가는 자율협약 신청 사실이 알려진 22일 하루에만 7.5% 급락했다. 가뜩이나 최 전 회장은 남편인 조수호 전 회장이 타계한 뒤 경영권을 맡아 무리한 확장 경영으로 부실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금융 당국이 내부자 거래 여부를 조사 중이라니 결과를 지켜볼 일이지만 하필 민감한 시기에 그래야 했는지 의문이다. 제일 먼저 배를 버린 난파선 선장과 뭐가 다른가.

구조조정은 진검 승부다. 피가 튀고 뼈가 부서지는 고통이 따른다. 노동자는 해직의 숙명을 강요받는다. 조선업 구조조정에만 최소 2만여 명의 실직자가 쏟아질 것이라고 한다. 그런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려고 국민 혈세도 투입된다. 대주주가 열과 성을 다해도 노동자의 눈물을 다 닦아주기는 어렵다. 하물며 한진처럼 대주주부터 나몰라라 해서야 어떻게 노조에 희생과 양보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여·야·정 협의로 어렵게 싹튼 구조조정의 불씨가 맥없이 사그라질까 걱정이다.

8. 북한 핵포기·국제사회와의 공존만이 살길이다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5차 핵실험 강행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북한이 지난 주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실험을 기습적으로 실시했다. 다음달 초로 예정된 제7차 당대회를 앞두고 핵 공격 역량을 갖췄음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김정은이 지난달 15일 미사일 발사 실험과 핵탄두 폭발 실험을 함께 지시한 사실을 고려할 때 5차 핵실험도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바닷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잠수함이 발사하는 SLBM은 효과적인 방어수단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북한이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탄도미사일 중에서 가장 위협적인 무기다. 게다가 SLBM이 수면 위에서 캡슐을 벗은 뒤 점화돼 공중으로 치솟는 콜드론치(cold launch) 기술 등이 지난해 12월 시험발사 때에 비해 의미 있는 진전을 보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실전 배치 시기를 향후 2~3년 안으로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핵무기가 북한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최후 수단이라는 믿음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달라지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아시아 핵무장 도미노를 초래할 북한의 핵무기 실전배치를 국제사회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한·미·일 3국은 이미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더욱 강력한 제재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군사적 대응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가 과거처럼 유명무실하게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서둘러 깨는 게 좋다. 정부도 국제공조를 더욱 긴밀히 해 빈틈없는 대북제재를 이끌어야 한다. 중국과의 긴밀한 협조는 필수적이다.

아울러 핵 포기, 국제사회와의 공존만이 살길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북한에 보내야 한다. 이란과 쿠바와의 관계 진전에서 보듯, 핵을 포기한 북한에 대해 미국이 결코 적대적일 이유가 없음을 납득시켜야 한다. 그래서 대화 테이블로 북한을 끌어내야 한다. 그것이 북한의 핵 도발에 대한 가장 크고 효과적인 무기다.

[한겨레]

9. 혐오 앞세운 ‘극우 기독교’ 정치화, 위험하다

차별과 혐오를 공공연히 내건 기독교 정당 두 곳이 20대 총선에서 3%가 넘는 득표율을 올렸다. 당이 갈라지지 않았다면 국회에 비례대표 의원을 보내는 일이 현실화할 뻔했다. 동성애와 이슬람 반대를 주장하는 극우 기독교 정당이 활개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한 상식을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현상이다.

23일치 <한겨레> 토요판이 보도한 내용을 보면, 기독자유당 후원회장을 맡은 서울시내 대형교회 목사는 총선이 끝난 뒤 신도들 앞에서 “4년 후엔 3~4배로 커져서 원내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기독자유당은 선거가 끝난 뒤에도 ‘반기독교 악법 저지 1000만 기독교 서명운동’을 벌이며 위세를 키워가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극우 기독교의 정치세력화에 보수 개신교계가 조직적으로 힘을 실었다는 사실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한 개신교 주요 기관이 기독자유당을 지지하고 대형교회 목사들도 가세했다. 극우 기독교 운동은 이번 총선에 앞서서도 우리 사회의 전진을 가로막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 2007년 이후 성별·장애·종교·지역·인종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여러 차례 국회에 제출됐으나 보수 기독교의 조직적 반대로 무산됐다.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한 ‘서울시민 인권선언’이 성소수자 차별 금지 내용이 빌미가 돼 좌초한 데도 보수 기독교의 반대운동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소수자 차별과 약자 혐오는 박애와 관용을 가르치는 기독교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일부 기독교 세력의 이런 위험한 질주를 막으려면 기독교계 전체가 각성해 참다운 기독교 정신으로 돌아가는 자정운동을 펴는 것이 필요하다. 인권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민주교육도 강화돼야 한다. 특히 차별금지법을 하루빨리 제정해 반인권적 혐오세력이 발붙일 수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경향신문]

10.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 모녀의 수상한 주식 매각

한진해운 전 회장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과 두 딸이 한진해운의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신청 결정 직전에 보유하던 한진해운 주식을 전량 매도했다. 매각량은 전체 주식의 0.39%인 96만여주로, 시가로 치면 31억원 규모이다. 최 회장 일가의 주식 매각이 완료된 이튿날 한진해운 이사회는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율협약 신청을 결의했다. 한진 측은 최 회장의 주식 매각 사실을 몰랐다는 입장이다. 반면 최 회장 측은 “2015년 유수홀딩스에서 한진해운을 떼낼 때 보유 지분 매각을 공정거래위원회에 보고한 상태”라며 “계획에 따라 이뤄진 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석연치 않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만나 한진해운 재무구조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고 자율협약 신청 등 고강도 자구책을 촉구한 게 지난달 말이다. 특수관계인인 최 회장 일가가 이런 움직임을 모를 리 없다. 자율협약은 대주주의 경영권 포기를 통한 본격적 채무 재조정을 의미한다. 결정이 내려지면 채권단의 출자전환과 함께 대주주가 갖고 있는 주식은 감자 조치된다. 

최 회장은 2006년 남편인 조수호 전 회장이 숨진 이후 경영권을 맡았지만 무리한 확장 경영으로 재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등 부실을 키웠다. 2013년에는 영업적자가 3000억원이 넘어 마른 수건을 짜내던 시절임에도 거액의 보수를 받고 퇴직금 산정 기준을 높이는 등의 방법으로 회사 돈을 빼갔다. 한진그룹에 한진해운을 넘긴 뒤에는 외식업에도 진출하면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상황이다. 경영부실을 초래한 장본인이 부실 책임은커녕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활동하고, 마지막 남은 사익까지 챙겨가는 모습에 허탈감마저 든다. ‘수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시장법은 내부자가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거나 손실을 회피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최 회장 일가의 지분 처분 경위와 주가 변동 내용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 문제가 확인되면 합당한 처벌을 내려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해운사 대주주나 채권단의 늑장 구조조정으로 인한 투자자 손실 문제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해운사들은 매년 적자가 커지는 상황에서도 거액의 회사채를 판매했다. 법정관리로 가게 되면 투자자 손실은 불 보듯 뻔하다. 동양그룹이 기업어음을 불완전 판매해 거액의 손실을 떠넘긴 사례는 기억에도 새롭다.

주요 신문칼럼

1. [머니투데이] [법과 시장]결혼유지가 최선의 노후대비다

바야흐로 '노후대비' 열풍시대다. 한국 베이비붐 세대의 시작연도인 1955년생이 올해 62세, 종료연도인 1964년생이 올해 53세. 베이비붐세대가 900만명이라고 하니 어림잡아 한국인구 5천만명의 1/5. 한국인 다섯 명 중 한 명이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퇴직한 후 뭘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중이거나 이미 퇴직해 새로운 소득원 마련을 위해 고군분투중이다. 그러니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전국민적 관심사요, 각종 노후대비용 보험, 연금, 투자상품이 홍수처럼 쏟아질 수밖에.
그런데 노후대비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 황혼이혼이 퇴직 후 경제생활에 미치는 영향이다. 보통 결혼기간 20년 이상의 부부가 이혼하는 것을 황혼이혼으로 분류하는데, 2015년 통계에 의하면 2015년 11만5510건의 이혼사건 중 결혼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가 28.7%를 차지했다. 황혼이혼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트렌드다.

문제는 황혼이혼이 노후생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2014년 대법원이 퇴직금과 연금도 이혼시 재산분할대상이 된다고 판결한 후 공무원 연금법이 개정돼, 올해부터 공무원 이혼시 배우자의 분할연금수급권이 적용되며 앞으로 다른 연금법들도 점차 개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혼하면 쪽박찬다'는 얘기가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사례를 보자.

올해 50세인 A씨는 20년간 공무원생활을 해 65세부터 월 160만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 A씨는 현재 결혼기간 20년인 처와 이혼수속을 밟고 있는데 이혼하게 될 경우 결혼기간인 20년동안의 공무원연금 절반을 처에게 줘야 한다. 은퇴까지 남은 10여년간의 상승분을 고려하더라도 A씨는 은퇴 후 월 100만원이 안되는 소득밖에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A씨의 다른 재산은 7억짜리 집 한 채인데 대출 2억 빼면 5억, 이혼시 처와 절반 나누면 2억 5천이 된다. 퇴직시까지 10여년 남았으니 조금 더 모은다 하더라도 A씨는 3억원 정도의 자금과 100만원 이하의 월소득으로 20년의 노후를 버텨야 한다. 3억원 미만의 작은 집을 한 채 마련한다면 최저생계비수준(2015년 1인 최저생계비는 65만원) 정도의 생활을 해야하는 것. 여기에 자녀들의 학자금과 결혼자금지원까지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다.

A씨의 사례는 황혼이혼을 하는 부부들의 평균적인 경우다. 베이비붐 세대의 평균자산은 5억원을 약간 넘는 수준인데, 황혼이혼으로 자산을 반씩 나누고 퇴직금과 연금까지 반으로 줄어든다면 이혼 후 당장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퇴직 후 이혼하려던 계획을 수정하는 경우도 생긴다. 올 7월 명예퇴직예정인 은행원 P씨는 1년 전 퇴직과 동시에 명예퇴직금 5억을 포함한 재산 7억원을 반씩 나누고 이혼하기로 합의했지만 얼마 전부터 생각을 바꿨다.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해방되고 싶어 덜컥 이혼하자고 했지만 정작 퇴직이 몇 달 후로 다가오니 지금 재산의 반으로 노후를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재산분할을 피하기 위해 별거를 제안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처가 수용할지는 미지수. 이럴 줄 알았다면 처와의 관계개선에 더 노력해 볼 걸 하고 후회중이다.

이혼상담을 하다보면 중년 이상의 남성들은 '평생 내가 먹여 살렸는데 왜 내가 재산을 나눠주느냐'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미안하지만 그건 본인생각일 뿐이다. 분할비율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어쨌든 이혼하면 배우자가 재산의 상당부분을 가져간다. 나눠주기 싫어도 법원이 강제로 나눠주게 만든다. 그러니 재산을 두 배로 불릴 자신이 없다면 배우자와의 관계를 개선해야 그나마 노후가 편안하다. 노후대비 재테크 고민할 시간의 반만 써서 배우자와의 관계개선을 고민하라. 결혼유지가 최선의 노후대비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 음주운전 처벌 기준/임창용 논설위원

얼마 전 대법원에서 국민적 공분을 샀던 ‘크림빵 뺑소니’ 사건에 대한 확정판결이 있었다. 피고는 지난해 1월 새벽 청주의 한 도로에서 만삭 아내를 위해 크림빵을 사들고 귀가하던 남성을 치고 달아났었다. 사망자의 안타까운 사연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대법원은 피고에 대해 징역 3년 실형을 확정했다. 피고는 사고 전 소주 4병을 마셨다고 자백했다. 다만 이를 증명할 근거 부족으로 음주운전 혐의는 무죄로 결론 나 아쉬움을 남겼다.

이 사건은 운전자가 술을 마시는 순간 자동차가 도로 위의 흉기로 돌변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줬다. 한국교통연구원 등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사망 교통사고 중 음주사고가 15%를 차지한다. 미국에선 교통사고 사망자의 3분의1이 음주운전 때문이라는 통계도 있다. 그래서 각국에선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 기준을 강화하는 추세다. 서구에서 단속 기준이 가장 강한 나라는 스웨덴이다. 1990년 처음으로 혈중 알코올 농도 단속 기준을 0.05%에서 0.02%로 대폭 강화했다. 러시아와 폴란드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2002년 0.03%로 기준치를 낮췄다.

상당수 국가에선 아직 우리나라와 같은 0.05%를 적용하고 있다. 다만 청소년이나 사업용 운전자에 대해선 더 낮은 기준치를 적용하는 나라들이 많다. 독일이나 캐나다에선 청소년은 수치와 관계없이 술 냄새만 나도 단속된다. 0.00%여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은 21세 이하인 운전자는 알코올 농도가 0.02% 이상이면 처벌받는다. 이들 나라에선 버스·화물차 등 사업용 운전자도 0.00~0.03%의 엄격한 잣대를 적용받는다. 대형 음주운전 사고를 예방하려는 취지다.

처벌 수위도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벌금과 구금 등 형사처벌과 운전면허 행정처분을 병과하고 있다. 다만 처벌 방식에 따라 강화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어 면밀한 연구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의 사례조사 및 분석에 따르면 형사처벌보다는 행정처분이, 형사처벌에서 구금형보다는 벌금형이 효과가 높다는 의견도 있다. 북유럽의 몇몇 나라에선 알코올 수치가 같더라도 개인의 수입에 비례해 벌금을 부과한다.

검찰과 경찰이 어제 상습 음주운전자의 차량을 몰수하는 등 음주운전 처벌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음주 차량 동승자, 음주운전을 예상하면서도 술을 판 식당 주인까지도 처벌 대상이다. 집행 과정에서 재산권 침해나 여러 대의 차량 소유자와의 형평성 문제 등 논란도 예상된다. 그러나 음주운전과 관련해 동승자(일본)나 주류 판매자(미국, 일본), 차량 제공자(핀란드)에 대한 처벌은 이미 다수의 나라에서 하고 있다. 정교하고 강력한 실천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차제에 음주 단속 기준을 강화하거나, 소득에 따라 벌금을 달리 부과하는 북유럽 방식도 도입했으면 한다.

3. [동아일보][@뉴스룸/조종엽]‘온통 당신이 되는 날’

17일은 마술적 사실주의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타계한 지 2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그의 소설 ‘백년의 고독’을 오랜만에 꺼내들었다. 주인공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는 주변의 모든 것에서 사랑하는 소녀 레메디오스를 떠올린다.

“나른한 오후 두 시의 공기 속에 있는 레메디오스, 장미가 조용히 발산해 내는 향기 속에 있는 레메디오스, 나방들이 뒤덮고 있는 물시계 안에 있는 레메디오스, 아침 빵에서 솟아오르는 김 속에 있는 레메디오스, 어디에나 있는 레메디오스, 영원히 존재하는 레메디오스….”

사랑에 빠진 이들의 상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가 보다. 이별 뒤에도 마찬가지다.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바람을 타고 쓸쓸히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뺨을 스치는 어느 저녁의 그 공기 속에도…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진 저 의자 위에도/물을 마시려 무심코 집어든 유리잔 안에도/나를 바라보기 위해 마주한 그 거울 속에도/귓가에 살며시 내려앉은 음악 속에도/네가 있어”(넬 ‘기억을 걷는 시간’)

좀 비약해 보자. 이처럼 낯선 사람, 심지어 솟아오르는 김이나 의자 속에 ‘당신’, 즉 숭배하는 대상이 있다면 우리는 낯선 것들을 얼마든지 사랑하고 반길 수 있을 거다. 구약성경에서 신이 아브라함 앞에 낯선 나그네로 모습을 드러내고 아브라함이 나그네 일행을 왕같이 대접한 것처럼 말이다.

사랑에 빠진 이들이 적어서일까. 사회에서 낯선 이라면 곧 사회적 약자일 텐데, 우리 현실은 약자를 환대하기는커녕 조롱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최근 한부모 가정을 희화화한 케이블TV 개그가 논란이 됐다. 사실 지상파도 오랫동안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왔다.

사회적 약자 캐릭터가 개그에서 조롱당하지 않고 오히려 성찰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웃음을 선사할 수는 없을지 생각해 본다. 발달장애인이 ‘동네 바보 형’이 아니라 서양 중세의 광대 캐릭터처럼 등장할 수도 있을 거다. 범인과는 다른 지혜를 갖고 있으며 헛소리를 통해 영주의 잘못을 꼬집기도 했던 광대 말이다. 어눌한 말투로 ‘사장님 나빠요’라며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에 공감을 일으켰던 ‘블랑카’ 같은 모델도 있지 않나.

“사랑하는 사람의 수만큼, 그리움의 수만큼, 억울한 죽음의 수만큼 제주에는 당신이 많다… 감귤이 당신이 되고, 은대금잔의 제주 수선화가 당신이 되고, 흔들리는 아기동백이 당신이 된들 이상할 것이 없다. 저자거리의 옥돔 돌돔이, 전복 소라 멍게가 어느 날은 당신이 되고 말 것이다. 들판의 감자와 고구마가 무 배추 당근이 또 당신이 되는 날도 올 것이다.”

병마와 싸우다 지난해 1월 세상을 떠난 주용일 시인의 시 ‘제주에는 당신이 많다’의 한 구절이다. 한국에서는 굶는 이들 앞에서 폭식하는 일이 벌어지더니 미국에서는 약자 조롱으로 구설에 오르는 일이 잦은 사람이 유력 대선 후보가 됐다. 이 시 구절처럼 ‘산꼭대기에서 바다 깊은 물속까지 삼라만상이 온통 당신이 되는 날’이 오기까지는 우리의 감수성이 아직 한참 모자란 것 같다.

4. [중앙일보][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내 인생에 기대를

TV를 보며 훌쩍대는 건 나이 드는 징조 같아 참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요즘 ‘눈물유발자’는 JTBC ‘힙합의 민족’(사진)이다. 올해로 80세가 된 배우 김영옥씨를 비롯해 이용녀·양희경·이경진·문희경·최병주·염정인·김영임 등 평균 나이 65세의 ‘할머니급’ 여성 8명이 프로 래퍼와 팀을 이뤄 힙합 경연을 펼치는 프로그램. 실소를 자아내는 ‘병맛 예능’ 선호자인 터라 웃음이 터지길 기대하며 보기 시작했는데 웬걸, 배신을 당하고 말았다.

‘쇼미더머니’ ‘언프리티랩스타’ 같은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일 때 한 음악평론가에게 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노래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랩까지 잘하네요. 왜 그럴까요?” 그의 대답은 이랬다. “힙합이란 게 원래 억압받고 살아온 흑인들의 한풀이로 생겨난 장르잖아요. 우리야말로 ‘한의 민족’ 아니겠습니까. 랩으로 상대를 비판하는 ‘디스(diss·disrespect에서 나온 말)’도 그래요. 당쟁과 사화, 이게 다 디스의 역사예요. 하하.” 반쯤 농담으로 들었지만 ‘힙합의 민족’을 보면 살짝 알 것도 같다. 힙합의 소울(Soul)이란 이런 것인가.

그동안의 힙합 프로그램에서 젊은 래퍼들이 풀어낸 인생 스토리란 대개 가난한 환경을 딛고, 혹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의 길을 선택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짧게는 오십 몇 년, 길게는 팔십 년을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온 ‘할미넴(할머니+에미넴)’들의 사연은 ‘레벨이 다르다’. 누구는 전쟁을 겪었고, 암 투병을 했고, 이혼을 했고, 한때 삶에 지쳐 목숨을 끊으려 했다.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신데렐라였지만 불운하게 뜨지 못했고, ‘딴따라’의 길을 반대하는 부모님께 들킬까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를 연습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리듬에 실려 주르르 흘러나오니, 김영옥 할머님의 이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밖에. “얘들아, 이게 진짜 힙합이다.”

더 큰 감동의 순간은 ‘망하더라도 한번 해볼까’라는 도전을 넘어, 실제로 성장하고 있는 이들의 실력을 확인할 때다. 박자 감각이 영 없어 보이던 출연자가 조금씩 리듬을 타기 시작할 때, 아들뻘인 래퍼와 속사포랩 배틀을 멋지게 해냈을 때 가슴 찡한 위안이 찾아온다. “여든이든 아흔이든 하고 싶은 건 하면 된다”(김영옥)는 것, 노력하면 누구나 나아질 수 있다는 것. 1회 때 왜 이 프로에 출연했느냐는 질문에 한 출연자가 답했다. “내가 내 인생에 기대를 할 수 있잖아요.” 맞다. 내 인생에 대한 기대를 멈추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건 아직 너무 많다.

5. [동아일보][표정훈의 호모부커스]독서비망록

읽은 책을 잊지 않으려고 골자를 적어 둔 것, 독서비망록이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멤버 아트 가펑클은 홈페이지에 1968년부터 2015년까지 47년 동안 읽은 책 1227권을 정리해 놓았다. 읽은 날짜와 저자, 제목, 출간 연도, 전체 쪽수를 기록했다. 

‘가펑클 라이브러리’로 일컬어지는 이 온라인 독서비망록은 루소의 ‘고백록’부터 시작해 제임스 개빈의 ‘쳇 베이커’(한국어판 을유문화사),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까지 잡식성 광폭 독서의 경이로운 흔적이다. 고백록은 1968년에 처음 읽고 1983년에 다시 읽었다. 프랑스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의 ‘봉건사회’는 1982년에 제1권, 1991년에 제2권을 읽었다. 

조선 후기 문신 홍석주(1774∼1842)는 평생 읽은 책들을 분류하여 개요를 기록한 ‘홍씨독서록(洪氏讀書錄)’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동생이 ‘나처럼 마구 읽어 요령을 얻지 못할까 염려하여’ 독서록을 쓰기 시작했고, ‘일찍이 읽어 감명받은 것과 대개는 읽고 싶었으나 읽지 못한 책을 골라 제목을 나열하고 개요를 기록했다’.(‘역주 홍씨독서록’·이상용 역)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독서 기록이 있지 않을까. 이순신 연구가 박종평에 따르면 이순신이 직접 읽었다고 기록한 책은 류성룡이 보내준 ‘증손전수방략(增損戰守方略)’ ‘동국사(東國史)’, 독후감을 남긴 ‘송사(宋史)’뿐이다. 그러나 많은 책을 읽고 깊이 사색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흔적은 많다고 한다.

우리 시대에는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이 쓴 일기이자 유고, ‘행복한 책읽기’(문학과지성사)가 있다. 1989년 6월 18일 김현은 이렇게 적었다. ‘이제는 갈수록 긴 책들이 싫어진다. 짧고 맛있는 그런 책들이 마음을 끈다. 두껍기만 하고 읽고 나도 무엇을 읽었는지 분명하지 않은 책들을 읽다가 맛좋은 짧은 책들을 발견하면 기쁘다. 바르트의 어떤 책들, 그리고 푸코의 ‘마그리트론’….’

학교 독후감 숙제 탓에 책과 멀어졌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학교생활기록부에 독서활동 상황을 기록한다. 그런 생활기록부가 대입 전형에서 중요해질수록, 자발적으로 솔직하고 즐겁게 쓴 독서비망록은 드물어질 법하다. 중국 명나라의 이탁오가 말했다. “성정을 편안하게 하고 정신을 기르는 것이 바로 책 안에 있다.” 생활기록부 독서비망록이 자꾸만 성정을 불편하게 하고 정신을 위축시키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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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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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22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1. 규제 풀 대상이 '맥주 보이'뿐인가

야구장에서 생맥주를 파는 ‘맥주 보이’가 전면 허용됐다. 주류 소매점에서 선물용 와인을 택배로 배달하는 서비스 규제도 풀렸다. 현행법상 불법이지만 현실적으로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치맥 배달’에 대해서도 국민 편의를 고려해 규제를 완화할 방침이라고 한다. 정부 당국의 이 같은 결정은 최근 동일 사안에 대해 규제 강화로 결정했다가 여론의 거센 반발로 입장을 번복한 것이라 뒷맛이 개운치 않다.

정부는 그동안 일상생활에서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이른바 ‘손톱 밑 가시’를 없애겠다고 수도 없이 다짐했지만 이런 규제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 자체에 어리둥절한 국민이 적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불특정 장소에서 음식을 조리해 판매하는 행위를 허용할 수 없다며 맥주 보이의 생맥주 판매를 규제하기로 했고, 국세청도 허가된 장소에서만 주류 판매를 허용하는 것이 주세법에 맞다는 결정을 했다가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은 것이다. 프로야구 역사가 우리보다 앞선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핫도그, 도시락과 함께 생맥주 이동 판매를 허용하고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전형적인 탁상 규제라는 비판이 거셌다. 식약처는 결국 야구장을 술 판매가 허용되는 넓은 의미의 ‘영업장’으로 해석해 맥주 보이를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와인 택배나 치맥 배달 역시 비슷한 사례다. 국세청은 지난해 기획점검을 벌인 끝에 통신판매로 술을 판매한 소매점 업주들에게 과태료 2억 6800만원을 부과했다. 고객이 술을 사려면 직접 매장을 방문해야 하는 현행법 때문이다. 치킨 배달 때 맥주를 주문하거나 짜장면을 배달할 때 고량주를 주문하는 것도 현행법 위반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 때문에 국민이 본의 아니게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세금을 거둬 국가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국세청이나 국민의 위생을 책임지는 식약처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허위 영수증 발급으로 인한 주류 탈세액이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현실을 눈감을 수 없는 노릇이고, 가짜 양주의 유통을 막고 청소년 음주를 방지하려는 취지 역시 올바른 방향이다. 그럼에도 상거래 자체가 온라인으로 바뀌는 현실에서 오프라인 상거래만 고집하는 규정은 누가 봐도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이자 소비자인 국민들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는 처사다. 말로만 규제 완화를 외치기 전에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규정이나 법규는 과감하게 손을 봐서 국민의 불편을 덜어 줘야 한다.

2. 시대착오적인 전경련의 어버이연합 지원 의혹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을 회원사로 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 대한민국어버이연합에 거액을 지원한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파문이 커지고 있다. 어버이연합의 사무총장 차명계좌로 의심되는 계좌에 2014년 세 차례에 걸쳐 전경련 명의로 1억 2000만원이 입금된 사실을 보여 주는 문건이 나왔다. 전경련이 건전한 시민운동을 펴는 단체에 사회공헌 차원에서 기부하는 행위 자체를 따질 수는 없다. 문제는 지원한 어버이연합이 지금까지 보여 준 행태가 상식적인 시민운동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에 기부가 아닌 뒷돈을 대주고, 시민운동이 아닌 집회·시위에 나서도록 부추겼다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다.

어버이연합은 2006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국민들에게 전파한다’는 취지로 출범한 이래 거리집회 위주로 활동했다. 야당 인사나 진보단체 행사를 규탄하거나 아예 맞불 시위를 벌였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조롱하는 ‘반세월호’ 집회를 벌이는가 하면 한·일 양국 간의 위안부 합의를 규탄하는 집회에 맞대응해 지지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시국 현안마다 발 빠르게 나서 정부와 여당 편을 들어 왔다. 집회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불법적인 집회가 아닌 이상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어버이연합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닌 전경련의 자금 지원 아래 또는 권력기관의 요구에 따라 ‘계획된’ 시위나 집회를 가졌다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

전경련은 정관 1조에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라고 밝힌 사단법인이다. 설립 목적에 맞지 않는 일을 집행할 경우 정관 개정 등의 정해진 절차를 밟아야 하는 단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어제 전경련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이유다. 전경련은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어정쩡한 태도를 보일 때가 아니다. 의혹의 실체가 사실일 경우 엄중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 개입이자 인위적인 여론 몰이인 까닭에서다. 검찰은 어버이연합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 전경련이 돈을 주게 된 경위, 전경련의 배후가 있는지, 청와대 행정관이 집회를 지시했는지, 재향경우회가 집회 참가자들의 일당을 댔는지 등을 철저하게 밝혀야 하는 것이다. 검찰과 전경련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3. 신산업 육성하겠다는 '산업 개혁'기대 크다

정부가 ‘산업 개혁’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공공·금융·노동·교육 등 기존의 4대 개혁에 산업 분야를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제 “산업 개혁은 구조조정을 하면서 신(新)산업에 대한 정책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한 구조조정이 과잉 투자가 이루어진 분야의 부실 기업을 정리하는 차원에 머물렀다면 산업 개혁이란 구조조정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산업 분야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8%로 낮춘 것이 엊그제다. 정부 또한 3.1%를 고수하던 성장률 전망치를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총선 이후 입법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정치 구도가 형성된 데 따른 고육지책의 성격이 없지 않다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정책 방향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알파고가 보여 준 인공지능(AI)의 발전 수준에 충격을 느끼며 새로운 산업혁명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20세기적 산업 구조를 21세기적 산업 구조로 바꾸어 가겠다는 정부의 개혁 천명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기존의 제조업 중심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 가야 할 필요성을 지적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유 부총리는 “신산업은 ‘고위험 고수익’인 만큼 세제 지원이나 투자 분담이 필요하며 정책 지원도 백화점식으로 모두 다 할 수 없으니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고 말했다. 지원 대상으로는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바이오신약, 헬스케어 산업 분야가 일단 물망에 올라 있다고 한다. 이번만큼은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구조조정을 머뭇거려서도 안 된다. 총선을 앞두고 대량 실업이 우려되는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총선 이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먼저 구조조정을 언급하고 나선 분위기 변화는 산업 개혁의 호기로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 대표는 “제대로 된 구조조정에는 협조하겠다”면서도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확실한 실업 대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구조조정에 따른 최선의 실업 대책을 세워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것은 야당의 요구와 관계없는 정부의 책무다.

누구보다 정부가 잘 알고 있겠지만, 산업 개혁은 재경부의 일방 독주만으로는 성과를 거둘 수 없는 복잡다단한 과제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신산업 관장 부처는 물론 창의력 있는 인재를 공급할 교육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처가 협력해 정교한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업 개혁은 특성상 기존 4대 개혁과 달리 각 부처의 정책 팀워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헛심만 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유 부총리는 산업 개혁을 제대로 진두지휘해 부총리의 역할을 충실히 해 주기 바란다.

[동아일보]

4. 19대 마지막 국회, 민생법안 처리로 '불명예' 씻으라

19대 국회의 마지막 임시국회가 어제 한 달 일정으로 열렸지만 법안을 심의한 상임위는 한 곳도 없었다. 이달 중 일정이 잡힌 상임위도 법제사법위가 유일하다. 국회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데 대해 여야는 “소속 상임위에 낙선 위원이 많아서” “선거 직후 임시국회가 생소해서” “본회의 일정이 확정되지 않아서”와 같은 군색한 변명만 늘어놓았다. 일하는 국회를 만들라는 총선 민심을 벌써 잊어버렸는지 묻고 싶다.

한국경제는 성장률이 추락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위기를 맞고 있다. 전경련이 30대 그룹을 조사한 결과 신규채용 예정인원은 12만6394명으로 작년보다 4.2% 줄었다. 16개 그룹이 채용을 축소할 계획이다. 경기 악화와 정년 연장으로 기업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 절박한 현실에서 국회에 계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노동개혁 4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재계는 호소한다.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국회가 4월 임시국회에서 민생-경제 법안들을 처리해야만 조금이나마 불명예를 씻을 수 있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의 경제활성화법은 실패로 판명됐고 서비스법도 원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총선 민심은 집권당의 오만에 염증을 느껴 야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줬지만 경제의 발목을 잡는 야당의 막무가내 행태에도 넌더리를 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피치가 총선 직후 “국회에서 구조개혁을 위한 주요 법안 통과가 더 어려워졌다”며 한국의 국가신용등급과 잠재성장률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 의미를 정치권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총선 후 야당 일각에서 친(親)시장-친기업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더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인 최운열 서강대 교수는 20일 당선자 대회에서 “의원 모두가 친기업인이 돼야 경제가 산다” “성장이 최대의 복지요, 최고의 분배다”라고 강조했다. 서비스법에 야당이 한사코 반대한 의료산업을 포함하자는 말도 했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금기시하던 기업 구조조정에 협조의 뜻을 밝힌 것도 바람직하다.

20대 국회의 의회권력을 장악한 거야(巨野)가 경제정책에서 현실노선으로 전환하면 국민과 기업, 국내외 투자자의 불안을 줄이고 경제의 성장엔진을 재가동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한 달여 남은 임시국회에서 서비스법과 노동개혁법, 규제프리존특별법의 통과에 과연 야당이 어느 정도 협조할지 국민이 매서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

[이데일리]

5. 야권의 변신 실제 행동으로 이어져야

요즘 야권의 변신 움직임이 부쩍 두드러진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기업 구조조정’을 들고나온 것부터가 그렇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 대표는 그제 “본질적이고 적극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 상임대표는 “구조조정을 넘어선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며 한술 더 떴다.

구조조정은 그동안 야권이 금기시하던 사안이다. 사회안전망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대량실업과 지역경제 위축이 불가피한 구조조정을 수용하기가 곤란한 탓이다. 그러나 지금은 부실기업을 마냥 끌고가다간 나라 경제가 결딴난다는 지적이 공감대를 넓히는 분위기다. 구조조정과 신산업 육성을 아우르는 ‘산업 개혁’을 추진하는 정부나 구조조정이 절박한 재계로선 그야말로 불감청고원이다.

더민주 당선자대회에서는 ‘기업과 경제를 옥죄는 정당’이란 비판에 대한 반성도 나왔다. 김 대표의 경제 브레인으로 통하는 최운열 비례대표 당선인은 “성장이 최대의 복지요 최고의 분배”라며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 의료 분야도 포함시키자고 말했다. 청년 일자리가 화급한 터에 유독 의료만 산업화를 막아선 안 된다는 논리로, 의료 민영화 우려를 내세워 극력 반대해 온 기존 당론과는 정면 배치되는 주장이다. 

야권은 4·13 총선에서 ‘경제 심판론’을 내걸었으나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세월호 특검, 국정교과서 폐기, 전·현직 대통령 청문회 등의 정치 문제부터 끄집어내 많은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두 야당 내부에서 강력한 제동이 걸리고 김 대표와 안 대표도 ‘경제와 민생 우선’을 재차 확인하면서 논란이 진정되는 모양새다.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야권의 변신 움직임이 과연 행동으로 옮겨지느냐다. 말뿐이어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김 대표가 구조조정의 전제조건으로 지난한 ‘실업대책’을 내세워 실효성을 스스로 떨어뜨린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경제 정당’을 거듭 표방했으나 당내 강경파에 밀려 번번이 흐지부지되곤 했던 전례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권의 책임 있는 행동이야말로 ‘3당 체제’를 만들어 준 민의에 보답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들이 변화의 과정을 주시하고 있다.

[매일경제]

6.  野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전향적 태도에 주목한다

기업 구조조정을 금기로 여겼던 야당이 총선 후 달라진 자세를 보이고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그저께 "본질적이고 적극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실업 문제에 대한 조치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더민주도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도 "미시적 구조조정 정도가 아니라 거시적 관점에서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실제로 이 문제를 다룰 당내 태스크포스를 만들기로 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야당 지도부에 협조를 구하면서 정부와 야당 간 구조조정 협의 채널도 가동될 것이라고 한다.

과거 야당은 전통적 지지 기반인 노동계 눈치를 살피며 기업 구조조정 문제를 아예 외면하거나 무작정 반대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총선 후에는 지도부 공백으로 우왕좌왕하는 여당보다 앞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함으로써 한국 경제의 가장 절박한 이슈를 선점하려 하고 있다. 어차피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다면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잡아 책임 있는 수권정당으로 평가받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동안 야당의 반대가 구조조정의 가장 큰 걸림돌이 돼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태도 변화는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야당 일각에서는 언제든 고용 불안을 빌미로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올 수 있다. 노동계 지원으로 당선되거나 지역경제 타격을 우려하는 의원들의 거센 반발도 예상된다. 김종인 대표가 협조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사회안전망 구축'과 관련해 정부 조치가 미흡하다며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려 할 수도 있다. 여·야·정이 진정한 협치의 정신을 살리지 못하면 사공 많은 배가 산으로 가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구조조정은 속도가 생명이다. 부실 정리는 기업의 썩은 살을 도려내는 외과 수술이라 어느 정도 출혈은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집도를 맡은 채권단과 정부,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여야가 대승적으로 문제를 풀어가지 않으면 필요 이상의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 야당은 고용과 지역경제 충격을 줄이면서 구조조정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입법과 예산 배분 과정에서 책임 있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땜질 처방으로 좀비기업을 연명시키는 게 아니라 부실의 근원을 완전히 없애는 성공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7. 서비스법에 의료 포함해야 한다는 최운열의 苦言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당선자가 20일 열린 당선자대회 강연에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비스법) 적용 대상에 보건의료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한 말은 귀담아들어야 할 주장이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은 서비스법에 의료 분야가 들어가면 의료 민영화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는데 당론을 거스르면서까지 강조한 배경에는 현실적 절박함이 있다. 한국 경제를 지탱했던 수출 제조업이 무너지고 청년실업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현실이 그것이다. 최 당선자는 "이 시대의 최대 화두가 청년 일자리이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최대 복지라면 의료 분야를 산업화해 국가에 기여하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역설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금융통화위원회 위원과 서강대 부총장 등을 역임한 최 당선자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비례대표로 추천한 인사로 4·13 총선에서 선거대책위원회 국민경제상황실장을 맡았고 경제 공약 설계에도 깊이 관여했다. 그런 그가 당론과 배치된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당내에서 논란이 되자 개인 소견이라며 한발 물러섰지만 서비스산업이 일자리 창출의 보고라는 점에서 그냥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서비스산업은 전체 고용의 70%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취업유발계수(산출액 10억원당 직간접 취업자 수)가 전체 산업 평균보다 훨씬 높다. 보건복지만 해도 19명으로 전기전자 등 일반 제조업의 2배가 넘는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서비스법이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훼손하는 의료 민영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반대해왔다. 그러나 서비스법과 의료 민영화의 관련성이 별로 없고 더불어민주당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의료관광객 유치 등 보건의료 분야에서 발생할 이득을 고려하면 반대할 명분이 약해진다. 더불어민주당은 취업에 목말라 있는 청년들을 생각하며 깊은 고심 끝에 내놓은 최 당선자의 고언을 외면하지 말고 19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서비스법을 통과시켜주길 바란다. 이는 제1당을 넘어 수권 정당으로 가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

8. 임금피크제 없는 정년연장 결국 청년고용 축소로

올해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됐지만 기업 10곳 중 6곳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고 이로 인해 기업의 신규 채용도 축소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 300곳을 조사한 결과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은 42.7%에 불과했다. 이들 기업 중 42.3%는 "정년 연장으로 신규 채용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응답했다. 30대 그룹 중 16개 그룹이 올해 신규 채용 규모를 작년보다 줄일 계획이라는 우울한 소식도 들린다. 정년 연장이 신규 채용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는 국회가 2013년 60세 정년을 의무화하는 고령자 고용촉진법 개정안 통과 때 이미 예견됐었다. 정년 연장은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져오는 만큼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도 동시에 진행했어야 했는데 일방적으로 정년 60세 의무화만 처리했기 때문이다. 313개 전체 공공기관은 지난해 말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했지만 민간 기업은 노조가 임금이 삭감된다며 강력 반발하면서 도입이 지연되고 있다. 

정년 연장은 올해 300인 이상 기업에 적용되고, 내년에는 300인 미만 사업장으로 전면 확대될 예정이니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꺼리는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게 뻔하다. 문제는 기업들의 채용 여력이 줄어들면 청년들이 가장 먼저 고용절벽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정년 연장이 청년 채용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면 임금피크제가 정착돼야 한다.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와 노조의 동의가 없더라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양대 지침을 현장에 배포했지만 노동개혁법이 19대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낮아졌으니 이 역시 무력화될 것 같다. '사실상 실업' 상태인 청년이 100만명이 넘는 상황에서 기득권층이 정년 연장만 챙기고 임금피크제는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와 국회, 기업, 노동계는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하는 데 대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중앙일보]

9. 선거 참패하고도 집안싸움만 하는 새누리당

새누리당 원로들이 4·13 총선 이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참패의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새누리당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원유철 당 대표 권한대행이 21일 주최한 상임고문단 오찬 회동에서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막중한 국가위기 앞에서 집권당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모습”이라고 질타했다. 유준상 상임고문도 “선거에 져놓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기는커녕 계파싸움만 해대니 국민의 화가 풀리겠나”고 나무랐다.

원로들의 지적대로 새누리당이 지난 한 주간 보여준 행태는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역대 총선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하고도 그 참패의 핵심 책임자 중 한 명인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세우려던 것부터 민심을 거스르는 행동이었다. 총선 전날까지 “다시 받아줄 일 없다”고 못 박았던 무소속 당선자들의 복당을 슬그머니 추진하면서 “김무성, 죽여버려” 같은 막말을 퍼부은 친박 핵심 윤상현 의원을 끼워넣은 것도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반면 “당의 정체성에 반한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공천에서 배제돼 무소속으로 당선된 유승민 의원의 복당에 대해선 친박과 비박계가 찬반으로 갈려 싸우기 바빴다.

새누리당의 이런 혼란상을 보면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의 뜻은 물론 원내 2당으로 몰락한 신세의 의미조차 깨닫지 못한 듯하다. 벌써 국정 현안을 야당이 주도해 나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앞다퉈 한계기업 구조조정과 경제 전반의 구조개혁을 촉구하며 야당의 금기를 깼다. 경제와 민생을 앞장서 챙겨 수권 정당의 면모를 보이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반면 새누리당이 총선 이후 보여준 모습은 책임의식 상실과 차기 당권을 노린 계파싸움뿐이다. 이런 무책임하고 안이한 자세로는 내년 대선을 비롯해 어떤 선거에서도 무너진 유권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새누리당은 이제라도 집안싸움을 멈추고 중도개혁파를 중심으로 뼈를 깎는 쇄신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다음달 초 선출될 새 원내지도부를 합리·개혁적인 인사들로 구성해 변화 의지를 입증해야 할 것이다.

[부산일보]

10. 지역대학 기부는 지역 인재 양성과 발전의 원동력

요즘 대학의 경영난이 기업 못지않다. 국·공립과 사립 중 사립이 더 그렇다. 재정 보충을 위해 사립대학들은 기부금 모집에 총력을 쏟는다. 하지만 실적이 너무 저조하다. 부산지역 사립대학 전체가 한 해 동안 받은 기부금이 서울 한 사립대학 기부금의 4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기보다 '뒤집어진 운동장'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립대 측은 경영 합리화 조치가 미흡한 데 대한 정부의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기부금 모집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실적은 충격적이다. 2014년 전국 153개 사립대의 재학생 1인당 기부금 수입 규모를 비교했더니 부산은 최하위권이 대부분이었다. 135위인 경성대(4만 3천 원)를 비롯해 대부분이 100위권 밖이었다. 2014년 대학별 전체 기부금 수입 규모도 마찬가지였다. 동명대 103위(5억 3천만 원), 영산대 95위(6억 원), 경성대 93위(6억 3천만 원), 동서대 85위(7억 3천만 원)로 집계됐다. 부산지역 사립대 중 상위 20위권 내에는 한 곳도 없었다. 이에 반해 대구지역은 부산보다 형편이 나았다. 영남대(9위), 대구가톨릭대(11위), 계명대(14위) 순이다.

기부금이 적은 대학은 여러모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립대학들은 한편으로는 자구책 차원에서, 다른 한편으론 교육 당국의 평가에서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기부금 실적 경쟁을 벌인다. 그런데 같은 기간 부산지역 사립대 전체의 기부금 수입(160억 원)은 1위를 차지한 서울 한 사립대(507억 원)의 32%에 불과했다. 이 같은 기부금 격차는 학교간 경쟁에서 뒤처지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의 격차가 사회적 문제로 고착화된다고 진단한다.

대학 간 무한경쟁은 학생수의 격감이 가장 큰 요인이다. 학생수는 갈수록 주는 걸로 예측된다. 지역 사립대 관계자들은 문을 닫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위기감을 느낀다고 한다. 대학의 부실은 학교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재가 없으면 지역사회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학교, 동문, 지역사회가 고민할 문제다.

주요 신문칼럼

1. [머니투데이][광화문]'백투더 퓨처'이코노미

“타이거즈가 거의 꼴찌라구. 바둑 국수 조훈현 9단이 국회의원? 서울 명동에는 중국사람 천지고?” 
1985년 전후로 유행했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백투더퓨처'에는 시간여행 얘기가 나온다. 영화 속 시간배경인 1985년에서 30년 전인 1955년과 30년 뒤인 2015년을 오가는 것이 시리즈의 골격을 이룬다. 

타임머신 기계 오류로 1955년으로 돌아간 주인공이 기계 고장을 바로잡아줄 과학자에게 건넨 1985년 풍경 묘사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1985년에서 왔다면 그때 미국 대통령은 누구지?” 
“로널드 레이건이요.”
“뭐 레이건, 영화배우 레이건? 그 삼류 배우 놈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기도 안 차다는 듯) 그럼 장관은 자니 카슨인가?”(참고: 레이건은 1940~60년대 영화배우로 활동하다 정치인으로 변신해 70년대 주지사를 거쳐 80년대 대통령이 됐다. 자니 카슨은 30년 이상 방영됐던 유명 토크쇼의 진행자로 활동당시 지명도로는 레이건보다 더 알려졌던 인물이다.)

난데없이 시간 여행 얘기를 꺼낸건 무섭도록 변해온 기업환경과 금융사와 기업 등의 변신 때문이다. 말머리의 타이거즈와 ‘뗄래야 뗄 수 없는’ 해태제과는 이달 말 상장을 위한 공모를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21세기에는 타이거즈가 해태가 아니듯 해태제과도 옛 그 회사가 아니다. 해태제과는 1945년 설립된 옛 해태제과의 제과사업 부문을 넘겨받아 2001년 설립한 다른 회사로 2005년에는 경쟁사인 크라운제과가 경영권을 인수하며 주인도 완전히 바뀌었다. 

주력제품도 조금씩 바뀌면서 '부라보콘'과 '맛동산'도 향수를 자아내지만 사람들은 '허니버터칩'의 해태를 더 많이 기억한다. 그런 해태가 ‘부채비율을 낮추고 해외로 더 뻗어나가려고’ 다시 상장을 하는 것이다. 

상전벽해의 사례는 또 있다. 도로명 주소 때문에 기억하기 힘들지만 행정구역상 서울 중구 저동(명동성당으로 올라가는 고갯길쯤이라고 말해야 쉽다)에는 유서깊은 영화관이 있었다. 한때 30대 대기업에 속했던 벽산그룹의 중앙극장이 그 곳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의 영화를 상영하면서 명동의 대표적인 문화 공간이었던 이 곳에는 증권사 건물이 들어선다. 

황소상(상승장을 의미)과 더불어 여의도 증권가의 터줏대감인 대신증권이 30여 년 만에 둥지를 옮기는 것이다. 대신증권에게 명동은 ‘영광의 터전’이었다는게 회사의 설명이다. 회사를 인수한 고(故) 양재봉 대신증권 명예회장의 진두 지휘로 명동 옛 국립극장 사옥을 매수해 사옥을 지었던 1976년 이후로 상당기간 업계 수위권을 달렸다. 

영광의 무대였던 명동에서 대신증권을 비롯해 자산운용·에프앤아이·저축은행 등 전 계열사가 한데 모여 금융 그룹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여의도에서 내실을 다진 만큼 재도약한다는 선언인 셈이다. 

벽산그룹(중앙극장)과 대신증권 모두 둥지를 옮기고 오간 데는 회사의 부침도 함께 한다. 벽산은 IMF 외환위기와 2008~2009년 금융위기 와중에 그룹 위상이 예전같지 않아지면서 모태 같았던 극장부지를 팔 수 밖에 없었다. 대신증권은 1980년 증시침체로 회사가 어려워져 애초의 명동사옥을 팔아야 했고 여의도로 옮기면서는 오랜 기간 신영증권과 한지붕 두가족 생활을 했다. 

회사들이 바뀐것처럼 명동도 바뀌었다. 가장 비싼 땅이라는 곳(명동 8가길)들의 주인은 중국인 관광객(유커)들이 북적거리는 화장품 업체들이 됐고 우리은행은 명칭과 지배구조가 계속 바뀔 여지가 있다. 

'백투더 퓨처'의 드로리안같은 타임머신을 탄다면 색다른 과거와 새로운 미래에 놀랄지 모른다. 걸그룹 소녀시대나 걸스데이의 아이돌들은 트로트가수나 국민이모가 돼 있고 이세돌은 알파고의 스승으로 인공지능의 대부가 됐을 수도 있다. 변화나 변동성은 금융투자회사들에게는 위기이자 기회다. '한국판' 골드만삭스나 JP모간이 아닌 K-뷰티나 한류에 버금가는 스톡 한류나 한국형 IB의 미래가 현재 진행형이다.

2. [이데일리][허영섭 칼럼]송중기한테 배워야지 말입니다

유시진 대위, 아니 송중기의 인기가 꺾일 줄을 모른다. 텔레비전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송혜교와 짝을 이룬 뛰어난 연기력으로 국내외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덕분이다. 드라마가 이미 세계 30개국에 수출된 데다 며칠 전 종영과 함께 열린 팬미팅에 일본인, 중국인을 포함해 4000명도 넘게 몰려들었다니, 인기의 부피를 실감하게 된다.

이런 추세라면 그를 향한 박수갈채가 앞으로도 꽤 상당 기간 이어질 것 같은 분위기다.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전지현이 ‘천송이 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최근 ‘응답하라 1988’에서 이혜리·박보검 등의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 데 이어진 후속타다. 물론 이들에 앞서서도 배용준을 비롯해 이영애·고현정·김수현·장근석·박해진 등이 한류를 이끌어 왔다.

한류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 정치인들도 어떻게 하면 이들 연기자들처럼 국민의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집권 새누리당이 순식간에 몰락한 반면 창당한 지 두어 달밖에 안 된 신당에 정당투표가 쏟아졌다는 점에서 기존 정치인들이 신망을 잃었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다.

그런 점에서, 송중기가 어느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이 눈길을 끈다. 자신이 연기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작가 입장이 되어 ‘이 대사를 왜 썼을까’라며 생각한다”고 밝힌 부분이다. 작가의 의중을 떠올리며 대본에 충실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니, 간질거리는 표현조차 시청자들의 가슴을 사로잡은 비결이다.

물론 그의 인기가 타고난 꽃미남 덕택에 일정 부분 먹고 들어가는 효과가 없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안방 시청자들을 휘어잡기 위해서는 연기로 보여줘야 했다. 그가 작가의 입장에서 대본을 곰곰이 들여다봄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했다는 뜻이다.

정치인들에게도 보수·진보를 떠나 유권자들의 주문이 있기 마련이다. 민의를 대변해 이렇게 처신하고 저렇게 말하라며 각자마다 대본을 부여받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그 대본을 무시하고 자기들 멋대로 무대를 휘젓고 다녔으니 믿음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 입으로는 국민을 떠받든다고 하면서도 밑바닥 민심을 거들떠보지 않은 결과다.

정치인들이 국민으로부터 받은 대본 내용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도 아니다. 내용으로 치자면 지극히 상식적이고 기본적이다. 기본에 충실하기만 해도 됐을 것을 나 몰라라 뿌리친 것이었으니, 유권자들이 가만히 두고 볼 리 만무했다. 아예 대본을 거두고 배우들을 갈아치웠다.

걱정되는 것은 이번에 새로 선출된 당선자들조차 그동안의 그릇된 선례를 따라갈지 모른다는 조짐이다. 국민들은 정치 지형의 획기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나 여야 정당은 주춤거리는 모습이다. 민의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면서도 내부적인 분위기는 여전하다. 공천 갈등으로 내쫓은 사람들의 복당 문제나 서로 네탓으로 돌리며 당내 계파싸움에 몰두하는 모습은 한심하다 못해 처절하다.

그러나 이번에 확인됐듯이 민심은 냉혹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평소에는 모르는 척하면서도 심판을 내릴 때는 여지가 없다. 눈밖에 난다면 이미 늦어버린 시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다수당이 되었고,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고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번 ‘태양의 후예’에서 여주인공 역을 맡았던 송혜교의 언급도 가슴에 담아둘 필요가 있다. “언제나 마지막 작품인 듯이 연기한다”는 마음가짐이 그것이다. 언제라도 마지막인 듯이 소신껏 뜻을 펴라는 권유다. 다음에 또 공천을 받겠다며 어영부영 지도부의 눈치만 살피며 끌려다니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국회의원도 송중기와 송혜교로부터 연기를 배워야만 한다.

3. [서울신문][길섶에서]할머니들의 성금/강동형 논설위원
아름다운 것에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다. 참되고 바르다는 의미를 가진 ‘진정성 있는 말과 행동’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4월 21일자 서울신문 사회면에 작지만 아름다운 기사가 실렸다. 김복동(90)·길원옥(87) 위안부 할머니 두 분이 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규슈 지역 구마모토현 주민들을 위해 써 달라며 130만원을 성금으로 내놨다는 얘기다. 할머니들은 “우리는 일본 사람들과 싸우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 집회’에 참가하는 시민들에게도 성금 모금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고 한다.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간 최대 현안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10억엔을 출연하기로 합의했지만 위안부 관련 단체와 할머니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며 합의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성금 130만원은 보상금 10억엔에 비해 턱없이 적은 액수다. 그러나 할머니들의 성금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건 진정성 있는 말과 행동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들의 고운 마음이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로 이어졌으면 한다.

4. [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금수저 강아지, 흙수저 강아지

일본 구마모토(熊本) 지진으로 피해를 본 것은 사람들만이 아니다. 집과 주인을 잃은 반려동물도 적지 않다. NHK는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선 자원봉사 활동을 소개했다. 지진 피해로 다들 정신없는 와중에도 홀로 남겨진 반려동물을 돌보는 마음 씀씀이에 코끝이 찡해졌다.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격상된 표현을 반영하듯 요즘 반려견을 테마로 한 TV 예능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얼마 전 채널A의 ‘개밥 주는 남자’에서는 방송인 최화정 씨와 반려견 준이의 하루를 소개했다. ‘준이 엄마’ 최 씨는 아침마다 손수 건강식을 준비해 똑같은 음식을 ‘준이 한 입, 자기 한 입’ 나눠 먹었다. 소변을 제대로 못 가리는 준이를 향해 “엄마가 뭐랬어? 아무 데서나 오줌 싸면 안 된다고 했어, 안 했어?”라고 다그치더니 금세 준이 애교에 활짝 웃음 짓는다. 평범한 가족의 일상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반려동물의 세계에도 금수저 흙수저는 분명 존재한다. 강아지를 상품처럼 ‘생산’하는 번식장을 ‘강아지공장’이라고 부른다. 이곳 출신 ‘흙수저 강아지’를 보통 가정에서 나고 자란 강아지인 양 속여 파는 분양 사기가 극성이라고 한다. 반면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샤넬’을 지휘하는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의 샴 고양이인 슈페트 라거펠트는 대표적인 금수저. 자동차와 화장품 광고에 출연해 한 해 수입만 400만 달러에 이른다. 슈페트의 인스타그램에는 5만8000여 팬이 따른다.

▷주인에 따라 반려동물의 일생은 천양지차(天壤之差)다. 2007년 미국 뉴욕의 부동산 여왕 리어나 헴슬리가 타계했을 때 미국 사회가 시끌벅적해졌다. 반려견에게 1200만 달러의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장이 공개된 것이다. 이 정도는 약과다. 반려견 셰퍼드에게 8000만 달러를 상속해 준 독일의 백작부인도 있다. 물론 주인 잘못 만난 탓에 잔혹한 운명을 맞게 된 반려동물이 훨씬 많다. 국내 통계에 따르면 2010∼2014년 버려진 반려동물이 37만 마리, 이 중 25%는 안락사됐다. 반려동물에게도 갈수록 깊어지는 양극화 현상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5. [중앙일보][시선 2035] 기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

열혈팬이 많은 TV 프로그램 중 하나인 MBC ‘무한도전’을 놓고 최근 온라인 여론이 들썩였다. 최고의 인기를 끌다 16년 전 은퇴한 아이돌그룹 ‘젝스키스’가 무한도전과 함께 게릴라콘서트를 열고 재결합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사가 경쟁적으로 이어지며 베일에 가려져야 할 게릴라콘서트의 구체적인 일시·장소가 노출돼 버렸다. 결국 예정된 스케줄은 취소되고 날짜를 다시 잡아야 했다. 그러자 관련 내용을 단독 보도한 기자의 실명이 댓글에 오르내리며 “스포일러가 된 기레기는 반성하라”는 네티즌의 맹비난이 쏟아졌다.

무한도전뿐만이 아니다. 보수나 진보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정치적 기사나 성(性)처럼 민감한 사회 이슈를 다뤘을 때도 ‘기레기’라는 꼬리표가 달리곤 한다. ‘기자+쓰레기’를 뜻하는 기레기는 세월호 사건 이후 보통명사가 됐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기자로서의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흔히 말하는 ‘낚시성’ 기사나 취재가 덜 된 ‘베끼기’ 기사로 보이면 가차 없이 기레기라는 댓글이 쏟아진다. 때로는 자기 생각과 많이 다른 글을 쓴 이에게도 이런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있다.

숨겨진 비리를 파헤치고, 불의에 항거하며, 굳은 신념을 잃지 않고…. 이상적인 기자의 모습은 ‘스포트라이트’(2015),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2009) 같은 영화에서 잘 나온다. 이 땅의 젊은 기자들도 대개 그런 꿈을 꾸며 언론사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동료 기자들 중에는 초심은커녕 일에 치여 하루를 무사히 넘기기에 급급한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도 “취재는 제대로 한 거냐”며 기레기라고 비아냥거리는 인터넷 댓글을 보면 서글퍼진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알파고’의 인공지능(AI) 때문이다. 아무런 감정 없이 ‘객관적으로’ 기사를 양산할 수 있는 로봇 저널리즘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에선 이미 현실이 됐다. 2012년 포브스가 처음 도입했고 AP통신·LA타임스 등도 일부 기사를 AI에 맡기고 있다. ‘워드스미스’라는 AI는 2014년에만 10억 개의 기사를 쏟아냈다. 바둑 9단 이세돌뿐 아니라 ‘기사 9단’ 기자들도 언제든 패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로봇 저널리즘이 판치고 ‘인간성’이 사라지면 기레기란 용어마저 사치가 될지 모른다. 기자들이 설 자리도 좁아지겠지만 독자들도 차가운 로봇에 욕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직 ‘인간적 기사’가 독자의 공감을 얻을 때 한 발이라도 더 뛰고 1분이라도 더 취재해야겠다. 독자와의 피드백이 사라지고 기레기가 ‘멸종’하는 끔찍한 그날이 오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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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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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21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나라 망신 해외 성매매 뿌리 뽑아야

나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외국으로 나가서까지 성매매를 하는 추한 한국인들 얘기다. 한·미 합동단속반은 그제 미국 뉴욕 일대에서 성매매 업소를 운영해 온 한국인 성매매 업주와 여기에 고용된 여성 등 모두 48명을 붙잡았다고 밝혔다. 마사지 업소 등을 차려놓고 시간당 200달러(약 22만원)를 받고 불법 성매매를 해온 혐의다. 국격을 떨어뜨리고 나라 이미지를 해치는 해외원정 성매매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뿌리 뽑아야 한다.

해외 성매매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성매매 수출대국’이라는 오명까지 들을 정도로 심각하다. 지난달에도 일본 도쿄 유흥가 주변에서 성매매를 한 여성들과 알선책, 업주 등 47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지난해 8월에는 마카오의 호텔 투숙객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일당 80명이 검거되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과 미국을 포함해 호주, 대만, 동남아 등 우리 여성들이 성매매를 하러 떠나는 나라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외국에까지 나가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남성들의 낯 뜨거운 행태도 문제다. 해외 관광을 핑계로 성매매를 알선하는 ‘황제 관광’이 암암리에 활개를 친다고 한다. 지난해 8월 한국 남성 207명이 필리핀 원정 성매매에 나섰다가 무더기로 경찰에 꼬리를 붙잡힌 게 그런 경우다. 이들은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해외 성매매 카페에서 이 상품을 접했다고 한다. 미 국무부의 인신매매보고서 등 각종 인권보고서는 한국 남성을 동남아 성매매의 주요 고객으로 분류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해외 성매매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성 상품화에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비뚤어진 인식이 문제다. 국내 풍토부터가 그렇기 때문이다. 가벼운 처벌도 한몫을 하고 있다. 해외 성매매로 적발돼도 현지에서 추방 정도에 그치거나 국내에 들어와서도 대부분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나기 마련이다.

솜방망이 처벌로는 해외 성매매를 근절하기 어렵다. 처벌을 한층 강화해 스스로 모멸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현지 경찰과의 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음성적으로 성매매 관광객을 알선·모집하는 인터넷 카페들의 실태도 철저히 점검할 일이다.

2. 산업구조조정, 더 이상 기회는 없다

정부가 조만간 구조조정 계획을 확정짓고 조선·해운 분야를 중심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취약 업종인 건설·철강·석유화학 분야도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다른 분야도 여건이 다급하지만 한꺼번에 손을 대기보다는 심각한 분야에서부터 메스를 대겠다는 구상이다. 고름을 짜내고 건강 체질을 되살리기 위한 조치다.

문제는 더 이상 구조조정을 미룰 만큼 여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말로는 구조조정을 한다면서도 차일피일 미뤄온 탓이다. 구조조정의 부담을 떠안아야 할 은행들의 여건이 좋지 않은 데다 해당 기업들에 있어서도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기 어려운 때문이었다. 오히려 구조조정을 한다면서도 부실기업에 자금을 퍼붓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깨진 독에 물 붓기로 끝날 수밖에 없었고, 끝내 지금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특히 조선과 해운업은 상황이 심각하다. 대형 조선소가 집중된 울산이나 거제도의 지역 경기가 가라앉아 주민들이 한숨만 내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의 처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세계 시장을 석권하던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등 3사의 경영 여건이 거의 마찬가지다. 한때 우리 경제를 이끌어 온 중심 산업이 어느새 이처럼 벼랑에 처하게 됐는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구조조정을 망설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자금 지원은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치고 군살을 빼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옳다.

늦춰지면 늦춰질수록 폐해만 커지기 마련이다. 2~3년 전에는 호미로도 막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으나 가래로도 어려워진 것이 바로 시기를 놓친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경기 흐름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한 경영진의 책임이 가장 크다. 노조도 일정 부분 책임이 없지 않다. 경기가 어려워지는 국면에서도 임금 인상을 고집하는 등 자기 밥그릇만 앞세움으로써 경영 악화를 부채질했다.

구조조정에 따른 후유증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각 업체마다 대량 해고를 실시하게 됨으로써 실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가뜩이나 청년실업으로 풀이 죽어 있는 사회 분위기가 이중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단기적으로는 지역 경기가 더 악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 과정을 이겨내야만 한다.

[서울신문]

3. 재계 수사 법의 잣대로 환부만 도려내야

검찰이 그제 한진중공업, 현대건설, 두산중공업, KCC건설을 압수수색했다. 해당 업체들은 내년 개통을 목표로 진행된 원주~강릉 도시고속철도 공사의 구간별 사업자들이다. 검찰은 업체들이 4개 공사 구간을 ‘짬짜미’로 수주하려고 입찰가를 사전 합의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주처인 철도시설공단의 신고로 공정거래위원회도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검찰은 통상의 경우처럼 공정위 고발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일각에서 4·13 총선이 끝나자마자 기업 비리에 대한 사정(司正)이 본격적으로 재개됐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공교롭게 그동안 설(說)만 무성했던 부영그룹에 대한 수사 사실도 확인됐다. 국세청이 총자산 20조원 규모로 재계 순위 21위인 부영그룹과 이중근 회장의 조세 포탈 혐의를 포착해 검찰에 고발했고, 서울중앙지검이 곧 고강도 수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임대주택 건설 사업을 통해 급격히 성장한 부영그룹은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 외에는 특별하게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았던 기업이다. 국세청은 이미 지난해부터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국세청 고발 전 이미 수사 착수에 대비해 관련 비리를 검토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4개 건설사와 부영그룹 외에 D사와 L사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임박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그렇잖아도 항간에는 여당의 참패로 끝난 이번 총선 이후 국면 전환을 위해 사정 정국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수의 기업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 착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검찰은 명심하길 바란다. 물론 기업비리든 공직부패든 부정과 불법에 대해서는 법의 잣대에 따라 추상같은 사정의 칼날이 미쳐야 한다. 거기에는 어떠한 성역도 예외도 있을 수 없다. 일체의 ‘정치적 고려’ 또한 배제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과거 검찰은 그렇지 못했다. 멀리까지 돌아볼 필요도 없다. 지난해 특정 정치세력을 표적 삼아 ‘하명’에 따라 시작된 포스코 비리 의혹 수사는 무려 8개월에 걸쳐 말단 하청업체까지 저인망식으로 샅샅이 훑어 표적수사 시비를 자초하지 않았는가. 그렇잖아도 올해 초 엘리트 검사 10여명을 모아 ‘부패범죄수사단’을 발족시킨 검찰에 대해 의혹의 눈초리가 매섭다. 중앙수사부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하명수사 시비에 휘말린다면 검찰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다. 이번 재계 수사는 그 시험대가 될 것이다. 법의 잣대에 따라 환부만 도려내는 수사가 돼야 한다.

4. 청문회 열자는 식 발상으로 민생 못 챙긴다

오늘부터 한 달간 19대 국회에서 마지막으로 4월 임시국회가 열리지만 갈 길이 멀어 보인다. 4·13 총선이 끝나자마자 여야가 ‘낡은 정치’를 답습하면서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총선 참패 책임을 나눠서 져야 할 원유철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 감투를 쓰려다 망신살을 자초했다. 야권도 국민의당 천정배 공동대표가 ‘보수정권 청문회’를 선창하자 더불어민주당이 화답했다가 역풍이 일자 일단 꼬리를 내렸다. 이러다간 선거전에서 이구동성으로 했던 여야의 경제 살리기 약속도 자칫 공수표가 될 판이다. 여든 야든 차기 대선을 겨냥한 때 이른 권력 게임보다 민생을 먼저 챙기라는 총선 민의를 곡해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가뜩이나 우리 경제는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부진으로 위기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예측한 2%대 저성장 국면이 고착되지 않도록 하려면 구조 개혁으로 산업을 재편하고, 서비스시장을 육성해 청년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전자는 국제경쟁력 재확보를 위해, 후자는 내수 진작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런 면에서 더민주 김종인 대표가 본지 회견에서 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노동개혁 등 모든 구조 개혁은 단기적으로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라 인기를 끌기도 어렵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이를 실행할 각론을 합의하기란 매우 지난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 와중에 정쟁 불사를 외친다면 역대 최악이라는 19대 국회의 오명을 씻을 기회는 영영 사라진다고 봐야 할 게다. 천 공동대표가 “청문회, 국정조사 등 모든 의회 권력을 발휘해 구정권 8년 적폐를 단호히 타파하겠다”고 했다니 말이다.

다만 희망적 조짐도 없지 않다. 여당 내 개혁파 의원들이 청와대가 중점 과제로 추진해 온 노동개혁 4법과 관련해 국민의당의 수정안을 일부 수용할 낌새다. 청와대의 뜻을 금과옥조로 여기기보다 유연한 자세를 보인 것은 타협과 절충이 의회정치의 본령이란 차원에서 바람직한 변화일 수 있다. 총선 승리 후 야권 내부에서 불거진 청문회·특검 도입 주장에 대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등 야권 지도부와 중진들이 선을 긋고 나선 것도 긍정적 신호다. 그러나 “정부·여당발(發) 경제활성화법을 모조리 원점 재검토하겠다”(이종걸 원내대표)는 더민주 측의 기세등등한 자세가 걱정스럽다. 서비스산업발전법 등을 19대 국회 4년 내내 반대하다가 이제 여소야대가 됐으니 다수결로 결정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자가당착일 뿐이다.

어차피 의정을 선진화하긴커녕 입법 활동을 마비시켜 온 국회선진화법에 기대는 한 생산적 국회는 언감생심이다. 여야의 의석 역전으로 공수만 바뀌었을 뿐 식물국회는 고사하고 무생물국회라는 꼬리표가 20대 국회에도 붙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지난 총선에서 국민은 어느 당도 자력으로만 입법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다당제 구도를 만들어 줬다. 그렇다면 여야가 국익과 민생을 맨 앞자리에 놓고 협치(協治)하는 일 이외에는 답이 없는 셈이다. 여야는 여소야대인 20대 국회에서 민생을 돌보는 생산적 국회를 다짐하고 있지만, 당장 이번 4월 국회에서 대화와 절충을 통한 협치를 실행하기 바란다.

[동아일보]

5. 주한미군 사령관 지명자가 파악한 한반도의 안보위기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가 19일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의 인준 청문회에서 “만약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자체 핵무장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한 발언이 아니라 핵 확산 방지와 한국의 안보를 위해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 선두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최근 미국이 핵우산을 포기하고 ‘한일 핵무장 용인’을 언급한 데 대한 반박의 의미가 강하다.

브룩스 지명자는 트럼프가 거론했던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에 대해서도 “지난해 한국은 미군 주둔 인적 비용의 50%가량인 8억800만 달러(약 9130억 원)를 부담했고 매년 물가 상승으로 오르게 돼 있다”고 정확한 수치까지 인용해 트럼프의 주장이 잘못됐음을 지적했다. 그는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에 관해 “북의 위협에 대처하는 다층적 미사일방어 체계 구축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분명한 어조로 필요성을 강조했다.

안보와 관련된 만큼 그의 발언은 우리에게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그는 중국의 대북(對北) 억지력에 대해 “중국이 김정은 정권의 존속을 위협할 수준의 압력을 가하지는 않고 있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북한 상황에 대해서는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보다 더 오만하고 충동적이어서 상황을 오판할 위험성이 큰 독재자”라면서도 “김정은이 북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것으로 파악돼 정권 붕괴를 암시할 만한 불안정성은 감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 태평양사령부의 육군사령관으로 민감한 질문에도 단호하게 답변하고, 엄중한 현실에 바탕을 둔 논리로 한미동맹의 가치를 재확인시키는 모습이 신뢰감을 준다. 신상털기식 청문회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업무능력 검증에 집중하는 의원들이나 철저한 업무 파악 역량을 보여준 지명자가 부럽기까지 하다.

새 주한미군사령관이 파악한 한반도의 엄중한 안보 현실에 비춰 정작 핵과 미사일을 이고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 안이하다. 북의 5차 핵실험이 임박한 것으로 관측됨에도 여야 정치인들은 권력 다툼에만 열중하느라 안보 위기에는 관심조차 없다. 브룩스 지명자는 “주한미군은 오늘 밤이라도 당장 싸울 준비태세를 갖춘다는 각오로 한국과 함께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춰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말을 우리 안보 당국자나 정치인들로부터도 듣고 싶다.

6. 김종인 대표 추대? 더민주당이 문재인의 私黨인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석 달 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영입하면서 비례대표 2번 보장과 함께 “대선까지 당을 이끌어 달라”고 말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대표는 어제 한 언론 인터뷰에서 “실제로 나하고 그렇게 얘기했다”고 확인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김 대표의 ‘차기 대표 합의 추대론’이 공연히 터져 나온 게 아닌 것이다. 그러나 더민주당 사람들조차 그런 묵계를 알지 못했다. 문 전 대표가 당권을 줬다면 김 대표는 무엇을 주기로 했는지, 그것이 ‘대선후보’인지 밝혀야 한다.

문 전 대표는 비례대표 공천 파동이 일어난 3월 22일 김 대표의 사퇴를 막기 위해 자택으로 찾아가 “다음 대선까지 역할을 계속해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도 문 전 대표가 김 대표에게 차기 당권을 보장하는 약속임이 명확해졌다. 아무 당직도 없는 전(前) 대표가 무슨 권리로 차기 당권을 약속할 수 있는가. 문 전 대표 스스로 더민주당의 상왕(上王)이거나 더민주당을 사당(私黨)으로 여기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 대표는 4·13총선에서 비례대표에 당선돼 비례대표로만 5선 고지에 올랐다. 1988년 13대 총선 때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했으나 당시 평화민주당 이해찬 후보에게 패했다. 믿기지 않지만 이해찬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김 대표의 ‘정무적 판단’도 그때의 패배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 김 대표가 비례대표로만 정치를 해온 데다 한번 나섰던 선거에서마저 패한 터라 ‘선거 공포증’ 때문에 대표 경선을 기피한다는 추측도 나온다. 그러나 지금은 권력자에 의해 당 대표가 낙점되는 5공(共)시대가 아니다.

김 대표는 어제 당선자대회에서 “만에 하나라도 우리가 종전과 같은 모습을 또 보인다면 유권자들이 굉장히 냉혹하게 돌아설 수 있다”고 말했다. 총선 승리에 대한 자신의 공을 알아달라는 당부이자 내년 대선도 잘 치르고 싶으면 자신을 대표로 추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행여 김 대표가 더민주당의 승리를 이끈 데 대한 보상 심리에서 합의 추대를 바란다면 그 역시 터무니없는 일이다. 더민주당의 승리는 새누리당의 오만을 유권자들이 심판한 데 따른 반사이익이 더 컸다.

친노(친노무현) 일각에서도 김 대표 추대론이 나오지만 공천에서 탈락한 정청래 의원은 “비리 혐의로 돈 먹고 감옥 간 사람은 과거사라도 당 대표 자격에서 원천 배제해야 한다”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김 대표는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돼 대표직에 뜻을 둔 다선 의원들도 합의 추대는 천부당만부당하다고 말한다. 정당법은 정당의 운영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정당의 대표는 경선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선출돼야 한다.

7. 민심 오판한 靑비서관, 문책은커녕 국민銀 감사로 보내나

 정권의 낙하산 회장과 현 정권의 낙하산 은행장 간 갈등으로 촉발된 ‘KB 사태’ 이후 1년 4개월 동안 비어 있던 국민은행 상임감사위원에 신동철 전 대통령정무비서관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그가 그 자리에 앉는다면 총선 후 첫 정피아(정치권+마피아) 낙하산이 된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했지만 내정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전국금융산업노조는 “노동개혁을 외치던 청와대발(發) 낙하산 인사를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신 전 비서관은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선 경선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도운 여론조사 전문가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민심의 변화를 잘못 짚어 여당이 140석 안팎을 확보할 것으로 보고했다고 한다. 총선 전날 그가 사표를 낸 사실이 14일 알려지자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문책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현기환 정무수석은 문책은커녕 그의 새 직장을 물색해주느라 공공기관과 금융회사를 가리지 않고 찔러댔다는 소식이다.

국민은행은 정부 지분이 없는 순수 민간 금융회사지만 지배주주가 없어 지배구조가 여전히 취약하다. 이 때문에 정권의 후광을 업은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이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직원들은 승진에 목을 매며 실세에게 줄을 대는 풍토에 젖어 있다. 그 와중에 청와대 낙하산 인사까지 이뤄진다면 KB 사태 이후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민간회사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현재 316개 공공기관 중 기관장이 공석이거나 6월까지 임기가 만료되는 곳은 26곳에 이른다. 청와대와 정치권 인사들이 이 자리를 메운다면 박 대통령이 18일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고 중단 없는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한 발언이 허언이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중앙일보]

8. 부산시, 부산영화제 운영 민간에 확 맡겨야

부산국제영화제 사태가 갈수록 꼬이고 있다. 영화제 독립성과 자율성을 주장하는 영화계와 행정기관으로서 일정 부분 간여는 불가피하다는 부산시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김규옥 경제부시장 등 영화제 관련 부산시 공무원들이 어제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오는 10월 개막하는 제21회 행사 전면 불참을 선언한 지난 18일 영화계 9개 단체의 움직임에 대한 부산시의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이날 부산시 측은 “저희가 오해를 받고 있다” “갈등이 표면화돼 안타깝다” “예술영역을 침해하지 않겠다” 등 원론만 되풀이했다. 현안을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부산영화제 사태는 2014년 세월호 문제를 다룬 ‘다이빙벨’ 상영을 계기로 불거졌다. 상영 중단을 요구한 부산시의 요청을 영화제가 거부했다. 이후 이용관 전 공동집행위원장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부산시의 영화제 관계자 검찰 고발 등이 잇따르며 갈등이 고조됐다. 정치적 외압 논란이 일었다. 지난 2월 서병수 부산시장이 영화제 전체를 총괄하는 조직위원장을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밝히며 일단 봉합되는 모양새였으나 정관 개정을 둘러싼 부산시와 영화제 측의 이견으로 또다시 미궁으로 빠진 상황이다.

가장 큰 쟁점은 새 조직위원장 선출 방식이다. 부산시는 집행위원회에서 복수의 후보를 추천받아 임명할 방침이지만 영화제 측은 부산시가 통제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고 있다. 그 대신 영화인이 다수 참여하는 총회에서 조직위원장을 뽑아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측의 타협과 양보 없이는 앞으로 6개월도 남지 않은 올 행사에 큰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년간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의 위상이 급락할 게 분명하다. 영화·미술·음악 등 문화행사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영화제 운영을 민간에 확 맡기는 부산시의 대승적 결단이 요청된다. ‘표현의 자유’가 한가하게 들릴 만큼 현재 부산영화제는 중대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매일경제]

9. 교육부 '로스쿨 입시부정'조사 투명하게 공개해야

법조계를 비롯한 사회 고위층 자녀들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시에서 부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법조계가 시끄럽다. 교육부가 지난해 말부터 25개 로스쿨 입학과정을 전수조사했는데 대법관 출신 등 법조인 자녀 40여 명이 불공정 입학으로 적발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자기소개서에 부모 스펙을 기재하거나 면접에서 부모 이름을 거론하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입시를 치렀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로스쿨협의회는 그제 "입학전형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시행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변호사 133명은 의혹이 제기된 대법관과 해당 로스쿨에 대해 밝히라며 교육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나섰다. 

2009년 첫 개원한 로스쿨은 입학과 취업과정에서 불공정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윤후덕 의원(새정치연합) 로스쿨 출신 딸의 대기업 특혜취업 논란에 이어 신기남 의원(새정치연합)이 로스쿨 졸업시험에서 떨어진 아들을 구제하려 한 의혹이 일면서 '현대판 음서제' 논란이 거셌다. 거기에 신평 경북대 교수가 저서를 통해 특혜 입학 의혹을 폭로하면서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대학마다 천차만별인 입시요강이다. 법학적성시험(LEET), 학부 성적, 공인영어성적, 자기소개서 제출과 면접을 거쳐 합격자를 가리는데 자소서에 대한 지침도 따로 없다. 정성평가 비중이 높고 전형요소별 반영비율이나 방법, 합격점수 등이 공개되지 않다보니 깜깜이 선발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만약 의혹처럼 자소서에 부모 스펙을 쓰는 것이 부정행위로 간주되지 않고 용인됐다면 '금수저'들이 권력과 부를 세습하는 통로로 로스쿨을 활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틀리지 않은 것이다. 법조인 선발 과정이 이렇게 불투명하고 허술해서야 어떻게 국민이 법조인을 신뢰하겠는가.

신입생 선발 절차를 대학 자율에 맡겨두고 한 번도 감사를 하지 않은 교육부 책임도 크다. 조사 결과 발표를 늦출수록 의혹이 커지는 만큼 신속하고 투명하게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교육부는 개선 방안도 발표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땜질 처방에 그칠 게 아니라 폐쇄적인 입시제도 전반을 개선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하라.

10. 신임 금통위원들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라

통화정책 수단인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신임 위원 4명이 오늘 취임식을 하고 4년 임기에 들어간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고승범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신인석 자본시장연구원장 등으로 7명의 위원 중 절반 이상이 한꺼번에 바뀌는 것이라 다음달부터 정책 향방에 변화가 얼마나 있을지 이목을 집중시킨다. 면면에서 보듯 관료 출신이거나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 몸담아왔다는 점에서 새 위원들은 물가 안정이나 중앙은행 독립에만 연연하지 않고 경기 부침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통화정책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시장에서는 관측하지만 두고 볼 일이다.

기준금리는 연 1.5%에서 10개월째 동결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수출 부진과 내수 위축으로 우리 경제가 2%대의 저성장을 고착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 속에 일각에서는 경기 부양을 위한 한은의 추가 금리 인하 요구가 거세다.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이나 경기 부양 측면에서 정부 재정정책과의 원활한 보조가 기본이다. 금융시장을 완전 개방한 우리로서는 자본 유출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 EU, 일본 등의 움직임을 감안해야 한다. 최근엔 금리 이외에 비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을 활용하는 나라도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통화정책 결정을 둘러싼 복잡한 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려면 금통위원들과 금융시장 참가자들 간의 원활한 소통이 강화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당장의 즉흥적 판단보다 장기적인 안목에 입각한 접근이 절실하다.

어제 퇴임한 4명의 전임 금통위원들은 재임 중 한번도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 취임 당시 연 3.25%에서 7차례 인하 결정만 내렸다. 내년부터는 기존의 한 해 12차례 금리결정 금통위를 8차례로 줄인다. 명절이나 휴가철 등 월별 경제지표가 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시점의 금리 결정 어려움을 줄이려는 것이다. 제도를 보완해 경제 상황 변화에 가장 효율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금통위의 결정을 이끌려는 노력이다. 4명의 신임 금통위원들이 고액 연봉만 받으며 제 할 일 못하는 꽃보직 이미지를 떨쳐내고 경제 분야 최고의 현인클럽으로 존경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 권위를 쌓아보기 바란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국일보]막스 베버가 정치인들에게 던진 것

독일의 정치ㆍ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이라고 했다. “모든 희망의 좌절조차 견디어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의지를 갖추어야”한다고, “그 어떤 상황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만년의 저작 <직업으로서의 정치>(전성우 옮김, 나남출판)에 그렇게 썼다. 

저 책은 1919년 1월 독일 뮌헨대 진보학생단체 ‘자유학생연합’이 주최한 ‘직업으로서의 정신노동’에서 베버가 한 강연을 엮은, 정치 철학의 고전이다.(1917년 11월의 강연 저작 <직업으로서의 학문>도 있다.) 

그는 국가를 목표나 기능이 아닌 특수한 수단, 즉 ‘물리적 강제력’의 독점 주체로 규정했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자는 그러므로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135쪽) 그 힘을 적절하게 제어하기 위해 정치인이 갖춰야 할 자질로 그는 세 가지를 꼽았다. 열정, 책임의식, 균형감각. 그의 ‘열정’은 비창조적인 흥분 즉 개인적 자기 도취와 구분되는 ‘대의에 대한 뜨거운 확신’이다. ‘책임의식’은 합법적 폭력 행사권이라는 수단을 위험하고 파괴적으로 휘두르지 않게 하는 덕목이다. ‘균형감각’은 일종의 거리감이다.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 즉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107쪽)

더불어 그는 정치인의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 특히 책임 윤리를 강조했다. 신념을 갖되 정치의 결과가 신념(의도)에 어긋난다고 해서 세상의 어리석음을 비난해선 안 되며, 인간이란 어리석고 비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출발해 정치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의 강연은 1차 대전 패전 독일의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이뤄졌다. 직업, 나아가 소명(vocation)으로서의 정치에 대한 저 높다란 기준에 비춰 현실은 그를 불행하게 했을 것이다. 그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택한 학자답게 끝내 냉정과 객관성을 잃지 않았다. 그는 1864년 오늘(4월 21일) 태어나 저 강연 직후인 1920년 6월 14일 별세했다. 향년 56세.

2. [동아일보][횡설수설/고미석]TV사극의 대부 신봉승

1961년 국방부가 300만 환을 내걸고 시나리오 현상공모를 실시했다. 요즘으로 치면 3억 원 넘는 상금을 거머쥔 당선자는 강원 강릉의 한 초등학교 교사. ‘현대문학’ 시 부문으로 등단한 그가 새 장르에 도전한 것은 시만 써서는 먹고살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는 상금을 받고 의기양양해 서울의 유명 양복점에서 친구 20여 명의 옷을 맞춰주며 통 큰 인심을 썼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원고청탁서에 치여서 죽는가 보다’라며 내심 걱정한 것은 그의 착각이었을 뿐. 어디서도 청탁은 오지 않았고 그는 조용히 강릉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때 시나리오를 쓴 경험은 훗날 그가 ‘사모곡’ ‘연화’ ‘별당아씨’ 등 대한민국 TV사극의 1인자가 되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제 83세를 일기로 타계한 원로극작가 신봉승 씨의 얘기다. 

▷그가 등장하면서 야사 중심의 사극은 방대한 독서와 고증을 통한 정통 역사물로 물꼬를 트게 됐다. 만 쉰 살 때부터 8년간 방영된 대표작 ‘조선왕조 500년’의 모태는 조선왕조실록. 국역되기 전이라 혼자서 떠듬떠듬, 때론 한학자의 도움을 빌려 2, 3회 원전을 완독했다 한다. “조선왕조실록 국역본은 모두 413권. 하루 100쪽씩 읽어도 꼬박 4년이 걸린다. 웬만해선 진력이 빠져 그거 다 못 읽는다. 나는 40년 세월을 그걸 붙들고 살았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역사 고증과는 담쌓은 사극이 주목받는 시대다. 역사적 사실과 인문적 상상력의 만남으로 정사(正史)의 대중화에 기여한 그의 상실이 아쉽다. 사팔뜨기 간신으로 폄하된 한명회나 부인에게까지 배신자로 낙인찍혔다고 알려진 신숙주는 신봉승 사극을 통해 재조명될 기회를 얻었다. 무엇보다 그는 식민사학에 짓눌린 조선에 대한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데 기여한 점에 자부심을 표시했다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 그가 남긴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조선에서는 임금이 제 맘대로 한 적이 없다. 선비들은 임금에게 직언하고 배운 대로 행했다. 신하들이 임금을 무턱대고 따라 한 적이 없다.”

3. [동아일보][광화문에서/이광표]수덕여관

예산 수덕사에 종종 간다. 수덕사의 매력은 단연 대웅전(국보 49호, 고려 1308년)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맞배지붕의 간결함과 우직함. 선(禪)의 사찰에 걸맞은 모습이다. 요즘 수덕사에 가면 대웅전 못지않게 일주문 왼편에 있는 수덕여관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수덕여관을 둘러볼 때마다 이런 얘기를 듣는다. “어떻게 절 앞에 여관이 있어요?” “예전엔 출가하려는 사람들이 여기 와서 잠도 자고 그랬단다.” “여기가 바로 고암 이응노 화백이 살았던 곳이야. 저기 저게 문자추상 석각(石刻)이고….”

수덕여관 하면 흔히 고암 이응노를 떠올린다. 이응노가 1945년 이 여관을 매입했고,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이곳에서 요양을 했으며 그때 문자추상 석각을 남겼다는 이야기. 그러나 이응노보다 더 절절한 사연으로 얽혀 있는 사람이 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이다.

나혜석이 수덕여관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37년 말 수덕사로 일엽 스님을 찾아가면서. 당시는 나혜석이 ‘이혼고백서’ 발표 등으로 인해 가부장적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심신이 피폐해질 때였다. 나혜석과 동갑내기 일엽은 신여성의 선두에서 여성해방과 자유연애를 외쳤으나 1933년 출가해 수덕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다.

나혜석은 수덕사에서 출가하고 싶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44년까지 수덕여관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그림도 그렸다. 자식이 보고 싶을 때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도회로 나갔으나 전남편 김우영으로부터 수모를 당하기만 했다. 간혹 서울의 오빠 집에 들렀으나 돌아온 건 오빠의 냉대였다. 나혜석은 비극의 바닥으로 빠져들었다. 동공은 풀어지고, 손은 떨렸다. 뇌졸중이 심해 잘 걷지도 못했다. 수덕여관을 떠나 이곳저곳 전전하다 1948년 서울시립남부병원에서 행려병자로 삶을 마감했다.

최근 나혜석 평전을 읽었다. 선구적이었기에 오히려 비극과 파탄에 이른 나혜석의 삶. 책장을 넘길수록 애처로움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미술평론가 이구열 선생은 이렇게 평했다.

“조선사회의 도덕적 형벌은 이토록 가혹하였다. 이 땅의 근대 문화와 새로운 사상에 그토록 많은 공헌을 남긴 선각의 여성이 단지 한때의 과오로 인해 그처럼 가혹한 비극의 심연에 처넣어져 모진 종말의 길을 가게 될 때, 지난날 그녀가 항시 사랑했던 조국 조선은 일제로부터 해방과 독립이 이루어졌다. 3·1운동에도 가담했고 만주에선 압록강을 넘나들던 항일 독립투사들의 내왕을 도왔던 나혜석이 그 감격을 어디서 혼자라도 외치기나 했을까.”

지난해 말 나혜석의 막내며느리가 나혜석의 ‘자화상’과 ‘김우영 초상’을 고향인 수원시(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 기증했다. 막내아들인 김건 전 한국은행 총재의 유지(遺志)에 따른 것이다. 생전에 나혜석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막내아들이었다. 그 기증은 어쩌면 나혜석과 막내아들, 나혜석과 세상의 화해일지도 모른다. 

몇 년 전부터 나혜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그에게 드리운 편견을 걷어내려는 움직임도 많다. 수원에는 나혜석 거리를 조성했고 집터도 단장해 놓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곳이 수덕여관이다. 이곳은 나혜석의 비극적인 흔적 가운데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수덕여관엔 나혜석에 관한 기록이나 기념물 하나 없다. 28일은 나혜석 탄생 120주년이 되는 날이다. 나혜석의 관점에서 수덕여관에 좀 더 주목해야 할 때다.

4. [동아일보][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우렁각시

퇴근하여 집에 오면 종종 구석구석 말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고 식탁 위에는 몇 가지 반찬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오늘도 다녀갔구나.” 가슴 저 밑바닥에서 형용할 수 없는 고마움이 치솟지만 그렇다고 얼른 전화하여 “고마워요!” “힘든데 뭐 하러 자꾸 그래요”라는 말로 넘기는 것이 싫어서 꿀꺽 말을 삼켜버리고 만다. 벌써 5년째다.

“어머님이 생전에 간곡하게 부탁하셨어요. 나 없으면 상심하여 몸 상할까 걱정이다. 네가 자주 들락거리며 네 시누이 좀 살펴줘라.” 

5년 전 봄날, 엄마 보내드리고 돌아오면서 새언니가 전한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어머님이 그러셨다고 한들 서로 바쁘게 사는 마당에 그 말씀 받들지 않으면 누가 뭐랄까. 그런데 고지식한 새언니는 그 이후 꼬박꼬박 한 주에 한 번꼴로 식구가 모두 외출하여 비어 있기 일쑤인 우리 집에 우렁각시처럼 다녀간다. 

실은 새언니도 처음 결혼했을 때는 나처럼 살림이라곤 전혀 모르는 왕초보여서 우렁각시가 필요했다. 나의 엄마는 그런 며느리를 못마땅해하기는커녕 계속 김치와 밑반찬을 실어 나르며 기꺼이 딸처럼 품어주셨다. 엄마가 연로하여 병석에 눕기 전까지 그렇게 며느리 뒷바라지를 해주신 것이 결국 딸에게 우렁각시를 남겨주는 실마리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귀가하여 아침과 달라진 깔끔한 집을 보면 마치 하늘나라에서 엄마가 살짝 다녀가신 듯해 눈물겹고 시어머니에 대한 새언니의 지극한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해진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소리 없이 나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누군가를 꿈꾼다. 그러나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몸을 태워 재로 남는 뜨거운 헌신이 없이는 결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안도현 시인의 물음은 뜨끔하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우렁각시가 다녀간 날, 시인처럼 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까지 나는 누군가의 가슴을 뜨겁게 해준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면 한 장의 연탄보다 나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엄마는 한 줌의 재가 되어 떠나셨지만 한평생 뜨겁게 정성을 다했으므로 그 온기가 지금까지 남아 나의 가슴을 따듯하게 덥혀 주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다.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 내가 먼저 사랑이 되어야 한다. 

5. [중앙일보][다니엘 린데만의 비정상의 눈] 다이어트 집착하는 나, 정말로 비정상인가요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운동하는 ‘셀카’나 다이어트용 샐러드·닭가슴살·콩 사진을 올리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는 느낌이다. 다이어트는 여성들과 대화할 때 큰 부분을 차지한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답답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학벌·직장 경쟁처럼 이젠 다이어트나 몸으로도 경쟁하게 된 것 같다. 다이어트는 원래 ‘식습관’이란 뜻인데, 요즘엔 살을 빼고 근육질의 멋진 몸매를 가꾸기 위한 극단적인 식생활을 의미하게 된 듯하다.

나도 요즘 몸 관리에 많이 집착하는 것 같다. 과거 스페인에서 잠시 살 때도 더 좋은 몸, 더 운동을 잘하는 몸을 만들겠다며 1년 동안 채식만 하기도 했다. 채식을 하면서도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은 방법, 복근이 더 빨리 생기는 식생활을 하루 종일 연구하고 고민하기도 했다. 결국 다이어트는 생활의 전부가 됐다. 심지어 피자를 주문할 때 치즈를 빼 달라고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살이 찔까 봐 걱정이 돼서다. 주변의 놀림을 당해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결국 친구들을 만날 시간에 차라리 운동을 더 많이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태권도나 합기도를 수련할 때도 어떤 동작을 하면 더 멋진 몸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무도 정신을 잠시 잊은 셈이다.

그러다 어느 날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이 주제를 다룬 글을 읽다 반성하게 됐다.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바람에 친구·가족에 집중할 시간이 줄면서 인간관계가 나빠졌으며, 내 매력만 생각하다 우울해졌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결국 나는 외로웠던 것이다. 머리는 다이어트 관련 고민으로 복잡해졌고 마음은 우울해졌다. 그럼에도 더 멋진 몸매를 만들면 사람들이 나를 다시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그게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숨은 동기였다. 나는 자신감이 떨어졌고, 남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었으며, 늙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에 해당할 것이다.

물론 몸을 관리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며 운동을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다만 자연이 준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각자 좋아하고 열정을 느끼는 운동을 골라서 꾸준히 해야 몸이 좋아지고 마음도 편해질 것이다. 식사 때마다 칼로리를 따지고 몸매 만들기에 집착하는 건 건강한 행동이 아니다. 몸매보다 성격이, 자신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신경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제발 먹는 재미는 잊지 말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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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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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20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끝내 파행에 이른 부산국제영화제

올 해 부산국제영화제의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부산영화제 지키기 비대위를 중심으로 영화인들이 행사에 참가하지 않겠다며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 제작자들과 감독 등 각 단체별 회원들에게 영화제의 보이콧 찬반 여부를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90% 이상이 보이콧에 찬성했다는 게 비대위 측의 발표다. 오는 10월의 행사를 앞두고 부산영화제가 이처럼 파행에 처한 모습이 안타깝다.

사 태가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은 영화인들과 부산시 당국과의 갈등 때문이다. 부산영화제가 자율·독립성을 지키지 못한 채 부산시의 입김에 너무 좌우된다는 게 영화인들의 해묵은 불만이다. 2년 전 행사에 세월호 참사 관련 다큐멘터리인 ‘다이빙벨’이 출품됐고, 부산시가 이 작품의 상영 취소를 요구하면서부터 마찰이 불거졌다. 영화인들로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여길 법도 하다.

결 국 양측의 갈등은 현재 서병수 시장이 맡고 있는 영화제 조직위원장 선출 방안으로까지 확대된 마당이다. 다시 말해서, 서 시장의 위원장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영화인들의 입장이다. 최근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위촉한 68명의 자문위원 신규 위촉을 놓고 가처분신청 사태로 번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제에 소요되는 한 해 120억원 예산의 절반인 60억원을 지원하는 부산시로서는 영화인들의 움직임에 대해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이미 국제적으로 영화인들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고 있다. 베를린영화제나 로테르담 영화제에서도 부산영화제의 자율성을 지지하는 성명이 발표됐다. 더구나 부산영화제가 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아시아 최대 영화제로 발돋움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지난해 행사에 75개국에서 모두 302편의 영화가 출품됐을 만큼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지금에 와서 영화제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영화인 들에게 행사의 자율적인 진행을 보장하고 부산시 당국은 행정적 지원에 따른 최소한의 범위에서 관여하는 것이 옳다. 서 시장의 진정성 있는 해명과 사과로부터 갈등을 풀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위원장 자리를 걸고라도 화해 노력을 보여야 한다. 영화인들이 빠지거나 소외된 영화제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제 19대 국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제 19대 국회는 정말 한심스러웠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19대 국회는 발의된 법안 1만 7752건 가운데 7129건을 처리해 역대 최저인 40.2%의 법안 가결률을 기록했다. 법안 처리기간은 1건당 평균 517일로 역대 최장이다. 법안 가결률은 제일 낮은 반면 처리속도는 제일 더뎠으니, ‘역대 최악’이란 오명을 뒤집어쓸 만도 하다.

그러나 아직 명예회복 방안이 없지는 않다. 임기가 오는 5월 29일까지이므로 40일이나 남았다. 할 일이 버젓이 있는데도 총선 뒤끝이라고 ‘나 몰라라’ 해서야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마침 20대 국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국민의당의 선도로 내일부터 한 달 동안 열리는 임시회기가 19대 국회로서는 ‘식물국회’ 딱지를 떼어낼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무엇보다 법사위에 계류돼 있는 민생·경제관련 법안 93건부터 처리하는 게 급선무다. 무쟁점 법안뿐만 아니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나 노동4법 등의 쟁점 법안도 원만한 여야 합의가 이뤄졌으면 한다. ‘불임 국회’의 주범인 국회선진화법도 마땅히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현역의원의 절반인 144명이 20대에 진출하지 못한 마당에 열정적인 입법활동을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지난 17대 국회도 총선 후 본회의를 5차례나 열어 83개 법안을 처리했고, 18대 국회는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2012년 5월 2일 190개 법안을 무더기로 가결한 전례가 있다.

국회는 우리 처지가 매우 엄혹함을 망각해선 안 된다. 국제통화기금(IMF) 은 지난주 중국의 수요 감퇴로 인해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2.9%에서 2.7%로 낮춘다고 밝혔고, 한국은행도 어제 3%에서 2.8%로 떨어뜨렸다. 무디스를 비롯한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일제히 여당의 총선 패배에 따른 구조개혁 지연으로 잠재성장률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야권은 경제에 주력하겠다던 총선 공약은 벌써 잊어버리고 세월호 특검, 국정교과서 폐기, 전·현직 대통령 청문회 등을 포함한 정치·이념적 공세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19대 국회는 이런 때일수록 최선을 다해 유종의 미를 거둠으로써 20대 국회에 모범을 보여주기 바란다.

[경향신문]

3. 아사히글라스의 하청 노조 파괴로 드러난 원청 횡포

일 본계 기업 아사히글라스가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받고도 다시 사내하청 노조 파괴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아사히글라스 노사협의회 근로자 대표가 지난 7일 하청노조 조합원을 만나 노조 탈퇴와 희망퇴직을 종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녹취록에는 아사히글라스가 하청노조 지회장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조합원들의 노조활동에 대해 일일이 채증작업을 벌여온 사실도 담겨 있다.

아사히글라스 노사협의회 근로자 대표가 사측과 아무런 상관없이 사내하청 노조 조합원을 만나 노조 탈퇴를 권유했을 리는 만무하다. 아사히글라스는 지난해 6월에도 3개의 사내하청기업 중 노조가 결성된 기업과만 계약해지를 통보해 지난달 중앙노동위로부터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이로 미루어 아사히글라스는 중노위 판정 이후 직접 나서는 대신 노사협의회 근로자 대표를 내세워 사내하청노조 파괴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아사히글라스 사례는 원청에 의한 부당노동행위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내하청노조가 결성된 뒤 원청에 의해 도급계약이 해지된 사례는 아사히글라스 외에도 현대중공업, 동양시멘트 등 수도 없이 많다. 한국지엠 군산공장은 지난해 11개 사내하청업체를 통폐합하면서 노조가 없는 2개 업체와만 도급계약을 맺기도 했다. 창조컨설팅에 의한 노조파괴 후유증으로 6년째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는 유성기업의 경우 현대자동차 임직원들이 e메일로 노조파괴에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원청이 하청기업 노조파괴에 별다른 죄의식 없이 개입하는 데는 노동부와 사법당국의 책임이 크다. 지난달 중노위에서 이례적인 판정이 나오긴 했지만 검찰이나 근로감독관, 노동위원회, 법원의 경우 원청은 직접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하청기업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추세다. 이 같은 허점을 이용해 원청기업은 배후에서 온갖 부당노동행위를 지시하고 있다. 4·13 총선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재벌을 위한 노동개혁에 심판이 내려졌다. 무분별한 외주화로 경기변동성 부담을 하청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사용자로서 책임지지 않는 원청의 부당노동행위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총선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라면 말로만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당장 원청의 사용자성을 강화하는 법안부터 만들어야 한다.

[서울신문]

4. 로스쿨 입시 의혹 감사원이 감사 나서야

로 스쿨의 ‘불공정’ 입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최근 교육부의 전수조사에서 전·현직 대법관과 검찰 간부 등 고위 법조인 자녀 40여명이 로스쿨에 ’불공정 입학’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에 변호사 133명과 전국법과대학원 교수회는 교육부에 관련자들의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로스쿨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 문제는 이제 더이상 방치하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담당 부처인 교육부에만 맡겨 놓을 일이 아니다. 감사원이 로스쿨 입시 전반에 대한 감사에 나설 때다.

교 육부의 전국 25개 로스쿨 입시 과정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 수백 건의 입시 비리 의혹이 있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고위 법조인들의 자녀를 포함해 사회지도층의 자녀 수백 명이 자기소개서에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내용을 기재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 전직 대법관 자녀는 아버지의 출신 학교에서부터 사법연수원 기수, 대법관 경력까지 빼곡히 적었다는 웃지 못할 소리도 들린다. 과연 로스쿨 입학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과연 이들이 보기에도 민망한 ‘아버지 소개서’를 썼겠는가.

사실 자기소개서에 부모 스펙을 드러낸 것만으로 부정 입학이라고 몰고 갈 수는 없다. 하지만 한 로스쿨 교수가 “자신도 사회지도층 인사들로부터 자녀의 입학 청탁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다”고 고백했듯이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자녀 로스쿨 입학 청탁 로비가 엄연한 현실에서 부모의 배경이 어떤 식으로든 평가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한 대학의 로스쿨 면접 때 “아버지 뭐하시느냐?”라는 식의 황당한 질문이 괜히 나온 게 아닐 게다.

중·고교 입시에서도 자기소개서든 면접이든 부모의 신분이 드러나면 부정행위로 간주된다. 그런데 로스쿨 입시가 중·고교 입시보다야 허술해서야 말이 되는가. 면접관의 주관이 많이 개입되는 정량평가가 많은 것도 문제다. 최종 합격 점수 등은 아예 ‘깜깜이’이니 입학에서부터 취업까지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지도록 잘 짜인 제도나 다름없다. ‘현대판 음서제’라는 말이 나온 까닭이다.

로스쿨에 대한 불신은 교육부의 책임도 크다. 로스쿨 도입 후 한 차례도 실태 조사를 하지 않다가 뒤늦게 전수조사를 하고도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감사원이 교육부를 비롯해 로스쿨 전반에 대한 감사에 나서야 한다. 이참에 의학전문대학원과 외교아카데미의 입시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 감사도 같이 하라.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부실한 제도라면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5. 구조조정 이번엔 확실하고 신속히 하라

그 동안 선거에 가려 논의조차 실종됐던 기업 구조조정이 4·13 총선 이후 최대 경제 현안으로 떠올랐다. 유일호 경제 부총리가 직접 나서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혔고, 진웅섭 금융감독원장도 채권 은행장들에게 과감한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금융 당국은 늦어도 7월 말까지 대기업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선정하고 10월까지는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를 진행할 정도로 어느 때보다 의지가 강한 것 같다.

지금 우리 경제는 말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에 이어 어제 한국은행도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대에서 2%대로 낮췄다. 조선·해운·철강 등 우리의 주력 산업은 줄줄이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한계 기업, 좀비 기업을 끌고 갈수록 자원은 낭비되고 산업의 효율은 떨어지며 신성장 동력마저 떨어뜨려 경제 전반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제때 정리하지 않으면 대외 신인도가 급락하고 장기 경기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다. 최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도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구조개혁 지연으로 하향 조정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성장 부진이 일시적인 경기 후퇴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구조조정에 대한 당위성과 시급성은 인정하면서도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구조조정 부진의 책임은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지만 대체로 정부·채권단은 물론 정치권의 합작품적 성격이 짙다. 정부 당국은 집권 세력과 야당의 눈치를 보면서 구조조정을 미뤄 왔고 부실 기업주들은 채권은행이 구조조정에 나서면 실업자 양산과 지역표 이탈을 방패로 삼아 정치권에 달려가 읍소했다. 표에 목을 매는 지역 국회의원들이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사회 문제로 접근하면서 구조조정이 번번이 지연되고 무산된 측면이 크다. 이번 총선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구조조정 반대를 외치며 표를 구걸할 정도였다.

기업 구조조정은 지역경제를 침체시키고 대규모 감원을 수반하는 심각한 문제를 동반하는 만큼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한국 경제 전체로 보면 산업 전반의 공급과잉과 과당경쟁에서 생긴 비효율을 걷어내고 새 성장 동력을 찾아내기 위한 최소한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 번 구조조정은 말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산업계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산업 전반의 비효율을 걷어 내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는 정밀한 구조조정 계획을 세워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여소야대 구도에서 힘이 커진 야당에 구조개혁의 절박성을 이해시키고 정책 추진의 추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야당 역시 책임 있는 수권 정당으로서 목전의 표를 의식하지 말고 국가 경제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내년부터 본격적인 대선에 돌입하는 점을 고려할 때 올해 말까지 남은 8개월이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확실하고 신속한 기업 구조조정에 실패하면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도 어두워진다.

[중앙일보]

6. 일본 구마모토 강진의 아픔도 함께 나눠야

지 난 14일 일어난 일본 구마모토 강진과 관련, 일부 네티즌이 악성 댓글을 달고 있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개탄스러운 일이다. 이들은 “5년 전 동일본 대지진 때 성금을 모아줬는데도 일본은 고마워하기는커녕 위안부 등 과거사를 왜곡하려 하니 절대 다시 도와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도우려면 형편이 더 어려운 에콰도르를 지원하자”는 목소리도 적잖고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표현도 없지 않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2011년 이후 한·일 관계가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말 결국 양국 간 합의 형식으로 인정하긴 했지만 그 이전까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의 일본군 개입 사실을 일관되게 부인했었다. 게다가 그는 무라야마 선언의 재검토까지 선언해 한국 측의 공분을 샀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한·일 관계도 없다는 원칙을 고집해 양국 관계를 얼어붙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웃의 불행에 눈감은 채 다시 도와서는 안 된다거나 심지어 고소해하는 건 정당화될 수 없다. 지난 동일본 대지진 때 성금을 모아준 것도 감사 인사를 듣기 위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인 종과 국적을 떠나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건 하늘이 내린 의무다. 비록 전쟁 중의 적군이라도 다치면 치료해주는 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도주의의 정신이다. 적군에게도 그럴진대 이웃 나라 국민의 불행은 보듬고 돕는 게 당연하다.

친 구는 선택할 수 있어도 이웃은 고를 수 없는 법이다. 아무리 우리가 거부하려 해도 일본은 항상 더불어 살아야 할 영원한 이웃이다. 게다가 주변 국가 중 우리와 가장 비슷한 가치와 체제를 공유하고 있다. 그만큼 서로 도울 일이 많다는 뜻이다.

증오는 증오를 부른다. 잘못된 댓글에서 표출되는 혐일(嫌日)은 일본 내 혐한(嫌韓) 감정을 부추길 뿐이다. 비록 정치적으로 섭섭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 가운데 똬리를 틀고 있는 배타적이고 옹졸한 민족주의는 몰아내야 한다.

7. 가습기 살균제 수사는 국민 생존권 문제다

가 습기 살균제의 대표적 제조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 임원이 어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이후 첫 소환자다. 146명의 사망자 가운데 103명이 옥시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는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이를 제조해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이 불거지자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연구 보고서를 조작하고 은폐한 의혹도 사고 있다. 검찰은 100여 명의 관계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벌여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1994년부터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는 8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옥시는 2001년 PHMG라 는 유해물질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었다. 임산부와 영아의 피해 신고가 있었지만 무시했다. 이때를 전후해 다른 업체들도 비슷한 제품을 생산했다. 2011년 4월 임산부와 아이들이 원인 모를 폐질환으로 잇따라 숨지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졌다. 이후 정부가 확인한 피해자는 530명에 이른다. 피해자 단체는 역학조사가 이뤄지기 전의 사례까지 합치면 피해자는 27만 명가량일 것으로 추정했다. “살균 99.9%! 안심하고 쓰세요”라는 광고 문구가 죽음의 유혹이었다는 사실이 섬찟하게 느껴진다.

검찰 은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무겁게 여기고 사실 관계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문제가 불거진 이후 5년 만에 특별수사팀을 꾸린 것을 놓고 ‘늑장 수사’를 지적하는 여론이 많다. 때문에 검찰은 국민들이 더 이상 실망하지 않도록 살균제의 주성분인 PHMG와 피해자 사망 사이의 인과 관계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아야 할 것이다. 수사 대상 업체인 롯데마트와 홈플러스가 뒤늦게 사과를 하고 보상계획을 알린 것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검찰 수사에 대비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청 앞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피해자 가족들의 사연은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위험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검찰은 국민의 불안을 씻어 주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수사에 임해야 한다.

[매일경제]

8. 2%대 저성장 고착화 막을 총력 대응 나서라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3%에서 2.8%로 낮춰 잡았다. 당초 올해 성장률을 3.2%로 전망했다가 지난 1월 3%로 수정한 데 이어 석 달 만에 다시 0.2%포인트 하향 조정한 것이다. 이제 올해 3%대 성장을 기대하는 곳은 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민간 싱크탱크들은 대부분 한국 경제 성장률이 2%대 중후반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대로 가면 우리 경제의 2%대 저성장이 고착화할 수 있다. 한국 경제는 2000년대 첫 10년까지만 해도 연평균 5% 가까이 성장했다. 지금은 3% 성장도 벅차다. 2012년 이후 5년 동안 평균 성장률이 2.7%에 그친다면 단순한 경기순환상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저성장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은은 앞으로 경기가 1분기의 부진에서 벗어나 완만한 개선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어제 기준금리를 1.5%로 동결한 후 이주열 총재가 "금리 인하 카드는 아껴두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1분기가 경기 바닥일 것이라는 기대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1분기 대중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6% 가까이 줄었다. 이처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 때문에 한국 경제가 예상 성장 경로를 벗어날 위험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성장 고착화를 막을 하나의 특효약을 찾기는 어렵다. 단기적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가장 유연한 자세로 재정과 통화정책을 운용하면서 긴 호흡으로 성장잠재력을 높일 구조개혁에 힘을 쏟는 종합처방이 필요하다.

지 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기업과 가계의 부실을 과감히 털어내 반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총선으로 미뤄졌던 조선, 해운, 건설, 철강, 석유화학 업종의 기업 구조조정을 대선철이 돌아오기 전 6개월 남짓한 골든타임에 신속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재정정책은 불요불급한 경비를 최대한 줄여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 꼭 필요한 곳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경기 회복 마중물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경기 회복이 계속 지연될 경우 아껴두었던 통화정책 실탄도 써야 할 것이다. 상황에 따라 금리 인하나 통화량 조절, 한은 대출 중 가장 효과가 큰 정책을 쓸 수 있도록 시나리오별 대응전략을 갖고 있어야 한다.

9.朴대통령 이란 방문 새로운 `중동특수` 모멘텀 되길

박 근혜 대통령이 다음달 1일부터 3일까지 역대 최대 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이란을 국빈 방문한다. 이란은 올해 1월 국제사회 제재 해제 이후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1962년 양국 수교 이후 처음 우리나라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하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도 크고 기대도 크다.

이란은 인구가 8000만명에 이르고 면적은 한반도의 7.5배에 달하며 원유 매장량은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은 세계 1위인 자원부국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올해 1월 경제제재 해제 후 외국 정상으로는 가장 먼저 테헤란을 방문한 것을 비롯해 각국 정상들이 앞다퉈 이란을 방문하려는 것도 그런 잠재력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하반기 방문을 추진 중이라는데 그에 앞서 박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한국과 이란의 2011년 교역 규모는 174억달러로 사상 최대치에 이르렀지만 그 후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강화되면서 지난해에는 61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세계은행은 올해와 내년에 이란 경제가 5.1%와 5.5% 성장하며 빠르게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우리 정부와 기업도 한마음으로 이런 특수를 살려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는 올해 2월 테헤란에서 한·이란 경제협력을 위한 '매경 이란포럼'을 개최했고 이란에서 성장 모멘텀을 찾으려는 우리 기업인들의 뜨거운 열기를 확인했다. 박 대통령의 이번 이란 방문에도 역대 최대 규모인 300여 개 기업·단체가 참여할 것이라고 하는데 건설, 에너지, 금융, 해운, 철강을 망라하는 최강팀을 구성하기 바란다.

이란의 도로, 철도, 항만과 원유시설은 크게 낙후돼 있는데 이란 특수를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속도가 중요하다. 지난해 7월 이란 핵협상이 타결됐을 때부터 박 대통령 방문을 발 빠르게 추진한 것처럼 이란 시장 개척에도 정부와 기업이 한마음으로 박차를 가해야 한다. 병원, 댐·철도, 항만 건설·개발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길 기대한다.

10. 턱없이 부족한 장애인 특수학교 `님비`에 막혀서야

오 늘 제36회 장애인의 날을 맞지만 정작 장애인들이 처한 환경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특수학교가 턱없이 부족해 장애 학생과 부모들이 겪는 불편은 극심하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2002년 이후 특수학교를 한 곳도 짓지 못했다고 하니 안타깝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특수교육 대상 학생은 8만8000명에 달했지만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2만5000여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특수학교에 들어가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 입학하지 못한 상태다.

그나마 사정이 좋다고 하는 서울도 특수학교가 총 29개밖에 안 되고 영등포와 용산 등 8개 구는 특수학교가 한 곳도 없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장애 학생 중 절반가량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30분~2시간 걸려 통학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방은 서울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일부 지역은 학교가 너무 멀어 등·하교에 5시간 가까이 허비해야 한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교육당국도 이런 현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특수학교 건립를 위해 용지를 마련했지만 '님비(지역 이기주의)'에 막혀 완공하지 못하는 곳이 적지 않다. 장애인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지고, 지역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바람에 착공조차 못한 곳도 있다. 장애 학생 학부모와 지역 주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져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일반학교의 특수학급 편성이 특수학교 부족을 보완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사정은 별로 좋지 않다. 장애 유형별 맞춤형 교육은 고사하고 비장애 학생과 학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특수학급 편성 자체가 무산되는 일도 있다.

자신이 비장애인이라고 해서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은 명백한 폭력이다. 그렇지 않아도 장애인은 사회 곳곳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데 교육 기회마저 박탈하면 차별이 차별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장애 학생들도 어려움 없이 교육 받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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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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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8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지구촌 연쇄 지진, 우리는 안전한가

지난해 8000여명의 사망자를 낸 네팔 대지진 1주년을 일주일여 앞두고 지구촌이 지진 공포에 긴장하고 있다. 지난 14일과 16일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리히터 규모 6.5 및 7.3의 강진이 잇따라 발생해 40명 이상이 숨지고 부상자가 1000여명을 넘었다. 어제는 일본과 함께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한 남미 에콰도르에서도 강진이 연쇄적으로 발생해 최소 77명이 사망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주변 해역에 거대 대륙판 등의 경계가 없어 대형지진의 위험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구마모토 지진처럼 가까운 일본의 지진대 활동이 활발하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없다. 구마모토 지진 때 부산과 울산, 대구 일대에서까지 건물이 흔들린다는 신고가 대거 접수됐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재앙이라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실제 국내의 지진발생 건수는 증가 추세다. 1980년대엔 1년에 평균 16회 정도였지만 2000년대엔 44회, 2010~2014년엔 58회에 달하는 등 계속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전북 익산에서 규모 3.9의 지진이, 2014년에는 충남 태안 해역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일어나는 등 규모도 커지는 추세다. 위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럼에도 대비는 허술하다. 정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2011년 전국 건축물과 공공시설에 대한 내진보강에 나섰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10만 5448개소의 내진설계 대상 중 42.4%만 내진 성능을 갖췄을 뿐이다. 송유관은 대상 5개 중 하나의 시설도 내진설비가 돼 있지 않았으며 학교시설(23%), 전기통신설비(36%), 철도(40.1%) 등도 미흡한 실정이다.

정부는 지진 대비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 지진을 미리 막을 수는 없지만 대비를 잘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지진 다발지역의 지각 조사 등을 통해 대형지진 발생 가능성을 면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내진설계 및 보강 계획의 차질없는 진행도 중요하다. 경보·비상체계 구축, 주민 대피계획 등 유사시 효율적인 대비도 소홀히 해선 안 될 것이다.

2. 선거사범 수사 신속·엄정히 이뤄져야

검찰이 제20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선거사범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선거운동원은 물론 당선인들도 수사 대상에 대거 포함됐다고 한다. 1차 수사 대상에 오른 당선인들만 해도 10여명에 이른다니, 당선의 기쁨을 누리기에 아직 이른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당사자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겠으나 어차피 혐의 여부를 가려야 한다면 정공법으로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미 홍일표·김진표·박준영·윤종오·박찬우·이철규 당선인 등 6명에 대해 전격적인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이들은 각각 사전선거운동과 금품살포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혐의가 있는지, 설사 혐의가 있더라도 당선이 무효 처리될 정도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억울하게 혐의를 받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는 만큼 본인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신속하고도 공정한 수사가 필요하다.

이번 총선에서 선거사범으로 입건된 당선자가 무려 104명에 이른다. 지난 19대 때의 79명에서 31.6% 증가한 숫자다. 선거 운동원이 입건된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과거 양당 체제에서 치러진 선거에 비해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등 3당 경쟁 체제로 치러졌기에 선거운동이 훨씬 혼탁해진 결과다. 선거수사 결과에 따라 정국이 요동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검찰로서는 정치적 상황에 좌고우면할 게 아니라 확인된 사실에 따라서만 판단을 내리면 된다. 여당이나 야당의 눈치를 살필 것도 없다. 올바르지 않은 수단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면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 온당하다. 지난 17~19대 총선에서 당선되고도 선거법 위반으로 결국 금배지를 떼야 했던 의원이 모두 36명에 이른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적지 않은 당선무효 사태가 나올 것이라 여겨진다.

여기에는 법원의 역할도 중요하다. 과거처럼 공연히 질질 끄는 듯한 인상을 줘서는 곤란하다. 정치적인 오해를 야기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1심과 2심을 각각 2개월 이내에 선고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하니, 유심히 지켜보고자 한다. 불법 당선자에 대해서는 단호하고도 엄정한 응보가 내려져야 한다. 선거사범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처리는 정치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마지막 수단이다.

[한국일보]

3. 보수층이 정권심판에 가세한 이유 뼈아프게 돌아보길

새누리당 참패와 여소야대로 끝난 4ㆍ13 총선 결과에 보수층도 만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본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5~16일 실시한 유권자인식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9.3%가 선거 결과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진보층(86.5%)과 중도층(72.0%)은 그렇다 치고 보수층이 56.5%나 여소야대 결과에 만족을 표시했다는 것은 의외다. 보수층의 이반이 여당 참패의 주된 요인의 하나였음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기반인 보수층으로부터도 외면 당하고 있는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에 지역주의와 무관한 계층적 텃밭인 서울 강남벨트(서초_ 강남_송파_강동)에서 절반(10석 중 5석)을 야당에 내준 것은 보수층의 이반 실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막장 공천극으로 드러난 오만과 독선은 물론이고 경제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정권의 무능에 상당수 보수층이 분노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보수층 이반은 새누리당만이 아니라 정권 차원의 위기라고 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배신의 정치 응징을 호소했다. 총선 전날까지도 국정 발목을 잡는다며 야당과 국회의 심판을 국민들에게 주문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박 대통령의 야당 탓, 국회 탓에 동의하지 않다는 것을 표로서 분명하게 보여줬다. 이번 유권자인식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새누리당 패배 요인으로 대통령과 정부의 잘못(40.0%)을 새누리당 잘못(38.0%)과 비슷하게 꼽았다. 야당과 국회 이전에 청와대와 새누리당부터 먼저 달라지라는 게 총선 민의인 셈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30.5%로 급락하고, 새누리당의 지지도는 26.2%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소야대 구도 속에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 추락이 겹치면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 1년 10개월 동안 국정동력을 이어가기 어렵다. 이른바 레임덕(권력누수)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이런 상황을 헤쳐나가려면 안으로는 합리적 보수 노선을 재정립하고, 밖으로는 이번에 약진한 야당들과의 협력 정치를 모색해 나가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다. 권력누수를 막겠다며 어설프게 사정 정국을 기도하거나 친박계 중심으로 새누리당의 재편을 꾀하는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이는 총선 결과로 나타난 엄정한 정권 심판 민의를 거스르는 것이기도 하다. 총선 참패 후 첫 조치가 스스로 내친 무소속 당선자들 입당 허용인 것은 새누리당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는 뜻이다. 순리에 따라 발상을 전환하고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서울신문]

4. 여성 공학인재는 국가경쟁력의 바탕이다

정부가 여성 공학 인재양성을 위한 지원 사업에 나선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교육부는 여학생들의 공대 진학과 이들의 취업에 힘쓰는 10개 대학을 선정해 3년 동안 150억원을 지원한다. 정부가 여성 공학도 육성을 위한 별도의 재정 지원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여성 과학기술자의 육성·지원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친 지 오래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방침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잘한 일이다.

지금 청년 실업이 심각하지만 공학계열의 인력은 오히려 부족하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기존의 인문·사회 계열 등의 정원을 줄이고 이공계 정원은 늘리도록 각 대학의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프라임사업’을 추진한 것도 그래서다. 더구나 산업구조는 사물인터넷, 핀테크, 빅테이터 등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지만 인력은 더 부족한 실정이다. 이 분야는 창의성, 세밀함을 요구해 여성친화적 공학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프라임 사업과 별개로 여성 공학도 지원에 나선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현재 여성 기술인력은 산업기술인력의 11.6%, 공학계열 과학기술인력 중 여성은 10.7%에 불과하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늘지만 공학계열의 여학생의 비율은 17%로 여전히 저조하다. 그러니 여학생들도 공학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여성의 공학분야 진출을 유도하기 위해 여성 공대생의 커리어 패스 개발, 여성 공학전문가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등을 지원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공대에 소수의 여학생만 입학하고, 또 이들 중 소수만 취업을 한다. 정부는 단순히 공대 여학생들의 역량 개발뿐만 아니라 이들의 취업 및 창업 등까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허울만 좋은 여성 공학도 육성 사업에 그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구성원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여성 등 소수집단을 일부러 채용한다. 남들과 다른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식과 관점, 통찰력 등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여성 공학인재 육성도 마찬가지이다. 상대적으로 여성이 더 잘할 수 있는 공학 분야에 여성들을 투입한다는 식으로 일차원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남성과 다른 관점의 수용을 통한 국가의 경쟁력 강화라는 차원에서 여성 과학 인력을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5. 총선후 첫 3당 회동, 오직 민생만 생각해야

오늘 여야 3당 원내대표가 4·13 총선 이후 처음으로 회동을 한다. 19대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 처리를 위한 자리다. 19대 국회에서 쟁점으로 남은 법안들은 그동안 여야 간 첨예한 이해관계가 맞섰던 상황인데다 총선 결과로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으로 바뀐 까닭에 협상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양당에서 3당 체제로 바뀐 상황에서 서로 각자의 주장만 하다가 공전과 파행이 거듭하지나 않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이번 총선에서 성난 민심은 정치권의 변화를 요구했다. ‘삼포세대’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의 절망, 돌파구가 보이질 않는 어두운 경제 현실 등을 애써 눈감고 계파 싸움에 매몰된 정치권을 단죄한 것이다. 20대 국회를 구성할 4·13 총선은 막을 내렸지만 19대 국회의 임기는 다음달 29일까지 40여일이나 남았다. 이 기간 동안 국회의원들은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수천만원의 세비를 받는다. 최악의 국회로 평가받는 19대 국회가 국민들에게 사죄하는 심정으로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엄혹하다. 국내외 권위 있는 기관들이 연이어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3년 연속 2% 성장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수출이 매달 두 자릿수로 격감하는데다 최악에 직면한 청년실업률은 2월에 이어 3월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전·월세난에 직면한 취약계층의 생활고는 갈수록 악화되는 것은 우리의 현주소다.

19대 국회에는 여전히 민생·경제 관련 법안들이 처리되지 못한 채 수북이 쌓여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과 4대 노동개혁법안이다. 노동개혁 법안을 놓고 여야가 벌써 옥신각신 입씨름을 벌이고 있어 통과 자체가 불투명하다. 서비스법 역시 의료 영리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쟁점법안 모두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자는 법안인 만큼 이견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 서로 주장만 고집하지 말고 타협의 정신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 우리에게 시급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이념이 아니라 실사구시가 돼야 한다.

19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않으면 자동 폐기돼 20대 국회에서 또다시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여야 모두 생산적 국회를 약속한 만큼 시간 낭비를 줄인다는 의미에서 그동안의 논의를 토대로 반드시 접점을 찾아야 한다. 야당을 설득하는 대신 힘으로 밀어붙였던 여당은 국회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하며 여소야대를 만든 야당 역시 19대 국회처럼 반대만이 능사가 아니라 수권정당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길 당부한다. 민생 문제에 당리당략을 앞세우면 야당도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여야 3당의 당면한 과제는 총선 민의를 수용해 생기를 잃어 가는 민생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무너지는 중산층과 서민경제를 회복하는 일이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야당은 과거 강경노선을 그대로 유지해 여권과 무한 대치 정국을 형성할 경우 국민의 불신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권력에 도취해 국민을 무시하다가 총선에서 참패한 새누리당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6. 북, 핵 도발 중단하고 생존의 길로 나오라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감행할 조짐이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 실험장에서 최근 차량과 인력·장비의 활동이 급증하고 있는 게 그런 징후라고 어제 정부가 확인했다. 북측은 지난 15일 실패했다고는 하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했었다. 국제사회의 제재에 맞서 ‘핵 도박’을 계속하려는 일련의 동향이다. 우리는 이런 무력시위가 김정은 체제를 지키려는 목적이라면 긴 눈으로 볼 때 과녁을 잘못 겨눈 자해 행위임을 지적해 둔다.

김정은 정권은 요즘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에 굴복하지 않고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기세다. 어떻게든 장거리미사일 발사 및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확보해 이를 토대로 미국과의 핵 군축 협상을 하려는 낌새다. 북한이 김일성 생일인 지난 15일 그간 한 번도 시험하지 않은 무수단 미사일을 쏘아 올린 게 그 일환이다. 사거리가 3000∼4000㎞에 이르는 이 중거리탄도미사일은 태평양의 괌 미군기지까지 도달할 수 있다. 특히 북측은 5차 핵실험 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될 소형화된 핵탄두 폭발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북한 정권의 이런 계산이 실제로 통할 리는 만무하다. 북측으로선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전제로 미국과의 핵 군축 및 평화협상을 벌일 지렛대로 삼겠다는 배짱일 게다. 리수용 북 외무상은 오는 22일 파리 기후변화 협약 서명식 참석차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한다. 이에 앞서 북한이 괌 미군기지를 사정권에 둔 IRBM을 쏘아 올린 것도 미국과의 거래를 염두에 둔 포석일 게다. 하지만 이는 ‘오발탄’일 뿐이다. 이번 무수단 미사일 시험이 실패해서가 아니다. 미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핵 포기 의사가 확인돼야 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입장을 누차 밝혔지 않는가.

결국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더욱 가혹한 국제 제재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북한 정권의 통치 금고가 마르고 북한 주민들의 민생고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북측이 다음달 7일 열릴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차원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려 한다면 이 또한 오산이다. 최근 탈북한 중국의 북한식당 종업원들도 “대북 제재로 북한 체제에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탈북 동기를 토로하지 않았나. 안으론 탈북자가 늘고 밖으로는 전례 없이 촘촘한 대오를 갖춘 국제 제재에 직면하고 있는 지금 북한 정권은 발상의 전환이 긴요하다. 핵 보유에 대한 미련을 접어야 외려 김정은 정권의 활로가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매일경제]

7. 일본 구마모토 지진 재앙, 남의 일이 아니다

지난 주말 일본 구마모토(熊本)현과 남미 에콰도르에 강진이 잇따라 발생해 ‘지진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14, 16일 규모 6.5와 7.3의 강진이 덮친 구마모토현에선 1000여 명의 사상자와 2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번 지진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 발생한 것 중 가장 강력하다. 더욱이 같은 환태평양 조산대 국가인 에콰도르에서도 16일 1979년 이후 최고로 센 규모 7.8의 강진으로 국가 비상사태를 맞았다.

전문가들은 ‘초대형 지진 도미노’의 전조가 아닌지 경계하고 있다. 일본과 동남아, 태평양 군도, 알래스카, 북·남미 해안으로 이어지는 ‘불의 고리’인 환태평양 조산대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강진이 극성을 부리고 있어서다. 14일 밤 구마모토 지진을 전후로 필리핀과 바누아투공화국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연쇄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다행히 한반도는 불의 고리에서 벗어나 있고, 그간의 피해도 경미하다. 하지만 지진 빈도는 잦아지고 있다. 80년대 16건에서 2000년대 44건으로 늘었고, 2013년 한 해에만 91건이 발생했다. 올해도 17건이 감지돼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경고등이 켜졌다.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한반도 주변 지각구조 분석, 내진설계와 시공, 경보체계와 비상시스템 구축 등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지진을 남의 나라 일로 여기는 탓에 정부 대책은 겉돌고 있다. 16일의 경우 남부 지방은 물론 충청·수도권까지 흔들림이 감지됐다는 신고가 4000건이나 접수됐는데도 ‘알림 시스템’이 없어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불안에 떨었다. 호우·대설 때처럼 전국적인 알림망을 구축해야 한다. 건축물 내진 성능도 촘촘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 88년에 6층 이상, 2005년에 3층 이상으로 내진설계 의무 대상을 확대했지만 기존 민간 건물은 대부분 무방비 상태다. 전국 건축물 10곳 중 7곳이 그렇다니 대형 지진을 맞을 경우 아찔하기만 하다. 1, 2층으로 한정한 민간 건축물의 내진 보강 지방세 감면 혜택을 전층으로 확대하는 등 국민안전처를 중심으로 실효성 있는 종합대책을 서둘러야 할 때다.

8. 기업 구조조정 고삐 죄겠다는 유부총리 제대로 챙겨라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기업 구조조정을 더 미룰 수 없다며 직접 챙기겠다고 공언했다. G20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머문 미국 워싱턴DC에서의 기자간담회에서 꺼낸 얘기인데 부실기업 정리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니 반갑다. 유 부총리는 해운회사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예정대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정부가 행동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까지 말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한국 경제에서 어느 일보다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현안임에도 4·13 총선과 맞물리며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해운업의 경우 현대상선은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법정관리로 가야 하고, 한진해운은 채권단과의 경영개선협약을 통해 회생 방안을 찾아야 한다. 호황을 누렸을 때 외국 선사들과 맺은 선박 임대료를 깎아 받는 협상을 벌여 성과를 거두면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포함한 지원안을 확정하겠다는 입장이니 절박하다. 

조선업도 빅3 업체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인 수조 원씩의 적자를 보는 등 나락으로 떨어져 공급과잉 해소를 위한 과감한 수술을 해야 하는 판이다. 하지만 조선소가 있는 지역경제에 직격탄을 날리는 것이라 정부와 채권단, 기업 모두 눈치만 보고 있었고 선거를 겨냥한 정치권은 표심에 올라타려 오히려 구조조정을 막겠다는 사탕발림식 언사를 남발해 훼방을 놓았다.

4·13 총선을 마쳐 국회의원 후보들의 표심 구애가 사라졌지만 내년 말 치를 대통령선거를 감안하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감원 회오리를 부를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계속 꺼릴 게 뻔하다. 각당이 내년부터 대선 캠페인에 본격 돌입할 일정을 고려할 때 올해 말까지 남은 8개월여의 시간을 한국 경제를 수렁에서 건질 골든타임으로 삼아야 한다. 

여소야대로 변한 20대 국회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야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 한층 더 적극적인 설득과 타협에 나서야 한다는 점도 새로운 변수다. 우리에게 경제성장률 2%대의 저성장은 일시적인 경기 후퇴가 아닌 중장기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기업 구조조정은 산업 전반의 공급과잉과 과당경쟁에서 생긴 비효율을 걷어내고 새 성장동력을 찾아내는 환골탈태를 위한 수술이어야 한다. 유 부총리는 올해를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제대로 챙기기 바란다.

9. 남은 한달 임시국회 열어 경제관련법 꼭 처리해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성과 내는 국회를 만들겠다"며 17일 국회 운영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다졌다. 국민의당은 다음달 29일 19대 국회 임기가 만료하기 전에 세월호특별법 개정안과 민생 경제 법안을 처리하자며 임시국회 개최도 제안했는데 바람직한 태도다. 향후 국회 운영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여야 3당 원내대표가 20대 총선 이후 처음으로 18일 마주 앉을 예정이라고 한다. 4·13 총선에서 표출된 민심이 준엄했던 만큼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도 지금부터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끝없이 대치할 게 아니라 이제는 협력의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 국회에는 법안 1만74개가 계류돼 있는데 이들 법안은 다음달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 자동 폐기된다. 정부가 69만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며 국회에 제출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18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된 데 이어 19대 국회에서 또다시 그런 운명에 직면해 있다. 국회 상황도 여의치 않다. 새누리당은 지도부가 와해된 가운데 불출마 또는 낙선한 의원들도 뿔뿔이 흩어져 있다. 그동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개혁법 등을 반대해온 더민주는 이들 쟁점 법안에 관한 태도를 바꿀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치권이 이렇게 대치하며 시간을 허비해도 좋을 만큼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2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2%에서 2.7%로 낮췄고 금융연구원·현대경제연구원 등도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청년실업률은 지난달 11.8%로 3월 기준 역대 최고다. 총선에서 무서운 민심을 확인했다면 정치권은 20대 국회 개원까지 기다려서는 안된다. 당장 임시국회를 열어 달라진 국회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양당 구도 개혁을 주장해온 국민의당은 이 과정에서 역할도 중요하고 책임도 크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개혁법 등 민생 법안을 놓고 국민의당이 기존 야당과 똑같은 태도로 여당과 대치하기만 한다면 3당 체제를 만들어준 국민은 실망을 넘어 분노할 것이다. 국민의당은 타협·조정의 정치력을 발휘해 새누리당과 더민주 대치 속에서도 민생 법률안 통과라는 성과를 반드시 이끌어내야 한다.

[매일신문]

10.대구·경북 국회의원 당선자, 신공항 유치에 함께 힘 모아야

4`13 총선 이후 대구지역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잇따라 영남권 신공항 밀양 유치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지금까지 대구`경북 정치권은 부산 정치권과는 달리, 신공항 유치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왔다. 정부의 조치만 바라보고 있거나,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에게 맡겨놓고 나 몰라라 한 것이 사실이다. 뒤늦게나마 지역 정치권이 신공항 유치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김부겸 대구 수성갑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는 14일 “신공항을 놓치면 대구의 운명이 어두워지는데도 절박감이 없다”라고 새누리당 의원들의 게으른 자세를 꼬집었다. 이어 김 당선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신공항을 무산시켰을 때 부산 의원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알고 있지 않으냐. 대구에서는 삭발로 항의한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안일하게 대응했다”라며 이런 풍토를 바꿔놓겠다고도 했다.

정종섭 새누리당 대구 동갑 당선자는 15일 “영남권 신공항은 반드시 밀양에 유치해야 한다”며 “대구 국회의원이라면 여야 구분없이 모두 신공항 유치에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다. 두 당선자가 치열한 선거 과정을 통해 지역 민심을 제대로 알게 됐기에 이런 발언을 한 것임이 분명하다.

총선 기간에 대구`경북 정치권은 신공항과 관련해 별다른 공약이나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부산은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공약, 유세, 서약서 작성 등의 과도한 유치운동을 벌이는 추태를 보였다. 이는 지난해 5개 시`도지사 간에 합의한 ‘유치운동 자제’ 약속을 위반한 것이어서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우리는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부산 정치권처럼 약속을 어기는 비신사적 행위를 주문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오는 6월 영남권 신공항 예정지 발표를 기다리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부산 정치권보다 열정과 노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어서야 하겠는가. 경북지역 국회의원도 예전처럼 뒷전에 물러앉아 ‘대구에서 알아서 할 것’이라는 방관적인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된다. 지역 정치권 모두가 힘을 모으고 노력해야만, 모두 만족할 결과가 나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백작부인을 사랑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

미국 다큐 채널의 한 프로그램에서 여성의 ‘성적 판타지’를 조사했다. 과연 미국 여성에게 가장 매혹적인 성적 판타지 대상은 누구였을까? 한편으로 당혹스럽고, 한편으로 솔직하고, 한편으로 그럴듯했다. 

3등은 UPS 맨(페덱스와 유사한 우편택배회사로, 직원이 갈색 제복을 입은 젊고 근육질의 남자들이 대부분)이다. 2등은 소방대원, 그리고 1등은? 여자다. 성적 판타지를 느끼는 대상이 동성이었던 것이다. 물론 성적 판타지의 대상과 사랑의 대상이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랑의 완성이 영과 육의 결합이라면…. 무언가 심상치 않게 느껴지는 조사 결과다. 

남자들은 여자끼리의 연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끼리의 우정과 사랑, 거기에는 남자에게는 없는 그 무엇이 있다. 남자들이여! 긴장하시길….

마리 앙투아네트는 한 여인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혹 자기로 인해 사랑하는 이가 처형될까봐 크게 두려움에 떨며 몹시 슬퍼했다. ‘페어웰, 마이 퀸(2012년)’이라는 최근 영화에서 앙투아네트는 책을 읽어주는 시종에게 말한다.

“혹시 한 여성에게 매료돼본 적이 없느냐? 그녀가 없으면 끔찍하게 괴로워서 눈을 감고, 그녀의 갸름한 얼굴과 보드라운 살결, 빛나는 눈을 상상하곤 하지.”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으로 풍전등화의 운명에 놓인 상황 속에서도 그녀만을 생각하는 자기가 한심스럽다는 듯 푸념 어린 고백을 한다. 앙투아네트가 그토록 사랑한 여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가브리엘 폴리냑(1749~1793년) 백작부인이다. 폴리냑 백작부인의 어떤 점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매료시켰던 것일까? 

앙투아네트는 폴리냑 부인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가 자길 흥분시켰다고 고백한다. 6살 연상의 백작부인은 쉽게 다룰 수 있는 여자가 아니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데다 무례하기조차 한 그녀의 행동이 앙투아네트는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궁전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고, 누구나 다 마음에 들고 싶어 하는 앙투아네트의 마음에 들려 애쓰지 않는다는 점 또한 높이 샀다. 

“난 그녀의 자유분방함이 너무 좋았어. 그렇지만 그녀는 지금 내 곁에 없어. 난 그녀의 포로가 됐어. 인정할 수밖에 없어.” 

그녀 때문에 상심한 적이 많았던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의 살생부 명단에서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그녀에게 빨리 베르사유를 떠나라고 말한다. 그렇게 앙투아네트는 자신보다, 사랑하는 이의 안위를 먼저 걱정했다. 

폴리냑 부인은 후작 가문에서 태어나 1767년에 폴리냑 백작(후에 공작)과 결혼했다. 폴리냑 가문은 대대로 부르봉 왕가를 섬겼고, 루이 14세와 루이 15세 시대의 대표적인 외교관 집안이었다. 한때 추기경을 배출하는 등 위세를 떨쳤지만 쿠데타 등 여러 사건에 연루돼 당시엔 가운이 쇠퇴하고 있었다. 폴리냑 백작 부부는 궁정에서 영향력이 미미했던 왕세손빈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접근해 가깝게 지내면서 신뢰를 쌓았다. 루이 15세가 죽고 앙투아네트의 남편인 루이 16세가 즉위하면서 폴리냑 부부는 일약 궁정의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그렇게 권세를 휘두르던 폴리냑 백작부인은,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가장 먼저 국왕 부부를 버리고 오스트리아로 망명했다. 비록 앙투아네트가 폴리냑 백작부인의 아첨과 유혹에 놀아났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남녀 간 사랑 이상의 아름답고 기묘한 시절을 보냈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앙투아네트는 그녀의 궁정화가인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룅(1755~1842년)과도 우정을 나눴다. (물론 우정이라기보다는 총애에 가까운 것이지만) 둘 사이가 그저 왕비와 신하 정도의 수준에서 머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쨌거나 현존하는 앙투아네트의 주요 초상화는 거의 엘리자베스 비제의 작품이다. 엘리자베스에게는 자신의 가치를 최고로 인정해준 조력자가 바로 앙투아네트였던 셈이다. 

명성이 자자한 남성 화가들이 판을 치는 궁정에서 앙투아네트가 여성이면서 나이도 젊은 엘리자베스 비제를 선택한 것은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과 내면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탁월한 감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그런 앙투아네트가 동성애를 했다 한들 무슨 대수랴. 게다가 엘리자베스의 미모와 패션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아마도 그녀는 왕비가 홀딱 반할 만한 패션으로 왕비를 매혹시켰던 것은 아니었을지. 

엘리자베스 비제 역시 자신을 최고로 우대해주는 왕비를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그린 왕비 그림은 좀 남다른 데가 있다. 그림에는 여왕의 우아한 기품뿐 아니라 인간적인 내면까지 드러나 있다. 사실 왕실화가의 사명은 세상에서 가장 존엄한 인물이자 무한한 권력과 부의 소유자인 왕과 왕족을 그림을 통해 만천하에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그린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녀의 아이들’은 기존 왕실 초상화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왕비의 가정적이고 인간적인 면모가 펼쳐진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왕비는 요람을 곁에 둔 채 아기를 보살피고 있다. 왕비는 아기를 무릎에 안고 있고, 그 옆에는 딸아이가 평범한 엄마에게 그렇게 하듯 살포시 기대어 있다. 엘리자베스는 왕비의 이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녀가 ‘세 아이의 자상한 어머니’였음을 백성들에게 알렸다. 

두 사람이 서로 깊이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들이 동갑내기이기도 했거니와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어린 자식을 잃은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 그리는 일이 그렇듯, 오랜 대화 속에서 서로를 깊이 알아나갔던 그들은 틀림없이 어머니로서의 걱정과 기쁨도 함께 나눴을 것이다. 이 작품은 한때는 여왕의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른 궁정화가들은 그릴 수 없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인간적인 매력을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으로 손꼽힌다. 

엘리자베스 비제가 그린 그림에는 앙투아네트의 동성 연인인 폴리냑 부인 초상화도 몇 점 있다. 아마 연인의 모습을 담고 싶어 특별히 엘리자베스에게 요청했으리라. 왕실화가의 손에 의해 그려진 여왕의 동성 연인 초상화라니! 그림은 백작부인에 대한 앙투아네트의 마음이 얼마나 절절한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폴리냑 부인의 매력이 무엇인지 또한 얼마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명민하고 아름다운 모습 뒤에 감춰진 암고양이 같은 무심함과 태연함이 얼마나 연인의 애를 태웠을까….

앙투아네트의 동성애는 어떤 것이었을까? 이는 모든 여자들의 첫사랑 상대가 엄마, 즉 여자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 프로이트식으로 말하자면 ‘여자가 훨씬 더 양성적인 존재’라고나 할까. 

프리다 칼로도 여성이든 남성이든 일단 사랑을 하게 되면, 육체적인 결합을 통해서 더욱 완벽해진다고 믿었고 그것을 실천했다. 그녀 역시도 말년에 병든 자신을 극진히 간호해주던 여자와 다시 한 번 깊은 사랑에 빠졌다.

2. [동아일보][표정훈의 호모부커스]사라져가는 독서세대

잡지 하나가 세대를 대표하는 드문 경우로 ‘학원’(1952∼1979년)이 있다. 진덕규 이화여대 명예교수(1938년생)는 “많은 청소년들이 지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학원’에서 얻었다”고 회고한다. 시인 정호승(1950년생)은 중학생 때 학원문학상 우수상을 받았고 고교 1학년과 3학년 때도 우수상과 최우수상을 탔다.

‘학원’에 글을 발표하거나 학원문학상을 수상했거나 ‘학원’을 읽으며 문학적 감수성과 교양을 키운 작가들은 이루 다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1954년 제1회 학원문학상 수상자 이제하, 황동규, 마종기를 필두로 이청준, 조세희, 황석영, 최인호, 김원일, 문정희, 김병익, 김주영, 전상국, 김승옥, 황지우 등등. 1954년 8월호는 8만 부를 발행했는데, 당시 대표적 일간지의 발행부수를 상회하는 정도였다.

자유교양추진회와 동아일보사 공동 주최로 1968년 11월 23일 제1회 전국자유교양대회가 열렸다. 대회 목적은 ‘고전을 통한 교양의 함양’이었다. 고등부 지정도서는 ‘삼국유사’ 일부와 ‘택리지’, 대학부 지정도서는 ‘논어’, ‘맹자’, ‘소크라테스의 변명’ 등이었다. 저술가 황광우(1958년생)는 “자유교양대회를 위하여 ‘삼국유사’, ‘신곡’,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등을 읽었는데 그렇게 어설프게나마 고전을 읽은 기억이 참 좋았다”고 말한다.

작가 장정일(1962년생)의 중학생 때 독학 문학수업은 삼중당문고 200여 권 독파였다. 문화평론가 정윤수(1966년생)는 고교 시절 “헌책방에 일동 기립하고 있는 삼중당문고 한 권을 왕복 버스비로 살 수 있었기에 버스를 타지 않고 걷고 또 걸었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잡지 ‘학원’(1952년)과 자유교양대회(1968년), 삼중당문고(1975년)는 독서 세대론을 가능케 하는 계기들이다.

그 이후로는 어떤 독서 세대론이 가능할까? 공통의 독서 경험으로 한 세대가 누릴 수 있었던 교양의 폭과 깊이를 감안하면 ‘인간시장 세대’나 ‘해리 포터 세대’를 거론하긴 힘들다. 독서 세대론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책과 지식교양의 다변화 때문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변화라는 것이 파편화와 같은 뜻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유통 수단이나 지불 수단이 되는 화폐를 통화(通貨)라 한다. 독서세대가 끊어진 시대와 사회는 공론 형성의 수단이 되는 지식통화가 증발한 시대다. 사람들이 공유하는 최소한의 지식 기반이 허약해진 사회라는 말이다. 지식정보사회는 초고속 정보통신망과 같은 뜻이 결코 아니다.

3. [중앙일보][서소문 포럼] 영혼 없는 대학은 망하게 놔둬라

빌 게이츠에게 응용수학을 가르쳤던 미국 하버드대 해리 루이스 컴퓨터공학과 교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하버드가 잃어버린 교육, 대학 교육의 미래는』의 저자인 그는 “대학은 학생의 장래성을 키워주는 곳이다. 학교와 교수가 그걸 못해 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게이츠는 왜 하버드대를 중퇴했을까. 루이스 교수에게 물었더니 “명석하고 독창적인 학생이었는데 (우리가) 잠재력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떠났다”며 자성했다. 그리고 하버드가 잃어버린 것은 영혼, 바로 학생 교육에 대한 고민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세계 최고의 하버드대도 고민을 안고 산다. 특히 공학 분야에서 스탠퍼드대에 밀리자 교육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등 비상이다. 하버드대뿐만이 아니다. 세계 고등교육계에 ‘파괴적 혁신’ 바람이 거세다. 아이비리그 수준의 강의를 반값에 공부할 수 있는 미국 온라인 대학 미네르바 스쿨이 하버드대보다 더 입학하기 어렵고, 세계 명문대 강좌를 무료로 수강하는 무크(MOOC)의 확산으로 강의실 국경도 무너지고 있다. 21세기 문명사적 대전환을 맞아 고등교육의 패러다임이 요동치는 것이다.

세계의 대학들은 천리마처럼 달리는데 우리는 어떨까. 한마디로 우보(牛步)다. 저출산에 따른 ‘학생 절벽’ 앞에서도 셀프 혁신에 굼뜨다. 올해 59만 명인 고교 입학생이 내년엔 52만 명, 내후년엔 46만 명으로 줄어든다. 이건 뭘 의미하는가. 현재 대입 정원이 53만 명인데 5년 뒤 46만 명 중 80%(37만 명)가 대학에 가더라도 80곳(정원 2000명 기준)은 문을 닫아야 할 판 아닌가.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린다. 교육부가 재정을 미끼로 구조조정을 압박하니까 억지로 시늉만 낸다. 이달 말 지원 대상 19곳을 뽑는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프라임) 사업’이 그 하이라이트다. 대학 한 곳에 연간 최대 300억원 등 3년간 6000억원을 대주는 초대형 사업이다. 대학들은 자존심도 팽개치고 군침을 흘린다. 신청 대학 70곳 중엔 교명까지 바꾼 곳도 있고, 공대를 강화한다며 정체불명의 전공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곤 점수를 잘 받으려 줄 대기에 혈안이다. 교육부의 위세가 어떻겠는가.

사실 경마 레이스 같은 재정사업은 교육부엔 꽃놀이패, 대학엔 연명 수단도 된다. 구조개혁평가에서 D등급을 받은 부실 대학 53곳 중 19곳이 특성화 사업 등에 뽑힌 게 그렇다. 숨통을 끊어야 할 곳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준 꼴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연명 수단이 안 되도록 하라”고 지시했는데 교육부의 배짱이 놀라울 뿐이다.

대학은 집단 지성의 집합소다. 자율성과 다양성, 자존감이 작동돼야 인위적 간섭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런데 ‘샤워실의 바보’가 돼 버렸다. 교육부가 ‘차가운 물(대학 설립 준칙주의)’을 틀자 우후죽순 설립하더니, ‘뜨거운 물(정원 감축)’로 급변침해도 말을 못한다. 학생 추계를 엉터리로 한 교육부에 근본 책임이 있지만, 대학의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결국 교육부와 대학이 공진화(coevolution)하지 않으면 절대 고등교육 생태계는 바뀌지 않는다.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대학이 망하든 말든 그대로 놔두자. 스스로 학생 절벽을 넘으면 살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죽을 것이다. 교육부가 수도꼭지를 갖고 장난치지 말라는 얘기다. 다만 국립대에 한해 원 포인트 개입을 허(許)하자. 전국 41개 대학을 단계적으로 통합해 ‘1도(道) 1국립대’로 만드는 일이다. 교육대를 거점대에 통합하고, 캠퍼스별로 전공을 특화하면 가능한 일 아닌가. 둘째, 대학별 정원·전공 자율조정 시스템을 가동하자. 기준은 인문사회 25명, 공학 20명 등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다. 학생 확보를 못하면 지체 없이 폐과·폐교하라. 학생이 없는데 무슨 수로 교수 월급을 주려는가. 셋째, 선택과 집중이다. 정부의 고등교육 투자는 국내총생산(GDP)의 0.7%에 불과하다. 언제까지 수도권·비수도권·권역별로 나눠줄 작정인가. 세금만 축낼 뿐 결코 글로벌 대학을 키울 수 없다.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다. 교육부와 대학이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이다. 누구 때문에, 왜 존재하는가.

4. [서울신문][씨줄날줄] 일본 대지진/강동형 논설위원

환태평양 지진대를 형성하고 있는 ‘불의 고리’가 요동치고 있다. 일본 규슈지방의 구마모토 인근에서 연이어 발생한 지진은 불의 고리대에 있는 타이완과 남미 에콰도르에서도 발생했다. 17일 에콰도르에서는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 현재 4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전인 16일에는 대만에서 규모 4.4의 지진이 발생했고, 이웃 나라 일본은 연이은 지진에다 아소산이 화산 활동을 재개해 공황상태에 빠졌다.

일본은 2000여개의 단층대가 있는데다 환태평양 불의 고리에 있어 크고 작은 지진이 끊일 날이 없다. 2011년 3월 11일 오후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 몰고 온 쓰나미 영상은 아직도 선명하다. 리히터 규모 9.0으로 일본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지진을 기록했다. 이는 1960년 발생했던 규모 9.5의 칠레 대지진, 1964년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규모 9.2 지진,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발생한 규모 9.1에 이어 지진 규모를 측정한 이후 네 번째로 강력한 지진이다. 사망자 1만 5200여명, 실종자 8400여명이라는 인명피해를 냈다. 이에 앞서 1995년 1월17일에는 고베에서 규모 7.2의 지진이 나 6300여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인명 피해가 가장 많이 발생한 일본 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대지진일 것이다. 우리나라와도 사연이 깊다. 도쿄와 요코하마 일대를 강타한 규모 7.9~8.5의 간토대지진은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다. 실종자를 포함한 사망자 수가 약 16만여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 자경단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불령선인(不逞鮮人·불온한 조선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여 6000여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일본인 교수는 2500여명, 일본 정부는 233명이라고 발표하는 등 숫자는 크게 다르지만 있을 수 없는 만행이 발생했다. 간토대지진은 일본이 우경화와 군국주의의 길을 걷는 전환점이 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일본 도쿄는 에도 시대인 1855년 10월 2일에도 대지진이 발생해 도시가 파괴되는 등 재난을 당했다.

지난 14일 규모 6.5, 16일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한 규슈지방의 구마모토 대지진은 사망자 수만 40여명에 이르고 24만여명이 피난했다고 한다. 아소산이 화산 활동을 시작해 공포감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재난 속에서 보여주는 일본인들의 질서 의식은 이번에도 돋보이는 풍경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지진은 예측하기 어렵고, 천재(天災) 앞에서 인간은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한밤의 지진으로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남의 나랏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재난을 예측할 수 없다면 이를 잘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 일본은 물론 에콰도르에서도 지진 피해자들이 힘든 과정을 잘 이겨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5. [매경이코노미][신동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 벚꽃 필 때 가장 맛있는 ‘섬진강 벚굴’…벚굴에 장아찌·신 김치 올려 ‘벚굴 삼합’

봄바람에 벚꽃 잎이 아름답게 흩날리는 계절, 이맘때쯤 가장 맛있는 것 중에 섬진강 벚굴을 빼놓을 수 없다. 

강굴이라고도 불리는 벚굴은 말 그대로 강에서 나는 굴이다. 강 속의 바위 위에 붙어 있는 수많은 벚굴이 먹이를 먹기 위해 입을 벌리면 속살이 하얗게 보이는데, 그 모양새가 벚꽃처럼 하얗고 아름답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가 하면 벚꽃 필 무렵이 가장 맛있다고 해서 벚굴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말도 있다. 벚굴은 매년 2월이 되면 알이 차기 시작해 3~4월에 맛의 절정을 이룬다. 하지만 지난해에 가뭄이 심해 요즘 캔 굴은 속이 꽉 차 있지 않다. 그래서 올해는 5월까지 섬진강 벚굴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크고 거친 껍데기 속에 뽀얗고 부드러운 속살이 들어차 있는 벚굴은 오로지 섬진강에서만 서식한다. 그중에서도 1급 수질을 자랑하는 하구의 망덕포구에서 주로 잡힌다. 망덕포구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으로 조수 간만의 차이가 심한 곳이다. 때문에 벚굴은 바닷물의 짠맛과 민물의 단맛이 조화를 이룬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지점은 플랑크톤이 풍부해 물고기 크기가 큰 것이 특징이다. 이 지역 굴도 일반 바다 굴보다 3~10배가량 크다. 작은 것은 20~30㎝, 큰 것은 어른 손바닥보다 훨씬 큰 40㎝에 이른다. 수심 3~4m 깊이의 바위에 붙어서 서식하는 벚굴은 머구리라는 잠수부가 강 속에 들어가 직접 채취한다. 양식은 하지 않는다. 

카사노바가 날마다 굴을 즐겨 먹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만큼 굴은 남자에게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여성의 피부에도 매우 좋은 식품이다. 굴 중에서도 벚굴은 크기가 큰 만큼 영양가가 훨씬 많다. 벚굴에는 단백질과 무기질, 비타민, 아미노산 같은 영양분이 풍부해 성인병 예방 효과가 탁월하다. 마을 주민들이 ‘강 속에 있는, 살아 있는 보약’이라 부른 게 다 이유가 있다.

섬진강 굴은 벚꽃에만 비유되고 있지만 매화꽃과도 연관이 깊다. 매년 광양에서 매화꽃 축제가 시작되면 그때부터 관광객이 본격적으로 찾아오는데 덩달아 벚굴도 이때 많은 사랑을 받는다. 광양 매화꽃 축제는 얼마나 사람이 많던지 매화꽃 반, 사람 반인 광경이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복잡하기도 하지만 매년 짧은 한철이라, 때맞춰 그곳에 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도 섬진강 벚굴까지 맛볼 수 있으니 일부러 찾아가볼 만하다. 

섬진강 벚굴은 다른 바다 굴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기가 굉장히 크다. 어떻게 한입에 넣을까 고민될 정도의 풍성함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곤 한다. 

몇 년 전, 손님들께 양질의 벚굴을 대접하기 위해 구입처를 알아볼 겸 섬진강을 찾았다. 좋은 벚굴을 직접 구하기 위해 섬진강으로 내려가던 길에 활짝 피어 살랑거리던 벚꽃 터널이 얼마나 예뻤던지. 인터넷으로 찾아보긴 했지만 직접 현장에서 맛집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녔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사람들이 모여 무엇인가를 구경하고 있길래 바로 차를 세우고 지켜봤다. 한 작은 차량에서 벚굴을 내려놓는데 굴이 얼마나 크고 좋던지. 그곳까지 내려가면서 고생스러웠던 생각이 확~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섬진강 유역 중에서도 하동군 고전면 신방촌과 재첩특화마을 일대에서는 벚굴을 직접 구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벚굴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식당이 꽤 있다. 그곳에서 생굴은 물론 구이, 전, 튀김, 죽 등 다양한 벚굴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벚굴은 보통 개수가 아니라 ㎏ 단위로 판매하기 때문에 몇 ㎏씩 주문해 먹는다. ㎏이라고 하면 아주 많은 양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섬진강 벚굴은 워낙 커서 양이 아주 많지는 않고 그냥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정도다. 가격은 채취량과 요리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2~3명이 먹을 수 있는 5㎏ 기준으로 4만~5만원 선이다.

굴 사이즈가 엄청 커서 한입으로 먹기 힘들 때는 반을 잘라서 먹기도 한다. 한입 베어 물면 굴 즙이 입안에 가득 차오르는데 그 맛이 매우 신선하면서 특유의 풍미가 아주 일품이다. 벚굴은 바다 굴처럼 짠맛이 없고 달착지근하면서 담백한 맛이 특히 좋다. 무엇보다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다. 일반 바다 굴과 비교한다면 굴 향이 조금 덜 나고 비린 맛이 살짝 더 난다. 비린 맛에 예민하다면 굴 구이나 전 등으로 익혀 먹는 것이 낫다. 

굴 구이는 푹 익히는 것이 아니라 굴 뚜껑이 살짝 벌어질 정도로만 익혀야 굴 특유의 맛과 풍미를 한껏 즐길 수 있다. 달걀 반숙처럼 살짝만 익히면 뭉글뭉글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 뿐더러 향도 좋다. 많이 익히면 촉촉함이 사라지고 쪼그라들어 질겨지며 벚굴 본연의 맛이 사라진다. 구이를 먹을 때는 껍질에 살짝 고이는 국물이랑 같이 먹으면 아주 맛있다. 강에서 갓 건져 올린 싱싱한 벚굴을 구워 먹으면 맛이 더 담백하고 상큼해서 봄철 입맛을 돋우는 데 그만이다. 

캠핑 갈 때 벚굴을 사다가 구워 먹으면 정말 맛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구이를 덜 익혀 먹어야 맛있는 것처럼, 굴전도 살짝 덜 익혀야 맛있다. 벚굴을 살짝 쪄낸 것 역시 촉촉하면서도 탱탱한 살이 아주 부드럽다. 재첩특화마을 일대 식당에서는 굴 구이가 가장 많이 나간다고 한다. 

오로지 섬진강에서만 서식, 올해는 5월까지 맛볼 수 있어

한 식당 주인장이 굴을 맛있게 먹는 법이라며 ‘벚굴에 매실 장아찌와 신 김치를 얹은 벚굴삼합’을 알려줬다. 매실 장아찌의 짠맛과 매실 향, 그리고 김치의 신맛이 더해져 굴을 그냥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보다 훨씬 별미였다. 그런데 신 김치 대신 매실 장아찌에 레몬만 살짝 뿌려 벚굴에 곁들여 먹으면 더 깔끔하고 굴 맛도 잘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레스토랑에서는 섬진강 벚굴이 들어오면 껍질의 이물질을 세척한 후 굴 전용 칼로 입을 벌리고 속살을 먼저 뺀다. 그리고 80도 정도 되는 소금물에서 약 10초가량 데치고 얼음물에 식힌 후 물기를 제거한다. 꽤 크기 때문에 반으로 자르고 굴 속에 있던 굴 즙과 데친 굴을 굴 껍질에 함께 담은 다음 폰즈소스나 새콤한 유자셔벗을 올려서 손님에게 제공한다. 굴을 살짝 데치면 굴의 헐렁한 살에 탄력이 생겨 식감이 더욱 좋아지고 굴 특유의 비린내를 깔끔하게 잡아주는 효과가 있다. 벚굴을 주문해 집에서 요리할 때도 이렇게 살짝 데쳐주면 간편하게 맛있는 굴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매년 섬진강에서 잘 자란 벚굴이 올라오면 고생해서 따온 벚굴을 보여주며 주름진 미소로 반겨주시던 그곳의 여러 분들이 생각난다. 굴을 따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는지 알기 때문에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굴을 요리하게 된다. 

또 하나. 봄에 섬진강에 간다면 벚굴과 함께 꼭 챙겨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재첩국이다. 재첩은 4월부터 5월이 가장 맛이 좋을 때다. 제철의 재첩으로 끓인 국은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정말 기가 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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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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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5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경제 현안에서부터 실마리 풀자

총선이 끝났다고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다. 당면 문제가 선거로써 일거에 해결될 수 없다는 뜻이다. 가장 큰 현안은 역시 침체에 빠진 경제를 어떻게 살리느냐 하는 것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추경예산 편성의 필요성을 언급한 데서도 지금의 경제 상황을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대외 여건이 더 악화한다면”이라는 전제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대외 여건이 나아질 기미가 희박하다는 게 정책 당국의 고민일 것이다. 결국 확장정책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대외 여건만이 아니다. 내부적인 여건은 더욱 심각하다. 수출이 연속 15개월 감소세를 나타내는 가운데 소비도 좀처럼 기지개를 펴지 못하고 있다. 길거리 진열대마다 ‘바겐세일’ 쪽지를 붙여놓고 있어도 고객들의 지갑은 열리지 않는 분위기다. 창고에 재고품만 쌓여가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고용이 늘어날 리 없고 청년 실업자들은 한숨을 삼키고 있다. 이처럼 소득 감소로 인해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의 올해 경제 성장률을 2.9%에서 2.7%로 하향 조정한 배경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함으로써 정부 의지대로 확장정책을 이끌어갈 형편이 못 된다는 사실부터가 심각하다. 정책 운용이 한층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얘기다. 선거 참패가 정부·여당의 정책 실정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측면도 결코 작지 않다. 확장정책을 쓴다고 해서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기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전임 현오석·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도 추경예산을 편성했으나 결국은 깨진 독에 물붓기로 끝나고 말았다. 건설 경기를 부추긴다며 주택대출 요건을 완화함으로써 오히려 가계부채만 1200조원 규모로 늘어났다. 그렇다고 일관성 없는 좌충우돌식 정책에 대해 책임질 사람도 없다.

지금 우리 경제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수렁에 빠져 있다. 단기 실적을 올리겠다고 함부로 나섰다간 자꾸 깊이 빠져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확장정책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현재 추진 중인 정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부터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

2. '국민이 걱정하는 정치'에서 벗어나야

4·13 총선 성적표를 받아든 정치권의 분위기는 엇갈린다. 과반 의석에 크게 모자란 122석으로 쪼그라든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의 사퇴와 함께 지도부 해체 수순에 들어간 반면 당초 목표를 훨씬 초과한 123석으로 원내1당에 오른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교체까지 가자”며 벌써부터 기염을 토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38석의 캐스팅보트를 쥔 명실상부한 ‘제3당’의 입지를 굳혔다.

이번 총선은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새누리당은 편가르기 식의 공천 분탕질에 분노한 지지층의 이탈로 ‘1여다야’ 구도에서도 참패를 자초했다. 연이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외면하던 끝에 분당 사태까지 빚은데다 절대적 지지기반인 호남을 잃었으며 정당투표에서 국민의당에 뒤진 더민주도 마냥 희희낙락할 계제는 아니다.

정치권은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벌써부터 20대 국회가 ‘사상 최악의 국회’로 낙인찍힌 19대보다도 못할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다. 16년 만의 여소야대로 박근혜정부의 국정동력 추락이 불가피한 가운데 내년 대선을 겨냥한 정국 주도권 쟁탈전이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오를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젠 ‘국민이 걱정하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걱정하는 정치’가 돼야 한다. 그러자면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좋아서라기보다 문재인 후보가 마음에 안 들어 박 후보를 찍은 유권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번에 교차투표가 위력을 떨치고 새누리당이 서울 강남, 대구, 부산 등 텃밭에서조차 많은 의석을 내준 것이 그런 사실을 간과한 오만에서 비롯됐다. 야권 역시 총선 승리에 도취해 국정 발목잡기로 일관하다간 금세 민심을 잃고 내년 대선도 기약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여야는 사안에 따라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경쟁할 것은 경쟁하며 국정 운영의 묘를 살리라는 게 국민의 명령이다. 박 대통령이 확 달라져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독선과 불통을 떨치고 여야와 적극 소통하며 대선 공약인 ‘대통합’에 매진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그것이 남은 임기를 잘 마무리하고 ‘성공한 대통령’으로 청와대를 떠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서울신문]

3. 살인 가습기 살균제 업체의 반도덕적 '만행'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문제의 업체 옥시레킷벤키저가 법적 책임을 피하려 온갖 계략을 동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 간 제품을 팔았으면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는 것이 순리다. 각성과 사태 수습은커녕 시종일관 ‘면피’할 속셈뿐이었다니 공분의 철퇴를 맞는 것은 당연하다.

한창 막바지 수사 중인 검찰에 따르면 옥시는 2011년 12월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조직 형태를 바꿨다. 임신부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폐 손상으로 사망하면서 진상 규명 여론이 뜨겁던 시점이었다. 누가 봐도 옥시 측이 형사 처벌을 피하려고 부린 빤한 꼼수로 읽힌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인 법인이 존속하지 않으면 공소 기각을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처벌을 피하겠다고 느닷없이 신분 세탁을 했던 셈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아도 할 말이 없을 옥시의 겁없는 ‘만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월 검찰이 압수수색에 들어가기 직전에는 부작용을 호소하는 고객들의 상품 후기 수백 건을 홈페이지에서 무더기로 삭제했다. 의도적으로 삭제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뒤늦게나마 시작된 검찰 수사조차 무력화하려 한 심각한 범죄 행위다.

100명이 넘는 인명 피해가 업체의 의도된 결과였을 리는 없다. 예기치 못한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렸더라도 최선을 다해 수습하려는 것이 책임 있는 기업의 자세다. 그렇건만 실험 결과를 짜맞추기한 정황까지 들통났으니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다. 제품과 폐 손상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정부 자료에 반박하려고 대학 연구소에 의뢰한 실험 보고서마저 유리하게 조작한 의혹이 짙다.

이쯤 되면 더이상 나쁠 수가 없는 악덕 기업의 전범이다. 소비자 무서운 줄 모르는 악질 기업으로 손가락질을 당해도 억울할 게 없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영국의 다국적 기업인 레킷벤키저가 옥시를 인수·합병한 회사다. 전체 사망자 146명 중 103명이 이 회사의 제품을 사용한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의문의 사망자가 숱하게 나왔는데도 4년 넘게 방치하다 우여곡절 끝에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관련 업체의 은폐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반도덕적 의도를 묵인하거나 동조한 관계자도 먼지 한 톨의 의혹이 남지 않게 수사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4. 국민의당, 민생국회 선도하는 큰 역할 기대한다

총선 민심이 만들어 낸 새로운 정치 구도의 중심에 국민의당이 있다. 38석을 차지해 단숨에 원내교섭단체를 이룬 ‘녹색 바람’의 발원지가 호남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국민의당 지지율 26.74%는 제1당으로 도약한 더민주 지지율 25.54%를 훌쩍 뛰어넘는다. 지역구에서 25석에 그친 정당이 비례대표에서 13석을 차지한 것도 우리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다. ‘건강한 제3당’의 출현을 바라는 유권자의 기대가 특정 지역의 지지에 머물지 않는 전국적인 교차투표로 이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국민의당이 ‘호남당’에 그치지 않고 ‘전국정당’으로 도약할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도 의미는 작지 않다.

유권자들이 국민의당에 굳건한 제3당의 지위를 부여한 이유는 자명하다. 국민의당이 그렇게 외쳤던 글자 그대로의 ‘새 정치’를 해 달라는 것이다. 뒤바뀐 제1당과 제2당이 모두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제3당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무엇보다 민생은 안중에 없고 정쟁에만 매몰된 국회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주문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그동안 새 정치를 말하면서도 그 실체가 무엇인지 보여 주지는 못했다. 그런데 오히려 유권자들에 의해 국민의당이 앞으로 국회에서 감당해야 할 새 정치의 실체가 제시된 꼴이다.

국민의당은 20년 만에 등장한 제3 원내교섭단체다. 1996년 총선 당시 자유민주연합은 충청권을 중심으로 52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의 주역을 자임하는 대신 권력을 추구하는 데 급급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이른바 DJP 연합의 공동정부에서 작은 권력을 누리기도 했지만, 2000년 총선에서 17석을 얻는 데 그쳐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했다. 2004년 총선에서는 지역구 의석이 4석에 불과했고, 지지율은 2.8%로 추락해 비례대표 1번이었던 김종필 총재마저 낙선하면서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국민의당은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공동대표가 지금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대권이 아니라 퇴색한 의회주의의 복원이며 생기를 잃은 민생 활력의 회복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공언한 대로 제20대 국회에서는 우선 양극화된 이념정치를 극복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의 무능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다시 보듬는 이미지를 국민의 뇌리에 축적해 나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게 건전한 제3당이 다수 의석의 제1당과 제2당을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세상 민심이 저절로 따르지 않겠는가.

5. 박근혜 정부, 준엄한 심판에 쇄신으로 답해야

20대 국회를 구성할 4·13 총선에서 여권이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새누리당은 19대 국회의 152석에서 30석이나 줄어든 122석을 얻었다. 집권 여당이 과반수 의석은 고사하고 헌정사상 처음으로 야당에 원내 1당까지 내줬다. 여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견제심리 발동 차원을 넘어 청와대·정부를 포함한 범여권 전체에 국민이 준엄한 심판을 내린 형국이다.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재현됨에 따라 당장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에 비상등이 켜졌다. 당·정·청은 그저 국면 전환용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국정 쇄신으로 여권에 등을 돌린 민심에 답하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어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총선 참패에 따라 대표직 사의를 밝혔다. 여당 내 공천 갈등 과정에서 ‘옥새 파동’으로 여권의 내분을 희화화한 그의 책임이 가볍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친여 무소속 당선자 복당을 놓고 당내 친박과 비박이 여전히 딴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여권이 패인을 제대로 직시하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 표로 심판해 달라”고 했지만,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나온 유승민 의원이 당선되고 수도권의 친박 후보들이 대거 낙선한 사실은 뭘 말하나. 청와대와 친박계는 치졸하기 짝이 없는 ‘친박 마케팅’과 ‘진박(진실한 친박) 코스프레’가 지지층마저 고개를 돌리게 한 주요인임을 뼈아프게 인식해야 한다. 유권자를 주머니 속 공깃돌인 양 여기는 오만한 여권에 누가 표를 주겠는가.

의회 권력이 야당 수중에 떨어진 선거 결과는 박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가 가시밭길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가뜩이나 입법을 마비시키는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민생법안 하나 제때에 처리하지 못하던 여당이었다. 이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그리고 정의당 등 야 3당 의석이 167석으로 무소속 의원들까지 포섭할 경우 재적 3분의2 의석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자칫 노동개혁 등 4대 구조 개혁 과제의 마무리는커녕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번에 회초리를 든 국민도 그런 국정 차질을 원치는 않을 게다. 야권 또한 오만하면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받는다는 교훈을 명심해 국정 발목 잡기를 자제해야 할 이유다.

그렇다고 해도 국정의 무한 책임은 현 여권에 있음은 불문가지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경제는 성장 지체와 일자리난 등 복합 위기를 맞고 있고, 안보도 북한의 핵무장과 주민들의 집단 탈북으로 긴박한 국면이다. 비상한 상황에서는 비상한 대응이 요구된다고 본다. 박 대통령이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차원에서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을 단계적으로 일신해 나가야 한다.

특히 박 대통령은 이번 총선에서 국회 심판론이 유권자들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은 사실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야당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성찰하는 것은 물론 국민의당 등 야권과의 사안별 정책 연대에도 열린 자세로 임할 필요도 있을 듯싶다. 우리는 1년 10개월 남은 박 대통령의 임기 중 국정 운영 기조의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매일경제]

6. 朴대통령·새누리당 국정운영방식 큰틀 바꿔야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원내 제2당 추락, 국민의당의 돌풍과 3당 체제 출현으로 요약되는 4·13 총선의 결과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 모두에 혁명적이고도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민의(民意)의 분출이다. 

집권 초부터 이어진 인사 난맥상에 더해 불통과 독선의 리더십으로 일관한 박 대통령, 무능하기 짝이 없는 행정부,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공천 다툼, 편 가르기, 호가호위를 일삼은 새누리당에 대한 총체적 심판인 것이다. 주요 외신들도 지적했듯이 이번 총선은 지난 3년간 박근혜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에 대한 중간평가다. 처음부터 실체가 모호한 창조경제를 들고나온 박근혜정부는 대기업들을 앞세워 전국에 창조경제센터를 짓는 등 전시 행정에만 치중했다.

주요 선진국들이 과감한 규제개혁과 산업 재편을 통해 무인차·전기차·가상현실·로봇·인공지능·바이오 등 4차 산업혁명에 매진할 때 한국은 절체절명의 구조조정도 미뤘다. 그저 중국 탓, 유가 탓, 국회 탓만 했을 뿐이다. 규제개혁과 공공·노동·금융·교육의 4대 개혁은 실체도, 성과도 없이 허망한 구호에 그쳤다. 저출산·고령화, 저성장, 대기업 편중,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탕평 인사는커녕 낙하산 인사만 더 판쳤다.

박근혜정부의 실패는 능력과 실력보다는 충성심과 논공행상을 앞세운 TK(대구·경북) 일색 인사 때부터 일찌감치 예고됐다. 박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는 물론 장관·수석들과도 대면 접촉을 거의 하지 않는 불통으로 국민을 실망시켰다. 남북관계조차 사상 최악으로 얼어붙은 가운데 대통령과 청와대가 '배신자 찍어내기'에 몰두하고 공천 개입, 선거 개입 의혹을 자초한 것 역시 지지층 이탈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지난 3년간 우리 경제는 그야말로 악화 일로로 치달았다.경제성장률은 3%대조차 요원하고 청년 실업률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국민은 치솟는 주거비와 사교육비 부담, 구조조정 불안, 노후 걱정에 희망을 잃어버렸다. 

노동소득 분배율과 가계소득 증가율이 악화되면서 노동자와 가계는 갈수록 쪼그라든 반면 대기업 사내유보액은 700조원을 넘어섰다. 양극화·계층화로 상대적 박탈감은 커지는데 재벌 2·3세들과 기득권층의 '갑질' 행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나와 국민적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총선 결과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조기 레임덕을 차단하려 '국회심판론'과 진박(眞朴)마케팅을 앞세웠지만 총선 결과는 이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청와대는 물론 총리·부총리까지 포함하는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해야 한다.

20대 국회에서는 과거의 독단적·일방적 행태로는 국정 수행이 불가능하다. 낮은 자세로 야당과 소통하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남은 임기 동안 혼란을 최소화하고 국정 누수를 막기 위해서는 대통령 자신이 환골탈태의 각오로 변해야 한다.

7. 20대 국회 원활한 운영 선진화법 개정이 필수다

20대 총선에서 38석을 차지한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로 떠올랐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모두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해 국민의당 협조 없이는 국정을 주도하기 힘들게 됐다. 국민의당이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쟁점 법안 등의 처리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복병이 있다. 지금의 국회선진화법이 존속되는 한 국민의당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새누리당과 연대해도 160석에 불과하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권과 협력해도 170석이 겨우 넘는다. 국회선진화법에 명시된 법안 개정 의결 요건인 180석(재적 의원 5분의 3)에는 미치지 못한다. 국민의당이 선진화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도 선진화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으니 이를 당론으로 확정해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18대 국회 말에 통과된 선진화법은 폭력 사태를 방지하고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19대 국회를 무력화하고 시급한 민생 법안 처리를 지연하는 데 악용됐다. 여야가 중요한 법안을 주고받기식 졸속 협상으로 처리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선진화법이 망국법이라고 성토하는 사람도 많았다. 20대 국회가 제대로 입법 활동을 수행하려면 반드시 선진화법을 바꿔야 한다. 선진화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세운 새누리당은 말할 것도 없고, 더불어민주당도 다수당을 견제할 제3당이 탄생한 만큼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 된다. 이번 총선에서 원내 1당을 차지했으니 선진화법이 더불어민주당에도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19대 국회 폐막 전에 여야 합의로 선진화법을 개정해주길 바란다.

8. 메르스 악몽 생생한데 방역망 또 뚫렸다니

그저께 새벽 서울시내 한 병원을 찾아온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의심환자가 병원을 탈출하는 소동이 있었다. 최근 입국한 아랍에미리트(UAE) 국적의 한 여성이 메르스 의심 증상으로 강북삼성병원을 찾아오자 의료진은 격리 치료를 받으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이 여성은 격리 환자용 텐트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호텔로 돌아가버렸다.

보건당국과 경찰은 4시간 만에 그를 찾아냈고 UAE 대사관 관계자까지 대동해 설득한 끝에 겨우 국립중앙의료원 격리 병상으로 옮길 수 있었다. 다행히 1차 검사에서 메르스 음성 판정이 나왔으니 망정이지 양성으로 나왔다면 이 여성의 이동 경로를 역추적해 수백 명을 격리해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작년 12월 메르스 사태 공식 종료를 선언한 지 넉 달 만에 또다시 온 국민이 감염 공포에 떨어야 했을 것이다.

메르스 사태의 악몽은 아직도 생생하다. 작년 5월 20일 첫 환자가 나온 후 218일 동안 이어진 메르스 사태 때 38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1만6000여 명이 격리됐다. 식당과 대형마트, 관광지에 발걸음이 끊기며 엄청난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

정부는 감염병예방법을 고치고 질병관리본부를 쇄신하며 방역망을 보완했지만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구멍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번 탈출 소동에서 보듯이 병원 측이 감염 의심환자를 격리하려 해도 본인이 완강히 거부할 때 당장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게 문제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고 외교 문제 소지까지 있는 외국인 환자를 제어하기는 더욱 어렵다. 올해 들어 메르스 의심환자 77명이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으나 시민들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지금껏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해 방역망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할 때다.

[매일신문]

9. 여야, 무소속 힘 모아 대구 발전 위한 어젠다 만들자

20대 총선에서 대구는 새누리당 후보 8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1명, 무소속 후보 3명이 당선됐다. 대구 정치판에 여와 야, 무소속이 골고루 포진한 것은 전례가 없는 변화다. 지역 유권자가 이런 구도를 만든 의미는 명백하다. 단순하게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 진박(眞朴) 마케팅, 유승민 의원 사태 때문이라고 잘못 해석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은 새누리당 일색의 정치 지형으로는 더 이상 대구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고 보고, 후진적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야당과 무소속 후보들에게 표를 나눠준 것이다. 12명의 당선자는 당과 이념을 초월해 대구 발전을 위해 힘을 합쳐 일하라는 것이 지역 유권자들의 본뜻이다. 

역할과 책임을 분담하는 전략적 사고 필요

지금까지 대구의 새누리당 의원 상당수가 안일하고 나태한 행태를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후광과 득표력에 기대고 있으면 당선이 무난했기에 지역 현안에 관심을 갖지도 않았고 노력할 필요성도 없는 듯했다. 의원들은 그저 계파 보스에 대한 줄서기에 매달리면서 안락한 생활을 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역 의원 간 소통이나 단결력도 부산, 광주 의원에 비해 한참 뒤처졌다. 지역 의원들은 모래알처럼 각기 행동하면서 자신이 편하고 유리한 것만 좇으려는 풍토가 강했다. 타지역 의원과의 가장 큰 차이는 상임위원회 배정 때 명확하게 드러났다. 부산과 광주 의원들은 지역과 관련한 현안을 챙기기 위해 사전에 소관 상임위에 배정되도록 협의하고 역할 분담을 한다. 그렇지만 지역 의원들은 아무런 협의 없이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 혹은 지도부의 배정에 따라 상임위를 선택했다. 대구시가 지역 현안 해결이나 국책사업 유치에 나섰다가 해당 상임위에 지역 의원이 없어 곤란을 겪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대구지역 당선자들은 여야, 무소속을 떠나 상임위 배정부터 역할과 책임을 분담하는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제 팔 제 흔들기’나 헛약속은 더 이상 안 돼 

대구 경제는 여전히 어렵다. 20년째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전국 꼴찌이고, 괜찮은 일자리가 없어 활력을 잃어가는 도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지역 국회의원들의 힘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유권자들이 당선자들에게 부여한 가장 큰 임무는 여야, 무소속을 떠나 힘을 합쳐 지역 발전에 매진하라는 것이다. 과거처럼 ‘제 팔 제 흔들기’식으로 각개약진을 하거나 사탕발림의 헛약속 따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당선자들이 함께 모여 대구 발전을 위한 장기 어젠다나 공동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대구에 약속한 ‘10대 대기업 유치’ 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 된다.

[경향신문]

10. '돈 풀기'의 속내

새누리당 양적완화의 진짜 목표는 부동산시장 부양과 재벌기업의 지원을 통한 내년도 대선 승리에 있다. 지난해 명목GDP의 0.9% 규모의 재정을 1분기에 조기집행했음에도 1분기 성장률은 0%대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예상된 것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4%였던 성장률은 반복적인 부양책에도 박근혜 정권에서 2.6%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재정의 조기집행으로 추경을 편성하지 않는 한 하반기 경기 후퇴는 불가피하게 됐다. 

문제는 내수와 수출 부진이 구조화된 상황이기에 내년에도 경제가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 부동산시장의 여건 악화가 추가될 것이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주택담보대출 소득심사 강화와 분할상환 등으로 한국은행, KDI 등이 내년 주택시장 침체 가능성을 경고해왔기 때문이다. 장기불황의 가능성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경기 침체는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에 최대 장애물이다. 새누리당의 양적완화는 이 장애물을 제거하는 목표로 고안된 것이다. 문제는 새누리당의 발상이 단기적으로 부동산시장을 부양하는 대신 위험한 불장난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독자들은 지난해 4월 금융위원회와 주택금융공사가 도입한 안심전환대출을 기억할 것이다. 안심전환대출의 도입은 변동금리로 이자만 갚고 있는 대출을 최장 30년까지 연 2%대의 고정금리로 분할상환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가계부채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금을 주택금융공사에 양도하고, 이를 바탕으로 발행한 주택저당증권(MBS)으로 공사는 은행에 양도대금을 지급하는 구조였다. 당시 1금융권 대출자를 중심으로 112만가구가 자격을 부여받았지만, 실제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탄 가구는 32만가구에 불과했다. 가장 큰 이유는 분할상환의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해 20년 상환으로 전환하겠다는 여당의 방안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미국 대공황 당시 도입한 장기 분할상환 제도가 장기근속 제도를 전제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다.OECD 국가 중 평균 근속연수가 가장 짧을 정도로 고용이 불안한 우리 상황에서 장기 분할상환 제도는 부적합하다. 게다가 안심전환대출에서 배제되었던 제2금융권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한 가계의 경우 분할상환 능력은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당국은 서민금융기관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복잡성을 핑계로 2금융권의 대출을 배제했지만 진짜 이유는 이들 대출로 만든MBS가 부실화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처럼 금융위의 방식은 가계부채를 완화시키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한계를 해결하고 부동산시장의 부양 효과까지 노린 것이 새누리당의 양적완화이다. 만기가 돌아오는 주택담보대출을 금융회사들이 20년 분할상환으로 바꾸고 이를 바탕으로 발행한 MBS를 한은이 매입하게 할 경우 금융권은 거부할 이유가 없다. 손실 가능성을 한은에 이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은이 손실을 입을 경우 정부가 메꿀 수밖에 없고, 이는 납세자 국민이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대신 여당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부동산시장 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은의 MBS 매입으로 금융기관에 흘러들어간 돈이 다시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재벌과 부자들에게 집중된 부동산자산의 가치를 상승시켜줄 것이고, 대부분 자산이 부동산시장에 묶여 있는 중산층의 지지도 끌어냄으로써 정권을 재창출하려 할 것이다. 문제는 돈을 찍어 키운 부동산시장의 붐은 가계부채 해결책이 될 수도 없고 거품 붕괴 시 폭락 폭을 키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특정 기업 지원을 위한 산업은행의 자금조달을 돕기 위해 한국은행이 산금채를 매입해주라는 것도 관치의 폐해뿐만 아니라 기업 지원이 실패할 경우 발생할 손실을 국민에게 전가시킬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부실기업의 연명은 자원배분을 왜곡하고, 출혈경쟁을 통해 산업계 전반에 부실을 전염시킴으로써 장기불황의 요인이 된다. 재벌과 부동산 자산가에 대한 특혜 제공을 위해 발권력까지 사용하려는 새누리당의 양적완화는 국가경제를 놓고 도박을 하려는 위험한 불장난이다.

주요 신문칼럼

1. [서울경제]냉면에 스민 어머니의 미소

“고기 먹을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안창살 사줄게.”

일요일 이른 저녁, 모처럼 형님 부부가 집에 들렀습니다. 어머니 모시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온 겁니다.

형의 제안에 어머니께서 그늘진 표정으로 말씀하십니다.

“고기 많이 먹으면 안 좋아.”

“그럼 냉면 어때요? 평양냉면!”

내 제안에 형수님이 빙긋 웃으며 물으십니다.

“서방님, 어제 술 드셨죠?” “네... 빙고...”

‘평가옥’ 물냉면, 속이 풀립니다.

어젠 왜 또 그리 들이부었는지.@_@;;

차게 만든 해장음식은 아마 냉면뿐일 겁니다.

언제부턴가 평양냉면이 인기입니다.

우래옥부터 을밀대·필동면옥·서북면옥까지, 지역별 냉면식당을 열거한 곳들은 항상 방문객들로 북적댑니다.

평양냉면은 보통 30대 중반 이후, 청년기가 시들 무렵부터 당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인지 ‘인생의 맛’이란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음식입니다.

중년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얼굴에 새겨진 삶의 나이테만큼 슴슴하고 담백한 맛을 즐겨찾게 되는 듯합니다.

가격은 비쌉니다. 한 그릇 1만1,000원, 갈비탕보다도 고가입니다.

하지만, 음식의 재료를 생각해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평양식 물냉면의 육수는 고기와 사골을 푹 고아 만듭니다.

쉽게 말해, 곰탕이나 설렁탕을 시원하게 식혀 밥 대신 메밀국수를 담아 내오는 셈입니다.

국수가 아니라 육수에 참맛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로 뚝뚝 끊어먹을 수 있어, 치아가 시원찮은 중장년층이 반깁니다.

그런 논리로, 국물 없는 비빔냉면은 왜 가격이 똑같은지에 대해 분노하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주전자에 주는 육수로 너그럽게 퉁치시죠. 

냉면을 처음 먹었던 때는 중학생이던 1989년 5월 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점심 무렵 아버지를 따라 읍내 냉면집으로 향했고, 공산당 삐라처럼 붉은 빛 비빔냉면은 질기고 매웠습니다.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빨갱이의 맛’이었습니다.

내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에, 평소 음식을 남기면 심하게 꾸짖으시던 아버지가 웬일인지 그만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속은 아렸지만, 허기가 더 강렬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400원과 바꾼 너구리 두 마리를 몰고 왔습니다. 

‘농이’와 ‘심이’를 끓는 물에 부숴 넣으며 다짐했습니다.

“내가 다시는 냉면 따위 먹나 봐라!”

이후 세월이 흐른 군바리 시절, 병장으로 진급한 6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리 중대 막내와 함께 4박5일 휴가를 나왔습니다. 이 녀석 집이 부산이라 밥이라도 먹이고 보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부터 돼지 목살과 삼겹살, 그리고 설렁탕에 소주를 부었습니다.

십 원짜리 동전도 씹어 삼킬 듯한 소화력에, 주인 아주머니는 애정이 듬뿍 담긴 눈길로 말을 건네셨습니다.

“군인 오빠, 잘 드시네. 이거 서비스야. 그냥 들어요.”

물냉면이었습니다. ‘금냉 8년’의 다짐은 그렇게 깨졌습니다.

어느새 어머니가 수저를 내려놓으십니다.

만두전골보다 냉면이 더 맛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난 비빔냉면만 먹었는데...”

“엄마, 평양냉면 처음 드세요?”

어머니가 멋쩍게 대답하십니다.

“응. 처음인데 맛있네. 국물이 담백한 게 계속 찾게 된다.”

순간 가슴 속에 뭔가 뜨거운 게 일렁였습니다.

죄책감이었습니다. 

‘평양냉면 한 그릇도 안 사드리고 지금껏 뭐했냐...’

그렇게 식당을 나섭니다.

어머니의 흐뭇해하시는 표정을 보니, 조금이나마 위안이 됩니다.

앞으로는 고집을 피워서라도 어머니를 자주 모시고 다녀야겠습니다.

이제 건강한 몸으로 맛있게 음식을 드실 날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2. [뉴시스][신진아 이주이영화]4등이 체벌보다 더 무서운 나라… '4등'

4등. 스포츠에서 최소 3등은 해야 메달권인데 4등은 정말 ‘희망고문’이 따로 없을 것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순위진입이 가능할 것 같은데 계속 내 아이가 4등만 한다면? 

대다수의 부모가 유능한 과외교사를 붙여볼 것이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우니까. 영화 ‘4등’ 속 준호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수영에 재능이 있어 보이는데 아무리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자 ‘수영업계 돼지엄마’를 통해 유능한 과외교사를 소개받는다.

비운의 수영천재 광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1등은 물론 대학까지 골라가게 해주겠다며 호언장담한다. 단, 교육방식에는 토를 달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정작 수업이 시작되자 광수는 게임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나태한 태도로 기겁하게 만든다. 준호가 수업하지 않느냐고 닦달하자 마지못해 수영장을 향하나 막상 준호의 재능을 간파하고 눈빛이 달라진다. 

준호는 생애 첫 은메달을 목에 건다. 준호의 엄마는 거의 실신할 듯 기뻐한다. 반면 광수는 1등을 놓쳤다고 혼을 낸다. 이때부터 기록을 단축시키려고 아이 몸에 멍이 시퍼렇게 들도록 때리면서 강압적으로 훈련한다. 우연히 체벌사실을 알게 된 준호 아빠가 문제를 제기하자 준호 엄마는 “애가 맞는 거보다 4등하는 게 더 무섭다”고 말한다. 

‘4등’은 준호와 준호의 부모 그리고 준호의 코치인 광수의 이야기를 통해 교육의 현주소를 가만히 들여다보게 한다. 자식을 위해 몸부림을 치는 이 열성 엄마의 모습이 과연 어떻게 보이는지, 우리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지, 내가 이 아이의 부모라면 어떻게 할지 찬찬히 생각해보게끔 한다. 

이 영화는 어린 준호의 이야기면서 준호와 같은 꿈을 꿨던 실패한 어른 광수의 이야기다. 광수의 과거는 어린 준호의 현재와 연결돼있다. 광수의 수영선수 시절로 영화가 시작돼 준호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광수는 성적만 좋으면 뭐든 다 용인해주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불량품과 같다.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는 명문대생 이야기가 간혹 사회면을 장식하는데, 비슷한 맥락이다. 

머리도 좋고 수영도 잘해 오만해진 광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다른 선수들과 다른 특별대접이 아니었을 것이다.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따끔히 충고해주는 진짜 어른이었다. 불행히도 준호 주변에는 그런 어른이 없었다. 젊은시절 광수와 인연이 있었던, 준호의 아버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광수에게는 권위의 매를 드는 사람만 있었을 뿐이다. 

젊음의 치기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잃고 초라한 현재를 살고 있는 광수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습이다. 하지만 수영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어린 준호에게 가장 현명한 충고를 하는 이는 다름아닌, 절망의 나락을 뼈저리게 경험한 어른 광수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준호는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깨닫고, 어떤 성취도 이룬다. 그런데 그 빛이 밝을수록 광수의 초라한 현재가 안타깝다. 

‘해피엔드’부터 ‘사랑니’ ‘은교’ 등 세상의 금기에 도전해온 정지우 감독의 신작이다. 감독 특유의 섬세한 이야기에 유려한 영상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사회와 인간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영화로 내 아이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어른들이라면 꼭 봐야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 제작했다. 

3. [동아일보][박성연의 트렌드 읽기]집단주의를 뒤흔드는 1인 가구

1인 가구가 집단주의에 젖어 있는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서울시는 2030년에야 1인 가구가 3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난해 이미 이 비율을 훌쩍 넘어섰다. 벌써 세 집에 한 집꼴이다. 직장인이 많은 중구 을지로 등 6곳은 70% 이상이다.

우리나라의 1인 가구 증가 추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전 가구 대비 1인 가구 비중이 지난해 세계 6위였지만 앞으로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지금 서울시내 어느 골목에서나 혼자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혼밥’, ‘혼술’족, 이들이 이용하는 식당과 반찬가게, 그들을 고객으로 모시는 세탁소를 흔히 볼 수 있다.

1인 가구의 빠른 증가로 사회가 바뀔까. 그 추세와 단서를 소비 패턴에서 찾아봤다. 새로운 소비주체인 1인 가구는 지난해 한 달 씀씀이가 96만 원으로 조사됐다. 머지않아 100만 원 이상을 지출할 것이다.

이들의 소비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다. 다른 가족을 부양하지 않다 보니 자기계발을 위한 외국어 학습, 몸매와 건강 관리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1인 가구의 학습비는 2인 가구의 두 배에 이른다. 성인 학습 시장과 뷰티 산업이 각광을 받는 이유다. 그렇지만 베이비붐 세대처럼 집단으로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혼공’(혼자 공부)이다. 익스트림 스포츠 등에서 보다 세부화된 전문 취미를 배운다.

이들에게서 4인 가구 시절처럼 단일 품목 대량 소비는 좀처럼 볼 수 없다. ‘작지만 특별한 가치’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성향 때문이다. 외국산 소형차 수입 증가에서 나타났듯이 이들이 원하는 것은 작은 게 아니라, 작아도 가치 있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에서 다인 가족의 집단성 대신 가치다원화를 이끌 주역으로도 꼽힌다. 이들을 무시하고 많은 생산품을 시장에 대량으로 내놓는 생산자는 생존하기 어려워진다.

이들이 현재 획일화된 시류에 쏠리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내면 집단주의에 익숙해진 사회도 바꾸어 놓을 것이다. 단, 극단적 개인주의에 따른 공동체 책임의식 실종과 같은 부작용을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4. [동아일보][지금 SNS에서는]‘소맥’이 신사답지 못하다고? 

유튜브에 올라온 지 사흘 만에 60만 명 넘는 누리꾼이 재생한 인기 영상이 있습니다. 아이디 ‘영국남자’가 올린 ‘소맥을 처음 마셔 본 영국인들의 반응’이라는 동영상입니다.

‘영국남자’의 실명은 조시 캐럿(27). 그는 한국인보다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으로 알려져 방송에 출연하고, 유튜브에서도 120만 구독자를 얻은 인기인입니다. 그동안 불닭볶음면, 인삼주, 홍어 등 한국의 독특한 먹거리와 목욕탕, 지하철도 유튜브에 소개했습니다. 

12일 그가 올린 영상의 주제는 ‘소맥’. 그는 우선 영상에 등장한 친구들에게 한국 맥주를 맛보게 합니다. 그런데 반응이 실망스럽습니다. “글쎄?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맥주 중에서 가장 맛있다고 하긴 어려운데?” “맥주라기보다는 맥주 맛 나는 탄산수 같다” 등의 평가가 쏟아졌죠. 

그 다음에는 ‘소주’가 등장합니다. 영국인들은 “20도짜리 술”이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합니다. 소주를 병째 들고 마신 한 영국인은 “이 술을 마시는 목적은 딱 하나네요. 엄청 취하려고…”라고 말합니다. 

이어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이라는 술을 소개하자 영국인들은 당황합니다. 술과 술을 섞는 게 익숙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건 신사답지 못한 행동이야(That’s not very gentlemanly)”라는 반응도 나옵니다.

그런데 ‘소맥’을 한번 맛본 영국인들이 돌변합니다. 별의별 찬사를 다 쏟아내면서 말이죠. “이걸 왜 수출하지 않고 있죠? 삼성보다 대단한 거예요!” “예상 밖으로 진짜 맛있네요.”

이 영상은 단지 ‘독한 술’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술을 따를 때 두 손으로 술병을 잡는 장면도 나옵니다. 건배할 때는 “치어스(cheers)”라는 말 대신에 “짠”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나옵니다. 한 영국인은 “이걸 먹고 가라오케(노래방)에 가는 거지”라고 합니다.

이 동영상은 14일 ‘인기 급상승 동영상’ 코너에서도 1위를 달리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한국 독자들은 “소맥을 하셨으니 다음엔 ‘양폭’(양주 맥주 혼합 술)을 소개해 달라”며 후속편에 대한 아이디어를 전했습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술은 그 나라의 문화를 보여줍니다. 캐럿의 동영상에는 ‘술’에서 한국의 문화를 읽고, 그것을 유머 있게 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조만간 과일향 소주와 막걸리를 소개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그가 다른 술에서 어떤 문화코드를 읽어낼지 기대됩니다.

5. [중앙일보][시선 2035]노오력의 배신

“너처럼 노력하면 서울대에도 갈 거야.” 학교 선생님과 부모님은 성실한 A를 격려했다. A는 좀처럼 노는 법이 없이 책상을 지켰다. 엉덩이에 커피색 굳은살이 붙을 정도였다. 하지만 서울대는 가지 못했다. 대학생이 된 A는 더 성실해졌다. “너처럼 노력하면 취업도 골라서 할 거야.” 공부 말고도 봉사활동에 인턴까지 챙길 게 많았다. 그래도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기까지 2년이 걸렸다. “그나마 노력했으니 여기까지 온 거야.” A는 그렇게 ‘노력의 신봉자’가 됐다.

내 얘기를 굳이 A라고 쓴 건 이런 사람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얼마 전 만난 30대 취재원도 그랬다.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근무하는 워킹맘, 유별나거나 극성스러운 사람은 아니다.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공부를 꽤 잘한다고 했다. 요즘엔 특목고 입시를 위한 교내 과학탐구대회 준비로 밤늦게 학원에서 돌아온다고. 그 모습을 보면 짠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어떻게 해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거 알잖아요. 김 기자님도 열심히 했으니까 지금이 있는 거잖아요? 그렇죠?”

정말 그런가. 사실 나는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노력의 결과가 생각과 다르다. 서울대에 가려고,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고 노력한 게 아니었다. 보이는 목표는 그랬지만,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을 잘 꾸려갈 수 있을 거라고 믿 었다. 대학교에 가면 즐거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고, 기자가 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서울대에 입학한 것도 모자라 박사까지 마친 친구, 외국계 기업에 들어가 나보다 몇 배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 친구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노력이란 건 끝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노력은 노오력을, 노오력은 노오오력을 부른다. 노오오오력을 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총선 당일 선거 캠프에서 만난 한 후보. 그의 입에서는 단내가 났고, 눈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잠을 못 잔 탓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캠프 관계자는 “모두 승리를 위해 200% 노력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300% 노력했다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을까.

노력해 봤자 다 쓸모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운보다 노력의 힘을 믿고 노력하는 삶을 사랑한다. 다만 노력은 언제든 배신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하며 노력의 방향과 정도를 잘 살피자는 거다. 얼마 전 ‘무한도전’에 만화 ‘미생’의 윤태호 작가가 출연해 가장 공감을 얻은 대사로 이것을 꼽았다. “우리를 위해 열심히 사는 건데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어.” 이렇게 느껴지는 노력이라면 안 해도 그만이다. 좋은 노력의 방향과 정도는? 그건 자기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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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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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4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고용 없는 투자' 돌파구는 없는가

청년실업률이 역대 최고치인 12.5%에 달하는 등 가뜩이나 고용 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대기업의 고용 동력마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가 늘었는데도 고용이 증가하기는커녕 되레 감소한 것이다. 기업 경영성과 분석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30대 그룹의 지난해 말 기준 고용인원은 모두 101만 3100명이다. 전년의 101만 7600명에 비해 4500명(0.44%) 줄었다. 30대 그룹의 지난해 투자증가율이 17.9%인 점에 비춰 ‘고용 없는 투자’가 현실화한 셈이다.

대기업의 고용 감소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철강, 석유화학, 조선 등 주력 업종의 대표 기업들이 세계 경체침체와 중국을 비롯한 후발 경쟁국의 추격, 공급과잉 등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1000명 이상 직원이 줄어든 대기업은 삼성테크윈 등 4개 계열사를 한화에 넘긴 삼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철강, 조선업 분야다. 포스코의 경우 1년 사이에 2795명(-8.1%)이나 줄었다. 현대중공업도 1539명(-3.9%)이 감소했다.

걱정스러운 것은 열악한 고용이나마 떠받치고 있는 투자가 위축세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고용 사정이 더 악화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중 기업투자 비중은 29.1%로 1976년(26.4%)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설비투자의 경우 올 들어 지난 1월(-6.5%)과 2월(-6.8%) 두 달 연속 큰 폭으로 감소했다. 투자가 줄어들면 고용 부진은 물론이고 가계소득이나 소비가 연쇄적으로 줄어 경제 전체가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투자는 고용을 늘리고 소득 증가와 소비 활성화를 이끌어 경기가 잘 돌아가게 하는 선순환구조의 첫 번째 고리와 같다. 대기업들이 경기 부진으로 인한 불확실성을 이유로 투자를 꺼리고 여유 자금을 쌓아두려는 걸 비난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투자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는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기술개발을 통한 경쟁력 강화, 고용 증가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선제적 투자에 적극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는 노동개혁, 한계기업 구조조정, 규제 혁파로 투자환경을 개선해 기업 활동을 뒷받침해야 함은 물론이다.

2. 선거의 최후 승리자는 유권자들이다

유권자들의 선택은 냉혹하면서도 위대했다. 어제 전국에서 치러진 제20대 총선 투표를 통해 스스로 나라의 주인임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국민을 등한시하며 오만한 태도로 일관했던 기존 정치권에 엄정한 심판을 내린 것이다. 밤늦도록 쫓고 쫓기는 박빙의 개표작업이 모두 마무리되면서 눈앞에 펼쳐진 여야 정당의 성적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것은 여당인 새누리당에 대한 불만감의 표출이다. 확보 의석이 과반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고 말았다. 16대 국회 이후 16년 만에 재연되는 여소야대 구도다. 국정을 원활히 이끌어갈 책임이 있으면서도 당내 세력다툼에 몰두한 탓이다. 유례가 드문 공천 파동까지 일으킴으로써 국민들의 신뢰를 저버렸고, 끝내 응징이라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더불어민주당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여당이 잃은 표를 끌어오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결코 승리한 모양새가 아니다.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았으며 공천과정에서도 자의적인 잣대를 휘둘렀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 국민의당의 약진은 기존 양대 정당의 실책으로 인한 반사적 이익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캐스팅보트를 쥔 제3당으로서 국회 운영의 원활한 지렛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책무가 맡겨졌음을 깊이 인식하기 바란다.

걱정스러운 것은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 현상이 본격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이 선거가 임박해오면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국회 심판론’을 들고 나왔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은 셈이다. 이번 선거가 여당뿐만 아니라 현 정부 정책에 대한 심판이라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소통과 화합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임기 마지막까지 새로 일을 벌이기보다는 진행 중인 정책이나마 차질없이 끌고가겠다는 의지가 요구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은 당선자들의 역할이다. 당선에 따른 개인적인 기쁨과 영광에 앞서 앞으로 4년간 대한민국의 운명을 책임지게 됐다는 사명감을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 보겠다며 유권자들에게 약속했던 그대로 진정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짐이 없다면 당선 축하를 받을 자격도 유보될 수밖에 없다.

[서울신문]

3. 16년 만의 여소야대, 민심 겸허하게 수용해야

4·13 총선은 정치권의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로 정치권이 재편됐고 20년 만에 양당 체제가 다당 체제로 바뀌는 격변이 일어난 것이다. 패거리 정치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해 왔던 기존의 정치권력을 표로써 심판했다는 의미가 크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여당인 새누리당의 참패다. 선거 초반 압승을 예상하며 기염을 토했지만 개표 결과 과반 의석 미달이라는 참담한 성적을 거뒀다. 122석이 걸린 수도권에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1위 자리를 내줬고 텃밭인 대구에서도 유승민 후보 등 무소속의 돌풍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새누리당은 공천 과정에서 여론과 동떨어진 비박계 공천 학살이나 안하무인 격의 ‘진박(진실한 친박) 마케팅’으로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김무성 대표의 ‘옥새 파동’이나 대통령 존영 반환 소동으로 집권당의 비민주성을 만천하에 공개했고 친박계의 석고대죄 퍼포먼스는 국민들의 실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집권 여당의 참패는 자업자득의 측면이 크다. 소통과 설득 대신 일방통행식의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는 민심이 담겨 있다.

4·13 총선 결과로 현실화된 다당제도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정치를 표방한 국민의당은 공천 과정에서 혼란스런 모습을 보였지만 이번 총선에서 호남에서 압승을 거두며 양당 체제를 붕괴시키고 20년 만에 다당제를 부활시켰다. 양당 체제하에서 기득권 정치세력 간의 반목과 대립으로 점철돼 온 패거리 정치를 종식시키고 소통과 참여, 개방의 새로운 정치를 펼치라는 민심이 담겨 있다. 시대 흐름에 뒤처진 저효율 고비용의 정치 구조를 개혁하라는 국민의 지상명령이다.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냉엄하다. 양극화와 저출산, 고령화, 청년 실업 등이 심각해지고 있고 경제는 날로 침체되고 있다. 북핵 문제를 포함한 외교·안보의 난제도 많다. 다당제에서 대통령 역시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대전환이 요구된다. 일방적으로 국회를 비난하기보다 국회와의 소통을 중시하면서 정당 간 연대를 존중해야 집권 후반기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하다. 청와대와 집권 여당의 소통과 화합은 정당 차원을 넘어 국정의 성공적 운영의 필수 조건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선전했지만 텃밭인 호남 지역에서 참패했다. 친노·운동권당이라는 꼬리표를 여전히 떼어내지 못한 채 야권 후보 단일화에만 목을 매는 모습을 연출했다. 텃밭인 호남에서 국민의당에 참패한 것은 수권 야당으로서 일대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 4·13 총선은 변화의 희망을 갈구하는 민심이 담겨 있다. 국민이 여야 모두에 과반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독주 대신 ‘균형과 견제’의 정치를 펼치라는 주문이다. ‘무능 국회’, ‘불임 국회’로 막을 내린 19대 국회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이념 대립에서 벗어나 민생을 살피는 상생의 정치를 요구하는 민의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 20대 국회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기는커녕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19대 국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4. 총선 마친 정치권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라

4·13 총선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다시 한번 예상을 뛰어넘는 역동성을 보여 줬다. 유권자 각자의 한 표가 마치 집단지성처럼 거대하게 뭉쳐져 생산성 제로의 기득권 정치를 엄중히 심판한 동시에 뼈를 깎는 환골탈태를 촉구했다. 박근혜 정부와 여야 정치권 전체에 전해진 국민들의 이 같은 경고와 주문은 실로 준엄하다. 불통과 대립의 정치를 걷어치우고 소통과 화합의 정치를 일으켜 민생을 돌보고, 경제살리기에 나서라는 뜻과 다름없다. 여야 정치권은 이 같은 민의를 똑똑히 새겨 지금부터라도 즉각 민생과 경제살리기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제 곧 20대 국회가 출발하게 된다. 또한 내년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집권 세력 내부의 권력 누수는 점점 현저해질 것이 확실하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으로선 국회 운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의석 반수를 훌쩍 넘긴 상황에서도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사사건건 발목이 잡혔는데 이제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설상가상으로 여소야대가 됐으니 야권의 위세에 눌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처리하기가 더 어렵게 됐다. 하지만 언제까지 ‘야당책임론’만 외칠 텐가. 국정 운영의 잘잘못 책임은 오롯이 집권 세력의 몫일 수밖에 없다.

다당체제, 특히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들은 독선과 오만에 빠지기가 쉽다.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몰입하면서 비세(非勢)의 여당을 몰아붙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국민들이 여소야대 상황을 만든 것은 결코 야당들이 미더워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만 한다. 특히 국회선진화법 개정이나 일부 쟁점 법안 처리에 호의적인 국민의당 약진에서 알 수 있듯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되 안보·민생·경제살리기 등에 관한 한 초당적으로 협력하라는 주문이다. 국민들이 19대 국회에 ‘역대 최악의 무능 국회’라는 오명을 붙인 이유를 잊어선 안 된다.

절대 다수당이 없는 상황에서 여야 3당 간의 기싸움을 비롯해 정당 간 과열 경쟁은 자칫 국회를 마비시킬 수 있다. 안보위기·경제위기가 중첩해 몰아치고 있는 지금 국회가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게다가 총선 과정에서 여야는 실천 계획이 불투명한 온갖 경제·복지공약을 쏟아냈고, 국가개혁 청사진이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여야는 20대 국회 개원 전이라도 민생법안 처리 등을 통해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국민들의 요구에 응답하길 바란다. 그것이 국민들이 표를 통해 던진 메시지의 의미다.

[한국일보]

5. 곳곳서 무너진 지역주의 벽, 희망이 보인다

높고 두꺼웠던 지역주의의 벽이 곳곳에서 무너졌다. 새누리당의 아성 대구에서 31년 만에 정통야당 소속 김부겸 후보가 큰 표차로 낙승했고, 역시 야당 계열인 무소속 홍의락 후보도 금배지를 거머쥐었다. 상상하기 힘들었던 변화다. 대구 못지 않게 새누리당 세가 강한 부산경남에서도 의미 있는 야당 승리가 이어졌다. 반대로 야당의 텃밭인 전남과 전북에서는 새누리당 이정현, 정운천 후보가 승리 깃발을 꽂았다. 이제 망국적 고질병이라는 지역주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음을 일깨운다.

이번 총선에서 지역주의 벽 깨기를 선도한 이는 대구 수성갑의 더민주 김 후보다. 대구의 강남이라는 이곳에서 김 후보는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를 시종일관 앞섰다. 2012년 내리 국회의원 3선을 했던 경기 군포를 떠나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대구로 내려간 그는 19대 총선과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분루를 삼켰다. 이번에는 달랐다. 새누리당의 유승민 내치기, 진박 마케팅 역풍의 반사이익도 컸지만 대구시민들이 그의 진정성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 후보의 당선은 더민주 비례대표 출신 무소속 홍 후보의 당선과 함께 대구의 지역주의 극복에 한 획을 그은 일대 사건으로 평가할 만하다.

부산경남(PK)지역에서도 영남 지역주의 균열 조짐이 나타났다. 부산에서 더민주전재수(북강서갑), 김영춘(진구갑), 김해영(연제) 후보 등이 승리한 것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임을 감안해도 김해 갑ㆍ을(갑 민홍철ㆍ을 김경수)을 더민주가 석권한 것은 지역주의 타파 의미가 크다. 당선에는 못 미쳤지만 다수의 더민주 후보가 30~40%대의 높은 득표를 한 것도 이전과 비교하면 고무적인 변화다.

반대로 호남 정서의 아성인 전남ㆍ북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정운천 후보의 승리는 호남지역도 과거 높았던 지역주의 벽이 무너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2014년 7ㆍ30 재보선에서 지역주의 타파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이 후보는 전남 순천에서 선거구 조정의 불리한 여건을 딛고 당선됐다. 전북 전주을에서 금배지를 거머쥔 정 후보는 이명박 정부 초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출신이다. 두 후보가 이 지역에 분 국민의당 바람에 따른 3자 대결 구도의 덕을 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호남에도 여당후보 한두 명쯤은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음이 확인되는 등 지역주의 균열 흐름도 한층 뚜렷해졌다. 대구에서 부산경남벨트를 거쳐 전남북으로 이어진 U자형 띠에서 지역주의 극복의 분명한 희망을 본다.

[동아일보]

6. 여당 참패, 박근혜 대통령 확 바뀌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민심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은 몰랐다. 어제 실시된 20대 총선에서 집권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에 훨씬 못 미치는 120여 석에 그쳐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출범하게 됐다. 집권 3년여 만에 치러져 중간평가 성격을 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탄핵풍’이 불었던 2004년 17대 총선 이후 최악의 참패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1년 10개월이나 남았지만 조기 레임덕(권력누수)이 가시화했다. 경제와 안보 실정(失政) 책임은 야당에 미루고, 안으로는 공천을 놓고 계파 싸움에 몰두한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의 응징이다. 새누리당 안형환 대변인은 어제 밤늦게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새누리당에 미래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날”이라며 패배를 자인했다.

새누리당과 그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7년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서 져본 적이 없다.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어지러운 정치판에서 친노(친노무현)·운동권 중심의 야당에 힘을 실어주면 국정운영이 파탄나지 않겠느냐는, 중도·보수 성향 국민의 ‘공포의 균형감’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불패 신화’에 오만해진 집권세력의 독선에 마침내 국민은 회초리를 들었다. 새누리당은 국회 대표실에 ‘정신 차리자, 한순간에 훅 간다’는 배경판만 달아놓고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 기득권에 빠져 국정은 도외시하고 자신들의 안위만 염두에 둔 ‘웰빙 새누리당’에 국민이 철퇴를 내린 것이다.

 
중간평가에서 ‘탄핵풍’보다 더한 공천역풍
 
특히 친박(친박근혜) 충성분자를 꽂아 넣기 위해 ‘총선 결과에 개의치 않겠다’는 역대 최악의 막장 공천은 전통적인 지지층의 이반을 불러왔다. 이른바 서울 강남벨트와 텃밭인 부산과 대구의 지지층이 고개를 돌린 것을 박 대통령과 친박 핵심은 직시해야 한다. 전체 투표율은 58.0%로 지난 총선보다 3.8%포인트 높아졌지만 전통적 여당 지역인 대구 부산 등이 가장 저조한 것은 아예 투표도 하기 싫다는 의미다. 이번 총선은 야권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새누리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도였다. 그러나 이번만은 박근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분노의 폭풍’이 불면서 야권 분열 구도가 맥을 못 추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석수에서 새누리당에 근접하면서 선전(善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권자가 수도권에서 더민주당의 손을 들어준 것은 결코 이 당이 예뻐서가 아니다. 집권세력이 미워서다. 특히 정통 야당을 자임하는 더민주당이 야권의 심장부인 호남과 정당투표에서 참패한 것을 친노패권주의, 운동권 정치에 대한 심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호남의 지지 여부에 대선 출마와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었으니 약속을 어떻게 지킬지 궁금하다.

여야를 통틀어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문 전 대표가 하차한다면 차기 야권의 대선구도도 요동칠 수밖에 없다. 더민주당은 먼저 수권정당으로서 국민의 믿음을 얻는 데 주력해야 한다. 더민주당은 19대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해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는 등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했다. 그러니 국민의 눈에 안보불안, 경제불안, 신뢰불안 정당으로밖에 더 보이겠는가. 제3당으로 약진한 국민의당에 ‘야권재편 당하지’ 않으려면 이제는 환골탈태해야 한다.

 
국정 정상화 위해 탕평인사-개각하라
 
총선이 끝나고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잠룡들이 꿈틀거리겠지만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이 녹록지 않다. 박근혜 정부 앞에는 경제를 살리고 금융 노동 공공 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을 완수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실업률 상승과 수출 급감, 가계부채 증가 등으로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진 것이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 철회로 나타났다는 해석도 있다. 박 대통령에게 총선 이후의 과제는 여당의 대선 준비가 아니라 국정의 정상화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콘크리트 지지층도 무너질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임기 후반기에 국정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당내 친정체제를 구축하려 한 것은 국민이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이제는 ‘선거의 여왕’이란 타이틀은 내려놓고 국정에 전념해 경제위기, 안보위기를 헤쳐 나가라는 국민의 지엄한 명령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향후 정국은 집권 새누리당과 친여 무소속,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이 혼존(混存)하는 다여다야(多與多野) 구조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의 일방통행식 통치에서 탈피해야 한다. 야당까지 아우르는 탕평인사와 함께 전면 개각으로 국정을 쇄신해야 한다. 국민 앞에 자성하고 새롭게 바뀌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민이 이번 총선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단호하게 던진 메시지다.

7. '국민의당 돌풍' 안철수, 대권 아닌 국민을 보고 가라

4·13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일으킨 ‘녹색 돌풍’이 호남 전체를 거의 휩쓸었다. 비례대표까지 포함하면 거의 40석에 육박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며 제3당의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특히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 득표율이 더불어민주당을 앞질렀다는 것은 국민의당의 전국 정당화 가능성을 말해준다. ‘양당 철밥통 체제’를 비판한 안철수 대표에게 호응해 국민이 거대 기득권 양당에 경고를 보낸 셈이다.

선거로 제3의 원내교섭단체가 탄생한 것은 1996년 15대 총선 때 50석을 얻은 자유민주연합 이후 20년 만이다. 오랜 양당 구도로 인해 여야 간 ‘적대적 공존관계’가 굳어지면서 대화와 타협이라는 대의정치가 실종된 것이 국회의 실상이었다. 안 대표는 1월 “양당 구조 속에서 탄생한 것이 국회선진화법이므로 3당이 존재하면 원래의 단순 다수결로 돌아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20대 국회에 진입하면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안 대표의 정치 초심대로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중도개혁 노선을 견지한다면 보수-진보 양 극단의 정치에 신물을 내는 중간층의 지지를 업고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면서 국정을 원활하게 이끄는 핵심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당이 더민주당을 제치고 ‘호남의 맹주’가 됐다는 것은 야권에는 혁명에 가까운 이변이다. 2004년 17대 총선 이래 친노(친노무현)의 손을 들어준 호남이 친노와 좌파 운동권 세력의 온상으로 변질된 더민주당을 12년 만에 응징했다는 의미가 있다. ‘강철수’의 뚝심을 발휘한 안 대표가 야권의 텃밭이자 심장부인 호남을 장악했으니 이제 야권 재편과 대권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됐다.

국민의당에는 천정배 공동대표와 정동영 당선자와 같이 더민주당 친노 세력에 못지않게 강성인 인사들도 포함돼 있다. 두 야당이 정국 주도권을 놓고 여당인 새누리당을 상대로 선명성 경쟁을 벌인다면 20대 국회는 19대 국회 못지않게 극단적 발목잡기로 치달을 수도 있다. 안 대표가 사안별로 여야를 넘나들며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해야 국회가 생산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녹색 돌풍’이 계속되려면 안 대표는 대권이 아닌 국민을 보고 가야 한다. 정치권의 개혁을 선도하면서 정책과 국회 운영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국민의당이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희망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또 하나의 기득권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한국경제]

8. 20대는 국회독재 아닌 일하는 국회 돼야

20대 총선이 끝났다. 5월30일부터 4년 동안 봉사할 ‘선량(選良)’ 300명도 가려졌다. 여야의 승패도 갈렸다. 당선자들에게 축하를 보내야 마땅하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다. 안보와 경제의 두 축이 비정상 궤도를 맴도는 국가적 긴장 상태에서 4개월 가까이를 총선 정국으로 날려 보낸 탓이다. 정치권은 총선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국민이 요구한 것은 한마디로 정치를 정상적으로 하는 ‘정치의 정상화’다.

정치 외교 국방 등 국가적 아젠다를 처리하는 데서 19대 국회는 내내 의사무능력자처럼 행동했다. 국회는 토론도 합리적 의결도 이뤄내지 못했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노조 등 이해집단의 불법행위를 방조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이 정부가 추진한 소위 4대 개혁과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게 없었다.

운동권 정치의 종식도 이번에 확인된 민심이다. 투쟁 일변도의 운동권 정치는 끊임없이 편을 가르고, 갈등을 부추기며 국민을 질리게 했다. 정부가 하는 일이면 무조건 반대하고, 나라가 망해도 현 정부가 실패하는 게 낫다고 보는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만한 행동들이 찰거머리같이 정치를 지배해온 19대였다. 아니 일부 정치인들은 길거리 갈등이나 분쟁을 민주주의인 것처럼 인식하는 반(反)제도적 행태도 보였다.

특히 이번 총선 공천 과정에선 여야 할 것 없이 계파 간 갈등이 노골화됐다. 새누리당에서는 친박 비박에 진박까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친노와 비노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계파는 이념이나 정책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돼야지, 이번처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 그런 계파 정치는 파벌정치로 타락할 뿐이지만 선거과정에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앞으로의 정치개혁을 낙관할 수 없게 하는 요소다.

20대 국회가 19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당장 정치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우선 ‘불임국회’를 초래한 국회선진화법을 폐기해야 한다. 또 개인 비리까지 막아주는 것으로 악용되는 불체포특권과 아무런 말이나 제멋대로 유포하는 소위 ‘막말특권’, 즉 면책특권도 내려놓아야 한다. 100여개가 넘는다는 특권은 스스로 폐지해야 하고, 보수도 근로자 평균소득의 2배가 넘지 않도록 대폭 삭감해야 옳다. 이밖에 국민의 4분의 1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과잉범죄화 입법, 관련 없는 기업인들까지 불러다 호통치는 ‘원님재판’식 청문회도 금지돼야 마땅하다. 또 예산 고려 없이 마구 찍어내는 의원입법, 국가예산에 지역 민원을 끼워넣는 예산야합 등도 잘라 없애야 할 관행이다. 이런 조치들이 곧바로, 그것도 눈에 띄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치는 정상화하기 어렵다. 그만큼 지난 19대는 ‘의회 독재’로 불릴 정도로 최악이었다.

선거에 재미를 붙인 듯 정국을 곧바로 대통령선거 국면으로 이어간다거나, 정계개편 운운하며 다시 파워게임식 ‘새 판 짜기’ 충동은 경계해야 한다. 그런 행태야말로 정당정치의 파멸을 불러오는 악수가 될 것이다. ‘정치인만을 위한 정치’는 더 이상 용납받을 수 없다. 이번 총선 막바지에 여당과 야당은 무릎꿇기, 절하기 퍼포먼스를 벌였다. ‘경제를 살리겠다’가 아니라 ‘잘못했습니다’가 선거 구호가 된 듯한 민망한 풍경이었다. 그런 쇼는 이제 모두 끝났다. 당장 정치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정상화된 정치를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에 희망이 생긴다.

[중앙일보]

9. 빗나간 선거 여론조사, 유권자 혼란 막게 정비하라

4·13 총선은 여론조사의, 여론조사에 의한, 여론조사를 위한 선거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현역 의원 평가와 컷오프, 총선 후보 선출에 제시된 근거는 늘 여론조사였다.

그렇다면 판단 기준이 되는 여론조사는 정확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동일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격차가 20%포인트를 넘는 경우가 있었다. 심지어 의뢰자의 의도에 맞게 여론조사를 해주는 기획 여론조사 기관도 있었다고 한다. 선관위가 적발해 처벌한 여론조사만 100건이 넘는다.

그러니 여론조사를 못 믿겠다는 응답이 믿는다는 의견보다 많은 게 우리 현실이다. 고작 1~2% 응답률로 판세를 예측하니 높은 정확도가 오히려 기적이다. 게다가 주로 집전화에 의존하는 조사 방식 자체의 한계도 있다. 현실에서 집전화 가입자는 줄고 휴대전화는 표본 수집이 어렵다. 대표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엉터리 여론조사 수치가 정치판에선 금과옥조다. 정확성이 의심되고 조작 가능성까지 제기된 여론조사가 정당의 공천 결과를 좌우하고 유권자의 표심을 출렁이게 만든다. 선거 판도에 악영향을 미치는 건 물론이다. 이번 총선을 놓고 주요 여론조사 기관은 새누리당 157~175석, 더불어민주당 83~100석, 국민의당 25~31석을 전망했다. 실제 결과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여야는 이번 총선을 계기로 선거 여론조사와 관련된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유권자의 혼란만 가중시킨다면 여론조사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무엇보다 100개 이상 난립한 업체의 자격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 또 이번에 도입된 무선전화 안심번호제를 잘 다듬어 정당뿐 아니라 여론조사 회사에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경향신문]

10. 설탕과의 전쟁, 재벌 압력에 굴복하면 안 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선포한 ‘설탕과의 전쟁’이 업계와 경제부처의 반발로 순탄치 않은 행보를 예고하고 있다. 식약처는 ‘제1차(2016~2020년) 당류 저감 종합계획’을 세웠으나 지난 7일 총리 주재 국가정책조정회의를 거치며 대폭 후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식약처는 당초 내년 7월부터 시리얼과 즉석식품의 영양표시 의무화를 도입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영양표시 확대 추진으로 변경됐다. 2018년부터 당류 함량이 높은 식품에 ‘고열량·저영양식품’ 표시를 의무화하겠다는 방안도 ‘추진 검토’로 완화됐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부처들이 지나치게 규제를 가하면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는 것이다. 시민 건강증진을 앞세운 식약처가 기업 논리를 대변한 경제부처에 밀렸다는 얘기다. 식품가공업과 제당업에 진출한 재벌의 반발이 심상치 않고 대정부 로비와 압력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설탕과의 전쟁은 매출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악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류 섭취 규제란 세계적 추세와 시민 건강 증진이란 대의를 외면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당류 섭취는 갈수록 늘고 있으며 비만 관련 의료비는 연간 4조원이 넘고 당뇨병 관련 의료비는 2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기업들이 당류 섭취는 소비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으로 접근해선 곤란하다. 앞으로 대체 감미료와 당류 저감제품 개발에 더욱 힘을 쏟아야 생존이 가능할 것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영국은 2018년부터 설탕세를 도입하기로 했으며 캐나다도 탄산, 과실음료와 같은 가당 음료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도 설탕세 도입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식약처는 이번에 국내에서 설탕세 도입은 논의되고 있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도입 시 제품가격 상승으로 매출 감소를 우려하는 업계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설탕과의 전쟁에서 기업을 넘지 못하면 부담은 시민 몫으로 돌아오게 된다.


주요 신문칼럼

1. [뉴시스][리뷰·연극3편]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헨리4세·햄릿아비·보도지침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연극계에서 바로 그 '왕관'의 중독성, 연민, 그리고 치졸함을 다룬 연극 세 편이 주목 받고 있다. 

◇헨리 4세 파트1 & 파트2-왕자와 폴스타프

세종문화회관 산하단체인 서울시극단이 2002년 국내 초연한 뒤 14년 만에 다시 선보이고 있다. 객원으로 초연을 지휘한 데 이어 다시 연출을 맡은 김광보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의 미니멀리즘은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4륜 구동차에 태운 듯 멋스러움과 함께 속도감까지 선사한다. 

원작대로 하면 러닝타임이 5시간이 훌쩍 넘는다. 비디오 플레이어의 빨리감기 버튼을 누르기라도 한 것처럼 약 2시간40분으로 압축했다. 덕분에 밀도감이 높아졌다. 리처드 2세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영국 왕 헨리 4세가 왕관에 극도로 집착하는 심리적 변화가 다이내믹해졌다. 

권력을 향한 헨리 4세의 아들 헨리 왕자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허풍쟁이 궤변가 '폴스타프'와 어울려 밑바닥 삶을 체험하면서 온갖 기행과 방탕을 일삼는다. 하지만 반군에 맞서 승리를 거두는 그가 부친이 잠시 쓰러진 틈을 타 왕관을 제 머리에 얹을 때, 그 무거움은 기꺼이 감당하고픈 것이 된다. 

그 무거운 정도를 대수롭지 않게 만드는 이는 폴스타프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는 햄릿이 있고, 희극에는 샤일록이 있으며, 사극에는 폴스타프'가 있다. 헨리 왕자가 즉위한 뒤 버림받는 드라마틱한 면도 갖춘 그는 뚱뚱하고 늙은 술고래에 난봉꾼이지만 권력의 위선을 통렬히 조롱한다. 서울시극단 단원 이창직의 능수능란함은 폴스타프를 펄떡이게 만든다. 

대학로에서 다방면의 작업에 참여하는 오세혁 작가가 각색했는데 그는 청년 문제에 관심이 크다. '헨리 4세'에서 세대 갈등도 도드라지는 이유다. 왕의 가족으로 태어났으면 충분히 왕이 될 만한 능력과 재주가 많은 젊은이인 홋스퍼는 권력의 무게감을 지난하게 지키려는 이들로 인해 사라져갔다. 14일까지 세종M시어터. 2만~5만원. 세종문화티켓. 02-399-1000

◇햄릿아비 

이성열 연출이 이끄는 극단 백수광부가 창단 20주년 기념 첫번째 공연으로 선보인 새 공동창작극 '햄릿 아비'에서 왕관의 주인은 셰익스피어 '햄릿' 속 햄릿의 아버지다. 자신의 동생에게 억울하게 시해된 원혼이다. 따라서 그의 왕관은 연민이다. 원혼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햄릿아비'는 이 시대의 햄릿아비, 즉 원혼은 누구일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백수광부 단원들은 공동창작극의 특징을 살려 여러 시선으로 시대의 아픔들을 빠짐없이 무대 위에 기록한다.


햄릿이 어느 날 밤 열차를 타고 알 수 없는 곳들을 떠돌며 만나는 상황은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질곡의 역사다. 권력을 잡은 이의 사관에 따라 과거의 역사가 다시 쓰여지고, 고등학생은 빨갱이를 잡겠다며 도시락 폭탄을 만든다. 그 고등학생은 정치, 연예뿐 아니라 연극계 가릴 것 없이 진보인사들의 실명을 거듭하며 거침 없이 욕을 내뱉는다. 

2년 전 죽은 딸을 위해 생일잔치를 벌이는 부모의 모습에서 '세월호 참사'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깨닫게 만든다. 극 속에서 잠시 빠져 나온 배우들은 지난해 연극계에 분 검열 광풍 등의 논란에 대해 거침 없이 털어놓기도 한다. 진짜 왕관(王冠)을 쓴 이들로 인해 햄릿아비들의 왕관은 관(棺)밖에 될 수 없다. '제37회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중 하나다. 17일까지 대학로 SH아트홀. 3만원. 극단 백수광부. 02-813-1674


 ◇보도지침

5공화국 시절 매일 아침 언론사에 은밀히 전달된 보도지침을 다룬 '보도지침'에서 왕관을 쓴 이들은 지침을 내리는 권력자들이다. 그들은 국민들의 눈, 귀, 입을 틀어막기 위해 치졸함으로 점철된 왕관을 움켜잡고자 했다.


연극은 당시 보도지침을 수용하지 않은 몇몇 언론인이 뜻을 같이 해 월간 '말'에 보도지침을 폭로한 실화가 바탕이다. 이 재판 과정을 다룬 법정드라마다. 내용은 상당히 각색됐다. 재판에 연루된 실제인물들 간의 관계와 설정을 연극적으로 꾸몄다. 

실존 인물인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에게서 모티브를 따온 기자 '주혁', '말'지를 연상케하는 '독백'의 발행인 '정배', 변호사 '승욱', 검사 '돈결'은 모두 대학시절 연극반을 같이 한 절친한 친구다. 가장 진보적이던 돈결은 보도지침을 폭로한 주혁과 정배를 기소하려 든다. 승욱은 두 사람을 변호한다. 판사 '원달'은 이들의 대학 스승이자 연극반 선배였다. 법정은 결국 이들 관계의 역사적 집결지다. 

블랙코미디와 엄숙함이 깃든 법정 신과 유쾌함과 문제 의식을 갖게 되는 대학 동아리 신을 오가며 긴장과 이완을 조절한다. 끊임없이 대사를 쏟아내는 주혁 역의 송용진, 승욱 역의 이명행 등 배우들의 열연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자신이 수감된 상황에서 동료들이 대신 차린 돌상을 받은 딸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한다는 주혁의 바람은 심장을 파고든다. 

변정주 연출의 풍자적이면서 고루하지 않고, 재기발랄하면서 가볍지 않은 터치는 세련됐다. 특히 사건의 본질과 함께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부분은 현재를 투영케 한다. 

다만 '보도지침'은 제작사 대표가 대학로의 주관객층인 20, 30대 여성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으로 홍역을 치렀고 일부 관객은 보이콧 중이다. '보도지침'에서는 '연극은 시대의 정신'이라는 말이 수차례 반복된다. 일부 소비패턴의 흐름을 뭉뚱그린 제작사 대표는 시대의 정신을 잘못 읽는 오류를 범했지만, 이로 인해 연극 자체가 추구하는 정신까지 퇴색시키기에는 스태프와 배우들의 노고가 아깝다. 1986년 문성근·강신일을 내세워 400여회 공연하는 동안 서울에서만 5만여명의 관객을 모은 '칠수와 만수'처럼, 연극을 통해 졸렬한 권력에 통렬함을 느끼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 [동아일보][내 생각은/최시영]공공도서 깨끗하게 읽자

올해로 전국 공공도서관이 1000곳을 넘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31일 ‘제2차 도서관 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도서관 기반 확충과 운영 내실화에 가장 많은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환영할 만한 조치다. 올바른 독서 문화를 위해 하드웨어는 발전하는데 이를 운용하는 소프트웨어는 아직 후진적인 건 우려스럽다. 

우선 도서 관리상태에 문제가 있다. 연필로 밑줄이 그어진 것은 물론 지우기 어려운 펜으로 낙서돼 있거나 형광펜으로 표시된 책이 부지기수다. 페이지 일부가 없는 경우도 흔하다. 이물질이 침착된 경우도 있다. 인기 도서나 필독 도서 그리고 간혹 있는 수험서는 대출자의 상식을 의문케 할 정도로 상태가 엉망이다. 이용자의 무책임한 행태를 감독해야 하는 이유다. 

담당자가 대출과 반납을 승인할 때 도서 상태를 점검해 문제 있는 이용자에게 불이익을 줘야 한다. 문체부가 통일된 지침을 마련해 도서관에 이행할 것을 주문해야 추진력과 구속력이 생긴다. 개선되면 각 도서관이 재량으로 관리하면 된다. 정숙을 해치는 것보다 도서를 막 다루는 것이 더 나쁘다. 더럽혀진 책 때문에 이용자 전체가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3. [동아일보][윤세영 따뜻한 동행]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까

활짝 핀 꽃들로 세상이 온통 화사한 봄날에 문득 ‘자연과 인간 사이에선 누가 갑일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 것은 연일 들려오는 ‘갑질 시리즈’ 탓일 게다. 그런 고약한 뉴스는 사람에 대한 희망을 접게 하지만 지난주에 내가 만난 이삿짐 아저씨는 사람에 대한 실망을 다시 희망으로 바꿔주었다.

지난주에 이사를 두 번 했다. 그런데 사무실의 책을 집으로 옮기는 초벌이사에서 이삿짐 아저씨가 얼마나 웃는 낯으로 능숙하게 일을 잘하는지 감탄을 했다. 짐을 실어 나르는 도중에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그곳에 갇히고도 “이사하다 보면 가끔 이런 일이 있다”며 느긋하고 태연했다. 기술자가 달려와 비상수단으로 문은 열었지만 엘리베이터가 정상화되려면 한 시간 이상 걸린다고 했다. 

그 바람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지만 아저씨는 오후 일정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으니 급할 것이 없다며 오히려 우리를 편하게 해주었다. 이사를 하다 보면 항상 변수가 많다는 것. 한 번은 이삿짐을 싣고 갔는데 아직 도배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 8시간을 대기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칠 후 본격적인 이사도 그 아저씨에게 맡긴 것은 당연지사. 도움이 될까 하여 아들을 불렀더니 이번에는 아저씨의 예상보다 일찍 일이 끝난 모양이다. 약정한 이사비용에서 20%를 덜 받겠다고 했다. 아들이 도와주어 일이 수월하게 끝났으니 자기가 일한 만큼만 받겠다는 것이었다. 갑도 없고 을도 없는 정말 기분 좋은 거래였다.

그날 밤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이삿짐 아저씨가 지금 예순 둘인데 일흔다섯까지 건강을 잘 지켜서 일하시는 게 목표래요. 젊은 저도 힘들던데 그렇게 즐겁게 일하시는 모습이 참 대단해 보였어요.”

어쩌다 재벌가에서 태어난 덕에 호강하고 누리는 것들에 대한 감사는커녕 ‘갑질’을 일삼는 사람과 힘든 노동을 하며 살지라도 경우가 반듯하고 올바른 사람. 참으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부류의 삶을 보며 사람에 대한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맛보았다.

지금 도처에 봄꽃들이 피고 진다. 매화와 산수유,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지는 속에 벚꽃이 흩날리고 목련이 하얗게 웃는 봄날, 하마터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뻔했다. 그러나 지는 꽃이 있는 반면 피어나는 꽃이 있듯 악취를 풍기는 한편에서 또한 향기를 전해주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아직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4. [중앙일보][카를로스 고리토의 비정상의 눈] 한국을 사랑하게 된 아주 특별한 이유

요즘 날씨가 풀리면서 곳곳에 꽃들이 활짝 피고 있다. 그 숱한 꽃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벚꽃이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을 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분이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주한 브라질대사관에 계셨던 에지문두 후지타 대사님이다. 벚꽃 하면 그분과 관련된 이야기가 떠오른다.

2014년, 날이 풀리면서 꽃봉오리가 고개를 내밀던 어느 포근한 봄날이었다. 그날따라 막 출근한 대사님이 아주 피곤해 보여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쭤 보았다. 대사님은 허허 웃으며 “이른 새벽부터 벚꽃을 보러 하동에 다녀왔다”고 했다. 대사님이 꺼내 보여준 휴대전화 속에는 아름다운 하동의 풍경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한국에서 봤던 벚꽃 중 가장 아름다운 벚꽃이 거기에 있었다. 연방 감탄을 하는 내게 대사님은 “언젠가 꼭 다녀오라”고 추천을 했다.

후지타 대사님은 그런 분이었다. 통상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좋은 점에 대해 물으면 ‘발전한 기술’ ‘치안과 편리한 생활방식’ ‘매력적인 문화 콘텐트’ 등을 말하지만 후지타 대사님은 늘 한국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능력 있는 외교관으로서 전 세계의 많은 곳을 다녀본 분이었지만 한국을 특히 아끼고 사랑했다. 회의 참석차 이동할 때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한국의 풍경 하나하나를 감상하며 좋아했다. 틈만 나면 사모님과 기르던 강아지, 이렇게 셋이서 함께 한국의 방방곡곡을 여행하는 것을 무척이나 즐겼다.

후지타 대사님은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는데 한국의 자연을 통해 받은 영감을 미술 작품으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나는 그런 대사님을 통해 새삼스럽게 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외교 공관에서 대사라고 하면 보통은 가까이하기 어려운 높은 분이란 인식이 많다. 하지만 후지타 대사님은 정말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모든 직원을 배려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나 역시 대사님께 많은 것을 배웠고 마음 깊이 존경하게 됐다.

5. [동아일보][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배트맨과 슈퍼맨, 문재인과 김종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란 근사한 제목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나를 세 번 죽였다. 재미가 하나도 없었고, 의미도 없었으며, 심지어 길기까지(상영시간 2시간 30분)했던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배트맨과 슈퍼맨이 건곤일척 대결을 벌이는 이유가 미치도록 궁금했다. 공히 인류를 구하는 슈퍼히어로인 둘이 도대체 (여자 문제가 아니라면) 무슨 이유로 맞붙겠는가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는 허무한 결론에 이르렀다. 둘이 싸우는 이유는 단지 힘이 남아돌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배트맨은 슈퍼맨이 영 아니꼽다. 인간도 아닌 외계인 주제에 구원자 행세를 하고 있어서다. 사실, 슈퍼맨은 지구를 지키기보단 파괴하는 존재다. 같은 외계인인 조드 장군에 맞서 눈에서 광선을 뿜어내며 싸우는 과정에서 빌딩이 무너지고 수많은 인간이 희생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럼에도 슈퍼맨은 외계인이라는 초월적 존재이기에 어떤 도덕적 비난도 받지 않은 채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는다.

배트맨은 박사 수료 이상인 자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무지하게 어려운 말로 슈퍼맨의 존재적 문제점을 정의한다. “슈퍼맨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이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각인시켜 주는 데 있다. 슈퍼맨 앞에서 인간은 한낱 우주 생명체 중 하나에 불과해지니까….” 자신에게 의지함이 없이는 인간 스스로는 어떤 일도 해결하지 못하게끔 만듦으로써 인간의 존재 가치와 자유 의지를 추락시키는 암적 존재가 슈퍼맨이란 주장이다.

반면 슈퍼맨은 법 위에 서서 자경단 우두머리 행세를 하는 배트맨이 불만이다. 범죄자들의 몸에 섬뜩한 박쥐 모양 낙인을 푹푹 찍어대고, 악당들을 혼내준다며 무자비한 폭력을 일삼는 배트맨이야말로 악당보다 더한 공포의 대상이라는 얘기다. 슈퍼맨은 말한다. “배트맨이야말로 인류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 영원히 착한 존재는 있을 수 없으니까. 배트맨 때문에 수천 명이 희생됐지. 고담시를 봐. 배트맨이 활약했다고 하지만, 지금 착한 사람이 얼마나 남아 있지?”

어떤가. 배트맨과 슈퍼맨, 누구의 주장이 더욱 그럴싸하게 보이는지?

양자택일하기에 앞서 일단 놀라운 사실은 이 영화 속에서 갈등하고 다투고 대결하는 슈퍼맨과 배트맨은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를 각각 쏙 빼닮아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지구인도 아닌 외계인이 영웅 행세를 한다’는 배트맨의 불만은 홀연히 더민주당으로 들어와 대표 자리에 앉아 난세의 해결사로 떠오른 김종인을 바라보는 문재인의 복잡한 심경은 아닐까? 굴러온 돌(슈퍼맨 혹은 김종인)이 박힌 돌(배트맨 혹은 문재인)을 빼내려 한다는 의심의 형국이 아닌가 말이다.

반대로 배트맨을 흘겨보는 슈퍼맨의 마음은 문재인을 향한 김종인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사심도 없고 깨끗한 외부인인 내가 마른하늘에 빛처럼 나타나 침몰해 가는 당을 구원해 주려 하거늘, 어두운 패권주의로 얼룩진 친노 세력이 도대체 무슨 도덕성과 정당성을 기반으로 나를 ‘바지사장’ 취급하느냐는 불만이 아닐까.

오, 게다가 배트‘맨’과 슈퍼‘맨’처럼 문재‘인’과 김종‘인’도 이름의 끝 글자가 똑같지 않은가! 이런 무시무시한 평행이론이? 배트맨과 슈퍼맨이 처음에는 서로 나쁘지 않은 사이였지만 점차 ‘친구’인지 ‘적’인지 헷갈려한다는 점도 문재인과 김종인의 관계를 절묘하게 포개 놓은 것만 같다. ‘서로 적인 듯하지만 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이 영화의 영어 제목(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중 ‘대(對)’를 뜻하는 영어를 ‘vs’가 아닌 ‘v’로 어중간하게 표기해 놓은 것이리라.

영화 말미에 이르면 공공의 적인 악당 렉스 루터가 만들어낸 무지막지한 괴물 둠스데이에 맞서기 위해 배트맨과 슈퍼맨이 힘을 모으면서 둘의 갈등은 봉합되지만, 이 재미없고 지루한 영화는 악당 렉스 루터의 다음 대사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의 분명한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힘 자체는 순수한 거라고? 그 말은 거짓이야.”


그렇다. 정의를 표방하든 평화를 외치든, 세상 모든 힘의 본질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힘은 그 자체로도 결코 순수하지 않다. 나 같은 힘을 가진 또 다른 존재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 힘의 태생적 본질이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태양도 오직 하나, 영웅도 오직 하나, 구원자도 오직 하나, 아내도 오직 하나여야만 하는 것이다. 아, 지구나 지키면 될 일인 배트맨과 슈퍼맨이 쓸데없고 소모적인 싸움질을 벌인 게 고작 존재증명 때문이었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슈퍼영웅들아! 

지난주 수요일 후지타 대사님께서 본국에서 별세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2009년 4월부터 2015년 9월까지 한국에 계시던 6년 동안 정말 한국을 사랑하고 그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자 했던 분이다. 그분을 기억하는 한국인도 적지 않다. 돌아가신 대사님의 뜻대로 더 많은 사람이 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알게 됐으면 한다. 깊은 애도와 함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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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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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12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이제 선거일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드디어 제20대 총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4년간 대한민국의 진로를 좌우하게 되는 중차대한 행사다. 여야 정당의 지도부와 각 후보자들이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심초사 선거운동에 매달려 온 이상으로 유권자들도 과연 누구를 찍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할 일꾼을 뽑기보다 자칫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 드는 상전을 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팽배해진 정치 불신 속에서도 유권자들이 권리 행사에 관심이 높아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 8~9일 실시된 사전투표에서 이 제도가 도입된 2013년 이래 최고치인 12.2%의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것이 뚜렷한 증거다. 물론 이러한 표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19대 국회가 당리당략에 치우쳐 실망적인 결과를 남겼다는 점에서 사전투표 참여자들 각자가 현명하게 선택했을 것이라 믿을 뿐이다.

그러나 아직도 적지 않은 지역구에서 유권자들의 표심이 흔들리고 있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여야의 독선적인 행태로 미뤄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야가 각각 자신의 표밭으로 간주하던 영남과 호남 지역에서조차 마지막까지 읍소작전으로 일관하며 한 표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도권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불신을 자초한 정치권의 자업자득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후보자들마다 막판까지 서로 책임지지도 못할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총선에 출마한 지역구 후보자들이 내세운 공약을 이행하는 데만 무려 1000조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할 정도라고 한다. 예산을 끌어대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실현이 어려운 방안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도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뜻에서 공허한 약속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하루의 마지막 유세는 양상이 더할 것이다. 판세가 불리하다 싶을수록 허황된 공약으로 유권자의 눈길을 끌려고 들 것이다. 상대방 후보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과 흑색선전도 정점에 이를 것이라 여겨진다. 이럴 때야말로 빈쭉정이 후보를 가려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유권자들이 세심한 눈길로 마지막까지 후보들의 움직임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나라의 운명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다.


2. '만능통장', 고객들 눈속임 하려는가

‘만능통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시작부터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KB국민·신한·우리·IBK기업 등 주요 은행들이 일임형ISA를 어제 출시했지만 당초 금융당국에 신고한 상품 모델포트폴리오(MP)와 차이가 많이 나는 것부터가 그러하다. 은행들이 고객 투자성향에 따라 자금을 운용하는 일임형ISA의 포트폴리오에는 고위험 투자상품 ELS(주가연계증권)가 거의 제외할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이 한 달 전 신탁형ISA를 출시했을 때 ELS를 적극 권유했던 것과 상황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신탁형ISA는 비교적 안전하지만 기대수익률은 낮은 편이다. 이에 비해 일임형ISA는 운용을 맡은 금융회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기 마련이다. 결국 금융사가 책임을 지고 장기간에 걸쳐 상품을 운영해야 하는 일임형의 특성을 고려해 은행들이 ELS 등 고위험 상품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고객이 직접 상품을 구성하는 신탁형ISA의 경우 은행들이 ELS를 적극 권유했던 것과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에서 빚어지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진작부터 우려했던 그대로다.

은행들은 이 같은 영업전략이 ‘불완전 판매’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잠재 위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라는 뜻이다. ISA는 계좌 하나로 예·적금이나 펀드, 파생결합상품 등 여러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통합계좌다. 의무 가입기간이 5년이며, 돈을 찾을 때 수익이 200만원 이하이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가입자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의무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해약할 경우에 대비한 보호장치를 제대로 마련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ISA에 몰리는 자금이 향후 5년내 15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요즘과 같은 저금리 시대에 재산을 불리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ISA가 믿을 수 있는 금융상품이 되도록 안전장치를 갖추는 등 관련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고객유치 경쟁 못지않게 신뢰와 안전성을 높이는 데도 신경을 써야만 할 것이다.

[서울신문]

3. 주먹구구 지역인재 공무원 채용 개선하라

정부서울청사 인사혁신처 사무실에 들어가 자신의 시험성적을 조작한 시험준비생이 학교장 추천 과정에서도 부정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 공무원 7급 지역인재 학교장 추천 시스템에도 구멍이 난 셈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역인재 선발 시험은 2005년부터 도입됐다. 지금까지 이 제도를 통해 755명이 국가공무원이 됐다. 보통 7급 공무원시험 경쟁률은 100대1이 넘지만 학교장 추천을 받으면 경쟁률이 크게 떨어진다. 올해는 110명을 뽑는 데 702명이 추천을 받아 6.4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국가직은 아니지만 최근 마감한 지방직인 서울시 임용시험 7급 일반행정직 경쟁률이 288.3대1인 것과 비교해도 큰 혜택이 아닐 수 없다.

이 제도의 도입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학교장 추천 과정을 대학 자율에 맡기다 보니 선발 기준이 제각각이어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기본적인 자격 요건은 학과 성적 10% 이내, 영어 토익점수 700점 이상, 한국사능력시험 2급 이상 등이다. 상당수 대학이 이러한 자격 요건을 갖춘 학생들이 늘면서 변별력을 높이려고 공직적격성평가(PSAT) 모의시험 점수를 추가해 민간 업체에 위탁했다고 한다. 시험 성적을 조작한 공시생은 대학 측이 모의시험을 위탁한 고시학원에 찾아가 문제지와 답안지를 훔쳐 시험을 치러 교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추천됐다. 비뚤어진 공시생 1명의 범죄 행위로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학교장 추천 과정에 비리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일부 대학은 PSAT 점수를 2회 이상 합산하고 면접을 거치는 등 엄격한 추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대학이 학부 성적이나 면접만으로 선발하는 등 선발 방법이 천차만별이어서 부적격자가 추천을 받을 수 있는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일정한 자격 기준을 명확히 하는 등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제도를 보완하기 바란다. 또한 상당수 국민들은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과거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공직에 합격한 부정한 사례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다. 따라서 기존 합격자들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학교장 추천 과정뿐만 아니라 성적증명서, 토익점수, 한국사능력시험의 부정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인재 채용의 정당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4. 정찰총국 대좌도 귀순, 북 체제 이완 주목한다

대남 공작 업무를 담당하는 북한군 정찰총국 출신 대좌가 지난해 탈북해 한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어제 뒤늦게 확인됐다. 그의 귀순이 관심을 끄는 것은 비단 중국 내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한 직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속한 정찰총국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에게 직보하는 북한의 핵심 권력기관이란 사실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물론 그와 북한 내에 고위급 가족을 둔 식당 종업원들의 잇단 탈북 사태를 북한 체제 붕괴의 전주곡으로 해석하는 건 성급한 일이다. 다만 이런 ‘탈북 도미노’가 북 세습체제의 이완 조짐이라면 분단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할 책임은 우리의 몫임을 엄중히 인식할 때다.

최근 일련의 탈북 사태가 심상찮아 보이는 까닭이 뭐겠나. 과거 북한 주민들의 생활고를 가리키는 ‘고난의 행군기’에 시작된 탈북 러시와는 양상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당시 탈북 대열엔 함경도나 양강도·자강도 등 배고픈 변방 주민들이 대종이었다. 반면 이번에 귀순 사실이 알려진 대좌는 인민군 출신 탈북자 중 최고위급이다. 계급은 우리의 대령급이지만, 현 노동당 대남 비서인 김영철이 이끌던 정찰총국 소속으로 북한 핵심 계층의 일원이다. 지난해 5월 아프리카 주재 북 외교관 및 이번 식당 종업원 탈북 사태와 한 묶음으로 보면 세습체제를 떠받치던 북한 정권 상층부의 동요 징후로 봐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우리는 이처럼 핵심 계층이 하나둘씩 북한을 떠나는 현상을 각별히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북한 체제의 붕괴가 임박했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북한 정권이 체제 유지를 위해 인위적 긴장 조성용으로 위험한 도박을 선택할 개연성에 유의하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북측이 5차 핵실험이나 대남 테러를 자행할 개연성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특히 김정은 정권이 내부를 다잡기 위해 공포정치를 다시 시도할 가능성도 걱정스럽다.

북한은 다음달로 예정된 노동당 제7차 대회를 앞두고 연일 주민들에게 “수령 결사 옹위”를 독려 중이다. 그러나 북한은 핵 개발로 강력한 국제 제재를 받고 있는 지금 주민들을 옥죄거나 대남 위협 수위를 높이는 것은 외려 정권의 수명을 단축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도 과도한 대응으로 선거전에서 괜한 북풍 오해를 자초해선 곤란하다. 탈북자들은 통일 한국에 ‘먼저 온 손님들’로 봐야 한다. 북한발 위기 관리에 내실 있게 임하면서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조용히’ 지원할 때 통일은 소리 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동아일보]

5. 통진당 출신 당선되면 후보 단일화 이끈 문재인 책임져야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 결정으로 해산된 옛 통합진보당 출신 무소속 윤종오 김종훈 후보가 각각 울산 북구와 동구에서 당선권에 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진당 출신이 대거 입당한 신생 민중연합당에서는 당선권에 근접한 후보가 아직 없다. 윤, 김 후보 역시 당선권과 거리가 있었으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적극 지지한 더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당선 가시권에 들었다. 

문 전 대표는 지난달 23일 울산 북구에서 더민주당의 이상헌 후보가 윤 후보를 지지하고 사퇴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해 “울산은 지난 총선과 시장 구청장 시의원 선거에서 야권이 전패한 곳이므로 야권이 승리하려면 단일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묻지 마 단일화’를 촉구했다. 후보자 등록 마감 날인 이틀 뒤 25일에는 단일화 흐름이 울산 동구로 이어져 더민주당의 이수영 후보가 김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사퇴했다. 

윤 후보는 2014년 통진당 소속으로 울산 북구청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TV 토론회에서 “이석기 내란음모는 사실과 다르다”며 “국정원은 멀쩡한 시민도 간첩으로 만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 후보는 2012년 총선에 앞서 통진당 비례대표를 뽑는 경선에서 대리투표를 한 혐의로 2014년 울산지방법원에서 벌금 30만 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더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통진당 출신들과 연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결국 빈말이 됐다. 더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이 2012년 총선에서 통진당과의 연대를 통해 통진당 소속 10명을 국회의원이 되게 한 전과를 잊은 듯하다. 

헌재는 2014년 “통진당의 목적은 1차적으로 폭력에 의해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며 통진당의 해산을 결정했다. 윤, 김 후보가 당선되면 헌재 결정을 우회해 국회에 입성하는 첫 통진당 출신 의원들이 된다. 이들이 민중연합당에 가입이라도 하게 되면 통진당 후신이 다시 국회에 둥지를 트는 셈이다. 문 전 대표는 헌재의 결정을 외면하고 통진당 출신 후보를 밀어준 데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6. 이번 국회 남은 기간에 서비스법·선진화법 처리하라

20대 총선을 이틀 앞둔 어제 민생 구하기 입법촉구 1000만서명운동본부와 경제5단체가 여야 3당을 방문했다. 경제단체 대표들은 “4년 전에도 18대 총선이 끝나고 임기가 한 달 남았을 때 법을 통과시킨 적이 있다”며 서비스산업발전법과 노동개혁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호소했다. 서명운동본부는 서명자가 181만 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여야는 총선 기간 각종 경제공약들을 내놓았다. 새누리당은 성장률 3% 유지와 자영업자 보호를 내놓았고, 더불어민주당도 ‘문제는 경제’라며 일자리 70만 개 창출과 가계소득 증대를 약속했다. 그러나 여야의 공약은 겉만 화려하지 진정성이 의심된다. 19대 국회는 법안 가결률 40.2%에 평균 처리 기간 517일의 기록을 세운 역대 최악의 국회였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350대 기업의 82.4%가 규제개혁 법안 입법 지연으로 손실을 입었다. 자산총액 5조 원 이상 대기업 집단에 대한 규제를 가장 많이 늘려 발목을 잡은 것도 이번 국회였다. 이들이 만든 규제 입법 29건에 가로막혀 인공지능(AI) 로봇 같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사업에도 기업이나 투자자들이 마음껏 투자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19대 국회에서 야당은 줄곧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해 법안 연계를 일삼거나 경제·민생법안 통과를 저지했다. 여당 역시 야당을 설득하거나 개혁 입법을 관철하는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무기력했다. 19대 ‘선량’들이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남은 기간 서비스법을 비롯한 경제살리기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차제에 지난 총선 후 국회 폐막을 한 달쯤 남겨놓고 통과시킨 이른바 국회선진화법도 결자해지 차원에서 고쳐야 한다. 법 개정을 주도한 의원들은 여야가 싸움질을 일삼은 동물국회의 폐단을 없앨 것이라고 했지만 결과는 사상 최악의 무능 무책임 국회였다. 괴물 같은 선진화법을 하루속히 폐기하는 것만이 19대 국회가 속죄하는 길이다.

[중앙일보]

7. 케리의 히로시마 방문, 일제 면죄부 돼선 안 된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어제 원자폭탄 피해의 상징인 일본 히로시마(廣島) 평화공원에 간 것은 나름 의미 있는 일이다. 케리 장관은 미 국무장관으로서는 처음으로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해 14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피폭의 참상을 절감케 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주도로 추진 중인 비핵화 운동이 본격화된 상황이어서 이번 방문은 더욱 뜻깊게 보인다.

그럼에도 일제 침략에 신음했던 한국으로서는 우려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번 방문이 일제의 과오를 희석시켜 일본이 가해자 아닌 피해국이라는 그릇된 메시지를 줄까 두렵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규모 일본 민간인이 희생된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중국 등 주변국을 침략해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고 고통을 준 사실까지 용서되거나 잊혀져서는 안 된다.

오바마 대통령도 다음달 일본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히로시마를 찾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임기 초부터 ‘핵 없는 세상’을 줄기차게 추진해 온 그로서는 역사적인 이곳에서 피날레를 장식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전체의 눈으로 볼 때 지금 미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가는 것은 시기상조다. 우선 일본은 한국·중국 등 피해국들로부터 온전히 용서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국들이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은 일본 정부가 진심으로 옛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정권은 일본군 위안부 및 난징 대학살 등과 같은 민감한 과거사를 그대로 인정하기는커녕 뒤틀어 보려 한다. 특히 지난해 말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를 끌어냈지만 일본 측의 성실한 이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아베 총리의 복심이라는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관방부장관은 최근 “위안부 지원재단 설립과 소녀상 이전은 패키지”라며 합의되지 않은 내용까지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의 하나 오바마의 히로시마행이 성사돼도 이것이 일제 만행에 대해 면죄부가 아님을 미국은 확실히 밝혀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8. 돈 회전 20년來 최저 제대로 돌게 할 방안 찾아야

우리 경제에 돈이 얼마나 잘 도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갈수록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만 나타나 걱정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시중 통화량(M2)을 본원통화(M1)로 나눈 수치인 통화승수가 2월 말 현재 17.2로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한은이 본원통화 1원을 공급할 경우 몇 배에 달하는 통화를 창출했는지 나타내는 지표인데 중앙은행은 통화승수를 보면서 본원통화 공급 규모를 조절해 전체 통화량 수준을 조절한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시중 통화량(M2)으로 나눈 값인 통화유통속도 역시 지난해 말 이미 0.71로 연간 기준 역대 최저로 떨어져 있다. 통화유통속도는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통화가 평균 몇 번 사용됐는지 가늠하는 수치다. 1990년만 해도 1.5에 달했는데 2009년 이후 0.7대로 추락해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한은이 2014년 8월부터 네 차례 금리를 인하하면서 전년 대비로 2014년에 6.6%, 2015년 8.6% 각각 통화량을 늘린 덕분에 시중에 풀린 현금인 화폐발행잔액은 올 2월 말 기준 역대 처음으로 90조원을 넘어섰다. 돈이 이렇게 많이 풀렸는데도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가계는 소비에 나서지 않는다. 기업은 투자는커녕 수익과 유보금을 쌓아두는 데만 몰두해 지난해 금융사에 맡긴 예치금이 50조원으로 늘어났다. 가계도 지갑을 열지 않고 현금을 축적하거나 저축을 택해 지난해 순저축률이 7.7%로 2000년 이후 15년 만에 최고치까지 올랐을 정도다. 시중에 돈을 풀어도 실물경제로 흘러가지 않고 금융권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아무리 돈을 풀어도 기업이나 가계가 투자와 소비에 나서지 않으니 공급과잉을 해소하고 유효 수요를 만들어줘야 한다. 기존 생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거나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깎아내리는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체질을 개선하지 않는 한 금리 인하 등 돈 푸는 통화정책만으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통화정책 효과가 안 먹히고 오히려 무력화되는 유동성 함정에 빠지기 전에 물꼬를 돌려야 한다. 기업의 실질적인 투자를 촉진하고 가계의 과감한 소비를 유도할 적극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9. 탄소 배출 증가율 1위 `환경 후진국` 오명 쓴 한국

지난 20여 년간 이산화탄소(CO2) 배출 증가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한국이 가장 빠르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OECD 회원국의 1인당 CO2 배출량이 1990년 10.29t에서 2013년 9.55t으로 7.2% 감소했지만 한국은 5.41t에서 11.39t으로 110.8%나 증가했다. 전 세계가 온실가스 감축에 매진하고 있는 추세와 역행하는 것이라 창피하고 충격적이다. 이런 보고서가 나온 이유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석탄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1인당 석탄 사용량이 세계 석탄 소비 1위 국가인 중국보다 많다니 놀랍기만 하다.

지난해 12월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전 세계 196개국은 새로운 기후변화 대책인 파리협정을 채택했다. 합의문에서 각국은 장기 목표로 지구 평균 온도의 산업화 이전 대비 상승폭을 섭씨 1.5도까지 제한하기로 했는데 이에 앞서 한국도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배출전망치(BAU) 대비 37% 감축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는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라 지금 같은 CO2 배출 증가율로는 달성하기 힘든 목표치다.

온실가스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발생 빈도가 점점 많아지는 것도 한국을 '환경 후진국'으로 전락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미세먼지는 중국에서 날아오기도 하지만 절반 이상은 국내에 있는 발전소와 공장, 경유차 등에서 발생한다. 지난 주말에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 꽃 구경 나온 상춘객들을 괴롭혔다. 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WHO)가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을 만큼 치명적인데도 정부는 마스크 착용 외에 이렇다 할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세먼지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석탄 등 화석연료를 쓰는 발전소나 공장을 갑자기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세계적 친환경 흐름에 역행해서는 안 된다. 환경 후진국이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려면 태양광과 조력,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면서 석탄연료 의존도를 점차 줄여 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경유차 등에 대한 규제 수준도 높일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

10. 개인정보와 정보인권

래창조과학부의 자료에 의하면 2014년 정부의 통신자료 청구 건수가 2000년에 비해 무려 80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요청기관별로는 경찰(64%), 검찰(33%), 기타(2%), 국정원(1%) 순이었다.

수사정보기관은 범죄자를 잡기 위해 밀행성과 강제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수사 효율성을 위해 영장 없이 통신자료 제공이 수월하게 진행됨에 따라 헌법이 규정한 영장주의 원칙이 훼손되고 있다. 또한 현행 법률상 ‘개인정보’는 생존하는 자연인에 관한 정보로서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성별, 국적 등과 같이 해당 개인을 식별할 수 있거나 다른 정보와 용이하게 결합해 식별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통신망을 이용하는 가입자 정보는 개인정보에 해당하므로 부당한 압수, 수색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며 통신상의 행위로 인해 자신의 정보가 조회되었을 경우 누가, 왜 그랬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법에서 당사자에게 통지해 줄 의무가 규정되지 않음으로 인해 개인의 ‘알 권리’가 침해되고 있으며, 헌법 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권리, 헌법 18조 통신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도 함께 위협받고 있다. 정보통신환경에서의 정보인권을 보호하려면 국회, 정부 수사기관, 통신회사, 국민 등 모든 관련 주체들이 법 개정을 위해 힘써야 한다.

주요 신문칼럼


1. [노컷뉴스][기자수첩] 내가 투표하는 7가지 이유

치와 선거는 자리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치인에게도 유권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누가 당 대표가 되어 당권을 잡고, 누가 당선되어 국회로 들어가느냐에 집중할수록 정치도 선거도 저급해진다. 내가 찍은 사람이 꼭 자리를 차지해야만 의미 있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의 틀을 바꾸고, 정치가 더 나아질 변화의 동력을 제공하고, 정치개혁에 나설 세력들을 키우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가 지적으로 세련된 것처럼 여기는 것도 정치적으로 옳지 못하다. 국민이 보인 관심은 사회분위기로 표현되고 사회분위기는 정치변화의 동력이 된다. 

선거가 정치의 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선거와 선거 사이가 정치이다. 선거 후 당선자와 정당들이 선거 때의 공약을 지키는지 정치개혁에 헌신하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국민이 소환해 따지고 질책했다면? 그 역할을 언론이 감당하고 감시했더라면? 선거가 임박한 지금에 이르러 어느 당을 지지하고 누구를 뽑을 건지 유권자들은 더 확신에 차 있을 것이다. 선거 때 투표소에 나가 한 표 찍고 돌아오면 민주공화국민으로서 정치적 책임을 다 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찍을 사람이 없어도 어쩌겠나 투표는 해야지... ’라는 식으로 떠벌리는 언론도 역할을 방기하거나 교묘히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하는 것이다. 

종교나 종파를 따라 후보와 정당을 선택해 찍는 것도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기독교 개신교 측의 입장은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 내놓은 ‘총선에 임하는 크리스천의 자세’라는 가이드에 잘 드러나 있다. 이 가이드에서는 후보자의 종교를 따지지 말고 후보자와 정당이 제시하는 내용이 기독교적 가치와 일치하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의 언행이 정직한지, 공약이 지역감정이나 구태의연한 정쟁을 조장하지는 않는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지, 양극화 현상을 극복하려 노력하는지 등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가톨릭도 공공선과 사회정의를 기준으로 삼자고 강조한다. 올바른 질서를 세우는 게 아니라 권력을 쟁취하는 것에 매몰된 후보들을 경계하라고 이른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조계종의 총선 관련 자료집이나 불교계 언론을 살피면 ‘빠짐없이 투표할 것’, ‘바르고 깨끗한 선거가 되도록 힘쓸 것’, ‘올바른 후보를 선택할 것’ 등을 주요 골자로 한다. 국민의 고민과 지역의 고충을 내 문제처럼 공감하고 귀 기울여 줄 수 있는 사람이 좋은 후보이며 출신과 학연 지연 등 비합리적인 요소로 대표를 선출하기 보다는 사회의 아픔과 고통해결을 기준으로 정당과 인물을 선택하자고 한다. 종교적 편향이나 이념 대립, 계층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인물도 사회통합에 앞장서야 할 국회의원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다. 종교가 같다고 찍자는 주장은 각 종교 내에서조차도 통용되지 않는 허언이다.  

2. [한국일보]“우리는 젊고 무모하고 유치하고… 옳았다” 애비 별세

“우리는 젊고 무모하고 오만하고 유치하고 고집스러웠고, 또 옳았다(We were youngwe were recklessarrogantsilly,headstrong and we were right).” 애버트(애비) 호프만(Abbort Hoffman)은 저 문장을 만들면서, 모든 술어를 ‘또(and)’로 엮고는 아마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1960,70년대의 미국을 겁 없이 멋대로 산 그가 1989년 오늘(4월 12일) 숨졌다. 향년 52세.

그는 대안 사회를 꿈꾼 저항운동가였다. 대학시절 허버트 마르쿠제의 세례를 입어 신좌파로 분류되지만, 그는 사상을 떠나 반항아였다. 급진운동을 하면서도 히피들과도 어울렸고, 제리 루빈 등과 국제청년당 ‘이피스(YippiesYoung InternationalParty)’를 창당하기도 했다. 

그와 이피스가 일으킨 파문은 한둘이 아니다. 67년 8월, 뉴욕증권거래소 관람석에서 진짜와 가짜를 섞은 지폐 뭉치를 뿌려 돈을 주우려는 거래인들로 난장판이 되게 한 일이 있었다. ‘주식놀이’를 비꼰 퍼포먼스였다. 그 직후 거래소는 2층 갤러리 난간을 방탄 유리로 막았다. 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장에 돼지를 끌고 가기도 했다. 돼지는 그 해 민주당 대선 후보를 조롱하기 위해 내세운 이피의 대선 후보였다. 호프만 등 주동자들에 대한 재판은 반전ㆍ반정부 시위를 방불케 했다. 71년 그는 돈 없이 사는 법 안내서라는 ‘이 책을 훔쳐라 Steal This Book’를 출간했다.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였지만, 제목을 따라 책을 훔쳐가는 이들이 하도 많아 그의 책을 취급하지 않는 서점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86년 11월 그와 몇몇 학생들은 매사추세츠 앰허스트대학 행정실을 점거했다. 학칙상 합법ㆍ준법기관만 교내 행사를 할 수 있는데, 대학본부가 준법기관이 아닌 CIA에게 교내 신입요원 채용행사를 하게 허락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재판에서 그들은 전직 요원들까지 증인으로 소환, CIA가 니카라과 등 중남미에서 자행한 불법행위를 폭로했다. 

사인은 수면제 과다복용이었다. 나이 든 자신이 싫고, 활력을 잃어버린 청년세대가 싫고,보수로 회귀한 그의 80년대도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지인들은 여겼다. 

3. [국민일보]그린재킷 윌렛, 그 뒤엔 '아내+복덩이'

잉글랜드인들에게 마스터스 토너먼트는 지난 82년 동안 ‘악몽’이었다. 딱 세 번 우승했는데 그것도 단 한명의 선수가 차지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린 재킷’을 차지하는 새로운 ‘잉글리시맨’이 나오길 더 학수고대했는지 모른다. 10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2016 마스터스 대회에서 새로운 잉글랜드인 챔피언이 탄생했다. PGA투어 무대의 우승이 전무했던 대니 윌렛(29)이 바로 주인공이다. 상금은 180만 달러(약 20억원)이다.

윌렛은 이날 합계 5언파 283타로 4라운드를 마친 뒤 라커룸에서 스마트폰으로 아내 니콜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10일 전 아들 자카리아(Zackharia) 제임스를 출산한 니콜은 남편에게 “잘 했느냐”고 물었고, 윌렛은 “아직은 1등”이라고 답했다. 바로 그때 3언더파 2위로 그를 추격 중이던 전년도 챔피언 조던 스피스는 17번홀에서 1.5m도 안 되는 버디퍼트를 놓쳤다. 통화 도중에 윌렛은 사실상 우승을 확정지은 것이다. 스피스가 18번홀에서 버디를 한다 해도 1타차 1위에 오를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윌렛에게 이번 대회 우승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내의 힘’이었다. 대회전 그는 4월 10일이라는 숫자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니콜이 자카리아를 낳는 출산예정일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윌렛은 마스터스 참가를 포기했다. 세계 최고의 대회보다 아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이 더 중요했다. 그런데 아내는 예정일을 열흘 앞서 아들을 낳았다. 부랴부랴 윌렛은 대회 참가신청을 했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로 날아갔다. 대회 참가선수 중 신청 순위는 맨 마지막인 89번이었다. 

니콜은 출산 전에도 남편의 마스터스 출전을 간절히 염원하며 자신의 트위터에 “여보, 꼭 마스터스에 가야 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지난해 이 대회 사전행사인 파3 콘테스트에 윌렛의 캐디로 나섰던 그녀다. 공교롭게도 남편이 그린 재킷을 입은 날은 니콜의 생일(10일)이었다. ‘그래스 그린(Grass Green)’으로 대변되는 마스터스의 녹색이 윌렛 가족 전체에게 엄청난 은총을 내린 셈이다.

1987년 영국 요크셔주 셰필드에서 성공회 목사인 아버지와 수학교사인 어머니 사이의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난 윌렛은 어린 시절 형들과 동네 근처 양떼 목장의 잔디밭에 파3홀을 만들어놓고 시합하며 골프를 배웠다. 아마추어 세계랭킹 1위까지 올랐지만 2008년 프로 데뷔후 7년 가까이 무명생활을 이어오다 2014년부터 올해까지 유러피안투어 4승을 거뒀다. 1년 전만해도 그의 세계랭킹은 102위였다. 이번 대회에는 세계랭킹 12위로 참가했다.

윌렛과 우승경쟁을 벌였던 스피스는 ‘아멘 코너’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전반 6∼9번홀 4연속 버디로 기세등등했던 스피스는 그린 앞 대각선 워터해저드로 악명높은 짧은 파3 12번홀에서 주말골퍼보다도 못한 아이언샷 두 방으로 지옥으로 떨어졌다. 생크성 티샷이 오른쪽으로 밀려 ‘넬슨 브리지’ 방향 워터해저드에 볼을 빠뜨렸고, 1벌타 후 50m 어프로치 아이언샷도 엄청난 뒤땅을 내며 또 물에 빠뜨렸다. 5번째 샷은 벙커행(行). 7타 만에 홀아웃하며 ‘쿼드러플 보기’를 범했다. 이때 그린 재킷의 향배는 윌렛에게로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홀에서 2011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도 전날까지 4타 차 선두를 달리다 최종 라운드 12번홀에서 4퍼트 더블보기로 우승을 날렸다. 2013년에는 2연패를 노리던 버바 왓슨(미국)이 최종라운드에서 3차례 볼을 물에 빠트리며 10타를 적어내고 고개를 떨궜다.

마스터스를 차지한 두 번째 잉글랜드인이 된 윌렛에 대해 영국 일간 가디언은 “요크셔 지방의 목사아들이 오거스타를 정복했다”고 썼고, 텔레그래프는 ‘윌렛의 숨겨진 5가지 사실’이란 특집기사를 타전했다. 윌렛에 앞서 ‘명인열전’의 그린 재킷을 차지한 잉글랜드인은 1996년 닉 팔도(1989, 1990, 1996년 3승)였다. 딱 20년 전이다. 

5. [서울신문][데스크 시각] 어느 노부부의 마지막 편지/박찬구 정책뉴스부장

70대 노부부가 세상을 놓았다. 남편은 유서에 ‘암에 걸린 아내의 병세가 좋아지지 않아 같이 가기로 했다’고 적었다. 강변 승용차 안에서 노부부는 손을 꼭 잡고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노부부는 ‘우리는 가족이 없다’며 화장을 부탁하는 종이를 남기곤 10평 오피스텔 거실에서 6개월 만에 발견됐다. 최근 두 달 사이 일어난 일이다. 무엇이 이들을 비극적 선택으로 몰았을까. 낱낱의 사연이야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하기까지 이웃과 친지, 주변의 손길이 이들이 닿을 수 있는 시선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회안전망이 이들을 걸러 낼 수 있었다면 노부부의 꼭 잡은 두 손이 덜 외로운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테다. 우리의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한지, 통계와 정책 홍보 속에 가린 공동체의 민낯이 얼마나 황량한지 노부부는 우리에게 경고를 보낸다. 죽음을 미화하거나 두둔할 생각은 없다. 다만, 경계로 삼으려 함이다.

노부부에게서 ‘탄광 속 카나리아’를 떠올린다. 호흡기가 약한 카나리아는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에게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유독가스가 퍼져 카나리아가 노래를 멈추고 쓰러지면 광부는 위기를 알아차리고 서둘러 대피했다. 카나리아가 위험 신호를 보내듯 노부부는 우리 공동체에 사회안전망의 허점과 사각지대를 침묵으로 역설하고 있다. 노부부뿐만이 아니다. 집중 단속의 결과라고는 하지만 아동학대가 줄을 잇고, 취업과 생계의 어려움에 지친 청년과 가장, 부모의 일탈 사례가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진다. 국가에서 생계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빈곤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이 68만명에 이른다는 분석도 나왔다.

사회안전망은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주춧돌 역할을 한다. 복지 선진국에 비해 사회안전망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사회 전반의 인식과 정책적 노력이 절실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양한 궤적을 그리는 사회 구성원의 생애주기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려면 4대보험과 공적부조, 각종 복지사업 등 단계별·수준별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확충돼야 한다. 이는 곧 국가와 사회의 기본 책무라 할 수 있다. 두 바퀴로 굴러가는 우리 사회의 한 축이 시장경제의 발전이라면 또 다른 한 축은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쌓아 올려 지속 가능한 성장의 토양을 조성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공동체의 의제가 제대로 다뤄지려면 무엇보다 정치와 국회의 영역에서 다양한 계층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대안을 모색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정치는 여전히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돼 있다. 공동체의 사회적 의제는 종종 정치 투쟁의 소재로 변질되고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본질이 희석된다. 구성원의 염원과 기대는 때로 무시되고 배제된다. 시민이 일상으로 겪는 비극적 참상이 ‘정부·여당의 잘못’, ‘야당의 발목 잡기’, ‘부처 간 영역다툼’ 식으로 틀짓기 되다 보니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실질적인 노력과 사회적 타협은 뒤처지는 게 아닌가.

소외된 그늘에서 보내는 경고음을 넋두리나 한탄 정도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단기간에 모든 사각지대를 치유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새로 꾸려질 20대 국회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사각지대 해소’라는 과제를 오롯이 직시하고 사회안전망의 틈새를 메워 나가는 데 매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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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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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11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세계일보]

1. 탈북자 관리시스템 무용지물 만들어선 안돼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출해 국내에 들어온 것은 당국이 치밀한 작전을 펼친 결과로 보인다. 이들이 동남아 제3국을 경유해 입국한 것은 해당국가의 외교적 입장을 고려한 조치다. 탈북자 입국은 인도주의 차원에서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식당 매출이 급감했는데 북한 당국의 외화 상납 요구는 강화돼 곤경에 처했다고 한다. 북한으로 돌아가면 처벌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입국 경위와 발표를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얘기도 제각각이다. 이들이 근무한 북한 해외식당이 어디인지에 대해 중국 저장성이라는 주장과 동남아 국가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북한은 중국과 동남아 등 12개국에서 130여곳의 식당을 운영하는데 이 중 100여곳이 중국에 있다. 중국 내 식당이었다면 중국 정부의 용인과 한·중 간 조율이 있었을 것이다. 대북 제재에 대한 협력 차원이라는 해석도 있다. 중국의 탈북자 정책 변화 징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발표 배경과 시점이다. 정부는 이들이 입국한 다음날 이 같은 사실을 전격 발표했다. 지금까지 신변 보호를 이유로 탈북자 입국 확인조차 꺼리던 정부가 조사도 하지 않고 서둘러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어제 “이 같은 사례가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 발표는 탈북을 준비 중인 사람들에게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북한의 대남 선전용 매체는 탈북자들을 ‘인간 쓰레기’라고 비난했고, 중국 동북 3성을 관할하는 선양 주재 한국총영사관은 교민들에게 ‘북측이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긴급 안전공지문을 발송했다. 그러니 무리한 발표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통일부 대변인은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한꺼번에 탈북해 입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대북 제재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이 서둘러 발표할 이유가 되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국가정보원이 이번 사건을 주도하면서 탈북자 관리시스템 마저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탈북 관련 외교 시스템을 무너뜨린 것은 대외관계에서 나쁜 전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천만한 일이다. 총선이 임박한 시점이어서 논란의 소지도 크다. 정부는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놔야 한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엄중한 시점에서 이런 식의 논란은 국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울신문]

2. 재벌 대물림 경영 전 '인성교육' 먼저 시키라

이번에는 현대가(家)다. 현대가 3세인 정일선 현대 BNG스틸 사장의 갑질 역시 가관이었다. 정 사장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고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장남이다. 그의 횡포는 배우만 캐스팅하면 그대로 개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도 손색없다. 운전기사용 수행 매뉴얼이 A4 용지로 100여장이나 된다는 사실부터 어처구니가 없다. 빨리 가자는 명령이 떨어지면 교통법규를 모두 무시하고 불법 운행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벌점에 감봉, 퇴직 처분됐다. 길이 막히면 수행 기사들은 운전 중에도 뒤통수를 맞거나 폭언과 폭행을 수시로 당했다. 매뉴얼을 어기면 정신교육을 받게 했다는데, 대체 정신교육은 누가 받아야 했을지 의문스럽다.

가당찮은 행실에 공분이 쏟아지니 정 사장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실었다. 눈곱만큼의 진정성을 찾기 힘든 졸속 사과는 혹 떼려다 혹 붙인 꼴로 역풍을 맞고 있다. “젊은 혈기에 자제력이 부족했다”는 사과 내용에 여론은 아연실색이다. 46세나 된 중년이 젊은 혈기를 핑계 삼는 태도를 납득할 사람은 없다.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소아병적이라는 비판이 들끓는 이유다.

갈수록 태산이다. 제 정신 박힌 오너라면 상상할 수 없는 천박한 행태들이 사흘이 멀게 들통난다. 수행 기사를 노예처럼 부린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셔터를 내렸다고 경비원을 때린 ‘미스터 피자’ 정우현 MPK 회장 사건이 며칠 전 일이다. 안하무인의 횡포를 일부 오너들의 인격장애로만 넘길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정 사장과 이 부회장은 능력과 별개로 경영 세습의 특혜를 누린 재벌 3세들이다. 노비문서 같은 매뉴얼로 지탄받는 것도 개긴도긴이다. 재벌 금수저 세계에는 비상식적인 비서 매뉴얼이 상식으로 통하고 있는지도 짚고 넘길 일이다.

‘재벌 갑질’이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정식 등재돼야 할 판이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40, 50세가 넘어도 기본 인성조차 갖추지 못한 재벌 후손들을 참고 보기 힘들다. 고질이 된 갑질병을 고치려면 일벌백계의 징벌이 따르는 수밖에 없다. 세계 경영사에 유례없는 대물림 경영에 제동이 걸리지 않으려면 재벌가는 지금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천방지축 3, 4세가 기업의 얼굴에 구정물을 튀기지 않도록 인성 교육부터 제대로 시켜야 한다. 기업은 고객 없이 설 수 없다.

3. 최고 사전투표율, 최고 총선투표율로 이어지길

8, 9일 이틀간 진행된 20대 총선 사전투표율이 12.2%로 최종 집계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사전투표에는 전국 유권자 4210여만명 중 513만여명이 참여했다. 이는 2014년 지방선거 사전투표율 11.5%보다 0.7% 포인트 올라간 역대 최고치다. 높아진 사전투표율이 최종 투표율까지 끌어올렸으면 한다. 하지만 여야의 극심한 공천 갈등으로 인한 정치 불신 등으로 최종 투표율이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당초 예상된 사전투표율 14~15%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이제 끝난 사전투표에 크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투표 당일날 얼마나 투표하는가다.

이번 총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경제위기와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인한 안보위기 등 안팎으로 헤쳐 나가야 할 파고가 높다. 파고를 넘으려면 능력 있는 국회, 멀리 내다보는 국회가 있어야 한다. 19대 국회처럼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밤낮 끼리끼리 이해관계에 얽혀 싸움질이나 해서는 위기 극복은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구호로 ‘문제는 경제다’를 내걸고 있지만 ‘문제는 정치다’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들도 많다. 함량 미달의 국회가 경제는 물론 국가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보는 까닭에서다.

제대로 된 국회라면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올바른 정책은 입법으로 힘을 실어 주고, 그렇지 않다면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국회와 행정부가 견제와 균형의 추를 유지해야 민주주의도, 국가도 발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간의 정치는 외려 국정의 난맥상만 초래하는 진원지가 됐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할 일을 안 하고, 계파의 이익과 기득권 앞에서는 여야 모두 한통속이었다. 이런 정치를 확 뜯어고치려면 적극적인 투표 참여가 필수다.

총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 더민주는 80~110석, 국민의당은 원내교섭단체가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체 지역구 253곳의 3분의1 정도가 안갯속이라고 한다. 여야 선거 판세가 혼전 양상을 보이면서 유권자들을 향한 각 당의 구애작전도 치열하다. 유세 과정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막말과 선심성 공약들이 난무하고 있다. 일부 후보들의 군부대 이전 공약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체 부지 선정과 재원 대책 등도 없이 안보와 직결된 사안을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식이다. 무책임한 공약을 일삼고, 막말을 서슴지 않는 후보 등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가차 없이 투표로 심판해야 한다.

4. 北 집단탈출 보고도 核 개발 미망 못 벗나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의 지상분출시험 장면을 그제 공개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평북 철산군 동창리 서해미사일발사장에서 진행된 분출시험을 직접 시찰한 뒤 “적대 세력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는 확고한 담보를 마련했다”며 신형 ICBM에 보다 위력적인 핵탄두를 장착해 미국 본토 등을 타격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의 엄혹한 제재 국면에서도 핵과 미사일 개발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김정은의 아둔함이 안타깝다. 집단탈출 등 심각한 내부 동요조차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중국 내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의 한국행은 김정은 정권으로선 실로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과거에도 1987년 김만철씨 일가족 탈북 등 집단탈출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변경의 주민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탈북한 것이지 이번처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13명이 ‘한 배’를 탄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잘 알려져 있듯이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들은 부모가 대부분 출신 성분이 좋은 평양 주민들이고, 그들 역시 북한 내에서 김정은의 처 리설주의 모교인 금성학원 등 예능 명문학교를 졸업한 재원들이다. 자긍심 또한 대단하다고 한다.

관계 당국의 심층조사가 필요하겠지만 기득권층, 또는 체제수호 세력의 일원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그들이 북한 체제에 등을 돌리고 집단탈출한 것이다.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들은 공동 숙식, 합동 출퇴근 등 엄격한 통제를 받으며 근무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한국행을 결심한 것은 그만큼 대북 제재 이후 사정이 절박했다는 방증으로도 읽힌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해외 북한 식당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경영난에 봉착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외화 상납 요구는 가중되고, 충족되지 않으면 문책받을 게 불 보듯 뻔하니 좌불안석 아니었겠나.

대북 제재 이후 김정은 정권은 ‘제2의 고난의 행군’ ‘군자리 정신’ 등을 강조하면서 주민들의 인내를 종용해 왔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북한 주민의 식량 배급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정도 줄었다.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지는데 핵과 미사일 개발에는 아낌없이 돈을 쏟아붓고 있으니 과연 나라 운영을 책임진 집권자의 양심을 갖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김정은의 ‘핵공격 수단 다종화·다양화’ 지침에 따라 핵탄두 기폭장치, 대기권 재진입체 등을 공개하는 등 핵·미사일 능력을 과시하는 데 혈안이 돼 있지 않은가.

해외에서 운영 중인 북한 식당은 12개국에 130여개가 있다. 여기서 근무하는 종업원을 포함해 전 세계에는 5만명 이상의 북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핵·미사일 개발에 쓰이는 외화 벌이에 나서고 있다. 이들도 눈과 귀가 있다. 엄격한 통제 속에서도 한국 TV드라마를 보고 남북의 현격한 국력차와 북한의 폐쇄성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확인됐다. 김정은 정권이 핵·미사일 개발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집단탈출이 도미노처럼 이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핵을 포기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5. 막판여론 공표 막는 '깜깜이 선거', 표심 왜곡시킬 판

각 당이 어제 자체 판세를 분석한 결과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포함한 4·13총선 예상 의석수를 새누리당은 145석 내외, 더불어민주당은 100석 이하, 국민의당은 35석 내외로 추정했다. 주요 여론조사기관 4곳이 선거일 6일 전 여론조사 공표 금지 때까지의 조사 결과와 정당 지지율을 합산해 새누리당 157∼175석, 더민주당 83∼100석, 국민의당 25∼31석이 나올 것으로 전망한 것과는 차이가 크다. 어느 당이 엄살을 부리고 어느 당이 위기를 맞고 있는지, 또 어떤 돌풍이 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깜깜이 선거’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연일 “새누리당 과반수가 깨지게 되면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어려움이 닥쳐올 수 있다”고 호소해 지지층 사이에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더민주당이 어제 “새누리당에서 엄살과 쇼를 부리고 있는데 180석 정도의 거대 여당이 출현할 것”이라며 야권 지지층의 경계심을 자극하는 것과 딴판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만이 “새누리당이나 더민주당 지지자지만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선 3번 찍겠다는 유권자가 많다”며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자신했다. 누구 말이 맞는지 헷갈린다. 공직선거법이 선거일 6일 전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유권자들은 각 당의 주장만 사실 여부도 알지 못한 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선진국 가운데 여론조사 결과를 선거일 전 일주일 넘게 공표를 금지하는 나라는 이탈리아 정도에 불과하다. 국회가 1월 정당만이 무선전화 안심번호를 이용해 여론조사를 할 수 있도록 선거법을 개정한 것도 유권자의 ‘정보 비대칭’을 증폭시켰다. 정당들은 이동통신사에서 안심번호를 구입해 당내 경선에 활용하고, 여론조사 공표 금지 이후에도 내부적으로 계속 여론조사를 실시해 선거 전략을 세우고 있다. 유권자들은 정당들이 발표하는 판세 분석이 정확한 것인지, 선거 전략인지 알 수가 없다.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흑색선전이 유통돼 표심이 왜곡될 수도 있는 일이다. 

2002년 야권에서 노무현-정몽준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여론조사로 한 이후 14년이 지난 지금도 각 정당은 여론조사로 후보를 공천하고, 여론조사를 무기로 표심을 흔들고 있다.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에 등록된 20대 총선 관련 여론조사가 9일 1403건으로 2014년 지방선거 때의 1.7배다. 특히 자동응답시스템(ARS) 조사는 응답률도 떨어지는데 등록 기준의 문턱이 낮아 부실한 조사를 심의위가 걸러내지도 못하고 있다. 사람과 정책을 보고 판단해야 할 선거를 오차범위가 크고 오류도 많은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것은 ‘외주 민주주의’라는 비판이 나온다. 부실 여론조사를 걸러내는 조건으로 여론조사를 선거 하루 전까지 공표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

[이데일리]

6. 정일선 사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가(家) 3세인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이 ‘운전기사 갑질 매뉴얼’ 논란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정 사장은 그동안 운전기사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는데 이러한 사실이 운전기사 증언으로 드러난 것이다. 회사측은 A4용지 140장에 달하는 ‘수행 기사 매뉴얼’을 만들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기사가 ‘가자’라는 문자를 받으면 번개같이 뛰어나와 출발 30분 전부터 대기하고 정일선 사장이 빨리 가자고 할 때는 신호·차선·버스전용차로를 대부분 무시하라는 내용도 담겨있다. 기사들이 이를 지키지 못하면 정 사장은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하고 주먹으로 기사 머리를 내리치는 폭행도 일삼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기사들이 매뉴얼을 지키지 못할 때마다 벌점을 받고 벌점 누적에 따라 정신 교육·견책·감봉·퇴직 조치가 취해졌다고 한다. 이 정도면 업무 매뉴얼이 아닌 ‘노예 매뉴얼’이나 별로 다를 바 없다. 

정 사장은 고(故) 정몽우 전(前)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두 아들 중 장남이다. 고 정몽우 전 회장은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넷째 아들이다. 정 사장의 할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봐, 해봤어?”라는 말로 함축되는 기업가정신을 선보이며 국내 산업화를 이끈 위인이다. 정 사장도 지난 7일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신뢰와 혁신으로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100년 역사를 창조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히지 않았던가. 그러나 회사 구성원인 기사에게 온갖 갑질을 하면서 고객을 섬기겠다는 정 사장의 발표는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기업 총수들의 갑질 논란은 정일선 사장만이 아니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前) 부사장을 비롯해 김만식 몽고식품 전 명예회장,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 등 총수 갑질이 잊을만 하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의 그릇된 행태가 ‘반(反)기업 정서’를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 않는가. 무한 경쟁시대를 맞아 기업 총수들이 맞서 싸워야 할 상대는 회사 종업원이 아닌 글로벌기업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7. 치솟는 미세먼지와 오보… 환경부 장관은 뭐하나

주말 전국을 강타한 미세먼지로 국민이 큰 고통을 겪었다. 사흘 연속 계속된 미세먼지는 국민의 일상을 망가뜨리고 건강을 위협했다. 서울의 농도는 주의보 발령 기준인 2시간 이상 ㎥당 150㎍을 훨씬 넘는 241㎍까지 치솟았다. 본격적인 황사철을 맞아 불청객의 습격은 더 잦을 것으로 보인다. 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WHO)가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할 정도로 건강에 치명적이다. 초미세먼지는 숨을 쉴 때 폐나 심장에 침투해 각종 질환을 일으키는 ‘침묵의 살인자’로도 불린다. 디젤차 도심 진입 제한 등 선진국이 미세먼지 감축에 힘을 쏟는 이유다.

환경부의 대처는 실망을 넘어 공분을 자아내게 한다. 가뜩이나 예보 정확도가 62%에 그쳐 불신이 큰데 이번에는 사흘 내내 오보를 냈다. 예보를 맡은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은 8일 농도를 ‘보통’으로 발표했지만 4시간도 안 돼 ‘주의보’ 수준으로 치솟았다. 상춘객이 많았던 토·일요일은 더 심했다. 수도권 농도를 ‘나쁨’ 수준이라고 했는데 실제론 숨이 턱턱 막히는 ‘매우 나쁨’ 수준까지 급상승했다. 올 초 대통령 업무보고 때 예보 정확도를 높이겠다고 한 환경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더 한심한 것은 인력·장비·예산 타령만 한다는 것이다. 예보 전담자가 12명뿐이고, 장비 개선 예산이 없으며, 기상청과의 통합 운영도 안 된다는 주장이다. 재임기간이 38개월로 현 정부 최장 국무위원인 윤성규 장관은 도대체 뭘 하고 있단 말인가. 효율적 조직 운영도, 예산 확보도 장관의 책임 아닌가.

윤 장관은 사즉생의 각오를 보여야 한다. 미세먼지는 발생 요인이 복합적인 만큼 중국과의 환경외교를 강화하고, 당장 예보의 선진화에 나서야 한다. 특히 경유 승용차 도입 허용에 따라 2005년 565만 대였던 경유차가 지난해 862만 대로 급증한 것에 대한 정책 재설계도 필요하다. 자동차 제조사의 배기가스 조작사건에서 봤듯 ‘클린 디젤’의 허구성이 드러나고 있다. ‘소극 행정’이 윤 장관의 장수 비결이란 소리가 들린다. 미세먼지에도 소극적인 장관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매일경제]

8. 아베노믹스 한계 드러낸 엔고 후폭풍 대비해야

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달러당 엔화 환율은 작년 6월 초 125엔으로 고점을 찍은 후 올해 1월까지 줄곧 120엔 선을 오르내렸다. 하지만 지난주 말에는 108엔 선까지 밀렸다. 그만큼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뛴 것이다.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뜻을 내비치면서 달러 강세가 멈춘 데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엔화 수요가 크게 늘어난 탓이다.

갑작스러운 엔고는 아베노믹스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공격적인 통화 살포다. 아베노믹스가 가시화한 2012년 9월부터 작년 6월까지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38%나 추락했다. 엔저 공습 덕분에 일본 기업들 이익이 급증하면서 닛케이지수는 9000선에서 2만 선으로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0개월 새 엔화 가치가 16% 가까이 반등하면서 엔저와 기업 이익 증대의 선순환 고리는 끊어졌다. 

일본 기업들이 올해 들어 엔고 때문에 날린 이익만 5조엔(약 53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익이 줄어든 기업들은 임금 인상을 더욱 꺼리게 되고 이는 가뜩이나 부진한 내수를 더욱 위축시켜 디플레이션 압력을 키울 것이다. 아베노믹스의 세 가지 화살(통화 살포, 재정 확대, 구조개혁) 가운데 유일하게 작동했던 통화정책이 엔고라는 거센 역풍을 맞으면서 자칫 아베노믹스 전체가 좌초하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도 팽배해 있다. 

이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아베노믹스 3년의 경험은 무엇보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소홀히 하면서 무작정 돈을 풀어 경기를 띄우려고 하면 일시적인 성과는 거둘 수 있어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일본의 양적완화(QE)와 마이너스 금리 정책 실험은 뜻밖의 역풍으로 무위에 그칠 위험을 안고 있다.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엔고로 일본 기업과 수출 시장 경합도가 가장 높은 한국 기업들이 어느 정도 반사이익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일본 정부가 다음달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두고 무리하게 엔고 저지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지만 더욱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통한 엔저 공습은 언제든지 재개될 수 있다. 기업들은 그전에 흐트러진 수출 전략을 재정비하고 정부는 각국 통화 가치의 경쟁적 평가절하를 막을 국제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9. 공공기관장 빈자리 총선 후 '정피아'로 채워선 안돼

현재 기관장 자리가 비어 있는 공공기관은 7개이고 총선 후 3개월 이내에 임기 만료로 공석이 되는 공공기관장 자리도 2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번 4·13 총선 출마 때문에 중도하차한 기관장은 13명인데 이 중 5명의 자리가 아직 비어 있다. 법률구조공단 이사장 자리는 5개월째 공석이고, 지역난방공사는 2월 사장 공모를 했지만 적합한 인물이 없다면서 재공모에 들어갔다. 지난달 사장이 사임한 코레일은 아직 공모 절차를 시작도 하지 않았다. 7월까지 기관장 임기가 만료되는 공공기관은 21곳이지만 사장 공모에 들어간 곳은 3개뿐이다.

공공기관장 인사와 공모 절차가 이렇게 늦어지자 낙선자나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낙천자에게 주려고 의도적으로 늦추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선거가 끝난 후 '정피아(정치권 마피아)'들이 공공기관 요직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는 현상이 잦았는데 더 이상 이런 구태가 반복돼선 안된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새로 임명된 금융공공기관의 사외이사 중 상당수가 정피아로 채워진 걸 보면 공공기관장 인사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민간 금융기업의 사외이사 기준을 강화해놓고 정작 주택금융공사, 신용보증기금 등의 사외이사에는 정피아가 득세하게 해놓은 것이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잿밥에만 관심 있는 정치인들을 공공기관으로 내려보냈다가 경영을 망친 경우는 한두 번이 아니다. 인천공항공사가 대표적이다. 세계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했던 이 공기업은 정피아 CEO들이 줄줄이 정치판으로 떠나면서 위상이 급격히 추락했다. 언제까지 공공기관을 정치인들이 스펙 관리나 하는 놀이터로 방치할 것인가.

전문성 없는 수장의 폐해, 걸핏하면 발생하는 경영 공백으로 인한 조직의 경쟁력 상실은 수도 없이 봐왔다. 총선 후 낙선자들이 위로 선물이라도 받듯 우수수 공공기관장 자리를 꿰차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국민의 이런 우려를 불식하려면 전문성 있는 인물을 배치하는 투명한 인사를 서둘러 단행해야 한다.

10. 은행 일임형 ISA 과열경쟁·불완전판매 막아야

증권사에 이어 은행도 오늘부터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판매하는데 준비가 제대로 됐는지 걱정이다. 지난달 14일 신탁형 ISA를 출시하며 공격적인 판촉전을 벌였으니 일임형에 대해서도 가입자 유치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일찌감치 모델포트폴리오를 제시한 데 이어 고액의 경품까지 내걸었다고 하니 재테크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이 대거 몰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지 않아도 ISA는 파격적인 비과세 혜택으로 출시 12일 만에 100만명이 가입할 만큼 인기가 높다. 매년 2000만원까지 5년 동안 투자할 수 있는데 수익금 200만원에 대해서는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탁형은 가입자가 알아서 상품을 고르는 것이라 논란의 소지가 별로 없지만 일임형은 금융회사가 가입자 성향에 따라 투자 상품을 정해 운용하는 것이라 손실이 나면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 일임 경험이 없는 은행 직원들이 가입 실적을 채우는 것에 급급해 상품 설명을 소홀히 한다면 후유증이 생길 게 뻔하다. 일임형 ISA는 예금과 적금뿐 아니라 위험이 높은 주식형 펀드와 파생결합증권에도 투자하기 때문에 원리금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은행 창구 직원이 안전한 금융상품인 것처럼 현혹해 가입을 유도하면 큰일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7일 주요 은행 부행장들을 소집해 과당경쟁을 자제할 것을 주문했는데 말로만 그쳐서는 안된다. 은행 창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세심하게 살피고 수시로 암행 감찰을 시행해 불완전판매 등 문제점이 있으면 즉시 바로잡아야 한다. 운용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감시할 필요가 있다. 은행들도 과당경쟁보다는 영업 직원들의 자산관리 전문성 강화와 더 많은 운용 인력 확보, 안정적 시스템 구축에 신경 써야 한다. 금융시장의 주류인 은행들은 국민 재테크 통장인ISA의 성공적 정착에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하기를 바란다.

주요 신문칼럼


1. [한국일보][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타인의 성취

음악회에 잘 가지 않는다. 어쩌다 간 음악회도 자발적으로 갔다고는 말할 수 없다. 누가 표를 보이며 같이 가자고 할 때쯤 되어야 마지못해 따라나서곤 했으니. 그렇게 간 음악회에서 실망한 적은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어느 때보다 강한 삶의 의지와 사랑으로 충만했다. 그 시간 동안엔 문학적 열정도 꿈틀거렸으니 음악회에 갈 때와 돌아올 때의 나는 같지 않았다. 얼마 전, 오랜만에 자발적으로 음악회에 갔다. 그 음악회를 연 피아니스트와 아는 사이라 가끔 만나지만 그의 연주회에 간 것은 처음이었는데, 늘 접하던 클래식 공연의 틀을 깬 구성부터가 신선했다.

시간이 갈수록 더해가는 열정적 연주에 감동해 얼마나 열심히 손뼉을 쳤던지. 열심히 손뼉을 치면 어깨뼈가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음악회에서 나는 그의 성취를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사실 나는 손뼉을 치다가 주변의 시선을 곧잘 받았을 정도로 어디서든 타인이 이룬 성취에 열심히 갈채를 보내는 편이다. 내가 가장 높이 샀던 것은, 그날의 성공적인 공연을 가능하게 했을 그의 끈기였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재주와 끈기가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예술의 성패를 가르는 예술가의 훌륭한 자질은 끈기이고, 어떤 면에선 재주 이상으로 갖기 힘든 것이다. 두 가지 모두를 가진 그를 보며 부러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나는 목석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을 터.

2. [한국일보]헝가리 작가 산도르 마라이 태어나다

산도르 마라이(Sandor Marai)는 헝가리 작가다. 그는 지금은 슬로바키아 코시체(Kosice)가 된 헝가리(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카싸(Kassa)에서 1900년 오늘(4월 11)일 태어났다.

청년 시절 독일서 유학했고, 신문 등에 독일어로 문학 비평 등 기사를 썼다. 나치 준동이 시작된 30년대 중반 그는 독일어를 버렸고, 48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조국을 떠났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1989년까지 이탈리아 미국 스위스 등지를 떠돌다 머물다 했다. 왕정, 좌익 독재, 우익 독재, 두 차례 대전과 파시즘 공산주의 20세기 자유주의…. 20세기 거의 모든 이념과 체제를 겪으며 그는 가난한 모국어와 함께 내내 고독했다. 그 고독을 그는 이렇게 썼다. 

“인간은 사랑을 갈구하지만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네. 없고 말고. 이것을 깨닫고 나면 강인해지고 외로워진다네.”(‘결혼의 변화’ 김인순 옮김, 솔)

“고독은 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유혹한 다음 무덤 속에 내팽개치는 세상에 아첨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실패, 붕괴가 사색하는 인간에게 더 어울린다. … 혼자 남아 대답하는 것…”(‘하늘과 땅’) 

“사람들은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밀함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한동안 일종의 우정으로 보였던 친밀함을 후회하게 되지.”(‘열정’)

그이 조국은 그를 인민의 적으로 대했고, 책 출간을 금했다. 헝가리 문학 작품을 헝가리어로 읽지 못하는 세계인을 동정한다는 도저한 자부심의 헝가리인들은 다만 독일어 번역본으로 그를 은밀히 사랑했다고 한다. 

소비에트 말년인 88년 헝가리 출판사들이 비로소 책 출간을 제의하자 마라이는 조국이 민주화되기 전에는 책을 안 내겠다고 거부했고, 문학비 건립 제안에도 냉소했다. “모든 기념비 공동의 운명은 개들이 발치에 오줌을 눈다는 것이다.” 

‘열정’에서 그는 아흔 살쯤 되면 늙는 양상도 달라져 “서글픔이나 원망 없이 늙는다”고 썼다. “고귀한 천, 가족 모두 힘을 합해 온갖 정성과 꿈을 엮어 만든 몇 백 년 묵은 비단이 그렇게 낡는다.” 그리고, 1943년 이후 평생 쓴 ‘일지’에 “지나치게 오래 사는 것은 분별 없는 짓”이라 쓰고 얼마 뒤인 89년 2월 21일 자살했다. 

3. [서울신문][길섶에서] 핑크 카펫/박홍기 논설위원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많은 이들과 스치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지하철엔 별별 풍경이 다 있다. 그중 하나가 핑크 카펫이다. 작년에 등장했다. 영화제에 나오는 레드 카펫을 본뜬 듯싶다. 어감도 나쁘지 않다.

핑크 카펫은 좌석이다. 긴자리 양쪽 끝에 지정돼 있다. 의자도, 발판도, 등받이 뒤쪽도 분홍색이다. 동그란 스티커에는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 바닥에는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핑크 카펫’이라고 씌어 있다. 임신부를 위한 배려석이다.

출근길 핑크 카펫은 여성들의 독차지다. 임신부가 앉지만 여학생, 젊은 여성, 중년 여성 등의 좌석일 경우도 허다하다. 북적댈 때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서 있는 승객에겐 ‘배려’처럼 생각한 적도 있다. 공간이 넓어져서다.

퇴근길엔 주인이 없다. 먼저 앉는 승객이 임자다. 얼굴이 불그스레한 젊은이가 졸다 일어나자 중년 남성이 얼른 차지한다. 이어 대학 점퍼를 입은 여성이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는다. 핑크 카펫에라도 지친 몸을 기대고 싶어서일까. 문구가 눈에 띄지 않아서일까. 출근길과는 영 딴판이다. 핑크 카펫을 비워 놓았으면 싶다. 임신부들이 부담 없이 앉을 수 있도록.

4. [서울신문][고전으로 여는 아침]알랑거리는 말에 다친다

신흠은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맞아 임금에게 덕을 쌓고 왕업을 닦으라는 뜻으로, 조정에 임할 때 경계해야 할 일 임조잠(臨朝箴), 한가로이 거할 때 경계해야 할 일 연거잠(燕居箴), 학문에 힘쓸 일 진학잠(進學箴), 하늘의 도를 본받을 일 체건잠(體乾箴) 등 네 가지 잠을 지어 올렸습니다.

임금은 모름지기 신하를 얻기 위해 애써 노력해야 한다면서 ‘독한 약에 병이 낫고, 알랑거리는 말에 다친다’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충언을 올리고 있습니다. 또 ‘좋은 계책을 수용하고, 기쁜 마음으로 행하라’고 하면서 ‘사람을 잘 취해야 왕도가 열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귀에는 거슬려도 곧은 말이 일을 성공으로 이끌며 당장 듣기는 좋아도 아첨하는 말이 일을 망치니, 의견이 다른 신하도 포용해야 훌륭한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에 듣기 좋은 말을 따르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귀에 대고 알랑거리는 말을 칼날 피하듯 피하고, 거슬리는 말을 보약 마시듯 기꺼이 들이켜겠다는 자세가 있을 때라야 바른 판단이 서고 바른 행동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신흠(申欽·1566~1628)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경숙(敬叔), 호는 상촌(象村), 본관은 평산. 홍문관 대제학, 좌의정 등을 역임했다. 이정귀·장유·이식과 함께 조선 중기 문장사대가로 일컬어진다. 신중한 성품과 뛰어난 문장 실력으로 선조의 신망을 받아 항상 문한직을 겸해 맡았고, 당대 사림들에게 추앙받았다.

5. [머니투데이][광화문]공중파의 몰락

“어떻게 했길래 공중파 방송이 망할 수 있단 말인가?”지난 4월1일 밤 12시. 홍콩의 양대 공중파 방송 중 하나인 ATV(AsiaTelevision Ltd) 채널은 끝내 폐쇄됐다. 파란색 정지화면 위에 “프로그램 신호가 중단됐다”는 자막만 뜰 뿐이다. ATV는 사실상 문을 닫았다. 

한 때 홍콩 방송·연예계를 호령했던 이 공중파 TV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TV의 실타래가 꼬인 결정적 사건은 2011년 7월6일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ATV는 정규 방송 도중 긴급 자막으로 ‘장쩌민 전 중국 국가 주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ATV는 이어진 10시30분 정규 뉴스 시간에 또다시 장 전 주석의 사망을 비중 있게 다뤘다. 

하지만 ATV의 이 보도는 불과 하루 만에 ‘세기의 오보’로 바뀌었다. 중국 정부의 입으로 관영 언론인 신화통신이 사망 사실을 정면 부인했기 때문이다. ATV는 곧바로 “6일 밤 장쩌민 선생의 별세 보도를 철회한다”며 “시청자와 장쩌민 선생에게 사과한다”고 오보를 인정했다. 장 전 주석은 같은 해 10월 신해혁명 100주년 기념식에 모습을 보이며 건재를 알렸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오보를 낸 ATV의 사주가 왕정으로 바로 장쩌민 전 주석 외조카라는 점이다. 장 전 주석 사망 여부를 어느 매체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ATV는 정반대로 시대의 오보를 날렸다. 이후 ATV는 감당하기 힘든 위기를 맞는다. 홍콩 정부가 ATV에 일제 조사를 벌여 41개 시정 명령을 내리는가 하면, ATV의 공중파 무료 채널 면허가 연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장쩌민 오보는 상징적 사건일 뿐 ATV 내부는 이미 곪을대로 곪아있었다는 목소리도 높다. 여기에는 실질적 사주인 왕정의 역할이 한 몫 했다는 평이다. 왕정은 2010년 3월 ATV 지분 52.4%를 확보하며 ATV를 홍콩의 CNN으로 키우겠다고 야심을 보였다. 그러나 실제 행보는 CNN과 거리가 멀었다. 

시청률의 관건인 드라마 제작을 중단하는가 하면 감봉과 직원 재교육 정책으로 능력 있는 직원들을 내쫓다시피 했다. 한때 700명을 넘던 직원들은 400여명으로 뚝 떨어진데다 충원된 직원들의 경험미숙으로 크고 작은 방송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위기는 숫자로도 입증됐다. ATV의 적자는 2012년 3억4000만 홍콩달러(505억원)에 이어 2013년에는 3억7800만 홍콩달러로 치솟았다. 

망하는 기업들이 그렇듯 내부 분쟁도 엿보인다. ATV의 2대 주주인 대만 왕왕그룹 차이옌밍 회장은 2012년 왕정 등의 방만한 경영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며 홍콩 법원에 주주 권리 보호 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 홍콩 법원은 차이 회장의 손을 들어주며 왕정 측에게 지분 10.75%를 제3자에게 매각하라고 주문한다. 

왕정은 새 투자자를 찾아 나섰지만 깨진 독에 물을 붓겠다는 투자자는 없었다. 급기야 홍콩 상무경제부는 2015년 3월 ATV의 공중파 무료 채널 면허를 연장하지 않고, 2016년 4월 1일 자로 면허를 끝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ATV 몰락의 진짜 이유는 바로 시청자들의 외면이었다.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지 않자, 광고 수입이 급감했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 제작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는 다시 시청률 저하로 이어지며 끝없는 악순환을 낳았다. 가장 참담한 장면은 시청자들이 59년 역사의 ATV 면허 연장에 관심조차 없고, ATV 채널이 사라졌어도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60개가 넘는 유선방송과 위성TV가 있는 홍콩 TV 환경을 탓할 일이 아니다. 공중파도 고객이 외면하면 얼마든지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삶의 여기저기에 대입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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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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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7일 목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이데일리]

1. 국내 건설시장도 중국에 넘겨줄 건가

제주도에 새로 들어서는 ‘드림타워 카지노 복합리조트’ 시공이 결국 중국건축에 돌아갔다. 드림타워 사업을 공동 추진하는 롯데관광개발과 중국 뤼디(綠地)그룹이 그제 상하이에서 중국건축과 최종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이 리조트 건물은 현재 38층(169m)으로 계획되고 있어 제주도에서 가장 높은 랜드마크로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대형건물 시공을 중국업체가 국내에서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드림타워 시공이 중국업체에 맡겨진 것은 한국 업체들로는 새로운 시련과 도전에 직면했음을 말해준다. 국내 건축·토목 시장만큼은 아직 우리 건설사들이 굳게 지키고 있었으나 이제부터 외국 업체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신호탄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중국건축은 국내에는 그리 소개될 기회가 없었지만 매출 규모로 세계 1위 규모다.

더욱 긴장되는 것은 중국건축이 제시한 ‘책임준공 확약’이라는 조건이다. 설사 발주업체가 공사비를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자체 자금으로 건물을 완공한다는 파격적인 내용이다. 착공 후 18개월 동안은 아예 외상으로 공사를 진행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당초 한화건설과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이 2년 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가 자금조달 조건이 맞지 않아 무산됐다는 점에서도 위기감이 엄습한다. 중국건축이 한국 시장에 진출하려고 국내 건설사들은 말도 꺼내기 어려운 조건을 내건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국내 건설사들로서는 설상가상이다. 이미 중동, 동남아 등 신흥국 시장에서도 중국업체들이 우리 건설사들을 따돌리고 시장을 싹쓸이하는 양상이다. 올 들어 지난 2월까지 중국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따낸 공사 규모가 133억달러에 이르는 반면 우리 건설사들의 실적은 8800만달러에 그쳤다는 사실이 단적인 사례다.

이처럼 중국 건설업체들이 세계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막강한 자금조달 능력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이다. 이를테면, 발전소를 자체 자금으로 건설·운영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회수하는 개발형 사업도 이뤄지고 있다. 이번 중국건축의 드림타워 시공도 비슷한 범주에 속한다. 우리도 긴장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정부와 업계가 조속히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2. '변호사 복덕방', 소비자 눈길로 본다면

변호사의 부동산중개업은 불법인가, 합법인가. 이른바 ‘변호사 복덕방’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그제 공승배 트러스트부동산 대표를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앞서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공인중개사가 아닌 이들이 부동산 명칭을 쓰고 거래를 중개했다”며 공 변호사를 공인중개사법 위반혐의로 고발한 데 따른 조치다. 검찰은 곧 위법성 여부를 가릴 방침이다.

‘변호사 복덕방’ 논란은 사실 밥그릇 싸움이다. 변호사업계가 ‘합리적 수수료’를 내세워 부동산중개 시장에 뛰어들자 위기의식을 느낀 공인중개사들이 반발하는 모양새다. 공 변호사는 지난 1월 “집값이 3억원이든, 10억원이든 최대 99만원의 자문료만 받겠다”며 업계에 뛰어들었다. 매매가 10억원 기준으로 보면 현행 공인중개업체 수수료의 10%밖에 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반향이 컸다.

거래는 얼어붙고 중개업소는 늘어나는 데다 ‘직방’, ‘다방’ 등 온라인 업체들까지 등장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터에 공인중개업자들이 반발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사회적 강자인 변호사들이 영세 중개사들의 밥그릇을 뺏는 ‘골목상권 침해’라며 들고 일어섰다. “부동산 중개 업무는 공인중개사의 고유 영역”이라는 법 조항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 문제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는 아직 장담하기 이르다. 법을 위반했다면 위반한 대로 처리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부동산 중개업무나 관행이 과연 공정한지 새삼 돌아보게 됐다는 점이다. 변호사들의 중개시장 진입은 골목상권 침해의 소지가 없지 않지만 ‘합리적 수수료’는 소비자에게 환영할 일이라는 얘기다. 그동안 업계의 가격거품 조장 및 비싼 수수료 등으로 소비자 불신이 적지 않았다. 변호사들의 진입을 자초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논란은 부동산 중개업의 공신력을 높이고 공정거래 질서가 뿌리를 내리기 위한 하나의 진통 과정이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중개수수료가 적정한지, 거래 정보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지 등을 다시금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 법적인 결론과는 별개로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부동산중개 시장이 건전하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서울신문]

3. 120억 차익 얻은 진경준 수사 나서야

게임업체 넥슨의 비상장 주식 취득으로 120억원이라는 막대한 차익을 거둔 진경준 검사장에 대한 의혹이 점차 커지고 있다. 진씨에게 넥슨의 주식 투자를 권유한 인물이 김정주 NXC 대표와 친분이 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이들의 친분 관계가 주식 거래에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씨의 사표로 이번 일을 아무 일 없듯이 덮어서는 안 된다. 검찰은 그가 부당하게 불법 이득을 얻었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검찰이 나서야 하는 이유는 첫째, 진씨의 주식 매입과 직무관련성 여부 때문이다. 그가 넥슨의 주식을 산 시점은 2005년으로 당시 그는 금융정보를 수집·분석하는 금융정보분석원(FIU) 파견 직후였다. 주식 취득 후인 2009~2010년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으로 재직했다. 그의 이런 경력만으로 그의 주식 취득 자체를 매도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특수한 지위를 고려한다면 그의 넥슨의 주식 취득 및 보유는 부적절한 게 사실이다. 직무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혹이 제기된 만큼 수사는 불가피하다.

둘째, 진씨의 주식 투자 과정이 의혹투성이이기 때문이다. 그는 주식 매입 경위에 대해 “친구들과 함께 투자했다”고 했다. 하지만 같이 주식을 샀다는 김상헌 네이버 대표는 “넥슨 주식을 같이 산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둘 중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누가, 왜 거짓말을 하는지도 밝혀야 한다. 이들은 외국계 컨설팅사에 근무하던 박성준씨의 주선으로 주식을 샀다고 한다. 이들 모두 대학 동문이긴 하지만 박씨가 수많은 동문 중 하필 법조인인 그들에게 주식 투자를 권유한 경위도 석연찮다.

검사 신분에 4억원이라는 거액을 한 주식에 몰방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확실한 정보가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진씨는 당시 주당 10만원을 줘도 매물이 없던 우량주를 4만원에 1만주를 샀다. 일반인들의 거래가 거의 원천 봉쇄됐고, 주식이 거래돼도 김 회장의 재가가 필요했다는 점에서 넥슨 주식 매입은 그 자체가 특혜다. 진씨의 특수한 신분과 모종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검사 개인의 단순한 주식매매 행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공직자의 신분으로 수사를 받게 해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4. 수험생 침입해 PC조작해도 깜깜했던 청사

서울 세종로에 있는 정부서울청사가 또 뚫렸다. 세종시로 정부 부처가 대거 옮겨 가기 전까지는 대한민국의 행정 중심부인 정부종합청사였던 곳이다. 현재 국무총리와 부총리 등 국무위원들의 집무실이 몰려 있는 데다 행정자치부·통일부·여성가족부·국민안전처 등이 들어 있는 국가의 핵심 시설이다. 20대 공무원시험 응시생이 훔친 공무원 신분증으로 청사를 한 달 동안 제 집처럼 드나들고, 공무원 개인용컴퓨터(PC)를 자기 PC처럼 사용했다. 청사는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공시생이 아니었다면, 생각 자체만으로도 끔찍하고 아찔하다.

공시생 송씨는 무모하리만큼 대담했다. 지난달 5일 치러진 2016년 국가직 지역인재 7급 공무원 선발 시험에 지원했다. 필기시험을 앞두고 청사 1층 체력단련장에 몰래 들어가 탈의실에서 공무원 신분증 3장을 훔쳤다. 이어 시험지를 훔치려고 인사혁신처가 있는 청사 16층 채용관리과 사무실 침입을 다섯 차례 시도하다 실패했다. 같은 달 24일과 26일 사무실에 잠입해 담당 공무원의 PC를 켜고 자기 이름을 합격자 명단에 올렸다. 성적도 고쳤다. 인사혁신처는 나흘 뒤인 30일 필기시험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다 1명이 늘어난 사실을 발견하고 1일 경찰에 신고했다. 현재까지 수사에서 드러난 사건의 전말이다.

문제의 핵심은 정부청사라는 점이다. 2012년 10월 60대 남성이 가짜 공무원 신분증으로 청사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투신해 사망한 사건과는 성격과 차원이 다르다. 보안 시스템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청사와 사무실을 헤집고 다녔고,PC까지 접속해 조작했다. 그렇기에 체력단련장에 어떻게 출입했는지, 신분증을 분실한 공무원들은 지금껏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등이 밝혀져야 한다. 특히 PC에 어떻게 접속했는지는 사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정부의 기밀 관리에 대한 허점이 노출된 탓이다. 내부 공모 여부를 수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송씨가 청사를 멋대로 드나들 때 정부는 이미 북한의 잇단 도발과 관련해 ‘테러 경비태세와 출입통제 강화’ 지시를 내렸었다. 또 5년 전 사건으로 출입자 제한 원칙도 강화했었다. 하지만 뚫렸다. 황교안 국무총리의 말대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보안관리 시스템의 재검토도 당연한 수순이지만 무엇보다 공무원 스스로 원칙에 충실하고 있는지, 기강 해이는 없는지 묻고 각성해야 한다. 일이 터졌을 때만 호들갑 떠는 대응으로는 재난을 막을 수 없다. 2년 전 세월호 참사도 예고 없이 터졌다.

5. 경제·복지 선거공약 공개토론 해보자

20대 총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수뇌부가 전국을 순회하며 득표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남과 호남 등 각자의 텃밭은 물론 중원, 수도권을 넘나드는 강행군 속에 연설과 악수를 하느라 목이 쉬고 손이 부르틀 정도다. 여당은 ‘야당이 승리하면 나라가 결딴난다’고, 제1야당은 ‘8년간의 배신의 경제를 심판해야 한다’고, 제2야당은 ‘거대 양당 철밥통을 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당의 공약에 대해서는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고, 경쟁당의 공약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이라며 극단적인 비판에 나서는 것도 수뇌부 유세 현장의 공통된 풍경이다.

여야 각 당은 이번 총선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민생과 밀접한 경제·복지 공약에 사활을 건 모습이다. 새누리당은 어제도 중산층 복원을 위한 자영업 지원 공약을 중심으로 한 경제정책 5탄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삼성의 미래차 사업을 광주에 유치해 호남 지역에 2만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내용의 ‘호남경제 살리기’ 공약을 내놓았다. 여야가 이처럼 경제·복지 공약에 집중하는 것은 대형 정치적 이슈가 없는 상황에서 진영과 노선보다는 ‘먹고사는 문제’가 결국 총선의 승패를 가를 것이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쏟아지는 여야 각 당의 공약을 유권자들이 꼼꼼하고 냉정하게 분석할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언론과 전문가들조차 좋은 공약과 나쁜 공약을 정확하게 구별해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문외한인 유권자로서는 그야말로 ‘깜깜이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돈을 더 풀겠다는 새누리당의 양적완화 공약에 대해 더민주는 “국제적으로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더민주의 노인 기초연금 30만원 균등지급 공약에 대해 새누리당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검증 없는 비판에 유권자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약속한 일자리 창출 규모만 해도 새누리당은 545만개, 더민주는 270만개, 국민의당은 85만개, 정의당은 198만개에 이른다. 각자 나름대로 근거를 제시하지만 유권자들이 검증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누가 실현 가능하고 현실성 있는 공약을 내놓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나랏빚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데 여야가 내놓은 경제·복지 공약을 모두 이행하려면 추가로 최근 5년간 증가한 나랏빚과 맞먹는 200조원 이상의 혈세가 투입돼야 할 판이다. 유권자들은 어느 당이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면서 끊어진 경제의 숨통을 되살릴 수 있을지 알 권리가 있다.

유권자가 각 당의 정책공약 장단점을 제대로 판단해 소신 있는 투표를 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정책 선거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식으로 자기 공약은 최선이고, 남 공약은 최악이라는 일방통행 유세로는 유권자의 알권리를 충족할 수 없다. 최소한 경제·복지 공약만이라도 여야 4당이 모두 참여하는 공개토론을 통해 상호 검증하면서 유권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때마침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어제 비슷한 주장을 내놨다. 이런 게 공급자 아닌 수요자 중심의 진짜 정치다. 여야의 적극적인 호응을 기대한다.

[동아일보]

6. 테러방지법 통과만 외치더니 정부청사는 왜 뚫렸나

박근혜 대통령은 2월 국회 연설에서 “테러분자들이 잠입해 언제, 어디서든지 국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시급히 테러방지법을 제정해 국민 안전을 지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며칠 뒤에는 테러방지법 통과가 야당의 반대로 계속 지연되자 “정말 자다가도 몇 번씩 깰 통탄스러운 일”이라며 책상을 내리쳤다. 3월 한미 연합 군사연습이 시작되자 박 대통령은 전국에 경계태세 강화를 지시했고 국토해양부는 재난·테러 실태 점검에 들어갔다.

전국이 비상경계에 들어간 올 2월 말∼3월 말 7급 공무원시험에 응시한 대학생 송모 씨가 정부서울청사를 6차례나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송 씨는 청사에 몰래 들어온 뒤 시험지 유출과 컴퓨터 조작까지 시도했다. 행정자치부와 인사혁신처는 야간 출입금지 구역을 침입당한 보안 사고 사실조차 까맣게 몰랐다. 송 씨가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데 그쳤기에 망정이지 테러범이었다면 엄청난 인명 재산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대통령의 지시로 경계태세를 최고로 강화한 때 어떻게 정부청사가 그렇게 쉽게 뚫릴 수 있는가. 담당 공무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청사 출입자의 신분증 사진과 실제 얼굴을 대조하지 않고 대충 넘겼기 때문에 발생했다. 2012년 60대 남자가 위조 신분증으로 들어와 불을 지르고 투신했을 때 정부가 내놓았던 각종 대책은 허울뿐이었다는 건가. 정부세종청사로 이사 갈 준비를 하느라 인사처 출입문 관리가 허술했다는 변명에는 기가 막힐 지경이다. 리눅스 운영체제(OS)가 설치된 휴대용 저장장치를 꽂으면 비밀번호를 몰라도 컴퓨터를 열 수 있다. 이 정도는 대학생만 돼도 쉽게 알 수 있지만 서울청사의 보안 시스템은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인사처 직원은 비밀번호가 해제된 사실을 다음 날 확인했다. 그런데도 보안이 뚫린 사실은 몰랐다고 하니 의문은 꼬리를 문다. 서울청사 출입 시스템에 중대한 허점을 드러낸 만큼 관련자들을 일벌백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차제에 다른 주요 시설의 보안 실태도 다시 점검해야 한다.

7삼성 끌어들여 ‘광주 표심’ 사려는 김종인의 5共식 발상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어제 국회에서 광주에 ‘삼성 미래차 산업’을 유치해 일자리 2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양향자 후보와 함께 발표했다. 삼성전자 상무 출신인 양 후보가 지난달 29일 “5년간 삼성전자 전장사업에서 3조 원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한 공약을 중앙당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이 사업은 스마트카에 들어가는 전기·전자·정보기술(IT) 장치를 만드는 삼성의 신산업이다. 양 후보는 “삼성이 얘기를 해 달라고 했다”며 “광주에 이미 현대·기아차가 있어 최적”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아직 검토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경제민주화 전도사인 김 대표가 재벌을 끌어들여 사업을 유치하려는 데 많은 국민은 어리둥절해한다. 글로벌 기업의 미래가 걸린 사업을 공약으로 만든 더민주당의 발상이 참 놀랍기만 하다. 양 후보의 말만 듣고 해당 기업에 확인도 하지 않고 불쑥 발표한 ‘야당 권력’의 밀어붙이기 식 태도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정치가 시키면 무조건 따라간다는 5공(5공화국)식 발상”이라고 공격했을 정도다. 

더민주당의 무리한 발표는 국민의당에 밀리고 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당의 광주와 전남·북 지지율은 지난달 11일 27.6%에서 이달 4일 42.1%로 급등하면서 더민주당(43.7%→27.2%)을 앞질렀다. 이 분위기가 수도권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사태로까지 번지면 “107석 안 되면 당 떠난다”고 밝힌 김 대표에겐 끔찍한 시나리오다.

경제·안보 복합위기에 글로벌 기업까지 선거에 이용하려는 야당의 행태는 위험천만하다. 청년수당 지급 같은 서민 공약은 식언(食言)으로 인한 실질적 피해가 크지는 않다. 그러나 이번 같은 실착은 국가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칫 경제에 깊은 주름이라도 남기면 어쩔 심산인가.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전장사업팀’을 신설해 신성장동력을 하나씩 개척해 나갈 계획이었다. 더민주당이 첨단산업의 전진기지를 광주에 유치하겠다고 발표하면 해외 신용평가기관들이 즉각 검증에 나선다. 반나절 만에 허위로 드러났으니 제1야당으로선 망신살이 뻗쳤다. 그러고도 사과 한마디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야당이 기업 투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면 불행 중 다행이다. 마침 어제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은 김 대표와 경제공약 끝장토론을 제안했다. 여기서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을 선거에 이용하지 말자는 신사협정이라도 체결하라. 여야가 규제 프리존 특별법을 차기 국회 개원 직후 통과시키는 것에도 대승적으로 합의했으면 한다.

[중앙일보]

8. 제집 하나도 못 지키고 공시생에게 농락당한 정부

사실상 ‘정부의 심장’으로서 최고 수준의 경비와 보안을 유지해야 할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가 20대 공무원 시험 응시생에게 농락당했다. 지난 5일 체포된 이 응시생은 훔친 공무원 신분증으로 지난 3월 말부터 한 달여 동안 청사를 수시로 침입하면서 범법 행위를 기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이 응시한 지역인재 7급 공무원 필기시험지의 유출을 시도한 것은 물론 시험을 주관하는 인사혁신처 사무실에 들어가 담당 공무원의 컴퓨터를 열고 자기 성적을 조작하기까지 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한마디로 서울 한복판 정부청사의 경비와 공직자의 보안 수준이 국기를 흔들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이 정도라면 여염집보다 나을 게 없다. 만일 테러범이나 스파이가 침입이라도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면 아찔할 뿐이다.

게다가 문제의 응시생이 청사에 침입하기 시작한 시기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청와대 타격 위협 등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전국에 경계태세를 강화하라”고 지시(3월 24일)한 무렵이다. 대통령의 엄중 지시를 일선에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 셈이다. 더구나 이 건물에는 정부청사의 관리를 맡은 행정자치부가 입주해 있다. 정부가 제집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소를 잃은’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치는 일이다. 이번 사건을 ‘보안 실패’의 반면교사로 여기고 반성과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선 사건 진상부터 철저히 규명해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는 게 순서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경비·보안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악해 체계적으로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정부 보안 2.0’을 마련해야 한다. 공무원의 보안의식을 높이고 근무 기강을 재확립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책임자 문책도 당연히 필요하다. 자체적으로 보안을 업그레이드하기 힘들다면 국내외 전문 보안업체에 외주를 주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국민이 정부의 보안 수준을 걱정하게 하는 사건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9. 중국의 제재 이행, 북이 핵 포기할 때까지 이어져야

중국의 대북제재가 공식적인 이행 단계로 진입하면서 국제사회의 북한 압박이 탄력을 받게 됐다. 중국 상무부는 5일 홈페이지에 석탄과 항공유 등 대북 수출입을 금지하는 25개 품목을 공시했다. 해관총서(세관본부)와 공동 명의로 발표된 공고문에 따라 중국의 대북 금수(禁輸)는 이날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유엔 안보리가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킨 지 33일 만이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에서 가진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완전하고 엄격하게 유엔 안보리 결의를 집행할 것”이라고 밝힌 지 4일 만이다.

중국이 공고한 대북 수입금지 품목은 석탄과 철광석· 금· 희토류 등이며 수출금지 명단엔 항공연료 등이 포함됐다. 안보리 결의안 내용대로다. 중요한 건 중국 정부가 유엔 결의안 이행을 위한 후속 조치를 이번에 처음으로 공식 발표했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북한의 ‘민생 목적’ 등일 경우 예외로 한다는 조항이 있는 걸 거론하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예외를 인정받기 위해선 법인 대표 도장이 찍힌 보증서 제출이나 중국 상무부와 외교부는 물론 유엔 제재위원회에 보고해야 하는 점 등을 규정해 예외가 쉽지 않도록 했다. 실제로 중국이 얼마만큼 성실하게 대북제재를 이행했는지는 90일 내 유엔 제재위에 제출하기로 된 보고서가 기준이 될 전망이다.

이번 금수 목록에 포함된 석탄과 철광석 등 7개 광물이 북한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4.9%에 달하며, 이 품목들의 97%가 중국으로 수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철저한 제재 이행이 북한에 미칠 타격은 엄청나다. 중국 정부가 금수 품목을 공식 발표한 것은 국제사회의 대국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겠다는 시진핑 정부의 의지로 읽힌다. 더 이상의 무모한 ‘북한 감싸기’는 없다는 신호다. 그럼에도 북한은 ‘제재는 공기처럼 익숙하다’며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는 자기 최면에 걸려 있다. 하루 빨리 꿈에서 깨어나 비핵화의 길로 나서야 한다. 중국도 북핵 포기 때까지 제재 이행을 엄격하게 지속해야 한다.

[매일경제]

10. 바이오시밀러로 미국시장 뚫은 셀트리온의 쾌거

셀트리온이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판매 승인을 획득한 것은 국내 제약사에 획을 그을 만한 사건이다. 관절염 치료제인 램시마는 미국이 최초로 승인한 항체 바이오시밀러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항체 바이오시밀러는 단백질 의약품인 기존의 바이오시밀러와 달리 분자구조가 복잡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유럽에서 승인을 받은 데 이어 미국 시장을 뚫는 데 성공한 것은 오리지널 약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 제품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벽을 넘어선 만큼 다른 국가들을 접수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셀트리온은 램시마 단일 품목으로 관련 시장이 20조원인 미국에서 연간 2조원, 유럽까지 포함하면 3조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최대 제약사인 한미약품의 매출이 1조30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잘 키운 한 품목이 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램시마가 거둔 쾌거는 남보다 빨리 바이오시밀러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꿰뚫어보고 밀어붙인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뚝심의 결실이다. 그는 샐러리맨 생활을 접고 14년간 우직하게 연구개발에 매달렸다. 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의 특허가 2014년부터 줄줄이 만료된다는 것을 깨닫고 시장 선점을 노리고 도전한 것이 램시마의 성공을 가져온 것이다. 

중후장대한 제조업의 성장판이 닫히면서 한국 경제가 내리막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약품이 신약 수출로 잭팟을 터뜨린 데 이어 셀트리온이 미국에 깃발을 꽂으며 돌파구를 만든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셀트리온은 향후 5~10년간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고 이후에는 신약 개발에 뛰어들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는데 지금처럼 '퍼스트무버' 정신으로 도전한다면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제약 시장은 영세하지만 연구개발과 도전정신으로 글로벌 시장을 두드린다면 그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을 셀트리온이 다시 한번 보여줬다.

주요 신문칼럼


1. [연합뉴스]<최재석 칼럼>5평 단칸방 '10남매 가족'의 행복

'첫눈 오는 날이 공휴일인 나라',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바로 히말라야 고산 준봉에 둘러싸인 작은 국가 부탄 얘기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각자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 얼마 전 부탄 대표가 출연했다. 그는 부탄 국민이 행복한 이유를 "불교 사상 중에 '현재에 만족하라'는 말이 있는데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걸로 만족하고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탄의 수도 팀푸에서는 "첫눈 내리는 날이 공휴일이 맞다"고도 했다. 부탄이 농업국가라 눈이 많이 오면 물이 풍부해져 수확도 잘 될 거라서 하루 쉰다는 것이다.

뜬금없이 부탄 나라 얘기를 꺼낸 것은 광주(光州)의 '10남매 가족'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10남매를 낳아 어렵게 키우는 40대 부부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는 첫 소식을 접하고 '교육적 방임'을 의심했다. 하지만 이 가족의 사연은 들으면 들을수록 그들을 의심했던 내가 부끄러워지고 오히려 마음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를 잊고 지냈던 소중한 가치들을 일깨워준다. 

지금까지 이 가족을 조사하거나 지원한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등을 통해 전해진 사연은 대강 이렇다. 물론 이 가족에게 직접 들은 내용이 아니라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A(44) 씨 부부는 20대 후반에 충북 청주에서 수천만 원의 사채를 빌려 음식점을 하다 실패했다. 빚은 이자를 합쳐 눈덩이처럼 불었다. A 씨 가족은 사채업자를 피해 전국을 떠돌아다니다 2006년께 부부 중 한 명의 연고가 있는 광주에 정착했다. 이자까지 합쳐 8천만 원 가까이 불어난 빚을 친인척의 돈까지 끌어모아 겨우 갚은 뒤였다. 

A 씨 부부는 빚에 쪼들려 한동안 한 곳에 정착하기 힘들 정도로 생활형편이 어려웠지만 1990년생인 첫째를 시작으로 2009년생 막내까지 1∼3살 터울로 5남 5녀를 낳아 길렀다. 부부는 경찰 조사에서는 "어린 시절 외롭게 자라 아이를 많이 낳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10명의 자녀 중 큰딸(26)과 현재 초등학생인 막내 2명을 제외한 둘째(24)부터 여덟째(12)까지 7남매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대신 중학교를 도중에 그만두고 검정고시에 합격한 큰딸이 동생을 가르쳤다. 이런 식으로 동생들은 오빠, 언니, 형, 누나에게서 한글과 셈법을 배웠다. 옛날에는 A씨 가족처럼 가정 형편 때문에 맏이만 정식교육을 받고 동생들은 대신 오빠나 언니들한테 배웠던 집들이 적잖았다.

그 사이 성년이 된 큰딸은 기술을 배워 독립했고, '홈 스쿨링'을 한 둘째와 셋째도 맏이의 길을 따라 다른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이들은 가족에게 꼬박꼬박 생활비를 부치고 있다고 한다. 남은 7남매와 부부는 미닫이문으로 부엌과 나뉘는 5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지낸다. 밤이 되면 부부가 막내를 품고 부엌에서 잤고, 스무 살 넷째가 남은 동생들을 데리고 방에서 잔다고 한다. 그동안 가계 수입은 몸이 아픈 남편을 대신해 아내가 혼자 벌어오는 일당 8만 원과 기초생활수급비 월 98만 원이 전부였다. 

부부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한 것을 늘 미안해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족 사랑은 남달랐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과 형제자매의 우애 속에 자랐다. 이들 가족 사연이 알려진 후 그간 학교에 다니지 않은 아이들을 면담한 학교 관계자들은 아이들이 학습능력에 문제가 없고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으며 특히 인성교육이 잘된 것 같다고 전했다. 예의가 발랐고 한마디로 버릇없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A 씨 가족의 사정을 살펴본 구청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들은 풍요롭지는 않아도 부족하다고 느끼지는 않은 것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행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A 씨 가족 이야기를 처음 보도한 연합뉴스 기자는 "이들 가족을 쭉 취재하면서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로 알려진 부탄 생각이 났다"면서 "여러 가지로 형편이 어려웠지만, 가족 간에 사랑이 있었던 전통적인 우리 가정의 모습을 보는듯했다"고 말했다. 10남매의 사연이 언론에 소개된 후 각계에서 도움이 손길이 오자 아버지 A 씨는 생활고 해결을 위한 후원금이나 생필품 지원은 원하지 않고 미취학 자녀 교육과 기초생활수급만 받아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주위에서 관심을 그만 가져달라고 거듭 말했다고 한다.

이 가족의 사연은 부부가 지난 2월 동 주민센터에 자녀의 교육급여 지원을 신청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외부와 단절한 채 가족끼리 사랑으로 어려움을 견뎌낸 이들이 비로소 세상에 손을 내민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답할 때다. 10남매 중 일곱째와 여덟째는 관계기관의 도움으로 이달 5일 처음으로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다.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국가가 나서서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고, 나머지 부족한 것은 이웃들이 메워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건강한 사회다.

2. [한국일보]레고 창업자 올레 크리스티얀센 탄생

조립 블록 완구기업 ‘레고 LEGO’의 창업자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Ole Kirk Christiansen)이 1891년 오늘(4월 7일) 덴마크 빌룬트(Billund) 북부 필스코프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의 열 번째 아들. 간신히 고등학교를 마친 뒤 목수 일을 배워 처음 연 목공소는 아이들의 불장난으로 불탔고, 다시 취업해 번 돈에 빚까지 얻어 목공소를 새로 열었을 땐 대공황이 터졌다. 그는 파산 직전에 몰렸고, 아내와도 사별했다. 1932년, 41세의 그에게 남은 건 전기요금 대기도 버거운 작업장과 은행 빚, 그리고 네 아이뿐이었다. 

목수인 그가 주로 만들던 건 생활 소품과 가구였고, 당시엔 당연히 주문 제작이었다. 일도 돈도 없던 그는 어느 날 작업장 자투리 나무들로 아이들에게 줄 오리를 깎기 시작했다. 그 나무 오리에 동네 아이들이 반색했고, 그는 널린 나무토막과 널린 시간으로 온갖 장난감을 만든다. 동물, 미니어처 집, 가구…. 1934년 그가 작업장에 새로 내건 간판이, 덴마크어 ‘Leg Godt(영어론 play well)’의 첫 두 글자를 따 만든 ‘LEGO’였다. 그는 완구제작업자가 됐다. 

47년 올레는 덴마크 최초로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를 사들여 합성수지 완구를 출시했고, 레고는 금세 200여 종의 나무ㆍ플라스틱 완구를 생산하는 완구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지금 같은 조립식 블록은 셋째 아들 고트프리드(Godtfred, 1920~1995)의 아이디어였다. 42년 무렵부터 아버지 일을 거들던 그는 50년 나무쌓기에서 응용한 플라스틱 블록 시제품을 제작했고, 1958년 조립 안정성을 고심하던 끝에 똑딱단추 원리의 블록을 만들어냈다. 그 해 66세의 올레 크리스티얀센은 심장 마비로 별세했다.

레고는 변신과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유아를 위한 듀플로 시리즈(67년), 회전축과 모터까지 달린 테크닉 시리즈(77) 마인드스톰 로봇 시리즈(98년)…. 스타워즈, 해적선, 캐슬 등 주제별 다양한 시리즈와 테마파크 레고월드, 놀이교재 연구 등 사업 다각화. 

달라지지 않은 건 고트프리드가 정한 레고 철학, 즉 ‘안전하고 완전하고 평화로운 완구를 만든다’는 것이라고 한다. 자식을 위해 나무오리를 깎던 아버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3. [서울신문][세종로의 아침] 예술이 순수함을 잃었을 때/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지난달 24~26일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미술장터 ‘2016 아트바젤 홍콩’에는 세계 미술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유명 갤러리들이 대거 참여해 최고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35개국 239개의 프리미어급 갤러리들이 참여한 이번 페어에서는 특히 세계 굴지의 갤러리 부스에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하종현, 정창섭 등 한국 단색화 화가들의 작품이 내걸려 한국 현대미술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우환의 1970년대 후반 작품인 ‘선으로부터’와 ‘점으로부터’ 시리즈를 보는 심경은 무척 복잡했다. 수억원을 호가하는 거장의 작품 앞에서 감동을 받아야 마땅할 텐데 “이 그림 혹시 가짜 아닌가?” 하는 의구심부터 들었으니 말이다.

상당수의 위작이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첩보를 근거로 경찰이 지난해부터 수사를 벌이고 있고, 해외 유명 아트페어에서 위작인 듯한 그림이 판매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던 터라 몇 군데 화랑이 내건 이우환의 작품 앞에서 자연스레 발길이 머물렀다. 한 외국 갤러리에서 판매 중인 1979년 작 ‘선으로부터’를 요리조리 뜯어보다가 출처를 물었다. 작품의 이력서에 해당하는 프로브넌스에는 일본의 컬렉터에서 도쿄의 갤러리를 거쳐 유럽의 개인 컬렉터에게 팔린 작품이라고 적혀 있었다. 스위스 복원 전문가의 컨디션 리포트까지 첨부돼 있어 서류상으로는 완벽했다. 이런 서류를 보니 신뢰가 가기보다는 위작을 국제시장에서 ‘세탁’한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것만 같았다.

취재 결과 이 작품 뒷면에 적힌 일련번호 ‘7****2’는 2014년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던 1979년 작품 ‘점으로부터’와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29일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120만 홍콩달러에 낙찰된 이우환 화백의 ‘선으로부터’가 같은 일련번호를 가진 다른 작품이 존재하는 것이 알려져 문제가 됐었다. 또다시 같은 일련번호를 가진 작품이 세계적인 아트페어에 나온 것은 왜일까.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를 나란히 내건 도쿄의 한 갤러리 주인은 꼬치꼬치 묻기 시작하자 “작가가 본 것 중에 가짜가 하나도 없었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왜 그런 소문이 도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럼에도 경찰의 압수품 감정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은 이번 아트페어에 나온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를 살펴본 뒤 “그림 그린 방식이나 색깔, 사인이 위작으로 판명된 것들과 너무 흡사한 것이 있다”고 했다.

미술관이나 슈퍼 컬렉터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세계 굴지의 갤러리들이 ‘위작’을 판매하고 있다면 문제는 정말 심각해진다. 생존 작가의 위작 스캔들이 시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적 망신에 더해 겨우 불붙기 시작한 K아트의 부흥은 찬물을 뒤집어쓰게 된다.

작가의 단호함이 결과적으로 위작범들에게 날개를 달아 준 셈이 됐다. 작가는 강 건너 불 바라보듯이 가끔 화랑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역정을 내고 말 일이 아니다. 위기 의식을 갖고 지금이라도 지혜로운 행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작가 자신도 살고, 한국 미술도 살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4. [동아일보][광화문에서/이광표]우리 동네 오래된 빵집

서울 돈암동에 사는 내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집 앞에 나폴레옹 빵집이 있어 정말 좋겠습니다.” 그 빵집은 장사가 잘된다. 역사도 오래됐다. 1968년에 생겼으니 이제 50년이 다 되어 간다.

내가 가본 빵집 중 제일 붐비는 곳은 단연 군산의 이성당 빵집이다. 종종 군산에 가면 그 빵집에 들른다. 그때마다 손님들이 빵집 앞 도로변 멀리까지 죽 늘어서 있었다. 손님이 하도 많다 보니 직원들은 늘 바쁘다. 카운터에서 빵을 봉지에 담아주는 직원들의 손놀림이 어찌나 빠르던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군산 여행의 묘미 가운데 하나는 이성당 빵집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다. 이성당 빵집은 1945년에 생겼다.

대전역엔 성심당 빵집의 매장이 있다. 대전역 매장은 항상 붐빈다. 사람들은 성심당의 빵을 사들고 열차를 탄다. 성심당 빵은 그렇게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과 만난다. 사람들은 그 빵에 대해, 그 빵집에 대해 이야기한다. 1956년에 생겼다는 얘기,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간식으로 제공됐다는 얘기…. 동대구역에도 삼송빵집의 매장이 생겼다. 대구 삼송빵집은 1957년에 문을 열었다.

요즘 빵집 얘기를 참 많이 한다. 전국의 유서 깊은 빵집을 순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빵을 즐기는 것은 그 빵집의 빵 맛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즐기는 것은 그 빵집의 역사와 스토리다.

몇 달 전 서울 장충동 태극당 빵집 앞을 지나다 리노베이션을 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 걸 보았다. 1946년에 생긴 태극당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어떻게 리노베이션할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그 태극당이 최근 리노베이션을 마쳤다. 외관은 예전 모습을 유지했고, 내부는 과거의 흔적을 많이 살렸다. 홍보 간판과 카운터 안내판은 옛날식 그대로였다. 카운터 안내판에는 여전히 ‘납세로 국력을 키우자’라고 쓰여 있다. 1960, 70년대 분위기다. 곳곳에 오래된 타일, 찌그러진 전기 스위치, 고장 난 두꺼비집(누전 차단기)도 살려놓았다. 근대 건축물을 활용한 작은 박물관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오래된 빵집들은 점점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건물은 건물대로, 빵의 맛과 스토리는 또 그들대로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미래의 유산인 셈이다. 서울시는 미래유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훼손되거나 사라질지 모를 근현대 유산을 미리 보존하자는 취지다. 여기엔 청진옥(1937년), 한일관(1939년) 같은 음식점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두 음식점은 서울 청진동 재개발의 와중에 원래 장소를 잃고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옮기다 보니 외관도 바뀌고 내부도 바뀌었다. 당연히 분위기도 바뀌었다. 아직도 우리의 기억 속엔 청진동의 청진옥, 피맛골의 한일관으로 남아 있는데, 무분별한 재개발이 두 음식점의 장소성(場所性)을 망가뜨린 것이다. 

일본 가가와(香川) 현의 고토히라(琴平)가 생각났다. 작지만 역사가 깊은 마을이다. 이곳엔 고토히라를 대표하는 긴료(金陵) 양조장이 있다. 그 역사가 무려 200여 년에 이른다. 지금도 술을 제조해 팔면서 공간 일부를 술 박물관으로 꾸며놓았다. 긴료의 역사를 그대로 보존한 것이다. 둘러보면 우리의 지역마다 오래된 빵집들이 있다. 빵을 먹으며 우리는 그 빵집의 역사를 주고받는다. 빵집의 역사는 소중한 생활사이다. 우리 동네 빵집들이 오래 살아남아 100년을 넘기고, 빵집 어딘가에 빵 박물관 같은 것이 생겼으면 좋겠다.

5. [동아일][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우선순위

사무실 이사를 앞두고 열흘 동안 온통 ‘버리는 일’에 몰두했다. 우선 1000권이 넘는 책을 반으로 줄이는 일이 큰 과제였다. 더러 같은 책이 두 권 있거나 별로 관심분야가 아닌 책들이 섞여 있는 바람에 어느 정도까지는 골라내기가 수월했다. 문제는 다음 단계였다. 10년 이상 간직해온 책을 버린다는 게 쉽지 않아 책꽂이에서 뺐다 꽂았다 하니 작업 속도는 점점 늦어졌다. 

온종일 아쉬운 마음으로 책과 씨름하다가 집에 들어가는 길에 “많이 가졌다는 게 반드시 행복한 일은 아니구나”라고 중얼거렸다. 언젠가 다시 꺼내서 읽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까워서 쌓아둔 것도 결국 나의 욕심이었다.

그렇지만 소득도 있었다. 정말 가치 있는 책이 어떤 책인지 분명하게 확인했다.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도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좋은 책의 기준이 확실해졌다. 어떤 책은 버리고 어떤 책은 남기는 작업을 직접 하다 보니 어떤 책을 만들어야 할 것인지가 간단명료하게 와 닿았다.

선별의 우선순위는 진정성이었다. 아무리 장정이 화려하고 비싼 책이어도 작가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으면 버리는 데 별반 부담이 없었다. 그러나 작가의 오랜 정성이 들어간 책은 그럴 수 없었다. 많은 책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어 살펴보면서 큰 공부를 한 기분이 든다. 살아가면서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으니 말이다.

요즘 선거판을 보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책 제목이 떠오른다. 선거운동이 무슨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다. 후보자에 대한 진지한 검증은 어디로 가고 모 후보의 딸이 미모라는 둥, 조카가 연예인이라는 둥 곁가지가 더 무성하다. 마침 우리 집의 아래층에 사는 분이 출마했기에 아파트 입구에서 만난 그 후보의 딸에게 “요즘 딸들이 열심이던데 아빠 선거운동 하느라 힘들겠네요”라고 했더니 “전 예쁘지 않아서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그래도 며칠 밤새워 만든 동영상을 갖고 가는 길이에요”라며 급히 뛰어갔다. 

국회의원을 뽑는데 웬 가족들의 미모 타령일까. 다 읽고 난 책을 선별하여 버리기도 쉽지 않아 몇 번이나 망설이는데 이제라도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에 대해 더 진지하고 신중하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선택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볍게 선택하면 가볍게 취급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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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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