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신문사설
[이데일리]
1. ‘닭고기 가격’ 으름장, 정부의 책임회피다
이마트가 최근 백숙용 생닭 가격을 15% 올리겠다고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했다. 정부의 과도한 단속에 밀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이에 앞서 치킨 프랜차이즈인 BBQ도 가격을 올리려다 번복하고 말았다. 정부가 물가인상을 우려한다며 ‘협조 요청’을 했다지만 실상은 반강제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명백한 행정권 남용이며, 월권이다.
더욱이 닭고기 가격 인상 움직임은 정부의 정책 잘못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 조류인플루엔자(AI)에 초동단계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AI 발생 한 달여가 지나서야 위기 경보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올리는 등 뒷북 대응으로 닭 2900여만 마리가 살처분되는 역대 최악의 사태로 번졌다. 그 여파로 계란 파동이 일고 닭고기 가격이 뛰었다.
이런 상황에서 닭고기와 달걀 수급을 안정적으로 회복하려면 적어도 1년 가까이 걸린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치킨이 ‘국민 간식’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정부의 안일한 대응책이 키운 수급 불균형 사태다. 그렇다면 지금의 닭고기 가격 상승 요인을 행정력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은 책임회피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잘못을 업계에 뒤집어씌우는 꼴이다.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브라질산 ‘썩은 닭고기’ 파문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브라질 BRF업체가 썩은 닭고기 수출과 연루됐다는 미확인 소식에 BRF 닭고기의 유통을 즉각 중단시켰다. 하지만BRF가 문제의 닭고기를 한국에 수출한 사실이 없다는 브라질 정부의 발표에 다음날로 유통중단 조치를 해제했다. 수입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이틀 사이 오락가락 발표로 시장 혼란만 키운 꼴이다.
문제는 정부의 즉흥적인 대응으로 소비자들의 불신감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마트들이 진열대에서 브라질산 닭고기를 전량 거둬들이는 지경에 이르렀고, KFC 등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버거 제품 재료를 국내산으로 교체하는 등 파문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이런 식이라면 정부가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렵다. 닭고기 가격을 통제하는 동안 업계가 속으로 더욱 멍이 들고, 그 폐해가 결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2. 당내 경선은 '그들만의 잔치'인가
조기 대선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각 정당의 경선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여러 단체의 초청 토론회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역별 경선이 차례로 진행되는 중이다. 그러나 당내 열기에 비해 일반인들의 관심과 호응도는 크게 떨어진다. 예비후보들의 공약이 유권자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할뿐더러 서로 트집잡기 방식의 싸움에 치중하고 있는 탓이다.
예비후보들마다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 제시는 거의 없고 포퓰리즘 공약이나 과거 정부의 잘못을 들추는 식으로 선거를 몰아가는 것도 유권자들을 식상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지금대로라면 투표 참여율이 역대 최저로 떨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어느 누가 뽑히거나 마찬가지 결과가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심리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당의 경선 열기가 ‘자기들만의 잔치’로 여겨지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이 앞서가는 가운데 오늘 호남을 시작으로 충청, 영남, 수도권 등 순회경선이 순차적으로 실시된다. 특히 호남 경선은 승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미 현장투표 결과가 유출됨으로써 선거 공정성 여부가 도마에 오른 상태다. 당내 진상조사위원회가 이에 대해 “고의성의 없다”며 사태를 마무리 지었으나 반발은 여전하다.
보수진영의 의사를 대변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도 조만간 후보를 최종 선출하고 본선 채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러나 결집력은 미미한 편이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거치며 보수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전통적 지지자들의 관심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거기에 비한다면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지난 주말 광주·전남·제주 경선에서 압도적인 득표율을 올린 사실이 돋보인다.
문제는 각당의 후보 선출작업이 끝나더라도 서로 다른 당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절차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유권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면 이번 대선은 그것으로 거의 끝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만이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과 탄핵을 의미한다. 유권자들이 오는 5월 9일 선거 날짜를 임시 공휴일로만 간주하는 결과가 빚어질까 미리부터 걱정된다.
[서울신문]
3. 日 역사 왜곡하는데 소녀상 옮기라는 주일대사
일본의 역사 왜곡이 점점 심해지고 노골화하고 있다. 일본은 초·중학교에 이어 올해부터 모든 고교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을 넣었다. 미래 일본을 이끌어 갈 어린 학생들은 이제 초·중·고교에서 더 체계적이고도 반복적으로 잘못된 역사를 배우게 된 것이다. 이런 판국에 이준규 주일대사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에 대해 “이전이 바람직하다”고 말해 파장이 일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한·일 위안부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도 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최근 모든 고등학교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내용이 들어간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했다. 극우 보수파 아베 신조 총리의 집권 이후 일본은 2014년 초등학교, 2015년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내용을 넣더니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년에 걸쳐 고교 교과서도 전부 역사 왜곡으로 도배질한 것이다. 이번에는 한·일 간 위안부 합의 부분도 교과서에 처음 실렸다. 하지만 위안부가 겪은 참상보다는 양국 합의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체결됐다는 내용만 강조했다고 한다.
지난해 한·일의 위안부 합의는 과거사에 발목 잡혀 두 나라의 미래마저 어둡게 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반성과 참회가 전제였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일본 정부가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그릇된 역사를 치밀하게 주입하는 것은 위안부 합의 정신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역사의 도발이나 마찬가지다.
이 대사는 이런 일본의 망발을 가장 앞장서서 따져야 할 위치에 있건만 “소녀상 설치는 국제 예양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니 저자세의 굴욕 외교가 아닐 수 없다. 한술 더 떠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위안부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현재 주자 모두 위안부 협상 파기를 주장하는 상황에 주일 대사가 새 정권의 대일 정책에 대한 주문까지 하니 오죽하면 일본 언론까지 ‘이례적’이라고 비웃었겠는가. 이러니 일본이 우리나라를 더욱 얕잡아 보는 것이다.
민간 차원에서 건립된 소녀상에 대해 계속 말 바꾸기로 원칙도 없이 일본에 질질 끌려다니는 외교부를 보면 일본 못지않게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국민들이 많다. 외교부가 나설 일은 위안부 합의 준수가 아니라 일본의 역사 왜곡에 강력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4. 세월호 인양 성공, 의혹 말끔히 해소해야
세월호가 마침내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전남 진도 앞 맹골수도 40여m 물속을 빠져나오는 데 무려 1075일이 걸렸다. 수면에 완전히 부상한 세월호를 바라보며 피해자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도 참담함에 가슴이 막히고 말문이 닫혔을 것이다. 차디찬 바닷물이 선내로 들이닥치자 “나는 꿈이 많은데… 죽기 싫은데…”라고 울부짖던 단원고 학생의 절규가 가슴을 친다. 반잠수식 선박에 실린 세월호는 배수와 잔존유 제거 작업을 모두 마친 뒤 28일쯤 목포신항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제 세월호는 육지로 올라가 미수습자를 가족 품에 돌려주고 참사의 원인을 밝혀 줄 일만 남았다. 먼저 미수습자를 찾아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침몰한 지 3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더구나 물살 빠르기로 소문난 맹골수도였기에 미수습자를 수습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배 구석구석을 뒤지고, 여기서 안 나오면 맹골수도를 다 훑는 한이 있더라도 3년을 팽목항에서 버틴 미수습자 가족의 한과 응어리를 풀어 줘야 한다. “네가 신고 싶어 하는 축구화 사왔다”며 녹슬고 찌그러진 세월호를 향해 오열하는 모정을 생각하면 쉽게 끝낼 일도 포기할 일도 아니다.
세월호 침몰을 둘러싸고 잠수함 충돌, 해양수산부 은폐 의혹 등 그동안 온갖 풍문과 의혹이 난무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조만간 출범할 선체조사위원회의 활동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조사위는 국회와 유가족 대표가 추천하는 8인으로 구성된다. 활동 시한은 6개월이지만 한 차례 조사 기간을 연장할 수 있어 최장 10개월간 활동할 수 있다. 조사위는 최우선 과제인 미수습자를 수습한 뒤 침몰 원인과 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해야 한다.
당시 정부는 세월호가 조타수의 부적절한 조타로 무리하게 실은 화물들이 쏟아지면서 균형을 잃고 침몰한 것으로 결론 냈다. 그러나 대법원은 조타 실수보다 조타기의 결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조타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정부의 사고 원인 발표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의혹과 풍문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와중에 세월호 인양에 성공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세월호 인양을 대립과 갈등, 반목을 치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더는 세월호를 둘러싼 국론 분열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해수부 등 관련 부처도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 역시 세월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거나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앙일보]
5. 호남발 안철수 돌풍, 대선 새 변수 되는가
대선후보 경선에 돌입한 국민의당이 지난 주말 첫 경선지인 호남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25일 광주·전남과 제주에서 홍보 부족과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6만2000여 명이 투표해 당초 예상의 두 배 가까운 기록을 냈다. 26일 전북에서도 3만 명 넘는 유권자가 투표해 열기를 이어 갔다. 더불어민주당도 25·26일 호남 지역 ARS 투표에 이어 27일 광주 순회투표를 실시한 뒤 지난 22일의 현장투표 결과를 합산해 호남의 승자를 가릴 예정이다.
야권의 텃밭인 호남에서 개시된 두 당의 경선 레이스는 대선 길목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지율 1위를 고수해 온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세론’이 호남 경선에서 입증될 것인지, 아니면 비문 진영에서 강력한 후보의 부상으로 그런 흐름에 제동이 걸릴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였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당이 예상 밖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며 흥행에 히트한 점, 또 안철수 후보가 60% 넘는 득표율로 손학규·박주선 후보에게 압승해 ‘안풍’을 일으킨 점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번 대선이 특정 후보의 대세론을 속단할 수 없는 박빙 구도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유권자의 선택권 보장과 대선의 정통성 유지를 위해 다행스러운 결과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 파면에 따른 돌발적 조기 선거다. 선거일까지 40여 일밖에 남지 않아 유권자들의 집중적인 관심과 판단이 절실하다. 정당들 역시 어느 때보다 치열한 토론과 공정한 관리 체제로 경선을 치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심’을 장악한 기득권 후보가 민심을 거슬러 경선에 이기는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과 민주당 경선은 정당 사상 처음 도입한 완전국민경선제의 시험대란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민주당 경선은 214만 명 넘는 유권자가 참여를 신청해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하지만 현장투표 결과 유출과 후보들의 네거티브 싸움으로 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 주민등록증 소지자라면 누구나 투표할 수 있도록 한 국민의당은 무난히 첫 경선을 치렀지만 운영 미비로 사고의 가능성이 산재해 있다. 끝까지 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세계일보]
6. 정권용 사업에 기업 돈 끌어 쓰는 일 다시 없어야
정권용 사업에 돈을 대기 위해 기업 총수들이 은행 빚까지 냈다는 증언이 나왔다. 신동빈 롯데회장은 지난해 11월 검찰 조사에서 청년희망펀드와 관련해 “안 내면 왕따를 당한다며 내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당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해 개인 돈으로 롯데제과 주식을 사들인 신 회장은 수중에 돈이 없어 은행에서 70억원을 빌렸다.
그는 “일본, 미국에 살았으면 기금을 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최태원 SK회장도 수중에 현금이 많지 않아 은행에서 60억원을 빌려 출연했다. 광복절 특사로 수감 생활에서 벗어난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았던 그는 정권에 밉보여 혹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했다는 것이다. 권력을 동원한 ‘기업 팔 비틀기’가 아닐 수 없다.
청년희망펀드는 2015년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박 전 대통령이 일시금으로 2000만원, 매달 월급에서 20%를 기부하기로 약속하자 기업 총수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주머니를 열었다. 이승철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법정에서 “대통령이 낸다는데 가만히 있겠냐. 이것은 총수에게 압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정권용 사업에 금융권도 가세했다. 지난해 말 조사에선 기부자 중 52%가 13개 수탁은행 직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적 바람을 일으키기가 여의치 않자 정부가 금융권을 독려해 참가자를 늘린 것이다.
물론 청년희망펀드는 선의의 취지로 추진됐다. 하지만 권력이 앞장서고 기업이 밀어주는 식이 되다 보니 그만 빛이 바래고 말았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권력의 입김이 작용하면 왜곡되게 마련이다. 기업의 자율적 판단과 투자가 불가능해지고 사업 자체도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청년희망펀드 역시 대통령 탄핵사태를 맞아 현재 존속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경유착의 뿌리는 매우 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놓고 자신의 치적용 사업에 협조하라고 주문한다. 일렬로 죽 늘어서서 대통령에게 허리를 굽히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 된 지 오래다. 이런 후진적 관행이 권력과 재계 간에 뒷거래가 이뤄지는 시발점이 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정경유착을 근절하자면 재계의 반성과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전경련의 명칭을 한국기업연합회로 바꾸는 그 이상의 개혁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은 먼저 정치권력부터 변하는 것이다. 정권용 사업에 기업을 동원하겠다는 발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청년희망펀드처럼 아무리 희망의 수식어를 붙일지라도 그런 권력에는 희망이 없다.
7. 세월호 음모론 이젠 걷어내고 신뢰사회로 가자
세월호가 인양되면서 음모론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가 세월호 진실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인양에 늑장을 부렸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왔다’는 표현에 잘 압축돼 있다. 3년의 오랜 기다림과 안타까움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세월호 7시간’ 의혹과 맞물려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그제 밤 완전히 선체를 드러낸 세월호는 이르면 내일 목포 신항에 도착한다고 한다.
세월호 같은 대형 여객선을 통째로 인양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만큼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이다. 사고 해역은 유속이 워낙 빠르고 수심이 평균 37m에 이른다. 해상 크레인을 활용한 플로팅독 인양방식을 재킹바지와 탠덤리프팅 방식으로 바꾼 것이 불과 넉 달 전이다. 무엇보다 인양업체인 상하이샐비지의 장비 임차료와 인건비만 합쳐 하루 10억원에 달한다. 인양 방식을 놓고 오락가락한 것은 맞지만 인양 시기를 늦출 이유는 없었다고 봐야 옳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놓고 제기됐던 그간의 의혹들은 근거가 없는 거짓으로 밝혀지고 있다. 완전 부양된 세월호는 녹슬고 긁히고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처참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균열 등 외부 충격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암초나 다른 선박, 잠수함과의 충돌설, 심지어 폭침설까지 나돌았으나 낭설이었음이 명확해졌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선 무슨 대형 사건 사고만 났다 하면 음모론과 유언비어가 춤을 추기 일쑤였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 천안함 폭침, 비무장지대(DMZ) 내 목함지뢰 폭발, 김정남 독극물 살해 등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통합 수준은 1995년 이후 20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0개국 중 29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념·세대·계층·지역 간 갈등이 심한 데다 구성원 간에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서로 믿지 못하면 선진국 진입도, 행복한 사회 건설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 3년 만에 인양된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드리운 불신의 장막을 걷고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매일경제]
8. 천안함 폭침 7주기, 북한 도발 분쇄할 안보공약 안보인다
천안함 폭침 7주기를 맞은 26일 북한이 또다시 무차별적인 협박을 쏟아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등을 겨냥한 한미 군사훈련에 대응해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가 '선제적인 특수작전'에 나설 것이라며 위협했다. 7년 전 바로 이날 북한은 백령도 인근에서 초계작전 중이던 천안함을 어뢰로 공격해 승조원 104명 중 4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처럼 호전적이고 반인륜적인 그들이 또다시 도발을 책동하고 있으니 비상한 대책이 필요할 때이다.
한반도 안보 환경은 7년 전 그 비극적인 피격 사건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 북한은 3·4·5차 핵실험을 이어갔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도 강행했다. 지금도 북한은 핵실험을 또 준비하고 있고, 미국은 대북 선제타격을 배제하지 않고 있으니 자칫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북한이 도발에 나서는 순간 곧바로 응징에 나설 수 있도록 자주국방 능력을 강화하고 그 의지를 천명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미국·중국 등과 능동적인 외교로 긴장을 완화하는 노력도 긴요하지만 무엇보다 첫째는 우리의 각오와 자세다.
그런데 현실은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지난 24일은 제2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 등 북한의 무력도발을 되새기며 안보 의지를 다지는 '제2회 서해 수호의 날'이었다.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는 기념식임에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지도부와 대선 후보들은 불참했다. 천안함 7주기와 세월호 3주기를 앞두고 광장 시민들의 관심도 갈라졌다.
태극기집회는 천안함 전사자 추모에, 촛불집회는 세월호 진상 규명에 우선순위를 뒀다. 안보와 안전을 모두 아우르는 자각이 아쉽다. 문재인·안희정·안철수 등 야권 대선 주자들이 26일 천안함 희생 장병 묘역을 참배했지만 대선 후보들도 군복무기간 단축이나 모병제 등 포퓰리즘 공약으로 부화뇌동하기는 마찬가지다. 북한 도발을 분쇄할 공약과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어떤 위협과 도발을 하더라도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대선 주자들이 안보공약을 다시 다듬어야 한다.
9. 주한 美대사 두 달 넘게 공석 가볍게 볼 사안 아니다
주한 미국 대사 자리가 벌써 두 달 넘게 비어 있다. 오바마 행정부 때 한국에 부임한 마크 리퍼트 대사가 지난 1월 20일 귀국한 후 트럼프 행정부가 아직 후임자를 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주한 미국 대사가 지명되더라도 상원 인준 절차를 거쳐 실제 부임하려면 몇 달이 더 걸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후임자 인선은 여전히 누가 물망에 오르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깜깜 무소식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중국, 일본, 러시아 주재 대사를 모두 지명했다. 대통령 당선 후 한 달도 안 돼 공화당의 거물로 시진핑 중국 주석의 30년 지기인 테리 브랜스태드를 주중 대사로 지명했고, 올해 초에는 트럼프와 직접 대화가 가능한 월가 출신 윌리엄 해거티를 주일 대사로 낙점했다. 영국과 이스라엘 대사는 물론 세네갈과 콩고 대사도 이미 확정됐다. 그러나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에 보낼 대사는 내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는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지금 한반도 안보 상황은 어느 때보다 위중하다. 김정은 정권은 미국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한반도 안보 위기를 한껏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다.
주한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은 도를 넘고, 한·일 간 외교 갈등도 여전히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그럴수록 주한 미국 대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한·미 양국 간의 긴밀한 소통과 공조가 지금보다 더 절실한 때는 없었다.
그런데도 주한 미국 대사가 석 달째 공석으로 있으니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우리는 다음달 초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논의되더라도 그냥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 일본과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면서 정작 당사국인 한국을 건너뛰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주한 미국 대사 인선을 서둘러야 한다. 또한 윤병세 외교장관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더욱 긴밀히 연락해 한국의 리더십 공백에 따른 한·미 간 소통 부족 문제를 최소화해야 한다.
10. 3년만에 모습 드러낸 세월호 우리 모두 치유의 시간을 갖자
1075일 만에 수면 위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는 녹슬고 긁힌 남루한 모습이었다. 3년간 기다려온 미수습자 9명의 가족들과 희생자 유족들의 생채기 난 가슴은 이보다 더 처참할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에서 침몰해 탑승자 476명 중 304명이 숨진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큰 응어리로 남아 있다. 인양을 추진한 지 704일 만인 지난 25일 반잠수정에 얹혀 드러누운 채 수면 위로 올라온 세월호를 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수학여행 길에 올랐던 천진한 아이들의 허망한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슬픔과 트라우마, 분노를 남겼다. 세월호 인양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었던 진실을 규명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반잠수정에 올라온 세월호는 해수 배출과 기름 방제 작업이 순조롭게 끝날 경우 이르면 28일 목포 신항으로 옮겨지게 된다. 우선 9구의 시신을 수습해 한 맺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선체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가 가능해진 만큼 침몰 원인을 놓고 제기됐던 무수한 의혹도 해소해야 한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선체 복원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조타수의 미숙으로 균형을 잃고 침몰했다고 발표했지만 암초 충돌설, 폭침설, 제주 해군기지용 철근 과적설, 잠수함 충돌설 등 음모론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네티즌 수사대로 알려진 '자로'는 세월호 좌현 밑바닥 쪽이 군 잠수함과 충돌했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세월호는 현재 왼쪽으로 누운 상태이기는 하지만 외부 충격에 의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뭍으로 옮겨진 후 진상이 낱낱이 규명되겠지만 사회를 혼란하게 만든 온갖 억측과 분란에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인양 시기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맞물리면서 '고의로 인양을 늦췄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세월호 침몰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적폐가 한꺼번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배를 빠져나온 양심 없는 선원들, 돈에 눈이 멀어 무리한 선박 개조와 과적을 일삼은 선주,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해경의 무능함 등이 만든 참사였다. 정치권은 5월 9일 대선에 세월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기보다는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 재난시스템을 강화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계기로 삼아야 한다.
주요신문칼럼
1. [동아일보][횡설수설] 신세대 사로잡은 박막례 할머니
올 들어 젊은 세대는 ‘염병’(장티푸스의 옛말)이란 단어와 꽤 친숙해졌다. 요즘 가장 ‘잘나가는’ 유튜브 스타로 꼽히는 71세 박막례 할머니의 동영상을 보면 수시로 이 말이 출몰한다. 일상에서 입버릇처럼 튀어나오는 ‘염병’은 차진 전라도 사투리와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폭소를 자아낸다. 앞서는, 특검에 구인된 최순실을 향해 청소아주머니가 일갈한 ‘염병하네’가 ‘사이다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염병’을 웃음 코드로 바꾼 박 할머니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손주뻘 세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타로 떠올랐다. 그제 막 오른 ‘SNL 코리아’ 시즌9의 페이스북 홍보에 등장할 만큼 인지도가 치솟고 있다. ‘칠순의 크리에이터’는 손녀와 떠난 호주여행을 시작으로 요가와 네일아트, ‘치과 들렀다 시장 갈 때 메이크업’ 같은 뷰티 동영상을 올려 꾸밈없고 솔직한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젊은 여성의 뷰티 동영상 같은 형식인데 할머니의 엉뚱한 반응과 입담을 보는 재미가 톡톡하다. 데일리메이크업을 소개할 때 “얼굴 작아지려면 다시 태어나야 돼. 이거 바른다고 작아지나”라고 투덜거리는 식이다.
그 덕분에 할머니는 치과에 가면 의사가 사진 찍자고 따라 나오고 식당 가면 젊은 손님들이 알아보는 등 놀라운 신세계를 경험 중이다. 동영상의 기획 편집 촬영은 젊은 손녀의 몫이다. 남편 없이 자식들 키우느라 억세게 고생한 할머니랑 어린 시절 함께 살았던지라 정이 각별했다. ‘치매에 걸릴까 봐 두렵다’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손녀는 큰 결심을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여행을 떠났는데 그 동영상이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최근 교육방송에서는 조손세대가 둘만의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랑’도 선보였다. 어렸을 때 추억을 되새기고 싶은 시청자의 애틋한 마음을 염두에 뒀을 터다. ‘촛불과 태극기’가 상징하는 세대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평범한 할머니의 일상에 공감하는 젊은 세대를 보면서 대한민국에는 노년과 청년세대를 묶는 튼튼한 정서적 고리가 있음을 깨닫는다. 아직 희망이 있다.
2. [이데일리][데스크칼럼] 영화 '컨택트'의 소통법
“친구 만나는 시간에 공부나 해라.” “평생 함께할 친구란 말이야.” 아비와 아들의 표현은 다르다. 존중의 욕구든, 소속의 욕구든 결국 자아실현을 향해 나아감에도 대화는 통하지 않는다. “아니, 뭐가?”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알아?” 남자와 여자의 기준은 다르다. 상황이든, 감정이든 앞으로 사랑을 향한 다툼임에도 대화는 끊기고 만다.
5월9일 장미 대선을 앞둔 지금, 소통의 힘을 절감한다. 당마다 당원, 나아가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정책과 비전 대결이어야 할 당내 경선은 결국 네거티브 공방으로 변질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럴싸하게 가짜뉴스라고 포장된 유언비어로 공격만 퍼붓는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컨택트’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 곳곳에 조개껍데기 모양의 우주선 12척이 나타난다. 외계인이라면 인간을 납치해 실험이라도 할만하지만 공격은커녕 인사도 없다.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이론 물리학자(제레미 레너)와 함께 정부의 요청에 따라 우주선 안에 들어간다. 왜 왔느냐는 질문에 속시원하게 말해주면 좋으련만, 외계인은 처음도 끝도 헷갈리는 원 모양의 글자만 보여준다. 어느 순간 루이스는 처음과 끝이 이어져 있는 외계인의 표의문자가 뜻하는 시공간의 의미를 알게 된다.
관객은 영화의 종반이 돼서야 무릎을 치게 된다. 영화의 진행 기간 내내 루이스의 기억으로 표현된 장면들이 과거인지 미래인지 깨닫게 된다. 그 순간 시간 흐름에 따라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언어를 벗어나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인식한 외계인의 언어 체계를 이해하게 된다.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사피어 워프 가설’이 영화에 녹여져 있다. 생각의 표현도 다르고 방식도 다르니 인간과 외계인의 대화 자체가 그토록 어려웠던 게다. 루이스는 끝내 시공간을 아우르는 동시적 사고를 하게 된다.
세상살이도 이와 같다. ‘컨택트’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더라도 대선 주자와 국민, 하다못해 부장과 부원의 생각 방식도 그와 같지 않을까. 세상을 이해하는 출발 자체가 다르니 서로의 말의 내용이나 방식이 다르다. 서로 이해 못하니 ‘컨택트’의 한 장면처럼 불안감에 서로 먼저 공격을 하려 한다.
촛불과 태극기로 표출된 민심과 정치인의 현실 인식은 여전히 괴리가 있는 것 같다. 정치인의 욕망과 국민의 열망이 출발선조차 다른 탓이다. 정의실현, 경제발전, 국가안정 등 대선 주자가 내놓는 각오가 말의 성찬으로만 민심에 다가오는 이유다.
역지사지 (易地思之)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자. 권위에 따라, 성별에 따라, 직위에 따라, 책임의 정도에 따라 생각의 내용과 방식이 다른 법이다. ‘컨택트’의 루이스는 과거·현재·미래를 한순간에 인식하는 사고의 변화를 맞는 순간, 짧은 행복 후에 다가올 긴 슬픔을 받아들인다.
영화 초반 “처음과 끝은 나에게 더이상 무의미하다”고 말하던 루이스는 종반 ‘끝과 시작은 하나’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예정된 끝을 알면서도 시작한다는 말이다. 또 소통의 본질은 서로에 대한 주장보다는 이해를, 성공적 결과보다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관객에게 건넨다. 자신이 쓰는 언어로만 생각하는 부자도, 남녀도, 상사와 직원도, 정치인과 국민조차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메시지다.
3. [매경이코노미][고재윤의 ‘스토리가 있는 와인’] 샤토 데스끌랑
산천에 개나리와 벚꽃이 피어나며 봄의 향연이 시작됐다. 봄꽃의 생명력과 싱그러움은 겨우내 얼어붙은 대지를 깨운다. 일찍이 독일 작가 마틴 폰 보덴슈테트(Friedrich Martin von Bodenstedt, 1819~1892년)는 “사랑은 봄의 꽃” “긴 겨울에는 봄을 기다리며 와인을 마시고, 봄이 오면 기뻐서 와인을 마신다”고 노래했다. 향기로운 봄나물과 함께 와인을 마시며 봄을 만끽해보는 건 어떨까. 와인 전문가들은 초봄 봄나물과 어울리는 와인으로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과 미국 캘리포니아 진판델 로제와인을 추천한다.
이들도 좋지만 필자가 추천하는 ‘봄의 와인’은 따로 있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의 화사한 봄을 연상케 하는 ‘샤토 데스끌랑 위스퍼링 엔젤(Whispering Angel) 로제와인’이다. 프로방스는 지중해와 맞닿은 남프랑스 지역으로 이탈리아 국경에 인접해 있으며 2600년의 와인 역사를 갖고 있다. 방돌(Bandol), 툴롱(Toulon) 등이 유명한AOC(원산지 명칭 통제) 와인 재배 지역에 속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포도 품종을 주로 재배하고, 이 중 80%가 로제와인 생산지로 80여개의 와이너리가 있다.
샤토 데스끌랑은 19세기 프랑스 랑퀴(Ranque) 가문이 와이너리를 설립해 장밋빛 역사가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에 와이너리를 빼앗긴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전후에 샤토 라스꽁브(Lascombes), 샤토 페리에르(Ferriere), 샤토 프리외르 리쉰(Prieure Lichine)을 경영하는 소유주 알렉시스 리신의 아들 사샤 리신이 인수하면서 전환기를 맞는다.
사샤 리신은 1960년 프랑스 보르도 마고 지방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보스턴의 유명 해물요리 식당인 안토니스 피어4(Anthony'sPier4)에서 소믈리에로 일했고 이후 와인 수입 도매상을 운영했다. 특히 샤토 데스끌랑의 와인 양조는 세계적인 양조가 페트릭 레옹이 합류한 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페트릭 레옹은 프랑스 보르도대에서 양조학을 전공하고 샤토 바론 필드 로칠드에서 20년간 양조 기술 담당 매니저로 일하면서 미국의 오퍼스 원, 칠레의 알마비바 등의 명품 와인을 양조하는 데 공헌한 인물이다.
덕분에 샤토 데스끌랑에 대한 세계의 찬사가 쏟아졌다. 영국의 저명한 와인 평론가인 젠시스 로빈슨은 샤토 데스끌랑을 “세계 최고의 로제와인”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세계적인 와인 저널리스트 마추 주크는 가루스(Garrus) 로제와인에 로제와인 최초로 만점을 줘 와인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디켄터와 와인스펙테이터도 90점 넘는 점수를 주며 찬사를 보냈다. 또 대한항공은 퍼스트 클래스와 프레스티지 클래스에 로제와인을 제공해 인기를 끌었다.
샤토 데스끌랑은 최고급인 가루스, 중간급의 레클랑(Les Clans), 록 엔젤(Rock Angel), 그리고 대중적인 위스퍼링 엔젤 로제와인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미국에서만 매년 2만병 이상 팔리고 있다.
위스퍼링 엔젤 로제와인은 프로방스 전 지역에서 생산되는 품질이 우수한 포도를 선별하고, 포도나무 수령 80년이 된 그르나슈(Grenache) 90%, 롤(Rolle) 10%의 블렌딩을 기본으로 하며 생소(Cinsault)를 소량 첨가한다. 빛깔은 밝은 오렌지 핑크색 바탕 위에 아름다운 진달래꽃색이 비친다. 향도 진달래를 연상시키는 향과 복숭아, 장미, 멜론향이 아름답게 후각을 자극하며 산딸기, 체리향이 입안을 감싸 돈다. 적정한 산도가 매력적이고, 미네랄이 입안의 보디감을 더해줘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다. 음식과의 조화는 쇠고기 스테이크, 해산물, 샐러드, 전채 요리와 잘 어울린다. 가격은 3만원 정도로 품질 대비 가성비가 우수하다.
4. [매경이코노미][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조슈아 벨(Joshua Bell)
2007년 1월 어느 이른 아침, 워싱턴 랑팡플라자 지하철역에 바이올린을 든 거리의 악사가 나타났다. 청바지 차림에 긴팔 T셔츠, 야구 모자를 눌러 쓴 그는 출근길 시민들 앞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레퍼토리는 단순히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기엔 의외라 할 만한 것들이었다.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로부터 시작해 마스네와 마누엘 폰체에 이어 무려 바흐의 샤콘느까지 이어졌다. 바쁜 출근길 지하철역 앞에서 울려 퍼진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선율. 그 시간에 그곳을 지나간 사람은 1097명. 이 중 잠시라도 음악을 들은 사람이 7명이었고, 악사의 발 앞에 놓인 바이올린 케이스에 동전 한 닢이라도 던져 놓은 사람은 27명, 도합 32달러가 이날 펼쳐진 연주에 대한 관심과 대가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날 거리에 나선 악사가 미국이 낳은 최고의 클래식 스타로 꼽히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Joshua Bell, 1967년~)이었다는 점. 피플지 선정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꼽힌 ‘꽃미남’ 연주자며,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는 그의 평소 개런티는 1분에 1000달러. 그가 무대를 벗어나 무려 350만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길 위에 나섰지만 사람들은 그저 바쁘기만 했다.
아침부터 45분간 연주해서 받은 대가는 32달러. ‘조슈아 벨의 지하철 연주 실험’으로 알려진 이 결과는 한동안 화제가 됐고 유럽 등지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이뤄졌다.
미국 인디애나 출신인 조슈아 벨은 4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았다. 14세에 리카르도 무티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데뷔, 같은 해 애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특히 18세 때 발매한 첫 음반으로 그래미·그라모폰 등을 휩쓸며 스타로 부상했고, 인디애나대에서 학위를 받은 뒤 섬세하고 사려 깊은 연주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정통 클래식 외 다양한 장르로 영역 확대에도 열심이어서 영화 ‘레드 바이올린(The Red Violin)’의 음악고문이자 보이지 않는 연주자로 활약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를 시작으로 다수의 영화 음악과 뮤지컬, 재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도전하는 전천후 연주자다. 레코딩 목록 또한 다양해 ‘조슈아 벨, 그를 말하다’와 ‘바이올린의 목소리’ ‘바이올린 로망스’는 2004년 빌보드와 올해의 클래식 음반에 선정됐다.
벨은 1년에 200일 이상 투어 연주를 하고 틈틈이 영화 음악 녹음과 유명 TV프로그램에도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벨의 연주는 아름답고 유려하다. 그런 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선율을 즐기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쳤던 당시 사람들이 내내 안타까운 건 그래서다. 정말 중요한 것, 살아가야 한다는 이유로 잃어가고 있는 것, 그것들을 놓치지 말기를. 점차 짧아져서 한순간에 피었다가 훅 사라져버릴 이 봄처럼….
5. [한국일보][2030 세상보기] 처음이 서툰 당신에게
첫 등교, 첫 학기, 첫 직장, 첫 연애. 내게 처음은 설렘보다 낯설고 서툰 그 무엇이었다.
일터를 옮겼을 때, 나는 2주 동안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받은 적이 있다. 어디에 사는지, 누구와 사는지, 고향은 어딘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학교, 학번 등등 소위 호구조사가 이어졌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내 거주지와 가족과 동거여부와 학번을 드러내는 일은 불쾌한 일이다. 앞으로 같이 일할 동료라고 할지라도, 서로 잘 모르는 타인이기에 조심스럽다. 나의 가족 내력이 직무 능력과 관계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첫 인사를 호구조사로 착각한다. 그런데 직장에서만 이런 경험을 하는 걸까?
사람들은 처음 본 이에게 직업(혹은 소속), 출신지, 출신학교, 가족에 대해 묻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상대방의 배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개인을 파악하는 방식은 일, 학교, 가족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다. 직업이 없고, 부모가 없고, 고향이 없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은 무척 곤욕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처음 선 자리에서 타인을 고려하지 않은 질문은 반복된다. 그 까닭은 한국사회의 인사 언어가 빈곤한 탓이거나, 늘 그런 방식으로 관계 맺기를 해온 관습 때문이다.
새로운 곳에 들어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공간은 빨리 적응해야 할 낯선 곳이지만, 사람을 맞이하는 입장에서는 익숙한 자리에 낯선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맞이하는 사람들은 익숙함을 깨는 낯선 존재를 잘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라도 빨리 공통점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첫 만남에서 무례하게 학연, 지연, 가족을 묻는 것은 빠른 동질감을 찾으려는 행동이자, 타인의 낯섦은 자신과 익숙한 존재가 되기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뭇 남성들이 군대 이야기와 나이로 금방 서열과 친분을 쌓는 것처럼, 사람들은 낯섦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우리는 불편한 질문에 모두 답할 의무가 없음에도 보이지 않는 위계 때문에 그 불편함을 감수하려고 한다. 익숙함과 낯섦의 위계, 고용주와 노동자의 위계, 선배와 후배의 위계, 남성과 여성의 위계, 서울과 비서울의 위계 등. 이러한 위계는 서열관계를 더 견고하게 만드는 위계가 되기도 하고, 때로 이 관문이나 시험을 잘 통과해서 그 공간에 남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협상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된다.
훌쩍 봄이 왔고,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공채준비를 한다. 여기저기 새롭게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나날이다. 그런데 생기로움을 느끼기도 전에 죽음의 소식이 들려온다. 경기도에서 고등학생 네 명이 자살을 했고, 그보다 앞서 콜센터에서 실습하던 고등학생은 콜 수를 채우지 못해 자살을 했다. 무언가 시작해보기도 전에, 새로운 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한국사회는 새로 온 사람들에게 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얼마나 호의적이었나. 나이가 어릴수록, 경력이 낮을수록, 여성일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더 잦은 이동을 경험하고 폭력적인 노동환경을 강요 받는다. 마치 딸 같아서, 귀여워서, 친해지고 싶어서라는 말로 폭력은 일상이 되고 친절로 둔갑한다.
누구나 처음은 서툴 수 있지만, 처음이 아닌 사람들이 나중에 온 이 사람들을 맞이하는 방식은 서툴러서는 안 된다. ‘알아서 적응해라’는 무책임한 말은 통과의례의 긴장과 폭력을 견디라는 말과 같다. 처음 온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천천히 알아가는 데 우리는 낯섦을 조금 더 견딜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다리는 과정에서 처음 온 사람이 천천히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와 방법을 찾고 먼저 꺼낼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누구라도 처음에 선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