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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2월 15일 신문 브리핑 #

"매사에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사람은 결국 불행한 사람이다. 그들 뒤에 그림자처럼 따르는 것은 감사가 아닌 불평이다."
- 평생감사 카드


<< 정치/외교 >>
1.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협에 맞서 한.미 양국 군이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음
- 미국에 있는 패트리엇 1개 포대가 수송기에 실려 한국에 온 데다 3월7일부터 4월30일까지 시행되는 한.미 키리졸브.독수리훈련은 역대 최대.최첨단 규모로 진행됨
-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잇단 도발과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 조치 등과 관련해 16일 국회에서 연설하기로 함


<< 경제 일반 >>
1. 이달 들어 10일까지 수출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7% 넘게 줄어듬(관세청 자료)
- 2월 수출이 최종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면 한국 수출은 최장기 감소 기록(14개월)을 경신함

2.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낸 대형 조선3사가 올해 상반기 일제히 대졸 신입사원을 공채하기로 결정함
- 지난해 구조조정 등으로 1000명 이상의 인력을 내보낸 상황이라 올해 500여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해 인력을 충원할 계획임

3. SK텔레콤이 현재 LTE보다 200배 이상 빠른 5세대(5G) 이동통신 서비스를 오는 22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막하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행사장에서 세계 최초로 시연함
- 이번 시연을 위해 SK텔레콤은 노키아, 인텔 등과 협업할 예정이며, SK텔레콤이 시연에 성공하면 국내 차세대 통신 기술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임


<< 금융/부동산 >>
1. 15일 재개장하는 중국 증시 향방에 세계 금융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
- 지난주 춘제 연휴로 중국 증시가 휴장한 사이 일본 증시가 13% 대폭락하는 등 주요국 증시가 큰 폭 하락했기 때문이며, 중국 기업이 대거 상장된 홍콩 증시 H지수는 지난 11~12일 이틀간 7% 이상 폭락해 2009년 이후 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임

2. 금융위원회가 오는 3월14일부터 판매되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상품을 일임형ISA에 한해 은행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ISA 활성화 방안'을 발표함
- ISA는 하나의 통장에 예.적금과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상장지수펀드(ETF) 등 다양한 상품을 넣어 운용하는 것으로 만능통장으로 불림

3. 은행들이 본업인 예금.대출 영업이 아닌 오픈마켓(온라인 전자상거래사이트), 임대주택 사업 등을 통한 새로운 수익원 발굴에 힘쓰고 있음
- 우리은행은 오는 7월 오픈마켓 사업을 은행권 최초로 시작하며, 신한은행은 이달 초 '신한 중고차서비스'를 시작했고, 하나금융그룹은 KEB하나은행의 유휴점포를 활용한 임대주택 사업을 추진 중임

4. 사망신고 때 여러 가지 재산 조회(금융재산, 토지 소유, 자동차 소유, 국민연금 가입유무, 납부하거나 돌려받을 국세와 지방세 조회)를 한번에 신청할 수 있는 안심상속 원스톱서비스를 주소지와 관계없이 전국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음
- 행정자치부는 "지난해 6월 말부터 시행중인 정부3.0 안심상속 원스톱서비스의 이용자 편의를 대폭 개선해 15일부터 확대 시행한다"고 14일 발표함

5. 봄 성수기에도 부동산 경기가 맥을 못 출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고 있음
-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세계 경제 침체에 따른 금융.원자재시장 불안 등 대내외 변수가 부동산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며, 실수요자의 관망세가 계속되면서 지난해 말 이후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한국감정원 기준)은 6주째 제자리걸음을 함


<< 국제 >>
1. 국제 유가가 산유국들이 원유 감산에 합의할 것이란 기대감에 지난 12일 12%넘게 폭등함
-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3월 인도분은 배럴당 29.44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전날보다 12.3% 상승함

2. 베네수엘라 경제가 저유가와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파탄을 맞고 있는 가운데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추진하는 긴급조치 계획을 베네수엘라 대법원이 승인함
- 경제난 타개를 명목으로 베네수엘라 정부가 기업 경영에까지 개입할 수 있도록 한 긴급조치 계획에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음


<< 사회/기타일반 >>
1. 일터에서 수치심과 모욕감, 자괴감 등을 심하게 느껴 자살한 때도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옴
- 대법원 1부는 "남편 현모씨의 자살을 산재로 인정해달라"며 부인이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고 14일 발표함
- 사내 갈등과 업무 중 받은 모욕감으로 자살한 콘도업체 직원 이모씨도 대법원에서 산재를 인정받음


<< 오늘 신문의 경제관련 용어 >>
* 투자일임업
- 금융회사가 고객으로부터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지를 일괄 위임받아 투자자 개별 계좌별로 대신 자산을 운용해주는 금융업을 말함. 
자본시장법은 자본시장 관련 금융업을 △투자매매업 △투자중개업 △집합투자업 △신탁업 △투자일임업 △투자자문업 등 모두 6개로 구분하고 있음.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투자일임업 (한경 경제용어사전, 한국경제신문/한경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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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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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2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올리는 자료로 상업적 목적은 없으며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블로그 운영성향과 무관합니다.

 

주요 신문사설

[동아일보]

1.美 역대 최강 대북제재법안에 야당은 느끼는 게 없나

미국 상원이 10일(현지 시간) 역대 대북(對北) 제재 법안 중 가장 강력한 ‘2016 북한 제재와 정책강화 법안’을 참석 의원 96명 전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 사이버 공격, 지도층의 사치품 구입에 쓸 수 있는 달러 등 김정은의 통치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개인과 단체를 제재할 수 있는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을 둔 것이 핵심이다. 

북한만을 겨냥한 첫 제재법안이 될 이 법안은 이란 핵 동결을 이끌어낸 포괄적대(對)이란제재법이나 이란핵무장방지법처럼 강력한 강제성을 띤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이란제재법에 따라 2012년 이란과 거래한 중국의 국영석유무역회사에 미국 수출면허 금지 등의 제재를 내림으로써 중국을 압박해 이란 제재에 동참시킨 바 있다. 북한 제재법안도 행정부에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어 미국의 의지에 따라서는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이나 은행 제재가 가능하다. 관건은 미국이 중국과 외교 마찰을 각오하고 북핵 해결에 강하게 나서느냐다. 

표결에 앞서 26명의 의원이 7시간 동안 북을 성토하고 강력한 대북대응을 강조한 것은 고무적이다. 대통령선거 공화당 경선 후보인 마코 루비오 의원과 테드 크루즈 의원은 잠시 유세를 중단한 채 표결에 참여했다. 민주당 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의원도 표결엔 불참했지만 법안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는 등 미 의회는 선거보다 안보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 정부는 이제 북한이 이란처럼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미국과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그러나 한국의 국회는 북을 비난하는 결의안만 채택했을 뿐 북한인권법안을 11년째 묶어놓고, 테러방지법은 언제 처리할지 기약 없는 상태다. 오히려 정부의 대북 제재가 4월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북풍(北風) 카드’인지를 놓고 여야 간에 민망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북을 뼈저리게 응징할 방법을 찾기는커녕 서로 손가락질하는 이 나라 정치권을 세계가 어떻게 보겠는가.

2.북핵 해결을 위한 안보 위기, 박 대통령이 국론 모아야

북한이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 하루 만에 개성공단 폐쇄와 남북 간 연락 채널 전면 중단을 밝혔다. 북은 어제 오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통해 “개성공업지구를 파탄시켜 우리의 핵무력 강화와 위성 발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라며 개성공단 폐쇄 및 군사통제구역 선포, 17시(한국 시간 오후 5시 반)까지 남측 인원 추방, 모든 자산 전면 동결, 서해 군통신선 및 연락관 직통전화 폐쇄 등을 발표했다. 

북의 반발이 기습적이기는 하지만 예상됐던 일이다. 개성공단에 체류하고 있던 우리 측 인원 전원이 어젯밤까지 무사히 귀환한 것이 다행스럽다. 이로써 남북 간의 대화 창구가 완전히 끊기게 된 상황은 안타깝지만 북의 대응이 강경한 것은 그만큼 개성공단 중단의 타격이 컸다는 의미다. 

북이 개성공단에서 유입된 현금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썼다는 우리 정부의 발표에 대해 “초보적인 셈세기도 할 줄 모르는 황당무계한 궤변”이라고 주장한 것은 가소롭기 짝이 없다. 북이 마약·무기 밀매, 해외 근로자 임금 착취 등으로 김정은 통치자금을 조달하고 대량살상무기까지 개발한 것을 국제사회가 뻔히 안다. 북이 개성공단의 재개를 원한다면 핵을 포기하고 대화와 교류협력의 장으로 나오면 될 것이다. 

북이 이를 거부할 경우 남북관계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북에 대한 일방적인 퍼주기가 결국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 돌아온 것을 고려하면 지금의 한반도 안보 위기는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진통이고 언젠가는 거쳐야 할 불가피한 과정으로 봐야 한다. 문제는 북이 개성공단을 중단시킨 대가를 몸서리치게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한 대로 긴장의 수위를 더욱 고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핵과 미사일에 쏠린 국제사회의 이목을 남북 간의 충돌로 돌리기 위해서라도 북은 대규모 도발은 아니어도 후방 침투나 테러, 사이버 공격 등 은밀하고 추적이 쉽지 않은 도발을 할 개연성이 높다. 만반의 대비가 필요하다.

예측 불가능의 김정은이 핵 개발을 계속하는 한, 우리는 한 가닥 말총으로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다모클레스의 칼’ 아래 앉아 있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까지의 외교적 노력은 실패했고 더는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면,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도록 제재와 압박을 가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에 강력한 압박을 하지 않으면서 유엔 안보리에 강력한 압박을 주문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북은 성명에서 ‘남조선 인민들이 격분에 넘쳐 규탄하듯이’라고 남남(南南)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검토,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등 정부가 나라의 명운을 걸고 북핵 해결을 위해 꺼내든 대북 제재 조치에 국력을 결집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와 국민이 하나 되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국민과 여야 대표에게 현재의 안보 상황을 소상히 알리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야당도 당리당략을 떠나 도울 것은 도와야 한다. 우리가 일치단결해 안보 위기를 넘길 것인지, 잠시 발끈하다 집안싸움 때문에 제풀에 꺾일 것인지에 한반도의 장래가 달려있다.

[이데일리]

3.북한에서 벌어지는 공포정치 흔적들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 처형설로 북한 체제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그제 리 총참모장이 ‘종파분자 및 비리’ 혐의로 이달 초 전격 처형됐다고 한다. 사실로 확인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고모부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까지 처형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허튼소리만은 아닌 듯하다.

이로써 김 위원장 집권 4년 남짓에 총참모장 4명 중 3명이 숙청·처형됐다. 총참모장은 총정치국장과 인민무력부장 다음의 군 서열 3위로, 우리로 치면 합참의장 격이다. 작년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김 위원장의 연설 도중 졸은 데다 말대꾸한 ‘반역죄’로 재판 절차도 없이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됐다. 권력의 수뇌부조차 김 위원장 눈 밖에 나면 한낱 파리 목숨인 북한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들이다.

김 위원장 치하에서 처형된 간부가 벌써 100명 이상에 이른다. 일각에선 36년 만에 열리는 오는 5월의 노동당 7차 대회를 고위직 숙청의 분수령으로 점치지만 김 위원장의 ‘공포통치’가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때일수록 냉철한 정세 판단이 요긴하다. 공포통치가 군부에 대한 불신 때문인지, 내부 권력다툼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 어린 김 위원장의 자격지심 때문인지부터 가려야 정확한 처방을 내릴 수가 있다.

지나치게 잦은 군 수뇌부 교체야말로 김 위원장이 군부를 장악하지 못한 증좌라는 얘기도 그럴듯하나 온건파인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작년 말 석연찮은 교통사고로 죽은 것만 봐도 권력다툼이 한창이란 논리가 더 일리가 있어 보인다. 강경파가 득세해도 그렇지만 “아버지가 못해낸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김 위원장의 소영웅주의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예측하기 힘들다. 최근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된다.

최근 북한 상층부가 동요하고 있고 실제 탈북을 감행하는 경우도 늘어났다는 사실은 공포통치의 종막이 멀지 않았다는 신호탄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고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우리부터 단합해야 한다. 적전분열은 북의 섣부른 도발을 부추길 뿐이다.

4.글로벌 금융불안 맞설 카드 있는가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금리인상 속도를 늦추겠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옐런 의장은 그제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강하게 나타나면 금리를 올리겠지만 경기 흐름이 실망스럽다면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금리 추가 인상을 기정사실화해 왔던 입장에서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 언급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 양상이 미국에 있어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 흐름의 난기류가 중국의 위안화 가치 하락에서 비롯됐지만 미국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연준이 지난해 12월 기준금리를 7년 만에 0.25% 포인트 올리면서 자금이 미국으로 몰리는 과정에서 신흥국의 금융불안을 야기했지만 그 자체가 미국 경제에도 위협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이 기준금리를 또 올린다면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채질하는 셈이다.

아시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내 증시가 설 연휴로 휴장하는 사이 일본 닛케이지수가 폭락한 것이 하나의 사례다. 닛케이평균주가 지수는 지난 9일과 10일 연속 폭락함으로써 장중 한때 1만60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1년 4개월 만의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엔화 가치는 달러당 114.63엔을 기록하는 등 1년새 최고 수준이다.

일본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등 부양카드를 꺼냈지만 주식은 폭락하고 엔화는 강세를 보이는 기묘한 형국이다. 그나마 어제는 일본 증시가 건국기념일 휴장으로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홍콩H지수가 5% 넘게 폭락하고 코스피지수도 3% 가까이 떨어지는 등 아시아 금융시장이 시계 제로의 안갯속이다.

한국도 글로벌 금융 불안을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니다. 중국발 경기부진으로 위기를 맞은 가운데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고 있다. 일본 등 해외경제의 악재도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중이다. 다음주로 예정된 금통위를 앞두고 이주열 한은총재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경제위기 속에서 글로벌 금융시장 변화에 따른 총제적인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신문]

5.북 도발, 테러방지법 통과로 대비를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을 제재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범국민적·초당적 대처가 긴요한 시점이다. 국회도 이런 여론을 좇아 그제 본회의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 규탄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도 영 미덥지 않다. 이후 여야가 딴소리하고 있어서다. 어떻게든 북한의 핵미사일 실전 배치를 막아야 한다는 대의를 인정한다면 정치권도 소이(小異)에 휘둘리지 말고 대동(大同)의 자세를 보여주기를 당부한다.

김정은 정권은 우리 정부나 국제사회가 지원을 하든, 제재를 하든 핵무장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기세다. 북측이 지난날 핵실험을 강행한 후 유엔 안보리가 제재 방안을 조율하는 중인 며칠 전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지 않았나. 개성공단 가동으로 알토란 같은 달러를 챙기면서도 핵·경제 병진노선을 포기하지 않았던 김정은이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 등 독자 제재에 나섰다 해서 태도를 바꿀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예기치 않은 국지적 도발이나 대남 테러로 맞대응할 개연성이 농후하다고 봐야 한다.

이런 까닭에 일차적으로 철저한 군사적 대비 태세가 긴요하다. 북의 도발 기미를 사전에 탐지해 응징할 역량을 충분히 갖춰 놔야 한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건 북측이 테러를 자행할 틈을 주지 않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핵 문제뿐만 아니라 북한 정권의 주민 인권 유린이나 대남 테러에 대해서도 한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야당 일각의 태도는 실망스럽다. 기권한 5명이나 불출석자를 빼면 만장일치에 가까운 243명이 찬성해 ‘북 미사일 규탄 결의안’을 처리해 놓고 갈지자걸음을 하고 있어서다. 어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공위성 아니냐”며 북한을 역성드는가 하면 국민의당은 개성공단 중단에 대해 “자해” 운운하는 논평을 했다가 수정하기도 했다.

이래서야 가뜩이나 생명의 존엄성과 인권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둔감한 김정은 정권의 테러 도발 유혹을 끊어내겠나. 미 상원은 어제 역대 최강의 대북 제재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대로라면 북한과 거래를 하는 제3자도 제재를 할 수 있어 미국 기업도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국회는 ‘맹물 결의안’ 하나 내놓고 할 일을 다했다고 할 건가. 지금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국민의 안전과 북한 주민의 인권이지 북 지도부의 심기가 아니다. 미사일 규탄 결의가 진심이라면 여야는 계류 중인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을 속히 처리해야 할 것이다.

6.北 개성공단 폐쇄, 기업 피해 최소화해야

북측이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조치에 맞서 초강경 맞불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북측은 어제 개성공단의 우리 측 자산을 전면 동결하고, 우리 측 인원을 전원 추방했다. 아울러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한편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해 버렸다. 남북 간 강대강 대결 국면에서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과 근로자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갈 수밖에 없게 됐다. 철수를 준비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듯 빈손으로 쫓겨났으니 걱정이 이만저만 크지 않을 것이다. 물건 및 설비를 반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은 북측의 ‘몽니’에 울분을 삭이기가 쉽지 않다.

입주 기업들이 입게 될 피해와 관련, 정부는 ‘개성공단 기업 종합지원센터’를 설치해 입주 기업들을 지원하고, 11개 부처 차관급 인사들로 합동대책반을 꾸려 구체적인 피해보상 등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는 남북협력기금 대출원리금 상환 유예 및 특별대출, 경협보험금 지급, 운전자금 지원, 신용보증기금 특례보증 등 2013년 4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 당시의 지원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제발 입주 기업인과 근로자들의 입장에서 지원책을 세워달라는 것이다.

입주 기업 대부분은 해외나 국내에 대체공장 없이 개성에만 공장을 둔 영세업체들로 알려졌다. 이들에게 공장 가동 중단과 폐쇄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납기를 못 맞춰 거래처는 모두 끊기고 말 것이다. 당장 인력 구조조정이 시작될 테고, 도산 기업이 속출할 수도 있다. 수천명의 근로자와 그 가족들이 엄동설한에 거리로 나앉을 판이다. 북측의 핵·미사일 개발 중단을 전제로 우리 측이 취한 조치인 만큼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고, 실제 북측이 폐쇄를 선포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2013년 가동 중단 사태와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번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를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행해진 행정적 행위”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판단’ ‘행정적 행위’라는 대목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침해된 기업 활동과 손실에 대해서는 정부가 전적으로 보전해 주는 게 맞는 것이다. 입주를 독려할 때와는 달리 피해 보전은 생색만 낸다면 이후 누가 정부 시책에 호응하겠는가. 물건이나 설비, 자산 등 계량할 수 있는 손실 외에 거래처 단절 등 앞으로 발생할 예상 손실 등도 충실하게 반영해야 할 것이다. 입주기업들이 등을 돌린다면 대북 제재 효과 또한 반감될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는 사실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올인하는 북측을 제재할 수 있는 우리 측 ‘카드’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일견 예상됐던 조치이기도 하다. 북측이 폐쇄 조치로 맞대응함에 따라 이젠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됐다. 우리 내부의 단합된 의지를 보여줘 이번 조치의 효과를 극대화해야만 한다.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남남갈등 양상으로 치달아선 북측만 웃음 짓게 할 뿐이다. 정부·여당은 더 설득하고, 야권은 자제하며, 국민은 인내함으로써 혼연일체가 돼 북측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때이다.

7.비현실적 저출산 정책으로 ‘인구 절벽’ 못 막아

성인 97.5%가 정부의 저출산 정책을 못 미더워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사실상 거의 모든 국민들이 정부 정책이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의미다. 정부가 지난 10여년간 80조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했지만 합계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1.2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국민 불신이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그제 발표한 ‘저출산·고령화 대응 국민 인식 및 욕구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면 정부의 저출산 정책에 대해 응답자의 2.5%만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38.5%는 정부가 ‘예산 등의 한계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35.6%는 ‘일부 영역만 노력해 가시적 효과가 나는 데 역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결과는 그동안 정부가 항목만 늘려 찔끔 도와주는 백화점식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연 8조원 정도의 저출산 예산도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으로 ‘지원 수준 등이 현실과 맞지 않았다’는 응답이 30.9%로 가장 많았다. ‘가짓수는 많지만 내게 해당하는 정책은 없다’는 반응도 25.2%나 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기혼자들은 추가 출산을 하지 않는 이유로 48.8%가 ‘자녀를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들어서’라고 말했다. 뒤집어 보면 양육비 부담만 없으면 아이를 더 낳겠다는 뜻이다. 정부가 보육과 교육,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정책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스웨덴과 프랑스가 본보기다. 스웨덴은 1990년대 이후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보육 인프라 확보에 투자하고 있다. 어린이집, 종일 유치원, 가정 탁아 중 선택해 아이를 맡길 수 있고 급식을 포함해 모든 비용을 전혀 부담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선 임신에서 출산, 교육 전 과정에 현금이 지원된다. 두 나라 모두 출산휴가도 충분히 준다. 그 결과 스웨덴은 출산율이 1998년 1.5명에서 2014년 1.91명으로, 프랑스는 1994년 1.66명에서 2014년 2.08명으로 높아졌다.

정부는 올해를 정점으로 생산 가능 인구가 줄기 시작해 2050년이면 1000만명 이상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는 셈이다. 정부는 부모가 아이를 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워준다는 각오로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인구절벽’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중앙일보]

8.증시·원자재값 급락, 경제 운용의 틀 재점검해야

설 연휴가 지나고 문을 연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몸살을 앓고 있다. 어제 코스피지수는 3% 가까이 하락해 3년8개월여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코스닥도 5% 가까이 떨어졌다. 춘절 연휴를 끝낸 홍콩 항셍지수는 4.92% 급락했고, 일본 닛케이225지수도 이틀간 8% 빠졌다. 유럽과 미국 증시도 설 연휴기간 내내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일본·홍콩·독일 증시는 올 들어서만 이미 20% 이상 하락 중이다.

 추락하는 건 글로벌 금융시장만이 아니다. 실물 경기를 반영하는 원자재값과 각종 지표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난달 말 일시적으로 배럴당 30달러 선을 회복했던 국제유가는 다시 20달러 중반으로 하락했다. 해운 운임을 나타내는 발틱해운지수(BDI)는 사상 처음으로 300 이하로 내려가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절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외환시장의 출렁임도 심상치 않다. 일본 엔화는 마이너스 금리가 발표된 지난달 29일 달러당 121.39엔까지 떨어졌다가 지난 9일 114.21엔으로 급반등했다. 강세를 지속하던 달러가 약세 조짐을 보이고 위안화 가치도 중국 정부의 입맛에 따라 예측 불허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원-달러 환율의 하루 변동 폭은 7원90전으로 지난해 평균보다 1원30전 컸다. 금리·환율·주가·유가 등 경제를 좌우하는 4대 가격 변수가 일제히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이 변수들이 단기간에 진정되거나 예측했던 방향과 속도로 움직여 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경제 운용계획을 총체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내다본 올해 성장률은 3.1%, 물가상승률은 1.4%다. 여기엔 유가가 배럴당 40달러 선을 유지하고 중국 성장률이 6% 중반을 지킬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가정이 다 깨질 수 있는 상황이다. 비상시를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을 포함해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원유와 원자재시장에 이어 홍콩 외환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핫머니에 대한 대비책도 구체적으로 마련할 때가 됐다.

[매일경제]

9.한국 GDP대비 R&D 1위인데 성과 이렇게 미미해서야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은 4.2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위로 집계됐다. 투자총액으로 보면 중국의 5분의 1밖에 안 되지만, 경제 규모 대비 R&D 비중은 2위 이스라엘(4.11%), 3위 일본(3.58%)을 앞질렀다. 삼성전자의 R&D 투자총액는 전 세계 기업 중 2위를 차지했다. 기술 혁신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1980년대(GDP 대비 1%)보다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올해 국가 R&D 예산도 19조1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1% 늘었다.

문제는 R&D 투자 증가가 질적 성과를 견인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과학기술 논문(SCI) 한 편당 피인용 횟수는 세계 32위에 머물렀고, A급 특허 비중은 되레 낮아지는 추세다. 기술 수출액에서 도입액을 뺀 기술무역수지도 2013년 기준 51억9300만달러 적자라고 하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력에 비해 엄청난 R&D 투자를 하고도 효율성이 이렇게 떨어지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R&D 투자가 제품 개발과 제조업에 집중되고 기초연구에는 미미하게 투입되는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서울대 공과대학이 "끈질기고 탁월한 연구로 만루 홈런을 쳐야 하는데 번트(단기 성과와 논문 수 채우기)로 1루에 진출하는 데 만족했다"고 통렬히 반성한 것처럼 양적 성과에 급급해 질적 성과를 등한시하는 것도 문제다. 특히 정부의 R&D 자금이 나눠먹기식으로 방만하게 운영되는데 이를 감시할 수 있는 체제가 미흡했던 것도 연구의 질이 떨어진 원인이다. 

제대로 된 R&D 투자가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은 한미약품이 증명한 바 있다. 지난해 5조원대 신약 기술을 수출한 한미약품은 지난 15년간 R&D에 9000억원을 투자했고 2014년에는 매출의 20%를 R&D에 쏟아부었다. 기초·원천기술에 대한 R&D 투자를 늘리되 정부 R&D 투자의 경우 성과물의 70% 이상이 사업화 예산 부족으로 사장되지 않도록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매일신문]

10.행정력과 기업체 동참 절실한 남성 육아휴직

강은희 여성가족부장관이 올해 신년 업무 보고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가정 양립 문화 조성과 여성고용촉진정책을 중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가족친화인증기업 확대를 통해 아버지가 육아휴직을 편히 쓰도록 하는 기업문화로 바꿔가거나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에 따른 불이익 해소정책 추진 등은 바로 이를 위한 뒷받침이다.

여성기업인 출신인 강 장관의 의지와 정책 방향은 공감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여성 취업 증가와 저출산 고령화 추세를 맞아 여성`고용정책에서 반드시 반영돼야 할 현안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가정 양립을 위한 기업문화 정착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만만찮다. 이는 일`가정 양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육아휴직에 대한 통계를 보면 더욱 그렇다. 특히 대구의 통계치는 더욱 나빠 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육아휴직자 수는 8만7천339명으로 2014년 7만6천833명보다 14% 늘었다.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2015년 4천872명으로 전년 3천421명에 비해 42% 증가했다. 지역별로 보면 정부 정책과 제도의 혜택이 고르지 못함이 자명하다. 8대 광역시 가운데 대구의 지난해 육아휴직자 수는 2천412명으로 서울(4만351명), 부산(3천994명), 대전(3천232명), 인천(2천499명)에 이어 5위였다. 대구의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전년(69명)보다 늘어난 101명으로 서울(2천164명), 대전(201명), 부산(144명), 인천(118명) 뒤를 이었다. 

육아휴직제는 정부가 일`가정 양립을 위해 도입, 시행 중인 제도다. 하지만 통계처럼 지역적인 편차가 많은 게 현실이다. 대구의 이용이 낮은 것은 영세 중소기업이 많고 기업체의 소극적인 참여, 보수적인 분위기 등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역 중소기업 경우, 휴직제로 인한 대체인력 충원의 어려움이 큰 만큼 당국의 정책적인 배려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강 장관이 ‘대체인력 파견 뱅크’ 설립 같은 방안을 제시한 까닭도 여기 있다. 따라서 정부의 일`가정 양립 정책의 고른 수혜를 위한 세심한 정책 마련과 함께 기업체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행정력이 필요하다.

주요 신문칼럼

1.[한국일보]찰스 다윈 탄생…진화론 창사자 말년엔 지렁이도 연구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연구ㆍ저술 환경을 부러워하는 학자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돈 잘 버는 의사였고, 외가는 도자기로 유명한 웨지우드 가문이었다. 그 자신도 재테크의 귀재여서, 철도주식 투자로 ‘종의 기원’ 인세 수입 못지 않은 큰 부를 얻었다. 그의 집중력과 끈기가 ‘병적으로’ 뛰어났다는 말도 있다. 2009년 한 정신의학자는 다윈이 아스퍼거증후군(자폐성 장애)의 전형적인 증상을 지니고 있었다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가 ‘종의 기원’과 ‘비글호 항해기’ 외에도 방대한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데는 그런 저런 배경과 조건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다윈은 심지어 ‘지렁이의 활동을 통한 식물 재배 토양의 형성’이라는 책도 썼다. 그는 말년까지 다른 걱정 없이 오직 연구에 골몰했다. 

‘지렁이…’는 다윈이 숨지기 6개월 전인 1881년 10월 출간한 그의 마지막 책이다. 하버드대 과학사 교수 재닛 브라운(JanetBrowne)은 다윈 평전 ‘나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이경아 옮김, 김영사)에서 다윈이 책 원고를 출판인(존 머리)에게 전하면서 쭈뼛대며 했다는 말을 전한다. “제가 오랫동안 큰 관심을 가지고 매달린 연구 주제입니다. 솔직히 사람들이 이 주제에 관심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절 봐서 출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책 서문에도 그는 “이 책의 주제가 시시해 보일 수도 있다”고 썼다고 한다. 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를 논하던 그가 지렁이라니…, 하던 이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브라운은 “하지만 시시해 보이는 모습 뒤에 숨겨진 원리는 ‘미미한 힘과 그 힘이 축적되어 나온 결과’였다”(책 789쪽)고 썼다. 한마디로 그게 진화였다. 

말년의 그는 몸의 노쇠도 연구를 통해 잊곤 했다고 한다. 아들 레너드 다윈은 그 즈음, 노을 저녁 산책길에 다윈이 했다는 말을 전한다. “만약 다시 한 번 이 세상에 살게 된다면 매일 시 몇 줄을 꼭 읽을 거다. 그리고 ‘정신이 이렇게 썩지 않기를’바라셨다.”

다윈은 1809년 2월 12일 태어나 73년을 살고 1882년 4월 19일 별세했다. 사인은‘협심증으로 인한 실신’이었다. 심장이 힘을 잃어가던 마지막 순간까지 부럽게도, 그의 정신은 살아 있었던 듯하다. 그가 아내(에마 웨지우드)에게 남긴 유언은 “나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소. 당신이 얼마나 훌륭한 아내였는지 기억해요”였다.

2.[매일경제][CEO 심리학]좀처럼 뜻이 안맞는 직원…같이 밥부터 먹어보세요

강연이나 방송에서 가끔 필자가 이런 농담을 한다. "한국 사회에는 4대 인맥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학연, 지연, 혈연…." 여기까지는 청중이 다 아는 내용이다. 그런데 나머지 하나는 무엇일까?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다리시는 분들께 필자가 '흡연'이라고 말씀드리면 좌중은 폭소를 터뜨린다. 그러고는 꽤 많은 분들이 이것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고 뼈 있는 말임을 이내 깨달으신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런 일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항을 위해 열띤 회의를 하고 있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잠시 회의를 중단하고 휴식을 취한다. 당연히 회의 참석자들 중 애연가들께서는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올 것이다. 

그런데 다시 시작된 회의에서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온 사람들이 갑자기 결론에 도달하고 이후에 회의 내용이 급진전된다. 이런 사례들을 많이 보셨을 것이다. 그래서 "정작 회의 중에는 그런 말 없다가 잠시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자기들끼리 중요한 이야기를 다 한다"는 불평이나 푸념을 비흡연자들께서 많이 하신다. 오죽하면 어떤 분들께서는 담배는 피우지 않아도 사람들이 담배 피우러 나갈 때 꼭 따라 나가신다고도 하실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단순히 제한된 흡연 장소로 내몰린 애연가들끼리의 우스운 동질감 때문일까? 당연히 그 때문만은 아니다. 그래서 이 현상을 좀 더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보면 흡연과 같은 건강에 해로운 습관이 아닌 사소해 보이는 행위를 통해 소통과 논의의 진행을 훨씬 더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당연히 이 시대의 리더들께 중요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일을 위한 회의나 논의는 말, 즉 언어를 통해서 이뤄진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언어적 활동이 신체적 활동을 공유하면 더 촉진된다는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같은 동작은 같은 생각과 그 생각이 만들어내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 동작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연구를 네덜란드의 심리학자인 민규안 추(Mingyuan Chu) 교수와 영국 심리학자 소타로 키타(Sotaro Kita) 교수가 최근에 발표했다. 이들은 아주 사소한 동작들을 사람들에게 같이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특정한 방향을 가리키거나 머그컵을 만지작거리는 행동들이다. 이렇게 지극히 사소한 행동들을 같이 하게 되면 사람들 사이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관찰된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대화할 때 그 사람 의견에 동의하면서 점점 같은 결론에 도달할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단순히 "동의합니다" 혹은 "찬성이요"라고 무미건조하게 반응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더한다. 예를 들어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 '응' '오'와 같은 짧은 말들이 동반된다. 전자는 제스처에 해당하고 후자는 감탄사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사소한 동작을 같이 하게 되면 제스처와 감탄사 역시 동질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 쉬워지거나 합의를 하기 용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자, 이제 담배를 피우러 나간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무언가 작당을 해서 같은 결론에 도달하거나 중요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이유가 담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사소한 동작들을 같이 함으로써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제스처와 감탄사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더 쉽고 원만하게 의견을 주고받고 조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굳이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사소한 동작들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가벼운 체조는 굉장히 그나마 상식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에 더 좋은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예를 하나 들자면 밥을 같이 먹는 것이다. 식사라는 절차는 흡연보다도 훨씬 더 많은 동작들을 공유할 수 있게 한다. 같이 밥 먹고 난 뒤 회의가 더 잘되는 이유에 관한 심리학 연구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에 관한 좋은 이유가 하나 추가되는 순간이다.

3.[동아일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나무가 나에게

나무가 나에게 ― 이해인(1945∼ )

아파도
아프다고
소리치지 않고
슬퍼도
슬프다고
눈물 흘리지 않고
그렇게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견디는 그만큼
내가 서 있는 세월이
행복했습니다
내가 힘들면 힘들수록
사람들은 나더러
더 멋지다고
더 아름답다고
말해주네요

하늘을 잘 보려고
땅 깊이 뿌리 내리는
내 침묵의 언어는
너무 순해서
흙이 된 감사입니다
하늘을 사랑해서
사람이 늘 그리운
나의 기도는
너무 순결해서
소금이 된 고독입니다

사람들은 왜 이해인 수녀를 좋아할까. 왜 그의 시를 좋아할까. 간단하다. 맑고 깨끗해서다.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그의 시는 위안을 선사해 준다. 특정 종교를 떠나 기도하는 사람의 언어는, 간절한 사람들의 마음을 도닥여 준다. 힘들고 지칠 때, 무기력하고 답답할 때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힐링’의 키워드가 시대의 이슈가 되기 훨씬 전부터 그의 삶과 시는 사람들에게 힐링의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수도자도 사람이다. 그라고 왜 힘들지 않겠는가.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강한 것만은 아니다. 사람이니까 그도 아프다. ‘나무가 나에게’는 바로 그, 아픔에 대한 시인의 고백을 담고 있다. 많이 아팠지만, 많이 참았다고 말한다. 나무가 울지 않고 깊이 뿌리 내리는 것처럼 시인 역시 그렇게 살아 왔다고 한다. 이때의 뿌리란 인내와 사랑과 감사다. 나아가 그 뿌리는 언어이고 기도이며 시다. 무엇도 쉽게 태어나지는 않는 법. 이제는 이해인 수녀가, 단순하면서도 담백한 그의 시가 왜 좋을 수 있는지를 참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4.[동아일보][광화문에서/이동영]삼성이 신입 공채 없애면

벌써 다음 달이면 대기업 신입사원 공채가 시작된다. 절대 다수는 ‘유능한 당신과 함께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뜻 모를 낙방 통지서를 받아야 한다. 경쟁률은 100 대 1이 넘고 온갖 스펙이 필요하다지만 대기업에 취직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2015년 대기업 대졸 초임 연봉이 4075만 원, 중소기업 초임은 2450만 원이다. 한국 대기업(300인 이상)의 신입사원 연봉이 일본 대기업(1000명 이상)보다 1만 달러(약 1200만 원) 이상 많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고 이보다 훨씬 높은 기업에는 수만에서 10만 명에 이르는 지원자가 몰려든다. 

기업 규모가 아무리 커도 이렇게 많은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살펴 됨됨이와 능력, 잠재력까지 잘 파악하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방대에서 어학실력을 쌓고 해외 봉사도 했고, 기업 실무 경험 쌓은 내용까지 학원 다녀가며 자기소개서에 써 봐도 그저 지방대 혹은 삼류대라는 딱지 때문에 내 지원서가 휴지통으로 직행하는 건 아닌지 의문을 갖는다는 말이다. 용케 면접까지 올라갔지만 서너 개 질문에 답했을 뿐인데 회사 측이 나를 얼마나 잘 평가했을지, 수많은 응시자가 ‘걱정+의심’을 했을 법하다. 물론 이런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기업에서도 나름대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능력보단 학벌이나 집안 배경이 당락을 좌우한다는 대중의 막연한 의심까지 거두진 못한다. 물론 매출 단위가 큰 대기업에서 경험이나 실적 없는 신입을 뽑으려니 학벌과 배경이 생산성으로 연결될 것 같은 편견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부의 재촉에, 의심의 눈초리까지 받는 대기업에선 정작 신입사원을 뽑는 데 부담이 적지 않다. 여러 대기업 임원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대답이었다. “신입 공채요? 경영논리로만 보면 안 뽑는 게 정상이죠. 그런데 왜 뽑냐고요? 허허, 이건 나라가 시키는 복지정책이잖아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17개 대기업 총수에게 “신규 채용에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이윤 추구가 목표인 기업은 어떤 사람을 언제 얼마나 뽑는 게 좋은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냥 놔두면 ‘딱 필요한’ 만큼 채용한 뒤 더 큰 이익을 창출해 나라 전체에 흘려보낼지 모른다.

중소기업에선 능력을 떠나 와주었으면 하는 수준의 청년까지 재수 삼수 하더라도 대기업에만 가려 하기 때문에 언제나 인력난에 허덕인다고 하소연한다. 요약해 보면 청년층은 학벌 말고 능력만으로 대기업 입사가 결정되길 희망한다. 경영 논리로만 보면 대기업에 신입 공채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아니다. 중소기업은 충분한 인력이 공급되길 바란다.

이런 현실이라면 신입 공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삼성을 시작으로 각 대기업은 눈치 보기 사회공헌성 신입 공채를 그만두거나 대폭 축소하면 어떨까. 그 대신 3년 혹은 그 이상 중소기업 근무나 창업 경력을 가진 청년 중 성과를 낸 사람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하루빨리 전환해야 한다. 대기업은 뜻하지 않은 사회공헌 대신 경쟁력을 키워 수익을 높일 수 있고 중소기업은 인력난이란 고질병에서 벗어날 기회를 갖는다. 명문대 출신이나 고스펙 청년층에서 불만이 나올 수 있지만 절대 다수는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대기업이 경력 위주로 채용 방식을 바꾸면 당장은 커다란 사회적 복지가 사라지는 것 같겠지만 장기적으론 학벌이 아니라 능력 위주로 사회가 재편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효과와 함께 가슴 답답해지는 온갖 ‘수저 논란’을 적어도 채용시장에선 듣지 않아도 되지 않겠나.

5.[서울신문][길섶에서] 아버지의 손맛2/서동철 논설위원

경기 파주에 10년 넘게 사는 동안 헤이리마을이 유명세를 타고 명품 아울렛이 잇따라 들어섰다.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음식점이 생겨나면서 호기심도 발동했다. 하지만, 전국 공통의 맛일 뿐 다시 가고 싶은 집은 많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오래된 단골집으로 향하게 마련이다. 문산 너머 막국수집 주인 영감님은 겨울이면 문을 닫아걸고 날이 풀릴 때까지 영업을 하지 않았다. 설 연휴 직전, 지난해 겨울에는 뜻밖에 문을 열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찾아갔지만 다시 휴업이었다.

문을 열었던 지난해 1월에도 막국수 맛은 시원치 않았다. 주방을 들여다보니 영감님 대신 아들만 보여 ‘아버지 손맛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모양이군’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다시 겨울 장사를 접은 것도 ‘무르익지 않은 아들의 솜씨’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설 연휴 뒤끝 문을 열었다기에 찾았지만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오후 6시 30분 영업을 종료한다’는 푯말만 내걸려 있었다. 너무 일찍 문을 닫는 것이 불만스러우면서도 영감님 기력이 달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문득 ‘새해에는 세상의 모든 아들이 분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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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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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2월 12일 신문 브리핑 #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
- C.H. 스펄전


<< 정치/외교 >>
1. 북한이 11일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중단 조치와 관련, 공단 내 모든 남측 자산을 동결한다고 밝힘
-  또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했으며, 남측 인원을 전원 추방하는 조치도 취함

2. 미국 상원이 10일(현지시간) 북한과의 거래를 도운 제3국 개인과 단체까지 제재할 수 있도록 한 대북제재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킴
- 지난 6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후 1주일도 안돼 신속하게 처리한 것으로, 그동안 미 의회를 통과한 대북제재법안 중 가장 포괄적이고 강력하다는 평가임


<< 경제 일반 >>
1. 정부는 올해 한국형 히든챔피언 후보가 될 기업 170개를 골라 집중 지원하기로 함(산업자원부&중소기업청, '2016년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사업 시행계획' 통합 공고)
- 글로벌 시장의 강자를 육성하기 위한 이 사업에 모두 1266억원의 예산이 투입됨

2. 중소기업의 설비투자에 적용되는 가속상각 혜택이 6개월 연장됨
- 가속상각은 설비투자 금액의 감가상각비용 처리 시간을 앞당겨 기업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임

3. LG전자가 자동차 전장사업에 이어 식물공장사업에서도 신성장동력을 찾고 있음
- '식물공장'은 건물 안에서 LED(발광다이오드)와 공조 기술 등을 활용해 식물을 대량 재배하는 시스템으로서, 일본 파나소닉과 도시바 등은 식물공장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음

4. 현대중공업이 올 들어 첫 선박 수주를 따냄
- 1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지난 4일 터키 선사인 디타스시핑으로부터 15만8000DWT(재화중량톤)급 유조선 2척을 수주했으며, 계약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는 1억3000만달러(약 1500억원) 수준에 계약이 체결됐을 것으로 보고 있음

5. 지난해 말 부산에 설립된 국적크루즈선사인 코리아크루즈라인이 내년 하반기 취항을 앞두고 시범운항 일정을 잡는 등 본격 준비에 나섬
- 팬스타그룹은 코리아크루즈라인이 승객 2000명을 태울 수 있는 7만톤급 크루즈선을 들여와 오는 10월께 한.중.일 노선에서 시범운항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11일 발표함

6. 한국 최대 연예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그룹과 중국 내 음악사업 및 전자상거래 등에 대해 전략적 제휴를 맺고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하기로 했다고 공시함
- 증자 뒤 알리바바그룹은 SM엔터테인먼트 지분 4%를 확보함


<< 금융/부동산 >>
1. 설 연휴에 누적된 국내외 악재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주식시장이 급락하고 채권과 외환시장이 요동침
- 11일 코스피지수는 56.25포인트(2.93%) 하락한 1861.54에 마감했으며, 이는 하루 낙폭으로는 2012년 5월18일(62.78포인트) 후 3년9개월 만의 최대치임
- 채권시장에서는 국고채 금리가 급락(채권값 급등)하면서 3년만기 국고채 금리가 0.056%포인트 떨어진 연 1.45%에 마감하며 사상 최저치를 경신함
-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5원10전 오른 1202원50전에 마감했으며, 미국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있다는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발언에 엔화 강세가 지속화해 100엔당 엔화 재정환율은 42원7전 폭등한 1066원71전을 기록함

2. 스웨덴 중앙은행이 마이너스인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림
-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중앙은행은 기준금리인 환매조건부채권(레포) 금리를 -0.35%에서 -0.5%로 0.15%포인트 인하한다고 밝힘


<< 국제 >>
1.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모터스 주가가 좋지 않은 실적(4분기를 포함해 11분기 연속 적자)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전망에 힘입어10일(현지시간) 시간외거래에서 9.63% 급등한 143.67달러로 마감됨
- 올해 차량 판매가 대폭 늘어나고 4분기에는 흑자전환이 예상된다는 전망을 내놓으며 최근 부쩍 깊어진 투자자들의 비관론을 잠재웠으며, 테슬라가 긴 터널을 거쳐 드디어 빛이 보이는 구간에 도달했다는 평가도 나옴

2. 아프리카 남부지방이 심각한 가뭄에 시달리는 가운데 아프리카인의 주요 식량인 옥수수 가격이 사상 최고로 치솟음
-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식용으로 주로 쓰는 흰 옥수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작년 초 대비 150% 오른 t당 5091랜드(약 38만5000원)에 거래되고 있으며, 가축 사료용 노란 옥수수 값도 t당 3950랜드(약 30만원)로 작년 초보다 90% 상승함

3. 중국 정부가 대표적 설비과잉 업종인 석탄업 구조조정을 통해 향후 5년 내 생산능력을 7억t 감축하기로 함
- 올해 최대 역점 과제인 `공급 측면 개혁`을 위해 설비과잉 상징인 석탄업에 메스를 꺼내 든 것임


<< 오늘 신문의 경제관련 용어 >>
* 환매조건부채권(복습^^)
- 대표적인 단기금융상품의 일종으로, 주로 금융기관이 보유한 우량회사가 발행한 채권 또는 국공채 등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보장되는 장기채권을 1~3개월 정도의 단기채권 상품으로 만들어, 투자자에게 일정 이자를 붙여 만기에 되사는 것을 조건으로 파는 채권을 말함. 이러한 환매조건부채권(RP 또는 Repo)을 거래하는 행위를 RP거래(repurchase agreement)라 함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환매조건부채권 [還買條件附債券, repurchase paper]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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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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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성완종 리스트 수사

■ 신임 총리 후보자, 황교안 법무장관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성완종 리스트 수사

 

[한국일보 사설-20150522금] 검찰, ‘성완종 리스트’ 남은 수사 제대로 하겠나

 

검찰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 대해 불구속기소를 결정했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8명 중 처음으로 사법처리가 정해진 셈이다. 두 사람에 대한 기소 방침을 확정하면서 나름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도 있지만 봐주기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나머지 6명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두 사람의 불구속기소가 정치자금법 위반의 경우 수수한 금액이 2억 원 이내면 불구속으로 처리하는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홍 지사와 이 전 총리 모두 핵심 증인을 회유한 정황이 포착됐다. 증거인멸 정황의 유무는 구속영장 청구의 일반적 기준이다. 만일 일반 형사사건이었다면 이들은 당연히 구속되고도 남았을 터이다. 수사과정에서 구속된 경남기업 임직원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성 전 회장 측근들은 수사 초기 증거인멸 혐의로 잇따라 구속됐다. 불법자금을 조성하거나 전달한 주체도 아닌데 성 전 회장의 지시에 따라 서류를 폐기한 혐의가 적용됐다. 결과적으로 돈을 줬다고 폭로한 경남기업측 인사들은 구속되고 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인사들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거나 수사도 받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게 됐다.

 

검찰 앞에는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나머지 정권 핵심 실세들에 대한 2단계 수사가 놓여있다. 하지만 검찰은 향후 수사 계획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남은 인물 가운데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은 2012년 대선자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다. 사안의 폭발력은 물론 연루자가 여러 명이어서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지 않을 수 없게끔 돼있다. 나머지 6명은 홍 지사나 이 전 총리와는 달리 증인이나 목격자가 없어 훨씬 어려운 수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검찰의 분명한 수사 의지가 요구된다. 권력 실세들의 부패를 밝혀내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이 필요하다.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고 대선자금 수사를 머뭇거린다면 검찰에 대한 불신만 키우게 된다. 검찰 수사가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면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22금] ‘성완종 리스트’ 수사, 흐지부지 덮겠단 뜻인가

 

검찰이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고 한다. ‘성완종 리스트’의 8명 가운데 처음으로 수사결과가 나온 것이지만, 그런 결정의 이유는 석연치 않다. 나머지 6명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검찰의 이번 사건 수사는 유독 소극적이다. 검찰은 불구속 기소 방침을 밝히면서, 두 사람이 받은 돈이 정치자금법 위반죄의 구속영장 청구기준인 2억원에 못 미치고 증거인멸에 직접 개입한 증거도 드러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억원이라는 검찰 내부 기준에 합당한 근거가 있어 보이지도 않거니와, 폭넓고 강력한 권한을 휘두르는 정치인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를 뇌물죄보다 가볍게 처벌해야 할 이유도 없다. 더구나 홍 지사 등에게는 대표적인 구속 사유인 ‘증거인멸 우려’가 분명하다. 홍 지사 측근들이 핵심 참고인을 회유하는 대화가 담긴 녹취록이 확보됐고, 녹취록에는 홍 지사가 회유에 관여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내용까지 있다. 그런데도 검찰은 자신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는 측근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영장 청구를 포기했다. 관여 의혹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강제수사가 필요했는데도 수사를 멈췄다. 일반 형사사건에서 이 정도 정황이면 구속을 피할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도 검찰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측근들을 증거인멸 혐의로 잇따라 구속한 바 있다. 돈을 준 쪽의 심부름을 한 이들은 서둘러 구속하면서도 정작 검은돈을 받은 쪽의 증거인멸엔 애써 눈을 감은 꼴이다. 이쯤 되면 범죄를 숨기라고 등을 떠미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의 나머지 6명도 계속 수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수사의 단서와 정황도 있다. 무엇보다 홍준표·이완구의 금품수수가 사실이라면 나머지 6명의 금품수수도 사실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게 된다. 미적댈 이유가 없는데도 검찰의 수사 강도와 속도는 답답하기만 하다. 대선자금 수사에선 더 머뭇거리는 눈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흐지부지 덮으려 하면 검찰에 대한 국민 불신만 커지게 된다. 특검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 신임 총리 후보자, 황교안 법무장관

 

[한국일보 사설-20150522금] 장고 끝 선택에도 또 우려되는 黃 총리 후보자

 

박근혜 대통령이 새 총리 후보자로 황교안 법무장관을 지명했다. 지난달 27일 이완구 전 총리가 사퇴한 지 24일 만이다. 장고(長考)를 거듭한 끝의 선택이어서 무난한 평이 나와야 할 터인데, 현실은 다르다. 찬반을 유보하거나 싸늘한 눈길을 보내는 여론이 우세해 보인다. 황 후보자가 역대 총리에 비해 ‘대통령을 보좌해 행정각부를 통할할’ 역량이 떨어진다고 여겨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발탁 이유로 든 그의 강점이, 국민이 기대했던 새 총리의 자질과 품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달리 말해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 변화를 꾸준히 요구해 온 국민의 바람에 비추어 이번 인선은 ‘앞으로도 지금처럼’을 고집하는 색채가 너무 짙어서다.

 

그의 지명을 발표하면서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황 후보자가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고, 사회전반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정치개혁을 이룰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김 수석의 말대로 검찰 요직과 법무장관을 거친 그는 부정부패 척결을 통한 정치개혁, 즉 사정 정국 지휘의 적임자일 수 있다. 그러나 황 후보자는 ‘강직한 검사’출신 이기에 앞서 공안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박 대통령이 공안통치를 노골적으로 선언한 것”이라는 야당의 비난은 ‘공안통치’라는 과장된 표현 때문에라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공안통 경력은 법무장관과 달리 총리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균형감각’을 의심스럽게 할 만하다. 정권과 국가의 이익, 국민권익과 정부의 이해를 가리고, 제대로 형량(衡量)할 수 있는 감각이다. 법무장관으로서 그는 충성심과 강직성이 외려 독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따른 불법 정치자금 수사와 관련, 그는 특별사면이나 대선자금이 수사 대상일 수 있다고 공언했다. 원칙론적 언급이지만, 결과적으로 물타기로 비쳤다.

 

야당이 극력 반대 태세를 굳혀 국회 임명동의 과정의 진통을 예고한 것도 바로 이런 경력과 성향 때문이다. 청와대는 법무장관 임명 과정에서 한 차례 인사청문회를 거친 만큼 쉽사리 청문회를 통과하리라 여겼음직하다. 그러나 장관과 총리의 법적 지위는 현격히 다르다. 임명동의안 표결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낙관은 금물이다. 이미 걸러진 의혹도 다시 논란이 될 수 있다. 법무법인 재직 시절의 고액급여, 특검이 무혐의로 정리한 ‘삼성 X파일’ 관련 의혹 등이다. 무엇보다 두드러기와 비슷한 ‘만성담마진’이란 피부병으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는 병역문제는 끝내 깔끔하게 매듭되지 못한 이 전 총리의 병역 의혹과 맞물려 증폭될 수 있다. 이에 따른 여야 논란이 공무원연금 개혁 등에 불똥을 튀길 수도 있다.

 

황 총리 후보자의 지명에 대한 이런 우려는 결국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통치 스타일에 대한 의문과 다름없다. 총리 후보자 지명은 화합과 소통의 정치 자세를 과시할 모처럼의 기회였다. 그런 호기를 놓치고 정치권과 국민에 논란의 불씨를 던졌다. 안타깝고도 유감스럽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22금] 정권 보위용 ‘돌격 총리’라니

 

황교안 신임 총리 후보자에게는 ‘골수 공안통’이니 ‘미스터 국보법’이니 하는 여러 별명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그가 보인 행적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정권의 충견’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통합진보당 해산,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의 선거법 적용 배제 등 정권의 고비마다 언제나 그 중심에는 황 후보자가 있었다. 그는 주인이 싫어하는 상대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고 물어뜯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 결과는 언제나 주인을 흐뭇하게 하는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차기 총리 후보자로 황교안 법무장관을 지명한 뜻은 분명하다. 이 시기 총리의 가장 중요한 자격을 ‘충성심’과 ‘돌격정신’으로 본 것이다. 통합이니 소통이니 하는 말은 애당초 박 대통령의 관심 밖이었던 게 분명하다. 어떻게 하면 권력기반의 동요를 진정시키고 자신의 위상을 공고히 할 것인가가 박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였던 듯하다. 사실 황 후보자는 법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도 ‘대한민국의 법무장관’이 아니라 ‘정권의 법무장관’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제 총리가 되면 나라의 안위보다는 정권의 안위, 국민의 마음보다는 대통령의 심기를 보살피는 데 더욱 매진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법무장관 자리에서도 진작 물러났어야 옳을 그를 총리 후보자로 영전시킨 박 대통령의 본뜻이기도 할 것이다.

 

신임 총리 후보자 지명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곧바로 우리 사회에는 ‘공안’과 ‘사정’ 등의 단어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부정부패를 뿌리뽑아 새 한국을 만들고 정치개혁을 이룰 적임자”라는 청와대의 발표에서도 앞으로의 정국 기류를 엿볼 수 있다. 문제는 ‘정치개혁’이니 ‘부정부패 척결’이니 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법의 이름을 가장한 교묘한 정치행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법을 앞세운 공안통치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정권의 입맛에 맞춘 사정작업이 얼마나 숱한 갈등과 분란을 야기하는지는 그동안 숱하게 목도해왔다. 당장 ‘성완종 리스트’ 사건만 해도 정권에 유리한 쪽으로 수사 방향이 변질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동안에도 법과 원칙보다는 정권의 이득에 맞춰 법을 해석하고 운용해온 황 후보자가 총리 자리에까지 오른다면 그 흐름은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다.

 

신임 총리 후보자 지명을 지켜보면서 솔직히 이제는 박 대통령보다는 오히려 야당을 탓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이 민심에 귀를 막은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직접 몸으로 느끼게라도 해줘야 하는데, 선거 때마다 회초리를 맞은 것은 오히려 야당이었다. 그러니 박 대통령이 더욱 기고만장하고 몰염치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브레이크 없는 대통령에 무기력한 야당,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슬픈 현실이다. 야당이 그나마 지금이라도 해야 할 일은 황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다. 황 후보자는 법무장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전관예우, 병역면제, 증여세 탈루 의혹 등이 숱하게 드러난 바 있으나, 장관에 비해 총리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야당이 어떤 실력을 발휘할지 한번 지켜볼 일이다

 

 

[중앙일보 사설-20150522금] 황교안 총리 후보자에 대한 기대와 우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새 총리 후보자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지명했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새 한국을 만들고 정치 개혁을 이룰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과 폭로로 불거진 부정부패 파동 국면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이완구 총리가 사퇴했으며 이 전 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가 1차로 기소될 것으로 보인다.

 

  황 후보자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통해 나라의 기본을 바로잡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총리 후보자가 고강도 개혁을 ‘합창’함에 따라 성완종 사건 수사는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여야 대선자금이나 성 전 회장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특별사면도 범법 혐의가 드러나면 수사 대상이 될 것이다. 포스코 등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기업 비리 수사와 대통령이 천명한 사면제도 개선 같은 정치 개혁도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부정부패 단속을 통한 국가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대통령과 총리 후보자의 국정노선은 문제 삼을 것이 없다. 성완종 사건에서 보듯 아직도 정치권과 재계에는 비정상적인 부패 스캔들이 적잖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14년 국가청렴도 순위에서 한국은 175개국 중 43위에 머물렀다. 경제규모·정치민주화에 비해 턱없이 후진적인 것이다.

 

  그러나 국무총리의 조건과 임무라는 점에서 보면 황 후보자의 발탁은 여러 한계를 보인다. 부정부패 단속이라는 것은 정권과 시대 구별 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할 국가의 기본 업무다. 이런 일에 특정 시기에 특정한 무게를 거칠게 실으면 부작용이 크다. 전임 이 총리는 법무·안행부 장관을 배석시키고 카메라 앞에 서서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느닷없는 행동은 정권의 정치적 의도 또는 총리 개인의 포석이 담긴 과잉 행보라는 지적을 받았다. 한마디로 명분이 부족한 돌출 기획사정이라는 거였다. 우려대로 검찰은 과속했고 성 전 회장에 대한 별건 수사와 자살 폭로라는 교통사고가 터졌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국정을 총괄하는 자리다. 장관보다는 높은 위치에서 국정 전반을 조망해야 한다. 대정부질문 답변이 주요 업무인 만큼 야당과의 소통도 중요한 임무다. 그렇기 때문에 신임 총리에게는 도덕성·개혁성과 함께 국민 다수로부터 인정과 기대를 받을 수 있는 통합적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많았다. 노동·공공·금융·교육 등 4대 개혁과제를 실현하는 데는 사정(司正)을 뛰어넘는 통합적 조정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정권의 ‘법률적 수요 ’라는 측면에서 황 후보자는 장관의 임무를 무난히 수행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얻어 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가 업무를 지속하게 하고 총리는 다른 인물군(群)에서 선택할 수는 없었는지 묻고 싶다. 만약 국회 인준을 통과한다면 황 후보자는 대야(對野) 소통과 국민 통합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황 후보자는 법무부 장관 후보 청문회 때 몇 가지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1년5개월간 로펌에 근무하면서 약 16억원을 받았다. 한 달 평균 9300여만원이다. 전관예우라는 비정상 관행에 따른 것이라는 혐의가 짙다. 황 후보자는 두드러기 일종인 ‘만성 담마진’이라는 피부질환으로 제2국민역(5급)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이 문제가 국무총리에게 가지는 의미는 장관과는 다르다. 총리는 대통령 유고 시 대통령이 되는 자리다. 그가 총리가 되면 이 나라는 대통령과 총리 모두 군대 경험이 없는 상황이 된다.

 

 총리 청문회는 장관에 대한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 국회는 엄중히 묻고 후보자는 성실하고 치열하게 답변해 국민의 의구심을 최대한 해소시켜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522금] 통합·소통 걷어찬 ‘공안 총리’ 지명

 

통합이나 소통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상식과 도덕이 통하는 사회를 바라는 국민적 여망을 외면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 국무총리 후보자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지명하면서 내건 이유는 ‘정치개혁’과 ‘비리 척결’이다. 국민통합형 총리가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사정을 이끌 총리를 선택한 것이다. 청와대는 대놓고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정치개혁을 이룰 적임자”라고 발탁 배경을 밝혔다. 현직 법무부 장관을 총리로 발탁하는 무리수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 이후 박 대통령이 강조해온 ‘정치개혁’을 위한 전방위 사정을 진두지휘할 ‘공안 총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동의와 지지가 아닌 정권의 보위에만 매몰된 총리 지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황 지명자는 법무부 장관 시절 법과 원칙보다는 대통령의 코드에 맞춘 법집행에 충실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과정에서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제지하는 등 검찰수사를 방해했다. 이에 반발하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 ‘정권 눈 밖에 난 검찰총장을 찍어낸 법무부 장관’이란 오명을 남겼다.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을 주도하고, 비선 실세 국정농단 의혹이나 ‘성완종 리스트’ 수사 등에서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철저히 따르게 했다. 이러한 인물에게 통합과 소통의 국정을 펼치기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이다. 책임총리도 언감생심이다.

 

황 지명자는 야당과의 관계도 파탄낼 공산이 크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려는 연금개혁 등 4대 개혁은 야당의 협조와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만큼 새 총리에게는 국회, 야당과의 소통 능력이 주요 요건이었다. 황 지명자는 거기서 가장 동떨어진 인물이다. 그는 법무부 장관 시절 정치적 사건 처리 과정에서 매번 정권의 보위대로 나서 야당과 충돌해 왔다. 야당으로부터 두 차례나 ‘해임건의안’을 제출받았을 정도다. 야당이 ‘황교안 카드’를 박 대통령의 ‘선전포고’로 간주하며 반발하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부패 혐의로 이완구 총리가 물러난 터여서 높은 도덕성이 새 총리 인선의 우선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국민적 기대가 컸다. 황 지명자는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전관예우, 증여세 탈루, 병역 면제 등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2011년 공직에서 퇴임한 직후 대형 로펌에 재직하면서 17개월 동안 15억9000만원을 받은 고액수임료 문제로 새누리당에서조차 자진 사퇴 목소리가 나왔다. 황 지명자가 ‘비리 척결’의 적임자로 매김되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도덕성을 필두로 국민이 기대하는 총리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철저하게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522금] 황교안 총리 후보자 국민통합 지도력 발휘하겠나

 

박근혜 대통령이 장기간 공석이었던 국무총리 후보자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어제 지명했다. 황 후보자가 국회의 인사청문 절차를 무사히 통과한다면 정홍원·이완구 전 총리에 이어 현 정부 세 번째 총리로 박 대통령 임기 후반부 국정을 통할하게 된다. 이 전 총리가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거명돼 낙마한 이후 국정은 표류했다. 지난 한 달여간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등 파행이 계속돼 왔다.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했던 현직 총리가 ‘사정 대상 1호’로 지목돼 비리 혐의로 물러나는 웃지 못할 상황극을 지켜본 국민들은 후임 총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황 후보자 지명은 국민들의 일반 정서와는 다소 동떨어진 선택이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후임 총리의 덕목과 관련해 높은 국민통합 능력과 도덕성을 이미 꼽은 바 있다. 꼭 ‘수첩’에 올라 있는 인사가 아니더라도 안목을 넓혀 다양한 스펙트럼을 적용해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게 후임 총리를 선임하길 제언하기도 했다. 이 전 총리가 비리 혐의로 낙마한 점을 감안해 도덕성을 1순위에 두고 진영 논리를 극복할 수 있는 국민통합 적임자를 찾아내길 바랐다.

 

하지만 청와대는 “경제 재도약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부정과 비리, 부패를 척결하고 정치 개혁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며 예상 후보 가운데 한 명이었던 황 후보자를 적임자로 내세웠다. 법조인 출신인 황 후보자를 통해 임기 후반부 국정 운영의 방점을 개혁과 법치(法治)에 찍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황 후보자도 “나라의 기본을 바로잡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법치 확립을 다짐했다. 통합진보당 해산을 이끌어 낼 때 밝혔던 소신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으로 법치에 대한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황 후보자는 검찰 재직 시절 공안 요직을 두루 거친 대표적인 ‘공안통’이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정 전 총리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구공안’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라는 별칭도 따라붙는다. 일각에서 국민통합은 고사하고, 공안몰이가 더 거세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즉각 “공안통치의 노골적 선언”이라고 비판하며 혹독한 인사청문회를 예고하고 나섰다. 그 자신 과거 교회 발언을 통해 “김대중·노무현 같은 분들이 대통령이 되니 나라 꼴이…”라며 노골적인 보수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청와대는 장관 후보자 시절 한 차례 인사청문회를 경험한 황 후보자의 낙관적인 청문절차 통과를 기대했겠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병역면제, 전관예우 수임료, “5·16은 혁명” 발언 등 이전 이슈에 더해 이번엔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 편법 개입,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 내기, 정당 해산 심판, 성완종 리스트 수사 가이드라인 등 몇 가지 대형 사안이 더 기다리고 있다. 청문회 과정에서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과연 황 후보자가 총리가 된다면 국민화합과 사회통합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국민들의 의구심이 큰 만큼 국민통합을 위한 획기적 복안도 밝혀야만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22금] 박 대통령의 부패개혁 의지 확인시킨 황교안 총리 지명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새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부정부패 척결로 정국을 정면돌파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한 인사라는 평가다.

 

황 총리 후보자는 검찰 재직 시절 공안통 검사로 이름을 날린 인물로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공직에 복귀했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잘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작은 개미굴이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는 발언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올 들어서는 박 대통령이 주창한 부정부패, 비리 척결의 선봉에 섰고 특히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특별사면 의혹과 관련해선 단호한 수사의지를 밝혀 주목을 받았다. 부정부패 척결과 정치개혁에 대해 최적임자라고 볼 수 있다.

 

이완구 전 총리가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낙마한 이후 박 대통령은 비리척결에 대해 분명한 의지를 보여왔던 터다. 이번 인사를 통해 “부정과 비리, 부패를 척결하고 정치 개혁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의 발표대로 박 대통령의 의지는 거듭 확인된 셈이다.

 

황 후보자에 대한 박 대통령의 기대는 이전 총리와는 전혀 달라 보인다. 국정을 분담하는 ‘책임총리’는 물론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을 대신해 행사를 다니는 ‘대독총리’도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정치개혁의 시발점이 되는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미션에 집중하는 총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황 후보자는 이제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정치권과 사이가 좋기 어려운 검사 출신에다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터라 야당이 벌써부터 벼르고 있다. 야당은 2년 전 법무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안기부 X파일 편파수사 논란 등을 이유로 ‘부적격’ 의견을 냈었다.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청와대의 국정 의지와 ‘공안통치의 노골적 선언’이라는 야당의 공격이 정면으로 부딪칠 경우 또 다시 폭로와 정쟁이 난무하는 인사청문회가 재연될 것이다. 임기 반환점을 3개월밖에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다. 총리를 선임하는 게 이다지도 어려운 것인지.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22금] 인사청문회 임하는 황교안 총리 후보자에 바란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새 국무총리 후보자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지명했다. 한달 가까이 후임 인선을 고민해온 청와대는 황 후보자를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새 한국을 만들고 정치개혁을 이룰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황 후보자가 공안검사 출신이라는 데 방점을 찍은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안통치의 노골적 선언" "국민통합에 반하는 불통 인사"라며 벌써부터 철저한 인사검증을 벼르고 있다.

 

이미 지난해 안대희·문창극 두 후보자가 인사검증 과정에서 낙마한데다 전임 총리도 청문회에서 자격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황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도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럴수록 황 후보자도 철저한 준비를 하고 인사청문회에 임해야 할 것이다. 평소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다는 평판을 받아온 황 후보자지만 인사청문과정에서 '빌미'를 잡힐 언행을 조심해야 할 것이며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소명해야 할 것이다.

황 후보자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이번에도 인사청문회를 넘지 못하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비록 여권은 4·29재보선에서 승리했다지만 더 이상의 총리 후보자 낙마사태를 목격할 경우 국민도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지지를 급속히 철회할 것이고 당연히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과제가 산적한 지금, 성완종 사건 등으로 임기 반환점을 채 돌지 못한 정부를 두고 벌써부터 '레임덕'이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다.

 

황 후보자는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런 흐름에서 황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과 관련한 핵심 부분에 대해서는 인사청문회에서 분명한 자기 입장을 보여야 할 것이다. 총리는 내각을 통할하고 대통령을 보좌해 국정을 이끄는 핵심적인 공직이다. 제대로 된 후보가 지명됐다는 후일의 평가를 받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522금] 한일 국방장관 회담, 불가피하지만 신중해야

 

한일 국방장관 회담이 29~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14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열린다고 국방부가 발표했다. 날짜는 30일이 유력하다고 한다. 한미일 3국 국방장관 회담도 최종 조율 중이어서 조만간 한미일 안보공조 체제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한일 양자 간 국방장관 회담은 2011년 1월 이후 과거사와 독도 문제 등의 갈등으로 중단된 지 4년 여만이다. 국방부는 지금의 한일관계에서 양국 국방장관 회담 재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었다. 그랬던 국방부가 아무런 설명 없이 입장을 바꾼 배경은 개운치 않다.

 

이번 회담은 미국과 일본의 압박에 우리 정부가 끌려간 측면이 커 보인다. 지난달 초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성 장관이 공개적으로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제안했고, 이어 미일 정상회담 차 워싱턴에서 만난 양국 국방장관은 한일 및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을 조속히 개최하자고 합의했다. 이번 회담도 일본이 요청하고 미국이 한국에 회담 수용을 사실상 압박해 성사됐다는 게 중론이다. 미일이 주도하는 한미일 3각 안보공조에 한국이 무기력하게 끌려들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회담 내용도 껄끄럽다. 국방부는 북한 핵ㆍ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조방안, 국방분야 교류 협력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신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 따른 일본의 집단적자위권 행사도 의제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핵심은 한일 간 군수지원 및 군사정보공유가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미국과 일본은 3각 공조를 위해서는 우리 군과 자위대 간 물자를 융통하는 물품역무상호제공협정(ACSA)과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체결이 필수적이라며 수 차례 비공개적으로 이를 우리 정부에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한미일 간 구속력 없는 낮은 수준의 정보공유약정을 체결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2년 우리 정부가 비밀리에 GSOMIA를 체결하려다 여론의 역풍을 맞고 좌초된 것처럼 한일 간 전면적인 군사정보 교류는 여전히 수용하기 힘든 사안이다.

 

우리 정부가 이번 회담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과 고민은 충분히 이해한다. 점증하는 북한의 도발 위협 등 안보 공조의 현실적 수요가 엄존하고 이를 미국 일본이 강력히 요구하는 상황에서 과거사만 내세워 마냥 거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번 회담이 한일 정상회담 개최 등 양국 관계를 복원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안보공조가 미일의 의제를 추종하는 것이 돼서는 곤란하다. 지난해 정보공유 체결 때처럼 여론을 호도하려는 꼼수가 있어서도 안 된다. 신중하고 당당한 접근을 당부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22금] 최경환 부총리, 경기부진 책임 크다

 

우리 경제가 좀체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일 내놓은 경제전망치는 이런 현실을 다시 확인해준다. 연구원은 올해 성장률이 애초 전망치(3.5%)보다 낮은 3.0%를 나타낼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내놓은 3.1%와 비슷한 수준이다. 연구원은 한은 기준금리가 한두차례 더 내리고, 세수가 목표대로 걷히며, 구조개혁이 성과를 낸다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성장률은 더 하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상태로는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말해준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3%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점을 고려할 때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경기가 부진한 것은 연구원이 밝힌 대로 수출과 내수가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출은 주요 시장인 중국 등의 성장세가 둔화하는데다 일본 엔화와 유로화의 약세로 가격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 올해 들어 4월까지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내수는 개선 기미가 있지만 여전히 강도가 약한 편이다.

 

경제가 활기를 띠지 못하면 사회 전체로 활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특히 중산층과 서민층이 큰 타격을 받기 쉽다. 괜찮은 일자리를 찾고 임금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워져서다. 성장률이 2012년 이래 잠재성장률을 밑돌고 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도 정부 대응은 미흡하기만 하다. 물론, 손 놓고 있지는 않다. 지난해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한 뒤로는 여러 대응책을 쏟아냈다. 최 부총리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며 41조원 규모의 부양책을 발표하고 부동산 대출 규제 등을 대폭 완화했다. 대기업들을 향해 임금인상을 촉구하는 ‘파격적’인 모습도 보였다. 정책수단에는 무리한 것이 없지 않았으나 기대를 품게 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1년이 가까워져 오는데도 경기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신호가 계속되고 있다. 부양책은 세수 부족으로 원래 발표한 규모에 많이 못 미쳤다. 임금인상 촉구 발언에서 보듯 최 부총리가 말만 꺼내고 제대로 추진하지 않은 정책도 있다. 최 부총리가 경기 부진에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함을 일러주는 얘기 아니겠는가. 최 부총리가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지켜봐야겠다.

 

 

[중앙일보 현장사설-20150522금] “정파보다 국가 우선해야 개혁 성공한다”

 

“정치지도자라면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는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 제주포럼 참석차 방한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유독 강조한 대목이다. 그는 총리 시절 노동시장·연금 개혁인 ‘어젠다2010’을 추진하다 총선에서 패배했는데 후회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치가 중요하지만 국가만큼 중요하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어제부터 중앙일보와 제주특별자치도·국제평화재단·동아시아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제주포럼에서 슈뢰더 전 총리는 특별히 주목을 받은 인사다.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구조개혁을 밀어붙여 통일 후 침체에 빠진 독일 경제를 부활시킨 주역이기 때문이다.

 

  그는 제주포럼의 기조연설, 중앙일보 인터뷰, 권영세 전 주중대사 대담 등 숨 가쁘게 이어진 일정 내내 일관되게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사정 대타협이 무산되고 공무원연금 개혁도 지지부진한 우리에게 슈뢰더의 충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개혁 추진 과정에서 배울 첫째 교훈은, 정치적 득실을 따져 개혁을 추진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슈뢰더가 개혁을 추진할 당시인 2003년 독일은 통일 후유증으로 ‘유럽의 병자’로 불렸다. 마이너스 성장과 재정적자에 허덕였고 실업자가 450만 명에 달했다. 이 상황에서 그는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고 복지 지출을 줄이고 연금 지급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높이는 개혁을 밀어붙였다. 대신 청년 일자리 지원을 확대하고, 소득세를 낮추는 등 경제 활성화 정책을 썼다. 이는 슈뢰더에겐 정치적 패배를 각오해야 하는 모험이었다. 그는 “선거에서 낙선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밀어붙였다”며 “구조개혁은 초기에 고통을 수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성공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슈뢰더 총리의 지지 기반인 노조가 반발했다. 그 뒤 총선에서 져 총리직에서 물러나지만 개혁의 효과는 후임 메르켈 총리 때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일은 유럽 재정위기를 굳건히 견뎌냈다. 정치적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 슈뢰더의 결단이 독일 경제를 살린 셈이다. 슈뢰더의 ‘살신성인 개혁’은 공무원들 눈치를 보느라 반쪽짜리 개혁안도 쉽게 합의하지 못하는 우리 정치권이 자성해야 할 부분이다.

 

  그 다음으로, 노동계·재계 등 이해집단의 의견을 수렴하되 합의가 안 되면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는 노동계의 반대를, 최저임금 도입은 재계의 반발을 샀다. 슈뢰더 정부도 개혁 초기엔 우리의 노사정위원회 같은 합의기구를 가동했지만 노사가 정부에 요구만 할 뿐 서로 양보를 하지 않았다. 결국 슈뢰더는 정부 주도로 개혁을 마무리했다. 이는 노사정 대타협이 무산된 한국이 유심히 봐야 할 대목이다. 합의 과정에서 양측의 주장을 충분히 들은 만큼 정부 주도의 ‘B플랜’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구조개혁을 빨리 할수록 효과가 크다는 점이다. 공산권의 붕괴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지만 독일은 혹독한 통일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슈뢰더는 “통일 후 10년이 지나서야 어젠다2010이 관철됐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너무 늦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이 북한과의 통일에 대비하려면 지금부터 구조를 개혁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는 사민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다. 슈뢰더가 추진했던 최저임금제는 경쟁 당인 메르켈 총리 때 성사됐다. 허구한 날 여야가 싸우다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우리 정치권의 모습과 대비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날 슈뢰더 전 총리와 만나며 “독일 경제의 성공 이유를 통합의 정치에서 찾고 싶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개혁에 성공하려면 정파를 초월한 정치권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실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 공무원연금 개혁은 문 대표의 정치적 동지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것과 비슷한 방향이다. 여당에서 야당이 됐다고 반대만 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정파의 이익보다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 슈뢰더 전 총리가 제주포럼을 통해 본인의 생생한 육성으로 전해준 독일의 구조개혁에서 한국이 가장 배워야 할 점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522금] 미국의 사드 배치 압력에 가만히 있는 정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8일 북한의 위협을 거론하며 사드 배치를 언급한 지 하루 만에 사드 한반도 배치 주장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미국이 사드 배치 논의를 본격화하는 느낌이다. 지난 19일 프랭크 로즈 미국 국무부 군축·검증·이행담당 차관보는 “우리가 한반도에 사드 포대의 영구 주둔을 고려하고는 있지만, 우리는 최종 결정을 하지 않았고 한국 정부와 공식 협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제임스 위너펠드 미국 합동참모본부 차장도 “한국 정부와 이 문제에 대해 아직 공식으로 어떤 종류의 대화도 시작하지 않았다”면서 “여건이 성숙되면 대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그동안 사드 배치를 거론하며 한·미간 사실상 협의하는 듯 주장하다가 부인하기를 반복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조심스러운 태도를 바꾼 것 같다. 미국의 외교·군사 분야 고위 책임자들이 최근 잇달아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할 의사가 있음을 당당히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현시점에서 공론화를 해도 좋겠다고 판단한 결과가 아닐지 주목된다. 물론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을 압박하기 위해 사드 배치 필요성을 제기하는 건지, 한국과 미리 조율한 뒤 미국이 앞장서고 있는 건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한·미 간 공식 협의를 하면 언제라도 배치할 듯한 기세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어제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에 사드를 배치하는 문제에 대해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면서 “미국의 검토가 끝나 한국 정부에 협의를 요청하면 정부는 당연히 협의한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중립적 표현이지만 내용상으로는 그렇지 않다. 미국은 사드 배치 의사를 이미 밝혔다. 이에 한국은 협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결과가 어떨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나아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사드를 배치하면 우리의 안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난해 6월 김관진 국방부 장관도 “주한미군이 (사드를) 전력화하는 것은 상관없다”고 환영했다. 그는 지금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인 국가안보실장이다. 이 때문에 양국 간 사드 배치의 절차만 남겨 놓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국가가 시민을 속이는 일이고, 나아가 한반도 평화, 동북아 안정을 해치는 일이 될 것이다. 정부는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 사드 논란을 잠재워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522금] 백두산 화산폭발 더 이상 기우로 치부할 수 없다

서기 930~940년 백두산에서 화산폭발지수(VEI·Volcanic explosivity index) 7급의 대폭발이 일어났다. 지난 2000년 동안 지구상에서 일어난 것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화산 폭발이었다. 일본의 화산학자 마치다 히로시 교수(도립대)는 백두산 화산분출물의 용적이 적어도 100㎦에 이르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서기 79년 폼페이를 매몰시킨 베수비오 화산폭발의 50배에 달했다는 것이다. 해동성국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발해가 백두산 폭발 때문에 저항할 새도 없이 멸망했다는 이설(異說)도 제기된다. ‘(거란군이) 싸우지도 않고 이겼으며, 920~930년대 사이에 총 60만명의 유민이 발해땅을 탈출했다’는 <요사> <고려사> 기록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그 후 110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백두산 대폭발설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20년 이내에 화산폭발이 일어날 확률이 99%”라고 예측한 화산학자(다니구치 히로마쓰 도호쿠대 명예교수)도 있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 지각판을 움직인 탓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백두산 지표면의 팽창이 10㎝ 이상 감지되고 화산가스의 헬륨 농도가 대기의 7배에 이르렀다고 한다. 북한의 핵실험이 백두산 용암층을 자극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주장도 있다.

 

어제 국민안전처의 의뢰를 받은 윤성효 부산대 교수팀이 백두산 화산폭발의 피해를 예측한 결과를 봐도 강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닌 것 같다. 백두산에서 대폭발이 일어날 경우 남한에서만 최대 11조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과 중국의 지질연구진은 백두산에 시추공을 뚫어 용암의 분출 가능성을 모니터하고 3차원 지도를 만든다는 등의 공동연구 계획에 합의했다. 그러나 두 나라만 의기투합해서 될 일이 아니다. 직접 타격을 입을 북한과, 폭발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본 등의 공동연구가 필요하다. 윤 교수팀의 연구를 보면 백두산폭발이 일어날 경우 최대 침수면적은 828㎢에 달한다. 천지의 물(20억㎥)이 범람한다면 최악의 경우 압록강·두만강·쑹화강 유역의 침수심이 20~109m에 이른단다. 당장 백두산 폭발이 임박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불안감을 조성해서도 안되겠지만 대폭발 가능성을 기우(杞憂)로 치부해서도 안되겠다. 차분하게 대비책을 마련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522금] 日, 과거사 미화 유산등재 불가여론 수용해야

조선인 강제노동 시설이 포함된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23곳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과 관련해 한·일 간 양자 협의가 오늘 일본 도쿄에서 열린다. 이번 협의는 일본 측의 일방적 등재 추진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 정부는 주변국 고통의 역사를 외면한 채 단순히 산업혁명 시설로 미화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역사 왜곡이며 인류 보편적 가치를 보호한다는 세계유산협약의 기본 정신에도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현재로선 일본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본 언론들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일본 산업혁명 유산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도록 유네스코에 권고했으며 문화유산 중 ICOMOS가 권고했다가 최종 단계에서 뒤집힌 사례는 없다고 덧붙였다. 6월 말 독일에서 열리는 제39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최종 결정이 이뤄지지만 사실상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식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인 하시마 탄광이나 미케 탄광 등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 정도로 일본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본으로서는 산업혁명 유산 23곳이 근대 일본의 초석을 닦은 혼이 담겨 있는지 몰라도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착취와 수탈을 당한 우리로서는 고통스런 역사의 기억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픈 과거사를 공유하고 있는 중국 역시 “식민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며 강한 불만을 쏟아 놓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산업혁명 유산 23곳 중 7개 시설에서 강제 징용된 조선인 가운데 94명이 숨지고 5명은 행방불명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동의 한을 외면하고 근대화 산업시설만 강조하는 것은 전형적인 과거사 왜곡이다.

 

일본의 일부 언론들도 과거사 미화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다. 최근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근현대사를 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고 일본 발전의 이면에 있었던 희생과 비극도 연구해 전달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진실 그대로 보여 주고 올바른 사실을 후세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일본 정부의 책임이다. 메이지 산업 유산의 밑바닥에 강제 징용과 수탈의 고통스런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가해자 일본이 먼저 주변국들의 고통을 경청하고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동북아 전체의 갈등을 해소하고 공존 공영의 길로 나서는 첫걸음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522금] 14개월간 해외출장비 2억원 쓴 안홍철 KIC 사장

 

안홍철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이 또 입길에 올랐다. 해외 출장이 너무 잦고 출장비로만 하루 평균 200만원에 달하는 돈을 썼다는 ‘호화출장’ 논란이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에 따르면 안 사장은 지난해 1월부터 올 3월까지 14개월 동안 24차례에 걸쳐 115일간 해외 출장을 갔다. 나흘에 하루꼴로 해외에 머문 셈이다. 이 기간에 안 사장의 출장비로 KIC가 지출한 돈은 2억 1681만원으로 1일 평균 출장비만 188만원에 달한다.

 

올 1월엔 스위스 다보스포럼 참석을 위해 5박6일간 다보스에 머물면서 아우디 차량을 렌트하는 데만 332만원을 썼다. 지난해 11월엔 싱가포르 포시즌 호텔 딜럭스룸에서 사흘간 머물면서 호텔비로만 225만원을 냈다. 지난해 5월 런던 출장에서는 이틀간 숙박비 124만원을 포함해 890만원을 썼다. 안 사장은 숙박비로만 1일 평균 58만원씩을 썼는데, 이는 공무원 여비 규정에 나와 있는 장관급 국무위원이 해외 출장에서 쓸 수 있는 하루 숙박비 상한액인 471달러(약 51만원)보다도 많다.

 

KIC는 외환보유액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국부 펀드다. 업무의 특성상 해외 출장을 갈 수 있지만 해외에 나갔을 때 기관장이 값비싼 딜럭스룸에 묵는다거나 고급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은 누가 봐도 ‘호화출장’이다. 업무와 관련된 출장이었는지, 출장이 업무성과로 이어졌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더구나 KIC는 임원의 출장비용을 사전심사하도록 돼 있던 규정을 사후심사로 고쳤다. 이는 공기업의 출장비용 사전심사를 강화하도록 규정한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공무 국외여행 개선 방안’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는 게 박 의원의 지적이다. KIC 측은 이에 대해 “임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사전 및 사후 심사를 강화하는 쪽으로 지난해 11월 여비 세칙을 개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안 사장은 2012년 대선 때 트위터에 문재인 대통령 후보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종북·좌파’ 등 원색적으로 비난한 게 드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으로부터도 사퇴 압력을 받았지만 버티고 있다. KIC 사장이 되기 전에는 대학 후배인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서병수 부산시장과 유정복 인천시장 등 친박계 핵심 인사들에게 80여 차례에 걸쳐 4000여만원의 정치후원금을 낸 것으로 확인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안 그래도 코너에 몰려 있는 공기업 기관장이라면 더 제대로 처신해야 하지 않는가. 답답한 노릇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22금] 손 놓은 무역보험공사나 사기 당하는 은행이나…

 

모뉴엘 수출채권 위조사건의 피해 보험금 문제로 한국무역보험공사와 은행들이 결국 소송전을 벌이게 됐다고 한다(한경 5월21일자 A1, 9면 참조). 지난해 10월 모뉴엘의 법정관리 신청과 함께 시작된 양측의 ‘네탓 공방’이 자율로 해결되지 못한 것이다. 로봇청소기 홈시어터PC 등 가전제품을 생산하던 모뉴엘의 수출 뻥튀기로 기업·외환 등 은행들이 입은 피해는 3500억원에 달한다.

 

무역보험공사가 보험금을 지급 못 하겠다는 까닭은 은행들이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수출채권 매입과정에서 핵심 서류가 누락됐거나 비정상적으로 처리돼 약정상 보험금의 지급의무가 없다는 논리다. 은행들은 “공사가 7차례나 모뉴엘의 해외 수입업자를 방문했으면서도 사기대출임을 밝히지 못했다”고 반박한다. 대출에 앞서 서류를 다 확인해야 한다면 무역보험공사는 왜 보험증권을 내줬느냐는 항변도 들린다.

 

양측 모두 그럴듯한 주장이지만 둘 다 틀렸다. 정작 사고 때 보험금을 못 주겠다는 공사의 논리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 서류의 내용을 확인 못한 은행 역시 조금도 잘한 게 없다. 공사와 은행 모두 관료주의에 젖어 현장확인부터 소홀했다.

 

보험이라는 게 속성상 사기를 발생케 하고 도덕적 해이도 유발한다. 보험회사와 보험공사는 이점까지 십분 인식해 사고를 막도록 평소에 온갖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사고까지도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인데, 막상 사고가 나자 은행 책임으로 돌려버리면 보험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은행들도 도대체 거래기업을 어떻게 관리한 것인지 의문이다. 은행별로 1000억원에 육박하는 수출채권을 받아주면서 거래기업의 공장이나 서류의 내용을 과연 확인이라도 해본 건가. 이러고도 관치 때문에 은행 자율성이 없다는 푸념이나 할 텐가. 극도의 무능, 아니면 뭔가 부정한 승인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사고를 유발해놓고 치졸한 ‘면피 공방’을 하고 있다. 사고 발생 뒤에도 제대로 된 손실분담 협의가 안 돼 수년씩 걸릴 법정다툼으로 가며 끝까지 책임회피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양쪽 모두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런 수준의 금융과 보험으로는 ‘무역한국’의 장래가 어둡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22금] 노동개혁은 정부가 이끌라는 슈뢰더·하르츠의 고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어제 한국경제연구원 주최 강연에서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정당성 있는 정부가 주축이 돼 노동시장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도 노동시장 개혁에서 한국 노사정위원회 같은 단체를 통해 합의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2000년대 초반 하르츠개혁을 이끌었던 주역인 페터 하르츠 박사도 “노동 개혁의 핵심은 노동자가 (권익만을 고집할게 아니라) 존엄성을 유지하는 한계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하는 것” 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의 대대적인 노동개혁을 주도했던 이들이기에 울림이 크다. 특히 노동개혁은 노사정위원회가 아니라 정부가 밀고가야 하는 것이란 슈뢰더의 고언은 무게 있게 다가온다.

 

독일의 경제력은 지금 세계 최상위권이다. 이런 성과는 슈뢰더 전 총리와 하르츠 박사가 2003년부터 대대적으로 추진했던 고용개혁과 연금개혁의 과실이다. 이들은 성장은 멈추고 실업률은 올라가는데도 복지비용은 갈수록 늘어나는 독일병을 고치는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무엇보다 단기직, 시간제 근무를 도입하고 실업수당 수혜자격을 강화하는 등 노동개혁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실업자는 권리만이 아니라 의무도 있다며 실업자에게 주는 혜택을 과감하게 줄였다. 그들은 개혁기간 동안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을 감수하고도 거침없이 연금개혁과 노동개혁을 추진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일 발표한 ‘2015 상반기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5%에서 3.0%로 0.5%포인트나 낮췄다. 수출부진 탓도 있지만 구조개혁의 지연이 성장률 하락의 주요 원인이다. 특히 KDI는 한국이 구조개혁에 실패할 경우 올해 성장률은 2%대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그토록 외쳐왔던 노동개혁과 연금개혁은 정치권의 어정쩡한 태도와 강성 노조의 반대 등으로 유야무야된 상황이다. 슈뢰더는 인기없는 정책으로 정권을 잃었지만 대신 독일병을 치유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과 의지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22금] '하르츠 개혁' 메시지는 정부의 빠른 결단과 추진력

 

독일은 성공적인 노동시장 개혁으로 오늘의 경제부흥을 일궈냈다는 점에서 우리가 보고 배울 점이 많다. 2000년대 초반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독일은 노동시장 유연화와 복지혜택 축소로 위기상황을 극복해냈다. 당시 구조개혁을 주도했던 페터 하르츠 전 독일 노동개혁위원장은 21일 서울에서 행한 강연에서 "독일 노동개혁의 성공비결은 정부의 빠른 결단과 추진력"이라며 "정부는 개혁과정에서 유권자를 잃는 것도 감내하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하르츠 전 위원장은 정부 역할과 관련해 "개혁 속도에도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개혁을 너무 느리게 추진하면 개혁작업이 성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위원회의 모든 결정사항을 꼼꼼하게 챙겼고 이 과정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노사 양측의 양보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독일 정부가 자발적 합의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지율이 떨어지는데도 정치권과 노조를 설득했다는 대목에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또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는데 이를 거절하면 처벌까지 가능하도록 했다"며 실업복지에도 개인 책임의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는 처방을 제시했다. 구성원이 적절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강제근로를 부과하는 극약 처방을 동원해서라도 모럴해저드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우리 정부는 하르츠 전 위원장의 소중한 메시지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우리는 줄곧 이해당사자 간 합의에만 매달려 개혁작업의 동력마저 상실하고 있지 않은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과 치밀한 전략이 부족했던 탓이다. 대통령이든 경제수장이든 한결같이 남 탓으로 돌리면서 전면에 나서기를 꺼린다면 구조개혁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다. 하르츠 전 위원장은 "대통령이 노사정 관계자들을 불러모아 '아름다운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민은 굳이 대통령이 아니라 어느 장관이라도 과감히 직을 걸고 구조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당찬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22금] 한국 관광 종합경쟁력 중국에도 추월당하다니

 

우리나라 관광 경쟁력이 추락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년마다 내놓는 '여행·관광 경쟁력' 보고서를 보면 올해 한국은 종합경쟁력에서 4계단 밀려난 29위로 떨어졌다. 세부항목인 가격경쟁력 면에서는 조사 대상 140개국 중 109위로 거의 꼴찌 수준이다. 우리가 후진하는 사이 중국·일본은 앞서나가고 있다.

 

특히 중국은 종합경쟁력이 30계단이나 뛰어올라 17위를 차지했다. 불과 2년 사이 우리의 관광경쟁력이 중국에 추월당한 꼴이다. 일본도 9위로 7계단 상승했다. '기는 한국, 뛰는 중국과 일본' 현상이 관광업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중국 관광객(유커)이 지갑을 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롯데백화점이 올 들어 이달 20일까지 방한 유커의 씀씀이를 조사한 결과 1인당 구매액이 58만원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해(65만원)보다 11%, 2013년(90만 원)과 비교해서는 36%나 줄었다. 사는 물건이 과거처럼 고가 명품이 아닌 저렴한 화장품이나 옷 등에 집중된 결과다. 대신 비싼 핸드백·시계 등은 일본에서 사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한류에 의존한 관광객 유치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한류나 쇼핑 말고는 보여줄 게 없으니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국내 여행업계에는 출혈경쟁 때문에 옵션 관광으로 비용을 뽑는 악순환이 만연돼 있다. 이러니 관광객들이 다시 한국을 찾지 않는 것이다.

 

한 국문화관광연구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유커의 한국 만족도는 주요 방문국 16곳 가운데 14위, 재방문율은 25%에 그칠 정도로 초라하다. 똑같은 상품·서비스로는 2년 뒤 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을 유치한다는 목표 자체가 '장밋빛'일 뿐이다. 관광 인프라 확충과 함께 관광객 연령층, 소비행태 변화 등부터 재점검해야 할 때다. 그래야 제대로 된 대응방안이 나온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국일보 칼럼-아침 햇발/박용현(논설위원)-20150522금] 정부가 하는 욕, 정부에 대한 욕

 

정부는 국민을 향해 대놓고 욕하는 반면, 국민은 울컥 정부를 욕했다가는 곤욕을 치른다. 국민연금 논란 속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은 “세대간 도적질”이라고 했다. 국민의 일부를 도둑으로 몬 것이다. “미래세대의 재앙”이라는 청와대의 표현도 같은 맥락의 독설이다. 한편에선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림과 정부를 비판하는 행위예술이 처벌받고 있다. 180도 전도된 현실이다.

 

먼 저 ‘정부에 대한 욕’을 생각해본다. 2008년 8월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한 지방도시를 방문했을 때다. 영접 인파 속에서 에르베 에옹이라는 사람이 작은 팻말을 흔들었다. “꺼져, 이 병신아!” 현장에서 체포돼 대통령 모독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에옹은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다. 2013년 3월 재판소는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에옹의 손을 들어줬다. 이유는 이렇다. “정치인은 자처해서 대중의 선택을 받고자 나선 사람이다. 그러니 칭송뿐 아니라 비난에 대해서도 보통사람보다 더 감내할 의무가 있다. 더구나 에옹은 풍자의 형식을 취했다. 팻말에 적힌 말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얼마 전 자신의 악수를 거절한 시민에게 뱉었던 실언에서 따온 것이다. 풍자는 화를 돋운다. 그렇다고 이를 처벌한다면 공공의 의제에 대한 자유로운 여론 형성을 위축시키게 된다. 그것은 민주국가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 사문화된 대통령 모독죄를 살려냈던 사르코지는 국제적 망신을 샀다. 해당 법은 곧 폐지됐다.

그 런데 에옹은 얼마나 심한 처벌을 받았기에 유럽인권재판소에까지 찾아간 걸까. 고작 30유로(3만6499원)의 벌금에, 그나마 집행유예였다. 대통령과 정부를 모독한 괘씸죄로 구속되고 수백만원씩 벌금을 물어야 하는 우리나라 시민들은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다음으로 ‘정부가 하는 욕’을 생각해본다. 풀기 어려운 국가적 과제가 있을 때 정부는 그 해결을 요구하는 국민에게 욕하고 신경질을 내면 그만인가. 공적연금 문제에 대처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태도가 꼭 그 꼴이다. 정작 국민이 불안해하고 궁금해하는 대목에는 침묵한다. 왜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 1위인지, 지금의 공적연금 제도로 우리의 노년이 안녕할 수 있는지, 해결책은 정녕 없는지…. 정부의 무언의 메시지는 ‘앞으로도 노인세대는 빈곤을 견디며 살라’는 것밖에 안 된다. 근본 원인인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세대간 갈등만 부추긴다.

 

우리처럼 저출산·고령화에 직면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를 최우선 의제로 삼았다. 인구구조 변화에 맞서 성장과 혁신, 번영을 지속하려면 모든 국민의 잠재력을 계발해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창했다. 이를 위해 가정친화적 노동정책, 보육 서비스와 양성평등 강화, 노인세대의 경제활동 확대와 수준 높은 복지 제공, 기업가 정신 고양과 중소기업 활성화, 창의성을 높이는 교육개혁 등 수많은 세부 과제를 두고 2012년부터 정부·재계·노동계 등과 사회적 토론을 지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추구하는 건 세대·계층간 연대와 통합이다. 핵심 모토에 그 정신이 집약돼 있다. ‘모든 세대가 소중하다’(Every age counts).

 

독일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국민에게 꿈을 심어주고 서로 연대하며 공동의 번영을 이룰 수 있도록 저력을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정치 지도자가 할 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곳간 타령이나 하며 비전 제시도 없이 그저 견디라고만 말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저차원 정치다. 이 정부는 그 무위의 정치를 참 시끄럽게도 하고 있다. 더 바라지도 않는다. 국민을 향해 욕이나 하지 말기를, 국민이 하는 욕이라도 달게 받기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김정하(정치국제부문 차장)-20150522금] 국민연금에 대한 2030세대의 불신

 

시민단체 ‘한국납세자연맹’은 2013년부터 홈페이지에서 국민연금 폐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21일 현재 서명자가 10만7000명을 넘었다. 이 단체는 “국민연금은 다단계 피라미드 사기”라고 주장한다. 하버드대 그레고리 맨큐 교수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초기 가입자는 고수익을 챙기지만 가입자가 줄어드는 순간 파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란 것이다. 극단적이긴 해도 국민연금 운용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딱히 반박하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국민은 국민연금을 내가 낸 보험료를 은퇴 후에 내가 돌려받는 구조로 오해하고 있다. 그건 연금 초기 가입자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다. 후대로 갈수록 내가 낸 보험료는 나한테 돌아오는 게 아니라 위 세대의 연금을 지급하는 데 들어간다. 내가 은퇴 후에 받는 연금은 아래 세대가 내는 보험료에서 나온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민연금이 낸 보험료보다 훨씬 큰 연금 혜택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낸 것보다 더 주는 마술을 부리는 건 국가가 연·기금 운용을 탁월하게 잘해서가 아니다. 아래 세대의 보험료 납부가 계속 증가하는 걸 전제로 깔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강제 가입이니 인구만 꾸준히 늘면 낸 것보다 더 주는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피라미드 판매망을 유지하려면 가입자를 계속 불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불행히도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는 2030년부터 줄어든다.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노인 부양비율은 지난해 17.3명에서 2040년 57.2명으로 폭증한다.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급격한 저출산-고령화 추세다.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낸 것보다 더 주는 국민연금이 어떻게 지속가능할까. 나중에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세금으로 연금을 주면 되니까 걱정 말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그 세금은 누가 내나. 그런 속 편한 말씀을 하는 분들은 대개 그때쯤에 세금을 안 내는 분일 거다.

 

  그래서 요즘 2030세대는 국민연금에 대해 굉장히 냉소적이다. 자신들은 덤터기만 쓰고 나중에 연금을 받을 수나 있는 건지 믿을 수 없다는 거다. 이들의 걱정은 과연 기우에 불과한 걸까. 2030세대의 불신을 해소할 책임이 있는 정치권의 요즘 행태는 어떤가. 수십 년 뒤를 내다본 구조 개혁 논의는커녕 정치협상용 숫자 놀음에만 열심이다. 그것도 공무원연금 개혁을 논의하다가 갑자기 국민연금을 끼워넣기로 말이다. 사정이 이러니 국민연금 폐지 서명자가 계속 늘어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경향신문 칼럼-여적/박용채(논설위원)-20150522금] 종이금융의 퇴장

 

지금이야 기억에도 새롭지만 1988년은 올림픽 외에도 한국 역사상 국민주 공모가 처음 이뤄졌던 해이다. 정통성에 목매던 노태우 정권이 증권을 대중화하고 서민들의 재산형성을 돕겠다며 공약으로 내건 사안이었다. 국민주 1호가 된 포항제철의 공모에는 321만명이 참여했다. 공모가 1만5000원에 시초가는 4만3000원. 상당수 청약자들에게 포항제철의 종이증권이 재산목록 1호가 됐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종이증권이 정부의 전자증권제도 도입 방침으로 곧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할 처지라고 한다. 새 제도가 도입되면 실물 종이증권은 없어지고 증권이 전산시스템에 등록되면서 유통이 이뤄진다. 전자증권제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4개국 중 31개국이 이미 도입한 터라 한국은 늦은 편에 속한다.

 

기실 요즘 국제 금융계의 디지털화는 눈이 핑핑 돌 정도다. 덴마크는 최근 주유소와 옷가게, 식당에서 현금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스웨덴도 버스요금의 현금결제를 중단하는 등 현금 없는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일부 은행에서는 현금 취급을 중단하고 전자결제만 허용한다고 한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지만 국내에서도 모바일 통장지갑이 점차 보편화되면서 종이통장이 사라지는 추세다. 어제는 하나카드가 처음으로 실물 없는 모바일 신용카드를 내놓기도 했다. 현금 없는 경제로의 진화인 셈이다.

 

이는 실물이 오고가던 금융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스템이 가능한 것은 모바일뱅킹과 전자지갑으로 상징되는 금융계의 디지털혁명 때문이다. 최대 장점은 편리성이지만 비용절감과 지하경제 차단이란 부수효과도 크다. 현금이 동반되지 않는 거래 덕분에 보안이나 관리 비용은 줄 것이고, 고액 신권만 내놓으면 지하로 숨기 바쁜 현실경제와 달리 거래 투명성도 담보할 수 있다. 금융의 디지털화는 과거 종이가 그랬던 것처럼 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반면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오랫동안 써오던 실물의 퇴장은 그렇지 않아도 빠른 변화에 어지럼증을 느끼는 세대들에게는 두통거리라는 점이다. 변화가 빠르다고 느껴진다면 이미 나이 든 군에 속한다는 것은 굳이 말할 나위도 없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문소영(논설위원)-20150522금] 패자부활전

지구에 소풍을 나왔다고도 하고, 새털 같은 인생이라고도 하지만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한 번의 실패가 영원한 족쇄가 되지 않아야 한다. 1980년부터 범죄자라고 해도 전과 기록 및 수사경력 자료의 관리와 형의 실효에 관한 기준을 정함으로써 전과자의 정상적 사회 복귀를 보장하고 있다. 범죄자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깨끗한 상태’로 만들어 준다. 전과기록 말소로 패자부활전이 가능하도록 했다.

 

2007년 학력위조 논란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2009년 보석으로 풀려났던 신정아씨가 가수 조영남씨의 미술전시회를 기획하면서 큐레이터로 복귀했다. 이른바 ‘신정아 사건’ 이후 첫 번째 기획 전시다. 신씨는 또 민음사의 어린이 책 전문 출판사 비룡소에서 일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비룡소 측에서는 “지금 단계에서 정해진 부분은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2005년 성곡미술관 큐레이터로 세계적 명성의 그림책 작가인 앤서니 브라운과 존 버닝햄의 원화 전시회를 개최해 대성공을 거뒀던 신씨는 그 다음해에는 비룡소와 공동기획으로 ‘존 버닝햄 40주년 기념전’을 역시 성곡미술관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의 인연이 있다. 신씨는 2011년에 불륜이 공개된 에세이 ‘4001’을 출간해 또다시 화제가 됐고 이후 방송으로 재기한다는 보도가 몇 차례 있었으나 불발에 그쳤고 현재에 이르렀다.

 

신씨의 복귀는 그저 화제성이다. 그런데 올해 38살 된 ‘스티브 유’로 활동하는 가수 유승준씨의 복귀 문제는 찬반이 벼락처럼 뜨겁다. 유씨는 최근 인터넷 방송에서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 고국 땅을 밟고 싶다고 무릎 꿇고 반성했다. 병역을 기피한 유승준을 받아 줘서는 안 된다는 측이 대세다. 분노의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이들은 유씨가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해외에 도피한 범죄자이자 거짓말쟁이로 더는 입대가 허용되지 않는 38살에서야 “군대에 가고 싶었다”고 발언하는 등 진정성이 없다고 더 분노한다. 또한 신체검사를 받고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도피한 탓에 유씨의 귀국 보증에 관여했던 병무청 직원이 두 명이나 목이 날아갔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최근 미국 조세법 개정으로 한국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반면 유씨를 이제 용서하자는 측은 고위 공직자의 병역기피 혐의나 아들의 병역기피 등에 대한 분풀이의 제물로 ‘공직자’도 아닌 유씨를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감정을 뛰어넘어 이성적으로 대처하자는 ‘동정론’도 나온다.

 

패자부활전은 중요하다. 유씨에 대한 국민의 과도한 분노는 고위 공직자나 아들의 병역기피를 단죄할 수도 없고 단죄하지도 않으며 ‘신의 아들’이란 특수계층이 생겨나고 있으니 발생하는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제갈공명이 왜 ‘읍참마속’을 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일벌백계하지 않는 사회에서 무차별적인 온정주의가 독버섯처럼 자란다면 장래가 밝지 않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김선태(논설위원)-20150522금] 금고

 

범죄집단이 마약밀매로 엄청난 돈을 챙긴다. 이들은 비밀금고에 돈을 숨기지만 또 다른 조직이 첩보를 입수,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이 금고를 결국 털고 만다. 누구나 한번쯤 영화에서 봤을 법한 소재다. 이런 범죄 오락물에 빠지지 않는 게 바로 금고다. 뭔가 비밀스럽거나 범죄와 연관된 돈, 탈세 등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떳떳하게 번 돈이나 개인적 소장품을 집에 보관하고 싶어 금고를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요즘엔 초저금리가 지속되면서 고액 자산가들 중에는 은행에 돈을 맡기느니 그냥 집에 현금을 보관하겠다며 금고를 사는 이들도 꽤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금고가 잘 팔린다는 소식이다. 롯데백화점의 고급 금고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30% 정도 늘었다. G마켓의 개인금고 판매 증가율은 2012년 2% 정도였으나 지난해에는 15%로 껑충 뛰었다.

 

영어로 ‘safe’ 또는 ‘strongbox’로 불리는 현대식 금고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영국에서다. 자물쇠를 만들던 찰스 첩, 저마이어 첩 형제가 1835년 도난 방지용 금고에 대한 특허를 받고 생산을 시작한 것이 효시로 돼 있다.

 

현재 금고에 대한 UL 인증은 가장 낮은 ‘클래스125’부터 가장 높은 ‘클래스TXTL-60’까지 모두 9단계가 있다. 클래스125는 금고 내부 온도 52도, 습도 80%까지 내용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수준이다. 금고로서 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셈이다. 최고 등급인 TXTL-60은 기계적· 전기적 절단 도구, 드릴, 전기톱, 산소용접기, 절단용 토치 등으로부터 60분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진다. 또 110g 이하의 니트로글리세린(폭발물로 쓰이는 화약) 공격에도 끄떡없어야 한다.

 

가격만 최고 2억원에 달하는 독일산 명품 금고 되틀링이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는 소식이다. 96년 역사의 되틀링은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소량 제작하는 고급 금고로 ‘금고업계의 에르메스’라고도 불린다. 그런가 하면 화장실 천장 구멍에 500만원을 넣어뒀다 돈을 잃어버린 한 시민이 경찰에 도난 신고를 했다는 소식도 있다. 범인은 천장 속에서 살던 쥐로 밝혀졌고 돈은 무사히 찾았다고 한다.

 

2억원짜리 금고든, 천장 속이든 모두 소중한 돈을 보관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일 안전한 금고는 뭐니뭐니 해도 다른 사람의 호주머니라는 말도 있다. 내가 남에게 베푼 것은 도난당할 우려도 없고 언젠가 이자까지 보태져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문성진(논설위원)-20150522금] 위민크로스DMZ

 

'위민크로스디엠지(WomenCrossDMZ)'를 둘러싸고 국내외에서 찬반논란이 뜨겁다. 197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북아일랜드의 메어리드 코리건매과이어를 포함해 전 세계 15개국 30여명의 여성 평화운동가들이 오는 24일 비무장지대(DMZ)를 걸어서 넘어오는 이 행사에 대해 국민행동본부는 성명에서 "이 대회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 한반도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월남식 적화통일을 이루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세계적인 좌파 학자 노엄 촘스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는 "국제평화운동가들의 용기 있고 신념에 찬 결정"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위민크로스디엠지는 종북세력과 연결된 불순한 기도인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축제인가. 19일 평양에 도착한 후 북측의 대대적인 환영행사와 김일성 주석의 만경대 고향집 방문 등 그동안 행적만 보면 아직은 회의적인 부분이 있다. 위민크로스디엠지가 '한반도의 평화와 군사적 대결 완화'라는 행사의 본래 취지를 살리고 남북화해를 위한 메신저를 자임할 수 있으려면 남쪽에서의 남은 활동이 더욱 중요하다.

 

한국 정부는 "행사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21일 위민크로스디엠지의 판문점 도보횡단에 대한 취재불허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그러면서 판문점 대신 경의선 육로를, 도보 대신 차량 이동을 권했다. 남북 간 통행절차와 과거 사례, 안전상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우리 정부의 권고를 행사 주최 측이 준수하기 바란다.

 

그러지 않아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 무산과 북측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등으로 남북관계가 꼬인 상황이다.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행위로는 평화증진을 기대할 수 없다. 이달 초 경기도 파주에 '파티마 평화의 성당'을 봉헌한 독일인 신부 하 안토니오 몬시뇰(93)의 삶에서 우리는 진정성 어린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비원(悲願)을 읽을 수 있다. 그는 1958년 분단국 독일에서 한국으로 와 57년간 '빈자의 성자'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면서 1974년부터는 해마다 5월 임진각에서 '세계 평화와 남북한 평화통일'을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남북한 평화통일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한국에서 생을 마치고 싶다"고 말하는 독일인 노(老)신부의 눈에 '위민크로스디엠지'는 어떻게 비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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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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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방북 무산

■ 검찰, 성완종 리스트 수사 한계 자인한 건가(檢, 이완구·홍준표 불구속 기소)

■ ‘박용성표 중앙대’의 총체적 파탄

■ 공무원연금 개혁

■ 탄소배출권 거래제

■ 왕오천축국전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방북 무산

 

[한국일보 사설-20150521목] 한반도 불안정성 재확인시킨 반 총장 방북 무산

 

북한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을 하루 앞두고 돌연 취소시킨 것은 도무지 납득 되지 않는 처사다. 반 총장이 그제 개성공단 방문사실을 공개한 뒤 선발대 답사를 불과 몇 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반 총장의 긴급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방북허가를 갑작스레 철회하면서도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최고 국제기구의 수장을 상대로 하루 사이에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행태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 동안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세계 평화와 인권의 전도사’인 유엔 사무총장을 상대로 이런 장난을 치는 것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조롱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북한은 2009년에도 반 총장의 방북을 취소한 적이 있다. 북한의 행태로 볼 때 임기 중 평양을 방문하겠다는 반 총장의 바람이 성사될 수 있을 지 회의감이 든다.

 

반 총장이 개성공단을 방문한다고 했을 때 기대가 적지 않았다.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자연스럽게 세계에 알려 공단의 국제화에 긍정적인 여건을 조성할 수 있었다. 북한으로서도 고립과 대결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에서 탈피해 바깥 세계와의 교류 의지를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무엇보다 남북 당국자들이 반 총장 방북을 계기로 직접 접촉해 꽉 막힌 남북 소통의 단초를 찾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반 총장의 공단 방문에 우리측에서 외교부, 통일부 등의 고위당국자들이 대거 수행키로 한 것은 북한 당국자들과의 만남을 기대한 측면이 컸다.

 

북한이 외교적 자해행위를 감수하면서까지 막판에 반 총장의 방북을 불허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공단 근로자들의 임금인상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정부에 대한 압박용일 수 있다. 더 크게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방북한다는 반 총장마저 내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남한 및 국제사회의 제재에 조금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기를 내보이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유엔이 대북제재를 총지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수장인 반 총장에게 불만을 토로한 것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예측하기 힘든 북한의 행태와 이로 인한 한반도의 불안정성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김정은의 러시아 전승기념일 참석을 막판에 무산시키고 반 총장의 방북 약속을 뒤집는 북한의 고립이 군사적 모험주의로 분출될 가능성은 농후하다. 우리 정부와 미국의 당국자들에게서 강경한 대북 경고 메시지가 쏟아지고, 북한이 연일 이를 맞받아치는 상황도 예사롭지 않다. 지금은 무엇보다 한반도 위기지수가 더 높아지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정부는 냉정하게 상황을 주시하며 가능한 모든 경우를 상정하고 대비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21목] 반기문 방북 돌연 취소시킨 북한의 ‘이상 행태’

 

북한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21일 개성 방문을 갑자기 철회했다고 반 총장 쪽이 20일 밝혔다. 북쪽은 뚜렷한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국제사회에서 보기 드문 외교적 결례다.

 

반기문 총장은 유엔을 대표하는 최고위급 외교사절이다. 유엔은 직접 북쪽과 접촉해 반 총장 방북을 확정했다. 한국인인 반 총장이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분단 극복 의지를 지구촌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방북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돌연 문을 닫아건 것은 누가 봐도 잘못이다. 세계는 북한이 국제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나라라고 생각할 것이다.

 

북한이 태도를 바꾼 이유에 대해선 여러 분석이 가능하다. 우선 북쪽 내부에서 최근 강경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성명처럼 핵무기와 연관된 언급이 늘어나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이 대유엔 관계를 재평가했을 수도 있다. 유엔은 평화를 추구하지만 대북 제재를 실행하고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반 총장도 19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개발 등이 모두 안보리 결의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남북관계를 풀려는 북쪽 의지도 약해지는 조짐을 보인다. 이와 관련해 최근 남북 사이엔 상호비방이 가열되고 있다. 어떤 경우든 북쪽은 외교적 즉흥성을 드러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지도력이 특히 대외관계에서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쪽은 최근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계획도 갑자기 취소한 바 있다.

당 장 남북관계 개선 노력에 빨간불이 짙어졌다. 그렇잖아도 6·15 및 8·15 남북공동행사 추진에 제동이 걸렸으며 개성공단 임금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몇 달째 계속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현병철 북한 인민무력부장 숙청 발표 등을 계기로 한 남북 사이 신경전도 심상치 않다.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방북 문제도 진전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끌고 가는 것은 남북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쪽은 국제적 고립 심화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면 남북관계부터 풀기 바란다. 대북정책과 관련해 남쪽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북쪽을 지속적으로 도울 수 있는 나라는 남쪽뿐이다. 우리 정부도 관계 개선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북쪽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북쪽 행태를 비판만 하는 것은 정책이라고 할 수가 없다.

 

 

[경향신문 사설-20150521목] 실망스러운 북한의 반기문 총장 방북 취소

북한이 어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을 돌연 취소했다. 반 총장은 당초 오늘 개성공단을 방문하기로 했으나 북측이 갑자기 방북 허가 결정을 철회한다고 통지한 것이다. 북한이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외교적 결례다. 한반도 평화 메신저로서 반 총장의 방북이 경색된 남북관계 개선의 촉매로 작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감스럽다. 개성공단 내 북한 근로자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남북 갈등 해소의 단초 역할을 하리란 기대도 물거품이 됐다.

 

북한이 방북을 전격 취소한 배경은 분명치 않다. 북측은 철회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고 반 총장은 밝혔다. 반 총장이 그제 기자회견에서 “미사일 발사와 핵개발, 이런 것들이 모두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사항이라는 것을 북한 정부에 말씀드린다”고 발언한 것이 북측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 북한은 어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 유엔 안보리가 미국의 독단과 전횡에 따라 움직이는 기구라고 비난했다. ‘주권 존중의 원칙, 내정 불간섭의 원칙을 스스로 포기한 기구’의 수장이니 설령 결례가 되더라도 방문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번복했을 법하다. 반 총장의 방북 계획이 알려진 뒤 남쪽과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개성공단 임금 갈등 해소의 계기나 남북관계 개선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등 긍정적 전망이 쏟아지자 북측이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 반 총장의 방북 거부 이유가 무엇이든 단 하루 만에 방북 허가와 취소 사이를 오간 것은 북한 내부 의사결정의 불안정성을 보여준다. 가뜩이나 북한은 군부 서열 2인자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숙청하면서 불안과 유동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반 총장의 개성공단 방문 허가 취소로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 개선 기회를 무산시켰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러시아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을 검토했다가 불참키로 전격 결정한 것과 함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로 낙인찍히지 않을까 우려된다. 반 총장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관심을 갖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역량과 조건을 갖춘 국제기구 수장이다. 그제 회견에서도 “유엔은 북한의 유엔이기도 하다. 북한이 손을 내민다면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더구나 평양도 아니고 부담이 훨씬 덜한 개성공단 방문인데도 경직된 자세를 보인다면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이 되기 힘들다.

 

 

[중앙일보 사설-20150521목] 반 총장 방북 무산에도 대화는 계속돼야

 

북한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내줬던 개성공단 방문 허가를 하루 전에 전격 취소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북한의 이 같은 예측 불가한 돌발 행동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며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저버린 예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세계의 중재자인 유엔 사무총장과의 약속을 일언반구 해명도 없이 철회 통보한 것은 외교적 결례를 넘어 스스로 국제사회의 일원이기를 거부한 행동이다.

 

  한술 더 떠 북한 국방위원회는 이날 “우리의 핵 타격 수단이 소형화 다종화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하면서 “함부로 도전하지 말라”는 협박 성명까지 내놨다. 반 총장의 방북으로 꽉 막힌 남북 관계에 다소나마 바람길이 트이길 바랐던 잠깐의 기대가 거품처럼 꺼지고 만 것이다.

 

  당초 북한이 반 총장의 방북을 허가한 것 자체가 의외였다. 북한으로선 기대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반 총장이 방문한다고 해서 당장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대북제재 수위가 낮아지기 어렵고, 남측과의 대화 압력이나 받을 게 불 보듯 뻔했다. 게다가 김정은 체제가 4년 차에 접어들었음에도 내세울 만한 성과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아무리 화내고 다그쳐도 구조적으로 개선의 여지가 없는 상태에서 남한이 배출한 세계적 인물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북한이 유엔과의 대화마저 거부함에 따라 한·미와의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오히려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등의 도발 위험만 더 커진 상황이다. 이는 반 총장뿐 아니라 우리에게 북 정권에 대한 섣부른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지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환상이나 감성적인 이벤트성 접근은 거둬야 한다. 지극히 냉정한 현실 인식 위에서 북한을 바라보지 않으면 얻을 게 없다. 한두 번이 아닌 만큼 이번 일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꾸준하게 대화를 제의하고 협력을 강화하면서 북한을 고립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게 이끌어야 한다. 그것이 북한에도 이득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북한과 마주한 우리의 숙명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21목] 반 총장 방북 불허하고 도발 수위 높이는 북한

 

북한은 20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을 하루 앞두고 돌연 방북허가를 취소했다. 북측은 이날 새벽 외교 경로를 통해 갑작스럽게 이 같은 결정번복 사실을 알려오면서도 구체적인 이유와 설명을 달지 않는 등 국제 외교상식에 크게 어긋나는 결례를 범했다. 개성공단을 방문해 남과 북의 대화에 물꼬를 트겠다는 반 총장의 계획은 발표 하루 만에 무산됐다.

 

북측의 이번 결정은 최근 일련의 움직임과 맞물리며 남북관계에서 당분간 긴장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북한은 최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시험발사는 물론 서해상 남측 함정에 대한 조준타격 위협과 함께 실제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포사격 훈련까지 실시하는 등 도발위협 수위를 날로 높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권력서열 2인자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등 지도부를 무자비하게 공개 숙청하는 등 내부적으로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체제 단속에 몰두하고 있다.

북측의 이번 불허 조치가 유감스러운 것은 5·24조치 5주년을 앞두고 남북 간 대화의 접점이 모색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5·24조치 해제의 관건인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한 북측의 사과 내지 유감표명 등 전향적 조치만 있다면 우리 측은 관계개선을 위해 5·24조치 해제 등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북측의 돌연한 반 총장 방북허가 취소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북한은 이날 또 자신들의 핵 타격수단이 '소형화' '다종화'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하며 "우리의 자위력 강화 조치에 함부로 도전하지 말라"고 위협했다. 한쪽으로는 남북관계 개선을 요구하며 다른 한쪽으로 도발을 일삼는 북한의 전형적 수법이다. 이런 식으로는 남북관계가 더 이상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는 점을 북한 당국은 명심하기 바란다.

 

 

■ 검찰, 성완종 리스트 수사 한계 자인한 건가(檢, 이완구·홍준표 불구속 기소)

 

[경향신문 사설-20150521목] 검찰, 성완종 리스트 수사 한계 자인한 건가

검찰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기로 결론냈다. 홍 지사는 불구속 기소 방침이 확정됐다. 이 전 총리는 기소 여부를 최종 조율 중이나 역시 불구속으로 기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성완종 리스트’ 인물 중 처음으로 사법처리 방향이 정해지는 셈이다. 홍 지사와 이 전 총리는 증거와 증인, 진술이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증거 인멸 정황도 뚜렷하다. 그럼에도 ‘불구속 처리’로 맥없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런 식이라면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등 정권 핵심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과연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회의가 커질 수밖에 없다.

 

검찰은 정치자금법 위반의 경우 ‘2억원 이내’면 불구속으로 기소하는 ‘내부 기준’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죄질의 경중과 국민의 법감정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적용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홍 지사와 이 전 총리는 시종 혐의를 부인해온 데다, 측근들을 시켜 증인을 회유하고 허위 진술을 강요한 정황이 드러났다. 만일 일반 형사사건 피의자가 이러한 행태를 벌였다면 당연히 구속을 피하기 어려웠을 터이다. 수사 초기 검찰은 성 전 회장의 측근들을 증거 인멸 혐의로 잇따라 구속했다. 이들은 구속하면서 정작 검은돈을 받은 쪽의 증거 인멸 행위에 대해선 애써 눈을 감고 있다. 형평성에도 어긋나고,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검찰 앞에는 이제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나머지 6명의 의혹이 놓여 있다. 이들 중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조직·자금을 다루는 핵심 직책을 맡았다. 그럼에도 검찰은 대선자금 수사에 쭈뼛거리는 눈치다. 홍 지사 등에 비해 물증이나 목격자 등이 없다는 한계를 내세운다. 하지만 대선자금 의혹과 관련한 구체적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 성 전 회장의 한 지인은 “2012년 10월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성 전 회장이 가져온 현금 6억원을 1억, 2억, 3억원씩 가방 3개에 나눠 담았다”며 여야 중진의원 3명을 실명으로 거론했다. 이 중 새누리당 인사 2명은 ‘성완종 리스트’에 포함된 정치인이다. 앞서 한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은 검찰에서 대선 직전 성 전 회장이 박 후보 캠프 부대변인에게 2억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이 정도의 단서와 정황이라면 미적댈 이유가 없다.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고 대선자금 수사를 계속 머뭇거리고 회피할 경우 검찰 불신만 키우게 될 것이다. 수사가 국민 눈높이에 미흡하면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521목] 檢, 이완구·홍준표 불구속 기소로 대충 끝내려는가

 

검찰이 어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금품거래를 한 혐의를 받는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불구속으로 기소한다고 밝혔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특별수사팀이 구성된 지 37일 만이다. 성 전 회장의 메모(성완종 리스트)에 나온 8명의 정치인 중 2명에 대해 처음으로 기소 방침이 확정된 것이다. 검찰은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서 수수한 금액이 2억원 이내일 경우 불구속으로 기소하는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치자금법 위반을 가볍게 처벌하는 관행도 문제지만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정치인들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는 뇌물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 국민들의 관점이다. 권력형 범죄에 대해서는 다른 형사사건보다 더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

 

홍 지사나 이 전 총리 모두 핵심 증인에 대한 회유와 허위진술 강요 의혹이 불거졌지만 이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소극적이어서, 검찰의 ‘봐주기 수사’가 아니냐는 의혹도 적지 않다. 두 사람 모두 사건 초기부터 측근들을 동원해 성 전 회장 주변을 탐문하고 입을 맞추려 했다는 것이 검찰 수사에서도 확인됐다. 일반적인 형사사건에서 피의자의 회유와 허위진술 강요가 있었다면 구속 사유임에도 불구하고 홍 지사와 이 전 총리는 불구속 기소되고 성 전 회장의 측근인 박준호 전 경남기업 상무와 이용기 전 비서실장은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됐다. 박 전 상무 등은 불법 자금을 조성하거나 전달한 주체가 아니라 성 전 회장의 지시에 따른 임직원이다. 정작 돈을 받은 쪽은 불구속으로 수사하겠다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홍 지사나 이 전 총리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 수사를 가늠하는 풍향계다.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돈 전달자와 전달 과정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났고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속 기소로 결론을 낸 것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홍문종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등 현 정권 핵심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뻔하게 알 수 있게 한다.

 

기회 있을 때마다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를 다짐했던 검찰은 이번 불구속 기소로 다시 ‘봐주기 수사’ 의혹에 휩싸이게 됐다.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을 기회도 사라졌다. 권력 실세들의 총체적 부패상이 드러나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상황에서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무기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한 꼴이다. 검찰 수사가 국민들의 신뢰를 잃는다면 결국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

 

 

■ ‘박용성표 중앙대’의 총체적 파탄

 

[한겨레신문 사설-20150521목] ‘박용성표 중앙대’의 총체적 파탄

 

박용성 전 중앙대 재단 이사장이 재직 시절 ‘남학생 우대 선발’을 지시했다는 의혹은 충격 그 자체다. 양성평등 원칙에 대한 노골적인 도발일 뿐만 아니라 대입의 공정성을 근간부터 흔드는 불법행위이기 때문이다. 전해지는 박 전 이사장의 발언 내용은 말문을 막히게 한다. ‘분 바르는 여학생들 잔뜩 입학하면 뭐하느냐’는 전근대적인 성차별 의식에 ‘졸업 뒤 학교에 기부금도 내고 재단에 도움이 될 남학생들을 뽑으라’는 황금만능주의식 계산법이 뒤섞인 기괴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는 그동안 하나둘 드러나던 ‘두산그룹 인수 뒤 중앙대’의 비뚤어진 모습 가운데 정점을 찍는 사태라고 할 만하다. 중앙대 총장 출신인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교육부에 압력을 넣어 중앙대의 숙원사업을 해결해주는 대가로 두산그룹 쪽으로부터 상가 특혜 분양을 받고, 총장 재직 때 기부금 수십억원을 학교에 쓰지 않고 재단으로 돌린 혐의로 얼마 전 구속됐다. 부패한 기업 운영의 구태가 대학에 그대로 이식된 꼴이다. 중앙대는 ‘순수학문을 고사시킨다’는 비판 속에서도 학과제 폐지 등 대학 구조조정을 앞장서 추진했다. 이 또한 기업 논리를 막무가내로 대학에 들이댄 패착이었다. 이 과정에서 ‘반대하는 교수들의 목을 치겠다’고 막말을 했던 재단 이사장이 급기야 대학 입시의 공정성마저 왜곡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기업이 대학에 투자해 고등교육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명분 아래 진행됐던 두산그룹 체제의 중앙대 실험은 이로써 총체적 파탄을 맞았다. 대학에 기업 논리를 주입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음이 입증된 셈이다. 끊임없이 이익을 창출하려 드는 기업의 생리는 대학 운영마저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기업인 출신에게 대학을 이끌 만한 자질과 안목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대학과 산업의 유기적 결합이 아무리 요구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기업이 주도하다가는 대학과 학문을 파멸의 길로 몰아넣게 된다는 중대한 교훈을 남긴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는 국가권력은 물론 재단의 전횡으로부터도 보호돼야 한다. 두산그룹은 앞으로 중앙대에 대해 순수한 지원 이외에는 어떤 개입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내놓아야 한다. 중앙대 이외에도 상지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이 부패 재단과 시장 논리에 의해 자율성·공공성을 훼손당하고 있다. 탐욕이 대학을 지배하는 이 고리를 끊지 않고서는 진정한 학문의 발전, 지식 경쟁력 확보는 요원한 일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521목] ‘분 바르는 여학생’ 탈락시키라 했다면 큰 문제다

 

박용성 전 중앙대 재단이사장이 2015학년도 대입 전형에서 남학생을 많이 뽑으라고 지시한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커지고 있다. 어제 한겨레신문은 입시 전형에 참여한 교수와 입학사정관들의 증언을 통해 지난해 10월 박 전 이사장이 ‘2015학년도 경영경제계열 지식경영학부 수시 모집’ 면접에서 남학생을 우대 선발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박 전 이사장은 “분 바르는 여학생들 잔뜩 입학하면 뭐하냐. 졸업 뒤에 기부금도 내고 재단에 도움이 될 남학생들을 뽑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평가를 맡았던 입학사정관은 “서류평가에서 남학생들 비중을 높이라는 얘기를 듣고 따졌다가 이사장님 지시라는 답변을 들었다”면서 “(이사장이)학교에 기부금을 낼 남성 지원자를 많이 뽑으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안다”고 했다. 또 다른 입학사정관은 “서류평가에서 60점 미만이면 탈락시키는 기준이 있었는데, 남학생들에게 면접 기회라도 주자는 마음으로 평가를 하게 됐다”고 했다. 문제의 전형은 ‘특성화고졸 재직자 전형’으로 특성화고 졸업 후 3년 이상 직장 재직자만 지원할 수 있다.

 

대학 측은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며, 분 바르는 여학생이란 표현을 쓴 적이 없다”고 즉각 해명했다. 또 “(전 이사장의 발언 요지는)지원자 수가 많지 않으니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재직자 전형의 장점을 알려서 지원자가 증가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라는 취지였다”고 덧붙였다. 어느 쪽 말이 사실인지 섣부른 판단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교수와 평가위원들의 구체적 증언이 이어져 의혹이 쉽게 가라앉기는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법이다. 박 전 이사장이 보직 교수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막말 이메일을 보낸 사실로 충격을 줬던 것이 채 한 달도 안 된 일이다.

 

만에 하나라도 지시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묵과할 수 없는 불법 행위다.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적용돼야 할 대학의 입학사정관 제도가 이사장의 입김 하나에 뿌리째 흔들린 중대 사안이다. 재단 눈치 보기로 감시기능이 마비된 대학사회의 민낯이 여지없이 들통난 일이기도 하다. 교육부는 이 문제가 정규가 아닌 특별전형에서 빚어졌다고 어물쩍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철저한 사실 확인이야말로 특혜 뇌물 시비로 가뜩이나 어수선한 해당 대학의 명예를 추슬러 주는 일이기도 하다.

 

 

■ 공무원연금 개혁

 

[한국일보 사설-20150521목] 여야 합의 살려 공무원연금 개혁 결실 맺도록

 

여야가 어제 공적 연금 강화를 위한 사회적 기구 구성안에 잠정 합의했다. 각각 원내지도부로부터 협상 권한을 위임 받은 조원진 새누리당ㆍ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뤄낸 성과다. 합의는 ‘5월2일 합의’는 지켜져야 한다는 공감을 기초로 28일 국회 본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처리하고, 공적 연금 강화를 위한 국회 특별위원회와 사회적 기구를 동시에 구성해 발족한다는 것이 골자다.

 

지난 6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가 무산된 지 꼬박 2주 만에 이뤄진 이번 합의는 여러 모로 반갑다. 아직 여야가 최종 합의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무산 이후 잠정합의 형태로라도 만들어진 첫 합의다. 그 동안의 줄다리기에 비추어 연금개혁을 아예 무산시킬 심산만 아니라면, 여야 모두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최종 합의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어제 서울디지털포럼 개막식에 나란히 참석해 머리를 맞댄 김무성 새누리당ㆍ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5ㆍ2 합의’를 토대로 윈윈할 방법을 찾기로 했다는 소식도 고무적이다.

 

무엇보다 최대 쟁점이던, 공적 연금 강화 방안을 논의할 사회적 기구 구성안에 대한 구체적 의견접근이라는 점에서 합의를 평가할 만하다. 즉, 사회적 기구 구성안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를 명기하느냐 여부에 대해 많은 의견접근이 이뤄졌다고 한다. 여당의 반감을 고려해 ‘소득대체율 50%’를 명기하지는 않더라도, 야당의 집착을 고려해 ‘5ㆍ2 합의 존중’을 담보할 만한 문안에 근접했다니 기대를 걸 만하다.

 

공무원연금 개혁 논란의 장기화가 최종적으로 개혁 불발로 이어질 수 있고, 정부나 정치권 일각에서 내심 그런 상황을 바라고 있다는 의심까지 커지는 마당이라 더욱 그렇다. 합의안에 대한 청와대의 불만과 ‘간섭’에 대한 태도의 차이로 여당 내에 불협화음이 일고, 4ㆍ29 재보선 참패 이후 거듭돼 온 야당의 내부 갈등도 조기수습 전망이 흐린 상태여서 자칫하다가는 아무런 결실 없는 장기 논란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이런 불확실성을 적잖이 제거했다는 점만으로도 어제 합의는 값어치가 크다.

 

이에 따라 여야 지도부의 남은 과제는 분명해졌다. ‘5ㆍ2 합의’를 최대한 존중하는 마음가짐으로 자잘한 이견을 다툴 게 아니라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조속한 처리와 공적 연금 강화 방안 논의에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5ㆍ2 합의’에 따른 연금개혁이 애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얼마든지 추가 개혁이 가능하며, 어차피 언젠가는 공적 연금 강화 논의도 필요했음을 위안으로 삼아 어렵사리 마련된 잠정 합의를 전폭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청와대나 정부도 여야 합의에 악영향을 미칠 어떤 간섭도 해서는 안 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21목] 문형표 사퇴 카드라니, 야당 요구 정말 지나치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공무원연금 개정안을 오는 28일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어제 잠정 합의했다. 양당 공무원연금개혁특위 간사들은 논란이 돼 왔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를 국회 규칙에 명기하는 것은 빼고, 공적 연금 강화를 위해 사회적 기구를 구성하는 등 4개항의 잠정합의문을 발표했다. 문제는 이와는 별도로 이면합의안이란 것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특히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카드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간사인 강기정 의원은 새누리당 측에 문 장관 해임안을 잠정합의문에 담을 것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정말 해도 너무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공무원연금을 개혁한다면서 느닷없이 국민연금을 끌어들여 이 지경을 만들어놓더니 문 장관 사퇴를 국민연금 연계에서 발을 빼는 명분으로 삼겠다고 한다. 문 장관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에 대해 ‘세금폭탄’이라고 실체를 지적했던 것을 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고 정쟁의 프레임으로 몰아갔다며 공격하고 있다. 특히 당 지도부가 초강경 입장이라고 한다.

 

구차한 정치적 보복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현행대로 놔둬도 2060년엔 고갈된다. 국민연금 역시 개혁이 시급하다. 이런 판에 야당이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금보다 1%포인트 올려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자고 주장해 대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야당 주장대로 가면 2060년 이후엔 국민연금이 파탄나거나, 미래세대가 ‘보험료 폭탄’을 맞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문 장관은 여당과 야당 간 무책임한 합의로 인해 벌어질 문제를 연금 전문가답게 지적했던 것뿐이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사퇴 이유가 될 수 없다. 불을 질러놓고는 엉뚱한 곳에서 속죄양을 찾으려 한다. 국회가 공무원연금을 개혁한다면서 아무 상관없는 국민연금을 끌어들인 것부터가 월권이었다. 새누리당은 도대체 무슨 이면합의를 했는지 밝혀야 한다. 말이 안 되면 접으면 그만이다. 아무리 무소불위의 국회라고 해도 이런 횡포는 없었다. 대한민국 정치가 정말 너무 지나치다.

 

 

■ 탄소배출권 거래제

 

[중앙일보 사설-20150521목] 탄소배출권 거래제, 환경 이전에 경제도 생각하자

 

올해 시행된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둘러싼 기업들의 반발이 거세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산업계는 20일 공동 성명서를 내고 “탄소배출권을 재할당해 달라”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50여 개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할당량 산정이 잘못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배출을 2020년까지 전망치 대비 30% 줄인다는 계획에 따라 기업들마다 탄소배출 가능량을 할당했는데, 기업들은 “할당목표치가 지나치게 이상적이어서 기업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한국의 탄소 감축 목표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중국·미국·인도·러시아·일본 중 미국·일본의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할 뿐 전면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 전면 시행하는 나라는 독일과 한국뿐이다. 그래서 업계는 경쟁국에 없는 제도로 인한 추가 부담으로 가뜩이나 취약한 제조업 경쟁력이 더 떨어질 것으로 우려한다.

 

  그러나 환경부는 이에 당당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우리 정부는 녹색기후기금(GCF) 유치국인 데다 기후변화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미래전략이 있다. 이것이 다른 나라 수준을 봐가며 따라가는 ‘반응국가’가 아닌 ‘선도국가’가 돼야 하는 이유다. 또 현재 진행 중인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계획에는 이전 체제에 냉담했던 국가들도 동참하고 있다. 정부가 선명성을 보여주기 위해 고심하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환경 선도국이 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탄소배출권은 환경 문제이기에 앞서 경제 문제다. 모든 부담을 기업에 지워선 안 된다. 일본은 대외원조(ODA) 형태로 후진국 현지 공장에 일본산 탄소저감기술을 적용하고, 여기서 감축한 부분만큼을 수입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지구적 탄소배출도 줄이고, 기술도 수출하니 일석이조다. 우리 정부도 무조건 돈으로 거둬가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의 저감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이를 사서 후진국에 원조해 감축 목표를 채우는 등으로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기술은 선도하는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21목] 재할당 시비까지 나온 배출권 거래제의 문제점

 

전 국경제인연합회와 25개 업종단체 및 발전·에너지업종 38개사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를 재산정하고 그에 따라 배출권도 다시 할당해달라고 요구했다. 부실한 배출 예상치와 무리한 감축목표 설정, 미국 중국 일본도 하지 않는 배출권거래제 강행이 결국 재할당 시비까지 불러온 것이다.

 

현 재 시행 중인 배출권거래제의 근거가 되는 2009년 추산 BAU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 산업계가 온실가스 목표관리제 하에서 목표보다 높은 성과를 냈음에도 최근 3년간 배출량은 배출전망치를 2010년 1400만t, 2011년 3100만t, 2012년 2000만t 등 계속 초과하는 모순적 상황이다. 심지어 2011년 배출량은 2014년 전망치를 넘어섰을 정도다. 배출전망 추산 과정에서 산업 현장에 대한 실질적 분석과 예측에 실패했다는 증거다.

 

문 제는 배출전망 수정과 재할당이 이뤄진다고 해도 끝날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2009년 정부가 발표한 ‘2020년 BAU 대비 30% 감축’ 목표부터가 무리한 것이었다. 국내 제조업의 에너지 효율화 수준과 감축기술을 감안해도 이는 실현 불가능한 과도한 수치다. 그런 상황에서 무작정 배출권 거래제를 밀어붙였으니 과소할당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 말이 배출권 거래시장이지 사실상 거래가 전무한 개점휴업 상태다. 정부는 2020년 이후의 감축목표도 곧 제시할 것이라지만 똑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 재산정 요구, 재할당 시비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처음부터 이런 문제를 안고 있었던 배출권거래제를 강행한 게 잘못이었다.

 

결국 산업 경쟁력만 한없이 추락하게 생겼다. 석유화학, 비철, 폐기물, 시멘트 등의 업계는 배출권 할당이 지나치게 적어 아예 공장 가동을 줄여야 할 판이라며 환경부를 상대로 할당처분 취소소송까지 냈다. 해외 생산거점이 있는 국내 기업들은 배출권 문제 때문에 해외 생산비중을 늘리고 있어 국내 일자리까지 대폭 줄어들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배출권거래제인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521목] 이번엔 특조위 시한 논란, 순리대로 가면 안 되나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시작 시점이 세월호 참사 후속조치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이 국회에서“세월호 특별법 시행일인 지난 1월1일부터 특조위 임기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고 발언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에 대해 세월호 특조위와 야당은 “특조위 사무처 등 실질적인 구성이 완료돼야 활동이 시작된다”고 맞서고 있다. 특조위가 아직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지도 못하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또 쓸데없는 논란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유 장관은 세월호특별법 7조에 ‘위원회가 구성을 마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활동을 완료해야 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세월호 특조위원 임명이 1월에 이뤄졌으므로 위원회는 그때 구성됐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체로 정부의 각종위원회가 실제 활동을 시작하는 시점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완료된 이후다. 세월호시행령은 특조위의 독립성 논란으로 불과 열흘 전에야 공포됐다. 그나마 핵심 내용을 바꾸지 않아 특조위가 출범을 늦추고 별도의 시행령을 만들겠다고 했고, 유 장관도 “개정 의견이 제시되면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직제 구성상 위원회에 포함되는 사무처 구성도 완료되지 않았다. 더욱이 정부가 그간 특조위에 대한 예산 지급을 미뤄 사무실에는 집기나 인력도 없이 텅 빈 상태라고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특조위가 지난 1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억지다.

 

세월호특별법에는 특조위 활동 기간을 1년으로 하고 필요하면 6개월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정부 주장대로라면 이미 5개월을 허비했으니 기간을 늘려 잡아도 불과 1년 남은 셈이다. 정부가 세월호 선체인양 시점을 일러야 내년 10월로 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특조위 조사 활동은 4개월 앞서 종료된다. 특조위가 세월호 선체를 살펴볼 수 없다는 얘기다. 세월호 선체 인양은 실종자 9명을 찾는다는 목적도 있지만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기 위한 측면도 크다. 선체의 파손 상태 등을 살펴보면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침몰 배경을 찾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며칠 전 세월호 인양과 관련한 핵심 내용이 담긴 기술검토보고서를 달라는 특조위의 요청을 거부했다가 논란이 일자 방침을 바꿨다. 세월호시행령은 특조위와 유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문제점을 그냥 놔둔 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그래 놓고 특조위가 ‘개점휴업’ 상태라며 다그치고 있다. 매사 이런 식이니 이 정부에 과연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사회에 대한 의지가 있기나 한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제발 이제부터라도 순리대로 당당하게 이 문제에 임하기를 바란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21목] 개발이익 독식하겠다는 강남구의 탐욕

 

서울 강남구가 한국전력 터 개발에 따른 공공기여금을 독차지하기 위해 구민 서명운동을 기획하고 주민 항의시위를 뒤에서 도왔다고 한다. 강남구는 서울에서 가장 부유한 자치구다. ‘99섬 가진 부자가 1섬 가진 이의 먹을거리를 빼앗는다’는 말이 있다. 지역 이기주의 관철을 위해 구민들을 부추긴 강남구청(구청장 신연희)의 행태가 이것과 다르지 않다.

 

현대자동차가 강남구 삼성동의 한국전력 터를 개발해 얻는 이익 중 서울시에 내야 할 공공기여금은 약 1조5천억~2조원으로 추정된다. 현행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법) 시행령엔, 공공기여금을 지구단위계획 구역을 관할하는 시·군·구 안에서만 사용하도록 규정돼 있다. 서울시는 최근 지구단위계획 구역을 송파구의 종합운동장까지 확대해, 강남구 코엑스 일대뿐 아니라 잠실 종합운동장 재정비와 인근 올림픽도로 지하화 사업에도 공공기여금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강남구는 공공기여금을 모두 강남구에만 투입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강남구는 서울시에 압력을 넣기 위해 주민 서명을 받고 펼침막을 대거 걸었는데 이 작업에 공무원을 동원한 사실이 내부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한전 터에 초고층빌딩을 세우면 먼지·소음 때문에 주민 불편이 가중되고 주차와 교통난이 심해질 거라는 강남구청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최대 2조원에 달하는 공공기여금을 그 주변에만 쓰라는 건 너무 과도한 주장이다. 강남구는 높은 재정자립도를 바탕으로 강북의 다른 구들에 비해 훨씬 좋은 사회기반시설과 문화시설, 녹지·공원을 이미 갖추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개발이익을 강남에만 또 투자하라고 하면, 서울 강남과 강북의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설령 법적으론 강남구가 우선권을 갖더라도 서울의 다른 지역과 개발이익을 공유하려는 태도를 갖는 게 ‘더불어 사는’ 자세일 것이다.

 

서울시가 공공기여금을 강남구 및 송파구에서만 사용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도 적절하지 않다. 공공기여금을 잠실 종합운동장 재정비와 인근 올림픽도로 지하화 사업에까지 투입한다 하더라도, 결국 그 일대만 더 좋아져 강남 사는 주민들만 개발이익을 누릴 뿐이다. 이래선 서울의 균형발전을 이룰 수 없다. 한전 터처럼 막대한 공공기여금이 발생하는 지역의 개발이익을 해당 시·군·구만 독점하도록 규정한 건 옳지 않다. 국토법 시행령을 고쳐서라도 개발이익을 서울시 전체의 균형발전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해야 마땅하다.

 

 

[경향신문 사설-20150521목] 전기 남아도는데 발전소 자꾸 지어서야

정부가 지나치게 높은 전력 수요 전망치를 근거로 오는 6월 확정할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짜는 모양이다. 경향신문이 녹색당과 공동으로 기획한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 시리즈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의 해당 실무소위원회가 2020년까지는 4%, 2029년까지는 3%씩 매년 전력 수요가 증가하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기로 접어들면서 전력 수요가 둔화 추세를 보이고 지난해 전력 판매량 증가율이 0.6%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곧이 믿기 어려운 예측이다.

 

전력 수요를 높게 잡으면 원자력발전과 화력발전, 송·변전 시설 등을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 그 결과 전기가 남아돌면 요금 인상 등을 통한 전기 수요 억제는 어려워지고 오히려 전기 과소비를 부추기게 된다. 그래서 전기 소비가 늘어나면 다시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2013년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전력 소비량 증가율을 연평균 3.4%로 예측하고 화력발전소 18기를 추가로 건설키로 했다. 하지만 실제 수요는 전망치를 크게 밑돌았고, 전기가 남아돌면서 LNG발전소의 절반 이상이 사실상 가동이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전력 수요를 부풀린다면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신규 원전 등의 건설을 밀어붙이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국내에서 건설 중이거나 준비 중인 발전소는 55기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 계획 중인 발전소 준공이 지연되고 송전선로 문제로 발전소 가동이 늦어진다 해도 앞으로 12년간 전력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하는 마당에 새로운 불안과 갈등의 요인이 될 발전소 추가 건설에 매달릴 이유가 어디를 봐도 없다.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국내 전력 사정만이 아니라 오는 12월 신기후체제 협상에 올려놓을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반영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안전하고 지속가능하며 탄소 배출을 줄이는 에너지 체제로 나아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은 성장 위주, 공급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전원믹스의 원점 재설정, 대체 가능한 원전 계획의 재검토, 에너지 수요관리 확대, 신재생에너지 보급제도 혁신 등은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다.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할 게 아니라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승인된 발전소 건설을 재검토하는 게 맞지 않는가.

 

 

[중앙일보 사설-20150521목] 강성노조 선배들이 파업 중단 외치는 까닭은

 

전 대기업 노조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울산노사발전연구원은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파업은 울산 경제를 침몰시키는 원인”이라며 노사화합을 촉구했다. 이날 모임엔 김기봉(석유공사), 이원건(현대중공업), 이영복(현대자동차), 이연구(현대정공) 등 전직 노조위원장 2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민주노총은 모든 사안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파업을 선동한다”며 “노동운동가가 정치에 발을 담그면 노동운동은 변질되고 국가와 기업은 망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1980~90년대 파업투쟁을 이끌었던 강성노조위원장들이다. 이원건 전 위원장은 ‘128일 파업’과 ‘골리앗 투쟁’을 주도했다 1년6개월간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노동계 대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욕을 먹으면서까지 파업 중단을 요구하는 이유는 현재 위기상황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제일 잘사는 도시인 울산은 올 1분기 광공업생산이 지난해보다 줄었다. 고용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백화점·대형마트·소매점 판매도 부진하다. 음식점·술집들도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지난해 1조9232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현대중공업은 올 들어서도 크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현대차도 영업이익이 줄어들고 있다. 중국 수출 덕에 호황을 누렸던 석유화학업계도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늪에 빠졌다. 당연히 신규 고용은 줄이고 기존 직원을 희망퇴직 형태로 내보내는 기업이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분규와 파업까지 겹치면 회사건 노조건 공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노조는 여전히 회사 생존을 위해 협조하기는커녕 무리한 요구를 일삼고 있다. 현대차노조는 ‘국내와 해외생산량을 노사 간 합의해 결정한다’는 조항을 올해 임단협에 넣는다고 한다. 현대중공업도 구조 조정을 둘러싸고 노사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노조가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나 몰라라 하고 자기 몫만 챙길 경우 그 결과는 파국이다. 울산에선 현대차 중국 4·5공장이 완공되면 울산공장을 폐쇄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6년째 울산공장을 방문하지 않은 이유도 노조의 잦은 파업과 무리한 요구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미 공장 문을 닫고 중국·인도 등지로 떠나는 기업들의 ‘엑소더스’가 현실화되고 있다. 생산성에 비해 미국 등 선진국 노동자보다 더 높은 임금을 줘야 하는데 어떤 기업이 한국에 공장을 지으려 하겠는가.

 

  현재 위기가 노조만의 책임은 아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현재의 회사 번영에 공헌했듯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노조가 회사와 머리를 맞대고 기업의 생존을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균 연봉 9000만원이 넘는 노조의 파업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하청업체 노동자들과 지역 영세상인들이다. 대기업 노조는 이제 공익적 관점에서 주변을 돌아봐야 할 때가 됐다. 노조가 기득권에 매몰돼 공존의 길을 외면하면 울산 경제가 자동차산업의 몰락으로 파산한 미국 디트로이트시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21목] 일본서 되는 기업구조조정 '원샷법'이 왜 우리는 안 되나

 

정부가 기업 사업구조 개편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 중인 ‘사업재편지원특별법’(일명 원샷법)이 정작 알맹이는 모두 빠진 ‘맹탕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한경 보도에 따르면 당초 정부는 인수합병 촉진을 위해 주식매수청구권 예외 인정, 지주회사 규제완화, 세제지원 등을 포함시키려 했지만 특혜 시비 등을 우려해 모두 빼기로 했다는 것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의 경우 상장사 주주에는 인정하지 않을 방침이었다. 하지만 ‘주주권리 침해 우려’가 제기되면서 관계부처가 부정적 의견을 보여 ‘예외 불가’로 굳어지는 분위기라고 한다. 합병이나 분할 시 과세이연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을 완화해주려던 것도 세수부족과 비과세·감면 축소 기조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무산될 위기다. 지주회사 관련 규제완화 역시 대기업 특혜 논란을 의식해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이뤄질 것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원샷법’이 당초 취지에서 크게 후퇴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기업을 보는 부정적인 사회분위기 탓이다. 우리 사회에는 기업을 백안시하는 반기업정서가 만연해 있다. 기업에 대한 적대감이 확산되면서 기업 지원은 곧 특혜로 인식될 정도다. 법인세 인하는 무조건 ‘부자감세’라며 툭하면 법인세 인상을 요구하는 일부 정치권의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원샷법’을 만든다고 생색은 내놓고 정작 중요 내용은 모두 슬며시 빼고 있는 것도 괜히 “정부가 기업 봐준다”는 오해를 사기 싫어서다. 법 적용 대상에서 대기업을 아예 제외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이런 유명무실한 법을 만들면 뭐하나. 정부는 이달 말 공청회를 열고 ‘원샷법’ 초안을 공개, 내달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설사 국회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실효성 없는 ‘빈껍데기 법’이 될 게 뻔하다.

 

일본은 기업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위해 1999년 ‘산업활력법’을 제정했다. 최근 일본 제조업 부활은 아베노믹스 영향도 있지만 제조업에 활력을 불어넣은 이 법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에서는 되는 ‘원샷법’이 왜 우리는 안 되나.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21목] 한국경제, 구조개혁 없인 3%대 성장도 어렵다

 

우리 경제의 앞날에 대한 시각이 갈수록 우울해지고 있다. 민간경제연구소는 물론 국책연구기관에서마저 우리가 처한 구조적 문제를 거론하며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놓일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5%에서 0.5%포인트 내린 3.0%로 하향 조정했다. 그나마 구조개혁이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가계부채 통제의 끈을 놓칠 경우 전망치는 2%대 후반으로까지 밀려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날 LG경제연구원도 "지금의 추세가 유지된다면 5년간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 중반, 2020년대에는 1%대 중반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쯤 되면 고령화·저출산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경제 본연의 성장 잠재력이 3% 중반은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얘기다. 정부는 그동안 미약하게나마 경기회복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고 봤지만 이날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내놓은 진단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자칫하다가는 뛰어가는 일본에 기어가는 한국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상황 역전의 가능성마저 짚고 있을 정도다.

이들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이유와 해법은 대동소이하다. 무엇보다 부진한 구조개혁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구조개혁의 손길은 미적지근하기만 하다.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공공·노동·교육·금융 등 4대 부문의 구조개혁을 외쳐왔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진전되는 게 없다. 여야 간에 어렵게 합의했다는 공무원연금 개혁은 표류를 거듭하고 있고 노동개혁은 노사정 대타협이 무산된 채 길을 잃었다. 이제껏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마저 구조적 둔화세를 보이는 마당에 구조개혁이 실패한다면 많은 경제예측이 지적하듯이 일본이 거쳐 간 저성장·고령화의 암울한 터널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를 되살리는 해법은 고통스럽더라도 하루빨리 잠재성장률 확충을 위한 구조개혁에 나서는 것뿐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21목] 돈이 돌지도 않는데 풀기만 하면 뭐하나

 

우리나라의 소비자신뢰지수가 2분기 연속 세계 최하위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20일 글로벌 정보분석 기업 닐슨에 따르면 1·4분기 글로벌 소비자신뢰조사는 97로 지난 분기 대비 1%포인트 상승했으나 한국은 46으로 전 분기보다 2%포인트 내려갔다. 우크라이나를 제외하면 조사대상 60개국 가운데 꼴찌다. 국내 소비자의 비관심리가 세계 최악 수준이라는 뜻이다. 기업 투자도 여전히 냉랭하다. 3월 설비투자는 전년동기 대비 3.9% 감소했고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73.6%로 금융위기의 와중이던 2009년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이러니 시중의 돈이 갈 곳을 못 찾는 것도 당연하다. 이날 한국은행 집계 결과 현금과 인출이 자유로운 수시입출식 예금, 요구불 예금을 합친 협의통화(M1)는 3월 평잔 기준 600조7,19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5.5%나 늘었다. 이로써 총유동성(Lf·평잔 기준)에서 M1이 차지하는 비중도 20.7%로 2007년 3월의 21.5% 이후 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유동성의 단기부동화는 저금리 탓이 크다. 예금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보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만 자꾸 늘어나고 정작 소비와 투자로는 연결되지 않는다. 자본시장에서는 돈이 풍년이어도 소비와 투자의 길목에서는 '돈맥경화'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이다.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한은의 세 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하가 오히려 자금의 단기 부동화만 부추기고 있는 꼴이다. 제대로 돌지도 않는 판에 돈을 풀기만 하면 뭐하나. 모디노믹스를 앞세운 인도를 보라. 1·4분기 소비자신뢰지수가 130을 기록하며 4분기 연속 세계 으뜸을 차지했다. 성장 위주의 시장친화적 개방정책으로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에 활력을 불어넣은 결과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인도 경제가 7.5% 성장해 중국(6.8%)을 웃돌 것으로 전망할 정도다. 이젠 우리도 소비와 투자심리 회복이 동반되지 않는 돈 풀기는 사상누각일 뿐이라는 점부터 깨닫고 정책 흐름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 왕오천축국전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521목] 왕오천축국전

 

중국 간쑤성 북서쪽에 있는 둔황. 모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명사산(鳴沙山) 동쪽 절벽에 막고굴(莫高窟)이 있다. 4세기 이후 1000여년에 걸쳐 수도자들이 파 놓은 석굴이 500개 가까이 된다. 오랫동안 사막의 먼지에 묻혀 있던 이곳에서 수만점의 5~11세기 유물이 발견된 것은 1900년 5월이었다. 석굴 16동을 수리하던 사람이 모래벽 너머로 수많은 경전 사본이 소장된 17동, 곧 장경동(藏經洞)을 발견한 것이다.

 

신라 승려 혜초(慧超·704~787)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도 이곳에서 1100여년을 잠자고 있었다. 세계 유일의 8세기 인도·중앙아시아 기행기 《왕오천축국전》은 그 전까지 이름만 전해오다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가 사들인 유물 속에서 앞뒤가 잘린 두루마리 필사본으로 발견됐다.

 

730년 전후에 쓰여진 이 책은 세계 4대 여행기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오도록의 《동유기》, 이븐 바투타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가 13~14세기에 나왔으니 500년 이상 앞섰다. 혜초는 처음에 중국 승려로 알려졌다가 1907년 일본 학자에 의해 신라 승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16 세에 당나라로 건너간 혜초는 20대 때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났다. 약 4년 동안 당시 인도의 다섯 천축국과 지금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등을 돌아보고 종교와 지리, 풍물 등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 시절 인도에는 감옥이나 사형제도가 없고, 죄를 지은 이는 벌금으로 다스리며, 왕과 제후들이 코끼리를 수백마리씩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오천축국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술 취해 싸우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구절도 있다.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 중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혜초 스님이 예전에 인도를 다녀가셨던 곳 중에 베나리스가 있는데 그게 바로 제 선거구”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른바 ‘모디노믹스(Modinomics)’로 인도 경제개혁을 이끌고 있는 그가 “우리는 한국 전화로 통화하고, 한국 차를 타며, 한국 컴퓨터로 일하고, 한국 TV를 본다”는 얘기 끝에 양국의 오랜 인연을 언급한 것이다.

 

모디는 한·인도 최고경영자포럼에서도 그 얘길 했다. 빡빡한 일정 중에 국내 주요 기업인들을 일일이 만나고 경제협력을 구하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200여년 전 젊은 한국인이 열었던 그 여로 위에 새로운 교역로를 닦아보자는 국가 경영자의 충정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임석훈(논설위원)-20150521목] 왕오천축국전

 

'동방의 등불'. 일제 시대인 1929년 인도 시성(詩聖) 타고르가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을 담아 쓴 시로 알려졌다. 많은 우리 국민이 인도하면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이 시일 것이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배웠으니 쉽게 잊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딱 네 줄의 시구에 묻어나는 사랑·격려의 메시지 덕분에 인도라는 나라를 바라보는 한국민의 감정은 나쁘지 않은 듯하다.

 

우리나라와 인도의 인연은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개체는 종교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인 신라 성덕왕 때 승려 혜초가 남긴 책이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다. 천축국은 바로 인도를 지칭한다. 알다시피 이 책은 혜초 스님이 723~727년까지 4년간 인도와 중앙아시아 등을 답사하고 그 행적을 남긴 여행기록이다.

 

이 기록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등과 함께 세계 4대 여행기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하니 내심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혜초 스님이 인도로 향한 목적은 불교의 나라에서 더 큰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였다. 바닷길을 통해 현지에 도착한 혜초는 내륙 각지를 두루 돌아다녔다고 한다. 왕오천축국전에는 8세기 인도는 물론 주변 나라들의 풍습과 문화까지 고스란히 적혀 있다.

 

방한 중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혜초 스님 얘기까지 꺼내며 한국과의 우호를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예전에 혜초 스님이 인도를 다녀가셨던 곳이 베나레스인데 그곳이 바로 제 선거구"라고 했단다. 덕담으로 넘길 수 있지만 한국과 긴밀한 협력을 바라는 마음이 와 닿는다.

19일 하루에만 15~20분 단위로 일정을 조절하며 우리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10여명을 만나 투자를 당부했다니 그의 열정이 대단하다. 삼성전자·현대차 등이 화답을 했다니 곧 좋은 결실이 나올 것이다. 인도 여행길을 개척한 혜초 스님의 기(氣)를 받아 우리 기업들의 '인도 굴기'가 큰 성과를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칼럼

 

[경향신문 칼럼-여적/이기환(논설위원)-20150521목] 인도말과 한국말

 

드라비다인은 유럽 아리아족의 침입 때(기원전 15세기) 인도 남부로 쫓겨난 토착민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드라비다인의 언어(타밀어) 가운데 한국어와 유사한 단어가 400~1300개나 된다고 한다. 쌀은 sal, 벼는 biya, 밥은 bab, 풀(草)은 pul, 씨(種)는 pci, 알(粒)은 ari, 가래(농기구)는 kalai, 사래(밭고랑)는 salai, 모(茅)는 mol이라 한단다. 볍씨를 ‘아리씨’라 하는 것도 흥미롭다. 아빠와 엄마(암마), 언니(안니)의 경우도 거의 같은 발음이고, 궁디(엉덩이), 메티(메뚜기) 등의 명칭도 심상치 않단다.

 

‘현대 한국어=알타이어 계통’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워온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은 “중국 서북방(알타이 근처) 유목민들이 진나라의 노역을 피해 한반도로 이주했는데, 그들이 바로 진한인(辰韓人)들”이라 했다. 그런 진한이 나중에 신라가 됐고 신라의 통치계급이 썼던 진한어가 신라어-고려어-조선어-현대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여-고구려-백제 계통의 언어는 사멸되고 만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그렇다면 진한인의 이주 이전에는 어떤 말을 썼다는 건가.

 

이 대목에서 원로 고고학자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는 인도를 중심으로 한 남방 문화의 영향을 거론한다. 즉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한반도로 이주했듯이 벼농사와 난생신화, 그리고 고인돌 문화 등도 바로 인도-중국(동남아)-한반도로 건너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어와 비슷한 드라비다어 가운데 쌀, 벼, 밥 등 농사와 연관된 단어가 눈에 띈다. 원래 유목민들이었던 진한인들이 남방의 벼농사 기술자들 영향을 받아 농경인이 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특히 한반도를 포함, 동북아 청동기 문화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고인돌이 인도에도 많다는 점을 꼽았다. 한국을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허황옥, 혜초, 타고르 등을 거론하면서 한국과의 인연을 연일 강조했다. 혜초 스님이 순례했던 베나레스(바라나시)가 자신의 선거구라는 점도 언급했다. 단순한 외교적인 수사가 아닌 것은 틀림없다. 2000년보다 훨씬 이전부터 뭔가 친연관계를 맺었다는 방증이 많으니까 말이다.

 

 

■ 그 밖의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왜냐면/허찬란(신부·천주교제주교구 가정사목위원장)-20150521수] ‘부부 사랑’ 위한 매일 15초 운동

 

5월21일은 부부의 날이다. 가정의 달을 뜻하는 5월의 5, 둘이 아니라 하나를 뜻하는 2와 1을 합쳐서 나온 수가 21, 곧 5월 21일이 부부의 날이다. 필자는 부부의 날 강연 준비를 하다 번개처럼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남편과 아내가 하루에 15초만 투자하면 15년 아니 그 이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겠는데 하고 짜낸 것이다.

 

하 루 중, 입을 맞춘다. 눈을 맞춘다. 숨 고르기를 한다. 포옹한다. 기도한다. 금실 좋은 부부 사이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애정 행위가 줄어든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상대의 몸에 무디어지게 된다. 하지만 1초의 볼 키스로도 번개처럼 연애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침묵도 대화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몸이 닿지 않아도 심장이 뛰고 좋은 기운이 상승한다. 말로 하는 대화만큼 감정을 나누는 대화도 소중하다. 단 2초 동안의 눈 맞춤이 하루 중 어느 순간에 발생한다면 아름다운 관광지를 매일 보는 것과 같다.

부부는 정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남편은 힘들 때 아내를 생각하며 “내가 이 사람과도 사는데 세상에 못할 일이 어딨겠나” 하고, 아내는 “내가 이것도 사람 만들었는데 세상에 못할 일이 어딨겠나!” 하는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아무리 화가 나도 딱 3초만 숨을 고르자. 우주의 소리와 심장의 소리는 같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운율은 아기 심장 박동 소리이다. 부부가 서로의 심장을 맞대고 그 뛰는 소리를 느낄 때 부부는 삶과 생명의 경이로움, 우주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바람이었어”라는 가사가 있듯이 부부의 만남은 바람, 운명, 곧 신비다. 신비를 풀어가는 길은 딱 하나, 바로 기도다. 내가 종교를 가지고 있든 아니든, 나의 남편, 아내, 자녀를 위해 5초만 기도하자. 지켜주시라고 청하자.

 

일 초라도 입을 맞추자. 이 초라도 눈을 마주치자. 삼 초라도 숨 고르기를 하자(소리 지르기 전에 ①초 ②초 ③초). 사 초라도 포옹하자. 오 초라도 기도하자. 모든 부부가 15초만 쏟아부으면 매일 금슬 좋은 부부로 새로 태어나리라 믿는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문소영(논설위원)-20150521목] 오바마의 @POTUS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한 두 가지 보도로 어제 한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뜨거웠다. 첫 번째 화제는 오바마 대통령이 18일 자신의 계정(@POTUS)을 만들어 트위터를 시작했다는 보도였다. 그는 “안녕 트위터! 저 진짜 버락입니다. 6년 만에 드디어 대통령 계정을 받았네요”라며 첫 트윗을 날렸다.

 

@POTUS는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미국 대통령)의 약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오바마 개인이라기보다는, 미국 대통령의 개인 계정으로 백악관을 떠날 때 남겨 두고 가야 한다. ‘트친’(트위터 친구)이 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의 트위터에 “@POTUS 아이디를 백악관에 남겨 두고 가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오바마 대통령은 “좋은 질문, 핸들은 백악관이 쥐고 있다”고 답변했다. 계정이 만들어지자 영부인인 미셸 오바마를 비롯해 각 부처 장관과 백악관 참모들, 일반인들의 팔로가 잇따르면서 15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두 번째 화제는 미국의 네트워크 TV채널인 ABC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유일하게 우산을 들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제목의 동영상인데,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가운데 직접 우산을 쓰면서 헬기에서 내린 오바마 대통령이 두 번째 출구 앞에서 백악관 수석보좌관과 부비서실장이 내려오길 기다렸다가 함께 우산을 쓰고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손에 접이식 우산을 든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우산에 들어갈까 말까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사이 좋은 모습을 연출했다. 대통령이 직접 우산을 들고 자신들의 스태프를 기다린 게 카메라를 의식한 ‘연출’ 장면이라고 해도 훈훈하고 보기 좋았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4월 콜롬비아 방문 때 직접 우산을 들긴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허름한 차림의 청소부와도 서로 주먹치기하며 경쾌하게 인사한다. 지난 4월 말 백악관 출입기자들의 만찬에서는 ‘분노의 통역사 루터’라는 코미디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코믹하게 전달하게 하는 등 다양하게 의사소통했다. 지난 12일 조지타운대에서 열린 빈곤 극복을 위한 토론회에는 패널로 참석해 정부 정책을 홍보하기도 했다. 첫 발언을 대통령에게 주는 예의를 지켰을 뿐 사회자는 “대통령의 발언을 막고 토론해도 좋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친미 사대주의자’냐고 묻는다면, 좋은 것은 수입해서 써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제가 제왕적이니 어쩌느니 하지만, 대통령제의 원조는 미국이 아닌가.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리저리 지시만 하고, 여당 소속 의원들조차도 설득하지 못한 채 정무수석을 사퇴하도록 해 정국을 경색시켜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SNS로 다양한 소통을 하더니 요즘 페이스북의 공식 계정도 지난 2월 18일 설날 이후로 게시물이 없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50521목] 본사 방침이 그렇다니 할 말은 없지만 …

 

지난 화요일. 액정이 깨져버린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고 폭우 속에서 30분 이상을 헤맸다. AS센터가 무슨 빌딩 2층이라 했는데. 건물 이름을 물으니 지나는 사람마다 모른단다. 한참이나 기다린 전화 연결 끝에 모 통신사 대리점 2층인 걸 알았다. 비를 흠뻑 맞은 채 들어간 센터에는 남자 서너 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전화 통화가 지연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번호표를 뽑고 한참을 기다려 상담사와 마주했다. ‘기술자가 체크해서 18만원에 액정만을 고치거나 41만원 받고 기계를 고치거나(사실 고치는 게 아니라 대체폰을 준다)’를 정한단다. 2개월 전 비싼 돈을 주고 샀지만 41만원 주고 고칠 바엔 차라리 버리고 싶었다. ‘41만원 들면 고치지 마세요.’ 그러나 내겐 선택권이 없단다. ‘일단 맡기면 액정 바꾸고 그래도 안 되면 주인에게 묻지 않고 무조건 고칩니다.’

 

 ‘무슨 그런 황당한 방식이…. 기계고장이라면 그냥 두세요.’

 

 ‘본사 방침이니 안 됩니다. 불만 센터에 연락하세요.’

 

  거기다가 41만원을 먼저 지불하란다. ‘헐’ 결국 화를 내고 나와서 ‘발레파킹비’ 3000원만 내고 운전석에 앉았다. 비 때문에 앞은 안 보이고. 전화기는 망가져도 할부금은 계속 내야 하고. 운 좋으면 18만원, 운 나쁘면 41만원에 비싼 전화기를 건져? 어쨌든 41만원에 그런 전화기는 못 산다. 다시 차 맡기고 수리점에 들어가 번호표 뽑고 상담하고 41만원 내고 ‘발레파킹비’ 또 주고 나왔다(대리 주차만 가능했다). 열흘 안에 연락한다니 지금은 그들 처분만을 기다리는 중이다.

 

 시원한 빗소리 덕분에 화는 곧바로 누그러들었다. 괜히 상담사에게 화를 냈나. 본사의 방침이 아무리 비합리적이어도 상담사와는 사실 무관한데 말이다. 불쾌함의 본질을 잊었던 게다.

 

  한국에서 물건을 팔면서 정작 한국 소비자의 정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그 회사 방침. 정말 맘에 안 든다. 그런 줄도 모르고 유명 카드사, 통신사와 제휴해 이래저래 보조금 주며 연결시켜줘 엉겁결에 산 내 잘못인가. 외국에서 물건을 팔려면 적어도 현지 소비자 특성을 배려하고 그들의 기호에 맞춰주는 것이 기본일 것 같은데….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그 회사 방침이 그렇다니 할 말은 없지만 우리랑 맞지 않는 그런 낯선 방식의 AS는 먹다 만 사과처럼 흉한 상처를 내 마음에 남겼다.

 

 그래도 건진 건 있다. 화날 땐 잠시 머리를 식혀라. 좋은 교훈 하나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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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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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연금 개혁에 참가했던 청와대 정무수석 전격 경질

■ 미국 케리 국무장관의 사드 배치 압박

■ 국회 특수활동비 개인적 사용 논란

■ 데이터 중심 요금제 확산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연금 개혁에 참가했던 청와대 정무수석 전격 경질

 

[한국일보 사설-20150520수] 정무수석 전격 경질, 靑 경직성이 가장 큰 문제다

 

방향을 잃고 표류 중인 연금정국이 공무원연금개혁 협상과정에 참여했던 조윤선 청와대정무수석의 사퇴로 한층 더 꼬여 들고 있다. 조 수석은 18일 “공무원연금 개혁이 대통령의 기대에 미치고 못하고, 논의마저 변질되는 현실”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개혁안 처리시한(6일)을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기초연금과의 연계로까지 논의가 확장된 것을 막지 못한 데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이는 선(先)공무원연금개혁안 처리를 고수해온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박 대통령이 조 수석 사의를 전격 수용한 것은 사실상 책임을 물어 경질한 의미가 크고, 나아가 향후 협상을 겨냥한 정치권 압박으로까지 비치는 이유다.

 

야당이 강력 반발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어제 조 수석 사퇴에 대해 “사회적 합의에 대한 도발이고 청와대가 국회를 협박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깨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라고 강력 비난했다. 이 원내대표의 이 같은 비판은 ‘국민연금 명목소득 대체율 50%’ 문구가 포함된 5월2일 여야 합의가 여야 정치권을 넘어선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인식에 바탕한 것이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에 대한 입장은 다르나 5ㆍ2합의가 불가피한 사회적 대타협이었음은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이 현실 배경을 외면한 채‘5ㆍ2합의’에 포함된 공적 연금 강화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그 연장선상에 조 수석을 경질을 단행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주무장관인 보건복지부장관은 그대로 두고 정무수석에게만 책임을 묻는 모양새도 자연스럽지 않다. 여권 주변에서는 청와대가 여당에 재량권을 주지 않아 협상에서 타협의 여지를 좁힌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고 한다. 청와대는 연금개혁 협상과정에 과도하게 간여하는 태도에서 벗어나라는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야는 어제 원내 수석부대표들이 만나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에 대해 논의한 데 이어 오늘 여야 간사 중심으로 절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청와대의 경직된 자세가 달라지지 않는 한 돌파구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무수석 경질을 둘러싼 앙금까지 겹쳐 협상 전망은 한층 어두워 보인다. 우리는 누차에 걸쳐 청와대가 결국은 감당할 수밖에 없는 공적 연금 강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또 야당에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명기와 같은 비현실적인 목표 집착에서 벗어나 보다 유연한 자세로 협상에 임하라고 촉구했다. 여야와 청와대 모두 일관된 원칙과 목표도 좋지만 상대가 있는 협상에서 차선을 택하는 유연성과 용기가 필요하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20수] 연금협상에 찬물 끼얹은 정무수석 사퇴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의 갑작스런 사퇴로 연금개혁을 위한 여야 협상에 다시 먹구름이 끼었다. ‘사퇴의 변’에 담긴 내용도 문제지만, 여야 협상을 재개하려는 시점에 박근혜 대통령이 주무수석의 사표를 수리한 건 여러모로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말로는 공무원연금법의 조속한 처리를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딴죽을 거는 청와대 태도는 무책임할 뿐 아니라 ‘이중적’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조 수석의 사퇴가 자의에 의한 것인지 경질인지 그 속사정을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분명한 건, 설령 조 수석이 그의 말대로 합의안의 미흡함과 내용 변질 때문에 그만두겠다고 하더라도 박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그만이었다는 사실이다. 정무수석을 바꾸더라도 현안이 정리된 뒤에 바꾸는 게 상식적이고 박 대통령 인사 스타일에도 맞는다. 그렇기에 현시점에서 조 수석의 사표를 수리한 박 대통령의 의중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조 수석의 ‘사퇴의 변’이 사실은 박 대통령 생각이란 해석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는다. ‘맘에 들지 않지만 공무원연금 개정안은 합의했으니 처리하라. 하지만 국민연금 문제는 절대 언급하지 말라’는 게 박 대통령의 속내인 듯싶다.

 

그러나 공무원연금 못지않게 국민연금 개혁은 시급하고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여야 모두 국민연금 개혁의 당위성에 공감하는데, 청와대가 나서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연계하지 말라’고 고리를 거는 것은 도 넘은 간섭이고 월권이다. 당장 야당은 “국회를 협박하는 거냐”고 반발하고 있다. 야당과 이해당사자의 반발을 키우면서 중요한 사회적 현안을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건지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하다.

이 런 걸 보면, 청와대가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를 진정 원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공무원연금 합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라’고 부추기는 일부 보수언론의 논조에 청와대도 내심 동조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니 새누리당에서조차 “청와대 진의가 도대체 뭔지 알 수 없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이다.

 

청와대의 무책임한 태도와 친박 의원들의 조직적 저항으로 한차례 깨진 연금개혁 합의안을 되살리려는 국회 노력이 다시 시작되는 시점이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 야당과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할 게 아니라면, 사회적 합의를 되살리려는 국회 노력에 어깃장이라도 놓지 말아야 한다. 조 수석의 사퇴를 통해 보내는 청와대의 메시지가 못내 불쾌하게 들린다.

 

 

■ 미국 케리 국무장관의 사드 배치 압박

 

[한겨레신문 사설-2010520수] 케리 국무장관의 ‘사드 압박’에 분명히 답해야

 

미국 고위 관리들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 한반도 배치 압박이 다시 시작됐다. 다음달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길 닦기 작업을 하는 성격도 있는 듯하다. 정부는 불필요한 논란이 일지 않도록 분명한 배치 거부 뜻을 밝히길 바란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18일 서울 용산 주한미군 기지에서 사드 배치 추진을 내비치는 발언을 했다. 이는 동맹국 외교 책임자로서 부적절한 행태다. 그는 이날 낮 한-미 외교장관 회담과 박근혜 대통령 면담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또 미국 대사관 쪽은 케리 장관 발언이 ‘미국 내부 청중을 상대로 한 것’이라고 했다. 결국 ‘외곽 때리기’ 식으로 우리나라에 압박을 가하기 위한 장소로 주한미군 기지를 택한 것이다. ‘두 나라가 사드 배치 문제를 각각 검토하고 있으며 어느 시점이 배치에 적절한지 고려하고 있다’는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의 19일 발언은 더 직접적이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부는 사실상 국민을 속인 게 된다. 정부는 ‘미국의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었다’는 ‘3노’ 입장을 고수해왔다.

 

두 사람이 사드 문제를 언급한 맥락도 타당성이 떨어진다. 케리 장관은 “(북한 위협과 관련해) 모든 것을 대비해야 한다”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드와 다른 것들에 관해 말하는 이유”라고 했다. 그는 이날 회담에서 북한이 최근 공개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스캐퍼로티 사령관도 이를 ‘북한 위협의 진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사출시험이 사드 배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논거로 사용된 것이다. 하지만 사드는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을 탐지하거나 요격하기 어렵다는 게 여러 전문가의 지적이다. 북쪽이 남쪽을 향해 핵무기를 실은 탄도미사일을 쏜다는 기본 가정 자체도 비현실적이다.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해 분명한 사실이 있다. 우선 중국과 러시아·북한은 격렬하게 반대한다. 또 사드 배치·운용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미사일방어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다. 아울러 사드가 배치되면 한반도는 동북아 대결구도의 최전선이 되고 북한 핵·미사일 등의 문제는 풀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논란이 되풀이되는 것은 정부의 모호한 태도 탓이 크다. 정부 안에는 ‘비용을 분담하는 게 아니라면 사드를 배치해서 나쁠 게 있느냐’는 이들이 상당수 있다. 정부는 미국만 쳐다보는 비주체적 태도에서 벗어나 명확한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경향신문 사설-20150520수] 케리 미 국무장관이 사드 거론한 이유 뭔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방한 중이던 지난 18일 서울 용산 주한미군 기지에서 미군 장병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모든 결과에 대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와 다른 것들에 대해 말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한·미 정부간 협의가 전혀 이루어진 바가 없다고 해명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도 “케리 장관의 서울 방문 중 사드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면서 “이전에도 말했듯이 한·미간에는 사드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도 지난달 한민구 국방장관과의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현재 세계 누구와도 아직 사드 배치를 논의한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동안 사드 논의는 미국 정부가 불쑥 그 필요성을 제기했다가 부인하는 일을 반복해왔다. 이번에도 그와 전혀 다르지 않은 패턴이다. 그 때문에 한·미 당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론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실 미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추진하지 않고 있다면 이런 발언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 외교정책의 최고 당국자가 한국에 와서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직접 거론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사드가 매우 민감성 높은 의제로 부각되어 있다는 점을 모르지 않을 미 국무장관의 사드 거론은 그만큼 사드 배치 의지를 드러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발언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이다. 특히 사드 배치를 요청받거나 협의하거나 결정한 바 없다는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결과가 초래된 데는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정부의 책임도 있다. 김장수 주중 대사는 지난 12일 홍콩 TV와의 인터뷰에서 “사드 레이더가 일정한 사거리와 고도제한이 있는 데다 요격에 필요한 레이더 빔만 발사하게 돼 있기 때문에 중국이 우려할 사항은 아닌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사드 배치를 전제로 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배치를 주장하고 해명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의 이 연속극이 이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정부는 사드 배치론이 다시 고개 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반대 입장을 분명히 천명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사드를 배치할 계획이 있어서 그런 것인가.

 

 

[서울신문 사설-20150520수] 한·미, 사드 군불만 때지 말고 실상 제대로 알려라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이 그제 주한미군 장병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한다. 어제는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 및 한미연합사령관과 척 헤이글 전 국방장관이 각각 서울에서 사드 배치 문제를 거론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사드와 같은 새로운 전력 자산이 한반도에 필요하다는 게 미국 측 인사들의 논리다. 그러면서도 누구 하나 한국 측과의 협의 여부 등을 딱 부러지게 설명하지는 않고 있다. 속된 말로 군불만 지필 뿐 솥 걸기를 미루는 형국이다.

 

우리 정부의 사드 정책은 더욱 모호하다. 한·미 양국 간에 협의도, 논의도, 결정도 없었다는 이른바 ‘3노(NO)’ 정책을 고수하면서 ‘전략적 모호성’만 극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사드 얘기만 나오면 무조건 부인부터 하고 보는 행태는 도대체 소신이나 전략이 있는 것인지 의심케 한다. 미국은 줄기차게 공론화를 시도하고, 우리는 언급조차 회피하면서 한·미 동맹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오죽 답답했으면 여당인 새누리당의 유승민 원내대표가 직접 나서서 3노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겠는가.

 

한반도 사드 배치의 외교적 후폭풍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며 한반도 사드 배치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기도 하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 못지않게 한·중 밀월의 외교적 자산 가치 또한 크다는 점이 우리 정부가 사드 공론화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이 문제를 덮어 둘 수만은 없지 않은가. 언젠가 결론을 내야 할 사안이라면 이제는 사드 배치의 필요성 등에 대한 공론화에 나서야만 한다. 군불만 때다 가는 정작 밥 지을 때 불이 꺼지는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사드 문제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면서 갖가지 루머가 돌고 있는 것도 문제다. 미국이 이미 사드 배치 규모 및 장소를 결정했다는 미확인 정보부터 수조원대의 도입 비용을 우리가 치르기로 했다는 소문까지, 오히려 혼란만 커지고 있다. 미군 관계자들이 방한하면 사드 배치와 관련된 행보라는 추측성 보도가 뒤따르곤 한다. 이래선 곤란하다. 이제는 국민들에게 정확한 실상을 알려 줘야 한다. 한반도 사드 배치의 필요성 여부, 배치할 경우 규모 및 장소, 도입 및 유지 비용 등 모든 것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알려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을 낳지 말아야 한다.

 

무기 체계의 효용성은 군이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겠지만 사드 배치의 경우 외교적 판단이 중요하게 작용해야 하는 사안이다. 여론 또한 무시해선 안 된다. 공론화를 통해 불필요한 것으로 결정되면 미국에 양해를 구하고, 점증하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위협에 반드시 필요한 방어체계로 결정되면 중국을 설득하면 된다. 케리 장관의 언급은 오는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드 문제를 의제로 채택하기 위한 공론화 시도로 해석되고, 여권 일각에서도 같은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중앙일보 사설-20150520수] 사드에 관한 미국의 확실한 입장은 뭔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떠나며 남긴 한마디가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케리 장관은 1박2일에 걸친 방한 일정의 마지막 순서로 그제 오후 서울 용산 미군기지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우리는 (북한이 야기할) 모든 결과에 대비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이것이 우리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비롯, 다른 수단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북한의 위협과 관련해 미 국무장관이 사드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란 점에서 비상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파장이 커지자 한국 외교부는 급히 진화에 나섰다. 사드의 배치 필요성을 언급한 게 아니라 북한의 위협에 맞서 다양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일반론을 얘기한 것뿐이라며 과도한 해석을 경계했다. 주한 미국대사관도 가세했다. 미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내부 행사에서 나온 얘기로, 이번 방한에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한·미 간에 사드 문제는 공식 논의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외교수장이 한 공식 발언의 의미를 동맹국 정부와 동맹국 주재 대사관이 애써 축소하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자신의 발언이 몰고 올 파장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케리 장관이 무감각한 것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의도가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주한 미군사령관이 사드의 한국 배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시작된 사드 논란은 한국 사회에 뜨거운 논쟁을 촉발하며 한·미 관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미 정부와 군 관계자가 공론화를 시도하면 한국 정부가 소방수로 나서는 패턴이 반복돼 왔으나 지난달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일단 수그러드는 듯했다. 카터 장관은 “아직 사드 배치를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케리 장관의 느닷없는 발언으로 다시 논란이 재점화되면서 도대체 미국의 진의가 뭐냐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케리 장관은 “한·미 동맹은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며 “한·미 간 대북 공조는 1인치, 1㎝의 빛도 샐 틈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드처럼 중요한 문제에서 미국의 속내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은 빈틈없는 동맹 관계에 어울리지 않는다. 우선 미국부터 사드의 한국 배치에 관한 확실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자기 돈으로 배치하겠다는 것인지 한국에 부담을 요구하는 것인지조차 분명치 않다.

 

  지금까지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 뒤에 숨어 미국의 요청이 없었으니 협의가 없었고, 따라서 결정된 것도 없다는 ‘3 NO’ 입장을 유지해 왔다. 사드의 한국 배치에 반대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고육책(苦肉策)으로 보이지만 대책 없이 결정을 미루는 무책임의 극치라는 지적이 많다. 사드 문제는 대북 억지의 효용성을 따져 우리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다. 미국이나 중국의 눈치를 보며 끌려다닐 문제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런 판단을 할 실력을 과연 이 정부가 갖추고 있느냐일 것이다.

 

 

■ 국회 특수활동비 개인적 사용 논란

 

[한국일보 사설-20150520수] 국회 특수활동비가 의원 주머니 돈인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는 국회 ‘특수활동비’의 불투명한 사용 실태는 충격적이다.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그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입법로비 사건 재판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에 받은 ‘직책비’ 일부를 아들의 유학자금 등 개인적 용도로 썼다고 진술했다. 앞서 홍준표 경남지사도 2008년 국회 운영위원장을 겸한 원내대표 시절에 받은 ‘대책비’가운데 활동비로 쓰고 남은 돈을 부인에게 생활비로 줬다고 밝힌 바 있다.

 

상임위원회 등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국민세금에서 지급된 공금을 개인적 용도에 써도 괜찮다는 두 사람의 공통된 인식이 무엇보다 놀랍다. 신 의원은 법정에서 개인적으로 써도 되느냐는 검사의 물음에 “괜찮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홍 지사도 자신의 발언이 횡령 논란을 부르자 국회 운영위원장으로서 받은 개인급여 성격의 직책수당이어서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을 보였다. 두 사람의 언급은 그런 그릇된 행동과 인식의 틀이 국회의 해묵은 관행으로 뿌리를 내렸음을 일깨운다.

 

그러나 국회의장과 부의장, 상임위원장 등에 지급되는 ‘특수활동비’는 직책수당과 거리가 먼 것은 물론, 개인적으로 쓰라고 주는 돈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공적 활동인 의정의 원활화를 위한 지원비다. 다만 민간의 보편적 관행과 달리 사용내역을 영수증을 첨부해 보고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지급 내역조차 확인하기 어렵다는 제도적 허점 때문에 사실상 눈 먼 돈으로 여겨져 왔을 뿐이다. 상임위원장에 월 800만~1,000만원 지급되는 활동비는 여야 간사들의 활동비, 회의비, 식비 등으로 지출되는 게 보통이다. 이와 별도로 여야 원내대표에게는 ‘원내활동지원’ 명목으로 의석비율에 따른 ‘원내대책비’가 지급된다. 지난해 그 총액이 9억6,000만원, 활동비와 합쳐서 약 80억 원 안팎이었다고 한다.

 

결코 적지 않은 규모의 국민세금이어서 극히 일부라도 함부로 새어나가서는 안 된다. 더욱이 예산을 통제하는 국회가 스스로의 세금 사용에는 최소한의 통제도 적용하지 않아 사실상의 공금횡령을 방조하고 있으니 이런 블랙코미디가 없다. 정의화 의장은 어제 이 문제와 관련, 제도적 장치보다는 개인의 양식에 맡겨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2013년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의 낙마가 국회 활동비와 비슷한 ‘특정업무경비’의 개인적 지출 때문이었다. 또 민간기업도 임직원이 법인카드를 개인과 가족의 소비활동에 쓸 수 없도록 엄격한 자체감사를 일상화한 마당이다. 아울러 국민세금의 투명한 사용 여부를 최종적으로 국회의 양심에 맡기기에는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가 너무 엷다. 그런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국회는 즉각 활동비 사용의 투명성을 높일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520수] 국회 상임위원장 직책수당 없애는 건 어떤가

 

국회의원들이 의정 활동과 관련해 쓰라고 받은 활동비를 부인에게 생활비로 갖다 주거나 아들의 해외유학비로 썼다고 당당하게 털어놓는 어이없는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입법로비’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그제 공판에서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시절에 받은 직책비 일부를 아들의 유학자금 등 개인 용도로 썼다”고 진술했다. 검사가 “상임위원장 직책비를 개인적인 용도로 써도 되냐”고 묻자 신 의원은 한술 더 떠 “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혈세를 유용해 놓고 이런 답변을 했다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이에 앞서 홍준표 경남지사도 지난 11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해명하면서 “2008년 국회 운영위원장 시절 매달 국회 대책비 4000만~5000만원을 전부 현금화해서 대책비로 쓰고 남은 돈을 집사람에게 생활비로 줬다”고 해명했다. 홍 지사도 공무(公務)에 써야 할 돈을 사적으로 유용한 셈이다.

 

직책비나 대책비 모두 상임위원장에게 지급되는 국회 특수활동비를 말한다. 영수증 처리가 필요 없는 특별업무 경비다. 일반 상임위원장은 매달 1000만~2000만원을, 여당의 원내대표가 맡는 운영위원장은 4000만~500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식사비, 경조사비, 명절 선물비 등에 주로 쓰인다. 재량권은 줬지만 특수활동비를 제 맘대로 돌려 쓰는 것은 공금 횡령과 다를 바 없다. 누구의 감시·감독도 받지 않는 ‘눈먼 돈’으로 돼 버린 상황이니 다른 상임위원장들도 별 차이 없이 유용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2013년 2월 낙마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억울할 것 같다. 그는 헌법재판관 재직 때 매달 400만원씩 받은 ‘특정업무경비’를 사적으로 쓴 사실이 드러나 국회의원들로부터 뭇매를 맞은 끝에 낙마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 격’과 다를 게 없다. 특수활동비를 생활비로, 아이 유학비로 가져다 쓴 국회의원들이 헌법재판관의 특수활동비 집행을 잘못됐다고 질타했으니 누가 봐도 코미디다.

 

연간 90억원에 달하는 국회의 특수활동비는 필요할 수 있지만 사적인 유용을 막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집행 규정과 범위 등을 정하고 활동비 내역도 공개해야 한다. 보안을 요구하는 정보기관도 아닌 국회가 활동비를 남몰래 써야 할 이유도 없으니 영수증 첨부 등 증빙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 현금이 아닌 신용카드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아니면 아예 없애는 것도 방법일지 모른다.

 

 

■ 관련 칼럼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520수] 업무추진비

 

업무추진비는 오랫동안 판공비(辦公費)로 불렸다. 글자 그대로 공무(公務)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그러나 공직자들에게는 ‘쌈짓돈’ ‘눈먼 돈’ ‘묻지마 수당’으로 여겨져 왔다. 영수증 처리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도 조세대장에 올리지 않고 임의대로 세금을 걷어 쓰는 은결(隱結)이란 토지를 따로 뒀다. 그래서인지 나랏돈을 제멋대로 쓰는 관행은 좀체 없어지지 않고 있다.

 

요즘은 업무추진비 대신에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라는 용어도 쓴다. 정치권에는 ‘대책비’ ‘직책비’라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얼마 전 페이스북에 “2008년 여당 원내대표를 할 때 여당 원내대표는 국회 운영위원장을 겸하기 때문에 매달 국회대책비로 4000만~5000만원씩 나온다”며 “그 돈은 전부 현금화해서 국회대책비로 쓰는데 남은 돈을 집사람에게 생활비로 주곤 했다”고 밝혔다.

 

입법 로비 혐의로 기소된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근 공판에서 “위원장 시절에 받은 직책비 일부를 아들의 유학 자금 등 개인 용도로 썼다”고 진술했다. 개인적인 용도로 써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된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홍 지사의 ‘대책비’나 신 의원의 ‘직책비’는 사실 국회 예산 항목에 없다. 유사 명목의 특수활동비나 특정업무경비로 보인다.

 

우리나라 국회의 특수활동비는 연간 80억~90억원 정도다. 국회의장과 부의장, 여야 원내대표, 18개 상임위원회와 각종 특별위원회에 주는 돈이다. 여당 원내대표가 월 4000만원 안팎, 국회 상임위원장들이 월 1000만~2000만원 정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이 돈을 간사와 위원들에게 떼어주기도 하고 개인적인 용도로 쓰기도 하면서 융통성(?)을 발휘한다고 한다.

 

그 런데 2013년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청문회에서 헌법재판관 시절 월 400여만원의 특정업무경비를 불투명하게 사용했다며 낙마시키고 횡령 혐의로 고발까지 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 정치인이다. 이 후보자는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명예 손상을 입었다. 그에 비하면 이번에 드러난 활동비 유용은 규모가 몇 배나 된다. 이미 개인적인 생활비와 자식 유학비로 썼다고 자백까지 했으니 법에 따라 처리하는 게 마땅하다.

 

국가 예산을 감시하는 국회 스스로 ‘국민 감사’라도 자청해야 할 판이다. 요즘 의원들은 당 대표를 오래 지낸 이춘구 전 의원이 국회부의장을 그만둘 때 쓰고 남은 판공비 전액을 반납했던 일도 모르는 모양이다.

 

 

■ 데이터 중심 요금제 확산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20수] 데이터 중심 요금제 확산이 단통법 덕분이라니…

 

KT, LG유플러스에 이어 SK텔레콤이 잇달아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내놓자 정부와 여당은 마치 자신들의 성과물인 양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새로운 요금제를 인가하면서 데이터 중심 요금제 도입이 마무리됐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요금인가제라는 규제를 갖고도 정부의 공으로 돌린다는 것이 낯뜨거운 일인데, 미래부는 한술 더 떠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의 효과라고 우긴다. 어이가 없다.

 

SK텔레콤이 최저 2만원대에서 유·무선 음성통화 및 문자 무제한 이용과 필요한 만큼 데이터 사용량 선택이 가능한 요금제를 출시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당장은 KT에 이어 LG유플러스도 비슷한 요금제를 내놓아 이에 대응한다는 성격이 강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통신사업자들이 음성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급속히 전환하고 있는 통신 패러다임 변화를 더 이상 거부할 수 없게 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미국의 최대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즌은 이미 데이터 중심으로 요금제를 개편했다. 일본 NTT도코모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구글까지 MVNO(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 형태로 통신시장에 뛰어들며 월 20달러만 내면 음성, 문자 서비스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고 데이터 사용료는 1GB당 월 10달러인 ‘프로젝트 파이(Project Fi)’ 서비스를 내놨다. 데이터 사용량을 못 채우면 환불까지 해준다. 구글은 이 서비스를 세계 120개 이상의 국가에 제공할 예정이다. 기존 통신사업자로서는 위협을 느낄 만하다. 국내 통신사업자도 예외일 수 없다. 한마디로 데이터 중심 요금제로 가는 건 세계적 흐름이다. 게다가 미래부가 말하듯이 단통법의 효과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자유로운 데이터 중심 요금제 경쟁을 위해 당장 요금인가제부터 폐지해야 한다. 여기에 제4이동통신을 허용하고, MVNO를 활성화하면 경쟁은 더욱 촉진될 것이다. 효과도 없는 단통법이 폐지돼야 함은 물론이다. 요금이든 서비스든 결국 경쟁이 해결해 주는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20수] 이통 데이터요금제, 소비자 혜택 키우는 계기로

 

KT·LG유플러스에 이어 SK텔레콤까지 가세하면서 이동통신 시장에 데이터요금제 시대가 활짝 열렸다. 데이터요금제는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를 무료화하는 대신 데이터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내는 것이다. 이전에도 이통사들이 데이터요금제를 출시했으나 대부분 가입조건이 까다로워 일부에만 혜택이 돌아갔다.

 

하지만 19일 SK텔레콤이 내놓은 요금제를 비롯한 최근의 데이터요금제는 파격적인 부분이 많다. 특히 SK텔레콤은 2만원대의 저렴한 요금제부터 문자메시지는 물론 유무선 음성통화까지 무제한으로 쓸 수 있도록 했다. 고가요금제 사용자에게만 몰렸던 혜택을 저가요금제 가입자에게까지 확대한 것이다. 카카오톡의 보이스톡 등 모바일인터넷전화를 전면 개방하는가 하면 부족한 데이터를 무료로 보충하고 가족·지인과 데이터를 '자유자재'로 주고받을 수 있는 차별화된 서비스까지 선보였다. 모두 소비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요금인하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 자영업자 등 약 300만명이 혜택을 보고 최대 7,000억원의 통신비가 절감될 것이라는 추산까지 나온다.

 

데이터요금제 강화는 데이터 이용량이 급증하는 시대에 맞는 바람직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이통사들로서도 소모적인 보조금 경쟁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요금·서비스 경쟁을 통해 새로운 수익구조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 이통시장은 '호갱'이라는 말이 일반화될 정도로 소비자가 소외돼온 게 사실이다. 통신비 인하라는 명분으로 추진된 정책이나 서비스가 생색내기에 그치기 일쑤였다. 본격적인 데이터요금제 시대 개막이 소비자의 편의와 혜택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통신소비 패턴에 적합한 상품을 고르는 소비자들의 현명한 판단도 중요하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520수] 증시 가격제한 폭 확대, 시장 안정장치 보강해야

 

현재 1거래일 당 상하 15%로 돼있는 가격 등락폭을 30%로 높이는 주식ㆍ파생상품시장 가격제한 폭 확대시행 일자가 다음달 15일로 최종 확정됐다. 한국거래소가 어제 시장 감시방안과 함께 발표한 일정이다. 이로써 가격제한 폭은 1998년 12월 이전 12%에서 15%로 확대된 이후 17년 만에 두 배로 넓혀지게 됐다. 거래소는 이번 조치가 국내 증시의 활력을 높이고 효율적인 가격 결정구조를 정착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들에겐 가격 변동성이 커진 만큼 위험도 커지기 때문에 시장 안정장치 보강이 시급해졌다.

 

증시 가격 등락 제한은 시장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효율적인 가격 형성을 가로막고, 작전세력의 시세 조정에 악용될 수도 있다. 또 주가가 상한가나 하한가 근처에서 등락할 때 오히려 가격제한 폭이 시장의 흐름을 왜곡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가격 제한을 두지 않는 이유다. 반면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는 시장 안정에 무게를 뒤 상하 7~22%의 제한 폭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당초 정액제로 유가증권시장을 운영하다가 95년 정률제를 도입하면서 6% 제한을 둔 이래, 시장의 변동성 등을 감안하며 이번까지 점진적으로 제한 폭을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가격제한 폭 확대되면 일반종목의 경우, 하한가에 사서 마감 전 상한가에 팔면 하루에 최대 60%까지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반면 반대 상황의 거래를 가정하면 하루 만에 투자원금이 반 토막이 날 수도 있다. 위험이 큰 만큼 거래소는 각 종목이 거래될 때 직전 체결가격을 기준으로 3% 이상(코스피 200종목 기준) 가격이 급변하면 2분간의 냉각기간을 주는 변동성완화장치(VI)를 도입키로 했다. 또 지수 급변동 시 20분간 매매를 정지하는 서킷브레이커(CB)의 발동을 하루 3회로 늘리는 방안도 시행키로 했다.

 

하지만 이런 안정장치는 일시 주가변동의 속도를 줄인다 해도 그 폭과 방향을 제어하긴 어렵다. 결국 국내 증시 전체 거래의 60% 가까이를 차지하는 개인투자자들의 입지는 전문적 기관투자가에 비해 적잖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국회에서 관련법 처리가 지연돼 가격제한 폭 확대에 맞출 예정이었던 공매도 잔고물량 공시제도의 시행이 미뤄진 것도 해당 정보에 어두운 개인투자자들에겐 큰 위험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변동성 확대에 따른 투자위험을 낮추려면 개인도 증권사 등을 통한 간접투자를 늘리는 게 정석이다. 그러나 단기간 내 분위기가 바뀌긴 어려운 만큼 당국은 공매도 공시 방안은 물론, 담보유지비율 인상 등 신용리스크 완화 방안도 조속히 보완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20수] 극우 논객들에게 ‘국민 소통’ 맡기다니

 

정부가 국민 소통을 담당할 기관의 주요 직책에 극단적 성향의 논객들을 잇달아 임명했다.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에 임명된 이석우 전 국무총리 공보실장은 트위터를 통해 국가정보원과 군의 선거 개입을 적극 옹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엊그제 국정홍보 담당 차관보로 임명한 이의춘 전 <미디어펜> 대표는 칼럼을 통해 상식을 벗어난 막말을 일삼고 툭하면 극우 논리를 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가 국민의 다양한 의견에 귀를 닫고 한쪽 방향으로 여론을 조종하려고 작심한 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은 현재 전국 5개 지역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청자미디어센터를 관리하고 시청자 제작 방송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등 시청자 권익을 증진하는 사업을 수행하는 정부출연기관이다. 방송사 중심의 일방적인 프로그램 공급이 아니라, 시청자 참여를 활성화함으로써 여론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 재단의 존재 이유다. 총리 공보실장이 되기 전까지 트위터 활동 행적을 보면 이석우 전 실장은 여론 다양성은커녕 정치편향도 이만저만 극단적인 게 아니다.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해 그는 “군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친북정책 비판글”이라고 옹호했다. 야당에 대해서는 “선동” “왜곡” 등의 표현으로 비난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백설공주”라고 미화했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은 말할 것도 없고, 알고 보니 총리 비서실장으로도 매우 부적격한 사람이었다.

 

국정홍보 차관보는 국정홍보·언론협력 업무를 관장하도록 문화부에 새로 만든 자리다. 직제를 만들 때부터 정책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보다는 전직 언론인을 내세워 광고 등을 미끼로 언론사들을 회유하고 통제하려는 것 아닌가 의심을 샀다. 기왕에 자리를 만든다면 균형잡힌 시각을 갖춘 사람을 앉혀야, 그나마 다양한 여론을 수렴하여 정부 안에 전파한다는 최소한의 국민 소통 기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의춘씨는 ‘땅콩 회항’을 지시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상무를 “여론의 기요틴에 의해 무참히 단죄됐다”고 비호하고, 세월호 진실 규명을 요구한 시민들은 ‘좌파 인사들이 파리떼처럼 달라붙었다’는 식으로 매도했다. 튀는 것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려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언론인으로서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글들이다.

 

정부가 이런 인사들을 내세워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이들이 보여온 대결적 자세와 관점을 보면 국민 소통보다는 여론을 분열시켜 국민통합을 되레 해칠 것이 뻔하다.

 

 

[경향신문 사설-20150520수] “한국 교육 자화자찬 아닌 근본적 변화를”

유네스코가 주최하는 교육 분야 최대 국제회의인 ‘2015 세계교육포럼’이 어제 인천 송도에서 개막돼 22일까지 진행된다. 인천 세계교육포럼은 1990년 태국 좀티엔, 2000년 세네갈 다카르에 이어 15년 만에 세 번째 개최되는 것으로서, 2030년까지 향후 15년 동안 세계 교육의 발전 목표와 실천 방안을 설정하는 자리다. 이번 포럼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국제기구 대표와 100여개국 교육 관계 장차관, 비정부기구(NGO) 대표, 전문가 등 1500여명이 참석하며, 합의된 내용은 ‘인천선언’으로 발표된다.

 

전 세계 교육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교육의 미래를 논의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교육을 통한 삶의 변화’라는 이번 대회의 슬로건이 말하듯이 교육은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자본도 자원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가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교육 덕분이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어제 개회식 축사에서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놀라운 성장의 길을 걸어온 한국의 저력도 교육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며 당시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교육 지원이 큰 힘이 됐음을 밝혔다. 포럼 주관 부서인 교육부도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오늘 ‘교육이 발전을 이끈다-한국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특별 세션을 진행한다. 교육 강국으로서 한국의 발전 경험을 전 세계와 공유한다는 취지다.

 

정부가 세계교육포럼 개최국으로서 우리 교육의 발전 과정과 교육 정책을 세계에 홍보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행사장 밖에서는 정부의 자화자찬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교육운동연대 등 3개 전국 연대체와 가톨릭환경연대 등 79개 청소년·교사·시민사회단체는 어제 행사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시경쟁, 과도한 사교육, 부당한 규제야말로 한국 교육의 현 실태”라며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썩어가는 교육을 되살리기 위해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입시경쟁교육 중단, 과도한 학습시간 규제, 교육격차 해소, 취업률 기준의 학교평가 폐지 등 13가지 국내 교육 문제점의 해결을 요구하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벌였다.

 

세계교육포럼에서 정부와 시민단체가 우리 교육에 대해 이처럼 극과 극의 인식 차를 보인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학생·교사·학부모 등 교육 주체가 잘 알 것이다. 교육부는 세계교육포럼을 우리 교육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로 활용하는 데 머물지 말고 누구나 알고 있는 우리 교육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520수] 검찰·법원, 강기훈씨의 사과 요구에 응답하라

대법원 판결로 동료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누명을 벗은 강기훈씨가 검찰과 법원은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그제 자신의 변호인단에게 보낸 e메일을 통해 대법원 판결 후 처음으로 소회를 밝힌 것이다. 강씨는 검찰과 법원의 과오로 억울한 누명을 쓴 채 24년간이나 고통과 치욕에 시달렸다. 두 기관은 이 요구를 받아들일 의무가 있다. 진실 호도로 인생이 망가진 사람과, 진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강씨는 e메일에서 “5월14일(대법원 판결일)로 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끝났다. 이제 역사적 판단과 책임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며 “항소심에서 진술했듯 진정한 용기는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당시 자신을 수사한 검사들과 검찰 조직은 자신이 유서를 쓰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진실을 왜곡했다고도 했다.

 

이 같은 주장은 근거가 확실하다. 강씨가 유서를 대신 썼다고 검찰이 주장한 고 김기설씨의 필적과 강씨의 필적이 다르다는 증거들이 여러차례 공개됐다. 검찰은 모두 조작된 것이라며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당시 수사 검사들은 대법원 판결 후 발뺌하거나, 궤변을 늘어놓으며 판결이 잘못됐다고 변명했다. 법을 떠나 인간적 측면에서도 용납하기 어렵다.

 

그런가 하면 법원은 재판을 한없이 지연시켜 고의성 논란을 자초했다. 예컨대 2009년 서울고법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처음 내린 뒤 대법원이 최종 재심 개시를 결정한 것은 2012년 10월이었다. 3년 이상을 방치한 것이다. 그러고서도 다시 1년3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최종 선고를 내렸다. 강씨는 간암 투병 중이다. 이 때문에 법원이 그가 잘못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대법원 판결은 강씨의 혐의가 없다는 것이다. 누가 왜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웠는지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유서대필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엄중한 책임자 문책이 뒤따라야 한다. 그에 앞서 검찰과 법원은 사건 날조에 대해 강씨에게 사과해야 한다. 강씨가 투병 중이므로 시간이 많지 않다. 두 기관은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이는 또한 죽음을 부추기는 검은 세력으로 매도당한 민주화 세력과 유서조차 대필받는 꼭두각시란 오명을 뒤집어쓴 고 김기설씨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길도 된다.

 

 

[서울신문 사설-20150520수] 군대보다 더한 어느 초등학교의 서열문화

 

21세기 대명천지에 이런 초등학교가 있다. 국립인 서울대사범대 부설 초등학교 이야기다. 이 학교 학생들의 교복에는 ‘계급장’이 있다. 학생들의 어깨에 달린 견장에는 점이 찍혀 있는데 학급 부회장은 1개, 학급 회장은 2개, 전교 부회장은 3개, 전교 회장은 4개다.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교사들에겐 전입 순서에 따라 기수가 있고 술을 마시거나 식사를 할 때도 엄격하게 정해진 규율을 따라야 한다고 한다. 아래 기수 교사들은 식사 자리에 미리 도착해 음식을 먹을 준비를 해야 하고 선배들이 먼저 수저를 든 뒤 후배들이 식사를 할 수 있다. 참으로 황당무계한 학교다.

 

이 초등학교는 사립학교 수준의 교육을 하면서도 등록금을 한 푼도 받지 않기 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꿈의 학교’ ‘로또’로 불린다고 한다. 교사들도 석사 학위 정도는 갖고 있을 만큼 실력을 갖췄다고 한다. 그런 학교가 속을 들여다보면 교도소나 군대보다 더한 서열문화에 깊이 빠져 있다니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규율을 만들고 이끌고 있는 사람이 이 학교 황모 교장이라고 한다. 완장으로 학생들을 서열화하는 것도 모자라서 학부모단체 임원 자녀들을 특별히 우대하는가 하면 교사들을 자신의 경조사에 동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전입 순서를 따르는 교사들의 기수 문화는 1990년대 군대의 ‘하나회’나 사병 조직과 다를 것이 없다. 전근대적인 서열문화를 관행처럼 여기고 지금까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교사들이 침묵을 지켜온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이 학교에는 의식이 깨어 있는 교사를 찾기 어렵고 입바른 소리 하는 전교조 소속 교사도 없는지 궁금하다. 교사들이 그러니 학생들이 배우고 따르는 것 아니겠는가.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상급 학교에 진학하거나 나중에 성인이 돼서 어떤 행동을 할지 눈에 선하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학교가 불법 찬조금을 받은 일이 없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만 할 게 아니다. 학생과 교사의 인권을 침해하는 그릇된 문화를 없애기 위해 가능한 행정력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교장부터 징계해야 하며 교사들 또한 전출 조치를 취해서라도 학교의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여태껏 이런 일이 벌어지는 줄 몰랐다는 것만 해도 교육청의 직무 유기다. 더욱이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립학교다. 비정상적인 학교 운영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교육감이 책임을 져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20수] 공무원 10만명 줄이는 영국 캐머런 정부의 진짜 개혁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2기 정부가 앞으로 5년간 10만명의 공무원을 감축하기로 했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다. 영국 일반직 공무원 43만9000명(지방자치단체 비정규직 등 제외)의 20%를 넘는 거대한 규모다. 놀랄 만한 일이다. 2009년부터 시작된 1기에서도 9만명을 감축했다. 공무원 조직을 최대한 슬림화해 만성적인 공무원연금 적자를 개선하고 국가부채도 해소하겠다는 것이 캐머런의 의지다. 공무원연금을 담당하는 노동연금부 직원 8만명 중 3만명을 줄이겠다는 것에서 공공개혁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캐머런 정부가 출범하면서 시작한 공공개혁은 그야말로 지난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앞선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가 폈던 선심쓰기 복지정책으로 공무원 수가 크게 늘어나 있었고 국가부채는 가히 천문학적이었다. 당장 공무원 수를 줄이고 연금 수령 시점을 늦추는 계획을 추진했다. 공무원들은 즉각 반발했고 파업을 불사했다. 선거에서 앙갚음을 하겠다는 위협도 있었다. 하지만 캐머런 정부는 개혁을 꿋꿋이 밀고나갔다. 영국 국민은 지난 7일 총선에서 오히려 캐머런의 손을 들어줬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캐머런은 곧바로 공공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860억파운드의 재정적자를 2019년까지 70억파운드 흑자로 돌려놓겠다고 강조했다. 공무원 감축분은 IT 자동화 등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미래 공공조직 업무의 형태와 인력 규모를 지금 확실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계산도 있다. 이런 것이 연금개혁이요 공공개혁이다. 캐머런이 그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공무원 수는 공식적으로 100만명가량이다. 하지만 비정규직과 비영리 공공기관 종사자, 군인 등 소위 ‘숨겨진 공무원’을 포함하면 200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지금 공무원을 줄이는 작업은커녕 공무원연금 개혁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라다. 복지와 연금 관련 IT 정보망은 세계 최고라고 하지만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한다. 공공개혁의 당위성은 온데간데없고 정치권은 국민연금까지 끌고들어와 뒤범벅을 만들고 말았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20수] 청년의 일과 꿈이 사라지는 대한민국

 

우리 사회에서 청년세대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적 자립을 위한 일자리부터 사라지고 있다. 19일 통계청에 따르면 취업경험이 전혀 없는 20~30대 실업자 수가 4월 기준 9만5,000명으로 집계됐다. 카드대란으로 고용이 꽁꽁 얼어붙었던 2003년 1월(9만7,000명) 이후 최고치이고 지난해 4월(4만7,000명)에 비하면 배 가까이 늘어났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쉬는 20대 인구도 25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6.3%나 증가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숱한 청년일자리 정책을 쏟아냈는데도 역주행만 계속되니 어찌 된 일인가. 4월 청년실업률은 10.2%로 1999년 외환위기 시절 수준으로 퇴행했다. 더욱 답답한 것은 재탕삼탕 정책만 내놓는 정부다. 전날 고용동향 확대점검회의에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청년취업아카데미 사업에 인문계 과정을 개설하고 대학 내 취업지원 기능을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지엽적이고 땜질식인 처방은 실의에 빠진 구직 청년들을 더욱 절망하게 할 뿐이다.

이날 서울경제신문이 보도한 '세대갈등 이슈에 청년 목소리가 없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보듯이 한국의 청년층은 '고용절벽'도 모자라 국민연금·기초연금·노사정대타협 등 사회정책에서까지 소외돼 심각한 '정책절벽'을 겪고 있다. 게다가 국민의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이 청년과 기성세대의 갈등과 대립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청년이 일과 꿈을 갖지 못하는 나라가 희망적인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개혁이 젊은이들에게 일과 꿈을 돌려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고령화가 진행 중인 한국은 일찍이 연금 문제 등으로 세대갈등이 극심했던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정치권은 세대 간 반목을 키우는 다툼을 멈추고 미래의 짐을 전 세대가 고루 나눠 짐으로써 화합의 미래를 개척해낸 독일과 스웨덴의 '소통정치'를 본받기 바란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20수] 공무원연금개혁 원론으로 돌아가라

 

국회의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공무원연금과 전혀 무관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졸속으로 연계한 여야 '5·2' 합의안의 6일 국회 본회의 처리가 좌절된 후 2주째 논의가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공무원연금개혁안 처리 무산에 책임을 지고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이 사퇴한 것을 두고 "사회적 합의에 대한 도발이고 국회를 협박하는 것"이라는 식의 정치공세에 날을 세우고 있다.

 

4월 국회에서 공무원연금개혁법안 처리가 무산된 것은 기본적으로 여야 합의안에 대한 국민의 비판이 거셌기 때문이다. 공적연금으로 노후소득을 올려준다는데도 그것이 한낱 '사탕발림'이고 결국 아들딸 등 자녀세대의 부담으로 직결된다고 판단한 국민의 집단지성이 작용한 것이다. 이런 여론의 비판을 의식해 여야는 다시 공무원연금개혁법안을 처리하겠다며 서둘러 임시국회 소집에 합의해 5월 국회를 열었다.

하지만 이대로 나가다가는 공무원연금개혁법안의 5월 국회 처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잘못 짜인 틀임에도 새정연은 여야 합의를 강조하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을 고집하고 있고 새누리당은 맥없이 끌려가는 형국이다. 이종걸 새정연 원내대표는 아예 한발 더 나아가 소득대체율 대신 기초연금 강화를 대안이라고 내놓았다. 기초연금으로 소득대체율의 10% 인상 효과를 챙기겠다는 것으로 누가 봐도 공무원연금 개혁 무산을 전제한 한 '퇴로 찾기'로밖에 볼 수 없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본질은 현재 상태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당장에도 재정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지금 이 시점에도 하루에 80억원씩 적자가 나는 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는 지적이 국민적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다. 정치권이 이 같은 국민 정서를 진정 안다면 공무원연금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된 근본적인 이유부터 성찰해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20150520수] 제조강국 지향하는 인도, 기회의 땅으로 활용해야

 

인도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활력 있는 경제권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5월 취임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경제 개혁인 ‘모디노믹스’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고 있어서다. 모디 총리는 인도의 고질적 저성장 구조를 끊기 위해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즉 제조업 중심 성장을 표방하고 신속한 규제개혁 등 경제혁신을 단행했다. 이에 모디 정부 출범 후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전년 대비 30% 늘었다. 중국·일본은 벌써 공격적 투자에 들어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 인도 경제성장률이 7.5%를 기록해 중국(6.8%)을 앞설 것으로 전망했다. 인도가 중국과 어깨를 겨룰 신흥강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방한한 모디 총리와 양국 관계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내년 6월까지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선 협상을 하기로 합의한 것은 매우 시의 적절했다. 특히 모디노믹스의 제조업 중심 성장 전략은 한국의 산업화 및 경제발전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 모디 총리는 1박2일의 짧은 방한 기간 동안 정몽구 현대차 회장,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등 재계 인사들을 만나고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를 방문하는 등 한국경제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12억8000만 명의 내수 시장과 젊은 노동 인구가 많은 인도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우리 경제 발전에도 한 축이 될 수 있도록 활용해야 하는 데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에 있어 인도 시장은 희비가 엇갈린다. 현대차는 인도 내수 2위를 달릴 만큼 성공적이지만, 포스코는 인도에 일관 제철소 건설 계약을 하고도 10년째 주민 반대와 각종 규제에 걸려 더디게 진척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열악한 인프라, 배타성, 불투명성과 독특한 계급 구조 같은 문화적 차이로 충분한 연구 없이는 성공하기 힘든 시장”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인도 시장은 우리에게 기회로 다가왔다. 치밀하지만 빠른 전략으로 인도에서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기를 기대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520수] 남북관계 물꼬 틔울 반 총장의 개성공단 방문

방한 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1일 개성공단을 방문한다고 직접 발표했다.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과해 경의선 육로로 공단을 찾아 입주기업을 둘러보고 북측 근로자들도 격려할 예정이라고 한다.

 

  반 총장은 8명의 역대 유엔 사무총장 가운데 처음 북한을 찾는다. 이번 그의 행보는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한편, 미국의 ‘전략적 무관심’으로 외교무대에서 소외돼온 북한 문제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을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반 총장 측은 유엔 뉴욕 채널을 통해 북측에 방북 의사를 타진해 동의를 얻었고, 우리 정부도 적극 협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이 한마음으로 그의 방북을 지원한 것이다. 이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다.

 

  최근 남북관계는 정부가 5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의 대북 비료지원을 승인하며 대화 노력에 나섰음에도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와 현영철 숙청 등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올해는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3년차로 정부가 대북관계의 동력을 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반 총장이 개성공단에서 북측 고위 인사를 만나 남측과의 대화를 촉구하고, 이를 계기로 남북 간 고위급 대화와 8·15 공동행사가 성사된다면 분단 70주년을 맞아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해빙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반 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을 차기 대선과 연결시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지구촌 평화 유지가 본업인 유엔 사무총장이 남북화해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찾는 건 마땅히 해야 할 일의 하나다. 반 총장이 2013년 남북 간 긴장고조로 개성공단이 폐쇄되자 즉각 정상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고, 폐쇄 조치가 풀리자 누구보다 앞서 축하메시지를 발표한 점을 기억해야 한다. 개성공단은 끊어진 남북을 잇는 유일한 생명선인 만큼 어떤 정치적·군사적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그의 소신에 따른 것이다. 서울과 평양은 반 총장의 이런 뜻을 깊이 헤아려 그의 개성공단 방문이 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대한 협력해야 할 것이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곽병찬 대기자의 현장칼럼 창/곽병찬(대기자)-20150520수] 타살의 조력자들…새정치도 예외일 순 없다

 

대법원이 유서대필에 대해 무죄 선고하던 날, 강기훈은 재판정에 나오지 못했다. 그는 어딘가에서 시시각각 찾아오는 죽음과 힘들게 싸우고 있었다. 유서대필이라는 기상천외의 조작 사건은 그의 영혼을 갈갈이 찢어놓았고, 악성 종양까지 불러들여 몸마저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는 24년 동안 서서히 아주 고통스럽게 타살되고 있었다.

 

그는 서서히 아주 고통스럽게 타살되고 있었다

 

이 제 와 결백이 드러나고 반인륜 패륜아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일까. 저 처절한 말기암의 고통을 손톱만큼이나 줄일 수 있을까. 자살을 조종당한 것으로 조작된 고 김기설씨도 마찬가지다. 지난 24년 그의 의분은 개죽음으로 외면당했고, 그는 패륜 집단의 하수인이라는 낙인 속에서 지워져야 했다.

 

반면 유서대필 조작을 통해 정권은 그 야만적 폭력과 인권유린, 음흉한 거짓과 사기를 묻어버렸다. 사건의 인화점이었던 1991년 4월 백주대낮에 도로에서 경찰특공대 백골단이 강경대씨를 쇠파이프로 두들겨패 죽인 사건도 묻어버렸다. 대학생 강씨의 꿈과 열정도 휴지 조각처럼 구겨 버릴 수 있었고, 유족들의 참담한 고통도 간단히 치워버릴 수 있었다. 도대체 무죄 확정이 고통만 남은 그들의 삶에 무엇을 보상할 수 있을까.

 

강씨가 무참하게 타살된 뒤 전남대 박승희씨를 시작으로 안동대 김영균씨, 경원대 천세용씨가 분신했다. 공권력의 살인은 박종철씨에 대한 고문살해, 이한열씨에 대한 최루탄 피살이 일어났던 1987년 이전으로의 회귀를 알리는 것이었고, 그것은 6월 민주항쟁에 대한 타살을 뜻하는 것이었으며, 잇따른 분신과 투신은 그에 대한 절망감의 표현이었다. 그것을 반인륜 집단의 기획자살로 몰아가는 데 물꼬를 튼 것은 적지 않은 그 타살의 조력자들이었다.

 

1991년 4월 시위 도중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씨의 유해를 실은 영구차 행렬이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출발해 명지대로 향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1년 4월 시위 도중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씨의 유해를 실은 영구차 행렬이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출발해 명지대로 향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 지하씨는 죽음이 있고 난 뒤 <조선일보> 기고문을 통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호통을 쳤다. 정치적 목적 실현을 위해 인간 생명을 제물로 삼아 선전선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졸지에 정권의 폭력에 대한 싸움은 죽음의 굿판이 되었고, 희생자들은 기획된 제물이 되었고, 재야 인사들은 죽음의 기획자가 되었다. 병색이 완연한 글 한 편이 그들의 진정성을 죽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불과 4년 전 전두환의 폭정을 종식시키고 박정희로부터 이어져온 폭력의 시대에 일단락을 지었던 6·10항쟁과 시민들의 헌신을 정권이 타살하는 빌미가 되기엔 충분했다.

 

23년 뒤에도 그들의 ‘후안무치’는 바뀌지 않고 있다

 

김 씨의 글에 용기백배했던 정권은 5월8일 김기설씨가 투신하자, 이른바 “조직적 배후세력”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했다. 6월 항쟁의 타살에 대해 절망한 이들의 죽음을 그들은 죽음의 기획자가 조종한 정치적 사건으로 조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유서대필 조작은 그렇게 김씨의 붓끝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덮어씌운 ‘시체 장사’라는 매도 역시 그 연원을 따지면 이 조작 사건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이 글을 게재했던 신문은 대법원의 무죄 확정에 대해 ‘대법원의 판결은 존중하지만, 진실은 본인만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투로 사설에서 썼다. 무슨 말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뒤틀고 빈정거리는 것만은 분명했다. 대법원은 23년 만에 저희들 판결은 뒤집었지만, 이렇게 저 조력자들의 후안무치를 바꿀 순 없었다. 하긴 저희의 잘못도 반성하지 않는데, 주범인 검찰과 그 조력자들 누가 참회할 것인가.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 조력자들의 빈정거림만 들릴 뿐.

유 서대필 조작은 언제든 무엇이든 조작될 수 있다는 대중적 기만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것이었다. 23년이 지난 지금, 누가 거짓말을 잘하는가의 게임으로 바뀐 정치는 그 결과였다. 믿게끔 거짓말만 하면 선거에서도 승리하고 권력도 쥘 수 있고, 거짓말만 잘하면 권력의 사유화, 권력의 남용, 국정 농단, 권력의 집단적 부패도 용인되는 세상이 되었다. 거짓말에 능숙하면 유능이 되고, 거짓말에 미숙하면 무능이 되었으며 원칙에 충실하면 바보가 되고, 변칙에 충실하면 현자가 되었다. 이에 따라 권력이건 매체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늘어놓게 되었고, 정치는 쇼가 되었다. 어둠 속에서 별은 빛난다는 진술은 거짓이 되었고, 진실은 승리한다고 진술하는 자는 바보가 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는 온갖 거짓말 경연이 펼쳐졌다. 공적 연금 개혁 논란은 숫자 조작으로 점철됐다. 선거 부정은 거짓말의 유무능에 의해 정치적 유무죄가 판결났다. 진실은 언제 어디서나 거짓에 의해 타살을 당했다. 그나마 이 나라의 작은 자존심이었던 부산영화제마저, 그 얄팍한 거짓말로 죽임을 당하고 있다.

 

야당이 존재 의미를 잃으면서 희망도 타살되고 있다

 

조 력자는 그들만이 아니었다. 야당 정치인들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당이 집권을 포기하고, 정치인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포기하는 순간 야당은 존재 의미를 상실한다. 집권 의지를 가질 때 견제도 가능하고, 감시도 가능하고, 정책 대안의 생산도 가능하다. 그러나 오늘의 야당 정치인들은 대부분 집권 의지를 포기했다. 생존 본능, 공천받아 다시 재선하는 것에만 몰두한다. 이들이 동원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자멸을 재촉하는 거짓말. 그사이 유서대필을 포함해, 이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권과 생명, 진실과 희망의 타살은 이루어졌고 진행되고 있다. 그들 또한 타살의 조력자다.

 

 

[경향신문 칼럼/김석종(논설위원)-20150520수] 정동 ‘하비브 하우스’

 

서울 중구 정동(貞洞)은 1396년 조선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이 조성되면서 불리게 된 지명이다. 이곳에 1883년 최초의 외국 공관인 미국공사관이 들어섰다. 조선주재 초대 미 특명전권공사로 부임한 푸트가 민계호와 민영교 소유의 사저를 2200달러에 구입했다. 조선에서 서양인에게 매각된 최초의 부동산이라고 한다. 이후 영국, 독일, 러시아 공관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정동 일대가 서양의 외교가가 됐다.

 

이런 정동에는 아관파천의 현장인 옛 러시아공사관터, 을사늑약이 맺어졌던 덕수궁 중명전, 한국성공회의 상징인 성공회 서울성당, 독립선언문을 비밀리에 등사했던 정동제일교회 등 기념비적인 근대문화유산이 모여 있다. 근대식 교육기관 배재학당, 근대식 여성 교육기관 이화여고, 개신교 예배당 정동제일교회는 모두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현재의 주한미대사관저 건물은 ‘하비브 하우스’로 불린다. 관저 신축 당시 국무부 반대를 무릅쓰고 한옥을 고집한 필립 하비브(Philip Habib) 대사를 기리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1976년 5월 완공된 전통 한옥 기와집으로 세계 미국 대사관저 중 최초로 주재국의 전통 건축양식을 따랐다고 한다. 건축가이자 ‘도깨비 박사’로 유명한 민속학자인 조자용이 설계하고 인간문화재 이광규 대목장이 총감독을 맡았다. 상량식 때는 시루떡까지 해놓고 한국식 고사를 지내 화제가 됐다. ‘ㅁ’자 구조의 한옥 관저 안뜰에는 포석정을 재현한 연못이 있다. 내부는 한옥과 서양식을 결합한 형태다. 솟을대문과 격자창, 문고리 등은 한국 최고의 장인들이 만들었다. 아이젠하워와 카터 등 방한한 미국 대통령들이 이곳에서 묵었다.

 

그동안 거의 공개된 적 없는 하비브 하우스 정원과 구한말 사용되던 옛 미국공사관이 일반에 공개된다고 한다. 서울 중구청이 오는 29~30일 개최하는 ‘정동 야행(夜行)’ 축제를 통해서다. 덕수궁, 성공회서울대성당, 시립미술관, 정동제일교회, 배재학당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등도 밤 10시까지 문을 연다. 늦은 봄날,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흥얼거리며 덕수궁 돌담길 따라 리퍼트 대사가 사는 하비브 하우스를 찾아가는 정동길 시간여행도 괜찮을 것 같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황수정(논설위원)-20150520수] ‘어벤져스2’ 옆 ‘부곡 하와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은 은숟가락을 물고 나온 영화다. 지난해 서울 촬영 이후 꾸준히 입소문을 탄 영화는 지난 17일 관객 1000만명 동원에 성공했다. 개봉 25일 만으로 ‘아바타’가 보유했던 최단 기록(개봉 39일)을 앞섰다. 관전 포인트는 더 남아 있다. ‘아바타’가 가진 역대 외화 최다 동원기록(1330만명)까지 넘어서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사정을 본즉 불가능할 듯싶다. “1000만명을 찍고 나면 최종 스코어는 며느리도 모른다”는 극장가 속설에 기대를 건다 치더라도 막판 뒷심이 달린다. 하루하루 관객 수가 급감하는 중이다.

 

우리가 걱정할 일이야 물론 아니다. 할리우드가 싸 짊어지고 갈 돈 보따리는 이미 ‘대박’이다. 매출액이 900억원에 가깝다. 홈그라운드인 북미를 빼면 우리가 전 세계에서 최고의 뭉칫돈을 챙겨 준 나라다. ‘어벤져스2’의 흥행 성적과 영화적 성취는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서울 로케이션을 할 때부터 국내 언론들은 날마다 앞다퉈 지면을 열어 줬다. 개봉을 앞두고 방한한 주연 배우가 인사동을 찾아 쇼핑 인증샷까지 올렸다. 그런 전략적인 맞춤기획 이벤트까지 두루 감안한다면 성적은 오히려 기대치 미달이다. 시험지를 미리 준 것도 모자라 ‘오픈 북’의 특혜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국내 스크린 2300여개 중 1800개까지 ‘어벤져스2’가 판쓸이할 때 웬만한 영화들은 미리 알아서 재앙을 피해 갔다. 이 영화가 전국 통틀어 하루 1만번을 틀어 대는 난리통에 조용히 간판을 걸었던 영화가 있다. 4년의 우여곡절 끝에 선보인 ‘부곡 하와이’다. 지난해 하반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다양성 영화 개봉 지원작에 선정됐다. 앞서 영화는 바르샤바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뒤늦게 다양성 영화의 자격을 얻어 구색 맞추기용 개봉이 가능했던 셈이다. 매표소 앞에서 이 ‘참한’ 로드무비의 포스터에 공들여 시선을 보내 준 이가 몇일지 궁금하다.

 

‘어벤져스2’에 비친 서울의 모습이 후줄근하다고 불만이 많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서울 촬영을 지원한 만큼의 성과가 없다는 얘기들이다. 그건 별 문제가 아니다. 재미를 못 본 투자라면 앞으로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진짜 문제는 우리의 문화적 상상계가 부지불식간에 그 영토를 뺏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정 문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답답한 눈처럼, 우리의 문화적 취향이 비늘처럼 얄팍해지는 중이다.

 

신수원(마돈나)·홍원찬(오피스)·한준희(차이나타운)·오승욱(무뢰한) 감독의 작품이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연일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모두 우리가 먼저 알아보지 못한 영화들이다. “영화제에 초청받은 기쁨보다 (앞으로 치러야 할) 국내 개봉이 더 무섭다”는 오 감독의 현지 소감이 너무 많은 것을 대신 말해 주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520수] 업무추진비

 

업무추진비는 오랫동안 판공비(辦公費)로 불렸다. 글자 그대로 공무(公務)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그러나 공직자들에게는 ‘쌈짓돈’ ‘눈먼 돈’ ‘묻지마 수당’으로 여겨져 왔다. 영수증 처리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도 조세대장에 올리지 않고 임의대로 세금을 걷어 쓰는 은결(隱結)이란 토지를 따로 뒀다. 그래서인지 나랏돈을 제멋대로 쓰는 관행은 좀체 없어지지 않고 있다.

 

요즘은 업무추진비 대신에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라는 용어도 쓴다. 정치권에는 ‘대책비’ ‘직책비’라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얼마 전 페이스북에 “2008년 여당 원내대표를 할 때 여당 원내대표는 국회 운영위원장을 겸하기 때문에 매달 국회대책비로 4000만~5000만원씩 나온다”며 “그 돈은 전부 현금화해서 국회대책비로 쓰는데 남은 돈을 집사람에게 생활비로 주곤 했다”고 밝혔다.

 

입법 로비 혐의로 기소된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근 공판에서 “위원장 시절에 받은 직책비 일부를 아들의 유학 자금 등 개인 용도로 썼다”고 진술했다. 개인적인 용도로 써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된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홍 지사의 ‘대책비’나 신 의원의 ‘직책비’는 사실 국회 예산 항목에 없다. 유사 명목의 특수활동비나 특정업무경비로 보인다.

 

우리나라 국회의 특수활동비는 연간 80억~90억원 정도다. 국회의장과 부의장, 여야 원내대표, 18개 상임위원회와 각종 특별위원회에 주는 돈이다. 여당 원내대표가 월 4000만원 안팎, 국회 상임위원장들이 월 1000만~2000만원 정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이 돈을 간사와 위원들에게 떼어주기도 하고 개인적인 용도로 쓰기도 하면서 융통성(?)을 발휘한다고 한다.

 

그 런데 2013년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청문회에서 헌법재판관 시절 월 400여만원의 특정업무경비를 불투명하게 사용했다며 낙마시키고 횡령 혐의로 고발까지 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 정치인이다. 이 후보자는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명예 손상을 입었다. 그에 비하면 이번에 드러난 활동비 유용은 규모가 몇 배나 된다. 이미 개인적인 생활비와 자식 유학비로 썼다고 자백까지 했으니 법에 따라 처리하는 게 마땅하다.

 

국가 예산을 감시하는 국회 스스로 ‘국민 감사’라도 자청해야 할 판이다. 요즘 의원들은 당 대표를 오래 지낸 이춘구 전 의원이 국회부의장을 그만둘 때 쓰고 남은 판공비 전액을 반납했던 일도 모르는 모양이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정상범(논설위원)-20150520수] '금메달청'

 

지난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세계 스포츠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이변이 일어났다. 동독이 40개의 금메달을 따내 미국을 제치고 처음으로 세계 2위에 오른 것이다. 동독의 성공비결은 바로 여자 수영선수들의 금메달 석권이었다. 당시 동독 여자선수들의 몸은 남자와 엇비슷해 누가 봐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동독올림픽 단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결을 묻는 질문에 "스포츠 영양학에 대해 집중 연구했다"고 밝혀 경쟁국인 서독 정부가 영양학 연구에 몰두하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독일 통일 후 드러난 사실이지만 동독은 여자선수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남성 호르몬의 일종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제를 복용시켜 탄탄한 근육질의 몸을 만들게 했다. 동독은 조직적으로 금지약물을 투입한 덕택에 20년간에 걸쳐 500개 이상의 메달을 따내며 스포츠 제국의 명성을 떨쳤던 것이다. 1984년 LA 올림픽에 처음 등장한 중국도 금메달에 거는 집착이 남다르다. 중국은 전국 각지에 다양한 체육특기학교를 만들어 수많은 스타 선수를 배출하면서 엘리트 체육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고 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대회에서 한때 시들해졌던 스포츠 국가주의가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경기 순위가 국가 경쟁력으로 인식되다 보니 체제 선전이나 내부 결속 차원에서 스포츠만큼 파괴력을 갖춘 것도 찾기 힘든 탓이다.

 

일본이 오는 10월 아베 신조 총리의 지시에 따라 스포츠청을 신설한다. 생활체육의 성공모델로 여겨졌던 일본이 커다란 방향 전환을 단행한 셈이다. 일본 언론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의 메달 양산을 위한 사령탑이라며 '금메달청' 역할에 머무를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일본은 도쿄 올림픽에서 세계 3~5위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마침 일본 피겨를 대표하는 아사다 마오 선수도 현역 복귀를 공식 선언했다. 주변 압력이 컸다는 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강한 일본'의 욕구가 스포츠 분야까지 번지고 있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영희(문화스포츠부문 기자)-20150520수] 공부법을 공부한다고?

 

주말이면 종종 찾는 집 근처 북카페는 30~40대 손님으로 붐빈다.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공간에서 어른들이 책을 펼쳐놓고 집중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뭔가 뭉클하다. 무얼 그리 열심히 공부하는지 궁금해 언젠가부터 주변 손님들을 몰래 훔쳐보고 있다. 숫자가 가득 적힌 금융 관련 문제집을 푸는 이는 자격증 시험을 앞둔 은행원인 것 같고, 전자사전을 옆에 두고 인터넷 강의를 듣는 여성은 재취업을 준비하는 늦깎이 취준생? 다들 치열하게 살고 있구나 싶어 긴장과 위안이 동시에 몰려온다.

 

  요즘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7번 읽기 공부법』이란 책의 기사를 쓰다 다시 한번 놀랐다. 일본 도쿄대 재학 중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해 ‘공부의 신’이라 불리는 30대 여성이 쓴 책. 대입을 앞둔 수험생이나 중·고생 자녀를 둔 어머니가 주로 구입할 줄 알았는데 정작 이 책을 많이 사는 건 30~40대 남자란다. 교보문고 집계를 보니 모든 연령대 중 40대 구매율이 31.8%로 가장 높았고, 남자가 17.4%로 여자(14.4%)보다 많았다. 30대 남자도 15%를 차지한다. 일반적으로 책을 사는 사람의 남녀 비율은 45대 55 정도, 연령은 30대-20대-40대 순인 것과는 차이가 있다. “자격증을 공부하는 샐러리맨들이 많이 찾는다”는 게 서점 측의 설명.

 

  평생 공부해야 살아남는 시대다. 경쟁은 치열하고 배워야 할 것은 많다. 그래서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은 하버드대 학생들의 공부법을 알려주는 책, 베스트셀러 저자가 글쓰기 비법을 알려주는 책,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각 분야 얕은 지식을 모아놓은 책 등이 채우고 있다. 책을 읽기 전 읽는 법을, 글을 쓰기 전 쓰는 법을, 말하기 전엔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게 하나의 유행이 됐다.

 

  하지만 『7번 읽기 공부법』의 저자와 인터뷰를 하며 정작 와닿았던 건 “공부에 왕도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녀 역시 꾸준히 하다 보니 되풀이해 읽는 방법이 자신에게 가장 효과가 좋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결국 본인의 성격과 생활습관에 어울리는 자신만의 공부법을 찾아내야 좋은 성과가 나온다는 게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필자 역시 한때 서점의 거의 모든 연애지침서를 사들였으나 여전히 연애가 어렵고, 글을 잘 쓰고 싶어 각종 글쓰기 책을 탐독했지만 현재까지 이 모양이다. 그리하여 무엇 무엇을 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을 읽을 시간에 무엇 무엇을 해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공부도 마찬가지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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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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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5ㆍ18민주화운동

■ 경색된 남북관계

■ 2012년 대선자금 수사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취임 100일

■ 공적연금 개혁

■ 케리 미국 국무장관 방한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5ㆍ18민주화운동

 

[한국일보 사설-20150518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논란할 사안인가

 

국가보훈처가 오늘 열리는 제35주년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결국 제창이 아니라 합창으로만 부르도록 결정했다. 윤장현 광주시장을 비롯해 시의회 의장, 시교육감, 자치구청장 및 자치구의회 의장 등은 공동성명을 통해 “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이 무산된 것은 이 노래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불의에 항거한 상징적 노래, 국민의 노래라는 점에서 5ㆍ18 정신에 반한다”면서 이 노래의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촉구하고 나섰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5ㆍ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2008년까지 10년 넘게 제창된 노래가 왜 안 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일부 보수단체 중심의 반대를 핑계 삼은 보훈처의 결정은 이해하기 어렵다. 보훈처는 “ ‘임을 위한 행진곡’이 1991년 황석영ㆍ리춘구(북한 작가)가 공동 집필해 제작한 북한의 5ㆍ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됨으로 인해 노래 제목과 가사 내용인 ‘임과 새날’의 의미에 대해 논란이 야기됐었다”면서 “특히 작사자의 행적 때문에 제창 시 또 다른 논란 발생으로 국민 통합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백기완 선생의 시를 소설가 황석영이 개사한 것으로 1982년에 만들어졌다. 이 노래는 유족 추모제에서 불리다 2003년부터는 정부 주관 기념식에서 제창됐으나 2009년부터 식전행사로 밀리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더욱이 가사의 ‘임’이 북한의 김일성이 아니냐는 황당한 주장까지 일부 보수단체에서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황석영이 북한을 방문했던 것은 1989년이고 ‘님을 위한 교향시’도 1991년에 만들어졌으니 이보다 10년 전에 작곡된 이 노래와는 무관하다. 누가 뭐래도 이 노래는 광주민주화운동이 기폭이 된 1980~90년대 우리 민주화 과정을 함께 겪고 참여해온 국민의 정서 속에 깊이 각인돼 있다.

 

아픈 체험과 극복의 시대적 상징성이 담긴 이 국민적 노래에 보수나 진보 따위의 요즘 이념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치졸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더욱이 생뚱맞은 ‘종북’ 딱지는 온 국민이 이뤄낸 민주화의 성취를 한꺼번에 모독해버리는 처사다. 도대체 문제 삼을 일조차 되지 않는 사안을 이런 식으로 굳이 키워 국민적 갈등을 조장하는 게 이 정권에도 뭐가 득이 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보훈처는 애국지사와 순국선열을 기리고 후손을 살피는 본연의 임무나 제대로 할 일이다. 마침 오늘 광주 기념식에 참석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노래 제창으로 이 한심하고도 쓸데없는 논란을 끝내주길 바란다.

 

 

[경향신문 사설-20150518월] 5·18 정신을 그렇게도 지우고 싶은가

1980년 5월 부상한 뒤 공수부대원들에게 사살당한 채수길씨 등의 끔찍한 사연이 오늘자 경향신문에 보도됐다. 당시 미니버스에 총격을 가해 시민 17명을 죽인 공수부대원들은 아직 살아있던 채씨 등 2명을 끌고가 ‘안락사시키자’며 사살한 뒤 시신을 암매장했다는 것이다. 은폐됐던 이 사건은 2007년에야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에 담겼다. 채씨의 동생은 최근에야 ‘학살의 비밀’을 알게 됐다. 누구도 진상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씨의 사연은 5·18 민주화운동 35년이 지난 지금에도 미해결로 남아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채씨와 같은 억울한 사연을 간직한 피해자와 피해가족들이 남아 있는데 처벌을 받거나 혹은 최소한 용서를 구한 가해자가 얼마나 되는가.

 

여전히 역사의 포폄이 무서운 이들이 있다. 얼마 전에는 북한군 600명 침투설과 같은 터무니없는 허위사실을 유포함으로써 5·18 민주화운동을 논쟁의 난장으로 끌어들여 역사평가에 ‘물타기’를 꾀하는 세력까지 나왔다. 그런 가운데 5·18 행사를 주관하는 보훈처는 여전히 5·18 정신의 무력화에 앞장서고 있다. 이번 제35회 5·18 정부 기념식에서도 보훈처는 “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 형식으로 불러야 한다”는 5·18 단체의 요구를 거부했다. “북한의 영화 배경음악에 사용된 노래를 제창할 경우 국민통합을 저해한다”는 이유를 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과 민주화운동의 상징곡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보훈처는 막무가내다. 제창은 안되고, 합창은 되는 국민통합이 어디 있냐고 줄기차게 항변해도 오불관언이다. 보훈처는 심지어 여당을 포함한 국회가 의결한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기념곡 지정촉구 결의안’까지 2년 동안이나 무시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 5·18 기념식도 정부 행사와 5·18 단체 행사 등 두 갈래로 찢어졌다. 더욱이 정부 기념식은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공석인 총리까지 불참하는 초유의 모습을 연출하게 됐다. 과연 누가 국론의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가. ‘임을 위한 행진곡’에 종북의 색깔을 입혀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를 지우려는 것이 박 대통령이 추구하는 대통합이었나. 그러나 지우면 지울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것은 5·18 정신이다. 그것은 바로 3·15 의거, 4·19 혁명, 6월항쟁을 잇는 민주주의의 혼과 맥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민주주의의 역사를 모독하지 마라.

 

 

■ 경색된 남북관계

 

[한국일보 사설-20150518월] 진전은커녕, 심상찮은 상황으로 가는 남북관계

 

지난 달 24일 한미연합훈련 종료 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나라 안팎의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한 달이 다 돼가도록 남북관계는 진전커녕 오히려 더 나빠지는 흐름이다. 어제만 해도 북한은 “우리의 최고존엄을 훼손하는 악담질을 계속 한다면 멸적의 불소나기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또 험한 언사를 쏟아냈다. 박 대통령이 15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 등과 관련해 “극도의 북한 공포정치”를 언급한 것을 직접 겨냥한 위협이다.

 

남북 민간단체가 추진하고 있는 ‘6ㆍ15 공동선언 15주년’과 ‘8ㆍ15 광복 70주년 기념’ 공동행사 장소와 내용을 둘러싼 신경전도 심상치 않다. 북측은 16일 8ㆍ15 광복 70주년 공동행사를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남북 민간단체가 합의했다며 개최장소를 서울로 양보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우리측 ‘광복70돌 준비위’ 대변인은 지난 5~7일의 남북 실무접촉에서 6ㆍ15기념행사를 서울서 갖기로 한 것은 맞지만 8ㆍ15행사 장소는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고 맞서고 있다.

 

상징성이 큰 광복 70주년 공동행사는 남북 양측이 서로 개최하기를 원해 벌어진 갈등이다. 우리측 광복 70돌 준비위는 19~20일 개성에서 남북 접촉을 갖고 논의할 것을 북측에 제의해놓은 상태지만 응할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북측은 6ㆍ15, 8ㆍ15 두 공동행사에서 정치색을 배제하자는 우리측 주장을 거부해 조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남북이 끝내 두 행사의 장소와 내용에 접점을 찾지 못하면 관계진전의 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두 행사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분위기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여사 방북도 성사되기 어렵다.

 

여전히 돌파구를 못 찾고 있는 개성공단 임금인상 문제 역시 남북관계 진전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이다. 북측은 개정된 노동규정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남측은 일방적인 임금인상에 따를 수 없다고 맞서 갈등이 세 달째 이어지고 있다. 이러다간 유일한 남북협력 무대로 남아있는 개성공단마저도 큰 위기에 처할지 모른다.

 

남북관계가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는 1차적 책임은 북측에 있다. 잠수함발사탄도탄(SLBM) 개발시험 등 긴장고조 행위가 이어지고, 현영철 처형처럼 상식적으로 납득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예민해하는 사안들에 대해 우리 측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일부 관측대로 북측이 장거리미사일 시험이나 4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그 파장은 예측하기 어렵다. 남북한 당국 모두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남북관계가 영영 파국을 맞을 수도 있는 엄중하고도 위험한 시기다.

 

 

[경향신문 사설-20150518월] 박 대통령, 남북대화 분위기 살리고 있나

최근 남북 간에 복잡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9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실험을 위해 미사일을 수중에서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또 지난 13, 14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 해역에서 포사격 훈련을 했다. 이례적으로 밤늦게 함포와 해안포 수백발을 쏘는 무력시위를 한 것이다. 이 같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과 달리 한편에서는 평화를 기원하며 북한에서 남한으로 경계선을 걸어서 넘어오는 행사가 추진되고 있다. 세계 여성 평화 운동 단체는 오는 24일 북측에서 걸어서 판문점을 통과하기로 했고 북측의 승인을 받았다. 정부도 판문점 대신 경의선 육로를 이용하면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남북 민간단체도 6·15 공동선언 15돌 및 광복 70돌 기념 행사를 공동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6·15 공동선언 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키로 하고, 광복절 행사를 서울과 평양 가운데 어디에서 할지 이견을 조정하고 있다.

 

이렇게 지금 남북 간에는 대결과 화해의 흐름이 동시에 진행되는 미묘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화해의 흐름은 상대적으로 미약하고 대결의 기세는 강한 편이다. 이 시점에서는 화해 분위기를 살리고 대결을 피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북한이 도발적 태도를 버려야 하는 것은 물론 정부도 단절된 남북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유도하는 능동적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국가정보원의 움직임은 걱정스럽다. 특히 국정원은 확실하지도 않다면서 지난 13일 북한 내 군 서열 2위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반역죄로 처형됐다고 밝혔다. 예정에 없이 국회 정보위원회를 열어 보고할 만큼 그게 시급한 사안이었는지 의문이다. 외국 언론이 먼저 보도할까봐 그랬다는 식의 설명은 의혹만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민간한 정보 사항인 만큼 먼저 확인했어야 하고 설사 확인했다 해도 정보기관이 앞다퉈 그걸 공개하는 건 바람직하지도 않다. 더구나 남북관계 회복 노력이 필요한 시점에 그렇게 느닷없이 발표하면 정부의 대화 의지를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한동안 자제했던 대북 강경 발언을 최근 다시 시작한 점도 걱정스럽다. 박 대통령은 지난 14일 “국제사회가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 개선을 촉구하지만 적반하장 격으로 반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15일에는 “최근 북한의 도발적 행동과 극도의 공포정치가 알려지면서 많은 국민이 경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화를 포기하려는 게 아니라면, 박 대통령과 관련 당국은 불필요한 대북 자극을 자제해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8월] 北, 남북 공동 기념행사 무산시키면 안 된다

남북 민간단체가 함께 열기로 합의했던 6·15 공동선언 15주년 기념행사와 8·15 광복 70주년 기념행사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북한 측의 억지 주장으로 인해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돌파구가 열리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북한 측은 내일과 모레 개성에서 추가협의를 하자고 제의한 우리 측의 호소도 외면하는 등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남북 공동행사를 계기로 민간 교류가 당국 간 대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 경색된 남북관계가 풀리길 학수고대했던 민족의 염원을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북한 측이 입장을 바꿀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

 

북한 측은 공동행사 개최 장소와 내용 등을 문제 삼고 있다. 6·15 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대변인은 그제 새벽 발표한 담화를 통해 “6·15는 서울, 8·15는 평양으로 이미 행사 개최 장소를 합의했다”며 8·15 공동행사 개최 장소를 서울로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6·15와 8·15 두 행사의 내용과 관련해서도 “순수한 예술, 체육, 문화교류의 공간으로 만들 수는 없다”며 우리 측의 ‘정치색’ 배제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뻔뻔스럽게도 무산위기의 책임을 우리 당국에 전가하기까지 했다.

 

‘6·15는 서울, 8·15는 평양 개최’라는 북한 측의 주장이 일견 타당한 듯하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억지와 다름없다. 당초 양측 민간단체들은 이달 초 중국 선양에서 만났을 때 6·15 서울 개최에는 쉽게 의견이 일치했지만 8·15 개최 장소는 추후 협의하자며 여지를 남겨뒀다. 북한 측이 평양 개최를 고집하지도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6·15를 앞두고 억지 주장을 펴는 것은 결국 공동행사를 무산시키려는 의도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8·15보다 공화국 창건일(9월 9일)이나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을 더 중히 여기는 북한으로선 8·15 행사에 자금과 열정을 쏟아부을 여력도 없다.

 

올해는 6·15선언 15주년이자 8·15 광복 70주년인 뜻깊은 해이다. 남과 북이 하나의 마음으로 환영하는 두 기념일은 남과 북이 대립과 반목을 거듭해온 지난 7년간의 비정상적인 남북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이달 초 남북 공동행사 개최 합의를 두 손 들어 환영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남북 당국, 특히 북한 측은 남북 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을 가져올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인 두 행사의 성공적인 공동개최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그럴 자격도 없다.

 

 

■ 2012년 대선자금 수사

 

[한국일보 사설-20150518월] 증언 잇따르는 대선자금 수사 미적댈 일 아니다

 

지난 대선 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정치권에 건넨다며 수억 원을 포장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성 전 회장과 사업 관계로 만난 A씨는 “2012년 10월 성 전 회장이 5만원 권이 가득 들어있는 여행용 가방을 끌고 서울 여의도 사무실로 찾아와 함께 현금 6억 원을 1억, 2억, 3억 원씩 가방 3개에 나눠 담았다”고 밝혔다. 그는 “가방 2개는 여당 의원 2명, 1개는 야당 의원 1명을 위해 준비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여당 의원 2명은 메모지에 포함된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성 전 회장의 대선자금 의혹 관련 증언이 나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경남기업 전 재무담당 부사장인 한모씨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캠프 내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 김모씨에게 성 전 회장이 2억 원을 건넨 것으로 알고 있다는 취지로 검찰에서 진술했다. ‘성완종 리스트’8명 가운데 대선 자금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인물은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이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지에 홍 의원은 2억 원, 유 시장은 3억 원을 받은 것으로 적혀 있다. 서 시장의 경우 실명 없이 ‘부산시장 2억’으로만 표기돼 있다. 이들은 모두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캠프에서 핵심 보직을 맡았다. 특히 성 전 회장은 숨지기 전 인터뷰에서 “대선 때 홍 의원에게 2억 원을 줬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검찰은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 이은 조사대상자 선별에 고심 중인중인 것 알려졌다. 그 동안 확보한 자료 분석에 치중할 뿐 2단계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 지사와 이 전 총리에 비해 단서가 상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성 전 회장이 숨져 진술을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자금 의혹과 관련된 증언이 속속 나오는 상황에서 더 이상 미적거릴 일은 아니다. 신속히 증언 당사자들을 불러 진술을 듣고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건 초기 경남기업에 대한 압수수색이 늦어 자료은폐와 폐기로 어려움을 겪었던 사례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수사가 어렵다고 해서 머뭇거릴 만큼 상황이 한가하지 않다. 국민들이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고 수사가 미흡할 경우 언제든지 특검 수사로의 전환이 예고돼있다. 행여 대선자금 수사가 현직 대통령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면 이 자체가 스스로 정치검찰을 자인하는 셈이다. 일찍이 김진태 검찰총장이 “정치적 고려 없이 수사하겠다”고 단호하게 천명했던 바다. 이번 수사의 성패에 검찰 전체의 명예가 달려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8얼] 檢, 이젠 대선자금 의혹 규명에 최선 다해야 Tweet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인물 8명 가운데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일단락됐다. 검찰은 두 사람을 불구속 기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이제 리스트에 오른 나머지 6명에 대한 의혹을 풀 차례다. 특히 그중에서도 홍문종 의원,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은 불법 대선자금 의혹과 관련된 인물들이다. 여기에다 “여야 유력 정치인 3명에게 건넨다며 1억~3억원씩 총 6억원을 가방에 나눠 담았다”는 성 전 경남기업 회장 측근의 진술도 새로 나와 의혹은 더 커지고 있다. 수사는 확대될 수밖에 없게 됐다.

 

성 전 회장이 2억원을 줬다고 지목한 홍 의원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다. 서 시장(2억원)과 유 시장(3억원)도 박 캠프에서 활동했다. 선거자금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사용했는지 잘 알고 있을 소위 친박 핵심 인사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선거자금 수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리스트에 쓰인 이름과 금액 외에는 아직 뚜렷한 물증이나 목격자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대선자금 의혹은 이 전 총리나 홍 지사 수사보다 전모를 밝혀내기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모든 역량을 동원해 의혹을 규명해야만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팽배해질 것이다. 성 전 회장은 사망했지만 거액의 비자금 출납을 관리하거나 옆에서 지켜본 인물이 없을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을 빠짐없이 불러 진술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동안 검찰은 대선자금 의혹을 밝히기 위해 물밑 수사를 해왔고 어느 정도 진전을 보았다고 한다. 경남기업 한모 전 부사장이 2억원을 주었다고 진술한 박 캠프 부대변인을 곧 조사할 예정이다. 이 2억원이 홍 의원에게 주었다는 2억원과 같은 돈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2012년 대선자금 수사는 어쩔 수 없이 박근혜 대통령과 연관돼 있다. 박 대통령이 알았든 몰랐든 박 대통령이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현직 대통령의 선거자금 수사라는 부담을 검찰이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사에 성역이 있을 수는 없다. 박 대통령도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며 이번 사건을 정치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누차 언급해 왔다. 이는 박 대통령 자신도 ‘성역’이 아님을 스스로 밝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검찰은 부담을 떨쳐내고 수사에 매진해야 한다. 수사가 끝난 뒤의 책임 문제까지 검찰이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오로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새로 불거진 ‘6억원’ 의혹에는 야당도 연루됐다. 수사 대상에 야당을 포함할 경우 물타기를 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야당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대통령도 성역이 아니듯이 야당도 성역이 아니다. 비난을 피하려면 검찰은 애써 여야의 균형을 맞추려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지만 형평을 위해 억지로 짜맞추기 수사를 하지 말기 바란다. 불법 대선자금 논란은 선거가 끝나고 나면 으레 반복돼 온 개혁의 대상이다. 기업의 목을 죄는 불법 자금 거래가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막중한 임무가 검찰에 달렸다.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취임 100일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8월] 문 대표, 자리 건다는 각오로 혁신안 만들어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8일로 대표 취임 100일을 맞는다.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문재인 대표 자신에겐 지나간 100일이 1년, 어쩌면 그 이상의 긴 세월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만큼 지금 문 대표가 처한 상황이 힘들고 새정치연합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문 대표 개인의 정치적 미래가 달렸고, 제1야당의 앞날이 걸려 있다.

 

4·29 재보궐선거 참패에 정청래 최고위원 발언 파문까지 겹치다 보니까, 새정치연합 내부의 갈등과 불신은 매우 심각한 상태다. 그러나 국민과 야당 지지자의 시각에서 보면, 내부의 싸움보다 중요한 건 새정치연합이 신뢰받는 대안정당, 선거에서 이기는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탈바꿈하는 일이다. 재보선 패배 이후 문재인 대표의 행보에 부족함이 있다 하더라도 쉽게 ‘지도부 교체’나 ‘당대표 퇴진’을 요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의 체질을 바꾸고 참신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을 충원하는 구조를 갖추지 못하면, 누가 당권을 잡더라도 새정치연합이 처한 위기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문재인 대표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는 국민과 야당 지지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과감하고 혁신적인 당 쇄신안을 내놓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당 지도부가 지난 15일 ‘초계파 혁신기구’의 구성을 제안한 점에 주목한다. 기구의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구에서 당내 계파와 공천 등 모든 문제를 논의하고 특정 계파가 아닌 국민의 뜻을 반영한 혁신안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이 기구에 당내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건 문 대표의 몫이다. 그러려면 문 대표가 여러 의견을 귀담아듣겠다는 자세와 유연한 정치력을 보여야 한다. 문 대표는 명분을 쥐고 당내 반대파를 ‘정면돌파’하려는 유혹을 느낄지 모르나, 4·29 재보선 결과에서 보듯이 실리를 담보하지 못하는 명분은 정치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이른바 ‘비노’ 그룹도 문 대표의 구상에 자꾸 딴죽을 거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옳지 않다. 의견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말하고, 함께 당을 바꿔 나가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특히 4·29 재보선을 빌미로 호남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야당을 추진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어떤 방식이든 제1야당의 분열은 명분 없는 행동이며 국민 지지를 얻기 힘들다. 국민은 야당의 분열이 아니라 혁신을 원한다는 점을 문 대표와 모든 당내 세력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8월] 문재인 100일, 이런 리더십으론 계파 갈등만 키울 뿐

 

18일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취임 100일을 맞는 날이다. 그럼에도 당내에서는 어느 한구석 이를 축하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당장 계파 갈등이 수습 불가능 국면으로 치닫고 있을 뿐이다.

 

비노계 수장 중 한 명인 박지원 의원은 16일 페이스북에서 문 대표를 향해 "선배들의 충언을 거두절미하고 지분·공천 나누기로 매도하시면 안 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문 대표가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든 계파가 참여하는 당 혁신기구 구성을 제의했지만 문 대표 측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내부 문서가 공개되면서 비노 측을 더욱 자극한 데 따른 반응이다. 문 대표 측은 문서에서 "당이 어려운 틈을 이용해 기득권과 공천권을 탐해 당을 분열로 몰아가면 그건 기득권 정치"라면서 비노를 강하게 비판했다.

새정연의 요즘 모습에서는 도저히 제1야당의 면모를 찾아보기 어렵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여론조사에서 야당 지지율은 새누리당의 절반 수준으로 미끄러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는 올라가는데 문 대표는 계속 뒷걸음질이다. 이러다가는 내년 총선은 물론이고 정권교체도 언감생심이다.

 

문 대표는 당권 확보를 통한 내년 총선과 대선 승리를 꿈꾸고 있겠지만 이는 전술적으로 선후가 뒤바뀐 것이다. 문 대표가 다시금 여론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은 국회 정상화뿐이다. 하루속히 국민 편으로 돌아가 공무원연금개혁안을 내놓는 한편 지난 본회의에서 통과시키지 못한 50여건의 민생법안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여러 경제 활성화법 처리도 시급하다. 그래야 국민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고 흔들리는 당권을 추스를 수 있다.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은 새누리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새정연에 대한 실망감의 반작용일 뿐이다. 문 대표는 사태수습의 전후 맥락을 진지하게 되짚어보기 바란다.

 

 

■ 공적연금 개혁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8월] 공적연금 개혁, 여야 주도로 결실 거두길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15일 고위급 당·정·청 회동을 통해 지난 2일 여야 대표가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편안을 처리하기로 뜻을 모은 것은 일단 환영할 일이다. 보기 드물게 국회 주도로 사회적 난제의 돌파구를 연 합의에 대해 그동안 청와대와 정부가 어깃장을 놓으면서 보름 가까이 여권 내부 갈등과 비생산적인 사회적 논란만 키웠다. 이제라도 청와대가 여야 합의를 ‘주어진 여건 속에서 도출한 최선의 안’으로 평가하고 사회적 대타협의 의미를 긍정했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당·정·청은 야당이 주장해온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명문화에는 계속 반대하기로 해 이후 협상의 걸림돌을 남겼다.

 

여기서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50%’라는 수치의 배경에 자리잡은 의미다. 2일 여야 합의는 공적연금 강화를 통해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 1위의 노인빈곤율, 국민연금 사각지대와 낮은 소득대체율, 부실한 기초연금 등 노인세대의 삶의 질을 위협하는 요인이 산재한 상황에서 노후소득 보장체계 개선은 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퇴직을 앞둔 중년층의 공적연금에 대한 인식도 과거와 달라졌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가 주최한 긴급좌담회에서 연금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노후소득 보장체계 전반에 대한 포괄적 개혁을 논의할 절호의 기회라고 입을 모았다. 여야는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이런 시대적 요청을 우선 헤야려야 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명문화를 밀어붙이지 않는 대신 실질적으로 노후소득 보장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주목되는 태도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17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새누리당에는 ‘50% 명기 철회’라는 명분을 주되, 우리는 기초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여 사실상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수준에 맞도록 실리를 취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협상의 또다른 축인 새누리당도 청와대에 휘둘려 스스로 발목을 묶었던 패착을 거두고 생산적인 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번 당·정·청 회동으로 청와대가 새누리당의 협상권한을 인정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만큼 앞으로 얼마나 자율성을 발휘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청와대는 이참에 여당을 자신의 ‘2중대’처럼 조종해 여야 합의까지 좌지우지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이해당사자들을 직접 대면해 설득하는 정정당당한 정치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20150518월]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사회적 기구에 맡기자

 

새누리당과 정부, 청와대는 15일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해선 지난달 2일 여야 합의를 존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대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로 인상’은 향후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구성해 논의하기로 했다. 당·정·청은 브리핑에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은 주어진 여건 가운데 최선의 안으로, 특히 최초의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서 전원 합의한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은 국민 동의가 필요하므로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서 논의해 결정돼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종걸 원내대표도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정부에 ‘소득대체율 50%’의 명시를 요구하지 않겠다”면서도 “65세 이상의 기초연금을 소득 하위 90%(현재 70%)까지 확대하면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 50% 수준을 지킬 수 있다”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이에 앞서 야당의 강기정 정책위 의장은 “여당이 연금과 법인세 당론을 모아 야당에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여야의 분위기로 볼 때 5월 임시국회에서 공무원연금개혁안 처리에는 일단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물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와 기초연금 강화, 법인세 인상 요구 등 새로운 연계조건들이 언제 발목을 잡을지 모를 살얼음판이다. 하지만 먼저 28일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처리하고 나머지 사안들은 사회적 기구에서 논의하거나 여야가 추가 협상을 벌이는 게 온당할 듯싶다. 지금 개혁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현 정부 임기 동안 공무원연금 개혁이 물 건너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의 합의안조차 미루면 하루 100억원씩의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액이 계속 쌓여 국가 재정을 병들게 할 것이다.

 

국 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조건은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려면 반드시 보험료도 함께 올려야 한다. 9년 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내놓은 개혁안도 소득대체율을 50%로 유지하려면 보험료를 12.9%로 올리도록 돼 있었다. 또한 야당의 주장처럼 기초연금을 확대 지급하려면 증세 등을 통한 확실한 재원마련 대책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기초연금은 이름만 연금이지 사실상 세금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논의할 때 생산가능인구 감소, 경제성장 둔화, 청년 일자리 감소 등 갈수록 나빠지는 환경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또한 미래세대를 배려한다면 지금 기성세대가 좀 더 내고 덜 받으려는 양보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사회적 기구는 중장기적으론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 방안은 물론 사학·군인연금 등 공적연금 개혁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기구에는 각 직역단체, 노동계, 재계 대표와 나중에 연금을 부담할 청년층 대표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 케리 미국 국무장관 방한

 

[중앙일보 사설-20150518월] 케리 방한, 위축된 한·미관계 회복 계기 삼아야

 

한·미 관계가 미묘해진 가운데 오늘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1년3개월 만에 방한했다. 다음달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미·일 관계보다 위축된 듯한 한·미 관계를 새롭게 다질 호기가 아닐 수 없다.

 

  한·미 관계에 큰 틈이 생긴 건 아니나 미국은 최근 과거사 갈등을 빚고 있는 한·일 간에 은근히 일본 손을 들어주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지난달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방미 기간 중 상·하원 합동연설 등 지극히 환대한 건 그렇다 치자. 그러나 그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분명한 사죄를 하지 않았음에도 어물쩍 넘어간 건 큰 유감이다.

 

 그럼에도 방한한 케리를 향해 과거사 문제와 관련, 미국을 압박해 일본을 견제하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전략은 아베 방미 때 이미 통하지 않는 걸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다음달 한·미 정상회담이 의미 있는 만남이 되도록 사전 조율하는 게 긴요하다. 이번 박 대통령의 방미는 아베의 합동연설 직후 이뤄져 자칫 초라해 보일 수 있다. 역대 대통령과 주변인물들의 탓도 크지만 한국 외교의 고질병 중 하나는 실속보다 외양에 치중해 왔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2년 전 이미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 데다 이번엔 실무방문인 만큼 아베 총리에 버금가는 환대를 기대하긴 무리다. 의전에만 너무 신경 써선 안 된다.

 

  북한이 실험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에 대한 구체적인 방어책도 이번에 논의돼야 한다. 발사실험을 두고 진위 논란이 불거졌지만 틀림없는 건 북한이 SLBM 개발에 매진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대로라면 4~5년 내 실전배치도 불가능한 게 아니다. 심해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잠수함을 탐지하기란 극히 어려워 SLBM은 ‘침묵의 암살자’로 불린다. 북한이 SLBM을 갖게 되면 미 본토에 대한 핵 보복이 가능해지고, 현재 개발 중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와 킬체인까지 모두 무용지물이 될 판이다. 한·미 동맹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 사안인 만큼 케리 방한에 맞춰 공동방어책을 설계하고, 다음달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그 얼개를 완성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8월] 케리·윤병세 회담서 확인해야 할 것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어제 방한해 오늘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하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연다고 한다. 케리 장관이 방한하기는 1년3개월 만이다. 그사이 한·미 관계에 많은 일이 있었다. 전통적인 우방 관계가 눈에 띄게 약화됐는데 대부분 우리 측이 자초한 일이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TPP 참여에 대해서는 미적대다가, 중국과의 FTA 체결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과는 과거사 문제에 집착하다 한발짝도 진척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의 외교에서 거둔 성과도 변변찮다. 양국 정상이 서로 방문하는 등 외교적 이벤트는 많아졌지만 사드 문제 등으로 간극만 벌어졌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면서 새로운 밀월시대를 열어가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미·일·호주 간 삼각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워싱턴 일각에서 ‘한국 배제론’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급기야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지난 3월 조찬장에서 테러를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미국이 일본 엔화와는 달리 한국 원화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 외교장관이 다음달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만큼 이번 기회에 굳건한 한·미동맹 의지를 미국에 전해야 한다. 보도에 따르면 케리 장관은 우리 측에 한·일 관계 개선을 독려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일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자는 이 메시지에 우리 외교부가 무언가 답을 내놓아야 한다. 표면적인 문제가 없으니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윤병세식’ 이중어법으로는 절대로 풀 수 없다.

 

과거사 문제에 관한 한 중국은 이미 방향을 바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인도네시아에서 아베 총리를 만났을 때 과거사 문제는 언급을 피하는 대신 중국이 주도하는 AIIB 참여 권유 발언으로 일관했다. 한국만 비정상적 열정으로 과거사에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국제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국익 앞에서 언제든 유연하게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는 것이 외교다. 한·미 관계를 공고히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8월] 100명 중 3명만 뽑히는 대졸 취업 경쟁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올해 기업체 신입사원 되기가 더 어려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7일 내놓은 ‘2015년 신입사원 채용실태’를 보면, 대졸자들의 취업 경쟁률이 평균 32.3 대 1에 이르렀다. 100명이 지원했을 때 3.1명만이 뽑혔다는 얘기다. 이런 경쟁률은 지난해에 견줘 12.9%나 높아진 것이다. 힘들게 대학 4년 과정을 마쳐도 취직을 못해 어깨가 축 처지는 게 대다수 대졸자들의 현실이다. 비단 대졸자만이 그런 것도 아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부담도 적지 않다.

 

통계청은 4월 청년(15~29살) 실업률이 10.2%를 나타냈다고 며칠 전 발표했다. 1년 전보다 0.8%포인트 높아졌으며, 4월치만 따지면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99년 6월 이후 최고치라고 한다. 전체 실업률(3.9%)의 2.6배다. 우울한 자료는 더 있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최근 낸 자료를 보면, 전국의 청년층 실질실업률이 지난해 30.9%나 된다.

2010년 27.4%에서 4년새 3.5%포인트 늘어났다. 실질실업률은 공식실업률에, 나이가 많지 않지만 취업을 포기한 사람과 취업준비자, 구직단념자 등을 합해서 산출한 것이다.

청 년층의 실업률이 높은 것은 다른 나라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자리를 찾는 탐색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고, 이직이 잦은 점 등이 주된 이유로 꼽히고 있다. 이런 구조적 요인에다 세계 금융위기 뒤 경기부진이 겹치면서 청년층 실업률은 크게 뛰었다. 청년층이 미래를 이끌어갈 세대라는 점에서 걱정스런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실업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 직장에서 필요한 업무 능력 등을 키우기 어려워지고 취업 가능성이 더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는 개인의 좌절에 그치지 않는다. 한창 일해야 할 사람이 뒷전으로 밀려남에 따라 나라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손상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급진전하고 있어 문제가 간단치 않다. 노인층을 부양하는 데 구멍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정부가 좀더 실효성 있는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도 이런저런 청년실업 해소 대책을 시행중이지만 힘이 많이 달린다. 이와 관련해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이 임금피크제가 묘수라도 되는 듯이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 한계가 있음은 정부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청년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혜를 짜내야 할 때다. 기업들도 협조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518월] 얼빠진 국토부, 이러고도 민생 얘기할 자격 있나

 

영세 상인들의 권리금을 보호하기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지난 13일 시행됐지만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권리금 산정기준과 표준계약서도 아직 만들어 놓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권리금을 얼마로 정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건물주·세입자가 계약을 거부하거나 미루면서 상가 임대차 시장이 혼란에 빠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대통령은 입만 열면 “국회가 민생 법안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지만 정작 국회가 법을 통과시켜 줘도 넋 놓고 있던 정부가 거꾸로 ‘민생 발목 잡기’에 나선 꼴이다.

 

  이번에 통과된 법에는 권리금 산정기준이 없을 경우 주변 시세나 감정가 중 낮은 것을 택하도록 돼 있다. 세입자들은 시세대로 계약을 했다가 자칫 권리금을 손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건물주는 건물주대로 권리금 소송이 빗발칠까 걱정이다. 벌써 일부 건물주들은 손해배상 소송에 대비해 임대료 인상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런 분쟁에 대비해 만들려던 분쟁조정위원회마저 국회 조율 과정에서 설립이 무산되면서 자칫 권리금 분쟁 소송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시장에선 “영세 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 되레 ‘분쟁 양산법’이 되게 생겼다”고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런 혼란의 책임은 전적으로 국토부에 있다. 국토부는 “이렇게 빨리 법이 통과될지 몰랐다”며 핑계 대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자영업자의 권리금 보호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주요 내용 중 하나로 지난해 9월 정부가 앞장서서 대책 발표를 하고 국회 통과를 채근했던 사안이다. 그래 놓고 여태 실무 준비조차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직무 태만을 넘어 직무 유기에 가깝다.

 

  국토부는 뒤늦게 권리금 산정기준과 표준계약서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지만 일러야 다음달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막상 작업을 해 보니 권리금 산정이 워낙 변수가 많고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한다. 애초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밀어붙이다가 생긴 일이란 얘기다. 이런 얼빠진 정부를 믿고 생업에 종사하는 국민만 불쌍하게 됐다.

 

 

[경향신문 사설-20150518월] ‘막말 극우 논객’에게 국정홍보를 맡기다니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 소통 강화를 위해 신설한 직제인 국정홍보 담당 차관보에 ‘극우 논객’ 이의춘씨를 임용한 것은 대단히 실망스럽다. 오늘부터 공식 업무를 시작하는 이 신임 차관보는 박근혜 정부를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시민단체와 세월호 유족 등을 비난하는 글을 써온 극우 성향 언론인이다. 그는 보수매체인 데일리안 편집국장을 거쳐 친정부 성향의 매체인 미디어펜 대표로 일하는 동안 진보 시민단체를 ‘악마의 집단 같다’고 표현하거나, 진상 규명을 요구해온 세월호 유가족들을 ‘나라를 마비시킨다’고 원색적으로 공격하는 등 극우 편향적인 기사와 칼럼을 써왔다는 점에서 ‘국민 소통’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국정홍보 차관보는 문화부 장관과 2차관을 보좌해 국정홍보·언론협력 업무를 관장하는 자리다. 청와대는 언론 보도 때문에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가 확산됐다고 믿는 것 같다. 정부 홍보를 총괄하는 문화부에 국정홍보 담당 차관보를 신설한 것은 대(對)언론 소통을 원활히 해 이런 상황을 타개해 보려는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언론단체들은 국정홍보 차관보 직제 자체가 언론통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전직 언론인 등을 활용한 정보 제공, 광고 등을 통해 부적절한 회유를 시도하거나 압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파성 짙은 언론인 출신이 그 자리를 맡게 된 것이다. 그가 미디어펜 시절 쓴 ‘이의춘의 시장경제 이야기’라는 칼럼을 보면 “(세월호) 유가족들 행태는 이제 국민들이 제지시켜야 한다. 반미 반체제 좌파인사들이 파리떼처럼 달라붙어 반정부투쟁으로 악용하고 있다” “좌파 시민단체는 악마의 집단 같다. 기업을 죽이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여론의 기요틴에 의해 무참히 단죄됐다”는 등 극우 수구적인 성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 차관보의 거칠고 자극적인 칼럼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이미지와도 겹친다. 그가 비판 여론을 청취하고 소통하기보다 정부 논리를 일방적으로 전파하는 ‘정권 나팔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국정 난맥상이 있으면 고치는 게 먼저다. 정책 내용이 알차면 국정홍보는 자연히 따라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책 홍보 담당자가 모나지 않아야 소통도 가능하다. 우리는 이 차관보의 국정홍보에 대한 행보를 예의 주시할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8월] 세월호 인양 보고서 공개하는 게 맞다

 

정부가 세월호 인양과 관련한 핵심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달라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요청을 거부했다고 한다. 해양수산부가 최근 ‘세월호 인양 기술검토보고서’를 제출하라는 특조위 요청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해수부는 보고서를 특조위에 넘기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없지 않은 만큼 인양 업체 선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보고서를 토대로 인양 용역업체 입찰을 해야 하는데 외부로 보고서가 나간다면 입찰에 부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세월호 인양에 온 국민의 눈길이 쏠려 있는 상황에서 누구도 설득하기 어려운 군색한 변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잖아도 지난 6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은 여전히 정부가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해수부는 지난 3월 27일 입법예고한 시행령이 “특조위를 관제화하려는 것”이라는 반발에 부딪히자, 파견공무원을 줄이고 기획조정실장 명칭을 행정지원실장으로 바꾸는 수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핵심인 조사1과장을 파견공무원이 맡는다는 내용은 당초 시행령과 변한 것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고서 제출을 거부하면 불필요한 의심만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세월호의 특수성이 아니더라도 거액의 예산이 투입되는 정부 입찰의 경우 해당 부처는 그동안 축적한 정보를 최대한 공개하는 방향으로 관행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부처는 정보를 감추려 하고,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는 어떻게든 정보를 빼내려 내부자와 결탁하는 모습을 우리는 그동안 수도 없이 보아 왔다. 그런 점에서 해수부는 세월호 기술검토보고서를 깊이 숨겨둘 것이 아니라 특조위에 전달하는 것은 물론 전면 공개하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

 

세월호 선체 인양은 단순히 가라앉은 배 한 척을 끌어올리는 작업이 아니다. 차가운 바닷속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의 원통함을 풀어 주고 영혼에 안식을 주는 일종의 의례여야 한다. 그런 만큼 인양으로 진상을 밝히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의혹을 만들어 내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대형여객선인 세월호의 인양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게 고난도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세월호의 특수성을 잘 아는 해수부라면 인양 작업에 나서는 자세도 그동안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8월] 가격제한폭 30%로 확대…투자는 자기 책임이다

 

내달 15일부터 주식시장 가격제한폭이 현행 ±15%에서 ±30%로 확대된다고 한다. 상·하한가 폭이 커지는 것은 1998년(12%→15%) 이후 17년 만이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지수채권(ETN) 등이 대상이다. 새로운 게임의 룰에 대해 우려와 기대가 엇갈린다. 하루 주가 변동폭이 최대 60%에 달하게 돼 비이성적 폭등·폭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시장의 정보와 재료, 기업가치가 주가에 신속히 반영돼 가격기능이 효율화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선진국 증시엔 없고 한국에만 있는 제도가 가격제한폭과 주식매매차익 비과세다. 미국 유럽 증시는 개별 종목 주가가 하루에 50% 이상 뛰거나 내릴 수도 있다. 한국보다 가격제한폭이 작은 국가는 대만(±7%) 중국(±10%)뿐이다. 그렇다고 선진국 증시가 한국 중국 증시보다 변동성이 큰 것도 아니다. 주가 변동의 리스크가 크면 클수록 매수·매도세력 간에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벌어져 오히려 과도한 급등락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 점에서 가격제한폭 확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다가선다는 의미도 있다.

 

물론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가짜 백수오로 주가가 폭락한 내츄럴엔도텍과 같은 사례가 더 빠르고 강하게 재연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개미 투자자’들이 일시적 호재만 보고 달려드는 ‘묻지마 투자’도 줄어들 것이다. 신용융자, 주식담보대출 등 돈을 빌려 투자하는 위험도 커진다. 작전세력이 상한가 잔량을 쌓아놓고 시세조종을 할 여지가 줄어들 것이다.

 

일각에선 기관 비중이 25%에 불과해 부작용을 우려한다. 그럴수록 정보에 취약한 개인들의 간접투자를 유도해야 마땅하다. 과거 가격제한폭 확대가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호·악재 반영속도가 빨라지겠지만 주가는 궁극적으로 기업가치에 수렴한다. 투자자들이 작전주 테마주 대신 기업 실적과 펀더멘털에 주목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리스크가 커져야 리스크를 의식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8월] 사우디 vs 美 셰일업계, 석유전쟁 끝나지 않았다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셰일업계 간 힘겨루기가 치열하기만 하다. 얼마 전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제유가 급락 속에서도 시장점유율을 지키기 위한 산유량 유지 전략이 미 셰일업체들을 압박하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하자, 미 셰일업계가 “사우디의 승리가 아니다”며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 셰일오일 업체의 CEO들은 “생산량 감축은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며 반격을 예고했다. 셰일업계에선 WTI 가격이 배럴당 65달러까지 오르면 셰일오일 생산량이 두 배로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제유가 전망치는 아직도 극단을 오간다. 세계 석유업계 거물인 티 분 피컨스 BP캐피털매니지먼트 회장은 원유가격이 지금의 배럴당 60달러 수준에서 더 올라 연말에는 75달러까지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글로벌 에너지 정보업체인 플래츠의 반다나하리 수석애널리스트는 지난 14일자 한경 기고를 통해 추가 상승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심지어 OPEC조차 10년 뒤인 2025년까지 유가가 100달러를 넘지 못하고 최대 76달러까지 갈 수 있지만, 거꾸로 40달러 선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결국 더 오래 버티는 쪽이 최종 승리할 것이란 얘기다.

 

그렇지만 불확실한 상황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주요 산유국들의 재정은 원유판매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만 해도 재정을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유가가 100달러 정도는 돼야 한다. 러시아는 120달러, 베네수엘라는 130달러는 돼야 재정을 끌고갈 수 있다. 이미 위기조짐이 보인다. 러시아는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1.9%로 추락했고, 베네수엘라는 외환보유액이 최근 12년간 최저치로 떨어져 정부가 보유한 금을 파는 지경이다.

 

석유전쟁은 진행형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소비량의 100%를 수입해 쓰는 한국으로선 조마조마한 상황이다.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지 않으려면 다각적인 대안을 만들어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정부 혼자 처리할 일만도 아니다. 정유업체를 포함한 민관합동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8월] 넘치는 달러… 해외투자 활성화 방안 시급하다

 

정부가 경상수지 흑자로 넘쳐나는 달러를 줄이기 위해 해외투자 활성화 대책을 조만간 내놓기로 했다. 개인의 해외증권 투자, 기업의 해외기업 인수합병(M&A) 등을 지원하는 종합대책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외환보유액이 쌓이는 것은 수출이 계속 감소하는데도 수입이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불황형 경상수지 흑자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작부터 환율 문제를 일으키며 우리 경제에 또 다른 부담을 주고 있다. 해외투자를 늘리는 적극적인 대책을 통해 연간 1,000억달러에 달하는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는 한편 원화 강세와 이에 따른 수출부진을 해결하겠다고 하니 정책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잖아도 개인의 해외투자는 국내투자에 비해 세제가 복잡하고 불리해 형평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내주식에 직접 투자하면 증권거래세(0.3%)만 내면 되지만 해외주식에 직접 투자하면 매매차익에 대한 양도세(22%)와 배당소득세(15.4%)까지 내야 한다. 배당소득은 금융소득종합과세 과표에도 포함돼 투자자 입장에서 부담이 크다. 다른 소득과 한데 묶여 누진세가 적용되는데다 소득과 연계되는 건강보험료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해외펀드 투자는 매매차익은 물론 환차익도 과세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투자손실을 입어도 환차익을 보면 15.4%의 소득세를 내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해외기업 M&A는 기업이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기업의 미래를 개척하는 유력한 수단이 되기 때문에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저마다 M&A에 열을 올리며 국가도 다양한 방법으로 M&A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만 해도 지난해 1월 기업 M&A를 지원하는 산업경쟁력강화법을 도입해 소니·미쓰비시중공업 등이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 부활하는 성공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M&A 절차를 줄이고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세심한 대책을 마련해 해외기업 M&A를 활성화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8월] '메이드 인 인디아'를 새로운 성장 모멘텀으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8일 한국을 국빈 방문한다. 중국과 몽골 등 동북아 3개국 순방일정 중 마지막 방문지로 지난해 5월 총리 취임 이후 첫 방문이다. 모디 총리는 앞서 중국 방문에서 100억달러의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합의하는 등 중소 국경분쟁 등으로 오랫동안 소원했던 양국관계를 경제동반자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디 총리의 이번 방한도 방위산업·정보기술(IT)·항공우주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방안을 모색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모디 총리는 방한 기간 중 현대중공업 조선소 방문과 '한·인도 최고경영자(CEO) 포럼' 등을 통해 우리 재계 인사와 두루 접촉할 예정이다. 이 같은 행보는 모디 총리가 취임 이후 줄곧 추진해온 '메이드 인 인디아' 정책과도 맥이 닿아 있다. 그는 이미 수차례 "플라스틱이든 자동차든 위성이든 가공식품이든 인도에 와서 만들어달라"며 적극적으로 25개 핵심 제조 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 유치를 강조하는 등 제조업의 세계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이미 주지사 시설부터 친기업 행보로 구자라트를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주(州)로 만들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총리 취임 이후 인도 경제는 '모디 효과'로 불릴 정도로 세계 개도국 중 가장 눈부신 약진을 보이고 있다. 인도의 경제성장률(GDP)은 그가 총리직을 맡은 후인 지난해 3·4분기와 4·4분기 각각 8.2%, 7.5% 성장했으며 올해도 중국을 제치고 아시아 지역 최고 수준인 7.5%가 전망될 정도로 역동적인 모습을 과시하고 있다.

 

12억 인구의 인도 시장은 우리에게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장이다. 아직 무역규모가 200억달러에 불과한데다 우리 제품의 인도 시장 점유율이 3%(11위)에 그칠 정도라 개발 여지도 크다. 모디 총리의 이번 방한이 인도에는 한국이 중요 경제 파트너가 되고 또 우리에게는 메이드 인 인디아가 새로운 성장 모멘텀이 되는 '윈윈'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말글살이/김하수(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20150518월] 공짜 언어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처음 마주치는 언어를 가장 쉽게 배운다. 부모가 전문적인 교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기들은 순탄하게 익혀 대여섯 살이 되면 그 말을 통달하게 된다. 그래서 그 언어를 어머니의 언어(모어)라고 한다. 한때는 모국어라고도 했지만 국가의 배경이 없는 수많은 언어들을 배려한 이름이다.

 

이 모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흔히 애국심이 강조되며 본질적으로 민족혼을 담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모어를 중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모어와 애국심의 확실한 관계는 제대로 증명되지 않는다. 모어의 기능과 효과가 워낙 넓어서 매국노에게도, 적들에게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의 언어를 지나치게 애국주의적 관점에서 논하는 차원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모어는 공짜로 배우는 언어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큰 가치가 있다. 반면에 외국어는 무언가 값을 치르고 배우게 된다. 모어는 공짜이니만큼 사람마다 별다른 차이 없이 어슷비슷한 능력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 언어를 이용한 교육, 지식, 정보에는 보편적 신뢰가 생긴다. 나만 모르는 일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사회공동체는 모어의 능력을 구성원의 ‘자격증’처럼 생각한다. 또한 공짜는 특권층의 이익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공통성과 유대감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같은 의미에서 기초적인 사회생활을 저비용으로 혹은 공짜로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은 모어와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이 모이면 대개 같이 먹는 일부터 준비한다. 같이 먹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공동체 구성원임을 서로 확인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자발적 기여와 헌신으로 강해진다. 결국 공동체는 공짜로 배운 모어의 바탕 위에, 서로 자신의 이기심을 넘어서서 공동체에 바치는 공짜의 힘으로 존재하는 셈이다. 모어는 이렇게 구체적인 이익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지 원래부터 어떤 거룩함을 지닌 것은 아니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조호연(논설위원)-20150518월] 서울 인구 1000만명

돌아보면 1988년은 중요한 정치·사회적 전환이 이뤄진 해였다. 우선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에서 벗어나 6공화국이 출범했다. 노태우 정권이 민주정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민주정권으로 가는 교량 역할을 했다. 두 해 전 아시안게임에 이은 올림픽 개최도 중요 사건이다. 부작용도 많았지만 이를 계기로 국가적 위상이 높아진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는 서울 인구 1000만명 돌파가 꼽힌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농촌 공동체 붕괴와 맞물린 도시집중의 결과다.

 

서울 인구 증가는 50년 전부터 국제적으로 화제가 됐다. 본격 경제개발이 시작된 1964년 서울 인구는 468만명. 6·25전쟁 후인 1955년 150만명에 비하면 10여년 만에 3배로 늘었다. 세계 도시화 사상 ‘경이로운 신기록’으로 불렸다. 공업화 초기 단계 국가의 수도 인구가 50만명에서 100만명으로 팽창하는 데 통상 20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그럴 만도 했다. ‘한강의 기적’은 서울의 인구 증가에도 어울리는 말이었던 셈이다. 대기업 본사의 95%, 4년제 대학의 85% 등 모든 것을 가진 도시가 인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서울 인구는 2000년대 들어 증가 추동력을 잃었다. 증가세 둔화를 거듭하더니 급기야 2013년 1000만명의 벽이 깨졌다. 주민등록인구는 1014만명이었지만 실제로 서울에 살고 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거주불명등록자와 재외국민을 제외한 실제 총거주자수가 999만명으로 집계됐다. 25년 만에 1000만명 아래로 내려간 것이다. 현재도 서울 인구는 매년 5만명씩 줄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어제 인구추계를 통해 지금 추세대로라면 서울은 주민등록인구도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 1000만명 선이 붕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경제성장의 상징이라 할 서울이 ‘쇠락의 길’로 접어든 셈이다.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다.

 

서울 인구 집중 현상의 발목을 잡은 주요인은 집값 등 주거비라고 한다.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인구의 대거 이탈이 이뤄진 것이다. 문제는 서울 유출 인구가 경기도 등 수도권에만 정착하고 있는 현실이다. 여타 지역으로 분산되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지방균형발전과는 거리가 있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구본영(논설위언)-20150518월] 개성공단 국제화의 조건

 

남북 상생의 시험장인 개성공단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북한이 공단의 최저임금을 일방적으로 인상하면서 촉발된 갈등 때문이다. 우리 측이 당국 간 협의를 채근하고 있으나 북측은 근로자들의 태업으로 압박하고 있다. 4월분 임금 지급 시한인 20일 개성공단은 사활을 건 기로에 설 전망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개성공업지구 노동 규정을 맘대로 개정했다. 남북 합의사항인 ‘최저임금 인상 상한선 5% 룰’을 폐지한 것이다. 이에 따라 3월부터 북측 근로자의 월 최저임금을 70.35달러에서 74달러로 인상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141.4달러인 개성공단의 평균임금은 베트남(193달러)보다는 낮으나 캄보디아(120달러), 방글라데시(74달러)보다 높다. 사회보험료·간식비 등을 포함한 기업의 실제 비용 부담은 230달러 수준이라고 한다. 그래서 공단의 139개 남쪽 기업 중 상당수 ‘한계기업’은 지금도 겨우 버티는 형편이다. 정부가 임금 인상 자체가 아니라 북측이 당국 간 협의를 기피하고 남남 갈등, 즉 정부와 우리 기업 간 틈새를 벌리려는 태도를 심각히 여기는 이유다.

 

최근 러시아가 개성공단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 티모닌 주한 러시아 대사는 지난달 말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의향을 공개했다. 러시아의 고려인 출신 기업인들이 제안한 식품 생산 프로젝트를 예시하기도 했다. 우리로선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의 입장이다. 공단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반긴다는 뜻이다. ‘개성공단의 국제화’는 북한의 일방적인 위협에 영향받지 않고 공단을 키울 최상의 대안이란 차원이다.

 

그러나 개성공단 국제화의 성패도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로선 외국 기업이 입주해 완충 역할을 해 주기를 절실히 바라지만 러시아를 포함한 당사국들은 개성공단이 안정화되면 투자하겠다는 자세다. 대북 투자 리스크로 인한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문제인 셈이다. 여기엔 현대아산의 금강산관광 투자 손실이나 중국 기업의 대북 투자 실패가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중국 500대 기업 중 하나인 시양그룹이 북한 옹진군에 2억 4000만 위안을 투자해 철광석 선광 공장을 세웠지만 투자금 대부분을 탈탈 털리고 철수한 게 단적인 사례다.

 

개성공단 말고도 북한 전역에는 해외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19개 특구가 지정돼 있다. 북측은 원산·금강산 관광특구 개발을 위해 27일 외국기업 대상 설명회도 가질 예정이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전망이 극히 불투명하다고 본다. 북한 경제에 대한 국제 신인도가 매우 낮은 탓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투자 유치에 성공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개성공단이든 다른 특구에서든 거위의 배를 갈라 알을 한꺼번에 빼먹으려 하지 말고 국제사회의 정상적 상거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518월] 생존 매뉴얼

 

올해 초 한 남성이 출근길 지하철에서 갑작스런 심정지로 쓰러졌다. 승객의 신고를 받은 역무원들이 다음 역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심각한 상황. 그때 옆에 있던 전직 간호사가 “자동제세동기(AED)를 빨리 갖다 달라”고 소리쳤고, 침착한 대응 덕분에 그는 목숨을 구했다.

 

자동제세동기는 가슴에 전기충격을 가해 심정지 환자의 심장박동을 되살리는 기기다. 지하철역을 포함한 공공시설에 설치돼 있다. 그런데 사용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생활안전연합 조사 결과 직장인의 4.6%에 불과했다. 45%는 자동제세동기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한 해 심정지로 사망하는 사람이 2만4000여명인데도 이렇다.

 

미 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어릴 때부터 의무적으로 ‘생존 매뉴얼’을 가르친다. 미국은 화재, 교통, 총기, 마약, 태풍, 학교폭력 대응책에 토네이도, 지진 매뉴얼까지 익히게 한다. ‘안전 천국’ 스웨덴에서는 3세 때부터 실사례 중심의 안전 교육을 시킨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미국 재난방재청의 민간인 재난대비 매뉴얼은 물을 정수하는 법까지 가르친다. 요오드나 과산화수소, 락스를 사용하라는 게 특이하다. 농도가 높은 것은 세척제로 쓰이지만 희석시키면 살균 작용 덕분에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생존 매뉴얼은 너무나 많다. 표준 매뉴얼과 실무 매뉴얼, 현장 행동 매뉴얼 등 3000개가 넘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실제 상황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지침끼리 얽혀 역효과를 부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차라리 최소한의 매뉴얼을 최대한 활용해서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게 시급한데, 사고 때마다 책임자 처벌 등 ‘뒷북 징계’에만 열을 올린다. 책임 소재를 밝히는 것만큼이나 재발을 막는 예방책이 중요한데도 그렇다.

 

그나마 학생들의 안전 교육은 강화되고 있다. 오늘부터 닷새간 교육부 산하 2만여개 기관이 재난대응 훈련에 나선다. 올해는 이틀이나 기간을 늘렸다고 한다. 하지만 어른들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하다. 전·현직 경찰관 두 명이 이런 상황이 안타깝다며 실속형 ‘생존 매뉴얼 365’를 펴냈다. 위기상황에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데 필요한 실용 지침이 많다.

 

그 중 하나는 외딴곳에서 급히 구조를 요청해야 할 때 전봇대부터 찾으라는 것이다. 전국에 850만개 있는 전봇대는 도심에 약 30m, 농촌에 50m 간격으로 설치돼 있고 고유번호가 적혀 있어 금방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한기석(논설위원)_20150518월] 아인슈타인과 신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God does not play dice)."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솔베이회의(세계 최초의 물리학회)에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내세운 불확정성의 원리에 반대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거시세계와 달리 미시세계에서는 입자의 위치를 확정할 수 없으며 오직 확률적으로만 알 수 있다.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그 사물에 반사된 빛을 시신경이 인식하는 것인데 원자같이 작은 입자는 도달한 빛에 튕겨 나가기 때문에 보는 순간 입자는 이미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확률론적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어 주사위 얘기를 했지만 정작 이 말은 의도와는 달리 아인슈타인이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유신론자의 주장에 가장 큰 근거로 둔갑했다.

 

그는 이 말 외에도 "신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현명하고 똑같이 어리석다.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요 과학이 없는 종교는 맹인"이라면서 신에 대한 그의 생각을 헷갈리게 했다. 사실 이런 말은 화자가 신은 진짜 있다는 전제하에 사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쓰는 표현일 뿐이다. 동물학자면서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특히 과학자들이 별생각 없이 신이라는 단어를 쓰기 좋아한다며 일반인을 오도할 수 있는 만큼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NBC방송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의 개인 편지 27통이 다음달 11일 경매에 나온다. 그는 이 가운데 한 편지에서 "신을 믿는다는 것은 순진한 것"이라며 "(신을 믿기보다는) 자연과 인간 존재에 대한 우리의 부족한 지적능력에 상응해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선호한다"고 썼다. 그는 과거 경매에 나온 편지에서도 "내게 신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표현이다. 성경은 고귀하지만 다소 유치한 원시 전설들의 집대성"이라고 적었다. 아인슈타인은 무신론자임이 거의 100% 확실하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주철환(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20150518월] 봉숭아학당이 문 닫은 진짜 이유

 

‘일밤’의 ‘진짜 사나이’ 댓글 중에는 ‘저게 무슨 진짜야’라는 불만도 있다. 군대의 실상과 다르다는 얘기다. ‘우정의 무대’ PD 출신으로서 대신 답을 드린다. ‘진짜 사나이’는 진짜 군대를 보여 주려는 프로가 아니다. 그런 건 시사 고발 프로에서 한다. 그렇다면 국군의 날 특집 다큐 ‘이것이 군대다’에선 진짜 군대를 볼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진짜 군대를 보여 주는 프로라면 국방부에서 협조했을 리 없다. 그들은 ‘진짜 군대’가 아니라 ‘좋은 군대’를 보여 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진짜 군대를 보려면 TV 시청이나 면회가 아니라 입대하는 게 가장 낫다.

 

  예능의 목표는 시청자를 웃게 만드는 거다. 개그맨들은 웃기기 위해 거의 목숨을 건다. 그러다가 억지웃음의 생산자가 되어 웃음무대에서 정학을 맞기도 하고 퇴학을 당하기도 한다. 전학도 간다. 그런데 웃음이 목적인 ‘진짜 사나이’에서 자주 들리는 대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웃지 마”다. 웃음을 참지 못하는 연예인 병사들은 조교의 심기를 안 건드리려고 이를 악문다. 난감한 상황이다. 조교도 곤욕을 치른다. “할 일도 많은 내가 왜 이런 연예인들과 카메라 앞에서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거지?” 웃음행군에 동원된 연예인과 웃음을 통제해야 하는 진짜 군인. 실제를 보여 달라는 제작진과 ‘알아서 잘해’라는 간부의 눈빛 사이에서 진짜 조교는 참 버티기 힘들 것 같다. 좋은 것을 보여 주려는 사람들과 실제의 것을 보려는 사람들의 어긋난 행보는 그 자체가 코미디 소재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정치권에 볼썽사나운 일이 터지면 반드시 등장하는 말이다. 번역할 때 유의해야 한다. 웃긴다는 얘기가 아니라 우습다는 얘기기 때문이다. 코미디의 유령이 여의도를 배회하고 있다. 이번에 부활한 건 봉숭아학당이다. (‘개그콘서트’팀은 긴장 좀 해야겠다. ‘닭치고(高)’라는 교실 코미디가 방송 중인데 폐교된 지 수년 된 봉숭아학당이 언급되다니.)

 

  여기서 궁금증 하나. 봉숭아학당은 왜 폐지되었지? 비교육적이라서? 아니다. 좀 소란스럽긴 했어도 그 교실엔 창의가 살아 있었다. 성적의 노예는 없었고 적성의 활기는 넘쳤다. 교사는 모든 학생의 이름을 불러 줬고 골고루 발표의 기회를 줬다. 학생들이 원하는 교실은 온정도 아니고 냉정도 아니다. 공정이다. 그런데 왜 문을 닫았지? 더 이상 웃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 코미디언의 일자리를 일부 정치인이 뺏은 건 아닐까? 그들의 코믹펀치가 맹구를 실업자로 내몬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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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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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이완구 전 국무총리 검찰 출석 조사

■ 강기훈 씨 24년 만에 무죄

■ 정부 국가재정전략회의 개최와 무상보육 예산 마련 문제

■ 김정은 공포정치와 도발 대비의 필요성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이완구 전 국무총리 검찰 출석 조사

 

[한국일보 사설-20150515금] 착잡한 심정으로 보는 이 전 총리의 검찰 출두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마침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성완종 리스트 연루 의혹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17일 만이다.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총리로서 불과 2개월 전 대국민 담화까지 발표하며 서슬 퍼렇게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했던 이 전 총리다. 그런 그가 비리의혹에 휩싸인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청 포토 라인에 선 모습을 보고 많은 국민들은 착잡하고도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 전 총리는 역대 총리 43명 중 14번째로 검찰 조사를 받는 전직 총리가 됐다. 어떤 사유에서든 총리 출신이 비리혐의로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헌정사의 불행이다. 더욱이 이 전 총리는 성 전 경남기업회장으로부터 불법 선거자금을 받은 의혹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만큼 사실상 ‘현직 소환’의 의미가 있다. 국민들에게 주는 충격과 배신감이 한층 더 클 수밖에 없다.

 

이 전 총리는 이날 검찰 조사실로 들어가기에 앞서 취재진에게 “이 세상에 진실을 이기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결연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물론 유무죄 여부는 검찰 조사와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이 전 총리가 받고 있는 혐의는 2013년 4월 충남 부여ㆍ청양 재보궐 선거 기간 성 전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 현금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성 전 회장이 직접 선거사무소를 방문해 현금을 전달했다는 정황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이 전 총리는 당시 성 전 회장을 단둘이 만난 사실 자체부터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감에 찬 이 전 총리의 ‘진실’ 강조는 불편하다. 핵심 혐의의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그는 그 동안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잦은 말 바꾸기와 과도한 부인으로 국민들의 불신을 키운 게 사실이다. 성 전 회장과의 관계만 해도 처음엔 개인적 친분이 없다거나 전혀 친하지 않다고 했다가 동석한 사진들이 다수 공개되고, 두 사람이 빈번하게 만났다는 증언이 잇따르자 자주 접촉하고 의견도 나눈 사이였음 마지못해 시인했다. 그의 ‘진실’이 곧이곧대로의 진정성보다는 핵심 의혹 제기자의 사망으로 수사의 불가피한 한계를 판단한 발언으로 들리는 이유다.

 

당시 이 전 총리가 만약 성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도 말한 것도 국민들의 불신을 키운 오버였다. 결백을 강조하려는 과장 어법이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협박으로 받아들였다. 어쨌든 이제 공은 검찰에 넘어가 있다. 검찰이 어떤 정치적 고려 없이 증거와 정황에 입각한 철저한 조사로 진실을 가려 냄으로써, 이 전 총리에 대한 수사가 더 이상 이런 비극적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는 정치문화 개선의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5금] 아직도 창피함을 모르는 이완구 전 총리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한테서 3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취임 후 부패척결의 기치를 높이 내걸었던 내각의 총책임자가 부패 혐의 피의자로 전락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선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씁쓸하다. 아직 후임자도 없는 ‘총리 공백’ 상태임을 고려하면 사실상 현직 총리의 검찰 출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전 총리는 이날 “이 세상에 진실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가 ‘진실’ 운운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것은 금품 전달자인 성 전 회장이 이미 고인이 된 상태에서는 검찰도 혐의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으리라는 계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나타난 각종 정황증거나 이 전 총리의 언행을 보면 오히려 ‘진실’은 돈을 받은 쪽에 가까워 보인다.

 

우선 이 전 총리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계속 거짓말을 했다. ‘성 전 회장과 친하지 않다’는 해명과 달리 1년 동안 수백 차례나 전화통화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2013년 재선거 때 성 전 회장이 부여 선거사무실로 찾아가 돈을 전달했다’는 성 전 회장 측근들의 진술에 대해 이 전 총리는 ‘단독 면담’ 사실 자체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으나, 두 사람이 단독으로 만나는 광경을 본 사람들이 잇따라 나타났다.

 

게다가 이 전 총리는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전에 만난 지인들에게 직접 16차례나 전화를 걸어 대화 내용을 캐묻는가 하면, 전직 운전기사를 비롯해 선거 캠프 인사들을 상대로 조직적인 회유와 말맞추기를 시도한 정황도 드러났다. 돈을 받지 않았으면 굳이 회유 공작을 펼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이런 증거인멸 시도는 이 전 총리의 혐의를 입증하는 강력한 정황증거가 아닐 수 없다.

 

검찰도 그동안 성 전 회장의 수행비서와 이 전 총리의 운전기사 등 관련자들의 증언을 폭넓게 수집하고 관련 기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얼마나 정교하고 치밀하게 이 전 총리의 금품수수 혐의를 입증할지 주목된다. 여기에 덧붙여, 이 전 총리에 대한 형사처벌 수위 결정에서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증거인멸 문제다. 증거인멸은 구속영장 청구의 중요한 사유인데, 핵심 증인들을 상대로 한 이 전 총리 쪽의 회유와 거짓증언 유도 등이 한두 건이 아니다. 검찰이 이 전 총리 수사를 통해 ‘이 세상에 진실을 이기는 것이 없음’을 확실히 보여주기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5금] 檢, 이완구 전 총리 봐주기식 수사 안 된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어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3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17일 만이다.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위치인 총리에서 졸지에 검은돈을 받은 비리 혐의 피의자 신세로 전락한 현실은 그 자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겠지만 국민들에게도 큰 충격을 던져 줬다.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온 사건인 만큼 검찰은 한 줌 의혹도 없이 사실 여부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야만 할 것이다.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 인터뷰를 통해 이 전 총리를 ‘사정대상 1호’라고 지목한 바 있다. 그는 충남 부여·청양 재선거에 출마한 이 전 총리의 부여 선거사무소를 2013년 4월 4일 직접 찾아가 3000만원을 건넸다고 폭로했다. 수사의 얼개는 상당 부분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그동안 성 전 회장 및 이 전 총리 측근들 조사를 통해 당시 두 사람의 행적을 집중적으로 파악했고, 성 전 회장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와 진술들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성 전 회장 운전기사 등은 “당시 성 전 회장이 미리 현금을 준비해 갔고, 이 전 총리와 독대했다”며 돈이 건네졌을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반면 이 전 총리는 어제 검찰에 출두하면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며 국민들께 사과하면서도 “이 세상에 진실을 이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자신의 결백을 다시 한번 주장했다. 앞서 그는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며 배수진을 쳤고, 이임식에서도 결백을 주장하고 떠났다. 하지만 해명 과정에서 여러 차례 말을 바꾼 데다 그의 주장과 달리 성 전 회장과의 친분을 방증해 주는 동영상 등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이미 그의 변명은 신뢰를 잃었다.

 

이 전 총리를 수사하는 검찰 특별수사팀의 사명은 하나다. 엄정하고도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그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것이다. 행여 거물급 여권 정치인이자 전직 총리라는 부담감을 갖고 수사를 미진하게 한다면 오히려 역풍만 맞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자칫 이번 소환조사가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지 않도록 수사기법을 총동원하길 바란다. 현실적으로 돈을 건네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는 결정적인 진술이 없어 수사에 큰 장애가 있다는 점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렇다 해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앞으로 남은 수사를 위해서도 이 전 총리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길 바란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이제 두 번째의 큰 강을 건너고 있을 뿐이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 전 총리 외에 리스트에 거명된 나머지 6명에 대한 수사의 성패는 홍 지사와 이 전 총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나마 증거와 진술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이 두 사람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나머지 인사들 수사는 하나 마나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의 특별검사 도입 요구가 거세지고, 결국 검찰은 또다시 ‘정치검찰’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특별수사팀의 선전을 기대한다.

 

 

■ 강기훈 씨 24년 만에 무죄

 

[한국일보 사설-20150515금] ‘유서대필’ 24년 만의 무죄, 검찰 사법부 사과해야

 

‘한국판 드레퓌스’로 불려온 강기훈씨가 유서대필 사건에서 24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대법원은 어제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강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강씨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동료였던 김기설씨가 1991년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했을 때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돼 옥살이를 했다.

 

대법원은 사건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작성한 필적 감정서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국과수 감정인이 혼자 유서를 감정해놓고도 4명의 감정인이 공동심의했다고 위증한 점, 평소 김씨 필체의 특징이 유서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며 강씨 필체와는 전혀 다른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당시 국과수 감정 결과는 신빙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죄의 결정적 근거가 됐다. 국과수 자체가 애초 속필체인 유서와 김씨의 정자체 글씨를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가 검찰의 재감정 요청에 응하는 등 의문이 제기됐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가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애썼더라면 권력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만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유서 대필 사건의 진실이 뒤늦게나마 밝혀진 것은 다행스럽지만 검찰과 사법부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은 발생 때부터 뜨거운 논란을 빚었다. 공권력의 폭력에 항의해 분신 사건이 잇따르자 검찰이 정치적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조작한 것이라는 주장이 거셌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되면서 운동권은 ‘목적을 위해 생명까지도 수단으로 삼는 비도덕적 집단’으로 매도됐다. 강씨는 “천인공노할 범죄자”로 낙인 찍혔고 숨진 김씨의 명예도 땅에 떨어졌다.

 

역사의 물길을 바로잡은 건 사법부가 아니라 2007년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이었다. 과거사위는 필적 감정을 통해 유서대필은 없었다고 결론짓고 사법부에 재심을 권고했다. 하지만 검찰과 법원은 잘못을 신속히 바로 잡으려 하지 않았다. 재심 과정에서 검찰은 끝까지 강씨의 유죄를 주장했고 서울고법의 무죄 선고 이후에도 상고를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강씨의 재심 청구 후 무죄 확정까지는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강씨는 이 사건으로 3년2개월을 복역하고 출소한 뒤 생활고에 시달리다 간암을 얻어 투병 중이다. 그러나 검찰은 물론 사법부도 자성이나 사과를 않고 있다. 어제 대법원도 판결에서 별다른 의견 표명을 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킨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 검찰과 사법부는 뼈아픈 반성이 있어야 한다. 시민사회와 언론도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거나 잘못을 걸러내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렸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5금] ‘강기훈 무죄’ 앞에 왜 사과는 없는가

 

진실은 결국 승리했다. 유서를 대필해 동료의 자살을 방조했다는 참혹한 누명을 쓰고 24년간의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던 강기훈씨가 14일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1991년의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이 공안세력의 광풍으로 조작된 사건임이 마침내 확인된 것이다. 진작에 그랬어야 했지만, 이제 이 사건은 ‘유서대필 사건’이 아니라 ‘유서대필 조작 사건’으로 기록돼야 한다.

 

진실은 승리했지만 반성과 사과는 끝내 없었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과 경찰, 법원 등의 국가기관은 진실을 조작하고 오랫동안 은폐하는 데 한몸이었다. 1991년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마치 주문에 맞추려 한 듯 무리한 과정을 거쳐 자살한 김기설씨의 필체와 유서 필체가 다르다는 억지 감정을 내놓았다. 감정의 원칙도, 합당한 절차도 무시된 결과였다. 이를 앞세워 검찰은 강압수사로 자백을 강요하고 피의자의 반론권을 보장하지 않은 위헌적 증거를 엮어 강씨를 자살을 방조한 파렴치범으로 몰았다. 민주화운동 세력이 사람 목숨을 수단으로 삼는 비인간적인 집단이라는 매도도 이어졌다. 법원은 눈에 뻔한 거짓을 외면한 채 강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수십년의 세월이 걸려 진실을 밝혀냈지만, 검찰과 법원은 잘못을 인정하는 데 인색했다. 진실 조작을 드러내는 증거를 찾아 2008년 재심을 청구했지만, 대법원은 재심을 결정하기까지 3년 넘게 머뭇거렸고 서울고법 재심 재판부의 무죄 선고에 대해서도 1년 넘게 확정을 미뤘다. 24년 동안 한 인간을 병마에 몰아넣을 정도로 고통을 주고 괴롭힌 것을 사과하거나 위로하지도 않았고, 정의의 실현을 지연시킨 데 대해서도 반성하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면, 지금의 대법원은 비겁하기 그지없다.

 

검찰은 더하다. 검찰은 재심이 개시된 뒤에도 강씨가 새로운 증거조작을 하고 있다고 억지를 부렸다. 검찰은 이번 사건 말고도 지난 수십년 동안의 숱한 진실 조작과 사건 왜곡에 대해 단 한번도 반성하고 사과한 일이 없다. 이런 검찰은 공익의 대변자도, 신뢰를 받는 온전한 사법기구일 수도 없다. 진실 왜곡에 일조한 대가로 출세를 했다고 한들 역사 앞에 죄인으로 기록되는 것은 면할 수 없다.

 

강기훈씨의 무죄 확정은 100여년 전 드레퓌스 사건이 프랑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진실을 왜곡하려는 힘에 고통받는 이들도 희망을 얻을 수 있기 바란다.

 

 

[경향신문 사설-20150515그] 강기훈씨 무죄 확정, 사과 한마디 없는 가해자들

스물일곱의 젊은이가 쉰을 넘어 초로에 접어들었다. 홍안이던 얼굴에는 병색이 깃들었다. 한 인간의 영혼이 송두리째 짓밟히고, 양심이 무참하게 모욕당했다. 길고 끈질긴 투쟁 끝에 진실을 되찾았다고 하나, 잃어버린 그의 인생은 누가 되돌려줄 건가. ‘사필귀정’이란 말로 치환하기엔 모진 세월이 안타깝다.

 

‘한국판 드레퓌스’로 불려온 강기훈씨가 ‘유서대필 사건’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1991년 분신자살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간부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작성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기소된 지 24년 만이다. 대법원은 어제 강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유죄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필적 감정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제는 강씨의 변호사가 지적했듯 ‘유서대필 사건’이 아니라 ‘유서대필 조작사건’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불의한 권력이 빚어낸 오욕의 과거사를 사법부가 바로잡은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재심 권고에 따라 강씨가 재심을 청구한 게 2008년이다. 서울고법이 2009년 9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하자 검찰은 곧바로 대법원에 항고했다. 대법원은 재심 개시를 확정하기까지 또 3년여를 흘려보냈다. 검찰은 재심 과정에서도 강씨의 유죄를 주장했고, 지난해 2월 서울고법이 무죄를 선고한 뒤에는 상고를 강행했다. 그사이 강씨는 간암 수술을 받고 힘겨운 투병생활을 해왔다. 국가폭력의 피해자인 강씨에게 검찰과 법원이 ‘2차 가해’를 저지른 격이다.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강씨의 무죄가 확정됐는데도 어느 한 사람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991년 당시 수사검사들은 “시대에 따라 증거가치에 대한 평가 기준이 다르다”며 궤변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유서대필이 24년 전에는 ‘사실’이었으나 시간이 흘러 ‘사실’이 아닌 쪽으로 변했다는 말인가.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이 이토록 들어맞기도 어려울 터이다. 대법원 역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한다”고만 했을 뿐 잘못된 판결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최고 법원의 품격이 이 정도라니 참담하다.

 

역사를 왜곡하고 한 시민의 삶을 무너뜨린 조작극에 대해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는 이제라도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실체를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검찰과 법원을 비롯해 관련 기관·인사들이 자성하고 사과해야 함은 물론이다.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국가폭력이란 괴물이 언젠가 다시 살아나 또 다른 시민의 삶을 파괴할지 모른다.

 

 

■ 정부 국가재정전략회의 개최와 무상보육 예산 마련 문제

 

[서울신문 사설-20150515금] 대선 공약인 무상보육을 왜 교육청에 떠넘기나

 

정부가 엊그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어 누리과정(만 3~5세 교육 프로그램) 예산을 의무지출 경비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예산을 편성하는 문제를 놓고 매년 정부와 시·도교육청 사이에 갈등을 빚고 있는 누리예산을 교육청이 부담하도록 법(시행령)으로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를 지키지 않으면 이듬해 예산 편성 때 불이익을 주겠다고도 했다. 교육감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도 재정 형편이 어려운데 교육청 예산의 10%가량을 어린이집 무상보육을 위한 예산으로 무조건 편성하라고 한다면 재정이 파탄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올해 누리과정에 필요한 전체 예산은 3조 9000억원 정도다. 이 가운데 1조 8000억원가량의 예산이 부족한데 정부가 목적예비비로 5064억원을 지원하기로 했고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1조원의 지방채를 발행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3000억원쯤 모자란다. 누리예산부터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한다면 부족할 일이야 없지만 학교 시설 보수와 같은 다른 분야의 예산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런 방안을 들고나온 것은 물론 세수 감소에 따른 국가 재정의 악화 때문이다. 재정이 어려울 때는 국가나 지방이나 다 같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3~5세 무상보육은 ‘유아교육 국가완전책임제’를 선언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국가 또는 박 대통령에게 공약 실현의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또한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돕는다는 취지의 무상보육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투자로서 지방정부보다 중앙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게 맞다.

 

그런 것을 이제 와서 교육청이 알아서 하라고 법을 동원하는 것은 누가 봐도 국가의 책임 회피가 아닐 수 없다. 지방자치의 근본 정신을 훼손하는 중앙정부의 권한 남용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재정 여건은 고려하지 않고 선거에 이기기 위해 무상복지를 남발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기초연금이나 무상급식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고 지금도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국민에게 한 약속은 책임지고 이행해야 한다. 낭비를 줄이고 세입을 늘리려는 노력을 더 기울여 재정을 확보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그래도 예산이 모자라고, 그렇다고 증세도 어렵다면 차라리 경제 여건이 나아질 때까지 무상보육을 중단하거나 축소하자고 국민을 설득하는 게 솔직한 자세다.

 

 

[중앙일보 사설-20150515금] 재정 개혁, 정부 혼자 외치면 뭐하나

 

박근혜 정부의 세 번째 국가재정전략회의 역시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 정부·지방·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까지 포함한 전방위적인 재정 개혁을 통해 재정 건전성 강화와 경제 살리기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게 중심은 아무래도 재정 건전성에 맞춰졌다.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 등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복지 비용과 4년째 대규모 ‘펑크’가 불가피한 국세 수입이 재정 운용의 틀을 크게 좁혀놓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처음으로 2060년까지 장기 재정 전망을 내놓기로 한 것도 그래서다. 어제 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거듭 주문한 것처럼 국가 재정지출의 효율성 제고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는 실천이다.

 

  당장 올해 경기 상황부터 만만치 않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경기 악화 상황이 오면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검토할 수 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경제 살리기 바빠 곳간 돌볼 여력이 없는 정부로선 재정 운용을 적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나랏빚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럴 때 쓰려고 재정이 있는 것이니 여기까지는 국민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그러나 공무원 노후를 보장하거나 불요불급한 복지, 엉뚱한 이가 타먹는 보조금 같은 데 국가 재정이 새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 된다. 지금처럼 재정이 빠듯하고 부채가 급증하는 상황에선 더더욱 용납하기 어렵다. 정부가 지난달 밝힌 국가결산 자료에 따르면 공무원과 군인연금 충당 부채를 합한 넓은 의미의 국가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1211조2000억원이었다. 전년에 비해 93조원이 늘었는데, 그 가운데 절반이 넘는 47조3000억원이 공무원과 군인연금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생긴 것이었다. 공무원연금 같은 큰 누수 요인을 놔두고 아무리 재정 개혁을 외쳐본들 ‘언 발에 오줌 싸기’일 뿐이란 얘기다.

 

  박근혜 정부는 첫해에 21조원, 지난해엔 29조5000억원의 재정 적자를 냈다. 남은 3년을 낙관적으로 계산해도 현 정부 임기 중 140조원 안팎의 적자를 내게 된다. 2018년엔 국가 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넘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나라 곳간을 사수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당장 공무원연금부터 더 과감한 개혁에 나서야 한다.

 

  문제는 복지 수요가 분출하는데다 이에 편승한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갈수록 활개를 칠텐데 정부가 과연 이를 막아내고 개혁을 이뤄낼 수 있겠느냐는 거다. 재원 대책 없이는 세출 확대도 하지 않는다는 ‘페이고(Pay-Go)’법이 국회에 제출된 지 3년째다. 말로는 의원마다 “국가 재정을 위해 꼭 필요한 법”이라면서도 제대로 논의 한 번 없이 지금껏 국회 운영위에 처박아 놓고 있는 게 우리 국회의 현실이다. 그런 정치권이 내년 총선에서 죽기살기 식으로 예산 흔들기에 나설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한 푼이라도 엉뚱한 곳에 새지 않도록 지금부터 단단히 조여야 한다.

 

 

■ 김정은 공포정치와 도발 대비의 필요성

 

[중앙일보 사설-20150515금] 김정은 공포정치의 끝은 어디인가

북한 내 군(軍) 서열 2위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지난달 30일 숙청돼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고 어제 국가정보원이 밝혔다. 숙청 이유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대한 ‘불충(不忠)’과 ‘불경(不敬)’이라고 한다. 평양 순안구역 소재 강건군관학교에서 수백 명이 참관한 가운데 일반 소총이 아닌 고사총으로 총살됐다는 첩보도 입수했다고 국정원은 국회와 언론에 공개했다.

 

현영철은 김 위원장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지시를 수차례 불이행하거나 이행에 태만했으며, 김 위원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조는 등 ‘유일영도체계 10대 원칙’의 일부를 위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2013년 12월 북한 체제의 2인자이자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국가전복 음모죄로 전격 처형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로부터 1년5개월 만에 군 서열 2위인 현직 인민무력부장을 문명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잔인하게 처형한 게 사실이라면 ‘피의 공포’로 유지되는 것이 김정은 체제의 맨 얼굴임을 만천하에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꼴이다. 북한에서는 올 들어서만 차관급인 임업성 부상과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 등 15명의 고위직이 처형되는 등 김 위원장 집권 이후 3년 동안 70여 명의 고위간부가 총살된 것으로 국정원은 파악하고 있다.

 

  공포정치는 독재자의 전형적인 통치 수법이다. 정통성이 취약하거나 권력 기반이 확고하지 않을수록 충격과 공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김 위원장은 2011년 말 부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서른 살도 채 안 된 나이에 권력을 승계했다. 가차없는 처벌에 의존하는 통치 행태는 여전히 체제가 불안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현영철 처형설과 관련한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여 년간 북한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을 종합해 보면 김 위원장이 공포정치를 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피는 피를 부르기 마련이다. 공포정치의 끝은 자멸(自滅)임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바다. 김정은 체제의 앞날을 속단하긴 이르지만 비상한 경각심을 갖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5금] 北 내부불안 덮기 위한 도발 가능성 대비해야

 

북한이 그제 서해 백령도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 이례적으로 야간 포 사격을 했다. 북측은 전화통지문으로 13∼15일 사흘간 연평도와 백령도 인근에서 해상 사격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우리 측의 자제 요구에도 불구하고 무력 시위를 강행한 것도 심각한 일이지만,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공개 처형 등으로 북한 내부가 불안정해진 터라 더욱 예의 주시해야 할 사태가 아닐 수 없다.

 

‘폐쇄 회로’에 갇힌 듯한 북한 정권의 진로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국가정보원의 발표대로 군부 2인자인 현영철이 처형됐다면 북 세습정권의 불가측성은 더 커졌다고 봐야 한다. ‘공포정치’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장악력이 커진 것처럼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체제 불안 요인의 싹을 틔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당·정·군 경력 없이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은 내외부에 걸쳐 고립무원의 처지다. 경제 여건도 최악이지만 과거 혈맹인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못 받고 있다. 친중파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데 이어 전승기념일을 앞두고 러시아를 방문했던 현영철마저 처형했다면 북·러 관계도 더 삐걱거릴 공산이 크다. 그럴수록 그는 공포정치에 기댈 소지가 크다. 하지만 당장엔 잔혹한 처형과 숙청을 피하려고 당·정·군 간부들이 숨죽이겠지만, 극단적 공포정치는 임계점을 넘으면 폭발할 수밖에 없다.

 

어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민 원내대표는 현영철 처형설과 관련해 “북한 급변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맞는 얘기다. 다만 그런 장기적 준비는 기본일 뿐이다. 더 시급한 건 북한이 내부 불안을 밖으로 투사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일이다. 북측이 내부 결속을 다지려고 국지적 대남 도발이나 남북 간 긴장을 조성하는 구태를 보일 것에 대비하란 얘기다. 그런 맥락에서 북측은 최근 심상찮은 조짐을 보였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이나 개성공단 북 근로자 태업이 그 징후다. 심지어 그들 마음대로 그은 해상분계선을 ‘침범’하는 남측 함정을 조준 타격하겠다고 위협하더니 청와대로 전통문을 보내 “용기가 있다면 도전해 보라”고 도발하기도 했다.

 

우리측의 과민 반응도 금물이다. “도발 시 원점을 타격하겠다”며 말만 앞세우는 게 능사는 아니다. 북측이 서해 등 남북 접촉 면에서 제한적 도발을 감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확실한 준비 태세를 보여 줘야 한다. 한·미 공조는 물론 중·일·러 등과도 긴밀한 감시 체제를 가동해 북한 권력의 불안정이 야기할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할 때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515금] 방산비리 막으랬더니, 기무사의 잇단 자체 비리

 

국군기무사령부 전현직 간부가 군 전략물자인 탄창을 밀수출한 사실이 드러나 그제 경찰에 구속됐다. 전 기무사 소령 이모씨는 현역 기무사 양모 소령, 군수품 판매업자 노모씨와 손잡고 탄창 3만여개를 자동차 오일 필터로 위장, 레바논의 밀매업자에게 밀수출해 3억6,000만원을 챙겼다. 이씨는 과거 우리 군의 주력 소총인 M16에서부터 북한군이 사용하는 AK-47소총 탄창까지 밀매대상의 종류를 가리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거래 상대인 밀매업자를 2007년 레바논 평화유지군 활동 중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넘어간 탄창은 미국이 테러단체로 지목한 중동의 무장세력이 사들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쯤 되면 스파이 영화의 한 장면이 현실화한 느낌마저 든다.

 

기무사 간부가 군 물자나 관련 자료를 외부로 빼돌리다가 적발된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정부 합동수사단은 지난 달 22일 군사기밀 자료를 빼돌려 무기중개업체 일광공영 이규태 회장에게 넘긴 기무사 3급 대우 서기관을, 이달 초에는 4급 군무원을 군형법상 군사기밀 누설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기밀을 건넬 때마다 50만원씩 20차례에 걸쳐 1,000만원을 받았다. 이들이 전한 기밀은 군국의 전력증강, 작전운용 계획 등 2,3급 비밀 등 141건이라고 하니 국가기밀이 한 건당 7만원의 푼돈에 거래된 셈이다.

 

기무사는 군사보안에서 방위산업 보안감사, 컨설팅, 군사기밀 유출세력 색출, 대간첩 및 대테러업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세력을 감시하고 색출하는 것이 주 업무다. 북한을 둘러싼 안보, 이슬람국가(IS) 등 테러집단의 동향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마당에 기무사의 역할은 더욱 중대하다. 역할이 중대한 만큼 전군을 포괄 관리 감독하는 무소불위의 권한도 주어져 있다. 그런데 국가안보를 위해 부여한 막강한 권한을 업자들과 짜고 물자를 빼돌리고, 국가 기밀을 팔아 넘기는 일에 썼으니 그야말로 고양이에 생선가게를 맡긴 셈이다.

 

기무사는 지난 달 연일 터지는 방산비리의 대책 일환으로 단 한차례라도 비리나 규정 위반으로 적발되는 군인은 즉각 전역조치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본부 요원을 30% 줄여 외부 활동요원으로 전환하는 방침도 내놓았다. 하지만 스스로가 잔뜩 곪아있는 판국에 남 얘기처럼 한 것부터 어울리지 않는다. 차제에 기무사의 과도한 권한, 폐쇄적인 업무 등 원천적으로 비리 소지가 큰 조직문화와 체질을 바꾸는 방안부터 검토돼야 한다. 필요하면 정부차원에서 외부감사 시스템 적용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는 조직은 결국 외부에서 손 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5금] 불씨 되살려야 할 공무원연금·국민연금 개혁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안에 담긴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를 둘러싼 여야 대치 정국이 길어지고 있다. 원내대표 주례회동마저 끊어질 만큼 여야 사이에 골이 깊게 파였다. 사태가 이런 지경까지 온 데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파기한 청와대와 여당의 책임이 크다. 특히 ‘월권’, ‘세금폭탄론’ 운운하며 여야 합의를 무시한 청와대의 태도가 결정적이다.

그 러나 이들 연금 개혁을 무작정 미룰 수도 없다. 여야는 이달 초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 과정에서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사회적 기구) 구성에 뜻을 함께했다. 공적연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현행 국민연금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모처럼 형성됐는데도 정치적인 힘겨루기에 밀려 기회를 날리는 것은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꼴이다.

 

국민연금 개혁 방향에 대해선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이해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보장 정도(급여)와 부담 규모(보험료율) 사이에 이중적 인식도 엿보인다. 연금 사각지대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웃도는 상황에서, 이들에겐 국민연금 개혁 논의 자체가 ‘남의 일’처럼 여겨질 수 있다. 안정적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 세대의 불신감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본디 세대협약의 성격이 강하다. 서구 나라들이 몇 세대에 걸쳐 제도를 운영하면서 쌓인 신뢰를 자양분 삼아 개혁 논의를 진행해온 데 반해, 우리는 채 신뢰가 쌓이기도 전에 개혁 작업에 나서야 하는 처지다. 그만큼 목소리도 제각각이고 해답을 찾기가 지난하다. 그러나 머리를 맞대면 길은 있기 마련이다. 소득대체율 일괄 인상 이외에도 저소득층 기초연금 강화나 계층간 보험료율 차등화 등 다층적 해법이 얼마든지 열려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중요한 게 사회적 합의 과정이다.

 

여야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연금 개혁 논의의 불씨를 되살려야 한다. 이미 합의한 사회적 기구부터 출범시키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작고 쉬운 것부터 합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양한 변수의 장기추계치를 반영하는 국민연금 모형은 극소수 전문가가 아니면 알기 힘들다. 여야가 서로 엇갈리는 데이터의 객관성부터 공동으로 검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한겨레>가 창간 27돌을 맞아 진행한 국민 설문조사에서 ‘국민연금 보장 수준과 적정 보험료 논의를 위한 사회적 기구의 필요성’에 대해 응답자의 84.2%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여야는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5금] 일요일 영업 금지 푸는 프랑스, 의무휴업 강제하는 한국

 

프랑스가 일요일 영업을 법으로 금지한 것은 1906년이었다. 노동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였다. 경쟁국인 영국이 1994년에 규제를 풀었지만 프랑스는 큰 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프랑스가 최근 속전속결로 이 규제를 풀었다. 지난 2월17일 정부가 하원 승인을 생략한 채 ‘상점 일요일 영업법안’을 공표하고 상원으로 넘기자 엊그제 상원은 이 법안을 전격 통과시킨 것이다. 새 법에 따라 지방정부가 연간 최대 5일 허가할 수 있었던 일요영업은 연 12일로 늘어나게 됐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와 생제르맹 지구 등 국제관광지구는 일요일 영업을 연중 할 수 있게 됐다.

 

프랑스가 110년 가까이 지켜오던 일요일 영업금지 규제를 혁파한 것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다. 당연히 거부감과 반대가 많았다. 또 이를 위해 리더십과 용기가 필요했다. 마뉘엘 발스 총리는 법안을 공표하면서 “이 법안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이라며 “이때문에 부결 위험을 피하기 위해 직접 정부법안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프랑스 헌법은 정부가 긴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경우, 총리 발표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고 의회는 내각 불신임안 제출로 대응할 수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경제장관은 반대 세력으로부터 살해 협박까지 받았지만 법안을 밀어붙였다.

 

포퓰리즘에 빠져 조금이라도 더 표가 나올 곳 같으면 눈치 살피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 정부, 정치권과 너무 비교되는 사태 전개다. 동네상권과 전통시장을 살리겠다고 대형마트 격주 일요일 휴무를 의무화한 일련의 사례를 보라. 결국 소비가 위축돼 자영업자와 시장상인들은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중이다. 또 대형마트에 입점해 있는 상인과 종업원도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다. 거기다 맞벌이로 주말에나 겨우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마트를 가던 고객들의 불편함에는 누구 하나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라 성장과 발전을 위한 일이면 신념을 갖고 밀어붙이는 관료와 정치인이 너무나 부족하다. 수입할 수도 없고.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5금] 국회는 왜 페이고법 3년째 뭉개고 있나

 

법을 많이 찍어내기로 세계 1등인 우리 국회가 ‘페이고(pay-go) 법안’에 대해서는 수년째 무관심이다. 매년 대규모 세수부족이 반복되고 포퓰리즘 경쟁에 따른 복지지출도 눈덩이처럼 커져가지만 재정의 건전성에는 오불관언이다. 엊그제 ‘2015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또 한 번 페이고법 조기 처리를 촉구한 배경이다. 대통령의 호소가 처음도 아니다. 예산을 편성하거나 새 법을 만들 때 반드시 재원조달 대책도 세우자는 페이고 원칙에 대해 1년 전 같은 회의에서도 대통령의 강한 역설이 있었다.

 

대통령은 재정지출을 야기하면서도 재원대책은 없는 마구잡이식 의원입법을 겨냥했다. 정부입법은 이미 국가재정법에 따라 재원조달 방안 제출이 의무화돼 있다. 정부는 2014년도분부터 예산편성에도 이 원칙을 적용해왔다. 하지만 의원입법은 국회 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서만 붙이면 된다. 그나마도 ‘기술적으로 추계가 어려운 경우’ 미첨부 사유서를 내면 그만이다. 지난해 4분기의 의원입법안 중 재정소요가 수반되는 257건의 83%(213건)가 비용추계서도 안 냈다.

 

19대 국회가 시작된 2012년부터 의원입법에도 페이고 원칙을 적용하자는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다. 하지만 입법권의 과잉제한이라는 이유로 3년째 그대로다. 정작 과잉은 의원들의 입법권이다. 19대의 의원입법은 1만3517건으로 역대 최대였던 18대 국회 4년치(1만3913건)만큼 된다. 페이고 원칙을 외면하다 보니 예산차원에서 보면 무책임한 법안이 부지기수다. 국가유공자예우법 개정안은 수급대상을 늘려 매년 516억원이 더 필요해진다. 월남전 참전자까지 포함하면 연간 1조4000억원이 들어간다. 과학기술인공제회법 개정안은 기술료 중 일부를 이 공제회로 돌려 세입이 914억원 줄게 된다. 도로법 개정안은 지자체 몫 신설·유지비용 5000억원을 국가부담으로 돌렸다. 의원입법으로 연평균 82조원의 예산이 더 들어간다는 조사(2013년)도 있다.

 

국민연금 지급률 50% 인상안도 같은 맥락이다. 돈 버는 사람 따로,인기만 좇아 마구 쓰는 사람 따로다. 졸속입법, 퍼주기 만능, 국회독재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국회의 무책임을 개탄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5금] 현대차 노조, 해외생산 막기 전에 생산성부터 높여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국내는 물론 해외 생산량까지 노사 합의로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올해 임단협에 넣겠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지금은 국내 생산량에 대해서만 합의제를 운영해왔는데 이를 해외 사업장에까지 확대하자는 것이다. 통상임금 확대 요구에 이어 국내외 생산량 조절까지 노조가 그야말로 회사 경영을 맡겠다는 얘기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며 명백한 경영권 침해다. 현대차의 국내생산 비중이 지난해 37.9%에서 2020년 28%까지 떨어질 것이고 이렇게 되면 고용이 불안해진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든 해외생산을 막고 국내 공장 신·증설을 요구하겠다는 시도다. 하지만 해외생산이 늘게 된 원인 제공자가 바로 노조라는 것을 정말 모른다는 말인가.

 

현대차 국내 공장의 생산성은 대당 투입시간, 편성 효율 등에서 중국 미국 등 다른 해외공장과 아예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동차 한 대 생산에 걸리는 시간은 국내에선 27.8시간이다. 미국(14.8시간) 체코(15.7시간)보다 두 배나 길다. 게다가 툭하면 파업이고,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는 고용세습까지 판친다. 그런데도 생산직 연봉이 1인당 1억원에 육박한다. 누가 경영자라도 국내생산은 줄이고 인건비 적고 생산성 높은 해외생산은 늘리려 할 것이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자동차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더구나 현대차의 내수시장 점유율은 최근 40% 안팎으로 떨어졌다. 미국시장 점유율도 2011년 5.1%에서 지난해 4.4%까지 추락했다. 현대차가 미국 2공장, 인도·브라질 공장의 신·증설을 검토 중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노조는 부당한 경영간섭 전에 자신들의 기득권부터 내려놓는 게 순서다. 해외생산 증가로 일자리가 걱정된다면 세계 꼴찌 수준인 국내 공장 생산성부터 끌어올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회사 경영이나 공장의 미래는 어떻게 되든 당장의 몫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식으로는 공멸만 있을 뿐이다. 현대차 노조는 기득권 노조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정말 이런 노조가 다른 나라에 또 있는가.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5금]] 꽉 막힌 한일관계, 경제교류마저 멈춰선 안된다

 

한국과 일본 경제인들이 양국 간 경제교류 확대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13~14일 열린 '한일경제인회의' 일정을 마무리한 뒤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서다. 양국 경제인들은 우리나라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경제계 차원에서 함께 지원하기로 했다. 금융·통신 부문에서의 정보공유 등 다양한 협력방안까지 제시됐다.

 

하지만 공동성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교 이후 50년간 이룬 양국 간 경제협력 성과가 미래 50년에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사 문제로 냉각된 양국 관계와는 별개로 경제 분야의 협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럴수록 협력을 더 강화해나가야 한다는 게 양국 경제인의 충심어린 권고다.

지금 한일관계는 출구가 보이지 않을 만큼 악화한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이 "수교 이후 50년간 양국 교역규모가 400배 증가하는 등 비약적 성장을 해왔지만 최근 감소 추세를 보여 안타깝다"고 할 정도다. 실제로 한일 교역액은 2011년 역대 최대인 1,080억달러를 기록한 후 3년째 감소세다. 올 1·4분기 교역규모도 184억달러로 전년동기의 214억달러에서 14%나 줄었다. 세계경제 침체와 엔저 현상이 주원인이라지만 과거사에 발목이 잡힌 양국관계 악화의 영향도 작지 않다. 국민들 사이에 혐한·혐일정서가 확산되는 실정이니 경제교류까지 삐걱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협력 확대를 외치는 양국 경제인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그동안 한일 경제는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경쟁과 협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해왔다. 경제 분야는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서로 협력해나가는 게 맞다. 특히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양국 기업 간 제휴·협력은 불가피하다. 서로의 장점을 토대로 자원개발이나 의료 분야에서 해외 공동 비즈니스를 찾는 등 신성장동력을 모색할 분야는 많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5금] 무엇이 청년들을 생계형 창업에만 매달리게 하나

 

미래세대인 청년들이 실패가 두려워 생계형 창업에만 매달린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30세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창업희망 분야를 물었더니 외식·소매 등 일반서비스업이 절반 수준에 달한 반면 첨단기술이나 제조업 같은 혁신형 창업에 뛰어들겠다는 청년들은 극소수에 머물렀다.

 

청년세대가 과감히 신사업에 도전하기보다 커피전문점 같은 안정적 창업을 선호한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중장년층이 앞다퉈 생계형 창업에 뛰어들어 레드오션으로 전락한 터에 청년들마저 가세한다면 자영업 몰락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도 폐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생계형 창업은 10명 중 7명이 5년 안에 망하지만 혁신형 창업은 생존율이 50%를 넘고 부가가치 창출 효과도 크게 마련이다. 이런데도 정부가 창업훈련을 명분으로 대학 교정에서 커피·치킨을 파는 푸드트럭이나 장려하고 있으니 학생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까 싶다. 청년들은 창업의 최대 걸림돌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꼽았으며 창업공간이 부족하다는 호소도 많은 편이다. 금융당국이 벤처기업의 연대보증을 금지하겠다고 했지만 한번 부도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재기가 어려운 현실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에는 왜 마크 저커버그 같은 청년창업자가 없냐며 젊은이들을 탓하기보다 이를 유도할 투자환경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무엇보다 창업자금을 손쉽게 조달하고 도전했다 실패하더라도 쉽게 재기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하루빨리 갖춰야 한다. 정책자금 또한 지금처럼 사업성이 검증된 분야에만 집중하지 말고 고위험 벤처사업에도 자연스럽게 돈이 흘러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창업 초기 단계에 지원되는 엔젤펀드가 활성화되도록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전국의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명실상부한 신생기업의 보금자리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청년창업의 열기를 제대로 살려 창조경제의 선순환구조를 이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5금] 5조 혈세 걸린 론스타 소송 내용 하나도 몰라서야

 

우리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맞붙는 투자자국가소송(ISD)이 1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시작된다. 이 소송은 우리 정부와 외국인 투자가 사이에 벌어지는 첫 ISD로 소송액만도 무려 5조원대로 알려졌다. 자칫 결과가 잘못 나올 경우 모든 국민이 10만원씩 내야 배상금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다. 국민에게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국민은 소송 내용을 알고 싶고 또 당연히 알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내용은 소송이 15일 워싱턴에서 열린다는 사실뿐이다. 정부는 이 사안에 대해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3월 인사청문회 때 심리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비공개로 진행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소송전략 차원에서 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수는 있다. 우리의 대응전략 등을 굳이 상대방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공개해도 될 내용까지 비밀에 부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국민은 당장 이번 소송이 열리는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도 알지 못한다. 전문가 참관도 불가능하다. 제출자료는 물론 증언도 비공개다. 심지어 재판부의 결정 내용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최소한 소송 상대방이 소송을 제기한 이유가 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1조3,834억원에 사들였다가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3조9,157억원을 받고 넘겨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론스타가 소송을 제기한 것은 2007년 HSBC에 외환은행을 매각하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했을 때 우리 정부가 매각 승인을 지연시켜 더 큰 매각차익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는데 이게 맞는 말인가. 그렇다면 소송액이 이렇게 클 이유가 없지 않을까. 정부의 비밀주의 때문에 항간에서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가능한 범위에서나마 소송 내용을 공개해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20150515금] 예비군 아들까지 걱정해야 하는 한국 부모들

 

어제 발생한 예비군 훈련장 총기난사 사건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군부대 총기 사고보다 더 가슴을 놀라게 만든다. 우선 사상 처음 벌어진 예비군 훈련장 총기난사 사건이라는 점이 그렇다. 여기에다 군대라는 특수하고 폐쇄적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빚어진 게 아니라 그런 힘든 의무를 무사히 잘 마친 젊은이가 자행한 어처구니없는 참사라서 더욱 그렇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군부대 총기난사보다 예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충격을 쉬이 사라지지 않게 한다.

 

  국방부는 올 3월부터 예비전력 정예화를 위해 예비군 훈련을 자율 참여적 훈련체계로 바꿨다. 과거의 수동적인 시간 때우기식 훈련에서 벗어나 성과에 따른 조기퇴소제를 도입해 예비군들의 적극적 훈련 참여를 유도한 것은 꼭 필요한 조치였다. 하지만 강화된 훈련만큼 관리·감독도 강화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번 사건의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실탄 사격 훈련은 예비군 동원훈련의 핵심이다. 제대 후에는 경험하기 어려우므로 훈련을 통해 실전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군기가 바짝 든 현역군인과 다른 만큼 예비군의 실탄사격 훈련은 사고 예방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요원의 통제도 철저해야 하지만 구조적인 안전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사고가 난 사격훈련장은 소총 고정장치가 있었지만 소총을 사대에 제대로 고정시키지 않았다. 원칙만 지켰어도 실탄을 지급받자마자 뒤로 돌아 방아쇠를 당기는 일은 가능하지 않았다.

 

  게다가 범인은 현역 시절 이미 관심병사로 군 당국의 관리를 받았었다. 그렇다고 예비군 훈련을 못할 것은 없겠지만 다른 훈련은 몰라도 실탄 사격만큼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통제를 했어야 했다.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가슴을 졸이는 부모들의 걱정이 제대 후로까지 연장되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다시 한번 어이없는 총기난사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국방부는 한 점 의혹 없도록 사건 전모를 투명하고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특별기고/홍세화(장발장은행 대표)-20150515금] 다시 5월에, 빛고을의 새로운 도전에 부쳐

 

일찍이 윤한봉 형이 5·18 정신으로 정식화한 항쟁정신과 대동정신은 지금 우리에게, 특히 광주에게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이 정신에 비추어 광주는 지금까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출범조차 하지 못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박근혜 정권 실세들에겐 접근하지 못한 성완종 메모 관련 검찰 수사, 미-일 간 신밀월 체제 아래 총체적 위기를 맞은 한국 외교,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참담하게 모욕한 박상옥 대법관 인준, 청와대와 친박세력에 의한 공무원연금 타협안 파기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의 정치-사회-경제-외교-법조의 어느 부문도 총체적 난맥상이라는 말을 피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를 언제 끝낼 수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 더 우려되는데 시민들에게 좌절과 체념을 안겨줌으로써 탈정치화로 나아가게 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희극적인가, 비극적인가, 국회 의석 130석을 가진 야당은 막말 파동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수구언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언론조차도 왜곡된 대의민주주의 아래 스펙터클로 남은 정치를 강화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변화의 주체와 동력의 가능성을 예의 주시해 찾아내 시민사회에 알리고 북돋움으로써 그것을 실현시키려는 의지를 가진 기자와 언론인들은 드물고 동정보고자들이 그들을 대신하고 있는 탓이 크다. 동정보고자들이 현실정치인들의 동정을 보고하는 것을 자신의 책무로 알고 그런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은 불가능으로 마감된다. 막말 파동을 비판한다고 언론이 크게 보도하지만 그 주인공들이 시민사회로부터 비난받는 것보다 훨씬 더 크게 그들이 정치의 주인공인 양 부각되는 게 스펙터클 정치의 작동 방식이다. 비판언론조차 기득권 정치의 매트릭스에 갇힐 위험이 여기에 있는데, 가령 구시대의 ‘동교동계’가 아직도 호남 지분을 주장하는 데에는 물러날 때에 물러날 줄 모르는 그들의

염치없는 노욕도 문제지만 이와 같은 스펙터클 정치의 매트릭스에 갇힌 언론의 방조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권이 국정의 온갖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승리하는 요인에서도 이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나에겐 최근 <한겨레>에서 읽은 기사 중에 서울특별시가 지방정부 최초로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세웠으며 이 노동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중고등학생은 물론 공무원의 ‘노동교육’을 대폭 강화한다는 뉴스가 가장 의미 있게 다가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김종진 연구위원이 ‘왜냐면’에 기고한 기사였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지만 초중고 과정에서 두루 배우는 ‘사회’ 교과목에서 자본주의에 관해, 노동자의 정체성에 관해, 노동운동의 역사에 관해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 이 시대의 강력한 지배이념인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 ‘일하기 좋은 나라’로 맞받아칠 줄 아는 노동자상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 기사에 끌렸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5월7일 전남대에서 열린 광주시 사회통합지원센터의 개소식에 개인적으로 참석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 사회통합지원센터는 민선 6기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의 사회통합 정책에 담긴 “사회협약을 통한 광주형 일자리 창출 모델 구축”을 위한 실무적 지원을 하게 된다. 광주시의회의 조례와 공식적인 공모 절차를 거쳐 전남대 산학협력단에 위탁된 이 센터는 독일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통한 상생과 협력 모델 등을 연구해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를 펴낸 바 있는 전남대 철학과의 김상봉 교수가 자원하여 센터장을 맡았다. 그는 개소식에서 자신의 포부를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회를 지속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가는 경제적 양극화가 다른 무엇보다 기업과 자본권력의 전횡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과거 군부독재를 해체하고 민주화를 이루었던 것처럼 경제의 영역에서도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의 원리를 확립함으로써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의 경제를 실현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한 사회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갈등상황을 상생과 통합의 원리에 입각하여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보다 성숙한 민주적 의사결정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 역시 민주화를 앞장서서 이끌었던 광주가 떠맡아야 할 명예로운 사명일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광역지자체의 사회통합지원센터를 소개하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사회변화의 주체와 동력 형성과 그것의 구체적 실현에 대한 평소 관심에 5월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이 결합되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니까 35년 전 5월, 프랑스의 공영 텔레비전은 열흘 동안 톱뉴스로 광주의 항쟁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군부의 잔혹한 진압 광경은 그곳의 시청자들에게 이렇게 묻게 했다. “광주 사람들은 이교도들인가, 소수민족인가?” 이 날카로운 물음은 동시대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는 차별과 억압의 땅, 변방에서 시작된다고 했던가. 이 말이 현실이 되기를 자기암시처럼 기대하고 있다는 점도 부인하지 않겠다.

 

일찍이 윤한봉 형이 5·18 정신으로 정식화한 항쟁정신과 대동정신은 지금 우리에게, 특히 광주에게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항쟁정신이 물리력을 가진 국가권력의 불의와 폭압에 맞선 민중의 투쟁정신을 말한다면, 대동정신은 오늘 자본에 의해 부추겨진 우리 내면의 욕망을 성찰하고 자본권력에 맞설 수 있도록 공동의 가치와 관계를 확장하여 더불어 인간답게 살겠다는 정신이라고 하겠다. 이 정신에 비추어 광주는 지금까지 다른 지역에 비해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노사간 상생과 협력의 전제는 노동자 사이의 연대에 있으며 협상력도 그 힘에 비례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구호는 한국 땅에서 무너진 지 오래다. 자본권력은 노동을 ‘포섭된 자’와 ‘배제된 자’로 분리하여 서로 적대하게 함으로써 통제를 용이하게 하고 있다. 주인보다 마름이 더 밉다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고,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자신들의 고용 안정을 위한 완충지대로 인식하게 되었다. 최근에 <노동여지도>-노동운동가들은 물론 지역활동가들의 일독을 권한다-를 펴낸 박점규는 “흑백필름 시절 모두 같이 ‘공돌이’였던 울산의 노동자는 이제 중대형 아파트에 살며 그랜저를 모는 ‘직영계급’, 소형 임대주택에서 아반떼를 타는 ‘하청계급’, 이 공장 저 공장 떠돌아다니는 ‘알바계급’으로 나뉘었다”고 말한다. 광주의 노동 분할이 울산처럼 노골적이진 않겠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하는 모범적인 노동조합으로 꼽히는 군산의 상용차 공장 타타대우를 배워야 할 것이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동조합 집행부는 수년 동안 조합원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는 의지를 보여 왔다. 노동자 연대를 위한 정신적 자산이 될 것이다.

 

지자체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에 있어서도 광주광역시는 서울특별시에 뒤떨어지며 기초단체에서도 경기도 성남과 부천에 뒤떨어진다. 전국 7개 지하철공사 중 광주도시철도공사의 간접고용 비율이 가장 높다. 어느 노동운동가는 자동차 100만대 밸리와 관련된 일자리는 현대기아 자본과 중앙정부의 판단과 영향이 작용하지만 광주도시철도공사의 19개역 중 민간에 위탁된 17개 역의 비정규직 역무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광주시의 의지만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의사이며 시민운동가 출신인 윤장현 광주시장에게 요청한 셈이다. 결국 광주시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관건이다. 김상봉 센터장은 이렇게 말한다. “몇 발짝을 가더라도 제가 움직인 발자국이 그다음, 다음다음 분들이 가는 ‘먼 걸음’을 위한 튼튼한 디딤돌이 되겠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강인식(사회부문 기자)-20150515금] 당신의 안전은 이관 중입니다

 

40대 직장인 A는 소시민적으로 살았다. 십 수년간 월급쟁이로 살다 보니 부동적이고 수동적이고, 사회 돌아가는 데 관심이 없다. 정치에 대해선 기대-실망-환멸-냉소를 거쳐 무관심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생각을 바꿨다. ‘내 아이가 살려면 사회가 변해야 하고 그러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다짐도 했다. 국가안전처의 ‘안전신문고 앱’도 스마트폰에 깔았다.

 

  몇 달 전이다. 출근하다 빌딩에 환풍 장치가 아슬아슬하게 달려 있는 걸 봤다. 돌풍이 불면 그냥 떨어질 것 같았다. 대로변이라 큰 사고가 날 수 있겠다 싶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신문고 앱에 올렸다. 깨알같이 ‘관련 규정이 필요해 보임’이라는 의견까지 달았다. 뿌듯하기도 했고, 이런 건 처음이라 두근거리기도 했다. 소시민이 아니라 시민으로 살려고 했으나 소심함까지 어쩔 순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안전처로부터 문자가 왔다. ‘귀하의 신문고 사항은 서울시 해당 구청으로 이관됐습니다.’

 

 며칠 뒤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저희가 건물주에게 환풍 장치를 잘 설치하라고 하면 될까요?” “아, 그게요. 관련 규정은 없는 건가요.” “규정이요? 저희 소관이 아닌데요.”

 

  그런 대화가 오간 뒤 문자가 왔다. ‘귀하의 사항은 국가안전처로 이관됐습니다.’ ‘안전처가 문제를 해결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아닌 것 같았다. 며칠 뒤 또 문자가 왔다. ‘귀하의 신문고 사항은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됐습니다.’ 아, 전자제품과 관련돼 그런가.

 

  그리고 얼마간 소식이 없다, 또 문자가 왔다. ‘귀하의 사항은 국토교통부로 이관됐습니다.’ 국토교통부? 스마트폰으로 뭐하는 곳인지 검색해봤다. 아, 건물·도로와 관련된 거라 그리로 간 건가. 뭔가 알아보려던 차에 상사가 일을 시켰다. 지시 사항을 해결하고 나니 업무 보고가 시작됐고 그러다 몇 달이 훅 가버렸다. 소소한 개인사가 이어지면서 주말도 바빴다. 그리고 A는 소시민적이게도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마도 안전처는 일을 잘 처리하기 위해 ‘적확한 관할’을 찾아 헤맸을 것이다. 다들 성실하게 일했을 거고 정해진 과정을 밟았을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시민 A가 소시민 A로 되돌아간 건 아쉬운 대목이다. 안전처도 자발적 시민을 하나 잃었다. 공적인 일을 처리할 땐 두 개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관료의 시계’와 ‘시민의 시계’. 두 시계가 똑같이 흐르는 것이 정부의 목표겠으나 두 시계는 때론 거꾸로 흐르고 때론 전혀 다른 속도로 흐른다. A와 안전처의 사례처럼.

 

 

[경향신문 칼럼-여적/이기환(논설위원)-20150515금] 양봉음위(陽奉陰違)

“한 가지 마음이면 백 임금도 섬길 수 있지만, 100가지 마음이면 한 임금도 섬길 수 없다”는 옛말이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한결같은 충심을 발휘하기 쉬운가. 그러니 구밀복검(口蜜腹劍)·표리부동(表裏不同)·소리장도(笑裏藏刀)·양봉음위(陽奉陰違)와 같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고사성어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변함없는 충심을 발휘한다 해도 한번 삐끗하면 하루아침에 멸문의 화를 당하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한비자가 “용(군주)을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지만, 역린(逆鱗·목줄기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죽임을 당한다”(<사기> ‘노자한비열전’)고 했을까. 한비자는 춘추시대 위 영공의 총애를 받던 미자하의 예를 든다. 미자하가 예뻐보일 때는 임금의 수레를 몰고 다녀도, 자기가 먹던 복숭아를 임금에게 바쳐도 ‘충성심의 발로’라는 칭찬을 듣는다. 하지만 총애가 식어버리자 군주(위 영공)는 과거의 일(수레·복숭아)들을 ‘불경죄’라 하면서 미자하를 죽였다. 조선 태종의 처남이자 세자(양녕대군)의 외삼촌인 민씨 형제는 어떤가. 공신가문이기도 했던 민씨의 4형제(민무구·무질·무회·무휼)는 자결을 명 받고 죽는다. 이유가 어처구니없었다. 태종이 양녕대군에게 양위의 뜻을 밝히자 민씨 형제의 ‘얼굴에 기쁜 빛이 보였다(喜形于色)’는 것이었다. 외척의 발호를 막겠다는 태종의 ‘양위 쇼’에 걸려든 것이다. 민씨 형제는 “저도 제 얼굴빛을 모르는데 전하가 어찌 아시느냐”고 펄쩍펄쩍 뛰었지만 때는 늦었다.

 

이렇게 왕조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어이없고, 끔찍한 일들이 북한 땅에서 벌어지고 있단다. 건성건성 박수를 치고, 졸았다는 이유로 한때의 충신(장성택·현영철)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숙청대상자들에게 붙인 죄목은 ‘양봉음위’, 즉 ‘앞에서 받드는 척하면서 속으로 해를 가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조선조 태종은 민씨 형제의 죽음만은 막아보겠다고 나름 애쓴 흔적이 있다. “빨리 죽이라”는 신료들의 아우성 속에서 4형제를 다 죽일 때까지 8년7개월을 끌었으니 말이다. 북한은 조선왕조보다 못한 것이다. 제발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문소영(논설위원)-20150515금] 국어 실력

당나라에서 관리를 등용할 때 인물 평가의 기준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다. 이 신언서판의 기준은 21세기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특히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을 중요시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시대에는 말과 글이 중요하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유머를 섞어 감각적으로 문장을 쓰는 사람들이 인기다. 몇 줄의 글들도 쌓이면 그럭저럭 한 인간의 총체적 실체에 접근하게 한다.

 

‘보그 병신체’가 있다. 세계적인 패션 잡지인 ‘보그’에 비속어인 ‘병신’을 붙인 신조어다. 한글로 썼지만, 사실은 영어랑 다를 바가 없는 국적 불명의 문장으로 문해력이 떨어진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사이드 쉐입을 고려해서 플랜을 플렉서블하게 레벨을 풍성하게~” 하는 식의 대사들이 그것이다. 한글로 고쳐 표현할 수가 없다. “아티스틱한 감성을 바탕으로 꾸띄르적인 디테일을 넣어 페미닌함을 세력되고 아트적인 느낌으로 표현한다”는 문구는 또 어떤가. 이를 “작가의 감성으로 맞춤복 같은 섬세한 장식으로 여성성을 세련되고 예술적으로 표현했다”라고 우리말로 고쳐도 어색하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패션·미용 잡지들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 잡지를 모방했던 만큼 ‘보그 병신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언어 사대주의’가 아닌가 싶은데, 무분별한 영어 조기교육이나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 부재를 탓하기도 한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은 섬뜩하거나 살벌한 표현으로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규제개혁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는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하겠다”거나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 암 덩어리”, “한 번 물면 살점이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 진돗개 정신”과 같은 발언들이다.

 

올 초부터 대통령의 발언들 중에는 문장이 어색하거나 조리가 맞지 않는 대목들이 두드러진다. “퉁퉁 불은 국수를 먹게 된 경제가 불쌍하다”를 시작으로, 최근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을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이 알려졌다. 즉석 연설은 주어와 종결어미가 잘 맞지 않기는 한다. 하지만 이런 발언이 잦다면 받아 적는 장관들은 어떻게 대통령의 뜻을 파악해 일을 할까 걱정이 됐다. 지난 남미 순방 중에 교포들과의 자리에서도 “도전을 극복하고”라고 표현해 당혹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말실수가 됐구나 싶었다.

 

리콴유 장례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이 조문록에 영어로 ‘his loss’라 표현한 것을 두고 영어 문법 실력이 대단하다는 칭송들이 자자했다. 영어·중국어·프랑스어 등 외국어 연설 능력도 자랑이겠으나, 토론회 등에서 상대를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 만큼 국어 실력도 훌륭해야 하지 않겠나. 말은 소통의 도구이자 의식의 집인데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515금] 참기름과 들기름

 

‘참깨 들깨 노는데 아주까리 못 놀까.’ 별 어중이 떠중이들이 다 하는 일에 어엿한 내가 어찌 못 끼겠는가 하는 속담이다. 참깨와 들깨는 생김새가 아주까리보다 훨씬 작지만 식물기름의 제왕이다. 기껏해야 윤활유나 머릿기름으로 쓰이는 아주까리가 덩치만 믿고 까불다 그 맛과 향기에 치여 꽁무니를 빼기 딱 좋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을 위해 굳이 설명하자면 참깨에서 짠 것이 참기름, 들깨에서 짠 것이 들기름(들깨기름)이다. 두 기름 모두 혈관 건강에 이로운 불포화지방으로 구성돼 있다. 참기름에는 불포화지방 중에서도 오메가6 지방의 일종인 리놀레산이 많다. 천연 항산화제인 세사몰, 세사몰린 등이 포함돼 있어 의약품과 화장품의 보습제로도 쓴다.

 

들기름에는 오메가3 지방의 하나인 리놀렌산이 많이 들어 있다. 리놀렌산은 체내에서 등푸른 생선에 많은 EPA나 DHA로 바뀌어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고지혈증 심장병을 예방한다. 피부를 곱게 하는 기능이 있다고 해서 옛날부터 혼기를 앞둔 딸에게 많이 먹였다고 한다. 요즘 웰빙 식용유로 인기를 모으는 것도 이런 연유다.

 

보관하는 데에는 참기름이 유리하다. 실온에서 오래 저장할 수 있고 참기름으로 조리한 음식도 잘 변하지 않는다. 기름 속의 항산화 성분이 산화를 막아 주기 때문이다. 반면 들기름은 공기 중에 내놓으면 빠르게 산화해 과산화 지질로 변한다. 그래서 들기름을 발라 구운 김은 빨리 먹는 게 좋다. 들기름 원료인 들깨는 대부분 충청, 호남, 영남 지역에서 주로 나지만 요즘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들기름의 주성분인 오메가3가 치매예방 등에 효과가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덕분이다.

 

해외에서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올해 1~4월 들기름 수출액은 268만1000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2만3000달러)보다 약 20배 늘었다. 일본 수출액은 2만7000달러에서 257만1000달러로 100배 가까이 뛰었다. 농식품 전체 수출이 0.6%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규모다. 일본 TV 프로그램이 우리 들기름 성분을 소개한 뒤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한국 들기름은 2008년 처음 일본 수출길에 오른 이후 대형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일본은 들기름 생산기반이 취약해 우리 들기름을 많이 수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툭하면 가짜 참기름 관련 뉴스로 참깨 농가들을 우울하게 했는데, 모처럼 들기름 수출이 활기를 띤다는 소식을 들으니 반갑다. 괜스레 입에 침도 고인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로터리/백기승(한국인터넷진흥원장)-20150515금] 인터넷 기본법부터 다시 세워야

 

'기강이 잡혀 있다'에서 '기강(紀綱)'은 벼리'기(紀)'와 벼리'강(綱)'이 결합된 단어다. 규율이나 법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벼리'는 무엇인가. '벼리'는 그물의 위쪽 코를 꿰는 굵은 줄로 그물을 바로 지탱하는 구실을 한다. 고기를 가뒀더라도 '벼리'가 풀리면 얽을 수가 없어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치게 된다. 그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우연인지 몰라도 인터넷을 연결하는 정보통신망의 '망(網)'과 벼리를 뜻하는 '강(綱)'은 의미가 유사하다. 정보통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그물로 이어진 초연결사회에도 견고한 규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초연결사회의 기강을 잡아주고 지탱해줄 '벼리'는 무엇일까.

 

우리는 공통 인터넷 규범체계를 충분히 논의하지 못한 채 그때그때 필요한 법령만을 제개정해왔다. 그 결과 법률이 정보통신기술(ICT) 환경 변화를 반영하지 못해 제도적 공백이 발생했다. 또 융합이 핵심인 ICT 산업에서 개별 법령들이 중복규제로 작용하며 신산업 창출의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의료법과 은행법 등 관련 법제도 미비로 인해 제한적인 서비스만 가능한 ICT 융합형 헬스케어, 핀테크(fintech) 분야가 그 대표적 예이다.

 

그동안 정부 차원의 개선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규제 개선 노력을 해 간편결제 서비스가 출현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 개선책은 부분적인 개편에만 국한됐다. 새로운 ICT 융합서비스가 출현할 경우 규제 중복, 제도적 공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여전하다. 미래 인터넷 환경에 맞는 새로운 '벼리'를 세우지 못해 ICT 산업진흥이라는 대어(大漁)를 가둬 놓고도 건져 올리기가 쉽지 않다. 제대로 된 '벼리'가 서지 않는다면 ICT 기술로 이뤄낸 산업·문화·안전 등 이로운 사회시스템이 온전히 기능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지금이라도 과거의 두서없던 규범체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ICT 환경에 맞춰 인터넷 규범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산업 분야별로 흩어져 있는 법률을 아우르는 기본 틀을 세우고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기존 산업과 신산업 간 충돌이 발생하는 관련 법과 제도를 조정·정비하는 입법적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예컨대 ICT 신기술의 발전과 신산업의 육성을 통해 창출되는 새로운 미래 먹거리들이 그물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인터넷 기본법' 같은 새로운 '벼리'를 세우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새롭게 고려되는 인터넷 기본규범은 그동안 구태적 인터넷 규제로 발생했던 갈등, 부처 간 불협화음, 그리고 신구(新舊) 질서 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을 담아야 한다. 또 우리 ICT 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기준과 원칙을 글로벌 수준에 맞추려는 고민이 수반돼야 한다. 이러한 기본규범에 사회적 합의와 공감이 바탕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인터넷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지금이야말로 인터넷이라는 그물의 '벼리'를 살피고 기강을 바로 세울 때다. 이를 통해 인터넷 공간을 자유롭고 경쟁력 있는 미래의 터전이자 경제 활성화의 중심으로 가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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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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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홍준표 지사의 변명과 처신

■ 상지대 사태

■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의 파장

■ 공무원연금 개정안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명시 연계 관련 대립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홍준표 지사의 변명과 처신

 

[한국일보 사설-20150513수] 홍준표의 처신, 뽑아 준 도민에 부끄러워서라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법망을 빠져나가려 기를 쓰는 모습이 연민의 정을 불러 일으킬 지경이다. 홍 지사는 기자회견 등을 통해 2011년 당대표 경선 당시 기탁금 1억2,000만원의 출처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국회에서 받은 국회대책비 일부를 아내에게 생활비로 건넸고, 아내는 이를 비자금으로 조성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혔다. 홍 지사는 “변호사를 하는 유명한 판ㆍ검사 출신들은 10억~20억 원씩 벌었다”며 “집사람이 이때부터 나 몰래 별도 현금을 모아 두었다”고 했다. 그는 또 “2008년 여당 원내대표 시절 나온 대책비도 활동비로 쓰고 남은 돈을 생활비로 줬다”며 “아내가 2004년 8월부터 시중은행 대여금고에 이런 돈을 모아온 모양인데, 그 돈이 3억 원 가량”이라고 덧붙였다.

 

홍 지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영락없이 공금횡령이다. 또 배우자 명의의 예금을 재산등록에서 누락한 것은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다. 반대로 거짓말이라면 오히려 성 전 회장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는 셈이 된다. 얼핏 보면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 하지만 검사 출신인 그가 이 정도를 모를 리가 없다는 게 상식이다. 당장 위험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피해 차라리 입증이 어려운 횡령죄나 공소시효(6개월)가 지난 공직자윤리법 위반으로 도덕적 망신을 당하는 쪽을 선택했다고 보는 게 설득력이 있다.

 

홍 지사의 이해할 수 없는 처신은 이뿐이 아니다. “(한나라당 때인)17대 총선 공천심사위원 시절 영남지역 의원이 국회 사무실로 찾아와 공천헌금 5억 원을 제시했다”며 “나중에는 20억까지 준다고 해서 그날 바로 그를 공천에서 탈락시켰다”는 것이다.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홍 지사에게 전달했다는 1억 원은 대수로운 액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새누리당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 대표까지 지낸 사람이 제 살자고 물귀신처럼 당을 끌고 들어간다는 불만이 끓는다.

 

홍 전 지사는 한때 이탈리아의 부정부패 척결운동인 마니풀리테(Mani puliteㆍ깨끗한 손)를 주도한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에 비견돼 ‘한국판 피에트로 검사’로 불린 적도 있다. 그토록 당당해 보였던 그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부인과 당을 끌어들이며 구명에 전전긍긍하는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코너에 몰린 홍 지사를 위해 측근이 노골적으로 증거인멸과 회유를 시도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아무리 지역주민들에게만 책임을 지는 선출직이어도 이 정도면 어떤 기준으로 봐도 공직자 감으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사법 판단 이전에 그는 이미 정치적 생명을 스스로 끊었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3수] 홍준표 지사의 변명, 구질구질하지 않은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자금 1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때 낸 기탁금 1억 2000만원의 출처를 ‘아내의 비자금’이라고 밝혀 의혹과 논란을 더 증폭시키고 있다. 아내를 내세워 검찰 수사의 예봉을 피하려는 시도가 곱게 보이지 않는 데다 홍 지사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공직선거법 위반이나 공직자윤리법 등 자잘한 혐의를 인정하며 여론을 호도하려고 시도하는 듯 보이는 탓이다.

 

홍 지사는 엊그제 대표 경선 후보 기탁금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에서 “11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며 번 돈과 2008년 원내대표 시절 국회운영위원장을 겸하면서 매월 국회대책비로 나온 돈 4000만~5000만원 중 쓰고 남아 생활비로 준 돈 일부를 집사람이 나 몰래 모아 은행의 대여금고에 넣어 둔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의 비자금’이라는 홍 지사의 해명이 공금횡령 혐의나 공직자선거법 위반을 시인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자 홍 지사는 다시 해명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국회대책비 중에는 직책수당 성격의 돈이 있고, 그 직책수당 성격의 돈 중 일부를 집사람에게 가끔 모자란 생활비로 주었다”면서 “이를 두고 마치 예산 횡령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변명했다. 국회대책비는 원내대표의 포괄적 처분권을 인정하기 때문에 ‘공금횡령’을 제기하기 어려워 윤리적인 비난의 대상일 뿐이다. 홍 지사는 재산신고 누락을 인정하며 벌을 받겠다는데 공직선거법상 공소시효 6개월이 지났다.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이라 지푸라기라도 움켜잡고 홍수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심정을 이해하지만 여당 대표까지 지낸 그가 구질구질하게 보이는 변명을 한 탓에 TV 드라마 ‘모래시계’를 통해 쌓았던 청렴하고 강직한 검사는 물론 서민적인 이미지조차 모두 사라지고 있다. 군색한 해명은 조리도 잘 맞지 않는다. 생활비가 모자랄 때 줬다는데 ‘아내의 비자금’은 3억원이나 된다. 은행원 출신인 그의 아내가 이자수익을 포기하고 은행의 대여금고에 넣어 둔 것도 의아하다. 대여금고는 인출명세나 조회열람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3억원이 혹시 ‘검은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게 ‘합리적 의심’이다. 한번 거짓말을 하면 계속 꼬일 수밖에 없다. 홍 지사는 차분하게 검찰 수사를 받고 법정에서 진위를 가리기 바란다.

 

 

■ 상지대 사태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3수] 상지대 사태, ‘임시이사 파견’ 불가피하다

 

사학비리의 대표적 인물인 김문기 총장을 해임하라는 교육부의 요구를 상지대 재단이 거부했다. 교육부가 김 총장의 해임을 못박아 요구했는데도 재단 쪽은 총장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정직 1개월의 징계 결정으로 교육부에 맞섰다. 비리 주역인 김 총장은 해임하되 김씨 일가 지배구조의 근간인 이사회는 유지시켜 준다는 교육부의 어설픈 타협책조차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김씨와 재단 쪽의 안하무인을 방치하고 조장한 교육부 책임이 크다. 부정입학 등 사학비리 탓에 1993년 퇴출당했던 김씨가 21년 만인 지난해 8월 총장으로 복귀한 뒤 학내 구성원들의 거센 반발로 학교운영이 파행을 겪을 때 교육부는 한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교육부가 뒤늦게 상지대에 대한 특별종합감사를 벌인 뒤인 지난해 말에도 상지대 재단은 김씨 복귀에 반대한 교수들을 파면하고 징계하는 등 학내 비판세력 탄압을 계속했다. 교육부가 감사결과를 통보하면서 총장 해임을 요구한 다음날인 3월11일 재단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김씨 장남 등 김씨 쪽 신임 이사 3명의 임원 취임 승인을 교육부에 신청했다. 이미 김씨 쪽 이사 5명을 추인했던 교육부는 이들 3명을 또 승인했다. 비리 사학의 족벌경영과 세습을 용인했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행보였다. ‘잘못된 신호’가 계속된 탓에 상지대 재단이 교육부의 총장 해임 요구를 무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는 비리 사학을 정상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이제 분명해졌다. 비리를 밥 먹듯 저지르고 분규를 유발해 학교를 파행으로 몰아넣은 김씨를 총장으로 선임하고 그 자리를 지키도록 한 장치는 이사회다. 김씨 쪽 일색인 이사회를 그대로 두고서는 상지대 사태를 해결하기 어렵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상지대 재단이 총장 해임 요구에 불응하면 임원 취임 승인 취소(이사 해임) 처분을 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부는 징계 재심의 요구로 또다시 시간을 허송할 게 아니라, 재단 이사진을 전원 해임하고 즉각 임시이사를 파견해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513수] 교육부의 김문기 총장 해임 요구 면피용이었나

상지대 학교법인인 상지학원이 김문기 총장에 대해 정직 1개월의 솜방망이 징계를 결정했다고 한다. 교육부가 지난 3월10일 특별종합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교육용 기본재산 부당 관리, 직원 부당 채용, 학생 수업관리 부실 등을 이유로 김 총장 해임을 요구한 처분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사실상 ‘김문기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상지대 교수와 학생의 반발은 물론 교육부의 처분마저 무시하고 그런 배짱을 부릴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김 총장이 지난해 8월 복귀한 뒤 상지대가 교육부의 요구를 묵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학교 안팎에서 김 총장 퇴진 요구가 들끓는 가운데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수차례 사퇴를 압박했음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터다. 교육부의 대학 정상화 방안 제출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김 총장을 청문회 증인으로 불렀을 때도 두 차례 모두 출석을 거부했다. 결국 교육부는 특별종합감사를 실시해 김 총장 해임 요구 처분을 하기에 이르렀고, 상지대 재단은 이마저 무시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문제는 상지대가 교육부의 처분에 콧방귀를 뀔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 책임이 바로 교육부에 있다는 점이다. 총장 해임 의결 권한은 재단 이사회에 있는데, 교육부가 김 총장 세력의 이사회 장악을 용인했기 때문이다. 상지대는 교육부의 감사 결과 통보 다음날인 지난 3월11일 이사회를 열어 김 총장의 장남 김성남씨 등 3명을 신임 이사로 선임하고 교육부에 승인을 신청했다. 교육부는 김 총장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이들의 임원 취임을 승인했다. 실질적으로는 사학의 족벌경영체제를 용인해 놓고 겉으로 김 총장 퇴진 요구 등 ‘시늉’만 한 꼴이다.

 

교육부는 상지대 재단에 김 총장에 대한 징계 재심의를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모양이다. 재단 이사회를 김 총장 세력이 장악한 데다 이제까지 취해온 태도로 봐서 이는 아무 실익이 없는 조치가 될 게 뻔하다. 사립학교법은 교육부의 총장 징계 요구에 불응하는 사학에 대해서는 이사 승인을 취소하고 임시 이사를 파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바로 상지대의 지금과 같은 사태에 해당하는 조항이다. 새 총장과 이사진을 공공성을 갖춘 인물로 구성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교육부는 더 이상 시늉만 해서는 곤란하다. 상지대가 족벌체제에서 벗어나 정상화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의 파장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3수] 냉정 자세 필요한 북의 ‘SLBM’ 사태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의 파장이 길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점검했다. 최윤희 합참의장도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과 회동했으며,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다음주 서울 방문 때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북한의 동향을 엄중하게 분석하고 대응책을 점검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북한의 행동을 과대해석하는 일부의 움직임은 우려스럽다. 북한 군사동향의 실체와 의도를 냉정하게 읽지 못하고 즉흥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확 쏠려가는 것은 안보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군당국에 따르면 북한의 시험발사는 실제 미사일이 아니라 모의탄을 물 위로 150미터쯤 솟구치도록 한 사출시험 수준이라고 한다. 실제 전력화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시간도 꽤 필요하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미국의 여러 군사전문가도 모의탄 1발 쏜 것을 두고 실전 배치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견해다.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가 한계에 부닥쳤다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성급하다. 상황을 오도할 위험이 크다.

 

일각에선 북한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을 시험했으니 우리도 잠수함 전력을 늘리자고 주장한다. 대잠수함 헬기를 대거 확충하자거나, 심지어 우리도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여 맞서자고 한다. 북한이 위협을 늘린다면 우리도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이 특정한 무기체계를 갖고 시위를 벌인다고 그때마다 북한이 손가락질하는 방향으로 춤을 추어선 안 된다. 안보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고 막대한 군사비만 낭비할 따름이다. 안보의 기본은 상대의 도발 형태별로 대응하는 게 아니라 총체적 억제력을 유지함으로써 상대의 도발 의지 자체를 꺾는 것이다.

어 느 나라든 미사일 같은 군사자원 개발은 숨기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북한은 설익은 기술 수준에서 시험발사 장면을 공개하고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아마도 무력 과시를 통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거나 북한 주민들의 자신감을 고취하는 등의 대내외적 선전 의도가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가 단절된 지난 몇년 새 북한이 이런 식으로 도발적 행동을 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이번 사출시험을 두고 갑자기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면 북한 강경세력의 무력시위 의도에 말려드는 효과만 가져올 수도 있다.

 

최고의 안보전략은 역시 강력한 대북 억제력을 유지하되 남북관계를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와 한반도 현안들이 풀려나간다면 북한도 군사적 위협 필요성을 덜 느낄 것이다. 6·15 공동행사를 비롯해 남북 사이에 약간의 사회문화 교류가 움트려는 참이다. 나아가 경제협력과 정치·군사적 주제로까지 남과 북이 대화 범위를 넓히는 게 시급하다. 혹시라도 북한의 행동을 빌미잡아 기존 대화의 흐름을 중단시키려 한다면 그거야말로 안보를 해치는 나쁜 선택이 될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3수] 北 SLBM 실체 파악 후 제대로 대책 세워라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소집해 최근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 시험과 서해 ‘조준타격’ 도발 위협 등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했다. 박 대통령이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주재한 것은 지난해 5월 북한군의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의 포격 이후 1년 만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은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의 안정을 저해하는 심각한 도전”이라고 평가한 뒤 철저한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최윤희 합장의장도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과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했고 오는 17일 방한하는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도 SLBM 위협을 논의한다.

 

북한의 SLBM 실전 배치가 가져올 안보 전략상의 파장을 감안하면 다각적인 대책 논의는 적절하다.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SLBM을 사전에 탐지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 당국이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구축 중인 ‘킬 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이런 맥락에서 국방부는 2016~2020년 국방중기계획에서 대잠초계기 등 추가 소요를 판단해 반영할 계획이며 KAMD와 킬 체인 개념을 확대하면서 북한의 수중 잠수함의 이동경로를 탐지하는 첨단 장비의 성능도 높인다는 방침이다.

 

북한의 SLBM 개발 추이를 면밀히 평가해 철저한 대응 능력을 갖춰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처사다. 북한의 이번 사출 시험이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한 모든 발사체 사용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695호와 2094호 등을 위반한 만큼 미국 등 관련국들과 정보 및 기술적 판단을 진행해 실체를 밝히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북한의 SLBM 사출 시험 한 번에 우리가 평정심을 잃는다면 북한의 전략에 말려드는 꼴이다. 과대 포장과 선전에 능란한 북한은 이번 SLBM 사출 시험 장면을 크게 부각시켜 우리의 혼란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미국의 북한 군사전문가들은 “북한 SLBM은 떠오르는 위협 수준에 불과하며 모의탄이 불과 150~200m 정도 날아간 것은 연료용이 아니거나 점화에 실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SLBM 개발을 위해서는 연구-시험-개발-평가 등 고도의 기술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며 북한이 SLBM을 발사할 수 있는 3000t급 이상의 잠수함조차 아직 보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방부 역시 SLBM 자체의 완전 개발에는 4~5년은 걸린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북한이 4~5년 뒤 완전 개발한 뒤에는 우리의 대책은 있는가. 3000t급 잠수함을 보유한 뒤에는 또 어찌할 것인가. 사안을 과대 평가해선 안 되지만, 지나치게 평가절하해서도 안 된다. 북한의 위협을 지나치게 부풀리는 것도 물론 문제이지만, 상대를 우습게 보는 안이한 대응은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대북 군사·정보 라인을 가동해 북한의 군사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군과 정부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 공무원연금 개정안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명시 연계 관련 대립

 

[중앙일보 사설-20150513수] 공무원연금법 불발에 왜 민생 법안이 희생양 되나

 

여야가 어제 ‘원포인트 국회’를 열었지만 달랑 법안 3개만 통과시키고 도로 문을 닫았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명시’를 연계하는 것을 둘러싼 여야 대립이 다른 50여 개의 민생 법안을 희생시킨 것이다. 당초 협상 대상도 아니었던 국민연금을 연계시킨 것도 황당한데 이젠 아무 관련 없는 다른 민생 법안들까지 공무원연금과 연계시킨 꼴이니, 이러고도 국회가 민생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본회의 문턱에서 발목이 잡힌 법안들은 학자금을 빌린 대학생들이 원리금을 손쉽게 갚을 수 있도록 하는 취업후학자금상환특별법 개정안, 담뱃갑에 흡연 경고그림을 의무적으로 넣도록 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것들이다. 해당 상임위에서 여야 협의를 거쳤거나 법사위를 통과한 비쟁점 법안들이다. 그런데도 공무원연금법 처리 불발의 ‘볼모’ 신세가 돼버렸다.

 

  이제 국회는 최소한의 양심과 상식도 작동하지 않는 ‘불능 국회’란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더욱이 야당이 3건의 안건 처리에 동의하면서 새누리당에 ‘그 정도라도 고마운 줄 알라’는 취지로 말했다니 놀랍고도 어처구니가 없다. 국회가 법안을 처리하는 건 본연의 임무이자 의무다. 민생 법안을 흥정과 거래의 대상으로 여기고,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 착각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사고의 함정에 빠져 있으니 툭하면 국회 보이콧이요, 법안 발목 잡기가 습관처럼 반복되는 게 아닌가.

 

  어제 본회의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선 새로 출범한 이종걸 원내대표 체제가 ‘첫선’을 보인 시험대이기도 했다. 이 원내대표는 과거 독설과 막말 발언으로 물의를 빚으며 강경 이미지가 부각됐다. 그런 만큼 이번 공무원연금법 처리가 이미지를 바꿀 좋은 기회였는데도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에 반대하는 당내 온건파의 요구도 묵살했다. 그제 비공개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선 “이대로 가다간 전투에선 이길지 몰라도 전쟁에선 진다”(추미애 최고위원)거나 “우리가 바깥 여론을 너무 모른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높이는 걸 국민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김춘진 보건복지위원장)며 궤도 수정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야당이 계속 앞뒤가 꽉 막힌 강경 일변도로 나간다면 어떻게 수권 정당의 면모를 갖출 것이며, 다가올 총선과 대선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싶다. 문재인 대표가 강조하는 ‘경제 정당’ ‘민생 정당’도 한갓 쇼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국회가 이 지경이면 박근혜 대통령이라도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유체이탈’ 화법을 접고 국회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사태를 꼬이게 한 데는 청와대의 책임도 적지 않다. “염치없는 일” “시한폭탄이 터질 수밖에 없다”며 공무원연금 개혁을 압박만 할 게 아니라 야당을 설득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3수] 새누리당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오류 인정하라

 

5월 국회가 시작됐지만 여야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 문제로 연일 티격태격이다. 무엇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50% 인상’을 원칙이라 하며 열흘째 한발짝도 물러서질 않으니 참으로 딱하다. 새누리당의 태도가 조금 변하고 있는 것이 그나마 주목된다. 특히 김무성 대표는 “공무원연금특위의 활동범위는 공무원연금과 관련된 것이어야 하고, 합의도 그것에만 이뤄져야 하는데 다른 걸 들고나와서 문제가 생겼다”고 시인했다. “월권이란 말이 맞다”고도 했다.

 

잘못된 합의의 절반은 엄연히 집권여당 몫이다. 그런 합의안을 발표한 것도 김무성 문재인 두 대표였다. 실무협상팀의 잘못으로 돌려버리며 여론전 펴듯이 해선 안 될 일이다. 김 대표가 그나마 오류를 인정한 것도 여론의 비판이 혹독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무부처 장관까지 국회에서 “정부가 마술사도 아니다. 재원이 없다”며 작정하고 야당의 주장을 ‘은폐마케팅’이라 맞받아치자 궤도수정에 나선 분위기다.

 

새누리당은 여론의 눈치나 보며 어물쩍 넘어가려 해선 안 된다. 엄연한 여야 합의였다. 국회 규칙의 부칙에 추가하는 첨부서류라는 꼼수로 적당히 처리하려던 사안이다. 지금이라도 ‘50% 인상 합의는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방향으로 당의 공식입장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는 게 맞다. 향후 65년간 물경 1702조원이 더 필요한 결정을 더듬수로 적당히 되돌리려다가는 후유증만 남길 수 있다. 어제 국무회의에서 대통령도 “국민연금 관련 사항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사회적 논의를 통해 신중히 결정하자”고 말하지 않았나.

 

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 개혁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나섰던 것은 재정적자를 더는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도외시한 어떤 모수조정도 겉돌 수밖에 없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시늉만 낸 채 국민연금을 끌어들여 포퓰리즘으로 내달린다면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하루빨리 오류를 인정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공무원연금을 제대로 개혁하고 국민연금 재정구조의 장기 건전성을 달성할 수 있는 ‘원점의 개혁 정신’이 필요하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513수] 국회 문 열고도 '공무원연금' 손조차 안 대다니

 

혹시나 했던 12일 국회는 역시나 실망스러웠다. 여야는 이날 국회 본회의를 열어 연말정산 환급을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과 누리과정 지원을 위한 지방재정법, 상가권리금 보호를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등 3개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은 논의조차 안 했다. 국가 미래가 걸린 핵심 의제는 외면한 채 당장의 급한 불만 끄는 것으로 국회의 도리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한시가 급한 공무원연금 개혁인데 여야는 강경대치에 시간만 끌고 있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자칫 5월 국회를 넘기고 영영 공중에 떠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이 이번에 안 되면 시한폭탄이 터지고 말 것"이라고 걱정했다. 단순 엄포가 아니라 국민도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여야는 직시해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19대 국회는 '구제불능'의 오명을 벗기 어렵다. 이날 국회가 본회의를 열고도 달랑 3개 법안만 처리한 것은 명백한 면피성 행위다. 법사위를 통과한 나머지 63개 법안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28일 본회의에서마저 법안 통과가 무산되면 5월 국회에는 '낙제' 낙인이 찍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국회가 경제 활성화법 처리까지 지연시키고 있다. 그런 국회를 국민이 용서할 수 있겠나. 4월 국회에서도 통과가 유력했던 크라우드펀딩법·하도급거래공정화법·산업재해보상법 등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 불발과 함께 상정이 무산됐다. 야당은 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긴요한 법안들을 볼모로 삼는 구태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 바란다. 대통령과 여당도 경제 활성화법 처리와 공무원연금 개혁이 투 트랙으로 막힘 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 활성화에 꼭 필요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관광진흥법 등이 여전히 소관 상임위원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현실이 야당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513수] 고교 한국 근현대사 비중 축소 방안 재고해야

 

정부가 2018학년도부터 사용할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 비중을 현행 50%에서 40%로 줄이는 방향으로 개정작업에 나선다고 한다.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어제 연세대에서 개최한 ‘역사와 교육과정 공개 토론회’에서 발표한 ‘2015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에서 이런 견해를 제시했다. 이 시안은 현재 중학교 1학년이 고등학생이 되는 2018학년도부터 정식 교재로 채택된다.

 

시안은 고교 한국사를 정치사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짜고,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사실과 내용은 경제, 사회, 문화사 등을 통해 학습량이 과도하지 않은 수준에서 포함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현행 한국사 교과에서 근현대사 비중이 과다하다는 의견을 반영, 전근대사와 근현대사 비중을 5대5에서 6대4 비중이 되도록 조정했다. 현행 고교 교과서 ‘우리 역사의 형성과 고대국가발전’이라는 대단원 중에서 ‘고대 국가의 발전’을 따로 떼어내 별도의 대주제로 삼은 것이 대표적이다. 평가원은 2017학년도부터 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으로 책정되는 것을 계기로 그간 여러 논란과 지적이 많았던 한국사 부분의 손질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시안은 근현대사 교육을 강화하는 세계적 흐름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학계와 교육현장에서도 학생들이 피부에 와 닿는 근현대사에 더 높은 관심과 흥미를 보인다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게다가 교육부는 2005년 11월 “일본, 중국의 역사 왜곡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내적 역량 확보”를 위해 고교 근현대사 교육을 강화하겠다고까지 발표하지 않았던가. 중국은 1990년대 초 전일제 중고교 역사 교과요강을 발표한 이후 근현대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일본도 일본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자국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며 2016년 학습지도요령 전면 개정에 맞춰 일본사와 세계사를 통합한 근현대사를 별도 교과과목으로 신설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 해 근현대사와 관련, 정부의 통일적 견해에 입각해 기술해야 한다는 검정 기준을 마련,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의 증거가 없다”, “독도는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을 기정 사실화한 교과서 제작에 나서고 있는 마당이다.

 

정부가 근현대사 교육을 축소하려는 의도를 두고 이념 논쟁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다소의 이념논쟁이 있을지언정 역사문제는 정면 돌파하는 것이 정도다. 근현대사 교육 부실로 일본군 위안부나 독도 문제를 두고 논리적인 대응마저 어려워지는 사태가 빚어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시안이 최종판이 아닌 만큼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정된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한국일보 사설-20150513수] 내홍 격화하는 제1야당, 벼랑 끝 문재인 리더십

 

정청래 최고위원의 공갈 막말을 둘러싼 새정치민주연합 내부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비노(非蘆)계에 속하는 김동철 의원(광주 광산갑)은 어제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발언을 통해 정 최고위원에 대한 출당조치를 문재인 대표에게 요구했다. 문 대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다른 의원들과 함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앞서 비노성향 당원들은 정 최고위원을 당 윤리심판원에 제소했다. 윤리심판원의 징계는 당적 박탈부터 당원자격정지 등의 중징계가 포함돼 있다. 문 대표가 갈등 수습을 위한 특단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 당이 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 최고위원의 막말에 반발해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주승용 의원은 그제 정 최고위원이 그의 지역구인 여수까지 찾아가 사과했지만 사퇴의사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당내 비노계 인사들은 하나같이 문 대표가 뼈를 깎은 혁신을 하고, 친노 단어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은 하면서도 구체적인 방안이나 행동으로 옮기는 게 없다고 비판한다. 최근 문 대표를 만났던 김한길 전 대표가 11일 페이스북을 통해“문 대표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전 대표는 문 대표가 공갈 발언에 대한 정 최고위원의 사과만 있으면 상황이 수습될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가는 것이라고 했다. 친노 패권주의 청산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라는 압박이다. 물론 김 전 대표 등 당내 중진들이 현 단계에서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 분당 등 야당 분열을 경계하는 기류도 강하다. 하지만 친노 패권주의에 대한 가시적 조치가 없으면 비주류 의원들이 탈당 등의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내 4선 이상 중진의원들이 이날 긴급모임을 갖고 문 대표에게 당 운영 방식에 대해 강한 경고를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광주 서을에서 당선된 천정배 의원발 신당 움직임은 잦아들었지만 당내 분열이 격화되면 상황은 또 달라질 것이다.

 

당이 내부갈등으로 지고 새니 공무원연금개혁 문제나 민생 현안 등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 등 제1야당의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이종걸 원내대표가 이날 국민연금 세금 폭탄론 등과 관련해 새누리당과 정부를 향해 날을 세웠지만 전혀 힘이 실리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는 올라가는데, 야당의 지지도는 계속 뒷걸음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가다간 제1야당의 존재는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정권교체도 언감생심이다. 문 대표는 친노 계파의 한 수장을 넘어 제1 야당의 대표로서 당내 갈등을 수습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3수] 문제 많은 연말정산 환급법 통과

 

연말정산 환급을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1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직장인 638만명이 이달 월급날에 모두 4560억원의 세금을 돌려받게 됐다. 1인당 7만1000원꼴이다. 이미 낸 세금을 환급받는 사람들이야 기분 좋은 일이겠지만 나라경제 전체로는 문제가 많다. 소급입법의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데다 소득 재분배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소득세법 개정은 1월의 ‘연말정산 파동’이 계기가 됐다. 지난해 근로소득과 납부세액을 정산한 결과, 추가로 세금을 내야 할 사람들이 불만을 쏟아냈다. 뚜렷한 근거도 없는 가운데 ‘세금폭탄론’ 등이 힘을 발휘할 정도였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이에 놀란 나머지 정부를 압박해 각종 공제를 확대하거나 신설하도록 만들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부분적으로 가세했다.

 

하지만 연말정산이 마무리된 뒤 정부가 세금 부과 내용을 분석해 보니 ‘세금폭탄론’ 등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상위 9%인 연소득 7000만원 이상 계층의 경우 세부담이 1인당 평균 109만원, 7000만~5500만원 계층은 3000원이 늘었다. 반면 5500만원 이하 계층은 3만1000원이 줄었다. 5500만원 이하도 부담이 늘어난 경우가 적지 않지만 금액 자체는 소액이다. 정부가 2013년 소득세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밝힌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고소득층에게 유리한 몇몇 소득공제 제도를 세액공제 제도로 바꿔 세부담의 형평성 등을 높이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그런데도 소득세법이 이번에 다시 개정되면서 이런 취지가 훼손되어 유감이다. 정부가 2013년 개정안에 대해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했더라면 피할 수도 있었던 일이라 여겨져 더욱 그렇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방침에 눌려 그러지를 못했다. 소득세법 개정으로 어찌됐든 세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올해도 지난 3년간과 마찬가지로 세수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고, 소득과 자산 불평등은 이미 심각한 상태다. 또한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복지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그런 만큼 세법 손질을 서둘러야 한다. 여야는 4일 법인세를 포함한 세수 확충 방안에 대해 6월 임시국회에서 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본격적인 세제개편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세법에 대한 신뢰를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

 

 

[경향신문 사설-20150513수] 최경환·문형표 장관, 세대 갈등 부추기는 의도 뭔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발언을 잇따라 내놨다. 최 부총리는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다른 나라에서는 정년연장할 때 청년층이 반발해서 혼란을 많이 겪었는데, 우리 청년들은 목소리를 별로 안 낸다”고 말했다. “내년에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서 내후년까지 3년 동안 청년고용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도 했다. 앞서 며칠 전에는 문 장관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과 관련해 “세대 간 도적질”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두 장관의 발언은 사실과도 다르고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층의 적개심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적절하고 무책임하다. 사회 통합의 의무가 있는 두 장관이 갈등을 조장하는 의도를 묻고 싶다. 시행 중인 정년연장법 반대 운동이라도 벌이자는 것인가. 아니면 노인세대를 청년들의 공적으로 삼자는 말인가. 최 부총리의 ‘청년층 반발’ 발언은 2010년 프랑스를 달군 사르코지 정부의 연금 개혁 반대 시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연금 수급 시기를 2살 늦추고 정년을 2년 연장하는 내용의 연금 개혁이 시위 촉발의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가 친기업 정책으로 재정이 파탄 나자 그 책임을 국민에게 미룬 것이 더 큰 시위 요인이었음이 드러났다.

 

정년이 연장되면 신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럼에도 청년실업의 근본 원인은 정년연장보다 정보통신기술 시대의 고용 없는 성장과 경기불황, 잘못된 경제정책에 있다는 것은 정설화돼 있다. 정년 때문에 청년고용 대란이 일어난다니 경제정책 책임자답지 않은 말이다. 노인세대가 청년세대의 몫을 훔친다는 의미의 문 장관의 ‘세대 간 도적질’ 발언도 막말 수준이다.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협력해 노인세대를 부양하는 세대 간 연대의 성격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문 장관은 나아가 국민연금을 현재 방식대로 운용하더라도 2060년이면 기금이 고갈되므로 그 전에 수를 내야 한다는 현실도 무시했다. 보험료를 올리든지 그해에 걷어 바로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든지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연금 대란으로 이어질 것임을 전문가인 문 장관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정년연장이나 국민연금으로 세대 간 갈등이 표면화되지도 않은 마당에 두 장관이 세대 간 갈등을 거론한 것은 다른 꿍꿍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실업의 책임을 회피하고 여야의 공적 연금 강화 합의를 무력화하려는 의도 아닌가. 그러나 그런 꼼수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두 장관은 국민을 선동하고 분열시키는 발언을 사과하고 자숙하기 바란다.

 

 

[경향신문 사설-20150513수] 고소득자 대출금리 낮춰준 게 가계부채 대책이라니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안심전환대출 분석 결과가 어제 나왔다. 당초 예상대로 고소득자는 물론이고 신용등급 상위계층이 수혜를 입으면서 정부가 말해왔던 서민 가계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가 무색해졌다.

 

금융위원회가 어제 내놓은 안심전환대출 분석 결과에 따르면 대출 실행분 32만건 중 1억원 이상 소득자가 전체의 5.1%를 차지했다. 이는 안심전환 대출자 중 1만6000명이 연간 1억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고소득자라는 의미다. 이 가운데는 연봉 5억4000만원을 받는 이용자도 있었다. 수혜자 중 신용등급 1등급 이상인 사람이 절반에 가깝고, 2~3등급도 38.4%나 됐다. 6억원 이상 주택을 보유한 사람도 상당수로 집계됐다. 반면 통상 저신용자로 분류된 6등급 이하는 고작 2.8%에 그쳤다. 이 정도면 가계부채 대책이라기보다 ‘가진 자들을 위한 지원책’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안심대출은 변동금리로 이자만 내고 있던 만기 일시상환 대출을 고정금리·원리금 균등 상환으로 바꿔주는 상품이다. 금리가 통상보다 1%포인트 정도 낮고 중도상환 수수료마저 없앤 파격적 조건인 데다 소득 제한도 두지 않아 애초부터 형평성 논란을 낳았던 터다. 금융위는 전체 대출자 평균소득이 4000만원이라는 점을 들어 특정 계층을 지원하는 대책은 아니라며 안심전환대출로 고정금리에 분할상환 대출이 전체의 30%로 개선되면서 가계부채의 위험도가 낮아졌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변동금리·만기 일시상환 대출자가 여전히 대다수인 70%에 달하는 데다 가계부채의 뇌관이 저소득층이고, 정작 이들을 위한 대책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전인수식 해석에 불과하다.

 

기실 정부의 낙관론은 부동산 경기와 저금리 중 하나만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붕괴될 만큼 취약하다. 1100조원에 육박한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뇌관이라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저소득층 대출자의 상당수는 1·2금융권에 채무를 지고 있는 다중채무자다. 생활비 마련 목적의 대출이 상당수로 대출 총액의 절대 액수는 크지 않더라도 훗날 금리가 올라가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게 되고 이는 금융시장 전체로 확대되면서 경제 회복에도 악영향을 끼칠 게 뻔하다. 저소득층 가계부채 문제를 방치할 경우 한국 경제가 더 큰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더 늦기 전에 저소득층의 소득 개선 노력과 정책금융 강화, 채무구조 개선 등의 방안이 나와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3수] 北 개성공단을 문 닫게 하려는가

 

북측의 일방적인 임금 인상 요구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개성공단에서 태업과 잔업 거부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월 말 느닷없이 “3월분 임금부터 기본급을 기존의 70.35달러에서 5.18% 올린 74달러로 산정해 지급하라”고 우리측에 통지문을 보낸 북측이다. 상식에서 벗어난 요구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태업과 잔업 거부를 위협하더니 4월 임금 지급 시점에 맞춰 명분 없는 실제 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사업이 또다시 제동이 걸리지 않을까 우려하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을 볼모로 우리측에 백기투항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상호 신뢰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상도의(商道義)조차 무시하는 행태를 용인하는 사업 파트너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앞서 정부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북측의 임금 인상 요구에 따르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원칙이 한번 무너지면 다음에는 봇물 터지듯 온갖 무리한 요구가 잇따르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입장에서도 북측의 요구를 수용하면 당장은 공장 가동에 지장이 없겠지만, 무리한 요구가 이어질 수밖에 없으니 수익성이 악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럼에도 몇몇 입주 기업이 지난달 북측 요구대로 기존 임금을 납부하고, 차액의 연체료 지불을 약속하는 담보서를 제출한 것은 주문받은 상품 생산을 위한 정상 가동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가 어느 때보다 강경한 대응을 천명한 것은 당연하다. 통일부 대변인은 그제 “북한의 부당한 행태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북측은 연장 근무를 거부하거나 태업을 위협하는 행동으로 기업을 압박하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고 임금 문제 해결을 위해 진지한 자세로 남북 간 협의에 임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어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북측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을 남측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 예치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북측은 이 같은 상황 변화를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재론할 것도 없이 우리에게 개성공단이란 남북 화해의 상징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의미를 공유해야 마땅한 북측이 개성공단을 단순히 남측을 수세로 몰아가면서 경제적 실리를 챙기는 수단쯤으로 여긴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문제는 북측의 부당한 압박이 이미 우리로 하여금 그 상징성마저 내려놓고 싶을 만큼 이미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것이다. 북측이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공간이라면 우리도 집착할 이유는 없다. 북측은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513수] 청년 고용대란 막는 데 정권 운명 걸어라

 

“내년에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서 이미 ‘청년 고용 절벽’이 나타나고 있다. 내후년까지 3년 동안 청년 고용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경제팀 총수가 국가적 위기상황을 제대로 인식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최 부총리가 그제 내놓은 대책으로 청년 고용대란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가 청년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대해 재정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교과서적 대응이다. 문제는 역대 정권이 지난 20여 년간 청년 일자리사업에 예산을 써왔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인턴제 등 청년 일자리사업에 참여한 젊은이들의 재취업률은 15%에 그쳤다. 해외취업 연수사업도 글로벌 기업에 취업하기보다 국내 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스펙’ 쌓기용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한 정부는 공공 부문부터 임금피크제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내년 3000개의 청년 일자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공기업 임금피크제를 민간 기업으로 확대하지 않는 한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임금피크제 도입, 임금체제 개편 등 정년 연장에 맞춘 개혁안들이 노사정 합의 결렬로 물 건너갔다. ‘발등의 불’인 청년 실업을 사회적 합의로 풀어나가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뾰쪽한 방도가 없다는 게 불편한 현실이다. 현재로선 청년 고용을 촉진할 수 있는 미완의 합의안부터라도 적극 시행해야 한다. 노사정 협의 과정에서 의견 접근을 이룬 부분이라도 ‘노동시장 구조 개선 플랜B’로 착실히 진행시키는 게 중요하다. 또한 1조4000억원에 불과한 청년고용 예산을 대폭 늘리고, 교육과 연수가 실제 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청년 고용 지원사업의 효율성을 확 끌어올려야 한다. ‘듀알레 시스템(일·학습 병행제)’ 등을 통해 청년 일자리 늘리기에 성공한 독일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청년 일자리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나라의 운명이 걸린 과제다. 청년들이 꿈과 희망을 잃고 거리로 몰려 나왔던 2~3년 전 남유럽의 악몽을 잊어선 안 된다.

 

 

[중앙일보 사설-20150513수] 아무도 모르는 ‘묻지마’식 국회 대책비라니 …

 

여당 원내대표는 세비와 별도로 매달 4000만원가량을 ‘국회 대책비’ 명목으로 지급받는다. 겸직하는 운영위원장 활동비로 매달 1700만원을 받는다. 또 직책수당으로 매달 600만원, 국회의장에게서 매달 500만원을 각각 지원받는다. 여기에 분기별로 2000만원이 지원금으로 지급된다. 이를 합치면 여당 원내대표가 세비와 별도로 받는 돈은 연간 4억1600만원에 달한다.

 

  전부 국민의 피와 땀이 어린 혈세다. 하지만 이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는 원내대표 본인 외엔 아무도 모른다. 영수증 처리가 필요 없는 ‘특수활동비’이기 때문이다. 국회에는 이런 눈먼 돈이 연간 90억원 가까이 넘쳐난다. 원내대표에게 지급되는 대책비는 18개 상임위원회 지원과 의정 활동 등에 쓰이도록 돼 있다. 받는 사람 마음대로 써도 되게끔 사실상 무제한의 자유를 준 것이다. 정보기관도 아닌 국회가 이런 특수활동비를 매년 수십억원씩 쓰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여야의 담합으로 대책비 예산이 삭감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감사원이나 선거관리위원회도 그 사용내역을 감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국정감사 칼자루를 쥔 국회가 겁나서다. 언론이 대책비 사용 내역 공개를 요구해도 국회는 외면하기 일쑤였다.

 

  여야는 대책비가 원내대표의 ‘정치행위’에 쓰이는 돈이어서 공개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홍준표 경남지사는 “2008년 원내대표 시절 매달 대책비 4000만~5000만원의 일부를 부인에게 생활비로 줬다”고 밝혔다. 눈먼 돈임을 악용해 개인 용도로 쓴 실례가 전직 원내대표 입으로 확인됐는데도 ‘정치행위’라는 핑계로 공개를 거부하는 게 말이 되는가.

 

  우리는 2013년 1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헌법재판관 시절 특정업무경비를 카드대금 결제 등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의혹에 휘말린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인사청문회장에서 여야 의원들은 “경비 사용 내역을 낱낱이 공개하라”고 맹공한 끝에 그를 낙마시켰다. 그랬던 사람들이 전직 원내대표가 사적 이용 사실을 실토한 국회 대책비 내역을 공개하라는 요구엔 꿀 먹은 벙어리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3수] 화끈한 투자 촉진만이 원·엔 환율 바로잡는다

 

정부가 해외투자 활성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엊그제 “경상수지 흑자가 많이 쌓이고 있기 때문에 외국 주식과 외국 기업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해외투자를 촉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이에 따라 규제완화나 세제 인센티브를 포함한 종합적인 해외투자 활성화 대책을 다음달 발표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해외투자 촉진책을 내놓겠다는 가장 큰 이유는 환율 때문이다. 경상수지가 37개월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가면서 원화는 최근 지속적인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3월 한때 달러당 1136원까지 올랐지만 이후 속절없이 하락, 4월 말에는 1060원대까지 떨어졌다. 요 며칠 사이 1090원대를 회복했지만 추세적 하락세가 꺾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원·엔 환율은 더 심각하다. 엔 약세를 유도하는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원·엔 환율은 7년 만에 900원 선이 붕괴됐다. 어제는 910원대까지 반등했지만 다시 900원을 밑도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이렇다 할 환율대책을 내놓지 않던 기재부가 그나마 환율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긍정적이다. 하지만 외국 기업을 인수하거나 해외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 대책이라면 실망이다. 세제혜택, 규제완화 등을 내걸면서 달러 유출을 꾀할 일인지부터가 의문스럽다. 해외투자는 많아서 문제일 뿐 적어서 문제인 상황도 아니다. 해외투자에 대한 정부 정책방향이 오락가락하는 것도 문제다. 이명박 정부와 달리 현 정부는 해외투자 혜택을 계속 줄여왔다. 특히 지난해 세법개정으로 올해부터 간접외국납부세액 공제 대상이 크게 축소됐다. 국내 투자를 유도해 내수를 살린다는 취지였다. 그러던 정부가 방향을 180도 틀어 해외투자를 독려하겠다고 나섰으니 어리둥절하다.

 

해외투자든 국내투자든 정부는 기업들이 자유롭게 뛸 수 있게 규제를 확실하게 풀면 된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온갖 투자를 다 막아놓고 국내외 균형 환율을 바랄 수는 없다. 정부가 굳이 할 일이 있다면 해외자원개발 등일 텐데 이는 국회와 사정당국이 꽁꽁 틀어막고 있지 않은가.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3수] 서울대의 외국인 中企인재 육성 계획을 지지한다

 

서울대가 중견·중소기업 취업을 조건으로 외국인 석·박사 유학생 교육을 추진한다고 한다. 정부와 기업이 지원하는 조건으로 이들이 학위를 받은 뒤에는 5~6년간 중견·중소기업에 의무적으로 일하도록 한다는 방안이다. 국내 공대 졸업생들이 수도권과 대기업을 선호하면서 중견·중소기업이 겪는 만성적인 R&D 인력난을 해소해 보자는 취지다. 사실 수도권으로부터 일정 거리를 벗어나면 연구인력을 뽑을 수 없다는 ‘R&D 남방한계선’이 계속 북상하면서 웬만한 기업은 연구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고 있다. 중견·중소기업 취업과 연계한 서울대의 외국인 유학생 선발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국내에서 연구인력을 구하지 못하면 결국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석·박사급 연구인력이 전무하다는 어떤 기업은 필리핀에까지 갔었다고 한다. 외국에서라도 인력을 구해올 수 있다면 그나마 낫다. 대부분의 중견·중소기업은 연구인력 부족으로 연구개발 자체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중견·중소 부품·소재기업의 연구개발 역량이 떨어지면 대기업의 경쟁력 또한 약화된다. 오죽하면 삼성 등 일부 대기업이 자구적 차원에서 협력사 취업을 전제로 외국인 채용에 직접 나서겠나. 서울대에 중견·중소기업 취업과 연계한 외국인 유학생 선발을 요청한 것도 바로 대기업이라고 한다.

 

미국은 이민개혁 행정명령으로 과학·기술·공학·수학분야 외국인 유학생 비자 발급을 대폭 확대했다. 한국은 국내에서 공부한 외국인 고급인력마저 놓치는 상황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 가운데 전문인력 비율은 3.2%에 불과하다. 단순노동인력 중심의 기존 외국인 유입정책을 대대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국적 등 인센티브 제공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정부의 저출산 대책도 재고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2013년 합계출산율이 1.19명으로 2002년 1.17명 수준으로 회귀한 게 이를 말해준다. 차라리 저출산 예산을 이민정책으로 돌리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3수] 해외 두뇌가 갈수록 한국을 꺼리는 이유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 인력의 32%가 저임금 단순기능직이 인력의 비중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가 나왔다. 전문인력이 외국인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10년 사이 3.5%에서 3.2%로 떨어졌으며 그나마 교수· 과학기술 전문가 등 창조적 고급두뇌는 2013년 현재 2만5,000여명에 머무르는 등 해마다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해외 고급두뇌가 한국을 꺼리는 것은 단순유치에만 급급할 뿐 정주할 만한 사회문화적 인프라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마다 골드카드나 포인트시스템 등 우대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규정이 복잡한데다 혜택도 적다 보니 외국인들이 외면하고 있다. 대기업들도 앞다퉈 인재 채용에 나서고 있지만 경직된 조직문화와 연공서열 위주의 인사제도 등 장벽에 막혀 있다. 외국인들이 마음 놓고 다닐 만한 국제학교나 외국 영리병원 개설조차 견고한 기득권에 가로막혀 갑론을박을 벌이는 게 우리의 현주소다. 이러니 이명박 정부 시절 7,000억원을 들여 영입한 해외두뇌의 86%가 짐을 싸고 국내 대기업들마저 '외국인 임원의 무덤'이라는 불명예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세계 각국은 일찍이 해외두뇌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인재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숙련 근로자와 기업인, 화학·공학 전공자 등에 대한 비자 발급을 확대했으며 싱가포르도 저학력 노동력 유치에서 벗어나 바이오·화학·전자 분야의 고급인력 유치에 나서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서울대가 외국인 유학생을 매년 100명씩 선발해 중견·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 분야에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선 것은 고무적이다. 이제는 단순인력 중심의 이민정책에서 벗어나 고급인력 위주로 이민정책의 틀을 새롭게 바꿔야 할 때다.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맞아 해외두뇌를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해야 창조경제가 빛을 발할 수 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3수] 중견기업 옭아매면 신성장동력 영원히 못 찾는다

 

'9988'이란 단어가 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수가 전체의 99%이고 종사자 수가 88%에 달한다는 뜻이다.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중소기업이 압도적인 상황은 사실 좋은 게 아니다. 후진국일수록 영세사업자와 중소기업이 많으며 경제가 발전할수록 이 비율은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독일처럼 중소기업 비중이 90%, 종사자 비중이 80% 정도 되는 '9080' 사회가 돼야 경제가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크고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을 인수합병(M&A)해 사업과 고용을 흡수해야 한다. 중견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 방향도 이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정작 현실을 보면 지원과 규제가 엇박자를 내며 오히려 중견기업을 고사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재지정된 '주조' 품목이다. 서울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미래 신성장동력이 될 주조 등 공정기술을 뿌리기술로 지정하고 중소·중견 뿌리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동반성장위원회가 2월 주조를 중기적합업종으로 재지정하면서 중견기업의 진입을 막았다. 한쪽에서는 지원한다면서 다른 쪽에서는 규제를 들이대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한단 말인가. 절반이 넘는 중견기업이 기업소득환류세제 적용 대상이 되는 것도 문제다. 중견기업은 당연히 대기업으로 성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대규모 투자도 해야 한다. 많은 중견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열심히 쌓는 게 이 때문인데 여기에 과세한다니 정부가 나서 성장 사다리를 걷어차는 꼴이다.

 

중소기업은 고용 여력이 없고 대기업은 해외에서 고용을 늘린다. 우리 경제의 현안인 일자리를 창출할 주역은 중견기업이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고용을 늘리면서 회사를 키워나갈 때 미래를 책임질 신성장동력 산업도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정부는 중견기업 육성정책을 전면 손질하기 바란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한겨레 프리즘/김양중(의료전문기자)-20150513수] 복지 확대 방해하는 이유

 

국민연금공단의 통계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민연금 가입자 가운데 직장 가입자의 한달 평균 소득은 약 236만8000원이다. 연금보험료율은 1998년부터 소득의 9%이기 때문에 직장 가입자가 내야 할 보험료는 한달 평균 21만3120원이다. 하지만 실제로 직장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는 이의 절반인 10만6560원이다. 나머지 절반은 기업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에서 지금 내는 보험료를 소득의 9%에서 10.01%로 올리고 대신 노후에 받는 연금은 직장 다닐 때 소득의 40%에서 50%로 올리자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100만원 벌던 사람이라면 보험료를 4만5000원 내다가 이보다 5050원이 많은 5만50원을 내야 한다. 대신 40년 동안 보험료를 냈다고 가정할 때 노후에는 40만원보다 10만원이 많은 50만원을 받게 된다.

 

노후를 대비해야 하는 직장인이라면 이를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은 사정이 다르다. 지난해 기준 직장 가입자의 보험료는 총 29조원이고 이 가운데 14조5000억원을 기업 쪽이 부담했다. 국회에서 논의한 대로 10.01%로 보험료율을 올리면 약 1조6000억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 이 돈은 직장인의 월급이 오르면 해마다 같이 올라갈 것이다.

 

지난 1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 발표를 하루 앞두고 이를 취소하면서 올해 안에는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당시 발표될 예정이었던 부과체계 개편안의 핵심은 소득이나 재산이 많지만 피부양자로 등록돼 있거나 직장인 가운데 월급 이외의 추가 종합소득이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보험료를 더 내게 하는 것이었다. 대신 ‘세 모녀’처럼 소득이 거의 없는 이들의 보험료는 줄여주는 안이었다. 보험료 부과체계가 공평해야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위해 보험료를 올리더라도 불만이 덜할 것이다. 전체 병원비 가운데 건강보험에서 내주는 돈의 비율이 60%대 초반으로 주요 국가의 평균 수치인 약 80%에 견줘 크게 낮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제조건은 ‘공평한 부과 체계’일 것이다. 이 문제를 두고 국회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데, 실제 정책으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이 정부가 부자들의 눈치를 보다가 미뤘기 때문이다.

 

올해 1월부터 담뱃세가 한갑당 2000원이 올랐다. 정부는 금연을 유도해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담뱃세를 올렸다고 했다. 최근 정부가 밝힌 바를 보면 올해 1~4월 담배를 팔아 거둬들인 세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00억원가량 많았다. 물론 담배 판매량은 정부 예상치보다 감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난달 수치부터 드러나고 있다. 바라지는 않았지만, 담뱃세를 2000원 올릴 때 세수 수입이 가장 클 것이라는 조세정책연구원의 예측이 맞아들어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흡연율이 높고 담배 끊기가 힘든 저소득층의 세금 부담이 늘 것이라는 전망도 맞아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명박 정부 시절에는 기업들의 법인세율을 3%포인트 내렸다. 한국재정학회가 지난 3월 연 ‘재정안정을 위한 복지개혁과 증세’라는 제목의 정기 학술대회에서는 법인세율의 인하가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수입 증대에 기여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1일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긴급현안보고에서 복지부는 ‘복지방해부’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왜 복지 확대를 방해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복지가 확대되면 돈 많이 버는 기업과 부자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기업 법인세율 인하는 박근혜 정부에서 복지 확대 방해로 나타나고 있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이기환(논설위원)-20150513수] 알제의 여인들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종종 모방작가라는 소리를 듣는다. 디에고 벨라스케스(17세기)와 외젠 들라크루아·에두아르 마네(이상 19세기)의 작품들을 ‘모방한’ 연작시리즈를 냈으니 말이다. 모든 사물과 사람을 게걸스럽게 집어삼켜 소화하는 작가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물론 그는 “천재성은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엊그제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사상 최고가(약 1968억원)에 낙찰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Les Femmes d’Alger)’이 그런 작품이다. 18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대표주자인 들라크루아(1789~1863)의 동명작품을 패러디했다.

 

1832년 알제리를 방문한 들라크루아는 이슬람 여성들만의 공간인 ‘하렘’을 구경하고 ‘알제의 여인들’을 완성했다. 하렘은 원래 이슬람 여성들의 육아와 가사를 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들라크루아는 한껏 치장한 이슬람 여성들이 남성들을 기다리는 곳으로 그렸다. 이 작품을 계기로 동방의 풍속은 낭만주의 회화의 주요 주제로 자리매김됐다.

 

1955년, 74살의 노인인 피카소는 ‘알제의 여인들’ 원작을 재해석한 연작시리즈 15점을 완성했다. 이 그림을 재해석한 계기가 있었다. 들라크루아의 그림 오른쪽에 등장하는 물담배를 피우는 여인이 피카소의 마지막 반려자인 자클린 로크(1926~1986)를 놀라울 정도로 빼닮았던 것이다. 하지만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은 들라크루아의 그것과 완전히 달랐다. 이번에 경매 최고액을 경신한 작품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풍만한 가슴과 노골적인 엉덩이에 모로 누워 두 다리를 꼰 여인이 있는가 하면, 가슴을 드러낸 채 성녀(聖女)처럼 무표정한 여인도 있다. 피카소는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성(聖)과 속(俗)’으로 완전히 재해석한 것이다.

 

“화가는 다른 화가 작품 중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들을 직접 그려 수집을 완성하는 수집가다. 나도 처음에 그렇게 시작했다. 그러다 나중에 다른 것이 되었지만….” 요컨대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는 피카소의 말이다. 피카소의 비서였던 하이메 사바르테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피카소는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누구도 흉내내지 않았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구본영(논설고문)-20150513수] ‘대포’ 최고위원의 오폭/구본영 논설고문

오래전 국제부 일선 기자로서 이라크전을 취재하던 때다. ‘프렌들리 파이어’(friendly fire)란 일상에서 잘 안 쓰는 절묘한 영어 표현을 접했다. 우리말로 오폭(誤爆), 또는 오인 사격으로 새겨진다. ‘적이 아닌, 친구를 향해 쏜다’는 뜻이다.

 

전장 아닌 정치판에서도 오폭은 일어나는 건가.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의 거친 언사가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4·29 재·보선에서 참패한 이후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한 박주선 의원 등 동료에게 돌직구를 날리면서다. 특히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한 “사퇴할 것처럼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는 막말이 부메랑이 됐다. 문재인 대표를 보호하려는 나름의 충정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당 내홍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급기야 당내 비노(非) 성향 당원들이 그를 당 윤리심판원에 제소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그의 막말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재작년에는 국가정보원의 댓글 대선 개입을 비판하면서 “바뀐 애는 방 빼, 바꾼 애는 감방으로”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박근혜 대통령을 ‘바뀐 애’로 패러디해 하야를 요구한 셈이지만, 열성 지지층 결집 이상의 정치적 효과는 없었다. 올 전당대회에서 그는 “새누리당 정권을 향해 포문을 여는 최전방 공격수가 되겠다”고 공언하면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대포’ 최고위원으로서 쏴댄 ‘말 폭탄’의 효험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메모에서 3000만원을 받은 혐의가 제기된 이완구 전 총리에게 “자진 사퇴하라”고 직격탄을 날려 낙마시키는 전과를 올리는 듯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을 ‘꼬꼬댁’으로 비하하며 “박근혜 정권도 끝났다”며 치고 나갔지만 새정치연합은 재·보선에서 전패했다.

 

개별 유권자들은 달콤한 선심이나 선동에 휘둘릴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유권자의 총합으로서 국민은 언제나 현명하다고 봐야 한다. 자기 편에는 관대하면서 상대에게만 융단 포격을 한다면 국민인들 감동할 리 없다. 국민의 눈에 이완구 전 총리의 초라한 퇴장만 비쳤겠나. 2심에서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총리가 금배지를 달고 활보하는 장면도 어른거렸을 법하다. 성완종 파문에도 불구하고 재·보선에서 정권심판론이 먹히지 않은 까닭일 게다.

 

동서고금을 통해 금도 잃은 표현이나 논리의 비약이 오래 통한 적은 없다. 링컨 대통령의 정적이 미 의회에서 막말을 퍼부은 적이 있다. “두 얼굴을 가지고 거짓말을 한다”며 링컨을 이중인격자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링컨이 “제가 두 얼굴을 가졌다면 이런 볼품없는 얼굴로 나왔겠습니까”라고 뼈 있는 위트로 응수하자 그의 정적이 외려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정치적 설득력은 신랄히 비판하더라도 상대에 대한 예의와 객관적 사실에 기반할 때 확보될 수 있다. 균형감을 잃은 막말은 상대를 거꾸러뜨리기보다 자신을 해치기 십상이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영희(문화스포츠부문 기자)-20150513수] 강아지똥과 민들레

 

권정생(1937~2007)의 동화 『강아지똥』은 하찮고 쓸모없다 천대받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참새도 닭도 “에그, 더러워” 피해가던 강아지똥이 자신을 알아주는 민들레를 만나 거름이 돼 예쁜 꽃으로 피어난다. 작가 권정생 역시 강아지똥 같은 삶을 살았다. 일본 도쿄에서 빈민 생활을 하다 10대에 한국으로 왔지만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 허드렛일을 하거나 걸식을 하며 전국을 떠돌았다. 1967년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안동의 한 교회에 정착해 종지기로 일하며 글을 썼다. 스무 살에 결핵에 걸려 평생을 홀로 투병했다. 외롭고 고단한 삶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에게도 민들레가 있었다. 권정생이 서른여섯 살에 처음 만난 아동문학가 이오덕(1925~2003) 선생이다. 최근 출간된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라는 책에는 열두 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이 30년간 주고받은 편지가 담겨 있다. 겨울날 교회 문간방에서 이오덕을 처음 만난 후 권정생은 “일평생 처음으로 마음 놓고 제 투정을 선생님 앞에 지껄일 수 있었습니다”라고 쓴다. 이오덕 선생은 가난한 후배에게 7000원을 부치며 “우선 급한 대로 양식과 연탄 같은 걸 확보하십시오”라고 말하고 그의 글을 알리기 위해 출판사를 떠돈다. “제가 쓰는 낙서 한 장까지도 선생님께 맡겨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이오덕을 신뢰한 권정생은 아픈 몸을 추스르며 계속 글을 썼다.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이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세상을 살 만큼 살아본 나이에 만났지만 두 사람이 나눈 우정은 순수하고 맑았다. 하나의 생명이 하나의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 진심으로 아끼고 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어린이날이 있는 5월, 때마침 이오덕·권정생과 하이타니 겐지로 등 한·일 동화작가 3인의 삶과 문학을 조명하는 전시가 서울시청에 있는 서울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아이처럼 살다’다.

 

  전시를 돌아보며 ‘동심(童心)’에 대해 생각했다. 최근 ‘잔혹동시’ 논란에서도 핵심이 됐던 그 동심이다. 어린아이의 마음이란 내용이 아니라 어떤 ‘태도’가 아닐까. 아름답고 건강한 것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건 아름답다고, 추한 건 추하다고 계산 없이 고백할 수 있는 마음. 내게 어떤 득실이 있는지 따지지 않고 누군가를 한껏 그리워하며 나를 내어줄 수 있는 태도. 이오덕 선생이 안동을 지날지 모른다는 소식에 “혹시 만나 뵐까 싶어 버스 정류소에서 서성거려 보았습니다”라고 쓴 권정생 선생의 수줍은 고백처럼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513수] 잠수함 대전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소설 해저 2만 리를 쓴 것은 1869년이었다. 벌써 146년 전에 그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잠수함을 만들어내고 ‘노틸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로부터 85년이 지난 1954년, 미국은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을 진수하면서 이를 ‘SSN-571 노틸러스’로 명명했다. 19세기 소설의 상상이 20세기 핵잠수함으로 이어진 셈이다.

 

잠수함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진화를 거듭했다. 1차 대전 개전 때부터 독일의 U-21이 영국 순양함 패스파인더를 격침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하더니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해저의 최종병기’로 이름을 날렸다. 처칠 영국 총리가 “전쟁 기간 중 나를 두렵게 한 것은 오직 U보트에 의한 공포였다”고 회상할 정도였다. ‘특전 U보트’나 ‘크림슨 타이드’ 등 잠수함을 다룬 영화도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다.

 

잠수함 종류는 추진 방식에 따라 원자로를 사용하는 핵추진 잠수함과 재래식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디젤 잠수함으로 나눈다. 임무에 따른 구분으로는 탄도미사일 발사 잠수함(SSBN)과 공격형 원자력 잠수함(SSN), 순항 미사일 원자력 잠수함(SSGN)이 있다. 지금이야 첨단 기술 덕분에 내부 환경이 많이 좋아졌지만 예전엔 ‘지옥의 찜통’으로 불렸다. 엄청나게 더운 데다 햇볕이 없고 통풍도 안 되는 밀폐공간이었기에 승조원들의 고생은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고통을 해결해준 것은 원자력이었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전기로 바닷물을 분해해 산소를 얻고, 첨단 정화장치를 돌림으로써 맑은 공기를 얻을 수 있었다. 엄청난 크기의 연료탱크가 필요없으니 그만큼 신선한 식량과 편의시설도 더 갖추게 됐다. 작전지속 시간도 크게 늘어났다.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를 계기로 동북아 바다 속 잠수함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북한은 잠수함과 잠수정 70여척을 갖고 있다. 중국은 신형 디젤잠수함과 핵잠수함 등 65~70척, 일본은 18척, 러시아는 64척을 운용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6번째로 잠수함사령부를 창설했지만, 보유 잠수함은 아직 13척에 불과하다.

 

우리 해역에서는 이미 주변국들의 잠수함 대결이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수심이 깊은 동해는 잠수함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각국의 물밑 경쟁이 치열한 곳이라니 걱정스럽다. 동북아의 복잡한 영토분쟁과 군사력 확장 분위기를 감안해 대형 잠수함 확보 전략을 앞당겨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온종훈(논설위원)-20150513수] 흡연과 폐암

 

전 세계에서 공익적 차원의 금연 운동을 최초로 시도한 것은 나치 독일이었다. 이전에도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 담배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나치당이 전개한 것만큼 강력하지도 성공적이지도 못했다. 아돌프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지도자들은 흡연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으며 금연법을 제정하고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금지, 담배 광고와 판매 제한 등 현대적 금연 정책의 대부분을 만들고 시행했다.

 

이 시기 담배의 유효성에 관한 연구도 크게 진전됐다. 젊은 시절 하루 40개비 이상을 피던 애연가였다가 금연으로 돌아선 히틀러가 적극 지원한 예나대의 '담배의 위험성에 관한 연구회'는 당시 세계적으로도 가장 영향력이 있는 반(反)담배 연구소였다. 나치의 경제적 지원을 받은 역학 조사와 연구가 곳곳에서 이뤄져 흡연 여성의 모유에 니코틴이 함유돼 유해하다는 것과 흡연이 심근경색 등 심장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담뱃갑 경고 문구로 익숙한 흡연과 폐암의 관계도 이 당시 규명됐다. '실험 역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란츠 H 뮐러는 1939년 증례 대조 연구를 통해 흡연자가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뮐러는 자동차 배기가스, 공장 매연 등 오염물질 못지않게 흡연이 폐암 발생에 영향이 크다는 점을 밝혀냈다. 나치의 강력한 금연정책은 초기에는 효과를 보지 못하다가 1939년 2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패전 직전까지는 큰 효과를 봤다. 그러나 패전 후 미국 담배회사의 진출과 담배 밀수가 성행하며 전쟁 이전 이상으로 독일인의 담배소비는 급증한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11일 "흡연과 폐암 등 질병 사이에 '필연적'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폐암 환자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담배 제조와 판매를 허용하는 담배사업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정의 주요 근거다. 담배에 대해 "흡연자 스스로 결정할 수 없을 정도로 의존성이 높지 않다"고 밝혔지만 이 판결로 담배소비가 다시 증가할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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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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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北 잠수함 탄도탄 발사시험

■ 공무원연금 개혁과 국민연금

■ 5월 국회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北 잠수함 탄도탄 발사시험

 

[한국일보 사설-20150511월] 남북화해 시급성 일깨운 北 잠수함 탄도탄 발사시험

 

북한이 그제 전략잠수함에서의 탄도탄 수중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8일 실시된 것으로 알려진 시험발사의 구체적 위치와 시점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참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올 들어 함경남도 신포 앞바다에서 수 차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수직발사관 사출시험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이번에도 이 해역에서 발사실험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시험발사라고 주장하지만, 탄도탄의 로켓 추진장치가 점화돼 장거리 비행하는 수준이 아니라 잠수함 내 발사 플랫폼에서 모의 탄도탄(더미탄)이 사출되는 단계인 것으로 우리 군은 보고 있다. 탄도탄의 사출거리도 100㎙ 정도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번 발사가 처음으로 수중 잠수함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앞서 신포 인근 지상이나 해상의 수직발사 시설에서 행해진 사출시험과는 전략적ㆍ군사적 측면의 함의는 차원이 다르다. 보도대로라면 북한은 잠수함에서의 사출시험 단계를 넘어 조만간 로켓 추진장치를 가동한 탄도미사일 발사시험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세라면 수 년 내 SLBM의 실전 배치가 가능한 수준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핵탄두 소형화에 상당한 진척을 이룬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이 또 다른 비대칭 전력의 핵심인 SLBM까지 개발한다면 우리 군의 대북 억지력은 엄청난 후퇴를 겪을 수밖에 없다. 특히 SLBM은 ICBM보다도 사전포착이 어려운 데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의 지리적 여건 때문에 적절한 대응이 더욱 곤란하다. 더욱이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추진중인 우리의 전력증강계획은 북한의 지상이나 해상에서 발사되는 탄도미사일을 겨냥한 것일 뿐 SLBM을 탐지, 요격하는 방어망은 사실상 빠져 있다.

 

북한이 은밀하게 추진되는 잠수함 탄도탄 시험발사를 이례적으로 공개한 의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냉각될 대로 냉각된 남북관계는 지난달 한미 군사훈련이 끝난 뒤 최근 민간단체의 교류와 지원이 활발해지면서 해빙무드를 맞는 게 아니냐는 기대가 커져왔다. 7년 만에 처음으로 6ㆍ15 공동행사를 다음달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남북 민간단체가 합의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그러나 남북 간 불신과 대립의 해소는 민간차원의 교류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이 거듭 확인됐다. 북한이 서해에서의 우리 해군 함정 활동을 북방한계선(NLL) 침범이라고 주장하며 “조준사격”을 위협하고, 동해상으로는 함대함 미사일을 발사하는 무력시위를 벌인 것도 마찬가지다. 날로 위협적인 북한의 비대칭 전력 증강에 대한 치밀한 대비책 마련도 물론 시급하다. 그러나 남북 긴장해소가 최우선이라는 당국의 엄중한 상황 인식과 이를 위한 전략적 접근이 우선 요구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1월] 남북 모두에 백해무익한 군사 긴장

 

북한이 연일 남북 간 군사 긴장을 높이고 있다. 4월 말 미-일 정상회담과 8일 중-러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일본 대 중국·러시아’의 국제적 대결 구도가 선명해지는 흐름 속에서 남북 간마저 군사 긴장이 격화하고 있어 불안감이 더욱 크다. 더구나 4월24일 한-미 군사훈련이 끝난 뒤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가 서서히 재개되는 분위기에도 찬물을 끼얹게 될까 우려스럽다.

 

북한은 8, 9일 잇따라 서해에서 남쪽의 ‘영해 침범’을 주장하면서 남쪽 함정에 조준사격을 하겠다고 위협하는 전통문을 보내왔다. 북쪽은 8일 서해 군 통신선을 통해 청와대 국가안보실 앞으로 보낸 서남전선사령부 명의의 통지문에서 서해 북쪽 ‘해상분계선’을 침범하는 남쪽 함정에 대해 “예고 없는 조준타격”을 가하겠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9일에도 다시 “맞설 용기가 있다면 도전해보라”는 도발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북한은 이에 그치지 않고 미사일 무력시위도 펼쳤다. 9일 오후 원산 부근 해상에서 사거리 100㎞로 추정되는 함대함(지대함 공용) 미사일 KN-01 3발을 발사했다. 또 같은 날, 북한 <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맞서 우리 쪽도 ‘강 대 강’의 자세로 맞받았다. 최윤희 합참의장이 8일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과 만나 북쪽의 도발 시 한-미 연합전력으로 강력히 대응하기로 한 데 이어, 9일에는 주요 작전사령관과의 화상회의와 2함대 사령부 방문을 통해 ‘도발에 대한 강력하고 처절한 응징’을 지시했다. 또 청와대는 같은 날 오후 이례적으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 북한의 의도를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그만큼 북한의 도발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북쪽의 군사 도발에 대해 신속하고 확고한 대응태세를 갖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남북 모두, 특히 북한은 남북 군사 긴장이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반도 주변에 ‘미·일 대 중·러’ 사이의 대결이 심화하는 와중에 남북마저 대립하는 것은 스스로 남북의 발언권을 줄이는 길이다. 남북의 자율은 축소되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나라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게 될 뿐이다. 이미 핵과 미사일 도발로 국제적 고립 상황에 처한 북한은 추가적 도발을 통해 얻을 것보다는 잃을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정부도 북쪽의 군사 도발에 대한 즉자적 대응을 넘어, 장기간 긴장관계에 있는 남북관계를 큰 틀에서 개선하는 통 큰 모습을 보여야 한다. 최근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 비료 지원이나 민간 차원의 6·15선언 남북 공동 기념행사(6월14~15일) 서울 개최 합의 등 의미 있는 흐름을 살리면서 북을 대화 마당으로 끌어내야 한다. 지금이 대화냐 대립이냐의 중대 분기점이다.

 

 

[중앙일보 사설-20150511월] 평양발 ‘스푸트니크의 순간’ 다가오나

 

북한이 9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의 수중발사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참관하는 가운데 탄도탄이 해수면을 뚫고 하늘로 솟구치는 사진을 공개했다. 김 제1위원장은 “잠수함에서 탄도탄을 발사하게 된 것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것 못지않은 경이적인 성과”라며 “전략잠수함 탄도탄이 생산에 들어가고 가까운 시일 내 실전배치되면 적대세력들의 뒷잔등에 시한폭탄을 매달아 놓는 것이 된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게 사실이라면 북한의 핵 위협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주장에 일부 과장이 있을 수는 있지만 SLBM 개발의 막바지 단계인 수중 사출(射出) 시험에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소련의 골프급 잠수함을 역설계해 2000t급 전략잠수함을 건조하고, 지난해 중순부터 지상과 해상에서 사출 시험을 진행해 왔다. 그로부터 1년도 안 돼 잠수함에 설치된 수직발사관을 통해 모의 탄도탄을 물 밖으로 사출시키는 실험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면 1~2년 내에 SLBM의 전력화가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적진 깊이 침투한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SLBM은 지상 발사 탄도미사일(ICBM)이나 항공기에 실린 탄도미사일(ALBM)과 달리 탐지나 요격이 거의 불가능하다. SLBM의 보유가 핵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핵 보복 능력의 구비와 같은 뜻으로 이해되는 까닭이다. 북한이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에 이어 여섯 번째 SLBM 보유국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면 북한에 대한 선제적 핵 공격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북한의 SLBM 보유는 북한 핵문제의 양상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으로 보는 이유다. 북한의 SLBM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나아가 국제사회 전체에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다.

 

  미국의 확장억제와 핵우산에 의존하는 우리의 대응전략은 근본적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2020년대 중반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와 킬체인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지상 발사 미사일을 겨냥한 이들 시스템으로는 북한의 SLBM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전략잠수함이나 이지스함 전력 강화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SLBM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북한의 SLBM 전력화는 북한 핵에 대한 국제사회의 근본적 인식 전환을 요구하는 ‘스푸트니크의 순간’이 될 것이다. 한·미·일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도 똑같이 고민해야 할 국제사회의 난제가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SLBM 문제를 발등의 불로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그 출발점은 한·미·일의 긴밀한 정보 공유가 되어야 할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511월] 첨단무기 경쟁 부추길 북한의 SLBM 발사실험

북한이 그제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 발사의 막바지 단계인 ‘사출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동체에 ‘북극성 1’이라고 쓴 탄도미사일이 수중에서 솟구쳐 오르는 사진을 공개했다. 잠수함 탄도미사일 발사는 탐지와 방어가 어렵고, 유사한 잠수함 개발과 탄도탄 방어체계로만 대응이 가능하다. 따라서 잠수함 탄도미사일 전력화는 남측의 첨단무기 개발·도입을 촉발할 수밖에 없다. SLBM 발사는 체제 안전 보장과 군사 전력 강화가 아니라 역내 군사적 긴장과 무기의 파괴력만 한 단계 더 높일 것이다. 이번 시험이 남북 민간단체가 6·15 기념행사 서울 개최에 합의하는 등 모처럼 남북 간 교류 재개 분위기가 형성된 속에서 불거진 것도 매우 유감스럽다.

 

잠수함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통상 2개 과정을 밟는다. 고압가스를 이용해 미사일을 수면으로 올려보내는 것이 1단계이며 이어 장약과 자체 엔진을 가동해 날아가는 게 2단계다. 이번 시험은 1단계지만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잠수함에서 쏘아올리는 기술을 충분히 확보했다는 것이 전문가 분석이다. 여기에 탄도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배수량 3000t급의 잠수함까지 갖추게 되면 잠수함 탄도미사일 발사를 전력화하게 된다. 나아가 북한이 핵탄두를 잠수함 탄도미사일에 장착 가능한 1t 이하로 소형화하는 데 성공하면 ‘핵보유국’ 지위를 얻을 수 있다. 북한이 이번 시험을 공개한 것은 미국까지 겨냥한 듯하다.

 

북한의 잠수함 탄도미사일 발사 전력화는 무엇보다 한국군의 미사일 대응체계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어 문제다. 현재 개발 중인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와 킬 체인은 지상에서 발사하는 미사일 탐지와 방어만 가능할 뿐 수중 발사 미사일에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군이 2020년대 중반을 목표로 추진 중인 전력증강 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한 셈이다.

 

북한의 사출시험 직후 당장 국내에서 핵잠수함 개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핵무기를 탑재한 잠수함을 상대하려면 비슷한 전력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것을 원했는가. 북한은 대답할 책임이 있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은 군사력 증강으로 이룰 수 없다. 북한이 지난 8, 9일 서해상 무력도발 위협을 하고 9일 동해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것도 군사적 긴장 고조만 불렀을 뿐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1월] 北 SLBM 위협 대응책 시급하다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 성공 소식은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SLBM의 실전 배치 이후 한반도의 안보 정세는 그야말로 ‘벼랑 끝’ 양상으로 치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험발사는 자신의 저택 부근에 새로운 로켓발사지휘소를 세울 정도로 미사일에 집착하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직접 참관한 가운데 진행됐다. 우리 안보 당국은 이번 시험발사가 지난 8일 진행됐으며 수중 잠수함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이 수면 위 100m 정도까지 튀어오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은 때맞춰 우리 함정에 대한 ‘조준타격’ 위협과 동해상 미사일 발사 등으로 긴장을 더욱 고조시켰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만재배수량 2500t급의 신형 잠수함을 건조했을 때부터 SLBM 장착을 준비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차례의 지상 및 해상 시험을 거쳐 이 잠수함의 윗부분에 수직발사관을 장착했고, 비록 로켓 추진 장치를 점화시키지는 않았지만 잠수함의 수직발사관을 이용해 처음으로 물 밖까지 미사일을 내보냈다. 앞으로 탄도미사일의 로켓 추진 장치를 점화시켜 장거리 비행 여부를 시험한 뒤 실전 배치하는 수순만 남은 셈이다. 전력화 시점은 향후 1~2년 내, 코앞에 닥친 것으로 예상된다.

 

SLBM의 가공할 위력을 감안하면 현재 우리 군의 대응태세는 미덥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북한이 SLBM을 실전 배치한다면 언제든 우리 해역에 침투해 은밀하게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기 때문에 동·서·남해 전 해역이 사실상 ‘최전선’이 될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적’에게서 무방비로 미사일이 쏟아진다면 우리 사회가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 것은 자명하다. 북한이 SLBM 개발을 서두른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군의 대응태세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진 셈이다.

 

우리 군은 그동안 북한 핵 및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와 ‘킬 체인’ 구축을 서둘러 왔다. KAMD는 미사일 요격, 킬 체인은 이동식 미사일발사대 등의 선제 타격을 목표로 한다. 문제는 SLBM 대책이 뚜렷하게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협은 침소봉대해서도 안 되지만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북한 SLBM 위협을 엄정하게 분석한 뒤 시급히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적으로는 북한 잠수함을 전방위로 탐지할 수 있는 감시체계 구축을 서두르길 바란다. 궁극적으로는 북한이 섣부른 오판을 할 수 없도록 우리 역시 비슷한 전력을 갖춰야 함은 물론이다.

 

 

■ 공무원연금 개혁과 국민연금

 

[한국일보 사설-20150511월] 공무원연금부터 개혁하고, 국민연금 장기 과제로!

 

5월 임시국회가 오늘부터 열리지만 순항은 기대난이다. 무엇보다 4월 임시국회 막바지의 공무원연금 개혁 불발의 책임론이 말끔히 지워지지 않았다. 또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물론이고 연말정산 환급을 위한 소득세법개정안까지 다른 법안과 연계하려는 야당의 전략이 변화할 기미가 없다. 청와대가 어제 이례적으로 ‘5월 국회 개회와 관련한 입장’을 발표해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우선 처리를 요구하고 나선 것도 상황을 복잡하게 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현재의 논란을 풀 수 있는 대안이 꼭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여야 합의안에 대해 우리는 처음부터 ‘기본취지 훼손’을 지적했듯, 내용 자체에 만족하지는 않는다. 잇따른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 다수가 이를 흔쾌히 여기지 않는다는 점도 확인됐다. 그러나 오랜 줄다리기 끝에 여야가 이룬 합의라는 점에서 충분히 존중해야 할 가치가 있다. 어차피 더 이상의 논의 진전이 어렵다면 합의안 그대로 처리하는 게 현실적 방안이다.

 

둘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는 장기적 논의 과제로 삼는 게 낫다. 그에 필요한 예상 보험료 인상분이 ‘1.01~16.7% 포인트’로 너무 달라서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지만, 그런 차이가 국민연금기금의 고갈 연도 및 유지 규모 차이에서 비롯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2060년 기금고갈(1.01%포인트)은 물론이고, 2100년 이후까지 현재 규모로 기금을 유지(16.7%포인트)한다는 극단적 상정을 배제하면, 기금고갈 예상 연도에 따라 3~4%포인트(2070년), 6% 포인트(2088년), 6.8%포인트(2095년) 등의 보다 현실적인 수치가 떠오른다. 현재의 소득대체율을 그대로 두어도, 어차피 언젠가는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한 보험료 인상을 논의해야 했다.

 

한편으로 소득대체율을 인상해도 실제 연금수령액의 인상 효과는 미미하다. 소득대체율보다는 ‘소득상한액’이나 ‘연금지급률’등에서 공무원연금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어야체감 가능한 효과이다. 공무원연금과 달리 소득재분배 기능까지 갖춘 국민연금의 구조적 차이점도 한 요인이다. 이처럼 국민연금 강화 논의는 워낙 논점이 복잡다기하고,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근로자와 사용자 등의 이해상충도 심각해서 단기간에 합의하기 어렵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에 국민연금 이해관련자가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합의안의 절차적 정당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다만 기존 여야 합의와 야당의 처지를 고려해 장기 목표로서 ‘소득대체율 50%’를 명기하는 선에서 여야가 절충할 만하다. 이 또한 불발한다면, 애초에 공무원연금 개혁에 소극적이었던 야당에 국민의 싸늘한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 사설-20150511월] 청와대의 무책임한 세금폭탄론

청와대가 5월 임시국회 개회를 하루 앞두고 어제 국회 현안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노골적인 입법 지침을 내리고,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문제에 대해 그야말로 혹세무민의 선동으로 가득 차 있다. 김성우 홍보수석은 국회 계류 법안들을 거론하며 “11일까지 통과” “한시도 미루면 안된다”고 다그쳤다. “청년 일자리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그 이유를 청년과 국민에게 정확히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겁박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중요한 법안이라면 사전에 여당과의 조율은 물론 야당과의 대화 노력이 경주되어야 마땅하다.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다가 국회만 열리면 ‘무조건 통과’를 닦달하는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국회를 청와대의 지침대로 움직이는 하명기관쯤으로 간주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어른거린다.

 

연금 문제에 대해 청와대는 대놓고 가이드라인을 내렸다. 김 수석은 “5월 임시국회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가 우선”이라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문제는 정치적 당리당략에 의해 결정될 사안이 아니고 공무원연금과 연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날 여야 원내대표의 협상을 앞두고 ‘공무원연금 개혁과 국민연금 분리’를 못박고 나선 꼴이다. 어렵사리 마련한 사회적 ‘대타협안’을 무산시켰던 청와대다.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가 무산되자 사돈 남 말 하듯 ‘유감’을 표명하고 비평을 늘어놓던 청와대가 이제는 여야의 협상에 끼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고 있다. 삼권분립의 의미를 훼손하는 처사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반박하려 ‘세금폭탄론’을 동원해 ‘공포 마케팅’을 벌인 것은 무책임하다. 김 수석은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향후 65년간 미래세대가 추가로 져야 할 세금폭탄이 1702조원”이라고 했다. 0.25배 연금 인상에 보험료는 2.3배가 오른다는 단순 산수에도 안 맞는 왜곡이다. 1702조원은 소득대체율 50% 때 수급자들이 추가로 받게 되는 ‘연금수령액’이다. 이를 마치 미래세대가 부담할 ‘세금’인 양 둔갑시켰다. 젊은 세대에게 ‘세금폭탄’ 공포를 조성해 공적 연금 강화 논의 자체를 봉쇄하려는 치졸한 꼼수다. “2016년에만 34조5000억원, 국민연금 가입자 1인당 209만원의 추가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소득대체율 10%포인트 인상뿐 아니라 2100년에 연금기금이 ‘수지균형’을 맞추는 극단의 가정하에서 얻어지는 결론이기 때문이다. 전제 조건은 생략한 채 호도된 수치로 ‘보험료 폭탄’을 강조, 저항을 부추기려는 선동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에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책임은 방기한 채 의도적으로 세대갈등을 부추기고 연금 제도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는 청와대의 저열한 ‘연금 정치’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1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국민들은 안 속는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한다더니 느닷없이 국민연금을 끌어들인 꼼수에 국민의 평가는 싸늘하기만 하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겠다면 ‘얼씨구나!’라며 대환영이라도 할 것으로 단단히 오인한 정치였다. 국민들은 국민연금의 기본 성격과 한계점, 다단계 판매 같은 운영구도까지 잘 알고 있는데 여야 국회는 선심정책의 대상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는 이런 사실을 명확히 재확인해준다. 국민연금으로 ‘물타기’한 공무원연금 개편안에 대한 반대의견이 42%에 달했다. 찬성은 31%에 그쳤다. 그나마 바로 연금을 받는 고령층에서나 찬성이 다소 많았을 뿐 20~50대에서는 반대가 많았다. 국민연금의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면 그냥 현행대로 유지하자는 의견이 54%나 된 것도 국민들의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정치권에서 달콤한 유혹을 내놔도 속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가 아니라 60%로도 못 올릴 것은 없다. 2060년으로 예고된 기금고갈 시점을 몇 년 앞당긴다면 당장도 가능하다. 아니면 연금보험료를 획기적으로 더 내야만 한다. 그것도 아니면 공무원연금처럼 정부 재정에서 무한정 적자보전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어느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미래세대와 기업의 부담을 화끈하게 올리지 않고는 불가능한 선택들이다. 어떤 계산에 따르면 국민연금을 유지하기 위해서만도 보험료율을 25%까지 올려 세금형태로 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이 24%로 문재인 대표 체제 들어 최저라는 지난 주말의 여론조사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소득대체율 50% 제안은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에서 노조와 야당의 협상파기 전략이었는지도 모른다. 새누리당은 이 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새누리당이 너무 쉽게 50%안을 받아들여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 나도는 정도다. 대책 없는 지급률 인상이 가뜩이나 취약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킬 것이다. 국회가 국민 장래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포퓰리즘 국회를 우려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주요 정당들은 여론에 귀를 막고 있다. 딱한 정치다.

 

 

■ 관련 칼럼

 

[한겨레신문 칼럼-싱크탱크 시각/박순빈(연구조정실장 겸 논설위원)-20150511월] 미래세대를 걱정하는 위선자들

 

아이 키우는 집에선 부모들이 굶어도 배가 부를 수가 있다. 아이들 밥 먹는 모습을 볼 때이다. 예로부터 자식 입에 밥 넘어가는 게 가장 보기 좋다고 했다. 커가는 아이들보고 ‘부모 등골 휘게 할 식충이’로 여긴다면 비정상이다. 거꾸로 늙어가는 부모더러 자식 등골 빼먹겠다고 생각한다면 정상일까?

 

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짖는 박근혜 정부가 자꾸만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어렵게 하고 있다. 여야 합의로 마련된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국민연금 강화 방안이 청와대와 정부의 반발에 부닥쳐 표류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급여율(명목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상향 조정하는 안이 논란의 불씨다. 소득대체율 인상에 반대하는 쪽의 주장은 한결같다. 지금의 국민연금 가입자가 받는 혜택을 늘리는 대가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손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떠넘긴다는 것이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잘못된 사실이나 편견에 기초한 괴담과 궤변이 난무한다는 게 문제다. 세대간 갈등과 적대감을 부추기는 목소리도 국민연금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요소이다. 국민연금은 궁극적으로 미래세대의 노인 부양 부담을 완충해주는 장치이다. 이런 장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커지면 미래세대에게도 결국 재앙이 된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키우는 단골 논리는 ‘기금(적립금) 고갈론’이다. 그런데 국민연금 관리·운영의 최고책임자의 입에서 최근 기금 고갈론이 나왔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연금 고갈 시점에 빚을 후대로 넘기는 것은 ‘세대간 도적질’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누군지 모를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 교묘하게 자기 주장을 했다.

 

정부 추계에 따르더라도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은 언젠가 다가올 수밖에 없다. 기금은 정부가 한시적으로 관리하는 책임준비금일 뿐이다. 기금 운용수익률의 제고 등으로 고갈 시점을 설사 몇년 뒤로 미루더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미봉책이다. 그렇다면 기금 고갈 뒤 국민연금 지급이 중단되거나, ‘미래세대에 대한 도적질’로만 국민연금 제도를 겨우 유지해야 하나? 문형표 장관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국 민연금은 국민 누구나 겪게 될 노령화라는 위험을 국가가 해결해주는 제도이다. 현행 국민연금법은 1조에서 ‘국민의 노령, 장애 또는 사망에 대해 연금 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밝힌다. 또한 연금급여의 안정적 지급을 넓은 의미의 국가 책무(3조의 2)로 정했고, 제도 자체의 관리 및 운영에 필요한 비용의 국고 부담(87조)도 명시하고 있다. 요컨대 가입자에 대한 연금 지급의 책임은 국가 몫이라는 것이다.

 

국민연금 재정의 불안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문제의 원인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급격한 인구구조의 변화를 절대 조건으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적극 대응해야 한다. 복지 수준을 높여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질 높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보다 많은 가입자가 보다 높은 등급의 보험료를 낼 수 있게 된다.

 

국민연금 재정의 안정은 연금제도의 수단일 뿐이다. 최종 목적은 든든한 연금제도를 통한 국민 노후소득의 보장이다. 늙거나 병들어 스스로 먹고살기 힘들면 기본적인 생계를 국가가 보장해주는 제도는, 지금 우리 세대가 미래세대에게 반드시 물려줘야 할 유산이다. 국민연금의 재정 불안을 내세워 미래세대의 부담을 짐짓 걱정하며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위선자들이야말로 미래세대의 적이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국민에게 세금을 거두는 것을 ‘도적질’이라고 하지 않는다.

 

 

■ 방산비리와 군사기밀 유출

 

[중앙일보 사설-20150511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기무사 방산비리

 

방위산업 비리로 구속 기소된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에게 돈을 받고 군사기밀 100여 건을 누출한 혐의로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군무원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군 보안 업무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심각한 사고다.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이 최근 구속한 기무사 소속 군무원 변모씨와 김모씨의 혐의를 보면 기가 막힌다. 변씨는 2006년 1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군사 Ⅱ·Ⅲ급 비밀’ 자료를 포함해 장성급 인사들의 신원정보와 각종 무기체계 획득사업 정보, 국방부 및 방위사업청 내부 동정 보고서 등 140여 건의 내부자료를 넘겼다. 더욱 놀라운 일은 변씨가 2004년 12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일광공영의 보안 실태를 감독하는 기무 업무 담당자였다는 사실이다. 김씨도 기무사 직원으로서 취득한 군사기밀을 업자에게 넘겨줬다.

 

  한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이나 진배없다. 기무사는 군사·방위산업 분야의 보안, 방첩·대간첩·대테러 수사를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특히 방위산업 분야에선 보안 감사는 물론 점검·교육·컨설팅 업무까지 맡고 있다. 이처럼 군사보안을 감독해야 할 기무사의 직원이 감시대상인 방산업자와 한통속이 돼 예민한 군사기밀까지 송두리째 넘겨준 것은 군 보안 업무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비리다.

 

  우선 방산비리 합수부는 기무사가 자체 수사로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부분은 없는지 보강 수사를 통해 면밀히 따져야 한다. 아무리 기무사가 군 사건을 담당한다 해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기무사 관련 사건까지 자체 수사에 맡겨서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또한 이번 사건 관련자에 대해선 ‘국가안보’ 차원에서 엄중히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국방부가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느낀다면 기무사의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할 시스템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기무사의 권한이 지나치게 막강하고 업무 성격상 폐쇄적이다 보니 자체 감찰만으론 비리를 차단할 수 없는 게 아닌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기무사 역시 인적 쇄신을 포함한 철저한 재발방지책만이 추락한 명예를 회복시킬 유일한 방도임을 명심해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511월] 건당 7만원에 팔아넘긴 군사기밀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이 무기중개업체 일광공영의 이규태 회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군사기밀 유출의 실상은 기가 막힌다. 어제 구속된 기무사 3급 군무원은 2006년 1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8년 동안이나 군사기밀을 이 회장에게 빼돌렸다고 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군형법상 비밀자료 116건과 공무상 비밀자료 23건 등 모두 141건에 이른다. 이 군무원은 기밀 자료를 건넨 대가로 20차례에 걸쳐 1000만원 남짓한 돈을 이 회장으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합수단 발표대로라면 군사기밀을 건당 7만원씩에 팔아넘긴 꼴이니 어처구니없다.

 

이 회장은 공군의 전자전훈련장비(EWTS) 도입 사업 과정에서 천문학적 액수의 납품 사기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 3월 구속 기소됐다. 당시 서울 도봉산 주변 컨테이너 야적장에서 이 회장이 숨겨 놓은 엄청난 분량의 군사기밀 문서가 발견돼 우리를 놀라게 했다. 육·해·공군의 전력증강 및 작전운용 계획 등을 담은 2·3급 군사기밀을 비롯해 군 수뇌부의 신상정보와 고고도 무인정찰기 및 공중급유기 등의 무기체계 획득 사업 정보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자칫 북한은 물론 다른 나라에 흘러들어 갈 경우 국가 안보에는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구속된 기무사 군무원은 2004년 일광공영을 맡으면서 이 회장과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무사의 무기중개업체 담당 군무원이라면 불법 로비 행위를 사전에 차단해 국가가 적정한 가격에 성능이 보장된 첨단무기를 획득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본연의 역할일 것이다. 하지만 무기중개업체의 불법 행위를 차단하기는커녕 오히려 업체 대표로부터 푼돈을 챙기며 기밀을 넘기는 역할을 했다니 대한민국 군무원이 이 정도 국가관밖에 갖고 있지 못한 것인지 실망스러울 뿐이다. 합수단은 지난 6일에도 방위사업청 내부 동향과 무기 도입 사업 관련 정보를 이 회장에게 넘긴 기무사 4급 군무원을 구속했다.

 

이번 사건은 이 회장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유력 인사에게 금품 로비를 벌이고 막대한 사업비를 빼돌렸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군무원들의 군사기밀 유출은 군의 하부 구조마저 지극히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매국 행위를 일삼은 군인과 군무원은 상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단죄해야 할 것이다. 그럴수록 이 회장이 금품 로비를 벌인 ‘몸통’을 찾아내는 노력도 게을리하면 안 된다.

 

 

 

 

■ 5월 국회

 

[서울신문 사설-20150511월] 5월 국회, 더이상 민생을 외면하지 말라

 

11일부터 5월 국회가 한 달간 일정으로 시작되지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여야의 정쟁으로 4월 임시국회가 식물국회로 막을 내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는 공무원연금 처리를 높고 극한 대치를 지속하고 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로 인상 명기를 둘러싼 여야의 대립으로 애초 4월 국회에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와 더불어 민생·경제 관련 법안 등 100여건의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었지만 지난 6일 마지막 본회의에서 여당 단독으로 처리한 박상옥 대법관 임명동의안 한 건만을 처리했다. 경제활성화와 민생을 외쳤던 여야는 아직도 서로 약속을 어겼다고 ‘네 탓’만 하는 한심한 상황이다.

 

5월 국회에서 처리를 기다리는 민생법안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진 사안은 연말정산 추가 환급 길을 여는 소득세법 개정안이다. 638만명의 근로소득자들에게 되돌아갈 4580여억원이 묶여 있다. 재정산에 대비해 사전 정리에 나선 기업들도 혼란에 빠져 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과 지방자치단체 무상보육 지원을 위한 지방재정법 개정안, 담뱃갑 경고 그림을 의무화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등도 화급을 다툰다.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영세상인 보호 장치를 담고 있다.

 

그동안 인정되지 않던 권리금을 법적으로 보장해 218만명으로 추산되는 상가 세입자가 학수고대하고 있다. 지방재정법 개정은 만 3~5세 무상보육인 누리과정 예산 확보책이다. 일부 지역 교육청에서 예산난으로 지원이 끊기는 점을 감안, 교육청의 지방채 발행을 허락하는 조치다. 누리과정 예산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처리가 시급했던 지방재정법 개정안도 무산됐고 경제활성화 차원에서 추진됐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관광진흥법 개정안도 상임위에서 계류 중이다.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매달려 허송세월하는 사이 우리 경제는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주요 기관들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속속 낮추고 있고 4분기 연속 0%대 성장을 기록 중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주요 민생법안을 공무원연금 등 정치적 이슈와 연계해 볼모로 잡고 있어 국회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은 4·29 재보선에서 표출된 민심을 직시하고 협상은 협상대로 하되 민생법안 통과는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5월 국회에서도 수권 정당으로서 국민적 신뢰를 보여 주지 못하는 한 지지자들마저도 등을 돌리는 사태가 올 수밖에 없다. 4·29 재보선 참패 직후 ‘뼈를 깎는 자성’과 과감한 변화를 약속했지만 여전히 고질적인 계파 갈등으로 발목이 잡혀 있다.

 

국민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서 보듯 여당의 국정 난맥에도 비판적이지만 야당의 정치 행태에도 염증을 느끼고 있다. 여당의 실패와 오류를 정쟁의 꼬투리로 삼을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고, 정쟁보다는 정책 대안을 통해 국정에 협조할 수 있어야 한다. 국회의 본 기능은 입법에 있다. 민생법안조차도 외면하는 국회의원들을 위해 그 많은 특권과 보수, 보좌 인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새겨야 할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1월] 5월 국회, 경제활성화법 처리만은 외면해선 안된다

 

청와대는 10일 '5월 국회 개회와 관련한 입장'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야당의 주장대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할 경우 "세금폭탄은 무려 1,702조원이나 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민 눈높이에 맞춘 공무원연금(개혁안) 처리가 우선이며 5월 국회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11일 국회 개회 하루 전이었다. 굳이 '선(先) 공무원연금 개혁 처리, 후(後) 국민연금 논의'라는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해야 할 정도로 청와대는 국회가 미덥지 못한가. 사실 국회의 자업자득이다. 특히 공무원연금개혁안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무리하게 연계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책임이 크다. 이런 야당안에 덜컥 합의한 새누리당도 무책임했다.

그렇다고 청와대는 제 역할을 다 했나. 청와대는 4월 국회에서 공무원연금개혁안에 대한 여야 합의가 도출되도록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 개입하더니 이를 뒤집게까지 했다. 그동안 당청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음은 물론 여당의 신망 따위는 별로 신경 쓸 필요조차 없다는 듯한 태도다. 야당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설득 노력이 부족한 것도 아쉽다. 야당의 극단화를 대통령이 자극한 측면이 있다. 정치학자들은 "성공하는 대통령들은 반대파까지도 잘 설득해 상당한 지지를 얻어내고, 그것이 좋은 정치"라고 하지 않는가. 한국 정치의 밝은 미래를 위해 박 대통령의 변화가 필요하다.

 

날로 경제가 어려워지는 지금, 소통의 정치를 위한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 5월 국회에서만은 경제활성화법안 처리를 통해 정치에 화합의 기운이 깃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크라우드펀딩법·관광진흥법 등은 기업의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처리가 다급하다. 연말정산 환급을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 처리도 중요한 관심사다. 무엇보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지연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눈앞의 당리당략에 매몰돼 국가의 미래까지 어둡게 하는 정치를 국민은 더 이상 용인할 여유가 없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011월] 홍준표 수사, ‘봐주기’로 가나

 

검찰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한테서 1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사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에 대한 소환조사를 마치고 형사처벌 수위 조절에 들어갔다. 검찰은 홍 지사에 대한 기소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나,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서는 무척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물론 피의자에 대한 구속수사만이 능사는 아니다. 정치자금법 위반의 경우 금액이 2억원 이상인 경우에만 영장을 청구해온 전례 등에 비춰볼 때 불구속 기소가 온당한 결론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핵심 증인에 대한 홍 지사 쪽의 회유와 허위진술 강요 혐의에 대한 소극적인 수사 태도를 보면, 검찰이 ‘봐주기 수사’ 쪽으로 기울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지우기 어렵다.

 

검은돈이 오간 사건에서 관련 증인들을 회유하거나 협박하는 행위는 구속영장 청구의 중대한 사유가 된다. 그런데 홍 지사의 측근인 김아무개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은 돈 전달자로 지목된 윤아무개 전 경남기업 부사장에게 “돈을 (홍 지사의 보좌관에게) 준 것으로 진술하면 안 되겠느냐”는 등의 회유를 시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런 회유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검찰은 “주요 참고인에 대한 회유·무마 의혹 수사도 계속 진행 중”이라는 말만 할 뿐 뚜렷한 수사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홍 지사의 지시 여부는 일단 제쳐놓고라도 측근들의 증거인멸 시도에 대해서도 가타부타 말이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는 박아무개 전 경남기업 상무 등 성 전 회장의 측근들을 증거인멸 혐의로 잇따라 구속한 것과도 크게 대조된다. 검찰은 이들이 회사 자료를 폐기·은닉한 혐의가 있다며 수사 초기에 전격적으로 구속했으나, 정작 돈을 받은 쪽의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검찰의 이런 미적지근한 태도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 측근들의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홍준표 지사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 수사의 진로를 가늠하는 풍향계다. 리스트에 오른 인물 중 유일하게 돈 전달자와 전달 과정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났고 증거인멸 혐의마저 있는 이 사건을 맥없이 처리할 경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정권 핵심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사건 수사가 성 전 회장 측근들만 감옥에 가고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은 거리를 활보하는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으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11얼] 소비자만 ‘봉’ 만드는 가짜 백수오 파동

 

‘가짜 백수오’ 파문이 점입가경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건강기능식품 백수오의 원료에 이물질(이엽우피소)이 들어 있다는 한국소비자원의 4월22일 최초 발표 이래, 소비자들의 불안과 의구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원료 제조업체와 판매업체 등이 무책임하게 나오고, 당국의 대응도 구멍이 많기 때문이다.

 

소비자단체들에 접수된 가짜 백수오 제품 상담의 절반 이상은 6개 홈쇼핑 사업자한테서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홈쇼핑 사업자들은 8일 백수오 제품 전면 환불을 보류한 채, 먹고 남은 일부 제품에 대해서만 환불해주겠다고 발표했다. 가짜 제품을 먹은 소비자는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남은 물량을 보관하지 않은 소비자도 구매 증빙이 확실하다면 보상 대상에서 제외될 이유가 없다. 홈쇼핑 같은 대형 유통업체가 온갖 현란한 언설로 제품을 팔아먹고 문제가 생겼을 때는 책임을 외면해도 되는 건가. 소비자 보호를 외면하는 업체에 대해선 공정거래위원회가 필요한 조처를 강구해야 한다.

 

파동이 길어지는 데는 식품안전 당국의 책임이 크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차 조사 때 가짜 재료가 검출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가 2차 조사에서야 정반대 결론을 내놓았다. 당국의 ‘우왕좌왕 행보’가 소비자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이엽우피소의 유해성을 놓고도 소비자원은 유해하다고 발표했고, 식약처는 무해하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파동의 일차 책임은 당연히 가짜 재료를 사용한 원료 공급업체에 있다. 거기에 당국의 무능이 겹쳤다. 소득이 좋다고 백수오를 심었다가 판로를 잃게 된 농민들의 처지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불량식품을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범과 함께 ‘4대 악’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척결 의지를 내세웠다. 그리고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청을 국무총리 직속의 식품의약품안전처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이번에 보니 정부가 실제 식품안전을 지켜내지는 못하고 말만 앞세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앙일보 사설-20150511월] 추락하는 제1야당 지도부의 품격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의 품격과 합리성에 대한 우려가 날로 늘고 있다. 지난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벌어진 소동은 당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주승용 최고위원이 4·29 재·보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사퇴할 것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자 정청래 최고위원은 그를 겨냥해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할 것처럼 공갈친다”고 비난했다. 주 위원은 “치욕”이라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후 회의장을 나갔다. 이어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유승희 최고위원이 갑자기 ‘봄날은 간다’라는 대중가요를 불렀다. 어버이날이어서 노인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선거 패배의 원인과 책임을 놓고 정당에서 갑론을박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문제는 국민에게 노출된 공식 회의에서 벌어지는 언행의 품격이다. ‘공갈’이라는 표현으로 동료 최고위원을 노골적으로 공격한 것은 상식적 수준의 품위를 저버린 것이다. 정 최고위원은 과거에도 막말을 하곤 했다. 문재인 대표가 이승만·박정희 묘역을 참배한 것을 놓고 “독일이 사과했다고 유대인이 히틀러 묘소를 참배할 수 있나”라고 했다.

 

  유 최고위원이 정당 지도부회의에서 노래를 부른 건 공적인 자리와 사적 모임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박한 처신이다. 그는 최고위원 회의를 경로당쯤으로 생각하나. 비판자들은 코미디 프로에 빗대어 “제1야당 지도부가 봉숭아 학당”이 됐다고 지적한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최고위원 제도’가 주는 폐해가 적잖다. 최고위원들은 유권자와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인 언사를 사용하거나 상대 정당을 공격한다. 원래 최고위원회의는 헌법이나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그들만의 제도’다. 그렇다면 유권자를 향한 지나친 노출을 피하고 조용하고 진지하게 당 운영을 협의하면 된다. 같은 대통령제인 미국의 정당에서 이런 요란한 제도는 없다. 미국은 철저하게 의회를 관할하는 원내대표 위주로 당이 움직인다. 최고위원제 개선도 여야의 정치 개혁 과제로 논의돼야 한다. 그전에 우선 새정치연합은 제1야당의 품격을 살려야 할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511월] 수출 부진, 시간 걸려도 근본대책 마련해야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 수출을 되살리기 위해 정부가 뒤늦게 전방위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고 한다. 수출 부진을 국제경기 둔화에 따른 경기순환적 현상으로 여기며 안이하게 대응해왔던 점을 떠올리면 뒷북 대응이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최근의 수출 부진은 가볍게 넘길 상황이 아니다. 올 들어서만 1월 마이너스 0.9%에서 2월 마이너스 3.3%, 3월 마이너스 4.3%에 이어 4월에는 마이너스 8.1%를 기록하는 등 4개월 연속 감소세다. 문제는 이런 부진이 단순히 국제유가 하락이나 엔화약세, 글로벌 경기둔화 같은 경기순환적 요소 때문만이 아니라 장기적·구조적이라는 데 있다. 실제 중국뿐 아니라 유럽, 일본, 아세안, 중남미는 물론 그동안 증가세였던 미국 수출마저 성장세가 꺾였다. 특히 전체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도 1분기에만 벌써 1.5%가 줄었다. 중국의 경기둔화 탓도 있지만 중국제품의 강화된 경쟁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다. 중국은 최근 LCD패널 같은 핵심 부품군에서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과 어깨를 겨누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최근의 수출 부진이 1990년대 후발국의 추격으로 수출품의 시장점유율이 급락한 일본과 비슷하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잇단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경제영토를 확장하며 무역강국이 됐다고 자처한 결과가 고작 이 정도였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이처럼 상황이 막중한데도 정부의 그간 대응은 과거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해왔던 게 사실이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한달 전만 해도 수출상담회 개최나 수출 유망지역에 대한 마케팅 지원, 무역보험 지원 확대, 비관세 장벽 대응 같은 재탕 삼탕의 대책만 내놨을 뿐이다. 환율 대책도 전가의 보도처럼 거론되는 모양이지만 이명박 정부 때의 고환율 정책이 되레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의 수출환경은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세계적인 무역침체, 중국 시장의 변화, 개도국의 부상 등 전례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당연히 그에 걸맞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선진국을 모방·추격하던 전략에서 벗어나 기술개발을 통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고기술, 고부가가치 품목을 발굴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산업 구조 재편 등을 통한 경쟁력 강화 작업도 필요하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할 일도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1월] 부동산 거래 급증, 너무 빨리 달아오른다

 

부동산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4월 전국 주택거래량은 12만488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29.3%, 전월 대비 7.7%나 늘어났다. 주택거래량은 3월(11만1869건)에 이어 두 달 연속 2006년 관련 통계 작성 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격도 강세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4월 말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4억9999만원이었다. 2013년 4월 4억8913만원을 기록하며 5억원 아래로 떨어졌던 것이 2년 만에 다시 5억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청약 열기 역시 후끈하게 달아 오르고 있다. 부동산 침체지역으로 불리던 인천 청라의 청약경쟁률이 2 대 1에 육박하는가 하면 동탄2신도시는 50~60 대 1에 달하기도 했다. 울산과 이천 일부 지역에서도 각각 50 대 1, 9 대 1 안팎까지 올라갔다. 부동산시장에 훈풍이 부는 것은 DTI와 LTV 완화, ‘주택 3법’ 시행 등 규제완화 영향이 크다. 매매가의 71%까지 치솟은 전셋값으로 인해 매매수요가 늘었고 여기에 사상 최저인 저금리 기조도 한몫했다.

 

문제는 이런 호황이 지속될 수 있느냐다. 주택거래량 급증이 반전을 앞둔 현상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소위 ‘거래량 상투론’이다. 무엇보다 수급이 녹록지 않다. 올해 아파트 신규분양 물량은 34만7000여가구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일반 주택까지 합하면 50만가구를 넘어 정부 공급 목표량(38만가구)을 크게 넘어선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 상황에서 쏟아지는 물량을 소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베이비 부머의 은퇴, 저출산 고령화로 주택 실수요는 구조적인 감소세다.

 

급증하는 주택담보대출도 심상치 않다. 올 1분기 주택담보대출 증가폭은 11조6000억원으로 역시 사상 최대다. 아무리 안심전환대출 등으로 전환이 이뤄졌다고 해도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떨어지면 후폭풍이 심각할 수밖에 없다. 최근 주택구매 열풍이 또 다른 ‘하우스푸어’를 양산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정부도 수요자도 부동산경기 급변동 가능성을 염두에 둘 때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11월] 미·일 vs 중·러, 냉전적 언어로 포장돼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신(新)밀월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정치·경제·군사협력 방안을 쏟아낸 데 이어 2차대전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장에서도 서로를 치켜세우기 바빴다. 미국과 일본 간 신동맹에 대응해 중·러가 신냉전 구도를 구축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무성하다. 특히 공동성명이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부정적 입장을 보인 것에 대해 그런 시각은 더욱 힘을 얻는 분위기다.

 

물론 중·러가 접근하는 데는 미국과 일본의 결속 강화가 촉매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 등 서방의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로서는 새로운 탈출구도 절실했을 것이다. 중국 역시 남·동중국해 영토분쟁이라든지 아시아에서의 주도권 강화 등과 관련해 어떻게든 미·일의 견제를 돌파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양국 간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중·러가 아무리 가까워진다고 한들 세계적 경제협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중국이든 러시아든 자국 경제가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 세계경제의 진면목이다. 적절한 정치 긴장과 더불어 세계적 경제협력도 공존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우리는 중·러 양국이 쏟아낸 각종 경제협력 방안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수백조원에 이르는 천연가스 공급 계약, 21조원 규모의 모스크바~카잔 고속철도 건설, 금융분야 협력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러시아가 ‘유라시아경제연합(EEU)’ 간 협력방안을 내놓은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렇게 되면 중·러 양국이 구상하는 지역경제공동체는 더욱 확장된다. 냉전구도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경제협력이다.

 

더구나 이런 경제협력은 냉전이 아니라 평화가 전제될 때 성과가 극대화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중·러 밀월은 철저하게 국익을 우선한 각자의 ‘실리외교’ 결과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냉전의 언어로 포장돼 있지만 경제협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1월] 급증하는 노인 범죄에 담긴 암울한 미래

 

노인 범죄가 유독 늘어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이 저지른 범죄가 2011년 6만8,836건에서 2013년에는 7만7,260건으로 늘어났다. 급속한 고령화로 범죄도 늘었다고 볼 수 있겠으나 통계를 보다 자세히 보면 그게 아니다. 최근 2년 사이 노인 범죄 증가율은 12. 6%로 같은 기간의 노인 인구 증가율 9.6%를 앞선다. 다른 연령층에서 범죄가 줄거나 정체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범죄 증가분의 거의 전부가 노인 계층에서 일어난 셈이다.

 

내용은 더 나쁘다. 노인 계층이 저지른 살인과 강도·강간·강제추행·방화 같은 강력범죄의 증가율이 무려 40%에 이른다. 이 중에서도 강간과 강제추행 증가율이 가장 가파르다. 노인 범죄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노인 계층 자신에게 있다. 나이가 들어도 건강 수준의 향상으로 신체연령은 아직도 젊은 노인들이 '욱'하고 저지르는 우발성 범죄는 개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다. 노인 계층이 과거와 같은 존경은커녕 무시당하는 데는 예전의 노인들이 지녔던 지혜와 아량을 갖추지 못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증가하는 노인 범죄는 사회적으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안이다. 두 가지 차원에서다. 첫째, 노인의 미래는 단순히 특정 인구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노인 인구와 범죄가 증가하면 노년층은 더욱 한계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둘째, 가장 힘없는 사회적 약자가 누구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서 노인 빈곤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빈곤과 질병·소외에 시달리는 노인 계층을 그대로 놓아둔다면 한국 사회는 더 팍팍하고 암울해질 것이다.

 

노인 범죄 감소를 위한 처방은 일자리에 있다. 노년의 지혜와 경험은 사회적 자산이다. 빈곤층의 공공근로 취업을 확대하고 여유로운 노년층에게는 보수가 적거나 무급이라도 봉사를 통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안의 추진이 시급하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11월] 제2 롯데월드… '안전 대한민국' 간판 역할 다해야

 

제2롯데월드 수족관과 영화관이 서울시의 사용제한 해제 조치로 폐장 5개월여 만인 12일 재개장한다. 또 공연장 공사중단 조치도 해제돼 롯데 측은 공사를 속개해 내년 말 완공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제2롯데월드에서 수족관 누수, 영화관 진동, 공연장의 공사 인부 추락 사망 등 안전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지난해 12월16일 수족관과 영화관 전체에 대해서는 사용제한, 공연장 공사는 중단 명령을 내렸다.

 

지난 2013년 10월 개장한 제2롯데월드는 개장 후 안전사고가 빈발함에 따라 대형사고 발생에 대한 일반 시민의 우려가 컸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울시가 이번 사용제한 해제 결정에 앞서 롯데 측이 제공한 3곳에 대한 정밀안전 진단서는 물론 안전관리 시민자문단 등 전문가회의, 현장 점검과 국민안전처와의 협의를 거치는 등 신중에 신중을 기한 까닭이다. 세월호 사고 등으로 국민의 안전 경각심이 어느 때보다 크다는 점에서 보면 당연한 조치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제2롯데월드는 서울의 랜드마크나 다름없다.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른다는 의미다. 서울시는 수족관과 영화관의 구조적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사용중단 조치 전까지만 해도 하루 10만명씩 찾던 곳임을 감안하면 재개장 후에도 이런저런 안전사고가 일어날 소지가 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먼저 알리고 철저히 고쳐나가는 관행이야말로 시민에게는 훨씬 큰 안정감과 신뢰를 부여해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롯데 측도 안전사고는 한번 발생하면 예방 노력과 비용보다 몇 십배 이상의 피해를 초래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적 피해보다 신뢰 추락이 더 무서운 법이다. 제2롯데월드 측은 이번 기회에 스스로가 서울의 랜드마크를 넘어 '안전 대한민국'의 간판 역할까지 맡았다고 여기기를 바란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싱크탱크 시각/박순빈(연구조정실장 겸 논설위원)-20150511월] 미래세대를 걱정하는 위선자들

 

아이 키우는 집에선 부모들이 굶어도 배가 부를 수가 있다. 아이들 밥 먹는 모습을 볼 때이다. 예로부터 자식 입에 밥 넘어가는 게 가장 보기 좋다고 했다. 커가는 아이들보고 ‘부모 등골 휘게 할 식충이’로 여긴다면 비정상이다. 거꾸로 늙어가는 부모더러 자식 등골 빼먹겠다고 생각한다면 정상일까?

 

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짖는 박근혜 정부가 자꾸만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어렵게 하고 있다. 여야 합의로 마련된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국민연금 강화 방안이 청와대와 정부의 반발에 부닥쳐 표류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급여율(명목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상향 조정하는 안이 논란의 불씨다. 소득대체율 인상에 반대하는 쪽의 주장은 한결같다. 지금의 국민연금 가입자가 받는 혜택을 늘리는 대가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손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떠넘긴다는 것이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잘못된 사실이나 편견에 기초한 괴담과 궤변이 난무한다는 게 문제다. 세대간 갈등과 적대감을 부추기는 목소리도 국민연금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요소이다. 국민연금은 궁극적으로 미래세대의 노인 부양 부담을 완충해주는 장치이다. 이런 장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커지면 미래세대에게도 결국 재앙이 된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키우는 단골 논리는 ‘기금(적립금) 고갈론’이다. 그런데 국민연금 관리·운영의 최고책임자의 입에서 최근 기금 고갈론이 나왔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연금 고갈 시점에 빚을 후대로 넘기는 것은 ‘세대간 도적질’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누군지 모를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 교묘하게 자기 주장을 했다.

 

정부 추계에 따르더라도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은 언젠가 다가올 수밖에 없다. 기금은 정부가 한시적으로 관리하는 책임준비금일 뿐이다. 기금 운용수익률의 제고 등으로 고갈 시점을 설사 몇년 뒤로 미루더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미봉책이다. 그렇다면 기금 고갈 뒤 국민연금 지급이 중단되거나, ‘미래세대에 대한 도적질’로만 국민연금 제도를 겨우 유지해야 하나? 문형표 장관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국 민연금은 국민 누구나 겪게 될 노령화라는 위험을 국가가 해결해주는 제도이다. 현행 국민연금법은 1조에서 ‘국민의 노령, 장애 또는 사망에 대해 연금 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밝힌다. 또한 연금급여의 안정적 지급을 넓은 의미의 국가 책무(3조의 2)로 정했고, 제도 자체의 관리 및 운영에 필요한 비용의 국고 부담(87조)도 명시하고 있다. 요컨대 가입자에 대한 연금 지급의 책임은 국가 몫이라는 것이다.

 

국민연금 재정의 불안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문제의 원인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급격한 인구구조의 변화를 절대 조건으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적극 대응해야 한다. 복지 수준을 높여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질 높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보다 많은 가입자가 보다 높은 등급의 보험료를 낼 수 있게 된다.

 

국민연금 재정의 안정은 연금제도의 수단일 뿐이다. 최종 목적은 든든한 연금제도를 통한 국민 노후소득의 보장이다. 늙거나 병들어 스스로 먹고살기 힘들면 기본적인 생계를 국가가 보장해주는 제도는, 지금 우리 세대가 미래세대에게 반드시 물려줘야 할 유산이다. 국민연금의 재정 불안을 내세워 미래세대의 부담을 짐짓 걱정하며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위선자들이야말로 미래세대의 적이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국민에게 세금을 거두는 것을 ‘도적질’이라고 하지 않는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주철환(아주대 교수 문화콘텐츠학)-20150511월] 모래시계

 

A time to be born, a time to die(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A time to plant, a time to reap(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 기타 치며 팝송깨나 부른 예전 교회 오빠라면 입에서 술술 나올 것이다. 미국 록그룹 버즈(The Byrds)의 ‘돌고 돌고 돌고(Turn! Turn! Turn!)’에 나오는 가사다. 1965년 빌보드차트에서 3주간 1위를 했다. 50년 전 일이다.

 

  노래는 진실을 넘어 진리로 시작한다. “모든 건 때가 있다(To everything. There is a season).” 작사가는 놀랍게도 지혜의 왕 솔로몬이다. 전도서 3장 1절부터 8절까지를 거의 그대로 옮겨놓았다.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쓴 반성문이자 권고문이다.

 

  지금 오빠들은 원조 ‘버즈’를 모른다. ‘가시’ ‘겁쟁이’ ‘남자라면’을 부른 또 다른 버즈(Buzz)를 알 뿐이다. 그들은 무거운 진실보다 사소한 현실에 더 관심이 많다. “뜬금없이 설레게 했던 말/ 라면 먹고 갈래”(‘남자라면’ 중에서). 신문 안 읽는 오빠들은 라면 받침대로 신문지를 활용한다. 신문 좀 읽으라고 잔소리하면 ‘딴 거 읽을 게 너무 많다’며 꽁무니를 뺀다.

 

 나이 든 자들은 신문을 펼친다. 온통 모래시계 검사 이야기다. 젊은이들은 그가 왜 모래시계 검사인지에 대해 묻지도 않는다. ‘모래시계’가 드라마였다는 사실에도 관심이 없다. 확실히 모든 건 때가 있다.

 

  모래시계 검사를 만난 적은 없다. 그 대신 모래시계 PD는 자주 보았다. 같은 방송사 선배였다. 20년 전 대한민국은 ‘모래시계’로 들썩거렸다. 지금의 ‘삼시세끼’에 비할 바 아니었다(나영석PD에겐 미안). 모래시계의 김종학 PD는 시대의 영웅이었다. 그를 추억하는 책에 나는 이렇게 썼다. “겁을 주진 않았지만 그 앞에 서면 겁을 먹었다. 그의 탑은 높았고 장엄했다. 그의 모래시계는 모래성을 쌓은 자들을 반성하게 했다. 금기를 깨고 드라마의 역사를 바꾼 사람. 분명한 건 하나. 그는 드라마를 만들었고, 스스로 드라마가 되었다.” 불과 20년 전 일인데 아이들은 자랐고 불세출의 PD는 몇 해 전 허름한 고시텔에서 쓸쓸히 생을 접었다.

 

  모래시계 검사는 페이스북에 결국 진실은 밝혀질 거라 적었다. 그러면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수사’를 요구했다. 진실은 하나일 텐데 실체적 진실은 또 무엇인지 궁금하다. 다시 돌고 돌아서 가자. 전인권의 한국판 ‘돌고 돌고 돌고’는 이렇게 끝난다. “어두운 곳 밝은 곳도 앞서다가 뒤서다가 다시 돌고 돌고 돌고”.

 

 

[경향신문 칼럼-여적/김민아(논설위원)-20150511월] 샤이 토리(Shy Tory)

 

2010년 6·2 지방선거는 한국 여론조사 업계의 ‘대참사’였다. 선거 전 마지막으로 공표된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한나라당)가 한명숙 후보(민주당)를 최고 17%포인트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불과 0.6%포인트 차이였다. 인천시장 선거에서는 송영길 후보(민주당)가 여론조사 열세를 뒤엎으며 8.3%포인트 차로 이겼다. 천안함 사건의 여파로 침묵하던 ‘숨은 야당 표’가 많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 7일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일명 토리)이 단독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압승을 거뒀다. 5년 만의 정권교체를 벼르던 노동당은 오히려 20여석을 잃으며 분루를 삼켰다. 선거 전 여론조사 업체들은 보수당과 노동당이 초박빙 접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했으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노동당의 표밭인 스코틀랜드에서 스코틀랜드독립당(SNP)이 돌풍을 일으킨 데다 선거 막판 보수당 지지층이 결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국에선 이런 ‘숨은 보수 표’를 일컬어 ‘샤이 토리(Shy Tory·수줍은 보수당 지지자들)’라고 부른다. 1992년 총선 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이 노동당에 1% 뒤졌으나 실제 투표 결과 보수당이 7.6% 승리한 데서 비롯한 용어다. 당시 보수당 지지자들이 여론조사에 소극적으로 응하는 바람에 이 같은 결과가 빚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후 영국 여론조사 업계에선 이 같은 요소를 반영해 조사 결과를 보정하는 방안을 강구해왔다. 샤이 토리는 1997~2010년 노동당 집권기엔 큰 변수가 되지 않았으나 이번 총선에서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영국 여론조사 업체 유거브의 피터 켈너 대표는 일간 텔레그래프에 “예상이 틀린 것은 사람들이 말한 바와 다르게 투표했기 때문”이라며 유권자 탓을 했다고 한다.

 

물론 ‘숨은 표’에 대한 반론도 있다. 한국의 경우 공직선거법상 선거일 6일 전부터 선거일 투표 마감시각까지 실시한 여론조사는 공표가 금지된다. 막판 표심에 급격한 변동이 있다 해도 대중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그동안 ‘숨은 표’라고 지칭해온 표가 사실은 ‘변한 표’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여론조사 기법의 보완은 절실하지만 공표금지 규제 개선도 검토할 만한 과제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문소영(논설위원)-20150411월] 임을 위한 행진곡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공개된 노래극 ‘넋풀이’의 삽입곡이다. 이 노래극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중 전남도청을 점거하다 계엄군에게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9년 노동 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 사망한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에 헌정됐다. 당시 전남대 학생이던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이 곡을 쓰고 소설가 황석영씨가 가사를 썼는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쓴 장편시 ‘묏비나리’ 일부를 빌렸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반복)”라는 가사가 평이하다. 그 때문에 100년쯤 뒤 이 노래를 ‘386세대의 반정부 투쟁가였다’고 한다면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1894~95년 동학 농민혁명을 주동한 전봉준과 동학 농민들이 공주 우금치에서 조선의 관군과 일본군의 합동작전으로 거의 전멸하자 그 패배를 슬퍼한 백성이 널리 불렸다는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와 ‘임을 위한 행진곡’은 평이함에서 닮았다. 고종에게 반부패 개혁과 외세 배격을 요청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떼죽음을 당한 동학 농민들을 애도할 만한 과격함이 없다. ‘새야 새야’보다 100여년 전인 1792년 프랑스 공병장교 루제 드 릴이 쓴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 가사의 호전성과 선동성이 비교될 정도다. 가사 1절에는 “시민들이여, 무기를 들고, 전투 대열을 구성하라/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라/불순분자들의 피로 길고랑을 물들여라”는 구절이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가 또 논란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97년 정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후 정부 주관 첫 기념식이 열린 2003년부터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까지 기념식 본행사에서 기념곡으로 제창됐다. 관행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2009년 국가보훈처가 공식 행사에서 이 노래를 빼고 공식 기념곡을 공모하겠다거나, 2010년에는 기념식 식순에서 이 노래를 빼고 그 자리에 경기도 민요 ‘방아타령’을 넣어 물의를 빚었다. 올해도 공식 기념곡 지정 등을 요구했지만 무산되자 5·18 유족회와 광주시민단체 등이 기념식에 불참하기로 해 반쪽짜리 관변 행사처럼 쪼그라들 것 같다.

 

노래 한 곡에 목숨 걸 일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같은 논리로 본행사에서 기념곡으로 제창하던 노래를 유가족들이 원하는데 목숨 걸고 못 부르게 할 이유도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를 열망했던 시민과 젊은이들의 노래다. 그러니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도시, 광주의 시민에게 이번 5·18에는 꼭 돌려주길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 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511월] 침묵하는 다수

 

최근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여야는 투표 전날까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야권 성향의 선거구가 많은 데다 온갖 악재까지 겹친 상황이어서 여당의 속은 더 새까매졌다. 그러나 결과는 여당의 압승이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그랬다. 여론조사 업체들은 이럴 때마다 예측 실패 원인을 ‘침묵하는 다수’에게 돌린다.

 

‘침묵하는 다수’는 독재정권 때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표현의 자유가 넘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장 흔한 분석은 독일 언론학자 노엘레 노이만이 얘기한 ‘침묵의 나선’ 이론이다. 자신의 견해가 우세 여론과 일치하면 적극 표출하고, 그렇지 않으면 침묵하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여론은 소용돌이처럼 한 방향으로 쏠린다.

 

이는 ‘밴드왜건 효과’와 비슷하다. 서커스행렬 맨 앞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악대차(車)가 편승효과를 부추기면 대세를 거스르기 어렵다. ‘브래들리 효과’도 있다. 198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흑인 후보 톰 브래들리가 백인 후보를 이기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결과는 반대였던 데서 나온 말이다. 유권자들이 인종편견을 감추기 위해 흑인을 지지한다고 거짓 응답했던 것이다. 미국 경영학자 제리 하비는 애벌린에서 외식을 하자는 가족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해 폭염 속에서 고생한 일화를 빌려 이를 ‘애벌린 패러독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침묵의 나선’ 이론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도 적용된다는 조사 결과가 미국에서 나왔다. 목소리 큰 게 전체 여론인 양 둔갑하는 건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게 한국식 눈치보기나 냄비근성과 맞물리면 걷잡을 수 없다. 왜곡된 쏠림은 일그러진 ‘SNS 여론’을 낳는다. 통상 진보가 주류 담론인 시기에는 보수가 침묵하고, 보수가 주류 담론일 때는 진보가 침묵한다. ‘여론’이라는 말을 처음 쓴 루소가 지적했듯이 이는 ‘양식 있는 시민의 판단’보다 ‘모종의 분위기상 압력’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엊그제 끝난 영국 총선에서도 그랬다. 여론조사 결과 선거 직전까지도 어느 당이든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는 ‘헝(hung) 의회’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보수당의 압승이었다. 승리의 비결은 무상교육 같은 인기영합정책이 아니라 기업을 통한 성장정책이었다. 5년을 이어온 긴축정책을 3년 더 유지하겠다며 국민의 이해를 구한 게 핵심이었다. 이처럼 확고한 가치를 분명히 제시하는 정당에 말없는 지지로 답하는 게 곧 ‘침묵하는 다수’의 힘이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한기석(논설위원)-20150511월] 석유 지정학

 

19세기가 석탄의 시대라면 20세기는 석유의 시대다. 영국은 일찍부터 석유의 중요성을 알았다. 외교 전략도 이에 맞춰 나갔다. 19세기 말 급속도로 성장한 독일은 중동에 석유자원이 풍부한 것을 알고 베를린과 바그다드를 잇는 철도 건설을 추진했다. 영국이 장악하고 있던 바다를 거치지 않고 육지를 통해 석유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위협을 느낀 영국은 1914년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국가 간 충돌이지만 더 구체적으로는 석유 패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석유 통제권을 넘겨받은 가운데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침공해 욤 키푸르 전쟁을 일으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이스라엘이 아랍 땅에서 철수할 때까지 매달 석유 생산을 감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1차 석유 파동으로 유가는 급등했고 석유 에너지에 의존해온 세계 경제가 뿌리째 흔들렸다. 경제학자인 윌리엄 엥달이 전하는 1차 석유 파동의 진실은 다르다. 욤 키푸르 전쟁은 미국과 영국이 기획한 것으로 미국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가 이스라엘과 아랍을 이간질해 일으켰다. 미국과 영국은 당시 북해 유전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유가 급등으로 이 투자는 막대한 이익을 남기며 석유 생산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2003년 미국은 이라크전쟁을 일으켰지만 정작 명분으로 내세운 대량살상무기는 이라크에 없었다. 당시 이라크에는 프랑스가 석유 채굴권을 확보하고 있었고 러시아와 중국은 이라크와 유전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은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다. 조지 W 부시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사담 후세인을 제거한 감춰진 이유다.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기던 유가가 40달러 선까지 내려가더니 어느새 다시 60달러 선까지 올라왔다.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움직임이다. 석유 패권 싸움의 결과는 대개 유가로 나타난다. 석유 지정학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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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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