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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그린벨트 개선안

■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 무산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그린벨트 개선안

 

[한국일보 사설-20150508금] 그린벨트 해제권한 지자체 이양은 신중해야

 

정부는 그제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30만㎡이하 그린벨트 해제권한을 지자체에 넘기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발제한구역 규제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그린벨트에 지역 특산물 판매나 체험 시설이 들어설 수 있고, 마을 공동사업으로 짓는 숙박, 음식, 체험 시설도 2,000㎡ 이내에서 허용한다는 것이 골자다. 1971년 국토의 무분별한 개발을 규제하기 위해 설정한 그린벨트를 과거 정권이 일부 해제한 적은 있지만, 제도 자체에 손을 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가 45년간 근간을 유지하던 그린벨트 정책을 완화한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도시과밀화 방지, 자연환경 보전 등을 이유로 그린벨트를 지정하면서 이미 개발된 시가지나 집단취락지역마저 함께 묶여 적잖은 주민 민원이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그린벨트 관리에 융통성을 부여, 주민 불편을 해소하는 쪽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정부의 설명은 큰 틀에서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넘기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할 수 없다. 선거로 당선되는 지자체장은 당장의 표심을 얻기 위해 선심성 개발공약을 남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30만㎡는 산업단지보다는 아파트 단지 개발에 적합한 면적이어서 난개발을 부추길 소지도 다분하다. 벌써부터 투기꾼이나 이해 당사자들이 선거에서 뇌물 등으로 뒤를 봐주는 대가로 그린벨트 해제를 요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또 다른 비리의 악순환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괜한 게 아니다. 수도권에 특혜를 주기 위한 의도라며 볼멘 소리를 내는 지자체도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제도를 보완하거나 견제할 정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정부는 개발제한구역 해제 후 2년 내 개발사업을 착공하지 못하면 다시 그린벨트로 환원하고, 훼손지를 녹지로 복원하고 정비하는 공공기여형 훼손지정비제도를 2017년까지 한시적으로 도입해 무분별한 해제를 막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과거의 선례를 요구하는 민원이 커지면 정책의 일관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실제로 과거 용인을 비롯한 수도권 난개발이 문제돼 일선 지자체에 맡겼던 인허가 위임사무를 환수하는 과정에서 크게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다. 한번 내준 권한을 되가져오기란 쉽지 않다는 말이다. 확실한 견제 장치 없이는 자칫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 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08금] 막개발과 땅투기 우려되는 ‘그린벨트 개선안’

 

정부가 6일 내놓은 ‘그린벨트 개선안’은 막개발과 땅투기만 조장할 여지가 커 염려스럽다. 미래세대에 짐을 떠넘길 수 없다며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에 이른 공적연금 강화 방안마저 반대하던 정부가 미래세대 몫인 국토 자원을 마구 파헤치려 드는 꼴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3차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이르면 올해 말부터 30만㎡ 이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의 해제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위임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개발제한구역 규제 개선방안’을 보고했다. 앞으로는 지역특산물 판매 및 체험시설을 그린벨트 안에 지을 수 있고, 마을 공동사업의 경우엔 2000㎡ 범위 안에서 숙박·음식·체험 시설을 설치할 수도 있다.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지자체장에게 넘기는 것은 1971년 도입된 그린벨트 제도의 근간을 허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출직인 지자체장이 지역주민의 재산권 침해를 막는다며 무분별한 개발에 나설 경우 이를 막을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환경보전 가치가 낮은 지역(그린벨트 환경등급 3~5등급)으로 제한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1~2등급은 대부분 산 정상부 지역으로 애초부터 개발이 힘든 곳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5년 이상 거주’ 조건을 없애고 거주기간과 상관없이 주택 등 시설을 증축할 수 있게 한 탓에, 그린벨트 해제 혜택이 대부분 외지인에게 돌아갈 가능성도 높다. 이명박 정부가 보금자리주택 건설을 위해 수도권 지역의 그린벨트를 대거 해제한 뒤 경기 하남 등 일부 지역에서 땅투기를 부채질한 전례도 잊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규제완화 행태는 이번에도 되풀이됐다. 지난해 두 차례 열린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암 덩어리”, “단두대에 보내야 한다” 따위의 거친 표현을 써가며 각종 규제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이래 계속돼온 규제완화 조처가 정작 우리 경제에 얼마나 보탬이 됐는지는 의문이다. 정부 스스로도 근거를 내놓지 못한다. 이벤트 하듯 한꺼번에 쏟아내는 규제 빗장 풀기 처방이 가져올 부작용은 없는지 꼼꼼하게 헤아리지 않는 한 우리 경제에 숨통을 틔워주지도 못할뿐더러 진정성마저 의심을 사기 쉽다.

 

 

[경향신문 사설-20150508금] 그린벨트 해제 권한 시·도지사 이양 재고하라

 

정부가 그제 발표한 개발제한구역 규제 개선 방안에 대해 전문가와 환경단체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반세기 만의 그린벨트 정책 전환이라는 정부의 표현대로 큰 변화를 수반할 수 있는 내용으로서 제도의 근간을 흔들 우려가 있다고 해서다. 30만㎡ 이하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이양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렇게 되면 지자체의 개발 욕구로 인해 난개발이 가속화될 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게 환경단체 등이 우려하는 바다. 정부와 정치권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라고 본다.

 

그린벨트는 1971년 박정희 정부가 도시 과밀화 방지와 자연환경 보전 등을 위해 도입한 제도로서 도시 관리 측면에서 세계적 모범사례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동안 개발 압박과 민원 등에 의해 일부 해제되긴 했으나 큰 틀이 유지돼온 것은 중앙정부에 의한 엄격한 관리 덕분이다. 그런데 선거로 뽑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해제 권한을 준다면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 될 수 있다. 지역 개발과 세수 확보를 명분으로, 또는 선거를 의식한 선심용으로 쉽게 그린벨트를 해제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난개발이나 과개발의 폐해와 부작용에 대해 임기가 끝난 지자체장에게 책임을 묻기도 어렵게 된다.

 

국토교통부는 지금의 해제 총량인 233㎢ 이내로 제한했고, 국토부 등 관계부처와 사전 협의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해제 후 2년 안에 착공하지 않으면 그린벨트로 환원하는 등 충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어 환경 훼손 우려는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중앙도시계획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할 계획이라고도 한다. 이는 결국 중앙정부의 영향권 안에 두겠다는 뜻으로서, 지자체의 무분별한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을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개발 공약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는 지자체장에게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린벨트는 박근혜 대통령도 말했듯이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미래세대가 활용할 토지를 남겨둔다는 보존적 차원”에서 출발한 정책이다. 국가가 관리해야 할 미래 자산이지 현실적인 개발 요구에 민감한 지방정부가 관리할 성격의 자산이 아닌 것이다. 필요한 개발을 하도록 한다든가 주민 생활 불편, 재산권 침해 등을 해소하는 것은 다른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다. 그린벨트 해제권을 시·도지사에게 넘기는 것은 재고하는 게 맞다.

 

 

[서울신문 사설-20150508금] 무분별한 그린벨트 해제는 안 된다

 

정부는 그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열고 30만㎡ 이하 규모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 권한을 국토교통부 장관에서 시·도지사에게 넘기기로 했다. 그린벨트 해제 기간도 2년에서 1년으로 단축된다. 그린벨트 내에 음식·숙박시설도 들어설 수 있게 되는 등 규제가 대폭 완화된다. 1971년 그린벨트가 처음 지정된 이후 44년 만의 획기적인 결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린벨트 내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또 정당한 재산권 행사를 위해 입지규제를 완화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도시의 허파’로 불리는 그린벨트가 그동안 도시가 무분별하게 확대되는 것을 막고, 환경을 보호하면서 도시민의 여가 공간을 확보하는 순기능을 해 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외에서도 우리나라의 그린벨트 정책을 성공 사례로 상당히 높게 평가해 왔다.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넘기게 되면 난개발 등 적잖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번 조치로 그린벨트 규제완화의 혜택은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선출직인 지자체장들은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어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남용할 우려가 크다. 현실적으로 그린벨트 해제를 요구하는 지역 주민의 민원과 그린벨트 주변 토지를 사들인 대기업의 요구를 시·도지사가 모른 척하기는 어렵다. 가뜩이나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자체들은 사실 개발사업에 혈안이 돼 있다. 그린벨트 해제를 지역 개발과 세수 확보의 돌파구로 삼을 가능성도 높다. 이렇게 되면 땅값 상승과 투기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게 되고 인근 미해제 지역 녹지까지 훼손될 수 있다. 시·도지사의 임기가 끝난 뒤 난개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지자체장의 인기영합적 개발로 인한 심각한 국토 훼손을 막으려면 시·도지사의 재량권 남용을 확실하게 막아야 한다. 정부는 그린벨트 해제 후 2년 안에 개발 사업을 착공하지 못하면 그린벨트로 다시 환원하고 보존 가치가 높은 환경평가등급 1~2등급지는 해제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난개발을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보완 장치가 마련되기 전에는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지자체장에게 섣불리 넘겨서는 안 된다. 포퓰리즘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상당수 시장과 도지사를 볼 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08금] 그린벨트 해제, 지역 토호세력 이권 안되게 해야

 

국토교통부가 내년부터 30만㎡ 이하 중소 규모의 그린벨트에 대해서는 해당 광역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해제할 수 있게 권한을 넘겨주겠다고 발표했다. 환경보전 필요성이 적은 그린벨트는 해당 시·도지사들이 자체적으로 풀어 아파트단지, 산업단지 등으로 개발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통상 2년씩 걸리는 그린벨트 해제기간도 절차를 간소화해 1년 정도로 단축하겠다고 한다.

 

잘하는 일이다. 여건이 크게 달라진 만큼 그린벨트 규제 패러다임도 전면적인 개발 억제에서 선별적인 재정비로 바꿀 필요가 있다. 특히 서울과 인접한 하남, 과천, 의왕, 고양, 남양주, 광명 등은 교통 여건이 좋아 주택 수요가 많지만, 전체 행정구역의 70~90%가 그린벨트에 묶여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민 재산권 행사에 큰 제약을 받아왔던 터다.

 

그린벨트 규제를 1971년 도입한 이후 대전환하는 만큼 부작용도 우려된다. 당장 걱정은 무분별한 난개발이다. 마침 부동산시장이 조금씩 풀리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국토부의 2015년 공시지가 조사 결과 지난해 전국 땅값은 4.14% 올라 7년 만의 최고 상승률이었다. 지방 시·군은 6.03%, 혁신도시는 무려 29.3% 상승했다. 투기세력이 뛰어들 개연성이 높다. 지자체마다 재정이 부족한 처지이고 보면, 일단 그린벨트를 풀어 아파트를 짓고 보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내년 4월엔 20대 총선이 예정돼 있다. 개발 공약들이 남발될 게 뻔하다. 지역에 연고를 둔 우리 정치의 특성상 해당지역 토호세력과 결탁해 그린벨트를 이권화하는 시도도 충분히 예상된다. 지자체의 부패 구조가 더욱 고착화될 수 있다.

 

국토부는 난개발을 막기 위해 여러 장치를 마련했다고 한다. 유일호 장관은 난개발 우려가 있을 땐 직권으로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치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지자체의 권한 행사를 관련부처들이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감사원도 나서야 할 것이다. 물론 문제가 드러났을 땐 일벌백계로 단호하게 엄벌해야 한다.

 

 

■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 무산

 

[한국일보 사설-20150508금] 공무원연금 재합의하고, 국민연금 논의도 살려라

 

공무원연금 주도한 靑은 여야 탓만

여야 원내대표 잠정합의안 살려야

국민연금 공론화 기회 놓쳐선 안 돼

 

여야 수뇌부가 합의 도장까지 찍은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가 결국 무산됐다. 청와대와 정부의 무능, 여야 정치권의 정치력 부재, 여권 내부의 계파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런 미숙한 협상 능력으로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숱한 난제를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연금개혁 무산의 일차적인 책임은 국정을 맡은 여권에 있다. 청와대는 어제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해 난항을 거듭하다 결국 국민 약속을 지키지 못해 유감”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마치 청와대는 아무 책임이 없다는 식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청와대가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로 설정하고 협상의 큰 흐름을 파악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막판에 협상 내용을 비판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청와대가 ‘선(先) 공무원연금 개혁 후(後) 국민연금 개혁’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도 현 시점에서 제대로 된 해법이 될 수 없다. 여야와 노동계, 전문가 등이 참여해 대타협을 일궈낸 것을 되돌리자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나마 어렵사리 도출한 공무원연금 개혁마저 포기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연금 강화는 당초 정부와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연계를 추진하다 포기하면서 대안으로 제시된 방안이다. 국민연금의 노후소득 보장 기능과 사각지대 해소는 언제가 맞닥뜨려야 할 사회적 과제란 점에서 여야의 견해가 일치한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상향을 둘러싼 논란이다. 공무원연금 실무기구 합의문에는 이 부분을 명시했지만 여야 대표가 작성한 합의문에는 구체적인 수치를 명시하지 않으면서 논란이 빚어졌다. 그제 본회의를 앞두고 여야 원내대표는 국민연금 개혁을 논의할 사회적 기구의 규칙이 아닌 부칙에 별첨하는 방식의 잠정합의안을 도출해냈다. 법적인 효력이 아닌 참고사항 정도로 하자는 취지의 이 방안은 여야 모두 명분도 실리도 얻을 수 있는 안이었다. 하지만 이 안은 새누리당 상당수 의원들의 찬성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를 의식한 일부 친박계 의원이 반대의견을 펴면서 거부됐다.

 

청와대와 정부는 소득대체율 상향 조정이 국민 부담을 늘린다는 점에서 섣불리 건드리고 싶지 않아한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릴 경우 보험료가 2배 오른다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하지만 소득대체율을 올리지 않아도 현재의 보험료율 9%를 유지하는 한 2060년이 되면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는 사실은 숨겼다. 소득대체율과 상관없이 국민연금 제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결국 현재의 국민연금 문제는 소득대체율이 아니라 사회보험으로서의 제 역할을 하기 위한 제도 개선으로 귀결된다. 상당수 복지ㆍ연금분야 전문가들이 이번 기회에 국민연금 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야는 다행히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를 위해 내주 임시국회를 소집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국민연금 부분에 대한 합의를 이뤄야 한다. 야당도 꼭 50%라는 수치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청와대는 국민연금 제도개혁을 정치권이 대신 해준다는 점을 인식하고 개입을 자제하기 바란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08금] 집권세력의 무책임한 ‘사회적 대타협’ 파기

 

여야 정당과 공무원단체 등이 진통 끝에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국회 처리가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거부됨으로써 결국 무산됐다. 여야 지도부는 5월 임시국회에선 꼭 처리하겠다고 말하지만, 여야 갈등에 집권세력의 내분까지 겹친 터라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렵사리 이룬 대타협을 무산시킨 현 집권세력에게 과연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능력과 책임감을 기대할 수 있을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정부여당이 먼저 약속을 깨기 시작하면 앞으로 어느 누가 노동, 복지, 재정 등의 현안에서 사회적 타협에 나서려 하겠는가.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4월 임시국회 처리가 무산된 데엔 당-청 갈등과 친박 의원들의 반발이 결정적이었다. 새누리당 친박 의원들이 의원총회에서 문제삼은 건, 야당 요구로 들어간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이라는 조항이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 이유일 뿐, 실제로는 합의안 내용이 애초 청와대 안보다 미흡하다는 게 핵심이었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도 여야 합의안을 밀어붙일 용기와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스스로 주저앉아 버렸다.

물 론 보는 시각에 따라 공무원연금 합의안의 내용이 흡족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연금개혁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고 정답을 찾기 쉽지 않은 사안에선 ‘타협과 동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와 정치권, 이해당사자들이 조금씩 양보해서 타협을 이뤄내는 게, 성과 없이 극한 대결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 이번 합의안은 어쨌든 공무원들이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연금개혁을 해서 정부재정을 절감할 수 있게 했으니 전체적으론 중요한 진전을 이룬 게 분명하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그런 판단을 했기에 합의문에 서명하고 국회 처리를 국민 앞에 약속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청와대가 끼어들고 친박 의원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한 건 매우 부적절할 뿐 아니라 삼권분립 원칙에도 어긋난다. 청와대가 노조 등 이해당사자와 국민을 설득할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대통령은 핵심 당사자들을 단 한번도 직접 만나지 않으면서 여야가 긴 시간 동안 노조 등과 협의해 마련한 합의안을 미흡하다며 발로 차버리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 이런 식이라면 현 정권 아래선 앞으로 중요한 사회현안의 해결 또는 진전을 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야는 이미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하루빨리 처리하는 게 옳다. 이를 위해선 새누리당이 청와대 입김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유연성을 발휘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이란 방향은 옳다 하더라도, 개혁안 처리를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50%’라는 수치를 고수하는 게 타당한지 열린 마음으로 당 안팎의 의견을 수렴하길 바란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국회 처리를 통해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 연금 개혁을 위한 공론화의 장을 여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중앙일보 사설-20150508금] 낯 뜨거운 당·청 간 공무원연금 네 탓 공방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된 데는 야당 못지않게 집권당과 청와대의 책임도 크다. 당·청이 손발을 맞춰가며 야당과 노조를 설득하 기는커녕 국회 처리가 무산된 책임을 놓고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대한민국 집권세력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자괴감마저 들 정도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그제 밤 “청와대도 협상안을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이제 와서 협상안에 불만을 보이느냐”며 반발했다. 당초 협상 대상이 아니었던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상향 조정한다는 부분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며 제동을 건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협상 과정에서 청와대 수석도 참석했었는데 청와대가 왜 이러는지 나중에 따져보겠다”고도 했다. 당 일각에선 “당·청 간 조율 과정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진상 조사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청와대도 격앙돼 있다. 어제 김성우 홍보수석은 “논의 과정에서 청와대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합의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1일 새누리당 지도부와 논의한 합의안 초안과 2일 실제 발표된 합의안은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밤 사이 연락도 없이 ‘국민연금 50%’에 합의하고 우리 실무자에게 보여주지도 않았다”고 항변했다. 당·청 간 진실게임 양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청 간 엇박자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라지만 이쯤 되면 정상적인 당·청 관계라고 보긴 어렵다. 서로 한 몸처럼 긴밀히 움직여야 할 집권당과 청와대가 불신과 불통, 낯 뜨거운 책임 떠넘기기 공방을 벌이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당·청 간 소통 시스템에 큰 장애가 생겼거나, 그게 아니면 제각기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이래서야 어떻게 야당과 노조를 설득해 공무원연금 개혁과 노동개혁 등 국정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박 대통령은 어제 “정치권은 당의 유불리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오로지 국민을 위한 개혁의 길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국정의 최종적이고 포괄적인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제3자적 입장에서 남의 일 얘기하듯 해선 곤란하다. 대통령은 평론가가 아니지 않은가.

 

 

[경향신문 사설-20150508금] 여야와 청와대, 대타협 정신으로 돌아가야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가 무산된 책임을 놓고 여야, 청와대가 제 논에 물대기식 공방을 벌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국민연금 강화’를 강제적 규정으로 담으려 한 야당의 몽니 때문이라 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사회적 대타협’을 청와대의 말 한마디에 원점으로 돌린 여당의 무책임을 따진다. 청와대는 또다시 공무원연금 개혁과 국민연금을 연계시킨 여야 합의안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저마다 ‘남 탓’만 해대는 꼴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가 무산된 것은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갈등, 친박 의원들의 반발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친박 의원들은 의원총회에서 ‘국민연금 명목소득 대체율 50%’ 명시를 문제 삼았으나, 속셈은 다른 데 있어 보인다. 청와대의 기대보다 미흡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좌초시키려 한 것이다. 유승민 원내대표조차 청와대가 ‘소득대체율 50%’ 협상을 알았으면서도 뒤늦게 딴지를 걸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치권과 정부 대표, 이해당사자, 전문가들이 어렵사리 마련한 ‘사회적 대타협’을 청와대가 개입하고, 그 조종을 받은 친박 의원들이 파탄시키려 든 것은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처사다.

 

애초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국민연금’에 접근한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두 대표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는 방안을 논의하는 ‘사회적 기구’를 국회에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국민적 동의 절차를 충분히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연금’ 인상의 구체적 수치까지 적시함으로써 논란을 잉태했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참뜻이 공적연금 기반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대의에는 국민도 공감한다. 하지만 국민연금 인상을 위해 소요되는 재원 대책 없이 이를 제시함으로써 ‘보험료 폭탄’ 시비를 자초했다. ‘노후보장’ ‘사각지대 해소’ 같은 명분은 실종되고 국민정서법상 휘발성이 강한 ‘보험료 폭등’ ‘미래 세대에 부담 떠넘기기’ 이슈가 연금정국을 뒤덮게 만들었다. 거기에 휩싸여 공무원연금 개혁안마저 떠밀려간 형국이다.

 

여야는 공히 5월 임시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처리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여야, 청와대가 뒤엉켜 한번 뒤틀어버린 공무원연금 개혁이 다시 탄력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명시를 둘러싼 여야 갈등에, 집권세력의 내분까지 겹친 상황이다. 한발씩 물러나야 한다. 일부 미흡한 점이 있지만 정치권과 이해당사자들이 마련한 ‘대타협’이 무산될 경우, 공무원연금 개혁은 영영 어려워진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일부 문제점을 보완해 5월 국회에서 처리하고, 국민연금은 국회에 설치할 ‘사회적 기구’에서 포괄적으로 논의해 대안을 찾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508금] 이참에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 다시 하라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4월 임시국회 처리가 결국 무산됐다. 여야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그제에도 서로에게 법안 처리 실패의 책임을 떠넘기며 설전을 벌였을 뿐이다. 이런 국회의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국민은 이제 아무도 없다.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넘어 “차라리 잘된 것 아니냐”고 냉소를 보내는 것이 속마음이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랬더니 불과 몇 년 뒤에는 효과가 사라지는 ‘무늬만 개혁안’으로 시늉만 냈다. 그것도 모자라 국민적 합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국민연금까지 대책 없이 건드린 것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되자 책임 전가를 위해 기싸움만 했다.

 

정치권의 논리가 세상의 논리와 다르다는 것은 공무원연금 개혁의 추진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당초 정부가 제시한 핵심 내용은 공무원이 현직에서 내는 돈을 크게 늘리고, 퇴직한 뒤 받는 돈은 크게 줄이자는 것이었다. 2016년 이후 입문하는 공무원은 사실상 공무원연금 수준이 아닌 국민연금 수준으로 연금제도를 유지하자는 내용도 있었다. 현재의 제도를 유지할 경우 공무원 먹여 살리자고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웃지 못할 상황이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야는 공무원이 내는 돈은 조금 늘리고, 받는 돈은 더욱 천천히 조금씩 줄이는 데 합의했으니 개혁이라는 표현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합의안은 나아가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최소 가입 기간을 20년에서 10년으로 줄이고, 월급 300만원 이하 공무원은 오히려 더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랬더니 오히려 더욱 꼼꼼하게 혜택을 주는 법안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 합의안이란 게 공직 사회의 표심(票心)을 거스르지 않으려 공무원연금 개혁을 포기한다는 여야 공동선언서나 다름없다. 무리수에 따른 다수 국민의 불만을 무마하려는 눈속임이 바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의 상향 합의라고 할 수 있다.

 

혼란은 누구의 인심도 잃지 않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치적 합의란 이름으로 개혁을 포기하는 정당을 책임 있는 여당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재원 마련 방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복지 포퓰리즘을 남발하는 제1야당에서도 수권 정당의 자세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부터라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국민을 설득하는 정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지금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처리하기 위한 임시국회 소집이 논의되고 있다. 이번만큼은 정치권의 논리가 아닌 세상의 논리로 마주 앉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08금] 공무원연금, 정부가 개혁안 내고 국회는 심의만 하라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문제를 어디에 어떤 형식으로 규정할 것인지를 두고 여야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서다. 어차피 개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의 ‘찔끔 개혁’이었던 공무원연금 개혁안이다. 게다가 난데없이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을 패키지처럼 끌고 들어간 것도 말이 안 되는 처사였다.

 

그런 점에서 공무원연금 개정안 처리가 무산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다행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음번 임시국회에서 처리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지만 차제에 아예 처음부터 새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마련하는 게 순리라고 본다. 이와 관련, 우선 개혁안을 도출하는 방식부터 완전히 새롭게 바꿔야 한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종전처럼 국회에서 여야 간 합의를 통해 개혁안을 도출하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제대로 된 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이번 일로 자명해졌다.

 

국회가 입법권을 갖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법률안을 다 국회가 만들 필요는 없다. 사실 국회는 전문지식이라는 면에서 많이 부족하다. 게다가 직접 유권자나 이해관계자와 부딪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들에게 포위되고 포퓰리즘에 흔들리게 된다. 입법 사법 행정으로 삼권분립이 돼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공무원연금 개혁안도 그래서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높은 정부가 보다 객관적 시각에서 구체적인 법률 개정안을 내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본다. 국회는 이 정부안을 포괄적으로 심의해 가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입법권을 행사하면 된다. 지금처럼 국회가 북 치고 장구 치는 식으로 거의 무한 독재권력을 휘두른다면 선거로 대통령을 뽑고 정부가 바뀐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더욱이 이번 연금개혁 파동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국회에 맡겨두어서는 제대로 된 개혁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온갖 ‘끼워팔기’와 ‘알박기’가 횡행하고 종국엔 개혁은 실종되고 야합만 남는다.

 

거듭 강조하지만 행정 전문 국가기관인 행정부가 구체안을 만들고 국회가 이를 심의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것이 대의민주주의와 삼권분립 정신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708금] 대한민국 미래 알 바 아니라는 무책임 정치인들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처리하겠다던 4월 국회가 이에 연계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을 명시하는 문제에 걸려 결국 법안 처리에 실패했다. 이 바람에 연말정산 환급금 대책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 등 80여개의 경제·민생 법안이 덩달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회는 5월 임시의회를 열기로 했으나 연금개혁에 관한 한 여야의 입장차가 커 처리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번 사태의 핵심이 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은 우리 정치인들의 편협하고 근시안적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2007년 소득대체율을 40%로 하향하고 연금보험료율을 상향하는 개편을 하고도 국민연금 소진 시점을 2047년에서 2060년으로 겨우 13년 정도 늦춰놓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를 전제로 소득대체율 상향시 보험료율 등 국민 부담 증가는 크지 않다는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물론 이에 섣불리 동조한 새누리당과 국가의 중대한 문제에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정치권을 질타하는 정부·청와대 모두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치권 식대로라면 2060년 이후 국민연금 재정과 나라 살림살이는 '나 몰라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계산대로라면 소득의 9%인 보험료율이 국민연금이 소진된 후에는 소득의 4분의1 수준까지 높아져야 한다. 먼 후일의 일이지만 이런 폭탄성 부담을 아들딸 등 미래세대에 안길 수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한 졸속합의를 비판하는 국민 여론의 핵심이다.

 

공적연금은 진보와 보수의 정치 싸움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다. 공무원연금이나 국민연금의 개악을 저지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결국 그리스로 갈 수밖에 없다. 채무국 그리스는 최대 채권국인 독일보다 연금을 더 많이 지급한다. 이런 걸 보면서도 국회가 이익단체의 압력에 굴복해 자라나는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려 한다. 국가의 미래를 담보로 한 정치권 포퓰리즘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508금] 대규모 적자에도 또 성과급 잔치 벌인 서울시

 

서울시 산하기관들이 엄청난 빚과 적자, 형편없는 기관평가에도 불구하고 임직원들에게는 수천억원대의 성과급을 지급했다고 한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서울시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서울시설관리공단, SH공사 등 5개 기관들의 지난해 기준 부채는 21조5,994억 원으로 전체 17개 산하기관 부채의 98%를 차지했다. 경영평가에서도 서울메트로의 경우 2013년 행정자치부 평가에서 ‘다’ 등급, 서울도시철도는 지난해 꼴찌 등급인 ‘라’ 등급을 받았고 적자도 각각 1,723억 원, 2,658억 원에 달했다. 그런데도 서울메트로 기관장은 260%, 직원들은 140%의 성과급을 받았고, 서울도시철도는 기관장과 직원 모두 100% 이상의 성과급을 받았다. 5개 기관들이 이렇게 지급한 성과급은 최근 3년 간 3,304억 원에 달했다.

 

다른 산하기관들의 실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종문화회관, 서울문화재단은 최근 3년 간 기관평가가 ‘다’ 등급이었는데도 기관장은 A 평가를 받았고, 서울신용보증재단 역시 기관장 평가는 최고등급에 성과급도 최대 수준인 300%를 받았다. 이러면서도 어떻게 지하철ㆍ버스 요금을 인상해 적자를 메우겠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서울시는 다음달부터 지하철과 버스 요금을 각각 200원, 150원씩 올리는 대중교통 요금 조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의 비상식적인 예산, 조직 운영 행태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제 감사원 감사에 따르면 법령의 근거도 없는 기구를 11개나 만들었고, 규정에 없는 팀장급을 신설해 이들에게 개인여비서와 업무추진비, 사무실 등을 특혜 지원했다. 이렇게 해서 임용, 승진된 직원이 141명이었다. 이 과정에서 인사의 투명성을 감시해야 할 인사위원회는 거수기 역할만 했다.

 

온 나라가 예산부족으로 서민 복지까지 줄줄이 없애거나 축소하는 마당에 적자는 나 몰라라 하면서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공무원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하다. 성과급을 받기 전에 빚이나 적자를 줄이기 위해 어떤 자구노력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공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를 숱하게 지적해 왔지만 쇠귀에 경읽기였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문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08금] 홍준표 경선자금부터 대선자금까지 다 밝혀내야

 

홍준표 경남지사가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처음으로 8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다. 검찰 특별수사팀이 발족한 지 거의 한달 만이니 빠른 속도는 아니다. 이제야 의혹 대상자 수사가 본격화한 만큼, 검찰은 더는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검찰은 홍 지사의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고 한다. 홍 지사에게 1억원을 줬다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메모와 숨지기 직전의 전화 인터뷰, 돈을 전달했다는 윤아무개 전 경남기업 부사장의 일관된 진술, 주변 인사들의 증언과 정황 등을 종합하면 증거는 이미 충분하다고 할 만하다. 홍 지사가 검사 시절 말한 대로 물증을 찾기 힘든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선 이 정도면 그리 어렵지도 않은 사건이겠다. 그런데도 홍 지사는 몇 차례나 말을 바꾸고 이런저런 법논리를 들이대며 성 전 회장과 윤씨의 말을 부정했다. 보기에도 딱한 좌충우돌이다.

 

이제는 홍 지사 자신이 윤씨를 회유하는 데 개입한 정황까지 나왔다. 검찰은 홍 지사의 측근인 엄아무개씨가 지난달 중순 윤씨와 통화하면서 “홍 지사의 부탁을 받고 전화했다”며 홍 지사가 아니라 보좌관 나아무개씨한테 돈을 준 것으로 진술하면 안 되겠느냐고 말하는 내용의 통화 녹음 파일을 확보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명백한 증거인멸 시도다. 이를 그냥 둔다면 진실 왜곡을 눈감고 부추기는 게 된다.

 

대가나 꼬리표가 붙지 않은 돈은 없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홍 지사에게 1억원이 전달된 것은 2011년 6월이라고 한다. 홍 지사는 그 직후인 그해 7월4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2012년 총선 공천권을 쥔 당 대표에 당선됐다. 성 전 회장이 경선자금이 급했을 홍 지사에게 돈을 주면서 공천을 기대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돈이 필요했던 것은 홍 지사만은 아닐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에는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도 있고,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선거운동본부에서 핵심 본부장을 맡았던 인사도 3명 있다. 성 전 회장 메모 외에 ‘대선 직전 2억원을 마련해 새누리당 선대위 관계자에게 전달했다’는 경남기업 전직 간부의 진술까지 있다. 의지만 있다면 수사의 단서와 범죄 동기, 대가성은 충분하다. 검찰 수사는 불법 대선자금 의혹까지 멈춤 없이 이어져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508금] 새정치연합에 비노 원내대표가 탄생한 의미

 

7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종걸 의원이 당선됐다. 이 신임 원내대표는 ‘비노’인 데다 4선 경력이 무색하게 안정감이 떨어지고, 지나치게 강경 일변도란 지적을 들어왔다. 원내 수석 부대표 시절 걸핏하면 시간 약속을 어기고 무리한 주장을 펴 협상이 교착되기 일쑤였다. 보다 못한 천정배 당시 원내대표가 다른 의원에게 추가로 같은 자리를 줘 야당 사상 전무후무한 쌍두 원내 수석 부대표 체제가 등장했을 정도였다. 2012년 대선 직전 박근혜 후보를 ‘그년’으로 지칭해 물의를 빚은 이도 그다.

 

  이런 탓에 원내대표 경선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셔 온 그가 3수 만에 당선된 건 문재인 대표 등 친노 주류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심판 성격이 짙다. 야당이 4·29 재·보선에서 참패한 원인은 민심과 불통하고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데 있다. 그러나 문 대표는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대신 엉뚱하게 더 치열하게 투쟁하지 못한 점을 패인으로 돌렸다. 이 원내대표의 당선은 친노의 눈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문 대표를 향해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내리친 준엄한 회초리다.

 

  이 원내대표의 책무는 막중하다. 야당은 그제 포퓰리즘의 극치인 ‘소득대체율 50%’ 명기를 고집한 끝에 공무원연금 개혁을 무산시켰다. 여기에는 여당의 잘못도 크지만 이해 당사자인 공무원노조를 끌어들이고, 무리하게 국민연금까지 손대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긴 야당의 책임이 더 크다. 100만 공무원 표를 얻으려고 5000만 국민을 등진 셈이다. 문 대표의 인식이 운동권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신임 원내대표까지 민생 대신 당리당략을 앞세운다면 새정치연합은 다가올 총·대선에서도 희망을 걸 수 없다.

 

이 원내대표는 국회 운영에서 계파를 초월하는 화합의 리더십을 보여주되, 친노 강경파의 비합리적 주장엔 단호히 맞서야 할 것이다. 이달 중 열릴 원포인트 국회에서 이 원내대표가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꼼수부터 뜯어고쳐 제대로 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내놓을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최근 주요 선거에서 연거푸 야당이 패배한 것은 국민의 눈에 ‘여당과 다를 게 없는 기득권 집단’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라면 개혁 시늉이라도 하는 여당을 차악으로 선택한 것이다.

 

  문 대표나 새정치연합 의원들도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 대신 이익집단, 민생보다 이념을 챙기며 투쟁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지지 기반을 버리면 그 알량한 기득권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런 길을 가는 건 새정치연합의 자유다. 하지만 그럴수록 수권정당의 꿈은 멀어지고, 지켜온 의석마저 쪼그라들 것이란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508금] 불어나는 사립대 적립금 학생 위해 투명하게 써라

 

대학은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살림을 한다. 기부금과 국고보조금 등이 보태지지만 등록금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비싼 등록금을 낸 학생들은 당연히 좋은 환경에서 질 높은 교육을 받기 원한다. 등록금 씀씀이도 알 권리가 있다. 이런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대학의 기본 책무다.

 

  지난달 24일 법원이 등록금을 학생 교육에 투자하지 않고 적립금으로 쌓아둔 수원대 측에 일부를 돌려주라고 판결한 이후 대학생들의 ‘교육주권 찾기’ 의식이 강해지고 있다. 당시 법원은 수원대생 50명이 학교를 상대로 낸 등록금 환불 소송에서 “30만~90만원씩 반환하라”고 선고했다. 학교 측이 건물 신축 등을 위해 적립금을 부당하게 운영했고 이로 인해 학생들은 등록금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실험·실습 교육을 받았다는 게 요지였다. 2013년 기준 수원대의 적립금은 3367억원으로 전체 4년제 사립대 중 4위다. 하지만 등록금 대비 실험·실습비는 0.88%, 학생지원비는 0.25%로 바닥권이다. 등록금으로 재단과 학교 측의 배만 불린 꼴 아닌가.

 

  이 같은 수원대의 몰염치한 행정에 대해 법원이 학생들의 손을 들어주자 다른 대학으로 그 여파가 확산되고 있다. 엊그제 경희대·이화여대 등 10여 개 대학 학생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은 부당한 적립금 쌓기를 중단하라”며 “교육여건 개선에 소홀한 대학은 집단 소송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주권 찾기 움직임에 대학들은 전전긍긍이다. 미래를 위해 적립금이 불가피하다거나, 등록금 동결 여파로 쌓아둘 여유조차 없다고도 한다. 물론 일리도 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2013년 전국 사립대의 적립금은 8조원이 넘는다. 2009년 등록금 동결 이후 오히려 1조원 이상 불어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대학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등록금·적립금의 용처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철저한 증빙·감리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제2의 수원대’를 막아야 한다. 대학의 주인은 재단·교직원이 아닌 바로 학생이다. 주인에게 등록금 혜택이 직접 돌아가도록 재정 운영의 틀을 확 바꿔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508금] 서울외고 사태, 공교육 정상화 차원에서 접근해야

서울교육청이 서울외국어고에 대해 특수목적고 지정 취소 결정을 내렸다. 이 같은 조치는 2010년 관계법령 개정 이후 서울외고가 처음이다. 반면 입시비리로 국민적 공분을 산 영훈국제중은 2년 뒤 재평가를 조건으로 구제받았다. 서울교육청은 어제 서울외고·영훈국제중 청문 결과를 이같이 발표하고 교육부에 동의 절차를 밟기로 했다.

 

서울외고의 특목고 지정 취소 이유는 운영 평가에서 특목고 지정 취소 기준을 밑도는 평가를 받았고, 이후 청문 절차를 3차례 모두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특목고 지정 취소가 확정될 경우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 학교 측도 그렇겠지만 학교 운영과 무관한 학생들의 충격과 혼란이 클 것이다. 이번 결정이 나오기까지 서울외고 측이 취한 처사는 이해가 안된다. 특목고 대상의 정례평가에서 기준을 밑도는 평가가 나오자 반발하며 소명 기회를 몇 번이나 거부한 것이 취소 결정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평가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면 청문회에 나와 적극 소명하고, 미흡한 사항에 대한 보완 계획을 제출하는 것이 정상적인 대처 방식이다. 서울외고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학부모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강력 반발한 것이 부담이 됐겠지만 필요하다면 설득해서라도 정해진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 물론 교육청 결정 후에도 실제 특목고 지정 취소가 되려면 교육부의 동의 절차가 남아 있고, 교육부가 지정 취소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을 염두에 뒀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서울교육청에 대해 정치적 결정을 했다고 비난할 자격이 없다. 교육당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명문대 입시 통로로 전락한 특목고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 바란다. 사교육을 막고 일반고와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한편 서울교육청이 영훈국제중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 학교에서 발생한 수백명의 성적 조작과 금품 수수 등 대형 입시비리와 공금 유용만으로도 마땅히 지정 취소감이다. 그렇잖아도 국제중은 특목고 못지않게 교육에서 빈익빈 부익부 구조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교육청은 영훈국제중이 교육청이 파견한 임시이사 체제로 정상화 작업을 하고 있고, 적극적인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서울신문 사설-20150508금] 민생 법안도, 구조 개혁도 못 챙긴 한심한 국회

 

4월 국회가 끝내 빈손으로 마감했다. 그제 본회의에서 여야의 공무원연금 합의가 파투났다. 야당이 공무원연금과 별개 문제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 문구를 명기하려고 어거지를 피우면서다. 이 과정에서 계류 중이던 100여개의 민생 및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도 불발됐다. 어처구니없는 사태다. 야당의 국정 발목 잡기와 여당의 무원칙·무기력이 만든 ‘불임(不姙) 국회’가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대체 지금이 어느 때인가. ‘저출산 고령화’라는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글로벌 경쟁은 가열되고 있다. 최근 정부 통계를 보라. 미래 먹거리로 선정한 국가전략기술 10대 분야 120가지 중 우리가 확보한 세계 1등 기술은 하나도 없었다. 수십 년째 선진국 문턱에서 맴돌고 있는 우리로선 각 부문의 구조 개혁으로 성장동력을 재정비하는 게 급선무다. 공공·금융·노동·교육 등 4대 구조 개혁이 그 일환이다. 그런데도 공공 개혁의 첫 단추인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국회의 원칙 없는 협상으로 기형적으로 산출되는가 했더니 이마저 중절됐다.

 

어디 그뿐인가. 핵심 경제활성화 법안들도 줄줄이 좌초됐다. ‘고용 없는 성장시대’에 일자리 창출의 대안 격인 서비스산업발전법 등을 3년째 불어 터지게 하더니, 여야는 이번에 처리를 합의한 크라우드펀딩 법안 등 3개 법안조차 막판 대치로 무산시켰다. 결국 미래를 위한 구조 개혁도, 불경기에 허덕이는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한 경제활성화 법안도 여야 격돌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간 꼴이다. 한 가지 쟁점을 관철하려고 관계 없는 다른 현안 모두를 볼모로 잡는 우리 국회의 고질이 재연되면서다. 이 지경에 이른 데는 여당 지도부의 무소신과 당·청 간 엇박자도 큰 문제이긴 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논의 실무기구에 이해 당사자인 노조 대표를 대거 끌어들인 건 뭘 뜻하나. 전체 국민보다 당장 표가 될 것 같은 이익단체의 눈치만 살피는 야권의 태도가 불임 국회의 근본 원인일 듯싶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민생 법안들을 장기 표류시키는 몽니를 부리는 데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결정적 무기가 되고 있다. ‘재적 의원의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헌법상 다수결 원리를 포기하고 만든 ‘5분의3’ 가결 원칙을 악용하면서다. 이 법안의 당초 취지인 절충과 타협의 정신은 실종되고 국정이 무기한 표류하는 부작용만 두드러지고 있다. 오죽하면 국회선진화법이 ‘집권 야당’을 만들었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하지만 야당이 내민 국회선진화법 카드를 덜컥 문 여당이 뒷북 위헌 소송으로 자승자박의 덫에서 빠져나올지도 의문이다. 이 법안의 개정도 ‘5분의3’ 찬성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장엔 여당과 청와대의 대야 소통 강화 노력이 절실하다. 물론 그 이전에 야당이 이념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초 ‘유능한 경제정당’을 내세웠던 문재인 대표는 4·29 재·보선의 참패 이후 강경 기조로 선회하는 듯하다. 혹여 대여 투쟁으로 지도부 퇴진론을 덮으려는 어깃장 차원에서 법안 통과를 막는다면 수권 정당으로선 자해 행위임을 유념하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08금] 2만원대 통화 무제한…기업이 경쟁할수록 소비자는 즐겁다

 

통신회사 KT가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 사용량에 관계없이 데이터 이용량에 따라 요금을 선택할 수 있는 새 요금제를 내놨다. 데이터 사용량만 선택하면 최저 2만원대 요금으로 음성통화를 무제한 쓸 수 있다. 또한 남는 데이터를 이월하거나 다음달 데이터를 앞당겨 쓸 수도 있다고 한다. 이용자는 자신의 데이터 사용량에 적합한 요금제를 고르면 된다. 1인당 월평균 3590원이 절감될 것이란 설명이다.

 

일각에선 단통법 시행 이후 통신사 수익이 급증한 데 따른 무마책이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통신 3사의 1분기 영업이익은 8782억원으로 전년 동기(5020억원)보다 75% 급증했다. 정부당국이 시시콜콜 요금에까지 간섭해왔으니 그런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마케팅 비용 절감효과는 일시적인 반면 요금인하는 장기간 수익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통신 3사의 점유율이 5 대 3 대 2로 굳어가고 있어 2위인 KT에서 요금제 경쟁의 선수를 친 것이다. 더구나 글로벌 트렌드가 데이터 요금제로 옮아가고 있는 마당이어서 어차피 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통신비를 낮춰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은 없다. 가계통신비는 월 16만원에 육박할 정도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선 가계통신비 20% 인하를 공약으로 내걸고 통신요금에 직접 개입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부의 ‘팔목 비틀기’로 통신비가 내려가는 게 아니란 사실만 확인했다. 통신사들이 제대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면 그뿐이다.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경쟁사도 곧 데이터 기반 요금제를 선보인다니 이용자 선택폭은 더욱 넓어지게 됐다.

 

기업들을 경쟁시키면 소비자가 즐거워진다. 이런 뻔한 이치를 무시하고 경쟁을 가로막아온 게 정부와 정치권이다. 단통법 도서정가제로 싸게 파는 것을 막고, 대형마트 강제휴무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부정하며,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칸막이를 쳤다. 소비자는 안중에도 없고 이익집단에는 쩔쩔매며 이권을 보장해주는 식이다. 그러면서 내수 침체를 한탄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08금] 삼성 평택 반도체 신공장, 일자리 창출 기폭제 됐으면

 

삼성전자가 7일 경기 평택에서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단지 기공식'을 열고 본격적인 라인 건설에 들어갔다. 이번 반도체단지 건설은 부지 및 투자규모 면에서 기존 공장을 압도한다. 부지면적은 289만㎡로 기존 국내 최대 반도체단지인 기흥·화성 공장을 합한 면적과 맞먹고 중국 시안 공장(139만㎡)의 2배가 넘는다. 투자액은 2017년까지 1단계로 총 15조6,000억원에 달해 단일 반도체 생산설비 투자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관심이 가는 대목은 고용창출 효과가 15만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공장 건설과정에서 8만명, 가동과정에서 7만명 등 모두 15만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30세 미만의 청년실업률이 10%를 넘고 50대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요즘 일자리 창출은 우리 사회에 가장 중요한 절체절명의 과제다. 정부와 기업이 나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묘안을 짜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당장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최근의 조사자료들만 봐도 국내 산업의 고용창출 증가세는 지난 1년 사이 6분의1로 급감했다. 특히 서비스업 고용은 그래도 증가한 반면 제조업 고용은 크게 줄어 성장잠재력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어려운 경영환경에서도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전력 등 핵심 인프라를 조기에 가동할 수 있게 조치하는 등 협력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엄청난 수의 고용창출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은 박수 받을 만한 일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선제투자로 평택 신공장이 완공되는 2017년이 되면 줄곧 1위이던 메모리반도체는 물론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위상이 급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날 기공식에서 선제투자를 높이 평가하며 "도전과 열정의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하게 투자를 확대해달라"고 다른 기업에 당부했다. 과감한 투자가 기업 전반으로 확산돼 일자리 창출의 원동력이 되기를 기대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특별기고/유홍준(명지대 석좌교수)-20150508금] 목민관 황준량의 눈물어린 상소문

 

“상소 내용을 보건대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위하는 정성이 아닌 것이 없어 내가 이를 아름답게 여긴다. 단양의 조세와 부역을 앞으로 10년간 감면한다.”(조선왕조실록, 명종 11년 5월17일) 실로 감격적인 결정이었다. 황준량의 공덕비는 그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될 영세불망비이다.

 

민속촌에 가면 옛 관아 건물에는 으레 오라줄에 묶인 백성이 형틀 앞에서 문초를 받는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있다. 이는 옛날에 원님, 사또로 불린 지방 수령은 한 고을의 행정, 사법권을 모두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겠지만 이건 정말로 유감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지방관이란 모름지기 한 고을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는 목민관(牧民官)이었다. 그럼에도 춘향전의 변사또처럼 못된 탐관오리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우리에게 역사상 모범을 보인 참된 목민관에 대해 별로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한강을 따라가는 답사길에 올랐다가 단양 수몰지구에서 옮겨다 놓은 황준량(黃俊良) 군수의 공덕비를 보고 있자니 우리 역사에 이처럼 훌륭한 목민관이 있었다는 것이 정말로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때는 16세기 중엽, 조선 명종 연간 이야기다. 을사사화를 비롯하여 온갖 변란이 일어나는 정치적 혼란기에 백성들은 무거운 세금을 감당하지 못하여 도망가는 유망(流亡)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임꺽정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다. 이때 단양군수로 부임한 황준량은 고을의 참상을 살피고는 장문의 상소문을 올렸다.

 

“신(臣)이 군수로 내려와 보니 백성들이 흩어진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단양은 본디 원주의 조그마한 고을이었는데 외적을 섬멸한 공로가 있어 군으로 승격된 곳입니다. 그러나 삼면이 산으로 막혀 있고 한쪽은 큰 강이 흘러 농토는 본래 척박해서 홍수와 가뭄이 제일 먼저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풍년이 들어도 반쯤은 콩을 먹어야 했고 흉년이 들면 도토리를 주워 연명했습니다. 그런데 살아갈 길이 날로 옹색해지자 백성들이 다 도망가고 이제는 부역에 나아갈 수 있는 민가가 겨우 40호에 불과합니다. 경지 면적도 (옛날의 4분의 1인) 300결도 되지 않아 징수할 곡식의 반밖에 받아내지 못했는데 그나마도 피가 많이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역의 재촉과 가혹한 세금 때문에 가난한 자는 더욱 곤궁해지고, 곤궁한 자는 이미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사방으로 흩어져 갔습니다.

 

아, 새들도 남쪽 가지에 둥지를 틀고, 이리도 자기가 살아가던 언덕을 향하여 머리를 돌린다고 하는데, 고향을 떠나기 싫기는 사람이 더욱 심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백성들이 농토와 마을을 버리고 돌아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살을 에어내고 골수를 우려내는 참혹한 형벌 때문에 잠시도 편안히 살 수가 없어 마침내 온 고을이 폐허가 되기에 이르렀으니 반드시 비상한 방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신이 외람되게 세 가지 계책을 진달하겠사오니 삼가 전하께서는 살펴주시옵소서.”

 

그리고 황준량 군수는 세 가지 계책으로 상책, 중책, 하책을 제시하는데 그 내용은 상상을 초월하는 파격적인 요구였다.

 

“지금부터 10년간 모든 부역을 완전히 면제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백성들이 즐거이 살면서 일하게 한다면 모두들 돌아올 것이고, 황폐해진 100리 땅도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이 상책입니다. 따지기 좋아하는 자들은 10년이 너무 길다고 하겠지만 이는 근본을 아는 자의 말이 아닙니다. 10년간 부역을 면제해 주면 100년을 보장할 수 있지만 3년, 5년에 그친다면 도로 피폐하게 될 것이니 원대한 계획이 되지 못합니다.”

 

이렇게 단호하게 요구하면서 만약 이것이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중책이라도 받아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단양만 10년 동안 면제할 수 없다면 차라리 군에서 강등시켜 원주목에 예속된 고을로 만들어 아직 남아 있는 백성들이라도 참혹한 피해를 면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이마저 들어줄 수 없다면 최후의 하책으로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큰 폐단 열 가지라도 제거해야 한다며 이를 다음과 같이 적시하였다.

“첫째로 조정에 공납해야 할 목재가 큰 것만 400, 작은 것이 수만개에 달하는데 40호의 인구로 험한 산을 오르고 깊은 골짜기를 건너 운반하자면 남녀가 모두 기진하고 소와 말이 죽는 일도 생기니 이를 줄여 주십시오.

둘째로 종이 만드는 부역은 다른 일보다 배나 힘든데 유독 이 고을에만 배당량이 많아 200여권이나 되니 이를 견감하여 주십시오.

셋째로 사냥하여 1년간 공물로 바치는 노루가 40이고 꿩이 200이니 숫자를 줄여 주십시오.

넷째는 도망간 대장장이 일을 민가에 덮어씌운 것이고, 다섯째는 악공(樂工)의 차출이고, 여섯째는 보병(步兵)으로 나갈 사람이 없는 것이고, 일곱째는 지방관리 자제를 서울로 올려보내는 기인(其人) 제도의 폐해입니다.

여덟째는 병영에 바치는 사슴, 노루, 소의 가죽 양을 감하여 주십시오.

아홉째는 단양이 군이라고 해서 해미의 목탄, 연풍의 목재, 영춘의 꿀벌상자 등 다른 고을 세금까지 떠맡고 있는데 이를 다 해당 고을로 환원시켜 주십시오.

열째는 무지렁이 백성들에게 이름도 모르는 약재를 부담시켜 포목으로 사서 바치고 있으니 이런 괴이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중 웅담, 사향, 복령, 지황 등은 특히나 어렵습니다.”

 

그리고 황준량은 이 열 가지 폐단이란 극히 피해가 심한 것만을 말한 것일 뿐 전체적으로 볼 때 10분의 2쯤 되는 것이니 이것조차 개혁하지 못한다면 백성을 소생시킬 수 없다며 다시 눈물로 호소한다.

“아, 영동의 조그마한 고을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까다로운 법령과 번거로운 조항으로 남아 있는 백성에게 부역과 세금을 징수하여 기필코 그 숫자를 채우려 하니 이는 물고기를 끓는 솥에다 기르고 새를 불타는 숲에 깃들이게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난해처럼 긴급하지 않은 공물이나 감면해 주며 생색이나 내고 만다면 비록 감면해 주었다는 말은 있어도 실상은 소생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집도 없이 떠도는 백성이 궁벽한 산골짝에서 원망에 차서 울부짖는 자가 얼마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신은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며 삼가 상소를 받들어 올립니다.”

 

황준량의 상소문이 조정에 도착하자 예상대로 대신들의 논의가 일어났다. 혹자는 10년은 너무 길다고도 했고, 혹자는 다른 고을과 형평성의 문제가 일어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일찍이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는 인간의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은 자라고 했는데, 조금이라도 어진 마음이 있는 자라면 이 글을 다 읽기도 전에 목이 메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 갑론을박 끝에 결단의 날이 다가왔다. 상소한 지 꼭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조선왕조실록’ 명종 11년(1557) 5월17일자에는 이때 임금이 하달한 조치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 상소한 내용을 보건대 10개 조항의 폐단을 진달한 것이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위하는 정성이 아닌 것이 없어 내가 이를 아름답게 여긴다. 단양의 조세와 부역을 앞으로 10년간 감면한다.”

 

실로 감격적인 결정이었다.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올바른 한 목민관이 피폐한 한 고을을 이렇게 살려낸 것이다. 훗날 퇴계 이황은 황준량의 행장(行狀: 일생의 기록)을 지으면서 “공의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키지 않았더라면, 어찌 전례 없는 이러한 은전을 얻었겠는가”라고 칭송하였다.

 

오늘날 도지사, 시장, 군수는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정치인의 몫으로 되어 요즘 세태를 보면 이 지위를 옛날 원님 사또 벼슬로 생각하거나 정치적 출세를 위한 발판 정도로 삼는 안타깝고 씁쓸하고 괘씸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지방 수령의 근본은 모름지기 백성의 삶을 보살피는 목민관이다. 목민관 황준량의 공덕비는 그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될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이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나현철(경제부문 차장)-20150508금] 젊은이를 위한 ‘반값’은 없다

 

새 신발이 필요했는데 마침 잘됐다. 신발가게 앞에 ‘50% 세일’이란 문구가 붙어 있다. 냉큼 들어가 신발을 골랐다. 그런데 신발에 붙어 있는 꼬리표는 대부분 ‘20%’다. 50% 깎아주는 건 문 옆 한쪽에 진열된 몇 켤레뿐이다. 항의조로 “반값 아닌가요?” 물어보니 “최대 50%예요. 앞에도 그렇게 써놨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신발을 내려놓고 가게를 나서며 돌아보니 정말 그렇게 씌어 있긴 하다. 언뜻 봐선 그냥 지나칠 만큼 작은 크기로. 어쨌든 내 탓이지만 유쾌하진 않다. 요즘 말로 하면 낚시에 걸린 거니까.

 

  출퇴근 길에 매일 또 다른 반값 상품을 본다. 꽤 넓은 철길 위에 짓고 있는 행복주택이다. 주변엔 물론 반대 플래카드가 이곳저곳 나붙어 있다. 집값 하락, 공사로 인한 소음이나 먼지, 사고 위험 등을 걱정하는 내용들이다. 실제로 공사가 시작된 뒤 길이 좁아지고, 출근길 정체도 길어졌다. 그럼에도 다른 지역만큼 반발이 심하진 않아 서울에서 가장 진도가 빨리 나가고 있다. 이 집에 주로 들어갈 젊은이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준다는 명분에 공감하는 주민이 많다는 얘기이리라. 불편함보다는 흐뭇한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지난달 행복주택 임대료가 결정됐다는 소식에 이런 기분이 싹 가셨다. 인근 임대료 시세의 60~80%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엔 ‘인근 시세의 절반이나 3분의 1’이었다. 인근 시세의 50~90%인 기존 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와 큰 차이가 없다. 철길 위나 하천 변에 지어 땅값이 들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싼 편도 아닌 것 같다. 공약이 나온 2년 반 동안 ‘인근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니 애초 약속과의 괴리는 더 벌어진다.

 

  또 다른 반값 공약도 요즘 논란이다. 대학생 등록금을 반값으로 해주겠다는 얘기다.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 혜택을 받는 학생들의 비율이 30%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것도 예산이 부족해 대학들의 팔을 비튼 결과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유쾌하지 않다. 공약이란 정치적 낚시에 걸린 거니까. 더구나 공교롭게도 둘 다 지난 대선 때 대통령이 젊은 층을 위해 내놓은 대표적인 공약이다.

 

요즘 공무원·국민 연금이나 노동 개혁 이슈가 뜨겁다. 젊은 세대가 희생된다는 지적이 점점 많이 나온다. 날마다 조금씩 높아져가는 행복주택 건물이 그 상징이 될까 봐 씁쓸하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이기환(논설위원)-20150508금] 상괭이

 

1405년(태종 5년) 한강 양천포(가양동) 백성들이 밀물에 떠밀려온 괴이한 큰 고기 6마리를 잡았다. “소가 우는 소리를 냈다. 비늘이 없었고 입은 눈가에, 코는 목 뒤에 있었다. 고기를 갑사(갑옷 입은 군사)들에게 주었다”(<태종실록>).

 

사실 이 ‘괴이한 고기’는 어류가 아니었다. 서남해안을 대표해온 토종 돌고래인 상괭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1814년(순조 14년) 흑산도 유배 중이던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상괭이를 ‘인어(人魚)’라 했다.

 

“서남해에 사는 인어(人魚) 가운데 상광어(尙光魚·상괭이)가 있다. 사람을 닮아 두 개의 젖이 있다.” 상괭이의 상반신이 여인을, 하반신이 물고기를 닮았다 해서 ‘인어’라 한 것이다. 게다가 ‘두 개의 젖’이 있으니 정약전이 보기에도 포유류가 분명했던 것이다. 등지느러미가 없어 수줍은 듯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데다 웃는 사람의 얼굴 모양을 닮아 요즘에는 ‘미소천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다. 다른 돌고래와 달리 염분이 적은 물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 상괭이는 새우나 게, 혹은 숭어를 잡으려고 밀물과 썰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까지 진출할 수 있다.

 

그런 상괭이가 사람과 가까이 살았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이미 국제자연보호연맹(IUCN) 등이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한 상괭이의 고기가 서울 시내 전통시장에서 버젓이 유통되는 현장이 포착됐다. 해마다 어민들이 쳐놓는 그물에 걸리는 상괭이가 수천마리란다. 최근에는 상괭이의 사체가 한강에서 잇달아 발견되는 등 수난을 당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분석은 다양하다. 서해안의 오염을 피해 거슬러들었다가 화를 입었다는 설, 오염된 먹이를 먹었다는 설 등….

 

그런데 서울환경운동연합 같은 환경단체는 다른 혐의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강 하구, 즉 김포대교 남단에 설치된 신곡 수중보이다. 신곡 수중보(높이 4~5m)는 서울올림픽 개막을 앞둔 1988년 6월 완공됐다. 한강수위를 유지하고 유람선을 운행하기 위해 조성됐다. 환경운동연합은 밀물 때 거슬러 올라온 상괭이가 썰물 때 수중보를 넘어가지 못하고 폐사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유가 어떻든 수줍고 귀여운 이미지의 ‘미소천사 인어’를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인가.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황수정(논설위원)-20150508금] 단기방학

 

눈꺼풀 밑에 덜 깬 잠이 주렁주렁 매달린 아이를 빈집에 둔 채 헐레벌떡 현관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직장 맘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수직 상승한다. 이런 상황은 맞벌이 집안이라면 요즘 아침마다 반복재생되고 있을 ‘안 봐도 비디오’의 장면이기도 할 것이다.

 

이름하여 ‘단기방학’ 시즌이다. 올해 처음으로 정부는 초·중·고교들에 학교장 재량으로 단기방학을 실시하게 했다. 관광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추진한 관광주간에 맞춰 학교를 쉬도록 권장해 학부모들이 부담 없이 움직일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올해 정부가 정한 봄철 관광주간은 지난 1일부터 14일까지. 주말을 끼고 짧게는 닷새에서 길게는 열흘간 방학에 들어간 학교도 있다. 전체 대상 학교 가운데 89%가 단기방학에 들어갔다는 것이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조사치다.

 

여가문화가 다양하지 못했던 시절에 방학은 그 자체가 자유와 휴식의 메타포였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동심을 부풀게 만드는 이스트 같은 기표였다. 왜 아니겠나. 글자 뜻 그대로 ‘학업을 잠시 놓아도 되는’(放學) 사회적 합의의 시간인 것을.

 

생뚱맞은 단기방학의 정체를 정작 아이들은 모른다. 신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학교가 왜 쉬는지, 학부모들조차 정확히 모르는 이가 태반이다. 평균 일주일여 이어지는 이 낯선 방학 기간에 엄마들의 볼멘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엄마들이 모이는 블로그에 들어가 보면 금세 확인된다. “봄, 여름, 겨울방학 때 먹이는 라면 점심도 모자라 이젠 단기방학 라면까지 먹여야 하나….” 푸념이 아니라 성토다. 저소득층,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들에게는 반듯한 끼니를 또 놓쳐야 하는 쓸쓸한 시간일 뿐이다. 엉뚱하게 사설 학원들이 특수를 누린다는 딱한 뉴스도 들린다. 학원가의 단기방학 집중 교실이 딱히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반쪽짜리 위탁소가 되는 건 당연하다. “너무 자주 쉰다는 소리가 듣기 민망해 웬만하면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선생님도 있다. 공교육만 놀고 있다는 얘기다.

 

문체부와 교육부의 걱정과 다르게 자녀의 학업 일정 때문에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가정은 많지 않다. 가을에 또 있을 관광주간에 다시 이 방학이 이어지지는 않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관광수익 올리기 ‘부역’(賦役)을 하라고 등 떠미는 건 말이 아니다. 경제 살리자고 책 덮고 고속도로 행락 대열에 끼어들라는 정책은 초라하지 않나. 휴가를 강제하는 나라가 얼마나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국민 관광 독려 차원에서 문체부 장관이 산나물 캐고 버섯 따서 매운탕 끓여 먹는 이틀간의 섬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면 단기방학으로 올린 수입이 얼마였는지 계산해 보여 줄 거라 기대한다. 가정의 달에 ‘대한민국 보통 가정’을 배려하는 가장 좋은 선물은 그냥 가만히 두는 거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오춘호(논설위원)-20150508금] 공공도서관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장서 수집열은 대단했다. 부근에 여행하는 나그네가 책을 갖고 있으면 압수한 다음 복사본을 만들고는 원본은 소장하고 복사본만 돌려줬다. 알렉산드리아항에 정박 중인 해외 선박에서 책을 찾아 몰수하기도 했다. 아테네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뒤 돌려주지 않아 아테네 사서들이 알렉산드리아로 와서 그 책을 필사해 가는 일도 있었다. 도서관에는 필사 담당자만 수십명이었고 세계 각국에서 책을 가져와 파는 중개상도 들끓었다. 이렇게 해서 최성기 장서를 70만권까지 늘렸다. 물론 일반인들은 도서관에 얼씬도 할 수 없었다.

 

고대 그리스 페르가몬의 도서관도 알렉산드리아와 경쟁할 만큼 유명했다. 여기서는 파피루스 대신 양피지를 사용해 책을 만들었다. 플루타르크는 이곳 장서량이 20여만권이라고 소개했다. 성서에 나오는 도시 에페소스의 셀시우스 도서관 역시 유서 깊다.

 

고대인들은 도서관을 영혼의 안식처로 여겨 매우 신성시했다. 문자를 신과 소통하는 도구로 생각한 만큼 도서관은 신성성을 비추는 곳이었다. 고대 지도자들이 도서관을 웅장하게 짓고 많은 책을 소장하는 건 바로 종교적 권력을 과시하는 소산이었다. 중세 들어선 수도원이 도서관을 대체했다.

 

도서관이 일반인에게 다가간 건 17~18세기가 돼서다. 이때 지어진 도서관들은 서적을 많이 보유하지는 않지만 일반인에게 책을 빌려주는 역할을 맡았다. 근대 공공도서관의 개념은 1731년 벤저민 프랭클린이 미국에서 회원제 대출도서관을 만들면서 본격화됐다고 한다. 시민 전체에 무료로 개방하는 공공도서관이 출현하게 된 것은 1754년이다. 미국에서 공공도서관이 본격 늘어난 것은 19세기 말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도움이 컸다. 카네기는 미국에 무려 2500개의 공공도서관을 지어 사회에 기부했다. 그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동네 독지가가 마련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꿈을 키웠다. 카네기의 도서관 설립 기념비엔 이렇게 쓰여 있다. ‘지식과 상상력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받은 근로 소년 앤드루 카네기가 감사의 기억으로 기념비를 세우다.’

 

국립중앙도서관 장서가 1000만권을 넘었다. 세계 13번째라고 한다. 인터넷 시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책이 생산되고 있다는 증좌다. 하지만 미국 의회도서관 장서 1억6080만권에 비하면 10%도 되지 않는다. 공공도서관도 턱없이 부족하다. 도서관은 여전히 영혼을 맑게 해주는 곳이다. ‘어린 카네기’가 거기서 자라고 있기도 하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문성진(논설위원)-20150508금] 볼티모어 앵그리맘

 

요즘 미국에서는 42세의 싱글맘 토야 그레이엄이 볼티모어 폭력시위에 참가한 16세 아들을 매로 훈육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너인 거 다 알아(I know it's you)"를 연발하며 온 힘을 다해 복면한 아들을 때리는 모습뿐 아니라 TV 인터뷰에서 "경찰에게 돌을 던지는 행위는 정의가 아니며 나에게 숨이 붙어 있는 한 내 아들이 그런 식으로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볼티모어 앵그리맘'은 이미 미국에서 전국구 스타이자 영웅이다. 워싱턴포스트·뉴욕포스트·USA투데이 등 주류언론들은 그레이엄을 '올해의 엄마'로 부르며 칭송을 아끼지 않고 있고 볼티모어의 앤서니 배츠 경찰국장은 "자기 아들을 책임질 줄 아는 부모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며 치켜세웠다. 정작 손찌검당한 아들 마이클은 쑥스러운 모양이다. 언론 인터뷰에서 "많이 창피했다"고 말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도 아들은 "앞으로 또 그런 폭력시위가 열리더라도 참가하지 않겠다"고 한다. '앵그리맘'의 매에 훈육 효과가 상당했던 셈이다.

 

물론 일각엔 비판적 시각도 있다. "그레이엄의 행동은 자녀 폭행죄에 해당한다"는 의견에서부터 "아이들에 대한 폭력이 답이 될 수는 없다"는 등의 날 선 비판까지 다양하다. 과연 친자녀의 신체적 처벌까지 불허하는 법적 전통이 깊은 미국 사회답다.

 

한국에서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지난해 9월 만들어졌다. 세계적으로 가정 내 체벌 금지를 법제화한 나라가 24개국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선진적이기는 하나 1979년 아동학대 금지 법안이 세계 최초로 발효된 스웨덴에 비하면 꽤 늦은 편이다. 더구나 최근 7년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가해자 중 80% 가량이 친부모였으며 자녀를 사망에 이르게 한 체벌 가운데 '훈육 목적'이 20%가 넘는 비율을 차지했다는 통계도 있다고 하니 체벌을 통한 훈육에 마냥 관용적이기는 어려운 처지다. 하기야 1970년대에는 스웨덴의 국민조차 90% 정도가 '체벌 없이 훈육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니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의 매'는 언제나 어디서나 난제 중 난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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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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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박상옥 대법관 인준안 국회 강행 처리

■ 역사 왜곡 아베 총리에 대한 세계 역사학자들의 경고

■ 국무회의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의결

■ 공무원연금 개혁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 성완종 리스트 수사, 홍준표 경남지사 소환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박상옥 대법관 인준안 국회 강행 처리

 

[한국일보 사설-20150507목] 박상옥 대법관 인준안, 강행처리밖에 길 없었나

 

박상옥 대법관후보자 국회 임명동의안이 어제 정의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해 국회 본회의에서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에 의해 단독으로 처리됐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의원들은 여당의 단독처리 강행에 항의해 임명동의 반대토론만 하고 전원 본회의장에서 퇴장했다. 2012년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한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래 국회의장 직권상정에 의한 의안 단독처리는 처음이다.

 

박 대법관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100일 만에 가결돼 신영철 전 대법관 퇴임 후 83일 동안 이어져온 대법관 장기공백상태는 일단 해소됐다. 그러나 전력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극심했던 박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 단독처리는 두고두고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논란과 절차상 하자를 안고 임명된 그가 사법정의와 인권수호 최후 보루인 대법원에서 대법관으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 후보자 임명동의안 단독 처리는 향후 국회운영과 관련해서도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우선 이 사안이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에 맞는지부터 논란거리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본회의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 등으로 제한해 놓고 있다. 박 후보자 임명동의안 등 인사에 관한 사항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임명동의안 처리 지연에 의한 대법관 공백상태 장기화 부담이 컸겠지만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국회법 위반이자 여야 합의정신에 어긋나는 처사다.

 

이런 식으로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국회선진화법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걸핏하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한 의안처리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 운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없지 않으나 그간 물리적 충돌 없이 여야 합의에 의한 의안처리 장치로 기능해온 게 사실이다. 이번 사태는 국회선진화법의 그런 역할에 타격을 줬다고 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야당의 전략부재와 졸속대응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새정치연합은 우여곡절 끝에 박 후보자에 대한 국회인사청문회가 열렸을 때 여러 의혹과 문제점을 제기했지만 낙마시킬 만한 결정적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청문보고서를 채택하고 표결로 반대하는 수순을 택하는 게 현명했다. 결과적으로 임명동의안 가결을 저지하지도 못하고, 국회의장 직권상정에 의한 여당 단독 의안처리의 선례만 남기게 됐다. 게도 구럭도 잃은 꼴이다. 야당은 막연한 명분에 집착해 중요한 실리를 놓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07목] 민주주의 모욕한 박상옥 대법관 인준

 

국회가 6일 본회의에서 야당이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여당 단독으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했다.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 수사 검사팀의 일원이었던 박 후보자를 두고는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기는 많은 국민은 물론 법원 내부에서조차 ‘자격 미달’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힘의 우위를 앞세워 밀어붙였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뚜렷한 전략도 없이 갈팡질팡하며 시간만 끌었다. 그 결과, 꽃다운 대학생을 고문해 죽인 야만적이고 반인간적인 사건에 관여했던 인물이 인권의 최후 보루라 할 대법관의 자리에 앉는 역설적이고 기막힌 현실이 우리 앞에 나타나고 말았다.

 

박상옥 파동은 국회 인사청문회나 인준 표결 등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울에 불과한지도 확실히 보여주었다. 여당은 인사청문회법을 내세워 야당을 압박했으나, 실제 청문회 내용을 보면 임명 강행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법무부는 박종철씨 사건 수사 자료 제출을 거부함으로써 국회의 권능과 인사검증권을 철저히 무시했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박 후보자의 변호인 노릇을 하기에 바빴다. 이런 미흡한 인사청문회 때문에 아직 인사청문경과보고서도 채택되지 않은 상태다. 박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강행처리는 표면상 법에 정해진 절차 준수라는 외양을 하고 있으니 실제로는 절차적 정당성마저 온전히 지켜지지 않은 우격다짐 인사인 것이다.

 

다수 의석을 앞세워 밀어붙이기로 일관한 새누리당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무대책은 호되게 비판받아 마땅하다. 야당은 애초 특별한 전략도 없이 인사청문회 개최를 거부하다가 여당과 보수세력들의 공세에 밀려 인사청문회 개최에 합의했으나, 후속 대책은 아무것도 없었다. ‘철저한 검증으로 낙마시키겠다’는 공언은 한낱 허언으로 끝났고, 그 뒤에도 아무런 정치력이나 협상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시간만 끌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표결에 불참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는 투다. 야당이 여당에 끌려다니는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머리도 뒷심도 없는’ 야당의 모습이 참으로 한심하다.

 

이번 박상옥 대법관 인준 강행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길이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 무능한 검사, 외압에 굴복하고 권력과 타협한 검사’(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를 대법관 후보로 제청한 양승태 대법원장이나 정치권 모두 저세상에 있는 박종철씨의 영령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중앙일보 사설-20150507목] 공백 메운 대법원, 한명숙 사건 속도 내야

 

박상옥 대법관 임명동의안이 6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야당 의원들이 모두 빠진 가운데 여당 단독으로 투표가 이루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이날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박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상정 연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정 의장은 “야당이 끝까지 협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의장으로서 단호하게 결정해야 된다”며 직권상정 철회 요청을 거부했다. 박 대법관 후보 임명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의지를 표시한 것이다.

 

 박 대법관 후보 임명이 지연되면서 지난 2월 17일 퇴임한 신영철 전 대법관 자리는 80일째 공석 상태다. 신 전 대법관이 속했던 대법원 2부는 원래 4명이 해야 하는 재판을 3명(이상훈·김창석·조희대 대법관)이 진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2부에 배당된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전 국무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사건과 이재현 CJ회장의 횡령·탈세 사건 등 중요한 사건들의 선고가 미뤄지고 있다. 특히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은 2013년 9월 2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이후 대법원에서 1년8개월 동안 머물러 있다.

 

  사실 박상옥 대법관 임명이 늦어지기 전에도 한 전 총리 사건은 늑장 처리 논란에 휩싸였었다. 한 총리가 불구속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평균 8개월인 상고심 처리기간에 비해 선고가 상당히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박 대법관 후보 임명에 계속 시비를 걸었던 이유도 한 전 총리 사건 선고를 최대한 지연하기 위한 시도라는 해석도 나왔다.

 

  한 전 총리의 혐의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이다. 증거의 신빙성 등 사실관계를 놓고 다툼이 있겠지만 법리적으로는 그리 복잡한 사안이 아니다. 법률심인 대법원에서 이렇게 오래 시간을 끌 사건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법조계에서 재판은 신속하게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대법원은 대법관 구성이 마무리된 만큼 한 전 총리 사건 등 지연된 재판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507목] ‘박상옥 인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고, 헌법 정신에 대한 배반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검찰 수사팀의 일원이었던 인물이 기어코 인권의 최후 보루인 대법관에 앉았다. 새누리당은 어제 정의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동원, 야당이 불참한 가운에 임명동의안을 단독 표결 처리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축소에 연루된 박 후보자가 정상의 절차마저 거치지 않고 ‘반쪽 대법관’에 오른 셈이다.

 

‘박종철 사건’은 민주화를 요구한 젊은이를 고문해 죽인 국가권력의 야만적 폭력이다. 이 사건에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이 대법관에 오른다는 건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기는 많은 국민들은 물론 법원 내부에서마저 반대 목소리가 높았던 이유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힘을 앞세워 밀어붙이기로 일관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대책 없이 시간만 끌다 ‘박상옥 대법관’ 탄생을 방조했다.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축소하는 데 협력 순응한 검사가 6월항쟁으로 탄생한 민주헌법하의 대법관이 되는 절대 안될 일”(서울중앙지법 박노수 판사)이 현실로 벌어지는 기막힌 상황을 목도하게 됐다.

 

박 후보자는 그간 재판기록과 관계자 증언을 통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은폐에 관여된 증거와 구체적 정황이 드러났다. 은폐·축소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더라도 방관하거나 순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법관으로서 자격 미달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박 후보자가 최소한의 반성과 자책의 모습도 보이지 않은 채 무책임한 변명으로 일관해온 점이다. 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에 대해 “부끄럽지 않다”거나 “지시에 따라 했을 뿐이다”라고 강변했다. 이토록 인권 감수성과 민주주의 인식이 결핍된 인물이 우리 사회 최후의 양심과 정의의 상징이어야 할 대법관 후보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불행이다.

 

박상옥 대법관 인준 강행은 인권과 민주주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할 사법정의를 허무는 일이다. 박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 치사’를 묵인 내지 방조한 것처럼 국회가 사법 신뢰를 붕괴시키는 방조자가 된 것이다. 애초 박 후보자 문제는 독재의 폭압에 맞서 민주주의를 일궈낸 우리 사회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한국 민주화의 분수령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담당 검사로 축소·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박 후보자가 대법관에 오른 것은 그래서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그를 대법관 후보로 제청한 양승태 대법원장, 힘으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킨 새누리당이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역사 왜곡 아베 총리에 대한 세계 역사학자들의 경고

 

[한국일보 사설-20150507목] 세계 저명 사학자들의 위안부 왜곡 중단 성명

 

에즈라 포겔(하버드대)ㆍ브루스 커밍스(시카고대) 교수를 비롯한 세계적 역사학자 187명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왜곡의 중단 및 사실 인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과 유럽, 호주 등지에서 동양근ㆍ현대사나 일본사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자랑해 온 이들이 입을 모아 일본의 역사왜곡을 지탄하고 나선 것은 처음으로, 지구촌 지식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부를 전망이다.

 

이들은 그제 ‘일본의 역사가들을 지지하는 공개서한’이라는 성명을 통해 “수많은 여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붙잡혔고, 끔찍한 야만 행위의 제물이 됐다는 증거는 분명하다”며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일관성 없는 기억의 영향을 받았더라도 이들이 제공한 전체 기록은 설득력이 있고, 공식문서와 병사 등의 증언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성명을 외교 경로를 통해 일본 정부에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월 초 미 역사협회(AHA) 소속 역사학자 19명이 성명을 통해 미국 역사교과서의 위안부 관련 기술을 수정하려던 일본 정부의 시도를 규탄한 바 있다. 당시에 비해 이번 집단성명은 참여학자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난 데다 쟁쟁한 권위자들이 대거 포함됐다. 구미의 손꼽히는 일본 전문가들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지적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 특히 역사 왜곡에 앞장서 온 일본 관변 보수학계와 보수 언론에 보낸 공개 경고라고도 할 수 있다.

 

이번 집단성명과 2월의 AHA 성명 모두가 일본 진보사학계에 강한 연대 의식을 표한 것도 눈길을 끈다. 아베 총리 집권 이후 일본의 역사 정당화 및 과거사 그늘 지우기를 위한 보수학계의 목소리가 커짐과 동시에 일본의 진보사학계는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외쳐왔다. 지난해 12월 역사학연구회를 비롯한 일본 역사학계의 4개 진보학회는 위안부 문제의 왜곡 시도를 비판한 역사학연구회의 성명을 계기로 ‘4자 협의회’를 구성, 일본 정부와 보수파의 역사 왜곡을 세계에 알리고 밖으로부터의 영향력 행사를 요청하는 활동을 해왔다. 이번 공동성명은 이들의 노력이 거둔 결실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번 성명이 일본 정부나 보수파의 역사인식 자체에 어떤 변화를 부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길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가 ‘종전 70주년 총리 담화’등 공식 언행에서 지금까지 예상보다는 다소 진전된 역사인식을 담을 가능성은 있다.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은 물론이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언급도 빠뜨리기 어렵게 됐다. 일본 정부는 한중 양 국민과 세계의 지식인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해야만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07목] 아베 총리에 대한 세계 역사학자들의 경고

 

지구촌의 저명한 역사학자 187명이 6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군대위안부 문제에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말고 정면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또 일본의 식민지배 및 전시 침략 행위와 관련해 아베 총리의 ‘더 대담한 행동’을 촉구했다. 일본은 지구촌의 지성을 대표하는 이들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들의 성명은 아베 총리의 4월29일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 이후 일고 있는 역풍을 총정리하는 성격을 갖는다. 일본학을 전공하거나 일본 문제를 연구한 각국의 권위있는 역사학자들이 뜻을 모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려고 한국과 중국의 역사학자들을 서명자 명단에서 제외한 것도 눈에 띈다. 2월 미국역사협회 소속 역사학자 20여명이 발표한 성명이 ‘예비 경고’였다면 이번 성명은 ‘최후통첩’이라고 할 수 있다.

 

성명에서 밝힌 대로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수많은 자료와 증언에 의해 역사적 사실로 확정된 야만적 행위다. “20세기에 있었던 수많은 전시 성폭력과 군 주도의 성매매 사례 중에서도 위안부 제도는 방대한 규모와 군 차원의 조직적 관리, 그리고 일본에 점령됐거나 식민지배를 받았던 지역의 어리고 가난하며 취약한 여성을 착취했다는 점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아베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최소한으로 기술된 미국 등 외국 교과서의 위안부 관련 내용까지 바꾸려고 시도해왔다. 성명에 참가한 이들이 아니더라도 일본의 이런 행태를 용납할 역사학자는 없다. 위안부 문제의 핵심에는 평등권과 여성의 존엄이라는 문제가 있으며, 이의 해결은 일본과 동아시아, 지구촌에서 양성평등을 위한 역사적인 발걸음이 될 거라는 성명의 지적도 전적으로 타당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 정부의 명확한 행동이다. 아베 총리는 이제까지 ‘역사는 역사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해왔다. 하지만 이번 성명에서 보듯이 세계 역사가들은 이미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정리된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 부인해온 과거 잘못을 흔쾌하게 인정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위안부 문제를 풀지 않은 채 일본이 국제사회의 지도국이 될 수는 없다. 또한 미-일 동맹이 아무리 강화되더라도 미국이 위안부 문제를 대신 해결해줄 수는 없다. 아베 총리는 한-일 국교정상화 50돌(6월22일), 종전 70돌(8월15일) 등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지 말아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507목] “아베는 군 위안부 부정 말고 역사를 직시하라”

 

전 세계 역사학자 187명이 어제 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향해 정면으로 경고장을 날렸다. 알렉시스 더든 미 코네티컷대 교수·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명예교수·피터 두스 스탠퍼드대 교수·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등은 성명을 통해 “군 위안부들에게 있었던 일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일은 피해자들을 모독하는 것”이라며 “수많은 여성이 자신의 의지에 반해 붙잡히고 끔찍한 야만 행위를 겪었다는 증거는 분명하며…이 여성들의 이송·관리에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증명하는 수많은 자료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아베 총리가 미 의회 합동연설에서 인권과 인간 안보의 중요성을 언급했다”고 상기시키며 “이제 아베 총리가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베 총리는 방미 때 군 위안부를 ‘인신매매의 희생자’라 언급했다. 하지만 주어(主語)가 빠지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가 일말의 도덕적·법적 책임을 느낀다면 “일본군에 의한 인신매매”라고 표현하는 게 최소한의 예의다. 아무리 상호 이해관계에 따라 미·일이 밀착해도 역사적 진실까지 뒤집을 수는 없다. 수많은 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전쟁터에서 착취당한 사실은 결코 바뀌거나 지워지지 않는다.

 

  아베 총리는 전 세계의 진실과 양심에 맞서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다. 그는 “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여부는 역사학계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지난해 일본 최대·최고 권위 역사학연구회는 “일본군의 관여 아래 강제 연행된 위안부가 존재한 것은 확고한 사실”이라 답했다. 이번 세계 역사학자들의 공동성명도 여기에 대한 메아리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이런 국내외 학자들의 양심적 목소리를 깡그리 무시한 채 역주행을 거듭하고 있다. 과연 언제까지 과거와 진실을 부정하며 아무런 사과 없이 어물쩍 넘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아베 총리는 역사 문제를 역사 전쟁으로 바꿔놓았다. 그가 계속 역사 왜곡을 고집한다면 그 앞에는 전 세계의 역사학계와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사설

 

[서울신문 사설-20150507목] 징용시설 세계유산 등재에 ‘친서’ 로비 나선 아베

 

조선인 강제징용 현장이 포함된 산업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이 전방위 외교 로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등재 자격 논란이 들끓는 와중에 아베 신조 총리가 등재 심사를 맡은 관계국들에 친서까지 보내 지원을 호소하고 나섰다. 다음달 말 최종 심사를 앞두고 시비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총리가 작정하고 ‘등재 굳히기’에 팔소매를 걷어붙인 모양새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민간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메이지(明治)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도록 유네스코에 권고했다. 23곳 중에는 나가사키조선소와 야하타제철소 등 태평양전쟁 중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된 산업시설 7곳이 포함됐다. 일본의 등재 작업은 치밀하게 전개됐다. 문제의 산업시설들을 ‘산업 근대화의 유산’이란 허울을 씌워 등재 신청한 뒤 시비가 이어지자 그 유산 가치를 한·일 강제병합 이전까지로 한정 짓는다는 대응 논리를 들이댔다.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전에 들어선 시설인 만큼 강제 징용과는 별개로 봐야 한다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주장이다.

 

전례로 봤을 때 ICOMOS의 등재 권고는 ‘다 된 밥’을 의미한다. 다음달 말에 있을 제39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최종 결정되는 공식적인 수순만 남겨 뒀다고 보면 된다. 일본 내부에서도 이는 기정사실로 굳어진 분위기다. 문제의 산업시설이 있는 섬 주변으로 내국인 관광객들이 연일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 정부는 뒤늦게야 수습에 나서는 척하고 있다. 두 나라 외교 당국자가 조만간 만나 세계유산 등재 시 징용 사실 기재 등의 쟁점을 협의해 보겠다고 한다. 지금 와서 승산 있는 얘기가 아닐 게 뻔하다. 이번 등재 건은 갑자기 불거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2012년부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다. 이 지경이 되도록 외교부는 뭘 했는지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뒷북 외교’를 들먹이는 것도 입이 아프다. 등재를 없었던 일로 돌릴 수 없다면 남은 카드는 하나다. 유대인 학살 현장인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일본 징용시설도 ‘부(負)의 유산’으로 등재시켜야 한다. 반인간적 범죄 행위를 상징하는 반면교사의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옷 벗을 각오로 이번 등재 건에 매달려야 할 것이다.

 

 

■ 국무회의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의결

 

[한국일보 사설-20150507목] 세월호 시행령, 대통령 재가 미루고 재협의토록

 

세월호 특위와 유가족이 전면 폐기를 주장해온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끝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진상규명 주체와 피해자 측의 의견을 무시한 채 정부가 시행령을 강행 처리한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지 의문이고, 또 그렇게 나온 결과를 얼마나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지도 걱정스럽다.

 

당장 세월호 특위와 유가족은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시행령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석태 특위위원장은 “특별법이 특위에 부여한 권한을 활용해 ‘허수아비 시행령’에 구애 받지 않는 독자적인 위원회 규칙을 제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시행령이 모법인 특별법을 위배한 만큼 출범을 늦추고 자체적인 시행령을 만든 뒤 활동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시행령 논란의 핵심은 세월호 특별법에 명시된 특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제대로 보장돼 있느냐다. 정부가 내놓은 수정안은 공무원이 특위 운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한 독소조항이 그대로 남아있다. 특위 무력화 논란의 핵심 사항인 기획조정실장의 실무부서 총괄기능은 놔두고 명칭만 행정지원실장으로 바꿨다. 실장을 해양수산부가 아닌 다른 부처에서 파견토록 했을 뿐 공무원이 맡도록 한 것도 고쳐지지 않았다. 진상규명의 핵심 역할을 맡을 조사1과장 자리도 공무원에게 맡겼다. 조사대상이 될 수 있는 공무원이 칼자루를 쥐겠다는 것을 누군들 수긍할 수 있겠는가.

 

세월호 특위 업무 범위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정부 조사자료 분석’으로 그대로 국한시킨 것도 논란이다. 세월호 특별법 5조에는 특위 업무를 ‘원인규명’과 ‘구조ㆍ구난 작업과 정부 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로 규정했다. 이 것만 봐도 시행령이 모법의 취지는 물론 핵심 내용까지 위배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본질적인 문제점은 그대로 놔두고 일부 지엽적인 사항만 손본 수정안을 내놓고도 특위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당당한 태도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선포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1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달 15일 세월호 현안점검 회의에서“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른 시행령을 원만하게 해결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세월호 특위와 유가족과의 협의를 통해 갈등 없이 처리하라는 주문이었다. 국무회의를 통과한 시행령은 조만간 대통령의 재가를 거치면 최종적으로 확정된다. 박 대통령은 당시의 발언이 세월호 1주기를 넘기기 위한 생색내기용이 아니었음을 보여줘야 한다. 시행령 재가를 미루고 세월호 특위와 다시 협의를 거치도록 지시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결단을 바란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07목] 정부 시행령 강행, ‘세월호특조위 고사’ 노리나

 

온갖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가 6일 국무회의에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의결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바로 시행한다지만 반대와 거부는 여전하다. 유족들은 시행령 즉각 폐기를 요구했고,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시행령이 모법인 특별법에 위반된다며 시행령 재개정과 함께 별도의 위원회 규칙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갈등이 계속되면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또 한참 미뤄지게 됐다.

 

정부가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조사 대상인 정부가 되레 조사 과정을 장악하고 조사 범위도 정부의 기존 조사 결과를 검토하는 것으로 한정한 정부 시행령안에 대해선 처음부터 반대가 거셌다. 도둑이 매를 든 격이라거나 특조위의 발목을 묶으려 한다는 말들이 많았다. 그래서 시행령안을 일부 고쳤다지만 문제점은 그대로였으니 시늉뿐인 수정이었다. 특조위의 독립성과 실효성을 훼손해 결국 허수아비로 만드는 장치는 별로 바뀌지 않았고, 특별법 내용을 시행령이 타당한 근거도 없이 축소하고 왜곡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수정안의 차관회의 통과 뒤 유족과 특조위가 더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시행령 처리를 강행했다. 유족들의 뜻은 끝내 수렴하지 않았고 특조위와는 협의는커녕 정반대 방향으로만 내달렸다. 일을 되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일부러 어깃장을 놓는 듯하다. 왜 이토록 기를 쓰고 진상규명을 훼방하려는 것인지 그 의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대로라면 진상규명이나 성역 없는 조사는 불가능하다. 어떻게든 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벗어나 독립적인 조사를 하려는 특조위와, 시행령의 좁은 틀 안에 특조위 활동을 제한하려는 정부 사이의 삐걱거림이 이어질 것이다. 제대로 된 조사를 하기도 전에 특조위가 좌초하거나 표류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에선 벌써 시행령 확정으로 특조위 활동이 시작돼 11월1일로 활동을 마치게 된다는 셈법이 나온다. 진상규명에는 손 놓은 채 시간만 가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그렇잖아도 정부는 특조위에 일체의 예산배정을 하지 않고 있다. 특조위가 올해 초 이미 소요 예산을 요청했는데도 여전히 모르는 체다.

 

박 대통령과 정부는 이런 치졸한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 우리 사회 모두의 다짐대로 진상규명을 통해 다시는 비극이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특조위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먼저다. 잘못된 시행령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 공무원연금 개혁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중앙일보 사설-20150507목] 공무원연금 개혁도 소화 못한 한심한 대한민국

 

어제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가 결국 무산됐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할 능력이 안 되는 정치권이 더 엄청난 국민연금에 발을 잘못 들여놓는 바람에 엉망진창이 됐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물 건너간 것을 넘어 엉뚱하게 국민연금마저 들쑤셔 신뢰의 위기까지 자초했다.

 

  우리 사회는 이번에 밑천의 바닥을 드러냈다. 청와대는 비평만 늘어놓았고 여야는 이해당사자인 공무원단체를 협상에 끌어들이는 바람에 시종일관 끌려다녔다. 여야는 노장년층의 표를 의식해 그들의 노후와 기득권 유지에만 신경을 쏟았을 뿐, 앞으로 닥쳐올 부담은 청년층과 미래 세대에 몽땅 떠넘겨 버렸다. 여기에 자극받은 20·30세대가 국민연금에서 대거 이탈하지 않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여야는 이달 중순 원 포인트 국회를 추진할 모양이다. 이제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같은 말도 안 되는 문구는 잊어야 한다. 오로지 공무원연금 개혁에만 집중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배운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그래야 정치권이 이번의 실패를 제대로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그간 도마에 올랐던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요한 것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졸속 개혁으로 인해 거들떠보지도 못했던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이 최우선 검토 대상이 돼야 한다. 지급률을 1.9%에서 1.7%로 0.2%포인트밖에 깎지 못해 재정 절감 효과가 당초보다 84조원이나 줄어든 점도 손봐야 한다. 지급률을 20년에 걸쳐 서서히 깎도록 꼼수를 부리는 바람에 40대 중반 이상의 공무원들이 빠져나가게 설계한 것도 바로잡는 게 맞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여야 정치권이 마음대로 정할 사안이 아니다. 나라의 미래와 2113만 명 국민의 노후가 달린 일이다. 2060년 기금 고갈을 전제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되 보험료는 1%포인트만 올리겠다는 야당의 주장은 소가 웃을 일이다. 적립금을 당겨 쓴 뒤 그때 가서 필요한 만큼 매년 보험료를 걷는 부과 방식으로 가자는 뜻인데, 현재 9%의 보험료에도 허덕이는 국민들이 25%의 보험료를 감당할 수 있을까. 후손들에게도 볼 낯이 없다. 국민연금에 손대려면 국민 동의를 먼저 구하고 엄중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이번 사태는 정치권이 어설프게 연금 개혁에 손을 댔다가는 어떤 재앙을 맞는지, ‘연금의 정치화’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표를 계산하느라 공무원단체에 휘둘리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도 깨닫게 해줬다. 원 포인트 국회까지 짧은 시간에 문제점을 보완하되 그게 미흡하다면 공무원단체를 뺀 논의기구를 만들어 근본적 개혁안을 마련하는 게 낫다. 행여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수치를 40%와 50% 사이 적당한 지점에서 야합하려고 들지 말라.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서울신문 사설-20150507목] 국민연금 갑론을박 중단하고 공론화 나서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소득 대비 연금지급액)을 놓고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마련하면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기로 한 합의 내용을 둘러싼 논란이다. 논란의 핵심은 ‘소득대체율을 10% 포인트 더 올리면 연금 보험료를 얼마나 올려야 하느냐’는 문제다. 연금을 더 받으려면 보험료를 더 내는 것은 당연한데 지금보다 두 배가량 올려야 한다는 주장과 단 1% 포인트만 인상하면 되니 큰 부담이 없다는 주장으로 엇갈린다.

 

재삼 강조하는 것은 정치권이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만들면서 국민연금을 연계시키고 구체적인 숫자까지 명시한 것은 권한의 한계를 벗어났다는 점이다. 두 연금은 다 같이 개혁 대상인 공적 연금이지만 문제의 본질은 다르다. 적자를 낸 지 오래된 공무원연금은 매년 예산에서 수조원을 보전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 공무원연금의 개혁 취지는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를 바꿔 재정 부담을 줄이자는 데 있다. 공무원연금과 달리 적게 내고 적게 받는 국민연금은 고갈에 대비해 두 차례의 개혁을 통해 소득대체율을 40%로까지 낮춰 놓은 상태다.

 

두 연금이 놓인 상황이 다른 만큼 접근 방식도 달라야 한다. 국민연금은 일찍 고갈될 경우 세금으로 보전할 수 없는 규모이기 때문에 매우 정교한 연금정책으로 미래의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물론 소득대체율 40%로는 ‘용돈’에 불과하다고 할 정도로 생계비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말하자면 고갈 시기 연기와 노후 보장이라는 두 가지 가치 중에서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둘 것인지 심도 있는 논의가 따라야 한다. 그런 것을 개혁 같지도 않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하면서 국민연금 문제를 타협의 도구로 사용하는 등 졸속 처리한 것은 잘못돼도 매우 잘못됐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국회 통과는 논외로 하고 이 시점에서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 백가쟁명식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대체율과 보험료 인상에 대한 견해가 중구난방으로 나오듯이 국민연금 개혁은 공무원연금보다 더 복잡하고 따져 봐야 할 점이 많다. 정치인 몇 사람이 가입자들의 부담이 얼마나 늘지에 대한 얕은 지식만 갖고 시혜를 베풀 듯 정쟁을 벌일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공무원연금에서도 보았듯이 적게 내고 많이 받을 수 있는 연금은 없다. 누군가 져야 할 부담은 덮어 놓고 무조건 더 주겠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갈 어리석은 국민이 아니다.

 

현재의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체율을 높이면 미래세대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고 세대 갈등을 촉발할 것도 너무나 뻔하다. 대체율을 40%로 유지할 것인지, 5% 포인트든 10% 포인트든, 아니면 20% 포인트든 얼마나 올릴 것인지를 논의하는 사회적 합의, 즉 공론화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더 세밀한 재정 추계도 해 봐야 하고 가입자들이 부담을 얼마나 더 해야 하는지도 살펴서 동의를 구해야 한다. 수십 년 이후의 경제 상황을 예측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추정 가능한 미래상을 그려 놓고 국민연금을 어떻게 개혁해야 할지 지금부터 찬찬히 논의해 나가야 한다.

 

 

■ 성완종 리스트 수사, 홍준표 경남지사 소환

 

[경향신문 사설-20150507목] 홍준표 소환, ‘성완종 리스트’ 수사의 시작일 뿐

 

홍준표 경남지사가 ‘성완종 리스트’ 8인 중 처음으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특별수사팀은 성 전 회장에게서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홍 지사를 내일 소환키로 했다. 앞서 ‘자금 전달자’로 지목된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은 이미 4차례 조사를 받았다. 윤 전 부사장은 ‘아내가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국회에 가서 1억원이 담긴 쇼핑백을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검사 시절 얻은 ‘거악 척결’ 이미지를 자산으로 정계에 진출한 홍 지사가 피의자로 검찰에 불려가는 처지가 되었으니 아이러니다.

 

성 전 회장은 생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1년 홍 지사가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왔을 때 그 캠프에 있는 측근을 통해 1억원을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윤 전 부사장이 이를 사실상 시인하자 홍 지사 주변 인사들은 윤 전 부사장을 회유하려 시도했다. 그 사이 홍 지사는 “성 전 회장의 메모는 반대심문권이 보장돼 있지 않아 증거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등 법리논쟁을 펼쳤다. 어제는 “윤승모씨는 성 전 회장의 로비 창구다. 심부름을 이것만 했겠느냐. 대선, 총선 때도 똑같이 심부름했을 것”이라며 물귀신 작전을 폈다.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보기 딱하다.

 

검찰이 ‘리스트 8인’ 중 홍 지사를 첫 소환자로 지목한 것은 자금 전달자의 일관된 진술 때문일 것이다. 물증을 찾기 어려운 불법 정치자금 사건치고는 난도가 낮은 사건이라 볼 수 있다. 게다가 홍 지사는 경남지역 무상급식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면서 시민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터다. 그를 우선 수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거기서 끝나선 안된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리스트에 오른 나머지 7인도 모두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특히 불법 대선자금 수수 의혹은 검찰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최근 대선자금 수사의 실마리가 될 만한 새로운 진술도 나오지 않았는가. 경남기업의 ‘금고지기’였던 한장섭 전 부사장은 “2012년 대선 직전 성 전 회장이 2억원을 새누리당 선대위 관계자 김모씨에게 전달했다고 들었다”는 진술을 했다고 한다. 앞서 성 전 회장도 경향신문에 “2012년 홍문종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에게 2억원을 줬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전 부사장이 털어놓은 정황은 성 전 회장 발언보다 구체적이다. 검찰의 의지만 있다면 수사 단서는 충분하다. 검찰은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엄정하게 수사하기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50507목] 8일 검찰에 소환되는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홍준표 경남지사가 내일 오전 10시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다. 피의자 신분이다. 한나라당 대표 최고위원 경선을 앞둔 2011년 6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한테서 1억원을 받은 혐의다. 혐의가 입증되면 홍 지사는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최초로 사법 처리가 된다.

 

검찰은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성 전 회장의 측근인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네 차례에 걸쳐 조사해 구체적인 정황도 파악했다. 윤 전 부사장은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국회의원 회관 지하 주차장에서 내린 뒤 홍 지사의 에쿠스 승용차에 홍 지사와 함께 타 1억원이 든 쇼핑백을 건넸다. 동석했던 나경범(현 경남도 서울본부장) 당시 수석보좌관이 쇼핑백을 들고 홍 지사의 사무실로 올라갔다”고 진술했다. 윤 전 부사장의 부인도 “남편이 홍 지사 측에 1억원을 전달한 날 국회의원 회관까지 차로 태워다 줬는데 남편이 돈이 든 쇼핑백을 챙겨 가는 것을 봤다. 남편이 돌아왔을 때 쇼핑백은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시간과 장소, 돈을 전달한 대상 등 구체적인 정황이 나오는 등 증거가 충분해 검찰은 홍 지사를 기소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홍 지사는 여전히 금품수수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어제는 기자들을 피해 오던 태도에서 벗어나 지사 집무실에서 즉석 간담회까지 가지며 검찰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홍 지사는 “검찰이 유일한 증인인 윤씨를 한 달 동안 통제 관리하고 10여 차례 조사하면서 진술 조정을 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난했다. 이어 “검찰이 일방적 주장을 언론에 흘리고 언론이 마치 기정사실화해 혐의가 있는 것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보여 설명을 드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지사는 검찰에 나가서도 이러한 주장을 펴겠지만, ‘올인’에 나서야 할 만큼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돈을 받은 사실이 확인된다면 정치생명은 사실상 끝난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황태자였던 박철언 전 의원을 구속하는 등 부패와 싸웠던 청렴한 ‘모래시계 검사’의 이미지도 무너진다. 검찰도 절박한 건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에 대해 특검 도입을 요구하는 여론은 처음부터 거셌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첫 번째로 소환한 홍 지사의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면 특검 도입 여론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홍 지사와 윤 전 부사장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윤 전 부사장의 말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검찰은 확실한 증거를 토대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 관련 칼럼

 

[한겨레신문 칼럼-정석구 칼럼/정석구(편집인)-20150507목] 핵심은 박근혜 대선자금이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내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다. 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이 발족한 지 거의 한달 만이다. 수사 속도가 느린 것 같아 답답하지만 일단 검찰 수사가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됐다. 홍 지사의 사법처리 여부가 앞으로의 수사 판도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홍 지사가 왜 첫번째로 꼽혔을까. 돈 전달자의 구체적인 증언이 나오는 등 혐의를 입증하기가 쉬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홍 지사는 학교 무상급식 철회로 여론의 지탄을 받으면서 정부여당에 부담을 안겨주었다. 검찰로서는 박근혜 정권의 골칫덩이가 된 홍 지사를 사법처리하는 데 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홍 지사가 “이번에는 (바둑판의) 팻감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둔 것이리라.

같 은 논리로 보면, 두번째 대상은 이완구 전 총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청문회 과정에서부터 온갖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논란이 되자 새누리당마저 자진 사퇴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이미 버린 카드인 셈이다. 검찰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울 수밖에 없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은 검찰의 수사 의지와 역량에 달려 있겠지만 일단 두 사람에 대한 수사까지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검찰이 2차로 넘어야 할 관문은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3명이다. 만만치 않다. 성 회장의 메모나 녹취만으로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 수사 과정에서는 외부의 입김도 들어올 것이다. 검찰이 대선배인 김기춘 전 실장의 벽을 과연 넘을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성 회장이 김 전 실장에게 10만달러를 주었다는 진술이 있어 검찰이 의지만 보인다면 사법처리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이병기 현직 비서실장은 더 높은 장벽이다. 이 실장은 국회 답변에서 “박 대통령이 ‘(리스트에) 이름이 났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셨고 ‘전혀 금전 관계가 없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이를 믿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결백을 보증했다고 밝힌 셈이다. 만약 박 대통령이 특유의 어조로 “이 실장은 돈 받은 적 없다고 하던데요!”라고 한마디라도 하면 검찰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상 수사 지침을 내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3관문은 박 대통령의 대선자금과 관련된 것이다. 성 회장은 쪽지에 ‘부산시장 2억, 홍문종 2억, 유정복 3억’이라고 구체적 액수까지 적어놓았다. 이들은 2012년 박근혜 선거운동본부의 당무조정본부장, 조직총괄본부장, 직능총괄본부장을 각각 맡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미 국가정보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불법 선거개입이 확인된 마당에 이들에게 불법 자금이 흘러들어간 게 확인되면 박 대통령은 불법으로 얼룩진 선거를 통해 당선된 ‘불법 대통령’이 된다. 대통령으로서의 정통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이 대목에 대한 수사가 갖는 의미는 막중하다.

 

박 대통령이나 새누리당 모두 겉으로는 철저 수사를 통한 정치개혁을 말하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없다. 책임져야 할 사건 당사자들이 마치 남의 일인 양 말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영리한 검찰이 모를 리도 없다. 검찰이 이에 기대어 1관문만 넘은 채 유죄 입증이 어렵다는 교묘한 법리를 들이대며 2관문 언저리에서 머뭇거리거나 칼날을 야당 쪽으로 돌린다면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문무일 특별수사팀장은 이번 수사를 하면서 그동안 검사로서 가져왔던 양심을 잃지 않고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김진태 검찰총장도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 말이 빈말이 안 되려면 성완종 리스트의 핵심인 박 대통령 대선자금까지 파헤쳐 드러내야 한다. 문 팀장으로서는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건 어차피 검사로서는 마지막 수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 그가 즐겨 쓰는 말대로 ‘명징하게’(깨끗하고 맑게) 검사 생활을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경향신문 사설-20150507목] 또 일방통행식 규제완화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3번째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주재했다. 규제는 ‘암 덩어리’ ‘원수’ ‘단두대에 보내야 한다’는 등의 섬뜩한 표현에서 느껴졌지만 여당의 재·보선 승리 이후 첫 이벤트를 규제개혁으로 잡은 것을 보면 그 집요함이 놀라울 정도다. 물론 대통령의 규제개혁 취지와 의지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불합리한 제도와 규제를 없애는 것을 반대할 까닭은 없다. 나쁜 규제를 없애 경제활성화의 촉매로 쓰겠다는 의도 역시 틀리지 않다. 하지만 늘 문제는 사회적 논란이 되는 사안을 경제활성화란 이름으로 버무린 채 일방통행으로 진행하는 데 있다. 기업 비용부담을 덜어준다며 선령 규제를 푼 게 세월호 사고의 단초가 됐고, 인천 강화도 글램핑장 화재 역시 개발제한구역에 야영장 설치를 늘리도록 규제를 푼 결과라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회의에서는 30만㎡ 이하 개발제한구역 해제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위임하고 지역특산물 판매, 체험시설과 마을 공동으로 숙박·음식·체험 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규제완화책이 발표됐다. 주민 불편 해소를 우선하며 2년 내 개발되지 않을 경우 개발제한구역으로 환원돼 난개발이 없을 것이라지만 표를 의식한 지자체장들이 주민과 기업들의 해제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데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그간의 규제 완화 성과로 온라인 쇼핑이 쉬워졌다고 시연했지만 결제시스템 완화 한편으로 국민들이 걱정하는 보안시스템은 어떻게 강화됐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입법권 경시는 또 다른 문제다. 박 대통령은 어제 의원입법을 규제 양산의 주범으로 몰며 국회에 불편한 감정을 내비쳤다. 지난 2월 ‘불어터진 국수’ 운운하며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게 국회의 경제활성화법 처리가 늦어진 데 따른 것처럼 얘기했던 것과 다르지 않은 독선이 느껴진다. 되풀이 얘기하지만 첨예한 사안일수록 부작용과 사회적 비용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우선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투자와 일자리를 얘기하며 규제 완화를 추진했지만 경제활성화 대신 기업 사내유보금 증가, 땅 보유 확대로 이어졌던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지금 시급한 것은 벼랑에 몰린 서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지 결과도 확실치 않은 기업들의 민원 해결이 아니다. 지속적인 규제 완화와 경제활성화 정책으로 서민들의 삶이 나아졌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07목] 재산권 침해하는 상가 임대차보호법이 초래할 결과들

 

소위 권리금 보호법인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어제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다음달부터 임대인은 임차인이 새로운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을 받는 것을 방해하지 못한다. 임대인이 방해할 경우 임차인은 임차종료 후 3년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지난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이 “상가권리금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고 밝힌 지 1년3개월 만에 법률안이 통과됐으니 정부와 국회가 이 문제에 관한 한 ‘같은 시각’인 셈이다. 표가 적은 임대인이 아니라 표가 더 많은 임차인을 겨냥한 정치권의 포퓰리즘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억울한 임차상인을 보호하고 횡포를 부리는 임대인을 규제하자는 것은 자연스런 감정이다. 그러나 건물주와 입주상인의 권리관계는 법으로 쉽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권리금의 시장가치 평가는 훨씬 복잡하다. 권리금은 그 매장의 가치를 높게 보는 새로운 임차인이 리스크를 안고 지급하는 것일 뿐이다. 장사가 잘되는 매장에서 임대인이 임차인을 내쫓고 직접 매장을 운영하는 ‘권리금 약탈’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지만, 대부분 임대인은 매장의 권리금이 올라가면서 자신의 건물 가치가 높아지는 것을 더 선호한다.

 

문제는 권리금 보호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 요인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재개발, 재건축 과정에서 분쟁은 필수적이다. 건물주는 상인 간 권리금 거래에서 아무런 실질적인 이득을 본 것이 없다. 때문에 재산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임대와 임차는 관습과 상거래 관행, 신의칙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모든 신뢰 관계를 법으로 규정하자고 나서면 그 법률의 수만큼이나 많은 편법이 생겨나고 결국 법은 파괴되고 만다. 더구나 이런 종류의 보호법은 부작용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예외를 만들어내면서 서서히 누더기로 변해간다. 언제나 그렇지만, 단순히 희망사항을 나열할 뿐인 수많은 소위 ‘그랬으면 좋겠다’법들은 당초 목표와 달리 큰 후유증을 낳는다. 상가 자산가치의 하락이나 상거래 위축은 상가 임대차보호법이 가져올 필연적 결과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07목] 채권금리 급등, 양적완화 거품 터지는 신호탄인가

 

금융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최근 10여일 사이 채권금리가 급등(채권 가격 급락)하더니 사상 최고치 달성 기대가 높던 주식시장마저 상승세가 크게 꺾였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달 20일 연 1.693%를 바닥으로 이후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올라, 어제는 연 1.969%까지 올랐다. 10년물, 30년물 등 장기물 금리는 더 빠르게 오르고 있다.

 

채권금리가 오르는 직접적 원인은 미국 독일 등 해외 채권금리의 상승이다. 지난주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는 연 0.37%로 0.22%포인트, 미국은 연 2.11%로 0.21%포인트 올랐다. 블룸버그통신은 메릴린치채권지수를 인용, 글로벌 채권시장 시가총액이 지난 1주일간 3400억달러 증발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해외 금리가 오르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경기 회복, 국제유가 반등 등을 꼽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의 1분기 성장률은 당초 예상과 달리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도 아직 추세적 상승세로 돌아섰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저금리와 양적 완화로 풀린 자금이 몰리던 채권시장이 이제는 상투를 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 얼마 전 끝난 밀컨 콘퍼런스에서 조슈아 해리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창업자는 “거의 모든 자산가격이 지나치게 고평가돼 있다. 채권시장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헤지펀드 브레번 하워드의 창업자 하워드도 최근 채권시장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채권금리 급등은 주식시장에도 악재일 수밖에 없다. 지난달 말 세계 증시 시가총액(74조7000억달러)은 전 세계 GDP를 넘어섰다. ‘IT 버블’ 때인 1999년,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 이어 세 번째다. 거품이 곧 터진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코스피지수는 어제도 1.3% 하락, 지난달 23일 고점 대비 3.2% 떨어졌다. 미국 일본 증시 역시 4월 말 고점 대비 3% 안팎, 독일과 중국은 각각 8.5%, 7.5%나 급락했다. 양적 완화와 저금리라는 비(非)전통적 변칙이 빚어낸 거품이 이제 막 터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07목] 한국 근로자 세후 소득이 OECD 6위라는 놀라운 사실

 

물가를 감안한 구매력 기준으로 한국 근로자의 평균임금이 지난해 4만6664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14번째라고 한다. 특히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떼고 근로자가 손에 쥐는 세후 순소득은 4만421달러로 순위가 6위로 껑충 뛴다.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스위스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호주 네덜란드뿐이다. 미국 일본 독일 스웨덴 등 대다수 OECD 국가들이 한국보다 낮다. 한국은 물가가 싼 편이고, 세금·사회보험료(사업주 부담분 포함) 합계도 21.5%로 OECD 평균(36.0%)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다.

 

물론 이 통계는 5인 이상 사업체 정규직 기준이어서 근로자 간 임금격차 등 실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국내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62.2%에 불과하다. 노사정위원회 임금보고서에 따르면 저임금 근로자(중위임금의 3분의 2 이하) 비중은 25.1%로 미국 다음으로 높다. 하지만 근로자 세후 순소득은 어느덧 웬만한 선진국보다 많은 수준이 됐다. 통상임금 확대, 근로시간 단축으로 더 오를 것이다. 지난 5년간 인건비가 50% 이상 올라 노동비용이 일본 수준이 됐다는 GM 측의 불평이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니다.

 

그동안 근로자는 ‘유리알 지갑’이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왔다. 정치권이 각종 세금감면을 지속적으로 늘려온 배경이다. 그러다 보니 근로자 임금에서 차지하는 소득세 비중이 4.6%로 칠레(0%) 다음으로 낮다. OECD 평균(15.6%)에 비해선 3분의 1에 불과하다. 근로자의 48.0%는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도 된다. 세금은 덜 떼고 임금 격차와 하후상박만 강조하다 조세체계가 엉망이 된 결과다.

 

흔히 복지국가의 모델로 북유럽 선진국들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북유럽 국가 근로자들이 임금에서 떼는 소득세가 한국 근로자의 4~7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는 한국 사회다. 정치권의 무상공약은 반기면서 세 부담 늘어나는 것은 기피한다면 이율배반이요 모순이다. 두 차례 세금파동의 결과 앞으로 근로자 증세는 말도 못 꺼낼 나라가 됐다. 포퓰리즘 정치가 국민 의식까지 무너뜨리는 중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0목] 금리 조정폭 '마이크로스텝' 검토할 만하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조정폭인 25bp(1bp=0.01%포인트)에 대한 회의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저금리 시대를 맞으면서 논의가 한층 가열되는 양상이다. 6일 서울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최근 한은에서는 해외 중앙은행의 금리조정폭과 영향 등을 담은 기초자료 조사에 착수했을 뿐 아니라 금융통화위원들 사이에서도 보폭 축소를 주장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베이비스텝'으로 지칭되는 25bp의 조정폭은 옳다 그르다 일도양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무엇보다 현행 경제 시스템이 25bp 조정을 전제로 짜여 있어 급격히 변경하기에는 난점이 있다. 한은이 1999년 금리목표제를 도입한 후 줄곧 베이비스텝을 불문율처럼 유지해온 것도 이 원칙이 흔들릴 경우 오히려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울 우려가 있어서였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금리 1%대 시대인 지금은 상황 변경의 이유가 보다 뚜렷해졌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베이비스텝을 탈피해 10bp로 보폭을 조정한 것도 저금리 현실을 반영한 선택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베이비스텝도 1990년대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00bp의 조정폭을 4등분해 경기대응 능력을 높이자는 아이디어에서 나온 게 아닌가. 20년 전 고금리 시대에 미국에서 정해진 것이 25bp의 스텝이라면 이제는 우리 현실에 맞는 스텝이 무엇인지 스스로 따져볼 때가 됐다. 물론 현행 베이비스텝으로도 경기조절 효과가 충분하다면 유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25bp가 베이비스텝이 아니라 '자이언트스텝'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 지 이미 오래인 만큼 한은은 '마이크로스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07목] 그린벨트 해제 권한, 난개발 방지책과 같이 가야

 

정부가 6일 제3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내놓은 규제개혁 과제는 양에 초점을 맞춘 기존 규제개혁과 달리 기업과 국민이 효과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규제 완화에 중점을 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표적인 것은 은행이 핀테크 기업에 출자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핀테크가 창의와 혁신에 바탕을 둔 비즈니스 모델들을 쏟아내며 기존 금융질서를 뒤흔들고 있는데도 정작 우리는 금융과 산업 자본을 분리하는 금산분리 원칙에 얽매여 투자도 못한 채 뒷짐만 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상의 금융회사가 업무수행과 관련 있는 회사에 출자할 수 있다는 규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은행의 핀테크 투자를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세계 핀테크 산업 흐름에 적극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규제비용총량제 시범사업을 확대하는 점도 눈에 띈다. 규제비용총량제는 새로운 규제를 만들 때마다 그에 상당하는 기존 규제를 폐지·완화해 규제비용의 총량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규제개혁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본 전제였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30만㎡ 이하의 중소 규모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넘겨준다는 점이다. 그린벨트 내 주민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입지 규제를 대폭 푼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을 막을 정부 차원의 대책이 사전에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린벨트 해제 권한만 시도지사에게 준 것은 잘못이다. 그렇지 않아도 임기 중 다양한 개발사업을 벌이려 하는 지자체장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될까 우려된다. 난개발의 책임을 후임에게 지울 수는 없지 않나.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07목] "젊은 세대를 위한 나라는 없다"

 

"청장년 세대는 갈수록 빈곤해지고 연금생활자들은 상대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얼마 전 '젊은 세대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제목의 글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FT는 자체 조사 결과 평균 연금생활자들은 빠른 소득증가를 누리지만 청장년 세대는 지난 35년간 상대적인 풍요의 자리에서 보통을 훨씬 밑도는 쪽으로 밀려났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자원 재분배에 나서지 않고 전 세대에 공정하게 혜택을 부여하지 않으면 젊은 층은 세대 간 사회계약의 파기를 원할 수도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같은 결론은 단순히 경고 차원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2011년 국민연금 납부율은 48.6%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20∼24세 납부율은 25%에 불과하다. 연금을 내봤자 결국 손해 볼 게 뻔하다는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반면 연금을 수령하는 노인층은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일본의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현 추세라면 2040년에 국민연금이 고갈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렇게 되면 20∼30대 젊은 세대는 연금을 납부하고도 나중에는 아예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대폭 줄어든 연금액만 수령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판박이로 가고 있다.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에 합의했다지만 이 역시 젊은 세대에 피해가 쏠리도록 설계돼 있다. 현재 연금 수령자나 50대 이상은 아무 피해도 없이 자신의 납부액보다 거의 3배나 많은 연금을 받는다. 결국 차액은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고 이 같은 재정적자분은 내년부터 70년 동안 1,238조원에 이른다. 이렇게 오르는 세금은 누가 부담하나. 후세대가 짊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만 혜택에서 소외된다는 지적을 의식한 여야 정치인들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현재의 40%에서 50%로 올리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대신 보험료율을 지금보다 20% 이상 높여야 한다는 지적에는 묵묵부답이다. 온전히 젊은 세대의 몫이니 국회의원 자기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 젊은 세대 무시는 이뿐만이 아니다. 노총과 공무원집단에 대한 눈치 보기와 인기영합에 정신을 팔다 보니 정작 통과돼야 할 경제 활성화 법안들은 철저히 외면해버렸다. 2020년까지 35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효과가 기대되는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은 여전히 이익집단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노동개혁, 공무원연금 개혁법안도 마찬가지다. 국회는 지금 온갖 이익집단의 해우소로 전락하고 있다. 조직화하지 않는 젊은 세대만 희생양으로 내몰릴 뿐이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정석구 칼럼/정석구(편집인)-20150507목] 핵심은 박근혜 대선자금이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내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다. 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이 발족한 지 거의 한달 만이다. 수사 속도가 느린 것 같아 답답하지만 일단 검찰 수사가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됐다. 홍 지사의 사법처리 여부가 앞으로의 수사 판도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홍 지사가 왜 첫번째로 꼽혔을까. 돈 전달자의 구체적인 증언이 나오는 등 혐의를 입증하기가 쉬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홍 지사는 학교 무상급식 철회로 여론의 지탄을 받으면서 정부여당에 부담을 안겨주었다. 검찰로서는 박근혜 정권의 골칫덩이가 된 홍 지사를 사법처리하는 데 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홍 지사가 “이번에는 (바둑판의) 팻감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둔 것이리라.

같 은 논리로 보면, 두번째 대상은 이완구 전 총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청문회 과정에서부터 온갖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논란이 되자 새누리당마저 자진 사퇴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이미 버린 카드인 셈이다. 검찰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울 수밖에 없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은 검찰의 수사 의지와 역량에 달려 있겠지만 일단 두 사람에 대한 수사까지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검찰이 2차로 넘어야 할 관문은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3명이다. 만만치 않다. 성 회장의 메모나 녹취만으로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 수사 과정에서는 외부의 입김도 들어올 것이다. 검찰이 대선배인 김기춘 전 실장의 벽을 과연 넘을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성 회장이 김 전 실장에게 10만달러를 주었다는 진술이 있어 검찰이 의지만 보인다면 사법처리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이병기 현직 비서실장은 더 높은 장벽이다. 이 실장은 국회 답변에서 “박 대통령이 ‘(리스트에) 이름이 났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셨고 ‘전혀 금전 관계가 없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이를 믿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결백을 보증했다고 밝힌 셈이다. 만약 박 대통령이 특유의 어조로 “이 실장은 돈 받은 적 없다고 하던데요!”라고 한마디라도 하면 검찰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상 수사 지침을 내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3관문은 박 대통령의 대선자금과 관련된 것이다. 성 회장은 쪽지에 ‘부산시장 2억, 홍문종 2억, 유정복 3억’이라고 구체적 액수까지 적어놓았다. 이들은 2012년 박근혜 선거운동본부의 당무조정본부장, 조직총괄본부장, 직능총괄본부장을 각각 맡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미 국가정보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불법 선거개입이 확인된 마당에 이들에게 불법 자금이 흘러들어간 게 확인되면 박 대통령은 불법으로 얼룩진 선거를 통해 당선된 ‘불법 대통령’이 된다. 대통령으로서의 정통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이 대목에 대한 수사가 갖는 의미는 막중하다.

 

박 대통령이나 새누리당 모두 겉으로는 철저 수사를 통한 정치개혁을 말하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없다. 책임져야 할 사건 당사자들이 마치 남의 일인 양 말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영리한 검찰이 모를 리도 없다. 검찰이 이에 기대어 1관문만 넘은 채 유죄 입증이 어렵다는 교묘한 법리를 들이대며 2관문 언저리에서 머뭇거리거나 칼날을 야당 쪽으로 돌린다면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문무일 특별수사팀장은 이번 수사를 하면서 그동안 검사로서 가져왔던 양심을 잃지 않고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김진태 검찰총장도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 말이 빈말이 안 되려면 성완종 리스트의 핵심인 박 대통령 대선자금까지 파헤쳐 드러내야 한다. 문 팀장으로서는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건 어차피 검사로서는 마지막 수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 그가 즐겨 쓰는 말대로 ‘명징하게’(깨끗하고 맑게) 검사 생활을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상언(사회부문 차장)-20150407목] 할아버지 세대의 파탄

 

‘젊은이들이 노년층에 인질로 사로잡혀 있다. 이제 상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여 노년층은 자녀들에게 외상을 지고 살게 됐다. …베이비붐 세대는 퇴직연령에 접어들며 사상 전례 없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즉 전후 처음으로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외상을 지고 살게 된 것이다. 다음 세대에게 부채와 채무 이행에 대한 부담을 떠넘긴 것이다.’

 

  ‘잔인할 정도로 아이러니한 것은 베이비붐 세대는 아동의 권리, 자신의 인격과 자율에 대한 존중을 떠받들면서도 자신이 감당할 용기가 없는 희생은 후대에게 물려준 것이다. …젊은이들은 엄청난 액수의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베이비부머들은 책임을 회피하는 ‘부도 낸 할아버지’가 됐다. …젊은이들은 젊기 때문에 당할 뿐이다.’

 

  2009년에 출판된 『Le papy-krach』라는 책의 서문에서 발췌한 글이다. ‘부도 낸 할아버지’쯤으로 번역이 가능하다. 한국어 번역본에는 『세대 간의 전쟁』(박은태·장유경 옮김, 경연사)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레지옹 도뇌르(프랑스 정부의 최고 훈장)를 받은 르몽드 논설위원 출신인 저자 베르나르 슈피츠는 프랑스 기성세대를 ‘도덕적 파산자’로 규정한다. 공적 연금, 건강보험 등으로 인해 정부를 엄청난 빚더미 위에 올려놓고 후세에게 그 책임을 미루는 어른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부도 낸 할아버지는 프랑스 혁명의 3대 정신인 자유·평등·박애와는 거리가 멀다. 먼저 자유와 거리가 멀다. 젊은이들은 위 세대가 초래한 일의 결과를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등과도 거리가 멀다. 평등의 가치와는 반대로 세대 간의 불평등이 조장되기 때문이다. 또한 박애와도 거리가 멀다. 기득권 보호를 위한 대립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5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지리적·시간적으로 거리가 꽤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그 일이 우리의 현실로 닥쳐왔다. 할아버지 세대인 여야 대표가 지난 2일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부당함은 자명하다. 당사자인 공무원이 반발하지 않는 것, 공무원을 비롯한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정치인들이 문제 삼지 않는 것만 봐도 결코 개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슈피츠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혁할 능력을 인정받는 정치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고 썼다. 그런데 불행히도 프랑스나 우리나라나 그런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불행하게도 그들은 할아버지·아버지 세대가 지금 얼마나 나쁜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를 잘 모른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이기환(논설위원)-20150507목] 부(負)의 유산

 

유네스코 등재 세계유산(1007건) 가운데 절대 다수는 영원히 기억해야 할 인류의 자랑스러운 유산들이다. 하지만 절대 반복돼서는 안될, 그래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유산들도 있다.

 

이른바 ‘부(負)의 유산(Negative heritage)’이다. 대표적인 ‘부의 유산’은 아우슈비츠 수용소(1979년 등재)이다. 나치의 집단학살과 반인간적 범죄행위의 증거라는 게 등재 이유였다. 세네갈의 고레섬(1978년)과 마셜제도의 비키니섬(2010년)도 ‘부의 유산’들이다. 고레섬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노예무역’이 번성했던 곳이다. 냉전시대 핵실험지로 악명을 떨친 비키니섬은 인류가 핵시대로 본격적으로 접어들었음을 확인시켜 준 ‘부의 유산’이다. 히로시마 원폭돔(1996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는 유의해야 한다. 일본이 등재신청을 하면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가해자임을 싹 빼고 미국이 만든 파괴적인 무기(원폭)의 피해자라는 점만 강조한 것이다. 중국과 미국이 앙앙불락했지만 이미 늦었다. 다만 중국·미국은 세계유산 홈페이지의 유산목록에 ‘가해자인 일본의 원폭돔 유산등재에 반대의사를 표시한다’는 성명서를 게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번에도 일본은 같은 수를 썼다.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피가 묻은 시설물들을 ‘메이지시대 산업혁명유산군’의 이름으로 등재신청한 것이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등재권고까지 받았으니 세계유산총회(6월28일·독일 본)에서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등재권고를 받고 총회에서 등록보류 및 취소된 예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혹 일본과 협의해 ‘부의 유산’ 개념을 첨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과거사를 가리는 데 급급한 일본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방안은 뭘까. 공식문서에 첨부시키지는 못해도 세계유산 최종 결정 때 ‘조선인 징용’ 사실을 발표문에 넣도록 외교력을 집중하면 어떨까. 중국과 미국이 히로시마 원폭돔 등재 때했던 것처럼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반대 흔적’을 남기는 것도 궁여지책이다. 이달 말 열릴 한·일 간 양자회담을 지켜봐야겠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뒷북 외교’의 대가, 참 혹독하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박홍환(논설위원)-20150507목] 티셔츠 자판기

벤딩머신(자동판매기)의 천국 일본에서는 그야말로 거의 모든 생활용품을 자판기를 통해 살 수 있다. 음료 및 커피 자판기는 기본이고 라면 자판기, 속옷 자판기, 우산 자판기까지 없는 게 없다. 오죽하면 자판기에서 전철표를 끊어 자판기 같은 전철을 타고 출근한 뒤 자판기처럼 일하고, 점심은 라면 자판기와 커피 자판기로 해결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까.

 

기원전 215년 무렵 고대 이집트 신전의 성수(聖水)샘 앞에 새로운 ‘물건’이 등장했다. 경화(硬貨), 즉 금속 동전을 넣으면 성수(聖水)가 흘러나오도록 고안된 장비다. 동전의 무게에 의해 평형추의 균형이 깨져 성수가 나오는 밸브가 열리고, 일정 시간 후 평형추가 균형을 되찾으면 밸브가 닫히는 원리였다고 한다. 이는 인류 최초의 자판기로 기록돼 있다.

 

자판기는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시대가 열리고, 무엇보다 인건비 상승 등으로 새로운 유통혁명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24시간 무인판매 시스템이라 노동력이 필요 없고, 현금 판매로 자금 회전이 빠른 데다 자투리 면적을 이용할 수 있어 그야말로 일석다조의 효자기계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들로서도 간편하게 자기 주변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당연히 폭발적인 히트로 이어졌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승차권 자판기, 담배 자판기, 커피 자판기, 음료 자판기 순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도입 초기 자판기 옆에는 관리자 또는 동전 교환원이 앉아 있었다니 자판기답지 않은 자판기였던 셈이다. 지금은 커피 자판기만 해도 이른바 ‘다방식 커피’뿐 아니라 최고급 원두커피까지 소비자들이 취향대로 고를 수 있도록 한층 세분화됐다.

 

최근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서는 티셔츠 자판기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독일 베를린 시내 광장에 ‘티셔츠 한 장, 단돈 2유로(약 2400원)’라는 문구가 적힌 자판기가 설치되자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하지만 자판기에 돈을 넣고 사이즈를 고르려 하자 모니터에서 충격적인 영상이 흘러나온다. 방글라데시의 한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소녀 마니샤를 포함해 현지 수백만 명의 소녀들이 값싼 티셔츠를 만들며 받는 돈이 시간당 13센트(약 140원)에 불과하고 하루 16시간 이상 일한다는 내용이다. 영상은 이어 “아직도 2유로짜리 티셔츠를 사고 싶은가요?”란 자막을 내보내고, 실제 구매할 건지 아니면 2유로를 기부할 건지 묻는다.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싼값에 물건을 구입하길 원하지만 그 가격을 맞추기 위해 열악한 환경의 제3세계 노동자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티셔츠 자판기 이벤트의 메시지다. 자판기의 홍수, 무감각한 소비의 이면에 또 어떤 비극적인 현실이 숨겨져 있을지 오싹할 따름이다. 지금부터라도 생각하는 소비를 시작하자.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507목] 적정 음주량?

 

한국인의 적정 음주량은 1주일에 소주 2병 이하라는 지침이 나왔다. 대한가정의학회 알코올연구회가 우리나라 사람의 체질에 맞춰 연구한 결과라고 한다. 알코올 용량으로 따져 생맥주(500mL) 8잔, 막걸리(250mL) 8사발 분량이다.

 

여태까지는 마땅한 대안이 없어 ‘주당 국제 표준 잔(한 잔은 알코올 14g)으로 14잔(196g)이 적절하다’는 미국 국립보건원 기준을 따랐던 모양이다. 14g짜리 한 잔은 소주 90mL(4분의 1병)이고, 14잔이면 3.5병에 해당한다. 우리는 몸집이 작아 3분의 2 정도인 소주 2병(112g)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가이드라인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선 발표기관마다 기준이 제각각이고 수치도 다르다. 몇 년 전 한국건강증진재단이 세계보건기구(WHO)와 의학계 자문을 거쳐 내놓은 저위험 음주 가이드라인은 1주일에 소주 5잔, 맥주 4잔이었다. 여성은 그 절반이었다. 20년 전인 1996년 복지부가 제시한 적정 음주량은 소주 3잔, 맥주 3잔이었고 여성은 그 3분의 2였다.

 

세계보건기구의 저위험 음주량은 맥주 5.6잔(여성 2.8잔)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를 기준으로 지난해 한국인 평균 음주량이 맥주 6.5잔(여성 4.7잔)이나 된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 건강측정평가연구소도 술 때문에 약 11.1개월의 건강수명이 단축된다며 잔뜩 겁을 줬다. 영국 왕립공중보건학회는 와인 한 잔 열량이 파운드케이크 한 조각과 같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런 숫자들이 ‘어리석은 공포’를 조장할 뿐이라는 지적도 많다. 과체중일수록 사망률이 높다는 통념은 2013년 미국 국가보건통계청의 조사 결과 뒤집어졌다. 과체중인 사람의 사망 확률이 되레 6% 낮다는 것이다. 노스웨스턴대 연구팀도 과체중 당뇨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오래 살고 사망률이 절반 이하였다고 보고했다. ‘비만의 역설’이다. 고혈압 기준을 1900년대 초 ‘160, 100 이상’에서 1974년 ‘140, 90’으로 낮춘 결과 환자가 3배 늘었던 사례도 비슷하다.

 

물론 지나친 음주는 나쁘다. 그러나 뭐든지 계량화하려는 ‘숫자 인간’들의 사고 방식도 별로 좋아보이진 않는다. 그러면 술의 정신적 영향은 어떻게 수치화할 것인가. 영국에 철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성명서가 생각난다. 당시 영국의사협회는 ‘마차에 비해 철도는 너무 빨라서 구토나 메스꺼움, 정신병까지 유발할 수 있으니 가능하면 기차를 타지 않기 바란다’고 전 국민에게 권고(?)했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임석훈(논설위원)-20150507목] '독수리표' 베이비

 

지난 3월 초 미국 합동수사국 요원들이 로스앤젤레스와 오렌지 카운티 등의 호화주택 20여곳에 들이닥쳤다. 모두 중국인 임산부 호텔로 알려진 곳이다. 급습 이유는 원정출산 브로커 소탕. 중국 임산부의 미국 원정출산이 유행처럼 번진 것은 2010년대 들어서다. 대기오염과 식품안전 문제가 심각해지는 와중에 반부패 드라이브까지 겹치면서 부유층을 중심으로 원정출산 붐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좋은 교육환경에서 공부시키려는 부모들의 욕망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미국에서 아기를 낳은 중국인은 연간 1만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원정출산 신생아, 이른바 '독수리표 베이비'가 한 해 4만명 정도니 넷 중 한 아기가 중국계인 셈이다. 5,000명 수준인 한국계에 비하면 2배가량 많다.

 

한국·타이완·터키 등지에서 온 임산부의 원정출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잊을 만하면 재벌가나 연예인·부유층의 원정출산 논란이 불거지곤 한다. 미국 원정출산 최고 선호지는 LA 인근. 어바인시의 경우 2013년 이후 아시아 출신 임산부 400명 이상이 원정출산 했다는 집계까지 있을 정도다.

 

사이판·괌·하와이도 인기 지역이다. 미국 원정출산 비용은 최소 1인당 6만~7만달러로 전해진다. 알선비 5만달러, 현지 출산비 1만달러에다 항공료·비자 연장에 들어가는 돈을 포함한 게 그렇다. 미국 수사당국에 적발된 브로커 집단은 최대 8만달러를 알선료로 챙겼다니 이 경우에 총비용은 10만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억원을 훌쩍 넘을 것 같다.

거금(巨金) 낭비와 단속 위험에도 원정출산이 끊이지 않는 것은 미국 영토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시민권을 주는 자동시민권제 때문. 원정출산을 부추기는 원흉으로 지목된 이 제도를 없애자는 법안이 최근 미국 상하원에 동시 발의됐다는 소식이다. 연방의회에서 청문회까지 열렸다니 폐지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모양이다. 원정 출산이 곧 막을 내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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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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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특별사면제도 개선 논의

■ 공무원연금 개혁안

→ ■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 무력한 한국 외교

■ 경제활성화법안 표류

■ 한국에서 인도로 아시아 기지를 옮기려는 GM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특별사면제도 개선 논의

 

[한국일보 사설-20150506수] 특별사면제도 개선 논의, 오해 소지만 크다

 

정부가 어제 오후 서울청사에서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특별사면제도 개선 관계기관회의를 열었다. 공휴일에 열려야 할 정도로 시급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회의의 직접적 계기인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부터 생뚱맞다. 박 대통령은 그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사면이 더 이상 발생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의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투명한 사면권 행사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일주일간의 와병 이후 재개한 첫 공식일정에서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특별사면제도의 개선을 주문했으면, 그만큼 긴박한 사유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이 정부 들어 과거와 달리 특별사면이 국민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예가 없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지난해 설 맞이 특별사면이 단행되긴 했으나 5,812명의 대상자에 정치인과 기업인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부정부패 관련 정치인이나 개인적 이득을 앞세운 기업인의 사면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겠다던 국민과의 약속만큼은 박 대통령이 확실하게 지켰다. 그 덕분에 이명박 정부 말기의 MB 측근과 정치인, 기업인의 특별사면이 부른 논란을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자의적이고 무분별한 특별사면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사회적 논의는 완전히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최근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 말기의 특별사면 문제가 상당한 논란을 부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공방의 소재일 뿐이어서 당시 특사의 정치도의적 책임 소재에 대한 궁금증이라면 몰라도 제도개선 요구는 자극한 바 없다. 또한 당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아닌 최도술 임동원 신건씨 등의 특사가 국민적 논란을 부른 결과 2008년 12월의 사면법 개정과 이듬해 3월의 시행규칙 개정으로 제도적 개선도 이미 나름대로 이뤄졌다.

 

물론 제도개선 이후에도 MB 정부의 세 차례에 걸친 특별사면이 사회적 논란을 불렀음을 이유로 추가적 제도 개선을 주장할 수는 있다. 다만 당시와 현재의 분명한 차이에서 보듯, 문제는 늘 제도의 성글고 촘촘함이 아니라 ‘대통령의 뜻’에서 비롯했다. 사면권을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명시한 헌법을 고친다면 몰라도, 대통령의 의지를 뛰어넘을 어떤 제도 개선도 기대하기 어렵다. 바로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지시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희석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의심스럽게 한다. 그것이 오해라면, 시기적 미묘성에 비추어 오해의 소지를 피하는 것도 대통령이 가져야 할 정치적 지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06수] 우선순위 무시한 특별사면 개선 논의

 

정부는 5일 오후 3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법무부 차관 등 관계부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특별사면 제도 개선 관계기관 회의를 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사면권 행사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특별사면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일주일 만에 병석에서 복귀한 대통령의 국정 우선순위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 우선 놀랍고, 대통령의 한마디에 휴일임에도 득달같이 회의를 여는 공무원의 영혼 없는 일사불란함이 안쓰럽다.

 

특별사면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제기하는 의도와 배경이 불순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경기 침체와 외교적 고립이란 큰 곤경을 겪고 있는 마당에 특별사면 제도 개선이 과연 국정 우선순위의 앞줄에 둬야 할 만한 사안인지에 대해 의문이 많다. 박 대통령이 특별사면의 문제점을 계속 제기하는 것은 자신의 발밑까지 밀려온 성완종 추문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위기를 모면하자는 의도로 짐작된다. 또한 4·29 재보궐선거에서 이런 전술이 주효해 상당히 덕을 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대선 캠프 관계자와 측근들에게 검은돈이 흘러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성완종 사건을 특별사면 문제로 덮으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 이 나라가 특별사면 문제에 매달려 에너지를 소비할 정도로 한가한지도 심각하게 묻고 싶다. 외교적으로는 일본과 북한 문제를 원리주의적 자세로 다루면서 최악의 외교적 고립 상황을 맞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빈부격차와 청년실업은 날로 악화하고 있고, 한국 경제의 큰 젖줄인 수출 여건도 더욱 나빠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논란이 뻔한 사면 문제를 공개적으로 들고나오는 것은 소인배의 어리석은 계산으로밖에 볼 수 없다. 특별사면이 문제가 된다면 조용히 개선책을 모색해 여야 협의를 하면 된다. 이런 식의 떠들썩한 접근은 나라의 상황을 더욱 꼬이게 할 뿐이다.

 

 

■ 공무원연금 개혁안

 

[중앙일보 사설-20150506수] 공무원연금 개혁안, 이대로 국회 통과해선 안 된다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 법률안이 오늘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에 상정된다. ‘반쪽 개혁안’ ‘6년짜리 안’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서 적신호가 켜졌는데도 여야가 합의를 내세워 신호 위반을 하고 달리려는 것 같다. 우리는 국회가 문제투성이 법률안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법사위든 본회의든 국회의원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해 반대표를 던져주길 기대한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국민연금과 제도 통합을 통한 형평성 제고, 30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재정 안정 확보 등 두 가지 목표 중 어느 하나에도 근접하지 못했다. 국민연금과 통합은 엄두도 못 냈다. 그런데도 국민연금과 일치시킨다는 명목으로 국민연금에서 좋은 점만 갖다가 집어넣었다. 연금수령 개시연령을 당초 2031년에 65세가 되게 늦추려다 2033년으로 개악했다. 연금 수령을 위한 최소 가입기간을 20년에서 10년으로 당겼고, 비(非)공상 장해연금을 넣었다. 말로만 국민연금과 형평성을 제고한다며 흉내를 내놓고, 국민연금과의 통합을 위한 밑그림을 내놓지 않았다. 300만원 이하 중하위 소득 구간의 공무원들은 이번 개혁으로 오히려 연금이 더 올라간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소득재분배 기능이 들어가면서 코미디 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시한에 쫓긴 졸속 개혁의 실상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여야는 논의 과정에서 물건 흥정하듯 적정한 선에서 타협했다. 이 때문에 당초 새누리당이 제시한 수정안보다 84조원이나 돈이 더 들게 됐다. 수지 균형은커녕 적자가 더 벌어지게 생겼다. 내년에 9조원을 시작으로 70년 동안 1654조원을 국민 호주머니에서 공무원연금에 채워 넣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금 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할 때 ‘하루 100억원의 적자’를 강조했는데, 이 목표는 6년 지나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200억원의 보전금이 들어가는 시기도 당초 2022년에서 2028년으로 6년 연장됐을 뿐이다. 그래서 6년짜리 개혁이라는 말이 나온다. 박 대통령도 “개혁의 폭과 20년이라는 긴 세월의 속도(지급률을 20년에 걸쳐 깎는 점을 지칭)가 국민의 기대 수준에 못 미쳐 아쉽게 생각한다”고 지적할 정도다. 게다가 난데없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40%→50%)까지 끼워넣는 바람에 국민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이번 졸속 합의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책임이 크다. 두 사람은 실무기구의 안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합의를 위한 합의’를 했다. 끝까지 고수해야 할 만한 가치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국민들은 두 사람의 오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대권을 꿈꾸는 지도자라면 미봉책보다는 나라의 앞날과 국민들의 목소리를 더 무겁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양 당 국회의원들도 대표끼리 합의한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찬성 버튼을 누를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며칠 사이에 국민들이 이번 합의안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냉정하게 따져보고 표결에 임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06수] 새누리당과 당 지도부의 지력이 의심스럽다

 

공무원연금 제도 변경안의 맹점이 드러나고 있다. 내는 돈이나 받는 돈, 그리고 정부 지출로 보면 개혁과는 아예 거리가 멀다. 애초 노조와 밀착해 개혁의지 자체를 의심받아온 야당은 그렇다고 치자. 집권 여당 지도부의 행태는 납득하기 어렵다. 협상과 합의 과정도 그렇지만 합의안 발표 이후의 우왕좌왕을 보면 딱하기 짝이 없다. 아둔한 집권당을 농락하고 빠져나간 노조만 웃게 만들었다.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꼼수까지 나오면서 합의안의 재정절감 효과부터가 불신의 대상이다. 합의안대로 가면 6년 정도만 적자폭이 조금 줄어들었다가 바로 원위치 된다. 공무원들이 납부하는 기여율이 5년에 걸쳐 2%포인트 올라가고 연금지급액이 5년간 동결되면서 생기는 반짝 효과다. 하지만 연간 2조원대의 적자보전은 6년뿐이다. 2025년 6조원대, 2030년엔 연간 8조원 이상으로 폭증한다. 이러니 향후 70년간 총재정부담이 333조원 줄어든다는 추계도 믿을 수 없다. 이 수치에는 늘어나는 공무원 숫자와 수명 연장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1960년 공무원연금 도입 당시 52세였던 평균수명이 지금은 82세다. 30만명을 밑돌던 공무원은 100만명을 넘어섰다. 1982년 3742명이던 연금 수령자도 지금은 30만명이다. 연간 총재정부담이 30조원에 달하는 차차기 정부(2023~2027년, 합의안 추계로 148조원) 이후 연금 수령자와 연금액은 모두 미지수다.

 

찔끔 개혁에 20년짜리 일정표를 포함시킨 것도 문제다. 연금 재정은 법에 따라 5년마다 재계산하는데 20년 일정표가 대못 구실을 하게 된다. 5년 뒤에라도 제대로 개혁하자고 하기도 어렵게 됐다. 합의안을 다시 내든지, 법제화 과정에서 확실하게 보완해야 한다. 공무원연금개혁 실무기구라며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키로 한 것은 코미디였다. 2000만명의 국민연금 골격을 흔드는 그런 조치를 제멋대로 정하고 발표하는 오만은 어디서 나왔나. 국회의원 몇 명이 어떤 국가적 결정이든 제멋대로 할 수 있다는 건가.

 

새누리당의 정책 역량과 김무성 유승민 등 지도부의 지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급률, 총재정부담 같은 구체적인 계산까지는 몰라도 개혁에 대한 큰 줄기는 잡아야 한다. 철도 파업 때처럼 갈등 당사자와 팔짱 낀 채 사진만 찍는다고 전부가 아니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은 성격부터가 다르다. 김 대표에게나 새누리당에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차이를 묻기조차 면구스러울 지경이다. 국가를 경영할 만한 지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퍼주자는 사회적 경제기본법이나 만들면 딱인 그런 수준이다. 집권 여당 지도부의 지력이 걱정이다.

 

 

■ 관련 칼럼

 

[한겨레신문 칼럼-한겨레 프리즘/황준범(정치부 기자)-2015050수] 공무원연금 이후

 

여야의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 후폭풍이 거세다. 여야가 ‘더 내고 덜 받는’ 공무원연금 조정에 합의하면서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라는 새로운 주제까지 합의해 훨씬 더 큰 장이 펼쳐진 것이다.

 

110만명이 대상인 공무원연금에 비하면 2000만명이 대상인 국민연금은 사실상 전국민의 이슈다. 따라서 소득대체율 인상에 드는 경제적 비용은 물론 그 논의 과정에 드는 사회적 비용에서도 비교가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새누리당 안에서는 벌써부터 언론의 비판과 박근혜 대통령의 지적에 “맞는 말이다”라며 발을 빼려는 듯한 기류가 감지된다. 일단 6일 본회의가 무난하게 끝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국민연금 논의 시작도 전에 거리두기부터 하는 여당의 태도는 온당한 것일까?

 

잠시 시계를 한달 전으로 돌려보자. 검찰 수사를 받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남긴 ‘8인 메모’와 육성 인터뷰가 공개된 게 4월10일이었다. 정국은 이날부터 온통 ‘성완종 리스트’로 뒤덮였지만, 그 직전인 8~9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했던 내용을 환기해보자.

 

특히 유승민 원내대표는 성장, 경쟁,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하던 새누리당의 오랜 기조에서 벗어나 복지 확대와 증세의 불가피성을 역설해, 야당으로부터 “명연설”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그가 구체적으로 내놓은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은 문 대표의 연설에도 똑같이 담긴 내용이다.

 

성완종 사태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정치권은 여야 대표 연설의 실행 방안을 놓고 경쟁에 나섰을 것이고, 여야 내부에서의 노선 경쟁도 가열돼 있었을 걸로 본다. 하지만 여야는 성완종 국면을 각자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려 정략을 가동하며 재보선을 치러내는 데 급급했다. ‘새누리 완승, 새정치연합 완패’로 끝난 여진 속에 여야가 약속 시한을 지켜 공무원연금법 개정에 합의한 것은 놀랍기도 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새누리당의 개혁성향 의원들은 그동안 유 원내대표의 연설이 성완종 사태에 파묻힌 것을 아쉬워하면서 “재보선만 끝나면…”, “공무원연금만 끝나면…”이라며 별러왔다. 특히 박 대통령이 여당에 던진 공무원연금이라는 숙제만 마쳐놓고 나면 당·청의 정치적 관계든 정책 분야에서든 그간 접어뒀던 날개를 활짝 펼 듯이 말해왔다. 야당도 국민 여론과 공무원단체, 정부·여당 사이에서 ‘줄타기’, ‘발목 잡기’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눈치 봐온 공무원연금이라는 굴레를 벗게 됐다.

 

이제 재보선도 끝났고, 6일이면 공무원연금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한다. 7일엔 새정치연합에서 새 원내대표를 선출한다. 올가을 정기국회와 내년 4월 총선 공약을 책임질 새 원내사령탑이다. 여야 모두 소소한 전투와 해묵은 숙제를 마치고, 11개월 뒤 총선을 향한 새 출발점에 서는 셈이다.

 

공무원연금 합의와 동시에 쟁점으로 등장한 국민연금 문제는 이처럼 원점에 선 여야의 새로운 경쟁 무대로 볼 수 있겠다. 새누리당은 이미 유승민 원내대표에 앞서 김무성 대표도 조세·복지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우리 경제·사회의 근본적 논쟁이 필요하다고 밝혀둔 바 있다. 국민연금 문제도 그냥 피할 일은 아니다. 이번 여야 합의를 두고 새누리당은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는 확정이 아니라 목표치”라고 말했는데, 이는 바꿔 말하면 새누리당도 공적연금 강화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얘기다. 한달 전 유승민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에 담긴 자세로 돌아간다면, 피할 주제가 없을 것이다. 여야 모두 기다려온 ‘공무원연금 이후’ 아닌가.

 

 

→ ■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한국일보 사설-20150506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진지하게 논의 시작해야

 

여야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올리기로 한 합의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국민 동의가 우선”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고 새누리당도 이를 의식해 한 발 빼는 모습이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합의안을 팽개치고 있다”며 약속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둘러싸고 진행돼온 줄다리기가 여야가 뒤바뀐 채 재연되는 형국이다. 또 한번의 사회적 대타협을 일궈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문제에 대한 당정의 소극적인 자세는 이해가 간다. 연금 지급액을 높이려면 보험료를 올리거나 아니면 정부 재정 부담이 늘어나거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금기금 고갈은 당연한 수순이다. 현재 운용방식대로라면 2060년에 완전 고갈될 것이라는 추정이 일반화 돼있다. 현 상황에서는 어느 경우든 선뜻 택하기가 쉽지 않다.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려면 보험료를 현행 9%에서 16.7%로 인상해야 한다는 게 정부 추산이다. 장차 연금 지급액을 높여준다고는 하지만 당장 보험료를 두 배 가까이 내라고 하면 받아들일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에 재정을 쏟아 부을 만큼 넉넉하지도 않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노후소득 보장 측면에서 국민연금 강화의 필요성도 시급한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국 중 1위다. 반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45.3%로 회원국 평균치를 밑돈다. 게다가 조기퇴직이 빈번해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짧아 실질적인 소득대체율은 20% 안팎에 불과하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베이비붐세대 퇴직자가 쏟아지지만 국민연금의 노후소득 보장기능은 열악한 형편이다. 1988년 국민연금 도입 당시 70%였던 소득대체율은 두 차례의 개편을 거치며 2028년 40%까지 축소된 상태다. 연급 수급 연령도 60세에서 65세로 늦춰졌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면서 노후소득 보장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도출해낼 수 있느냐다. 국민연금 강화 논의는 피할 수 없는 사회적 과제다. 어차피 맞닥뜨려야 할 과제라면 무조건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일 게 아니라 국민적 논의를 본격화하고 해법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두 개의 상반된 명제 속에서 적정선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폭을 반드시 10%포인트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사회적 기구와 국회 특위의 역할은 이런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여야는 물론 공무원, 전문가, 시민단체 등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부로서도 논의가 성과를 내도록 도와줘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모처럼 찾아온 국민연금 제도 개혁의 기회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 무력한 한국 외교

 

[한겨레신문 사설-2015050수] 무력한 한국 외교, 사람과 전략 모두 바꿔야

 

우리나라 외교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외교 전략을 주도적으로 펼치기는커녕 한반도 관련국들에 대한 우리 입지마저 좁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기존 진용과 접근방식으로는 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외교 전략과 체제, 사람 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다.

무 력한 한국 외교를 실감케 한 최근 사례는 미-일 신밀월 체제의 구체화다.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은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과거사 문제에서 역주행한다. 미국은 은근히 ‘과거사 묻어두기’를 우리나라에 요구하면서 중국을 겨냥한 일본의 군사역할 및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밀어붙인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문제는 미-중 사이에 낀 우리 처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문제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게다가 박근혜 정권 3년차를 맞았지만 핵심 외교전략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은 전혀 진전되지 않고 있다. 북한 핵 문제와 남북관계도 개선될 조짐이 없다.

 

외교 위기가 이렇게 심화하는데도 정부는 무신경하다. 4일 국회에 나온 윤병세 장관은 반성하는 모습 대신 ‘잘하고 있는데 왜 그러나’라는 식의 태도를 나타냈다. 박 대통령이 이날 한-미 관계와 관련해 전작권 환수 재연기, 방위비 분담 협상, 원자력협정 개정 등을 성과로 꼽은 것도 급변하는 현실과 동떨어진다. 박 대통령이 중-일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열린 반둥회의 60돌 기념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남미 순방에 나선 것은 우리 외교 전략이 얼마나 겉도는지 잘 보여준다. 이렇게 가다간 한반도 관련 사안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력조차 잃어버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우선 인적 쇄신이 절실하다. ‘자화자찬 외교’의 진원지인 윤병세 장관은 이미 외교의 구심점이 될 역량을 잃었다. 외교안보 전략의 가온머리(컨트롤타워)가 돼야 할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제구실을 못하는 것도 큰 문제다. 책임자 교체까지 염두에 두고 어떤 식으로든 정비가 요구된다. 외교 전략을 전체적으로 점검해 다시 설정하고 적절한 실행 방안과 체제를 갖추는 것은 더 중요한 과제다. ‘미·일 대 중국’이라는 대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동북아 평화협력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균형외교가 필수다. 한-미-일 안보협력을 꼭 필요한 수준에서 제어하면서 일본이 과거사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한 핵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이 외교 재정립에 핵심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한반도 관련 현안을 방치한 채 주변국들의 움직임에 사안별로 대처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외교 주도력이 생길 수가 없다.

정부는 사태의 급박성부터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임기는 곧 내리막길을 걷게 되며 내년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다. 외교를 재정립해 실행할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경향신문 사설-20150506수] 박 대통령, 윤 외교장관 사퇴론 왜 나왔는지 아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그제 여야 없이 한목소리로 정부의 외교전략 부재를 지적했다. 의원들은 “정부가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외교가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하며 적극 대응을 촉구했다. 정부가 한·미동맹에만 의존하는 사이 미·일 신밀월 상황이 전개되고, 대립하던 중·일은 정상회담을 하며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반면 한·일관계는 계속 악화되고, 한·중관계는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남북관계는 단절되어 있다. 미·중 경쟁의 틈에서 정부는 눈치만 살피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외교통일위에 출석해 스스로 외교를 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 장관은 미·일 신밀월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이 더 높은 수준이라며 문제없다는 태도를 드러냈다. 그는 한국이 미국에 군사적으로 더 의존하고 있는 점을 미·일동맹보다 우월한 이유로 제시했다. 그는 마치 한국과 일본 가운데 누가 더 대미 종속적인지 경쟁하라고 주문받은 것처럼 대답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한·미동맹이 미·일동맹보다 낫다 해도 그 쓸모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일본의 우경화에 제동을 거는 것도 아니다. 미·중 경쟁의 상황에서 오히려 한·미동맹이 한국의 발목을 잡는 기능을 하고 있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국 배치 주장,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견제가 좋은 예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윤 장관이 지난달 비동맹운동의 시발점이 된 반둥회의 60주년 행사에는 불참한 채 남미 4개국을 순방하는 도피외교를 하는 사이 중·일은 정상회담을 갖고 관계 개선을 저울질했다. 한국이 자칫 외교적 고립에 처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박 대통령과 윤 장관은 과거사와 외교 문제를 분리 대응한다고 하지만, 말로만 그럴 뿐이다. 여전히 과거사·외교 현안 융합외교를 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한·일관계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윤 장관은 아마 정세 변화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걸 외교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는 것과 행동하는 건 다르다. 외교부가 그동안 행동한 결과는 추종외교, 눈치외교, 도피외교였다. 잘한 게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윤 장관은 지난 3월 한국 외교에 대한 정당한 우려를 두고 “고뇌가 없는 무책임한 비판”이라고 역공을 했던 태도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여야 의원이 윤 장관 사퇴를 촉구한 배경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소신있게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주기 바란다”며 그를 신임했다. 한국외교가 영영 길을 잃을지 걱정이다.

 

 

■ 경제활성화법안 표류

 

[중앙일보 사설-20150506수] 경제활성화법안 더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국회가 오늘 하루 남은 4월 회기 안에 여야의 이견으로 발목 잡혀 있는 ‘경제활성화법안’을 대승적 차원에서 처리해 주기를 기대한다. 지금 우리 경제는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1분기 실질경제(GDP)성장률은 0.8%였다. 최근 각 기관마다 올 경제성장률 목표를 낮춰 잡고 있으며,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올 경제성장률을 3.3%로 수정 전망했다. 그동안 3.8% 성장 목표치를 꾸준히 제시했던 정부가 하향 조정한 것이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성장동력을 찾을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이다. 국회는 더 이상 경제활성화법안을 당리당략의 볼모로 삼아선 안 된다.

 

  정부가 조속한 처리를 요청하고 있지만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대표적 법안이 ‘관광진흥법 개정안(일명 학교 앞 호텔법)’과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이다. 두 법안 모두 2012년 국회에 제출됐지만 3년째 낮잠을 자고 있다.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학교 인근에 관광호텔을 건설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것이 골자다. 이 법안은 초기부터 대한항공이 경복궁 옆 옛 미 대사관 숙소 부지에 추진하는 특급호텔 건설이 쟁점이 돼 왔다. 하지만 최근 늘어나는 중국인 관광객 숙소 문제 해결 등의 수요와 맞물려 이견이 좁혀진 상태였다. 그러다 최근 대한항공의 조현아 전 부사장이 ‘땅콩 회항’으로 물의를 빚은 후 야당이 ‘대한항공 특혜 법안’이라며 상정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은 ‘의료 민영화’의 가능성으로 인해 반대에 부닥쳤다. 이에 여야는 보건·의료 부문을 제외하고 이번 4월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여야 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회 내부에서도 법안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여야 간 힘겨루기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야당이 ‘성완종 특검법’을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정치 때문에 경제가 희생당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제활성화법안이 통과돼도 경제 활성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내년 총선까지 선거가 없는 지금이야말로 낡은 규제를 풀 골든타임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506수] 경제살리기법 표류가 국회 선진화인가

국회가 극심한 무기력증을 앓고 있다. 각종 경제살리기 법안들이 다시 6월 국회로 이월될 참이다. 오늘 4월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잡혔지만, 서비스산업발전법·관광진흥법 등은 상임위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는 심리라는데, 시장에 긍정적 신호를 줄 골든타임을 번번이 놓치고 있는 꼴이다. 이는 청년 구직난과 기업의 영업수익 악화 등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모든 안건을 표결 대신 합의 처리하도록 한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하는 ‘갑(甲)질’이 큰 문제라고 본다.

 

우리 국회가 ‘합의의 덫’에 걸렸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표를 의식해 다수 국민보다는 이해집단의 눈치를 살피는 행태가 상례화되면서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연금 ‘개악’과 같은 기형적 결과를 도출하기는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합리적인 절충은커녕 통과도 부결도 안 시키고 법안들을 무기한 표류시키기 일쑤다. 2012년 7월 상정된 서비스산업발전법이 1000일이 넘도록 낮잠을 자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학교 앞 정화구역에 유해 시설이 없는 관광호텔 건립을 허용하는 내용의 관광진흥법과 의사의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도 먼지만 쌓이고 있다.

 

경제활성화 법안들이 부지하세월로 국회 통과를 기다리는 동안 한국 경제의 경쟁력은 계속 처지고 있다. 우리가 의존하는 양대 시장 중 미국은 생산기지 유턴이 이어지며 제조업 일자리가 늘고 있고, 중국도 가격경쟁력과 기술 혁신으로 한국의 주력 산업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탈출구는 핵심 기술을 업그레이드해 미래 먹거리를 찾거나 서비스 분야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도 야권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서비스산업발전법과 의료법, 관광진흥법 등의 합의를 가로막고 있다. 그러는 사이 서울에서 빈방을 구하지 못한 유커(중국 관광객)들은 일본으로 발길을 돌리고, 우리보다 의료 인력이 부족한 싱가포르가 고급 의료관광객을 싹쓸이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경제살리기법이 겉도는 원인으로 국회선진화법을 꼽는 모양이다. 하지만 다수결 원리를 부정한 이 법을 앞장서 만든 여당이 할 소리는 아니다. 뒤늦은 위헌 제청으로 이런 자승자박이 풀릴지도 의문이다. 오늘 임기를 마치는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이제 상대를 케이오시킬 수는 없다”고 했다. 맞는 얘기다. 상대의 의견을 경청해 합리적 부분은 받아들여 타협하는 게 의회민주주의의 요체다. 그런 맥락에서 새누리당은 여야 지도부의 합의대로 보건·의료 부문은 일단 빼고 서비스산업법안을 4월 국회에서 처리했어야 했다. ‘의료 민영화’를 부른다는 야당의 반대 논거의 타당성은 추후 재개정 시 다시 따지더라도 말이다.

 

현행 헌법과 5년 대통령 단임제에서 국회가 작심하고 나서면 대통령이 임기 중 법안을 밀어붙일 여지는 거의 없다. 야권이 선거 때마나 정권심판론을 내세우고, 심지어 독재 정권을 입에 올리지만 유권자들이 냉소적으로 보는 배경이다. 국회선진화법은 날치기 처리나 폭력을 막기 위해 선용하는 데 그쳐야 한다. 여든 야든 ‘의회 권력’을 합리적으로 행사할 길을 찾는 게 급선무임을 인식하기 바란다.

 

 

■ 한국에서 인도로 아시아 기지를 옮기려는 GM

 

[서울신문 사설-20150506수] 한국에서 인도로 아시아 기지를 옮기려는 GM

 

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을 떠나 아시아 생산·수출 거점을 인도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인건비가 크게 오른 데다 강성 노조가 오래전부터 골칫거리로 떠올랐고 인도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서려는 회사의 전략과 맞물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테판 자코비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공장을 닫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면서도 “한국GM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GM이 몇 년 전 한국 공장의 경영개선 작업을 시작했지만 강력한 노조가 난제”라면서 “회사는 한국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건비가 크게 올라 수익성이 떨어지는 한국 대신 인도를 새로운 아시아의 생산·수출 기지로 결정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GM은 글로벌 시장을 지속적으로 재편해 왔다. 호주와 인도네시아 공장은 이미 문을 닫았다. 태국에서는 생산 규모를 줄였다. 한국GM은 저비용 수출기지로, GM 생산량의 5분의1가량을 담당해 왔다. 하지만 최근 5년간 50% 가까이 인건비가 올라 일본과 함께 인건비가 높은 대표적인 국가가 됐다. 지난해 한국GM의 생산량은 63만대로, 공장 가동률도 75%에 그쳐 이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17.2%나 감소한 12조 9181억원이었고, 148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GM본사가 쉐보레 브랜드를 유럽에서 철수한 게 부진의 원인이다.

 

시장 조사기관인 IHS는 낮은 인건비에다 성장잠재력이 풍부한 인도가 한국을 대신해 GM의 주요 글로벌 생산과 수출 거점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GM은 지난해 인도에서 28만 2000대를 생산했으나 10년 뒤에는 연간 생산량을 57만대로 늘릴 계획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2025년에는 지난해보다도 3분의1 이상 생산량이 줄어 36만 5000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10년 뒤에는 상황이 역전돼 인도의 60%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GM의 매출은 뒷걸음질치는데 매년 5% 이상의 임금 인상이 이뤄지니 경쟁력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글로벌 기업인 GM은 노동유연성이 높고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으로 눈을 돌리면 그뿐이다. 근로자의 정당한 요구는 보장돼야 하지만, 노조도 강경 노선만 고수해서는 안 된다. 생산라인이 인도로 이전되면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결국 근로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협력업체의 연쇄적인 피해도 불가피해진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06수] 한국을 떠나려는 GM , 지긋지긋할 것이다

 

제너럴모터스(GM)가 아시아 지역 생산 거점을 한국에서 인도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다. 그렇게 설(說)이 무성하더니만 결국 한국을 떠날 모양이다. 생산물량 상당 부분을 수출하는 만큼 고환율 탓도 있을 것이다. 인도 자동차시장 공략에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서라고도 하지만 실은 노동비용이 결정적이다. 낮은 생산성에도 고임금을 유지해야 하는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모순에 신물이 났을 것이다. 디트로이트의 악몽을 재연하고 싶지 않은 GM의 속내가 읽힌다.

 

사실 한국은 지난 수년간 GM 자동차 수출의 20%를 담당하는 허브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2007년에는 96만대를 생산해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GM 관계자가 지난 5년 동안 인건비가 50% 오른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토로할 정도로 최근 들어서는 인건비 압박에 시달렸다. 더구나 2013년부터 쉐보레 브랜드의 수출 길이 막히면서 지난해에는 생산량이 63만대로 줄어들었다. 그러는 사이 통상임금 문제로 노조와 끊임없는 씨름을 벌여왔다. 노조는 통상임금을 확대한다는 합의까지 이뤄놓고선 아직도 과거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까지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정작 생산성은 그다지 오르지 않았다. 지난해 GM의 공장 가동률은 75%에 그쳤다. 임금은 오르고 노조의 파워는 거센데 생산성이 나오지 않는 곳에서 기업을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GM만이 아니다. 현대·기아자동차도 똑같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미국과 독일의 절반 수준이라는 OECD 보고서도 있다. 시간당 임금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도 한국이다.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은 노조를 두고 “그들은 오늘 얻을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내일을 잃게 만든다”고 일침한 적도 있다. 당장 목전의 이익만 생각하는 나라에서 GM이 떠나려는 건 당연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해외 공장을 시찰한 노조원들도 잘 안다. 그러나 한국에만 돌아오면 투쟁 모드로 곧바로 돌아간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06수] GM, 아시아 생산거점을 왜 한국서 인도로 옮기려는 걸까

미국의 최대 자동차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가 아시아 생산거점을 한국에서 인도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로이터통신은 GM이 올해 말께 글로벌 수출생산기지 재편전략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현재로서는 인도가 한국을 제치고 새로운 제조·수출 허브로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3일 전했다.

 

GM이 한국에서 발을 빼려는 것은 무엇보다 높은 인건비와 강성 노조로 인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GM은 지난해 전략 차종인 쉐보레의 유럽 철수로 수출물량이 줄어든데다 내수시장에서도 후발업체에 밀리며 적자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때 쉐보레 세계 생산량의 5분의1을 떠맡았던 국내 공장의 가동률이 70%대로 떨어졌지만 노조와 지역사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경영합리화 노력마저 좌절된 상태다. 그런데도 노조는 500%의 성과급에다 차종 및 생산물량 같은 핵심 경영사항까지 보장하라며 무리한 요구를 일삼고 있다. 노조 일각에서는 GM의 사업축소가 지역경제에 몰고 올 파장을 우려하기는커녕 차제에 국내 대기업에서 인수해야 한다는 철없는 주장까지 나온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GM의 현실은 국내 자동차산업, 나아가 제조업 전반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준다. 글로벌 기업들은 단 1원의 생산단가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회사야 망하든 말든 임금과 복지에만 매달리는 귀족노조의 이기적인 행태가 초래할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한푼의 외국자본이라도 끌어들여 일자리를 더 만들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고임금 저효율 구조가 고착된다면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보기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다 통상임금이니 정년연장 같은 규제 덩어리만 첩첩이 쌓여가니 한국에서 기업 하기 어렵다는 외국 기업의 불만이 높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노동계는 이제라도 제 밥그릇 걷어차는 이기적인 행태에서 벗어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세계 최하위권의 노동생산성부터 개선하는 등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힘써야 한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506수] 후임 총리 인선, 대통령 통치방식 고민이 먼저

 

남미 순방 후 휴식을 취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주초 수석비서관회의를 시작으로 공식업무에 복귀했다. 당장 급한 일은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후임 인선이다. 이미 총리실에서 흘러나온 ‘총리 후보군’보고서에 오른 인물을 비롯해 여러 이름들이 떠돌고 있다. 무엇보다 산적한 현안 대응을 위해 조속히 정상 국정운영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도 인선을 마냥 미룰 수는 없다. 청와대 주변에선 주중 내정되리란 전망도 나온다.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권한이 집중된 우리 정부체제에서 총리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헌법 상으로는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총리가 국정의 주요 축을 담당할 수 있도록 돼있다.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 조항대로 대통령의 포괄적 위임을 전제하면 행정부를 직접 관장하는 권한을 가질 수 있다. 국무위원과 달리 국회 임명동의 절차를 규정한 것도 총리가 단지 대통령의 심부름꾼 이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대통령이 그렇게 활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후임 인선에 앞서 분명하게 정리돼야 할 것이 총리 활용 방식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이다. 이전 대부분의 총리가 그랬지만, 더욱이 현 정권 들어서는 인선과정서부터 낙마를 거듭한 탓에 단명, 땜질 등으로 총리가 제 역할을 한 적이 없다. 여기엔 권한의 양도 분산을 허용치 않는 박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식 통치 스타일도 큰 몫을 했다. 현재의 난국이 이런 통치 스타일과 무관치 않다면 예컨대 외교 안보(대북문제 포함) 등 역점 부문은 대통령이 직접 챙기되, 여타 정책 행정 부문은 총리에게 과감히 권한을 위임해 내각업무를 지휘 책임지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이게 과중한 대통령의 짐을 덜고 핵심 국정목표를 보다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모든 책임을 대통령 일인에게만 지우는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엔 당연히 조직 장악력과 행정력이 갖춰진 실무형 인물 중에서 후임을 고르면 된다. 만약 지금까지의 통치 스타일을 고수하겠다면 또 뻔한 주문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청렴성과 도덕성에 정파와 지역, 지면(知面)을 넘어선 화합형ㆍ개방형 총리다. 이런 인물을 찾기도 어렵거니와 잘 해도 대통령의 이미지 보완형 정도의 상징적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박 대통령도 이완구 사임을 국정개혁의 계기로 삼겠다고 언명한 바다. 차제에 총리 인선을 정국분위기 전환의 작은 용도가 아니라, 국정 스타일을 크게 혁신하는 대전환의 모멘텀으로 삼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후임 인선을 보면 정권의 성패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506수] 물가와 전셋값에 휘청대는 서민의 삶

 

정부 공식 통계로 잡히는 물가 수준이 몇 달째 바닥권을 맴돌고 있다. 지표상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에 머물다 보니 디플레이션 우려와 더불어 경기를 살리기 위해선 정부가 인위적으로 물가를 끌어올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마저 심심찮게 나온다. 하지만 소득 수준이 낮은 계층일수록 피부로 느끼는 물가 부담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정책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계층별 경제상황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수치만 놓고 본다면 물가 상승 압력은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4%로, 4개월째 0%대에 머물고 있다. 특히 담뱃값 인상 효과를 빼면 사실상 두달째 마이너스 물가 상태다. 하지만 통계청이 다달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체 지출액 중 품목별 단순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작성하는 탓에, 지출 규모가 큰 고소득층의 물가 수준이 과도하게 반영되는 착시효과를 낳기 마련이다. 실제로 <한겨레>가 통계청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저소득층의 물가 부담은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 새 교통비나 여행비, 오락 및 문화지출 등 고소득층이 주로 구매하는 품목의 물가는 떨어지거나 안정된 데 반해, 채소류나 집세 등 저소득층의 지출 비중이 높은 대표 품목의 물가는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내수 부진의 여파로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정작 서민들은 그나마 물가 안정이라는 혜택마저도 누리지 못하는 셈이다.

 

특히 고삐 풀린 전셋값 고공 행진이 좀체 멈추지 않아 서민들의 삶을 더욱 옥죄고 있는 현실은 매우 우려스럽다. 주거비는 소득수준이 낮은 계층일수록 부담을 더 크게 느끼기 마련이다. 이런 가운데 매맷값에 견준 전셋값 비율을 나타내는 전세가율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달 서울 25개 구 가운데 11개 구의 전세가율이 70%를 넘었고, 14개 강북권 평균 전세가율도 사상 처음으로 70%대를 돌파했다. 전셋값 상승은 당장 서민들의 생활형편을 쪼들리게 할 뿐 아니라 부담을 떠안고서라도 집을 사려는 수요를 자극해 가계부채를 증가시키고, 다시 줄어든 가처분소득이 소비를 줄여 경제를 더욱 침체에 빠뜨리는 악순환의 기폭제 구실을 할 가능성이 크다.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특효처방은 없겠으나, 더 늦기 전에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 등 과감한 재분배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야 할 때다.

 

 

[중앙일보 사설-20150506수] 민간 교류 더 넓혀 남북관계 물꼬 터야

 

정부가 지난 4일 6·15 남북 공동선언 15주년 공동행사를 위한 남북 사전접촉을 승인한 것은 바람직한 조치다. 계획대로 다음 달 14~16일 서울에서 이 공동행사가 치러진다면 2008년 6월 이후 무려 7년 만이다. 천안함 폭침과 이에 따른 5·24 조치 이후 남북관계는 온갖 악재가 겹치면서 경색 국면을 면치 못했다.

 

  이번 접촉 승인은 마침 이달 말께로 추진되고 있는 이희호 여사의 방북 등과 함께 남북 간 경색을 풀 수 있는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가 지난달 27일 민간 단체인 에이스경암이 신청한 비료 15t의 대북 지원을 승인하고 실무자들의 방북을 허용한 데 이어 지난 1일에는 지방자치단체의 남북 사회·문화 교류를 허용한 것도 이런 기대감을 높이는 긍정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꽉 막힌 남북관계를 뚫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최고 지도자의 인식과 의지다. 광복 70년을 맞는 올해는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과 가시적인 성과를 향해 나갈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 임기 반환점을 도는 올해는 남북관계 개선을 도모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해나 다름없다. 대북 민간 교류를 확대해 남북 당국자 간 대화 통로 개설로 이어지고, 남북관계에 물꼬를 트는 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지금 북한의 대내외 여건은 썩 좋지 않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러시아 전승기념 행사 참석이 불발되면서 외교적 고립이 뚜렷해지고 있다. 또 김 제1위원장이 신축한 위성관제지휘소를 방문하면서 언제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지 모른다. 이렇게 북한이 안으로 움츠러들수록 우리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게 중요하다. 과감하게 대북 민간 교류를 넓힘으로써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고 5·24 조치를 해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중·일의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우리가 선택할 최선의 전략이자 궁극적으로 ‘남북교류 2.0’ 시대로 가는 길이다. 어느 때보다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북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506수] 아이들에게 ‘놀이밥’을 먹이자

 

제93회 어린이날을 맞아 전국 17개 시·도교육감이 모여 매우 의미 있는 첫걸음을 뗐다. ‘어린이 놀이헌장’을 선포한 것이다. 헌장은 ‘어린이는 놀 권리가 있으며, 놀 터와 놀 시간을 누려야 하고, 가정·학교가 놀이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등 5개 항을 담고 있다. 교육감들이 발 벗고 나서 놀이헌장을 만들어 선포식까지 연 까닭이 있다. 어릴 때부터 놀이를 통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면 사회의 앞날이 어둡다는 인식을 절대적으로 공감한 것이다. 놀이헌장만 선포한 것이 아니라 충분한 놀이시간과 공간을 보장하는 등의 10대 정책까지 발표했다. 어린이들의 놀 권리를 사회가 공식 인정하고 지원책까지 마련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우려 또한 만만치 않다. 코흘리개부터 치열한 입시교육에 시달리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 아닌가. 학교와 학부모가 ‘놀이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선언적인 의미로 그칠 수밖에 없다. 학부모와 학교가 되레 놀이헌장의 구현에 걸림돌이 된다는 말도 있다. 서글프고 뼈아픈 지적이다. 지난해 2월부터 약 한 달간 경향신문이 다룬 ‘놀이기획’에서 지적했듯이 요즘 아이들은 훌라후프의 원리는 알지만 정작 그것을 돌리지 못한다. 체스게임의 원리는 알아도 체스를 두지 못한다. 지적 수준은 높지만 아는 것을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사이보그형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들이 다칠까봐 놀이터에 보내지 않고, 돈을 내고 주어진 틀에 짜인 체험교육을 시키고는 ‘다 됐다’고 만족하기 일쑤다. 그렇게 아이들에게서 ‘노는 자율권’을 빼앗으면 공격적이고 반사회적 성향을 띠는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놀면서 소통하고, 끼리끼리 놀이의 종류와 규칙을 정한다. 자연스레 새로운 상상이 가미된다. 또 어떤 위기나 다툼의 순간에 마주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고 조정하는 능력을 스스로 키운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법과 내성을 기르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빼앗는 것은 세상을 배우는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어떤 놀이 전문가는 ‘어릴 적 10년간의 놀이가 평생 쓸 삶의 밑바닥 힘을 다지는 토대’라고 한다. 놀이도 때가 있고, 결코 그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놀이가 밥’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아이들에게 ‘놀이밥’을 먹이는 부모와 학교가 돼보자.

 

 

[경향신문 사설-20150506수] ‘괘씸죄’ 부산영화제 지원금 대폭 삭감한 영진위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지원되는 예산을 지난해 14억6000만원에서 올해는 8억원으로 절반 가까이나 줄이기로 했다고 한다. 이는 당장 지난해 영화제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을 상영한 데 대한 ‘괘씸죄’를 떠올리게 한다. 영진위가 전체 지원 예산이 줄어들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제 지원금을 대폭 삭감한 것은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보복성 조처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부산영화제를 제외한 전주국제영화제 등 다섯 개의 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은 모두 지난해보다 늘어났다.

 

알다시피 부산영화제는 그동안 정부와 계속 마찰을 빚어왔다. 부산시와 감사원이 잇따라 부산영화제에 대한 강도 높은 ‘표적 감사’를 벌였고, 서병수 부산시장이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전방위적인 부산영화제 옥죄기가 이뤄졌다. 지난 2월 영진위에서 등급분류면제추천 제도 개정을 추진했을 때도 영화제 외부에서 상영작을 사전 검열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이런 판에 이번엔 영진위가 국고 지원 성격의 영화제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영화제에 탄압을 가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진위 측은 총 지원예산이 특정 영화제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현상을 완화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그렇다면 사업 평가위원들이 어떤 자료를 토대로 평가했는지 그 기준을 명확히 제시했어야 한다. 그동안 지원금을 1억~2억원 증감할 때도 여러 차례의 조정단계와 협의를 거쳤다는 사실에서도 영진위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예산 삭감을 통해 눈엣가시 같은 부산영화제를 손보는 동시에 다른 영화제에는 ‘말을 듣지 않으면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엄포가 될 듯하다.

 

무엇보다도 올해는 부산영화제 2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부산영화제는 그동안 해마다 15억원 안팎의 적은 국고 지원으로도 한국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영화제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1년 넘는 집요한 정치적 압력에 이어 예산 지원을 빌미로 거듭 부산영화제를 흔들어대는 것은 현 정부의 한심한 문화정책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누차 강조하지만 문화예술은 결코 외압에 길들여지지 않는다. 정부와 영진위는 자랑스러운 부산영화제 20년 전통에 먹칠하는 일을 당장 멈추고 영화제 지원 예산을 제자리로 돌려놓길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50506수] 최차규 공군총장 ‘면죄부’ 감사 안 된다

국방부가 공금 유용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된 최차규 공군 참모총장에 대한 감사에 나섰다. 몇 달 전부터 최 총장은 과거 부대 운영비를 횡령하고 가족들과 함께 공관병과 운전병들에게 ‘갑질’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였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과거 최 총장의 공관에서 근무했던 공관병의 폭로와 공군 내부 투서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관련 의혹이 점점 증폭되는 상황이다.

 

구체적인 의혹을 보면 군 인권센터는 최 총장이 공군 제10전투비행단장 시절 부대 운영비 300만원을 착복하는 등 비리를 저지른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 총장은 취임한 이후 군 예산으로 1300만원 상당의 옥침대 구입을 포함해 집무실 리모델링 공사비에 1억 8000만원 이상을 지출하는 등 과도한 예산 유용 의혹도 받고 있다. 최 총장은 군 인권센터의 주장에 대해 “나의 리더십이 강한 데서 생긴 문제인 것 같다”고 부인했다. 집무실 리모델링에 대해서는 “관련 부서에서 알아서 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방부의 감사 착수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최 총장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수순이 아니냐는 의혹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국방부는 최근까지도 최 총장 공금 유용 의혹에 대해 조심스런 분위기였지만 감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들끓는 여론 때문에 마지못해 감사에 착수한 상태다. 최 총장이 직접 요청한 ‘셀프감사’인 데다 전반적인 직무감찰이 아니라 회계에 국한됐다는 점에서 군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감사가 이뤄질지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더욱이 최 총장은 ‘갑질’ 의혹을 폭로한 군내 인사들을 색출하라는 지휘 서신을 일선에 보내면서 내부 단속을 시작한 정황마저 드러나는 상황이다.

 

최근 전투기 정비 대금을 가로챈 혐의로 예비역 공군 중장이 구속됐고, 일광공영 비리에 예비역 공군 준장이 연루되는 등 추문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방산 비리와 관련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고액 상품권을 공군 수뇌부에 뿌렸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공군 참모총장이 비리 척결에 앞장서도 모자랄 판에 저열한 의혹에 연루된 마당에 군 기강 확립과 공군 비리 척결이 어떻게 이뤄질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따라서 국방부는 회계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KAI 의혹을 포함해 전면적 감사를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면죄부 감사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506수] 최저임금은 고용을 줄인다는 중소기업들의 호소

 

중소기업의 70% 이상이 최저임금이 오르면 고용과 사업을 축소하겠다고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02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신규 채용계획을 철회하거나, 채용인원을 감축하겠다는 응답이 전체의 40.7%였고, 사업 규모 축소(18.5%), 현재 고용인원 감원(9.3%), 사업장 해외 이전 검토(2.8%) 등이었다. 투자 확대로 대응하겠다는 곳은 28.7%에 그쳤다. 이 역시 일자리를 단기적으로는 줄일 수 있다. 한마디로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 감축을 부를 뿐이라는 게 중소기업들의 호소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타격은 규모가 작은 업체일수록 크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최저임금 근로자의 98.7%(2013년 기준)가 300인 이하 중소기업에 근무한다. 특히 30인 미만 영세기업 근로자가 87.9%나 된다. 영세기업 근로자일수록 실직 위험이 큰 것이다. 더구나 청년 등 미숙련 근로자의 실직 위험이 커진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이론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실증된 사실이다. 최저임금이 1% 오르면 임금기준으로 하위 5%인 근로자의 신규 채용은 6.6% 줄어든다는 게 김대일 서울대 교수의 분석이다.

 

현재 최저임금은 시간당 5580원, 월간으로는 116만2000원(주 40시간 기준)이다. 2010년(2.75%) 이후 매년 인상률이 급증한 결과다. 이미 절대금액으로도 세계 상위권이다. 2013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국 중 14위다. 구매력 기준으로는 세계 10위로, 미국 일본보다도 높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일부 근로자들은 분명 혜택을 보겠지만, 아예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들이 많아진다는 역설 역시 명확하다. 아파트 경비원도, 중소기업도 똑같이 호소하고 있다. 일자리가 없어지는데 임금을 올리자고 해봐야 소용없다. 부디 귀를 열어주길 바란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06수] 아파트 층간소음배상액 한달 겨우 3만원이라니

 

아파트 층간소음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정도로 피해자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을 준다. 폭력사건은 물론 심지어 살인사건으로 번질 만큼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가 나서 피해배상제도를 도입한 것도 층간소음으로 일어나는 갈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피해배상액이 터무니없이 적다 보니 도입취지와 달리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3년간 지속적인 층간소음에 시달린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피해배상액이 최대 114만9,200원으로 한 달에 3만1,900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층간소음 분쟁 해결을 담당하는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피해배상액을 대폭 올린 것이 이 정도다. 이는 반대로 가해자가 한 달에 3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3년 동안 층간소음을 맘대로 일으켜도 된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더 큰 문제는 피해자들이 피해배상 신청을 아예 포기한다는 점이다. 지난 1년간 서울시에서 배상금을 받아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다. 피해배상액보다 피해를 입증하는 데 돈이 더 들기 때문이다. 피해를 입증하려면 피해자가 자비를 들여 소음 강도를 측정해야 하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은 70만원인 반면 1년간 층간소음에 시달린 사실을 입증해도 피해배상금은 7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피해자가 찾지 않는 환경분쟁조정위라면 존재할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미국·독일 등 선진국은 소음유발자에게 높은 배상금에다 100만원 이상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징벌적 방지수단까지 갖추고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1.9%가 "현재 책정된 금액이 낮다"고 답변했다. 현재의 피해배상액은 지나치게 낮은 만큼 가해자의 소음유발을 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상하는 게 맞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506수] 준법지원인 핑계로 법조계 밥그릇 챙겨주려는 국회

 

기업의 내부경영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2012년 4월 도입된 준법지원인제가 겉돌고 있다. 처음부터 존재이유 자체가 뚜렷하지 않았던 만큼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행 3년이 지났지만 준법지원인을 둔 곳은 전체 대상(자산규모 5,000억원 이상) 기업 304개사 가운데 123개사에 불과하다. 중견·중소기업은 준법감시인 신규 채용에 따른 비용부담이 만만찮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고 있다. 제도를 운영하는 기업이라도 사내 변호사가 겸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미 감사나 사외이사제 등 경영진에 대한 견제수단이 충분한데다 준법지원인의 역할이 기존 법무팀의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준법지원인제는 국회가 우격다짐으로 도입을 시도했을 때부터 기업 현장에 부담만 줄 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혜택을 보는 법조인들만 찬성하는 바람에 당연히 '법조인 밥그릇 챙기기' '옥상옥'이라는 비난이 쏟아져나왔다. 하긴 업계의 반대가 얼마나 심했으면 국회가 여론수렴 과정도 없이 어물쩍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겠는가. 당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까지 거론됐을 정도다.

지금도 준법지원인제에 대한 비판은 여전하다. 그런데도 국회는 제도가 유명무실화된 원인이 처벌규정 미비에 있다는 듯이 호도하고 있다. 실효성을 높인다는 구실로 상법에 미선임 기업에 대한 제재 조항을 넣는 것도 모자라 의무공시사항으로 규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기업들의 어려움은 외면한 채 법조계의 밥그릇만 챙겨주겠다는 심사가 노골적이다.

 

국회는 법조계 등 이익단체의 목소리나 대변하는 헌법기구가 아니다. 준법지원인을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면 대졸 신입사원 5~6명을 채용할 수 있다는 재계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실효성은 없으면서 불필요한 부담만 지우는 제도라는 점이 드러난 만큼 이제라도 제도 자체를 재고하는 게 마땅하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한겨레 프리즘/황준범(정치부 기자)-2015050수] 공무원연금 이후

 

여야의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 후폭풍이 거세다. 여야가 ‘더 내고 덜 받는’ 공무원연금 조정에 합의하면서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라는 새로운 주제까지 합의해 훨씬 더 큰 장이 펼쳐진 것이다.

 

110만명이 대상인 공무원연금에 비하면 2000만명이 대상인 국민연금은 사실상 전국민의 이슈다. 따라서 소득대체율 인상에 드는 경제적 비용은 물론 그 논의 과정에 드는 사회적 비용에서도 비교가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새누리당 안에서는 벌써부터 언론의 비판과 박근혜 대통령의 지적에 “맞는 말이다”라며 발을 빼려는 듯한 기류가 감지된다. 일단 6일 본회의가 무난하게 끝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국민연금 논의 시작도 전에 거리두기부터 하는 여당의 태도는 온당한 것일까?

 

잠시 시계를 한달 전으로 돌려보자. 검찰 수사를 받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남긴 ‘8인 메모’와 육성 인터뷰가 공개된 게 4월10일이었다. 정국은 이날부터 온통 ‘성완종 리스트’로 뒤덮였지만, 그 직전인 8~9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했던 내용을 환기해보자.

 

특히 유승민 원내대표는 성장, 경쟁,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하던 새누리당의 오랜 기조에서 벗어나 복지 확대와 증세의 불가피성을 역설해, 야당으로부터 “명연설”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그가 구체적으로 내놓은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은 문 대표의 연설에도 똑같이 담긴 내용이다.

 

성완종 사태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정치권은 여야 대표 연설의 실행 방안을 놓고 경쟁에 나섰을 것이고, 여야 내부에서의 노선 경쟁도 가열돼 있었을 걸로 본다. 하지만 여야는 성완종 국면을 각자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려 정략을 가동하며 재보선을 치러내는 데 급급했다. ‘새누리 완승, 새정치연합 완패’로 끝난 여진 속에 여야가 약속 시한을 지켜 공무원연금법 개정에 합의한 것은 놀랍기도 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새누리당의 개혁성향 의원들은 그동안 유 원내대표의 연설이 성완종 사태에 파묻힌 것을 아쉬워하면서 “재보선만 끝나면…”, “공무원연금만 끝나면…”이라며 별러왔다. 특히 박 대통령이 여당에 던진 공무원연금이라는 숙제만 마쳐놓고 나면 당·청의 정치적 관계든 정책 분야에서든 그간 접어뒀던 날개를 활짝 펼 듯이 말해왔다. 야당도 국민 여론과 공무원단체, 정부·여당 사이에서 ‘줄타기’, ‘발목 잡기’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눈치 봐온 공무원연금이라는 굴레를 벗게 됐다.

 

이제 재보선도 끝났고, 6일이면 공무원연금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한다. 7일엔 새정치연합에서 새 원내대표를 선출한다. 올가을 정기국회와 내년 4월 총선 공약을 책임질 새 원내사령탑이다. 여야 모두 소소한 전투와 해묵은 숙제를 마치고, 11개월 뒤 총선을 향한 새 출발점에 서는 셈이다.

 

공무원연금 합의와 동시에 쟁점으로 등장한 국민연금 문제는 이처럼 원점에 선 여야의 새로운 경쟁 무대로 볼 수 있겠다. 새누리당은 이미 유승민 원내대표에 앞서 김무성 대표도 조세·복지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우리 경제·사회의 근본적 논쟁이 필요하다고 밝혀둔 바 있다. 국민연금 문제도 그냥 피할 일은 아니다. 이번 여야 합의를 두고 새누리당은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는 확정이 아니라 목표치”라고 말했는데, 이는 바꿔 말하면 새누리당도 공적연금 강화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얘기다. 한달 전 유승민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에 담긴 자세로 돌아간다면, 피할 주제가 없을 것이다. 여야 모두 기다려온 ‘공무원연금 이후’ 아닌가.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영희(문화스포츠부문 기자)-20150506수] 나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

 

지나치게 늦었지만 비틀스의 팬이 됐다. 지난 주말,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폴 매카트니(73)의 ‘아웃 데어(OUT THERE)’ 공연을 다녀온 후다. 어렵게 표를 구하긴 했지만 가기 전엔 큰 기대가 없었다. 굳이 꼽자면 비틀스 멤버 중엔 존 레넌이 최고라고 생각했고, 날씨는 우중충했다. 일흔이 넘은, 게다가 지난해엔 건강 문제로 공연을 취소했던 그가 얼마나 좋은 무대를 보여줄지도 의문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에게 반했다. 말 그대로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70대였지만 그는 여전히 아이돌이었다. 검은 바지에 흰 셔츠를 입은 모습은 깔끔하고 멋졌고, 2시간40분을 쉬지 않고 노래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어떻게 관리했기에 저렇게 열정적일 수 있지?” 함께 간 후배와 감탄했다. 무엇보다 그는 진심으로 공연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함께 해요” “대박!” 등 꽤 어려운 한국말을 연습해 와 관객들과 소통했고,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며 귀여운 제스처를 연발했다. ‘오블라디 오블라다(Ob La Di Ob La Da)’ ‘헤이 주드(Hey Jude)’ 등의 명곡을 힘차게 따라 부르며 든 생각은 이거였다. 저렇게 늙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러고 보니 최근 비슷한 생각을 한 순간이 또 있다. 만화가 허영만(68) 화백이 예술의전당에서 열고 있는 ‘허영만전(展)-창작의 비밀’을 보러 간 길이다. 40년간 215편의 만화를 그렸다는 허 화백. 전시장 한쪽에 붙어 있는 엽서 크기의 만화일기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노인들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만화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축복이다. 나는 절대 노인들 틈에 앉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경우라면 노인들을 그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 영원히 내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폴 매카트니도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관객 앞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게 정말 좋아요. (…) 가끔 ‘아직도 공연하느냐. 지겹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아요. 나는 ‘아니, 점점 더 흥미진진해. 더 좋아지고 있어’라고 대답하죠.” 예순, 일흔이 되어서도 사그라들지 않는 열정,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삶. 저런 모습으로 늙을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어른을 발견하는 건 반갑고도 감사한 일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나 역시 언젠가 그들의 나이에 도달하게 될 것이므로.

 

 

[경향신문 칼럼-여적/신동호(논설위원)-20150506수] 아이파크미술관과 명명권

 

서울 서대문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은 미국 유학 중 사고로 숨진 이진아 학생 가족의 기부로 세워졌다. 책을 좋아하던 딸을 위해 도서관을 지어 이름 석자라도 남겨주려는 소박한 부정이 깃든 도서관이다. 올해 설립 10주년을 맞는 이진아도서관은 공공도서관의 전범으로 자리를 잡으며 ‘가장 멋진 이름의 건물’이자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불리고 있다.

 

사람을 포함한 생물과 자연물, 인공물 등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리를 명명권(命名權)이라고 한다. 개인은 자기가 낳은 아이라든가 소유한 물건 등에 대한 명명권을 갖는 게 당연하다. 공공영역은 좀 다르다. 새로 발견된 천체나 원소의 명칭, 생물의 학명 등은 보통 발견자에게 명명권이 부여된다. 이를테면 폴로늄은 퀴리 부인이 발견해 모국 폴란드의 이름을 붙인 것이고, 목성과 충돌한 슈메이커-레비 9 혜성은 발견자인 슈메이커 부부와 데이비드 레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물론 여기에는 일정한 원칙과 관행, 승인이라는 절차가 따른다. 화성에는 지구의 지명을 딴 곳이 많은데, 낙동계곡이나 진주·나주분화구 등 한국식 이름도 있다.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보듯이 개인이나 기업이 공공시설에 기부하고 명명권을 얻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최근 기업에서 주로 문화·스포츠 시설이나 서비스의 명명권을 확보하는 사례가 두드러지고 있다. 프로야구 경기장을 비롯한 스포츠 시설에서 대학 내 건물, 강의실, 공연장,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기업 이름을 넣고 있다. 브랜드 홍보와 이미지 제고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기대해서일 것이다. 공공영역으로서도 부족한 재원을 채워주는 셈이니 말하자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고 할 만하다.

 

오는 6월 완공 예정인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명명권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현대산업개발이 300여억원을 들여 미술관을 지어 수원시에 기부채납하면서 명명권을 받아냈지만 수원 시민단체와 예술계는 특정 브랜드명이 들어가면 예술의 공공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진아도서관의 성공 비결 가운데 하나가 정작 거기에 ‘이진아’는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파크미술관에 ‘아이파크’가 없을 수 있을까.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문소영(논설위원)-20150506수] 이혼 후 300일 만에 낳은 자식

이혼하고서 300일 만에 아이를 출산했다면 생물학적 아버지는 누구일까? 만약 그 여성이 이혼 전부터 남편과 별거하며 다른 남성과 동거 중이었더라면 말이다. 민법 제844조 2항은 “혼인관계가 종료된 날부터 300일 내에 출생한 자는 혼인 중에 포태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으니, 전 남편이 소송하지 않는 한 다른 남성의 아이를 낳았더라도 무조건 전 남편의 아이로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해야만 한다.

 

헌법재판소는 어제 이 민법 조항이 “당사자들이 원하지도 않는 친자관계를 강요하고 있다”면서 “개인의 존엄과 행복추구권, 양성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의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헌법에 불합치하니까 위헌이잖아 하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헌법불합치’와 같은 변형 결정은 ‘위헌’ 결정이 난 즉시 해당 법령을 무효로 하는 것과 달리 해당 조항이 개정될 때까지 계속 ‘문제의 법’ 적용을 받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자면 지난 2월 26일 63년 만에 위헌 결정이 난 간통죄의 경우 2008년 10월 30일 합헌 이후로 간통죄 적용을 받았던 모든 사례를 무죄로 돌리게 된다. 그러나 ‘헌법불합치’ 결정은 민법 제844조 2항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계속 적용받게 된다. 즉 국회가 정쟁만 일삼고 입법 활동을 소홀히 하면 개정안 마련이 늦어질 수 있어 문제다.

 

이번 민법 제844조 2항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보고 의아했던 점은 ‘여성 재혼 6개월 금지’를 규정한 민법 811조가 10년 전인 2005년 3월 31일 민법 개정 때 삭제됐다는데 왜 관련 법령은 정비가 안 됐을까 하는 생각이다. 남성은 이혼하자마자 바로 다른 여성과 법적으로 재혼할 수 있고, 여성은 이혼하거나 사별한 때도 무려 6개월이나 기다려 법적으로 재혼을 허락하는 대혼(待婚) 기간을 둬 이혼 후 출산한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판단하려던 조항이었다. 그러하니 민법 811조가 삭제된 마당에 844조 2항이 존재하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자문기구인 여성특별위원회에서 1998년 6월 양성평등을 위반하는 등으로 민법 제811조를 폐기하라고 요청했는데 실제 법조문이 삭제되는 2005년까지 7년이 소요됐다. 민법 제844조 2항이 개정되는 데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흐를지 걱정이다.

 

민법 제844조 2항에 긍정적인 면도 없지는 않다. 과거 다른 여자가 생겨 조강지처와 이혼을 강행한 남편이 단지 이혼했다는 이유로 생부로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전 남편의 아이가 아닌 경우 전 남편을 상대로 ‘친생 부인(不認)의 소’를 제기해야 하는 등 불편함이 지속한다. 요즘처럼 유전자 감식으로 친생자를 쉽게 구별하는 세상에서 억지스럽다. 또 최대 3개월인 이혼숙려제 탓에 별거 기간도 상당하다. 속히 민법을 개정할 것을 촉구한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 칼럼/권영설(논설위원)-20150506수] 러시아 전승기념일

 

1945년 5월8일 오후 10시43분 베를린 소련군 사령부. 독일군 원수 빌헬름 카이텔이 소련의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를 비롯한 연합군 대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시차가 두 시간 빠른 모스크바 시간으로는 5월9일 0시43분이었다. 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일이 유럽 국가에선 5월8일, 러시아와 옛 소련 국가에선 5월9일로 서로 다른 이유다.

 

독일군은 이보다 앞서 5월7일 프랑스 연합군 사령부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스탈린이 소련 대표가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베를린에서 서명해야 한다고 반발해 다시 이뤄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의 역할은 그만큼 컸다. 무엇보다 희생자가 많았다. 당시 소련 인구가 1억6000만명이었는데 2700만~2800만명이 전쟁 중 사망했다. 소련군은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바다 건너에서 구경하는 사이 동유럽 전선에서 고군분투했다. 100만명이 넘는 시민이 굶어 죽어가면서도 지켜낸 레닌그라드 봉쇄전, 독일군의 불패 신화를 깨뜨린 스탈린그라드 공방전 등이 2차대전의 승기를 잡는 분수령이었다. 전쟁 막바지 베를린 점령 작전에서만 소련군 1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러시아 전승기념일인 5월9일이 공식적인 2차 세계대전 승전일로 인정받고 있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서방국가들의 부채 의식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스탈린 정권의 부패와 무자비한 숙청, 세력 확산을 위한 공포 및 정보 정치, 북한 등 위성국가 건설을 통한 이념전쟁 등 이후 소련이 저지른 악행들이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공헌을 점점 잊게 만들었다. 특히 서방과의 냉전 과정에서 러시아 전승기념일은 점점 잊혀져 갔다.

 

러시아가 전승기념일을 외교무대로 활용하게 된 것은 베를린 장벽과 함께 냉전체제가 무너진 1990년대였다. 1995년 50주년 기념식 때는 경제난 속에서도 무려 1700억달러를 투입해 전승기념 행사를 벌였을 정도였다. 당시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존 메이저 영국 총리,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헬무트 콜 독일 총리 등 서방 지도자들을 포함해 51개국 정상이 대거 참석했다. 10년 전인 2005년 60주년 전승기념일에도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등 53개국 정상들이 참석했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올해 기념행사는 집안 잔치로 끝날 모양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불만을 품은 미국과 서방 정상들이 모두 불참을 통보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겨우 체면을 살려줬을 뿐 한국은 물론 믿었던 북한도 특사 파견으로 방향을 바꿨다. 전승의 공을 내세우기엔 세월이 많이 흐른 모양이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온종훈(논설위원)-20150506수] '달러패권 50년'

 

신생 미국은 1785년 13개 주 대표가 참여하는 대륙회의(연방의회의 전신)에서 달러를 화폐 단위로 채택했다. 거리·면적 등 도량형은 모두 영국 것을 가져다 썼지만 화폐만 다르게 사용한 데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은본위제를 채택한 대륙회의로서는 파운드화를 압도하며 이미 시중에 대량 유통되고 있는 스페인 은화 '다레라'화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다레라화의 미국식 영어 발음이 '달러'였던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기까지 15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남북 전쟁의 굴곡이 있었지만 19세기 들어 빠른 산업화로 '힘'을 축적한 미국은 1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영국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세계 1위의 산업생산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19세기 말 전 세계 교역량의 60%, 외환보유액의 50%까지 육박하며 절대적 위상을 가졌던 파운드는 1931년 금 태환을 중단하면서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물려받는다. 이후 20세기는 '달러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달러는 교역·금융 등 국제 거래에서 패권을 누렸다.

 

그런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함께 떠오르는 위안화·유로화 등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달러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다음 달 출범을 앞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슬로건인 '중국의 꿈'과 맞물리면서 기축통화로서 '위안화 굴기'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줄 것으로 중국인들은 기대하고 있다.

 

세계 최고 부자인 워런 버핏은 최근 자신의 버크셔해서웨이 50주년 주총에서 "달러는 앞으로 50년간 기축통화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고난 미국인의 말이라 반쯤 접고 들어야 하겠지만 마냥 무시하기도 힘들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시기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통화정책을 준비하는 것도 달러의 절대적 위상을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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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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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미일 신방위지침

■ 박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와 책임 회피

■ 원-엔 환율 800원대

■ 공무원연금 개혁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미일 신방위지침

 

[한국일보 사설-20150429수] 미일 新방위지침, 우리 안보이익 훼손 없게 대비를

 

미국과 일본이 그제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18년 만에 재개정했다. 개정된 가이드라인은 미국의 아시아재균형 전략에 따라 일본의 안보역할을 확대하고 미군과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게 초점이다. 그러나 일본의 역할 확대는 자위대의 군사력 강화로 이어지고, 이는 북한 중국의 군비확장을 부추겨 동북아의 안보불안을 오히려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로서는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특히 미군과의 협력을 명분으로 일본의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례를 명문화한 것은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갖게 한다.

 

새 가이드라인은 ‘일본 주변’으로 한정돼 있던 미일 군사협력의 지리적 제한을 없애 ‘중요영향사태’라는 이름으로 자위대가 전세계 어디서든 미군을 후방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비전투 분야 지원에만 한정됐던 데서 벗어나 탄약보급, 전투기 급유 등으로까지 자위대의 역할을 대폭 강화했다. 사실상 미군과 자위대가 일체화해 전세계 어디든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미국과 일본이 전례 없는 안보밀착을 표방하고 나선 것은 아시아 중시정책에서 일본을 활용하려는 미국과 ‘적극적 평화주의’를 앞세워 군사력 확대를 노리는 일본의 필요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미일이 이번에 처음으로 ‘도서(섬) 방위’를 명기한 것이 상징적인 예다. 사실상 중일 영토분쟁 지역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겨냥한 것으로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센카쿠의 실효지배를 공고히 하는 효과를 거뒀다.

 

미국이 일본을 파트너로 동북아안보의 새 전략을 구축하려는 흐름에 우리가 굳이 시비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일본이 미군 지원을 명분으로 한반도에까지 자위대를 투사하는 상황은 상정해볼 필요가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전투병력 전개를 요청할 경우 우리의 대응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 유엔사 후방기지에 배치된 자위대 일부가 주일미군의 한반도 전시증원계획에 따라 직접 개입할 가능성 등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한일 분쟁지역인 독도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미국 취할 입장도 예민한 문제다.

 

물론 미일이 개정안에 ‘제3국 주권에 대한 완전한 존중’이라는 문구를 넣은 것은 한국의 이런 우려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이런 추상적인 문구에 기대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된다. 일본이 앞으로 가이드라인 개정에 따른 관련법 개정에 나서는 만큼 정부는 외교력을 집중해 한반도에서 우리의 안보이익이 추호도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9수] 한국 외교에 큰 고민 안겨준 미-일 신방위지침

 

미국과 일본이 27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외교·국방장관 회담을 열고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했다. 일본 자위대가 세계 어느 곳에서든 미군과 함께 사실상 전투를 할 수 있도록 군사협력의 질과 폭을 크게 확대하는 내용이다.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미·일이 힘을 합쳐 중국의 군사력 확장을 견제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미-일 동맹 대 중국의 대결 구도가 이처럼 선명해질수록 우리 외교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회담 뒤 “미국은 항행의 자유와 영해·영공의 불법적 사용이 대국의 특권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중국 견제가 이번 지침 개정의 핵심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발언이다. 두 나라는 중-일 분쟁 지역인 센카쿠열도(중국이름 댜오위다오)와 관련해서도 “자위대는 도서도 포함한 육상 공격을 저지하고 배제하기 위한 작전을 주체적으로 실시하고, 필요가 생겼을 경우 섬 탈환 작전을 실시하며, 미군은 자위대를 지원한다”고 지침에 적시했다. 두 나라 각료들의 공동성명에는 초계기, 무인정찰기, 이지스함 등 미국의 첨단 군사자원을 일본에 증강 배치하는 내용도 포함됐는데, 이 역시 중국 견제용으로 풀이된다.

미· 일 두 나라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 관계에 한국까지 깊숙이 끌어들이기를 바란다. 이에 따라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나 한-미-일 군사협력을 더욱 확대·강화하려고 할 것이다. 미·일이 중국을 압박할수록 중국은 러시아, 북한을 끌어당겨 맞설 것이 뻔하다. 북-중-러 대 한-미-일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는 것은 우리한테 가장 나쁘다. 동아시아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양쪽 세력의 압박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관련국의 협조가 필요한 북한 핵 문제를 푸는 데도 어려움이 더욱 커질 것이다.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긴장감 있는 외교 전략이 필요한 때다. 미-일 신방위지침을 한반도에 적용할 때 우리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하나 마나 한 말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지역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전망을 가지고 미-일과 중국의 양대 세력이 충돌·갈등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일이 북한과 관계개선을 꾀하는 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외면하고 양대 세력의 눈치만 보다가는 러브콜이 아니라 재앙을 맞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0429수] 빗장 풀린 일본 자위대, 정부 대책은 충분한가

 

미군과 일본 자위대가 지구 전역(全域)에서 한 몸처럼 움직이는 군사일체화 단계에 진입했다. 어제의 적(敵)이 오늘의 ‘절친’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두 나라는 종전 70주년에 즈음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역사적’ 방미에 맞춰 군사협력 무대를 전 세계로 확대하는 내용의 신(新)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재균형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재무장을 통해 군사대국화하려는 일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중국의 경제·군사적 굴기속에 가시화한 미·일 ‘울트라 동맹’은 동아시아 질서에 일대 격랑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에는 심각한 외교·안보적 도전이다.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국가로의 변신을 도모해온 아베 정부는 지난해 평화헌법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번 방위협력지침 개정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에 맞춰 미·일의 군사협력 수준과 내용을 전면적으로 확대·쇄신한 것이다. 평시부터 전시까지 다양한 상황별로 협력 내용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 양국은 지상과 해상, 공중은 물론이고 우주에서까지 ‘이음새 없는’ 협력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특히 자위대는 유사시 주일 미군을 도와 한반도와 그 주변에 파병할 수 있는 길까지 열었다. 한국의 동의와 관련한 부분은 ‘제3국의 주권을 충분히 존중한다’는 정도로 언급하고 넘어갔다. 반드시 동의가 필요하다는 한국의 입장이 반영된 문구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지만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이 갖고 있는 상황에서 100% 안심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이 군사적 충돌로 비화할 경우 미·일 동맹이 한·미 동맹과 충돌할 가능성도 이론적으론 배제하기 어렵다. 동중국해에서 미·일과 중국이 충돌할 경우 한국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지침 개정으로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날개를 달았다. 미·일 동맹 강화가 대북(對北) 억지력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지만 그 못지않게 우려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정부가 모든 가능성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다고 믿어도 좋을지 의문이다.

 

 

■ 박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와 책임 회피

 

[한국일보 사설-20150429수] 내용도 시기도 적절치 않은 박 대통령 메시지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발표했다. 먼저 전날 이완구 총리 사퇴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과거부터 내려온 부정과 비리, 부패척결을 해서 새로운 정치개혁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리스트 진실규명을 위한 특검 수용 입장을 거듭 확인하고, 과거 참여정부에서 이뤄진 고 성완종씨 두 차례 사면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이날 메시지 발표는 기대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성역 없는 수사로 정치개혁을 이루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로 다름 아닌 박 대통령 자신의 과거 당내 경선과 대선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 국민적인 의혹이 쏠려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직접적 언급 없이 비리척결을 통한 정치개혁만을 강조하는 것은 본질을 비껴간 것이다.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의 반복이라는 비판을 듣는 이유다. 이날 메시지가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최소한 박 대통령 자신의 대선자금 의혹에 대해 책임 있는 언급이 있었어야 한다는 점에서 크게 아쉽다.

 

참여정부 시절 성 전 회장의 두 차례 특별사면을 굳이 강조한 것도 그렇다. 물론 누가 봐도 성 전 회장의 사면은 비정상적인데다, 실제로 이를 둘러싸고 온갖 설이 나돌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성완종 리스트로 제기된 핵심 의혹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곁가지 사안이다. 성격상 수사로 진상을 규명하기도 쉽지 않은 사안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 문제를 적극 부각시키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또한 성완종 리스트로 인한 부담을 덜기 위한 의도로 읽힌다. 중남미 순방 강행군에 의한 피로 누적으로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던 박 대통령이 홍보수석의 대리 낭독을 통해서까지 입장 발표를 서두른 점도 자연스럽지는 않아 보인다. 야당 측은 오늘 재ㆍ보선을 겨냥한 것이라며 “변칙적인 선거개입”이라고 발끈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의 건강악화 상황을 자세히 밝힌 것까지도 동정표를 염두에 둔 정치적 행위로 의심하고 있다.

 

대통령의 건강문제까지 정치공학적 해석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화법과 메시지가 상황을 정리하기는커녕 도리어 번번이 꼬일 여지를 키운다는 게 문제다. 이번 사태도 당초 정치적 계산이 없었다고 보기 어려운 총리의 부정부패 척결 담화에서부터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런데도 이번 사태를 전면적인 정치권비리수사로 돌파하겠다는 판단 역시 제대로 정국을 푸는 방안은 아닌 것 같다. 보다 진지하게, 그리고 책임감 있게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출구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9수] 박 대통령의 적반하장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내놓은 대국민 메시지는 사과도, 유감 표명도, 책임감의 표출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적반하장식 도발이며, 낯 두꺼운 역공, 치졸한 정치공세에 불과했다. 변명과 발뺌, 책임 미루기, 사태 핵심 피하기 등 그동안 수없이 비판을 받아온 박 대통령 특유의 화법이 총동원된 결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박 대통령은 이완구 국무총리 사퇴에 대해 “유감”이라는 단어를 딱 한 차례 사용하긴 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이 유감인지는 아리송하다. 이 총리의 사의 수용을 “안타깝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그의 부정부패 연루 의혹 자체가 유감스럽다는 뜻은 아닌 게 분명해 보인다. 오히려 이 총리가 혐의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여론에 밀려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최측근들이 부패 혐의에 연루된 상황에 대해서는 아예 ‘안면몰수’를 작심하고 나섰다. 총리와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부정부패로 수사 대상에 오른 미증유의 상황이라면 대통령으로서 최소한 일언반구라도 하고 넘어가는 것이 예의인데도 그는 눈썹도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로부터 내려온 부정과 비리, 부패 척결을 해서 새로운 정치개혁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이번 사건을 ‘과거 정치권 전반의 문제’로 몰아갔다. 이른바 유체이탈식 화법의 진수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살포한 불법 정치자금의 최종 수혜자는 바로 박 대통령이고, 이번 사안은 불법 대선자금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아랫사람들이 검은돈을 받아서 자신의 선거를 치른 사실이 드러나도 박 대통령은 ‘나는 몰랐다’고 발뺌만 하고 넘어갈 것인가. 자신이 정치개혁의 대상이 된 상황인데도 스스로 개혁의 총지휘자를 자처하고 나섰으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메시지에 방점을 둔 것은 오히려 성 전 회장 특별사면에 대한 진상조사 필요성이다. 특별사면 문제가 ‘성완종 리스트’ 사건의 곁가지일 뿐이라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의 물타기 정치공세에 힘을 보태기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더욱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사면권 행사를 수사 대상으로 삼겠다는 어이없는 발상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는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에 함축된 앞으로의 정국 운영 방향은 분명하다. 측근들의 부정부패 의혹을 최대한 덮고, 수사의 물꼬를 야권의 부정부패 의혹 및 특별사면 문제로 돌려 정국을 돌파하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4·29 재보선 결과가 새누리당에 유리하게 나올 경우 박 대통령의 오만함은 더욱 하늘을 찌르고, 물타기식 수사를 통한 꼼수 정국운영은 더욱 탄력이 붙을 것이다. 결국 재보선 결과는 권력의 총체적 부패 추문에 대한 수사의 향방과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 사설-20150429수] 박 대통령 메시지, 억장 무너진 민심 달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이완구 전 국무총리 사퇴를 비롯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입장을 표명했다. 박 대통령은 악화된 건강 때문에 4·29 재·보선 이후에나 내놓을 것으로 예상됐던 대국민 메시지를 앞당겨 발표함으로써 사태를 조기 수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대해 특검을 통해서라도 진위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해 혐의가 드러나면 최측근이라도 읍참마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점도 긍정적이다.

 

  이번 사건을 한국 정치가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강도 높은 정치개혁을 다짐한 것도 원론적으론 옳은 얘기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정치권과 비리 기업인의 추악한 공생 관계와 거기에 연루된 권력 실세들의 발뺌·거짓말에 억장이 무너진 민심을 달래기엔 크게 미흡하다.

 

  홍보수석을 통해 ‘대독’ 형식으로 발표된 메시지에서 ‘유감’은 444개 단어 중 단 한 번 나왔다. 그나마 이 총리 사퇴에 국한된 표현일 뿐이었다. 청와대 전·현직 비서실장 3명 등 박 대통령 최측근 여러 명이 연루된, 이번 사태의 핵심인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선 명확한 사과 없이 넘어갔다.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포괄적 사과를 할 순 없다는 뜻인 모양이다. 그러나 리스트에 거명된 인사 중 홍준표 경남지사의 1억원 수수 의혹은 사실과 근접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성 전 회장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독일행 여비 전액을 독일 측에서 지원 받았다”던 주장이 잇따라 거짓말로 확인돼 10만 달러 수수 의혹이 증폭된 상태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최측근들의 비리 의혹을 정치권 일반의 문제인 양 넘어간 건 유감이다. 국민은 물론 여당 지도부의 인식과도 괴리가 큰 유체 이탈 화법이다.

 

  반면 박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때 두 차례 취해진 ‘성완종 특별사면’ 의혹은 강도 높게 거론했다. ‘법치 훼손’ ‘있어선 안 될 일이 일어난 계기’라는 표현을 동원해 비판하면서 진실 규명을 다짐했다. 그러나 연루 인사들의 이름과 돈 액수가 적시된 성완종 리스트와 달리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은 관련자들 사이에 돈이 오간 증거가 없는 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근거도, 방법도 없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혹시라도 4·29 재·보선을 앞두고 검찰의 수사 물꼬를 특별사면으로 돌려 측근들의 비리 의혹을 희석시키려는 물타기 전략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대통령은 국정의 무한책임을 지는 자리다. 아무리 나 홀로 떳떳해도 총리가 사퇴할 정도로 측근들이 파문을 일으켰다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마땅히 보다 직접적으로 국민에게 사과해야 했다. 박 대통령은 메시지 말미에 공무원연금개혁을 반드시 관철시켜 달라고 호소했지만 겸허한 자기 반성 없이 개혁의 동력이 살아날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건 분명한 대국민 사과와 “필요하면 나까지 조사하라”는 엄정한 수사 의지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9수] 박 대통령의 책임회피와 적반하장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대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의 ‘대독 메시지’는 책임회피와 적반하장, 치졸한 정치공세로 점철되어 있다. 박 대통령은 자기 측근들의 부패, 대선자금 의혹에 대해 어떤 사과도 유감 표명도 하지 않은 채 “금품 의혹 등이 과거부터 어떻게 만연해 오고 있는지 등을 낱낱이 밝혀 정치개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원래부터 있었던 문제’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적반하장이다. 누가 뭐래도 이번 사건의 본질은 국무총리와 전·현직 비서실장 등 정권 실세들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의혹이다. 이들 자금의 용처도 박 대통령이 직접 치른 선거에 닿아 있다. 자신과 자신의 측근들이 연루된 데 대해 국민에게 고개부터 숙였어야 하는데도 끝내 입을 다물었다. 이완구 총리의 사퇴에 따른 면피용 유감 표명만 했다.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진솔한 말씀”(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과는 거리가 멀다.

 

박 대통령은 “사건의 진위는 엄정한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면서도 독립적인 수사를 위한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검찰이 정권 실세들의 불법 정치자금과 ‘살아 있는 권력’의 대선자금 문제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국민의 우려가 깊다. 우려를 해소하려면 박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롯해 정권의 누구도 수사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하는 게 필요하다. 한데 박 대통령은 ‘과거부터 내려온 부패의 척결’이라며 정치권 전반에 대한 물타기 수사로 몰아갔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메시지에서 방점을 둔 것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특별사면’ 문제다. 박 대통령은 “성완종씨의 연이은 사면은 법치를 훼손하고 나라 경제를 어지럽히며 오늘같이 있어서는 안될 일이 일어날 계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노무현 정부의 ‘연이은 사면’으로 규정하고 나선 것이다. 견강부회이고 치졸한 정치공세다. 박 대통령이 직접 특별사면 문제를 들고 나선 이유를 짐작 못할 바 아니다. 곁가지인 ‘성완종 사면’ 논란을 키워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성완종 사면’을 해소해야 할 의혹이라며 수사 대상으로 지목했다.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사면권 행사를 수사 대상으로 삼겠다는 발상이 어이없다. 결국 속셈은 따로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특별사면’을 이슈화해 목전에 닥친 재·보선에 영향을 미쳐보겠다는 것 아닌가. 국민이 듣고 싶어 하고 걱정하는 일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이, 대통령이 이 난국에 ‘선거 주판알’이나 튀기고 있으니 기막힐 따름이다.

 

 

■ 관련 사설

 

[서울신문 사설-20150429수] 靑 성역 없는 공정 수사에 정치적 명운 걸어야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대한 진상 규명 의지를 천명했다. 와병 중이라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누적된 부정과 비리를 척결해 정치개혁을 이뤄 내겠다는 메시지도 내놓았다. 다만 파문 전반에 대해 확실한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국민의 눈높이로 볼 때 유감스런 대목이지만, 입에 발린 사과보다는 앞으로 진실을 가려내 추상같이 단죄하는 게 더 중요하긴 하다. 청와대는 성역 없는 공정 수사에 정치적 명운을 걸기 바란다.

 

박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 중 성완종 파문은 확산일로였다.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에 이목이 쏠린 배경이다. 그래서 “심려를 끼쳐 드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한 박 대통령의 어정쩡한 유감 표명이 아쉽게 느껴진다. 물론 구체적 증거 없는 의혹만으로 대통령이 무작정 사과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신중론도 일리가 없진 않다. 하지만 지금 무죄추정 원칙 같은 법논리를 따를 계제인가. “시저의 부인은 부정하다는 의심을 받아서도 안 된다”는 경구도 있지 않나. 사실 여부를 떠나 정권 핵심 인사들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나라가 혼란에 빠진 상황이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범여권은 정공법으로 임해야 한다. 전·현 비서실장이든, 전 총리든 성역 없이 조사해 합당하게 책임을 묻고 단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할 때 박 대통령이 밝힌 대로 켜켜이 쌓여 온 부패구조를 청산해 정치문화를 바꿀 명분도 생길 게다. 공무원연금 개혁 등을 위한 국정 동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검찰의 독립적이고 철저한 수사를 보장해 파문을 제대로 수습하란 얘기다.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지켜본 후 국민적 의혹이 남는다면 여야가 합의해서”라며 특검 수사 의지를 피력한 것은 그런 점에서 다행이다.

 

당연히 검찰은 성완종 메모에 적힌 실세 8인에게 먼저 메스를 들이대야 한다. 다만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어디까지 번질지는 누구도 예단하기 어렵다. 성 전 회장이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세 정부에 걸쳐 기업을 키우고 살리기 위해 전방위 로비를 벌인 정황은 이미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정치개혁 등을 언급하며 물타기를 하는 건 잘못된 인식”(전병헌 의원)이라고 방어벽을 치고 있다. 하지만 물타기 수사 주장은 새정치연합이 아닌, 국민이나 제3당이 해야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성 전 회장이 경남기업을 인수하고, 행담도 비리에 연루되거나 베트남의 랜드마크72 빌딩 건축을 위해 막대한 융자를 받기 시작한 시점이 참여정부 때다. 더욱이 노무현 후보 측에 정치자금 3억원을 낸 그가 두 번씩 이상한 사면을 받았다면 국민의 눈엔 미심쩍을 수밖에 없다. 성 전 회장의 메모 속 8인이 한결같이 부인하지만 국민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성 전 회장이 구명 로비를 벌이다 목숨을 끊은 것은 비극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 정치권의 광범위한 부패 사슬이 드러났다면 정치개혁의 호기로 삼는 건 온당하다. 이는 정파를 떠나 상대의 썩어 가는 뼈만 발라내자고 할 게 아니라 고름이 흐르는 내 살부터 도려내는 자세로 임할 때만이 가능함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 원-엔 환율 800원대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9수] 심상찮은 800원대 원-엔 환율 시대

 

원-엔 환율이 2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100엔당 898.56원을 기록했다. 원-달러와 엔-달러 환율을 토대로 산출되는 원-엔 환율이 900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7년2개월 만에 처음이다. 엔화 약세(원화 강세)를 가리키는 이런 환율 하락 현상을 두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출 부문을 중심으로 국내 경제에 끼치는 부정적 여파가 간단치 않아서다.

효율적인 대응 방안을 강구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무엇보다 이런 추세가 당분간 바뀔 가능성이 작아 더 그렇다. 일본이 돈 풀기 정책인 양적완화를 계속 밀어붙일 태세인데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이 이를 용인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되고 증권시장에 외화 유입이 늘어나고 있다. 그에 따른 원-엔 환율 하락세가 이미 우리 경제에 짐이 된 상황에서, 그 짐이 더 무거워지게 생겼다. 일본 업체들과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수출업계는 물론이고 여행 등 일부 내수업계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환율은 경제 전반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는 가격변수의 하나다. 어떤 나라가 환율을 상향 조정하면 그 나라 통화 가치가 떨어져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이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여러 나라가 직접적이거나 간접적 방식을 통해 이런 움직임을 보여왔다. 일종의 ‘이웃나라 궁핍화’ 정책을 펴온 셈이다. 이따금 ‘통화전쟁’ 따위의 험한 말이 나오는 것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우리가 이런 식의 적극적인 환율 조정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원체 여러 나라의 감시와 견제가 심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얼마 전 우리나라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언급한 바도 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원-엔 환율이 2009년 2월 1550원까지 올랐던 점 등을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최근 “(환율이) 위든 아래든 한 방향으로 급격하게 쏠리는 현상이 있는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걸맞은 대책이 이어져야 한다. 수출업계의 자구 노력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9수] 한은 총재 "경기회복 분기점"… 세계경제와 엇박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우리 경제에 미약하지만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이날 오전 한은에서 열린 경제동향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이 총재는 "올 2·4분기의 경기 흐름이 앞으로의 회복세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이같이 진단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우리 경제에도 순풍이 불었으면 좋겠다"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이 총재는 나름의 근거까지 제시했다. 소비자심리가 나아지고 주택시장과 주식시장이 호조를 보이고 있으며 1·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8%로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경제가 개선 흐름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4월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전월 대비 3포인트 오른 104를 기록하는 등 일부 지표에서 긍정적 신호가 나타나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이 총재의 낙관론이 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당장 세계 경제지표와 엇박자가 나고 있다. 이날 글로벌시장 조사업체 마킷의 통계를 보면 미국·중국·유로존·일본 등 세계 4대 경제국의 4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잠정치는 전월보다 일제히 하락했다. 특히 세계 경제 회복을 주도하는 미국의 지수까지 둔화된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제조업 지표가 다시 둔화 쪽으로 방향을 트는데도 한국 경제만 유독 순항하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더구나 이날 원·엔 환율은 종가 기준으로 7년2개월 만에 100엔당 800원대에 진입했다. 엔저는 이미 우리 수출 기업들에 치명적인 수준이다. 원·엔 환율이 10% 하락할 때마다 한국의 수출은 평균 4.6% 정도 감소할 정도라니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사실 그동안 한국 경제의 침체는 깊고 길었다. 그런 만큼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야 누구나 같을 것이다. 그렇다고 통화당국의 수장까지 마냥 낙관론을 펴서야 되겠는가. 그릇된 경기진단은 필경 처방의 오류를 부를 수밖에 없음을 이 총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 공무원연금 개혁

 

[중앙일보 사설-20150429수] 공무원연금 개혁,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당초 취지는 잊힌 채 말도 안 되는 쪽으로 가는 모양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 의원은 2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보험료율(기여율)은 현재 7%에서 9.5%로 올리고 연금지급률은 연 1.9%에서 정부는 1.7%로, 공무원단체는 1.79%로 떨어뜨리는 데 동의한다”며 “공무원연금 개혁이 99.9%까지 진행됐다”고 말했다.

 

  여야가 정한 개혁안 처리 시한(다음달 2일)을 나흘 앞둔 시점에 효과가 미미한 안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강 의원 말대로 가면 지급률이 0.11%포인트밖에 줄지 않아 하나 마나 한 개혁이 될 것이다. 지급률을 1.7%로 내려도 마찬가지다. 현재 나와 있는 새누리당안이나 김태일(고려대)·김용하(순천향대) 교수안, 정부기초제시안 등 어느 것에도 비할 바가 못 되는 안이다. 이대로 가면 과거 몇 차례 ‘무늬만 개혁’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고, 2017년 이후 다음 정권에서 또 개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은 공무원단체가 실무기구에 끼어들 때부터 예견됐다. 이제 더 이상 공무원단체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여야가 연금특위에서 책임 있게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장기적으로 통합하는 새누리당안이나 정부기초제시안, 김태일안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래야 두 연금의 형평성과 재정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김용하안(보험료 10%-지급률 1.65%)과 공무원단체안 사이 어딘가에서 합의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 역시 개혁의 효과를 반감시킬 것이다.

 

  실무기구의 쟁점 중 하나가 공무원연금에서 절감한 돈을 공적연금 강화에 얼마나 투입하느냐인데, 이 역시 문제가 있다. 연금 개혁으로 절감하는 돈은 공무원의 양보 덕분에 생긴 게 아니다. 당연히 줄여야 할 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돈의 쓰임새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게 이해가 잘 안 된다. 만약 여야가 지금 나온 안처럼 합의할 거라면 차라리 연금 개혁을 안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9수] 정부·여당, 공무원연금 개혁 원칙도 소신도 잊었나

 

재직기간 1년당 공무원연금 지급률을 평균 급여의 1.9%(30년 57%)에서 1.25~1.5%로 낮추겠다고 날을 세웠던 새누리당과 정부가 갑자기 흐물흐물해졌다. 결국 1.7%대 타협안을 받아들일 모양이다. 국회 연금개혁특위의 야당 간사인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8일 "지급률 1.72%와 1.79%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 단계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30년 재직자가 받는 공무원연금이 새누리당 원안보다 평균 월 67만원, 정부 기초제시안보다 33만원가량 덜 깎인다. 월 연금액이 현행 255만원에서 231만~240만원으로 줄어드는 정도다. 국민 입장에서는 한바탕 정치쇼에 놀아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새누리당이 내세운 공무원연금 개혁의 목표는 향후 재직기간에 대해서는 보험료와 연금이 수지균형을 이루게 해 적자가 추가로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정부와 공무원이 보험료를 10%씩 또는 9.5%씩 낼 경우 재직기간 1년당 1.25%(30년 37.5%), 1.19%(30년 35.6%)의 연금을 줘야 마땅하다. 하지만 타협안은 수지균형 수준보다 40~50% 많은 연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낸 것보다 훨씬 많이 받는 공무원연금의 적자보전에 지난 10년간 15조원, 다음 정권 10년간 86조원의 혈세가 들어가 개혁에 나섰는데 이런 식이라면 재정절감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은 보험료가 올라 적자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본질이 드러난다. 우리보다 먼저 인구 고령화와 저성장의 부작용을 겪은 일본 공무원은 10월부터 일반국민과 똑같은 수준의 연금을 받는다. 양쪽 다 1.57% 수준이던 연금 지급률이 2058년까지 1.05~1.28%(30년 32~38%)로 낮아진다. 일본 국민소득의 66% 수준인 한국의 타협안보다 박한 연금을 타는 것이다.

 

이렇듯 일본은 연금개혁에 성공했지만 우리는 실패의 길로 가고 있다. 정부 여당이 원칙도 소신도 없이 공무원단체와 야당에 휘둘린 탓이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429수] 세월호 선장 살인죄 인정, 이게 끝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핵심 책임자인 이준석 선장에게 살인죄가 인정됐다. 1심과 달리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 결과다. 이 선장의 형량은 징역 36년에서 무기징역으로 늘었다. 반면 이 선장을 제외한 승무원 14명은 모두 감형됐다. 승객을 보호해야 할 선장이 자기 목숨만 구하자고 수백 명을 희생시켰다면 엄하게 단죄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선장에 대한 살인죄 인정 판단 기준은 승객 퇴선 명령을 내렸는지 여부였다. 1심에서는 이 선장이 탈출 직전 퇴선 지시를 했다고 판단한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퇴선 명령이 없었다고 봤다. 광주고법은 선장과 선원들이 탈출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선내에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퇴선 방송 지시에 따른 후속 조치가 전혀 없었던 정황 등을 근거로 들었다. 따라서 이 선장이 승객 퇴선 명령이나 퇴선 방송 지시를 하지 않은 것이 살인의 미필적 고의에 해당된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다양한 근거 자료를 제시해 이 선장에 대한 살인의 고의를 입증한 재판부의 조치는 법적 신뢰를 높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선장의 감독을 받는 지위라는 이유로 승무원 전원을 감형한 데 대해 유족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선원들이 승객보호 책임을 유기한 채 그들만 살겠다고 빠져 나온 행위는 이 선장과 하등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재판을 통해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책임 소재는 어느 정도 드러났다. 그러나 세월호참사의 책임은 선장과 선원에게만 물을 일이 아니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304명의 승객이 구조되지 못하고 희생당한 것은 크게 보아 정부와 국가가 제 기능을 못한 탓이다. 참사의 구조적 원인과 이유를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면 선장과 선원들을 단죄한들 충분치 않다. 이런 당위에도 불구하고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밝혀내기 위한 진상조사는 1년이 지나도록 발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특별법 정부 시행령이 유가족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급기야 이석태 특조위원장과 위원들이 그제부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세월호 특별법의 취지에 맞게 특조위가 독립적인 진상규명을 해나갈 수 있게 시행령을 만들자는 주장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는 공무원이 특조위 업무를 총괄하고 조사 범위를 정부 조사 결과에 대한 검토 수준으로 묶어두는 수정안을 고집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특조위 활동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정부는 여전히 특조위를 허수아비 관제기구로 만들려는 의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말 뿐이 아닌 진정한 진상규명의지가 있다면 특조위,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쳐 새로운 시행령안을 만들어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9수] 유동성 파티를 즐길 만큼 경제상황 한가롭지 않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어제 “경제에 미약하지만 긍정적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강조하는 “강하지는 않지만 회복세가 진행 중”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재정과 통화정책 수장의 연이은 경제낙관론의 논거는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의 호조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들과 국민들의 체감경기는 싸늘한 편이다. 실제 소비는 물론이고 수출마저 기세가 꺾인 게 현실이다. 희망을 얘기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돈의 힘’으로 밀어붙이고, 언제 꺾여도 이상하지 않은 유동성 장세를 경기 회복세의 근거로 삼는 것은 의외다.

 

물론 요즘 자산시장은 뜨겁다. 주식시장은 이렇게 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오름세가 가파르다. 코스피는 사상 최고치를 넘보고 있고, 코스닥은 묻지마 투자 양상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1분기 아파트 거래 건수는 2006년 이후 가장 많았다. 분양·경매시장은 북적이고, 한때 16만가구를 넘어섰던 미분양 주택은 3만가구 밑으로 떨어졌다. 주가가 오른 것은 저금리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국내외 자금이 몰렸기 때문이다. 부동산 활황 역시 규제완화와 정부의 빚내 집 사라는 정책, 전세난 등이 겹친 결과다.

 

하지만 내수의 바로미터인 유통가의 매출은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은 탓에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쳤다. 수출도 빨간 불이다. 중국, 유럽, 일본 등의 경기 둔화로 수출 증가세가 확연히 줄었다. 어제는 원·엔 환율마저 7년여 만에 800원대에 진입했다. 엔화 약세는 아베 정권 등장 때부터 계속된 추세적 상황이어서 호들갑 떨 일은 아니지만 기술 경쟁력이 두드러지지 못한 우리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마저 위협받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중국관광객마저 일본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하니 이래저래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관측은 지나치게 안이하고 낙관적이다. 빚을 내 파티를 즐기는 것은 한계가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자산시장에 머물던 돈은 한순간에 빠져나갈 수 있다. 은행돈 빌려 투자했던 사람들은 이자 부담에 허덕이게 된다. 경제가 혼란스러워진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침체에 빠진 경제를 타개하기 위한 단기적 부양 필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그에 못지않게 지속성장을 위한 경제 체질 변화에 더 힘을 쏟아야 할 때다. 그 근간이 기업의 기술개발 노력, 구조개혁을 통해 투자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9수] ‘부산의 미래’는커녕 ‘토착비리 백화점’이라니

부산시는 지난 2005년부터 부산 기장군에 국내 최대의 도심형 해양복합리조트를 조성하겠다는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해왔다. 이 야심 찬 사업은 ‘부산의 미래’라 일컬어졌다. 그러나 그 초대형 프로젝트는 10년이 지난 지금 ‘부산의 미래’는커녕 ‘부산의 토착비리 백화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실 이 사업은 외자유치로 초대형 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세울 때부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그 우려대로 외자유치 건은 줄줄이 실패로 돌아갔다. 막대한 금융차입에 따른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부산시가 2009년 사업주체를 산하기관(부산도시공사)에 넘겨주었다. 그 과정에서 ‘세계적인 테마파크’는 사라지고, 상가와 숙박시설 분양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때부터 ‘던져진 고깃덩이(특혜분양 및 임차)’를 차지하기 위한 아귀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부산시의회 의원 및 시 공무원, 부산도시공사 직원, 경찰관, 롯데몰 현장소장, 부동산개발업자 등이 복마전에 뛰어들었다. 3억원대의 현금과 룸살롱 및 요트 접대를 받은 도시공사 전문위원과, 현금 수천만원을 받은 시 의원과 군청공무원, 가족 및 친척 명의로 롯데몰에 입점한 경찰서 계장 등. 특히 이종철 전 부산도시공사 사장은 사업자(롯데몰)에 편의를 봐주고 퇴임 후 가족의 이름으로 상가를 임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비리의 복마전에는 이렇게 인허가 선상의 사람들이 앞다퉈 등장하고 있다.

 

기막힌 노릇이다. 지난달 시작된 검찰 수사는 40여일 만에 사업을 총괄했던 이종철 전 부산도시공사 사장 등 10명을 구속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앞으로도 건축 인허가와 교통·환경영향 평가에서 사업주에 특혜 혹은 편의를 제공했는지 전방위 수사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의 장기화 때문에 모처럼 활기를 띠었던 국내외 투자자들의 발길이 끊겼다는 등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검찰 수사 때문에 사업차질을 빚는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명실상부한 ‘제2의 도시’ 부산에서 ‘토착비리’라는 퇴행적 용어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이다. 마침 검찰이 “독버섯 같은 비리들 때문에 사업이 10년 넘게 표류한 것”이라고 했단다.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좀 늦으면 어떤가. 드러난 비리의 민낯을 말끔히 도려내어 투명성을 확보해야 ‘부산의 미래’가 보일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9수] 누리예산 파동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어제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을 마련하기 위한 지방재정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이에 따라 지방 교육청들은 총 1조원까지 지방채를 발행해 누리과정 예산을 조성할 수 있게 됐다. ‘보육 대란’ 위기에서 급한 불은 일단 끈 셈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채권을 발행해 누리예산을 마련하도록 하는 한시적인 법이기 때문이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미봉책이 아닌 본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은 대선 공약인 교육복지 사업이다. 그러나 경제난으로 세수가 크게 줄자 돈이 없는 정부로서는 골칫덩어리가 됐다. 대책이 없는 정부는 예산집행 주체인 지방자치단체에 맡겨 놓고 나 몰라라 했다. 지자체와 지방교육청은 올해 들어 1~3월 석 달치 예산을 편성해 집행했지만 이달 말부터 예산이 바닥나자 전북도와 강원도 등의 지자체들이 어린이집에 운영비를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 사이 정부와 지자체는 무상보육 예산 부담 책임은 상대방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책임을 떠넘겨 왔다. 법적인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대선 공약을 떠안은 지자체로서도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악화되자 여야 대표는 지난달 10일 ‘지방재정법 개정과 누리과정 국고지원 예산 5064억원 집행을 4월 중에 동시에 처리한다’고 합의했다. 그에 따라 어제 지방채를 발행하는 한시법인 지방재정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정부의 만성적인 재정 적자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누리예산을 둘러싼 갈등은 해마다 재발할 수밖에 없다. 누리예산은 국가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무차별적인 무상복지의 후유증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다.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우여곡절 끝에 지급액이 결정됐지만 예산을 고려하지 않은 포퓰리즘적인 무상복지·교육 공약은 더 있다. 대표적인 게 고교 무상교육이다. 사실상 현 정부에서는 예산 부족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

 

누리예산 파동은 한숨을 돌렸지만 가뜩이나 빚이 많은 지자체들은 또다시 빚잔치를 벌이게 됐다. 상황이 이렇다면 정부는 솔직히 사정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고교 무상교육 등을 시행하기 어려워진 이유를 설명하는 한편 꼭 지켜야 할 공약은 지자체와 머리를 맞대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재원 마련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면 국민이나 기업의 양해를 구해 증세할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9수] 도전하는 이들을 응원하자

 

내수는 포화상태고 소비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고 한다. 곳곳에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비명이 터져나온다. 그럴수록 정부는 정책자금을 늘리고 정치권은 중소기업, 전통시장을 살리겠다고 규제입법을 만들어낸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언더도그마 현상은 더욱 강화된다.

 

하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다. 중소기업 지원제도가 160개가 넘고 정책금융은 GDP의 6%로 OECD 최고인데 중소기업들은 늘 돈가뭄이다. 전통시장을 살리겠다고 10년간 3조원 이상 퍼부었는데 매출은 반토막 났다. 빈 가게는 늘어만 가고 한계 중소기업은 끝이 없다. 보호 울타리를 쳐주고 보조금을 퍼붓는다고 살아나는 게 아님을 새삼 확인케 한다.

 

하지만 어제자 한경에 실린 세 가지 사례는 희망을 품게 한다. 외국 거대 브랜드에 질 좋고 값싼 옷으로 도전하고, 해외 본고장에 나가 최강의 상대와 한번 겨뤄보겠다는 기업들이 있다. 상인 평균나이 56세로 갈수록 고령화되는 전통시장에선 젊은 청년들이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들은 눈먼 정책자금을 좇거나 시장이 포화라고 불평하지 않는다. 아이디어와 도전의식으로 주어진 조건을 극복하고 새 시장을 여는 데 승부를 건 사람들이다. 부족한 것은 보조금이 아니라 상상력일 뿐이라고 믿는 이들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 유니클로 제압하겠다는 탑텐의 출사표

 

일본 유니클로의 아성에 토종 SPA 브랜드 탑텐(신성통상)이 도전장을 던졌다. 수십년 노하우를 가진 유니클로는 올해 국내 매출 1조원대를 넘본다. 유니클로의 공세에 웬만한 중견 브랜드들조차 속속 사업을 접어야 했을 정도다. 그런 유니클로를 출시 3년밖에 안 된 탑텐이 따라잡겠다니 일견 무모해 보인다. 심지어 직원들까지 만류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탑텐의 고속성장세를 보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 2013년 830억원이던 매출은 올해 1800억원을 예상한다. 믿는 구석도 있다. 갭 랄프로렌 월마트 등의 OEM 업체로 성장하면서 누구보다 싸고 좋은 옷을 만들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은 한경(4월28일자 A20면)과의 인터뷰에서 “가만히 있다가 ‘황소개구리’에게 먹혀 죽느니 크게 한번 맞짱을 떠보자는 절박함으로 뛰어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런 의지라면 못할 것도 없다. 삼성 LG조차 두 손 든 일제 코끼리밥솥을 OEM 중소기업이었던 쿠쿠가 밀어냈듯이 말이다.

 

* 미국서 KFC와 맞짱 뜨겠다는 BBQ의 도전

 

치킨프랜차이즈 기업 BBQ가 5년 안에 미국에 매장 1만개를 열겠다고 한다. 프라이드치킨의 원조인 미국에서 치킨으로 KFC 맥도날드와 한판 붙겠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은 현재 30개국 500여 매장이 전부인데 2020년까지 이를 5만개로 늘리겠다는 목표다. 지금의 100배다. 황당하기까지 한 이 도전이 과연 가능할까.

 

BBQ의 미국 진출은 벌써 10년이 다 돼가지만 까다로운 인허가 탓에 매장은 70개에 불과했다. 프랜차이즈 방식으론 한계가 뻔했다. 이때 새로 찾은 활로가 스포츠 경기장이다. 미국은 하루 400만명이 경기장을 찾는 스포츠 천국이다. 경기장마다 BBQ 간판이 생긴다면 폭발적인 잠재력을 기대할 만하다. 미국시장 개척 10년 만에 얻은 노하우다. 현지 외식전문업체와 제휴해 3대 프로스포츠인 풋볼·야구·농구 경기장에 2017년까지 92개 매장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125개 대학 경기장엔 간이매장도 들어선다. 경기장마다 BBQ 간판이 걸리면 사업 확장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생각을 바꾸면 살 길이 열린다.

 

* 전통시장 탈바꿈시킨 청년상인들의 패기

 

쇠락해가는 전통시장을 2030세대 청년 창업가들이 생기가 도는 시장으로 바꾸고 있다는 한경 보도(4월25일자 A1·5면, 4월28일자 A8면)다. 이들은 출신도 다양하다. 대기업 직원, 국회의원 비서관, 통역사, 호텔 요리사, 의상 디자이너 출신이 있는가 하면 비보이, 연극판 출신도 있다. 남들이 가는 길을 아무 생각없이 따라간다는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 이들이다.

 

전주남부시장에선 빈 가게에 청년들이 점포 33개를 열어 주말이면 관광객으로 북적일 정도다. 그 덕에 기존 점포들까지 덩달아 매출이 오른다고 한다. 빈 점포가 즐비한 서울 구로시장은 문화예술을 접목한 청년상인들의 영플라자덕에 손님들이 다시 모여들고 있다. 청년상인들은 하나같이 장사 경험이 일천하다. 그러나 패기와 창의적 아이디어로 똘똘 뭉쳐 도전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박수를 보낸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9수] 보험사더러 소송하지 말라는 금감원 제정신인가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의 우월적 지위 남용을 근절하는 대책의 하나로, 금융회사가 소비자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금융회사 내부에 소송관리위원회까지 신설토록 하겠다고 한다.

 

전체 금융분쟁 소송의 97.2%를 보험회사가 제기하는 상황이다. 물론 금감원은 금융소비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를 강조하고 있다. 보험회사가 소송을 남발해 소비자들이 보험금을 빨리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송 자체를 막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보험회사가 법적 다툼이 있는 사안에 대해 소송을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부당한 보험금 지급을 막아야 선의의 보험가입자가 보호된다. 이는 보험의 대원칙이다. 보험금의 누수를 막는 것은 보험회사의 기본적인 책무다.

 

그렇지 않아도 보험사기가 급증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적발된 보험사기 금액만 해도 2012년 4533억원, 2013년 5190억원, 2014년 5997억원으로 매년 늘고 있다. 관련 혐의자도 지난해 8만4000여명이나 됐다. 적발되지 않은 사기까지 포함하면 연간 피해액이 4조원에 가까울 것이라고 한다. 최근엔 람보르기니 벤츠 같은 중고 고급 외제자동차를 동원한 소위 ‘칼치기’나 고의충돌 같은 보험사기가 잇달아 다수의 보험가입자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금감원이 이런 보험사기를 뿌리 뽑겠다며 국회와 특별법까지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보험회사의 소송을 막아 악성민원이든 사기민원이든 무조건 다 들어주라는 식이다.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더욱이 관련 부서에선 진작부터 구두로 보험회사에 소송을 회사 규모에 따라 월 1~2회로 제한토록 압력을 넣어왔다고 한다.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것은 금융회사가 아니라 금감원이다. 더구나 한 지붕 아래에서 A부서와 B부서가 하는 일이 엇박자를 내니 내부통제가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보호받아야 할 대상은 말없는 다수의 가입자이지, 보험사기꾼이 아니다. 금감원이 왜 이러나.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9수] 중견 우량기업만 타깃된 유보금과세 잘못 가고 있다

 

지난해 7월 도입 발표 때부터 불거졌던 기업소득환류세제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코스피200 기업의 2014년 결산보고서를 분석해보니 이들 업체의 총배당액은 14조429억원에 달했다. 전년보다 22.8%나 증가한 수치다. 반면 경기 활성화에 필요한 투자는 62조5,003억원으로 6.7% 줄었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기보다 배당을 선택해 사내유보금 과세를 피하려 한 것이다. 배당을 늘렸다고 정부 기대대로 내수 활성화에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배당액을 올리면 외국인 주주의 배만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국내 10대그룹 상장사의 배당액 9조1,432억원 중 40% 이상이 외국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고 한다.

 

사내유보금 과세 대상도 코스피200 기업의 17%인 34개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덩치가 큰 대기업들일수록 과세를 비켜가고 있다. 대신 중견기업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 투자나 배당이 용이한 코스피 상위 10대기업은 상대적으로 과세를 피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투자나 배당 여력은 없는데 유동자산이 많아 부채비율이 낮은 중견업체가 직격탄을 맞을 처지가 된 것이다.

 

자동차부품사인 서연은 대기업보다 많은 153억원이나 부담해야 할 판이다. 디와이의 경우 당기순이익의 15%를 유보금 과세로 내놓아야 할 형편이라고 한다. 재무구조가 탄탄한 중견기업 상당수가 기업 규모에 비해 과도한 세금폭탄을 맞을 공산이 큰 것이다. 가뜩이나 경영여건이 힘든 상황에 세금부담까지 커진다면 기업 할 의욕만 잃을 뿐이다.

 

투자 등 기업 경영활동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강제하려 할 경우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 사내유보금 과세가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제도라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재고하는 게 바람직하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유레카/이근영(선임기자)-20150429수] 위험 예측과 전문가 책임

 

81년 만에 다시 닥친 네팔 지진은 예견됐다고 한다. 지진 위험을 예측할 과학자의 책임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2009년 4월6일 이탈리아 라퀼라에서 규모 6.3의 강진이 발생해 309명이 숨졌다. 공교롭게도 정부 자문단이 라퀼라를 방문해 큰 지진의 위험이 없다고 발표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자문단은 한 비전문가가 라돈가스 배출량으로 큰 지진을 예고해 시민을 공포에 몰아넣자 파견됐다. 자문단장은 회의를 열기도 전에 “작은 진동은 큰 지진으로 이어질 에너지의 분출을 도와준다”는 비과학적 발언을 했다. 심지어 “이제 소파에 앉아 와인을 마셔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했다. 자문회의는 겨우 45분 동안 열렸다. 자문단의 과학자 6명 중 4명은 바로 자리를 떴다.

참사로 아내와 딸을 잃은 한 의사가 자문단을 고소했고, 1심에서 자문단 모두에게 과실치사죄가 적용돼 6년형이 선고됐다. 과학계는 제2의 갈릴레오재판이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자문단장의 방송 인터뷰를 보고 피난처에서 집으로 돌아와 숨진 사람만 29명에 이른다. 재판부는 잘못된 예측 때문이 아니라 성실하게 위험 진단을 해야 할 자문단의 ‘태만과 경솔’을 유죄 사유로 들었다. 갈릴레오도 지동설 때문이 아니라 성경과 다른 내용이면 교황청에 알리도록 돼 있는 보고 의무를 어겨 재판에 회부됐다.

 

월성원전 1호기를 수명 연장해도 안전할지를 논의하기 위해 1~3월 세 차례에 걸쳐 34시간27분 동안 열린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한 위원은 토론에 거의 참여하지 않다가 막판에 ‘투표로 결정하자’는 발언만 했다. 3차의 속기록 문자 수는 61만5천자로, 이 위원의 발언은 0.24%(1500자)에 불과했다.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는 2013년 11월부터 3월17일까지 34차례 회의를 열었는데, 한 위원은 17번, 다른 위원은 16번 참석하지 않았다. 또 다른 위원은 25차 동안 16번 회의에 불참한 끝에 중도하차했다. 라퀼라 재판은 전문가의 사회적 책임을 곱씹게 한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영희(문화스포츠부문 기자)-20150429수] 피리를 불면 춤을 춰야지

 

지난주, 우연히 정현종(76) 시인의 등단 50주년 축하연에 끼어들게 됐다. 출판계 지인을 만나러 간 자리가 알고 보니 문학과지성사에서 연 시인의 50주년 기념 시집 출간파티였다는 그런 사연이다. 황동규 시인, 소설가 복거일, 김원일 선생 등 처음 보는 쟁쟁한 문인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당황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섬’)라는 시를 좋아했다는 것 말고는 시인과 개인적인 연이 없었기에 한정식집 한쪽에 조용히 앉아 고기만 꾸역꾸역 먹어대던 참이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이 다름 아닌 ‘문인들’이란 사실을 실감하게 된 건 자리에 몇 차례 술이 돌고 행사가 마지막을 향해 치닫던 때였다. “지금부터 축하 공연이 있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소설가 복거일 선생이 하모니카를 들고 무대(?)에 등장한다. 조용한 식당 안, 필자는 제목을 알 수 없는 옛 노래의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처연하고도 경쾌한 하모니카 소리. 자리에 앉아 있던 평론가 오생근 서울대 명예교수가 무대로 등장해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그 곡이 시작됐다. ‘봄날은 간다’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이번엔 주인공 정현종 시인이 흥을 참지 못하고 뛰어나왔다. 노래를 흥얼흥얼 어깨를 둥실둥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문인들이 함께 음악에 빠진 순간, 진짜 봄이었다.

 

  뒤풀이에서 정현종 시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까 너무 멋졌습니다.” 시인이 이렇게 답한다. “나는 피리를 불면 춤을 추는 사람이야. 요즘 사람들은 피리 소리가 들려도 춤을 안 추더라고.” 단순히 즐기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시인의 열 번째 시집 『그림자에 불타다』를 읽었다. ‘인사’라는 시다. ‘실은/시가/세상일들과/사물과/마음들에/인사를 건네는 것이라면/모든 시는 인사이다’. 그리고 시집 뒤편에 실린 이런 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시를 자기 과시용 수단으로 사용하는 시인들입니다. (…) 그런 사람은 가짜 시인입니다.”

 

  정현종 시인이 말하는 진짜 시인은 세상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줄 아는 이다. 옆에 웃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웃는다. 울고 있는 이가 있으면 함께 운다. 너무 당연한 인간적인 소통이 특별한 재능처럼 여겨지는 요즘이라서일까. 재해로 고통받는 나라를 돕자는 이야기에 “나 살기도 힘는데 무슨”이라 말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어서일까. 시인의 말이 자꾸 맴돈다. 옆에서 피리를 불면 춤을 춰야지.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석종(논설위원)-20150429수] 에베레스트 높이

 

네팔을 강타한 지진으로 벌써 4000명 넘게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네팔은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에 둘러싸인 산악국가. 지구상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포함해 칸첸중가, 로체, 안나푸르나 등 세계 14개 고봉(高峰) 가운데 8개가 이곳에 있다. 이런 히말라야의 장엄한 설산은 그 자체로 경외의 대상이고, 인간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신들의 땅’이며, 불교와 힌두교 등 종교의 발상지다. 사람들도 히말라야 만년설처럼 순수하다.

 

산악인들에게 네팔은 영혼의 고향이다. 8848m 높이의 에베레스트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산악인들이 대부분 휴대전화 번호 끝자리를 8848로 쓰는 것도 에베레스트를 향한 애정 때문이다. 재난구조 활동을 위해 오늘 네팔로 떠나는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좌 완등자 엄홍길 대장의 전화번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에베레스트의 정확한 높이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지금까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8848m는 1955년 인도탐사대가 삼각측량법을 이용해 측정한 높이다. 1999년 미국 탐사대가 위성항법장치(GPS)를 이용해 측량한 결과는 8850m. 당시 탐사대는 눈, 얼음의 두께 때문에 1m 정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중국 지질조사국은 2005년 탐사대를 정상에 올려 빙설탐측레이더로 측정한 결과 8844.43m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네팔 정부는 에베레스트의 상징성 때문에 공식적으로 8848m를 고수하고 있다.

 

히말라야 지역은 유라시아판과 인도판의 충돌에 따라 지진 등 지질 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70~80년에 한번씩 대형 지진이 일어났다. 평소에도 인도판의 이동으로 한 해 북쪽으로 3~6㎜, 위로는 5㎜씩 솟아오른다는 추론도 있다. 지구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높이가 낮아진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질학자들이 이번 지진으로 또 한번 에베레스트산 높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는 소식이다. 고도가 높아질지, 낮아질지는 몰라도 현재 높이 8848m에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재난이지만, 인류의 따뜻한 손길로 히말라야 대자연 속에 사는 네팔인들이 하루빨리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나길 기원한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문소영(논설위원)-20150429수] 대통령의 건강

1933년 취임해 뉴딜 정책으로 미국에서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39살의 나이에 뒤늦게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가 무척 불편했다. 하지만 재임 중 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지팡이를 짚은 모습을 보인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중적인 인기를 위해 정력적으로 거침없이 일하는 강인한 대통령의 이미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열적이고 방종한 연애 이력에도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0년 세계 최초로 진행된 대통령 후보자 TV 토론에서 젊고 싱싱한 이미지로 공화당의 닉슨 후보를 눌렀다. 당시 TV 화면에 비친 닉슨이 창백하고 눈 밑에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병색이 완연해 보였던 탓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케네디가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 그는 부신피질 호르몬의 분비 부족으로 발생하는 에디슨병으로 평생 고통받았다. 만성적인 요통 증세가 있었고 두 차례 허리 수술을 받았다. 수시로 대장염에 노출됐으며, 요도염 재발도 잦았다. ‘미드웨이 해전’에 따르면 케네디는 1942년 태평양전쟁에 해군 장교로 참전했고, 건강 문제를 은폐하고자 입영 서류를 조작했다. 대통령 재임 중에도 다량의 진통제와 항생제 처방, 물리치료사의 치료를 받았다. 체중의 급격한 감소로 고생했지만, 건강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가 그가 46살 때 암살되자 한참 만에 평전 등을 통해 드러났다.

 

‘머리를 빌려 쓴다’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경호원들과 함께 새벽에 조깅을 하며 건강을 과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가 되자 한국 나이로 일흔을 넘긴 탓에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악성 루머가 돌아다녔다. 대통령직 수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증명하려고 그는 고령에도 전국의 유세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후 대통령 임기 후반에 오후 일정을 완전히 비워 뒀다는 소문들이 있었으나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에 앞서 허리 디스크 수술을 남몰래 했는데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가 슬쩍슬쩍 됐고, 이해찬 전 총리가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거론하자 언론은 “주요 국가 정보 관계자들이 그 부분을 주목했을 것”이라며 안이한 인식을 질타했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인 4월 16일 출발해 12일간의 남미 순방을 떠나 27일 새벽에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이 인두염과 위경련 등으로 1~2일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오늘까지 아무런 공식 일정도 잡지 않았다고 했다. 과문(寡聞)해서 그런지 역대 현직 대통령 중 아프다는 발표는 물론 병으로 일정을 비워 뒀다는 청와대의 공식적인 입장도 처음 듣는 듯하다. 역대 대통령들이 병환이 없이 건강해서 그런 발표가 없었다기보다 대통령의 건강이 국가의 안위와 직결된 사안이라 극비에 부쳐졌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와병에 대한 공표는 신선한 발상이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오춘호(논설위원)-20150429수] 100세 작가 시대

 

100세 작가가 쓴 작품을 찾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흔치 않은 일이었다. 적어도 지난 세기까지는 그랬다. 소위 거장들이라고 해도 마지막으로 쓴 작품들은 보통 70~80대에 발표한 것들이다. 빅토르 위고는 72세때 ‘93년’을 마지막으로 집필했다. 레프 톨스토이는 70세에 ‘부활’을 발표했고 78세에 마지막 작품인 ‘인생 독본’을 펴냈다. 헤르만 헤세 역시 80세까지 작품을 출판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사망하기 1년 전인 82세에 ‘파우스트’를 끝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달라졌다. 90대 작가들이 쓴 작품은 아예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 됐다. 100세 이상의 노인이 쓴 작품이 늘고 있다. 특히 고령국가 일본에서 100세 작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건강과 장수비결을 얘기한 책이 많다.

 

국내에서도 이런 책들은 꽤 번역돼 있다. 101세 할아버지가 쓴 일본어 이야기도 있다. 일본 최고령 시인 시바타 도요의 시집은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그는 92세에 시를 쓰기 시작해 98세에 ‘약해지지 마’라는 시집을 출간, 일본에서만 160만부나 팔았다. 100세 때인 2011년 ‘100세’라는 시집을 내면서 서문에 ‘30년을 더 살 줄 알았더라면 뭔가를 해야 했다’고 후회하는 글을 적었다.

 

미국에선 지난달 109세로 영면한 투자계의 거물 어빙 칸이 102세에 펴낸 벤저민 그레이엄 추모집이 시선을 끈다. 한국에서도 서울대 법대 학장을 지낸 고 최태영 박사가 102세 때인 2002년 ‘한국 고대사를 생각한다’를 출간해 관심을 끈 적이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현역 화가인 103세 시모다 도코 할머니의 에세이집 ‘103세가 돼 깨우친 것’이 단연 화제다. 출간된 지 한 달도 채 못 돼 베스트셀러 반열에 등극했다는 소식이다. 그는 영국 대영박물관과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작품을 소장할 만큼 화가로도 유명하다. 시모다 할머니는 이 책에서 “오래 살고 싶다는 건 인간의 본능이며 나이가 들어도 그렇다”고 말한다. 또 “‘언제 죽어도 좋다’는 말은 거짓이며 살아 있는 한 인간은 미완성”이라고 한다. 상수(上壽)를 넘긴 영혼의 고고한 울림이 느껴진다. 운명 앞에선 어떤 사람도 무력하므로 항상 겸허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 역시 가슴에 와닿는다.

 

우리나라에서 100세 이상이 1만5000명가량이라고 한다. 이 수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우리도 곧 있으면 100세 이상 작가의 작품이 곧 나올 것 같다. 노년에는 글쓰기가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프랑스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가 말하지 않았나.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한기석(논설위원)-20150429수] 미치오 카쿠의 '우주'

 

우리가 사는 우주를 설명하는 물리이론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91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이요, 다른 하나는 막스 보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등이 1925년께부터 주창한 양자역학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뉴턴이 중력을 일종의 힘으로 간주한 것과 달리 기하학적인 부산물로 본다. 즉 천체처럼 질량이 있는 곳 주변은 시공간이 휘어지면서 마치 그곳에 잡아당기는 힘이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양자역학은 에너지가 양자라고 불리는 불연속의 다발로 존재한다고 보는 이론이다. 거시세계를 설명하는 일반상대성이론과 미시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을 통일하면 우주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이 완성된다. 아인슈타인을 포함해 그동안 수많은 과학자가 이른바 통일장이론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끈이론과 그 최신 버전인 M이론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간의 충돌을 무마해 만물의 이론을 창출해낼 가장 강력한 후보로 평가 받고 있다. 끈이론에 따르면 전자를 비롯한 소립자를 들여다보면(아직 소립자를 볼 초고성능 현미경을 개발하지 못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점(point)이 아니라 진동하는 끈(string)이다. 이 끈의 진동패턴이 바뀌면서 모든 입자를 만들어낸다. 끈이론은 세상이 10차원 시공간에 있다고 보며 여기서 1차원 더 많은 11차원으로 이해하는 게 M이론이다.

M이론의 최전방에서 우주를 연구하는 석학 미치오 카쿠 뉴욕시립대 석좌교수가 본지 주최로 27~2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서울포럼 2015' 행사에 참석한다. 그는 M이론에 근거해 세상에는 수많은 우주, 즉 다중우주가 있으며 그중에는 우리가 사는 우주와 같은 또 다른 우주, 즉 평행우주가 있다고 믿는다. 그는 M이론이 빅뱅이론이 처음 등장했을 때 제기된 "빅뱅 이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제시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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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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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후임 총리 인선

■ 누리과정 지원금 제도 기어이 사단, 벼랑 끝에 선 아동복지

■ 국회의원 백지신탁 0건

■ 세월호 참사 1주년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후임 총리 인선

 

[경향신문 사설-20150428화] 후임 총리, ‘수첩’과 ‘진영’ 벗어나 물색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이완구 총리 사표를 수리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연루된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지 일주일 만이다. 부정부패 문제로 이 총리가 취임 70일 만에 낙마함에 따라, 출범 2년여밖에 안된 정부에서 여섯 번째 총리를 찾아야 하는 기막힌 광경이 벌어지게 됐다. ‘총리 부재’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총리직을 대행하는 비정상적인 국정 운영도 최소 한달 이상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이 총리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가타부타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완구 사태’로 빚어진 나라의 혼란과 국정의 난맥에 대해 임명권자로서 응당 사과부터 했어야 마땅하다.

 

이제 국정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기 위해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새 총리 인선이다. 박 대통령은 새 총리 인선을 국정의 혼선을 수습하고 정권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전기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 도덕성이 새 총리 인선의 최우선 기준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박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후보자 5명 가운데 3명은 청문회에 서 보기도 전에 낙마했고, 한 명은 ‘최단명 총리’란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 거듭된 ‘총리 인사 실패’가 낡은 수첩에 얽매여 내 사람을 고집해 도덕성 기준을 무시·간과하면서 빚어졌음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이번에도 총리 후보자가 도덕성에 걸려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진퇴 논란에 휩싸이고 낙마 지경에 몰리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면 박 대통령은 심각한 레임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인사청문회 통과만을 우선해 현직 각료나 친박계 정치인 등을 물색하는 것은 또 다른 실패를 예비하는 길이기 십상이다. 다분히 정치공학의 산물인 특정 지역 총리론도 마찬가지다. 둘 다 ‘이완구 총리 실패’가 보여주는 바다. 인사청문회 관문을 걱정하지 않고, 도덕성과 통합·소통 마인드 등 현 상황에서 요구되는 총리 자질을 갖춘 인물을 찾으려면 인재 폭을 넓혀야 한다. 박 대통령이 ‘수첩’ 밖으로 나와서, ‘진영’의 틀을 벗어나 폭넓게 사람을 구하는 변화를 보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야권에도 총리후보자 천거를 요청하는 등 발상의 전환도 불사해야 한다. 이번 총리 지명 결과가 박 대통령의 변화 여부를 판단하고, 남은 임기의 성패를 가름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더 이상 박 대통령에게 실패의 교훈을 학습할 기회는 남아 있지 않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8화] 귀국 이후 박 대통령이 해야 할 일

 

박근혜 대통령이 9박12일간의 남미 순방을 마치고 27일 새벽 귀국했다. 박 대통령은 건강이 좋지 않아 하루 이틀 공식 일정을 잡지 않을 것이라 한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만성피로 때문에 생긴 위경련으로 인한 복통이 주 증상”이라고 말했다. 멀고 먼 국가들을 순회한데다 반갑지 않았을 국내 소식 때문에 몸과 마음 모두 고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느끼는 것보다 더한 피로와 몸살을 지금 국민이 앓고 있다. 대통령 순방기간 중에 국무총리는 사의를 표명했고 국정은 사실상 중단 상태였다. 대통령은 자신이 없는 동안 국내에서 숱한 의혹과 비판이 제기되는 걸 부담스러워했겠지만, 반대로 국민은 중요한 현안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 1주기에 굳이 멀리까지 날아간 대통령이 미덥지 않았을 것이다. 이 간극은, 현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성완종 리스트’의 초점을 흐리는 듯한 “정치개혁 차원에서 (여야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는 발언으로는 결코 메울 수 없다.

 

성완종 파문을 제대로 수습하고 신뢰를 회복하려면 우선 박 대통령 스스로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이번 파문의 본질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국무총리와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경남도지사 등 현 정권의 핵심 실세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다. 그 자금의 상당액은 과거 박 대통령의 경선·대선 캠프로 흘러갔다고 성 전 회장은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나는 관계없다’는 식으로 제3자처럼 행동할 게 아니라, 최소한 핵심 측근들이 이번 사건에 다수 연루된 데 대해 국민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리고 검찰 수사가 성완종 리스트의 본질을 벗어나 물타기식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박 대통령이 정치적 꾀를 내어 곤란한 국면을 모면하려 한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버릴 것이다.

 

박 대통령이 귀국 당일에 이완구 총리의 사표를 수리한 건,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건, 국민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이를 찾아 후임 총리로 지명하는 일이다. 이제까지 박 대통령은 자신이 잘 아는 인사들 중에서만 사람을 골라 써왔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좁은 인재풀을 고집하는 박 대통령 태도가 총체적 국정 난맥의 주요 원인임을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다. 이런 탓에 현 정부에서 유난히 총리 지명자들의 낙마가 끊이지 않았다. 아울러 국내외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남미 순방을 계획한 외교 라인에도 책임을 묻는 게 마땅하다. 국내 문제 때문에 외교 현안을 뒤로 미룰 일은 아니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중·일 정상이 회동한 ‘반둥회의 60주년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를 놔두고 멀리 남미 순방 일정을 잡은 것은 중대한 외교 실책이다. 이런 잘못을 방치해서는 국정 운영이 계속 삐걱댈 수밖에 없다.

 

 

■ 누리과정 지원금 제도 기어이 사단, 벼랑 끝에 선 아동복지

 

[한국일보 사설-20150428화] 관련기관 떠넘기기에 벼랑 끝 선 아동복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핵심 복지 공약으로 관심을 끌어온 누리과정 지원금 제도가 기어이 사단이 났다. 예산 배정을 둘러싸고 중앙 정부와 시도 교육청의 떠넘기기식 힘겨루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관련 예산 미확보를 이유로 집행을 중단하는 지자체가 속출, ‘보육대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누리과정 지원은 어린이집을 다니는 3~5세 아동 한명당 29만원, 이중 22만원은 부모에게 바우처 형태로, 7만원은 어린이집에 직접 지원토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전북도와 강원도는 25일 결제해야 할 누리과정 운영비 15억4,000만원, 강원도는 11억원의 예산 집행을 하지 못했다. 관련 예산을 확보, 일선 지자체에 내려 보내야 하는 교육청이 ‘어린이집은 교육청이 아닌 지자체 소관’이라며 4월부터 예산 책정을 거절한 까닭이다. 두 지자체가 내달 10일까지 집행해야 할 돈이 90억원에 달해 2차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추후 집행이 늦어진다면 학부모의 보육비 부담이 가중되고, 어린이집 교사의 월급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 앞서 광주와 인천 교육청 등 일선 지자체가 비슷한 입장에 처했다가 시와 구로부터 긴급 처방을 받고 위기를 넘겼으나, 추가 예산 확보를 둘러싸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기획재정부가 지난 해 9월 2015년 국가예산안에서 누리과정을 비롯한 교육 복지 예산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떠넘긴 것이 발단이 됐다. 이에 일선 교육감은 “가뜩이나 어려운 교육재정을 파탄으로 모든 처사”라며 예산 책정에 난색을 표했다. 이 과정에서 “5세까지 아이 기르는 비용은 국가에서 지원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포퓰리즘 논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4월 국회에서 지방채 발행을 위한 지방재정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해결될 것이라는 정부의 안이한 사고도 문제를 키우는 데 한 몫 했다. 그나마 이런 시기를 위해 지난 해 막판에 확보한 목적예비비 5,064억원도 성완종 리스트 국면에 따른 식물국회 지속으로 집행이 중단되고 있다. 여야는 정쟁을 중단하고 관련 예산 통과에 서둘러야 한다. 정부도 교육복지 관련 예산을 둘러싼 관련 기관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방관하지 말고 체계적인 예산 집행이 가능한 시스템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428화] '보육대란' 누군가는 부담해야 해결된다

 

강원도와 전북도에서 어린이집에 주는 누리과정(3~5세) 지원금이 처음으로 중단됐다. 다음달엔 인천·충북도 지원금이 끊길 판이라고 한다. 다음달 예산이 고갈되는 경기도교육청도 한 달짜리 긴급 ‘땜빵’ 예산을 마련하고 있다. 지원금이 끊긴 어린이집이 문을 닫게 되면 전국적으로 ‘보육대란’이 확산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누리과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으로 만 3~5세 유아들의 학비와 보육료를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누리과정은 부담 능력과 재원 조달 방안은 생각하지 않고 급하게 전면 실시하는 바람에 심각한 재원 부족 사태를 맞고 있다. 올해 필요 예산은 3조9000억원이지만 1조8000억원이나 모자란다.

 

  여야 원내대표는 지방채를 발행해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키로 하는 지방재정법 개정안을 4월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여야의 의견 차이로 아직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여야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진영 논리에 따라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지원에 대한 입장이 갈라지는 것도 문제다. 진보 성향인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누리과정 지원을 위해 지방채도 발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무상보육은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던 만큼 지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보수 성향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최근 무상급식 예산을 중단해 경남교육청의 반발을 샀었다. 보육료 지원을 중단하면 그 피해는 저소득층에 집중된다. 돈을 못 내는 가난한 집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쫓겨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면 교육청이 일단 지방채를 발행해서라도 누리과정 예산을 끊어선 안 된다.

 

  그러나 지방채로 누리과정을 지원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빚을 내서 돌려 막는 식으로는 불어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정부와 정치권은 무상보육이든, 무상급식이든 큰 틀에서 지속 가능한 대안을 다시 짤 필요가 있다. 혜택만 선전할 게 아니라 누군가 비용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설명하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8화] 어린이집 지원 중단, 중앙 정부가 책임져야

 

처음으로 3~5세 어린이집 운영비 지원 중단 사태가 현실화됐다. 강원도와 전북도가 4월분 어린이집 운영비 지원을 끊은 것이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지원금은 보육료와 운영비로 나뉘는데, 2개 도는 이 가운데 운영비를 지불 시한인 엊그제까지 지급하지 않았다.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는 한 다음달 11일이 지불 시한인 보육료는 지급이 어려울 듯싶다. 다른 광역 시·도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사태가 전국적인 보육대란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어린이집 원장들은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운영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이것이 아이를 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워준다는 나라의 현주소다.

 

2개 도의 어린이집 운영비 지원 중단 사태는 중앙 정부와 지역 교육청 간 물고 물리는 책임 공방 끝에 발생했다. 외견상 해당 지역 교육청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지원금을 도청에 보내지 않은 것이 직접적 원인이다. 이들 교육청은 올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3개월치만 편성해 지난달까지 모두 소진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교육청이 영·유아를 볼모 삼아 몽니를 부리는 형상이다. 그러나 교육청의 어린이집 지원 중단이 중앙 정부가 약속한 국고 지원이 시행되지 않은 데 따른 조치임을 감안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정부는 지난달 누리과정 예산 부족분 1조8000억원 가운데 우선 국고 예산 5064억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여야가 국고 지원과 지방채 발행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지방재정법 개정을 동시에 처리키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지방재정법 개정 작업이 지지부진하자 특별한 이유 없이 국고 지원을 미루고 있다. 정치적 문제로 영·유아와 학부모들이 엉뚱하게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국고 5064억원이 집행된다고 해서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방재정법 개정과 지방채 발행 작업이 순조롭게 이뤄질지 의문인 데다 다행히 그 관문을 넘는다 해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여전히 4600억원가량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앙 정부가 나서는 길밖에 없다. 어린이집 지원은 국가 미래를 위한 중요한 투자다. 출산율과 여성의 사회참여 유도와도 밀접히 연계돼 있다. 국가적 차원의 사업이니 중앙 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순리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의 어린이집 보육 지원 책임론을 여러 차례 약속한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 국회의원 백지신탁 0건

 

[한국일보 사설-20150428화] 유명무실한 공직자 백지신탁제도 개선해야

 

19대 국회 들어 국회의원이 이른바 ‘백지신탁’을 한 주식이 처분된 예가 한 것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새누리당 박덕흠(기재위)ㆍ새정치민주연합 김영환(정무위) 등 7명의 의원이 본인과 배우자 등 이해관계인의 보유주식을 백지신탁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지금까지도 처분은 전혀 이뤄지지 않아 2005년 도입된 백지신탁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최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백지신탁 제도의 허점을 활용, 기업과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직무를 최대한 활용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이 더하다.

 

공직자윤리법은 국회의원과 정무직 공무원, 4급 이상 일반직 공무원 등 재산공개 대상자가 본인 및 배우자, 직계 존ㆍ비속 등 이해관계인을 합친 보유주식 총 가액이 3,000만원을 넘으면 해당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도록 했다. 공직자가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직위를 이용하는 공익과 사익의 충돌, 즉 이해충돌을 막기 위한 제도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은 자신과 이해관계인이 합계 3,000만원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기업의 직무와 관련성이 있는 상임위 배정을 피하거나, 직무관련성 심사에 걸린 해당 주식의 백지신탁 계약을 하도록 돼 있다. 또 그 경우 수탁기관은 원칙적으로 신탁계약 체결 60일 이내에 주식을 처분하되, 관련 정보 일체를 신탁 공직자에게 알리지 못한다.

 

언뜻 이만하면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막을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의원 7명의 백지신탁 주식이 일절 처분되지 않는 등 현실의 허점이 숱하다. ‘60일 내 처분’은 원칙일 뿐, ‘1회 30일 이내’로 사실상 무한 연장이 가능하다(공직자윤리법 제14조의 4 제2호의 단서조항).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이라는 조건은 실제로 처분되지 못한 상황 앞에 무력하다. 백지신탁 주식 대부분이 비공개 주식이어서 처분이 쉽지 않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그러나 비공개 주식도 활발히 거래되는 시장현실로 보아 ‘강제 매각’ 규정이 없어 수탁기관이 시장에 관련정보를 알리는 등의 처분 활동에 소극적인 것이 실제 이유다. 또 다른 허점은 성 전 회장이 보여줬다. 그는 지난해 6월 의원직을 상실할 때까지 경남기업 대주주 지위를 유지한 채 19대 국회 정무위원으로 활동하며 피감 금융당국을 주무르다시피 했다. 정무위 배정 직후 인사혁신처 산하 백지신탁심사위원회가 직무관련성을 인정해 경남기업 주식의 매각이나 백지신탁을 결정했지만, 그는 행정소송을 통해 시간을 벌었다. 이런 ‘꼼수’는 18대 국회에서도 복수 사례가 있었지만, 아직 근절책이 마련되지 못했다.

 

껍질만 남은 백지신탁 제도의 취지를 되살리려면 이런 허점을 메울 법개정이 시급하다. 아울러 그때까지는 공직자윤리위와 주식백지신탁심사위가 현행 법령이라도 최대한 엄격히 해석ㆍ적용하려는 자세부터 가다듬길 촉구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8화] 의원 백지신탁 0건… 국회 시계 거꾸로 가나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의 보유주식 백지신탁 규정은 의원 재직시 보유주식 등의 가격에 영향을 줄 정책을 입안하거나 법을 집행하지 못하게 막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19대 국회 출범 이후 의원의 백지신탁 주식을 매각한 사례가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이 제도가 사실상 형해화하고 있다. 게다가 국회는 한술 더 뜨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 이후 백지신탁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 여론이 높음에도 오히려 이 제도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손질하려는 태세다.

 

19대 국회가 개원한 2012년 5월 이후 본인·가족 보유주식을 백지신탁한 의원은 7명으로 이들이 맡긴 주식은 현재까지 모두 매각되지 않고 있다. 소속 상임위와 관련된 주식을 보유한 의원은 이를 백지신탁하고 이 주식은 수탁기관이 60일 이내에 팔도록 돼 있다. 그러나 매각되지 않으면 계속 기한을 연장할 수 있어 의원이 주식을 사실상 보유한 채 해당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좋은 예다. 그는 2012년 정무위에 배속된 후 지난해 6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할 때까지 정무위원으로 활동했다. 성 회장이 굳이 정무위를 고집한 것은 경남기업에 대출 특혜를 주도록 정무위 감사 대상인 금융당국을 압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제가 심각한데도 정작 제도 강화에 나서야 할 국회는 거꾸로 완화 쪽으로 방향을 틀려 하고 있다.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보면 고위공직자가 재임 기간에 본인 보유 주식을 금융기관에 보관하고 퇴임 후 돌려받는 백지관리신탁 제도로 바뀌어 있다. 물론 현 제도가 유능한 기업인의 공직 진출을 어렵게 한다는 해석도 있지만 당초의 제도 도입 취지를 생각하면 퇴임 후 주식을 다시 소유하는 백지관리신탁은 자칫 제도 자체를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여야는 이번 기회에 의원의 사익을 위한 상임위 활동을 원천적으로 막을 대책을 내놓기 바란다.

 

 

■ 세월호 참사 1주년

 

[사설 속으로-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20150428화] 한겨레·중앙일보, ‘세월호 참사 1주년’ 사설 비교해보기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함께 구성한 지면으로 두 언론사의 사설을 통해 중3~고2 학생 독자들의 사고력 확장에 도움이 되도록 비교분석하였습니다.

 

[한겨레 사설] 상처를 치유하긴커녕 후벼파는 정부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년이 된 날이다. 그로부터 1년, 3년, 또는 10년 식으로 햇수가 바뀌어 같은 그날을 기리는 이유는, 그에 맞춰 사건의 의미를 새롭게 기억하기 위함이다. 고통스러운 사건일 경우, 사건의 원인과 책임을 밝히고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의지를 다지는 게 더욱 필요하다. 그날에 맞춰 행사를 하는 것은 기억의 공감대를 만들어내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노력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들렀다. 그러나 헌화나 분향을 하지 못하고 방파제 중간에 서서 대국민 발표문을 읽는 데 그쳤다. 대통령의 일정에 걸맞은 추념 행사는 마련되지 않았다. 희생자 유족과의 만남을 포함한, 제대로 된 행사를 청와대는 처음부터 준비하지 않았다. 외국 방문을 위한 오후 출국 일정을 고정해둔 상태에서, 세월호 비극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고 체면치레를 꾀하려는 인상이 물씬 풍겼다.

 

이날 아침 이완구 국무총리는 경기도 안산의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았다가 희생자 유족들한테 가로막혔다. 총리는 국무위원을 대표하여 움직이는 사람으로서 그 일정의 의미가 가볍지 않다. 그런데도 총리 쪽은 유족들한테 일정도 미리 알리지 않았으며, 현장에서 이렇다 할 메시지를 내놓지도 않았다. 대신에 정부는 국민안전처 주관으로 경찰과 군인, 소방관, 공무원 등을 불러 모아 ‘국민 안전 다짐대회’라는 홍보성 행사를 열었다. 연관된 전시회에 세월호 참사 사진은 한 장도 없고, 대신 구명조끼와 잠수복, 잠수 헬멧 등을 죽 늘어놓았다고 한다. 정부의 움직임에선 세월호 1주년을 기억하겠다는 진정성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체면치레와 책임 회피, 소소한 홍보에나 관심을 두고 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희생자 유족 모임은 이날 오후로 잡았던 합동 추모식을 취소했다. 정부에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철회와 선체 인양 선언을 요구하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내린 결정이다. 유족들이 숨진 이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1주기 추모 행사조차 제대로 열지 못하게 되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과연 우리 사회가 참극의 교훈을 얻고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1년을 맞아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한 각오를 다지는 것은 남은 자들의 책무다. 이를 위한 사회적 노력으로서 진정성 있는 추념 행사는 반드시 필요했다. 정부는 세월호 상처를 치유하기는커녕 기억하는 데도 참으로 인색했다.

 

 

[중앙일보 사설] 세월호 1년… 아직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세월호 1년. 이 순간 가장 참담한 것은 ‘통한의 반성문’밖에 쓸 게 없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에도 이미 무능하고, 병들어 있었다. 생명이 없는 돈을 위해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버리는 업자, 집단 이익을 챙기며 공공의 이익은 외면한 관료, 무사안일에 빠진 정부, 리더십의 부재…. 우리 사회의 도덕지수는 최악이었다. 총체적으로 무능한 국가는 비스듬히 기운 상태에서 서해안을 떠다니던 ‘세월호’의 침몰을 막을 수 없었고, 304명의 생명을 수장(水葬)시키고 말았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불행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외면했던 적폐(積弊)를 직시하게 됐다. 기대 이하인 국가의 실력과 수준을 목도하며, 정부·정치권·국민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질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장하게 ‘국가개조’를 약속했다. 세월호는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한다는 주문을 남겼다.

 

지난 1년간 우리는 이 과제를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을까. 본지가 세월호 1년을 맞아 실시한 ‘국민 안전의식’ 여론조사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다. 시민 10명 중 6.5명이 ‘안전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수습책으로 국가조직 개편, 관피아 철폐 등 10대 개혁과제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해경이 해체되고 국민안전처가 만들어졌고, 세월호 3법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여기에 전문가들이 매긴 점수는 평균 58.8점이다. 낙제점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리더십은 행정부 조직만 바꿨을 뿐, 무능과 타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눈물 속에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며 잊지 않겠다던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유족들에게 “언제든 찾아오라”던 대통령의 말은 빈말이 됐다.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따라 세월호를 이용했고, 때로는 희생자들을 적대시하며 갈등을 부추겼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 것’이라며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정치인들의 경박함이 릴레이하듯 이어졌다.

 

형편없이 낮은 시민의식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공감과 배려로 아픔을 치유하고 집단적 기억으로 승화시키려는 성숙한 의식이 부족했다. 물론 많은 자원봉사자가 유족과 실종자 가족을 도왔고, 함께 슬퍼하긴 했다. 그러나 정부의 무능과 리더십의 부재 속에 보낸 불신의 1년 동안 사회는 분열됐다. 단식하는 유족 앞에서 피자 파티를 열고, 유족을 희롱하고, 돈을 뜯어내려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비상식이 판을 쳤다. 또 일부는 증오심을 부추기는 선동에 가담했다.

 

우리 사회의 ‘공감능력’은 낮았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으로서의 정의(justice)를 ‘공감(sympathy)’이라고 했다. 공감은 타인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상대의 입장이 되어 그 감정을 자기 일처럼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개인의 삶에서든 공적 활동에서든 아무리 이성적 판단을 해야 할 때라도, 공감을 바탕으로 한 도덕적 판단이 발휘돼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희생자와 가족들의 슬픔에 공감하고, 함께 상처를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게 진정한 시민정신이다. 지난 1년의 혼란과 갈등에는 시민들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앞으로 1년 후 우리 사회는 더 나아질까. 지금 상태론 난망(難望)이다. 집권 세력은 이미 ‘세월호 망각’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남미 순방을 떠나고,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이미 미국으로 떠났다. 다른 관계 부처 장관들도 해외 출장이나 국회 일정 등으로 대부분 추모 행사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출범한 국민안전처는 오늘 ‘제1회 국민안전의 날 국민안전 다짐대회’라는 행사를 치른다. 경찰은 유족과 시민들이 연다는 추모집회에 ‘차벽을 설치하겠다’고 미리 엄포를 놓았다. 정부가 ‘세월호는 이제 그만 잊으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발신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일을 잊으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 세월호 참사는 슬픔에 공감하고, 충분히 애도하고, 함께 치유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미래지향적 노력으로 극복하고 승화해야 하는 일이다. 정부와 정치권, 우리 사회는 ‘세월호’에 대해 진정으로 잘못했다. 이런 잘못을 반성하고 바른길로 나아가도록 채근할 수 있는 세력은 시민이다.

 

우리는 세월호의 비극을 통해 국가가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줄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님을 뼈저리게 알게 됐다. 그러기에 탐욕의 절제라는 교양을 갖추고, 공동체의 문제 해결에 일상적으로 참여하는 책임 있는 시민을 키우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래야 시민 없는 민주주의의 허점을 파고든 부조리와 적폐를 근본적으로 씻어낼 수 있다. 70년 전 광복과 더불어 미국에 의해 주어진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존재가 절실하다. ‘공짜 민주주의’로는 세월호의 비극을 멈출 수 없다. 그것이 1년 전의 참극이 우리 공동체에 던지는 엄중한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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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대 논리]

 

한겨레 “정부, 추념행사 진정성 보였어야”…중앙 “시민정신 부족함도 드러나”

 

단계 1 공통 주제의 의미

 

지난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세월호가 가라앉는 장면은 여전히 선명하고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날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시청한 국민 모두가 목격자의 삶을 살고 있다.

 

언론에서는 ‘그 후 1년’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겨레는 정부에 대한 유족의 불신이 쌓여 1주기 추모 행사조차 제대로 열리지 못한 일을 다루었다. 추모는 기억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팽목항에 들렀지만 헌화나 분향도 못하고 돌아왔다. 한겨레는 최근에도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둘러싸고 유족과 대립각을 세우는 정부가 당일의 추모행사마저 진정성 없이 치르려 했던 점을 비판하였다.

 

한편, 중앙은 ‘통한의 반성문’을 썼다. 그 후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중앙의 진단이다. 반성을 위해 점검한 대상은 정부, 정치권, 시민 모두다. 우선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하여 희생자의 아픔을 보듬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일부 정치인들도 희생자를 적대시하면서 유족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일부 시민들에 대해서도 유족을 희롱하는 몰상식한 행동을 비판하면서 사회 분열의 책임을 물었다. 과거를 반성한 중앙은 앞으로의 대책을 주문하였다. 정부와 정치권에게는 잊으라는 강요를 멈추라 하였고, 시민들에게는 애도의 마음과 공동체를 위한 성숙한 자세를 주문했다.

 

단계 2 문제 접근의 시각차

 

두 사설은 공통적으로 ‘기억’이 공감과 애도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만 잊으라’는 정부의 주문은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는 데 필요한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인간은 이성이 받아들여야 감정도 수습된다. 유족들은 왜 그러한 일이 있어났는가를 정확히 알고 싶어한다. 누군가가 밉더라도 그렇게 된 사연이 있음을 알고 나면 마음의 정리가 시작되듯,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감정은 이성의 맥락 안에서 작동한다. 사건의 진상 규명이 자꾸 지연되거나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오면 그 사건은 계속해서 현재진행형으로 남는다. 세월호 참사 1주년 시점에서, 상처를 후벼판다는 한겨레의 비판과 아직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중앙의 진단은 모두 적절하다. ‘기억의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 수습의 첫 단계다.

 

단계 3 시각차가 나온 배경

 

두 사설은 정부의 대처에 대한 비판은 비슷했으나 문제상황을 들여다보는 초점은 달랐다. 한겨레는 유족과 정부의 관계에 주목하였고, 중앙은 사회 전반에 걸쳐 드러난 문제점 확인에 초점을 두었다. 이것은 현안 문제를 중심으로 보느냐, 장기적인 목적을 두고 보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한겨레가 정부의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및 선체 인양과 관련한 유족들의 불신에 집중하는 것도 현안 문제의 해결을 최우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하려면 지금 지나는 길목이 중요하다. 또한, 장기적인 목적을 두고 본다면 문제 상황을 복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중앙은 정부의 무능 못지않게 ‘형편없이 낮은 시민의식’을 질타하는 데도 상대적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각 주체의 책임을 두루 살펴 국가공동체의 관점에서 문제해결을 촉구한 것이다. 장기적인 목적도 현안 문제의 대응도 모두 중요하다. 다만, 1주년이 된 ‘그날’의 특별한 의미를 염두에 둔다면 유족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사건 자체의 조속한 해결에 초점을 두는 쪽이 우선순위에서 앞설 것이다.

 

[키워드로 보는 사설]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세월호 3법’으로도 불리는 세월호특별법은 사고 후 205일이 지난 시점인 지난해 11월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참사의 진상규명과 배·보상을 위한 특별법, 국민 안전을 위한 정부 개편의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범죄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법(유병언법)의 3가지다. 지난 3월27일, 해양수산부는 그 중 참사의 진상규명과 배·보상을 위한 특별법의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담은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시행령안이 발표되자 유족은 즉각 반발하고 폐기를 요구했다. 가장 문제가 된 정부안의 내용은 특별조사위원회의 주요 보직에 공무원이 임명되도록 한 점이다. 해양수산부는 부처간의 업무 중복을 조정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시각이지만 유족들은 조사 대상자가 조사 주체가 되면 정확한 진상규명에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시행령안은 특조위의 인원을 특별법에서 정한 120명 내외가 아니라 90명으로 제한하였고, 진상규명의 대상도 ‘정부의 진상조사 결과에 대한 분석과 조사’로 한정하였다. 정부는 진상규명의 속도와 효율성, 비용 등을 주요 이유로 들고 있지만, 유족과 시민사회는 제대로 된 진상조사의 의지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0일, 해양수산부 장관은 시행령 수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추천 도서]

 

통치론

존 로크 지음, 강정인·문지영 옮김

까치글방 펴냄, 2007년

 

존 로크에 따르면, 근대 국가는 시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일차적 임무로 삼는다. 정부의 막강한 권력은 개인의 동의로부터 나오므로 정부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시민을 위해서만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대형 참사가 제도의 허점과 관료의 부패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면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물어야 한다.

 

위기의 국가

지그문트 바우만, 카를로 보르도니 지음, 안규남 옮김

동녘 펴냄, 2014년

 

현대 국가는 복잡한 내·외부 사정으로 인해 모든 위기 상황을 적절히 관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근대 국가가 권력과 정치를 모두 가진 강한 국가였던 데 비해 현대 국가에서는 권력과 정치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고 바우만은 주장한다. 현대 국가는 관리하고 조절하는 기능이 약화되어 책임은 지지 않고 힘을 행사하는 통치만 강화되었다는 진단이다. 국가공동체가 제 기능을 되살리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볼 때다.

 

 

■ 세월호 관련 사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8화] 특조위원장 농성까지 부른 정부의 ‘세월호 몽니’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참사 발생 이후 6개월도 더 지난 지난해 11월7일이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조직·활동 등 세부 내용을 규정하는 시행령안은 그로부터 다시 다섯달 가까이 흐른 3월27일에야 입법예고됐다. 그나마 유가족과 특조위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어서 철회 요구가 빗발쳤다. 정부의 버티기로 또 한 달이 갔다. 급기야 이석태 특조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며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정부는 왜 이리도 유가족의 애를 태우는가. 요구하지도 않은 배·보상 금액은 서둘러 발표하더니 선체 인양 결정은 세월호 수색 중단 이후 5개월이 지나서야 나왔다. 아들딸의 주검조차 거두지 못한 유가족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결정 시점을 앞당길 수 있었고, 막판까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행령안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더 막무가내다. 인양 여부처럼 기술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도 아니고 정치적 결단만 있으면 당장 해결할 수 있는데도, 촌각이 아까운 유가족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내고 있다.

 

합리적인 판단 잣대로는 이해하기 힘든 정부의 이런 태도 탓에 세월호 1주기를 맞은 민심이 들끓는 것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참사 1주기는 정부가 유가족을 위로하며 온 나라가 함께 애도하는 시간이 됐어야 맞다. 하지만 유가족은 아직도 거리에서 정부를 향한 외침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 외침의 내용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 세월호특별법의 취지에 맞게 특조위가 독립적인 진상규명을 해나갈 수 있는 시행령을 만들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다. 주요 조사 대상인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특조위 업무를 총괄하고 조사 범위를 정부 조사 결과에 대한 검토 수준으로 묶어두는 지금의 시행령안은 누가 봐도 특조위를 ‘관제기구’로 전락시킬 게 뻔하다. 시행령 문제에 대해 “자녀를 졸지에 잃은 부모님의 아프고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모든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의 말도 정부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석태 위원장은 특조위 활동마저 중단한 채 5월1일까지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30일에는 정부 차관급회의에서 시행령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주를 넘기지 말기 바란다. 박 대통령의 결단은 한시라도 빠를수록 좋다. 정부가 진상규명 의지를 조금이라도 간직하고 있다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 세월호 관련 칼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50428화] 세월호 인양, 가슴 열고 따져보자

 

예전에 살던 신당동 아파트에는 주차공간이 ‘널널’했다. 2동이 기역 자로 놓인 아파트 앞에 20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지상 주차장과 바로 옆 지하 3층짜리 주차장 건물. 아파트로 연결된 엘리베이터도 없는 주차장 건물은 늘 텅 비었지만 지상 주차장은 언제나 만원이다. 스무 대를 세울 수 있는 지상 주차장 중 여섯은 장애인 전용. 2동 건물에 장애인은 한 명도 살지 않아 장애인 손님용인 셈이다. 대부분은 비어 있다. 그것도 출입구 가장 가까운 곳이 말이다.

 

차에서 짐을 잔뜩 꺼내들고 헉헉거리며 주차장 계단을 오르는 사람마다 그곳을 바라보며 아파트로 들어간다. 첨엔 슬쩍슬쩍 불법 주차를 많이들 했지만 비워 놓는 것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방식이란 걸 알게 되면서 다들 텅텅 비워둔 채 잘도 지켰다. 어쩌다 쓰기 위해 저 많은 공간을 비워 놓는 것. 경제이론과는 맞지 않는다. 투자에 비해 얻는 게 형편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머리로 계산하기 힘든 게 얼마나 많던가. 약자를 위해 자리를 늘 남겨두겠다는 마음가짐. 그건 더불어 같이 잘 살자는 약속이자 상징이다.

 

  드디어 세월호를 인양하기로 했다. 여러 이유 중에 실종자 시신 찾는 목적이 제일 클 게다. 긴 인양 기간과 1000억원이 넘는 비용, 거기다가 여러 변수까지 있어 선체를 고스란히 인양하는 게 힘들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불경기에 시신 찾는다고 그 돈 들이는 건 비효율적이니 이미 돌아가신 사람은 가슴에 묻으라’며 인양을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들인 것에 비해 얻게 되는 것을 굳이 따지자면 틀린 말도 아니다. 인양하는 행위, 그 자체가 주는 의미를 무시한다면 말이다.

 

  요즘은 광고할 때도 의미가 중요하다. 물건을 보여주며 드러내놓고 하는 뻔한 광고보다 상품 대신 회사 이미지를 통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데 의미를 둔다. 그래서인가, 가끔은 도대체 뭘 팔겠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회사의 좋은 이미지가 가슴에 남았다? 그럼 대박이다. 세월호 인양, 비록 돈도 많이 들고 복병 변수까지 있지만 계산은 머리보다 가슴을 열고 따져보자.

 

  많은 돈과 노력과 시간을 들이면서까지 세월호를 통째로 인양하는 그 행위는 9명의 실종자 가족과 희생자와 나아가 온 국민 모두, 그때 입은 상처가 아직도 쓰리고 아프다는 것. 앞으로는 그런 끔찍한 일이 두 번 다시 되풀이되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온 국민의 반성이자 다짐. 이 두 가지를 상징하는 커다란 의미가 되니까 말이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서울신문 사설-20150428화] 국민들은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를 듣고 싶어 한다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어제 새벽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 앞에는 국정 과제들이 쌓여 있다. 박 대통령은 식물총리였던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를 수용했지만, 제대로 된 새 총리를 지명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비운 10여일 동안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된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노동구조 개혁 문제는 여전히 해답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 놓여 있다.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열린 반둥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정상회담을 갖는 등 동북아 정세 역시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형국이다. 순방 중 과로로 건강이 상한 박 대통령은 어느 하나도 마음 편하게 다룰 사안이 없다.

 

박 대통령이 화급을 다툴 문제는 무엇보다 성완종 파문을 하루빨리 잠재우고 국정의 정상화를 이루는 일이다. 이번 사태는 현직 국무총리와 현 정권의 전·현직 비서실장은 물론 이른바 친박 실세 등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다. 힘겨운 청문회를 거쳐 어렵사리 임명한 총리가 사실상 역대 최단명 재임이라는 오명 속에 퇴진하게 됐다. 아직까지 확실한 증거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자칫 정권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권력형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무한 책임을 지는 자리다. 자신은 아무리 떳떳하고 잘못이 없다고 하더라도 총리가 사퇴할 정도로 측근에 문제가 있다면 대통령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지난 12일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해야 한다”고 밝힌 대목이나 “정치개혁 차원에서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발언은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동떨어져 있다. 세월호 사태나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 당시에 보였던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이 이번에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는 것이 상당수 국민들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검찰의 ‘물타기 수사’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대통령 주변 인물들이 대거 불미스러운 일에 이름이 거론된 것만으로도 먼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엄정 수사를 지시하는 것이 순리다. 청와대와 여당에 대한 지지율은 동반 하락하고 있다. 야당의 속성상 당연한 일이지만 야당의 공세 수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여당 내에서도 박 대통령의 진솔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조차도 “국민은 대통령의 정직한 목소리를 듣기를 원한다.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진솔한 말씀을 기대한다”며 공개적으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성완종 파문에 따른 민심의 이반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은 사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성완종 파문이 국정 현안을 모두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겸허한 마음으로 진솔한 대국민 사과를 한 뒤 시급한 국정 현안의 처리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한국일보 사설-20150428화] 5ㆍ24 후 첫 대북 비료지원, 남북관계 안정화 계기로

 

5ㆍ24 대북제재 조치 이후 5년 만에 대북 비료지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통일부는 어제 재단법인 에이스 경암(이사장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이 신청한 온실 설치용 비닐과 파이프 등 농자재, 비료 15톤 등 2억 원 상당의 인도적 대북지원 물품 반출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안 이사장 등 재단관계자 7명은 오늘 지원물자를 싣고 경의선 육로를 통해 방북, 안 이사장 고향인 사리원 지역에서 텃밭과 온실조성 작업을 돕고 내달 2일 돌아올 예정이다.

 

지난 24일 한미연합 독수리훈련 종료에 맞춰 이뤄진 대북 비료지원 허용은 그간 경색을 면치 못했던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은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독일 방문 중 발표한 드레스덴선언에는 북한 주민생활 향상을 위한 복합농촌단지 조성사업 지원 등이 포함돼 있다. 이번 대북 농자재 및 비료지원 허용은 그와 맥락이 닿아있다고 봐야 한다. 정부는 앞으로도 북한주민 생활에 도움이 되고 지원의 투명성이 확보되는 인도적 지원을 늘려나갈 방침이라고 한다.

 

대북지원 실적이 없는 단체들도 인도적 지원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문턱을 낮춘 것도 같은 흐름으로, 민간단체의 대북지원을 활성화를 염두에 둔 조치다. 내달 하순에는 정부 지원 아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방북이 추진되고 있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이 여사의 방북지원 의사를 밝혔었다. 모처럼 남북관계에 훈풍이 도는 분위기여서 여간 반갑지 않다. 이런 계기를 잘 살려서 보다 안정적인 교류협력과 화해로 이어나가길 기대한다.

 

물론 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탈북자 단체의 기습적인 대북전단 살포 등 돌발 변수가 적지 않고 개성공단 최저임금 협상, 5ㆍ24조치 해제 등의 난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이 끝난 후에도 “대화는 꿈도 꾸지 말라”며 여전히 대결적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비료지원 등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반짝 했다가 돌발 악재에 의해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긴장상태로 되돌아 갔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한껏 높아졌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일이 잦으면 국민들의 대북 피로도만 높아지고 남북 당국간에도 불신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단발적ㆍ일시적 남북관계 호전은 득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다. 따라서 연례적인 군사훈련이나 돌발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남북관계 구축이 필요하다. 하늘만 쳐다보는 천수답 농사가 아니라 가뭄이나 큰 비에도 끄떡 없는 관계농사처럼 남북관계도 안정적 기반을 만들어 가야 한다.

 

미ㆍ중 패권경쟁 심화와 미ㆍ일 밀착 강화 등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도 남북관계의 안정적인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성완종 리스트로 초래된 위기 수습이 다급하겠지만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8화] 총파업 엄정 대처보다 시급한 사회적 대화

 

민주노총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선 방안에 반발해 24일 총파업을 강행했고, 이에 정부는 엄정 대처 방침을 밝혔다. 이처럼 노-정 갈등이 격화하는 사이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층이나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때야말로 해법을 찾기 위한 사회적 대화가 절실하다.

21일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가 마련한 노동 전문가 좌담회에서는 노사정 간에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의제부터 사회적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한목소리로 나왔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 청년실업 극복 방안 같은 의제들은 물론 최저임금 인상도 정부 스스로 재계에 요구해온 만큼 충분히 최우선 과제로 다룰 수 있다.

 

성공적인 사회적 대화를 위해서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노동시장 구조개편 논의가 파행으로 치닫게 된 과정을 되짚어봐야 한다. 지난해 연말부터 어렵게 시동을 건 노사정위 논의가 최근 끝내 결렬된 데는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상대방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의제부터 타협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데, 정부는 노동계가 받아들이기 힘든 무리한 요구에 집착했다.

 

정부는 말로는 비정규직을 위한다고 했지만 실제 밀어붙이려는 대책은 고용 유연화를 명분으로 일반해고 절차 완화 등 정규직 일자리를 불안케 하는 내용들이었다. 비정규직의 처우와 임금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정규직 고용 유연화를 먼저 추진한다면 노동의 하향 평준화만 초래할 뿐이다. 정규직 고용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내수 경기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노동계를 대표하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반성할 대목이 있다. 조직화된 정규직 노동자의 이익을 지키려고 비정규직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은 양대 노총이 겸허히 뒤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청년실업과 노동시장의 불평등 심화 등은 노사정 어느 일방의 힘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경제 활력을 되찾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려면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사정 대타협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8화] 국회의원들, ‘돈 욕심’ 오해받지 않도록 처신해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국회의원 시절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고비마다 금융권을 통해 각종 지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신문이 성 전 회장이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2년 동안의 국회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경남기업의 자본잠식 및 긴급자금 요구 시점에 “건설업계에 대한 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의정활동을 자신의 사익과 연관시켰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그는 이러한 정무위 활동을 기반으로 경남기업의 3차 워크아웃 당시 금융감독원 고위층이 채권단에 압력을 넣어 부당 지원을 이끌어 냈다.

 

사업체를 가진 의원들의 의정활동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관련 상임위 활동이다. 성 전 회장처럼 죽어 가는 사업체를 회생시킬 정도로 국회 상임위의 위력은 대단하다. 국회가 의원 자신이 운영에 관여하는 기업 활동에 관련된 상임위 횔동을 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하지만 권고는 강제 조항이 아니기에 의원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재판으로 시간을 끌 경우 해당 상임위 활동을 금지할 수 있는 방안이 현재로서는 없다. 모 의원은 건설·물류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데, 해당 업무를 관장하는 국회 국토위 간사를 맡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른 의원도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전에 운영하는 기업체를 정리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오너로서 관련 상임위에서 활동하며 공기업과 ‘공생’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 공기업으로부터 일감을 수주받고, 대신 국회에서 그 공기업에 대한 ‘방패막이’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의원이 소유한 기업의 주식 문제다.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인정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3000만원 상당 이상의 보유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 신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주식이 팔리지 않을 경우 주가가 계속 오르더라도 해당 의원이 기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것을 금지할 방법이 없다.

 

의원들이 지역 개발을 내걸고 세금으로 자신의 땅 인근에 도로를 개설해 지가 상승으로 큰 이득을 보는 것도 막아야 한다. 의정 활동을 빙자한 의원들의 축재를 막으려면 정치개혁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 ‘김영란법’에서 빠진 ‘이해출동 방지 규정’을 되살려 의원들이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법안이나 예산을 심의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관련 상임위에서의 활동도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8화] 세계의 지붕 네팔의 지진 참사… 우리는 안전한가

 

리히터 규모 7.8의 강진이 할퀸 네팔에 연일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참상이 이어지고 있다. 수색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참사 사흘째 사망자 수가 4000명에 육박했다. 부상자만 해도 7000여명에 이른다. 현장의 국제구호기구 관계자들에 따르면 주민 1000여명이 사는 마을이 통째로 산사태로 묻혀 버린 곳도 있다. 도로와 통신망이 끊겨 구조대원들의 접근이 어려운 만큼 시간이 갈수록 사상자는 급속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네팔 재해 당국자의 말을 인용한 외신들은 향후 사망자가 1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도 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한뜻으로 네팔 참사에 구원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재난구호팀, 국제의료진이 신속히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긴급 지원금에 이어 구호선발대를 현장에 파견했다. 현재로선 질병의 확산을 막는 일도 급선무다.

 

정부 차원의 공공외교를 적극 펼치는 한편으로 우리는 이번 참사를 다시 없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딴 세상의 일이 아니라 언제든 우리 앞에 닥칠 천재지변일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시간이 있었음에도 안전에 대비하지 못했다면 향후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경고는 계속 있어 왔다. 한반도에 올 들어서만 규모 2.0 이상의 지진이 13차례 있었다. 진도 5.0 이상의 지진도 꾸준히 늘고 있다. 내진설계를 비롯한 지진 대비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귓등으로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내진설계가 되지 않은 부실 주택들이 태반이었던 탓에 네팔 참사 규모가 더 심각해졌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토교통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내진설계 적용 대상인 전국의 공동주택 30만 7000여동 가운데 규정에 부합한 건물은 약 60%(18만 5000여동)에 불과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10개동 가운데 4개동은 불의의 사태에 견딜 능력이 애당초 전혀 없다는 얘기다. 국내 건축물의 내진설계는 2005년부터 높이 3층 이상, 총면적 1000㎡ 이상에 모두 적용하도록 강화됐다. 문제는 법이 도입되기 이전의 민간 건축물에는 이를 강제할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민간 건물이 내진설계를 보강하면 재산세와 취득세 등이 감면되는 혜택을 주고 있지만 별반 실효가 없다고 한다. 이런 인센티브가 있는 줄도 모르는 건물주도 수두룩할 것이다. 적극적인 제도 보완과 함께 기왕에 마련된 정책이라도 당국은 당장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홍보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8화] 스타트업 기업까지 中 선전으로 떠나고 있다

 

중국 경제특구 선전이 제2의 실리콘밸리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일본이나 한국은 물론 미국 벤처기업까지 선전으로 몰려들고 있다. 최근엔 스타트업들도 가세하고 있다고 한다. 인구 1000만 도시에 기업 수가 곧 100만개를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선전증권거래소의 하루 거래액은 100조원이 넘는다. 상장된 벤처도 4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었다. 벤처기업만이 아니다. 세계 유수의 금융회사도 일찌감치 선전에 둥지를 틀고 다양한 금융상품을 내놓고 있다. 엄청난 자금이 몰려든다고 한다. 대기업들은 벤처의 기술과 노하우를 배우려 안간힘을 쓴다. 반도체 기업 퀄컴은 아예 선전에 글로벌 본부를 두었고, 일본의 도요타나 혼다는 신입사원 연수를 이곳에서 한다. 창업천국 선전의 비상이 놀랍다.

 

선전은 계획 클러스터로 세워진 중국 개혁개방의 아이콘이었다. 중국 성장을 위해선 일부 지역의 일부 사람이 먼저 부자가 돼야 한다는 덩샤오핑식 선부론(先富論)의 배경이 된 도시다. 30년 동안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무려 30%에 이르고, 도시 경쟁력도 상하이에 이어 2위다. 불모의 땅에서 이룬 성과였다. 하지만 선전은 외자를 유치하고 가공무역을 통해 발전하던 도시였다. 이런 모델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한계를 IT 창업으로 돌파했다. 세계 IT기업들의 생산기지로 축적했던 제조 인프라 역량에서 창업의 기운이 싹 튼 것이다. 선전에는 부품가게들이 즐비하고 실험공방도 많이 마련돼 있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다. 실리콘밸리가 소프트웨어의 클러스터라면 선전은 하드웨어의 클러스터인 셈이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완화가 선전의 역량을 획기적으로 키웠다. 회사 설립에 필요한 최저자본금을 없애고 영업허가증 발표절차를 간소화했다. 기업에 필요한 일이면 언제든지 도와주는 시스템을 갖췄다. 한국에서 1년 걸릴 일을 2개월 만에 해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국의 창업기업들이 선전행을 택하고 있다. 시장경제가 일궈낸 산물이다. 사물인터넷(IoT) 시대에 선전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이런 사태를 보고만 있을 것인지.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8화] 금융을 왜 자꾸 복지로 만들려 하나

 

금융감독원과 신용회복위원회가 대학생 및 저소득 청년층을 위한 저금리 생활자금 대출을 신설했다. 생활자금이 필요할 경우 신용회복위 보증을 통해 은행권에서 연 4.5~5.4% 금리로 최대 800만원까지 빌릴 수 있게 했다. 최장 4년 거치, 5년 분할상환 조건이다. 또 연 15% 이상 고금리 대출을 받은 대학생 및 청년층에도 같은 금리로 최대 1000만원까지 대출을 전환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가뜩이나 높은 청년실업률에 저축은행 등에서 빌린 고금리 대출로 이중고를 겪는 청년들의 어려움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런 점에서 은행문을 두드리기 어려운 젊은이들의 고충을 저리 융자를 통해 덜어주자는 취지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국민의 최소한 삶의 질 유지를 위한 복지와 금융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냉정한 신용평가와 철저한 위험관리가 금융업의 본질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금융정책을 보면 금융을 복지로 만들려고 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수익공유형 모기지가 그렇고 안심전환대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이제 대학생 청년들에게도 복지금융을 베풀어 주겠다는 것이다. 모두가 하나같이 시장경제 원칙이나 자율, 자기책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는 것도, 금리를 정하는 것도 모두 차입자와 금융회사의 자율적 선택이다. 금융회사는 선별작업을 통해 이익을 낸다. 자율이기 때문에 그 결과도 본인의 몫이다.

 

정부가 시시콜콜 금융에 간섭하려 드는 것은 무엇보다 오래된 관치금융 폐습 때문이다. 금융을 정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러나 효율성과 자기책임성을 무시한 시장개입은 반드시 부작용과 도덕적 해이를 부른다. 시장신뢰는 무너지고 ‘버티면 된다’는 식의 인식이 퍼지면서 서민금융은 타락하고 만다. 금융은 복지가 아니며 포퓰리즘의 대상이 돼서도 안 된다. “서민에게 저금리로”라는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국 그 부담은 국민 세금으로 돌아온다. 늘 그렇듯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8화] 외국인 투자까지 내쫓는 배출권거래제

 

외국인 투자기업들이 올해 1월부터 시행된 배출권거래제로 인해 국내 투자에 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환경부로부터 배출권 할당량을 통보받은 525개 기업 가운데 외국계 40여개사를 대상으로 확인한 결과 드러난 사실이다. 입만 열면 외국인 투자유치를 외치는 정부가 이런 상황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A사는 유럽 본사가 추진하던 9000억원대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 유치에 차질을 빚었다고 한다. 신제품 개발을 위해서는 전력사용량 급증이 예상되는데 한국에서는 유럽과 달리 간접배출 규제로 인해 전기 사용량이 많은 경우 배출권의 추가 구매가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배출권 비용 부담으로 투자의지도 꺾였다. B사는 2000억원 규모의 생산라인 신·증설계획을, C사는 20억원 규모의 신규설비 투자계획을 보류했다는 것이다.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할 마땅한 수단을 찾지 못한 D사는 연매출 6000억원 규모의 생산물량 확대를 포기해야 할 판이고, E사는 아예 생산물량 일부를 중국으로 넘겼다고 한다. 외국인 투자기업이 온실가스 감축과 배출권거래제로 인해 겪는 실상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환경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하기야 배출권 할당량이 턱없이 적다며 늘려달라는 국내 기업들의 하소연에도 마이동풍으로 일관하는 환경부가 아닌가. 이대로 가면 국내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기업들까지 고사당하기 딱 좋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중·일만 놓고 봐도 한국의 온실가스 규제 강도가 제일 심하다. 202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2년 배출실적과 비교하면 일본은 3.2% 감축이고 중국은 47% 초과 배출이 가능한 데 비해 한국은 10.1% 감축이다. 여기에 한국만 배출권거래제를 강제적으로, 그것도 전국 단위로 하고 있다. 할당량 대비 초과배출에 대한 과징금도 3국 중 가장 많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기업이 뭘 보고 한국에 남으려 하겠나. 국내 기업, 외국기업 할 것 없이 다 떠나면 누가 책임질 건가.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8화] 금융 사기꾼은 뛰는데 금감원은 제자리걸음

 

꽃집과 쌀집·금은방 등이 금융사기범들의 새 표적이 되고 있다고 금융감독원이 27일 경고했다. 꽃집 등에 100만원어치를 주문한 뒤 500만원을 입금하고 차액 400만원을 현금으로 되찾아가는 식으로 사기를 친다는 것이다. 해당 점포 주인의 계좌는 꼼짝없이 대포통장으로 지목돼 갑자기 계좌가 정지되는 심대한 피해를 당하게 된다. 대포통장 단속이 강화되자 이를 회피하기 위해 등장한 금융사기의 새로운 유형이다.

 

금감원은 "물건 가격을 과도하게 넘어서는 금액이 입금됐다면 금융사기를 의심해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실제로 금융사기꾼들의 수법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만큼 금융소비자의 자구노력이 요구된다. 이날 예시된 사례에서 보듯이 사기꾼들은 금융기관에서 신규 통장 발급 절차가 까다로워지자 기존 상거래 계좌에 더 많은 돈을 송금해 차액을 현금으로 받는 수법을 썼고 이를 알 까닭이 없는 상인들은 대포통장을 제공한 공범으로 몰려 금융거래가 제한되는 피해를 보게 됐다.

문제는 소비자의 자구노력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신종 금융사기가 이 정도면 꽃집·쌀집 주인뿐 아니라 누구도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다. 이 지경이 되도록 금융당국은 뭘 했는지 의문이다. 그러고도 가뜩이나 신종 금융사기로 불안한 판국에 "공범으로 몰려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엄포나 놓고 있다. 소비자의 권익을 튼튼히 지켜야 할 금감원이 제 도리는 다하지 않고 불안만 가중시키는 꼴 아닌가.

 

금융사기는 최근 금감원이 근절을 다짐한 '금융 5대악' 중에서도 핵심과제였다. 하지만 이후 스미싱·대출사기·대포통장 등의 피해가 줄었다는 얘기는커녕 오히려 금융 5대악을 구실로 삼은 금융사기가 등장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불과 1년 전 금감원 간부가 KT ENS 협력업체들이 벌인 대출 사기사건에 연루돼 망신을 자초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동안 금감원은 얼마나 달라졌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8화] 유럽 최대은행 HSBC, 세금 무서워 본사 옮기겠다는데

유럽 최대 은행인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런던 본사를 다른 나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외신들은 HSBC 경영진이 새로운 본사 소재지를 물색하라는 이사회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본사 이전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사업 부문 분리 방안까지 거론된다고 전하고 있다.

 

HSBC가 본사 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영국 정부의 과도한 세금과 금융사에 대한 규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HSBC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세가 도입되면서 향후 3년간 전체 순익의 11%에 달하는 45억달러의 세금을 물어야 한다. 반면 본사를 옮기면 70%의 절세효과를 볼 수 있다니 주주들로서는 왜 영국 정부에 꼬박꼬박 세금을 갖다 바쳐야 하는지 의문을 갖기 마련이다. 더욱이 영국 정치인들은 다음달 7일 총선을 앞두고 한 표라도 더 얻겠다며 은행부담금 같은 세금을 대폭 올리고 규제 강도를 조이겠다는 선심성 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 리스크가 높아지자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등 다른 기업들까지 본사를 이전하라는 주주들의 거센 압력에 시달리는 실정이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이제 기업들의 국적이나 소재지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지도자들이 아무리 애국심에 호소하더라도 기업들은 언제라도 이익을 좇아 옮겨가게 마련이다. 기업을 때리고 세금을 무겁게 매길수록 국민에게 돌아오는 몫이 줄어드는 게 냉혹한 경제 현실이다. 한국 대기업 중에서도 외국인 주주 비율이 50%를 훌쩍 넘은 곳이 많다. 툭하면 법인세를 올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불필요한 규제만 양산한다면 주주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조세나 규제 남발 등 경제의 불확실성이다. 기업들이 이런저런 외풍에 흔들리니 외국 투자가들 사이에 저가 매력을 제외하면 한국 증시에 투자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는 푸념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중앙일보 사설-20150428화] 기업인 출신 의원들의 수상한 행태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기업과 정치가 야합해 국민의 고혈을 빨아먹고, 나라를 망친 대표적 사례다. 성 전 회장은 정파를 초월해 권력 실세들에게 줄을 대는 한편 국회의원 배지를 무기로 국세청·금융감독원 등을 마음껏 주물렀다. 그 결과 1조3000억원의 빚을 진 경남기업에 신한·농협·국민 등 굴지 은행들이 앞다퉈 자금을 지원했다. 지금 이 은행들이 회수할 수 있는 돈은 20%도 안 된다. 남은 부채 1조원은 혈세로 메워야 한다. 이런 특혜가 가능했던 건 성 전 회장이 국회의원, 그중에서도 금융 당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정무위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성 전 회장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국회에 똬리를 틀고 있는 정치와 돈의 검은 고리는 수없이 많다. 새누리당 주영순 비례의원이 대주주였던 철강업체 에이치앤철강은 주 의원이 금배지를 단 지 3년 만에 매출이 2배, 순익이 15배나 뛰었다고 한다. 2011년 이래 철강재 가격이 하락해온 것을 볼 때 이례적인 성장세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상직 의원이 대주주와 회장을 지낸 이스타항공도 같은 기간 매출이 2배 이상 늘었고, 흑자로 전환됐다. 이 의원은 지난 1년간 지역구인 전주·완산보다 이스타항공 등 자신이 소유했던 업체들과 관련 있는 새만금·군산 관련 발언을 더 많이 했다.

 

  이들은 의원이 된 뒤 지분을 정리했고 경영에도 손을 끊었다고 했지만 실은 아들이나 형에게 운영권을 넘겨 오너십을 유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정리했다는 주식도 여전히 이들 손에 있다. 공직자가 직무 관련 주식을 3000만원 이상 보유할 경우 주식을 백지 신탁하고 60일 안에 처분하도록 돼 있지만, 주식이 팔리지 않으면 보유 기간을 제한 없이 연장할 수 있는 예외 규정 덕분이다. 이 규정을 이용해 19대 국회에서 회사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하면서 그 업체와 관련된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의원이 7명이나 된다. 만일 이들 의원이 해당 업체에 특혜를 주겠다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관계 부처가 제출한 법안 심의를 미루며 골탕을 먹이거나, 해당 업체와 무관한 사안을 계속 추궁하면 눈치 빠른 공무원들은 알아서 ‘협조’하기 마련이다. 성 전 회장은 의원 재직 시절 바로 이런 방식으로 부도 직전의 경남기업을 연명시켰다.

 

  성완종 사태 같은 스캔들이 터지면 의원들은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부패의 뿌리를 뽑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그런 법안의 말미에 온갖 예외규정을 둬 부패 정치인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다. 의원 주식 백지 신탁이나 이해 관계 상임위 활동 금지 규정이 솜방망이가 된 건 그 때문이다. 국회가 제2의 성완종 사태를 막으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김영란법’에서 빠진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조항부터 되살려야 한다. 또 의원 입법과 상임위 배정은 국민들이 참여한 독립기관의 모니터링을 거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 사설-20150428화] 성완종 두 번의 사면, 당사자들이 나서 진실 밝혀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두 차례의 특별사면을 받은 걸 둘러싼 여야 공방이 거칠어지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12월 31일의 두 번째 특사는 형(刑)이 확정된 지 한 달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데다 당시 정성진 법무부 장관이 여러 차례 반대해 사면 대상자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과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청와대 만찬 회동(12월 28일) 이후 사면이 확정됐으니 배후 의혹이 불붙기 마련이다.

 

  노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와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 간에 이른바 ‘형님 채널’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사자들은 이를 부인했지만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여전히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 세력이 주도했다는 주장과, 이명박 당선인 측의 의사가 반영된 특사였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청와대가 특사를 주도한 명백한 증거가 있다”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전모를 밝히라고 압박하고 있다. 문 대표는 “야당에 대한 물귀신 작전”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양측 모두 실체적 진실을 궁금해하는 국민들의 요구는 외면한 채 흠집내기식의 정치 공방만 벌이고 있다.

 

  보통사람들에겐 하늘의 별 따기인 특별사면을 성 전 회장이 같은 정권에서 두 차례나 받았다는 건 아무래도 정상적인 일은 아니다. 사면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하더라도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특사에 관여했는지, 이 과정에서 로비는 없었는지와 같은 의혹을 품게 되는 건 당연하다. 물론 이번 사건의 본질은 불법 정치자금을 줬다는 ‘성완종 메모’의 진위를 밝히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수사 물타기”라는 야당의 반발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의혹이 불거진 이상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국정조사 운운하며 시간을 끌기보다 당시 사면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사람들이 나서 스스로 진상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현 정권의 실세들이 연루됐다는 ‘성완종 8인 리스트’의 진실을 캐는 작업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유레카/박찬수(논설위원)-20150428화] 사전투표

 

1994년 미국 테네시주는 부재자투표를 대체하는 새로운 사전투표(early voting) 제도를 도입했다. 부재자투표는 미리 신고를 한 부재자만 선거일 이전에 투표할 수 있지만 사전투표는 누구든지 투표를 할 수 있었다. 테네시주의 결정은 선거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후 ‘투표는 선거일에 하는 것’이란 개념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뒤 사전투표제를 채택한 주는 계속 늘어나 2014년 중간선거 때엔 50개 주 가운데 36개 주에서 이 제도를 실시했다. 사전투표를 한 유권자 비율은 2000년 대통령선거 때는 전체의 16%에 불과했지만 2004년엔 22%, 2008년 대선 때엔 30.6%로 증가했다.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 정도가 사전투표를 한 셈이다.

 

사전투표제가 급속히 확산한 데엔 손쉽게 투표할 수 있게 함으로써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뉴욕 타임스>는 사전투표제 논란이 한창이던 2008년 사설에서 “투표를 하루에, 그것도 15시간 안에 하라는 건 펀치로 기표용지에 구멍을 내던 과거 방식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요구”라며 이 제도를 지지했다.

 

논란은 여전히 있다. 그중 하나는 ‘사전투표제가 공화, 민주 양당 중 누구에게 유리한가’라는 점이다. 젊은층과 흑인·히스패닉·아시안 등 비백인계 지지를 많이 받는 민주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 예상이었다. 그러나 2014년 중간선거 때 사전투표 성향을 간접 분석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조지아·노스캐롤라이나에선 민주 성향 유권자들이 많이 참여했지만, 콜로라도와 플로리다에선 공화 성향 유권자들이 오히려 더 많이 사전투표소를 찾았다.

 

우리나라에선 2013년 4·24 재보궐선거에서 처음으로 사전투표가 도입됐다. 29일 열리는 4곳의 국회의원 재보선 사전투표도 지난 주말 실시됐다. 투표율은 평균 7.6%다. 사전투표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치참여 확대다. 전체 투표율이 올라야 사전투표도 의미가 있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50428화] 세월호 인양, 가슴 열고 따져보자

 

예전에 살던 신당동 아파트에는 주차공간이 ‘널널’했다. 2동이 기역 자로 놓인 아파트 앞에 20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지상 주차장과 바로 옆 지하 3층짜리 주차장 건물. 아파트로 연결된 엘리베이터도 없는 주차장 건물은 늘 텅 비었지만 지상 주차장은 언제나 만원이다. 스무 대를 세울 수 있는 지상 주차장 중 여섯은 장애인 전용. 2동 건물에 장애인은 한 명도 살지 않아 장애인 손님용인 셈이다. 대부분은 비어 있다. 그것도 출입구 가장 가까운 곳이 말이다.

 

차에서 짐을 잔뜩 꺼내들고 헉헉거리며 주차장 계단을 오르는 사람마다 그곳을 바라보며 아파트로 들어간다. 첨엔 슬쩍슬쩍 불법 주차를 많이들 했지만 비워 놓는 것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방식이란 걸 알게 되면서 다들 텅텅 비워둔 채 잘도 지켰다. 어쩌다 쓰기 위해 저 많은 공간을 비워 놓는 것. 경제이론과는 맞지 않는다. 투자에 비해 얻는 게 형편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머리로 계산하기 힘든 게 얼마나 많던가. 약자를 위해 자리를 늘 남겨두겠다는 마음가짐. 그건 더불어 같이 잘 살자는 약속이자 상징이다.

 

  드디어 세월호를 인양하기로 했다. 여러 이유 중에 실종자 시신 찾는 목적이 제일 클 게다. 긴 인양 기간과 1000억원이 넘는 비용, 거기다가 여러 변수까지 있어 선체를 고스란히 인양하는 게 힘들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불경기에 시신 찾는다고 그 돈 들이는 건 비효율적이니 이미 돌아가신 사람은 가슴에 묻으라’며 인양을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들인 것에 비해 얻게 되는 것을 굳이 따지자면 틀린 말도 아니다. 인양하는 행위, 그 자체가 주는 의미를 무시한다면 말이다.

 

  요즘은 광고할 때도 의미가 중요하다. 물건을 보여주며 드러내놓고 하는 뻔한 광고보다 상품 대신 회사 이미지를 통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데 의미를 둔다. 그래서인가, 가끔은 도대체 뭘 팔겠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회사의 좋은 이미지가 가슴에 남았다? 그럼 대박이다. 세월호 인양, 비록 돈도 많이 들고 복병 변수까지 있지만 계산은 머리보다 가슴을 열고 따져보자.

 

  많은 돈과 노력과 시간을 들이면서까지 세월호를 통째로 인양하는 그 행위는 9명의 실종자 가족과 희생자와 나아가 온 국민 모두, 그때 입은 상처가 아직도 쓰리고 아프다는 것. 앞으로는 그런 끔찍한 일이 두 번 다시 되풀이되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온 국민의 반성이자 다짐. 이 두 가지를 상징하는 커다란 의미가 되니까 말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석종(논설위원)-20150428화] 나이 차별

요즘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서열을 정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나는 82년생인데요.” “나는 빠른 83인데….” 얼마 전 외국인 패널들이 출연하는 ‘비정상회담’에서는 ‘한국식 엄격한 서열문화 필요 여부’를 안건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터키인 아네스는 “한국에는 기껏해야 5분, 10분 차이인 쌍둥이 간에도 형, 동생이 있는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문화를 잘 아는 출연자들은 “띠동갑 형님” “막내가 해라” 같은 말을 스스럼없이 쓴다.

 

한국인은 처음 만나면 자연스레 상대방의 나이를 묻는다.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유교 전통 속에 살아온 우리에게는 여전히 나이가 훈장이고 벼슬이다. 연장자는 어디서든 상석에 앉고 쉽게 말을 놓는다. 반면 연장자에게 반말을 했다가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많다. “어디서 반말이야?”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두 20대 여성 연예인의 폭언과 반말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세 살 어린 후배 연예인의 반말 섞인 말투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한 것이다.

 

때로는 반말이 하대(下待)가 아니라 친근함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당신’은 원래 예사높임체이지만 상대방을 낮잡아 부를 때도 쓴다. 외국인들은 한국어의 이런 미묘한 차이와 나이·계급에 따른 서열문화가 가장 적응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런 서열 의식이 군대식 권위주의의 ‘상명하복’ 개념과 결합돼 한국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일을 숱하게 겪었다.

 

최근에는 교수가 학생에게 강의와 관련 없이 공개적으로 나이를 물은 것이 인격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고 한다. 모 대학 신학대학원 교수가 강의시간에 50대 여성 학생에게 “나이가 얼마입니까?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습니까? 심히 걱정됩니다”라고 말한 것이 만학도에게 모욕감을 줬다는 것이다. 해당 교수는 “향후 진로 등에 대해 조언을 해주기 위한 질문이었다”고 진술했지만, “나잇값도 못한다”는 말로 들렸을 게 뻔하다. 100세 시대에 50대의 공부를 타박한 것도 문제인 데다 연장자의 권위와 체면까지 무시했으니 참 ‘개념 없는’ 교수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구본영(논설고문)-20150428화] 국민행복지수의 역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는 소식에 오래전에 봤던 미국 영화가 생각났다. 테네시 윌리엄스 원작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다. 영화는 어차피 다 채워질 순 없는 욕망을 좇는 사람들이 다다르는 종착역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여주인공(비비안 리)은 결국 미친 사람으로 몰려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는 비극을 맞았다는 기억이 난다.

 

며칠 전 유엔이 발표한 ‘2015년 세계 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이 세계 158개 나라 중 47위를 차지했다. 스위스가 가장 행복한 나라로 자리매김했고, 아이슬란드와 덴마크가 2, 3위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가장 불행한 나라는 토고가 꼽혔고, 기아와 질병, 그리고 내전으로 신음하는 부룬디·시리아·베냉·르완다 같은 국가들의 행복도가 낮았다. 여기까지는 수긍이 갔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15위권인 한국이 47위라니! 물론 소득이 높아지는 것과 정비례해 행복감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이론도 있긴 하다.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그렇다고 해도 경제대국 일본조차 46위에 그친다니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하긴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세계 행복의 날’(3월 20일)에 즈음한 조사에서는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바닥권이었다. 143개국 중 118위였으니 말이다. GDP와 건강수명, 부패, 자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유엔 행복지수에 비해 다분히 주관적인 갤럽 조사에서 한국인들의 행복감은 훨씬 낮게 나온 셈이다. 반면 파라과이, 과테말라 등 GDP가 높지 않은 중남미권 국민들의 행복도는 높았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키르기스스탄은 국민소득이 겨우 1000달러를 넘긴 나라다. 그런데도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선 우리보다 출산율은 높고 자살율은 낮다고 한다. 우리가 그간 안분지족(安分知足)이란 전통적 미덕을 잊고 살고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한 사회가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를 타고 질주하려는 사람들로만 넘쳐난다면? 결과는 뻔하다. 구성원들은 늘 욕구 불만에 시달리며 주관적 행복감도 낮을 수밖에 없을 게다. 어쩌면 성 전 회장의 비극도 이런 토양에서 배태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일 기업을 키우고 살리려는 과정에서 절제를 모르는 정치권과 ‘거래’를 한 흔적의 일부가 ‘성완종 리스트’로 나타난 게 사실이라면.

 

이웃 일본의 경우 ‘달관 세대’(사토리 세대)까지 출현했단다. 낮은 보수의 비정규직 일자리지만 중저가 옷에 햄버거를 먹는 데 만족하는 ‘욕망 없는 젊은 세대’의 등장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성장을 포기하고 빈곤했던 과거로 돌아가자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국가가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인권, 복지와 안정감 등 내면적 가치를 종합한 ‘삶의 질’ 지표라도 제시해야 할 듯싶다. 21세기를 사는 국민들이 새로운 나침반으로 삼도록….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428화] 토크 파티

 

로마 시내의 팔라티노 언덕과 카피톨리노 언덕 사이에 넓은 평지가 있다. 원래 습지였는데 바닥을 메웠다. 이곳에서는 옛날부터 공공집회가 자주 열렸다. 시민들이 모여 자유롭게 연설하고 토론하는 이 광장의 이름은 포룸 로마눔(Forum Romanum)이었다. 오늘날의 포럼(forum)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공중토론의 한 형식인 심포지엄(symposium)도 비슷하다. 그리스어로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을 뜻하는 심포시아(symposia)와 향연을 의미하는 심포시온(symposion)에서 심포지엄이 나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학술 토론회나 특정 테마를 놓고 여러 명이 견해를 밝히는 방식인데, 모두 지식과 문화를 매개로 하는 고품격 모임이다. 유럽의 살롱과 카페 문화도 이런 대화의 연장선에서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당대 지식과 교양의 향연은 여러 모임에서 꽃을 피웠다. 다산 정약용이 15명의 동인과 함께한 ‘죽란시사(竹欄詩社)’는 1년에 일곱 차례 정기 모임을 가졌다. 살구꽃이 필 때, 복숭아꽃이 필 때, 참외가 익을 때, 서늘한 바람이 불어 서쪽 못에 연꽃이 필 때, 국화가 필 때, 겨울에 큰 눈이 올 때마다 모두 모였다니 참 낭만적이다.

 

현대에 와서도 이런 모임은 형태를 달리하면서 면면히 이어진다. 미디어 발달에 따라 방송에서 진행하는 토크 쇼와 토크 콘서트도 등장했다. 보통 어떤 화제에 대해 학식이 풍부하거나 견문이 넓은 사람들이 출연해 이야기를 나누지만, 최근엔 취업난 시대의 신풍속도를 반영한 ‘승무원 채용 특강 토크 콘서트’까지 등장했다. 병무청장과 함께하는 ‘신나는 병무 토크 콘서트’도 흥미롭다. 삼성그룹 ‘열정락서’의 인기 또한 대단하다.

 

지난 주말 밤에 열린 ‘정규재tv 토크 파티’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주제와 봄밤의 정감있는 대화로 큰 주목을 받았다. 꽃바람이 살랑대는 야외정원에서 파독 간호사의 체험담과 한국 경제의 성장사를 듣는 사람들의 눈빛은 특별히 반짝였다. 동토의 땅에서 탈출한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과 지구촌 자전거 여행가, 먼 도시에서 온 20대 커플, 해외 교포 등의 표정도 각별했다. 공항에서 곧바로 달려온 참가자까지 있었다.

 

SNS 후기도 재미있다. “처음엔 아들과 둘이 참석했다가 이번엔 남편과 셋이 왔습니다. 남편 눈치 슬쩍 보면서 물어보니 아주 좋았다고 하네요.” “동아리 친구 7명이 같이 왔는데 젊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서 놀랐습니다.” “여름 꽃밭에서도 또 해요.”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임석훈(논설위원)-20150428화] 인도판 금모으기

 

중국인의 '금(金) 사랑'은 유별나다. 지난해 중국에서 소비된 금은 약 1,200톤. 세계 최대다. 전 세계에서 쓰이는 금 가운데 25% 이상이 중국에서 팔린 셈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세계 1위 자리를 계속 유지했던 것은 아니다. 불과 3년 전인 2012년까지만 해도 '넘버2'였다.

 

지난 수십년간 금 소비 선두 자리를 지켜온 나라는 놀랍게도 인도다. 인도 사람들의 금에 대한 집착도 중국인 못지않다. 돈을 모으면 은행에 저축하기보다 부와 건강의 상징인 금을 사모으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계층일수록 금을 좋아해 7억명에 달하는 농촌 거주자들이 전체 금 수요의 3분의2를 차지한다고 한다. 대부분이 힌두교도인 이들은 신앙의 표시로 금 장식품을 만들어 평생 간직하거나 힌두교 사원에 공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연유로 사원들이 보유 중인 금은 2,500~3,000톤에 이르는 걸로 추산된다. 인도의 연간 금 수입량(800~1,000톤)의 3배다. 이 많은 금들이 원활하게 유통되면 경제에도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게 문제다.

 

사원으로 들어간 금은 통상 여신상(像) 도금 등에 쓰이다 보니 다시 시장에 나오는 게 적을 수밖에 없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니 수입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지사. 인도 무역적자의 30%가 금 수입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사원이나 장롱 속에 있는 금을 유턴시키려고 애쓰는 이유를 알 만하다.

인도 정부는 금을 은행에 맡기면 높은 이자를 주는 상품을 만드는 등 금 모으기에 한창이다. 모디 총리의 간곡한 호소에 유명 힌두교 사원 '마할락슈미'에서는 여신상 등에서 떼 낸 시가 730억원 상당의 금 158㎏을 내놓았다고 한다. 나라 경제를 부강하게 만들려는 마음은 종파를 초월하는 모양이다. 최근 경제사정이 가장 낫다는 인도가 이렇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데 안팎 악재에 직면한 우리는 '힘'조차 모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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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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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네팔 규모 7.8의 강진 발생

■ 등록금으로 곳간 채운 사학에 경종 울린 법원

■ 성완종 리스트 수사

■ 일본의 역사 역주행과 아베 총리 미 의회 연설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네팔 규모 7.8의 강진 발생

 

[한국일보 사설-20150427월] 네팔 강진 참사에 인도적 지원 아끼지 말아야

 

네팔 수도 카트만두 인근에서 그제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해 지금까지 2,000명 가까이 숨지고 5,000여명이 다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건물 잔해에 매몰돼 확인되지 않는 희생자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팔 당국은 희생자가 4,500명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강진의 여파로 산악인들이 몰려드는 히말라야 산군에서도 산사태가 일어나 에베레스트산 베이스캠프에서 등반 중이던 산악인 20여명이 사망하고 60여명이 부상했다. 등반 시즌을 맞아 에베레스트산에 고립된 등반객도 수백 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인근 국가에서도 지진의 영향으로 60명 이상이 숨지는가 하면 대만과 중국 티베트 등에서는 강력한 여진이 잇따라 발생해 주민들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네팔 강진이 발생한 후 8시간 동안 규모 6.6 지진을 포함, 모두 65차례의 여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유적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카트만두의 랜드마크인 다라하라(빔센) 타워가 완전히 무너졌고, 박타푸르 두르바르 광장 등 4곳의 유네스코 문화유산도 심각하게 훼손됐다. 카트만두를 포함한 카트만두 계곡 일대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7개의 세계문화유산을 비롯한 문화유적이 밀집돼 있다.

 

이렇게 피해가 커진 것은 내진설계가 돼있지 않은 허름한 주택과 건물이 상당수였고, 지진 진원이 지표면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이다. 지진 규모가 1934년 이후 81년 만에 최대였던 데다 진원의 깊이도 수도와 관광지 인근 11㎞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2010년 30만 명의 사망자를 냈던 아이티 대지진보다 16배 더 강력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네팔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을 동원한 구호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다리와 도로가 파손되고 통신이 두절된 곳이 많아 현장 접근조차 쉽지 않다고 한다. 지구적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지적되는 문제지만 정부도 구조와 구호에 미흡함이 없도록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아이티 지진 때 체계적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채 급조된 지원팀을 보내 별 도움은 없이 소리만 요란했다는 비판을 받은 적도 있다.

 

한편으로 한반도 역시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경각심을 갖고 대응책을 강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나라도 1980년대 이후 지진 횟수가 계속 늘고 있고, 최근에는 규모 5 이상의 강진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내진설계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특히 백두산에서 지진으로 인한 재앙적인 화산폭발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는 것을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7월] 네팔의 비극, 함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진도 7.8의 대지진이 히말라야 산간의 작은 나라 네팔을 할퀴었다. 이번 지진은 지난해 4월 칠레 북부 해안 인근 태평양에서 발생한 지진(규모 8.2) 이후 가장 강력한 것이다. 네팔에서는 1만700명이 숨진 1934년 카트만두 동부 지진 이래 80년 만의 대지진이다. 이번 지진으로 벌써 1900여명이 숨졌으며, 앞으로 사망자가 4500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네팔 사람들에게 닥친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겠다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번 지진은 30만명이 숨진 2010년 아이티 강진(7.0)보다 16배나 강력하다고 한다. 또한 진원이 11㎞로 얕았다는 점도 피해를 가중시켰다. 피해가 커진 가장 큰 이유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낡고 허술한 주택이 밀집해 있던 점이다. 지각판 현황으로 볼 때 네팔은 지진 안전지대가 결코 아닌데도 카트만두와 주변 카트만두 계곡 일대에 250만명의 인구가 지진에 약한 비보강 벽돌집에 주로 살았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한테 더 큰 희생과 고통을 안겨준다는 자연재난의 경향성이 이번에도 나타난 셈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은 생존자를 구조하고 이재민을 돌보는 일이다. 카트만두 시가지는 아비규환 상태다.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린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벌어지고 있다. 임시 병동은 실려온 환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카트만두 주민들은 여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집 밖으로 나와 플라스틱 자리나 상자를 깔고 노숙하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한테는 물과 식품, 의약품이 긴급히 필요한 상태다. 히말라야 산지에서도 지진 여파로 산사태가 일어나 등반을 준비하던 산악인들이 숨지고 다쳤다. 지역 특성상 통신과 교통수단이 원활하지 않아 부상자를 제때 옮기기도 어렵다고 한다.

 

미국은 현지에 긴급 재난구호팀을 파견하고 구호금을 제공하기로 했으며, 유럽연합(EU)과 독일, 스페인,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러시아, 이스라엘, 멕시코, 모나코 등도 지원을 약속했다. 적십자사, 국경 없는 의사회 등도 현지에 대원들을 급파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네팔에 구호금을 보내기로 했고 추가 지원책을 검토하고 있다. 인류애를 발휘한다는 차원에서 당연한 일이다. 지원을 한다면 재난 발생 초기에 신속히 대응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지에 필요한 인력과 물자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바란다. 아울러 우리 여행객과 650명에 이르는 교민들의 안전도 빈틈없이 챙겨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7월] 네팔 지진 구호에 적극 동참하자

 

히말라야 산악 국가 네팔에서 그제 발생한 지진 피해가 막대하다. 네팔 정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가 2000명을 넘고, 부상자는 5000여명에 이른다. 수도 카트만두가 폐허로 변했고, 네팔 인구의 5분의 1이 넘는 66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다리가 끊기고 통신망 등이 붕괴돼 구호 작업이 더딘 상황에서 아직 건물 잔해 속에 매몰되어 있거나 다친 채로 방치된 이들이 적지 않아 피해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네팔에서는 1934년 대지진 이후 81년 만의 최악의 참사라고 한다. 불가항력의 자연재해로 삶의 터전이 붕괴되는 참담한 일을 겪게 된 네팔 사람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위로를 보낸다.

 

네팔 정부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재난 극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구호 장비와 병원 설비, 의약품, 식량 등이 부족하다고 한다. 국제사회의 연대와 지원의 손길이 절실하다. 인도적 재난 앞에서 국경, 인종, 종교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은 긴급 구호팀을 파견했고 유럽연합,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도 지원 의사를 표명했다. 한국 정부도 100만달러 규모의 긴급지원 방침을 밝혔다. 재난 구호에는 신속성이 생명인 만큼 구호팀 파견 등 보다 실효성 있는 지원에 나서기 바란다. 민간단체들도 지원활동에 적극 동참했으면 한다. 아울러 정부는 네팔에 체류하는 국민과 여행객들의 소재를 파악하고 안전을 확보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이번 지진으로 네팔의 찬연한 문화유적들이 붕괴되거나 훼손된 것은 인류의 크나큰 손실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카트만두의 ‘랜드마크’ 다라하라(빔센) 타워는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박타푸르 두르바르 광장 등 다른 세계문화유산 4곳도 심각하게 훼손됐다. 네팔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옛 왕궁과 사원 등의 피해는 아직 집계조차 안되는 실정이다. 유네스코 등이 신속히 나서 실태 파악과 함께 추가 피해를 막고 유적 재건을 준비해야 한다.

 

네팔의 지진 피해가 컸던 것은 일차적으로 지진 규모의 강력함 때문이지만, 지진에 취약한 건물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은 미리 대비하는 만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최근 지진 발생이 잦아지는 등 한국도 지진으로부터 마냥 안전지대는 아니다. 정부는 내진 설계, 지진 예측과 경보 시스템, 구호 체제 등 지진대책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점검하고 보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427월] 네팔의 비극적 지진 … 열린 가슴으로 도울 때다

 

히말라야 산맥의 네팔에서 25일 리히터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해 26일까지 2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확인됐다. 이웃 인도·중국·방글라데시의 희생자도 상당했다. 아직 행정력이 제대로 접근하지 못해 사망자 확인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지진 발생 즉시 전 세계가 긴급 지원에 나서 국제사회의 인정이 마르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도 곧바로 지원 계획을 발표했고 프랑스·영국·독일·노르웨이 등도 피해지역에 구조인력과 항공기 등을 신속하게 보낼 예정이다. 중국 역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직접 나서 수색구조팀 62명과 수색견 6마리를 현지로 급파했다.

 

  중국은 네팔과 국경을 맞대긴 했지만 한국도 이에 못지않은 끈끈한 인연이 있다. 수많은 한국 불자가 순례하는 석가모니 탄생지 룸비니가 있는 데다 우리 산악인들이 히말라야 준봉을 줄이어 찾고 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다. 굳이 이런 인연을 대지 않아도 글로벌 시대에는 먼 나라, 이웃 나라를 가리지 않고 어려움을 겪는 나라에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6일 “구호 성금 등 경제적 지원을 우선하고, 구호팀 파견 여부는 네팔 측의 요청이나 국제사회 동향 등을 좀 더 살핀 뒤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다 자칫 구호의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혼란을 겪고 있는 네팔이 요청하기 전에 우리가 필요한 준비를 마치고 구호지역을 조율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아쉽다. 특히 지진 매몰자 구조와 환자 치료는 초동 대응이 중요하다.

 

  지구촌의 비극에 언제나 팔을 걷어붙이는 우리 민간단체들의 적극적인 지원도 기대한다. 또한 이번 지진으로 수도·통신망 등 사회 기반시설이 파괴된 네팔을 위해 정부 차원의 중장기적인 지원 대책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이 공공외교이고 소프트파워가 아닌가.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네팔을 도와야 할 때다. 네팔이 하루빨리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길 기원한다.

 

 

■ 차기 총리 인선

 

[한국일보 사설-20150427월] 귀국 박 대통령, 우선 총리 인선부터 발상 전환을

 

박근혜 대통령이 12일에 걸친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오늘 아침 귀국했다. 청와대측은 차세대 거대시장인 이 지역에 고부가가치 분야 중심의 맞춤형 진출 발판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순방 중 박 대통령은 시차로 밤낮이 바뀐 상태에서 매일 4~7개씩의 일정을 소화하는 강행군을 했는데, 편도선이 부어 열이 오르고 복통까지 겹쳐 매일 링거를 맞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순방성과 보따리를 풀어 놓을 새도 없이 성완종 리스트가 몰고 온 국내 현안들에 매달려야 할 처지다. 무엇보다도 이완구 총리의 사의 표명에 따른 국정공백을 최소화하면서 후임 총리후보자를 찾는 게 급하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 속에 표류 중인공무원연금 개혁, 노동 개혁 등 4대 개혁의 추진동력을 되살리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귀국 비행기 안에서부터 머리가 지끈거렸을 것이다.

 

후임 총리 임명은 후보자 지명에서 국회 인사청문 절차까지 감안하면 최소 1개월 이상의 시일이 걸린다. 조각 때의 김용준 후보자를 포함해 안대희 문창극 후보자 등 세 명의 총리후보자 낙마에 이완구 총리 파동까지 겪은 마당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후임총리 인선 스트레스가 어느 때보다 심할 것이다. 또다시 총리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과정에서 논란에 휩싸이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박 대통령은 더 이상 직무수행이 어려운 상태로 빠져들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후임총리 인선은 국회 청문회 통과 가능성이 가장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도덕성이 제1기준이 되고, 국민통합과 업무추진 능력, 소통 능력 등도 함께 갖춘 인물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기준에 맞는 인물이 쉽게 찾아질 리 만무하다. 박 대통령이 간직해온 낡은 수첩이나 협소한 진영 내부에서만 대상을 찾으려고 할 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우리가 수 없이 강조해왔지만 내편 네편 가리지 말고 폭 넓게 인재를 구해야 하는 이유다.

 

청와대와 여의도 정가 안팎에서는 이런저런 인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바로 이 사람이라고 할 만한 인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청문회 통과 경험이 있는 친박계 인사들이 거명되지만 그 정도의 안이한 인선으로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분히 정치공학적 계산에 입각한 호남 총리론이나 충청 총리론이 나도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이런 자잘한 고려가 아니라 획기적 발상 전환을 통해 전혀 새로운 인재 발탁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예를 들자면 총리 후보자 추천권을 아예 야당에 넘기는 방안도 검토 못할 이유가 없다. 잇단 ‘총리 잔혹사’와 국정난맥의 배경에는 사람이 아니라 제도의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게 대통령 1인에 권한과 책임이 집중되는 구조에서 발생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당장 제도를 고칠 수야 없겠지만 운영의 묘를 통해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총리후보자 인선은 그런 획기적 전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7월] 국민통합 진정성 없는 ‘전라도 총리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차기 총리 후보자 선임과 관련해 ‘전라도 총리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김 대표는 최근 광주 서구을 지원유세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말씀드린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경질되면 그 자리에 전라도 사람을 한번 총리로 시켜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정현 최고위원이 총리를 하면 얼마나 잘하겠는가”라는 말도 했다.

 

새누리당 수뇌부가 박근혜 정부 들어 한 번도 거론한 적이 없는 ‘전라도 총리론’을 노골적으로 꺼내든 것은 그만큼 지금의 상황이 다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여권의 지지율이 떨어진데다 재보선의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서울 관악을 등은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곳이다. 새누리당으로서는 호남 총리론을 앞세워 이 지역 출신 유권자의 감성을 파고들 필요가 있다고 여길 법도 하다.

 

하지만 김 대표의 말에는 국민 통합이나 지역갈등 해소를 향한 진정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총리 자리를 선거운동의 도구 정도로 전락시킨 것부터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선거 때만 되면 그럴듯한 말로 유권자들을 꾀는 새누리당 전략이 이번에는 호남 총리론으로 나타났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김 대표가 차기 총리로 “전라도 사람인 이정현 최고위원”을 공개적으로 추천한 대목에 이르면 더욱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 최고위원은 한평생 호남의 정서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길을 걸어왔다고 할 인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입’을 자처하며 대통령과 관련된 일이라면 사사건건 억지주장을 펼쳐온 인물을 총리로 시키면 나라가 통합되고 갈등이 수그러든다는 말인가.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은 김 총리가 너무나 잘 알 것이다. 여당 대표로서 총리 후보자 천거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김 대표의 입이 너무 가볍다.

 

지금 중요한 것은 ‘호남 총리’니 ‘충청 총리’니 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지역 출신 총리론은 오히려 지역감정을 들쑤시고 갈등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총리 후보자의 출신 지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총리상에 부합하는 인물을 고르는 일이다. 지금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사실상 붕괴 상태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의 측근 인사나 수첩에 적힌 인물만을 놓고 고민해서는 지금의 난국을 타개할 길이 없음도 분명해졌다. 내 편 네 편 가르지 말고, 진정으로 신망과 능력을 갖춘 인물을 과감히 발탁해 국정운영에 일대 쇄신을 기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호남 총리론’보다 훨씬 중요하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7월] 박 대통령 속히 제대로 된 총리 지명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12일간의 중남미 순방을 마치고 오늘 귀국한다. 하지만 느긋하게 순방 피로를 달랠 여유는 없어 보인다. 그만큼 현 상황은 긴박하고 엄중하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부재 기간에 국정 운영이 사실상 정지돼 현안들이 산처럼 쌓였다. ‘성완종 리스트’에 거명된 이완구 국무총리가 사의를 밝혀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정을 통할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게다가 이러한 비정상적인 최 총리대행 체제가 앞으로 최소한 한 달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정과제 추진과 개혁을 위한 ‘골든타임’을 허송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당초 박 대통령 집권 3년차인 올해는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해여서 각종 개혁 추진의 적기로 예상돼 왔다. 정부·여당도 올 초부터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개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던 터다. 하지만 현 상황은 어떤가. 이미 성완종 리스트라는 ‘블랙홀’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4개 개혁은 올스톱, 아니 오히려 후퇴 징후까지 엿보인다. 쇠는 뜨거울 때 두드려야 하는 법인데 개혁의 성패를 좌우할 ‘담금질’ 시간은 이렇듯 안타깝게 흘러가고 있다. 조속히 정상적인 국정 운영의 궤도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러자면 박 대통령은 가장 먼저 후임 총리 인선을 서둘러야 한다.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하면 아무리 빨리 인선 절차를 진행해도 새 총리는 5월 말이 돼서야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정홍원 전 총리가 지명에서 취임까지 29일 소요됐고, 이 총리도 지명 25일 만에야 취임했다. 총리 후보 인선이 지연되면 비정상적인 총리대행 체제가 6월까지 지속될 수도 있다. 어정쩡한 총리대행 체제로는 무엇 하나 시원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다. 성완종 리스트로 재확인된 부패정치 척결과 4대 개혁 추진, 경제 살리기 등 국내 현안도 문제지만 미묘해지는 한·중·일 3각 구도 속에서 우리의 방향 설정 등 외교 현안도 발등의 불이다. 올 하반기부터는 속절없이 총선 분위기로 넘어간다.

 

박 대통령은 여러 차례 총리 인선의 실패를 경험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야말로 마지막까지 함께 간다는 자세로 제대로 된 총리를 지명해야 한다. 여러 차례 거론했지만 새 총리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도덕성과 소통 능력이다. 여권 일각에서 재·보선을 의식해 호남 총리 추대론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지만 이런 접근은 안 된다. 지역과 진영을 뛰어넘는 새 인물을 발굴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골든타임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 관련 사설

 

[중앙일보 사설-20150427월] 박 대통령, 국민 앞에 나서서 설명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오늘 귀국한다. 박 대통령은 강행군과 고산병으로 인한 증상으로 링거를 맞았다. 그 증세는 며칠이면 없어질 것이다. 반면 지금 대한민국이 수술대 위에 올려져 있다. 임기의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대통령은 레임덕(lame duck)의 위기에 놓였다. 국정 운영의 동력을 유지하느냐 여부는 그의 대처에 달려 있다.

 

  박 대통령은 누에고치처럼 웅크리지 말고 국민 앞에 나서야 한다. 올해 들어 그는 대국민 기자회견을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 자신의 핵심 측근들이 연루된 의혹이 있는 성완종 사건이 터졌는데도 그는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그는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밝혀야 한다.

 

  총리는 국정의 2인자다. 대통령은 총리를 임명하며 총리직 수행에 지휘 책임을 진다. 이완구 총리는 하자(瑕疵)투성이였고 성완종 사건의 대처에서 국민의 신망을 잃었다. 급기야 취임 65일 만에 사의를 표했다. 이 총리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은 거짓말과 무책임을 보였다. 대통령은 이러한 사태에 도의적 책임을 피해 가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성 전 경남기업 회장이 주장한 8인의 혐의가 사실인지 여부와는 다른 문제다.

 

  총리의 공백을 최단으로 줄이고 정권 분위기를 일신하려면 대통령은 신속하게 탕평책(蕩平策)을 써야 할 것이다. 자신의 지식이나 친박계의 이해관계를 떠나 도덕성과 개혁성을 갖춘 인재를 광범위하게 골라야 한다. 대통령은 진상 규명에 도움이 된다면 특검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 의지라면 우선 국민이 보는 앞에서 대통령비서실장·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이 검찰수사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지시하는 게 필요하다. 검찰은 비자금 장부를 찾아내지도 못하고 있는데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앞질러 수사 확대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런 것은 또 다른 의혹을 부른다.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서는 것은 사태 해결의 시작일 뿐이다. 세월호 사태가 터지자 박 대통령은 국가 개조를 얘기했다. 성완종 사태가 터지자 정치 개혁을 말하기도 했다. 국가 개조도, 정치 개혁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적잖은 국민은 이 못지않게 ‘대통령 개조’도 중요하다고 믿는다. 해외 순방에 나서면 대통령은 팔을 걷어붙이고 활력과 친화력을 보여 준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국민과 섞이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다. 기자회견을 피하고, 주로 수석회의나 국무회의에서만 발언하며, 일부 부속실 비서관에 둘러싸여 본관에 칩거하는 것처럼 비치고 있다.

 

  시간이 별로 없다. 올해를 보내면 내년엔 총선, 내후년엔 대선이 있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으려면 ‘대통령 개조’에 성공해야 한다. 전두환·노태우의 6·29 선언은 대통령 선거권을 국민에게 던진 것이다. 오늘 귀국하는 박 대통령은 자신을 국민 속으로 던질 필요가 있다. 밀폐된 본관에서 나와 버락 오바마처럼 비서실 건물에 합류하는 박근혜의 6·29 선언이 필요하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7월]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사과와 인사 개혁으로 난국 풀어야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27일 귀국한다.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온 박 대통령 앞에는 난제가 쌓여 있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에서 공공 부문 개혁, 경제 살리기, 고립되는 형국의 외교현안까지 맞닥뜨린 과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4·29재보궐선거에서 여권이 패할 경우 임기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국정운영의 탄력이 약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우선 28일께 국무회의를 열어 국정운영에 만전을 기하라며 내치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당연한 수순이나 보다 직접적인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 핵심 측근들의 이름이 대거 오르내리는 마당에 마치 남의 일처럼 원칙론만 되풀이하는 간접화법이 나온다면 국민들의 실망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물론 해외순방의 강행군을 마친 박 대통령으로서는 서운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99년 러시아와 몽골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옷 로비 의혹을 집중 보도하는 국내 언론을 보고 "내가 이 나이에 나라를 위해 바깥으로 도는데 온통 옷 얘기뿐"이라며 섭섭한 감정을 내비쳤을 때 측근들은 '위험'을 감지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의 국정수행은 전반기만 못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무한책임을 지는 자리다. 아무리 나 홀로 떳떳해도 총리가 사퇴할 정도로 측근들이 파문을 일으켰다면 대통령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마땅히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총리 문제도 사표 수리로 끝날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 5명 가운데 정홍원 전 총리를 빼고 모두 낙마했다는 결과는 인선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박 대통령은 각종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을 강도 높게 천명하지만 겸허한 자기반성이 없는 권력의 개혁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가뜩이나 한국이 고립되는 분위기인 외교현안을 뚫고 나아가기 위해서도 리더십 회복이 절실하다. 대국민 사과와 제대로 된 인사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모든 게 공염불이다.

 

■ 등록금으로 곳간 채운 사학에 경종 울린 법원

 

[한국일보 사설-20150427월] 적립금 수천억 쌓고도 학생엔 인색한 대학들

 

등록금을 받아 학생교육에 제대로 쓰지 않고 막대한 적립금만 쌓아온 대학교에 책임을 묻는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수원대생 50명이 학교법인과 이사장, 총장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하고, 학생들에게 각 30만~90만원씩 등록금을 돌려주도록 했다. 재판부는 대학이 적립금과 이월금을 과도하고 부당하게 운용하면서 등록금 액수에 비해 현저히 질 떨어지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보았다. 이는 적립금을 장학금 등 학생복지와 교육시설 개선에만 쓰도록 한 사립학교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등록금으로 적립금만 쌓고 학생들에게는 그만큼의 교육가치를 돌려주지 않는 일은 이 대학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판결을 계기로 앞으로 대학가에 비슷한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부가 등록금 인상을 강력하게 억제해 왔음에도 2008~13년 5년 간 전국 4년제 사립대의 적립금은 30% 가까이 급증, 무려 9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증가분 중에도 등록금으로 조성되는 교비회계 적립금이 대부분이어서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이 고스란히 대학 곳간에 자산으로만 쌓여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적립금을 3,000억 원이나 쌓고도 형편없는 학생복지와 교육여건으로 지난해 교육부가 사실상의 ‘부실대학’으로 지정한 청주대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한국의 공교육비 민간 부담률은 무려 14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지키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이 거의 학부모에게 의존하는 대학등록금이다. 이 때문에 민간 부담률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정부 부담을 늘려야 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대학의 적립금만 제대로 활용해도 교육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거나 심지어 반값 등록금도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판국에 유수대학의 총장들이 지난 주말에 모여 “등록금 동결 탓에 대학재정위기가 심각하다”며 등록금 자율화, 입학정원 폐지, 기여입학제 허용 등 더 돈 벌 수 있게 해달라는 동떨어진 요구를 정부에 해댔다. 대학이 교육의 공공적 가치와 책무를 외면하고 온통 상업적 이윤 확충에만 매몰돼 있다고 늘 비판 받는 이유다. 대학의 각성을 촉구하면서, 정부에도 감리강화책을 포함해 사립대 재정운영의 적정성과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 대책을 요구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7월] 등록금으로 곳간 채운 사학에 경종 울린 법원

 

대학이 등록금을 올바로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 일부를 학생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지난 24일 서울중앙지법은 수원대 학생들이 학교법인, 이사장, 총장을 상대로 낸 등록금 환불 소송에서 “원고에게 30만원에서 90만원씩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학이 등록금을 받아 교육환경 개선에 투자하기보다 적립금을 쌓는 데만 치중함으로써 학생들에게 기대나 예상에 현저히 미달하는 교육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등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는 것이다. 1심 판결이긴 하나 사학비리 개선과 학생 권리 보호 측면에서 경종을 울린 주목할 만한 판결로 볼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비싼 등록금을 받으면서 교육 투자에 인색하고 사학비리와 과도한 적립금 축적 등으로 눈총을 받는 것은 비단 수원대만이 아니다. 사립대학들이 정부의 등록금 인상 억제 정책으로 재정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뒤로는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왔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의원이 156개 사립 4년제 대학 적립금 현황을 분석한 결과 등록금 억제 정책이 시행된 2008년부터 5년 동안 적립금이 2조원 이상 늘어난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수원대는 적립금 총액과 증가분 모두에서 4위를 기록했다.

 

교육부 감사 결과에 따르면 수원대는 해당 연도에 착공할 수 없는 건물의 공사비를 예산에 넣어 이월금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용처 불명의 막대한 적립금을 축적했다. 2013년 2월28일 기준 적립금이 약 3245억원에 이르렀다. 교육환경이 열악해지는 건 당연했다. 2011년과 2012년 전임교원 확보율이 각각 46.2%와 54.4%, 교육비 환원율도 74.2%와 72.8%로 모두 대학평가 기준에 미달했다. 등록금 대비 실험실습비는 0.88%, 학생지원비는 0.25%로 수도권 소재 종합대 평균인 2.13%와 2.79%에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었다. 수원대는 이 밖에도 총장과 이사장의 출장비 부당 지급과 교비회계 전용 등 총 33개 부문에서도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수원대 사례는 용처 불명의 적립금은 위법일 뿐 아니라 사학비리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잘 말하고 있다. 이미 제기된 사학비리 의혹을 포함해 검찰이 적극 수사에 나서야 할 것이다. 2014년 현재 11조8171억원에 이른다는 전국 사립대학의 누적 적립금의 처리 방향도 분명해진다. 등록금으로 쌓은 막대한 적립금은 교육환경 개선과 등록금 인하, 장학금 확충 등의 재원으로 사용돼야 한다. 교육부는 적립금과 관련한 사립대의 위법을 해소하고 부정·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적극적인 감사 및 행정지도를 펴야 한다.

 

 

■ 성완종 리스트 수사

 

[경향신문 사설-20150427월] ‘성완종 리스트’ 수사팀, 2주 동안 뭘 했나

검 찰이 ‘성완종 리스트’ 관련 특별수사팀을 구성한 지 2주일이 넘었다. 구속·체포·소환된 인물 중심으로 수사상황을 요약해보자. 금품 공여자인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최측근 인사 2명은 구속됐다. 검찰은 두 사람이 성 전 회장 지시에 따라 일부 증거를 파기하거나 은닉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금품을 받았다는 여권 실세들은 어떻게 되고 있나. 성 전 회장의 경향신문 인터뷰 음성파일과 ‘8인 리스트’가 적힌 메모가 실재하는데도, 구속·체포는커녕 소환된 사람 한 명 없다. 검찰은 “수사 논리와 일정대로 가고 있다”고 하지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뇌 물이나 불법 정치자금 사건 수사에서는 물증을 찾기가 어렵다. 돈이 대부분 현금으로 오고 가기 때문이다. 검찰이 성 전 회장 측근 수사에 집중해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터이다. 측근들의 신병을 확보한 뒤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있는지 추궁하려는 수사기법으로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돈 전달 시기·장소·방법 등이 상당 부분 특정된 인사들에 대해서까지 수사를 미루는 점이다. 이완구 국무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주변에선 핵심 증인을 회유하는 등 증거인멸까지 시도하고 있는 터다. 공여자 쪽 증거인멸은 처벌하면서, 수수 혐의자 쪽 증거인멸은 방치한다면 법집행의 형평성에 명백히 어긋난다. 검찰은 말로만 믿어달라고 할 게 아니라, 믿게끔 보여줘야 한다.

 

수 사가 지지부진하자 국민의 시선은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자꾸 거명되는 것은 그런 맥락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수사상황 보고를 요구할 수도 있겠지만, 자제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야당이 지적했듯, 민정수석실에서 보고를 요구하면 장관이 거부할 수 있는 법적 장치는 없다. 더욱이 황 장관은 불법 정치자금 전반으로의 수사 확대를 거론하는 등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해온 터다. 김진태 검찰총장과 문무일 특별수사팀장이 독립적인 수사를 다짐했지만, 과연 그렇게 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황 장관과 우 수석이 검찰 수사에서 완전히 손을 떼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특별수사팀이 수사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기를 촉구한다. 타깃은 이미 사망해 ‘공소권 없음’ 대상이 된 성 전 회장이 아니라, 리스트에 오른 정권 실세들이 돼야 한다.

 

 

■ 관련 칼럼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문소영(논설위원)-20150427월] 암묵지(暗默知)

암묵지(暗默知·Tacit knowledge)는 학습과 경험을 통해 개인에게 체화돼 있지만, 언어 등으로 표현할 수 없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을 말한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인 언어나 문서 등에 의해 밖으로 표출되는 지식은 명시지(明示知·Explicit Knowledge) 또는 형식지((形式知)라고 부른다. 빙산을 예로 들자면 물 밖으로 드러난 작은 빙산은 명시지이고,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빙하 아랫부분은 암묵지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물리화학자인 마이클 폴러니가 과학 지식을 설명하기 위해 구분했다. 요즘은 일반적인 지식의 공유와 수준을 설명할 때도 이용한다.

 

강연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자신이 아는 내용의 10분의1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잦은데 그것은 지식 대부분이 암묵지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 드러내기 어려운 암묵지는 쓸모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명시지가 암묵지를 기반으로 한다. 이런 구분이 낯설고 어려운 개념이지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미 그 차이를 이해하고 있다. 낯선 누군가의 몇 마디 발언을 듣고 “똑똑하다”거나 “어리석다”거나 하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근거는 암묵지에 대해 서로 이해가 깔려 있는 덕분이다. 그 발언 뒤에 더 많은 정보와 더 깊은 사고와 더 넓은 인식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회계 처리가 되지 않은 불법 정치자금을 뿌렸다는 ‘성완종 리스트’에 적힌 정부·여당 관계자 8명이 최초에 내놓은 해명에 국민 대부분은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차떼기’로 표현되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떠올렸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국민 84%가 ‘성완종 리스트가 사실일 것’이라고 답변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2012년 홍문종 의원에게 2억원을 건넸다고 육성을 남겼는데 당시 홍 의원은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이었다. 메모된 이완구 국무총리는 새누리당 충남선대위 명예위원장, 유정복 인천시장은 당시 직능총괄본부장, 서병수 부산시장은 당무조정본부장이었다.

 

현재 검찰은 성완종 측근들을 구속하고, 홍준표 경남지사의 혐의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변죽을 올릴 뿐 부정부패 근원을 도려낼 의지를 읽기는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과거부터 현재까지 완전히 밝혀야 한다”고 했다. “정치개혁 차원의 수사”라고도 했다. 발언 자체로는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의 8명 중 7명이 소위 ‘친박’이다. 역사적 학습과 경험으로 체화된 관점에서 보면 박 대통령의 발언은 검찰에 ‘물타기 수사를 하라’는 지침처럼 해석될 수 있다. 황교안 법무장관은 “8명만 조사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한국인에게 비극적 수순으로 진행되는 이런 수사 과정을 지켜보는 한국 주재 외교관들은 “정말 재미있다”고 한단다.

 

 

■ 일본의 역사 역주행과 아베 총리 미 의회 연설

 

[서울신문 사설-20150427월] 아베 역사 역주행에도 한·일 대화는 이어져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29일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한다. 일본의 진주만 침공 직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 대통령이 대일 선전포고를 했던 연단에 일본 총리가 처음 서는 것이다. 여기에 국제적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가 일제가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 눈감는 종전 태도를 고수함으로써 한·일 과거사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 때문이다. 한·일이 과거에 발목이 잡혀 미래로 나가지 못한다면 두 나라 모두에 불행한 일이다. 혹여 아베 총리가 미·일 신밀월 기류에 편승해 과거사에 대한 면죄부를 얻으려 한다면 오산임을 지적해 둔다.

 

국제관계에서 과거 없는 미래가 어디 있겠나. 미국 뉴욕타임스도 최근 “일본이 자국의 과거에 대한 비판을 계속 거부한다면 21세기 국제사회에서 지도적 역할에 대한 신뢰감을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한·중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경계심을 풀지 않을 것이다. 근래 미·일은 신방위협력지침을 통한 안보 공조, 그리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 시도 등 찰떡 궁합을 보이고 있긴 하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도 한·일 갈등이 지속되면 중국의 패권국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아시아 회귀 전략이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미국의 국방비를 덜어 주는 데 협조하는 대가로 과거사를 덮어 주기를 기대하는 착각을 말아야 할 이유다.

 

아베 총리가 방미길에 오르기 전인 지난 24일 미 의회 의원 25명이 연판장을 돌렸다. 애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과 마이크 혼다 의원 등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일본 총리의 공식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같은 날 워싱턴 미 의회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눈물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런데도 아베 총리는 오불관언의 자세였다. 빈말로라도 무라야마·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외조부였던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미 의회 연설을 독회하면서 연설 원고를 다듬고 있다는 요미우리신문의 보도는 무엇을 말하나. 기시는 침략전쟁에 대한 사죄 대신 미국의 전후 지원에 감사를 표시하고 냉전기에 미국을 도울 일본의 역할을 강조했다. 아베 총리도 태평양전쟁이나 한국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며 미래지향적 미·일 관계만을 역설할 공산이 큰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이 중요하다. 아베 총리가 이제라도 진솔하게 과거사를 직시해 미 의회 연설을 한·미·일 관계를 정상화하는 호기로 삼는다면 다행일 것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시나리오는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갈등으로 “물 샐 틈 없다”는 한·미 동맹에 주름이 생기는 일이다. 그래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원칙을 지키는 것과는 별개로 안보·경제 분야에서는 한·일 협력을 이어 가는 투 트랙 접근이 불가피하다. 지난달 한·일 원로들은 아베 총리에게 수교 50주년인 올해 양국 정상회담을 못 하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는 우리 정부도 귀담아 들어야 할 고언이라고 본다.

 

 

■ 관련 칼럼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옺종훈(논설위원)-20150427월] '보통국가' 일본

 

일본의 우경화 흐름이 갈수록 폭과 깊이를 더해간다. 이미 여러 번 지적돼왔듯이 이런 분위기의 기저에는 '보통국가론'이 깔려 있다. 유력 정치인 오자와 이치로가 1993년 '일본개조계획'에서 제창한 것으로 알려진 보통국가론의 핵심은 일본의 재무장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군에 의해 군대 보유가 금지된 평화헌법 체제로는 국가로서 중요한 '흠결'이 있다며 비정상적 상태를 정상화한다는 차원에서 보통국가로의 환원을 주장한 것이다.

 

사실 일본의 재무장은 패전 직후부터 준비된 것이나 다름없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이자 A급 전범으로 수감 중이던 기시 노부스케는 곧 시작될 미소 냉전으로 일본의 재군비가 허용될 것임을 예상했다. 미국 안에서도 일본 점령에 따른 방위 부담을 줄이기 위한 군대의 필요성이 대두했으나 당시만 해도 반론이 워낙 거세 구체화하지 못했다. 그러나 기시의 장기 전망은 정확했다. 미국은 한국 전쟁 발발 2주일 만에 일본에 국가경찰예비대 7만5,000명과 해상보안청 요원 8,000명의 증원 권한을 부여했다. 이 병력이 1954년 자위대로 전환했다.

 

일본의 보통국가화 작업은 최근 들어 완성단계에 와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아베 정부는 올해 내 헌법 9조에서 군 보유를 금지하고 있는 '평화헌법' 개정 추진과 종전 70주년 담화를 통해 패전체제의 굴레를 완전히 벗겠다는 복안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이해가 맞물려 있다.

 

아베 총리가 29일 일본 총리로서 처음으로 미국 의회에서 연설을 한다. 미국 일부 언론에서 종군 위안부 등 역사 문제에 대한 분명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중국조차 최근 양국 정상회담에서 역사 문제와 별개로 일본과 관계 회복을 시도하는 정황이 목격되고 있다. 동북아를 둘러싼 주요국들의 움직임들이 낯설지 않다. 100여년 전 자기 운명에서 철저히 배제됐던 조선과 너무도 닮아 있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7월] 엔화 약세가 드리우는 짙은 그림자

 

올해 1분기(1~3월) 우리나라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은 50만115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7.7% 줄어들었다. 반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94만7900명으로 39.6% 늘어나 크게 대조가 된다. 한국관광공사와 일본 정부 관광국이 각각 집계한 수치다. 또한 일본 장난감의 국내 판매량이 최근 한달 새 급증세를 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산 장난감 업체들로서는 위협 요인이 아닐 수 없다. 모두 일본 돈인 엔화의 가치가 계속 떨어짐(원화 가치는 올라감)에 따라 빚어지는 모습들이다.

 

지난 24일 원-엔 환율은 100엔당 903.17원을 기록해 900원에 바짝 다가섰다. 2009년 2월 1558원으로 고점을 찍은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낮은 수준이다. 잘 알다시피 일본이 ‘아베노믹스’를 토대로 양적 완화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의 재발을 막고 경기를 진작하기 위해 돈을 많이 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낮은 원-엔 환율은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이른 시간 안에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기저기서 걱정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엔화 약세의 부정적 파장은 관광과 장난감 업계에만 그치지 않는다. 특히 수출 부문이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자동차와 철강, 석유화학 등 우리의 상당수 주력 수출산업이 세계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고 있어서다. 일본 업체가 엔화 약세에 힘입어 수출가격을 낮추면 그만큼 한국 업체보다 경쟁력이 높아지게 된다. 가격 하락폭이 아직은 크지 않지만 그 폭을 확대할 경우 한국 업체가 입을 타격은 커지기 마련이다. 올해 원-엔 환율이 평균 900원으로 지난해(996원)보다 낮을 경우 국내 총수출이 8.8% 하락할 것이라는 현대경제연구원의 전망도 있다.

 

물론, 엔화 약세로 이득을 보는 부문이 없지는 않다. 일본에서 공작기계 등을 들여오는 일부 내수 업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 수출업계의 비가격 경쟁력이 예전에 비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엔화 약세는 전체 수출에 상당히 큰 악재가 되고 있다. 중국 시장의 위축 등이 겹쳐 이미 수출은 올 들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성장률의 둔화에 한몫을 하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 수출업계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엔화 약세는 우리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대외적 여건이지만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서울신문 사설-2010427월] ‘동부산 관광단지 개발’ 비리는 또 뭔가

 

‘성완종 리스트’로 요동을 치는 가운데, 이번에는 ‘동(東)부산 관광단지 개발’을 둘러싼 비리가 대형 부패 스캔들로 번지고 있다.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부산 지역의 정·관·재계는 ‘쑥대밭’이 되고 있다. 공무원, 경찰, 시의원, 공기업 직원 등 지금까지 구속된 사람만 8명이다. 수사선상에 오른 사람만 수십 명에 달한다.

 

구속된 사람들은 수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룸살롱 향응, ‘요트접대’ 등을 받은 뒤 시행사가 헐값에 땅을 살 수 있도록 특혜를 주거나 입찰 조건을 유리하게 바꿔 주는 등의 편의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부산지검 특수부는 어제 이종철 전 부산도시공사 사장에 대해서도 부정처사 후 수뢰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전 사장은 퇴임 직후인 지난해 10월 딸 명의로 관광단지 내 롯데몰에서 간식 점포를 빌려 운영해 왔다. 검찰은 이 전 사장이 롯데몰의 사업 편의를 봐주는 등 특혜를 준 대가로 점포 임차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동부산 관광단지 개발은 해운대에 인접한 부산 기장군 일대 366만㎡ 부지에 세계적인 테마파크를 만들기 위해 부산시가 2005년 시작한 사업이다. 4조원이 투입된 초대형 사업이었지만 미국 MGM 등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는 데 실패했다. 국내 기업으로 눈을 돌렸지만 이마저도 흐지부지됐다. 그러자 부산시는 2009년 운영권을 막대한 부채와 함께 부산도시공사로 떠넘겼다. 이후 테마파크 대신 상가·숙박시설 등 상업위락시설이 대부분 들어섰다. 지난해 12월 롯데몰 동부산점이 이곳에서 개장했는데 건축 인허가, 교통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인허가에서 완공까지 1년 만에 해치웠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각종 특혜를 대가로 금품과 이권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검찰의 칼날은 이제 부산시 고위 공무원과 지역 국회의원에게로 확대되고 있다.

 

역대 정권은 지역, 토착 비리의 척결을 외쳤지만 번번이 공염불에 그쳤다. 이번만큼은 달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달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 그 뿌리가 움켜쥐고 있는 비리의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정 부패와의 전면전이 말뿐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 동부산 관광단지 개발에는 수조원의 혈세가 투입됐다. 전형적인 토착 비리인 만큼 비리의 뿌리는 물론 사업 추진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도 철저하게 파헤쳐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427월] 조희연 교육감은 재판 지연 시도를 그만둬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죄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기로 했다. 조 교육감은 지난해 선거 때 고승덕 후보가 미국 영주권자라며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한 혐의(허위 사실 공표)로 지난 23일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조 교육감은 간부회의를 열고 “이 조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엔 거의 없다”며 “선거운동 중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규제를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 교육감의 헌소 제기 방침은 여러모로 부적절하다. 우선 조 교육감은 자신이 직접 요구한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단 만장일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렇다면 일단 항소를 통해 다투고 2심 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것이 맞다. 1심 결과가 불리하게 나오자 곧바로 헌재에 판단을 요구한다는 것은 재판 시간을 끌기 위한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법원 재판이 헌재의 위헌 심판과 맞물리면 대부분 재판 기간이 길어진다. 헌법재판소법상 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180일 안에 선고를 해야 하지만 기간을 넘기는 경우가 전체의 27% 정도나 된다. 게다가 헌재는 2009년 이무영 전 의원이 낸 사건에서 만장일치로 허위 사실 공표죄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어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곽노현 교육감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곽 교육감은 후보자 사후 매수 혐의로 3심까지 가면서 임기 4년 중 2년3개월 동안 교육감직을 유지했다. 그는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냈으나 기각되자 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당시 야당 의원들은 “대법원 선고는 헌재의 헌법소원 판결 이후에 내려져야 한다”며 선고를 미뤄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교육감이 당선 무효가 될 수 있는 송사에 휘말릴 경우 교육청 업무는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확정 판결이 늦어질수록 혼돈의 기간은 길어지며,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따라서 조 교육감은 재판 지연 시도를 그만두고,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서울시 교육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7월] 중남미까지 나가는 한국 의료, 언제까지 묶어둘 건가

 

한국 의료산업이 브라질 칠레 페루 콜롬비아 등에까지 진출하게 됐다. 페루에는 원격의료 서비스도 수출할 것이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남미 4개국 순방외교가 계기가 됐다. 정치권과 직역단체들의 ‘의료민영화 반대’ 구호에 막혀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는 답답한 국내 상황에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중남미 국가들은 IT와 결합한 한국 의료 서비스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브라질에서는 한양대의료원과 상파울루대학병원이 IT·헬스 분야 공동연구 협력합의서를 체결했고, 칠레에선 1억달러 규모의 병원정보시스템 현대화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넒은 영토에 주거 지역이 곳곳에 산재한 중남미 국가들은 원격의료 서비스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 페루 카예타노헤레디아병원에 원격의료 기술을 수출하게 된 가천길병원의 사례가 특히 고무적이다. 페루식 원격의료 서비스 모델이 완성되면 중남미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중남미 보건·의료 시장은 600조원이 넘고 이 중 원격의료 시장은 12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보건·의료 부문에선 서비스와 기술이 IT 중심으로 결합되는 추세여서 ‘헬스케어 한류’ 수출은 가능성이 높다. 이미 중동에서도 서울대분당병원이 사우디아라비아 6개 병원에 의료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스마트병원 솔루션을 공급하면서 의료 서비스 확대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규제와 기득권 집단의 반발 때문에 의료 분야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의사들의 반발과 여야의 입장 차이로 2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이다. 1990년에 시작된 원격진료는 논의 25년 만인 작년에야 겨우 1차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경우 야당은 보건·의료 분야는 다룰 생각도 않고 있다. 의료법인 자회사도, 제주도 등에 설치하자는 투자개방형 외국병원 설립도, 의료 연구개발 관련 법규도 민영화에 빌미가 될 수 있다며 무조건 반대하고 있다. 한국 의료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중남미 국가들에 보여줄 수 있는 실제 서비스가 하나도 없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규제를 언제까지 계속할 텐가.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7월] 국회가 만든 저질 법들이 준법과 법치 망쳤다

 

우리 시대 법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된다. 법의 제정은 너무나 쉽게 이뤄지고 법치는 곳곳에서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부터 헌법의 가치를 무시한 채 엉터리법을 양산하고, 정치권은 온통 소위 성완종 스캔들에 휘말리고, 노조는 불법 파업으로 도심을 장악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법의 날(4월25일) 기념사를 통해 이런 현실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양 대법원장은 “법이 불합리하게 제정되고 자의적으로 적용·집행된다면 권력의 지배일 뿐 법의 지배라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가장 깊이 새겨들어야 할 곳은 당연히 국회다. 경제민주화란 광풍 아래 졸속으로 만들어낸 각종 포퓰리즘 입법, 이익단체에 놀아나는 청부 입법, 행정권을 남용하게 하는 규제 입법, 무슨 일이든 법으로 묶고 보자는 날림 입법이 갈수록 늘어난다. 저질 법들의 홍수다. 국회 발의 법안은 19대에서만 1만4000건을 넘었다. 법은 단지 많이만 만들면 일 잘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입법만능주의를 넘어 입법권의 타락이다. 입법 남용은 청문회와 예산심의권 등을 통해 사법부와 행정부까지 장악해가고 있다.

 

이렇게 남발된 법이 무슨 정당성과 권위를 가질 수 있겠는가. 법을 우습게 아는 풍조가 확대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뿐이다. 운 나쁘면 걸리는 법, 걸면 걸리는 법이라는 인식이 더 퍼진다면 준법도, 법치도 헛된 구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이 “법률가가 외면하는 법을 신뢰하고 따르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한 게 법조계의 자성만도 아니었다. 뇌물, 탈세, 병역비리, 정치자금법 위반자 등 온갖 범법자들이 국회에서 요직을 잡고 입법부를 타락시켜왔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떼법은 더 효과적이라는 의식을 차단해야 법치주의가 자리잡을 수 있다. 22선의 팔순 현역의원도 불법 도로점거 농성엔 수갑을 채워 연행하는 미국 경찰을 배워야 한다. 법원도 준법에 한층 엄격해야 하고, 법조계 전체가 헌법 수호와 법치주의 확립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 하지만 국회가 변하지 않는 한 법치도 준법도 요원한 가치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7월] 한국 수출에 대한 견제가 점점 세지고 있다는 사실

 

한국 수출기업들이 해외 통관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통관분쟁 건수가 407건으로 사상 최대치였다는 게 한경 보도(4월25일자)다. 2000년 30건이던 것이 2008년 252건, 2013년 395건 등으로 계속 급증하는 추세다. 품목 분류, 원산지 검증, 통관 지연 등 분쟁 유형도 다양하다. 자유무역협정(FTA) 확대로 주요 교역국가의 관세장벽은 낮아지고 있지만, 비관세장벽은 오히려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주요 국가들이 2~3년 전부터 수입 규제를 강화해 한국 수출을 견제하는 상황이다. 아시아 남미 등의 신흥국가는 자국 산업 보호 등을 이유로 진작에 철폐했던 관세를 부활하거나 세이프가드까지 발동하고, 미국 캐나다 호주 같은 선진국은 반덤핑조사 등으로 무역장벽을 높여가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지난해 한국산 유정용강관에 대해 최고 15%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해, 한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부당하다며 제소를 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세계 교역 규모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더뎌 이런 흐름이 단시일 내에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는 점이다. WTO는 얼마 전 올 세계 교역 규모 증가율 전망치를 당초 4%에서 3.3%로 낮췄다. 작년(2.8%)보다 다소 높은 수준에 그칠 것이란 얘기다. 이렇게 되면 각국의 보호주의 경향 역시 당분간 지속될 소지가 크다.

 

한국으로선 어느 정도의 견제는 불가피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 수출기업들로선 꼬투리를 잡힐 소지를 줄이는 게 우선이다. 특히 통관분쟁에서 최대 요인으로 꼽히는 원산지 검증과 관련해 품목 분류, 까다로운 서류 절차 등의 문제부터 해소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무역업체들이 가장 큰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바로 원산지 증명이다. 이는 중소기업과 농업의 수출을 끌어올리는 길이기도 하다. 물론 비관세장벽을 낮추도록 관세당국 간 협력 등 통상외교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FTA를 이렇듯 힘들여 확대해놓고서 제대로 써먹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7월] "가장 핫하다"는 관광산업도 중일 밥상만 차려주나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주 말 "현재 한국 경제에서 가장 '핫(hot)한' 산업이 관광산업이고 핵심 키워드는 중국인 관광객"이라며 관광산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5월 관광주간을 앞두고 관광산업의 메카인 제주도에서 업계 관계자들과 가진 만남에서다. 최 경제부총리는 제주도가 유커(중국인 관광객) 덕택에 고용률이 높아지고 지역 경제도 좋아졌다며 관광산업 활성화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최 경제부총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관광산업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관광산업이 번창하면 일자리 창출은 물론 다양한 후방산업 발전을 촉진하는 상당한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국내 관련산업은 아직 갖가지 규제에 묶여 외국사의 공세에 판판이 당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유커 결제시장만 해도 유니온페이·알리페이 등 중국 업체들의 독무대가 되고 있다. 알리페이는 백화점에 진출한 데 이어 50여개의 가맹점을 다음달까지 수만개로 늘리는 등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일본 여행이 급증하면서 일본계 JCB카드의 한국인 발급자만도 430만명에 달할 정도다. 제주도나 영종도 등지에는 관광호텔에 투자하겠다는 중국계 자본의 진출이 잇따르고 있지만 국내 업체에 대한 규제를 없애기 위한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수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외국인관광객을 유치하면서도 국내 업체의 경쟁력 향상에 힘써야 한다. 외국인들이 마땅히 묵을 곳이 없는데도 국내 업체 진입은 제한돼 숫자놀음으로 허송세월하는 게 현실이다. 관광산업 진흥을 위해 공항이나 면세점 고급화 등 하드웨어뿐 아니라 국내 업체에 대한 규제와 역차별을 없애야 할 때다. 한국 관광산업이 각종 규제에 묶여 제자리를 맴돌고 유커 등 관광객들이 불편을 겪는 동안 다른 나라들은 뛰고 있다. 규제를 없애고 관광진흥정책을 펼치는 일본에 유커가 몰리고 있다. 자칫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7월] 창사 이래 처음 빚보다 현금 많아진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보유한 현금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빚보다 많아졌다고 한다. 올 1·4분기 기준으로 현금성 자산이 4조2,480억원인 반면 차입금은 3조5,720억원에 그쳐 순차입금이 마이너스가 된 것이다. 반도체 업종 비수기라는 1·4분기에도 악조건을 이겨내고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50%나 늘어난 데 힘입은 것이다. 막대한 부채를 갚지 못해 워크아웃을 선택해야 했던 2001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당시 하이닉스는 17조3,000억원에 달하는 빚에 허덕일 정도로 국내 산업계의 애물단지였다. 미국 마이크론으로 팔릴 뻔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직원들이 회사를 등질 만도 한데 되레 똘똘 뭉쳐 자구노력에 동참했다. 무엇보다 경쟁사들이 투자를 줄이는 데도 공격경영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2010년 이후 연구개발(R&D) 투자를 해마다 늘리고 시설투자 역시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2010년 3조3,800억원에 그쳤던 시설투자는 지난해 5조2,000억원에 달했다. 특히 대다수 반도체 업체가 투자에 인색하던 2012년에도 투자를 늘려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긴 안목의 꾸준한 투자가 결실을 봐 오늘날의 순차입금 마이너스 시대를 맞은 셈이다.

올해도 하이닉스는 차세대 메모리 공정 개발 등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라고 한다. 경영여건 악화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움츠리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눈에 띄는 행보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고 했다. 정부도 규제 완화와 경영환경 개선 등으로 기업 활동을 측면 지원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기업 나름으로 해야 할 역할이 있다. SK하이닉스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오늘날의 성장을 이끌어온 사례가 다른 기업들에도 좋은 참고가 되기 바란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싱크탱크 시각/김보근(한겨레평화연구소장)-20150427월] 화성말 하는 남한, 금성말 하는 북한

 

북한이 올해 신년사에서 최고위급 회담을 거론하면서 부풀어 올랐던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정원 라인을 동원해 뭔가 할 것이라는 일부의 예측이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된 듯하다. 이 비서실장 자신이 ‘성완종 리스트’의 핵심인물이 됨으로써 현직 유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에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낮게 보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남북이 서로 상대방의 얘기엔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하고 있는 탓이 크다. 현재 남북의 주장을 보면, 남은 ‘화성말’을 하는데 북은 ‘금성말’을 하는 것만 같다. 대화가 아니라 서로 상대방을 향해 고함만 치고 있는 모양새다.

먼저 통일부가 지난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보고한

‘제2차 남북관계발전 기본계획 2015년도 시행계획’을 보자. 통일부는 올해 주요 대북사업으로 남북 공동행사를 추진할 ‘광복 70주년 남북공동행사위원회’ 구성 대북 제안, 이를 통해 공동 씨름대회나 공동 축구대회 등 다양한 문화·예술·체육 분야의 행사 추진 등을 꼽았다.

 

반면, 김정은 제1비서는 올해 신년사에서 최고위급회담 등의 전제조건으로 ‘외세와 함께 벌이는 무모한 군사연습 등 모든 전쟁책동 중지’와 ‘제도통일 추구 중지’를 내세웠다. 북은 또 기회 있을 때마다 삐라 살포 중지 등을 남북대화의 조건으로 밝혀왔다.

 

대화가 되려면 서로가 대화의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 상대방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안을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 남북이 주장하는 대화의 주제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크게 보면 북은 한반도를 둘러싼 거시적인 군사·정치 문제를 시급히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남은 남북공동의 문화행사 등 미시적인 교류를 중심으로 얘기하고자 한다. 그러니 서로에게는 각각 ‘화성말’과 ‘금성말’로 들릴 것이다.

 

이런 꽉 막힌 상황을 뚫으려면 화성말과 금성말을 풀어줄 통역자가 있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열린 6자 회담에서는 북한과 미국이 화성말과 금성말을 했다. 이때 통역자는 남한 정부였다. 남한 정부가 중간에서 서로의 속내를 전해주는 등 별나라말을 풀어주었기에 북한과 미국이 2005년 9·19 공동성명 등에 동의할 수 있었다. 이 성명은 북의 핵계획 포기와 안전보장 등 핵심적인 한반도 평화방안을 담고 있었다.

 

남북이 별나라말을 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남쪽 민간단체들이 통역자가 될 수 있다. 이들은 그동안 남한 정부의 잇단 ‘제한 및 불허’, 북한 정부의 ‘지원물품 수령 거부’ 탓에 활동이 위축돼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올해는 광복 70주년과 6·15 공동선언 15돌을 맞아 민간이 주도하는 남북 공동행사 개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4월1일 대규모로 ‘광복 70돌, 6·15 공동선언 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도 꾸렸다. 북과 실무회담을 해온 시민단체들은 “북은 6·15 공동행사 승인 여부를 보고 남쪽 당국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평가할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대북지원단체들은 또 남쪽 정부가 영유아 지원에 한정하지 않고 대북지원의 폭을 넓혀주면 북쪽 정부를 충분히 설득해서 대북지원활동이 다양하게 재개되도록 하겠다고 밝힌다.

 

민간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이들을 통해 남북 정부의 진정성 등이 양쪽 정부에 전달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남북은 별나라말만 하며 정상회담 개최의 마지막 가능성을 허투루 날려보내는 안타까운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대화’가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양권모(논설위원)-20150427월] 식사 경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식사값은 얼마일까.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함께할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그것과 바꾸겠다.”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인문학을 향한 잡스의 갈망을 함축하는 어록이지만, ‘애플의 기술 전부’로 매긴 소크라테스와의 점심값은 계산을 불허한다.

 

실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식사’는 미국 대부호 워런 버핏과의 점심이다. 버핏은 2000년부터 매년 ‘점심 식사권’을 자선 경매에 올린다. 2만5000달러로 시작한 ‘버핏과의 점심’ 가격은 2012년 최고 346만달러(약 38억원)에 달했다. 경매를 따낸 사람은 뉴욕의 스테이크 전문식당에서 버핏과 3시간 점심을 같이한다. 점심값은 전액 구호단체에 기부된다. 버핏과 점심을 하는 사람은 ‘오마하의 현인’의 경륜과 지혜를 듣는 기회를 가지면서 기부에 동참하는 셈이다. 65만달러를 내고 2008년 버핏과 점심을 한 스위스 투자자 가이 스피어는 책 <가치투자자의 교육>에서 “버핏과 점심을 함께한 이후 인생이 바뀌었다”고 술회했다. 그렇다면 7억원 점심값이 비싼 게 아니겠다. 스피어가 전한 버핏의 죽비소리는 이렇다. “공적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개인적으론 스스로를 최악이라고 생각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공적으로는 최악이라고 알려졌지만 스스로는 최고라고 생각하기를 바라는가.”

 

‘버핏과의 점심’에 착안한 식사 경매가 국내서도 활발하다. 자선단체 위스타트는 ‘힐링 멘토’ 혜민 스님과의 저녁 식사 경매를 25일부터 실시 중이다. 경매는 300만원에 시작하고, 낙찰된 금액은 저소득층 어린이 지원에 쓰인다. 온라인 기부서비스인 위제너레이션은 ‘청춘의 멘토’ 김난도 교수와 벤처계의 선구자 이민화 교수와 식사 경매를 실시했다. 기부에 동참하면서 멘토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치유와 배움의 기회를 얻는다면, 수백만원이 ‘비싼 저녁값’은 아닐 터이다.

 

한데 미국과 달리 ‘식사 경매’의 주인공이 각 분야의 ‘멘토’로 알려진 명사들 일색이다. 하기야 존경과는 거리가 먼 재벌총수나 부호, 유명 정치인들과의 ‘식사’가 경매에 나온들 살 사람도 없을 테니 그러겠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문소영(논설위원)-20150427월] 암묵지(暗默知)

암묵지(暗默知·Tacit knowledge)는 학습과 경험을 통해 개인에게 체화돼 있지만, 언어 등으로 표현할 수 없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을 말한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인 언어나 문서 등에 의해 밖으로 표출되는 지식은 명시지(明示知·Explicit Knowledge) 또는 형식지((形式知)라고 부른다. 빙산을 예로 들자면 물 밖으로 드러난 작은 빙산은 명시지이고,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빙하 아랫부분은 암묵지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물리화학자인 마이클 폴러니가 과학 지식을 설명하기 위해 구분했다. 요즘은 일반적인 지식의 공유와 수준을 설명할 때도 이용한다.

 

강연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자신이 아는 내용의 10분의1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잦은데 그것은 지식 대부분이 암묵지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 드러내기 어려운 암묵지는 쓸모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명시지가 암묵지를 기반으로 한다. 이런 구분이 낯설고 어려운 개념이지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미 그 차이를 이해하고 있다. 낯선 누군가의 몇 마디 발언을 듣고 “똑똑하다”거나 “어리석다”거나 하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근거는 암묵지에 대해 서로 이해가 깔려 있는 덕분이다. 그 발언 뒤에 더 많은 정보와 더 깊은 사고와 더 넓은 인식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회계 처리가 되지 않은 불법 정치자금을 뿌렸다는 ‘성완종 리스트’에 적힌 정부·여당 관계자 8명이 최초에 내놓은 해명에 국민 대부분은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차떼기’로 표현되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떠올렸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국민 84%가 ‘성완종 리스트가 사실일 것’이라고 답변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2012년 홍문종 의원에게 2억원을 건넸다고 육성을 남겼는데 당시 홍 의원은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이었다. 메모된 이완구 국무총리는 새누리당 충남선대위 명예위원장, 유정복 인천시장은 당시 직능총괄본부장, 서병수 부산시장은 당무조정본부장이었다.

 

현재 검찰은 성완종 측근들을 구속하고, 홍준표 경남지사의 혐의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변죽을 올릴 뿐 부정부패 근원을 도려낼 의지를 읽기는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과거부터 현재까지 완전히 밝혀야 한다”고 했다. “정치개혁 차원의 수사”라고도 했다. 발언 자체로는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의 8명 중 7명이 소위 ‘친박’이다. 역사적 학습과 경험으로 체화된 관점에서 보면 박 대통령의 발언은 검찰에 ‘물타기 수사를 하라’는 지침처럼 해석될 수 있다. 황교안 법무장관은 “8명만 조사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한국인에게 비극적 수순으로 진행되는 이런 수사 과정을 지켜보는 한국 주재 외교관들은 “정말 재미있다”고 한단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주철환(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20150427월] 각자 위치로

 

친절과 겸손은 다짐대로 되지 않는다. 10년 넘게 연락 없이 지내다 갑자기 전화를 했다. 아이 학교 담임이 진로 탐색 인터뷰 과제를 냈는데 잠깐 시간을 내달라는 것이다. 이런 부탁을 왜 거절하겠는가. 다만 일정이 문제였다. 토요일에 전화해 놓고는 월요일엔 제출해야 한다는 거다. 동창들과 소양강댐에서 사진 찍다가 얼떨결에 받은 전화다.

 

  모처럼의 주말여행. 일요일은 일정이 빡빡하다. 원고도 써야 하고 결혼식장 두 곳과 장례식장도 가봐야 한다. 좀 어려울 것 같다고 하자 매달리기 시작한다. 초등학생 아이의 간절한 소원이라며 부성애를 건드린다. 결국 결혼식장 한 곳의 위치를 알려주며 약속을 잡았다. “내가 쉬워 보이나 봐.” 아내는 남편에게 훈계한다. “도와줄 수 있는 위치인 것이 감사한 거죠.” 남편은 철봉(매달림)으로 서 있는 게 힘이 부치는데 아내는 지혜로운 나무로 성장 중이다.

 

  오늘의 주제어는 ‘위치’다. 내가 알려준 결혼식장 위치와 아내가 환기시켜 준 사회적 위치. 알아내기도 간단치 않고 지켜내기도 수월치 않은 게 ‘위치’다. 졸음으로 가득했던 중·고등학교 물리 시간으로 기억이 이동한다. 칠판 위의 다섯 글자는 ‘위치에너지’. 나는 이 말의 정확한 뜻을 아직도 모른다. 다시 설명 들어도 모를 것 같다. 이럴 땐 내 방식으로 ‘수목한계선’을 확대한다. 교실 안에선 과학탐구영역이지만 학교 밖에선 사회탐구영역으로 바뀐 게 많다. “고급 위치에 오른 사람은 자신의 에너지를 고상하게 써야 할 의무가 있다.”(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인가)

 

  위치를 망각한 각종 언행이 연일 뉴스를 달군다. 분을 못 참고 교수들에게 막말 e메일을 보낸 대학 이사장도 불길 확산에 한몫했다. 이 사례가 특이한 건 등장 즉시 퇴장했다는 점이다. 버티기, 굳히기 없이 즉각 사퇴했다. 화끈하게 화를 내고 화끈하게 자리에서 물러난 상황이다.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창고에 쌓인 재고(분노)를 죄다 방출하고 나니 후련하다? 아니면 조금 참고 마음을 다스릴 걸 후회된다?

 

  기억은 총알을 타고 신병 훈련소까지 진입한다. 뙤약볕 아래 엎어졌다 일어났다 하면서 귀에 박히도록 들었던 그 말. “각자 위치로.” 지금 대한민국 부활 캠페인 제목으로 적격 아닐까. 배경음악으론 시인과 촌장의 노래를 깔고 싶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하덕규 작사·작곡 ‘풍경’ 중에서)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오춘호(논설위원)-20150427월] 가발

 

가발의 원조는 이집트다. 이집트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머리를 밀고 가발을 사용했다. 햇볕차단용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아무래도 장식용이었다.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파라오는 가발을 쓰지 않고는 결코 대중 앞에 서지 않았다. 그때도 가발 재질이 인모(人毛)냐 양털이냐를 따졌다. 이집트만큼 가발을 꾸몄던 나라는 프랑스다. 프랑스 궁정의 사치가 최고조에 달한 1660년에는 가발관리사가 200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당시 똑바로 눕는 게 불가능할 만큼 가발 길이는 길어졌다. 특히 루이 14세의 가발은 허영의 극치였다. 나폴레옹이 가발을 하지 않으면서 이런 풍토는 차츰 사라졌다.

 

우리나라도 이집트나 프랑스에 못지 않다. 고구려 벽화에서도 가발의 흔적이 엿보인다. 신당서(新唐書)에는 신라 여성들의 머리 모양을 “아름다운 머릿결을 머리에 두르고, 구슬과 비단으로 장식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작 조선시대 여성들의 가체(加)는 대단했다. 후기에 들어서면 가체를 머리에 이고 있지도 못할 만큼 커졌다. 이덕무는 청장관전서에서 “부잣집 며느리가 13세에 가체를 얼마나 높고 무겁게 했는지 시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자 갑자기 일어서다 가체에 눌려 목뼈가 부러졌다. 사치가 능히 사람을 죽였으니 슬프도다”고 적고 있다. 영조 때 이런 가체를 금지하는 가체금지법까지 만들기까지 했다.

 

가발은 한국 근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완제품 인모 가발을 수출한 것은 1962년부터였다. ‘고장난 시계나 머리카락 삽니다’는 1960~1970년대 동네 골목마다 흔히 들을 수 있던 소리였다. 이 머리카락들은 물론 가발회사에 팔려나갔다. 가발은 이후 한국 수출의 대표 주자였다. 한국 여성들의 뛰어난 손솜씨로 다양한 가발이 미국으로 수출됐다. 1970년에는 가발 품목이 수출의 10%를 차지했다. 가발공장만 수백개에 달했으며 가발 여공만 2만1000여명이었다. 당시 미국이 수입한 가발 중 50%가 한국산이었다. 화학섬유로 만든 가발도 있었지만 인모를 당해내지 못했다. 인모 대신 돼지털을 속여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첨단섬유가 나오면서 가발산업은 차츰 사양화의 길을 걸었다.

 

최근 들어 가발산업이 사양산업에서 벗어나 급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매출액이 2004년 500억원에서 2014년 1조2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3차원 스캐너, 형상기억 등 기술과 디자인이 접목된 새로운 패션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가발산업이 수출 효자 품목으로 떠오를 수 있을지.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온종훈(논설위원)-20150427월] '보통국가' 일본

 

일본의 우경화 흐름이 갈수록 폭과 깊이를 더해간다. 이미 여러 번 지적돼왔듯이 이런 분위기의 기저에는 '보통국가론'이 깔려 있다. 유력 정치인 오자와 이치로가 1993년 '일본개조계획'에서 제창한 것으로 알려진 보통국가론의 핵심은 일본의 재무장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군에 의해 군대 보유가 금지된 평화헌법 체제로는 국가로서 중요한 '흠결'이 있다며 비정상적 상태를 정상화한다는 차원에서 보통국가로의 환원을 주장한 것이다.

 

사실 일본의 재무장은 패전 직후부터 준비된 것이나 다름없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이자 A급 전범으로 수감 중이던 기시 노부스케는 곧 시작될 미소 냉전으로 일본의 재군비가 허용될 것임을 예상했다. 미국 안에서도 일본 점령에 따른 방위 부담을 줄이기 위한 군대의 필요성이 대두했으나 당시만 해도 반론이 워낙 거세 구체화하지 못했다. 그러나 기시의 장기 전망은 정확했다. 미국은 한국 전쟁 발발 2주일 만에 일본에 국가경찰예비대 7만5,000명과 해상보안청 요원 8,000명의 증원 권한을 부여했다. 이 병력이 1954년 자위대로 전환했다.

 

일본의 보통국가화 작업은 최근 들어 완성단계에 와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아베 정부는 올해 내 헌법 9조에서 군 보유를 금지하고 있는 '평화헌법' 개정 추진과 종전 70주년 담화를 통해 패전체제의 굴레를 완전히 벗겠다는 복안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이해가 맞물려 있다.

 

아베 총리가 29일 일본 총리로서 처음으로 미국 의회에서 연설을 한다. 미국 일부 언론에서 종군 위안부 등 역사 문제에 대한 분명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중국조차 최근 양국 정상회담에서 역사 문제와 별개로 일본과 관계 회복을 시도하는 정황이 목격되고 있다. 동북아를 둘러싼 주요국들의 움직임들이 낯설지 않다. 100여년 전 자기 운명에서 철저히 배제됐던 조선과 너무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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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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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 타결

■ 세월호 인양 결정

■ 아베의 역사 인식

■ 후안무치 국회의원들, 외교관 특권까지 요구하나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 타결

 

[한국일보 사설-20150423목] 원자력협정 타결, 핵투명성 제고 등 책임도 커져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타결됐다. 박노벽 외교부 원자력 협력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어제 오후 가서명, 2010년 10월의 1차 협상 이래 4년 반을 끌어온 양국 간 협상을 매듭지었다. ‘에너지 주권’을 최대한 확장하려는 한국과 눈곱만큼의 핵확산 우려도 막겠다는 미국의 팽팽한 줄다리기로 난항을 거듭한 협상이 마침내 타결됐다는 소식이 우선 반갑다. 또한 ‘에너지 주권의 확보’라는 명분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지만,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ㆍ건식처리) 1단계 기술의 독자적 연구가 가능해지고, 원전 수출의 활성화와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국산화 전망을 여는 등 나름대로 실리는 챙겼다고 평가할 만하다.

 

새 협정(안)은 ‘조사 후 시험(Post-Irradiation Examination)’과 ‘전해환원’ 등을 한국에 허용했다. 조사 후 시험은 사용 후 핵연료를 실제 원전에서 핵연료를 태우는 듯한 실험을 통해 사용 후 핵연료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용 후 핵연료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기초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전해환원은 현재 미국과 함께 연구하고 있는 파이로프로세싱의 첫 단계다. 피복관을 제거하고 세라믹화한 뒤 화학반응으로 분말화(粉末化)한 사용 후 핵연료를 고온의 용융염(鎔融鹽)에 넣고 전기분해, 세라믹 분말을 금속 분말로 바꾸는 과정이다.

 

여기서 원전에 재활용할 수 있는 연료를 얻어내려면 전해정련(電解精鍊), 전해제련(電解製鍊) 등 두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파이로프로세싱 전과정에 걸친 독자 연구를 따내지 못했다는 불만과 비판이 따랐다. 그러나 국내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 수준이 크게 낮고, 전해정련, 전해제련 단계의 연구시설도 없는 상태다. 새 협정(안)이 양국 공동연구를 바탕으로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의 추가 연구를 추진할 수 있도록 ‘경로’를 마련해 두었다는 점에서 연구범위 확대 여부는 결국 우리의 기술수준과 앞으로의 대미 협상 결과에 달린 문제다. 더욱이 파이로프로세싱을 거쳐 확보한 ‘재활용 연료’는 원자로의 열 회수 및 냉각에 물 대신 소듐(나트륨)을 쓰는 소듐냉각고속로에서나 쓸 수 있어, 가까운 장래에 완성된 건식처리 기술을 확보해야 할 실용적 의미도 없다.

 

반면에 새 협정이 발효하면, 중저준위 방사능폐기물처분장(방폐장)에 이어 새로운 난제로 떠오른 사용 후 핵연료의 감량 기술은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어 내년부터 차례로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들어가는 사태에 대응할 수 있다. 아울러 처리기술의 연구 과정에서 사용 후 핵연료의 최종적 관리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활발화도 기대된다.

 

앞으로 더욱 확고한 핵 물질의 안전 관리, 즉 핵 투명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독자적 재처리기술 확보의 관건이다. 과거 미량의 핵 물질을 분실해 국제적 의심을 산 바 있는 우리가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할 대목이다. 권한이 커지면 책임감도 그만큼 커지게 마련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3목]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이후 과제

 

한-미 두 나라가 42년 만에 원자력협정을 개정했다. 현행 협정은 우리나라 원전 산업이 매우 유치한 수준이었던 1973년에 발효된 것으로, 시대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을 담지 못하고 있다. 이번 개정은 원자력 관리의 문제점과 산업적 이용에 따른 불편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는 점에서 대체로 긍정적이다.

 

협상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독자적 핵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은 여전히 허용되지 않았다. 일본이 진작에 핵 재처리를 허용받은 것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핵 주권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보수 일각에서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일본이 핵 재처리 권한을 확보한 것은 지금과 같은 핵 비확산 규범이 확립되기 훨씬 이전의 일이다. 더욱이 북한 핵을 비롯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해야 할 마당에, 우리가 핵무장을 꾀한다는 오해를 받으면서 핵 재처리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대신에 우리나라는 중간저장, 파이로프로세싱(건식공법), 영구처분, 해외 위탁 재처리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후 핵연료를 관리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원전 국가로 원전을 23기나 운영하고 있다. 일부 원전은 2016년부터 사용후 핵연료가 포화 상태를 맞는다. 이번 개정을 통해 사용후 핵연료 문제와 관련해 급한 불은 일단 끄게 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사용후 핵연료 처분에 대한 국내의 갈등은 여전히 남은 과제다.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암 진단용 방사성 동위원소를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수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점도 의미가 있다. 우리 원자력 업계가 미국산 핵물질과 원자력 장비, 부품 등을 제3국에 자유로이 수출할 수 있는 길도 열었다. 원자력 기술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해 협정의 유효기간을 20년으로 단축한 점도 눈길을 끈다. 두 나라는 원자력 협력을 위한 고위급 협의체도 제도화했다.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안전하게 이용할 권리를 확보하는 것은 여러모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에너지 정책을 탈핵·감핵 쪽으로 전환해 가야 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중앙일보 사설-20150423목] 아쉬움 남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1973년 체결된 한·미 원자력협정이 42년 만에 개정됐다. 새 협정으로 한국은 원자력 연구와 수출에서 적지 않은 실리를 챙겼다. 미국의 동의하에 저농축 우라늄을 개발할 길이 열렸고, 까다로웠던 수출입 인허가도 간소화돼 원전 수출의 걸림돌이 해소됐다. 연구개발 차원이긴 하지만 파이로프로세싱(건식재처리)의 전 단계인 전해환원 권한을 확보한 것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핵심 쟁점인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선 체면치레 이상의 진전을 얻어 내지 못했다. 새 협정에서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 조항은 빠졌지만 한국의 농축·재처리는 미국과 고위급 협정을 통해 합의해야만 가능하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원자력 이용 규모가 세계 5위인 한국이 여전히 독자적인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지 못한 점에서 새 협정은 한계가 분명하다. ‘새 협정은 선진적이고 호혜적’이란 정부의 자랑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사용후 핵연료는 버리면 폐기물이고, 재처리하면 연료다. 재처리 길만 터주면 핵연료를 얻을 수 있는데도 우라늄을 사서 쓰는 건 불합리하다. 현재 세계 농축 우라늄 시장은 공급 초과이지만 시장 상황이 급변해 우리가 우라늄 부족에 시달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현재 국내 원전에는 폐연료봉 1500만 개가 쌓였고, 매년 700t이 추가 발생하고 있다. 고리원전의 폐연료봉은 연말에 포화상태가 된다. 미국이 핵폐기물 관리기술을 이전해 주기로 했다지만 코앞에 닥친 핵폐기물 대란 우려를 해소하기엔 턱도 없는 수준이다.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기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정부가 처음부터 이를 의식해 너무 소극적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미국은 88년 전범국가 일본에 농축과 재처리를 모두 허용했고,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을 거부하고 핵무장을 강행한 인도에도 포괄적으로 허용했다. 그런 만큼 정부는 미국의 이런 이중잣대를 집요하게 지적하고 ‘한국이 핵무장을 할지 모른다’는 근거 없는 우려를 불식시켰어야 했다.

 

  한국은 73년 원자력협정 체결 당시 원전은커녕 초보적 기술도 없었다. 지금은 23기의 원전으로 전력의 3분의 1을 충당한다. 원전 7기를 건설 중이며 중동에 수출까지 하는 원자력 강국이다. 또한 91년 남북 비핵화선언 이후 북한의 세 차례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비핵화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원칙을 지켜왔다. 따라서 미국이 핵 이용 모범국이자 동맹국인 한국에 농축·재처리 포괄 금지방침을 고수한 건 이해하기 힘든 처사다.

 

  다행히 새 협정은 한·미 간에 고위급 협의체를 신설해 원자력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다루기로 했다. 그동안 농축과 재처리에 대해 발언 기회조차 봉쇄돼 온 우리가 미국에 할 말을 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된 것이다. 그런 만큼 새 협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정부는 미국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농축·재처리를 포함한 우리의 ‘핵 국익’ 확보를 게을리해선 안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3목]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아쉽지만 얻은 것도 적지않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이 4년6개월여 만에 타결됐다. 그동안 협상이 기한 내에 타결되지 못해 기존 협정이 2년 연장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양국 간 가서명이 이뤄진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원전연료의 공급, 원전 수출이라는 3대 중점분야에서 호혜적 협력을 확대했다는 게 정부 평가다. 그러나 이번 협정에 농축, 재처리 문제 등과 관련한 획기적 진전이 담길 것으로 기대했던 측면에서 보면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핵연료 주기의 핵심분야인 농축과 재처리에서의 권한 확보는 물론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미국의 핵비확산 원칙, 의회의 반대 등 현실적인 벽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이에 한국 측은 갈등이 많은 분야는 일부 포기하는 대신 협력을 확대하는 다른 분야로 방향을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선 양국이 공동연구 중인 사용후핵연료재활용(파이로프로세싱)의 전반부 공정인 ‘전해환원’을 미국 쪽에서 양보한 것이 그런 경우다. 우라늄과 플루토늄 등 민감한 핵물질이 분리되지 않는 공정에 대한 자율적인 연구개발이 가능해진 것이다. 사용후핵연료의 저장·수송·처분 분야의 양국 간 협력도 강화된다. 농축문제는 장래 20% 미만 저농축과 관련해 양국 간 합의 창구를 마련하고 원전연료 공급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확대하는 선에서 매듭됐다. 민감한 재처리와 농축문제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정도에서 타협했다고 볼 수 있다.

 

대신 우리 쪽에서 원전수출 규제완화를 얻어낸 점은 성과로 평가할 만하다. 핵물질, 원자력 장비 및 부품의 제3국 재이전 시 건별로 미국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되고, 수출입 인허가를 신속화하도록 규정한 점도 환영할 일이다. 전체적으로 이번 한·미원자력협정은 당장의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것이다. 농축과 재처리 문제도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로 알려진 농축·재처리 포기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양국 간 상설 고위급위원회가 신설되는 만큼 정부가 보다 치밀한 논리로 미국을 설득해 나간다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3목] 한미원자력협정 타결… 현재로선 얻을만큼 얻었다

 

한미 원자력협정이 4년6개월여의 장기협상 끝에 22일 타결됐다. 이로써 1973년 발효된 현행 협정은 42년 만에 새 옷을 갈아입게 됐다. 한미 양국이 개정에 합의한 주요 내용은 사용후핵연료의 효율적 관리,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 원전수출 증진 등으로 3대 분야 모두에서 일정 정도 진전된 결과물을 도출해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우선 국제적으로도 민감한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대해 양국 간 구체적인 협력방식을 규정한 것이 주목된다. 사용후핵연료의 중간저장과 재처리·재활용(파이로 프로세싱), 영구처분, 해외 위탁처리 등 어떤 방안을 추진하더라도 양국 간 협의를 통해 할 수 있는 이른바 '추진경로(pathway)'를 마련한 것은 의미가 크다. 특히 한미 양국이 공동연구를 진행 중인 파이로 프로세싱 등 미래기술을 계속 추진할 수 있게 된 점도 우리 입장에서는 전향적이다.

신협정은 세계 5위 원전 강국인 우리 원자력 산업의 세계시장 진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원전 연료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서는 미국의 원전 연료 공급지원 노력을 규정했으며 미국산 우라늄을 이용한 20% 미만의 저농축을 양국 간 협의로 추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와 함께 우리 원전 수출업계가 요구해온 미국산 핵물질, 원자력 장비 및 부품 등을 자유롭게 재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포괄적 동의도 확보했다. 또 장래 우리 원전이 미국 업체와 경쟁하게 될 경우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있는 수출입 인허가에 대한 신속 처리에도 합의했다.

 

물론 이번 신협정을 '핵 주권' 입장에서 미흡하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과 핵 문제에 관해서는 힘의 논리가 우선하는 것 또한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이다. 정부는 물론 국민도 국익적 관점에서 이번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바라봐야 하겠다. 무엇보다 핵 재활용을 위한 단초를 열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 세월호 인양 결정

 

[한국일보 사설-20150423목] 마침내 세월호 인양 결정, 시행령도 빨리 손보라

 

정부가 22일 세월호 선체를 인양키로 공식 결정했다. 국민안전처는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2개월 내에 인양업체를 선정하고, 3개월간 준비작업을 거쳐 9월부터 본격 인양에 나서겠다는 해양수산부의 제시안을 확정했다. 또 선내에 남아있을 실종자 훼손이나 유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체를 누인 채 통째로 인양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결정함에 따라 인양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 봉합 수순에 접어드는 분위기다. 세월호 사고 관련 가족들은 이제라도 정부가 인양을 공식 선언한 데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고, 정치권에서도 여야가 모처럼 한 목소리로 반겼다.

 

그 동안 세월호 인양을 두고 막대한 작업비용과 기술적 어려움 등을 들어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단원고 학생 4명, 교사 2명, 일반인 3명 등 모두 9명의 실종자를 찾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인양작업이 순조로울 경우 1,000억 원 가량의 비용이 예상되나, 여차하면 2,000억 원을 훌쩍 넘길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실종자 인양은 비용을 따지기 이전에 인권의 문제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비리와 부실 덩어리의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 세월호에 승선했다는 이유로 덧없는 죽음을 강요당한 그들의 목숨을 값으로 따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최근 한국일보 여론조사에서 국민 77%가 선체 인양에 찬성한 것도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는 속죄의 감정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유가족과 국민이 입은 심리적 외상을 치유한다는 의미도 있다.

 

문제는 앞으로의 과제다. 인양을 마무리 하는데 최소한 12개월이 걸리며 태풍이나 기술적 불확실성 등을 감안하면 18개월 이상 걸릴 수 있다고 한다. 조류가 거센 해역에서 1만 톤에 달하는 선박을 인양한 예가 없어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정부는 조속한 인양을 위해 기술적 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하지만, 일정에 쫓겨 무리수를 두는 일은 더욱 없어야 한다. 인양 과정에서 희생자가 발생하는 비극은 두 번 다시 생겨서는 안 된다. 지난 해 9월 일본 온타케산의 분화로 5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지금도 시신 7구가 사고 현장에 남아있지만, 일본 당국은 폭설을 이유로 한 달여만에 수색을 중단했다. 수색은 지금까지도 재개되지 않았다. 2차 피해 가능성을 감안한 조치임은 말할 나위 없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또 다른 갈등의 축인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정부는 당초 해수부 출신 공무원이 세월호 특별조사위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업무를 총괄하는 안을 내놓았다가, 유족들의 반발에 부딪히자 해수부를 제외한 다른 부서에서 파견하는 절충안을 내놓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월호 특위에 독립성과 객관성을 부여하지 않으려는 정부의 행태로는 유족들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특별법 시행령과 관련해서도 유족과 국민이 납득할 만한 대답을 서둘러 내놓기 바란다. 이 또한 뭉기적거릴 이유가 전혀 없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3목] 세월호 인양 결정, ‘진실 건지겠다’는 다짐 돼야

 

세월호 참사 실종자와 희생자 유가족의 오랜 소망 하나가 풀렸다. 정부가 22일 세월호 선체 인양 방침을 확정한 것은 때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세월호 수색 중단 이후 5개월 동안 유가족의 인양 요구에도 정부는 가타부타 말이 없고 새누리당에서는 반대 목소리도 공공연히 나오곤 했다. 6일 박근혜 대통령이 “적극 검토” 발언을 한 뒤에도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위험성·비용을 언급하며 신중론을 펴는 등 최근까지도 정부 태도는 오락가락했다. “선체 인양 결정은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방기하다가 국민 여론에 밀려서 비로소 내린 것”이라는 유가족의 반응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제 문제는 올바른 방식으로 인양에 성공하는 일이다. 해양수산부는 실종자가 유실·훼손되지 않도록 선체를 누운 채 통째로 인양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진상조사를 위해서도 이 방식이 최선이다. 앞으로 정부는 세세한 내용까지 유가족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투명하게 인양 작업을 진행하기 바란다. 인양 과정의 안전 확보와 해양오염 방지 등에도 유념해 한 단계 진전된 사고수습 역량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선체 인양 시기와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기간이 어긋날 가능성이다. 정부는 인양까지 12~18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최대 1년6개월인 특조위 활동 기간을 고려하면 위원회가 정작 인양된 선체에 대한 조사도 못한 채 활동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인양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되 기술이나 안전의 문제로 한계가 있다면 활동 시한에 탄력성을 부여하는 방법을 찾는 게 합당하다. 선체를 조사하는 데 몇 달은 필요하다는 게 특조위의 설명이다.

 

유가족은 정부 결정을 반기면서도 가슴 한쪽은 여전히 답답할 것이다. 선체 인양과 함께 요구해온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개정이 답보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유가족과 특조위의 의견을 반영해 전향적인 방안을 마련 중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을 뿐, 시행령안 입법예고 기간이 끝난 6일 이후로도 정부가 위원회에 공식적인 개정안을 제시한 적은 없다고 한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이어진 각종 추모행사를 경찰이 강경진압한 후폭풍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경찰은 18일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에 참여한 시민 100명을 연행하고 이 가운데 10여명의 구속영장을 신청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실제로는 5명만 영장을 신청했고 그나마 3명은 22일 영장이 기각됐다. 차벽을 이용한 강경대응으로 충돌의 원인을 제공했던 경찰이 집회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려 영장 신청을 남발한 결과다.

 

정부의 이런 태도로는 완전한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를 계속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해양수산부는 새로운 시행령안을 하루빨리 내놓고 여론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경찰은 과잉진압에 대해 유족·시민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세월호 1주기에 표출된 진실을 염원하는 민심을 정부는 뼈아프게 직시해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20150423목] 세월호 인양, 국민의 마음도 함께 건져야

 

정부가 22일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기로 결정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가장 중요한 의미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실종자를 찾아 가족 품에 돌려줄 인도적인 기회가 열렸다는 점이다. 온전한 선체를 건져 사고 원인을 선명하게 재규명함으로써 그간 제기됐던 모든 의혹을 말끔하게 씻는 계기도 될 수 있다. 노력하기에 따라 사고 수습 과정에서 발생한 우리 사회의 감정적 앙금을 해소하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정부는 실종자와 선체뿐 아니라 유족과 실종자 가족, 그리고 국민의 마음도 건지겠다는 각오로 인양에 임해야 한다.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은 “인양 추진 과정에서 실종자 가족 및 유가족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등 긴밀히 소통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술제안서를 받는 단계부터 인양업체를 선정하고 세월호 선체가 완전히 인양되는 과정까지 한 점 의혹 없이 투명하게 국민과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인양 방법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보다 전문가들과 유가족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 다른 좋은 방법이 나오면 새롭게 적용해 보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앞으로 적어도 1년은 걸릴 인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기술 측면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은 인양 과정에서 행여 실종자가 유실되거나 선체가 손상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다. 인양 중 발생할 수 있는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사전에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행여나 다시 바다가 오염돼 인근 지역 주민이 피해를 보거나 불편을 겪는 일이 발생해선 안 된다.

 

  바닷속에서 거대한 선체를 인양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힘들고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산업안전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따라서 인양 과정에서 추가적인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마지막까지 안전한 작업이 될 수 있도록 확실한 작업관리를 맡아야 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 세월호 인양이 유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우리 사회의 논란과 갈등을 잠재우는 깔끔한 종착역이 되기를 기대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3목] 세월호 인양, 온전하고 빠르고 안전하게

정부가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안전처 등 17개 부처가 참여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총 15차례 회의 끝에 해양수산부가 제출한 선체 인양 결정안을 어제 원안대로 확정했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불확실성은 있지만 가족과 국민의 여망에 따라 인양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여, 인양 문제가 본격 논의된 지 6개월여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세월호 가족과 국민의 뜻을 끝내 저버리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고 평가할 만하다.

 

세월호 선체 인양은 실종자 수습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비용 문제를 넘어 국가의 존재 이유에 해당한다. 중대본이 선체를 절단하거나 바로 세우지 않고 누운 상태에서 통째로 인양하는 방안을 수용한 것도 무엇보다 실종자 유실·훼손 우려를 최소화하려는 의도에서다. 해수부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는 4개월여 연구 끝에 선체 측면에 93개의 구멍을 뚫어 와이어를 연결해 두 대의 해상크레인으로 그대로 들어올린 뒤 수심 30m 지점으로 이동해 플로팅 독에 선체를 올려 부상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외부 전문가들도 “기술적으로는 성공 가능하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실종자 수습과 함께 선체 인양의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사고 원인 규명이다. 여기에는 인양 일정이 주요 변수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수부는 인양 업체 선정 후 세부 인양설계와 준비작업을 병행하면 9월부터 현장작업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상작업에는 12~18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너무 늦어지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기간을 넘길 수 있다. 특조위 이석태 위원장의 말처럼 인양 자체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특조위에서 조사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는 것이 필요하다. 선체 인양 시기를 앞당기든가 최장 1년6개월로 못박은 특조위 활동 기간을 연장하는 문제를 논의해야 할지도 모른다.

 

맹골수도처럼 조류가 거센 해역에서 화물을 포함해 1만t에 이르는 선박을 통째로 인양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도전이다. 빠른 유속과 혼탁한 시야에서 잠수사의 수중작업이 쉽지 않고 인양점이 파괴되거나 와이어가 끊어지는 등 2차 사고의 위험도 상존한다. 그런 가운데 실종자 9명 수습에 최대한 역점을 두고, 특조위 활동 기간 안에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 안전하게 세월호를 인양해야 하는 과제를 정부가 지게 됐다. 세월호 선체 인양에서는 관련 부처와 컨트롤타워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제 역할을 다해 세월호 참사 때의 실패를 조금이나마 만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랄 뿐이다.

 

 

■ 관련 칼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상언(사회부문 차장)-20150423목] 세월호를 인양해야 하는 이유

 

공교롭게도 16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서 정부의 최종 결정까지 걸린 시간이다.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결론이 나면… 선체 인양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양수산부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발표했고 대통령은 16일 진도 팽목항에서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라고 못을 박았다. 2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심의는 통과의례일 뿐이었다. 이제 세월호는 기술적 실패라는 불상사가 없는 한 물 위로 올려진다.

 

  나는 세월호 인양에 찬성하지 않았다. 정부가 실종자 가족의 동의만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대로 두는 게 옳다고 믿었다. ‘인양의 필요성’에 동감하지 않았다. 인양 문제에 대한 기사(중앙SUNDAY 2014년 6월 8일자)를 쓰는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대부분 인양에 회의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그 비용으로 해상 추모공원을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았다. 1994년 발트해에서 침몰한 MS에스토니아호나 제2차 세계대전 때 폭침당한 미국 전함 USS 애리조나호처럼 침몰 해역에 존치하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MS에스토니아호에는 700여 명의 실종자가 있었다.

 

  그런데 지난 2일 생각이 달라졌다. 세월호를 인양해야 한다 또는 인양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 기자회견장에서였다. 52명의 유가족이 삭발한 그날이다. 가족들은 세상에 대한 원망을 표출했다. 정부·국회·언론을 향한 거친 언사도 있었다. 그들의 울분이 이해가 됐다. 본지 여론조사에서 62.3%의 응답자가 인양에 찬성했다. 그중에는 “인양을 꼭 해야 하느냐”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나 같은 이도 많을 것으로 짐작됐다.

 

  세월호 인양에 대한 기술적 검토에 열 달이 걸렸다. 치밀한 작업 때문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보기 어렵다.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는 아직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하지 못했다. 시간은 그렇게 허무하게 흘러갔고, 세월호 인양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실종됐다. 해수부의 당초 계획에는 ‘공론화’라는 것이 들어 있었으나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어명(御命)’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세월호는 인양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 앞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를 인양해야 한다.

 

 

■ 아베의 역사 인식

 

[한국일보 사설-20150423목] 반둥회의에서도 거듭 확인된 아베式 역사인식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ㆍ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에서 과거 전쟁에 “깊은 반성”이란 표현을 썼다. 그는 ‘침략ㆍ무력행사로 타국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다’와 ‘국제분쟁은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반둥회의 원칙을 언급하면서 “일본은 이 원칙을 과거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어떤 때라도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시아, 아프리카 두 대륙의 주민 35만명에 대해 5년 동안 교육훈련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연설은 과거사 반성의 핵심이자 최소한의 수준인 ‘식민지배와 침략’ ‘사죄’의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인식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오히려 개도국에 대한 일본의 지원을 강조한 것은 경제력으로 과거의 잘못을 희석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의 반둥회의 연설에 주목한 것은 이 연설이 29일 미국 의회 합동연설과 8월15일 발표할 전후 70주년 담화의 토대가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재임 중인 2005년 4월 반둥회의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이어받아 “식민지배와 침략”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등을 표명했고, 그 해 8월 전후 60주년 담화에서도 이를 재차 밝혔다. 아베 총리가 과거사를 ‘반성’이란 말 한마디로 뭉뚱그려 넘어간 것은 고노, 무라야마 담화로 대표되는 역대 정권의 과거사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의 행태로 보아 익히 예상됐던 것이지만 역사적 진실을 궤변과 아집으로 또다시 부정하려는 태도에 개탄을 넘어 측은함마저 느낀다.

 

아베 총리가 과거사 언급은 최소화하고 ‘미래’에 방점을 둔 의도는 분명하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데 진력하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안보ㆍ경제에 밀착해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면 과거사 굴레에서 탈피하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깊은 유감”이라고 논평했지만 이제는 아베 정권의 인식을 바꿀 실질적인 해법을 찾는데 외교력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무한 폭주하는 미일의 안보일체화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찾는 길이기도 하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3목] ‘침략과 식민지배 반성’ 회피하는 아베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 과거 일제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을 교묘하게 피해 나가는 연설을 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반둥회의 60돌 기념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다. 2012년 말 취임 이후 계속해온 ‘역사 뒤집기’를 국제무대에서도 시도하는 모습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이런 잔꾀는 용납될 수 없다.

 

아베 총리는 ‘지난 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반둥에서 확인된 원칙을 지키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차대전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배를 ‘지난 대전에 대한 반성’이라는 표현으로 얼버무린 것이다. 다른 2차대전 참전국들까지 끌어들여 자신의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것이기도 하다. 반둥회의 원칙을 거론한 것은 ‘일제 침략’이라는 직접적 표현을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원칙은 ‘침략 또는 침략 위협, 무력에 의해 타국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등 10가지를 내용으로 한다.

 

아베 총리는 20일 일본 국내 방송에 나와, 8월15일 종전 70돌을 전후해 발표할 ‘아베 담화’에 ‘침략, 사죄’ 등의 표현을 담을지에 대해 “(이전의 담화와) 같은 것이면 담화를 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과거 잘못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더는 거론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그의 집권 기간 동안 군대위안부 강제성 부인, 교과서의 역사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이 지속적으로 강화돼왔다.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을 확대하고 평화헌법을 부인하는 개헌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흐름에 있다. 그는 이런 역사 뒤집기를 ‘적극적 평화주의’ 등으로 포장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런 시도는 아시아 나라들과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국제 협력에 걸림돌이 될 것이 확실하다. 미국 하원의원 4명이 21일 본회의장 특별연설에서 아베 총리에게 ‘과거사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들은 특히 아베 총리가 29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잘못을 명백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이날 연설을 지켜본 것은 상징적이다. 위안부 강제성 부인은 한-일 관계 정상화를 막는 최대 걸림돌이다.

 

아베 총리는 미래를 내다보자고 말하지만 과거를 직시하지 않으면 올바른 미래도 있을 수 없다. 뒤집힌 역사 위에 구축되는 미래는 더 큰 역사적 불행을 낳을 수 있다. 아베 총리는 종전 70돌이라는 좋은 기회를 흘려보내지 말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20150423목] 아베는 역사의 시곗바늘을 뒤로 돌릴 셈인가

 

우리는 어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 60주년 기념 정상회의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어떤 말을 할지 주시했다. 연설에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이란 표현은 쓰면서도 ‘식민지 지배와 침략’ ‘사죄’란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1955년 반둥회의에서 채택된 10원칙 중 ‘무력행사에 의해 타국의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다’ ‘국제분쟁은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한다’는 두 원칙을 강조하고 “일본은 과거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언제라도 이 원칙을 지켜나갈 것을 맹세했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대실망이다.

 

  10년 전 그 자리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란 표현을 쓴 뒤 그해 8월 종전 60주년 담화(일명 고이즈미 담화)에 그대로 담았다. 20년 전 무라야마 담화에서 일찍이 언급됐던 표현들이다. 아베의 역사 시계는 거꾸로 돈다는 말이 안 나오면 그게 되레 이상하다.

 

  반둥회의 연설은 이달 말로 예정된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연설이나 8월에 나올 종전 70주년 담화(일명 아베 담화)의 시금석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미 의회 연설이나 70주년 담화 역시 식민 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 없이 역대 내각의 인식을 계승한다는 모호한 표현으로 핵심을 비켜간다면 한·일 관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전체에 심각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다. 한·일 관계 정상화를 통해 한·미·일 삼각 협력체제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구상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과거 없는 미래는 없다. 아베 총리가 진심으로 전후 70년을 정리하고 미래로 나아갈 생각이라면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인정하고 잘못을 사과해야 한다. 아베의 방미를 앞두고 과거의 잘못을 명확하게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 정치권과 언론에서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아베 총리는 역사의 시곗바늘을 뒤로 돌리려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시도를 당장 그만두기 바란다.

 

 

■ 관련 칼럼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최광숙(논설위원)-20150423목] 메르켈과 아베의 국가이성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991년 독일 통일 후 첫 조각에서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발탁된 뒤 첫 외국 방문지로 선택한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총리가 된 후 더욱 이스라엘을 챙겼다. 총리 재임 첫 7년 동안 이스라엘을 방문한 횟수만 네 번이다. 이렇듯 메르켈의 외교정치에서 이스라엘은 유럽연합과 미국에 비견할 정도로 중요하다. 이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독일의 역사적 부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도 화답했다. 히브리대학에서 메르켈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2008년 3월 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맞아 이스라엘 의회는 총리로는 처음으로 메르켈에게 연설하도록 기회를 줬다. 국가원수들만 불러 연설을 듣는 관행을 메르켈을 위해 과감히 깬 것이다. 독일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도 ‘레오 백’이라는 상을 수여했다. 이 상은 독일유대교중앙위원회가 독일 유대인을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2007년 9월 메르켈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나 이전의 모든 독일 총리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의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의무로 여겼다. 나 역시 이런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한다. 그것은 독일의 ‘국가이성’에 속한다”고 말했다. 슈테판 코르넬리우스가 쓴 메르켈의 전기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에서 저자는 메르켈의 국가이성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빼고는 독일을 논할 수 없다’는 역사관에서 출발해 나치에 대한 반성은 물론 나아가 독일에 이스라엘의 안전과 보호를 위한 중요한 정치적 임무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이성은 국가의 임무에 담긴 정치적 합리성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이성’(國家理性)은 프랑스어인 ‘레종 데타’(raison dEtat)를 번역한 말로 이미 로마시대에 사용됐다. 고대에서 국가이성이라는 관념은 위정자 개인의 경험에 입각하는 정치기술로서 인정되었지만 중세는 교회가 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지배하던 때라 국가는 독자적인 존재 이유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국가이성이 현실의 정치나 정치학에 도입되어 확립된 것은 마키아벨리 때이다.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 국가는 정치가의 도덕적 규범과 같은 개인 윤리가 아닌 국가이성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훗날 히틀러의 무차별 정복이나 유대인의 학살 등을 정당화하는 데 잘못 활용되기도 했다. 일부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8월 종전 70주년을 맞아 발표할 담화에서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의 표현을 담지 않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점차 히틀러를 닮아가는 듯한 아베는 메르켈의 국가이성이 뭔지나 알고 있는지….

 

 

■ 후안무치 국회의원들, 외교관 특권까지 요구하나

 

[서울신문 사설-20150423목] 후안무치 국회의원들, 외교관 특권까지 요구하나

 

새누리당 일부 국회의원들이 해외에서도 면책특권을 누릴 수 있도록, 외교관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 내용의 여권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외교부도 강하게 반대하고 있고, 여론도 좋지 않아 현재로서는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이러한 발상 자체가 뻔뻔스럽다. 여야 모두 입만 열면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약속하고는 생업에 바쁜 국민의 질타가 줄어들면 여지없이 특권을 찾아 챙기는 모습에 넌더리가 날 지경이다. 이번 여권법 개정안이야말로 현재 차관에 준하는 국회의원의 의전을 ‘국빈’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스스로 나선 꼴이니,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

 

서울신문이 어제 단독 보도한 것에 따르면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3일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하는 내용의 여권법 개정안을 같은 당 소속 의원 10명과 함께 대표발의했다. 서청원, 한선교 의원 등도 포함돼 있다. 발의안에는 ‘현재 대통령령에 규정된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을 법률로 상향조정하고, 신규 발급 대상으로 국회의원을 추가한다’고 명시했다. 현재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은 전·현직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 4부 요인과 그들의 배우자, 27세 미만 미혼 자녀이다. 국가적 외교 수행과 소지자의 신변 보호가 목적이므로 발급 대상이 극히 제한적이다.

 

여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회의원 전원과 그 배우자, 자녀들도 외국 정부로부터 4부 요인과 마찬가지로 ‘극진한’ 대우를 받게 된다. 비자 면제 혜택과 사법상 면책특권을 누린다. 안 의원은 “국회의원들이 의원외교를 활발히 하기 때문에 외교관 여권 발급이 확대될 필요성이 있다”면서 “특권이 아니라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는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제대로 된 의원외교의 성과도 거의 없다.

 

국회의원들은 ‘1인 헌법기관’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헌법 정신에 맞게 입법권을 행사하겠다는 표현이어야지, 헌법 기관으로서의 많은 특권을 챙기겠다는 입법권의 남용이어서는 안 된다. 헌법에서 국회의원의 형·민사상 면책특권을 허용한 이유도 직무와 관련한 발언이나 표결을 두고 징계해선 안 된다는 것이지 개별 의원의 부정부패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의원이 국회의원 수를 100명 줄이자고 했을 때 많은 국민이 환호한 것은 그동안 국회의원에게 많은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특혜와 탐욕을 추구하는 국회의원이라면 내년 총선에서 물갈이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 관련 칼럼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423목] 외교관 여권

 

동원호를 나포했던 소말리아 해적 두목이 2013년 첩보영화 같은 작전으로 체포됐다. 초대형 유조선 납치로 한 번에 200만~300만달러씩 챙긴 그가 해적질을 그만두는 조건으로 소말리아 정부로부터 면책특권과 외교관 여권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 과정에서 알려졌다. 왜 하필 외교관 여권이었을까. 거기에 따라붙는 특권이 그만큼 세기 때문이다.

 

외교관 여권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면책특권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가별로 사정은 다르지만 이들은 외국에서 비자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교통법규 위반 등 경범죄 처벌 면제와 불체포 특권, 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도 갖는다. 공항 등에서 불시 소지품 검사를 따로 받지 않고 VIP 의전을 받으며 일반인의 시선을 피해 별도로 출입국할 수도 있다.

 

이런 특권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구약성서에도 기원전 450년께 페르시아 아르타세르세스 1세의 신하 느헤미야가 유대로 여행하겠다고 했을 때 왕이 ‘강을 넘어서도 효력을 발휘하는’ 문서를 써줬다는 내용이 있다. 외국의 관리들에게 특별대우를 부탁한 것이다. 중세 아랍이 세금 납부 영수증을 여권으로 쓴 것도 자국민 보호의 한 방법이었다. 근대적 의미의 여권제도를 처음 시행한 잉글랜드도 마찬가지였다. 1차 대전 때 보안상의 이유로 출입국심사 절차가 생긴 뒤로 외교관 여권의 가치가 더 커졌다.

 

그래서 발급 절차가 까다롭다. 일반여권이나 공무원·정부투자기관 임직원을 위한 관용여권보다 대상도 적다. 5년짜리는 전·현직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와 외무장관, 대사,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등에게 한정된다. 2년짜리는 특별사절이나 정부대표 등에게 발급된다. 이들의 배우자와 27세 미만 미혼 자녀도 포함된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이런 특권을 자신들에게도 달라는 내용의 여권법 개정안을 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국익을 위한 외교 활동에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실로 몰염치하고 옹색한 주장이다. 지금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는 외교관 여권이 발급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의원 300명과 그 가족이 무더기로 외교관 특권을 받게 된다.

 

가뜩이나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판국이다.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잠꼬대에 이어 이젠 외교관 여권까지 요구하다니. 그렇잖아도 국회의원 특권이 200개나 된다. 얼마 전 ‘특권 내려놓기’ 시늉을 할 때도 웃었지만 외교관 특권까지 갖겠다고 나서는 꼴을 보니 더 우습다. 특권이 많으면 비리도 늘어나기 쉽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경향신문 사설-20150423목] 역사교육의 기본 뼈대부터 ‘편향’시킬 참인가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지난 1월 ‘사실에 입각한 균형 잡힌 역사교과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1월8일)에서 “역사는 한가지로 가르쳐야 한다”는 황 장관의 언급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시사한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이같이 해명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해명자료를 살펴보면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국가의 책무성과 오류 없는 사실에 입각한 균형 잡힌 역사교과서’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양한 해석과 시각이 존재하고 새로운 역사·고고학 자료가 등장하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 바로 역사 분야이다. 따라서 ‘오류 없는 사실’이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된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 무오류의 역사를 만들겠다는 것은 오만하고도 위험한 발상이다. 황 장관이 언급한 역사교과서는 곧 ‘정권의 입맛대로 균형을 잡는 역사교과서’를 의미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같은 교육부의 시각은 엊그제 경향신문이 역사과 교육과정 각론개발팀의 연구진 17명 명단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즉 연구진 가운데 역사교사 및 한국사 전공자 10명 중 8명이 친정부·우편향 인사들인 것으로 분석됐다. 2013년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비호 논란을 일으킨 교과서 수정심의위원 3명이 포함됐다고 한다. 국정교과서 도입에 적극 찬동한 교수, EBS 교재에 박정희 유신 관련 문항을 줄이라는 등의 메일을 집필진에게 보낸 이도 있었다. 또 2009년 교육과정 개정 당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변경, 우편향 논란을 일으킨 인사의 제자도 있었다.

 

역사과 교육과정 각론개발팀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중학교 역사·고교 한국사 등의 집필원칙을 정하는 곳이다. 역사교과서의 뼈대를 세우는 곳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 ‘학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사실에 입각한 균형감각’을 갖춘 학자들이 참여해야 한다. 역사교육의 가치를 다루는 역사교과 전문가들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하지만 교육부가 국정교과서 도입을 고려, 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들 위주로 기용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학회나 교사단체의 추천을 의뢰하던 관례도 깼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다양성과 전문성을 결여한 구성이 되고, 고질적인 편향성 논란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잊어서는 안될 것은 역사란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과목이라는 점이다.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는 분야가 결코 아니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3목] 우려되는 영·유아 사교육비 폭증

1~5세 영·유아 사교육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어제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의 연구보고서를 인용해 지난해 영·유아의 총 사교육비 규모가 3조2289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전년보다 무려 22.2%나 늘어난 것이다. 1인당 사교육비도 월평균 10만8400원으로 전년보다 3만원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초·중·고생 월평균 사교육비가 3000원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무려 10배에 육박하는 증가세다. ‘사교육 광풍’이 초·중·고를 넘어 영·유아 단계로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영·유아 사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는 비판과 분별력이 부족한 영·유아가 ‘상업적 교육 프로그램’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교육 내용이나 과목의 적절성에 대한 공식 검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 발달의 토대가 형성되는 영·유아기 교육의 중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사교육은 가계 부담 심화뿐 아니라 바람직한 신체 및 정서 발달도 해칠 수 있다. 영·유아 사교육비가 국내총생산(GDP)의 0.3%에 육박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여기에는 의무교육이 아니라는 이유로 영·유아 교육을 민간 시장에 내맡긴 채 나몰라라 해온 정부도 책임이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공개한 자료에는 영·유아 사교육의 심각성이 잘 드러난다. 사교육이 영어에 편중돼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특별활동의 영어 과목 참여율이 유치원은 63%, 어린이집은 84%였다. 조기 영어 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에게 영어몰입교육부터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따져 볼 일이다. 사교육 참여가 교육적 필요보다는 참여하지 않았을 경우 겪게 될 불이익 걱정 등 교육 외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나타난 것도 주목된다. 참여하지 않을 경우 아이가 외톨이로 지낼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학습지를 이용한 선행학습까지 성행하고 있다고 하니 한숨이 나온다. 학습지가 창의력과 상상력 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해당 업계의 주장은 믿기 어렵다. 이번 연구보고서는 정부가 영·유아 사교육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는 경고다. 영·유아 사교육 실태를 국민에게 정확히 알리고, 기왕의 초·중·고 외에 영·유아 분야까지 포괄하는 종합적 사교육 대책을 세우기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3목] 시정잡배보다 못한 박용성씨의 막말

 

중앙대 재단 이사장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중앙대 보직교수들에게 보낸 막말 이메일 파문으로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등 맡고 있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공개된 이메일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학과 통폐합 등 학내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교수들에 대한 적대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들(비대위 교수들)이 제 목을 쳐 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 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쳐 줄 것이다.” 재단 이사장인 자신이 교수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슈퍼갑(甲)’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과시하는 듯하다. 정제되지 않은 언어폭력은 계속 이어졌다. 다른 이메일에서는 김누리 독문과 교수 등이 주도하는 비대위를 용변 후 사용하는 비데에 빗대 ‘Bidet委’(비데위)로 표현했고, 교수들을 ‘조두’(鳥頭·새대가리)라고 조롱했다. 이쯤 되면 인격모독만 있을 뿐 인간존중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시정잡배보다 못한 막말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우리는 지난해 말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일부 재벌가 사람들의 그릇된 사고방식을 똑똑히 확인했다. 직원들을 종이나 노예 부리듯 하는 그들의 안하무인 격인 언행에 온 국민이 분노했다. 겉과 속이 다른 그들의 가증스러운 진면목에 절망했다. 박 회장의 막말 이메일 또한 그 연장선이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여전히 개발독재시대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박 회장의 뒤떨어진 현실인식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노골적으로 대학사회 구성원들을 모욕하고 인사보복을 다짐하는 ‘독재 이사장’의 말로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중앙대 교수 비대위는 어제 이번 사건을 ‘대학판 조현아 사건’으로 규정하고, 박 회장 등을 상대로 엄정하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 시절 정부와 정치권, 노동계 등을 상대로 비판을 서슴지 않아 ‘미스터 쓴소리’로 불려 왔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한 비판을 수용할 자세는 갖추지 못했던 것 같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을 운영하면서 일방적으로 대기업식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다 학내 구성원들의 비판에 직면했지만 성숙하게 이를 수용하지 못했다. 결국 섬뜩한 화법으로 막말을 일삼다 ‘부메랑’을 맞은 셈이다. 대학정신이 인간존중이라면 시정잡배 같은 언사를 일삼는 박 회장과 같은 인사들이 대학을 맡아 운영하는 ‘불상사’는 다시 벌어져서는 안 된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3목] 반성 없는 권력의 정치개혁 힘 받을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를 받아들이며 내놓은 몇 마디 말이 불편함을 안겨 주고 있다. 국민의 고뇌가 아니라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는 대통령의 말이 국민감정과 동떨어진 것임은 논외로 치자. 하지만 “검찰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확실히 수사해 모든 것을 밝혀 주기 바란다”는 언급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개혁을 고리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셈인데 과연 그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국민이 얼마나 될까. 또다시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성완종 게이트’는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등 핵심 측근 인사들이 줄줄이 엮여 들어간 초대형 권력형 비리 사건이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국정리더십 공백 사태로 국민 신뢰는 밑창을 드러냈고 국격의 실추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국정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은 일언반구 사과도 없다. 마치 남의 일인 듯 고상한 원칙론적 명분만 내세우고 있으니 국민은 그야말로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공감능력을 의심받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 있을까.

 

박 대통령이 수차례 사용한 정치개혁이라는 말은 물론 야권만이 아닌 정치권 전반을 두고 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살아 있는 권력 주변 부패의 고름을 외과수술적으로 도려내는 데 힘을 쏟아야 할 때지 뜨악하게 정치개혁을 외칠 때가 아니다. 부패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와 정치개혁을 말릴 국민은 없다. 하지만 일에는 선후완급이 있는 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혁의 주체와 대상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성완종 리스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 2012년 대선 불법 정치자금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전면적인 정치개혁을 촉구하려면 이 점부터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 자신도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단단한 결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는 한 정치개혁 차원 수사 운운은 자포자기적인 냉소와 정치허무주의만 양산할 뿐이다. 이치가 뻔한데도 이를 애써 무시하는 듯한 모양새니 기획사정이니 하청수사니 물타기 꼼수니 하는 온갖 후진적인 정치용어가 난무하는 것 아닌가.

 

무리를 감행하면 반드시 사달이 나게 되어 있다. 제 발 앞의 썩은 정치 오물도 제대로 치우지 못하면서 거창하게 정치개혁을 이루겠다고 나서는 것은 또 다른 부메랑이 되기 십상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정치개혁 드라이브는 공허하다. 정치적 의도가 담긴 사정몰이라면 결단코 성공할 수 없다.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공무원연금 개혁 등 시급한 국정과제마저 떠내려 보내고 말지도 모른다. 정치적 이성을 되찾기 바란다. 이 총리가 물러난다고 해서 정권 핵심이 연루된 ‘악성’ 비리 사건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검찰은 이제부터 성완종 게이트를 새로 수사한다는 각오로 비리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야 할 것이다. 위기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다음주 귀국하는 대로 이번 권력 비리 사건에 대해 국민에게 분명한 어조로 사과부터 하고 선후책(善後策)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3목] 대주주 차별하지 말아야 기업공개 활성화된다

올해 기업공개(IPO)가 급증할 것이라고 한다. 엊그제 한경이 주최한 ‘IPO엑스포 2015’에서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연내 신규상장을 준비하는 기업이 많아 IPO 건수가 200개까지 충분히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거래소 측은 올 신규상장이 2000년(255개) 후 최대치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심사를 신청한 기업이 작년 같은 기간의 세 배라고 한다. 마침 주가도 오랜 박스권에서 벗어나 코스피지수는 거의 4년 만의 최고치이고, 특히 코스닥지수는 7년 만에 고점을 경신했다.

 

우량기업이 증시에 많을수록 자본시장이 튼튼해지고 실물경제도 잘 돌아가게 된다. 그런 점에서 기업공개가 몇 년째 침체상태였다가 지난해부터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합친 기업공개 건수는 2010년 98건이던 것이 2011년 76건, 2012년 29건까지 급감했다가, 2013년 40건에 이어 지난해 78건으로 늘었다. 벤처기업 육성, 창조경제 활성화 같은 정부 정책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그렇지만 온기라는 게 코스닥시장에 국한돼 있을 뿐이다. 대형 기업들이 중심인 유가증권시장은 나아진 게 별로 없다. 지난해에도 유가증권시장에서 신규 상장기업은 7곳에 불과해 상장기업 수가 전년의 775개에서 772개로 오히려 줄었다. 상당수 유망 기업들은 아직도 상장을 꺼리는 것이다. 단순히 상장심사·상장절차 간소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공시 의무 등의 부담만도 아니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외부인사로 이사회의 과반수를 채우고, 감사· 준법감시인까지 맡겨야 한다. 대주주 의결권 제한, 연봉공개 등 감당해야 할 규제가 한둘이 아니다.

 

툭하면 경영에 간섭하려드는 기관투자가와 당장의 고배당 외엔 안중에 없는 소위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요구에 시달려야 하고, 적대적 M&A 위협에 대한 방어수단도 없다. 산더미 규제에다 경영권까지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메리트보다 비용이 훨씬 크다. 자본시장을 정상화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을 세우고 키워온 대주주 지원제도를 갖춰야 한다. 지금은 지원이 아니라 차별과 징벌만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3목] 성과급 나눠먹기 제동 건 임우진 구청장을 지지한다

 

광주광역시 서구청 공무원들이 성과평가 결과에 따라 개인에게 차등 지급된 상여금을 다시 거둬 똑같이 나눠가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경 보도에 따르면 광주 서구는 지난달 말 5급 이하 직원 759명에게 총 21억7000만원의 상여금을 평가 결과대로 차등지급했다. 그런데 전국공무원노조 광주 서구지부가 이를 다시 거둬 직원들에게 균등 재분배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관행이 10년이 넘었고, 광주 서구뿐만 아니라 상당수 지자체에 만연해있다는 점이다.

 

1998년 중앙부처에 도입됐고 2003년에 지방자치단체로 확대된 공무원 성과상여금제도는 일 잘하는 공무원이 더 많은 보상을 받도록 한 성과평가 시스템이다. 1년간 업무실적을 평가해 4등급으로 점수를 매기는데 S등급은 지급액 기준 172.5%, A등급은 125%, B등급은 85% 이하를 받고, C등급은 성과급을 받지 못한다. 행정서비스의 질을 높이려는 목표로 만들어진 이 제도를 노조가 ‘일 잘 할 필요없이’ ‘똑같이 나누는’ 식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행정자치부 지방공무원 보수규정을 어긴 것으로, 명백한 불법행위다.

 

공무원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음이 분명한데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노조와의 관계를 의식한 단체장들의 묵인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노조의 변칙적인 성과상여금의 재분배는 불법이자 탈법”이라며 행자부에 부당성 여부를 질의하는 공문을 보낸 임우진 광주 서구청장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는 이 문제를 놓고 노조와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성과급 나눠먹기라는 부도덕한 관행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라도 임 구청장의 사례는 조명받아야 한다. 노조가 성과급 재배분을 조합원의 동의 아래 이뤄진 합법적인 행위라고 강변하면서 임 구청장을 압박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행자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해마다 한 번 나오는 성과급도 이렇게 나눠먹는 공무원들에게 공무원연금개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실망스럽다. 공직자들의 타락 정도가 너무 심하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3목] 민노총, 정치투쟁 싫다는 현장 목소리 안 들리나

 

민주노총이 24일부터 총파업을 강행한다고 예고한 가운데 집행부에서 '억지파업'을 강요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노동계 내부에서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21일 소식지에서 "민주노총이 정국의 흐름을 무시한 채 날짜를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파업을 진행하려 든다"고 비판했으며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도 "현장 조합원의 생각은 총파업과 많이 떨어져 있다"며 반기를 들고 나섰다.

 

민주노총 핵심세력인 현대차 노조 집행부조차 상급단체의 투쟁방침을 거부하고 나선 것은 무엇보다 현장 조합원들의 거센 반발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4월 파업의 명분으로 내건 노동시장 구조개선 폐기, 공무원연금 개혁 중단, 세월호 시행령 폐기 등은 사실 근로조건 개선에 목말라하는 현장의 정서와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다. 집행부가 파업 명분으로 내세웠던 노동시장 개악안 상정이 무산됐기 때문에 파업의 명분과 목표가 사라졌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백번 옳다. 현대차가 포함된 울산 노동계는 이미 총파업 투표에서 43.9%의 찬성표를 던져 분명한 반대의사를 제시했다. 이런 조합원의 의견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정치파업을 밀어붙이고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에 뛰어들어 서울 도심을 불법폭력으로 얼룩지게 만들었으니 파업의 순수성이 의심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애초부터 조합원의 복리를 내팽개친 채 정치세력과 손잡고 정권퇴진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민주노총은 조합원의 입장과 괴리된 정치구호가 여론을 등 돌리게 할 뿐 아니라 조직기반을 와해시킨다는 점을 명심하고 지금이라도 총파업 선언을 거둬들여야 한다. 현대차 등 단위노조도 무책임한 상급단체의 불법파업 지침에 휘둘리다가는 소중한 일터가 희생될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노조의 존립근거는 무분별한 정치파업이 아니라 회사의 경쟁력을 키우고 조합원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3목] 금융 검사개혁 앞서 정치금융부터 뿌리 뽑아야

 

금융당국이 22일 2차 금융개혁회의을 열어 금융회사 검사를 '건전성 검사'와 '준법성 검사'로 구분해 꼭 필요한 경우에만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금융회사 검사·제재 개혁방안'을 주제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검사받는 금융회사의 권익 보호를 위한 금융회사 임직원 '권익보호기준'도 제정하기로 의결했다.

 

이번 개혁안은 한국 금융시장이 자본시장 활성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시점에서 꼭 필요한 조치였다. 특히 검사시 징구하던 확인서와 문답서를 폐지하고 검사반장 명의의 '검사의견서' 교부로 대신한 것은 업계의 오랜 바람이었다. 현행 150일로 돼 있는 검사기간을 건전성 검사는 60일 이내, 준법성 검사는 90일 이내로 대폭 축소한 것 또한 평가할 만하다. 금융회사 임직원이 강압적인 검사를 받지 않도록 권리를 보장하는 것도 진작 명문화 했어야 했다.

다만 지금처럼 정치금융이 활개치는 한국에서 이런 개혁들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겠냐는 의문은 남는다. 아무리 검사 시스템을 개선하고 금융인의 권익을 보장한들 정치와 금융의 '갑을(甲乙)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무슨 소용이 있겠나.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이날 "금융개혁 과제들을 지속적으로 점검해 시스템으로 안착시키는 게 금융당국의 목표"라고 강조했지만 아직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금융과 정치의 결별 없이는 어떤 개혁도 헛바퀴를 돌 뿐이라는 점이다. 정치권의 비호 아래 연명해온 경남기업의 부실화로 금융권 등이 떠안을 손실이 무려 1조1,000억원에 달한다는 사실만 봐도 너무 명확하지 않은가. 더욱 무서운 것은 어쩌면 지금도 더 큰 부실이 권력의 입김으로 금융권 요직을 꿰찬 인사들에 의해 양산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금융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정치권력의 금융권 인사·경영 개입을 차단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국경제신문 칼럼-김종구 칼럼/김종구(논설위원)-20150423목] ‘싱크홀 대통령’에 미래는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과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결과를 전하는 언론 보도는 3년 전 이명박 대통령 때의 기사에다 글자 몇 개만 고친 수준이었다. “한-콜롬비아 에프티에이(FTA) 타결에 따른 후속조처 추진”이 “에프티에이의 조속한 비준 촉구”로, “양국 간 인프라, 에너지, 석유화학, 광물자원, 환경 분야 등에서의 협력 증대”가 “인프라 프로젝트, 전자 상거래, 온라인 유통망 진출 협력”으로 바뀐 것 정도가 고작이다. 이런 정도의 정상회담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세월호 참사 1년을 맞는 날 그렇게 허겁지겁 나라를 떠났다는 말인가.

 

평이한 정상회담 결과도 그렇지만, 방문의 격식도 초라하다. 산토스 대통령이 2011년에 한국을 방문(국빈방문)하고 2012년에 한국 대통령이 답방(국빈방문)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콜롬비아 대통령이 먼저 방한할 차례이고, 한국 대통령이 가려면 국빈방문의 대접이라도 받아야 옳다. 그런데도 애걸하듯이 공식방문으로 격을 낮추면서까지 콜롬비아행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인가. 콜롬비아의 6·25 참전 용사들을 만나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 세월호 유족들의 아픈 가슴을 달래주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참 나쁜 대통령’이다.

 

외국에 나가 화사한 패션을 뽐내고 있는 박 대통령의 모습이 요즘처럼 초라하게 느껴진 적도 없다. 과대포장된 해외순방 성과로 내치의 실패를 덮을 수는 없다. 사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곤경에 처한 박 대통령의 처지를 설명하는 데 자업자득, 인과응보처럼 적절한 용어도 없다. 한평생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온 사람을 총리로 지명하지 않았다면, 아니 백 보를 양보해 ‘사정 대상 1호’를 부정부패 척결의 기수로 내세우는 코미디만 연출하지 않았어도 ‘피의자 국무총리’라는 최악의 사태는 면했을 것이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마찬가지다. 그의 잇따른 말바꾸기와 ‘기억상실’을 앞세운 발뺌을 보면서도 박 대통령은 여전히 “정말 사심이 없는 분”이라고 믿고 있을까. 아니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장탄식을 또다시 되뇌고 있을까.

 

박 대통령은 아마도 길을 걷다가 갑자기 발밑이 꺼지며 싱크홀에 빠져버린 것과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아스팔트가 단단하다고 여긴 것은 박 대통령의 착각일 뿐이었다. 지표면 아래에서는 검은돈의 지하수가 흐르고 곳곳에 균열과 침식, 공동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도덕성의 지층이 어긋나고 정직함이 빠져나간 빈 공간은 결국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게 돼 있다.

 

박 대통령을 지탱하고 있던 권력의 기반은 무너졌다. 여권 내 친박계는 초토화되고, 친이계는 희희낙락 고소해하고 있다. 새누리당 대표 취임 뒤 한 차례도 따로 만난 적이 없던 김무성 대표를 급히 단독으로 만난 것은 박 대통령의 옹색한 처지를 웅변한다. 권력 관리를 위해 친위세력을 전면에 포진시켰던 박 대통령의 용인술이 권력 기반 붕괴의 지름길이 된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그러면 싱크홀에 빠져버린 대통령이 살아날 길은 있을까. 물론 없지는 않다. 우선 고쳐야 할 것은 ‘청와대 사투리’다. 범법 행위의 꼬리를 숨기지 못해 괴로워하고 총리직을 내놓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한 모습에 ‘고뇌’라는 엉뚱한 단어를 갖다 붙이는 식의 말투 말이다. 대통령 자신이 누리는 권력이 실은 국정원 대선 개입과 불법 정치자금이라는 ‘양대 불법 행위’의 토대 위에 쌓은 모래성임을 인정할 용기가 없으면, 정치개혁이니 하는 말도 일찌감치 접는 게 낫다. ‘성완종 리스트 인사 8명 중 일부만 사법처리하고 야당으로 수사를 확대’하는 꼼수로 난국을 돌파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함은 물론이다.

 

대통령을 떠받치고 있던 권력의 축은 어차피 무너졌다. 그렇다면 차라리 발상의 전환을 할 때다. 사라진 친박의 권력 기반 대신 ‘대연정’에 버금가는 광폭 행보로 새로운 권력 기반을 창출하는 일 말이다. 당장 차기 총리 후보자 지명부터 야당과 상의하는 것은 어떤가. 하지만 박 대통령에게 그런 기대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싱크홀 대통령’이 생환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경향신문 칼럼-여적/박용채(논설위원)-20150423목] 금리인상보다 무서운 것

지금이야 사토리(달관) 세대가 대세지만 몇년 전만 해도 일본 젊은이들을 관통하는 용어는 초식남이거나 캥거루족이었다. 부모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하고 초식동물처럼 온순해지다가 결국은 강요당한 달관의 단계로까지 진화한 셈이다. 따지고 보면 이는 장기불황 속에서 무한경쟁의 정글에 내동댕이쳐진 보통 젊은이들의 생존법이기도 하다. 이들이 집을 산다는 것은 사치다. 이는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제로금리 시대인 요즘도 비싼 월세를 부담하더라도 좀처럼 빚내 집을 사지는 않는다.

 

집값은 때로 반짝하지만 장기 저성장으로 결국 내리막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꺼리는 이유는 고용 불안 탓이다. 종신고용이 사라진 뒤 고용유연화가 자리 잡은 일본에서는 직장인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다. 정규직 역시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빚내 집을 샀다 해고를 당하면 기다리는 것은 빚 지옥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30~40대가 요즘 주택매입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치솟는 전셋값에 넌더리가 난 데다 정부가 저금리를 강조하며 집을 사라고 권한 데 따른 것일 게다. 최경환 부총리는 “미국의 금리인상이 한국의 인상으로 이어져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금리를 올리지 않을 테니 걱정 말고 집을 사라’고 말한다.

 

하지만 꼭 그럴까. 요즘 30~40대의 일자리는 20대 못지않게 심각하다. 40대 취업자수는 3월에만 6만7000명이 줄었다. 3개월 연속 감소로,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주변에서 대기업이나 은행, 보험, 증권사 등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다 그만둔 30~40대를 보는 것은 흔하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악소리도 못한 채 밀려난다. 재취업이 간절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빵집이나 통닭가게도 성공 가능성은 낮다. 만약 이들이 빚내 집 산 뒤 매월 적지 않은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하는 처지라면 어떨까. 한순간에 암흑이 될 게 뻔하다. 그럼에도 정부와 기업은 정규직마저 해고를 쉽게 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려 한다. 노조라는 울타리마저 없는 기업 노동자들이 망망대해에 내던져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일자리 안정이 삶의 안정이라는 명제가 새삼 확인되는 시점이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상언(사회부문 차장)-20150423목] 세월호를 인양해야 하는 이유

 

공교롭게도 16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서 정부의 최종 결정까지 걸린 시간이다.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결론이 나면… 선체 인양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양수산부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발표했고 대통령은 16일 진도 팽목항에서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라고 못을 박았다. 2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심의는 통과의례일 뿐이었다. 이제 세월호는 기술적 실패라는 불상사가 없는 한 물 위로 올려진다.

 

  나는 세월호 인양에 찬성하지 않았다. 정부가 실종자 가족의 동의만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대로 두는 게 옳다고 믿었다. ‘인양의 필요성’에 동감하지 않았다. 인양 문제에 대한 기사(중앙SUNDAY 2014년 6월 8일자)를 쓰는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대부분 인양에 회의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그 비용으로 해상 추모공원을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았다. 1994년 발트해에서 침몰한 MS에스토니아호나 제2차 세계대전 때 폭침당한 미국 전함 USS 애리조나호처럼 침몰 해역에 존치하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MS에스토니아호에는 700여 명의 실종자가 있었다.

 

  그런데 지난 2일 생각이 달라졌다. 세월호를 인양해야 한다 또는 인양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 기자회견장에서였다. 52명의 유가족이 삭발한 그날이다. 가족들은 세상에 대한 원망을 표출했다. 정부·국회·언론을 향한 거친 언사도 있었다. 그들의 울분이 이해가 됐다. 본지 여론조사에서 62.3%의 응답자가 인양에 찬성했다. 그중에는 “인양을 꼭 해야 하느냐”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나 같은 이도 많을 것으로 짐작됐다.

 

  세월호 인양에 대한 기술적 검토에 열 달이 걸렸다. 치밀한 작업 때문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보기 어렵다.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는 아직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하지 못했다. 시간은 그렇게 허무하게 흘러갔고, 세월호 인양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실종됐다. 해수부의 당초 계획에는 ‘공론화’라는 것이 들어 있었으나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어명(御命)’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세월호는 인양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 앞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를 인양해야 한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최광숙(논설위원)-20150423목] 메르켈과 아베의 국가이성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991년 독일 통일 후 첫 조각에서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발탁된 뒤 첫 외국 방문지로 선택한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총리가 된 후 더욱 이스라엘을 챙겼다. 총리 재임 첫 7년 동안 이스라엘을 방문한 횟수만 네 번이다. 이렇듯 메르켈의 외교정치에서 이스라엘은 유럽연합과 미국에 비견할 정도로 중요하다. 이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독일의 역사적 부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도 화답했다. 히브리대학에서 메르켈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2008년 3월 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맞아 이스라엘 의회는 총리로는 처음으로 메르켈에게 연설하도록 기회를 줬다. 국가원수들만 불러 연설을 듣는 관행을 메르켈을 위해 과감히 깬 것이다. 독일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도 ‘레오 백’이라는 상을 수여했다. 이 상은 독일유대교중앙위원회가 독일 유대인을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2007년 9월 메르켈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나 이전의 모든 독일 총리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의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의무로 여겼다. 나 역시 이런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한다. 그것은 독일의 ‘국가이성’에 속한다”고 말했다. 슈테판 코르넬리우스가 쓴 메르켈의 전기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에서 저자는 메르켈의 국가이성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빼고는 독일을 논할 수 없다’는 역사관에서 출발해 나치에 대한 반성은 물론 나아가 독일에 이스라엘의 안전과 보호를 위한 중요한 정치적 임무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이성은 국가의 임무에 담긴 정치적 합리성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이성’(國家理性)은 프랑스어인 ‘레종 데타’(raison dEtat)를 번역한 말로 이미 로마시대에 사용됐다. 고대에서 국가이성이라는 관념은 위정자 개인의 경험에 입각하는 정치기술로서 인정되었지만 중세는 교회가 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지배하던 때라 국가는 독자적인 존재 이유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국가이성이 현실의 정치나 정치학에 도입되어 확립된 것은 마키아벨리 때이다.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 국가는 정치가의 도덕적 규범과 같은 개인 윤리가 아닌 국가이성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훗날 히틀러의 무차별 정복이나 유대인의 학살 등을 정당화하는 데 잘못 활용되기도 했다. 일부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8월 종전 70주년을 맞아 발표할 담화에서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의 표현을 담지 않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점차 히틀러를 닮아가는 듯한 아베는 메르켈의 국가이성이 뭔지나 알고 있는지….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423목] 외교관 여권

 

동원호를 나포했던 소말리아 해적 두목이 2013년 첩보영화 같은 작전으로 체포됐다. 초대형 유조선 납치로 한 번에 200만~300만달러씩 챙긴 그가 해적질을 그만두는 조건으로 소말리아 정부로부터 면책특권과 외교관 여권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 과정에서 알려졌다. 왜 하필 외교관 여권이었을까. 거기에 따라붙는 특권이 그만큼 세기 때문이다.

 

외교관 여권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면책특권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가별로 사정은 다르지만 이들은 외국에서 비자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교통법규 위반 등 경범죄 처벌 면제와 불체포 특권, 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도 갖는다. 공항 등에서 불시 소지품 검사를 따로 받지 않고 VIP 의전을 받으며 일반인의 시선을 피해 별도로 출입국할 수도 있다.

 

이런 특권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구약성서에도 기원전 450년께 페르시아 아르타세르세스 1세의 신하 느헤미야가 유대로 여행하겠다고 했을 때 왕이 ‘강을 넘어서도 효력을 발휘하는’ 문서를 써줬다는 내용이 있다. 외국의 관리들에게 특별대우를 부탁한 것이다. 중세 아랍이 세금 납부 영수증을 여권으로 쓴 것도 자국민 보호의 한 방법이었다. 근대적 의미의 여권제도를 처음 시행한 잉글랜드도 마찬가지였다. 1차 대전 때 보안상의 이유로 출입국심사 절차가 생긴 뒤로 외교관 여권의 가치가 더 커졌다.

 

그래서 발급 절차가 까다롭다. 일반여권이나 공무원·정부투자기관 임직원을 위한 관용여권보다 대상도 적다. 5년짜리는 전·현직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와 외무장관, 대사,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등에게 한정된다. 2년짜리는 특별사절이나 정부대표 등에게 발급된다. 이들의 배우자와 27세 미만 미혼 자녀도 포함된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이런 특권을 자신들에게도 달라는 내용의 여권법 개정안을 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국익을 위한 외교 활동에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실로 몰염치하고 옹색한 주장이다. 지금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는 외교관 여권이 발급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의원 300명과 그 가족이 무더기로 외교관 특권을 받게 된다.

 

가뜩이나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판국이다.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잠꼬대에 이어 이젠 외교관 여권까지 요구하다니. 그렇잖아도 국회의원 특권이 200개나 된다. 얼마 전 ‘특권 내려놓기’ 시늉을 할 때도 웃었지만 외교관 특권까지 갖겠다고 나서는 꼴을 보니 더 우습다. 특권이 많으면 비리도 늘어나기 쉽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한기석(논설위원)-20150423목] 부(富)의 효과

 

최근 주가가 오르면서 '돈 벌었으면 밥 한 끼 사라'는 얘기를 듣는 주식 투자자들이 많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곰곰 생각하면 논리에 모순이 있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평가액이 오를 뿐 실제로 돈을 손에 쥔 것은 아니다. 나중에 주가가 내려갔다고 위로주를 살 것도 아니면서 마치 이익이 실현된 것처럼 전제해 논리를 전개한다. 따져보면 모순인 이런 일이 현실에서는 일어난다. 개인이 보유한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상승이 소비 증가를 이끈다는 '부(富)의 효과'다.

 

부의 효과는 양면이 있다. 1970년대 자고 나면 오르는 부동산값에 현혹돼 돈을 펑펑 쓰던 땅 부자, 외환위기 이후 벤처 거품 시절 주식 몇 주만 팔면 아파트를 한 채 산다며 룸살롱에서 호기롭게 놀던 벤처기업인 등 개인 차원에서 보면 결과가 대개 좋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 차원에서 보면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때 소비 진작→생산 증가→투자 확대→일자리 증가→소비 진작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물꼬를 틔울 수 있다.

 

이른바 역(逆) 부의 효과도 있다.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소비심리가 얼어붙어 실물경제가 침체하는 현상이다. 1980년대 일본은 돈이 많이 풀리면서 부동산가격이 급등해 도쿄 땅 일부만 팔아도 미국 땅 전체를 사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1990년대 들면서 자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고 이는 개인의 소비심리 위축과 기업의 투자의욕 저하를 부르면서 잃어버린 20년의 서막을 열었다.

 

요즘 주택 거래는 증가하는데도 집값은 오르지 않아 부동산시장에서 부의 효과가 사라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과거에는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이 '집값이 올랐으니 이득'이라며 빚은 생각 않고 지갑을 열었지만 이제는 집값이 오르지 않으니 대출 받은 원리금을 수십년간 상환해야 할 부담을 걱정하고 있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주가는 조금 올랐다지만 그나마 주식 팔아 생기는 돈마저 치솟는 전세금에 보태야 할 판이다. 이래저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살림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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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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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중앙대 재단 이사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막말과 사퇴

■ 지중해 난민 참사

■ 성완종 리스트 수사

■ 이완구 국무총리 사의 표명

■ 후임 총리는 누구?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중앙대 재단 이사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막말과 사퇴

 

[한국일보 사설-20150422수] 대학이 비교육적 시장주의자에 맡겨지면

 

박용성 중앙대 재단이사장이 교수들에게 보낸 이메일 막말 파문으로 이사장직을 사퇴했다. 그는 “중앙대와 관련해 빚어진 사태에 대해 이사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중앙대 관련 보직은 물론 두산중공업 회장,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등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박 이사장이 최근 학과제 전면 폐지를 골자로 한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라는 등의 시정잡배식 막말로 위협한 것이 직접 계기가 됐다. 그는 나아가 학교 비대위를 변기를 뜻하는 ‘Bidet委(비데위)’로 표현하는가 하면, “그들을 꽃 가마에 태워 복귀시키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게 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는 등 노골적인 인사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중앙대는 최근 학과나 전공별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방식을 단과대나 계열별 정원으로 바꾸는 구조개혁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박 이사장의 주도로 만든 이 개혁안에 교수와 학생 대부분이 “취업이 잘 되는 전공에 쏠림 현상이 심화, 기초학문 고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중앙대는 2008년 박 이사장의 인수 이후 수 차례 일방적인 학과 구조조정으로 홍역을 치르면서 ‘기업식 구조조정’이니 ‘두산대’니 하는 비아냥을 들었다. 그는 “대학은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직업교육소여야 한다”는 등 대학의 존재의의를 근본적으로 왜곡하는 발언으로 끊임없이 비판의 대상이 됐다.

 

급기야 이번 일로 그의 교육관이 나름 진지한 성찰이나 철학의 결과물이 아닌, 단지 교육자로서 최소한의 품격과 자질조차 못 갖춘 바탕에서 비롯된 것임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였다. 최근에는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얽힌 비리의 연결고리로도 의혹을 사고 있다. 중앙대를 둘러싼 수년 간의 진통은 전통 있는 대학조차 시대변화 반영수준을 넘어 아예 철학 없는 시장주의자에게 통째로 내맡겨질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2수] 재벌 기업인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의 폭언

 

중앙대 재단 이사장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3월말 보직교수 등에게 보낸 전자우편에서 교육계 인사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막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학과제 폐지 등 대학 구조조정안에 반대하는 교수들을 가리켜 “그들이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라고 했다. 해당 교수들이 구성한 ‘중앙대 비대위’를 변기를 연상케 하는 “Bidet위”라고 지칭한 것까지 보면 박 이사장의 유치한 지적 수준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중앙대는 2월 학과제를 폐지하는 구조조정안을 내놔 학교 안팎으로부터 ‘인문학 등 순수학문을 고사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아랑곳없이 구조조정안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저런 몰상식한 발언들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중앙대 총장을 지낸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이 정부에 압력을 넣어 캠퍼스 통합 등 중앙대의 각종 이권을 챙겨준 의혹이 제기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중앙대 법인이 두산그룹 계열사에 건물 공사를 몰아주는 등 잇속 챙기기에 바빴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은 중앙대를 압수수색하는 등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궁지에 몰린 중앙대는 최근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반대 의견을 수용해 2016학년도 입시에서 수시모집은 학과별로, 정시모집은 단과대학별로 선발하는 선에서 절충을 봤다.

 

박 이사장은 21일 문제의 발언이 공개되자 이사장은 물론 두산중공업 회장,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등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사퇴로 문제의 본질이 덮어질 수는 없다. 우선 대학과 기업의 일그러진 관계를 곱씹어봐야 한다. 산업 수요에 맞춘다는 논리로 진행되는 대학 구조조정은 기업의 편의라는 근시안적 목적에는 맞을지 몰라도 나라를 떠받치는 지적 기둥이 돼야 할 대학의 소명과는 정반대의 길이다. 기초학문 부실화는 국가 경쟁력도 떨어뜨린다. 더구나 기업이 대학 운영에 직접 뛰어들어 이윤 창출에만 매달렸다면 이는 국가의 공공재를 사적으로 편취한 행위나 다름없다. 철저한 수사와 단죄가 이뤄져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2수]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 사퇴, 대학 정상화 계기 돼야

 

박용성 중앙대 재단이사장이 어제 이사장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학과제 폐지 등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중앙대 교수들에게 섬뜩한 막말을 한 사실이 경향신문 보도로 공개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지 하루 만이다. 박 이사장은 이 밖에 두산중공업 회장직과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등 모든 직책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의 사퇴를 계기로 중앙대가 학문 자유의 전당이라는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바란다.

 

박 이사장은 어제 자료를 내 “최근 중앙대와 관련해 빚어진 사태에 대해 이사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면서 “대학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이 과정에서 논란과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학내 구성원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의 진심을 믿고 싶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그동안 중앙대의 정체성을 훼손시킨 과오가 크고 깊다. 이로 인한 교수와 학생 등의 자괴와 절망감은 쉽게 극복하기 어려울 듯하다.

 

2008년 중앙대를 인수한 박 이사장은 두산그룹의 비즈니스 운영체계를 그대로 도입하는 구조조정을 꾀했다. 효율성을 앞세워 대학에 5개 사업본부를 만든 뒤 교수들을 각 본부에서 일하는 ‘사원’처럼 만든 것이다. 이른바 ‘대학의 기업화’다. 이어 학과제 전면 폐지 방안을 내놓았다가 반발이 일자 학과제를 유지하되 모집단위를 광역화하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학과제 전면 폐지는 소위 ‘인기 없는’ 인문학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려는 것이 숨은 목적이었다. 박 이사장은 이 과정에서 반발하는 교수들에 대해 “목을 쳐주겠다”며 협박하는 e메일을 총장과 보직교수들에게 보냈다. 검찰이 입수한 e메일에서 박 이사장은 “그들이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라는 등 막말을 퍼부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의 재단이사장 발언이라고 믿을 수 없다.

 

박 이사장이 앞장선 대학의 기업화와 소유물화, 인문학 축소 시도는 비단 중앙대만이 아니라 오늘의 대학 사회 전체가 마주한 위협이다. 기업이 요구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로 진행돼 온 대학의 일탈은 학문과 지식인의 양식에 대한 모독이다. 대학은 이제 교양과 지성의 영역으로 돌아가야 한다. 차제에 재단이사장이 경영권과 운영권 모두를 손에 쥐고 대학을 좌지우지하는 관행도 손질해야 할 것이다. 대학 경영은 재단이 하되 운영은 학내 구성원이 주도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 지중해 난민 참사

 

[중앙일보 사설-20150422수] 한 해 수천 명 죽는 지중해 난민 참사, 그대로 둘 것인가

 

세월호 참사 후 1년이 지나도록 사회적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 상황에서 접하는 지중해 난민 참사 소식은 결코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대형 정기여객선이 300명 넘는 목숨과 함께 침몰하는 걸 눈뜨고 바라보기만 한 처지에 난민 실은 허술한 어선·뗏목이 뒤집혀 벌어진 사고에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는지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트라우마가 있기에 수만 리 떨어진 지중해가 통곡의 바다가 되고 있는 현실을 더욱더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지중해에서는 지난 일주일 사이에 리비아에서 출발한 난민선 3척이 침몰해 1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토록 희생자가 많은 건 그만큼 난민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동안만 17만 명의 난민이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도중에 숨진 사람만 3200명이다. 리비아에는 유럽으로 탈출하려는 난민이 최대 100만 명까지 대기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대부분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발호하고 있는 시리아를 비롯해 내전과 폭정,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중동·아프리카 출신들이다.

 

  난민 희생자가 늘면서 유럽연합(EU)은 리비아 내 밀반출조직 소탕을 위해 군사작전까지 벌이겠다고 나서고 있다. 밀입국 선박을 파괴해 지중해를 건널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지만 목숨을 건 난민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유럽의 소극적 대처만 탓할 상황도 못 된다. 그렇잖아도 경제난 속에서 반이민 정서에 편승한 극우세력들이 힘을 키워 골치를 앓고 있는 유럽이다.

 

  유럽에만 난민 문제 해결을 책임 지워서는 참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 지중해 순찰과 난민 구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동·아프리카 등의 ‘실패국가’들이 국가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경제적 지원은 물론 정치·사회적 컨설팅 등 구조적으로 난민 발생을 막도록 국제사회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말이다. 국제사회의 주요한 일원인 우리도 적극 나서서 거들 수 있는 만큼 거들어야 한다.

 

 

■ 관련 칼럼

 

[한겨레신문 칼럼-유레카/김지석(논설위원)-20150422수] 우리의 바다

 

‘마레 노스트룸’이라는 보드게임이 있다. 라틴어로 ‘우리의 바다’라는 뜻이다. 게임의 주인공은 로마, 카르타고, 그리스, 이집트, 바빌로니아 등 고대 서양을 주름잡던 다섯 나라다. 이들 나라가 교역, 건설, 전쟁을 되풀이하면서 세력을 키워간다. 아르테미스 신전이나 율리우스 카이사르 등 4종류 이상의 불가사의나 영웅을 먼저 만들어내는 사람이 승리한다.

‘우 리의 바다’는 지중해다. 면적 250만㎢에 동서 길이 4000㎞에 이르는 지구촌 최대 내해다. 이 바다를 처음 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이라고 부른 이들은 로마인이다. 실제로 전성기의 로마는 지중해를 둘러싼 유럽, 아프리카 북부, 중동 서부 지역을 모두 차지했다. 당시 이들에게 대서양은 마레 이그노툼(Mare Ignotum)이었다. ‘알 수 없는 바다’라는 뜻이다.

 

지중해는 중세 내내 ‘이슬람의 바다’였다. 이슬람 세력은 유럽 쪽 육지 일부를 제외하고 지중해 주변 지역 전체를 장악했다. 결국, 유럽 나라들은 ‘우리의 바다’를 되찾지 못한 채 서쪽으로 향해 대서양 시대를 열게 된다. 20세기에 ‘마레 노스트룸’을 국가 전략으로 내건 사람은 이탈리아의 파시즘 지도자 무솔리니다. 새 로마제국을 꿈꿨던 그의 시도는 불과 몇 해 만에 무참하게 실패한다.

 

2013년 10월 아프리카의 난민을 태우고 이탈리아로 향하던 배가 지중해에서 침몰해 360여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난다. 그 직후 이탈리아는 유럽연합의 지원을 받아 해양 구조계획을 꾸린다. ‘마레 노스트룸’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부활한다. 이 계획은 상당한 성과가 있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많은 난민이 유럽행을 시도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래서 올해 초 대체된 게 저예산의 연안 경비계획인 트리톤이다. 트리톤은 로마 신화에서 넵투누스의 아들인 바다의 신 이름이다. 800명가량 숨진 18일의 난민선 참사를 보면, 지중해는 누군가의 ‘우리의 바다’가 아니라 냉담한 바다의 신이 지배하는 곳인 듯하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임석훈(논설위원)-20150422수] 지중해 보트피플

 

지중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낭만·정열이지 싶다. 풍광이 전 세계인이 한 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여행지로서 손색이 없기 때문일 게다. 연안국을 둘러보는 지중해 크루즈 여행은 그중에서도 백미다. 무엇보다 지중해는 아프리카·아시아·유럽의 3개 대륙에 둘러싸여 있어 여행객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중해 서쪽은 지브롤터 해협으로 대서양과 통하고 동쪽은 수에즈 운하로 홍해·인도양과 연결된다. 북쪽은 다르다넬스·보스포루스 해협으로 흑해와 이어진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 탓에 중세 말까지 유럽 문명·교역의 중심 무대이자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 간 전쟁터였다. 오늘날에도 세계 주요 항로 중 하나로 꼽힌다.

 

언제나 낭만으로 충만할 것 같은 지중해가 요즘 '죽음의 바다'로 부각되고 있다. 분쟁과 가난을 피해 조국을 떠나는 아프리카 난민들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자유를 찾아 배를 타고 지중해로 나선 보트피플이 수십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1960~1970년대 패망한 베트남을 탈출하려는 난민을 보는 듯하다. 지난해에만 17만명이 유럽행을 택했고 도중에 3,000명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리비아가 무정부 상태에 빠져들면서 지중해 난민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올 들어 이미 1,500명 이상이 수장됐다.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위험한 도박에 나서는 이들이 지금도 줄을 서 있다. 리비아에서만 100만여명이 새로운 삶을 찾아 유럽행 배를 구하고 있을 정도다.

다행히 유럽연합(EU) 외무·내무장관들이 지난 20일 특별회의를 가진 데 이어 긴급 정상회의를 열어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오는 5월 중 종합적인 난민대책을 발표한다니 기대해봄 직하다. 구조활동 강화, 유럽 재정착 돕기 프로젝트 등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진다. 난민을 사지로 몰아넣는 위정자와 밀수조직은 용서할 수 없더라도 더 이상의 참사는 국제사회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 성완종 리스트 수사

 

[중앙일보 사설-20150422수] 성완종 리스트 수사, 정권 실세 봐주기 안 된다

 

이완구 총리의 사의 표명으로 검찰 특별수사팀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게 됐다. 검찰의 입장에선 현직 총리에 대한 수사가 만만치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검찰은 “2013년 4월 4일 충남 부여-청양 지역에 출마했던 이 총리의 캠프를 직접 찾아 3000만원을 전달했다”는 고(故) 성완종 회장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언론 보도가 수사 상황을 앞서가면서 수사팀의 고심도 깊어지던 차였다. 수사 방법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도 불거질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이 총리가 퇴진을 결심하면서 수사의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검찰은 어제 성 전 회장의 측근이었던 전직 경남기업 임원을 소환 조사한 데 이어 추가 압수수색을 벌였다. 문무일 수사팀장은 “객관적인 자료를 신속하게 최대한 수집해 집중적으로 재현하고 복원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기업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는 수사의 첫 단추를 채우는 의미라는 것이다. 문 팀장은 또 “수사 방향과 일정에 대해서는 나름의 생각이 있다. 외부의 의견과는 무관하게 우리 일정대로 가겠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발언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박2일간의 일정으로 일본에 다녀온 것에 대한 비판 여론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수사팀에 일체의 권한을 주라”며 수사팀에 힘을 실어줬던 시중의 여론이 김 전 실장의 석연치 않은 행동으로 싸늘해진 것도 사실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통해 정치권 전반의 비리 의혹에 대해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확실히 수사해 모든 것을 명백히 밝혀내 달라”고 말했다. 황교안 법무장관도 “정치권에서 오가고 있는 불법 정치자금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국민들은 이번 수사가 정치권의 낡은 관행을 깨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검찰부터 종래의 수사 관행을 깨야 한다. 현 정부 실세라는 이유로 머뭇거려선 안 된다. 통상의 수사 방법을 던져버려야 ‘수사 난항’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2수] 성완종 리스트 수사, 벌써 ‘물타기’ 예고하나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성완종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 “특정인이 특정인을 찍은 것에 국한해 수사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불법 정치자금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황 장관은 국회에서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메모에 기재된 8명을 우선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하자 이같이 말했다. 메모에 등장하는 이완구 국무총리,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허태열 전 비서실장,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홍준표 경남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부산시장 외에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 전체로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8명에 대한 소환조사도 시작되기 전에 ‘수사 확대’를 거론한 것은 일의 선후에 맞지 않고 의도 역시 의심스럽다. 벌써부터 ‘물타기’를 하겠다는 건가.

 

황 장관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과도 맥을 같이한다. 박 대통령은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뒤 “검찰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확실히 수사해 모든 것을 명백히 밝혀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이번에 총리께서 추진하는 부패청산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마시고 국민과 나라 경제를 위해 사명감으로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총리가 대국민담화를 통해 ‘부정부패 발본색원’을 다짐한 데 전폭적 지원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하지만 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던 주체가 발본색원의 대상으로 바뀌면서 대통령의 말도 함께 바뀌었다. ‘부패청산’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별안간 ‘정치개혁’이 등장했다. 정권 출범 이후 최악의 위기를 정치권 사정을 통해 돌파해보겠다는 속내가 비친다. 황 장관은 대통령 뜻을 미리 읽고 검찰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친박근혜계이든 친이명박계이든, 불법행위를 저지른 혐의가 있다면 마땅히 수사해야 한다. 다만 수사는 법과 원칙, 사실과 증거에 따라 하는 것이다. 금품을 공여했다는 증언을 확보하고도 공소시효부터 따지던 검찰이 갑자기 ‘불법 정치자금 전반’을 수사하겠다면 어느 누가 납득하겠는가.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수사가 어떠한 결말을 낳는지는 성 전 회장의 비극적 죽음이 이미 보여주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정권이 또다시 검찰 수사를 왜곡시키려 한다면 시민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특별수사팀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오직 사실을 캐겠다는 일념으로 철저하고 공정하게 수사하기 바란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2수] 속속 드러나는 성완종 커넥션 또 뭐가 남았나

‘성완종 리스트’ 의혹이 갈수록 혼미한 양상을 띠고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목숨을 끊기 전 이른바 ‘메모 리스트’에 적힌 여권 핵심 8명 중 일부 인사와 무수한 전화 착발신이 오간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특별수사팀이 최근 1년간 성 회장의 휴대전화 통화 기록을 분석한 결과 성 회장과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간의 착발신 기록은 140여 차례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의 착발신 기록도 40여회나 됐다. 이들 착발신 기록 중 실제로 연결된 횟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알려진 것으로도 ‘성완종 커넥션’의 짙은 그림자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년 동안 착발신이 140여회라면 이틀여 만에 한 번꼴로 통화를 시도한 셈이다. 절박한 말들이 오고 갔음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넉넉히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이 실장은 “전화가 왔는데 받는 게 당연하지 내가 피할 일이 있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친하지 않은 분”이라고도 했다. 이 국면에서 친하고 친하지 않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누가 봐도 그들의 관계에 합리적인 의심을 가질 만하다. 성 전 회장이 그동안 기업과 정치권력을 오가며 ‘정경유착형’ 경영 행태를 보여 온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 실장에 대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그제 사의를 표명하면서 검찰 수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검찰은 “리스트 거명자에 수사를 국한하지 않겠다”는 방침이지만 비리 커넥션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면서 수사의 향방은 더욱 가늠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성완종 게이트’는 단순한 개인 비리 사건이 아니다. 정권의 도덕성과 정당성이 걸린 총체적 부정부패 케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당 일각에서도 주장하듯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있는 이 실장이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가 현직에 있는 한 검찰의 독립된 수사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노릇이다.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이 실장은 사퇴를 심각하게 고려하기 바란다. 이 실장의 사퇴는 정권에는 부담이 될지 모르지만 역사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측면에서는 피해 갈 수 없는 일이다. 정치권 불법 정치자금 전반에 대한 검토는 성완종 리스트에 직접 연관된 이들부터 철저히 다스리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검찰은 보다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수사로 한 점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떤 성역도 없는 수사임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한다.

 

 

■ 이완구 국무총리 사의 표명

 

[한국일보 사설-20150422수] 李 사퇴, 국가기능 정상화와 본격수사 계기로

 

거짓말은 더 이상 통하기 어렵다

일방적 정치공세도 지속 불가능해

검찰은 수사력 흩뜨리지 말아야

 

이완구 국무총리가 마침내 사의를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27일 귀국하는 대로 사의를 수용, 새 총리 인선에 나설 전망이다. 국회 임명동의 과정에서 도덕성 논란을 말끔히 지우지 못했던 이 총리가 정치자금 비리 의혹으로 역대 최단기인 63일 만에 총리직을 떠나게 된 것은 많은 것을 일깨운다.

 

첫째가 정직한 정치의 중요성이다. 정치인의 어지간한 거짓말은 눈 감고 넘어가 주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작은 것까지 꼬치꼬치 따져서 납득해야만 국민이 의심을 푸는 시대다. 아울러 정보통신의 발달로 수사 당국의 확인에 앞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관련 증거와 정보를 확인해 발신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에 따른 의혹에 안이하게 대응, 이튿날이면 거짓으로 밝혀질 어정쩡한 해명에 기댔다. 그런 태도는 국민의 의심을 더욱 자극, 최종 의혹인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대한 확신만 심었다. 작은 거짓말은 큰 거짓말로 이어지게 마련이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치명적 결격 사유임을 정치권은 똑똑히 자각해야 한다.

 

둘째로, 아무리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도 일방적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삼기 힘들 정도로 국민의 정치감각이 날카로워졌다. 이 총리의 전격적 사의 표명은 여당 지도부의 자세 변화가 직접적 계기였다. 여당은 한동안 박 대통령이 귀국하는 27일 이후로 이 총리의 진퇴 문제 결정을 미루고자 했다. 그러나 야당의 해임건의안 발의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4ㆍ29 재보선에 미칠 영향에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초ㆍ재선 의원 모임인 ‘아침소리’에 이어 당 지도부도 ‘귀국 전 사의 표명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으로 기울었다. 이런 뜻이 김무성 대표와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쳐 박 대통령에 전해졌다. “흔들림 없이 국정을 챙기겠다”던 이 총리가 20일 오후 5시에 총리공관으로 퇴근하는 순간 사퇴는 확정된 셈이다.

 

여당의 변화는 여론의 요구 때문이다. 이 총리가 자진사퇴 요구를 거부하자 잠시 박 대통령의 결단에 기대를 걸었던 여론은 박 대통령 출국 이후 ‘즉각적 사의 표명’요구로 방향을 틀었다. 해임건의안을 발의해 이 문제를 4ㆍ29 직전까지 끌고 나가려는 야당의 심산에 비추어 4월 임시국회가 부실을 털고 정상화할 가능성이 희박했다. 정치자금 비리 규명과는 동떨어진 정치공방을 더 이상 이어가기보다 비리 수사는 검찰에 맡기고 국회는 민생현안 심의 등 본래의 역할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여론이 무성해졌다. 이는 여당의 정치적 손익 계산에도 들어맞았다.

 

이런 여론에 비추어 앞으로 정치권과 검찰의 할 일 또한 자명하다. 우선 청와대는 총리 인선을 둘러싼 혼선이 재연하지 않도록 치밀한 자체 검증을 거친 신중한 인선에 나서야 한다. 책임총리에 대한 국민 기대가 식은 만큼 높은 도덕성과 덕망을 핵심 잣대로 삼되, 정파와 인맥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정치권은 비리 의혹의 규명은 검찰에 맡기고, 즉각 정책 공방과 민생법안 심의로 되돌아가야 한다. 검찰도 이미 비리 의혹이 짙어진 이 총리와 홍준표 경남 지사에 대한 압축적 수사에 우선 집중해야지, 법률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성 전 경남기업 회장의 ‘특별사면 문제’등으로 함부로 수사력을 흩뜨려서는 안 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2수] 이완구 사퇴, 진실규명의 시작일 뿐

 

이완구 국무총리가 20일 밤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의를 전했다. 박 대통령은 해외순방에서 귀국하는 대로 사표를 수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식물 총리’의 볼썽사나운 처신을 둘러싸고 나라가 시끄러웠는데 늦었지만 다행이다. 그러나 이 총리 사퇴로 문제가 끝난 건 아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리스트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제야 막이 올랐다. 이 총리 사의는 진실 규명을 위한 시작일 뿐이다.

 

이완구 총리의 진퇴 문제가 이처럼 확대되면서 국정의 걸림돌로 작용한 데엔 이 총리 개인의 처신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된 대응 탓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떠나기 전에 이 총리를 경질했어야 했다. 출국 당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이 총리 거취를 논의하고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은 박 대통령의 어정쩡한 선택이 국정 혼선과 갈등을 가중시켰던 셈이다. 민심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순응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청와대와 여권이 깨달았길 바란다.

 

이 총리의 사의 표명으로 검찰 행보는 한결 가벼워졌다. 대통령이 없는 상태에서 국무총리를 수사해야 하는 어려움이나, 사상 처음으로 현직 총리를 소환조사해야 하는 부담이 사라졌다. 이젠 검찰 스스로 말했듯이 “수사 논리와 원칙에 따라” 좌고우면하지 말고 철저하게 수사하면 된다. 청와대나 정치권 눈치를 보거나 압력에 휘둘리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청와대와 법무부가 수사 방향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많은 국민의 우려를 검찰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박 대통령은 이 총리 사의 표명 보고를 받고 “검찰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확실히 수사해 모든 것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서 “(리스트에 오른) 8명이 출발점이지만 불법 정치자금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보수언론들은 이를 ‘여야 구별 없는 고강도 사정’을 예고한 걸로 해석한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좀더 노골적으로 “야당 대선자금도 수사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따져보면 ‘여야 가리지 않는 수사’를 지금 얘기하는 것은 옥석을 제대로 가리기보다 물타기를 하자는 것과 같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한 기업인이 정권 실세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지만 배신당했다고 느끼자 그 사실을 폭로하고 자살한 것이다. 성 전 회장이 자살하기 전 거의 매일 만났던 진경 스님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성 전 회장이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을 자기가 낸 경비로 치렀다고 했다. … 2012년 대선 때도 돈과 몸, 조직까지 다 바쳐 당선시켰는데 이럴 수 있느냐고 성토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성 전 회장은 이완구, 홍준표, 김기춘 등 8명의 리스트를 작성했고, 죽기 직전 좀더 자세한 내용을 언론사에 털어놨다. 그의 말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검찰 수사는 우선 이 리스트에 오른 8명에 집중해야 옳다.

 

물론 수사 과정에서 새로운 혐의가 포착되면 당연히 수사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하면 될 일이지 벌써 “여야 모두가 수사 대상”이라는 식으로 미리 떠들 필요가 없다. 검찰은 누구의 지침에 따른다는 인상을 주는 수사를 해선 절대 안 된다. 8명이 아니라 80명을 수사한다 해도 국민이 고개를 저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2수] 이완구 총리 사의… 엄정한 수사만 남았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성완종 리스트’ 파문 논란으로 결국 사퇴했다. 중남미를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도 “매우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며 사의를 받아들였다. 오는 27일 박 대통령 귀국 즉시 사표가 수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는 취임 63일 만에 물러나게 돼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됐다. 이 총리는 사태 초기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써 가면서 배수진을 쳤지만, 결국 싸늘해진 민심을 이기지 못했다.

 

이 총리의 사퇴는 자업자득의 성격이 강하다. 현직 총리가 부패 스캔들의 한가운데 놓인 것 자체가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인 데다 그의 잦은 말 바꾸기로 거짓말 논란에 휩싸여 스스로 국민적 신뢰를 잃었다. 이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된 직후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지난 1년간 23번이나 만나고 두 사람의 휴대전화에 217차례의 착·발신 기록이 남을 정도로 빈번한 교류가 이뤄진 것이 확인됐다. 성 전 회장이 ‘비타 500’ 박스에 3000만원의 현금을 전달했다는 의혹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하다가 이 총리의 운전기사가 “두 사람이 그날 단독 회동을 했다”는 증언을 하면서 백기 투항을 한 것이다.

 

이 총리의 사퇴 과정은 도덕성과 정직성이 결여된 공직자에 대해 국민이 어떤 심판을 내리는지를 똑똑하게 보여 준 사례다. “대통령 귀국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설득하던 여당도 등을 돌릴 정도로 민심 이반이 심했다. 이 총리의 사퇴로 현 정권의 인사 난맥상이 다시 한번 재연된 점도 반드시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수첩 인사로 표현되는 좁은 인재 풀 가동과 청와대의 부실한 사전 검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시각이다. 대통령 외유 중에 총리 사퇴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 국정 공백의 우려도 크다. 후임자를 물색하고 국회 인사청문회까지 거치면 아무리 빨라야 5월 말에나 새로운 총리가 업무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총리가 자진 사퇴 결단을 내림으로써 국정 정상화를 앞당기는 계기도 될 수 있다. 두 명의 부총리를 중심으로 청와대 및 당 지도부와 협력하고 야권과도 소통에 나선다면 국정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자원외교 비리 조사나 노동시장 구조 개편, 공무원연금 개혁 등 중대한 국정 사안에 차질이 빚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성완종 리스트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의 책임 또한 막중하다. 박 대통령도 “검찰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확실히 수사해 모든 것을 명백히 밝혀내 주기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 국무총리 소환이라는 부담을 던 만큼 초대형 권력비리의 진실 규명은 이제부터 시작으로 볼 수 있다. 국민은 엄정하고 빠른 수사로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검찰이 아무런 제약 없이 수사에 임하게 될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 총리의 사의 표명 역시 청와대와의 교감에 따라 이뤄진 만큼 이 총리에 대한 수사 역시 하문(下問) 수사로 전락할 개연성은 남아 있다. 이번 기회에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한민국 검찰로서 당당하게 거듭나려면 그야말로 어느 누구에게도 성역이 없는 수사가 돼야 한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사설

 

[경향신문 사설-20150422수] ‘이완구 사태’에 박 대통령은 책임감 못 느끼나

‘성완종 리스트’ 의혹의 중심에 있던 이완구 국무총리가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중남미를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사의를 수용하고 27일 귀국하는 대로 처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총리의 거취를 둘러싼 정국의 혼란은 일단 정리될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국정의 표류는 피할 수 없게 됐다. 당장에 대통령의 국내 부재중에 대통령 역할을 대행하는 이 총리가 물러나면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총리 대행으로 어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모두가 총리의 사퇴 문제를 매듭짓지 않은 채 출국한 대통령의 안일한 대응이 자초한 결과다. 공무원연금 개혁 등 각종 개혁을 추진해야 할 상황에서 장기간 ‘총리 공백’ 사태로 국정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 총리의 사퇴는 사필귀정이다. 이 총리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의혹으로 ‘수사 대상 1호’가 된 순간부터 정상적으로 총리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거듭된 말 바꾸기와 거짓말로 일관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검찰 수사 결과 지난 1년 동안 이 총리와 성 전 회장 사이에 휴대전화 착·발신이 217차례나 있었던 사실이 밝혀지고, 이 총리가 증거인멸 시도까지 벌인 게 드러나자 여당조차 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이 총리의 사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현직 총리를 수사하는 걸림돌이 제거된 만큼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성역을 두지 않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3명의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한 데 이어 이 총리도 ‘역대 최단명 총리’라는 오명을 남기고 사퇴했다. “총리 하나 제대로 내세우지 못하는 정부”라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 응당 인사권자인 박 대통령에게 최종 책임이 있다. 한데 박 대통령은 이 총리의 사의 표명 보고를 받은 뒤 “매우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고 했다. 여전히 남 일 얘기하듯 안타까움이나 피력하는 태도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부정부패에 연루된 총리의 사의에 ‘고뇌’ 운운하는 박 대통령에게서 일말의 책임감이나 반성도 찾아볼 수 없다. 전·현직 비서실장을 비롯해 자신의 주변 인물들이 대거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나라를 소용돌이치게 한 것만으로도 먼저 국민에게 송구스러워하며 고개를 숙여야 마땅하다. 비리 의혹으로 총리가 재임 2개월여 만에 사퇴하고, 이로 인한 국정 난맥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허탈과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통령이 먼저 살펴야 할 것은 피의자 신분이 된 총리의 심기가 아니라 이 난국을 걱정하는 국민들의 심정이다.

 

 

■ 후임 총리는 누구?

 

[중앙일보 사설-20150422수] 후임 총리, 내편 네편 따지지 말고 최선의 인물 찾아야

 

어제 열린 국무회의에선 행정부 내 서열 3위인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사회봉을 잡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남미 순방으로 자리를 비운 데다 사퇴 압박을 받아 오던 이완구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하는 바람에 어수선한 정부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어제 두 번째 방문지인 페루에서 “이 일로 국정이 흔들리지 않고 국론분열과 경제살리기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내각과 비서실은 철저히 업무에 임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국정 수행이 차질 없게 이뤄지려면 신속한 후임 총리 지명으로 공백과 누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박 대통령의 귀국(27일) 이전이라도 후임자를 발표한다는 각오로 인선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고 경제살리기와 공무원 연금 개혁·노동 개혁을 추진할 동력을 이어갈 수 있다.

 

  문제는 누구를 시키느냐에 달렸다. 후임 총리 인선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덕목은 도덕성이다. 따지고 보면 이 총리가 사건 발생 12일 만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느냐는 실체적·법리적 문제보다는 정직성의 결여가 결정타였다. 이 총리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드러날 거짓말을 밥먹듯 하다가 국민의 신뢰를 송두리째 잃었다. 이를 지적하는 의원 질의에 “충청도 말투가 원래 그렇다”는 상식 이하의 변명을 늘어놓아 총리로서의 품격과 권위도 지키지 못했다.

 

  높은 도덕성과 함께 요구되는 자질은 개혁성이다.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를 뒤흔든 ‘성완종 리스트’ 스캔들은 더 이상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적폐가 쌓여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대의 흐름과 민심의 변화를 읽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인물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과거를 따지지 말고 진영을 무시하는 새로운 인사의 기준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인사가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국민이 원하는 인물을 찾아서 과감하게 기용해야 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야당에도 총리후보자 천거를 요청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여야 합의의 정치를 하자”고 했고 새정치민주연합도 여기에 호응하지 않았는가. ‘수첩’을 덮고 야당도 인정할 만한 인재를 구한다면 도덕성과 개혁성을 갖춘 인물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일각에선 후임 총리 인선을 놓고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친박계 현역 의원들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다. 이는 “우리끼리 뭉쳐서 잘해보겠다”는 식의, 절대로 해선 안 될 인사다. 다시 한번 패가망신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다. 진영을 초월해 최선의 인물을 기용하고, 상당한 권한을 준다면 박근혜 정부가 위기를 돌파하고,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도 원활해질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실패할 여유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마음을 비우고 후임 총리 인선에 임해 주기 바란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2수] 후임총리 인선 서둘러 국정공백 최소화해야

 

'성완종 리스트' 의혹으로 여론과 정치권 등으로부터 전방위적 퇴진 압박을 받아온 이완구 국무총리가 20일 자정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중남미 4개국을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 총리의 사의 표명에 대해 "국론분열과 경제 살리기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내각과 비서실은 철저히 업무에 임해주기 바란다"며 현지에서 사실상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 총리 낙마의 직접적 원인인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의 2013년 4월 재보선 당시 금품 수수 여부는 추후 검찰 수사에서 밝혀지겠지만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국정 2인자인 총리직 부재에 따른 국정표류다. 당장 21일 국무회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렸으나 모두발언, 부처별 현안 보고 등 통상적인 절차를 생략한 채 20분 만에 끝났다. 박 대통령이 27일 귀국한 뒤 후임 총리 인선을 서둘러도 국회 인사청문회 등 일정을 고려하면 최소 한 달 가까운 국정공백이 불가피해지는 셈이다. 박 대통령이 집권 이후 보여준 지나치게 신중한 인사 스타일을 감안한다면 이 기간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 초대 총리로 지명된 김용준 후보자의 사퇴와 지난해 세월호 사고 이후 빚어진 안대희·문창극 후보의 연쇄 낙마까지 고려하면 후임 총리 인선에 대한 박 대통령의 고민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 살리기기에 국정 동력을 집중해야 할 현시점에서는 차기 총리에 대한 심사숙고 못지않게 인사의 속도 또한 중요하다.

 

후임 총리는 경제 살리기를 위한 공무원연금 개혁 등 4대 구조개혁을 마무리해야 하며 이 총리가 꺼내놓은 '부패와의 전면전'까지 완수해야 하는 이중삼중의 책무를 안고 있다. 개혁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도덕성에 문제가 없어야 하며 부패에서도 자유로워야 함을 이 전 총리의 사례가 '반면교사'처럼 가르쳐주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깨끗한 정치를 위한 개혁도 가속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2수] 오죽하면 정홍원 전총리 출국금지설 농담까지 나오겠나

 

이완구 국무총리가 결국 사의를 밝혔다. 중남미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도 반나절만에 사의를 받아들였다. 현직 총리로서 검찰에 소환당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성완종 뇌물 파문에 관련돼 있는 건지는 차차 밝혀질 일이다. 총리 한 명 뽑기가 이리 어렵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도 이렇게 힘들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이 허탈할 뿐이다.

 

이 총리 사퇴로 인한 국정공백을 우려하는 보도가 많지만 이 정부 들어 국정공백은 오히려 총리를 선임하는 과정 자체가 초래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정홍원 전 총리를 빼고는 김용준, 안대희, 문창극 후보자 등 세 사람이 모두 낙마했다. 특히 문창극 후보자는 KBS가 그의 강연 동영상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왜곡 보도함으로써 억울하게 희생된 사례다. 그 과정에서 그는 청문회까지 가겠다며 의지를 보였지만 오히려 청와대가 머뭇거리자 스스로 사퇴하고 말았다. 그래서 청문회 통과가 쉬운 현직 의원 카드로 선택된 사람이 이 총리다. 우여곡절 끝에 임명됐던 그도 결국 63일 만에 물러나게 된 것이다. 이 정부 들어 반복된 총리 인준 파문과 정치공방, 그리고 이 총리 사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국민은 크게 실망했다. 오죽하면 정홍원 전 총리를 일단 출국금지시켜 놓고 다시 총리 자리를 맡겨야 한다는 농담까지 나돌고 있을까.

 

능력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더 큰 문제는 인사청문회에 있다. 새파란 정치 초년생들이 고함을 지르고, 그 자신 전과자인 의원들까지 나서서 멀쩡한 사람을 난도질하는 풍토에서 누가 총리, 장관을 하겠다고 나오겠는가. 애국심에 호소해 맡아달라기에는 다운계약서, 위장전입, 논문표절, 부동산 투기 등 ‘과거의 관행’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적은 것도 현실이다. 이래저래 대한민국은 인재난이다.

 

대통령제의 장점이 능력 있는 인사를 골라 쓸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장점이 인사청문회 때문에 전혀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또 홍역을 치러가며 국무총리를 다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라가 정말 걱정된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422수] 검찰ㆍ국회, 자원외교 비리규명도 고삐 조여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과 뒤이은 금품수수 파문으로 자원외교 비리 수사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중요 피의자의 죽음으로 연결고리가 사라지면서 검찰 수사가 난관에 부닥쳤다. 돌연 불거진 정권 실세들에 대한 비리 폭로 규명이 검찰로서는 더 화급한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국민과 정치권의 관심도 온통 정치 스캔들에 쏠려있는 판국이다. 더불어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을 위한 자원외교 국정조사 특위도 개점휴업 상태다. 자칫 자원외교 전반에 걸친 비리 의혹 규명이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만하다.

 

돌이켜보면 정부의 부정부패 사정의 핵심은 자원외교 비리 수사였다. 그러나 성 전 회장의 자살이라는 돌발변수로 암초를 만났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방식과 정권의 정략적 의도를 둘러싼 논란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했다. 하지만 이런 부작용과 흠결에도 불구하고 자원외교 비리 수사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부정부패의 암 덩어리’다. 감사원이 이달 초 밝힌 자원외교 감사결과는 그 이유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의 간판 사업인 자원외교 사업에 공기업들이 이미 투자했거나 앞으로 더 투자해야 하는 돈을 합치면 모두 66조원에 육박한다. 이 돈을 회수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국가 재정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경위와 정책결정권자들의 책임을 낱낱이 따져 물어야 마땅하다.

 

경남기업 비리는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 비리 전체를 놓고 볼 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성 전 회장이 없더라도 진상을 파헤칠 수 있는 길은 여러 갈래다. 에너지 공기업들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는 수사의 기초자료로 삼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수사당국의 의지다. 현재‘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특별수사팀이, 자원외교 비리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서 맡고 있다. 따라서 자원외교 수사팀은 어떤 정치적 소용돌이에도 흔들리지 않고 수사에 매진해야 한다. 오로지 비리를 뿌리뽑겠다는 일념으로 임해야 한다.

 

국회 자원외교 국조 특위의 공전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본격 활동을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데 이어 청문회에 설 증인 채택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를 핑계로 국회에 주어진 최소한의 역할을 방기하는 셈이다. 그나마 내달 2일까지로 기한까지 연장했음에도 빈손으로 활동을 마친 공산이 크다. 해외자원개발 투자부실은 재발 방지 차원에서라도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한 푼이 아쉬운 국가 재정을 물쓰듯 하는 행태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검찰과 국회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2수] ‘노동자는 노예’라는 노동 공무원의 인식

 

부당노동행위를 감시하는 근로감독관의 입에서 노동자를 노예에 빗댄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튀어나왔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소속 한 근로감독관은 밀린 임금을 해결해달라며 찾아온 경남 김해지역 인터넷 설치기사 8명에게 “사실은 요새 노예란 말이 없어 그렇지 노예적 성질이 근로자성에 다분히 있어요”라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감독관은 특히 “현재의 노동법도 옛날 노예의 어떤 부분을 개선했을 뿐이지, 사실 이게 돈 주고 사는 거야”라며 노동법을 그 근거인 양 들먹이기도 했다.

 

근로감독관이란 근로기준법 및 기타 노동관계법령에 따라 사업현장의 노동행위를 감독하고, 법을 위반한 사업주에 대해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담당하는 국가공무원이다. 이런 엄중한 책무를 맡은 공무원이 억울한 사정에 처한 노동자들의 호소를 묵살하고 모욕적인 언행을 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번 사건은 결코 개인의 ‘일탈행위’라고 가벼이 보아넘길 일이 아니다.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정부의 삐뚤어진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노사정 대타협 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노동계에만 덮어씌우려는 정부의 최근 행태에서 이런 의심이 굳어진다. 이달 초 노사정 대타협이 무산된 뒤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편 논의를 재개하기 위한 새 틀을 짜려는 노력보다는 ‘쉬운 해고’ 쪽에 초점을 맞추고 밀어붙이기식 독자 행보에만 매달리고 있다.

 

특히 예산권을 쥔 기획재정부가 노사정 대타협 실패를 핑계로 국공립 보육시설을 30%로 확대하는 기존 합의사항마저 느닷없이 뒤집는 건, 애초 노사정 대화에 나선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정부가 ‘해고 및 취업규칙 요건 가이드라인’에 막판까지 집착한 것도 주무부서인 고용노동부보다는 기재부의 입김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정부는 처음부터 노사관계의 무게중심을 사쪽으로 쏠리도록 하는 데만 관심을 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잠재우지 못하는 한 노사정 대타협은 요원하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2수] 北, 개성공단 임금으로 남남갈등 유발 말라

 

정부의 자제 지침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 입주 기업 3곳이 3월분 임금지급 시한인 지난 20일 북한에 임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앞서 북한은 일방적으로 개성공단 최저임금을 기존의 70.35달러에서 74달러로 인상한 뒤 우리 기업들에 인상된 임금을 지급하라고 통보했으며, 우리 측이 수용할 수 없다고 하자 “그럼 일단 기존 기준대로 임금을 지급하되 차액분에 대해서는 연체료 지불을 약속하는 담보서를 제출하라”고 다그쳤다. 입주 기업 3곳은 북한 측 요구대로 담보서를 제출하고 임금을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담보서 제출은 물론 임금 지급도 당분간 자제해 달라는 정부 지침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다. 정부는 해당 기업들을 상대로 행정적·법적 조치를 취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들이 처한 상황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개별 기업들의 경영적 판단을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해당 기업들은 북한 측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을 경우 닥칠 수 있는 경영위기를 우려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북한이 이 같은 기업들의 현실을 악용해 우리 기업들과 정부 간의 갈등을 유발할 목적으로 임금 인상 문제를 제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떨쳐 낼 수 없다. 실제 일부 기업들이 정부 지침을 어겼고, 정부는 해당 기업들을 제재할 움직임이어서 개성공단 임금을 둘러싼 ‘남남갈등’은 현실화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부 기업들의 지침 이탈은 북한의 의도에 휘말렸다고도 볼 수 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인 임금은 적절하게 책정돼 근로자들에게 제대로 지급돼야 한다. 생산성이 높은 기업은 많은 임금을 지급하고, 낮은 기업은 그에 합당하게 지급되는 것이 정답이다. 처해 있는 상황 등이 다른 기업들이 일률적으로 똑같은 임금을 지급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성공단 상황은 어떤가. 북한은 이번에 일방적으로 최저임금 기준을 인상하고, 그대로 따를 것을 통보했다. 인프라를 깔고, 전기와 용수 등을 공급해 개성공단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당국과는 일언반구 협의도 없었다.

 

개성공단은 현재의 단절된 남북 관계 속에서 한 가닥 남아 있는 남북 간 소통의 핫라인이다. 북한이 진정 남북 관계의 진전을 원한다면 개성공단 임금 문제로 남남갈등을 유발해선 안 된다. 이제라도 북한은 진정성 있게 개성공단 임금 인상과 관련한 협의의 장에 나서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2수] 일본경제의 부활, 한국만 모르고 있지는 않은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일본 경기회복과 물가상승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미국을 방문 중인 그는 “저물가 극복을 위해 일본 경제는 꾸준히 전진하고 있다”며 “자산매입 정책 덕분에 인플레가 목표치인 2%에 도달할 것이라는 인식이 일본 내에서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유가가 완만한 상승세를 보인다면 내년 초까지 목표를 달성할 것이란 자신감이 있다”며 “그 결과 시장금리가 올라가기 시작한다면 금융시장은 놀라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가 자신감을 보인 것은 아베노믹스 3년째를 맞아 곳곳에서 경제부활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상장기업의 2014회계연도 경상이익 증가율은 3%로 과거 최고치였던 2008년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실적 호조로 도요타 파나소닉 등 대표 기업들이 잇달아 임금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2월 가계지출은 전월비 0.8% 증가세로 돌아섰고 2월 무역적자는 1431억엔으로 20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닛케이225지수는 이달 초 15년 만에 장중 20,00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미국의 올해 성장전망치를 3.1%로 떨어뜨린 IMF가 일본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당초보다 0.4%포인트 높은 1%로 상향조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본 경제 동향이 한국에 매우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여전히 3대 교역국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세계가 일본 경제 부활에 주목해도 유독 한국만 큰 관심이 없다. 과거사 문제 등 민감한 정치적 이슈들이 가로막고 있는 탓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양국 경제교류는 축소일로다. 올 1분기 한·일 간 교역액은 184억4700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3.9% 줄었다. 연간 교역액도 2011년 1080억달러를 기록한 뒤 3년 연속 감소했다. 환율 영향 등도 있지만 관계 악화가 중국 등지로 수출입 다변화를 더 부추긴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반면 미·일 간에는 밀월이 지속되고 있다. 아베 총리의 미 상·하원 합동연설도 그렇고 양국 주도로 조만간 타결될 TPP 협상도 마찬가지다. 세계가 일본의 부활과 복권을 이야기하는데 혹시 한국만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2수] KTX 효과 보는 광주…길이 뚫리면 경제도 산다

 

광주광역시의 부동산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호남선 KTX 개통에 따른 투자수요가 가세하면서 아파트 매매·전세가 상승률이 올 들어 전국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올해 광주에서 공급된 5개 아파트 모두 1순위 마감에 웃돈까지 붙었다고 할 정도다. 1시간30여분 만에 서울까지 갈 수 있는 KTX로 수도권 투자자들까지 광주 부동산에 관심을 갖게 됐다.

 

KTX가 광주에 몰고온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지역경제 전반에 상당한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올해로 11년째를 맞은 KTX가 전국 곳곳에 관광 등 새로운 발전 기회를 가져온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KTX가 수도권으로의 부의 유출을 가속화한다며 여전히 부정적 시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른바 ‘빨대 효과’를 들먹이며 수도권으로의 당일쇼핑 등으로 지역상권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다. 하지만 새로운 길이 뚫리고 인적·물적 교류가 잦아지면서 지역 경제가 쇠퇴한 경우는 없었다.

 

경부고속도로만 해도 그렇다. 당시 쌀이 모자라는데 농지에 고속도로를 깐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모두들 반대했다. 김대중 씨 등 내로라하는 야당 정치인은 물론이고 지식인, 언론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고속도로는 한국 경제의 모든 걸 실어나르며 고속성장을 가져왔다. 고속도로를 따라 들어선 중화학공업, 산업단지는 한국 경제 지도를 확 바꿔놓았다. 그러자 당시 고속도로 반대론자들은 말을 바꿔 다른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고속도로에서 제외된 지역의 낙후를 문제삼으며 지역차별론을 들고나온 것이다.

 

자유무역이 국가경제를 키우듯이 국내에서도 지역 간 인적·물적 교류가 자유로울 때 지역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 지금은 KTX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이 KTX로 반나절 생활권이 된 마당이다. 수도권·지방 타령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오히려 그럴 시간에 각 지역이 어떻게 하면 KTX를 발판으로 전국을, 세계를 자신의 무대로 삼을지 그걸 연구해야 하지 않겠나.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2수] '가구 공룡' 공세도 버텨낸 한샘 해법 눈에 띈다

 

지난해 말 세계 최대 가구업체인 이케아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다고 하자 국내 가구업계는 온통 망하게 됐다며 아우성을 쳤다. 이케아가 진출하는 나라마다 토종업체를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걱정이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딴판이었다. 국내 1위 가구업체인 한샘은 오히려 1·4분기에 사상 최대의 매출과 순이익을 달성하는 성과를 올렸다. 증권가에서는 한샘의 성장성과 시장지배력이 뛰어나다며 앞다퉈 목표주가를 높이는 등 호평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샘은 남들처럼 걱정만 늘어놓기보다 10년 전부터 이케아 침공에 대비해 철저한 준비를 해왔다. 이케아의 저렴한 가격에 맞서기 위해 생산라인을 뜯어고쳐 이케아와 같거나 더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만들고 해외 납품업체를 발굴하는 등 원가 경쟁력을 꾸준히 높여왔다. 전국에 대형매장을 개설하고 생활용품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는 등 수익 다변화에도 주력했다. 한샘의 이 같은 혁신활동은 가구업계 전반의 경쟁력 향상과 패러다임 변화까지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외국사의 진출이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역설적인 현상이 빚어진 셈이다.

한샘의 해법은 기득권에 사로잡혀 개방이라면 손사래를 치는 다른 내수업계에도 일침을 놓고 있다.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의료와 금융 등 서비스 산업 개방을 추진하고 있지만 관련업계의 반발에 부딪혀 십수년째 걸음마도 못 떼고 있다. 당장 제주 경제자유구역에 투자개방형 외국병원을 허용한다고 하자 의료계는 파업까지 불사하겠다고 나서는 판국이다. 국내에서 관련법조차 마련되지 못한 원격의료 기술은 중남미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우물 안 개구리는 설 땅이 없다. 개방과 경쟁을 통해 서비스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여야만 양질의 서비스가 가능해지고 새로운 성장의 활력도 만들어질 수 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2수] 정부 정책에도 역행하는 은행의 체크카드 홀대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 이용 고객을 홀대하는 시중은행의 관행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21일자 서울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주택담보대출 때 신용카드 이용자에게는 0.3%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주는 반면 체크카드 이용자에게는 0.1%포인트만 제공해 차이가 0.2%포인트에 달한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역시 0.1%포인트나 차이가 있다. 신용대출에서도 차별 관행은 여전하다. 이들 은행은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이용자에 대한 우대금리에 같은 차이를 두고 있다. 우리은행은 예금상품에도 차이를 둬 '행복나눔적금'의 경우 신용카드 이용자에게만 0.3%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준다.

 

이들이 체크카드 이용자를 홀대하는 것은 수익성 때문이다. 신용카드는 이용자가 쓸 때마다 꼬박꼬박 결제금액의 2%를 가맹점 수수료로 받지만 체크카드는 수수료가 절반에 불과하다. 체크카드는 연회비도 받지 못하고 무엇보다 짭짤한 카드론 수익을 챙길 수 없다. 문제는 눈앞의 이익만 중시하는 은행의 이 같은 행동이 고객을 빚에 둔감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0.1%의 금리차에 수십만원이 왔다 갔다 하니 신용카드를 만들지 않을 고객이 어디 있겠는가. 고객은 은행에 돈을 넣어놓고 있는 만큼만 체크카드로 쓰고 싶어도 은행이 자꾸 신용카드를 쓰라고 부추기니 결국 빚을 조장하는 셈이다.

 

가계빚은 어느덧 1,000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정부는 그동안 가계빚이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될 것을 우려해 신용카드 사용을 줄이고자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낮추고 체크카드 공제율은 높이는 등 가계빚 축소 노력을 기울여왔다. 은행의 상술은 이런 정부 정책방향과도 크게 어긋난다. 정부는 그동안 "체크카드와 신용카드 서비스를 차별하면 카드업 인가를 거둬들이겠다"며 국민에게 개선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도 금융업계는 소비자 혜택이나 정부 정책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계산법에만 빠져 있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 지중해 난민 참사

 

[한겨레신문 칼럼-유레카/김지석(논설위원)-20150422수] 우리의 바다

 

‘마레 노스트룸’이라는 보드게임이 있다. 라틴어로 ‘우리의 바다’라는 뜻이다. 게임의 주인공은 로마, 카르타고, 그리스, 이집트, 바빌로니아 등 고대 서양을 주름잡던 다섯 나라다. 이들 나라가 교역, 건설, 전쟁을 되풀이하면서 세력을 키워간다. 아르테미스 신전이나 율리우스 카이사르 등 4종류 이상의 불가사의나 영웅을 먼저 만들어내는 사람이 승리한다.

‘우 리의 바다’는 지중해다. 면적 250만㎢에 동서 길이 4000㎞에 이르는 지구촌 최대 내해다. 이 바다를 처음 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이라고 부른 이들은 로마인이다. 실제로 전성기의 로마는 지중해를 둘러싼 유럽, 아프리카 북부, 중동 서부 지역을 모두 차지했다. 당시 이들에게 대서양은 마레 이그노툼(Mare Ignotum)이었다. ‘알 수 없는 바다’라는 뜻이다.

 

지중해는 중세 내내 ‘이슬람의 바다’였다. 이슬람 세력은 유럽 쪽 육지 일부를 제외하고 지중해 주변 지역 전체를 장악했다. 결국, 유럽 나라들은 ‘우리의 바다’를 되찾지 못한 채 서쪽으로 향해 대서양 시대를 열게 된다. 20세기에 ‘마레 노스트룸’을 국가 전략으로 내건 사람은 이탈리아의 파시즘 지도자 무솔리니다. 새 로마제국을 꿈꿨던 그의 시도는 불과 몇 해 만에 무참하게 실패한다.

 

2013년 10월 아프리카의 난민을 태우고 이탈리아로 향하던 배가 지중해에서 침몰해 360여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난다. 그 직후 이탈리아는 유럽연합의 지원을 받아 해양 구조계획을 꾸린다. ‘마레 노스트룸’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부활한다. 이 계획은 상당한 성과가 있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많은 난민이 유럽행을 시도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래서 올해 초 대체된 게 저예산의 연안 경비계획인 트리톤이다. 트리톤은 로마 신화에서 넵투누스의 아들인 바다의 신 이름이다. 800명가량 숨진 18일의 난민선 참사를 보면, 지중해는 누군가의 ‘우리의 바다’가 아니라 냉담한 바다의 신이 지배하는 곳인 듯하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임석훈(논설위원)-20150422수] 지중해 보트피플

 

지중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낭만·정열이지 싶다. 풍광이 전 세계인이 한 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여행지로서 손색이 없기 때문일 게다. 연안국을 둘러보는 지중해 크루즈 여행은 그중에서도 백미다. 무엇보다 지중해는 아프리카·아시아·유럽의 3개 대륙에 둘러싸여 있어 여행객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중해 서쪽은 지브롤터 해협으로 대서양과 통하고 동쪽은 수에즈 운하로 홍해·인도양과 연결된다. 북쪽은 다르다넬스·보스포루스 해협으로 흑해와 이어진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 탓에 중세 말까지 유럽 문명·교역의 중심 무대이자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 간 전쟁터였다. 오늘날에도 세계 주요 항로 중 하나로 꼽힌다.

 

언제나 낭만으로 충만할 것 같은 지중해가 요즘 '죽음의 바다'로 부각되고 있다. 분쟁과 가난을 피해 조국을 떠나는 아프리카 난민들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자유를 찾아 배를 타고 지중해로 나선 보트피플이 수십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1960~1970년대 패망한 베트남을 탈출하려는 난민을 보는 듯하다. 지난해에만 17만명이 유럽행을 택했고 도중에 3,000명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리비아가 무정부 상태에 빠져들면서 지중해 난민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올 들어 이미 1,500명 이상이 수장됐다.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위험한 도박에 나서는 이들이 지금도 줄을 서 있다. 리비아에서만 100만여명이 새로운 삶을 찾아 유럽행 배를 구하고 있을 정도다.

다행히 유럽연합(EU) 외무·내무장관들이 지난 20일 특별회의를 가진 데 이어 긴급 정상회의를 열어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오는 5월 중 종합적인 난민대책을 발표한다니 기대해봄 직하다. 구조활동 강화, 유럽 재정착 돕기 프로젝트 등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진다. 난민을 사지로 몰아넣는 위정자와 밀수조직은 용서할 수 없더라도 더 이상의 참사는 국제사회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 그 밖의 칼럼 읽기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이영희(문화스포츠부문 기자)-20150422수] 당신 취향인 건 압니다만

 

세상이 바뀐 걸까, 내가 ‘꼰대’가 된 걸까. 잠시 고민했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가수 박진영의 노래 ‘어머님이 누구니’ 뮤직 비디오를 본 후다. 영상 속에서 남자는 헬스클럽 러닝머신에서 운동하는 여자의 몸매를 샅샅이 훑다 묻는다. “넌 허리가 몇이니?” “24요.” “힙은?” “34요.” 그리고 노래는 “허리는 너무 가는데 힙이 커 맞는 바지를 찾기 너무 힘든” 멋진 뒤태를 가진 여자에 대한 상찬으로 이어진다. 화면에는 여성의 힙이 계속 클로즈업. 보는 순간 불쾌함이 먼저였는데, 사람들은 재밌단다.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걸 주특기로 삼아온 박진영다운 노래란다.

 

  하긴 무뎌질 때도 됐다. 여자는 예뻐야 하고, 이런저런 여자가 바로 예쁜 여자라고 안내하는 예시는 널리고 널렸다. 지하철역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성형 후 얼굴 광고판을 보며 여자들이 속삭인다. “저건 너무 인공적이지 않니? 자연스럽게 고쳐야지.” TV에서는 눈에 띄는 외모가 아닌 여자들에게 “열심히 살아야 할 얼굴”이라 대놓고 놀리고, 예쁘지 않으면 무시당해 마땅하다는 내용의 코미디가 인기를 끈다. 발끈하면 ‘쿨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세상은 원래 이런 곳이야. 몰랐어? 억울하면 노력해. 박진영의 노래는 거기에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이 유별난’ 여자가 섹시하더라는 또 하나의 ‘기준’을 더한 것뿐이다.

 

  그런데 정말 다들 아무렇지 않은가. 홍대 앞을 오가는 젊은 여성들을 보며 “신기하게 요즘 20대들은 다리가 다들 예쁘더라” 한 적이 있다. 대학원생 후배가 답했다. “언니 요즘 대학생들은 얼굴 성형보다 다리 성형에 더 관심이 많아요. 얼굴보다 몸매인 시대잖아.” 한국이 인구 대비 성형수술 건수 1위라는 건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실. 여대생 5명 중의 하나는 ‘취업을 위해 성형수술을 받을 의향이 있다’고 말한다. 세상이 그것을 원하니, 그 기준에 나를 맞춰야 한다는 강박. 거식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외모 얘기는 그만 좀 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어머님이 누구니’의 가사처럼 “엄마에게 받은 타고난” 미녀가 아닌 자신을 탓할 뿐이다.

 

  웃자고 만든 노래에 정색한다 욕을 먹겠지만 말하고 싶다. 그의 취향이 “뒤에서 바라보면 미치겠는” 여자인 것은 알겠는데, TV로 라디오로까지 그걸 반복해 들어야 하는 건 불편하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녀들이 줄자로 자신의 허리와 엉덩이 사이즈를 재며 ‘24/34’가 아니라 실망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서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석종(논설위원)-20150422수] 단성사

 

1907년 서울 종로에 문을 연 단성사는 그대로 한국 영화의 역사였다. 1919년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가 이곳에서 상영됐다. 1926년에는 나운규의 <아리랑>이 개봉돼 장안을 들끓게 했다. 1935년에는 한국 최초의 발성영화인 <춘향전>이 상영됐다. 영화·연극·음악·무용 발표회와 권투 등 스포츠행사도 이곳에서 열렸다. 1932년 당대 최고의 가수 이애리수가 ‘황성옛터’를 처음 부른 곳이 단성사였다. 당시 울음을 터뜨리는 관객들 때문에 일본 순사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공연을 중단시켰다고 한다.

 

광복 이후 1990년대까지는 개봉관 시대였다. 서울 종로와 을지로, 퇴계로 주변에 자리한 단성사·대한·서울·피카디리·국도·중앙·명보·스카라·국제극장이 서울 시내 10대 개봉관(1번관)으로 불렸다. 개봉관에서 상영이 끝난 영화들은 계림·화양·대지·서대문극장 등 재개봉관(2번관)으로 갔다. 변두리의 재재개봉관(3번관)에서는 한 번에 두 편의 영화를 ‘동시상영’했다.

 

당시 종로3가 단성사는 개봉관 중에서도 인기 최고였다. 외국 대작들이 주로 상영됐다. 외국 배우들의 팬 사인회도 단성사가 단골이었다. <겨울 여자>(1977년·58만5000명), <장군의 아들>(1990년·67만9000명), 그리고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서편제>(1993년) 등 화제작들도 단성사에서 개봉됐다. 당시 이 영화를 보려는 관객들이 종로4가 쪽으로 길게 줄을 섰던 기억이 난다. 암표가 정상 가격의 2~3배에 팔리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등장하면서 개봉관 시대는 끝났다. 극장 앞에 세워졌던 ‘매진사례’ 표지판, 손으로 그린 영화 간판 등도 아련한 추억이 됐다. 단성사 역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새 건물을 지어 멀티플렉스로 변신을 시도하다가 부도처리됐다. 최근 단성사 건물을 인수한 새 주인은 이곳을 영화와 관계없는 오피스 건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로써 단성사 영화관의 역사는 108년 만에 완전히 끝났다. 한국 최고(最古)의 영화관이 흔적없이 사라지는 모습이 안타깝다. 새 건물에 옛 영화관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라도 마련됐으면 한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문소영(논설위원)-20150422수] 국기 모독죄

 

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 행사에서 한 20대 젊은이가 종이 태극기를 불태우는 사진이 언론에 공개됐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태극기를 어떻게 불태울 수 있느냐”며 깜짝 놀란 사람도 있었고, ‘국가 모독죄’로 처벌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경찰은 태극기를 태운 문제의 20대 남성을 검거하고자 신원 파악에 나섰다. 이날 추모 행사 참가자들도 이 청년을 찾는데, 돌발적인 태극기 소각 탓에 세월호 추모 행사가 과격·폭력·불법시위로 낙인찍히는 만큼 혹여 프락치가 아니냐는 의심을 한다. 조만간 이 청년이 누구인지 밝혀질 것이다. 형법 제105조는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를 ‘국기 모독죄’로 처벌하는 조항이다. 그러니 그 청년은 실정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국가 모독죄’라는 것도 한때 있었다. 1975년 신설될 때부터 논란이 된 형법 104조의2인데 6·10 민주화 운동 이후 1988년 12월 31일 삭제됐다. 1979년 9월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뉴욕타임스 인터뷰를 두고 당시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이 국가 모독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전형적인 ‘야당 탄압용’이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국기를 태운 죄에 대해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며 무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레고리 존슨은 1984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공화당 전당대회장 앞에서 성조기를 불태웠다. 존슨은 국제청년당 당원으로, 레이건 정부의 외교정책에 항의를 표시한 것이다. 텍사스 주법 성조기 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그는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1989년 6월 연방대법원은 5대4로 무죄를 선언했다. 다수의견을 낸 윌리엄 브레넌 대법원 판사는 “언론 자유의 참된 기능은 청중들로부터 불안과 불만을 야기하는 표현, 청중들을 자극하는 표현을 과감히 허용하는 것”이라며 “미국인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성조기에 대한 모욕적인 표현조차도 허용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성조기의 신성함을 지키고자 정치적 의사의 표현으로서 성조기를 소각하는 행위를 형사처벌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1989년 제정한 국기보호법은 위헌이 됐고, 이후 성조기 소각 금지 헌법수정안은 미국 상원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태극기를 소각한 청년이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현 정부를 비판할 목적’이었는지를 밝혀 법대로 처벌하기 바란다. 또한 공권력의 정당성이라는 차원에서 세월호 추모 행사에서 보여 준 경찰의 위헌성도 반드시 짚어 봐야 한다. 헌법은 국민 기본권으로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래서 전면적이고 극단적인 ‘차벽 봉쇄’를 2011년 6월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런데 경찰은 16일과 18일 차량 470여대를 동원해 ‘레고랜드’ 같은 거대한 차벽을 세웠다. 헌정주의를 무시하는 경찰도 법대로 처벌받아야 하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422수] 중림동 사람들

 

조선시대 정승을 지낸 김재찬이 어느 날 식음을 전폐하고 끙끙댔다. 어머니 윤씨가 이유를 묻자 청나라가 은 5000냥을 보내라는데 마련할 길이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윤씨는 약현(藥峴)의 옛집으로 그를 데려가 부엌 바닥을 파 보라고 했다. 그 속에서 은이 가득 든 독 세 개가 나왔다. 윤씨는 옛날 집을 수리하다 은독이 나오자 뜻하지 않은 횡재는 이롭지 못하다며 다시 묻어두었다고 말했다. 그 은으로 근심을 덜자 왕은 윤씨를 ‘정승부인’이 아니라 ‘부인정승’으로 예우했다.

 

이 얘기에 나오는 약현이 서울 중림동이다. 김재찬의 아버지 김욱도 영의정을 지냈기에 부자(父子)정승 마을로 불렸다. ‘용재총화’의 저자이자 성종 때 대제학을 지낸 성현도 이곳에 살았다. 그의 호를 딴 ‘허백당’터가 남아 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도 여기에 살았다. 약현성당 앞에 그의 기념비가 있다.

 

중림동은 약초가게가 많아 약밭고개(약현)로 불린 약전중동(藥典中洞)과 한림동(翰林洞)의 글자를 하나씩 따 붙인 것이다. 한림동은 선조 때 명신 이정엄·정형·정겸 삼형제가 모두 글을 잘해 한림(翰林) 벼슬을 지냈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공덕동으로 넘어가는 만리재는 세종 때 부제학을 지낸 최만리가 살았던 곳이어서 그렇게 불렸다.

 

대한제국 때 이완용이 살던 집은 지금의 중림동주민센터 자리에 있었다. 1907년 고종 퇴위 때 반일단체 동우회(同友會) 회원들의 습격으로 불타버렸지만, 이 집에서 그는 10리가 넘는 삼청동의 양아버지 집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문안인사를 다녔다고 한다.

 

인근의 양정고보 자리에는 손기정공원이 있다. 손 선수가 베를린올림픽 우승 뒤 히틀러에게서 받아온 월계수 나무도 자라고 있다. 시라소니 이후 맨손싸움의 1인자로 꼽힌 조창조 등 숱한 ‘주먹신화’가 탄생한 곳도 이곳 중림동 시장이다.

 

철길 옆 서소문 공원은 천주교 성지다. 신유박해 때 정약용의 셋째형이자 이승훈의 처남인 정약종이 순교했고, 기해박해 때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 등 수많은 교인들이 참수를 당한 곳이다. 그 자리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약현성당이 있다. 한국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이 살던 집터도 성당에서 가깝다.

 

오랜 영욕의 세월만큼이나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인물들의 사연도 갖가지다. 그 숱한 이야기가 모여 지금의 역사를 이뤘다. 중림시장에는 오늘도 새벽 장꾼들이 몰려든다. 그 왁자한 시장통의 한가운데로 한국경제신문 기자들이 총총거리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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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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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

■ 지중해 난민 참사

■ 식물 총리

■ 성완종 리스트 검찰 수사

■ 4월 국회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

 

[한국일보 사설-20150421화] 과격시위, 세월호 여론 왜곡시킬 우려 크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아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열렸던 추모행사가 과격화한 시위와 경찰의 캡사이신 물대포 차벽 대응으로 난장판이 됐다. 겹겹이 쳐진 경찰의 봉쇄벽, 이에 흥분한 시위대의 경찰버스 공격과 태극기 소각 장면은 도하 언론에 대대적으로 부각됐다. 숙연하게 망자와 유족의 한을 달래는 취지의 추모행사는 또 좌우 진영 간에 저마다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이 모습을 본 대다수 국민들은 정작 세월호 대신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과 반목을 떠올리며 절망과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이날 시위로 유가족과 시민, 경찰관과 의경 다수가 부상당하고, 경찰차량 수십 대가 훼손됐으며, 경찰 장비 수백 점이 사라지거나 파손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서 연행된 100여명 중 80여명은 외부단체 소속이나 일반인으로 알려졌다. 추모행사가 폭력화한 이유에 대해 양 측의 주장은 크게 엇갈린다. 집회를 주최한 4ㆍ16 가족협의회와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측은 경찰이 차벽 설치를 예고하는 등 강경일변도의 자세로 시위대를 자극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경찰은 전문시위꾼 등 외부세력이 개입해 사태를 과격하게 몰아갔다고 반박한다. 현장을 지켜 본 시민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24일 민주노총의 총파업 결의대회를 필두로, 25일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대동 한마당, 5월1일 양대 노총의 노동자대회가 줄줄이 예고된 상황에서 경찰이 지레 과잉대비, 대응으로 유족과 시민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했을 개연성은 대단히 크다. 시위 참여 군중도 슬픔과 분노로 한껏 격앙된 상태여서 최초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가리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집회 측이 당초 집회신고 내용을 넘어 시위를 확대한 것만큼은 명백히 잘못됐다. 경찰의 책임 유무를 차치하고, 매 집회 때마다 평화집회와 시위를 끝내 폭력적으로 변질시키거나 충동질하는 일부 세력의 존재는 분명하게 목격된다.

 

지난해 보수를 자처하는 일부가 단식하는 유족의 면전에서 음식을 먹으며 조롱하는 짐승 같은 짓으로 국민의 공분을 산 바 있다. 과격 폭력시위는 유족의 주장과 입장의 정당성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고, 유족의 아픔을 십분 이해해온 선량한 시민들의 공감을 훼손하는 점에서 해악은 크게 다를 것 없다. 이미 주말 이후 세월호 피로감을 대놓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건 크게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거듭 말하지만 세월호는 결코 잊혀져서도, 최종적 해결이 더는 지연돼서도 안 된다. 이 원칙을 허무는 어떤 행위도 용납돼서는 안 된다. 시위의 과격화, 폭력화는 유족과 여론을 도리어 이간질하는 행위다. 이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인가.

 

 

[중앙일보 사설-20150421화] 태극기 불태운 것은 반국가적 행위다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한 청년이 태극기를 불태운 것을 놓고 비난이 일고 있다. 일각에선 ‘표현의 자유’라고 옹호하기도 하지만 ‘국기 모독 행위’라는 비판여론이 대부분이다. 황교안 법무장관은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참석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태극기를 불태운 남성을 검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형법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를 손상한 사람에겐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처벌한 사례는 거의 없다. 2011년 한명숙 전 총리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태극기를 밟은 채 헌화했다며 고발당했지만 각하(却下) 처분을 받았다. 태극기를 모독할 의도가 없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느냐를 떠나 일반인들이 용인하기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또 경찰과 대치 중 태극기를 불태운 것은 세월호 추모집회를 자극해 반정부 시위로 몰고 가려는 고의성이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을 때도 태극기를 자주 앞세웠다. 적어도 시위 과정에서 국기를 욕보인 적은 없었다. 시위대가 진압 경찰과 충돌하더라도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전복하려는 게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혐한(嫌韓) 시위대들은 태극기를 땅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거나 바퀴벌레나 오물을 그려 넣기도 한다. 이런 저열한 행위엔 항일운동의 상징이었던 태극기를 모독함으로써 일제의 만행을 정당화하려는 극우파들의 전략이 깔려 있다. 세월호 추모시위 중 태극기를 불태운 행위는 혐한 시위대들의 태극기 모독행위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는 추모행사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은 물론 정부에 반대하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행위다. 세월호 추모집회가 갈수록 불법 폭력시위로 변질되는 조짐이다. 시위 주도세력 중엔 과거 불법시위에 ‘단골’로 참여하던 단체와 인물들도 보인다. 야당은 불법시위의 책임을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태극기를 불태우는 극단 행동까지 마냥 감싸고 그냥 넘어갈 일인지 묻고 싶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1화] 태극기까지 불태운 시위대

 

지난주 말 열린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에서 시위 참가자가 태극기를 불태운 충격적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날 시위는 애초부터 불법·폭력으로 변질될 소지가 있어 경찰은 1만3,000명의 병력을 동원하고 트럭과 버스 등 470여대의 차량을 이용해 6겹의 저지선을 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대회 이후 청와대로 향하는 참가자들과 경찰이 정면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져 경찰 74명을 포함해 유가족·시민 등 80여명의 부상자가 나왔고 71대의 차량이 파손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세월호 사고에 대한 추모의 의미는 퇴색하고 오히려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를 욕되게 하는 수준이다. 시위대 일부는 경찰 차량을 부수고 차량 안의 분말소화기를 꺼내 뿌리거나 유리창을 잡아당기는 등 '광장의 논리'가 횡행하던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와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이 과정에서 캠코더와 무전기 등 368대의 경찰 장비가 파손됐고 경찰은 10개월 만에 물대포를 사용했다고 하니 이날 시위의 과격성과 폭력성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이날 시위 참가자 일부가 태극기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직접 연출하고 이것이 여과 없이 TV 화면에 그대로 잡힌 점이다. 이날 시위에서 나타난 폭력 수준은 별개로 하더라도 이 같은 행동은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용납될 수준을 넘어선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은 오히려 경찰이 '추모할 자유'를 막았다며 사실을 호도하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시위는 할 수 있지만 해서는 안 될 행동이 있다"며 부당성을 고발하는 글이 잇따른 것은 당연하다. 세월호 사고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가 법을 지키지 않은 불법·탈법적 부정과 부패가 집약돼 나타난 결과다. 세월호 사건 추모 행사를 이유로 국기까지 불태우는 행위를 자행했다면 그것은 사회 모두를 욕보이는 일일 뿐이다.

 

 

■ 지중해 난민 참사

 

[한국일보 사설-20150421화] 지중해 잇단 난민 참사, 국제사회 방치 안 돼

 

18일 밤(현지시간) 난민 700여명을 태우고 리비아를 출발한 배가 지중해에서 전복돼 대부분이 몰살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현재까지 구조된 사람은 50여명에 불과하다. 인명피해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지중해 최악의 참사가 될 것이라고 유엔난민기구(UNHCR)는 경고했다. 사고는 이탈리아령인 람페두사섬 남쪽 190여㎞ 지점에서 정원을 초과해 승선한 난민들이 지나가던 포르투갈 상선에 구조를 요청하려고 한쪽으로 몰리면서 배가 뒤집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20일에는 에게해에서 난민 200여명을 태운 배가 침몰했다.

 

지중해에서 난민들이 목숨을 건 밀항을 시도하다 떼죽음 당하는 사례가 2011년 리비아사태 이후 급증 추세다. 앞서 12일 리비아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하던 난민선이 전복돼 550여명 중 400여명이 희생됐고, 이틀 뒤에는 100여명이 탄 난민선에서 종교갈등에 따른 싸움이 벌어져 소수계인 기독교 난민 12명이 바다에 수장됐다. 지난해 10월에는 난민선이 뒤집혀 360여명이 몰살당했고, 9월에도 리비아에서 출발한 난민선 3척이 잇따라 침몰해 500여명이 숨졌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올해 지중해에서 숨진 난민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0배가 늘었다. 지중해가 바다가 아니라 난민들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리비아가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 무정부상태에 빠지면서 해안통제가 허술해지자 유럽행을 꿈꾸는 중동ㆍ아프리카 난민들이 대거 리비아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리비아는 이탈리아나 지중해 섬나라인 몰타와 가장 가깝다. 리비아에서 대기중인 난민만도 5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EU의 난민대책은 미온적이다. 이탈리아는 EU의 지원을 받아 2013년부터 해군을 동원한 난민 구조작전인 ‘마레 노스트롬’을 실시해 왔으나 지난해 11월 EU가 자금지원을 중단하면서 구조범위가 훨씬 제한된 ‘트리톤’ 작전으로 대체됐다.

 

유럽이 난민 문제에 소극적인 것은 경제난과 테러, 이질적 종교 등에서 비롯된 반 이민자 정서 때문이다. 다음달 각각 총선과 지방선거를 치르는 영국과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여론에 편승해 이민자의 유입을 강력히 단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난민들에 대한 적극적인 해상구조가 불법 밀입국을 부추긴다고 비판이 나올 정도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난민들의 참혹한 희생을 외면하고 방조하는 것은 특정국가나 지역의 문제로 넘겨서는 안될 반인륜적 행위다. 리비아가 난민 집단탈출의 집결지가 될 정도로 통제불능으로 치닫게 된 데는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공습을 단행한 서방의 책임도 있다. 국경통제를 강화하고 난민들을 위한 역외 수용소를 설치하는 등 의 대책부터 우선적으로 강구돼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1화] ‘지중해 난민 참사’와 유럽의 책임

 

난민들을 태우고 리비아에서 출발해 이탈리아로 가던 어선이 18일(현지시각) 침몰해 700명 넘게 숨지는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 리비아 근해에서 난민선이 뒤집혀 400여명이 숨진 지 불과 엿새 만이다. ‘지중해 난민’이 하루 이틀 된 문제는 아니지만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지중해 난민 참사는 난민을 배출하거나 수송하는 쪽과 목적지인 유럽 쪽에 모두 책임이 있다. 난민 배출국은 대부분 중동과 아프리카 나라들이다. 계속되는 전쟁, 폭정, 빈곤, 질병 등이 주된 요인이다. 특히 최근에는 내전이 치열해진 시리아의 난민이 부쩍 늘었다. 이탈리아와 가깝고 해안 관리가 허술해 유럽행의 관문이 된 리비아에는 수십만명의 난민이 대기 중이라고 한다. 낡고 작은 배에 난민을 가득 태우다 보니 전복 사고가 빈발한다. 얼마 전에는 난민들을 바다 한가운데 남겨놓고 선장과 선원이 사라져버리는 일도 있었다.

 

난민과 이민자가 늘수록 유럽 나라들의 반이민 정서도 커지고 있다. 극우세력이 이민자 문제를 부각시켜 세를 키우고 정부가 외국인 유입에 강경 대처하는 패턴이 형성된 것이다. 2013년 10월 360여명의 난민이 숨진 직후 만들어진 해양 구조 계획은 1년여 동안 13만명을 구조하는 등 큰 성과가 있었다. 유럽연합이 지원한 이 계획은 올해 초 소규모 국경경비 계획으로 대체됐다. 이후 이탈리아는 자체 구조 활동을 강화했지만 이번 참사를 막지 못했다. 결국 국가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중동·아프리카 나라들과 활개치는 불법 브로커들, 난민 문제에서 벗어나려는 유럽 나라들이 모두 참사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국제이주기구(IOM)의 지난해 9월 보고서를 보면, 2000년 이후 잘사는 나라로 불법 이주하려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4만명이 넘는다. 하루 8명꼴이다. 이 가운데 지중해에서 숨진 사람이 2만2천여명이나 된다. 지구촌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유럽 나라들이 난민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은 반인권적이다. 당장 모든 문제를 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참사는 막아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1화] 위험에 처한 난민 구조에 유럽은 신속히 나서길

 

지난 2월11일 난민을 태운 어선 2척이 리비아를 떠나 이탈리아의 람페두사 섬으로 향했지만 대부분의 난민들은 섬에 오를 수 없었다. 섬에 도착하기 전 배가 바다에 침몰했기 때문이다. 이 사고로 300여명이 숨졌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4월12일 난민선 한 척이 리비아 해안에서 뒤집혀 400여명이 익사했다. 다시 한 달쯤 뒤인 지난 18일 리비아를 떠난 난민선 한 척이 람페두사 섬에서 남쪽으로 약 193㎞ 떨어진 곳에서 전복됐다. 적어도 700여명이 사망했다. 20m 길이의 작은 배에 950명이 탔다는 증언도 있다. 300명은 밀입국 업자들에 의해 갑판 아래 짐칸에 갇힌 상태였고, 승객 가운데 여성이 200명, 어린이가 50명 정도 있었다고 한 생존자는 증언했다. 지중해 최악의 해상 사고였다.

 

많으면 수백명씩, 적으면 수십명씩 거의 매일같이 리비아와 람페두사 섬 사이의 지중해에서 난민들이 죽어가고 있다. 18일 사고를 제외하고도 올해 벌써 900명 정도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0배나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13만명을 구조한 이탈리아 해안경비대는 지난주에만 11만명을 구조했다. 날씨가 풀리면서 중동 및 아프리카 난민들이 국가통제력이 무너진 리비아로 몰려 최소 50만명이 대기상태에 있다고 한다. 더 많은 위험, 더 많은 죽음의 행진이 예고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그동안 이 인도주의적 재앙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 난민이 갈수록 늘고 있는 데도 지난해 가을부터 순찰과 구조 활동을 3분의 1로 줄였고, 그 결과 5000명 구조라는 미비한 성과에 그쳤다. 전쟁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중동 및 아프리카인들이 생존과 더 나은 삶을 찾아 목숨을 건 탈출을 하는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을 세계가 방치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반인도적 행위이다. 마침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대책 마련을 위한 유럽 정상회의 개최를 제안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다음달 국경관리대책과 비용 분담 방안을 담은 종합 대책을 발표하는 일정이 있다. 유럽연합은 이 기회에 과감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선 난민 구출을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 더 이상 지중해가 위기에 처한 이들의 무덤이 되지 않도록 구조 활동에 필요한 장비와 인력, 비용을 대폭 늘려야 한다. 난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브로커들을 단속할 필요도 있다. 제도적 해결방안도 요구된다. 중동 및 아프리카에 현장 출입국 심사 기구를 두거나 합법적 이민의 폭을 넓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전쟁과 가난이 죽음에 이르는 길이 되지 않도록 세계는 신속하게 행동해야 한다.

 

 

■ 식물 총리

 

[한국일보 사설-20150421화] 정작 국정 발목 잡는 건 이완구 총리직 수행

 

이완구 국무총리가 ‘성완종 파문’에 휩싸여 ‘식물 총리’로 전락하면서 국정 공백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노동시장 구조개편 문제 등 화급한 국정의 주요 현안이 모두 실종됐거나 표류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 새누리당은 19일 당정청 협의회를 열었으나 고위급협의가 아닌 실무협의에 그쳤다. 국회는 가동 중이지만 ‘성완종 리스트’라는 블랙홀에 빠져 사실상 마비 상태다. 정부 기능부터 정상화해야 가닥이 풀릴 것이나, 운신 폭이 전혀 없어진 이 총리의 존재 자체가 도리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장애로 작용하는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이 총리는 그제 4ㆍ19혁명 기념식에 이어 어제는 장애인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 이 총리는 “대통령이 계실 때보다 더 열심히 국정을 챙기겠다”며 총리직 고수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국무총리가 이런저런 행사장을 쫓아다니는 게 소임의 전부일 리가 없다. 도덕적 정당성과 정치적 권위를 갖지 못한 반쪽 총리의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총리는 이미 ‘성완종 리스트’ 포함의 진위 여부와 별개로 권위와 신뢰를 상실했다. 잦은 말 바꾸기와 증거 인멸 의혹 등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이 총리는 “성 전 회장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말했으나 지난 1년간 210여 차례 전화를 주고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성 전 회장이 남긴 기록에는 같은 기간에 23차례 만난 것으로 돼있다. 이 총리 측이 2013년 4월 재선거 때 “이 총리와 성 전 회장이 선거사무실에서 독대했다”고 진술한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회유와 협박을 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 총리는 성 전 회장이 숨지기 하루 전에 태안군의회 부의장 등 측근과 나눈 대화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15차례나 전화를 걸기도 했다. 이런 숱한 추문과 협잡에 얽혀있는 인물이 국정 현안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이 총리 거취 문제에 대한 상황이 조기에 정리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조만간 이 총리 해임건의안을 제출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맞물려 자칫 이 총리가 강제로 떠밀려 나가는 진풍경이 연출될 지도 모른다. 지금의 국정 공백과 혼란을 끝낼 책임은 이 총리 본인에게 있다. 해임건의안 표결로 더 큰 혼란을 부르기 전에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게 본인이나 정권을 위해서도 옳은 태도다. 또한 그나마 남아있는 최소한의 명예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새누리당도 집권당으로서 책임을 지고 국정 공백사태를 줄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 총리가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고 처리는 박근혜 대통령 귀국 후에 하는 식의 ‘선 사의표명, 후 처리’방안이 현재로서는 가장 적절해 보인다.

 

 

[중앙일보 사설-20150421화] 이 총리, 해임건의 표결 전 사퇴해야

 

이완구 국무총리의 거취를 둘러싸고 정국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중남미 순방을 위해 출국하기 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로부터 사실상 ‘총리 사퇴 불가피’ 여론을 전달받았다. 대통령은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했으나 27일 귀국까지 기다리기에는 혼란의 정도가 크다.

 

  특히 중요 변수로 등장한 것은 야당의 해임건의 추진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오늘 의원총회를 열어 해임건의안 제출에 의견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건의안이 제출되면 여당은 표결을 피할 수 없다. 새누리당은 이완구 총리 청문회 후 임명동의안을 조속히 표결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임명동의는 촉구하면서 해임건의 표결을 미루는 건 모순이다.

 

  해임건의 가결에는 새누리당 의원 14명 이상이 찬성에 합류해야 한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져 가결되면 박근혜 정권은 내부 분열로 급속한 레임덕(lame duck)에 빠질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아직 5년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첫해는 잇따른 인사참사와 국정원 댓글 사건, 둘째 해는 세월호 사태와 정윤회 문건파동으로 국정의 에너지를 소진시켰다. 내년 4월엔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일할 시간이 별로 없는데 총리 문제로 권력 내 지진이 터지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공무원연금과 노동시장의 개혁을 포함한 4대 개혁과제가 흔들릴 것이다.

 

  이 총리는 4·19 기념식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성숙시켜 국가의 품격을 높이자고 말했다. 지금 다수 여론이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바로 국가의 품격 때문이다. 총리는 대통령의 위임을 받아 국정을 총괄하는 자리다. 그런 인물이 성완종 사건에서 거짓말, 말 바꾸기, 둘러대기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성 회장과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최근 20개월 동안 성 회장을 23번 만났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검찰조사 결과 지난 1년여 동안 두 사람 사이에 휴대전화 착·발신이 210여 차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절반만 연결됐어도 100여 차례 통화가 있었던 셈이 된다. 성 회장이 3000만원을 전달했다는 부여 선거사무소에 분명히 성 회장이 갔으며 두 사람이 만났다는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총리는 자신과 그렇게 긴밀히 접촉했던 성 회장이 선거사무소에 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여러 차례 말을 바꾼 사실을 의원들이 지적하자 그는 ‘충청도 말투’라는 궤변으로 충청도민의 명예를 훼손했다.

 

  3000만원의 진실과 별개로 이 총리는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는 품격과 능력을 상실했다. 조속히 자진 사퇴해 검찰 소환에 대비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 그리고 청문회에서 드러난 하자에도 불구하고 총리직 수행을 맡겼던 국회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다. 그는 “나에게도 명예가 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만약 그가 정말 3000만원을 받지 않았다면 시간이 그의 명예를 지켜줄 것이다.

 

 

■ 관련 칼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50421화] 이완구, 이러고도 성완종과 안 친하다고?

 

 

공개 석상에서 옆 사람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미소를? 이런 건 친밀한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영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이완구 총리를 보면 가깝지 않아도 그럴 수 있는가 보다.

 

 하긴, 친밀함이란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에 상대편이 아니라면 아닌 거다.

 

 오래전에 누군가 내게 물었다.

 

 “드라마 작가 P씨랑 친하세요?” 대답을 한참이나 망설였다.

 

  히트시킨 드라마가 서너 편. 그 당시 잘나가던 방송작가다. 만나는 사람마다, 특히 불쌍한 사람에게는 밥도 잘 사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 이프 잡지 인터뷰를 계기로 만나 우리도 ‘가난한 여성단체’에 해당됐던지 전 직원(그래 봐야 10명)이 고기랑 밥이랑 술·노래방까지 풀코스로 여러 번 대접도 받았고, 가끔 회식비라며 격려금도 보내 줬다.

 

  수입이 좋아서인지 성격이 좋은 건지 아니면 무슨 필요 때문인지. 마당발로 돈 쓸 곳을 찾아다니며 베풀던 그녀. 강이 보이는 그녀 작업실도 가 봤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와 난 결코 친한 사이는 아니다. 결국 “친하진 않고 만난 적만 있다”고 대답했다.

 

  친한 사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나. 대상을 넓게 잡고 공들여 봤자 다 ‘헛삽질’이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명절 때마다 5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선물을 돌리고 (정치) 성향이 같건 다르건, 마음이 맞건 안 맞건, 여당 야당, 동향 사람 타향 사람 닥치는 대로 죄다 찾아다니며 챙겼단다. 챙긴 상대가 명절 선물 명단대로 수백 명이라면 그들 중에서 “난 친한 사이다” 하고 선뜻 나설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이 원래 주는 걸 좋아해 내가 받았을 뿐 그를 챙길 의무도, 또 안 챙겨도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여기며, 그들 모두가 ‘난 그저 n분의 1의 존재’라 생각했으리라.

 

  그나저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돈 갖다 바치고 줄 서고 국회의원 되고. 이런 비틀어진 방법이 ‘친밀한 관계 만들기’라 여기고 신뢰와 의리를 기대했던 성 전 회장의 대책 없는 순진함도 놀랍지만 선거 때는 비타민(?)으로 살뜰하게 챙기고, 책을 내면 책값도 듬뿍 주고, 총리 낙방될까 봐 동네방네 몇천만원 들여 현수막을 걸어 주고, 호텔 행사 때마다 달려가 후원해 주고, 가족이랑 나란히 사진도 찍고, 이런 대접을 당당하게 받고서도 “친한 사이가 아니라 그저 같이 국회의원을 했을 뿐”이라 대꾸한 이 총리의 뻔뻔함도 참으로 황당하다. 고인이 된 성 전 회장이 어지간히 서운하긴 했겠다.

 

 

■ 성완종 리스트 검찰 수사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50421화] 이완구, 이러고도 성완종과 안 친하다고?

 

공개 석상에서 옆 사람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미소를? 이런 건 친밀한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영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이완구 총리를 보면 가깝지 않아도 그럴 수 있는가 보다.

 

 하긴, 친밀함이란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에 상대편이 아니라면 아닌 거다.

 

 오래전에 누군가 내게 물었다.

 

 “드라마 작가 P씨랑 친하세요?” 대답을 한참이나 망설였다.

 

  히트시킨 드라마가 서너 편. 그 당시 잘나가던 방송작가다. 만나는 사람마다, 특히 불쌍한 사람에게는 밥도 잘 사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 이프 잡지 인터뷰를 계기로 만나 우리도 ‘가난한 여성단체’에 해당됐던지 전 직원(그래 봐야 10명)이 고기랑 밥이랑 술·노래방까지 풀코스로 여러 번 대접도 받았고, 가끔 회식비라며 격려금도 보내 줬다.

 

  수입이 좋아서인지 성격이 좋은 건지 아니면 무슨 필요 때문인지. 마당발로 돈 쓸 곳을 찾아다니며 베풀던 그녀. 강이 보이는 그녀 작업실도 가 봤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와 난 결코 친한 사이는 아니다. 결국 “친하진 않고 만난 적만 있다”고 대답했다.

 

  친한 사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나. 대상을 넓게 잡고 공들여 봤자 다 ‘헛삽질’이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명절 때마다 5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선물을 돌리고 (정치) 성향이 같건 다르건, 마음이 맞건 안 맞건, 여당 야당, 동향 사람 타향 사람 닥치는 대로 죄다 찾아다니며 챙겼단다. 챙긴 상대가 명절 선물 명단대로 수백 명이라면 그들 중에서 “난 친한 사이다” 하고 선뜻 나설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이 원래 주는 걸 좋아해 내가 받았을 뿐 그를 챙길 의무도, 또 안 챙겨도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여기며, 그들 모두가 ‘난 그저 n분의 1의 존재’라 생각했으리라.

 

  그나저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돈 갖다 바치고 줄 서고 국회의원 되고. 이런 비틀어진 방법이 ‘친밀한 관계 만들기’라 여기고 신뢰와 의리를 기대했던 성 전 회장의 대책 없는 순진함도 놀랍지만 선거 때는 비타민(?)으로 살뜰하게 챙기고, 책을 내면 책값도 듬뿍 주고, 총리 낙방될까 봐 동네방네 몇천만원 들여 현수막을 걸어 주고, 호텔 행사 때마다 달려가 후원해 주고, 가족이랑 나란히 사진도 찍고, 이런 대접을 당당하게 받고서도 “친한 사이가 아니라 그저 같이 국회의원을 했을 뿐”이라 대꾸한 이 총리의 뻔뻔함도 참으로 황당하다. 고인이 된 성 전 회장이 어지간히 서운하긴 했겠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양권모(논설위원)-20150421화] 친분 관계

안면(顔面)은 눈, 코, 입이 있는 머리의 앞면 즉 얼굴·낯을 뜻하는 한자어다. 일면식(一面識), 반면식(半面識) 등의 표현에서 보듯 ‘얼굴을 안다’는 것은 사람 사이 관계를 가름하는 주요한 척도였다. 그렇기에 ‘안면’은 우리말에 정착하면서 얼굴·낯이라는 뜻 말고도 ‘서로 얼굴을 알 만한 친분’이라는 의미로 의미확장이 이루어졌다. ‘안면을 바꾸다’거나 ‘안면을 몰수하다’, 안면박대·안면치레·안면부지 등에서 ‘안면’이 그런 뜻이다.

 

관계의 그물망이 사방팔방으로 짜여지고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는 ‘얼굴을 알 만한 친분’인 안면은 특별한 친분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대면 한번도 없이 ‘친분 맺기’가 단숨에, 폭넓게 이뤄지고 끈끈하게 이어지는 판이다. 이제 ‘여섯 다리’가 아니라 ‘서너 다리’만 건너면 다 알고 통하는 사이로 엮인 ‘좁은 세상’이다. 실제 한국인의 ‘사회연결망’을 조사한 결과 3.6 단계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마당발’ 교류와는 거리가 먼 필부필부도 무턱대고 특정 상대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안면박대를 했다가는 우세 사기 십상인 세상이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진 직후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의 관계를 속된 말로 ‘생깐’(안면 바꾼) 것이 그에게 올가미가 되고 있다. 이 총리는 당초 “전혀 친하지 않다” “만난 적도 별로 없다” “친분도 없다”는 등 극구 ‘안면 사이’를 강조했다. 금품을 주고받을 정도의 친분이 없었다는 점을 내세우는, 비위 연루 정치인들의 단골 방어수법을 으레 동원한 것일 터이다.

 

하지만 속속 제시되는 증거·정황은 이 총리의 ‘망자(亡者)’에 대한 안면몰수가 새빨간 거짓임을 가리킨다.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에는 두 사람이 2013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무려 23차례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검찰 수사에서 최근 1년 동안 217번에 걸쳐 전화를 주고받은 게 확인됐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만나고 십수 차례씩 전화를 거는 사이가 ‘별 친분이 없다’고 한다면, 대체 무슨 관계일까? 아무리 궁리를 해도 “거의 뭐 부부관계라고 봐야 한다. 부부처럼 밀접한 관계”(노회찬 전 의원)보다 나은 현답을 찾기 어렵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1화] ‘좀비기업’ 경남기업의 금융유착 규명해야

 

이쯤 되면 ‘유착의 끝판왕’이라고 불릴 만하다. 경남기업이 금융당국과 금융계를 쥐락펴락한 데 이어 이번에는 대통령의 해외 행사까지 기업 연명 도구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금융권의 민낯은 한심스러울 정도다. 정치권의 검은돈 수수와 별개로 금융유착 근절을 위해서도 경남기업의 뒷거래는 규명돼야 한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성완종 전 회장이 운영하던 경남기업은 2013년 9월 베트남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한복 차림으로 무대 위를 걷는 한복쇼를 자사 현지 건물인 ‘랜드마크 72’에 유치했다. 당시 성 전 회장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 상실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고, 경남기업 역시 재정 악화로 3차 워크아웃을 앞둔 터였다. 당시 한복쇼 행사 장소는 청와대가 결정했다고 한다. 성 전 회장 입장에서는 대통령 패션쇼의 유치만으로도 힘을 과시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기실 성 전 회장은 패션쇼를 전후해 대통령 비서실장은 물론 금융당국 수장, 워크아웃 담당 국장, 채권단 최고경영자들을 잇따라 만났다. 경남기업은 한복쇼 한 달 뒤 워크아웃을 신청하지만 하루 만에 채권단의 자금지원 결정을 받아낸다.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채권단이 지원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통상적인 방식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 신한은행 같은 곳은 아예 워크아웃 직전에 900억원을 추가 대출해 줄 정도였다. 대주주 감자 같은 채권단 지원 조건도 없었다. 오히려 기업 회생 시 주식을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까지 넘겨줬다.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사안들이다.

 

하지만 결국 경남기업은 회생이 어려워지면서 법정관리로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금융권 손실만 수출입은행 5207억원 등 총 1조3000억원이다. 회수 가능 금액은 20%도 안돼 1조원 이상을 국민 세금과 은행 고객들이 메워야 할 판이다. 성 전 회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이었다. 국회 정무위원들이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절대 갑’이라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직무연관성이 있는 정치인이 해당 운영위에 배속돼 퇴출돼야 마땅한 좀비 기업을 힘으로 연명시키는 후진적 행태가 벌어진 셈이다. 이러고도 금융산업 경쟁력 운운할 수 있는 건지 낯간지럽다. 경남기업 부당 지원에 누가 관여했고, 청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가려내 책임을 물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1화] ‘성완종 파문’으로 자원외교 수사 중단 안 된다

 

자원외교 비리 수사의 피의자였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검찰 수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성 전 회장이 정치인들에 대한 금품 살포라는 더 파괴력이 큰 불법 행위를 폭로함으로써 자원비리보다 더 화급한 수사 과제가 검찰에 떨어진 것이다. 이완구 국무총리를 비롯한 거물 정치인들이 피의자 신분이 되면서 국민의 관심 또한 자원 비리보다는 정치 스캔들로 옮겨 간 모양새다. 자칫 자원외교 비리 수사가 흐지부지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리야 없겠지만 성 전 회장의 자살이라는 돌발 변수와 정치자금 수사 때문에 자원외교 비리 수사가 중단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성 전 회장 개인의 자원외교와 관련한 비리 혐의들은 자살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검찰도 파악하고 있듯이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비리 전체를 볼 때 경남기업의 비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민간기업은 물론이고 에너지 공기업들이 엄청난 빚을 져 가면서 무책임 경영을 한 일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은 현재 문무일 검사장이 이끄는 특별수사팀이, 자원외교 비리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서 맡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성완종 파문’으로 한동안 주춤했던 자원외교 비리 수사가 다시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검찰이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을 이르면 이번 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것이라는 소식이 어제 전해진 것이다. 피의자의 자살은 안타까운 일이고 자살에서 불거져 나온 새로운 불법 행위도 수사를 하는 게 마땅하지만 그런 일들 때문에 수사의 본질을 흐리거나 잊어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검찰이 오늘 소환하기로 한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등 자원외교와는 무관한 다른 기업인이나 정치인, 관료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수사도 속도를 내기 바란다. 수사는 시간을 끌거나 때를 놓쳐 버리면 그만큼 어려워진다. 증거를 인멸하거나 피의자나 참고인들이 입맞추기를 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성완종 파문과는 무관한 수사가 지체될 이유는 전혀 없다. 어떤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의연한 자세로 수사에 임하는 것이 검찰의 임무다.

 

결과적으로 성 전 회장의 자살로 파묻혀 있던 불법 정치자금의 실체가 드러나긴 했지만 검찰은 수사 방식에 대해서도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별건 수사 등의 무리한 수사는 지양하고 전체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다 보면 표적 수사, 짜맞추기 수사라는 비난과 함께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면밀한 내사를 한 뒤에 수사에 나서야 하겠지만 하다 보면 법 적용이 어려울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는 끝까지 밀어붙이려 하지 말고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검찰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말하자면 본연의 자세, 수사의 정도를 지키라는 것이다. 검찰은 이번 성완종 스캔들에서도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좌고우면하지 않는 뚝심을 국민들에게 보여 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 4월 국회

 

[중앙일보 사설-20150421화] 수사는 검찰에, 국회는 민생 안건 처리하라

 

국정 공백과 표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야 정치권이 ‘성완종 리스트’와 8일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만 골몰하기 때문이다. 4월 국회엔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 의료법,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 등 경제살리기 법안과 공무원연금 개혁, ‘김영란법’ 등 시급한 안건들이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여야는 ‘성완종 리스트’에 발이 묶여 국정 공백을 자초하고 있다.

 

  우선 어제 열린 법사위가 이런 우려를 현실로 보여줬다. 법안 논의는 뒷전이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와 그가 과거 두 차례 특별사면을 받은 데 대한 공방과 추궁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뿐 아니다. 안행위·운영위는 홍준표 경남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그리고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을 출석시켜야 한다는 야당과 이에 반대하는 여당이 맞서면서 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여야는 오는 30일 본회의를 열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키로 했지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보다 못한 정의화 국회의장이 “야당이 끝까지 박 후보자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에 응하지 않으면 의장 직권상정으로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최후 통첩했을 정도다. 공무원연금 개혁법 처리도 발등의 불이다. 공무원노조총연맹·한국교총이 어제 각각의 안을 내놔 최악의 사태는 면했지만 여야가 합의한 대로 본회의에서 처리(5월 6일)하려면 갈 길이 멀다. 민생과 직결된 안건들이 ‘성완종 리스트’ 블랙홀에 속절없이 빨려드는 형국이다.

 

  이래선 안 된다. 수사는 수사고 국정은 국정대로 굴러가야 한다. 성 전 회장 관련 수사는 특별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일단 검찰에 맡기고 국회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어찌 보면 ‘성완종 리스트’ 사태는 정치권이 원인 제공자이자 피해자다. 스스로 위기를 초래한 정치권이 이를 빌미로 국정의 발목을 잡아선 곤란하다. 정치권이 민생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더 큰 위기에 직면할 게 분명하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1화] 여야, 4월 국회를 ‘빈손’으로 끝내지 말라

 

‘성완종 리스트’가 모든 국정 현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여기에 이완구 국무총리의 거취가 걸려 국정이 겉돌고 있는 가운데 국회마저 마비 상태다. 대정부 질문이 ‘이완구 신문(訊問)’으로 마감한 데 이어 각 상임위원회도 이를 둘러싼 여야의 공방 무대가 되다시피 하고 있다. 이 바람에 공무원연금 개혁 법안과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경제살리기 현안들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자칫 4월 국회가 ‘성완종 쓰나미’에 떠내려갈 판이다.

 

지금 나라 경제는 내수와 수출이 모두 침체되고 성장 동력도 떨어져 있다. 복지 재원 조달이 여의치 않은 데다 경제성장률마저 더 낮아지면 서민층과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의 한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각종 구조 개혁으로 성장 잠재력을 키워야 한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를 경청해야 할 이유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노동·금융·공공·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은 시늉만 하다가 올스톱 상태다. 이번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처리하기로 하고도 관련 특위는 헛바퀴만 돌리고 있다.

 

단기 부양에 급급하다 ‘잃어버린 20년’이란 덫에 걸렸던 일본 경제는 근자에 구조 개혁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 특히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이 표만 의식해 공무원연금 개혁에 미온적인 전공노의 눈치만 봐서야 되겠는가.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에 매일 100억원을 쏟아붓는 상황을 개선해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어 주지 않으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물론 부패 척결도 시급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성완종 사건’에만 올인해 국회가 제 할 일을 방기할 이유 또한 없다. 검찰이 리스트 수사를 본격화한 만큼 일단 이를 지켜본 뒤 미진하면 국회 차원의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요구할 수도 있다. 우리는 ‘성완종 게이트’를 정·경·관 유착 비리가 집대성된 사건으로 본다. 당장엔 성 전 회장의 자살 직전 그의 구명 로비에 불응한 여권 8인 실세의 현금 수수 의혹 수사가 급선무일 게다. 하지만 경남기업이 베트남의 랜드마크72 빌딩 건설 시 천문학적 은행 융자를 받는 과정을 되짚어 보자. 성 전 회장의 불법 로비가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 걸쳐 이뤄졌을 개연성이 높고, 그만큼 광범위하고 오랜 시간에 걸친 수사가 불가피함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국회가 성완종 수사를 이유로 각종 개혁이나 경제 살리기 법안 처리를 천연시켜서는 안 될 말이다. 여야는 이들 현안에 4·29 재보선이나 성완종 리스트에 쏠린 관심의 절반이라도 기울이기 바란다.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1화] 김기춘, 지금 외국 들락날락할 때인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한테서 10만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9일 갑자기 일본으로 출국했다가 20일 오후 돌아왔다. 그가 귀국하면서 일단 ‘도피성 출국’ 의혹은 벗었으나 사태의 파장은 간단치 않다.

 

우선 김 전 실장의 오만한 모습은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수사 대상에 오른 사람의 갑작스런 출국이 어떻게 비칠지는 법조인 출신인 김 전 실장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보란듯이 외국으로 나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는 출국 자체를 자신의 떳떳함을 과시하는 기회로 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론의 시선은 싸늘했다. 김 전 실장의 일본행 항공기 탑승 광경을 본 시민들의 제보가 언론사에 잇따르고 곧바로 도피성 출국이란 말이 나온 것은 김 전 실장의 생각과 여론의 동향 사이에 큰 간극이 있음을 보여준다.

 

검찰이 김 전 실장 등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에 대해 출국금지 조처를 내리지 않은 것이 옳은지도 의문이다. 김 전 실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정도 혐의를 받고 있다면 벌써 출국금지 조처가 내려졌을 것이다. 검찰이 아직도 김 전 실장의 위세에 밀려 특별대우를 하고 있다고밖에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그런 저자세로 검찰이 김 전 실장의 혐의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매우 걱정된다.

 

김 전 실장은 10만달러 수수설에 대해 펄쩍 뛰고 있으나 ‘말 바꾸기’로 주장의 신빙성은 이미 크게 훼손됐다. 그는 애초 “비서실장이 된 뒤에는 성 전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가, 성 전 회장이 남긴 비망록에서 두 사람이 2013년 9월과 11월에 만났다는 기록이 발견되자 “착각했던 것 같다. 11월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고 말을 뒤집었다. 그러면서도 9월의 만남에 대해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만난 것 같기도 하고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거짓말을 했다가 꼼짝 못할 사실이 드러나면 그제야 시인하고, 그러면서도 아직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여기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우기는 것은 비리 혐의자들이 단골로 써먹는 수법이다. 김 전 실장의 무죄 주장에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한복을 입고 무대에 나와 화제를 모았던 베트남 하노이의 한복 패션쇼가 경남기업 소유의 랜드마크72 빌딩에서 열린 경위도 주목된다. 당시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던 경남기업은 패션쇼가 끝난 뒤 워크아웃을 신청해 채권단의 긴급자금지원을 받아냈다. 김 전 실장은 “베트남 행사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청와대의 의사결정 구조상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패션쇼가 열리기 전인 9월4~5일에 두 사람이 만난 것으로 비망록에 나와 있는데도 김 전 실장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도 더욱 석연치 않다. 이래저래 김 전 실장을 상대로 검찰이 수사해야 할 혐의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1화] ‘차벽’의 귀환, 민주와 법치에 대한 도전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행사에 ‘차벽’이 다시 기괴한 모습을 드러냈다. 2008년 촛불집회 때 본격 등장해 ‘명박산성’이라는 조롱을 받았던 경찰 차벽은 이후 집회·시위를 과잉 봉쇄하는 수단으로 남용됐지만, 2011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법적 근거가 허물어진 상태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추모 인파가 몰리자 경찰은 불법·폭력 집회를 막겠다며 건너편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에워쌌다. 이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헌재는 “불법·폭력 집회나 시위가 개최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견줘 차벽 설치는 “전면적이고 광범위하며 극단적인 조치이므로,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취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이라고 규정했다. 나아가 급박·명백·중대한 위험이 있더라도 “불법·폭력 집회에 참여할 의사를 가지고 있지 아니한 일반시민들의 통행까지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종합해보면 사실상 차벽 자체를 금지한 결정이라고 봐야 한다.

 

경찰은 16일과 18일 차량 470여대를 동원해 광화문광장에서 종로까지 거대한 차벽을 설치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청와대로 진출한다는 정보보고가 있었다고 이유를 설명한다. 청와대 앞에서 집회·시위가 열리는 것을 꼭 금지해야 하는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청와대 들머리에서 한참 떨어진 광화문광장과 종로 일대부터 차벽을 설치하는 것은 ‘필요최소한의 범위’를 벗어난 것임이 틀림없다. 또한 차벽이 ‘사전에’ 설치됐다는 행사 주최 쪽 주장에 비춰보면 급박성의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 더구나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평화적으로 행진하는 시민들에게 도대체 어떤 ‘명백하고 중대한 위험성’이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 급박·명백·중대성 요건이 성립했다고 하더라도 이번 차벽 설치는 일반 차량과 인근 거주자, 일반 보행자, 지하철 이용객 등까지 통행을 막았다는 점에서 헌재 결정에 반한다.

 

시민의 목소리를 차단하는 수단으로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차벽이 재등장했다는 것은 역사의 퇴행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헌재가 “표현의 자유가 가지고 있는 헌법적 중요성을 고려”해 위헌 결정을 내린 뒤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경찰이 되레 헌재 결정을 깔아뭉개는 사태는 민주와 법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1화] 수도권 성인 사망의 16%가 대기오염 때문이라니

서울·경기지역 성인 사망자 10명 가운데 1~2명은 대기오염 때문에 기대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조기에 사망한다고 한다.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임종한 교수팀과 아주대 환경공학과 김순태 교수팀 등이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PM2.5) 등의 대기오염이 수도권 지역 거주자의 사망에 미치는 영향도를 조사해 국제학술지인 직업환경의학회지 최근호에 발표한 내용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수도권의 30세 이상 성인 가운데 대기오염에 의한 사망자수는 2010년 한 해에만 1만5346명으로, 같은 연령대 수도권 총 사망자의 15.9%를 차지한다. 대기오염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익히 아는 바이지만 그 피해를 구체적 수치로 확인하는 것은 새삼 놀라운 일이다.

 

대기오염 중에서도 특히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도 거듭 확인됐다. 호흡기질환(1만2511명), 심혈관질환(1만2351명), 천식(5만5395명), 만성기관지염(2만490명), 급성기관지염(27만8346명) 등 각종 질환을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다. 폐암 환자도 1403명이나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오염에 의한 폐암 발생 규모는 이번 연구에서 처음 확인된 것이라고 한다. 세계보건기구가 미세먼지를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세계적으로 대기오염에 의한 사망이 연간 700만명에 이른다고 경고한 것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의 심각성이 이처럼 실증되고 있음에도 뾰족한 대책이 없는 현실이다. 정부 대책이라고는 예·경보체제를 강화하고 외출 자제와 황사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게 고작이다. 현재 수도권 제2차 대기관리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미세먼지 대책은 중국 등 외부 요인을 완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등의 불인 국내 요인부터 제거해나가는 게 급선무다. 건강에 가장 악영향을 미치는 초미세먼지의 주요 배출원은 자동차이고 그 가운데서도 경유차량의 비중이 큰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오는 9월부터 연간 1만대씩 경유택시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되면 차량부제를 실시하는 등의 고강도 대책이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도 모자랄 판이다. 연구팀도 현재의 대기오염 상황이 지속된다면 2024년 사망자수가 2만5781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1화] 잇단 해군 性범죄, 말로만 ‘무관용’ 원칙이라 그런가

 

해군 장교의 성(性)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군 수뇌부가 성 군기 확립을 아무리 외쳐도 일반 잡범들보다 못한 해군 장교들의 추한 민낯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상명하복으로 운영되는 군이 맞나 싶을 정도다. 기강해이는 회복 불능의 심각한 수준에 이미 이르렀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해군에 따르면 지난 13일 저녁 경기도 모 부대 소속 해군 중령(46)이 여군 하사(22)를 부대 인근 식당으로 불러내 소주 2병을 곁들인 식사를 함께 한 뒤 자신의 승용차와 모텔에서 잇달아 성폭행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쳤다. 이 하사는 이 과정에서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중령의 강요를 거절하지 못해 술자리와 모텔에 끌려갔다고 한다.

 

해군의 성범죄는 최근 일어난 것만 해도 일일이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해 3월에는 초계함에서 대위가, 7월에는 호위함 함장(중령)이, 12월에는 해사 장교 2명이 각각 여군 장교나 여성 부사관을 성추행했다. 올 들어서는 현역 해군 중장과 준장이 골프장 캐디에게 춤과 노래를 강요하는 부적절한 처신을 해서 징계를 받았다. 이번 사건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지난 7일 군내 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한 뒤 일주일도 채 안 돼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더 충격적이다. 정호섭 해군참모총장도 지난 2일 해군 장교들의 성범죄와 관련해 “결혼한 남자인데도 남의 여자를 탐하는 함정장들, 처와 자식과 약속한 것은 뭐냐”면서 “이 또한 도둑질”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군 수뇌부가 아무리 강도 높게 의식 개혁을 요구해도 현장에서는 전혀 말발이 먹히지 않은 셈이다. 전직 참모총장 두 명이 군납 비리로 구속된 해군에서 성범죄도 끊이지 않으니 해군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국방부는 성폭력 가해자에게 ‘원아웃 원칙’을 적용하고, 상관이 지휘·감독하는 부하와 성관계를 가지면 군형법으로 엄격하게 처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해군 장교들의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말과는 달리 솜방망이 처벌 때문은 아닌가. 캐디에게 춤과 노래를 시킨 것만 봐도 성희롱이 명백한데, 정직 1개월 처분에 그친 것은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미 발표한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의 원칙을 철저하게 적용해야 한다. 죄질에 따라서는 군인연금을 몰수하고 패가망신할 수준의 가중 처벌도 필요하다고 본다. 해군은 지금 창군 이래 가장 큰 위기다.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1화]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편서 명심할 원칙들

 

정부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를 공사로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자산 500조원을 관리하는 조직을 공사화하고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도 확 바꾼다는 것이다. 노·사 위원 3명씩 등 20명인 기금운용위를 전문가 중심의 9명으로 줄이되 장관급 위원장을 따로 둔다는 게 핵심이다. 다음주에 공청회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개편은 해묵은 과제다. 2008년에도 정부안이 발의됐으나 18대 국회 종료로 폐기됐고 2013년에도 이번 개편안과 비슷한 안이 나왔다. 논의의 배경과 명분은 이번에도 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 제고다. 초저금리 시대에 수익률을 높이자는 현실론도 가세하고 있다.

 

갈수록 비대해지는 국민연금을 그간의 방식대로 운용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2034년에는 2561조원에 이를 정도로 기금은 거대해진다. 더구나 뚝뚝 떨어지는 수익률은 당장의 숙제다. 2010년 10.37%에서 지난해 5.25%다. 저성장·저금리가 세계적 추세라지만 캐나다연금과 네덜란드연금은 지난해 각각 16.5%, 14.5% 수익률을 올렸다. 공사 체제로 외형을 바꾼다고 수익률도 따라 올라갈 것인가. 정부 주도의 지배구조 개편 논의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핫이슈인 의결권 행사만 해도 그렇다. 산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음달 심의안건에 또 올라간다고 한다.

 

국민연금 운용의 효율성, 전문성, 독립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근본 원칙부터 재확인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연금의 주인인 국민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구조에서 대리인의 주주권 행사는 어불성설이다. 최광 국민연금 이사장 같은 전문가도 연금사회주의는 단연코 배척한다고 강조하지 않았나.

 

연금이 정책수단으로 강제 동원돼서도 안 된다. 공사가 되면 필시 자리는 보건복지부가, 운용은 기획재정부가 개입하게 된다. 재정취약 시대, 5년 단임정부들은 어떻게든 국민연금을 쌈짓돈처럼 끌어다 쓰려 할 것이다. 포퓰리즘 정책에 국민의 노후가 흔들린다. 투명성도 과제다. 경쟁체제나 민영화가 아니고는 해결할 수 없다.

 

독립 공사를 만들게 되면 자칫 정권의 전위대로 전락할 가능성도 커진다. 기업에 배당을 압박하고 이사선임 등 인사에도 간섭하게 된다. 펀드매니저들은 단기성과를 추구하다 떠나면 그만이다. 국민연금까지 정치판으로 만들 수 있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1화] 워싱턴에서 한국 배제론이 퍼지고 있다는 상황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가 한·미·일 공조보다 미·일·호주의 ‘삼각협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미·일·호주는 미·호주, 일·호주 간 강력한 양자관계를 바탕으로 역내에서 가장 발전된 안보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며 “차라리 한국을 배제하고 미·일·호주 간 삼각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을 워싱턴 정가의 주류적 시각으로 해석하기에는 물론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미 정계에서 한국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는 것은 하나의 흐름인 것 같다.

 

미·일·호주 삼각협력 체제는 일본에서 처음 제기된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06년 총리에 임명됐을 때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와 인도까지 연결하는 ‘자유와 번영의 호(弧)’를 주장한 적이 있다. 중국이 주적(主敵)인 인도 역시 이 구상에 적극 찬성했지만 당시에는 구체적인 현실성이 없는 데다 한국을 포함시키지 않아 사실상 흐지부지됐었다.

 

그러나 미국이 지금 이 구상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과거사 문제로 촉발된 한·일 관계 악화가 불을 질렀다. 이 보고서도 “한·일 간 정치적 긴장이 역사적으로 긴밀한 안보 협력을 만들어내는 것을 막아 왔다”면서 “지정학적 논리에 기반해 한·미·일 삼각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실질적인 정책으로 진전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중국에 기울어져 있어 안보협력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지적도 미국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한국 외교는 이런 흐름에 전혀 개의하지 않는 듯 움직이고 있다. 며칠 전 미국이 한·미·일 외교·안보 동맹을 복원하기 위해 연 3국 외교차관 회의에서도 미국은 한·일 간 협력을 그토록 강조했지만 한국이 과거사 문제를 들고나와 회의가 결국 얼어붙고 말았다. 한국의 대중(對中) 정책에 대한 미국과 일본 측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러다가 동북아에서 위험한 ‘왕따’ 처지가 되는 것은 아닌지.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1화] 현대차 노조의 통상임금 파업, 법원이 책임져라

 

현대자동차 노조가 통상임금 확대를 주장하며 계열 14사 노조의 연대파업을 주도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2012년 통상임금 문제는 법적으로 해결키로 사측과 합의했고 지난 1월 1심에서 고정성이 없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패소했다. 그런데도 합의 정신을 존중하기는커녕 오히려 계열사 노조까지 이끌며 연대파업이란 초강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상여금에 대해 별의별 명분을 내세워 이를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려는 법원 판결들에 우려를 밝혀 왔다. 이런 판결이 계속되면 우리 경제에 엄청난 파장은 불가피하다. 그 걱정스런 사태가 이제 벌어지게 된 것이다. 우선 법원에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통상임금 산정지침’(2012년 9월25일 고용노동부 예규 제47호)에 따르면 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그런데 이 예규를 뒤집은 것이 바로 대법원이다. 2013년 3월 대법원은 “분기별로 지급되는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고 말았다. 대법원은 또 2013년 12월에는 임금이 정기성·일률성·고정성 요건을 갖추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상여금의 경우도 이 조건을 만족하면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줄소송이 이어졌고 각 법원에서 서로 다른 판결이 나오면서 전국 사업장은 대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상여금은 출발부터 통상임금이 아니었다. 경영성과가 좋으면 지급하고, 경영악화 땐 바로 줄일 수 있는 탄력적인 임금항목이다. 기본급 대신 상여금 등을 올려 현실적인 합의를 해야 했던 각 사업장 노사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1988년 제정 이후 적용됐던 가이드라인을 뒤집어버린 법원의 판결이 치명적이었다. 상여든 통상임금이든 지급하는 자는 기업이요 이는 시장에서 결정된다. 노사 교섭을 법원이 깨버렸으니 노조는 그것을 믿고 파업을 벌이려는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1화] 보이지 않는 규제 강화하고, 대못 규제는 그대로

 

정부가 기회 있을 때마다 규제개혁을 외치지만 이를 바라보는 기업들의 시각은 차갑다. 전경련이 최근 56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규제개혁 성과에 만족한다는 곳은 7.8%에 불과했다. 29.8%는 불만족, 62.8%는 보통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이 장관들을 모아놓고 7시간에 걸쳐 끝장토론하고 규제 기요틴(단두대)을 강조했는데도 실제 현장에서는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불만족스럽다고 응답한 기업들은 이유로 핵심 규제 개선 미흡(34.5%), 보이지 않는 규제 강화(24.3%)에다 모순된 규정(21.6%)을 꼽고 있다. 핵심 규제는 그대로 놓아둔 채 손쉬운 것만 해결하고 드러나지 않는 숨은 규제는 되레 늘어났다는 것이다. 중복·갈등을 빚고 있는 규제 정비도 크게 나아진 게 없다. 규제개혁이 얼마나 겉핥기로 진행되는지를 알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의 규제개혁에 대해서도 기업들이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혀·별로 기대 안 한다'는 응답이 45%에 달했다. 규제개혁 실현 가능성도 '부정적'이 '긍정적'보다 4배나 많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9일 자료를 내 경제규제를 1년 만에 10% 줄였다고 자랑했다. 자화자찬을 늘어놓은 것은 현장 사정을 모르거나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는 얘기로 들린다.

 

돌아가는 사정이 이러니 '가시는 뽑아냈는지 몰라도 넝쿨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기업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규제 증가가 우려스럽다. 식약처의 경우 식품 관련 고시항목마다 규제내용이 담겨 있는데도 규제등록 시스템에는 고시 전체가 1개 규제로 등록돼 있다. 이런 규제 묶음 고시가 무려 280개에 이른다고 한다.

 

정부조차 덩어리로 포장된 숨은 규제를 하나하나 드러내면 현재 1만5,000여건인 규제 수가 4만건 이상에 달한다고 추정할 정도다. 규제개혁은 기업이 체감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규제개혁은 돈 안 드는 경기부양책이라고 하지 않는가.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1화] 배임죄에 '경영실패 면책' 조항 넣어야

 

재계가 20일 한목소리로 배임죄 적용을 가능한 한 엄격하게 하도록 '경영판단의 원칙'에 의한 면책 조항을 상법에 명문화해달라고 법무부에 건의했다. 경영자가 기업에 이익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한 경영상의 판단에 대해서는 비록 나중에 손해가 나더라도 배임죄를 물을 수 없게 하자는 게 요지다. 재계는 이미 지난해 말 정부의 규제 기요틴 과제로 경영판단의 원칙 도입을 건의한 바 있다.

 

재계의 건의가 아니더라도 배임죄는 그동안 많은 논란을 빚어왔다. 배임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자신의 임무에 위반하는 행위'로 범위도 넓고 뜻도 모호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경영판단에 관한 문제에 형법의 잣대를 들이대다 보니 기업가정신이 위축될 우려가 컸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종속회사의 지배회사 지원 부분과 관련해 배임죄를 처음 도입한 독일만 하더라도 그로 인해 종속회사가 손실을 봤더라도 고의성이 없으면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경우 경영판단이라고 하더라도 배임으로 처벌되는 사례가 많았다. 재계의 이번 건의는 헌법재판소가 최근 배임죄 관련 조항에 대해 '대법원이 기업의 경영상 판단을 존중하며 배임죄 조항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으므로 명확성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후에 나왔다. 헌재의 이 같은 판단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법률이 잘못돼 있다는데 법원이 해석을 잘하고 있어 법률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원이 해석을 잘하는지도 의문이다. 대법원의 경영판단 관련 배임죄 판결 37건 가운데 실제 경영판단이 있었는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판단한 것은 절반 정도인 18건에 불과했다. 현재 국회에는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관련법률 개정안이 제출, 계류돼 있다. 선의로 한 경영상의 결정은 배임죄로 처벌되지 않도록 국회부터 앞장서기 바란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정석구 칼럼/정석구(편집인)-20150421화] 대통령 없는 나라

 

지금,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이 ‘없다!’ 외국 방문으로 인한 청와대의 ‘대통령 부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부를 만한, 국민의 아픔을 함께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이 없다는 말이다. 오죽했으면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순방을 떠나는 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등에 ‘돌아오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는 전단이 뿌려졌을까. 국민은 이제 박 대통령에게 걸었던 실낱같은 한 가닥 기대와 신뢰마저 거둬들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는 박 대통령과 박 정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뭐가 그리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필 제삿날에 외국으로 도피하듯 훌쩍 떠난단 말인가. 그래도 1주기 추모는 했다는 사진이라도 남기려는 듯 유가족마저 떠나버린 팽목항을 찾아 경호원 호위 속에 허공에 대고 추모사를 낭독했다. 차라리 일정이 바빠 그냥 출국한다고 했으면 희생자들이 두 번 모욕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떠난 뒤 이어진 참사 1주기 추모집회는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무참히 짓밟혔다. 경찰은 불법폭력 시위라서 엄정 대처했다고 하지만 그런 원인을 누가 먼저 제공했는가. 유가족과 시민들을 차벽으로 원천봉쇄한 것은 경찰이었다. 정부도 참사 1년이 지나도록 진상을 밝히기는커녕 유가족들을 돈이나 챙기려는 사람이라고 비아냥대면서 경원시했다. 겨우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온갖 핑계를 대며 조사위를 무력화시키려고 하는 게 박근혜 정부다.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이런 와중에 터진 ‘성완종 리스트’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를 설명해 준다. 성 회장이 죽음으로써 증언한 내용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이 온통 썩은 내 나는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에다 현직 총리, 박 대통령 측근들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부패로 얼룩진 인사들이, 온갖 불법비리 때문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덮어두려는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자신이 명징하지 않으면 세상의 진실을 대하기가 두려운 법이다.

 

‘성완종 리스트’로 박근혜 정부는 집권 뒤 최대 위기를 맞았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4·29 재보선을 앞둔 새누리당도 국민 앞에 허리를 굽히며 몸을 낮추고 있다. 동반자인 보수언론들도 위기감을 표출하며 박근혜 정부에 쇄신을 촉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불통의 대명사인 박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과연 바뀌게 될까? 새누리당도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떨치고 환골탈태할 수 있을까? 그래서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대통령과 집권여당으로 돌아올까?

 

진심으로 그러길 바란다. 그러지 않고 또다시 꼬리 자르기 식으로 이 국면을 적당히 넘기려 한다면 앞으로 남은 임기 3년은 정말 대통령 없는 불행한 3년이 될 것이다. 대통령의 지시나 명령이 먹혀들지 않고, 일상적인 국정은 마비되고, 국민은 각자도생하느라 허덕이는 그런 끔찍한 나라에서 누가 편히 살 수 있겠는가.

 

하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 정부가 개과천선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 같다. 경찰은 세월호 폭력 시위 주동자 등을 엄벌하겠다며 사법처리에 착수했다. 이러다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커녕 자식 잃은 유가족이나 희생자들을 추모하려는 시민들이 거꾸로 범죄자로 몰릴 판이다. 이건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성완종 리스트’도 실체를 제대로 드러낼 것 같지 않다. 새누리당은 국민의 인내심이 바닥난 이완구 총리와 아이들 밥그릇을 빼앗아 민심을 잃은 홍준표 지사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고 넘어갈 태세다. 일부 친여 언론과 여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도 리스트에 포함됐다며 물타기 작전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대형 부패사건이 터질 때마다 봐왔던 익숙한 풍경이다. 검찰 수사에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보지만 아직은 글쎄요다.

 

일주일 뒤면 대통령이 귀국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에 대통령이 ‘있게’ 될까. 그것은 박 대통령 자신에게 달려 있다. 돌아와서도 출국할 때의 그 모습 그대로라면 우리는 ‘대통령 없는 나라’에서 3년을 살아낼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20150421화] 이완구, 이러고도 성완종과 안 친하다고?

 

공개 석상에서 옆 사람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미소를? 이런 건 친밀한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영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이완구 총리를 보면 가깝지 않아도 그럴 수 있는가 보다.

 

 하긴, 친밀함이란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에 상대편이 아니라면 아닌 거다.

 

 오래전에 누군가 내게 물었다.

 

 “드라마 작가 P씨랑 친하세요?” 대답을 한참이나 망설였다.

 

  히트시킨 드라마가 서너 편. 그 당시 잘나가던 방송작가다. 만나는 사람마다, 특히 불쌍한 사람에게는 밥도 잘 사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 이프 잡지 인터뷰를 계기로 만나 우리도 ‘가난한 여성단체’에 해당됐던지 전 직원(그래 봐야 10명)이 고기랑 밥이랑 술·노래방까지 풀코스로 여러 번 대접도 받았고, 가끔 회식비라며 격려금도 보내 줬다.

 

  수입이 좋아서인지 성격이 좋은 건지 아니면 무슨 필요 때문인지. 마당발로 돈 쓸 곳을 찾아다니며 베풀던 그녀. 강이 보이는 그녀 작업실도 가 봤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와 난 결코 친한 사이는 아니다. 결국 “친하진 않고 만난 적만 있다”고 대답했다.

 

  친한 사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나. 대상을 넓게 잡고 공들여 봤자 다 ‘헛삽질’이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명절 때마다 5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선물을 돌리고 (정치) 성향이 같건 다르건, 마음이 맞건 안 맞건, 여당 야당, 동향 사람 타향 사람 닥치는 대로 죄다 찾아다니며 챙겼단다. 챙긴 상대가 명절 선물 명단대로 수백 명이라면 그들 중에서 “난 친한 사이다” 하고 선뜻 나설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이 원래 주는 걸 좋아해 내가 받았을 뿐 그를 챙길 의무도, 또 안 챙겨도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여기며, 그들 모두가 ‘난 그저 n분의 1의 존재’라 생각했으리라.

 

  그나저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돈 갖다 바치고 줄 서고 국회의원 되고. 이런 비틀어진 방법이 ‘친밀한 관계 만들기’라 여기고 신뢰와 의리를 기대했던 성 전 회장의 대책 없는 순진함도 놀랍지만 선거 때는 비타민(?)으로 살뜰하게 챙기고, 책을 내면 책값도 듬뿍 주고, 총리 낙방될까 봐 동네방네 몇천만원 들여 현수막을 걸어 주고, 호텔 행사 때마다 달려가 후원해 주고, 가족이랑 나란히 사진도 찍고, 이런 대접을 당당하게 받고서도 “친한 사이가 아니라 그저 같이 국회의원을 했을 뿐”이라 대꾸한 이 총리의 뻔뻔함도 참으로 황당하다. 고인이 된 성 전 회장이 어지간히 서운하긴 했겠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양권모(논설위원)-20150421화] 친분 관계

안면(顔面)은 눈, 코, 입이 있는 머리의 앞면 즉 얼굴·낯을 뜻하는 한자어다. 일면식(一面識), 반면식(半面識) 등의 표현에서 보듯 ‘얼굴을 안다’는 것은 사람 사이 관계를 가름하는 주요한 척도였다. 그렇기에 ‘안면’은 우리말에 정착하면서 얼굴·낯이라는 뜻 말고도 ‘서로 얼굴을 알 만한 친분’이라는 의미로 의미확장이 이루어졌다. ‘안면을 바꾸다’거나 ‘안면을 몰수하다’, 안면박대·안면치레·안면부지 등에서 ‘안면’이 그런 뜻이다.

 

관계의 그물망이 사방팔방으로 짜여지고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는 ‘얼굴을 알 만한 친분’인 안면은 특별한 친분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대면 한번도 없이 ‘친분 맺기’가 단숨에, 폭넓게 이뤄지고 끈끈하게 이어지는 판이다. 이제 ‘여섯 다리’가 아니라 ‘서너 다리’만 건너면 다 알고 통하는 사이로 엮인 ‘좁은 세상’이다. 실제 한국인의 ‘사회연결망’을 조사한 결과 3.6 단계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마당발’ 교류와는 거리가 먼 필부필부도 무턱대고 특정 상대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안면박대를 했다가는 우세 사기 십상인 세상이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진 직후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의 관계를 속된 말로 ‘생깐’(안면 바꾼) 것이 그에게 올가미가 되고 있다. 이 총리는 당초 “전혀 친하지 않다” “만난 적도 별로 없다” “친분도 없다”는 등 극구 ‘안면 사이’를 강조했다. 금품을 주고받을 정도의 친분이 없었다는 점을 내세우는, 비위 연루 정치인들의 단골 방어수법을 으레 동원한 것일 터이다.

 

하지만 속속 제시되는 증거·정황은 이 총리의 ‘망자(亡者)’에 대한 안면몰수가 새빨간 거짓임을 가리킨다.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에는 두 사람이 2013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무려 23차례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검찰 수사에서 최근 1년 동안 217번에 걸쳐 전화를 주고받은 게 확인됐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만나고 십수 차례씩 전화를 거는 사이가 ‘별 친분이 없다’고 한다면, 대체 무슨 관계일까? 아무리 궁리를 해도 “거의 뭐 부부관계라고 봐야 한다. 부부처럼 밀접한 관계”(노회찬 전 의원)보다 나은 현답을 찾기 어렵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양권모(논설위원)-20150421화] 친분 관계

안면(顔面)은 눈, 코, 입이 있는 머리의 앞면 즉 얼굴·낯을 뜻하는 한자어다. 일면식(一面識), 반면식(半面識) 등의 표현에서 보듯 ‘얼굴을 안다’는 것은 사람 사이 관계를 가름하는 주요한 척도였다. 그렇기에 ‘안면’은 우리말에 정착하면서 얼굴·낯이라는 뜻 말고도 ‘서로 얼굴을 알 만한 친분’이라는 의미로 의미확장이 이루어졌다. ‘안면을 바꾸다’거나 ‘안면을 몰수하다’, 안면박대·안면치레·안면부지 등에서 ‘안면’이 그런 뜻이다.

 

관계의 그물망이 사방팔방으로 짜여지고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는 ‘얼굴을 알 만한 친분’인 안면은 특별한 친분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대면 한번도 없이 ‘친분 맺기’가 단숨에, 폭넓게 이뤄지고 끈끈하게 이어지는 판이다. 이제 ‘여섯 다리’가 아니라 ‘서너 다리’만 건너면 다 알고 통하는 사이로 엮인 ‘좁은 세상’이다. 실제 한국인의 ‘사회연결망’을 조사한 결과 3.6 단계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마당발’ 교류와는 거리가 먼 필부필부도 무턱대고 특정 상대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안면박대를 했다가는 우세 사기 십상인 세상이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진 직후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의 관계를 속된 말로 ‘생깐’(안면 바꾼) 것이 그에게 올가미가 되고 있다. 이 총리는 당초 “전혀 친하지 않다” “만난 적도 별로 없다” “친분도 없다”는 등 극구 ‘안면 사이’를 강조했다. 금품을 주고받을 정도의 친분이 없었다는 점을 내세우는, 비위 연루 정치인들의 단골 방어수법을 으레 동원한 것일 터이다.

 

하지만 속속 제시되는 증거·정황은 이 총리의 ‘망자(亡者)’에 대한 안면몰수가 새빨간 거짓임을 가리킨다.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에는 두 사람이 2013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무려 23차례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검찰 수사에서 최근 1년 동안 217번에 걸쳐 전화를 주고받은 게 확인됐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만나고 십수 차례씩 전화를 거는 사이가 ‘별 친분이 없다’고 한다면, 대체 무슨 관계일까? 아무리 궁리를 해도 “거의 뭐 부부관계라고 봐야 한다. 부부처럼 밀접한 관계”(노회찬 전 의원)보다 나은 현답을 찾기 어렵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서동철(논설위원)-20150421화] ‘동의보감’의 인간관

“사람은 우주에서 가장 지체가 높고 귀한 존재다.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고, 발이 네모난 것은 땅을 본받은 것이다. …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안목(眼目)이 있다. 하늘에 밤낮이 있듯이 사람에게 잠들고 깨어나는 것이 있다. 하늘에 천둥과 번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즐거워하고 노여워하는 마음이 있고, 하늘에 비와 이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눈물이 있다. 하늘에 음양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한열(寒熱)이 있고, 땅에 샘물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혈맥(血脈)이 있다. 땅에 초목(草木)과 금석(石)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모발과 치아가 있다.”

 

허준(許浚·1539~1615)의 ‘동의보감’은 ‘신형장부도’(身形臟腑圖)로 시작한다. 신체의 모양과 장기의 위치를 표시한 그림이다. 인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요즘 감각으로는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귀중한 정보였을 것이다. 학계에서는 허준이 ‘동의보감’에서 내보이고자 했던 인간의 정수가 바로 이 그림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앞의 설명을 보면 우주와 인간은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와 몸은 각각 하늘과 땅을 상징한다. 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척추는 천지(天地)의 기운과 인체의 기운을 소통·순환시키고 있다.

 

우리는 ‘동의보감’을 병든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기능적으로 알려주는 의서(醫書)로만 알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은 이 땅의 오래된 경험적 향약(鄕藥) 전통에 중국의 새로운 의학 지식을 포괄한 16세기 후반 조선 의학의 결정판이다. 그러면서 ‘동의보감’은 인체와 질병의 상관관계를 당대의 세계관인 성리학에서 말하는 인륜(人倫)의 정당성으로 새롭게 정립한 의철학(醫哲學)의 명저이기도 하다.

 

‘동의보감’의 전편을 흐르는 가르침은 ‘인간은 자연을 닮은 소우주’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을 닮은 인간은 자연의 원리를 따라야 하고, 그 원리를 거스른다면 인체의 균형도 깨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자연스러운 삶이 인간의 도리인 만큼 인륜을 지키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성리학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이렇듯 ‘동의보감’은 의술을 통치 수단의 하나로 격상시켰다. 편찬에 정작(鄭?) 같은 유의(儒醫)도 참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유의는 의학 지식에 학식을 겸비한 관료를 뜻한다.

 

‘동의보감’이라는 이름은 조선 의학이 독립성을 가졌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허준은 중국 의학을 북의(北醫)와 남의(南醫)로 나누고 우리 의학을 동의(東醫)라 불렀다. 조선 의학이 독자적으로 발전했으며, 중국 의학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의식을 보여 준다. ‘동의보감’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동아시아 의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이다. 그 판본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다는 소식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오형규(논설위원)-20150421화] 중림시장

 

최근 서울시의 서울역 역세권 개발계획으로 주목받는 서소문 밖 중림동 봉래동 일대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이다. 조선후기 상업 발달사와 천주교 박해의 현장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 귀퉁이에 ‘칠패시장터’라는 표지석만 덩그러니 남았을 뿐이다. 너무 쉽게 잊는 한국인의 속성을 보는 듯하다.

 

서소문 밖 칠패(七牌)시장은 종로의 종루(鐘樓), 동대문의 이현(梨峴·배오개)과 더불어 한양의 3대 시장이었다. 칠패는 어영청의 7번째 순찰구역이자 경찰 기능의 순청(巡廳)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사람들 왕래가 많은 숭례문과 가깝고, 마포 서강 등지로 들어온 어물 곡물 등 생필품 집결지로 최적의 입지였다. 주한 프랑스대사관이 있는 합동(蛤洞·조개 집산지), 포동(布洞·베 집산지) 같은 지명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된다.

 

18세기 후반 칠패시장은 이현시장과 더불어 어물 판매량이 시전(市廛)의 내·외어물전보다 10배나 많았다고 한다. 칠패시장의 노점상인 난전(亂廛)을 관의 허가를 받은 특권상인인 시전(市廛)이 단속하는 등 마찰도 잦았다. 그러나 1791년(정조 15년) 시전의 금난전권(禁亂廛權)이 폐지된 이후 종루의 시전마저 능가하는 거대 시장으로 컸다. 당시 조선이 천주교 신자를 이곳에서 처형한 것도 인파가 많은 저잣거리에 효수해 공포심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이곳은 경성수산시장으로 바뀌었고 광복 뒤 중림시장으로 자리잡았다. 1970~80년대 상인들이 노량진과 가락시장으로 대거 옮겨갔고, 인근 지역 재개발로 지금은 어시장으로서 명맥만 잇고 있다. 중림동에는 한양의 5대 싸전(쌀시장)도 있었다. 중림동(中林洞)은 1914년 일제 경성부가 서울을 186개 동으로 나눌 때 당시 약전중동과 한림동에서 한 자씩 따온 이름이다.

 

봉래동과 중림동을 잇는 염천교(鹽川橋)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화약제조 관청인 염초청이 부근에 있어 이름을 따왔다는 설과, 무악재 부근의 본래 염천교를 헐고 이곳에 다리를 놓으면서 이름도 가져왔다는 설이다. 거지왕 김춘삼이 살았다는 염천교는 이곳이 아니고 청계천 5가 방산시장 부근이었다.

 

서울시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서울역고가 공원화 및 중림동 만리동 일대의 현대화 사업을 계기로 이 지역이 확 달라질 모양이다. 벌써부터 땅값이 뛴다는 소문도 있다. 경의선 철길에 가로막혀 도심 낙후지역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곳이다. 옛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이곳이 어떻게 바뀔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문성진(논설위원)-20150421화] '여풍당당' 사회

 

요즘 미국 정치권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위풍당당하다. 지난 12일 대권 도전을 선언했는데 사흘 만에 지지의원 89명을 확보하는 등 대세론은 벌써 굳어진 듯하다. "중산층의 평범한 미국인들이 원하는 챔피언이 되고 싶다"는 출마의 변과 함께 아이오와주의 대선 첫 유세를 시작한 그는 미국 전역으로 급속히 세를 키워나가고 있다. 힐러리 열풍과 더불어 미국에서는 '여풍(女風)당당'의 시대가 무르익고 있다.

 

사실 미국이 다소 늦은 편이지 지구촌 정치권에는 여성 리더의 시대가 열린 지 이미 오래다. 영국 매체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현재 세계 각국에서 정부나 국제기구 수장을 차지한 여성 지도자는 22명이나 된다. 이 중에서도 유로화 위기 극복을 위해 힘쓰는 '유럽의 여왕'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특히 돋보인다. 경제계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재닛 옐런 의장,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등이 활약 중이다.

 

텔레그래프는 유능한 여성 지도자의 공통된 자질로 '투지'와 '기개'를 꼽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꼼꼼함'과 '의사소통'이 여성 리더의 특장점으로 거론된다. 영업실적에서 전국 893등을 하던 은행지점을 부임 넉 달 만에 8위로 끌어올린 KB국민은행의 김을희 아시아선수촌 지점장이 바로 그런 경우다. 김 지점장 스스로 거래처를 발로 뛰면서 고객과의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직원들에게는 끈끈한 팀워크를 강조한 끝에 맺은 열매다.

 

한국 사회 전반으로 보면 '여풍'은 아직 말하기조차 민망하다. 여성 대통령까지 낸 나라이지만 의사결정 분야에서의 남녀 성평등 지수는 21.2이며 여성의 '유리천장지수'도 100점 만점에 25.6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꼴찌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전체의 51.3%, 여성 임금 수준은 남성의 63.7%, 전체 여성 노동자의 57.3%가 비정규직이다. 이렇듯 부끄러운 현실을 그대로 둔 채로는 '여풍당당 대한민국'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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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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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사 설은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의 논거 자체를 찾아서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대방 논거의 문제점을 찾아보는 작업도 함께 해 본다면 당신은 한 쟁점에 대해 다각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주요 이슈

 

■ 성완종 리스트 수사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금융당국의 비리

■ 세월호 참사 1주년

■ 노동시장 구조개혁

■ 이완구 총리 국정운영 차질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성완종 리스트 수사

 

[중앙일보 사설-20150420월] 성완종 리스트 수사, 루머에 현혹되지 말아야

 

‘성 완종 리스트’는 정치지형을 바꿀 좋은 재료다. 고비용-저효율의 정치시스템을 확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치권과 재계의 부패 연결고리를 끊는다는 근사한 명분도 갖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부터 모두 밝혀져야 한다. 검찰도 수사의 투명성을 보여줘야 한다. 리스트에 그만큼 무서운 폭발력이 잠재돼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수사팀에 전권(全權)을 주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하지만 수사 여건은 만만치 않다. 정치권과 SNS 등에서 횡행하는 여러 종류의 성완종 리스트가 국민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그 진원지는 정치권과 그 주변으로 보인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정략적으로 사건을 해석하고 있다. 덩달아 ‘찌라시’ 수준의 분석과 전망이 그럴듯하게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성 전 회장의 메모 속 8명 외에 또 다른 유력 정치인들의 비리 의혹 소문도 그중 하나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과거 수사도 거론되고 있다. 당시 축적됐던 친노(親盧) 정치인들의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가 재개될 것이란 소문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했던 과거까지 엮어 밑도 끝도 없는 얘기가 춤을 추고 있다.

 

  이런 루머의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 절차를 고려할 때 진실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성 전 회장의 55자 메모가 공개되고 이틀이 지나 구성된 문무일 수사팀은 지난주 경남기업 등을 압수수색했다. 수사팀은 이번주부터 성 전 회장 측근들을 소환해 로비 리스트를 입증하기 위한 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이완구 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 등의 주변인들에 대한 소환 조사도 시작될 전망이다.

 

  돌이켜 보면 대형 스캔들 수사 때마다 수많은 살생부(殺生簿)가 관행적으로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실체가 드러난 적은 없었다. 오히려 검찰 수사에 혼선만 줬을 뿐이다. 수사팀은 확인되지 않은 리스트에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선 8명에 대한 수사에 집중해 줄 것을 촉구한다. 수사 과정에서 추가로 드러나는 다른 사람들의 범법행위는 그 이후 수사해도 늦지 않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0월] ‘성완종 파문’에서 드러난 정치자금법의 허점

‘성 완종 사건’으로 정치자금의 투명성 강화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성 전 경남기업 회장이 여야 정치인들에게 ‘제3자 동원’ 또는 ‘후원금 쪼개기’ 방식으로 정치자금을 줬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법적 허점을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야 실세 권력들에게 편법 정치자금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고액 정치후원금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인적사항을 기재하지 않거나 부실 기재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성 전 회장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여야 정치인들에게 후원금을 전달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지난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국회의원들의 고액 후원자 명단에서 ‘성완종’, ‘경남기업’, ‘대아건설’ 등으로 후원이 이뤄진 경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현행법상 1회 30만원, 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고액 후원금을 제공하더라도 주소, 주민번호, 직업 등 인적사항을 기재하지 않거나 부실 기재한 경우 제재 규정은 전혀 없다. 일례로 경남기업 임원들이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을 건네면서 직업란에 ‘회사원’, ‘고향 후배’ 등으로 기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행 제도로는 이런 행위를 제재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후원 기부자의 인적사항을 보다 명확하게 기재할 필요가 있다.

 

정 치 후원 및 기부제도를 엄격히 하게 되면 정치참여 통로가 제한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현행 ‘미흡한 투명성’이 검은돈 전달 수단으로 악용되고 정치 부패의 온상이 되는 현상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시각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후원을 광범위하게 인정하되 그 내용(후원자, 액수, 사용처)을 상시 공개하는 방안도 설득력이 있다. 미국이나 선진국의 경우 모든 정치인과 고위공직자가 받은 자금 내용을 낱낱이 공개하도록 돼 있다. 액수가 크든 작든 모든 내용을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해 유권자들이 직접 판단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정 치자금의 투명성은 치밀하게 확보돼야 한다. 예외 없이 모든 내용을 관계기관에 보고하고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유권자들이 그 적절성을 판단하고 다음 선거에 참고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대의 민주주의의 성패는 정치자금의 투명성에 달렸고 최종적으로 선거를 통해 심판을 내리는 유권자에게 달린 것이다. 이번에도 입법권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치자금법 개정 자체를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국민이 나서서 제2의 성완종 파문을 막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금융당국의 비리

 

[중앙일보 사설-20150420월] 성완종이 부른다고 날름 달려간 금융당국 관계자

 

성 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2012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의원직을 잃은 지난해 6월까지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정무위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피감 기관으로 두고 있어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 당시 주식백지신탁위원회는 성 전 회장이 보유한 경남기업 주식이 직무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정무위에서 활동하려면 지분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은 이에 불복, 행정소송을 내고 버티면서 정무위원직을 유지했다. 당시에도 그가 왜 그렇게까지 정무위원직에 집착하는지 의구심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성 전 회장의 과거 행적이 드러나면서 의문도 풀리고 있다. 덩달아 한심한 금융당국의 행태도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성 전 회장은 정무위원 시절 금융당국과 채권단을 상대로 경남기업에 대한 특혜와 무리한 지원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당시 경남기업은 이미 자기자본을 많이 까먹은 상태였다. 2013년엔 순손실이 3395억원에 달했다. 그런데도 신한은행 등에서 900억원을 추가대출 받았다. 2013년 10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에도 모두 6300억원을 지원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워크아웃 기업엔 당연히 따라야 할 대주주 주식의 지분축소(감자)도 없었다. 심지어는 성 전 회장에게 기업 회생 후 주식을 먼저 살 수 있도록 하는 우선매수청구권까지 쥐어줬다. 이렇게 해서 금융권이 빌려준 돈이 모두 1조3000억원이다.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이 5270억원으로 가장 많다. 결국 이 돈은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게 생겼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있었다. 아니 되레 적극적으로 경남기업을 비호·지원한 흔적까지 남겼다.

 

  상식을 깨는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정무위원직이 열쇠였다. 성 전 회장은 경남기업의 3차 워크아웃을 앞두고 신제윤 금융위원장,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을 각각 만났다. 당시 워크아웃 담당 국장이던 김진수 금감원 전 부원장보는 아예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무슨 얘기, 무슨 민원을 할지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부른다고 날름 달려간 인사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도 해당 인사들은 하나같이 “국회 정무위원이 만나자는데 어떻게 거절하느냐”며 “외압을 받아 특혜를 준 것은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고 한다.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당장 금융당국은 경남기업 워크아웃 전 과정에 대해 철저히 재조사해야 한다. 손실이 뻔한 대출을 해준 은행 관계자들은 누구인지, 누구의 청탁을 받았는지 낱낱이 밝혀 처벌해야 한다. 금융당국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감사원은 이미 지난 2월 경남기업 부당지원 의혹이 있다며 관련 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은 금융당국 외압설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하기 바란다.

 

  무엇보다 국회가 대오각성해야 한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직무 연관성이 문제가 됐는데도 성 전 회장을 정무위에 배정했다. 그가 사익을 추구하고 부당 압력을 행사하도록 눈감아 준 셈이다. 이번 기회에 국회는 국회의원이 자신의 사적 이익과 관련된 법안·예산·상임위에는 아예 간여할 수 없도록 차단하는 방안부터 마련하라.

 

 

[서울신문 사설-20150420월] 경남기업에 거액 날린 금융권 책임도 가려야

‘성 완종 리스트’가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으나 수사당국이 간과해선 안 될 대목은 따로 있다고 본다. 금융권을 상대로 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로비와 그 과정에서의 불·탈법이다. 성 전 회장이 정치권과의 연줄 쌓기에 공을 들인 주된 배경도 따지고 보면 결국 자신의 기업 활동에 유리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함이었다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주된 로비 목표는 정치권이 아니라 금융권이었으며, 따라서 적지 않은 불법 로비가 금융권을 상대로 펼쳐졌을 것으로 보는 게 순리일 것이다.

 

법 정관리에 들어간 경남기업의 채무는 무려 1조 3000억원에 이른다. 수출입은행이 5207억원으로 가장 많고 신한은행(1761억원), 산업은행(600억원), 농협은행(522억원), 국민은행(421억원), 우리은행(356억원)이 뒤를 잇는다. 법정관리 기업의 채권원금 회수율이 대개 20%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이들 은행은 무려 1조원 정도를 떼일 상황이다. 국민 세금이나 은행 고객들의 지갑으로 메워야 할 돈이 1조원에 이르는 셈인 것이다. 경남기업과 이들 금융사 간 거래의 적실 여부를 철저히 따져야 함은 물론 그 과정에서 어떤 불·탈법이 벌어졌는지 낱낱이 파헤쳐 민·형사 책임을 물어야 마땅한 일이다.

 

성 전 회장이 남긴 이른바 ‘성완종 비망록’엔 비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특히 성 전 회장이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무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2012년부터 경남기업이 3차 워크아웃에 들어간 2013년 10월을 전후로 집중적인 금융권 로비가 펼쳐졌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기간 그가 만났다고 비망록에 기록된 금융권 수장만 해도 수두룩하다. 최수현 당시 금융감독원장, 김진수(당시 담당 국장) 전 금감원 부원장보, 김용환 당시 수출입은행장, 임종룡(당시 NH농협지주 회장) 금융위원장, 이팔성 당시 우리은행지주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금융권에서 흘러나오는 증언들은 당시 성 전 회장이 국회 정무위원의 지위를 이용해 무담보 대출을 요구하거나 워크아웃 대상에서 빼달라는 압력을 무차별적으로 가했다는 것 등이다.

 

그 의 전방위 로비는 실제로 납득하기 어려운 특혜로 이어졌다. 이미 자본잠식 상태나 다름없는 경남기업에 신한은행은 3차 워크아웃 직전 900억원을 대출해 줬다. 워크아웃 과정에서도 채권단은 1000억원을 출자 전환하면서 주식을 할인 없이 액면가(5000원)에 받았을 뿐 아니라 무상감자(주식 소각)를 하지 않았는데도 경영이 정상화할 경우 성 전 회장이 주식을 우선적으로 살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줬다. 심지어 지난해 2월에는 채권단이 6300억원을 경남기업에 지원하기로 하는 내용의 경영정상화 계획 이행 약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하나같이 ‘든든한 배경’ 없이는 성립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실제로 지난해 1월 신한은행의 경남기업 실사 과정에서 금감원 고위 관계자가 성 전 회장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반영하라고 요구한 정황이 감사원 감사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성완종 사건’의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에 대한 그의 금품 로비 너머로 자행된 불·탈법 금융거래의 추한 민낯과 관치금융의 적폐를 직시해야 한다.

 

 

 

■ 세월호 참사 1주년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0월] 우선순위 실종된 ‘대통령 외교’

 

세 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최장기인 9박12일간의 콜롬비아·페루·칠레·브라질 4개국 순방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한창 정상외교를 하는 중이다. 대통령이 비행기로 거의 하루를 날아가야 도착하는 남미까지 방문해 국익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을 폄하할 생각은 없으나 그 일정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외교 우선순위에 맞는 것인지는 심각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세 월호 참사 1주기와 성완종 파문의 와중이라는 국내정치적 요인을 간과한 무신경한 방문일정이라는 비난은 차치하더라도, 지금 우리나라를 둘러싼 외교 환경이 대통령이 열흘 이상이나 남미에서 시간을 보낼 정도로 한가한지 의문이 많다. 우선 대통령의 남미 순방이, 그와 겹치는 기간인 19~23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 60돌 기념행사보다 얼마나 어떻게 중요한지 모르겠다. 반둥회의는 미국과 옛 소련의 진영에 가담하길 거부했던 아시아·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비동맹회의의 모태로, 국제사회에 큰 족적을 남긴 바 있다. 이번 기념행사에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참석하는 것만 봐도 그 비중과 의미를 알 수 있다. 더구나 아베 총리는 여기서 역사인식과 관련한 연설을 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우린 외교의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는 황우여 교육부총리를 특사로 파견한다니 너무 긴장감이 없어 보인다.

 

또 지금은 아베 총리의 4월말 미국 방문을 앞두고 미국 주도로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시기다. 16~1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는 한-미-일 외교차관 회담과 3국 국방부 차관보급이 참가한 3자 안보토의(DTT)가 잇달아 열렸다. 주로 미-일 동맹의 강화 흐름에 우리를 어떻게 끌어들이느냐를 주제로 한 성격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남미야 엎질러진 물이 됐지만, 중요하고 골치 아픈 문제는 피하고 쉽고 빛날 일만 골라 하는 정상외교론 국익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20150420월] 세월호 추모와 폭력시위는 구분해야 한다

 

우 리는 왜 슬픈 ‘세월호 1주기’를 희생자에 대한 경건한 추모와 애도의 정으로 보내지 못하는가.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과 실력은 정말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세월호 1주기인 16일부터 주말로 이어진 추모집회는 결국 폭력시위로 변질됐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였던 8000여 명(경찰청 집계)은 추모를 넘어 시위에 가담해 ‘박근혜 퇴진’ 구호를 외치고, 일부 시위대는 경찰버스를 부수고 태극기를 불태우기도 했으며, 경찰은 캡사이신과 물대포로 대응하는 등 전형적 폭력시위 양상으로 번졌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희생자의 어머니가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고, 의경과 시위대의 부상자도 속출했으며, 10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우리는 추모집회를 폭력시위로 끌고 간 데에는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음에 주목한다. 이날 시위를 이끈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와 4·16연대의 주도 세력 중엔 2008년 광우병 시위를 이끌었거나 일부 좌파 단체 인사가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연행된 100여 명 중 80여 명이 유족이 아닌 일반인이거나 외부 단체 소속이라고 밝혔다. 전문 시위꾼들이 세월호 유족들의 비극을 사회갈등 유발과 반정부 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비인도적 행태’를 더 이상 두고 봐선 안 된다.

 

  물론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상처를 치유받기는커녕 여전히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이해한다. 정부를 포함한 우리 사회가 반성하고 고쳐야 할 부분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희생자 가족들을 반정부 폭력시위로 끌어들여 일반 시민들과 이간질하는 불순한 세력까지 용납할 수는 없다. 추모와 시위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희생자 가족들도 대통령이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선체 인양에 나서고,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에 대해서도 유족들과 조율해 고치라”고 한 만큼 이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희생자 가족들이 사회갈등을 부추기는 전문 시위꾼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우려하는 시민이 많다. 이젠 갈등이 아닌 치유의 길을 찾아야 한다.

 

 

■ 노동시장 구조개혁

 

[한국일보 사설-20150420월] 정부ㆍ노동계, 치킨게임 대신 대화 나서라

 

노 동시장 구조개혁을 둘러싸고 정부와 노동계가 정면 충돌할 조짐이다. 민주노총이 24일부터 총파업을 하기로 결의했고, 한국노총도 내달 전국 3,000여 단위노조 찬반 투표를 거쳐 늦어도 6월 초에는 총파업에 돌입할 태세다. 정부는 검찰 등을 동원해 불법파업으로 피해를 빚은 개별 사업장 노조와 민주노총 지도부를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하고 핵심 주동자는 구속하겠다는 방침이다.

 

지 난해 말 시작된 노동개혁 논의는 지난 8일 한국노총이 자신들이 제시한 ‘5대 수용불가 항목’에 대한 정부ㆍ경영자측 철회 요구를 이유로 노동시장구조개혁특위 불참과 노사정 대타협 결렬을 선언, 막을 내렸다. 이후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청와대에 사퇴서를 내는 등의 파행이 잇따랐다. 그 동안의 논의에서 노동시간 단축이나 통상임금 법제화 등 몇 가지 현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의견 접근이 이뤄졌지만, 노동계는 이마저 부인하고 있다. 급작스럽게 터진 ‘성완종 리스트’파문과 ‘세월호 참사 1주기’로 정부가 수세에 몰리고, 당ㆍ정ㆍ청 정책협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초 계획했던 정부의 독자 개혁안 추진도 당분간 어려운 실정이다.

 

특 히 이번 총파업은 18년 만에 처음으로 양대 노총이 함께할 가능성이 커서 경제에 짙은그늘을 드리울 전망이다. 전국공무원노조와 전국교직원노조도 공무원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차원에서 파업에 동참한다고 한다. 안 그래도 비틀거리는 경제에 커다란 짐을 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동안의 논의에서는 정부와 노동계 모두 대화를 하겠다는 자세와 노력이 부족했다.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근로기준법의 핵심영역을 개혁하겠다는 거창한 목표에 걸맞은 협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노동계 반발을 감안한 적절한 대안도 없었다. 물론 노동계도 ‘5대 수용 불가 사항’을 지나치게 고집한 측면이 있다. 조직의 이익에 과다하게 집착해서야 이해가 다른 상대와의 접점 마련은 불가능하다. 한편으로 재계도 뚜렷한 양보 자세를 보이지 못했다. 국회가 숨어서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도 지우기 힘든 오점이다.

 

노 동시장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다. 또한 특위의 활동시한은 9월까지다. 노동계도 파업이 최선의 선택이 아님을 알고 있을 것이고, 정부가 현장지도 등을 통해 노동계 약점을 파고 들면서 주동자 구속수사 운운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양측 모두 이렇게 힘으로 맞서다가는 결국 공동 파국을 부를 뿐이다. 양측이 즉각 현재의 치킨게임에서 발을 빼야 할 이유다. 문제 해결의 방법은 역시 대화와 협상뿐이다. 노사정이 다시 협상 테이블로 나와 얼굴을 맞대길 촉구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0월] 기업도 아닌 정부가 왜 '해고 기준' 만지작거리나

 

정 부의 노동개혁 방향과 내용이 영 엉뚱하게 돌아가고 있다. ‘성과 낮은 근로자에 대한 해고 기준’이 노·사·정 안건에 포함된 것도 문제였는데 아예 정부가 구체 내용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소위 일반해고의 명확한 기준을 6월까지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 사업장에서 합리적인 원칙이나 기준 없이 희망퇴직을 내세운 구조조정을 하거나 징계해고 형식을 빌린 일반해고가 빈발하고 있다”며 “불필요한 노사갈등을 막기 위해 기준을 명확히 하려는 것”이라고 부연설명까지 했다.

 

이 장관의 발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취업이나 해고는 기업의 자율에 속하는 사항이어서 정부가 기준을 놓고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통상임금 논란도 그렇게 시작됐다. 정부가 통상임금 기준이라는 것을 굳이 만들어 결과적으로 산업계에 그렇게 큰 충격을 주더니 이제는 해고 조건에까지 끼어들어 작동하지도 않을 기준을 만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일반 해고기준이란 걸 만든다고 법원이 이를 존중해줄 것도 아니다. 해고는 고용과 마찬가지로 기업이 사정에 따라 할 일일 뿐 정부가 그 기준을 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정부가 고용의 기준을 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애 초부터 노사의 자율적인 계약에 맡기면 그만인 일이다. 해고기준이라는 것을 세워 놓으면 지금도 연간 1만3000건에 달하는 해고소송이 그로 인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무소불능의 노조 파워,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등 노동계의 불균형, 경직된 고용시스템이 노동개혁의 대상이다. 노동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노동개혁이다. 그런 일을 정부가 시시콜콜 관여하고 자세한 규정을 세우면서 관치 노동시장을 만들어온 것이 지금까지 문제의 핵심이었다. 그것을 개혁하자는 것인데, 여기에 다시 해고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한다. 한 번 기준을 만들어 놓으면 선거 때마다 그 기준을 놓고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해고 자체가 점차 무력화하고 만다. 정부는 대체 생각이 있기는 한 것인가.

 

 

■ 이완구 총리 국정운영 차질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0월] ‘이완구 덫’에 걸린 국정, 마냥 방치할 셈인가

 

국 무총리 자리에 대한 이완구씨의 집착과 여권의 무대책이 대통령 부재와 맞물리면서, 우려했던 대로 국정 공백과 국회 마비의 상황으로 달려가는 느낌이다. 청와대와 정부, 새누리당은 19일 오후 당정청 협의회를 열어 주요 현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김무성 당대표와 이완구 총리,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참석한 회의는 아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 이후 고위급 협의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하지만,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인 상황에서 당정청의 책임자가 얼굴을 맞대는 게 이상할 정도로 지금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그 래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주재로 실무협의를 했지만, 이런 상태에서 국정 논의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논의 주제인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노동시장 구조개편 문제 모두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사안들이다. 그런데 국무총리는 권위와 신뢰를 잃고 새누리당 역시 이런 총리를 큰 정치적 부담으로 여기는 상황에서 누가 국정 현안을 책임지고 이끌어 나가려 하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귀국할 때까지 열번 백번 당정청 협의를 해도 주요 국정 현안의 진전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국 회 역시 다르지 않다. 가까스로 활동기간을 연장한 자원외교 국정조사특위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직격탄을 맞았고, 국회 상임위 활동 역시 현 정국의 무게에 눌려 버린 상태다. 여기에 새정치민주연합은 이완구 총리 해임건의안을 제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과 거 야당이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제출한 적이 여러 번 있지만 대부분 표결까지 가지 않았고, 표결까지 가더라도 모두 부결됐다. 그래서 야당의 행동을 단순한 정치공세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완구 총리 해임건의안 문제는 여당인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상당수 의원이 공감을 표시한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상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새누리당 지도부 역시 속으론 총리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총리의 체면을 생각해 ‘박근혜 대통령 귀국 때까지는 현 상태를 유지하자’고 하는 게 과연 국민을 위한 선택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지 금의 국정 혼란과 혼선을 끝낼 책임은 우선 이완구 총리 자신에게 있다. 해임건의안 표결로 더 큰 혼란이 오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는 게 최선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대통령 부재’를 탓하지 말고 하루빨리 국정을 정상화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미 민심은 기울었다. ‘시한부 총리의 덫’에 걸려 행정부에 이어 국회까지 파행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경향신문 사설-20150420월] 이완구 총리의 4·19 기념사를 듣는 불편함

 

이 완구 국무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의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믿을 만한 증언이 있었고 불법 자금 수수 현장을 목격했다는 여러 사람의 목격담도 나왔다. 검찰은 그의 계좌를 추적 중이고,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그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런 현실에서 그가 내각의 지휘자로서 또한 부패 척결의 사령탑으로서 도덕적, 정치적 권위를 행사하기는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패 척결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했고, 이 총리 역시 자기 최우선 임무를 부패 척결로 천명한 조건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총리는 총리로서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기 위해 필요한 도덕적 정당성, 정치적 권위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거듭 “국정이 흔들림 없이 가야 한다. 국정을 챙기겠다”면서 총리직 고수 의사를 표시했다. 그는 자신이 총리 자리를 하루라도 더 지키고 있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정당성을 상실한 내각의 지휘자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어제 그가 4·19혁명 유공자와 유가족들이 참석한 4·19혁명 기념식에서 정부를 대표해 기념사를 했을 때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는 기념사에서 “부정과 불의에 맞선” 민주 영령과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를 거론했다. 그때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된다. “국가의 품격” “세계 속에서 당당한 선진사회”를 말할 때는 이중성, 모순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그런데 지난해 4·19혁명 기념사의 한 문장이 이번 기념사에는 빠졌다. “정부는 비리와 부정부패를 뿌리 뽑는 전면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라는 대목이다. 최근 정부가 부패 척결 의지를 더욱 강조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의아한 일이다. 아마 이 총리가 자신의 처지를 의식한 결과였을 것이다. 설사 그걸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부패 척결을 주장했다 해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가 부패 척결을 주장해도, 주장하지 않아도 어색하다.

 

그 의 기념사가 의미 없는 말의 잔치처럼 느껴지는 건 표현이 진부해서라기보다 기념사의 내용과 기념사를 하는 주체 간의 부조화 때문이다. 누구를 가르치는 듯한 그의 말을 듣는 일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언제까지 시민에게 이런 불편함을 강요하려 하는가.

 

 

■ 그 밖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50420월] 고금리 대부업체도 금리인하에 동참해야

 

안 심전환대출에서 소외된 2금융권 주택담보대출자들을 위해 정부의 정책 모기지 대출이 전면 개편된다. 골자는 시행 부처별로 지원대상, 금리, 한도 등이 제 각각인 정책 모기지대출상품을 통합하고 지원 문턱을 낮춰 2금융권 고금리 대출자들의 ‘갈아타기’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어제 나온 당정의 계획대로 정책모기지 대출 개편이 이루어지면 2월말 현재 시중은행 가계대출액의 절반 정도인 2금융권 가계대출 약 227조원 중 상당액이 금리인하 혜택을 받게 된다. 문제는 2금융권 대책에서도 빠질 대부업체 채무 등이다.

 

안 심전환대출은 대출자들에게 1% 포인트 내외의 금리를 경감해주되, 고정금리 전환, 원금ㆍ이자 균등상환 등의 조건을 통해 은행의 대출자산 부실화 위험을 낮췄다. 대출자와 은행 모두 ‘윈윈(win-win)’하는 구조였던 셈이다. 정책모기지 대출 개편을 통한 2금융권 대출자 ‘갈아타기’ 지원 역시 디딤돌 대출과 공유형 모기지, 보금자리론, 적격대출 등을 통합하면서 금리를 낮추고 지원대상을 넓혀 2금융권 고금리 대출자를 수용하되, 고정금리 전환 및 원금 상환 조건 강화 등을 덧붙이는 방향이다.

 

새 로운 정책모기지 대출의 금리는 신용도 등을 반영해 안심전환대출(연 2.63~2.65%)보다는 높게 설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연 15%를 넘은 저축은행 가계대출보다는 훨씬 낮다. 이로써 저금리에 따른 가계부채 부담 경감혜택은 은 은행권에 이어 2금융권 고금리 대출자로까지 확대된다. 하지만 이번 대책 추진에도 불구하고 대부업 채무 등 금융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 추가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전 체 가계부채 대비 대부업체 채무의 비중은 매우 낮다. 지난 3월말 현재 대출 총액 약 11조원에 이용자수는 255만명 정도다. 1인당 채무 규모도 평균 400만원 내외다. 하지만 모든 대부업체들이 개인 신용도조차 구분하지 않고 거의 모든 대출자들에게 법정 상한선인 연 34.9%의 최고금리를 적용하고 있어 문제다. 금감원은 최근 대부업체 조달금리가 연 4~5%까지 낮아진 점 등을 들어 금리인하를 종용하고 있지만 대부업체들은 미상환 위험 등을 감안한 원가금리가 30.6%에 달한다며 버티고 있다.

 

물 론 대부업 대출 자산의 부실화 위험이나, 금리인하 시 대출심사 강화 등에 따라 잠재 대출자들이 사채시장으로 몰리는 부작용 등은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걸 핑계로 대부업체들이 부당한 착취적 고금리를 고수한다면 대출이자 법정 상한을 낮추는 등의 조치를 통해서라도 시장 왜곡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한국일보 사설-20150420월] 정책의 융통성이 요구되는 개성공단 문제

 

개 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의 3월분 급여 지급 시한이 오늘이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남북 사이의 이견이 봉합되지 못했고, 조기 타협 전망도 어둡다. 이에 따라 입주기업들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북측의 일방적 임금인상 요구를 수용하지 말라는 정부 지침에 따르자니 북한의 보복조치가 두렵고, 그렇다고 정부의 행정조치를 무릅써가며 북측 요구에 따르기도 어렵다.

 

이 번 갈등은 북측의 일방적 결정에서 비롯했다. 지난해 11월 북측은 개성공단 노동규정 가운데 13개 항목을 일방적으로 개정했다. 지난 2월 말 이 중 2개항을 적용해 3월부터 북측 근로자 월 최저임금을 70.35달러에서 74달러로 5.18% 인상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정부는 일방적 제도변경은 개성공단 운영원칙에 어긋난다며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를 통한 문제해결을 타진했다. 임금인상 요구 폭이 너무 커서 입주기업의 채산성을 해칠 것이라는 순경제적 이유보다는 원칙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컸다. 북측의 일방적 발표를 용인할 경우 북측이 다시 남북협의 없는 일방적 제도변경에 나설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북측은 한동안 최저임금 인상은 ‘주권사항’이라는 이유를 들어 협의 자체를 거부하다가 지난 7일에 이어 18일 두 차례 남북 협의에 응했지만, 양측 각각의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 교섭이 결렬됐다.

 

발 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입주기업들이다. 정부는 입주기업과의 철저한 연대만이 북측의‘원칙 깨기’ 시도에 맞설 수 있는 수단이라며 우선은 종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3월 급여를 지급하도록 입주기업에 통보했다. 대부분의 입주기업이 이런 지침에 따를 것으로 보이나 일부 기업의 북측 요구 수용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북측은 이미 종전 기준의 급여는 수령을 거부하는 동시에 월 15%의 연체료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바 있다. 나아가 태업이나 잔업ㆍ야근 거부, 근로자 철수 등으로 입주기업을 압박할 경우 심각한 생산차질을 빚어질 수 있다.

 

이 유야 어떻든, 입주기업의 현재적 고통은 지켜보기 딱하다. 또 과거에 비추어 북측에 단숨에 100%의 원칙을 확인시킬 수 있다는 기대는 애초에 무리다. 일부 원칙을 상징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신뢰의 점진적 축적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타협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런 융통성과 유연함이야말로 남측이 자랑 삼을 만한 체제 우월성의 핵심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융통성을 발휘하길 거듭 촉구하는 이유다.

 

 

[한겨레신문 사설-20150420월] 구조엔 무능, 진압엔 잔인한 정권

 

세 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시민들의 추모 행사가 잇따르는 가운데 경찰이 작심이라도 한 듯 초강경 태도로 평화적인 집회·행진을 진압하고 있다. 참사 당시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데는 그토록 부실했던 정부가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들의 슬픔을 짓밟고 진상규명을 위한 정당한 목소리를 탄압하는 데는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16 일 1주기 추모행사 때 경찰이 차벽을 쌓아 광화문광장을 원천봉쇄하고 시민들에게 최루액을 쏘는 등 과도하게 대응했고 이 과정에서 유가족 한 명은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까지 당했다. 경찰은 18일 세월호 1주년 범국민대회 때도 차량 470여대와 경찰력 1만3700여명을 동원해 경복궁과 광화문광장, 세종로 네거리 등을 겹겹이 차단했다. 강경 대응에 항의하는 유가족 등 100여명을 연행하고 물대포와 최루액을 난사했다. 어느 대학생은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갔다고 한다. 민주화 이전의 시절을 연상케 하는 암울한 풍경이다.

 

경 찰은 도로 점거로 인한 교통 불편과 경찰관 폭행 등 폭력행위를 들어 강경진압의 불가피성을 강변한다. 하지만 지난 주말을 비롯해 마라톤대회 등 각종 행사로 서울시내 교통이 통제되는 것은 다반사다. 국가적 참사를 애도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다른 어떤 행사보다 더 보호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 또 경찰이 애초 무리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면 대치·충돌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차벽을 쌓아 집회와 통행을 원천봉쇄하는 것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명백한 위헌이다. 경찰의 구차한 설명은 변명을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세 계적인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도 한국 경찰의 행태는 “유가족들에 대한 모욕적 처사이며, 표현의 자유 및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평화적인 집회 참가자들을 해산하기 위해 최루액을 살포한 것은 국제기준 위반”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1주기를 지켜보는 국제사회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평가할지 생각하면 창피하기 그지없다. 대통령이 아무리 열심히 외국 순방을 다닌들 무엇하나. 국가적 참사를 애도하려 모인 시민들을 경찰이 폭력으로 진압하는 장면 하나로 우리나라의 국격은 단번에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경 찰의 이해할 수 없는 강경한 태도는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 대처해온 태도와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진정성 있게 진상규명 노력을 해왔다면 이런 상황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다. 1주기가 되도록 특별조사위원회조차 출범하지 못하도록 훼방 놓고 선체 인양에도 손 놓고 있다가 막상 거대한 비판과 저항에 직면하자 무리하게 시민들의 입을 틀어막게 된 셈이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경찰의 무리수는 정권 핵심부의 지침이나 암묵적 승인 속에 이뤄졌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강경진압 발상의 근원지를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0월] 세월호 민심, ‘근혜 산성’으로 덮을 수 없다

‘세 월호 참사 범국민대회’가 열린 18일 서울 도심의 풍경은 참담했다. 광화문 바로 앞에서 노숙농성 중이던 세월호 유가족 중 일부가 경찰에 연행됐다. 고립된 유가족을 만나러 광화문 쪽으로 향하던 시민들은 물대포와 최루액 세례를 받았다. 앞서 경찰은 병력 1만3700여명과 차벽 트럭 18대, 차량 470여대를 동원해 겹겹이 저지선을 쳤다. 그럼에도 행진 시도가 계속되자 유가족 20명을 포함해 100명을 연행했다. 경찰은 과잉진압 논란에도 불구하고 “불법 시위 주동자와 극렬 행위자들을 추적해 전원 사법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경찰에 묻는다.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판단한 차벽을 세운 것은 합법인가. 자식을 잃은 어미에게 물대포를 쏘고, 고등학생과 환자까지 붙잡아간 것도 합법인가. 공권력은 헌법을 경시하고 시민을 겁박하라고 주어진 게 아니다.

 

이 명박 정부는 2008년 촛불집회 때 시민들이 청와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저지선을 만들었다. 이른바 ‘명박 산성’이다. 이는 정권과 시민 사이 소통 단절의 상징물로 부각됐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는 경찰이 서울광장 주변에 버스 수십대를 붙여 차벽을 설치했다. 헌재는 2011년 “시민의 통행을 원천적으로 막은 것은 행동 자유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최근 세월호 1주기 집회를 계기로 재등장한 차벽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근혜 산성’으로 불리고 있다. 실제 경찰은 차벽 설치 이유를 묻자 “집회 참가자들의 목적이 BH(청와대)에 진출해 인간띠를 하려는 것이었다” “청와대 쪽으로 집단 진출하려는 상황이었다” 등의 답을 내놓았다. 헌법을 지키는 일보다 대통령 심기 경호에 치중했음을 스스로 털어놓은 셈이다. 정작 대통령은 청와대를 비운 채 지구 반대편에 가 있으니 기막힌 아이러니 아닌가.

 

국 제앰네스티는 “세월호 참사 후 1년이 지나면서 한국 정부가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를 무시하려 하고 있다”며 “세월호 유가족은 체포나 위협의 공포 없이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제 인권단체의 입까지 빌리지 않더라도, 지난 16일 세월호 1주기 추모제와 18일 범국민대회에서 경찰이 보인 행태는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이다. 이는 박근혜 정권의 ‘강력함’이 아니라 ‘취약성’을 증거한다. 역대 정권에서도 도덕성과 정당성을 상실하면 공권력에 의존하지 않았던가. 세월호 참사와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통치기반을 사실상 잃어가고 있는 현 정권도 ‘근혜 산성’ 외에는 기댈 곳이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폭력과 강압의 결말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시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경향신문 사설-20150420월] 장애인의 날 지정 25년, 부끄러운 장애인 복지 현실

매 년 장애인의 날을 전후해 장애인 체험 행사가 벌어진다. 휠체어 타고 이동하기나 눈에 안대를 하고 횡단보도 건너가기 등이다. 기껏 5분 안팎의 체험이지만 사회 곳곳에 비장애인은 생각지도 못하는 장애가 엄청나다는 것을 아는 데 충분하다.

 

예 컨대 휠체어를 타면 젖먹이에게도 장애가 안되는 불과 5㎝ 높이의 턱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절벽이 된다. 이런 턱은 관리가 제대로 안된 보도블록길이나 길과 길이 연결되는 곳마다 숨어 있다. 지하도나 경사로는 자칫하면 대형 사고를 낳는 위험지대다. 시각장애인의 횡단보도 건너가기도 안전사고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장애인이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비장애인이 겪지 않는 차별과 불이익, 고통을 추가로 감수해야 한다.

 

정 부가 1991년 장애인의 날을 지정한 것은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났지만 한국은 아직도 장애인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사이 장애인의 일부 삶의 지표는 다소 나아졌다. 그러나 장애인의 불편과 차별이 여전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로 나아졌다고 할 수 없다. 장애인의 날 정부와 사회는 1회성 ‘보여주기 행사’를 하지만 나머지 364일은 그들의 존재와 고통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한 국보건사회연구원이 어제 발표한 ‘2014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는 장애인의 삶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조사 결과 전체 장애인 중 혼자 사는 사람은 24%가 넘었다. 9년 전인 2005년 조사 때의 11%에 비하면 10년 새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장애인의 일상 및 사회생활 시 반드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장애인 1인 가구 증가는 장애인들의 삶의 질 하락을 의미한다. 노인 장애인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한 국의 장애인구는 국민 100명 중 6명꼴이다. 그러나 장애인을 위한 정책과 사회 제도는 그들의 인구적 비중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의 일상생활 자립과 사회 복귀는 무엇보다 당사자에게 중요하고, 국가와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장애인 복지는 한 국가의 복지 수준을 가늠하는 주요 기준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장애인의 인권과 이동권, 소득, 취업, 의료 보장을 위한 보다 각별한 노력을 정부와 사회에 주문한다.

 

 

[서울신문 사설-20150420월] 청년실업으로 20만명 몰린 9급 공무원 시험

 

전 국 17개 시·도에서 그제 치러진 9급 국가공무원 시험에 19만 987명이 몰려 52대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교육행정직은 10명을 뽑는 데 무려 7343명이 지원했다. 사상 처음으로 응시자가 20만명을 넘어섰던 2년 전보다는 다소 줄었지만 9급 공무원시험 응시자는 여전히 20만명에 육박한다. 국가가 주관하는 단일시험으로는, 60만여명이 응시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이어 최대 규모다.

 

‘관 (官)피아’ 척결 분위기가 여전하고 공무원연금 개혁이 추진되고는 있지만 공무원에 대한 인기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민간 기업의 고용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목도한 뒤부터 공무원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특별한 잘못이 없으면 정년이 보장되는 데다 업무 강도도 민간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고 임금도 민간기업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갑’(甲)의 역할을 해온 관료에 대한 오랜 선망이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도 9급 공무원이 되는 게 민간기업에 들어가는 것 못지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부터 공무원시험에 나이 제한이 없어지면서 20대 젊은 층뿐 아니라 40·50대 중장년도 9급 공무원 시험에 대거 도전하고 있다.

 

‘인 문계 출신 90%는 논다’는 ‘인구론’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청년실업이 심각한 것도 9급 공무원 시험의 이상과열 현상을 불러왔다. 대졸 실업자 수는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50만명을 넘어섰다. 3년 전만 해도 30만명대 수준이었던 게 해마다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올해 1분기 20대 대졸자의 실업률은 9.5%로 역대 최고였다. 기업이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대졸 공시족(公試族)’의 급증을 불러왔다.

 

직 업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젊은이들이 상대적으로 창의력을 더 발휘할 수 있는 민간기업보다 안정적인 ‘철밥통’만 노리는 것은 도전의식이 결여된 일이다. 대학졸업장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에까지 굳이 대졸자들이 대거 몰릴 필요가 있나. 경제성장의 불씨를 살리고 국가의 부(富)를 창출하려면 유능한 젊은 인재가 민간기업에 더 많이 진출해야 한다. 정부는 이런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걸맞은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가 살아나면서 기업투자와 일자리가 함께 늘어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0월] 지난 중기중앙회장 선거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지 난 2월 중소기업중앙회장 선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는 중소기업중앙회장 선거에서 박성택 회장(당시 후보)에 대한 지지를 부탁하며 금품을 뿌린 혐의로 중앙회 부회장 맹모씨를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본란은 이미 정치판을 방불케 했던 지난 중앙회장 선거가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를 밝힌 바 있다. 결국 그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가. 우리는 중소기업중앙회장 선거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이번 선거만 해도 8명의 예비후보가 나왔다. 문제는 이런 선거 과열이 급격히 증가하는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예산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지원정책은 무려 500가지가 넘는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중소기업 정책금융 비중(2009년 기준)만 해도 6%에 육박해 OECD 최고 수준이다. 소위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공짜돈’들이 그만큼 넘쳐난다는 얘기다.

 

이 런 현실에서 중소기업중앙회장의 영향력이 어떠할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특히 지난 선거는 그런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무슨 대통령 선거인 줄 알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력과 예산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온갖 특혜성 공약이 난무했다. 각종 이권성 사업을 중소기업중앙회로 이관하겠다는 공약, 단체수의계약을 부활하겠다는 약속, 대형마트로 하여금 동반성장기금을 출연토록 하겠다는 각오, 대통령 직속 위원회 신설 등이 바로 그런 사례였다.

 

‘보 호’와 ‘특혜’ 속에 자원배분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리 없다. 정부의 ‘눈먼 돈’이나 뜯어먹자는 중소기업이 많아지면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 중소기업은 좌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김기문 전 회장조차 “중소기업 정책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고백했겠나. 중소기업중앙회장 선거에서 부정부패가 터지는 것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50420월] 가계대출 걱정 없다는 최 부총리의 발언 믿어도 되나

 

주 요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최경환 부총리가 “가계대출이 증가하고 있지만 크게 위험하지는 않다”고 말했다는 보도다. 지난 주말 워싱턴특파원들과 만나 “가계부채는 총량도 봐야 하지만 상환능력이 더 중요하다. 지금 총량은 늘고 있지만 부동산 가격이 회복되고 있어 큰 문제는 없다”는 요지로 발언했다는 것이다.

 

최 부총리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한국이 꼭 올릴 필요는 없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지난 1년간 미국의 금리인상 예고에도 불구, 순자본 유입이 있었던 만큼 미국의 정책변화에도 자본유출 우려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저금리를 지속하는 방법으로 지금의 가격변수들을 적절한 수위에서 유지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것이라고 읽히는 대목이다. 과연 그렇게 낙관적으로만 봐도 좋을까.

 

지 난해 말 1089조원을 기록한 가계부채는 올 들어 말 그대로 폭증세다. 지난 3월 한 달만으로도 은행권 가계대출은 4조6000억원이나 늘었다. 1월(1조4000억원) 2월(3조7000억원)에 이어 매달 급증하고 있다. 2013년 3월(5000억원), 2014년 3월(3000억원)과 비교하면 10배에 달한다. 한국의 가계부채가 위험수위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보통 GDP의 75%를 가계부채의 임계수준으로 보는데 이미 73%로 위험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가 계대출 급증은 정부가 부추긴 결과다. LTV(담보인정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완화와 기준금리 인하가 촉발했음은 물론이다. ‘부동산 및 증시 부양→자산 가격 상승→부채 증가’의 전형적 거품 사이클을 정부가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에서 보듯이 자산가격은 언제 어떤 방향으로 치달을지 모른다. 해외자금 역시 작은 충격으로 순식간에 빠져나갈 수 있는 만큼 언제까지 저금리를 유지할 수도 없다. 담보가치 급락, 금리 급등으로 인한 가계부채 대란이 상상 속의 시나리오만은 아니다. 가계대출이 걱정 없다는 최 부총리의 말이 걱정인 것도 그래서다. 최 부총리는 정치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국민경제는 시기를 정해놓고 있지 않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0월] 공무원연금법 등 4월 국회 처리는 대국민 약속이다

 

4·29 재보궐선거와 '성완종 리스트' 파문 속에 4월 국회가 이번주 공무원연금개혁법 등 법안 심의를 본격화한다. 애초 재보선 일정에 따른 정치공방으로 임시국회 자체를 여는 것에 부정적인 여론이 있었으나 시급한 개혁·민생법안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소집된 4월 국회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현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제대로 된 법안 심의는커녕 화급을 다투는 법안마저 줄줄이 표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가 뜩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동력을 상실하고 있는 공무원연금개혁법안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사회적 합의 불발에 이어 국회 공무원연금개혁 특별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이번주 연금개혁 실무기구 안을 토대로 활동을 개시할 방침이지만 뚜렷한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가뜩이나 공무원단체 등에 편향돼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이 연금개혁에 미온적으로 나설 공산이 크다. 이대로라면 여야가 합의한 5월6일 처리시한을 지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봉 급생활자들의 5월 급여 때 환급해주기로 미리 발표한 연말정산 보완책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도 방치될 위기에 있다. 여기다 4월 국회 우선 처리를 여야가 합의한 일명 크라우드펀딩법과 무상 보육지원을 위한 지방재정법, 주거복지기본법, 생활임금법(최저임금법) 등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사문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 처리가 이미 여러 차례 좌절된 서비스산업발전법과 관광진흥법 등 경제살리기 법안 등은 이번에도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재 보선이 혼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프레임 전쟁'을 펼치고 있는 정치권의 행태를 볼수록 이 같은 불길한 전망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앞서 지난주 대정부질문도 시급한 현안 질의보다 이완구 총리의 금품수수 여부 추궁 및 성토와 이를 방어하는 공방만 거듭했을 뿐이다. 성완종 사건은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는 사안이다. 정치권은 국민에게 약속한 4월 국회 본연의 임무를 다하기 바란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420월] 재정확대에서 구조개혁으로 방점 옮긴 IMF

 

글 로벌 경제가 재정확대와 통화완화 정책만으로 더 이상의 추가적 성장세를 이끌어내지 못하자 국제통화기금(IMF)이 한발 더 나아가 구조개혁과 인프라 투자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IMF의 최고자문기구인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는 18일 미국 워싱턴DC에서 회의를 마치고 이런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인프라 투자 확대를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한편 구조개혁으로는 성장세를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를 보강하자는 것이 선언문에 담겨진 의도다. IMFC는 188개 회원국을 대표하는 24개국으로 구성되며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회의에 초청국 자격으로 참석했다.

 

어 떤 경제정책들도 제대로 약발이 먹히지 않는 최근의 글로벌 경제 현상에 대해서는 세계적 석학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얼마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전 의장인 벤 버냉키와 재무부 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가 침체 원인으로 과잉저축 및 구조적 장기침체 가설을 내세우며 논쟁을 벌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정책의 시의성 여부를 떠나 경제성장에서 혁신과 구조개혁, 인프라 투자 확대 등은 교과서적 처방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IMF가 오랜만에 이들 처방에 방점을 찍은 것은 반가운 현상임에 틀림없다. 이 같은 처방전은 한국의 정책 선택에서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지 금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은 지속적 재정확대 정책에도 불구하고 제로에 가까운 물가상승률과 저성장에 빠져들면서 심지어 디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할 정도다. 현상이 답답할수록 과감한 구조개혁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특히 국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가로막거나 신규 고용을 저해하는 노동 및 공공 부문의 개혁은 시급을 요하는 실정이다. 정부는 재정 탓만 할 게 아니다. 이런 규제들을 제대로 풀지 못하는 한 기업 투자 확대 역시 연목구어일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의 흐름을 막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할 일이 아닌가.

 

 

[서울경제신문 사설-2015020월] 현대-기아차 노조 수입차 앞에서 자기네끼리 다투나

 

대 기업 정규직 노조의 탐욕과 이기주의로 소비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 내 현대차 노조와 기아차 노조가 이제는 볼썽사나운 감정싸움까지 벌이고 있다. 무엇이 회사의 위기이고 위기극복에 노조가 어떻게 나서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은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에는 차량 출입 문제가 노조 간 신경전의 대상이다. 기아차 노조가 자사 공장에 현대차 출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실시하자 현대차 노조도 운영위원회를 열어 기아차 등 타사 차량이 공장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결의했다고 한다.

 

그 야말로 목불인견이다. 현대차 노조와 기아차 노조는 툭하면 자신들의 일감 지키기에 목을 매면서 공장과 생산라인, 정규직과 비정규직끼리 치열한 밥그릇 싸움을 벌여왔다. 인기 모델을 생산하는 조립라인은 일손이 부족해 주문이 밀려 있는데도 바로 옆의 공장에서는 일감이 없어 빈둥빈둥 노는 일이 빈번하다. 공장별 생산물량을 결정할 때 각 공장마다 배치된 노조 대표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집행부에서 조합원을 보호한다며 유연한 근무방식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현대차 전주공장의 개발인력 410명을 남양연구소로 옮기려고 했지만 노조에서 임금협상 카드로 들고 나오는 바람에 연구소 통합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회사 경영이야 어떻게 되든 당장 눈앞의 내 몫만 더 챙기면 된다는 식이다.

 

지 금 현대차그룹은 안팎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내수시장 점유율만 해도 수입차의 기세에 밀려 67% 밑으로 떨어졌다. 다급한 회사 측이 실적부진 직원들에게 경고장을 보내지만 마이동풍이라고 한다. 현대차가 수입차 공세에 힘없이 무너지는 것도 바로 노조의 이런 행태에 염증을 느낀 소비자들이 고개를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네들의 적은 그룹 내 상대방 차량이 아니라 외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차들인지도 모르고 있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한겨레신문 칼럼-2030 잠금해제/조원광(수유너머N 회원)-20150420월] 급식 논쟁을 보며: 우리는 하나인가?

 

불 평등과 관련된 자료를 살피다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특히 불평등과 폭력 지표의 관계를 볼 때 그러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지난 한 해 동안 폭행을 당하거나 강도를 당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과 불평등 지표인 지니계수의 관계를 보면, 양의 상관관계가 확인된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학생들 사이의 괴롭힘 역시 이와 비슷한 관계를 보인다는 점이다. 최근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보고한 학생의 비율 역시 지니계수가 높은 국가일수록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불평등할수록 서로에 대한 증오를 표출하고 있는 형국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정치학자인 로트스테인과 어슬래너는 “모두가 모두를 위해”(all for all)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불평등이 공동체 의식과 상호신뢰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함으로써, 이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불평등은 사람들이 한 집단에 소속된 운명 공동체라는 인식을 떨어트린다. 당연히 신뢰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나와 상관없는 삶을 사는 사람을 어떻게 믿겠는가? 상호신뢰가 낮고 공동체 의식이 약화된 사람들 사이에서 더 많은 폭력이 일어나는 것은 안타깝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아가 저자들은, 분리를 자극하는 정책이라면 심지어 그것이 복지 정책이라 해도 상호신뢰를 떨어트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이 스웨덴과 미국의 사례를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른바 선별복지는 상호신뢰를 약화시킨다.

 

요 즘 힘드실 것 같은 한 도지사님을 포함하여, 여러 어른들이 학교가 모든 학생들에게 공평하게 급식을 제공하는 것에 불만이 많은 듯하다. 그 불만이 나쁜 마음에서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짜 좋아하는 아이로 키울 셈이냐!’라는 말에는, 자칫 학생들이 누군가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여기는 의존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처럼 쓸데없는 걱정도 없다. 한국 사회는 그 점에서 아주 확실한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스펙 관리를 하지 않으면 취업할 수 없다고, 그 상황은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용이 되었다 해도 여러 안전장치가 사라질 수 있으니 알아서 자기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노후는 각자 알아서 챙겨야 하며, 자기 몸 자기가 잘 돌보지 않으면 심지어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덕분에 학생들은 믿을 것은 자기 자신뿐이라는 확고한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밥 한 끼 함께 먹는다고 이런 절박한 인식이 갑자기 여유롭고 국가 의존적인 인식으로 바뀌겠는가?

 

걱 정해야 할 것은 ‘공짜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불평등한 세상에서 원자화되어버린 마음과 거기서 돋아나는 증오와 폭력이다. 공동체 의식은커녕 모두가 경쟁 상대라고 사람들을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증오범죄의 싹이 조금씩 돋아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일베가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것 같은 집단을 향해 ‘무임승차자’라 욕을 해대고, 정말 상상하기조차 힘든 방식으로 세월호 유족분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과연 이와 무관할까? 만약 ‘어른’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그가 해야 할 일은 이 각박한 세상에 그래도 우리는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공동체라고 말하는 것이다. 부디 학교에서만이라도 그런 공동체 정신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주철환(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20150420월] 사랑이 지나가면

 

‘사 랑이 이만큼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봄날은 간다’. 오래전 영화 포스터(유지태·이영애 주연의 ‘봄날은 간다’)에서 읽은 문구다. 동영상 사이트에서 마지막 장면을 다시 본다. “(여) 우리 헤어지자. (남) 내가 잘할게. (여) 헤어져. (남) 너 나 사랑하니? (남 침묵 후)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남 힘없이) 헤어지자.” 마음을 바꾼 걸까, 말을 바꾼 걸까, 아니면 사랑하기에 헤어져 주는 걸까. 애초부터 서로 원하는 게 달랐던 건 아닐까.

 

  한국에서 동일한 제목으로 가장 많이 만들어진 대중가요는 ‘사랑’도 아니고 ‘이별’도 아니다. ‘가요무대’에서 발표한 정답은 ‘짝사랑’이다. 최근에 나온 ‘짝사랑’만 해도 2개나 된다. “그대의 표정이 너무 차가와서 나의 말은 닿기도 전에 얼어붙네.”(10㎝가 부른 ‘짝사랑’) “꽤 오래된 것만 같아 널 몰래 좋아했던 나.”(산들이 부른 ‘짝사랑’)

 

  “그런 가수도 있어?” 유행과 멀어졌다고 비감에 젖기엔 이르다. 세대별 맞춤 짝사랑이 즐비하니까.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고복수가 부른 ‘짝사랑’) “왜 그런지 가슴이 두근거려요 그녀만 보면 그이만 보면.”(바블껌이 부른 ‘짝사랑’)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난 아직 몰라 난 정말 몰라.”(주현미가 부른 ‘짝사랑’)

 

  혼자 앓다가 저절로 치유되는 짝사랑도 흔하다. 돈도 절약되고 문학적 상상력은 증대된다. 상처로 남는 짝사랑이 문제다. 사랑이라 믿었는데 상대는 사랑이 아니라고 확인해 준다. 그것도 여러 사람 앞에서. 이루지 못한 짝사랑은 허공을 떠돈다. 그 배신감은 생사의 경계를 허물기도 한다.

 

  대한민국을 흔드는 리스트 파문을 보며 나는 짝사랑의 대상이 부르면 어울릴 가사를 찾아냈다. 이문세가 부르고 아이유도 리메이크했던 불후의 명곡 ‘사랑이 지나가면’. “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중략)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새벽빛』이라는 자서전을 낸 기업인은 새벽빛 속에서 누군가를 찾아 헤맸다. 그 장면은 고스란히 폐쇄회로TV(CCTV)에 남았다. 그리고 ‘손잡을’ 사람이라 여겼던 마지막 희망의 리스트는 마침내 ‘손볼’ 사람 명단이 적힌 원망의 리스트로 바뀌었다. 그렇게 속절없이 사랑은 지나갔다. 이제 교훈을 말할 차례다. 그는 혼동했다. 사랑은 사업이 아니었다. 가짜는 있어도 공짜는 없었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이기환(논설위원)-20150420월] 신어와 말장난

 

‘시 크(chic)하다’라는 표현이 있다. 국립국어원이 2004년 펴낸 <신어(新語)> 자료집은 ‘멋있고 세련되다’는 뜻의 신어라고 소개했다. 그러고 보니 ‘젠틀하다’ ‘스마트하다’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시크하다’는 그리 오래전의 표현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틀렸다. ‘시크하다’는 자그마치 84년 전에 등장한 신어였으니까.

 

“ ‘쉬-크’라는 신어는 멋쟁이 하이칼라를 뜻한다. 외형만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이해하는 빈틈없는 근대인이다. 내면이 빈약한 모던보이, 모던걸에 반해 쉬크보이, 쉬크걸은 훌륭한 신사숙녀이다.”(동아일보 1931년 4월13일).

 

사 실 신어는 단순히 새롭게 생긴 말이나 뜻이 아니다. 당시 신문은 영화배우인 해리 크로스비의 언급을 인용, “신어는 낡은 어휘에서 도망나온 배암(뱀)이며, 거인(사전)의 어깨 위에 앉아 거인보다 멀리 미래를 보는 난쟁이”라 했다. 예컨대 1960년대 등장한 ‘저자세(低姿勢)’라는 신어를 보자. 1963년 대통령선거에 나선 허정 후보는 “일본에 가서 ‘고멘구다사이(미안합니다)’ 하는 저자세가 민족정기냐”고 한·일회담에 임하는 정부의 자세를 공격했다. 신어 ‘저자세’는 ‘한일 저자세 외교 반대 범국민투위’가 결성된 이후 지금까지 폭넓게 쓰이는 단어가 됐다. 부패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부정축재’와 ‘선심공세’도 오래된 단어가 아니라 1960년대에 등장한 신어들이었다.

 

3·15 부정선거 당시 경찰국장·시장·군수로 재직한 자는 자동해임시킨다는 내용을 담은 공무원처리요강(1960년 9월)은 유명한 ‘자동케이스’라는 신어로 거듭났다.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벌이던 여대생이 자신을 밀어붙이던 경찰에게 ‘징그러운 손을 대지 말라’고 울부짖었다. 이후 ‘징그러운’은 ‘보기 싫은 것’의 대명사가 됐다. ‘구악·신악’ ‘왕년에…’ ‘기관원’ ‘하극상’ ‘불도저’ ‘소비는 미덕’ ‘빈익빈 부익부’ ‘바캉스’ 등도 불과 50여년 전에 만들어진 신어임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예전의 신어는 말줄임과 말장난이 난무하는 요즘의 신어와 비교할 때 신랄한 풍자와 생명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 그때도 요즘과 같은 신어는 있었다. ‘아더매치’가 대표적이다. 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껍고 치사하다는 것의 줄임말이다.

 

 

[서울신문 칼럼-씨줄날줄/구본영(논설위원)-20150420월] 랜드마크의 저주

도 시의 랜드마크(상징적 건조물)가 될 만한 초고층 빌딩을 세우는 일. 도시계획가나 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에게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일 게다.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국내외 소비층과 관광객을 끌어들일 동인이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그 러나 우리네 지자체장이나 건설업체들이 간과해서 안 될 대목이 있다. 기념비적 건물을 세우겠다는 욕망이 때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최첨단 기술력으로 건립한 초고층 빌딩이 이따금 경기 불황을 부른다면 말이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1970년대 오일쇼크, 19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는 모두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빌딩 건축붐 이후 들이닥쳤다고 한다. 이른바 ‘마천루의 저주’(skyscraper curse)란 속설이다.

 

70 층 이상 초고층 빌딩의 경제성에 대해서 전문가들도 회의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지만 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경기 변동에 대응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호황기에 시공했다가 분양 시점에 경기가 식어 버리면 건축주들에게는 애물단지가 되고 만다는 얘기다. 하지만 경기 변동은 예측이 어렵다는 게 문제다. 오죽하면 경제·금융 사이트 마켓워치가 연초부터 활황세였던 미국 증시가 이제 조정 국면임을 설명하면서 ‘경제 타락 지수’(economics vice index)란 개념까지 원용했겠나. 마켓워치는 이 지수가 지난달 100을 밑돌았다면서, 섹스 산업의 위축은 ‘방어 투자할 때’임을 뜻한다고 보도했다. 여윳돈이 생기면 도박·매춘·음주 등 쾌락을 위한 지출도 늘게 마련인데 그 반대 국면이란 함의다.

 

경 남기업이 베트남 하노이에 건립한 랜드마크72 빌딩이 성완종 전 회장의 발목을 잡은 건가. 총 15억 달러를 쏟아부어 2012년에 지은 이 건물은 350m로 베트남에서 가장 높다. 72층 복합빌딩 1개 동과 48층 주상복합 2개 동을 포함해 연면적은 60만 8946㎡로 세계 최대다. 하지만 이 빌딩의 얼굴 격인 호텔 개관이 늦어지고 있는 데다 경남기업의 워크아웃이 장기화하면서 입점한 백화점마저 장사가 안된다는 이유로 철수했단다. 경남기업은 이 빌딩을 팔아 회생자금을 조달할 계획이었으나 성 전 회장이 자원개발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자 카타르 투자청은 인수협상을 중단했다.

 

이 런 막다른 골목에서 성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선택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쯤 되면 ‘랜드마크의 저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경기 변동을 예측하지 못하고 무리한 투자를 끌어들인 성 전 회장의 경영 책임은 일단 제쳐 놓자. 혹여 그에게 제대로 된 조언은커녕 무리한 은행 대출을 알선했던 인사들이 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랜드마크72에서 여럿이, 혹은 부부 동반으로 향응을 받기도 했던 여야 정치권 인사들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경제신문 칼럼-천자칼럼/고두현(논설위원)-20150420월] 곡우 단비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푸르른 보리밭 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60 년 전 현대문학에 처음 발표된 이수복 시 ‘봄비’ 다. 봄의 마지막 절기 곡우(穀雨·4월20일)에 내리는 비는 백곡을 기름지게 하는 단비다. 예부터 모든 곡식이 잠을 깨는 곡우에 비가 내려야 논에 못자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못자리가 잘 돼야 가을에 수확이 많을 것은 당연하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가 마른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땅 에서 만물이 피어나는 것처럼 물에서도 생기가 넘쳐난다. ‘강나루 긴 언덕’ 옆에서 민물고깃배와 낚시꾼들은 신바람이 난다. 서해 칠산 앞바다와 연평도 일대에는 알배기 참조기가 떼를 지어 몰려온다. 이 무렵 산란 직전에 잡은 조기를 ‘곡우사리 조기’ ‘오사리 조기’라 해서 최상품으로 친다. 이것을 해풍에 말린 게 곧 임금님 수라상에 올린다는 ‘곡우사리 굴비’ ‘오가재비 굴비’다.

 

이 때쯤에는 나무에도 수액(樹液)이 넘쳐난다. 고로쇠나무가 많은 지리산에서는 곡우 때 약수제까지 지낸다. 자작나무·박달나무·다래나무 수액도 인기다. 위장병 치료에다 남자에게 좋다는 고로쇠물은 경칩부터 나지만 이뇨작용에다 여자에게 더 좋다는 거자수액(자작나무)은 곡우 때가 절정이다.

 

곡 우 전에 딴 우전차(雨前茶)도 마찬가지다. 맨 먼저 딴 찻잎이라 해서 첫물차라고도 하는데, 맛이 좋고 향이 은은하며 생산량은 적어 값이 비싸다. 곡우가 지나면 순이 잎으로 변해 맛이 줄어들기에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다성(茶聖) 초의선사는 ‘(중국 다서(茶書)에) 곡우 5일 전이 가장 좋다고 돼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곡우 전후는 너무 빠르고 입하 전후가 적당하다’고 했다. 절기와 생육이 중국과 다른 것을 일깨우는 말이다.

 

곡 우에는 산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청명에 피기 시작한 들꽃이 산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일렁이는 강물 사이로 버들가지 푸르고 온갖 꽃 비단 장막에 푸른 숲이 아롱거리는 절기. 때맞춰 곡우 앞두고 내리는 단비에 온 땅이 촉촉하다. 이 비 아니었으면 들꽃과 산꽃 사이에 수천수만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꽃잎 뒤태를 슬며시 들추며 딴청 피우는 빗소리 때문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는 것도 모를 뻔했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만파식적/온종훈(논설위원)-20150420월] 무라카미 하루키

 

무 라카미 하루키는 1989년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가 국내 출간된 후 26년 동안 줄곧 사랑받아온 일본 작가다. 이 책은 원제목으로 재출간됐을 뿐 아니라 세 권의 '1Q84'는 국내에서만 200만권이 넘게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작가는 1990년대 중반 우리 '신세대' 문화의 아이콘으로까지 부상했으며 이 때문에 2000년대 초반 휴대폰 TV 광고에는 "노르웨이의 숲에 가보셨나요"라는 문구가 등장하기도 했다.

 

현 대인의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을 다루는 그의 소설은 국내에서 첫 출간 당시부터 '포스트 모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래서 국내에서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을 쓴 사람들이 '무라키미류(流)'로 분류되기도 하고 일부 작품은 표절 논란까지 일어나는 등 항상 화제가 뒤따랐다. 일본 현지뿐만 아니라 국내 평단에서도 평가가 냉탕과 온탕을 오가지만 무라카미의 작품은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미주에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며 노벨상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 런 무라카미가 최근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역사 문제에 대한)사죄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며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총리 등 현 일본 위정자들의 독선적 경향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지난해에도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일본인은 가해자라는 생각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며 쓴소리를 했다.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이 역사 문제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원인을 가해자인 일본의 문제로 정확히 통찰한 것이다.

 

다 른 영역이지만 '로마인 이야기'로 한국에서 유명한 이가 시오노 나나미다. 시오노는 지난해 잡지 기고에서 네덜란드 여성을 종군 위안부로 동원한 것에 대해 "이야기가 퍼지면 큰일"이라며 한국인 위안부와 관련해 강제 연행은 없었다는 식의 망언을 했다. 무라카미와 시오노의 이 차이가 종전 70년을 맞는 오늘의 일본 사회가 당면하고 있고 미래를 위해 극복해야 할 분열적 역사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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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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