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경제]

1. 롯데월드타워 오늘 개장, 사드 난관 뚫고 랜드마크로 우뚝 서길

국내 최고층 빌딩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오늘 공식 개장한다. 한국 대표 랜드마크를 목표로 세워진 이 건물의 개장은 롯데그룹뿐 아니라 국가적 경사이기도 하다. 

123층 555m로 세계 다섯 번째이자 아시아 세 번째 고층빌딩인 롯데월드타워는 1987년 사업지 선정 이후 개장까지 꼬박 30년이 걸렸다. 성남 서울공항 항공기 이착륙 문제 등에 발목이 잡혀 허가가 20년 넘게 지연됐고 착공에 들어간 것이 2010년 11월이었다. 이후 사업비 4조원, 연인원 500만명이 투입되는 6년3개월간의 대역사 끝에 올해 2월 서울시 사용승인을 받았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관광산업은 21세기 첨단산업"이라며 "서울에 오면 고궁만 보여줄 수 없다. 세계적 명소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롯데월드타워 건립을 밀어붙였다. 그와 후계자 신동빈 회장의 대를 잇는 집념이 없었다면 오늘의 롯데월드타워를 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롯데월드타워와 롯데월드몰에는 해외관광객 500만명을 포함해 연간 5000만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취업 유발 인원이 2만1000명, 경제 효과는 연간 10조원에 이른다. 랜드마크 빌딩이 관광산업을 부흥시킨 사례는 많다. 파리 에펠탑은 세워진 지 100년이 훨씬 넘었지만 여전히 유럽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세계 최고층 두바이 부르즈칼리파는 한 해 방문객 1000만명 유치를 통해 국내총생산의 5%에 달하는 50억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롯데는 지금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롯데월드타워가 자리를 잡는 데도 얼마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건물 내에 들어서는 최고급 오피스텔 '시그니엘 레지던스'는 중국인 투자자들이 몸을 사릴 경우 분양에 어려움이 예상되고 면세점 등 주변 상권 매출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건물을 세우기 위해 30년간 롯데가 들인 땀과 열정에 견주면 이 같은 문제는 사소한 것이다. 모쪼록 안전관리와 운영에 만전을 기해 서울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이자 관광한국의 중추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이데일리]

2. 케이뱅크 출범, ‘은산분리’ 족쇄 풀어야국

내 첫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가 오늘 공식 출범한다. 우리나라에도 인터넷은행 시대가 비로소 막을 여는 셈이다. 미국(1995년)과 일본 (2000년) 등에 비하면 한참 늦은 출발이지만 금융혁신 아이콘으로서의 기대는 결코 작지 않다. 낙후한 금융시장에서 미꾸라지들을 자극하는 메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시장엔 벌써 긍정적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케이뱅크의 강점은 ‘무(無)점포 비(非)대면’ 거래로 인한 가격 경쟁력이다. 시중은행에 견줘 돈을 싸게 빌려주고 예금 이자는 더 많이 준다는 얘기다. 신용대출 금리는 시중은행보다 1~2%포인트 낮게, 예금 금리는 0.3∼0.7%포인트 높은 수준으로 책정했다고 한다. 긴장한 시중은행들은 가격경쟁력을 키우려 군살을 빼고 모바일 앱 전용 상품을 늘리는 등 고객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자칫 반쪽짜리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된다. 조기에 안착하려면 대규모 자본 확충 및 투자가 절실하지만 ‘은산(銀産)분리’ 규제에 발목을 잡혀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한도가 10%(의결권 지분 4% 포함)로 묶여 있어 증자가 어렵기 때문이다. 족쇄를 풀어주려고 인터넷은행에 한해 한도를 34~50%로 늘려주자는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의 반대에 부딪쳐 있는 상태다.

케이뱅크는 초기 자본금 2500억원 중 절반 이상이 시스템 구축과 인건비 등으로 투입됐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지키면서 원활한 영업을 하려면 올해 말까지 대략 2000억∼3000억원 규모의 자본금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증자가 안 되면 영업에 차질을 빚을지도 모르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곧 본인가를 받을 카카오뱅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은 기존 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 등 야권 대선주자들은 경쟁적으로 4차 산업혁명과 핀테크를 통한 금융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혁신을 선도하겠다면서 인터넷은행의 발목은 놓아주질 않고 있다. 낡은 규제를 깨뜨리려면 말보다 실천이 앞서야 한다.



[서울신문]

3. 보수 단일화 앞서 공통분모 보여 달라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어제도 통합을 두고 설전만 벌였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바른정당을 향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문에 분당했는데, 가출 원인이 없어졌으니 돌아오는 것이 순리”라고 했다. 반면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은 ”대통령을 잘못 모셔 보수가 처참하게 실패했는데도 반성 안 하고 다시 정권을 잡겠다는 자유한국당이 배신자“라고 일갈했다.

홍 후보가 “TK(대구·경북) 정서는 살인범도 용서하지만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는다”고 바른정당을 비난한 데 따른 역공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경선을 치를수록 세를 불려 가며 대세론이 허구가 아님을 보여 주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경선을 압도적 승리로 마무리해 가면서 당내에서는 ‘연대론’마저 수그러드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보수진영을 양분하고 있는 두 당은 지리멸렬한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냉정하게 표현해 자유한국당 홍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를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판을 이끌어 가는 상수(常數)로 분류하기는 이르다. 그럴수록 진보 진영에 맞설 이른바‘ 반(反)문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두 후보가 의미 있는 변수로 작용해 달라는 것이 보수·중도 진영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국민의당 안철수,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대선 결과는 이미 예정돼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선 구도를 진보 후보 대(對) 중도·보수 후보의 양자 대결로 몰고 가지 않는 한 승산이 없다는 것은 세 당과 후보 모두 잘 알고 있다고 본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의 잦은 회동 역시 ‘단일화 후보‘를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국민 생활이 안정된 선진국은 대부분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자칫 세력 균형이 깨졌을 때 강한 쪽은 전횡을 저지르고, 약한 쪽은 논리 없는 극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은 우리의 정치 역사에서도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략적 사고로 단일화에 전력투구해야 할 보수 진영이 감정적인 설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통합정부를 만들려면 공동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김종인 전 대표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이제라도 보수·중도 각 정당은 정책과 비전의 공통분모부터 제시하기 바란다.



4. 北 옥죄는 美, 정상회담서 中 동참 끌어내야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최근 행정명령 13382호, 13687호, 13722호 등에 의거해 북한 기업 1곳과 북한인 11명을 미국의 양자 제재 대상에 새로 추가하는 내용의 대북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관여해 온 북한 관련 기관과 인사들을 포함시켰다.

재제 기업에 포함된 백설무역은 중국 동북부 다롄에서 위장회사를 차리고 석탄을 북한에 수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만을 대상으로 한 제재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처음이다. 북한이 비핵화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음을 깨닫도록 하겠다는 미국 측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 줬다는 평가다.



미 행정부가 행정명령을 발동하기 전 미 하원 역시 석유 금수를 비롯한 강력한 신규 대북제재 법안(HR 1644)을 통과시켰다. 북한의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북한의 추가 전략도발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자칫 북한의 오판이 국제사회의 더욱 강력한 제재·압박에 직면할 것이라는 단호한 경고 메시지로 볼 수 있다.

군사적 압박도 병행하고 있다. 일명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미 장거리 전략폭격 B1B 랜서가 지난달 15일부터 보름간 다섯 차례 한반도에서 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밝힌 것처럼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계적으로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의미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최근 미 공군의 군사훈련을 핵 폭탄 훈련으로 지칭하고 ‘파국적 후과는 전적으로 미제 호전광들이 지게 될 것’이라고 맹비난한 것도 북측의 위기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의 강력한 대북 압박은 오는 6~7일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메시지를 중국에 보낸 측면도 있다. 북한과 거래하는 기업의 90% 이상이 중국 기업인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묵인 없이 북·중 무역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미국 행정부의 확고한 인식이다. 북한의 4, 5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의 강력한 대북 경제제재가 겉돌고 있는 것 역시 북한의 유일한 우방인 중국이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북핵·미사일 문제는 남북 문제인 동시에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국제적 사안이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간 첨예한 대립의 근저에는 미·중의 힘겨루기와 연관된 사안이다. 미국은 이번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핵·미사일 도발 억제를 위한 중국의 확고한 협력을 끌어내야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미국의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 결정된 주한미군 내 사드 배치와 이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 문제도 반드시 정상회담에서 거론돼야 한다. 중국의 사드경제 보복 중단를 촉구하는 미 하원 결의안을 미 행정부가 실행에 옮기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국민들은 한·미 동맹의 진정성을 믿을 것이다.



5. 엄혹한 남북 관계서 주목받는 스포츠 교류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남북 관계의 경색 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남북 간 민간 스포츠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 주목된다. 6·15 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는 어제 평창동계올림픽 테스트이벤트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여자아이스하키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북한선수단을 위한 남북공동응원단 발대식을 가졌다.



다섯 차례 열리는 북한 선수들의 모든 경기를 응원한다는 것이다. 북한도 평양 원정 우리 여자 국가대표축구단의 신변 안전과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담보서를 아시아축구연맹(AFC)을 통해 대한축구협회에 전해 왔다. 오는 7일 남북 맞대결 성사가 유력하다고 한다.

현재의 남북 관계는 과거 진보정권 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최악의 상황이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이 10년 가까이 중단되고 있고,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2월 장거리 로켓 및 광명성 4호 발사로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운명을 맞았다.



남북 관계가 이처럼 강대강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국민의 안위와 민족의 생존을 도외시한 채 체제 유지를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골몰하는 북한 정권 탓이 크다. 중국과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역시 원인 제공자는 다름 아닌 북한 김정은 정권이다.

외교·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에 이르기까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위기 상황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대화 창구는 완전히 닫혀 있다. 정부 누구도 관계 개선의 ‘관’자도 꺼내지 않고 있다. 정치·경제·외교적으로 압박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엄혹한 현실 속에서 정치와 무관한 스포츠계가 중심이 돼 교류의 끈을 다시 잇는다는 것은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 관계 개선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핵과 미사일로 위협하는 것도 모자라 핏줄마저도 독살하는 정권과 대화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주변 동맹국의 입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지만 현안 해결을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서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해야 한다. 한반도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남북공동응원단은 ‘우리는 하나다’를 외친다고 한다. 남북 경색을 푸는 대화의 기회로 작용되길 바란다.



[매일신문]

6. 포스코, 흑자 5조원 달성과 함께 지역 기여도 더 높여라

포스코 권오준 회장은 지난달 30일 서울의 최고경영자 포럼에서 2019년 영업이익을 현재의 2배 수준인 5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권 회장의 발언은 CEO의 자화자찬 수준이 아니라, 포스코 경영 상태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포스코가 그간의 비상경영 체제에서 벗어나 순조롭게 항해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포스코는 본사 주소를 포항에 두고 있는 지역 기업이다. 포항에 본사 기능이 있는지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지역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다. 이런 포스코가 몇 년 동안 경영 부진과 정권과의 유착, 비리 수사 등으로 큰 혼란을 겪어왔기에 적잖은 우려를 자아낸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만 해도 포스코에 대한 극단적인 비관론이 횡행했지만, 권 회장의 뛰어난 경영 능력으로 이를 잠재웠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권 회장이 취임한 2014년 이후 포스코는 점차 과거의 위상을 회복하고 있다. 권 회장이 ‘철강사업 고도화’ ‘비철강사업의 구조조정과 수익 향상’으로 목표를 정하고 포스코의 고유한 강점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이는 전임 정준양 회장이 ‘탈(脫)철강사업’을 시도하다가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것에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포스코는 서서히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정작 ‘포스코의 터전’이라 할 수 있는 포항은 엉망진창이다. 포스코가 최근 몇 년간 구조조정과 경비 절감 등을 단행하면서 포항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철강 관련 기업은 부도났거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서민 경제마저 휘청거리고 있다. 포항 경제에 포스코의 비중이 절대적임을 감안하면 포스코의 책임은 엄중하다. 그 와중에 포스코건설 등 일부 계열사가 인력과 조직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다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포스코가 흑자 5조원을 목표로 하는 것은 축하받을 일이다. 그렇지만, 국민기업 포스코가 지역의 희생을 발판 삼아 자기 살길만 찾는다는 비판을 듣는다면 고 박태준 회장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부터 포항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기여도를 높여가야 할 것이다. 지역과 기업은 함께 살아야 그 의미가 커진다.



7. 낙동강 물로 가뭄 해결, 꼼수 소리 안 나오게 제대로 해야

농어촌공사 경북본부가 4대강 사업으로 준공된 낙동강의 다기능 보(洑)의 물을 상습적인 가뭄지역에 농업용수로 대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북 일부에서 이상 기후와 가뭄의 상시화로 빚어지는 극심한 농업용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여기에는 낙동강 보에서 가뭄지역을 잇는 관로 설치로 많은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 제2의 4대강 사업이라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이다.



농어촌공사가 추진 중인 사업은 정부의 ‘하천수 활용 농촌용수 공급사업 계획’이라는 가뭄 정책과 궤를 함께 하는 일이다. 즉 4대강에 설치된 16개 다기능 보 가운데 11곳의 보유 여유 수량으로 상습 가뭄지역에 용수를 공급하는 것이다. 특히 경북에서는 상주와 김천 등 낙동강 상류지역을 비롯한 상습 가뭄지역에 필요한 사업이다. 낙동강 보의 물로 만성적인 가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어서다.



상주의 일부 지역은 이미 농어촌공사가 지난해 전국 처음 상주보 물을 이용하는 사업을 마쳐 상주 사벌면 일대 배 농사 농가 등 798㏊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받는 혜택을 누렸다. 이에 농어촌공사는 추가로 구미보 물을 공급해 인근 농경지 4천565㏊에 물 부족 피해를 없앨 계획이다. 아울러 정부가 현재 진행 중인 전국 17개 지구에 대한 하천수 활용 농촌용수 공급사업의 경북 유치에도 나섰다.



이명박정부 시절 전국 4대강 사업으로 모두 16개의 다기능 보가 설치됐지만 환경 파괴 논란은 여전하다. 심각한 녹조현상 등을 들어 보 해체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4대강 공사의 긍정적인 효과 또한 분명하다. 특히 반복적인 풍수해 재난 피해의 최소화나 가뭄 해소 기여가 그렇다. 다기능 보의 부작용을 줄이되 보유 수자원의 활용은 필요하다. 

  
경북은 어느 곳보다 농업 비중이 크고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곳이다. 게다가 낙동강에는 대구경북 구간 6개 등 모두 8개의 다기능 보가 있다. 낙동강 보에 확보된 강물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곳이다. 낙동강 물의 효율적인 활용과 효과의 극대화로 제2의 4대강 사업이라는 의혹이 없게 해야 한다. 돈만 까먹고 쓸모없는 꼼수 사업이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도록 제대로 해야 한다.



[중앙일보]

8. 뻔뻔한 김정남 암살 부인, 자멸의 길이다

김정은 정권의 나팔수인 일본 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어제 “김정남 암살의 북한 배후설은 모략”이라는 억지 주장을 폈다. 조선신보가 북한 입장을 대변해온 점으로 미뤄 지난달 31일 평양에 도착한 김정남의 시신을 이용해 김정은 정권이 어떤 장난을 칠지 두렵다.

지난 2월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이 북한 공작원의 사주로 변을 당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말레이시아 당국이 밝혔듯 10명의 용의자 중 독극물을 뿌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성 2명을 제외한 나머지 8명 전원이 북한인이라는 사실은 이를 웅변해 준다.

그런데도 말레이시아 당국이 김정남의 시신뿐 아니라 용의자들의 신병도 북한에 넘긴 것은 전적으로 인질 협박 때문이었다.

북한은 사건의 배후 문제로 논란이 일자 외교관 등 자국 거주 말레이시아인 9명을 평양에 억류했다. 결국 조기 총선을 앞둔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가 정치적 타격을 걱정한 나머지 북한의 위협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김정남의 시신과 용의자들이 북한으로 넘겨지면서 세계적 이목을 끌었던 이번 사건이 미궁에 빠질 게 거의 확실하다. 이는 북한에 막무가내식 인질 협박도 통한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몹시 우려스럽다. 자국민의 안전이 달린 일이기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해도, 말레이시아 정부가 그토록 무력하게 백기를 들었다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비록 당사국은 아니지만 남북 문제와 관련된 김정남의 중요성을 고려해 볼 때 우리 정부도 사태가 이렇게 안 되도록 모종의 역할을 해야 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물론 가장 비난받아야 할 건 김정은 정권이다. 인질 협박이란 비열한 방법으로 잠시 사건을 덮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격이다. 아무리 북한이 우겨도 국제사회는 누구의 소행인지 뻔히 알고 있다. 백주 대낮에 천인공노할 암살 사건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인질 협박으로 이를 호도하려는 뻔뻔스러운 행위는 북한 정권의 고립과 멸망을 자초할 뿐이다.



9. 검찰, 우병우-고영태 의혹 확실히 풀어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음에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최순실의 측근이었던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 관련 의혹들은 속 시원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우 전 수석이나 고씨에게 비리가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을 수사하는 검찰에 켕기는 것이 있어 유독 그 칼날이 무딘 탓일까.

우 전 수석은 대통령의 신임을 등에 업고 최씨의 국정농단을 비호·방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했다가 기각된 구속영장에는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급 5명과 공정거래위 전 국장, 외교부 공무원들에 대한 ‘표적 감찰’을 지시하고 외교부 인사에 개입한 혐의(직권 남용) 등이 포함돼 있다. 그는 2014년 ‘정윤회 문건’ 사건을 기밀 유출 사건으로 축소토록 검찰에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만약 그때 우 전 수석과 검찰이 제 역할만 했더라면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이런 악성종양이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제는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우 전 수석이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합동수사단’의 요직에 측근을 앉히려 한 것 등 새 혐의를 조사 중이긴 하다. 그러나 우 전 수석이 지난해 말 검찰 수사를 전후해 김수남 검찰총장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등과 수차례 통화한 의혹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진실 규명에 적극 나서는 것만이 검찰 조직이 살길이다.

더 이상 검찰은 고영태 녹음파일도 외면해선 안 된다. 고영태씨가 최씨의 일을 처리하며 각종 이권에 개입했는지, 회사 자금을 횡령했는지, 국정농단 사건 폭로에 배후가 있는지 등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고씨는 정부가 추진한 ‘미얀마 K타운 프로젝트’와 인천세관장 인사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비록 ‘내부 고발자’일지라도 개인 비리나 음모가 있다면 찾아내 엄벌해야 정의를 바로세울 수 있다. 국민적 의혹이 너무 커져 버린 이상 검찰이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그냥 덮고 지나갈 일이 아니다.



10. 언제까지 ‘박근혜 사면’ 같은 네거티브에 매달릴 건가

나라가 융성하려면 지도자의 리더십이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정책과 비전으로 국민의 마음을 살 줄 알아야 큰 지도자다. 사소한 것을 트집 잡아 경쟁자의 약점을 침소봉대해선 안 된다. 19대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은 딴판이다. 느닷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론을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후보와 주변 인물들의 시대착오적 수준을 말해주고도 남는다.

안철수 국민의당 경선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된 지난달 31일 “박 전 대통령 특별사면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기자 질문에 “대통령이 사면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위원회를 만들어서 국민의 뜻을 모으고 투명하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기자가 재차 “박 전 대통령도 사면위원회에서 검토할 여지가 있다는 건가”라고 묻자 안 후보는 “국민의 요구가 있다면 사면위원회에서 다룰 내용”이라고 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안 후보 발언은 원론적이다. 사면을 대통령이 임의적으로 해선 안 되며 시스템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후보 측 박광온 수석대변인은 “청산해야 할 적폐 세력에 대한 구애 신호가 아니길 바란다”고 공격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발상과 뭐가 다르냐”고 비난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좌파와 얼치기 좌파가 우파 동정표를 노린 것”이라고 양당을 함께 비난했다. 최근 지지세가 급등한 안 후보에게 정치적 상처를 주겠다는 치졸한 의도가 엿보인다. 

대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정책과 비전 대결을 벌이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다. 조기 대선으로 차기 정부는 정권 인수위도 없이 5월10일 출범해야 한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대통령이 파면당하고 구속까지 당하는 불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에야말로 철저한 검증으로 반듯한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국민의 입장에선 각 후보가 비선인물은 없는지, 어떤 사람으로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갈 것인지를 두고 평가하기에도 바쁘다. 국민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정책에 대해 후보들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고, 잘 설명하는지 누가 그 정책을 주도할지를 듣고 싶어 한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소모적 ‘네거티브 캠페인’과 과감히 결별하는 결단력을 보여줄 지도자가 필요하다. 

차제에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에 대한 엄격한 제도적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지 논의해야 한다. 안 후보는 “비리 정치인과 경제인에 대한 사면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문재인 후보는 취재진의 질문에 “사면 기준을 명료하게 정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고 답했다. 말만 늘어놓을 일 아니다. 사면권 행사 개선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해 국민 심판을 받아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편집장 레터] '빈 교실 어린이집'와 '동네 돌보미' 

“우리 큰아들 이번에 국공립어린이집에 드디어…. 에헤라디야!!! 그런데 무려 6년을 기다렸어요. 맞벌이에 다자녀인데….”

지난해 초등학생 수는 총 267만명으로 5년 전 313만명보다 18% 줄었다. 그만큼 초등학교 빈 교실은 늘어났다. 반면 국공립어린이집은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보육의 질이 높아 많은 부모들이 선호하지만, 전체 어린이집의 7%에 불과하다. 최근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 13명이 남는 교실을 국공립어린이집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발의한 배경이다.



그러나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강경한 반대 입장이다.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별도 건물이 아닌 경우 영아 우는 소리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초등학생 학습권이 침해당할 수 있다는 이유다. 

학부모 입장에서 판단하기에 ‘쌈박한’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국공립어린이집을 늘리자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방법론에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보육 수요가 가장 많은 서울에도 과연 남는 초등학교 빈 교실이 있을까? 몇 개나? 인근에 위치한 곳이 아니라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 뿐이다. 

‘어느 날 부르고뉴 와인 한 잔이…’라는 책이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박재화 씨의 에세이집이다. 2010년 한국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G20 비즈니스 서밋’에서 제공된 와인이 바로 그녀가 만든 ‘루뒤몽 크레망’이었다. 그녀가 만든 또 다른 화이트 와인 ‘루뒤몽 뫼르소 2007’은 와인 만화책 ‘신의 물방울’에 실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프랑스까지 날아가 일본인 남자와 결혼해 둘이 함께 부르고뉴 와인을 만든다’는 독특한 인생 스토리에 끌려 읽은 그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러나 와인 관련 내용이 아니었다. 잠시 스쳐 지나가듯 서술된 프랑스 육아 시스템에 관한 부분이었다. 

프랑스에는 ‘Assistant Maternal’이란 제도가 있다. 120시간의 교육을 받고 PMI(ProtectionMaternelle et Infantile)라는 기관에서 허가를 받으면 본인 집에서 최대 4명까지 아이를 돌볼 수 있다. 자기 집에서 돌보는 것이 여의치 않으면 여러 명이 집을 하나 빌려 각자 돌보는 아이들을 함께 돌볼 수도 있다. 동네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일명 ‘동네 돌보미’다.

다수 맞벌이 부부들이 “버는 돈의 대부분을 육아 비용으로 써버리는 것은 감내할 수 있다. 다만 믿을 수 있는 아줌마를 구하기 너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생판 낯 모르는 사람을 이런저런 통로로 찾아 말도 못하는 어린아이를 맡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경험해보지 않은 이도 모두 공감할 터다.



그런데 그 맡기는 사람이 동네에 사는 아주머니라면? 아파트를 오다가다 얼굴을 본 적 있는 같은 아파트 주민이라면? 입주 돌보미가 아니니 비용은 훨씬 적게 들고, 같은 지역이니 아침에 아이 맡기고 저녁에 찾아오는 것도 크게 힘들지 않고, 더더군다나 안심할 수 있으니, 이렇게 ‘딱’인 해법도 없다. 

일거리를 찾고 싶어도 엄두를 못 내는 중년 여성이나 경력 단절 여성에게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가계소득과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는 효과는 덤이다. 

‘선진 외국의 저출산 대응정책 현황 파악 및 사례 연구에 관한 출장보고서’가 한둘이 아니다. 무얼 보고 와서 무슨 사례 연구를 하고 어떻게 벤치마킹했길래 지금 이 모양인지 궁금하다. 5월 ‘장미대선’을 앞두고 장관들 해외 출장이 잦아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정권 말 도덕적 해이에 기댄 외유든 뭐든, 가서 이런 거 하나라도 정확하게 보고 와서 적용한다면, 그나마 내 세금이 덜 아깝겠다.



2. [매경이코노미][신병주의 '왕의 참모로 산다는 것'] 죽음으로 단종을 지킨 성삼문

1456년 2월 세조를 제거하고 상왕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거사가 사전에 누설됐고 주모자들은 줄줄이 압송됐다. 거사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은 성삼문(成三問, 1418~1456년). 그와 뜻을 같이했던 핵심 인물 6명은 ‘사육신(死六臣)’으로 불리며 지금도 충신의 대명사로 인식된다. 

성삼문은 충청도 홍주(지금의 홍성) 적동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창녕. 자는 근보(謹甫), 호는 매죽헌(梅竹軒)이다. 단종 복위운동에 함께 참여했던 도총관 성승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현감 박첨의 딸이다. 1435년(세종 17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8년에는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으며, 1447년에 문과중시에 장원급제했다. 세종이 집현전을 설치한 후 인재를 모을 때 집현전 학사로 뽑혔으며, 세종의 총애 속에 홍문관 수찬·직집현전(直集賢殿) 등의 직책을 지냈다.



1442년에는 오늘날 유급휴가 제도의 기원이 된 사가독서(賜暇讀書·관리들에게 휴가를 줘 독서에 전념하게 하던 제도)를 북한산의 진관사에서 했고, 세종 곁에서 주요한 정책 과제를 연구했다. 세종이 훈민정음 28자를 만들 때 성삼문이 주도적으로 참여했음은 세종실록 기록에도 잘 나타나 있다. 

1443년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1446년 반포되는 과정에서 명나라 요동을 13번이나 왕래하며 유배 중인 명나라의 한림학사 황찬을 만나 훈민정음을 정교히 완성하는 데 기여했다. 병으로 고생하던 세종에게 성삼문은 늘 곁에 두고 싶은 신하였다.

세종 사후에도 성삼문은 문종과 단종을 보필하며 ‘세종실록’ ‘역대병요’의 편찬 등 주요 사업을 수행했다. 특히 어린 단종을 부탁한 문종의 유명(遺命)은 성삼문에게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성삼문의 인생은 1453년 10월 10일에 일어난 계유정난으로 큰 전환을 맞이한다. 

1453년(단종 1년) 좌사간으로 있을 때,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황보인·김종서 등을 죽이고 정권과 병권을 잡았다. 정변의 성공으로 수양대군은 영의정 이하 모든 권력을 차지했지만 여전히 왕은 단종이었다. 수양대군은 김종서나 황보인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젊고 명망 있는 관리로 성삼문을 주목했다. 성삼문은 세종대부터 함께 중요한 국책 사업을 해온 동료기도 했다. 성삼문이 직접 계유정난에 가담하지 않았음에도 수양대군은 그에게 정난공신(靖難功臣) 3등의 칭호를 내리며 포섭하려 했다.



성삼문은 이를 사양하는 상소를 올렸지만 결국 공신에 책봉됐다. 단종이 여전히 왕이었기에 성삼문의 관직 생활도 계속됐다. 1454년에 집현전 부제학이 되고 예조참의를 거쳐 1455년에는 예방승지가 된다. 예방승지는 성삼문에게 가혹한 운명을 예고하는 직책이었다. 1455년 윤 6월 수양대군의 압박 속에서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던 날 성삼문은 바로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상징하는 옥새를 전해주는 비서의 자리, 즉 예방승지의 직책에 있었다. 

“세조가 선위를 받을 때에 자기는 덕이 없다고 사양하니, 좌우에 따르는 신하들은 모두 실색해 감히 한마디도 내지 못했다. 성삼문이 그때에 예방승지로서 옥새를 안고 목 놓아 통곡하니, 세조가 바야흐로 겸양하는 태도를 취하다가 머리를 들어 빤히 쳐다봤다.”

연려실기술에 담긴 내용이다. 향후 두 사람의 갈등을 예고한 장면이다. 

성삼문은 직책상 수양대군에게 어쩔 수 없이 옥새를 전달했지만 그의 마음은 더 이상 세조의 신하가 아니었다. 성삼문은 집현전에서 동문수학했던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등 뜻이 맞는 동지들을 규합하기 시작했고 무인인 유응부도 거사에 합류했다. 

성삼문 등 단종 복위운동을 주도한 이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1456년 6월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자리에 세조는 단상에서 왕을 호위하는 별운검을 세우기로 하고 성삼문의 아버지인 성승과 유응부를 적임자로 지목했다. 시해를 모의한 주동자들이 직접 세조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성삼문 등은 이날을 거사일로 잡고 세조와 세자(세조의 아들), 세조의 측근들을 제거하기 위해 보다 치밀하게 계획을 준비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한명회 등이 연회 장소인 창덕궁 광연전이 좁고 더위가 심하다는 이유로 별운검을 세우지 말고 세자도 오게 하지 말 것을 청하자, 세조가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거사 주모자들 간에는 의견이 엇갈렸다. 유응부 등은 일이 누설될 가능성을 염려하면서 계획대로 일을 추진하자 했고, 성삼문과 박팽년은 ‘별운검을 세우지 않고 세자가 오지 않는 것은 하늘의 뜻이니 거사 날짜를 다시 계획하자’고 했다. 

결국 거사는 연기됐고 유응부 등의 우려대로 내부의 밀고자가 나타났다. 거사가 연기되면서 불안해진 김질이 장인인 정창손을 찾아가 상왕 단종 복위운동의 전말을 알린 것이다. 정창손은 그길로 사위와 함께 궁궐로 달려가 세조에게 사실을 알렸다. 즉시 성삼문 등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졌고 단종 복위운동에 참여한 인사들이 줄줄이 압송됐다.

세조는 친히 국문을 하면서 이들을 협박하고 회유하려 했으나, 이들은 세조의 왕위 찬탈 부당성을 공격하면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성삼문은 “상왕이 계신데 나리가 어떻게 나를 신하로 삼을 수 있는가”라며 세조를 자극했다. 

성삼문이 형을 당한 뒤 그의 집을 살펴보니 세조가 준 녹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을 뿐 가재도구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방바닥에 거적자리만 깔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성삼문의 동지인 박팽년은 세조를 일컬을 때마다 ‘나리’라고 했고, 세조 재위 시절 충청도관찰사로 있으면서 올린 문서에는 ‘신(臣)’이라는 용어를 쓴 적이 한 번도 없음이 조사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그만큼 세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사육신을 비롯한 거사 참여자들 대부분은 엄청난 고문을 당했다. 성삼문은 모진 고문 속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세조의 불의를 나무라고 또한 신숙주에게는 세종과 문종의 당부를 배신한 불충(不忠)을 크게 꾸짖었다.



격노한 세조가 무사를 시켜 불에 달군 쇠로 그의 다리를 태우고 팔을 잘라내게 했으나 그의 안색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형장에서 성삼문은 사지를 찢기고 목이 잘려 전신이 토막 나는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1456년 6월 7일이었다. 

성승도 아들과 함께 참형을 당했다. 성삼문의 동생 삼빙(三聘)·삼고(三顧)·삼성(三省)과 아들 맹첨(孟瞻)·맹년(孟年)·맹종(孟終)과 갓난 아들, 손자 헌택(憲澤)까지 모두 죽음을 당했다. 성삼문 가문은 ‘멸문의 화’를 겪었으며, 성삼문의 처와 딸마저 노비로 팔려가는 비운을 당했다.

단종 복위운동 사건에 연루돼 죽음을 당하거나 화를 입은 인물은 사육신을 비롯해 권자신, 김문기 등 70여명에 이르렀다. 당시에는 역적이었으나, 16세기 이후 이들이 보인 충절과 의리는 후세 귀감이 된다. 사육신의 충절을 따르려는 사람들은 중앙 관직을 버리고 대부분 지방으로 돌아가 성리학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이면서 조선 전기 사림파의 뿌리를 형성한다.



우리가 흔히 ‘사육신’으로 알고 있는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 6명이 사육신으로 지칭되기 시작한 것은 남효온이 ‘육신전’을 저술한 것에서 비롯된다. 남효온의 문집을 통해 수양대군의 불법에 맞서 저항한 이들의 명성은 재야의 사림(士林)을 중심으로 널리 전파됐다. 남효온은 김시습, 원호 등과 함께 몸은 비록 살아 있어도 정신은 사육신을 계승한다는 뜻에서 ‘생육신’으로 불렸다.

성삼문 등이 공식적으로 복권된 것은 단종 복위운동이 일어난 후 230여년이 지난 조선 후기 숙종 때였다. 숙종은 1691년(숙종 17년) 사육신의 관작을 회복하고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숙종은 사육신에 대해 ‘당세에는 난신이나 후세에는 충신’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사육신을 처형한 세조 입장도 적절히 고려하면서 성삼문 등 사육신을 복권한 것이다. 

사육신 복권과 함께 1694년(숙종 24년) 11월 6일 노산군에게는 단종이라는 묘호가 올려졌다. 단종이 공식적으로 왕의 위상을 회복한 순간, 성삼문은 238년간 응축했던 울분을 사후에서 조금이나마 풀 수 있지 않았을까.



3. [매경이코노미][Health] 불면증·수면무호흡·과다수면 수면장애 탈출하기

입시, 취업, 과중한 업무, 퇴직, 노후 등 삶에 대한 중압감이 현대인의 정상적인 수면을 방해하고 있다. 수면장애를 경험하는 이들의 증가 속도를 보면 상황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수면장애 환자는 72만명을 웃돈다. 2010년 46만여명이던 수면장애 환자는 2013년 60만명을 넘어섰고 2015년에는 72만1000명으로 5년 사이 56% 이상 급증했다. 수면장애의 원인은 유형별로 조금씩은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관련이 많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수면장애는 그 유형이 다양하다.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도, 반대로 과하게 잠을 많이 자는 것도 수면장애다. 즉 정상적인 생체의 리듬을 이어갈 만큼의 적절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수면장애라 할 수 있다.



가장 흔한 수면장애 유형이 일차성 불면증이다. 쉽게 말해 밤잠을 설치는 유형이다. 여기서 ‘일차성’의 의미는 우울장애나 다른 신체 질환 등 특별한 요인이 없는 불면증이란 뜻. 이 같은 불면증은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높인다. 서울대병원 수면의학센터 정도언·이유진 교수팀이 서울대병원을 방문한 수면장애 환자를 분석한 결과, 불면증 환자(661명)는 수면장애가 없는 군(776명)에 비해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8.1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진 교수는 “수면 중에는 정상적으로 깨어 있을 때에 비해 10~20% 정도 혈압이 떨어지면서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린다. 불면증 환자는 숙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정상적인 혈압의 감소 없이 교감신경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따라서 불면의 밤을 반복해서 보내다 보면 심혈관 질환의 위험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다음은 수면무호흡증이다. 수면무호흡증은 잠을 자는 동안 호흡이 자주 끊기면서 몸속 산소 농도가 부족해지고 결국 고혈압·당뇨병·심근경색증·부정맥·뇌졸중·치매 같은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전날 밤에 잠을 충분히 자도 낮에 잠이 쏟아지는 과다수면증 역시 수면장애의 유형이다. 정상적인 수면 시간은 7~8시간 정도. 9시간 이상의 수면을 취하고도 졸린 증상이 지속된다면 과다수면증을 의심해야 한다. 그 밖에 꿈을 꾸는 중에 소리를 지르는 ‘렘 수면 행동장애’나 급작스럽게 잠에 빠져드는 ‘기면증’도 증가하는 추세다. 

수면장애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우선 자신의 증상을 제대로 알고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이 필요하다. 일시적인 불면증은 1~2주간 전문의 처방을 통해 수면제를 복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수면제에 의존하게 되면 불면증이 오히려 악화되고 만성화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향운 이대목동병원 수면센터장은 “심리적 스트레스가 해결되고 마음이 안정된 후에도 잘못된 수면 습관으로 잠들기가 힘들고 자주 깨는 일이 있다면, 불면증에 대한 인지행동치료를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또 기본적으로 수면장애 예방과 극복을 위해서는 규칙적인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것이 권장된다. 잠자리의 소음을 없애고 조명을 안락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낮잠은 15분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좋다.



4. [강원일보][발언대] 위험한 봄바람

“봄이 되면 온갖 초목이 물이 오르고 싹이 트고 한다. 사람도 아마 그런가 보다.” 춘천 출신 소설가 김유정의 단편소설 `봄봄'에서 봄의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하지만 소방공무원인 내가 정의해야 하는 봄은 따뜻한 기온과 건조하고 강한 바람이 많이 불어 화재가 발생하기 좋은 최상의 조건이 형성되는 시기이며, 관광이나 수학여행, 지역별 행사가 늘어나면서 안전사고가 증가하는 시기다. 

최근 3년간 화재발생 현황을 보면 도내 화재의 34.7%, 전국 대비 29.6%로 봄철 발생률이 가장 높고, 특히 3월은 농산폐기물 소각에 의한 화재 증가로 임야나 야외화재가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2017년 봄철소방안전대책의 중점은 우선 기후적 요인으로 산불이 최우선이고, 두 번째는 공사장 및 부주의 안전관리, 세 번째는 석가탄신일 및 지자체 행사의 안전관리와 갑자기 대두된 대통령선거 안전대책이라고 하겠다. 우선 산불예방활동은 산림청 `산불조심기간' 공고에 따른 소방대책으로 논·밭두렁 및 쓰레기 소각행위 금지, 담배꽁초 무단투기 및 불법소각 행위 단속, 산불 예방을 위한 유관기관 공조태세 구축이다. 

두 번째 공사장 안전관리 및 부주의 안전대책은 용접작업이나 화기취급시 안전수칙을 준수하도록 계도해 대형화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신학기 방과 후 이용시설의 소방특별조사와 국가안전대진단을 통해 부주의에 의한 화재발생을 차단하는 것이다. 

또한, 여행주간인 5월 1~14일에 강원도를 찾은 수학여행 학생들이 다시 평창동계올림픽의 붐 조성에 동참할 수 있도록 각 학교에서 수학여행지 숙박시설의 안전점검을 관할 소방관서에 요청하면 소방관서에서 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해 주는 `안심 수학여행 준비제'를 통해 손님맞이 채비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끝으로 석가탄신일과 어린이날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연휴에는 야외활동 안전과 사찰 등 목조문화재 자율안전관리 기능을 강화하는 등 대응체계를 구축할 것이며, 같은 기간 대통령 선거 안전대책도 병행해 추진하고자 한다. 

연일 계속되는 산불과 사고소식이 잦아들게 하려면 유관기관 협업과 대국민 협조가 절실하며, 2017년 봄철소방안전대책은 소설의 결말과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점순이와의 봄장가, 봉필의 풍년 논농사처럼 모두 해피엔딩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리드비터 주머니쥐

지리 조건 덕에 특별한 동물들이 많은 호주의 각 주는 저마다 상징 동물들을 정해두고 있다. 퀸즈랜드의 코알라, 뉴사우스웨일즈의 오리너구리, 남호주의 웜뱃(Southern Hairy-nosed Wombat), 서호주는 넘뱃(Numbat, 주머니개미핥기), 태즈매니아는 태즈매니아 데빌(주머니 곰), 노던테리토리는 붉은 캥거루, 수도 준주는 갱갱앵무새(Gang-gang Cockatoo)…. 대부분 멸종 위기종이거나 생존 기반이 취약한 종이다. 빅토리아주가 1971년 3월 선택한 건 ‘요정 주머니쥐’로도 불리는 리드비터 주머니쥐(Leadbeater’s Possum)다. 역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등급 분류상 ‘심각한 멸종위기종(CR)’이다.

리드비터 주머니쥐는 꼬리까지 몸 길이가 평균 33cm에 불과한 유대류로, 주머니하늘다람쥐과에 속하지만 활강을 못한다. 2000만 년 전부터 진화해온 원시 잔존 호주 고유종으로, 현재 빅토리아주 중부 고원 유칼리 숲의 제한된 지역에서만 서식한다.

화석으로만 존재하던 리드비터 주머니쥐가 학계에 처음 존재를 드러낸 건 1867년. 하지만 농지 개간 등으로 1900년대 들면서 대거 사라졌고, 1939년 대화재 이후 완전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다 호주 박물학자 에릭 윌킨슨(EricWilkinson)에 의해 1961년 4월 3일, 빅토리아주 캠바르빌 인근 숲에서 다시 발견됐다. 대중적으로야 도도새나 매머드에 비길 수 없겠지만, 학계는 마치 화석이 환생한 듯 기뻐했다. 생태 연구를 병행한 섬세한 보호정책이 진행됐다. 

나무 구멍을 집 삼아 사는 리드비터 주머니쥐는 늙은 숲과 40년생 안팎의 젊은 숲이 어우러진 곳을 선호하며, 지표에서 6~30m 고도에 머무는 야행성 잡식 동물이다. 1년에 한 번 번식하며 한 번에 많아야 두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보호활동 덕에 80년대 최대 7,500마리까지 불어났으나 제한된 생존 공간과 자연 화재 등으로 개체수가 다시 급감, 현재는 약 1,500마리 가량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계는 향후 50년 내 리드비터 주머니쥐의 서식 생태계가 붕괴될 확률이 92%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한 생물종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도 거대한 자연 순환의 일부여서, 늘 용의자로 꼽히는 인간이 억울할 때도 때로는 있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매일신문]

​1.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보수 재건 기대한다

유승민 의원이 바른정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이제 관심사는 유 후보가 본선에서 선전할지 여부다. 그러나 상황은 매우 어렵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 후보의 지지율은 그야말로 바닥이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서 유 후보의 지지율은 2.2%에 그쳤다. 정당 지지율은 비교섭단체인 정의당에도 뒤진다. 유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전에 탄핵 심판 이후에는 지지율 추세가 달라질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변화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은 유 후보 개인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 최순실 사태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보수 전체가 받은 타격에 있다고 봐야 한다. 유 후보가 박 전 대통령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지난해 총선에서는 공천도 받지 못하는 등 친박 세력과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보수라는 정체성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보수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의 편향에서 그런 부정적 이미지와 거리가 있는 유 후보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유 후보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바로 보수의 재건이다. 유 후보도 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는 수락 연설에서 “보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라며 “이 땅의 보수를 새로 세우는 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보수가 총체적 불신을 받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안보는 철저히 지키되 경제`사회 정책은 약자와 소외 계층을 배려한다는 그의 노선은 우리의 지정학적`시대적 요구에 잘 부응한다. 특히 안보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안보관은 믿음이 간다.



이런 점에 유권자가 주목한다면 이변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바로 보수의 결집이다. 지금 대선 판도의 주도권은 야당이 쥐고 있다. 그러나 보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열돼 있다. 후보 단일화든 연대든 힘을 합치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



유 후보는 이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행동 방향을 정해야 한다. 앞으로 끝까지 완주할 것이냐 아니면 보수 재건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냐를 판단해야 할 시점이 분명히 올 것이다. 그때 결정의 기준은 보수의 결집이다.



2. 포스코 입사 지원 서류에 아는 직원 이름 쓰게 한 포철공고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는 지난해, 2학년 180명 재학생을 대상으로 취업 전형 절차를 진행하면서 포스코와 관련된 가족 관계를 사전에 파악했다. 가족 가운데 포스코에 다니는 직원의 이름을 명시하라고 한 탓에 학생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사돈의 팔촌에 이르기까지 조금이라도 연고가 있을 만한 포스코 직원을 찾는 소동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학교의 이 같은 사전 조사는 분명히 신중하지 못한 처사였다.



무엇보다도 학생의 능력과 성적 등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기준만으로 취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포스코 가족 등 다른 요인이 작용할 수 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킨 점이 그렇다. 말하자면 공개경쟁의 기회 박탈 같은 좌절감을 느끼게 한 조치였다. 지난해 포스코와 포스코켐텍 등 계열사에 지원을 한 2학년 학생 180명 가운데 포스코와 계열사에 53명이 합격했다. 떨어져 졸업 전 다른 기업에 취업하는 등 구직 활동에 나설 127명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포스코에 가족이 없어서 떨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품었고 그로 인해 논란을 빚은 것이 그 증거이다.



회사는 포스코 가족과 합격 학생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지만 학생과 학부모 불만은 당연하다. 해명의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많은 포철공고 학생들의 꿈은 포스코와 포스코 계열사 입사이다. 적성에도 맞겠지만 안정적이고 괜찮은 보수에다 합격 후 군 입대에도 경력이 인정되는 등 취업 조건이 더없이 좋다. 따라서 학생들이 졸업 전 취업을 간절히 바라며 각종 자격증 획득과 봉사 활동 등 준비에 여념이 없었을 터인데 오해 여지가 충분한 조사를 했으니 학교 측에 대한 비난은 마땅하다.



다만 포스코와 계열사의 동시 입사 지원 방식은 평가할 만하다. 포스코와 계열사의 입사 지원 날짜를 다르게 한 종전 방식과 달리 취업의 기회가 여러 학생에게 고루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성적 상위자 등 특정층에게만 취업 기회를 주는 데 따른 다른 학생들의 역차별 문제를 없앨 수 있다. 포철공고는 철강 분야 마이스터고인 만큼 갈고닦은 실력과 능력, 공정한 기회와 공평한 평가로 취업이 결정되는 일이야말로 학생들이 바라는 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데일리]

3. 어처구니없는 세월호 ‘돼지뼈 소동’

해양수산부의 세월호 인양 작업이 ‘돼지뼈 소동’으로 도마에 올랐다. 해수부는 그제 긴급 브리핑을 통해 세월호가 실려진 반잠수식 선박 갑판 위에서 미수습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 7점과 신발 등 유류품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불과 4시간여 만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유골은 사람이 아닌 돼지의 뼈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졌다. 선체에 구멍을 뚫느냐를 놓고 갈팡질팡한 데 이어 어처구니없는 소동으로 혼란과 불신을 자초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해수부의 섣부른 발표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있는 미수습자 9명의 가족들에게 또 한 번의 좌절을 안겨주었다. 그들의 아픔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돼지뼈와 유류품이 세월호 선체가 아닌 반잠수식 선박 갑판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해수부가 설치했다는 3중 유실 대책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선체 유실방지망에 허점이 있다면 자칫 미수습자의 유골을 다 찾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세월호 인양으로 ‘잠수함 충돌설’, ‘고의 침몰설’, ‘폭발설’ 등 난무했던 괴담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선체 인양 지연이 고의적이라느니 기술적인 문제로 램프를 자른 것을 두고 ‘증거를 인멸하려는 행위’라느니 하는 또 다른 음모론이 나돌고 있다. 정파성을 띤 특정 세력이 혼란을 부추기려 의도적으로 진실을 왜곡한 잘못이 크지만 정부의 부실한 초동대처와 불투명한 정보 공개 등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없지 않다.

앞으로 본격화할 미수습자 수색과 선체 조사를 통한 사고원인 규명은 인양보다 몇 배나 더 힘든 과정일 수 있다. 해수부는 유가족, 선체조사위원회와 긴밀한 협의 체제를 갖추고 모든 과정을 국민에게 투명하고 신속하게 알려 터무니없는 논란이 생길 여지를 없앨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1차 작업을 거친 후 조사위와 협의하겠다”며 선체 절단 여부를 일단 유보한 것은 잘한 일이다. 미수습자 수색과 진상규명 못지않게 세월호가 더 이상 괴담에 편승한 정치적 놀음에 휩싸이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서울신문]

4. 대선 주자들, 저성장시대 ‘행복비전’ 내놓아야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을 넘는 데 또 실패했다. 벌써 10년째다. 엊그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국민계정’(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만 7561달러로 2만 달러대에 머물렀다.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8%로 수년째 2%대 박스권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보통 선진국으로 인정받으려면 1인당 GNI가 3만 달러를 넘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춘 나라는 미국·일본·영국 등 43개국이다. 46위인 우리는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고비를 넘지 못하고 있다.

물론 1인당 소득과 경제성장률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담보하는 잣대는 아니다. 하지만 부국(富國)이 뒷받침되지 않는 행복이란 추상적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교훈을 우리 현대사가 똑똑히 증명하고 있다. 우리 헌법 전문이 밝히고 있듯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도록 하는 데에는 무엇보다 경제가 밑받침이 돼야 한다.



그런 까닭에 앞으로 5년 대한민국을 이끌 국가지도자 역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진국 함정에 빠진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켜 선진국에 진입시킬 비전과 청사진이 제시돼야 한다.

이처럼 저성장의 돌파구가 절실한 시점이지만 대선 주자들이 쏟아내는 경제성장 공약은 진단은 그런대로 맞지만 처방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뜬구름 잡기식 정책이 대부분이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성장 엔진이 꺼졌다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한국 경제의 재도약은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산업구조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4차 산업혁명을 주요 과제로 삼은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로봇 등 정보기술과 기존 제조업을 결합한 산업 구조의 혁신이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각 후보의 공약은 졸속이며 천편일률적이다. 무슨 무슨 위원회를 만들겠다느니, 창의적 교육이라느니, 학제를 개편하겠다느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당장 집권하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하는데 그저 논의하겠다는 식이니 답답할 따름이다. 우리 경제 신성장 엔진의 주체는 정부 부처가 아닌 민간 기업이다. 4차 산업혁명의 주체 역시 기업이다. 새로운 제품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비로소 우리 경제와 국민의 숨통이 열린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지금 기업 때리기에 주력할 게 아니라 기업이 열정을 갖고 혁신을 통해 꺼져 버린 경제 성장엔진을 다시 살릴 수 있도록 장애물, 즉 규제를 혁파하는 일이 급선무다. 차기 행정부가 총체적인 비전을 갖고 경제성장을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대선 주자들은 이에 걸맞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5. 내년 양극화 완화 예산 지침 주목한다

정부가 그제 내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 계획안 지침을 확정해 의결했다. 각 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내년 예산을 짤 때 적용해야 하는 기본 방향을 정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올해(400조 5000억원)보다 3.4% 늘어난 414조 3000억원 규모로 일자리 창출과 4차 산업혁명 대응, 저출산 극복, 양극화 완화 등 4개 분야에 예산을 집중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4대 중점 분야 가운데 양극화 완화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청년 실업과 저출산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반목과 갈등의 근저에 소득 양극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지난해 소득 상위 1%가 국민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상위 10%의 소득도 48.5%에 이른다. 선진국 가운데 미국을 제외하곤 우리의 소득 양극화가 가장 심각하다는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가 나올 정도로 엄중한 사안이 됐다.

걱정스러운 것은 2008년 이후 소득 분배가 다시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44만 7000원으로 전년보다 5.6% 줄었다. 사상 최대의 감소폭이다. 반면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834만 8000원으로 2.1% 늘었다. 빈부 격차가 심화되면서 대다수 국민의 가처분 소득이 감소하고 이것이 다시 내수와 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저성장의 악순환 고리를 만들었다. 양극화의 폐해가 국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 위기까지 온 것이다.

양극화 폐해는 국가 전체적으로 중소기업과 임금 노동자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지난 수십년 동안 대기업의 수출과 투자 중심으로 이뤄진 성장 제일주의 패러다임은 일부 대기업에 부를 몰아줬지만 정작 하청 구조인 중소기업과 서민 경제를 어렵게 하는 이중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고용 파급력이 적은 대기업 선도형 성장 정책으로 낙수 효과는 사라진 채 중소기업의 목줄을 죄면서 고용 절벽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됐다. 진보·보수와 상관없이 대선 주자들이 앞다퉈 배분과 성장의 조화를 꾀하는 새로운 경제 정책을 제시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정부 예산으로 고질적인 양극화 문제가 단숨에 해소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선도자의 역할은 할 수 있다. 정부의 양극화 완화 지침이 단순한 시혜성 복지 정책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정책으로 연결해 내수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6. ‘찍어 내기 감찰’ 우병우 수사 왜 좌고우면하나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국정 농단 수사의 정점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 특수본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도 예상과 달리 비교적 신속히 청구했다. 행여라도 좌고우면한다는 인상을 줄까 깊이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다. 하지만 유독 꾸물거리는 인상을 주는 수사 대상이 우병우 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이다. “우병우 수사를 안 하느냐, 못 하느냐”는 비판이 커진다. 2기 특수본이 우 전 수석의 수사를 개시했다는 말은 진작에 들렸지만 이렇다 할 진척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우 전 수석이 거의 횡포에 가까운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한 정황은 곳곳에서 이미 감지됐다. 그의 말 한마디가 곧 법으로 통했을 정도로 청와대 실세 중에서도 실세였다. 박영수 특검팀은 그가 정권의 입맛에 들지 않는 공직자를 찍어 내기 위해 감찰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당시 우 전 수석은 김재중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국장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CJ E&M을 조사해 불공정거래 행위로 검찰에 고발하라고 지시했다. 그 지시를 어기고 시정명령 조치만 했던 김 전 국장은 한직으로 밀려난 것도 모자라 민정수석실의 표적 감찰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일부 감사관은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아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에 불려가 협박성 폭언을 듣기도 했다.



​이뿐이 아니다. 자신의 측근인 검찰 수사관을 문체부 주도의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 책임자로 앉히려 한 혐의도 받고 있다.

특수본은 특검의 수사 내용을 고스란히 넘겨받았다. 이후 거의 한 달이 다 돼 가는데도 우 전 수석 수사는 왜 이리 잠잠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특검은 검찰이 보강 수사를 해서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면 우 전 수석은 100% 구속될 거라고 장담까지 했다. 지금껏 외부에서 확인된 보강 수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압수수색 정도다. 그마저도 임의 제출 형식으로 자료를 받았으니 유의미한 증거물이 얼마나 됐는지는 알 수도 없다. 면피성 수사가 아니었느냐는 의심이 나올 만도 하다.

서슬 퍼렜던 특검도 우 전 수석 수사는 이런저런 구실로 얼버무렸던 게 사실이다.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의 국정 농단을 감독하기는커녕 ‘호위무사’ 역할을 했던 그는 온전히 법의 심판대에 올라야 한다. 검찰이 빼고 보태지 않는 엄정한 수사를 하고 있는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조선일보]

7. 중도·보수 단일화, 국민 감동시킬 수 있는가

조기 대선을 앞두고 보수·중도 단일화가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력들이 연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의당의 안철수,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바른정당의 유승민 간의 후보 단일화 여부다. 이 단일화가 성사되면 문 전 대표의 일방 독주는 더 이상 계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홍 지사를 제외한 다른 두 사람은 아직 소극적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단일화'를 언급조차 않고 있고 유 의원은 바른정당 후보로 선출된 이후 일단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태도다.



그러나 지금의 여론조사 결과, 대선 구도를 '1대1'로 만들지 않고는 문 전 대표를 이기기 어렵다는 점에서 선거 막판까지 중도·보수 단일화 논의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종인, 김무성, 박지원 같은 중견 정치인들이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제는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 측 최명길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기도 했다. 안 전 대표도 실제로는 '1대1' 구도를 추구하고 있다. 31일 자유한국당에 이어 내달 4일 국민의당까지 후보를 확정하면 단일화 논의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것이다.



선거를 앞둔 단일화 논의는 주로 현 야권에서 벌어져 왔던 풍경이다. 누구만 아니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식이었다. 지금의 단일화 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정인에 대한 거부감만으로 다른 세력이 모두 뭉치자는 것은 원칙과 정도가 아니다. 두 정당 이상의 선거 연대는 유권자들에게 정치·정책의 공통분모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 무조건 표만 합치자는 것은 야합(野合)에 가깝다. 유권자들이 다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실현되더라도 큰 효과도 없을 것이다.



지금 보수층은 문 전 대표의 대북·안보관에 대해 커다란 불안감을 갖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안보는 보수'를 지향하지만 국민의당은 여전히 햇볕정책을 따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드를 놓고 안 후보와 국민의당 입장이 서로 다르다. 이 중대한 노선·정책 차이가 어떻게 접점을 찾을 수 있느냐가 단일화 논의의 관건이 돼야 한다. 자유한국당에 남아 있는 친박 핵심들의 존재도 단일화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과거의 후보 단일화가 '야합'으로 비판받던 때와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국민이 정치 세력 간의 협치(協治)를 선호하고 있다. 게다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60% 이상의 국회 의석을 갖지 않으면 그 어떤 대통령도 국정을 제대로 끌고 가기 어렵다. 연정(聯政)을 하지 않으면 어느 당도 60%를 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문 전 대표가 집권하면 과거 노무현식 국민 편 가르기 국정 운영이 재연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노선·정책에서 다소 차이가 있어도 협치·연정의 시대로 가는 큰 비전을 담을 수 있다면 그런 정당 간 연대는 유권자들의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분권 시대를 열 개헌(改憲)도 단일화의 촉매가 될 수 있다.



지금 상당수 국민이 흔쾌히 선택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선 구도의 변화를 바라는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민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단일화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노선·정책에 대한 진지한 논의, 협치·연정에 대한 진정한 공감대 없이 자리 나누기식 협상으로 억지로 단일화를 꿰맞춰 보려 한다면 아예 시작도 않는 것이 나을 것이다.



8. 정부 사업비 써서 정치에 학생 동원한 교수

전북 우석대 일부 학생이 민주당 정치 행사에 동원된 사건과 관련, 검찰이 어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지난달 문재인 전 대표 지지 모임 '전북포럼' 출범 행사에 태권도학과 학생 172명을 데려간 우석대 교수 연구실과 태권도특성화사업단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에 앞서 선관위는 우석대 교수 등 4명을 제3자 기부행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학생들은 행사 후 식사와 영화 관람을 했다. 이 돈은 교수 개인 돈이 아니라 교육부로부터 지원받은 지방 특성화 예산이었다고 한다. 대학교수가 정부로부터 받은 사업비를 정치에 사용할 생각을 했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학생들은 민주당 대선 경선 선거인단에도 참여하라고 요청받았다고 한다. 또 이번 사건이 알려지자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허위 증언을 하도록 종용받았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는 유력 대선 주자 주변에 '폴리페서'(정치 지망 교수)들이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문 전 대표 캠프엔 무려 1000명을 넘었다고 한다. 문제의 교수도 그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연구와 교육은 뒷전이고 대선 주자에 줄을 서 나중에 한자리해보려는 교수가 이렇게 많다.



교수인지 정치인인지 알 수 없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이야말로 대학 교육을 망치는 청산돼야 할 적폐(積弊)다. 문 전 대표가 우석대 교수 문제부터 분명히 처리하고 1000명이 넘게 몰려든 교수들도 정리하기 바란다. 지지율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교육이 아니라 정치가 본업인 교수들이 아무 제한 없이 활개치는 것은 명백한 제도적 허점이다. 바로잡아야 한다.



[동아일보]

9. 부모동의 장병만 지뢰제거 맡긴 軍 정상인가

육군의 한 공병대대가 지난달 6·25전쟁 당시 경기도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는 작업에 투입될 병사를 선발하면서 부모로부터 동의를 구했다고 한다. 필요한 병사 30명 중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3명은 빼고 모자란 병력을 추가 선발했다. 이 대대는 작년에도 같은 이유로 병사 5명을 다시 선발했다고 한다. 부모의 사전 동의를 받고 움직이는 군이 얼마나 효율적인 군사 대응을 해낼 수 있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일은 지뢰 제거 작업에 나선 병사의 부모가 이의를 제기해 드러났다. 규정에도 없는 부모 동의 절차를 넣어 병사들은 물론 부모들 사이에 형평성 논란을 일으킨 것은 해당 부대장의 중대한 실책이다. 육군은 “부적절했다며 즉각 시정 조치했다”고 했지만 군에 대한 불신만 커지고 말았다. 일선 부대에서 부모의 간섭을 허용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인이 된 병사의 해외 파병 때 부모 동의가 필수항목이 된 지도 올해로 13년이 됐다. 2010년 예편한 이상의 합참의장은 이 절차가 ‘병영 내 포퓰리즘’이라며 없애려 했으나 실패했다.

부모가 군에 있는 자녀의 안위에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2년 전 비무장지대(DMZ)에서 일어난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부모들은 지뢰 제거에 더 예민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대장이 수색과 지뢰 제거는 다른 임무이고 철저히 준비하고 수칙을 지키면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부모를 안심시켰어야 했다.

강군(强軍)이 되려면 값비싼 첨단무기를 들여오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밑바탕에 장교와 병사, 그리고 군과 국민 간의 탄탄한 신뢰가 깔려 있어야 한다. 병력 운용에 부모의 동의가 필요했다는 점은 군과 국민 사이의 믿음에 크게 금이 갔다는 반증이다. 남북이 정전상태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군이 즉각 전투태세에 나서려면 신뢰만큼 중요한 자산이 없다. 병사는 물론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도 병역 의무만큼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 따로 없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세계일보]

10. 朴 오늘 영장심사 출석… 법원 판단에 모두 승복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 직에서 파면된 지 20일 만이다. 박 전 대통령은 영장심사를 받으러 판사 앞에 서는 첫 전직 국가원수라는 오명을 역사에 남기게 됐다. 탄핵 찬반 여부를 떠나 국가적으로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착잡한 심정이다.

박 전 대통령이 영장심사에 출석하게 된 데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뇌물수수 등 13개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에 서면 심사로만 구속 여부를 결정하게 되면 구속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직 당시 검찰과 특검 조사를 모두 외면했던 박 전 대통령이 법 절차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다행이다. 영장심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뇌물죄 등 혐의에 대해 직접 무죄를 항변할 것으로 보인다. 출석에 응한 만큼 억울한 점을 소명하는 것은 ‘자연인 박근혜’의 당연한 권리다.

헌정 사상 세 번째로 전직 대통령 구속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사법부로서도 고민이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럴수록 특정세력의 외압에 흔들리지 말고 법과 원칙에 근거해 현명하게 판단을 내려야 한다. 법조계에선 혐의의 중대성이나 공범으로 지목된 인사 대부분이 구속된 터라 법적용 형평성을 감안할 때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고 한다. 반면 형법상의 불구속 수사원칙과 국격 추락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구속 여부는 법원이 법리에 따라 결정을 내릴 문제다. 그런 만큼 정치권은 논란이 될 만한 일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유한국당 의원 82명이 불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청원서를 어제 법원에 제출한 것은 자칫 사법부에 대한 외압으로 비쳐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법부의 결정에 국민 모두 깨끗이 승복하는 일이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여부가 갈등과 대립의 불쏘시개로 전락하는 일만은 결단코 없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주간경향][편집실에서] 서바이벌 드라마

2013년 일본에서 방영된 <리미트>라는 드라마가 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한 고등학교의 반 학생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농촌마을과의 교류 체험 캠프를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운전사는 졸음운전을 하고, 30여명이 탄 버스는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살아남은 학생은 여섯 명.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구조대가 즉각 출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못했다. 휴대전화는 통신 가능한 지역에서 벗어나 있었다. 운전사는 당초 가기로 한 마을이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버스를 몰았다. 학교에서 부(副)담임선생은 인솔 선생이 학교로 도착 확인 전화를 한 것으로 착각했다. 한편 버스회사에서는 운전사에게서 도착 전화가 오지 않자, 낮에 사표를 내겠다고 하소연한 사실을 상기하며 화가 나 도망친 것으로 여겨버린다.

생존자들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깊은 숲속에서 생존경쟁을 벌인다. 12부작의 이 드라마는 두 축으로 진행된다. 한 축은 사고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 엉망진창인 모습을 그렸고, 다른 한 축은 여섯 명의 생존자들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따돌림·증오 등으로 생존경쟁을 벌이는 것을 그렸다. 관심을 끌었던 것은 사고의 발생과 수습 과정이다.

다음날 부담임선생은 교장에게 보고하고 경찰에 전화를 걸려 하지만 교장은 피해자 가족들이 학교의 책임을 물을까봐 신고를 하지 못하게 한다. 버스회사는 경찰이 수사할까봐 우선 근무자료를 찢어버린다. 운전사가 과도한 근무로 잠을 충분히 잘 수 없는 상태였던 데다 적절한 시간에 교대근무자를 배치해주지 않은 잘못을 숨기기 위해서다. 관련자들은 30여명 피해자의 구조가 아니라 오직 사고 책임 회피에만 신경쓴다.

나흘이 지나서야 경찰은 사고 현장이 어디인지 확인하게 된다. 이쯤되면 이 일본 드라마가 어떤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고 눈치챌 법하다. 2013년에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마치 세월호 침몰 후에 이 사건을 비유한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안개 속에서 세월호는 출항을 강행했다. 침몰 신고가 들어왔어도 해상관제센터는 무능력으로 일관했다. 현장으로 출동한 해경은 승객 구조를 위한 선내 진입을 하지 않았다. 승객들이 바깥으로 나오도록 적극적인 유도도 시도하지 않았다. 선장과 선원은 승객을 내팽개치고 자신들부터 먼저 탈출했다.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이 관저에 머물며 대면보고조차 제대로 받지 않았다. 돈만을 밝힌 불법 증축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관피아들의 문제도 드러났다. 하지만 사고 이후 관련자들에게 불리한 자료들은 은폐됐고,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수차례 벽에 부닥쳤다.

국회에서 세월호 관련 입법 세미나가 열려 취재를 한 적이 있다. 세미나가 거의 끝난 후 사회자가 피해자 가족에게 소감을 한마디씩 물었다. 한 피해자 부모가 마이크를 들었다. 이 부모는 소감 대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이 외마디 비명에 절절히 배어 있었다.

세월호 선체가 3년 만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한 조사를 기피하는 한,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는 한 이런 사고는 어디에서 다시 고개를 내밀지 모른다. ‘제2기 세월호 특조위’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정치적 현실은 여의치 않다. 이 같은 사고가 다시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우리 사회에서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각자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서바이벌의 세상이다.

​​

2. [서울신문][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순댓국, 북방음식에서 국민메뉴로

순대는 평안도, 함경도 등 우리나라 북부지방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칭기즈칸의 몽골 기마군단이 돼지 창자에 곡식, 채소 등을 넣어 말리거나 얼려서 전투식량으로 활용했던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전통적인 순대는 찰밥에 숙주나 우거지 등 채소, 돼지고기와 선지 등을 고루 섞어 돼지창자에 밀어 넣은 다음 삶아서 만든다.

순댓국은 돼지 뼈를 푹 우려내어 육수를 만들어 뚝배기에 담고 순대, 머리고기, 내장 등을 고루 넣은 후 밥을 더해 끓여 먹는 음식이다. 아마도 어렵던 시절 구하기 쉽지 않은 순대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탕으로 개발한 것이 아닐까 한다. 순댓국에는 다진 양념장, 새우젓, 부추, 들깨, 파 등을 식성에 따라 넣어 먹으면 제격이다. 또 비슷한 음식으로 돼지 뼈 육수에 편육과 밥을 넣어 끓이는 돼지국밥이 있다. 6·25전쟁의 피란길에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재료를 활용할 수 있어서 부산, 대구, 밀양 등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순댓국은 이제 누구나 즐기는 서민 메뉴가 된 만큼 맛깔나게 잘하는 집들이 곳곳에 있어 맛집이 큰 의미가 없을 수 도 있으나 그래도 순댓국 하면 떠오르는 집들이 있어 몇 군데 소개한다.

서울 대림동 대림중학교 옆 골목에 ‘삼거리 먼지막 순대국’이 있다. 1959년에 개업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순댓국집이다. 근처 처음 가게를 하던 곳이 예전 시흥의 과수원이 있던 삼거리 ‘원지목’이어서, 부르기 쉽게 ‘먼지막’으로 이름 지었다. 진한 육수에 직접 만든 순대, 머리고기, 내장을 푸짐하게 넣어주는 구수한 옛날식 순댓국이다.



착한 가격으로, 창업 이래 순댓국 가격변동 내용을 가게에 써서 붙여 놓고 있다. 신대방동 보라매역 인근에는 20년 이상 영업해 온 ‘서일순대국’이 있다. 작고 허름한 가게였는데, 지금은 확장해서 꽤 커졌다. 시래기, 당면 등을 넣어 만든 야채순대가 특색이다. 육수가 진하고 구수하지만 잡내가 전혀 없어 깔끔하다.



강남 뱅뱅사거리 인근에 있는 ‘남순남순대국’은 20여년 전 ‘서초순대국’이란 상호로 조그맣게 시작했는데 지금은 큰 점포로 이전해 깔끔하게 단장했다. 진한 탕국에 당면을 넣은 쫄깃한 찹쌀순대와 돼지고기, 머리고기 등을 고루 넣어 준다. 중림동 약현성당 골목 입구에 있는 ‘황성집’은 아바이왕순대로 알려져 있으며 40년 넘는 역사와 맛을 자랑하는 집이다.

돼지국밥집도 서울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소문 충정로역 인근에 부산 출신 사장이 하는 ‘밀양돼지국밥’이 있다. 길에서는 잘 안 보이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예쁜 노랑색 집이 나타난다.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이용되는데, 지나는 기차소리도 들리고 테이블, 인테리어도 옛 멋이 나는 분위기다. 큰 뚝배기에 돼지고기를 푸짐하게 넣고 부추와 다진 양념을 얹어 주는데, 원조의 맛이라 한다. 필운동 서촌 초입에 있는 ‘송원가마솥 국밥집’은 잘 우려낸 육수에 돼지고기 편육을 듬뿍 넣고 부추를 더해 국밥 맛을 자랑한다.

이렇게 소개하다 보니 지금은 없어져 아쉬운 집이 더 생각난다. 을지로4가역 부근에 ‘전통아바이순대’라는 작은 집이 있었다. 순대, 고기, 밥을 푸짐하게 담아 토렴해서 내는데 시골장터를 떠올리게 했다. 그 맛과 분위기에 취해 언제나 긴 줄을 섰었는데 얼마 전 문을 닫았다.

가난했던 피란 시절 많은 이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 주던 순댓국과 돼지국밥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인 지금도 대표적인 서민 메뉴로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3. [중앙일보][분수대] 염라대왕의 거울

전시장에 청동거울이 매달려 있다. 고려시대 것이다. 그 옆에 무시무시한 그림이 있다. ‘염라대왕과 대애지옥’이다. 그림에도 거울이 등장한다. 업경(業鏡)이다. 줄지어 있는 사람들이 생전에 지은 죄가 거울에 비친다. 그림 하단 가운데 거울에 가축을 죽이는 모습이 또렷하다. 그 밑에는 죗값을 치르는 장면이 나타난다. 사람을 절구에 넣고 짓이기고 있다. 끔찍한 형벌이다. 거울 앞에 다가서기가 망설여진다.

그림은 ‘시왕도(十王圖)’ 중 하나다. 시왕은 인간의 죄를 심판하는 왕 열 명을 가리킨다. 염라대왕은 그중 다섯 번째다. 사람들의 행적을 두루마리 종이에 일일이 기록한다. 한 개인의 대차대조표라고나 할까. 세상만사를 담는 거울처럼 죄를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다. 분식회계는 불가능하다. ‘시왕도’는 열 폭으로 이뤄졌다. 이를테면 지옥 연작이다. 그림 모두 섬뜩하다.

예컨대 가장 먼저 등장하는 ‘진광대왕의 철정지옥’. 뜨겁게 달군 철판에 죄인을 눕히고 온몸에 쇠못을 박고 있다. 손·발·머리 등 어디 한 곳 빠짐없이 무려 500번의 고통을 준다고 한다. 세 번째 ‘송제대왕의 발설지옥’도 공포스럽다. 남을 비방, 혹은 욕한 사람을 기둥에 묶어 놓고 혀를 뽑아 버린다. 이게 끝이 아니다. 늘어진 혀 위에서 소를 몰며 쟁기질을 한다. 역시 입단속이 중요하다.

이들 ‘시왕도’는 서울 강남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인 1764년에 제작된 것이다. 평범한 주인공 김자홍을 내세워 저승세계를 둘러본 주호민 작가의 인기 웹툰 ‘신과 함께’ 이미지를 곁들이며 관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불화가 보다 가깝게 다가온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도 돌아보게 된다. “과연 나는 열 명의 심판관을 통과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반성과 각오가 겹친다.

‘시왕도’는 죽은 이들을 기리는 절집의 명부전(冥府殿)에 걸었다. 그렇다고 두려움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 명부전의 주인장은 지장보살(地藏菩薩). 무서운 시왕과 달리 인자한 보살이다.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러 부처가 되기를 거부하고 몸소 지옥에 내려왔다. 사람들에게 선업(善業)을 쌓으라고 권한다. 다만 기억할 것 하나, 명부전은 임진왜란·병자호란 양란 이후 활발하게 세워졌다. ‘시왕도’ 또한 18세기에 성행했다. 작품마다 내용·구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고단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 비슷하다. 세월호 인양과 대통령 심판, 두 고난에 직면한 지금 ‘시왕도’가 더욱 아리기만 하다.



4. [한국일보][삶과 문화] 이 봄, 우리는 꽃보다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며칠 전 지방에 다녀왔습니다. 당연히 서울보다 봄이 일러 매화나 산수유 같이 일찍 피는 꽃들은 말할 것도 없고, 능수버들까지 물기를 머금고 능청능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봄이 오는 것을 내가 눈치 채기도 전에 벌서 봄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봄이 빨리 왔다고 생각하는 저를 보고 반성케 되었습니다. 봄이 제 생각보다 빨리 온 것도 사실이지만 세월이 가고 봄이 오는 것조차 눈치 채는 것에 민감치 못했던 저를 보게 된 겁니다. 봄이 빨랐던 것이 아니라 제가 느린 것이었지요. 그럼에도 저는 저를 중심으로 봄이 빨리 왔다고 하며 제가 늦었다고는 생각지 않았던 겁니다.

그랬습니다. 봄이 오는데 저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고, 봄이 오는 것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 봄이 오는 것이라도 일찍 눈치 채고 사람들에게 봄의 기쁜 소식을 나르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최순실씨 사건이 드러난 작년 10월 이후 오늘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두 봄소식보다 더 큰 뉴스들 때문에 봄 손님 오시는 것을 영접하는 데 소홀한데 저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봄 손님 오시는 것을 환영치 못하게 만든 사람들이 참 나쁘다고 남 탓하다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제가 과연 천주교 신부요 환경의 수호자인 성 프란치스코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지 반성을 했습니다.

그런데 반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봄이 이 꽃들을 피우는 데 내가 한 것이 너무 없었던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이 꽃들만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꽃들은 실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까! 이 꽃들은 누구를 행복하게 하겠다고 하지 않으면서도 실로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행복하게 합니다.



만일 꽃이 누구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꽃의 탓이 아니라 그 꽃을 보지 않은 사람의 탓이요, 보고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그 사람의 불감증이 탓이겠지요. 그런데 저라는 사람은 본래 나의 행복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까지 행복하게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나는 몇 사람이나 행복하게 하고 있는지. 아니, 오히려 남을 힘들게 하고, 더 나아가 불행하게 하고 있지나 않은지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저를 반성하면서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아름답기로만 치면 꽃이 사람보다 더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름다움이 주는 행복만 놓고 보면 꽃이 저보다 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아름다움보다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하는 것이 있고, 꽃의 아름다움보다 더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 것도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사실 꽃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아름다움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꽃이 우리를 사랑해주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꽃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가 꽃을 사랑하지 꽃이 우리를 사랑하겠습니까? 꽃은 무위(無爲)의 행복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반대로 우리는 사랑하겠다고 하면서 나도 불행하고 남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아무튼 꽃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도 우리는 꽃을 사랑합니다. 더 위대하고 더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지 않아도 사랑하고, 싫어도 사랑하고, 미워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행복하게 함에 있어서 우리가 꽃의 아름다움을 능가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꽃보다 우리가 더 사랑하는 것이고, 꽃이 사랑치 않는 미운 사람까지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사랑할 때 오는 것이기에 우리는 미운 사람 때문에 사랑하지 않고 나를 위해 사랑하며, 행복하기 위해 사랑합니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마취

진통제는 체내 통증유발물질의 생성을 억제함으로써 통증을 잡고, 마취제는 뇌와 척수의 신경전달 메커니즘을 차단함으로써 감각(전신마취의 경우 의식)을 잠정적으로 없앤다.

진통제가 주로 사후적으로 처방되는 반면, 마취(제)는 대개 본격적인 의료행위에 앞서 선제적으로 행해진다. 마취는 환자 입장에서 통증을 경감하는 효과도 있지만, 의료진에게 수술 등 복잡하고 정교한 처치를 통제된 조건에서 할 수 있게 하는 데도 필수적인 의료행위다. 화타의 마비산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명성은 마비산의 효능에 크게 의존했을 것이다. 

근대적 의미의 마취가 1842년 3월 30일 미국의 젊은 외과의 크로포드 롱(Crawford Long, 1815~1878)에 의해 행해졌다. 그는 목에 난 종기 제거 시술을 받으러 온 환자에게 수건에 뿌린 황산에테르(sulfuric ether) 기체를 들이마시게 하는 방법으로 마취에 성공했다. 롱은 이후 수년 간 분만을 포함한 다양한 처치에 그 방법을 활용했고, 1849년 ‘The southern Medical and SurgicalJournal’에 결과를 발표했다. 

조지아 주 매디슨카운티에서 태어난 그는 조지아 주립대와 캔터키 주 트랜실베이니아대를 거쳐 펜실베이니아대에서 학위를 받고 의사가 됐다. 조지아 주 잭슨카운티의 제퍼슨에서 개업한 그는 수련의 시절 알게 된 에테르의 효능을 혼자 연구했고, 독자적으로 임상 실험했다. 그건 지금 관점에서 보자면 극도로 위험한 의료행위였다. 마취가 뇌와 중추신경에 직접 개입하는 과정인 만큼, 그르칠 경우 혼수상태와 뇌사, 호흡 마비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롱은 신중했고, 행운도 누렸다. 

에테르를 이용한 마취 시술 효능을 처음 발표한 이는 보스턴의 외과의 윌리엄 모턴(WilliamMorton)이었다. 그는 1846년 12월 ‘MedicalExaminer’라는 학술지에 시술 성과를 발표했다. 그 사실을 안 크로포드 롱은 42년 이래 자신의 마취 환자들의 진료 기록과 증언 등을 수집, 뒤늦게 자신의 성과를 공개했다. 그에겐 그 성과를 증언해 줄 동료 의사들이 적지 않았다. 그는 마취시술 후유증 등을 살피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고, 그보다 앞서 마취 시술을 시행한 이가 있을 수 있어 발표를 미뤘노라고 해명했다. 의학계가 그의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그의 사후인 1879년이었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국민일보]

1. 중국인들의 태극기 훼손은 대한민국에 대한 테러

사드 배치와 관련한 중국 내 반한(反韓) 감정이 도를 넘고 있다. 반한 기류가 격화되면서 최근에는 태극기 훼손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톈진 시내의 한 대학 인근 헬스장에서는 이달 중순 태극기가 찢긴 채 벽에 내걸렸다. 톈진 시내 다른 대학가의 헬스장에도 대형 태극기가 찢긴 채 조롱당하듯 샌드백 위에 걸렸다. 선양의 한 호텔에서는 바닥에 태극기를 깔아 놓고 ‘한국인을 밟아 죽이자’라는 과격한 문구가 발견됐다.



크고 작은 반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광저우, 선전의 한국인 거주 지역에서는 교민들이 수시로 불심검문까지 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수준의 나라가 대국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교민사회가 술렁이자 한인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교민이 느끼는 공포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정부의 실질적인 조치를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급기야 주중 한국대사관은 재외국민 신변안전 긴급 공지를 띄웠고 태극기 훼손 행위에 대해서도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적절한 대응이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존엄을 상징한다. 태극기를 훼손하고 우리 교민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대한민국에 대한 테러나 다름없다. 정부는 국제사회와 함께 중국의 옹졸하고 유치한 처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국은 때리면 맞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면 중국의 망동(妄動)은 더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도 대국의 품격에 맞지 않는 사드 보복을 멈출 때가 됐다. 중국은 다음 달 베이징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상영도 막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드 배치로 비롯된 갈등은 양국 간 여행의 급격한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선즈화 중국 화둥사범대 교수는 “한국은 중국의 가능한 친구다. 일련의 반한 행동은 한국의 여론을 돌아서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 당국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서울신문]

2. 10년째 넘지 못한 1인당 소득 3만 달러 벽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만 7000달러대에 머물며 10년째 3만 달러 진입에 실패한 것은 우리 경제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로 봐야 한다. 한국은행의 ‘2016년 국민계정’에 따르면 2016년 국민소득은 2만 7561달러(원화 기준 3198만 4000원)로 전년보다 1.4% 느는 데 그쳤다. 2만 달러를 처음 넘어선 것은 2006년이다. 2008년 취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 뒤를 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747 성장론’과 ‘474 정책’을 내걸고 4만 달러 달성을 약속한 바 있다.

결국 4만 달러는커녕 3만 달러 시대도 열지 못하게 됐다. 3만 달러는 선진국 진입의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1인당 GNI는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총소득을 인구로 나눈 통계다. 국민소득이 제자리걸음한 것은 환율 영향도 적지 않다. 지난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은 1160.5원(매매기준)으로 전년보다 2.6% 올랐다.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달러화 환산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그보다는 성장세가 약화된 것이 근원적 요인이라고 봐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11년 3.7%에서 2012년 2.3%로 뚝 떨어진 뒤 2015년 이후 2년 연속 2%대에 그친 것이 이를 입증한다. 통계 이면의 현실은 우리를 더 착잡하게 만든다. 물론 해석상의 오류일 수도 있지만, 단순 계산해서 1인당 소득이 3198만원이라면 4인 가족 기준 소득이 1억 2800만원 가까이 돼야 한다. 과연 그런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불평등한 소득 구조가 가져온 결과다. 고소득이 편중된 일부 상위권을 빼고 나면 나머지 국민의 소득은 훨씬 낮을 수밖에 없다.

국민소득이 오르려면 경제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 올해도 민간 소비 부진과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으로 3만 달러 진입이 쉽지 않아 보인다. 신성장 동력 발굴과 수출 다변화, 경제 체질 강화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이유다. 아울러 소득 불평등 개선이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어젠다임을 외면해선 안 된다.



국민총소득 중 가계 비중이 줄고 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국민총처분가능소득 1632조 6000억원 가운데 국민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소득인 가계총처분가능소득은 56.9%(929조 6000억원)였다. 전년보다 0.3% 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국민의 실질적인 주머니 사정이 그만큼 안 좋아졌다는 뜻이다. 실업률이 높은 데다 실질임금에 변화가 없고 순이자 소득이 줄어든 탓이다.

한국 경제 관건인 내수 회복을 위해서는 가계소득 확대에 공을 들여야 한다. 우리 경제 구조가 서비스업 확대 등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고 중소기업의 임금을 올리는 구조로 바뀌도록 하는 것은 정부와 정치권의 몫이다. 차기 대선 후보들은 왜 신성장 동력 발굴과 소득 불평등 해소가 화급한 과제인지, 왜 가계소득 확대에 진력해야 하는지 지난해 국민계정을 직시하기 바란다.



3. 윤곽 잡히는 대선 후보들 정책 비전 보여 줘야

19대 대선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각 당의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이 종반부로 접어들면서 각 정당 대선 주자들의 우열도 가려지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경선 시작 전 혼전을 예상했지만 경선 초반부터 특정 후보들이 압승을 거뒀고, 조만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 진영의 후보도 확정되면 급속히 본선 대결로 전환될 전망이다.

야권의 심장부이자 민주당 경선의 최대 승부처였던 호남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60%를 넘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며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고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 역시 전북 73%를 포함해 호남 전체에서 64%의 지지를 받아 4·13 총선에서 받은 호남의 기대를 이어 갔다는 평이다.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경남지사와 김진태 의원 간의 싸움으로 압축됐다. 바른정당의 경우 유승민 의원이 어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경선에서 남경필 경기지사를 물리치고 최종 후보로 확정됐다.

당마다 변수가 적지 않아 최종 후보 선출까지 예단은 금물이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답답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에서는 후보 간의 원색적인 비난과 구호성 짙은 정책들이 난무하고 있고 네거티브 흑색 공방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수권 정당으로서 현실성 있는 대안과 ‘대한민국 대개조’라는 구호에 맞게 심도 있는 정책 대결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바른정당은 후보자 간의 공약 토론에서 대기업·중소기업의 공존 등 대안 제시에 애쓰는 모습을 보였고, 질적인 면에서 다른 당보다 앞섰다는 평이지만 전반적으로 더 나은 대한민국으로 향하려는 고민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자유한국당 경선 주자들의 대선 공약은 신용불량자의 원금 탕감이나 중국에 환경부담금 부과 등 현실성과 떨어지는 경우도 많고, 후보 간의 정책 논쟁이 실종되며 말꼬리 잡기식 인신공격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시대에 동떨어진 수구 세력을 분리하고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려는 노력이 아쉽다.

국민은 지금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드러난 대한민국의 적폐를 청산하는 동시에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리더십을 갈망한다. 한반도와 동북아를 둘러싼 급변하는 정세는 고질적인 북한 문제는 물론 미·중 패권 경쟁까지 겹쳐 혼돈 상황이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시대정신을 실현하고 글로벌 시대의 미래를 개척할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만이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한국경제]

4. 2.8% 꽤 좋은 성장, 공포 부추긴 자들은 왜 말이 없나

작년 하반기 우리 경제에는 비관론이 압도했다. 수출이 안 되고 소비도 막혀 ‘성장 절벽’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급기야 그해 10월 한국경제연구원은 4분기 성장률이 -0.4%로 추락할 수도 있다는 아찔한 분석을 발표했다.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민간소비 위축을 가장 큰 부진 요인으로 꼽았다. 깜짝 놀란 정부가 진화에 나섰다.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4분기 마이너스 성장 전망에 동의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자 언론이 들고 일어났다.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 인식이 안이하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곧이어 LG경제연구원 등 다른 연구소들이 4분기 경기급락론을 지지하고 나섰다. 결정적으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가세하자 경기위기론은 사실로 굳어졌다. KDI는 4분기가 다 끝나가는 12월7일에 낸 ‘하반기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4분기 성장률이 0% 정도로 둔화될 것’이라며 ‘제로성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면서 돈을 더 풀라고 훈수까지 두었다.

언론의 확성기 볼륨도 훨씬 더 커졌다. 외환위기급(級) 경제지표가 속출하고 있다며 비관론을 확산시켰다. 정치권은 유일호 장관을 불러 놓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정부도 ‘2017년 예산’ 편성부터 4분기 제로성장을 전제했다. 해가 바뀌기도 전에 추경예산 검토설이 나왔다.

지난해 경제성적표를 어제 한국은행이 발표했다. 마이너스가 우려된다던 작년 4분기 성장률은 0.5%로 최종 집계됐다. 서프라이즈였다. 성장률은 꺾이지 않았다. 3분기와 동일했다. 연간 성장률도 2.8%로 나쁘지는 않았다. 3%에 못 미친 점이 아쉽다. 중국(6.7%) 인도(6.6%)에는 못 미치지만 미국(1.6%) 유로존(1.7%) 일본(0.9%) 등 주요국보다 높았다. 또 세계 평균(2.4%, 세계은행 추정치)이나 OECD 34개 회원국 평균(1.7%)을 큰 폭으로 웃돌았다. 내수 위축, 글로벌 경기부진, 정치혼란 속에서 얻어낸 성과 치고는 좋았다. 그러나 지금 아무도 말이 없다.

올 1분기 동향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기업이익 확대가 이어지고, 주가는 비행 중이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수출증가세는 올 들어 더 뚜렷해졌다. 기업실사지수(BSI)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개선이 감지된다. 그런데 올해 전망 역시 비관론 일색이다. 한국경제연구원 2.1%, LG경제연구원 2.2%, 현대경제연구원 2.3%, KDI 2.4% 등이다. 한국은행과 기재부도 각각 2.5%와 2.6%로 별 차이 없다. ‘헬조선 마케팅’의 반복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서울경제]

5. 우린 '노동시간'에 대해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현행 주당 최대 68시간인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다. 국회는 27일 환경노동위원회를 열어 주당 52시간에 합의했으나 특별연장근로 허용과 휴일근로 중복할증, 임금 보전 등 세부 쟁점을 두고 각 당의 입장차를 해소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근로기준법 개정에 비교적 낙관적이다. 국회 일정상 대통령선거 이후로 넘겨졌다지만 ‘52시간’이라는 전체적 줄거리에는 4당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나머지 세부적 견해차는 시간을 두고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각 당 간에 공감대를 이뤘다는 52시간은 과연 합리적인 것인가. 만약 이런 전제 자체가 왜곡돼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한국인은 노동시간 개념에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과연 한국인의 노동시간은 세계 최장 수준인가. 통계상으로는 그렇다. 2015년 기준 연간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766시간을 크게 웃돈다. 정치권에서 ‘저녁 있는 삶’이라는 달콤한 말로 노동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긴 월급쟁이들로서는 노동시간을 줄여주겠다는 약속만큼 즐거운 게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한국인의 노동시간을 세분해서 살펴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한마디로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유연성 있는 노동 패턴이 발견되는 것이다. 노동개혁의 제일 과제인 ‘노동시장 유연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노동시간 유연성’만큼은 최고 수준이다.

우리네 노동자들, 특히 화이트칼라 중에 제대로 노동시간을 지키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근무시간에 차를 마시거나 담배를 즐기고 오후에는 짬을 내 목욕탕에서 피로를 풀기도 한다. 책상에 앉아서도 잠시 틈만 나면 주식 사이트를 열거나 모바일게임에 빠져들기도 한다. 회사 전화로 사적 업무를 챙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근무시간에 병원 치료를 받거나 이발소에도 다녀온다.

따라서 한국인 노동현장에서 허용되는 이런저런 여유를 감안한다면 주당 평균 노동시간 중 적어도 4 내지 5분의1은 회사 일이 아닌 사적 영역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최근 짬짜미가 많이 줄긴 했어도 이런 소소한 여유까지 감시하고 체크하려 들면 회사 간부나 경영자는 ‘정(情)의 나라’ 한국에서 각박한 인간으로 찍힐 수밖에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만일 이런 주장을 수긍하지 못하겠다면 노동시간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길면서도 생산성은OECD 회원 34개국 가운데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반박할 셈인가. OECD가 17일 발표한 한국의 구조개혁 평가보고서가 이를 압축 표현하고 있다. “근로시간은 회원국 중 가장 길고 생산성은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OECD는 2009~2015년 한국의 노동생산성 연평균 증가율이 1.9%로 직전 7년 평균(2.8%)보다 0.7% 포인트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13년 기준 29.9달러로 최고 수준인 룩셈부르크(69달러)나 노르웨이(63.8달러)의 절반 미만이다. OECD가 아니라 현대차의 생산성 비교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차량 한 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HPV·hours pervehicle)을 보면 현대차는 2014년 6월 말 기준 국내 공장의 HPV가 26.8시간으로 미국(14.7), 중국(17.7), 체코(15.3), 인도(20.7) 등 해외 공장과 큰 차이가 난다.

물론 이런 수치를 한국인의 자질이 부족하다든지 하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단지 노동시간이 길면서도 제대로 일하지 않기 때문에, 달리 표현해 ‘여유롭고 유연성 있게’ 일하다 보니 단위노동시간당 생산능력을 평가하는 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노동현장은 특이하다. 유연하고 느슨한 노동시간을 즐기는 대신 보다 장시간의 노동으로 벌충해준다는 데 노동자와 고용주가 암묵적으로 합의하는 것일 뿐이다.

국민소득을 높이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노동시간이 아니라 노동생산성이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 생산성을 룩셈부르크나 노르웨이만큼만 올려보라. 그럼 국회의원의 노동시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국회의원들은 지금 남 말할 때가 아니다.



[조선일보]

6.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헤쳐 나가야 할 길

바른정당이 28일 유승민 의원을 대선 후보로 확정했다. 유 의원은 62.9%를 얻어 37.1%에 그친 남경필 경기지사를 앞섰다. 남 지사는 결과가 나온 뒤 "제가 부족했다"며 "열심히 돕겠다"고 승복했다. 바른정당 경선은 정당의 후보 선출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본보기를 보여줬다. 네 차례 정책토론에서 두 후보는 보수 후보 단일화 문제 같은 정치 이슈뿐만 아니라 모병제, 복지와 증세, 일자리, 대학입시 등 국정 전반에 대해 얼굴이 상기될 정도로 치열하게 논쟁했다.



상투적이지 않았고 원고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인신공격과 네거티브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지켰고 그만큼 상대에 대한 존중과 관용이 있었다. 다른 당 경선과는 차원이 달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바른정당이 집권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경쟁이 가능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의미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경선을 보면 그 정당의 수준을 안다. 작년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몰락한 것도 공천 과정에서 국민들을 질리게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바른정당은 당내 이견과 경쟁자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유 의원이 경쟁에서 이겼지만 남 지사도 패배하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정당의 지지율이 최하위다. 유 후보 지지율도 3% 안팎이다. 바른정당은 온건하고 합리적인 보수 노선을 천명하고 있다. 안보는 철저히 지키되 경제·사회 정책은 약자와 소외 계층도 안고 가려 한다. 이런 정당이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바른정당과 그 구성원들의 역부족 탓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유권자들이 지역주의에 뿌리를 둔 두 극단 세력을 선호하는 한국적 현상도 한 원인이다. 두 극단 세력의 죽기 살기식 싸움 와중에 합리적 중도의 목소리는 설 자리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온건·합리·중도를 내세워 온 유 후보가 그런 양극단 적대 정치의 대표적인 피해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약하나마 변화의 움직임도 일고 있다. 지난 총선 때 국민의당이 예상을 뒤엎고 선전한 것은 이런 양극단의 적대 정치를 끝내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표출된 결과였다 할 수 있다. 70%가 넘는 국민들이 분권형 개헌을 지지하게 된 것도 상대를 적(敵)과 악(惡)으로 보는 정치로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 후보와 바른정당의 앞엔 가시밭길뿐이지만 멀리 보고 헤쳐 나갔으면 한다.



[중앙일보]

7. 베이징영화제의 한국 영화 금지는 소탐대실

중국 당국이 다음달 16~23일 열리는 제7회 베이징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를 초청해놓고도 상영하지 않기로 한 것은 심히 무례한 일이다. 지난해의 경우 이민호·김우빈 등 한류 스타가 대거 참석하는 등 양국 영화인이 활발하게 교류했지만 올해는 최근 발표된 1차 상영작 명단에서 한국 영화를 완전히 배제했다니 참으로 유감스럽다. 이런 갑작스럽고 몰상식적인 조치는 누가 봐도 한국 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 당국의 감정적인 보복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사실 중국이 사드를 이유로 관광에 이어 영화 분야에서도 한국에 빗장을 걸려는 징후는 이미 여러 곳에서 발견돼 왔다. 지난해 중국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가 단 한 편도 없다는 영화진흥위원회 통계부터가 이를 잘 말해 준다.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부산행’은 지난해 배급 판권이 중국에 팔렸음에도 여태 개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 배우 하정우와 중국 배우 장쯔이가 출연할 예정이던 중국 영화 ‘가면’을 비롯한 한·중 합작작품들의 제작 논의도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다. 

특히 유감스러운 일은 자유와 창조의 가치를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영화 분야에서 이 같은 압박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문화교류를 막아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그간 한·중 교류에서 영화는 양국 간 문화소통의 대표 역할을 해 왔다. 중국 당국의 무리한 문화 보복은 그동안 쌓아 온 귀중한 민간교류 자산을 한꺼번에 잃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결과만 낳을 뿐이다. 

한·중 간 군사 갈등을 대화로 푸는 대신 경제보복이나 문화 빗장 걸기 같은 어깃장 대응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한국에서 중국 당국에 실망하는 목소리만 높아질 뿐이다. 이런 식의 감정적인 조치는 한국인의 가슴에 분노만 일으킬 뿐 사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간 애써 쌓아올린 양국 국민 간의 신뢰와 중국의 국가 이미지만 깎아내릴 뿐이다. 중국 당국은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반문화적인 발상부터 멈춰야 한다.



[세계일보]

8. 日은 ‘美 소녀상 판결’ 유감 표명 말고 진심으로 사죄해야

미국 연방대법원이 그제 미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기 위해 일본계 극우단체가 제기한 소송에서 철거 요구를 기각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연방대법원에 보낸 의견서에서 ‘소녀상은 미·일 동맹 관계를 해칠 것’이라고 억지를 부렸고, 유엔과 미 의회·지방자치단체 등에 소녀상 철거 로비활동을 벌였으나 무위에 그쳤다. 미 의회 내 친한파 인사인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혹독한 인권유린을 경험한 위안부 여성들을 포함해 과거를 잊지 않아야 이 같은 잔학행위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 측 반응은 실망스럽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어제 “위안부상(소녀상) 설치 움직임은 일본 정부의 움직임과 상충되는 만큼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그제 집권 자민당 인사들과의 만찬에서 한국·미국 등의 소녀상 설치에 대해 “(한국이) 일본(의 주장)에 이해를 못한 면이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는 1월 “(한·일 위안부 합의 대가로) 한국에 10억엔의 돈을 냈다”며 “한국 측이 제대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 격이다.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립하기 위한 상징물이다. 외국에선 여성 평화와 인권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미국, 캐나다, 호주, 중국에 이어 이달 초 독일 비젠트에 소녀상이 들어선 이유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곳곳에서 조직적으로 소녀상 설립을 방해하고 철거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한·일 관계는 경색국면이 장기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 소녀상 문제가 있다.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항의해 귀국한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언제 복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은 우리의 사과 요구에 “언제까지 사과하라고 하느냐”고 푸념을 한다. 물론 일본이 그간 여러 번 사과를 하긴 했다.



그러나 진솔한 사죄의 뜻이 담기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해외에서 소녀상 철거 로비를 벌이는 것이 생생한 증좌다. 북핵 등 동북아 안보상황을 고려할 때 한·일관계 악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관계 정상화를 하기 위해선 우리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잘못된 과거를 호도하려는 일본의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깊은 반성이 전제돼야 양국 관계도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경향신문]

9. 희망의 끈 놓지 않는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

세월호를 실은 반잠수식 선박 갑판 위에서 뼛조각 7점과 신발 등 유류품이 발견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뼛조각은 미수습자의 유해가 아닌 동물의 것으로 확인됐다. 실종자의 유류품이 발견된 것은 미수습자 수색작업이 끝난 지 2년4개월여 만이다. 정부가 세월호 미수습자 수색을 종료한 뒤 절망 속에 살던 미수습자 9명의 가족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유류품이 선체 밖에서 발견돼 유실 가능성에 대한 대책이 부실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배가 기울고 있어요.” 2014년 4월16일 단원고의 한 학생은 전남소방본부 119 상황실에 첫 신고를 했다. 세월호 참사의 시작이다. 배가 기울고 침몰하는데도 ‘기다리라’는 말을 따르다 단원고 학생을 포함해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는 서서히 침몰했고 일각에서는 ‘에어포켓’ 안에 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는 ‘희망고문’이 시작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배가 침몰한 뒤 시신이 발견되자 서로가 자신의 가족이 아니기를 바랐다. 시신이 발견될 때마다 비명이 귀를 갈랐다. 피붙이임을 확인하는 순간 가족들은 비명과 함께 혼절했다. 잠수사들은 숨진 아이들을 인양했다. 그러나 차가운 바닷속 아이들은 “왜 이제 왔냐”고 원망하듯 움직이질 않았다. 잠수사들이 “이제 집에 가자”고 어르고 달래야 그제야 움직였다.

며칠이 지나 희망의 끈이었던 에어포켓도 사라졌다. 세월호 생존의 희망도 사라졌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이젠 시신이라도 발견되기만을 바랐다. 시신이 발견되면서 유가족들도 하나둘 떠났다. 세월호 침몰 102일 만에 295명째 희생자 황지현양의 시신이 수습됐다. 18번째 생일을 맞은 황양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황양의 친구들은 빈소의 조화에 “잊지 않을게. 돌아와줘서 고마워”라고 적었다. 그해 11월 정부의 세월호 미수습자 수색은 종료됐다. 배에 탔으나 아직도 내리지 못한 9명만이 남았다. 그리고 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상에서 잊혀져 갔다.

지난 23일 진도 맹골수도에 가라앉은 세월호가 1073일 만에 인양됐다. 완전히 드러난 세월호를 본 미수습자 가족들은 오열했다. 곳곳이 녹슬고 찌그러진 세월호에 내 아이가 있다며 탄식과 함께 발을 동동 굴렀다. “우리 딸이 저 안에서 얼마나 엄마를 불렀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진다”며 주저앉았다.



세월호에서 추가로 유류품이라도 발견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희망은 있다. 지상으로 올린 선체와 세월호가 누워 있던 해저도 샅샅이 수색해야 한다. 그래서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눈물로 지새는 미수습자 가족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그게 나라가 할 일이다.



[매일경제]

10. 밑도 끝도 없는 세월호 음모론 도대체 언제까지

세월호가 침몰 3년 만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음모론과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선체 인양·수습방법을 놓고 새로운 의혹과 논란이 제기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 참사 한 달 뒤 침몰 원인을 발표했다. 무리한 선박 증축과 화물 과적 때문에 복원성이 나빠진 상태에서 조타수의 미숙한 운항으로 배가 균형을 잃고 침몰했다는 내용이었다.



공식 수사결과 발표 후에도 의혹이 끊이지 않자 숱한 어려움을 뚫고 마침내 선체를 인양했는데 기존의 의혹이 해소되면 새로운 의혹을 내세우는 식이니 이들이 원하는 진실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세월호를 둘러싼 음모론은 지난해 12월 자로라는 네티즌이 '잠수함 충돌설'을 제기하며 주목을 끌었다. 약 9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로 '세월호 좌현 밑바닥 쪽이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 네티즌은 세월호가 인양되던 지난 22일부터 24일 사이 '세월호 좌현을 보고 싶다. 진실이 떠오르기를' 등의 글을 매일 온라인에 올리며 의기양양한 듯 보였다. 그러나 선체가 수면 위로 완전히 올라온 25일부터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외부 충돌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런저런 주장을 할 수는 있지만 그에 대한 반증이 나오면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지자 그는 28일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인양 과정에서 좌현 램프(화물 출입구)가 절단됐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램프를 잘라내지 않으면 인양 자체가 불가능해져 어쩔 수 없이 제거한 것'이라고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인양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기술적인 문제나 한계는 도외시한 채 '증거인멸 행위'라며 또 다른 음모론을 제기하기에 바쁘다. '세월호 고의 침몰설'을 퍼뜨린 어느 인터넷방송 진행자는 선체 인양으로 그의 주장에 근거가 희박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말장난만 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 뒤에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이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판단 오류와 잘못을 수긍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독선만 가득할 뿐이다. 국회와 희생자 가족이 선출한 세월호 선체 조사위원회가 28일 출범했으니 침몰 원인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사회를 어지럽히는 음모론들을 잠재워주기 바란다.





주요신문칼럼



1. [중앙일보][노트북을 열며] 늦봄의 새 출발

나라마다 다르되 한국은 3월이 새 학기, 새 학년의 시작이다. 새 출발에 따른 긴장과 스트레스도 높다. 스트레스는 앞서 치르는 입시가 더하다. 요즘 대입수학능력시험은 11월, 예전 대입학력고사는 대개 12월이었다. ‘입시한파’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나무가 잎을 떨구고 추위를 견뎌낸 뒤 새 잎을 틔우듯 입시·졸업·입학은 춥고 황량한 계절에 이어져 왔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의 수필에는 뜻밖의 경험이 나온다. 그는 4월에 입시를 치러 6월 초 대학생이 됐다. 고교과정을 합해 6년제였던 당시 그의 중학교 졸업은 5월이었다. “모든 것이 궁핍한 시대였건만 내가 나의 졸업식을 가장 화려한 졸업식으로 기억하는 건(중략) 그 계절의 화려함 때문이기도 했다. 5월은 라일락의 계절이요, 마거리트의 계절이었다. 지금처럼 요란한 꽃다발이 졸업생을 축하해 주는 대신 무르익은 천지의 봄이 우리의 앞날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수필집『노란집』중에서)

그의 기억에 따르면 해방 이듬해부터 9월로 학기초가 바뀌었다가 다시 봄에 졸업·진급하는 제도로 환원하며 5월 학기말, 6월 학기초를 시행한 과도기가 있었다. 바로 그가 대학에 들어간 해다. “입시나 졸업 하면 동상 걸린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혹한부터 생각나는 버릇이 있는지라 봄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화창한 날에 그런 일들을 치를 수 있다는 건 50년도 졸업생에 한한 일회적인 특별한 혜택만 같아서 이게 웬 떡이냐, 그저 황홀할밖에 없었다.”

‘50년도’에서 짐작하듯 신입생의 기쁨은 짧았다. 한 달도 못 돼 전쟁의 포성이 시작됐다. 이후의 기억과 함께 작가는 담담히 썼다.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입시를 치르고 눈부신 6월에 입학할 수 있었다는, 우리 교육 사상 단 한 번뿐인 행운이 주어졌다는 것만으로 50년을 특별한 해라고 말한 건 아니다.”

입시나 졸업·입학처럼 겨울에 거듭된 현대사도 있다. 80년대 이후의 대통령 선거와 취임식이다. 간선제였던 81년의 취임식이 3월 초, 이후 직선제 취임식은 12월 선거를 거쳐 줄곧 2월 25일 열렸다. 전에도 7~9월이나 12월이었을 뿐 이번 같은 5월은 처음이다. 게다가 이번엔 곧바로 임기가 시작한다.

계절로는 축복이되 지금에 이른 과정을 전부 축복이라긴 어렵다. 추위 속에 촛불을 들고 전임 대통령을 탄핵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 대통령으로 인한 상처는 여전히 크다. 경제상황도 미세먼지로 뿌연 시야와 비슷하다. 봄날의 취임식이 진정 축복이 될지는 취임 이후에 달렸다.

박완서는 다른 수필에 “올라갈 때 힘을 다 써버리면 결코 의젓하게 내려오지 못한다”고 썼다. “오르막길에 기운을 다 써버리면 내려올 때 다리가 휘청거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제 힘으로 당당하게 내려오려면 올라갈 때 힘을 다 써버리지 말고 남겨놓아야 한다.” 그의 말마따나 등산만 아니라 “권력이나 명예, 인기”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2. [중앙일보][분수대] 삶은 직선이 아니다

디지털 노마드(유목민)를 꿈꿨으나 사이버 게토(고립된 빈민가)에 갇혀버린 미국 젊은이들에 관한 얘기를 최근 한 블로그에서 읽었다. 돌이켜보니 불과 10년 전만 해도 모바일 세상이 오면 자유롭게 이동하며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디지털 노마드족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10년 후. 모바일 세상은 왔는데 기대와는 정반대로 굴러가고 있다.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젊은 층의 주소지 변경 비율은 1990년대 젊은이들보다 오히려 크게 낮아졌다.



이동의 주된 계기가 결혼인데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만혼과 비혼이 늘면서 점점 이동을 안 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엔 사는 곳을 옮겨다니는 과정 속에서 직접 사람을 만나 다양한 생각과 정보를 접했지만 지금은 고립된 환경에 살며 사이버상에서 주로 교류하다 보니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만 주위에 넘쳐난다. 갇힌 생각이 점점 더 좁아지며 편견이 머릿속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대를 한국으로 옮겨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한국은 온 국민이 사이버 게토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서로 편을 갈라 온갖 소셜미디어로 입맛에 맞는 정보만 교환하며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를 공격하는 데 골몰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듣고 싶은 얘기만 들으니 모두가 행복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전혀 다르다. 가진 게 있든 없든 이상하게 모두가 불행하다. 한쪽에선 “부모 잘못 만나 아무 가진 게 없는 흙수저”라고 스스로를 비하하며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다른 한편에선 “내 모든 삶이 부정당하는 이 땅이 싫다”며 노후 이민을 고민한다. 불행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모두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작금의 상황을 원망하고 울분을 토해내는 모습은 똑같다.

로마 시대 철학자 세네카는 『인생론』에서 “언제든 좌절감을 주는 현실이 닥칠 수 있다”며 “마음먹은 대로 현실을 자유로이 만들어갈 수 있는 상황과 변화 불가능한 현실을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을 구분하는 게 지혜”라고 했다. 맞다. 살면서 나쁜 일은 어차피 계속 겪을 수밖에 없다. 삶은 우상향 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곡선이니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분노하는 대신 내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변화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처칠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비관주의자는 기회 속에서도 두려움을 보고, 낙관주의자는 어려움 속에서도 기회를 본다고.



3. [경향신문][여적] 도선사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은 신문기자였던 아버지의 정치적 망명으로 페루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고갱의 젊은 시절 꿈은 배를 타고 세계일주 항해에 나서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견습 도선사(導船士)로 일하며 상선을 타고 라틴 아메리카와 북극의 바다를 떠돌았다. 모친의 부고를 듣고 파리로 돌아와 35세 때 늦깎이 전업화가가 된 고갱은 서인도제도 마르티니크 섬,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 등으로 옮겨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고갱이 화가가 된 이후 방랑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은 견습 도선사로 일했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

도선사는 선박이 항구에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안내하는 전문직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겐 낯선 직종이다. 수년 전 한 해군 장교가 114 안내원에게 도선사협회를 연결해달라고 했더니 서울 우이동에 있는 사찰인 도선사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7일 공개한 ‘직업만족도 조사’에서 도선사가 판사에 이어 2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도 시민들의 궁금증을 유발했다.

도선사는 선박이나 항구의 ‘눈’과 같은 존재다. 낯선 항구의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 선박들은 도선사의 도움 없이 입·출항을 할 수 없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도 산타마리아호에는 지안 데 라 코사라는 도선사가 타고 있었다. 세계 최강 스페인 함대가 1588년 영국 함대에 패한 것은 도선사가 없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바닷속 지형과 뱃길을 훤히 알고 있어야 하는 도선사 면허 취득 조건은 까다롭다. 면허시험에 응시하려면 6000t급 이상 선박의 선장으로 5년 이상 승선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국내 250여명의 도선사들은 대부분 항해사로 10년, 선장으로 10년간 오대양을 누빈 경력을 갖고 있다. 평균 연봉은 1억2000만원가량이며, 경력에 따라 5억원이 넘기도 한다.

3년 만에 인양된 세월호를 싣고 이르면 30일 목포신항으로 출발하는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말린호에도 도선사가 탑승한다. 암초를 피하고, 시속 6~12㎞의 물살을 헤쳐 가려면 베테랑 도선사의 인도가 필수적이다. 도선사의 인도로 화이트말린호가 목포신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4. [국민일보][영화이야기] 고딕 호러의 계보

멕시코 출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크림슨 피크’(2015)를 보고 느낀 감상은 ‘아, 참으로 고딕적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고딕’이 무엇인가. 원래는 중세 유럽의 건축 스타일을 일컫는 말이지만 문예사조로는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융성했던 문학 장르로 일반적으로 공포와 로맨스가 결합된 작품들을 말한다. 보통 1764년 영국 작가 호러스 월폴이 출간한 ‘오트란토의 성(The Castleof Otranto)’을 효시로 꼽는데 ‘고딕 소설’이라는 명칭도 이 소설의 부제 ‘고딕 이야기(A GothicStory)’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고딕 영화는 고딕 문학에서 출발한 영화의 한 장르다. 대개 젊고 순수한 여주인공이 등장하고, 성적 억압이나 질투가 중요한 갈등요인으로 작용하며, 실제나 환상의 유령이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울러 더 중요한 것은 배경이 되는 장소다. 거대하고 사치스러운 혹은 호화스러웠지만 퇴락한 고딕풍 대저택이나 장원, 성이 거의 필수적이다. 항용 공포영화로 분류되나 내면적으로는 로맨스영화다.

‘크림슨 피크’는 고전 ‘제인 에어’(1943, 1996, 2011)와 이를 살짝 변형시킨 ‘레베카’(알프레드 히치콕, 1940)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거니와 고딕 영화는 연원이 오래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과 함께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원작의 영화들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비교적 나중 것들로는 ‘슬리피 할로우’(1999) ‘스위니 토드’(2007) 등 팀 버튼의 영화들이 있고, 실제 일어났던 ‘잭 더 리퍼 사건’을 모티브로 한 ‘프롬 헬’(2001)도 잘된 고딕 호러 영화의 하나로 꼽힌다. ‘판의 미로’(2006) 등 고딕 호러 영화로 이름을 날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지만 요즘 할리우드 대형 영화사들의 눈에 들어 로봇영화 등 엉뚱한 데로 빠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초심을 잃지 않고 현대 고딕 호러의 명장으로 남기를.



5. [조선일보][특파원 리포트] 영국인의 세계지도

중동 바레인 미나살만항(港)은 요즘 영국 해군기지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2015년 시작된 공사가 마무리되면 올해 중 영국 해군 300여명이 주둔하게 된다. 1971년 이후 만 46년 만에 중동 군사기지를 갖게 된 영국은 들뜬 모습이다. 작년 말 바레인을 방문한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은 "영국이 수에즈 동쪽에 돌아왔다"고 했다. 영국은 오만과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등에도 군 기지 설립과 군사훈련 지원단 파병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 무대에서 영국의 군사적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건 '퀸엘리자베스' 항공모함이다. 만재 톤수 7만2000t으로 첨단 F-35 스텔스 전투기를 최대 36대 탑재할 수 있는 영국의 자존심이다. 한 소식통은 "퀸엘리자베스함은 올해 초여름, 2번 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함은 오는 2019년 군에 인도될 것"이라고 했다. 건조 중인 퀸엘리자베스함을 지난해 르포 하러 갔다가 영국 정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퀸엘리자베스함이 실전 배치되면 태평양 지역에서도 영국 항모 전단을 보게 될 것"이란 말을 들었다.



당시 주미 영국 대사는 "(중국과 미국이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에도 보내겠다"고 했다. 영국의 한 국제 문제 전문가는 "우리의 전략적 이해관계는 국제적(global)"이라고 했다. 영국인 머릿속엔 세계지도가 들어 있는 게 분명했다.



국제 정치와 군사적 측면에서만 그럴까. '시티 오브 런던', 짧게 '시티(city)'로 불리는 런던 금융시장은 미국 뉴욕과 함께 세계 2대 국제금융시장으로 꼽힌다. 뉴욕이 국내 금융을 중심으로 컸다면, '시티'는 외환 거래와 대규모 국제 자본거래 등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영국은 파운드화(貨)를 쓰지만, 유럽 19개국이 쓰는 유로화 거래 청산소가 이곳에 있다.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면 시티가 글로벌 금융 중심지 위상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시티에선 "우린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영어 사용이라는 이점 이외에 회계와 법률 서비스, 전문 인력 등 '금융 생태계' 경쟁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로버트 스키델스키 워릭대 명예교수는 신작 '1900년 이후 영국, 성공 스토리'에서 "대영제국은 무너졌지만 (세계를 호령했던) 유산은 아직도 영국 지도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며 "외교와 국방, 경제, 문화가 모두 이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책을 읽으며 영국에 대해 갖고 있던 궁금증 하나가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영국병(病)'에 빠져 잠시 흔들렸지만 경제 활력을 되찾고 강대국 위상을 회복한 저력, 그것은 한마디로 '글로벌'이었다.



영국 인구는 6500만명, 우리는 5000만명(남북을 합치면 7500만명)이다. 우리와 비슷한 인구와 작은 땅을 지닌 영국이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큰 안목으로 세계를 본다. 반면 우리는 바깥 돌아가는 사정에 눈감고 안에서의 싸움에만 열 올릴 뿐이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조선일보]

1. 朴 前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

검찰이 27일 박근혜 전(前) 대통령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직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는 이번이 세 번째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1995년 수뢰, 군사 반란 등 혐의로 구속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뢰 혐의 수사 도중 자살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영장에 대해 "기업에서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이 중대하고, 범죄 혐의를 부인해 증거 인멸 우려가 있으며, 관련자들이 구속된 점에 비추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반한다"고 했다.



법원은 30일 영장실질심사를 해 구속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이미 박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건넨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돼 있고, 박 전 대통령 지시를 따른 청와대 수석과 장·차관들도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문제의 출발점인 박 전 대통령만 예외로 한다면 당장 형평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래 구속은 피의자가 도망가거나 증거를 없앨 우려가 있을 때 불가피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수개월에 걸친 수사로 관련자들이 다 구속돼 증거 인멸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도주 가능성은 말할 것도 없다. 죄가 있다면 유죄판결 확정 뒤에 형을 집행하면 되는데 굳이 구속 수사를 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사상 처음으로 파면된 전직 대통령이 포승에 묶여 재판정을 드나드는 걸 봐야 하는 국민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 구속 여부는 영장 전담 판사 손으로 넘어갔다. 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바랄 뿐이다. 사태가 여기에 오기까지 우리 사회는 숱한 굴곡을 거치며 논란을 거듭해왔다. 그러면서도 어쨌든 제도의 틀 안에서 문제를 수습해가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모든 국민이 법원 결정을 소중한 법치(法治) 구현으로 받아들이고 승복해야 한다.



2. 김수남 검찰총장도 거취 고민해야 할 때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은 제 할 일을 다 해왔는가. 검찰은 이런 일을 막을 수 없었는가.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졌다. 최순실씨 전 남편 정윤회씨가 문고리 3인방과 정기 모임을 가지면서 정부 인사(人事) 등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씨 국정 개입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경찰 출신 전 청와대 행정관은 검찰에서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이라고 진술했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씨 관련 승마협회 논란으로 박 전 대통령이 문체부 국·과장 경질을 지시했다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증언도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검찰이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었으면 최순실의 존재는 당시에 드러났을 것이다. 자원 비리, KT비리, 포스코 비리 등 전(前) 정권 인사들에 대한 보복 하청 수사를 할 때 열성의 절반만 보였어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랬더라면 최씨 국정 농단은 그 시점에 막을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 말로가 이토록 비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중대한 진술을 한 청와대 행정관만 구속하고 수사를 끝냈다.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은 얼마 안 있어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



정윤회 문건 사건을 잘 처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는 말이 나왔다. 당시 정윤회 문건 사건 수사를 지휘한 사람이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그 역시 대검 차장을 거쳐 검찰총장으로 승진했다. 그 김 총장이 최씨 사건 때문에 결국 탄핵까지 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총장은 작년 9월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을 고발하자 일반 고소·고발 사건을 다루는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배당했다. 수사 의지가 전혀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한 뒤에야 최씨의 텅 빈 사무실들을 압수 수색했다. 그런 김 총장이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 여부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하겠다"고 말했다. 지금 '법과 원칙'을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할 곳 중 하나가 검찰이다. 이래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 단 한 명 없다. 박 전 대통령 신병 처리가 끝났다면 김 총장도 스스로 거취를 고민하는 것이 순리이자 상식일 것이다.



[이데일리]

3. 굳이 구속영장까지 청구해야 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어제 검찰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검찰은 “피의자가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케 하거나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권력 남용적 행태를 보였다”며 영장청구 이유를 밝혔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탄핵결정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첫 파면당한 데 이어 영장 실질심사까지 받아야 하는 불명예를 떠안게 됐다.

국민의 투표로 선택받은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받아 자리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구속되느냐의 기로에 처했다는 자체로 나라의 불행이고, 국민 된 입장에서 부끄러움이다. 제발이지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모습이 재연되지 않았으면 한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대권을 향해 저마다 열심히 뛰어다니는 각 예비후보들마다 지금의 상황을 엄중한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가슴에 새겨두기를 바란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이미 권좌에서 물러나 바깥 거동이 어려운 처지에서 굳이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박 전 대통령을 한 움큼이라도 옹호하려는 뜻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가 필요하다는 것도 아니다. 이미 대통령 자리에서 파면당했다는 자체만으로도 국정농단 과오에 대한 대가를 상당히 치른 셈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증거인멸 가능성까지 들어가며 구속영장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범죄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점으로 미뤄 증거인멸 우려가 상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을 검찰청에 소환해 조사한 지 엿새가 지나 뒤늦게 영장을 청구하면서 붙인 명목으로는 너무 구차스럽다. ‘보여주기 수사’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이런 식이라면 오히려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급적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하고 법원 판결에 따라 박 대통령이 응분의 처벌을 받도록 하는 절차가 바람직하다. 수갑을 채우든, 돌팔매질을 하든 법원이 판결을 내릴 것이다. 이제는 법원 판단에 맡기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흥분 상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국정농단 사태로 찢겨진 우리 각자의 상처도 치유가 필요한 단계다. 일단 구속영장이 청구된 만큼 서로 겸허한 자세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게 중요하다.



[매일신문]

4. 박 전 대통령 구속 여부, 법원 결정 존중해야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유는 ‘혐의의 중대성’과 ‘증거 인멸 우려’ ‘구속된 다른 피의자와의 형평성’이다. 구속영장 청구 여부와 관련해 김수남 검찰총장은 “오로지 법과 원칙 그리고 수사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구속영장 청구는 이런 두 가지 원칙에 따른 결정일 것이다. 그 결정이 정치적 고려와 여론의 향배를 일절 배제한 순수한 법률적 판단일 것으로 믿는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 앞에서 평등’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란 점에서 이를 비판할 수는 없다. 전직 대통령도 민주주의 원칙의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증거 수집 단계를 지나 마무리됐는데도 굳이 구속 수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수사의 목적은 구속이 아니라 유죄 입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는 증거 인멸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 21일 조사 과정에서 일부 사실 관계를 제외하고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점에 비춰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순실 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 공범들이 대부분 구속돼 박 전 대통령과 말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증거 인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이를 포함해 검찰이 적시한 구속영장 청구 사유가 정당한 것인지는 오직 법원이 판단할 문제다. 검찰의 결정에 대한 섣부른 지지와 반대 모두 자제하고 법원의 결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리더라도 ‘승복’하고 ‘인정’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은 법치를 다시 세우기 위해 우리 사회가 겪은 진통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탄핵 과정에서 탄핵 반대와 찬성으로 헌재를 옥죄는 ‘법치의 위기’가 나타났다. 다시는 이런 퇴보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법원의 판단은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법치를 온전히 다시 세우는 길이다.



5. 문재인, 대구경북 공약 말뿐 아니라 실천 의지가 중요하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대구경북 지역 대선 공약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문 전 대표는 대구경북의 경제적 어려움을 적시하고,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의 화두를 제시해 공감을 얻었다. 지역 현안과 지역민의 바람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공약 설명회가 됐다는 평가다.

 
문 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제일 못사는 대구’라는 언급이 가장 눈에 띄었다. 지역민에게는 뼈아픈 지적임이 분명하지만, 지역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TK가 오랫동안 정권을 잡아왔는데도, 24년 연속 1인당 지역내총생산이 전국 꼴찌이고, 그 규모도 전국 평균의 64%에 불과하다는 것은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문 전 대표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잘 알고 있다면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믿는다.



문 전 대표가 시대적 과제인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기치로 제시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그는 강력한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의 국정 철학을 가진 정부만이 수도권 집중을 막고 지방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대구가 지방분권 운동과 국가균형발전론의 발원지라는 점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과도한 중앙집권과 국가 불균형을 막기 위해서는 대권 주자라면 누구나 앞장서야 할 역사적 사명이다.



그는 대구공항 이전 지원과 대구권 광역철도, 의료산업 및 물산업, 서대구역세권, 동해안 에너지 클러스터 등의 세부 공약도 내놓았다. 대구시가 요청한 대선 공약은 대부분 반영됐으나 경북도가 요청한 공약은 일부만 포함돼 있다. 문 전 대표 측의 지역 이해도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 있지만, 경북도의 노력 및 성의 부족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가 지역의 고질적인 병폐를 개선하고 지역 현안을 챙기겠다고 약속한 것은 좋게 평가할 만하다. 그렇지만, ‘말의 성찬’보다는 실천하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문 전 대표의 말 바꾸기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있기에 이를 제대로 증명해야만 정권 획득이 가능할 것이다. 지지율 일등 후보답게 지역 공약을 제대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서울신문]

6. 명분·정책은 없이 연대만 외치는 反민주

대통령 선거에 나설 후보자를 뽑는 각 당의 경선이 이번 주 윤곽을 드러낸다. 더불어민주당은 어제 최대의 승부처인 호남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60.2%의 압도적인 득표로 1위를 차지했다. 문 전 대표는 3차례 남은 지역 경선에서 2위 후보가 대역전하지 않는 한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후보다.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여타 3명의 후보를 제치고 압도적 우세를 보이는 가운데 29, 30일의 국민 여론조사를 거쳐 31일 후보를 선출한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의원이 사실상의 후보 결정전으로 불렸던 호남의 두 경선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했으며, 5차례의 지역 경선을 거쳐 다음달 4일 후보를 결정한다. 바른정당은 유승민 전 의원의 우위 속에 오늘 후보를 확정한다. 정의당은 일찌감치 심상정 대표를 후보로 확정해 금주 말, 늦어도 내주가 되면 5당의 후보가 모두 결정된다.

52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돌발 변수로 조기에 치러지는 만큼 지금까지의 선거에서 겪어 보지 않았던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이 정당 지지도에서 50% 전후의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나, 민주당 대선 주자의 지지율 합계가 60%에 육박하는 것이 그러하다. 거대 민주당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여타 정파의 연대나 후보 단일화, 빅 텐트, 스몰 텐트 논의가 생겨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약체 후보들과의 뻔한 대선 후 민주당이 보일 오만과 독선을 줄이기 위해서도 민주당에 맞설 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연대나 단일화, 텐트론이 각 정당의 정책이나 정파의 이념, 노선과 맞고 안 맞는지를 꼼꼼히 따지지 않고, 우선 뭉치고 보자는 약자의 결집으로 출발해서는 안 된다. 탄핵 찬성과 반대로 갈려 새누리당을 해체하고 생겨난 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세 불리를 느끼고 후보 단일화를 앞세우는 것은 코미디 같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의원이나 박지원 대표가 이른바 ‘반문(문재인) 연합’을 강력히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남은 대선 기간 요동칠 것으로 보이는 대선 지형의 변화에 따라서는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한 제 정파의 단일화가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회에서 최소 30석 이상씩 국민의 뜻을 대변하고 있는 정당이라면 유권자들에게 국정을 이끌 구체적 비전을 제시하고 평가를 받는 게 우선이다. 단일화, 연대는 그 뒤라도 늦지 않다. 그것은 촛불 민심, 반박근혜 여론에 기대고 있는 민주당에도 해당한다. 새 시대를 갈구하는 유권자의 심판은 매섭다는 점, 잊지 않아야 한다.



7. 서울교육청, 전교조 전임 허용 재고하라

서울시교육청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 2명의 노동조합 전임을 허용했다고 한다. 법외노조인 전교조의 전임을 신청한 교사들에게 휴직을 허가했다는 것이다. 법외노조란 글자 그대로 노조 관련 법이 요구하는 요건을 갖추지 못해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조를 말한다.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쓰지 못하고, 단체협약 교섭권이나 노조전임자 파견권처럼 노조로서의 법적 권리도 행사할 수도 없다. 합법노조 조합원이라면 교육 당국의 허가를 받아 휴직하고 노조 업무에 종사할 수 있지만, 법외노조 조합원은 노조 전임을 이유로 휴직할 수 없다. 법외노조가 실정법에 어긋나는 요구를 하고, 서울시교육청이 수용하는 것은 건전한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시교육청에 앞서 강원도교육청도 지난달 교사 1명의 전교조 전임 휴직을 허가했다고 한다. 교육부는 서울과 강원 교육청에 전임 휴직 조치를 취소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두 교육청은 요지부동이라고 한다. 이달 초 전남도교육청이 교사 2명의 노조 전임 휴직을 허가했다가 교육부의 취소 명령을 따른 일도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전교조 전임 휴직을 인정한 이유는 궁색함을 넘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서울시교육감은 “전교조의 법외노조 문제에 우리 사회가 전향적인 인식 전환과 근본적 해결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책보좌관은 한술 더 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정치적 법적 판단을 할 텐데 해고자가 나오면 궁극적인 피해가 학교 현장에 돌아간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판단을 운운하는 것 자체도 우려스럽지만, 자신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실정법쯤은 얼마든지 어겨도 좋다는 사고방식이 더욱 놀랍다.

전교조가 법외노조로 분류된 것은 해직 교사 9명의 조합원 자격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직 교사들을 껴안고 가는 것이 조직의 도덕성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면 그에 따른 법적 불이익도 감수하면 된다. 법이 규정할 정도면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노조 활동으로 해직된 사람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해 쇠락의 길로 가지 않은 사례가 어디 있는지 되묻고 싶다.



법외노조 문제는 전교조가 스스로 조금만 변하면 해결될 일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른 곳도 아닌 교육계가 앞장서서 정치적 주장을 펴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서울시교육청부터 전교조 교사 전임 허가 조치를 거두기 바란다.



8. “법 앞에 만인은 평등” 일깨워준 박 전 대통령 영장

검찰이 어제 소환 조사한 지 6일 만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일찍이 “오로지 법과 원칙, 수사 상황에 따라 판단돼야 할 문제”라며 박 전 대통령의 신병 처리 기준을 내놨다. 지난해 10월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에서 시작된 사태가 급기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이어 구속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영장이 발부되면 전직 대통령으로서 세 번째 구속이다. 개인의 불명예를 떠나 국격의 실추가 아닐 수 없다.

되풀이되는 전직 대통령의 영장 청구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의 심정은 참담하다. 그러나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법 앞에 모두 평등하다는 헌법 정신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전직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즉 법치주의 원칙에 비춰 볼 때 검찰의 선택은 옳다.

박 전 대통령의 혐의는 뇌물수수를 포함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무려 13가지에 이른다. 더욱이 국정 농단의 공범인 최순실·안종범·정호성을 비롯해 청와대 참모진과 장·차관 등 15명이 이미 구속기소된 데다 15명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박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돼 구치소 신세를 지고 있다. 한마디로 뇌물을 준 상대방뿐만 아니라 지시를 받은 종범들까지 구속된 상황이다.



만약 검찰이 주범 격인 박 전 대통령만 구속영장 청구를 통한 법원의 판단을 거치지 않았다면 형평성 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국정 농단 수사 초기와 같은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에서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영장 청구와 관련해 밝힌 대로 법과 원칙에 따랐다. 일각에서 제기해 왔던 ‘탄핵당한 대통령의 처지’를 고려한 불구속 수사 원칙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사법처리된 관련자들과의 형평성과 사안의 중대성, 증거인멸의 우려 등을 철저하게 따졌다고 볼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조차 혐의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관계만 인정했을 뿐 범죄의 고의성을 전면 부인했던 터다. 불구속할 경우 국정 농단의 관련자들과 짜고 증거를 감추고 없애거나 혐의를 왜곡할 가능성 등이 제기됐다. 결과적으로 ‘구속이 불가피한 사유’라는 결론을 내린 이유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사법부의 몫이다. 사법부 역시 박 전 대통령이 30일 예정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든 안 하든 영장 청구서에 적시된 혐의에 대해 법의 잣대로 보고 결정하면 된다. 좌고우면할 필요 없다. 다만 우려스러운 일은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해 온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의 반발이다. 영장 청구에 대해 “기각해야 한다”라는 등의 압박은 온당치 않다.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승복해야 한다. 법과 정의를 바로 세워 국정 농단에 따른 혼란과 분열을 마무리 짓는 길이 따로 없다.



[동아일보]

9. 자동차사고 줄어도 요지부동인 車보험료

주요 10개 손해보험사의 지난달 자동차보험 평균 손해율이 1년 전보다 8.3%포인트 떨어진 80%로 나타났다. 보험료 대비 고객에게 지급한 보험금 비율인 손해율이 떨어지면서 손보사의 이익이 늘어난 것이다. 동부화재 KB손보 한화손보 악사손보 현대해상화재보험 등의 손해율은 적정 수준(77∼78%)을 밑돈다. 그런데도 보험료를 내린 회사가 삼성화재, 메리츠화재 등 일부에 불과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손보사들은 손해율이 악화되면 기다렸다는 듯 보험료를 올려 왔다. 이달만 해도 사망 사고 시 지급하는 위자료를 인상하는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이 시행되자 손보사 10곳 중 9곳이 보험료를 0.7% 올렸다. 실제 손해로 이어지지 않았는데도 미래의 손해까지 예상해 보험료를 더 내도록 했다. 손해율이 개선될 경우엔 더 지켜봐야 된다거나, 마일리지 특약 확대 등으로 변죽만 울렸을 뿐이다. 

물론 상품 가격인 보험료는 시장 원리에 따라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격이 왜곡되고 있다면 이를 보완하는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 2015년 정부의 가격 개입을 금지하는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이 나오면서 손보사들의 수익성도 개선됐다. 손보사들이 이익의 일부나마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보험사들의 가격 결정에 담합 정황은 없는지 정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세계일보]

10. 안보위기 상황에 미·일 대사 장기공백 우려스럽다

주한 미국·일본 대사의 동시 공백 상태가 두 달을 넘어섰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차기 대선을 거쳐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양국 대사 공백이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1월20일 마크 리퍼트 전 대사를 귀국시킨 이후 후임 대사 지명은 물론이고 하마평조차 나오지 않는다. 조만간 후임 대사를 인선하더라도 상원 인준 등의 절차를 마치려면 새 정부 출범 이후에나 부임할 전망이다.



한반도 문제의 분수령으로 꼽히는 내달 초 미·중 정상회담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일본·러시아 대사 인선을 완료함에 따라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만 배제되는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본은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1월9일 나가미네 야스마사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한 지 70일이 넘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최근 학교부지 특혜분양 의혹에 휩싸여 나가미네 대사를 복귀시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일본 고교 교과서 검정 결과도 악재다. 대사 복귀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한·일 간 갈등 해소를 위한 외교가 사라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한반도 안보 상황은 날로 엄중해지고 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돈다. 한·미 정부 관리들은 북한이 핵실험을 위한 마지막 준비작업을 마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군 총참모부는 그제 “우리 식의 선제적인 특수작전, 우리 식의 선제타격전에 나서겠다”고 위협했다.

한반도 안보위기 상황에서 미국·일본 대사의 부재는 여간 우려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미·일이 긴밀한 대북 공조를 해야 하지만 지금의 대사대리 체제로는 한계가 있다. 리퍼트 전 대사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백악관과의 ‘핫 라인’ 역할을 맡곤 했다. 최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방한 당시 한·미 외교장관 만찬 불발을 놓고 뒷얘기가 무성한 것도 양국 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일이다.



우리는 대통령 궐위 상태여서 정상외교가 실종됐고 과도정부의 외교안보 정책도 힘을 받기 어렵다. 정부가 분발해야 한다. 모든 외교 채널을 동원해 한·미·일 간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한 특단 조치를 취해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매경이코노미][무비클릭] 미녀와 야수

‘미녀와 야수’가 실사 영화로 다시 태어났다. 알려져 있다시피 디즈니는 디즈니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오리지널 애니메이션들을 실사로 옮기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신데렐라’ ‘정글북’이 그 작업의 성과들이다.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라고 말하는 순간 떠오르는 어려움은, 만화니까 가능한 과장과 상상을 어떻게 실사로 재현하느냐다. 가령 모글리와 대화를 나누는 늑대 같은 장면들이다. 

그런 점에서 ‘미녀와 야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실사화가 가장 우려된 작품 중 하나였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야수’ 부분이다. 야수로 바뀐 인간의 모습이 애니메이션과 달리 실사화됐을 때 과연 몰입감을 선사할 수 있느냐의 문제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성안의 여러 사물들로 변신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인격을 가진 사물이라니, 그것이야말로 애니메이션의 특권 아니었던가? 컵이 말을 하고 시계가 걸어다닌다, 그것도 사실적인 모습을 하고 말이다. 난관이 아닐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살아 있는 물건들은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우려보다 빨리 익숙해지는 편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말 그대로 명품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가 시각적인 어색함보다 서사적 공감에 훨씬 더 빠르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촛대 르미에는 이완 맥그리거, 협탁용 시계 콕스워스는 이안 맥켈런 그리고 따뜻하고 품이 넓은 티팟은 엠마 톰슨이 맡아 따뜻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그렇지만 품위를 잃지 않는 연기 톤을 완성해낸다. 아마도 성안의 격식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을 듯싶지만 유독 영국 배우들이 많은 것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거의 고스란히 살린 음악이다. 벨의 노래, 가스통의 노래 등은 원작 애니메이션을 거의 ‘오마주’했다고 할 만큼 익숙했던 즐거움을 준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진취적이면서도 잘 짜여진 세계관을 보여줬던 이야기 구조도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다. 

‘푸른 수염’을 쓴 동화 작가 샤를 페로에 의해 정리된 ‘미녀와 야수’는 생각보다 다층적이고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디즈니는 아버지와의 분리를 망설이며 사랑하는 남자와 아버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 소녀 벨을 훨씬 더 개성적인 인물로 해석해낸다. 그녀는 평범한 주변 여성들처럼 작은 세계에 안주하고자 하지 않고, 책과 상상력을 통해 더 넓은 세계를 꿈꾼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새 현명한 페미니스트 배우로 성장한 엠마 왓슨은 ‘벨’ 캐릭터의 실사판에 정말이지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캐릭터는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단순 조역에 불과했던 르푸의 활약이다. ‘겨울왕국’의 올라프 목소리를 맡았던 배우 조시 게드는 이번에도 역시 웃음을 담당해 제 역할 이상을 해낸다.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극복해야 할 상처가 있다는 메시지로 세상의 모든 소수자들에게 따뜻한 위안을 건네고자 하는 감독 빌 콘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싶기도 하다. 

가족 모두가 함께 본다 해도 각자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이다.



2. [서울신문][씨줄날줄] ‘대왕 카스테라’의 눈물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노란 간판의 작은 길거리 빵집을 한 번쯤 봤을 법하다. 상권이 웬만큼 형성된 곳에서는 몇 달 새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대왕 카스테라’ 매장이다. 공간 효율을 극대화했다는 것이 이들 가게의 공통점. 골목 귀퉁이나 상가의 자투리 공간에 놓인 오븐이 설비 시설의 거의 전부다. 길가로 뚫린 쪽문으로 테이크아웃 방식으로 판매하는 초소형 프랜차이즈 빵집이다.



대만 단수이 거리의 명물인 대왕 카스테라가 국내 진입한 지 몇 달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어느 종편 방송의 먹거리 고발 프로에서 식용유 함량 문제가 언급된 뒤 불과 보름여 만에 빚어진 사태다. 방송은 이 카스테라에 식용유와 액상 달걀이 과다하게 들었다고 꼬집었다.

밀가루 대비 식용유 비율이 최대 70%까지 들었으며, 식용유가 8% 이상 들어간 빵은 애초에 ‘시폰 케이크’라고 불러야 했다는 것이다. 문전성시였던 매장들은 방송 이후 거짓말처럼 파리를 날리거나 폐업 선언을 했다. 가게 앞에 달걀 판을 쌓고는 “식용유 빵이 아니라 계란 빵”이라며 읍소하는 점주도 있다.

그렇다면 의문.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애초에 ‘대만 시폰 케이크’라는 이름을 썼더라면 시비가 없었을까. 먹거리에 예민해 고발 프로에 쉽게 동조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이번만큼은 사뭇 다르다. “폐식용유도 아닌데 문 닫을 죄냐”, “설탕이 거의 들지 않은 웰빙 빵”, “자영업자 폐업률 높이는 못된 방송” 등등. 심지어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 음모론까지 가세한다. “기업형 빵집들이 신생 업체를 싹부터 자르려는 술책 아닐까.”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런 해설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연일 확대 재생산되는 중이다.

독성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라셀수스는 “모든 물질은 독이며, 중요한 것은 양”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생존에 필수인 물마저도 너무 많이 마시면 해롭다. 뇌가 부어올라 죽음에 이르는 이른바 ‘물 중독’.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우려가 현실에서 치명타가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대왕 카스테라에 중독된 소비자들이 속출하기 전에는. 이쯤에서 떠오르는 마크 트웨인의 싱거운 한마디. “적당히 마신 물은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

대왕 카스테라 감싸기 여론은 어쩌면 현실의 거울이다. 어쩔 수 없이 나 홀로 사장이 된 자영업자가 14년 만에 최대 증가치를 기록했다. 어제 통계청의 발표다. 취업하기가 어려워 종업원도 하나 없는 1인 사업장을 여는 세태는 더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왕 카스테라의 수난에 왠지 짠해지는 이유다.



3. [조선일보][일사일언] 책방은 도서관이 아니다

몇 년 전 대형 서점이 리모델링을 하며 서점 내에 큰 테이블을 들였다. 새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으니 독자들에겐 이만한 편의가 없다. 그러나 읽은 책을 다 사가는 건 아니어서 예민한 문제가 생긴다. 오래 읽고 간 책엔 흔적이 남고 파손되는 경우가 있어서다. 한 출판사 대표가 얼마 전 이 문제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서점이 책 반품 비용 부담을 출판사에 전가하는 관행을 질타했지만, 댓글 중엔 독자의 소양을 거론하는 내용도 여럿이었다.



이 문제는 우리 책방도 심각하다. 우리는 책을 구입한 분들이 여유롭게 읽고 가시라고 크고 편안한 의자를 책방에 두었다. 커피며 음악이며 공간 배치도 그런 뜻으로 했다. 그런데 이 의도는 자주 왜곡된다. 손님들은 구입하지 않은 책을 의자에 앉아 몇 시간씩 읽는다. 그렇게 읽다 간 책은 다시 진열대에 진열되지만 한눈에 티가 난다. 이런 책은 누구도 사려 하지 않으며 새 책을 찾는다.



그런가 하면 여러 권을 집어다 쌓아놓고 읽기도 한다. 책방을 도서관으로 여기는 걸까. 심지어 구입하지도 않은 책을 말아쥐고 읽거나 십여 페이지에 걸쳐 줄을 쳐놓고 간 경우도 있다. 당연히 이런 책은 팔 수 없고 부담은 고스란히 책방이 떠안는다. 동네 책방은 출판사에 떠넘길 수도 없거니와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책방을 찾아주는 분들은 고맙다. 책에 관심과 애정이 있는 분들이니까. 그래서 조심스레 부탁의 말을 꺼내 본다. 자리에 앉아 오래 읽은 책은 구입해 주십사, 오래도록 읽을 작정이라면 먼저 구입을 하십사 하는.



강남에 책방을 열어주어 고맙다, 망하지 말고 오래 하라는 인사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이런 인사가 비단 우리 책방에만 하는 말은 아닐 거다. 어려워도 꿋꿋하게 책방을 해나가는 세상의 모든 책방 주인에게 건네는 응원일 테다. 이런 마음을 아는 우리는 오늘도 좋은 책을 고르고 출판사와 독자 사이에 풍성한 만남이 일어나도록 애쓴다. 책방을 찾는 당신도 애써주시라.



4. [경향신문][청춘직설] 낭만적 사랑과 결혼시장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로 되풀이되는 로맨스의 공식처럼 누구나 현실의 누추함에서 나를 구원해줄 멋진 이성과의 사랑과 결혼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신분과 인종, 문화 차이 등을 극복하고 결혼에 이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즉 어떤 사회에서든 모든 것을 극복하거나 초월하는 열정적 사랑이 결혼의 합당한 관습으로 인정된 적이 없다는 것이 사랑 연구자의 연구 결과이다.



과거 서양과 동양을 막론하고 결혼계약의 기초가 된 것은 경제와 신분을 둘러싼 가족 간의 거래이지 ‘사랑’은 아니었다. 계급과 부의 결속이 아닌, 개인의 의사에 바탕한 ‘자유연애’가 결혼의 조건으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들어서이며 우리의 경우 이광수의 <무정>이 나온 뒤로도 지난한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젊은이들은 최초의 근대인들이 환호작약했던 것처럼 사랑을 결혼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삼으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각종 자료를 보면 서양은 90% 이상, 우리의 경우 70% 이상의 청년이 ‘부모가 반대해도 결혼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실제 결혼 당사자들이 순수한 사랑만을 전제로 하기보다는 부모를 대신해서 스스로 결혼조건을 따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시장’, 즉 결혼을 교환과 경제관계의 산물로 보고 있는 연구자 준 카르본과 나오미 칸에 의하면, 미국의 현재 결혼시장은 19세기 이전의 신분사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즉 자유연애라는 근대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은 낭만적 방식이 아닌, 계급 장벽을 높이는 현실적 방식을 따른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책 <결혼시장>(시대의 창, 2016)에 의하면 결혼시장의 현재적 동향은 미국의 불평등과 계급격차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전반적으로 결혼연령이 높아지고 결혼율은 낮아지며 이혼율은 높아지고 있으나, 이 일반적인 통계가 모든 계급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상층, 즉 소득분위 상위 3분의 1에 해당하는 집단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이혼율, 혼외출산율이 낮아졌으며 결혼과 가정을 중시하고, 그들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하위 3분의 1에 해당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집단의 경우, 결혼율은 급격히 낮아졌으며 혼외출산율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경우 전체 출산의 70%, 고등학교 중퇴자의 96%를 차지하고 있다.



요컨대 미국의 가족 재구성이 철저히 미국 경제적 변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즉 고소득층이 더 결혼에 충실하고 계급 장벽을 높이게 된 것, 그리고 극빈층에 거의 결혼이 사라지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꼽고 있다.

실업이 하층민 가족 붕괴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이들의 분석은, 지금 한국 사회에도 유의미하게 적용될 수 있다. 청년실업자 수 100만9000명(2017), 비혼 여성 35.5%(2010), 출산율 1.17(2016), 그리고 지난해 혼인율이 역대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최근 통계는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불안정이 한국 청춘들을 결혼과 출산으로부터 이탈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여성의 비혼을 고스펙 탓으로 돌리고 하향 결혼을 권장하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자는 국책연구기관의 백색 음모론, 행정자치부의 ‘가임기여성분포지도’ 등은 아직도 결혼과 가족을 개인의 문제와 문화현상으로, 또는 생물학적 세포로 보고 있는 안일한 사고방식이다. 또한 고스펙이라 하면 다 골드미스일 거라는 생각도 착오다.

사람들은 준과 나오미의 분석이나 각종 통계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여전히 신데렐라 드라마를 즐기고 있을지라도 내게 주어진 현실적 선택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선택지에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있다면? 합리적 판단을 하는 여성이라면, ‘낭만적 사랑’에 눈이 멀어 경제와 육아를, 게다가 성인 한 명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무모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비혼 현상은 ‘그럭저럭’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를 가진 남자와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괜찮은 여성 일자리가 없는 탓이지, 여성의 눈이 높아진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럭저럭’이라 할 수 있는 중산층의 붕괴, 격변하는 한국의 결혼시장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닌 것이다.



5. [서울신문][김주영의 구석구석 클래식] 시대도 변하고 음악감상법도 변하고

음악이 업이 된 후 음악과 상관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면 클래식 애호가를 조금이라도 늘리려는 마음으로 ‘나중에 제 연주회에 초대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던지곤 하는데, 가끔 내 제안에 당황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는 좀 곤란할 거 같네요. 호의는 감사하지만, 그런 음악회는 저랑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클래식 음악회 가기가 어색하고 고전음악과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들이 떠올리는 문제는 대개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운명’, ‘사계’, ‘비창’ 등 익숙한 제목의 작품도 있지만, 복잡한 전문용어와 여러 종류의 숫자, 알파벳 등으로 채워진 제목들이 딱딱하고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것이 첫째다. 둘째는 만만치 않은 작품들의 길이다. 저녁 8시쯤 식곤증이 몰려오기 가장 쉬운 시간대에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소리는커녕 동작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로 두 시간 이상 앉아 있는 게 어떤 이들에게는 가벼운 ‘고문’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다행히 두 가지 문제 모두 과거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과학의 발달로 어느 정도 해결 단계에 와 있다. 클래식은 잘 모르지만, 어지간한 대중음악은 스마트폰에 그 음악을 들려주면 불과 몇 초 만에 정확한 곡명을 알려주는 앱이 생겼다. 또 초저녁 시간 여유가 없는 분들을 위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집에서 고음질과 화질의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콘텐츠들도 넘친다. 정보에 민감하다면 세계 최고의 공연장에서 이루어지는 라이브 공연을 실시간에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즐기는 방법도 있다.

그렇다고 클래식 입문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줘야 하는 일이 쉬워진 것은 아니다. 늘 시간에 쫓기는 21세기인들에게 고전음악 감상이란 바쁜 일과를 쪼개야 가능한 일이고, 그 가능성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나 역시 음악감상을 위한 입문서 등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데, 300쪽이 넘는 분량의 책을 꼼꼼히 읽고 실천하는 것이 어지간히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입문자들을 위한 특강 등에서 많이 강조하는 내용 중 하나가 어떤 음악이든, 어디서 들었든 상관없이 호기심을 갖고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멜로디나 작곡가의 이름, 혹은 작품의 제목을 붙잡고 거기서 지식과 경험의 가지를 뻗으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영화 속 음악이나 등장인물들을 통해 고전음악과의 거리감을 없애고 흥미를 유발하는 방법을 권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 게리 올드만 주연의 ‘불멸의 연인’은 베토벤이 마지막 순간까지 잊지 못했던 편지 속 연인이 누구였는지 찾아가는 내용이다. 제자였던 신들러가 주인공을 찾는 과정이 요즘 유행하는 추적 프로그램들과 유사하다고 느끼며 베토벤의 인생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 바이올린의 명인 파가니니의 이야기를 다룬 동명의 영화에서는 아주 잘 생긴 배우가 파가니니를 연기하는데, 그는 실제 바이올리니스트인 다비드 가렛이란 인물이다. 수려한 미모에 반한 여성 팬들이 바이올린 음악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한 셈이다.

메릴 스트립, 니콜 키드먼 등이 주연을 맡은 ‘디 아워스’에는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영화음악이 함께 한다. 단순한 화성, 끊임없이 반복되는 ‘미니멀리즘’ 기법에 익숙해진다면, 어느새 현대 음악의 정복도 멀지 않은 일이 된다. 비교적 최근 개봉한 ‘카핑 베토벤’에서 나이 든 베토벤의 역할을 맡은 배우가 ‘설국열차’ 마지막 장면에 등장했던 에드 해리스라고 설명하면, 옛날 영화나 음악에 시큰둥하던 20대들도 부쩍 관심을 보이며 집중하는 모습이다.

스마트폰과 모바일의 발달로 한 걸음 다가온 것도 사실이지만, 친근한 영화와 TV 등 다양한 매체 속 클래식 음악은 늘 우리를 기다려 왔다. 이제 손가락 움직임 몇 번만으로 여러분 주위의 음악들을 품 안에 간직해 보시길 권한다. 단, 스마트폰으로 감상할 때는 주변을 꼭 살피시도록.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닭고기 가격’ 으름장, 정부의 책임회피다

이마트가 최근 백숙용 생닭 가격을 15% 올리겠다고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했다. 정부의 과도한 단속에 밀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이에 앞서 치킨 프랜차이즈인 BBQ도 가격을 올리려다 번복하고 말았다. 정부가 물가인상을 우려한다며 ‘협조 요청’을 했다지만 실상은 반강제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명백한 행정권 남용이며, 월권이다.

더욱이 닭고기 가격 인상 움직임은 정부의 정책 잘못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 조류인플루엔자(AI)에 초동단계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AI 발생 한 달여가 지나서야 위기 경보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올리는 등 뒷북 대응으로 닭 2900여만 마리가 살처분되는 역대 최악의 사태로 번졌다. 그 여파로 계란 파동이 일고 닭고기 가격이 뛰었다.

이런 상황에서 닭고기와 달걀 수급을 안정적으로 회복하려면 적어도 1년 가까이 걸린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치킨이 ‘국민 간식’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정부의 안일한 대응책이 키운 수급 불균형 사태다. 그렇다면 지금의 닭고기 가격 상승 요인을 행정력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은 책임회피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잘못을 업계에 뒤집어씌우는 꼴이다.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브라질산 ‘썩은 닭고기’ 파문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브라질 BRF업체가 썩은 닭고기 수출과 연루됐다는 미확인 소식에 BRF 닭고기의 유통을 즉각 중단시켰다. 하지만BRF가 문제의 닭고기를 한국에 수출한 사실이 없다는 브라질 정부의 발표에 다음날로 유통중단 조치를 해제했다. 수입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이틀 사이 오락가락 발표로 시장 혼란만 키운 꼴이다.

문제는 정부의 즉흥적인 대응으로 소비자들의 불신감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마트들이 진열대에서 브라질산 닭고기를 전량 거둬들이는 지경에 이르렀고, KFC 등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버거 제품 재료를 국내산으로 교체하는 등 파문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이런 식이라면 정부가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렵다. 닭고기 가격을 통제하는 동안 업계가 속으로 더욱 멍이 들고, 그 폐해가 결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2. 당내 경선은 '그들만의 잔치'인가

조기 대선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각 정당의 경선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여러 단체의 초청 토론회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역별 경선이 차례로 진행되는 중이다. 그러나 당내 열기에 비해 일반인들의 관심과 호응도는 크게 떨어진다. 예비후보들의 공약이 유권자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할뿐더러 서로 트집잡기 방식의 싸움에 치중하고 있는 탓이다.

예비후보들마다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 제시는 거의 없고 포퓰리즘 공약이나 과거 정부의 잘못을 들추는 식으로 선거를 몰아가는 것도 유권자들을 식상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지금대로라면 투표 참여율이 역대 최저로 떨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어느 누가 뽑히거나 마찬가지 결과가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심리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당의 경선 열기가 ‘자기들만의 잔치’로 여겨지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이 앞서가는 가운데 오늘 호남을 시작으로 충청, 영남, 수도권 등 순회경선이 순차적으로 실시된다. 특히 호남 경선은 승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미 현장투표 결과가 유출됨으로써 선거 공정성 여부가 도마에 오른 상태다. 당내 진상조사위원회가 이에 대해 “고의성의 없다”며 사태를 마무리 지었으나 반발은 여전하다.

보수진영의 의사를 대변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도 조만간 후보를 최종 선출하고 본선 채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러나 결집력은 미미한 편이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거치며 보수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전통적 지지자들의 관심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거기에 비한다면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지난 주말 광주·전남·제주 경선에서 압도적인 득표율을 올린 사실이 돋보인다.

문제는 각당의 후보 선출작업이 끝나더라도 서로 다른 당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절차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유권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면 이번 대선은 그것으로 거의 끝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만이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과 탄핵을 의미한다. 유권자들이 오는 5월 9일 선거 날짜를 임시 공휴일로만 간주하는 결과가 빚어질까 미리부터 걱정된다.



[서울신문]

3. 日 역사 왜곡하는데 소녀상 옮기라는 주일대사

일본의 역사 왜곡이 점점 심해지고 노골화하고 있다. 일본은 초·중학교에 이어 올해부터 모든 고교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을 넣었다. 미래 일본을 이끌어 갈 어린 학생들은 이제 초·중·고교에서 더 체계적이고도 반복적으로 잘못된 역사를 배우게 된 것이다. 이런 판국에 이준규 주일대사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에 대해 “이전이 바람직하다”고 말해 파장이 일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한·일 위안부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도 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최근 모든 고등학교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내용이 들어간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했다. 극우 보수파 아베 신조 총리의 집권 이후 일본은 2014년 초등학교, 2015년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내용을 넣더니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년에 걸쳐 고교 교과서도 전부 역사 왜곡으로 도배질한 것이다. 이번에는 한·일 간 위안부 합의 부분도 교과서에 처음 실렸다. 하지만 위안부가 겪은 참상보다는 양국 합의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체결됐다는 내용만 강조했다고 한다.

지난해 한·일의 위안부 합의는 과거사에 발목 잡혀 두 나라의 미래마저 어둡게 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반성과 참회가 전제였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일본 정부가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그릇된 역사를 치밀하게 주입하는 것은 위안부 합의 정신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역사의 도발이나 마찬가지다.

이 대사는 이런 일본의 망발을 가장 앞장서서 따져야 할 위치에 있건만 “소녀상 설치는 국제 예양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니 저자세의 굴욕 외교가 아닐 수 없다. 한술 더 떠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위안부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현재 주자 모두 위안부 협상 파기를 주장하는 상황에 주일 대사가 새 정권의 대일 정책에 대한 주문까지 하니 오죽하면 일본 언론까지 ‘이례적’이라고 비웃었겠는가. 이러니 일본이 우리나라를 더욱 얕잡아 보는 것이다.



민간 차원에서 건립된 소녀상에 대해 계속 말 바꾸기로 원칙도 없이 일본에 질질 끌려다니는 외교부를 보면 일본 못지않게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국민들이 많다. 외교부가 나설 일은 위안부 합의 준수가 아니라 일본의 역사 왜곡에 강력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4. 세월호 인양 성공, 의혹 말끔히 해소해야 ​ 

세월호가 마침내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전남 진도 앞 맹골수도 40여m 물속을 빠져나오는 데 무려 1075일이 걸렸다. 수면에 완전히 부상한 세월호를 바라보며 피해자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도 참담함에 가슴이 막히고 말문이 닫혔을 것이다. 차디찬 바닷물이 선내로 들이닥치자 “나는 꿈이 많은데… 죽기 싫은데…”라고 울부짖던 단원고 학생의 절규가 가슴을 친다. 반잠수식 선박에 실린 세월호는 배수와 잔존유 제거 작업을 모두 마친 뒤 28일쯤 목포신항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제 세월호는 육지로 올라가 미수습자를 가족 품에 돌려주고 참사의 원인을 밝혀 줄 일만 남았다. 먼저 미수습자를 찾아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침몰한 지 3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더구나 물살 빠르기로 소문난 맹골수도였기에 미수습자를 수습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배 구석구석을 뒤지고, 여기서 안 나오면 맹골수도를 다 훑는 한이 있더라도 3년을 팽목항에서 버틴 미수습자 가족의 한과 응어리를 풀어 줘야 한다. “네가 신고 싶어 하는 축구화 사왔다”며 녹슬고 찌그러진 세월호를 향해 오열하는 모정을 생각하면 쉽게 끝낼 일도 포기할 일도 아니다.

세월호 침몰을 둘러싸고 잠수함 충돌, 해양수산부 은폐 의혹 등 그동안 온갖 풍문과 의혹이 난무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조만간 출범할 선체조사위원회의 활동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조사위는 국회와 유가족 대표가 추천하는 8인으로 구성된다. 활동 시한은 6개월이지만 한 차례 조사 기간을 연장할 수 있어 최장 10개월간 활동할 수 있다. 조사위는 최우선 과제인 미수습자를 수습한 뒤 침몰 원인과 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해야 한다.



당시 정부는 세월호가 조타수의 부적절한 조타로 무리하게 실은 화물들이 쏟아지면서 균형을 잃고 침몰한 것으로 결론 냈다. 그러나 대법원은 조타 실수보다 조타기의 결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조타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정부의 사고 원인 발표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의혹과 풍문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와중에 세월호 인양에 성공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세월호 인양을 대립과 갈등, 반목을 치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더는 세월호를 둘러싼 국론 분열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해수부 등 관련 부처도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 역시 세월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거나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앙일보]

5. 호남발 안철수 돌풍, 대선 새 변수 되는가

대선후보 경선에 돌입한 국민의당이 지난 주말 첫 경선지인 호남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25일 광주·전남과 제주에서 홍보 부족과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6만2000여 명이 투표해 당초 예상의 두 배 가까운 기록을 냈다. 26일 전북에서도 3만 명 넘는 유권자가 투표해 열기를 이어 갔다. 더불어민주당도 25·26일 호남 지역 ARS 투표에 이어 27일 광주 순회투표를 실시한 뒤 지난 22일의 현장투표 결과를 합산해 호남의 승자를 가릴 예정이다.

야권의 텃밭인 호남에서 개시된 두 당의 경선 레이스는 대선 길목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지율 1위를 고수해 온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세론’이 호남 경선에서 입증될 것인지, 아니면 비문 진영에서 강력한 후보의 부상으로 그런 흐름에 제동이 걸릴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였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당이 예상 밖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며 흥행에 히트한 점, 또 안철수 후보가 60% 넘는 득표율로 손학규·박주선 후보에게 압승해 ‘안풍’을 일으킨 점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번 대선이 특정 후보의 대세론을 속단할 수 없는 박빙 구도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유권자의 선택권 보장과 대선의 정통성 유지를 위해 다행스러운 결과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 파면에 따른 돌발적 조기 선거다. 선거일까지 40여 일밖에 남지 않아 유권자들의 집중적인 관심과 판단이 절실하다. 정당들 역시 어느 때보다 치열한 토론과 공정한 관리 체제로 경선을 치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심’을 장악한 기득권 후보가 민심을 거슬러 경선에 이기는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과 민주당 경선은 정당 사상 처음 도입한 완전국민경선제의 시험대란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민주당 경선은 214만 명 넘는 유권자가 참여를 신청해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하지만 현장투표 결과 유출과 후보들의 네거티브 싸움으로 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 주민등록증 소지자라면 누구나 투표할 수 있도록 한 국민의당은 무난히 첫 경선을 치렀지만 운영 미비로 사고의 가능성이 산재해 있다. 끝까지 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세계일보]

6. 정권용 사업에 기업 돈 끌어 쓰는 일 다시 없어야

정권용 사업에 돈을 대기 위해 기업 총수들이 은행 빚까지 냈다는 증언이 나왔다. 신동빈 롯데회장은 지난해 11월 검찰 조사에서 청년희망펀드와 관련해 “안 내면 왕따를 당한다며 내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당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해 개인 돈으로 롯데제과 주식을 사들인 신 회장은 수중에 돈이 없어 은행에서 70억원을 빌렸다.



그는 “일본, 미국에 살았으면 기금을 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최태원 SK회장도 수중에 현금이 많지 않아 은행에서 60억원을 빌려 출연했다. 광복절 특사로 수감 생활에서 벗어난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았던 그는 정권에 밉보여 혹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했다는 것이다. 권력을 동원한 ‘기업 팔 비틀기’가 아닐 수 없다.

청년희망펀드는 2015년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박 전 대통령이 일시금으로 2000만원, 매달 월급에서 20%를 기부하기로 약속하자 기업 총수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주머니를 열었다. 이승철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법정에서 “대통령이 낸다는데 가만히 있겠냐. 이것은 총수에게 압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정권용 사업에 금융권도 가세했다. 지난해 말 조사에선 기부자 중 52%가 13개 수탁은행 직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적 바람을 일으키기가 여의치 않자 정부가 금융권을 독려해 참가자를 늘린 것이다.

물론 청년희망펀드는 선의의 취지로 추진됐다. 하지만 권력이 앞장서고 기업이 밀어주는 식이 되다 보니 그만 빛이 바래고 말았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권력의 입김이 작용하면 왜곡되게 마련이다. 기업의 자율적 판단과 투자가 불가능해지고 사업 자체도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청년희망펀드 역시 대통령 탄핵사태를 맞아 현재 존속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경유착의 뿌리는 매우 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놓고 자신의 치적용 사업에 협조하라고 주문한다. 일렬로 죽 늘어서서 대통령에게 허리를 굽히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 된 지 오래다. 이런 후진적 관행이 권력과 재계 간에 뒷거래가 이뤄지는 시발점이 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정경유착을 근절하자면 재계의 반성과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전경련의 명칭을 한국기업연합회로 바꾸는 그 이상의 개혁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은 먼저 정치권력부터 변하는 것이다. 정권용 사업에 기업을 동원하겠다는 발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청년희망펀드처럼 아무리 희망의 수식어를 붙일지라도 그런 권력에는 희망이 없다.



7. 세월호 음모론 이젠 걷어내고 신뢰사회로 가자

세월호가 인양되면서 음모론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가 세월호 진실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인양에 늑장을 부렸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왔다’는 표현에 잘 압축돼 있다. 3년의 오랜 기다림과 안타까움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세월호 7시간’ 의혹과 맞물려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그제 밤 완전히 선체를 드러낸 세월호는 이르면 내일 목포 신항에 도착한다고 한다.

세월호 같은 대형 여객선을 통째로 인양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만큼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이다. 사고 해역은 유속이 워낙 빠르고 수심이 평균 37m에 이른다. 해상 크레인을 활용한 플로팅독 인양방식을 재킹바지와 탠덤리프팅 방식으로 바꾼 것이 불과 넉 달 전이다. 무엇보다 인양업체인 상하이샐비지의 장비 임차료와 인건비만 합쳐 하루 10억원에 달한다. 인양 방식을 놓고 오락가락한 것은 맞지만 인양 시기를 늦출 이유는 없었다고 봐야 옳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놓고 제기됐던 그간의 의혹들은 근거가 없는 거짓으로 밝혀지고 있다. 완전 부양된 세월호는 녹슬고 긁히고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처참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균열 등 외부 충격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암초나 다른 선박, 잠수함과의 충돌설, 심지어 폭침설까지 나돌았으나 낭설이었음이 명확해졌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선 무슨 대형 사건 사고만 났다 하면 음모론과 유언비어가 춤을 추기 일쑤였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 천안함 폭침, 비무장지대(DMZ) 내 목함지뢰 폭발, 김정남 독극물 살해 등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통합 수준은 1995년 이후 20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0개국 중 29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념·세대·계층·지역 간 갈등이 심한 데다 구성원 간에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서로 믿지 못하면 선진국 진입도, 행복한 사회 건설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 3년 만에 인양된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드리운 불신의 장막을 걷고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매일경제]

8. 천안함 폭침 7주기, 북한 도발 분쇄할 안보공약 안보인다

천안함 폭침 7주기를 맞은 26일 북한이 또다시 무차별적인 협박을 쏟아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등을 겨냥한 한미 군사훈련에 대응해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가 '선제적인 특수작전'에 나설 것이라며 위협했다. 7년 전 바로 이날 북한은 백령도 인근에서 초계작전 중이던 천안함을 어뢰로 공격해 승조원 104명 중 4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처럼 호전적이고 반인륜적인 그들이 또다시 도발을 책동하고 있으니 비상한 대책이 필요할 때이다. 

한반도 안보 환경은 7년 전 그 비극적인 피격 사건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 북한은 3·4·5차 핵실험을 이어갔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도 강행했다. 지금도 북한은 핵실험을 또 준비하고 있고, 미국은 대북 선제타격을 배제하지 않고 있으니 자칫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북한이 도발에 나서는 순간 곧바로 응징에 나설 수 있도록 자주국방 능력을 강화하고 그 의지를 천명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미국·중국 등과 능동적인 외교로 긴장을 완화하는 노력도 긴요하지만 무엇보다 첫째는 우리의 각오와 자세다. 

그런데 현실은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지난 24일은 제2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 등 북한의 무력도발을 되새기며 안보 의지를 다지는 '제2회 서해 수호의 날'이었다.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는 기념식임에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지도부와 대선 후보들은 불참했다. 천안함 7주기와 세월호 3주기를 앞두고 광장 시민들의 관심도 갈라졌다.



태극기집회는 천안함 전사자 추모에, 촛불집회는 세월호 진상 규명에 우선순위를 뒀다. 안보와 안전을 모두 아우르는 자각이 아쉽다. 문재인·안희정·안철수 등 야권 대선 주자들이 26일 천안함 희생 장병 묘역을 참배했지만 대선 후보들도 군복무기간 단축이나 모병제 등 포퓰리즘 공약으로 부화뇌동하기는 마찬가지다. 북한 도발을 분쇄할 공약과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어떤 위협과 도발을 하더라도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대선 주자들이 안보공약을 다시 다듬어야 한다.



9. 주한 美대사 두 달 넘게 공석 가볍게 볼 사안 아니다

주한 미국 대사 자리가 벌써 두 달 넘게 비어 있다. 오바마 행정부 때 한국에 부임한 마크 리퍼트 대사가 지난 1월 20일 귀국한 후 트럼프 행정부가 아직 후임자를 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주한 미국 대사가 지명되더라도 상원 인준 절차를 거쳐 실제 부임하려면 몇 달이 더 걸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후임자 인선은 여전히 누가 물망에 오르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깜깜 무소식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중국, 일본, 러시아 주재 대사를 모두 지명했다. 대통령 당선 후 한 달도 안 돼 공화당의 거물로 시진핑 중국 주석의 30년 지기인 테리 브랜스태드를 주중 대사로 지명했고, 올해 초에는 트럼프와 직접 대화가 가능한 월가 출신 윌리엄 해거티를 주일 대사로 낙점했다. 영국과 이스라엘 대사는 물론 세네갈과 콩고 대사도 이미 확정됐다. 그러나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에 보낼 대사는 내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는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지금 한반도 안보 상황은 어느 때보다 위중하다. 김정은 정권은 미국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한반도 안보 위기를 한껏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다. 

주한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은 도를 넘고, 한·일 간 외교 갈등도 여전히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그럴수록 주한 미국 대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한·미 양국 간의 긴밀한 소통과 공조가 지금보다 더 절실한 때는 없었다.

그런데도 주한 미국 대사가 석 달째 공석으로 있으니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우리는 다음달 초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논의되더라도 그냥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 일본과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면서 정작 당사국인 한국을 건너뛰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주한 미국 대사 인선을 서둘러야 한다. 또한 윤병세 외교장관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더욱 긴밀히 연락해 한국의 리더십 공백에 따른 한·미 간 소통 부족 문제를 최소화해야 한다.



10. 3년만에 모습 드러낸 세월호 우리 모두 치유의 시간을 갖자

1075일 만에 수면 위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는 녹슬고 긁힌 남루한 모습이었다. 3년간 기다려온 미수습자 9명의 가족들과 희생자 유족들의 생채기 난 가슴은 이보다 더 처참할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에서 침몰해 탑승자 476명 중 304명이 숨진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큰 응어리로 남아 있다. 인양을 추진한 지 704일 만인 지난 25일 반잠수정에 얹혀 드러누운 채 수면 위로 올라온 세월호를 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수학여행 길에 올랐던 천진한 아이들의 허망한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슬픔과 트라우마, 분노를 남겼다. 세월호 인양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었던 진실을 규명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반잠수정에 올라온 세월호는 해수 배출과 기름 방제 작업이 순조롭게 끝날 경우 이르면 28일 목포 신항으로 옮겨지게 된다. 우선 9구의 시신을 수습해 한 맺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선체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가 가능해진 만큼 침몰 원인을 놓고 제기됐던 무수한 의혹도 해소해야 한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선체 복원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조타수의 미숙으로 균형을 잃고 침몰했다고 발표했지만 암초 충돌설, 폭침설, 제주 해군기지용 철근 과적설, 잠수함 충돌설 등 음모론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네티즌 수사대로 알려진 '자로'는 세월호 좌현 밑바닥 쪽이 군 잠수함과 충돌했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세월호는 현재 왼쪽으로 누운 상태이기는 하지만 외부 충격에 의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뭍으로 옮겨진 후 진상이 낱낱이 규명되겠지만 사회를 혼란하게 만든 온갖 억측과 분란에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인양 시기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맞물리면서 '고의로 인양을 늦췄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세월호 침몰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적폐가 한꺼번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배를 빠져나온 양심 없는 선원들, 돈에 눈이 멀어 무리한 선박 개조와 과적을 일삼은 선주,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해경의 무능함 등이 만든 참사였다. 정치권은 5월 9일 대선에 세월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기보다는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 재난시스템을 강화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계기로 삼아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동아일보][횡설수설] 신세대 사로잡은 박막례 할머니

올 들어 젊은 세대는 ‘염병’(장티푸스의 옛말)이란 단어와 꽤 친숙해졌다. 요즘 가장 ‘잘나가는’ 유튜브 스타로 꼽히는 71세 박막례 할머니의 동영상을 보면 수시로 이 말이 출몰한다. 일상에서 입버릇처럼 튀어나오는 ‘염병’은 차진 전라도 사투리와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폭소를 자아낸다. 앞서는, 특검에 구인된 최순실을 향해 청소아주머니가 일갈한 ‘염병하네’가 ‘사이다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염병’을 웃음 코드로 바꾼 박 할머니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손주뻘 세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타로 떠올랐다. 그제 막 오른 ‘SNL 코리아’ 시즌9의 페이스북 홍보에 등장할 만큼 인지도가 치솟고 있다. ‘칠순의 크리에이터’는 손녀와 떠난 호주여행을 시작으로 요가와 네일아트, ‘치과 들렀다 시장 갈 때 메이크업’ 같은 뷰티 동영상을 올려 꾸밈없고 솔직한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젊은 여성의 뷰티 동영상 같은 형식인데 할머니의 엉뚱한 반응과 입담을 보는 재미가 톡톡하다. 데일리메이크업을 소개할 때 “얼굴 작아지려면 다시 태어나야 돼. 이거 바른다고 작아지나”라고 투덜거리는 식이다.



그 덕분에 할머니는 치과에 가면 의사가 사진 찍자고 따라 나오고 식당 가면 젊은 손님들이 알아보는 등 놀라운 신세계를 경험 중이다. 동영상의 기획 편집 촬영은 젊은 손녀의 몫이다. 남편 없이 자식들 키우느라 억세게 고생한 할머니랑 어린 시절 함께 살았던지라 정이 각별했다. ‘치매에 걸릴까 봐 두렵다’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손녀는 큰 결심을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여행을 떠났는데 그 동영상이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최근 교육방송에서는 조손세대가 둘만의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랑’도 선보였다. 어렸을 때 추억을 되새기고 싶은 시청자의 애틋한 마음을 염두에 뒀을 터다. ‘촛불과 태극기’가 상징하는 세대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평범한 할머니의 일상에 공감하는 젊은 세대를 보면서 대한민국에는 노년과 청년세대를 묶는 튼튼한 정서적 고리가 있음을 깨닫는다. 아직 희망이 있다.



2. [이데일리][데스크칼럼] 영화 '컨택트'의 소통법

“친구 만나는 시간에 공부나 해라.” “평생 함께할 친구란 말이야.” 아비와 아들의 표현은 다르다. 존중의 욕구든, 소속의 욕구든 결국 자아실현을 향해 나아감에도 대화는 통하지 않는다. “아니, 뭐가?”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알아?” 남자와 여자의 기준은 다르다. 상황이든, 감정이든 앞으로 사랑을 향한 다툼임에도 대화는 끊기고 만다.

5월9일 장미 대선을 앞둔 지금, 소통의 힘을 절감한다. 당마다 당원, 나아가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정책과 비전 대결이어야 할 당내 경선은 결국 네거티브 공방으로 변질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럴싸하게 가짜뉴스라고 포장된 유언비어로 공격만 퍼붓는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컨택트’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 곳곳에 조개껍데기 모양의 우주선 12척이 나타난다. 외계인이라면 인간을 납치해 실험이라도 할만하지만 공격은커녕 인사도 없다.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이론 물리학자(제레미 레너)와 함께 정부의 요청에 따라 우주선 안에 들어간다. 왜 왔느냐는 질문에 속시원하게 말해주면 좋으련만, 외계인은 처음도 끝도 헷갈리는 원 모양의 글자만 보여준다. 어느 순간 루이스는 처음과 끝이 이어져 있는 외계인의 표의문자가 뜻하는 시공간의 의미를 알게 된다. 

관객은 영화의 종반이 돼서야 무릎을 치게 된다. 영화의 진행 기간 내내 루이스의 기억으로 표현된 장면들이 과거인지 미래인지 깨닫게 된다. 그 순간 시간 흐름에 따라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언어를 벗어나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인식한 외계인의 언어 체계를 이해하게 된다.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사피어 워프 가설’이 영화에 녹여져 있다. 생각의 표현도 다르고 방식도 다르니 인간과 외계인의 대화 자체가 그토록 어려웠던 게다. 루이스는 끝내 시공간을 아우르는 동시적 사고를 하게 된다.

세상살이도 이와 같다. ‘컨택트’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더라도 대선 주자와 국민, 하다못해 부장과 부원의 생각 방식도 그와 같지 않을까. 세상을 이해하는 출발 자체가 다르니 서로의 말의 내용이나 방식이 다르다. 서로 이해 못하니 ‘컨택트’의 한 장면처럼 불안감에 서로 먼저 공격을 하려 한다. 

촛불과 태극기로 표출된 민심과 정치인의 현실 인식은 여전히 괴리가 있는 것 같다. 정치인의 욕망과 국민의 열망이 출발선조차 다른 탓이다. 정의실현, 경제발전, 국가안정 등 대선 주자가 내놓는 각오가 말의 성찬으로만 민심에 다가오는 이유다.

역지사지 (易地思之)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자. 권위에 따라, 성별에 따라, 직위에 따라, 책임의 정도에 따라 생각의 내용과 방식이 다른 법이다. ‘컨택트’의 루이스는 과거·현재·미래를 한순간에 인식하는 사고의 변화를 맞는 순간, 짧은 행복 후에 다가올 긴 슬픔을 받아들인다.



영화 초반 “처음과 끝은 나에게 더이상 무의미하다”고 말하던 루이스는 종반 ‘끝과 시작은 하나’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예정된 끝을 알면서도 시작한다는 말이다. 또 소통의 본질은 서로에 대한 주장보다는 이해를, 성공적 결과보다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관객에게 건넨다. 자신이 쓰는 언어로만 생각하는 부자도, 남녀도, 상사와 직원도, 정치인과 국민조차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메시지다.



3. [매경이코노미][고재윤의 ‘스토리가 있는 와인’] 샤토 데스끌랑

산천에 개나리와 벚꽃이 피어나며 봄의 향연이 시작됐다. 봄꽃의 생명력과 싱그러움은 겨우내 얼어붙은 대지를 깨운다. 일찍이 독일 작가 마틴 폰 보덴슈테트(Friedrich Martin von Bodenstedt, 1819~1892년)는 “사랑은 봄의 꽃” “긴 겨울에는 봄을 기다리며 와인을 마시고, 봄이 오면 기뻐서 와인을 마신다”고 노래했다. 향기로운 봄나물과 함께 와인을 마시며 봄을 만끽해보는 건 어떨까. 와인 전문가들은 초봄 봄나물과 어울리는 와인으로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과 미국 캘리포니아 진판델 로제와인을 추천한다. 

이들도 좋지만 필자가 추천하는 ‘봄의 와인’은 따로 있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의 화사한 봄을 연상케 하는 ‘샤토 데스끌랑 위스퍼링 엔젤(Whispering Angel) 로제와인’이다. 프로방스는 지중해와 맞닿은 남프랑스 지역으로 이탈리아 국경에 인접해 있으며 2600년의 와인 역사를 갖고 있다. 방돌(Bandol), 툴롱(Toulon) 등이 유명한AOC(원산지 명칭 통제) 와인 재배 지역에 속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포도 품종을 주로 재배하고, 이 중 80%가 로제와인 생산지로 80여개의 와이너리가 있다. 

샤토 데스끌랑은 19세기 프랑스 랑퀴(Ranque) 가문이 와이너리를 설립해 장밋빛 역사가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에 와이너리를 빼앗긴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전후에 샤토 라스꽁브(Lascombes), 샤토 페리에르(Ferriere), 샤토 프리외르 리쉰(Prieure Lichine)을 경영하는 소유주 알렉시스 리신의 아들 사샤 리신이 인수하면서 전환기를 맞는다. 

사샤 리신은 1960년 프랑스 보르도 마고 지방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보스턴의 유명 해물요리 식당인 안토니스 피어4(Anthony'sPier4)에서 소믈리에로 일했고 이후 와인 수입 도매상을 운영했다. 특히 샤토 데스끌랑의 와인 양조는 세계적인 양조가 페트릭 레옹이 합류한 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페트릭 레옹은 프랑스 보르도대에서 양조학을 전공하고 샤토 바론 필드 로칠드에서 20년간 양조 기술 담당 매니저로 일하면서 미국의 오퍼스 원, 칠레의 알마비바 등의 명품 와인을 양조하는 데 공헌한 인물이다.



덕분에 샤토 데스끌랑에 대한 세계의 찬사가 쏟아졌다. 영국의 저명한 와인 평론가인 젠시스 로빈슨은 샤토 데스끌랑을 “세계 최고의 로제와인”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세계적인 와인 저널리스트 마추 주크는 가루스(Garrus) 로제와인에 로제와인 최초로 만점을 줘 와인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디켄터와 와인스펙테이터도 90점 넘는 점수를 주며 찬사를 보냈다. 또 대한항공은 퍼스트 클래스와 프레스티지 클래스에 로제와인을 제공해 인기를 끌었다. 

샤토 데스끌랑은 최고급인 가루스, 중간급의 레클랑(Les Clans), 록 엔젤(Rock Angel), 그리고 대중적인 위스퍼링 엔젤 로제와인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미국에서만 매년 2만병 이상 팔리고 있다. 

위스퍼링 엔젤 로제와인은 프로방스 전 지역에서 생산되는 품질이 우수한 포도를 선별하고, 포도나무 수령 80년이 된 그르나슈(Grenache) 90%, 롤(Rolle) 10%의 블렌딩을 기본으로 하며 생소(Cinsault)를 소량 첨가한다. 빛깔은 밝은 오렌지 핑크색 바탕 위에 아름다운 진달래꽃색이 비친다. 향도 진달래를 연상시키는 향과 복숭아, 장미, 멜론향이 아름답게 후각을 자극하며 산딸기, 체리향이 입안을 감싸 돈다. 적정한 산도가 매력적이고, 미네랄이 입안의 보디감을 더해줘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다. 음식과의 조화는 쇠고기 스테이크, 해산물, 샐러드, 전채 요리와 잘 어울린다. 가격은 3만원 정도로 품질 대비 가성비가 우수하다.



4.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조슈아 벨(Joshua Bell)

2007년 1월 어느 이른 아침, 워싱턴 랑팡플라자 지하철역에 바이올린을 든 거리의 악사가 나타났다. 청바지 차림에 긴팔 T셔츠, 야구 모자를 눌러 쓴 그는 출근길 시민들 앞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레퍼토리는 단순히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기엔 의외라 할 만한 것들이었다.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로부터 시작해 마스네와 마누엘 폰체에 이어 무려 바흐의 샤콘느까지 이어졌다. 바쁜 출근길 지하철역 앞에서 울려 퍼진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선율. 그 시간에 그곳을 지나간 사람은 1097명. 이 중 잠시라도 음악을 들은 사람이 7명이었고, 악사의 발 앞에 놓인 바이올린 케이스에 동전 한 닢이라도 던져 놓은 사람은 27명, 도합 32달러가 이날 펼쳐진 연주에 대한 관심과 대가였다. ​



흥미로운 것은 이날 거리에 나선 악사가 미국이 낳은 최고의 클래식 스타로 꼽히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Joshua Bell, 1967년~)이었다는 점. 피플지 선정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꼽힌 ‘꽃미남’ 연주자며,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는 그의 평소 개런티는 1분에 1000달러. 그가 무대를 벗어나 무려 350만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길 위에 나섰지만 사람들은 그저 바쁘기만 했다. 

아침부터 45분간 연주해서 받은 대가는 32달러. ‘조슈아 벨의 지하철 연주 실험’으로 알려진 이 결과는 한동안 화제가 됐고 유럽 등지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이뤄졌다. 

미국 인디애나 출신인 조슈아 벨은 4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았다. 14세에 리카르도 무티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데뷔, 같은 해 애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특히 18세 때 발매한 첫 음반으로 그래미·그라모폰 등을 휩쓸며 스타로 부상했고, 인디애나대에서 학위를 받은 뒤 섬세하고 사려 깊은 연주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정통 클래식 외 다양한 장르로 영역 확대에도 열심이어서 영화 ‘레드 바이올린(The Red Violin)’의 음악고문이자 보이지 않는 연주자로 활약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를 시작으로 다수의 영화 음악과 뮤지컬, 재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도전하는 전천후 연주자다. 레코딩 목록 또한 다양해 ‘조슈아 벨, 그를 말하다’와 ‘바이올린의 목소리’ ‘바이올린 로망스’는 2004년 빌보드와 올해의 클래식 음반에 선정됐다.

벨은 1년에 200일 이상 투어 연주를 하고 틈틈이 영화 음악 녹음과 유명 TV프로그램에도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벨의 연주는 아름답고 유려하다. 그런 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선율을 즐기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쳤던 당시 사람들이 내내 안타까운 건 그래서다. 정말 중요한 것, 살아가야 한다는 이유로 잃어가고 있는 것, 그것들을 놓치지 말기를. 점차 짧아져서 한순간에 피었다가 훅 사라져버릴 이 봄처럼….



5. [한국일보][2030 세상보기] 처음이 서툰 당신에게

첫 등교, 첫 학기, 첫 직장, 첫 연애. 내게 처음은 설렘보다 낯설고 서툰 그 무엇이었다. 

일터를 옮겼을 때, 나는 2주 동안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받은 적이 있다. 어디에 사는지, 누구와 사는지, 고향은 어딘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학교, 학번 등등 소위 호구조사가 이어졌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내 거주지와 가족과 동거여부와 학번을 드러내는 일은 불쾌한 일이다. 앞으로 같이 일할 동료라고 할지라도, 서로 잘 모르는 타인이기에 조심스럽다. 나의 가족 내력이 직무 능력과 관계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첫 인사를 호구조사로 착각한다. 그런데 직장에서만 이런 경험을 하는 걸까?

사람들은 처음 본 이에게 직업(혹은 소속), 출신지, 출신학교, 가족에 대해 묻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상대방의 배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개인을 파악하는 방식은 일, 학교, 가족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다. 직업이 없고, 부모가 없고, 고향이 없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은 무척 곤욕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처음 선 자리에서 타인을 고려하지 않은 질문은 반복된다. 그 까닭은 한국사회의 인사 언어가 빈곤한 탓이거나, 늘 그런 방식으로 관계 맺기를 해온 관습 때문이다.

새로운 곳에 들어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공간은 빨리 적응해야 할 낯선 곳이지만, 사람을 맞이하는 입장에서는 익숙한 자리에 낯선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맞이하는 사람들은 익숙함을 깨는 낯선 존재를 잘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라도 빨리 공통점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첫 만남에서 무례하게 학연, 지연, 가족을 묻는 것은 빠른 동질감을 찾으려는 행동이자, 타인의 낯섦은 자신과 익숙한 존재가 되기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뭇 남성들이 군대 이야기와 나이로 금방 서열과 친분을 쌓는 것처럼, 사람들은 낯섦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우리는 불편한 질문에 모두 답할 의무가 없음에도 보이지 않는 위계 때문에 그 불편함을 감수하려고 한다. 익숙함과 낯섦의 위계, 고용주와 노동자의 위계, 선배와 후배의 위계, 남성과 여성의 위계, 서울과 비서울의 위계 등. 이러한 위계는 서열관계를 더 견고하게 만드는 위계가 되기도 하고, 때로 이 관문이나 시험을 잘 통과해서 그 공간에 남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협상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된다.

훌쩍 봄이 왔고,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공채준비를 한다. 여기저기 새롭게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나날이다. 그런데 생기로움을 느끼기도 전에 죽음의 소식이 들려온다. 경기도에서 고등학생 네 명이 자살을 했고, 그보다 앞서 콜센터에서 실습하던 고등학생은 콜 수를 채우지 못해 자살을 했다. 무언가 시작해보기도 전에, 새로운 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한국사회는 새로 온 사람들에게 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얼마나 호의적이었나. 나이가 어릴수록, 경력이 낮을수록, 여성일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더 잦은 이동을 경험하고 폭력적인 노동환경을 강요 받는다. 마치 딸 같아서, 귀여워서, 친해지고 싶어서라는 말로 폭력은 일상이 되고 친절로 둔갑한다.

누구나 처음은 서툴 수 있지만, 처음이 아닌 사람들이 나중에 온 이 사람들을 맞이하는 방식은 서툴러서는 안 된다. ‘알아서 적응해라’는 무책임한 말은 통과의례의 긴장과 폭력을 견디라는 말과 같다. 처음 온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천천히 알아가는 데 우리는 낯섦을 조금 더 견딜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다리는 과정에서 처음 온 사람이 천천히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와 방법을 찾고 먼저 꺼낼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누구라도 처음에 선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중앙일보]

​1. 물 위로 나온 세월호 … 의혹은 씻고 아픔은 치유해야

기다림과 고통의 시간은 길었다. 1073일이 걸렸다. 차갑고 어두운 44m 바닷속에 모로 누워있던 선체는 누렇게 녹슨 처참한 모습이었다. 인양 작업을 지켜보던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국민의 마음도 참담했다. 탑승자 304명(단원고 학생 266명 포함)이 숨진 세월호가 다시 물 위로 올라온 어제, 대한민국의 하루는 그리 지나갔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에 침몰한 지 3년, 인양 추진 702일 만이었다.

해양수산부는 세월호를 수면 밖 13m까지 부양해 24일 소조기까지 반잠수식 선박으로 옮길 예정이다.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세월호는 다음달 5일을 전후로 목포신항으로 옮겨진다. 길이 145m, 높이 24m, 너비 22m의 거대한 선체인 만큼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인양해야 할 것이다.

온 국민에게 분노와 아픔을 남겼던 세월호의 인양은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다. 3년을 기다려 온 9명의 실종자 수습과 각종 의혹 해소, 사회적 갈등과 아픔 치유, ‘안전 대한민국’ 재설계의 과제가 기다리고 있어서다. 가장 큰 쟁점은 침몰 원인에 대한 의혹이다. 검찰은 과적과 고박 불량, 선체 구조 변경, 조작 미숙 등을 원인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세월호를 직접 조사할 수 없는 탓에 ‘잠수함 충돌설’ 같은 근거 없는 의혹과 루머가 난무했다. 과적의 경우도 그렇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철근 286t 등 총 2142t을 적재해 승인량(987t)을 두 배 초과했다고 추정했다. 반면 세월호특별조사위는 철근 410t을 포함해 총 2215t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시민단체가 제주해군기지용 철근을 실은 탓에 무리하게 운항하다 화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해경이 대통령 보고용 동영상을 촬영하느라 구조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의혹도 여전하다.

세월호 인양은 이런 의혹과 불신을 해소할 기회이기도 하다. 핵심 증거인 선체가 확보되고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특별법’도 발효(21일)된 만큼 신속하게 선체조사위를 구성해야 한다. 6개월간 활동할 전문가들이 과학적이고도 정밀한 ‘눈’으로 의혹을 해소하기 바란다. 그 과정에서 어떤 정치적 입김이나 진영 논리가 작용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유가족들의 아픔과 슬픔, 국민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지 않겠는가.

정치권은 세월호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인양 시기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에 따른 대선 정국과 맞물린 데다 세월호 3주기가 머지않았다. 정치권이 세월호 이슈를 5월 9일 대선까지 끌고 가려 한다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더 격해질 수 있다.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도리가 아닐뿐더러 국민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국가개조까지 내걸었다. 하지만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철도·화재·선박 대형 인재(人災) 사고가 이어지고, 지진·조류인플루엔자(AI)·구제역 사태 때는 컨트롤타워까지 무너졌다.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대선주자들이 나서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국가안전시스템부터 리셋하겠다고 약속해야 할 것이다. 그게 세월호 희생자들이 남긴 ‘안전 대한민국’의 교훈을 헛되게 하지 않는 일이다.



[이데일리]

2. 인양된 세월호, 모든 의혹 해소되기를

지난 3년간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가 어제 새벽 드디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해수부가 전날 저녁 전남 진도 앞바다 사고 현장에서 인양 작업을 시작한 가운데 20여m 깊이의 해저면에서 선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선체를 수면 13m 위까지 끌어올린다는 당초 계획이 도중에 약간 지연됨으로써 우려를 던져주기도 했으나 작업이 큰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 같아 천만다행이다.

그러면서도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것은 녹슨 선체의 모습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해 상처받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때문일 것이다. 어이없는 사고로 승객 295명이 목숨을 잃었고, 9명의 시신이 수습되지 못했다는 자체로 우리의 슬픔과 충격은 현재진행형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가슴에서 노란 리본을 떼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더욱이 침몰사고와 관련해 근거 없는 의혹과 소문이 난무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든 측면이 없지 않았다. 선사 측의 무리한 선체 개조와 과적, 조타수의 미숙함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검찰의 수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온갖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제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낸 만큼 사고 원인에 대한 정확한 규명 작업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고 원인이 규명된다면 희생자들의 원혼도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이며, 유가족들도 어느 정도는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다. 물론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 것인지 장담하기는 이르다. 무엇보다 정치적 압력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흔들리지 말고 과학적인 분석에 의해서만 원인을 규명한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과거 천안함 사태 때처럼 사고원인 발표로 인해 또 다른 의혹과 논란이 제기돼서는 곤란하다.

이제 세월호가 인양됐으니 우리 사회도 그 쓰라린 교훈을 가슴에 새긴 채 원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성세대의 무책임으로 애꿎은 학생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눈물과 슬픔의 대형사고가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다짐이 그것이다. 추가 진상규명 작업이 이뤄지게 되면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텐트도 자발적으로 철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남아 있는 작업들이 차질없이 진행되기를 바란다.



[조선일보]

3. 세월호 3년, '안전 업그레이드'는 없고 政爭만 있었다

세월호가 23일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4월 16일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된 참사 후 1073일 만이다. 세월호는 앞으로 반(半)잠수식 선박에 실려 목포 신항으로 옮겨지게 된다. 시신이라도 찾고 싶다는 실종자 9명 가족의 고통과 애타는 마음을 함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선 배를 안전하게 육지까지 옮기는 일이 과제다.



여기에 만전을 기하고 다음으로 미수습자 시신과 희생자 유류품 수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찢어지는 가슴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일이다. 세월호 선체 처리에 대해선 보전 전시, 해체 등 여러 제안이 있다. 유가족 의견을 존중하면서 현명한 결정을 해야 한다.



문제는 세월호 참사 후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이 나아졌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국가 개조(改造)'까지 선언하면서 국민안전처를 신설했지만 애꿎은 해경만 해체됐을 뿐 뭐가 달라진 게 있는지 답답한 마음뿐이다. 지난 3년 동안에도 지하철끼리 추돌하고, 환풍구가 무너지고, 요양원에서 불이 나고, 버스가 전복했다.



얼마 전 경기도 동탄 주상 복합 건물에서 난 화재로 52명이나 사상자가 나온 것은 상가 관리자들이 개장 후 6년 동안 화재경보기를 줄곧 꺼놨기 때문으로 확인됐다. 아무리 무슨 장관급 안전 부처를 만들어봐야 소용이 없다. 시민은 여전히 '설마' 하는 안전 불감증에 젖어 있고 공무원들은 점검하는 척만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도 선박 회사의 안전 불감증, 당국의 무사안일로 빚어진 것이다.



지난 3년 세월호는 끊임없는 정쟁(政爭) 대상이었다.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구조가 안 됐는지는 이미 낱낱이 밝혀져 있다. 그 명백한 사실들을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사실과 치유, 재발 방지는 뒷전으로 밀리고 삿대질만 난무했다. 세월호 문제를 조사하라고 만든 특별조사위원회는 1년 반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거의 기억에 없다. 사실 할 일이 있을 리도 없었다. 참사와 아무 관계 없는 '대통령 7시간'을 밝히겠다면서 분란만 키웠다.



그런데도 어제 유력 대선 후보가 "차기 정권은 제2 특조위를 구성해 세월호 진실을 낱낱이 규명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탄핵 날 팽목항을 찾아가 사망 학생들을 향해 '미안하고 고맙다'는 글을 썼다. 어이없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한 일이다. 세월호 정쟁의 극단을 보여주는 듯하다.



4. 5조8000억 또 지원받는 대우조선, 도덕적 해이는 그대로

정부가 23일 대우조선해양에 5조8000억원 규모의 지원을 결정했다. 채권단이 2조9000억원의 빚을 출자 전환해 주거나 만기를 3년 연장해주는 방식으로 손실을 떠안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2조9000억원을 신규 지원하는 방안이다. 이번 지원 방침으로 대우조선은 한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과연 대우조선 추가 지원이 조선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상황 오판, 대우조선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으로 대우조선에는 혈세나 다름없는 국책은행 지원금을 총 7조1000억원 쏟아붓게 된다. 2015년 4조2000억원을 지원했다.



작년 말 2조8000억원 규모의 출자 전환까지 합하면 전체 지원 규모는 13조원에 이른다. 정부는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고 했다가 말을 바꿨다. 조선업 불황이 예상보다 길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 7위 해운사 한진해운을 문 닫게 한 원칙을 대우조선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정부 스스로 원칙을 어긴 것이었다.



물론 경쟁력은 있지만 당장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을 문 닫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대우조선은 작년 말 기준으로 114척, 340억달러어치의 수주 잔량을 갖고 있다. 세계 최대 수주 잔량이다. 조선업 특성상 주문받은 배를 건조해서 적기에 납품하지 않으면 그동안 들어간 비용 32조원도 다 날리게 된다. 추가 자금을 지원해 건조 중인 배를 완성하고 차츰 몸집을 줄여나가는 것도 우리 경제에 충격을 덜 주는 구조조정의 한 방식일 수는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산 매각과 인력 감축 등 고강도 구조조정이 병행되어야 한다. 대우조선의 자구계획 이행률은 34%에 불과하다. 현대중공업 57%, 삼성중공업 40%보다 낮다. 이런 도덕적 해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대우조선 지원에 들어간 13조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말 것이다.



[매일신문]

5. 낙동강 식수원 위협하는 제련소 중금속 오염 논란

1천300만 영남인들의 식수원인 낙동강이 중금속 오염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최상류에 있는 제련소에서 중금속이 나와 토양과 낙동강을 오염시킨다는 의혹이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다.



세계 물의 날인 22일 안동시청에서는 주목할 만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 선 사람들은 안동시`봉화군`구미시`대구시`부산시`태백시의회 의원 등 11명이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낙동강 식수원 보호를 위해 영풍석포제련소를 폐쇄하라고 촉구했다.



영풍석포제련소가 낙동강 중금속 오염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70년에 준공된 이 제련소는 안동호 80㎞ 상류에 위치해 있다. 아연 등의 제련 과정에서 이곳에서는 각종 유해물질이 발생한다. 그래서 2014년 낙동강 물고기 떼죽음 사건과 제련소와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환경단체 조사 결과 제련소 주변 6곳의 토양에서는 심각한 수준의 카드뮴이 검출된 바 있다. 카드뮴은 일본에서 이타이이타이병으로 128명의 사망자를 낸 중금속이다.



이에 대해 제련소 측은 자신들이 물고기 폐사의 원인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으며 퇴적물에 쌓인 중금속도 과거 봉화지역 폐광산에서 흘러든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제련소 주변 토양에 축적된 중금속이 빗물에 씻겨 낙동강에 유입되고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안동호와 낙동강 상류에서 잡힌 물고기가 시장에서 냉대를 받고 있을 정도다.



정작 정부 차원의 본격 조사는 감감무소식이다. 지난해 환경부는 낙동강에 서식하는 어류에 카드뮴 등 중금속이 타 수계보다 높지만 낙동강의 수질 및 생태계는 양호하다는 이상한 발표를 내놓기도 했다. 오히려 정부는 경북도와 봉화군에 일을 떠넘긴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했다. 정부는 낙동강 수계가 중금속에 노출돼 있다는 경고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체계적인 조사부터 서둘러 실시하고 중금속 오염원 차단 및 낙동강 유입 방지, 제련소 이전 등 종합적이고도 다각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6. 불황 속 재산은 불리고 신고는 거부한 국회의원

299명의 20대 국회의원 가운데 지난해 재산을 불린 의원은 전체의 79.3%인 237명이며, 143명은 1억원 넘게 늘었다. 또 정부의 재산신고 대상 고위 공직자 1천800명의 76.8%가 재산이 불었고 평균 증가 재산액은 7천600만원이다. 23일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와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2016년도 재산변동 신고내역을 분석한 결과이다. 의원과 고위 공직자는 재테크의 달인이었다.

  
지난해 우리 경제성장률은 2.7%, 1인당 국민소득은 2만7천달러로 2014년 2만8천달러 이후 뒷걸음질치고 있다. 국민 호주머니는 가벼워졌는데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의 호주머니만 두둑해진 것이다. 2017년 경제성장률도 2.6%로 전망될 만큼 불황과 저성장의 늪이 깊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난은 더욱 심각하고, 나아질 기미가 없으니 국민은 절망한다.



이런 현실과 전혀 다른 이상 세계의 존재가 이번에 분명히 드러났다. 국민 모두가 어려운데도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 증식 고공행진 현장이 그것이다. 모두 아우성이지만 누군가 활짝 웃을 수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자본주의에서 이들의 놀라운 재산 증식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의 재산 증식이 과연 투명한지는 의문이다.



그 출발은 국가청렴도의 만성적인 저평가이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밝힌 2016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는 역대 가장 낮은 순위다. 전 세계 176개국 중 52위로 전년보다 15단계나 추락했다. 1995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데다 가장 낮은 순위다. 최근 20년간 늘 30~40위권이니 새삼 놀랄 일이 아닐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늘어난 재산은 의심받아 마땅하다.



특히 우리 국회의 경우, 보수 대비 의회 효율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꼴찌 수준이다. 불린 재산만큼 제대로 의정활동을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게다가 의원 10명 중 4명은 가족 재산 공개를 거부했다. 국민 신뢰를 뭉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투명하고 신뢰를 담보할 재산 공개제도의 보완이 필요한 까닭이다. 고위 공직자 역시 불린 재산이 과연 청재(淸財)인지 살펴볼 일이다.



[서울신문]

7. 대북 원유 공급 차단, 中 동참 필수다

미국이 초강경 대북 제재 법안을 통해 대북 압박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북한의 원유 수입을 막고 달러는 물론 위안화 유입마저 차단하는 것이 골자다. 에드 로이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대표 발의한 ‘대북 차단 및 제재 현대화법’(HR1644)이다. 지난해 1월 통과된 ‘대북 제재 이행 강화법’과 5차 핵실험 이후 만들어진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을 보완한 것이다. 역대 대북 제재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

이 법안은 북한의 경제 기반을 뒤흔들 수 있는 수단이다. 북한의 생명줄인 원유 및 석유 제품의 판매와 이전을 금지하면서 중국과의 외교적 갈등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인도적 목적의 중유는 금지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북한의 해외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고 미국 관할권 내 자산 거래를 금지했다. 하원에 이어 미 상원도 어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북한이 자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테러 행위 중 하나로 김정남 암살 사건도 적시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의 폐기를 공언한 이후 선제공격 등 군사적 대응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대북 제재 법안이 발의된 점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의 적극적 대북 제재 이행을 촉구하는 측면에서 제재 대상을 ‘외국’으로 명시해 ‘세컨더리 보이콧’의 요소를 담았다. 북한의 무모한 도발은 결국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압박 의지를 결집해 더욱 강력한 징벌을 부르는 악순환이 거듭될 것이란 경고다. 우리 외교부도 어제 미 하원의 신규 대북 제재 법안 발의와 관련해 “북한의 자금줄 차단 측면에서 매우 강력하고 실효적인 법안”이라고 평가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무모한 시도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라는 지상 목표를 위해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등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북한의 유일한 후원국인 중국이 대북 제재에 뒷짐만 지고 있는 상황에서 효율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국제사회에서 중국 역할론이 힘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 중국은 북핵·미사일 도발을 막기 위해 대북 제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경제 보복에 치중해서는 안 된다.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대북 제재에 앞장서는 모습과 함께 더 진전된 대북 정책을 통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세계일보]

8. 이젠 영화관까지 청년 알바 울리는 ‘갑질 횡포’ 부리나

국내 내로라하는 영화관에서 청년들을 울리는 ‘임금 갑질’을 저질렀다고 한다. 고용노동부는 그제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알바)생 9978명이 연장근로수당과 휴업수당 등 3억6400만원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3대 업체가 운영하는 전국 영화관 48곳을 근로감독한 결과 92%인 44곳에서 임금체불 사실을 확인했다.

3대 영화관 알바생의 밀린 임금은 1인당 평균 3만6480원이다. 대기업에는 푼돈이겠지만 청년에겐 목숨 같은 돈이다. 청년실업률은 작년 말 9.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많은 청년이 단시간 일자리로 내몰리면서 알바가 단순 용돈벌이가 아니라 생존 수단이 되고 있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대기업이 불법과 꼼수로 청년 임금을 가로채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영화관 임금체불에는 30분 또는 15분 단위의 ‘임금 꺾기’, 조퇴 처리를 통한 휴업수당 미지급 등 불·편법이 동원됐다고 하니 행태가 고약하기 짝이 없다.

기업의 청년 알바 착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프랜차이즈 기업 이랜드파크가 얼마 전 알바생 4만4360명에게 줘야 할 임금 83억여원을 빼돌린 사실이 들통 나 공분을 샀다. 당시에도 임금 꺾기, 조퇴 처리 같은 교묘한 방법이 동원됐다. 일부 대기업의 ‘열정 페이’ 등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음에도 청년 구직자들의 꿈을 짓밟는 갑질 횡포가 여전한 실정이다. 이번 영화관의 임금 갑질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정부의 지속적인 단속과 처벌, 기업과 사회의 개선 노력 등이 병행돼야 한다. 영화관 임금체불 실태는 지난해부터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꾸준히 제기해 왔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근로감독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시정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영화관 근로감독도 서울 등 6개 지방노동청이 영화관 8곳씩 무작위로 선정해 이뤄졌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계층·계급적 불만을 토로하고 미래를 비관하는 말이 꼬리를 물고 있다. ‘n포·헬조선 세대’에 이어 지난해 ‘흙수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과 같은 신어가 회자됐다. 그런 청년들을 좌절의 늪으로 모는 게 기업의 임금 갑질이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기업의 갑질 횡포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9. 대북제재 공조 강조한 美… 어깃장 놓는 韓 대선주자

미국의 대북 제재·압박이 본격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북한 위협이 최우선 이슈”라며 새 대북 정책에 군사조치를 포함한 모든 옵션을 담을 것임을 예고했다. 최근 한·중·일을 순방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한 제3국 기업 제재) 등 추가 대북 제재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방미 중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미국은 한국과 철저히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미 의회도 트럼프 정부와 한목소리를 낸다. 미 하원은 21일 북한의 모든 자금줄을 차단하고 원유 수입을 봉쇄하는 초강력 대북 제재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윤 장관을 만나 “북핵 위협에 대해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포괄적인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초당적 공감대가 미 의회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월 하원에서 테드 포 하원의원이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촉구하는 법안을 낸 데 이어 상원에서도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이날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북한은 예상했던 대로 도발로 맞서고 있다. 지난 6일 탄도미사일 4발을 쏜 데 이어 그제 신형 무수단급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수초 만에 공중 폭발했으나 곧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대북 제재로 외화벌이에 타격을 받자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계좌를 해킹해 8100만달러를 빼내가는 신종 ‘사이버 은행털이’까지 벌였다고 한다.

우리는 북한 도발에 강력한 대응의지를 다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 정부·의회 관계자들은 한국 정권 교체 시 대북 정책이 바뀔지에 우려 섞인 관심을 보인다. 방한 중인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대선주자나 그 참모들을 연쇄 접촉한 데서 미국의 불안감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은 대북 공조를 강조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럴 태세인지 의문이다.



유력 대선주자들은 기존 대북 정책과 궤를 달리하는 발언을 내놓는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경선후보는 ‘대북 대화 재개’, ‘개성공단 재가동’ 등을 공언했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도 유보적 입장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에 나선 마당에 우리만 다른 길을 고집할 수는 없다. 우리 내부부터 국가 명운이 걸린 안보관을 확고히 해야 한다.



[매일경제]

10. 디체킹 코리아 ; 성장과 공동체가치 강조한 제2한국보고서

어제 본지가 주최한 제26차 국민보고대회는 위기 상황에 놓인 대한민국을 살릴 해법으로 '디체킹(D-checking) 코리아'를 제안했다.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이 비상하기 위해서는 어설픈 정비보다는 비행기를 완전히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수준의 '디체킹'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이 보고서는 성장 정체와 공동체 신뢰 붕괴를 한국의 최대 위협 요인으로 파악했다. 고장난 이 두 개의 날개를 고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작이 어렵다는 게 핵심인데 끝없이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적절한 처방이다. 

본지가 1997년 새로운 국가경영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발간한 '부즈앨런 한국보고서'는 외환위기를 예측해 화제가 됐다. '디체킹 코리아'는 20년 만에 다시 쓴 국가 대개조 보고서인 만큼 주목을 끈다. 지금 한국은 외환위기 직전 넛크래커에 낀 상황보다 낫다고 볼 수 없다. 1인당 GDP는 10년 넘게 2만달러의 늪에 갇혀 있고, 2%대의 저성장 고착화가 우려되고 있다. 인구·소비·고용·투자가 동시에 감소하는 4대 절벽은 성장절벽, 중산층 몰락이라는 재앙을 낳을 수 있다.



최순실게이트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가에 대한 신뢰도 추락,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이념 대립도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전대미문의 폭풍이 밀려오고 있다. 지금 성장엔진에 다시 불을 붙이지 않으면, 공동체의 가치를 복원시키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 파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대한민국호의 앞날은 암담하다. 

저성장 터널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유가 필수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성장 회복에 대해 "경제민주화나 동반성장과 같이 국민 정서에 호소하는 방법으론 문제를 풀 수 없다"며 '자유로운 경쟁'을 강조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기업가정신을 꺾고, 기업을 옥죄는 규제 역시 성장의 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고 호들갑을 떨 게 아니라 신규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게 규제부터 걷어내야 한다. 아직 승자가 없는 게임이니 잘만 하면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보고서는 특히 빅데이터 규제 철폐, 의료산업에서의 일자리 혁명, 대우조선 처리에 대한 합의와 승복에 방점을 찍었는데 대선주자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새 정부는 국가 대개조를 행동으로 옮겨 대한민국에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야 할 것이다.





주요신문칼럼



1. [세계일보][세계에세이] 봄과 리쿠르트 슈트

일본의 봄이 되면, 검정색 정장을 입고 삼삼오오 도시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다. 옷차림만 얼핏 보면 상갓집 조문을 가는 것처럼 보인다. 검은색 양복, 하얀 와이셔츠, 남자는 넥타이를 매지만 여자는 치마에 넥타이를 하지 않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또한 구두, 양말, 허리띠까지도 거의 세트로 돼 있다. 일본에서 젊은이들이 입는 이런 검정색 정장을 ‘리쿠르트 슈트’라고 한다. 기업 입사를 위한 면접자나 올해 갓 입사한 기업의 신입사원들이 입는 옷이다.

가격은 젊은이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다양하지만, 옷의 디자인은 거의 획일화돼 있고, 옷 색깔도 검은색이 대부분이며, 간간이 감색이 눈에 뛸 정도다. 일본에서는 리쿠르트 슈트를 판매하는 전국적인 체인점이 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 이런 체인점에서 붕어빵처럼 만든 일률적인 디자인의 옷을 입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면접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원자의 개성이 아닐까 한다. 나의 상식으로는 그렇다. 지원자의 개성 있고, 깔끔한 복장은 우선 첫인상에서 호감이 간다. 우리에게 지원자의 개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은 대체로 장점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면접을 통해서 지원자 내면의 깊이가 그 옷차림만큼 뒷받침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럼에도 활기에 넘치고 개성을 발휘해야 할 젊은이들의 입사 면접이나, 첫 사회 활동을 내디디면서 획일화된 검정색 정장을 입는 것은 무엇을 설명하는 것일까.

필자는 일본에서 회사를 운영하면서 사원 채용을 위한 면접을 여러 번 했다. 일본인 지원자는 앞서 말한 것처럼 나이와 성별의 상관없이 모두 리쿠르트 슈트 차림으로 왔다. 그리고 심지어 한국인 지원자도 일본인과 같은 옷차림으로 왔다. 나는 지원자들의 똑같은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면접이 끝난 후, 왜 리쿠르트 슈트 차림으로 면접하러 왔는가라고 추가 질문을 던졌다. 지원자들의 대답은 거의 모두 같았다. 학교에서 면접을 위해서 리쿠르트 슈트를 입어야 한다고 배운 것은 아니지만, 주위에서 그렇게 하니까 그냥 따라 하는 일종의 관습이라고 했다. 

사실 이러한 분위기는 일본의 초등학교로 거슬려 올라간다. 일본의 초등학생은 세 가지가 획일화돼 있다. 교복, ‘란도셀’이라는 가방과 모자다. 나의 자녀는 일본의 초등학교를 다녔다. 일본의 초등학교에서는 교복을 입어야 하는 규정은 없고, 자율복장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어느 누구의 강제성이 없더라도 학생들은 모두다 교복을 입고, 란도셀을 메고, 모자를 쓰고 학교에 간다. 특히 겨울의 쌀쌀한 날씨에도 초등학생들의 교복으로 짧은 양말에 반바지를 입고, 종아리를 드러내 놓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안쓰럽다. 그러나 학생들도 학부모도 누구 하나 불평을 드러내거나 자신만의 튀는 옷을 입으려고 하지 않는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처럼 개인의 개성보다 조직의 틀에 맞추려는 일본 사회의 암묵적인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일본에서도 기업의 취직과 관련이 없는 젊은이들의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은 우리의 젊은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개성을 중요시한다. 오히려 고등학생만 되어도 짙은 화장을 하고, 머리 색깔을 바꾸며, 화려한 장신구로 멋을 내는 모습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들의 자유분방한 행동을 오히려 기성세대들은 우려스러운 시선으로까지 보기도 한다. 

그랬던 그 젊은이들이 기업이라는 조직에 들어가면서 바로 변신을 하는 것이다. 개성을 감추고 집단의 틀에 자신을 맞추는 그러한 일본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나는 소름이 돋았고, 그러한 힘이 어디로 뻗어나갈지 경계의 눈초리를 뗄 수 없는 것이다.



​2. [국민일보][색과 삶] 색맹에 대하여

어린 시절 내 친구는 고추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돕다가 덜 익은 고추를 따는 바람에 혼이 났다고 한다. 초록 고추와 빨강 고추를 구분하지 못하는 그는 적록색맹, 즉 빨강-초록 색맹이었다.

색의 지각에 이상을 보이는 색맹은 빨강과 초록을 구분하지 못하는 적록색맹이 가장 흔한 경우이고 간혹 노랑-파랑 색맹도 있다. 적록색맹은 빨강이나 초록을 갈색으로 보는데, 언제나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친구의 경우처럼 색맹인줄 모르고 지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색맹의 정도가 약한 경우를 색약이라고 한다.

색맹은 어머니 쪽을 통해 유전된다. 어머니는 색맹이 아니더라도 그 아들은 색맹이 될 수도 있다. 매우 드물긴 하지만 후천적인 색맹은 눈과 관련한 병을 앓아 생겨날 수 있고 악성빈혈, 비타민 결핍, 납중독 등으로 인해서 생기기도 한다. 색맹은 남성이 여성보다 10배 이상 많다. 여성이 남성보다 색을 훨씬 정확하게 볼 뿐 아니라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색을 전혀 보지 못하는 완전색맹은 흑백영화 보듯이 세상을 바라보는데 이런 경우는 백만명 중 한 명일 정도로 지극히 드물다. 색은 보는 것의 결과지만 감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색맹이 삶의 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적록색맹인 사람이 생활하는 데 별다른 불편을 겪지 않는 이유는 언제나 상식으로 알고 있는 사실대로 색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운전을 할 때에도 신호등 불빛의 위치와 밝기에 익숙하게 반응하여 정상적인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의사나 간호사, 비행기 조종사와 같이 생명의 위험과 직결되는 업무에 종사할 경우에는 반드시 색맹검사를 거치게 된다. 인간과 같이 색을 보는 포유류는 일부 원숭이밖에 없다. 붉은 깃발에 흥분하는 황소나 연분홍 옷을 입은 애완견 또한 색맹이다. 세상의 예쁜 색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3. [한겨레][조한욱의 서양 사람] 한 여성의 노력

여성 참정권을 최초로 인정한 나라가 어디일까? 그것은 민주주의 확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 시민 혁명들을 주도했던 영국이나 미국이나 프랑스가 아니며, 평등을 기치로 내세우는 사회주의 국가들도 아니다. 그 나라는 국제 정치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뉴질랜드인데, 한 여성의 집요한 노력이 이끌어낸 결과였다.

영국에서 태어난 케이트 맬컴은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 뒤 어머니는 자식들을 이끌고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결혼해 케이트 셰퍼드가 된 그는 아들 하나를 낳은 주부였다. 그러다가 ‘여성 기독교인 절주 연합’과 관련을 맺게 된 일을 계기로 더 큰 활동을 시작했다. 절주 운동에 대한 지지가 주로 여성들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챈 그는 점차 여성 참정권 운동에 관심을 보이며 두각을 나타냈다.

사실 여성 참정권 획득은 당시의 정황에 비춰볼 때 비현실적인 목표일 수 있었다. 그러나 뛰어난 연설가로서 조직 활동에도 능력을 보인 그는 “인종이건, 계급이건, 종교건, 성별이건 분리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며 극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자신의 명분에 대한 지지를 쌓아갔다. 1888년 그는 “뉴질랜드 여성들이 투표해야 할 이유”라는 팸플릿을 통해 그 필요성을 논증했다.



1891년 그가 초안을 작성하여 의회에 제출한, 여성의 참정권을 청원하는 법안은 결국 3년이 지난 1893년에 통과되었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 법안에 대한 가장 큰 반대 세력은 주조업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셰퍼드는 선거인 등록을 독려하여 임박한 선거에서 여성 유권자의 3분의 2가 투표했다.

뉴질랜드에서 여성 참정권을 획득한 뒤에도 셰퍼드는 영국과 미국의 참정권 운동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을 도왔고,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쇠약해진 뒤에도 계속 글을 써 여성의 권리 확장에 헌신했다. 뉴질랜드의 10달러 지폐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4. [아시아경제][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낙화(落花)

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하여 먼 데 사는 현학(顯學)이며 예술가들과 소통한다. 그들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SNS 계정에는 어느 사이 봄꽃이 흐드러졌다. 춘신(春信)은 거침없이 북상하고 있다. 전



라도 화순에 사는 소설가 정찬주 선생이 지난 4일에 홍매 향을 가득 담아 '카톡'으로 보내자 경기도 안산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시인 윤제림 교수가 13일에 수양매화 한 떨기를 사진 찍어 화답하였다. 소설가는 안되겠다 싶었던지 나흘 뒤 광양 매화꽃비를 냅다 흩뿌려 '춘신보도경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진 속 광양의 꽃비는 장하기 그지없어, 상춘객들이 우산으로 꽃세례를 가까스로 감당할 지경이었다.

무릇 꽃이란 그 생애의 모든 국면에서 우리에게 행복과 상념을 동시에 안겨준다. 가지에 물이 올라 기어코 싹을 틔울 때 우리는 생명의 힘과 인내를 실감한다. 꽃이 피어 여린 잎이 바람에 흔들리다 이내 만개하여 지천에 봄을 외치니 마침내 기운생동(氣韻生動). 그러나 절정은 그 마지막에 있으매 낙화(落花), 곧 작별의 의식이다.



마당 한편 고고한 목련이 생채기 하나 없는 순결한 몸을 대지 위에 던질 때이거나 벚꽃 소나기 아래에 섰을 때 우리는 설레는 마음 저 뒤에서 밀려드는 비애를 감지한다. 그래서 뭇 시인이 그 장렬함을 노래했거니와 나는 우리말로 시를 지은 무리 중에 으뜸을 다투기로 이형기와 지훈 조동탁을 꼽아 마땅하리라 본다. 두 시인이 모두 시제를 '낙화'라 하였다. 

꽃이 지기로소니/바람을 탓하랴//주렴 밖에 성긴 별이/하나 둘 스러지고//귀촉도 울음 뒤에/머언 산이 다가서다//촛불을 꺼야 하리/꽃이 지는데/꽃 지는 그림자/뜰에 어리어//하이얀 미닫이가/우련 붉어라//묻혀서 사는 이의/고운 마음을/아는 이 있을까/저어하노니//꽃이 지는 아침은/울고 싶어라 <조지훈>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지훈은 내면의 창을 슬쩍 열어 뜨락에 물든 계절의 징후를 진찰한다. 그의 내면은 공명하거니와 은은한 빛은 미닫이를 넘어 마음 속 깊은 자리를 물들이지 않는가. 은둔한 선비의 올곧음, 그 굳센 단절이 잠시 서글프다. 이형기는 결별을 감내하고 있다. '나'는 '그'의 등 뒤에 서서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오래 오래. 그는 멀어져 한 뼘, 한 점 크기로 지워져간다.



이윽고 나는 걸음을 돌이켜 제 길을 걷는다. 등은 작별의 언어다. 마지막 한 모금 사랑을 머금었다가 왈칵 눈물 한 방울, 흐느낌 한 호흡으로 삶의 절정을 환기한다. 아직 서울에 꽃소식이 없으나 서둘러 낙화를 이야기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우리는 등에 너무 오래 매달려 있었다.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오스카 로메로

1970년대 말 중앙아메리카 엘살바도르의 정정은 우파 군부정권과 좌익 반군의 대립으로 혼미했다. 폭력과 테러가 일상이었고, 가톨릭 교회도 대상에서 빠지지 않았다. 오스카 로메로(OscarRomero) 대주교가 벨기에 카톨리크 드 루방(deLouvain)대를 방문한 건 1980년 2월. 직전 3년 사이 50여 명의 신부가 정부 암살단 등에게 테러를 당했고, 6명이 숨졌다.



로메로 주교는 연설에서 “중요한 것은 왜 교회가 박해를 당하는가 하는 점이다. 모든 성직자가 공격받는 것도 아니고, 모든 교회가 타깃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공격받은 이들은 모두 시민들의 편에 서고자 한 이들이었다. 핵심은 빈자에 대한 태도다.” 

한 달 뒤인 80년 3월 24일,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 병원의 ‘천주 섭리 소성당’에서 가진 그의 강론 요지도 그거였다. 빈자의 편에 서서 억압에 저항하며 불의와 폭력에 굴하지 말라는 것. 이날 뒤이은 미사 도중 그는 4명의 무장괴한이 쏜 총에 숨졌다. 향년 62세.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150여 년 동안 엘살바도르를 지배한 건 군벌과 지주였다. 1920년대 말 대공황으로 커피 수출이 격감하고 궁핍이 극에 달하자 농민ㆍ인디오들의 저항운동이 시작됐다. 아우구스타 파라분도 마르티가 주도한 반란과 그의 사후 창설된 좌익 반군 ‘파라분도 마르티 해방전선(FMLN)’은 북부와 동부를 거점으로 급속히 세력을 확장해갔다.



잦은 쿠데타와 정권교체 속에서도 집권 우익 군벌은 암살단까지 조직해 게릴라 및 잠재적 저항세력에 대한 테러를 일삼았다. 가톨릭 해방신학자들이 타깃이 된 건, 그들이 좌파여서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옹호하며 폭력을 비판해서였다. 

보수 성향의 로메로가 성직생활을 하는 동안 점차 빈자에게 다가간 것도 그 곳이 교회의 자리, 신앙의 자리라 여겨서였다. 그는 스스로를 해방신학자라 여기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선명한 해방신학자였다. 

그의 사후 영국 성공회를 비롯해 여러 기독교 교파와 교단이 그의 순교를 기렸지만, 정작 로마교황청의 평가는 인색했다. 그의 좌파 성향 때문이었다. 1997년에야 그의 시성 검토를 시작한 바티칸은 2015년 5월에야 그를 복자로 시복했다. 교황청의 판단과 무관하게 그를 진정한 성인으로 여겨온 세계인들은 그가 천국에 든 3월 24일을 로메로 축일로 기린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경향신문]

1. 세월호 인양, 진실의 시간이 다가왔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1072일 만에 선체 인양작업이 어제 시작됐다. 선체를 1m가량 들어 올리는 시험인양에 이어 완전히 물 위로 끌어올리는 본인양 작업도 진행 중이다. 3년 가까이 팽목항 임시 컨테이너에 머물며 잃어버린 가족을 애타게 찾아온 미수습자 가족의 한풀이가 뒤늦게나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어렵게 시작한 선체 인양작업인 만큼 성공하기를 바란다. “부모의 마음으로 인양해달라”는 내용의 대국민 호소문을 낸 미수습자 가족의 고통을 생각하면 실패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세월호 선체는 참사의 진실을 밝힐 중요한 증거물이라는 점에서도 선체 인양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참사 발생 3년이 다 돼가지만 세월호의 진실은 속 시원히 밝혀진 게 별로 없다.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침몰 과정과 원인 등은 어느 정도 파악됐지만 그렇다고 전모가 명확히 드러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정부의 구조 실패 책임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특검도, 헌법재판소도 7시간의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 대통령과 정부에 면죄부를 줄 수도 없고, 줘서도 안된다.

세월호 참사는 무도하고 무능한 박근혜 정권의 실상을 드러낸 사건이다. 박 전 대통령은 “내 할 일을 다했다”고 주장하지만 초동대응과 구조 노력에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현장으로 달려갔더라도 아이들을 살리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컨트롤타워의 정점인 대통령이 직접 참모들의 보고를 받으면서 구조작업이 실효성 있게 진행되도록 지휘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구조작업 중인 해경이 분초를 다투는 시간에 청와대의 지시로 대통령 보고용 동영상 촬영을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막을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는 오히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을 조롱하고 억압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하고 단식투쟁하는 유족 앞에서 폭식을 하도록 극우단체를 사주하고 지원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기는커녕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내팽개친 패륜적 행태에 앞장섰다. 이는 영원히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 두고두고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 진실 찾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새로 꾸려지는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를 빨리 가동할 필요가 있다. 미수습자 시신 수습도, 선체 조사도 다 중요하고 급한 일이다. 대선후보들도 세월호 진실 찾기를 적극 지원하고 협력해야 한다.



2. 문재인 후보의 대입개혁 공약, 더 다듬고 신중해야 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가 대학 입시를 학생부교과·학생부종합·대학수학능력시험 전형 등 3가지로 단순화하겠다는 교육 공약을 내놓았다. 수시모집 비중은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고 했다. 현재의 입시가 너무 복잡해 수험생 혼란이 크고 일선 고교에서 진학 지도의 어려움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지만 입시 제도 변경은 신중히 결정돼야 한다. 

입시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다. 한 사람이 이득을 보면 다른 사람은 손해를 본다. 입시를 바꾸면 몇 가지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수시 비중 축소로 수능 중심의 정시 비중이 늘어나면 지난 몇 년간 학생부 중심의 수시 전형 확대로 거둔 고교교육 정상화 등의 효과는 줄고 재수생 증가나 교육 획일화 등의 부작용이 생긴다.



초·중·고교의 예체능 교육을 강화해 대학 입시에 반영하겠다는 공약도 재고가 필요하다. 사교육 증가와 평가의 공정성 논란으로 음악·미술·체육 과목의 내신 반영을 축소·폐지한 것이 불과 십수년 전의 일이다.

대학 입시는 필요악의 성격이 강하다. 인재 선발과 엘리트 양성 차원에서 이른바 명문대학은 존재해야 하고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특목고와 자사고 진학을 위한 고교 입시는 ‘불필요한 악’이다. 초·중학생들을 선행학습 경쟁으로 내몰고 사회적으로 합의가 이뤄진 고교 평준화의 기반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설립 취지와 어긋나게 운영되는 특목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문 후보의 공약은 득이 실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고입 경쟁이 사라지면 학생들은 학습 부담이 줄고 부모는 사교육비 고통을 덜 수 있다. 평준화의 단점은 수준별 맞춤형 수업 등을 통해 최소화할 수 있다. 

대선후보 입장에서 입시는 유권자들의 환심을 얻고 교육개혁도 이룰 수 있는 좋은 재료다. 작은 것에도 수백억·수천억원이 들어가는 복지 정책과 비교하면 입시 정책에는 돈 한 푼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입시 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변석개를 거듭했지만 실제 교육이 나아진 것은 없다. 오히려 정부와 공교육의 권위가 추락하고 사교육시장만 키웠을 뿐이다. 교육에도 돈이 들어가야 한다.



문 후보의 표현대로 ‘부모의 지갑 두께가 자녀의 학벌과 직업을 결정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육 소외 계층에 직접적인 지원을 늘리고, 공교육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정공법이 필요하다.



[한겨레]

3. 3년 만의 세월호 인양, 진실도 인양해야

세월호 인양 작업이 22일부터 시작됐다. 참사 3년 만에 뭍으로 올라올 세월호는 목포신항으로 옮겨져 10여일 뒤면 선체 조사가 진행된다. 9명의 실종자 수습과 함께 진실 규명 작업도 다시 본격화돼야 함은 물론이다. 세월호는 우리의 경박한 망각증에 죽비를 날리며 다시 한번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안타까운 생명들을 구하지도 못했는데, 다시 실종자 수습에 3년이나 지체한 것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허망하게 허비한 ‘7시간’의 진실을 감추고 책임을 모면하려 당시 대통령과 권력붙이들은 수년간 집요한 은폐공작을 벌여왔다. 참사 당일엔 해경에 브이아이피(VIP) 보고용 영상을 요구하며 사실상 구조를 방해하더니, 진상을 밝히려는 국회 국정조사와 검찰 수사도 조직적으로 틀어막고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활동조차 강제종료시켰다.



청와대 홍보수석은 <한국방송> 보도국장에게 “해경을 밟으면 어떡하냐”며 보도통제를 시도했고, 정무수석은 어버이연합에 ‘반세월호 집회’ 공작을 지시했다. 단식 유족 옆에서 패륜적 폭식 투쟁을 벌이던 장면도 기억에 생생하다.

정권 차원에서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조직적이고 집요하게 은폐공작을 벌이는 사이 일부 국민은 피로증과 망각증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에서 당시 대통령의 대응이 ‘미흡하고 부적절’했음을 지적했고 특히 보충의견은 대통령의 책임을 신랄하게 질책했다.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대통령이 적어도 당일 10시엔 청와대 상황실로 가서 재난대응을 총괄·지휘·감독했어야 한다”며 “주위에 10대 이상 선박들이 대기해 구조가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대통령 박근혜’가 참사 책임의 주체임을 명시했다. “8시간 동안이나 국민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의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대통령 책임을 질타했다.

선체 인양은 온전한 진실의 인양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만이 원혼들을 위로하고 재발을 막는 길이다. 당장 8명으로 선체조사위를 꾸리는 것과 함께 참사특별조사위도 재가동해야 한다. 그래야 그간 조사 결과를 포함해 종합적인 진상규명이 가능해진다. 대통령은 왜 8시간이나 안 나타났는지, 진상규명을 방해한 책임자와 실행자는 누구인지도 밝혀야 한다. 참사의 피해자와 그 가족은 물론 온 국민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4. ‘박근혜 구속’, 망설일 필요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22일 귀가했다. 이제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조사 내용과 관련 기록, 증거 등을 토대로 구속 여부를 포함한 수사 방향을 정하게 된다. 오로지 법과 원칙이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사실과 법률 관계로 보면 판단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건의 실체는 박 전 대통령 조사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달라진 게 없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13가지 혐의에 대해서는 이미 범죄를 충분히 소명할 만큼의 물증과 증언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공범이나 관련자들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혐의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더구나 박 전 대통령의 혐의 대부분은 중형이 예상된다. 삼성에서 받았다는 수백억원의 뇌물이 법정에서 인정되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을 받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공범 대부분이 이미 구속돼 있다는 점도 사안의 중대성을 보여준다. 혐의가 이렇게 중대하면 대부분 구속 수사를 하기 마련이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도 구속의 필요성을 높이는 것이다. 물증이 확실하고 관련자들의 흔들림 없는 진술이 있는데도 범죄의 고의성을 반복해 부인하는 것 자체가 증거인멸의 우려를 한층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증거가 분명한데도 한사코 아니라면 언제든 수사를 방해하리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쪽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공범’인 최순실·안종범·정호성씨 등 관련자 대부분이 구속된 마당에 모든 혐의의 중심인물인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형사소송법의 어느 기준과 원칙으로도 박 전 대통령 구속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검찰은 큰 사건일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수사를 위해, 법 집행의 원칙상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그 판단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된다. 앞으로 치를 대통령선거에서 누가 유리하고 불리할지, 어느 쪽이 얼마나 반발할지, 어떤 상황이 검찰에 유리한지 따위의 정치적 고려를 하다가는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 법과 원칙이 기준이 되어야 할 결정이 정치적으로 오염됐다는 의심을 받게 되면 가뜩이나 국민 불신을 받아온 검찰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판단이 섰다면 미뤄서도 안 된다. 결정이 지연되면 불필요한 논란과 의심만 키우게 된다. 영장 청구 여부는 이번주 안에 결단하는 게 옳다.



[이데일리]

5. 대선 전략이 비방과 포퓰리즘 뿐인가

‘5·9 대선’의 정당별 후보 경선이 달아오르면서 구태가 재연되고 있다. 후보 간 경쟁이 국가의 미래를 밝힐 비전과 정책 대결이 아닌 인신공격과 흑색선전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 공약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예선이 이럴진대 각 당 후보가 확정되고 본선에 접어들면 진흙탕 싸움이 더 격화할 공산이 크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불행한 사태를 겪고도 과거 행태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벌써부터 이번 대선도 기대할 게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당 지지율에서 앞서가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 간의 공방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전두환 표창’과 ‘대연정론’을 두고 연일 인신공격성 막말로 상대방을 몰아붙이고 있다. 서로 “네거티브를 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네거티브에 빠져드는 꼴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경남지사의 “민주당 1등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 등의 거친 언사도 듣기에 거북하다. 이밖에 인터넷이나 카톡 대화방을 통해서도 걸러지지 않은 의혹과 소문들이 마구 퍼져가는 양상이다. 

포퓰리즘 공약도 문제다. 문 전 대표는 가계부채 해법의 하나로 22조 6000억원의 개인 부실채권을 정리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며, 공공개혁을 거스르는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폐지 약속까지 내놓았다. 안 지사는 10년 동안 일한 국민에게 1년간 유급휴가를 주겠다고 했다. 재원 마련이 불투명해 실효성은 없으면서 부작용만 키울 내용들이다. 민주당 이재명 성남시장의 연 100만원 기본소득 지급,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의 국민연금 최저 수급액 80만원 등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돼야 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엄중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으로 촉발된 외교·안보 위기에 경제까지 동반 추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촛불과 태극기 시위로 갈라진 내부 갈등을 추스르고 험난한 안팎의 파고를 헤쳐 나갈 의지와 능력을 갖춘 대통령을 찾고 있다. 후보들은 이제부터라도 비방과 포퓰리즘 공약이 아닌 대한민국의 앞날을 열어갈 정책과 비전으로 경쟁하길 바란다.



[서울신문]

6. 포퓰리즘 우려되는 저소득 청년 300만원 지원

정부가 어제 ‘청년고용대책 보완 방안’을 내놓았다. 대책 아닌 보완이라 했지만 현 정부 들어 열 번째 청년실업 대책이다. 취업을 하지 못한 고졸 이하 저학력·저소득 청년 5000명에게 한 사람당 최대 연 300만원을 생계비로 지원하고 고교 졸업 후 즉시 창업에 나설 수 있도록 입대를 연기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정부가 또다시 백화점식 보완 방안을 내놓은 것은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9.8%까지 치솟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20대 고용률은 지난해 11월 이후 4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청년층(15~29세) 장기실업자와 구직단념자는 지난달 36만 2000명으로 전년보다 1만 1600명이 늘었다.



청년실신(청년실업+신용불량),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등 자포자기한 청춘들이 우글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 대책을 통해 정책 체감도를 높이겠다고 하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은 고용 상황이 나아졌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청년수당은 서울시와 성남시에서 이미 시행 중이다. 정부는 돈을 나눠 주는 지자체의 정책에 반대했었다. 이번 300만원 지급 정책에 대해서는 “지자체 청년수당과는 목적 자체가 다르다. 구직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엄정한 심사를 거치지 않으면 또 하나의 포퓰리즘적인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대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경기 침체와 대내외적 불확실성으로 기업이 투자와 채용을 꺼렸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의 일자리 창출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민간기업에서처럼 연봉 수천만원짜리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정부의 청년 일자리 대책은 따지고 보면 각종 지원 등 보조수단 성격이 짙다. 정부가 지난해 청년 일자리 예산으로 2조 1000억원을 쏟아부었지만 고용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도가 낮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결국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해법은 민간에 있다.

문제는 경제다. 현재 우리 경제는 고용 없는 성장에서 고용 축소형 성장으로 접어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눈앞에 닥친 4차 산업혁명도 기존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노동시장이 구조적 변화에 직면한 것이다. 지금처럼 땜질식 처방으로는 어림없다. 청년들에게 몇 푼 안 되는 돈을 나눠 줄 게 아니라 노동시장의 변화에 맞춰 일자리 정책을 새롭게 개발해야 한다. 고기 잡는 법 말이다.



7. 미세먼지 대책, 중국에 따질 근거부터 찾길

그제 오전 한때 서울의 공기 질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나빴다. 세계 대기오염 실태를 점검하는 다국적 커뮤니티 에어비주얼의 조사 결과다. 차량 매연이 가득한 터널 안에서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니 보통 일이 아니다.

올 들어서만도 전국 각지에 발령된 초미세먼지 특보는 크게 늘었다. 지금까지 80회가 훌쩍 넘어 지난해 같은 기간의 40회 정도에 비해 두 배나 뛰었다.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은 지난해에도 소리만 요란했다. 미세먼지 논란이 몇 달째 이어지자 환경부가 고등어 굽는 연기까지 들먹거려 여론이 부글부글 끓기도 했다. 당장 특단의 조치를 내놓을 듯하더니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시간만 흘렀다.

환경부는 그제 봄철 미세먼지 대책으로 건설공사장 단속, 경유차 매연 집중 점검 등을 내놓았다. 이제 이런 대책은 해마다 때가 되면 들리는 녹음기 소리가 됐다. 지난달 도입한 비상 저감 조치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벌써 나온다. 수도권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공공기관 차량 2부제, 공공사업장 조업 단축 등을 시행하는 것이 제도의 골자다. 공기의 품질이 연일 나쁨을 기록한 며칠 새 한번도 비상조치는 내려지지 않았다. 유명무실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개선책을 더 미루지 말고 강구해야 한다. 실효성 있는 정책 개발과 함께 좀더 장기적인 대책을 고민할 때다. 정부는 봄철 미세먼지의 70~80%가 중국발(發)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니 방법이 없다며 팔짱 끼고 있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대기 환경은 미래의 중대한 국가 자산이다. 한두 해만 눈감아 줘서 될 일이 아니라 중요한 국익이 지속적으로 훼손될 전망이라면 이제 중국에 할 말은 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자국 이익을 위한 안보외교를 물불 가리지 않고 구사하는 중국에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60년이면 한국의 대기오염 사망자가 회원국 중 유일하게 1000명이 넘을 거라고 경고했다. 국민 생명 안전으로 따지자면 미세먼지도 위협적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그제 중국에 공기오염의 책임이 있는지 입증해 보라는 식의 배짱 논평을 냈다. 노후 경유차 단속 등 국내의 여러 개선책만큼이나 중국에 당당히 따질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정부는 별도의 연구팀을 꾸려서라도 중국과의 환경외교에 구체적으로 대비해야 할 때다.



[한국일보]

8. 세계 최악 수준의 미세먼지,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봄철의 연례행사가 되다시피 한 짙은 미세먼지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21일 오전 서울의 공기 질은 세계 주요 도시 중 인도 뉴델리에 이어 두 번째로 나빴다. 스모그 천국인 중국 베이징이나 청두보다 더 나쁜 수준이다. 올 들어 21일까지 발령된 초미세먼지 특보는 모두 85회로 지난해(41회)에 비해 두 배 이상이다.

미세먼지는 ‘침묵의 암살자’로 불리는 1급 발암물질이다. 흡연보다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4년 미세먼지에 따른 조기 사망자는 700만명으로 흡연 조기 사망자(600만명)를 웃돌았다. 한국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 WHO 권고치의 세 배나 된다. OECD는 40년 뒤 한국이 대기오염에 따른 조기 사망률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공기 질이 개선될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박근혜정부는 여섯 차례나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해 6월에도 노후 화력발전소 폐쇄, 차량 2부제 실시 등의 특별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미세먼지를 근본적으로 줄이는 실효성 있는 대책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예컨대 석탄화력발전소는 미세먼지 주요 배출원이다. 정부는 수명을 다한 노후 설비를 없애겠다면서도 오히려 9기를 새로 지어 현재 39%인 석탄발전 비중을 10년 후 50%까지 늘릴 계획이다. 경제성에만 집착한 에너지 정책이다. 지난달 15일부터 시행된 공공ㆍ행정기관 대상의 차량 2부제도 별 효과가 없다. 당일은 물론, 다음 날도 ‘매우 나쁨’이 일정시간 예보돼야 하는 등 요건이 까다로워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산업화가 빨리 진행된 데다 인구 밀도가 높아 단위면적당 미세먼지 배출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과다 배출원에 대해서는 과격하게 느껴질 정도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미세먼지에 따른 건강 피해 등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석탄을 결코 값싼 에너지원으로 보기 어렵다. 석탄발전 비중을 대폭 줄이고, 태양광 등 친환경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에너지정책을 바꾸는 게 시급하다. 노후 경유차를 조기 폐차하고 공사장ㆍ소각장의 오염원을 차단하는 등 범정부적 차원의 총력 대응에 나서야 한다. 

미세먼지의 절반은 전 세계 석탄의 절반을 쓰는 중국에서 날아온다. 특히 봄철 미세먼지는 중국 영향이 70% 안팎에 달한다. 중국과의 환경 협력에도 속도를 내야 함은 물론이다.



[조선일보]

9. 美가 걱정하기 시작한 韓 차기 정부 對北 정책

그제 미국 연방 의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차기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공화·민주 양당 의원 모두 5·9 대선 이후 들어서는 한국 신(新)정부의 대북 정책 변경 가능성을 거론했다. 브래드 셔먼 민주당 하원의원은 "개성공단에서 힘들게 번 노동자의 돈이 김정은 정권을 유지하는 자금으로 쓰인다"며 개성공단 재개에 반대했다.



앤 와그너 공화당 하원의원은 "한국의 차기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차기 한국 대통령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백지화하거나, 북한 제재에 소극적일 것이라는 우려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커지고 있다는 로이터통신 보도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방한한 미 국무부의 조셉 윤 대북 정책 특별대표는 우리 외교관보다는 대선 출마 정치인이나 그 참모들을 만나는 데 더 주력했다. 특히 민주당의 안희정 충남지사,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외교·안보 정책 전문가들을 만나서 이들의 대북 정책을 탐색했다. 매우 이례적인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불안한 느낌마저 준다.



미 행정부와 의회가 차기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우려하는 것은 집권 가능성이 큰 민주당 후보들이 급격한 대북 정책 전환을 공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 전 대표는 당선되면 2억달러가량이 김정은에게 흘러가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을 즉각 재개하겠다고 공언했다. 북핵 방어용인 사드도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미국은 문 전 대표의 대북 정책이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유엔 대북 제재 결의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사드까지 철회한다면 양국 공조의 파탄이 현실화할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집권하고 한·미 간 정책 차이가 걱정처럼 표면화할 경우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김정은이고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안보 위기에 몰릴 우리 국민과 한·미 동맹이다. 노무현·부시 행정부 사이의 정책 부조화가 북한의 핵실험과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도왔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처럼 기존 정치인들과는 셈법이 전혀 다른 미국 대통령과 다른 문제도 아닌 민감한 안보 문제로 충돌하게 된다면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한국의 다음 정부가 그 길을 가겠다면 한·미 동맹 아닌 다른 어떤 방법으로 국민을 지킬 것인지 국민에게 먼저 설명해야 한다.



[중앙일보]

10. 대학생 울리는 대학 기숙사의 ‘갑질’

새 학기에 활기차야 할 대학생들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다. 집을 떠난 새내기들은 낯선 환경과 경제적 문제로, 졸업반들은 취업 문제 등으로 고민한다. 그런데 기숙사에 들어간 학생들은 황당한 고통까지 겪고 있다. 대학 측이 한 학기에 수백만원 하는 기숙사비를 일시불 현금으로만 받고, 식권도 100장·200장씩 강매하는 것이다. 학생에 대한 배려는 내팽개치고 수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중앙일보가 서울 소재 12개 대학의 기숙사를 조사해 보니 횡포가 지나쳤다. 12곳 모두 신용카드 결제는 물론 분할납부조차 받지 않았다. 교육부가 2년 전부터 권고한 내용이지만 대학 측이 처벌 조항이 없는 데다 수수료 부담을 내세워 외면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기숙사비 지불 방식을 자율에 맡기는 미국 대학들과는 정반대다. 식사의 질도 열악하다. 한 끼에 3900원을 받으면서도 밥과 국, 김치와 계란말이 한두 조각이 전부인 기숙사도 있었다. 밥맛이 없어 사용하지 않은 식권이 쌓여도 환불을 안 해 준다니 이런 갑질이 어디 있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방치되는 이유는 기숙사가 턱없이 부족해서다. 전국 4년제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20%에 불과하다. 그나마 수도권은 15%, 서울은 11%여서 방 구하기가 별 따기인 학생들만 봉이 된다. 게다가 민자기숙사의 경우 업자가 시설을 짓고 운영을 맡아 투자금을 거둬들이려다 보니 1인실이 월 60만원을 넘는 곳도 있다. 일반 원룸보다도 비싼 수준이다.

이번에 드러난 갑질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교육부는 전국 대학의 기숙사 실태를 점검해 횡포를 바로잡아야 한다. 대학 일에 시시콜콜 간섭하면서 학생들 잠자리와 밥을 갖고 장난치는 기숙사만 방치하는 까닭이 뭔가. 기숙사 확충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대학에 저금리로 건축비를 빌려줘 기숙사비를 낮게 매기는 공공기숙사, 여러 대학 학생들이 함께 거주하는 연합기숙사, 자치단체가 공급하는 향토학사 등이 많아져야 한다. 기숙사 확충을 반대하는 대학가 주민들과의 상생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는 곧 우리 사회의 문제 아닌가.





주요신문칼럼



1. [매일경제][사랑에 대한 단상] 영화 '오버 더 펜스'

누구에게나 말 못할 비밀이 있다. 나도 당신도, 그리고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들도 저마다의 비밀을 한 두 개쯤 갖고 있을 거다. 우리는 이렇게 감쪽같이 침묵하면서 때로는(어쩌면 항상) 위로 받기를 원한다. 이는 굉장히 이기적인 모습이다. 어쩌면 비정상적으로 보일지라도 표현에 과감한 이들이 덜 이기적인 건 아닐까. ‘오버 더 펜스’ 속 사토시처럼 말이다.

그녀는 어린 아이 같다. 길거리에서 화를 내기 일쑤고, 곧잘 운다. 새 흉내를 낸다며 이리저리 날뛰기까지 한다. 이런 그녀를 향한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녀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간다. 밤낮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말이다. 괴짜 같은 행동으로 미루어보자면 말 못할 사연이 있는 듯 하다.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와 뒤늦게 직업훈련학교를 다니는 요시오. 그는 매일같이 학교가 끝나면 도시락과 맥주 두 캔을 사 들고 집으로 향한다. 물건뿐 아니라 온기조차 없는 텅 빈 그의 집은 요시오 그의 현재 삶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맥주 두 캔과 집 앞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만이 그를 위로해준다. 알고 보니 요시오는 부인과 헤어진 상태다.

사토시와 요시오는 길거리에서 이 우연한 만남 이후로 자주 마주치게 되고 그러면서 관계가 가까워진다. 사랑을 갈구하는 사토시와 사랑을 잃은 상태인 요시오는 서로의 빈 공간을 채워나간다. 이들 두 사람은 평범한 우리들을 대변한다.

말 못할 사연들로 심신이 지쳐버린 남녀를 일으켜 세워줄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랑이다. ‘오버 더 펜스’는 현실과 내면의 벽에 부딪힌 남녀가 사랑을 이뤄내는 과정을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에 놓인 이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요시오가 뱉었던 말처럼 그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상태다. 분노와 자괴감으로 휩싸인 사토시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렇게 결핍으로 가득 찬 둘도 사랑을 하고 사랑의 힘으로 현실을 개선해나간다.

사토시가 등장하자 요시오의 타구가 하늘 높이 치솟는 장면은 ‘오버 더 펜스’의 주제를 함축하는 장면이다. 야구장에 모인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요시오의 타구를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꿈을 쫓고 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오버 더 펜스’는 말한다. 우리 모두는 사랑을 갈구하고, 따라서 해야만 한다고. 서툴고 투박하더라도 사랑을 통해 얻는 것들이 많다고 말이다.



2. [경향신문][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 행복하다는 것

행복의 날이란 게 있는 줄 몰랐다. 지난 20일이 바로, 유엔에서 제정한 세계 행복의 날이란다. 제헌절이나 한글날, 삼일절 같은 날들처럼 역사적으로 뭔가 대단히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걸 기념하기 위해 만든 날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날은 역사적으로 아주 행복했던 어떤 사건을 기념하는 날일 터이고, 사람들의 마음도 그 기억과 함께 흐뭇해졌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살펴보니, 이날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복지와 경제발전을 도모하고자 국제연합에서 제정’한 날이라고 되어 있고, 관련 정보로는 세계 행복 보고서가 보인다.



행복의 조건을 수치화해서 순위를 매겼을 때, 우리나라의 순위가 아주 한참 아래이다 못해 거의 바닥 수준이라는 건 이제 새삼스러운 뉴스도 아니다. 그 구체적인 예들로 청년실업률, 노인빈곤율, 출산율 등이 제시되기도 했다. 다 새삼스럽지 않은 뉴스들이다. 간신히 청년실업을 면했다고 해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엄두를 내기에는 턱없이 적은 임금과 과도한 업무에 시달려야 한다. 혹시 아이를 낳더라도 그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거나, 그런 사람을 구할 돈이 없고, 그래서 아이를 낳지 못하고, 그럴수록 그들이 어깨에 메고 살아가야 할 노년층의 두께는 두꺼워지고, 가난해지는 식이다.

야근이 많은 회사에 다니는 젊은 친구에게 결혼 계획을 물었더니, “회사에서 집엘 보내줘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겠지요”라는 농담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출산율을 따지기 전에 결혼하고 출산할 수 있는 조건을 따져야 한다는 소리다. 행복수치를 따지기 전에, 행복한지를 묻기 전에, 행복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봐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나 역시, 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는 말은 이제 아주 유명한 말인 듯하다. 심리학자가 한 말이기도 하고, <종의 기원>을 쓴 다윈의 연구결과라고도 한다. 독일의 연구자들은 그걸 확인해보기 위해 웃음 근육을 마비시키는 보톡스를 주사하고 뇌반응을 측정해보기도 했단다. ‘웃음의 숨겨진 힘’에 대한 TED 강연에서 들은 말이다. 이 강연 중, 자궁 안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태아의 초음파 사진이 보인다. ‘우리는 사실 선천적으로 미소짓도록 태어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사실 선천적으로 행복하려고 태어났다는 것’일 터이다. 같은 TED 강연으로 아주 유명한 에이미 쿠디(Amy Cuddy)는 보디랭귀지의 힘을 말하면서, 마음이 몸을 만드는 게 아니라 몸이 마음을 만든다고 말한다. 주눅든 자세로 있으면 약해지고, 센 척하면 세진다는 것이다. 대개의 생각과는 반대다. 약하니까 주눅이 들고, 가진 게 없으니까 센 척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심리학과 과학은 아니라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착각과 자기 세뇌의 문제가 아니라, 뇌와 그에 작용하는 호르몬의 문제라는 것이다.

문학은 어떤가? 문학은 관계에 대해 집중한다. 사람과 사람의 개인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 역사와의 관계를 포괄한다. 나의 이야기가 단지 나의 이야기인 것이 아니라 나이면서 동시에 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센 척하는 자세를 해서 개인의 지배 호르몬 혹은 행복 호르몬을 발생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관계를 행복하게 만들거나, 혹은 관계 속에서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예컨대 내가 대한민국의 출산율을 고민하는 아주 건강한 20대 여성이라면, 출산은, 단지 건강한 호르몬을 바탕으로 하여 아이를 낳는 문제인 것이 아니라, 월수입, 노동시간, 직장의 구조와 상사의 성격, 사회적인 보육시설의 안전도와 신뢰도, 부모님의 경제력과 건강, 심지어는, 아랫집 주민의 층간소음 반응까지도 미리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에 비해서는 훨씬 비관적이지만, 그래도 ‘사랑’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건 문학이다.

탄핵이 인용된 후 광화문 촛불집회는 특별했다. 나로서도 그 집회는 매우 각별한 경험이었는데, 행복한 집회의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소위 386세대라고 불리는 사람의 하나로서 내가 생각하는 시위나 집회의 정의는, 다치고, 죽고, 검거되고, 투옥되는 일들의 총합쯤으로 여겨졌다. 말하자면 정말로 피를 흘리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었고,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끈 원동력이 된 1987년 6월항쟁만 하더라도,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 전에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있었다.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다치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그 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누구도 다치고 검거되지 않고 투옥도 되지 않았는데, 그날 촛불집회의 구호는 ‘승리’였다. 실은 ‘행복’이라고 바꿔 말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날의 참가자들은 일부러 센 척할 필요도 없이 이미 셌다. 그 호르몬은 우리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억 세포로 전이되어 개인의 역사가 되고, 사회의 역사가 될 것이다. 

서울시가 촛불집회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가 아닌가를 따지기 전에 나는 그 자긍심이 좋다. 역사는 피를 흘려야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뜻을 모으면 바꿀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그런 자리에 자신의 목소리를 보탤 수 있다는 것, 그 소박함의 엄청난 힘이 좋다. 시위가 축제가 될 수 있고, 축제는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무소불위인 줄 알았던 자리에서 밀어낸 것보다 더 큰 승리는 바로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앞으로 정권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는 모르지만, 촛불을 완성하는 정권이 되어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장미대선’이라는 말이 참 좋게 들린다. 덩굴장미처럼 행복을 마구 피워내는 그런 정권이 들어서야겠다. 그러려면 잘 지켜봐야 할 일이다. 4년 전의 실수를 다시 해서는 안 될 터이니. 대선까지 모두들 어깨를 활짝 펴 긍정 호르몬을 마구 발산시키시기를 바란다.



정치나 권력은 그 속성상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치를 감시하는 힘은 국민들에게 있어 보인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지는 게 아니라, 바람과 함께 타오르는 힘이다.



3. [경향신문][경제와 세상]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큰 화두는 일자리일 것이다. 해외의 옥스퍼드 연구소, 다보스 포럼과 한국의 노동연구원과 고용정보원 등 각종 기관들이 앞다퉈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앗아가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제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의 근본적 문제에 대하여 논의해 보고자 한다.



지난 250년의 산업혁명을 통하여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숱한 주장이 반복되어 왔으나,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줄인 사례는 전혀 없다. 1차 산업혁명 시기인 19세기 초 벌어진 기계 파괴 운동인 ‘러다이트’ 운동과 3차 산업혁명 태동기인 1961년 타임지의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소멸 예측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입증되었다.



80%의 농업인구가 2%가 되었으나, 78%는 실업자가 아니라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전환되었다. 즉 지금까지의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의 증가로 근무시간을 줄여 삶의 질을 끌어올리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왔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기술혁신으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노동총량 불변의 법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노동총량이 일정할 경우 새로운 기술혁신은 노동총량을 축소하여 결과적으로 일자리의 수요를 줄인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산업혁명 초기에 주당 80시간의 노동시간이 이제는 40시간 이하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노동총량은 불변이 아니었다.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이 증가되어 잉여가 발생하면 새로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자리가 등장해 왔다.

혁신이란 일자리의 소멸과 생성을 의미하는 단어다. 일자리는 사라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일자리 문제에 대한 본질적 질문은 사라지는 일자리가 아니고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예측 기관들은 사라지는 일자리는 말하고 있으나, 창출되는 일자리에 대한 언급은 찾아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 일자리 창출의 원천은 무엇인가 하는 본원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일자리의 원천은 바로 인간의 욕망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은 노동총량 불변의 법칙이 오류임을 지난 250년의 산업혁명 역사를 통하여 입증했다. 1차 산업혁명은 기계 기술로 인간의 생존 욕구를 충족시킨 혁명으로 인간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했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 기술로 인간의 안정의 욕구, 즉 편리함의 욕구를 충족시킨 혁명으로서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편리한 제품을 제공했다. 그리고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 기술로 인간의 사회적 욕구인 연결을 만족시켜준 결과, ‘혼밥’과 ‘혼술’ 같은 사회적 현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존의 산업혁명이 충족시켜 온 인간의 욕망은 매슬로가 주장한 인간 욕구 5단계의 1·2·3단계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 충족시킬 인간의 욕망은 바로 매슬로의 욕구 4단계인 자기 표현 욕구일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해 본다. 매슬로는 이 4단계를 다시 인지적 욕구와 심미적 욕구로 세분화한 7단계설로 확장한 바 있다. 이제 새로운 일자리의 원천은 바로 인간의 개인화된 자기 표현 욕망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화된 욕망을 인간과 인공지능 및 로봇이 협업하여 충족하는 사회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과 로봇을 만드는 생산성 증가로 노동 총량 감소의 일자리와 자기 표현의 욕망을 충족하는 노동 총량 증가의 일자리로 나누어질 것이다. 생산성 증가 일자리는 노동시간을 줄여주고, 자기 표현 일자리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제 4차 산업혁명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역할은 각각 창조적인 일과 반복되는 일로 나뉘어 서로 협력하게 될 것이다. 소위 ‘딥러닝(DeepLearning)’이라는 인공지능 기술은 반복되는 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단순화하자면 반복되는 단순 작업은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맡기고 인간은 자기 창조적인 일에 몰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미래의 인재상은 ‘협력하는 괴짜’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교육은 바로 협력하는 창조적 인재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협력하는 괴짜는 산업과 교육이 융합하는 프로젝트 기반 교육(PBL)으로 구현된다. 세계 선도 대학들은 이미 팀 프로젝트 교육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학과 교육들은 온라인 교육(MOOC)으로 전환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새롭게 형태를 바꿀 뿐이다.



4. [여성신문][서민의 페미니즘 혁명] 임신부에게 X표를 긋는 나라

아내와 함께 지하철을 탔다. 서 있던 자리가 노약자 지정석 앞이었는데, 그 자리를 표시하는 스티커의 임신부에게 X자가 그어져 있다. 신기해하는 아내에게 설명을 해줬다. “이게 바로 여혐의 증거야."

몇 년 전, 지하철 노약자석을 주제로 한 방송에 나간 적이 있다. 프로그램 중 나이든 분과 임신부 중 누가 더 약자인지 묻는 코너가 있었는데, 연구결과는 내 예상과 달리 임신부가 10배쯤 더 힘들단다. 나이든 분들이 다 같은 것도 아니고 임신부도 다 다를 테니 이것만 가지고 결론을 내긴 어렵겠지만, 최소한 임신부가 노인에 필적할 만큼 힘들다는 데는 다들 동의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도 임신부가 노약자석에 앉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배가 아주 나왔으면 모르겠지만, 만삭이 아닌 바에야 그냥 배가 나온 것과 임신한 사람을 구별하는 건 쉽지 않다. 이를 위해 서울지하철에선 산모수첩을 내면 임신부고리라고, 분홍색으로 된 큰 고리를 나눠주는데, 이걸 꺼냈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냐면 그런 것도 아닌가보다. 14주차 임신부는 인터넷에 “임신부 고리를 봐도 아무도 신경을 안 썼다. 역시 큰 도움은 안되는 듯”이라고 수기를 올렸다.

그런데 이 글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노약자석은 무서워서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왜일까. 노약자석은 그 이름 때문인지 나이든 분들이 우선권을 갖는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미담이 만들어진다. “경찰이 과천역 인근에서 노약자석에 앉아 가던 임신부 A씨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며 폭행한 70대 노인 B씨를 검거했다.” 참고로 A씨는 임신 27주였으니 임신한 걸 알아볼 수 있었을 테지만, 노인 B씨는 막무가내였다. 언론에 따르면, B씨는 “‘임신한 게 아니면서 그런 척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확인을 해야 한다”고 A씨의 임부복을 걷어 올리기까지 했고 곧이어 임신부 A씨의 부른 배를 가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A씨만 겪는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여혐 세력은 임신부들이 임신을 빌미로 노약자석을 점거하는 걸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스티커에 그어진 X자 표시를 보면 그 자리에 앉는 게 두렵지 않겠는가. 고육지책으로 서울시가 만든 게 바로 임신부 배려석이다. 가끔 지하철을 보면 좌석 맨 끝자리에 분홍색으로 칠해진 좌석이 눈에 띄는데, 그게 바로 임신부 배려석이다.

색깔도 그렇지만 좌석 앞바닥에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고 쓰여 있으니,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자리라는 걸 알아챌 수 있다. 한량에 두 개뿐이긴 해도, 노약자석에 앉지 못하는 임신부들에겐 ‘가뭄에 단비’다. 이제 임신부들의 고생은 끝난 것일까? 기뻐하기 이르다. 지하철을 꽤 탔지만, 그 자리에 임신부로 추정되는 여성이 앉아 있는 걸 본 경험은 드물다. 오히려 건장한 남자일수록 그 자리를 좋아했다. 혹시 분홍색에 페티시가 있는 건 아닐까? 거기 앉아 있는 승객에게 물어본 결과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온다.

“비워놓는 건 비효율적이니, 일단 앉아 있다 임신부가 오면 비켜주면 되는 거 아니냐?”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이가 많은 듯하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 경우 임신부가 자리를 양보받는 게 쉽지 않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느라 앞에 누가 오는지 신경을 안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렵게 자리 양보를 부탁해도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다.

임신을 하면 개인으로 봐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몸도 힘든데다 직장에서 눈치 보이지, 몸매 망가지지, 좋을 게 뭐가 있는가? 그럼에도 임신을 하는 건 사랑하는 부부의 결실을 세상에 내보내는 게 이 모든 고통을 감수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어난 새 생명은 국가와 사회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임신부들이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 좀 해달라는 건데, 그것마저 우리 남성들은 들어줄 마음이 없다. 그래서 이런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우리나라의 저출산은 훨씬 더 심각해져, 걷잡을 수 없을 정도까지 갈 거라는 걸.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탄핵

1945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은 11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그들 중 임기를 온전히 채운 이는 6명(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고 나머지는 하야(이승만), 사임(윤보선, 최규하), 피살(박정희), 탄핵(박근혜)으로 중도 하차했다. 임기를 마친 6명 중 둘(전두환 노태우)은 임기 후 내란ㆍ반란죄 등으로 실형을 살았고,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통령은 되기도 어렵지만 제대로 해내기도 어렵고 위험한(?) 자리인 듯하다.

이승만은 4.19로 하야하기 전,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탄핵 당한 이력도 있다. 1919년 9월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그는 21년 독단적으로 국제연맹에 한반도 위임통치를 청원, 1925년 3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탄핵 당했다.



대통령 선출 전, 총리제 하의 임시정부 총리로서 외교무대에서 자신을 ‘대통령(president)’으로 소개하며 말썽을 빚었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주로 미국에 머물며 독자 외교노선을 걷던 그는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된 나머지 21년의 청원을 대통령 자격으로 행했고, 의정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철회를 거부했다. 당시 신채호는 “없는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것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보다 더한 역적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탄핵서는 “이승만은 외교를 빙자하고 직무지를 떠나 5년 동안 원양일우에 편재해서 난국수습과 대업진행에 하등 성의를 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허무한 사실을 제조 간포해서 정부의 위신을 손상시키고 민심을 분산시킨 것은 물론…”으로 시작된다. 그는 60년 4월의 하야로 두 차례 대통령 직에서 불명예 퇴진하는 기록을 세웠다. 윤보선과 최규하는 각각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와 전두환의 위세에 밀려 사실상 강압에 의해 대통령직을 내놓았다. 

우연이지만 1962년 윤보선의 하야도 이승만이 탄핵된 날과 같은 3월 23일이었다. 윤보선은 5ㆍ16 군사쿠데타 직후인 61년 5월 19일 방송을 통해 하야 선언을 했다가 국제법상 새 정부 승인 문제 등이 복잡해질 것을 우려한 군부의 사임 재고 요청(사실상의 압박)으로 다음 날 하야를 번복하기도 했다.

3월 10일의 헌재 판결로 직에서 파면 당한 박근혜는 아버지에 이어 2대에 걸쳐 중도하차한 대통령이 됐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
728x90
반응형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한겨레]

1. ‘진심과 사죄’ 빠진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뇌물수수 등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조사실로 들어가기에 앞서 그는 “국민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이의 대국민 사과라기엔 많이 모자란다. 검찰에 나온 피의자들의 전형적인 말이 꼭 이랬다. 박 전 대통령에게선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치는 진정성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그런 형식적 입장 발표로는 국민의 성난 마음을 달래기 힘들다. 그는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 쪽이 태도를 누그러뜨린 것은 분명하다. 그는 지난 1월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특검이 나를) 완전히 엮었다”고 거칠게 반발했다. 극우성향 인터넷 방송에 나와선 검찰과 특검 수사를 “거짓으로 쌓아 올린 커다란 가공의 산”이라거나 “오래전부터 기획된 음모”라고 비난했다. 대면조사도 온갖 핑계와 트집을 잡아 끝내 거부했다.



그런 그가 이제야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방향을 튼 이유가 달리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처럼 검찰과 특검 수사를 전면 부정하고 조사를 회피하다간 구속을 면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겠다. 국민 여론을 자극할 필요 없이,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 사회 통합에 끼칠 악영향’ 등이 부각되도록 하는 게 낫다는 계산도 했음 직하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 쪽의 계산에 신경을 쓸 이유는 없다. 법과 원칙에 따라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필요하면 구속해 수사를 계속하면 될 뿐이다. 원칙대로라면 구속수사가 당연해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뇌물수수나 블랙리스트 등 박 전 대통령의 혐의 하나하나에 대해선 관련자들의 구체적인 증언과 물증이 다 갖춰져 있다고 한다. 증거가 명백한데도 끝내 부인하면 구속수사가 불가피하다.



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관련자 대부분이 구속돼 재판까지 받는 마당에선 형평성 때문에라도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준 사람보다 받은 사람이 더 무겁게 처벌되는 뇌물죄의 경우, 준 쪽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진작 구속돼 있다. 박 전 대통령만 구속하지 말자는 게 되레 어색하다.

검찰은 이제 일체의 정치적 고려를 던져버려야 한다. 다른 사건도 그렇지만 이번에는 특히 법과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법치와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이데일리]

2. 이 부끄러운 역사에 마침표를 찍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돼 하루 종일 조사를 받았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내려진 지 열하루 만으로 뇌물수수, 직권남용, 기밀문서 유출 등 13개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청 포토라인에 선 ‘자연인 박근혜’는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대꾸하지 않은 채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만 말했다.

앞서 청와대에서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가면서 내놓은 짤막한 대국민 발표문에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고 말한 것으로 미뤄 박 전 대통령의 법정 다툼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이들이 모인 검찰과 바로 얼마 전까지 최고 권력을 누렸고 여전히 막강한 지지세력을 거느린 박 전 대통령 사이의 법리 공방은 나라를 반년 가까이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최순실 사태’의 끝내기 수순인 셈이다.



검찰은 오롯이 실체적 진실 규명에만 매달려야 한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 정도면 몰라도 또다시 정치권이나 여론을 기웃거리며 좌고우면하다간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잇단 법조 비리 등으로 밑바닥까지 실추된 검찰의 체면을 되살릴 절호의 기회로 삼아 어느 누구도 시비 걸지 못할 만큼 깔끔한 조사 결과를 내놔야 한다. 박 전 대통령도 본인의 억울함만 내세울 게 아니라 이참에 국민의 분노와 실망에 내포된 의미를 곱씹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전직 대통령이 피의자로 전락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잘라내는 일이다. 건국 이후 11명의 대통령 중 벌써 4번째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감옥까지 갔고,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 수사 도중 자살했다. 다른 전직 대통령들도 비리와 부패, 국정농단에서 자유롭지 못하긴 매한가지다. 그들에게도 이번과 똑같은 기준이 적용됐다면 역시 탄핵을 면치 못했으리란 지적은 국민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다.

이젠 우리도 부끄러운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질 때가 됐다. 그러려면 국민이 제대로 된 대통령감을 가려낼 줄 아는 안목부터 키워야 한다. 나쁜 짓을 한 대통령이나 잘못 뽑은 유권자나 오십보백보다. 한 달 보름여 앞으로 닥친 다음 대선이 그 첫 시험대다.



3. 유커 빈자리 채우는 동남아 관광객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유커(遊客)의 방문이 현저히 줄어든 가운데 동남아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요즘 서울 명동 일대에서 중국인들의 왁자지껄한 대화가 거의 사라진 반면 말투와 피부가 구분되는 다른 동양인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는 광경이 그 결과다. 비록 그 규모에 있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도 유커의 공백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위안이 된다.

우선 동남아 방문객이 크게 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1월의 경우 홍콩 관광객은 전년 대비 65% 급증했고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관광객도 50% 가까이 늘어났다는 게 한국관광공사의 집계 결과다. 중국 관광객이 56만 5000명으로 전체의 46.3%를 차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남아 국가의 방문객 비율도 25%로 나타났다. 일본 관광객도 10%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중국과의 사드 갈등을 떠나서도 앞으로 정책적으로 동남아 국가들과의 유대를 더욱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교역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중국에 너무 일방적으로 의존해 무역·관광시장 전략을 마련해 온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 중국이 지리적으로 가깝고 시장이 큰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이런 식으로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했다는 얘기다.

중국의 유커 방문 단속조치로 관광 경기에 타격을 입었던 대만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대만도 동남아 쪽으로 눈길을 돌려 곤경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이른바 ‘신(新)남향정책’이 그것이다. 대만도 중국의 보복조치로 관광 분야 피해가 작지 않았다.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정부가 들어선 지난해 5월 이래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라며 일련의 보복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동남아 관광객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중국 관광객들에게 적용했던 방문 특례규정을 동남아 관광객들에게 허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무슬림 관광객 유치 노력도 요구된다. 다양한 초청행사와 여행박람회를 개최하고 관광안내 표지판을 다국어로 만들어야 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한 이번 홍역을 값진 경험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매일신문]

4. 대선 후보자들의 지역 공약 실종, 이래도 되나

대통령 선거가 48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으나 주요 후보자들의 공약은 한마디로 부실, 그 자체다. 그 가운데 지역 공약에 대해서는 부실 수준을 넘어 아예 실종된 상태나 마찬가지다. 후보자들의 지역 공약을 보면 원론적인 수준에서 간간이 언급될 뿐, 구체성이 있거나 실현 가능한 정책은 보이지도 않는다. 이 정도의 ‘지역 홀대’나 ‘지역민 무시’는 역대 대선에서 단 한 번도 볼 수 없던 현상이다.



지역민 입장에서는 후보자를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잣대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후보자들이 아무리 시간에 쫓기고 있다지만, 이런 기초적인 준비조차 없이 대선에 나서는 것 자체가 ‘양심 불량’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주자들은 실현 가능성이 의심되는 선심성 공약만 줄줄이 내놓고 있을 뿐, 눈에 띄는 지역 관련 공약이 거의 없다. 민주당 후보자들은 균등 분배와 균형 발전을 공약의 기조로 삼고 있다지만, 수도권 중심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정책은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심하게 말하면, 이들의 머릿속에 지역과 지역민에 대한 관심과 배려 자체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유한국당의 유력 주자인 홍준표 경남지사, 김진태 의원은 ‘우파 집권’만 외칠 뿐, 공약이라고 발표한 것이 전무한 상태인 만큼 언급할 가치도 없다. 그나마 지역 출신인 김관용 경상북도지사와 유승민 의원이 지방분권과 균형 발전, 대구경북 현안 등 지역 관련 공약을 앞세우고 있어 다행스럽다.



후보자들이 지역 공약을 제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준비 및 공부 부족 때문이다. 지역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집권 후에 지키지 못할 수 있기에 공약화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역에서는 현재 추진 중인 핵심사업이 좌초되지나 않을까 불안해한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가장 큰 현안인 통합공항 이전사업이 혹시라도 차질을 빚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으니 서글픈 풍경일 수밖에 없다.



후보자들이 당내 경선에 매진하고 있기에 지역 관련 공약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이라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렇지만, 지역민에 대한 관심과 지방분권 없이는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이 불가능하고 우리 사회의 적폐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루빨리, 지역 관련 공약을 제시해 지역민에게 후보자 자신의 소신과 의지를 검증받아야 할 것이다.



5. ​박 전 대통령 검찰 수사, 대립과 갈등의 치유 계기 돼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 11일 만에 검찰 조사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조사에 앞서 검찰 포토라인에서 “국민에게 송구스럽고,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고 했다. 그 말대로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에 대해 성실하게 있는 그대로 진술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탄핵 결정 뒤 사저로 퇴거하면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했던 말을 스스로 실천하는 길이자 박 전 대통령과 똑같이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하는 국민의 바람에 부응하는 길이다.



박 전 대통령의 혐의는 삼성 특혜에 따른 뇌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제 모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직권남용 등 13개에 이른다. 이 중에는 박 전 대통령의 주장처럼 “엮은 것”도 있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수 있다. 엮은 것이면 박 전 대통령은 방어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인 것이면 떳떳하게 인정하고 당당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 국민은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서 전직 대통령에 걸맞은 당당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다.



검찰도 오직 진실을 향해 공정하고 객관적 입장에서 조사했을 것으로 믿는다. 탄핵 과정에서 나라는 둘로 찢어졌고, 그 갈등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를 봉합하기 위해서는 검찰의 수사가 한 점의 흠결도 없어야 한다. 누가 봐도 엄정하고 객관적인 수사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수사 결과는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면서 대립과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구속영장 청구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차 구속에 실패했던 특검의 무리수 같은 것은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일이 또 벌어지면 ‘엮으려 한다’는 의심이 나올 수 있다. 무엇보다 수사의 목적은 구속이 아니라 혐의 입증임을 명심해야 한다. 앞으로도 검찰은 흔들림없이 수사하되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6. 성주 사드 배치 반대 집회, 평화롭도록 정부도 할 일 해라

경북 성주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또다시 몸살을 앓게 됐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성주 롯데스카이힐 골프장과 경기도 남양주 군용지의 맞교환을 발표하면서 빚어진 배치 갈등 때문이다. 이후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모임이 성주에서 연일 열리고 앞으로도 반대 촛불 집회가 계속 이어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드 집회를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마음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가장 우려스러운 일은 반대 집회 참가자와 집회에 대비하는 경찰 병력 등과의 물리적 충돌이다. 그러나 지난 18일 성주 초전면 롯데스카이힐 골프장 인근에서 4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평화발걸음대회는 다행히 평화적으로 끝났다. 물론 원불교 평화천막 철거 과정에서 경찰과의 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경찰의 정당한 공무집행에 따른 일로 큰 사고는 없었다. 다행스럽지 않을 수 없다.

​ 
이 같은 평화적 시위와 함께 집회 주최 측의 현명한 대처가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지난 18일 집회처럼 사드 배치는 전국 시민`사회단체나 정치인이 참여하는 민감한 문제이다. 불순 세력의 개입 여지도 없지는 않다. 자칫 소홀히 대처하다가는 예기치 못한 충돌과 같은 불상사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행사 주최 측이나 당국 모두 긴장해야 할 부분이다.



집회 보장과 함께 경찰이나 행정 당국의 정당한 공무집행도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한 행사 주최 측의 적극적인 협조와 함께 공무집행 당국의 당당한 대처도 필요하다. 아울러 정부 역시 반대 주민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 집회에는 주민들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부족한 데 따른 불만도 녹아 있다. 반대 목소리를 낮추고 평화시위로 이어지도록 대책 마련에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드 배치 갈등과 관련된 모든 당사자는 사드 이후에도 다시 얼굴을 맞대고 함께 나라를 걱정해야 할 국민이어서다.



[서울신문]

7. 주 52시간 근로, 일자리 증가로 이어져야

국회가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데 그제 합의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소위는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16시간 단축하되 한시적으로 사업주에 대한 처벌 면제 규정을 두기로 했다. 정치권은 주당 근로시간을 줄이는 데는 합의하고서도 몇 년째 시행 시기와 방법을 놓고 여야가 각을 세워 왔다.



기업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행하자는 여당의 주장에 야당은 곧바로 전면 시행하자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대선을 앞둔 여당이 야당안에 동의함으로써 관련 법이 내년부터 시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근로시간 단축은 사회적 공감대가 이미 넓게 자리 잡은 시대 현안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연간 500시간이나 많은 근로시간을 기록한다. 저출산율, 자살률과 함께 세계 최고를 다투는 부정적인 사회문제로 꼽힌 지 오래다. ‘저녁이 없는 삶’에 찌든 과로 국가여서는 노동생산성을 기약할 수도 없을뿐더러 실업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다.



이번 합의안은 현행 휴일 근로 16시간을 단순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것이 골자다. 일자리 확대와 근로자의 삶의 질 개선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고민이 반영됐다.

문제는 기업 부담과 저항이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로서는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고용을 늘리든지 그게 여의치 않으면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하락분도 보전해 줘야 하는데, 인건비를 줄이려는 기업들이 편법·불법 운영, 무리한 자동화를 밀어붙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휴일 근로에 연장근로 가산금을 소급 적용하는 문제도 기업들로서는 충격이다. 중소기업은 존폐 위기에 몰릴 우려도 있다.

그렇더라도 노동시간 단축은 더 좌고우면할 일이 아니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시대적 대의보다 앞에 놓일 수 있는 사안은 없다. 국회는 기업의 충격을 덜어 주기 위해 처벌 면제 규정도 두기로 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2년, 미만 사업장은 4년간 법 적용을 유예한다는 방침이다. 실업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노사 합의를 통해 현실적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청년실업률은 지난달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 대책을 입으로만 외치며 고작 알바 일자리나 늘리는 눈속임은 그만둬야 한다. 한발씩 양보하지 않고서는 당장 일자리 창출의 묘수는 없다.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절벽과 청년 실업을 구제하는 기폭제가 돼야 한다.



8. 말꼬리 잡는 ‘文 전두환 표창장’ 비난 그만두라

본격적인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면서 인신공격과 마타도어가 난무하고 있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경선 후보가 지난 19일 TV합동토론회에서 한 ‘전두환 표창장’ 발언도 논란을 불렀다. 다른 정당과 같은 당 후보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경솔한 발언에 대해 광주와 호남 민중에게 사과하라”, “공개적으로 전두환 표창을 폐기하라” 등의 비난을 퍼부었다. 특히 국민의당은 문 후보 캠프 측이 “왜곡하지 말라”고 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 너무나도 닮은 모습”이라고 공격했다.

문 후보의 발언은 이렇다. “저는 특전사 공수부대 시절 주특기가 폭파병이었다. 12·12 군사반란 때 반란군을 막다가 총을 맞아서 참군인의 초상이 된 정병주 특전사령관으로부터 폭파 최우수상을 받았다. 나중에 제1공수여단 여단장인 전두환 장군, 반란군의 우두머리였던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문 후보의 발언이 결코 문제가 된다고 보지 않는다. 군 복무를 열심히 했다는 말을 하다 나온 것으로 본다. 문 후보가 복무할 당시는 전두환씨가 반란을 통해 전면으로 나서기 전이었다. 문 후보는 전 여단장에게 충성하기 위해 열심히 복무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성실하게 복무해 표창장을 받았는데 그때 여단장이 전두환 장군이었을 뿐이라고 말하려 했을 것이다.



5·18 관련으로 투옥됐고 군부독재와 싸워 온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말꼬리를 잡아서 상대를 흠집 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무리 표가 급해도 말도 안 되는 공격을 하는 것은 네거티브 전략도 아닌 마타도어에 불과하다.

각 진영이 뒤늦게 과도한 공격이었음을 인정하고 이 발언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을 그만두자고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민주당 안희정 후보는 “군 복무를 성실히 했다는 애국심 강조 끝에 나온 발언”이라며 “5·18 광주 정신을 훼손하고자 했던 발언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바른정당의 대선 주자인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전두환 개인’에게 받은 것이 아니라 ‘특공여단장’에게 받은 표창이기 때문에 비판하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경선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인신공격이 벌써 도를 넘어서고 있다. 미래를 밝힐 비전과 정책 대결은 보이지 않는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구태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경선 후보들은 변변한 정책이나 공약하나 내놓지 못한 채 연일 막말에 가까운 직설적인 화법으로 서로 때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차기 정권은 대한민국의 국운을 살려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짊어지고 있다. 북한의 핵 도발을 둘러싼 안보 위기는 물론 사드 배치를 둘러싼 국내외 갈등, 미·중 간의 패권 경쟁과 심각한 경제위기 등 어느 하나 허투루 여길 수 없는 난제들이 쌓여 있다. 미래를 열어 가는 시대정신을 제시하고 구체적 공약과 정책을 통해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후보만이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이다.



[매일경제]

9. `근로시간 단축` 일자리 늘리지 않으면 오히려 해악이다

여야 4당이 주당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 이내로 축소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연간 근로시간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766시간에 비해 훨씬 길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이때 일자리를 나누고 근로자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근로시간 단축은 지향해야 할 과제다.



노·사·정이 2015년 9월 대타협에서 근로시간 단축에 합의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여야가 합의한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늘리기'라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는 방식인지 의문이다. 여야는 기업 규모에 따라 2019년 또는 2021년부터 강제 시행할 계획이라는데 너무 서두르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근로시간을 주당 52시간으로 줄이면 기업 부담이 연간 12조원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중 8조원 이상은 중소기업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런 충격을 갑작스럽게 안기면 경쟁력 약화에 그치지 않고 아예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노·사·정은 2015년 대타협 때 2024년까지 충격 완충기간을 뒀다.



기업 규모에 따라 2020년까지 근로시간을 단축하되 그 후 4년 동안 특별연장근로를 주당 8시간까지 허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경기 변동에 따라 생산량이 급증한 업종, 인력을 구하지 못해 납기를 채우지 못하게 된 중소기업 등이 노사 합의를 거쳐 특별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이 조항이 이번 여야 합의에서 사라졌으니 걱정이다. 

이처럼 밀어붙이기만 하다가는 노사갈등을 확대시킬 우려도 있다. 그동안 근로자들은 특근수당을 통해 임금을 보전받아 왔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급여·수당이 줄어들면 대기업·공공기업에선 강력한 노조를 내세워 기득권을 유지하는 반면 중소기업 근로자들만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질 수도 있다. 

여야 정치권은 휴일근로에 대한 임금 할증률을 아직 결정조차 하지 못했다. 그동안 연장·야간·휴일근로에는 임금을 50% 할증해 왔는데 노동계는 앞으로 휴일근로 할증률을 100%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치권은 눈치를 보고 있다. 50% 할증률도 이미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인데 여기에 더 할증률을 높이자고 하는 것은 '일자리 나누기'라는 취지를 망각한 것이다. 그저 제몫 챙기기일 뿐이다.



프랑스는 1999년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늘리려 했으나 임금 삭감을 병행하지 못한 탓에 일자리는 늘리지 못하고 인플레이션만 부추기는 실패를 맛봤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늘리려 한다면 기업에는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하고 근로자들에게는 고통 분담을 설득해야 한다.



10. 고교중퇴 흙수저 방준혁이 보여준 불굴의 기업가정신

국내 최대 모바일 게임업체 넷마블게임즈가 오는 5월 최대 13조원의 상장 대박을 터뜨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임 대장주로 등극하게 될 뿐 아니라 올해 공모주 시장의 최대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방준혁 넷마블 이사회 의장이 보유한 주식가치는 3조원을 넘어 이해진 네이버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을 제치고 국내 6위 부호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글로벌 업체에 크게 밀리던 모바일 게임시장에서 넷마블의 질주는 국내 게임산업 경쟁력 향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상장 잭팟을 터뜨린 방 의장이 고교를 중퇴한 소위 '흙수저'라는 점이 주목을 끈다. 넷마블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마치지 못한 그가 두 번의 창업 실패 후 2000년 설립한 회사다. 창업 4년 만에 CJ에 800억원을 받고 기업을 팔 정도로 성공했지만 그가 떠난 후 기업이 흔들리자 다시 지분을 사들이고 한물간 PC 온라인 게임 대신 모바일 게임에 집중하면서 기업을 살려냈다. 대단한 학벌도, 엔지니어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가난에도, 사업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는 게 그의 유일한 무기였다.

방 의장은 지난해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에서 "나는 진품 흙수저다. 성인이 될 때까지 한번도 내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고 학원비가 없어 신문 배달을 하며 학원에 다녔다"고 했다. 그런 그였기에 스펙보다는 역량을, 학연과 지연보다는 고난의 경험을 중시해 인력을 뽑았고 이들과 같이 혁신과 도전에 나섰다. 그의 성공 스토리는 정주영, 이병철, 김우중 등 불굴의 패기와 도전정신으로 꿈을 향해 돌진했던 1세대 기업인들의 기업가정신을 떠오르게 한다.

1970~1980년대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기업가정신은 갈수록 쇠퇴하고 있다. 빽빽한 규제가 기업인을 주저앉게 하고 헬조선, 흙수저 등 자학적 문화가 젊은 세대를 움츠리게 하고 있다. 지독한 일 중독자이자 승부사인 방 의장의 성공은 도전보다는 포기, 희망보다는 좌절에 익숙한 청년세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방 의장은 이제 공모자금을 인수·합병(M&A)에 활용해 글로벌 제패의 꿈을 꾸고 있다. '2020년 세계 게임시장 톱5'라는 목표를 달성하며 다시 한번 잭팟을 터뜨리기를 기대한다.





주요신문칼럼



1. [아시아경제][소곤소곤 그림 이야기] 노년, 그 아름다움의 빛깔

아름다운 노년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둠속에 빛나는 촛불과 같다 .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하여 공간 전체를 빛으로 물들일 수 있고 부드러운 따스함에 차가움을 녹일 수 있으며 다가가면 갈수록 세기가 강해져 환한 빛을 느끼게 하는 존재, 노년만이 가지는 고귀함이다. 

노마식도(老馬識途)라 하여 늙은 말이 길을 안다는 뜻으로 연륜이 깊은 사람에게 삶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는 사자성어가 있다. 세상 사는 올바른 이치에 세월의 무게가 더해져야 더욱 빛을 발하는 일이 어디 한두 개인가? 예부터 어수선한 현실을 바로 잡아줄 혜안은 삶의 경험이 쌓인 연장자를 통해 얻었다.



촛불 앞에 두 손 모아 기도 드리는 노파한테서 삶의 연륜이 묻어난다. 주름투성이인 얼굴과 투박한 손, 남루한 옷차림의 노파지만 겸손과 절제를 품고 소망을 기원한다. 노파에게선 어떠한 과욕도, 과장도 찾을 수 없다. 생을 관조하고 세상 이치에 순응하며 쌓인 노년의 온화함이아름답게 빛날 뿐이다. 

세상 누구도 노인의 주름을 보고 비난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내보이는 아집, 불친절함, 괴팍함 등 정신의 주름살을 보며 늙음을 비난하는 거다. 아름다운 노년은 모두에게 존경받고 미숙한 젊음을 순화시키고 교화시킨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시대의 요구를 듣지 않고, 세대와 교감하지 않는 일그러진 노년들로 어지럽다. 젊은 세대는 연장자의 가르침을 지표 삼아 세상을 살아야 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도 시대의 요구가 무엇인지 귀 기울여 화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잘 물든 단풍이 화사한 봄꽃보다 예쁘다라고 법륜 스님이 말씀하셨다. 단풍은 낙엽 진 후에 책갈피에 꽂히지만 떨어진 꽃은 그대로 버려지는 거란다. 
세월을 인내한 단풍의 고운 빛깔처럼 잘 늙은 노파의 주름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

영원히 늙지 않는 젊음을 갖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불가능을 좇는 것만큼 허무한 일은 없다. 그림속의 노파는 젊음을 돌이키는 데 혼신을 다하는 듯하다. 쭈글쭈글한 가슴을 드러낸 채 정성 들여 머리를 빗고 비싼 깃털을 꽂고 제일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을 해 보지만 주름을 감출 수가 없다. 장미꽃을 들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듯 거울을 응시하는 모습 어디에도 젊음의 싱그러움은 없다. 심지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심취한 듯한 노파의 나르시스에 슬쩍 웃음마저 난다.



반면 노파의 시중을 드는 하녀는 남루한 옷차림에 빗질조차 하지 않은 더벅머리의 여인이지만젊고 싱싱하다.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린 듯한 노파의 늙은 가슴이 터질 듯 탱탱한 하녀의 젊음과 비교되어 더욱 애처롭게 느껴진다. 작가는 또한 한 손에는 젊음을 상징하는 장미를, 다른 한 손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금송화(장례식꽃)를 들고 있는 노파를 그려 생과 사의 아이러니를 극명히 보여준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허무하고 허무한 육체의 젊음이다. 인간은 태어난 그 시간부터 매 순간을 늙어간다. 늘 함께 할 것 같던 젊음의 찬란함도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 빛을 잃는다. 젊음을 돌이킬 순 없다. 그게 인생이다. 

언제부터 인가 한국은 성형왕국이 돼 버렸다. 보톡스니 필러니, 젊음을 모방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지름길이고 노화로 인한 얼굴 주름이 가난과 게으름의 상징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이다. 심지어 수백 명의 아까운 목숨이 바다에 수장될 때 대통령이 그 시간에 성형을 했느냐의 여부가 나라의 큰 이슈가 되었었다. 



 웃을 수도 없는 이 슬픈 현실을 옹호하려 일부 노년은 길거리에서 확성기를 들고 성형이 뭐 잘못이냐며 주름진 눈을 치켜 뜬 채 세상을 향해 삿대질 한다.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야 할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도리가 악다구니에 묻히고, 소통하지 않는 고집이 세상에 지천인 현실이 너무도 답답하다.



젊고 아름다운 사람은 자연의 산물이지만, 늙어 아름다운 사람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라고 엘레노어 루스벨트가 말했다. 최고의 미적 가치라 할 수 있는 성숙미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무르익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해야 한다. 설익은 그 무엇은 절대 감동을 줄 수 없다. 바닥을 응시하고 있는 렘브란트의 노파는 삶을 인내하고 생을 관조한 오래된 연륜에서 우러나는 원숙미가 있다. 그 노년의 아름다움이 렘브란트의 빛의 효과와 함께 우아하게 발현된다.

잡지 못할 젊음에 얽매여 현재를 손에 넣지 못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사람은 믿는 만큼, 자신감을 갖는 만큼, 희망하는 만큼 젊어질 수 있단다. 100세 시대를 살며 노년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새로운 사회계층이 형성되고 있다. 노년이 바로 서야 그 사회는 건강해진다.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



2. [서울신문][박형주 세상 속 수학] 듣는 것과 보는 것의 수학

내가 자란 소도시에서 아직 TV가 생소하고 귀했던 때, 라디오를 통해 샹송과 칸초네를 처음 접했다. 여행자의 입담으로 듣는 세상 얘기는 신기했고, 동경하던 과학자의 삶에 대한 실마리도 이런저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얻었다.

라디오는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창이었고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꾸어 무선으로 멀리 전달한다는 건 경이로웠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서울에서 대전까지 전달될 리 없다. 소리라는 게 음파여서 매초 몇 번 진동하는지(주파수)가 제각각인데, 저음은 천천히, 소프라노 소리는 빨리 진동한다. 더 빨리 진동하면 귀에 들리지 않는 초음파가 된다. 빨리 진동할수록 멀리 전달된다.

결국 멀리 가는 고주파에 소리를 실어 보낼 생각을 하게 됐다. 도착 후에 고주파 부분을 제거하면 드디어 귀에 들린다. 두 파동을 더하는 방법에 따라 진폭 조정(AM)과 주파수 조정(FM)으로 나뉜다. 기본적으로 두 파동의 합이라서 삼각함수의 덧셈을 연상하면 된다. 조금 더 수학을 공부해서 시간 공간과 주파수 공간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법을 터득하면 이 모든 것은 투명하고 깔끔해진다.

아쉽게도 라디오의 전성기는 갔다. TV는 정보 전달의 매개로, 텍스트와 영상을 결합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쌍방향 소통의 매개체로 자리 잡았다. 예전 사진 전문가의 장비보다 더 우수한 화질의 카메라가 스마트폰에 달려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임을 실천하는 SNS 전사들은 매일 온갖 사진과 영상을 온라인에 올린다.

사진은 어떻게 저장하고 전송하는 걸까. 여권 사진 한 장에 가로줄 2000개와 세로줄 1000개를 균일하게 자로 그리면 사진은 아주 작은 네모 200만개로 갈라진다. 각각의 네모 하나를 가리켜서 화소라고 한다. 각 화소는 워낙 작으니 균일한 색깔이라고 간주하면 200만 화소 사진을 얻는다. 귀찮아서 가로줄 200개와 세로줄 100개의 2만 화소로 나누고 각 화소에 균일한 색을 칠한다면 모자이크처럼 엉성한 사진이 된다.

각 화소는 하나의 색깔이니 빨강(R), 녹색(G), 파랑(B)을 적당히 섞어서 만들 수 있다. 그러니까 하나의 화소는 다음(23, 16, 250)과 같이 숫자 세 개의 3차원 벡터로 표현된다. 첫 가로줄 각 화소의 숫자를 기록하고, 다음에 두 번째 줄로, 이렇게 2000줄의 화소들을 모두 숫자로 기록한다.



​그래서 사진은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총합이다. 이 숫자들을 전송한다. 받은 사람은 처음 숫자 세 개를 합해서 하나의 색깔을 만든 뒤에 작은 네모에 그 색깔을 채운다. 다음 숫자 세 개는 두 번째 네모에 채우는 색깔이다. 결국 200만개의 네모는 모두 색깔로 가득 차고, 원래 보낸 사진이 된다.

이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는 수학 문제가 출현한다. 숫자를 이진법으로 바꾸어 0과 1만 사용하면 전기신호 유무로 표현할 수 있으니 기록과 전송이 쉽다. 디지털 통신이다. 잡음 때문에 중간에 0이 1로 바뀌면 어쩌지? 신호 0110을 보냈는데 중간에 잡음이 생겨서 0111로 바뀌어 도착해도 이 오류를 탐지하고 교정할 수 있는 수학 이론인 코딩 이론이 등장한다.

8비트 컬러의 200만 화소 사진을 전송하려면 4800만개의 0과 1이 필요하다. 이걸 전송하려면 날이 샌다. 화질에 영향을 많이 안 주면서도 화소 수를 줄이는 압축이 필요하다. 결과물인 압축 알고리즘 JPEG와 MPEG는 이젠 표준어의 반열에 올랐다.

모두 현대 수학이 성공적으로 해결한 문제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더 많다. 흥미진진하다.



3. [조선일보][일사일언] 어머니와 놋그릇

놋그릇을 보았다. 인사동을 지나면서다. 놋그릇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골동품 가게에서나 볼 수 있다. 물론 방짜유기라고 해서 부잣집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고들 한다.



놋그릇은 내게 그리움의 대상이다. 관혼상제가 엄격하던 집안, 제삿날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놋그릇을 꺼냈다. 놋그릇이 담긴 무거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우물가로 가는 어머니 손에는 짚단과 잘게 부순 기와 가루가 들려 있다. 어머니는 짚에다 기와 가루를 묻혀 놋그릇을 닦는다. 해 본 사람은 안다. 그 일이 얼마나 단조롭고 지난한지를.



단지 엄마 곁에 있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우물가를 서성거렸다. 동짓달 제삿날은 엄청 추웠다. 두 귀가 빨갛게 얼어갈 때쯤이면 그릇 닦기는 끝났다.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놋그릇을 머리에 이고 돌아오는 길, 길가 사시나무는 윙윙 바람 소리를 내었다. 아주 어린 시절이다.



기억은 꼬리를 문다. 오랫동안 한옥에 살았다. 봄이 오면 어머니는 방문들을 물가로 가져갔다. 겨울을 나며 누렇게 변색된 문종이를 물에 불려 벗겨 낸 뒤 새 창호지를 발랐다. 무거운 다듬잇돌 밑에 곱게 말려 놓은 은행잎들은 문 중앙에 장식용으로 붙여졌다. 햇살이 비치면 유난히 노랗던 은행잎들이 어제같이 선명하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아버지의 저녁밥이 떠오른다. 겨울날, 어머니는 밥을 담은 놋그릇을 면수건으로 겹겹이 싼 뒤 아랫목이나 장롱 이불 속에 깊숙이 묻어 두셨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나가 있는 식구들의 밥을 따뜻하게 묻어둬야 밖에서도 굶지 않게 된다고.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대처로 통근하시던 아버지는 늦었다. 하루 서너 번 버스가 다니던 시절, 아버지를 기다리며 불러주던 어머니의 노래가 희미해질 때쯤이면 아랫목 놋그릇의 온기를 발가락으로 느끼며 어린 생명들은 잠이 들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때 우물가에서 칭얼대던 아이는 이제 중년이다. 어쩌다가 거리에서 놋그릇을 보게 되면 걸음이 멈춰진다. 창 너머 놋그릇에 뽀얀 얼굴의 어린 내가 보인다. 불현듯 코끝이 찡해진다. 봄이다.

​ 

4. [경향신문][구정은의 세계] 망령의 시대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는 오토바이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소설이다. 뿌리 뽑힌 채 질주본능으로만 존재하는 오토바이는 거대 도시를 꽉꽉 메운 인간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한다. “뒈져라, 형법 불소급의 원칙.” 문명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저급함, 죄를 짓고도 뉘우치지 않으며 스스로가 더럽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인간들, 늙고 병들고 타락한 나라를 향한 이단아의 처절한 외침이다.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언술이 곳곳에서 판을 친다. 얼마 전 미국에서는 연방 하원의원이 백인들의 문명, 백인들의 문화를 거론했다. 미국이 스페인에서 필리핀을 빼앗던 시절에 나오던 케케묵은 말들이 21세기에 소셜미디어를 타고 울려 퍼졌다. 인종주의의 망령은 미국과 유럽이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쌓아 올린 이상과 삶의 기준을 흔들고 있다.


‘나치’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목소리를 높일 적에 이미 미국의 멕시코계 이민자들은 파시즘의 그림자를 느꼈다. 최근에는 캘리포니아의 한 예술가가 트럼프에 나치 표식을 합성한 광고판을 설치했다가 논란을 샀다. 서구인들에게 여전히 상처인 스와스티카 문양이 대로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장기집권을 꿈꾸는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유럽국들에 나치 딱지를 붙였다. 그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유럽은 우리가 자기네를 나치라 부르면 불편해하지만 바로 네가 나치 수법을 쓰고 있다”고 했다. 누군가를 보며 나치를 연상하거나, 나치에 비유하거나 하는 일이 어느 틈엔가 금기에서 풀려나버렸다.


프랑스에선 트럼프보다 극우 색채가 더 짙으면서도 약간 점잖은 척하는 마린 르펜이 대선후보다. 르펜은 나치를 대놓고 옹호해 온 자기 아버지를 당에서 내쫓으면서까지 중도 유권자들을 끌어당기려 하지만 그의 뒤에 있는 낡고 오래된 인종주의의 그림자는 좀체 옅어지지 않는다. 유엔에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을 ‘아파르트헤이트’로 규정한 보고서가 나왔다가 철회되는 소동이 벌어져 시끄러웠다. 인도의 힌두 민족주의자들은 종교차별 속내를 감추지도 않은 채 ‘뉴인디아’를 외친다.

인종주의와 파시즘의 부활이라고 하면 좀 호들갑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톤을 좀 낮춰 독재 향수 혹은 ‘권위주의의 재생’이라면 어떨까. 트럼프가 불러낸 로널드 레이건, 프랑스에서 우파 대선후보 프랑수아 피용이 들고나온 드골 향수는 양반이다. 필리핀에선 쫓겨난 독재자 마르코스가 ‘영웅’으로 복권됐고,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는 석방될 예정이다. 얼마전 페이스북에는 제주에서 서북청년단을 자처하는 우익집단이 간판을 내걸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다.

망령의 시대다. 과거의 이야기만 난무하고 미래의 이야기는 없다. 사회의 모든 목소리가 과거로 흘러간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과거를 불러낸다. 그럴 때 불러내는 과거는 상상과 조작된 기억으로 이뤄진 과거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위대했던 미국. 박근혜가 그리도 갖다 붙이고 싶어했던 한강의 기적. 모더니티로 이동해가는 데 실패한 이슬람 전투조직들의 극단주의도 겉모습만 다를 뿐이지 조작된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매한가지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를 제도와 국가가 모른 체하고 덮어두고 편들 때 사회는 과거를 놓고 싸운다. 과거를 불러 현재와 싸울 때 미래는 사라진다. 알파고가 바둑을 두는 시대에 삼성동 친박 시위대 입에서 나왔다는 ‘마마’는 대체 웬 말인가. 중국 무협사극을 보던 내게 딸이 물었다. 옛날 시종들은 모두 주인을 위해 목숨까지 내걸고 충성을 바쳤느냐고.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아 모르지만, 그렇게 계속 교육을 받으면 주인을 위해 목숨도 내놓게 될지 모르지”라고 답해줬다. 망령의 시대는 복종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신적 노예의 시대이기도 하다.

망령은 멋대로 떠도는데, 지나온 길을 담담하게 되돌아보는 건 너무나 힘든 작업이다. 프랑스 유력 대권주자인 에마뉘엘 마크롱은 지난달 “알제리 식민통치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가 우파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왕의 목을 자른’ 혁명의 나라라고 칭송받지만 프랑스에서 유력 정치인이 제국주의의 과거를 놓고 마크롱처럼 공개적으로 사과를 주장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프랑스가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사람들과 문화를 공유해왔다는 것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는 없다”며 궤변을 늘어놓는 피용 같은 정치인들만 있었을 뿐이다.


역사와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우리는 아직도 4·3과, 베트남전과, 미군 기지의 군 위안부 같은 문제들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다. 마루야마의 일갈은 단죄를 보지 못한 피해자들의 무익무해한 투덜거림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입 밖에 내 함께 말하게 될 때 역사가 새로 쓰인다. 뒈져라, 거짓으로 가득한 과거의 망령 따위.


5. [한국일보][기억할 오늘] 마르셸 마르소

프랑스 리모주(Limoges)에서 코셔(kosher) 정육점을 운영하던 유대인 아버지는 1944년 나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해됐다. 21세 청년 마르셸 멩겔(Marcel Mangel)이 아버지의 성 대신 프랑스혁명 영웅 프랑수아 세비앙 마르소-드그라비에(Francois Severin Marceau-Desgraviers)의 성으로 개명, 마르셸 마르소(MarcelMarceau)가 된 게 그 무렵이었다.

그는 레지스탕스였다. 나치와 비시정부 치하에 숨어 살던 유대인들, 특히 어린이들을 스위스와 연합국 진영으로 도피시키는 게 그의 임무였다. 게슈타포의 감시를 피해 자동차로, 때로는 어둠을 틈타 걸리기도 하면서 아이들을 무리 지어 인솔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침묵의 손짓 발짓 몸짓이 더 유효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두려움과 슬픔을 눅이고 용기를 북돋우기도 해야 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먼저 부모와 떨어져야 했을 그들의 신뢰를 얻어야 했을 것이다.


그건 말보다는 표정, 몸짓으로 전해지는 진솔한 기운 같은 것이어야 했을 것이다. 18세기의 마르소가 쥐었던 총과 지휘봉 대신 청년 마르소는 그렇게, 마임(mime, 무언극)을 선택했다. 

그는 생사를 건 저 레지스탕스 활동기부터 이미 마임의 거장이었을 것이다. 5살 무렵 어머니와 함께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본 뒤부터 마임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영어와 독일어에도 능통했다. 전후에는 프랑스 육군에 입대, 패튼 부대의 연락장교로 일했다. 

마르셸 마르소는 45년 해방된 파리의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 극장 샤를 뒬렝(CharlesDuyllin) 드라마학교에 등록해 본격적인 연기 수업을 시작했고, 47년 그의 평생 아바타가 된 ‘어릿광대 빕(Bip the Clown)’으로서 첫 무대에 섰다. 

긴 마임의 역사에서 마르소는 현대 마임을 대중화하고 새로운 문법을 정립한 배우로 불린다. 그는 감정과 행위, 공간과 시간을 드러내 보여주는, 함축적이고도 상징적인 몸짓들로, 때로는 말이나 글보다 더 섬세하고 웅장하게 인간과 세계를 구현했다는 평을 듣는다. 수다한 말이 침묵으로 끝난 뒤에, 그 침묵과 더불어 시작되는 게 마임이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마임은 말과 말 사이, 소통의 처음서부터 시작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의 마임은 시작되곤 했다. 마르셸 마르소는 1923년 3월 22일 태어나 2007년 9월 22일 별세했다.
반응형
LIST
Posted by 늙은최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